아크 1권 차례 프롤로그 ACT 1 뉴 월드 ACT 2 마우스 헌터 ACT 3 첫 번째 던전 ACT 4 괴물 쥐와 사투를 벌이다 ACT 5 하베스틴 자작의 복수 ACT 6 캣 나이트 ACT 7 소환수 ACT 8 걸리면 죽는다 ACT 9 두 여자 프롤로그 '여기가 면접장인가?' 김현우는 낡은 안경을 추켜올렸다. 서울 강남, 전철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빌딩이었다.블 랙 글라스 처리를 해 놓은 빌딩 전면에 '글로벌엑서스 코리 아' 라는 영문이 번쩍였다. 평생에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 던 대기업 간판을 보자 절로 주눅이 들었다.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돌아갈 용기는 더더욱 없다. 크게 심호홉을 하고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면접 보러온 사람인데요." "3층으로 가세요." 모델 뺨치게 생긴 안내원이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아, 네.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고 허둥지둥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들이 웃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간 다. 갑작스럽게 면접장에 나오라는 통지를 받고 덩치 큰 친 구 양복을 빌려 입었다.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허둥대는 꼴이 꽤나 꼴사나워 보였으리라.물론 여유있게 연락을 받 았어도 달리 뾰족한 수는 없지만……. 3층에 올라가자 휴게실이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근사한 양복을 빼입은 사람들이다. 의외로 가벼운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도 있었지만,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자랑할 만한 학 력과 경력을 가지고 있으리라. 그들과 섞여서 면접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아니, 정말 이대로 면접 을 봐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 오지 말았어야 했나? 이러다가 정말 일이 커지는 거 아냐?' 현우는 불안한 얼굴로 답답한 한숨을 불어 냈다. 현우는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분명 5년 전까지는 그랬다. 메이커를 좋아하고, 부모님을 졸라 신제품 핸드폰을 사 고, 주말이면 게임에 빠져 밤을 새우는,그야말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끔씩 TV에 서 보여 주는소년 가장 얘기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 고, 한편으로는 자기는 절대 저렇게 살지 못할 거라고생각 했다. 그게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수업중에 급한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이 탄 차가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간단한 통화 한 번으로 현우의 인생이 변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몇 번의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사고는 아버지의 졸음운전이 원인이었다. 피해자 측도 사람 이 죽어 보상을 해야 했다.그러나 보험이 만료되고 아직 갱 신하지 않은 상태라 보험사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 경찰이 다녀갔고, 피해자 측 변호사도 몇 번이나 다녀갔다. 현우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이 어려운 말들이 오간 모양이다. 집을 팔았고 각종 보험과 적금을 해약했다. 월세 단칸방으로 옮겨 급한 문제는 해결했지만 어머니는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다.의료보험이 민영화된 지 10년이 지났다. 감기나 배탈 따위로 병원을 찾을 때는 필요이상의 서비스를 받았으나,막상 도움이 절실해지자 보험사는 보험사는 태도를 바꿨다.영어와 한자로 가득 찬 약관을 들이밀며 보상 범위 밖이라고 지껄여 댔다.덕분에 다달이 300~400만 원의 병원비 가 청구 되었다. -힘들겠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힘내라. 이건 병원비에 보태 쓰고. 다섯이나 되는 외삼촌과 친삼촌이 넋 나간 현우의 주머니에 봉투를 찔러 주었다.그리고 두 번 다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처참하고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봉투에 들어 있던 돈은 모두 합쳐 300만 원. 한 달 병원비로 쓰기에도 부족한 돈이었다. 병원비를 대기 위해 빚을 졌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대기 위한 빚은 꾸준히 늘어갔다.현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TV에서 나오던 소년 가장들은 어른스러운 게 아니다.단지 어른스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한 것 뿐이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 그 말의 의미를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았다. 현우의 생활이 바뀌었다.새벽에 일어나 우유와 신문 배달을 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돈 되는 아르바이트는모두 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해봤던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나 공사판에서도 일했다. 몸살이 나 팔다리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일은 쉬지 않았다. 남달리 성실해서가 아니다. 하지않으면 안 되니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수입으로는 생활비와 병원비를 대기에도 빠 듯했다. '그래도 친척들에게 아쉬운 소리 따위는 하지 않겠어!' 그럴 때마다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사람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친구의 경조사에 빠 지는 일이 없었고, 친척에게 큰일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적 금을 해약했다.그러나 진심이 선신으로 보답받는건 책에서 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되자 누 구 하나 발 벗고 나서 주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돈도 꿔 주지 않았다. 돌려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사 정이 좋을때 만들어진 인간관계란 그렇게 얄팍한 것이다. 현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차갑기 그지없는 현 실을 절감했다. 아무리 각별해도 남은 어차피 남이다. '나와 어머니를 지킬 사람은 하늘아래 오직 나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학교도 그만두고 일을 하고 싶었지만 병석 에 누워계시는 어머니에게 차마자퇴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졸업까지 1년. 참아봐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사고도 상황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현우가 좋은 직장을 구하기란 무리였다. 단지 일할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 이외에 달라진 점은 없었다. 여전히 하루종일 일하고 월말이면 병원비와 늘어나는 빚을 계산하기에 정신없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어느덧 메이커를 입고 최신형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또래 를 부러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부러워하는 것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것이다. 그런 현우가 딱 하나,포기하지 못한게있었다.현우가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직업은 게임 제작회사의 사원이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틈만 나면 게임으로 밤을 새우곤 했 다.아마도 별문제가 없었다면 컴퓨터 관련 학과에 들어갔을 것이다. 비록 대학은 포기했지만 그 꿈은 포기할수 없었다. 월30만원이나 되는 수강료를 내고 간신히 시간을 내서 학원을 다니는 이유였다. 어느날,평소 현우를 좋게 봐 온 강사가 물었다. "현우야,너 게임회사에 들어갈 생각 없니?" "게임회사요?" "음, 아는 선배가 게임회사에 있는데 이번에 신입 사원을 모집한다고 하더라. 성실한 학원생 중에 몇 명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들으니 네 생각이 나서말이야. 너 일전에 게임회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지?" "대학 안 나온 사람도 괜찮아요?" "20세 이상. 성별, 학력 제한 없음." "어딘데요?" "글로벌엑서스. 너도 알지?" "네?" 현우는 얼어 버렸다. 학력 제한이 없다고 하기에 그저 작은 게임회사 정도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글로벌 엑서스라니!글로벌 엑서스는 게임업계에서 신화적인 기업이었다.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가상현실 시스템을 현실화했고 이를 게임에 응용, 그 뒤로 2개의 대작 게임을 히트시켜 연 매출이 수십 조에 달한다는 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뭐가 아쉬워서 저 같은 사람의 지원을 받아 주겠어요?"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선배 말로는 이번 사원 모집은 여러모로 특이하다고 들었어.서류심사도 학력이나 경력 우선이 아니야. 그리고 시험도 그런것과는 아무상관도 없는 방식으로 치러진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지원자가 많을테니 쉽지는 않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서류라도 넣어 볼게." 세상은 학력 위주가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온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이제 현우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학력 제한 없이 사원을 뽑는다는 건 구색을 맞추기 위한 대외적인 입장 일 뿐이다.하물며 글로벌 엑서스라면 말할 것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고졸 이력서를 넣어봐야 봐 주지도 않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성명:김현우 성별:남 나이:22 학력:S대 전자공학과 2년 중퇴 (재학 중에 단 한번도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음. 언론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네트워크 방화벽에 대한 모의 실습중 모 게임의 시스템을 해킹한 사건이 크게 문제되어 책임을 지고 자퇴함) 글로벌엑서스 정도 되는 대기업이라면 진위 여부를 알아보는 것은 일도 아니리라.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밑져야 본전이니 될 대로 되라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일전에 내가 얘기한 글로벌엑서스 있지? 서류 심사 통과 했다고 연락이 왔어." 강사도 현우만큼이나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정신없는 사이에 이곳까지 와 버렸다. 어쨌든 면접관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아마도 둘도 없는 기회이리라. 그러니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져 봐야겠다는 생 각이 들었다.그러나 막상 응시자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덜컥 겁이났다. '내가 미쳤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거지? 학력 위조가 탄로 나면 보통 문제가 아닐 텐데…….이러다가 뉴스에 나오게 되는 거 아냐?아니, 설마 글로벌엑서스 정도되는 기업이 고작 학력 위조 사건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일을 크게만들지는 않겠지만…….아,미치겠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게 좋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수갑을 찬 채 기자들의 질문 공세를 받는 장면이 상상 되었다. "어머, 여기 계셨네요?" 문득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레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현관에서 봤던 안내원이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가 여기뿐이네요. 앉아도 되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옆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요. 아까 웃어서. 기분 나쁘 셨어요?" "괜찮아요. 웃어도 할수 없죠. 제가 봐도 웃길걸요?" "네?" 안내원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의아한 눈길로 보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뭔가 오해하신 모양이네요. 제가 웃은 건 그래서가 아니에요. 보통 안내원에게 허리까지 숙여 가며 인사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좀 특이하신 분이 라고 생각해서웃은 거예요. 그리고 그 양복, 상당히 잘 어울리는데요?" 현우는 얼굴이 붉어졌다. 자격지심이었을 뿐이라는 건가? "죄송합니다. 오해해서." "아니에요. 제가 더 미안하죠."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실은 저도 이번에 원서를 넣었거든요. 강미수라고 해요." "아, 저는 김현우라고 합니다." 강미수가 손을 내밀었다. 현우가 손을 옷자락에 쓱쓱 문지르고 잡으려는 순간. "응시자 분들은 모두 강당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젠장. 됐어.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현우는 망설일 틈도 없이 인파에 휩쓸려 강당으로 들어섰다. @ 강당에는 약 2천 명의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뽑는 사람이 10명 내외라고 하니 200대 1의 경쟁률인 셈이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단상에 20대 후반의 사내가 올라섰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저는 기획팀장 하명우라고 합니다. 회사를 대신해서 글로벌 엑서스에 지원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뒤를 이었다. 하명우는 가볍게 목례하고 말을 이었다. "그럼 바로 여러분이 궁금해하시는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여기 계신 분들 중에 한 달 전글로벌엑서스가 내놓은 신작 가상현실 게임, 뉴 월드에 대해 알고 계신 분 이 있으시면손들어 주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을 드러었다. 그러나 현우는 아직 해본 적이 없었다. 가상현실게임은 일반 컴퓨터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해 보려면 따로 판매되는 네트워크 유니트를 사야 하는데 그게 상당한 고가였다. 물론 가상현실 게임을 할 수 있는 게임방도 있었다. 그러나 유니트 가격이 비싼 만큼 이용료가 비쌌다. 하명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아직 게임을 접해 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니 간단하게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글로벌엑서스는 세계 최초로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 게임의 새로운 역사를열었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뒤이어 여타 게임 회사에서도 속속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었고,가상현실은 이미 대중화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뉴 월드는 게임계의 또 다른 혁신이 될 게임입니다." 게임을 경험해 본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설명에 현우는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까지 가상현실 게임이라고 하면 망막에 직접 그래픽을 주입해서 시각적으로 가상세계를 구현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매한 뉴 월드는 다르다. 망막이 아닌 뇌에 직접 정보를 입력해서 게임내의 모든 것을 실제 경험하게 해 주는 게임이었다. 덕분에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오감으로 또 다른 세계를 보고 느낄 수 있었다. 현우가 게임을 잊고 산게 고작3년, 기술의 발전속도가 놀라울 뿐이다. "그만큼 유니트의 가격이 기존의 4배에 달할만큼 비싼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뉴 월드는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현재와 또 다른 인생,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만큼 10년,20년 뒤에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갈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번 채용 시험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뉴 월드를 전담 관리할 인재를 뽑는 자리입니다." "채용 심사의 기준이 뭡니까?"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아마도 여러분이 가장 궁금하실게 그것일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 중에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학력과 경력을 가지고 계신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실겁니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 그런 것들은 잊어버리십시오. 저희는 경력이나 학벌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뉴월드의 생명력을 수십 년으로 생각 하듯이, 이를 관리할 인재 역시 장기적인 안목으로 채용하게 될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게임에 대한 열정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성에 무엇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물리,화학, 천문, 나노 과학, 심지어 의료까지. 모든 방면의 최고 전문가가 모여 십수 년간 연구해만들어 낸 가상현실 게임이 바로 뉴 월드다. 그러나 글로벌 엑서스는 그런 지식을 가진 직원을 원하는게 아니다. 불을 피우는 원리 를 설명할줄아는 사람보다, 직접 불을 이용할 줄 아는 직원을 원한다는 게 하명우의 설명 이었다. "그런것을 어떻게 판별합니까?"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명우가 입술 가장자리를 살짝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내일 오후, 여러분에게 뉴 월드 전용 유니트가 배달될 겁니다. 그 유니트를 이용해서 새 계정으로 뉴 월드를 하시면 됩니다. 그 게임 내에서 어떤 특정한 조건을 달성해서 발생하는 이벤트가 정식 채용의 합격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한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글로벌엑서스에서 최저입금수준인 월150만 원의 지원 금도 지급합니다.여러분이 동일한 조건에서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회 사측의 배려입니다." 전무후무한 채용 방식에 강당에 소요가 일었다. 소요가 가라앉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뭡니까?" "그건 퀘스트를 말하는 겁니까?" "아니면 어떤 레어 아이템?" "궁금하신 게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건 그 목표에 도달할수 있는 길은 수없이 많고, 또한 목표 역시 하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게임 내에서 그 목적이라는 걸 찾아내는 것도 시험의 일부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앞일을 모른다. 그게 게임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하명우가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임 내의 모든 행동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 죠.어떤 식으로 목적을 찾아내서 어떻게 이뤄 갈 것인지. 그게 심사에 적용이 될 것인 지,모든 것은 여러분이 판단할 몫입니다." "시험기간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저희가 모집하는 사원수가 얼마나 됩니까?" "10명이라고 알고 왔습니다." "그 10명이 합격할 때 까지입니다." 하명우가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아마도 사원 채용 역사상 가장 오래 걸리는 시험 될 겁니다. 그러나 뉴 월드에는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림없이." "잘하면 입사동기가 되겠네요. 함께 힘내봐요. 파이팅." 강당을 나오자 강미수가 예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이런 미인과 대기업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 현우는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글로벌엑서스의 안내 책자를 보았다. 세계적인 대기업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안내 책자에는 이번에 특별 시험에 합격한 사원의 대우에 대해 적혀 있었다. 뉴 월드 전담기획부에 배속되어 연봉 1억 가까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유명한 대기업도 초봉이 4천만원 내외인 점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게다가 회사차원에서 보장하는 편의는 그 종류만 한 페이지를 채웠다. '하긴 응시자가 2천명. 모두에게 150만 원씩 지급하면 한달에 30억! 서너달만 시험이 계속돼도 100억이 넘는 돈을 뿌리는 거잖아 채용 시험에만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정도니…….' 그야말로 꿈의 직장! 채용만 되면 현우가 떠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 무엇보다 현우를 사로잡는건 그 독특한 채용 시험. 만점에 가까운 토익 점수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경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것을 원했다면 일찌감치 꿈속의 꿈으로 잊어버렸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방법은 게임으로 성과를 내는 것, 말 그대로 게임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학력에 대해 조사해 보지 않았던 건가?' 어쩌면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져도 문제 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들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희망이 샘솟았다. '이런 방식이라면 나에게도 희망은 있어.' 어려서부터 안 해 본 게임이 없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던 현우다. 대단하달 정도는 아니지만 게임 못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 또한 한때는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을 팔아 짭짤한 용돈 벌이까지 해 봤다. 물론 생각처럼 만만할 리 없다. 200대 1의 경쟁률. 다른 응시자도 인생이 걸린 문제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하지만 같은 조건에서 시작한다면 맥없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건 둘도 없는 기회야. 절대 놓칠수 없어!' 현우는 그날부로 우유 배달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물론 당장 생활비에 병원비가 걸려 있으니 무턱대고 간신히 얻은 직장과 모든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글로벌엑서스에서 지급하는 150만 원으로는 병원비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아직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만 믿고 무작정 빚을 늘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남들보다 시간이 적은 만큼 죽기살기로 하는 수밖에 없지.' 각오를 다지고 집에 돌아오니 곧바로 택배가 도착했다. '도착하기 전에 게임 정보를 검색해 보려고 했는데…….' 그러나 현우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정보는 정보일 뿐이야. 직접 경험해 보는게 더 빠르겠지.' 현우는 곧바로 유니트에 몸을 실었다. 전원을 켜자 낮은 기계음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문득 어디선가 스며들어온 빛과 함께 새로운 인생이 펼쳐졌다. -뉴 월드를 시작합니다. ACT 1 뉴 월드 -초기 가동 중입니다. 필요한 개인 정보를 스캔합니다.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 입니다. 새로운 계정을 등록해 주십시오.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안내에 따라 인적 사항을 대답하자 붉은 빛이 몸을 훑어 내렸다. 그리고 잠시후, 눈앞에 현우와 비슷한 생김새에 가죽옷을 입은 캐릭터가 나타났다. -유니트에서 스캔한 사용자의 모습입니다. 원하시면 생김새와 성별, 종 족을 임의대로 바꿀수 있습니다.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 나의 계정으로 이용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하나로 제한됩니다.한번 생 성 완료된 캐릭터는 바꿀 수도 삭제할 수도 없습니다. 신중하게 생각 해서 결정해 주십시오. 한 게임에 한 캐릭터.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그리 드문 설정도 아니었다. 캐릭터를 바꾸면서 게임을 하면 몰입감이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항상 쓰고다니는 안경이 없으니 얼굴이 조금 이상해 보인다. 현우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얼굴 윤곽만 약간 조절하고 넘어갔다. 종족도 인간으로 설정했다. 대개의 게임에서 인간은 가장 평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직 어떤 직업을 선택해 성장 시킬지 확실히 결정하지 않았으니 모든 직업에 호환성을 가진 인간이 적당하다.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아크." 유니트를 받을 때 떠오른 이름이다. 성서에서 방주라는 의미로 쓰이는 명칭. 누에고치처럼 둥그런 외관도 방주를 떠올렸지만, 그보다는 현우의 미래가 이 유니트에 달려있다는 의미가 컸디. 유치해도 어쩔수없다. -인간 종족이 선택할 수 있는 마을은 네 군데 입니다. 슈덴베르크 왕국의 개척민 마을 하룬,브리스타니아 왕국의 변경 로트, 시니어스 공국의 작은 성 쿠트란. 어느 곳을 선택하든지 조건은 모두 비슷합니다. 이곳 주민들은 모구 이방인에게 친절하며……. "슈덴베르크 왕국의 개척민 마을 하룬." 슈덴베르크 왕국이 그나마 대륙중심부와 가까웠다. -뉴 월드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신다면…… "캔슬." 어차피 게임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초반에 이것저것 많이 알아 봐야 막상 실제 게임에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험보다 나은 지식은 없는 것이다. 현우가 캔슬을 외치자 주변의 빛이 더욱 강렬해 졌다. 동시에 시선이 이동하더니 캐릭터 안으로 스며들었다. 초보 여행자 아크의 탄생이었다. @ "뭐, 뭐야?"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 거렸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이었다. 그리 높지 않은 목책에 둘러싸인 마을에는 대략 100여 가구의 집이 모여 있었다. 아마도 이곳이 개척민 마을 하룬이리라. 그러나 아크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이게 게임이란 말이야?' 믿을 수가 없었다. 주변에 둘러쳐진 산과 들.목책과 건물, 심지어 돌아다니는 사람들까지……. 이건 그래픽이라는 차원이 아니다. 단순히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다. 가죽신을 통해 느껴지는 지면, 귓가를 스치는 바람, 어디선가 풍겨오는 음식 냄새. 현실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이 아니라고 믿는게 더 힘들었다. '내가 해 봤던 가상현실 게임은 게임도 아니었구나.' 망막에 그래픽을 뿌려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게임. 그게 3년 전에 그가 해 본 게임이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가상현실 게임은 그런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야 하명우 팀장이 그렇게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자랑했던 이유를 알겠군' 글로벌엑서스가 뉴 월드를 발표한 지 불과 한 달, 그사이에 다른 게임의 유저들이 엄청나게 뉴 월드로 옮겨 와 크게 기사화된 적이 있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만약 형편만 좋앗으면 그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게임을 했겠지. 세삼스레 글로벌엣서스의 기술력이 감탄스럽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입을 헤벌리고 있던 아크는 슥슥 침을 닦았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아크와 비슷한 과정을 겪고 적응한 사람들이리라. 약간 무안해진 아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옮겼다. '어디 한번 움직여 볼까?' 아크는 국민 체조를 하듯이 몸을 움직여 보았다. 실제로는 유니트 속에 누워 있는 상태겠지만. 정말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거칠게 움직이면 약간 숨이 찬 것마저 비슷했다. '좋아, 조작법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 움직임을 확인한 아크는 시스템을 살펴보았다. "메뉴창." 눈앞에 원형으로 나열된 반투명한 아이콘이 나타났다. 캐릭터 정보창 가방, 스킬, 커뮤니티 등등의 메뉴를 직접 말하거나 아이콘을 가볍게 터치하는 것으로 창이 열리는 구조다. 아크는 얼굴 모양의 아이콘을 터치했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무 레벨:1 직업:무직 칭호:없음 생명력:100 마나:100 힘 15 민첩 15 체력15 지혜 15 지능 15 운 15 빈약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 정보창이 나타났다. 뒤이어 확인한 스킬창은 텅텅 비어 있었고. 가방에는 물 10개 밀빵10개 그리고 단검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자, 이제부터 뭘해야 하나.' 아크는 정보창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너무나 현실과 똑같아 유저와 NPC를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양쪽 모두 초보인 아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주변에 친절하게 할 일을 가르쳐주는 NPC가 있기마련. 두리번거리며 마을을 돌아다니자 광장에서 멀뚱히 바라보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크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실례하겠습니다." "자네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군." 노인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정을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이름이 뭔가?" "아크입니다." "내이름은 한센이네. 자네 같은 젊은이들에게 이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걸 낙으로 삼는 늙은이지. 아마도 자네 역시 이고에서 뭘 해야 하는지 묻고싶은 거겠지?" "네." "자네와 비슷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대개 두 가지 일을 하네. 하나는 마을 밖에서 들개나 늑대를 사냥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에서 일거리를 찾아보는 것이지. 가능하다면 후자를 선택해 줬으면 좋겠군. 변경의 마을이라 항상 일손이 부족하거든." "네, 저도 일거리를 얻고 싶습니다." 아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직 게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사냥에 나설수는 없다. 그럴 바에는 간단한 퀘스트를 하면서 게임에 적응하는 편이 좋다. 초반 퀘스트는 게임의 흐름을 알려주고 기초장비를 얻게 해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무턱대고 사냥하는 것보다 이득이 많다. "그리 말해 줘서 고맙군. 마침 자네가 맡아 줬으면 하는일이 있네. 근래 들어 주점 주인이 지하실에 쥐가 많아져서 죽겠다고 불평해 대고 있지. 자네라면 충분히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도와주겠나?" 두두둥. 기묘한 북소리와 함께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주점주인 크레이든의 우울 개척민 마을 하룬의 주점 주인 크레이든은 근래들어 부쩍 늘어난 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크레이든을 만나 고민을 듣고 해결하자. 초보자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의뢰다. 난이도:- 아크는 퀘스트를 수락하고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을 찾는건 간단했다. 건물은 많지만 상점은 광장을 빙 두르고 있었다. 주점에 들어서자 지저분한 앞치마를 걸친 털보가 버럭버럭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센 영감의 소개로 왔다고?" 아크가 말을 붙이자 크레이든이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마침 잘 왔네. 제발 부탁이니 창고에서 찍직거리는 저 쥐새끼들 좀 어떻게 해주게. 이제 저 소리만 들어도 돌아 버릴것 같다고!"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수는 주시는 거죠?" 아크가 넌지시 물었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게임에서도 무임 노동 따위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일을 하면 보상을 받는다. 당연한 진리가 아닌가? 그러자 크레이든은 투실투실한 가슴을 팡팡치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이 크레이든은 집도 절도 없는 불쌍한 이방인을 등쳐 먹을만큼 치사한 성격이 아니네. 자네같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보상을 준비해 뒀네." "기대하겠습니다." 아크는 활짝 웃으며 용감하게 창고에 들어섰다. 창고에는 수많은 쥐 떼가 북적거리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만만한 상대다. '내 첫 제물은 네놈들이다! 자, 슬슬 시작해볼까?' 아크는 단검을 빼 들고 돌격해서 그중 한 마리에게 휘둘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모처럼 휘두른 단검이 무안하게도 쥐는 가볍게 피해냈다. 그리고 허접스러운 솜씨를 비웃듯 상자 사이로 뺑소니쳐 버렸다. 그다음도 마찬가지였다. 아크는 약 올리듯 눈앞을 얼쩡대는 쥐에게 번이나 단검을 휘둘렀지만 놈들은 가볍게 피해 버렸다. '어라, 이럴리가 없는데?' 쥐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다니? 아크는 어리둥절했다. 지금까지 해 본 게임에서 쥐는 칼을 보여주기만해도 픽픽 쓰러지던 상대였다.그런데 이놈들은 달랐다. 새김새처럼 움직임도 실제와 거의 같았다.빠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허둥대는 사이 갑자기 눈에서 붉은빛이 번쩍했다. -쥐에게 공격당했습니다. 데미지 1. 잡기는커녕 오히려 얻어맞았다. 데미지 1이라고 무시할수 없었다.놈들은 아크가 허둥대자 만만한 상대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순식간에 주위에 새까맣게 모여들어 물어뜯어 댔다. 눈 깜빡할 사이에 생명력이 20가까이 줄어들었다. 기겁한 아크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이런 망할. 까딱하면 쥐에게 맞아 죽겠군.' 세상어디에 쥐에게 맞아 죽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아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 더이상 여유는 없다. 아크는 덤벼드는 쥐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놈들이 막 다리를 물어뜯는 찰나 일격을 가했다. 쥐가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리며 반으로 갈라진다. -쥐를 죽였습니다. 경험치 1을 얻었습니다. 그제야 반가운 소리와 함께 메시지창이 떴다. 아크가 제대로 반격하기 시작하자 쥐들은 쏜살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틈에 아크는 서너마리를 더 죽였다.그리고 한 마리씩 구석에 몰아넣고 단검을 휘둘렀다. 쥐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여러마리가 협동작전을 펼치거나, 상자속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반격을 가하기도 했다.쥐와 인간의 치열한 사투는 30분이나 계속되었다. 전투가 끝나자 밀빵이 3개밖에 남지 않았다. 도중에깎인 생명력을 보충하느라 7개나 먹어치운 것이다.공격력 2짜리 단검과 방어력 2짜리 가죽옷의 내구도도 상당히 떨어졌다.상처뿐인 승리였다. '휴우, 어쨌든 모두 잡았군. 힘들기는 했지만 경험치가 제법 올랐겠지?' 아크는 성과를 확인하기위해 정보창을 열어보고는 뜨악 했다. 쥐 한마리당 경험치 1. 그래도 서르마리넘게 죽였으니30이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적은 경험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험치 바를 확인해 보니 고작 1퍼센트도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상대하기 어려워도 역시쥐는 쥐인 모양이다.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아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퀘스트는 퀘스트이니 보상이 남아 있지 않은가. "쥐는 모두 소탕했습니다." "오, 그래? 잘해 주었네. 이건 내 작은 성의네." 크레이든이 호탕하게 웃으며 밀빵 10개를 내밀었다. "……." 아크는 잔뜩 기대하는 눈으로 크레이든을 바라보았다. 30분 넘게 죽을 고생했는데 설마 밀빵이 전부일리가 없지않은가. 그러나 크레이든은 오히려 아크가 이상하다는듯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설마 이게 다는 아니겠죠?" "무슨 말인가? 사람이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쥐 몇마리 잡아주고 생색이라도 내려는 건가?" 아크는 울컥하며 뭐라고 입을 열려다가 꾹 참았다. 쥐를 잡기 위해 30분이나 싸우고 7개나 되는 밀빵을 먹어치웠다. 단검도 가죽옷도 넝마다. 그런데 그 보상이 겨우 밀빵10개라니? 지금 장난하냐? 그러나 NPC를 상대로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치사하지만 밀빵 하나도 아쉽다. 아크는 빵10개를 받아챙기고 주점을 나섰다. 한센에게 돌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좀더 쓸만한 일거리는 없습니까?" "허허, 이사람. 처음부터 너무 욕심이 맣군. 자네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이네. 그런 자네에게 누가 큰일을 맡기겠는가? 보상이 많은 일을 맡으려면 먼저 그만큼 인정받아야 하네." '이것도 친밀도가 작용하는 게임인가 보구나.' 가상현실 이전의 게임에도 NPC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게임들은 많았다. 그들과의 친밀도에 따라 다른 퀘스트나 정보, 기술을 전수해 주는 방식이다. 이런 시스템은 가상의 공간을 현실처럼 느끼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물며 최첨단의 뉴월드에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을리 없다. '결국 초보는 주야장천 돈 안 되는 퀘스트나 해야 한단 말이군.' 아크가 대충 그렇게 이해하고 다시 퀘스트를 받으려 할때 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초보신가 봐요?" 돌아보니 귀엽게 생긴 여자가 다가왔다. "네, 그런데요." "혹시 그 노인에게 퀘스트를 받으려고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크가 불쾌한 표정을 짓자 얼른 웃음을 지웠다. "아, 죄송. 하지만 그 노인에게 퀘스트를 받는건 그다지 좋은생각이아니에요." "왜요?" "그 노인이 주는 퀘스트는 모두 경험치도 돈도 안 되는 것들이에요. 저도 처음에는 혹시나 싶어서 몇 차례 해 봤는데 계속 같은 퀘스트만 주더라고요. 어떤분은 오십번 넘게 해보신 분도 계시대요. 그런데 오히려 수리비만 더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처음에는 뭘 해야 하죠?" "마을 밖에서 들개를 잡는 게 제일 좋아요. 1레벨에는 토끼나 너구리를 잡는게 보톤이지만, 경험치가 겨우 쥐보다 조금 높은 정도거든요..마을에 사람이 별로 없는건 모두 밖에서 들개를 사냥하고 있어서예요." "들개요?" 아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쥐 몇마리 잡는 것만도 큰일이었다. 들개를 상대하기는 더 어려울것 아닌가? 그러자 아크의 생각을 짐작한 듯 그녀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혼자 잡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모두 파티를 하고 사냥하죠. 마침 저희와 같이하던 분이 나가서 힘들던 참인데 저희와 함계 사냥하시겠어요?" "네? 그래도 돼요? 저 레벨1인데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오늘 시작해서 레벨2 밖에 안돼요. 같이하는 분도3이고요." "네, 그럼 껴 주세요." "따라오세요. 같이하는 분은 밖에 있어요." 마을 입구에서 밀빵을 씹던 덩치 큰 남자가 그녀의 일행이었다. 초보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장검까지 차고 있었다. 그녀가 아크를 소개하자 그는 위아래로 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1레벨이라도 둘보다는 셋이 낫겠지." 남자는 안델, 여자는 부르마라는 이름이었다. 안델과 부르마 역시 뉴월드는 처음이었지만 아크보다 아는게 많았다. 아크와 비슷한 시각에 시작했는데도 곧바로 파티를 맺고 들개를 잡아 레벨을 올렸단다. "그럼가죠. 놀고있을 시간이 없으니." 조금 걸어가자 넓은 평야에 들개들이 서성댔다. 부르마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 근처라고 방심하면 안 돼요. 생각보다 세니까 한마리씩 유인해서 잡아야 돼요." 안델은 살금살금 다가가 들개 한 마리를 후려치고 뒤로 빠졌다. 다른 들개가 끼어들지 않을 만큼 거리를 벌린 안델이 장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격에 들개가 비명을 터뜨렸다. 그틈에 부르마와 아크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두려움이 앞선 까닭이다. 게임에서 무슨 두려움이냐고 하겠지만, 털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디자인된 들개는 실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고양이와도 싸워 본 적이 없다. 하물며 들개는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들개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달려드니 오금이 다 저렸다. 움직임도 보통이 아니었다. 얼마나 재빠른지 아크가 휘두르는 단검은 단 한번도 적중되지 않았다. "어휴, 아크 님. 뭐 하세요?" "어어, 이,이게……." 아크는 들개의 공격에 허벅지를 물려 버렸다. 단번에 생명력이 30이나 빠져 나간다.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자 안델과 부르마가 들개의 뒤를 공격해 겨우 쓰러뜨렸다.들개가 쓰러지며 털과 고기가 떨어졌다. 안델은 당연하다는 듯 모두 집어 먹으며 아크를 흘겼다. "가상현실 게임 처음이에요?" "그런건 아닌데……." 이렇게 리얼한건 처음이다. 안델은 부르마에게 질책 어린 시선을 보냈다. 뭐 이런놈을 데려왔냐는 듯한 눈빛이다. 부르마는 원망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졸지에 죽일놈이 돼 버린 아크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표정의 미미한 변화까지 표현되는 게임이 꼭 좋은건만은 아니다. 그 뒤로 몇 마리를 더 잡았지만 항상 같았다. "아크 님, 갑자기 옆으로 오면 내가 공격을 못 하잖아요!" "앗, 나를 찌를 참이에요?" "거기서 물러나면 어떻게 해요? 나보고 대신 물리라는 거예요?" "아, 정말 너무하시네." 안델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투덜 거렸다. 아크는 허둥대다가 들개에게 쫓기기 일쑤였고, 결국모두 안델과 부르마가 처리했다. 제대로 단검을 찔러 보지도 못했으니 경험치도 들어오지 않았다.들개가 떨구는 털과 고기도 당연하다는듯 모두 안델이 독식했다. 부르마가 아무말도 안하는데 민폐나 끼치고있는아크가 불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니, 불평이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 뒤에서 우리가 하는 거 보고계세요." '젠장, 이러다가 강퇴당하는 거 아냐?' 퉁명스러운 안델의 목소리에 아크는 불안해졌다. 남은 빵은 4개. 장비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너덜거린다. 그런상태에서 파티에서 쫓겨난 사람을 받아 줄 파티가 있을리가 없었다. 다시 밀빵 10개를 위해 경험치 1짜리 쥐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나날이 이어지리라. 게다가 모든 게임에서 인맥은 중요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내 편을 만들어 놓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좋아. 이번에는 죽는 한이 있어도 한방 먹여야겠어' 아크는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때 안델이 다시 들개 한 마리를 유인해 왔다. 아크는 안델의 충고도 듣지 않고 아예 정면으로 나서서 들개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죽을각오로 덤벼들자 들개도 당황했는지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처음으로 아크의 단검이 들개에게 꽂혔다. 동시에 들개의 공격도 아크를 후려쳤다. -들개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받았습니다. 데미지50. 아크는 아찔한 감각을 느끼며 휘청거리다가 벌러덩 짜바졌다. "그쪽은 안 돼요!" 부르마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아크를 걱정해 터뜨린 비명이 아니었다. 뒤로 몇걸음 밀려나는 바람에, 근처에서 서성대던 들개들이 아크를 포착하고 몰려들기 시작했다. 안델과 부르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들의 레벨로는 아직 두마리도 벅찬 상대였다.하물며 몰려드는 들개는 무려 5마리! "젠장, 끝장이다." "그래서 뒤에 있으라고 했잖아요!" 아크에게 불평이 쏟아졌다. '젠장, 이걸로 파티고 뭐고 끝났군.'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와락 몸을 일으켰다. "제가 막고 있을테니 도망가세요." "네? 하, 하지만……." 안델이 당혹스러워하는 부르마를 와락 잡아당겼다. 아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개들에게 마구잡이로 단검을 휘둘러 댔다. 둘을 쫓던 들개들이 아크에게 몰려들었다.동시에 사방에서 붉은 빛이 번쩍거렸다.데미지를 받았다는 메시지를 서너번 들었을때, 눈앞이 깜깜해졌다.아크가 픽 쓰러져 버리자 들개들은 콧방귀를 뀌며 물러갔다. 처음맞는 죽음이었다. @ 눈을 떠 보니 성문 근처의 병참이었다. -당신은 위독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다행히 곧바로 구조되어 병참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힘든수술을 감행한 탓에 페널티 가 부과 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캐릭터 정보창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괜찮으세요?" 메시지와 겹쳐 부르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는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죽을 뻔하셨죠?" "아뇨, 덕분에 살았어요. 하지만 아크님은……." "괜찮아요. 저는 어차피 경험치가 1퍼센트도 없었는데요. 뭐." 아크는 죽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게임에서 죽으면 경험치가 깎여 나가는 건 상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템을 떨구기도 한다. 사람들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다르다.어차피 이제 막 시작해서 깎일 경험치도 없다. 떨굴 아이템이랄 것도 없다. 유일하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1레벨 유저인 것이다. 그러나 부르마는 아크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경험치라니요? 제가 말하는 건……." 그때 안델이 뭔가 알아챈 듯 부르마를 가로 막았다. "그렇죠,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아크 님은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하셨죠." 안델이 눈을 반짝이며 제안했다. "그럼 이러는게 어떨까요? 들개보다 조금 더 강한 늑대를 사냥하는 거예요. 사실 저희라면 그럭저럭 잡을만해요.하지만 가끔 다른 늑대가 몰려오는 경우가 있어서 사냥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럴때 아크님이 우리대신 죽어 줄수 있다면 늑대도 도전해 볼 만해요. 대신 아크님은 경험치를 못 먹겠지만 늑대를 잡아서 나오는 아이템은 공평하게 나눠 드릴게요.초반에는 꽤 돈이 될 아이템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안델 님." 부르마가 놀란 표정으로 안델을 바라보았다. 너무하는거 아니냐는 눈빛이다. 그러나 아크는 깊이 생각하지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야 좋죠."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대로 파티에서 덜궈져도 딱히 할수 있는게 없다. 그럴거면 차라리 늑대를 상대로 적응력을 길러두는 편이 좋다. 죽어도 잃을게 없는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늑대에게서 나오는 아이템을 나눠 받을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님이 좋다고 하잖아요." 안델은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파티를 이끌었다. 안델의 태도가 돌변했다. 털 한붕치 건네주지 않던녀석이 장비를 수리하라고 30쿠퍼나 건네주었다. 하긴 위험할때마다 대신 죽어 준다니 얼마나 고맙겠는가.정비를 끝낸 일행은 들개떼를 지나 늑대가 모여 있는곳에 도착했다. 늑대는 확실히 들개보다 몇배는 셌다. 한마리씩 상대해야 간신히 이길 정도였다. 아오오오! 몇마리 잡았을 무렵, 빈사상태에 빠진 늑대가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무엇보다 까다로운게 이것이다. 동료의 구조요청에 멀리 있던 늑대들이 와르르 몰려들었다. 그때마다 용맹하게 그들을 막아선 사람은 1레벨의 아크였다. "이놈들. 다 덤벼!" 당연하게도 정신없이 할퀴고 물어뜯긴 뒤에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아크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후후후. 마음대로 죽여라. 어차피 나는 잃을 것도 없는 놈이다!' 아크는 병참에서 좀비처럼 일어나 다시 늑대사냥을 나섰다. 그렇게 열번 정도 죽었을 때,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정보창이 떴다.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불굴의 정신(초급, 패시브):수없이 생사를 오가며 당신의 마음은 꺾 이지 않는 용기로 충만해졌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적의 허점을 찌를 수 있는 집중력이 생겼으며, 휴식시 남들보다 빠르게 생명력을 회복 할 수 있습니다. 위기 시 공격력. 치명타율 30% 상승, 회복 능력 5% 상승 '아자, 이게 웬 떡이냐?'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여러 번 죽다보니 생각지도 못 했던 스킬이 생겼다. 아크는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며 얼른 늑대에게 물려 죽 었다. 그런 아크를 보며 사냥하던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와. 저 사람은 지치지도 않네." "용사다. 용사. 1레벨 용사다." "제정신인가? 혹시 게임을 접으려는 거 아냐?" 여기저기서 비아냥과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훗.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그러나 아크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아크는 슬쩍 가방 을 열어 보았다. 한쪽에 수북이 쌓여가는 늑대 가죽과 고기.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하다. 들개나 늑대에 적응하면서 1레벨에 얻을수 없는 아이템까지 얻을수 있다. 뭐가 문제라는 건가? 덤으로 아크보다 레벨이 높은 안델이나 부르마에게 점수를 딸 수 있지 않은가. 확실히 남들이 보기에는 무모한 사냥이었지만, 아크에게는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안델과 부르마는 이처럼 리얼한 가상현실 게임 경험이 많았다. 원래 늑대는 레벨 3짜리 둘이서 사냥하기에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둘은 다른 유저보다 노련하게 사냥했고 치명타 공격도 자주 성공시켰다. 뒤에는 아크가 버티고 있으니 대담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2시간 가량 사냥하자 그들은 레벨이 하 나씩 올랐다. '어라, 왜이러지?' 아크가 이상함을 느낀건 그 무렵이었다. 왠지 처음 시작할 때ㅔ 보다 움직임도 더디고, 조금만 움직여 도 숨이 찼다. 단검을 휘두를때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팔다리에 납 주머니를 몇개 씩 차고있는 느낌이다. 아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자 부르마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안델은 여전히 히죽거리며 말했다. "아마 가상현실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네요. 오늘은 이만 쉬시는 게 좋겠어요. 저희도 슬슬 사냥터 를 옮길때가 됐고요." "네, 그래야겠네요." "덕분에 사냥을 편하게 했어요. 그럼 다음에 봐요." "저…… 친구 등록은?" "저희가 다음에 연락드릴게요." 안델은 그 말을 끝으로 횅하니 가 버렸다. 부르마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검 한 자루를 내밀었다. "이거 쓰세요. 좋은 건 아니지만 초반에는 꽤 쓸 만할 거 예요." "아. 감사합니다." 아크는 넙죽 받아 챙기고 정보창을 띄웠다. 녹슨철검 무기타입:한손 검 공격력:5~8 내구력:30/30 무게:15 사용 제한 :없음. 흔한 녹슨 철검. 녹이 맣이 슬어 내구력도 약하고 공격력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 검을 믿고 전장에 나갔다가는 죽기 딱 좋다. 아크가 쓰는 단검은 공격력이 1~3이었다. 비록 이름부터 허접 스럽기 짝이 없는 아이템이지만 1레벨인 아크에게는 감 지덕지였다.게다가 가방이 미어질 정도의 늑대가죽과 고 기. 덤으로 스킬까지 익혔다. 비록 레벨은 그대로지만 첫날 수확치고는 꽤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부르마는 오히려 미 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그렇게 고생하셨는데 이것밖에 드릴게 없네요." "아뇨, 정말 감사해요." 역시 다른 유저에게 잘 보여서 나쁠게 없었다. 하물며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유저에게는 약간의 아양을 떨어 주는 것도 좋다. 이렇게 곧바로 아이템 하나가 거저 생 기지 않는가. 아크는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첫날의 게임을 종료했다. ACT 2 마우스 헌터 "휴, 직접 해 보니까 더 대단하네." 현우는 한숨을 불어 내며 유니트에서 내려왔다. 새삼 기술의 발전이 감탄스러웠다. 그곳에서 봤던 경치와 사람들, 몬스터들은 진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실 감 넘치는 전투와 아름다운 풍경. 채용 시험을 위해 시작한 게임이지만, 그 이상으로 깊게 게임에 빠져 들게 될 것 같았다.그러나 현우는 무작정 게임 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게임도 좋지만 그에게는 당장 현실에서 먹고사는 일이 더 중요했다. 다른 응시자와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당장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사는 건 물론, 어머니 병원비도 대지 못한 다.200 대 1 의 경쟁률을 뚫겠다고 모든 걸 포기하고 매달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게임도 그만큼 중요해. 일을 그만둘 수는 없지만, 당분간 학원은 그만두자. 그리고 자는 시간을 줄여 가며 게임을 하면 되겠지' 벌써 시계는 새벽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니트를 설치하느라 점심까지 건너뛴 현우는 우유를 꺼 내 들고 컴퓨터에 앉았다. 뉴 월드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다. 막상 해보니 지금까지 했던 게임과는 많이 달랐다. 때문 에 틈틈이 정보를 알아볼 필요를 느꼈다. 과연 근래 최고의 화제로 떠오른 게임이라 불과 한 달 만 에 관련 사이트가 수십 개나 생겼다. 기득권을 얻기 위한 유 저들이 정보 공유를 꺼려서 아직 정보도 빈약하지만 혹시 모 르니 틈틈이 봐 두는 편이 좋다. 현우는 사이트에 들어가 정보를 주욱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정보도 사전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법. 아 직은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를 정보들뿐이었 다. 그때, 별생각 없이 게시판을 클릭하던 현우의 손에서 우 유 팩이 툭 떨어졌다. '뭐, 뭐야, 이건?' 현우는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게시물을 읽어 내려갔다. '서, 설마……이게 정말이야?' 현우는 피곤함도 잊고 곧바로 유니트에 들어갔다. @ 흐릿한 빛과 함께 아크는 하룬에 들어섰다. "스탯창" 허둥지둥 정보창을 열어 본 아크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맙소사! 다, 당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무 명성 : 무 레벨 : 1 직업 : 무직 칭호 : 없음 생명력 : 100 마나 : 100 힘 1(-14) 민첩1(-14) 체력1(-14) 지혜1(-14) 지능1(-14) 운1(-14) 모든 스탯이 붉게 변해 1로 떨어져 있었다. 아크가 인터넷으로 확인한 정보는 사실이었다. 게시판에는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느 상태에서 죽었던 유 저의 경험담이었다.한 번 죽을 때마다 전체 스탯이 1씩 깎 여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처럼 깍여나간 스탯을 확 인하지 못하고 레벨 업을 했다가 스탯을 되찾지 못했다는 내 용이었다. 괄호 안의 수치는 깎여 나간 스탯, 이걸 복구하지 못하고 레벨 업해 버리면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었다. 아크는 그제야 이제까지의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과민 반응한 게 이것 때문이었어. 한번 죽을때마다 스탯이 팍팍 깎이는데 미친놈처럼 들 이댔으니 게임 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겠지. 빌어먹을, 그래서 부르마가 그렇게 미안하다고 했던 거였구나. 머리끝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아크도 게임을 많이 해 봐서 스탯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뉴 월드에서 레벨 업을 할 때마다 주어지는 포인트는 10. 레벨이 10이 돼야 100포인트다. 그런데 아크는 시작하자마자 84포인트나 잃어버렸다. 즉, 레벨을 10으로 만들어도 실제 로는 2레벨에도 못 미친다는 뜻. 이 차이는 엄청나다. 아니, 엄청나고 자시고 이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종료 전에 아크가 단검을 들고도 헥헥거렸던 건 피곤해서 가 아니다. 힘이 1밖에 안 되니 단검이 무겁고, 민첩이 1이 니 움직임이 둔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델 녀석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어. 부르마도. 자기들 이 안전하게 사냥하기 위해서 나를 이용해 먹은거야. 선심 쓰듯이 고작 이따위 아이템 몇개를 던져주고.' 스탯을 84나 날리고 얻은 게 고작 늑대 가죽과 고기, 녹슨 철검이다.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그들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이미 다른 마을로 가 버렸는지, 아니면 접속을 끊었는지 어디에서 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잡아 봤자 뾰족한 수도 없다. 이런 스탯으로 복수할 수 있을 리도 없었고, 그들이 잃어 버린 스탯을 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아크는 허탈 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눈앞이 깜깜했다. '젠장, 설마 이런 시스템일 줄이야.' 스탯이 1이하로 떨어질 리 없으니 이제 진짜로 잃을 게 없 는 몸이 돼 버렸다. 화가 좀 가라앉자 자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했어 도 정보를 먼저 알아보고 접속했어야 한다. 1시간만, 아니 30분만이라도 정보를 찾고 게시판을 훑어봤어도 이런 실수 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다름 게임과 다를 게 없을 거라 는 생각에 무턱대고 게임을 시작한 자신의 잘못이다. 아크는 정보화 시대에서 작은 정보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통감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멍청한 놈! 어째서 부르마가 선심 쓸 때 알아채지 못한 거야? 게임이라고 해도 결국 그놈들도 인간. 도움도 안 되는 나에게 잘해 주는 이유는 뻔하잖아!' 현실이라면 절대 하지않았을 실수였다. '안델과 부르마! 네놈들, 상대를 잘못 건드렸어.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세상은 상상이상으로 치사하다. 얕보이면 살아갈 수 없다. 아크가 고된 현실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것 하나뿐이다. 어떨 때는 한 달 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돈을 못 받았다. 아크가 학생이라 사장이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러나 아크 는 일주일이나 학교를 안 나가고 사장을 물고 늘어져 돈을 받아 냈다. 생활이 걸려 있으니 포기할 수 럾었다. 요 몇 년 그런 시련을 일상처럼 겪으며 살아온 아크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 어떻게든 강해져서 그놈들에게 복수하고야 말리라! 그러나 당장은 더 급한 일이 있었다. 1시간 뒤, 아크는 다시 한센을 찾았다. "일거리를 주세요." "음? 자네는 얼마전에 왔던 친구가 아닌가? 밖에서 사냥 하겠다고 하더니?" "저 울고 싶거든요? 묻지 말고 일거리나 주세요."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그 뒤로 1시간이나 인터넷을 뒤졌다. 아크처럼 멍청한 실수를 한 사람이 거의 없는지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끈질기게 인터넷을 뒤졌다. 죽을 때마다 스탯이 깎이는 시스템이라면 당연히 복구 방법 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복구할 수 없다면 따로 표시도 해 놓지 않았으리라. 다행히 조금 전 그 부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냥을 많이 하면 자연스럽게 잃 어버린 스탯이 복구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 가 있었다. 만약 스탯을 다 복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레벨업 을 해 버리면 잃어버린 스탯은 소멸된다. 결국 2레벨이 되기 전에 잃어버린 84스탯을 모두 되찾아야 한다는 뜻. 아크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쥐가 떠올랐다. 한 마리 잡아 봐야 경험치 1. 쥐를 잡아 레벨을 올리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만큼 많이 전투를 해야 하니 레벨이 올 라가기 전에 많은 스탯을 복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캐릭터를 새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 만…….' 뉴월드는 한 계정에 하나의 캐릭터밖에 만들수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처음 만든 캐릭터로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시작부터 다른 응시자들보다 한참을 뒤떨어진 꼴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좋네, 이 마을에서 일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일거리 는 얼마든지 소개시켜 줄 수 있네. 지금 바로 대장간으로 가 보게. 그곳도 요즘 쥐가 많아져서 곤란해하고 있다네." 아크는 곧바로 대장간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대장간 주인 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창고로 뛰어 들어갔다. 상황은 이전보다 좋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에는 모든 스탯이 15나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 아흔살 먹은 할아버지가 단 검을 들고 있는 것과 진배없는 형편이다. 만약 생명력까지 깎였다면 미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됐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지금 와서 후회해 봐야 소 용없잖아. 늑대를 상대했을 때보다 신중하게 한 마리 한 마 리 잡아 나가는 수밖에…….' 예전과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쥐조차 잡지 못한다면 아 예 게임을 접어야 할 판이다. 아크는 쥐 한 마리를 상대하면서도 전력을 다했다. 다시 말해 쥐 한 마리도 전력을 다해야 잡을 수 있었다. 때문에 여 러가지 방법을 써가며 더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점도 있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단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힘도 떨어졌 어. 하지만 들개나 늑대를 사냥하면서 익힌 전투감각이 어 느 정도 통한다. 사냥 시간은 더 걸리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쉽게 느껴져. 그 말은…….' 전투가 단순히 공격력과 방어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처럼 전투 경험과 활용에 따라서 상황이 얼마든지 변 할수 있다. 레벨 1이 10을 이기기는 힘들지만 4나 5 정도는 경우에 따라서 이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아크는 쥐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떨 때 때려야 좀 더 많은 데미 지를 줄 수 있는지 연구하며 전투를 벌였다. 그렇게 몇 번 전 투를 치르자 쥐를 상대하는 요령이 생겼다. '그래, 무조건 단검만 휘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야. 쥐도 나름대로 머리를 써가며 움직이고 있어. 그러니 진짜 쥐를 상대하는 것처럼 움직임을 읽고 대처해야 해.' 아크는 대장간 창고의 쥐를 모두 처리했다. 그러나 아직 스탯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서른 마리나 잡았는데…… 정말 이런 방법으로 잃어버 린 스탯을 찾을 수 있는 건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당장 마을 밖에 나가 봐야 어차피 토끼 한 마리도 상대하 기 어렵다. 하물며 파티에 껴 줄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쥐로 스탯을 복구할 수 없다면 그대로 게임 끝나는 것이다. '믿자, 복구될 거야. 틀림없이 복구될 거야.' 아크는 곧바로 대장간 주인에게 밀빵 10개를 받고 다시 의 뢰를 받았다. 이번에는 잡화상점 창고의 쥐를 소탕하는 의뢰 였다. 그렇게 1시간 반 동안 세 번의 의뢰를 끝냈을 때였다. -많은 경험 덕에 큰 부상으로 잃어버렸던 힘과 민첩성을 되찾았습니다. 힘 1. 민첩 1이 복구 됐습니다. 드디어 바라 마지않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쁨과 동시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1시간 반이다. 1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쥐를 잡아서 겨우 2포인트를 복구했다. 남은 82포인트를 복구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쥐를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든 복구하겠어. 터무니없는 페널티를 받은 상태에서 시작할 수는 없어'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 현우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직장으로 향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서 겨우 6포인트를 복구할 수 있었다. 그나마 스탯을 복구할 방법이 있어서 다행이지만 남은 78포 인트를 생각하며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차라리 그냥 스탯을 포기하고 레벨이나 올릴까?'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우는 곧 고개를 저었다. 레벨 하나를 올릴 때마다 주어지는 스탯10. 그건 레벨 50 이 되든 100이 되든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국 레벨이 올라 갈수록 스탯이 더 귀해진다는 뜻이다. 1에서 10레벨까지의 스탯이라면 쥐를 잡는 것보다 빨리 얻을 수 있겠지만. 100에서 110레벨까지의 스탯을 쥐를 잡 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 그 점을 생각하면 아 무리 지루하고 힘들어도 지금 고생하는 련이 나았다. '그래. 그나마 쥐를 잡는 게 죽을 위험도 없이 스탯을 복구 하는 방법이야. 그리고 쥐를 잡으면서 배우는 것도 있잖아.' 현우는 항상 그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자장면 하 그릇도 마음 편히 못 사 먹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 컴퓨터 학원을 포기하지 않은 건, 그런 긍정적인 사고방 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다른 인내심의 소유자 이기도 했다. 실제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덕에 배운 점도 많았다. 다른 게임에서는 단순하게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승부가 갈린다. 다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뉴 월드의 전투에는 실전 감각이 크게 작용했다. 유저의 힘과 민첩성이 게임에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지만, 경험과 반사신경은 그대로 적용되었다. 즉, 일반적으로 10의 민첩으로 열 번의 공격 중 한 번을 회 피하는게 게임의 룰이라도 유저가 빠르게 판단하고 대처하 면 열 번 중 두세번을 피할 수 있었다. '이건 공격할 때도 똑같아.' 적의 움직임에 따라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유리한 고지 를 점한다. 오래전에 태권도를 배울 때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다. 유리한 지점을 점하면 당연히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반격 하기 수월해진다. 뉴 월드에서는 그런 현실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무조건 한 대 때리고 한 대 맞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만도 컸다. 현우는 그날부터 틈틈이 운동을 시작했다. 역시 반사신경을 기르는 데는 운동만 한 게 없다. 현우가 돈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운동은 초등학교부터 중 학교 때까지 해 왔던 태권도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입시 문제로 그만뒀지만 그래도 공인 3단의 실력이었다. 당시 배운 게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 만 아직 혼자서 운동을 할 만큼은 되었다. 현우는 마트에서 창고 정리를 하며 틈틈이 몸을 움직였다. 굳었던 몸을 풀고, 다리를 찢고, 머릿속에서 쥐와 혈투를 벌이는 상황을 그리며 몇 번이나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다. 그 리고 뭔가 새로운 것이 생각나면 게임에서 쥐에게 그대로 적 응시켰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자 스탯이 30포인트가량 복구되었다. 여전히 처음보다 50포인트나 모자란 상태였지만 쥐를 상대 하는 것은 이제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퀘스트를 받을 때마다 상대해야 하는 쥐는 대략 스물에서 서른 마리, 그걸 이제10분도 안 되어 정리했다. 당연히 퀘 스트를 받는 속도도 빨라졌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내가 운동을 할수록 아크도 강해 지는 거야.' 현우는 그 뒤부터 태권도 기술을 뉴 월드에서 활용해 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한 부분도 많았지만 쥐를 상대하면서 점차 익숙해졌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단검을 쓰지 않고도 쥐 두세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단검 수리비도 아낄수 있었다. 참으로 깊이 있는 게임이 아닌가! 상황은 최악이었지만, 현우는 점점 더 깊게 뉴 월드에 매 료되어 갔다. @ '젠장, 또 일부러 죽게 될 줄이야.' 아크는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 투덜거렸다. 주변에 쥐 떼가 몰려들어 미친 듯이 들이박고 있었다. 쥐 사냥을 시작한지 열흘째, 아크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 생했다. 쥐가 주는 경험치는 고작 1. 그러나 이것도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새 경험치가 99퍼센트에 육박했다. 다른 때 같았으 면 입이 찢어져라 좋아했겠지만 아크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대로 레벨이 올라가 버리면 아직 복구 안 된 스탯을 찾 을 방법이 없어진다. 고민하던 아크는 극약 처방을 하기로 결심했다. 일부러 죽어서 경험치를 깎는 방법이었다. 한 번 죽을 때 마다 깎이는 경험치는 30퍼센트, 스탯 6포인트였다. 그리고 쥐를 잡아 스탯을 올리면 대략 3퍼센트에 1포인트가 올라간 다. 결국 한 번 죽었다가 다시 복구하면 4포인트를 더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된 이상 1포인트도 손해보지 않겠어!' 이미 스탯 복구에 열흘을 쏟아 부었다. 그러고도 손해 본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아니, 절대 용납 할수 없다. 아크는 작정하고 일부러 쥐에게 맞아 죽었다. 그리고 다시 쥐를 잡기를 반복, 결국 열흘 만에 70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포인트를 모두 복구한다고 해도 결국 출발점이야. 젠장, 두고보자! 이 모든 고생이 다 그 안델과 부르마라는 놈들 때 문이야 그놈들만큼은 절대 용서 못 해!' 이를 갈아붙이는 아크의 눈에 광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고된 복구 작업을 버텨 낼 수 있는 건 안델과 부르마에 대 한 복수심 덕분이었다. 그 무렵, 게임의 새로운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 격투술(초급, 패시브): 주먹과 발을 이용해 싸우는기술. 무기를 착용하지 않고 싸워 큰 힘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적중도와 회피율이 높아집니다. 무기를 쓸 때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맨손 공격 시 공격력10% 상승, 무기술 사용시 적중도 3%, 회피율 3% 상승 '불굴의 정신도 그렇고, 한 가지만 오래 하다 보면 저절로 필요한 스킬이 만들어지는구나.' 정보 사이트 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이런 간단한 정보조차 없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정보보다 초보자를 혼란에 빠 뜨리는 터무니없는 루머가 더 많았다. 장난 반 그리고 기득 권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반이리라. 그런 루머들이 아크의 인간 불신을 더욱 부추겼다. '어쩌면 글로벌엑서스의 응시자들이 방해 공작을 펼치는 것일지도 모르지. 치사한 놈들, 어쨌든 사이트 정보도 너무 믿어서는 안 돼. 아니, 어떤 유저도 믿어서는 안돼. 모든건 나 혼자 찾아내고 알아 가야 해.' 스킬이 생기자 맨주먹으로 싸울때 쥐에게 입히는 피해가 더 커졌고, 몸을 움직이기도 한결 편해졌다. 무기를 사용할 때도 보너스를 받으니 꼭 필요한 스킬이었다. 아크는 하룬에서 명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매일 게임에 들어오면 몇 시간씩 미친듯이 쥐만 잡는 아크 에게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하물며 어떨때는 일부러 죽기까지 한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사람들은 아크가 살짝 맛이 간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궁금증은 증폭되었지만, 누구 하나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 내는 아크에게 다가오지는 못했다. 저들끼리 수군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대체 뭐 하러 경험치도 돈도 안 되는 쥐만 잡는 거지?" "설마 쥐를 잡아서 레벨을 올리려는 건 아니겠지?" "아닌게 아니라, 그정도로 잡았으면 벌써 최소한 3레벨은 됐겠다." "그런데 어떨때는 죽기도 하잖아." "아마도 처음에 잘 모르고 죽어서 그 스탯을 복구하려고 그러는 걸 거야."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잃어버린 스탯이 복구도 되는 거예요?" 아직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정보 였다. "응, 고레벨의 경우에는 레벨 업이 워낙 느리니까 대부분 다음 레벨 업까지 다 복구돼. 하지만 저레벨은 레벨업이 빨라서 밖에서 사냥하면 스탯을 복구하지 못하고 다음 레벨로 넘어가지. 그래서 저렇게 쥐만 잡는걸 거야." "그런데 저 사람은 벌써 열흘 넘게 잡고 있잖아. 대체 얼 마나 많이 잃었기에……." "그러게. 보통 그 정도면 포기하고 말 텐데. 지독하네." 그러나 아크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확실한 목표를 정했으니 다른 사람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쥐 소탕은 단순히 스탯을 복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몸에 익힌 전투 감각은 경험 치와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 "아아, 이렇게 따뜻한 손길을 받아 본 게 대체 언제였는 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네." "약한 말씀 마세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죠." 아크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말하자 정보창이 떴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간병(초급, 액티브):환자에게 희망을 주어 기력과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사용시 기력과 용기를 20% 상승시켜 줌. 마나소모:10 아크가 쥐잡기 퀘스트를 백번 정도 했을때. 한센은 가끔씩 다른 퀘스트도 주었다. 그렇다고 귀가 번쩍 트일 만큼 대단한 퀘스트는 아니었다. "자네도 요한슨 할멈을 알고 있지? 그 할멈이 오늘내일 한다더군. 하루 정도 간병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데……자네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요즘 식당이 붐벼서 일손이 부족하다네. 자네라면 믿고 맡길수 있지." 대부분 이렇게 자질구레한 잡일이었다. 솔직히 가능하면 패스하고싶었지만, 한센은 한번에 하나 이상의 퀘스트는 주지 않았다. 쥐잡기 퀘스트를 받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잡일 퀘스트까지 완수해야 했다. 그러나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일단 이런 퀘스트는 쥐잡기보다 보수가 좋았다. 보수는 무려 1실버. 녹슨 철검과 가죽 옷의 수리비가 30쿠퍼, 밀빵 하나가 5쿠퍼다. 1실버는 아크에게 적은 돈이 아니었다. 덤으로 스킬까지 얻었다. 뭐, 하나같이 쓸일이 있을지 없을지 미묘한 스킬이었지만, 스킬이 늘어서 나쁠건 없다. 쥐 잡는 도중에 쉬엄쉬엄하기에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퀘스트 덕분에 하룬의 NPC들과 친밀도가 엄청 올라갔다. 길거리를 지나가면 NPC가 먼저 말을 걸어오고, 밀빵이나 수리비가 대폭 내려갔다. "저, 죄송하지만 밀빵 100개만 사 주시겠어요?" "저는 무기 좀 수리하려고 하는데……." 장검 같은 경우는 수리비만 1실버가 넘게 들어간다. 그러나 아크가 맡기면 70쿠퍼로 수리를 받을수 있었다. 초보 마을에서 30쿠퍼는 큰돈이다. 때문에 눈치 빠른 몇몇 유저들은 아크를 통해NPC와 거래했다. 물론 아크는 공짜로 일해 주지 않았다. 거래 금액의 20퍼센트. 아크가 제시한 수수료였다. "1실버 치 대신 거래해 주는 데 20쿠퍼인 거 아시죠?" "다음에 드리면 안 돼요? 남는 돈이 10쿠퍼밖에 없는데." "안돼요. 다음에오세요." "너무하시네요. 고작 10쿠퍼인데" "치사하면 님도 저처럼 하룬 마을 평판을 올리시던가요. 쥐잡기 퀘스트를 한 백번 이상 하시면 가격이 좀 내려갈거요. 뭐, 레벨은 안 오르겠지만." "나중에 꼭 드릴게요." "전 현찰만 믿습니다." "…… 여기 있어요." 주섬주섬 없다는 10쿠퍼를 내미는 유저를 보며 아크는 코 웃음 쳤다. 이제 두 번 다시 유저는 믿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저 뉴 월드에 놀라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크와 같은날, 비슷한 시간에 뉴 월드에서는 2천명의 응 시자가 게임을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경쟁자다. 그리고 그 경쟁자들은 틀림없이 하 룬 마을에도 있었으리라. '아마 안델과 부르마도 응시자들이었을지 몰라. 아니, 부르마는 몰라도 안델은 확실해.' 안델은 의도적으로 아크를 함정에 빠뜨렸다. 안델도 아크 가 응시자임을 알아챘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경쟁에서 이 기는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은 상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응시자들도 같은 생각이리라. '나 역시 이제는 기회만 된다면 서슴없이 그렇게 행동하겠어.' 게임도 결국은 현실과 다름없이 생존경쟁이다. 그걸 깨닫기 위해 무지막지한 대가를 치렀지만 이제라도 알게됐으니 다행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테니까. 경쟁자인 유저를 믿을 바에는 차라리 NPC를 믿는 게 낫다. 사정을 봐줄 필요도 없다. 그렇게 지독하게 돈을 모은 덕에 어느새 가방에는 5골드라는 거금이 모였다. 하룬마을에서만 보름 하룬에서 보름이나 지낸 유저는 없었다. 그리고 하룬에서 5골드나 모은 유저도 처음이었다. 꾸준하게 쥐잡기를 해 온 덕에 스탯도 1만 복구하면 끝이다. 경험치는 99퍼센트라는게 문제였지만……. '또 한 번 죽어야 하는건가?' 이제 죽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아크는 단 1포인트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아크는 또다시 죽기 위해 퀘스트를 받으러 한센을 찾았다. "이전에 주신일은 해결했어요. 다른일을 주세요." 그런데 한센의 반응이 이상했다. 한센은 묘하게 정감가는 눈빛으로 그윽하게 아크를 바라 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마을에는 자네에게 맡길 일이 없네." "네?" 아크는 기겁했다. 의뢰가 없다니? 그럼 이제 남은 스탯을 복구할 방법이 없 다는 말이 아닌가? 아직 예전과 같은 1레벨이지만 풍부한 전투 경험으로 혼 자서도 들개 정도는 때려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죽어서 깎이는 경험치는 30퍼센트. 들개는 경험치가 많기 때문에 30퍼센트를 채우기 전에 스탯을 6개 나 얻을 수 없었다. 결국 들개를 상대로는 죽었다가 살아나 도 스탯을 손해 본다는 의미였다. '설마 이 퀘스트도 한계가 있을줄이야.' 게시판 어디를 찾아봐도 초보마을 의뢰에 끝이있다는 말은 없었다. 그리고 세어 보지 않았지만 아크가 지금까지 해온 퀘스트도 삼백번이 넘었다. 때문에 아크도 무한반복 퀘스트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퀘스트가 없다니……. '이렇게 끝내 1포인트가 부족한 채로 시작해야 하는 건가?' 본래 벼 아흔아홉섬 가진 사람이 한 섬 가진 사람보고 채워 달라고 하는 법이다. 차라리 몇 포인트 부족하다면 눈 딱감고 포기하겠지만, 딱 1포인트를 남기고 포기해야 한다니 굉장히 찜찜했다. 그때 한센이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내 지금까지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을 겪어 봤지만자네 만큼 우리 마을을 위해 애써 준 사람은 처음일세. 이 한센 감동했어."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총 맞았냐? 누가 이따위 퀘스트를 삼백번 넘게 하겠어?' 아크는 울컥했지만 꾹 눌러참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곳은 제 고향 같은 곳입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더 도울 일이 없다는 게 가슴아플 뿐입니다." 이미 한센과의 친밀도는 최상이다. 그렇다고 뭔가 생기는것도 없지만 굳이 올려놓은 친밀도를 깎을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뉴 월드를 하면서 느낀 점은. NPC들이 실제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글로벌 엑서스의 공식 발료에서도 NPC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 사람처럼 사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은 물론. 심지어 어 떨때는 병에 걸려 며칠 가게 눙을 안 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만큼 유저와 대화할 때도, 말버릇이 안 좋다 싶으면 친밀도가 하락해 물건값을 올려받는 경우도 있었다. "뭔가 다른 일은 없을까요? 돕고 싶어 미치겠는데." "아니, 이제 충분하네. 자네는 누구도 거들떠보지않는 이 변경 마을을 위해 쉬지 않고 일했네. 몇번이나 죽을고비 를 넘기 면서까지 말이야. 내 다 알고 있네. 자네는 이미 이 마을의 영웅이야. 그러니 나는 자네를 기리는 마음에서 감히 이렇게 부르겠네. 마우스 헌터라고!" 갑자기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며 정보창이 떴다. 하룬마을 장로 한센으로부터 마우스 헌터 칭호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쥐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전문가 입니다. 쥐를 상대할 때 30%의 추가 공격력 적용. 쥐를 상대할 때 치명타 성공 확률 20% 상승. 쥐에게 받는 피해 20% 경감.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고양이의 기백(초급, 액티브):고양이의 포효와 눈빛으로 쥐를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30초 마비.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가 20% 저하(쥐에게만 적용됨). 마나 소모:80 순간 우울했던 아크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쥐에게 더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능력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모든 스탯 +1!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 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약간의 경험치도 들어왔는지 99퍼 센트에 머물러 있던 경험치가 사라지면서 레벨도 올랐다. 아크는 재빨리 스탯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모든 수치가 16으로 고정되어 있고, 지능만 15에 머물러 있었다. 구석에 는 레벨 업으로 얻어진 10포인트가 반짝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횡재가……!' 아크는 입이 귀밉까지 찢어졌다. 이로써 아크는 스탯이 하나 부족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보다 5포인트 앞서게 되었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뉴 월드에서 레벨 업 이외에 스탯을 올릴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몇몇 레어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칭호를 받을때 올라간다 는 말이 있지만 상세한 정보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런데 아 크는 레벨 1에 초보 마을에서 6포인트나 되는 보너스 스탯을 받았다. '쥐잡기를 삼백번이나 한 보람이 있었다!' 짜르르한 쾌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간의 고생이 단번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크는 잠시 정보창을 띄워 놓고 고민했다. 새로운 스탯을 어디에 분배해야 할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 다. 아직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 알 수 없어 스탯 분배가 까 다로웠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생각해 뒀던 대로 모두 민첩 에 투자했다. 민첩은 대부분의 직업에 골고루 필요한 스탯이다. 그러니 초반에는 모두 민첩에 투자하는 편이 좋다고 결론 내렸다. '됐어, 이제 슬슬 들개 사냥을 시작해도 되겠군.' 아크가 맍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몸을 돌릴 때였다. "그런데 자네, 혹시 다른 일도 해 볼 생각이 없나?" "네? 마을에 일거리가 없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마을 일은 아닌데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 서……." 아크가 솔깃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누구도 한센에게 마을 일 이외의 퀘스트를 받았 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실제로 아크도 삼백 번이 넘 게 쥐잡기를 하는 동안 마을 관련 퀘스트만 받았다. 그런데 처음으로 다른 의뢰를 건네려는 것이다. '마우스 헌터 칭호를 받아야만 주는 퀘스트인가?' 말하자면 최초.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했다. 이미 칭호와 보너스 스탯을 받아 넘치는 애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던 아크 는 얼른 한센에게 대답했다. "할아버지의 부탁이라면 무슨일이라도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런데 솔직히 나도 이번 의뢰는 정확히 어떤 건 지 판단이 서질 않네. 얼마나 위험할지도 잘 모르겠어. 그래 서 지금까지 말도 못 꺼냈던 거네. 어쨌든 할 마음이 있다면 주점 주인 크레이든을 찾아가 자세히 물어보게." 주점 주인 크레이든의 걱정거리 주점 주인 크레이든은 요 며칠 새로운 걱정거리로 고민하고 있다. 그를 만나서 사정을 들어보자. 난이도:- "바로 가 보겠습니다." 아크는 꾸벅 인사를 하고 주점으로 향했다. "오, 아크. 역시 자네가 오는군." 크레이든이 반가운 목소리로 맞았다. 그에게 이름으로 불린 유저는 아마 아크가 최초일 것이다. "네. 안녕하셨어요?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다면서요?" "그래. 아니, 아니야. 사실은 뭐 문제라고 할 것까지는 없 지만…… 요 며칠 사이에 이상한 얘기가 들려와서 말이네." "이상한 얘기?" "자네도 알다시피 요 근래 아무리 잡아 죽여도 계속 쥐가 나오지 않았나.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네도알지?" '고생은 내가 했지. 고작 빵10개를 받아가면서.' 아크는 울컥했지만 겉으로는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죠. 하지만 요즘은 괜찮다면서요?" "조금 조용해지기는 했지. 그런데 얼마 전에 들렀던 여행자 들이 이상한 말을 하더란 말이네. 요 글처에 있는 하리랄 산 알지? 그 산을 넘어 여행하던 도중에 이상한 동굴을 발견했 다는 거야. 그 동굴에 뭐가 있었다고 해는지 아나? 그 끔찍한 쥐야.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쥐가 살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런 그동안 마을에서 득실거리던 쥐들이 그 동굴에서 내려 왔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많지. 그러니 여행자 말이 사실이라면 조 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나." 크레이든이 턱수염을 긁적이며 아크의 눈치를 살폈다. 아크가 자세히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제가 그 동굴을 조사해 보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마우스 헌터의 칭호를 받은 자네라면 믿고 맡길수 있네." 이놈의 마을은 소문이 빠르기도 하다. "네, 한번 해 보죠." 아크는 별생각 없이 수락해따. 그러자 의뢰창이 '미지의 동굴 탐사'로 바뀌었다. 난이도도 -에서G로 올라가기는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G난 이도의 퀘스트는 들개를 잡는 수준이었다. "고맙네. 대략적인 위치는 알아 놨으니 자네 지도에 표시해 주겠네." 크레이든이 그렇게 말하자 지도창이 펼쳐졌다. 엄청나게 큰 지도는 대부분 까맣게 되어있고 하룬 마을 주변만 밝혀져 있었다. 마을을 둘러싼 하이랄 산맥 안쪽에서 작은 빛이 깜빡거렸다. 역시 예상대로 정보 사이트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말하자면 숨겨진 던전! 던전이 아이템의 보고라는 건 상식이다. 비록 초보 마을에서 G급 퀘스트를 받아 가는 곳이니 대단한 아이템은 기대할 수 없겠지만, 녹슨 철검 하나 차고 있는 아크에게는 부서진 방패 하나도 큰 보물이었다. 무엇보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던전을 발견했다는 성취감은 대단했다. 주점을 나온 아크는 여행 준비를 서둘렀다. '이것들도 이제 정리해야겠군.' 가방 안에은 잡동사니가 가득 차 있었다. 늑대를 잡으며 어3었던 가죽과 고기 그리고 그동안 삼백번이 넘게 쥐를 잡을 때마다 10개씩 주어지던 밀빵. 처음에는 받는 대로 먹어치웠지만 쥐를 손쉽게 잡게 되면서 부터 밀빵이 쌓였다. 만복도가 바닥까지 떨어졌을때나 1~2 개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밀빵이 1000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100개씩 중복되어 있는데도 다른 아이템을 넣을 공간조차없었다. '가방 공간도 확보할 겸 100개만 남기고 모두 팔자.' 아크는 잡화상범에 가서 밀빵을 팔았다. 원래 밀빵은 상점에 되팔 수 없는 물건이다. 그러나 친밀도 최상의 아크에게 불가능은 없었다. 밀빵 하나에 1쿠퍼. 물론 유저에게 팔면2쿠퍼는 받을 수 있겠지만, 고작 1쿠퍼 때문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한정된 시간 밖에 게임을 할 수 없는 아크에게 시간은 곧이었다. 밀빵 2000개를 파니 20실버나 되었다. 아크는 그 돈으로 장비를 수리하고 하이랄 산으로 출발했다. ACT 3 첫 번째 던전 깨깽! 단말마와 함께 늑대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조각난 늑대의 몸이 서서히 흐려지며 가죽과 고기가 떨어졌다. 아크는 물건을 챙겨 넣으며 스탯창을 열었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50 레벨:5 직업:무직 칭호:마우스 헌터 생명력:155 마나:100 힘 26 민첩 36 체력 26 지혜 15 지능 16 운 16 "이제 그럭저럭 늑대도 상대할 만하군." 아크는 의뢰를 받고도 곧바로 동굴로 향하지 않았다. 비록 시작 마을 근처에 있다고 하지만 명색이 던전. 레벨 2짜리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만큼 만만할 리가 없다. 어떤 위 험이 있을지 장담할수 없었다. 죽음에 대한 페널티를 뼈저리게 경험한 아크는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동굴에 도착하 기 전에 어느 정도 레벨을 올려놓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마을 주변에서 존격적으로 사냥에 전념한 지 이틀, 아크는 드디어 5레벨에 도달했다. 레벨3의 스탯 포인트는 모두 민첩에, 다음은 공격력을 위 해 힘에 그리고 생명력을 올리기 위해 체력에도 10을 찍어 주었다. 체력1에 생명력이 5가 올라 지금은 155가 되었다. 당연하겠지만 그만큼 아크도 강해졌다. 처음에는 늑대에게 한 번만 할퀴어도 30씩 소모되던 생명 력이 이제는 20 정도로 줄었다. 게다가 만 마리 이상 쥐를 잡으며 쌓아온 전투 경험은 발군! 약간의 운만 따라 주면 70의 생명력 소모로 늑대 한 마리 를 잡았다. 평범한 5레벨 유저는 엄두도 못 낼 일. 제대로 검 조차 찌르지도 못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사냥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리니 자신도 붙었다. '이제 슬슬 동굴로 가 볼까?' 아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00개를 준비해 온 밀빵이 이제 30개 밖에 남지 않았다. 물은 수급이 가능하다지만 밀빵이 떨어지면 곤란하다. 만복도가 50이하로 떨어지면 스탯이 일시적으로 내려가는 까닭이다. '요리를 배우면 좋은 점도 있지만…….' 뉴 월드에는 요리 기술이 따로 존재한다. 요리 기술이 올라가면 단순히 떨어진 만복도와 체력을 보충하는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힘이나 체력을 상승시키는 요리를 만들수도 있다. 또한 거의 실제와 같은 맛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요리 기술은 누구나 배우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요리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 생산기술을 배우려면 장인NPC를 만나야 하는데, 요리장인은 멀리 떨어진 도시까지 가야한다. 언젠가 배울 기회가 올 텐데 일부러 시간까지 투자해 가며 도시를 왕복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요리를 배운다고 당장 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급 요리를 만들려 면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필요한 재료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아크 는 아직 시작할 때 받은 가방이 전부라 여유 공간이 많지 않았다. 요리 재료까지 가지고 다닐 여유가 없었다. 요긴한 기술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초반부터 악을 써 가며 배울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밀 빵만으로도 충분해. 남은 밀빵이 30개 니까 동굴까지 왕복하는 데도 문제는 없을거야.' 아크는 지도를 확인하며 본격적으로 동굴을 찾기 시작했 다. 이미 들개와늑대를 때려잡으며 하이랄 산 깊은 곳까지 들어온 상태다. 동굴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비탈을 따라 30분가량 걷자 고목이 들어찬 숲이 나왔고, 그 숲에 교묘하게 사려진 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크가 동굴에 발을 들여놓자 우렁찬 함성 같은 음향효과 와 함께 정보창이 떴다. 하이랄 산맥의 수상한 동굴 매캐한 냄새와 오싹한 한기가 흘러나오는 깊고 어두운 동굴을 발견했 습니다. 뭔가 오래된 비밀을 간직한 듯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자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500의 경험치와 50의 명성 을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등록 하시겠습니까? "등록 거부." 아크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경험치 500이면 늑대를 열마리 이상 잡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많은 사람들이 동굴의 존재 를 알게 된다. 모처럼 처음 발견한 동굴, 어떤 비밀이나 아이템이 기다리 고 있을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던전을 발견해서 가장 큰 이득은 그런 것들을 독점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직 이렇다 할 탐색조차 못 해 봤는 데 아크보다 높은 레벨의 유저들이 몰려들면 선수를 빼앗겨 버릴 가능성이 높다. 뉴 월드 홈페이지에는 어수룩한 유저가 던전 정보를 올리 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올리느니 차라리 늑대 열 마리를 잡고 말지' 새삼스레 많은 정보를 알아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처음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에 왔다면 무턱대고 명예의 전당에 올렸으리라. 그러나 이제 아크는 예전의 맹물이 아니다. 몬스터나 NPC 보다 같은 유저를 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 대체 뭐가 있으려나.' 아크는 두근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던전 안으로 한 걸 음 내디뎠다. 뭔가 썩어 가는 듯한 냄새가 현실감 넘치게 후각을 자극했 다. 굳이 이런 냄새까지 리얼하게 재현해 놓을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지독했다. 아크가 약100미터 정도 걸어 들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내디딘 발끝에 물컹한 것이 밟혔다. 화들짝 놀라 발을 떼니 지면이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수미터 나 솟아오른 검은 그림자가 확 퍼지며 덤벼들었다. '이, 이게뭐야? 설마 이게 다 쥐?' 아크는 아연실색했다. 지면에서 솟아오른 건 수백 마리의 쥐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눈치 채지 못했는데, 새까만 쥐 떼가 동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쥐가 움직이자 동굴 전체가 파도치듯 꿈틀거렸다. 놈들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 다. 꾸준히 키워 온 담력도 소용없었다. 아크는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일격에 수 마리의 쥐가 튕겨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마우스 헌터의 칭호를 받 아 쥐에 대한 공격력과 치명타 확률이 올라간 덕분이었다. '흥, 내가 지금까지 쥐를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알아?' 일격이 큰 효과를 거두자 두려움이 걷혔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결국은 쥐다. 공격력 보너스를 받으 면 굳이 치명타가 아니라도 한 마리에 두 번이나 검을 휘두 를 필요가 없다. 아크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쥐를 쉬지 않고 베어냈다. 그러나 쥐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러다가는 끝도 없겠어. 도망가야 한다.'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배워 놓기는 했지만 정말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고 양이의 기백은 쥐들에게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아크가 스킬을 사용하자 찢어지는 듯한 고양이 울음과 함 께 머리위로 검은 고양이의 형체가 나타났다. 고양이가 번 뜩이는 시선으로 노려보자 쥐들이 부르르 떨며 얼어붙었다. 그사이 아크는 쥐들을 베어 내며 동굴 밖으로 도망 나왔다. 쥐들의 마비는 곧 풀렸지만 밖까지 쫓아 나오지는 않았다. "휴, 그나마 다행이군." 아크는 밖에서 밀빵과 물을 마시며 일단 체력을 회복했 다. 셀수조차 없는 쥐 떼라니, 정말 아찔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수는 없지.' 아크는 퀘스트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아직 퀘스트는 갱신되지 않았다. 좀 더 들어가 보라는 얘 기리라. 아니, 퀘스트는 둘째 치고 이미 만 마리 이상의 쥐 를 때려잡은 경력이 있다. 모처럼 발견한 던전을 쥐 때문에 포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깊이 들어갔지만 입구에서부 터 차근차근 처리하며 들어가면 문제 될 것 없어.' 아크는 동굴에 들어가 백여 마리를 해치우고 후퇴하는 전 법을 사용했다. 그렇게 서너 번 반복하자 효과음이 울리며 메시지창이 열렸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검술(초급, 패시브):당신은 검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이제 검을 사용할 때 받았던 모든 페널티가 없어졌습니다. 검을 손처럼 사 용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기술과 연계해서 사용하는 방법도 익혔습 니다. 검술과 연계할 수 있는 스킬이 있을 경우 추가 숙련치를 얻게 됩 니다. 검술의 숙련도에 따라서 보너스 공격력도 생깁니다. *격투술과의 세트 효과로 '검투술'이 가능해졌습니다.(검투술은 검술과 격투술의 레벨에 따라 자동으로 올라갑니다). '이제야 검술이 생겼군.' 마을에서 쥐를 사냥할 때는 거의 맨손이었다. 고작 쥐를 잡으면서 수리비를 내야 하는게 아까워서였다. 때문에 다른 유저라면 가장 먼저 생겼을 검술이 이제야 생긴 것이다. 그 러나 아크의 경우 검술이 늦게 생긴게 오히려 행운이었다. 처음 쥐를 잡을 때, 아크는 검술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몰 랐다. 만약 알고 있었다면 수리비를 각오하고서라도 검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조차 몰랐기에 맨손으로도 싸움을 해 봤고, 덕분에 격투술을 배우게 되었다. 격투술은 맨손 전용 기술이 지만 모든 무기를 사용할 때 약간의 보너스 숙련치를 추가시 켜 주었다. 검술에서 얻는 보너스. 거기에 격투술에서 얻는 보너스까 지 합하면 실제 전투력은 1.5배나 올라갔다. 그 효과는 바로 실감할 수 있었다. '움직이는 게 굉장히 편하다!' 검을 휘두르는 데도 움직임에 전혀 막힘이 없었다. 마치 물이 흐르는 듯한 공격! 게다가 검투술의 효과로, 검을 휘두르며 발 차기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불가능했던 기술이 가능해지자 쉬지 않고 몰려드는 쥐 떼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연관 스킬을 익히면 세트 효과로 새로운 능력이 생기기 도 하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격투술이 이렇게까지 도움이 될 줄 은 상상도 못했다. 종합 전투력이 상승하자 사냥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한 번 생명력을 가득 채우면 이백 마리는 족히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여섯번 동굴에 들어서자 입구에는 새까맣게 쥐 떼의 시체가 깔렸다. 어림잡아도 천 마리는 훌쩍 넘었다.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레벨도 6으로 올랐다. 아크는 징글징글한 쥐 시체를 밀어내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동굴 안쪽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가까이 가 보니 뼈만 남은 시체였다. 유저가 죽었다가 부활하면 시체도 사라진다. '다시 말해 NPC의 시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퀘스트와 연관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컸다. 아크가 시체를 뒤적거리자 안쪽에서 작은 양피지가 발견됐다. 시체가 쓰던 것인지, 표면에는 깨알 같은 글자가 적혀있었다. -'비운의 여행자가 남긴 양피지 조각'을 습득하셨습니다. 하베스틴 자작님의 명을 받고 그것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 지도 어언 3년이 지났다. 그리고 신의 도움으로 우연히 외진 산속의 동굴에서 드디어 애타게 찾던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 다. 그러나 설마 이곳에 생각지도 못했던 마물이 살고 있을 줄이야. 너무 방심했다. 그것이 이곳에 있다면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건만……. 모든것이 나의 실책이다. 이미 부주의하게 동굴 에 들어선 나는 큰 부상을 당하고야 말았다.자작님의 염원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원통하다. 안타깝지만 이 동굴의 비밀은 영원히 어둠 속 에……. 그 아래의 내용은 쥐들에게 뜯어 먹혀 사라져 있었다. '뭔가 있어보이는 냄새가 팍팍 풍기는군.' 역시 예상대로 동굴은 단순한 쥐 굴이 아니었다. 양피지의 내용은 아직 파악할 수 없지만 동굴에 뭔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그것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아이템일 가능 성이 많았다. 아크는 의욕이 샘솟는 표정으로 양피지를 챙겨 넣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으라차차!" 일격에 서너마리의 쥐가 바닥을 굴렀다. 동굴 안에는 오직 쥐밖에 없었다. 입구에서 죽인 쥐는 새발의 피였다. 가는 곳마다 사방에서 쥐가 몰려들었다. 베고 또 베도 쥐는 더욱 숫자가 불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 나 아크가 누군가? 하룬 마을에서 쥐 소탕 의뢰만 수백 번, 무려 만 마리에 달하는 쥐를 베고 마우스 헌터라는 칭호까지 얻은 역전의 용사다. "네놈들,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난 줄 알아라. 고양이의 기백!"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죽을 염려는 없었다. 위험해지면 곧바로 고양이의 기백으로 쥐를 마비시켜 놓고 도망 나왔다. 그렇게 아크는 정신없이 동굴 아팎을 뛰어다니며 조금씩 더 깊은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3시간이 지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초보 던전이라 만만하게 봤는데 생각보다 깊다. 이제 밀 빵도 10개밖에 남지 않았는데.' 문제는 밀빵이었다. 만복도가 떨어지면 생명력 회복이 엄 청나게 느려진다. 절반 이하로 내려가면 일시적으로 스탯까 지 내려가고,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로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 밀빵이 떨어지면 아무리 아크라도 더 이상 의 탐사는 할 수 없었다. '마을에 가서 밀빵을 보충하고 와야 하나?' 그러나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몬스터는 해치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증식한다. 그리고 소형 몬스터일수록 증 식속도가 빠르다. 겨우 수백 미터를 전진했는데 마을을 다녀 오면 다시 처음부터 길을 뚫어야 하는 것이다. '미치겠네. 이럴 줄 알았으면 밀빵을 파는 게 아니었는 데…….' 그런 생각을 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기발한 작전이 떠 올랐다. '혹시 그런 일도 가능할까?'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몬을 일으켰다. '뭐, 해 봐서 손해날 건 없겠지.' @ 휘익, 퍽! 아크는 동굴 밖을 돌아다니는 늑대를 후려쳤다.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었다. 이미 늑대 따위는 아크 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크는 번개 처럼 검을 휘둘러 즉대를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최후의 일격만 남은 상태에서 검을 집어넣고 죽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해 발로 걷어찼다. 깨깽! 늑대가 이리저리 걷어차이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인정사정없었다. 헥헥거리면 빤히 쳐다보 고, 조금 나아질라치면 두들기고, 이런 짓을 3분가량 하자 드디어 늑대가 광분했다. 아오오오! 전력을 다한 늑대 울음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동료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 들은 십여 마리의 늑대가 달려 왔다. '됐다!' 아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동굴로 도망쳤다. 동굴 안쪽까지 들어가자 사방에서 쥐들이 몰려나온다. 아 크는 재빨리 고양이의 기백을 사용해 쥐를 마비시켜 놓고 더 깊이 들어갔다. 그렇게 쥐 떼 한가운데 도착하자 마비가 풀 린 쥐들이 아크를 겹겹이 에워싸 버렸다. '만약 실패하면 죽을지도 몰라!' 아크는 검울 빼 들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회피 동작에 집중 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쥐들의 공격에 생명력이 빨대로 빨 리듯 쭉쭉 사라졌다. 거기에 늑대까지 가세하자 아크는 순식 간에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곧 늑대의 공격이 멈췄다. 쥐들이 늑대까지 공격하 기 시작한 것이다. 늑대 무리는 엄청난 쥐떼가 달려들자 움찔했다. 그러나 명색이 늑대다. 쥐 따위에 꼬리를 말고 도망갈수는 없는 일. 늑대도 이를 드러내며 쥐 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됐다, 역시 예상대로야!" 아크는 쾌재를 불렀다. 뉴 월드는 거의 현실과 다름없는 시스템을 자랑한다. 그건 숲의 동물이나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아크는 이곳까지 올 떼도 늑대가 토끼나 들쥐를 잡 아먹는 장면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다. 현실의 천적 관계 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뜻이리라. 그것을 생각해 낸 아크는 일부러 늑대를 모아 동굴 안으로 유인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 이 펼쳐졌다. 동굴 한복판에서 늑대 무리가 날뛰자 쥐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아크보다 늑대가 더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모두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아크는 뒤롤 물러나서 늑대와 쥐의 싸움을 느긋하게 지켜 보았다. 그러다가 간간이 마나가 회복되면 고양이의 기백을 써 주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자 쥐들이 거의 사라졌다. "후후후. 수고했다." 아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비틀거리는 나머지 늑대를 처리했다. 비록 빈사상태의 늑대라도 경험치는 제대로 들어왔다.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니다. '혹시 나는 천재가 아닐까?' 자신이 생각했지만 정말 기발한 방법이다. 퀘스트를 받고 해결하는 과정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심지어 의뢰인을 죽 일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경우 무지막지한 페널티가 가해지지만, 자유도 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게 뉴 월드의 매력 가운데 하나였다. 아크는 그 뒤로도 근처의 늑대란 늑대는 모두 몰고 와서 쥐떼와 싸움을 붙였다. 그리고 남은 쥐나 늑대를 처리. 덕 분에 경험치도 쭉쭉 올라 레벨은8이 되었고, 밀빵을 2개밖에 먹지 않고도 동굴 깊은 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정말 깊은 동굴이군. 꽤 깊게 들어온거 같은데 이렇다 할 아이템도 안 보이고……. 설마 마지막까지 쥐만 나오고 끝나는 건 아니겠지?' 슬슬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쿵, 하는 소 리가 울리더니 미친 듯이 들이대던 쥐들이 움찔하며 좌우로 쫙 갈라졌다. '어라? 무슨 일이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던 아크가 갑자기 숨을 들이 켰다. 쥐들이 갈라진 맞은편, 어둠 속에서 한 쌍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뭐, 뭐야. 이놈은?" 천천히 다가오던 붉은빛이 형체를 드러냈다. 놀랍게도 빛의 정체는 쥐의 눈이었다. 지금까지 아크가 상대해 온 평범한 쥐가 아니었다. 늑대의 10배는 가뿐히 넘을 듯한 거구의 괴물 쥐였다. 침입자에 분개한 듯 놈이 포효하자 동굴이 쩌렁거리며 울렸다. 무시무시한 피어! 아크는 다리가 후들거리며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늑대들도 기겁하며 꼬리를 말고 동굴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맙소사. 설마 이놈이……." 양피지에 적힌 그 괴물의 정체가 이놈이었던 건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그는 동굴에서 치명상을 입었다고 적어 놨다. 그러나 그가 죽은 곳은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 귀족의 명령을 맏고 여행 하던 자가 쥐를 상대하면서 입구까지 도망가지도 못할 치명상을 입었다는 건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동굴 안까지 들어왔다가 이 괴물을 만났어. 그리고 치명상을 입고 도망치던 도중 쥐들의 습격을 받고 쓰러진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앞뒤가 맞는다. 그리고 아크 역시 같은 운명에 처해질 확률이 매우 높았다. 괴물 쥐는 아크가 처음 늑대를 만났을때 느꼈던 두려움의 몇배에 달하는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렇게 위급한 와중에 도 퀘스트 내용이 갱신되었다. -보스 몬스터 블랙 베어 마우스가 출현했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미지의 동굴탐사=동굴에 살고 있는 의문의 생명체. 동굴을 탐색하던 도중 거대한 괴물 쥐를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이 괴물 쥐가 모든 쥐를 조종해 왔던것 같습니다. 빨리 동굴을 탈출해 이 사실을 주점 주인 크레이든에게 알려야 합니다. 난이도:F 역시나 괴물 쥐를 죽여야 한다는 말은 없었다. 아마도 지 금의 레벨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괴물 쥐의 정보를 알리는 것뿐임에도 난이도가 F다. 확실히 주변에 까맣게 몰려든 쥐 떼와 괴물 쥐를 피해 동 굴을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었 지만 아크의 눈동자는 오히려 빛났다. '그렇다면 이 쥐는 경험치와 아이템 덩어리라는 말이다!' 욕심은 공포를 능가한다. 아크의 눈에 탐욕의 빛이 번들거렸다. 보스 몬스터, 모든 여행자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주는 보 물 상자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처음 만나는 보스 몬스터다. 싸워 보지도 않고 순순히 물 러날 수는 없었다. '어차피 도망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 어디, 얼마 나 강한지 한번 붙어보자!' 아크는 용감하게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녹슨 철검을 힘차게 후려쳤지만 괴물 쥐는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몸을 덮고 있는 두꺼운 가죽이 검날을 튕겨 낸다. 치익, 끼야앗! 거대 쥐가 앞발을 휘둘렀다. 검으로 쳐 내자 손바닥이 저릿저릿하다. '맙소사, 검으로 막았는데도 체력이 깎였어!' 늑대에게 제대로 물렸을 때 30의 생명력이 깎인다. 그러 나 괴물 쥐의 공격은 막아도 30의 체력이 깎여 나갔다. 제대 로 맞으면 두세 방도 버티지 못하리라. "젠장,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아크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 쥐떼를 마비시켰다. 그러나 뒤이어 괴물 쥐가 포효하자 쥐들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맙소사, 고양이의 기백도 통하지 않잖아!' 아크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사 방에서 쥐 떼가 몰려들었다. 아크가 쥐 떼에게 발 버둥 치고 있을 때, 등으로 묵직한 통증이 가해졌다. -스턴에 걸렸습니다. 5초간 움직임이 봉쇄됩니다. 단번에 생명력이 50이나 깎이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어 채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또 한 번의 공격이 가해졌다. 드 디어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아크는 바닥에 쓰러졌다. @ "빌어먹을!" 아크는 씩씩대며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괴물 쥐의 공격은 끝내 아크의 숨통을 끊어놨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하룬마을 입구의 병참이었다. 일단 어쨌든 퀘스트는 갱신됐으니 보고를 위해 주점에 들른 것이다. "오! 아크, 무사히 돌아왔구먼!" 크레이든이 언제나처럼 반갑게 아크를 맞이했다. 아크는 곧바로 보고를 하려다가 주위를 둘러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주점 안에는 몇몇 유저들이 앉아 있엇다. 아직 동굴의 존 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던 아크는 크레이든을 창고로 불러냈다. 그리고 동굴에서 겪은 일을 모두 말하자 크레이든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동굴에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놈이 마을까지 위협하기 전에 이 사실을 작센 영주님께 알려야겠네. 당장 병사를 보 내 놈을 처단해 달라고 말이야." "아, 안돼요!" 아크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뭐?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에…… 그게 그러니까……." '젠장, 괜히 얘기했다.' 만약 영주가 병사를 파견하면 당연히 유저들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동굴의 보물은 아크 것이 아니다. 병사 들이 가져가거나. 기회를 엿보던 유저들이 챙기게 되리라. 그리고 아크는 배가 아파 죽어 버리겠지. '그것만은 절대 안 돼! 내가 그 동굴을. 보물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얼만데? 이제 괴물 쥐 한 마리만 처 리하면 되는데 막판에 와서 몽땅 빼앗길 수는 없어!' 그러나 생각한 그대로를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크레이든과의 친밀도에 기대를 걸고 말했다. "아저씨가 제게 부탁한 일입니다. 아저씨는 저를 믿고 의 뢰를 맡기셨죠?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제 손으로 해결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 시오. 기필코 믿음에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음, 자네가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은 몰랐네. 물론 나 역시 자네를 믿어. 하지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 마을 전체의 안위가 걸려있어. 자칫 시기를 놓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자네가 훌륭한 전사가 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단 말이네." "제발 부탁입니다. 제게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주십시오." 아크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사실 그는 누구에게 그렇게까지 아쉬운 소리를 하는 성격 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NPC. 인간과 거의 똑같이 행동 한다고 해도 결국은 컴퓨터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뿐이다. 아쉬운 소리 한다고 자존심이 상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가 애절하게 부탁하자 크레이든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내 고집 만 앞세울 수는 없겠군. 이 마을이 지금처럼 평화로워진 것 도 모두 자네 덕이니까. 좋네, 그럼 이렇게 하지. 일단 자네 에게 열흘의 시간을 주겠네. 그때까지 자네에게서 연락이 없 으면 작센 영주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그럼 되겠나?" "열흘……." 현실에서의 하루는 게임 내에서 사흘이다. 다시 말해 일주일이면 현실의 시간으로 사흘하고 한나절. 지금까지 동굴을 뚫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그리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게다가 게임을 하겠다고 일을 쉴 수 도 없으니 잠을 최대한 줄인다고 해도 실제 쓸 수 있는 시간 은 하루 남짓이다. 그러나 크레이든은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단호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아크는 고개를 뜨덕였다. 무리라도. 하는데 까지는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마을의 안전이 우선이니 그렇게 하죠."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럼 믿고 맡겨 보겠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동굴에 살고있는 의문의 생명체=괴물쥐를 처단해라 숨겨진 동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크레이든은 괴물 쥐의 소탕을 의뢰했 습니다. 단, 이 의뢰는 열흘의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기한 내에 괴물 쥐를 소탕하지 못하면 크레이든은 이 사실을 영주에게 알릴 것이고, 의뢰는 자동적으로 취소됩니다. 난이도:+F 예상했던 대로 직접 괴물 쥐를 잡는 퀘스트에는 난이도에 '+'가 붙었다. '+'는 엘리트 퀘스트로, 대개 파티를 구성 해서 해결해야 한다. F는 대략 레벨 15 전후의 난이도. 결국 15레벨 유저가 파 티를 이뤄야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제 파티라면 이부터 갈리는 사람이다. '파티는 죽어도 안해!' 사실 아크도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퀘스트 내용 은 괴물 쥐를 처단하는 것이지만, 레벨8로는 도저히 무리다. '앞으로 일주일. 그 전에 어떻게든 괴물 쥐 몰래 동굴을 뒤져서 보물을 챙기는 거야.' 보물만 챙기면 괴물 쥐 따위야 어찌 되든 알 바가 아니다. 아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릴 때였다. 유심히 바라보 던 크레이든이 불쑥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군." "네, 그곳에서 동굴 조사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크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혹시나 공 짜로 밀빵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다. 1실버라도 아낄 수 있다면 불쌍한 표정은 얼마든지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크 레이든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 혹시 요리를 배워 볼 생각 없나?" "요리요?" 아크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실은 나도 한때는 자네처럼 많은 곳을 여행했네. 그러다 보니 항상 걸리는 게 음식 문제였지. 하지만 요리를 배워도 요리재료가 없으면 말짱 꽝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요리를 익히기 시작했지. 돈도 안 들고, 재료를 들고 다닐 필요도 없는 요리 말이야." "그런 요리가 있습니까?" 그야말로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다. "그래, 내 지금까지는 쓸 만한 여행자를 찾지못해 누구에 게도 전수해 주지 않았는데. 그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준 자네라면 얘기가 다르지. 자네는 항상 빵을 넉넉하게 가지고 다녀서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지 만……. 생각만 있다면 가르쳐 주겠네." "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서바이벌 요리(특수, 초급, 패시브):하룬마을의 주점 주인 크레이든의 독창적 인 요리법. 이 기술을 배우면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재료를 섞어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효과가 나올지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음식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식재료 채취(초급, 패시브):자연으로부터 다양한 식재료를 채취할 수 있습니다 '음식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 목숨을 걸어?' 뒷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기술 이었다.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몇 가지 요리법만 알아 둬도 동굴처럼 외진 곳에서 밀빵없이 며칠이든 버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야말로 서바이벌 요리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이런 기술을 공짜로 배우다니. 역시 NPC하고는 친하게 지내고 볼 일이다. 크레이든은 그것도 모자라 커다란 냄비 하나를 건네주었다. "서바이벌 요리를 하려면 이것도 필요할 거네." -서바이벌 요리를 위한 철 냄비를 습득하셨습니다. "갑사합니다!" 아크는 꾸벅 인사를 하고 주점을 빠져 나왔다. 일단 계획을 세웠으니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아크 는 곧바로 잡화상점에 가서 모았던 늑대 가죽을 모두 팔아 치웠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회복 포션하나를 샀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근성으로 버텼지만 괴물 쥐를 상대로 오기를 부릴수는 없었다. 이번에도 죽어 버리는 바람에 스탯 이 6이나 깎였다. 던전에 쥐가 떼거지로 나오니 금세 복구되 겠지만, 또다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생명력 100을 채워 주는 회복포션 값은 무려5골드. 아크 가 사도 3골드 50실버는 내야 했다. 일개미처럼 꼬박꼬박 모은 전 재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여기에 장비 수리비까지 하면…….'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아크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투자다. 동굴 안에서 제대로 된 보물 하나만 챙겨 도 그 정도는 벌충하고도 남으리라. 아크는 마지막으로 대장 간에 들러 녹슨 철검과 가죽 옷을 수리하고 다시 동굴로 향했다. ACT 4 괴물 쥐와 사투를 벌이다 하이랄 산을 오르며 아크는 채취 스킬로 눈에 보이는 풀과 열매를 모두 따서 가방에 꽉꽉 채워 놨다. 새로 배운 서바이벌 요리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동굴에 도착하자 예상대로 다시 쥐들이 북적거렸 다. 아크는 이전에 했던 쥐 떼를 정리해 나가자 불과 1시간 만에 스탯을 2포인트나 복구했다. 그러나 만복도가 반 이상이나 태려가 체력 회복이 더뎠다. 새로 배운 스킬을 써 먹을 때가 왔다. '자, 그럼 대충 이것저것 넣어 섞어 볼까?' 아크는 가방을 뒤적거려 버섯과 이상하게 생긴 풀을 냄비 에 넣었다. 서바이벌 요리 전용 냄비는 따로 불을 피울 필요 도 없었다. 재료를 넣으면 자동으로 가열되어 요리가 만들어 진다. 물을 넣고 1분 정도 끓이는데 갑자기 냄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서바이벌 요리를 실패했습니다. 재료는 모두 소멸됩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다른 재료를 넣고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 메시지가 나왔다. 그러나 끈질기게 시도하자 일곱 번째 가 되어서야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가 완성되었다. -서바이벌 요리를 성공했습니다. 란드 열매와 코크란을 사용한 요리입 니다. 그러나 어떤 요리인지 직접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요리가 확인되면 조리법과 특수 효과는 자동으로 요리 목록에 등 록됩니다. 아크는 별생각 없이 수프를 한 모금 들이켰다. 뭔가 짜릿한 감각이 목구멍을 따라 내려가자 갑자기 눈앞 이 노래지더니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저절로 허리가 꺾이며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뭐, 뭐야?' -마비독에 중독됐습니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향기로운 독 수프'입니다. 효능은 마비독에 중독되어 만복도가 하락하고 10분간 아무런 행동도 할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맙소사, 위험하다는 게 이런 뜻이었어?' 그렇다면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한 다는 뜻이 아닌가? 다행히 동굴 주변의 늑대와 쥐는 모두 소 탕했으니 망정이지, 무턱대고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면 그대 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끙끙거리며 10분을 버텨 낸 아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진저리를 치며 혹시 몰라 준비해 온 밀빵을 물어뜯었다. "빌어먹을, 어쩐지 너무 순순히 가르쳐 준다 싶었지." 역시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 '대체 그놈의 쥐 새끼를 어떻게 하지?' 현우의 머릿속은 온통 괴물 쥐뿐이었다. 크레이든에게 퀘스트를 갱신한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수십 번이나 동굴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 다. 동굴의 구조는 복잡했지만 결국 모든 길은 한곳으로 모 였다. 괴물 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곳이었다. 괴물 쥐를 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들어가 보려는 생각도 했 었다. 그러나 괴물 쥐는 자리 잡은 곳에서 일정 거리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로 시 간만 까먹었다. 그동안 얻은 수익이라고는 깎였던 스탯 포인 트를 복구해 놓은 것뿐이었다. '결국 이대로 포기하는 수밖에 없나?' 현우는 한숨을 푹푹 불어 냈다. 기한은 내일 정오까지. 그러나 낮에는 일을 해야 하니 오 늘 밤 안에 끝장을 내지 못하면 퀘스트는 취소되고 병사가 움직인다. 현우가 권리를 주장할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꺄악!" 그때 창고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야간대학에 다니며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정혜선이 었다.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그녀가 야간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가정 형편 탓이었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지만 꽤나 어려운 모양이다. 차가운 현실을 알게 된 이후로 현우는 냉소적인 성격이 되어 버렸다. 일터에서 돌료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그런 성격 탓 에 주변에서 욕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대해 온 것은 아니다. 몇몇, 진심으로 현우를 걱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그 역시 진심으로 대했다. 아니, 다른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멀리하는 성격의 반작용 일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마음을 썼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고생하는 정혜선이 그런 경우다. 그녀의 가정 현편을 알게 된 이후로 현우는 제 일처럼 그 녀를 챙겼다. 갓 들어와 저지른 실수를 대신 뒤집어쓰기도 했고, 가끔 그녀에게 건네주는 음료수도 정작 자신은 몇 년이나 제 돈 내고 사 먹은 적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여동생이 있다면 그런 느낌이리라. 화득짝 정신이 든 현우가 달려갔다. "혜선아, 무슨 일이야?" "쥐, 쥐가……." 바닥에 주저앉은 혜선이 덜덜 떨며 한쪽을 가리켰다. 시선 을 돌려보자 생쥐 한 마리가 잽싸게 박스사이로 도망쳤다. 현우는 짜증 섞인 눈으로 쥐를 보며 중얼거렸다. "젠장, 여기서든 거기서든 쥐가 문제로군." "네? 오빠 집에도 쥐가 있어요?" "아니, 그런 게 있어." 현우가 도망간 쥐를 찾기 위해 박스를 치우자 혜선이 기겁했다. "그, 그러지 말아요. 또 쥐가 나오면 어쩌려고요?" "나와야 때려잡지." "오빠는 쥐가 무섭지도 않아요?" "무서워? 쥐가?" 현우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예전 같으면 조금은 무서웠을 지도 모른다. 현대 생활을 하며 쥐를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 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쥐도 파리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뉴 월드의 쥐. 그런 쥐를 마을에서 만 마리나 때려잡고 오늘 새벽에도 수천 마리는 족히 죽였 다. 더불어 괴물 쥐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 이다. 생쥐 한 마리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기다려. 당장 때려잡아 줄 테니까." "하, 하지 마요.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세상에서 쥐가 제일 무서워요. 여기 쥐가 있다는 생각만 해도 겁나요. 빨리 주임에게 말해서 쥐약이라도 뿌려 둬야 할 거 같아요." 박스를 치우던 현우의 몸이 움찔한 건 그때였다. 혜선은 화들짝 놀라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요? 쥐 나왔어요?" "혜선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네? 쥐약이라도 놔둬야겠다고……." "그거야!" 현우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그렇게 하면 간단하잖아!" 현우는 와락 몸을 돌려 혜선의 손을 꽉 잡고 흔들어 댔다. "고마워, 혜선아! 네 덕분에 드디어 해결 방법을 찾았어!" "네? 네?" 현우가 갑자기 손을 잡고 흔들어 대자 혜선의 얼굴이 홍당 무처럼 붉어졌다. @ "후후후, 망할 쥐 새끼들. 오늘이 네놈들 제삿날이다." 아크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냄비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는 음식은 아크의 역작, '향기로운 독 수프' 였다. 아크는 완성된 수프를 적당한 크기의 주머니에 담아 들고 동굴로 들어섰다. 계속된 아크와 늑대의 합동 공격에 이미 동굴 내부의 쥐들은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그러나 안쪽, 괴물 쥐가 버티고 있는 곳에 다다르자 수많 은 쥐 떼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검으로 쥐를 상대하며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크르르르. 어둠 속에서 붉은 광채가 번뜩였다. 이제 너무 자주 봐서 그다지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다. 괴물 쥐 역시 또 너냐고 짜증 내는 눈빛이었다. 괴물 쥐 가 귀찮은 듯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오늘은 선물을 주려고 왔으니까." 아크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괴물 쥐를 향해 주머니를 확 집 어 던졌다. 반사적으로 휘두른 괴물 쥐의 앞발에 주머니가 길게 찢어졌고 향기로운 독 수프가 뿌려졌다. 괴물 쥐가 잠시 움찔했다. 그러나 조금 덩치가 크다고 해 도 결국 쥐 새끼. 본능이 시키는 일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괴물 쥐는 몇 번 코를 벌름대다가 날름거리며 수프를 핥았다. 독버섯의 외관은 아름답다. 향기로운 독 수프도 겉보기에 는 전혀 위험할 것 같지 않았다. 냄새도 상당히 좋았고, 맛도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한번 수프를 맛본 괴물 쥐는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바닥을 샅샅이 핥았다. 다른 쥐들도 멀쩡한 수프의 겉모습에 속아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래, 많이들 먹어라." 아크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머지 주머니들도 집어던졌다. 그러기를 잠시, 드디어 향기로운 독 수프가 효력을 발휘했 다. 게걸스럽게 핥아 대던 작은 쥐들이 경련을 일으키며 뻗 어 버린다. 그제야 괴물 쥐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날카 로운 소리를 내며 물러났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괴물 쥐의 위장에서는 이미 비장의 요리가 위력을 발휘하 고 있었다. 괴물 쥐는 비틀거리더니 한쪽으로 맥없이 쓰러졌다. 하늘을 향해 뻗어올린 네 다리가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크큭, 아무리 잘나 봐야 쥐 새끼. 이 몸의 머리는 당할 수 없지. 자, 그럼 어디에 뭘 숨기고 있었는지 구경이나 해 볼 까? 아니, 그 전에 먼저 그동안 당한 복수를 해 줘야겠지?" 아크는 콧노래를 부르며 괴물 쥐에게 다가갔다. 그때, 갑 자기 눈앞으로 섬뜩한 손톱이 쏘여 날아왔다. 아크가 반사적 으로 검을 뽑아 들자 검날이 쩡하고 흔들렸다. "이, 이럴수가……!" 아크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완전히 마비됐다고 생 각했던 괴물 쥐가 일어나 앞발을 휘두른 것이다. 뭔가 잘못됐다! 아크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도망치려 했 다. 그러나 이미 괴물 쥐가 통오를 반쯤 막아선 상태였다. '젠장, 또 죽는 건가?' 아크가 절망적인 표정을 떠올렸을 때였다. 한 걸음 다가서던 괴물 쥐가 거친 숨을 불어내며 휘청거린다. '아니, 약효는 있어. 단지 몸집에 비해 먹은양이 적어서 약효도 약하게 듣는 것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의 눈이 빛났다. 어차피 뉴 월드는 단순하게 때리고 맞는 게임이 아니다. 전투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렇다면 마비약을 먹고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괴물 쥐 를 처치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아크는 이미 레 벨 10을 달성한 상태였다. "좋아, 그럼 어디 내가 죽나 네가 죽나 끝까지 가 보자!" 아크는 검을 휘두르며 괴물 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레벨업의 효과인지. 마비의 때문인지 예전과 다르게 공격 이 먹혔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피가 튀었고 괴물 쥐가 휘청 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약효는 10분이나 지속돼. 괜히 서두를 필요없어.' 아크는 괴물 쥐 주변을 빙글빙글 돌려 쉴 새 없이 검을 찔 러 넣었다. 괴물 쥐는 몇 번이나 앞발을 휘둘렀지만 예전 같은 위력은 없었다. 아킂는 대부분의 공격을 어렵지 않게 흘려냈다. 그러나 시스템상, 모든 공격을 피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크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났고 생명력 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5분가량 공격하자 괴물쥐의 몸이 불 그스름하게 변했다. '빈사상태! 드디어 끝이 보인다!' 빈사상태는 생명력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크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괴물 쥐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거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괴물 쥐가 포효를 내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앞발이 날아들었다. "헉, 뭐, 뭐야?" 간신히 공격을 막아 낸 아크가 황망한 표정으로 괴물 쥐를 바라보았다. 아직 10분이 되려면 3분 이상 남았다. 그러나 괴물 쥐는 마비가 완전히 풀렸는지 빠르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아크는 눈 깜빡할 사이에 수세에 몰렸다. 괴물 쥐를 공격하기는커녕 막아 내기도 벅찼다. 한 번씩 막아 낼 때마다 생명력이 쑥쑥 내려가는게 보였다. 그렇게 열 번가량 공격을 막아내자 검이 박살 났다. -녹슨 철검의 내구도가 0이 되어 파괴됐습니다. '맙소사!' 드디어 믿고있던 검까지 사라졌다. 남은 생명력은고작 23. 아크는 황급히 회복 포션을 꺼내 들이켰다. 그러나 괴물 쥐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앞발로 가슴을 후려쳤다. 다행히 회복 포션을 먹어서 목숨은 부지했 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아크 역시 괴물 쥐처럼 빈사 상태가 되어 몸이 붉게 달아올랐다. '젠장, 이게 무슨 개 같은…….' 아크가 뒤이어 날아오는 앞발을 이리저리 피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 버틸 수 있는 건 잘해야 한 번. 두번째가 날 아오면 차디찬 바다겡 머리를 처박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안돼, 그럴수는 없어! 여기서 포기하면 이제 이 던전은 포기해야 돼!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판사판이다! 빌어먹을 쥐 새끼야, 같이죽자!' 아크는 와락 괴물 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앞발이 날아 와 가슴을 후려쳤다. 그러나 아크는 물러나지 않고 온 힘을 집중해 놈의 미간에 주먹을 날렸다. -불굴의 정신으로 괴물 쥐의 약점을 찾아냈습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순간 번쩍이는 메시지와 함께 괴물 쥐의 움직임이 거짓말 처럼 멈췄다. 괴물 쥐는 앞발을 추켜올린 채로 씩씩거리며 뜨거운 숨을 토해 내다가 벌러덩 자빠졌다. 뒤이어 괴물 쥐의 모습이 서서 히 투명하게 변해 갔다. 그것이 말해주는 상황은 명확했다. 아크의 승리다! "이, 이긴건가?"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경쾌한 소리와 함께 레벨이 1올랐다. 뒤늦게 다리에서 경련이 일어나듯 후들거렸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보니 생명력이 2밖에 남지 않았다. 빈 사 상태에 빠져 불굴의 정신으로 공격력과 치명타 확률이 올 라갔다. 거기에 격투술의 적중도와 회피율이 더해져 받는 데 미지는 최소한으로, 주는 데미지는 최대한으로 끌어내 만들 어 낸 기적 같은 승리였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잠시 그렇게 멍하니 괴물 쥐를 바라보던 아크는 화들짝 놀 라며 고개를 추켜올렸다. 아직도 동굴에는 백여마리의 쥐가 남아 있었다. 생명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쥐들의 마비가 풀리면 꼼짝없 이 당하고 만다. 아크는 몸을 일으키며 쥐들을 노려보았다. "자, 쥐 새끼들아! 그동안 나를 괴롭힌 대가를 치러야지?" 바들바들 경련을 일으키는 쥐들의 눈에 두려운이 번졌다. @ "자, 이제 전리품을 살펴볼까?" 백여마리의 쥐를 몽땅 밟아 죽인 아크는 괴물 쥐가 떨어 뜨린 전리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곧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번졌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잡은 괴물 쥐는 기대 만큼 좋은 아이템을 떨구지 않았다. 두툼한 가죽 하나와 낡은 검 한 자루뿐이었다. 블랙 베어 마우스의 가죽(재료) 미지의 동굴에서 수많은 쥐를 거느리던 괴물 쥐의 가죽. 어지간한 도 검을 막아 낼 정도로 단단하고, 한기를 막아내는 효능이 탁월하다. 그 냥은 쓸 수 없지만 잘 가공하면 뛰어난 품질의 갑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갑옷이라, 이건 꽤 쓸 만하겠는데?" 부식된 검 무기 타입:한손 검 공격력:1~4 내구력:20/20 무게:15 사용 제한:없음 괴물 쥐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쓰던 부식된 검. 너무 많이 부식되어 원 형을 알아보기도 힘들다. 검날도 많이 상해 공격력도 기대하기 힘들다. "이건 못 쓰겠군." 아크가 혀를 찼다. 녹슨 철검도 5~8의 공격력이었는데. 부식된 검은 그보다도 훨씬 약했다. 그러나 아직 실망하기에 는 일렀다. 괴물 쥐가 지키고 있던 던전의 보물이 남아 있지 않은가. 아크는 잔뜩 기대하며 동굴 끝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막다 른 곳까지 도착해도 이렇다 할 만한 아이템은 눈에 띄지 않 았다. "뭐, 뭐야? 설마 낚인거야?" 아크가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 돌아서려는 아크의 발끝에 뭔가가 걸렸다. 고개를 내려 보니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석판이었다. 석판 을 집어 들자 정보창이 떴다. -신비한 석판을 습득했습니다. 신비한 석판의 비밀 동굴의 괴물 쥐가 지키던 석판을 입수했습니다. 고대의 비밀이 담겨 있는 신비한 석판입니다. 표면에는 알수없는 문자가 가득 차 있습니 다. 아마도 이것이 동굴 입구에서 죽어있던 사람이 찾던 물건 같습니 다. 누군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난이도:F 퀘스트 정보창이 떴다. '퀘스트 아이템! 또 다른 퀘스트하고 연결되는 건가?' 그렇게 생가하면 그리 나쁜 결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 퀘스트 역시 일조의 연계 퀘스트였다. 연계 퀘 스트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진 임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 이 많이 필요하지만 마지막까지 모두 해결하면 상당한 수준 의 아이템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일확천금의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른 것이다. @ "뭐, 뭐라고? 자네가 정말 괴물 쥐를 해치웠단 말인가?" 크레이든이 놀란 눈으로 아크를 보며 물었다. 아크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죽을 보여 주었다. "과연 이만한 크기의 가죽이라면 괴물 쥐가 확실하겠군. 대단하네." -괴물 쥐를 처단해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북소리와 함께 의뢰가 완료되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레벨이 2단계나 올라 13이 되었다. 원래 10레벨로 는 불가능한 의뢰를 해결했으니 그만큼 보상도 컸다. 그뿐이 아니었다. 크레이든은 보상으로 10골드를 주며 한센에게 가 보라고 했다. 한센은 아크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에 침을 튀기며 칭찬했다. "얘기는 들었네. 자네는 정말 큰일을 해냈어! 그렇게 거대 한 괴물 쥐와 당당하게 맞서 쓰러뜨리다니, 이제 마우스 마 스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네." 하룬 마을 장로 한센으로부터 마우스 마스터의 칭호를 습득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쥐를 상대하는데 있어서 달인이 되었습니다. 쥐를 상대할 때 50%의 추가 공격력 적용. 쥐에 한해서 치명타를 날릴 확률이 40% 상승. 쥐를 상대하는 방법을 마스터해서 받는 피해가 40% 경감.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100 상승합니다. 마우스 마스터가 되어 고양이의 기백 스킬이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소양이의 기백(중급, 액티브):고양이의 포효와 눈빛에 더 강한 살기를 담 아 쥐 그리고 비슷한 크기의 소형 몬스터까지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1 분간 마비.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가 20% 저하(모든 쥐, 50% 확률로 소형몬스터도 적용됨). 마나소모:100 기절할 만큼의 추가 보너스였다. 하긴 보통의 방법으로 의뢰를 완료하려면 15레벨의 유저 대여섯은 가야 가능했을 일이다. 그걸 10레벨 유저가 혼자 해치워 버렸으니 그만한 보상을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게다가 다음 퀘스트로의 연계까지. 이걸 기연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는가. '후후후, 안델과 부르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 겠군.' 만약 안델과 부르마에게 이용당하지 않았다면 아크 역시 쥐 잡는 퀘스트 따위를 삼백 번이나 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잃어버린 스탯을 복구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으 로 버텨 온 게 결과적으로 기연을 얻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닥 진심으로 고마워할 생각은 없었다. 기연을 얻은 것은 오직 아크의 지독한 인내심의 결과. 놈들에게 품 은 복수심은 조금도 누그러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도 받게." "그건 뭡니까?" "자네가 가끔 간병해 주던 요한슨 할멈이 며칠 전에 죽었 네. 그런데 죽기 전에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처분했네. 자네에게 남긴다고 해서 내가 맡아 두고 있었지. 한 30골드 쯤 될 거야." NPC라지만 직접 간병까지 해 주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 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주는 돈을 거절할 아 크는 아니었다. 성의로 남겼으니 성의를 다해 써 주는게 도리다. 어쨌든 이로써 아크는 고작 13레벨에 보너스 스탯만 12포 인트를 받았다. 게다가 동 레벨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거 액의 돈까지 벌었다. 돈을 받아 챙긴 아크는 문득 석판이 떠 올라 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하베스틴 자작이라는 분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지. 하베스틴 자작님은 바로 이 지방을 다스리는 작센 영주님이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나?" "아닙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간단하군. 다음 퀘스트의 정보 수집도 끝냈고…… 이제 여행 준비만 끝내면 되겠어.' 아크는 헤벌쭉한 얼굴로 대장간을 찾아갔다. 그리고 괴물 쥐의 가죽을 내밀고 가죽 갑옷 제작을 부탁했다. 또한 부식 된 검도 함께 맡겼다. 녹슨 철검이 부서져서 달리 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템을 맡겨놓고 하루가 지나 찾아가자 갑옷과 검 수리가 끝나 있었다. 막상 만들어진 아이템을 살펴보니 전리품은 기대 이사의 물건으로 변해 있었다. 대장간 주인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자네의 부탁이라 최고의 솜씨를 발휘해 봤네."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마법 방어구 타입:가죽 갑옷 방어력:40 내구력:90/90 무게:20 사용 제한 :없음 미지의 동굴을 지키고 있던 괴물 쥐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신축성이 뛰어나고 단단한 털에 뒤덮여 방어력도 상당하다. 특히 한기를 막는 성능이 뛰어나 겨울철 여행자에게는 최고의 갑옷이다. 옵션:민첩 2, 냉기 저항 20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마법) 무기 타입: 한손 검 공격력:8~12 내구력:20/20 무게:15 사용 제한:없음 부식된 검을 갈아 예리하게 단련한 검. 너무 갈아 검날이 얇아진 탓에 내구력이 떨어지지만 예리함만은 일품. 가벼워서 사용하기 편리하다.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장검보다 좋다. 옵션:공격속도 5 증가 물론 대장간에 질연된 최고가 가죽 갑옷이나 장검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성능이었다. 그러나 그런 물건들은 말 그대로 진열품에 불과했다. 수십 골드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리 빨라 도 레벨20~25까지 돈을 모아야 겨우 살수있다. 반면 아크 는13레벨에 옵션까지 붙은 마법 장비를 얻었으니 횡재했 다고밖에 할수 없었다. 그리고 요한슨 할머니의 유산과 유저들의 아이템을 매매 해 주며 얻은 수수료까지. 하룬 마을에서 이십오 일 만에 60 골드가량의 돈을 벌어들였다.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아크는 하룬 마을 사람들과 모두 대화를 나누었다.. 혹시나 다른 퀘스트가 숨겨져 있을짇 모른다고 생각했 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번을 물어봐도 더 이상 퀘스트를 주는 NPC는 없었다. 그렇다면 더이상 초보 마을에서 뭉개고 있을 이유 가 없다. 아크는 곧바로 짐을 정리하고 하베스틴 자작을 찾아 작센 성으로 걸음을 옮겼다. @ "응시자들의 리포트는 모두 들어왔나?" "네, 지금 읽어보는 중입니다." "관심을 끌 만한 녀석들이 있던가?" "몇 명은요." 김권태가 리포트 몇장을 분류해 하명우에게 건네주었다. 글로벌엑서스의 채용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들은 일정 기 간마다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기획실에서 현재까지 진척 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주욱 훑어보던 하명우는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호오, 아직 이십 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레벨 50대 유저 가 20명이나 되나?" 뉴 월드는 다른 게임에 비해 레벨업이 3~4배는 어렵다. 즉, 다른 게임이라면 150~200레벨을 불과 이십 일 만에 달 성했다는 뜻.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다. "당연히 정상적으로 게임을 해서는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리포트에는 혼자 노력해서 됐다고 쓰여있지만 지원사격해 주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원하던 방식이 아닌데, 괜찮겠습니까?" "이 정도는 처음부터 예상했지 않나?" 하명우는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초에 게임의 결과로 사원을 뽑겠다는 계획을 세울 때부 터 어느 정도 잡음은 예상했다. 글로벌엑서스라는 세계적인 기업에 들어오는 시험이다. 무지막지한 돈을 쏟아 붓는 사람도 있을거고,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서포트를 부탁한 사람도 있 으리라. 그리고 아직까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응시자들도 결국 같 은 방법을 택하게 되 것이다. 그만큼 응시자들이 열중해 준다면 하명우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자금이나 인맥을 동원하는 것도 실력이지. 이력서를 위 조한 멍청이들까지 시험에 참가시킨건 그래서야. 그런놈들 이 더 필사적으로 매달리면 시험 수준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테니까. 우리가 직접 시스템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써 먹기에는 그만한 방법이 없지." "그들의 합격까지 고려하고 계신 겁니까?" "설마." 하명우가 농담하지 말라는 듯 피식 웃었다. "단지 컨트롤할 수 있는 유저가 필요했던 것뿐이네. 나머 지는 어떤가?" "대략30~40레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 으로는 그게 한계겠죠." "그런데 그쪽에 따로 빼놓은건?" 하명우가 탁자 한쪽에 쌓여 있는 리포트를 가리켰다. "아, 이것들은 조금 특이한 방식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 겁니다." "특이한 방식?" "네. 우직하다고 해야 할지, 기발하다고 해야 할지……. 레벨은 최하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데. 어떤의미로는 시스템 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읽어 보시겠습니까?" 김권태가 2개의 리포트를 내밀었다. 하나는 '삼바라'라 는 이름을 쓰는 곽용이라는 응시자였고. 다른 하나는 '아 크'. 김현우의 리포트였다. 하명우는 슬쩍 리포트를 훑어보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둘 모두 아직 레벨20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가 원하는 건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야. 게임을 제대로 활용하고 날카롭게 파헤칠 수 있는 사람이지." "뉴 월드는 레벨이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하지만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될수 있어." "그야 그렇죠." "게임을 제대로 파헤치려면 무엇보다 머리가 좋아야 해. 이십 일이 지나도록 20레벨도 되지 않은 사람이 머리가 좋다 고 하기는 무리겟지. 저들은 관리 대상에서 제외시켜. 게다 가 한 놈은 이력서를 위조하지 않았나?" "역시 탈락입니까?" "리포트가 올 때마다 2000부를 모두 읽어 볼 수는 없지 않나. 중간중간에 솎아 낼 필요가 있겠지. 그렇다고 미리 불합격 통지를 할 필요는 없겠지. 심사 기간이 남아 있는 동 안에는 '공정하게' 처리해야 하니까. 비슷한 놈들이 겁을 집어먹고 손을 떼 버리면 곤란하잖아." "알겠습니다." 곽용과 김현우의 리포트는 곧바로 분쇄기 속으로 던져졌 다. 응시자 리스트에도 붉은 글자로 '불합격' 표시가 붙어버렸다. @ "요 며칠 사이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됐구나.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니? 하긴, 왜 안 힘들 겠냐만……."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한숨을 불어냈다. 창백한 얼굴, 실핏줄이 드러난 앙상한 팔에 3~4개의 주 삿바늘을 꽂은 어머니가 오히려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현우는 가슴이 욱신거렸다. 사실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우는 뉴 월드에 접속한 이후로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있 었다. '현실만큼이나 게임도 중요해. 다른 응시자들에 비해 많 이 뒤떨어진 상태에다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지만, 힘들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 래. 팀장 말대로 입사 시험 합격 여부가 단순한 레벨이 아니 라면 나에게도 기회가 올지도 몰라. 희망이 있다면 그냥 맥 없이 포기할 수는 없어.' 그렇게 다짐한 현우는 하루 3시간만 자며 게임에 열중해왔다. 그리고 요 며칠, 괴물 쥐와 싸우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오늘 새벽에도 유니트에서 잠깐 선잠이 들었다가 알람 소 리에 황급히 옷을 챙겨 입고 나온 것이다. 핼쑥한 얼굴에 꾀죄죄한 옷차림, 당연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현우는 짐짓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힘든 일 같은 거 없어요." "미안하구나. 부모라는 게 오히려 짐만 되고 있으니……."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그냥 며칠 친구들하고 늦게까지 어울려서 잠이 좀 부족한 거예요." "하지만 내가 이러고 있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대학도……." "어머니." 현우는 불쑥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빙긋 웃었다.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솔직히 대학에 가는 것보다 지금 일하는 곳이 몇 배는 더 마음에 들어요. 일도 재미있고, 직장 돌료들도 잘 대해 주세요. 또 항상 절 도와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어머니가 걱정하실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 힘 든 일이 하나 있긴 하네요." "뭐니, 그게?" "어머니가 해 주시는 비빔국수를 못 먹는 거요." "녀석, 괜한 소리를……." "진심이에요. 제가 정말 먹고싶은 음식은 그것뿐이에요. 제가 흉내내서 만들어도 그 맛이 안 나더라고요. 그러니 빨 리 완쾌하셔서 만들어 주세요. 알았죠?" "그래. 알았다." 현우가 윙크를 날리며 너스레를 떨자 어머니도 결국 웃어 버렸다. 현우는 강직하지만 애교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지금 같은 말도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그 러나 언제부터인가 현우조차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이런 말이 술술 나왔다. 이것도 뉴 월드를 시작하고 얻은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요한슨 할머니를 간병했던 경험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현우는 하룬 마을에서 요한슨을 간병하며 나름대로 배운 바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다음 퀘스트를 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로 시작했던 퀘스트였다. 그러나 퀘스트를 반복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바로 현우 가 얼마나 잘 대해 주느냐에 따라 보상이 약간씩 변한다는 점이었다. 기본 보상은 1실버였지만, 간병에 쏟는 정성에 따라 추가 로 1실버를 더 받는 경우도 있어따. 어차피 걸리는 시간은 똑같다. 그렇다면 1실버를 더 받을 수 있는게 좋지 않은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뒤로 현우는 요한슨이 원하는 말이나 행동을 앞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단련된 눈치가 현실에서도 통용된다 는 점이었다. 비록 게임에서 간병 스킬을 사용한 것처럼 기력이나 용기 를 상승시킬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 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변화는 어둡기만 했던 어머니의 안색 이 밝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예전에는 왜 못 해 드렸던 걸까?' 그것만으로도 현우는 뉴 월드를 하는 보람을 느꼈다. "그럼 모레 아침에 다시 들를게요. 과일은 여기 둘 테니 틈틈이 드세요." 현우는 과일 바구니를 내려놓고 씩씩하게 몸을 돌렸다. 의사에게 과일이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을 들은 뒤 로 현우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왔 다. 라면 하나도 돈이 아까워 못 사먹는 현우였지만, 어머 니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과일이 아니라 산삼인들 못 사 오겠는가? 현우는 수면 부족으로 축축 처지는 몸을 이끌고 마트로 향 했다. 현우가 6시간 동안 무거운 상자를 이리저리 옮겨 쌓아야 하는 중노동을 하고 받는 월급은 150만원. 그리고 3시간짜 리 아르바이트 3개를 해서 버는 돈이 200만원. 글로벌 엑서스에서 매달 지급되는 돈이 150만원. 그렇게 현우가 하루 15시간 일해서 버는 수입은 월500만원이었다. 그 수입으로 간신히 어머니 병원비와 생활비, 대출금의 이 자, 상환금을 갚아 나가야 하니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도 숨이 턱턱 막히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고 몸이 아파도 일을 쉴 수가 없어따. 그러나 현우는 세차게 고개를 털어 버렸다. '나보다 어머니가 몇 배는 더 힘들 거야. 그래, 약한 소리 따위 할수없어.' 겨우 한차례 일을 끝낸 현우는 상자 틈에 끼어 잠시 눈을 붙였다. 하루 1시간의 수면으로 버틸수 있었던 것은, 지금처럼 지 하철을 타거나, 일을 하는 짬짬이 눈을 붙이며 부족한 수면 을 보충해 온 덕분이었다. 물론 그런 달콤한 휴식도 함께 일 하는 혜선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오빠, 오빠!"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현우는 부스스 눈을 떴다. 혜선이 불안한 표정으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어? 무슨일이야? 짐 들어왔어?" "조금 있다가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곧 주임이 내려 올거예요." "알았어,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일어나 있어야겠군." 현우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혜선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오빠, 또 아르바이트를 늘렸어요?" "어? 아니. 오히려 몇 개는 그만뒀는걸." "그런데 요즘 왜 그렇게 틈만 나면 졸아요?" "음, 그게……."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요새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거든." "오빠도 게임을 해요?" "이거 왜이래? 나도 예전에는 정말 미친 듯이 게임을 하 던 시절이 있었어. 주말만 되면 마우스를 클릭하며 밤을 보 내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새벽을 맞았지. 만렙을 달성한 온 라인 게임만도 3~4개가 넘어." 그때는 정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 했다. 부모님도 관대한 편이어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야단을 맞아 본 기억도 없었다. 그러나 집안이 기울기시작하면서 모든게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게임에 집중해 보려고 해도 무거운 현실이 방해했 다. 현실을 잊을 만큼 열중할 게임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두 번 다시 마음 편히 게임을 할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현우는 예전의 감각이 되살 아났다. 게임을 할 때는 글로벌엑서스의 사원이 되기 위해서라는 목적마저 잊어버릴 만큼 뉴 월드에 푹 빠졌다. 때문에 잠자 는 시간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몸과 마음은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심지어 리포트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틀 전에야 기억 해 내고 부랴부랴 써서 제출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현우는 게임을 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 리고 그런 게임을 만들어 낸 글로벌엑서스에 들어가고 싶었 다. 하지만 바람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현우는 다른응시자보다 배움도 짧고 가진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경쟁률은 200 대 1이라지만, 실제로 현우가 제쳐야 하는 사람은 1900명. 합격될 가능성보다 불합격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현우는 할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뉴 월드를 즐 기고 싶었다. 시험이 끝나면 천만 원에 달하는 유니트도 반 납해야 하니까. '유니트를 반납하면 내 능력으로는 두 번 다시 못 하겠지. 뉴 월드를 하고 싶어서라도 어떻게든 합격하고 싶다. 아니, 할 거야.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 이력서를 위조했다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지금까 지 글로벌엑서스에서 문제 삼지 않으니, 어쩌면 끝까지 속일 수 있지도 않을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혜선이 상념에 잠긴 현우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럼 오빠는 요즘 어떤 게임을 하는데요?" "그건 왜 물어?" "아니, 재미있으면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어서요." "너 게임 해 본 적 있어?" "그럼요." "뭐 해 봤는데?" "음, 그러니까…… 그 뭐냐……춤추는거……." 혜선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런 거하고는 전혀 다른 게임이야. 그리고 알아 봤자 네 가 하기에는 무리고." "아이참, 대체 뭔데 그래요?" "뉴 월드라고, 얼마 전에 나왔지." "뉴, 뉴 월드요?" 혜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알아?" "당연하죠. 그건……맞아요. 신문에서 본 적 있어요. 그 런데 그 게임 하려면 돈이 굉장히 많이 들지 않아요? 유니트 인지 뭔지 때문에." "어쩌다 보니 공짜로 할 수 있게 됐어." "어쩌다 보니?" "자세하게 설명해 주기는 좀 그렇고. 아, 요즘에는 뉴 월 드 유니트를 설치해 놓은 전문 게임방도 있다는 말을 들었 어. 요금이 조금 비싸지만 기회가 되면 한번 해봐. 내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해보는게 나을거야." 그때 창고 안으로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와 현우는 얼른 짐차를 끌고 달려갔다. 혜선은 그런 현우의 등을 바라보다가 뭔가 각오를 굳힌 듯 고개를 끄덕였다. "뉴 월드라고 했지." ACT 5 하베스틴 자작의 복수 신의 은총으로 햇살같은 평화를 구가하는 대륙, 뉴 월드. 그러나 그 역사의 발자취는 피와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랜 옛날, 뉴 월드에는 혼돈의 시대라 불리는 시기가 있었다. 수많은 종족이, 그 이상으로 많은 세력으로 나뉘어 끊임 없는 전쟁을 반복했다. 피를 피로 씻어 내리고, 주검은 더 많은 수의 주검으로 덮였다. 이 같은 혼돈의 시대에 종지부 를 찍은 건 정의가 아니었다. 비할 바 없이 사악한 악이었다. 악의 화신은 모든 종족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으며, 그 막 강한 힘으로 대륙을 검은 피로 물들였다. 악의 화신 앞에서 모든 종족은 갓난아기와 같았다. 그저 숨을 죽이고 혼란과 공포에 떨었다. 이른바 암흑 세기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어둠이 깊을수록 더 밝은 빛이 찾아드는게 세상의 법칙. 그렇게 악의 화신의 전황이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떨치고 일어난 자들이 있었다.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긴 7인의 영웅이다. 3명의 인간과 드워프, 엘프, 오크 그리고 마반이라고 부릴 는 수인족 영웅이었다. 이들은 대륙의 중심에서 혈맹을 맺었 다. 그리고 절망의 신음소리는 승리의 함성으로 바뀌었다. 하나하나, 위대한 전쟁의 기록을 새기며 7인의 영웅은 결국 악의 화신을 무찌를 수 있었다. 악의 화신이 사라지자 7인의 영웅은 서로 원하는 것을 말 했다. "나는 넓고 풍요로운 대지를 원하오." 세 인간 영웅은 뉴 월드의 세 왕국을 얻었다. "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숲을 원해요." "나는 뜨거운 불과 돌의 힘을!" "축축한 늪지와 메마른 황야는 내 것이다." 엘프는 숲을, 드워프는 지하세계를, 오크는 황무지의 권 리를 받았다. 그들의 시선이 마반영웅에게 향했다. 마반영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가슴에 피로 새긴 맹세를 지켜 주기를 바 라오." "그 맹세는 지켜질 것이다." "그럼 그것으로 족하오." 마반 영웅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여섯 영웅이 세운 왕국은 현재의 뉴 월드가 되었 다. 그렇게 200여 년, 뉴 월드는 황금시대를 맞아 번성했다. 그러나 시간은 번영만을 가져온 게 아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여섯영웅이 나누었던 우정의 맹세 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퇴색되어 갔다. 200년이란 세월은 과거의 공포와 영광을 잊어버리기에 충 분한 시간이었다. 맹세는 깨졌다. 그리고 균열은 누구나 알아챌 만큼 커다랗 게 번져 가고 있었다. @ "흠, 이번에는 이걸 한번 넣어 볼까?" 아크는 들고 있던 허브를 냄비 속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냄비 속의 액체가 불그스름하게 변하더니 이내 푸 딩처럼 굳었다. 아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푸딩을 노려보다가 질끈 눈을 감 고 푸딩을 퍼먹었다. 허하던 속이 꽉 채워지는 느낌과 함께 활력이 샘솟았다. 서바이벌 요리로 영양젤리를 만들었습니다. 만복도를 100% 채워주고 10초에 걸쳐 200의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10분간 힘과 체력이 2 상승, 지혜와 지능이 2 하락. "좋아, 이번에는 성공이군."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며 푸딩을 가방에 담았다. 하룬마을을 떠난 아크는 일부러 길을 벗어나 숲을 가로질 렀다. 막상 마을을 벗어나 보니 작센성으로 가는 유저들은 대부분 15레벨 전후였다. 물론 스탯으로만 보면 아크 역시 10레벨을 넘어선 상태였 다. 그러나 남들보다 레벨이 떨어지니 불안했다. 게임에서 레벨이란 절대적인 수치다. 레벨이 떨어진다는 건 그만큼 약하다는 뜻! 때문에 숲을 가로지르며 보이는 들개나 늑대를 모조리 잡 으며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죽인 들개와 늑대가 이백마리가 넘어갈 때쯤 아크 는 레벨 16을 달성했다. 덕분에 검과 갑옷은 건들기만 해도 부서질 넝마로 변했다. '작센 성에 도착하면 수리 스킬부터 배워 둬야겠군.' 모처럼 구한 귀한 장비가 깨지면 며칠동안 잠도 못 잘것 이다. 아크는 일단 가죽옷으로 장비를 바꾸고 채취에 집중했다. 이참에 아예 서바이벌 요리 스킬 레벨도 올려놓을 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음식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처음에는 지우고 평범한 요리를 배울까 생각했지만, 괴물 쥐를 사냥하며 서바 이벌 요리의 유용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이든 음식이든 쓰기나름.' 그러나 막상 마음먹고 올리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서바이벌 요리는 평범한 요리가 아니다. 무조건 재료를 섞 는다고 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조합이 전혀 안 맞을 때 는 폭발음과 함께 재료가 모두 날아갔다. 결국 아크가 백여번을 시도해서 성공한 요리는 향기로운 독 수프를 포함해 모두 열댓 가지. 그중에 쓸 만한 건 포효하 는 칠레무침, 상쾌한 허브차 그리고 방금전에 성공한 영양 젤리뿐이다. 포효하는 칠레무침은 엄청나게 자극적인 음식으로, 일시 적으로 힘을 10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효과가 사라지면 몇분간 혼란상태에 빠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음식이었다. 아크는 이걸먹고 늑대 다섯마리와 싸웠다가 죽을 뻔했다. 상쾌한 허브차는 마나가 회복되는 차였다. 굉장히 맛있어서, 아크는 여행도중 틈틈이 만들어 마셨 다. 그렇게 지금까지 쥐들과 싸우느라 못 해 본것들을 하자 스킬이 많이 올랐고, 새로운 스킬도 2개나 얻었다. 패시브 스킬 검술(초급:26/100)검을 사용해도 무기에 대한 페널티를 받지 않는다. 격투술(초급:24/100)맨손 격투를 할 때 공격력, 적중도, 회피율이 상승 한다. 서바이벌 요리(초급:22/100)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불굴의 정신(초급:27/100)빈사상태에서 공격력, 치명타율, 회복능력 이 상승한다. 채취(초급:29/100)자연으로부터 식재료를 채취할 수 있다. 액티브 스킬 간병(초급:21/100)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기력과 용기를 준다. 마나 소 모10. 고양이의 기백(중급:103/300)쥐와 소형 몬스터에게 공포를 심어 움직 임을 봉쇄하고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를 대폭 하락시킨다. 마나소모 100. 식재료 감별(초급, 패시브):채취 스킬로 손에 넣은 식재료의 간단한 효능 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 채취할 때 재료 에 손상을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굴의 육체(초급, 패시브):어지간히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버틸 수 있는 인내력을 부여합니다. 탁월한 방어력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 합니다. 위기시 방어력, 치명타 회피율30%상승. 회복 능력5% 상승 식재료 감별은 서바이벌 요리의 부가 기술인 모양이다. 어 쨌든 채취하는 재료가 독초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 건 좋은 일이었다. 그로써 요리 실패 확률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테 니까. 정말 뜻하지 않게 얻은 스킬은 불굴의 육체였다. 눈 질끈 감고 서바이벌 요리로 백여 번을 만들어 다 먹어 봤더니 불 굴의 육체 스킬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런 스킬이 생겨야 할 정도로 서바이벌 요리의 시기은 위험하다는 뜻이리라. 아크는 그쯤에서 만족했다. "이제 재료도 다 떨어졌으니 그만 가 볼까?" 아크는 가방을 둘러메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현실은 새벽이지만 뉴 월드는 아침이었다. 가방을 둘러메고 숲을 걸으니 선선한 바람이 볼을 간질였 다. 코로 스며드는 풀 냄새는 가슴을 청아하게 씻어 주었다. 지금가 몇번을 생각하고 몇번을 감탄했지만 역시 뉴 월드는 평범한 게임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름 그대로 뉴 월 드, 새로운 세게였다. 그러나 아크가 경험한 것은 아직 뉴 월드의 10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아크는 언덕을 넘어서고야 그 사실을 절감했다. "아……!"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끝없이 펼처진 평야에 성채 도시가 우뚝 솟아 있었다. 회 색 바위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 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러나 하룬마을 NPC들은 작 센성도 뉴 월드에서는 그다지 큰 도시가 아니라고 말했다. '믿기지 않지만 이것보다 더 크고 멋있는 도시도 있다는 말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어린애처럼 가슴이 설레였다. 어쨌든 드디어 초보 지역을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도시에 도착했다. 막상 성안으로 들어서니 밖에서 볼 때만큼 아름답지는 않 았다. 그러나 성은 활기가 넘쳐흘렀다. 이제 막 초보 딱지를 뗀 사람부터 레벨50~60대의 고레 벨 유저까지, 하룬 마을과는 비교도 할수없는 인파가 거리 를 가득 메웠다. 작센 성 주변에는 수많은 미개척 던전이 남 아 있는 까닭이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즐기실 분, 하이데스 길드로 오세요." "전장을 경험하고 싶은 용맹한 전사라면 검은도끼 길드로!" "최고 가격 매입, 최저 가격 판매! 누크의 노점상입니다." "용병 필요하신분, 연락주세요."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목마다 놓인 게시판 에도 길드 홍보, 상점 홍보, 파티를 구하기 위한 전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길바닥에는 몇몇 아이템을 늘어놓고 좌판을 벌인 사람들 로 걷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느긋하고 조용한 하룬 마 을에서 이십여 일을 보내 본의 아니게 촌놈이 돼 버린 아크 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작센 성이 이렇게 붐비는 건 미개척 던전 이외에도 전직 관련 NPC와 길드 관리 NPC가 모두 모여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길드는 게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초반에 여러사람이 모이면 정보도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어려운 의뢰를 달성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된다. 때문에 각 길 드 대표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고레벨 유저를 확보하려 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길드에 가입할 생 각이 없엇다. 부리깊은 유저 불신이 첫째 이유. 둘째는 본인조차 종종 잊어버리지만, 그는 다른 유저들과 게임을 하는 목적이 다르 기 때문이다. 아크에게 뉴 월드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입사 시험이다. 괜히 길드에 가입해서 별것도 아닌 일에 질질 끌 려 다니면 곤란한 것이다. 아크가 광심이 있는 쪽은 15레벨부터 가능한 전직이었다. 많은 유저들이15레벨이 되면 작센 성에 몰려드는 가장 큰 이유였다. 뉴 월드에는 크게 열두 가지 계열의 직업이 있다. 전사, 궁사, 마법사, 도적 사제등등……. 그리고 세부적 으로 들어가면 다시 한 가지 직업에서 몇 가지씩 가지를 친 다. 그렇게 2차, 3차까지 전직을 하게 된다. "스탯."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150 레벨:16 직업:무직 칭호:마우스 마스터 생명력:360 마나:100 힘 67 민첩 77(+2) 체력 67 지혜 16 지능 17 운 17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공격속도+5 블랙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민첩+2, 냉기저항+20 빈약하다면 빈약한 스탯이었지만, 16레벨임을 감안하면 괜찮은 수준이었다. 스탯만 보면 마법사 계열을 택하기에는 지혜와 지능이 너 무 낮다. 어울리는 직업은 전사 계열, 지금가지 아크는 대부 분 전사를 많이 해 왔기에 무의식중에 스탯을 모두 힘, 민첩, 체력에 쏟아 부은 것이다. '이참에 확 전사로 전직을 해 버려?' 같은 15레벨이라도 전직을 한 캐릭터와 하지 않은 캐릭터 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직을 하면 그 직업에 특화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보 너스 스탯도 많이 추가된다. 또한 전직 퀘스트를 하며 각 직 업에 맞는 자입가지 입수하게 되어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직업 특성도 제대로 모르는데…….' 아크는 아직 전직한 유저가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분류된 직업의 특성은 이름만 봐도 알수 있지만 게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스킬은 뭐가 생기는지, 전직하면 배울 수 없는 스킬은 뭔 지, 꼼꼼히 따져 보고 결정해야 한다. 직접 겪어보지도 않 고서 기분따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뉴 월드에 내 분신은 아크 하나뿐이야. 신중하게 선택해 야 해.' 다른 게임이라면 전직하고 마음에 안 들면 새로 키우면 그 만이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 선택의 기회는 단 한번. 아무 리 신중해도 넘치지 않는다. '좋아, 일단 당분간은 작센 성을 거점으로 사냥하며 전직 한 유저들을 관찰해 보자. 지금은 다른 일도 있으니까.' 아크는 가방을 열어 그윽한 눈길로 석판을 바라보았다. 괴물 쥐가 지키고 있던 신비한 석판이었다. 아크는 석판을 보며 흐뭇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단지 석판을 찾기 위한 여 정만으로 아크는 많은 이득을 얻었다. 보너스 스탯을 12나 얻었고, 서바이벌 요리를 공짜로 배 웠다. 게다가 저레벨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는 마법 무 구를 2개 나 얻었다. 앞으로 이 연계 퀘스트가 또 어떤 이득 을 가져다 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러려면 먼저 하베스틴 자작을 만나야겠지.' 아크는 잰걸음으로 영주성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냐?" 웬 짐승 가죽을 걸친 촌놈이 어슬렁거리자 경비병이 눈을 부라렸다. 뭐, 가상현실 게임이니 반응은 예상했다. "하베스틴 자작님을 만나러 왔어요." "뭐? 네가 말이냐?" "네, 아마도 이걸 보여드리면 만나 주실거예요." 아크는 동굴에서 발견한 양피지를 건네주었다. 경비병은 의심 많은 눈길로 쏘아보다가 성안으로 들어갔 다. 그리고 대략 10분이 지나자 한 사내와 함께 밖으로 뛰어 나왔다.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중년 기사였다. 수수한 체인메일을 입고 있는걸 보니 하베스틴 자작은 아 닌 모양이다. 중년 기사는 자신을 크로스, 성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수비대장이라고 소개했다. 아크도 간단하게 소개하자 크로 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아크. 이 양피지를 발견한 사람이 자네인가?" "네." "혹시 이 양피지가 떨어져 있던 주변에서 뭔가 특이한 물 선을 발견하지 않았나?" "발견했습니다." 아크는 얼른 가방에서 석판을 꺼내 보였다. 크로스는 탁식 어린 한숨을 불어 냈다. "이걸 신의 인도하심이라고 해야 할지, 악마의 장난이라 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석판은 하베스틴 자작님이 오래전부터 찾아 헤메던 물건이네. 하지만 석판을 찾기 위해 보낸 사람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지." "이 석판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데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 단지 영지 근처에서 발견된 유적 과 관련이 있다는 것밖에. 어쨌든 수년이나 지나도록 행방을 알아내지 못해 결국 하베스틴 자작님은 석판을 포기하셨네. 그리고 직접 실피드 기사단을 이끌고 유적으로 향하셨지. 그 런데 자작님이 떠난 직후에 석판이 나타나다니……." 크로스는 아크의 손을 꽉 잡으며 부탁했다. "괜찮다면 자네가 직접 자작님에게 석판을 전해 주지 않 겠는가? 지금 서둘러 쫓아간다면 자작님이 유적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을 수도 있을 거네." 동시에 퀘스트 이름이 '석판의 비밀=석판의 비밀Ⅱ'로 갱신되었다. 석판과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떠난 하베스틴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우하하하, 바로 이거야. 이런 걸 기다렸다고.'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퀘스트+던전= 막대한 보상' 이라는 공식이 떠올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로스는 말과 병사 2명을 붙여 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할 건 하고 가야한다. 아크는 대장간을 찾 아가 모든 장비를 수리하고말에 올랐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트 창고나 정리하는 아크가 말을 타 봤을 리 만무했다. "으헉, 으어어어!" 게임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한게 실수였다. 아크는 채 몇 킬로미터도 가기 전에 말에서 다섯번이나 굴 러 떨어졌다. 보다 못한 병사들이 아크의 말고삐를 대신 잡 았다. "허벅지에 힘을 꽉 주고 말등에 바작 엎드리시오. 말은 우리가 인도하겠소." @ "조, 조금 쉬었다가 가면 안 되겠습니까?" "자작님이 유적에 도착하시기 전에 따라잡으려면 한시도 지체할수 업소. 이럇!" '빌어먹을, 도착하기 전에 죽겠단 말이야!'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영주성에 소속된 병사 NPC에게 밉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그나마 새로운 스킬을 얻은 걸 위안 삼아야 했다. -승마 스킬이 3으로 상승했습니다. 말 타기가 조금 더 수월해졌습니다. 멀미가 올라올 때쯤 생성된 승마 스킬은, 요추가 허리를 뚫고 튀어나오려고 안간힘을 쓸 때가 되어서야 3으로 올랐 다.그제야 아크는 허리를 펴고 직접 고삐를 잡을 수 있게 되 었다. 그렇게 하루 밤낮, 미친 듯이 말을 몰아대자 멀리에서 흐릿한 유적의 형체가 드러났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는지 유적입구에 실피드 기사단이 모 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크와 함께 온 병사가 말에서 내려 달려갔다. "자작님, 석판을 찾았습니다!" "뭣이?" 고개를 돌린 사람은 예순가량 된 노귀족이었다. 부석부석한 백박이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고, 얼굴은 창백 하다 못해 시퍼렇게 보였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형형하게 빛 났다. 그가 바로 하베스틴 자작이었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아크에게 다가왔다. "자네가 석판을 가져왔다는 여행자인가? 어디 보여 줄 수 있겠나?" "네." "틀림없군. 내가 찾던 바로 그 석판이다." 아크가 석판을 건네주자 하베스틴은 가늘게 떨리는 눈으 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다시 아크에게 돌리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자네의 선행이 나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아마 상 상도 못 할 것이네. 선행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나 하베스 틴은 자네의 노고에 보상할 의무가 있네. 원하는 것을 말하 게. 자네의 공적에 할당한 청이라면 뭐든지 들어주겠네." 아크의 눈동자에서 별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뭐든지 들어주겠다니! '마법 아이템을 달라고 할까? 아니면 돈을 달라고 할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아크는 뒤늦게 뭔가 이상한 점을 발 견했다. 그리고 하베스틴의 말속에 교묘히 숨겨진 퀘스트의 함정을 눈치 챘다. '내 공적에 합당한 청이라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하베스틴은 '뭐든지'라고 했지만 '공적에 합당한'이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결국 상한선이 있다는 뜻. 그러나 공적이 딱히 수치로 나와 있지 않으니 상한선을 제대로 알 수 없었 다. 그렇다면 상한선을 추측해 볼 방법은? '난이도다!' 아크는 퀘스트창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난이도는 G. 지 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그 정도 난이도로 얻을 수 있는 보 상은 잘해야 1골드, 혹은 그에 준하는 아이템뿐이다. '그게 이 퀘스트로 얻을 수 있는 전부라고?' 들뜬 기분이 사라지고 허탈감이 찾아들었다. 석판을 얻기 위해 수백 번의 쥐 사냥을 해야 했고, 괴물 쥐 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말을 달려 하 베스틴을 만났다. 그런데 그 보상이 겨우 1골드?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또다른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 이 석판을 건네주는 걸로 끝나는 걸까? 그렇다면 왜 굳이 수비대장이 나를 이곳까지 보낸 거지? 병사들을 시 켜도 되는데. 게다가 퀘스트에는 하베스틴을 만나라고만 되 어 있지 석판을 건네주라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 이건 분기형 퀘스트야!' 분기형 퀘스트는 유저의 선택에 따라 결론이 변하는 퀘스 트를 말한다. 여러가지 추론 끝에 아크는 이 일이 분기형 퀘스트라고 확신했다. 석판에 관련된 다른 퀘스트. 즉, 아크가 원했던 진짜 보상을 얻는 방법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아크는 번쩍 고개를 올리며 대답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자작님과 함께 유적에 들어가는 겁니다." "뭣이? 그런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유적과 관련된 석판을 가져왔으니 그만 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작님 역시 제가 세운 공적 만큼의 보상을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모르겠는가?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저 유적은 흔 해 빠진 던전이 아니네. 사악한 악마가 웅크리고 있는 마굴 이야. 민간인인 자네를 저곳에 끌어들일 수는 없어!" "스스로 하신 약속을 어기시는 겁니까?" 아크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하베스틴을 압박했다. NPC와의 관계는 항상 좋게 유지해야 한다. 그게 아크의 철칙이다. 그러나 더 큰 이득이 걸려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내려간 친밀도를 다시 올릴 방법은 많지만, 못챙긴 퀘스트 아이템을 다시 얻을 방법은 없다. 상대가 영주든 자작이든, 필요하다면 정면충돌을 해서라 도 이득을 챙기고 봐야 하는 것이다. "자네 정말…….컥, 쿨럭, 쿨럭!" 아크를 노려보던 하베스틴이 돌연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 을 꿇었다. "자작님!" 근처에 있던 병사가 황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다가가 하베스틴을 부축한 사람이 있 었다. 아크였다. "제게 맡기십시오. 저는 환자를 돌본 경험이 많습니다." 재빨리 간병 스킬을 사용하자 하베스틴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아크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병이 깊으시군요. 이런 몸으로 유적을 탐사하시겠다 니…….게다가 주위에는 환자를 돌볼 줄 아는 분도 없지 않 습니까?" "나는 간병인 따위는 필요없다. 쿨럭, 쿨럭!" "아니, 저는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이대로는 검 을 휘두르기는 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겁니다. 자작님도 자 존심을 세우다가 부하들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하, 하지만……." "제가 자작님을 간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니, 꼭 그래야겠습니다. 저도 명색이 간병인. 환자를 두고 그냥 돌아설 수는 없습니다." 아크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베스틴이 한숨을 불어 냈다. 패배를 인정하는 한숨이었다. 아크는 뒤이어 울리는 북소리에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퀘스트가 갱신됐습니다. 석판의 비밀Ⅱ=석판의 비밀Ⅲ 하베스틴 자작과 함께 유적을 탐색해 석판의 비밀을 알아내야 합니다. 퀘스트 실패 조건:하베스틴 자작이 사망하면 퀘스트는 자동으로실 패하게 됩니다. 난이도:+E @ "공격, 저주받을 몬스터를 쓸어버려라!" "우와아아아!" 50여명의 실피드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가 용맹하게 검과 철퇴를 휘둘렀다. 앞을 가로막고 있던 가고일과 고블린 들이 터지듯 튕겨 나 갔다. 이어 마법사의 손끝에서 화염이 뿐어져 나와 통로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불길에 휘말린 고블린이 괴성을 지르며 기어 나왔다. 그러 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검과 철퇴 세례뿐이었다. 수십마리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고작 10분도 걸리지 않 았다. 아크는 놀란 눈으로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하다.' 유적에 들어온 지도 이틀이 지났다. 유적의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한 길이 얽혀 있어 도통 방향 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모퉁이를 하나 돌 때마다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실피드 기사 단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영주가 직접 끌고 온 기사단이다. 장비도 일반 병사와는 수준이 달랐다. 번쩍이는 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한 기사들이 다. 게다가 관련 스킬도 엄청나게 높은지 모든 공격을 방패 로 막아내고 검은 휘두르는 족족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NPC의 전투를 처음 보는데, 그 높은 수준에 자신감마저 잃어버릴 정도였다. 한바탕 전투를 끝낸 기사들의 머리 위로 십자 마크가 떠올 랐다. 레벨 업을 알리는 신호다. '대체 저들은 레벨이 얼마나 되는 걸까?' NPC에게도 레벨은 존재했다. 당연히 전투를 많이 치르면 레벨이 올라간다. 그러나 정작 NPC들은 레벨의 개념을 모르고 있었다. 레 벨이 몇이냐고 물으면, 그게 뭐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자세 히 설명하려고 하면 버럭 화를 냈다. 뉴 월드에서 레벨이나 스킬, 스탯이라는 단어는 그들이 말 하는 이방인, 즉 유저들만의 언어였다. 상대의 정보창을 훔쳐보는 마법이나 스크롤도 NPC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기사들이 아크보다 훨씬 레벨이 높은 것만은 분명했다. '어쨌든 이들과 함께 있으면 죽을 염려는 없겠어.' 갱신된 석판의 비밀 퀘스트의 난이도는 무려 +E다. 혼자서는 무슨 짓을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퀘스트. 그러나 실피드 기사단과 함께라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도 않 았다. 문제는 조건인 하베스틴의 생존이었다. 유적에 들어선 뒤로 하베스틴의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 었다. 간병 스킬을 배운 아크는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 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퀘스트를 달성하기 전에 하베스틴이 죽는다면 퀘스 트는 실패로 끝나고 실피드 기사단도 작센 성으로 돌아간다. 직접 전투를 할 필요도 없는 퀘스트의 난이도가 +E인 이유 는 그 때문이리라. '어떤 일이 있어도 퀘스트를 해결할 때까지는 살려놔야 해. 쳇, 귀찮아 죽겠네." 옆에서 콜록거리는 하베스틴을 보자 짜증이 밀려왔다. 퀘스트에 그런 조건만 없다면 죽거나 말거나 알 바 아니 다. 그보다는 전투에 참가해서 경험치로 똘똘 뭉쳐 있는 듯 한 몬스터를 한대라도 때리는 편이 이득이다. 저렇게 강한 기사단조차 쉴 새 없이 레벨업을 하고 있다. 아마 저레벨인 아크라면 운 좋게 한두 마리만 쓰러뜨려도 제 법 많은 경험치를 모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 었다. 시시각각 악화되는 하베스틴을 옆에서 지키지 않으면 허망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쿨럭, 쿨럭!" "괜찮습니다. 병은 마음에서부터 오는 겁니다. 마음을 굳 게 먹으면 어떤 병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십시 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간병 스킬을 연발하자 하 베스틴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고맙네. 자네 말을 들으면 정말 병이 낫는 것처럼 힘이 솟는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네. 아무리 굳게 마음먹어도 살 아날 가망이 없다는 걸." "무슨 그런 말씀을……." "아니, 사실이네. 내 병은 마음에서부터 온 게 아니니까." "병에 대해서 알고 계시다는 겁니까?" "자네는 내가 왜 이런 몸으로 기사단을 이끌고 이곳에 왔 는지 아는가?" 하베스틴은 흐릿한 시선으로 음산한 유적을 훑었다. "이곳에 있기 때문이네 내 아버님을 죽이고 내게 병마를 심어놓은 저주받을 악마가." "악마?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이미 자네도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알아 둬 도 나쁘지 않을 걸세. 실은 오래전에 작센 영지에 큰 재앙이 찾아왔던 적이 있었네. 병마와 기근이 영지를 뒤덮었지." "그게 악마의 짓이었다는 말입니까?" "그래. 먼 대륙에서 넘어온 사악한 악마의 짓이었네. 이 사실을 알게 된 작센 가문의 선조께서는 당연히 병사를 동원 해서 악마와 싸우셨네. 그러나 마지막 일격을 남겨놓고 악 마를 놓쳤고, 그 이후로 작센 가문은 악마의 저주에 시달리 게 되었네. 작센 가문의 후손은 모두 스물이 되면 불치명에 걸려 죽는 저주에." "네? 하지만 자작님은……." "내 목숨이 아직 붙어 있는 건 아버님 덕분이네." 하베스틴은 가슴까지 늘어진 은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다른 선조가 그랬듯, 아버님도 가문의 저주를 풀기 위해 애쓰셨지. 그리고 내가 태어나던 해에 결국 알아내셨네. 당 시 영지에서 도망친 악마가 이 유적에 숨어 있다는 것을. 그 악마를 죽이면 저주는 끝나겠지. 그러나 그 악마가 숨어 있 는 곳은 고대의 힘에 의해 굳게 잠겨 있었네. 자네가 가지고 온 석판은 바로 그 방을 여는 열쇠야." 그의 부친은 오랜 노력 끝에 결국 석판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지금의 하베스틴처럼 병사들을 이끌고 악마를 찾아 갔다. 하베스틴은 실피드 기사단에서 당시의 부친의 모습을 찾 아보려는 듯 물그러미 바라보았다.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로부터 들었네. 길고 긴 전투가 벌 어졌다고. 그리고 결국 아버님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지. 그 러나 아버님은 최후의 기력을 짜내 악마에게 큰 부상을 입히 셨네. 덕분에 저주는 약해졌고,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 있을 수 있었지." "자작님이 병마에 시달리는 건 그 사악한 악마가 힘을 되 찾았다는 뜻이군요." "맞네. 그리고 몇년 전부터는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내 아들에게 까지 저주의 흔적이 나타났지. 악마의 힘이 더 강해 진 거네. 그러나 이미 아버님의 죽음과 함께 석판은 사라진 뒤였네. 지난 3년간 그 석판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 었어. 그사이에 내 몸은 이렇게 피폐해지고 말았지. 더 기다 릴 시간이 없어진 나는 힘으로라도 문을 부수고 악마를 처단 하기위해 출정한 거네." "악마를 죽이면 자작님의 병도 회복되는 겁니까?" 하베스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이미 틀렸네. 이제 악마를 죽인다고 해도 나 는 살아날 수 없어. 하지만 내 아들에게만큼은 나와 같은 운 명을 물려줄 수 없네. 아버님 역시 나와 같은 상황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악마와 싸우셨네. 아버님이 내게 해 주셨던 일 을, 이번에는 내가 아들을 위해 해야 할 차례네. 그리고 성 공할 수 있다고 믿네.자네가 석판을 가지고 온 건 틀림없이 신의 계시야." 아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아들은 그 아들을 위해 마지막 생 명을 불태운다. 물론 그들은 NPC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너무나 실제 같은 얼굴 안에서는 전자회로를 타고 전류가 흐 른다. 그러나 아크를 바라보는 하베스틴의 눈빛은 진심이다. 자 신은 죽어 가고 있고,아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겠다고. 진심 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NPC가 그랬다. 물론 현실처럼 이곳에도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사람의 성의를 가지고 노는 교활한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게 NPC와 유저의 차이점이다. "자작님의 소망은 꼭 이뤄질 겁니다." "고맙네." 하베스틴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잠이 들었다. 그 뒤로 아크는 성의를 다해 하베스틴을 보살폈다.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아버지. 쑥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아크는 그에게서 아버지의 존재를 느꼈다. 한편으로는 그에게 진심으로 동정심이 생겼다. 어차피 퀘 스트를 위해서라도 하베스틴을 도와야 한다. 기왕이면 진심 으로 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은가.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 때, 아크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메시 지를 받았다. 간병은 아크가 익힌 스킬 가운데 가장 성장이 더뎠다. 요 한슨을 십여 차례나 간병했지만 스킬 포인트는 고작 20. 그 동안 하베스틴을 간병하고도 30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쑥쑥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중급레벨에 도 달해 버렸다. 진심에서 우러난 보살핌으로 간병스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간병(중급, 액티브):더욱 능숙한 솜씨로 환자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 며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환자에게 사용시 기력과 용기를 40% 상승시켜줌. 마나소코:10 *중급 간병 보너스효과(간병인의 마음):환자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 하급 축복의 효과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탯이 소폭 상승하고, 경건한 신앙심으로 정신 계열의 저주에 저항력이 생깁니다. 아크는 입이 떡 벌어졌다. 스킬이 올라서가 아니라, 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진심으로 하베스틴 자작을 대했다는 걸 안다는 거야?' 갑자기 스킬이 쭉쭉 성장한 건, 아크가 하베스틴을 진심으 로 걱정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그렇다면 아크의 마음이 변한 것조차 스킬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뉴 월드는 뇌를 스캔해서 유저의뇌파로 캐릭터를 조정하 는 시스템이다. 감정도 결국은뇌파의 하나. 시스템에서 감 정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나 그런 부분까 지 스킬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다니. 그게 말하는 바는 간단하다. 'NPC를 상대할 때든 스킬을 배울 때든, 진심을 담으면 효 유설이 극대화된다.' 현실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법칙이다. 그러나 누가 그런 법 칙이 게임에까지 적용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놀라운 기술력 그리고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크는 하룬 마을에서의 실수로 아직도 다른 응시자보다 한참이나 뒤떨어진 상태였다. 특별한 칭호 덕에 12포인트의 보너스를 받았다고 해도 보 름이나 되는 시간 차는 극복하기 힘들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그들이 낮잠이라도 자 준다면 좋겠지 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러나 이제 그 차이를 좁힐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뉴 월드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시스템이 많아. 그걸 모 두 찾아내면 그들을 따라잡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야! 그래, 처음부터 해답은 거기 있었어! 어차피 동시에 시작한 유저들 의 차이는 거기서 거기. 남들보다 앞서려면 남들이 하는 대 로만 따라가서는 안 돼.' 새로운 희망이 보였다. 그 뒤로 하베스틴의 각혈은 더욱 잦아졌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 가고 있음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어 갔다. 그때마다 아크는 중급에 도달 한 간병 스킬을 사용해 그의 생명을 억지로 잡아 두었다. 퀘스트 완수를 위해, 스킬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이 불행 한 NPC의 작은 소망을 위해……. @ "드디어 도착했다!" 하베스틴의 창백한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유적에 들어온 지 닷새. 드디어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했 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석문! 그들이 찾는 악마는 그 뒤에 숨어 있었다. 음산한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석문 한쪽에 석판이 들 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하베스틴은 아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긴장한 표정으로 석문 앞으로 걸어가 석판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유적이 웅웅거리면서 석문이 스르르 갈라졌다. "모두 전투테세, 자작님을 보호하며 진입한다!" "네!" 유적 내부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울퉁불퉁한 바 위 벽에, 천장에는 괴물의 어금니 같은 종유석이 빼곡히 들 어차 있었다. 대자연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동이었다. 기사드리 사방을 경계하며 공동의 중심부에 도착했을 때였다. -보스 몬스터 환몽술사 데브라가 출현했습니다. "악마가 나타났습니다!" 아크가 깜짝놀라 소리쳤다. 동시에 맞은편 입구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크의 경고를 받은 기사단이 황급히 방패를 추켜올렸지만 엄청난 충격에 3~4명이 튕겨나갔다. "크크크크, 겁대가리 없는 하루살이들이 죽으려고 기어 들어왔구나!" 어둠 속에서 10미터는 족히 될 듯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암흑의 갑옷에 거대한 검, 등으로는 핏빛 망토가 섬뜩한 기운을 뿌리며 휘날렸다. 데브라의 몸을 회오리처럼 휘감고 있는 검은 기운에 닿자 용맹한 기사단조차 패닉에 빠졌다. "데, 데브라다!" "공포의 환몽술사 데브라다!" "겁먹지 마라, 놈은 석문 속에 꽁꽁 몸을 숨기고 있던 겁 쟁이 몬스터일 뿐이다!" 하베스틴이 기력을 쥐어짜 내 소리쳤다. 기사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 데브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크크큭, 어리석은 하룻강아지들!" 데브라가 입을 열 때마다 시퍼런 불꽃이 뿐어져 나왔다. 엄청난 크기의 검이 횡으로 휘둘렸다. 일격에 3~4명의 병사가 으스러지며 날아갔다. 유적을 지나면서 무적의 힘을 보여 준 실피드 기사단조차 데브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퍼런 불꽃이 갑옷을 녹였고, 뒤이 어 내리쳐지는 검날에 하나 둘 부상을 입고 쓰러져 갔다. 그 러나 실피드 기사단은 물러서지 않고 데브라를 포위한 채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외곽을 빙 둘러싼 마법사들도 벼락과 불길을 날렸다. 연속해서 터져나오는 섬광에 데브라도 타격을 입었는지 휘청거렸다. "네놈도 오늘로 끝장이다!" 마법사 하나가 『간파』스크롤을 찢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붉은빛이 데브라를 감싸더니 머리 위로 반쯤 깎인 생명력 수치가 나타났다. 기사단의 사기가 치솟아 올랐다. "놈의 생명이 반도 남지 않았다!" "지금이다, 놈의 숨통을 끊어!" "크윽, 이놈들이……." 데브라의 눈이 번뜩이자 검은 오라가 확 뿜어져 나왔다. 오라에 휩싸인 기사단은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표 정을 짓더니 갑자기 자기들끼리 치고받기 시작했다. "혼란 마법이다! 마법사!" "네!" 오라 범위 밖에서 마법사들이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마법저항, 마법해제, 정신력 강화 등등의 마법이 동시에 펼쳐졌다. 그러나 기사단은 여전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 고 허우적거렸다. 오히려 더욱 상태가 심각해져서 아군의 검 에 3~4명이 쓰러졌다. 마법사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마법이 해체되지 않습니다!" "모두들 진정하십시오, 상대가 누구라도 우리는 기필코 승리하고 말 겁니다." 정체절명의 순간, 아크의 목소리가 공동에 울려 퍼졌다. 돌연 기사단의 눈동자가 점차 초점을 찾아 가더니 번쩍 정 신을 차렸다. 간병 스킬의 위력이었다. 처음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아크가 할 일은 없었다. 기사단조차 두세 방이면 빈사상태에 빠지는 데브라의 공 격이다. 레벨 16의 아크는 스치기만 해도 빈사상태에 빠져 버릴 게 분명하다. 그저 뒤에서 하베스틴을 간병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혼란에 빠진 기사단이 서로 치고받아 부상을 당하 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단순한 기사단이 아니라 환자가 돼 버린 것이다. 환자에게 간병스킬을 사용하자 중급의 특수효과인 하급 축복이 부여되었다. 덕분에 정신계열 저주의 저항력으로 혼 란에서 벗어났다. 그뿐 아니라 기력과 용기가 40퍼센트, 모든 스탯에 +3의 보너스까지 가산되었다. 기사단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물론, 마법사의 시전속도도 더욱 빨라졌다. "우오오오, 힘이 솟구친다!" "이길 수 있다! 데브라를 무찔러라!" 기사단이 환호성을 지르며 와르르 몰려들어 칼을 휘둘러 댔다. 데브라는 분노의 포효를 터뜨리며 쳐 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크가 병사들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승리가 코앞에 있습니다. 설사 악마 라 해도 여러분의 투지를 꺾을수는 없습니다. 꺾이지 않는 투지와 물러서지 않는 용기로 여러분은 틀림없이 역사에 남 을 영웅이 될 겁니다!" "헉헉, 체력이 바닥났습니다. 조금 쉬게……." "나아가 싸우십시오! 당신의 용맹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 겁니다!" "우오오오! 기, 기운이 샘솟는다! 덤벼라, 악마야!" 아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픽픽 쓰러졌던 기사단이 벌 떡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졸지에 좀비 같은 기사단에게 둘러싸여 버린 데브라의 생 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10분의 1 이하로 떨어지 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때 기사단을 지휘하던 하베스틴이 놈의 몸을 타고 올라가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죽어라, 악마…… 컥!" 돌연 데브라가 팔을 뻗어 하베스틴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크크큭, 당해 주니까 좋더냐?" 데브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기사단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비명을 터뜨렸다. "새, 생명력이……!" "맙소사, 놈은 불사신이란 말인가?" 데브라의 망토가 펄럭이며 몸을 휘감자 생명력이 100퍼센 트로 회복되었다. 당황하는 기사단 사이로 아크가 몸을 날렸다. "자작님!" 이제 죽는 게 문제가 아니다. 하베스틴이 죽으면 퀘스트는 실패다. '여기까지 와서 퀘스트 실패라니? 말도 안돼!' 아크가 달려들자 데브라가 검을 휘둘렀다. 예상했던 공격 이다. 아크는 빠르게 격투술을 펼쳐 회피했다. 그리고 검을 뽑으며 놈의 손을 힘껏 후려쳤다. 치명타가 터지며 데브라는 하베스틴을 놓쳐 버렸다. 아크는 그를 받아들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네놈! 감히!" 데브라가 성난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저걸 봐라! 이방인조차 자작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 지 않는가!" "모두들 이방인을 엄호하라!" 아크의 행동에 자극받은 기사단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 러나 이제 아무리 검을 찔러도 데브라의 생명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사신! 데브라는 그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 가와 벼락처럼 검을 휘둘렀다. 아크는 황급히 하베스틴 앞으로 나서며 검을 치켜들었다. 쾅, 육중한 울림과 함께 생명력이 반 이상 깎여 나갔다. '맙소사, 한 방만 더 맞으면 끝장이다!'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사이 다시 치켜 올라간 검이 바람을 가르며 떨어졌다. "안돼! 모두들 마력을 집중해라! 워프!" 마법사들이 아크와 하베스틴에게 마력을 집중했다. 다른 사람을 워프시키는 마법은 7서클의 상급 마법이다. 4~5서클 마법사인 이들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5명의 마법사가 '정신 교류' 마법으로 마력을 집약 하자 7서클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섬광과 함께 아크와 하베스틴이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데브라의 검이 바닥을 후려친 것은 그 뒤였다. ACT 6 캣 나이트 "여기가 어디지?" 아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어둠이 깔려 있었다. "워프라면 그리 먼 곳은 아닐 텐데……." 워프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고작 200미터. 게다가 좌표 도 지정할 수 없는 마법이다. 근처 아무데나 무작위로 이동 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급마법에 속하는 것은, 워프를 마법사가 사용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방어력이 약한 마법사는 전사가 다가오면 주문을 외우기 도 전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영창속도가 짧은 워프를 사용한다. 거리도 얼마 안 되고, 좌표도 지정할 수 없지만 당 황한 전사의 뒤를 잡기에는 이보다 유용한 마법이 없었다. 워프를 배우지 못한 마법사와 배운 마법사는 생존율에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어쨌든 덕분에 살아나기는 한 모양인데.' 아크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곧 근처에 쓰러져 있는 하 베스틴을 발견했다. "자작님, 정신 차리십시오!" 가늘게 떨리던 하베스틴의 눈이 뜨였다. "아크인가…… 살았군. 다행이야." 하베스틴이 흐려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신 차리십시오.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 아버님의 복수 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틀렸네. 이제 자네 말을 들어도…… 아무런 힘이…… 나 지 않아……. 병사들도 모두 당했을 거고…… 아버님의 복수 도…… 아들을 지키지도 못했네……. 한심한……. 쿨럭!" 하베스틴은 왈칵 피를 토했다. 그리고 이내 은 목걸이를 잡아 뜯어 아크에게 건네주었다. "아크, 내아들은 강하네……. 틀림없이 강하게 자랄 거 야……. 그 아이에게 이걸 전해 주게……. 지켜 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그리고 네 아들은 꼭 지키라고…… 전해 주게……. 살아서 전해 주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 나……?" "알겠습니다." -하베스틴 자작의 피가 묻은 은 목걸이를 습득하셨습니다. "고맙네……." 가늘게 떨리던 하베스틴의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서서히 흐려졌다. 아크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몸이 사라져 간다. 새삼 스럽지만 그 장면은 그가 사람이 아니라 NPC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개워 주었다. 그럼에도 마음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비록 NPC지만 나름대로 정을 주었던 사람이다. 진심으로 그를 간병했다. 그런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말할수 없이 착잡했다. 그때 둥둥거리는 북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아, 그렇지. 젠장, 하베스틴이 죽으면 퀘스트는 실패였지?' 그렇게 고생했는데 결국 실패로 끝나다니……. 그러나 분 통을 터뜨려 봐야 소용없다. 죽은 사람은 살아나지 않는다. NPC 역시 마찬가지다. 단 지 현실과 다른 점은, NPC가 죽으면 곧바로 그 역할을 대신 할 사람이 나타난다는 것뿐. 아니, 현실도 그랬던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퀘스트창이 열렸다.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어라?" 퀘스트가 갱신됐습니다. 석판의 비밀Ⅲ=하베스틴 자작의 아들에게 유품을 전해라. 하베스틴 자작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고, 안타깝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었던 당신에게 아들에게 유품을 전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의 유언대로 유적을 탈출해서 영주성에 있는 아 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단, 퀘스트를 받은 시점에서 사망하면 유품은 소멸하고 퀘스트 역시 자동적으로 실패가 됩니다. 실패할 경우, 퀘스트 관련 항목에서 불이익 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난이도:+E 놀랍게도 아직 퀘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가만, 하긴 퀘스트에 꼭 데브라를 죽여야 한다고 적혀 있 지는 않았지.' 뉴 월드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퀘스트 역시 마찬가지 였다. 아크가 하베스틴을 졸라서 유적에 들어왔던 것과 마찬가 지다. 유저의 선택에 따라 퀘스트의 목표는 유동적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아마 데브라를 무찔렀다면 그건 그것대로 보상 을 받고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무찌르지 못했을 경우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는 남아 있었다. '맞아. 유적의 비밀을 알아내는게 목표였으니, 유적을 다 뒤지고 데브라를 만난 것으로 이미 이저 퀘스트는 완료된 거 야. 그럼 이 퀘스트는 또 다른 분기.' 하베스틴과 어느 정도 친밀도를 쌓아야만 받을수 있는 퀘 스트이리라. "어쨌든 다행이기는 한데, 이걸 어쩐다? 아예 잔꾀를 못 쓰게 못을 박아 놨으니……." 아크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혼자서는 다시 유적을 나가기 힘들다. 때문에 아크 는 설명을 읽으며 아예 자살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유저가 죽으면 부활등록을 해 놓은 병참에서 깨어난다. 마지막으로 등록해 놓은 곳이 작센 성 병찬, 비록 스탯은 깎 이지만 이제 스탯 복구라면 이골이 났다. 빠르게 스탯을 복구하고 보고만 끝내면 +E 난이도의 퀘 스트 하나를 거저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퀘스트를 포기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이나 연계되어 온 퀘스트다. 얼마나 막대한 보상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또한 심정적으로도 마음에 걸렸다. 가능하면 하베스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몇 안 되던 정 가는 NPC였는데, 해 보는 데까지 는 해 봐야지. 퀘스트 항목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메시지도 마음에 걸리고…….' 하룬 마을에서 간단한 메시지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서 죽도록 고생한 적이 있다. 뭔가 찜찜하다 싶으면 알아서 조심하는 편이 좋다. '자,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퀘스트를 주는 걸 보면 나가는 길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뭐, 일단 움직여 보는 수밖에 없지.' 아크는 한쪽 손으로 벽을 짚고 어둠 속을 걸었다. 미로에서 탈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둥그런 원형 공간 한쪽으로 작은 통로가 있었다. 그 통로 를 쭉 따라가자 또다시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런 공간을 세 번째 만났을 때였다. 문득 어둠 속에서 뭔 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걸음을 멈추 자 갑자기 눈앞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공격당했습니다. 데미지5 '적이다!' 아크는 재빨리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동굴 전체에서 사사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그것들이 확 덮쳐들었다. 비록 데미지는 별거 아니었지만 횟수가 많으니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5의 데미지로 그렇게 빨리 체력을 깎는다면 아마도 적은 백여 마리. 그 많은 숫자에게 둘러싸였으니 상대가 쥐라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생명력이 반 이상 깎였을 때 아크가 번 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동굴에 휘몰아쳤다. 순간, 정신없이 가해지던 공격이 뚝 끊겼다. '마비에 걸린건가?' 아크는 그 틈에 놈들을 해치우기 위해 서둘러 검을 추켜올 렸다. 돌연 앞쪽에서 수백 쌍의 노란 눈동자가 떠올랐다. 살 기등등한 눈동자였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젠장, 마비되지 않았다. 실패한 건가?' 중급 고양이의 기백은 쥐에게는 100퍼센트 확률로 마비를 건다. 그러나 소형 몬스터에게 사용하면 50퍼센트 확률로 실패할 수 있었다. 결국 반반이라는 얘기인데, 재수 없게 그 확률에 걸려 버렸다. 게다가 중급 고양이의 기백은 마나 소모가 100. 한번 사용 하면 마나를 모두 회복하기까지 10분 동안은 사용할 수 없다. 아크가 당혹해하는 사이 눈동자들이 점차 다가왔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 적이 아니잖아." 동시에 살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때까지도 상대는 노란 눈동자로만 보였다. 아크는 그게 어둠 때문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눈동자 주 변이 뿌옇게 변하더니 어둠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형체를 드러냈다. "고, 고양이?" 아크를 둘러싸고 있는건 백여 마리의 고양이 떼였다. 생 물 도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 심지어 듣 도 보도 못한 고양이도 섞여 있었다. "흠, 어떻게 묘족의 기술을 쓴거지?" 그때 갑자기 바로 코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 려 보자 웬 여자가 아크에게 코를 처박고 킁킁거리고 있었 다. 아크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여자? 그런데 뭐야, 저 귀하고 꼬리는?' 상대를 확인한 아크는 눈이 동그래 졌다. 코를 처박고 있던 사람의 외형은 틀림없는 여자였다. 얼굴 도 예쁘고 쫙 달라붙은 가죽 옷 위로 드러난 몸매도 근사하 다. 그러나 머리위로 뾰족한 귀가 달리고, 엉덩이 뒤쪽으로 는 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성인 잡지에 간간이 나오는 고양이 코스튬을 한 여자와 흡 사했다. 여자가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난 자나야. 넌?" "어? 나, 난 아크."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너 인간이지?" 아크가 멍한 표정으로 끄덕이자 자나는 빙글 몸을 돌렸다. "설마 정말 인간이 올 줄은 몰랐네……. 어쨌든 따라와." 아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뭐, 일단 적의는 없어 보이니까.' 결국 아크는 검을 집어넣고 좌우로 흔들리는 그녀의 꼬리 를 따라갔다. 포위하듯 양옆에서 고양이들이 따라붙었다. 마치 포로 호 송하듯 고개를 빳빳이 들고 행진하는 고양이를 보자 긴장감 이 일시에 허물어져 웃음이 배어 나왔다. 30분 정도 걸어가자 흐릿한 빛이 감도는 공간이 나타났다. 수백 마리의 고양이가 득실거리는 공간 안쪽에는 자나와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 열댓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의 중 심에 엄청난 거구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거구라고는 하나, 근육질로 꽉꽉 들어찼다는 의미는 아니 다. 애드벌룬같이 빵빵한 몸통을 가졌다는 의미다. 물론 그 역시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있었다. '대체 뭐야, 여기는? 코스프레 나라냐? 그런 거냐?' 뉴 월드에서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종족 중에는 수인족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수인족은 늑대를 베이스로 삼고 있 었다. 고양이 종족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사이 자나가 노인에게 다가가 뭔가를 속삭였다. 노인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서 오게, 이방인이여. 나는 묘족의 장로인 핫산이라고 하네. 자네가 묘족의기술을 썼다는 게 사실인가?" "묘족의기술?" "쥐새끼를 단숨에 제압하는 용맹한 고양이의 힘이지." '고양이의 기백을 말하는 거였군.' "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크의 목소리를 약간 쌀쌀맞았다. 데브라에게 당하고, 하베스틴이 죽고, 어딘지도 모르는 동굴을 헤매다가 얻어맞았다. 현실만큼은 아니지만 게임 내에서도 약간의 통증은 느껴 진다. 그러니 아무리 아크라도 좋은 말이 나올리가 없었다. 그러나 핫산은 신경쓰지 않는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기술을 어디서 배웠는가?" "칭호를 받으면서 배웠습니다." "칭호?" "마우스 마스터라는 칭호입니다." "마우스 마스터!" 핫산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귀와 꼬리도 바짝 솟아올랐 다. 딱 살찐 고양이가 놀라는 모양새다. 그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몰려들었던 사람들과 고양이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아크를 바라보았다. 한참 뒤, 간신히 흥 분을 가라앉힌 핫산이 물었다. "예로부터 마우스 마스터라는 칭호는 블랙 베어 마우스를 죽인 용맹한 자에게만 수여되는 것이네. 하지만 블랙 베어 마우스는 이미 멸종된 존재들. 남은 것은 데브라의 심복뿐이 다. 그럼에도 마우스 마스터의 칭호를 받았다면…… 자네가 데브라의 심복을 죽였다는 말인가?" "데브라의 심복? 잘은 모르겠지만 블랙 베어 마우스를 죽 인 건 맞습니다." "사실이란 말이냐? 그, 그럼 혹시 거기서 석판을 못 봤 느냐?" "이거 말입니까?" 아크는 별생각 없이 석판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데브라의 석실을 여는 것으로 용도가 끝난 물건이 었다. 그러나 핫산은 감격한 눈으로 석판을 바라보다가 와락 아크를 껴안고 애드벌룬 같은 몸을 비벼 댔다. "왔구나, 드디어왔어! 올 줄 알았다. 구도자여!" "무슨 소리에요? 왜 이래요? 구도자는 또 뭐고?" 노인이 온몸으로 어택해 오는데 기뻐할 남자는 없다. 아크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밀쳐내자 핫산은 약간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내가 좀 흥분해서 주책을 부렸군. 그래, 그렇지. 자 네는 아직 사정을 제대로 모를거야.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하지만 걱정 말게. 내가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 핫산은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아 말을 이었다. "보다시피 우리는 마반, 수인족이네. 그중에서도 지혜로 운 고양이를 섬기는 명예로운 묘족이지. 본래 이 위에 있는 유적은 우리들의 신전이었네. 하지만 갑자기 몬스터를 이끌 고 나타난 데브라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지. 그리고 놈은 우리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런 곳에 가둬 버렸네." "가둬요? 갇혀 있는 거였습니까?"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감옥이 란 건가? 모처럼 워프를 타고 날아온 곳이 감옥이라니? 그럼 나갈 방법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어쨌든 핫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데브라는 혹시라도 우리가 감옥을 탈출할까 두려워 열쇠 를 자신의 심복에게 맡겨 멀리 떨어진 오지에 봉인해 버렸네."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엇다. "열쇠? 그럼 이 석판이……?" "그래, 그 석판은 신전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 쇠네. 그리고 자네가 무찌른 블랙 베어 마우스는 분명 열쇠 를 가지고 도망간 데브라의 심복이었겠지." 아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이제 길을 찾아 나가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마음이 놓이자 여유가 생겼다. "사정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군요." "뭐가 말인가?" "저는 이미 데브라와 한 번 싸워 봤습니다. 거의 불사신에 가까운 터무니없이 강한 놈이었죠. 그런데 그런 놈이 당신들 의 힘을 두려워해 가둬놓고 열쇠까지 멀리 보내 봉인시켰다 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아크의 말에 핫산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다. "그건 우리가 마반영웅의 계승자들이기 때문이지." "마반영웅?" "이런, 모르는가?" 핫산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비쳤다. "마반영웅은 과거 대륙을 위기에서 구해 낸 7인의 영웅 가운데1명이네. 말하자면 대륙에서 가장 강했던 전사 중의 하나랄까? 그리고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 마반영웅을 섬겨 온 부족이네. 뭐, 데브라가 우리를 두려워하는 건 그 이유만 이 아니지만……." 데브라를 생각만 해도 분한지 핫산은 살짝 어금니를 드러 냈다. "오래전부터 전사들은 그런 마반영웅을 존경해 그 발자 취를 쫓곤 했지. 묘족은 그런 사람들을 구도자라고 부르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그러나 구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네." "거쳐야 하는 단계?" "그래, 마반영웅은 묘족이 숭배하는 영웅. 그의 발자취를 쫓을 자격이 있는지 먼저 묘족의 시험을 받아야만 하네. 그 첫 단계가 묘족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쥐를 만 마리 이상 잡아야만 하지. 그게 가능해야 비로소 구도자로서 첫 걸음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네." '쥐 만 마리!' 하룬마을에서 받은 퀘스트로 끝냈던 과제였다. 그런데 설 마 그게 구도자가 되는 길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으로 되는 게 아니네. 진정한 구도자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묘족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 베 어 마우스를 쓰러뜨려야만 하네. 그것으로 자네는 쥐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가슴에 품어 묘족의 친구로서 구도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되는거지. 자네가 묘족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네." 핫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묘족과 고양이들 역시 초롱초롱한 눈으로 관심 을 보였다. 그러나 곧 지루해졌는지 제멋대로 늘어져 하품을 해 대고 있었다. 이러니 고양이가 제멋대로라는 말을 듣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크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대강 이해했다. "때문에 나는 언젠가 자네 같은 구도자가 우리 앞에 나타 나 줄 것이라 알고 있었네. 지금 바깥세상에 남아 있는 블랙 베어 마우스는 데브라의 심복뿐이니까." 두두둥. 핫산의 말이 끝나자 정보창이 떴다. -고대 유물 신비한 석판에 얽힌 비밀을 모두 풀어냈습니다. 지능이 10, 명성이 100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스탯이 생겼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10):당신은 고대 유물을 탐구하는 새로운 지식을 손에 넣었습니다. 뉴 월드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많은 전설과 비밀을 간직한 대륙입니 다. 당신은 고대 유물을 수집함으로써 이 세계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 하나 알아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지식들은 당신이 맡은 의뢰에 또 다른 분기를 제공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 도록 도움을 줄 것입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고, 고대 유물을 습득 하거나 숨겨진 진실을 알아내면 상승합니다. '오, 이게 뭐야? 이런 보너스도 있는거야?'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미 내심 전사 계열 전직을 마 음에 두고 있었기에 모처럼의 보너스 스탯이 지능이라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공짜 아닌가? 게다가 명성도 얻었 으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 니었다. 당신은 묘족의 장로에게 마반영웅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이로써 전설적인 전사, 마반영웅의 발자취를 쫓는 구도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구도자의 특수 직업 다크 워커로 전직이 가능합니 다. 전직할 경우 다크 워커의 고유 스킬을 배울수 있게 됩니다. 도이에 직업 특성상 몇몇 공통 스킬을 익힐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석판의 비밀 퀘스트가 전직과도 관련이 있었던 건가!' 아크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숨겨진 직업! 지금까지 수많은 온라인 게임을 해 왔지만 직접 찾아보기 는 처음이었다. 보통 숨겨진 직업은 공개된 직업보다 월등히 높은 추가 스 텟을 보너스로 받는다. 그만큼 찾기 어려우니 당연한 보상이 다. 또한 숨겨진 직업만의 특수한 스킬들이 있어, 활용하기 에 따라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유저들이 숨겨진 직업에 대한 정보를 올리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어렵게 찾아낸 정보를 독점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숨겨진 직업만의 독특한 스킬을 사람들에게 숨기 려는 이유가 더 크다. 유저끼리 싸움이 붙었을 대, 상대가 이쪽의 스킬을 모른다면 그만큼 쉬춰지지 않겠는가. '이건 엄청난 기회다!' 역시 감동은 컸다. 그러나 아크는잠시 머뭇거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숨겨진 직업은 말하자면 한쪽 분야 에 특화된 직업, 능력이 한쪽으로 편향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마법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마법에 특화된 숨겨 진 직업을 찾아내면 엄청난 부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사 스타일의 유저가 찾아낸다면 이만저만 난감 한 게 아니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버릴 가능 성도 적지 않았다. 유저들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니 전직하 기 전에는 그 점을 확인할 수 없다. '위험부담이 어무 커. 이거.' 단 하나뿐인 캐릭터 까딱 실수한다면 끝장이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낸 숨겨진 직업을 마다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보통의 전직이 가능한 15레벨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퀘 스트를 해내며 여기까지 왔다. 최소한 그만한 능력을 요하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추가되는 능력치나 스킬 역시 범상치 않을 터……. '이름만으로는 어떤 계열의 직업인지 알수 없지만…… 마반영웅은 전설적인 전사라고 했으니 전사계열이 아닐 까? 좋아, 믿어 보는거야!' 결국 아크는 망설임을 끝내고 소리쳤다. "네!" 동시에 화려한 빛 무리가 아크를 감쌌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250 레벨:16 직업:다크 워커 칭호:마우스 마스터 생명력:360 마나:160 힘 67 민첩 77(+2) 체력 67 지혜16 지능 27 운 17 특수 스탯:고대 유물의 지식(10)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공격 속도+5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민첩+2, 냉기저항+20 "흠, 좋은 눈빛이군. 묘족의 힘을 받아들이고 구도자로서 살아가기를 각오한 눈빛이야. 마음에 들어. 구도자는 오랜 옛날부터 묘족의 친구였지. 이제 자네는 우리의 친구야. 블 랙 베어 마우스를 무찌르고 석판을 가지고 온 자네에게 명예 로운 기사 작위를 내려 '캣 나이트'라고 부르겠네." 핫산이 꼬리를 흔들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묘족 장로 핫산으로부터 캣 나이트 칭호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묘족의 기사로서 모든 묘족에게 친밀함을 줄 수 있습니다. 쥐를 상대할 때 75%의 추가 공격력 적용, 치명타 성공 확률 50% 상 승, 피해 50% 경감.(소형 몬스터에게도 50% 적용)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150 상승합니다. *묘족의 속성을 얻었습니다.(소형 몬스터를 상대로 모든 능력치+30%) *대륙의 모든 고양이와 언어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낙하 데미지를 50%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캣 나이트의 전문기술 고양이의 기백 스킬이 상급으로 상승했습니다. 고양이의 기백(상급):고양이의 포효와 눈빛으로 모든 소형 몬스터를 공포에 떨게 만듭니다. 1분간 마비,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가 30% 저하(소형의 경우, 보스 몬 스터라도 50% 효과가 적용됨). 마나 소모:120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고양이의 눈(초급, 액티브) 고양이의 눈으로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 다. 또한 상대의 생명력과 마나양, 약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분간 +나이트 비전. +생명 탐지. +허점 발견. 마나 소모:50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전직을 끝냈는데도 스탯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 다. 50 올라간 마나는 석판의 비밀을 풀어서 지능도 함께 10 올라간 것 뿐이다. 기껏 늘어난 건 고양이의 눈을 배우고, 고 양이의 기백이 상급으로 오른 것뿐이었다. '마, 말도 안돼!' 아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공개된 직업도 조금씩 다르 기는 하지만 전직하면 30 이상의 스탯 보너스를 받는다. 전문 스킬도 마찬가지다. 마법사보다 적은 전사라도 4~5 개는 추가로 생긴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아크의 심정도 모르고 핫산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오호홋, 표정을 보니 마반영웅의 대단함에 놀란 것 같 군." '이런 죽일……. 마반영웅이니 뭐니 하는 네놈 말에 속아 서……!' 아크는 울컥 화가 치밀어 따졌다. "이게 뭡니까? 구도자로 살아갈 결심을 했는데도 별로 달 라진 게 없잖아요!" "아, 역시 그게 필요한가?" 핫산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실은 이 신전에는 마반영웅이 구도자를 위해 남긴 보물 이 보관되어 있었네. 구도자들은 그 보물에서 마반영웅의 발자취를 찾아갈 힘을 얻고는 했지." '그럼 그 유산을 손에 넣어야 전직을 완료할 수 있다는 건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아크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 유산은 어디 있죠?" "데브라는 오래전부터 그 보물을 노리고 있었지. 놈이 이 신전을 빼앗은 이유도……." "됐으니까, 그게 어디 있냐고요!" "놈이 신전을 빼앗았으니 당연히 데브라가 가지고 있겠지." "네?"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데브라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충분히 겪어 보았다. 그렇 게 강한 실피드 기사단이 모두 달려 들었는데도 이기지 못한 상대다. 아니, 불사신이다. 대체 어떻게 데브라를 쓰러뜨리 고 유산을 되찾는다는 말인가? 그러나 핫산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걱정 말게. 열쇠를 찾은 이상 데브라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아. 말했지 않나, 놈은 우리가 두려워 가둬놓은 거라고. 그건 단순히 우리가 마반의 계승자이기 때문만은 아니야.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 "그, 그게 뭔데요?" "우리는 놈의 천적이야." 핫산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몽환술사 데브라를 물리쳐라 데브라가 가둬 놓은 묘족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데브라를 물리치 고 마반영웅의 보물을 되찾아야 합니다. 낭이도:+E 퀘스트 제한: 캣 나이트 칭호를 가진 유저만 받을 수 있음. @ "열쇠! 열쇠는 어디 있는 거냐!" 데브라는 기사들의 시체를 뒤적거리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때, 공동의 구석에 위치한 석문이 열리며 아크가 걸어 들어왔다. "열쇠를 찾나?" 묘족이 갇혀 있는 곳은 공동의 바로 아래였다. 데브라는 아크가 모습을 드러내자 움찔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열쇠는 여기 있다." 아크가 가방에서 석판을 들어 올리자 데브라의 눈에 광기 가 어렸다. 놈이 엄청난 공포의 오라를 뿜어내며 아크를 향해 달려들 었다. 아크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그런 데브라를 바라보기 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데브라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검은 고양이 형체가 머리위로 떠올랐다. 캣 나이트가 되어 스킬이 상급으로 올라가자 검은 고양이 는 중급의 5배나 되는 크기로 커졌다. 거의 사자와 맞먹는 크기의 검은 고양이가 황금빛 눈동자 를 번들거리며 쏘아보자 데브라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 리고 바들바들 경련하며 불신의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커, 커헉! 이, 인간인 네, 네놈이 어떻게……!" '역시, 핫산의 말이 사실이었어!' "지금이다! 놈을 공격해라!" 냥, 냥, 냥, 냥, 냥, 냥! 아크가 소리치자 석문 뒤에서 묘족과 수백 마리의 고양이 떼가 쏟아져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로 공동을 가로지른 고양 이들은 데브라를 뒤덮고 송곳니와 발톱으로 할퀴어 댔다. 데 브라가 온몸을 비틀어 대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기를 잠시, 문득 망토가 출렁거리며 들에서 검은 물체가 툭 떨어졌다. 고양이만 한 크기에 온몸이 털로 뒤덮인 놈이었다. '이제야 본체를 드러냇군!' 핫산이 자신만만하던 것은 바로 이 데브라의 정체를 알고 있어서 였다. 데브라의 정체는 마력으로 몽환의 힘을 얻게 된 그렘린. 때문에 작센 영지에 질병과 기근을 가져왔고, 소형 몬스터 의 천적인 고양이와 묘족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 었다. 데브라는 그런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신전의 열쇠를 멀리 봉인시켜 버리고 환상으로 만들어 낸 육 체에 몸을 숨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걸 몰랐던 실피드 기사단은 놈이 만들어 낸 허상과 싸웠 다. 당연히 생명력도 줄지 않으니 불사신처럼 보였던 것이 다. 또한 기사단을 혼란에 빠트린 공포의 오라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허상. 그러니 마법으로 해제가 안 될 수밖에. '그러나 실체는 고작 이런 소형 몬스터……!' 데브라가 비틀비틀하며 일어나 아크를 쏘아보아다. "네, 네놈……. 인간이 어떻게 묘족의 기술을……?" "겁쟁이 쥐 새끼, 아직도 모르겠냐? 그는 구도자다." 핫산이 허상의 데브라를 물어뜯으며 히죽거렸다. (오타수정 원래 '데브라가 허상의 데브라를 물어뜯으며'라고 되있음) 허상의 데브라는 고양이 떼에 뒤덮여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뭐, 뭣이? 그렇다면 설마?" "네놈이 갖고 싶어서 안달하던 그 힘의 본래 주인이라는 말이다." "다, 닥쳐! 그 힘은 내 것이다! 누구에게도 못 줘!" 데브라가 비명처럼 소리치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고양이의 기백이 상급에 달해 보스 그렘린에게도 50퍼센 트의 효력을 발휘했다. 그래도 완전히 마비시키지는 못했지 만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진 상태였다. "아크, 우리가 버티고 있는 이상 놈은 이제 환몽의 힘을 사용할 수 없네. 환영은 우리가 막고 있을테니 어서 그놈을 해치우게. 모두 총공격!" 냥, 냥, 냥, 냥, 냥, 냥! 고양이와 묘족들이 긴장감 없는 함성을 내지르며 허상의 데브라를 집중 공격했다. 어쨌든 세상에 공짜 퀘스트는 없었다. 데브라의 정체를 듣 고 묘족과 고양이 들이 도와준다고 해서 거저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데브라는 아크의 몫으로 돌아왔다. 아크는 달려드는 데브라를 걷어차고 세차게 검을 휘둘 렀다. "크악!" 검이 박히는 느낌과 함께 데브라가 휘청거렸다. 놈의 심복이라는 블랙 베어 마우스와 싸울때는 검조차 제 대로 박히지 않았다. 그러나 데브라는 꽤 많은 타격을 입었 다. 더구나 고양이의 기백 효과가 적용되어 움직임도 느리 다. 허상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는 무적처럼 느껴졌지만 막상 허상을 벗고나니 부하보다 못했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겠어!' 아크는 눈을 빛내며 데브라를 밀어붙였다. "고양이의 눈!" 스킬이 발동하자 아크의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데브라의 머리 위로 생명력이 나타나고, 몸 여기저기에 붉 은 반점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눈으로간파한 데브라의 허점이었다. 공격을 붉 은 반점에 적중시키면 추가 공격력이 적용되고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졌다. 아크의 전투 스타일에 딱 맞는 스킬! "크악! 크으으으!" 아크는 데브라의 주위를 돌며 연속해서 검을 찔러 넣었다. 그때마다 데브라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 지만 엄한 바닥만 파여 나갔다. 금세 1분이 지나 고양이의 기백 효과가 풀렸음에도 놈의 공격은 아크에게 적중되지 못했다. '그래도 보스라는 놈이 왜 이렇게 약하지? 허상을 벗어서 그런가?' 오히려 아크가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건 아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능력 덕분이었다. 전직으로 익힌 묘족의 속성. 모든 소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30퍼센트의 능력이 상승한다. 그건 레벨과 공격력, 방어 력은 물론 모든 스킬과 장비 효과에도 해당된다는 뜻이다. 아크의 레벨은 16이지만 실제로는 25 이상의 효과를 누리 고 있었다. 그리고 환몽술사 데브라의 속성은 마법사. 마법 사가 마법을 봉쇄당했으니 평범한 그렘린 보스와 다를바가 없었다. 보스라 추가 능력치를 가진 그렘린이라도 혼자서 충 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어쨌든 아크는 신바람이 났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고 검을 휘두르는 데 막힘이 없다. 그 뒤로도 아크는 계속해서 데브라를 몰아붙였다. 붉은 반 점을 후려칠 때마다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다. 10분가량 지 나자 데브라의 몸이 붉게 변햇다. 빈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물론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모든 공격을 다 피할 수는 없었 다. 간간이 공격을 받아 생명력이 반이나 깎여 나갔다. 그 무 렵 스킬 사용으로 바닥을 드러냈던 마나가 모두 회복되었다. 아크의 눈이 번쩍였다. "고양이의 기백!"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그대로 데브라의 몸을 꿰뚫었다. 데브라는 경련을 일으키며 다시 움직임이 느려졌다. 아크 는 상체를 낮게 숙여 날아오는 앞발을 피하고 놈의 다리르 후려쳤다. 다리가 맥없이 꺾이며 데브라가 옆으로 쓰러졌다. 아크는 완전히 노출된 놈의 목젖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다. "끝장이다, 데브라!"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검이 목 줄기를 뚫고 들어가자 엄청난 데미지를 받은 데브 라가 파르르 떨었다. 이어 혀를 내밀며 축 늘어졌다. 데브라 가 만들어 낸 허상이 점차 흐려지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해치웠다!' 비록 본체는 괴물 쥐와 다름없는 수준이었지만 환몽술사 데브라는 엄청난 고레벨의 보스 몬스터였다. 사실 이 유적은 이미 공개된 곳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데 브라를 해치우지는 못했다. 일단 석판이 없으면 데브라의 환상 을 깰 수 없는 까닭이다. 퀘스트에 캣 나이트만이 할 수 있는 제한이 걸려있던 이 유가 그것이다. 어쨌든 데브라를 해치우니 레벨이 단숨에 3이나 올랐다. 그리고 '몽환술사 데브라를 물리쳐라'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뜨자 다시 레벨이 1올라 레벨 20이 되었다. "드디어 데브라에게 복수했군. 자네는 이제 우리들의 영 웅이야! 이건 우리의 작은 성의네." 핫산이 다가와 팔꿈치까지 복슬복슬한 털이 나 있는 장갑 을 내밀었다. 묘족과 고양이들이 와, 소리를 내며 펄쩍펄쩍 뛰었다.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에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리품을 살펴보았다. 허상이 사라진 곳에는 검붉은 빛이 흐르는 망토가 놓여 있 었고, 데브라가 있던 자리에는 보석이 박힌 손거울과 오색의 오브가 놓여 있었다. "정보창!" 고양이 손(레어) 방어구 타입:가죽장갑, 너클 방어력:30 공격력:9~15 내구력:50/50 무게:5 사용제한 :캣 나이트 전용 묘족의 장로 핫산이 준 방어구 겸 무기. 평소에는 일반 장갑처럼 부드 럽지만 전투 시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솟아 나온다. 단지 착용하는 것 만으로도 고양이와 같은 민첩합과 예리함을 얻을 수 있다. 옵션:공격 속도10% 상승, 민첩15 상승. 치명타율 10% 상승. 환몽의 핏빛 망토(유니크) 방어구 타입:망토 방어력:70 내구력:50/50 무게:10 사용 제한: 레벨20 수많은 사람들의 악몽을 엮어 만들어진 저주스러운 망토, 착용자도 저 주를 받아 정신이 몽롱하고 움직임이 느려진다. 대신 하루에 한 번, 저 주의 힘을 적에게 돌려 악몽을 꾸게 만들 수 있다. 옵션:모든 스탯-15 특수 옵션: 하루에 한 번 환상의 힘으로 몸을 감싸 생명력을 100 회 복하고 10초간 무적 상태가 될 수 있다(밤에만 사용할 수 있음). 오색오브:마반영웅의 힘 일부가 담겨 있는 오브 보석 손거울:40레벨 퀘스트 시작 아이템 '횡재했다!' 데브라를 물리친 건 직업 전용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퀘 스트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도 망토를 얻은 건 엄청난 수확이었다. 아직 서비스를 시작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뉴 월드에서 유 니크 아이템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아쉽게도 스탯이 깎인다는 단점이 있지만, 특수 옵션을 생 각하면 엄청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보상다운 보상을 받은 것이다. '게다가 이제 보고만 하면 되는 퀘스트도 남아 있다.' 하베스틴에게 받은 퀘스트도 이제 유적만 나가면 완료된다.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지.' 아크는 곧바로 오색 오브를 집어 들고 이마에 갖다 대었 다. 순간 오브에서 오색의 빛이 뿜어져 나와 아크를 감쌌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300 레벨:20 직업: 다크 워커 칭호 :마우스 마스터, 캣 나이트 생명력:470(+100) 마나:170(+100) 영력:0(+100) 힘 79(+5) 민첩 89(+15)(+2) 체력 89(+5) 지혜 18(+5) 지능 29(+15) 운 19(+15) 특수 스탯:고대 유물의 지식(10)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공격 속도+5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민첩+2, 냉기 저항+20 *어둠 속에서 모든능력이 2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0분. 전투가 시 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의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다크 블레이드(초급, 액티브):검을 어둠과 동화시켜 적에게 회심의 일격 을 날립니다. 어둠과동화된 검은 모든 물리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치명타율, 치명타 공격력 150%. 방어력 무시. 마나소모:100 (고양 이의 눈이 발동된 상태에서 빈사상태의 적에게 사용할 경우 1% 확률 로 즉사시킬수 있습니다.) 새로운 직업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마령 소환(초급, 액티브):중간계와 지옥 사이의 유계에서 떠도는 하급 마 령을 동시에 셋까지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수는 전투 시 한 마리당 초당1, 유저의 마나를 소모합니다. 소환수가 사망해 강제 송환될 시 유저는 소환수의 최대 생명력의 50%의 타격을 입고 24시간 동안 다 시 소환하지 못합니다. 영력소모:100 @ "아버지께서……!" 소년이 피에 젖은 은 목걸이를 꽉 움켜쥐었다. 아크는 그 모습을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데브라를 쓰러뜨리고, 아크는 유적에 흩어져 있던 실피드 기사단의 생존자를 모아 작센 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열다 섯 살 된 하베스틴의 아들에게 은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하베스틴의 뒤를 이어 영주가 될 열 다섯 살 소년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옷자락을 바라보며 목울대를 몇 번인가 꿈틀거렸을 뿐이다. 강한 소년이다. "아크, 아버님은 명예롭게 돌아가셨나?" "네, 누구보다 용맹하셨고, 또 아드님을 사랑하신 분입 니다." "……고맙다." 소년 영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 그대는 유적을 탐사하는 내내 아버님을 간병하였 으며, 아버님의 임종을 지켰으며, 아버님과의 약속을 지키 기 위해 나에게 은 목걸이를 건네주었다. 또한 놀라운 용기 를 말휘해 데브라를 물리치고 나의 목숨을 구했다. 이 공적 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무엇으로 보상해도 과하다 할 수 없다." '그렇지. 잘 알고 계시는군.' 아크는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소년 영주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뭐? 이, 이 자식!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아버님께서 당신의 피가 묻은 은 목걸이를 맡기셨다는 건 그대를 진정한 벗으로 생각하셨다는 뜻! 나는 그 뜻을 감 히 물질로 더럽힐 수 없다. 그대 역시 그리 생각할 거라고 믿 는다." 아크는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고 해도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들은 소년 영주 의 면전에 대고 '아닌데요. 저는 물질이 좋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크는 어렵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뭐…… 그래도……." "아크, 아버님의 벗인 그대는 나의 벗이기도 하다. 나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줄수 없지만 이 자리에서 신께 맹세한 다. 만약 그대가 내 힘을 필요로 한다면 설사 그곳이 대륙 끈 이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달려가겠다!" "아, 네……감사합니다." '결국 아무것도 못 주겠다는 거잖아! 입으로 때우겠다는 거 아냐!' 아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이도가 무려 +E이다. 물론 전직 퀘스트를 하며 곁다리 로 해결한 셈이지만! 경험치는 받아서 레벨이 1올랐지만! 그 래도! 그래도 말이다! 그런 고난이도의 퀘스트를 해결하고도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마치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저렇게 열정적으로 웅변하는데 초를 칠 수 는 없는 노릇이다. '나 참, 벗이라고? 아버지나 아들이나 고지식하기는…….' 아크는 터덜터덜 성을 나오며 투덜거렸다. 결국 1쿠퍼도 건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울분을 토할 만큼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히려 뭔가가 후련해지는 느낌이랄까? "전원 차렷!" 문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벼락 치는 듯한 구령이 들려왔 다. 아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올리자 성문 좌우로 수십 명의 병사들이 갑옷까지 챙겨 입고 도열해 있었다. 아크가 무슨 일이냐는 듯 눈짓으로 묻자 수비대장 크로스 는 살짝 목례하며 구령했다. "경례!" 병사들이 검을 뽑아 하늘로 치켜세웠다. 아크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문득 시선을 느끼 고 성루를 올려다보았다. 창문가에서 소년 영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많은 것을 전해 주었 다. 아크는 잠시 그러헥 소년영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 레절레 흔들었다. "이 게임의NPC는 다들 너무 고지식하다니까." 병사들 사이를 지나는 아크의 입가에 쓴웃음이 그려졌다. 귓가로 비치는 햇살은 따뜻했고,부드러운 바람은 상쾌함 을 더해 주었다. 정말이지……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이 보기 드문 이벤트를 구경하기 위해 마을에서 유저들이 모여들었다. ACT 7 소환수 "빌어먹을." 저절로욕지거리가 터져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직은 실패였다. 아크는 파티 사냥을 싫어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 고, 마법 아이템 하나에 안색이 변해서 말싸움을 벌이게 되 는 상황도 넌덜머리가 났다. 그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조금 힘들어도 혼자 사냥하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아크가 전사 계열의 직업을 선호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날렵하게 적의 허점을 찌르는 도적이나, 일격 필살의 위력 을 자랑하는 마법사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이 빛을 발하는 것은 파티에서다. 반면 전사는 이거다 하고 내세울 스킬은 없지만 기본 체력 과 방어력이 높게 설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가방에도 보 너스 공간을 추가로 지급받고, 각종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있다. 그야말로 솔로잉을 위한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크 워커는 전사보다는 도적에 가까웠다. 다크 워커, 밤을 걷는 자. 이름을 들었을 때 짐작했어야 했다. 민첩, 지능 운에 편중된 보너스 스탯은 물론, 부가 능력 치까지 모든 게 도적에 맞춰져 있었다. 아니, 완전히 도적이라면 차라리 낫다. 도적 역시 따지고 보면 전사 계열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소환 술이나 지능에 부여된 스탯을 보면 어느정도 마법사 성향도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민첩은 괜찮아. 치명타, 공격 속도, 회피율에 모두 영향 을 미치니까, 하지만 지능과 운이라니? 결국 도적 계열인지 마법사 성적인지조차 불명확하다는 거 아냐.' 멀티 캐릭터. 듣기에는 좋지만 까놓고 보면 이도 저도 아 니라는 뜻이다. 물론 전체에 가산된 스탯은 60, 일반 직업으로 전직했을 때의 2배에 달하는 보너스를 얻었다. 수치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전직 시 더 많은 보너스가 가산된 스탯은 그 직업의 전체적인 능력을 좌 우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좋든 싫든 그 세 가지 스탯은 꾸 준히 올려 줘야 한다는 뜻……. '누굴 탓하겠어? 숨겨진 직업이라는 말에 홀랑 넘어가 버 린 내 잘못이지.'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미 선택해 버린걸 어쩌겠는가? 하룬에서 쥐잡기를 할 때처럼 아크는 하나에 집중하면 집 요하리만치 파고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포기하는 것도 빨랐다. 지금이 딱 그랬다. 어차피 후회해 봐야 되돌릴 수 있는 것 도 아니니 다크 워커라는 직업의 특성을 빨리 파악하고 적응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래도 명색이 숨겨진 직업이다. 내가 너무 전사만 생각해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닐 거야. 직업의 장 점을 잘 살리면 분명 좋은 점이 더 많을 게 분명해. 자, 진정 하고 꼼꼼히 살펴보자. 일단 기본적인 것은 도적과 비슷한 것 같고. 특이한 점은 역시 소환술이군. 다시 말해 소환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로 직업의 성격이 결정이된다는 뜻이겠지?' 어찌 됐든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마령을 셋이나 소환할 수 있다. '이들을 활용하면 솔로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령 소환." 아크는 기대를 품고 새로 생긴 영력 포인트를 소비해 소환 수를 불러냈다. 그러나 막상 나타난 소환수를 확인하자 일말의 기대마저 와를르 무너졌다. '뭐, 뭐야. 이건?' 빛과 함께 나타난 소환수는 그냥 해골이었다. 해골이 흐릿한 빛의 눈동자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 니 아크를 발견하고는 이를 마주치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 다. 아크는 얼른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 유계에서 떠돌던 하급 망자의 해골. 이렇다 할 특징은 없습니다. 그러나 유계에서 구해 준 주인을 위해 변치 않는 충성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족:언데드 성향:어둠 등급:- 생명력:50 충성도:200 힘 10 민첩 10 체력 10 지혜 0 지능 0 운 0 다시 말해 충성도만 빼면 길가의 돌멩이와 다름없는 녀석 이라는 뜻이다. "장난해? 능력이 없으면 예쁘기라도 하든지." 분통을 터뜨려 보았지만 해골은 데굴데굴 굴러다닐 뿐이 다. 아크는 이를 박박 갈아붙이며 영력을 회복해 나머지 두 소환수도 불러냈다. 증오를 품은 박쥐 유계에서 따돌림을 받는 하급 박쥐. 오랜 따돌림에 시달려 세상에 대 한 불만과 증오심을 품고 있는 박쥐입니다. 그 증오심으로 인해 주인 도 완전히 믿지 못합니다. 충섬심을 기대한다면 먼저 박쥐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종족:마족 성향:어둠 등급:- 생명력:50 충성도:50 힘 5 민첩 10 체력 10 지혜 10 지능 10 운 0 '얼씨구, 이제는 왕따 박쥐냐?' 증오를 품은 박쥐?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정말 가지가지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나타난 소환수에 비교하면 앞의 두 마리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유계의 알 유계의 상급 마족들이 즐겨 먹는 단단한 껍질의 알. 종족:?? 성향:?? 등급:- 생명력:200 충성도:- 힘 0 민첩 0 체력40 지혜 0 지능 0 운 0 눈앞에 나타난 계란을 보니 더 이상 화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알이라니? 대체 뭐에 쓰라고? 단단하니까 어쩌라고? 집 어 던지라는 말이냐?' 아크는 대체 어떤 용도로 써야할지 알 수 없는 세 마리의 소환수를 앞에 두고 망연자실했다. 숨겨진 직업은 보통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월등한 능력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간직 한 직업. 그리고 또 하나는 재미를 위해 이벤트성으로 만들 어진, 실속 없이 그냥 특이하기만 한 직업. 아무래도 아크가 찾아낸 직업은 두 번째 것인 모양이다. 확실히 세 소환물을 보니 흥미롭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그뿐이다. 할로윈 장식도 아니고……해골과 박쥐, 계란이 무슨 도움 이 되겠는가? 하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뉴 월드에서는 단 한 번의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어떤 면에서는 현실보다 냉정하다. 그런 세계에서 아크는 이미 선 택했으니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후후후후." 아크의 입에서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크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그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포기가 아니다. 누군가 그랬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정말 명언이다. 아크는 지금까지 그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왔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동정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을 동 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까지 버텨 올 수 없 었으리라 "하룬 마을에서의 페널티, 게다가 원치 않던 직업으로 전 직까지. 이 정도쯤 망가지면 화낼 기분도 안 생기지.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악운? 웃기지 말라그래. 오기로라도 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전사로 만들어 보이겠어." 직업이 변변치 못하면 남들보다 더 레벨을 올리면 그만이 다. 레벨을 올려도 힘들면 미친 듯이 스킬을 올리면 된다. 뉴 월드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다. 직업을 선택했다고 그걸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전문 기술이 아니라도 배울 수 있는공용 스킬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 무한에 가까운 선택지에 따라 캐릭터의 성장 방 식도 천차 만별이다. 비록 직업에 따라 많은 페널티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못 배우는 스킬보다 배울 수 있는 스킬이 더 많았다. 전사형 마법사. 도적형 전사 등…… 노력하기에 따라서 다재다능한 멀티 캐릭터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 다는 뜻이다. 이제 믿을 건 그 무한한 자유도뿐이다. "결정했으면 앉아 있을 시간이 없지." 아크는 벌떡 일어나 사냥터로 향했다. 작센 근처에는 20~30레벨에 잡을 수 있는 몬스터들이 널 려 있었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21. 작센을 근거지로 삼고 노가다를 하기에 적당했다. "으라차차!" 그날 부터 아크는 밤낮없이 사냥에 몰두했다. 아크가 초반에 선택한 상대는 하푼이라는 진흙 몬스터였 다. 몸이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검이 잘 박히지 않고 20대 레벨답지 않게 생명력도 많았다. 그러나 동작이 굼떠 상대하 기 어려운 몬스터는 아니었다. 아크는 전투가 시작되면 하푼의 주위를 빙빙 돌며 파상공 격을 펼치는 전략으로 손쉽게 승리를 거뒀다. 하푼이 쓰러지며 철광석을 떨어뜨렸다. 대장간에서 꽤 좋은 값을 쳐주는 아이템이었다. 아크는 생명력이 반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휴식도 취하 지 않았다. 가방이 꽉 차거나, 장비의 내구도가 5 이하로 떨 어진 뒤에야 재정비를 위해 작센에 잠깐 들를 뿐이었다. 그 외의 시간은 오직 몬스터와의 혈전! 그러나 아크는 피 로조차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레벨이 올라가 는 경쾌한 소리 한 번이면 모든 피로가 씻겨 나갔다. 그렇게 광적으로 사냥에 매달린 지 이틀, 레벨이 3이 더 올라 24가 되었다. 또한 전투전용 스킬인 검술과 격투술도 상당히 올라 중급이었다. 그러자 두 스킬이 합쳐지며 새로운 메시지창이 열렸다. 검술과 격투술이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로써 두 기술을 합 해 세트 기술인 검투술을 정식 스킬로 등록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단, 섬투술이 정식 스킬로 등록되면 검술과 격투술은 자동 삭제됩니다. 검투술(초급, 패시브):검술과 격투술의 전문가가 사용하는 기술. 방패를 착용할 수는 없지만 날렵함과 예리함을 두루 갖춘 상급 전투 기법입니 다. 모든 종류의 검과 너클 계열의 무기에 추가 공격력을 부여하고, 회 피율과 치명타 확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킵니다. 종합 전투력 20% 상승. 방패 착용시 검투술의 효과가 사라짐. 새로운 스탯이 생겼습니다. 유연성(+10):몸이 유연해져 어려운 동작도 능수능란하게 펼칠 수 있 습니다. 회피율이 높아지고 공격이 적중했을 때 가산점을 받습니다. 그 러나 철제 방어구를 착용하면 착용 장비의 수만큼 효과가 감소합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고, 고난이도의 회피 동작을 성공시키면 자동으 로 상승합니다. 아크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캐릭터의 성장만큼 유저를 기쁘게 하는 게 또 있겠는가? 레벨과 스킬이 성장하자 확실히 강해지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특히 검투술은 아크의 전투방식과 꼭 들어맞는 스 킬이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공격을 흘려 내다가 빈틈에 결정타를 날리는 아크의 전법은 모두 태권도에서 배운 것이다. 그 감 각을 고스란히 검에 담으면 여지없이 치명타가 터졌다. 아크는 거기에 고양이의 눈 스킬을 더해 치명타 확률을 더 욱 높였다. 그러자 정신없이 치명타가 터져 나오는 화끈한 전투가 펼쳐졌다. 몬스터 한 마리를 쓰러뜨리는 데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 다. 스스로는 전사 타입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무작정 밀 어붙이기보다 간격을 재고 빈틈을 노리는 아크의 전투 방식 은 도적에 더 가까웠다. "좋아, 이제 더 깊이 들어가도 되겠어." 아크의 시선이 더 깊은 숲 속으로 향했다. 솔로잉을 할 때는 안전을 위해 보통 자신보다 낮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기 마련이다. 아크 역시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이제 근처의 몬스터로는 경험치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아크는 더 강한 몬스터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사전 정보도 없이 사냥터를 옮긴 게 실수였다. 숲 안쪽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곧바로 위협적인 울음이 들 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아크의 얼굴이 굳었다. 어둠 속에서 시뻘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늑대 다섯 마리 가 어슬렁대며 모습을 드러냈다. 황소처럼 거대한 체구에 칠흑처럼 검은 털, 칼날처럼 날카 로운 송곳니. 다이어 울프였다. '다이어 울프가 다섯 마리나……!' 다이어 울프는 보통 늑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다. 게다가 지금은 밤이다. 야행성 몬스터인 다이어 울프의 능력 치가 30퍼센트나 올라간다. 24레벨로도 두세 마리를 상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벅찬 상대였다. 아크는 온몸이 긴 장으로 딱딱하게 굳었다. '젠장, 너무 방심했어. 도망가기도 늦었다.' 태권도로 단련된 몸이 머리보다 더 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였다. 선수 필승! 권법과 막싸움, 어디서나 통용되는 방식이다. 아크가 재빨리 간격을 좁히며 검을 휘두르자 치명타가 터 지며 늑대 한 마리가 물러났다. 그러나 늑대도 집단 사냥에 능한 짐승이다. 공격에 집중하느라 노출된 등으로 늑대가 달 려들어 똑같은 치명타로 동료의 복수를 했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50. 출혈에 걸려 전투가 끝날 때까지 10초당 2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군. 이렇게 된 이상. 한 마리라도 더 죽 이고 죽는다!' 아크는 검투술을 펼치며 늑대무리와 맞섰다. 정신없이 검 을 휘두르고 고양이 손으로 할퀴었다. 바닥을 구르고 뛰어올 라 발 차기를 날리기도 했다. 10분간의 혈투 끝에 늑대 세 마리가 쓰러졌다. 그러나 출 혈에 걸린 아크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헉헉헉, 생명력이 2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고양이의 눈." 스킬을 사용하자 아크의 눈이 황금색 고양이 눈으로 변했 다. 늑대들의 머리위로 반 이상 깎인 생명력이 드러났다. '잘하면 이길 수도 있겠어.' 아크가 잠시 긴장을 풀었을 때였다. 기회를 노리던 늑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눈앞이 번쩍이며 생명력이 확 줄어들었다. 아크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 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연속적으로 올라왔다.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불굴의 정신과 불굴의 육체가 발 동되었다. 공격력과 치명타, 회피율의 급상승! '기회다!' 아크는 눈을 번뜩이며 검을 찔렀다. 쾅, 쾅! 두 번 연속으로 치명타가 터지며 늑대가 쓰러졌다. 그러자 나머지 한 마리가 옆구리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아크는 황급히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행운과 불운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치명타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만약 평상시의 공격이었다면 빗나갔을 리가 없다. 그러나 빈사 상태에서 자동 발동한 스킬 탓에 치명타 확률이 비정상 적으로 높아진 상태였다. 그게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치명 타는 2배의 데미지를 주는 만큼 빗나갈 확률도 높은 것이다. "아, 안돼! 지금 죽으면 스탯이……. 마령소환! 이 쓸모 없는 해골. 뭐라도 해봐!" 아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골을 소환해 집어 던졌다. 날아간 해골이 늑대의 발목을 꽉 깨물어 버렸다. 비록 데 미지는 1에 불과했지만 송곳니를 들이밀며 달려들던 늑대의 움직임을 멈추는 데는 성공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였다. 아크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찌르자 섬광이 터져 나 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해골과의 협동 보너스로 30%의 데미지가 추가 됩니다. 아오오오! 늑대가 단말마를 지르며 쓰러졌다. 기적 같은 승리였다. 겨우 승리를 실감한 아크가 확인해 보니 남은 생명력은 고작3이었다. 20초만 더 끌었어도 출혈 로 쓰러졌을 상황이었다. 전투가 끝나 출혈은 멈췄지만 아직 도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열기를 뿜어냈다. 아크는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음식으로 체력을 회복하자 겨우 흥분이 가라앉았 다.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해골은 마치 칭찬을 조르는 강아지처럼 주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겉모습만으로 실망한 나머지 두 번 다시 소환해 보지 않았던 해골이다. 도움은 안될것 같고, 전투중에 마나까지 뺏어간다는데 굳이 꺼내 놓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해골 덕에 목숨 을 구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구나.' "어쨌든 네 덕분에 살았다, 해골." 딱딱딱. 해골은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이빨을 부딪쳤다. 지난 며칠, 아크는 오직 사냥에만 전념했다. 가끔씩 성에 돌아갈 때가 아니면 언제나 혼자였다. 지금까지는 사냥에 전념하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막상 새 삼스레 깨달으니 숲이 유난히 넓고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러 나 자신의 말에 반응을 보이는 해골을 보고 있으니 그런 우 울한 기분이 말끔히 사라졌다. "너, 은근히 마음에 드는데." 일단 해골과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방 금 전처럼 쓰기에 따라서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전투시에는 마나가 소모되지만 고양이의 기백을 쓰 지 않으면 딱히 마나가 필요한 곳도 없었다. "좋아, 모처럼 생긴 스킬이니 한번 제대로 써 볼까?" 아크는 아예 박쥐까지 소환해 놓았다. 막상 작정하고 사용하자 소환수는 의외로 쓸모가 많았다. 박쥐는 근처를 정찰시키기에 적당했다. 이동하기 전에 먼 저 박쥐를 보내 보면 갑자기 늑대에게 포위되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대강의 지형을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해골과 박쥐는 전투에서도 활약했다. "가라!" 아크가 손을뻗자 해골과 박쥐가 예티에게 날아갔다. 해골은 예티의 발목을 깨물어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고, 박쥐는 눈을 가려 시야를 교란시켰다. 아크는 여유롭게 상황을 살피다가 검을 날렸다. 그러면 상 당히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거기에 소환수와의 합동 공격 보너스가 가산! 그렇게 몬스터 생명력을 20퍼센트 가까이 줄여 놓고 전투 를 시작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자 이제 소환수 없는 전 투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우하하하, 이게 기대이상으로 쓸 만하잖아!" 여전히 계란의 용도는 찾지 못했지만 해골과 박쥐만으로 도 아크의 사냥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물론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그자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근처에 가 기도 전에 박살이 나서 아크의 생명력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소환수가 파괴되면 그 생명력의 50퍼센트만큼 아크의 생 명력도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소환수의 생명력은 고작 50, 치명적인 피해는 아니었고, 파괴된 소환수도 24시간 뒤 에는 언제든지 다시 불러낼 수 있었다. "다크 워커, 이거 의외로 됀찮은 직업일지도 몰라." 그렇게 아크는 점점 다크 워커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되 는 것이다. 아크는 호탕하게 소리치며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전진, 전진! 몽땅 쓸어버리자!" @ 끄아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좀비가 쓰러졌다.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메시지가 올라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무 명성:300 레벨:26 직업:다크 워커 칭호:캣 나이트 생명력:745 마나:250 영력:100 힘 104 민첩 104(+17) 체력 124 지혜 23 지능 44 운 23 특수 스탯:고대 유물의 지식(10) 유연성:10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 공격 속도+5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민첩+2, 냉기 저항 +20 고양이 손:공격속도 +10%, 민첩 +15, 치명타율 +10% *어둠속에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어둠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의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휴, 생각보다 힘들군.' 얼굴은 땀투성이였지만 아크의 얼굴은 밝았다. 고생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 불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사냥이 빨라지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그 분위기를 타 고 아크는 숲의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일명 그림자 숲. 작센 인근 지역 중에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숲이었다. 그림자 숲은 다른 곳과는 분위기부터가 남달랐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속에 축축 늘어진 고목의 가지가 그물처럼 얽혀 있고, 시꺼멓게 죽은 지면에는 괴상한 형태의 식물들이 깔려 있었다. 나오는 몬스터도 끔찍했다. 썩어가는 늑대와 좀비, 구울같은 언데드 몬스터가 주를 이루었다. 가장 약한 썩어가는 늑대조차 레벨이 아크보다 높았다. 하물며 가끔씩 나타나는 레벨 50대의 중간 보스 몬 스터, 리퍼는 감히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언데드조차 기세가 오른 아크를 겁먹게 할 수는 없 었다. 아니, 아크는 썩어가는 숲에 도착해서야 다크 워커라 는 이름의 참 의미를 깨달았다. 어두운 숲에 들어서자 곧바로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다크 워커 특수 효과: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물론 밤에도 같은 효과가 발동했다. 그러나 밤에는 대부분 의 몬스터들이 능력치가 30퍼센트나 올라간다. 결국 실질적 으로 아크가 느끼는 차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낮, 몬스터의 능력치는 그대로이면서 아크의 능력치만 올라갔다. 아크의 레벨은 26이었지만 실제로는 30과 같다는 것! 심지어 각종 스킬까지 능력치가 올라가자 이 차이는 엄청 났다. 20대 후반인 썩어가는 늑대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30대 초반으로 알려진 좀비와 구울 역시 사냥하는 데 큰 어 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직업 기술 가운데 하나인 '은신'. 비록 이미 발각 된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지만 적절하게 사용하면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곳에서도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둠속에서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는 직업. 그게 바로 다 크 워커였다. 덕분에 원래 아크의 레벨로는 잡을 수 없는 몬 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유저보다 5레벨 이상 높은 몬스터를 잡 을 때는 추가 경험치가 주어진다. 덕분에 그림자 숲에 들어 서자 멈춘듯이 보였던 경험치가 쑥쑥 올라갔다. '잡템도 꽤 떨어지는 편이고, 이거 사냥할 맛이 나는데.' 아크는 신바람이 났다. 언데드 몬스터는 아이템도 제법 많이 떨구었다. 그래 봐야 대부분은 썩은 고깃덩어리 따위였지만 가끔은 단검이나 장 갑, 신발 같은 장비품도 떨구었다. 그런 잡템이 가방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물론 가져다 팔 아 봐야 몇 쿠퍼 받기도 힘든 허접스러운 아이템이다. 그러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꾸려 온 아크는 알고 있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몇 쿠퍼도 쌓이다 보면 실버 되 고 골드 되는 것이다. 아크는 그중 몇개는 직접 장비했다. 닳고 닳은 신발 방어구 타입:가죽 신발 방어력:5 내구력:5/5 무게:8 사용 제한:없음 언데드가 생전에 사용하던 신발. 닳고 해진 가죽에서 썩은 냄새가 진 동한다. 아무리 솜씨 좋은 장인이라도 쓸 만한 신발로 수선할 수는 없 어 보인다. 더러운 가죽 모자 방어구 타입:가죽 투구 방어력:5 내구력:9/9 무게:5 사용 제한:없음 언데드가 생전에 사용하던 가죽 모자. 검은커녕 비를 막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모자. 능력치만큼이나 외관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너덜거리는 신발과 모자를 쓰니 거지가 따로없었다. 게다 가 재질이 가죽이라 썩어가는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킬 지경 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방어력이 붙지 않은 신발과 모자조차 상점에서 사려면 못 해도 생돈 50실버는 들어간다. 50실버를 쓰느니 쓰레기 냄 새를 맡으며 사냥하는 편이 나았다. 게다가 방어력까지 붙어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아크는 그림자 숲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능력치 보너스를 받고 경험치도 빨리 오른다. 간간이 쓸 만한 아이템도 떨어진다. 게임을 하면서 이만큼 즐거운 장소 가 또 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며칠이고 그림자 숲에서 사 냥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아크가 걱정했던 부분은 장비의 내구도였다. 아직 수리 스킬을 배우지 않았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까닭이다. 작센에서 퀘스트를 끝낸 뒤로 아크가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영주성 내의 시설을 이용할 권리였다. 그중 하나가 영주 직 속 대장간, 그곳을 이용하면 일반 대장간의 반 가격에 장비 를 수리해 주었다. 작센근처에서 사냥해 왔으니 급하게 비싼 돈을 내고 스킬 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작센과 멀리 떨어진 사냥터 에서 갑자기 내구도가 바닥나면 곤란했다. 그러나 오히려 문 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발생했다. 음식이다. 아크는 작센을 나설 때 밀빵을 10개밖에 준비해 오지 않 았다. 서바이벌 요리가 있으니 여기저기서 재료를 구해 만들 어 먹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냥했던 숲에서는 그 래 왔다. 그러나 그림자 숲은 평범한 숲이 아니었다. 물론 그림자 숲에도 수많은 식재료들이 보였다. 그러나 대 낮에도 언데드들이 돌아다니는 곳이다. 도대체 멀쩡하게 생 긴 식재료를 찾아볼 수 없었다. 버섯이나 풀조차 눈알이나 내장처럼 생겼다. 씹는 느낌이 나 맛이 어떨지 상상만 해도 치가 떨렸다. 아니, 맛은 아무 래도 좋다. 문제는 아크가 배운 요리가 어떤 효과가 나올지 모르는 서바이벌 요리라는 점이다. '저건 틀림없이 위험해. 위험하다고 쓰여 있잖아.' 식재료의 등급이 높은지, 초급 식재료 감별 스킬로는 정보 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정보를 봐야만 아나? 해골 마크가 없을 뿐이지 위험하다고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한 식재료들이 아닌가. 아크가 그림자 숲에서 편하게 사냥할 수 있는 건 몸을 숨 기는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음식을 잘못 만들어 먹고 혼란 같은 것에 걸려서 미쳐 날뛰면 바로 언데드의 밥이 돼 버리 리라. 안전한 곳이 아니면 새 서바이벌 요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 '미치겠군. 밀빵은 진즉에 바닥났고, 만복도는 50퍼센트 까지 떨어졌잖아. 슬슬 스탯에 페널티가 생길텐데……. 1~2 시간 걸리더라도 다시 마을까지 갔다 와야 하나? 아니면 목 숨을 걸고 만들어 먹어 봐?' 가방을 뒤적거리던 아크는 돌연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마령 소환, 유계의 알!" 아크의 외침에 이내 계란처럼 생긴 소환수가 나타났다. 해골, 박쥐와 달리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서 잊고 있었던 소 환수였다. 아크는 두 번 다시 부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이 소환수의 용도가 떠올랐다. 아크는 유계의 알을 보며 군침을 꿀꺽 삼켰다. '소환수니 뭐니 해도 결국은 조금 큰 계란. 식재료로 못 쓸 것도 없지. 마족들도 자주 먹는다고 했으니 식재료는 식 재료잖아. 저런 끔찍한 식재료보다는 계란이 나을거야. 게 다가 소환수는 사라져도 다시 불러낼 수 있어. 잘만 하면 무 한대로 쓸 수 있는 식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거지. 분명해, 아마 계란의 용도는 처음부터 그거였을 거야.' 아크는 히죽 웃으며 유계의 알을 냄비에 넣어버렸다. "후후후, 계란은 단백질의 보고지.어쩌면 굉장한 효능의 요리가 탄생할 지도 몰라." 그리고 조금 남아 있던 멀쩡한 식재료를 함께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됐을까? 꽤 그럴싸한 냄새를 풍기는 요리 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요리가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표시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식. "오오, 성공했다. 성공했어. 삶은 달걀!" 아크가 콧노래를 부르며 알을 집어 들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냄비 안의 요리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음 산한 웃음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처음 보는 메시지창이 떴다. -서바이벌 요리가 완성됐습니다. 그러나 '유계의 알'에 모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유계의 알은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어떤 효과의 요리 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뭐, 뭐야? 흡수?" 아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계란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이해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알이 요리를 흡수했다. 즉, 알 그 자체는 요리의 재료로 쓰이지 않았다는 건가? 하지만 흡수라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크가 번쩍 고개를 올렸다. '뭐야, 결국 알이 요리를 먹어 버렸다는 말이잖아! 그러 면……?' 아크의 시선이 해골에게 향했다. 결국 소환수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뜻! 거기까지 생각 하자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는 또 다른 방법이 떠올라 버렸 다. 아크는 얼른 새로운 요리를 만들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식재료다. 식재료를 대충 뜯어서 집어넣자 몇 번의 실패 끝에 괴상한 냄새를 풍기는 수프가 완성되었다. 아크는 다정다감한 눈길로 해골에게 손짓했다. "자, 해골. 이걸 먹어 봐라." 해골은 퀭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주춤거리며 다가왔다. 수프에 풍덩 뛰어들더니 이내 펄쩍 뛰어나와 픽 쓰러졌다. 해골은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냐는 듯한 원망스러운 눈 길을 보내다 서서히 사라졌다.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이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데미지 50!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이 유계로 사라졌습니다. 24시간 후 다시 소환 해야 합니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공포스러운 맛의 수프입니다. 한 모 금만 마셔도 너무나 끔찍한 맛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잘 포장 해서 미운 상대에게 선물합시다. "역시 예상대로다!" 아크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역시 소환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환수가 먹어서 확인한 음식 역시 제대로 서바이벌 요리의 목록에 추 가되었다. 다시 말해 누가 먹든 아크가 요리의 효과만 확인 하면 된다는 뜻. 그렇다면 굳이 직접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지금가지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던가. "갑자기 요리하는 게 즐거워지는군. 역시 요리는 남을 위 해 만들어야 해." 아크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박쥐는 해골만큼 충직하지 않았다. 해골이 음식을 먹고 뻗어 버리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박쥐는 겁에 질려 슬금슬금 물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봐줄 아크가 아니다. 박쥐를 잡아 샐러드가 담긴 냄비에 쑤셔 박자 또다시 메시 지창이 떴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수상한 약초 샐러드입니다. 보기에는 꽤 수상쩍지만 의외로 빠르게 체력을 회복시켜 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만복도 +50% 30초에 걸쳐 생명력 150만큼 회복. 그렇게 확인된 음식은 바로 다시 만들어서 아크가 먹었다. 그림자 숲의 식재료는 독초와 약초 비율이 반반이었다. 문 제는 독초의 독성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 무턱대고 만들어 먹으면 아크마저 한 방에 보낼 수 있는 음식이 많았다. 그러 나 아크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짊어질 위험부담이 아니므로. 안전하게 음식의 효능을 알아낼 방법을 찾은 아크는 거침 없었다. 마치 주방장의 혼령이라도 쓰인 것처럼 눈에 보이는 식재료를 모두 긁어모아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어 냈다. "우후후후, 이번에는 썩은 고기도 좀 넣어 볼까?" 해골과 박쥐는 꼭 끌어안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공포에 떨 어 댔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주인인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 그러나 사악한 주인에게 매인 몸, 도망갈 곳도 없었다. 해 골과 박쥐는 수도 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방황했다. 몇 시간 이 지나자 충성도가 200인 해골조차 아크를 보는 눈빛이 달 라졌다. 애초에 충성도가 낮았던 박쥐는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훙, 네가 가 봐야 벼룩이지. 소환 캔슬. 재소환, 박쥐." 저 멀리 도망치던 박쥐가 사라졌다가 아크의 코앞에 나타 났다. 아크는 발버둥 치는 박쥐를 노려보며 을렀다. "건방진 녀석, 너는 이번부터 연속 세 번이다." 아크는 인정사정없이 박쥐를 냄비에 쑤셔 넣었다. 쿡 처박혀 부르르 떨어 대던 박쥐가 갑자기 비명처럼 소리 쳤다. "으악, 제발 그만 좀 해라, 주인!" 동시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신비한 음식의 효과로 '증오를 품은 박쥐'의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증오를 품은 박쥐 종족:마족 성향:어둠 등급:- 생명력:50(+5) 충성도:50 힘 5(+1) 민첩 10(+1) 체력 10(+1) 지혜 10(+1) 지능 10(+2) 운 0 *소환자와 언어 소통 능력이 생겼습니다(단, 한 번 먹었던 음식은 두 번 다시 효과가 없습니다. 오직 새로운 음식만이 유계의 소환수를 자 극해 숨겨진 힘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어라, 이게 뭐야? 음식으로 소환수의 능력치도 오르는 거야?"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환수를 성장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못했다. 물론 정보창을 읽어 보니 그리 간단한 조건은 아니었다. 수 많은 음식 가운데 소환수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내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같은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건 단 한 번. 다시 능력치를 올리려면 새로운 음식을 찾아내야 했다. 수없이 많은 재료도, 수없이 많은 조합법을 사용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일이다. 그러나 설령 불가능한 일이라도 소환수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 였다. 가능성이 있다. 그 말은 해 볼 만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단순히 스탯만 오르는 게 아니라 새로운 능력까지 생긴다면. "그나저나 처음 생긴 능력이 언어능력이라니…… 그렇게 나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건가?" 유저가 그렇듯, 몬스터 역시 가능한 범위라면 필요로 하는 스킬이 먼저 생긴다. 아크는 대견한 눈으로 박쥐를 바라보았다. 박쥐가 파닥파닥하며 이를 갈아붙였다. "무슨 헛소리냐, 주인! 내가 왜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몰 라서 그따위 말을 지껄이나? 우리도 주인처럼 맛도 느끼고 고통도 느낀다! 그 끔찍한 음식을 먹일 바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 "지금 주인에게 반항하는 거냐?" "바, 반항하는 거 아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거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해골?"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충성도 200의 해골은 얼른 고 개를 저었다. 박쥐가 펄쩍 뛰었다. "이, 이런 배신자!" "자꾸 짹짹거리면 음식량을 2배로 늘려 버린다." "히, 히익!" 박쥐가 숨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음식 먹기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말하는 능력까지 생 겼겠는가? 사악한 아크지만 그런 소환수의 반응을 보니 약간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좋아, 앞으로는 조금 자제하도록 하지." "그래도 결국 먹이겠다는 거 아냐?" "주인인 내가 나쁜 생각으로 그러겠어? 다 너희를 위해서 야. 너희도 성장하고 싶지 않아?" "거, 거짓말!" "난 거짓말 못 해." 아크는 딱 잘라 말했다. '후후후, 이렇게 편한 방법을 포기할 것 같아? 게다가 이 제야 겨우 너희들을 쓸모 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았는데.' 이제 소환수들에게 정체불명의 음식을 먹일 정당한 이유가 생겼다. 양심의 가책 따위는 눈곱만큼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뿐 인가? 소환수를 완벽하게 컨트롤할 무기도 생겼다. "마, 말도 안 돼! 필요 없어!" "시끄러, 자꾸 징징대면 앞으로는 너만 먹일테다!" 박쥐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잘 들어. 앞으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는 놈은 무조건 음식을 먹여버릴 테다. 말을 안 듣거나 불평하면 더 먹인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 알았다." 박쥐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골도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이빨을 딱딱거렸다. 아크는 소환수를 오나전히 장악했다. 물론 아무리 말을 잘 들어도 계속 음식을 먹일 생각이다. 이유야 아무렇게나 둘러 대면 그만이다. "박쥐, 주변을 정찰하고 와라. 꼼꼼하게. 꾀부리면 알지?" 허둥지둥 날아가는 박쥐를 보며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 었다. 다크 워커, 꽤 쓸 만한 직업이다. 그러나 아무리 소환수라도 무조건 채찍만 휘두를 수는 없 는 법. 가끔 박쥐와 해골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면 벌칙을 면제시켜 주기도 했다. 당연히 그 음식은 계란에게 돌아갔다. '해골과 박쥐가 성장한다면 계란도 가능성은 있어.' 아크의 예상은 적중했다. 어느 정도 음식을 흡수시키자 계란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꿈틀거리기도 하고, 표면에 작은 금이 생기기도 했다. 자세 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으나 음식으로 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ACT 8 걸리면 죽는다 "그다지 쓸 만한 게 없군." "그래도 근처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들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상점주인이 머리를 긁적였다. "좋네. 자네는 그동안 꾸준하게 우리 가게를 이용해 줬으 니 5골드 40실버까지 주겠네." "제가 얘기한 대로 5골드 50실버 주시죠." "에잉, 하여간 한 푼도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니까. 알 았네, 그렇게 하지." "제가 이래서 아저씨를 좋아한다니까요." 아크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돈을 챙겨 넣었다. 뉴 월드에서는 같은 마을 안이라도 상점마다 판매, 매입 가격이 다르다. 재고량이나 시세에 따라 언제나 들쑥날쑥이 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때그때 더 많이 주는 상점 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크는 작센 근방에서 사냥하 는 동안 오직 한 곳만 이용했다. 하룬마을에서 보름이나 살아봤던 경험으로, 상점주인과 오랜 친분을 쌓아두면 보너스가 붙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손해날 때도 있지만 어느 정도가 되면 물건을 팔 때 10퍼센트의 돈을 더 받는다. 물건을 살 때도 10 퍼센트 이상 할인을 받는다. 또한 가끔 주인이 먼저 권하는 물건을 사면 최대 30퍼센트까지 할인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은 일부 상인 유저들만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러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그 고양이 장갑을 팔지 그러 나? 잘 쳐줄 수 있는데." 상점주인과 알고 지내면 종종 이런 식으로 물어 올 때도 있었다. 덕분에 아크는 유저들과 대화를 하지 않아도 대강의 아이템 가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니, 됐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아크는 볼일을 끝내고 상점을 나섰다. "제법 모였군." 아크는 거리를 걸으며 두둑해진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하룬 마을을 떠나올 때 60골드가량 있었는데, 어느새 120 골드가 모였다. 뉴 월드에서 가장 지출이 심한 게 음식 값과 수리비였다. 반면 아크는 음식을 만들 때 재료도 들어가지 않 았고, 수리비는 영주 전속 대장간에서 절반으로 해결해 왔기 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낼 때가 되었다. "이제 슬슬 작센을 떠날 때가 됐구나." 그림자 숲에서의 사냥으로 아크는 드디어 레벨 30을 달성 했다. 썩어가는 늑대나 좀비는 더 이상 경험치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30레벨인 구울인 아직 괜찮지만 숫자가 적었다. 그렇다고 50대의 리퍼를 사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만간 사냥터 를 옮기고 새로운 퀘스트를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 전에 먼저 배워 둬야 할 스킬이 있지." 수리스킬이다. 작센에는 대장간만 다섯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에 인근에 서 유일하게 수리 스킬을 가르쳐 주는 장인 NPC가 있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장인 NPC라고 명찰을 달고 있지 않으니 유저들은 직접 돌 아보며 일일이 대화를 나눠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그런 데 쓸 시간이 어디 있어?' "어이, 토머스. 오랜만이야." 아크가 손을 번쩍 올리자 근처를 지나던 병사들이 반색하 며 다가왔다. "아크, 며칠 안 보이더니 언제 돌아온 거야?" "조금 전에. 그런데 혹시 마을에 수리하는 법을 가르쳐 준 다는 대장장이 알아?" "노튼 말하는 거야? 알지. 저쪽으로 가서 다리를 건너가 면 바로 보이는 대장간이야. 그런데 수리하는 법을 배워서 뭐 하게? 성에 가면 콘 영감이 싸게 고쳐 주잖아. 수리하는 법을 배운다고 당장 잘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콘 영감에 게 맡기는 편이 나아." "며칠 뒤에 좀 멀리 여행을 떠나 볼까 생각 중이거든. 그 러니 혹시 깜빡하면 곤란하니까 마을 온 김에 배워 두려고." "멀리?" 토머스는 아쉬운 눈길로 바라보며 끄덕였다. "하긴 자네는 이방인이었지. 그럼 떠나기 전에 꼭 영주님 이라도 찾아뵙고 가. 우리 막사에도 좀 들르고, 알았지?" "그래." 아크는 멀어지는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돌아섰다. 그 모습에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 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유저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마을 에서 말썽만 피우는 존재라고 생각한는 것이다. 그런 병사에 게 한번 막사에 들르라는 말을 듣는 유저는 단 1명도 없었 다. 소년 영주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크만이 가능한 일. 어쨌든 아크는 유저들의 반응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뉴 월드에서 아크가 친분을 맺고 싶은 사람은 NPC 뿐이었다. '그나저나 필요하니 배우기는 해야겠지만 주머니가 한결 가벼워지겠군.'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당연하게도 장인 NPC에게 스킬을 배우려면 돈이 들어간 다. 게시판에서 알아보니 수리스킬을 배우는 데 드는 돈은 20골드. 스킬만 가지고 수리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수리스킬 전용 도구세트는 10골드. 아크의 경우 금속용, 가죽용, 천용 도구세트가 모두 필요하니 30골드. 합이 50골드를 지출해야 수리스킬을 쓸 수 있었다. 유용한 스킬임에도 대부분의 유저가 초반에 배우지 못하 는 이유였다. '어떻게 모아 온 돈인데…….' 꼬깃꼬깃 모아 온 돈을 50골드나 써야 하니 속이 쓰리다. 그러나 여행을 하며 사냥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유저에 게 수리스킬은 꼭 필요하다. 수리할 때마다 대장간을 찾아가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돈 이 들어가고, 자칫 수리를 잊어버리면 장비가 부서질 위험도 있다. 그래도 역시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하룬이나 작센에서 수리비용을 날로 먹어 왔기에 더욱 아 깝게 느껴졌다. "어서 오게. 뭐가 필요한가?" 대장간에 도착하자 수염을 기른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이곳 주인이 수리 기술의 대가라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 니다." "수리 기술을 배우고 싶은가?" "네." "잘 생각했네. 여행자에게 수리 기술이 필요하다는 건 상 식이지. 먼 여행길에 장비가 상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거든. 어디 손을 좀 보여 주게." 노튼은 불쑥 아크의 손을 잡고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하지만 아쉽게도 자네는 수리 기술을 배울 수 없겠 구먼." "배울 수 없다니요?" "잘 모르는 모양이군. 수리 기술은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네." 노튼은 대장간 안에서 망치를 휘두르는 사내들을 가리켰 다. NPC와 달리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걸쳐 입은 모습을 보 니 유저가 틀림없었다. 수리처럼 지식만으로 가능한 스킬이 아닌 경우, 저렇게 직 접 NPC의 지도를 받으며 몇 번 스킬을 사용해 봐야 익혀지 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역시 돈을 지불하고 스킬을 배우기 위해 노가다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저 친구들처럼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그에 맞는 힘 과 노련함이 필요한 법이네. 멋도 모르고 망치를 휘두르면 오히려 장비를 깨 먹기 십상이지. 때문에 나는 노련한 전사 에게는 금속을 다루는 기술을, 노련한 상인이나 연금술사에 게는 가죽과 천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네. 다른 사람 들은 배워 봐야 제대로 쓸 수도 없지." '수리 스킬에 직업제한이 있었단 말인가?'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크의 스킬은 모두 저절로 생기거나, 혹은 퀘스트의 연동 으로 배운 것들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직업 제한 스킬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간혹 게시판에서 부적합 스킬이라는 단어를 보기는 했지 만, 그저 직업 특수 스킬에 관한 내용인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수리 스킬에 그런 제한 이 걸려 있었다니……. 아크는 마을 안에서 좌판을 벌려 놓은 유저들을 떠올렸다. '옷, 가죽 갑옷 말끔하게 수선해 드립니다.' '각종 무기와 금속 방어구 새것처럼 만들어 드려요.' 기타 등등의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던 사람들이다. 아크는 그들에게 수리를 받는 유저를 보며 코웃음 쳤다. 비용이 대장간보다는 조금 싸다고 하지만, 굳이 돈을 내 가 며 다른 사람이 스킬 올리는 걸 도울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 리고 어차피 돈 좀 모이면 자신도 배우게 될 텐데……. 그렇 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이해되었다. 수리를 배울 수 없는 직업의 유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 었다. 겨우 겨우 다크 워커가 좋아지려던 참인데, 다시 후회 가 밀려왔다. '맙소사, 전사 계열을 선택하지 못한 게 이렇게 치명적일 줄이야!' "그럼 저는 사냥터에서 장비가 망가지면 고칠 방법이 없 단 말입니까?" "자네는 아무래도 초보자인 것 같군. 이리 와 보게." 노튼이 대장간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마을에서만 수리가 가능하다면 내 대장간은 진즉에 망했 을거내, 내게 수리 기술을 배운 녀석들이 좌판을 벌여 놓고 싸게 수리를 해 주고 있으니까." "그렇겠군요." "대장간의 진짜 수입은 사실 이쪽이네. 이것만 있으면 누 구라도 장비를 수리할 수 있지." 노튼이 한쪽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상품을 가리켰 다. '초보자도 사용할 수 있는 공구 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상자였다. "이 공구 상자만 있으면 어디서든 다섯번이나 장비 수리 가 가능하지. 일반형은 평범한 장비에 사용하고, 고급형은 마법 장비에, 마법의 공구 상자는 레어 이상의 장비를 수리 할 수 있네. 물론 마법의 공구 상자로 일반 장비 수리도 가능 하지만 타산이 안 맞지. 아, 이것도 써 보겠나? 이 기름과 연 마석은 일정 시간동안 무기와 방어구의 성능을 올려 주는 효과가 있다네. 놀랍지 않은가?" 물론 놀랍다. 공구상자의 가격이……. 공구 상자는 다섯 번을 쓸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대장 간에서 수리하는 것보다 1.5배나 더 비싼 가격이었다. 게다 가 아크의 장비도 일단 명색은 마법 장비, 망토는 레어다. 예비용으로 하니씩만 사 둔다고 해도 35골드라는 거금이 깨 진다. 그걸 다섯 번 수리할 때마다 다시 사야 한다니 정신이 아 득해졌다. '죽어라 사냥해서 모은 돈을 몽땅 수리비로 날리라는 거야?' 처음으로 뉴 월드의 무지막지한 물가가 실감났다. 게임을 하면서 안 맞고 싸울 수는 없다. 그러니 그저 사냥 을 하는 데도 돈이 든다. 실수로 죽어서 내구도가 왕창 깎이 기라도 하면 몇 배나 되는 돈이 든다. 아이템이 좋으면 좋을 수록 더 많은 돈이 든다. 아크는 그런 유저들의 고난을 몰랐다. 하룬 마을에서는 무조건 30퍼센트 할인을 받았고, 작센에 서는 영주성에서 반값에 수리를 받았다. 수리비로 목돈이 나 갈 일이 없었다. 그제야 한 푼이라도 아끼겠다고 유저에게 수리를 맡기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사냥 나가서 아이템 하나 건지지 못하면 밀빵 하나 사기 도 빠듯하겠구나.' 그렇다고 수리비 아까워서 장비를 깨 먹을 수는 없는 노릇 이다.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 부들부들 떨며 돈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차마 건네주지 못하고 우뚝 멈췄다. '안 되지. 내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이렇게 쉽게……!' 아크는 현실에서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잡화점부터 방문판매에 이르기까지 영업 분야에 대해서도 빠삭하다. 그 일을 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물건을 달라는 대로 주고 사는 건 바보짓이라는 것이다. 깎고, 깎고 또 깎는다. 최소한 상인의 입에서 손해 봤다는 말이 나와야 겨우 제값 주고 산 게 된다. "혹시 깎아 주실 수는 없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요즘 주변에서 우리의 반 가격 에 수리해 주는 녀석들이 많아져서 나도 겨우 이거 팔아서 입에 풀칠하네. 나보고 굶어 죽으라는 말인가?" "하지만 제가 지금 너무 가난해서……." 아크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자네 같은 여행자 사정을 일일이 봐줄 수는 없네. 혹시 모르지. 한 번에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겠다면 조금 깎아 줄 수는 있지만……." "대량으로? 몇 개나 말인가요?" "글쎄? 한 100개 정도 사면 정가의 5퍼센트까지 깎아 주 겠네. 가끔 상인이나 여행자 들이 돈을 모아서 그렇게 사 가 는 경우가 있거든. 돈이 부족하면 자네도 그렇게 해 보게."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궁핍한 생활로 다져진 예리 한 후각이 돈 냄새를 맡은 것이다. "그렇군요. 알겟습니다. 다시 오죠." 아크는 얼른 대장간을 나왔다. 물론 유저를 모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수십 명이나 되는 유저를 모을 자신도 없었고, 어찌어찌 유저를 모아서 할인을 받는다고 해도 30골드에 5퍼센트면 고작 1골드 50실버밖에 이득이 없다. 노력에 비해 대가가 너무 적다. 그러나 아크에 게는, 아니 아크만이 쓸수 있는 다른 방법도 있었다. '가능해. 가능할 서야. 분명 영주 전속 대장간에는 공구 상자 같은 게 없었어. 그 말은 결국 다른 곳에서 공구 상자를 사들인다는 말이겠지. 그럼 나라고 중간 도매상이 못 되라는 법은 없잖아.' 아크는 곧바로 소년 영주를 찾아갔다. 그리고 난감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으며 부르짖었다. "영주님!" "왜 그러나? 다른 지방으로 떠날 거라고 들었는데, 왜 그 런표정으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생겨 버렸습 니다. 저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당이 되지 않아서 영주 님께 상의라도 드려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문제?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말해 보게." '후후후, 걸렸다.' 아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떠들어 댔다. "실은 제가 이번에 아는 사람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다녀 오려고 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을 제가 맡았죠. 그 런데 실수로 그만 엉뚱한 물건을 너무 많이 주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야 착오가 있는 걸 알고 주문을 취소하려 고 했지만, 상인도 이미 주문을 해 버린 뒤라 제가 책임을 져 야 한다고 합니다. 얘기를 들은 동료들은 모두 내 책임이라 며 그냥 도망가 버렸고…… 크흑!" "고작 그런 일 때문에 동료를 배신하고 도망갔다고? 신의 도 모르는 자들이 아닌가!" 역시나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 영주는 제 일처럼 분노했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요. 모두 제 잘못이니까." "자네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 애초에 그런 잡일을 자네 가…… 아니, 됐다.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해 봐야 소용없겠지. 어디 말해보라. 대체 무슨 물건을 잘못 주문했다는 건가?" "휴대용 공구 상자입니다." 아크의 대답에 소년 영주는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 였다. "아아, 다행이군. 그런 물건이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네." "네? 영주님께서요?" "그래. 성내에도 대장간이 있지만 휴대용 도구 상자는 만 들지 못하지. 때문에 원정을 나갈 때마다 따로 구입하는 품 목이네. 마침 잘됐어. 재고가 떨어져 가던 참이니 내가 모두 구입해 주겠네. 아니, 아예 일반과 고급을 100개씩 조달해 주게. 그리하면 자네도 상인에게 얼굴이 서겠지. 기한은 상 관없네." "그러면 제가 너무 죄송해서……." "신경 쓰지 말게. 말하지 않았나? 필요하면 언제든지 돕 겠다고." "감사합니다!" 소년 영주는 곧바로 2500골드짜리 어음을 건네주었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생각지도 못했던 스탯이 새로 생겼다. 새로운 스탯이 생겼습니다. 화술(+5):현란한 말솜씨로 원하는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수치가 높을수록 상대를 더 쉽게 설득하고, 더 많은 이득을 이끌어 낼 수 있습 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고 교섭, 협상, 특수 거래를 성공했을 때만 상승합니다. 어음을 받아 든 아크는 입이 귀에 걸렸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까지 일이 술술 풀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장간에서 할인 받기로 한 건 5퍼센트. 2500골드로 물건 을 사서 납품 하는 것만으로도 125골드가 떨어진다. 그야말 로 마른하늘에 돈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득에 만족하는 건 초보자나 하는 짓. 많 은 이윤을 얻은 때일수록 더 많은 이윤을 긁어내야 한다. 아크는 노튼을 찾아가 어음을 내밀었다. "일반과 고급, 모두 100개씩. 언제까지 가능합니까?" "100개씩? 게다가 납품처가 영주성이라고?" "네. 그런데 이 정도면 10퍼센트는 깎아 줘야 하지 않습 니까?" 아크가 슬슬 멍석을 깔기 시작했다. "10퍼센트라니? 당치도 않은 소리! 그럼 팔아도 손해네. 하지만 자네가 영주님과 알고 지내는 사이라면 다음 거래도 생각해서 특별히 6퍼센트까지는 깎아 주겠네." "좋습니다. 8퍼센트! 그래도 한 번에 200개나 거래하면 꽤 남지 않습니까?" 아크는 눈앞에서 어음을 흔들어 대며 제시했다. 어음을 따 라 눈알을 움직이던 노튼이 결국 한숨을 불어냈다. "좋네. 7퍼센트까지는 깎아주지. 대신 두 가지 부탁이 있네." "뭡니까?" "하나는 깎아 준 금액을 돈 아닌 물건으로 받아 가야 하 네. 자네가 대금을 치를 돈도 어음 이니까. 그 정도는 당연히 양보해 줘야 하네." "알겠습니다. 나머지 하나는요?" "실은……공구 상자를 만들 재료가 떨어져서 당장은 200 개나 납품할 수 없네. 공구 상자를 제작하는 데는 특별한 재 료가 들어가거든. 다른 건 얼추 맞출 수 있는데 아이라드라 는 재료가 부족하네. 자네가 그걸 좀 구해 와 줬으면 하네." "어디 가면 구할 수 있는데요?" "아이라드는 유능한 연금술사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네. 우리와 거래하는 연금술사는 레이몬드지. 그런데 그가 요즘 몸이 안 좋아져서 아이라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구하 러 갈 수 없다고 하더군. 쓸 만한 모험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 라고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네. 그러니 먼저 그를 찾아가 보 게.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알 걸세."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살 물건의 재료를 제가 구한다 면……." "지독한 친구. 졌네, 졌어. 8퍼센트로 해 주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영주님에 게는……." "나도 상인이네. 그런 걱정은 말게." 노튼의 다짐을 받은 아크는 레이몬드를 찾아갔다. 들은 대 로 레이몬드는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로 아크를 맞았다. "노튼이 보냈다고? 지금까지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하긴 아이라드가 떨어질 때가 되기는 했지." 사정을 설명하자 레이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찾아야 할 재료는 붉은 버섯처럼 생긴 광물이네. 그란 습지 깊은 곳에 위치한 동굴에서만 구할 수 있지. 아마 도 끝까지 들어가야 할 거네. 대신 한 가지는 명심하게. 그 건 괸장히 귀한 광물이네. 다른 사람에게 그 광물에 대해서 는 비밀로 해 주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두두둥, 간만에 퀘스트 정보창이 열렀다. 연금술사 레이몬드의 부탁 작센의 연금술사 레이몬드는 대장간에 아이라드를 납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려 필요한 재료를 구하러 갈 수 없어 당신에게 일을 부 탁했습니다. 레이몬드는 광물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 달 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습니다. 레이몬드의 요청대로 퀘스트 완료 시까지 비밀을 지켜야 합니다. 파티 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난이도:F '이런 식으로도 퀘스트가 생기는구나!' 공구 상자를 공짜로 얻으려던 계획이 퀘스트로 연결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혼자서 몇백 개의 공구 상자를 주문한 사람에게만 주어 지는 퀘스트인가? 그럼 초반에 이 퀘스트를 한 사람은 많지 않겠군.'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난이도 F라면 혼자서도 어찌어찌 가능할 것도 같았다. 아크는 망설임 없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이 퀘스트만 해결 되면 공구 상자 가격을 8퍼센트나 깎을 수 있다. 아크의 손에 떨어지는 돈만 무려 200골드! 마법의 공구 상 자 10개가 공짜로 생기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는 지도에 표시를 받고 만약을 대비한 회복 포션과 밀 빵 그리고 대장간에서 현란한 말솜씨로 고급 공구 상자 2개 를 선금으로 받아 챙긴 뒤 그란 습지의 동굴로 향했다. @ "박쥐, 동굴 안을 살피고 와." "알았다, 주인." 아크의 말에 박쥐가 파닥거리며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 갔다. 아크는 그란 습지를 통과하며 레벨32가 되었다. 그란 습지는 작센에서 하루 거리로, 온갖 습지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그래도 그림자 숲에서 레벨을 꽤 올려놓 은 상태라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슬라임만큼은 아직도 껄 끄러운 상대였다. 몸이 산성 점액질로 되어 있어 한 번 싸울 때마다 장비 내구도가 뚝뚝 떨어졌다. 공구 상자를 챙겨 오 지 않았다면 마을을 수없이 들락 거려야 했을 것이다. '젠장, 공구 상자가 하나에 얼만데…….' 슬라임과 전투가 벌어지면 생명력보다 수리 비용이 더 걱 정이었다. '그나저나 이 던전은 내가 처음 발견한 게 아닌 모양이군.' 아크는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동굴에 대한 설명은 떴지만 보너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한 번 털린 던전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몬스터와 아이 템이 다시 생겨난다. 그러나 재수 없으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아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목적은 퀘스트 해결이니까. '200골드짜리 일인데 치사하게 굴 수는 없지.' 그때, 박쥐가 동굴을 나왔다. "주인. 사람이 1명 있다." "사람? 이방인 말이야?" "그래. 이쪽으로 나오고 있다." 아크의 눈에 경계심이 깃들었다. 몬스터보다 유저를 더 경계해야 한다. 사람의 천적은 사람 이라는 말은 현실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다. 특히 이렇게 외진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와줄 사람도 없는 곳에서 고 레벨의 PK에게 배후라도 잡히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아크가 긴장한 얼굴로 기다리자 곧 동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아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당신은?" 상대도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판금 갑옷을 걸친 전사는 안델이었다. 수도 없이 이빨을 갈아 붙이며 부르짖었던 이름! 안델 역시 아크를 알아봤는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리 고 뭔가를 생각하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렀다. 어떻게 반응해 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리라. 한참 뒤에야 결정했는지 슬쩍 입 끝을 말아 올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 어디서 본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같이 파티 했던 분이군요. 이름이 아크라고 했던가요?" 아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다. 아 니, 진짜 갈아 마셔 버리려고 얼마나 오랫동안 별러 왔던가? 그러나 아크는 일단 화를 억눌러 참았다. 아직 놈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무턱대고 감정대로 행동했다가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 안델이 어떻게 나올지 보고 싶기도 했다. "안델이셨죠?" "기억하시는군요." '너라면 잊을 수 있겠냐?' 아크는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간신히 삼켜 버렸다. "잘됐네요.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저를……요?" "네,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아서요. 한 번 죽을 때마다 스탯이 깎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나중에 그런 얘기를 듣고 사과하고 싶어서 하룬 마을에 갔어요. 그런데 안 계시더라고 요. 혹시 게임을 접어 버리신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는데 여기까지 오신 걸 보니 레벨을 꽤 올리셨나 봐요?" '몰랐어? 사과를 해? 어련하겠냐, 빌어먹을 놈!' 결국 안델이 궁금한 건 아크의 레벨이다. 만약 레벨이 자 신보다 낮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아크 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뭐, 그냥 그렇죠. 하긴 저도 그때는 굉장히 당황했어요. 정말 게임을 그만둘가 하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그만두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어떻게든 하고 있어요." "혹시 오해하고 계신 건 아니죠?" "네? 뭐가요?" 아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델은 적이 안심한 표정으로 아크를 위아래로 훑었다. 블랙 베어 마우스의 가죽 갑옷, 고양이 손, 게다가 그림자 숲에서 주운 너덜너덜한 투구와 신발, 능력치야 어쨌든 겉으 로 보기에는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하게 봐줄 만한 건 등에서 펄럭이는 핏빛망토! 엄청난 페널티 탓에 사냥에는 쓰지 못하지만 박쥐에게 유 저가 나온다는 말을 듣고 혹시 몰라 장착해 두었다. 어쨌든 그리 대단치 않은 수준이다. 그리 판단한 안델의 눈동자가 교활하게 반짝거렸다. "아크 님, 혹시 시간 되시면 저하고 던전 들어가실래요?" "던전요?" "지나다가 이 던전을 발견했는데 혼자서는 좀 힘들어서 요 나중에 아는 분하고 같이 오려고 했는데 아크 님이 계 시닌 다시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 어떠세요?" "글쎄요." 아크가 짐짓 고민하는 척하자 안델이 얼른 말을 이었다. "던전에서 괜찮은 아이템이 나오면 아크 님 드릴게요." "그러면 제가 미안하죠." "아뇨, 지난번 일도 있으니까 그렇게 하세요. 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델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는 알 수 없지만, 아크 역시 놈을 그냥 돌려보내고 싶은 생각 은 없었다. 설사 이길 수 없다고 해도 기회를 봐서 옆구리에 칼자국 정도는 새겨 두지 않으면 잠도 못 잘 게 뻔하다. 그러 기 위해서는 파티를 맺어 놓으면 곤란하다. 퀘스트 조건도 그렇고……. "같이 들어가는 건 좋지만, 솔직히 파티는 하고 싶지 않은 데요." "상관없어요." 안델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협사을 끝낸 아크가 동굴로 한 걸음 들어섰을 때였 다. 갑자기 붉은 빛이 몸을 휘감았다. 아크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안델이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놀라셨어요? 그냥 상태창 좀 확인한 것뿐이에요. 파 티를 안 맺었으니 미리 아크 님의 상태를 알아 둬야 제대로 보조할 수 있잖아요." '이 새끼가 정말 나를 호구로 알아?' 아크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다른 유저의 상태창을 확이하는 『간파』주문서는 미리 허 락을 받고 쓰는 게 상식이다. 허락 없이 주문서를 사용한다면 뭔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 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아니, 새삼스럽지만 확실히 나타나는 생 명력, 주요 스탯뿐이다. 환몽의 핏빛 망토는 모든 스탯 -15의 저주 아이템. 안델은 아크가 32레벨 치고는 스탯이 낮다고만 생각했겠 지. 그리고 모든 능력치와 스킬까지 그만큼 낮다고 판단했을 게 분명하다. 얕보이는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경계하 는 상대라면 얕잡여 보이는 편이 좋다. 역시나 안델은 안도하는기색을 보였다. "초반에 잃은 스탯을 복구하지 못하셨나 보네요." "모르고 그냥 레벨 업을 했어요. 전직까지 했는데도 이 모 양이에요." "전직은 뭐로 하셨는데요?" "도적 계열이에요." "아, 그래서 민첩과 운이 높군요. 저는 전사로 전직했으니 제가 앞장설게요." 안델이 방패와 장검을 꺼내 들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아무렇지도 않게 등을 보이는 건 기습을 당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아크에 대한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는 증거였다. '흥, 어디 두고 보자. 네 판단을 후회하게 될 거다.'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 저 인간 마은에 안 든다." 어깨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쥐였다. 아크는 박쥐는 어깨에, 해골은 옆구리에 걸어 두었다. 묻지 않는 걸 보니 안델은 이들을 그저 장식품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든 아크는 처음으로 박쥐가 예뻐 보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아군, 안델을 다시 만나 보 니 그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크는 장비를 선보이는 안델에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 그동안 많이 키우셨나봐요." "별거 아니에요. 저도 이제 레벨 35인데요, 뭐." 안델은 우쭐한 표정으로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모여 있었다. 그란 습지에서 봤던 리자드맨이나 고블린 따위가 떼를 지어 달려 들었다. 아크라면 몸을 숨기고 한두 마리씩 유인해서 싸웠겠 지만, 안델은 방패를 앞세우고 무작정 돌진했다. 순식간에 두 마리를 해치운 안델은 바로 회복 포션을 마시 고 나머지도 해치워 버렸다. '흥, 저게 레벨35라고?' "고양이의 눈!" 아크는 몬스터에게 쓰는 척하며 안델을 향해 스킬을 시전 했다. 예상대로 파이터로 전직한 안델의 레벨은 무려43이 었다. 거기에 판금 갑옷에 방패까지 착용했으니 방어력은 엄청 나리라. 실제로 몬스터 서너 마리와 싸우는데도 생명력이 별 로 줄어들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안델의 이름이 붉은색 으로 표시된다는 점이다. 카오틱 캐릭터, 다시 말해 PK를 한 전력이 있다는 뜻이다. 하긴 안델이라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만. '역시 무턱대고 덤비지 않기를 잘했어.' 그러나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안델의 수작은 뻔하다. 혼자 뚫기 힘든 던전에 아크를 이용하려는 수작. 괜찮은 아이템이 나오면 주겠다는 말은, 괜찮은 아이템이 나오면 죽 이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어. 그러니 지금 저 녀석이 싸우는 방식을 잘 봐 둬야 해. 내가 10레벨 이상 차이 나는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작전을 잘 세우는 것밖에 없어.' 아크는 건성건성 싸우며 안델의 움직임을 꼼꼼히 살폈다. 아크가 몬스터 한 마리를 상대로 헥헥거리는 모습을 보이 자, 안델은 오히려 더 기가 살아 미친 듯이 날뛰었다. 힘과 체력, 방어력으로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전사의 전투 방식이었다. 43이나 되는 레벨을 가지고도 이 정도 수준의 던전을 못 깬 것은 그 때문이다. 아크처럼 작전을 세워 하나씩 처리하지 않고, 지나치게 공 격력과 방어력을 앞세워 돌진했기 때문. '다른 게임이었다면 그 방법이 정답일지도 모르지만, 여 기는 뉴 월드다. 너는 아직 뉴 월드의 전투를 제대로 모르고 있어. 내가 이길 방법도 거기 있다.' 아크는 머릿속으로 쉴 새 없이 작전을 세우며 안델의 뒤를 따랐다. 애초에 F난이도의 퀘스트로 온 던전이니 그리 수준 이 높지는 않았다. 43레벨의 안델이 아크의 보조를 받으며 휘젓자 몬스터들 은 금세 정리가 되었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둘은 백여 마리의 몬스터를 해치우고 동굴 끝 부분에 도착했다. "이제야 끝이 보이네요. 아크 님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저는 별로 한 것도 ㅇ벗는데요, 뭐." "그런데 난이도에 비해 이렇다 할 아이템은 나오지 않네 요. 아크 님 드려야 하는데……."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아직 끝까지 온 것도 아니잖 아요." "그렇죠. 그럼 서둘러서 마저 끝내 버리죠." 회복을 끝낸 안델이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쿠오오오! 돌연 동굴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경고 메시지가 떠올 랐다. -보스 몬스터 마정석 골렘이 출현했습니다! 모퉁이 뒤에서 거대한 손이 불쑥 뻗어 나왔다. 바위 덩어리를 뭉쳐 놓은 듯한 손이었다. 그 손에 이끌리듯 거대한 체구의 몬스터가 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는 바위가 모여 만들어진 골렘이 었다. 골렘은 붉은 눈동자를 굴려 아크와 안델을 훑어보더니 거친 목소리로 고함을 터뜨렸다. "먹이다!" "조심하세요!" 안델이 방패를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안델이 뒤로 주루룩 밀려났 다. 아크는 재빨리 골렘의 등 뒤로 돌아가 검을 내찔렀다. 그러나 고렘은 약간 어깨를 흔들었을 뿐, 큰 데미지를 받지 않은 듯했다. 안델이 상태 확인 주문서를 찢자 골렘의 머리 위에 생명력 이 나타났다. 아크의 공격에 줄어든 생명력은 고작 1퍼센트 였다. "아크 님, 보조해 주세요!" "안델 님이라면 부상을 이겨 내고 골렘을 물리칠 수 있습 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병 스킬을 펼쳤다. 기려과 용기, 거기에 하급 축복까지 받은 안델의 검이 바 람을 일으키며 골렘을 후려쳤다. 육중한 울림과 함께 골렘이 두어 걸음 물러났다. 힘이 200가까이 되는 전사의 일격에 골렘의 생명력이 쭉 내려가는 게 보였다. "제가 앞에서 막을 테니 뒤를 맡아 주세요!" "네!" 아크와 안델의 파상공격이 펼쳐졌다. 안델은 방패를 앞세우며 정면으로 골렘을 후려쳤고, 민첩 이 높은 아크는 골렘의 등 뒤에서 치명타를 노리며 연속 공 격을 펼쳤다. 확실히 안델은 강했다. 온몸을 판금 갑옷으로 도배한 덕에 방어력도 상당했고, 여 유 자금이 풍부한지 약간만 생명력이 닳아도 회복 포션을 드 이마셨다. 1쿠퍼에도 벌벌 떠는 아크는 감히 상상도 못 할 사치였다. 그러나 전투는 쉽게 결말이 나지 않았다. 골렘은 던전의 난이도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아크 혼자였다면 도저히 상대하지 못했을 정도. 그러나 둘의 집중 공격에 골렘의 생명력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골렘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안델이 아껴 뒀던 전사스 킬을 남발했다. "힘의 돌진, 파쇄, 전사의 일격!" 콰콰쾅, 일격에 골렘이 몸이 퍽퍽 파여 나가며 크게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아크의 공격이 치명타로 들어가자 골렘은 결국 버 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안델과 아크의 레벨이 동시에 1씩 올랐다. 골렘이 쓰러지자 화려한 빛 무리가 일렁거리며 붉은 버섯 모양의 광물과 투구 하나가 떨어졌다. "이겼다!" 그때, 안델이 황급히 회복 포션을 꺼내 마셨다. 주변에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금전 감각이 마비된 놈이라도, 이유도 없이 밀 빵 하나로 해결될 일을 회복 포션으로 해결할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델이 갑자기 아이템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던 아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던 아크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크크큭, 그럼 내가 정말로 모스가 떨군 아이템을 몽땅 넘 겨줄 거라고 생각했냐?" "아니, 믿지 않았지." "그럼 딱히 억울할 것도 없겠군." "하나만 묻지. 하룬 마을에서 내가 죽을 때도, 스탯이 줄 어드는 걸 알고 있었지?" "당연하지. 모르고 속은 놈이 바보아냐?" "개새끼." "멋대로 지껄여라. 이참에 아예 게임을 접고 싶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안델이 살기를 번들거리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전력을 다해 검을 마주쳤다. 힘 차이가 너무 커 아 크의 검은 맥없이 뒤로 밀렸다. 이어지는 안델의 공격은 단조 로웟다. 어려운 상황에서 전투 방법을 수없이 연구해 온 아크 와 달리, 오직 레벨 업으로 전투력을 올려 온 타입이었기 때 문이다. 아마도 같은 레벨이었다면 아크의 상대가 되지도 못했으 리라. 그러나 게임에서 11레벨차이는 실력만으로 극복하 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럭저럭 전투 같은 상황이 연출되는 건, 아크가 어둠 속에서 20퍼센트의 능력치 보너스를 받는 덕분이었다. 안델은 그런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끈질긴 놈,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결국 아크는 수차례나 얻어맞고 생명력이 50퍼센트나 깎 여 버렸다. 반면 안델의 생명력은 판금 갑옷 덕에 20퍼센트 도 깎이지 않았다. 아크가 맥을 못 추자 안델이 비웃음을 던졌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아? 동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실수하는 척하면서 나한테 도적스킬인 '간파'를 사용했지? 멍청한 놈, 내 레벨을 확인하고도 쫄래쫄래 따라 들어오다 니. 그때 이미 네놈은 죽을 예정이었어. 힘의 돌진, 전사의 일격!" 안델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스킬을 사용했다. 연속적으로 스킬이 들어오자 단벙에 생명력이 바닥을 드 러내며 빈사 상태가 되어 버렸다. '지금이다!' 아크의 눈동자가 번쩍인 건 그때였다. 안델의 말대로였다. 놈의 레벨을 확인했을 때, 아크는 도 망쳐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았다. 첫째는 안델에 대한 분노, 둘째는 안델을 쓰러뜨릴 방법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지금, 빈사 상태에 놓 여 있을 때만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고양이의 눈!"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자 안델의 몸 여기저기 에 허점을 표시하는 붉은 반점들이 나타났다. 과연 레벨과 방어력만 믿고 설치는 전사라서 그런지 몸 전 체가 허점투성이였다. 스킹의 효과로 생명력도 드러났다. 지금까지 소모된 안델 의 생명력은 고작 35퍼센트.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의 검이 어둠 속을 흐르듯 움직여 안델의 목덜미에 쑤 셔 박혔다. -방어력을 무시한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안델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아크는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다시 한 번 다크 블레이드를 성공시켰다. 순식간에 안델의 생명력이 50퍼센트나 빠져 버렸다. 아크가 배운 스킬이 동시에 5개나 중첩되어 만들어 낸 성 과였다. 가장 먽저 적용된 것은 어둠 속에서 능력치 20퍼센트 상 승. 다음이 고양이의 눈으로 약점을 간파해 공격력과 치명타 확률을 올렸고, 빈사 상태에 빠져 불굴의 정신과 불굴의 육 체가 발동해 모든 수치가 다시 한 번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대미를 장식한 건 다크 워커의 직업 스킬, 다크블레이드! 방어력을 무시하고 치명타 공격력을 150퍼센트로 올리는 스킬이다. 비록 하나하나로는 13레벨이나 높은 안델에게 치 명적으로 작용하지 못했지만, 연계 효과로 상승에 상승을 거 듭해 두 번의 공격으로 50퍼센트의 생명력을 깎아 버렷다. 빈사 상태에 빠질 때까지 마나를 쓰지 않고 버틴 건 오직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오직 격전을 거쳐 성장해 온 아크만이 사용할 수 있는 배 수의 진! 안델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 "헉, 이, 이럴수가!" 안델은 황급히『간파』주문서를 찢었다. 그리고 이내 아크의 남은 마나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 을 불어 냈다. 고양이의 눈과 다크 블레이드를 두 번이나 연 발한 덕에 마나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반면 아크의 생 명력은 이제 5퍼센트 남짓, 안델은 아직 15퍼센트나 남아 있 었다. "흥, 네놈의 발악도 여기까지군. 마나가 바닥났으니 이제 스킬도 못 쓰겠지." "과연 그럴까?" 아크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환몽의 핏빛 망토!" 돌연 붉은 망토가 확 퍼지며 아크를 감쌌다. 동시에 아크의 생명력이 100회복되었다. 갑자기 생명력 이 회복되자 안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였다. 그 뒤로 안델이 휘두르는 검은 모두 망토가 흘려 내 버렸다. 10초간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환몽의 핏빛 망토의 능 력! 몬스터 사냥에서는 별 의미가 없지만 상대가 유저라면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안델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서, 설마…… 그 망토가 레어 급 아이템이었단 말인가?" 그렇다. 아크가 망토를 걸친 건 단순히 스탯을 숨기기 위 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밤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망토의 능 력을 사용하기 위해 아크는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어 왔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안델이 황급히 회복 포션 을 꺼내 들었다. 아크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어렸다. '안 돼. 망토의 효과는 벌써 끝났다. 놈이 포션을 마셔 버 리면 승부가 어떻게 될지 몰라.' "마령 소환, 박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놈을 막아라! 안 그러면 열흘 동안 쉬지 않고 음식을 먹여 버리겠다!" "으아악! 싫어!" 박쥐가 소환되며 안델에게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막 회복 포션을 마시려던 안델의 입에 쑤셔 박혀 버렸다. "잘했다. 박쥐!" 아크는 검투술을 펼쳐 안델을 넘어뜨렸다. 그리고 양손을 밟아 누르고 검을 치켜들었다. 아크는 차갑게 웃어 주고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꽂았다. "커헉, 너, 너 이 새끼…… 두고 보자!" 안델은 그 말을 끝으로 힘없이 늘어졌다. 강제 종료된 것이다. -레벨44의 카오틱 플레이어를 쓰러뜨리셨습니다. 명성+30 아크는 참았던 숨을 단숨에 털어놓았다. 드디어 복수를 했다. 그것도 11레벨이나 높은 상대에게!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자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쓸고 내려갔 다. 잠시 쾌감을 음미하던 아크는 몸을 돌렸다. 승자에게만 주어지는 권리,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서다. 카오틱 유저에게는 많은 페널티가 추가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사망 시 장비를 잃어버리는 것. 보통 유 저가 죽을 때는 일정 확률로 장비 아이템을 떨구지만, 카오 틱 유저는 죽을 때마다 무조건 하나의 장비 아이템을 떨군 다. 역시나 안델이 죽은 자리에도 강철 그리보가 떨어져 있 었다. "정보창!" 강철 그리브 방어구 타입:강철 신발 방어력:50 내구력:7/80 무게:30 사용 제한:힘150이상 질 좋은 강철을 제련해 만든 강철 그리브. 움직임이 둔해지지만 가주 제품에 비할 수 없는 탁월한 방어력을 기대할 수 있다. 민첩-5, 전사 계열이 사용시 페널티 무효. 강철그리브를 챙긴 아크는 마정석 골렘이 떨군 아이템도 확인했다. 마정석 골렘의 머리(마법) 방어구 타입:돌 투구 방어력:40 내구력:50/50 무게:40 사용 제한:힘135이상 신비한 마정석의 힘이 깃든 골렘의 머리. 재질은 철퇴를 막아 낼 정도 로 강하고, 신비한 힘으로 정신을 맑게 만들어 준다. 옵션:마나+100 마정석:마정석골렘이 체내에서 키우던 마나가 담긴 광물 아크가 마정석을 주어 들었을 때였다. 문득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새로운 정보창이 열렸다. 고대 유물에 대한 지식으로 마정석의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마정석은 고대 유물 중 하나인 혈정석입니다. 혈정석은 치유의 힘을 지닌 고대의 식물성 광물로, 특수 제작된 골렘 의 체내에 파편을 심어 두고 식량을 제공하면 저절로 성장합니다. 골 렘의 식량으로는 마나를 가진 인간을 사용하기에 오래전에 생산이 금 지되었습니다. 고대 유물 마정석의 정보를 습득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식+5 지능이 5. 명성이 30 상승했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됐습니다. 연금술사 레이몬드의 부탁=혈정석의 비밀 레이몬드가 구해 달라고 부탁한 광물은 고대 유물의 하나인 혈정석이 었습니다. 아무래도 레이몬드는 의도적으로 마정석 골렘의 체내에 혈 정석을 심어 키우고 여행자를 제물로 바친 모양입니다. 더 많은 희생 자가 갱기지 않도록 레이몬드를 추궁해 자백을 받아 내고 작센의 경비 대에 알려야 합니다. 난이도:G 아크는 잠시 혈정석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직 안델의 시체는사라지지않았다. 유저 간의 전투에서 사망하면 24시간 동안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접속하지도 못 하는 페널티가 적용된다. 온라인 게임에서 여러 번 문제가 되엇던 무한 복수극을 차 단하고, 승자에게 승리를 만끽할 시간을 주려는 배려였다. 그러나 이런 페널티는 아크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두고 보자고? 훗, 웃기는 소리. 넌 건드릴 상대를 잘못 골랐어." @ 아크는 곧바로 작센 성으로 돌아왓다. 시간에 맞춰 병참 근처에서 기다리자 하얀빛과 함께 안델 이 나타났다. 그 역시 던전과 가가운 작센을 부활 장소로 지정해 놓은 것이다. 신발을 빼앗겨 판금 갑옷에 맨발로 서있는 꼴이 가 관이었다. 아크를 발견한 안델이 움찔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어 댔다. "너, 너 이 새끼……!" "왜 그리 놀라? 두고 보자며?" 아크는 벌떡 일어나 안델에게 달려들엇다. 마을 바로 앞에서 유저가 상무을 벌이는 데도 병사들은 보 체 만 체 했다. 그게 바로 카오틱 유저가 받는 또 다른 페널티였다. 원래 마을 근처에서 유저들끼리 싸움이 붙으면 병사에게 공격당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보통 유저가 먼저 카오틱 유저를 공격하는 경우다. 이런 싸움은 보통 유저가 훨씬 유리하다. 보통 유저가 밀릴 때는 마을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러나 카오틱 유저는 마을에 들 어갈 수 없어 쫓아 들어갈 수도, 반대로 도망갈 곳도 없다. 유저들이 카오틱이 되기 무서워하는 이유다. 아크는 안델을 정신없이 몰아쳤다. 이전과 같이 빈사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치명타를 먹이고 급할 때는 망토의 힘으로 무적 상태가 되었다. 유저에게 죽으면 스탯 페널티가 2배다. 즉, 안델은 모든 스탯이 2나 깎였다는 말. 더불어 강철 그리브까지 빼앗겨 방 어력이 낮아진 안델은 맥없이 무너졌다. 그는 아크처럼 진짜 실력이 아닌, 스탯와 아이템의 힘으로 버티던 유저인 것이다. "개새끼, 너 죽었어……." 안델이 같잖은 말을 지껄이며 이번에는 갑옷을 떨구었다. 아크는 피식 웃으며 아이템을 챙겼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 다니며 사냥하다가 정확히 24시간이 지나면 부활 장소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안델은 설마 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댜. 단단한 착각이다. '웃기지마,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모든스탯 -4에 신발과 갑옷까지 없는 안델을 상대하는 데에는 굳이 망토의 힘도 필요 없었다. 고양이의 눈과 다크 블레이드 콤보가 연속으로 들어가자 맥 없이 쓰러졌다. 놈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다음에는 24시간이 지나도 접속하지 않았다. '하, 누가 더 인내심이 강한지 어디 한번 붙어 보자는 거 지? 놈이 응시자라면 며칠이나 접속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 할걸.' 아크는 난생처음으로 회사에 일주일간 휴가까지 신청했다. '당하면 반드시 갚아 준다.' "저희 말 좀 해요. 제가 사과할게요. 예?" 30시간 만에 접속한 안델이 저자세로 말을 걸어왔다. 귀를 막고 두들겨 패자 장갑을 떨궜다. 그렇게 두 번 더 죽 이자 안델은 완전히 알몸이 되어 버렸다. 급기야 안델이 사정을 해 왔지만 아크는 입도 뻥긋하지 않 고 묵묵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안델이 접속하면 곧바 로 전투를 걸어 장비 교체, 접속 종료를 못하게 막은 뒤, 맹 공격을 퍼부어 바닥에 눕혀 버렸다. 아크는 휴가 중에 여섯 번을 더 죽여 총 여덟 번이나 죽였 다. 안델은 판금 방어구 세트는 물론 검까지 빼앗겼다. 그리 고 일곱 번째부터는 떨굴 장착 아이템이 없어 가방에 들어 있는 잡템을 떨구기 시작했다. 안델은 스탯을 96이나 잃어버리고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 어 버렸다. 반면 아크는 기다릴 때를 제외하고는 사냥에 전 념해 오히려 레벨이 2나 더 올랐다. 더 이상 싸움이라기보다 는 일방적인 살육에 가까워졌다. 결국 안델은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듯, 꼬박 이틀이 지난 뒤에야 접속했다. 이제 안델은 쥐를 잡아서 96스탯을 복구하든지, 게임을 접든지 선택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어느 쪽을 선택하 든 시험에 합격하기는 매우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좋아, 아직 부족하지만 이번에는 이쯤에서 봐주지." 아크는 그제야 선심 쓰듯 부활장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눅 든 자포자기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안델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다음에 또 내 눈에 띄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이 번에는 이쯤에서 그만두지만 다른 곳에서 또 눈에 띄면 스탯 이 1이 될 때까지 죽여주겠어." 안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렸다. ACT 9 두 여자 흐릿한 빛 무리와 함께 새로운 유저가 뉴 월드에 들어섰 다. 이름은 로코. 귀엽게 생긴 여자 캐릭터였다. "와, 와, 이게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건가?" 로코는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 다. 하늘과 땅, 산과 들판. 실제와 같은 , 아니 실제보다 몇 배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녀 주변에는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둥그렇게 늘어서 있었다. 테마 파크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중세 유럽 의 모습 그대로였다. 로코는 불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 놓았다. 그리 고 이내 깡충거리기도 하고, 양팔을 빙글빙글 돌려 보다가 새삼스럽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정말 내가 유니트 안에 들어와 있는 건가? 움직이는 것 도 실제하고 다를 게 하나도 없잖아? 게임비가 비쌀 만도 하 네. 어? 이게 내 얼굴?" 로코는 어린애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문득 창가에 비친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처럼 예쁜 외모.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에헤헤, 좋아. 성형도 완벽하게 된 것 같고, 그럼 이제 뉴 월드라는 걸 시작해 볼까?" 기세 좋게 말해 놓고 로코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뭐부터 해야 되지?" 그때, 로코의 뒤쪽에서 힐끔거리던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자네, 이곳은 처음인가?" "네? 저요?" 갑자기 말을 걸어오자 로코는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노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래. 자네 말이네. 이름이 뭔가?" "로코라고 해요." "로코 양, 혹시 도움이 필요한가?" "네, 음…… 일단 뭐 좀 여쭤 볼게요. 여기가 하룬 마을 맞죠?" "맞네, 여기가 슈덴베르크 왕국의 개척민 마을 하룬이네. 나는 촌장인 한센이지." "아, 한센 할아버지!" 로코는 손뼉을 치며 깡충거렸다. 그리고 마치 구경하듯 한센 주위를 돌며 이리저리 훑어보 았다. 한센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왜, 왜 이러는 건가?" "아, 죄송해요. 말로만 듣던 한센 할아버지를 직접 보니 신기해 서요."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들었나?" "네, 현우 오빠…… 아, 아니지. 아크 오빠에게 들었어요." "아크! 자네는 아크와 아는 사이인가?" "네. 네, 할아버지도 아크 오빠를 기억하세요? 여기 왔었 다고 들었는데." "알다마다! 내가 어떻게 아크를 잊어버리겠나? 그는 근래 에 보기 드물게 예의도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훌륭한 청년이었지." "그죠? 그죠?" "또한 용맹함도 남달랐네. 모두가 외면하던 마을의 위기 를 구해 줬던 적이 있었지. 지금도 당시 일이 기억에 선하군. 아, 그런데 자네는 아크와 무슨 사이인가?" 한센의 질문에 로코는 그저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저기요, 아크 오빠는 어디 가면 만날 수 있어요?" "글쎄? 마지막에 봤을 때 작센 성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 네. 하지만 시일이 많이 지났으니 아직 거기 있을지는 모르 겠군. 그를 왜 찾는 건가?" "얼굴 본 지 꽤 됐거든요. 저번 주에 갑자기 휴가를 내고 마트에 안 나와서……. 혹시 여기 들어오면 만날 수 있을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이참에 한번 해 보고도 싶었고요." "마트?" 한센은 생전 처음 듣는 단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코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모르셔도 돼요. 그런데 작센 성에는 어떻게 가야 하죠?" "설마 지금 가겠다는 건가?" "왜요? 지금은 안 돼요?" "허허허, 이보게 로코 양, 작센 성은 여기서 며칠을 꼬박 걸어야 도착할 만큼 굉장히 멀리 떨어진 성이네. 게다가 길 은 험하기 짝이 없고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자네 같 은 초보 여행자는 마을에서 몇 걸음 떼 놓기도 전에 늑대 밥 이 될 걸세. 아크와 아는 사이라니 좋은 뜻으로 충고하겠네. 작센 성에 가고 싶다면 먼저 그만한 경험을 쌓게." "경험은 어떻게 쌓는 건데요?" "원한다면 내가 자네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소개해 주겠네." '아, 이게 퀘스트라는 건가 보구나!' "네, 그럼 일할게요." 로코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러나 뒤이은 한센의 말에 대번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한센이 준 퀘스트는 다름 아닌 그녀가 가장 무서워하는 쥐를 잡으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로코는 이내 다부지게 입을 다물고 두려움을 떨쳐 냈다. '치, 나 바보 아니야? 뭘 겁내는 거야? 아무리 실제 같아 도 여긴 게임 속이잖아. 그래, 쥐라고 해 봐야 미키마우스나 피카츄 같을 걸 거야. 그렇게 귀여운 걸 때려잡아야 하는 게 좀 찜찜하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지. 게임이니까.' "네, 다녀올게요." 로코는 귀엽게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고 주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다시 크레이든과 아크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창 고에 들어섰다. 순간 그녀는 뉴 월드의 무시무시한 현실성에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꺄악! 이, 이게 뭐야? 이건 진짜 쥐보다 더 크고 무섭게 생겼잖아?" 창고를 배회하던 쥐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로코는 대번에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며 와락 몸을 돌렸다. "모, 못 해! 이런 쥐와 싸우라니…… 나, 난 못 해! 안 할 래요! 크레이든 아저씨, 저 나갈래요! 문 좀 열어 주세요!" 그때, 로코가 짚은 상자가 기우뚱거리다가 무너지며 문을 막아버렸다. 동시에 로코의 눈앞에서 시뻘건 불빛이 번쩍였다. -쥐에게 공격당했습니다. 데미지 1. 그러나 로코에게는 데미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팔뚝만 한 쥐가 코앞까지 다가와 이를 드러낸다. 그게 데 미지를 받는 것보다 몇 배나 공포스러웠다. 로코는 기절할 듯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러대며 근처에 쌓 여 있는 상자 더미로 기어 올라갔다.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 동 구르던 로코는 뒤늦게 탈출 방법이 생각났다. "마, 맞아. 이건 게임이야. 나가면 돼. 접속 종료!" 게임이고 뭐고 오직 쥐가 득실거리는 창고를 벗어나고 싶 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짤막한 메시지창이 떠오르며 그녀 의 최후의 희망까지 앗아 가 버렸다. -전투중에는 종료할 수 없습니다. 전투를 끝낸 뒤 다시 시도해 주십 시오. "말도 안돼! 이럴 수는 없어! 살려주세요. 아악! 살려 주 세요. 엉엉!" 로코는 기어 올라오는 쥐를 간신히 발끝으로 떨어내며 펑 펑 울어 댔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 살려 달란다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로코는 그대로 창고에 갇힌 채 접속 종료 도, 탈출도 못 하며 눈이 팅팅 붓도록 울어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목이 쉬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때쯤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숙녀의 통곡(초급, 액티브):슬픔이 가득한 숙녀의 통곡은 이성이 없는 적 에게조차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또한 아군에게는 숙녀를 위해 불 속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단, 플레이어가 큰 공 포를 느껴야 발동됩니다. 적 30초간 공격 속도, 이동속도, 사기가 20% 저하, 아군 30초간 공격 속도, 이동속도, 사기가 20% 상승. 마나 소모:20 @ 그 무렵, 아크는 히죽거리며 작센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제야 좀 속이 후련하군." 게임을 하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찜찜함이 사라 졌다. 잘못을 용서하는 건 저으이가 아니다. 나쁜 짓을 하고도 실 수였다고 질질 짜면 금세 용서해 주고 마니까 나쁜 놈들도 정신을 못차리고 정의 사회 구현이 안 되는 거다. 나쁜 놈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당했으면 배로 갚 아 주는 것, 그게 바로 정의다. 그게 아크의 인생관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크는 정의를 실현했다. 안델이 24시간이 지나도 접속하지 않으면 접속할 때까지 버티는 바람에 요 이틀은 한숨도 못 잤다. 그러나 조금도 피 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아갈 정도로 상쾌했다. 역시 저의란 좋은 것이다. '자, 이제 퀘스트를 해결하러 가 볼까?' 아크는 활기찬 얼굴로 레이몬드의 집을 찾았다. 아크가 들어서자 레이몬드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엇! 자, 자네…… 돌아왔군. 설마…… 그 광물을 가지고 온 건가?" 아크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혈정석을 꺼내 탕, 소리가 나도록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혈정석을 보는 레이몬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꽤나 놀라시네요. 내가 돌아온 게 그렇게 실망스럽습 니까?" "아, 아니. 그, 그럴리가 있나?" "하긴 먹이로 보낸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으니 실 망스럽기도 하겠죠."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먹이라니?" 레이몬드는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나 불안 한 눈빛은 숨기지 못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아크는 느긋한 표정으로 천천히 그를 궁지로 몰았다. "당신은 그 동굴에 자주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당 연히 골렘의 존재도 알고 있어야 정상이죠. 하지만 내가 동 굴로 갈 때까지 골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골렘을 무찌르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 니다. 아니, 무찌르기 힘들다고 판단했으니까 나를 보냈겠 죠. 애초에 나를 보낸 이유는 체내에서 혈정석을 키우는 골 렘에게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서였으니까." 혈정석이라는 단어에 레이몬드가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대, 대체 어떻게 자네가 혈정석이라는 말을……?" 그러나 레이몬드는 곧바로 시선을 피하며 변명처럼 중얼 거렸다. "나,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늕지 모르네." "그렇습니까?" 아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빙글 돌아섰다. "알겠습니다. 그럼 영주님을 찾아가서 물어봐야겠군요." "자, 잠깐 기다리게!" 레이몬드가 화들짝 놀라며 아크의 팔을 잡아챘다. "대, 대체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크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꾹 찔러보았다. 레이몬드는 자포자기한 듯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불 어 냈다. "나도, 나도 어쩔 수 없었네. 혈정석을 알고 있다면 그게 단순한 광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겠지. 맞네, 혈정석은 고대의 힘을 간직한 신비한 광물이지. 나는 오래전에 우연히 혈정석을 손에 넣고 그 신비한 힘에 매료되었네. 결국 더 많 은 지식을 원한 나머지 혈정석을 키우기 위해 골렘의 체내에 심게 되었지. 그리고 자네와 같은 이방인들을 이용해 왔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군. 설마 이방인 중에 혈정석을 알 아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한번 무너져 버리자 레이몬드는 모든 걸 술술 털어놓았다. 그가 씁쓸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에게 말한 걸 경비대에도 모두 털어놓겠네. 대신 며 칠만 말미를 줄 수 없겠나?" '미련이 많은 사람이군.' 아크가 코웃음 치며 거절하려던 찰나였다. 문득 레이몬드의 방에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 다. 레이몬드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크가 따라 들어가 보니 작은 침대에 병색이 완연한 어린 아이가 기침을 하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울먹이는 얼굴로 아이의 손을 잡았다. "오오, 아가. 아빠 여기 있다." "아, 아빠……. 콜록, 콜록!" 아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거칠게 기침을 해 댔다. 아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당신……." "더 이상 묻지 말게. 다 끝난 일이네. 어차피 혈정석이 불 완전한 상태에서 골렘이 부서져 버렸으니. 아니, 어쩌면 혈 정석이 완성됐다고 해도 병이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 자 네를 원망하지 않네. 그리고 며칠만 기다려 주면 내 꼭 경비 대에 자수하겠네. 부탁이네. 이 못난 아비가 불쌍한 아들 녀 석의 마지막 길이라도 지키도록 허락해 주게." 아크는 애원하는 레이몬드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왜 자꾸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 확실히 레이몬드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아크 역 시 어머니가 완쾌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 만 약 같은 상황이란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NPC다. 죽어가는 소년 역시 NPC다. 알고 있다. 그냥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을 받으면 그뿐이 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드 는 걸까? 왜 병석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가 겹쳐 보이는 걸 까 왜 그냥 돌아서서 경비대를 찾아가지 못하는 걸까? '빌어먹을……!' "비켜." 아크는 거칠게 레이몬드를 밀어내고 아이의 손을 잡았다. "괜찮다. 네 아버지의 바람대로 너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 을 거다. 밖에 나가서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다니며 가슴에서 부터 우러나는 웃음을 터뜨릴 수 있을 거다." 간병 스킬을 사용했을 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손에 들려 있던 혈정석이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 가루에서부터 한 줄기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아이의 몸에 흡수되었다. 동시에 아이의 몸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한순간에 기침이 멎고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간병이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이 상대에게 전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됩니다. 때로는 어떤 영약이나 마법도 치료할 수 없는 병조차 그 런 진심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진심 어린 간병을 받은 아이는 완쾌될 것이고, 당신이 바라는 대 로 활기차게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에게 은인의 선행을 전하게 될 것 입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새로운 스탯, 애정이 생겼습니다(+10) 애정이 필요한 모든 행동에 수치만큼 성공률과 효력을 올려 줍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며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선행을 했 을 때 상승합니다. *명성이 50 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 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간병인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이, 이럴수가!"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얼떨떨한 사람은 아크였다. 그저 보고 있기가 안쓰러워 한번 사용해 본 것뿐인데 설마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몰랏다.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이 내 눈물을 펑펑 흘리는 레이몬드를 보기가 무안해져 얼른 방 을 나가 버렸다. "난 가 보겠소. 경배대에 자수를 하든 말든 알아서 하시오." '젠장, 다 끝낸 퀘스트를 포기하다니. 내가 미쳤지." 솔직히 아까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크는 금세 머리를 흔들었다. 어차피 난이도 G의 퀘스트다. 경비대에 알려 봐야 그저 그런 보상밖에 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크는 이미 생각지도 못했던 보상을 받았다. 모든 스탯 +2! 덤으로 찜찜한 기분 도 사라졌으니 이제 퀘스트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퀘스트를 지워 버릴까?' "자, 잠깐 기다려 주게!" 집을 나서는데 레이몬드가 헐레벌떡 쫓아 나왔다. 그리고 아크의 손을 꼭 잡으며 뭔가를 건네주었다. 하나는 공구 상자의 재료인 아이라드의 가루였고, 다른 하나는 옅은 빛이 감도는 두툼한 책자였다. "아이라드의 가루를 받아 가야 하지 않나? 그리고 이 책은 우리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보네. 나는 아직 이 내용을 제대로 해석도 못 했지만 자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이런 것밖에 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부탁이니 제발 받아 주게." 이런 걸 마다할 아크가 아니다. 날름 받아 챙기자 레이몬드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받아 줘서 고맙네. 그리고 자네에게 약속한 대로 아들 녀 석이 몸을 추스르게 되면 꼭 경배대에 자수하겠네. 자네가 고발할 게 무서워서가 아니라, 아들 녀석에게 떳떳한 아버지 가 되고 싶어서네. 그러니 내게는 더 이상 마음 쓰지 말게."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 열렸다. 혈정석의 비밀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연금술사 레이몬드의 부탁 카테고리 퀘스트의 숨겨진 결말을 찾아냈습 니다. 이로써 연금술사 레이몬드는 진심으로 회계하고 죄를 뉘우쳤습니다. 자수해 벌을 받겠다는 그의 약속은 지켜질 것입니다. 특별 보상:경험치+5000, 레이몬드의 비전서(레어), 명성+50 레이몬드의 비전서(레어)로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마법 복원(특수, 초급, 액티브):마나를 사용해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본래 의 형태로 복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심자가 사용하면 아이템의 최대 내구도가 10%씩 깎입니다. 깎인 내구도는 소멸합니다. 등급이 올라가면 일반 아이템의 온전한 복 원이 가능하고, 더 높은 수준의 마법 아이템을 수리할 수 있게 됩니다. 마나 소비:10 '숨겨진 결말!'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상상도 못 했는데, 실은 아이의 기침소리가 바로 퀘스트 의 분기였던 모양이다. 덕분에 아크는 레벨이 1이 올라가고, 그토록 아쉬워하던 수리 스킬까지 배우게 되었다. 비록 일반수리와 달리 내구도에 페널티가 작용하지만, 등 급을 올리면 온전한 수리도 가능하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 않 은가. 어쨌든 전사만 배울 수 있는 배우게 되었다. 역시 착한 일은 하고 볼 일이다. 게다가 아직 아크가 노리던 진짜 보수는 받지도 못한 상태 였다. 아크가 아이라드의 가루를 가지고 돌아가자 노튼이 반 색했다. "오오, 구해 왔구먼. 고맙네. 이제 영주성에 일반과 고급, 100개씩의 공구상자를 납품할 수 있게 되었네. 납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네는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자, 이 건 자네 몫이네. 자네에게 깎아 주기로 했던 8퍼센트를 돈으 로 계산하면 200골드, 거기서 일전에 고급 공구 상자 2개 값 을 제한 나머지네. 고급 공구 상자 11개." 마법 복원이 아직 초급이라 공구상자도 필요했다. 라크는 공구상자를 챙겨 넣고 광장으로 향했다. @ 광장의 게시판에는 수많은 전단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 다. 길드 홍보 전단, 파티를 모집하는 전단, 심지어 현상 수 배 전단도 있었다. 카오틱 유저의 악명이 올라가면 영주나 경비대장 NPC가 이렇게 현상 수배를 내리기도 한다. 대개는 해결하는 것도 NPC지만, 현상 수배범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유저도 존재한다.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편하 게 마법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아크가 유심히 바라본느 전단은 다른 것이었다. 소식지, 뉴 월드의 지역 신문과비슷한 전단이었다. 소식 지에는 새로 발견된 지역이나 던전에 대한 간략한 정보, 혹 은 여러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벤트 따위가 적혀 있었다. 아크는 레벨을 1~2개만 더 올리면 작센 생활을 정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괜찮다 싶은 지역 몇 군데를 골라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받아 놓은 퀘스트가 없으니 목적지를 정하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마을 한쪽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광장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와, 저 사람들이 이번에 타르샤의 미궁으로 원정 간다던 공격대인가?" "듣자니 퀘스트 난이도가 ++C급이라던데?" "엄청나군. 나는 아직 E급 퀘스트도 받아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받아도 못하지. 레벨이 다르잖아." "저 장비들 좀 봐. 다 마법, 레어도 도배했잖아." "에휴, 나는 언제나 저런 거 하나 걸쳐 보나." "저기 봐, 아란 경이다!" 떠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다가오는 사람은 백마를 탄 기사였 다. 척 보기에도 레어 아이템임을 알 수 있는 번쩍이는 판금 갑옷을 풀 세트로 걸치고 금발을 휘날리는 미남 기사. 그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아란 경은 숨겨진 직업 중에 하나인 홀리 나이트로 전직 했다는 거 같아." 홀리 나이트는 알려진 몇 안 되는 숨겨진 직업 가운데 하 나였다. "그래서 NPC처럼 보이는 병사들이 많은 거군." "우, 저 아이템 좀 봐. 뉴 월드 오픈한 지가 언젠데……." "오픈하고 한 달이 지나서 시작했대. 우리보다 느리지." "함께 공격대에 참가한 사람들도 장비가 장난이 아니야." 공격대는 한 파티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이도의 퀘 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개의 파티가 모인 걸 말한다. 보통은 유저로 구성되지만, 퀘스트 내용에 따라서 NPC가 합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히 홀리 나이트처럼 명성이 높은 캐릭터에게는 NPC의 합류 확률이 올라간다. '저게 소문이 자자한 홀리 나이트로군.' 아크도 여기저기 떠도는 소문만 들었을 뿐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다크 워커라는 직업에 만족하고 있지 만, 아크도 처음에는 그런 전사형 숨겨진 직업을 선택하고 싶었다. 물론 어떤 계열이든 숨겨진 직업 퀘스트를 찾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지만……. 아크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행렬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검은 로브에 후드를 턱까지 눌러쓴 여자 마법사였다. "혹시 김현우 씨 아니세요?"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게임에서 본명으로 불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여자라니? 누구인지 도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맞는데…… 누구세요?" "아, 역시 맞군요. 얼굴이 똑같아서 혹시나 했어요." "저를 아세요?" 마법사가 푹 눌러쓴 후드를 벗었다. 아크는 미간을 찡그리며 시선을 모았다. 마법사는 귀가 뾰 족한 여자 엘프였다. 분면 처음 보는 캐릭터다. 하지만 어딘 지 낯익게 느껴졌다.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가물가물했다.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무안한 표정으로 웃 었다. "아, 역시 잘 못 알아보시네요. 역시 성형을 너무 심하게 했나?" 웃는 얼굴을 보고서야 아크는 그녀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 혹시 면접 때 봤던?" "네, 강미수예요. 여기 이름은 레리어트고요." "맞군요, 제 캐릭터 이름은 아크입니다." 아크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째서 바로 얼굴을 기억해 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아크는 그동안 몇 번 그녀를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많았다. 낯선 장소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고 응원까지 해 줬던 여자 에게 호감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하물며 그 여자가 연예인 뺨치게 생긴 미인임에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뿐이었 다. 다시 만날 기회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우연히, 그것도 그녀가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걸어오다니……. "엘프로 시작하셨군요." "네, 좀 이상하죠?" "아뇨, 잘 어울려요." 빈말이 아니었다. 엘프에 그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지 싶다. 아크의 칭찬에 레리어트가 뾰족한 귀를 만지작거리며 얼 굴을 붉혔다. "그런데 이번 공격대에 참가하시나 보네요." "네, 아직 레벨은 안 되는데 아는 분 소개로 들어갔어요." "레벨이 몇인데요?" "아는 분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도 아직 50밖에 안 돼요." 레리어트는 부끄러운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아크는 숨이 턱 막혔다. "5, 50요?" "네. 왜 그러세요?" "아, 아뇨. 생각보다 레벨이 꽤 높으시네요." "아크 님은 레벨이 몇이나 되시는데요?" "저는 이제 35……." 개미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하자 오히려 레리어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말씀 드리기는 미안하지만 아크 님은 조금 심하네 요. 사실 저도 응시자들 중에는 레벨이 낮은 편이에요. 괜찮 다 싶은 분은 대부분 70대는 되셨어요. 공격대의 리더인 아 란 님도 응시자인데 이번에 레벨 75가 넘으셨어요. 솔직히 아크 님의 레벨로는……." 뒷말은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아마도 글로벌 엑서스의 시험에 합격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리라. 대강 알고 는 있었지만 막상 앞에서 들으니 맥이 풀려 버렸다. 그때, 레리어트의 뒤로 백마 탄 기사가 다가왔다. 홀리 나이트 아란이다. "레리어트 님,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아는 분을 만나서 잠시 얘기 좀 하느라고요." "아는 분?" 아란이 약간 불편한 눈으로 아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크 님도 응시자예요." "그럼 레벨이 좀 되시겠군요. 이번 퀘스트는 꽤 난이도가 높아서 사람이 부족하던 참인데 잘됐군요. 공격대에 합류하 시겠습니까?" "아뇨, 아크 님은 아직……." 레리어트가 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아란에게 귓속말로 뭔 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아란의 눈가에 조소의빛이 스쳐 지 나갔다. 승자가 패자를 조롱하는 눈빛이다. "뭐,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요. 실례했습니다." 아란은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기수를 돌렸다. "자, 그럼 가시죠. 레리어트 님." "아, 네. 그만 가 볼게요. 열심히 하세요." 레리어트는 씁쓸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세웠다. 아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휑한 기분을 느꼈 다. 그녀의 모습과 함께 희망도 멀어져 가고 있는 느낌이 들 었다. 사실 아크는 요 며칠, 우쭐해 있었다. 다크 워커라는 직업에도 익숙해졌고, 자신보다 한참을 앞 서 나갔던 안델을 박살 냈다. 조금 전에는 퀘스트의 숨겨진 결말까지 찾아내 기대 이상의 보상까기 받았다. 지나치다 싶 을 정도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바라던 글로벌엑서스의 시험에 합격할지도 모른다 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건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했다. 정작 아크의 상대인 다른 응시자들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서 ++C난이도의 퀘스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막연히 상상 해 왔던 것 이상의 차이였다. 그렇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그들과 달리 아크는 하루 종일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형 편이 아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룬 마을에서 보름이나 시간을 허비했으니 이 정도 차이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젠장, 기분 참 지랄 맞군.' 참기 힘든 기분이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단순히 다른 응시자들보다 뒤떨어졌다는 이유 때문은 아 니었다. 아란의 조롱 섞인 눈초리. 그리고 그를 따라가던 레 리어트. 그 장면을 떠올리자 마치 아란에게 레리어트를 빼앗겨 버 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지 게임 속에서의 일이지만, 뉴 월드는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게임이다. 때문에 패배감 도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이대로는 안 돼.' 현우는 아란이 이끄는 공격대를 본 뒤로부터 조급함을 떨 쳐 낼수 없었다. 면접회장에서 하명우는 이번 시험이 레벨만을 보는 게 아 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게임에서 레벨은 절대적인 수치 가운 데 하나다. 레벨이 높으면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다. 당연히 더 좋은 아이템을 얻을 기회가 많아지고, 나아가 더 넓은 지 역 그리고 더 높은 난이도의 퀘스트를 접할 수 있다. 결국 모 든 의미에서 레벨은 절대적인 수치였다. 거기서 뒤처졌다는 것은 곧 시험 탈락을 의미한다. 따라잡아야 한다. 살아남을 방법은 그것뿐이다. '게임 시간을 늘릴 방법이 없을까?' 언제나 그랬듯이 문제는 시간이다. 만약 다른 응시자와 같은 시간동안 게임에 몰두할 수 있 다면 따라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현우가 하루 중 게임 에 투자할 수 있는 것은 고작 6시간. 그것도 잠을 줄여 가며 피로와 싸워야 가능한 시간이다. 솔직히 글로벌엑서스의 시험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험에 떨어지면 뉴 월드도 못 하게 된다. 한 달 뒤가 될지, 두 달 뒤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결국 애지중지 키우던 아크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다. 지금가지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란!' 그에게 무시당한 채 잊히는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아크는 현우 자신이다. 아크를 무시하는 건 현우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죽어라 레벨을 올려서 안 델처럼 홀라당 벗겨 놓고 마음껏 비웃어 주고 싶다. 그러나 게임 때문에 현실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활비야 글로벌엑서스에서 지급되는 돈으로 어찌어찌 된 다지만, 어머니 병원비는 현우가 돈을 벌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받는 월급과 세 곳의 아르바이 트비, 글로벌엑서스에서 지급되는 돈으로 간신히 충당하는 실정 아닌가? '그렇다고 여기서 더 빚을 늘릴수도 없고…….' 진퇴양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반년! 아니, 몇 달만이라도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이 없을까?' 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며칠 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게임 아이템 사기 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그러고 보니 게 임 아이템을 파는 것만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 얘기는 종종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이템 거래가 완전히 합법화되어 이제 하나의 시장으로 자리잡은 시대다. 현우 역시 학창 시절 온라인 게임으로 아 이템을 팔아 용돈벌이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걸 생활비 와 연관시키지 못했을 뿐, 아이템이 돈이 되는 것만은 확실 하다. 뉴 월드 같은 게임이라면 아이템도 더 비싸게 팔릴 게 분 명하다. '어쩌면 아이템만으로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지금 내 레벨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큰돈 은 되지 않겠지만……. 어차피 뉴 월드는 오픈한 지 얼마 되 지도 않았어. 내 레벨에서 구하는 아이템이 필요한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래, 한번 알아보기나 하자.' 현우는 예전에 거래했던 거래 사이트를 찾아 들어갔다. 역시 예상대로 뉴 월드의 아이템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 고 있었다. 그 목록을 검색하며 시세를 알아보던 현우의 입이 떡 벌어 졌다. "뭐, 뭐야? 정말 이게 게임 아이템의 가격이야?" 뉴 월드의 아이템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 었다. 현우가 게임을 할 때도 수백, 수천만 원짜리 이이템이 거 래되고는 했지만, 그건 최고 레벨의 아이템에 한해서였다. 그런데 뉴 월드는 아예 수준이 달랐다. 1골드의 가격은 현찰 1만 원 그리고 레벨 20~30대의 좀 쓸 만한 마법 검이라도 최저 수십에서 백만 원 이상에 거래 되고 있었다. 레어나 유니크는 능력치에 따라서 수백에서 천만 원까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끼니 를 거르기도 하는 현우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는 세계였다. '1골드에 1만 원……. 그럼 내가 오늘 구한 공구 상자만도 200만 원!' 기가 찰 노릇이다. '혹시 내가 가진 아이템도 비싸게 팔릴까?' 현우는 고민하다가 환몽의 핏빛 망토를 경매에 올려 보았 다. 유저와의 싸움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20레벨의 유니크 아이템. 현우가 아끼는 보물이었지만, 딱히 팔아서 돈이 될 만한 다른 아이템은 없었다. 그러자 불과 몇 분만에 수백건의 입 찰이 들어왔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나자 가격이 400만원 까지 치솟았다. 현우의 두 달치 월급, 한 달 보름치 병원비였다. 전신이 아득해진다. '맙소사, 대체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유니크라고는 해도 20레벨 제한이고 저주까지 걸려 있다. 그런데 1시간 만에 400만원이라니! 설마 그런 아이템 하나 에 이렇게까지 엄청난 가격이 매겨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현우는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바로 글로벌엑서스의 응시자들이다. 원래 뉴 월드의 아이 템이 비싸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응시자들 이 돈 자루를 흔들며 몰려드는 바람에 한 달 사이에 저레벨 아이템까지 가격이 몇 배나 폭등해 버렸다. 안덺ㄴ 해도 그렇다. 평범하게 골드를 벌어서는 회복 포션 을 물처럼 마셔 댈 수 없다. 그 무자비한 사치의 힘은 바로 현찰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현우에게는 그 모든 상황이 구원 의 빛처럼 느껴졌다. '이거다. 바로 이거였어!' 오직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법! '게임에서 돈을 벌면 되잖아!' 막상 방법을 찾고 보니 오히려 지금가지 몰랐던 게 분통이 터졌다. 결국 환몽의 핏빛 망토는 450만 원에 팔렸다. 안델의 판금 방어구 세트도 모두 경매로 팔아 버렸다. 방 어력은 좋았지만 전사 이외의 직업이 사용하기에는 페널티 가 너무 많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 방어구인데도 모 두 정리하니 250만원 이나 되었다. 막상 팔리고 나니 아깝기 그지없었지만, 투자라고 생각하 고 잊어버렸다. 하루 종일 게임에 몰두할 수만 있다면 뭐가 아깝겠는가. 이미 망토와 안데르이 방어구를 팔아 두달 치 병원비를 손 에 넣었다. 적어도 두 달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게임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게 든을 벌면 언젠가 유니트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시험에 떨어져도 뉴 월드를 계속하며 돈을 벌 수 있 는 것이다. '좋아, 해 보는 거야!' 비로소 현우는 생계형 게이머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음 날, 통장에 700만원이 입금되었다. 현우는 잔고를 확인하자마자 마트로 향했다. 일주일간이나 결근을 했다고 주임이 얼굴을 보자마자 잔 소리를 퍼부어 댔다. 현우는 그 면상에 정중하게 사직서를 들이밀고 마트를 때려치웠다. 아크에서 딱히 친하게 지냈던 사람은 없었다. 아쉬움 따위 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단 1명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일했던 혜선이 었다. 현우처럼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던 혜선. 다른 사람에게는 정을 주지 않았던 현우도 그 녀는 여동생처럼 각별하게 생각했다. 적어도 그녀에게만큼은 직접 사정을 설명해 주고 싶었다. "게임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니 우습겠지만, 나에게는 굉 장히 중요한 일이야."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혜선이 울상을 지었다. "너무 섭섭해하지마. 어차피 어머니 병원이 근처잖아. 오 며 가며 음료수 사들고 들를게. 그리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 라도 불러, 쥐든 뭐든 당장 달려와 잡아 줄게." "쥐……." 혜선은 피식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됐어요, 그딴 거…… 이제 아무래도 좋아요." 뭔가 한 꺼풀 벗어 낸 듯한 초연한 표정의 혜선이었다. "그런데 오빠, 게임 때문이라면 항상 뉴 월드에 있는 거죠?" "응, 그럴 거야." "그럼 됐어요. 그곳에서 봐요." "뭐? 너도 뉴 월드 시작했어? 이름이 뭔데?" "아직 비밀이에요. 내가 곧 찾아갈게요. 오빠가 어디에 있 든지." 혜선이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 @ "후후후후." 그림자 숲에 음산한 웃음이 울려 퍼졌다. 박쥐와 해골을 옆에 끼고 탐욕에 물든 오라를 뿜어내는 사 람은 다름아닌 아크였다. 어제까지의 아크가 아니었다. 아크의 얼굴에는 사뭇 비장 하기까지 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당연한 변화였다. 오늘부 터 아크는 생계형 게이머로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주인, 왜 그러냐? 무섭다." 아크의 변화를 감지한 박쥐가 지레 겁먹고 떨어 댔다. "시끄러, 너도 각오해 둬, 앞으로는 휴식도 없다. 박쥐, 주변을 정찰해라. 몬스터가 많이 모여 있을 곳을 찾아." "아, 알았다. 진정해라." 아크는 검을 뽑아 들고 미친 듯이 그림자 숲을 누볐다. "두고 봐라, 아란! 언젠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어 주겠다!" 그림자 숲이 통째로 들썩거렸다. 예전에는 족므 무리다 싶 으면 피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몬스터가 몰려 있는 곳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일단 발견하면 안광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광기……라기보다는 탐욕에 젖은 검에 좀비와 구울이 속 절없이 썰려 나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변의 식재료란 식 재료는 몽땅 털어, 숲이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직업이 어떻고 저떻고 할 여유 따위는 없다. 이미 선택했 으니 이 직업으로 최고가 되는 거야. 그리고 최고가 되기 위 해서는 직업의 특성을 100퍼센트 활용해야돼!' 아크는 단 1분도 쉬지 않았다.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라도 쉬게 되면 곧바로 서바 이벌 요리를 만들어 소환수에게 퍼먹였다. "사, 살려 줘! 제발 그만!" 박쥐와 해골이 비명을 터뜨렸지만 아크는 인정사정없었 다. 소환수의 능력치가 오른다는 것은 곧 아크가 강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 장비 아이템은 모조리 마법 복원 을 사용해 내구력이 1이 될 때까지 수리했다. 앞으로 돈을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는 마법 복원등급을 빨리 올려 둘 필요가 있다. 그 외의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스킬이든 일단 오리면 강해지거나 돈이 덜 드는 결과 를 가져온다. 목숨 걸고 올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경험치 내놔! 돈 내놔! 아이템 내놔!" 아크의 광기 어린 사냥에 이제 언데드 몬스터들조차 슬슬 피해 다녔다. 언데드의 머리로도 의욕이 넘치다 못해 폭발 직전이 아크가 굉장히 위험한 상대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렇게 사냥을 시작한 지 며칠, 드디어 만만치 않은 몬스 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정 수의 언데드 몬스터를 잡으면 출현하는 중간 보스, 리퍼였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흐릿 한 형체의 리퍼가 거대한 낫을 휘두르며 다가왔다. "감히 어떤 놈이 내 구역을 어지럽히는가!" 낮은 울림이 그림자 숲을 뒤흔들었다. 실로 공포스러운 모습. 그러나 아크의 눈에는 그저 경험치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 숲에서의 사냥으로 아크의 레벨은 이미 39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어둠 속에서의 능력치 20퍼센트를 적용하면 40대 후반레벨이나 다름없다. 스킬 역시 비약적으로 올라 검투술도 중급에 달해 있었다. 리퍼가 레벨 50대 몬스터라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떨들 시간 없다. 덤벼!" "크크크. 인간 주제에 영계의 수문장에게 덤비다니, 어리 석은 놈!" 리퍼가 낫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빠르게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며 다크 블레이드 를 펼쳤다. 쾅, 소리가 울리더니 리퍼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박쥐와 해골이 양쪽에서 리퍼를 들이받았다. 박쥐와 해골도 필사적이었다. 전투가 끝나면 결과에 따라 먹어야 하는 음식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크윽, 이것들이……!" 리퍼가 흔들리는 사이, 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사용했다. 리퍼의 머리 위로 생명력이 드러나며 몸 여기저기에 붉은 반점이 그려졌다. 고양이의 눈으로 간파한 약점이다. 퍼퍼퍼펑! 붉은 반점에 검격이 가해지자 리퍼의 생명력이 눈에 띄게 깎여 나갔다. 생명력이 반 이상 깎이자 리퍼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 져 나왔다. "죽음의 공포를 느껴라!" 공포의 오라에 휘말린 박쥐와 해골이 경련을 일으킴 굳 어 버렸다. 리퍼는 단숨에 결말을 지으려는 듯 아크에게 낫을 휘둘렀 다. 그러나 낫은 아크가 휘두른 검에 막혀 뒤로 튕겨 나갔다. 리퍼의 눈이 불신에 물들었다. "이, 이럴 리가? 인간이 죽음의 공포에 저항했다는 말인가?" "죽음보다 가난이 무서워!" 아크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검을 휘둘러 댔다. 다크 워커는 공포에 50퍼센트의 저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다시 20퍼센트가 올라간다. 까마득한 레벨 차이의 몬스터가 사용하는 공포가 아니면 걸릴 가능성 이 거의 없었다. 아크가 공포에 저항하자 리퍼는 더욱 위축되었다. 그 뒤로는 완전히 아크의 페이스였다. 검투술을 최대한 폭풍처럼 몰아치니 리퍼는 곧 빈 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버티다 못한 리퍼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도주를 시도했다. "크윽! 두, 두고 보자!" "놓칠 것 같으냐!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단숨에 간격을 좁히며 붉은 반점 투성이의 등에 다 크 블레이드를 날렸다. 마정석 골렘의 머리를 착용해 마나가 100이나 올라갔다. 덕분에 고양이의 눈을 쓰고도 세 번이나 다크 블레이드를 시 전할 수 있었다. 한번, 두번, 세번! 연속적으로 치명타가 터졌다. 결국 리퍼의 생명력이 바닥 을 드러내고, 입에서 시꺼먼 연기와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 다. 그리고 서서히 몸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강렬한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 "크아아악! 이, 이 몸이 인간 따위에게……!" 아크는 리퍼의 단말마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아크의 관심사는 오직 리퍼가 떨군 거대한 낫뿐이었다. "정보창!" 사신의 낫(마법) 무기 타입:양손 낫(수정, 어째서인지 낫이 아닌 창이라고 되있네요) 공격력:15~20 내구력:50/50 무게:45 사용 제한:전사 계열 38레벨 영계의 수문장 리퍼가 들고 다니는 섬뜩한 느낌의 낫. 리퍼는 이 낫으 로 생명을 베어 유계로 끌고 간다. 망자들은 이 낫을 보는 것만으로 두 려움을 느낀다. 옵션:언데드, 고스트 계열의 적에 대해 공격력 150%. 일정 확률로 공포에 걸림 아크가 쓰는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보다 2배나 강한 무기. 양손 무기인 점을 감안해도 공격력이 상당히 좋은 무기였다. 옵션도 40레벨 전후에, 언데드를 상대할 일이 많으니 상당히 좋은 편, 전사용 무기라 아크는 쓸 수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사 유저들이 많으니 괜찮은 가격이 팔리겠군.' 리퍼는 아이템 드롭률이 극악한 몬스터다. 이 정도만 되어도 횡재했다고 할 수 있었다. 경험치 80퍼센트에서 리퍼를 잡으니 곧바로 레벨이 올라 갔다. '드디어 40레벨! 그림자 숲에서의 목표를 달성했다!' 아크는 곧바로 정보창을 열어 스탯을 분배했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선+50 명성:480 레벨:40 직업:다크 워커 칭호:캣 나이트, 간병인 생명력:905 마나:330(+110) 영력:100 힘 136 민첩 186(+17) 체력 156 지혜 25 지능 61 운 36 특수 스탯:고대 유물의 지식(15) 유연성:10 화술:5 애정:10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공격 속도+5.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민첩+2, 냉기 저항+20 고양이 손: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마정석 골렘의 머리:마나+100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0분. 전투가 시 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의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패시브 스킬 검투술(중급:113/300) 검술과 격투술을 갈고닦아 총합 전투력이 상승 한다. 서바이벌 요리(초급:92/100)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어 낸다. 불굴의 정신(초급:68/100) 빈사 상태에서 공격력, 치명타율, 회복 능력 이 상승한다. 불굴의 육체(초급:61/100) 빈사 상태에서 방어력, 치명타 회피율, 회복 능력이 상승한다. 채취(초급:82/100) 자연으로부터 식재료를 채취할 수 있다. 식재료 감별(초급:71/100) 식재료의 효능을 확인한다. 승마(초급:3/100) 등급이 올라갈수록 말을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액티브 스킬 간병(중급:149/300) 환자에게 희망을 주어 기력과 용기를 준다. 마나 소모:10 고양이의 기백(상급:374/500) 쥐와 소형 몬스터에게 공포를 심어 움직 임을 봉쇄하고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를 대폭 하락시킨다. 마나 소모:120 고양이의 눈(초급:88/100) 날카로운 시선으로 적을 파악한다. 마나 소모:50 마법 복원(초급:59/100) 아이템을 본래의 형태로 복원한다. 마나 소모:10 직업 전용 스킬 다크 블레이드(초급:42/100) 적의 빈틈에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마나 소모:100 마령 소환(초급:24/100) 유계에서 세마리까지 마령을 소환한다. 영력 소모:100 각오가 달라지니 스킬의 성장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검투술을 사용할 때는 일 검 일 검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채취를 할 때는 온 정성을 다해 귀하게 다루면 같은 횟수를 사용해도 숙련치의 성장은 배나 빠르다. 하베스틴 자작을 간병하면서 깨달은 지식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지금까지 이 지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게임에서는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다. 사냥, 채취, 휴 식, 요리, 거래 등등……. 할 일은 태산같이 많았다.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심혈을쏟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잠을 줄여 가며 게임을 하는 아크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아크는 샌계형 게이머가 된 것이다. '뉴 월드만이 살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스탯과 스킬이 치열했던 며칠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몇몇 스킬은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라가기 직전이 었다. 그 스킬들까지 모두 중급이 되면 아크는 다시 한번 비 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리라. 또한 소환수들도 몇 차례나 능 려깇가 올라 이제 꽤 쓸모 있어졌다. '이제 레벨을 한두 단계 더 올리고, 스킬도 따라 올라가 주면 레벨50의 몬스터도 그럭저럭 사냥할 수 있겠어.'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이미 레벨50대의 몬스터 리퍼를 어렵지 않게 잡았지만 그 건 어둠 속성에 보너스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 실제로는 아 직 50대를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다. 아마도 각종 스킬을 총동 원해야 겨우 잡을 수 있으리라. '그래, 고작 이 정도에 만족해서는 안돼. 아직 아란을 따 라가려면 멀었다.'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 돈을 벌기 위한 아이템 사냥. 이 두 가지는 뉴 월드를 하는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리고 아 란은 아크가 따라 잡아야 할 목표가 되었다. 레리어트 앞에서 모욕을 당한 그날부터……. '어쨌든 이제 리퍼도 잡았으니 사냥터를 옮겨야 되겠군.' 그때, 돌연 눈앞에 메뉴창이 열렸다. 원형으로 늘어선 아 이콘 가운데 가방이 깜빡거리며 점멸했다.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터치하자 가방이 열렸다. 데브 라를 물리치고 얻었던 보석 손거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맞아, 손거울이 40레벨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었지!" 아크는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당신은 많은 경험을 얻었습니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세상을 걷 고, 숨 쉬고, 말하고, 들으며 자연스럽게 쌓여 온 지식은 당신을 또 다 른 모험으로 인도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여러 종류의 아이템도 그중 하나입니다. 당신은 모험 중에 특수한 세공이 되어있는 거울을 손에 넣었습니다. 고대 유물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거울을 세심하 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곧 고대의 힘으로 누군가의 기억이 봉인되 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고대 유물 보석 손거울을 관찰해 얻은 지식에 대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삭+5, 지능이 2, 명성이 20 상승했습니다. 당신이 새로운 모험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을 때, 거울은 스스로 자신 의 존재를 알려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단 거울의 인도가 당신에 행 운을 가져다줄지 불행을 가져다줄지는 알수 없습니다. *레벨 40이 되어 보석 손거울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봉인을 해제하시겠습니까? 고민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해제!" 번쩍─ ! 순간 손거울에서 엄청난 비칭 뿜어져 나왔다. 그림자 숲의 어두운 배경을 스크린 삼아 신비로운 영상이 펼쳐졌다. 선명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낡은 느낌이 드는, 마치 오래 된 책의 한 부분을 찢어 내 그려 놓은 듯한 영상이었다. 거울이 비춰 낸 장소는 아름다운 등대가 있는 바닷가였다. 부드러운 바람이 풍성한 구름을 매만졌고, 잔잔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졌다. 평화로운 바닷가에 바람을 타고 노햇소리가 날아들었다. 처음 들어 보는 언어. 무슨 내용인지는 알수 없었다. 그 러나 노랫소리에 담긴 애절함이 아크의 가슴깊은 곳을 뒤흔 들어 놓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몽환적인 느낌의 노 랫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문자가 떠올랐다. 크리스틴을 위해서……. 신비한 거울의 속삭임 데브라가 가지고 있던 손거울에서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의 영상이 떠 올랐습니다. 이것은 멀고 긴 여행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면 바닷가를 찾아 거울의 비밀을 풀어야 합 니다. 등대가 배를 인도하듯, 거울이 당신을 인도할 것입니다. 난이도:F 퀘스트 제한:고대 유물의 지식 필요. "퀘스트다!" 몽롱한 표정으로 노래에 빠져 있던 아크의 눈이 번쩍 뜨 였다. 퀘스트. 즉, 보상이다. 평범한 몬스터를 수백 마리 잡는 것보다, 보상이 빵빵한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는 게 더 많은 경험치와 돈이 된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게다가 이 퀘스트는 +E 난이도를 자랑하 는 데브라가 떨군 아이템에서 시작되었다. 고작 몇 골드의 보상으로 끝날 퀘스트가 아니었다. 아크는 망설임 없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순간 거울에서 불쪽 밤하늘을 향해 한 줄기 빛이 뻗어 나 갔다. "등대가 배를 인도하듯……. 그게 이런 뜻이었군." 영상 속의 바닷가로 인도하는 불빛이리라. 아크는 해골을 허리에 걸고 파닥거리며 주위를 맴도는 박 쥐를 바라보았다. "가자, 해골, 박쥐. 이 빛을 따라 퀘스트를 해결하러 간다." "알았다, 주인. 말 잘 들을 테니 음식은 먹이지 마라." 딱딱딱딱. 그렇게 아크는 두 소환수를 거느린 채 빛이 뻗어 있는 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크의 모험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to be continued 아크 2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차례] ACT 1 소환수 특전대 ACT 2 부화 ACT 3 해저 도시 노드리스 ACT 4 민심을 얻어라 ACT 5 백경의 미궁 ACT 6 영혼의 간병인 ACT 7 회색 산마루의 전투 ACT 8 상인의 전장, 기란 ACT 9 영웅 집결령 ACT 1.소환수 특전대 손거울의 빛을 따라 이동한 지도 꽤 되었다. 그동안 아크의 여행은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었다. 나침반 역활을 하는 손거울의 빛은 밤에만 나타났다. 빛을 따라 일직선으로 이동하는 중이라, 이동로는 산속이 대부분이었다. 때문에 빛이 사라져 버리면 방향을 가늠하지 못하고 헤매기 일쑤였다. 자연스럽게 밤에는 손거울의 빛을 따라 이동하고, 낮에는 주변을 돌며 사냥하는 방식이 굳어졌다. 작센 영지를 둘러싼 아구스 산맥에 진입하자 출몰하는 몬스터도 한 단계 강해졌다. 늑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방어력을 가진 마갈 욾, 칼날처럼 긴 송곳니로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뱅갈 호랑이 따위가 쉴 새 없이 기습해 왔다. 그러나 아크는 작센 성 인근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는 그림자 숲에서 한계까지 레벨을 올린 상태다. 사신 리퍼까지 사냥한 아크를 위협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 현실 시간으로 이틀 남짓 지났을 때였다. 마갈 울프와 뱅갈 호랑이의 공격이 점차 잦아들었다. 경험으로 아크는 그런 변화가 뭐 뜻하지는지 알고 있었다. '영역을 넘어선 모양이군.' 사람들이 그렇듯 몬스터들에게도 성향이라는 게 존재했다. 성향은 몬스터들 사이의 친밀도 를 결정한다. 즉,비슷한 성향의몬스터가 접근하지 못하는 것처럼 적대 관계가 설정되어 있거나, 늑대와 쥐의 관계처럼 천적으로 설정되어 있으면 저희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시스템 설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몬스터의 세력권이 만들어졌다. 마갈 울프와 뱅갈 호랑이의 습격이 잦아들었다는 건, 세력권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여기는 어떤 몬스터의 세력권이지?' 갑자기 고레벨의 몬스터와 맞닥뜨리면 난감하다. "박쥐,주변을 신중하게 살피고 뭔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라." "알았다 주인." 아크는 박쥐를 이용해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며 숲을 가로질렀다. 곧 우거진 수풀 사이로 몇 마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개의 얼굴에 사람의 몸, 놀이다!' 숫자는 세 마리, 놈들은 뱅갈 호랑이로 보이는 몬스터를 불에 구우며 군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다시 말해 뱅갈 호랑이를 사냥할 만큼 강하다는 뜻. 뱅갈 호랑이도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보다 강하다면 무턱대고 덤빌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지?붙어 봐야 하나?' 아크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놀 한 마리가 돌연 고개를 올리며 목울음을 흘렸다. "크르르르." "인간이다. 인간의 냄새가 난다!" "잡아먹자, 인간 고기가 더 맛있다." 바람을 등지고 숨어 있던 게 실수였다. 후각이 예민한 놀들이 곤봉을 들고 코를 벌름 대며 다가왔다. " 젠장,할 수 없지. 해골, 박쥐.보조해라." 아크가 숲에서 뛰어나가며 놀에게 검을 휘둘렀다. 기습을 받은 놀은 치명타를 얻어맞고 주르륵 밀려났다. "고양이의 눈!"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며 놀의 약점과 정보창이 표시 되었다. '레벨 45,약점도 많다. 이 정도라면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겠어.' "해골,박쥐. 한 놈에게 공격을 집중한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놀의 약점에 집중 공격을 펼쳤다. 45레벨 몬스터 세 마리에게 포위되면 불리하다. 집단과 싸울 때는 일단 한 놈에게 공격력을 집중시켜 숫자를 줄이는게 관건이었다. 고양이의 눈과 다크 블레이드,거기에 소환수와의 협동 공격 보너스가 추가되자 놀은 단숨에 생명력이 70퍼센트까지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동료가 공격을 받는데도 나머지 놀은 오히려 거리를 벌리는 게 아닌가.아크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순간 두마리의 놀이 활을 들어 올렸다. '궁수!' 지금까지 활을 사용하는 몬스터는 상대해 보지 못했다. 때문에 활 공격에 대한 대책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빌어먹을! 박쥐, 막아라! 못 막으면 음식 다섯 번이다!" "으앗, 멈춰라, 개 대가리야!" 아크의 협박에 박쥐가 비명을 지르며 궁수의 얼굴을 덮쳤다. 양 날개를 활짝 펴 눈을 막아 버리자 놀의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그러나 다른 놀이 날린 화살은 아크의 어깨에 박혀 들었다. -놀의 화살에 치명타를 맞았습니다!데미지 250.화살이 박혀 30초간 행동이 느려집니다. 상황이 다급해졌다. 화살은 공격 속도가 느리고 공격 실패 확률도 높다. 그러나 일단 맞으면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지고,슬로우나 출혈같은 상태 이상에 걸릴 확률도 높았다. 아크가 휘청거리는 사이에 놀의 곤봉이 날아들었다. 움직임이 느려져,누군가 잡고 있는 것처럼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젠장, 지금 상태에서 얻어맞으면 또 치명타가 터질 텐데 .......' 딱딱딱! 그때 해골이 눈을 번쩍이며, 물어나는 놀의 발밑으로 데굴데굴 굴러 갔다. 해골을 밟아 버린 놀은 중심을 잃고 벌러덩 넘어졌다. 순간 놀의 몸 전체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경쾌한 음향과 함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숙련치가 100이 되어 고양이의 눈 스킬이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고양이의 눈(중급,액티브) :고양이의 눈 스킬이 중급이 되어 상대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약점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급 보너스로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면 더블 크리티컬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3분간 +나이트 비전. +생명 탐지. +허점 발견. +더블 크리티컬 기회 포착. 마나 소모 : 70 *더블 크리티컬 : 상대가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빠질 경우. 상황과 적의 반응에 따라 약 1~3초간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제공됩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되면 1회 공격에 한해서 치명타x2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적이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 전신이 약점으로 변하는 타이밍! 죽어라 고양이 의 눈을 써 온 보람이 있었다. 아크의 검이 놀의 목덜미에 박혀 들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x2가 터졌습니다. 해골과의 협동 보너스로 30%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놀의 생명력이 20퍼센트 넘게 줄어들었다. 이어 몇 번의 공격을 더 적중시키자 놀이 단말마를 터뜨리며 사라졌다. 앞을 막아서던 놀이 사라지자 상황이 일변했다. 남은 놀은 두마리 .그중 한마리는 박쥐가 막아서고 있는 상태다. '한 마리에 몯느 정신ㅇ르 집중하자!' 챙-! 태권도를 꾸준하게 수련하여 갈고 닦은 반사 신경이 빛을 발했다. 아크는 타이밍을 계산해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쳐냈다. 전사처럼 방어 관련 스킬이 없어서인지 완벽한 방어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뉴 월드는 현실과 같은 룰이 적용되는 세계.데미지는 반 이하로 줄고 치명타도 터지지 않았다. '치명타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궁수 따위는 상대가 아니다!' 슬로우 효과가 풀린아크는 빠르게 궁수에게 접근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몬스터는 근접 공격에 약하다는 게 상식! 막화살을 재던 놀은 아크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비틀 거렸다. 그때, 반대쪽에서 박쥐가 악다구니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망할 놈의 주인! 나는 신경도 안 쓰냐?" 박쥐 혼자서 놀 궁수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놀 궁수의 발치에서 ,머리에 화살이 박힌 박쥐가 사라졌다. -소환수 증오를 품은 박쥐가 유계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소환수 생명력의 5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아크의 몸에 전기가 흐르듯 저릿저릿한 감각이 흐르더니 생명력이 100이나 깍여 버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데미지에 아크는 꽤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놀 궁수 한마리를 처리하는 사이,자유로워진 또 다른 한마리가 아크의 등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치명타 데미지에 상태 이상! '직통으로 맞으면 죽는다!' 아크는 와락 해골을 들어 올렸다. 화살이 이마를 꿰뚫자 치명타가 터지며 단 한 발에 해골이 강제 송환되었다. 생명력이 또다시 100 정도 깎였다. 그러나 화살에 적중당했다면 바로 사망했으리라. "이자식,해골과 박쥐의 원수를 갚겠다!" 솔직히 그런 말을 지껄일 자격은 없었다. 어쨌든 아크는 이어지는 놀 궁수읭 화살을 쳐 내며 달려드렁ㅆ고, 1분간의 사투 끝에 마지막 놀 궁수까지 쓰러뜨렸다. "다크 블레이드!" "크아아악,인간....두고 보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놀의 몸이 서서히 흐려졌다. "휴,어떻게 이기긴 이겼군." 아크는 참았던 숨을 불어 내며 주저앉았다. 그때,경쾌한 음향과 함께 92퍼센트에 머물러 있던 경험치가 단숨에 100퍼센트를 돌파하며 레벨이 올랐다. 놀은 레벨에 비해 경험치를 많이 주었다. 거기에 놀은 파티 몬스터.단순히 몰려 있는 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협동 공격을 펼치는 파티 몬스터를 전멸시키면 30퍼센트의 경험치 보너스가 가산된다. 그러나 무작정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젠장,소환수가 모두 강제 송환됐으니 당장 놀을 사냥하기는 힘들겠군.' 놀 한두 마리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파티를 이룬 놀이 조직적으로 싸운다는 점. 뭐, 그래봐야 개 대가리니 대단한 작전까지는 아니었다. 잘해야 놀 전사가 아크를 막고 있는 사이 놀 궁수가 멀리서 화살을 쏴대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아마도 혼자 무턱대고 싸운다면 놀 전사를 쓰러뜨리기도 전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지리라. 물론 아크역시 파티를 이룬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유저 불신에 사로잡힌 아크는 파티사냥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설사 아크가 원한다고 해도, 퀘스트를 위해 이동하는 아크를 돕기 위해 이런 외진 지역까지 동행해 줄 유저는 없었다. '소환수를 불러낼 수 있게 될 때까지 놀은 피하는 게 좋겠군.' 강제 송환된 소환수를 다시 불러내려면24시간,게임 시간으로 사흘을 기다려야 한다. 아크는 작센을 나오고 처음으로 걸음을 되돌렸다. 소환수 두 마리가 동시에 강제 송환돼 보기는 처음이다. 있을 때는 잘 몰랐지만 막상 없어지고 나니 소환수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됐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박쥐의 탐색 기능, 몬스터 여러마리가 몰렸을 때 시선을 분산시키는 기능, 소환수와 협공 시의 보너스.이런 효과를 아크는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없어지니 사냥이 배는 더힘들어졌다. 시간도 많이 걸려서,뱅갈 호랑이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도3~4분이 소모되었다. 1~2분 만에 처리하던 때의 2배가 걸리니 경험치가 아예 안 올라간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진짜 곤혹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젠장, 왜 이렇게 사냥이 재미없게 느껴지지?' 아크는 쉬지 않고 사냥했다. 그냥 몬스터가 나타나면 몸에 익는 대로 검을 휘둘러 쓰러뜨린다. 아이템을 줍고 식재료를 채취한다. 그리고 틈틈이 유계의 알을 소환해서 음식을 흡수 시켰다. 이전과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지만 왠지 흥이 나지 않았다. '미치겠군.' 아크는 답답한 한숨을 불어 냈다. 소환수들도 다른 NPC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해골이나 박쥐는 아크의 태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졌다. 해골이야 어차피 아크에게 절대적인복종을 하는 소환수니 반응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박쥐 같은 경우는 무조건 강압적으로 부려 먹으면 삐쳐서 한동안 말을 안 할 때도 있었고 전투가 벌어지면 도망가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다가도 비위를 좀 맞춰주면 금세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살살거린다. 때때로 아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 오기도 했다. 'NPC주제에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 처음에는 그런 점까지 일일이 신경 써줘야 한다는게 마음에 들지않았다.더구나 전투가 벌어지면 마나까지 소비하니 스킬의 사용까지 제한되었다.때문에 문득문득 소환수를 굳이 데리고 다녀야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에 적응이 돼 버린 모양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먹고살기 바빠서 친구를 만나 본적도 없었다. 뉴 월드에서도 그런 성격은 고스란히 적용되었다.더구나 초반에 겪은 배신 때문에 뿌리 깊은 유저 불신에 물들어 일부러 유저를 피해 왔다. 그러나 아크도 사람이다. 혼자 생활하는데 익숙해졌을뿐,즐겁지는 않았다. 뉴 월드에서도 어두운 숲을 며칠이나 헤매며 사냥을 하다 보면 종종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소환수가 생긴 뒤였다.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해골, 심지어 입으로 툴툴거리는 박쥐 역시 아크의 편인 것만큼 분명했다.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크를 위해 움직이는 존재.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찾지 못했던 존재였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을뿐 ,이미 소환수는 아크에게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동료였다. '24시간......길구나.' 게임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이제 두 번 다시 소환수를 강제 송환시키지 않겠어.' 아크는 이제야 소환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빌어먹을!" 드이어 24시간이 지났다. 소환하자마자 박쥐는이마를 가리키며 성질을 부렸다. "봤어? 봤냐고? 여기에 화살이 탁 하고 박혔단 말이야!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무리도 아니다. 유저는 데미지를 받을 때 실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저 정전기가 일어날 때처럼 따끔한 정도의 느낌만 전해졌다. 그러나 NPC는 다르다. 칼에 베이면 칼에 베인 통증을 ,화살에 맞으면 화살에 맞은 통증을그대로 느낀다. 프로그램상의 설정일 뿐이지만 ,NPC에게는 모든일이 실제인 것이다. "주인이면 주인답게 소환수를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냐?그래도 주인이니까 무시무시한 음식의 실험까지는 참았어!그런데 방패막이로 쓰다니!아무리 주인이라도 더이상은 못참아! 이봐,해골!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딱딱딱딱 . 해골이 약간 시무룩한 동작으로 이빨을 마주쳤다. "거봐!오죽하면 해골이 이러겠어,앙?" "그래 ,알았다. 다음부터는 조심하지." "흥,그런 말을 ........엑? 뭐. 뭐라고 했냐?" 콧방귀를 뀌던 박쥐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경계심이 깃든 눈빛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주,주인 뭐 잘못먹었냐? 갑자기 왜 그러냐?" "네 말대로 내가 조금 심했어. 이건 사과의 뜻이다." 아크가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음식ㅇ르 내밀었다. 그러자 박쥐는 낯빛이 창백해지며 금세 비굴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주,주인. 자, 잘못했다. 나는 그냥 주인이 조금만 더 신경 써 줬으면 해서........헤헤헤. 뭐, 반항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지. 이제 불만 없다. 정말이야." "걱정마. 이건 맛있는 음식이니까." "어라? 킁킁, 이건 전에 먹었던 거잖아?" 박쥐는 코를 벌름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크가 다짜고짜 음식을내밀자 또 무시무시한 생체 실험으로 군기를 잡으려는게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냄새를 맡아보니 얼마전에 효과가 확인된 음식. 그것도 귀한 재료를 듬뿍 써서 만든, 1시간 동안 생명력과 민첩성을 올려주는 귀한음식 이었다. 소환수 역시 허기를 느끼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식탐이 있다. 그러나 식용보다 우선은 자기 보호 본능. 박쥐는 군침을 꼴깍 삼키다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이거 독 탄 거는 아니지?" "진짜 독 탄거 만들어 줄까?" "헉! 아, 아니다." 박쥐가 얼른 고개를 흔들며 냄비 속에 머리를 처박았다. 이어 아크는 같은 음식을 다시 만들어 해골에게도 먹였다. 혼자 있는 동안 아크는 소환수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물론 그렇다고 소환수를 성장시키기 위한 음식 먹이기를 중지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가끔은 친절하게 대해 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채찍과 당근처럼 말이다. 아크의 선행은 의외의 정보를 알게 해주었다. -소환자의 진심어린 애정을 느낀 소환수들의 충성도가 1씩 상승했습니다 .애정 스탯이 1상승했습니다. '충성도가 올라가기도 하는구나!' 아크도 소환수의 충성도가 변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해골은 변화가 없었지만, 박쥐의 경우에는 음식을 마구잡이로 퍼먹이면 조금씩 내려갔다. 그럴 때마다 더 말을 안 듣고 불평이 많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올라간 적은없었다. '아마도 새로 애정 스탯이 생겨서 그 영향을 받은 모양이군.' 아크는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시켜서 얻은 애정 스탯! 아크는 지금까지 그 스탯이 어디에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을 NPC와 친밀도를 올리는 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의 쓰임새를 알게 된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나 1씩 올라가던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도 4나 올라갔다. 요리는 역시 남을 위해 만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소환수에게 그간의 사과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만드니 보너스숙력도가 적용된것이다. '마음가짐이 게임에 그대로 적용된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단순한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 닿았다. "후후후.주인.이제야 우리들의 소중함을 깨달았구나." 조금 친절하게 대해 주자 박쥐는 금세 건방져졌다. 그러나 24시간이나 그리워하던 아크는 너그럽게 받아넘겼다. "그렇다 치고, 일단 다시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말해 둘게 있다." "뭐냐?"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싸워왔던거 같아. 지난번놀과 싸울때도 그게 문제였던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는 좀 더 조직력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너희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조직력을 가다듬어? 무슨 뜻이냐, 주인?" "그러니까, 몇가지 상황을 상정해 놓고 미리 작전을 짜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야. 전투 도중에는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파악하고 명령을 내릴 여유가 없으니까." 이게 아크가 24시간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상황에 맞춰 미리 몇 가지 패턴의 작전을 구상해 둔다. 그러면 전투 도중에 아크가 일일이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박쥐와 해골이 알아서 상황을 판단해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온라인FPS 게임에서 영감을 얻은 방법이었다. "음음,이해했다. 주인, 똑똑해졌구나." 박쥐가 또다시 건방진 소리를 지껄였다. 아크는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시작부터 너무 복잡하면 실수가 생길 거야.그러니 일단 네 가지 방식으로 압축하자. 먼저 내가 상대하는 적에게 공격을 집중시키는 작전은 A플랜.내가 한 놈을 상대하는 동안 너희가 다른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전이 B플랜.해골이 나와 함께 싸우는 동안 박쥐가 다른놈들을 멀리 유인해내는 게 C플랜.그리고 마지막 D플랜은 긴급 상황이다.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너희는 최대한 적의 공격을 회피하며 살아남을 방법만 생각해. 다 이해했냐?" "알았다. D플랜은 마음에 든다." 딱딱딱. 박쥐와 해골이 흥미를 보이며 끄덕였다. "자, 그럼 바로 실전에서 연습해 보자!" 아크는 곧바로 소환수를 이끌고 사냥에 나섰다. 처음에는 난이도가 낮은마갈 울프나 뱅갈 호랑이가 상대였다. "B플랜!" 아크가 소리치자 박쥐와 해골이 먼저 뛰어나가 몬스터의 이목을 끌었다. 그사이 아크는 몬스터의 배후를 공격해 숫자를 줄여 나갔다.그리고 한 마리가 남았을 때 작전을 변경했다. "A플랜!" 여기저기 도망치던박쥐와 해골이 급반전해 몬스터를 공격했다. 빠르게 명령을 전환시킬 수 있는 이 방식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처음이라 몇가지 실수도 발생했다. 나름 영악한 박쥐는 빠르게 적응했지만, 둔한 해골은 이해력이 떨어져 반응이 한 박자씩 느려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내용이 단조로워서 소환수가 융통성있게 대처하기 힘든 상황도 자주 발생했다. 그럴때마다 여지없이 체벌형 음식이 소환수의 입에 우겨 넣어졌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놈은 음식 실험이다!" "으악!어쩐지 웬일로 주인이 착해졌나 싶었다!" 따닥,따다다닥! 소환수들은 몇 번이나 사색이 되어 빈사 상태가 되어버렸다.그러나 이제 생명력이 제법높아져서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꽤나 낮은 확률이지만 성장형 음식을 발견해 소환수의 능력치는 꾸준히 올라갔다. 그렇게 아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소환수를 가르쳤다. 거듭되는 실전 훈련 속에서 몇 가지를 추가시키고 혹은 바꾸기도 하면서, 이런 점들은 조금씩 개선되어 갔다. 소환수들 역시 음식의 공포에 죽을힘을 다해 작전을 외우고 실천했다. 적절하게 간병 스킬을 사용하니 효과는 배가되었다. 비전투적인 스킬도 활용법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응용할 수 있는 점이 뉴 월드의 매력이다. 그러는 사이, 아크가 소환수를 부리는 솜씨도 좋아졌다. "D플랜!" 전투 도중에도 언제나 소환수의 생명력을 살피며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전력으로 도망치던 소환수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기막힌 타이밍으로 소환을 취소했다. 강제 송환되면 아크에게 소환수의 생명력의 50퍼센트의 데미지가 들어오고 24시간 동안 재 소환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아크가 소환을 취소하면 패널티는 적용되지 않았다. 반면 소환수를 쫒던 몬스터는 목표물이 사라지자 한동안 어리둥절해했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아크의 검이 치명타를 뿜어냈다. 소환수의 생존율이 높아지자 전투에 활기가 넘쳤다. "주인,이럴 때는 내가 돌진한 뒤에 소환 취소를 하는게 어떠냐?그리고 곧바로 다시 재소환 하면 되지 않겠냐? 해골을 던지 뒤에 해도 되고, 어차피 주인 영력은 항상 만땅 상태니까 전투 때마다 한번씩은 쓸 수 있지 않냐?" 때로는 음식으로 지능이 꽤 올라간 박쥐가 직접 쓸 만한 작전을 제시해 오기도 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 박쥐의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몬스터 가 나타나자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알아챈 약점에 해골을 집어 던졌다. 불의의 기습에 의한 치명타!이어 몬스터가 해골을 공격하기 전에 재빨리 소환 취소를 했다. 그리고 다시 재소환하면 해골은 아크의 옆에서 나타났다. "크르르?" 몬스터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이어 C,B,A플랜을 연달아 펼치면 D플랜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아크와 소환수의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손발도 척척 맞았다. 그렇게 이틀, 레벨이 1올랐을 무렵 아크는 다시 놀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섰다. "크르르, 인간이다." "건방진 인간, 감히 우리의 영역에 들어오다니." "C플랜으로 시작한다!" 아크의 명령에 따라 해골과 박쥐가 산개했다. 소환수가 빠르게 주변을 돌며 놀 궁수를 견제하는 사이,아크는 다크 블레이드를 연발해 놀 전사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위험해진 해골을 소환취소하며, 해골이 맡고 있던 놀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그와중에도 박쥐는 나무 사이를 저공비행하며 화살을 회피하고 있었다. 파상공격을 퍼부어 놀 궁수까지 해치운 아크는 다시 해골을 소환하며 플랜을 바꾸었다. "A플랜!" 아크와 두 마리 소환수가 일시에 놀 궁수 한마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놀과의 전투가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이났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놀은 보통 서너 마리가 함께 움직였고, 어떤 놀은 마갈 울프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또 이놈들은 머리도 좋은 편이라 매복을 하고 있다. 덮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결국 많게는 여섯 마리의 몬스터를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소환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특전대에 맞먹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가히 소환수 특전대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덕분에 상황에 맞춰 작전을 펼치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취할 수 있었다. 다이내믹한 전략에 의한 효과였다. 파티 몬스터를 전멸시키며 돌아다니자 경험치도 쑥쑥 올라갔다. 또다시 1레벨이 올라 아크는 정보창을 확인했다. "스탯창!"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 :인간 성향 :선+50 명성 :480 레벨 :45 직업 :다크 워커 칭호 :캣 나이트, 간병인 생명력 :905 마나 :480(+100) 영력 :100 힘 146 민첨 186(+17) 체력 156 지혜 25 지능 91 운 36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20) 유연성 :10 화술 :5 애정 :11 *장비 아이템 효과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 : 공격 속도+5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민첩+2,냉기 저항 +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100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어둠속에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어둠,현혹,매혹 마법에의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아크는 5레벨을 올리면서 얻은 포인트 50 중 지능에 30을 투자했다. 초반에는 마나를 쓸 일이 없어서 거의 투자하지 않았던 스탯이다. 그러나 소환수를 사용하면서 마나의 부족이 심각해졌다. 마나는 많이 올렸다고는 해도 아직 480 마정석 골렘의 머리로 +100을 받아도 580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전투가 벌어지면 소환수 한마리가 1초에 1의 마나를 필요로 했다. 즉,290초.전투가 벌어지면 5분밖에 버티지 못한다는결론이 나온다. 물론어지간한 전투는 3분안에 끝난다. '하지만 소환수 때문에 다른 스킬을 못 쓰고 있어.; 아크에게 고양이의 눈과 다크 블레이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킬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눈은 한 번에 50.다크블레이드는 100의 마나를 소비한다. 마나를 꽉 채워도 몇번 시전하기도 벅차다는 결론. 하물며 소환수를 불러놓고 있는 상태라 한두번도 제대로 시전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때문에 스킬 사용에 제약을 받아 숙련치도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크가 30이난 되는 스탯을 지능에 투자한 까닭이다. 그러나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특한 녀석들' 소환수를 바라보는 아크의 눈에는 며칠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애정이 어렸다. 소환수의 성장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 녀석들도 단순히 능력치가 전투력의 전부가 아니야. 유저처럼 경험에 따라서도 전투 능력이달라지는게 분명해.' 뉴 월드는 단순한 스탯으로 전투가 좌우되지 않는다. 수치로는 확인할 수 없는 유저의 경험과 발상이 전투에 반영된다.그 점은 소환수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능력치로 따지면 해골과 박쥐는 아직도 허접스럽기 짝이 없었다. 늑대 한마리조차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아크와 함께 전투 경험을 쌓아 수치 이상의 능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점점 믿음직스러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투 경험은 애매한 부분이 있어. 상황에 따라 변동도 심하고,역시 확실한 효과를 장담하려면 능력치를 올려놓는 게 최선이야.' 때문에 아크는 사냥 이상으로 식재룔 채취에 주력했다. 소환수의 능력을 유일한 방법,서바이벌 요리를 펼치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환수가 제 몫을해내니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케케케,어떠냐, 주인? 내 덕분에 살았지?" 딱딱딱딱. 박쥐가 으스대자 해골도 지지 않고 공적을 어필해 왔다. 바로 이게 문제다. 근래 들어 박쥐와 해골의 실력이 부쩍 성장해 음식을 먹일 명분이 별로 없었다. 성장을 위해 무턱대고 음식을 먹여 충성도가 떨어지면 박쥐와 해골은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아크를 돕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음식을 안 먹이자니 성장을 못한다. 그 균형을 맞추는게 의외로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확실한 상벌 개념은 필요했다.특히 박쥐의 경우에는 충성도가 낮아서 무조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면 역효과를 내기도 했다. 짜증나는 시스템이지만, 한편으로는 아크가 소환수에게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흥!왜 말이없냐,주인? 할말을 잃은 거냐?" 박쥐는 팔짱을 떡하니끼고 으스댔다. "까불지마.고작 눈이나 가린 주제에." "그 덕분에 산 사람이 누군데?" "네가 없었어도 그 정도는 피할 수 있었어." "서,설마.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그 끔찍한 음식을 먹일 생각은 아니겠지?" "가끔은 맛있는 것도 있잖아." "열번에 한번이잖아!" 박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 지금 반항했지? 분명 반항했지?" "아, 아니야. 나는 착한 소환수다!" "시끄러, 괘씸죄 적용.음식이다." 아무려면 어떠랴,어차피 핑계야 만들면 그만이다. 곧 박쥐는 전신 마비의 요리를 먹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박쥐의 희생덕에 생체실험을 피해 낸 해골이 좋아라 하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치,치사.....하다.......주인........." "나도 좋아서 이러는게 아니야. 다 너희를 위해서라고." 아크는 시선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그렇게 모든 일이 순조로웠지만 단 하나, 유계의 알만큼은 아직도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소환수가 늘어나면 확실히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계란은음식을 먹일 때마다 진동하듯이 떨리다가 다시 조용해지기만 반복했다. "대체 이 녀석은 깨어나기는 하는 건기.........." 아크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 거렸다. 음식을 먹일 떄마다 반응하는걸 보면 확실히 뭔가가 깨어나기는 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박쥐와 해골이 몇번이나 능력치가 올라갈 때까지 계란은 여전히 계란이었다. 더구나 계란에게 음식을 먹이면 요리의 효과도 확인할 수 없었다. 식재료도 한계가 있었기에 계란에게 먹일 때는 아까운 생각이 앞섰다. "뭐, 그래도 언젠가는 깨어나겠지." 사실 이제 반쯤은 포기했다. "그보다 이제 슬슬 마을을 찾아 봐야겠군." 아크는 마비에 걸린 박쥐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놀을 쓰러뜨리며 반나절을 헤맨 끝에 마을을 찾았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이었다. 집은 고작 40여 채.그나마 대부분이 사람이 살지 않아 흉가처럼 버려져 있었다. 1~2명 보이는 주민들의 얼굴에서도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업었다. 도시하고 너무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유저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손거울의 빛을 따라 일직선으로 산을 가로지른 아크가 아니라면 이런 산골 마을을 찾아낼 수도 없었으리라. 곧 망할 분위기의 마을이라그런지, 마을 안에 들어섰는데도 지도에 표시조차 안되었다. "왠지 기분 나쁜 곳이다." 아크의 어깨에서 박쥐가 찜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입 다물고 있어." 아크는 마을에 들어올 때는 항상 해골과 박쥐를 장신구처럼 보이도록 허리나 어깨에 올려놓았다. 소환수라도 일단 언데드와 마족이라 마을 NPC가 알아채면 아크에 대한 평판이 하락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뭐, 이런 마을에 두번 다시 올 일은 없으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 아크는 심드렁한 눈길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런 황폐한 마을에도 다행히 여행자의 오아시스인 잡화상점은 존재했다. '그나마 다행이군.'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가방안을 둘러보았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사냥에 전념했다. 또한 식재료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덕분에 가방은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잡템이 꽉꽉 들어찼다. 전직하며가방 용량이 약간 늘어났고 같은 지역에서 사냥해 대부분이 겹쳐지는 아이템이었음에도, 가방 공간이 부족해서 몇몇 아이템은 버려두고 와야했다. 막상 마을에 도착하니 버려둔 아이템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렸다. '으으, 그것만 다들고 왓어도 6골드는 더 됐을 텐데.' 6골드면 6만원이다. 6만원을 길바닥에 버려두고 온 것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배춧잎 여섯 장이 펄럭거리며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리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가방을 6개나 들고 다니는 상인을 선택하지 않은 모든 유저가 겪어야 하는 아픔이었다. '그나마 여기에 마을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손해를 감수해야 했을지 상상하기조차 겁이난다. '산을 가로질러야 하니 언제 다시 마을을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여기서 가방을 싹 정리하고 필요한 것만 챙겨서 출발해야겠다.' 아크가 상점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놀란표정을 지었다. "엇?자네는 ......이방인인가?" "네,그렇습니다." "우리 마을에 이방인이 찾아오다니. 대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아크는 의례적인 말이려니 생각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걸 모두 처분하겠습니다." 상점 주인은 힐끗 아이템들을 쳐다보고는 짧게 말했다. "알겠네. 모두해서 10골드 주지." "네?" 아크는 귀를 의심했다. "10골드라고 했습니까?" "그래, 뭐 잘못됐나?" "아이템이 가방에 가득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대로 보지도 않고 10골드라니요? 이게 무슨 고물도 아닌데 킬로그램으로 가격을 매깁니까?" "대충 봐도 알 수 있네.숫자가 많으면 뭐하나?쓸만한 게 없는데, 이런곤봉이나 짐승 가죽은 돈이 안돼." 상점 주인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 가격은 시세에 비해 상당히 싸게 팔린다. 그뿐인가? 어지간한 장비는 아크가 마법복원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스킬을 남발한 탓에 최대 내구도가 모조리 1이다. 내구도 1의 아이템은 고작 몇 쿠퍼의 가치도 없는 재활용품. 고물처럼 킬로그램으로 가격을 매긴다고 해도 불평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 '오 일이다. 오 일을 쉬지 않고 사냥했는데 겨우 10골드라니?' 게다가 아크는 사냥을 하면서 고급 수리 상자를 하나 써버렸다. 초급 마법 복원으로 는 아직 마법 장비는 손댈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수리비로15골드가 나갔다는 말. 이득은 커녕 그것만으로도 5골드 적자가 아닌가? 손익분기를 따지자면 최소한 20골드는 받아야 수지가 맞는다. 그런데 20골드는 커녕 10골드라니! '크윽,죽어라 사냥한 결과가 적자라니...........' 가슴이 쓰라린다. 아크는 얼마전에 망토와 전사 장비를 팔아 7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런 아이템이 비싼 이유는 그만큼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이 계속된다면 더 바랄게 없겠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일확천금을 바라기보다는 잡템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아가는 게 좀더 현실적이고, 대부분의 유저 역시 그렇게 돈을 모은다. 그런 유저에게 1골드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그런데 적자라니?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아크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 "조금 더 쳐주시면 안될까요?" "솔직히 시세에 미치지 않는다는 점은 인정하네. 하지만 나도 곧 상점을 정리하고 마을을 떠날 작정이네. 솔직히 지금 물건을 매입해 봤자 짐만 된단 말이야. 팔기 싫으면 관두게 나도 아쉬울 것없으니." 역시나 이도 안들어간다. 처음 온 마을이라 친밀도는 0.흥정은 애초에 불가능 했다. 거래로 친밀도를 쌓아온 작센성의 상점이라면 최소한 10~20퍼센트는 더 받았으리라. 거기에 희소가치에 의한 시세를 감안하면 2배이상 더 받을 수도 이싿. 그러나 10골드 더 받자고 짐을 들고 작센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처리해 주십시오." "잘 생각했네. 자네도 알겠지만 주변에 마을이 없으니 .............헛! 서,설마? 이건 회색 놀의 가죽이 아닌가?"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아크가 귀를 쫑긋 세우고 얼른 다가가 손을 비비적거렸다. "그건 굉장히 어렵게 잡은 몬스터 가죽입니다. 놈들이얼마나 강한지,한마리 한마리 상대할 때마다 그야말로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죠.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 있는게 기적일 정도입니다. 그런 고생을 해서 얻은 가죽을 킬로그램으로 사시는건 좀 그렇지 않나요? 아, 상점을 정리할 생각이라고 하시니 저도 많은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노고를 생각해서 조금만 더 ............." "자네가 잡았단 말인가?" "당연하죠." "그,그럼혹시 아구스 산맥을 넘어왔단 말인가?" "네,길을 몰라서 산맥을 넘어왔습니다.왜 그러십니까?" "놀랍군. 놈들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는데 ........그곳을 혼자 힘으로 넘어오다니. 자네는 생각보다 대단한 모험가인 모양이군. 어쩌면............" 상점주인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놀을 무찌른게 사실이라면 자네의 물건을 20골드에 구매해 주겠네." "저,정말이십니까?" "대신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나?" 아크의 입이 귀에 걸렸다. 'NPC의 부탁! 다시말해 퀘스트다!' 가격을 더 받는 것만으로도 좋아 죽겠는데 퀘스트까지 주겠다니! 이 마을은 아직 유저들이 모르는 곳이다. 다시 말해 아무도 모르는 퀘스트. 보상은 둘째치고 그런 퀘스트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아크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자 상점 주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실은 이 마을은 아직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몇몇 개적민들이 세운 마을이네. 비록 산기슭에 자리 잡은 척박한 곳이지만, 마을을 발전시키고 도로를 정비하면 작센과 상업도시 기란의 중계지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거야." 상점 주인의 이름은 가렌으로, 최초의 개척민 가운데 1명이었다. 가렌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네. 몬스터가 많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에게는 란셀이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어.그는 경험많은 용병이라 어지간한 몬스터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지. 우리는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결국 마을을 완성하고 말았네. 그때의 감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 너무 기쁜 나머지 모두가 눈물을 흘렸지." "그런 것치고는 마을에 생기가 없어 보이던데요." "그래, 모든게 놀 놈들 때문이야." "놀요?" "원래 이 지역에는 놀이 없었네, 그런데 어디에선가 놀이 단체로 이주해왔네. 그리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동굴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 버렸지. 때문에 마을 주변의 도로를 정비해 교역의 중계 지점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꿈은 허물어져 버렸네. 오히려 놀의 습격에 전전긍긍하는 나날이 이어졌지." "도움을 청해 볼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물론 그런 생각도 해보았지. 하지만 여기는 고작 수십명이 목숨을 걸고 개척한 마을이네. 많은 용병을 고용할 여유 따위는 없었지. 그리고 그때는 아직 란셀도 건재했고." "건재했다는 말은........?" 가렌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란셀은 정말훌륭한 전사였네. 마을을 습격하는 놀을 몇번이나 격퇴시켰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을을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한 란셀은 마을 주민들을 모아 직접 동굴을 찾아가 놀과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네. 우리도 란셀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 그러나 동굴에는 란셀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함정이 있었네." "함정?" "놀들이 키우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동굴안에는 엄청난 숫자의 뱀들이 있었네. 끔찍할 만큼 많은 숫자였지. 결국 토벌대는 뱀과 놀의 습격을 받고 쫓겨 나왔네. 그러나 란셀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며 들어갔지. 그 뒤였네, 몇시간이나 굉음이 울리며 동굴이 흔들렸어. 하지만.......우리의 영웅인 란셀은 돌아오지 않았네." "훌륭한 분이셨군요." "그래, 누구보다도용맹한 전사였지." 가렌은 한숨을 불어 냈다. "어쨌든 그일이 있고 나서 주민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났네. 무리도 아니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뱀 떼를 목격하고, 지도가 란셀까지 죽었으니 더 이상 버틸 용기가 없었겠지. 고생해서 세운 마을이지만 생명보다 소중하지는 않을 테니까.나역시 지금까지는 오기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던 참이네." "제가 동굴의 놀을 해치워 드리면 되겠습니까?" "도, 도와주겠는가?" "물론입니다. 저역시 모험자. 어떻게 모른척할수 있겟습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보상은 많이 해 줄 수 없네."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니 아무런 보상도 원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결코 큰 보답을 바라고 도우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성의 껏 주시면 됩니다." 아크는 줄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으로 달라는 내용을 은근히 돌려 말했다. 놀이라면 지금 레벨대에서 사냥하기 좋은 몬스터였다. 대부분 파티 몬스터라 경험치도 많이 들어온다. 어차피 사냥할거라면 당연히 퀘스트를 받고 사냥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임도보고 뽕도 딴다는게 바로 이런 거다.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가렌은 감격한 얼굴로 말했다. "고맙네 그럼 이렇게하지.자네가 동굴의 놀을 잡아 가죽을 가져오면 하나당 20실퍼를 쳐주겠네. 그리고 만의 하나,동굴의 놀을 모두 무찌르고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 주면 성공 보수로10골드를 더 얹어 주겠네. 물론 위험에 비하면 충분한 보상은 아니겠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네." "놀은 몇 마리나 있습니까?" "우리도 잘은 모르네. 하지만 아마도 백마리는 될걸세." '1마리에 20실버!백 마리면 20골드다!' 아크의 귓가에 금화가 짤랑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확실히 넉넉한 보수는 아니지만, 그리 적은 보수도 아니었다. 보통 40대 레벨의 몬스터 가죽은 상점에서 5실버 정도의 가격에 매입한다. 그런데 가렌은 그 4배의 가격을 제시한것이다. 산골 마을 퀘스트치고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거기에 성공 보수 10골드까지 합하면 적은 돈이 아니다!' "미안하지만 뱀에 대한 보수는 줄 수 없네. 그래도 맡아주겠는가?" "걱정말고 제게 맡기십시오.저는 이일을 하기위해 이곳으로 인도받은 게 분명합니다." 아크는 가렌의 손을 와락 잡으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동시에 두두둥,퀘스트창이 떠올랐다. [개척 마을 란셀의 불행 당신은 오랜 여행 끝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개척민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존경받는 용병이자 지도자 란셀을 따라온 개척민들이 수년간 노력 끝에 만든 마을로,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란셀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들은 란셀이 작센과 상업 도시 기란 사이의 중계지점으로 번성하게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근처 동굴에 놀 무리가 수많은 뱀을 이끌고 눌러앉는 바람에 모든 노력이 허사가 돼 버렸습니다.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토벌대를 조직했지만, 오히려 마을의 영웅인 란셀만 희생됐을 뿐입니다. 절망한 주민들은 대부분 떠나 버려 마을에는 이제 황페함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가렌은 어떻게든 마을을 재건하고 싶어 당신에게 놀 토벌을 의뢰했습니다. 가렌은 놀 한 마리당 20실버의 현상금을, 토벌에 성공하면 10골드의 성공 보수를 약속했습니다. 놀을 물리치고 란셀 마을을 절망에서 구해내야 합니다. 난이도 :C] ACT 2부화 '찾았다!' 우거진 수풀 사이로 동굴 입구가 보였다. 란셀에서 퀘스트를 받자 지도에 위치가 표시되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가방을 정리하고 바로 란셀을 나온 아크는 1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에는 놀 두마리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잡은 놀들과 약간 다르게 허름한 가죽 갑옷까지 걸치고 있었다. 아마도 레벨 역시 1~2정도는 더 높으리라. 그러나 놀이라면 신물나게 잡아봤다. 레벨이 조금 높아봤자 아크의 상대는 아니었다. "크르르, 혹시 무슨 냄새 안나냐?" "킁킁.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인간 냄새 같은데 ........아직도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인간이 있나?" "잡아서 제물로 바치자." 개 대가리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놀은 후각이 예민했다. 놀은 코를 벌름거리며 창을 비껴들고 아크 쪽으로 다가왔다. 아크가 수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건 그때였다. "제물은 네놈들이지. 박쥐,가라!" 박쥐가 시위에 당겨졌던 화살처럼 놀에게 쏘아져 날아갔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콧잔등을 얻어맞은 놀이 벌러덩 넘어졌다. 다른 놀이 놀라서 박쥐를 향해 창을 찔렀다. 그러나 이미 소환 취소왕 재소환을 반복한 박쥐는 아크의 어깨에 앉아있었다. "고양이의 눈! 시간 없다. A플랜으로 간다!" 아크왕 해골, 박쥐는 쏜살같이 튀어나가 허둥대는 놀을 집중 공격했다. 놀과의 전투에 익숙해진 만큼, 동작을 읽기도 쉬웠다. 아크는 놀이 움직이기도 전에 회피동작을 펼치며 연쇄적으로 검격을 날렸다. 치명타와 협동 공격 보너스가 연속으로 터지자 놀은 창 한번 제대로 못 찔러 보고 쓰러졌다. 뒤이어 몸을 일으킨 놀이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수차례역습을 받고 생명력이 80퍼센트나 빠져버렸다. 그제야 겁을 집어먹은 놀이 기겁하며 도망쳤다. 그러나 박쥐가 달려들어 길을 막고, 해골이 다리를 물어뜨자 다시 나뒹굴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크으으으!" 회심의 일격에 적중된 놀은 신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놀이 사라지고 가죽이 떨어졌다. "후후후, 가뿐하고 이게 한장에 20실버라는 거지?" 2개의 가죽을 집어드는 아크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한장당 20실버.즉, 2천원짜리 아이템이다. 문자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지폐를 줍고 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 그 눈빛 징그럽다." "시끄러,네가 뭘 알아? 이 가죽 하나면 김밥이 한줄 이라고.한끼 식사야!" "김밥? 그게 뭐냐?" "그런 게 있어. 잔말 말고 정찰이나 잘해"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동굴안으로 들어섰다. 동굴에 발을 들여놓자 우렁찬 함성이 울리며 정보창이 떴다. [음산한 뱀의 서식처 아구스 산맥의 끝 자락에서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차가운 피가 흐르는 냉혈동물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한 기운과 섬뜩한 냄새가 동굴 전체에 베어있습니다. 동굴 깊은 곳에서는 개 짓는 소리가 들려오고, 사방에 뚫려있는 작은 구멍에서는 쌕쌕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놀과 뱀이 서식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위험을 피할 줄아는 현명함을 갖춘 당신이라면 결코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자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700의 경험치와 50의 명성을 추가롤 얻을 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 거부" 물론 아크는 정보를 공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등록을 거부하고 동굴롤 들어가자 어둠이 찾아들었다. 예전 같으면 질색했겠지만 지금 아크는 다크 워커다. 어둠은 아크의 둘도 없는 무기이자 방어구였다. 밖에서는 밤이 되면 놀의 능력치도 30퍼센트나 상승한다. 아크의 능력치가 상승해도 결과적으로 놀이 더 강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낮. 동굴의 어둠으로 강해지는 것은 아크뿐이다. 힘이 충만해지고, 오감이 극도로 예리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어둠속으로의 '은신'은 아크의 생존율을 더욱 높여 줄것이다. 던전은 다크 워커의 능력이 100퍼센트 발휘되는 환경! 놀 따위, 대여섯 마리가 몰려와도 어렵지 않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주인, 앞에 개 대가리가 네 마리 모여 있다." 정찰을 나갔던 박쥐가 돌아와 보고했다. "좋아, 너희들은 이곳에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움직여.'은신!'" 다크 워커의 특수 능력을 사용하자 아크는 어둠에 동화되어 사라졌다. 아크는 그 상태를 유지하며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200미터 가량 전진하자 박쥐가 말한 대로 놀 네 마리가 모여 숙덕거리고 있었다. "제물 떨어졌다. 크르르." "큰일이다. 신 화낼거다." "마을 습격해서 인간 잡아와야한다." "인간들이 온뒤로 신 많이 화낸다." "마을에 인간들아직 있을까?" "멀리 가서라도 잡아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신?잡아먹는다고?' 무슨 말인지 궁금했지만 놀의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쉿, 이상하다. 왠지 인간 냄새 난다." "인간들 또 왔나? 그럼 좋은데 ............." 놀들이 눈을 번들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아크는 한놈의 등뒤로 다가서며 머릿속으로 박쥐에게 신호를 보냈다. '인기척을 내라.' 소환수와 아크는 영적으로 연결되어,대화 없이 의사 전달이 가능했다. 연락을 받은 박쥐가 주변을 날아다니며 돌 부스러기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놀들이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순간 ,아크는 고양이의눈을 시전하며 한 놈의 뒷덜미를 찔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백스텝 효과에 의해 데미지가 200% 가산됩니다. 놀은 10초간 스턴에 빠지게 됩니다. 등 뒤에서 불의의 기습을 성공시켰을 떄 적용되는 백스텝 효과!'은신'을 사용할 수 있는 도적 계열의 유저가 자주 사용하는 공격이다. 일격에 놀의 생명력이 50퍼센트나 빠져 버렸다. 아크는 속사포같은 공격으로 스턴에 빠진 놀의 약점을 공격했다. 고양이의 눈에 의해 노출된 약점을 공격하자 놀은 제대로 공격조차 못 해보고 쓰러졌다. '은신'이 해제되자 놀들이 흉포한 울음을 터뜨렸다. "인간이다!" "제물이다!제물로 바치자.크르르!" 놀들은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녹슨창과 검 따위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박쥐, 돌격해라!해골 ,B플랜이다. 박쥐를 보조해!" 아크의 명령의 따라 해골과 박쥐가 놀에게 달려들었다. 박쥐가 세차게 뒤통수를 들이받자 놀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박쥐는 영악했다. 미친듯이 달려드는 놀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크와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 해골과 함께 둘러싸고 양쪽에서 툭툭 건드리며 놀을 유린했다. 남은 놀은 두마리! '두 마리라면 해볼만하다!' 아크는 검을 비껴들고 놀 사이롤 파고들었다. 백여 마리의 놀을 상대했던 경험은 고스란히 아크의 힘이 되었다. 뉴 월드의 그래픽은 실제보다 더 사실감이 넘친다. 놀이 창을 휘두를 때 충혈된 눈동자가 향하는 시선, 근육의 움직임, 호흡을 할 때 마다 부풀어 오르는 가슴의 기복까지도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처음 만난 몬스터라면 이런 것들로 움직임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몬스터마다 근육의 움직임이 다르기 때문. 그러나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 보니 놀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어디를 찔러 올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아무나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태권도는 근접 거리에서 찰나의 스피드로 승패를 가르는 무술이다. 가벼운 스텝 하나, 어깨의 움직임을 놓치면 눈 깜빡할 사이에 패배하고 마는, 실로 바늘 끝과도 같은 집중력과 예리함이 필요하다. 또한 상대의 호흡ㅇ르 읽고 틈을 찌르지 않으면 결정타를 먹일 수 없다. 이는 고도읭 실전성을 요구하는 기술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태권도가 실전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건 태권도라는무술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탓이다. 많이 알려진 만큼 많이 연구되어 왔고, 그에 대처하는 방법도 체계적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결코 태권도가 약해서는 아니다. 70년대의 북미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태권도는 무적의 무술로 칭송받았을 정도였다. 심지어 할렘가의 갱들조차 태권도 마스터에게는 존경을 표했다지 않는가! 아크는 그런 태권도를 수년이나 수련해 왔다. 그리고 태권도는 어떤 무술보다도 대련이 많았다. 상대의 기를 읽는 데는 전문가라고 해도과언이 아니었다. '우측 상단!' 아크가 상체를 젖혀 창을 흘려 냈다. 동시에 놀의 옆구리에 붉은 반점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눈으로 파악되는 약점은 그저 아무렇게나 표시되는 게아니었다. 그 상황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있고, 방어하기 난해한 허점! 아크가 예상했던 부분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반점이 떠오르기 전에 이미 아크의 검이 허점을 찔러 가고 있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놀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아크는 한 걸음 내디디며 공중 돌려 차기를 날렸다. 초반에는 아직 검투술이 익숙치 않아 동작에 틈이 생겼다. 그러나 검투술이 중급에 달한 지금, 모든 동작은 매끈하게 연결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실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고는 하나 아직 아크는 공중 돌려 차기같은 고급 기술을 매끈하게 펼칠 정도로 운동감각이 되살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는 본래의 힘에 스탯의 보너스가 추가된다. 거기에 중급 검투술의 보너스가 붙으니 기술의 성고도나 파워.예리함은 현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쩍, 소리를 내며 놈의 머리가 돌아갔다. 검투술읭 효과는 현실에서 태권도의 점수제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검투술(중급,패시브 163/300) :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스피드왕 정확도가 더욱 상승하니다. 모든 정류의 검과 너클 계열에 추가 공격력을 부여하고, 회피율과 치명타 확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킵니다. 종합 전투력 30% 상승. 방패 착용 시 검투술의 효과가 사라짐. *추가 효과: 발 차기를 적중 시켰을 떄 소형 몬스터 5% ,중형 몬스터 3%,대형 몬스터 1% 확률로 랜덤의 상태 이상을 일으킴. 고난이도의 기술을 성공시킬수록 발동 확률이 높아집니다.] 고난이도 동작. 즉, 날아차기나 이단 차기 같은 기술을 적중시키면 높은 확률로 넘어뜨리거나 스턴 같은 추가 효과가 부여되었다. 막 중급이 되었을때는거의 효과를 느끼지 못했으나 숙련도가 150이 넘어가니 발동 확률이 더 높아져 꽤 쓸 만해졌다. 공중 돌려 차기의 난이도는 최고 수준! 놀은 스턴에 걸려 휘청거렸다. 이어지는 아크의 나래 차기! 놀의 양 옆구리에 번갈아 가며 발 차기가 쑤셔 박혔다. 이어 다크 블레이드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태풍 같은 연속 공격에 놀이 허망한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그때, 뒤쪽의 놀이 등을 향해 창을찔러왔다. 아크는 허리를 꺽어 창을옆으로 흘려냈다. 새로생긴 스탯, 유연성이 적용되어 데미지가 경감되었다. 이어 폭풍처럼 쏟아지는 발 차기와 검! "크르르,이, 인간이.........!" 아크의 놀라운 실력잉 믿기지 않는 듯 놀이 불신의 목소리를 흘렸다. 아크역시 약간 놀랐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무술을 배우다 보면 가끔씩, 각성의 시기가 찾아온다. 평소 안되던 기술도 갑자기 잘되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상대의 공격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랜 수련을 통한 각성의 순간이다. 지금 아크가 그런 상태였다. 게임을 시작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 왔던태권도 수련으로 예전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거기에 어둠으로 올라간 능력치가 가산되자 본인마저 놀랄 위력을 발휘했다. 콰쾅! 아크의 옆차기에 복부를 얻어맞은 놀이 수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지만 이어지는 검격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다시 쓰러졌다. 두 마리의 놀과 근접전을 펼쳤음에도 생명력은40퍼센트 밖에 깍이지 않았다. 세마리가 쓰러지자 나머지 놀이 겁을 집어먹었다. "강, 강하다!" 아크가 펄펄 뛰는 혈기에 잠시 방심한 사이,놀이 갑자기 피리를 빼들었다. '큰일이다. 동료를 부른건가?' "박쥐, 해골! 막아라, 피리를 못 불게 해!" 그러나 아크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음향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동굴이 들썩이기 시작한 건 그때 였다. 가장 먼저 아크를 덮친거 비린내였다. 후각을 마비시킬 듯한 비린내가 확 풍겨 오더니 벌집처럶 뚤린 작은 구멍에서 뭔가가 우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수백 마리의 뱀! 가렌이 경고했던 동굴의 또 다른 적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검사라도 수백 마리의 뱀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불러냈다. '다행히 동료를 부르는게 아니었군.상대가 뱀이라면 나야 반갑지.'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동굴안을 휘저었다. 동시에 아크의 머리 위로 거대한 검은 고양이의 환영이 솟구쳤다. 서서히 열리는 황금빛 눈동자가 번뜩이자 위협적인 소리를 내던 뱀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소형 몬스터에 대한 마비 효과! 놀이 비명을 터뜨렸다. "키엑, 괴, 괴물이다!" "개 대가리를 달고 할 소리는 아니지!" 아크는 뱀을 잘근잘근 밟으며 달려가 놀을 해치워 버렸다. 뒤이어 굳어 버린 뱀을 닥치는 대로 해치워 버렸다. "오오, 주인. 오늘은 왠지 유난히 강해 보인다." 박쥐와 해골도 한껏 기운이 솟는 표정이었다. 도중에 뱀의 마비가 풀렸지만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마비가 풀려도 고양이의 기백 효과로 소형 몬스터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30퍼센트나 내려간다. 반면 아크는 캣 나이트의 칭호를 받아 소형 몬스터에게 공격력과 치명타확률 보너스를 받고, 데미지로 경감된다. 아크는 소형몬스터를 상대로는 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게 퀘스트를 받으며 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이유다. '후후후,뱀이라면 백마리든 천마리든 상관없어.' 아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서너 마리의 뱀이 갈라졌다. 반면 들어오는데미지는 고작 1.아크는 지렁이를 밟아 죽이듯 수백마리의 뱀을 물리쳤다. '아마도 퀘스트 난이도가 C인 것은 이 뱀 때문이었겠지.' 확실히 다른 유저라면 아크보다 레벨이 한참 높아도 뱀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아니, 동굴에 들어올 엄두도 못 낼 것이다. 그러나 캣 나이트의 칭호를 가진 아크에게 뱀 따위는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다. 신경 쓰이는건 가끔 걸리는 독. 그러나 30초간 생명력50을 깎아먹는, 그리 강한 독은 아니었다. 그리고 전투를 끝내고 서바이벌 요리로 해독 효과가 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건 거저먹는 퀘스트다!' 자신감이 붙은 아크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다. 종횡무진으로 동굴을 누비며 눈에 보이는 놀이란 놀은 몽땅 때려잡아 버렸다. '여기는 그야말로 금고다!' 절로 행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 아크에게 놀은 몬스터로 보이지 않았다. 2천원짜리, 혹은 김밥 한줄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크는 놀이 보일 때마다 군침을 질질 흘리며 돌진했다. "우후후후, 더, 더 나와라!" "주, 주인.진정해라,눈이 굉장히 위험해보인다." 딱딱딱. 잔뜩 흥이 올랐던 박쥐와 해골조차 두려움에 떨 지경이었다. 놀들은 위기에 몰리면 언제나 뱀을 불러냈지만 그 역시 아크에게는 보너스 게임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렇게 아크는 불과 2시간 만에 백 마리의 놀을 가냥했다. "백 마리째, 일단 20골드는 확보했다!" 생각 같아서는 며칠이고 동굴 속에서 사냥하고 싶었다. 그러나 퀘스트를 받아서인지, 들어온 곳을 되짚어 돌아가도 놀은 리젠되지 않았다. 하긴 천마리쯤 사냥하고 돌아가면 산골 마을읭 상점 주인인 가렌은 현상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하겠지. 결국 무자비한 아크에게 동굴의 놀은 거읭 전멸했다. 아크는 휑한 동굴을 가로질러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동굴의 끝 부분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중심으로 삐죽 솟아 있는 제단 같은 장소가 있었다. 제단 위에는 뱀의 형상을 닮은 토템이 놓여 있었다. 아쉽게도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세 마리의 놀이 마지막이었다. 아크는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접근했다. '저놈이 놀의 보스인가?' 특이한 복장의 놀이 한 마리 눈에 들어왔다. 놈은 누더기 같은 로브를 걸치고, 머리에는 나무뿌리를 엮어 놓은 듯한 관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보스치고는 그다지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보스다. 어떤 공격을 해 올지 몰라.' "크르르, 어떻게 된거냐? 침입한 인간을 아직도 못 잡았냐?" "그, 그게........놈이 생각보다 강하다." "뱀까지 풀었지만 놈을 죽일 수는 없었다." "크르르, 이대로라면 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보스놀은 두려운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신께서는 얼마 전 들어왔던 인간에게 상처를 입고 분노 하고 계신다. 만약 또다시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면.......크르르, 어쨌든 인간을 막아야해." "알았다." 명령을 받은 놀들이 무기를 들고 아크쪽으로 다가왔다. 아크는 멀리 떨어져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보스와 거리가 상당히 벌어졌다고 판단되자 재빨리 접근해 백스템을 먹여주었다. 놀들은 대번에 당황해서 전열이 흐트러졌다. 거기에 박쥐와 해골이 가세하자 순식간에 결판이났다. "이 , 이럴 수가!인간이 언제 여기까지........크르르!" 호위병놀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쓰러지자 보스 놀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덤벼라, 개 대가리!" 이제 남은 것은 보스 놀뿐이다. 아크는 검을 치켜세우며 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보스놀은 아크를 공격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황급히 제단으로 도망하더니, 보스 놀은 뱀 모양의 토템을흔들어 대며 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누나크,나나크,산다라니!위대한 뱀의 왕이여!"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아크는 어리둥절하며 보스 놀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는 찰나였다. 돌연 동굴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절벽 아래에서 뭔가 거대한 물체가 불쑥 솟아올랐다. 시뻘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쌕쌕 거리는 소리를 내는 거대한 몬스터.........그 정체는 몸통 굵기가 수 미터는 족히 될듯한 뱀이었다.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슽터 쿤다리니가 출현했습니다! "헉!이, 이게 뭐야?" 아크는 아연질색했다. 아크는 이제 가상현실 게임의 초보자가 아니다. 늑대나 곰만한 크기의 쥐, 심지어 살점이 썩어들어가는 좀비를 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나타난 거대한 뱀, 쿠다리니는 그런 몬스터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뱀이 풍겨내는 혐오감 섞인 그 독특한 살기와 마주하자 등골이 오싹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한껏 달아올랐던 전의도 차갑게 식어 버렸다. "오오오,신이시여! 뱀의 왕이시여! 인간을 벌하소서!" 쿤다리니가 출현하자 보스 놀이 환호성을 질러 댔다. 그게 보스놀의 마지막 말이었다. 콰직, 우드득! 쿤다리니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보스 놀을 삼켜 버렸다. 턱을 꿈틀거리자 으깨진 보스 놀이 우적우적씹혔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쿤다리니는 보스 놀을 꿀떡 삼켜 버리고 고개를 바짝 치켜들었다. 어둠속에서입가에 피를 흘리며 고개를 치켜드는 수십 미터의 뱀! 쿠오오오! '마, 맙소사!'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시각적인 효과가 엄청났다. 마치 기분 나쁜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 쿤다리니의 시선이 아크에게 향했다. 적이아닌 먹이를 바라보는 눈이다. '난이도가 C였던 이유가 이거였나?' 단단히 착각했다. 아크가 걱정해야 할것은 뱀 따위가 아니었다. 뱀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거대한 괴물이었다. 쿤다리니는 서두를 것도 없다는 듯 천천히 바닥을 기며 다가 왔다. '뭐, 뭐야?'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나왔다. 검을 올리려고 했지만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도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쿤다리니의 눈과 마주쳐서 절대 효과인 기선 제압에 걸렸습니다. 기선제압에 걸리면 무조건 선공을 뺴앗기게 됩니다. 일격을 허용할 때까지 효과는 풀리지 않습니다. '선공이라고? 한번에 꿀떡 삼켜지게 됐는데선공은 무슨 얼어죽을 선공이야!' 보스놀을 한입에 삼키는 괴물에게 선공을 양보하라니, 먹히라는 말이 아닌가?그야말로 사기적인 몸집에 사기적인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쿤다리니는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며 다라와 동굴 같은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아크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마치 뱀에게 사로 잡힌 개구리처럼, 그저 멍한 눈으로 쿤다리니의 시뻘건 입속을 바라볼 뿐이어싿. 그렇게 막 입이 닫히려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불똥이 번쩍거렸다. 해골이었다. 쿤다리니가 아크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순간, 해골이 아크를 들이받은 것이다. 따닥, 따다닥! 해골이 이빨을 부딪히며 아크를 대신해 쿤다리니의 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해, 해골!" "뭐하냐,주인! 정신 차려라!" 뒤늦게 강제 송환의 데미지가 전해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선 제압의 효과가 사라지자 몸을 짓누르던 공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그래, 이건 가상현실이야. 저런 거대한 뱀도 결국은 유저를 위해 준비된 경험치일 뿐이다.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어. 아니, 이기겠다!' "고양이의 눈!" 스킬을 외우자 쿤다리니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정보를 확인하자 숨이 턱 막혔다. 아크의 레벨은 동굴에서 하나 더올려서 46.반면 쿤다리니의 레벨은 무려 80이었다. 어둠 효과를 감안해도 30가량이나 차이가 났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러나 아직 정말할 필요는 없었다. '쿤다리니의 생명력이 5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다!' 아크는 곧바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쿤다리니의 미간에 유난히 큰 붉은 반점이 표시되어 있고, 그 중심에 한 자루의 검이 깊이 박혀있었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수많은 단서들이 조합되었다. '란셀이다!란셀의 검이다!' 가렌은 란셀이 홀로 동굴 끝까지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나 굉음이 울렸다고 했다. 놀들의 대화 속에서도 그에 대한 단서가 있었다. 얼마전 침입한 인간에게 신이 부상을 당해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고 했다. 즉,란센은 이곳에서 홀로 쿤다리니와 맞선 것이다. 결국 란셀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패배했지만, 마을과 주민들을 지키고자 했던 의지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쿤다리니의 미간에 박힌 검이 그의 의지다! 아크의 눈앞에, 거대 뱀과 사투를 벌이는 전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멋지군, 란셀!' 용기가 활화산처럼 뿜어져 올라왔다. '좋아! 네 뜻, 내가 이어받겠다!' 비록 레벨 80짜리 몬스터라도 이미 50퍼센트나 되는 부상을 입은 상태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 정도까지 멍석을 깔아 줬는데도 못 이긴다면 말이 안되지!' 아크는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 붉은 반점을 가격했다. 퍼퍼퍼펑! 격렬한 타격음과 함께 쿤다리니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레벨 30차이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치명타까지 터졌는데도 쿤다리니의 생명력은 2퍼센트밖에 닳지 않았다. 쿤다리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두꺼운 꼬리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날아들었다. 바닥을 구르며 피하자 꼬리에 얻어맞은 동굴 벽이 쩍쩍 갈라지며 뒤흔들렸다. 막을 엄두도 나지 않는 무지막지한 힘! '일단 공격을 피하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시켜야 한다!' "박쥐, 놈의 시선을 교란시켜라." "빌어먹을, 어려운 건 항상 나만 시켜!" 박쥐가 불평을 터트리며 쿤다리니의 코앞에서 알짱거렸다. 쿤다리니의 공격의 적중도가 떨어졌다. 제대로 아크에게 집중할 시간이 없어 꼬리를 아무렇게나 휘둘러 댄다. 아크는 꼬리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닥을 구르며 검을 내찔렀다. 치명타 따위를 노릴 여유는 없었다. 지금은 적은 데미지라도 꾸준히 쌓아 가 야금야금 생명력을 갉아먹는게 최선이었다. 막상 마음먹고 공격을 피하자 쿤다리니의 공격을 생각보다 느렸다. 아마도 미간에 꽃힌 검이 쿤다리니의 스탯에도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모든 공격을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콰쾅-! "크윽!" 아크가 수 미터나 주르륵 밀려 나갔다. 꼬리에 한대 얻어맞자 생명력이 400이나 깎여 나가며 독에 걸려 버렸다. 남아 있던 생명력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다시 말해 한 번만 더 공격을 허용하면 끝장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닿기만 했는데도 독에 걸려 생명력이 계속 소모 되었다. 이정도의 공격이라면 포션을 먹어도 소용없다. 100짜리 하급 회복 포션을 네 번 마시는 사이에 공격을 허용하면 오히려 손해. '쿤다리니가 아무리 동작이 굼떠도 레벨 차이를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어. 다섯 번에 한 번의 공격은 맞을 수 밖에 없어.게다가 독도 다른 뱀보다 3~4배는 강하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해! 뭔가 결정적인 타격을 ...........' 아크의 눈이 미간에 꽂혀 있는 검으로 향했다. 어떤 붉은 점보다 큰 점! 아마도 그곳이 쿤다리니의 결정적인 약점이리라! '모험을 해 보는 수밖에 없어!' 마음의 결정을 내린 아크가 빠르게 명령했다. "박쥐, 놈의 시선을 위쪽으로 유인해!" "알았다, 주인! 이쪽이다, 이 몸집만 큰 지렁이야!" 박쥐가 빠르게 쿤다리니의 눈앞을 비행하다가 위로 솟구 쳤다.쿤다리니의 시선이 위로 향한 순간, 몸을 날려 놈의 등에 올라탔다. 두께가 수 미터나 되는 뱀이다. 아크는 태권도로 단련된 균형 감각을 발휘하며 쿤다리니의 등을 따라 뛰었다. 목까지 올라왔을 때,아크의 의도를 눈치 챈 쿤다리니가 크게 목을 치켜올렸다. 경사가 수직으로 변하며 아크는 주르르 미끄러졌다. "어림없다!" 아크는 몸을 날리며 놈의 턱에 검을 찔렀다. 육중한 충격음이 터지며 쿤다리니가 다시 목을 접었다. 그사이 아크는 쿤다리니의 목을 기어올라 머리에 올라섰다. 그리고 미간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일격을 날렸다. "다크 블레이드!" -마나가 부족합니다! "아차!"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에 아크는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가 가지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다. 아크는 전투가 시작되고 고양이의 눈을 한 번밖에 쓰지 않았다. 그러나 쿤다리니의 생명력을 갉아먹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해 버렸다. 때문에 박쥐를 소환한 상태로 유지하느라 꾸준히 마나를 소모해 마나가 80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쿤다리니와 전투를 시작한지 7분.소모 마나는 420. 해골이 일찌감치 강제 송환되지 않았다면 박쥐도 한참 전에 유계로 돌아갔을 것이다. 근래 들어 이렇게 장시간 싸워본일이 없어서 아크조차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멍청하게!마나양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니!' 어이없는 실수다. 쿠오오오!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는 사이, 쿤다리니가 발광했다. 아크는 요동치는 쿤다리니의 미간에 박힌 검 자루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렸다. '젠장,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건가?' 이제 80초 후면 박쥐도 유계로 돌아간다. 필살기인 다크 블레이드도 쓸 수 없다. 쿤다리니의 남은 생명력은 30퍼센트. 다크블레이드를 서너번 정도 먹여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데, 단 한 번도 사용 할 수 없다니! 평범한 치명타로는 십여 번 이상을 공격해도 남은 생명력을 바닥낼 수는 없다. 물론 쿤다리니도 맞고만 있지는 않겠지. 도저히 이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잡고 있는 검 자루를 놓치면 끝장이다. 쿤다리니에게 먹히지 않더라도 발아래 펼쳐진, 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절벽아래로 떨어지면 즉사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그래, 이길 수는 없지만 최소한 같이 죽을 방법은 있어!' 아크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다행히 란셀 마을을 나오기 전에 부활 장소를 갱신해 두었다.그렇다면 이곳에서 죽어도 작센으로 돌아갈 염려는 없다. 그렇다면 쿤다리니와 함께 죽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서둘러 동굴로 다시 들어오면 쿤다리니가 떨군 전리품은 챙길수 있으리라. 거기에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으니 페널티를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이다!' 문제는 어떻게 함께 죽느냐. "박쥐, 놈을 절벽 쪽으로 유인해라!" 쿤다리니의 머리에 대롱대롱 메달린 아크가 소리쳤다. "알았다, 주인. 아뵤!" 크아아악! 박쥐가 쿤다리니의 눈을 찌르고 절벽 쪽으로 도망쳤다. 아크는 검 자루를 부여잡고 질질 끌려가다가 쿤다리니가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 전력을 다해 미간에 검을 찔렀다. 치명타가 터지며 쿤다리니가 벽에 몸을 비벼 댔다. 벽과 쿤다리니의 몸 사이에 끼자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간다. 그러나 아크는 멈추지 않고 두 번, 세 번 연속해서 검을 찔렀다. 집념은 기적을 불러왔다. 벽에 몸을 비벼 대던 쿤다리니가 체중을 못 이기고 절벽쪽으로 미끄러졌다. 그 아래는 바닥도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됐다!" 아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기묘한 부유감이 이어졌다. 몇 초,혹은 몇 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어 쿤다리니가 지면에 충돌하자 엄청난 충격이 전해졌다. 엄청난 낙하 데미지를 받은 쿤다리니의 생명력이 확 뽑혀 나가며 3퍼센트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라?어떻게 내가 살아 있는 거지?' 아크는 어안이 벙벙했다. 쿤다리니의 엄청난 생명력도 20퍼센트가 넘게 빠졌다. 그렇다면 생명력이 300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던 아크는 즉사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크는 살아 있었다. 비록생명력이 20밖에 남지 않았지만 죽지 않았다. 그때,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캣 나이트의 능력으로 낙하 데미지가 50% 경감했습니다. 낙법에 의한 유연성의 효과로 낙하 데미지가 30% 경감했습니다. '기회다!'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캣 나이트의 낙하 데미지 경감! 지금까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능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동된 것이다. 거기에 게임을 시작한 뒤로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수련했던 태권도! 덕분에 충격이 전해지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낙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80퍼센트의 데미지를 흘려보내고 아크는 살아남았다. '넋 놓고 있을 시간이 없어. 독 회복이 안돼서 생명력이 계속 빠져나간다.' 아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낙하 데미지의 영향인지, 몸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낙하 데미지를 100퍼센트 받은 쿤다리니는 아직 정신조차 차리지 못했다. 길게 드러누워 헐떡거리는 쿤다리니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죽어라!" 아크는 박쥐와 함께 쿤다리니의 미간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불굴의 정신과 육체의 중복 효과, 거기에 더블 크리티컬까지 적용된 일격이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X2가 터졌습니다. 박쥐와 협동 보너스로 30퍼센트의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쿠오오오!"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받은 쿤다리니의 미간이 쩍 갈라졌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거리던 쿤다리니가 서서히 사라져 갔다. -보스 몬스터 쿤다리니를 해치웠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숨에 레벨이 2나 올라 48이 되었다. 아크는 거친 숨을 몰라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헉헉헉." "주, 주인!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박쥐가 터뜨리는 함성을 듣고 나서야 이겼다는 실감이 들었다. 아크는 덜덜 떨리는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냄비를 꺼내 들었다. 일단 급한 해독부터 한 뒤에 생명력을 채워 주는 음식을 만들었다. 생명력은 바닥까지 떨어져, 음식을 서너 번이나 만들어 먹은 뒤에야 겨우 회복되었다. 쿤다리니가 사라진 장소에는 미간에 꽂혀 있던 검과 해골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란셀의 검(저주) 란셀 마을의 지도자 란셀이 사용하던 검입니다. 평범한 용병이 사용하던 검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산한 느낌이 드는 검입니다. 또한 쿤다리니의 미간에 꽂혀 독기를 오랫동안 쏘인탓에 강한 저주가 깃들어 버렸습니다. 저주를 풀기 전에는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란셀의 유해 란셀 마을의 지도자 란셀의 유해.] 아크의 얼굴에 실망감이 떠올랐다. 저주받은 아이템은 일종의 미확인 아이템이다. 그러나 미확인 아이템보다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미확인 아이템은 대도시나 유저들에게 일정량의 돈을 내고 확인할 수 있지만, 저주를 푸는것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에 있는 대성당에서만 가능했다. 결국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는 사용하지도 못하는 아이템이라는 말. 게다가 저주를 푸는데는 상당한 돈이 든다고 한다. 만약 저주를 풀었는데 별것 아닌 아이템이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래도 쿤다리니처럼 강한 몬스터의 생명력을50퍼센트나 깎고 있던 검이야. 의외로 굉장한 검일지도 몰라. 그런데 혹시 다른 아이템은 없나?' 아크는 검과 란셀의 유해를 챙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위쪽으로 이어진 통로를 발견한 아크는 다시 보스 놀이 있던 자리로 올라왔다. 그리고 동굴을 나가려는데, 문득 한쪽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는게 보였다. 보스 놀이 쿤다리니를 불러낼 때 기도하던 제단이어싿. 아크가 다가가 만져보자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고대 유물 부화의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고대 유물에 대한 지식으로 부화의 제단에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고대 몬스터인 쿤다리니가 도사리고 있던 음산한 동굴에 놓인 제단은 고대 유물 가운데 하나인 부화의 제단입니다. 부화의 제단은 그독특하고 신비로운 힘으로 고대부터 많은 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습니다. 부화의 제단이 가진 능력은 모든 종류의 알을빠르게 깨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동굴에서 살고 있던 수천 마리의 뱀은 고대 몬스터인 쿤다리니가 이 부화의 제단을 이용해 증식해 온 것임이 분명합니다. 고대 유물 부화의 제단의 정보를 습득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식+10 지능이 5, 운이 3,명성이 30 상승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뱀이 많았던 건가?' 그다지 대단한 비밀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능 보너스로 마나가 올랐으니 좋은 일이다. 제단을 들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크는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걸음을 멈췄다. '가만? 모든 알의 부화를 촉진시킨다고?' 그렇다면 의외로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알이라면 아크에게도 하나 있지 않은가. 아크는 혹시나 싶어 얼은 유계의 알을 소환해싿. 그러나 제단 위에 올려놔도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크는 혹시나 싶어 제단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요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계란을 담그자 메시지창이 올아왔다. [서바이벌 요리가 완성됐습니다. 그러나 유계의 알에 모두 흡수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효과의 요리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유계의 알에서 반응이 감지 되었습니다. *부화의 제단 효과로 유계의 알 성장이 500% 빨라졌습니다.] '그렇지,이거다!' 성장이 500퍼센트나 빠르다. 그렇다면 요리 한 번에 다섯번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 '여기서 부화시키지 못하면 언제 깨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 아크는 아에 식재료를 모두 꺼내 놓고 서바이벌 요리를 만들어 댔다. 성공률은 열번에 한번 꼴이었다. 그렇게 오십번을 시도해 다섯 번 정도 성공시키자 드디어 서바이벌 요리도 중급으로 상승했다. [많은 경험으로 서바이벌요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중급, 패시브) : 식재료에 향신료를 섞어 요리 성공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향신료가 가미된 음식은 더 강한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음식 효과의 지속 시간도 2배로 늘어납니다. 단, 강해지는 효과는 좋은 것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십시오. 음식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동시에 유계의 알에 수많은 균열이 번져 나가더니 이윽고 반으로 갈라졌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 유계의 알이 부화됐습니다! "드, 드디어!" 아크는 흐릿한 빛과 함께 떠오르는 형상에 시선을 집중했다. 드디어 소환수가 세 마리가 되었다! 소환수는 두 마리만으로도 상당한 전력이 되고 있다. 이제 세 마리가 되면 사냥 속도는 더욱 빨라지리라. 아크의 눈동자는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빛잉 사라지고 나타난 형상에 아크는 질색하며 눈가를 찡그렸다. "이게 뭐야? 배,뱀?" 새로운 소환수는 코브라처럼 목 부분이 넓은 뱀이었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이면 뱀이란 말인가? 동굴에 들어선 뒤로 수천마리의 뱀에게 공격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쿤다리니와 싸우며 죽을 고생을 해 이제 뱀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뜯어보니 그렇게 끔찍한 느낌은 없었다. 소환수는 지금까지 봐 온 뱀과는 생김새가 많이 달랐다. 비단구렁이처럼 매끈한 몸이 일견 예뻐 보이기도 했다.특히 왕방울처럼 동그랗고 커다란 눈을 사파이어처럼 푸른색이다. 그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어쨌든 뱀이니 뭔가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정보창!"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이게?" [아라모네의 유생 유계에 살고 있는 신비한 뱀, 아라모네의 새끼입니다. 아라모네는 눈에 보이는 아이템은 모두 배 속에 담아 놓는 습성을 가진 신비한 뱀입니다. 삼킨 아이템을 소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아이템을 탐내는 마족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포획되어 지금은 멸종되었습니다. 때문에 알려진 사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격은 온순하고 정이 많습니다. 또한 아라모네는 알에서 깨어나 처음본 존재를 부모로 인식합니다. 아라모네가 알에서 깨어나 처음본 존재는 당신입니다. 이제 아라모네는 당신을 부모로 생각하며, 어떤 상화에서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충성스러운 소환수가 될 것입니다. 또한 혈연읭 정으로 묶여 있기에 전투가 벌어져도 마나를 소비하지 않습니다. 종족 : 유계 생물 성향 : 어둠 등급 : - 생명력 : 50 충성도 : - 힘 - 민첩 - 체력 - 지혜 - 지능 - 운 - *소환자와 같은 양의 아이템을 무게 제한 없이 보관할 수 있습니다.] 죽어라 고생해서 겨우 부화시켰더니 스탯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전투에 써먹지는 못한다는 뜻. 그러나 특수 능력이 아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다고?' 아크는 애교스럽게 팔을 타고 오르는 뱀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싶어서 란셀의 검을 슬쩍 내밀어 보자 뱀은 멀뚱히 바라보다가 돌연 개구리가 파리를 잡아먹듯 혀를 내밀어 날름 삼켜버렸다. '어라? 이거 정말 먹어 버린 거 아냐?' 아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뱀을 바라보았다. "다시 뱉어!" 아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치자 뱀이 다시 입을벌리며 아크의 손에 검을 뱉어 냈다. 그리고 똘망똘망할 눈을 깜빡거리며 칭찬해 달라는 듯 머리를 문질러 댔다. 아크의 입가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 이건 또 뭐야?" 신기하다고 해야하나, 웃긴다고 해야하나?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느껴져싿. 그러나 일단 처음 느꼈던 실망감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보조 가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른소환수처럼 전투가 벌어져도 마나를 먹지 않는다면 부담도 없었다. 근래에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다크 워커는 다른 직업에 비해 가방 용량이 적은 편이었다. 상인과 생산직 직업의 경우 기본 가방이 6개나 지급된다. 마법사 계열은 기본 가방과 그 반 용량인 보조 가방 3개. 심지어 잔사까지 기본 가방에 보조 가방 하나가 덤으로 따라붙는다. 그러나 아크는 전직을 하면서 가방 용량이 약간 늘어난게 다였다. 그런데도 온갖 식재료를 챙기다 보니 가방 용량이 항상 부족했다. 물론 가방 용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대도시에서 파는 마법 가방은 기본 용량의 4분의 1짜리가 무려 200골드! 아크는 그 무지막지한 가격을 듣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다. '기본 가방과 같은 용량을 보관할 수 있다니 어쨌든 800골드를 번 셈이군. 다크 워커에게 추가 가방이 지급되지 않는 건 이녀석이 있었기 때문인가?' "좋아, 이제부터 편하게 뱀이라고 부르겠다." 뱀은 말귀를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나게 몸을 비비적거리다가 허리에 감겼다. 마치 뱀 가죽으로 만든 벨트처럼 보였다. "은근히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이정도면 만족이다." 이제 동굴에서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아크는 다시 란셀 마을로 향했다. "자네가 정말 해냈군!" 놀의 가죽을 늘어놓자 상점 주인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건 약속한 보수일세. 가죽 하나당 20실버. 모두 21골드네.그리고 이건 마을을 구해준 보상이네." 가렌은 모두 31골드의 보상을 내밀었다. 퀘스트를 해결하자 덤으로 가렌과의 친밀도도 상당히 올라갔다. 덕분에 동굴에서 챙겨 온 잡템을 시세의 10퍼센트롤 올려팔수 있었다. 대강 정리를 끝낸 아크는 란셀의 유해를 돌려주며 쿤다리니에 대해 설명했다. 가렌은 놀랐지만 이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에 그런 괴물이 살았군. 하긴 이상하긴 했지. 란셀은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 강한 용병이었네. 그런 사람이 고작 놀에게 당했다고는 믿기지 않았어." "네, 저도 란셀이 쿤다리니에게 입혀 놓은 부상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기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대체 란셀이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동굴에 홀로 들어가 그런 괴물과 맞섰을 정도라면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얘기인데........" 아크는 혹시 란셀의 검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싶어 물었다. 가렌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맞네, 란셀은 평범한 용병이 아니지. 한때 국경 전선에서 흡혈귀라고 불릴 정도로 잔인한 용병이었어. 그의손에 죽어간 병사가 수백 명이 넘지. 하짐나 그건 란셀의 본의가 아니었어. 전장이, 검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던 것뿐이었어. 결국 정신을 차린 란셀은 자신의 행동에 환멸을 느끼고 전장을 떠났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개척민들을 이끌고 이 마을을 세울 결심을 하게 된 거네." "그래서 무시무시한 괴물과 싸우면서까지 마을을 포기하지 못한 거군요." "그렇지, 그역시 나름의 속죄였을 거야." 가렌이 한숨을 불어 냈다. "그의 과거가 어쨌든 나는 그를 존경하네. 그가 세운 이 마을도 사랑하지. 이제 자네 덕에 위험이 사라졌으니 내생을 다 바쳐서라도 마을을 재건할 생각이네. 그래서 말인데 ..........자네는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할 생각인가?" "네, 물론입니다."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나?" "말씀하십시오." "란셀을 따라나섰던 개척민들은 모두 이 마을을 사랑하네 .그들이 마을을 떠난 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해서일 뿐이지. 하지만 이제 위험은 사라졌네. 자네가 여행을 하는 도중 혹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 사실을 알려주게. 그들이라면 꼭 다시 돌아올 거네 .물론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 보내줘도 좋네. 이 마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세상을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란셀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리고. 이마을이 얼마나 명예롭고 정겨운 곳인지를 설명해 주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개척 마을 란셀의 불행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란셀의 잡화상점 주인 가렌은 란셀의 유지를 이어 마을을 재건하고 싶어 합니다. 현재 란셀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주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맴돌아야 란셀은 진정한 마을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가렌은 당신에게 란셀의 주민이 될 사람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래전 란셀과 뜻을 같이했던 개척민과,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까지. 가렌은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란셀의 뜻을 받들어 모든 이 주민을 허물없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이곳으로 인도하면 란셀 마을은 틀림없이 란셀이 바라던 마을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 성취도0% 난이도 : C] 퀘스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퀘스트각 발동한 이상 어딘가에 단서가 있으리라. "란셀의 검은 자네가 보관하게. 란셀도 그걸 바랄 걸세." 물론 달라고 해도 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그 말을 끝으로 아크는 란셀을 떠났다. 란셀을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해골 소환이었다. 딱딱딱. 아무 일 없다는 듯 이를 부딪치는 해골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다시 살아나기는 했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해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유저보다 죽음을 실감하는 NPC가 더 하기 힘든 행동이다. 그러나 해골은 망설임 없이 자신을 희생했다. 또한 박쥐 역시 최선을 다해 아크를 도왔다. 그런 소환수를 보자 새삼 애정이 샘솟았다. '기특한 녀석들' 새 식구가 된 뱀 역시 사랑스러웠다. 뱀은 정말아크를 부모로 생각하는지, 틈만 나면 몸을 비벼대며 애정 공세를 펼쳤다. '그래, 나에게는 이 녀석들뿐이다.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끝까지 이녀석들과 함께 가겠어.' 단순히 연대감이 강해진 것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득도 생겼다. 이제 가방 공간 때문에 아이템을 포기할 일은 없다. 뱀 덕에 아이템을 2배나 보관할 수 있게 되자 아크는 더욱 탐욕스럽게 변했다. '식구가 늘었으니 1쿠퍼라도 더 벌어야지.' 아크는 손거울의 빛을 따라 가며 잡템과 식재료를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때문에 걸음은 더욱 느려져 ,일주일 뒤에야 아구스 산맥을 넘었다. 아구스 산맥의 반대쪽은 아직 미개척 지역이다. 며칠을 걸어도 유저는 커녕 NPC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와 수해를 지나기를 몇번, 곳곳에서 만나는 몬스터를 사냥해 50레벨을 달성하고, 2배나 되는 가방에 잡템이 꽉 들어찰 무렵에야 아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등대다!' 해변 한쪽에 그림 같은 풍경의 등대가 우뚝 서 있었다. 손거울을 통해 본 등대, 참으로 긴 여행 끝에 도착한 목적지였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아름답기만 한 곳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등대 주변에는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상어를 닮은 외모에 팔과 다리가 달려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고양이의 눈으로 정보를 확인해 보니 샤크맨이란다. 레벨은 55였는데, 동레벨의 지상 몬스터보다 약간 더 강했다. '뭐, 그럭저럭 상대할 만하지만 한마리 이상 상대하기는 어려워.일단 밤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군.' 밤에는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나 올라간다. 어둠을 벗 삼아 싸우는 것. 다크워커의 기본 전법이었다. ACT 3 해저 도시 노드리스 현우의 걸음걸이에 활기가 넘쳤다. 오늘 아침에 걸려 온 전화 덕분이었다. "박소미 씨 보호자 되십니까?"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임을 알았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지금까지 병원에서 좋은 소식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입원초기에는 어머니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는 소식뿐이었고, 어머니가 조금 안정된 뒤로는 병원비가 밀렸다는 독촉 전화가 걸려왔다. 어느 쪽이든 반갑지 않은 전화였다. 목소리가 저절로 긴장되었다. "네, 그런데요?" "박소미 씨 병세가 요즘 많이 호전됐습니다. 그래서 주치의께서 천천히 재활 치료를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닥고 하시는데요." "조, 좋아지셨다고요?" "네, 절차상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라서요. 보호자분의 의향은 어떤지 여쭤 보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럼 오늘 병원에 방문하셔서 동의서에 서명해 주십시오. 재활 치료의 프로그램과 추가 비용은 병원에 오시면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근래들어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뇌를 포함한 전신 수술을 받고 처음 2년은 혼수상태였고, 깨어나신 뒤로도 팔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심지어 가끔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며칠이나 정신을 잃어버린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현우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과도한 충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의사들은 어머니의 증상을 그렇게 설명했다. 스트레스.의사에게는 참 편리한 단어가 아닐수 없다. 무슨 증상이든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되니까. "현재로써는 우리가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 상태를 지켜보며 호전되기를 기다려 봐야 합니다." 그게 의사들이 내린 처방이었다. 그리고 상태가 호전되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한 달에 300~400만원이나 되는 병원비를 내야 해싿.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 증세가 악화되면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될지도 모르겠다고 지껄였다. 그따위로밖에 말하지 못하는 의사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 환자의 가족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현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울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기도가 통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4년을 보내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1년전부터 어머니 상태가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겨워하지만, 식사 정도는 혼자 할수 있었다. 또한 대화를 나누는 데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지껄이던 의사가 재활 치료를 운운할 정도니 엄청난 변화였다. 현우는 과일 바구니를 사 들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병실을 찾았다. "어, 현우야." 병실에 들어서자 중년 남자가 허둥지둥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권 형사님." "그래, 오랜만이구나. 별일은 없지?" "저야 항상 그렇죠." "병원에 나오는 날이라 잠깐 들어 봤다." "일부러 설명하실 필요 없어요." 권 형사는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흠흠, 그럼 얘기 나누거라. 나는 나가 있으마." 권 형사라고 불린 중년 남자는 절뚝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현우는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빙긋 웃었다. "어머니, 얘기 들었어요. 요즘 많이 호전되셨다고." "그래, 몸이 나아져서 그런지 요즘은 기분도 좋구나." 어머니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척해진 볼을 보니 가슴이 아리다. 어머니 나이도 이미 마흔 중반, 그래도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누구에게나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던 어머니다. 그러나 5년간의 병원생활은 어머니에게서 과거의 모습을 앗아 가버렸다. '어떻게든 어머니에게 예전의 모습을 찾아 드려야해.' 현우가 모든 것을 포기해서라도 얻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은 하나뿐이었다. 현우의 얼굴에 그늘이 지자 어머니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구나,내가 이러고 있을 떄나 아닌데........." 어머니는 항상 현우를 보면 그 말부터 했다. 현우는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지만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아니, 모를 리가 없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친척들은 겨우 두세 번 들렀을 뿐이다. 그리고 요즘 생활이 어렵네 어쩌네 하는 소리만 지껄이다가 돌아갔다. 아무리 어머니가 병중이라도 그런 친척들이 병원비를 부단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리가 없다. 현우가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은 그런 친척들의 영향이 컸다. 결국 모든 부담은 현우의 몫. 아는 내색을 못 하는 건 현우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리라. "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건강해질 생각만 하세요. 저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에요.스물둘이라고요. 어지간한 일쯤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 어린애가 아니지." 현우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촉촉히 젖어 들었다. 5년............노인에게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이어지는 평범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2였던 현우는 스물두 살의 청년이 되었다. 젊은이가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시간. 병석에서 그런 아들의 어깨를 짓누르며 변화를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권형사님은 자주 오시네요." "그래, 고마운 분이시지. 벌써 5년이나........" "네, 저도 권 형사님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에요." 현우는 진심으로 권 형사, 권화랑을 은인처럼 생각했다. 5년 전 아버지가 일으켰던 사고는 현우의 인생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피해자가 죽었다. 연쇄 충돌을 일으켜 10여 명의 중경자도 발생했다. 몇 초에 불과하지만 뉴스에도 나왔던 사고였다. 앵커는 김 모 씨를 거론하며 이런식의 무책임한 운전은 곤란하다는 식으롤 지껄였다. 사방에서 몇 초에 불과한뉴스의 힘은 굉장해싿.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친척들도 등을 돌렸다. 현우가 믿고 있었고, 또 영원히 지속되리라 생각했던 일상은 너무나 쉽게 무너졌다. 고2에불과한 현우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현실. 그때부터 현우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길거리에서 쌍무도 했다. 사고를 일으킨 아버지가 미웠고, 손가락질해 대는 세상이 미웠다. 그때 현우를 찾아 멱살을 잡아 일으켜 준 사람이 사고 조사를 전담했던 형사,권화랑이었다. 현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곤죽이 될때까지 맞아 보았다. 그리고 권화랑의 손에 질질 끌려 병원에 왔다.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그곳에 있었다. 현우가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밤거리가 아니었다. 중환자실에서 몇 개나 되는 링거왕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어머니였다. 그날, 현우는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다. 권화랑은 그 뒤로도 항상 현우를 챙겨 주었다. 학교에 일이 생기면 만사를 제쳐 놓고 찾아와 주어쏙, 인맥을 동원해 보수가 괜찮은 아르바이트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급하게 대출을 받아야 할 때는 자청해서 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건 그 덕분이다. 현우에게 권화랑은 은인, 아니 그 이상의 존재였다. "권 형사님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 생각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무슨 말이니?" "권 형사님이 병원에 찾아오는 이유가 책임감 때문만은 아닐걸요. 겉보기에는 곰 같아도 뱃속에는 구렁이가 있다고요. 권형사님은. 어머니도 알고계시죠?" 현우가 음흉한 웃음 지어보이자 어머니는 귀밑까지 빨개졌다. "이 녀석이,엄마를 놀리니?" "하하하,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싫지는 않으신가 봐요?" "못된 녀석, 행여 권 형사님 앞에서 그런 말 말거라." "어머니." 돌연현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무겁게 입을 열였다. 어머니가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반대 안해요." "이녀석이 정말!" "하하하, 잠깐 나가서 권 형사님 좀 뵙고 올게요." 현우느 놀리듯 어머니의 손길을 피하며 병실을 나갔다. 병실 옆에 앉아 있던 권화랑이 빙긋 웃으며 물어왔다. "어떠냐?많이 괜찮아지셨지?" "네, 성격도 많이 밝아지셨어요.고마워요." "내가 뭐 한게 있다고.........." 권화랑은 무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현우를 힐끔거리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담배를 꺼내들었다가 간호사의 눈총을 받고 얼른 다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그런데 현우야." "네." "의사에게 들어 보니 곧 재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데........그 뭐냐.......재활치료라는게 말이다. 들어보니 돈이 꽤 많이 든다고 하더라. 그런데 너는 보험도 안 되잖아. 그러니까 말이다. 아니 사실은 내가 보기보다 돈이 좀 많아." 권화랑이 횡설수설하며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맞아, 내가 돈이 좀 많아. 그거야. 형사 때려치우면서 받은 퇴직금도 꽤 남았고, 연금도 나오고, 지금 하는 일도 벌이가 괜찮은 편이고.......아니, 나 잘났다는 소리가 아니고, 돈은 있는데 이게 또 쓸데는 없어요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됐어요." 현우는 고개를 저어싿.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지 알아요. 정말 감사합니다.하지만 괜찮아요. 어머니 병원비는 저 혼자서도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아니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라. 그냥 내가 돈 쓸데가 없어서 그래." "형사님 . 어머니 좋아하시죠?" 현우에게 정곡을 찔린 권화랑은 화들짝 놀랐다. "그, 그건.........." "숨기실 필요 없어요. 저도 어린애 아니에요." "미안하구나." "뭐가 미안해요? 저도 권형사님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그럼 뭐가 문제냐?" "하지만 제가 권형사님을 좋아하는 것과 이일은 별개예요. 권형사님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곡 병원에 끌려왔던 때 기억하세요?" "음, 그런 일도 있었지."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를 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생각 없이 살아왔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맹세했죠.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힘으로 어머니를 낫게 해 드리겠다고. 권형사님의 돈이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에요.자존심이 상한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저 내가 한맹세를지키고 싶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어머니 일이니까." 권화랑은 말없이 바라보다가 현우의 가슴을 탁탁 쳤다. "기특한 녀석." "전 그런 말ㅇ르 들을 자격이 없어요.아직은" "그렇게 말하는 게 기특하다는 거야." 권화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알았다. 사내라면 그런 고집 정도는 있어야지. 네 뜻대로 해라. 하지만 이거하나는 약속해. 혼자 감당하기 힘든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나를 찾아와야한다. 약속해 줄 수 있지?" "네 ,권형사님."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형사 때려치운 게 언젠데. 난 이만 가보마." 권화랑이 몸을 돌리고 복도를 걸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쩔뚝대는 모습에 기분이 씁쓸했다. '왜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든일을 겪는 걸까?' 권화랑은 2년전,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강도를 혈투 끝에 체포했다. 그러나 체포 과정에서 발목과 종아리를 몇번이나 칼에 찔려 결국 불구가 되었다. 훈장을 받아도 모자란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체포 과정에서 발포한 한 발의 총이 문제였다. 총에 맞은 강도는 부상을 입었지만 후유증도 없이 회복되었고, 권화랑은 불구가 되었다. 그럼에도 여러인권 단체에서는 과잉 대응이니, 무책임한 공권력의 횡포니 난리를 피워 댔다. 그들에게 강도는 사람이고, 형사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인권단체가 난리를 피워 대니 매스컴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두 집단이 손을 잡으니 사람 하나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결국 권화랑은 폭력 경찰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불명예 퇴직하게 되었다. 다행히 경력을 인정받아 현재는 보호관찰 중인 전과자를선도하는 일을하고있지만, 정당한 보상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처럼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던 열혈 형사 권화랑, 그의 어깨가 항상 처져 있게 된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리라도 낫는다면.........' 거기까지 생각하자 문득 뉴 월드가 떠올랐다. 가상현실 게임에는 장애인이 없다. 뇌를 스캔해서 캐릭터를 움직이니 신체의 장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게임 내에서는 권화랑도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뜻. "권 형사님, 혹시 게임 해 보신 적 있어요?" "게임?" 권화랑이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예전에 조금 해 본적은 있다만 ........" "그럼 뉴 월드라는 게임 꼭 한번 해 보세요." "너 요즘 게임 하냐?" "네, 해보시면 권 형사님도 좋아하게 되실 거에요." "뉴 월드, 들어 보기는 했는데........" 권화랑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시간 날 때 한번 해 보기는 하마." "꼭요." 그림 같은 해변이 어둠에 물들었다. 어둠이 있기에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달과 별이 떠올랐다. 어둠은 걷는 자, 다크 워커의 시간이다. 등대를 지키는 샤크맨은 생긴 대로 야행성 몬스터였다. 밤이 되자 30퍼센트의 능력치가 상승했다. 반면 아크가 어둠속에서 받는 능력치 보너스는 20퍼센트, 그럼에도 아크는 굳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투를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의 능력치 상승. 이건 아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아크를 숙주로 삼는 소환수의 능력도 함께 상승한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민첩이나 지능의 상승은 팀플레이에서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기동성과 전투 상황의 이해도, 위기 대처능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환수를 제대로 다룰 줄 알게 되면서 깨달은 부분이다. 결국 아크 혼자만의 능력을 보면 20퍼센트에 불과했지만 팀 전체로 보면 40퍼센트이상의 효율이 상승되었다. 거기에 특수 능력인 '은신'을 가미하면 작전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해진다. 어떻게 보면 아크는 비로소 진정한 다크 워커가 됐다고 할 수 있었다. '밤은 길다. 서두를 필요 없어.' 목적지가 코앞이지만 아크는 서두르지 않았다. 샤크맨은 호전적이다. 사방이 탁 트인 해변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주변에 있는 샤크맨들이 모두 몰려들 게 분명했다. "박쥐, 한 마리 씩 유인해 와라." "알았다. 주인." 곧이어 어둠을 가로지른 박쥐가 샤크맨을 귀찮게 찝쩍거렸다. 점차 분노 게이지가 차오른 샤크맨이 괴상한 소리를질러대며 박쥐를 쫓아왔다. 아크가 직접 나섰다면 모든 샤크맨들이 몰려들었겠지만, 고작 박쥐니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박쥐는 아크가 '은신'하고 있는 으슥한 숲까지 샤크맨을 유인했다.뒤이어 벌어진 상황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첫 일격은 백스텝. 고양이의 눈이 발동되고, 연이어 다크블레이드가 폭발했다. 아크는 쿤다리니와 싸운 뒤로 지능에 좀 더 스탯을 투자해서 마나를 600까지 끌어 올렸다. 고양이의 눈과 다크블레이드를 네번 연사하고도 소환수를 1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으슥한 곳으로 끌려온 샤크맨은 1분 뒤 수프가 되었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상어 지느러미 수프입니다. 영양이 풍부한 상어 지느러미로 만들어진 수프로, 훌륭한 맛을 자랑합니다. 깔끔한 맛의 향신료가 첨가되어 식재료의 숨은 효능까지 끌어냈습니다. 만복도+50% 1분에 걸쳐 생명력 400만큼 회복, 특수 효과(상어의 피부): 30분간 방어도 20 증가.] 서바이벌 요리가 중급이 되자 요리를 실패하는 일이 적어졌다. 그리고 란셀에게 몇 가지 사 들고 온 향신료를 첨가하자 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새로운 특수 효과까지 부여되었다. 예를 들면 힘을올려주는 대신 한동안 혼란에 빠지게 되는 포효하는 칠레무침에 향신료를 첨가하면, 민첩까지 올라가고 혼란 지속시간이 짧아지는 식이다. 물론 좋은 효과만 추가되는 건아니었다. 음식을 만들면서도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서바이벌 요리! 단순히 마나만 회복시켜 주는 상쾌한 허브차에 향신료를 첨가하면 중독 증세가 생긴다. 그래서1시간동안 10분간격으로 허브차를 마셔주지않으면 마나가 0이 돼 버린다. 때로는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 음식이 더 훌륭한 것이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은 효과였지만 그건 그대로 재미있었다. 아크는 요리 정보창을 띄우며 흐뭇한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벌써 레시피를 팔십 가지나 모았군.' 그중 3분의 2는 독극물에 가까웠지만 뭔가 늘어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어쨌든 상어 지느러미 요리로 생체 실험을 당한 박쥐는 다시 한 단계 능력치를 올렸다. 그리고 더 많은 식재료의 확보를 위해 열심히 샤크맨을 사냥해 나갔다. 옆의 동료가 사라져 가는 데도 샤크맨들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주변에 돌아다니는 동물을 잡아먹느라 정신없었다. 덕분에 두 시간이 지나자 모두 정리되고 등대 앞을 어슬렁거리는 샤크맨하나만 남게 되었다. 대장 격인지, 다른 샤크맨에 비해 덩치도 크고 검은색이었다. "고양이의 눈." 정보를 확인해 보니 레벨 58. 아크의 레벨은 50 어둠에 의한 보너스를 가감해보면 10레벨 이상차이나는 몬스터였다. 그러나 아크는 칭호나 퀘스트로 보너스를 받아 레벨에 비해 각종 스탯이 높았다. 그 점까지 감안하면 차이는 고작6정도.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금까지의 여행을 결산하기에 좋은 수준이군.' "박쥐, 해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아크는 소환수를 대기시켜 놓고 홀로 등대로 걸어갔다. 인간이 다가오자 샤크맨이 흉성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몸을 회전시키며 뒤돌려 차기로 놈의 턱을 후려쳐싿. 팩 돌아간 놈의 입이 닫히며 딱, 소리가 울렸다. 그것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뉴 월드에서 레벨이란 보편적인 수치다. 다시말해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다. 전투에서 절대란 존재하지 않느낟. 주변 상황, 그때그때의 판단 , 반사 신경,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때로 월등히 강한 사람이 상대도 안 될 것 같은 사람에게 지기도 하는 게 싸움이다. 뉴월드도 그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물론 레벨과 능력치는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레벨이 월등히 높다는 건, 승리 확률이 한없이 99퍼센트에 가깝다는 의미일뿐, 100퍼센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크는 지금까지 싸워 온 보스 몬스터들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통해 몸에 익힌 기술을 샤크맨에게 모두 쏟아 냈다.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리지도 않았다. 다크 블레이드는 커녕 고양이의 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직 실전으로 익힌 감각만을 사용해서 샤크맨을 몰아쳤다. 연속적인 발 차기 그리고 뒤따르는 검격! 허점을 파악하는 능력은 굳이 스킬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태권도와 검격이 교차하며 정신없이 치명타를 터뜨렸다. 아크의 생명력이 30퍼센트까지 내려갔을떄, 결국 샤크맨은 무릎을 끓고 많았다. "멋지다,주인!이번에는 정말 멋졌다!" 딱딱딱! 딱딱딱!딱딱딱딱딱딱딱! 박쥐와 해골이 삼삼칠 박수를 보내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아크는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흥분이 가라앉자 가슴이 뛰었다. 일부러 떠들어 대지 않아도 확실히 강해졌다는 걸 실감할수 있는 전투였다. 샤크맨이 사라지며 상어 지느러미와 몇가지 아이템이 떨어졌다. [샤크맨의 족쇄(마법) 방어구 타입: 돌 부츠 방어럭 : 10 내구력 : 20/20 무게 : 100 사용 제한 : 힘 120 이상 샤크맨 대장이 차고 있던 족쇄, 상당히 무거운 돌로 만들어져 착용하면 동작이 굼떠진다. 방어력도 낮아 전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게로 인해 폭풍이 몰아쳐도 중심을 유지할 수 있다. 옵션 : 민첩 -15,착용자의 몸에 무거운 하중을 부여함 .] [인어의 비늘(특수) : (5장) 바다의 주민인 인어의 비늘, 입에 물고 있으면 수중에서도 홓브할 수 있다.] 그리 쓸만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도 아니니 이 정도가 고작이겠지.' 샤크맨 대장을 처치한 아크의 시선이 등대로 향했다. 오랜 여행의 종착지다. 등대는 영상에서 봤을 떄와 달리 상당히 낡아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세히 보니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칠이나 벽돌이 흉가를 연상시켰다. 밤에 봐서 더 그렇게 느껴져싿. 그러나 등대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니 느낌이 또 달라졌다. 사방에 나 있는 창으로 밤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구분되는 해변과, 별빛을 반짝이며 밀려오는 바다. 마치 손거울을 통해 들었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손거울잉 인도한 곳이니 이곳에 퀘스트의 단서가 있으리라. 아크는 곧 등대 중심에 작은 홈을 발견했다. 홈을 발견하자 뭘 해야 될지 대충 감이 잡혔다. 아크는 손거울을 꺼내손잡이를 홈게 끼웠다. 쿠쿠쿠쿠! 그때였다. 갑자기 등대가 기음을 내며 회전해싿. 함께 회전하는 손거울 안쪽으로 풍경이 흘러 지나갔다. 그리고 손거울이 한 별자리를 향하게 됐을때, 돌연 회전이 멈췄다. 번쩍! 손거울은 별빛을 수백 배로 증폭시켜 밤바다를 향해 뿜어냈다. 반사된 빛은 어두운 밤바다에 길을 만들어 냈다. 두두둥거리는 북소리와 함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신비한 거울의 속삭임 =신세계의 입구 당신은 길고 긴 여행 끝에 드디어 등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알아야 합니다. 등대는 당신의 종착지가 아닌 이정표에 불과합니다.이곳은 세상의 끝이자. 선택된 자에게만이 허락된 또다른 세상으로 가는 입구입니다. 거울의 인도를 받아 신세계를 찾아내십시오, 새로운 모험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이도 : E 퀘스트 제한 : 고대 유물의 지식] '거울의 인도? 이번에는 저 빛을 따라가라는 건가?' 아크는 수면위로 내리쬐는 빛의 길을 바라보았다. 빛은 바다 속 깊은 곳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바다를 지나가라는 말, 대체 어떻게? 라고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옆에는 항상 답이 준비되어 있는 법이니까. '샤크맨 대장이 인어의 비늘을 준 이유가 이건가?' 아크는 손거울을 챙기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역시 인어의 비늘을 입에 물고 얼굴을 담가 보니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아크는 소환수들에게도 인어의 비늘을 하나씩 물리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숨을 쉬며 이동한다. 가끔 꿈속에서나 경험해 봤던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임이라고는 하나, 익숙하지 않은 그 감각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바다 속은 아름다웠다. 한없이 투명한 푸른색에 뒤덮이 해초와 산호초로 만들어진 숲. 그 쥐위를 떠도는 색색의 물고기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신비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러나 바다속도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기만 한곳은 아니었다. 물고기 떼가 확 퍼지더니 뭔가 거대한 물체가 아크를 덮쳐 왔다. '문어!' 바다의 악마, 데빌피쉬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 몬스터였다. 데빌피쉬는 8개나 되는 발을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아크는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뉴 월드는 현실과 같은 물리 효과가 적용된다는 점! 물속이라 움직이기는 커녕 제대로 중심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허우적거리는 아크의 눈앞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데빌피쉬에게 치명타를 허용했습니다. 데미지180 치명타로 180이니 보기만큼 강한 몬스터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아크에게 제대로 싸울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문어발에 얻어맞자 몸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해골과 박쥐도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엇다. '젠장, 중심만 잡을 수 있어도...........아, 그렇지!' "뱀, 샤크맨의 족쇄!" 아크의 목소리에 뱀이 재빨리 족쇄를 뱉어냈다. 너무 무거워 뱀에게 맡겨 놓은게 천만다행이어싿. 전투가 시작되면 무기나 방패 , 포션 이외의 아이템은 가방에서 꺼낼 수 없다. 그러나 뱀에게는 그런 제한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장비를 교체하는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두방의 타격을 더 허용하며 족쇄를 신으니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며 몸이 확 가라앉아싿. 덕분에 잃어버린 중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샤크맨이 준 아이템들은 바다 여행을 위해 꼭ㄱ 필요한 것들이엇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몸이 무겁다!' 족쇄의 무게만이 아니었다. 아크가 있는 곳은 수중, 인어의 비늘로 호흡은 가능해졌다고는 하지만, 물의 저항력 때문에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언제나 바람처럼 날아가던 검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려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데빌피쉬의 탄력도에 의해 공격이 실패했습니다. 퉁! 아크의 검이 데빌피쉬의 고무 같은 탄력에 튕겨 나왔다. "이게 대체 뭐야? 고양이의 눈!" 아크가 스킬을 외우자 데빌피쉬의 몸엥 붉은 반점이 그려져싿. 다른 몬스터는 수십 군대가 떠오르는 게 보통이었지만, 데빌피쉬는 3~4개밖에 없었다. 그것도 데빌피쉬가 공격을 가해 올 때, 몇군데가 잠깐 떠오를 뿐이었다. '공격을 위해 근육이 긴장되는 순간을 노려 역공해야 한다는 건가?' 데빌피쉬의 레벨은 40.아크보다도 낮았지만, 수중이라는 환경과 특수한 신체능력때문에 난이도는 몇 배나 더 높게 느껴졌다. 수중이라 민첩성이 엄청나게 내려간 상태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방어력을 무시하는 다크 블레이드라면 데미지를 줄 수 있겠지만 .............' 초반에 허둥대며 시간을 까먹은 탓에 남은 마나가 얼마 되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붉은 반점을 눈으로 확인하고 공격하면 늦는다. 데빌피쉬의 움직임을 미리예측하고 붉은 반점이 생기기 전에 찌르는 것이다. 아크는 방어에 전념하며 고양이의 눈으로 데빌피쉬의 움직임을 살폈다. 어떤 동작을 취할때 어떤 부분이 약점으로 판정되는 지, 하나하나 머리에 담아 둬싿. '됐어, 놈의 움직임은 대충 파악했다. 지금은 여기!' 아크는 또다시 날아오는 문어 발을 피하며 검을 찔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맞히기 어려운 만큼 일단 공격이 성공하면 100퍼센트 치명타가 터졌다. '좋아, 방법을 알면 이길 수 있어!' 아크는 문어 발을 피하며 카운터를 날리는 식으로 열번 정도 공격을 성공시켰다. 데빌피쉬가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였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 해지며 데미지가 들어왔다. 데빌피쉬가 먹물로 시야를 가리고 공격해 오는 것이다. 상상도 못했던 공격에 아크는 완전히 당황해버려싿.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공격을 성공시키기는 커녕 문어발을 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때, 한쪽에서 박쥐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 이쪽이다 지금찔러!"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또다시 치명타가 터지며 시야가 밝아졌다. 데빌피쉬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이게 간단히 생각할 일이 아니잖아.' 아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문어의 레벨은 고작 40.밖에서 그정도 레벨의 몬스터는 코를 후비면서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문어는 아크를 거의 빈사 직전까지 몰고갔다. 수중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아크의 능력치에 엄청난 패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도 아크가 실전감각을 갈고 닦지 못했다면 지금보다 10레벨이 더 높은 상태에서 들어왔어도 이기지 못했으리라. '앞으로 또 어떤 몬스터가 나타날지 몰라. 분명한건, 바다 속이니 밖의 몬스터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겠지. 과연 지금 상태로 데빌피쉬보다 강한 몬스터와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가죽 갑옷이나 돌 투구는 괜찮았지만,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수중 패널티가 작용해 착용하고있는 것만으로도 내구도가 계속 떨어졌다. [산호초 단검 무기 타입 : 단검 공격력 : 5~6 내구력 : 15 무게 : 15 사용 제한 : 없음. 산호초를 예리하게 갈아 만든 단검. 광택과 모양, 모두 만족스러운 검이다. 장식용으로 사용하기에는 그만 .재질이 산호라 통상적인 방법으로 는 수리가 불가능 하다.] 결국 아크는 샤크맨을 사냥하며 얻은 허접스러운 단검을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군.' 모든 상황은 최악이다.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의욕이 솟았다. '해저 몬스터들은 단순히 능력치만 높인다고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야.진짜 실력을 쌓아야 해!캐릭터가 아닌 내 레벨을 올릴 기회다!' 아크의 최대 관심사는레벨업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레벨이 올라양 더 강한 적을 쓰러뜨리고, 더 좋은 아이템과 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러나 아크가 생각하는 레벨 업이란 단순히 스탯이나 스킬 숙련도 를 올리는 것이아니었다. 안델처럼 오직 레벨과 수치에만 연연한 캐릭터의 말로를 봤지 않은가. 캐릭터의 능력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유저의 능력이다. 아크가 굳이 샤크맨과 1대1로 대결을 펼친 이유도 그것이다. 캐릭터의 스탯이 아무리 높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무의미. 레벨과 스탯을 100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오직 유저본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어차피 40레벨 대의 몬스터를 사냥해서 레벨 업을 하기는 힘들어. 하지만 숫자가 아닌 진정한 레벨업을 하기에는 이만큼 적당한 곳도 없다. 여기가 내가 두 번째 레벨업을 할수 있는 장소다.' 아란이나 다른 응시자들 때문에 너무 조바심을 낼필요는 없다.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캐릭터 레벨을 올리기 위해 안들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제 뉴 월드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일단 문어부터 정복한다!' 아크는 독하게 마음먹고 수련을 시작했다. 일단 수중에 익숙해지는게 첫번째 과제다. 아크는 주변에 돌아다니느 물고기를 잡기 시작햇다. 물고기는 아크에게 데미지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크기도 작고 움직임도 재빨라 연습 상대로 적당했다. 아크와 박쥐, 해골은 허우적거리며 물고기를 쫓았다. 수련은 게임 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크는 게임을 하며 틈틈이 수영장을 찾았다. 그리고 몇시간이나 물속을 걷고, 주먹과 발 차기를 날렸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보며 수군거렸지만,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제나 중요한 건 '나'지 '남'이 아니다. 사흘 정도 수련하자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이놈들!" 박쥐는 가오리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수중 유영하며 물고기를 쫓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자리에서 허우적거리던 사흘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발전이었다. 날개가 없는 해골도 나름 대책을 찾았다. 물살의 움직임을 적절히 이용하며 몸을 굴릴 수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가장실력이 뛰어난 건 허리에 감겨 있기만 하던 뱀이었다. 아크가박쥐와 해골의 성장을 칭찬하자, 뱀은 콧바우기를 뀌며 뱀장어처럼 바다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돌아와 자기도 칭찬해 달라는 듯이 몸을 꼬았다. 칭찬을 해 주기는 했지만, 전투에 쓸 수 없으니 의미 없는 능력이었다. 어쨌든 수련의 성과를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당연히 아크였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정신없이 날아오는 문어발을 모두 카운터로 받아쳤다. 아크의 움직임에는 막힘이 없었다. 여전히 수중에서의 움직임은 지상보다 느렸다. 그러나 수중에서는 수중에 맞는 움직임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물의 저항을 줄이면서 움직일 수있는가. 아니, 오히려 물의 저항을 이용할 수 있는가. 아크는 그 해답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았다. 물은 멈춰 있는 게 아니다. 항상 어딘가로 흐르고 있다. 물의 흐름을 읽고 거스르지 않느낟. 오히려 편승해 몸을 움직인다. 효과는 기대이상! '더 이상 데빌피쉬는 상대가 아니다.' 아크는 더깊은 수심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생김새도, 능력도 변태적이었다. 게를 닮은 몬스터 크렙은 온몸이 강철같은 껍질에 싸여 잇어, 검이 박히기는 커녕 오히려 내구도만 닳았다. 껍질이 약한 관절을 정확히 찔러야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닿기만 해도 마비에 걸려 버리는 촉수를 한꺼번에 수십 개나 휘둘러 대는 해파리형 몬스터 제리피쉬도 있었다. 하나하나가 까다롭기 짝이 없는 몬스터들! 그러나 아크는 꾸준한 수련으로 하나하나 격파해 나갔다. 처음에는 서너 번 검을 휘둘러야 겨우 타격을 입힐 수 있던것이, 횟수를 더할 때마다 줄어들어싿.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검을 휘두르는 족족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데빌피쉬의 먹물도 문제가 되지않았다. 처음에는 박쥐의 목소리로 간신히 위치를 알 수 있었지만 ,수중 전투에 익숙해지니 몰살의 움직임만으로 모든 에측이 가능했다.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 제리피쉬. 핵만 찌르면 두세방에 끝장낼 수도 있었지만 수십 개의촉수가 방해했다. 한방이라도 맞으면 마비에 걸려 생명력이 20퍼센트 이상 깎일 때까지 맞고만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역시 데빌피쉬의 문어 발 공격에 익숙해지니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이제 좀 느낌이 오는 군.' 아크는 더이상 음식 효과를 받지 않았다. 제리피쉬로 만든 음식은 수중 패널티를 50ㅍㅓ센트까지 줄여 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것도 먹지 않았다. 오직 감과 실력으로승부했다. 제대로 싸울 능력 만 갖춘다면 해저 몬스터는 아크의 상대가 아니었다. 한번 검을 휘두르면 연속적으로 서너 번의 타격이 터져나왔다. 본래 레벨은 아크가 더 높은 상태라, 공략법을 찾아내니 서너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도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렇게 열흘, 수많은 해저 몬스터를 사냥했지만 레벨은 고작 2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수중 패널티를 받으며 싸운덕에 검투술은 100이나 올라230을 넘어섰다. 또한 간병 스킬도 60이나 올랐다. 소환수들을 죽어라 부려 먹으며 스킬을 난사했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성과는, 아크와 소환수 모두 전투 감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이제 어떤 몬스터가 나와도 평지처럼 싸울 수 잇어.' 수중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을 수는 없다. 아크는 본격적으로 빛의 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닷길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막혀 있는 듯 보이지만 막상 가보면 뚫려 있는 곳도 있엇고, 그 반대인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또한 강한 해류가 밀려나오는 곳은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손거울의 빛은 무조건 직선으로 길을 제시했기에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아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거진 해초읭 숲을 헤치고 나오자 넓은 수중 평원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빛에 휩싸인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목적지인가!"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왓다. 마치 거대한 산호초처럼 솟아난 건물들과 성벽 사이로 찬란한 오색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건물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것은 놀랍게도 인어였다. 인어들은 물고기를 닮은 하반신에 ,얼굴 양쪽으로 지느러미가 달려있었다. 그들이 색색의 물고기들과 어울려 돌아다니는 장면은 동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생선이다. 생선이야!" 박쥐가 입맛을 다시며 소리쳤다. 물고기를 잡는 수련 끝에 생선 맛을 알아 버린 것이다. "행여나 저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젠장, 맛있을 텐데!" "...........그냥 입다물고 있어" 박쥐를 째려 준 아크는 도시 입구로 다가갔다. "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아크는 입구의 경비병에게 말을 걸었다. 조개껍데기를 연결해 만든 갑옷과, 무슨 뿔을 가공해 만든 듯한 창을 들고 있는 경비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자네는 인간이군. 그렇지?" "네, 인간입니다." "인간을 보기는 처음이군. 대재앙 이후로 외부와는 완전히 길이 끊겼다고 생각했는데..........그나저나 정말 꼬리가 없군. 그렇게 불편해 보이는 다리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어. 아, 그리고 어떻게 숨을 쉬고 있지?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못쉰다고 하던데?" "우연히 인어의 바늘을 손에 넣게 됐습니다." 아크는 샤크맨에게서 인어의 바늘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인어 경비병은 호감어린 눈으로 끄덕였다. "그 멍청하고 흉포한 샤크맨들은 인어족의 원수네. 그런 샤크맨을 쓰러뜨리고 인어족의 원수를 갚아 준 자네는 분명 훌륭한 모험자겠지.또한 우리는 인간을 적대시하지 않네. 모처럼의 손님이니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이름은 뭡니까?" "그것도 모르고 찾아왔단 말인가?" 인어 경비병은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곳은 바다의 주민 인어족의 도시, 노드리스네. 해신의 가호를 받아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허락받은 유일한 곳이지. 자네도 이곳에 있다 보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걸세. "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많은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도시만 봐도 인어족의숭고함이 전해져 오는 것같군요." "오오, 자네는 뭘 좀 아는군." 인어경비병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많은 NPC와 친밀도를 최상으로 만들어온 아크다. 생선 한마리 구워삶는 건일도 아니었다. 아크는 입에 발린 소리로 친밀도를 올려놓고 본론을 꺼냈다. "혹시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아십니까?" 손거울의 영상에서 잠시 나왔던 이름 크리스틴. 현재로써는 퀘스트를 풀기위한 유일한 단서였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햇다. 친근한 눈길을 보내던 인어경비병의 눈동자에 돌연 경계심이 깃들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나?" "실은 저는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을 찾아 이곳까지 왔습니다." "이곳에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은 없네." "네. 알고있습니다. 아마도 굉장히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 같은데..........."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인어 경비병은 버럭 성징을 내며 팩 고개를돌려 버렸다. 모처럼 올려놓은 친밀도가 급하강하는게 느껴졌다. "자네가 샤크맨을 쓰러뜨리고 이곳을 찾아온게아니라면 당장 내쫓았을 걸세." 틀림없이 인어 경비병은 크리스틴에 대해 알고있다. 어떻게든 더 정보를알아 보고싶었지만, 여기서 더 친밀도가 내려가면 도시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을 것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했던 모양이네요." 아크는 대충 얼버무리고 도시에 들어섰다. 도시에 들어서자 박쥐가 성을 냈다. "뭐야,저녀석은 ? 생선 주제에!"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어라. 정신 사나우니까." 아크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어 경비병만이 아니었다. 도시에 들어서서 몇몇 인어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반응은 모두 같았다.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 성질을 내고 다시 상대하려 들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퀘스트가 자연스럽게 풀릴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아직도 변함이 없엇다. 인어가 저렇게 과민 반응 보인다는 건, 뭔가 사연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만 꺼내도 성질을 내니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ACT 4 민심을 얻어라 '휴,정말 암담하군.' 아크는 한숨을 불어 냈다. 닥치는 대로 인어를 붙잡고 물어 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크리스틴에 대해 알아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의 경험으로 보면 이런 상황의 해결 방법은 하나. 인어들과 친밀도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상당히 높은 친밀도를 요구한다는 정보라는 점. 인어 경비병의 반응을 보면 고작 말 몇 마디롤 얻은 호감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 낯선 해저도시에서 어떻게 친밀도를 올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크리스틴보다 인어에 대한 정보를 얻는게 우선이겠군.' 아크는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하고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노드리스는 인간 마을과는 약간 달랐다. 인간 마을은 아무리 규모가 작아도 주점, 여관, 각종 상점이 뺴곡히 들어서 잇다. 그러나 노드리스는 서너 개의 마을 크기임에도 식당과 잡화 상점이 하나씩밖에 없었다. ' '일단 잡템이나 정리할까?' 보름 가깝게 바다 속을 헤매느라 가방과 뱀 배 속에 아이템이 가득 차 있었다. "호오. 인간이군. 내 상점에 인간이 찾아오다니 놀랍군. 그래. 뭘찾는건가?" 잡화상점에 들어서니 나이가 지긋한 인어가 아크를 맞았다. 얼굴이 쭈글쭈글하고 수염이 덥수룩한 인어는 정말 아니지 싶다. 그러나 아크는 짐짓 친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팔 것도 있고, 살 것도 있습니다. 먼저 상점을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게." 아크는 상점에 놓인 물건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모두가 처음 보는 형태의 물건들이었다. 해저 도시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재료도 모두 바다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방패나 고래수염으로 만든 활, 다랑어 뼈를 깍아 만든 창 등등. 재료는 좀 조악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찾아오기 힘든 도시라서 그런지 능력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대합 방패 방어구 타입 : 갑각 방패 방어력 : 190 내구력 : 60 무게 : 30 사용제한 : 레벨 50전사 계열 커다란 대합의 껍질을 연마해서 만든 방패 강철만큼이나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부술 수 없다. 표면이 유선형으로 만들어져,들고 헤엄치기가 용이하다. 가격 : 1,377P] [전기뱀장어의 흉갑 (마법) 방어구 타입 : 가죽 갑옷 방어력 : 70 내구력 : 55 무게 :50 사용 제한 : 레벨 55 심해에 사는 전기뱀장어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 미끈거리는 표면층이 공격을 흘려내 버린다. 또한 전기 뱀장어의 특성이 남아있어. 공격받을 때 일정 확률로 전기충격을 뿜어낸다. 공격 무효화 : 30% 공격 받을 시 10%확률로 전기 충격 반격. 가격 : 2500P] 일반 방어구인 대합 방패도 방어력이 무려 190에 달했다. 뭐, 방패는 유저가 공격을 직접 막아 냈을 때만 방어력이 추가되는 것이라 원래 방어력이 높게 설정되어 잇다. 그래도 190이면 엄청난 방어력임에는 틀림없었다. 전기뱀장어의 흉갑은 옵션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레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격만 적당하다면 1~2개 사 두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아이템이어싿. 그런데 희한하게도 가격이 P라는 단위로 쓰여 있었다. "P가 무슨 뜻입니까?" "응?" 상점 주인은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멀뚱히 아크를 바라보던 상점 주인은 한참 뒤에야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자네는 인간이었지. P는 이걸 말하는 거네." 상점 주인은 눈알만한 크기의 진주를 꺼내 들었다. "노드리스에서는 진주가 통화로 쓰이지." "그럼 2,500P는 진주가 2,500개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지" 아크의 입이 자동적으로 쩍 벌어져싿. 진주라면 바다 속을 지나올 때 서너 개 주었다. 그때, 아크는 굉장히 좋아했다. 보기 드문 귀금속이니 제법 고가에 팔릴 거라고 생각한것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가끔 얻었던 귀금속은 가장 질이 낮은 게 10실버, 질이 좋고 희귀 한것은 5골드를 호가했다 그런데 그런 진주가 2,500개나 있어야 갑옷 하나를 살수 있다니? 싸게 잡아도 250골드 이상이라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성능이 좋다지만 바가지도 이런 바가지가 없다. 그러나 아크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어쩌면 이곳의 진주 가치가 터무니없이 낮은 건지도 몰라.' 그렇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이곳에서 진주를 대량으로 구해 돌아가 시세 차익을 노리면 한몫단단히 잡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아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가방을 열었다. "이걸 모두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가방 안에는 조개 껍데기, 해초, 해저몬스터의 살점 따위가 가득 들어있었다. 그러나 상점 주인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걸 내가 뭐 하러 사나?" "네? 그게무슨?" "그런 거야 밖에 나가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살 이유가 없지 않나." 상점 주인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그리고신기한 눈길로 한 아이템을 가리켰다. "그, 그게뭔가?" "네? 이 신발요?" "신발? 오오, 그걸 신발이라고 부르나? 신기하게 생겼군. 인간들은 그걸 발에 신느 건가? 그런데 재질도 처음 보는 건데, 그건 뭐로 만든건가?" "뭐라니요. 그냥 짐승 가죽........." 어리 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하던 아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들엇다. '맞아,이곳은 해저 도시였지!' 해저 도시, 게다가 몇백년이나 외부와 연락을 끊고 지낸 인어들의 도시다. 아크가 해저도시의 아이템을 신기해하듯 .인어들은 지상의 아이템이 신기한 것이다. 그게 고작 가죽으로 만들어진 너덜너덜한 신발이라도 말이다. 해저에서는 지상의 동물 가죽을 구경도 못 해 봤을 테니까. 말하자면 희소성! 어디에서나 상품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희소성이다. 과연 상점 주인의 눈동자가 물욕으로 차올랐다. "흥미롭군! 정말 흥미로워! 그게 짐승 가죽이란 말인가? 이렇게 신기한 물건이 있으면서 왜 쓰레기만 보여 준건가? 딴 건 필요없고, 그걸 팔게나 그런 물건이라면 몇개든 모두 사겠네. 가격도 잘 쳐주지." 상점 주인은 당장 거래를 하자는 듯진주가 든 주머니를 흔들어 댔다. 지금 아크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은 그야말로 잡템. 게다가 마법복원 스킬을 올리기 위해 내구도가 1이 되어버린 물건들이었다. 평범한 마을이라면 몇 쿠퍼도 받기 힘들었다. 그런 물건을 좋은 가격에 사 주겠다고 한다. 횡재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물건을 꺼내려던 아크의 손이 우뚝 멈췄다. '가만, 이게 여기서 그렇게 가치 있는 물건이라면 굳이 상점에 팔 이유가 없잖아? 게다가 나는 친밀도를 올려 정보를 구해야 하는데.........만약 이걸 도시의 인어들에게 팔면?' 친밀도를 올릴 수 있다. 물론 단순히 거래만으로 친밀도를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까지 친밀도를 올리면, 자연스럽게 인어들의 호감을 얻어 친밀도를 올릴 또다른 방법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이, 이보게 .기다려!" 아크는 얼른 물건을 챙겨 상점을 나갔다. 아크가 찾은 곳은 인어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 중앙의 광장이었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지상의 물건들을 주욱 늘어놓았다. 난생처음 보는 인간이 , 난생 처음보는 물건들을 주욱 늘어놓자 인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어라? 인간이잖아."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그런데 저 물건들은 뭐야? 대체 뭐로 만들어진거지?" "반짝반짝하는데? 혹시 저게 철이라는 건가?" 노드리스에서는 철도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었다. 수중에서 철광석을 채광해 제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리라. 철의 역활은 대부분 조개껍데기나 돌, 뼈로 대체되었다. 아크는 구름처럼 모여든 인어를 향해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했다. 장사라면 현실에서 수도없이 많이 해본 일이다. 물론 생선을 상대로는 처음이지만........ "아름다운 은빛꼬리를 가진 인어분들, 반갑습니다. 저는 지상에서 우연한기회에 이 아름다운 도시 노드리스에 방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인간, 아크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은빛 꼬리, 음음, 그렇지." 인어들은 단순하다. 인어경비병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조금만 사탕발림을 하면 친밀도가 금세 올라간다. 같은의미로, 내려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제가 지상의 물건 몇 가지를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아크는 홈쇼핑에 나온 연예인처럼 능숙하게 설명했다. "보시는 것들은 해저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짐승 가죽으로 만든 각종 방어구입니다. 또한 인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철제무기도 있습니다. 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있습니다. 성능이 별로라고 생각하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이 상품들을 팔려고 하는건, 이걸 쓰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라는 거요?" "모르시겠습니까 ?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비록 성능은 인어족의 멋진 병장기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모두 해저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드리스를 통틀어 봐도 여기있는 물건들은 오직 하나! 제게서 구입하신 분만 이것을 소장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릴수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군!" "자, 아직도 잘모르시겠는 분은 눈을 감고 상상해 보십시오.이곳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지상의 몬스터들. 수풀을 헤치고 초원을 뛰어다니는 몬스터는 전사와 격렬한 사투끝에 쓰러집니다. 그리고 가죽을 남겨 이렇게 방어구로 변하게 된거죠. 이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닙니다. 초원을 질주한 몬스터왕 사냥한 모험자의 역사와 숨결이 담긴 물건이지요. 그것을 거실 한쪽에 장식해 둘 수 있는 겁니다.해저에서 이만한 사치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아이템을 바라보는 인어들의 눈빛이 변했다. 해저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지상의 몬스터! 실용성은 전혀 없지만 장갑이나 신발. 검한자루를 사는것만으로도 보지도 못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이 멘트가 인어들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물론인어들이 그렇게 납득해버린건 아크의 특수 스탯인 화술이 작용한 영향이 컸다. 화술은 일반상점과의 거래에서는 별 효과를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특수거래에서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건 뭘로 만든 거에요?" 꼬마인어가 장갑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크는 최대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해주었다. "아아, 그건 마갈 울프라는몬스터의 가죽이란다. 온몸이 검은 털로 뒤덮이고, 사람을 통째로 삼킬듯한 거대한 입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수십 개나 돋아 있지. 한번 만져보렴. 감촉으로 마갈 울프라는 몬스터를 상상할수 있겠지?" "와아 ,느낌이 신기해요." "가. 가격이 얼마요?" 결국 참지 못한 인어 하나가 안달하며 물었다. '낚였다!생선이 낚였어!' "가격은 딱히 정해 놓지 않았습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시는 분에게 영광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귀여운 꼬마 분꼐서 관심을 보여주신 이 장갑!" "50P!" "60P!"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인어들이 가격을 불렀다. 밖에서는 잘해야 10실버밖에 받지 못하는 물건들이었다. 그런데 60P라니! 진주 한 알에 10실버라고 쳐도 60실버, 6배가아닌가! 아크는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잡템이란 잡템은 모조리 챙겨서 찾아왔어야 했는데..........' 불과 몇 분도 안되어 20개 남짓의 잡템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갔다. 현란한 말솜씨로 가격을 올릴 때마다 화술도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모든 물건을 정리하자 화술 스탯이 13이나 오르고, 진주도 450개나 모였다. 물론 물건을 산 인어들은 모두 만족한 얼굴로 돌아갔으므로 친밀도도 상당히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 크리스틴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아크는 걱정하지않았다. '의외로 엉뚱한 곳에 공략법이 있다!' 성공리에 장사를 끝마친 아크는 자신이 생겼다. '문화의 차이는 돈이 된다!' 노드리스는 지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다. 친밀도를 올릴 공략법은 거기에 있었다. 지상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도 이곳이라면 의외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게 뭔지 찾아내기만 하면 친밀도를 올리는건 일도 아니리라. 아크는 곧바로 노드리스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다음으로 아크의 눈에 들어온 건 식당이었다. 인어족은 요리라는 개념이 없었다. 식당에서음식을 주문해도 해초와 어패류가 생으로 나올 뿐이다. 당연한 일이다. 해저에서 불을 이용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아크는 다르다. 아크가 가지고 있는 서바이벌 요리용 냄비는 불도 없이 물을 끓이고 식재료를 구울 수 있다. 때와 장소 불문!서바이벌 요리라는 명칭답게,마음만 먹으면 해저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도 있는것이다. '이건 먹힌다. 틀림없이 먹힌다.' 아크는 곧바로 광장에서 밥장사를 시작했다. 식재료라면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남아돌았다. 아크는 그 재료를 만들 수있는 음식 가운데, 맛도 좋고 효과도 괜찮은 음식 몇개를 선별했다. 효과를 기대 이상이어싿. 생전 익힌 음식이라고는 구경도 못해 본 인어들이었다. 하물며 지상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은 상상도 못 해 봤으리라. 인어들은 1인분에 1P라는 바가지요금을 물어 가면서까지 음식을 먹어댔다. 게다가 한번 맛을 본 인어들의 입 소문이 꼬리에 꼬리르 물고 퍼져 아크의 식당은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장사가 잘되자 아크는 메뉴를 더욱 다양화시켰다. 생명력 회복의 효과가 있는 피로회복 식단, 힘이나 민첩이 올라가는 자양 강장 식단을 선보였다. 그런 특선 요리는 무려3P!결국 가격을 올려 받기 위한 상술이었다. "오오, 이게뭐지?" "와, 신기한 맛이다." "이게 지상의 고기라는 건가?" "왠지 여기 음식을 먹으면 힘이 솟는 거 같아." 지상의 식재료는 하루 만에 동이 났다. 그러나 장사는 여전히 성황이었다. "이건 항상 먹던 해초인데 맛이 전혀 다르잖아!" "기가 막히는군. 조개로 이렇게 독특한 맛을 내다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경비병과 귀족 인어까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떤 인어는 연인을 데리고 와 으스대며 음식을 주문하기도 했다. 물론 손님 접대에도 일가견이 있는 아크는 일류 식당에 버금가는 서비스로 인어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덕분에 인기가 더욱 치솟아 아침부터 차례를 기다리는 인어들이 광장을 한 바퀴 둘러설 정도였다. "어서 옵쇼!" "어제 먹었던 조개구이로 주게" "10분은 기다리셔야합니다." 쉬징낳고 음식을 만들어도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크는 불과 며칠 사이에 노드리스에서 모르는 인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 ,이것도 슬슬 망가질 떄가 됐군.다시 사야 하나?" 식당을 찾은 경비병들이 너덜너덜해진 장비를 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아크는 재빨리 다가가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으시면 제가 장비를 좀 손봐 드릴까요?" "손봐 주겠다니? 설마 고쳐 주겠다는 건가?" "네, 완전히 원래처럼은 안되겠지만 한동안은 더 쓰실수있을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어의 장비를 수리했다는 말은 못들었는데.?" "일단 한번 줘 보시지요." 경비병은 못미더운 얼굴로 조개껍데기 갑옷을 벗어 주었다.인어들의 장비에는 최대 내구도라는 개념이 없었다. 재료가 조개껍데기 같은 것이니 한 번 망가지면 복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장장이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사람도 망치로 조개껍데기를 수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배운 기술은 마법 복원. 수리의 개념이 아니라 본래의 형태로 복원하는 것이다. "마법 복원!" 스킬을 사용하자 너덜너덜해졌던 장비가 본래의 형태를 찾아갔다. 그 장면에 인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아직 초급 스킬이라 완전히 본래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10퍼센트 패널티가 적용되어 본래 내구도의 90퍼센트까지 밖에 복구되지 않았다. 유저였다면 돈을 준다고 해도 거절할 일.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인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장비하나에 1,000P가 넘어가니 하나 바꾸는 것도 큰일이었던 것이다. "자네는 정말 굉장하군! 이런건 마법사도 못 할 거야!" 아크는 짐짓 힘든 척 헐떡이며 말했다. "헉헉헉, 이 기술을 사용하면 굉장히 힘듭니다." "그렇겠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으니. 이건 얼마 안되지만 받아두게." 경비병은 선뜻 50P를 건네주었다. 특선 요리 20개를 파는것보다 낫지 않은가! 아크의 눈동자가 다시 금빛으로 반짝였다. '잘됐다. 어차피 식재료도 한계가 있어 걱정하던 참인데.' "인어족의 멋진 장비들이 망가지면 그냥 버려진다는 게 너무 아깝군요.제가 힘들기는 하지만, 망가진게있으면 언제든지 가져오십시오. 일반 아니템이라면 싼 가격에 수리해드리겠습니다." 소문이 전해지자 인어들은 너 나 할것없이 장비를 들고 몰려들었다. '우하하하 이거야 정말 땅짚고 헤엄치기로군.' 너무 좋아 미칠 지경이다. 상점에는 팔지도 못하는 식재료를 이용해 진주를 벌어들인다. 그뿐인가? 요리를 만들 때마다 서바이벌 요리의 스킬이 오르고, 마법 복원 역시 진주를 받아가며 숙련치를 올릴 수있었다. 덕분에 숙련치가 미친듯이 올라가 사흘 만에 마법복원의 레벨이 올랐다. [많은 경험을 마법 복원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일반 아이템을 수리할 때 주어지던 패널티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마법 아이템의 수리가 가능해졌스빈다. 단, 마법아이템을 수리하면 한 번에 최대 내구도가 10%줄어듭니다. 마나 소모 : 20 *간병 스킬과 마법 복원이 모두 중급잉 되어 세트 효과로 정화 복원이 가능해졌습니다. 정화복원으로 모든 종류읭 아이템에 걸려있는 저주를 정화시킬 수있습니다.] '세트 스킬 효과!' 예전에도 검술과 격투술의 세트 효과로 검투술을 익힌 적이 있다. 몇가지 연관 스킬이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하면 이처럼 세트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주를 푸는 스킬이라니 간병이나 마법 복원이 흔치 않은 스킬이다 보니 세트 효과도 레어 급이었다. 이제 굳이 대성당을 찾아가 돈을 내지 않아도 아이템에 걸린 저주를 풀수있게된것이다. '란셀의 검' 아크의 머릿속에 바로 란셀의 검이 떠올랐다. 그동안 란셀의 검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좋아, 정화 복원!" 검의 저주가 풀리자 새로운 효과음이 울리며 메시지창이 떴다. -저주가풀리자 검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란세르이 검 (마검) 무기타입 : 한 손 검 공격력 : 20~30 내구력 :50/50 무게 : 25 사용 제한 : 어둠속성,레벨 50 과거 명성을 떨치던 용병 란셀이 사용 하던검. 란셀이 용병으로서 악명을 날리게 된 이유는 그가 사용하던 마검이 그의 정신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란셀은 그것을 꺠닫고 오랫동안 검을 잡지 않았지만,쿤다리니를 토벌하기 위해 다시 검을 쥐었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대......대박이다!' 아크의 입이 쩍 벌어져싿. 아크는 아직까지 블랙 베어 마우스에게 얻은 예리하게 번쩍이는 검을 쓰고 있었다. 그 검의 공격력이 8~12.그러나 란셀의 검은 무려20~30이었다. 공격력만 보면 레벨 50에서는 최고 수준의 검이었다.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사용이 어둠 속성 제한이라는 것. 아크가 아는 한 어둠 속성을 가진 유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무리 레어급 아이템이라도 경매에서 비싼 값을 받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란셀의 검이라면 당장 종합 공격력이 30퍼센트 이상 향상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그때, 또다시 새로운 메시지창이올라왔다. [다크 워커의 직업특성으로 마도구의 능력을 끌어냈습니다. 등급을 지닌 유계의 주민들은 모두 마도구라 불리는 자신만의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도구를 활용할 수있는 플레이어는 하루에 한번.유계에 숨어 있는 마검의 주인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마검의 주인으로 소환된 개체는 어떤 종류의 환경패널티도 적용되지않습니다. 단, 마거므이 주인은 플레이어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특수 직업 : 검을 소유한 플레이어에게 만약 유계의 존재를 소환할 수있는 능력이 있다면, 소환수와 마검의 주인을 결투시킬 자격이 생깁니다. 소환수가 승리하면 두 존재를 합성시켜 더 강한 소환수로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단 ,결투를 신청한 소환수 외의 캐릭터가 공격이나 적대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결투는 자동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소환수가 패배한 경우에는 강제 송환과 동등한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란셀의 검 (마검)의 특수효과:하루 한번, 하급벰파이어 던필을 소환할수있습니다] '이게 뭐지?' 아크는 처음 보는 메시지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몇번을 다시 읽어보던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소환수의 성장!'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사실 아크는 소환수를 성장시키는 일에 약간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소환수는 성장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오직 새로 만드는 서바이벌 요리,설사 요리는 성공해도 부가 효과가 마이너스라면 소환수는 성장하지 않았다. 때문에 80개나 되는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냈지만 실제 소환수의 능력치가 오른 건 서른 번밖에 되지 않는다. 그조차 해골과 박쥐가 나눠 먹었으니 열다섯 번. 그동안 오른 능력치를 레벨로 환산하면 15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아크가 30이 넘는 레벨을 올리면서 쉬지 않고 요리를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뉴 월드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식재료가 있다고 해도 한계는 있다. 결국 아크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요리도 한계가 있다는 뜻.언젠가는 소환수의 성장이 멈추고 말거다. 지금은몬스터와의 레벨 차이를 작전으로 극복하고 있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한계가 온다. 그렇게 되면 소환수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낟. 그렇게 되기전에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켜야한다. 그런데 속도 모르는 소환수들은 음식만 보면 벌벌 떨어대니......... 어쨌든 소환수에게 각별한 정을 가지고 있는 아크는 그 점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어!' 저녁이 되어 장사를 끝낸 아크는 노드리스 밖으로 나갔다. 도시안에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기 때문. "마검 소환!" 아크가 봉인을 해제하자 흐릿한 빛과 함꼐 몬스터가 소환되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던필은 슬쩍 시선을 돌려 아크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네놈이 이 몸을 소환했나?용건이뭐냐?" 표정이나 말투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아크가 뭐라고 한마디하려는 순간이었다. "더,던필!" 멍하니 던필을 바라보던 박쥐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던필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뭐냐, 네놈은?" "나,나를 모른다고?" "이상한 놈이군, 이 몸이 이름조차 갖지 못한 박쥐따위를 알 리가 없지않은가." "뭐,뭐야? 이자식!" 끼어들 새도 없이 박쥐가 던필을 향해 돌진했다. 아무래도 던필은 박쥐의 상대로 정해진 모양이다. 일단 소환수끼리 전투가 시작됐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아크는 구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없었다 .심지어 간병이나 소환해제도사용할수없었다. 아크는 해골과 함꼐 아예 한 걸음물러나서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 전투를 지켜 보았다. 던필읭 레벨은25였다. 반면 박쥐는 능력치로 볼때 대략15남짓.레벨의 차이는 전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던필의 공격에 적중되면 박쥐는 생명력이 10퍼센트씩 깍여나갔다. 그럼에도 박쥐는 무턱대고 밀어붙이고 있었다. 평소 아크와 쌓아온 전투 경험 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듯 무작정 들이받고 물어뜯었다. "박쥐,신중하게 장기전으로 몰고 가!" 이곳은 수중이다. 던필은 환경 패널티를 받지 않아 수중호흡은 물론 움직임에 제약도 없었다. 수중이라도 손발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박쥐는 수중 패널티를 그대로 받아 날짐승 최고의 장점인 기동성을 발휘할 수 없다. 이차이는 매우컸다. 시작부터 불리함을 안고 싸우는 전투였다. 박쥐에게 약간읭 승산이 있다면 수중 전투의 경험을 살려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것. 그런데 오히려 달라붙어 물어뜯을 생각만 하니제대로 싸움이 될리가 없었다. 그러나 박쥐는 아크의 충고를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죽인다!죽인다!" "크크큭, 감히 그 정도의 실력으로 내게 덤비다니, 가소롭구나!" "크아아악!" 결국 던필의 손톱공격에 박쥐의 생명력이 바닥나 버렸다. 박쥐는 어깨를 잘근잘근 깨물던 모습 그대로 서서히 흐려졌다. "하찮군. 이제 볼일은 끝났겠지?" "그래. 꺼져" "기왕 싸움을 붙이려면 좀 그럴듯한 놈을 데려오는 게 좋을 거다." 던필을 오만한 표정으로 지껄이며 사라져싿. 결국 그렇게 첫 번째싸움은 허무하게 끝이나싿. '박쥐녀석!' 아크는 분통이 터졌다. 던필의 싸가지없는 태도도 그랬지만, 더욱 화가 나게 만든 건박쥐였다. 무턱대고 들러붙어물어뜯다니? 아크의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정말어처구니없는 싸움이었다. 대체 지금까지 아크와 함꼐 전투를하며 뭘 배웠단 말인가? 아크는 도시로 돌아와 장사를 하며24시간을 보냈다. "야, 박쥐! 대체그게뭐야?" 재소환하자마자 아크가 험악한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그러나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소환되자마자 박쥐를 펑펑 울며 이를갈아붙였다. "크흐흐흑, 빌어먹을,빌어먹을!" "어? 뭐야? 내가 화난 거같아서쇼하는 거냐?" "주인, 부탁이다! 그놈을 다시 불러줘! 나는 그놈과 싸워야해!" "대체 무슨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봐" "그놈은........그놈은 유계에서 10년이 넘도록 나를 괴롭히던 놈이다." "뭐?" 박쥐가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던필은유계에서 하급귀족정도 되는 녀석이었다. 성격이 괴팍하고 오만한 던필은 약한 몬스터를 괴롭히는게 취미였는데, 그대상은 대부분 박쥐였다. 뱀파이어 혈족의 종자로 태어난 박쥐는 던필에게 언제나 괴롭힘을 당했다. 또한 던필의 지시에 의해 같은 박쥐들에게도 따돌림을 받다가 결국혈족에서 추방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녀석.........' 박쥐의 본래 이름은 '증오를 품은 박쥐'였다. 유계에서따로림에 시달려 세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품게 되었다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그런 설정이라면 결국던필은이녀석이 상대할 수밖에 없겠군.'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기회다.' "무슨 사정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당장 던필과 싸우게 할 수는 없어" "주,주인!" "일전에 싸웠던 식이라면 너는 몇 번을 싸워도 그놈을 이길 수없어 예전처럼 당하기만 하겠지. 또 당하고 싶지 않다면 내 말을 들어 . 일단 네가 강해져야한다." 박쥐가 흠칫했다. 강해지는 것, 다시말해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박쥐는 어금니를질끈깨물고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놈을 이길 수있다면 뭐든지 하겟다." "좋아,그리고 또하나,이전 같은 방법으로 싸우면 안돼.놈은 너보다 강하다. 하지만 이길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어. 오늘부터 내가 너를 단련시켜주지." 그뒤로 아크는 낮에는 장사를 하고 밤에는 박쥐를 단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새로운 조리법이 떠오르면 바로 박쥐에게 퍼먹였다. 바다의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면높은확률로 좋은 효과가 따라붙었다. 그럴 때마다 박쥐의 능력치도 올라갔다. 박쥐의 수련은 아크와의 대련이었다. "똑바로해!그런식으로 싸우면 던필을 못이겨!또얻어맞고싶은거냐?" "아,아니다!지지않을거다!" 퍼퍼퍽! 처절한 수련의 나날이 이어졌다. 박쥐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아크에게 수없이 얻어맞으면서도 투지를 불태웠다.그렇게 며칠의 혹독한수련을 끝낸아크는 다시 던필을 불러내 싸움을 붙였다. 몇번 능력치가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혼자서 던필을 상대하기는 부족했다.그러나 며칠 사이네 부쩍 실력이 늘어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인전투를 펼쳤다. "헉헉헉, 이, 이정도로는 어림없다." 결국 또다시 던필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전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아크는 꼴같지 않은 호기를 부리는 던필에게 차갑게 웃어 주어싿. "다음에는 더 힘들걸." "흥, 그래봐야 박쥐는 박쥐지." 던필은 도망치듯 유계로 사라졌다. '젠장, 한번 죽으면 24시간이나 걸리는게 문제로군 .다음에는 좀더 확신이 선 뒤에 싸움을 붙여야겠어. 재소환이 가능해질 떄까지 훈련 스케줄이나 짜 놔야겠군.' 장사하랴,소환수 키우랴, 이래저래 바쁜 아크였다. 아크는 꾸준히 장사를 하며 진주를 쌓아갔다. 그러나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 시간이 흐르자 그렇게 북새통을 이루던 장사도 점치 시들해졌다. 지상의 식재료가 바닥을 드러낸 해초류를 중심으로 식단을 짰는데, 인어들에게 익숙한 재료라 그리 오래인기를끌지는 못했다. 마법 복원으로 해 오던 장사도 , 경비병들의 장비를 모두 수리해 버리자 쉽게 손님이 모이지 않았다. 큰전투가 벌어지지 않으니 내구도가 빨리 닳을 이유가 없었다. '장사는 시작할 때보다 접어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지.어차피 오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결국 아크는 열흘 만에 장사를 접었다. 밑천도 안들이고 진주를 벌어들이던 장사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노드리스에서 터를 잡고 살수도없는 노릇이다. 또한 아무리 많은 진주가 있어도 골드로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의미가 없다.언젠가는 그만뒀어야 할 장사였다. 뭣보다 아크가 미련 없이 손을 털수 있었던 것은 이미 초기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아크는 이미 인어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어딜가나 인어들이 먼저 아크를 알아보고 알은척을 했다. 장사를 할때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당을 찾아주던 광팬도있었다. 정보하나를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혹시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크리스틴이라......." 예전이라면 당장 욕부터 나왔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늙은 인어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자네라면 말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사실 나도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노드리스에서 그에대해 자세히 알고있는 인어는 없을 거야. 누구나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정작 그가 누구 인지는 아무도 모르네." "이해할수없군요. 그렇다면 왜 그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다들 불쾌해하는 겁니까?"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지. 나 역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서부터 긍지 높은 인어족은 그를 미워해야한다는말을 들었을 뿐이네. 자네 말을 듣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왜 미워해야 하는지는 듣지 못했군." 이해한다. 괜히 생선이겠나? "어떻게 알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음..........." 늙은 인어는 한참 생각하닥 문득 생각난듯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왕궁 앞에 인어족의 역사가 적혀 있는 크리스털 석주가 있네. 일전에 그 석주에 그와 관련된 내용도 적혀 있다고 들은것같구. 오래전에 잊힌 문자로 쓰여있어서 무슨 내용인지느 모르지만. 여러가지 재주를 가진 자네라면 혹시 단서를 찾아낼지도 모르지. 한번 찾아가 보게."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식당은 아주 그만둔 건가?" "네 , 더이상 식재료도 남아 있지 않아서요." "아쉽군.유일한 낙이었는데........" 늙은 인어는 입맛을 다시며 웅얼거렸다. 아크는 단골을 뒤로 하고 곧바로 왕성을 찾아갔다. "여, 아크.자네가 어쩐일인가?" "왕서 앞에 근사한 크리슽러 석주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있지. 꽤나근사한 장식품이라네." "한번 들어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건 좀 곤란한데.........." "제가 마음 깊이 흠모해 마지않는 인어족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살짝 보기만 하고 나올테니 제발 허락해주십시오."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 부탁이니 할수없지. 알겠네, 대신 빨리 나와야 하네." 친밀도가 최상이니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왕성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멀지 않은곳에 크리슽러 석주가 보였다. 10미터 높이의 크리스털 석주의 표면에는 꺠알 같은 글자가 뺴곡히 적혀있었다. '퀘스트를 진행시키려면 이걸 해독해야 한다는건가?' 아크의 손이 석주의 표면에 닿았을 때였다. 갑자기 석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눈앞에서 수많은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노드리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아름다운 인어가 앉아 있었다. 화려한 금발을 어꺠까지 늘어뜨린 ,사파이어 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인어였다. 그녀는 견딜수없는 슬픔이 깃든 눈으로 한 사내의등을 바라보고있었다.크고강한, 더할수없이 믿음직스러운 등이었으나, 지금 ㄱ녀에게는 더할수없는 절망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녀의 것이 될수없는 등이었기 때문이다. 사내의 등이 점차 시선속에서 멀어졌다. 인어는 발코니에서 멀어지는 사내의 등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투명한 바다속에서 눈물방울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었다. 인어는 사내의 체취가 묻어있는 물건을 소중하게 가슴에 품고 어디론가 떠나갔다. 그녀의 아름다운 꼬리에 흩어지는 물살에서 절절한 슬픔이 전해진다. 크리스틴,크리스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설사 바다의 모든 물이 메말라 버릴지라도 당신을 사랑해요. 비록 가슴이 찢기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고 해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당신의 약속을 믿어요. 약속대로 당신이 돌아와 나를 찾아 줄것을 믿어요. 그떄까지 나는 약속의 그 장소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당신과 속삭였던 그 말을 잊지 말아줘요. 나를 보고싶다면 두눈을 감아요.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당신의 손길이 닿아줄그날을 기다리겠어요. [고대 유물의 대한 지식으로 크리스털 석주의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크리스털 석주에는 한 인어의 연인을 향한 그리움이 적혀있습니다. 그녀는 언젠가 찾아올 연인을 위해 고대 문자로 그 내용을 새겨 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5,지능이 5,운2,명성이 10상승했습니다.] '결국 연애편지였다는 말이잖아.연애편지 한번 거창하게도 써놨군.' 쩌쩌쩌쩍! 영상이 사라졌을 떄였다. 갑자기 크리스털 석주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나더니 손써 볼썌도 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소란을 듣고 몰려든 경비병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석,석주가!" "저자다. 식당을 하던 이방인이 석주를 부쉈다!" "네놈,무슨짓이냐!" 아크 역시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열댓명의 경비병들이 아크를 포위하고 산호초로만들어진 창을 들이밀었다. "감히 왕성 안에 침입해 유적을 부수다니!" "아,아니,그게 나도 뭐가 어떻게 된일인지......." "닥쳐라,이 인간을 당장 끌고가라!" 아크는 졸지에 감옥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반나절 접속을 끊었다가 다시 들어와 보니 비늘 갑옷을 걸친 인어가 나타났다. "여왕님꼐서 보자고 하신다. 따라와라." 인어는 아크를 대전으로 끌고 갔다. 홍옥으로 수놓인 대전에는 귀족 복장의 인어들이 늘어섰다. 그들의 중심에는 30전후의 나이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 인어가 앉아있었다. 보석으로 치장하고 왕관을 쓰고 있으니 인어족의 여왕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이 낯익었다. 아크는어렵지 않게 이유를 알수 있었다. '크리스털 석주에서 봤던 인어와 닮았다.' 아크가 들어서자 귀족인어들이 웅성거렸다. "이방인이 왕궁의 유적을 훼손하다니, 전대미문의사건이군"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하오" "하지만 전례가 없는 일이라..........." "이방인이 왕궁에 들어왔다는 것부터가 이미 벌을 받아 마땅하오" "하지만 인어족은 언제나 공정함을 지켜 왔소, 설사 그가 죄를 지었다 해도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판결해야 하지 않겠소." 귀족인어의 의견은 둘로 갈라졌다. 단순하게 말하면아크의 고객이었던 귀족과,아닌 귀족의 의견이다. 아마도 그들 덕분에 왕궁의 유적을 훼손한 아크가 즉결 처형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만약 강제 추방이라도 당했다면 난감해졌으리라. '역시 친밀도는 올려놓고 볼 일이야' 여왕이 손을 들어 조용히 시키고 아크를 바라보았다. "귀족들의 말을 들었으니 알겠지만, 이방인이 왕구으이 유물을 훼손한 일은 전례가없는 일이에요.당연히 엄벌에 처해야 마땅한 일이죠.하지만 알아보니 당신을 노드리스 주민들에게 상당히 신뢰받고 있더군요.자청해서 변호를 맡겠다는 주민도 있었어요. 이방인이 그만한 신뢰를 얻기란 쉽지 않은일.때문에 당신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겠어요. 자, 왜 석주를 파괴했지요?" "파괴할 생각은없었습니다. 그저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고자 손을 댔을 뿐인데, 저절로 파괴됐습니다." "크리스틴!" 귀족인어들이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왕도 꽤나 놀란듯미간을 모으며 되물어싿. "당신은 크리스틴과 연관이 있는 사람인가요?" "모릅니다." "당신의 입으로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꺼내고도 모른다고요?" "네, 제가 그 사람을 찾고 있던건 사실이지만, 그가 저와연관이 있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제가 더알고싶습니다. 저는 크리스틴이 누구이고, 저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도 크리스틴에 대해 말해주지않더군요. 그래서 마지막 기대를 걸고 석주에 접근하게 된겁니다." "크리스틴은 인어족의 신뢰를 저버린 배신자예요." 여왕의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배신자?" "아무래도 설명이 좀 필요하겠군요." 아크의 반응에 여왕은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크리스틴은 암흑세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인어족을 다스렸던 여왕이 사랑했던 남자였어요. 당시만 해도 인어족은 대해를 누비며 많은 수인족과 교류를 하고있었죠. 그런데 당시 여왕님이 지상에 나갔다가 한 청년에게 반하고 말았죠." "그 사람이름이?" "네, 크리스틴이에요." 암흑세기에 대해서는 묘족에게 들엇다. 어둠의 세력이 세상을 뒤덮었던 시기가 바로 암흑 세기다. 그리고 7인의 영웅이 나타나 광명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한다. 즉, 암흑세기이전이라면 크리스틴은 수백년 전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어는 지상에서 살아갈 수 없어요. 결국 여왕님은 다시 바다로 돌아와야만 했죠.대신 연인과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사랑의 증표로 해신의 나침반을 건네주었어요." "해신의 나침반?" "본래 노드리스는 대해를 떠도는 환상의 도시였어요.인어족조차 도시를 벗어나면 다시 찾아오기 힘들 정도였죠.하지만 해신의 나침반은 언제나 노드리스를 향해 빛을 뿜어내길을 잃지 않게 만들어주죠. 여왕의 신물과도 같은 물건이에요.해신의 나침반을 건네줬다는건 모든걸 줬다는 의미와도 같았죠. 언제든 자신에게 찾아와 달라는 뜻으로." '보석 손거울을 말하는 건가?' 아크 역시 손거울의 인도를 따라 노드리스에 도착해싿. 그리고 손거울에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가 찾아오지 않은 겁니까?" "아니, 그는 약속대로 찾아왔어요.인어족은 비록 외지인이지만 여왕님이 사랑하는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그의 사랑은 채 1년도 지속되지 않았죠. 결국 그는 여왕님을 버리고 다시 지상으로 돌아갔어요 짐작이나 하겠어요?모든것을 준 사내에게 버림받은 여자의 슬픔을?" 여왕의 목소리가 감정적이 되었다. '여왕님은 그뒤로 방에 틀어박혀 눈물로 밤을 지새웠지요. 그리고 십수년 뒤, 갑자기 모습을 감춰버리셨죠. 그 ㅜ디로 얼마지나지 않아 노드리스에 커다란 재앙이 닥쳤죠." "재앙?" "노드리스는 아득한 옛날부터 위대한 백경,갈릭이라는 존재의 수호를 받아왔어요. 대대로 여왕과 영적 교감을 해 온갈릭은 대해의 주인이자 인어족의수호신이죠. 하지만 여왕님이 사라진 뒤로 갈릭은 걷잡을 수 없이 흉포해졌어요." "그게 크리스틴의 잘못이라는 겁니까?" "아니라면 뭐겠어요? 여왕님은 자신을 버린 크리스틴을 저주했어요. 그 저주의 마음이 영적을 교감하고 있던 갈릭을 미치게 만든게 분명해요. 결국 크리스틴 떄문에 노드리스는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만거죠."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론에 미간을 찡그렸다. "뭐라고요?" "나는 자초지종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 여왕님이 크리스틴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신합니다. 오히려 그녀는 그가 떠날 수밖에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가 사라진 이유도 아마 그것과 연관이 있을겁니다." "크리스틴이 누군지도 몰랐던 당신이 어떻게 그걸안다는거죠?" "크리스털 석주에 그렇게 적혀 있었으니까요." 아크의 대답에 귀족인어들이 노란표정으로 웅성거려싿. 여왕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황급히 물었다. "당신이 그 석주의 내용을 해독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거짓말,거짓말입니다!" "그렇습니다.벌을 피하기 위해 되는 대로 지껄이고 있는것뿐입니다. 속으면 안됩니다." 귀족인어들이 팔딱거리며 소리쳤다. "거짓말이아닙니다. 정 못믿겠다면 내가 증거를 찾아 보여드리죠." "증거?" "당시 여왕님은 그가 남기고 떠났던 물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소중히 간직했던 만큼 중요한 물건이었겠죠.그물건을 찾으면 그녀에 대한 그의 진심과,그녀가 사라진 원인을 알 수있을겁니다."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른다고 말했을 텐데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습니다. 그녀가 사라직 갑자기 갈릭이 흉포해졌다면 해답은거기있습니다. 갈릭이 있는 곳을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해답을 찾아오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할수도있겠군요.사실 갈릭을 진정시키기위해 나도 여러번 병사를 보내 봤어요. 그러나 갈릭은 대해를 누비는 바다의 주인,인어족의 전사조차 갈릭을 찾아내지 못했어요. 갈릭을 찾을 유일한 방법은 해신의 나침반뿐이에요." "그렇다면 더더욱 제가 가야겠군요." 아크는 가방에서 보석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여왕의 눈이 믿을수없을만큼 확대되었다. 놀란 눈으로멍하니 손거울을 바라보던 여왕은 한참뒤에야 간신히 떠듬거렸다. "마,맙소사..........수백년이나 사라졌던 해신의 나침반이 돌아오다니........" 아크는 아예딴말을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더이상 긴말은 않겠습니다. 이방인의 가방에 들어있는 물건은 주인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뺴앗기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계시겠죠?나역시 크리스틴이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맡긴 물건이 무엇인지 꼭알아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갈릭을 찾도록 도와주십시오." "어쩌면.........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군요.좋아요." 여왕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해신의 나침반 뒤에 보면 세가지 빛깔의 보석이 박혀있을거에요. 그 보석의 배열을 오른쪽으로 한칸씩 이동시키면 나침반이 당신을 갈릭에게 인도해 줄거에요." 두두둥, 드디어 퀘스트 정보가 갱신되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신세계의 입구=인어족의 수호신 갈릭. 크리스틴의 과거가 사라진 선대 인어 여왕과 연관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인어 여왕과 크리스털 석주의 정보를 종합하면 모든 문제는 하나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선대여왕은 크리스틴과 연관된 물건을 가지고 있는게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실종에는 인어족의 수호신갈릭이 연관되어 있을것입니다. 갈릭을 통해 그녀의 실종에는 인어족의 수호신 갈릭이 연관되어 있을것입니다. 갈릭을 통해 그녀의 행방을 찾고 물건을 회수해야 합니다. 또한 갈릭을 진정시킬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해신의 나침반이 당신을 찾아야 합니다. 해신의 나침반이 당신을인도할 것입니다. 난이도 : E] "헉헉,이놈의 고래 새끼, 나하고 놀자는 거야?" 아크는 수미터나 자라있는 다시마 숲을 헤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바다 속을 헤맨지도 며칠쨰였다. 노드리스를 나올때만 아크는 의욕이 넘쳤다. 백경인지 뭔지를 단칼에 무찌르고 퀘스트를 끝낼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림자 숲에서 등대까지,등대에서 노드리스까지, 노드리스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장사를 한것까지. 모두합하여 거의 한달이 소모되었다. 뭐, 그사이에 레벨도 많이 올렸고 돈도벌고 아이템도 얻었다지만 퀘스트 하나를 해결하는데 무지막지한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이제야 결론을 향해 가는 느낌이군.' 그러나 막상 밖으로 나오자 일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갈릭은 노드리스에서 그리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나침반에서 나오는 빛이 두꺼우면 두꺼울수록 목표물이 가까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목표물이 살아있는 고래라 계속해서 움직인다는 것. "이자식이 또 도망갔어?" 나침반의 빛을 따라 죽어라 달려가면 어느새 빛의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며칠째 죽어라 뒷북만 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궁하면 통하는 법.결국 바다속에서 며칠을 헤매던 아크는 고래를 따라잡을 방법을찾아냈다. 바로 노드리스로 오는 도중에 몇 번이나 휘말렸던 해류. 갈릭이 이동하는 지역은 이 해류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곳이었다. 마치 빌딩 안에 엄청나게 빠른 에스컬레이터수백개가 뒤엉켜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걸 이용하면.......!' 아크는 샤크맨의 족쇄를 풀고 가까운 해류에 몸을 실었다. 순간 엄청난 속도로 주위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산호의 숲과 물고기 떼들.절작 그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는 보이지않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해류에 몸을싣고바다속을 여행하는 건또다른 신기한 경험이었다.그렇게 어느 정도 이동하자 정면을 가리키던 빛이 옆으로 이동했다. '또 도망치는 건가? 이번에는 어림없다!' 아크는 곧바로 옆으로 흐르는 해류로 옮겨 탔다.그렇게 몇번을 방향을 바꾸자 빛이 점차 두꺼워지더니 돌연 사라졌다.놓친게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이근처 어딘가에 있다.' 아크는 검을 움켜쥐었다. 문득 박쥐의 입에서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주인" "알고있어, 준비해라. 놈은 근처에있다." "아,아니.그게아니라 저기..........." 박쥐의 목소리는 점점 심하게 떨렸다. 왜그러나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왜그래?" "안보여?산이...........움직이고 있잖아." "뭐?" 아크가 박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돌연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배경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피어올라 수면을 뿌옇게 만들었다. 그 안쪽에서 번들거리는 뭔가가 움직였다. "서,설마 저게 갈릭...........?" 방금 돌아 아크에게 향한 엄청난 크기의 원형물체! 빌딩만한크기의 그것은 놀랍게도 눈동자였다. 눈동자가 박혀 있는 거대한 배경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에따라박쥐와 해골, 아크의 시선도 위로 향했다. 숨이 턱 막혔다. 거대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압도적인 존재가 그곳에 있엇다. 아크는 그런 느낌을 받아 본적이 있다. 어렸을 떄, 설악산이나한라산바로아래에서 산을 올려다 볼때의 그런 느낌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백경, 갈릭!'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터무니없다! 이건 커도 너무 크지 않은가? 설마 정말 이런 놈과 싸우라는 건가? 개미가 사람을 물었다. 열받친 사람이 개미를 눌러죽였다. 이걸 전투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아크는 개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는 저 거대한 생물에게 따가운 느낌도 주기 못하리라. 그야말로 겁대가리 상실한 개미가 사람을 무는 꼴. 쿠오오오! 백경이 입을 쩍 벌리자 50차선 도로의 터널 같은 공간이 드러났다. 동시에 엄청난 흡인력이 아크를 빨아들였다. "우와아아아아!" 아크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백경에게 먹혀 버렸다. ACT 5 백경의 미궁 하룬 마을 외곽,초보 유저들이 늑대와의 혈투로 밤을 지새우는 사냥터. 이곳에 새로운 유저가 모습을 나타냈다. 까칠한 턱수염을 기른 건장한 40대 남자 캐릭터의 이름은 정의남. 유저의 이름은 권화랑,전직 열혈형사라는 초레어직업을 가진 남자다. 정의남이 처음 보인 반응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바가없었다. 실제와 같은 주위 풍경에 놀라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몸에 놀랐다. 초보자가 나타나자 할일 없이 어슬렁거리던 한센이 얼른 말을 걸었다. 그리고 쥐잡기 퀘스트를 제안하자 정의남은까칠한 턱수염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런데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까?" "아니, 걱정할 필요 없네.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네. 자네처럼 이곳에 처음 와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에게 적당한 일거리를 소개해 주려는 게야." "그럼 됐습니다. 정말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때불러 주십시오." 정의남은 꾸벅 인사를 하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그는 여전히 한쪽다리를 절고 있었다. 뇌를 스캔해서 캐릭터를 움직이는게임, 뉴월드에서 신체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다리를 아예 못쓰는사람도, 장님도,게임내에서는 정상인처럼 걷고 볼수있다.때문에 병원에서도 장애인의 우울증 치료 요법의 하나로 가상현실 게임을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체의 장애는 습관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정의남도 마찬가지다. 2년이나 다리를 절다보니, 오히려 정상인처럼 걷는 감각을 잃어버린거다.어쨋든 한쪽다리를 저는 정도는 게임을 하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마을 밖으로 나간 정의남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번졌다. 넓은 평야에서는 유저들이 늑대와 사투를 벌이고 잇었다. 그것도 총이 아닌 검과 몽둥이로 때려잡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없는 장면이었다. 그때, 옆쪽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악,도,도와주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여자유저가 들개에게 신나게 얻어맞고있는 장면이 눈에들어왔다. "멈춰라!" 정의남은 상의를 벗어 던지며 들개의 앞을 가로막았다. 새로운 적이 나타나자 들개나 경계심 어린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무기조차 들지 않은 초보 유저임을 알아챈 들개는 비웃음을 떠올렸다. 눈동자에 살기가 떠오르고 송곳니로 가득한 입에서는 위협적인 목울음이 흘려나왔다. 가상현실게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겁을 집어먹었으리라.그러나 정의남의 입가에는 오히려 상쾌하기까지한미소가 번졌다. '이런 감각, 오랜만이군. 남미에 파견 근무를 나갔을 때가 생각나는걸.' 컹컹컹! 들개가 와락 달려들었다. 정의남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들개의 움직임을 읽어냈다. '빈틈!' 정의남의 몸이 움직였다. 빠르다고도 느리다고도 할 수 없는,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들개의 목덜미를 와락 움켜쥐었다.이어 몸을 회전시키며 튕겨 올렸다. 이해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수 미터나 날았다가 바닥에 처박힌 드개의 생명력이 4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 유도 교본에서나 나올 듯한 그림 같은 업어치기! 그렇다, 은퇴하기 전까지 정의남은 경찰청에서도 손꼽히는 유도 고단자였다. 전국 경찰 유도 대회에서 몇번이나 우승했고, 세계 대회에서도 항상1,2위를 다투던 실력자였다.그러나 그의 실력이 빛을 발하는 건 대회가 아니었다. 조직 폭력배를 소탕하는 특수 기동대, 테러 대책반, 심지어 국제 협정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해 남미 경찰의 교관으로 파견된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그분야에서 정의남은 전설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짧은 경찰봉하나만 들고 사시미와 엽총으로 무장한 조직폭력배를 소탕했고, 남미에서는 마을을 습격한 들개 무리를 혼자서 격퇴한 적도 있었다. 남지 경찰들은 그런 정의남을 동양의 괴인이라고 불렀을 정도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정의남은 그일이 적성이 맞다고 생각했다. 주체할 수없는 정의감 그리고 끓어오르는 혈기는, 평범한 생활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무엇보다 무예와 정의를 숭상하던 중세의 기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수련도 제대로 못했는데 아직 감은 죽이 않았군.' 부상의 후유증으로 한풀 꺾였던 기질이 되살아났다. 그에게 들개 따위는 강아지나 다름없었다. 들개가 벌떡 몸을 일으켜 앞발을 휘둘렀다. 복부에 굵은 혈선이 그어지며 생명력이 반이나 줄어들었다. 레벨 1유저가 4나 되는 들개에게 얻어맞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정의남은두려움보다 오히려 짜릿함을 느꼈다. "그래야지 .고작 그 정도에 나가떨어지면 재미없지." 정의남의 육중한 몸이 제비처럼 저공비행을 펼치며 다가갔다.들개가 반응할새도 없이 찍어 누르고 앞발을 잡아 비틀었다. 그의 장기중 하나인 팔꺾어 십자 굳히지! 들개의 앞발이 우둑 소릴 내며 부러져 나갔다. 그러나 들개는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없었다. 정의남이 번뜩이는 몸놀림으로 돌아가며 목 조르기로 기술을 변환햇다. 마치 빨대로 빨리는 것처럼 생명력이 쭉쭉 줄어들었다. 들개를 처리하자 여자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가,감사합니다." 정의남의 눈가가 부르를 떨렸다. 도움을 주고 인사를 받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인가! 그는 형사로 재직하며 수많은 범죄자를 잡아왔다.그건 틀림없는 정의였다. 그러나 사건을 해결하고 감사 인사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형사이니 범죄자를 잡는 건 당연하다는 식이다. 맞는 말이다. 정의남 역시 감사인사를 받기 위해 범죄자를 잡는건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그를 힘들게 만드는건 범죄자가 아니었다. 범죄자를 잡으면 그 가족에게 저주 어린원망을 들어야 했다. 또 조금이라도 상처를 입히면 과잉대응이라고 인권단체왕 매스컴이 들고일어났다. 그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누워 있을 때도 밖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문기자는 사다리차까지 동원해 창가에 붙어서는 플래시를 터트렸다. 상부에서는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정의남은 자신의 직업에 처음으로 회의감을 느꼈다. 경찰학교에서 배운 대로 그저 정의를 실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 하고 약한자는 도와야한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마치 쓸모없는 낙오자가 돼버린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도와주면 고맙다고 한다. 과잉대응이라고 욕할 사람도 없다. 불구가 되어 포기했던 격투가의 혈기를마음껏 뿜어낼수 있다. '여기다.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곳이야!' 의욕이 샘솟았다. 그때부터 정의남은 평야를 종횡무진하며 들개를 쓰러뜨리기 시작했다.누군가 들개에게 당할 것같으면 무조건 끼어들어 도와주었다.들개는 물론, 때로는 서너마리의 늑대에게 당하는 유저를 도와주려다가 죽을때도 있었다. 그러나 정의남은 불평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할일을 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몇몇 유저는 그 태도에 감동해 사례를 하려고 했다. "정의남님,이거 싸구려 밀빵이지만 드세요." "상의는 떨구셨어요?방어력 2짜리도 괜찮으시다면......" 정의남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인적으로 보상을 받는건 지침에 저촉.........아니, 정의에 보답 따위는 필요없네." 그리고 질풍처럼 또 다른 구조 요청자를 찾아 달려가는 것이었다. 1레벨이 들개와 늑대를 물리치며 돌아다니자 레벨이 빠르게 올라갔다. 정의남은 눈앞에 떠오르는 스탯창을 볼것도 없이 몽땅 힘과 체력에 투자했다. "남자는 힘과 체력이지!" 난이도 높은 전투를 반복하자 새로운 스킬과 스탯이 생겼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유술(초급,패시브) : 탁월한 신체 능력과 반사신경을 기반으로 하는 유술을 배웠습니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타격을 입히는 유술은 동양의 음양 사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고급 격투술입니다. 또한 인체 역학을 이용한 관절기는 적의 행동력을 크게 감소시키는 부가 효과를 낼수있습니다. 메치기, 조르기, 관절기를 사용할때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적에게 입히는 데미지가 가산됩니다.] [새로운 스탯이 생성됐습니다. 정의감 (+5) : 정의감은오직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는 불타는 정의감의 소유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 스탯입니다. 정의감 스탯을 가진 플레이어가 조력자로서 전투에 참가할때,모든 능력치가 정의감 포인트만큼 가산됩니다. 또한 공푸와 현혹, 매혹에도 정의감 포인트만큼 저항력이 생깁니다. 뉴 월드의 모든 사람들은 남다른 정의감의 소유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질을 알아보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이들을 도와주면 보다 높은 친밀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며 남을 도울 때마다 소폭 상승합니다.] '유술은 유도를 말하는 건가? 그리고 정의감은 근무 평가라고 생각하면되겠군.' 유술도 그렇지만 ,정의감이라는 스탯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현실에서는 남을 도와도 그저 혼자 만족감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동료들이 칭찬해도 시간이 지나면 금세 잊어버린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의를 실현하는게 수치로 나타난다. 노력에 어울리는 대가를 즉시 받는 것이다. 정의감 스탯은 정의남의 타오르는 심장에기름을 들이붓는 역활을 했다. 정의남의 활약에 유저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유저일리가없어. 단검 하나 착용하지 않고 갑옷까지 벗고 다닐리가없잖아." "세상에 어느 유저가 남을 위해 대신 죽어 주기까지 하겠어?" "정의남이라는 구린이름을 사용할 유저도 없지" "역시 초보자를 배려한 이벤트NPC가 분명해" "하지만 가끔 레벨이나 스탯에 대해 묻기도 하던데? NPC는 그러지 않잖아" 정의남은 하룬 마을의 미스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정의남보다 마초맨이라는 이름을 더 자주 불리게 되었다. 정의남은NPC보다 유저들에게 더 인기가 있었다. "엇, 마초맨이 늑대에게 둘러싸였다." "가자, 마초맨을 구해야해!" "하지만 당장은 우리도 생명력이 거의 없는데......." "그래도 도와야지 .우리도 몇번이나 도움을 받고 모른 척할수는 없잖아" "맞아,마초맨을 돕자!" 정의남을 공격하던 늑대들은 아연실색했다. 불과 서너마리의 늑대에게 30명의 유저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중에는 여태껏 하룬 마을에서 헤매고 있던 로코도 끼어있었다. "여기는?" 갈릭의 입에 삼켜질 때는 모든 게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크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일인지 고민할때 돌연 정보창이 올라왔다. [백경의 미궁 인어족의 수호신으로 불리는 거대한 백경, 갈릭의 배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몸집의 갈릭은 배 속도 미궁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갈릭은 인어족의 수호신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존재였지만, 오래전 선대 인어 여왕의 실종과 함께 흉포해져 닥치는 대로 바다 생물을 포식하고 있습니다. 갈릭의 변화는 아마도 배속을 뒤덮고 있는 어두운 기운과 연관이 있을것같습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젼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자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1,200의 경험치왕 100의 명성을 추가로 얻을수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 거부" 아크는 당연한 듯이 대답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해저 도시를 알고 있는 건 아크뿐이다. 돈 되는 정보를 공유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가 고래 배 속이라고?' 아크가 서있는 곳은 우둘투둘한 돌기로 가득찬 공간이었다.느리지만 맥박이 뛰듯이 가끔씩 벽이 꿈틀거렸다. 어이가 없지만 정말 갈릭의 배속에 들어온 모양이다. 어쨌든 일단 퀘스트완료의 실마리는 잡은 셈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겠지?' 제 발로 고래 배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니,묘한 기분이다.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부대 정렬,번호." "하나" 딱딱. 쌕쌕. 박쥐와 해골, 뱀이 차례대로 대답했다. "주인 , 이짓 좀 안하면 안되냐? 할때마다 쪽팔린다." "시끄러, 다 깊은 뜻이 있는 거야. 해골과 뱀은 오히려 좋아하는데 왜너만 툴툴거려?" "쳇, 저놈들은 그냥 생각이없는거야" 아크는 박쥐의 불평을 일축하고 천천히 전진했다. '던전이라면 당연히 적도 있겠지.' 예상은 적중했다.파도치듯 꿈틀거리는 식도-처럼 보이는-를 따라 들어가자 곧 앞쪽에서 세마리의 크랩이 나타났다. 그러나 밖에서 보던 평범한 크렙이 아니었다. 고래에겍 먹혀죽고,어둠의 기운에 의해 되살아난 언데드 크렙이었다. 여기저기 녹아내리고 껍질이 떨어져 나간 크렙이 먹이를 발견하고 집게를 찰칵거리며 다가왔다. "고양이의 눈!" 스킬을 발동하자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레벨65! 밖에서 무찔렀던 크렙과 레벨 차이가 무려 30이다.현재 아크는 노드리스에 도착할때의 레벨인 52였다. 장사에 정신이 팔려 전투를 등한시한 결과였다. 던전이니 어둠 보너스를 받는다 해도 60전후, 그래도 5레벨가까이 차이가 난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40레벨의 크렙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는데.......' 해저 몬스터는 지상의 몬스터보다 까다롭다.크렙의 견고한 방어력,빈사상태에 빠지면 내뿜는 슬로운 효과의 거품. 처음 상대할때 아크는 10이나 레벨이 높은 상태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껄끄러운 상대임에는 분명했다. 더구나 65레벨이라면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아크는 검자루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는 고래 배 속, 물러날 곳은 없다.' "박쥐, 해골!B플랜이다!" 명령을 받은 박쥐와 해골이 빠르게 달려나가 크렙 한마리를 유인해냈다. 아크는 나머지 두 마리에게 달려들며 붉은 반점을 향해 검을 뿜었다. 퍼퍼퍼펑! 아크의 검이 빛살처럼 퍼지며 일격에 네군데의 약점에서 섬광이 터졌다. 크렙은 단숨에 생명력이 30퍼센트나 줄어든 채 휘청거렸다. 그 상황에 놀란 것은 크렙이 아닌 아크였다. '뭐,뭐야? 이 감각은?' 조금 전까지도 몰랐는데, 막상 전투가 시작되니 몸 여기저기에서 믿기지 않는 감각이 느껴졌다. 몸이 새털처럼 가볍고, 들고 있던 검도 묘하게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랄까? 마음만 먹으면 일격에 네번이아니라 다섯, 여섯번의 타격도 가능할것 같았다. 예전에는 엄두도 못 냈던 동작이나 스피드도 낼 수 있을 듯한 자신감. 아크는 혹시 다른 능력치 보너스를 받았나 싶었지만 그런 메시지는 없었다. '그럼 혹시?' 문득 뭔가를 깨달은 아크는 주위를 둘러보고서야자신이 변한 이유를 알았다. '그렇구나, 이곳은 수중이 아니었어!' 아크는 보름이 넘도록 수중에서 생활해왔다. 샤크맨의 족쇄와 물의 저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전투를 벌였다. 현실에서도 수영장에서 특훈을 쌓으며 체력을 길러왔다.그러나 아크가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그저 수중에서도 지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갈릭의 배 속은 수중이 아니었다. 샤크맨의 족쇄도 없었고, 물의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받아오던 엄청난 패널티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힘과 민첩, 반사신경이 몇배나 향상된 듯한 느낌을 받는데 당연했다 .아니, 실제로 향상되엇다. 결과적으로 아크가 기대했던 대로 수중 생활은 엄청난 성장의 계기가 된것이다. 그감각적인 차이는놀라웠다. 크렙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데빌피쉬의 먹물에 시야를 잃었을때, 아크는 오직 물살의 흐름만으로 8개나되는 발을 피해냈다. 그 감각이 지금도 유지 되었다. 크렙의 집게발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느낌이 고스란히 피부로 전달되었다.4개의 집게발이 복잡하게 날아들었지만 아크는 상체만을 움직여 모두 피해 냈다. 크렙은 관절을 공ㄱ겨해야만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언데드 크렙이라도 약점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리피쉬가 휘두르는 수십개의 촉수를 뚫고 들어가 유일한 약점인 핵을 공격하던 아크다. 제리피쉬에 비하면 크렙은 약점 투성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수중 패널티가 사라졌으니...........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아크의 공격은 타이밍과 위치, 모두가 완벽했다. 정확한 지점을 정확한 힘으로 공격하면 여징벗이 치명타가 터졌다.수중생활에서 극도로 높아진 정밀도의 영향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쓰던 검공격력의 2배에 달하는 란셀의 검이 뿜어내는 가공할 공격력! 아크는 레벨 65의 크렙 두마리를 처치할때까지 생명력이 30퍼센트도 줄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까지 느낌이 다를 줄이야!' 한순간에 너무나 큰 변화를 겪어 오히려 당혹스러웠다. 성장한 건 아크만이 아니었다. 크렙의 레벨을 확인한 아크는 박쥐와 해골이 그리 오래 버텨 주지 못하리라 계산했다 .잘해야1분 ,그것도 상황을 살피다가 한 마리 정도는 소환 취소를 해야 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쥐와 해골은 예상을 뒤엎었다. 수중 패널티가 사라진 영향ㅇ르 가장 많이 받는건 역시 날짐승인 박쥐였다. 노드리스에서 아크와 대련하며 쉬지않고 보양식을 섭취한 결과,박쥐는 회피력과 공격력이 월등히 향상되었다.게다가 수중 패널티까지 사라지자 완전히 살판났다. 물 찬 제비처럼크렙의 공격을 피하며 틈만 나면 몸통 박치기를 날렸다. 한방 한방의 타격은 하찮은 수준이지만,연타 속도가 빨라 데미지가 만만치 않았다.박쥐만큼은 아니지만 해골 역시 놀라운 성장을 보여 주었다.해골은 그간의 설움에 복수라도 하듯, 날쌔게 크렙의 발사이를 굴러다니며 이빨로 물어뜯었다. 고작 레벨 15수준의 소환수 둘이 65레벨의 크렙을 농락하며 몇분 사이에 생명력을 40퍼센트나 깎아 냈다.거기에 아크가 가세하자 크렙은 거품을 내뿜을 새도없이 쓰러졌다. "오오오, 이상하게 힘이 넘친다!" 따닥,따다닥! "주인,싸움이다!싸움하자!" 박쥐와 해골도 피부로 느껴지는 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들썩였다. "좋아,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퀘스트도 어렵지 않게 깰 수 있겠어." 아크는 본격적으로 던전을 누비기 시작했다. 시커먼 내벽이 꿈틀거리는 통로 곳곳에서 언데드가 되어 버린 크렙과 데빌 피쉬, 샤크맨, 제리피쉬들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언데드라도 기본적인 속성은 바다속에서 만난몬스터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미 어떤 공격을 해올지, 어디가 약점인지 손금 들여다보듯환하게 꿰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날아갈 듯이 컨디션이 좋은 상태! "박쥐, 해골! A플랜이다!" 굳이 박쥐와 해골로 몬스터를 유인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는 소환수들과 뭉쳐서 정면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연쇄적으로 터져 나오는 치명타! 소환수와의 협동 공격 보너스!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자빠졌다. 이 무렵, 아크는 전투가 쉬워진 게 비단 자신이 강해져서 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고래 배속의 몬스터는 본래 해저 생물, 아크가 수중에서 패널티를 받았듯이, 놈들은 수중이 아닌 곳에서 패널티를 받았다. 아크의 능력은 올라가고, 놈들의 능력은 내려갔다는 뜻! '경험치를 줍는구나. 주워' 상대하기 쉽다고 해도 놈들의레벨은 65이상.최소한 아크보다 5레벨이 높으니 경험치가 높았다. 한 무리를 사냥할 때마다 경험치가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떨어뜨리는 아이템도 40대 몬스터보다 훨씬 좋았다. 몸은 날아갈듯. 경험치 빵빵.아이템 가치 상승! 전투가 몸서리쳐질 만큼 즐거웠다. 그렇게 아크와 소환수들이 무인지경으로 던전을 휩쓸 때였다. 네마리의 샤크맨을 두들겨 패고있는데 갑자기 반대편에서 굉음이 울려왔다. 쿠쿠쿠쿠,콰콰쾅! 샤크맨들이 움찔하며 허둥지둥 도망쳤다. '샤크맨들이 도망치다니? 대체 무슨일이지?'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굉음이 울리고 불과 몇 초뒤, 돌연 반대편 내벽에서 엄청난 물살이 밀려들었다.내벽을 휘감으며 몰아친 격류가 샤크맨과 아크들을 삼켜버렷다. 저항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야말고 앗, 하는 사이에 격류에 휘말리자 눈앞으로 꿈틀거리는 내벽이 휙휙 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물살이 약해지는가싶더니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보니 거대한 광장이었다. 여이저기 에 아크처럼 물살에 떠밀려 온 몬스터와 쓰레기 더미들이 보였다. '여기는 대체 어디지?윽!' -산성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미지50. 몬스터도 없는데 갑자기 데미지가 들어왔다. 한 방이 아니엇다. 메시지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데미지가 들어왔다. 발이 닿은 곳에서 허연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허둥대는 몬스터들의 몸에서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미 빈사 상태에 빠진 몬스터도 있었다. '맙소사, 여기는...........위장이다!'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훑었다. 다행히 몇 미터 거리에 출구가 있었다. 출구는 꿈틀거리며 닫히고 잇었다. 음식물이 들어왔으니 위장의 괄약근이 자동적으로 막히는 것이리라. '탈출하지 못하면 소화돼 버리고 만다!' "으악, 고래똥이 되는건 싫어!" 박쥐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동감이다. 어렵게 여기까지 와서 고래 똥이라니? 아크는 꿈틀거리며 닫히려는 출구를향해 달렸다. 박쥐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이어 아크는 해골을 집어 던지고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아크의 몸이 좁아진 괄약근사이를 비집고 뛰어나왔다. 곧바로 닫혀 버리는 괄약근을 보자 뒤늦게 식은땀이흘러나왔다. 불과 몇 초사이에 생명력이 350이나 빠져 버렸다. '미치겠군,뭐 이런 황당한 던전이..........?' 그때,등뒤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시시익! "게게게겍!"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뒤에는 위장까지 쓸려왔다가 간신히 탈출한크렙 몇마리가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크렙이 아니다. 크렙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회색지렁이같은몬스터다. 크렙들이 집게발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지렁이는 미동도 하지않고 한마리씩 잡아먹고 있었다. "저, 저런 또 뭐야? 고양이의 눈!" 스킬을 사용하자 지렁이의 정보가 나타났다. 이름은 그레이트 웜, 레벨이 80이나 되는 몬스터였다. "그레이트웜? 결국 큰 회충이라는 말이잖아?" 되살아난 음식 찌꺼기도 모자라 회충과 싸워야 한다니......... 아크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웜이 고개를 돌렸다. 타액이 질질 흘러내리는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몸을 굴리며 검을 휘둘렀다. 둔중한 울림이 터졌지만 웜은 끄떡도 하지않고 꼬리를 휘둘렀다. "크윽!" 한방에 생명력이 200이나 빠져 버렸다. '틀렸어,지금 상태로는 이놈을 못 이겨!' 어둠 보너스를 저용해도 레벨 차이가 15가까이 나는 몬스터다. 거기에 아크는 위장에서 데미지를 입은 상태. 하지만 도망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 등뒤는 괄약근으로 막혀 있었다. '젠장, 위장에서 간신히 탈출했는데 이제 와 여기서 회충의 먹이가 될수는 없어!' 아크는 검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희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회충 역시 크렙과싸우면서 생명력이 30퍼센트가량 깎여 있었던것. "가자, C플랜이다. 박쥐, 놈의 시선을 교란해라!" "알았다!" 박쥐각 빠르게 비행하며 웜의 시선을 끌었다. 동시에 아크는 웜의 몸에 떠올라있는 반점을향해 폭격을 가하듯 검격을날렸다. 퍼퍼퍼펑! 연쇄적인 치명타에 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웜은 움직임이 느리지만 공격을 할때는 엄청나게 빨라진다. 웜의 날카로운 이빨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아크는 웜의 공격을 완전히 피할 생각을 버렸다. 생명력을 아끼는데 마음을 집중하면 그만큼 공격이 허술해진다. 치명타 확률도 대폭 내려간다.차라리 데미지를 각오하고 그 이사의 타격을 돌려주는데 집중하는 편이낫다. 웜은 검공격으로는 미동조차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느린 거대 몬스터에게 부여되는 특수 효과덕분이다. 그러나 발차기를 먹이면 잠시 주춤거렸다. 발 차기를 성공시킬 때 일정 확률로 적용되던 스턴이나 밀어내기 효과가 약간의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다. '공격 패턴에 따라 이용할 수있겠군.' 아크는 스텝을 밟으며 웜의 주위를 돌았다. 기회를 엿보다가 웜이 공격 자세를 취하면 곧바로 나래 차기를 먹였다. 태권도의 발차기는 모든 무술 가운데 가장 빠르다고 정평이 나이싿. 그중에서도 나래 차기의 속도는 발군! 나래 차기에 얻어맞은 웜이 움찔하며 경직되었다. 그 타이밍에 아크는 검으로 카운터를 날려 치명타를 터뜨렸다. 그렇게 3분가량 싸웠을 때 갑자기 데미지가 들어왔다. -소환수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이 유계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소환수 생명력의 50%데미지를받았습니다. 소환수가 강해졌다고는 해도 웜을 상대로는 한계가 있었다. 웜이 거치적거리는 해골을 몸으로 깔아뭉개 으깨 버렸다. 곧이어 박쥐도 웜읭 입에서 뿜어진 타액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떨어져 깔려 버렸다. 공격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소환수를 살필 겨를이 없었던 탓이다. '소환수는 24시간이 지나면 다시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끝장이야. 다시 노드리스에서 부활에서 갈릭에게 삼켜지는 건 싫어!'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 하던 생명력이, 소환수가 사라지며 들어온 데미지로 빈사 상태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불굴의 정신과 육체효과가 발동했다. "지금이다. 다크블레이드!" 퍼펑! 소환수가 사라졌으니 마나를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아크는 곧바로 두 발의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다. 그러나 검격으로는 웜의 움직임을 경직시킬 수 없었다. 다크 블레이드가 적중하는 순간 휘둘린 꼬리가 허리를 쳤다. 둔중한 충격과 함꼐 아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다행히 불굴 시리즈의 효과로 치명타는 피했지만 생명력이 50까지 내려갔다. 숨돌릴 틈도 없이 웜이 몸통 박치기를날려왔다. '놈도 다크 블레이드에 빈사 상태가 되었다! 남은 마나는 104.아직 다크 블레이드를 한 번은 날릴 수있어. 한방에 승부를 건다!' '뱀, 포션!" 허리에 감겨있던 뱀이 포션 하나를 탁 뱉어냈다. 뱀이 좋은 점이 이것이었다. 보통 전투 중에 포션을 먹으려면 가방을 열고 포션을 꺼내야 한다. 거기에 걸리는 시간은 숙련된 전사라도 3~4초. 그조차 평소 가방 정리를 잘 해놔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뱀 덕분에 아크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급 회복 포션을 들이켜자 생명력이 100이 회복되었다. 아크의 눈이 번쩍였다.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다크 블레이드!" 웜과 아크의 몸이 교차하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아크는 몇 미터나 뒤로 튕겨져 날아가 내벽에 처박혔다. 서둘러 생명력을 확인해 보니 7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반면몇가지 부가 효과가 걸린 치명타에 적중된 웜은 몸을 비틀며 발광하더니 서서히 녹아 내렸다. 아크의 승리였다. 웜을 쓰러뜨리자 레벨이 오르고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카운터 어택(초급, 패시브) : 적이 공격하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낼 수 있는 용기와 반사 신경을 가진 자만이 익힐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건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함 의지입니다. 두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불굴의 정신과 불굴의 육체가 없으면 배울 수 없습니다. 카운터 어택을 성공 시,50%의 추가 공격력이 적용, 5% 확률로 스턴효과 발동 공격 스킬과 중복되지않습니다.] 해저 몬스터와 싸우며 몸에 익힌 카운터 덕분에 또 쓸만한 스킬이 추가되었다. 웜이 사라지자 회색 가죽이떨어졌다. [그레이트 웜의 표피(재료) 매우 특수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그레이트 웜의 표피입니다. 그레이트 웜은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이처럼 양질의 표피를 얻을 수 있는 확률은 굉장히 희박합니다. 뛰어난 장인이 무두질을 하면 휼륭한 가죽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설명만으로는 좋은 아이템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휴, 어쨌든 살았군 " 일단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대가가 너무 컸다. 소환 수 두마리가 모두 강제 소환되었고, 갑옷의 내구도도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샤크맨의 족쇄 대신 신고 있던 잡템 신발은 아예 깨져 버렸다. 이겼다고는 하나, 반은 운에 맡겼던 승부였다. 지금 레벨에서 다시 싸워서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분간 웜은 피해 다니는게 좋겠군." 아크는 공구상자를 꺼내 들었다. 한번 쓴맛을 본 아크는 신중했졌다. 처음처럼 무턱대고 던전을 쓸고 다닐 엄두도 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걸음 던전을 탐험했다. 박쥐가 없어 정찰을 못하니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멀리서 수상한 기척이 감지되면 재빨리 '은신'으로 몸을 숨겼다. 웜이외의 몬스터는 소환수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경험치도 좋은편이라, 웜만 없다면 사냥터로는 최고였다. 그렇게 던전을 탐험하며 아크는 몇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던전안에 격류가 휘몰아치는 건 대략2시간에 한번. 아크는 시간을 계산해 두었다가 격류가 휘몰아칠 시간이 되면 샤크맨의 족쇄를 착용했다.폭풍이 불어도 휩쓸리지 않는 샤크맨의 족쇄를 착용하면 격류에 휘말리지 않았다. 물론 패널티가 장난이 아니라, 격류가 지나가면 바로 벗어나야 했다. 꽤나 귀찮은 일지만 격류가 나쁘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한번 격류가 휩쓸고 지나가면 던전 여기저기에 쓰레기더미가 생겨났다.그거 뒤져 보면 가끔씩 쓸만한 아이템이 나오기도 했다. 여러모로 짭짤한 던전이었다. 아크는 잠자는 것도 잊은 채 던전 탐험에 흠뻑 빠져 들었다. 그렇게 24시간이 지났다. "모두 고생들 했다. 일단 이거나 먹어라." 아크는 해골과 박쥐의 노고를 치하하며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소환수의 생명력이 회복되자 아크는 박쥐에게 말했다. "박쥐, 던필과 한번 붙어 보지 않을래?" "뭐? 정말이냐?" 박쥐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박쥐는 연달아 두번이나 깨진 뒤로 아직까지 던필과 붙어 보지않았다. 퀘스트를 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박쥐의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던필에게 당해서 강제 송환되면 아쉬운건 아크인것이다. 그러나 잠시혼자 있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수중 패널티가 없어진 박쥐는 상당히 강해졌다. 지금의 박쥐라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갑자기 강해져서 사기가 올라간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설사 박쥐가 당한다고 해도, 그레이트 웜만 피하면 해골과 둘이서도 충분해.' "대신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수련을 잊지 마. 냉정하고 침착하게, 내가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해 알지?실력이 부족해서 지는 건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제대로 실력 발휘도 못 해 보고 진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 기회를 주지 않겠다." "알았다.주인, 최선을 다하겠다." 아크는 다짐을 받고 던필을 소환했다. 던필은 여전히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로 지껄였다. "또 뭐냐?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냐?" "이번에는 좀 다를 껄." "흥 , 그래봐야 박쥐가 박쥐지. 그것도 뱀파이어의 종자에 불과한 박쥐 따위는 유계의 귀족인 이 몸의 상대가 안돼." 던필의 도발적인 말투에도 박쥐는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잔뜩 벼린 눈초리로 쏘아보기만 할뿐이었다. 아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박쥐. 시작해라" "각오해라!" 박쥐가 시합성을 터뜨리며 날아올랐다. 던필은 가소로운 듯이 손톱을 휘둘렀지만, 이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박쥐는 뱀이 나무를 기어오르듯 팔을 휘감아 돌진해 놈의 목에 일격을 먹였다. "크윽! 이, 이럴수가!" 던필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수중에서의 느린 움직임만 본탓에 갑자기 몇 배나 빨라진 박쥐의 움직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적이 당황하는 모습에 박쥐는 더욱 사기가 올랐다. 공중에서 내리찍고, 아래에서 솟구치며 턱을 후려쳤다. 아크에게 배운 연속 기술! 박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크의 코치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공격이 가해질 때마다 던필의 몸이 휘청거렸다. "빌어먹을 놈 ! 그동안 괴롭힌 대가다!" "이, 이자식이........!" 생명력이 40퍼센트 가까이 빠지자 갑자기 던필의 몸이 연기에 휩싸였다. 확퍼지는 연기 속에서 큰 덩치의 박쥐가 솟아 나와 박쥐를 후려쳤다. '변신!' 던필은 인간형의 몸으로는 박쥐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자신도 박쥐로 변신한 것이다. 하급 뱀파이어라도 일단 명색이 뱀파이어라 박쥐로 변신할 수 있는 모양이다. 던필이 변신하자 싸움은 공중전이 돼 버렸다. 두 마리의 박쥐가 복잡하게 얽히며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 받았다. 아크조차 고양이의 눈이 아니면어느 쪽이 던필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공방이 이어졌다. 전투가 지속되자 박쥐가 약간 밀리는 듯했다. 능력은 거의 비슷했지만 던필의 변신에 당황한 탓이다. 또한 박쥐는 비행 몬스터와의 전투 경험이 전무했다. "박쥐, 당황할 필요 없다. 수중 전투를 생각해봐. 제리피쉬의 촉수 공격까지 피해 냈던 네가 던ㅍ리의 공격을 못 피할 이유가 없어." 아크의 조언은 효과가 있었다. 박쥐는 비행 몬스터와 싸운 적은 없다. 그러나 해저 몬스터는 대부분 수중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결국 비행 몬스터와 다르없다는 뜻. 게다가 해적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수중패널티까지 적용 된 상태였다. 던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수중 패널티를 받으며 상대해야했던 해저 몬스터보다는 까다롭지 않았다. 박쥐의 공격 패턴이 바뀌었다. 해저를유영할 때처럼 양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하다가 빈틈을 발견하면 매처럼 쏘아져 내려왔다. 공격의완급조절, 수중에서 아크에게 두들겨 맞은 보람이 있었다. "비겁한 놈, 남의 싸움에 끼어들다니!" "훗, 무슨 짓을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지껄이더니? 이제 생각이 바뀐건가?" 박쥐가 기교를 부리자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던필과 박쥐의 생명력을 비슷한 양을 유지하며 깎여 나갔다. 그러나 던필의 생명력이 훨씬 많으니 기술로는 박쥐가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겍 5분여, 약간의 차이로 먼저 빈사상태에 빠진 던필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자 던필이 비명같은 고함을 지르며 뒤로 몸을 뺐다. 동시에 입에서 검은 기류를 뿜어 박쥐의 시야를 빼앗고 돌진해 들어왔다. 최후의 승부수를 던지려는 것이리라. 아크의 눈이 반짝였다. '박쥐. 피하지 마라, 제로상황이다!" "우오오오, 죽어라! 건방진놈!" 던필이 화살처럼 쏘아져 돌격해 왔다. 돌격이라면 박쥐도 지긋지긋하게 사용해 왔다. "이판사판이다!" 박쥐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막 두 박쥐가 충돌하려는 순간, 갑자기 박쥐가 급커브를 틀어 버렸다. 온힘을 다해 돌진하던 던필이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 뭐.........?" 콰쾅! 던필은 그대로 벽을 들이받았다.이어 공중을한바퀴 선회한 박쥐각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드디어 생명력이 바닥난 던필은 종잇장처럼 비실비실 바닥에 떨어졌다. "잘했다, 박쥐!" 아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이게 아크가 마련한 마지막 승부수였다. 제로 상황, 이건 아크가 한 말의 반대로 움직이라는 암호였던것이다. "크으윽, 정말 내가 지다니........." 던필은 바닥을 기며 신음을 흘려댔다. 그리고 다가오는 박쥐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후훗, 강해졌구나 . 사실 나는 처음부터 너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네가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일부러 차갑게 대했던........." 퍽퍽퍽! 던필은 나름대로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박쥐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성큼 다가선 박쥐는 다짜고짜 던필의 주둥이를 발로 꽉꽉 밟아 댔다. 결국 던필은 찍소리도 못 내고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의 소환수 증오를 품은 박쥐가 던필을 물리쳤습니다. 이로써 소환수를 합성해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인이 될 소환수를 선택해 주십시오. 합성진화로 만들어질 소환수는 메인 소환수 의 능력치에 보조 소환수의 능력치가 가산되어 결정됩니다.] 이겼다고는 해도 박쥐보다는 던필이 레벨과 능력치는 훨씬 높다. 그러나 아크는 망설이지 않고 박쥐를 선택했다 능력치가 전부가 아니다. 비록수치로 표시되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전투와아크의 수련으로 쌓은 경험이 능력치보다 더 중요했다. 더구나 그동안 정든 박쥐를 포기하고 던필 같은 놈과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메인,증오를 품은 박쥐.보조, 던필." 아크읭 결정이 끝나자 박쥐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점점 몸이 변하더니 사람의 형태를 갖춰 갔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10세 전후의 소년이었다. 마치 할로윈파티에 참가한 드라큘라 복장의 소년같았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날카롭게 치솟은 눈썹이 인상을 꽤나 사납게 만들었다. [소환수 합성 진화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던필과 합성으로 증오를 품은 박쥐는 하급 뱀파이어의 일족으로 승격됐습니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로부터 데드릭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데드릭은 유계의 하급 귀족 신분을 얻어 아티펙트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엇습니다. 란셀의 검은 이제 데드릭의 아티팩트입니다. 란셀의 검을 사용할 경우, 데드릭과 협동 공격 보너스에 10% 추가 포인트가 가산됩니다. 아티팩트를 소유하게 되어 데드릭에게 추가 스킬이 생겼습니다.] [데드릭 뱀파이어의 종지에서 하급 뱀파이어로 벼락출세한 유게의 주민. 자수성가한 소환수 답게 자존심이 강하고 굴욕을 싫어한다. 뱀파이어로 진화한 영향으로 던전이 아니라면 낮에는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못합니다. 박쥐 상태에서도 태양 아래에서는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종족 : 마족 성향 : 어둠 등급 : 하급 생명력 : 250(+200) 충성도 :43(-25) 힘 25(+15) 민첩 40(+15) 체력 35(+15) 지혜 15(+15) 지능 55( +15) 운 5(+15) *인간과 박쥐로 자유롭게 변신이 가능합니다. *암흑 돌진을 사용할수 있습니다. 어둠을 내뿜어일시적으로 적을 암흑 상태로 만든뒤 돌진해 하급 돌진에 해당하는 타격을 입힙니다. 마나소모 : 30] '하, 이거 쓸만한데?' 모든 스탯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종합 능력치를 계산하면 레벨 27이상은 될듯했다. 노드리스에서 음식을 퍼먹여 능력칠를 18정도 수준에 맞춰 놨으니 단숨에 9이상 오른 셈이다. 거기에 스킬까지 생겼다. 아마도 던필이 비장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기술인 모양이다. 뱀파이어 성향이 생겨 패널티가 붙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성장이다. 그런데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다른 스탯은 모두 올랐는데, 유일하게 충성도만 -25의 패널티가 붙어있었다. 그 효과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박쥐, 수고했다." "박쥐? 그게 누구냐?" "뭐?" "훗, 똑바로 들어 둬라. 이제 나는 네가 알고 있던 박쥐가 아니다. 유계의 귀족 ,데드릭이다. 지금까지는 네 멋대로 떄리고, 음식으로 고문했지만 앞으로는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 아크의 표정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말을 들어 보니 박쥐 시절의 기억이 없는 건 아니어싿. 말하자면 조금 컸다고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소환수라고 열심히 음식을 퍼먹이고, 수련까지 시켰다. 그뿐인가? 더 좋은 능력치를 가진 던필을 포기하면서까지 박쥐를 선택했다. 그런데 진화해서 가장 먼저 하는 짓이 배신이라니! 아크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그래서?" "물론 나도 무조건 거부하겠다는 건 아니다. 내 직위가 올라갔다고는 하나, 네가 주인이라는 건 변함이없으니까. 하지만 음식의 실험대로 쓰이는건 단호히 거절한다. 물론 나도 성장하고 싶으니 먹긴 하겠지만, 음식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 이건 당연한 권리다." "권리?" 아크가 빙긋 웃었다. 지능이 올라가제법 어려운 문자를 쓸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뭐랄까? 참으로 안타까운일이다. 박쥐 때보다 머리가 좋아졌다면서 왜 제 주인이 어떤 성격의소유자인지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걸까? 마음먹고 밟기 시작하면 적당한 수준에서 봐주는 법이 없다는 걸 말이다. '이참에 소환수들에게 상하 관계를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겠군' 아크는벌떡일어나 다짜고짜 데드릭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아무리 진화를 했다고는 해도 고작 27레벨수준, 아크의발차기에 얻어맞자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바닥을 구르던 데드릭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마, 말로하자! 이건 폭력이야!" "몰랐어? 나 폭력 좋아해" "나,난 어린애잖아! 이건 아동학대다" "그래도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지. 싸가지 없는 애들은 사회문제라고." 아크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잘근잘근 밟아 댔다.결국 생명력이 바닥난 데드릭은 비명을 지르며 강제 송환돼 버렸다. 아크읭 돌변한 모습에 해골과 뱀의 눈이 동그레졌다. 아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너희들은 아무 잘못도 없잖아 하지만 조금 컸다고 대드는 놈은 맞아도 싸, 물론 너희들은 착하니까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렇지?" 웃으며 말하지만 왠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해골과 뱀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해골과 함께 사냥에 몰두했다. 데드릭의 비참한 몰골을 본 해골은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전투에 임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아크의 방패가 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데드릭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모양이다. 아크는 그런 해골에게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주며 살갑게 대했다 .그러나 데드릭은 예외였다. 아크는 24시간이나 지나면 데드릭을 소환해 아무말도 없이 잘근잘근 밟아 댔다. "히익, 그, 그만, 잘못했어,다시는 안그럴게!" "한번 배신한 놈은 두번도 배신하는 법이지." 그렇게 서너 차례 반복되자 데드릭은 소환되자 마자 넙죽 엎드려 애원했다. "히익, 주,주인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가서 장난 한번 쳐 본겁니다!" 그러나 아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사정 없이 밟아 댔다. 한번 어긋난 놈은 적당히 봐주면 끝없이기어오르기 마련이다. 버릇없이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우유부단해서 그런거다. 애완동물도초반에 잡아 놓지 않으면 주인을 물기도 하듯, 버릇을 가르칠 때는 확실하게 뿌리를 뽑 아놔야한다. 아크는 적어도 던즌을 나갈 때까지는 이렇게 밟아 놓을 생각이었다. ACT 6 영혼의 간병인 "뱀, 챙겨라" 아크가 발치에 쌓여 있는 아이템들을 가리키자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모두 삼켜 버렸다. 격류와 함께 밀려들어 오는 쓰레기 더미는 쏠쏠한벌이가 되었다. 각종 해초와 인어족 아이템, 회복 포션이나 진주 따위가 무작위로 나왔다. 덕분에 노드리스에서 텅텅 비워 버린 가방이 제법 두둑해졌다. 쓰레기 더미근처에는 유난히 많은 몬스터가 지키고 있었지만, 이제 던전 내의 몬스터들은 대여섯 마리가 달려들어도 무난히 상대할 수 있었다. 다크워커의 어둠 속성 보너스가 좋은 점은, 능력치가 올라가 레벨이 높은 상태가 되지만 실제 레벨은 낮다는 점, 때문에 같은 노력으로 사냥해도 5레벨 이상 몬스터를 잡아 추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적용 되는추가 경험치는 5레벨당 10퍼센트다. 그런데 갈릭 배 속에서 만나는 몬스터는 평균 10레벨이 높았다. 추가 경험치가 무려 20퍼센트! 효과를 최대한 보기 위해 아크는 하루에 2시간 밖에 자지 않고 레벨 업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아크는 일주일동안 레벨을 10이나 더 올려싿. "스탯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인간 성향 :선+50 명성 :520 레벨 : 62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 ,간병인 생명력 : 1,305 마나 : 730(+100) 영력 : 100 힘 176 민첩 196(+17) 체력 246 지혜 25 지능 141 운 41 특수 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 (35) 유연성 :14 화술 : 18 애정 :13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민첩 +2,냉기저항+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2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1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검에서 진정한 능력이 끌어낼 수 있습니다.] 꾸준하게 체력을 올려 준 덕에 이제 생명력이 1,300을 넘어섰다. 마정석 골렘의 머리 덕에 100이 추가된 마나는 830! 소환수를 안쓴다면 다크 블레이드를 8번이나 연속해서 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렇게 레벨이 60이 넘어가니 사냥 효율이 떨어졌다. 10퍼센트의 추가 경험치를 얻지 못하게 된 탓이다. "보너스가 주어질 때는 몰랐는데 막상 없어지니 경험치가 안 오르는 것 같군. 뭐, 이제 레벨도 충분히 올랐고 가방도 슬슬 차가니, 슬슬 퀘스트를 해결할 떄가 되긴 했지." 아직 퀘스트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한 상태였다. 백경의 배속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긴 통로는 대부분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조금 벗어나면 금세 미로같은 지형이 펼쳐졌다. 마치 세포의 점막 같은 벽이 얽히고 설켜 어디를 가도 똑같은 곳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고 , 어떤 지역은 위장처럼 함정이 작동하는 곳도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겍 흥미로웠다. 그러나 일주일이나 지나니 검붉은 살점에 뒤덮인 던전이 갑갑하고 숨 막히게 느껴졌다. '어쨌든 빨리 퀘스트를 깥낼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해.' 아크는 걸음을 옳겼다. 퀘스트에 관계된 장소가 어디인지 대강 짐작은 간다. 일주일 동안 미궁을 샅샅이 뒤진 아크가 가보지 못한 유일한 장소, 바로 그레이트 웜들의 서식지였다. 아크는 지금까지 웜과의 전투를 최대한 피해왔다. 그러나 이제 아크도 레벨 62. 어둠 속성 추가 보너스를 받으면 그럭저럭 대등한 수준이다. 아크는 좁은 통로를 지나 넓은 지역에 들어 섰다. 붉은 피막에 덮여 있는 광장 같은 공간에는 수십 마리의 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아크는 냄비를 꺼내 수프를 끓여 마셨다. [톡 쏘는 독특한 맛의 해산물 수프 30분간 생명력 +100,공격력과 방어력이 20%상승합니다.] 서바이벌 요리 중급부터 만들 수 있는 해산물 수프는 아크가 만들 수 있는 요리 가운데 가장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효과가 좋은 음식에 의례 따라붙던 후유증도 없었다. 그러나 꽤 보기 드문 해초와 조개가 필요해 자주 먹을 수는 없었다. 수프를 마시자 기운이 솟았다. 아크는 해골에게도 음식을 먹인 뒤에 웜을 한마리씩 유인했다. 레벨이 오르고, 수프의 효과까지 누리는 데도 웜은 여전히 강력하게느껴졌다. 데드릭이 박쥐로 변해 시선을 끌어 주면 한결 쉬우리라. 간만에 버거운 적을 상대해보니 그동안 데드릭이 얼마나 큰 역활을 해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쉬워도 말을 안 든는 소환수를 쓰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데드릭은 아직 버릇을 고쳐하 한다. '데드릭을 가둬 두고 있는 동안 능력치는 많이 올랐지만......' 해골이 이제 20레벨 수준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여전히 데드릭에 비해 활용도가많이 떨어졌다. 동작도 데드릭보다 느리고, 머리도 나빠 전투가 벌어지면 우왕자왕하는 경우가 많았다.게다가 능력치도 엉뚱하게 지혜나 운이 오르는 경우가 많아 체력도 낮다. 웜이 상대라면 한두 방도 버티기 힘들다. 그러나 해골에게는 끝없는 충성심이 있었다. 아크가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 해골은 망설임 없이 대신 죽어 주었다. 사실 유저는 타격을 입을 때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설정상, NPC나 몬스터는 실제와 동등한 고통을 느끼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가지고 있다. 데드릭이 아크에게 얻어맞으며 괴로워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길을 잘들여 놓은 펫이나 소환수라도 주인을 대신해 맞거나 죽어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골이 머리가 나쁘고 충성심이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골은 내 추가 생명력이다.' 해골의 진짜 역활은 최악의 상황에서 아크를 대신해 죽어주는 역활이었다. 해골도 자신의 역활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크의 생명력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해골은 굳이 명령하지 않아도 앞으로 나섰다. 그사이 불굴 시리즈로 능력치가 잔뜩 올라간 아크가 웜에게 카운터 어택이나 다크 블레이드를 날려 숨통을 끊었다. 해골도 한두 방은 아슬아슬하게 버텨 냈다. 만약 치명타나 다크 블레이드가 빗나가면 해골은 강제 송환될 수밖에 없었지만, 수중에서 쌓아 온 경험 덕에 기술의 정밀도가 엄청나게 올라가 스킬실패율은 매우 낮았다.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다. '웜은 공격력이 강하지만 공격 방식은 단순한 패턴의 반복이다.' 웜을 몇 마리 죽여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처음 한두 마리는 아슬아슬하게 이겼지만, 전투를 반복할수록 생명력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나중에는 30퍼센트 이상의 생명력을 남기고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웜이 대형 몬스터만 아니면 한 번에 두마리도 잡을 수 있을텐데.' 대형 몬스터는 여러가지 부가 효과를 높은 확률로 무효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만 아니라면 크렙이나 샤크맨처럼, 발 차기와 검격의 연속 공격으로 여러 마리를 상대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렇게 꼬박 한나절을 사냥하자 웜이 모두 정리되었다. "수고했다." 아크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해골이 기쁘다는 듯 데굴거렸다. 보면 볼수록 기특한 녀석이다. 몇번이나 죽을 뿐하고도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면 만사 오케이. 아크가 대견하게 해골을 바라보자 뱀이 불쾌한 눈길로 해골을 쏘아보았다.근래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뱀은 아크를 부모로 생각하기에 유난히 질투가 심했다. 잠깐이라도 다른 소환수를 예뻐하면 금세 삐쳐서 아크를 칭칭 감고 귀찮게 굴었다. 뭐, 이제는 적응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지만....... 어쨌든 웜을 정리한 아크는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반대쪽까지 들어가자 공간 전체가 쿵,쿵하면서 울려대싿. "심장의 고동 소리다. 이 반대쪽에 갈릭의 심장이 있는건가?" 그때였다. 돌연 뱀이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캑캑거리며 뭔가를 토해 냈다. 해신의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은 심장의 고동 소리에 맞춰 진동하며 빛을뿜어냈다. 그 때문에 뱀이 참지 못하고 토해 낸 모양이다. "역시 여기가 퀘스트를 해결하는 곳이군.그런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은 모두 막혀 있었다.그때, 문득 아크의 머릿속에 크리스털 석주에 쓰여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나를 보고 싶다면 두눈을 감아요. '여기에 뭔가 트릭이 있다면 분명히 그게 힌트였을거야.' 아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공간 전체를 울리던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그리고 어느순간, 그 소리가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손거울이 고동 소리에 이끌리듯 한쪽으로 부르르 진동했다. '이쪽인가? 하지만 막혀 있는데.....' 아크는 손으로 내벽을 짚어 가며 이동했다. 그러자 내벽이 놀란 것처럼 오므라들며 길이 만들어 져싿.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막다른 곳에 다다르면 눈을 감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면 저절로 길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몇 분가량 걸어가자 진홍빛으로 반짝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중심에 사람 형상의 석상이 놓여있었다. 손에는 타원형의 돌 조각이 들려있었다. 어딘가에서 쪼개져 나온 듯 돌 조각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찾았다. 이게 그녀가 들고 사라졌다는 물건이 분명해!" 아크가 와락 돌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였다. 석상이 눈동자를 번쩍이며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찢어지는 비명은 터뜨렸다. "끼아아아아!" "헛, 뭐, 뭐야?" 석상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졌다. 이어 터지듯 사방으로 흩어지며 시꺼먼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적으로는 그림자 숲에서 싸웠던 리퍼와 닮은 모습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몸집 .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검은 망토를 걸친 괴물이 뒤로는 검은 머리칼이 살아 있는 뱀처럼 사방으로 흩날렸다. 온통 검은색, 고목처럼 갈라진 피부조차 검은색이었다. -보스몬스터 아드라인이 나타났습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인어족의 수호신 갈릭=잠식하는 어둠 백경 갈릭의 배 속을 탐사한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갈릭의 배 속을 어둠으로 채우고 몬스터를 언데드로 부활시킨 힘의 근원은 바로 심장에 있었습니다. 그 어둠에 장식되어 갈릭도 이성을 잃었던게 분명합니다.어둠의 근원에서 태어난 사악한 존재 아드라인을 무찌르고 갈릭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합니다. 난이도 : +E] 경고 메시지와 함께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난이도는 무려 +E! '설마 고래 배속에까지 보스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돌연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촉수처럼 퍼지며 아크를 공격해 들어왔다. 아크는 빠르게 발을 놀려 촉수를 피해냈다. 제리피쉬의 촉수를 막아 냈다. 쩡하며 겁날이 웅웅 진동했다. 막았는데도 생명력이 200이나 빠져 버렸다. "고양이의 눈!" 아드리안의 레벨과 생명력을 떠올렸다. 레벨이 무려 100이나 되는 몬스터였다. 아크의 머릿속에서 위기를 알리는 경고 등이 번쩍였다. "틀렸어, 지금 레벨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놈을못 이겨!" 죽지 않으려면 한번 공격을 주고받았을 때, 상대와의 격차를 정확하게 가늠해야 한다. 일단 적과 전투를 시작햏 버리면도망치기가 쉽지 않다.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사이에 두세 방의 백스탭 데미지가 들어오기 때문, 안되겠다 싶으면 생명력이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을 떄 도망가는게 살아남은 비결이다. 레벨차이도 차이지만, 저렇게 많은 촉수에 연속 공격을 당하면 불과 몇초도 버티지 못하리라. 아크는 와락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 해골, 놈을 막아라!" 퍼퍼펑! 해골이 용감하게 뛰어나갔지만 촉수 3개가 후려치자 바로 강제 송환되었다. 때문에 아크의 생명력이 200이나 빠져 버렸다. 그러나 덕분에 아크는 몇 초의 시간을 벌였다. "미안하다,해골.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 미친 듯이 출구를 향해내달렸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출구로 빠져나가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시간을 오래 걸리겠지만 백경의 미궁에서 웜 위주로 사냥을 하면 80레벨까지는 올릴 수 있다. 거기에 어둠 효과를 받으면 아드리안과도 그럭저럭 상대가 되리라. 아크는 몰아치는 촉수를 피하며 손을 뻗어 출구를 열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달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굉음이 울리며 던전 전체가 뒤흔들렸다 뒤를 돌아본 아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아드리안은 괴성을 터트리며 내벽을 향해 촉수를 휘둘렀다. 그럴때마다 내벽의 살점이 뭉텅무텅 떨어져 나갔다. 미궁이 뒤흔들리는 것은 갈릭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발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갈릭의 고통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벽을 부수며 다가오는 아드리안은 공포그자체였다. '맙소사, 저렇게 빠르다니.......!' 휙휙 바람 소리를 내며 촉수가 뒤통수를 스칠때마다 머리카락이 쭈뼛거렸다. '젠장, 심장만 빠져나가면 따라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아드리안은 끝까지 따라올 기세다. 아크는 설령 아드리안이 따라오더라도 거대한 몸집 때문에 내벽에 걸려 느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사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수백 미터까지 거리를 벌려 놓으면 전투 상태가 풀리낟. 그때 '은신'으로 몸을 숨길 계산이었다. 그러나 시야를 벗어나기는 커녕, 내벽을 부수며 쫓아오는 아드리안은 오히려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눈앞에 절망이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는 것같았다. '젠장, 이대로죽는건가?' 스탯 손실! 게다가 던전 탐사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뿐인가? 보스 몬스터에게 죽으면 장비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높아진다. 게다가 몬스터들도 아이템을 보면 줍는다. 만약 란셀의 검을 떨구고 그걸 아드리안이 주워 버린다면? 아드리안을 잡을 때까지 허접스러운 검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절대 안돼! 죽을때 죽더라도 끝까지 도망가 보자! 어디까지 따라오는지 한번 보자!' 아크는 요동치는 갈릭의 배속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떄, 문득 갈림길을 지나치다가 퍼뜩 뭔가를 떠올려싿. '가만, 이쪽 길은 예전에........그렇구나! 혹시 그 방법이면.......?' 미궁의 지형을 더듬던 아크는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을 깨달았다. '그런 게 가능할까? 아니, 가능한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 지금은 그 방법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어!' 아크는 급정거하고 빙글 몸을 돌렸다. 아드리안이 곧바로 촉수를 휘둘러 왔다. 아크는 촉수를 피하며 아드리안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코앞까지 접근했을 때, 낙법을 이용해 바닥을 굴렀다. 촉수가 옆구리를 스치며 엄청난 데미지가 들어왔다. 그러나 아크는 반격조차 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아크는 그대로 아드리안을 지나쳐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그리고 아까 스쳐 지났던 갈림길로 뛰어 들어갔다. 광장에 발목 까지 물이 차 있는 곳이었다. 아크는여기저기 널려 있는 쓰레기 더미를 밟으며 광장 중심까지 이동한 뒤에 몸을 돌렸다. 아드리안이 막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크는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어디 ,내가 죽나 네가 죽나 한번 붙어 보자고." "끼아아악!" 아드리안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다가 멈칫했다. 발이 수면에 닿자 치익하며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올라온다. 뒤늦게 뭔가 불안한 낌새를 챈 아드리안이 뒤로물러나려고 했다. 그러나 힘들게 유인해 놓고 그냥 놔줄 아크가 아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왔다고 나갈 때는 안돼, 뱀, 방패!" 뱀이 기다렸다는 듯 너덜너덜한 방패 하나를 툭 뱉어 냈다 .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허접한 조개껍데기 방패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방패가 단 하나의 생명줄이었다. 아크는 방패를 받아 우산처럼 머리 위로 향한 뒤 검으로 내벽을 후려쳤다. 공간이 미친듯이 뒤흔들리더니 입구와 출구가 막혀 버렸다. 아드리안이 당혹성을 터뜨리며 촉수로 후려쳤지만 그럴 때마다 입구를 더욱 단단하게 봉쇄되었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콰아아아! -방패의 내구도가 10깎였습니다! -산성 독에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미지 50! 소나기에 닿자 방패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리고 작은 방울이라도 튀면 생명력이 쭉쭉 깎여 나갔다. 당연한 결과였다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물의 정체는 바로 강산성의 위액! 아크가 들어온 곳은 다름아닌갈릭의 위장이어싿. 아크가 위장을 자극하자 놀란 괄약근이 입구와 출구를 막아 버리고 위액을 쏟아냈다. '죽기 아니면 까무처지기다. 같이 죽든지, 아니면 네놈 혼자만 죽든지!' 아드리안은 위액의 소나기를 고스란히 뒤집어 썼다. 흐늘거리던 망토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촉수도 가닥가닥 끊어져 나갔다. 아드리안은 미친듯이 발버둥 치다가 생명력이 50퍼센트가량 깍이자 아크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나 한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고약한 냄새의 증기가 피어오르며 아드리안의 생명력을 깎아나갔다. 아크 역시 느긋한 상황은 아니었다. "마법 복원!,마법 복원! 마법 복원!" 아크는 쉬지 않고 방패를 수리하며 회복 포션을 빨아 댔다. 그럼에도 생명력이 쭉 쭉 빨려 나갔다. '이제부터는 인내심의 싸움이다!' 아드리안이 위장을 가로질러 아크의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생명력이 10퍼센트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드리안은 분노에 찬 괴성을 지르며 너덜너덜한손을 치켜들었다. 아크가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마령 소환, 데드릭!" "헉! 주,주인님?" 데드릭이 당혹스러운 비명을 토하며 소환되어싿. "주, 주인님, 제발 용서를 ........." "닥치고 무슨 수를 써도 좋으니 저놈이나 막아. 이번에 잘하면 봐준다!" "네? 정말입니까?" 데드릭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감격한 얼굴로 대답했다.그리고 곧바로박쥐로 변해 와락 아드리안의 얼굴을 덮어 눌렀다. 그러나데드릭은 불과 몇 초만에 위액세례를 받고 다시 강제 송환돼버렸다. "크흐흑, 뜨거워...........주인님.......약속....했어요." 장렬한 최후였다. 어쨌든 데드릭의 희생은 효과가 있었다. 데드릭이 달려드는 바람에 아드리안의 손이 옆으로 흘렀다. 생명력이 닳기는 했지만 직격탄을 피해 버틸수 있었다. 아크는 거북이처럼 방패를 짊어진채 뛰어올랐다. "다크블레이드!" 마검이 다크블레이드를 뿜어냈다. 격렬한 소음과 함께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절호의기회가 생겼다. 위액에 녹아 너덜너덜해진 아드리안이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자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되었다. 아크는 지체 없이 다크 블레이드를 연사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X2가 터졌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드리안의 목줄기가 쩍 갈라지며 시커먼 빛이 터져 나왔다. 레벨 100짜리 보스몬스터를 해치우니 단숨에 레벨이 64가 되었다. 한참동안 시커먼 빛이 줄기줄기 뿜어지더니 아드리안의 몸이 한없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크와 비슷한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그 모습은 여자 인어의 형상을 한 흐릿한 회색빛무리였다. 여자인어가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크리스틴.............. 서서히 위액의 소나기가 멎어갔다.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여자인어를 바라보았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더니 나오라는 아이템은안 나오고 엉뚱한 게 튀어 나와버렸다. 혹시 몰라 아크는 거리를 벌리고 여자 인어를 주시했다. -크리스틴, 크리스틴, 당신이죠? 여자인어는 시력을잃은듯 손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흐느꼈다. -왜죠? 왜 내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거죠? 왜 내손을 잡아 주지않는거죠? 당신은 나를 잊은건가요? 그런건가요? 당신을기다렸어요.눈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울면서 당신만을 기다렸어요. 크리스틴......제발........ 여자인어가 고개를숙이며흐느꼈다. -내게 화가 난거죠? 그렇죠? 내가 당신을 속여서 화가 난거죠? 미안해요,미안해요. 나는.......돌아올줄알았어요. 그렇게 하면 당신이 내게로 돌아올거라고 생각했어요. 역시 용서해 줄수 없는 건가요? 그런건가요? 돌연 가슴에서 손거울이 부르르진동했다. 꺼내들자 빛이 뿜어져 나와 시뻘겋게 충혈된 위벽을 스크린삼아 영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석주에서 봤던 남자가 있었다. 그리고 여자 인어가 있었다. 남자는 세상이 어둠에 잠식되어 가는 것을 괴로워했다. 세상을 덮어가는 어둠의 힘도 노드리스까지는 미치지 않아싿. 지상에서는 전화의 불길이 치솟아도노드리스는 언제나처럼 평화로웠다. 때문에 그는 더욱 괴로워했다.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름다운 노드리스도 어둠에물들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사내는 몸을 일으켰다. 세상을 뒤덮는거대한 악과 맞서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내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심정을 설명했다. 여인은 사내를 이해 했다. 이해할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그의 말이기에. 그러나 납득하지는 않았다. 여인은 마지막 밤을 지새우며 사내의 보물하나를 훔쳐 숨겼다. 그것을 숨겨 놓으면 사내는 결국 포기하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10년이 지나 어둠의 세력이 멸망했지만, 그래도 사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는 그제야 후회했다.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감은 그녀를 바꿔갔다 머리가 빠지고 피부가 고목처럼 갈라졌다. 마르지 않는 눈물은시력까지 앗아갔다. 그리고 결국 그녀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찾아왔다. 이를 예감한 그녀는 영혼의 벗인 백경 갈릭에게 몸을 맡겼다. 설사 자신이 죽더라도 사내의 보물을 지키기 위해........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속죄였다. 자신을 가둬 두고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속죄하고 또 속죄하며 오랜시간을 보냈다. 아크에게 그녀의 감정이 너무나 절실하게 와 닿았다. 손거울은 그녀의 감정까지 전해 주었다. 그러나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그리움, 고독, 고통, 왜모르겠는가? 아크 역시 같은 경험이 있었다. 5년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와 같은 것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꼈다. 하물며 그게 자신의 실수로 빚어진 것이라면............ 상처받은 영혼이 파르르 떨며 흐느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크는 방패를 내리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줄수 있는가? 가슴이 연민의 정으로 벅차올랐다. 연인을 기다리다가 결국 마물이 되어 버린 여자. 그 마물의 탈이 벗겨지니 그저용서를 구하는 가련한 여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 감정에 동화된 아크는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손을 꽉잡았다. "아드리안........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고. 사랑은 그런것이오. 너무나 이기적이기에아름다울수 있는거요. 그것이 사랑이고, 나는 당신과 그런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오. 누구도 당신의 마음을 손가락질할 수 없을 것이고 나 역시 그렇소,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소,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으니까..........." -크리스틴.......... 아드리안의 눈가가 가늘게 떨렸다. 그때였다. 돌연 그녀의 회색몸이 하얀빛에 휩싸이더니 서서히 젊은 몸으로 변해갔다. 손거울과 석주에서 봤던 아름다운 여자인어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황홀한 미소로 아크를 바라보더니 이내 봄바람처럼 다가와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아드리안은 내가 그녀의 연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건가?' 입맞춤을 받으며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알 듯 말듯한 미묘한 미소를 보이며 서서히 사라졌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진심에서 우러난 슬픔으로 타락한 영혼을 구제해 주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만 병자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병자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병은 영혼까지 타락시키는 무서운 병입니다. 육체의 병은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 마음의 병은 오직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만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단 한마디의 위로가 어떤 마법도 할수 없는 기적의 힘을 발휘합니다. 당신의 진심 어린 위로의 한마디로 이제 아드리안은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고, 그녀가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갈 수 있게 됬습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증가했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50 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성공해 칭호가 '영혼읭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됬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아드리안이 사라진 자리에는 돌조각과 목걸이가 떨어졌다. [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신비한 돌의 파편 표면에서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는 신비한 돌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이 50이 돼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기 전까지 소유자에게 모든 스탯에 -50%의 패널티를 부과합니다.] [아드리안의 목걸이(레어) 아이템 타입 : 목걸이 사용제한 : 레벨 70 아드리안이 사용하던 목걸이 ,평범한 진주 목걸이다. 그러나사랑하는 연인의 무사함을기원하는 아드리안의 애정에 반응해 신비로운 힘을 가지게 되었다. 옵션 :방어력 :30증가, 애정:5증가, 특수옵션 : 하루에 한번 방어력을 40%증가시켜 주는 바다의 가호를 사용할 수 있다.] '레, 레어 아이템이다!게다가 장신구!' 레벨이 100이 되어도 반지 하나 끼지 못한 유저가 태반이다. 장신구는 그만큼 귀한 아이템, 더구나 레어라면 경매장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이었다. 숨겨진 던전에서 레벨 100짜리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렸으니 은근히 기대하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다. 돌의 파편이 소유자에게 부여하는 패널티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뱀의 배 속에 넣어두니 아크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 아크가 침을 질질 흘리며 아이템을 집어들자 공간이 웅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맙다. 여행자여. "엇? 누, 누구?" -나는 그대가 들어와 있는 몸의 주인이다. "몸이라면설마 백경 갈릭?" -그게 내 이름이다. "미친게 아니었나?" -미쳤다. 하지만 네가 아드리안을 정화해 정신을 찾았지. 아드리안은 내 오랜 벗이었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내 안에서 수 백년을 보냈지. 몸은 오래전에 생명을 다했지만 정신은 남아서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지. 갈릭은 크게 한숨을 불어 내고는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훔쳐 낸 물건에는 어둠의 기운이 서려있다. 살아있는 존재에게는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영혼에게는 치명적이지. 더구나 그녀는 그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죄책감도 깊었지. 때문에 돌이 뿜어내는 어둠의 힘에 잠식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와 영적으로 교감하는 나 역시 그 어둠에 동화되어 이성을 잃게 된 거다. "돌아오지 않을 사람? 그게 무슨 뜻이지?" -사실 그는 아드리안이 내게 들어오기 전에 죽었다. "뭐? 그럼 왜 그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 주지 않은거야?"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건 싫어도 그녀 역시 알게된다. 하지만 그녀는 인전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고, 영혼이 어둠에 물들 때까지도 그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지. 사랑이란 그런거다. 고래주제에 별소리를 다한다. 어쨌든 얘기를 듣고 보니 아드리안이 더욱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크가 우울한 표정으로고개를 숙이자 백경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어라. 여행자여! 어깨를 활짝펴라! 그대는 한 여인의 수백년에 걸친 고통을 벗겨 주었다. 남자에게 이보다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있겠는가! 쿠쿠쿠쿠! 갑자기 공간이 뒤흔들리더니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위장으로 밀려들어왔다. 미처 샤크맨의 족쇄를 준비하지 못한 아크는 앗 하는 사이에 격류에 휘말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다, 다음 순간, 엄청난 힘에 의해 위로 주욱 밀려 올라갔다. 동시에 눈앞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창공이 펼쳐졌다. "우핫, 우하하핫!" 입에서 헛바람 들이켜는 소리가 터져 나와싿. 아크는 갈릭의 등에서 뿜어 올라오는 물줄기를 타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햇살을 뿌리는 푸른 하늘과 ,저아래 끝없이 펼쳐진 대해 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산맥처럼 바다위로 솟아올라있는 백경의 등이 보였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요" 인어 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백경과함께 다시 노드리스롤 돌아왔다. 그리고 아드리안에 얽힌 진실을 전해주자 인어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일이 엉뚱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으리라. 그러나 모든 진실을 직접봐온 갈릭의 말까지 믿지 않을수는 없었다. "무모하게만 보였던 당신의 용기와 애정은 결국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군요. 그동안 섣부른 판단으로 묘족을 오해하고 원망했던 인어족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거에요." '어라? 묘족?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지금까지 인어들에게 묘족이라는 단어는 단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모든일이 다끝난다음에 갑자기 그 단어가 왜 튀어나오는가?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여왕은 오히려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혹시 모르고 있었나요?" "뭘말인가요?" "크리스틴, 그는 묘족의 영웅이었어요. 마반영웅이라고도 부르죠" "마반영웅?" 아크는 정신이 번쩍들었다. 다크워커는 마반영웅의 초기 직업이다. 때문에 아크는 전직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 마반영웅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수많은정보를 검색해왔다. 뉴월드의 모든 직업에는 관련된 영웅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영웅에 대한 정보를 찾아가면 연관 퀘스트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에 맞는 아이템이나 스킬, 능력치가 주어지는 필수 퀘스트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아무런정보도 찾지 못해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손거울 퀘스트가 마반 영웅과 관련된 퀘스트일줄이야! '맞아 왜그생각을 못했을까?데브라는 마반영웅의 힘을 탐내던 놈이었지. 그렇다면 그 녀석이 떨군 아이템에는 마반영웅의 힘을 얻을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있었어. 그리고 인어도 결국 수인족 중에 하나니까.' 그제야 머리속에서 단서들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다끝난뒤에 뒷북치는 의미밖에 없었지만....... "그는 지금은마반영웅으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그저평범한 묘족 청년에 불과했어요. 때문에 당시 인어 여왕의 사랑을 많은 인어들이 반대했지요. 그 이전부터 묘족과 인어족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그렇겟지.사실 까놓고 말하면 고양이와 생선 사이아냐?' "그리고 결국 그는 노드리스를 떠나버렸고, 당시 여왕님은 그를 그리워하다가 숨을 거뒀죠. 갈릭도 그 영향으로 미쳐버리고, 결국 처음부터크리스틴을 미워하던 인어족은 그 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묘족과 철천지원수처럼 지내왔어요. 모든 수인족은 마반영웅을 구세주처럼 떠받들어도 인어족은 인정하지 않았죠. 그것도 수백년전의 일이지만.........." "이제 오해는 풀린겁니까?" "네, 당신의 노력으로 모든 오해가 풀렸어요. 나는 인어족을 대표해서 묘족에 사신을 보내 지금까지의 잘못을사과할거에요. 그것으로 반목과 시기에 시대가 끝나고, 화합과 평화의 시대가 찾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여왕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당신의 은혜도 잊지 않겠어요. 당신은 인어족의 수호신인 갈릭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보내 주었어요. 누구도, 심지어 인어족의 전사조차 하지 못한 일을 해주었어요. 인어족의 여왕으로 서 당신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를표합니다." 인어여왕이 다가와 아크에게 입맞춤을 했다. 아크가 당혹스러워하자 인어여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건 인어족이 진실 된 친구에게 표하는 감사의 인사랍니다." '아 , 역시 알고 잇었군.' 아크는 아드리안의 마지막 입맞춤을 기억해 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인어족의 가장 훌륭한 친구이자 은인이에요.인어족 여왕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맹세하겟어요. 당신이 인어족을 위해 희생했듯이, 인어족 또한 당신이 필요로 할때 모든 ㅎ미을 다 바쳐 도와줄것을 약속해요" "은인을 위하여!" 인어들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잠식하는 어둠 퀘스트가 완료됬습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자 다시 레벨이 1올라 65가되었다. 그러나 아크는 불안했다. 어째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이 작센의 소년 영주 퀘스트와 비슷하다. 친구니 뭐니 떠들어 대 놓고 보상하나 없이 대충 얼버무리는 바로 그 스토리! 그러나 아크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명색이 여왕이라 그런지 소년 영주와는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건 그대의 노고에 감사하는 뜻으로 준비한 작은 선물이에요" 인어 여왕이 투명한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을 건네주었다. [인어족의 수호 갑옷 (마법) 방어구 타입 : 가죽 갑옷 방어력 : 80 내구력 : 100 무게 : 35 사용 제한 : 레벨 60 인어족에게 인정받은 전사만이 착용할 수 있는 수호 갑옷.해료으이 비늘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가볍고 부드러운 재질이라 활동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또한 갑옷을 착용한사람은 물에 대한 어떤 피해나 패널티도 받지 않는다. 옵션 : 물 속성 저항력 +100% ,수중 행동에 대한 패널티 무효.]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각종 옵션이 물에 대한 거니까 그렇다고 쳐도 방어력이 무려 80이다. 지금 사용하는 블랙베어마우스 가죽 갑옷의 2배! 마법 아이템이라도 방어력만 보면레어급이었다. 가죽 갑옷에도 일전에 안델에게서 벗긴 레벨 40대 판금갑옷보다도 훨씬 높은 방어력이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내구력을 일반 수리로 고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쩝, 그것만 아니면 레어 아이템 가격에 팔 수 있을 텐데' "당신에게 하나 더 부탁할 게 있어요" "인어족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아크는 귀를쫑긋 세우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나 오랫동안 단절된 상태롤 살아와서 인어족 가운데는 바깥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가능하면 당신이 인어족의 사신 자격으로 묘족을 찾아가사과의말을 전해 주셨으면 해요." [인어족의 사절 인어족읭 여왕은 지나 과오를 후회하고 묘족과 화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어족과 묘족, 두 종족에 걸쳐 친밀도가 높은 당신이라면 쉽게 두 종족을 화해시킬수 있을겁니다. 난이도 : G 퀘스트 제한 : 묘족과 인어족의 친밀도가 70%이상.] 퀘스트 제한이 붙어 있었지만난이도는 G.그리 돈이 될것같지는 않은 퀘스트였다. 그러나 아크는 퀘스트라면 언제나 환영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을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바닷물을따라 흘러드는 소문에 의하면그들도 지상에서 모습을 감춘지 오래되었다고 하던데........" "그런 거라면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유적지에서 묘족을 구하고 캣 나이트의 칭호를 얻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제가 나선다면 묘족도 그간의 오해를 용서해 줄겁니다" "설마 당신이 묘족과 그런 관계일줄은.......그렇군요.이제야 당신이 노드리스를 찾아와 아드리안 여왕님을속박에서 풀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겠어요. 그는.......그는 결국돌아오겠다는 아드리안 여왕님과의 약속을 지킨 거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렇다면 아드리안 여왕님이 소중하게 보관하던 돌도 구도자인 당신이 가지고 있는게 좋겠어요. 확인할 도리는 없지만 당신의 설명을 듣곡 유추해 낸 제 짐작이 맞다면 그 돌은 전설로 전해진 느마반영웅의 삼신기 일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삼신기?" "마반영웅의 힘의 근원으로 삼았다는 세 가지 보물을 말하는 거예요. 마반 영웅과 함께 사라져 지금은 행방조차 알길이 없죠. 다만 그중하나는 마반영웅이 마지막에 방문했던 지저 세계에 남겨져 있을거라느 소문만 들었어요." '다음 직업 관련 퀘스트 정보다!' 아크는 얼른 물었다. "지저 세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아무도 몰라요. 그들 역시 우리왕 같은 수인족이지만, 암흑 세기이전부터 지저세계의 주민들은 외부왕 단절된채 살아갔어요. 모든게 베일에 싸인 종족이에요. 수인족가운데 유일하게 그들과 통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마반영웅 이었어요. " 결국아크가 찾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실망스러운 말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실마리는 얻은 셈이다 "자, 이제 밖으로 나가세요. 모두가 영웅의 얼굴ㅇ르 보고 싶어 할테니까" 여왕이 아크를 이끌었다. 왕궁을 나서자 노드리스의 수많은 인어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인어들로 가득한 광경을 지나자 여기저기에 입맞춤 세례가 퍼부어졌다. 여자 인어들의 입맞춤은 그래도 견딜 만했지만, 우락부락한 남자 인어나 수염이 성성한 노인인어들의 입맞춤을 정말이지 견디기어려웠다. 어쨌든 광장을 지나 노드리스의 입구까지 나오자 여왕이 말했다. "갈릭이 돌아왔으니 인어족은 수백년만에 다시 대해를 거슬러 고향으로 돌아갈 거에요. 끝없는 바다 저편이니 당신이라고 해도 당분간은 우리를 만나지 못하겠지만 ,인어족은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예요. 그때를 위해 이걸 받아줘요." 인어여왕이 작은 뿔피리를 건네 주었다. [인어족의 피리(특수) 인어족의 친구를 부르는 피리.바다라면 어디에서도 사용할수 있다.] 아크가 뿔피리를 받아 들고 몇걸음 옮기자 노드리스가 통째로 들썩 거렸다. 이어 지진이 일어나듯 바닥이 갈라지며 도시가 통째로 떠올랐다. 거대한 백경, 갈릭이 노드리스를 통째로 떠받들어 올라오고 있었다. 갈릭은 빌딩 같은 눈동자를 굴려 아크를 바라보고는 대해를 쩌렁쩌렁 울리는 울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해일 같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을 가로질렀다. 화려한 해저 도시 노드리스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어두웠던 과거를 청산하고 수백 년만에 고향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하아,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드는군' 아크는 노드리스가 완전히시야에서 사라질 떄까지 멍하니 바라보았다. 참많은 일이 있던던 곳이었다.그러나 아쉽다고 같이 갈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지상에는 새로운 모험과 더 많은 경험치, 아이템이 아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아크는 인어족의 피리를 불었다. 수중이니 소리가 날리 없었다. 그러나 몇초가 지나자 물살을 가르며 수십 마리의 돌고래 떼가 다가왔다. 돌고래는몸을 낮추고 타라는 듯 등을 내밀었다. 아크가 올라타자 돌고래들은 엄청난 속도로수면위로 솟구쳤다. 돌고래 수십마리가 물보라를일으키며 수면위로 튀어올랐다. 그리고 서핑보드처럼 육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노드리스에 올때는며칠이나거렸지만 돌고래를 타고 이동하니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멀리서 정겨운 육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ACT 7 회색 산마루의전투 "죽을 죄를 지었다는걸 알긴 안다는거냐?" "네,정말 반성많이했어요. 제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갑자기 벼락출세를 하는 바람에 머리가 살짝 맛이 갔었어요,한번만 다시기회를 주시면........." "누구 덕분에 출세한거지?" "당연히 주인님 덕분이죠.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건방을 떨었어요." 데드릭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요녀석 봐라?' 아크는 내심 가소로웠다. 아크는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의 가식 어린동정을 받으며 살아왔다. 덕분에 반갑지 않은 능력이 생겼는데, 상대방의 눈만 봐도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데드릭의 말은 진심이 아니다. NPC주제에 교활하게 사람을 속일줄도 아는것이다. '진화도 무턱대고 시킬게 아니었군' 박쥐도 성격은 나빴지만 교활하지는 않았다.그런데 데드릭으로 진화하며 교활함을 배웠다. 진화할때마다 자아도 강해진다는 의미였다. 비록진심은 아니겠지만 데드릭도 이번에는 이 정도로 굴복한 것같았다. 그러나 다음번에도 이처럼 쉬우리라는 보장은 없다. 해골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충직한 소환수지만 진화하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하지 못한다. '소환수도 지능가진 생명체다' 이번사건으로 아크는 소호나수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소환수도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크는 소환수를 평등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왔다. 한녀석만 편애하지 않고, 한녀석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완급조절,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칭찬해주면 더 잘하는 놈이 있는 반면, 기어오르는 녀석도 있다. 때로는 협바과 폭력을 사용해야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녀석도 있다. 물론 좋은 약도 도가 지나치면 역효과를 내는 법 적절히 조절해야 하겠지. 아크가 데드릭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밟아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충성도가 높은 해골이나 뱀도 언제 인격이 변할지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데드릭을 통해 본보기를 보였다. 말하자면 데드릭은 재수없게 시범 케이스로 걸려 혹독하게 신고식을 치른것. '휴, 소환수 세마리를 거느리는 것도 이렇게 만만치 않구나. 수십명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 이제야 알 것같다.' "좋아, 어쨌든 공을 세웠으니 약속대로 이번에는 용서해주마." "크윽!감사합니다. 주인님" "복창해 맹세하나!" "네?" 데드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크가 째리자 얼른 손을 올렸다. "맹세 하나!"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주인님에게 절대 복종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봉사하고, 싸우라면 싸울것이고, 죽으라면 죽을 것이다. 나의 생사는 오직 주인님에게 달렸다." "맹세 둘!" "주인님이 하사하시는 음식은 감사하게 받아먹는다. 또한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 "맹세 셋!" "앞의 두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는다" 이어지는 소환수 강령에 데드릭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다 기억했지?" "네......." "좋아, 그럼 다시 부를 때까지 유계로 돌아가서 반성문이나 쓰고있어." 데드릭은 똥 씹은 표정으로 유계로 돌아갔다. 그렇게 진화와 함꼐 시작되었던 쿠데타는 허무하게 진압되었다. 더불어 노에계약까지 체결하게 되었다. 아동 보호 단체나 동물 애호단체가 알면 기겁할 일이지만 여긴 게임이다. 그리고 아크는 명실상부한 독재자였다. 돌고래가 내려 준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하나 보였다. 제법 많은 유저가 들락거리는 마을이다. 뱀이야 평소에도 벨트로 위장하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해골이나 박쥐는 유저들 눈에 많이 띄어서 좋을게없었다. 소환수를 돌려보낸 아크는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후후후, 이게 도대체 얼마나 될까?' 마을로 향하는 아크의 얼굴에는 흐뭇한미소가 감돌았다. 노드리스의 상점에서는 바다속에서 구한 아이템은 아예매입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바다에서 구한 아이템이 가방은 물론 뱀 배 속까지 꽉 차있었다. 마법 복원이 중급이 되어 내구도도 100퍼센트로 만들어 놓은 아이템이다. 그러나 희소성이 있다고 해도 잡템. 그리 큰돈이 되지는 않으리라. 아크를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템은 따로 있었다. 노드리스에서 장사로 벌어들인 진주다. 아이템 판매와 식당, 수리로 벌어들인 진주는 무려800개에 달했다. 보석 가운데는 하급에 속하지만 명색이 귀금속이다.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을로 들어선 아크는 곧바로 잡화상점을 찾았다. "어서 오게. 원하는게 뭔가!" 인상 좋은 상점 주인이 아크를 맞이했다. "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은데요. 얼마나 받을수 있겠습니까?" 아크가 산더미 같은 잡템을 풀어놓자 상점 주인의 입이쩍벌어졌다. 각종 해저 몬스터 가죽과 산호초, 해저장비, 잡템이라고는 해도 지상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아이템이다. 상점 주인은 하나하나 가격을 매겨보더니 가격을 제시했다. "모두해서 34골드네 .이근처에서는 어디가도 이 이상의 가격을 받지 못할 거네." 시세는 나쁜편이 아니다. '이정도면 진주를 거래해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하겠군'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주를 내밀었다. "이건 얼마나 주실수 있습니까?" "호오, 꽤나 질 좋은 진주로군, 게다가 800개씩이나........이걸 어디서 구했나?" "자세히 말씀드릴수는없습니다." "하긴 내가 거기까지 알 필요는없지" 상점 주인은 진주를 유심히살펴보고는 주판을 튕겼다. "개당 25실버씩 쳐주겠네. 모두해서 200골드가 되겠군" 아크의 얼굴에 약간 실망의 기색이 번졌다. 예상한 금액은 300골드, 100골드나 부족하다. '차라리 하륜이나 작센까지 돌아가서 팔까?' 친밀도가 높은 하륜이나 작센이라면 예상했던 300골드를 받을수있다. 그러나 작센까지 돌아가는 데만도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 가는길에 만날수있는 몬스터도 고작 레벨 40대, 왕복하면 보름분의 경험치를 포기해야한다는 뜻이다. 100골드와 보름감의 경험치.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인어족 사절 퀘스트를 받았으니 언젠가는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시간이 없어. 여기까지 왔으니 도시 몇개는 둘러봐야해. 아깝기는 하지만 그냥 정리하는 편이 좋겠군' "앗!" 그때였다. 상점안에서 물건을 둘러보던 한 유저가 아크를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약간 화난 목소리로 팔을 잡으끌며 말했다. "저하고 의논도 없이 아이템을 정리하면 어떻게 해요?팔더라도 먼저 분배 문제부터 확실히 정해놓고 팔아야죠. 아저씨, 조금있다가 다시올게요" "그러게나" 뭐라말할새도 없이 끌려나온 아크가 팔을 잡아 뺐다. "누구시죠? 사람을 잘못 보신거 같은데요?" "아, 죄송해요 .갑자기 끼어들어서 놀라셨죠?" 사내는 키가 작고 둥그런 귀를 가진 호비트였다 여기저기에 가방을 주렁주렁 매달고있는걸 보니 상인인 모양이다. 사실 아크가 말없이 끌려나온 이유는 혹시 무슨 이벤트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나와보니 말투나 행동거지가 NPC는 아니었다. "저는 시드라고 해요. 보다시피 호비트 상인이죠" "아크입니다. 그런데 저를 아십니까?" "아니요,처음봐요 하지만 보고있기가 안타까워서 참견했어요" "안타깝다니, 무슨 말입니까?" "이 마을 상점은 주변에서 시세가 낮기로 유명한 곳이에요.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뜻이죠 아까 잡템을 팔아 시세를 알아보시던데 그런 방법으로는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어요. 시세가 낮고 높은 물건이 섞여있으면 평균치 예상과 비슷하니까 대강 괜찮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게다가 이 마을은 해변과 가 까워서 진주 가치가 낮아요.여기서 이틀거리에 있는 도시에 가져다 팔면 개당 40실버는 받을걸요." "개달 40실버!정말입니까" 이틀만 투자하면무려 120골드나 더 받을수 있다는 말이아닌가?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잠깐의 실수로 120골드를 날릴 뻔했다. "물론이죠 ,제가 좀 도와드리면 추가로 48골드 가량 더 벌수있는 방법도 있어요." 시드가 씨익 웃으며 넌지시 말했다. 이쯤되면 놀랍다기보다는 경계심이 생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을텐데요?" "물론이죠.기브앤 테이크 저역시 원하는게 있어요. 자세히 들어보고 싶지 않으세요?" 상인이라는 직업은 참 애매하다. 상인은 가방을 6개나 들고다니는 유일한 직업이다. 또한 각종 생산기술을 배울수 있고, NPC와 거래할때 상당한 보너스를 받는다. 친밀도가 바닥이라도 상술이 높으면 판매와 매입에서 20퍼센트 이상의 이윤을 남길수있다. 덕분에 초반부터 제법 큰돈을 만질수있다. 문제는 전투, 전투에 관련된 스킬이 하나도없고, 심지어 엄청난 패널티까지 받는다. 레벨 50이넘어도 혼자서는 20레벨 몬스터 하나잡기도 벅찰 정도였다. 게다가 몬스터를 잡아 얻을수있는 경험치도 5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상인이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상거래를 통해서다. 마을이나 도시마다 물건의 시세가 다른점을 이용해. 싼곳에서 매입한 물건을 비싼곳에 내다 판다. 이게 상인의 기본성장 방식이다. 물론 무조건 교역을 한다고 경험치가 오르고 돈을 벌 수 있는건 아니다. 시세를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상인에게 정보는 생명줄이다. 항상 정보에 귀 기울이고 시세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면 죽을 고생을 해서 교역을 성공해도 오히려 파산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나름대로 깊이가 있는 직업인것이다. 키우기 어렵지만 성장요소에 따른 색다른 재미가잇었다. 처음에는 가방을 짊어지고 교역을하지만, 나중에는 마차나 상선을 사서 더많은 교역품을 나를수있다. 나아가상단을 꾸려서 왕국간의 무역을 주도하기도한다. 한번에 거래하는 양이 많아질수록, 이동거리가 더 멀수록, 더 위험한 곳을 지나 교역을 할수록 더 높은 경험치와 스킬숙련치를 얻을수 있다. 그러나 뉴월드는 치안이 형편없는 곳이다. 전투 능력이 전무한 상인의 여행은 생명과 재산을 건 모험이다. 도중에 강력한 도적 몬스터라도 만나면 엄청난 손해. 심하면 파산까지 각오해야 한다. 때문에 큰 거래를 위해서는 용병 NPC나 고레벨의 유저를 호위로 고용할필요가 있었다. 시드가 아크에게 제안한 일도 그것이었다. "이 마을에서이틀만 가면 상업도시 기란이 있어요.상인과 생산직 유저에게는 수도같은 곳이죠.그리고 아크님이 가지고 계신 진주는 생산직 유저들이 많이 찾는 재료에요.초중급 생산 아이템에는 진주가 필요한 경우가 많거든요.당연히 기란에는 항상 재고가 부족하니 시세가 최고 상태에요.솔직히 나한테 여유가 있다면 당장 사고 싶은 정도에요" "결국 기란까지 호위해 달라는 말씀인가요?" 아크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자 시드가 얼른 덧붙였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거에요. 제게 귀금속 거래 스킬이 있으니 아크님대신 거래하면 15퍼센트 이상 더 받을 수있어요.기란의 진주 시세가 40실버라고 치면 320골드. 거기에 15퍼센트면 48골드. 아까 상저보다 168골드를 더 벌수있다는 계산이 나오죠.잡템들도 제가판매하면 조금은 더 받아요.저는 경험치를 올려서 좋고, 아크님은 돈을 벌어 좋잖아요." '158골드' 고양이의 눈을 쓰지않았는데도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게임시간으로 이틀,16시간을 투자해 158골드를 더 벌수있다. 유저와 얽히지 않겠다는 철칙을 세웠지만 이만한 이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168골드면 168만원이다. 한푼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에서쉽게 포기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게다가 어차피 주변의 도시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길을 알고 있는 시드와 함께라면 시간을 절약할수잇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찜찜했다. 진주를 전매해 준다는건, 결국 아크가 그에게 진주를 모두 넘겨줘야 한다는게 아닌가? 대체 뭘믿고 진주를 넘겨준단 말인가? 아크의 속내를 짐작한듯 시드가 씨익 웃으며 양피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몇가지를 적어 넘겨주자 새로운 정보창이 떴다. [상인의 계약서 상인의 직업전문스킬로 다른 유저와 전매, 교환 ,대행등의 업무를 계약할 때 작성하는 계약서. 계약서를 교환하면 거래가 성립되어 상인은 상대 유저의 업무를 대행할 권리와 약속한 금액을 반환할 의무가 생깁니다. 만약 상인이 계약을 어기면 상인길드에 신고, 상인읭 신뢰도 스탯과 명성을 대폭 감소시키고 계약금의 2배에 달하는 벌금을 추징할 수 있습니다. 계약이 완료되면 계약서는 자동 파기됩니다. 계약 내용:아크의 진부 전매, 기란에서 진주를 시드에게 넘겨주는 시점에서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한다. 시드는 진주를 판매한 모든 금액을 아크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자 , 이러면 믿을수 있죠?" 계약서는 평범한 거래부터 대출, 어음, 특수거래에 이르기까지거의 모든상황을 설정해 놓을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계약이행에 문제가생기면 모든 책임을 상인이 지겠다는 공증 문서와도 같았다. 상인이 다른 유저들에게 신뢰도가 높은 것은 바로 이런 독특한 게약스킬덕분이었다. '확실히........이런 계약서가 잇다면 행여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겠지' "좋습니다. 동행하죠" "탁월한 선택이에요.진주를 그만큼 구할 정도니 레벨이 60은 넘으시겠죠?" "65입니다." "적당하군요.드디어 3명을 채웠으니 출발해도 되겠어요" "네?동행이 또 있어요?" "여기서 기란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에요.멀리 돌아가면 사나흘은 걸리죠.이틀만에 가려면 회색 산마루를 넘는 방법뿐이에요..화지만 회색 산마루는 트롤이나 스토커같은 고레벨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60레벨 유저 3명은 필요해요." "하지만 나는........." "다른사람들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어요.가죠.소개시켜 드릴게요." 시드는 입을 열시간도 주지않고 여관으로 잡아 끌었다. 여관에는 레오와 하르겐이라는 이름의 두사내가 앉아잇었다 .판금갑옷을 입고 있는걸 보니 둘다 전사 계열 직업인모양이다. 시드가 아크를 소개하자 그들은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시드님, 다른 동행자를 구하겠다는 말은 없었잖아요." "저희 둘로도 회색산맥은 넘을수 있어요" "죄송해요. 상점에서 우연히 만나서 같이 가기로 했어요.그리고 두분만으로 충분하다는건 알아요.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시바삐 기란으로 가야할 이유가 있어요. 둘보다는 셋이 빠르잖아요." "그럼 호위 비용은?" 얼굴에 도끼문신을 한 하르겐이 아크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호위 비용은 처음에 계약했던대로 드릴게요.아크님도 기란에 물건을 판매할 생각으로 가시는 거니까. 내가 대신 거래해 드리는 걸로 호위 비용을 대신하기로 했어요." "무슨 물건을 대신 팔아드리기에 호위 비용을 대신한다는 겁니까?" "진주에요. 한동안 마을에 안들르셨는지 꽤 많이 모으셨더라고요" 시드의 입은 가볍기 그지없었다.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돈 좀 있다 싶으면 엉겨붙는 인간들이 많다. 역시나 아크가 제법 돈이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자. 두 전사가 끈적한눈길로 아크를 훑었다. 생긴것도 그렇지만 하는 짓은 더 마음에 안드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이미 동행하겠다고 해 놓고 마음에 안든다고 일어날수는 ㅇ벗는 노릇이다. '어차피 16시간뒤면 다시 볼일 없는 놈들이니 참자' 그뒤로 전사들과 대화를 끝낸 시드가 주문서를 꺼내들었다 [하급간파 ]주문서였다. "그럽 출발하기 전에 간단한 확인부터 하겠습니다.이해해 주세요." 상인이 유저용병이나 동행자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하는게 바로 정보확인이다. 만약 상대가 카오틱 유저라면 뒤통수를 맞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문서가 하급이라 아크까지 정보를 확인할수는없었다. 때문에 시드가 아크를 위해 설명해주었다. "레오님은64레벨, 하르겐님은 62레벨,두분모두 워리어로 전직하셨네요" 워리어도 공개된 직업이지만힘이150이 돼야 전직할 수있는 특수 직업이다. 초반부터 워리어로 전직할 생각을 하고 키우지 않으면 30레벨에도 전직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유저라는 뜻. 시드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알고있는 유저들이었다. "와, 아크님은 정말 65레벨이시네요. 이정도 파티라면 회색산마루를 넘는데 10시간이면 되겠어요. 그런데 직업이 다크워커네요. 처음들어보는데, 어떤 직업이죠?" "평범한 도적이에요" 아크는 가볍게 대답했다. 다크워커라는 이름의 이미지 때문인지 시드와 워리어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 계열은 인기가 없어 세부적인 직업까지 알고 잇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레벨은 아크님이 제일 높지만 도적이라 선두에 나서는건 좀 힘들겠군요. 선두는 레오와 하르겐님이 맡아 주시고, 아크님은 뒤에서 보조해 주세요. 괜찮으시죠?" "네, 저도 그게편합니다." "그럼 20분만 더 있다가 출발하죠" "바로 출발하는게 아닙니까?" 1분1초가 아까운 아크가 묻자 레오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혹시 여관에서쉬어본적 없어요?" 여관은 싸게는 1실버에서 비싼곳은 1골드나 받는다. 휴식을 취하며 생명력을 회복하는건 길바닥에서도 가능한데 굳이 돈까지 내가며 여관에서 쉴 이유가없지 않은가. 때문에 아크는 아직 여관에는 한번도 들어온적이 없었다. 그러나 시드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설명했다. "상점에서도 그렇고, 아크님은 65레벨이나 됐는데도 게임에 대해 잘모르시네요. 돈을 내면서 여관에 묵는 이유는 버프때문이에요" "버프?" "여관에서 휴식을 취하면 버프를 받을수잇어요. 10분마다 1시간씩, 최대 3시간까지 지속되는 버프죠. 여관에 따라 가격이 다른건 버프 효과가 달라서예요.힘이나 민첩을 약간 올려주는 곳도 이쏙, 어떤 곳은 경험치 상승률을 20퍼센트나 올려주느 버프도 있죠. 여기는 이동속도 30퍼센트 증가와 생명력 10퍼센트 증가에요.30분 동안 기다릴 가치가 있죠" 몰랐다. 설마 여관에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어쩐지, 다들 이상하게 여관에 자주 들락거리더니........' 미리 알았다면 유용했을 정보였다.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런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기본적인 정보라 게시판에 올리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동안 아크는 유저와 대화조차 별로 나눠 본적도 없는 탓에 그런 기본적인 정보도 몰랐다. '이런 별거 아닌 정보가 게임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여행의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16시간 동안 정보나 좀 모아야 겠군' 언제까지나 초보자로 살수는 없다. "덤벼라, 거인의 힘!" 우렁찬 외침에 레오의 몸 근육이 불끈거리며 커졌다. 힘과 체력을 30이나 올려주는 직업전용 스킬의 위력이었다. 힘이 올라간 레오는 방패와 해머를 휘두르며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트롤은 4미터나 되는 대형 몬스터다. 그러나 상대는 워리어!대형 몬스터를전문으로 사냥하는 전사였다. 각종 스킬들이 적용되자 해머에 맞을 때마다 휘청거리며 중심을잃었다. 이어 이마에 최후의 일격을 맞은트롤은맥없이 쓰러졌다. 그사이 하르겐은 양손도끼를휘두르며 스토커를 상대했다. 레오와 하르겐은 과연 워리어답게 무식한힘을 자랑했다. 방패와 판금 갑옷으로 무장한 레오는 어지간한 타격에는 끄덕도 없었고, 하르겐이 휘두르는 양손 도끼에 얻어맞은 스토커는 야구공처럼 펑펑 날아갔다. 힘 위주의 캐릭터라 치명타는 나오지 않았지만, 평타만으로도 둘이서 73레벨 트롤한 마리와 66레벨 스토커 세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웠다. 그러나 아크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참 재미없게 싸우는군.' 두 워리어는 레벨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전투 기술로만 보면허접하기 짝이 없었다. 날아드는 공격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방어력이 높은 판믄 갑옷을 입는 전사들의 특징이다. 공격을 무시하며 무작정 무기만 휘둘러 대는 것이다. 힘의 배분이나 간격, 정확도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마나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스킬을 연발했다. 한무리의 몬스터를 소탕한 하르겐이 도끼를 어깨에 척 올려놓으며 으스댔다. "하하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레오와 저만 있으면 회색 산마루도 문제없어요. 앞으로도 저희가알아서할테니 시드님과 아크님은 그냥 뒤에서 구경만하세요." 물론 그러고있었다. '일부러 나서서 싸우는걸 이해할수없군' 일행은 마을에서 파티를 맺고 길을 나섰다. 덕분에 굳이 싸우지 않아도경험치는 자동으로 분배되어 들어왔다. 물론 전투에 기여를 많이 하면 경험치를 더 얻을수 있지만, 장비의 내구도를 깍아 먹어 가면서까지 목메달 수준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크는 파티 사냥 경험이 전무하다. 전투 타입이 전혀 다른 레오와 하르겐 사이에 끼어 전투를 하자면 애로 사항이 너무 많았다. '어차피 그저 그런 수준의 사냥터니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야겠다' 아크는 거리를 벌리고 도망가는 몬스터의 등짝이나 후려치며 시간을 보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음식요!" 전투가 끝나자 시드가 재빨리 음식을 건네주었다. 시드는 믿음직스러운 용병들에게 굉장히 저자세를 보였다. 하긴, 일단 마을밖으로 나오면 시드의 생명줄은 용병들이 쥐고 있는 셈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리라. 6개나 되는 가방. 초반부터 목돈을 만질수 있는 직업. 아크는 한떄 상인을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드를 보고 그런생각이 사라졌다 돈이야 벌겠지만 다른유저의 도움없이는 제대로 교역도 할수없는 직업인 것이다. 생돈을 물어 가며 호위비를 주고 비위까지 맞춰야하니,외골수인 아크와는 맞지 않는 직업이다. '편한 길도 있다면서 왜 굳이 용병까지 고용해서 이 길로 가려는거지?' 문득 의문이 생긴아크는 무료급식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왜 그렇게 서둘러 가시는 겁니까?" "남부 지방에서 전 재산을 털어 비단을 샀거든요. 그런데 비단은 며칠 사이에도 시세가 변하는 교역품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비단을 산 상인들이 기란에서 물건을 풀어버리면 오히려 손해를 볼수도 있어요. 전 재산을 투자했으니 파산까지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기란에 가려고 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못잤어요." "시세가 괜찮으면 얼마나 버는데요?" "그래도 많이는 못벌어요. 비단은 마진이 크지 않거든요. 시세차익은 한2퍼센트 정도 되려나? 거기에 여비와 호위비를 떼면 남는 것도 없어요." 바위위에 걸터앉은 시드가 다리를 동동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번 교역은 전 재산을 투자했으니 일단 이윤만 남기면 경험치가 많이 올라갈거에요.. 위험부담이 큰 거래일수록 경험치가 많거든요. 그리고 비단은 시세가 워낙 자주 변해 대량으로 거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점유율을 올리기에 좋은 기회죠. 사실ㅇ 돈이나 경험치보다 그게 목적이에요" "점유율?" 전사계열은 경험치와 아이템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상인이 목숨을 거는 대상은 이윤과 점유율이었다 점유율은 한가지 품목을 꾸준히 거래하는 유저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보상이다. 점유율이 일정수순이상 올라간 상인에게는 각종 보너스가 생기낟. 때로는 세금이 면제되기도 하고, 장인NPC로부터 퀘스트를 받거나, 관련 교역품 거래에도 이득이생긴다. 그리고 점유율이 최대치가 되면 영주에게 독점 거래권을 인정받을수 있다. 그 부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앞으로 수요가 많아질 상품의 정보를 입수하고, 독점 거래권을 미리 얻어 놓는다면 레벨을 올리거나 돈을 버는건 그야말로 땅짚고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먼저 점유율을 올리기위한 상인들의 암투는 살벌하다. 어떤 상인들은 다른 상인이 멀리서 교역품을 가지고오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시세를 떨어뜨려 놓는 경우도 있엇다. 유저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뉴월드의 경제, 정치 상황이 변하면 물가는 폭등과 폭락을 반복한다. 때문에 상인은 언제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대륙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정보가 곧 돈이 된다. 상인에게는 상식이었다. 시드가방대한 정보를 가지고있는건 그 영향이었다. "저는 언젠가 슈덴베르크 왕국의 경제를 장악하고 말거에요" 시드가 발을 동동거리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귀엽게 생긴 땅꼬마 호비트가 당차게 말해봤자 별로 비장함은 느껴지지않았지만....... 어쨌든 이번 여행에는 시드의 모든것이 걸려있엇다. 점유율을 높이기위해 전 재산을 탁탁 털고, 상인 길드에서 대출까지 받아서 비단을 구입했단다.만약 도착하기전에 시세가 폭락한다면 그대로 파산, 도시 구석에서 푼돈을 받으며 가죽이나 꿰매는 신세가 되리라. '상인도 만만한 직업이 아니구나' 아크에게는 오히려 전사보다 상인이 몇배나 더 어렵게 느껴졌다. 아크가 시드와 얘기하고 있는 사이. 레오와 하르겐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저들까리 쑥덕거리고 있었다. 회색산마루에 들어선 뒤로 부쩍 그럴때가많아졌다. '뭔가 개운치 못한 기분이 드는데.......'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놈이다. 아크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마을을 나선지 2시간, 일행은 회색 산마루의 입구 부분에도착했다. 다시 한무리의 몬스터를 소탕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떄, 돌연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티에서 강제 퇴장당하셨습니다 선두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레오가 파티의 리더를 맡고있었다.다시말해 레오가 아크를 파티에서추방당했다는 뜻, 아크만이 아니었다. 시드역시 탈퇴 메시지를 받은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저기, 레오님. 저 파티가 풀렸는데요?" "우리는 더이상 안가련다" 레오가 돌연안색을 바꾸며 반말로 지껄였다. "네?무슨말이에요?" 시드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레오는 히죽 웃으며 해머를 휘휘 흔들어 댔다. "더 이상 네놈에게 볼일 없으니 비단 다 내려놓고 꺼지란 말이야 아크, 너도 진주 다 내려놓고 꺼져 말을 잘들으면 지금까지의 정을 생각해서 죽이지는 않으마. 무슨말인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듣겠지?" "서, 설마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당연하지 .이 하르겐이 고작 푼돈이나 받으려고 여기까지 따라왔을거같아?" "아, 안돼요.이건 전 재산을 털어서 산 교역품이란 말이에요. 이걸 잃어버리면 저는 파산이에요. 차라리 죽는게 나아요!"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수없지, 젠장, 비싼건데." 레오가 붉은 주문서를 꺼내 찢었다. "타켓 시드, 목표 지정 비단" 순간주문서에서 한줄기 빛이 뿜어져 나와 시드에게 적중했다. '공격주문서인가?' 아크는 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시드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공격 주문서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시드는 대번에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부들부들 떨며 털썩 주저앉았다 동그란눈에서 눈물이 펑펑쏟아졌다. "제발 봐주세요. 기란에서 비단을 팔면 50퍼센트를 드릴게요" "쉬운 방법을 놔두고 뭐하러 그렇게 귀찮게 돈을 벌겟냐?" 아크는 지금의 상황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카오틱 캐릭터가 되면 엄청난 패널티를 받는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팔기는커녕, 어지간한크기의 마을에는 들어갈수조차 없다. 때로는 현상 수배까지 당한다. 일단 한번 카오틱이 돼버리면며칠간 감옥에 갇히고 벌금을 물기까지는 카오틱을 풀수없었다. 물론 수감일수와 벌금은 카오틱수치와 레벨에 따라정해진다. 60레벨이상이라면 수감일수나 벌금도 적지않을터. 아무리 비단이 탐난다고 해도 카오틱이 되면서까지 얻을 가치는 없었다. 때문에 아크도 둘의 태도를 수상해했지만 최악의 상황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건그뿐이 아니다. 상인이라면가방에 비단외에도 여러가지 잡템이 있을것이다. 시드가 살해당한다고 해도 비단을 떨굴 확률은 희박했다. 그런데 레오나 시드는 마치 죽으면 당연히 비단이 떨어질거라고 확신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대체 뭐가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미안하지만 우리도 먹고살아야하니까 어쩔수없다!" 레오가 다짜고짜 달려들어 양손도끼를 휘둘러 댔다 그때까지도 아크는 어떻게 해야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몬스터라면 70레벨이라도 둘 셋은 상대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상대는 유저, 둘이라면 아크라도 상대하기 벅차다. '역시 도망쳐야하나?'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고있을때였다. "젠장, 이렇게 되면 적자 각오다!" 시드가 서둘러 주문서를 꺼내들고 찢자 빛과 함께 사라졌다. 엄청난 가격의 레어 주문서 [워프]의 효과였다. "이자식, 워프 주문서를 숨겨 놓고 있었구나" 해머로 바닥을 후려친 레오가 이를 갈아붙였다. "흥, 그렇다고 다 된밥을 놓칠것 같으냐? [추적]!" 레오가 지체 없이 또 다른 주문서를 사용하자 눈동자가 시뻘겋게 변했다. 붉은 눈동자로 주변을 훑어보던 레오는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허둥지둥 도망가는 시드를 발견했다. 각종 주문서를 사용하는 괴상한 싸움이었다. 레오가 시드를 뒤쫓으며 소리쳤다. "하르겐, 그놈을 털고있어! 혼자 상대할수있지?" "물론이지" 하르겐이 피식 웃으며 아크를바라보았다. "어차피 네놈도 순순히진주를 토해낼 생각은 없겠지?" 하르겐은 레오가 했던 것처럼 주문서를 꺼내 찢으며 진주를 지목했다. 여전히 주문서의 정체는 알수없었지만, 일단 데미지가 들어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주문서를 사용한 하르겐이 곧바로 양손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뭐야, 이녀석?대체 뭘믿고 까부는거지?' 하르겐은 아크보다 레벨이 3이나 낮다. 그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텐데.혼자서 덤벼들다니? '내가 도적이라고 깔보는건가?' 그렇다면 오히려 환영이다. 아크가 난감해했던건 60레벨 이상의 유저둘이라는것. 상대가 하나라면 설사 레벨이 아크보다 높다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아크는 빠르게회피 동작을 펼치며 검을휘둘렀다. 육중한 울림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하르겐은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듯곧바로 스킬을 반격해왔다. 검으로 타격을 흘렸으나, 상당한 데미지가 들어왔다. '뭐, 뭐야? 이게정말 62레벨의 데미지야?' 몬스터와 싸울 떄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고양이의 눈을 사용한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어라? 이게 어떻게 된일이지?' 고양이의 눈으로 파악된 하르겐의 레벨은 71이었다. 게다가 카오틱! 분명 마을을 나오기 전에 시드는그들의 레벨과 성향을 조사했다. 레벨 62에 성향은 중립. 그런데 불과 4시간만에 전혀 다른 정보로 바뀐것이다. 잠시 머리를 굴려보던 아크는 뒤늦게 상황을 알아챘다. '당했다. 시드도 한패였던 건가?' 정보를 검색한 것은 시드였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드가 그렇다고 하니 아크는 그냥 믿어버린것이다. 그 상황이 너무나자연스러워 의심 많은 아크조차 무턱대고 믿어버린것이다. 결국 시드와 레오는 연극을 했다는 말!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있었군. 빌어먹을 자식들!' 울컥하며 화가 치밀었다. '역시 유저 따위를 믿는게 아니었어!'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레벨만 믿고 혼자 덤빈걸 후회하게 해주마. 다크블레이드!" 란셀의 검이 붉은 반점이 새겨진 옆구리를 스쳤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하르겐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판금 갑옷을 입었음에도 일격에 생명력이 10퍼센트나 빠져 버렸다. "이 자식, 운이 좋았군 . 그래봐야 소용없겠지만" 하르겐은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치명타가 단순히 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르겐의 레벨은 71,반면 아크는 65.무려 6이나 차이가나니 질리가 없다고 믿어 의심치않는모양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다속에서 갈고닦은 정확도와 공격속도! 아크의 검과 발차기가 섬광처럼 허공을 가로 질렀다. 퍼퍼퍼펑! 발차기는 검격과는 다르다. 검은 그저 데미지를 줄뿐이지만, 발차기는 일정 확률로 밀어내기나 스턴의 효과가 발동한다. 더구나 상대는 중장갑의 워리어,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발차기에서 특수 효과가 발동될 때마다 무게를 감당하지못하고 휘청거리며 밀렸다. "뭐, 뭐야? 몸이 왜이러지?" 하르겐은 발차기의 특수 효과에 당혹성을 터뜨렸다. 아크는 빠르게 주변을 돌며 쉴새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중장갑을 걸친 하르겐은 아크의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그리고 방어구의 역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수중 전투에서 다져진 아크읭 검이 정확이 갑옷 관절에 쑤셔 박혔다. 중장갑을 걸친 전사는 크렙과 다름없었다. 갑옷이 얆은 관절은 방어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다크 블레이드는 아예 방어력을 무시한다. 하르겐의 피가 순식간에 10퍼센트밖에 남지 않아싿. "대,대체 이게 어떻게 된일이지?" 당황하는 하르겐의 눈앞에서 아크의 다리가 솟구쳐 올랐다.잠시 허공을 머물렀던 다리는벼락처럼떨어지며 하르겐의 머리를 후려쳤다. 내려찍기! 하르겐은 스턴에 걸려 한쪽 무릎을 꿇어 버렸다. 몸이 붉은 색으로 번쩍였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더블 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X2가 터졌습니다. 기회를 포착한 아크의 검은 결국 하르겐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이, 이럴리가없는데.........." 하르겐은 믿을수없다는 듯 떠듬거리며 강제 종료되었다. -레벨 71의 카오틱 플레이어를 쓰러뜨렸습니다. 명성 +40 하르겐이 쓰고 있던 투구가 데굴데굴굴러 떨어졌다. "데드릭, 박쥐로 변해 시드와 레오를 찾아라!"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해 이를 갈아붙이며 명령했다. 아크를 노렸다면분명 멀지 않은 곳에서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놈들은 작당하고 아크를 속였다. 지옥끝까지라도 쫓아가 응징할 생각이었다. 죽여주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았다. '절대 용서할수없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안내해" 아크는 아껴두었던 인어족의 수호갑옷을 착용하고 데드릭을 앞세웠다. 수호갑옷은 수리상자로 수리가 되지않는다. 유일한 수리방법인 마법복원도 아직 중급이라 가능한 쓰지않으려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숲에 들어가보니 이상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당연히 둘이 모여 시시덕거리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상황은 조금전과 다를바가없었다. 시드는 발바닥에 불이 날정도로 도망다니고 잇었다. 그리고 레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뒤쫓았다. 이미 몇번의 공격을 얻어맞았는지 시드는 생명력이 30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된거지? 같은편이 아니었나?' 그때, 레오의 해머가 시드의 등을 후려쳐싿. 상인의 허접하기 짝이없는 방어력으로 감당할수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시드는 단숨에 빈사상태에 빠지며 털썩 쓰러져싿. "젠장, 나쁜놈!" "후후후. 이런것도 게임의 재미가운데 하나아니겠어?" 레오는 비열한 미소를 머금으며 해머를 들어올렸다. 그때 , 레오의 얼굴을 데드릭이 덮쳤다. "뭐, 뭐야? 이 박쥐는?" 퍼펑! 동시에 레오의 등에서 강렬한 타격음이 터져나왔다.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아크가 단숨에 거리를 좁혀 백스텝 공격을 날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알수없지만 일단 한패는 아니라고 판단한것이다. 번쩍 고개를 돌린 레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네놈이 어떻게.......?" "부활한 뒤에 네놈 친구한테나 물어봐" 아크는 틈을 주지않고 바로 검투술을 발휘해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놈의 레벨은 73.하지만 하르겐 정도의 수준이라면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레오는 하르겐보다는 강했다. 일단 레벨도 높고, 장비도 더 좋았다. 더구나 방패까지 들고있어 갑옷의 빈틈을 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레오역시 아크의 상대는 아니었다. "윽, 뭐야? 이놈의 박쥐는?" 데드릭이 잃어버린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라붙었다. 레오가 해머를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얼굴을할퀴고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역시 아크의 혹독한 수련을 받은 데드릭의 전투센스는 발군이다. 지금상황에서 어떤공격이아크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하고 있는것이다.데드릭이 공격의 맥을 끊어놓는 바람에 레오의 해머는 정확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허접스러운 공격은 나오기가 무섭게 카운터 어택의 먹이가 되엇다. 해머가 휘둘리면 열린 방패사이로 카운터 어택이 쑤시고 들어갔다. 카운터 어택이 성공하면 50퍼센트 공격력 증가!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고 있어도 150퍼센트 공격력으로 후려치니 버틸 재간이 없다. 또한 갑옷도 무한대로 쓸수있는게 아니다. 레오의 갑옷은 금세 너덜너덜해지고 생명력도 정신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빌어먹을 !너죽었어!" 거의 빈사 상태까지 몰린 레오가 포션을 꺼내들었다. '상급 회복 포션!' 포션에도 여러종류가 있다. 생명력을 100회복하는 하급포션에서부터 300까지 회복하는 중급 포션, 상급 포션은 500까지 회복햇다. 게다가 포션을 마시는데 특별한 제한이 없으니 돈만 많다면 얼마든지 체력을 회복할수있다. 아크는 이런 시스템에 의문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고급 포션을 물처럼 퍼마시면 죽을일이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아크는 곧 이시스템에 한가지 맹점이 있음을 알아챘다. 바로 포션을 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가방을 열고 포션을 마시는 동안에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다. 당연히 치명타를 맞을 확률도 올라간다. 결국 500짜리 포션을 마셔도 그사이에 500이상의 타격을 입으면 아무런 소용이없다. 패널티는 그뿐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포션을 마시는 행동을 방해할수도있다. 상대가 포션을 마실때 작정하고 손을 공격하면 포션을 떨어뜨릴수도 있는것이다. 아크는 안델이 포션을 마시러 했을 때, 박쥐가 입을 틀어막는장면을 보고 그것을 알아냈다. 때문에 아크는 몬스터와 싸울때도 포션은 거의 마시지 않았다. 하물며 몬스터보다 영리한 유저를 상대할때는 말할것도 없다. '멍청한놈, 레벨만 높은 바보였군' "암흑 돌진!" 오히려 상황 대처 능력은 레오보다 데드릭이 한수 위였다.데드릭의 입에서 검은 기류가 뿜어져 나와 레오의 시야를 가렸다. 이어 당황하는 사이 강렬하게 돌진해 박치기를 날렸다. "으악!아이고, 대가리야" 빠각, 하는 소리와 함꼐 데드릭은 머리에 주먹만한 혹은 달고 비틀거렸다. 막 포션을 들이켜려던 레오역시 제법충격을 받았는지 휘청하며 흔들렸다. 아크가 지체없이 명령했다. "뱀, 아이템이다!먹어치워!" 허리에 감겨잇던 뱀이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를 쭉 내밀었다. 마치 개구리가 파리를 낚아채듯 ,ㅎ르겐의 포션을 혀로 휘감은 뱀이 꿀꺽 삼켜 버렸다. 이른바 소환수 콤보 공격! 레오는 입맛을 다시는 뱀을 보고는 경악성ㅇ르 터트렸다. "헉!이, 이게 뭐야?" "뭐긴뭐야?넌엿된거야. 다크블레이드!" "아, 안돼!" 레오가 황급히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아크의 검은 방패에 닿기전에 훅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레오의 코앞에서 나타나 치명타를 터트렸다. 방어력 무시, 거기에 마검의 주인으로 승격한 데드릭을 소환한 상태라 추가 공격력이 더해졌다. 격렬한 소음이 울리며 레오는 뒤로 튕기듯 날아갔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레오는 나무둥치에 처박혀 강제 종료되었다. 40의 명성 보너스와 함꼐 해머와 주문서 두장이 툭 떨어졌다. "아, 아크님........!" 흠칫거리며 지켜보던 시드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긴 레벨이 8이나 낮은 아크가 레오를 해치웟으니 놀라는게 당연했다. "더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털리고 파산할뻔했는데" 정신을 수습한 시드가 벌떡 일어나 레오의 시체위에서 방방 뛰었다. 24시간 동안 시체가 사라지지않는건 이런 용도로 쓰라는 제작자의 배려다. "이 망할놈!죽일놈!" 씩씩거리며 분풀이를 한시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저 때문에 아크님까지 위험해지시고 정말면목이 없어요" 그사이 슬그머니 아이템을 챙긴 아크가 고개를 돌렸다. 시드를 향한 눈빛이 차갑기 그지없엇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겁니까?" "뭐가 말인가요?" "시드님은 여관에서 저놈들 레벨이 저보다 낮다고 하셨잖아요. 카오틱이라는 말도 없었고, 그래서저는 시드님도 놈들과 한패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에요!저도 속은 거에요!" "속다니?주문서를썼지 않습니까?" "하긴 아크님은 잘 모를 수도 있겠네요" 시드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바닥에 떨어졌던 주문서를 기억해냈다. "일단 레오가 떨군 아이템을 확인해보세요.그편이 빠르겠어요" ACT 8 상인의 전장, 기란 [냉혹한 파괴의 해머(마법) 무기타입 : 한손 해머 공격력 : 15~20 내구력 : 31/50 무게 : 60 사용 제한 : 힘 `180이상 전사 계열 강철로 제련한 끝이 날카로운 해머,육중한 무게로다루기 힘들지만 위력은 발군 .어지간한 갑옷은 단숨에 폐품으로 만들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옵션 : 방어구 파괴 +10%,언데드에게 150% 추가 공격력] [단절의 영혼(마법) 방어구 타입 : 철제 투구 방어력 : 40 내구력 : 11/45 무게 : 45 사용제한 : 힘 200이상 얇은 강철을 겹치고 그 사이에 특수 제작된 마법 저항 금속판을 끼워 넣은 투구.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며 정신 계열 마법으로부터 정신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옵션: 정신 계열 마법 저항력 +30%,패널티 : 민첩 -10,전사계열이 사용시 패널티 무효.] [마법주문서 '거짓말' 사용 제한 : 지능 60이상 오래전 악명을 떨치던 도적 마법사가 만든 주문서, 주문서를 사용하면 상대방이 확인할수 있는 정보창을 임의대로 바꿀수있다. NPC에게도 성향과 레벨, 스탯, 직업을 속일수있다. 단, 레벨은 10안팎으로밖에 조정할수없음. 지속시간1시간. 1회용 소모 아이템] [마법주문서 '강탈' 사용제한 : 지능 60이상 오래전악명을 떨치던 대해적의 능력이 담긴 주문서. 주문서를 사용하면 해당 유저의 가방에 든 아이템을 하나 지정할수있다. 주문서의 효과가 유지되는 동안 상대를 쓰러뜨리면 100%확률로 지정된 아이템을 떨군다. 중복된 아이템은 하나의 아이템으로 적용된다. 단, 착용 아이템은 지정할수없다. 시전자가 죽으면 효과도 함께 사라짐/ 지속시간 1시간, 1회용 소모 아이템.] 레오와 하르겐이 떨군 아이템은 상당히 쓸 만했다. 그러나 아크의 시선을 끈건 오히려 주문서 쪽이었다. '이런 주문서가 있었나?' 작정하고 카오틱을 선택한 유저에게는 최상의 아이템이 아닌가!아크는 그제야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카오틱인 레오와 하르겐이 마을에 들어올 수잇었던 이유. 그리고 정보 확인까지 한 시드가 그들의 정체를 몰랏던 이유. 바로 주문서 '거짓말'의 위력이었다. 그리고 시드가 공포에 질렸던 것은 주문서 '강탈'때문.레오가 주문서를 사용했으니 만약 시드가 당했다면 비단을 몽땅 떨궜으리라. 전재산을 투자해 산 비단을 몽땅 털리면 시드는 그야말로 개털. 파산하는 수밖에없다. '나 역시 하르겐에게 당했다면 진주를 몽땅 털렸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뒤늦게 식은땀이 흘렀다. "이제 아셨죠?" "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어쨌든 아크님덕분에 파산하지 않았는걸요" "그런데 레오와 하르겐이 떨군 아이템은.........." 정신없는 틈을 타 아크가 재빨리 아이템의 소유권을 주장하려했다. 이런건 나중에 딴소리 나오기 전에 확실히 못박아두는편이좋다. 시드는 생각할것도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아크님이 가져야지요.그리고 기란에 도착하면 이은혜는 꼭 갚을게요. 이윤이 적으니 많이는 못드리지만 15골드 정도라면 드릴수있어요" "뭘 그렇게까지.........뭐,주신다면 받겠지만" 아크는 현우와 달리사양을모른다. "네, 꼭 보답할게요. 저 때문에 아크님까지 큰일을 당하실뻔했는데, 나쁜자식들, 대체언제쯤에야 이런놈들이 없어질지" 시드는 새삼 분통이 터지는듯 이를 갈아붙였다. "어쨌든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죠" "그나저나..........." 시드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가 안전한 길로 가려면 며칠이나 더 걸릴 텐데. 그게 걱정이네요. 비단 시세가 많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냥 가던 길로 가죠. 어차피 기란에 가야하니 제가 호위해드릴게요" "네?하지만 아크님 혼자서는....." "걱정마세요" 아크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셋이 있을때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정도 난이도라면 기라낚지 호위해드릴수잇어요" 물론 회색 산마루는 난이도가 높다. 시드가 처음 말한것처럼 안전하게 이동하려면 최소한 50대 후반에서 60레벨 유저 3명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레오나 하르겐처럼 무식하게 돌진할때의 얘기다. 아크가 그런 꼴통짓을 할리가없다. 데드릭으로 한마리씩 유인하고 해골과함꼐 집중공격해서 한마리씩 사냥하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지금까지 아크는 더 난이도 높은 몬스터도 홀로 사냥해오지 않았던가. 물론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굳이 시드를 챙겨줄 이유는없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넘어져도 결코 빈손으로 일어나지 않는것이다 "아, 그런데........" 아크는 걸음을 멈추고 슬쩍 운을 땠다. "제가 레오와 하르겐의 역활을 대신하면......." "만약 기란까지 갈수있다면 그놈들에게 주기로 했던 호위비는 아크님 드릴게요. 둘이 합쳐서 25골드를 주기로 했었어요" 눈치 빠른 시드가 얼른 대답했다. "물론 아까주신다는 보상은 별도겠죠?" "네?아.네.........." 시드의 눈동자에 그게 아닌데, 라는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크가 당연히 받아야할것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자 어쩔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려야죠" "그럼 서로의 믿음을 위해서 계약서를작성하죠" 배운것은 곧바로 활용하는 아크의 용의주도함이 빛을 발했다. 결국 시드는 울며겨자먹기로 계약서를 작성할수밖에없었다. 그러나 아직 아크의 요구는 끝난게 아니었다. "아, 그리고상인은 가방 공간이 널널하죠? 저는 잡템을 넣어둘 공간이없어서 그런데......." 다시말해 앞으로 사냥에서 얻는 아이템은 모두 자기가 갖겠다는뜻!한번 걸렸다싶으면 골수까지 빨아먹는아크의 집요함이 발동했다. 시드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제, 제가 보고나해드릴게요. 어느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그래주시면 고맙죠, 자, 그럼 출발할까요?" 아크는 활기차겍 돌아서 산마루를 넘었다. 시드는 그제야 아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인지 새삼 깨달았다. 일단 가방 공간이 확보되자 아크읭 태도는 180도로 바뀌었다. 몬스터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몰살시키고 아이템을 챙겼다. 그뿐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풀이며 열매를 몽땅 챙겨 넣었다. 한시라도 빨리 기란에 가야하는 시드는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아크는 본척도 하지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욕이라도 퍼부어 주고싶다. 그러나 어찌 됐든 아크는 생명의 은인. 게다가 이미 회색 산마루의 안이다. 아크와 떨어지면 기란은 커녕 몬스터들에게 사냥당할 처지이니 속만 끓일 수밖에 없었다. "자, 이것도 좀 보관해주세요" '흑흑흑, 내가 안달하는게 보이지도 않냐 ?나는 그냥 가방이냐?가방 취급하는거냐?그런거냐?빌어먹을, 상인을 선택한게 이렇게 후회스러워 보기는 처음이다' 레오에게 쫓길때조차 이렇게 까지 서럽지는 않아싿 그러나 시드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크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귀여운 외모가 그랬고, 싹싹한성격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기란에 도착하면 40골드나 되는 보상과 호위비를줄사람이니 예쁘게 보이지 않을리가없었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점도 도움이 되었다. '뉴 월드에 그런 주문서가 존재할줄이야. 앞으로는 레벨만보고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되겠군' 만약'거짓말'이 15레벨이상을 숨길수있다면 아무리 아크라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없었다 '강탈'도 무서운 주문서였다. 직접적으로 전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아마도 상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게 이 두가지 주문서이리라. 그럼에도 아크는 그런 주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역시 빈약한 사이트 게시판으로는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어' 이번 경험으로 아크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유저와의 교류다. 그러나 아크는 유저를 믿지 않는다. 레오와하르겐의 경우만 봐도 유저가 얼마나 믿을수없는 존재인지 알수있지않은가. 때문에 시드와 기란으로 향하며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지식은 생사의 문제였다. "유저에게 악용될수있는 붉은 주문서는 보통마을에서는 팔지않아요" "그럼 어디서 구하죠?" "카오틱 유저들만 출입할수있는마을이 있어요. 슈덴베르크 왕국에도 무법도시 카이로트라는 카오틱 마을이 있죠. 상인하고는 인연이 없는 곳이라 위치는 저도 잘 몰라요. 어쨌든 그곳에는 별의별 주문서와 아이템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짓말'과 '강탈'은 그중 유명한거에요. 작정하고 PK하려는 카오틱유저는 대부분 이걸 사용해요" "그 외에 다른 주문서는 뭐가있죠?" "아까 레오가 저에게 사용한 '추적'도 조심하는게 좋아요 .상대의 이름만 알고있다면 1킬로미터반경내에서 위치를 찾아낼수있는 주문서거든요.그리고 '회복불가'도 있어요. 이주문서에 당하면포션이나 회복 마법의 효과가 적용되지않죠' 그외에도 많았다. 상대의 가방속에 있는 아이템을 훔쳐볼수 있는'엿보기' 이건 노상강도짓을 하는 놈들이'강탈'과 톰보롤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물론 그에 대항하는 주문서도 있었다. 대표적인게 '진실읭 검'.상대가 '거짓말'을 사용하고 있으면 강력한 데미지와 함께 효과를 없애 버리는 주문서였다. 그러나 '진실의 검'은 가격이 비싸고 파는 곳도 한정되어 있어서 용병을 고용할때마다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다. "그외에도 많지만 제가 아는건 그정도에요" "그정도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지금까지 주문서는 관심도 없었는데, 그냥 모르고 넘어갈게아니구나' 아크는 새삼 정보의 소중함을 꺠달았다. 사실 주문서는 따로 관련 직업이 존재할만큼 전문화되어 있는 분야였다. 주문서 종류만 수백가지가 되고, 레어급주문서는중에는 일격으로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수있는것도 존재했다. 또한 간접적으로 작용하는 효과도 만만치 않아서, 직접 쓰지는 않아도 당하지 않으려면 모두 알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카이로트라.........' 카오틱만 들어갈수 있다는 마을. 과연 자유도가 무한한 게임이라, 카오틱은 카오틱대로 살아갈 방법이 있는 모양이다. 게다가 카이로트에서만 판다는 알려지지않은 효과를 가진 수많은 주문서. 이런 주문서를 자유롭게 활용할수잇다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것이 분명했다. '언젠간 한번 찾아가봐야겠군' 그뒤로도 아크는 슈덴베르크 왕국의 여러지역이나 특산물, 사냥터 정보를 물었다. 그때마다 시드는 막힘없이 척척 대답해주었다. 상인에게 그런 정보는 곧 돈이다. 혼자만의 루트를 개척하는 상인들은 그런 정보를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아니, 그외의 직업도 마찬가지였다. 정보 사이트의 게시판이 빈약한건 그런 정보의 독적욕때문이었다. 아크 역시 숨겨진 던전의 정보를 공유하지않으니 그들을 탓할수는없었다.그러나 시드는 아크에게 엄청난 빚을 져버렸으니 정보 공유를 거부할수없었다. 돈으로도 살수없는 귀한 정보였다. "아, 혹시 지저세계라는 곳에 대해 아세요?": "지저 세계요? 글쎄요?"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시드가 머리를 긁적였다 "가본적은 없지만 드워프마을중에는 땅속에 있는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아니, 수인족 마을인데요" "수인족 마을이라면 저도 아는게없는데요. 아직 수인족을 직접 본적도 없고, 수인족을 선택한 유저는 시니어스 공국에서 시작하거든요" "유저의 마을을 찾는건 아니에요" "그래요? 혹시 나중에라도 정보가 들어오면 편지로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빨리 가주시면 안될까요?" 물론 아크는 시드의 마지막말을 못들은 척했다. 그래도 전진하고 있으니 목적지는 점차 가까워졌다. 그리고20시간가량 지났을 무렵, 드디어회색 산마루가 끝나고 언덕아래로 상업도시 기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란은 아크가 봐 온 어떤 도시보다도 크고 웅장했다. 두꺼운 성벽으로둘러쳐진 기란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경계로 교역, 생산, 마법 등 몇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잇었는데, 지역하나가 작센성보다 컸다. 기란에 도착하자 시드는 얼른 교역소로 달려들어 갔다. "아, 다행히 아직 비단 시세가 폭락하지 않았네요" 한참 뒤에 나온 시드는 한결 밝아진 얼굴이었다. "비단과 아크님의 잡템, 진주를 처분한 덕분에 레벨이 5나 올랐어요. 귀금속 거래와 직물거래스킬숙련치도 각각 40이나올랐고, 비단 점유율도 2퍼센트 올렸어요. 이만하면 이번 교역은 대성공이네요" "축하합니다" 돈안드는 립서비스는 얼마든지 해주는 아크 시드의 손에 들린 두둑한 돈자루를 확인한 아크의 기분도 좋아졌다. "그럼 이제 분배를 해야죠?" "아, 네, 물론이죠" 시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아크의 가방과 시드에게 맡겨놓았던 잡템만50골드가 되었다. 더하기 진주 800개를 15퍼센트 높은 가격에 팔아 418골드! 시드가 죽어라 왕국을 횡단해 가져온 교역품의 가격보다 많은 금액이었다. 게다가 아크의 수입은 대부분 투자조차 없으니 마진율이 90퍼센트에 달했다. 돈자루의 반이상을 건네받았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눈으로 시드의 돈자루를 노려보았다. 약속한 호위비와 보수를 달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여기잇습니다. 레오와 계약할때 약속한 25골드와 특별수당15골드" 시드는 울것같은 표정으로 돈을 내밀었다. 아크는 얼른받아 챙기고 빙긋 웃었다. "감사합니다.그럼 다음에 또 뵈요" "네, 뭐 한동안 기란에 있을거니까, 혹시 볼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아크는 일단 그렇게 시드와 헤어졌다. 그러나 아직 기란에서 할일이남았다. 그렇게 많은 아이템을 정리하고도 아직 뱀의 배속에는 아이템이 서너개 남아있었다. 미확인 상태라 상점에 팔수없었던 아이템들이었다. '후후후,한동안 기란에 있을거라고 했지?그럼 이아이템을 모두 확인해서 시드에게 팔라고 해야겠다. 어차피 시드도 아이템을 팔면 경험치를 먹을수있잖아. 이게윈윈이라는거지. 상인하나 알아두니까 여러모로 꽤 편하구나' 제대로 봉 잡았다. 좋든 싫든 일단 알게 됏으니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방 안에서 650골드에 달하는 금화가 짤랑거린다. 덕분에 물품감정소로 향하는 아크의 발걸음은 날아갈듯 가벼웠다. "얼마라고요?" "18만 4천 7백원이요" 계산대 점원이 상냥한 목소리로 무서운 말을 내뱉었다.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4킬로짜리 쌀 한포대, 야채 약간 ,치약, 칫솔을 사는데 무려 18만원이 넘는 계산이나왔다. 잠깐 사이에 또다시 물가가 오른 모양이다.반면 근로자임금은 1년째 동결 상태. 서민 경제가 황폐해져 가는과정을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실태였다. 오르기는 전기세, 수도세, 가스요금도 마찬가지였다. 공공사업체가 민영화 된지도 어언 10년. 그동안 서비스질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요금이열다섯번이나 올라싿. 덕분에 단칸방에서 밤에 전구하나켜는데도 벌벌 떠는 현우에게 매달 무려 15만원이 넘는 요금이 청구되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누워 있기만 했는데도 한달에 300만원이나 되는병원비를 내야하는 것도 역시 의료보험 민영화의 여파였다. 현우는 먹고살기 바빠서 국채사업이니 뭐니 하는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책이 하나씩 나올때마다 벌 뗴처럼 들고 일어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여파에 직접적으로 데미지를 입은 뒤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빌어먹을 ,어른들이 모이기만 하면 정치 얘기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니까 ' 그러나 돈이 아깝다고 밥 안먹고, 물 안쓰고 살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바이벌 요리를 쓸 수 있는 아크가 부럽다' 물론 현우가 서바이벌 요리를 쓸 수 있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건 없엇으리라. 풀이라고는 구경하기도 힘든 도시에서 식재료를 구할 수 잇을리가 없다. 결국 현우는 목숨처럼 아끼던 신사임당과 세종대왕, 육곡이이와 이순신장군의 초상화를 점원에게 건네주어야했다.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현우의 머릿속은 온통 돈계산으로 복잡햇다. '이번달부터는 어머니 재활치료까지 시작해서 한달에 450만원은 들어 갈텐데.......; 거기에 공과금이 한달에 대략 45만원 집세왕 식비가 50만원, 대출금의 원금상환과 이자가 100만원. 한달에 최소한 650만원이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전에 아이템을 팔아 번돈 700만원과 글로벌 엑서스에서 두달간 받은 300만원. 그걸로 최소한 앞으로 두달은버틸수잇으리라 생각했지만, 이제 한달 보름도 버티기 힘들었다. 제대로 한건 올리지 못하면 위험하다.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 병원비만큼은 아까워하면 안돼' 생활이 어려워진 뒤로 현우가 가장 크게 꺠달은게 있다면 세상살이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점이었다. 현우가 17년간 누리며 살아온 모든것들은 당연한게 아니엇다. 아버지가 피땀흘려벌고, 어머니가 아끼고 아껴 온결과엿다. 물가가 미친듯이 날뛰는 세상에서현우를 부족함 없이 키워주신것이다. 감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당장 주머니가 간당거린다. 병원비를 선불로 내야하니 당장 목돈이 들어간다. 대출업체의 독촉 날짜도 코앞까지 닥쳐왔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현우는 고개를 털어버렸다 '걱정할필요없어. 아직 200만원이 넘게 남았잖아 그리고 도저히 방법이없으면........' 현우에게는 아직 최후의 수단이 남아잇었다. 가방안에 고이모셔둔 650골드! 언제든지 현찰 650만원으로 교환할수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그러나 세상을살기위해 돈이 필요하듯이, 게임내에서도 골드는 필요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골드는 손대고 싶지 않아싿. '아직 시간 여유는 있어. 대강 내 장비를 맞췄으니 앞으로 쓸만한 아이템을 구하면 바로 경매에 올려놓자. 레벨도 올랐으니 앞으로 돈이 되는 아이템을 구할 기회도 많아질거야' 현우는 대강 집청소를 끝내고 경매사이트에 접속했다 -경매가 완료됐습니다.사신의 낫 : 60만원 -경매가 완료됐습니다.예리하게 번쩍이는 검 : 35만원 -경매가 완료됐습니다.냉혹한 파괴의 해머 : 80만원 -경매가 완료됐습니다.단절의 영혼 : 70만원 '일단아쉬운대로 245만원은 확보됐군' 레오와 하르겐의 장비는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팔렸다. 빼앗은 아이템으로 제법 돈을 짭짤하게 벌어보니 유저들이 엄청난 패널티를 감수하면서까지 PK의 길로 빠져드는 이유를 알것도 같았다. '하지만 PK로 벌수있는돈은 어차피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적을 만들다보면 나중에는 게임을아예못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잇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야.나는 내 방식대로 돈을 벌어야돼' 현우는 유니트에 들어가 뉴 월드에 접속했다. "얼마라고요?" 아크는 현우가 했던 말을 그대로반복했다. "하급 프로텍트 해제는 5골드, 중급은 10골드, 상급은 15골드입니다. 최상급 프로텍트가걸려있는 아이템은 이곳에서 감정이 불가능하니, 브리스타니아 왕국의 마법도시하슈으이 감정소를 이용해주십시오" 시드와 헤어진 아크는 곧바로 물품 감정소를 찾아왔다. 해저에서 얻은 아이템 가운데 몇개의 미확인 아이템이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미확인 상태로는 상점에 팔수도 없었기에 일단 감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가격을 들어보니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뭐, 뭐가 그렇게 비싼 겁니까?" "저희는 마법 학회에서 고시한 요금만 받습니다. 트집 잡으시려거든 돌아가십시오" 돌토른이라는 이름의 감정소 NPC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왓다. 감정스킬을 많은 물건을 심도있게 관찰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스킬이라 마법사나생산직외에는 거의 익히기 힘들었다. 그러나 기란은 상업도시, 많은상인과 생산직 유저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감정 스킬을 가진 사람도 잇으리라. 아마도 그들을 찾아 부탁하면 감정소보다 1~2골드 싸게 감정할수있을것이다. 그러나 선뜻 내키지가안는다. 유저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있지만, 만약 좋은 아이템이 나왔을 떄 보안유지가 안되기 때문이다. 정말 운이 좋아서 레어아이템이 나온다 고해도 정보가 카오틱유저들에게 새 나갈지도 모른다. 자칫 무슨 짓을 당하게 될지 알수없었다. '오히려 때려잡고 현상금이나 아이템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항상 운좋게 이길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더구나 기란은 나름 고레벨유저들이 모이는 장소였다. 레오와 하르겐 정도의 유저둘셋이 덤빈다면 감당할수없다. 이제 '강탈 '따위의 주문서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으니 더욱 조심할 필요가잇었다. '1~2골드 아끼려고 위험한줄알면서도 유저에게 감정을 부탁할수도없어' 그런점에서 NPC가 운영하는 감정소는 믿을만했다. '할수없지' "이거 먼저 확인해주십시오" 아크는 눈물을 머금으며 요금을 지불하고 하급 미확인 아이템을 하나 부탁했다. 미확인 아이템 가운데 유일한 무기로, 무슨 이빨처럼 생겼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돌토른이 신중하게 아이템을 살펴보자 금세감정이 완료되엇다 [샤크맨 송곳니 단검 무기타입 : 단검 공격력 : 4~6 내구력 : 10 무게 : 5 사용 제한 :없음 샤크맨의 날카로운 송곳니로 만들어진 단검, 인어족이진주를 채취할때 사용한다. 바닷물에도 녹이 쓸지 않지만 쉽게 부서지고 수리가 불가능하다. 가치 : 15~20실버] 가치까지 표시되는건 물품감정소의 부가 서비스였다. 그 친절한 서비스 덕분에 아크는 단숨에 쇼크상태로 빠져들었다. "20실버?뭐,뭐야? 그럼 감정비도 못 건지잖아요?" "할수없죠. 감정해서 결과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무책임한.......!" "저는 부탁받은대롤 감정만했을뿐입니다. 결과는 제 책임이 아니지 않습니까?" 돌토른이 싸가지없이 대답했다. 결국 한번의 감정으로 4골드 80실버를 길바닥에 버린 꼴이되었다. 이게 미확인아이템의 최대 단점이었다. 감정 결과 좋은 아이템으로 판명 되면상당한 이득을 챙길수있지만, 이런 잡템이 나와 버리면 감정비만 날리게 된다. '미치겠군. 이걸 어쩌나?' 아이템을 주울 떄만 해도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감정을 하려니 기대보다 불안이앞섰다 남은 아이템은 하급 프로텍트가 걸려있는 게 2개, 중급이 하나다. 무려20골드`!만약 그게 다 잡템이라면 20골드가 그냥 허공에 뜬다. 그렇다고 그냥 버릴수도없는 노릇이다 미확인 아이템은 마법아이템만큼이나 드롭확률이 낮았다. 그만큼 좋은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도 많다는 뜻. 버리기에는 아깝고,감정하자니 겁난다. '이거 완전히 계륵이군' 650골드나 가지고잇으면서 20골드에 한숨을 푹푹 내쉬는 아크였다. 아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자 돌토른이짜증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민은 나가서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아니. 그게........" "경매장요? 하지만미호가인 물품은 경매장에 못 올리잖아요" 아크의 대답에 돌토른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째렸다. "바빠죽겠는데 미치겠군. 이보쇼 손님!기란에는 경매장이 하나만 있는게 아닙니다. 평범한 경매장외에도 성격에 따라여러가지가 존재하죠. 그중하나가 블라인드 경매장이라는 곳입니다. 말그대로 아이템이 뭔지도모르는 상태에서 경매를 하는 겁니다. 즉, 미확인 아이템을 놓고 경매하는 곳이란 말입니다." "미확인 아이템을?" "손님처럼 감정비가 아까우신 분들이나, 감정비조차 없는 사람들이 미확인아이템을 처분하는곳이죠.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어떤 물품인지 알수없으니 이득을 볼지 손해를 볼지는 오직 운에 달려있습니다. 나로서는 한심하다는 생각밖에안들지만, 그래도 좋다면 한번 찾아가 보시지요. 다음손님!" 돌토른은 짜증을내며 아크를 내몰았다. 아크는 가방을 열고 미확인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조개껍데기 같은 형태의 아이템들이었다. 감정을 해도 몇푼 건지지 못할것같은 예감이 팍팍 꽂히는 아이템. '그렇다고 그냥 버릴수도없으니, 일단 블라인드 경매장이라는 곳에 가보자. 팔리기만 하면 몇실버라도 건질수있을테니까' 블라인드 경매장은 기란의한쪽 구석, 카지노 지역에 위치해있었다. 호화로운건물안으로 들어가자 경매관리인 NPC가 다가와싿. "혹시 미확인 아이템을 등록시키려는겁니까?" "네, 이거 3개를 등록시키려고합니다" "경매시작가격과 경매기간을 등록해주십시오" "10실버, 8시간" "감사합니다. 8시간 뒤에 사무소로 찾아오십시오. 기다리시는동안 경매장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행운이 따른다면 진귀한 아이템을 터무니없이 싸게 살수도 있을겁니다"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아크는 NPC의 안내를 받으며 경매장안으로 들어섰다. 넓은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아이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템을 둘러보고 사고싶은 물건아래엥 달려있는 메모지에 가격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경매가 진행되엇다 아크는 흥미로운 눈길로 아이템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무기, 방패, 방어구, 심지어 식재료와 도자기 따위의 경매품도 진열되어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유저들이 관심을 보이는 아이템은 역시 무기나 방어구였다. 좋은 무기나 방어구는 다른 아이템과 비교할수없을만큼 가격이 높다. 또한 평범한 것이라도 비교적 좋은 값에 팔수 잇어서, 경매 실패시 손실을 최소화 시킬수있다는 이점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아이템은 경매가도 높았다. 아니 , 너무 높았다. '뭔지도 모르는 검의 경매가가 30골드? 거기에 감정비용까지 합치면 35골드잖아. 이게 그냥 철검이면 35골드를 그냥 날리는데도 용케살생각을했군'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때, 누군가가 다가가 31골드로 가격을 올려놓았다. 안경을 쓴 마법사 복장의 사내엿다. 메모지에 적어놓은 이름은 비더스 .가격을 넣어놓은 비더스는 멍하니 바라보는 아크를 힐끔거리더니. 다시 가격을 35골드로 올려놓고 씨익 웃어보였다. 아크를 경쟁자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크는 도저히 그의 행동을 이해할수가없었다. 뭐가나올지도 모르는 아이템에 35골드라니? 모 아니면 도, 그야말로 도박이 아닌가? 그러나 그정도 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 돌아다녀 보니경매품들은 모두가 눈 튀어나올만한 가격이었다. 심지어 100골드가 넘어가는 아이템도 수두룩했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잉 돈을 퍼붓는다는건,그만한 메리트가 있다는 뜻이겠지?' 유저들이 모두 바보일리가없다. 수십 수백골드씩 퍼부으면서까지 경매에 참가하는 건, 틀림없이그 이상의 이득을 얻을수있다는뜻 아크의 예민한 코끝으로 돈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구경삼아 돌아보고있었지만 돈이 된다면 그냥 지나칠수없다. '일단 사람들이 뭐 때문에 이렇게 미친건지 알아봐야겠다' 아크는 경매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불과 며칠전, 블라인든 경매장에서 판매된 물건중에 에픽아이템이 나타났다는 정보였다. 에픽은 능력치가 아무리 낮아도 가볍게 천만원을 호가하는, 문자그대로 초대박아이템이다. 때문에 유저들의 관심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엇다. 어떤 유저는 고작 50실버로 레어 갑옷을 얻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또 다른 유저는 5골드에 레어스킬북을 얻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거 엄청난 곳이잖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그렇게 쉽게 그런 행운이 손에 들어올리는 없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적은 투자로 수십 수백배의 이득을 올릴수있다. 더구나 아크는 당장 돈이 필요한 상황이엇다. 그러나 사냥만으로 불과 열흘사이에 레어아이템을 구할수있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이곳에서 레어아이템을 구할수 있다면? '이건 기회다, 잘하면 이번달에 매워야할돈을 마련할수잇을지도몰라' 문제는 자칫 큰손해를볼수도 있다는것. '그렇다고 무턱대고 경매품을 살수는없어. 먼저 요령을 배워야해. 세상에 요령이 통하지 않는 일은없다. 심지어 도박조차 운보다는 요령이 60퍼센트가 넘게 작용한다지 않는가' 아크는 그 뒤로 몇시간동안 경매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도박이든 뭐든, 일단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전문가를 쫓아가는 방법이다. 그 방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면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기 마련. 일단 전문가를 찾아내는게 급선무였다. 그렇게 3시간에 걸쳧 아크가 찾아낸 사람은 조금전에 만났던안경 쓴 마법사, 비더스였다. 다른사람들은 잘해야 1~2개를 지목하고 돌아갔지만, 그는 한번에 수십개의 경매품에 가격을 써놓고 다녀싿. '저사람은 뜨내기가 아니다. 경매품을 사고판느걸아예직업으로 삼는사람이야' 아크는 비더스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비더스가 일하는 방식은 합리적이다. 무작정 경매가를 올리지않고, 쓸만한 경매품을 발견하면 수첩에 예상가격과 경매가 시작된 시간, 경매기간을 적었다. 그리고 경매 마감 시간이 닥쳤을 때에서야 최종 가격을 확인하고 무난한 수준에서 경매가를 올려적었다. 그러면 몇분뒤에 대부분의 경매품을 비더스가낙찰받앗다. '경매 마감 직전에 가격을 확인해서 자기가 예상한 가격보다 낮으면 사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는 건가? 저게 최소한의 투자로 사는 요령이군' 아크는 비더스의 방법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비더스가 가격을 적어놓은 뒤에 1분가량 있다가 재빨리1쿠퍼 높은 가격을 적어놓았다. 비더스가 자격을 적고 경매가 마감되기까지 몇분의 틈새를 이용한것이다. 아크는 그 방법으로 6개의 경매품을 낙찰받았다. '자 , 어디 결과를 확인해볼까?' 아크는 곧바로 감정소로 달려갔다. 결과는 4개는 이득, 2개는 손해. 경매비용과 감정비용을 제하고도 최종적으로 4골드의 이윤이 남았다. 아크는 내심 기쁨의 비명을 터트렸다. '이런거였군!' 아직 경매에 확신이 서지않아 가장 싼 물건만 낙찰받았는데도 4골드가 남았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확실하게 이윤이 남았다는게 중요했다. 앞으로 더 비싼 경매품을 낙찰받으면 이윤도 올라가리라. 게다가 운만 따라준다면 대박 아이템도 기대해볼수있다. 가장 빠르게 돈을 벌수 있는방법이었다. '됏어, 이걸로 한몫잡아보는거야!' 아크는 그뒤로도 같은 방법으로 두번이나 더 낙찰받았다. 이번에는 모두 이윤이 남아 20골드나 되는 돈을 벌수있었다 그저 경매장을 기웃거리며 가격을 써놓는것만으로 돈이 들어온다. 불과 20여분사이에 24골드를 거머쥐게 되자 아크는 몸서리가 쳐질정도로 경매가 재밌어졌다. '돈벌기가 이렇게 쉬운줄이야!' 자신이 붙자 아크는 대담해져싿. '좋아,그럼이번에는 더 크게 투자해볼까?' 투자 금액이 많아질수록 이득도 많아질것이 당연하다. 아크는 비더스를 쫓아다니며 제법 굵직한 경매품을 찍었다. 그리고 비더스가지나간 뒤에 재빨리 경매가를 올렸다. 무려 50골드 이상이나 나가는 경매품을 6개나 골랐다. 300골드의 거금을 쏟아부은것! 행운이 따라주었는지 아크가 6개를 모두 낙찰받았다. '후후후, 지금까지의 확률로 보면 이중 4개는 제대로 된 진품. 대강 투자금의20퍼센트 이윤을 올렸으니 60골드는 남는다. 시간이 없어. 빨리 처분하고 다시 하자' 아크는 경매품을 받아 들고 허겁지겁감정소를 찾았다. "어서오십시오, 아, 이번에는 이것들입니까?" 단골이 되자 물품감정소의 돌토른도 태도가 싹싹 해졌다. "그럼 바로 감정해드리겠습니다" 싸아아악! 기대어린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던 아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망가진 갑옷 방어구 타입 : 판금 갑옷 방어력 :1 내구력 : 2/2 무게 : 80 사용 제한 : 힘 150이상 수많은 전투를 거친 탓에 너덜너덜해진 판금갑옷.이상태로는 더이상수리해서도 쓸수 없다. 녹아서 재활용하는 수밖에없을것같다. 가치 : 10실버] 무려 60골드나 주고산경매품이 재활용 쓰레기란다. 너무나 어이가없어 피식피식 웃음이 새 나와싿. "이번에 가져오신 물건을 영 아니군요. 뭐,이것도 운이니까요" "그, 그럴리가없어! 다른거, 다른걸 감정해봐!" "일거리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돌토른이 하나하나 감정을 할때마다 아크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변해갔다. 나머지 아이템들도 재활용 쓰레기와 같은 수준이었다. 가장 비싼게 고작 2골드. 투자와 손실을 따져보니 무려 400골드가 허공에 떠버렷다. 동시에 잔뜩 들떠 있던 기분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악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내, 내가 무슨짓을 한거지?' 아찔한 현기증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400골드.........불과 몇십분 사이에 어머니 한달 병원비를 날려버렸다. 아크의 머릿속에 도박에 미쳐 집까지 날려먹고 노숙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을 볼때마다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왜 그 지경까지 몰렸는지 이해할수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욕할자격이없었다. 아크도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초반에 조금 이득이 생기자 마치 혼자만의 마법이라도 터득한것처럼 기고만장한것이다. 왜 그처럼 얄팍한 수작을 절대적인 비법이라고 믿어 의심치않았던 걸까? 아마도 그 것이사람의 눈을 멀게 만드는 돈, 골드의 매력이리라. 아크가 비틀거리며 감정소를 나왔을 때였다. 감정소 앞에 앉아있던 비더스가 일어나 다가와싿. "이제 좀정신이 드나?" 그를 지나치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게무슨...........?" "내가 블라인드 경매장에서 지낸게 현실시간으로 두달이네. 두달 동안 자네같은 수법으로 내게 접근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을것같나?" "뭐? 그, 그럼 혹시?" "맞네, 꽤나 치졸한 방법을 쓰기에 손좀 봐줄 생각으로 장난좀 친거지.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그걸 모두 사갈줄은 몰랐지만. 대강 잡아도 300~400골드 정도 손해봤겠군.기분이 어떤가? 꽤나 속이 쓰리겠지?" "이, 이런!" 아크가 와락주먹을 움켜쥐었다. '장난이라고? 장난이라고말했냐? 빌어먹을 ,네놈에게는 장난이었는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머 니 한달 병원비였단 말이다! 그걸 날리게 만들어 놓고 장난이라고? 그렇게 지껄엿냐?' 그러나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목까지 치밀어 올라온 말을 삼켰다. 먼저 그를 이용한건 아크였다. 그리고 그는 물건을 사라고 강요한 적도 없었다. 멋대로 이용하다가 속아 넘어간건 아크다. 분하지만 그를 욕할 권리는 없었다. 아크는 비더스를 노려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몸을 돌렸다 "내게 당한녀석들은 모두 미친것처럼 발광하며 욕을 퍼붓던데. 자네는 좀 다르군. 하는짓은 치사하지만 기본됨됨이는 됏어" 비더스는 안경을 쓸어 올렸다. "하지만 멍청하고 게으르다는 점에선 다른녀석들하고 같다. 대체사람들은 왜 하나만알고 둘은 모르는지 알수가없단말이야." "뭐요?" "나를 이용하는건그것대로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 내가 물건을 고르면 대게 70퍼센트 확률로이득을볼수있으니까. 그런데 왜 자네나 다른녀석들은 내가 어떻게 70퍼센트확률로 좋은물건을 골라낼수있는지는 전혀궁금해하지않는거지?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게 문제야. 뭐든 쉽게 돈을 벌궁리만한다니까" ".............!" 아크는 그제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달아삳. 비더스를 따라다니며 아크는 나름대로 자신이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더스의 말을 듣고 보니 멍청하기 이를데없었지 않은가? 분명 아크는 쉽게 돈 벌 생각만 앞섰을 뿐, 어떻게 그가 그렇게 물건을 잘 골라낼 수 있는지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고기를 얻어갈 생각에 눈이 멀어 정작 낚시하는 법을 알려고도 하지않은것이다. 아크가 놀란눈으로 고개를 돌리자 비더스가 빙긋 웃으며 말해싿. "뭐, 사정이야 어쨌든 자네에게 큰 피해를 입힌건 사실이니충고하나 해주지. 이 게임은 가상현실이네. 여기에 존재하는 대부분읭 것들에는 현실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지. 무슨 말인지 알겠나? 현실에서 돈이 되는 물건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듯이, 게임에서 돈이 되는 물건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네." "돈이 되는 이유........."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현실에서도 경매 관련일을하고있다네. 돌려말하면 경험도 없는 젊은 친구가 함부로 끼어들만한 일이 아니라는거야. 이번일을 교훈삼아서 일확천금의 꿈 따위는 버리게 .세상에 쉽게 돈 벌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어" 비더스는 그말을 끝으로 다시 경매장으로 향했다. 아크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현실에서도 경매일을 하고있다고?' 드디어 머릿속을 가득채우고 있던 안개가 걷혀나가는 기분이다. 비더스의 말대로 이곳은 가상현실. 다시말해 현실의 복제품이다. 아크는 지금까지 경매품을 그저 미확인 아이템이라고만 생각했다. 착각이엇다. 처음부터 모든걸 착가했다. 애초에 현실에서도, 뉴월드에서도 미확인 아이템따위는 존재하지않는다. 감정서가 붙어있지않을뿐, 아이템의 형태는 눈으로 확인할수있지않은가. 정보창이 아닌자신의 눈으로 직접 가치를 판단해야 했던 것이다. 그게 블라인드 경매장의 공략법! '맙소사, 어째서 나는 무조건 운에만 맡기려고 했던거지?' 블라인드 경매장이 카지노 지역에 있다는 점에 속았다. 때문에 무의식중에 도 아니면 모, 도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경매장은 도박장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곳이다. 아이템을 신중하게 감정해서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 그 능력을 겨루는 시합장이다 '결국 노력해서 극복할수있다는 뜻이다. 방법이있다면 이대로 포기할수없어.' 오기가 불끈 솟았다. ACT 9영웅 집결령 "일부러 충고 까지 해줬는데도 또온건가? 생각보다 어리석은 친구로군" 비더스는질리지도않고 또 경매장을 기웃거리는 아크를 발견하고 혀를 찼다. "뭐,신경쓸필요는없겟지. 한번 된통당했으니 내 뒤를 쫓아오지는 않을거야. 쫓아오면 다시 쓴맛을 보여주면 그만이고." 비더스의 짐작대로 아크는그를 쫓아오지않았다. 아니, 아예며칠동안 경매에 참가지도않았다. 그저 장내를 돌아다니며 잡아먹을듯한 눈으로 경매품을 노려볼뿐이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뒤에야 아크는 경매에 참가했다. 몇십실버의 싼 물건을 사서 확인해보자 80퍼센트 확률의 실패였다. 잠깐 사이에 20골드 가까운 손해를 입었지만 아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가있다' 아크는 그 뒤로도 꾸준히 싼 경매품을 사들였다. 변화가 시작된건 이틀뒤였다. 성공확률이 20퍼센트가 30퍼센트로 올라갔다 그리고 일단 올라가긱시작하니 40퍼센트까지 올라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이제야 슬슬 감이 오는군.생각보다 단순한 거엿어 50골드가량을 더 날려먹은뒤에야 아크는 자신의느낌에확신이 들었다. 아크는 5년간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았다. 기본적인 신문과 우유배달부터, 판매직이나 영업일까지 해보앗다. 그중 특이했던 일로 기억에 남는건,권화랑의 소개로 일하게됏던 골동품 판매점. 아크는 그곳에서 세계각국의 물건들을 접해 보았다. 골동품만큼 가격을 정하기 어려운 물건도 드물었다. 때로는 엄청나게 비싸보이는게 알고보면 똥값인경우도 다만사였고,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잇었다. 때문에 감정하는 사람의 판단하나에 수천만원의 손실과 이득이 교차되었다. 본격적으로 배운적은 없지만, 그런곳에서 일하다보니 아크도 눈동냥, 귀동냥으로 골동품의 가치를 어느정도는 알아볼수있게 되었다. 골동품의 광택, 모양, 용도, 실용성, 희소성,가격을 정하는기준은많았지만 모든건 하나로 귀결된다. 만든사람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 뛰어난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물건은일견 허술해보여도 뭔가가다르다. 느낌이랄까 뭐랄까 꼭집어 말할수는없어도 분명 느껴지는게 달랐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햇다. '아, 저건 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조약해' 그렇게 생각하는 골동품은 대부분 모조품인 경우가 많았다. '어? 저건보기보다 괜찮은데?' 이런경우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골동품으로 판명나기도 했다. '이곳은 가상현실, 물건의 디테일도 현실과 똑같다' 아크는 그걸확인하기 위해 며칠동안 경매품을 살피며 돌아다녓다. 새삼 놀랄일은 아니지만 뉴 월드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되었다. 굳이 감정해서 정보를 확인하지 않아도 가치를 알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느 정도 확신이 서자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정을 통해 실제 느낌과 어떤 차이점이 잇는지를 확인하며 조금씩 오류를 수정해나갔다. 굉장한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자 더 이상 손해가 나지 않게 되엇다. 그뿐이 아니다. 수많은경매품을 확인하다보면 가끔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를 받을때도 잇었다. [낡은 금화(고대유물) 수백년 전에 쓰였던 낡은 금화입니다. 금화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수있습니다. 금함유랑은 현재보다 떨어지지만 수집가들사이에엇 인기가 높아 비싼 값을 받을수있습니다. 가치 : 10골드 ] [고대 유물 낡은 금화의 정보를 습득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식 +1,지능이 1,명성이 5상승했습니다.] 미확인 아이템 중에는 고대 유물에해당하는 아이템도 섞여있었다. 그런 아이템을 감정해서 손에 넣으면 고대 유물의 지식에 보너스를 받았다. '그러고보니 갈릭 배속에 있던 신비한 돌의 파편의 정보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고대유물의 지식이 50이었지. 어떻게 올리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런 방법이있었군." 현재 스탯은 36. 비록 1밖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아직 경매품은 많다. 꾸준히 확인하다보면 50을 채우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게다가 고대유물의 지식이 오를때 같이 오르는 지능도 소환수를 부리는 아크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탯이였다. '경매를 계속할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좋아, 더욱더의욕이 샘솟고 있어.' 한번 마음먹으면 아크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했다. 아크는 서너시간의 수면외에는 거의 경매장에서 살다시피했다. 슬슬 어떤 아이템에 얼마까지 배팅해야 할는지 감이 잡혔다. 동시에 성공률이 점점 올라가며 조금씩이지만 돈도 쌓여갔다. 자본금에 여유가 생기자 아크는 시드를 경매장으로 끌어들였다. "시드님, 지금부터 제가 몇가지 아이템을 찍어줄테니 경매 마감 시간에 맞춰 가격을 써넣으세요. 물론 내가 얘기한 최대금액을 넘기면포기하고 다른 경매품을 노리세요." "네? 하지만 저는 이제 막 교역을 떠나려던 ......."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회색 산마루를 함꼐 넘어온 사이아닙니까?" 아크는 시드의 어깨를 잡고 회색 산마루를 강조했다. '이건 도움을 받은게 아니라, 덜미를 잡힌거야' 결국 시드까지 경매장을 헤매는 좀비 무리에 합류했다. 아크에게 제대로 걸려버린 시드는 한숨을 푹푹 불어 냈지만 그에게도 이득은 있었다. 아크가 경매장에서 사들인 물건은 모아뒀다가 시드를 통해 매각되었다. 덕분에 아크는 거래에 이득이 생기고, 시드는 경험치가 꾸준히 올라갔다. 물론 아무리 믿을수잇는 시드라도 계약서 교환은 필수! 시드 덕분에 시간 여유가 생긴 아크는 곧바로 다른 일도 시작했다. 사람이 뜸할때 싸게 사들인 경매품을 다시 경매에 내놓는 수법이었다. '이건 잘해야 13골드야. 중급 프로텍트이니 감정에 10골드를 쓰면 3골드밖에 안남잖아' 이런 물건은 경매 시작가를 3골드로 정해 다시 경매에 내놓았다. 물론 그냥 내놓고 팔리기를 기다릴정도로 아크는 어수룩하지않았다. 자신이 내놓은 경매품에 직접 참가할수는없다. 그러나 NPC는 참가할수있었다. 아크는 그 점을 이용해 데드릭을 소환해 경매에 참가시켰다. 어차피 데드릭이 낙찰받아도 아크가 돈을 지불해야하지만, 물건을 출품한 본인은 아니니 규칙에 저촉되지는 않는다. 또한 출품할때 지불해야하는 약간의 수수료외에는 특별히 손해날것도없었다. 경매장의 맹점을 공략한것이다. 아크는 자신의 경매품을 던필과 시드에게 가격경쟁을 시켰다. 당연히 가격을 팍팍올라가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꽤나 좋은 경매품같을거다. 그렇게 몇시간정도하다보면 눈먼 고기가 1~2명씩 걸려들었다. 그러면한참열을 올리던 둘은얼은 발을 뺐다. 낙찰받은 물건을 들곡 감정소를 찾아간 유저가 어떤 표정이 되었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아, 아크님. 이건 사기잖아요" "천만에요. 모른느게 죄, 그게 경매의 세계입니다" "그런건가요?" "네, 그런겁니다" 아크는 한올의 가책도 받지 않는 표정으로 단정했다. 틀린말은 아니다. 아크 역시 비더스에게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렇게 아크는 열흘을 보냈다. 경매품을 감정하고 판매할때를 제외하고는 경매장에 붙어살았다. 정신없이 돈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해 얼마를 벌고 얼마를 잃엇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확실한건, 돈이 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니, 벌수밖에없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초반에 날려먹은 400골드를 벌충하고도 꽤 남았을거야' 아크가 또다시 경매장으로 향하며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안목 ( 특수, 패시브, 초급):당신은 오랜 시간수많은 아이템을 진지하게 감정해 왔습니다. 이로써 당신은 물품을 선별하는 뛰어난 안목이 생겼습니다. 마나소모 : 20 *미확인 아이템의 하급 프로텍트를 해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번 이상 시세정보를 확인한 아이템은 즉시 가치를 판단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이, 이게뭐야?'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감정 스킬은 지혜가 300이 넘는 생산직이나, 지능이 500이 넘는 마법사만 배울수 있는 스킬이다. 예외가 있다면 레어 스킬북을 이용하는 방법뿐, 그런데 다크 워커인 아크가 한푼도 안들이고 동등한 효과의 스킬을 배우게 된것이다. 게다가 감정소에서나 가능한 , 곧바로 가치까지 파악할수있는 능력까지 덤으로 얻었다. 골동품가게에서 갈고닦았던 눈썰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맞아, 이게임은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하나의 일에 매달리면 관련된 스킬이 생기는 시스템이었지. 하지만 설마 생산직이나 마법사 계열도 아닌데 감정할수 잇는 스킬까지 배울수 있을 줄이야." 경매장에서 열흘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새로운 스킬은 아크의 수입을 더욱 늘려 주엇다. 하급이라고 해도 열번이면 50골드가 지출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닷새, 병원비 해결을 위해 300골드를 팔고도 가방안에는 어느새 900골드의 돈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경매장에서 돈을 버는 것도 결국 한계가 있었다. "이제 더이상 쓸만한 아이템은 안보이는군" 아크는 아쉬운 눈길로 경매장을 둘러보았다. 경매장생활을 시작한지 보름. 아크는 이제 거의 70퍼센트 이상의 성공 확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쓸만한건 나오기가 무섭게 사들이는 통에 경매장에는 딱 보기에도 허접한 물건들만 남아잇었다. 어차피 유저들이 올려놓는 물건만 취급하는 경매장, 경매품이 무한대로 출품될 리가 없었다. '여기도 슬슬 떠날 때가 된건가?' 그러나 아크는 고민했다. 쓸만한 경매품이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딱하나걸리는게 있었다. 지금 아크의 눈앞에 있는 경매품이었다. 손잡이도 없어 거무튀튀한 검날만 남아있는 아이템. 설핏보기에는 쓰레기 아이템같았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검날에서 풍겨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제는 그 느낌이 수입과 직결될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뜯어봐도 큰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이상하게 뭔가 있어보인단 말이야.' 아마도 평소같으면 그냥 사버리고 말았을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대체 다닐이라는 놈이 누구야?' 아이템의 경매 시작가는 고작 10골드였다. 그럼에도 몇 시간동안 아무도 다음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허접스러워 보이는 아이템이라는 뜻 .때문에 아크는 쉽게 낙찰 받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10골드1쿠퍼를 적었다. 그런데 잠시 눈을 뗸 사이에 다닐이라는 유저가 15골드로 올려놓았다. 덕분에 슬슬 오기가 발동한 아크도 계속 가격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가격이 무려 40골드까지 치솟아 올라버렸다. '뭐지 이건? 다닐이란 놈은 대체 뭘 보고 이 아이템에 집착하는거지? 지금까지 경매장에서 봤던 이름은 아닌데......' 생각지도 못했던 고가에 고민하던 아크는 시험삼아 40골드 1쿠퍼를 적어 놓았다. 그러자 다닐도 오기가 치밀었는지 무려 100골드를 적어놓았다. 정신나갔다고밖에는 생각할수 없었다. '미친놈이 아니면, 분명 뭔가 있어. 낚시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하잖아.' 아크가 경매장에서 가격에 거품을 끼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한 뒤로 비슷한 방법을 쓰는 유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낚시도상황에 맞춰가며 쓰는거다. 한번에 100골드까지 올려 버리면 어떤 미친놈이 낚이겠는가. 아크가 고민하는게 바로 그 때문이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낚시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여서. 오히려 낚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다닐은 경매장에서 보지 못했던 이름. 경매 초보가 아무런 확신도없이 무턱대고 지를만한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100골드라니.............너무 터무니없잖아' 딱 보기에도 화려한 검이나 갑옷도 50골드 이상 올라가는 일이 흔치 않다. '어쩌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눈 딱 감고 배팅해봐?' 이미 본전을 찾고도 250골드를 벌어들였다. 병원비를 위해 판골드까지 합하면 550골드!그러나 여전히 아크에게 100골드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거의 보름간 죽어라 경매장을 뛰어다니며 벌어들인 돈을 투자해야 하니 선뜻 결심이서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이곳에서 돈 주고도 배울수 없는 안목 스킬을 배운것만도 엄청난 이득이야. 경매장에서 얻을 건 다 얻었어. 이제 경매장 폐인 생활을 정리하는 기념으로 내 안목을 믿어보자!실패하든 성공하든, 이걸로 경매장하고는 이별이다!' 아크가 크게 마음먹고 메모지에 손을 뻗을 때였다. 동시에 또 다른 손이 다가오다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설마 이런 아이템에 100골드 이상을 배팅하려는 유저가 또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크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니 처음 보는 상인 유저였다. 그는 아크를 바라보며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혹시 아크 님이신가요?" "그럼 그쪽은 다닐?"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왜 이 아이템을 낙찰받으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꼭 이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양보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녀석, 초보로군' 순간 아크의 눈빛이 반짝였다. 새삼스럽지만 경매장은 전장이다. 검과 방패대신 눈치와 타이밍으로 승부하는 전장! 그런곳에서 이처럼 쉽게 속내를 드러내다니............... 어쨌든 다닐의 반응을 본 아크는 그가 제시한 금액이 단순한 낚시가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 어떻게든 경매품을 낙찰받아야하는 사정이 있는게 분명했다. 다시말해 그가 제시하는 금액만큼의 이득은 보장된 경매품이라는 뜻! '경매장에서 이런 경매품을 놓치면 바보지.' 아크는 아무말도없이 경매가를 110골드로 올려버렸다. 그러자 다닐이 발끈하더니 120골드로 적었다. 그러나 아크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몇 번이나 가격을 올려버리자. 이내 다닐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리고 결국 200골드를 넘어가자 다닐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건 너무한게 아니지. 경매장은 원래 이런 곳이라네. 원하는게 있다면 양보를 구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상대의 기를 꺽어야하는 곳이지. 애초에 양보해 달라고 말한것부터가 자네실수였다는걸 모르겠나? 더이상배팅할 돈이 없으면 비켜주게." 그때였다. 아크가 하고싶은말을 대신하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아닌 경매장의 터줏대감, 비더스였다. 비더스는 한심한 눈으로 다닐을 쏘아 보았다. 다닐은 울컥한 표정을 지었지만 할말이 없다는 듯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비더스의 시선이 아크에게 향했다. "자네도 이걸 찍은건가?" "다른물건은 쓸만한게없어서요." "흠 요즘 꽤나 물건을 사들이는것 같더군. 대충 계산해봐도 몇백 골드는 남겼겠어." "비더스님을 따라다닌건 아니에요" "그정도는 나도 알아. 내가 일찌감치 포기한 경매품도 자네가 사가는걸 봤으니까" 비더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훑어보았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군,대체 며칠 사이에 어떻게 제대로 물건을 볼 수 있게 된거지? 내가 힌트를줬다지만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텐데 ?심지어 제시해놓은 가겨을 보니 경매품의 상한가를 정하는 눈은 나보다 더 정확한것 같더군. 실버도 아니고 쿠퍼수준까지 파악하다니. 내가 모르는 다른 비법이라도 잇는건가?" 1쿠퍼라도 아끼려는 집념의 결과다. "저도 몰랐는데 제눈이 좀 고급이더군요" 아크가 씨익웃으며 대답하자 비더스는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급 눈이 이 경매품을 찍었다는건가 ? 그럼 나도 양보해 줄수 없겠군. 자네가 설쳐 대는 통에 내 수입도 예전같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벌충해야겠네." "가격 경쟁을 해보자는 겁니까?" "그렇지" 비더스는 호전적으로 나오는 아크가 재미있다는 듯 빙긋 웃었다. "하지만 이미 자네 덕에한 친구는 떨어져 나갔으니 지나치게 열을 올릴필요는 없지 않겠나? 자네나 나같은 전문가가 무식한 것드처럼 무턱대고 가격을 올려서야 말도 안되지. 서로 피 보는 짓은 좋지 않아. 그러니 내가 제안을 하나 하겠네." "말씀하시죠" "이제 경매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그러니 길게 끌 것도 없이 단 한번, 부를수있는 최고가를 적어보여주는 거야. 그리고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람이 경매품을 차지하는 걸로 하지. 어떤가?" "좋습니다" 아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가격 경쟁으로 들어가면 아크가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오래전부터 경매장에서 돈을 벌어온 비더스의 자본금은 아크의 몇배는 족히 되리라. 아니, 사실 아크는경매장에떠돌던 에픽아이템을 샀다는 유저가 비더스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재벌 유저에게 돈으로 싸움을 걸어서는 이길 가능성이 없다. 설사 이긴다고해도 자존심싸움으로 여기서 더 가격을 올려놓고 본전을 찾기를 바랄수도없었다. '자 , 얼마를 써야하지? 비더스는 얼마를 부를까?' 막상 승부를 시작해보니 상당히 난해하다.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뭔가를 생각해 내고는 재빨리 가격을 적었다. "자, 그럼 셋에 동시에 보여 주도록 하세." 둘이 동시에 가격표를 들어 올렸다. 비더스가 쓴 가격은220골드. 가격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제 승리로군요." ".......젠장 , 어떻게 내가 얼마를 써낼지 알고있었던거지?" "비더스 님을 따라다닐때 기억이 났습니다. 비더스님이결정적이 배팅을 할때는 더도덜도 아니고 꼭 10퍼센트씩 올리는 버릇이 있더라고요" 비더스각 움찔하더니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졌네. 완전히 졌어" "그럼 이건 제가 차지하는 걸로 하죠" 아크는 경매품에 달린 메모지에 220골드 1쿠퍼를 적어냈다. 아크가 적자마자 곧 경매 종료를 알리는 소리와 함꼐 경매장 관리 NPC가 물건을 회수해갔다. 이제 관리소로찾아가금액을 지불하면 블라인드 경매장과는 이별이다. "저는 오늘로 여길 떠날 겁니다. 그러니 걱정말고 계속 돈 많이 버세요." "불과 보름만에 돈 될만한걸 싹 쓸어가 놓고 잘도 지껄이는군, 무서운놈" 가방을 짤랑거리며 뛰어가는 아크를 보며 비더스가 혀를 내둘렀다. 가격을 10퍼센트씩 올리는 것은 현실에서 경매장을 운영할때 붙은 습관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자신조차 종종 잊어버린느 버릇을 풋내기에게 간파당하게 될줄이야. "저 정도 눈썰미면 경매장을 통째로 맡겨도 될 것 같은데. 사는 곳이라도 물어볼걸 그랬나? 하긴 이렇게 빨리 적응하는걸 보면 이미 이 방면 일을 하고 있을거야. 아쉽군." 비더스가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릴때였다.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더니 경매품이 사라진걸 호가인하고 반색했다. " 드디어 경매가 끝났구나!" 비더스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한벌로 되어 있는 검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젊은 유저였다. 옆에서 무력한 표정으로 서있던 다닐은, 그가 돌아보자 미안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울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샴바라님. 다른 유저가 200골드를 넘게 부르는 바람에 낙찰받지 못했습니다. 계약에 따르면 기탁금을 넘기는 거래는 무효이니 계약은 없었던 걸로 .........맡아 두었던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200골드면 충분할거라고........." 다닐이 돈주머니를 돌려주자 샴바라라고 불린 유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사실 경매품을 낙찰받고 싶어했던 유저는 다닐이 아니라 샴바라였다. 그러나 다른 급한 퀘스트가 있어 상인에게 보수를 약속하고 경매를 맡겼던 것이다. 비더스는 대강 상황을 짐작하고 혀를 찼다. "쯧쯧, 자네가 저 친구와 거래 대행 계약을 했던건가?" "그, 그런데요?" "아쉽게도 자네가 찍은 물건은 다른사람에게 낙찰됐네" "누, 누구입니까? 대체 누가?" "이름은 아크라고 하네, 220골드 1쿠퍼에 낙찰받앗지. 하지만 이 친구가 꽤나 독종이라 되사려면 못해도 100골드는 더 얹어 줘야할걸. 그래도 사고싶다면얼른 따라가 보게 아마도 물품 감정소로 가고잇을테니까." 비더스의 말이 끝나기도전에 샴바라는 경매장을 뛰쳐나갔다. "아크녀석,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한몫 챙기고 가 버렸군" 불행히도 샴바라가 감정소로 뛰어가고 있을 떄, 아크는 상업 지역을 거닐고 있었다. 아이템에 걸려있는 프로텍트는 하급이라, 안목 스킬이 생긴 아크가 굳이 감정소에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결과를 볼까? 안목!"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아이템 정보창이 올라왔다. [싸늘한 검은 칼날(고대 유물_) 묵철을 제련해 만든 기형적인 칼날입니다. 표면에는 신비한 고대 룬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잊힌 성스러운 마법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검신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수많은 피를 빨아들인듯 음산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성스러운 고대 룬문자는 그 사악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새겨 놓은 것 같습니다. 어디에 쓰였던 것인지 지금은 확인할 길이없으나, 짐작컨대 좋은일에 쓰이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가치 : -] [고대 유물 싸늘한 검은 칼날의 정보를 습득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식 +10,지능이 5,명성이 5상승했습니다] "뭐,뭐야?" 아크는 당혹성을 터뜨렸다. 다른 설명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가 가치가 '-'라는 점이다. 즉, 상점에도 팔 수 없는 아이템이라는 뜻! 무려 220골드 1쿠퍼나 투자해서 산 아이템이 그저 장식품이었다니? 아크는 정말 오랜만에 아찔한현기증을 느껴야 했다. '빌어먹을, 옛말에 도박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하더니...........조금 돈이 모였다 싶으니 마지막에는 이렇게 털리는 구나!' 화가 치민 아크는 칼날을 운하에 집어 던지려다가 곧 생각이 바뀌었다. 어쨌든 아이템 설명을 읽어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아이템이었다. 예전의 신비한 석판처럼 운이 좋다면 퀘스트나, 또다른 아이템으로 인해서 쓸모있게 변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칼자루와 칼집을 구하면 사용할 수 있는 검이 된다든지.........' 매우 낮은 확률이지만, 그냥 버리는 것보다는 기대를 걸어보는편이좋지 않은가. 지금까지 경매장에서구한 고대유물은 고대 유물의 지식을 고작 1씩 올려주었다. 그러나 싸늘한 검은 칼날은 무려 10!숨겨진 고대 유적을 찾아냈을 때나 올라가던 수치였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평범한 아이템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에휴, 일단 챙겨 놔야지' "뱀, 돌의 파편" 꾸벅꾸벅 졸고 있던 뱀이 화들짝 놀라며 돌의 파편을 뱉어냈다. 이윤을 챙기는 건 실패했지만 대신 고대 유물의 지식이 10이나 올랐다. 거기에 지금까지 경매장에서 구한 고대 유물로 올라간 수치가 8.덕분에 고대유물의 지식이 53이 되었다. '이제야 이걸 확인할수 있겠군.' 아크가 돌의 파편을 쥐자 진동이 일어나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고대의 힘이 서려있는 돌의 파편을 확인했습니다. [고대의 힘이 서려있는 돌의 파편(별의 조각) 이 석판은 매우 신비하고 두려운 힘의 일부분입니다. 이것은 암흑읭 힘으로 만들어졌지만 빛의 속성을 띠고 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확인해 본 결과, 이것은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했던 마반 영웅이 가지고 있던 삼신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반영운은 후인을 위해 자신의 힘 일부분을 이 삼신기에 남겨두었습니다. 구도자가 이 신기를 얻게 되면 마반영웅의 지식 일부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유자에게 주어지던 패널티가 사라졌습니다. *별의 조각 소유자는 마반영웅의 기술을 사용할수있습니다. 경험치 +30,000. 고대 유물의 지식 +15,지능이 10,명성이 20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어둠의 선물(패시브) : 어둠 속에서 발휘되는 다크워커의 모든 능력이소폭 상승합니다. 능력치 상승률이 30%로 상향 조정됩니다. '은신'의 지속 시간이 15분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단, 이스킬은 숙련치를 올릴수없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블레이드 스톰(초급, 액티브):마반영웅의 비전초식 중 첫번째, 검을 파쇄해서 파편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적을 갈가릴 찢어냅니다. 사용된검은 소멸합니다. 마나 소모 : 400]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보름동안 죽어라 벌어들인 돈은 모두 날렸지만, 그 덕분에 신비한 돌의 파편을 확인할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돌의 파편은 마반영웅의 삼신기 가운데 하나였다. 마반 영웅의 힘 일부가 봉인된 전설의 아이템, 별의 조각! 그보너스로 얻은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블레이드 스톰은 아직 써보지 않았으니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어둠의 선물은 몇단계 레벨업을 한것보다 큰의미가 있는 스킬이엇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성과는 이제 다크워커로서의 목적이 명확해졌다는 점이었다. 마반영웅의 삼신기를 찾는일. 목적이 뚜렷하면 해야할일도 뚜렸해지는법이다. 이로써 아크는 진정한 마반영웅의 구도자로서 한걸음 내디딜수있게 되었다. '다크 워커는 삼신기를 찾을 때마다 스킬이 늘어나느게 분명해.' 전직을 끝내면 대부분의 직업이 전용 공격 스킬5~6개를 배울수있다. 반면 아크가 받은 스킬은 단 2개. 그나마 마령 소환은 직접 사용할수있는 공격용 스킬이 아니었다. 다크 블레이드가 상당히 실용성 있는 스킬이기는 했지만 하나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었다. '블레이드 스톰이라..........마나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군. 마나를 더 올려놓지 않으면 소환수와 함께 있을 때는 거의 사용할 기회가 없겠어. 게다가 검을 소모시킨다는게 마음에 걸려. 패널티가 많은 만큼 데미지도 강하다면 좋겠는데........' 어쨌든 220골드 1쿠퍼를 투자한 보상은 받은 셈이다. "좋아,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지뭐" 아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란을 떠나기 위해 상점을 들락거리며 여장을꾸리고 있을 때였다. 쇄에에엑! 번쩍! 콰지지직! 돌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저 머리에서부터 섬광이 날아들었다. 섬광은 기란을 가로질러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탑의 꼭대기를 후려쳤다. 스파크가 일어나며 탑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기란마법학회의 탑이었다. 여러대도시마다 세워져 있는 마법 학회의 탑은 서로 공명한다. 그리고 전역에 급보를 알려야할 필요가 있을 때는 지금처럼 마법으로 내용을 발신, 수신하는 역활로 사용되기도 한다.작센 성의 게시판에서 읽은 내용인데, 실제로 급보를 수신하는 장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유저들도 놀란 눈으로 마법 학회의 탑에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후 한 마법사가 헐레벌떡 뛰어나와 확성 마법을 시전했다. "급보입니다!몇 시간전, 정체를 알수없는 어둠의 군단이 작센성을급습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의 공격으로 작센성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아직 작센 영주가 병력을 이끌고 저항하고 있지만 어둠의 군단은상상 이상으로 강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마법사의 목소리에 유저들이 웅성거렸다. 몬스터가 군대를 조직해 성을 침략해 들어오다니? 상상도 못했던 이벤트였다. 슈덴베르크 왕국 출신의 유저들은 모두 작센성을 거쳐 온자들이었다. 모든 유저들이 숨을 죽이고 마법사의 입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대로 방치하면 작센성은 어둠의 군단에게 완전히 짓밟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슈덴베르크 병력은 대부분 국경 지역에 주둔하고 있어 이동에만 구일이상 소모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마법 학회에서는 시급한 현안을 고려해 연락이 닿는 모든지역에서 의용군을 모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의용군? 우리도 참가할수있는건가?" "물론입니다. 작센성을 구원할 용맹한 용사를 급히 모집합니다. 전쟁에 참여해 공적을 세우는자에게는 마법 학회가 큰 보상을 약속드립니다. 스스로 용사임을 자처하는모험자들이여 ,지금 당장 마법 학회의 탑으로 모여주십시오. 우리에게는 시간이없습니다. 3시간뒤에 마법 학회가 보내온 비공정이 기란을 거쳐 작센성으로 출발할것입니다" "특별 이벤트다!" "마법 학회의 보상을 받을수 있는 이벤트다!" 유저들은 눈이 시뻘개져서 마법 학회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당연히 아크역시 그들과 섞여 마법 학회로 달려갔다. 그러나 비공정은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모든 유저가 이용할수없었다. 마법 학회의 마법사들은 유저들의 정보를 일일이확인하고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만 퀘스트를 부여해주었다. "다음분 오십시오" 아크가 다가자가 마법사가 수정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아크의 눈앞에 캐릭터 정보창이 떠올랐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100 명성 : 700 레벨 : 68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나이트, 영혼의 간병인 생명력 : 1,415 마나 : 975(+100) 영력 : 100 힘 178 민첩 218(+17) 체력 268 지혜 27 지능 186 운 43 특수 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63) 유연성 : 15 화술 : 18 애정 : 23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밑첩 +2,냉기 저항 + 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어둠 속에서 모든능력이 30% 증가합니다. *어둠속에 몸을 숨기는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읭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검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회색 산마루와 별의 조각을 확인하며 얻은 경험치로 레벨업을 하여 68이되었다. 체력이1,415 ,고대 유물을 조사하며 지능도 많이 올라 마나도 1,000대에 육박했다. 그리고 장비 아이템 효과에는 나오지 않지만 란셀읭 검으로 공격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여기에 인어족의 수호갑옷까지 장비하면 방어력도 전사가 부럽지 않았다. 민첩은 200을 넘어 치명타 확률과 회피율, 공격력이껑충 올라갔다. 또한 각종 스킬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니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다. 역시 아크의 능력을 알아본 마법사의 수정구가 푸른색으로 빛났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배지를 받으십시오. 마법 학회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한다는 증표입니다. 이제 탑의 정상으로 가십시오. 곧 비공정이 도착할 겁니다." [마법 학회의 배지 마법 학회를 통해 작센 성 수호 직전에 참가한 자에게 주어지는 배지. 배지를 소유한 자는 전투가성공적으로 끝나면 공적에 따라 마법학회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배지를 받아들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영웅 집결령 (이벤트 퀘스트) 정체불명의 어둠의 군단이 작센성을 기습했습니다. 현재 영주와 병사들이 전력을 기울여 막고 있지만어둠의 군단은 그들을 압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평화를 지켜주던 작센의 성벽이 무너지기 전에 어둠의 군단을 물리쳐야합니다. 오랜 여행으로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입니다. 작센성을 구해 내는데 큰 기여를 한 영웅에게는 마법학회에서준비한 보상이 주어질것입니다. (현실시간으로 삼일뒤 슈덴베르크왕구읭 병력이 도착하기전까지 작센성을 지켜내거나 어둠의군단을 물리쳐야합니다. 만약 사망할 경우 영웅 집결령 퀘스트는 자동 실패되며 퀘스트가 진행되는 72시간 동안 게임에 접속하실수 없습니다) 난이도 : ++C 퀘스트 제한 : 레벨 60(최저 레벨 이하의 유저는 전투에 참가해도 공적을 인정받을수 없습니다)] "어?" 점심 식사를 끝내고 시스템을 점검하던 김권태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갑자기 모니터가 시꺼멓게 변하더니 엄청난양의 데이터가 미친듯이 올라왔다. "이게 갑자기 왜이래?" 김권태는 화들짝 놀라며 데이터 화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정신없이 올라오는 데이터는 모두 하나의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한 내용이었다. 서둘러 두꺼운 책자를 뒤적이며 대조해 보던 김권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팀장님, 보안 레벨 C의 이벤트가 발동했습니다!" "뭐야?" 하명우가 서둘러 달려오며 물었다. "발동 조건은 ?"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김권태는 노트북을 꺼내 메인 컴퓨터에 연결하고 신들린 손놀림으로 데이터를 점검해 나갔다. 몇개의 단서를 발견한 김권태가 대답했다. "7인의 영웅에 관련된 이벤트입니다. 발동 조건은 영웅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유저가 최소 4명이상 되어야 하고, 그 중 2명이 영웅의 단서를 찾아냈을 때입니다" "젠장, 진행이 너무 빠르잖아. 김대리, 영웅에 관련된 직업을 가진 유저를 알수있는 방법이 있나? 단서를 찾아낸 유저까지 파악할수 있으면 더 좋고" "현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영웅과 관련된 직업은 수십개나 됩니다.그중 퀘스트에 따라 영웅까지의 전직에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성공하는 사람도 생기죠. 저희가 시스템에 관여할수있는게 너무 제한적이라 그들을 모두 파악하는건 불가능합니다. 현재 영웅의 단서를 찾은걸로 확인된 유저로는 홀리나이트로 전직한 아란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응시자 중 1명이죠." "이벤트에 간섭할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건가.........." 하명우는 분한 듯 입술을 곱씹었다. 한심한 일이다. 지금까지 유례가 없을정도로 완벽한 가상현실게임이라는 뉴월드.그러나 하명우가 보기에 뉴월드는 허점투성이였다. 게임은 완벽하지만, 그 완벽함이 도가 디나쳐 관리자조차 제어할수가 없었다. 쓸수없는 검은 몽둥이만 못한것이다. '빌어먹을 미친놈들!' 욕지기가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면접장에서 하명우가 침을 튀겨가며 자랑했던 개발자들에 대한 욕이다. 세계적인 석학들이라는자들, 그들은 오랜시간 게임을 개발하며 머리가 살짝 맛이 간 모양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진짜 조물주라는 착각에 빠졌다.그렇다, 그게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었다. 자신들이 창조한 세계는 완벽해야한다. 완벽한 세계란 모든 존재에 절대적인 법칙이 적용되어야한다. 그 절대적인 법칙이란 창조물들이 게임을 하나의 세계로받아들이고, 창조주가 준비한 시련을 스스로 이겨내며 새역사를 창조해 나가는것, 그 외에 어떤 외부 간섭도 허용되지않는 세계를 말한다. 그런 미친 발상의 결과물이 전무후무한 가상현실 게임, 뉴월드의 실체였다. 개발자들이 수많은 락LOCK을 걸어놓는 바람에 관리자가 임의대로 뭔가를 할수있는일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 락을 꺠기 위해 기획팀은 지난 몇달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때문에 기획팀에서 파악하고 있는 뉴월드는 유저들이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직업이 있는지, 혹은 어떤 스킬이 있는지, 심지어 어던 이벤트가 벌어질 것인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이 가동되고 있는 것도 게임을 구성하는 인공지능의 의지이지 그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일단 엄청난 투자를 했으니 게임을 오픈하기는 했지만, 게임이 어떻게 진화해 갈지 누구도 예측할수없었다. 기획팀은 물론 스스로를 창조주라고 칭하는 개발자들조차........... 글로벌엑서스의 입장에서보면 굉장히 위험한일이다. 유저를모아 입사시험을 핑계로 시스템을 파헤치려는것도 사실은 그런 속사정 때문이었다. '박우성. 이자식!' 하명우가 이를 갈아붙였다. 게임에 걸려 있는 모든 락은 게임의 완성과 함께 실종된한 개발자에게 집중되어있었다. 박우성, 천재 게임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던 개발자였다. 어쨋든 현재로써는 그가 락을 풀어주지않는 이상, 기획팀이 게임에 관여할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그럼 이벤트와 연관이 있는 유저의 정보라도 검색하봐" "하지만............" "수만명의 유저를 하나한 검색해서라도 이벤트가 끝나기 전까지 찾아내! 그들을 알아내면 다음이벤트의 시작 시기를 에측하는 것도 가능할거다." "알겠습니다." 김권태의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춤을 추었다. 누구도 에측하지 못했던 이벤트가 벌어진다. 뉴월드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아크 ARK 3권 마법탑 상층부, 넓은 발코니에 10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법 학회의 심사를 통과한 레벨 60이상의 유저들이다. 뉴월드는 차세대 게임답게 시스템 적으로 수많은 변수를 제공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유도가 높다는 뜻이다. 당연히 개릭터의 육성 방식에도 수많은 변수가 존재해 무작정 사냥만 한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게임에 적용되는 변치않는 기본 공식은 뉴월드에도 적용된다. 바로 '투자시간=레벨'이다. 남들보다 레벨이 높다는건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는 의미! 뉴 월드는 서비스를 시작한지 이제 네달이 조금 넘었다. 게다가 뉴월드는 다른 게임보다 레벨업지 서너 배는 어렵다. 즉, 이들은 네 달만에 다른 게임의 180~240대 레벨을 올렸다는 말이다. 그런 고레벨 유저들이 기란에서만 무려 100명이나 모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뉴월드의 강한 중독성이 만들언 낸 결과였다. 당연히 모두들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리라. 어떤 적이 나올지 모르는 퀘스트를 받고도 자신감이 넘치는 이유는 그 때문, 그러나 아크는 그들의 자신감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없었다. 아크가 군침을 뚝뚝 흘리며 노려보는건 오직 그들의 장비품. '장난이 아니군, 대체 어디서 저런 아이템을 구한거지?' 아크는 나름대로 아이템 운이 꽤 따르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모여든 유저들의 장비를 살펴보니 자신감이 사라졌다. '저건 틀림없이 레어 이상의 아이템이야' 번쩍 번쩍 빛나는 뿔이 달린 바이킹 투구, 손등에서 팔꿈티까지 날카로운 칼날이 돋아나있는 장갑, 피가 뚝뚝 흐를듯한 붉은 뼈로 만들어진 신발, 검날이 톱날처럼 만들어진 양손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장비품이다. 게다가 100명이나 되는 유저가 모여 있는데도 같은 형태의 장비품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고급 아이템 전시장에 온듯한 기분이다. 목구멍으로 군침이 꼴깍 꼴깍 넘어간다. '저걸 몽땅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냐?' 아크에게는 블라인드 경매장에서 갈고 닦은 눈썰미가 있었다.즉석해서 주판알을 튕겨보니 1명이 입고 있는 장비품은 대략 400~500골드. '100명이면 최소 4만골드.현찰로 4억!'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통계수치가 나왔다. 매달 날아오는 공과금 용지를 보며 한숨부터 불어내는 서민 아크.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로 돈의 가치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서민에게 '억'은 그야말로 '억'소리 나오는 단위다. 그 '억'단위의 골드가 눈앞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새삼 얼마전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뉴월드의 아이템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경매 사이트의 시장 규모가 벌써 백억 원대에 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실감되지도 않는 일이니까. 그러나 이제 더이상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휴, 저사람들이 모두 몬스터라면........' "잠시 주목해 주십시오" 그때, 심사를 끝낸 마법학회 NPC가 상층부로 올라왔다. "방금 새로운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한건 마법 학회만이 아닙니다. 기란 남부 상업지역에 위치한 '마이더스',통칭 상인길드에서도 이미 모집한 의용군을 태운 철갑 상선을 작센 영지로 출발시켰습니다.또한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노르헨 지방의 '소드액스',통칭 전사 길드도 의용군을 작센 영지로 보냈습니다." "상인 길드와 전사 길드가?" "거기에 마법학회까지 더하면 결국 3대길드가 모두 움직였다는 말이잖아?" "역시 평범한 퀘스트가 아니었어" 유저들이 놀란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아크도 마을마다 놓인 게시판에서 3대길드의 정보를 본적이 있었다. 뉴 월드에는 NPC가 관리하는 상위 길드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어떤 종족, 어떤 왕국을 선택한 유저든 일단 길드를 세우려면 이 상윙 길드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다시말해 유저가 세운 길드는 신청서를 낸 상위 길드의 하부 조직에 속한다는 말이다. 때문에 길드를 세우면 상튀길드에 세금을 내야하지만, 대신 여러가지 지원이나 길드 전용 퀘스트를 받게된다. 독특한 점은 이 상위 길드의 영향력도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상위 길드의 영향력은 상인의 점유율과 비슷하다. 즉, 많은 유저가 선택할수록 상위 길드의 영향력도 커지낟. 현재 뉴월드의 유저가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크게 세가지. 전사, 마법사, 상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뉴 월드의 3대길드가 정해졌다. 상위 전사 길드 소드'엑스, 상위 상인 길드 마이더스, 상위 마법사 길드 마법 학회! 물론 유저가 길드를 만들때 굳이 같은 직업 계열의 상위길드를 선택한 의무는 없다. 그러나 기왕이면 다홍치마. 상위 길드의 지원이나 길드 퀘스트의 보상은 연관 직업에 유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가능한 직업에 맞춰 선택하는것이다. 덕분에 현재의 3대길드는 왕실과 대성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잇었다. 마법사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작센을 구하는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3대 길드의 자존심을건 전투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우리각 모집한 의용군이 얼마나 활약해주느냐에 따라 마법학회의 위상이 달라지겠지요. 틀림없이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지급될테니 모두들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3대 길드가 앞다퉈 의용군을 조직한 이유였다.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시작한 유저들이 처음으로 전직, 길드에 관심을 갖게 되는 작센성, 그곳에서 위상을 드높이면 당연히 신생 길드의 유치율도 올라가게 되리라. 서로 경쟁하는 것은 유저들만이 아니다. NPC도 다른 NPC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는 곳, 그게 뉴월드다. 그러나 유저들은 상위 길드 간의 경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경험치와 보상! 3대길드가 거론되자 유저들은 꽤나 들뜬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3대 길드가 모두 참전한 퀘스트라면 보상도 상당할거야" "어쩌면 마법 무기를 받을수 있을지도 몰라" "요 며칠 미친듯이 레벨 업하기를 잘했어" "가방이나 정리하려고 잠깐 기란에 들른건데 이런 퀘스트를 받다니, 횡재했다!" 퀘스트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보상도 커질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걱정스러웠다. '무턱대고 좋아할일은 아니야. 그만큼 경쟁자가 많아진다는 뜻이잖아' 다른 길드를 통해 이벤트 퀘스트를 받는다고 해도, 기본 내용은 다르지 않으리라. 결국 수백명의 유저가 한정된 경험치와 공적을 쪼개 먹어야한다. 당연히 얻을수있는 공적은 그만큼 적어질테니 보상도 적어질수밖에없다. 물론 사람이 늘어나면 퀘스트를 수행하기는 쉬워지겠지만 무턱대고 기뻐할일은 아니다. "이제 비공정이 도착하기까지 30분가량 남았군요. 마법학회에서 의용군에 참가해주신 여러분꼐 작으나마 보급품을 준비했습니다. 순서대로 나와서 받아가십시오. 시간이 부족해 넉넉하게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도움이 될겁니다." 마법사가 보급품 상자를 하나씩 지급해 주었다. 상자를 열어보자 몇가지 아이템이 들어있었다. [중급 회복 포션 (3) 십여 가지 약초를 특수한기법으로 배합, 고밀도로 정제해 만듭 마법 물약. 전투에서 입은 부상을 즉시 치료할수있는 전사의 필수아이템이다. {사용 즉시 생명력 +300 단, 질병이나 독과 같은 상태이상에는 효과가 없음}] [고밀도 영양 건빵(10) 풍부한 영양 성분을 가진 식재료를 듬뿍 넣어만든 최상의 비상식량. 맛은 없지만 각종 영양이 풍부해 하나만 먹어도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낄수있다. {1분에 걸쳐 만복도와 생명력 50% 회복.음료와 함께 섭취하면 마나 50% 추가회복.단,상태이상에 걸렸을 때는 만복도만 회복됨. 전투시에는 사용할수없다}] [영자 이동의 오브(이벤트 아이템) 마법 학회의 놀라운 기술력이 탄생시킨 신개념 이동수단, 마법학회의 손싱탑에서 사용하면 신체를 영자로 변환시켜 단숨에 지정된 수신탑으로 이동시켜준다. 그러나 아직 연구중인 기술이라 제약이 많고 사용자의 육체적부담도 상당하다 .아직은 상용화시키려면 상당한 기간의 연구가 필요할듯하다. 현재 좌표 설정 : 작센 -기란 {사용 횟수 : 1회}] "현재 작센의 마법탑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이 비공정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센을지켜내고 마법탑이 제 기능을 발휘하면 영자 이동의 오브를 사용해 곧바로 기란의 마법탑으로 돌아올수있을겁니다." 마법사가 구구절절이설명을 붙였다. 결국 퀘스트를 완료하면 다시 기란까지 돌아오는 수고를 덜어 주겠다는 말이다. 하긴 수백명의 고레벨 유저가 퀘스트가 끝난뒤에 저레벨 지역을 서성거리면 밸런스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지. "저기 비공정이 온다!" 아크각 복브품을 받아 챙겼을 때 발코니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탁 트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은빛으로 번쩍이는 비공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바로 마법 학회의 모든 기술력이 총동되어 제작된 비공정, 실버 애로우입니다. 전장 200미터, 강력한 마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4개의 엔진은 시속 300킬로미터까지 비행이 가능하게 해줄뿐만 아니라, 일명 뇌신의 창이라고 불리는 함포를 장착해 전투까지 가능한 전천후 공중 전함입니다. 저 실버 애로우가 여러분을 작센 성까지 모셔다 드릴겁니다." 마법사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떠들어댔다. 그러나 마법사가 뭐라고 떠들든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은 전혀 달랐다. '힌덴 부르크!' 힌덴부르크는 1900년대 초 ,독일에서 만들어진 거대 비행선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시험 비행도중 원인 불명의 폭발로 사라져, 지금은 인터넷에 떠도는 낡은 사진으로밖에 볼수없는 전설의 비행선이었다. 뭐, 토막상식은 그쯤해두고........어쨌든 비공정은 기본적인 형태가 힌덴 부르크와 똑같았다. 상부에는 축구장 서너배는 족히 될 드한 함선 모양의 열기구가 고도를 조종하고,후미에 달린 4개의 엔진이 추진력을 제공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닮은 것은 기능적인 부분뿐, 실버 애로우의 위용은 투박한 힌덴부르크와 ㅂ교도 안될만큼 아름다웠다. 은색 바탕에 아로새겨져 있는 복잡한 금장 무늬, 그 주위에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금속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습은,초현실적인 금속 예술품처럼 완벽한 조형미를 자랑했다. 비공정이 발코니 앞에 기항하자 유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러분의 무운을 기원하겟습니다!" 마법사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의용군은 모두 태웠나?" "네, 함장님!" "좋다, 실버 애로우 좌현 30도로 선회, 목표는 작센영지!" 하얀 수염에 뒤덮인 한잠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동시에 비공정 좌우의 노가 공기를 저으며 움직이자 서서히 방향이 틀어져싿. 선수가 향한 방향은 남서부의 작센 영지! "서둘러라!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의 의용군은 한참전에 출발했다. 실버 애로우가 땅개와 물개따위에 뒤진다면 조롱거리가 될거다. 최대 출력으로 발진하라!" 쿠오오오...........콰콰쾅! 4개의 마력엔진에서 굉음이 터지자 비공정은 이름처럼 한발의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우아아악!" "헉, 떠, 떨어질뻔했다" 갑판위의 유저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넘어졌다. 아크 역시 난간을 잡고 있지않았다면 그들과 한덩어리가 될뻔했다. "크하하하, 꽉 잡아라. 애송이들, 떨어져도 책임 안진다." 조타실에서 함장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마력을 최대 출력으로 뿜어내는 비공정은 엄청난 속도로 대륙을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그 속도에 당황했다. 시속 300킬로미터! 하늘을 나는 속도로는 대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비공정은 현대의 비행기처럼 안락한 여행을 제공해 주지않았다. 때때로 기체가 요동치고 안정망조차 없는 갑판에서는 밀려오는 바람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그러나 일단 적응하자 이런것들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탁트인 시야와 체감 100%의 속도감이 기묘한 해방감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벌써 아구스 산맥을 넘었다.' 시선을 내려보자 산과들, 평야가 4배속 비디오 영상처럼 휙휙 지나간다. 며칠이나 헤맸던 아구스 산맥을 횡단하는데도 불과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 넓은 평야만 가로지르면 작센 성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돌연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라?뭐야? 아직 밤이 되려면 멀었는데?' 처음에는 안개가 끼듯 점차 어두워지더니 이내 주위는 칠흑같은 어둠에 뒤덮였다. 검은 안개에 갇히자 갑자기 중력이 증가한것처럼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 영향인지 전속력으로 항진하던 비공정이 크게 요동치며 흔들렸다. 동시에 모든 유저들이 같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비공정이 정체불명의 마력으로 창조된 다크포그의 영향권안에 진입했습니다! {영향권안의 모든 플레이어는 시야에 패널티를 받고 능력치가 10%감소합니다. 단, 어둠 속성의 플레이어는 패널티를 받지않습니다}] "이게뭐야?" "다크 포그? 젠장, 스탯이 10%나 감소한다고?" 서둘러 스탯창을 확인한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아크도 스탯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다행히 어둠속성인 아크에게는 패널티가 주어지지않았다. 오히려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아 스탯이 상승했다. 직업 특성으로 능력치 20%가산, 기란에서 배운 '어둠의 선물I'로 다시 10% 가산, 반면 다른 유저들은 10%가 떨어졌으니 아크는 다른 유저들과 40%나 능력치가 차이난다는 뜻! '시작부터 조짐이 좋군. 마법학회에서 놈들을 어둠의 군단이라고 불렀던건 이 다크 포그때문인가?그렇다면 퀘스트가 끝날때까지 계속 보너스가 들어온다는 말이잖아? 후후후,이럴 때는 정말 다크 워커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아크는 묘한 우월감에 빠져 한껏 고조되었다. 그러나 아크가 히죽거리는 사이 ,주변 상황은 꽤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크 포그가 덮쳐오자 승무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함장님, 동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당황할필요없다. 지원군의 합류를 늦추려는 적의 공작이겠지. 흥, 고작 이따위 안개로 실버 애로우의 발목을 잡으려 하다니 가소롭군.전 승무원 전투태세!" "네 ,실버 애로우 전투태세, 뇌신의 창을 준비하라" 육중한 금속음이 울리며 비공정 전 방향의 포문이 개방되엇다.양쪽으로 수십개의 포신이 솟아나왔다. 그러나 아크의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정면의 포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포신이었다. 은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삼지창 같은 형태의 함포! 마법 학회의 NPC가 입에 침을 튀겨 가며 자랑하던 실버 애로우의 주포, 뇌신의 창이다. 비공정이 전투 모드로 바뀌는 사이 다크 포그는 더욱 짙어졌다. 시계도 더욱 좁아져 불과 몇미터 밖의 사물조차 제대로 분간할수없었다. "전 방위 라이트를 켜라!" 비공저에 붙어있는 수십개의 라이트가 켜지며 지상을 밝혔다. 갑판에 몰려있던 유저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건 그때였다. "헉, 저게 다 몬스터야?" "지금까지 보지도 못했던 몬스터들이잖아?" "맙소사, 저놈들을 상대로 퀘스트를 진행시켜야 하는건가?" 발아래에는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지면을 뒤덮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정확하게 파악할수는 없지만 어림잡아 천여마리!생긴것도 지금까지 상대한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대부분 인간형의 검은 몬스터 그리고 간간히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몬스터들도 섞여잇었다. 빛이 닿자 놈들이 화살과 투석을 날려댔다. "놈들이 공격한다!" "피해라!" 멍청하게 내려다보던 유저들이 화살과 투석에 난타당했다. 레벨 60이상의 유저에게 화살 한두방은 그리 큰 피해가아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물러서느라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난리통에 몇명이 난간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어?미, 미안해!" "젠장,너 이자식!" 추락한 유저는 땅에 닿기도 전에 개미떼처럼 몰려든 몬스터들에게 갈가리 찢겨졌다. 유저들의 얼굴이 헬쓱해졌다. 동료의 처참한 죽음 때문이 아니다. 이번 퀘스트는 다른 퀘스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번 죽으면 퀘스트 실패는 물론, 3일간 접속조차 못하는 것이다. 유저들이 겁을 집어먹자 함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한심한 애송이들, 겁먹을 필요없다. 마법학회가 자랑하는 공중 전함 실퍼 애로우는 아따위 허접스러운 공격에 흔들릴 정도로 약하지 않아" "함장님, 모든 함포의 충전이 완료됏습니다" "좋다.멍청한 몬스터들에게 뇌신의 맛을 보여줘라!" "네, 전 함포 공격 준비!지상30도로 고정하라!" 작은 포신들과 뇌신의 창이 기계음을 발하며 아래로 향했다. 이어 웅웅거리며 삼지창 형태의 포신이 진동햇다. 시퍼런 기운이 스파크를 일으키며창끝에 집약되는가 싶더니 돌연 공간을 뒤흔들며 푸른 섬광을 뿜어냈다. 번쩍! 콰콰콰쾅! 엄청난 크기의 벼락이 지상으로 내리 꽂혔다.반경 수백미터가 통째로 시퍼런 빛에 휩싸였다. 지면을 따라 스파크가 번져 나가며 모든 몬스터에게 엄청난 전격 데미지가 들어가는 장면이보였다. "쿠에에엑!" 벼락에 직격당한 몬스터는 단숨에 터져 버렸고, 지면을 따라 퍼지는 스파크에 맞은 몬스터들도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상당한 고레벨인듯한 대형 몬스터조차 빈사 상태가 되어 휘청거렸다. 뒤이어 작은 포신에서도 전격 마법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어삳. 생명력이 바닥났던 몬스터들은 서너방만에 허물어졌다. 무시무시한 광범위 공격! 함장이 광소를 터트리며 주먹으 흔들어댔다. "우하하하, 어떠냐! 건방진 놈들아. 이게 바로 실버 애로우가 자랑하는 뇌신의 창이다!" '괴, 굉장하다!' 일격에 주변이 초토화돼버렸다. 물론 설정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박력은 엄청났다. 처음에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을 때는 불안했지만, 비공정의 무력이 이정도라면 이건 단순한 이벤트인 모양이다. 그러나유저가 할일이 전혀 없는건 아니었다. "뇌신의 창은 재충전까지3분이 소요됩니다. 그때까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분들은 갑판에서 엄호해주십시오" "그래, 이러고 잇을때가 아니야!" "저 몬스터가 다 공적이다!" 정신을 차린 유저들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곧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의용군 가운데 궁수나 마법사의 숫자는 40여명, 어둠속에서 40명이 동시에 마법과 스킬을 난사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게다가 연속 발사가 가능한 비공정의 함포가 30개!빈사 상태에놓여있던 몬스터들은 문자 그대로녹아내렸다. 전사들도 투척 무기나 활을 꺼내들고 가세했다. 반격이 시작되자 그들의 가슴에서 마법학회의 배지가 쉴새없이 반짝거렸다. 쓰러지는 몬스터가 공적치로 환산되어 축적되고 있는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쳇, 이럴줄 알았으면 활과 화살을 좀 챙겨올걸 ' 궁수가 아니라도 활을 쏠수는 있다. 궁수에 비하면 사정거리나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겠지만, 지금처럼 상공에서 물 반, 고기반인 지면을 향해 쏘는 거라면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기란에서 잡템을 모두 정리한 탓에 아크는 그흔한 나무활조차 없었다. '아니야. 조급해하지말자. 어차피퀘스트는 이제 시작된것뿐이야 .앞으로 3일이나계속되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지금은 할수있는 일이나 하자' "모두 힘을 내십시오. 불안에 떨고있는 작센의 주민을 구할수 있는건 우리뿐입니다!" 아크는 갑판을 뛰어다니며 간병 스킬을 사용했다. 간병은 생명력이 100%인 사람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몬스터도 반격에 나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한두발씩 화살이나 투석에 맞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들 모두에게 종합 전투력에 영향을 주는 용기와기력, 스탯의 상승, 하급 축복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간병의 효과로 아군의 공격을 더욱 정확하고 강력해졌다. 그러나유저들은 신관계열이보조 마법을 사용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어라? 이게뭐지 ?스탯이 올라갔잖아?" "축복 효과다. 상태이상에 걸릴 확률이 내려갓어" "누군지는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공적치가 상승했습니다. 공적 +15 사람들이 알아주든 말든 공적치가 올라갔다. '역시!직접 몬스터를 죽이지 않아도 전투에 공헌하면 공적치가 오른다!'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는 의욕이 샘솟았다. 그 뒤로 아크는 미친듯이 갑판을 뛰어다니며 간병을 써 댔다.한번에 수십명의 유저에게 효력이 발휘되니 공적치도 상당히 많이 주어졌다. 순식간에 공적치100돌파! 갑판안에서 뛰어다니니 적의 화살에 맞을 걱정도 없다. '우하하하, 이거야 땅짚고 헤엄치기로군!' 그 사이 충전을 끝낸뇌신의 창이 다시 벼락을 뿜어냈다. 무시무시한 벼락이 어둠을 찢으며 지면을 시퍼렇게 달구었다. 수백미터에 달하는 광범위 전격 데미지에 이은 유저들의 파상공격! 몬스터들은 몰려들기가 무섭게 녹아내렸다. "크하하하, 이대로 몬스터들을 쓸어버리자!" "뭐야?별것도 아닌 놈들이었잖아?" "처음 보는 몬스터라 괜히 긴장했네" "비공정만 있으면 이번 퀘스트는 거저먹을수도 있겠어" 유저들의 얼굴에서 당혹감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크 역시 반쯤은 노는 기분이 되어 버렸지만, 한가지 잊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가 무려 ++C라는 사실! 갑판의난간에 기대 화살이나 쏘아대는것으로 퀘스트가 완료될리 없었다. 끼이이잉! 모두가 몬스터에게 집중하는 사이, 돌연 거대한 물체가 어둠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르 들어올인 NPC와 유저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헉!뭐,뭐야! 저게?" 직경 10여 미터의 검을 화염 덩어리! 수십 미터 밖에서도 열기가 느껴지는 검은 화염 덩어리가 도발이나 날아오고 있었다. 라이트를 모두 지면으로 향한 탓에 코앞까지 이르러서야 알아챈것이다. "저, 저건 마광탄이다!" 함장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설마 몬스터 따위가 마광탄을 동원할줄이야. 갑판장, 서둘러 뇌신의 창으로 요격하라!" "무리입니다. 뇌신의 창은 아직 50%밖에 충전되지 않았습니다" "빌어먹을 ,놈들이 무리하게 공격한건 그걸 노린건가?" 그렇다, 지상의 몬스터는 비공정의 시선을 끌기위한 미끼,뇌신의 창을 소모시킨뒤 마광탄으로 비공정을 요격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저 경험치를 주는 데만 충실했던 몬스터가 매복에 양동작전 까지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전속으로 회피 동작을 펼쳐라. 모든 함포와 궁수, 마법사는 화력을 집중해 마광탄을 요격한다. 한발이라도 맞아서는 안된다!" 마력 엔진이 풀가동 되자 비공정이 빠르게 선회했다. 동시에 몯느 함포와 유저들이 미친듯이 스킬을 난사하며 마광탄을 공격했다. 그러자 지상에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의 공격도 더욱 거세졌다. 아래에서 치솟아 오르는 화살과 투석에 유저 몇명이 쓰러졌다. 그러나 그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까딱하면 비공정과 함께 공중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인것이다. 투투투퉁,콰콰콰쾅! 결국 수백 발의 공격에 요격당한 마광탄 하나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뿜어져 나와 비공정이 크게 요동쳤다. 두번째 마광탄을향해 막 스킬을 구사하려던 유저들이 한쪽으로 몰려 넘어졌다. 또한 정조준을 하고 있던 함포도 엉뚱한곳으로 전격 마법을 뿜어냈다. 결정적인 실수! "제,젠장, 전승무원은 충격에 대비하라!" 퍼펑! 콰콰쾅! 마광탄이 비공정의 선미를 들이받으며 폭발했다. 엄청난 충격에 비공정이 미친듯이 뒤흔드렸다. 좌측에 달린 2개의 마력엔진이 불길을 일으키며 터져 나간건 그때였다. 균형을 잃은 비공정이 팽이처럼 회전했다. '크윽, 이게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크는 황급히 난간을 틀어쥐었다. 그러나 미처 대응하지 못한 유저들은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다크포그에 삼켜졌다. 볼것도 없이 강제 종료다. "마력 동력을 차단해라!" 함장이 비명처럼 소리치자 엔진이 모두꺼져 버렸다. 다행히 회전은 멈췄지만 비공정은 빠르게 고도가 낮아졌다.엔진이 폭발하며 부력을 유지하던 열기구를 크게 손상시킨 탓이다. 거기에 추진력까지 사라졌으니 닥쳐올 결과는 뻔하다. 추락! 같은 단어를 떠올린유저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끄, 끝장이다!" "이대로 작센성에 가보지도 못한채 전멸하는건가?" "뭐 이런 퀘스트가 다잇어? 젠장!" "다 틀렸어,죽으면 3일동안 접속도 못하는데......" 비공정과 함께 추락하면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받게 되리라. 간신히 살아남는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비공정의 궤도를 따라 몰려오는 개미 떼같은 몬스터들! 놈들에게 둘러싸이면 회복포션을 꺼내 들틈도 없이 밟혀 죽을게 뻔하다. 그러나 함장은 끝까지 임무를 포기하지 않았다. "갑판장, 전력을 다해 실버 애로우를 수평상태롤 유지하라. 또한 모든 마력을 뇌신의 창에 집중하라. 최후의 일격으로 몬스터를 불태우고 불시착을 시도한다. 설사 이곳에서 실버애로우를 잃는 한이있어도 의용군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살려 작센성을구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승무원들의 노력이 성과를 보여 불안하게 흔들리던 비공정이 중심을 잡아갔다. 그러나 고도는 빠르게 떨어져 지면과 불과 20미터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때, 함장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소리쳤다. "뇌신의 창, 전 함포 일제히 발사!" 양 날개를 활짝 펴듯 비공정의 양쪽에서 전격 마법이 뿜어져 나왔다. 모든 마력을 집중시킨 벼락은 비공정의 궤도를 따라움직이며 지면을 긁어 댔다. 쿠콰콰콰콰콰! 새삼스럽지만 실로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일반 함포만 해도 유저가 사용하는 전격 마법의 10배에 달하는 위력,지면을 후려치면 흙과 자갈이 한순간에 까맣게 타버렸다. 그 함포의 수십배에 달하는뇌신의 창은 그야말로 공포! 뇌신의 창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빈사상태의 몬스터들만 남았다. 거기에 함포가 소나기같은 공격을 퍼붓자 몰려들던 몬스터들은 괴성을 지르며 증발했다. "이제 불시착에 대비한다!" 함장은 갑판에 몰려있는 유저들을 내려다보며말했다. "전사들이여, 내가 할수있는건 여기까지다. 이제 실버애로우는 동체착륙을시도할것이다. 그 충격은 아무리 단련된 전사라도 버텨내기 힘들터, 더 늦기전에 탈출하라. 그리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작센성으로 향하라. 다행히 뇌신의 창과 함포사격으로 주변 몬스터를 처리했으니 큰 위험은 없으리라 생각한다.부디.........부디 1명이라도 더 살아남아 작센성을 위기에서 구해구지 바란다!" 상황을 정리한 함장이 부동자세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승무원들도 일렬로 늘어서서 유저들에게 경례를 올려붙인다. 비장감이 감도는멋진장면이엇지만, 유저들은 단숨에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뭐, 뭐야?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라는 거야?" "말도 안돼, 이높이에서 뛰어내리면 100%사망이라고!" '멍청이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냐?' 그떄, 아크는 줄사다리를 타고 열기구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비공정이 추락하는건 기정사실. 그렇다면 불평을 늘어놓을시간이 없다. 그보다는 당장 추락 데미지를 1이라도 더 줄일 방법을찾아야 하지 않는가? '비공정의 구조를 생각하면 갑판에 잇는 사람이 가장 큰 데미지를 받게 될거야.' 그나마 가장 데미지를 적게 받을 곳은 최상부에 위치한 열기구.이곳은 중세시대를 모델로 만들어진 세게다. 열기구에 헬륨따위가 들어찼을리가 없다. 단순히 뜨거운 공기로 가득차 있으리라. 다시 말해 쿠션으로 활용할수있다는 말! 아크와 같은생각을 한 유저들이 제법 많았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열기구에 붙어서 긴장한 표정으로 타이밍을 가늠하고 있었다. 콰콰콰쾅! 그렇게 몇초,결국 비공정이 지면과 충돌했다. 고막을 찢어내는듯한 굉음에 이어 엄청난 충격이 밀어닥쳤다. 선체가 단숨에 일그러지며 승무원과 유저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열기구도 거품처럼 터지며 오그라들었다. '지금이다!' 아크가 몸을 날린것은 그때엿다. 기묘한 부유감에 이어 눈앞으로 지면이 확 밀려들었다. 아크는 몸을 둥글게 말고 낙법을 펼쳤다. ACT 2 작센 성으로 "휴..........일단 살았군" 아크는 몸을 일으키며 생명력을 확인했다. 생명력이 400가량 줄어들었다. 캣 나이트 특수 스킬로 낙하 데미지를 50%나 줄였다. 추가로 유연성 스탯을 이용한 낙법을펼쳐 30%의 데미지를 더줄였다. 그럼에도 400의 생명력이 줄었다면 본래 받았어야 할 데미지는 2,000이라는 뜻. 낙하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 유저는 바닥에 닿자마자 즉사햇으리라. 예상대로 근처에 몇 구의 시체가 보였다. '아, 심하다. 완전히 라라 꼴이로군' 옛날에 잠깐했던 톰레이더라는 고전ADV게임이 생각났다.멀쩡하게 생긴 라라라는 처녀가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의 게임인데,가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사지가 뒤틀린 비참한 모습으로 게임오버된다. 지금 바닥에 널브러진 유저들이 딱 그 꼴이었다. 재접속이 가능한 3일후까지는 그 꼴로 누워 있어야 하리라. '쉽지 않은 퀘스트일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아크는 특이한 퀘스트를 많이하다 보니상황 판단이 빨라졌다. 비공정의 추락은 유저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다시말해 유저의 힘으로 어찌해 볼수없는 상황, 시나리오라는 말이다. 이사실이 유추할수있는 결론은 명쾌하다. 퀘스트 받는건 60레벨만 되면 가능하다. 그러나 퀘스트를 받는거소가 참가자격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비공정의 추락 이벤트에서 살아남을정도로 상황 판단이 빠르고 특별한 스킬 한두개쯤은 가지고있어야 본격적인 퀘스트를 시작할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다는의미다. '이제 어쩐다..........' 아크는 잠시 주변ㅇ르 훑어보았다. 주변은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땅도 썩은진흙을 맡고 있는것처럼 흐물흐물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 역시 다크포그의 영향인 모양이다. 물론 아크에게는 그다지 문제될게 없었다.고양이의 눈을 시전하자 주변이 초록색으로 변하며 시야가 밝아졌다. 고양이의 눈에 덤으로 붙어있는 나이트버전 효과였다. '자, 이제 생존자를 찾아봐야하나, 아니면.........' "살아있는 분들은 여기로 모이세요!"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넋놓고 있는 사람들이 쭈뼛거리며 몰려들었다. 생존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나 많은 생명력곽 높은 방어력을 가진 전사는 의외로 보이지 않았다. 전사가 착용하는 판금갑옷의 무게로 인해 추가낙하 데미지를 입어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가죽이나천 계열의 갑옷을 입은 궁수나 마법사는 추가데미지도없고, 높은 민첩이나 경량화 마법으로 생존율이높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대강 40명. 60명이 멘땅에 헤딩을 하고 강제 종료된것이다. 생존자를 불러모은사람역시 가족 갑옷을 입고 깃 달린모자를 눌러쓴 궁수였다. 그는 리더를 맡아본 경험이 많은지 금세 상황을 정리하고 분위기를 주도했다. "모두들 대강 눈치 챗겠지만, 비공정의 추락은 예정된 이벤트인것 같습니다. 결국 작센성까지 가는게 우리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죠. 다행히 뇌신의 창으로 주변의 몬스터는 거의 전멸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몬스터도 있을거고,다시몰려오는 몬스터도 있을겁니다. 마침 숫자도 적당하니 공격대를 만들어 작센성까지 이동하기로 하죠." "네, 그렇게 하죠" "현재 파티는결원도 많이 생겻을 테니,파티를 풀곡 다시 구성해주십시오. 다른분들은 음식으로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시고요." 확실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상황 판단이 빨랏다. 음식을 먹으며 생명력을 회복하고, 서로 직업을 확인하며 다시 파티를 짜기시작했다. 그리고 궁수를 리더로 파티를 합쳐 공격대를 구성했다. 그러나아크는 오히려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됐다. '뭐야?이사람들 제정신인가?' 생존자의 숫자를 확인한뒤, 아크가 가장 먼저 떠올린건 작센성이아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40명의 유저가 살아남았다. 돌려말하면 이 근방에서 60명의 시체가 흩어져 있다는 뜻.즉, 이주위에만 60개의 아이템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성향이 중립,혹은 신인 유저이니 아이템을 떨굴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숫자가 60명이다. 10%만 된다고 해도 아이템 6개.. 게다가 그냥 유저인가? 최소 레벨 60의 유저들이다. 그들의 가방에 들어잇던 아이템이라면 상당히 고가일 가능성이 많다. 하다못해 마법 학회각 지급한 보급상자에 들어있던 횝고포션도 상점에서 파는 가격이 20골드이지 않은가. '만약 운좋게 장비품이라도 하나 줍는다면.........' 말할것도 없는 대박! 그뿐이아니다. 근처에 뇌신의 창과 함포사격으로 죽은 몬스터가 셀수조차 없다. 뭐, 대부분은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으니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아이템을 떨군 몬스터가 잇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생존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그런 눈먼 아이템을 챙기는 일이 아닌가? 그건 생존자의 의무이자 권리다! .........라고 적어도 아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유저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이런 충격적인이벤트를 겪고 나서 아이템 먼저 떠올리는 유저가 그리 흔할리 없다. 몇명은 생각햇을지도 모르지만 어둠속, 게다가 언제 몬스터가 들이닥칠지 모르는곳이다.. 아이템이나 줍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러나1쿠퍼에도 목숨을 거는 아크는 달라도 뭔가가 달랐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군, 단지 살아잇고 싶다면 퀘스트에는 뭐하러 참가햇어? 결국 이득을 위해서 참가한거 아니야?그런데도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몬스터가 무서워서 코앞에 있을 아이템을 찾아보지도 않고 작센으로 가겠다니.........나같으면 차라리 아이템을 먹다 죽겠다!' 물론 입 밖에 낼 소리는 아니다. '후후후, 어쨋든 나야 고맙지. 그래, 다가라. 눈먼 아이템은 몽땅 이 몸이 독식해주마' 결정을 내리자마자 아크는잽싸게 '은신'을 사용했다. 아크의 몸이 순식간에 어둠과 동화되어 사라졌다. 덕분에 다른 유저들은 아크를 발견하지 못했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인지,대강 둘러보고 공격대를 조직해 작센성을 향해 이동했다.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아크는 '은신'을 풀고 소환수를 불러냈다. "데드릭, 해골. 근처를 샅샅이 뒤져라. 특히 이방인의 시체가 있는 곳을 주의해서 뒤져. 그리고 뭐든 아이템을 발견하면 곧바로 내게 알려라." "주인, 이제 시체 도둑질까지 하냐?" 어린애의 모습으로 소환된 데드릭이 한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데드릭은 얼마전부터 다시 반말을 사용했다.아크가 존댓말을 듣는게 아직 익숙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전투상황에서 일일이 존댓말을 쓰게 하니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을 놓게 해 줬더니 이게 또 슬슬 기어오른다. "요리 먹을래,시체 뒤질래?" "하아, 살다보니 별짓을 다 해보는군" 데드릭이 불평을 늘어놓으며 박쥐로 변해 날아갔다. 그러나 역시 충성도 만땅의 해골은 군말없이 굴러다니며 주변을 수색했다. '차라리 해골에게 언어 능력이 생기면 좋앗을 텐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 사람과 두마리의 소환수는 열심히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시체가 흩어져 있어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열심히 주변을 수색하며 비공정의 잔해가 있는 곳까지 도착햇을 때였다. '어라? 이건뭐지?' 문득 한 마법사의 시체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기에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별 차이가 없는 형태 ,그러나 잡템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알을 번뜩이는 아크가 아이템을 놓칠리 없었다. 얼른 집어 들자 정보창이 열렸다. [바슘의 열매 환상의 식물이라고 전해지는 바슘의 열매.바슘은 북부대륙의 일부지역에서만 발견할수있는 매우 희귀한 고대식물입니다. 성장하면 스스로 이동하며 동물을 사냥해 먹어치우는 포악한 성향을 가지고 잇다고 알려져 잇습니다. 그렇게 사냥을 통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 바슘을 수십, 혹은 수백년에 한번씩 열매는 맺습니다.바슘의 열매를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하면 각종 시약과 마법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고대의 마법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포획되어 현재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환상의 식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마법 재료라는 말인가?' 아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슘의 열매를 훑어보았다. 전사는 수련과 반복학습을 통해 새로운 스킬을 늘려 간다. 그러나 마법사가 새로운 주문을 익히는 방식은 다르다.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마법학회에 돈을 내고 새로운 주문을 배우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돈이 들고 일반적인 마법 밖에 익힐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판매하는 주문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일정 레벨 이상의 마법사들은 더 강한 마법을 익히기 위해 밤낮없이 고대 유적을 찾아다닌다. 고대 마법사들이 남긴 마법서를 찾기 위해서다. 이런 마법서는 마법학회에서 파는 주문보다 강력하고 특수한 것들이 많은 까닭이다. 즉, 상인이 목숨을 걸고 교역하며 점유물을 높이는 것처럼, 마법사들에게는 더 강력한 주문이 담긴 마법서를 찾아내는게 지상 최대의 목표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때때로 이런 마법서의 주문을 익히기 위해서 특수한 마법 재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것. 당연히 강력한 마법 주문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마법 재료는 상당히 고가에 거래되었다. '운이 좋으면 제법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시작부터 느김이 좋은데?' "뱀, 챙겨놔라 " 아크는 별생각없이 명령했다. 그런데 평소와 다름없이 날름 아이템을삼켜버린 뱀이 돌연 이상한 반응을 보엿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축 늘어져 버린 것이다. "어라? 뱀, 왜그래?" 쌕, 쌕쌕쌕.............. 뱀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막 허물ㅇ르 벗으려는 것처럼 뻐끔거리는 입 주위의 비늘이 탄력을 잃고 쭈글쭈글해졌다. 아크가 이해할수없는 현상에 당황하는 사이,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바슘의 열매로 인해 아라모네 유생의 변태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에? 뭐야? 그럼 뱀이 바슘의 열매를 정말 먹어 버렸다는 거야? 아니, 그보다 변태라니? 뱀도 음식으로 성장한다는건가? 그런데 성장이면 성장이지 변태는 또 뭐야? 게다가 변태과정이 시작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때, 다시 새로운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아라모네의 유생에게 새로운 스킬 등록창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스킬 +?????? 아라모네의 유생은 변태 과정을 거쳐 새로운 스킬을 배울수 잇습니다. 어떤 스킬을 어떻게 익히게 할지는 소환자가 스스로 알아내야합니다. 단, 시간제한은 20일입니다. 그안에 변태과정을 끝내지 못하면 변태는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변태 과정중에는 아라모네 유생의 모든 능력이 봉인되어, 임의대로 아이템을 출납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아크는 멍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ㄷ. 뱀에게 스킬이 생기다니?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설마 뱀도 이런 방식으로 성장시킬수 있을줄이야. 그럼 이게 뱀에게 가방 이상의 역활을 기대할수 있는 기회라는 말인가?' 확실히 소환수에게 도움이 되는 스킬이 생긴다면 아이템 한두개 정도 소모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걸 대체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뭐 이벤트 퀘스트동안은 작센 영지에서 지낼테니 20일동안 아이템 출납을 못하는건 큰 문제가 아니지만.......' 문제는 새로운 스킬을 배워햐 변태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20일안에 스킬을 배우지 못하면 변태가 실패한다고 나오는 걸로 봐서 저절로 익혀지는건 아닐터. "대체 어떻게?" 만약 해골이나 데드릭이었다면 전투 기술을 수련시켜 보기라도 할수있다. 그러나 뱀은 전투능력은 고사하고 아예스탯조차 없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어떤 스킬을 익히게 만든단 말인가?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앗다. 그리고 그런짓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헉, 무, 물러가라!크윽!" "시시싯, 인간은 모두 죽인다" 돌연 잔해 뒤쪽에서 누군가 습격받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생각을 접어놓고 발소리를 죽이며 돌아가 보니 부상을 입은 승무원 NPC가 보였다. 비공정에서 봤던 검은 형체의 몬스터 세마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살아남은 승무원이 있었나?'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몬스터를 살펴보았다. 벌거벗은 인간 형상의 검은 몬스터, 얼굴은 달걀귀신처럼 매끈하고 허연 눈동자와 입만 뚫려있었다. 마치 공포영화 홍보 포스터에서나 나올듯한몬스터의 이름은 섀도우, 80 레벨의 몬스터였다. 반면 현재 아크의 레벨은 68.그러나 다크 포그의 영향으로 주위는 어둠이 깔려있었다. 어둠 속이야말로 다크워커를 위한 전장! 어둠 속성 보너스와 어둠의 선물 I로 30%나 능력치를 올렸다. 레벨로 환산하면 무려 20이나 되는 수치, 덕분에 현재 아크의 레벨은 88과 맞먹었다. 이것이 바로 어둠 속성 보너스의 진정한 위력이었다. 초보때는 큰 변화를 느끼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속성 보너스는 레벨이 올라갈수록 효과도 커진다. 레벨 3때는 고작 1밖에 상승되지 않지만 300이라면 무려 100레벨의 상승효과가 있는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아크는 곧바로 '은신'을 사용해 섀도우의 배후로 접근, 뒷덜미에 일격을 날렸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백스텝 효과에 의해 데미지가200%가 가산도비니다. 섀도우는 10초간 스턴에 빠지게됩니다. "해골 ,데드릭, C플랜이다!" "오케이, 간만에 몸좀 풀겠군!" 딱딱딱! C플랜, 해골이 아크와 함꼐 한놈을 집중공격하는 동안 데드릭이 다른 몬스터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작전이다. 많은 적에게 둘러싸였을때 가장 효과적인 전법, 게다가 수많은 전투를 통해 단련된 소환수들의 작전 수행률은 최상이었다. 아크가 블라인드 경매장에 빠져 있는 동안 전투다운 전투를 해보지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했던 해골과 데드릭은 어느때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사실 전투에 목말라 있기는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받아랏!" 퍼퍼펑! 섬광같은 검격에 섀도우의 몸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아크의 장기 ,연속 치명타다. 섀도우는 크게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간만에 시원하게 검을 휘둘러 보니 활기가 샘솟앗다. 아큰느 간만에느껴지는 짜릿한 손맛에 한껏 고무되어 한걸음 더 내디디며 검을 내뻗었다. 그 순간, 돌연 섀도우의 가슴에서 손이 쭉 뻗어 나오는게 아닌가? '뭐, 뭐야? 이게?'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추켜세웠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며 팔이 튕겨나갔다. 다행히 몸에 익은 방버 동작 덕분에 치명타는 피했지만 생명력이 80가량 줄어들었다. 검으로는 공격을 막아 내기보다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역활밖에 할수 없었기 때문, 그러나 문제는 데미지가 아니었다. '뭐야, 이놈들? 팔이 제멋대로 돋아나잖아?' 상상도 못했던 공격 방식. 가슴만이 아니었다. 등이나 엉덩이, 심지어 머리까지 섀도우는 필요할때마다 몸여기저기에서 팔이 뻗어나왔고, 고무처럼 몇미터씩 늘어나기까지 했다. 게다가 놈들도 아크처럼 30%까지는 아니라도, 어둠속성 보너스르 받는것같았다. 하긴 놈들에게도 뭔가 이득이 있으니 다크포그를 사용했겠지만....... '게다가 흙바닥이 썩어있어 미끄럽다' 덕분에 장기인 회피 동작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와!주인,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기세 좋게 나갔던 데드릭도 쭉쭉 뻗어나오는 팔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해골, 박쥐를 도와라, B플랜으로 간다!" 아크는 해골을 데드릭의 보조로 보내고 검을 사려 잡았다. 적이 생각보다 까다롭고, 지형조건도 좋지않다. 최악까지는 아니라 해도 좋다고는 할수없는 상황.그러나 아크의 눈동자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더 반짝거렸다. '앞으로 당분간 이런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이거지? 좋아, 확실히 준비 운동을 해주지' 우두둑거리며 온몸의 관절을 푼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뛰어나갔다. 동시에 태권도로 단련된 아크의 신체능력이 풀가동되지 시작했다. 한번 마음먹으면 지독하다는 말을 듣고야마는 아크! 그동안 아크는 하루 18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서도 단한번도 운동을 쉬지 않았다. 운동이란게 그렇다. 핑계를 대고 하루를 쉬면 이틀을 쉬게 되고, 사흘, 나흘도 쉬게 되는 법이다. 한번 마음먹고 시작했다면 변명을 대서는 안된다. 설사 잠을 못자고, 식사를 거르는 한이잇어도 말이다. 그렇게 흘린땀이 차곡차곡 쌓여야 비로소 원하는 결과를 얻을수 있는것이다. "덤벼라,썩은 계란!" 아크의 검이 섀도우의 급소를 찌르고 들어갔다. 섀도우가 몸을 돌리자 어깨에서 또 다른 팔이 뻗어 나왔다. 예기치 못한 공격,그러나 모든 방향에서의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이미 예기치 못한 공격이라고 할수 없었다. 바닥이 미끄러워 재빨리 회피 동작을 펼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되지 않는다. '이가 없으면 잇몸!' 채챙! 아크는 날아드는 팔을 쳐내며 바닥을 쓸듯이 하단 차기를 날렸다. 무릎을 걷어차인 섀도우가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불과1~2초, 그러나 태권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네번이상 발차기를 날릴수있는 시간이다. 나래차기에 이은 돌려차기가 작열했다. 중형 몬스터가 발차기에 따른 상태 이상에 걸릴 확률은 3%!돌려차기에 턱이 돌아간 섀도우는 혼란에 빠져 사방으로 팔을 뻗어냈다. 오히려 그런 공격이 더막아내기 어려웠다. 사방으로 뻗어나오는 팔에 맞자 적지 않은 데미지가 들어왔다. 그러나 맞고만 있을 아크가 아니었다. 팔이 어깨를 후려치려는 찰나, 몸을 회전시키며 뒤 차기를 먹이자 카운터 어택이 적용되며 섀도우가 쓰러졋다. '좋아, 나쁘지 않아! 새도우의 어둠 속성 보너스는 10~20%정도 밖에 안돼!' 상대가 동 레벨이나 조금 높은수준이라면 승산은 충분하다. 아크는 곧바로 나머지 두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아크는 오히려 미끄러운 바닥을 이용했다. 가속을 붙여 주루룩 미끄러지며 찌르듯 날린 앞 차기가 섀도우의 명치에 틀어박혔다. 놈은 답답한 비명을 터트리며 허리를 꺾었다. 일단 공격을 시작한 아크는인정사정없어싿. 하물며 생긴것부터가 달걀귀신 같은 섀도우라면 말할것도 없엇다.한껏 낮아진 달걀귀신같은 면상에 무릎차기를 먹인다. 튕겨져 올라오는 새도우의 목줄기를 가로지르는 검격! "크윽, 이, 인간놈!" 폭풍처럼 몰아치는 연속 공격에 섀도우의 생명력이 단숨에 50%나 깎여 나갓다. '숨 쉴틈을 주지 않으니 고무 팔을 뻗지 못하는군!' "해골, 데드릭, A플랜이다.최대한 빨리 처리하자!" "알았다. 주인!" 해골의 다리 물어뜯기, 박쥐의 암흑 돌진.이어 아크의 다크 블레이드가 연결되자 정신없이 데미지가 들어갔다. 거기에 소환수 협공 보너스까지 가산되자 섀도우는 금세 남은 생명력이 바닥나며 쓰러졌다. "시싯,강하다!" 두마리가 쓰러지자 남은 섀도우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어딜 도망가!" 데드릭이 콧방귀를 뀌며 암흑 돌진으로섀도우의 뒤통수를 들이 받앗다. 쩍 소리가 났다. 데드릭은 밤톨만한 혹을 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주제에 잘난듯 소리쳤다. "우, 우하하하, 마, 맛이 어떠냐? 이몸이 유게의 귀족 데드릭 님이시다!" 딱딱,딱딱딱! 해골도 한껏 흥분한 듯이 껑충 뛰어오르며 박ㅊ기를 날린다. 레벨 85나 되는 몬스터가 고작 30레벨 수준의 소환수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어 아크가 연속 발차기에이어 치명타를 쏟아 붓자 섀도우는 빈사 상태롤 휘청거렸다. "시시시싯!이, 인간.........나는 쓰러지지만.......결코 네놈들에게 안식의 날은찾아오지........." "아, 듣는 내가 다 쪽팔리다,몬스터답게 그냥 심플하게 꺼져!" 소년 흡혈귀로 변한 데드릭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밟아 대자 섀도우는 억울한 표정으로 사라졌다. 아,인정사정없는 녀석. 처음에는 데드릭도 저렇게까지 삐뚫어진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점점 말투나 행동이 아크를 닮아 가고 잇엇다. 특히 못된 부분만................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더니.............' 조만간 날 잡아야 할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은 군기나 잡을 때가 아니다. "괜찮으십니까?" "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는 승무원은 갑판장 자벨이었다. "혹시 생존한 또다른 승무원도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저는 함장님과 마지막까지 조타실에 남아서......" "함장님은?" 자벨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엇다.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조타실에 있던 제가 목숨을 건졌다면 생존한 다른 승무원이 남아잇을지도 모릅니다. 부탁드립니다. 저와함께 다른 승무원들을 찾아봐 주시지 않겠습니까? 갑판장으로서 생존한 부하가 있다면 두고 갈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투에는 문외한이라.........." 두두둥,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영웅 집결령! *서브 퀘스트 : 실버 애로우 승무원 구조 마법 학회의 비공정, 실버 애로우는 불의의 기습으로 작센 영지에 추락해 버렸습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참혹한 사고였지만 죽음을 각오한 함장과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피해를줄일수 잇었습니다. 그리고 불행 중 다행으로 갑판장 자벨도 살아남았습니다. 조타실에 있던 그가 살아있다면 다른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자벨은 당신에게 생존한승무원의 수색과 구조를 부탁했습니다. 자벨과 함께 승무원을 구조해 작센성까지 무사히 호위해야 합니다. 모두가 외면해버린 이들을 구한다면 명예로운 일이 될것입니다. {난이도 : E}] '서브 퀘스트!'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웅 집결령은 수백 명의 유저가 모여 3일간 진행하는 이벤트 퀘스트다. 당연히 내부적으로도 많은 일이 생길터. 그런 ㅂ수적인 임무를 해결하는 서브퀘스트가 따로 존재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서브 퀘스트가 하나로 연겨로디어 메인 퀘스트의 성패 여부가 결정되는 모양. '서브 퀘스트가 존재한다. 그러핟면 혼자서도 공적을 올릴 방법이 있다는 뜻이야.' 퀘스트 해결읭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이, 어이 ,너무 뻔뻔한거 아니야? 물에 빠진사람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잖아. 부탁을 하려면 뭔가 그럴싸한 보상이라도 주든지. 주인이 물로보여?" 데드릭이 싸가지없이 끼어들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크의 속내를 잘 아는걸까? 그러나 아크는 일단 NPC가 상대라면 겉으로는 정의로운 사나이! 아크는 데드릭의 말을 무시하며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저 녀석의 말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살아있을수 있는 것도 함장님과 승무원들이 목숨을 걸고 노력해 주었기 때문입니다.승무원을 구조한느 건 당연히 제가 해야할일이 죠. 단한사람도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겟습니다. 갑판장님도 저를 도와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서브 퀘스트니 당연히 공적이 보상으로 들어오리라. 그러나 아크가 퀘스트를 발아들인 이면에는 또 다른 꿍꿍이가 숨어 있었다. "아!그리고 이방인의 시체도 꼼꼼히 뒤져 뭔가 발견하면 제게 주십시오. 비록 이미 죽었지만 유품은 친분이 있는 살마을 찾아 전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바로 이것이다. 유저들의 시체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 퍼져 있다. 소환수를 동원한다고 해도 혼자서 찾아 돌아다니면 언제 끝날지 알수 없다 .그러나 자벨과 살아남은 승무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수색작업은 빨리 끝나리라. '퀘스트를 해결하며 아이템도 챙긴다. 이게 꿩먹고 알먹는거지' 아크는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하는 자벨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드디어 NPC까지 무임 노동자로 만들어 부려 먹는 경지에 오른 아크였다. 옆에서 지켜 보던 데드릭이 감탄사를 말했다. "오오, 과연 주인. 야비하다" "시끄러, 항상말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윈윈이야" 30분정도 수색하자 비공정의 잔해에서 승무원10여명을 구조할수 있었다. 물론 느긋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다. 평균 3명을 구출할때마다 서너마리의 섀도우와 전투를 벌어야했다. 그러나 전투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게다가 승무원중에는 전투병과 치료기술을 가진 의무관도 포함되어있었다. 비록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숫자가 늘어나니 섀도우와의 전투도 한결 쉬어졌다. "아크님, 잔해 안쪽에서 이런걸 발견했습니다" "아 .수고하셧습니다. 꼭 아는 분을 찾아 유품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승무원들은 아크의요구대로 유저의 유품도 꼬깃꼬깃 모와 왔다. 아쉽게도 뇌신의 창에 녹아내린 몬스터들은 아이템을 하나도 떨구지 않았다. 그러나 유저가 떨군 아이템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중급 회복 포션 5개, 마법 공구 상자 1개,장비 아이템2개!' "정보창!" [힘의 건틀렛(마법) 방어구 타입 :절제 장갑 방어력 : 50 내구력 : 3/60 무게 : 50 사용 제한 : 레벨 60이상 전사 계열 상업 도시 기란과 방어구 전문 상점에서 판매하는 고급 철제 건틀렛.양산품임에도 이음새는 부드럽고, 방어력이 높아 많은 모험자들에게 사람받는다. 철을 제련할때 오우거의 혈액을 촉매제로 첨가하여 착용자의 힘을 강하게 해주는 추가 효과를 발휘한다. [옵션 :힘 +10}] [노리드 부츠 (마법) 방어구 타입 : 가죽 신발 방어력 : 35 내구력 : 4/40 무게 : 20 사용 제한 : 레벨 65이상 북부 지방에서만 서식하는 전설의 말, 혈영마의 가죽을 누벼 만든 부츠,오래전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방어국 제작의 명가 '노라드'가 만든 명품 방어구 시리즈의 하나이다. 질풍처럼 빠른 혈영마의 힘이 남아있어 착용자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주는 추가 효과를 발휘한다. {옵션 : 이동 속도 +10%,회피율 + 5%}] 둘다 경매장에 내놓으면 60~70만원은 족히 받을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건틀렛은 바로 경매장에 내놓고, 부츠는 당분간 사용하자' 마침 샤크맨의 족쇄 외에는 쓸만한 부츠가 없다. 아크는 곧바로 곡브 공구 상자를 이용해 부츠를 수리한뒤 갈아 신었다 물론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벨에게 한마디 해놓는것도 잊지 않았다. "친분 있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만 쓸 겁니다. 여러분을 무사히 작센 성까지 안내하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필요하니까요. 희생자도 분명 그러기를 원할겁니다" "아, 네....그렇겠죠" 자벨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칼자루를쥐고잇는건 아크다. 또한 살아남은 40명의 유저가 승무원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작센성으로 가버렸다는 말에 화가 났는지. 아크의 행동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자, 이제 주변은 모두 찾아봤으니 작센성으로 가죠" 아크는 시치미를 뗀후, 승무원들을 거느리고 다크포그를 가로질렀다. 비공정 잔해에서 어느정도 떨어지자 몬스터 숫자가 늘어났다. 적게는 섀도우 서너마리에서 많게 는 삼십여마리가 부대를 이루고 잇었다. 게다가 비공정에서 봤던 거대 몬스터가 섞이 부대도 있었다. 섀도우와 비슷한 외모지만 크기는 5배에 달하고 돌 같은 표피를 두르고 잇는 힙톤이라는 몬스터다 .레벨은 무려90!그러나 아크에게는 문제될것이 없었다. '흠, 앞서 출발한 공격대는 고생깨나 했겠네' 30분전에 먼저 출발한 공격대 덕분이다. 아크는 먼저 출발한 공격대가 지나간 길을 따라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수많은 몬스터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매복해있던 몬스터와 공격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흔적이었다. 참으로 고마운일이다. 그들이 죽어라 싸워준 덕분에 아크는 부대 단위의 몬스터와 만나지 않을수 있었으니까. 아크는 그저콧노래를 부르며 시체나 뒤적이면 그만. "뱀, 혹시 주변에 내가 못본 아이템이 있으면 뭐든 집어 삼켜" 공격대는 정신없이 기습을 받았는지 몬스터가 떨군 아이템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나 뱀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을 주워 삼켰다가 이내 괴로운 얼굴로 토해냈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아, 그렇지 .지금 변태 과정이라고 했었지?' 변태 과정에 들어간 뱀은 아이템을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저 아크의 허리에 감겨잇는것만으로도 힘든지 헐떡거린다. 아마도 예기치 않게 변태 과정이 시작돼버린 탓이리라. 항상 애교를 부리던 뱀이 축 늘어져 있으니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뱀, 내가 방법을 찾아볼때까지 유계로 돌아가 잇을래?" 쌕쌕! 그러자 뱀은 세차가 도리질을 하며 허리를 꽉 조이고 머리를비벼 댔다. 하긴 뱀에게 아크는 부모나 다름없다. 몸이 아프니 더욱 떨어지고 싶지 않으리라. "그래, 알았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아라 .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 아크가 안쓰러운 마음에 간병 스킬을 사용하자 뱀은 한결 나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간병 스킬이 먹혀서 다행이군. 어쨌든 뱀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한 이상 9일동안은 이곳에서 나갈수 없어 .하아, 할수없지. 20일이면 현실시간으로 거의 일주일. 다행히 시간에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벤트 퀘스트를 끝내고 차근차근 방법을 찾아보자.'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외에 달리뱀에게 해줄수 잇는게 없었다. 또, 뱀에게 신경 쓰고 있을상황도 아니었다. 주변에는 공격대가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도 남아 있는 몬스터들이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데드릭에게 주변정찰을 시켜놓고 신중하게 이동했다. 그래도 불가피하게 전투를 해야할때가 있었지만, 정찰덕에 상대는 많아야 섀도우 여섯마리를 넘어가지 않앗다. 승무원들의도움을 받으면 섀도웅 여섯마리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저도 돕겠습니다!" "함장님의 복수를 하자!"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원들은 시키지 않아도 단검을 빼들고 나섰다 의무관은 전투주에도 아크가 부상을 당하면 섀도우에게 얻어맞으면서까지 달려와 붕대를 감아주어싿. 의무관의 응급처치로 회복되는 생명력은 얼마되지 않았지만 지속 효과가 있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부상을 입으셨군요.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아크님이 저희를 위해 싸워주시는데 제가 몸을 사릴수는 없죠" 도움을 주면 어떻게든 보답한다. 이러니 NPC를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열댓번을 싸우자 경험치도 쭉쭉올라가싿. 승무원과 함께 싸웠지만 결정적인 데미지는 모두아크가 날려 경험치를 독식했다. 덕분에 경험치가 50%나 올라 레벨이 1올랐다. 앞서 출발한 공격대도 많은 몬스터를 죽였겟지만 경험치를 40명이 나눠 먹었으니 아크만큼 올리지는 못했으리라 '하늘에는어둠!땅에는 경험치와 아이템!그야말로 나를 위한 무대로구나!' 뱀에게는 미안하지만 날아갈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간만의 쾌적한 사냥도 작센성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났다. 성문앞에 도착하자 자벨이 감격한 표정으로 아크의 손을 잡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약 아크님이 아니었다면 저흰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을겁니다. 도와주신은혜는결코 잊지않겠습니다. 비록 저희가 지금은 마음으로 밖에 보답할수없지만,마법 학회에 아크님의 선행을 알려 정당한 평가를 받을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도울수 잇었던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합니다. 물론 굳이 마법학회에 보고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서브 퀘스트 '실버 애로우의 승무원 구조'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생존한 승무원을 무사힌 작센 성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헌신적인 도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마법 학회도 소중한 전문인력을 구조한 당신을 높이 평가 할것입니다. {보상 : 공적 +구조한 승무원 X100,명성 +50,마법 학회에 대한 우호도 +100}] 섀도우를한마리 쓰러뜨렸을 때 받는 공적치는 대략 10이었다. 반면 승무원을 12명 구조해 받은 공적은 1,200.섀도우 백이십 마리를 쓰러뜨린 공적을 보상으로 받은 것이다. 덤으로 유저들이 흘린 아이템까지 얻었다. '첫 출발치고는 나쁘지 않군' 아크는 소환수를 돌려보내고 성문으로 걸어갔다. 이벤트퀘스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여기가 정말 작센 성인가?' 한달 보름 만에 돌아온 작센성은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으로 성벽 여기저기가 허물어져 있었고,안쪽에도 부서진집의 잔해가 보였다. 영주성 역시 공격을 받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주위가 어둠에 뒤덮여 있으니 마치 음산한 폐허를 보는 듯한 기분이어싿. '공격을 받기 시작한지 게임시간으로도 불과 이틀밖에 안지났는데 이정도란 말인가?' 아크는 작센의 실피드 기사단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덙거이있었다. 비록 고대 유적의보스 데브라를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아크가 만나본 가운데 가장 강한 NPC였다. 그런 실피드 기사단이 버티고 있는데도 이틀만에 이렇게 까지 타격을 입었다면 적은 그만큼 많고 강하다는 뜻이리라. '뭐, 3대길드에서 모두 의용군을 보냇다니까 퀘스트야 어떻게든 되겠지만........그보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마법학회의 의용군과 합류해야하나? 아니면.......' 아크는 승무원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성문 근처를 기웃거렸다. 그때, 성문근처를 지나는 한 무리의 유저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뭔가 정보라도 얻을까 싶어 다가가던 아크는 돌연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얼른 뒤로물러나 벽뒤로 몸을 숨겼다. '저녀석이 어떻게...........?' 10여명의 유저들 사이에 파묻혀 걸음을 옮기는 유저. 그는 아크가 알고있는 몇 안되는 유저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안델! 레벨 1시절에 아크를 속여 스탯을 무려 84나 깍이게만들었던 놈!물론 그뒤에 아크에게 걸려 스탯128을잃고 홀라당 벗겨졌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날로 게임을 접고 싶어질 만한 타격이었으리라. 아니, 확실히 게임을 접엇을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저놈이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한거지?' 입고 있는 장비야 돈만 있으면 복수할수 있다고 쳐도, 스탯을 128이나 잃고도 레벨을 60까지 올렸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했다면 카오틱도 벗어났다는 뜻 하긴, 안델은 아크에게 걸려 카오틱의 패널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것인지 깨달았다. 게임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가장 먼저 카오틱을 풀어야 했으리라. '쉽지는 않았을텐데.........그사이에 꽤나 고생한 모양이지?' 그러나 아크의 눈동자에서 일말의 동정심도 느껴지지않았다. 안델의 스탯을 128만 깎고 물러난건, 그를 용서해서가 아니엇다. 언제까지나안델따위에게 시간을 뺏길수 없어서 그쯤에서 멈췄을뿐이다. 그리고 그대로 게임을 접었다면 모를까.계속 게임을 한다면 그는 여전히 적이다. 다음에 다시 눈에 띄면 스탯이 0이 될때까지 죽여 주겠다는 말은 그냥 해본말이 아니다. 만약 다른 곳에서 마주쳤다면 약속대로 스탯을 0으로 만들어 버렷을것이다. '하지만 놈은 이제 카오틱이 아니야' 아크는 분풀이를 하겠다고 이벤트 퀘스트 도중에 카오틱이될만큼 바보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부르마나 다른 동료들도 함께 있으니 섣불리 건드릴수 없다. 아니, 오히려 저놈이 나를 발견하면 무슨 방해를 해올지 몰라. 이벤트 퀘스트 중에는 가급적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낫겠어'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문득 뒤쪽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이보게,혹시 자네가 비공정 승무원들을구조해 왔다는 사람인가?" "네, 그렇습니다 .어? 당신은?" 지레 놀라 고개를 돌린 아크,그의 눈을 동그랗게 변했다. 놀랍게도 병사들을 대동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레이몬드였다. 아들의 병을 치료하기위해 몰래 마정석 골렘을 키우다가 아크에게 걸렸던 작센의 연금술사다. "레이몬드?" "오, 역시 자네로군!승무원들에게 아크라는 이름을 듣고 혹시나 해서 달려왓네" "당신이 어떻게?" "부끄럽네.실은 자네가 떠나고 나서 바로 영주님께 자수했네.하지만 영주님은 내 사정을 듣고 형벌을 내리는 대신 작센에 봉사하며 지낼수 있도록 선처해 주셨지. 그리고 지금은 임시로 의용군을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네. 물론 아직 죄수의 신부이기는 하지만, 자네와 영주님의 배려 덕분에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아들을 보살필수 있게 되었네" "잘됐군요 .다행입니다" 아크가 활짝 웃으며 레이몬드의 손을 맞잡았다. 작센을 떠나며 레이몬드가 마음에 걸렸는데 생각보다 잘풀린 모양이다. 죄를 지은사람은 벌을 받아야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동정의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아들을살리기위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누가돌을 던질수 있단 말인가?적어도 남보다 가족을 더 아끼는 사람이라면 돌을 던질수 없으리라. 물론 레이몬드를 향한 아크의 애정은 그에게 받아 챙긴 레어 비전서 '마법복원'의 영향도 적지 않다. 새삼스럽지만 정말 유용하게 활요와는 스킬 가운데 하나였다. "자네가 그리 말해주니 무거운 짐을 하나덜어 낸것같네, 자네와 한약속을 지키지못한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 "그렇게 생각할 필요없습니다. 죄의 대가를 꼭 고통으로 받아야한다는 법은없으니까요.영주님꼐서도 현명하게 판결하신것 같습니다." "자네와 영주님의 관계는 익히 들어 알고있네, 작센성이 공격을 받은 뒤로도 영주님은 종종 자네 얘기를 꺼냈었지. 아니.이럴게 아니군.영주님이 자네를 보면 반가워하실거야. 의용군 등록수속을 내각 처리해놓을테니 자네는 영주님을 찾아가 보게" "알겠습니다." 아크는 곧바로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영주성으로 향했다. "뭐야, 저사람?" "어떻게 수속도 밟지 않고 영주성으로 직행하는거지?" "명성이 엄청 높은 유저인가?" 성에 도착하자마자 VIP대우를 받으며 이동하는 아크를 보며 유저들이 수군거렸다.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NPC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명성이 엄청나게 높거나 특별한 퀘스트로 친밀도가 한계까지 오른 사람만이 누릴수 있는 혜택인것이다. 물론 아크는 그들의 관심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괜히 안델의 눈에라도 띄면 귀찮아지는 것이다. 어쨌든 영주성에 들어서자 소년 영주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자네.........아크!아크아닌가!" "안녕하셨습니까?" "하하,안녕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소년 영주는 힘없이 웃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어쨌든 와 주었군" "어떻게 작센성이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듣고 안와 볼수 있겠습니까?" "그래, 자네라면 꼭 와 줄 거라고 믿었네" "그런데 상황이 듣던 것보다도 안좋아보입니다." "그렇지" 소년 영주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야. 상황은 심각하네 자네가 지금 도착했다면 기란에서 보낸 비공정을 타고 있었겠군. 맞나?" "네, 도중에 요격당해 위험했지만 어찌어찌 작센성까지 살아올수 있었습니다." "그랬군,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작센을 포기하지 않고 와줘서 고맙네. 친구로서 그리고 작센성의 영주로서 감사를 표하겠네. 또한 의용군에 참가했다가 희생된 전사들에게 진심으로애도를 표하는바이네" 편하다. 아크가 소년영주와 마주 앉아서 처음 느낀 감정은 편안함이었다. 소년 영주의 목소리에서 일말의 가식도 느껴지지않았다. 상대가 고마운 행동을 하면 고맙다고 말하고, 희생된 사람들에게는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지만 그렇게 너무나 당연한 반응을 유저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임이니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없다는 생각이 작용한탓이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가상현실게임을 많이 경험해보지 못해서인지 NPC가 진짜 사람처럼 느껴질때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유저보다 NPC와 대화할때가 더 편했다. 어디로 튈지에측할수 없는 유저와 달리 NPC와의 대화는 순리대로 풀려나간다. 적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영주님의 말씀만으로도 희생자에게는 충분한 위로가 되엇을 겁니다." "내가 할수 잇는건 고작 그런 말뿐이네.어쨌든 비공정의 추락이 현재 작센의 상황을 대변해 주는 일이네. 비공정이 도중에 요격당햇다는 보고를 받고도 구조대를 보내지 못할만큼 상황이 안좋다는 뜻이지. 게다가 기습을 받은건 비공정만이 아니네" "비공정만이 아니라면?" "자네도 알다시피 3대 길드가 모두 나서서 작센으로 의용군을 보내왔네. 3대 길드가 가진 최강의 병기를 대동해서 말이야. 하지만 모두 비공정처럼 도중에 각개격파 당하고 말앗네" 소년 영주는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대군이 작센 영지를 침공한 것은 이틀전, 현실시간으로 16시간 전 저녁무렵의 일이었다. 하늘이 갑자기 다크포그에 휩싸이며 어둠의 군단이 공격해들어왔다. 그리고 채 대처 방법을 논의할새도 없이 엄청난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 공격으로 작센성 인근에서 사냥에 전념하던 이방인들이 많이 희생당했네. 그나마 다행인것은 살아남은 이반인들이성내 병사와 힘을 합쳐 겨우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이지. 그리고 다크포그에 완전히 휩싸이기 전에 마법의 탑에서 급히 기란으로 구조 요청을 보냈네" 그게 아크가 기란에서 봤던 마법연락망이었다. 연락을 받은 3대길드는 발 빠르게 대처방법을 의논, 의용군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상인 길드에서 보낸 의용군이엇다. 상인 길드는 철갑 상선, 프라이즈를 이용해 작센영지를 가로지르는 탄바강을 타고 진입했다 .성과 가까운 지역까지 수로로 이동한 뒤에 단숨에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전재할 계획이어싿. "실패했군요" "그래, 아무래도 몬스터들이마법의 탑에서구조요청을 보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네 .프라이즈는 작센영지읭 경계를 넘어서자마자 매복하고 있던 몬스터들의 집중공격을 받고 침몰해버리고 말았네. 그곳에 타고있던 100여명의 의용군가운데 60여명이 프라이즈와 함께 수장되었고, 오늘 아침에야 겨우 생존한 40여명이 도착했지" 역시 에상대로 퀘스트에 참가한독 모두 작센성에 도착할수 있는게 아니엇다. 각길드마다 시련이 준비되어있었고, 이를 극복한 소수의 유저만이 본격적인 퀘스트에 참가하는 시스템이엇다. 상인길드와 마법학회 는 같은 기란에 있었으니 의용군의 수준도 비슷하다. 때문에 비공정을 타고 온 의용군과 생존자 숫자도 비슷햇다. "그럼 전사길드의 의용군도 기습을 받았겠군요." "음, 그나마 다행히 전사길드의피해는 많지 않앗네. 기습은 받았지만 70여명이 살아서 몇시간 전에 작센 성에 도착했지. 꽤 유명한 전사가 전투를 이끈 덕분이라고 하더군. 홀리나이트아란이라고, 작센성에도 몇번인간 들렸던 사람이지" "아란!" 아크는 찬물을 뒤집어쓴듯 정신이 번쩍들엇다. 아란..........안델과는 또다른의미에서 잊을수없는 이름이다. 아크는 그를 만난 뒤부터 가슴속에 박힌 가시처럼 게임을 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처음으로 아크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한사람. 그리고 레리어트를 빼았겼다는 상실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사람. 또한 아크가 생계형 게이머로 첫발을 내딛게 만들었던 사람이다. '역시 그 사람도 이번 퀘스트에 참가했구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경쟁 상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란이라는 이름을들으니심경이 복잡했다. 언젠가 이런기회가 올거라고 생각했고, 또 둘다 글로벌 엑서스의 응시자인 만큼 피해 갈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아크는 그왕 경쟁할 준비가 되어 있지않다. 아직은.........그래, 아직은 아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아봐야 예전과 같은 좌절감만 느끼게 될 가능성이 컷다. 그에게만큼ㅇ느 지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한만큼 좌절감도 크리라. "게다가 아직도 레리어트가 아란과 함께 있다면......." 무엇보다 레리어트 앞에서 예전같은 창피를 당하고 싶지않다. 아크가 심각한 표정이 되자소년 영주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그를 아는가?" "네, 조금........" "그렇군. 그럼하던얘기를 마저하지. 일단 3대길드에서 보낸 의용군은 레이몬드가 다시 재편성해서 외성을 지키는 수비 병력으로 활요하고 있네. 이들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일은 아란경에게 일임해놓고 있는 상태지" "아란에게 말입니까?" "그는 대성당에서도 인정한 홀리나이트네. 그각 쌓아온 명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지" 유저들이 명성에 집착하는 이유가 이런점 때문이다. 명성이 높으면 굳이 친밀도를 올릴 필요가없다. 명성하나만으로도 어디를 가든 대접을 받고, 멀리서 소문을 들은 NPC가 일부러 찾아와 퀘스트를 의뢰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유명한 길드나 왕실에서 직접칭호를 하사받을 떄도 있었다. 평소에는 있는듯 없는듯하지만, 기사나 상인, 학자 같은 직업에 명성이란, 게임진행에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수치였다. 아크가 선태한 숨겨진 직업, 다크워커의 가장 큰 특성은 어둠 속성 보너스엿다. 반면 아란이 선택한 홀리나이트의 특성은 신앙심과 명성에 주어지는 보너스. 본래 성격이야 어쨌든 게임에서는 신앙심 깊은 성스러운 기사인것이다. 때문에 아란은 남들과 같은 퀘스트를 해도 신앙심과 명성치에 보너스를 받는다. 신앙심은 몬스터를 상대할때 위력을 발휘하고, 명성은 지금처럼 큰 사건이 터졌을 때 우선적을 중책을 맡을 수 있는 권리를 얻을수도 잇다. '시스템상으로 지휘관이 되면 그만큼 경험치나 공적치에도 보너스를 받을거야. 젠장, 그렇다면 이번 퀘스트에서 아란보다 공적순위를 올리기는 힘들다는건가?' 근래에야 알게된 사실이지만, 다크워커라는 어둠의길을 아크는아란과 반대로 같은 퀘스트를 해도 명성치에 패널티가 작용했다. 직업선택에 따른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리라. 그나마 아크가 다른 유저에 비해 명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것은 '간병'으로 기적의 치료를 성공시킨 덕분이다. '이제와서 그런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나는 나대로 다크워커를 키우면 되는거야. 선택한길이 다른만큼 아란이 못하는 일을 내가 해낼수도 있어' "아란 경은 에전에 나섰던 타르샤 미궁의 원정에 두번이나실패해 예전만큼의 명성은아니지만 원정군 가운데는 아직 그를 따라갈자가 없네. 또한 기대만큼 열심히 해주고있지" '그때 타르샤 미궁으로 간다더니 퀘스트를 실패했구나!' 아크는 소년영주로부터 의외의 정보를 얻을수있었다. 그렇다면 아란은 레벨이나 명성을 그리 많이 올려놓지는 못했으리라. 그건 그것대로 좋은 소식이었지만.대신 아란은 이번 퀘스트를 통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필사적일 것이다. 이번 퀘스트만 놓고 본다면 그리 좋은 소식이라고만은 할 수 없었다. "뭐, 아란경의 사정은 그렇다 치고, 자, 이게 현재 아군이 갖춰놓은 방어선이네. 아란경와 의논해 방어선에 의용군을 배치시켜 놓은거지" 소년 영주가 주위를 환기시키고 작센 영지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햇다. 아란은 의용군을 3개의 공격대로 나누었다. 그리고 가장 적의 공격이 거센 정문에 1군을 배치시켜놓았다. 아마도 1군이 아란이 직접 이끄는 공격대이리라. 그리고2군과 3군은 좌우에서 1군을 보조하는 형태로 포진되어있었다. '이런 포진이라면1군과 아란이 가장 공적을 많이 쌓을수밖에없잖아' 그뿐인가? 어느 부대, 어느 유저에게 공적치를 더 줄지 말지를 아란이 기분에 따라 결정할 수도 있다.물론 항상 최고 순위는 자신이차지하겠지. 결국 아란은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명성하나로 최고순위를 차지해버린것이다. '아란........' 퀘스트에 참가하며 최고순위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막상 아예가망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확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물며 그 상대가 아란이라니................ 작센 방어선에는 의용군이외의 민병대라는 부대도 참가하고잇었다. 민병대는 기습 당시 작센성에있던 유저들로 구성된 부대로, 3대길드가 아닌 소년영주의 퀘스트를 받고 참가한 상태였다 .그러나 모두 저레벨이라 예비군 정도로 활용되엇다. "의용군의 배치는 아란경에게 일임하고 있지만 자네는 예외지. 원하는 부대가 있다면 말하게. 아란경과 의논해서 배치해주도록 하지" 아크는 잠시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경험치와 공적을 생각하면 가장 전투가 많은 1군이 최상이다. 그러나 1군의 지휘관은 아란, 설사 제대로 된 보상을 못받게 된다고 해도 아란의 지휘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2군이나 3군도 실질적으로 아란의 지휘를 받기는 마찬가지. 또한 전선에 배치도니다고 해도 공격대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렇다 할 실적을 올리기 힘들다. 게다가 만의하나라도 안델이라 부르마와 마주쳐버리면 상황이 어떻게 꼬일지 장담할수없다. 이래저래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독립적으로 싸우면서 제대로 공적을 올릴수있는 방법은없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소년 영주에게 물었다. "성내 병사들은 어디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까?" "실피드 기사든은 의용군에게 전문방어를 맡겨놓고 적의 보급로를 봉쇄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잇는 상태네. 방어만이 능사는 아니니까, 또한 나아가 적을 무찌르는 게 실피드 기사단의 본연의 임무이기도 하고, 그리고 작센경비대는 후문을 지키고 있지." '그거다!'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작센의 병사들은 NPC다. 그들과 함께 움직인다면 아크각 안델이나 유저들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없다. 또한 보상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유저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보다 경험치와 공적을 쌓을 기회도 많으리라. 아쉽게도 ,시나리오상 기대했던 실피드 기사단과 함께 사냥할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강력한 실피드 기사단이 방어선에 참가하면 퀘스트 난이도의 밸런스에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나 작센 경비대도 아크와 제법 친분이 있는NPC다 . "저는 작센 경비대와 함꼐 후문을 지키고 싶습니다" "자네가?" "네, 아시겠지만 저는 작센의 병사들과 친분이 두텁습니다. 처음보는 이방인들과 섞여있는것보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작센 경비대가 편합니다." "하지만......경비대가 맡은 후문은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네. 쉬지않고 몰아치는 정문보다는 적의 숫자도 공격도 빈도도 낮지만 작센 경비대의 인원은 30명 남짓. 140여명의 의용군이 지키고 있는 정문에 비해 오히려 더 위험하네" "영주님" 아크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소년 영주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제게 작센성은 제2의 고향입니다. 또한 영주님은 저를 친구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 작센성이 위기에 처했는데어떻게 제몸의 안전을 바랄수 있겠습니까? 작센성을 수호하는 일이 위험하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설사 작센성을 지키다가 죽는다 해도 그게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아크, 자네는 정말.......!" 소년 영주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옆에서 듣고 잇던 경비대장 크로스도 덩달아 감동의 도가니에 뛰어들어 허우적 거렸다. "영주님,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대 영주님꼐서 인정한 의로운 이방인 아크가 함께한다면 경비대의 사기도 오를것입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만약 아크가 위험해진다면 제가 몸을 바쳐 지키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좋네, 경비대에 이방인이 참가하는 것은전례가 없는일이지만, 아크는 이미 실피드 기사단과 함께 악마와 싸웟던 적이 있지. 또한 누구보다 작센을 사랑하는 자네라면 그럴권리가 있네,크로스경,아크는 나의 친구다. 잘부탁한다" "알겠습니다" 크로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화술이 5 상승했습니다. 화술이라는 스탯은 결정적일때 꽤나 도움이 된다. '후후후, 이제야 퀘스트 해결의 가닥이 잡혀 가는군' 이로써 아크는 다른 유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투에 참가할수 있게 되었다. ACT 3 작센 수성전 "시시싯, 공격하라!인간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쓸어버려라!" 또다시 한무리의 몬스터들이 후문을 향해 몰려들었다. "적이다.모두 전투준비!" 크로스의 명령에 휴식을취하던 병사들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무수한쇳소리를 올리며 격돌! 확실히 소년영주읭 ㅏㅁㄹ처럼 후문 방어는 쉽지 않았다. 수십마리로 구성된 몬스터 부대는 일정 시간마다 후문을 공격해 들어왔다. 실피드 기사단만큼은 아니라도 경비대 역시 레벨80대 유저정도의 기량을 선보였다. 게다가 장비품도 상당히 좋아서 공격력과 방러력도 꽤 되었다. 혼자서 섀도우 한두마리는 너끈히 상대할 정도,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조합과 전투력, 전략 면에서 실피드 기사단과 경비대의 역량 차이는 컸다. 첫째는 경비대는 유저의 공격대만큼 조합이 좋지 않았다. 전사와 궁수, 마법사와 신관이 고르게 배합된 공격대와 달리 경비대는 전사와 궁수 뿐이었다. 때문에 작전이랄거도 ㅇ벗이적이 나타나면 우르르 몰려가 검을 휘두르는게 전부엿다. 당연히 한번 전투를 치를때마다 생명력 손실이 상당해싿. 두번째 문제는 그렇게 생명력 손실을 많이 입으면서도 신관이 없어 제대로 회복할수 없다는 점이다. 덕분에 전투가 끝난뒤에 응급처치나 음식을 먹으며 생명력을 회복해야했다.그러다 보니 회복도 채 끝나기 전에 뒤이어 나타나는 몬스터 부대와싸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력이 달리니 전투가 오래걸리고 ,전투가 오래걸리니 생명력을 100%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전투를 벌인다.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버린 것이다. 그래도 버티는 것은 오직 경비대 NPC에게 부여된 막강한 장비품덕분이다. '다들 엄청난 방어력과 생명력으로 버티는싸움이군' 그러나 아크는 경비대만큼 방어력과 생명력이 받쳐주지않는다. 그들과 뒤섞여 같은 전법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면 곧 바로 바닥에 누워 버리리라. '경비대를 방패로 삼으면서 약한 몬스터를 정리하는게 좋겠다.' 아크는 후미로 물러나서 생명력이 빠진 서너마리의 섀도우만 상대했다. 그러나 그것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NPC도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올라가고, 공적이 높아지면 더 높은 직위로 승급한다. 당연히 경험치와 공적을 욕심내는 것이다. 다행히 친밀도가 높아서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생명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몬스터를 가로채면 불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경비대와 친밀도가 내려가면 설곳이 없어진다.' 위기르 느낀 아크는 지나친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몇번의 전투를 거치다 보니 대강 타협점이 보이기 시작햇다. 50%이상 생명력이 남아있는 몬스터는 가로채도 병사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것. "어이, 아크. 너무무리하지마" 오히려 가끔 격려까지 해줄 정도였다. '좋아, 이정도는 묵인해 주는구나!이제 눈치볼 필요없어' 상한선이 확실해지자 아크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크의 검이 섬광처럼 어둠을 가로질렀다. 이미 생명력이 반이나 떨어져 있던 섀도우들은 서너발의 치명타만으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크는 정신없이 사방으로 발차기를 날리고, 다크블레이드를 날려 몬스터들을 녹였다. 생명력이나 마나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ㄷ. 빈사 상태에 빠질때까지 전투를 벌리고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 음식을 먹으면 그만, 앞에는 믿음직스러운 경비대가 머티고 있으니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수 있는것이다. 이 역시 유저들과 함께 전투를 한다면 하지 못햇을 행동이었다. 그런식으로 전투를 치르니 새로운 메시지창이 올라왓다. [숙련치가 100이 되어 '불굴의 정신'스킬이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불굴의 정신(중급, 패시브) : 수없이 생사를 오가며 당신의 더욱 굳건한 용기로충만해졌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집중력이 한층 더 강해졌습니다. {위기 시 공격력, 치명타율 40%상승,회복 능력 10%상승}] 불굴의 정신은 아크가 처음으로 배운 스킬이었다. 불굴의 정신은 빈사 상태에서만 발동하는 스킬. 어느정도 강해진 뒤로는 빈사 상태에 빠지는 일이 드물어서 성장이멈춰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혼자 사냥할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스킬을 올리겠다고 일부러 빈사 상태에 빠질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경비대의 백업을 받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불굴의 정신이 드디어 중급이다. 지금이 스킬을 올리 기회야.불굴의 육체도 얼마 안남았으니 이참에 더 많이 빈사 상태에 빠져야겠다. 하지만 기왕 빈사상태가 될거면친밀도도 함께 올리는 편이 좋겠지?' "데드릭,해골. 너희들은 전투에 참가할필요없어. 주변을 돌며 상황을 살피다가 위험에 처한 병사가 있으면 호출해!" "알았다,주인" 아크는 데드릭과 해골을 동원해 전황을 꼼꼼 히 살폈다. 그러다가 간혹 빈사상태에 빠진 병사가 위기에 처하면 한걸음에 달려가 앞을 가로막았다. 마침 섀도우의 진화 버전이 도마뱀을 탄 어벤저라는 몬스터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는 병사가 눈에 들어왔다. "시시싯, 죽어라.인간!" "멈춰라, 크윽!" 장창에 맞자 치명타가 터지며 생명력이 쫙 빨려 나갓다. "아, 아크!" "여기는 제가 맡을테니 피하십시오!" "고, 고맙네" "네놈 상대는 나다!" "시시싯, 남을 대신해 맞아주다니 하찮은 인간들의 기사도인가?" 어벤저가 조롱에 찬 목소리로 지껄이며 달려들었다. "데드릭, 지금이다. 놈의 눈을 가려!" 데드릭이 빠르게 날아와 양 날개롤 어벤터의 얼굴을 덮어버렸다 .이어 아크는해골을 들어 놈의 면상을 향해 집어 던졌다 어벤저가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그순간 아크는 달려드는 도마뱀의 몸을 밟고 뛰어오르며 필살기를 펼쳤다. "다크 블레이드!" 방어력을 무시한 공격에어벤저는상당한 타격을 입고 도마뱀 등에서 굴러 떨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어벤저에게 쏟아지는 발차기와 검격! 물론 불굴 시리즈의 스킬 포인트도 올려야 하니 적당히 맞아 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불굴의 정신과 육체가 발동되면 곧바로 다크 블레이드를 날려 어벤저의 숨통을 끊어놨다. -위기에빠진 동료를구하고 어벤저를 쓰러뜨렸습니다 .공적 +20(+10) '추가공적치!' 병사를 대신해 공격을 맞고 적을 쓰러뜨리니 공적치에 보너스가 부여됫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번 병사들을 구하며 전투를 치르자 병사들은 아크를 보는눈이 달라졌다. 단순한 친근함에서 존경으로....... "고맙네, 자네 덕에 살았어" "역시 아크다. 자네라면 목숨을 바쳐도 좋아!" 기사단원들의 호감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아크의 행동에 제약이 적어졌다. 생명력이 40%정도밖에 남지 않은 몬스터를 가로채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직도 경비대와 친밀도를 더 올릴 여지가 남아있어던 건가?'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거렷다. 그제야 자신이뭘해야 할지 대강 감이 잡혔다. 아크는극 뒤로 휴식시간이 되면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서바이벌 요리를 만들었다. 평범한 음식보다 생명력 회복이 배나 빠르고, 추가 효과까지 부여해 주는 음식! "오오, 이음식을 먹으니왠지 피로가 단숨에 가시는 느낌이 드는군" "왠지 움직임도 편해진것 같아. 100미터를 10초에 달릴수도 있을것 같아" "게다가 맛도 훌륭하잖아" 며칠동안 건량만 먹어대던 병사들이 기운이 샘솟는 얼굴로 말햇다. 게다가능력치도 올라가고 회복 속도도 빠라져서 몰려드는몬스터를 상대하기도 쉬워졌다. 아크가 다음으로 눈을 돌린것은수리였다. 병사들은 공구상자를가지고 잇지만,수리를 하자면 망치로 장비를 두들겨야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아크의마법 복원이라면 한순간! "망가진 장비는 모두 제게 가져오십시오!" 아크는 휴식시간이도면마력을 회복시키는 허브차를마셔대며 병사들의 장비를 빠르게 수리해주었다. 병사들의 장비는 방어력과 공격력이 월등하지만 모두 일반 장비였다. 덕분에 내구도의 패널티없이 장비를 수리하자 병사들이 반색했다. "고맙네, 정말 이렇게 빨리 수리가 끝나다니.이제 전투가 한결 쉬워지겠군" "이건 보답이네.장네 덕분에 여유가 많이 생겼으니 받아두게" 일정 횟수 이상 수리를 하면 크로스가 여분읭 공구 상자를건네주기도 했다. 비록 일반형이지만 하나에 10골드짜리 공구상자! 그뿐인가 ? 스킬은 스킬대로올라가고 음식이나 수리도 일단 전투에 공헌하는것이니 공적치도 추가 되었다. 동시에 친밀도도 쑥쑥 올라가 빈사상태에 빠진 몬스터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려도, 심지어 다른 병사가쓰러뜨린 몬스터의 아이템을 집어먹어도 불평하지 않았다. 한번 물꼬가 트이니거칠것 없는 상황이 진행되엇다.그렇게 무모하리만치 빈사상태에 빠지는 전투를 반복하자 곧 불굴이 육체도 중급이 되었다. 애초에 불굴의 정신과 육체의 스킬 포인트는 7밖에 남지 않았으니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것 [불굴의 육체(중급, 패시브) : 위대한 전사가 그렇듯, 수많은 상처와 고통은 당신의 육체를 더욱강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더욱 높아진 방어력은 어려운상황에서 빛을 발합니다. {위기시 방어력, 치명타 회피율 40%상승,횝고 능력10%상승} *불굴의 정신과 육체의 세트 효과로 '아드레날린'을익혔습니다. 아드레날린 :진정한 전사는 위기의 상황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습니다.오히려 강렬한 흥분제의 일종ㅇ니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공포심과 피로를잊게 만든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위기에 처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신체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수 있게 됏습니다. {위기시 공포에 대한 면역 +50%,반응 속도 + 20%}] '드디어불굴 시리즈 스킬을 모두 중급으로 올렸다!' 목표를 하나로 정해놓고 집중적을 공략하니슼리의 성장도 빨랐다. 아드레날린의 효과는 굉장했다. 일단 빈사상태에 빠지면 모든 감각이 활성화되어 적이 슬로우에 걸린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그만큼 적의 공격을 피하기가 쉬워지는건 당연한일. 또한 공격 속도도 증가해서 다섯번공격할 시간에 여섯번의 공격이가능해졌다.거기에 불굴의시리즈 효과가 가산되니빈사상태에 빠지면 전투력이급상승하는 효과가 발휘되었다. 그렇게 대략 서너시간을 싸우자 경비대와 홓브도 맞출수 있었다. "모두들 힘을 내십시오! 작센성을 지킬수 있는것은 우리뿐입니다!" "우오오오!" 중간 중간 사용하는 간병스킬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세가 오른 병사들은 더욱 강력하게 몬스터들을 밀어붙였다. 아크는사냥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가끔씩 전투 도중에 빠져나와레이몬드에게 서브 퀘스트를 받았다. 의용군을 관리하는 레이몬드는 자잘한 퀘스트를의뢰했다. "자네가 새도우를 오십마리 정도 쓰러뜨려 준다면 성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걸세" "어벤저는 섀도우를이끄는소대장이네..놈들을 쓰러뜨리면 명령 체계를 흔들수 있을거야" "힙톤을 본적이 있겠지? 해머나 철궁을 들고잇는 거대한 몬스터지. 서너마리의 힙톤이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진군해오고 있다네. 성벽이 무너지면 큰일이야 .부디 막아주게" 이런 간단한 내용의 서브 퀘스트엿다. 퀘스트를 완료하면 경험치와 공적 그리고 작전 수행평가라는 수치가 올라갔다. 처음에는 작전 수행 평가라는 수치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지만퀘스트를 열번정도하니 대강 감이 잡혓다. 작전수행평가 수치가 높을수록 더 어려운 퀘스트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유저들은 퀘스트가 있다는걸 알면서도 잘 받지 않는다. 일단 보상으로 주어지는 경험치나 공적이 적었고, 공격대에서 혼자만 퀘스트를 받겟다고 성문까지 왔다갔다 하기가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기때문이다. 반면 경비대는 NPC,퀘스트를 수행하는 아크에게 상당히호의적이었다.때로는 일부러위험을 감수하며 아크가 퀘스트를완료할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아크는 한결 수월하게 퀘스트를 완료하며 추가 경험치와 공적을 쌓아갔다. '일단 혼자서 공적치를 올린다는 패널티는사라졌다. 아니, 오히려 왠만한 공격대보다 백배 는 나아. 무엇보다 NPC는 전적으로 신뢰할수 잇으니까' 그렇게 아크는 경비대와 합류한지 5시간만에 렙레이 2나올라갔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100 명성 :750 레벨 : 71 직업 : 다크어커 칭호 : 캣나이트, 영혼의 간병인 생명력 : 1,415 마나 : 1,125(+100) 영력 : 100 힘 178 민첩 218(+17) 체력 268 지혜 27 지능 216 운 43 특수 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 :63 유연성 : 17 화술 : 23 애정 :23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민첩 +2,냉기저항 +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울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노라드 부츠 : 이동속도 +10%,회피율 +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능력을 끌어 낼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비대와의사냥은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걸려버렸다.6시간이 지나자 경비대장 크로스가 피로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이쯤에서 귀환해야겠네" "네? 그게 무슨?" "한동안 몰려왔으니 몬스터도 한동안 잠잠할거야. 게다가 병사들도모두 지쳐있네. 제대로 휴식을 취해 두지 않으면 내일 전투를 버텨낼수가 없어" 바로 피로도의 문제였다. NPC와유저는 시간 개념이 다르다. 유저에게는 꼬박 하루라도 현실시간으로 따미녀 8시간. 조금 무리하면 몇날밤을 지새우며 전투를 벌일수 있었다. 때문에 유저들은모스터읭 공벽 공격 이 뜸해지면 일부러 찾아다니며 사냥하고 잇었다. 그러나 유저의 6시간은 PC에게 18시간이다. 게다가 유저들과 달리 NPC는 부상을 입거나 피로르 느끼는 것도 현실처럼 받아들인다.음식이나 포션을 생명력을 회복한다고 해도 피로까지 사라지는것은 아닌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충분한 휴식을 취할수는 없지만 이제 적의 공세도한풀 꺾였으니 내일 새벽까지는 쉴수있을거네. 자네도 꽤나 무리했으니 잠시 눈이라도 붙여두게" "................알겠습니다" 모처럼 상승하는 기세에 찬물을 들이붓는듯한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병사들에게 그 이상의 강행군을 강요할수는없었다. '결국 6시간 될때마다 2시간은 혼자 싸워야 한다는 뜻이군' 그러나 성벽을 공격해 오는 몬스터는 부대 단위다. 아크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대였다. 그렇다고 2시간만 공격대에 끼워달라고 부탁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쩌지? 6시간마다 2시간씩 놀면 하루 6시간동안 아무것도 못하는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철야로 쉬지도 않고 사냥할테니 격차는 더 벌어질텐데...........' 일단 재정비를 위해 경비대와 하꼐 귀환한 아크가 한숨을 불어냈다. '게다가 설마 뱀이 아이템을 못먹는게 이렇게 치명적으로 작용할줄이야' 작센성에서 싸우니 아이템을 먹는 족족 처분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잇었다. 바로 작센성이 공격을 받으니 모든 NPC상점이 문을 닫아버린것. 필요한 물건은 성내의 보급장교를통해구입할수 있었지만, 잡템의 매각은 불가능했다. 이벤트 퀘스트는 이제 막 시작됐다. 그런데 벌써 아크의 가방은 80%나 차있었다. 앞으로 언제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모르니 이제 겹쳐지는 아이템이 아닌이상 무턱대고 집어먹을수도 없게 된것이다. '내가 눈앞의 아이템을 두고도먹지 못하는 처지가 될줄이야......... 수십 쿠퍼,잘해야 몇 실버짜리 잡템이지만 푼돈이 모여 목돈이 되는법이다. 바닥에 떨어진 임자 없는돈을보고도 먹을수 없으니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쌕.쌕......... 변태 과정에 들어간 뱀은 점차 약해져 일정 시간마다 배속의 아이템을 하나씩 토해냈다. 뱀이 보고나하고있던 아이템은 모두 쓸만한 것들이라 경우에 따라서는 챙겨뒀던 아이템을 버리고 뱀이 토해낸것들을 주워 담아야 할때도 잇엇다. 그럴때면 정말 살점을 뜯어내 버리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실수로 바슘의 열매를 먹였으니 뱀에게 뭐라고 할수도 없고..........' 힘겨운 얼굴로 또 하나의 아이템을 토해내는 뱀을 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뱀이 일정시간마다 아이템을 토해 내는걸 알아 버렸으니 이제 소환 취소도 할수 없었다. 유계에서 귀한 아이템을 몽땅 토해버리면 되찾을 방법조차 없는 것이다. 그나마 간간이 간병 스킬을 사용하면 뱀이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아 토해내는일이 적어진다는걸 알아낸 것만도 다행이엇다. 물론 그 사이 아크도 뱀의 변태과정을 끝낼수 있는방법을 여러모로 궁리해보았다. 그러나 아직 딱히 이렇다 할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마법 재료의 지식이 풍부한 연금술사 레이몬드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역시 고개를저었다. "바슘의 열매에 대해서는 나도 대강은 들어 알고 있네. 하지만 바슘의 열매는 특수한 방법으로 가공해 마법시약이나 촉매로사용하는 것이네. 그걸 생물이 직접 먹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으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군.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네" "아닙니다" 이렇게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아크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떄, 레이몬드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아크, 잠시 괜찮겠나?" "무슨일입니까?" "실은..........자네가 왔다고 말하니 이 녀석이 꼭 보고싶다고 해서 말이네" 레이몬드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문가에서 얼쩡대는 소년을 가리켰다. 어딘지낯이 익은 얼굴이다. 아크가 시선을 모으자 레이몬드가 설명했다. "자네가 살려준 내 아들 녀석이네.그러고 보니 아직 일므도 알려주지 못했군. 톰이네" "아!" 아크는 그제야 소년을 기억해냈다. 병석에 누워있던 바로 레이몬드의 아들. 그때는 핼쑥한 얼굴이었지만 이제 완전히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NPC에게는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크 형이죠? 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크형이 없었다면 저는 죽었을 거라고, 평생 아크형의 이름을 잊으면 안된다고 하셨어요. 물론 절대 잊지 않을 거에요. 아크형은 제 생명의 은인인걸요" 지쳐있던 아크의 입가에 풋풋한 미소가 번졌다. 그저 NPC의 의례적인 반응이라는걸 알고있었지만, 자신덕에 건강해진 소년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사실 아크는 그동안 간혹 뉴스에서 나오는 미담, 이름을 숨기고 기부를 했다거나, 평생다른사람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사라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이해할수가 없었다. 대체 뭐하러 뼈빠지게 고생해서 번돈을 남에게 준단말인가? 그러나 막상톰의 눈망울을 접하니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을것도 같았다. 물론 그것도 게임이니까 느끼는 감정,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네 아버지가 더 훌륭하지" "헤헤헤,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아버지만큼 형도 대단한 사람이에요" 톰이 코끝을 문지르며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크의 어깨에서 데드릭이 수군거렸다. "아직 주인의 실체를 모르는군, 불쌍한 녀석. 하긴 모를때가 좋지" 아크가 데드릭을 쨰리는사이, 톰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크형, 형은 다친사람을 도와주죠?" "가능하다면 돕고 싶지" "그럼 제 친구와 아저씨들도 도와주실수 있어요?" "이 녀석,그런말이 어디있냐? 아크는 작센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방금 전에야 돌아온 사람이야. 쉬도록 도와주는게 우리가 할일이지 않느냐?" "그치만......." 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레이몬드, 이게 무슨말입니까?" "아니, 그게 실은.......다크 포그가 작센을 뒤덮은 뒤로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ㅁ낳아졌네. 더구나 영지전체에서 피난민이 모린 상태라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 의용군중 몇몇 신관에게 부탁했지만 시간을 내줄수 없다고.......아니, 그들은 작센 성을 지키기 위해 온 사람들이니 불평할 일은 아니겠지" 신관들은 공격대의 핵심 전력이니 당연히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으리라. 잠시 고민하던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내하십시오.큰 도움은 못되겠지만모른척할 수는 없군요" "하지만 자네는 방금전에 전투에서 돌아왔지 않은가?" "저는 단련이 돼서 며칠정도는안자도 상관없습니다." 아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3시간은 혼자서 사냥을 나가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차라리 주민들과 친밀도나 올려놓는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 말이 맞죠? 아크형이라면 도와줄 거라고 했잖아요!" "하아, 이녀석이 괜한 소리를 하는바람에 자네에게 폐를 끼치게 됐군" 레이몬드는 미안한 얼굴로 아크를 난민의 임시 병사로 안내했다. 들었던 대로 병사에는 병색이 완연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족들은 그저 괴로워하는 부모를, 혹은 자식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익숙해질만도 하건만 여전히 이런 장면에는 마음이 씁쓸했다. 그저가상현실일 뿐이라는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가상의 이야기라도 슬픈 내용을 보면 눈물이 나는게 인지 상정. 더구나 영화보다 더 현실처럼 느껴지는 뉴월드에서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빠, 아빠........일어나 봐요,흑흑흑" "콜록콜록, 엄마. 머리가 아파요" "얘야 ,힘내거라 곧괜찮아질거다" "오오,어째서 이렇게 착한 아이가.......신이시여, 제발이 아이를........" 정신을 잃은 부모를 흔들어 꺠우는 아이.창백한 아이의손을 잡고 기도하는 부모.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치 그 모습이 얼마전의 자신을 보는것 같았다. 병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얼마나 울었던가? 얼마나 기도했던가? 혹시라도 어머니마저 잃을 까봐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던가? 아크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어둔 병실에서 읽고 또 읽었던 성경 구절을 모두 암송할수 있다. 지푸라기라도잡는 심저응로 할수있는건 모두했다. 차리리 신이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바치라고 말해주기는바라고 또 바랐다. 그 간절함.........지금 이들도 당시의 자신과 같은 심정이리라. 회상에 잠긴 아크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NPC가 아니다 .이들은 그저 생명일 뿐이다' 아크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NPC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다. 게임 때문에 울다니? 한두살 먹은 어린애나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월드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NPC를 만나온 아크는 이제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생명의 정의가 스스로 생각할수 있는 능력이라면 이들도 생명이다. 비록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이라도 자아를 가졌다면 이미 생명과 다른점이 없다. 이들을 동정하는게 대체 뭐가 부끄러운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슬픈 영화를 보면서도 낄낄 대는 메마른 감정의 소유자다.슬픈것을 슬프게 받아들이는것. 인간이 인간다울수 있는 이유가 아닌가? "할아버지.........흑흑흑" "얘야. 잠깐 비켜봐라" 아크는 훌쩍이는 아이옆에 앉아 헐떡이는노인의 손을 잡았다. "두려움을 떨쳐내고 기운을 내십시오 .당신은 병자이기 이전에 이 아이의 할아버지고, 이웃주민들의 훌륭한 친구입니다. 당신은 물론 힘들겠지만 그고통이 결코 혼자만의 아픔은 아닐겁니다. 여기서 울고있는 손자도, 옆자리에서 신음하는 친구도, 모두 당신 이상의 고통을 겪으며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 보답하십시오. 마음껏 그들을 의지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 고통과 싸우십시오.이것은 그저시련일뿐, 이겨낼수 업는 운명은 아닙니다. 손자의 눈물이, 친구들의 진심어린 걱정이 당신의 무기가 되어줄것입니다" 오래전 어머니의 병상에서 하고싶었던 말. 그말은 그대로 간병 스킬에 적용되어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빛이 강해지자 이내 병사를 채우고 있던 어둠의 기운이약해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당장 숨이 넘어갈듯 헐떡거리던 병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숨소리는 평온해지고, 병사에 들끊던 기침소리도 멎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진심으로 병자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습니다. 병자들이 원하는 것은 당장고통을 씻어 줄수 있는 약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이해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처를닦아줄수 있는 따뜻한 손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외면한 가난한 난민들은 병보다 더 괴로운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을 향한 당신의 진심어린 한마디는 그 어떤 약보다 훌륭한 치료제가 될것입니다. 다크 포그가 사라지지 않는한, 난민들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진심어린 목소리는 이들에게 병마와 싸울 용기를 주었습니다. 난민들은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다크 포그가 사라질때까지 버텨낼것입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성공해 칭호가 '모두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엇습니다.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됏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추가로 공적치로 2,000이나 주어졌다. 전투에 직접적인영향은 없지만주민들을 구해내 받은 공적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보상은 바로 병자들의 얼굴에 돌아온 미소엿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그랬잖아!아크형이라면 도와줄거라고 했잖아!" 톰은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때였다,갑자기 입구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며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크? 아크라고?" 고개를 돌려보니하얀로브를 입은 여자가 멍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톰이 그녈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 여기 일을 도와주는 누나예요. 로코라고........." "그러고 보니 너도 게임 시작했다고 했었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네" "헤헤, 벌써 레벨 25라고요" 정혜선, 로코가 으스대며 대답했다. 그녀는얼마전에야 하룬마을을 나와 작센성에 도착했다. 그리고 작센에 도착해서야 전직이라는게 있다는걸 알았다고 한다. 그녀가 선택한 직업은 음유시인, 약간의 회복능력과 보조스킬을 사용할수 있는 직업이다. "하필이면........." 아크가 혀를 찼다. 수많은 유저를 만나 봤지만 앚기 음유시인은 본적이 없엇다. 음유시인은 회복과 보조능력이 있지만 신관 계열의 직업보다 효율이 떨어진다. 또한 신관은 나름대로 전투 능력도 갖추고 있어다. 덕분에 솔로잉도 별무리없이 소화해 내지만, 음유시인은 전투 능력이 상인처럼 낮았다. 음유시인이 신관보다 나은점은 음악을 사용하는 직업이라 대부분의 스킬이 광범위하다는것, 그러나솔로잉이 어렵다는게 큰 패널티로 작용해 유저들의 외면을 받는 직업이다. 때문에 실수로 전직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취소하고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 취소는 초기 직업에 한하여 전직 관련 NPC에게 200골드의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만한 벌금을 물면서라도 취소하고 싶은 직업이라는 뜻. 그러나 로코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직업이 마음에 들어요. 원래음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현실에서는 비싸서 만져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하프나 피아노, 플룻 같은 악기를 마음대로 다뤄 볼수 있잖아요. 게다가 여기서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세 배울수도 있어요. 그리고..........." 어차피 그녀는 홀로 게임을 하려고 뉴월드를 시작한게 아니다. 아크와 만나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게임이라 망설임 없이음유시인을 택한것이다. 그러나 차마마 현실의 현우와 똑같은 아크앞에서 그런말을 할수는 없었다. "네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 "노래방도 같이 가본적이 없잖아요" "하긴 그렇지. 그래도 마음에 드는 직업을 찾았다니 다행이다" "네, 뉴월드를 시작하기를잘했어요" 로코가 배시시 웃자 데드릭이 수상쩍은 눈으로 바라보며 속닥거렸다. "누구냐, 주인. 여자친구냐? 그런거냐?" "까불래?" 아크가 노려보자 로코가 눈동자를 반짝이며물었다.. "어멋? 그 박쥐, 장식품이 아니었어요? 말도해요?" "박쥐 아니다. 유계의 귀족 데드릭님이시다!" "꺄하하하, 귀족이래 .귀엽다!" 데드릭이 가슴을펴고 당당하게 말하자 로코가 와락 쥐고 흔들어댔다. 그리고 곧 옆에서 데굴거리는 해골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예전처럼 쥐만 봐도 기겁하던 로코가 아니었다. 실제와 같은 가상현실 게임이 사람을 통쨰로 바꿔놓은것이다. "에잇, 놓지못할까? 어딜감히..........." 로코가 쥐고 흔들어 대자 참다못한 데드릭이 사람으로 변신하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그건 로코의 관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귀여운 소년모습으로 변하자 로코는 아예 얼싸안고 깔깔 거렸다. "어머, 변신도 하네.눈매가 사나운게 내 동생 어렸을떄를 보는거 같아. 호호호, 오빠는 좋겠다. 이런것도 데리고 다니고" "뭐야 ? 이, 이런거?" "아유, 귀여워. 얘, 너 몇살이니?" "........삼백살이다" "호호호, 대답하는것도 귀엽네. 이리와봐, 누나가 밀빵 줄게" "까불래?" "아이, 그러지 말고 누나하고 놀자. 해골도 이리와" "주, 주인! 이 계집애좀 어떻게 해봐!" 로코가 볼을 비벼대자 데드릭은 창백한 얼굴로 구조를 요청했다.그러나 요즘 데드릭의 건방진 태도에 내심벼르고 있던 아크는데드릭을 싹 무시하며 로코에게 물었다. "그런데 용케도 아직 버티고 있네. 여기서 버티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아, 그렇지!" 로코가 그제야 생각난듯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오빠에게 소개해줄사람이 있어요" "소개?" "네, 하룬마을에서부터 절 도와주신 분이에요. 지금은 잠깐 볼일이 있다고 나갔는데, 곧 들어올거에요.아마 오빠도 보면 반가워할걸요" 로코가 아크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된 이후로 작센 영지의 유저는 게임 종료가 불가능해졌다.즉,죽기 전에는이벤트 퀘스트가 끝날때까지 도망갈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간혹 유저가 유니트에서 나가면 캐릭터는 잠을 자는듯한 형태로 게임에 남아있게 된다.로코가소개한 사람도 아직 유니트에 돌아오지 않은건지 건물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있었다. "혹시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글쎼.......뉴 월드에 아는 사람이 없는데..........." 아크는 심드렁한눈길로 캐릭터를 살펴보았다. 덩치 큰 남자 캐릭터였다. 갑옷조차 걸치지 않은 몸은 우락부락한 근육질. 무기인지 뭔지 손에는 MMA경기에서나 볼수있는 격투기 용 장갑을 끼고 있었고, 손목과 팔꿈치 어깨에 가죽 밴드를 두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치 미국 프로 레슬러 같은 분위기였다. '나를 안다고? 뉴월드에서 이런 사람은 본적이 없는데?' "에엑? 에에에엑?"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크의 입에서 갑자기 괴상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각진 사각형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 확실히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그것도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그때, 캐릭터가 부르르 떨리더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는 멍한 눈길로 로코와 아크를 둘러보더니 대강 상황을 알아챈듯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현우구나! 이거 게임안에서 만나니 굉장히 반갑네. 잘지냈냐?" "궈, 권형사님?" "뭘그렇게 놀라냐? 네가 게임 해보라고 했잖아. 막상 해보니 꽤나 마음에 들더구나. 덕분에 요즘은 게임 하느라 며칠째 잠도 못잤어. 뭐, 그래도 병원은 다니지만. 형사짓하면서 밤새우는건 이골이 났거든. 아, 어꺠걸려" 권화랑.아니, 정의남은 팔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정의남의 레벨은 벌써 40이었다. "아, 정말 파란만장한 한달이었지" 정의남은 초연한 눈빛으로 먼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실권화랑은 처음 게임에 접속했을떄 레벨 업이 그리 빠른편은 아니었다. 시작하면서부터 무식하게 늑대를 떄려잡았으니 당연히 경험치는 많았다. 그러나 남을 돕다 보니 경험치를 100%먹을수가없었고, 떄떄로 죽기까지 하니 갈수록 레벨업이 느려졌다. 게다가 권화랑은 전투엔 무식할정도로 강했지만정작 게임에는 초보였다. 물론 막강한 실력이 있으니 들개와 늑대만을 상대할 떄는 그점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그럭저럭 레벨 20을 달성하자 들개와 늑대로는 더이상 경험치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조금 멀리 나가자 도무지 뭐가뭔지 알수업는 문제들이 생겼다. 초보 마을은 문자 그대로 초보 마을. 게임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갈수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초보 마을을 벗어나니 상황이 일변했다. 특히 권화랑을 괴롭혔던건 상태 이상을 거는 몬스터. 저레벨 지역이니강력한 상태 이상을 거는 몬스터는 없었지만, '출혈'이나 '약화'에만걸려도 권화랑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 일쑤였다. 원래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은 민첩, 지능, 운이 영향을 준다. 그러나 스탯분배에 대한 지식도 없어 무작정 힘과 체력에만 쏟아 부었으니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은 바닥, 공격을 받으면 십중팔구 상태 이상에 걸려버렸다. 보통 유저라면 그쯤에서 뭔가 대책을 구했을것이다. 그러나 권화랑은 그야말로 투지 빼면 시체, 상황이 어려울수록 더욱 의욕을 불태우며 달려드니 죽기를 밥먹듯이 하게되었다. 덕분에 스탯이 깎여 나가고 그나마입고있던 허접스러운 장비까지 떨구니 당연히 전투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그뿐인가? 마흔이 넘은 주제에 경제 관념도 없어서 장비는 커녕 수리비도 없어 장비를 깨먹고, 심지어 밀빵하나 못사먹을 떄도 있었다. 물론 도움을 받는 유저들이간간이 챙겨주기도 했지만, 뉴월드는 그것만으로 살아갈수 있을만큼 만만한 세계가 아닌것이다. "젠장, 게임주제에 뭐가 이렇게 복잡한거야?" 또다시 허약하기 짝이 없이 보이는 몬스터들에게 몰매를 맞아죽은 권화랑은 담배한갑을 피워대며 머릴 벅벅 긁어댔다.상황이 이쯤되니 무턱대로 싸움만 해서는 캐릭터를 제대로 키울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없었다. 권화랑은 담배를 비벼 끄며 슬쩍 책상을 바라보았다. 유니트를 살때 딸려온 뉴월드의 설명서다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본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않는다. 하물며 발음하기도 생소한 게임 용어로 가득한 내용이 거의책한권분량. 그 무지막지한 두께의 설명서를 보니 감히 집어들 엄두도 나지 않는다. "미치겠군. 한창 게임이 재미있어지는 중인데. 이게 뭐야? 그렇다고 정신없는 현우를붙잡고 도와달라고 할수도 없고..........." 그때 권화랑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보니 게임에 미친놈들이꽤 있잖아? 그놈들을 끌어들이면........." 권화랑은 곧바로 일어나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댔다. 그리고 잠시후, 10명의 사내들이 그의 집에 모였다.제법 이름을 날리는소매치기, 밀수꾼, 해결사, 폭력범, 기타등등의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있는 이들은 바로보호관찰사로전직한 권화랑이 관리하는 이른바 전과를 가진 건달들이었다. 권화랑은 그들을 호출해 놓고 씨익 웃으며 물었다. "어이, 여기서 게임에 자신있다 싶은 사람있으면 손들어" 10명이 모두 손을 들었다. "좋아, 그럼 문제없겠군. 이제부터 너흳르은 내 코치다" "네?코치요?" "그래, 앞으로 1명씩 번갈아 가면서 내집에찾아와 나를 코치하도록" "무슨 게임을 하시는데요?" "뉴월드다" "뉴월드는 저희도 아직 못해봤는데.........." 전과자들이 자신없는 얼굴로 머리를긁적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어지는권화랑의 질문을 받고 어처구니 업다는 표정을 지었다. 권화랑은 MMORPG,아니, 애초에 게임의 기초상식조차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싸우면 레벨이 오른다. 레벨이 오르면 강해진다. 그러니 더 강한적과 싸우면 된다. 권화랑이 뉴월드에 대해 알고있는건 그게 전부였다. "액티브 스킬이 뭐냐고요? 지금 그걸 질문이라고 하세요?" "아직 포션이 뭔지도 모르고있었다는 겁니까?" "대체 갑옷은 왜 벗고다니는겁니까?" "거치적거려서 벗었다고요? 대체 그럼 다른 사람들이 왜 무거운 강철 갑옷을 못입어서 안달한다고생각하시는겁니까?" "왜 무턱대고 달려들어서 죽는데요? 네? 임전무퇴? 장난하십니까?" "대체 어떻게 20레벨까지 키운겁니까?" "아, 젠장. 답답해서 도저히 못참겠다. 야, 유니트 주문해!" 결국 답답함에 머리를 쥐어뜯던 건달들은 아예 유니트를 들고와 함꼐 게임을 시작하게 됬다.그렇게 전직 형사를 따라 10명의 전과자도 게임 페인의 길을 걷겍 된것이다. 그들의 캐릭터 명은 1401호부터 1410호까지. 보호관찰 관리 번호였다. 게임에 빠삭한 이들의 가세로 권화랑은 뉴월드의시스템을 하나하나 익혀 나갔다. 그러나역시 열혈 형사. 권화랑의 기본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저쪽이다!저쪽에서 도움을요청하고 있다!가자!" "에에? 또요? 대체 뭐가 이득이라고 일부러 도와주러 가야하는데요?" "시작이 어쨌든 이건 너희들의 사회 적응 훈련 프로그램중 하나다.따로 시간 낼 필요없이 여기서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그게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채감하는거야, 알겠나?" "그런건 몰라도 되는데요" "시끄러!맞고갈래? 그냥갈래?" 권화랑은 그들을 윽박지르며 질질 끌고갔다. 그 모습에 하룬마을의 유저들이 수군거렷다. "저거봐 ,마초맨이 동료를 늘였어!" 그렇게 전직 형사와 전과자 파티는 초보마을의 새로운 이슈로떠오르게 되었다. 이것이 게임에 문외한이었던 권화랑이 한달만에 40레벨을 달성할수 있었던 이유였다. 하긴, 10명이나 되는 유저가 백업을 해주니 레벨업이 빠를수밖에 없었다. 정의남과 로코가 만난건 하룬 마을이었다. 정의남이 로코를 몇번 구해준뒤로 접속하면 항상 같이 다녔단다. 전투에 전혀 재능이 없던 로코가 25레벨까지 올릴수 있었던건 그 덕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서로 아크를 알고 있다는것을 알게되었고, 그게 인연이 되어 작센까지 함꼐 오게 되었다. 그리고 작센 성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어 엉겁결에 민병대로 참가한것이다. "그럼 전직은 뭐로 하셨어요?" "전직은 아직 안했다. 대충 둘러봤는데 나하고 맞는 직업이 없어서 말이야" "40레벨까지 전직도 안하셨다고요?" "안해도 별로 상관없던데? 그리고 지금은 성안이 어수선해서 하고싶어도 못해" 정의남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크는 잠시 정의남과 로코를 바라보았다. 아직 뉴월드의 물정에어두운초보자인 정의남과 로코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또한 한사람은 은인 같은 권화랑이고 , 다른사람은 여동생처럼 생각하는 정혜선이다. 정말 순수하게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이다. 비록전과자들이 있다지만그들은 아직 레벨 20전후였다. 게다가 이벤트 퀘스트에 휘말려 8명이 죽고 지금은 1401호와 1405호. 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정의남아저씨나 로코라면 어디를 가도 박대당하겠지..그렇다면.............'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둘을 경비대에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경비대에서 올려놓은 친밀도와 영주와의 고나계를 이용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듯 싶다. '아저씨, 로코하고 저와 함꼐 공적치를 올리지 않을래요? 이벤트 퀘스트이니 민병대로 참가해도 공적치가 높으면꽤좋은 보상을 받을수 있을거예요" "나야 좋지. 민병대가 하는일은재미가 없거든.로코도 너와 함께하려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했으니까 문제없고, 그런데 딸린 식구가 많아서 괜찮을지 모르겠네" 정의남이 머리를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딸린 식구? 1401호하고 1405호 형들이요?" "아니요.실은정의남아저씨는 지금 민병대장이에요.하룬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추천했거든요. 처음민병대 퀘스트를 받은 유저는 200명정도됐는데 첫날 거의 다 종료됐어요. 그리고 이제 아저씨를 따르던 50명가운데 20명 정도만 살아남았어요" "50명?" 아크가 놀란 표정을 되물었다.이제 게임을 시작한지 20일밖에되지 않은 정의남을 그렇게 많은 유저가따른다는게 신기했다. 물론 정의남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의 얘기다. 대체 게임에 문외한이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끌어 모은걸까? 정의남의 독특한 게임방식을 보지못한 아크로서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민병대 20명이라.........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말이라도 해보자' 다른 유저와 얽히는게 달갑지는 않앗지만 정의남을 따른다는 사람들이다. 다른사람이라면돈으 싸 짊어지고 와서 끼워달라고 해도 거절할 아크지만,정의남과 로코와 관련된 사람들이라면 그 또한 예외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유일하게 아크가 이해득실을 따지지않는 사람은 그둘뿐이다. 적은 만큼 애착은 몇배나 강했다. "민병대원을 경비대와 함꼐 행동하게 해달라고?" 아크의 부탁을 받은 영주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당장 민병대에게 맡길일이 없기는 하지만.........그렇게 위험한 지역에 이미 많은 희생을 치른 민병대를 보낸다는게 마음에 걸리는군. 솔직히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말이네" "그들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도움이 될겁니다" "음.........." 소년 영주가 고민하자 친밀도가 더욱 올라간 크로스가 지원사격을 해주었다. "아크가 저렇게까지 부탁한다면나름대로 생각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전투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경비대의 후방지원을 맡겨도 될겁니다. 민병대도 작센을 위해 일어선의용군,약하다고 무조건 뒤로 밀어놓기만 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자네말도 일리는있어, 좋아. 그일은 자네에게 맡기지. 하지만 명심하게 .영주민이든 이방인이든 모두 똑같이 귀한 생명이네. 또한 그들을 지키고 희생을 줄이는게 우리의 일이지. 무리다 싶으면 그들을 다시 성내로 돌려보내야하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20명의 민병대는 작센 경비대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 결정에 가장 기뻐한건 전직 열혈 형사, 정의남이었다. "이제야 할만한 일을 맡게 되었군. 짐이나 옮기는 퀘스트에 신물이 날 지경이었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적당히 끼어 있기만 해도 공적이 올라갈테니까" 아크는지나치게 의욕적인 정의남이 걱정스러워 당부했다. 그러나 정의남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럴수야 없지. 죽을떄 죽더라도 화끈하게 죽는게 대한민국 경찰이라고" 잠시후, 아크는 자신의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아음을 꺠달랐다. '뭐, 뭐야 저게?' 정의남과 민병대의 활약은레벨이 낮으면 도움이 안된다는 아크의예상을 뒤집었다. 비록 경비대처럼 한번에많은 숫자의 몬스터들과 상대할수는 없었지만, 조직적으로 손발을 맞추며 몬스터를 압박해 나가는 솜씨는 경비대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20명의 유저들이 몬스터를 유인하고,포위,섬멸하는 동작이한박자에 이루어진다. 아크보다 한참 나중에 시작한 정의남이 각종 직업의 스킬까지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콤보를 사용하기도 한다.덕분에 평균 레벨35대의 유저들이 레벨85의 몬스터를 척척사냥해 나가고 있는것이다.그들이 의용군이 오기전에벌어졌던 전투에서 살아남은건 단순한 운이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아크는 그제야 정의남이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는사실을떠올렸다. 정의남은 특수 기동대를 거쳐 남미의 경찰 교관으로 파견까지 나갔던 사람이다. 말하자면 집단 전투에 대해서는 프로페셔널! 그뿐인가? 아크는게임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나 당연한 한가지 사실을 잊고있었다. 아니, 아마도 대부분의 유저가 잊고 있던 사실이리라. 그건 바로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한 남자라면 80%이상이 전문적인 군사교육을 받았다는 사실!80%비율로 군사교육을 받는다는것은 세게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그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군대를 간다면썩는다는 표현을 쓰지만 이는군사교육의 잠재력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심지어 오랮너 일본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재일 유학생들이 현지 야쿠자의무분별한 폭력에 분개해 전면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전문 폭력배.야쿠자들은유학생 따위가 덤벼들자당연히 코웃음 쳤다. 그리고그들의 예상대로 처음에는 유학생들이 밀렸다. 상황이 변한것은 장교출신의유학생이 지휘를 맡으면서 부터였다.일단 지휘 계통에 체계가 잡히자 상황은 일변.군사작전을방불케 하는 역습에 결국 괴멸 직전까지 몰린 야쿠자가 무릎을꿇고 사죄하는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지어졌다. 지금 아크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그 사건과 별로 다를게 없었다.고작 레벨 35,비록 혼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제대로 된 지휘관이 용병술을발휘하면, 군필자로 구성된 유저들은놀라운결집력과 조직력을 선보인다. 90년대 온라인 게임으로 세계를 주름잡던 대한민국의 게이머의 조직력은 거기에서 나오는것이다. '게임을 이런식으로 풀어 갈수도 있구나!' 정의남에게 한수가르쳐 주려던 아크가 오히려 배워야할지경이다.그러나 정의남의 용병술에 더 큰 감병을 받은사람이 있었다. "오오, 이방인들의 전술은 놀랍군.대체 민병대를 지휘하는 저사람은누구지?" 경비대장크로스였다. 정의남은 본위 아니게 민병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단 맡은일은 하늘이 무너져도 해내고야 마는정의남이다. 항상고도의 작전을짜서 민병대를지휘하다 보니 생각지도못했던 '전술'스킬이 생겨버렸다.크로스는 그 스킬에 반응하는것이다. "저사람은 틀림없이이국에서 장군이었을거야. 맙소사, 저런 인재를 성에 처박아 두고 있었다니.........그렇군, 자네가 그래서 그렇게 경비대에 합류시키려고 했던거였어" "네,뭐............그런셈이죠" 아크는 괴상한 표정으로 웃으며 얼버무렸다. "자네 덕에 이제야 제대로 눈이 뜨였네. 진정한 용병술이 뭔지 깨달았어!" 크로스는 환호성을 지르며 정의남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용병술을 ABC부터 다시 가르쳐 달라고 조르기 시작해싿. 다른 사람을 훈계하는 재미로 사는정의남은 기꺼이 승낙했다. "좋아, 하지만 내 훈련은 빡세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정의남은 단숨에 경비대의 지휘권을장악해버렸다. 덕분에 병사들은 정의남의 특수 기동대식훈련을 받아 가며 몬스터와 싸워야했다. "집단에서 나는 없다. 우리가 있을 뿐이다!" "실전이 곧 훈련이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진형을 흐트리지 마라!" "허술해!어이,거기! 뒤로 빠져서 팔굽혀펴기 백번!" NPC가 한창 몬스터와 싸우던 도중에 끌려나와 기합받는웃기지도 않는 상황이 펼쳐졌다. "어이, 거기 똑바로 못해?" 물론이들에게 기합을 주는 사람은 숙달된 조교, 1401호와 1405호였다.어쨌든 정의남의 가세로 경비대는 부족했던 조직력이 강화되었다. 당연히 몬스터를 사냥하는 속도도몇배나 빨라졌다. 로코도 보통은 넘었다. 비록 모두에게 외면받는 음유시인을선택한 로코지만, 집단전투에 끼어있으니 25레벨에 불과한데도 굉장한 활약을 펄쳤다. 위험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하프 소리와 함꼐 로코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는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풀어주고 어둠을 몰아내요" -활력의 노래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5분에 걸쳐 피로도가 내려가고 야간 투시 효과를 얻을수 있습니다. 노래를 들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음유시인의 보조스킬은 광범위하게 효력을 발휘했다.또한 대부분이 지속효과였다. '투쟁의 노래'는 아군의사기와 용기를, '절망의 노래'는 적의 사기와 용기를 꺾었다.또한 '회복의 노래'를 보르면 3분간 200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식이엇다. 비록 신관의 회복 마법엥 비할바가 안되는 회복양이지만, 광범위!게다가 마나 소비도 거의 없는 스킬이다. 그러나 역시 압권은피로를 풀어주는 활력의 노래! 덕분에경비대는피로를느끼지 않아 정의남의 빡센 훈련을 받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다. 'NPC와 유저의 연합군이라 ,이거 굉장한데!' 아크조차 이런 부가 효과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저레벨인 민병대는정신없이 레벨이올랐다.물론아크 역시 적지 않은 경험치와 공적이 쌓여갔다. "퀘스트 관련 정보창!" -현재 아크님의 공적은 9,400.순위는 68위입니다. 아크가 막 실피드기사단에합류했을때 순위가 127위, 현재 작센 성에서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각 20명의 민병대를 포함해 대략 160명이니 일단 중상위는 되었다. '그래도 아란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군' 공적치 베스트 10은 광장의 게시판에 등록되어 8시간 간격으로 갱신된다. 현재 10위안에 든 유저는 모두 아란이 이끄는 1군의 유저들이다. 그리고 아란의 공적치는 무려 30,600으로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위를 이용해 2군과 3군의공적치를 지나치게 뺏어먹는다는 소문일 돌기도 했지만, 가장 강한 1군의 지휘관이니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란은 NPC만이 아니라 유저의 인지도도 1위인 것이다. '과연 내가 아란을추월할수 있을까?' 모든 상황은 아크가 예상한것보다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그러나 아직 유저들의 압도적인지지를 받고있는 홀리나이트 아란의 벽은 높기만 하다. 더구나 다른의용군과 달리 아크와 민병대는 경비대가 빠지면 전투를 지속할수 없었다. 당연히 쉬지 않고 몬스터를 찾아다니며 전투를 벌이는의용군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았다. '이정도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나?' ACT4 홀리나이트 아란 "휴 ,피곤하네" 현우는 지친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는 바람에 꼬박 이틀이나 밤을 새웠다 .다른 유저들은 몬스터의 공격이 주춤해지면여고나에 캐릭터를눕혀노고 간간이 수면을취했지만, 현우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전투가없어도 병사에서 병든 난민들을 돌봐야 했다. 일단 기적의 치료를 성공해서 활력을 되찾게 해주었지만질병이완전히 치료된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1의 공적치도 아쉬운 현우에게는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러나퀘스트가 아무리 정신없어도 이틀에 한번씩 들르는 병원을 뺴먹을 수는 없었다. 게임 때문에어머니에게 소홀해진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 아닌가? '그래도 어머니가 많이 좋아지셔서 다행이야' 현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재활 치료를시작한 뒤로어머니의혈색은 하루가다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눈밑에 다크 서클이잔뜩 낀 현우를 걱정하는 기색은 여전했지만, 권화랑이 대강 말해 놓은게 있어서 예전처럼 캐묻지는 않았다. 어쨌든 피곤에 지친 현우에게 어머니의 건강이호전된다는 소식만큼 좋은피로 회보제도 없었다. '게임에 접속하기 전에 2시간이라도 자둘까? 지금 자두지 않으면 앞으로 꼬박 하루를 못자게 될텐데...........'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된지 벌써 이틀. 남은것은 이제 하루뿐이었다.현우는 스르르내려오는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 주변이 소란스럽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때문에 TV에 타이머를 맞춰놓고 잠자리에 드는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마침 TV에서는 게임 소개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보통 종합적인 게임을 다루는 프로였지만 근래 들어 뉴월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상하면서 3분의 2가 뉴월드 소개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아예 뉴월드 특집으로 편성했다. TV화면에선 예쁘장한 리포터가 한참 뉴 월드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네, 오늘은 요즘 화제가 되고있는 뉴월드의 제작사, 글로벌 엑서스의 기획팀장 하명우씨를 모시고 이번 이벤트 퀘스트에 대해 알아보는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하명우씨, 안녕하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TV에 아는 얼굴이 나오자 현우는 볼륨을 약간 키웠다. "방금 전에 소개한대로이번 이벤트 퀘스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많은데요.먼저 이번 퀘스트는 아무런 사전공지도 없이 시작됐다는데, 그때문에 미처 참가하지못한 유저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만큼 뉴월드를 아껴주시는 분들의 말이라 경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 월드는 완벽한 가상현실 세계입니다. 거기에 운영자드이 개입해서 미리 일어날 사건을 공지한다든가, 혹은 정보를 누설하면 자칫 게임 전체의 밸런스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수 있습니다.때문에 글로벌 엑서스는 게임내의 진행에 대해서는 방관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이벤트도 사전 공지 없이 일어날수 있다는말인가요?" "그건 아직 세부적으로 논의되지않은 부분이라 뭐라 말씀드릴수 없군요. 제가 말씀드릴수 잇는건 뉴월드는유저들이 유저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곳이라는겁니다. 이벤트의 시작도 제작사가 의도하는게 아니라, 결국유저한사람한사람의 행동과 결정이 영향을 미쳐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겁니다" "놀랍군요. 그렇다면 결국 현실곽 다름없다는 말씀이시죠?" "저희가 추구하는 게임의 이상형이 바로 그겁니다" 하명우는 리포터의표현이 마음에 드는듯 빙긋 웃었다. "그럼 화제를바꿔보죠. 요즘 뉴월드의 아이템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경매 사이트에서 7천만원짜리 에픽 아이템이 팔려 화제가 된적이 있는데요. 그런일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천만원?' 현우는숨이턱막히는 기분이들었다. 뉴월드는 아직 오픈한지 세달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유저들의 레벨도 최상이 100레벨 내외,그런데 7천만원이라니..........그렇다면 앞으로 그 이상의 아이템도 얼마든지 나올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TV속의 하명우는 그다지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아이템 거래가 법적으로 보장된게 벌써 20년 전의일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템이 거래되었고, 비싼건 억대를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아직오픈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 가격의 아이템이 나오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얼마되지 않아 뉴월드에서 역대 최고 가격의 아이템이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와,벌써부터기대되는걸요. 인터넷에 심심치 않게 떠도는 게임재벌이라는 말이 실감나는군요. 그럼 앞으로 좋은 게임 만들어 주세요" "네, 노력하겠습니다" 하명우가 인사를 하며 코너가 바뀌었다. '게임 재벌이라.........' 게임 아이템을 팔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을일컫는 신조어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엄청난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운이 따라 줘야 하겠지만, 생계형 게이머들은 모두 게임 재벌을 꿈꾸며 게임에 접속한다. 현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매달 공과금 낼 걱정만하지 않고 살아도 더 바랄게 없을것 같았다. '그것도 체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얘기지' 현우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TV소리에 놀란 토끼처럼 눈이 뜨였다. "아쉽게도 제작사의비밀주의 때문에 아직 이벤트 퀘스트와 관련된영상을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퀘스트에 참가한유저가 화면을 캡처해도 게임 종료를할수 없기 때문에 영상을 보낼수 없다고 하네요 .하지만 몇몇 유저의 제보로 현재 이벤트 퀘스트의 공적 순위 1위롤 유망한 유저를 어렵게 만나볼수있었습니다. 아이디가 아란이라고 하던데요" '아란!' 현우는벌떡 일어나 TV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네, 제가 아란입니다" 리포터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상당히 호감가는 얼굴에 척보기에도 비싸보이는 옷을 걸치고 있었고 몸매도 모델급이엇다. 카메라를 받으면서도 여유있겍 대처하는모습을 보니 마치 잘나가는 연예인 같았다. '이사람이 아란인가..........'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게임안에서 미형을 가진캐릭터의 유저는 의외로 별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아란은 오히려 반대였다. 홀리 나이트 아란은 상당한 미남이었는데 실제 아란을 보니 오히려 조금 망가뜨렸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TV속에서 아크를향해 웃고잇는 아란을 보니 이유없는패배감이 느껴졌다. 돈많고, 잘생기고, 게다가 글로벌엑서스에 지원했을정도니 학벌도 좋으리라. 무엇하나 부족한게 없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한 현우와는 비교할만한 상대가 아니어싿. 은근히 강미수에게 마음이 있었던 현우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자신이 여자라도 현우보다는 아란에게 마음이 기울겠지. 리포터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보다 꽤 미남이시네요.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면 어쩐지 어두운 느낌인데............." "그것도 옛날얘기죠" "어머, 그건자신이 잘생겼다는 얘기?" "설마요. 하지만게임을 한다고해서 어둡다는건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아란님을 보니까 그런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보통게임에서 유명한분들은 얼굴을 보이기 꺼려하는경우가 많은데, 아란님 생각은 어떠세요?" "그것도 각자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죠. 일단 제가 키우는 홀리나이트아란은 언제나 당당한 캐릭터입니다. 게임안에서 나쁜짓을 한적도 없고, 남의 미움을 산적도 없죠. 굳이 숨길이유가 없습니다" "와, 멋지네요. 그럼이번 퀘스트에서도 정정당당히 1위를했다는말이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제가 잘나서 1위를 하고있는건 아닙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독불장군으로 성공하는 경우는없죠. 제겐 많은 친구들이 있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어쩌다보니 1위가 됐을 뿐입니다. 먼저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겠죠" "말씀도 잘하시네요. 저라도 도와 드리고 싶어지겠어요" "감사합니............." 현우는 TV를 꺼버렸다. 독불장군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말을 들으니 마치 지금까지 뉴월드에서 현우가 쌓아온 모든것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설사 그 말이 진실이라도 더이상 듣고싶지 않았다. 현우는 이불을 걷어치우고 곧바로 유니트에 올랐다. '현실에서는 뭐든 아란에게 이기지 못한다.그러니까 더더욱 게임에서 질수는 없어. 두고봐라, 아란. 무슨수를 써서라도 언젠가는 너를 뛰어넘어 보이겠다!' 이미 피로따위는 잊은지 오래였다. -암살 스킬에 의한 불의의 기습으로 치명타를맞았습니다.데미지 300X3 아크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붉은 경고 메시지가 반겼다. 단숨에 60%에 가까운 생명력이 쭉 빠져나갔다. 아크는여관비도 아까워 인적이 드문골목에 적당히세워놓고자리를비웠었다.그러나 길바닥이라고는 하나 성안, 접속하자마자 난데업이데미지가 들어오니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자리를 비운사이에 작센에 무슨일이 생긴건가?' 그때, 돌연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몬스터가 아니다. 시꺼먼 가죽갑옷을 입고 얼굴에 두건까지 쓴 캐릭터, 분명 유저였다. 아크는황급히 물러나 고양이의 눈을 시전했다. 그러나 정보를 확인할수 없엇다. 고양이의 눈을 사용하면 상대의 기본정보, 이름과 직업, 생명력이 표시된다. 물론 모든 유저에게 해당되는것은 아니다. 상대의 레벨이 10이상 높으면 생명력만 표시되는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정보창은 아예노이즈가 낀것처럼 뿌옇게 보일뿐이다. 특수한 스킬이나 주문서로 정체를 숨기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일부러 정첼 숨기고 접근해 공겨했다면필시 좋은 의도는 아니리라. "누구냐?' "흥, 이제야 대답하는군,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혹시 유니트에서 자고있나 싶었지. 자명종 대신으로 인사를한것뿐이니 너무 예민하게 굴지마" 두건 사이로 약간중성적인 느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그게인사라고?" "됐어.말싸움하고싶지않다" 아크가 성질을내자 그는귀찮다는듯이 손을 흔들었다. "긴말하지 않겠다.싸늘한 검은 칼날이라는 아이템을 넘겨라. 그럼 얌전히 돌아가지" "싸늘한 검은 칼날?" 아크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싸늘한 검은 칼날은 블라인드경매장에서 마지막으로 낙찰받은아이템이다. 뭔가 그럴듯한 느낌이 들어서 일단 사뒀지만 용도가 불분명해 보관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아이템의 이름까지알고 있는걸까? "모르는 척하지 마라. 네가 경매장에서 샀다는건 알고있다" "............그걸 뺴앗기 위해 날 공격한건가?" "말했지?방금전의 건 인사라고, 뭐, 그래도 대답이 없었으면 죽여 버렸을지도 모르지만..........솔직히 나는 인내심이그리 많은편이 아니거든. 네가 경매품을 중간에 가로채는 바람에 시간제한 퀘스트를 받고도 여기까지 쫓아와야 했다. 아직 하루나 더 갇혀있어야하지. 게다가 작센에 도착한뒤로 네가 엉뚱한곳에 숨어버려서 찾는데 얼마나헤맸는지 알아?" "그건 네 사정이지" "말한번 예쁘게 하네" "내가 하는짓이 예뻐서?" "됐어.다시 본론으로들어가지.아이템을 내놔.미리 말해 두지만 어설프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아. 모처럼 밭은 이벤트 퀘스트를 사망으로끝내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명백한 협박이다. 아크는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쏘아보았다. 확실히 만만한 상대는아닐것같다.아크의 현재 레벨은 70대.어둠속성보너스까지 받았으니 90에 달한다. 설사 아크가 '은신'에 백스텝까지 성공한다고해도 90대 유저에게 900이나 되는 데미지를줄수는없다. 암살스킬이 어떤것인지는몰라도 레벨이나 스탯이 아크보다 높다는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게다가 입고있는장비나'은신'을 사용하는걸 보니 아크처럼 어둠속성의 캐릭터일 가능성이많았다. 선공르당해 생명력이 60%나 줄어있는 상태에서 싸워 이길 상대가 아니다. '죽으면 퀘스트는 무조건 실패.24시간 접속 불가!' 죽으면 이번 퀘스트를 위해 이틀이나 밤을 샌게 단숨에 날아간다. 그러나 220골드하고도 1쿠퍼나 주고산 아이템을 순순히 넘겨준다면아크가 아니다. 현찰로 220만원. 설사 현실에서 칼든 강도를 만났다고 해도 220만원이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 볼만한 액수였다. 적어도 아크에게는 그랬다. "흥, 웃기는군. 마을안에서 날죽이면 곧바로 병사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될텐데?" "그건 네가 걱정할일이 아니지" 상대는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다.확실히뭔가 대책을 세워놓은듯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죽어도 못주겠다면?" "죽인 다음에 빼앗으면 되지" "한번 해보시지" "멍청한놈, 무덤을파는군. 정 죽는게 소원이라면 죽여주지. 타켓 아크, 목표지정 싸늘한 검은칼날" 그가 품에서 붉은 주문서를꺼내 찢으며 소리쳤다. 이제는 그리낯설지도 않은[강탈]주문서다.상대의 가방안에 있는 아이템을 지정하고 죽인뒤에 빼앗은 주문서. 그러나 곧 두건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당혹감이 어렷다. 그의 당혹스러운 눈빛을 확인하고 아크는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아크는[강탈]처럼 위험천만한 주문서가 존재한다는것을알게된이후로, 귀중품은 몽땅 뱀의 배속에 넣어두었다. 주문서의 효력범위가 가방이라면 NPC의 배속까지 검색하지는못할거라고 계산한것이다 그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다행히 아직 뱀은싸늘한 검은 칼날까지 토해내지는않았다.아마도 그의 눈앞에 그런 아이템이 없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으리라. 아크는 씨익 웃으며 능청스럽게 물었다. "왜그러지? 뭐 실망스러운 메시지라도 봤나?" "너..........대체 그 아이템을 어쨌냐?" "글쎼? 어딘가에 팔아 버리지 않았을라나?" "우,웃기지마!220골드나 주고 산 경매품을 상점에 팔았을리가 없어 .아니, 상점에서는 사지도 않을걸. 당연히 그런 아이템을 다른사람이 샀을리도없잖아. 다른사람에게는 필요도없는물건이니까" "내가 얼마에 낙찰받았는지까지도 알고있군. 기란의 의용군의 섞여 들어왔나?"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말하자 그는 움찔했다. "뭐, 그건아무래도 좋아. 결론을말하자면네 짐작이 맞아. 아이템은아직 나에게 있다. 하지만[강탈]주문서 따위로는 절대 빼앗지 못할거야. 그래도 날죽일 생각인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원하는 아이템을 빼앗지 못한다면아크를죽여봐야 이득이 없다. 오히려 카오틱 유저로 낙인찍혀 병사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을뿐이다. 이제 주도권은 아크에게 있었다. 그는잠시 아크를 노려보다가 입을열었다. "좋다. 그럼 협상하지.아이템을250골드에 사주겠다. 어차피 그 아이템은 내 직업 전용의 퀘스트와 관련되어 있는 아이템이야. 뭘기대하고 220골드나 투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어. 이건 거짓말이아니야" "싫은데" "뭐? 30골드나 더 주겠다는데 싫다고?" "그래. 네가 처음부터 그렇게나왔으면 혹시 모르지. 아마220골드라도 팔았을거야" 물론 거짓말이다. 상대가 마을안에서 유저를죽이는위험을감수하면서까지 필요로 한다는걸 알면서도 산가격에 넘겨줄만큼 아크는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도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일단 대범한척하는편이좋았다. "하지만 너는다짜고짜나를 공격했고 죽이려고까지 했어.이제돈이 아니라감정의 문제야.확실히 말하지, 설사 네가300골드를주겠다고 해도 팔 생각이없어" "정말 죽고싶냐?" "마음대로 해보시지" 아크는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아이템 하나때문에 이곳까지 따라온 놈이다. 여기서 아크를 죽여 감정을 더욱악화시키면 영원히 아이템을 얻을 방법이 없다는것을 알면서 죽이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그 역시 이제 아크가 뭘원하는지 깨달을때가 됬다. 그는 화난눈으로 노려보다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원하는게 뭐냐?" "글쎄? 뭘해줄수 있냐에 따라 다르지. 아니, 그전에 이름부터 보여주겠어? 너는 내 이름을 알고잇는데 나만 모른다면 불공평하잖아. 거래는공평한데서부터 시작하는거야" "...........스킬해제"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정보창에 끼어있던 노이즈가 사라졌다. 이름은 샴바라, 직업에는 세인트 어쌔신이 라고 되어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직업니다. 뉴월드에 도적계열의 직업은 있지만 암살자가 있단말은 처음들었다. 뭐, 아크가 아는 직업은 10분의 1도 안되니 그 문제야 그렇다 치자. 그런데 세인트 어쌔신이라니? 이 무슨 웃기지도 않는 직업인가? '성스러운 암살자? 장난하냐?' 더 이상하게 생각되는건 아직도 샴바라의 이름이 하얀색으로 표시된다는점이다. 유저를먼저 공격하면 죽이지 않더라도 이름이 회색이 되어 버린다. 말하자면 살인자까지는아니라도 나쁜놈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병사들의 공격까지는 받지 않지만 마을 NPC의 호감도가 하락해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되어있다. 그러나 샴바라의 이름은 여전히 하얀색.............. 정보창을 가리던스킬도 그렇고, 뭔가 이상한 스킬을 사용하는녀석이다. "어째서 성향이 내려가지 않았지? 그것도 주문서인가?" "............"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그만두지, 잘가" "직업 전용스킬이다" 아크가 홱 몸을 돌려 버리자 샴바라가 짜증스러운목소리로 말했다. '스킬이라........' 아크는 새삼 스킬 정보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얼마전 정의남의 용병술도 다른 직업의 스킬을 훤히 꿰고 있었기에 가능한것이었다. 앞으로 더 고레벨 지역으로 가면 본의 아니게 PVP 를 하게 될일도 많으리라. 그때 상대의 스킬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만큼 불리하다. 아크가 다크워커의 스킬을 숨기려는 노력만큼, 다른직업의 스킬을 파악해 두는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적이 될지도모르는 유저의 직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용은?" "'사신의 대리자',행동을 지정해 사신의허락을 받으면 악행을 쌓거나, 설사 유저를 죽여도 카오틱이 되지않는다. 다른 유저나 NPC에게 들키지만않으면 무슨짓을 해도 상관없지. 사신의 대리자 스킬이 적용되는동안에는 다른사람이 정보창을확인할수도없다." 샴바라는 굳이숨길이유는없다는듯이 대답했다. 하긴듣고보니 미리알고있다고 막을수 있는 스킬도 아니었다. '나쁜짓을 하고도 성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니?사기적인 스킬이잖아?필요하다면 상인NPC를때려죽이고 상점을 털수도 있다는말이아닌가?' 물론 뉴월드의 시스템이 그리 호락호락할리는없었다. 아마도 밸런스를맞추기 위해 나름대로상당한 패널티가 작용할게 분명햇다. 하지만악행을 해도 면죄부를받는다는건활용하기에 따라서 상당한 위력을 가진 스킬이라는것이다. 특히 유저를 상대로는............. 잠시 생각해보던 아크는 혹시나 싶어 물엇다. "그럼원한다면 아란같은 상대도죽일수 있는건가?" "무리다" 샴바라는고개를저엇다. "나와 레벨 차이가 많이나는 상대에게는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경우가많다. 신앙심 스탯이 있는사람도 힘들지. 하긴 카오틱이 되는거야별문제 아니지만........아란은 나와 상성이 안좋아.홀리나이트는항상지속오라로 보호받아 '은신'을 써도 접근하기가 쉽지않다. 내가 가진스킬도 통하지 않는게많고" 다시 말해 상성만맞는다면아란이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름대로 확신이있는모양이다. 아크는곰곰이생각하다가고개를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이번 퀘스트가 진행되는동안.너는 무조건 나를돕는거야" "뭐?날 부려 먹겠다는소리냐?" "퀘스트가 끝날때까지 앞으로 고작하루밖에 남지 않았어. 지금까지이틀이나 나를찾았다면서?그리고 어차피 퀘스트가끝나려면 하루가 남았잖아. 그리 나쁜조건은 아닐텐데?" "..............뭘하면 되는거냐?" "그건 두고 봐야알겠지" "약속은 지키겠지?" "물론이지. 어차피 나한테는그다지 필요없는 아이템이라며? 그럼 나도 이윤을 남기고 팔수있을떄 정리하는편이 좋지 않겠어?" "팔아? 설마 나에게 팔겠다는거냐?" 샴바라의 눈가가 와락 일그러졌다. 그반응에 아크는오히려 놀랍다는듯이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럼,내가 널 언제봤다고 220골드짜리 아이템을 거저 주겠냐? 대신 퀘스트가 끝날때까지 무조건 내명령에 따른다는 약속을 지키면 큰맘먹고 300골드에 양보하지. 이정도도 나로서는 크게 양보한거야" "3,300골드?" "70골드는 날 죽이려고 했던 벌금이라고 생각해. 싫으면말고" ".............젠장. 알았다" 결국 샴바라는이를갈아붙이며대답했다. '후후후, 영업 아르바이트는 멋으로 한게 아니야' 거래를할떄 원래 조금은 억지스러운 조건을 내세우는편이 좋다. 만약 아크가 처음부터300골드로 타협하려 했다면 샴바라는 흥정을 걸어왔으리라. 그러나 먼저 엉뚱한 조건을걸어놓고 가격을 제시하면 거기까지 생각할여유가 없어지는게 사람의심리다. 자칫 욕심을 부리다가 흥정자체가 꺠질지도모른다는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사실샴바라를 이용할 일이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다만 흥정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위해 적당한 구실을 둘러댄것뿐이다. 덕분에 적어도 할동안은 믿을수 있는아군을 얻었고, 앉은자리에서 70골드나 벌었다. '후후후, 들어오자마자 70골드라.왠지 일이잘풀릴것 같은걸' 뒤통수를한대얻어맞은 보상으로는충분하고도넘치는돈이다. '휴우,정말까마득하군' 병영에 들러보니 아직경비대는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정의남과 로코 ,민병대도 꼬박하루를 세우고 잠시 눈을 붙이겠다며 살아있는 석상이 돼버렸다. 덕분에 일단 의욕이 앞서 접속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할일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나가기도 뭐해 난민 병사나 둘러보러 가던중이다. 그러다가 문득광장에 놓인게시판을 보니 저로한숨이 흘러나왔다. 작센을 위해 모인 진정한 영웅들! 현재 작센 수비대 1위 공헌자, 홀리나이트 아란. 공적치 37,800 아크가 죽어라 사냥하는데도 아란은 결국 4배가까운 차이를벌리며 올라가 버렸다. 솔로잉과 공격대사냥의 차이였다. 아크는 경비대와함꼐 사냥하지만정식으로 공격대를 구성한것은 아니었다. 민병대역시 마찬가지. 때문에 경비대가 쓰러뜨린 몬스터의 공적치는 아크에게 적용되지 않아싿. 그러나 아란은 상황이 다르다. 아크보다 먼저 작센에 도착해 일찌감치 의용군의 지휘관 자리를 꿰찼다.덕분에 직접 지휘하는1군은 물론, 2군과 3군의 활약도 아란의 공적치에조금씩 가산되었다. 전쟁이라는상화에서는 다른 유저가 상상도 할수 없는엄청난 혜택이 주어지는 직업, 홀리나이트의 특성이다. 직업전용스킬에서도 차이가 벌어진다.홀리나이트의 직업 스킬은 파티원의 각종 능력치를 올려주는 버프오라각 주를 이룬다. 때문에 스킬을 사용할때마다 공적이 오르고, 아란이 지휘하는1군이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니 더욱많은 공적을 쌓을수 있는것이다. 반면 다크워커는 모두 솔로잉을 위한 스킬. 만약 동레벨에서 일대일로 맞붙으면 아란이라도 이길자신이 있었지만, 같은 숫자의 동료를데리고 맞붙는다면 아란이 압도적로 승리하리라. 지금이 딱 그런상황이다. 그때, 갑자기 광장이 시끄러워졌다. 고개를 돌려보자 막 1군이 성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전투에는 최근 화재의 인물로 떠오른 뉴월드의 풍운아. 아란이 백마를타고 당당하게 광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잘생긴 얼굴, 찰랑찰랑흔들리는 금발,번쩍이는레어판금 갑옷풀세트.단번에 보는사람의 기가 죽어버릴포스를 풍겨낸다. 아란이 등장하자 광장에 모인 여자들이 비명을 터트렸다. "꺄아악, 아란경이다!" "아까 방송됐던 TV게임 특종봤어?" "응,응 .친구한테 얘기듣고 인터넷으로 다운받아봤어" "아란경 엄청 잘생기지 않았니?" "연예인 해도 되겠더라" "게다가 그 넘쳐흐르는 여유,귀티가 좔좔흐르는게 틀림없이 재벌집의 도련님일거야" "아, 나좀안봐 주려나?" 여자들이 재잘거리며선망의 눈길로 아란을 바라보앗다. TV에 출연한 이후, 아란의 인기는 급상승하고있었다. 게임만 잘해도 부와명예를 얻을수 있는 세상이다. 하물며 잘생기고, 돈많아보이고,유머감각에 리더쉽............제기랄, 심지어 머리까지 좋아보인다. 방송을 본 대부분의 여자들 ,특히 뉴월드에 중독된 그녀들에게 아란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백마탄 왕자님으로 보이리라.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어대자 아란이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크 포크에 휩싸여 있는데도 어디선가 햇살이 비쳐들어와 흐트러진 금발과 하얀 치아가 반짝거리는것 같다. 잘난놈에게만 따라다닌다는 특수 스킬 후광 효과+100%다. 아란의 능숙한 쇼맨십에 여자들이 자지러지는비명을지르며 쓰러진다. "쳇, 놀고있군. 이게 싸구려 삼류드라만줄 아나?" "빌어먹을 ,청춘드라마는 방송국에서나 찍지" "TV한번 나왔다고 연예인 행세를 하고있군" "공적치 1위를 하고있는게 누구덕분인데" 보다 못한 몇몇 사내가 질투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군이나3군의 유저들중에는 아란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지휘관이라는 직위를이용해 노골적으로 1군이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나갔기 때문이다. 덕분에2군과 3군은 죽어라 뛰어다녀도 얻을수 있는 경험치와공적은1군을 따라가지 못햇다.그럼에도 오히려 전사자는 1군의 2배이상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불만이 상당한데 이제 여자들의 관심을 몽땅 가로채간다. 피끓는 수컷으로서 한마디쯤불평하는건 당연한 의무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평에 불쾌감을 드러낸건 아란이 아니었다. 왕자님이라면 덮어놓고 비명부터 질러대는 자칭 신데렐라 후보들이었다. "어머, 재들뭐니?" "꼴에 남자라고 질투한는거야?" "웃긴다. 지들이못난걸 왜 아란경에게 심술을 부려?" 여기까지는 그래도 들어줄만했다. 그녀들의 화살은 곧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란경옆에 딱붙어있는 저여자는뭐야?" "그러게. 항상아란경과 함께 다니던데?" "여동생쯤 되나?" "아니야. 전에 설핏얘기하는걸 들어보니까 서로 존댓말을쓰던데?" "그런데 왜저렇게 붙어다녀? 자기가 아란경 마누라라도 되나?별꼴이야" "뭔가 얻어먹을거 없나싶어서 졸졸 따라다니는 거겟지" "시커먼 로브나 뒤집어쓰고 다니는걸 보면 틀림없이 성격도 우중충할거야" "예쁘장한 엘프를선택한걸 보면 실제로는 뚱녀에 인상도 험악할게 분명해. 보통 캐릭터들만들떄는 자기와 반대되는얼굴롤 성형하는경우가 많다잖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할수록 그런 증상도 더 심하다니? 아란경은 예외지만" "아유, 아란경옆에 그런 여자가 붙어있다고 상상하니까 왠지 징그럽다" 현실에서도 유명한 미남 연예인 옆에 여자가 있으면 일단 씹고 보는게 여자들의 심리다. 우연히 연에인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가는바람에 악성 비방에 시달리다가 이민을 가 버린사람까지 있지않은가. 아크로서는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행동이었다. 시간이남자돌면 공병이라도 모아서껌이나 사 씹든지.단물이 나오는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남을 씹어대는지 모르겠다. 이해할수 없으면 참견하지않으면 그만. 그러나 그녀들이씹어대는 대상은 아크도 잘아는 사람이다.아란 옆의 여자는 다름아닌 강미수, 레리어트였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험담을 처음듣는게 아닌듯후드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 안쓰러운 모습이 모른척 고개를 돌리려던 아크의 발걸음을붙잡았다.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아크는 아직아란이나 레리어트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 거리를 좁힌다고 좁혔으나 아직아란과의 격차는까마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앞에서 레리어트를 비방하고, 심지어 무작정아란을 따라다니는골빈 여자 취급하자 저도 울컥해 한마디내뱉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 좀 심하신거 아닙니까?" "뭐야,이사람은?" 여자들이눈썹을 바짝 치켜세우며 쏘아보았다. 그러나 여자들의 시선따위에 움찔할 아크가 아니었다. "남을 욕하려면 최소한 그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아보는게 순서아닙니까? 제가 아는 한 레리어트 님은 당신들처럼 아무나 보고꺅꺅대는 여자가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내일을 위해 노력할줄 아는 성실한 사람입니다.당신들이 아란을 좋아하는건 내가 상관할바 아니지만, 그게 남을 비방할 정당한 이유가 될수는없습니다." "어머 ,웃겨.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이에요?" "그럼당신들은뭔데 레리어트님을마음대로욕하는겁니까?" 아크의 반무에 여자들의 얼굴이 더욱 표독스러워졌다. 그녀들이 다시 반격을 가하려던 때였다. 말싸움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레리어트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돌렸다. 그리고 아크를 발견하고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크님?" 레리어트가 다가오자 여자들은쳇, 소리를 내며 우르르 몰려갔다. 그런 여자들의 특징은 정작욕하는 상대가 앞에 서면 찍소리도 못한다는 점이었다. "역시 아크님이였군요" "아, 네...........오랜만이네요"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숙였다. 울컥하는 바람에 결국 레리어트를 만나버렸다. 별로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그러나 레리어트는 아크를다시만난게 꽤난 반가운지 조금전과 달리 밝은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하셨군요.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혹시 민병대롤 참가하신건가요?" "아니요. 민병대와 함꼐 행동하고는 있지만 퀘스트는 기란마법학회에서받았어요" "네? 그럼 60레벨을 넘으셨다는 말이에요?" "네. 지금은 70레벨 정도........." 정확히는 민병대와 합류한 뒤로 다시 레벨이 1올라 72가 되어있었다. 아크의 대답에 레리어트의 눈이 커졌다. 뉴월드에서 아크를 처음만났을떄의 레벨이 35.게임을 시작하고 한달보름가량 되었을때였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한달 보름 남짓. 아크는 35레벨을 올렸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이상한일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이 힘들어지는게 상식이다. 1~10레벨까지 열흘이 걸렸다면 10~20레벨까지는 보름이 걸리는것이다. 물론 그런 법칙은 아크에게도 적용되었다. 그러나 하루 몇시간을 내서 게임을 하다가 레리어트와 만나뒤로 생계형 게이머의 길로 접어들어게임 시간이 몇배로 늘어났다. 또한 다크워커로 전직한 뒤로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만 상대해 왔기에 가능한 수치였다. 사실따지고 보면처음 만날 당시의 35레벨도 아크의 플레이 시간을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이런사정을알리없는 레리어트는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굉장하시네요.솔직히 이제 50정도 됏으면 잘키운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았죠. 그런데 레리어트님은?" "전........오늘 겨우 70이 됐어요" "타르샤의 미궁원정이 실패해서 그런거군요" "그걸어떻게?" "그냥 여기저기에서 주워들었어요" "네, 맞아요" 레리어트가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조직했던원정대는 세번이나전멸했어요.덕분에 일주일이나 허비하고도 오히려 레벨이 떨어졌죠. 그때문에 아란님은 굉장히 힘들어하셨어요.그래도 나와는달리 레벨업을 잘하셔서 지금은 98이나 되셨지만원정이 성공했다면 100을 넘으셨을 거에요" 아란이 아직 100레벨이 안됬다는말에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레리어트 앞에서 내색할수는 없는일. 아크는 안타깝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군요. 레리어트님도 고생이 많았겠어요" "그래도 이번 퀘스트에서 공적 순위가 27위니남은 하루만 잘마무리하면 상황이 꽤 좋아질거에요.뭐, 그것도 아란님덕분이지만 말이에요" 그녀 역시 1군에 속해 공적 순위가 아크보다 높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27위라니. 아마도 아란이 꽤나 신경써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의 신경을 거슬리는건 따로 있었다. 레리어트가 말끝마다 아란을운운하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레리어트님도..............' 뭔가를 생각하려던 아크는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때 문득 레리어트의 뒤로 백마탄 왕자님꼐서 오빠부대를거느리고 다가왔다. "레리어트님, 뭐하십니까? 다들 여관으로 가고있는데" "아, 아란님. 마침 잘오셨어요.이분 기억하시죠?" "글쎼요? 만난적이 있었던가요?" 아란이 슬쩍 아크를 흘기더니 고개를갸웃거렸다. 돌연 아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작센에서 처음 만난뒤로 아크에게 아란은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퀘스트에 참가한뒤로 일부러 아란을 피해다닌것도 그를 그만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 그런데 정작 아란은 아크를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그에게 아크는 그저 길다가 만난 NPC와 다름없다는말이다. 아란에게 인정받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지만 막상일방적으로 무시당하자 알수없는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아크님. 기억안나세요?예전에 이곳에서 한번 만나서 제가 소개시켜 드렸잖아요" "어? 네, 네놈!" 그떄였다. 갑자기 아란의 뒤에서 거친 목소리각 들려왔다. 그렇게 마주치기 싫었던 안델 역시 1군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젠장, 이래서 튀는행동을 하기 실었던 건데.........' 그러나 마주친 이상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아크는 피식웃으며 쏘아붙이듯이 중얼거렸다. "오랜만이군. 아직 게임을 하고있는줄은 몰랐는데? 용케 카오틱은 벗어난 모양이군." "뭐야?너 이자식!" "안델, 그만둬.나와 얘기하고 있는게 안보이냐?" 안델이 와락 덤벼들려하자 아란이 인상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그러자 안델이 주춤거리며 이내 크게 숨을 몰아쉬고 한걸음 물러났다. '안델 녀석, 아란과 알고지내는사이였던건가?' 아란의 한마디로 안델리 물러났다. 게임안에서만이루어진 관계라면 쉽지않은일. 즉, 현실에서도 알고지내는 사이일가능성이 많았다. '나한테 박살이 났던 안델이 이렇게 빨리 회복했던 이유가 그거였나?하긴, 아란같은 유저가 백업해주면 그리어려운일은 아니겠지. 게다가 아란같은 고레벨의 유저가 일부러 백업을 해줄정도면상당히 가까운 사이일거야. 아니, 레리어트나안델처럼 어쩌면 1군의 유저 대부분이 응시자일 가능성도 있어.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아란을 미워할 이유가 하나더 생긴셈이군'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는사이. 안델과 속닥거리던 아란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아크님,혹 실례됐다면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럴수도 있죠" 아크는 차가운 목소리로대답했다. 그떄, 묘한 분위기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리어트가 돌연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해싿. "아, 그러지 말고 아크님도 1군에 들어오시는게 어때요? 레벨도 그정도면 충분하고 , 마침 이번전투로 몇분이 강제종료돼서 공격대에 결원이 생겼거든요 .괜찮죠, 아란님?" 갑자기 레리어트가 손을 잡자 아크는 놀랐다. 그러나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사람은 아란이엇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아크를 쏘아보다가 불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원이 생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미 결원이 생기면 들어오기로 한사람이 있어서............제가 지휘관이라도 잘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함부로공격대에 넣을수는없습니다. 게다가 안델과도 별로 좋지 않은 인연인것같으니..........." "저하고 잘아는사이라니까요" "이미 1군은 지휘체계가 잡혀잇습니다.퀘스트의 성질상 남은 하루는 가장 힘든 격전을치러야하는데 손발이 맞지 않는 사람이 들어오면 균형이 꺠질수도 잇습니다." "하지만.........." "됐습니다" 아크가 레리어트의 말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도 함꼐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1군에 들어오라고 해도 제 쪽에서 거절해야 하는 입장이니 두분이다툴필요는 없습니다" 설사 민병대나경비대가없었다고 해도 아란의 밑으로는 들어가기 싫었다. 잘난놈에 대한 질투라고 해도 좋고 못난놈의 자존심이라고 해도좋다.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아란의 머릿속에 아크라는 이름을 쑤셔 박아주고 싶었다. "그럼 더 할얘기는 없군요. 이만실례하겠습니다. 레리어트님, 가시죠" 아린은 백마위에서 아크를 깔아보고는 홱 기수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꺅꺅거리는 오빠부대를 이끌고 여관으로 향했다.잠시 쓸쓸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레리어트는 아크에게꾸벅 인사를하고 몸을 돌렸다. "미안해요. 아크님" 묘한 여운의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거지?아란이나 안델의 태도가? 아니면1군에 못 넣어줘서?' 아크가 의아한 눈길을 보냈지만 그녀는 바쁘게 아란의 뒤로 따라붙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던 아크는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안델에게 툭던지듯 말했다. "태도를 보니아란과 네 관계가 대강 짐작이 가는군" "뭐?" "주인님이 가시잖아. 얼른 쫓아가지그래?" "네놈, 지금은 그냥넘어가지만이벤트 퀘스트가 끝난뒤에 두고보자!" "기어코 스탯을 0으로 만들고 싶다면 얼마든지" 아크가 유들유들하게 대답하자 안델을 일을 갈아붙이며 쏘아보고 1군과 함께 사라졌다.그리고 잠시후, 몸을돌리려는데 갑자기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아란님께서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귓속말을 신청하셧습니다. 귓속말은 둘만 들리는 목소리로 대화할수 있는 비밀통신법이다. 상대의 이름을 알고있고 일정범위안에 있을 때[속삭임의 깃털]이나 주문서 [보안통신]을 사용해야만 가능한, 말하자면 돈이드는대화방법이다. '뭐야? 마음이 변해 1군에 들어오라는 말을하려는건가?' 아크는 별생각없이 귓속말을 허락했다. 뒤이어 주변의 잡음이 작아지며 바로 귀에 대고 말한느듯한 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라고 햇나? 다짜고짜 반말이다.아크는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레리어트와는 잘아는사이인가? -내가 대답해야할이유가 잇나? -하긴........어쨌든 한가지만 충고해두지. 괜히 레리어트에게 집적댈생각은 하지않는게 좋아. 게임에서든 현실에서든. -충고할 상대를잘못선택한거 같은데?먼저 아는척을한건 내가아니야. 그리고 내가먼저 알은척을했다고해도 네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잖아. 솔직히 너에게 그런말을듣는게 상당히 기분나쁜데? 그러자 아란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레리어트가 갑자기 왜 네손을 잡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뭐? 무슨뜻이지? -생긴것처럼 꽤나 둔하군. 잘생각해봐.내충고잊지말고 아란은 제하고싶은말만 다하고 귓속말을 끊어버렸다. '뭐, 뭐야? 이자식? 이거완전히 이중인격자 아니야?' 아크는 마치 자다가 물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TV에서 나왔던 아란도, 홀리나이트 아란도 꽤나 쿨하고 예의가 바른사람이었다. 사람을 깔아보는시건방진면도 있었지만 일단 겉보기는완벽했다. 그런데 귓속말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전혀달랐다. 노골적으로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게다가 마치 레리어트를 자신의 소유물처럼여기는 괴상한 집착까지 보이지않은가? '대체 뭘 잘생각해 보라는거야? 레리어트가 내손을 잡은게 뭐가 어쨌다고?' 아란이 무슨뜻으로그런말을했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길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아크!" 뒤에서 부르는소리에 고개를돌려보니 정의남과 로코가 뛰어오고 있었다. "언제 접속하셨어요?" "조금 전에, 그보다 뭔가 급한일이 벌어진것 같다" "급한일?" "네,접속하자마자 크로스 경이 찾아왔었어요. 영주님이 오빠를찾는다고, 평범한일은 아닌것 같아요. 굉장히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오빠를 찾아말을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고보니 휴식과 치료를 대부분성밖에서 해결하며 방어선을지키던 1군이 갑자기 귀한한것도 이상하다. 틀림없이 소년영주에게 뭔가 명령을 받은게 분명하다. 하긴 이제 이벤트 퀘스트 완료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아크 역시 이대로 퀘스트가끝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뭔가대세를 결정지을사건이 터질떄도 된것이다. "알았어, 바로가보자" ACT 5마광포탑 폭파 작전 영주성에 도착한 아크는 다시 반갑지않은 얼굴을 마주해야했다. 크로스의 뒤를따라아크일행이들어서자 먼저와있던 아란이 약간 놀란 표정을지었다. 소년 영주의 호출을 받은건 각 공격대의 리더뿐이다. 저레벨 유저들의 조직인 민병대, 심지어 리더도 아닌 일반 대원이 낄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란은 별관심도 없다는듯 금세 고개를돌려버렸다. 마치 귀족이 서민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 '저자식, 점점 더 거슬리는군' 아크는 아란의 그런 태도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때 소년 여주가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열었다. "모두들 작센성을지키느라 노고가 많소. 바쁜와중에 감자기 경들을소지한건 다급한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오. 레이몬드,설명해주게" "네, 오늘 새벽 정찰 부대가 작센 서부 지역의 평야로 이동중인적을발견했습니다. 숫자는 약 600.현재 두부대로 나뉘어있으며각각 마광포탑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마광포탑?" 각 부대장들이 의아한얼굴로 서롤 바라보았다. 소년 영주는 무거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3대 길드가 보내온 비공정과 철갑 상선,전차 부대를요격한적의 이동 포탑이네" "그떄 그검은 불덩어리!" "이미 경험해봤으니 그 위력은 자네들이 더 잘알걸세.마광포탑이 작센성을 공격한건 불과 한나절. 그 결과가 지금자네들이 보는 작센성이네.작센 마법의 탑에서 모든 마력을 동원해 성벽에 실드를 쳤는데도 버텨내지 못했지.만약 마광포탑이 3대길드의 의용군을 요격하기 이해 이동하지 않앗다면 성은 이미 폐허로 변했을지도 몰라" "큰일이군요" "만약 두대의 마광포탑을 사정거리 안에 자리 잡도록 방치한다면 작센성은 반나절도 버티지 못할거네. 방법은 한, 마광 포탑이 이동중인 지금 우리가 먼저 기습 작전을 펼쳐 폭파시켜버리는수밖에없네. 자네들을 부른건 그 작전에 대해논의하기 위해서네" 소년영주는주변을 주욱 훑어보다가 아란에게 말했다. "사안이 사안이니 만큼 총력전을 펼쳐 마광포탑을 반드시 저지해야 하네. 따라서 실피드 기사단이 돌아오면 당분간 성문을 봉쇄하고 시간을 끈다.그사이 작센 방어선을 펼치고 있는 모든 병력을 두 부대로 나누어 각자 하나씩의 마광 포탑을 공략할 생각이네. 먼저 제 1부대는 자네, 아란경에게 맡기겠네. 세부적인 편성과 작전을 모두일임하겠네" 레벨과 명성, 공적으로 의용군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아란에게 소년영주가 제1부대의 지휘를맡긴건 당연한 결과다. 아란이 우쭐대며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2부대는..........." 소년영주가 시선을 돌리자 2군의 리더를 맡고있는 전사가 고개를 빳빳이 들어올렸다. 아란다음은 당연히 자기라고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손년영주가 지목한사람은 일므조차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유저였다. "아크, 자네가 맡아줬으면 좋겠군" "네?" 아란과2,3군 리더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크 역시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일이라 당혹스러운표정을 지었다. 아크의 공적치는 아직도 중상위권에서 헤매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임무를 덜컥 맡기다니? 특정한임무의 지휘관으로 등록되면 당연히 추가 경험치와 공적을 얻게된다. 아란이 부동의 공적치1위를 고수할수 있는것도 그 덕분. 때문에 이런 대대적인 작전에서 지휘관이되고싶은거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공적 베스트10에 들어가는 2,3군의 리더를 제치고 아크가 지휘관이 된다는건 납득할수 없었다. 역시나 아란이 곧바로 반론을 제기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저 사람은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공적을 쌓지 못햇습니다. 그런데 이런 큰 임무의 지휘관을맡기다니,현명한 판단이 아닙니다. 또한 공정하지도 않습니다" '젠장, 아란녀석. 쓸데없는 소리를.......' 아크는 내심 뜨끔했다. 뉴월드는 게임이지만, NPC의 사고방식은 현실과 다름없다. 정당한 명분이 없는 행동은 할수 없는것이다 특히 영주 같은 관리NPC는 그런 성향이 더 강하다. 권한이 허락하는 범위라면 친밀도가 높은 사람을 돕지만, 지금처럼 작센의 운명이 걸린 작전에 아무런 대의명분도없이 친밀도하나만으로 지휘관을 지명할수는 없었다. 아란은 그점을 지적하며 수정을 요구하는것이다. 그러나 소년영주의 결정은 아란도, 심지어 아크조차 몰랐던 수치가 적용된 결과였다. "그렇지 않네. 이번 임무는 작전 수행평가를 기준으로 뽑은거네 ,레이몬드가 보고한 자료에 의하면 1군 지휘관인 자네가 작전 수행평가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아크네.2군지휘관과 간발의 차이지만 말이네" '작전 수행평가!' 레이몬드의 퀘스트를 하며 올렸던 수치였다. 설마 그게 이렇게 쓰이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자잘한 서브 퀘스트를 완료한게 어림잡아도 서른번, 덕분에 작전 수행평가가 상당히 올랐으리라, 반면 알나과 2,3군 지휘관들은 그냥 있어도 경험치와 공적치가 올라가니 보상도 적은 레이몬드의 퀘스트를 무시했다. 때문에 지휘관으로 등록되어 받았던 작전 수행평가 수치가 전부였던것이다. 아란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슬쩍 아크를 노려보았다 결국 정당한 수치로 결정되었다는말,그런 경우는 결정이 번복될 여지가 없다. "그럼 설명을 계속하지, 아란경,아크.둘이 의논해 병력을 편성하도록 하게" 두두둥, 아크의 눈앞에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영웅 집결령! *서브 퀘스트 : 마광 포탑 점령 작전 어둠의 군단이 보유한 2기의 마광 포탑이 작센성으로 접근중입니다. 마광 포탑이 사정거리 안에서 자리를 잡는다면 작센성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될것입니다. 이에 작센 영주는 마광 포탑을 저지하기 위한 작전을 제시했습니다. -퀘스트 성공 조건 : 이번 퀘스트는 A와 B그룹으로 나뉘어 진행됩니다.작센 수비 진영에 소한 모든 플레이어는 A와 B그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작전이 성공하면 그룹에 속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경험치와 공적 보너스가 제공됩니다. -퀘스트 실패 조건 : 작전중 모든 플레이어가 사망하거나,제한시간내에 작전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퀘스트가 자동 실패됩니다. 또한 A와 B그룹이 모두 실패해 2기의 마광포탑이 사정거리안으로 진입, 작센성에 포격을 시작하면 생존한 플레이어가 남아있어도 메인 퀘스트는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시간제한 : 3시간 *현재 B그룹의 리더는 아크님입니다.지휘관으로 등록된 플레이어는 경험치와 공적치에 +20%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단, 실패시 -30%의 패널티를 받게됩니다. {난이도 ++D}] 메인 퀘스트의 실패로까지이어질수 있는 서브 퀘스트! "자, 그럼 이제 병력을 편성해보지" 소년영주가 지휘관들을 바라보며 말했을떄였다. 퀘스트 정보를읽어보던 아란이 문득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지으며말했다. "의용군이 어느 부대를선택할지는 자유입니까?" "그래,손발이 맞아야 할테니 그 문제는 현장 지휘관의 의견을 존중하겠네" "그럼1군은 당연히 제가 지휘하는 A그룹일거고, 2군과 3군, 민병대는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2군도 A그룹에 들어가겠습니다" "저희도........." 아란의 눈짓ㅇ르 받은 2군과 3군 지휘관이 얼른 대답했다. 소년영주가 당혹스러운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럼 곤란하지 않은가? 모든 병력이 A그룹에 들어가면 B그룹은 어쩌란말인가?" "아직 민병대와 작센 경비대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민병대는 고작 20명밖에 안되네. 경비대도 30명,합친다고 해도 50명밖에 안되지않나?" 반면1,2,3군을 합친 병력은 현재 120여명. 이틀간의 전투로 결원이 생겼다고는하나 B그룹의 2배가넘는숫자였다. 게다가 하나의 마광포탑을 300에 달하는 몬스터가 호위하고 있는상황이다. 그만한 숫자의몬스터와 전투가 벌어지면난전이 돼버릴터,난전에서는 아무리 조직력이 탄탄해도 평균 레벨이 35에 불과한 민병대는도움이 되지 못할것이다. 아란이느물거리는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야 제가 알바가 아니죠.이들은 그저 생존확률이 높은 지휘관을 선택했을뿐입니다. 구석에 숨어서 자잘한 임무로 관리에게 점수나 따던 사람은 믿지 못하겠다는거죠" "하지만............" "그리고 두마리 토끼를 잡는거보다, 어느한쪽을 확실하게 성공시킬수있게 병력을 편성하는게 작센에도 부담이 안될텐데요. 하나를 먼저 처리하면 다른 하나를 처리하는건 어렵지 않을테니까요.물론 적의 병력이한곳에 몰리면 어려워질테니 B그룹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리하지 말고 A그룹이 마광포탑을 처리하고 도와주러갈때까지 시간이나 끌어주면 됩니다. 50명이라도 그정돈 할수있겠죠?어떻습니까?" 아란은 자유도가 높은 퀘스트의 허점을 정확하게 찔렀다. 퀘스트 내용에는 두그룹으로 나눠야한다고 나와있지만,마광포탑을 두그룹이 나누어 폭파시켜야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즉, 한그룹이 2개를 모두 폭파시켜도상관없다는말,또한 만약 시간이 부족해 한대를 놓친다고 해도 퀘스트 실패는아니다. A그룹에 힘을 집중시켜서 아란이 손해날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확실하게 경험치와 공적을 챙길수 있는방법이었다.게다가 크로스가 이끄는 경비대는 NPC라 유저의 뜻대로 컨트롤할수 없다.레벨이 낮은 민병대역시 거치적거린느건 마찬가지. 때문에 쓸모있는 2,3군을 챙기고 이 두부대를 아크에게 떠넘겨 버린것이다. '아란자식.............!'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아크보다정의남이 먼저 걸쭉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거 젊은 새끼가 말한번 더럽게 싸가지없이하는군" "뭐요?" "한마디만 들어도 대강 알만하다. 너같은 놈들이 꼭 하나씩 있지. 덮어놓고 제 잘난맛에 사는 녀석. 내가 제일싫어하는게 너 같은 싹수없는놈들이야" "흥, 다행이군요.민병대도 제 1부대에 넣어달라고 달라붙을까봐 걱정햇는데" "지랄하네. 부탁해도 내쪽에서 사양이다" 정의남이 콧방귀를 뀌며 말하자 로코도 혀를날름거렸다.어쨌든 유저들과 아무런 면식이 없는 아크가 2,3군의 리더를 설득할 방법은 없었다.오히려 그들은 아크가 치사하게 B그룹의 지휘관 자리를 꿰찼다고 생각하는지 바라보는 눈길이 그리 좋지 않았다. 덕분에 아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다. 고작 50명,그것도 반은 레벨 30인 민병대와 함꼐 300이나 되는 몬스터를상대할수밖에없다. 어쩔수 없는일이라면 아란의 강요에 밀려 억지로 떠맡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아크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민병대, 작센 경비대와함께 움직이겠습니다" 소년영주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자네가 받아들이겠다면 나도 더이상 할말이 없군. 일단 아란경의 말대로 진행하도록하지. 작전 실행시간은 1시간되네.준비를 마치면 일단 병참 장교를만나 보게. 이번작전에 필요한 보급품을 준비하도록일어놓겠네" "정말 괜찮겠나?" 크로스가 걱정스러운표정으로 물었다. "확실히 아란경의 말도일리는 있어. 우리가발목을 잡고있는 사이, A그룹이 힘을 집중해 확실하게 한 포탑을 제거하고 합류해서 나머지 포탑을 제거하는게 성공확률은 높을지도 모르지,하지만 자칫하면 B그룹은 전멸을 면치 못할지도 몰라. 그렇다고 느슨하게 적을 압박하면 A그룹에 피해가 미칠게 분명하고........." 사실 그게문제였다. 어차피 A그룹이 작전에 성공하면 메인퀘스트는 실패하지 않는다. 아크는 굳이 작전대로 움직일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경비대가 B그룹에 편입되어 있으니,그냥 공격하는 시늉만하며 시간을 끄는방법은 사용할수 없다. 그런짓을 했다가는 바로 친밀도와공적, 평판이 바닥까지추락하리라. '죽이되든 밥이 되든작전대로 움직이는수밖에없다' 아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뭔가 방법이있을겁니다. 아니, 찾아내겠습니다" "음, 알겠네. 일단 자넬 믿고 따르겠네. 나는 경비대를정비하고 있을테니준비가 끝나느대로 찾아오게" "알겠습니다" 크로스와 헤어진 아크는 민병대원들에게 퀘스트내용을알렸다. 사정을 전해들은 민병대원들은 약간 실망의 기색을드러냈다. 퀘스트를 성공할가망이 없는B그룹에들어가야한다는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됏어,그런 후레자식한테 빌붙느니 화끈하게 붙어서 깨지는편이나아. 암!" "알겠습니다. 저희는 무조건 정의남 님만 따르겠습니다" 정의남이 한번 큰소리르 내자 민병대는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아크가 퀘스트를 공유하자 민병대는 자동으로 B그룹에 소속되었다. '그나저나, 이제어쩐다?' 일단 퀘스트를 받았지만 막막하다. 마광 포탑까지 이동하는도중에 만나는 몬스터는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마광포탑을 호위하는 몬스터는 레벨 80~90대의 삼백여 마리다. '이삼십 마리씩유인해서 싸운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부대단위의몬스터들은 대부분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마리만 공격하면 전체가움직이는것이다. 물론 데드릭을 이용하면 몇마리씩 유인해 낼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도 한계각 있고, 이번 퀘스트는 제한시간까지 붙어있다. 50명밖에 안되는 인원으로 전투와 휴식을 번갈아가며 마광포탑까지 이동하려면 최소한 2시간은 넘게 걸릴것이다,. 만약 생각보다 적을 많이 만난다면 마광포탑에 도착했을떄는 몇십분, 혹은몇분밖에 남지 않을수도 있다. 결국 그 몇분사이에 삼백마리를 처리하고 마광포탑을 폭파시켜야 한다는뜻, 애초에 경비대와 민병대만으로는 불가능한 퀘스트인것이다. '어찌어찌 살아돌아온다고 해도 이번 퀘스트로 아란과의 격차는 하늘과 땅이되겠군, 둘다 실패하면 메인퀘스트각 실패로 끝날테니 아란을방해할수도 없고,그렇다고 단숨에 몇백마리나되는 몬스터를 없앨방법이 있을리도없고.........' 그때,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장면이 스쳐갔다. '가만?몇백마리?그래,그방법이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만약 그 방법을 사용할수 있다면 아크에게 충분히승산이 있었다. '좋아, 밑져야본전이다. 일단 알아나보자.시간이없어' 아크는 곧바로 작센성 한쪽에 마련된 난민 수용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크는 비공정의 갑판장 자벨을만나 자신이 생각해 낸 방법에 대해 자문을 구해보았다. 잠시 듣고잇던 자벨은 한참동안 생각해보더니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글쎼요.솔직히 당장 답변해 드리기 곤란합니다. 동체착륙을 시도하고 2차 폭발은 일어나지 않앗으니 가능성이 전혀없는건 아니지만, 직접 보기전에는........그리고 설사 괜찮다고 해도 분해와 재조립에 걸리는시간은 상황에 따랄 달라질겁니다" "어쨌든 가능성이 없지는 않군요" "그렇긴 합니다" "작센 성을 구하기 위해서는 꼭 마법학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저희가 할수있는일이라면 물론 돕겠습니다. 저희는 아크님덕분에 살아있습니다. 또한 저희역시 작센성을 구하기위해 온사람들이니까요. 그게 명예로운 실버 애로우의 승무원으로서의 의무입니다" 자벨은 호탕한 함장의 부하답게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됐다. 아직 장담할순 없지만 이제 희망이 생겼다' 역시 고민하면 답이 나온다. 자유도가 높은 게임의 장점이다.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니상황을 좀더 깊이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내가 퀘스트를 해결해도 결국 달라질건 없다' 의용군을 모조리쓸어간 아란이 퀘스트를 해결할건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결국 아크가 성공해도 상황은 달라질게 없다는뜻, 순위는 변동이 없으리라. 아크에게 가장 이상적인 결론은 A그룹이 실패하고 아크가 성공하는것이다. 그러나120명의 유저가 평균 레벨이 80에 달하는 A그룹이다. 그들도 쉽지는 않겠지만, 실패할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각오를 굳혀야해!'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꺠물었다.사실 A그룹을 실패하게 만들작전은 구상해두었다. 아니, 정확히는 샴바라를 만났을때부터 생각해둔 방법이다.그러나 또한 A그룹을 실패로 몰아넣고, 만약 B그룹까지 실패하면 메인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게 도니다. 알나도 절망하겠지만 아크역시 며칠간 공들여 온 모든게 허사로 돌아가는것이다. '하지만 위험부담없이 아란을이길수는 없다' 이제 퀘스트의 문제가아니다. 아란과의 감정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뿐인가?씹어삼켜도 시원치 않을 안델까지 아란과 붙어있다. 손해가 두려워 몸을사릴 떄가 아니다. '아란, 그리고 안델. 너희들은 건드려야할사람을 잘못 골랐어' 아크는 마음을 결정했다. 이번에 한해서는 어떤 치사한 방법을 불사하기로......... 아크는 곧바로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냄빌르 꺼내들었다. 그리고 가방에 남아있던 재료를 탁탁털어 요리를 하기시작했다. [포효하는 칠레무침 굉장히 자극적인칠레나무의열매로 만들어진 음식,먹으면온몸에서 주체할수 없는 열기가뿜어져 나온다. 단, 열기가 너무심해 어딘가 살짝 맛이 가버릴 위험이있다. {5분간 힘 +10 단, 효과가 사라지면 3분간 '혼란'에 걸립니다} {중급 서바이벌 요리 효과: 향신료를 첨가해 '혼란'지속시간이 +5분길어집니다}] 거의 30분에 걸쳐 120인분의 요리를 만들어낸 아크는 자루에 담아들고 샴바라를 찾아갔다. 샴바라는 1,2,3군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퀘스트 공유를 시키고 B그룹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치사한 작전을 설명하자 곧 샴바라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시킬일이 잇다더니 고작 이런거냐?" "간단하게 말해, 할수있어, 없어?" "...........할수는 있어" "좋아,이제 출발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어, 서둘러줘" "알았다. 대체 이게 무슨의미가 잇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했으니 시키는대로 하지" 샴바라는포효하는 칠레무침이 담긴 자루를 들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샴바라가 '은신'을 사용해서 가는곳은성내 창고였다. 목표는이번작전을위해 영주가 준비해둔 보급품, 그곳에는 A그룹에게 전해질 음식도 포함되어있으리라. 아크는 샴바라에게 보급품에 들어있는 음식과 포효하는 칠레무침을 섞어놓도록 부탁한것이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든 음식을 다른 음식에 섞어놔도 효과를발휘한다!' 그건 이미확인한적이 있다. 게다가 다른 음식에 섞으면 다시 미확인 상태가 되어 먹어보기전에는 부가효과를확인할수도 없다. '성에서 지급하는 음식에는 작지만 다른 음식에는 없는 부가효과가붙어있다. 아란이라면 당연히 결정적인 전투를 앞두록 보급음식을 먹을거야. 그때 효과가 발동하면........' 다른 음식에 섞어놨으니 A그룹의 모든 유저에게 작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효과도 많이 감소하리라. 그러나 절반만 효력을 발휘해도꽤나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것은 분명하다. 치사하고 비열한 방법!지금까지 그 방법을 알면서도 사용하지 못한것은 양심의 가책때문이 아니다. 아크는 자신에게 확실한 이익만 돌아온다면 어지간한 나쁜짓쯤은 눈하나 깜빡하지않고 해치울 자신이 잇었다. 적어도 뉴월드에서는 말이다. 단지 그런짓을하면 NPC나 유저에게 들키지않아도 성향에 영향이 생기기에 참아왔던것뿐이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걱정할필요가 없다. 샴바라가 가진 비장의 스킬 '사신의 대리자'가 있지않은가. '후후후 ,아란녀석. 어디 엿 한번 먹어봐라'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아크는 휘파람을 불며 병참 장교를 찾아갔다. "경비대는따로 보급품을 지급했습니다.민병대가 받을보급품은 여기있습니다" 1시간 뒤에 찾아가자병참 장교가 보급품을 지급했다. 예상대로 식량 20개와 일방 공구상자 20개가 들어있었다. 이어마법학회에서 나온NPC각 축구공만한 크기의 오브를 두 그룹의 지휘관인 아란과 아크에게주었다.사실 소년 영주가 말했던 보급품은 그걸두고 한말이었다. "마력 폭탄입니다" "마력 폭탄?" "네, 마광포탑은 강철보다 단단한표피로 둘러싸여있습니다. 무기로 부수려면 몇시간도 넘게 걸릴겁니다. 그러나이 마력폭탄을기관부에 설치하면한번에 마광포탑을 고철더미로 만들수있습니다. 단, 주의해야할점이있습니다. 급하게 제조하느라 안전장치를 제대로 달아놓지 못했습니다. 어느정도는 버티겠지만..........혹시라도 마력폭탄에서 이상한 증후가 발견되면 버리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마력폭탄 마법학회에서 발명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마력폭탄.그러나아직 시험작이라 마나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불안정하다. {폭발 타이머를 10초 간격으로 최대 1분까지 조절할수있다. 단, 아직 안전장치가 불안정해 2시간 50분이 지나면 스위치가 자동으로 작동, 폭발을 일으킨다}] 퀘스트 시간제한이 3시간이니 2시간 50분안에폭탄을 장치하고, 남은 10분동안 마광포탑이 폭발하는 장면을 느긋하게 감상하며 퀘스트를 완료하라는 뜻이다. "너무 빨리 전멸해서 우리에게 몬스터가 몰리게만 하지말았으면 좋겠군" 먼저 보급품을 받아챙긴 아란이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말 ,그대로 돌려주지" "의욕은 좋군, 그래. 그럼 누가 먼저 마광포탑을 점령하는지 내기할까?" "좋을 대로" 아크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아란은 코웃음 치며 기수를 돌렸다. 이어 A그룹의 120명이 썰물처럼정문을 빠져나갔다.그들을 바라보고있던 크로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며물었다. "그런데 선생과 민병대는 왜 아직도오지 않는건가?" 크로스가 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정의남이었다. "민병대는 이미 다른곳으로 출발했습니다. 저희가 몬스터를 쓰러뜨리며 마광포탑까지 도착하면 그길을 따라 쫓아오실겁니다" "그게 무슨 뜻인가? 그렇지않아도 병력이 적은데 나누다니?" 크로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지금까지 민병대가 전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건아니지만, 그래도 있을떄와 업을떄가 차이가 없을리 없다. "이번 작전에 꼭필요한 준비를하기위해서입니다" "대체 무슨 작전이기에?" "지금은 자세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그냥 저를 믿고 목숨을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크가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힘주어말했다. 크로슨느 한참동안 마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어차피 이번 출정은 자네나 나나 목숨을 걸고 임하는 작전이지. 또한 영주님은 자네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네.자네가 부탁한다면 따르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아크는 경비대만 이끌고 성문을 나섰다. 성문을 나와 대략 10분정도 전진하자 갈림길이 나왔다. 그곳이 2기의 마광 포탑이 진격해 오고있는 경로였다. 아란 부대가 좌측, 자연히 아크는 우측길로접어들었다. 갈림길을 선택하고 나니 본격적으로 몬스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시시싯, 인간들. 이곳까지 기어나오다니!" "죽여라!" 섀도우와 어벤저 사오십마리로 구성된부대였다. "기사단 앞으로, 방패를앞세우고 돌격하여 선두의 적을 타격한다. 궁수, 측면으로 이동해 적 후방의 움직임을 봉쇄하라!난전이 벌어지면 3인1조로 삼각진을 구성한다!" 경비대의 움직임은 예전과 달랐다. 크로스가 빠르게 상황을 판단해 명령하자 자로잰듯이 움직였다. 열댓명의 기사가 달려나가며 방패로 섀도우를 후려쳤다.와르르 넘어지는 섀도우들을 향해 뒤의 궁수가 화살을 날려 슬로우 효과로어벤저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무작정 돌진해서 한차례공격으 퍼붓고는 각자 따로놀았던 예전과 다르다. 톱니바퀴가 맞물이듯 서로 보조하자종합 전투력이 크게 상승한 효과를 발휘했다. 이른바 정의남의 빡센 교육을 받은 결과다. "좌측에 공격을퍼부으면 다시한번정면으로 돌격한다!" 정의남에게 전술교육을 받은 크로스도 상황 판단력이 엄청나게 상승했다.거기에 아크가 적자를 각오하고 부가효과가 붙은음식을 잔뜩 뿌려놓았다. 덕분에 이래저래 능력이 상승항 경비대는 본래 레벨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고있었다. '역시 정의남 아저씨야.불과 이틀만에 NPC를저렇게 바꿔놓다니...........' 새삼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어쨌든 경비대만으로 마광포탑까지 이동하는데는 큰어려움이 없을것 같다' 성을 나오기 전에는 그게 가장큰 걱정거리였다. 적은병력으로 마광포탑으로 이동하며만나는 적을 이길수 있느냐. 또 시간에 맞춰 마광포탑까지 도착할수 있느냐.그것만큼은 아크가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었기 떄문이다. 그러나 이번전투로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확신이 생겼다. "최대한 빨리 해치우며 진격한다!데드릭, 해골,A플랜이다!" "오케이!" 딱딱딱. 바닥을 구르고, 하늘을 나는 두마리의 소환수와 함꼐 아크도 전장으로 뛰어들었다.날카로운 검격에 연방 치명타가 터졌다. 적의 공격은 모조리 치명타로 돌려주고, 여유가 생기면 발차기가 날아가 섀도우를 상태 이상에 빠트렸다. 이제 섀도우와의 전투에 익숙해진 아크는 혼자서 다섯마리도 상대할수있었다. 또한 샴바라 역시아크만큼의 실력은 되었다. 반강제로 끌려 나온셈이라 그다지적극적으로나서지는않았지만 혼자서 서너마린 너끈히 상대했다. 아크와 샴바라, 둘이서20%에 달하는적을 상대하니 경비대의 부담을 훨씬줄어들었다. 덕분에 얼마 걸리지 않아 무리없이몬스터를 전멸시킬수있었다. 전술을익힌 경비대는 생명력도얼마줄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휴식 시간도 짧아지니 진군 속도에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길목을 막아서는 몬스터 부대는 생각보다 많았다. 한차례의 전투를10분내외로 끝내며 진군하는데도 마광포탑까지는 2시간 20분이 넘게 걸렸다. 겨우 마지막 몬스터 부대까지 처리하고 언덕에 올라서자어둠속에서 강철로 만들어진 거탑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마광포탑인가?" 마광 포탑은 높이가 무려 20여 미터에 이르렀다. 작은 쇠붙이를촘촘히 쌓아올린듯한 외벽에, 상층부에는 거대한 팔같은것이 뻗어나와있었다.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는 5개의 손가락에서 시거먼 불길이 일렁거렸다. 아마도 그 팔처럼 보이는것이 마광판을 쏘아내는 포신이리라. 쿠쿠쿠쿠................ 바닥에 붙어있는 커터필터가 낮은소리를내며 회전한다.느리지만 확실하게 작센성을 향해 거리를 좁혀 가고있는것이다. 자, 이제 문제는 마광포탑을 에워싸고 함께 이동하는 삼백마리의 몬스터 떼! '이제 정의남 아저씨와 민병대를 믿고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제한시간은 불과 40여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어차피30명의 경비대만으로는 10배에 달하는 몬스터를 물리칠수없다.아크와 샴바라 ,설사 민병대까지 가세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리라. 때문에 도박을 벌여 볼수밖에없는것이다. 그렇게 10분이 지나자 크로스가 불안한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뭐하고 있는건가? 이제 시간이 얼마없네"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려야할때입니다" "대체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 혹시 아란경을 말하는건가?" "아닙니다 정의남아저씨와 민병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합류해도상황이 크게 좋아지지않을거라는건 자네도 알고잇지 않나?" "이제 말씀드려야겠군요. 사실은............" 아크가 입을열려고할때였다. 무심한 얼굴로 뒤쪽에서 휴식을 취하던 샴바라가 벌떡 일어났다. "아크, 정찰병이다!" 아크가 깜짝놀라 고개를돌렸을떄였다. 십여마리의 섀도우가 언더위로 올라오다가 아크일행을 발견하고 기겁을 하며 몸을돌렸다. "이런젠장!샴바라!" 아크와 샴바라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섀도우를 덮쳤다.둘이 달려들어 연속적인 치명타를터트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경비대의 궁수들이 가세하자섀도우들은 허망하게 쓰러져갔다. 그러나 아크와 샴바라라고 해도 놈들을 불과 몇초사이에 쓰러뜨릴수는없었다. 게다가 놈들은 정찰병,애초에 놈들은 반격할 생각이 없었다. 나머지 놈들이 아크일행의 공격을 막는사이, 언덕아래로 도망간 한마리가 날카로운 비명을 터트렸다. "끼에에엑!적이다!적이다!" 번뜩! 동시에 삼백마리의 몬스터들의 시선이 언더위로향했다. "인간이다!인간!" 삼백마리 몬스터가 환희에 찬 괴성을지르며 몰려들었다. 힙톤이 거대한 해머를휘둘렀고, 도마뱀을 탄어벤저도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다. 개뗴같은섀도우가 그뒤를 쫓아오고있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지면이 쾅코아 울렸다. "끄,끝장이다!" "저렇게 많은 몬스터가 들이닥치면.........!" 경비대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렸다.크로스의 눈가에도 절망감이 떠올랐다. "제,젠장!이렇게 되면 한마리라도 더 죽이고 죽는다! 모두돌격!" "안됩니다!" 아크가 버럭소리치며 크로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 안된다니? 무슨 소린가?" "이대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그럼.........?" "지금 오직 방어에 전념해야 합니다. 방어에 전념하면 아무리 삼백마리의 몬스터라도 어느 정도는 버틸수있을겁니다." "그렇게 버티는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부탁입니다. 제 말에 따라주십시오. 지금은 오직 길게 버티는것만이 살길입니다." "끄응.........알겠네, 방패앞으로, 적의 돌격을 막아라!끝까지 버텨라!" 크로스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이 방패로 벽을 쌓아 올렸다. 이어 격렬한 굉음이 울리며 몬스터와 경비대가 충돌했다.섀도우와 어벤저의 공격은 대부분 방패에 맞고 튕겨나왔다. 방패와 벙어력은 대부분 모든 장비품의 방어력을 합한것보다 높았다. 물론 막아내지 못하면 방어력에 가산되지 않는단점이 있지만, 전사가 공격으 포기하고 방어태세를 갖추면 방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역시10배나되는 몬스터의 돌격을 받아내고도 경비대의 생명력은 얼마 줄어들지 않앗다. 그러나 트롤을 닮은 거대한 근육질의 괴수, 힙톤에게는 방어태세도 통하지 않았다. 거대 몬스터가 휘두르는 둔기 계열의 무기에는 '방어붕괴'의 추가효과가 있었던것! "우어어어!" 콰쾅! 힙톤이 해머로 한방 내리치면 서너명의 병사가 튕겨져 나가며 스턴에 걸렸다 그런 힙톤이 두마리만 나타나도 경비대의 진형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샴바라,그쪽의 힙톤을 맡아!" "쳇, 아주 제대로 우려먹는군"" "불평하지마. 어차피 너도 퀘스틀르 깨야하잖아" "난 이런 퀘스트는 관심없다고,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냐?" 샴바라가 불평을 늘어놓으며 힙톤에게 달려들었다. 힙톤을 일대일로 상대할수있는건 어둠 속성 보너스를받는 아크와샴바라 뿐이었다. "데드릭, 시선을 분산시켜라!해골, 공격해!C플랜이다!" 퍼퍼펑! 아크는 힙톤의 주위를 돌며 연방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움직임이 느린만큼 치명타 확률이 급상승했다. 거기에 소환수와의 협동 공격 추가데미지. 간간이 날아오는 공격을 흘리면서 먹이는 카운터 어택. 생명력이 수천대에 달하는 힙톤도 미친듯이 들어오는 데미지에 결국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아크는 앞으로 나서서 몰려드는 섀도우의 공격을 쳐내며카운터 어택을 날려댔다. 공격을 흘려내는 회피와달리 검으로 막으면 생명력이 깎여나간다.그러나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 다크 포그의영향으로 썩은 바닥이 미끄러워 이전처럼 민첩하게 회피동작을펼칠수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한번에 ㄴ라아드는 공격이 열번이넘는다.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 그러나 상황은 더욱안좋아졌다. 모든 공격을 검으로 막아내니조금씩 깎이는생명력도 무시할수 없었다. 또한 검으로 공격을 막으면 내구력에도 손실이 있었다. '젠장, 이상태로는 얼마버티지 못해!' 아크가 신음을 흘리고 있을때였다. 또다시 날아드는섀도우의 팔을 쳐내자 뿔나팔소리가 울리며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새로운 스킬을 배웟습니다. 쳐내기(초급, 패시브) : 당신은 오직 검에 의지해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어에 익숙해졌습니다. 이제 당신은 더욱 향상된 솜씨로 적의 공격을 차단할수 있게됬습니다. {쳐내기로 성공시,검의 공격력 X3만큼 방어력 가산.검의 내구도가 손상되지 않음}] 이어 스파크가 일어나는듯한 효과가 이어지며 새로운 창이 갱신되었다. [새로운 연쇄스킬이 등록되었습니다. 연쇄 스킬: 연속으로 사용할수 있는 두가지이상의 스킬이 모이면 자동으로 새로운연쇄스킬로 등록됩니다. 스킬을 성공시키면 연쇄 스킬이 발동하여 연계기 보너스 효과가 발동됩니다. 단, 연결된 스킬을 하나라도 실패하면 패널티가 작용됩니다. *현재 사용가능한 연쇄 스킬 화격 (쳐내기+카운터 어택) 적의 공격을 날카롭게 쳐내고 반격을 가하는 고급 반격기 {연쇄 스킬 성공시 : 50%확률로 상대를 5~10미터 밀어낼수 있습니다} {연쇄 스킬 실패시 : 50%확률로 3초간 정지}] '연쇄스킬?' 아크는 어리둘정한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그때, 섀도우 한마리가 팔을 뻗어왔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으로 팔을쳐내고, 몸을 회전시키며 카운터 어택을 날렸다. 순간 검끝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연쇄스킬이 발동되었다. 섀도우가 수미터나 튕겨져 다른 몬스터와 한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것이다. '이게 연쇄스킬이구나!' 아크는 환호성이라도 터트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적을 10미터나 밀어내는 특수 효과! 지금 상황에선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가진 스킬보다 더 유용한 스킬이다. 아크는 곧바로 전장을 누비며 연쇄 스킬을 난사했다. 아직은 성공 판정이 낮아 모두 밀어내기가 성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의 신체능력은 발군! 금세 성공판정의 타이밍을 찾아 성공률을 올릴수 있었다. "화격!" 퉁,퉁,퉁,퉁! 아크를 공격하던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마치 볼링을 하듯 한마리가 날아가면 다른 몬스터가 와르르 쓰러졌다. 덕분에 경비대가 받는 부담이 줄어들어 불안하던 방어진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10분이 지났을 무렵,돌연 언덕 뒤쪽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내가왔다!" 아크와 샴바라, 크로스, 경비대의 고개가 부러질듯 세차게 돌아갔다. 정의남과 민병대였다. 그들은12명의 실버애로우 승무원과 함꼐 푸른빛이 흐르는 거대한 물체를 끌고 다가왔다. 날카로운 삼지창과 같은 형태의 포신, 바로 비공정에 붙어있던 뇌신의 창이었다. 그렇다. 바로이게 아크가 생각해놓은 비장의 카드였다. 애초에 B그룹의 병력으로 삼백 마리나 되는 몬스터를상대하기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비공정에서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수백마리의 몬스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던 뇌신의 창!자벨과정비사에게 알아본 결과, 당시의 불시착에서 뇌신의 창은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는말을 들었다. 또한 엔진에 남아있는 마력을 이용해 충전하면한발정도는 사용할수 있다는 정보도 알아냈다. 문제는 기체에서 분해하고 엔진과 재조립한뒤 마광포탑이 잇는곳까지 끌고오는시간. 때문에 아크는 민병대를호위로 승무원들을 먼저 출발시킨것이다.아크가 부족한 시간임에도 길목의 몬스터를 모두 처리하며 이동한 이유는,민병대가 뒤쫓아오는 길목을 청소해두기위함이었다. "드디어 왔구나,늦지 않았어!" "모두 좌우로 벌리며 최대한 신속하게 후퇴한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크로스가 신속하게 명령했다. 그러자 병사들이 방패를내던지고뒤쪽으로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터질것처럼진동하던 뇌신의 창이 벼락을 뿜어낸건 그때였다. 번쩍, 쿠콰콰콰콰! 시퍼런빛이 어둠을 찢으며 날아가 바닥을 시퍼렇게 물들였다. 임시방편으로 엔진의 마력을 충전한것이라 비공정에서 사용할때보다는 위력이 약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전황을 뒤집기에는 충분했다. 온몸이 스파크에 휩싸인 몬스터들은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생명력이 수천대에 달하는 힙톤조차 30%밖에 남지 않았다.보너스로 전격에 의한 마비효과까지! "지금이다,공격!" "우와아아아!" 크로스의명령에 병사들이 사기충전해서 몰려들었다. 10배에 달하는적이라도 상대가빈사상태라면 얘기가다르다. 게다가 마비까지걸려있다면 그야말로 허수아비를 치는것이나 다름없다. 민병대까지 가세하니 몬스터들은 빠르게 숫자가 줄어들어갔다. 아크도 뛰어들어신나게 몬스터를 쓰러뜨리고있는데 ,옆에서 샴바라가 소리쳤다. "이러고있을떄가 아니잖아, 멍청아!" "뭐?" "퀘스트 제한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황급히 퀘스트창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제한 시간이20분밖에 남지않았다. '화격!' 아크는연쇄스킬을 사용해 몰려드는 섀도우를 밀어내고 마광포탑을향해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서지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들 안쪽에 검은증기를 뿜어내는동력원이눈에 들어왔다. 직감적으로 그곳이 마력 폭탄을 장착할곳임을 알수있었다. '저기다!' "주인, 위험해!" 아크가 발을 내딛는 찰나, 갑자기 데드릭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자 거대한 도끼날이 스쳐 바닥을 찍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이몸이 지키는 마광포탑을 더럽히려하다니!" '아직 몬스터가 남아있었나?' 아크가 화들짝 고개를돌렸다. 순간 어둠속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뛰어나오며 어꺠로 가슴을 들이받앗다. 아크는 튕기듯날아마광포탑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낙법을 펼치며 구르다가 벌떡 일어나니 마광포탑의 입구에서 핏빛 도끼를 든 몬스터가 걸어나왔다. 두꺼운판금 갑옷을 입은 5미터 크기의 섀도우!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중간 보스 몬스터 '포수장 나라크'가 출현했습니다! '맙소사,중간보스라니............! "지옥으로 꺼져라,인간!" 나라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날아드는도끼를 쳐내며 카운터를 날렸다. 연쇄 스킬!그러나 나라큰느 한차례움찔했을뿐, 곧바로 달려들어 미친듯이 도끼를 휘둘러댔다. 카캉, 카라라락! 검을 들어 막았지만 생명력이 150이나 빠져나간다. 나라크의 레벨은 무려130이나 되었다. 중간 보스이니 보스만큼 보너스가 가산되지는 않겠지만, 레벨로는 갈릭의 배속에서 만났던 아드리안보다 높다. 게다가 두께가 몇센티미터는 족히 넘을듯한판금 갑옷까지걸치고 있어서 방어력은 아드리안과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젠장, 다크블레이드!" 아크가 바닥을 차고 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어둠곽 동화한 검이 나라크의 목줄기에 박히자 굉음이 울렸다. 방어력을 무시한치명타 공격!그러나 나라크는 타격조차 입지않았는지 오히려 아크의 멱살을 잡아들었다.숨이 턱막히며 힘이 쭉 빠져나갔다. "감히인간따위가............!" "암흑 돌진!" 데드릭이 맹렬히 돌진해 나라크의 콧잔등을 받아버렸다. 나라크가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나자 해골이 재빨리 발밑으로 굴러들어갔다. 해골을 밟고 중심을 잃은 나라크가휘청거렸다. 그때, 빠르게 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던 그림자가 표범처럼 뛰어오르며 두 자루의 단검으로 나라크의 손목을 그었다. 그제야 멱살을 잡고있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아크는 발을 수직으로올려차 나라크의 손을 떨쳐냈다.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착지한 아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쌍수단검으로 나라크의 손목을 공격한 사람은 다름아닌 샴바라였다.아크는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빙긋 웃어보였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달려와줄줄은 몰랐어" "네가 죽으면 나도 곤란해" 샴바라는 낮은 자세로나라크를 노려보며중얼거렸다. "다른사람은 졸개들을정리하느라 여유가 없어. 너와나뿐이다" "그래.............."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대와 민병대는삼백마리나 되는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도와주러 오면 곤란하다. 나라크와 삼백마리나 되는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몰려 난전이 되면상황은 더욱 어려워지리라. "내가 먼저 간다. 알아서 맞춰, 순보!" 스킬을 사용하자 샴바라는 앉은 자세 그대로 훅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마치 중간 화면을 빼먹은것처럼수미터를이동해 나라크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굉음이 울리며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나라크가 분노의 괴성을 터트리며 도끼를 휘둘렀지만, 샴바라는기묘한 발놀림과 흐르는듯한 팔동작으로 모든 공격을 흘려냈다. 미끄러운 바닥의 영향도 받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이어 회피 동작과 연결해 단검을 휘두르자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져나온다.아크의 카운터 어택과 비슷하지만 훨씬 숙련된 매끄러운 움직임! '저 동작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데.........' 잠시 기억을 더듬던 아크는 곧 기억을 떠올렸다. '맞아, 저건 중국 권법이다!' 중학교 시절, 태권도장에서 쿵푸도장의 수련생들과 친선시합이 열렸을떄다. 당시 두 체육관의 사범이 나서서 시범 시합을 했을떄, 쿵푸사범이 저런 움직임을선보였던 적이있었다. 태권도 사범이 쏟아내는발차기를 지금 샴바라와 같은 동작으로 흐려내며 반격을 가하는 모습에 관원들은 모두 넋이 나갔었다. 쿵푸 사범은 그 기법을 '화경'이라고불렀던것 같다. 당시 쿵푸 사범이 보여준 동작과 샴바라의 움직임은 느낌이 같았다. 손끝을 부드럽게 흔드면 나라크의 도끼는 도중에 궤도를 바꿔 바닥을 내리찍었다. 물론 기술은 기술이고, 게임은 게임이다. 아무리 훌륭한 솜씨로 화경을 펼친다고해도 시스템상 데미지 자체를무시할순 없다. 그러나 생명력을 확인해보니 화경이 성공하면 데미지가 80%이상 감소하는것 같다. '역시 샴바라는 단순히 스킬만 특이했던게 아니야' 아크는태권도를 통해 게임의 숨겨진 비기에 접근했다. 샴바라 역시 중국 권법을 통해같은 결론에 도달했으리라. 처음봤을때부터 느껴왔던 샴바라의 묘한 자신감. 그 정체가 바로 그것이다. '하긴 정의남 아저씨가 익혔다는 유술도 현실에서 익힌 무술이 스킬에적용된거니까. 나나 아저씨처럼 무술을 익힌 사람이라면 기본 공격 스킬의 수준이 높을 가능성이 많아' "뭘멍하니 보고있는거야?" 아크가 멍하니 바라보자 샴바라가 짜증스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 스타일을 눈치 챘다면 네가 뭘해야하는지는 알고있지?" 물론알고있다. 샴바라덕분에 여유를되찾은 아크는 스텝을 밟으며 나라크와간격을 조절했다.모든 무술의기본은 스텝에서 나온다. 특히 발차기를이용하는태권도에서 스텝은 공격과 방어의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중요한 기본기였다. 그렇게 평소의 리듬을 되찾은아크는짧게 호흡을 들이마시며 발차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돌려차기, 앞차기,뒤차기! 돌풍처럼 휘몰아치는 발차기에 나라크조차 움찔움찔하며 물러났다 .아크가 본격적으로 공격을펼치자 샴바라의 공격에도탄력이 붙었다.아크의 발차기에 빈틈이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샴바라의 쌍수단검이 급소를 찔렀다. 태권도와 쿵푸, 두 절정 무술이 가상현실게임에서 협동 공격을 펼치는것이다. 거기에 아크와 수많은 실전을 거쳐온 데드릭과 해골이 보조를 맞추니 그 상승효과는어마어마했다. "크으윽, 인간따위가.......!" 나라크는 도끼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연방 뒷걸음질 쳤다. '이상한 느낌이다.' 샴바라와 함께 싸워보는건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마치 오랫동안 함께 싸워온 동료처럼 호흡이 잘맞앗다. 둘다 오랫동안 격투기를연마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둘 모두암흑 속성이라시스템상의 상성이 좋은건지. 샴바라의 권법과 아크의 발차기는상호 보완적으로 연동하며 나라크를 몰아붙였다.사실다크워커와 세인트 어쌔신, 이 두직업의 조합이 뉴월드에서 단순한 협동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시나리오상으로도 두 직업은 암흑세기에서부터 인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아직 아크도 샴바라도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라크도상상을초월할정도로 강했다. 10분 가까이아크와 샴바라의 공격에 두들겨 맞고도 생명력은 40%밖에 줄지않았다. 반면 찰나의 실수로 나라크의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으면일격에20%나 되는생명력이 빨려나간다. 다행히 경비대와 민병대가 졸개를 해치우며 접근해오는중이라 아크와 샴바라도 로코가 부르는 노래의 영향을 받을수있었다. 로코는 쉬지않고 3분간 200의 생명력을 회복시켜주는 '회복의 노래'를 불러댔다. 즉, 연속으로맞지만않으면 생명력은 꾸준히 회복할수 있는것이다. '퀘스트 제한시간까지는 앞으로 10분정도, 샴바라와 함꼐라면 이길수 있다!' 아크가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때였다. 돌연 가방이 부르르 진동하며 자동으로 열렸다. 가방안에서 축구공만한크기의 구슬이 붉은빛을 뿜어냈다. [마력폭탄의 마나가폭주하고 있습니다! {마력 폭탄의 폭발까지 남은시간 59초}] "맙소사, `1분...........!" 아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고보니 마력폭탄의 제한 시간이 퀘스트 제한시간보다 10분 빠르다는 사실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1분안에 전투를 끝내지 못하면 폭탄이 폭발! 아크와 샴바라는 물론 B그룹 전체가 돌이킬수 없는 데미지를 입게 되리라. '불가능해!1분안에 나라크를 쓰러뜨릴수는 없어!' 이대로 폭탄이 터지면 확실히 전멸한다.그렇다면 ㄴ마은 방법은 하나, 퀘스트를포기하고 폭탄을 멀리던져 버리는 수밖에 없다. 샴바라도 상황을 파악한듯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퀘스트를 포기해라.공적치가 아깝다고 자폭할순 없잖아!" "알고있어!" '빌어먹을 ,여기까지 와서 퀘스트를 포기해야 하다니............'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수없다' 아크가 어금니를질끈 꺠물며 마력 폭탄을 꺼내들었을떄였다. 절묘한 타이밍으로 샴바라의 일격에 얻어맞은나라크의 생명력이 정호가히 505이하로 떨어졌다. 순간 나라크가 갑자기 도끼를 세워 바닥을 후려치더니 하늘을 향해포효를 터트렸다. "네놈들........죽여버리겠다,아오오오!" 아크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건 그때였다. '헉!' [나라크의 특수스킬 '하울링'에 걸렸습니다 효과 범위의 모든 플레이어와 NPC는 1분간 정신과 신체를 엄습하는 강렬한 공포에 의해 몸이 마비되었습니다!}] "크크큭, 똥파리 같은 놈들!" 나라크가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끝장인가?' 아크는 절망했다. 이대로 나라크에게 얻어맞으면 죽는다. 설사 맞지 않아도 마력 폭탄이 터지면 죽는다. 마비에 걸린 시점에서 이미 승부는 결정되었다. 그때, 딱딱하게 굳어있는 아크의 눈에 해골이 보였다.데드릭과 다리 언데드라 어느정도 공포에 면역이 있는 해골은 바들바들떨면서 나라크를 향해 기어갔다. 기력을 쥐어짜며 아크를 돕기위해움직이는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 무먼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소용없어,해골!네가 막아도 틀렸단 말이야!" 와작! 결국 나라크의 발에 짓밟힌 해골이강제 송환되어 버렸다. 그러나해골의 의지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해골이 사라지자 아크에게 200이 넘는 데미지가 들어왔고, 아크는단숨에 빈사상태에 빠져 몸이 시뻘겋게 물들어 버린것이다. [빈사상태가 되어 불굴의 정신과 불굴의 육체가 활성화되엇습니다. *세트 효과인 '아드레날린'이 활성화 되엇습니다. 공포에 대한면역이 50% 증가하여 '하울링'의 효과에서 벗어났습니다.반응 속도가 20%증가햇습니다] '아드레나린!' 다크워커는 원래공포에 대한 면역이 50%다. 거기에 아드레날린으로 다시 50% 상승, 100%가 되며 마비가 풀린것이다. 아드레날린이 발동되자등줄기를타고 짜릿한 전류 같은감각이 느껴졌다. 동시에 반응속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크는황급히 몸을굴려 도끼를 피해냈다. 마력폭탄의 정보를 확인하자 이제20초밖에 남지 않았다. 폭탄의 폭발 사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수없지만 100미터정도 달려가서 던져버리면 어찌어찌 살아날수는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막 몸을 돌리려는 순간,돌연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폭발했다. '아니야, 아직 기회는 있어!좋아, 죽기 아니면까무러치기다!' 아크는 다시 몸을 돌려 나라크를 향해 달려갔다. 샴바라와 다른사람들은아크의 돌발행동을 당혹스러운 눈으로바라보았다. 그러나 마비에 걸려 입조차 뻥긋하지 못하는 상태. 그저 아크의 움직임을눈으로 쫓는게 전부였다. 나라크가 비웃음을 흘리며 도끼를 휘둘렀다. 아크는 썩은 바닥에 미끄러지며 뒤 차기로놈의 명치를 찍었다. "크어어억!" 나라크가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뒤이어 아크는 한발로 날아오르며 공중돌려차기로 놈의 턱을 후려쳤다. 그리고 쩍벌어진 나라크의 입에 마력폭탄을 쑤셔 넣었다. "이, 이자식!무슨짓을.........컥!컥!" 당황한 나라크가 헛구역질을하며 마력폭탄을 배어내려고 했다.공처럼 튀어오른 아크의 이단 앞차기가 나라크의턱에 작열한것은그떄였다! 나라크의 턱이 튕겨져 올라가며 딱, 입이 닫혀버렸다. 동시에 바닥에 착지한 아크는 전력을 다해 연쇄스킬 '화격'을 날려 나라크를밀어냈다. 이 모든동작이 단한순간에 이루어졋다. 쿠쿠쿠쿵! 나라크의 배속에서 폭음이 터져나온건 그 직후였다. 놈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안쪽으로 쑥 밀려들어 갔다. 힘없이 벌어진 입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그러나 배속에서 마력 폭탄이터졋음에도 나라크는 살아있었다.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나라크가 충혈된 눈으로 아크를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꺼져라, 다크 블레이드!" -더블 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 X2가 터졌습니다. 아크가 날린 최후의 일격은 기어코 나라크의 생명력을 0으로 만들고야말았다. "네,네놈...........이몸을........이겼다고............살아돌아갈...........생각은 하지마라............크아악!" 정말 바퀴벌레만큼이나 질긴놈이다. 나라크는 생명력이 0이됐음에도 지껄일말은 모두 지껄이더니 비명을 지르며 터져버렸다.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살점과 피가 튀자 샴바라와 경비대, 민병대의 마비가 풀리며 머리위로 십자 문양이 떠올랐다.아크 역시 머리위로 십자 문양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모두에게 엄청난 경험치가 부여됬다. 아크와 샴바라도 레벨이 2나 올랐고 ,나머지 파티원들도 2~3이 올랐다. 레벨이 25밖에안되는 로코는 단숨에 5나올랐다. 덕분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생명력과 마나가 가득찼다. 아크와 샴바라는 크게 한숨을 불어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샴바라는 멍하니 나라크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큭, 너 보통은 넘는구나. 마지막은 정말 끝내줬어" "누가 할소리를!" 아크의 입에서도 웃음이 흘러나왔다.누군가와 함께 전투를 하며재미있다고 느낀적은 처음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유쾌하지만은 않았다.어떻게 나라크는 쓰러뜨렸지만, 아직 다른 졸개 몬스터들은 남아있었다. 게다가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10분.마력폭탄도 없으니 10분안에 마광포탑을 제거할 방법도 사라져버렸다. '퀘스트 실패는어쩔수없지.졸개들부터 정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력 포탑을 부순뒤에 돌아가면그럭저럭경험치는 챙길수있을거야. 일단 먼저 아이템부터 챙겨두자' 나라크가 폭발한 자리에는 손때가 묻은 열쇠와 양피지, 반지가 떨어져있었다. "정보창" [피가묻어잇는 낡은 열쇠]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인장이 찍힌 지령서 어둠의 군단 사령관이 발데라스가 나라크에게 보내온 작전 지령서 {정보를 검색하며 자세한 내용을 볼수있습니다}] [부활하는 영혼(마법) 아이템 타입: 반지 사용제한 : 70레벨 나라크가 최후의 마력을 쥐어짜 저주를 걸어놓은 반지. 플레이어각 반지를만지면 단한번,나라크가 발동시킨 저주 스킬'최후의 통첩'이 발동된다. 저주가풀리면 평범한 마법반지로사용할수 있다. {옵션 :힘+5,마나회복속도+5%}] '뭐야? 저주스킬최후의 통첩?' 아크가 메시지를 보며 고개를갸우뚱거릴때였다. [나라크의' 최후의 통첩'스킬이 발동햇습니다. 나라크가 걸어놓은저주의힘으로 반경 500미터 범위에서 30분내에 죽은 모든 몬스터가 언데드로 부활합니다. 부활한 언데드는 살아있는 생명에게 강한 적개심을품고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뒤쪽에서 로코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땅속에서몬스터들이 기어나오고 있어요!" "이,이럴수가!" 아크의 입에서도 숨막히는 비명이 흘러나왔다.뇌신의 창을 사용해서 겨우 죽인 이백여 마리의 몬스터들이 언데드가 되어 몸을 일으켰다. 힙톤, 섀도우, 어벤저.심지어..........나라크까지 누더기와 같은 모습으로 땅속에서 기어나오고 있는게 아닌가? "젠장, 이런함정을 걸어놓다니!" "도망갈길이없어!" "맙소사, 겨우 지금까지 버텼는데..........." 민병대원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그럴리가없어!분명뭔가방법이 있을거야!' 아크는 지금까지자신의 레벨로는 엄두도 못낼난이도의퀘스트를 몇번이나 성공시켰다. 그러면서 배운게 있다면, 설핏 불가능해 보이는 퀘스트라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반드시 위기를벗어날단서가준비되어 있다는점이었다. 생사를 결정하는건 그것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 아크는 바닥에떨어져있는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단서는 이거다.만약 내가 생각하는게 맞다면........' 아크는 아이템을 챙겨들고 마광포탑으로 달려갔다. "샴바라, 정의남아저씨. 마광포탑으로 들어와 입구를 봉쇄하세요!" "뭐? 무슨소리야? 당장 도망가도 모자란판에?" "하여간 날믿고 따라줘!" ".........알았다. 모두마광포탑으로 가자!" 정의남이 명령하자 실피드기사단과 민병대원들이 아크의 뒤를따랐다. 아크는 빠르게 포탑내부의회전계단을 따라올라갔다.회상층은 사방이 뻥뚫린 커다란방이었다.빠르게 주변을 훑던 아크는 곧 한쪽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계를발견했다. 몇개의 레버가달려있었고, 그 안쪽에 열쇠구멍이 보였다. "안목!" 스킬을사용하자 미확인 아이템이었던 열쇠의 정보가 나타났다. [나라크의 열쇠(특수) 포수장나라크가 마광 포탑을 제어할떄 사용하는 열쇠다] '역시, 이게 해답이었어, 이 열쇠가 마광포탑을 움직이는 마스터키다!' 아크는 한걸음에 달려가 열쇠를 끼워넣었다. 그러나 마광포탑이 진동하며 아랫부분에서 4개의 다리가 튀어나와 지면에 고정되었다. 고정이 끝나자 창너머로시꺼먼 불길이 일렁거렸다. 아크가 레버를 잡고 움직여 보자 기계음이 울리며포탑이 회전했다. '어디 위력을 확인해볼까?' 아크는 포탑을 조종해서 흐느적거리며 몰려드는 언데듣들에겍 과녁을 맞췄다. 이어 옆에 달린 버튼을 꾹누르자, 포탑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콰콰콰쾅! 작센성을 누더기로 만들고,일격으로 비공정을 추락시킨 마광탄! 그 무시무시한 위력이 눈앞에서벌어졌다.마광탄이 작열하자 검은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마광포탑주위로 몰려들던 언데듣들은 문자 그대로 걸레처럼찢겨져 날아간다. 언데드 나라크도 예외는 아니었다. 땅에서 기어 올라오자마자 마광탄의 폭풍에휘말려 단숨에 생명력이 50%이상 깎여나갔다. -마광탄의 에너지 재충전시간은 3분입니다. '후후후,이거 짜릿한데!' 살아남은 언데드들이마광포탑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강철로 덮여있는 마광포탑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사이,재충전이완료되었다.또다시 일어나는 검은화염의 폭풍!언데드 나라크도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단두발로 삼백마리의 언데드 몬스터를 해치워 버린것이다. "아,아크!" 헐레벌떡 상층부로 뛰어 올라온 정의남과 로코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포탑을 회전시켰다. 아직 할일이 남았다. 고양이의 눈으로 주변을 훑으니저 멀리 또 하나의 마광포탑이 보였다. '아란 녀석은 실패했다!' 이미 마력폭탄의제한시한은 지났다. 그럼에도 마광포탑이멀쩡하다는 것은 아란이 퀘스트를실패했다는 뜻!샴바라 역시 마광 포탑을 확인했는지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치며 속삭였다. "네 사악한 잔꾀가 제대로통한 모양이군" 출발전에 A그룹의 보급품에 포효하는 칠레무침을섞어넣은걸 말하는것이다. 아크는 말없이 사악한 미소를 떠올렸다. '한동안 왠지 모르게 힘이 솟아 좋았겠지' 아크의 눈에는아란이 겪은일이훤하게 보였다. 아란은 마광포탑을 앞두고 전열을재정비하기위해 음식을먹었으리라. 그리고 이상하게 힘이 증가해 꽤나 만족스러웠겠지.5분이 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전까지는.혼란에 빠지면 캐릭터의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며닥치는대로 스킬을 난사한다. 그렇게 한참 열심히 싸우는 도중에 동료들이 살짝 맛이 가버리면 결과는 뻔하다.혼란은 일반적으로상태이상 가운데 가장 지속 시간이 짧지만, 한번 걸려 버리면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것이다. '아란 녀석, 죽어줫으면 좋겠는데..........' 소박한 바람이다. 아란의 능력을 봤을때 어두어질 가망은 별로없는것 같지만........ "홀리나이트 아란경,네가 실패한퀘스트.내가 접수해주지" 아크는 마광포탑에 조준을하고 버튼을 꾹 눌렀다. 눈앞으로거대한 검은화염이 뭉치더니 이내 어둠속으로 뿜어져 나간다.그리고 잠시후,멀리서 굉음과 함께 마광포탑이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두두둥,웅장한 북소리가 울리며 퀘스트가 갱신된건 그때였다. [*서브 퀘스트 '마광포탑 폭파작전'의 숨겨진 결말을찾아냈습니다. 당신은 포수장 나라크를 쓰러트리고 마광포탑을 탈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수많은 몬스터는 물론, 남아있는 1기의 마광포탑까지 폭파시켰습니다.이제 작센성이 마광탄의 공격을 받을일은없습니다. 오히렬 어둠의 군단으로부터 작센성을 지키는병기로활용되어질 것입니다.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기대이상의성과고, 당신은 그에대한 정당한 공적을 인정받을수있을겁니다. {특별보상 : 30분간 마광탄으로 죽인 몬스터 X5,추가경험치의 공적,명성 +50} *지휘관 추가 보상 : 경험치, 공적치+3,000 .명성 + 50] 또다시 아크와 B그룹의 머리위로 십자문양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미친듯한레벨업과 공적치, 명성이 줄줄이 가산되었다. "크하하하, 이게 광렙이라는건가? 이렇게 화끈한 퀘스트는 처음이다!" 정의남도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란녀석, 어떤 표정일지 보고싶군" ACT 6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 포탑을 움직여 조준하고 발사! 검은 화염탄에 적중하면 단숨에 구찮게 굴던 몬스터들이 박살이 나며 흩어졌다. 사정거리도 길어서 멀리 점으로만 보이는 몬스터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치 FPS게임을 하는듯한 기분이랄까? 피로와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간다. 몬스터 한마리에 경험치와 공적이 5씩 가산, 메시지를봣을때는 고작이라는생각도 ㄷ르었지만 30분에 마고아탄을 열번이나 쏠수있다. 한번에 박살나는 몬스터가 최소 수십에서 많게는 백여마리에 이르니 경험치와 공적이 미친듯이 올라갔다.나라크를 잡고2,마광탄으로1,서브퀘스트 하나만으로 아크는 레벨을 3이나올려 75가되었다.샴바라도 비슷한 수준으로 레벨이 올랐고, 레벨이 낮은 정의남,로코,민병대는 5이상의 레벨을올렸다. 레벨30대유저들이언제 이렇게 무식한 레벨업을 해봤겠는가?민병대는 한동안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아크의 공적치도 단숨에 9,000대에서18,000대까지 올라갔다. -현재 아크님의 공적은 18,560 순위는 21위입니다. '단숨에 순위가 40단계나 올라갔다!' 드디어1군에 속한 유저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여전히 공적순위는아란이 단독 선두였지만 ,4배나 났던 차이가 2배로좁혀졌다.이제야 짙은 안개가 걷히고 산 정상이 눈에 잡힐듯 보이는 느낌이다. '아란까지는 몰라도 베스트10에 들어갈수 있을지도몰라' "수고하셨습니다. 당분간 쉬세요" 성으로 돌아온 아크는 B그룹을 해산시키고 결과를보고하기 위해 영주성으로 향했다.그런데 광장을 지날떄,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돌려보니 작전에 실패하고 돌아온 A그룹의 유저들이 모여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출발할때와 달리 모두들 잔뜩 성난눈길로 아란과 안델을 포함한 1군ㅇ르 둘러싸고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 A그룹의 상황이 궁금하던 참이다. 아크는 사람들틈을 파고들어가 분위기를 살폈다. "입이 있으면 말해보시지" 한전사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대체 이 책임을어떻게 질생각이지?" "그게 어째서내 책임이라는거냐?" "뭐야?" "나는 지금까지 독단적으로 작전을펼친적이 없다.항상 2,3군의 리더와 의논하며 진행시켰지.실패의 책임을 나에게만 따지는건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란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오만한 표정으로대답했다.모여든 유저들은 기가막힌다는 목소리로 따졌다. "퀘스트를실패한것때문에 이러는게 아니잖아!" "그래,네가 던진 마력폭탄때문에 우리 공격대원이 6명이나죽었다고!" "우리는 7명이야.공격대 리더까지 죽었어!" 그들의 얘기를종합해 보면 이렇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A그룹은무난하게마광포탑에 도착했다. 그리고 삼백마리의 몬스터와 정면으로 충돌했다.전세는 거의 호각,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중간 보스 '포수장 나자크'라는 몬스터가 가세하자 A그룹이 밀렸다. 아란은 일단 병력을 퇴각시키는 수밖에없었다. 생각보다 적이 강하니 음식과 각종버프로 능력치를올려놓고 다시 총공격을시도하려한것이다. 그리고 아란의 작전대로 처음에는 A그룹이 맹공을 펼치며 적을 몰아갔다.문제는 5분뒤.............. 갑자기 유저들이 미쳐 날뛰기시작했다. 혼란에 빠져 아무데나 스킬을 난사하며돌아다녔다. 아크가 바꿔치기한 '포효하는 칠레무침'이 위력을 발휘한것이다. 그러나 A그룹에서 혼란에 빠진것을알고있는 사람은 없었다. 평범한 요리를먹고 상태이상에 걸린다는 말은 들어본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저들이 미쳐버린 덕분에 A그룹은 엄청난 타격을입고 말았다. 사실여기까지는 아란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그직후 채 혼란에서빠져나오기도 전에 마력폭탄의 제한시간이 다돼버렸다. 겨우 혼란에서 벗어난 아란이 선택할수 잇는방법은 두가지. 어떤 훌륭한군인처럼 폭탄을 껴안고 혼자 죽거나. 다른사람이 죽든말든 혼자만살고보는 방법이었다. '아란이 어떤 방법을 선택했을지는안봐도 비디오지' 혼란으로 이미유저들의 생명력은 거의 바닥난 상태.그중심에서 폭탄이 터졌으니 결과는 뻔했다. 15명 즉사,수십명이 빈사상태에 빠지는피해가 발생했다.기겁한 A그룹은 곧바로 퇴각했고 서브퀘스트는 실패로 끝나버린것이다.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라는건 이해한다. 하지만명색이 지휘관인네가 무턱대고 마력 폭탄을 집어던져 많은 피해를냈다. 그건 분명히 네 책임이야!" "그럼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거냐? 마력폭탄을 껴안고 죽기라도 했어야 한다는거냐?" "뭐라고?" "죽은 사람들은 운이 없었을뿐이다" 아란은똑똑하다. 아무리 게임이라도이만한 사람을 끌어모으는건 단순히레벨이 높다고 가능한 일이아니다. 영리함과 통솔력, 카리스마따위가 기본적으로 따라주어야가능한일이다.아란은그 모든걸 갖췄다. 그것도 모자라쓸모없는것까지 하나 더 갖추엇다. 스스로 영리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가장 큰 단점, 자존심이다. 사실상황은 누가봐도 아란이잘못했다. 그러나 그는미안하다는말을하지 않는다.꼴같지 않은 자존심때문이다. 그게 유저들이 분개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일단 불만이 터져나오자걷잡을수 없이 커져갔다. 자고로 모난돌이정을 맞는법이다. 다른살마들을지휘하려면 어쩔수없이 독선적인 면이생길수 밖에없다. 아란역시 지금까지 그래왔고, 작은불만은 있었지만 크게문제가 됐던적은 없었다. 그러나 근래들어 아란이 급격히 유명세를타기 시작하자질시를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미가 생기자 너도나도아란을 공격해 대고있는것이다. '이래서 유저가 싫어' 물론 아란은 더 싫다. 공적 순위1위의 아란은 아크가 싫어하는 유저 순위에서도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즉, 아란의 곤경은 아크의기쁨.아크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얼마나 공을들였는데,말싸움만 하면 섭하지.자, 제대로불을 지펴볼까?' "데드릭,특수임무다"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해 귓가에 대고 속닥거렷다 귀를쫑긋세우며 데드릭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냈다. "오오, 역시 주인! 정말 야비한........아니, 멋진생각이다" "할수 있겠어?" "맡겨만 줘, 이런일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데드릭은 괴상한 표정으로 웃으며낮은포복으로 바닥을기었다.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유저들의 발사이를기어가는데드릭은 바퀴벌레처럼날렵했다. 그렇게 유저들을 가로지른데드릭은 아란이 타고있는 백마의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거친 고함소리가 터져나온건 그때였다. "닥쳐,이자식들아!감히 누구에게 지랄하는거야? 잠자코들어주니까 누굴 호구로알아? 너희들은그냥 내가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면 돼!빌어먹을,경험치와공적이 아니면이 아란이 너희같은놈들을 상대라도 할것 같아?" 와글와글 떠들던 유저들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아란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나는............" "저자식, 우리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기가막혀, TV에 한번 나왔다고 자기가 뭐라도 된다고 착각하는모양이지?" "TV에서는다른사람의 도움이어쩌고하더니.............속내는이런거였군" 유저들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무작정 아란의 편을 들어주던 여자도 실망스러운 눈길로 훑어보며 수군거렸다.그때,다시아란에게서 고함이 터졋다. "닥치라고 했잖아, 빌어먹을 계집애들도 닥쳐!망할년들, 꺅꺅거리며 따라다니는게 지겨워도 참아줬는데 이제와서 나를 배신해? 지옥에나 떨어져라!" "뭐,뭐라고? 마, 망할년들?" "아란, 말이 너무심하잖아!" 여자들이 거품을 물자, 남자들이 버럭 소리치며 아란을 다그쳤다.아란은 당황한 얼굴로 주춤주춤물어나며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야,내가 한말이 아니라고!" "끝까지 우리를 바보 취급할생각이냐? 거기 너말고 또 누가있다는말이야?" 아란이 와락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데드릭은소환해제되어 유계로돌아가 버린뒤였다. 빼도 박도못할상황. 아란은 졸지에 이중인격자로낙인 찍혀 버렸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느군" "쳇,뭐이런놈이 다있어?" "상종못할놈이었군. 이제 네 지시따위는 받지 않겠어" "실망이야. 저런사람일줄은몰랐어. 가자" 유저들은 더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듯이 뿔뿔히 흩어졌다.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듯 아란은 멍청한표정으로 남겨졌다.100여명이 모여있었지만 그의 주위에 남아잇는 유저는 고작 열댓명에불과했다. '불쌍하군. 뭐,불쌍해질만한 짓을 하긴 했지만........' 사람들과 섞여 광장을 나서는아크의 입끝이 살짝 치켜져올라갔다. '그러니까 사람을가려가며 건드려야지' 심하다는 생각이들지 않는것은아니지만,없는얘기를만들어 낸것도 아니다.적어도 아크가 알고있는 아란은 이중인격자가 분명하다.진실을 알리는데 부끄러움 따위를 느낄필요는 없지않은가.물론 아란이 이정도로바닥까지 떨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않는다.그러나 유저들이 외면해버렸으니 이제 하늘높은줄 모르고 오르던 공적치도 주춤할수밖에 없으리라. '이제 시작이야.아란, 넌 나를 적으로만들었어. 그대가가 고작 이정도로 끝날거라고 생각하지마라. 언젠가는 레리어트앞에서 네 정체를 홀라당 벗겨 버릴테다' 나날이 사악함이 더해져 가는 아크였다. "아크 ,크로스 경에게 얘긴 들었네.자네가 해냈군!" 소년영주가 반색하며 달려와 손을맞잡았다. "마광포탑을 저지했을뿐만아니다. 오히려탈취하다니!실로 큰일을 해주었네. 내가 어떤말로 치하한다고해도 부족할걸세.당장 자네의 영웅적인 성과를주민들에게 알려야겠네. 레이몬드,게시판에 붙일 공고문을 작성하게" "알겠습니다" 레이몬드가 활짝웃으며 펜을 들어올렸다. "아,아닙니다. 이번 임무는 저 혼자서 한일이 아닙니다.경비대와 민병대,실버 애로우의 승무원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것도하지못했을겁니다. 그러니 그들이 임무를 해결한것이나 다름없습니다.공고문을 붙인다면 저보다는그들의 이름으로 해주십시오" 아크는겸손하게 말하몀 사양했다. 불과몇분전에 인기가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던 아란,그의 추락을 보았다.물론 반은아크의 작품이엇지만 언제각 됬든 터졌을일이다.모난돌이 정을맞는다. 아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언제나선망의 대상은 곧 질투의 대상인것이다. 아란은 그래도 레벨과 조직력이 있으니정을 맞아도 버티겠지만 아크에게 다른 유저의 관심은 상당한 불안 요소였다. 자칫 카오틱 유저의 목표가 될수도 있고,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뒤따르게 될것은 불보듯 뻔한일.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싶었다. '튀지않고 이득만 챙긴다' 이게 이번 퀘스트에 참가하며 아크가 세웠던 목표였다. 그런 속내를 알리없는 소년영주는 감동한 얼굴로 끄덕였다. "저는 도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과연아크!선행에 대가는 필요없는건가? 자네는 실로 기사도의 결정체와 같은 사람이네.하긴 그러니 아버님도 자네를 믿고 유품을 맡길수 있었겠지.알겠네,자네의뜻이 정그렇다면 할수없지.레이몬드,아크의부탁대로 공고문에는경비대와 민병대,실퍼애로우 승무원의 활약으로 이번작전을 성공했다고 적어놓게.그러면 됐는가?" "네,감사합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실은 영주님을 찾아온건이걸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아크는 포수장 나라크를처치하고 얻은 양피지를 내밀었다.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인장이 찍힌 지령서'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마광 포탑의 포수장 나라크,나자크에게 알린다. 멍청한 놈들,일주일이 넘도록 대체 뭘하고있는거냐! 네놈들이 무능한 탓에 위대한 우리의 주인, 발데라스님께서 직접 마군단을 이끌고 전선으로향하기로결정하셨다.그리고 몸소 위대한어둠의 힘을 발휘해 나약한 인간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섬멸시켜버릴것이다. 네놈들은 보름달이 뜨기전까지 동봉한 지도에 표시된지점까지 마광포탑을 이동시켜라 발데라스님이 도착하시는 즉시 마광포탑과 함꼐 작센성을총격할것이다. "발데라스!" 소년영주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들어보신 이름입니까?" "음........." 소년영주는 손으로 이마를짚으며 침음성을흘렸다. "성에 보관된 오래된 고문서에서 본적이있네.발데라스는전설적인 용족의 전사로 암흑세기 이전에 현재의 작센영지를지배하고 있던자였다고들었네.훌륭한 영주였다고하지만 암흑세기가 시작되자 돌변해 어둠의 선봉이 되어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지.그러나 곧 7인의 영웅이 등장했고,어둠의 힘과 함께 발데라스도 사라졌다고 들었네" "수백년전에 사라졌다는자가 어떻게?" "그야 알수없지.어쩌면..........." 소년영주는심각한 목소리로 말을이었다. "자네니까 하는말이지만,사실정체불명의 어둠의 군단이 작센을 습격한뒤로 뒤숭숭한 얘기들이 많이 떠돌고있네.암흑세기의 어둠이 깨어나는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급속도로 퍼지고있지. 작센을 뒤덮고 있는 다크포그역시 당시의 기록에서 찾아볼수있는 어둠의 힘과 비슷한 부분이 많이있거든. 3대길드에서 발빠르게 의용군을 보낸이면에는 그런사정이있네. 정말이번 사건이 어둠의 군단과 관련이 있다면 보통문제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물론 아직 암흑세기를 거론하기에는 이르네.말했듯이 발데라스는 본래 작센을지배했던 용족의 후예네.어딘가 숨어있다가 다시 작센을 되찾기 위해 공격했을 가능성도 있지.하지만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만은 분명하네" 크로스와 레이몬드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고문서의 기록에 의하면 발데라스는 일개 사단 병력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있다고 전해집니다. 암흑세기에 활동했던 숱한 영웅들이 그의 손에 목숨을잃었죠" "이대로 끝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보름달이 뜨는것은 내일입니다."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로 예정된시간까지는 앞으로 이틀, 하지만 연일 계속된 몬스터의 공격에 이미 성벽은 제역활을 할수없는 상태입니다. 만약 놈들이 성을 공격해 들어온다면 설사 전쟁에서는 승리한다고 해도 작센은 회복불가의 피해를 입게 될것입니다" "어떻게든 성까지 오지못하도록 저지해야 합니다" 발데라스의 등장을 예고하는 양피지는 퀘스트의 최종결전을 알리기위한 장치가 분명하다.다시말해 발데라스ㅏ ++C퀘스트의 최종보스라는 의미! 틀림없이 지금까지 겪어온 어떤 보스보다 강하리라. "내생각도 자네들과 같네.어떻게든 발데라스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저지해야만 한다. 이제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지는 이틀,이틀만 막아내면우리의 승리다" "물론입니다. 상대가 발데라스라면 결코 쉬운전투가 되지않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아크가 가지고온 지령서 덕분에 놈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있습니다.또한1 기의 마광포탑까지 손에 넣은 상태입니다. 마광포탑과 전 병력을 동원해 이동로를 급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있습니다." 소년영주는 고개를끄덕이며 아크의 손을 잡았다. "들은대로 이 모든게 자네의 공이네" -전쟁 결과에 영향을미칠 결정적인 정보를제공해 공적이3,000상승했습니다. 경쾌한 음향과함꼐 반가운 메시지가올라왔다. "이번 전투는 그 어느때보다도 위험하고 긴 전투가 될걸세.하지만이틀만 버티면 이전투에서 승리할수 있네. 그리고 작센을 뒤덮은 이 저주받을 어둠도 걷히게 되겠지" 소년영주가 다부진 목소리로말했다. "크로스경,즉시 필요한 보급품을 준비하고 작전을 상세히 논의하도록 하시오" "네!" 크로스가 바쁘게 뛰어나갔다.그리고 대략1시간이 지났을무렵.레이몬드가 광장에서 영주의 동원령을 발표했다.동시에 작센의 모든 유저눈앞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영웅 집결령! *서브 퀘스트 : 최후의 결전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가 마군단을 이끌고 작센성을향해 진격해 오고있습니다.발데라스가 도착하면 작센은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게 될것입니다.이에 영주는 적의 이동 경로에 전 병력을 집중, 진격을 저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작전은 영주의 권한으로 내리는 총동원령이며 수비대에 속한 모든프레이어가 참가해야 합니다. 왕국의 지원군이 도착하기까진 앞으로 이틀, 그때까지 발데라스의 진격을 저지하거나 쓰러뜨리면 작센 수비대가 승리하게 됩니다. 이제 작센의 존망을 걸고 벌이는 최후의 결전이 시작될것입니다. 저으이의 검을들어 어둠을물리치십시오!(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모든플레이어는 쓰러트린 몬스터 숫자X50의 추가 공적치를 받게도비니다. 발데라스를 쓰러트릴 경웅 공격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에게 데미지 수치만큼의 공적치가 가산됩니다. 모든 추가 공적치는 퀘스트가 성공적으로 완료되었을떄 일괄적으로 계산되어 지급됩니다) {난이도 : ++C}] 작전 지역은 작센 성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보란계곡으로 결정되었다. 몬스터 군대를 몰아넣고 전후좌우에서 협공하기에좋은 지형이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받고 작전 지역에 모인 유저는 1,2,3군을 모두합해 약 100명밖에되지않았다. 처음에는 140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지만 쉬지않고 벌어진 전투와 마고아포탑폭파 작전을거치며 40여명이 사망한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이전처럼 하나로 뭉치지않았다.중심이었던 아란에 대한 신뢰가 꺠지자 유저들은 모두 파티단위로 흩어졌다. 공격대가 깨진것은아란탓만은 아니었다. 이번퀘스트는 그 어느때보다도 추가 공적치가 많이주어진다. 또한 퀘스트의 대미를 장식할 최후의 결전.협동해서 살아남기보다는 보상을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공적을 올려야하는시기가 온것이다. 공격대보다는 파티로 나뉘어작전을 구상하는게 당연했다. "몬스터 한마리당 추가공적치가 50이다" "잘만하면 우리도 베스트10에 들어갈수있을지도몰라" "마지막 역전기회야.다른사람들은 신경쓸거없어.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니 우리 파티만챙겨" "신관님도 다른파티는회복마법 쓰지말고 마나를아끼세요" 유저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쑥덕거리느라 정신이없었다. 아크역시 신경쓸사람이 많아져서 나름대로 바빴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상황을 파악할여유는없을거야.그리고 가장위험한건 레벨이 낮은 민병대지.마광포탑에서 얻은공적이 꽤 되니까 절대 공적에 욕심부려선 안돼.무슨말인지 알겠지? 살아남는게 가장 중요해" "네,알았어요" 로코도 바짝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1,2,3군과 민병대, 작센 경비병과 이레적으로 실피드 기사단까지 가세하니 머릿수는 179가까이 되었다. 또한 소년영주가 구체적인 작전을 세워 유저들에게 알렸다.그러나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경험치와 공적에 눈먼 유저들은 다 따로놀게 분명했다. 결국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길수밖에 없다는말.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병대를위해 해줄수잇는건 최대 생명력 300올려주는 음식을 나눠주는게 전부.이제 전투가 시작되면 남을 도울여유도.그럴생각도 없다.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성과를올려야하는 전투!' 오히려 아크가 바라던 상황이다. "너는 어떻게 할래?" 아크는 느긋한 얼굴로 앉아있는 샴바라를바라보았다. 샴바라와의 약속은 이벤트 퀘스트가 끝날때까지 돕는것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마광포탑폭파 작전을 끝낸뒤에 그가 원하는아이템을넘겨주었다.이미 뱀이 배속의 모든아이템을 토해낸상태였다. 한칸의 가방공간이 아쉽기도했고,충분히약속만큼의 일을해주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굳이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도 샴바라가 꽤나 마음에 들었기에 그런 조건으로 묶어두고 싶지않았다. 물론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300골드에서 1골드도 깎아줄수는없지만. "공적은 별관심없지만.............같이해보지.너와싸우는건 재미있으니까" 샴바라도 아크를은근히 마음에 들어하는눈치다. "마군단이다!" 그떄한쪽에서 야간투시로 감시하던마법사가 소리쳤다. 아크도고양이의 눈을사용하며 시선을 돌렸다. 개떼같은 몬스터가 계곡으로 들어서고 있었다.섀도우와 어벤저,힙톤........그러나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유저나 NPC가 그렇듯 몬스터 역시 외형은 같아도레벨이나 장비품은 모두 다르다. 계곡으로 들어서는 몬스터들은 모두 견고한 갑옷을걸치고 있었고, 덩치도 2배는더 커졌다.유저들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100레벨 몬스터도섞여있다' 몬스터들의 머리위로 떠오르는 레벨은 무려90~100! 유저들은 대부분 70~80대다. 유일하게 아란이지휘하는 1군만 평균 레벨80이상을 유지하고있지만 그조차 다크 포그의영향으로 100%발휘되는게 아니다. 반면 몬스터들은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으니 단순히 레벨로비교하면 전력차는 엄청나다.그러나 아크는오히려 의욕이 솟았다.아크의 레벨은 이제겨우 75밖에 되지않지만 어둠 속성 보너스를계산하면 97레벨과 다름없는 능력치다 .굳이 파티를맺지 않아도 사냥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좋아, 이정도면 해볼만해.공격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패널티도 없다. 레벨이 높은 만큼 기본 공적치도 많이 올라가 겠지.아니,다른사람은 신경쓰지말자.내목표는아란뿐이야. 아란과는 아직 공적이 20,000가까이나 차이난다.이번 전투에서 얼마나 차이를 좁힐수 있느냐가 현재 내 실력이다' 아크는 먹잇감을 노리는 육식동물처럼 검을 꽉쥐며 몸을사렸다.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러 마군단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돌연 우렁찬 말발굽 소리가 계곡을 울리며 마군단을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곧추세운창을 번뜩이며 쏘아져 나가는것은 바로작센의 정예병력, 실피드 기사단이었다. "결전의 순간이다. 작센의 평화르위하여!" "우오오오,작센의 평화를위하여!" "시시싯?기,기습이다!" "인간이다,막아라!" 선두의 섀도우들이 당혹성을터트리며 방패를들어올렸다. 창과방패가 격돌하며 쇳소리가 울렸다. 가속도가 붙은 창에 얻어맞자 섀도우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과연 작센 영지의 최강부대인 실피드 기사단!퀘스트가 진행되는동안 단독으로 영지를 돌아다니며 몬스터의 보급로를 끊던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실피드 기사단이 돌격하자 단숨에 마군단의 전열이 흐트러졌다.크로스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검을 들어올렸다. "지금이다,측면을 공격한다!" "와아아아!" 계곡의 좌우에 매복하고 있던 유저들이 쏟아져 나온건 그 때였다. 유저들이 일시에최강스킬을 난사하자 어두운공간이 대낮처럼 밝아졌다.유저들이 사용한스킬은 대부분 공격스킬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나 신관이 사용한 버프나 보조마법도 적지 않았다. 거기에 마군단이 사용하는 광범위 저주스킬의 효과까지 중첩되니 눈앞으로 울긋불긋한 메시지창이 미친듯이 올라갔다. 누가사용한 어떤 스킬이 자신에게 적용된것인지, 그게 버프인지 저주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할지경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메시지창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주와 버프는 대부분상쇄되어 효과가 사라진다. 다른건 신경쓸필요없어.어차피아무리 적이 많아도 내 상대는 눈앞의 적뿐이다!' 데드릭도소환하지 않았다. 수많은 유저가 온갖 스킬을 써대는상황. 자칫 데드릭을 몬스터로 오해한 유저에게 공격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민병대나 경비대와도 떨어졌다.불가피하게 그들의 도움을 받아왔지만어차피 지금은 모두가 동료고,모두가 경쟁자다. 그리고 결국자신의 목숨은 자신의 실력만으로 챙길수 있는것이다. '역시 나는 혼자가 편해. 살아도 죽어도 내책임이다' 그렇다, 그게본래 아크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아크는 모든 신경을 오직 검과 눈앞의 몬스터에 집중했다. "시시시, 인간!죽어라!" "닥치고 죽어,다크블레이드!" 아크는단숨에 거리를 좁혀 달려드는 섀도우의 목줄기를 후려쳤다. 휘청거리는 섀도우에게 연속 돌려차기가 작열하자 생명력이 70%나 빠져나가며 풀썩 쓰러졌다. 거기에 다시한번 다크 블레이드를 날리자 섀도우는괴성을지르며사라져버렸다. '초반에 가능한 많은 적을 쓰러트려야 한다' 장기전을 돌입하면 강한 몬스터만 남게된다. 거기에유저들이벌떼처럼몰려들면 포인트를 따기는 당연히 힘들어지리라.그러니 마나를팍팍 뿌려서라도 초반에 한마리라도더 자아 공적을 확보해 놔야한다. '화격!' 아크는 뒤이어날아드는 공격을 쳐내며 곧바로 카운터어택으로연결시켰다. 연쇄 스킬이 발동하며 섀도우가 튕겨 나갔다. 덕분에 서너마리의 몬스터가 와르르 넘어졌다. 아크는 곧바로 놈들에게 달려들어 사방으로 검을 휘둘러 댔다. 퍼퍼퍼펑! 연속해서 터져나오는치명타! 섀도우들이 판금갑옷을입고있는건 아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았다.고양이의 눈으로 드러나는 약점은 방어력이 적용되지않는 갑옷의이음새! 정밀도가 한계에이른 아크의 검은 마치 빠려들듯 이음새로 파고들어 치명타를안겨주었다. 무거운 판금 갑옷을 입은 몬스터는 반응속도가 느리다. 또한 발차기에 따른 상태이상 판정도 더 자주나온다. 게다가 가끔씩 뿜어져 나오는 다크블레이드는 방어력을 아예무시해버린다.아크에게는 갑옷도 아무런 의미가없는것이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공격을 막아내며 발격을 가하자.한동안 경비대나민병대에 신경쓰느라 억눌러왔던 투쟁본능이 되살아난다.온몸의감각이화설화되며 활력이샘솟았다. "죽으려고 기어나왔구나,인간!" 도마뱀을 탄 어벤저가 흉광을번뜩이며 검을찔렀다. 아크는상체를비틀어 검을 흘리고 도마뱀을 밟고 튀어올랐다. 하늘로 치솟아오른 아크의 발뒤꿈치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어벤저의 정수리를내리찍었다. 단숨에 스턴 상태에 빠진 어벤저는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진다. 결과는 무방비상태에 의한 더블 크리티컬 찬스! 기회를 놓칠 아크가 아니다. 쇳소리를 내며 검이 갑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어벤저의 숨통을 끊어놓았다.샴바라의 스킬은 놀라울정도로 아크와 상성이 잘맞았다 .샴바라가 '순보'로 적의 시선을 교란시키면 ,아크의 발차기에 의한 상태이상 확률이 크게상승했다. 또한 둘 모두 백스텝 효과를낼수있는 직어이라 앞뒤에서 한마릴르공략하면 몬스터는 서너방만에 빈사상태에 빠져버린다. 그런 협공을 펼치면서도 둘은 대화가 필요하지않았다.아크가 먼저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샴바라가 호흡을 맞추었고, 그반대로 마찬가지였다. 격투기를 수련한 사람만이 공유할수 있는 그'무엇'이 둘사이에 존재하고 있는것이다.둘은 마치 물만난 고기처럼 몬스터를압박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황은 점점 마군단 쪽으로기울어지고 있었다. 몇분간 전투가 지속되자 마나가 바닥난 마법사와 궁수의 지원공격이 잦아들고,전사들도 속속쓰러져 힘의 균형이 꺠진탓이다. 그러나 그보다 큰이유가 있었다. '아란녀석.........!' 정작 수비대에서 가장 강한 아란의 파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않았다.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외곽에서 전형을 이루고 관망하는 자세를 고수하고있는것이다. 심지어 바로 옆의 파티가 전멸해도 구경만하고있었다.이제 지휘관도 아니니 알것없다는듯한 태도.그런 아란의 태도가 돌변한건 계곡안이화염에 휩싸였을 떄였다. 쇄에에엑!콰콰콰쾅! 검은 화염단이 전장을 가로질러 계곡에 떨어졌다. 엄청난 화염이 일어나며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마광포탑이다!" 지쳐가던 유저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고개를돌렸다. 저 멀리 언덕위에 마광포탑이 우뚝서있었다.드디어마광포탑이 자리를 잡고 지원 포격을날리기 시작한것이다. 재충전을 끝낸 마광포탑이 또다시 불길을 뿜어낸다. 그때마다 계곡안에 콩나물시루처럼모였던 몬스터들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간다. 아란의 파티가 전장으로 달려들어온건 그 직후였다. "지금이다, 공격하라!성스러운 대지의 심판!" 말을 타고 돌진하는 아란을 중심으로화려한 빛무리가 확퍼져 나갔다. 어둠 속성의 모든 몬스터에게 신성 데미지를 안겨주는 광역마법! 일격에 생명력이 바닥을 기던 수십마리 몬스터들이 슂않고 들어오는 데미지를 버티지못하고 터져나갔다. 아란만이 아니었다. 그와함께 전장으로 뛰어든 파티원들도 아껴두었던 마나로 미친듯이 광역스킬을 난사했다.궁수가 수십발의 화살을 솨기처럼 퍼붓는 '에로웅 샤워',반경 10미터 공간을 화염으로 뒤덮어버리는 마법사의 '인페르노',일시에 최대 8마리의 몬스터를방패로 후려치는 전사의 '충격'! 모두 무지막지한 마나를 잡아먹는 스킬,이미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다른 유저들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볼수밖에없었다. '아란녀석, 역시 이걸노리고있었군' 아크는 분한표정으로 이를갈았다. 마광탄과 유저들의 공격으로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70%이상 빠져있었다. 거기에 광역마법이 겹겹이 중첩되니 버틸수 있을리가없었다. 광역마법한번에 수십마리,아란의 파티에 무지막지한 공적이 쌓여가고 있으리라.그뒤로도 전장은아란의 독무대였다. '사람들이 아란을 욕하면서도 따라다녔던 이유가 있었군' 처음 보는 홀리나이트 아란의 전투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이모탈 오라!" 아란이 홀리나이트 전용스킬을 사용하자 주변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파티전원에게 어둠속성의 몬스터에게 받는 데미지를 30%나 경감해주는 오라다. 게다가 일반 성기사는 오라를 하나밖에 사용할수 없지만 홀리나이트는 중첩이 가능했다. 뒤이어 아란이 '천상의빛'이라는 오라를 사용하자 마나회복속도가 30%나 증가했다.덕분에 아란파티는 스킬을 난사하면서도 마나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단지 아란의 파티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이만한 부가효과가 적용된다. 그동안1군의 유저들이 공적 베스트10을 모두 휩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동안 아란이 의용군을 지휘할수잇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말을탄 아란은 기동성까지 갖추고있었다. 마광탄이 떨어진 자리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광역 스킬을 난사했다. 2~3분이면 섀도우 다섯마리를 쓰러트린느 아크나 샴바라의 사냥속도도 엄청나게 빠른편이지만,일격에수십마리를 녹여버린 아란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홀리나이트의 스킬인가?' 모처럼의 의욕이 단숨에 식어버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40,000대에 이르는 공적치의 비밀이이거였군.젠장이러니 내가 죽어라 사냥해도 따라갈수없는게 당연하지.분하지만 저런사냥은 아란만이 할수있는거야' 다크워커각 솔로잉과 PVP에 특화되어 잇는직업이라면, 홀리나이트는 집단 전투에특화되어있는 직업이다. 직업특성상 집단 전투 상황에서는 아크가 아란을 이길 방법이 없는것이다.게다가 아란은 이제 공격대를 해산하고 다른유저와 결별한 상태다. 굳이 위선의 탈을 쓰고 그들의 공적을 챙겨줄 이유가 없는거이다. 때문에 마구잡이로 전장을 활보하며 다른유저가 반쯤 ㅁ죽여놓은 몬스터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스킬을 난사했다. 아크에게 두들겨 맞아 빈사상태에 빠져있던 섀도우도 광역스킬에 당해 쓰러졌다. '젠장,싸울맛이뚝 떨어지는군' "젠장,저건 너무하잖아!" "치사한놈,이렇게 나오다니!아란이 독식하기전에 우리도가자!" 유저들은아란의 폭거에 분개했지만달리막을 도리가 없었다.또한 결과적으로아란의 활약으로 밀리던 전투에 승산이 생겼으니 욕을 하기도 뭐하다. '그래도 하필이면 가장큰 공적을 세우고 있는게아란이라니..........' 아크가 분통터져하고있을때였다. 쿠르르르,콰콰콰쾅! 마군단의 후미에서 굉음이 터져나왔다.공간을 뒤흔드는진동에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끊임없이 몰려들던몬스터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거대한 몬슽가 등장했다. 전신에 검은 불길을 휘감은 20여미터 크기의 모스터!하반신은 드래곤,상체는 붉은 갑옷을 걸치고 인간의 모습을한 괴물이었다. "크르르르,가소로운 놈들.감히이몸의 앞을 가로막다니........" 입을열때마다 검은불길이 혓바닥처럼 날름거렸다. 아크의 눈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몬스터 '어둠의마군장 발데라스'가 출현했습니다! '발데라스!저놈이.......!' 모든 유저들이 동작을 멈추고 발데라스를 바라보았다. "내 영지를 되찾고 네놈들의 살점과 피로 축배를 들리라!" 번들거리는 눈동자에서 덩치에 어울리는 무시무시나 기운이 흘러나왔다.단숨에 전장을 침묵으로 빠트리는 압도적인 존재감!그러나 유저들의 눈에 떠오른 감정을 공포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쁨의 감정이 더 컸다. 적을 일정수 이상 쓰러트려야 등장하는 발데라스가 나타났다. 퀘스트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의미다.이제 발데라스만 쓰러트리면 3일간 철야로 진행되던 퀘스트도 끝난다. 순위야 어쨌든 최후의 결전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많은 공적치를 모았으니 발데라스만 무찌르면 3일간의 노력을 보상받을수있게 되는것이다. "발데라스는 떄리기만 해도 공적치가 주어진다!" "발데라스를 쓰러트리고 퀘스트를 끝내자!" "집중공격이다!" 사람들이 벌떼처럼몰려들었다. "저놈이 작센성을 도탄에 빠트린 악마다!" 실피드 기사단과 경비대도 창검을 치켜세우며 돌진했다.수십발의 마법과 화살이 빗발치고 전사들은 발데라스를둘러싸고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발데라스는 터무니없이 강했다. 수십발의 공격을받고도 생명력은 줄어든느 기미조차 보이지않았다.검은 화염에 휩싸인 발데라스에게는 저주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날파리들!" 발데라스가 거대한 철퇴를 휘둘렀다.강철방패 내구도가 단숨에 0이 되어 꺠져나갔다.방패를 잃어버린 전사들은 철퇴에 맞아 펑펑 날아다녔다.아크는 그틈에 발데라스의 배후로 접근해 검을 찔렀다.데미지를 주기만해도 공적이 주어진다. 구경만하고있을수는 없었다. "다크 블레이드!" 백스텝과 방어력을 무시한 치명타!그러나 발데라스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신경쓸만한 공격도아니란것.오히려 공격이 성공하자 발데라스를 휘감은 검은 불길이아크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발데라스의 '타락한화염의 가호'에의해 100의 데미지를입었습니다. -'화상'에 걸려 1분간 10초마다 10의 데미지를 입게됩니다. "맙소사!" 결국한번 공격을 날릴때마다 160의 데미지를 입는다는말이다. 발데라스에게 데미지를 줄때마다 공적치를준다더니,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크르르르,고작 이따위 실력으로 이몸의 앞길을 막아선거냐?" 발데라스가 철퇴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폭풍이 일어나며 발데라스를 둘러싸곡 있던 모든 유저들에게 엄청난 데미지가 들어왔다.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 발데라스가 크게 입을 벌리자 검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욕족의 특수 스킬 브레스! 무시무시한 광역 공격에 생명력이 50%밖에없던 4명의 전사는 회복포션을 꺼내들틈도없이 쓰러졌다. 레벨 70~80대의 전사라면 생명력이 50%면 적어도 1,000.게다가 판금갑옷으로 도배를했으니 방어력도 200대는 가뿐히 넘으리라. 그럼에도 단 두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아크 역시 재빨리 회피동작을 펼쳤지만 적지않은 데미지가 들어왔다. 전사들이 무력하게 쓰러지자 유저들의 사기가 뚝뚝 떨어졌다. "젠장,이런 괴물을 어떻게 이기라는거냐?" "공격하면서 받는 데미지조차 회복마법이따라가질 못하잖아!" "그나마 마법사나 전사는 나아!화살은 아예박히지도않아!" 그러나 유일한 예외가 있었다. "홀리소드!" 아란이 섬광을 뿜어내는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번쩍이는 검으로 후려치자 발데라스도 제법충격을 받았는지 생명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란은 파티원전원에게 홀리소드를 걸어주고 발데라스를 몰아쳤다. 홀리소드를사용하자 발데라스의 자동반격 스킬도 무효가되었다. "과연 홀리나이트다!" "젠장, 역시 아란의 파티에 들어갔어야해" "하지만 자동반격을 막을 방법은 있어" 마법사들이 일제히 수속성 마법을 시전했다.화염실드를 가진 발데라스에게 수속성의 공격마법을 사용하면 약간이나마 데미지가 들어간다. 그리고 수속성마법을 검에 걸어두면 화염반격도 무효가 된다는걸 알아낸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마나나 받가나 여러명에게 마법효과를 부여할수 없었다. '젠장,경험치와 공적덩어리를 두고도 구경만해야한다니........' 아크는 아란이 신나게 발데라스를 공격하는것을지켜보김나해야하니 속이타들어갔다. 게다가 1군에 속한 안델까지 덤으로 공적을 올리고있는 장면을 보니 속이 뒤집혀질지경이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없었다. 자연스럽게 아란의 파티와 마법효과를 받은 몇몇 고레벨 유저가 발데라스를포위하고 ,나머지 유저들은 주변에서 몰려드는 졸개들을 막아주는 진형이 만들어졌다. 좋든 싫든 일단 퀘스트를 꺠야하니아란을 도울수밖에업는것이다. "어쨌든 승산이 있다!" "아란과 마광포탑이 있으면 이길수 있을지도몰라!" 그렇게 몇분이 지나자 발데라스의 생명력도 50%가량줄었다.아무리 대단한 보스라도 30명이 넘는 유저가 횝고포션을 물처럼들이켜며 미친듯이 공격하니 버틸재간이없었던 것. 뒤이어 마광탄의 재충전까지 완료되었다. 마광포탑에서 레이저 같은빛이 뻗어나와 발데라스를 조준하자 유저들이 썰물처럼 물어났다. 동시에 마광탄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발데라스를직격했다. 콰콰콰쾅! "적중했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도 상당한 데미지를 받았을거야!" 유저들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난 발데라스의 모습에 그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이,이럴수가...........!" "오히려 생명력이 회복됐잖아?" 놀랍게도발데라스의 생명력은 다시 70%로 회복되어 있었다. "서,설마 화염데미지 흡수 능력까지 있는거야?" 알아차리는게 너무 늦었다.몸에 휘감긴검은화염이 더욱 강해진 발데라스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크르르, 어리석은 인간들!검은 화염의 오라!" -발데라스가 '검은 화염의 오라'를사용했습니다,. 발데라스 주변 100미터 범위의 모든 몬스터에게 '검은 화염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주변에 몰려있던 모든 몬스터들이 발데라스처럼검은불길에 휘감겼다. "젠장,말도안돼!모든 몬스터가 검은 화염의 가호라니?" "이제 마광포탑도 사용할수없잖아!" 비록 발데라스에게는 무용지물이라도 마광포탑은 마군단으로부터 유저들을 엄호하고있었다.아란의 파티가 발데라스에게 집중할수있었던것은 그덕분. 그러나 모든 몬스터가 화염의 가호를 받는다면 마광포탑은 무용지물.유저들 역시 공격할때마다 데미지를 받으니 마군단을 막을 도리가 없다. "지옥의 불길에 타올라라,인간들이여!화염의 분노!" 또다시 발데라스가 당황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스킬을 사용했다.지진이 일어나듯 계곡전체가 흔들리며 땅이 쩍쩍갈라졌다.뒤이어 가라진 틈에서 수백개의 화염이 솟아올라 유저와 충돌하며 폭발했다.날아디는 화염은 테니스공의 수준.실전속에서 갈고닦은몸놀림으로 피하지 못할 속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평범한 유저들에겐 그정도 속도도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구나 무거운 판금 갑옷을 입은 전사들은 말할것도 없었다.저레벨 집단인 민병대의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로코는 화염이나오자마자 얻어맞았고,정의남은 다른사람을 도와주다가 등에 얻어맞고 쓰러졌다. 80레벨의 유저가 일격에30%나 되는 생명력이 깎여나간다.당연히레벨30~40대의 민병대는 무조건 일격에 사망이었다. 그들이 쓰러지는것을 보면서도 아크는 아무것도 할수없었다. '젠장,무슨이런..........!' 방어진형이 단숨에 무너졌다.이제 더이상 마군단이나 발데라스가 문제가아니다. "퇴각, 모두 퇴각하라!" 멀리서 크로스의 비명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결국 그역시 현 상태로는 피해만 가중될것이라 판단한것이다.그러나 이미 퇴각도 불가능한 상황이다.발데라스에게 집중공격을 퍼붓기 위해 원형진을 만든 상태로 수백의 마군단 속에 파묻혀있는것이다. 속속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모든 유저들이 같은 메시지를 떠올렸다. 전멸 그리고 퀘스트 실패! '틀렸어.발데라스는 화염 저항력이 100%가 되지않는한 이길방법이 없어!' 아크는 연방화염을 피해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화염저항100%,전설급의 아이템에나 붙어있을 옵션이다. 아이템이 아니면 해저 세계에서나 적용될만한 저항력이야. 확실히 화염따위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이곳은.........' 그떄였다. 아크의 머릿속에서 지령서에 첨부되어있던 지도가 떠올랐다. '맞아.이계곡의 상류에는......!' 아크는 바닥을 구르며 데드릭을 소환했다. "데드릭, 날아라!마광포탑을 조종하는건 레임노드다. 레이몬드에게 가서 상류의둑을 마광탄으로 박살내라고 전해!"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닥치고 시키는대로 해!시간이 없다!"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데드릭이 허둥대며 마광포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몇분,발데라스와 마군단, 황며의 공격에 절반의 병력이 쓰러졌을때,돌연 마광포탑이 북쪽을 향해 회전했다.이어굉음이 울리며 마광탄을 뿜어냈다.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마광탄의 바라보는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성공이다. 이제 버티기만 하면돼!' 그리고 잠시후, 발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느낄듯말듯한 작은 진동이었지만 금세 진동은 몸이 흔들릴정도로 커졌다. 아크는 날아드는 화염을 피하며 가방을열었다. "샤크맨의 족쇄!" 아크는 재발리 신발을 갈아신고 샴바라를 향해 소리쳤다. "샴바라, 나를붙잡아라!" "뭐?" 화경으로 화염을 흘려내던 샴바라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을때였다.진동이 거세지는가 싶더니 계곡 위쪽에서 돌연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나왔다. 쿠쿠쿠쿠,콰콰쾅! "물?어떻게?" 유저와 NPC,심지어 발데라스와 몬스터까지 동작을 멈추고경악성을 터트렸다. 대지를 뒤흔들며 밀어닥치고 있는것은 엄청난 양의 물이었다.계곡의 상류에는 바로 상인 길드에서 보내온 철갑상선이 침몰한 강이있었다. 지령서에 첨부된 지도에서 그것을 확인한 아크는 마광탄으로 계곡과 강사이의 둑을 폭파시킨것이다. 당연히 넘쳐난 강물은 계곡을 따라 엄청난 속도로 밀려 내려왔다. '이곳이 수중이 아니라면 수중으로 만들면 되는거였어!' 돌과 나무 따위를 품고 몰려오는 엄청난 물의 공세! 당연히 직격을 당하면 엄청난 데미지를받게되리라. 유저들은대번에 얼굴이 허옇게 질려 사방으로 도망쳤다. 공황상태에 빠진 유저들사이에서 안델을발견한건 그때였다. 순간 아크의 눈동자에서 사악한 빛이 번뜩였다. '안델!역시 너는 내손에 죽을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뱀, 부탁할게있다. 움직일수 있겠냐?" 축늘어져있던 뱀이 고개를 바짝 세우고 끄덕였다. "힘들더라고 딱 한번만 고생해라.저놈은예전에 나를 몇번이나괴롭혔던 원수다. 무슨수를 써서든 저놈이 돔아가지 못하게 다리를 묶어놔!" 쌕,쌕! 아크의 원수라는 말에 뱀은 날카로운 소리를내며 허리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날렵하게 바닥을 기어가 안델의 다리를 칭칭 동여맸다.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안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황당한 눈으로 뱀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아크를 발견했다. "너,너이자식 무슨짓을........!" "두고보자고했던 놈이 누구였지?" "이따위 뱀한마리로 날 어떻게 해보겠단거냐?" 안델이 와락인상을 일그러뜨리며 검을추켜올렸다. "늦었어" 아크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을때였다. 격렬한 굉음과 함꼐 격류가 계곡을 뒤덮어 버렸다.격류 자체는 유저에게 데미지를 주지않는다. 그러나 격류와하꼐 밀려온 바위나 나무는 다르다.벋둥거리던 안델은 이내 커다란 바위에 머리를 얻어맞고 생명력이 70%나 깎여나갔다.동시에 뱀도 데미지를 받고 강제 송환됐지만 뱀의 생명력은 고작 50.아크가 받은데미지는 25에 불과했다. "크윽,비,빌어먹을!네놈,죽여버리고말겠어!" 안델은 격류에 쓸려내려가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웃기지마. 여기서 끝낼거라면 건드리지도 않았어" 샤크맨의 족쇄를찬덕분에 격류는 아크에게 아무런영향도 주지못했다. 그리고 격류의 영향을받지않는 상태라면 몰려오는 바위나 나무를 피하는것 정도는 일도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 빠르게 다가오는바위를향해 내달렸다. '화격!' 아크가 연쇄스킬로 바위를쳐냈다. 순간 육중한울림과 함께 바위가 튕겨나갔다. "헉!무,무슨........!" 안델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렸다. 아크가 연쇄스킬로밀어낸 바위는 바로 그를향해화살처럼 쏘아져 나간것이다. 안델은황급히 방패를들어올렷지만, 격류에 휘말린 상태로 제대로 된 방어동작을 펼칠수있을리없었다. 와작! 뭔가가 으스러지는듯한 소리와함꼐 안델의 면상이뭉개졌다.그리고 들고있던 검을 툭떨구며 둥둥떠서 급류에 휘말려 사라졌다. 아크가 죽였지만 직접 공격한게 아니니 카오틱이 될 이유가 없었다. "이번에는 이쯤에서 봐주지.하지만 다음에 다시 눈에띄면 확실하게 스탯을 0으로 만들어주마" 아크는 씨익 웃으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렇게 아크가 소소한 복수를 끝마치는사이,격류가 계곡을 몽땅삼켜버렸다. 화염을 휘감은 발데라스와 화염속성으로변한 몬스터들이 급류에 휘말리자 달궈진 쇠에 물을 끼얹듯 요란한 소리를내며 증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덕분에 계곡은 증기가만들어낸안개에 휩싸여 버렸다. 물이다. 이또한 아크의 세상이다. ACT 7 수중전의 달인 콰콰콰콰! 거친 물살이 마군단과 발데라스를후려쳤다. 마군단은 물론, 거대한 발데라스조차 저항하지 못하고 물살에 휘말렸다. 유저들은 말할것도 없다. 허둥지둥 도망치던 유저들은마치 토네이도에 휘말린 낙엽처럼물살에 밀려날아가버렸다.몇몇은 바위나 나무에 얻어맞아 즉사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급류를정면으로 받은 아크는 오히려 멀쩡했다.환경 효과를 무시하는 샤크맨의 족쇄 덕분이다. '에상대로다!' 물살에 휘말리자 발데라스와 마군단을 보호하던 화염의가호가 모두 사라졌다.더불어 상성 충돌로몯느 모스터에게 엄청난 데미지가 적용되었다.그러나 그것은 부수적인효과에 불과했다. 아크의 진짜 목적은몬스터들에게 전해지는 수중패널티다.아크는 이미 수중패널티의 무서움을 경험해보았다.공격과 방어는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드는대자연의 환경패널티! 환경 패널티는몬스터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더구나 몬스터들은 판금 갑옷까지 입고있으니 패널티역시 ㅁ쳐배로 가중되리라. 역시나 급류가가라앉은 뒤에도 몬스터들은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말하자면 눈먼 고기들! "너 대체 무슨짓을........!" 샴바라가 공기방울을 뿜어올리며 어이없는 목소리를 냈다.아크는 인어의 바늘을 하나 꺼내 탁, 물려주고는 씨익웃었다. "이제부터 보면알아, 따라올수있을때 얘기지만" 아크는 신발과 갑옷을바꿔입었다.이동속도와 회피율을올려주는노리드 부츠 그리고 수중패널티를무효화시키는 인어족의 수호갑옷이다. 그러자 몸을 누르던 무게감이 말끔히 사라졌다. 수중임에도 마치 들판을 뛰어다니는것처럼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좋아 ,시작해볼까? 고양이의 눈!" 우둑거리며 관절을 푼 아크가 허우적거리는몬스터를향해 달려갔다. "대체 정체가 뭐야,저녀석? 이비늘은 또 뭐고?" 샴바라는 멍청한 눈빛으로 바람처럼 달려가는 아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크는 물속을 달렸다. 퍼퍼퍼펑! 아크가 스치고 지나간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나 둥둥 떠올랐다. 여기저기에서 허우적거리는몬스터는 이미 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수중에서 레벨이나 머릿수따위는아무런 의미도없다.조금전까지는 다섯마리만 돼도 상대하기가 쉽지않았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설사 이삼십마리에게 둘러싸인다고해도 1분만에 물리칠자신이있었다. 화염의 가호를받던 몬스터들은 물속에 잠겨 생명력이 많이빠져나간상태다.그러나 그보다 크게 작용하는건 지금 이곳이수중이라는사실! 수중 패널티는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 치명적이다.아크역시 해저에 처음들어갔을떄, 10레벨이나 낮은 몬스터에게 몇번이나죽을뻔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수중전투를마스터했다. 그뿐인가? 지금은 인어족의 수호갑옷으로 아예 수중패널티 자체를무효화시켰다. 그런 아크에게 그저 허우적거리고있는 몬스터따위는 갓난아기와 다름없었다. 섀도우는 물론어벤저나 힙톤조차 아크에겐 경험치와 공적으로밖에보이지않았다. 환경 효과와 아이템의 조합이 만들어낸절대적인 우외! '이곳이야말로 내 세상이다!' 주변을둘러보자 살아남은 유저들이 몰려드는 몬스터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나름대로 손에 땀을 쥐는전투겠지만 아크가 보기에는 코미디가 따로없었다. 전사는 검을휘두르다가 중심을 잃고 빙글빙글 돌았고, 어떤 멍청한 마법사는생각없이 전격마법을펼치다가 스파크가 튀어 오히려 데미지를 받기도했다. 그나마 전사는상황이 조금나았다.무거운 판금갑옷덕에 바닥에 가라앉아 중ㅅ미이라도 잡을수 있으니까.그러나 마법사나 궁수는어중간하게 떠올라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집중공격을받기 일쑤였다.그런 유저를 발견할때마다 아크가 뛰어들어 순식간에 모스터를 해치우고 유유히 사라졌다.유저를 구하려는게 아니라, 그 몬스터의 경험치조차 아까웠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고 누워서 떡먹기로구나!' 경험치와 공적이 물속에 둥둥 떠다닌다.아크는물속을내달리며 주워먹기만 하면되는것이다. 이보다 신나는일이 또 어디있겟는가? 그러나 꼭 그렇게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시체와 함꼐 둥둥떠다니는 수맣은 잡템들!뱀이 사라지고, 가방까지 가득차 그많은 아이템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자니 눈물이 앞을가렸다.심지어 안델이 떨군 검도 가방공간이 없어서 들고 다녀야하는 상황이었다.갑자기 양손에 검을 쥐게되니 움직임이 예전처럼 민첩하지 못했다.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변하니 지금까지 익숙해진 동작도 원할하게 연결되지 않았다.그러나 모처럼 하나건진아이템이다. 죽으면 죽었지 손에 들어온 무기를 버릴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한 이곳은 물속, 엄청난 패널티를받는 몬스터 상대라면 동작이 둔해지는것 정도는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역시나 아크가 검을 휘두를때마다 굉음과 함꼐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수중이라 몬스터의 회피율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기 떄문이다. 발차기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걷어찰때마다 중심ㅇ르 잃은 몬스터들은이리저리 날아다니기 바빴다.반격은 커녕 다시 아크가 있는곳까지 헤엄쳐 오는데도 수십초가 소모되었다.그런 몬스터를 때려잡는건 일도아니다. 인어족의 수호갑옷이 없어도 제리피쉬의 수십가닥 촉수를피했고,크렙의 바늘 틈만 한 관절에 검을 찔러 넣었던 아크다.슬로우 비디오처럼 움직이는 몬스터엑게치명타를안겨주는건 눈을 감고도 할수있었다. 더구나 생명력이 30~40%밖에 남지 않은 몬스터라면 이미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 아크가 움직이느 족족 몬스터들은 녹아내리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뒤로도 많은몬스터가 나타났지만 아크의 움직임을 따라잡을수있는 몬스터는없었다. "시시싯,저인간,어떻게 이렇게 빨리움직이는거냐?" "윽!가,강하다!" 몬스터들의 말은 그대로 유언이되었다. 문자 그대로무인지경! '할수만 있다면 몬스터를 몽땅 쓸어버리고 싶지만........' 아크는 아쉬움의 한숨을 불어냈다. 주변에 널려있는 수많은 경험치와 공적!마음만 먹으면 몽땅 아크가 독차지할수도 있는것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미 많은 수자의 몬스터가 물밖으로 도망치고 잇었다. 물론 그런 몬스터쯤은 살아남은 유저들이 알아서 해줄것이다.그러나 발데라스가 물밖으로 나가버리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수 없었다. 만약 발데라스가 물밖으로 나가힘을 되찾으면 퀘스트를완료할 방법은 사라지게 되는것이다. 다시말해 아무리 공적을 쌓아도 보상ㅇ르 받지 못한다는뜻. '놈이 수중에 있을때 승부를 내야한다!' 아크는 탁한 물속을달리며 발데라스의 흔적을 쫓았다. '시간이없다!어디냐? 어디까지 쓸려간거지?' 그렇게 아크가 몰려드는몬스터를박살내며 하류까지 달려왔을떄였다. 쿵,쿵,쿵. 그때 돌연 수중에 진동이일어났다. 시선을 집중시키자 뿌연 물속에서 육중한 몸짓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드래곤의 몸에 섀도우의 상반신이 달린괴물! '발데라스!' 수십명이 달라붙어도 이기지 못했던최강의 보스 몬스터!그러나 이제 상황은 다르다.발데라스는 생명력이 40%도 남아있지않았다.급류에 휘말리기전 70%던 생명력이 급류에 휘말려 30%나 더 깎여나간것이다. 화염의 힘이 강했던 만큼 수속성의 데미지 역시 많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발데라스는 일정시간동안 화염의 가호를부여받았던 몬스터와 달리 본래 속성이 화염이다.몸주위에서 화염과 물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꾸준히 데미지가 적용되고 잇었다. '역시 지금이야. 여기서 놓치면 두번다시 기회는없다!' "발데라스 ,놓치지 않겠다!" 아크가 발데라스의앞을 가로막았다. 발데라스가 흉포한 울음을 내뱉으며 철퇴를 휘둘렀다. "꺼져라,인간따위가.........!" 그러나 내리치는 철퇴에서 이전 같은 박력은 느껴지지않았다. 파리가 앉을듯한 느린공격,게다가 무시무시한 검은 화염도 일어나지않는다.피하는건 어려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크는 데미지를 각오하고 검을 ㅗ쳐내며 카운터 어택을 날렸다. '화격!'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연쇄스킬이 작렬하며 발데라스가 뒤로 밀려났다. 굳이 화격을 사용한건 도망가지 못하도록 더 깊은 곳으로 밀어넣지 위해서였다. 본래 화격으로 밀어낼수 잇는 몬스터는 중형까지,대형몬스터는 체중이 가산되어 밀어내기 효과의 발동 확률이 매우낮다. 그러나 이곳은 수중,무게중심조차 잡지 못하는 발데라스이기에 그의 덩치나 체중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다. '역시 예상대로다!놈은 이제 평범한 몬스터나 다름없어!' 일격을 날려보니확신이 들었다. 화염속성인 발데라스는 극도로 약해져있었다. 또한 발데라스를 무적을 무적으로 만들엇던 화염 스킬도 모두 봉쇄되었다. 당연히 화염의 가호도 사라져 데미지가 제대로 들어갔다.그래도 워낙 생명력이 많아 치명타를 먹여도 0.1%밖에 깎여 나가지 않았지만 ,아예 티도 나지않았던 때에 비하면 엄청난 전진이다. '이길수있다. 혼자서도 상대할수 있어"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 해제한뒤 다시 재소환했다. 마광포탑으로 날아갔던 데드릭이 어떨떨한 표정으로 코앞에 나타났다. "주인!엇, 이녀석.........발데라스 아니야?" "데드릭,잔말말고 놈의 시선을 교란시켜라!" 아크는인어의 비늘을 물려주며 명령했다. "우후후후,덩치만큰놈!수중이라면 네놈 정도 놀려먹는건 일도아니지!" 데드릭도 허우적거리는발데라스가 만만하게 보이는모양이다. 데드릭은 곧바로 해저에서 익힌 수중전 솜씨를 마음껏 뽐내며 발데라스를 교란시키기 시작했다. "감히인간따위가 혼자서 용족전사인 이몸과 맞서겠다는거냐!"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되는건가? 널수중에 몰아넣은사람이 바로나다. 왜 그런짓을했다고 생각하지?" "뭐야?" "멍청한 도마뱀, 여기서라면 너 따위는내 상대가 못되기 때문이야" "네,네놈이 감히 이몸을모욕하는거냐!" 발데라스는 분노에 찬 괴성을 터트리며 발광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아크의 페이스에 말려들뿐이었다. 굳이 고양이의 눈을쓰지 않아도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무수한 허점. 아크의 검은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정확히 약점에 쑤셔 박혔다. 콰콰콰쾅! 보스 몬스터를상대로도 70%에달하는 치명타 확률이 터져나온다. 수중패널티를받지 않은 아크는 발차기를날리는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다. 발데라스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연속발차기가 작열했다. 정신없이 몰아치며 생명력을 갉아대자 발데라스도 슬슬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철퇴를 휘두르며 물밖으로 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그러나 발데라스가흥분해서 철퇴를 휘두르면 전투는더 쉬워진다. 아크는 내려쳐지는 철퇴를 모조리 화격으로 받아쳐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몰아갔다. "크으으으,이,이놈......!" 치명타,카운터 어택,발차기의 피상공격에 발데라스의 생명력도 점차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크도 아무런 피해를받지않은것은 아니다. 화염의 가호에 대한 걱정은 모두 사라졌으나, 주변의 몬스터들이 보스를 보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비록 수중 패널티가 적용되는 허접스러운 몬스터라도 수십마리가 퍼붓는 공격을 모조리 피해내는건 무리였다. 하물려 발데라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연달아 화격을 날려야하니 어느정도의 피해는 감수해야 했다. 또한 회피를 성공했다고 해도 데미지가 완전히 무효화되지는않는다. 완벽한 회피동작으로 피했을떄 적용되는 데미지 경감은 90%,결국 열번의 공격을 모두회피해도 한반 맞은것과같은 효과가 적용되는것이다.쳐내기로 방어하면 데미지는 더욱 커진다. 아크가 화격을사용하기 위해 발데라스의 공격을쳐내기로 막으면 단숨에 생명력이 200이상 빠져나간다. '하지만 쳐내기는 내가 조절할수 있다.생명력을 확인하며 적당히 사용해주면돼.또한 섀도우들의 공격을 회복포션을 마시며 가끔씩 정리해주면 문제가되지않아' 이벤트 퀘스트를 시작할떄 받았던 회복 포션 그리고 퀘스트를 진행하며 주은 회복포션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하나에 300의 생명력을 채워주는 중급 회복포션이 무려7개!2,100에 달하는 생명력을 언제든지 회복할수 있는것이다.느려터진몬스터들의 공격으로는 포션을 마시는동작조차 방해할수 없으리라. '이길수있어!이길수 있다!' 아크는 승리를확신했다. 그무렵,계곡을 가득 채웠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졌다.간신히 물밖으로 도망나온사람들은 그제야 발데라스를발견할수 있었다.발데라스 주변에서 쉬지않고 불과 물이 반응하며 증기를 뿜어내 제대로 확인할수 없었지만, 수중에서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는것만은 알아볼수있었다. 그것도 믿어지지않는 움직임으로. "발데라스다!" "놈이 누군가와 싸우고 있다!" "누구지?누가 발데라스와 혼자 싸운다는거냐?" "헉, 저 움직임 좀봐!수중에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이는거야?" "나는 물밖으로 나오는것도간신히 했는데.........." "아란인가?" "아니야,아란이 아까헐떡거리며 반대쪽으로 헤엄쳐 가는걸봤어" 유저들은 발데라스와 맞짱을 뜨고있는 아크를보며 비명을 터트렸다. "저,저것좀봐!벌써 발데라스의 생명력이 20%밖에 남지않았어!" "정말 이길지도 몰라" "이럴떄가 아니다!우리도 공격하자!" 마법사와 궁수,신관들이 발데라스를향해 집중사격하기 시작했다. "날파리같은놈들!" 발데라스가 뛰어올라 머리를내밀고 화염탄을 쏘아댔다. 마법사들이 황급히 실드를펼쳤지만 화염탄은 그조차 조각조각 부숴버리며 폭발했다. 대여섯명의 유저는 괜히 나섯다가 엄청난 데미지에 얻어맞고 강제 종료됬다. 역시나 무서운 발데라스,그러나 그의상대는 밖이 아니라물속에 있는 아크였다. "네 상대는나다. 발데라스!" 아크가 발데라스의 다리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크으윽, 귀찮은놈!" 발데라스는 다시뛰어올라 아래롤 화염탄을뿜어냈다. 화염탄이 수중으로 쏘아지자 엄청난 증기가 뿜어져 올라와 주변이 다시 안개로 자욱해졌다. 아크는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을 피해냈다. 엄청난 위력의화염탄이라도 수중에서는 폭발범위에 따른 데미지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시말해 직격탄만피하면 된다는뜻!화염탄을 피해낸 아크의 연속발차기가 작열했다! 쾅,쾅,쾅,쾅! 수면이 흔들리며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대략 20분이 지났을때였다. 드디어 무한대로 느껴지던 발데라스의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지며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반면 아크는 40%생명력이 남은상태였고, 중급 회복 포션도 4개나 남아있었다. '이겼다!' 아크가 환희에 찬 표정을 지을때였다. 연쇄 스킬로 다시 물속으로 밀어넣고 집중공격을펼치자 발데라스의 생명력이 5%까지 떨어졌다. 순간 발데라슨느 갑자기 괴성을 터트리며 철퇴로 세차게 바닥을 찍었다.속사포 같은 공격을 퍼붓던 아크는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보스몬스터는자신만의 필살기를 가지고있엇다. 생명력 수치가 일정 수준이하로 떨어지면필살기를 발동시키는것이다. 역시나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돌연 발데라스의 몸이 시꺼멓게 변하며 주변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건방진 인간!좋다.인정하마.네놈은 강하다.하지만네놈도 결국 이몸을 쓰러트릴수는 없을것이다. 이몸의 명예는 살육으로 지켜지는것,네놈과 이곳의 인간들을모조리 지옥으로 끌고가주마 ,오라,파멸의 힘이여!"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암흑 마군장 발데라스각 '검은 화염의 저주 스킬'을발동했습니다! 화염의 저주: 발데라스의 생명력이 5%이하로 내려가면 자동발동되는 저주스킬.'검은화염의 저주'가 발동하면발데라스는 어떤 행동도 취할수 없게 됩니다.대신 마법저항력과 물리방어력이 모두 100%만큼 상승합니다. 그 상태로 저주가 완성되면 발데라스는 자폭하게 되고,반경 1킬로미터 안의 모든 생명체는 방어력과 지형조건에 상고나없이 5,000의 폭발 데미지를 받게됩니다.{남은시간: 30초}] 아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29초,28초............. 메시지를 확인하는사이에도시간이 흘렀다. 아크가 확인한 메시지는 폭발 반경에 포함된 모든 유저들에게도 떠올랐다.그들은 숨죽인채 요동치는수면ㅇ르 바라보며 발데라스가 쓰러지기만을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바람은 현실이 되어가는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무슨 황당한 스킬이란말인가? 이곳에 5,000이 넘는 생명력을가진 사람은 없었다. 레벨이 가장 높은 전사라도 3,000이 되지않는다. 미친듯이 회복 포션을 퍼 마셔봤자 아무런 소용이없는것이다.스킬이완성되면 틀림없이 죽는다! 덕분에 작센영지는평화를되찾겠지만 전멸한 유저들은 퀘스트 실패의 메시지나 확인하게 되리라. "지,집중공격해서 그전에 쓰러뜨려야해!" 유저들은 증기가뿜어져 나오는수면을 향해 미친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스킬발동과 함꼐 방어력이 100%나 상승한 발데라스의 생명력은 줄어드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수면이증기로 가득해 제대로 조준조차 되지않았다. "틀렸어!" "젠장,도망가자!" 뒤늦게 유저들이 와락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20초,신속마법을사용할수 있는 마법사라해도 20초안에 1킬로미터나 도망치는건 무리였다. 그리고 아크는 그들처럼도망도 칠수없었다. '젠장,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죽는건가?' 발데라스의 코앞에서 도망가봐야얼마나 갈수있겠는가? 살 방법은 오직 시간안에 발데라스를 쓰러트리는것뿐,그러나 이미 마나도 바닥이다.유일하게 방어력을무시할수 있는 다크블레이드조차 사용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10초.9초....................... 고민하는 사이에도 눈앞에 떠있는 시간은 계속 줄어가다. "소환 해제,소환해제해줘!같이죽을 필요는 없잖아!이제 죽는건 싫어!" 공황상태에 빠진 데드릭이 아크를잡고 소리쳤다. '그렇지!' 그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쩍 떠올랐다. 데드릭이 마지막으로 죽었던 장면이 생각난것이다. 갈릭의 배속에서 펼쳐졌던 아드리안과의 전투!당시 아크는 아드리안을 쓰러트리고 레어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아드리안의 목걸이다!" 아크는 재빨리 물러나 진주 목걸이를 꺼내들었다.64레벨에 구한 70레벨 제한 장신구.때문에 챙겨놓고도 한동안잊고 지냈다.그러나데드릭덕분에 생각해낼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아크의 레벨은 75! 목걸이를 사용할수 있는 레벨을 넘긴지 오래다. 아크는목걸이를 착용하며 소리쳤다. '바다 정령의 가호!" 진주에서파란입자가 흘러나오더니 아름다운 인어의 형상으로 변했다.마반영웅의 연인이자 아크가 정화시킨 과거의 인어여왕,아드리안이다. 아드리안은 아클르보며 다정한 미소를머금었다.이어 봄바람처럼 다가와 가볍게 입맞춤을했다. 하루에 한번 사용할수 있는 목걸이의 특수효과,바다정령의 가호가 발동되었다! 방어력40%증가와 마나 500회복! '이게 마지막 기회다!' 아크의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이제 남은시간은 불과 5초.그전에 발데라스를 쓰렅려야한다! '다크 블레이드는 5초안에 다섯번이나 쓸숭벗어.그렇다면 모험을 걸어보는수밖에 !' 아크는 안델에게서 빼앗은 검을 들어올렸다.아직정보조차 제대로 확인하지못한검.그러나 포션을물처럼 퍼마시는 안델이 사용하던검이니최소한 마법아이템은 되리라. 그걸 부숴야한다니 눈물이 핑돌았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다.안델의 검이 아깝받고란셀의 검을 부술수는 없지않은가.아크는 안델의 검을오른손을 바꿔들고 전력을다해 스킬을발동시켰다. "블레이드 스톰!" 400이나 되는 무지막지한 마나를 소비하는 다크워커의 필살기!마나부족과 검을 부숴야한다는 패널티때문에 한번도 사용해 보지못했던 스킬이다. 당연히 어떤 효과가 나올지도 알수없다. 지금은 그저 400이나 되는 마나와 검 한자루를소비하는만큼 위력적인공격력이 나오기를 기대할뿐이다. 아크가 스킬을사용하자 검신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번져나갔다. 이어 섬광과함꼐 검이 잘게 부서지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돌연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완벽한 무음의공간에서 잘게 부셔진 검의 파편이 마치 은하수처럼 잔잔하게 어둠을 수놓았다. 그러다가 이내 한곳으로뭉치더니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쿠콰콰콰콰콰! ['블레이드 스톰'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상대에게 검의 파편X5의 회피불가능 데미지가 적용됩니다.검의 성능,스킬의 숙련도에 따라 검은 더욱 잘게 부셔져 상대를 찢어냅니다] 파편하나당 5의 데미지! 설핏 보기에도 수백개는 되어 보이는 파편이 모두 5의데미지를주는것이다. 위력은상상을 초월했다. 모래알 같은 파편이 몸에 박힐때마다 발데라스의생명력이 빠르게 줄어 5%의 생명력이 단숨에 0.5%까지 내려갔다.100%나 방어력이 올라간발데라스조차 엄청난 데미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발데라스의 몸이붉게 달아올랐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지금이다!' 남은 시간은 고작 1초,남은 마나는 120이다. 최후의 순간에 아크가 믿고 사용할수 잇는 스킬은 하나뿐이다. "데드릭, 최후의 일격이다.다크 블레이드!" 아크는란셀의 검을 크게 들어올렸다가 내리쳤다. -더블크리티컬 찬스로 치명타X2가 터졌습니다.다크 블레이드로 방어력을 무시한 150%의 치며타가 터졌습니다. 마검의 주인 데드리과의 협동 보너스로 40%의 데미지가 추가되었습니다. -'검은 화염의 저주'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동시에 세가지 효과가 발동되며 저주 스킬을 날려 버렸다. 결국 발데라스의 생명력도 바닥을 드러낸것이다. '헉헉헉, 사,살았다' "허억!내,내각 인간에게..........이,이럴리가없어.이럴리가.......크윽,크아아악!" 발데라스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떠듬거리다가 돌연 하늘을향해 비명을 터트렸다. 입에서 시꺼먼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뿜어져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검은 기운을토해내던 발데라스는 이내 기력을 다한듯 털썩 쓰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튕기듯 머리를들어올렸다. '헉, 아직 살아있는건가?' 아크가 기겁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다행히 발데라스의 얼굴에서는 적개심이 느껴지지않았다.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던 잿빛눈동자도 루비처럼 투명한 붉은색을 변해있었다.발데라스는 막 잠에서 깨어난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긴한숨을 불어냈다. "이방인이여...........고맙다.............." "뭐?"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자 발데라스는 자책감이 어린얼굴로 말했다. "나는 발데라스.......위대한 화룡족의 피를.........이은 전사다.오래전...........거대한 악이 세상을...........뒤덮었을떄 작센영지를........지키기위해 귀족을 이끌고............악에 맞서 싸웠지.........그러나 악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강했다.오히려나는어둠의유혹에 이끌려..............타락의 길로 접어들었고............용사들의 손에 불명예스러운죽음을...............맞이하게되었다" "죽었다고?" "그렇다.죽었지............나는 과거한번...........죽으면서도 어둠의 힘에서...........벗어나지 못했다............오히려 속박은 더욱 강해졌지...........하지만 네검은 나를...................속박에서 벗어나게해주었다..........어째서 그런일잉 가능했는지.........나로서도 이해할수없다.........하지만 진심으로 고맙게.........생각한다...........어둠을 물리친...............너의검이 ...............나와내가...............사랑하던 작센 영지를구해냈다" 발데라스가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다가고개를 흔들었다. "나를.........동정할필요는없다" 물론 동정하고 싶을 생각도 없다. 솔직히 그냥무서울뿐이다. 그러니 제발그냥 얌전히 죽어줬으면 좋겠다.아크는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눌러참았다. "너는................내가알던 누군가와닮았다...........누구보다도 어둠을 미워하며서도 사랑했던 그와........닮았어.........전사여...........너를위해 경고한다.........나를 어둠의속박에서 풀어준.........네힘은 어둠에게 크나큰 위협이된다........어둠에 물든 내가 다시 꺠어났다면.............오래전 사라졌어야할 어둠도 다시깨어나고.........있을지도 모르지..........이방인이여..............더 강해져라............어둠은..............강하다" 찜찜하기 짝이업는 말을 마지막으로 발데라스는서서히 사라져갔다. 발데라스가 사라지자 주변의 섀도우도 녹아내리듯 사라져버렸다. -레벨이 올랏습니다. 연달아 메시지가 떠오르며 레벨이 3이나 올랐다. "해,해냈다!" 결국 아크는 기적적으로 발데라스를 쓰러트렸다. 마지막순간에 생각해낸 아드리안의 목걸이 덕분이었다. 항상 마나가 부족해서 사용하지 못했던 블레이드 스톰.그것을아드리안의 도움으로사용할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승리는 마반영웅을 향한 아드리안의 마음이 빚어낸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감동은감동이고,현실은 현실. '후후후,다른사람들이 기웃거리기 전에 아이템을 챙겨야지' 다행이 주변에는 한사람도 없었다. 발데라스의 자폭 스킬에 겁을 집어먹고 모두 도망친것이다.물론 누군가 있다해도 아크가 아이템을챙기는데 이의를 제기할사람은없게지.하지만원래 아이템이란 남들이 모르게 챙겨둬야하는법이다. 수백명의 유저가 참가해섯 수십명만 살아남은 이벤트 퀘스트의 보스 발데라스!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넘겨서야 간신히 잡은보스다. 당연히 그만한보상이따르리라. [화염의 학살자(유니크) 무기타입 :둔기 공격력 : 50~70 내구력 :210/350 무게 : 70 사용제한 : 레벨 80,힘300이상 어둠의마군장 발데라스가사용하던철퇴,화룡족의 요람인 용암산의 마그마를제련해만든 강력한 마법철퇴,상대의 방어구를단숨에 부술수 있는 강력한 위력을 자랑한다. 또한 발데라스의 강력한 화염의 힘이깃들어있다. {옵션 : 방어구 파괴 +20%,화염 데미지 +10} {특수 옵션 : 하루에 세번까지 데미지 200의 소형 화염탄(반경10미터)를 사용할수있다}] '유니크 무기'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아무리 전사 전용무기라지만, 공격력이 무려 40~60!,란셀의 검에 2배나 된다. 게다가 화염속성 데미지 10!특수옵션까지 무지막지하다. 이만한 성능의 유니크무기는 경매장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생긴것도 독특해서 아이템 수집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게 분명했다. '이번달 들어갈 돈을 다 써서 통장 잔고가 바닥나 걱정했는데.............' 고생한 보람이 잇었다. 가뭄끝에 단비라고 했던가? 아크는오히려 생계형 게이머로 전직한 뒤로 이렇다 할 아이템이 나오지 않아전전긍긍했었다.그런데 이벤트 퀘스트에서 이런 굉장한 아이템을 손에 넣게 될줄이야! '과연 어둠의 마군장이라는 이름값을하는군!' 무기 외에도 다른아이템이 2개나 더 떨어졌다. [화룡족의 비늘(재료) 오래전 북부 대륙을 지배했던 화룡족의 비늘입니다. 단단한 각질로 만들어진 비늘의 표면에는 희미하게나마 성스러운 불꽃의 기운이 흐르고있습니다.뛰어난 장인이 가공하면 강력한 마법이 담긴 가죽제품을만들수 있을겁니다.]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휘장 : 150레벨 퀘스트 시작아이템. {고대 유물의 지식이 100이 돼야 확인할수 있습니다}] 화룡족의 비늘은 뭔가 꽤 거창한 설명이 붙어있었지만 당장 돈이 될것같지는않았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것은 퀘스트 시작아이템이다. 보석 손거울의 경우만봐도 그런 종류의 퀘스트는 큰 보상을 기대할수 있는것이다.그러나 레벨 제한이 150,고대 유물의 지식이 100이 필요하다. 아직은 까마득한 미래에나 할수있는 퀘스트였다. 아크는 누가 볼세라 얼른 가방에서 싸구려 아이템을 버리고 아이템을 챙겨넣었다. 그때,문득 한줄기 햇살이 수면위로 비춰들었다.고개를 들어보자 작센 영지를 뒤덮고 있던 다크포그가 점차 옅어지더니 이내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면을 통해 밝아지는하늘을올려다보자니 이제야 퀘스트가 끝났다는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역시나 뒤이어 음향 효과가 울리며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영웅 집결령! *서브 퀘스트 '발데라스의 진격을 저지하라'가 완료되었습니다. 각지에서 몰려든 용사들의 노력으로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를 쓰러트렸ㅅ브니다. 작센 영지를 뒤덮었던 다크포그도 사라져 이제 공포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작센을 구해낸 용사들에게는 크나큰 영광과 명성이 주어질것입니다. 또한 배지를가지고 기란마법학회로 들어가면 보상을 받을수 있을것입니다. *당신은 발데라스를 물리치는데 경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추가 보상 : 공적 +20,000. 명성 +200} 모든 작전이 성공적으로수행되어 '영웅 집결령(이벤트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의 완료로 모든 공적치가합산되어 최종순위가 결정되었습니다. 현재 아크님의 공적치는 50,830으로 공동 1위입니다.] "1위?" 아크는믿기지 않는메시지에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최종결전 퀘스트를받을때만해도 아린이 아크의 2배나되는공적을 가지고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도 광역마법으로 엄청난 공적치를독식했다. 때문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뒤이은 수중전과발데라스를죽이며 얻은 공적 덕에 결국 아란을 따라잡은것이다. 공동 1위를한 다른 한사람의 이름을확인할수 없었지만 볼것도 없이 아란이리라. '그렇다고는해도 공동1위라니........' 아란과 함께 공동 1위를했다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발데라스와 싸우기 전에 다른 몬스터를 한마리만 더 잡았어도 추월할수 있었을텐데............그렇게 생각하니 미칠듯이 아까웠다. 그러나 어쨌든 1위.과연 마법학회에서 어떤 보상이 주어질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때, 다시메시지가 떠올랐다. [합산된 공적이 1위가 되어 작센의 게시판에 등록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시판에 등록하면 명예의 전당에 자동 등록되어 추가로 경험치 2,000과 명성 100을 얻을수 있습니다. 또한 게시판을 보는 많은 NPC에게 이름이 알려져 존경을 받을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게시판에 이름을 올릴수 있는 베스트10의 유저에게 지급되는 보너스였다. 아크는 생각할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캔슬" 게시판을 보는건 NPC만이 아니다. 유저들도 보게된다. 물론 어떻게든 이름을날리고싶어하는 유저들도 많지만 아크는절대 사양이다.일단 공동1위로 아란과 나란히 이름을올리고 싶지도 않았고, 그로인해 받게될 관심도 달갑지않았다. 조용히,티나지않게 이득을챙길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 "가자, 데드릭. 볼일은 끝났다" 아크는 그대로 수중을 걸어 작센성으로 향했다.길었던 이벤트의 퀘스트가 끝나간다. ACT 8 작센의 영웅 "후후후,이벤트 퀘스트를 해결하고 공적 1위를차지했으니 엄청난 보너스 점수를받게 될게 분명해!" 음침한 방구석에서 현우는날아갈듯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두드리며 히죽거렷다.일단 작센으로 돌아온 현우는 곧바로 접속 종료를하고 컴퓨터와 마주앉았다. 모든 응시자들에게 이벤트 퀘스트가 끝나는즉시 리포트를제출하라는 메일을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일이 아니라도 현우는 당장 리포트를작성하고싶었다. 비록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지는않았지만, 글로벌 엑서스의 기획부에서는 당연히 현우가공적 공동 1위가 됐다느사실도 파악하고 있을것이다. 거기에 리포트로 자세한 사항까지 적어보내면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수 있으리라.그저 막연하게만느껴지던 글로벌 엑서스 입사가 이제야 현실감있게 느껴졌다. "확실히 다른 응시자들보다는 앞서가고있어!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하는것도꿈은 아니야!" 현우는 불과 몇분만에 10페이지 분량의 리포트를 작성하고 메일을 보냈다. 그제야 3일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휴,완전히 바보가 된 기분이군" 김권태는 피로에 지친얼굴로 한숨을불어냈다.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고 정확히 3일째다.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들도 그랬겠지만, 그역시 밤을 지새우며 컴퓨터와 전투를 벌여야했던 시간이었다. 퀘스트에 관련된 시스템 정보를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소득은 전무,놀랍게도 퀘스트가 진행되며 상황이 변할때마다 관련 정보에 새롭게 락이 걸려 버린것이다. '이건 정말 괴물이야' 상식적으로 있을수도,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지역 제한 퀘스트라도참가 인원은 수백에 달한다. 그로인해 벌어질수있는 변수는 수천,수만에 이르리라.그런데 단일 컴퓨터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그 모든 변수를 체크하고 자동으로 락을 갱신시키다니........ 지금도 쉬지않고 데이터가 갱신되는 화면을 보니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살아있는 괴물.............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없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시스템의 최상위에 절대 명세를 걸어놓는것뿐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명제를걸어놓고 어떻게 이만한 자유도를 구현할수 있는거지? 대체뭘까? 어디에 숨어있는거지?천재게임 디렉터 박우성이 깔아놓은 절대 명제는? 글로벌엑서스 기획부 대리 김권태. 그는 유능한 프로그래머이자 해커다. 마음만 먹으면 인터폴의 정보망도 해킬할수있다고 알려진 숨은 실력자. 물론 그런 소문이 과장된 감도 없지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커인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그가 고작 게임의 락조차 해제하지 못하고, 심지어 락을 갱신시키는 숨겨진 프로그램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것이다. '생각할수 있는건 두가지밖에없어' 뉴월드의 메인컴퓨터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을가지고있거나, 어딘가에 숨어있는 박우성이 계속 게임을 모니터하며 락을 갱신시키는경우다. 첫번째가 정답이라면 언젠가는 락을 풀러낼희망은 이싿. 그러나 두번째라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힘들게 락을하나 해제해봤자 그가 다시 락을 갱신시켜 버리면 말짱 도루묵,끝없는 소모전이 계속될뿐이다. '박우성은 뉴월드가 상용화되면 상당한 지분을 받기로되어있다고 들었는데,그지분을포기하면서까지 이런짓을 하는 이유가 뭐지? 젠장, 잘은 모르겠지만 역시 박우성이 대단하기는 대단하군. 이런 머메드 시스템을 디자인한것도 모자라 무한대의 자유도를 유지하면서 곳곳에 락을 지뢰처럼 깔아놓다니.인간이 할수있는일이 아니야' 질린나머지 존경심마저 생긴다. '휴우,그런 터무니없는인간과 싸워야하다니 어쩌면 직장을 잘못선택한걸지도...........' 새삼스럽지만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매일 뼈저게 느껴야 했던 3일이었다. 김권태는 옆의 모니터로시선을 돌렸다. 관리자이면서도 시스템에 접근할 방도가없으니,그가 할수있는 일은 고작 빈약한 정보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게시판을 모니터링하는게 전부였다.마침퀘스트의 최종결전에서강제 종료된 참가자의 글이 제법 올라오는중이었다. 담배를 꺼내 물며 훑어내려가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시간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그런데 벌써 조회수가 8,000.댓글이 2,000개가 넘게 붙어있었다. 서너시간전에올라온 글도 조회수 1,000을 넘기지 못했는데 말이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정보를 클릭하자 첨부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퀘스트에 참가한 유저가 캡처한 게임동영상이었다. "뭐,뭐야,이게?" 멍하니 지켜보던 김권태의 입에서 담배가 툭 떨어졌다. 동영상엔 보스 몬스터와 정체불명의 유저가 싸우는 장면이 3분가량 담겨있었다. 가시거리가얼마되지않는안개 자욱한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허우적거리며 도망나오기 바빳지만, 그는 오히려 적을 몰아치고 심지어 보스몬스터와 일대일로 사투를 벌였다.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는 철퇴를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다. 이거 카운터와 함께 연속 공격을 펼치며 거대한 몬스터를 몰아붙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간간이 화려한 발차기까지 구사해 마치 한편 의 무술 영화를보는 착각이 들정도였다. 재생 시간은 3분, 긴시간은아니지만 보는 사람을압도하는 박력이있었다. -50명의 유저가 달라붙어도 이기지 못했던 +130레벨의 보스 몬스터를 혼자 상대하는 유저를 봤습니다. 탁한 물속인데다 [간파]주문서의 유요 거리 밖이어서이름이나 레벨은 확인할수 없었습니다. 도중에 강제 종료되어 끝까지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굉장했습니다. 누군지 꼭 알고싶군요. 게시자의 코멘트에 엄청난 숫자의댓글이달려있었다. -+130레벨의 보스와맞짱을 뜨면 대체 레벨이 몇인겁니까? -발차기스킬은 어디서 배우는거죠? -물속에서 이렇게 움직이는 사람은 본적이 없는데요,혹시 밸런스를 위한 NPC가 아닐까요? -이거 혹시 합성아닙니까? -합성으로 낚시한것같은 느낌이........하지만 사실이라면 굉장하군요 -접니다. 제가 보스몬스터를 쓰러트렸죠.우하하하하 -위의 글 올리신분,됐거든요 닥치시고 발닦고 주무세요. 대체적으로믿을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김권태역시 쉽게 믿을수가 없었다. 그 역시 뉴월드에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유저다. 수중에서 쉽게 움직일수없다는것쯤은 알고있다.실제로 동영상에 담긴다른유저들은 헤매고 있지않은가. 뭐,백보 양보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으로 수중 패널티를없앴다고 치자. 하지만 보스 몬스터와 맞짱을 뜨는저 말도 안되는 시추에이션은 대체 뭐란 말인가? '발데라스는 엘리트 보스다. 그렇다면 최소한 레벨300이 넘어야 상대할수 있다는 말인데.........고작 네달만에?다른 게임도 아니고 뉴월드에서 그게 가능한 수치야?' 왠만한 고레벨 유저는 대충 파악하고 있엇지만, 그만한 레벨의 유저는 기억에 업다. "김대리!" 그떄, 사무실로하명우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정보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 봤나? 혼자 보스몬스터하고싸우는" "네,지금보고있던 중입니다" "그 유저가 누구인지 알아볼수 있겠나?" "모르겠습니다. 얼굴이라도 알면 수소문해 보겠는데........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있습니다..만약 그가 정말 보스몬스터를 잡았다면 엄청난 공적치를 받앗을겁니다. 당연히 공적치 베스트에 들어갔을테니 곧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오겠죠" "이벤트 종료가 언제지?" "앞으로30분가량남았습니다" "정보가 나오는데로 보고해주게" "알겠습니다" 30분이 지나 이벤트 퀘스트 종료됐다는 데이터가 올라왔다. 작센 영지를 다크포그가 뒤덮으며 걸렸던 락이 모두 해제되었다.김권태는 서둘러 데이터 베이스에 접근해 공적치 베스트 순위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게시판에 올라온 아이디는 모두 그가 파악하고 있던 사람들뿐이었다. "대체 누구야, 그놈은!" "젠장, 곧 매스커에서 취재 나올텐데.이걸 뭐라고 설명하란말야?" 결국 다음날 저녁, TV에 출현한 하명우는 'NPC일지도 모른다. 유저들의 더 많은 탐구욕을 자극하기위해 정확한 내용은 차차 공개하겠다.'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겨버렸다. 방송국에서 돌아온 하명우는 짜증스러운 얼굴로머릴긁어대며 말했다. "이제 둘러대는것도 신물이 나는군. 김대리,그유저의 정보를 계속 추적해봐. 그가 정말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렸든 아니든저만한 실력이라면 시스템을 깊게 파고들었을게 분명해.그렇지 않고서야 네달 만에 300대 레벨을 만들었을리가없어.매스컴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어떻게든 찾아내서 무조건 입사시험에 응시시켜.뭔가 특혜를원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하고" "일단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때 하명우가 안달하는 정보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분쇄기.마친 그속에 갈리고 있는건 일찌감치 불합격 판정을 받은 아크의 리포트였다. 그무렵,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논란의 주인공 아크는작센광장에 놓인 게시판을 똥씹은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작센 주민에게 알립니다! 작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둠의 군단이 사라졌습니다.작센을 지키기 위해 싸워준수많은 전사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당신들의 희생자노력이없었다면 우린 결코 두번다시 태양을 보지못햇을겁니다. 이에 멀리서 지원군을 이끌고 와주신 후안백작님은 국왕 폐하를대신해 높은 공적을 세운 전사들에게 '명예기사'의 칭호를 하사하셨습니다. 또한 의용군을 이끌어 영웅적인 업적을 이룩한 위대한용사 홀리나이트 아란경에게는 '영광의기사'라는빛나는 칭호가 하사되었습니다. 작센 영주님은이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성내 광장에 '10 용사의 동상'을 세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10용사의 동상은 앞으로 작센 주민은 물론, 작센을 찾아오는많은 이방인들에게 큰 가명을 주게 될것이고, 진정한 용사의 모범으로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퀘스트를 끝낸직후, 쓰러지듯 잠이들어 10시간뒤에야 접속해보니 이런 공고문이 붙어있었다. 자다가 뒤통수맞은 기분이었다. '3대길드의 보상외에 칭호까지 수여되다니!' 뉴월드에서 칭호는 큰의미가 있었다. 일단 칭호를받으면 전체 스탯이 최소 1씩은 상승한다. 게다가 때떄로 새로운 스킬이나능력이 생기고, 상위 칭호를 얻을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크 역시 캣 나이트와 모두의 간병인 칭호를받으면서 올라간 스탯과 스킬,ㄹ 추가능력은 엄청난 부가 효과를 창출해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공고문에적힌 10용사의 명단에 아크의 이름은 끼어있지 않았다. 게시판에 등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굳이 공적 순위를 등록하지 않아도 마법학회의 보상은 제대로 받았다. 공적 순위와함꼐 올라왓던 그 메시지에 낚여다는 생각밖에 들지않았다.만약 그때 칭호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는건 싫지만, 칭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했으리라. 아니, 사실 칭호는 아무래도 좋다. 다른사람이 받는것도 그다지 배아프지않다. 정작 배알이 뒤틀리는건 아크가 등록을 거부하는바람에 아란이 단독1위로 영광의 기사라는 칭호를받앗다는것이다. 덕분에 아란은 떨어졌던 명성을 회복하고, 더 빨리 성장할수 있는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참으로 복장 터지는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아크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두자.이미 지난일이야.그리고 눈앞의 이득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없어.아란이 뭘얻었든 나는 내방식대로 게임을 해서 따라잡으면 그만이야' 아크는 모든일에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집착이 강하다. 그러나노력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면 포기한느것도 빨랐다. 본의 아니게 남들보다 빨리싲가해버린사회생활을 통해 버스 떠난뒤에 손흔들어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걸 배웠기 떄문이다. '그래도 한숨 자고접속하기를 잘했군' 아란이 칭호를받고 우쭐대는 모습을 직접 봤다면 정신건강에 꽤나 해로웠으리라.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작센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처럼 조용했다. 다크포그가 걷히자 상인길드와 전사길드에서 보낸상선과 마차가 작센으로 찾아왔다. 마법학회의 영자 이동의 오브기능을 대신해,무사히 퀘스트를 끝낸유저들을모셔가려고 온 NPC들이었다. 때문에 모든 유저들이 썰물처럼빠져나가 번잡했던 작센은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의남아저씨와 로코도 퀘스트내내 꽤 무리했으니지금쯤은 곯아떨어졌을거고..........그런데 샴바라는 어떻게 된거지 ?죽지는 않았을텐데. 아직 자고있는건가? 아니면 벌써다른데로 간건가?' 급류에 휘말린 뒤로 샴바라를보지못했다. 뭐 진즉에 줄건 주고, 받을건 받았으니어디를 가든 상관없지만 ,막상 말도없이 사라져 버리자 은근히 섭섭했다. 샴바라와의 첫만남은 그리좋지 않았다.아크역시 그저 그의독특한 스킬을 이용해 보고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함께 전투를 치르며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샴바라는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하고싶으말은 하고, 일단 한말은 지킨다. 겉으로 번드르르한말을 하며 뒤로 다른 꿍꿍이를꾸미는아란같은 성격은 아니었다. 조금까칠한 면이 잇지만 아크는언변이 좋은 사람보다 오히려 그런타입을 좋아했다. '뭐,떠낫다면 됐어.나도 샴바라도어차피 같이 돌아다닐 타입은 아니니까' "스탯창!" 아크는 일단 생각을 접어두고 스탯창을 열어 보았다. 느긋하게 퀘스트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150 명성 : 1,050 레벨 : 78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나이트,모두의 간병인 생명력 : 1575 마나 : 1,235(+100) 영력 : 100 힘 190(+5) 민첩 230(+17) 운 45 지혜 29 지능 238 체력 300 특수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 : 63 유연성 :18 화술 :23 애정 : 37(+10)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가죽 갑옷 : 민첩 +2,냉기 저항 +20 고양이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마나 +100 노리드 부츠: 이동 속도 +10%,회피율 +5% 아드리안의 목걸이 :방어력 + 40,애정 +10 부활하는 영혼 : 힘 +5,마나 회복속도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속에서 몸을숨기는능력이 생겼습니다. (지속시간 15분,전투가시작되면 해제됨)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처음 퀘스트를받아을때의 레벨이 68이다. 다시 말해 3일만에 무려 10이나 되는 레벨을 올렸다는뜻!단순한 사냥으로는 상상도 못할광렙이었다. 이벤트 퀘스트에 나오는몬스터는 레벨에비해 경험치를많이 주었다. 그러나 10이나 올라간결정적인이유는나라크와 발데라스 같은 굵직한 보스몬스터를 독식한 덕분이다. 상당한 가치의 아이템도 얻었다. 나라크에게서 얻은 마법반지부활하는영혼! 마법반지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물건이다. 게다가 옵션으로 달려있는 마나 회복속도는항상 마나부족에 시달리는 아크에게 눈물이 날정도로 고마운 효과,그뿐인가? 발데라스를 쓰러트리고 얻은 유니크 철퇴 화염의 학살자! 아크가 사용하기 힘든 아이템이라 접속하기 전에 경매에 올려놓았다. 결과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팔아치운 아이템과는 질적으로 다른 아이템. 아마도 상당한 경매가로 팔리리라. 후후후,아직 멀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퀘스트를 통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보상. 곧 기란으로 돌아가면 공적 1순위에 걸맞은마법 학회의 보사앆지덤으로 따라붙는다. 칭호 따위를 받지 않아도 3일간 철야한 보상으로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그래, 여기서 더 바랄수는 없지' 아크는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리고 작센 성내를거닐었다. 주변정리를끝내고 기란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른다. 도움도 많이 받고,정이 많이든 작센 NPC들을 만나고 작별인사라도 할생각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당혹스러운상황을경험해야 했다. "영주님은 공무로 바쁘시네. 다음에 찾아오게" 소년 영주를 만나러 갔더니 크로스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하지만 저는 곧 작센성을떠날겁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그냥 인사나 하고........." "바쁘다고 하지않았는가?" "저와 영주님 사이를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영주님과의 친분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려는건가?" 크로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가워졌다. "영주님은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네,돌아가게" "저도말입니까?" "물론이네.자네라도.아니,자네는특히 안돼" 아크는 당혹스러웠다. 지금까지 영주성을 드나드는데 문제가 생겼던 적은 단한번도 없었다.친분이 있는 병사들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고, 소년영주 역시 공무중이든 뭐든 시간을 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출입을 제한하다니?게다가 퀘스트내내 아크와 함꼐 행동하며 친밀도가 최상인 크로스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해 아크를 처음보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또다시 무슨일이 생긴건가?' 아크는 의문이 들었지만 크로스는 더이상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아크는 영주성에서 돌아나왔다. 그러나 분위기가 변한것은 크로스와 소년영주만이 아니었다. 그동안친분을 쌓아왔던 마을NPC들도 아크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멀리서 모습만 보여도 알은척을하며 다가오던 주민들이슬슬피한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면움찔하며 대꾸도 하지 않고 가버리거나 그냥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그래.오랜만이군. 나는 바빠서 얘기할시간이 없네.잘가게" "어..........그러니까.........음,다음에 보세" '대체 이게 무슨일이지?' 황폐해진 작센성을 복구하기 위해 NPC들이바쁜건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친밀도가 높은 아크를 이런식으로 대하는건 이해할수 없었다. 심지어 그 냉정한 반응이라니? 이제 막 작센성을 찾아온 초보 유저보다 오히려 더 쌀쌀맞게 대하고 잇는것이다. 그런 반응은 레이몬드의 아들 ,톰도 마찬가지였다. "어? 톰!" 아크가 멀리서 톰을 발견하고 불렀다. 커다란 짐을 지고 바쁘게 걸음 옮기던 톰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크형!" "마친 잘만났다,좀 물어볼게있는데..........." "아니, 그게...........저........미안해요.지금은 바빠요.다음에봐요" 톰은 곤란한 얼굴로 떠듬대다가 뭐랄 말할새도 없이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아크는 어안이 벙벙했다.톰은 아크를영웅처럼 떠받들던 NPC다 .그리고 접속 종료를하기 전까지만해도 아크가 마을에 있을때는 졸졸 따라다니며 존경의 눈빛을 날려보냈다. 그런데 먼저 말을 붙여도 도망가 버리다니? 멍하니 톰의 뒷모습을 바라보자니 돌연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설마 친밀도가 떨어져 버린건가?' 친밀도가 최상이었던 크로스나톰까지 저런 태도를 보인다면 생각할수있는건 그뿐이다. 하지만왜? 도무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마을안에서 도둑질이나 강도짓을 한적도 없다. 친밀도가떨어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혹시 그게 문제가 된건가?' 접속 종료하기전과 지금 다른점은 단하나. 아크는 공적 순위를 게시판에 등록하지않았다. 당연히 작센성에서 관리하는 공훈자 명단에서 아예 삭제되어 버렸으리라. 반면 다른 유저들은 모두 공훈자 명잔에 이름을 올렸고,베스트10의 유저들은 칭호를받고 10용사로 추대되기까지했다. NPC들은 게시판의 정보와 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명성이 높은 유저들이 어딜가나NPC에게 대우받을수있는것도 그들사이에 소문이라는 내부 수치가 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아크는 게시판에 등록하지도 안았고,항상뒤에 숨어서 퀘스트를 풀어나갔다. 작센 NPC들이 보기에는 아크가 그맘큼 노력하지 않은것으로 비쳤으리라. 친밀도가 떨어졌다면 그 이유뿐이다. '젠장, 틀림없이 그런거야' 거기까지 생각하자 뭔가가 울컥치밀었다. 아크는 지금까지 작센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다.물론 작센만을 위한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작센을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 단지그걸 게시판에 등록하지않았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대우가 달라져버린것이다.아크는 지금까지 NPC를 정말 사람처럼 대해왔다.불쌍한 사람이 보이면 동정했고,나이든 사람을 만나면 예절을 지켰다. 다른유저가 보면 코웃음 칠일이지만,아크에게 그들은 유저보다도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결국 NPC는 NPC일뿐인가.........' NPC이니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건 당연한일. 내부 수치가 깎일만한 이유가 있다면그들의 돌변한 태도는 당연한 결과였다. 알고있다.알고있었다.그들은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걸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이 한없이 허탈했다.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정말 인간처럼 생각해왔기에 상실감은 더욱컸다. '컴퓨터와 인간 ,NPC들과는 처음부터 그런관계였을뿐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씁쓸한 기분은 감출길이 없었다. 그러나 아쉬워해봤자 소용없는일이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성문으로향했다. 영자 이동의 오브를 사용해 기란 마법 학회로 단숨에 날아갈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작센근처에서 처리해야할일이 남아있는것이다. 그런데 막 성문을 나서려하자 병사 2명이 아크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며 앞을 가로막았다. "아,아크!머,멈춰!" "네? 왜그러십니까?" 아크가 고개를갸웃거렸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대원역시 아크와 친밀도가 제법쌓인 NPC들이었다. "지금은 성밖을 나갈수 없네" "그게 무슨말입니까? 다른사람들은 나가지 않습니까?" "다른사람은 몰라도 자네는 당분간 안돼" "저만 안된다니? 대체왜...........?" "안된다면 안돼. 오늘저녁때까지는 절대 내보낼수 없어" "저녁까지 기다릴시간이 없습니다. 해야할일이 있다고요. 게다가 제가 무슨죄를 지었다고 마음대로 성문을 드나들지도 못하게 하는겁니까?" 아크가 불쾌한 얼굴로따지자 병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사실은 어제 저녁에 누군가가 자네에 대한일을 영주님께 말씀드렷네.뭔각 수상한 부분이있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영주님께서는 크로스경에게 그일을 조사하도록 명령하고, 조사가 끝날때까지 자네를 성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하셨네" '이게 작센 NPC가 쌀쌀하게 대했던 이유인가?' 아크는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않다는 것을 꺠달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상한 짓이라니? 대체 뭘 말하는거지?' 물론 찔리는 구석은 꽤많다. 실버 애로우 승무원을 구할떄 챙긴 아이템을 꿀꺽한일도 걸리고, 아란의 공격대에 포효하는 칠레무침을 먹게 만들어 작전에 실패하게 만든일도 있었다.만약 승무원이나 아란이 이사실을 알아채고 이의를 제기했다면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자네가 떳떳하다면 내말대로 조사가 끝날때까지 성에서 기다리게" '젠장,이거 친밀도가 문제가 아니구나.잘못하면.......' 오히려 범죄자로 몰려 큰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크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당장이라도 성을 빠져나가야한다. 그러나 영주가 명령을 내렸다면 마법의 탑도 이용하지 못할게 분명하다. 더구나 지금은 낮. '은신'을 사용해서 성문을 나갈수도없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저녁때까지 기다리기도 찜찜하다.아크가 난감한 얼굴로 고민하고 있을 떄였다. "아크, 여기있었군" 뒤에서 크로스가 서너명의 병사와 함꼐 다가왔다. "자네를 찾고있었네.잠시 나와 함께 가 줘야겠어" "네? 하지만 저는............." "자네는 거부할 권리가 없네. 어이, 아크를 연행해라" 뭐라 말할새도 없이 병사들이 아크를 결박했다. '여기가 어디지?' 아크는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병사들이 아크에게 두건까지 씌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동한 거리나,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판단해 보니 감옥이나 재판소를 아닌모양이다. 귓가로 들려오는 새소리나 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걸 보니 아마도 넓은 공터............... '어째서 이런곳으로 끌고 온걸까?' 그때 돌연 앞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가 아크인가?" "네, 그렇습니다.그런데........."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그외에는 어떤 말도 허락하지 않겠다.자, 첫번쨰 질문이다. 자네는 의용군으로 작센에 왔으면서도 영주님과의 친분을 이용해 경비대와 함께 후문을 지키는 임무를 받았다고 들었다.적당히 편한 자리르 꿰차고 앉아 의용군에 참가했다고 생색이나 낼 생각이었던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아크는 울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분명 영주님과의 친분으로 경비대와 함께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우러러 단한점의 사심도 없습니다. 작센을 위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고, 경비대와 함께하면서도 언제나 앞장서서 적과 싸웠습니다. 크로스경과 경비대원, 영주님에게 확인해보시면 알수 있을겁니다." "한점 사심도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말인가?" "제가 작센성을 도우러 온것은 순수한 사명감 떄문이었습니다" "사명감? 이방인이 말인가?" "네, 이곳은 제게 매우 특별한곳입니다. 주민과 영지병사들은 모두 친절했고, 지금의 영주님은 물론, 선대 영주님께서도 초보 이방인에 불과했던 저를친구처럼 대해주셨죠.저는 영주님과 작센 주민들의 진심을 느끼고 감동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맺어진 친구란 이런것이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게 난민 병사까지 들락거리며 병자들을 간병해준 이유인가?" "그, 그걸 어떻게.......?" 아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이내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익숙한 소년영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장난은 그만두지.크로스경, 두건을 벗겨주게" 두건이 벗겨지자 강렬한 햇살에 아크는 잠시 눈을 뜨지 못했다. 손으로 햇살을 가리며 몇번 눈을 깜빡이던 아크는 이내 얼빠진 얼굴이 되었다.작센성의 구석에 있는 넓은 공터. 그곳에는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소년영주와 크로스,실피드 기사단,경비대, 주민,난민병사의 병자들........ 작센의 NPC란 NPC는 모두 모여 아크를 바라보고있었다. 그것도 조금전까지 쌀쌀맞게 대하던 눈빛이 아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정이 담긴 눈빛이었다. "대,대체 이게 도대체..........." "아크, 진심으로 자네에게 감사하네" 소년영주가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무슨.......?" "자네는 고작 50명밖에 되지 않는 경비대와 민병대를 이끌고 마광 포탑을 점령하는공적을 세웠네. 게다가 마지막 결전에서 둑을 폭파하곡 발데라스를 궁지로 몰아넣은 사람 역시 자네였다지 ?당시 마광포탑을 조종하던 레이몬드에게 모두 들었네. 그것만으로도 자네는 놀라운 업적을 세웠어. 이는10용사에 버금가는.......아니, 그이상의 공적이네.솔직히 어떻게 자네가 공훈자 명단에서 빠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정도야" 물론 아크가 등록을 거부했기 떄문이다. 그러나 시스템에 관련된 문제는 NPC에게는 이해할수 없는일이리라. "하지만 내가 진정 고맙게 생각하는건 따로있네.나역시 성으로 피난온 많은 난민이 병마에 신음하고 있다는걸 알고있었네.하지만 내가 할수 있는건 많지 않았지. 또한 많은 의용군들도 그들을 외면했네. 하지만 자네는 전투를 치르면서도 매일빼놓지 않고 그들을 찾아 진심으로 간병해주었다고 들었네. 그럼에도 자네는 자신의 선행을 단한번도 입밖에 내지않았지" 경비대가 곯아떨어지면 달리 공적을 올릴 방법이 없엇다. 또한 간병을 하면 자동으로 공적이 들어오니 굳이 떠벌리고 다녀서 다른유저들까지 몰려들게 할필요는 없었다.그러나 소년 영주는 그게 아크의 희생정신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 표정이다. "이제 자네덕에 많은 병자들이 건강을 되찾았네. 그리고 나를 찾아와 부탁했지. 비록 가진것 없는 난민들이지만 어떻게든 자네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다고 말이야 .자네는 선행을 내세우는사람이 아니라, 지원군 사령관 후안백작님에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지 않은가? 그대신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누구보다도작센을사랑하고 고생을 아끼지 않은 자네를빈손으로 보낸다면 두고두고 부끄러워할일, 그래서 주민들과 뜻을 모아 조촐한 자리르 마련한거네" 옆에서 크로스와 병사들이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자네에게 비밀로 하려다 보니 심한 말을 해버렸군. 미안하네.이해해주게" "............!" 아크는멍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 보았다.작센 NPC들이 애정이 듬뿍담긴눈으로 아크를 바라보고있었다.전화각 휩쓸고 지나간 작센성은 보기에도 딱할정도로 황폐해졌다. 그 한쪽 공터에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낡은 책상이 줄지어 늘어서있고,난민들잉 성의껏 마련한 음식이 차려져있었다. "자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난민들이 손수 마련한 음식이네. 자네라면 내가 준비해 주는 음식보다 이것들을 더 좋아할것 같아서 말이네.혹시 마음에 들지 않나?" "그럴리가요.........." 돌연 코끝이 찡해졌다.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솟구쳤다. 게임이라는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NPC들. 그곳에서 전화를 겪은이들에게 한줌의 식량은 목숨만큼이나 소중한것이리라. 그것을 아낌없이 아크를 위해 내주었다. 흔한 빵과 약간의 고기.투박한 그릇에 담긴 술이 전부였지만 그걸 가치없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게다가 아크는 무려 5년동안 다른사람이 차려주는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다. 그런데 게임안에서 수많은 NPC들이 음식을 차려주었다. 오직 아크만을 위해........... 주민들의 면면을 바라보자 조금전까지 느꼈던 섭섭함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파티를 준비해준 이들에게 무한한 애정이 느껴졌다. "제가 받아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입니다" "자네라면 그렇게 말해줄거라 생각했네" 소년영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크가 눈물을 글썽이자 공터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다. 몇몇 주민들은 아크를 따라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때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보던 톰이 눈가를 쓱쓱 닦아내며 레이몬드를 향해 말했다. "아빠" "아, 그렇지. 이보게들. 징징거리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지않나? 이자리는 우리의 진정한 영웅,아크를 위해 마련한 자리네.모두 잔을들어 올리게. 우리의 영웅 아크의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서!" "오오오,아크!" "우리의 영웅!" 주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술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소년 영주는 흐뭇한 얼굴로 술잔을들어 아크에게 건네주었다. "자네는 공적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니. 선행을 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거네.하지만 보게. 영웅적인업적은 숨기려한다고 숨겨지는게 아니네.오히려 숨길수록 더욱 빛을 발하기에 우리는 그런 자들을 영웅이라고 칭하는것이네.누가뭐래도 지금 이순간,이곳에서 술잔을 들어올린 사람들에게 자네는 영웅이네.까마득히 높을 곳에서 빛을발하는 촛불같은 영웅.나는 그런 진실된 영웅을 알고있다는게 참으로 자랑스럽네" 그떄 였다.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작센주민들로부터 '작센의 영웅'칭호를 받았습니다. 항상 세인들의 칭송과 관심을 받는자만 영웅이 될수있는건 아닙니다. 진정한 영웅이란 오히려 자신의 선행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공적을 자랑하지 않는 당신을 세상 모두가 알아줄수는없겠지만, 영웅적인 행동을 틀림없이 보상을 받게 됩니다.또한 언젠가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큰 감명을 주게 될것입니다. {작센의 영웅은 '알려지지 않은 의인'의 칭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지는않지만 많은 서민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수 있는 '드러나지 않는 선행'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성은 퀘스트의 의뢰와 진행에 많은 변수를 제공할것입니다.*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모든 작센 주민과 친밀도가 최대치로 상승했습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선행'의 영향으로 앞으로 모든 퀘스트 보상에서 명성에 대한 패널티가 30%작용합니다. 대신 NPC와의 친밀도에 30%의 보너스를 받습니다] '칭호,명예의 전당에 등록도 안했는데.....!' 아크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작센의 영웅, 이 얼마나 근사한 칭호란말이가? 게다가 모든 스탯 +2의 상위 칭호!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였다. 딱하나 마음에 걸리는건 칭호에 대한 명성 패널티다.그러나 아크가 선택한 직업은 다크워커,어둠을 벗삼아 살아가는 다크워커에게 명성이란 장식에 불과하다.오히려 그런 불필요한 명성을 친밀도로전환해 보너스를 받는편이 훨씬 이득이다. '역시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해' 아란이 칭호를 받앗다는 소식을 듣고 시작된 복통도 단숨에 날아갔다 곧 흥겨운 축제가 시작되었다. 어떤 주민은 악기를 들고나와 연주했고, 어떤 주민은 탁자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 소년 영주와 병사들도 그들과 어울려 박수를 치며 노래했다. 다크포그가 시작된 이후로 주민들은 처음으로 밝은 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다. "음악 소리잖아?" "저쪽 공터에서 들리는데 대체 무슨일이지?" "상점이란 상점은 모두 문이 닫혀있고........병사들도 몇명안보이는데?" 작센에 있던 유저들이 관심을 보이며 몰려들었다.그러나 공터 주변은 병사들이 가로막고 있어 접근할수 없었다. 아크가 '드러나지않는 선행'을 좋아한다고 판단한 소년영주가 다른 유저들의 접근을 막은것이다. 이는 오직 아크만을 위한 이벤트...........파티였다. 아크는 파티가 진해되는내내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배가 터지도록 음식과 술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한창 여흥이 무르익었을 무렵, 문득 아크의 머리속에마지막까지 함께해주었던 정의남과 로코,민병대원들이 떠올랐다. 낮은 레벨에도 불구하고 최종결전까지 참가했지만 안타깝겍 죽어 아무런 보상도 받을수 없게 된것이다. '내가 뭔가 해줄수있는게 없을까?' 아크는 소년영주에게 다가가 슬쩍 운을 띄워보았다. "작센 영지가 다시 평화를 되찾아 정말 기쁩니다" "그래, 이모든게 자네와 아란경, 의용군의 덕이네" "네, 하지만그들 못지않게 민병대의 도움도 컸습니다" "물론이지. 그들이 아니었다면 의용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작센은 함락됐을지도 모르네" 포도주로 얼큰하게취한 소년 영주는진중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최종결전까지참가해 발데라스를 쓰러트리는데도크게 공헌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두 크게 부상을 입는 바람에 마지막까지 전투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의용군이 3대길드로부터 공적에 걸맞은보상을 받겠지만,정작 처음부터 오직영주님의 요청으로 작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민병대는 한사람도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점이 너무나 가슴아프군요" 전투에서 죽은 유저를 NPC는 부상으로 인식한다. 평소와 달리 부활까지 3일이나 걸리는것 역시 NPC들은 큰부상을 입어 회복이 느리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굳이 파헤치자면논리적으로문제가있지만 뉴월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NPC에게는 유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는것이다. "음, 잘얘기해주었네. 나역시 그점이 마음에 걸리던참이야" "모든 민병대에 힘들더라도 마지막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던 몇몇이라도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받게 해줄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쎼...........민병대의 노고는 나도 알고있네. 또한 민병대장은 크로스경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할 정도로 뛰어난 용병술과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네. 하지만 공적은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사람에게만인정되는게 관례라............" 친밀도 100.아니 1,000%의 아크가 설득해도 소년영주는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낼뿐이었다. 역시 NPC가 게임 시스템을 거스를수는 없는 모양이다. 결국 아크는 보상을 포기하고 약간 방향을 바꿨다. "물론 어떤 물질적인 보상을 바라는것이 무리라는것은 알고잇습니다.그러자 영주님꼐서 그들의 노력을 기억하고, 작센에서 그만한 대우를 해준다면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아크는 영주 같은 고위 NPC가 특별히 신경을써주면 얼마나 많은 이득이 생기는지 직접 경험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아직 저레벨인 정의남이나 로코에게는 몇 골드의 보상보다 영주에게 이름을 알리는게 더욱 큰 이득일지도모른다. 아크의 제안에 소년영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거라면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군,그래........맞아.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사건으로 작센 영지의 병력이 많이 붖고해졌고 그래서 치안에 공백이 생겨 걱정하던 참이네. 아크,그가 건강을 되찾으면 나에게 찾아오라고 전해주게.그들이 뭘할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수 있는지 천천히 의논해 보는것도나쁘지않겠어" "알겠습니다" ACT 9 다시 기란으로 "어이, 현우야. 이쪽이다" 카페에 들어서자 한쪽에서 권화랑이 손을 흔들었다.권화랑 옆에는 정혜선도 앉아있었다. 서로 알게 된지 얼마 되지않았음에도 어색한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않았다. 하긴,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던 시절에도 함께 사냥을 다니며 정이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하물며 권화랑과 정혜선은가상현실 게임에서 현실과 비슷한 외모의 캐릭터로 한달 가까이 함께 지냈다.새삼 어색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어쩐 일이세요?이런 시간에 저를불러내시고" "그냥, 게임안에서는 오래얘기할 시간이 없잖아" "그렇긴 하죠" 현우는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게임은 할만하세요?" "흐흐흐,몸살난다. 왜 이 좋은걸 이제야 알게됐는지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혜선이는?" "저도 재미있어요. 하지만 게임할시간이 많지 않아서 속상해요." "어쩔수 없지. 게임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니까. 너는 공부도 해야 하잖아. 그러고 보니 시험이 얼마안남았지? 레벨은 나나 아저씨가 도와주면언제든 올릴수 있으니 당분간은 공부에 전념해, 알겠지? 공부는 할수 있을때 해야해" "치, 중늙은이 같은 잔소리는........." 정혜선이 입술을 삐죽거렸지만현우의참견이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뭘하실 거에요?" "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적당한곳에 처박혀서 레벨이나 잔뜩 올려놔야겠다. 이번퀘스트를 하면서 내가 무지하게 약하다는걸느껴 버렸거든. 현실이든가상현실이든 다른사람보다 약한건 못참아. 정의는 힘이있어야 실천할수 있는거니까" "정말한결같으시네요" "일도, 사람도,게임도 외길!그게 사내야!" 권화랑의 눈에는 의욕이 넘쳐흘렀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다. 새삼스럽게 권화랑에게 뉴월드를 권하길잘했다는생각이들었다. "한동안 작센에 있을거라면 잘됐네요. 게임에 접속하게되면 영주를만나보세요" "영주를?" "네, 영주가 아저씨와 의논할일이 있대요. 한번 잘 사귀어 보세요.영주같은 NPC와 친밀도를 높여 놓으면엄청나게도움이 될거에요" 아크는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권화랑에게 빙긋 웃어보였다. 그뒤로 현우는 정혜선,권화랑과 함꼐 저녁을 먹고 병원에 들렀다가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밤이었지만현우는집에 돌아오자 마자 컴퓨터를켜고 거래사이트에 접속했다. 새로 올려놓은 경매품의 결과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 힘의 건틀렛 : 75만원 -현재 7시간째 경매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염의 학살자 : 680만원 '680만원!' 숨이 턱 막히는기분이 들었다. 6시간 경매에 올렸던 힘의 건틀렛은 75만원에 낙찰되었다.80만원은 받을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대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잔뜩 기대하며 72시간 경매에 올려놓은 유니크 철퇴.화염의 학살자는 7시간만에 어마어마한 경매가가 붙여져 있었다. 보기 힘든 유니크 무기라 고가에 팔릴거라고 기대는했지만 72시간 경매에 7시간만에 680만원까지 가격이폭등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65시간. 분위기를 보니 천만원은 가볍게 넘길수 있을듯했다.두달이나 돈걱정없이 생활할수 있는 금액이다. '생계형 게이머가 된뒤로 첫 수확이나 마찬가지로군. 하지만여기서 만족하면안돼 .먹고사는게 가장 중요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만 게임을 하는게 아니야. 이제 입사 시험에 합격할수 있는희망이 보여. 이벤트 퀘스트에서 아란과 함꼐 공적 1위를 하게된 내용도 리포트로 제출했으니 글로벌엑서스에서 내 평가가 조금은 올라갔을거야' 퀘스트에서 죽을 고생을 했지만일단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니 모든일이 잘풀린다.현우는 넘치는 의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유니트에 몸을 실었다. 아크는 작센성을 나와 숲을 가로질렀다. 작센 마법 학회의 탑을 이용하면기란까지는 단숨에 이동할수 있다. 솔직히 당장이라도 이동해서 이벤트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또한 가능한 빨리뱀의 변태과정을 끝낼 방법도 찾아봐야 했다 .그러나 아직 아크는근처에서 해결해야 할일이 남아있었다. [인어족의 사절 인어족의 여왕은지난 과오를 후회하고 묘족과 화해하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인어족과 묘족 ,두종족에 걸쳐 친밀도가 높은 당신이라면 쉽게 두 종족을화해시킬수 있을겁니다. {난이도 :G 퀘스트 제한 : 묘족과인어족의 친밀도가 70%이상}] 해저 도시 노드리스의 인어 여왕에게 받은 퀘스트.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선느언제든 한번은 와야하는곳이다. 사실 난이도도 그렇고, 퀘스트를 완료해도 인어족을 찾아가 보상을 받을수는 없다. 잘해야 경험치나 조금 받을수 있겠지. 그래서 아크는퀘스트를 받고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 묘족이 사는유적은 작센 영지에서 멀지 않으니 해결하고떠날 생각이었다. 처음 유적으로 갈떄는 말을 이용했다. 때문에 거리가 얼마 되지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걸어서 가려니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나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그동안 너무 암울했지' 이벤트 퀘스트 내내 다크 포그에 휩싸여 전투만 벌였다. 덕분에 레벨은 10이나 올렸지만, 몸도 마음도 상당히 지친상태다. 아무리다크 워커라도 현실시간으로 3일이나 어둠속에 있었으니 좋기만 할리 없다. 아크는 뉴월드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며 느긋하게 유적으로 향했다.물론 휴식이라고 해도 그저 손을 놀릴아크는아니었다. 숲을 구석구석 뒤져가며 텅텅 비어버린 식재료를보충해 놓는것도 잊지 ㅇ낳았다. 이제 어지간한 스킬은 다 중급이다. 레벨이 낮은 식재료는 채취하거나 요리를해도 숙련치가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고레벨 사냥터로 자리를 옮긴 아크는 저레벨 식재료를 구하기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 안전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저레벨 식재료도 필요하니 구할수 있을떄 구해두는편이좋다. 크르르! 숲을 털고 다니니 간간이 늑대나다이어 울프가 나타났다.그러나 이제 그정도는 차라리 귀엽다. 죽여봐야 경험치도 숙련치도 안된다. 아마 아크와 비슷한 레벨의 유저라면귀찮아서 그냥 지나쳤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눈에띄는 몬스터는결코 그냥지나치는법이 없었다.. '1도 경험치고, 1쿠퍼도 돈이다!' 경험치1도 쌓으면 레벨이 오르고, 1쿠퍼도 모으다 보면 골드가 된다.변치않는 아크의 지론이다. 그리고 간만에 저레벨 몬스터를사냥하는 재미도 쏠쏠했다.한번 공격에 생명력이 60%이상 빠져나가는 늑대를 보니 강해졌다는 실감이난다. 실로쾌적한 사냥! 경험치는 안되지만 기분은 꽤나 상쾌했다.그렇게 숲을 쓸어버리니 나중엔 몬스터가 먼저 겁을 먹고 슬슬 피해다녔다. 그리고 그런 사냥도 지루하다 싶어질무렵. 드디어 유적이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느낌이꽤나 다른걸' 유적은 정말 제대로 찾아왔나 싶을 정도로 변해있었다.유적을 뒤덮고 있던 음산한 기운이 사라지고 밝은 기운이 감돌았다.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입구엔 갖은 들꽃이 만발해 화사한 느낌마저들었다.들꽃사이로 고양이들이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아크는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인 여자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자나" "어라? 아크아냐?" 자나는 반가운 기색을꼬리를 살랑대며다가왔다. "잘있엇어?" "뭐,별일은 없었지" 자나는성의 없이 대답하며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렸다. 그리고 곧 베시시 웃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 "흐응, 예전에는 애송이였는데 이젠 제법 남자다운 냄새도 풍길줄 알게 됬네. 꽤나 그럴싸해졌어.시간나면나랑 연애할래?" "고맙지만 사양할게"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레벨이나 명성이 높아지면 NPC들의 반응도 약간씩 달리진다. 레벨과 명성이 낮으면 처음가는 마을 NPC들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때가 많지만 레벨이 높아지면 제대로모험자 취급을 해주었다.자나의 반응도 레벨에 따른 반응일뿐,다른 의도가 있는건 아니리라.설사 다른 의도가 있다고해도 아직 NPC에게 연애감정을 느낄정도로 궁하지는 않다. 물론 현실에서 자나같은 미인이 접근해온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역시 자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어쩐일이야?" "장로님을 좀 만나고 싶은데 ,유적안에 계셔?" "아니, 네가 가고나서 신전안에 남아있던 몬스터는 모두 정리했어. 그러니 굳이 신전에 남아있을 이유가없지. 지금은 근처에서 거처를만들고잇는 중이야" "안내해 주겠어?" "응, 따라와" 자나가 안내한곳은 유적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숲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공터에는 예전에 봤던열댓명의 묘족전사들이 모여있었다. 묘족 전사들은 한참 다른일에 집중하느라 아크가 온줄도 모르고있었다. 그런데 대체모여서뭘하고 있는건 지 알수없었다. 덩치는 커다란 장정들이바들바들떨며 작은 나무토막을 얼기설기 쌓아올린다. 그러나 어린애가 봐도 어이없어할 만큼 서툴게 쌓아올린나무토막들은 금세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이런 ,빌어먹을!열받아죽겠네!" "더이상은 못참아!냥,냥,냥!" 그떄 마다 묘족청년들은성질을 부리며 손톱으로 나무토막을 긁어댔다. "저게 뭐하는 짓이야?" "말했잖아. 집을 짓고있는중이라고" "노는걸로밖에 안보이는데?" "내말이............" 자나가 한숨을 푹 불어냈다. "원래 묘족은 태생부터가 전사야. 싸우는일이라면 몇날 며칠을 지새우면서도 할수 있지만 손재주는 꽝이라고.덕분에 벌써 두달쨰 집을 짓고있는데도 보다시피. 내생각에는 아마 한 10년은 걸릴것 같아" "그럼 유적에 갇히기전에는 어디서 살앗는데?" "예전에 살던 마을은 친분이 있던 인간들이 지어줬었어.하지만오랫동안 갇혀있는동안 방치되어 지금은 흔적도 남지 않았어.아는 인간들도 다 늙어 죽었고, 묘족은 사교성도 그리좋은편이 아니야. 그래서 인간들에게 부탁도 못하고 저러고 있는거야" "유적에서 살면안돼?" "유적이 아니야. 신전이지. 그리고 신전은 노숙자가 묵는곳이 아니라고. 나는 신전을 맡은 무녀니까 괜찮지만다른 묘족은 안돼.기껏 몬스터를 청소했는데 시꺼먼 사내들이우글거리면 이전하고 뭐가 달라?" 자나가 입술을삐죽거리며 대꾸했다. 그래서 다른 묘족이 집을 짓든 노숙을하든신경 쓰지 않는다 그건가? 과연 고양이답다. 어쨌든 그녀가 고양이든 강아지든 아크가 상관할바는 아니다. 집을 짓겠다는건지 부수겠다는건지 알수없는 묘족을 지나쳐 가자 커다란나무아래에 핫산이 있었다 핫산은 졸개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늘어지게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자나가 툭 걷어차자 핫산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며 두리번거리다가 아크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반겼다. "오오, 이게누구야? 우리의 친구 ,구도자 아크가 아닌가?" "장로님을 만나러 왔대요" "나를? 그래, 무슨일인가?" "실은........" 아크는 마반영웅과 인어여왕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둘의 인연이 엇갈려 인어족이 묘족을 오해하게 된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인어 여왕은 그간의 오해를 풀고 묘족과 화해하고싶어합니다. 오래전 비극으로 끝난 마반 영웅과아드리안의슬픈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사과를 받아들이시는게 어떻습니까? 인어족이 일방적으로 묘족을 미워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지나간 과거가아닙니까?" "아아, 맞아.그런일도 있었지' 핫산은 지저분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심드렁하게대답했다. 인어족과의 불화를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별로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꽤나 불쾌한 일이었던건 분명해. 하지만 자네 말대로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지. 인어족과 마지막으로 마찰이생겼던것도 내가 어렸을때의 일이니까.다른 녀석들은 인어족을 보지도 못했을거야" "인어족과 만난적이있습니까?" "물론이지" "장로님의 나이는 수백살이야. 살아있는 화석이지" 자나가 피식웃으며 덧붙였다. "시끄러,누가 화석이라는거냐?" 핫산은 자나를 쨰리곤 다시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인어족이 화해를 요청하든말든 별로 상관없어. 사과를 받아주는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오래된 감정을 사과 한마디로 받아들이는건 어쩐지 좀 그렇군. 기다렸다는듯이 넙죽 받아들이는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지 말고 제 얼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죠" "흠,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마냥 거절할수도 없고......난감하군" 핫산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그러다가문득 생각난듯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인간이었지.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떤가?" "뭘말입니까?" "주위를 둘러보게. 보다시피 지금 우리는 매우 큰 곤경에 빠져있네. 이래서야 앞으로 몇년이 지나도 집은커녕 움막조차 짓지 못할거야. 자네가 그 문젤 좀 해결해 줬으면 하네" "제가요?" "그래, 자네는 인간이니 근처 마을에 친구 1~2명은 있을거 아닌가? 그들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해 주게.인간이라면 간단한오두막 정도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거야.그럼 기꺼이 인어족의 사과를 받아주지" 꽤나 그럴듯한 생각을 해냇다는듯 핫산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반면 아크의 얼굴은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게 인어족의 사과를받아들이는것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겁니까?" "관계는 있지. 자네는 우리의 친구지만인어족의 사절로 왔지 않나? 그런자네가 우리를돕는다. 그럼우리는보답을 사과를 받아줄 명분이 생기는것 아닌가?" 듣고 보니 제법 말이 된다. '고양이의 잔꾀'라는 격언이 있듯이, 핫산은 생긴것과 달리 의외로 잔머리를잘 굴렸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달갑지 않은 제안이었다. 여기까지 온건 결코 큰 보상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단지받아놓은 퀘스트니온김에 해결하고 가려던 것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작센으로 갔다가 돌아오려면 G퀘스트 하나 해결하는것치고시간을 너무많이허비하게 된다. 또한 장인 NPC를 찾을수 있을지도 장담할수 없다. 작센은 전쟁의 상처를복구하기 위해 모든 장인 NPC가 총동원된 상태다.아무리 친밀도가 높아도 정당한 이유없는요구는거절당한다. 하물며 작센을 내팽개치고 고양이 집을 짓기 위해 이곳까지 따라올 장인 NPC가 있을리 없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퀘스트를 끝내지 못하는것도 찜찜하다. '고양이집이라..............혹시?' 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바로 이런상황에 딱 들어맞는 퀘스트가 있었다. '이주민 찾기 퀘스트!' 란셀 마을에서 받은 뒤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퀘스트였다. 사실 지금까지 몇몇 NPC에게 말을 꺼내 봣지만 모두 거부당했다. 그러나 영지에 매어있지 않고, 마침 살곳을찾고잇는 묘족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래, 지금 묘족은 노숙자나 다를바 없는상태다.그럼한번 말이라도 꺼내볼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러면어떨까요?" "말해보게" "이곳에서 멀지않은 곳에제가 잘아는개척민 마을이 잇습니다. 그곳에는 살마들이 많이떠나가서 빈집이 ㅁ낳죠. 그들에게 부탁하면 묘족에게 필요한 집을 제공해줄겁니다" "인간의 마을?명예로운 묘족이 인간의 마을에 빌붙어 살라는말인가?" 핫산은 말도끝나기 전에 불쾌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예상했던 반응이다. 고양이는 원래 개와 달리 인간과 그리 잘 어울리는동물이 아니다. 새끼 때부터애지중지 키워도 인간을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 심지어어떤고양이는 식사때만아양을 떨다가 배를 채우고 나면 안면 몰수하고 집을 나간느 경우도 적지 않다. 나쁘게 말하면 싸까지가 없고, 좋게 말하면 독립심과 자존심이 강한 동물이 고양이다. 그런고양이의 습성을 물려받은묘족이니 인간에게 신세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두달이나 헤매면서도 직접인간에게 부탁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나마 친분이 있는 아크가나타나자 선심쓰듯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그러나 아크가 노린것은 바로 그점이다. 아크는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으시죠? 사실 저도 너무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생각하던참이니까.위험하기도하고........" "뭐? 부탁? 위험하다니? 그건 또 무슨소린가?" "아니, 됐습니다. 못 들은걸로 하세요" "이런 젠장, 누구속터져죽는꼴을 보고싶나? 나는아픈건 참아도 궁금한건못참는 성격이란 말이네. 뭐가 됐든 일단 말이나 시원하게 해봐!" 호기심이 고양이를죽인다고 했던가? 그런 고양이의 습성을고스란히 물려받은 핫산은역시나안절부절못하며 닦달했다. '후후후,낚였다.낙였어' 아크는 회심의 미소를숨기며 짐짓 난색을 표했다. "음, 실은 말이죠. 그마을은 한때몬스터의 위협을 받아 존망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곳입니다. 다행히 지금은예전보다 안전해지기는했지만, 여전히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설치고있죠. 언제 다시 위험이 닥칠지 모른단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용맹한 묘족이 그들을 지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붙는게 아니라,그들을 지켜주며 정당한 대가를 받는거죠. 마치귀족처럼" "호오,몬스터? 주변에 몬스터가 많은가?" "네, 강한 몬스터가 많습니다. 특히 놀이라는놈들은 상당히 위험하죠" "놀!지금 놀이라고 했나?" 핫산이 벌떡 일어나며 고함쳤다.움막을 짓던 묘족들도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놀이라면 개대가리!맞지? 왕왕 짓고 시끄러운 개대가리들 말하는거지?" "맞습니다. 꽤나 강하고 흉포한 놈들이죠. 아무리 묘족이라도 그런 몬스터들로부터 마을을 지키는건 역시......." "당치도 않은 소리!" 아크가 미묘하게 말끝을흐리자 핫산이 버럭 소리쳤다. "멍청한 개 대가리들 따위야 몇백마리가 몰려와도 영맹한 묘족의 상대가 안돼. 암, 개대가리는오래전부터 묘족의 숙적이었지.왜냐고? 묻지마.나도모르니까. 어쨌든 나는개 대가리가 미치도록싫어!잠시 눈을 돌린 사이신성한 묘족의 신전근처에 그따위 개 대가리들이 설치고 있었다니!모르면 몰랐지 알고도 못 본척할수는 없지!" "그럼 제 제안을 받아주시는겁니까?" "음, 개대가리들에게 위협받는다면 란셀인지뭔지하는 마을을 도와야겠네. 절대 집이나 먹을것 때문이 아니야. 묘족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잠시 머무르며 개 대가리들을 떄려잡아 주겠다는거지.물론 그러려면 편하게 자고 배불리 먹어야겠지만........." "걱정 마십시오.마을을 지켜준다면 주민들은기쁜마음으로 묘족이 원하는숙식을 제공할겁니다" 아크가 빙긋웃으며 말하자 경쾌한 음향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술이 3상승했습닏. ['새로운이주민은 찾아라'퀘스트가 갱신되엇습니다. 당신은 묘족 장로 핫산을현명하게 설득해 란셀 마을로 이주한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묘족은 천성적으로 전사의기질을 타고나는 용맹한 부족입니다. 이들이 란셀마을을 지켜준다면 주민들은 더이상 몬스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것입니다. 이것은 무엇보다안전을원하던 란셀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일입니다. 묘족 덕에 원하는것을얻은 이들은 기꺼이 집과 음식을 제공할겁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 성취도 15%}]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주민을 찾았습니다. 전사 부족인 묘족의 이주로 란셀마을의 무장도가 40%상승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식량을 제공해야 하므로 식량사정이 10%만큼 하락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주민을 유치하면 상업도, 무장도, 식량 사정등의 수치가증감하게됩니다. 수치에 따라 퀘스트가 완료될때 보너스 보상을 받을수 있습니다}] '어라?'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였다.그저 사람숫자만 늘려 놓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메시지를 보니 성취도 이외에도 확인할수 없는 내부수치가 존재하는모양이다. 마치 오래전에 해봤던 RTS게임처럼 전사를보내면 무장도가, 장인 NPC를 보내면 상업도가 증가하는 모양.그리고 성취도가100%가 됐을떄 결과에 따라 보상이 변하는것이다. '그냥 난민을 마구잡이로보내는게 아니구나!' 사실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당연한일이다. 란셀 마을을 부흥시키는게 목적인퀘스트다. 좋은인적자원을 제공하면 더욱 크게 발전하는게 당연하다. 퀘스트 하나에도수많은 해결방법이있다. 행동이나 말한마디가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알수없다. 아크는 그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까다롭다면 까다롭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15%라니?' 당연히 퀘스트가 완료될거라 생각한아크는 뜨악했다. '열댓 명이나 보냈는데 15%? 그럼최소한 80명을 더 찾아야한다는건가?' 퀘스트를 받고 한달이 넘어서야 열댓명을 찾아냈다.다른곳을찾아다니며 80명이나 되는 사람을 더 모아야한다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어쨌든 퀘스트를 해결할수있는 실마리는 찾은셈이다. '뭐,퀘스트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좋아. 보상이 크다는의미니까' 언제나 긍정적인 아크였다. "개 대가리라, 개 대가리라고? 후후후, 좋은 정보를 줬어오랜만에 피가 끓는군" 핫산은 벌써부터 수염을 빳빳이세우며 의욕을 불태웠다.그리고 지루한 집짓기를 놀사냥으로 바꿔버린 ㅏㅇ크에게 온몸을 비벼대며 고마워했다. "이제 집안지어도 되는거야?" "정말 싸움만 하면서 놀고먹을수 있다는거지?" "만세, 해방이다!" 모여든 묘족 전사들도 미친듯이 꼬리를흔들며 날뛰었다. "자네는 정말 행운덩어리야. 나타날때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니 예뻐하지않을수가 없단말이지. 아니,이럴게 아니라 뭔가 보답을 해주고 싶은데?나참, 데브라 녀석이신전을 들쑤셔 놓는 바람에 당장 가진게 없으니........" 핫산이 뭔가 해주고 싶어 안달하자 자나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장로님, 치매예요? 혹시라도 아크가 다시오면 해주게싿고 한일이 있잖아요" "뭐? 아아,그래.그렇지.깜빡하고 있었다" "해주다니요?뭘말입니까?" 혹시 인어족의 사절퀘스트로 따로 보상도 받을수 있는건가? 아크가 솔깃한 표정으로 물었다. "후후후, 자네를 위해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해 두고있었지. 아니, 말로 이럴게 아니라 따라오게" 핫산과 자나는 아크를 데리고 신전으로 향했다.신전안도 몬스터가 사라지자 한결깔끔하게 변해있었다.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걸으니 곧 데브라가 차지하고 있던 공동이 나타났다. 방에 도착하자 핫산이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내가 준 고양이손을 아직도 가지고있군. 그걸 이리줘 보게" 아크가 고양이손을 벗어주니 핫산이 설명했다. "아마 덥석 줘버려서 자넨 이게 얼마나가치잇는 물건인지 잘 모를거야. 사실 이건 사용자의 능력을 완전히 끌어낼수 있는 굉장히 귀한 마법 무구라네. 하지마 묘족의 무구는제대로 능력을 끌어내려면 무녀의 축복을 받아야하지.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무구를 줄때는신전이 오염되어축복을 내려 줄수 없었네.또 자네도 축복받은 무구를착용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것처럼 보였고 말이야" '그럼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하지 않은가?'라는 의문은 자나가 풀어주어다. "쳇, 억지로 둘러대기는..........그냥 잊어버린거면서" "시,시끄럽다!넌잔소리말고 축복이나 내려!" 핫산은 얼른 얼버무리고 고양이 손을 제단위에 올려놓았다. 자나의 얼굴이진지해졌다. 그러기를 잠시,어디선가 통기타로 연주하는듯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멜로디에 맞춰 자나가 제단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건 그때였다. 신전까지 따라 들어온 고양이들도 지나의 뒤를 쫓으며 노래를 불러댔다. 냥,냐냥,냐냐냥,냥,냥,냥 이건 뭐라고 해야하나.......... 어렸을떄 본 만화영화에서 동물들이 뮤지컬을 공연하는듯한 장면이랄까?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그러고 잇으니 보는 아크가 다 낯이 뜨거워졌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기는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문득 제단 위쪽에서 한줄기 빛잉 스며들어 고양이 손에 닿자 푸르스름한 빛이 흘러나왔다. "휴,끝났다. 쪽팔려서 혼났네" 자나가 흥건한 땀을 닦으며중얼거렸다.역시 그녀도 쪽팔렸던 것이다. "쯧, 그래도 명색이 무녀인데 채신머리없이........." 핫산을 투덜거리며 고양이손을 아크에게 건네주었다. "좋아,다됐군.자, 이제 착용해보게.묘족이 왜그렇게 강한지 알게 될거야" 외견상으로는 손가락끝부분에 푸른빛이 맺혀있다는점을 제외하고는 달라진게 없었다. 그러나 정보를 검색해본순간 절로 입이 떡벌어졌다. [축복받은 고양이손(레어) 방어구 타입 : 가죽장갑,너클 방어력 : 30(+7,8) 공격력 : 9~15(+7,8) 내구력 : 50/50 무게 : 5 사용제한 : 캣타이트 전용,레벨 60이상 묘족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방어구겸무기.묘족 신전의 축복을 받아 새로운 능력이 보여됬습니다. 이제 고양이손은 구도자에게 어울리는 장비로 본연의 능력을 발휘하게될것입니다. 사용자가 강해질수록 고양이손도 강해지게 됩니다. {옵션 : 공격 속도 15%상승.민첩 20상승.치명타율 15%상승} {특수 옵션 : 사용자 레벨 x0.1만큼 방어력과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성장형 아이템!' 기본적인 능력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건 그뒤에 붙어있는 특수옵션! 레벨에 따라 방어력과 공격력이 추가되는 성장형 아이템으로 변한것이다. 즉, 레벨이 100이 되면 공겨력과 방어력돋 +10이 올라간다. 레벨이 올라갈때마다 더 좋은 아이템을 찾기위해 헐떡거려야 하는 게임세상에서 성장형 아이템은 엄청난 보물이었다. 능력치가 올라간 고양이 손의 방어력은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과 맞먹고, 공격력도 란셀의 검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않는다. 보면 볼수록 놀랍다는 말밖에나오지않았다. 한동안 이벤트퀘스트에 집중하느라 이렇다 할 아이템을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일이풀리기 시작하니 자다가도 떡이 나오지 않는가?퀘스트가 연달아해결되고 아이템이 마구잡이로 쏟아진다. '그렇구나, 인어족의 사절퀘스트의 목적은 바로 이거였어!' 정석대로라면 상당한 레벨이 되어야 꺨수있는 백경의 미궁. 그걸 꺠고 돌아온 아크에게 저레벨 지역으로 돌아가라는 퀘스트가 주어졌을때 조금 이상하게 생각됬다. 그러나 이제 그 이유를 알수있었다. 직업 퀘스트를 깬 사람에게 주어지는직업 전용 아이템. 인어족의 사절 퀘스트는 그 보상을 주기위한 시나리오 퀘스트였던 것이다. "이게 진정한 묘족의 무구네.어떤가? 마음에 드는가?" "네, 감사합니다. 구도자가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팍팍듭니다" "그렇겠지.그럴거야.우후후후.당연히 마음에 들어야지 .구도자는 명예로운 일이니까. 어쨌든 자네가 만족스러워하니 나도 즐겁군. 자, 이제 정리해볼까? 인어족의 사절로 찾아온 자네는 내 요구를 들어줬고, 나는 그엥 대한 보상을 해줬네. 서로 원하는것을 주었으니 이제 명분이 생긴거지. 나 묘족의 장로 핫산은 정식으로 인어족의 사과를 받아들이겠네. 세계곳곳에 흩어져있는 묘족은 오늘부터 인어족을 동지로생각할걸세"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 열렸다. ['인어족의 사절'퀘스트가 완료됬습니다. 인어여왕의 사절로 묘족을 찾아간 당신은 장로 핫산을 설득해 목적을 이뤗습니다. 이제 두 종족은과거의 은원을 잊고 화합하기로약속했습니다. 당신이 이 약속의 증인이 되어 두 종족에게 존경받는 최초의 인간이됫습니다. {보상 : 아이템 업그레이드 ,경험치 +500,명성 +35}] 퀘스탁 완료됐는데도 경험치는 그다지 올라가지않았다. 그러나 고양이 손을 업그레이드 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자, 그럼 여기서 볼일은 끝났군. 이제 란셀이라는 마을을 구해주러 가볼까?" "잠깐만요.물어볼말이 잇습니다" "뭔가?" "사실은 해저 도시에 갔을떄 마반영웅의 유산을 찾아냈습니다" "마반영웅의 유산?" "네,이것입니다" 별의 조각을 꺼내 보여주자 핫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확실히 마반영웅과 함꼐 사라졌던 삼신기 중 하나로군" "저는 명예로운 구도자로서 마반 영웅의 유산을 모두 찾곡 싶습니다" "그렇겠지.마반영웅 역시 처음에는 삼신기를 찾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전해지니까. 훗날 진정한 힘을 꺠우치고 나서는 삼신기의 도움은 필요 없어졋지만, 삼신기가 마반영웅의 힘의 근원이 되었던건 분명하네. 구도자라면 당연히 삼신기를 모으고 싶겠지" "혹시 나머지 삼신기가 어디있는지 모르십니까?" 이게 아크의 두번째 목적이었다. 다크 워커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삼신기가 꼭 필요하다 .즉,당분간은 이 삼신기를 찾는게 게임의 주목적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단서가 너무 부족했다.때문에 마반 영웅을섬기는 묘족의 장로라면 단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삼신기는마반영웅과 함꼐 사라졌네.내가 아는건 삼신기의 유래에 대한 애기뿐이야.그게 단서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네.그거라도 좋다면 얘기해 주는건 어렵지 않지" "네, 작은단서라도 좋습니다" "음......얘기가 조금 길어질텐데..........간단하게 말해보지. 일단 알아야 할건 삼신기가 본래 마반영웅의 것이 아니라는거야. 수인족을 대표하던 세 종족의 고대 유산이지. 암흑 세기가 시작될 무렵 마반영웅은 그들을 찾아다니며 힘을 빌려달라고 요청했고,그들의 시련을 통과한 대가로 삼신기를 받았네. 그리고 훗날 완벽한힘을 얻게된 마반영웅은 삼신기를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전해지네" "모두 돌려주었다고요?"" "그래, 별의 조각을 아드리안이 훔쳤다는건 사실말이안돼.대해를 누비는인어족이 섬기는건 별. 아마도 별의 조각은 처음부터 인어족의 보물이었을거야. 마반영웅도 언젠가는 인어족에게 돌려줄 생각이었겠지" "마반영웅에게 보물을 주었던 나머지 두 종족은 어디있습니까?" "그걸 모른단 말이네" 핫산이 머릴 긁적였다. "인간들은 우리를 수인족이라고 싸잡아 말하지만 실제로 수인족들은 서로 교류가 거의 없네. 더구나 우리는 오랫동안 갇혀잇었으니 말할것도 없지. 과거 마반영웅도 수많은 수인족을 찾아다니며 삼신기를 찾아내기까지 오랜세월이 걸렸다고 들었네" "그럼 혹시 지저 세계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지저 세계?" "인어 여왕이 삼신기 가운데 하나가 지저세계에 있을지도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하긴 모든 바다 생물로부터 정보를 얻는 그녀라면 삼신기의 행방을 알고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지저세계라..........어디선가 얼핏 들어본 기억이 나는군" 핫산 팔짱을 낀채 한참동안생각에 잠겼다. "그래, 맞아.내가 어렸을떄 지저세계의수인족과 교역을했던적이 몇번인가 잇었어. 그들은 수인족가운데 유난히 손재주가 좋다고 했었지. 뭐,언제나 대리인을 통해 교역해 그들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그들이 만들어낸물건에는 항상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지.그래.아마도 이런 문양이었을걸세" 핫산은 바닥에 삼각형 3개를 겹쳐 놓은 듯한 그림을 그려보였다. "그다지 도움이 될것같지는 않지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비록얻어낸 정보는 간단한 도형에 불과했지만아크는 실망하지 않았다. 일단 단서는 얻었다. 대체 뭘찾아야 할지도 모르던 떄에 비하면 큰 진전이다.이제 남은 것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뉴 월드를이 잡듯이 뒤지는것. 정보를 모으고 퀘스트를 해결하다 보면 틀림없이 연결된 단서를 찾아낼수 있으리라. 종종 잊어버리고는 하지만 이곳은 게임속이다.유절르위해 만들어진 세상인것이다. 아크는 일단 작센성으로 돌아왔다. 마법학회의 탑으로 들어서자 마법사 NPC가 다가왔다. "무슨 서비스를 원하십니까?" "영자이동을 신청하러 왓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크입니다" "아,아크님!기다리고 잇었습니다" "네?" "가만보자.여기있군요. 며칠전 이곳에서 영자이동을 신청하신 분께서 저에게 맡긴 편지입니다. 발신인은샴바라님으로 되어있군요" '샴바라!' 아크는얼른 편지를 받아 읽어보았다. FROM 샴바라 급한 퀘스트 때문에 먼저 간다. 너와 함꼐 싸우는건나름대로 재미있었다. 하지만 가능하면 너와 제대로 실력을 겨뤄보고싶다. 아, 적이되자는뜻은 아니다. 너같은 녀석하고는 적으로 얽히기싫으니까.혹시 너도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슈덴베르크 왕국의 왕도,셀리브리드에 있는투기장으로 와라. 나는 다음달부터한동안 거기있을 생각이니까. PS:인어의 바늘은 내가 가져간다. '샴바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했군'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샴바라의 전투를 보면서 은근히 실력을 겨뤄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떤 무술을 얼마나배웠던 격투기를 한사람이라면누구나 많든 적든 호승심이 있기마련이다. 게다가 이곳은 가상현실 게임 단순한격투기술만이 아니라, 게임을 하며 익힌 특수한스킬을 동원해서 싸울수도 있다. 평범한 대련에서 맛볼수없는 색다른 쾌감을 느낄수 있으리라. '투기장이라,호기심이 생기기는 하는데............' 아크는 마을게시판에붙어있던 투기장 광고 전단을 떠올렸다. 투기장은 유저와 몬스터 ,유저와 NPC,유저와 유저의 격투 대회가 펼쳐지는곳이다. 이곳에서는 죽어도패널티가 주어지지 않을뿐만 아니라 승점에 따라 골드나히귀한 아이템.칭호가 포상으로 지급된다. 경기 종목도 여러가지가 준비되어있어 꼭 레벨이 높은 유저가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었다.레벨보다는 어떤 스킬을 배웠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되는것이다. '한달 뒤라고 했지? 좋아.시간이 넉넉하니 그때까지 스킬이나 잔뜩 올려놓자' 사실 아크가 판단하기에 무술실력은 샴바라가한수 위였다. 그러나 여기는 가상현실 게임 세계,무술 실력이 전부는아니다. 아직 한달이라는 유예기간이 잇으니 샴바라를 따라잡는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으리라. 아크에게 아란은 적이지만, 샴바라는 좋은의미의 라이벌인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떄, 마법사가 말했다. "보통은 이방인의 편지를 맡아주는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신자가 작센에서 유명한 아크님으로 되어있어서 특별히 받아둔겁니다. 다음부터 편지를 주고받을때는 전이우편함을 이용해주십시오" "전이우편함이요?" "모르십니까? 마법학회가 운영하는 서비스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읽어보십시오. 서비스를시작한지얼마 되지않아서 행사 기간중에는 특별히 20%할인해 드리고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시면 다달이 내야하는 사용료도할인해 드립니다." 마법사가 핸드폰판매원처럼 말하며벽면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가리켰다. -전이 우편함 멀리 떨어진 친구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고민하고 계십니까? 이제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법 학회가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전이우편함이 있습니다! 전이 우편함은 대륙 곳곳에 퍼져있는 당신의 친구들과 언제든 연락할수 있게 해줄겁니다. 전이우편함 신규신청은 단돈50골드.사용료는 한달에 5골드입니다(사용제한 : 레벨 50이상) {마법 학회의 전이 마버을 이용한 편지 전달 방법 : 유저가 편지를 써서 곳곳에 마련된 우체동에 넣으면 곧바로 마법학회로 전이됩니다. 전이된 편지는 당신이 원하는지역의 마법학회에서 언제든지 찾아볼수 있습니다. 추가 요금을 지불하면 아이템을 보낼수도 잇습니다. 단,전이우편함을 받을때만 사용가능합니다. 상대가 전이 우편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연히 답장을 보낼수 없습니다} '호오, 이런기능이 있었구나' 일반 유편은 유저가 지정한 마을로밖에 보낼수 없다.다시말해 수신자가 다른 지역으로 떠나 버리면 편지를 받지 못한다는말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으면 멀리있는 사람에게 아이템을 보낼 방법도없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아직도 아크는방대한 뉴월드의 세계를 10분의 1도 모르고잇는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현재 샴바라외에 딱히아는 유저가 없었다 .정의남과 로콘느전화를거는편이 편지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다.50골드에다달이 5골드나되는사용료를지불할 이유가 없는것이다. "저는됐습니다" 아크의 대답에 마법사는시무룩한 얼굴로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영자 이동을 해드리겠습니다. 위층의 마법진안으로 들어가 영자 이동의 오브를 사용하면 바로 기란 마법 학회로 이동할 겁니다.아직 시험단계의 기술이라 이동 상황이 그리 안락하진 않을겁니다.출발하기전에 마음의 준비를단단히 하십시오" 아크가 계단을 올라가 마법진에올라섰다. 아크는 영자이동의 오브를꺼내들고 잠시 뱀을바라보았다. 24시간이 지나 다시 재소환한 뱀은 더욱 초췌해 보였다. "조금만 참아. 뱀.기란으로 돌아가면 틀림없이 네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을수 잇을거야. 상인도 많고,마법학회에는 고위 마법사들도 있으니까.어떻게든 변태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내도록 도와줄게" 쌕,쌕.............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아크가 영자이동의 오브를이마에 가져가자 머릿속에서 기란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순간 몸이 빛의 입자로 변해 산산이 흩어졌다. 이어 좁은 유리관을통해 상층부로빨려 올라간아크는 송신탑에서 기란 방향으로 뿜어져 날아갔다. 아찔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감이 밀려왔다. TO BE CONTINUED TYPING BY tjwnsgur888@naver.com 제블로그 에오시면 아크 5권있습니다 또한 게임소설블로그로써 다른 게임, 판타지 소설(텍본)있으니 놀러오세요 아크 ARK 4권 차례 ACT 1 기란 마법 학회 ACT 2 현상금 사냥꾼 ACT 3 다시 만난 시드 ACT 4 소녀를 만나다 ACT 5 붉은 남자 ACT 6 무법 도시 카이로트 ACT 7 다크브라더 ACT 8 나락의 끝에서 ACT 9 미궁의 수수께끼 ACT 1 기란 마법 학회 콰쾅, 파지지직! 한 줄기 빛이 마법의 탑을 후려쳤다. 송신부에 붙어있는 기기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빛의 입자가 모여들었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유리관을 따라 이동하던 빛의 입자는 마법진 위에서 곧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성형률 90%에 달하는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오히려 보기 드문 노멀한 외모의 청년. 미남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고,못생겼다고 하기에는 의외로 그럴듯한 구석이 있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이 캐릭터의 이름은 바로 아크였다. "헉헉, 이제야 겨우 도착한.........우욱, 우에엑!" 아크는 누렇게 뜬 얼굴로 헛구역질을 해댔다. "돌아 버리는줄 알았네. 차멀미조차 해 본 적이 없는데, 이건 정말..........." 작센에서 기란까지. 영자 이동에 걸린 시간은 불과 3분이었다. 컵라면이 딱 먹기 좋게 익을 시간이다. 그러나 그 고작3분이라는 시간은 아크에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정신적 데미지를 안겨주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몸이 빛의 입자로 변할 때는 마치 유체 이탈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체중이 사라지며 공기와 하나가 되는 듯한 감각!그런 상태로 하늘을 가로지르니 바람이라도 된 듯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 봤으리라.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산과 계곡, 평야를 질주하는 자신을. 그런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우하하하,이거 굉장한데!" 그 해방감! 그 자유로움! 빠르게 스쳐 가는 광경을 보니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호나호성이 비명으로 변하는 데는 10초도 필요 없었다. 이어지는 급상승,극강하,급회전! 안전 벨트도 없이 철룡열차를 타면 이런 느낌일까? 아니, 바텐더가 흔들어 대는 칵테일 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좌우로 요동치고, 하늘과 땅이 바뀌기를 수십 번............ 아직도 바닥이 뒤흔들리는 것 같아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빌어먹을,대체 이 지나치다 못해 끔찍한 현실감은 뭐냔 말이야!' "자네가 아크인가?" 등 뒤에서 컬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퀭한 눈으로 돌아보니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트린 노마법사가 다가왔다. "절 아십니까?" "밤금 전에 작센 마법 학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네.하지만 그 이전부터 자네 이름은 알고 있었네. 며칠 앞서 도착한 실버 애로 우의 승무원들에게서 말이야." "아, 그분들은 잘 도착했습니까?" "물론이네. 다른 용무로 나가있어 마중 나오지는 못했지만,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더군." 노마법사는 멎쩍은 웃음을 띠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안부를 물을상황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군. 괜찮은가?" "솔직히 괜찮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하겠군요" "하긴 영자 이동은 아직 시험 단계라 쾌적한 여행은 못됐을거네" "쾌적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던데요?" "오늘은 날씨가 유난히 좋지 않아 영자 이동도 평소보다 몇 배나 불안정했다네.아무리 마법 학회라도 날씨를 어쩔수는 없 으니까 말이야.말하자면 운이 나빴다는거지" "아,그러십니까?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아예 며칠 뒤에 가르쳐 주시기 그랬어요?" 아크는 히죽거리며 설명하는 노마법사를 쨰려보았다. 그러나 속이 뒤집힌다고 NPC에게 막말을 할 아크가 아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마법 학회의 보상이 코앞이다. 굳이 따지고 들어 마법 학회 NPC의 기분을 건드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약속했던..........." 아크가 눈치를 살피며 본론을 꺼내려 할 떄였다. 노마법사는 그제야 생각난 듯 무릎을 쳤다. "아, 내 정신 좀 보게. 소개가 늦었꾼. 내 이름은 바겐하르트 샤넨이라고 하네.기란 마법 학회장을 맡고 있지" '기란 마법 학회장?' 아크는 입 안에서 맴돌던 말을 꿀꺽 삼키며 놀란 눈으로 노마법사, 샤넨을 바라보았다. 슈덴베르크 왕국의 대도시 마다 세워진 마법 학회의 지부는 약 20여개.그리고 기란 마법학회는 이 모든 지부를 통괄하는 곳 이다. 즉, 기란 마법 학회장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마법사 가운데 최고위 신분을 가진 NPC라는 뜻이다. 마법 학회 소속의 길드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만날 수 있는 상위 NPC인 것이다. "괜찮다면 차 한잔 마실 시간을 내줄수 있겠는가?" "물론이죠" 아크는 얼른 영업용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한가하게 잡담이나 나누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영자 이동의 후유증으로 속이 뒤집히는 건 그렇다고 쳐도,지금 아크의 관심사는 오직 마법 학회의 보상뿐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든 게임에서든 가장 중요한건 역시 인맥이다. 하물며 평범한 유저들은 얼굴조차 보기 힘든 고위 NPC가 먼저 호의적으로 접근해 온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높은 사람에게는 일단 얼굴 도장부터 찍고 보는 거다. 또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이런 상황은 십중팔구 퀘스트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마침 속이 안좋아서 따끈한 차가 당기던 참입니다." "다행이군" 샤넨이 한쪽을 가리키자 맞은 편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서재의 분위기가 풍기는 아담한 방에 다과상이 마련되어있었다. "실버 애로우의 전임 갑판장, 자벨에게 전해 들은 자네의 무용담은 매우 인상 깊었네" 샤넨은 찻잔을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정신 없는 상황에서도 잊지 않고 승무원들을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자청해서 난민들을간변해 주었다지? 옳은 일이고, 또 누구나 그렇게 해야 한다는걸 알고 있지만 정작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이 샤넨,참으로 감동했네" "과찬이십니다" "아니,아니야.그건 누가 뭐라 해도 칭찬 받을 일이었어.그뿐인가? 뇌신의 창을 이용해 불가능한 작전을 성공시켰다는 대목 에서는 그 기발함과 대담함에 주책없이 환호성을 터트릴 정도였다네. 뭐,덕분에 수천골드나 들여 만들었던 뇌신의 창이 완 전히 고철 더미가 돼 버렸지만 말이야." "그건...........죄송합니다." 아크는 뜨끔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설마 그걸 변상해 내라고 찾아온 건 아니겠지?' 다행히 샤넨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탓하자고 꺼낸 말이 아니네 .물건이란 필요한 곳에 쓰여야 제 값을 하는거지. 만 골드를 들여 만들었다고 해도 필 요한 곳에 쓰이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어쨌든 자네의 활약은 영웅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훌륭했네. 하 지만 내가 자네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네.오히려 그다음의 행동이지" "네? 그다음이라니요?" "자네는 이번 작전에서 공적 1위를 차지했지?" "그걸 어떻게?" 아크는 약간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법 학회의 배지를 가지고 있으니 당연히 마법 학회에서 공적치가 얼마나 쌓였는지는 확인할수 있다. 그래야 공적치에 합 당한 보상을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작센의 영주조차 모르던 순위까지 파악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샤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3대 길드는 자네가 아는 것 이상으로 크고 방대한 조직이네. 자네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믿겠지만 이미 마법학회는 물론, 전사 길드와 싱인 길드도 아크라는 이름을 기억했을 거네. 그게 자네에게 좋은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 만 말이야" 역시 뉴 월드의 NPC, 만만하지 않다. 아크는 공적순위를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크 본인과 글로벌엑서스 기획부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문 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대적 배경을 제외하면 현실과 다름없는 뉴 월드. 이곳의 NPC들은 기존게임과 달리 주어지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생각하는게 아니다. 현실의 사람처럼 스스로 필요한 정보를 모아 생각하는 완벽한 인공지능을 갖춘 존재들이다. 그리고 유저가 그렇듯, 이런 NPC의 경험과 생각이 시스템과는 다른, 별개의 변수를 제공하는 것이다. '설마 그런 것까지 가능할 줄이야' 사실 이런 내용은 이미 면접장에서 하명우가 설명한 바 있었다. 그러나 설명으로 들은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달랐다. '뭐,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지 않은 건 유저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아서였으니......' NPC가 알고 있는건 별 문제 되지않는다. 아니,어쩌면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샤넨처럼 아크의 공적을 칭송하며 접근해 오는 NPC가 많아질 테니까. "때문에 꼭 자네를 만나 물어보고 싶었네.대체 왜1위를 차지하고도 숨겼던 건지.그리고 홀연히 모습을 숨기고 아란경을 포함해 베스트 10에 오른 이방인들이 모두찬사를 받는 동안에도 나타나지 않았는지. 이유를 말해 줄수 있겠나?"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굳이 숨길 의도는 없었지만 드러 내놓고 자랑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로인해 받게 될 관심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할까요? 저는 그저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도움이 됐다는 것만으로충분히 만족합니다." "역시 내가 상상했던 대로군.훌륭해!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자네의 그런 태도를 높게 평가하네.혈기 넘치는 젊은이가 공명심을 다스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샤넨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네" "네?" "어떤 어려운 상황이든 이겨 낼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신중함을 가진 전사. 그런 사람이라면 내 고민을 들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 어떤가? 자네는 그런 사람인가?" '역시!'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퀘스트와 연결될지도 모른다는 짐작이 맞아 떨어졌다. 아크는 지체 없이 샤넨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물론입니다. 저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 줄 준비가 되 있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누구도 제 의뢰인의 고민을 알지 못할 겁니다" 의뢰는 언제나 환영!고객 정보 철저 보장! 아크는 사채 업자의 광고 문구 같은 말을 적당히 포장해 말해주었다. 제대로 가려운 곳을 긁어 준 모양이다. 샤넨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아주 맘에 드네.그럼 염치 불구하고 말해보지.미리 말해 두지만 이건 매우 예민한 문제네.자칫 밖으로 흘러나가면 마법 학회의 위상에 치명상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이지. 하지만 자네가 작센에서 보인 행동을 믿고 털어놓겠네" '아, 언제까지 빙빙 돌리기만 할 생각이야?' 슬슬 짜증이 밀려올 무렵 ,드디어 샤넨이 본론을 꺼냈다. "내가 자네에게 의논하고 싶은 일은, 도난 당한 아티팩트에 대해서네" "아티팩트?" "심혼의 구슬이라는 것이네.고대 유물 가운데 하나로 강력하고 불길한 마력이 담긴 위험한 물건이지. 만약 이 아티팩트가 악한 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떤 끔찍한 재앙을 몰고 올지 장담할수 없어. 때문에 오래전부터 마법 학회에서 봉인해 놓고 있었던 물건인데........그게 1년 전에 감쪽 같이 사라져 버렸다네" 설명을듣고 있던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법학회는 굉장히 큰 조직이죠?" "물론이지. 전 대륙에 걸쳐70개나 되는 지부를 가진 길드라네 .이방인들이 설립한 하위 길드까지 합하면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지" "그런 마법 학회의 힘으로도 1년 동안 찾을수 없었단 말입니까?" "그게.........." 샤넨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의문을 이해하네.하지만 마법 학회는 드러내 놓고 심혼의 구슬을 찾을 수 없는 입장이라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심혼의 구슬은 마법 학회에서 보관하고 있었지만,엄밀히 말하면 마법 학회의 소유물은 아니네. 오래전 슈덴베르크 왕가 에서 마법 학회에 봉인을 의뢰했던 물건이지. 만약 심혼의 구슬이 도난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책임을 추궁당해 마법 학회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거네 .그 때문에 드러내 놓고 아티팩트의 행방을 추저하지 못했던 것이지" "결국 학회장님이 당부했던 비밀 유지란 왕가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군요" "왕가만이 아니네" "네?" "왕가보다 주의해야 할 곳은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야" 슈덴베르크 왕가가 알게 된다고 해도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면 적절한 수준에서 무마할 수 있다. 마법 학회에는 그만한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마법 학회와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사 길드와 상인길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3대 길드는 손을 잡고 대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만,이면에서는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 라이벌 관계다. 만약 아티팩트 도난 사건이 알려지면 양대 길드가 이를 빌미로 어떤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올지 알 수 없다.........라는 게 샤넨의 설명이었다. '흠, 대략 뉴 월드의 세력 관계가 이해되는군' 슈덴 베르크 왕가와 3대 길드의 이해관계.................아크를 둘러 싼 뉴월드의 세계관이 조금씩 복잡해지고 있었다. 뉴 월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여러 조직이나 국가 간의 세력 관계.물론 초보 때는 굳이 머리 아프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세계관이 유저에게 영향을 주는 일도 적다. 그러나 레벨이 높아지고 보다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세계관의 설정에 따라 수많은 분기가 나누어지고,선택에 따라 유저의 플레이에 영향을끼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시나리오 구조상 A의 퀘스트를 수행함으로써 B와 적대 관계가 성립되는 등의 일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수는 없지' 아직 뉴 월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 짧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것이다. 또한 아무리 현실 같아도 뉴 월드는 온라인 게임,유저인 아크가 해야 할 일 그리고 관심 있는 일은 변하지 않는다. 주어진 퀘스트를 해결하고 보상을 받는다!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NPC의 속사정도 알아 둘 필요가 있지만,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질 이유는 없다. 물론 NPC앞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있지만........ "걱정이 많으시겠군요" "그래, 심혼의 구슬이 도난 당한 지도 1년,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에서도 낌새를 챈 눈치네. 아직은 노골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낌새를 챘다면 비밀이 그리 오래 지켜지지는 않을 걸세. 하물며 우리가 허둥대며 아티팩트를 찾아 나선다면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 마법 학회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제게부탁하시는 거군요" "바로 그거네.자네는 눈앞의 욕심 때문에 신뢰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작센 사건으로 증명했네. 자네라면 믿고 맡길 수 있어.어떤가? 도와줄 수 있겠나?" "저는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외면해 본 적이 없습니다" "받아들여 주겠다는 건가?" "물론입니다. 세상에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물건이라면 어떻게든 되찾아야겠지요.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단서가 전혀 없었다면 자네에게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거네" "뭔가 있습니까?" "얼마전의 일이네. 경비대가 기란에 잠입해 있던 도적 하나를 처리했는데, 그자에게서 이런 물건이 나왔다네.마력이 느껴져 경비대가 마법 학회에 조사를 의뢰했었지" 샤넨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쇳조각을 보여주었다. "이건.........?" "심혼의 구슬을 봉인하고 있던 프로텍트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네" "즉, 기란 주변의 도적 가운데 누군가가 심혼의 구슬을 훔쳐냈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다른 단서는 없습니까?" "아쉽게도 현재로써는 그게 다네" 샤넨의 대답에 아크는 한숨을 불어 냈다. 넓디 넓은 기란 주변의 도적단 가운데 하나가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사막에서 모래알 찾기, 막연하기 그지 없는 정보가 아닌가? '뭐,됐어. 퀘스트를받았으니 뭔가 해결 방법이 있겠지' 어차피 아크는한동안 기란 주변에서 사냥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무턱대고 사냥하는 것보다 뭔가 목적이 있다면 더 의욕이 생기리라. 게다가 퀘스트의 내용은 꽤나 심각하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해결하면 상당한 보상을 기대할수 있다는뜻.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심혼의 구슬을 찾아라! 기란 마법 학회장 샤넨은 당신에게 비밀스러운 임무를 제의했습니다. 1년전, 마법학회에서 보관 중인 심혼의 구슬이 도난 당햇습니다. 샤넨은 기란 인근에서 활약하는 도적단 가운데 하나가 범인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도적단으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모아 심혼의 구슬을 찾아내야 합니다. 단, 이번 임무는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야 합니다. 왕가, 상인 길드, 전사 길드에 속한 NPC에게 임무의 내용잉 발각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됩니다. 그럴 경우, 샤넨은 임무를 취소할 것이고, 비밀을 지키지 못한 당신에게 적개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퀘스트를 취소하거나, 실패하면 마법 학회와의 우호도가 0이 돼 버립니다. 또한 비밀이 발설될 경우, 퀘스트를 성공해도 상인 길드, 전사 길드와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합니다.) 난이도 : ?? 퀘스트 제한 : 영웅 집결 퀘스트에서 공적 50위 이상.마법 학회와의 우호도 50 이상] '어라? 이게 뭐야?' 막상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해 보니 조건이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아크는 퀘스트를 받으면 우선적으로 도적을 처형했다는 경비대나 용병 NPC에게 정보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항상 도적의 정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상인 NPC도 괜찮다. 그러나 상인 길드와 전사 길드에게 알려져서는 안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으면 그들과 접촉하기가 곤란하다. 'NPC에게 정보도 물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넓은 기란 인근에서 구슬 하나를찾아내야 한다니.......젠장, 왠지 실수 했다는느낌이 팍팍 드는걸' 하지만 이미 받아 버렸다. 만약 취소하면 3대 길드의 하나인 마법 학회와의 우호도가 0이 된다는 패널티가 붙어있으니 이제 죽으나 사나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찜찜하지만, 할 수없지. 퀘스트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아크는 일단 퀘스트에 대한 고민을 접어 두었다. 당장은 새로운퀘스트에 대한 걱정보다 이미 해결한 퀘스트의 보상이 더 신경 쓰였기 때문.또한 아크의 두번째 목적,뱀의 변태 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시급한문제였다. 마법 재료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마법사에게 정보를 얻는게 빠르리라. 그러나 샤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바슘의 열매에 대해서는 알고있네.여러 마법 재료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열매 자체는 치명적인 독을가지고 있지.인간은 물론 어떤 몬스터라도 바슘의 열매를 먹으면 즉사하고 말지. 그런데 그걸 먹고도 살아 있는생물이 있다니........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아라모네의 유생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는게 없네.자료를 찾아보기야 하겠지만 유계에서도 오래전에 멸종되다시피 한 종족이라 장담할 수 없군" "그렇군요............" 절로 담담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뱀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6일뿐이다. 사실 변태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기는 이미 반쯤 포기한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같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떄를 위해서라도 뱀의 성장 비밀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마법 학회장조차 고개를 젓는다면 대체 어디에서 정보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가?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할수 없죠" "그럼 이제 한가지 일만 남았군.약속한 보상을 해 줘야 겠지" 샤넨이 분위기를 환기 시키듯 말을 이었다. 덕분에 우울해 있던 아크의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졌음은 말할것도 없다. 샤넨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결과를보고받은 뒤로 지금까지 꽤나 즐거운 고민을 했다네. 설마 마법학회의 의용군 가운데 5만이 넘는 공적치를 쌓는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거든. 덕분에 아직 자네에게 어울릴 만한 보상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네.자부심을 가져도 되네.그만한 훌륭한 공적을 세웠다는 말이니까. 그래서 말인데,자네가 직접 보상을 골라보는건 어떤가?" "제가 직접 말입니까?"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샤넨이 갑벼게 손뼉을 쳤다. 한쪽 벽면이 열리며 한 젊은 마법사가 걸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학장님?" "이 친구를 10층 비고로 안내하게" "10층 비고로 말입니까?" 젊은 마법사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이 젊은이는 그만한 자격이 있네. 무엇이든 이 젊은이가 선택하는 아이템 하나를 내주도록 하게. 상부에는 이미 허가를 받아 놨으니까" "알겠습니다" "아크,나는 그만 일어나도록 하겠네" 샤넨은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가버렸다. 젊은 마법사가 다가와 정중하게 허릴 숙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아크는 젊은 마법사를 따라 10층으로 향했다. 마력으로 움직이는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석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몇겹이나 되는 프로텍트가 걸려 있는 듯,젊은 마법사가 한참을 조작한뒤에야 석문이 육중한 울림을 토하며 밀려 올라갔다. '헉, 이,이게 모두 아이템이란 말이야?' 찬란한 빛과 함께 서서히 드러나는 광경에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넓은 석실에는 온갖 종류의 아이템이 수두룩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하나같이 번쩍번쩍 빛나는 게 한눈에 레어급 아이템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말하자면 돈 덩어리들! 게이머라면 누구라도 군침을 질질 흘릴만한 광경이다. "여기는 마법 학회에서 가장 귀한 보물들만 모아 놓은 비고입니다" 젊은 마법사가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마 가장 싼 것이라돋 100골드 이상은 족히 받을 겁니다. 또한 이방인 가운데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아크님이 처음입니다. 마스터 샤넨의 허락이 있었으니 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그걸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 "하나.......라고요?" "네,하나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기회는 단 한번뿐입니다.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젊은 마법사가 힘주어 대답하며 기관을 조작했다. 그러자 기계음이 울리며 아이템을 보호하던 진열 케이스가 위로 밀려 올라갔다.덕분에 아이템이 발하는광채가 한층 더 강해져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신중이고 자시고........' 아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젊은 마법사가의 말처럼 어떤 것이라도 100골드.아니,수백 골드는 족히 받을 수 있을레어 아이템들.그런 아이템에 둘러싸여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꿀꺽,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는 말인가?' 젊은 마법사는 선심 쓰듯 말했지만, 아크에게는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레어 아이템이 가득한 방안에서 달랑 하나만 골라잡으라니? 하나를 주겠다는 게 아니라, 나머지를 몽땅 뺏겠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크는 죽을힘을 다해 마음을 다잡았다. '치,침착해라,아크.이건 정말 둘도 없는 기회야. 한번의 선택이 몇십만 원, 아니,몇백만 원을 좌우 할수 도 있어.들떠서 어설프게 선택하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마법 학회의 보상에는 함정이 있었다. 아이템에 손을 대고 정보를 확인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시 말해 블라인드 경매장과 같은시스템인 것이다. 다행히 아크는 블라인드 경매장에서 갈고 닦은 눈썰미가 있었다.그러나 그런 능력이 지금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차라리 좋고 나쁜게 확실히 구분되면 쉽다. 그러나 이곳은 문자 그대로 보물 창고. 방안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엄청나게 좋아 보인다. 아니,100%무지하게 좋은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을 딱 하나만 골라내야하니 자꾸 욕심이 앞서 제대로 감정하기가 힘들었다. '헉,이검.......좋아 보인다!대체 능력치가 어떻게 될까?' 아크는 자석에 이끌리듯 손을 뻗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안돼,안돼. 정신차려 아크.시간제한이 없으니 서두를 필요 없어. 모두 살펴보고 그중에서 제일 좋아 보인느 걸로 고르는 거야!' 아크는 거칠어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비고를 돌아다니며 신중 하게 아이템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치 전투를 치르듯 이마에는 진땀까지 흘러내렸다. 그렇게 반 정도 돌아봤을때였다. 쌕쌕! 허리가 꽉 조여드는 느낌이 들며 뱀이 꿈틀거렸다. 아크만큼이나 아이템에 관심이 많은 뱀도 흥분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는 뱀의 반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신 사납게 하지마 ,뱀." 아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뱀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도 뱀은 몇 번이나 보챘지만,아크는 그런 반응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같은 레어 아이템이라도 능력치는 천차 만별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용 제한이 높은 레벨의 아이템일수록 능력치가 높은건 상식, 레어아이템이라도 레벨 10수준이라면 가격도 성능도 그리 기대할수 없다. 반대로 레벨 100짜리라면 단순한 마법 아이템도 엄청난 가격을받을수 있다. 때문에 아크는 일단 가장 고레벨용 아이템 위주로 선택했다 .그리고 대략 30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세 가지 아이템으로 압축할 수 있었다. 한기가 서린 파란 광채를뿜어내는 장검. 금장 무늬가 새겨진 백색 판금 갑옷. 오색 보석으로 장식된 가죽 투구. 고르고 골라 찾아낸 아이템답게 풍겨져 나오는 기운이 남달랐다. 일단 세 가지 아이템을 고른 아크는한참동안 고민했다. '미치겠군.이 세가지는 여기서 최고 수준의 아이템이 분명한데.........' 아크는 결국 소거법으로 하나하나 걸러 내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구해서 그냥 팔기만 해서는 메리트가 없어. 사용할 만큼 사용하고 파는게 가장좋다. 그런 의미에서 전사전용일 확률이 많은 아이템은 포기한는 편이 좋겠어' 따라서 판금 갑옷은 탈락. '나머지는 검과 투구인데........젠장, 자장면과 짬뽕을 고를 때만큼 어렵군. 하지만 같은 마법이 걸려있어도 방어구보다는 무기가 훨씬 구하기도 어렵고 비싸다. 어차피 최종 목적은 경매장에 팔거니까 둘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역시 검이겠지. 좋아, 결정했어.후후후,자아,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이려나............' 마음의 결정을 내린 아크는 검을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쌕썍, 쌕쌕쌕! 아크가 세 가지로 압축하고 고민할때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뱀이 갑자기 허리를와락 잡아당겼다. 아이템에만 집중하던 아크는대처할 새도 없이 두어 걸음 이끌려 가 버렸다. 그리고 다혹스러운 얼굴로중심을 잡으려는 순간......! 뱀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밀려 혀를 쭉 내미는게 아닌가? 그리고 정말앗, 하는 사이에 옆에 놓여 있던 너덜너덜한 책 한권을 꿀꺽 삼켜 버렸다. 기계음과 함께 진열 케이스가 닫힌 건 그 뒤였다. "에엑?뭐,뭐야?" 돌연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맹독 조제 비전서(레어) {사용 제한 : 도적 계열 레벨 50 이상}] "비전서 ? 비전서라고?" 아크의 얼굴이 누렇게 떠 버렸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아무거나 가지고 나가도 수백 골드를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은 모두 놔두고 꼴랑 비전서라니? 물론 레어 비전서도 상당히 귀한 물건이다. 그러나 ㅏㅇ무리 귀하다고 해도 레어무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물며 맹독은 직업 공통 비전서도 아니었다. 직업 제한이 걸려 있으니 그리 좋은 가격을 기대할수 없으리라. "무,무슨 짓이야,뱀!"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뱀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사렸다.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다가 황급히 젊은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보셨죠? 이,이건 실수입니다. 제가 고른게 아니니다시 고르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젊은 마법사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안 됩니다" 두두둥,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마법 학회의 보상'퀘스트가 완료됬습니다. 작센 성을 지켜 내는 데 큰 공적을 세운 당신은 마법 학회에서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많은 보물을 앞에 두고도 당신은 작은 보상에 만족하기로결정했습니다. 젊은 마법사는 당신의 겸손함을 보고할 것이고, 샤넨은 또 한번 깊은 감명을 받게 될것입니다. 이로써 마법 학회와의 계약이 종료되엇습니다. {마법학회에 대한 우호도 +50}] "우아아악!" 비고 안에서 아크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망이다.뱀!" 한동안 머리를 쥐어 뜯으며 바닥을 굴러다니던 아크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뱀은 잔뜩 기죽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꽤나 측은한 모습이었지만 아크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시퍼런 한기를 흘려 내던 멋들어진 장검이 아직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마법 효과가 붙어 잇는 무기는 많지만, 그만큼 노골적으로 마법효과를 표현하는 검은 결코 흔치 않다. 대체 공격력이 얼마나됐을까? 어떤 옵션이 붙어 있었을까? 얻지 못하니 그 검이 더욱 굉장한 아이템처럼 생각되었다. 게다가 냉기 관련 마법 효과가 붙어 있는 건 유저들이 유난히 군침을 흘리는 무기다. 추가 데미지를 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다른 마법 효과와 달리, 냉기 관련은 높은 확률로 슬로우 효과를 발동시켜 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같은 급의 아이템이라도 몇십만 원의 웃돈이 붙어 거래되는 경우도 있었다.그게 코앞에서 낡은 비전서로 둔갑해 버렸다. 그야말로 100만 원 짜리 뷔페에 들어가서 김밥만 먹고 나온꼴이 아닌가? 미쳐 버리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거야!" 쌕쌕, 쌕쌕쌕! 뱀이 열심히 혓바닥으로 날름거리며 변명했다. 그러나 아크가 뱀의말을 알아들을 리 없으니 약 올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대상이 데드릭도 아니고 믿었던 뱀이기에 배신감은 더욱 컸다. "혀 집어넣어!입 다물어!빌어먹을,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알아? 수백만원짜리 아이템, 김밥을 몇천 줄이나 살수 있는 아이템을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기회였다고!" 아아, 수백만 원의 가치를 고작 김밥에 비유하는 이 빈약한 상상력, 그러나 아크의 주식이 싸고 간단한 김밥이었으니 어쩔수 없다. "너는 방금 전에 김밥 천줄을 말아먹어 버린거야!알기나 해?" 기어코 뱀의 눈망울에서 눈물이뚝뚝 떨어졌다. 데드릭은 히죽거리며 불에 기름을 부어댔다. "케케케,꼴좋다.항상 주인에게 살랑대더니!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주인, 봐주면 안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제 주제를가르쳐 줘야 한다고!뱀 주제에!" "닥쳐!" "쳇, 왜 나한테 성질이야? 항상 죽인 놈은 나지" "너, 정말.......!" "알았어, 알았다고. 조용히 한다니까" 아크는험악한 눈으로 데드릭을노려보다가 와락 머리를쥐어뜯었다. 알고 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무리 화를 내며 발버둥을쳐도 퀘스트가 완료돼 버린 이상, 무슨 짓을해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이런 경우, 평소의 아크라면 금세 털어 내 버렸을 것이다. 아크는 일단 마음먹으면 죽을힘을 다해 해내고야 마는성격이지만, 노력해도 안될 일에 대해선 포기하는 것도 빨랐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복권에 당첨됐는줄알았는데, 날짜가 틀렸다는 걸 알아버린 사람의 심정이 이러리라. "젠장, 제멋대로 설쳐 대는 소환수는 필요 없어, 꺼져!" 아크는 머리를 부여잡고, 뱀은 눈물을 흘리는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일단 조금 흥분이 가라앉자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라? 가만, 뱀이 어떻게 아이템을 집어먹은 거지?' 아크는 그제야 뱀의 행동에 모순이 있음을 깨달았다. 바슘의 열매로 뱀은 변태 과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변태 과정 중에는 아이템을 먹지도,뱉어 내지도 못한다. 몇번이나아이템을 먹여 보려고 했지만 곧바로 토해 내지 않았는가? 그러나 뱀은 아직 비전서를 토해 내지 않았다. 변태 과정은 20일. 작센에서 13일가량 보냈으니 아직 7일이나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그때였다. 일찌감치 분위기 파아갛고 찌그러져 있던 해골이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며 세차게 이를 마주쳤다. 딱,따다닥!따닥! "뭐야,너까지.........어? 뱀!" 고개를 들어 올리던 아크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해골 옆에서 뱀이 축 늘어져 있었다. 깜짝 놀라 황급히 집어들자 얼음처럼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변태 과정에 들어가며 탄력을 잃었던 비늘이 각질처럼 일어나며 쩍쩍 갈라진다. "뭐야? 왜그래?무슨일이야? 뱀!" "어엇? 이녀석 갑자기 몸이 왜이래? 서,설마 소멸?" "소멸? 소멸이라니?" "젠장, 이건 주인 떄문이야!주인이 필요 없다고 해서!우린 소환수야. 주인이 부정해 버리면 살아갈 수 없단 말이야! 고작 아이템 때문에 뱀을 소멸시키다니!" 데드릭이 와락 아크의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어 댔다. 비록 뱀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해 온 동료다. 고소하단 식으로 놀려 댔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 해골 역시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어다. 소환수들의 반응에 아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설마 정말 내가 필요 없다고 해서..........?' 소환수와의 관계 자체가 취소돼 버린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비록 뒤통수를 때린 뱀에게 화가 나 나오는대로 지껄여 대기는 했지만 진심이 아니었다. 당연하지! 진심이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뱀의 아이템 보관 기능은 몇 백골드와도 맞바꿀수 없다. 아니, 아니다!중요한건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다. 아크가 소환수에게 느끼는 감정을 특별하다. 단순히 게임에 도움이 되고 안 되는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충성스러운 해골,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힘이 되어 주는 데드릭 그리고 아크를 부모처럼 여기는 뱀. 비록 표현한 적은 없지만 이제 그들을 단순한 소환수가 아닌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친구였다. 이들이없는 뉴 월드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뱀, 정신 차려. 미, 미안해.진심이 아니었어.화가 나서 한 번 해 본소리 였다고!세상 어디에 자식을 버리는부모가 있단 말이야? 사라지면안돼,기운을 내. 다 용서해줄테니까 제발.......제발 정신차려!나는 네가 필요하단 말이야!" 아크가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쉬지 않고 간병 스킬을 난사했다. 그순간 손에서 뭔가가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뱀이었다. 아크의 손에 허물만을 남겨 둔채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놀랍게도 뱀의 비늘은 다시 예전의 윤기를 되찾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붉은 줄무늬까지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그뿐이 아니다. 뱀도 자신의 변화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는지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양쪽에서 2개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지금까지는 이름만 뱀이었을뿐, 송곳니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 변화는 아무래도 좋았다. "배, 뱀!이녀석.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아크는 와락 뱀을 안아 들었다. 뱀은 움찔하며 당혹스러워하다가 이내 훌쩍거리며 몸을 비벼왔다. 썍, 쌕쌕쌕........... "됐어, 이제 용서해줄게.검이면 어떻고 비전서면 어때? 괜찮아, 어쩌면 검보다 비싸게 팔릴지도 모르잖아. 그래.그렇게 생각하자" 쌕? 뱀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건 그때였다. -아라모네의 유생의 채네에서 '맹독 조제'비전서가 소화됐습니다. "뭐? 소화? 없어졌다는 거야?" [아라모네의 유생의 변태 과정이 성공적으로 완료됐습니다 생태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유계에 살고있는 신비한 뱀. 아라모네의 유생은 성체가 될 때까지 몇 번의 변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변태 과정은 특수한 마법 재료로 시작되며 새로운 스킬을 익힘으로써 완료됩니다. 그리고 변태 과정 중에 익힌 스킬에 따라 아라모네 성체의 외모와 특성이 결정됩니다. 아라모네의 유생은 비전서를 소화시켜 '맹독'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변태과정 중 익힌 스킬의 영향을 받아 '포이즌 아라모네'로 진화했습니다.] [포이즌 아라모네 포이즌 아라모네는 체내에서 독초를정제해 맹독ㄱ을 제조하는 특수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라모네가 직접 맹독을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소환자의 각종 무기에 발라 일시적으로 맹독효과를추가합니다. 맹독은 독초의 종료에 따라 사용횟수와 추가 효과가 달라집니다. 또한 스킬이 성장할수록 더 높은 등급의 독초를 정제할 수 있고, 높은 등급의 맹독은 더 많은 사용 횟수와 높은 효과를 제공할 것입니다. {단, 아라모네의 현재 스킬 슬롯은 하나입니다. 하나의 스킬만은 장착 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 보관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맹독 스킬을 해제하고 아이템 보관 기능을 새로 장착해야 합니다. 아라모네의 체내에 보관 중인 아이템이 없다면 스킬 교환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종족 : 유계생물 성향 : 어둠 등급 : - 생명력 : 50 충성도 : - 힘 - 민첩 - 체력 -지혜 -지능 -운 - *사용 가능한 스킬 : { 아이템 보관} { 맹독 조제} *현재 장착된 스킬 : 맹독 ( 초급, 패시브)] '어라?'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읽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그러고보니 왜 그 생각을못햇을까? 스킬을 배우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면 당연히 비전서다.그러나 변태 과정이라는 말에 뭔가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을뿐, 가장 상식적인 비전서를 떠올리지 못한것이다. "너...........그 비전서가 맹독인 걸 알고 있었어?" 뱀이 불안한 눈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래서 비고에서 뱀이 그렇게 날 귀찮게 했던 거였어' 아크는 그제야대강의 상황이 이해되었다. 하긴 아크를 부모로 여기는 뱀이 이유도 없이 뒤통수를 떄렸을 리가 없다. 아마도 비전서를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그게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임을 알아차렸음이 분명하다. 평소 보아 온 뱀의 행동을 생각하면그 뒤의 내용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비전서를 삼키면 전투에서도 아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때문에 욕먹을 걸 각오하고 비전서를 샄며 버린 것이리라. 뱀이니까. 뱀이기 때문에 짐작할 수 있었다. '나 참.속내가 너무 뻔히 들여다 보이니 무턱대고 야단칠수도 없고.........' 아크는엄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켯다. "좋아.어쨌든 용서해 주겠다고 했으니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자. 보아하니 쓸만한 스킬인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다음에 또 내 허락없이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돼 .알았지?" 말해놓고 보니 정말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말 같다. 쌕쌕,쌕썍썍! 뱀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허리를 감고 애교스럽게 몸을 비벼댄다. 아크는 결국 고소를 띄워 올렸다. 유난히 뱀에게만큼은 약한 아크였다. '이러니 미워할 수가 없다니까' 그러자 뱀이 이상해졌을 때는 눈물까지 글썽이던데드릭이 금세 불평을터트린다. "쳇!차별하는거야 뭐야!내가 잘못했을 때는 몇날 며칠을 미친듯이 패더니만........" "그러니까 평소에 행실을 똑바로 하란 말이야" "내가뭘? 나만큼 착한 소환수가 어디있어?" "자꾸 엉길래? 슬슬 배가 고픈가 보지?" "아, 주인님. 누가 뭐라고 합니까? 해골, 너냐? 네가 주인님꼐 대들었냐?" 딱딱, 딱딱딱! 해골이 딱한 눈길로 데드릭을 바라본다. 그러게 본전도 못 찾을 걸 왜 까불었냐고 말하는 듯하다. 어쨌든 이로써 비싼 대가를 치르고 뱀의 변태 과정이 끝났다. '얼른 나가자. 여기에 있으면 미련만 더 생길 것같아. 맹독 제조 스킬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확인해 보야 알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깨끗하게 잊자' 아크는 일단 해골과 데드릭을 돌려보내고 마법 학회를 나왔다. "40~60대 레벨 아이템 싸게 팝니다!장신구 삽니다!" "저 오늘 진짜로 게임 접습니다. 아이템 정리하니 이 기호에 장비 맞추세요" "함꼐 철야 뛸 파티원을 모집합니다. 두자리 남았어요.성직자 환영!" "레벨 70대 용병 구합니다! 보수는 추후 상담!" 마법 학회를나오자 곧 번화가의 소음이 아크를 반겼다. 수백명의 유저들이 장사를 하거나, 파티를 찾느라 외치기를 사용해 대는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아이템구입도, 파티도 관심없는 아크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자, 이제 어쩐다?' 아크는 시장을 가로지르며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현재 아크가 받은 퀘스트는 {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와 {심혼의 구슬을 찾아라}.그리고 퀘스트와 상관없지만 삼신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심신기를찾아 나서기에는 아직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 또한 이주민 찾기는 시간을 들여 해결해야 하는퀘스트. 그렇다면 당장 할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기란 주변에서 도적 단을 사냥하며 마법 학회의 퀘스트를 해결하는일. '문제는 어디부터 손을 대느냐는 건데...........' 막상 지도를펼쳐 놓고 보니 눈앞이 깜깜했다. 말이 간단해 기란 근방이지. 기란은 작센의 3~4배나 되는 크기다. 당연히 기란 근방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도 그만큼 컸다. 북쪽으로는 브란트 산맥, 남쪽으로는 아구느 산맥까지가 모두 기란 근방에 속하는 것이다. 그 넓은 지역에서도적단을 찾아내는 것부터가 막막했다. 그렇다고 NPC를 잡고 물어볼수도 없으니............ '도적단의 위치를쉽게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방법은 의외로 간단히 찾아낼 수 있었다. 광장 한쪽에 놓여 있는 게시판이 그 해답이었다. 게시판에는 주변 마을의 정보나 이벤트 등의 정보가 게시된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역활을 하기도 한다. 바로 현상금이 걸린 카오틱 유저나 도적 NPC의 정보! 지금까지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왔던 정보였다. 기란은 규모가 큰 도시여서 그런지 게시판도 일반 망르보다 3~4배는 컸다. 그리고 상업, 지리,이벤트 등르로 분류 되어 따로따로 관리 되고 있었다. 아크는현상 수배지가 게시된 게시판을 찾아갔다. '이게 다 현상 수배자야?' 수십 장의 현상 수배지가 넓은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라?이녀석은.........?' 아크는 그중 의외의 얼굴을 찾아낼수 있었다. [레오(이방인) 기란 근방에서 상인들을 대상으로약탈을 일삼는 도적. 거짓말에 능수능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 최종 목격 지역 : 회색 산마루 난이도 : ??? 현상금 : 40골드 현상금 지급자 : 밤비노 (이방인)] '이 녀석, 아직도 도적질이나 하고 있나?' 아크는 피식 웃었다.레오는 아크가 처음기란으로 넘어올떄 도적질을 하려다가 되려 당했던 놈이다.그런데 정신 못차리고 도적질을 계속했는지 당당히 초상화까지 그려진 현상 수배지가 게시판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상금 40골드, 현찰 40만원이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밤비노라는 유저에게 꽤나 원한을 산 모양이다. 관청에서 유저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상금이 걸리는 경우, 사냥꾼에게 현상 수배자가 죽으면 자동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벌금과 수감일수를 채워 카오틱을 풀고 난뒤에야 석방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재수없게 걸리면 쪽박을 찬다는말이다. 때문에 카오틱 짓을 해도 지나치게 원한을 사지않도록 조심하는 경우가 많은데. 레오는 꽤나 요령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시드의 교역품을 몽땅 털려고 했던 것만 봐도 알수 있었다. 어쨌든 아크는 레오 따위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크가 관심 있는 건 도적 NPC,그것도 평범한 흉악범이 아닌 도적단이다. [회색 도끼단 (단체) 7명의 워리어로 구성된 도적단. 도적단 두목을 해치우고 회색 도끼를 가져오면 현상금을 지급함. 최공 목격 장소 : 기란 북서부 로델린 마을 근방 난이도 : E 현상금 : 15골드 현상금 지급자 : 기란 경비대] [은빛 화살 ( 단체) 10여명으로 구성된 흉악한 도적단. 도적단 두목을 해치우고 활을 증거품으로 가져오면 현상금을 지급함. 최종 목격 장소 : 기란 남부 오래된 숲 난이도 : F 현상금 :10골드 현상금 지급자 : 기란 경비대] 이미 대부분 뜯겨 나간 다른 현상 수배지와 달리 도적단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 현상 수배자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건 카오틱 유저였다. 카오틱 유저가 죽으면 100%확률로 장비 아이템 하나를 떨군다. 거기에 현상금까지 받아 챙길 수 있으니 대박을 기대할수도 있기 때문. 다음으로 인기 있는 현상범은 인근 지역에서 이름을 떨치는 네임드 몬스터. 역시 경우에 따라 꽤 쓸만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기 때문. 반면 도적단은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다. 숫자가 많아 토벌하기는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레벨은 낮으니 쓸만한아이템이 나올 확률은낮다. 그럼에도 현상금은 10~20골드밖에 안 되니 힘들여서 잡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야 경쟁자가 없으면 편하지' 아크는 가장 만만해 보인 도적단의 수배지를뗴어냈다. -정보창에 새로운 현상 수배자가 등록됐습니다. [당신은 처음으로 현상금 사냥에 참가했습니다. 현상금 사냥은 도시 게시판에 붙어 있는 현상금 수배지를 등록시키며 시작됩니다. 사건을 맡아 처리하면 현상금곽 도시에 대한 공헌도가 올라갑니다. 공헌도에 따라 헌터 랭크가 올라가면 더 강한 형상범에 대한 정보를 선점할 수 있으며, 여러가지 색다른 보상이 지급되기도 합니다. 단, 현상금 수배자를 등록시킨 상태에서 사망하면 등록은 취소되고, 마을에서 다시 등록한 뒤에 사냥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도적의 '약탈'특성에 의해 60%확률로 장비 아이템을잃어버리게 됩니다. 현재 아크 님의 헌터 랭크는 -입니다.] '현상금 사냥꾼에도 랭크가 있었나?' 아크는 흥미로운 눈길로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특이한 점은 등록시킨뒤에 죽으면 다시 마을로 돌아와 등록시켜야 한다는 사실. 즉, 도적단을 처리하다가 도중에 죽어 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상범을 잡으면 도시 공헌도가 올라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내용이다. 상인은 교역으로 도시 공헌도를 올리는대신, 전사계열은 이런 방법으로 공헌도를 올리는 모양이다. 의외로 현상금 사냥꾼의 세계도 꽤나 깊이가 있었다. '재미있군.어디 한번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사냥을 하며 정보를 얻고 현상금을 받는다. 게다가 도시 공헌도 까지 올릴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부쩍 의욕이 솟구쳤다. '꿩 먹고, 알먹고, 둥지 털어 불 지피는격!' 아크의 기란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ACT 2 현상금 사냥꾼 아크는 아직 기란 지역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지도를 펼쳐 봐도 거의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다. 처음 기란으로 올때도 지름길인 회색 산마루를 가로질러 왔고,그 뒤로는 블라인드경매장에 틀어박혀 살았다. 그리고 곧바로 이벤트퀘스트가 시작되어 사냥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기란을 나오기 전에 잡화상점에 들어 지도 몇장을 구입했다. 기란 같은 큰 도시의 경우, 근처 사냥터의 지리와 정보가 적힌 지도를사면 자동으로 정보가 갱신되었다. 그 정보를 토대로 알아보니 기란 주변에는 다양한 사냥터가 존재했다. 숲이나 평야,늪지,산악 지역,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몬스터도 천차만별이고 레벨도 50~100대까지 존재했다. 작센 영지를 떠난 중, 저레벨의 유저가 레벨 업을 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어디 보자.은빛 화살 도적단이 있는 오래된 숲은.......' 지도를 확인하자 60~80레벨 지역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적당한 수준이군' 현재 아크의 레벨은 78.지금까지 자신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만 사냥해 왔던 아크에게는 조금 쉽다 싶은 느낌이 있지만, 어차피 퀘스트 정보 수집과 현상금 사냥이란는 목적이 있으니 편하면 편할수록 좋다. 아크는 길을 따라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대도시 주변의 포장도로로 이동하면 이동속도 +20%의 부가 효과가 더해진다. 즉, 이동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30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엄청난 두께의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은빛 화살 도적단이 숨어 있는 오래된 숲이었다. "고기다.....!신선한.........인간 고기다!" 숲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트롤 세마리가 나타났다.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마침 잘됐군. 도적단을 만나기 전에 맹독 스킬을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크르르르, 죽엇!" 콰쾅!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공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레벨 70대초반의 트롤은 이미아크의 상대가 아니었다. "데드릭, 해골.적당히 시간을 끌어라" "후후후, 이런 둔한 놈 가지고 노는 거야 일도 아니지" 딱딱딱! 데드릭과 해골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트롤을 공격했다. 그 틈에 아크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곤봉을 피해 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숲에 들어선 뒤 모아 두었던 독성을 확인한 식재료를 뱀에게 먹였다. 그러자 잠시 후, 뱀의 송곳니에서 옅은 푸른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맹독 제조 스킬로 만들어진 독액이다. 스르르릉, 차킹! 독액에 검날을 가져가자 섬뜩한 음향효과와 함께 검면이 시퍼렇게 변한다. [란셀의 검에 신경독 (초급)을 발랐습니다. 적에게 공격이 적중하면 해당 부위의 신경이 5초간 마비됩니다(사용 횟수 5회)] "데드릭 ,해골. 이제 다른 놈들의주의를 돌려놔!" 독을 바른 아크는 잔뜩 몸을 도사리다가 화살처럼 튕겨져 나갔다. 트롤이 괴성을 지르며 곤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불과 얼마전까지 작센에서 섀도우의 변칙 공격을 상대했던 아크다. 둔하기 짝이 없는 트롤의 공격쯤은 눈을 감고도 피해 낼수 있었다. 아크는 고개를 비틀어 곤봉을 피하며 검을 수평으로 찔러넣었다. 순간 카운터 어택이 터지며 트롤이 한쪽으로기우뚱거렸다. -트롤의 오른쪽 다리가 신경독에 마비됐습니다! 한쪽 다리가 마비된 트롤은 꽤나 불쌍하게 절뚝거리며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불쌍하다고 봐줄 아크가 아니다 아크는 곧바로 트롤의 반대쪽 다리에 검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곤봉을 피하며 옆차기를 날리자, 양다리가마비된 트롤이 양팔을 허우적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했다. "다크 블레이드!" 강렬한 섬광과 함꼐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입어 버린 트롤이 사라졌다. 남은 두 마리의 트롤도 마찬가지였다.검으로 트롤의 팔을 후려치면 팔이 힘없이 늘어졌다. 때때로 중심부에 치명타를 안겨 주면 척추 신경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발동 확률이 100%는 아니었다. 초급 맹독이라 그런지 성공 확률은 대강 20%정도. 난이도 높은 발 차기를 성공시켰을 때보다 조금 높은 확률이었다. 그러나 아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있었다. 발 차기의 경우, 트롤같은 대형 몬스터는 거의 상태 이상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맹독은 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꽤나 높은 확률로 발동 되었다. 또한 발 차기처럼 무작위가 아니라, 특정 상태 이상을 임의대로 발동시킬 수 있다는 것 .이것은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아크는 트롤 세 마리를 불과 2분 만에 쓰러 트린것이다. "이거 의외로 쓸만하잖아?" 전투에선 1초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위급할 때는 포션을 마시는 몇 초가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의 확률로 5초간 적을마비 시킬수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횟수가 다섯 번이니 최대 15초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식재료라면 언제나 여유가 있는 편이다. 특히 독이 있는 식재료는 그리 자주 쓰이는게 아니니까. 다시말해 필요할때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단것!'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이제 냉기 속성의 검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단순히 사용하다가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팔아 버리는 검과 달리,스킬은 한 번 배워 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다. 쓸만한 스킬이라면 레어 아이템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은 짓이다. '이건 어쩌면 레어 검보다 쓸모 있는 스킬일지도 몰라!' 아크는 콧노래를 부르며 주변의 독초란 독초는 모두 긁어모아 하나하나 시험해 보았다. 그러나 아직 초급 스킬이라 독성이 약한 식재료에서만 독액을 추출할 수 있었다. 대부분 효과가 그저 그랬지만, 쓸만한 것도 몇가지 있었다. 5초간 적의 움직임을 30% 감소시키는 망설임의 독. 1분간 10초당 30의 데미지를 주는 산성 독. 10초간 적의 방어력을 20%감소시키는 예민함의 독.........등이었다. 절대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보조적으로 쓰기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남발할 스킬은 아니었다. 모든 몬스터에게 똑같은 효과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 예를 들면 대형 몬스터에게 보통 독은 발동 확률도 낮고 지속 시간도 약간 짧다. 그러나 출혈을 일으키는 가시풀 독은 오히려 발동 확률이 올라가고 지속시간도 길어진다. 반면, 산성 성향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에게 산성 독을 사용하면 오히려 생명력을 회복 하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몬스터의 속성을 잘 파악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뜻!' 몬스터를연구하고 더 효과적인 맹독으로 공략한다. 아크의 전투 스타일과 잘 맞는 스킬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 하나, 연비가좋지 않았다. 식재료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리고 서바이벌 요리를 사용하려면 독초도 필요할 때가 있었다. 모두 맹독으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맹독은 발 차기와 달리 횟수가 정해져 있다. 일단 맹독을 바르면 막든, 헛손질을 하든 사용 횟수가 소모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 하기 나름이야. 내 입맛에 100%맞는 스킬 따위는 없어. 그 이상을 바란다면욕심이지' 완벽한 기술은 없다. 밸런스를 위해서도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걸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유저의 기량 아니겠는가! "좋아, 뱀. 마음에 들었다. 잘했어" 쌕쌕! 아크가 모처럼 활짝 웃어 주자 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자 데드릭이 꽤나못마땅한 얼굴로 툴툴거려다. "쳇,쳇,쳇!" "뭐야? 불만 있냐?" "없어, 없다고! 날아다니는 재주밖에 없는 내가 잘나신 뱀에게 무슨 불만이 있겠어 ? 이몸은 얌전히 정찰이나 해야지, 뭐." 데드릭이 팩 고개를 돌리며 퍼덕퍼덕 날아갔다. 그 모습에 아크는 고소를 머금었다.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질투가 심한 놈이다. 그렇게 아크 일행이 아옹다옹하며 숲을 뒤지던 어느 순간, 갑자기 몬스터의 출현이 뜸해졌다. 아크느 그런 변화가 뭘 뜻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몬스터의 세력권이 변하는 경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다. 아마도 은빛 화살 도적단의 영역이리라. '그러고 보니 인간을상대해 보긴 처음이군' 인간형 몬스터도 아니고 진짜 인간이다. 실제와 같은 가상 현실이니 느낌도 다르지 않으리라.그렇게 생각하자 꽤나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이미 레오나 안델을죽인 적이 있으니 새삼 불쾌할 이유도 없다. '도적단이면 어차피 몬스터와 별 차이도 없어' 아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옮길 때였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눈앞에 시뻘건 빛이 터져 나왔다. 시선을 내려 보니 어깨에 굵은 화살이 박혀 부르르 튕겼다. -기습르 당했습니다. 데미지 200.어깨에 부상을 입어 공격 속도가 10%감소했습니다. "흐흐흐,오늘은 운이 좋군.손님이 제 발로 기어들어 오다니" "한동안 수입이 없어 곤란하던 참인데 고마운 손님이야" "그렇다면 대접을 해드려야지" "크크큭, 물론 우리 방식의 대접이지만" '이런.......은빛 화살 도적단인가?' 아크는 당혹스런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깔려 있는 나뭇가지들.도적들의 목소리는 그곳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사방에서.........이미 포위된 것이다. 맹독 스킬을 시험하는데 정신이 팔려 방심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매복까지 하고 있을 줄이야' 아니,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상대는 명색이 도적단, 아지트 주변을 경계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크는 도적단을 그저 몬스터 정도로생각했기에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상황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아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은빛 화살 도적단의 난이도는 F.평균 레벨은 70대밖에 되지 않을거야. 그 정도라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어' "데드릭, 오른쪽 두번쨰 나무다!" "오케이!" 아크가 나무 하나를 가리키자 데드릭이 호쾌하게 대답하며 날아갔다. 이어 빡,소리가 들리더니 도적 1명이 비명을 터트리며 나무에서 굴러 떨어졌다. "크악, 뭐,뭐야? 이 박쥐는?" "닥쳐라,이 몸은유계의 귀족, 데드릭 님이시다!" "A플랜! 해골, 가자!" 아크는 해골과 함꼐 도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막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사방에서 네 발의 화살이쏘아져 날아왔다. 아크는 황급히 검을 되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태권도로 단련된 반사신경을 가졌다해도 단숨에 네 발의 화살을 쳐 내기는 무리였다. "크윽!" 또다시 다리와복부에 화살이 박혀 들었다. '출혈'에 이어 '이동속도 감소'에 걸린 아크가 휘청거린느 사이 굴러 떨어졌던 도적이 허둥지둥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다. "저놈, 몬스터를 부리잖아?" "방심하지마라. 화살을 맞고도 버티는걸 보니 만만한 놈이 아니야" "먼저 저 박쥐부터 처치하자!" "박쥐를 집중 공격해!" "데드릭, 피해!D플랜이다!" "아, 알았어!악, 이게뭐야?" 아크의 목소리에 데드릭이 얼른 하늘로 솟구쳤다. 그러나 채 몇 미터 날아가기도 전에 뭔가에 걸려 퍼덕거렸다. 아크의 머리위,우거진 나뭇가지들을 서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조잡한 함정에 걸려 버리고 만 것이다. "키키킥, 멍청이.당황하는 꼴이라니" 팍!팍!팍! 도적들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화살을 날려댔다. 나뭇가지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게 된 데드릭은 순식간에 서너 발의 화살에 맞아 빈사 상태가 되어 버렸다. 비행 생명체는 화살 같은 원거리 공격에 취약해 30%의 추가 데미지를 받기 때문이다. "젠장, 데드릭 소환 해제!" 아크는 간신히 소환 해제로 데드릭이 강제 송환 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자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데드릭에게 향하던 공격이 모두 아크에게 집중된 것이다. 나무 위에서 화살을 쏴 대니 원거리공격 기술이 없는 아크로서는 이렇다 할방법이 없었다. 아크는 정신없이 여기저기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피하며 바닥을 굴러댔다. 그러나 모든 화살을 피해 내는 건 무리. 서너 발에 한 발씩은 화살이 적중되었고, 그때마다 슬로우나 출혈 따위의 상태 이상에 걸려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다. 도적들은 영악하기까지 했다. "다음에는 나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황급히 몸을돌리자 등에 화살이 쑤셔 박혔다. "바보가 돌아봤다.키키킥" "어떤 병신이 일일이 화살 날릴 곳을 가르쳐 주냐?" "어이 ,이번에는 내가 공격한다. 잘 막아봐!" "닥쳐!" '한번 속지 두 번 속을 것 같으냐?' ............라고 생각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면 이번에는정말로화살을 날려 왔다. 그런식으로 몇번 공격을 받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갈듯이 화가치밀었다. 상상이나 햇겠는가? 도적 NPC에게 놀림을 받으며 공격받을 줄이야. '크윽, 이,이자식들이..............' 아크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아무리 이를 갈아붙인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아크는 분통을 터트리며 나무에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다.나무를 흔들어 도적을 떨어트려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직경이 수 미터나 되는 나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대체 어쩌란거야?' 나무에 기어 올라가 보려고도 했지만, 도적들의 화살공격 떄문에 그것조차 쉽지 않다. 엉뚱하게 화살이나 몇 발 얻어맞고 물러나는 게 고작이었다. 해골 역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고작 바닥이나 굴러다니는 해골이 아크도 올라가지 못하는 나무를 기어오를 수 있을 리가 없다. 또한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대신 맞아주지도 못했다. 결국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존재. 그때문인지 도적들도 해골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렇게 아크와 해골이 우왕자왕하는 사이, 가랑비에 옷 젓듯이 생명력이 깎여 나가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안돼,이놈들에게 죽을 수는 없어!' 아크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상대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도적 NPC.놈들에게 죽게 되면 60%확률로 장비 아이템을 떨구게 된다. '분하지만 일단 살아나는게 급선무다!' "해골, 소환해제!" 아크는 해골을 유계로 돌려보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칠 것 같냐?" 역시나 도적들은 만만하지 않았다. 타잔처럼 숲 여기저기에 드리워진 넝쿨을 이용해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이동하며 화살을 쏘아댔다. 아크는 나무 사이를 오가며 화살을 피해 냈지만, 결국 다리에 또다시 한발을 얻어맞고 쓰러져 버렸다. "맞았다!' "끝장을 내라!" '크윽, 젠장........정말 70레벨의 도적들에게 죽게 되는 건가?' 아크가 몰려오는 도적들을보며 이를 갈아붙일 떄였다. 문득, 도적들이 이동해 오는 나뭇가지에서 익숙한 물체를 말견했다. 나뭇가지에 거꾸롤 매달려 있는 럭비공처럼 생긴 갈색 물체.아크는 그 물체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뉴 월드의 숲에 서시갛는 꿀벌,레드 비의 벌집이다. 아구스 산맥을 헤매던 초보시절. 레드 비의 벌지에서 상급 식재료인 꿀을 구할 수 있다는 정보는 알아내고 무턱대고 달려들었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좋아,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마령 소환 해골!역시 마지막에 믿을건, 너밖에 없다!" 아크는 해골으 와락 집어 들고 온힘을 다해 집어 던졌다. 직선을그리며 날아간 해골이 벌집에 적중했다. 뒤이어 벌집이 크게흔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레드비가 새까맣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왱왱거리며 공격적인 울림을 흘려 내는 레드비가 쏟아져 나오자 도적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헉, 레,레드비다!" "도,도망쳐!걸리면 끝장이다!" "으아악!" 레드 비가 몰려들자. 도적들이 비명을 터트리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 와중에 한놈이 레드 비에게 공격당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레드 비가 구름처럼몰려들자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나 버렸다. 그사이,아크는 해골을 다시 유계로 돌려 보내고 숲으로 내달렸다. 뒤늦게 아크를 발견한 레드 비가 아크에게 몰려들었다. 아크는 빈사 상태에 빠져 불굴 시리즈와 아드레날린 효과가 발동된 상태였다. 덕분에 이동속도가 대폭 올라갔지만, 레드 비를 완전히 펼쳐 낼수는 없었다. 왱왱 거리는 소리가 바로 뒤까지 바짝 다가왔다. '여기 어디 있었는데...........?' 아크는 미친듯이 수풀을 헤집으며 달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돌연 수풀이 사라지며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오래된 숲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발견한 호수였다. '됐어, 찾았다!' 아크는 곧바로 호수에 뛰어 들었다. "휴...........!" 레드비는10분이나 수면 위를 서성대다가 돌아갔다. 가까운 곳에 호수가 없었다면 그리고 인어의 비늘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으리라. 아크는 일단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생명력을 회복했다. "빌어먹을!아팠어,아팠다고!그 자식들!가만두지 않겠어!" 다시 소환된 데드릭이 분통을 터트리며 날뛰었다. 아크 역시 같은 심정이었다. 방금 전의 전투를 생각하니 문득 어렸을 떄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무렵. 아크는 꽤나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리고 그 나이때는 으레 그런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동이 있기 마련이다. 아크의 반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었다. 녀석들은 틈만 나면 아크를 괴롭혔다. 대부분은 신발을 숨겨 놓는다거나, 도시락을 먹어 치우는 정도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화가 치미는 장난도있었다. 가방을 뺴앗가 3~4명이 패스를 해 가며 뺏어 보라고 놀려 대던 장난이다. 달려가면 다른 녀석에게 패스하고, 또 달려가면 패스하고........그 떄의 기분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모른다. 도적 NPC에게 당할 떄의 기분이 딱 그랬다. 정말 더럽기짝이 없는 기분! '그놈들.......무슨수를 써서라도 몰살시켜 버리겠어!' 아크가 섬뜩한 눈빛으로 이를 뿌득뿌득 갈아붙였다. 그 모습에 데드릭과 해골은 지레 겁먹고 몸을 사렸다. "히익, 왜,왜그래? 나는 주인이 하라는 대로 했잖아!" 따닥, 딱딱딱! "알고있어, 성질 돋우지 말고 조용히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데드릭과 해골은 슬슬 눈치를 살피며 구석으로 찌그러졌다. 소환수에게 성질을 부렸지만 아크 역시 알고 있다. 아크는 남의 실수를 감싸 줄만큼 대범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실수를 남 탓으로 돌릴 만큼 옹졸한 사람도 아니다. 이번 전투에서 웃기지도 않은 꼴을당한 책임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있었다. '변명할 여지가 없어' 사실 아크는 그동안 약간 자만하고 있었다. 전직을 한뒤로 아크는 항상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적과 싸워 왔다. 5~10레벨은 기본이었고, 때때로 20레벨 이상 높은 몬스터도 사냥했다. 또한 자신의 레벨로는엄두도 내지 못할 보스 몬스터도 쓰러트렸다. 더구나 이벤트 퀘스트에서 70대 레벨로 공적 1위를 차지했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척척 해내다 보니 아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선 레벨만이 전부가 아니다. 레벨보다 캐릭터를 조작하는 유저의 역량이 더 크게 작용한다. 아크가 남들보다빠르게 성장해 온 이유는, 일찌감치 그것을 꺠닫곡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았기 때문. 그리고 현실의 깨달음을 게임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을게을리 하지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됬다.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예전처럼 지금도 하루 2시간은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운동의 성과를 아크에게 적용시키려는 연구는 게을리 했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스킬을 배울 방법이나 활용법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했다. 현재로 만족 해버리니 발전이 없는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이했어.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몬스터가 만만하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건 게임이다. 언제까지나 같은 몬스터만 상대할 순 없어' 모든 게임에는 절대적인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 바로 레벨이 높아질수록 전투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레벨이 높아지면 당연히 그만큼 강해진다. 그러나 높은 레벨에서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는 더욱 강해진다. 또한 여러가지 특성을 가지게 되면서 상대하기는 더욱 까다로워진다. 다시말해 레벨이높아질수록 더 정밀한 조작과 게임의 이해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 사냥하는 몬스터로 만족한다면 상관없지만....... '게임으로 돈을 벌려면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가야해' 아크가 게임을 하는 이유.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하고 뉴 월드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다. 남들은 뉴 월드를 하기 위해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아큰느 반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유저가 레벨 40이 된 상황에서 레벨 30짜릴 아이템을 팔면 당연히 돈이 안된다. 적어도 레벨 45짜리 아이템을 팔아야 돈이 되는 것이다.그리고 그러려면 언제나 남들보다 먼저 더 강한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더 높은 수준의 퀘스트를 해결해야 한다. '내가 정신이 나갔었어. 나에게 게임은 직업이야. 즐겁게 게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즐거움 때문에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돼 .남들보다 잘하려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즐기기 위한 게임만을 해서는 안돼' 아크는 어금니를지그시 깨물었다. '지금중요한건 퀘스트도 아니고,레벨 업도 아니야. 지금 내 레벨은 78.레벨 40대가 아니다. 그러니 레벨 78의 캐릭터에 맞게 내 실력도 올려놔야 해.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 오히려 잘됐어. 다른건 생각할 필요없어 .지금 내목표는오직 도적단뿐이다! 이제 더 이상 도적단은퀘스트의 단서를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더 강해지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도적단은 레벨을 떠나 다른몬스터보다 수준이높았다. 당연하다. 각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인공지능은그 ㅁ노스터의 지능 수준에맞춰져 있다. 그러나 도적단은 인간,당연히 일반 몬스터보다 지능이 높고, 연계 플레이의 수준도 높았다. 하지만 소환수를 부리는 아크도 사실상 파티나 다름없다.그럼에도 이렇게 까지 차이가 벌어졌다면 문제는 조직력! '우선 가장 급한 건 소환수의 활용법이다' 이제 소환수는 아크의 일부다. 전투에서의 비율을 봐도 아크가 60%라면 소환수가 담당하는역호라이 40%나 된다. 다시말해 소환수의 능력은 곧 아크의 전투력이라는 말, 도적단처럼 연계플레이를 펼치는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조직력의 레벨 업이 꼭 필요했다. '지금까지의 단순한 작전으로는 한계가 있어. 이참에 작전을 좀 더 보강해 복잡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게 만들어 놔야 한다' 지금까지는 A,B,C,D. 네가지 작전만을 사용해 왔다. 물론 단순한 만큼 효과적인 면도 있었지만, 몬스터의 숫자가 많아지고 상황이 복잡해지면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생긴다. '좀 더 체계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효괄 낼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해' 아크의 장점은 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긴다는 점. 그러나 아크가 알고 잇는 작전이란 FPS나, RTS 게임에서 경험해 본게 전부다. 작전을 구상하느라 한참동안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던 아크는 곧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특수 기동대를 거쳐 남미까지 파견 되었던 전투의 프로페셔널, 정의남이다. 이미 작센에서 정의남의 용병술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확인한 바가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접속을 끊고 정의남에게 전활 걸었다. "전술?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꼭 좀 필요해서 그래요.도움이 될만한게 없을까요?" "글쎼..........있기는 하지.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교본은 수준이 너무높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것들뿐이거든" "기초부터 배울만한 교본은 없을까요?" "아, 하나 있기는 하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보내 주마" 예전에 처음 작전을 만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단 수련 상대는 둔한 트롤이었다. 아크는 데드릭을 이용해 트롤을 한마리씩 유인해 여러 작전을 시험해 보았다. "A-4플랜!" 아크가 명령하자 소환수들은 적당히 공격하며 트롤을 뒤쪽으로 유인했다. 그렇게 으슥한 장소로 트롤을 유인한 뒤 A-1로 작전을 바꾸자 데드릭과 해골이 좌우로 벌어지며 트롤을 포위했다. 그러자 트롤은 누구를 먼저 공격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공격이 집중되지 않으니 피하기도 쉽다. 또한 서로 다른 방향에 있으니 3명 가운데1명은 언제나 백스텝을 먹일수 있었다. A-2는 순간적으로 치고 빠지는 파상공격. 이건 상대가 강한 적일 경우, 생명력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상중하를 동시에 공격하는 A-3은 민첩한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유용한 작전이다. 거기에적절히 뱀의 맹독 스킬을 적용시키자 효과는 배가됬다. 그렇게 아크는 A의 작전을 모두활용하며 주변의 몬스터를 사냥해 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B의 작전을 교육시켰다. 물론 전반적인 교육은 스파르타식으로 이루어졌다. "해골, 이번에 작전을 바꿀 때 반응이 몇 초나 느렸어. 음식형이다!" "케케케, 그럴 줄 알았지. 하긴 뇌도 없는 해골이 제대로 외울수나 있겠어?" "데드릭, 까불지 마. 너도 음식형이야!" "에엑? 내, 내가 왜?" "내가 얘기 안했나? 앞으로는 연대 책임이다" "말도 안돼 ,이건 폭력이야!" "말했지? 나 폭력 좋아해" 아크는 소환수들의 입을 쩍 벌려 놓고 꾸역꾸역 음식을 쑤셔 넣었다. 오래된 숲은 처음 온 지역이라 새로운 식재료가 제법 많았 던 것. 이건 사실 정의남의 제안이었다. 조직력을 제정비할 때는 연대책임으로 몰아붙이는 게 최고라나? 과연전문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덕분에 소환수들은 굳이 아크가 말하지 않아도 틈만 나면 둘이 머리를맞대고 수군거렸다. 다른 녀석 떄문에 날벼락을 맞는건 싫었던 것이다. 조금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이제야 소환수들도 올 포워 ALL FOR ONE,원 포 올 ONE FOR ALL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모양이다. 어쨌든 교육과 벌칙을 통해 소환수들은 다시 한 번 전투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또한 벌칙 횟수의 증가는 고스란히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치 상승으로 이어졌다.그리고 마침내.......! "우웩,이, 이게뭐야? 지옥의 맛이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입맛을 없애는 스튜'입니다. 냄새도 모양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한 번 먹으면 트라우마에 빠져버릴 만큼 끔찍한 맛이 나는 요리입니다. 입맛을 잃어 한동안 아무리향기로운 요리라도 쳐다보기조차 싫어집니다. 다이어트에 효과 만점! {2시간 동안 어떤 종류의 음식도 먹을 수 없게 됩니다.억지로 음식을 먹을 경우, 토하게 되고 지금까지 음식으로 받았던 효과가오히려 감소하게 됩니다}] 그렇게 박쥐가 냄비에서 기어 나오며 오바이트를 해 대는 순간. 드디어 스킬 레벨이올랐다. [많은 경험으로 서바이벌 요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서바이벌요리(상급, 패시브) : 당신은 산천에 널린 여러 식재료를 사용해 수많은 신작 요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요리를 향한 끝없는 탐구심과 창작욕에 힘입어 당신은 드디어 서바이벌 요리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제 식재료의 숨겨진 효능을 100%이끌어 낼 수 있게 됬습니다. 또한 모든 요리의 유통기한과 부가 효과, 패널티가 대폭 상승합니다. 상급 보너스로 특수 요리 '잡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잡탕 : 두 가지의 요리를 섞어 새로운 특수 요리 '잡탕'을 만들어냅니다 .잡탕으로 만들어진 요리는 두가지 요리의 특성이 뒤섞여 부가 효과가 올라가거나, 혹은 패널티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떄로는 일반 요리로는 불가능한 전혀 다른 형태의 부가 효과가 랜덤으로 생깁니다. 단, 잡탕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새로운 레시피로 등록되지 않습니다. 가방 한면을 차지하면서 먹기도,버리기도 찜짐한 요리가 있다면 과감하게 잡탕을만들어 보는것도...........] 과연 서바이벌 요리! 그동안 아크가 좋은 효과를 내는 요리만 만들어 왔던 것은 아니다. 식재료의 종류에도 한계가 있으니 때로는패널티 효과가 있는 요리 인줄 알면서도 숙련치를 올리기 위해 어쩔수 없이 만들어야 할때도 있었고, 그런 요리들은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멀쩡한 재료를 낭비해 가며 음식 쓰레기를만들어야 하니그때마다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음식쓰레기도 잡탕으로 만들어재활용할수 있다!' 아크는 곧바로 쓸모없는 요리를 꺼내 잡탕을만들어 보았다.두가지 음식을 냄비에 쓸어 넣고 스킬을 시전하니곧 부글부글하는 음향효과와 함꼐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졌다. [잡탕을 만들었습니다. 공포스러운 맛의 수프+걸레 삶은 맛이 나는 차=분노의 액기스 형언하기조차 어려운 맛에 먹는 사람은 극도의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분노 + 50,고함소리가 100%만큼 커집니다}] 잡탕은 효과가 랜덤이라 서바이벌 요리와 다르게 만드는즉시 효과를알아볼 수 있었다. '분노?' 분노는 아크가 소환수를 불러낼떄 사용하는 영력처럼,전사 계열이 특수 스킬을 사용할떄 소모하는수치다. 더구나 고함 소리가 커지게 하는 건 대체 무슨 의도로 만들어놓은 효과인지조차 알수 없었다. 다시말해아크에게는 그다지 필요 없는 효과.그러나 아크는 결과에 꽤나 만족했다. '공포스러운 맛의 수프는 데미지를 주는 효과.그리고 걸레 삶은 맛이 나는 차는 오히려 마나가 소모되는 음식이다. 그냥 버려야 하는 음식 2개를 섞어 어쨌든 쓸모 있는 음식이 만들어졌으니 나쁘지 않아. 게다가 잡탕을 만들어도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치가 올라간다. 나쁜 음식이 나와도 그냥 음식을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 아크는 그 뒤로도 이것저것 시험해 봤다. 잡탕으로 만들어진 음식은 추가되는 부가 효과가 랜덤이다. 그래도 같은 공식으로 음식을 섞으면 높은 확률로 같은 결과물이 만들어졌지만, 간간이 전혀 다른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뭐,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였지만...... 모처럼 생긴 기술이라 의욕적으로 시도해 봤지만 뭔가 어떻다 할 음식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부분 분노의 액기스처럼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것도 ,아닌 것도 같은.......미묘한 느낌의 효과들이 많았다. '뭐, 이 음식들의 용도는 천천히 생각해 보면 되겠지. 어쨌든 버리기 아까워 들고 다니던 음식을 반으려 줄여 가방 공간도 여유가 생겼으니 일단 챙겨놓자' 가능하면 조금 더 이것저것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지금 아크에게는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냄비를 들고 설치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수련은 적합한 시기가 존재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이제 내 차례다' 아크는 소환수들의 전투 능력이 올라간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소환수의 비중이 커졌다고해도 아직은 40%.나머지 60%는 아크의 몫이다. 소환수가 강해져도 정작 아크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얘기가 되지 않는다. '초반에 배운 스킬들은 해저에서 수련을 한 덕에 어느정도 완숙기에 접어들었어.하지만 새로 배운 스킬은 아직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다. 특히 쳐 내기와 카운터의 연쇄 스킬인 화격의 성공률이 너무 낮아. 원거리 공격수를 상대하려면 이 두 가지 스킬을 완전히 내것으로 만들어야해' 아크는 그 뒤로 다른 스킬은 모두 봉인해 버렸다. 오직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을 연결해 하격을 발동시키는데만 집중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격은 숙련치가 없다. 오직 게이머의 능력만으로 발동시켜야 하는 기술. 화격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 사이에 존재하는,그야말로 찰나에 가까운 타이밍을 잡아내야한다. 자세를 갖추고 그 순간만을 노리고 있어도 쉽지 않은 일. 더구나 시시각각 변하는 전투 상황에서 불안한 자세로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오히려 화격에 실패해 3초간 경직 상태의 패널티에 걸려 얻어맞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엉망이었어. 고작 두 번밖에 성공시키지 못하다니!" 그럴 때면 아크는 음식을 먹었다. 물론 새로 만든 음식은 소환수의 성장을위해 써야 하니,이미 레시피에 등록된 음식 가운데 끔찍한 맛이 나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남에게도 엄격하지만, 자신에게는 그 이상으로 엄격한 아크였다. 그 모습을 데드릭과 해골이 공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지독한 주인.........무섭다,무서워.이제 개기지 말자" 딱딱딱. 그렇게 실미도 급의 처절한 수련은 장장 닷새나 계속되었다. 마을로 한번 가지 않고 하루 20시간의 수련! 덕분에 아크와 소환수들은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힘든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소환수들은 D-4의 작전까지 모두 외웠고 연대감도 강해졌다. 그뿐인가? 아크는 화격 발동률을 80%까지 끌어올렸다. "자, 이제 복수의 시간이다" "흐흐흐,기다렸다.주인" 딱딱딱! 쌕쌕쌕! 이제 악만 남은 아크와 소환수들의 눈에서살기가 번들거렸다. "오호, 손님이다!" "어라? 저 자식, 얼마전에 도망갔던 놈 아냐?" "살아 있었나?" "크크큭, 보기보다 용감한 녀석이군. 목숨을 하찮게 여기다니" "글머 바람대로 머리에 화살 하나 박아 드려야 겠지. 고객 만족이 우리 사훈이니까" 다시 경계를넘어서자 도적들이 이죽거렸다. 곧이어 나무 위에서화살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데드릭, 해골. D-1플랜이다" "알고 있어" 데드릭과 해골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졌다. D-1은 무턱대고 도망가는 D와 달리 도적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사각으로 이동, 바위나 나무 따위를 방패로 이용해 화살을막아내는 작전이다. 반면 아크는 몸을 노출시키고 몸에 익은 쳐내기 스킬을 사용하며 화살을 막아 냈다. 그렇게 몇 분 정도시간을 끌던 아크는 와락 몸을 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A-1플랜!" "오케이!해골, 이리와!" 아크가 소리치자 데드릭이 해골을 집어 들고 숲을 가로 질렀다. "어라? 저놈들이 또 도망가는데?" "잡아!이번에도 놓치면은빛 화살의 수치다!" 도적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넝쿨을 타고 추격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와지끈 소리가 울리자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던 도적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게 바로 아크가 노렸던 것이다. 놈들이 나뭇가지에서 나뭇가지로 이동하는 것을 알아낸 아크는. 미리 근처의 나뭇가지에 칼집을 내 놓았다. 덕분에 도적들이 올라서자 그대로 부러지고 말았다. "지금이다.뱀!" 쌕쌕쌕! 콰아아아! 뱀이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입에서 엄청난 숫자의 나뭇잎이 뿜어져 나왔다. 나뭇잎이 사방으로 뿜어지자 숲은 마치 나뭇잎의 안개에 휩싸여 버린듯했다.지금 이순간을 위해 아크가 준비한 또 다른 작전이다. 미리 뱀의 배 속에 나뭇잎을 가득 채워 두었던 것이다. 아이템을 토해 내는 뱀의 속성을 이용한 공격! "헉, 뭐,뭐야?" "젠장, 놈들이 어디있지?"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나뭇잎이 시야를 가로막자 도적들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휘몰아치는 나뭇잎 안으로 아크와 소환수가 뛰어든건 그때였다. "A-3플랜!" "우하하하, 이놈들!어디 맛 좀 봐라!" 아크가 소리치자 데드릭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급격한 포물선을 그리며 그래도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덕분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도적이 황급히 활을 치켜세웠다. 그 순간, 해골이 나뭇잎 더미에서 튀어 오르며 허벅지를 물어 뜯었다. 도적이 비명을 터트리며 휘청거리자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그게 도적이 할수 있는 공격의 전부였다. 뒤이어 아크가 달려들어 연속 치명타를 쑤셔 넣자 도적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누워 버렸다. "뱀, 신경독이다!" 순식간에 도적 하나를 처리한 아크는 뱀에게 약초 하나를 먹였다. 곧바로 뱀의 송곳니에 독액이 맺힌다. 아크는 신경 독을 검에 바르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도적의 팔을 후려쳤다. 그러자 서너 도적의 팔이 마비되어 축 늘어졌다.그렇게 서너 도적이 화살을 쏘지 못하게 되자 아크의 페이스가 되었다. "이,이자식들......!" 도적들이 신음을 흘리며 주춤거렸다. 몇몇 놈은 황급히 나무를 타고 올라가려 했지만, 두고 볼 아크가 아니다. 곧바로 C-3의 작전을 펼치자 데드릭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도적의 머리를 밟아 댔다.또한 해골도 놈들의 발목을 물고 늘어졌다. 그렇게 다시 나무에서 떨어져 내리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크의 서슬 퍼런 검이었다. "잘도 날 가지고 놀았겠다!" 퍼퍼펑! 등을 찔린 도적들은 여지없이 백스텝 데미지를 받고 휘청거렸다. 결국 도적들은 나무 위로 도망가는 걸 포기하고 단검을 뽑아 들었다. 번쩍이는 칼날을 확인한 아크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번졌다. "검으로 상대해 보겠다고? 나야 고맙지" 아크는 곧바로 3명의 도적 사이로 파고들었다. 사방에서 단검이 휘둘러졌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밤낮 없이 태권도로 몸을 단련한 레벨 78의 강자. 아크가 도적단에게 쫓겨났던 것은 놈들의 화살 공격 떄문이다. 그러나단순히 치고받는 근접 전투라면 레벨 100이넘어가는 몬스터에게 둘러싸여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는 아크였다. 하물며 레벨 70대의 도적따위는.......... 더구나 상대는 인간 NPC다. 근육의 움직임으로 괴상하게 생긴 몬스터보다 공격 궤도를 파악하기가 쉽다. '내려치기다!' 도적이 검을 들어 올리면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반응한다.내려쳐지는 검을 비스듬히 흘려 내고 앞차기가 작렬한다. 이어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물러나는 상대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 무릎 차기와 검격이 속사포처럼 펼쳐졌다. 상대와 바짝 붙어있으니 다른 놈들은 쉽게 검을 휘둘러 대지 못했다. 무식한 몬스터와 달리 영악한 인간이라 생기는 약점도 있는 것이다. 퍼퍼퍼펑! 세 도적은 터져 나가듯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히익!" 그 모습에 남은 도적이 숨 막히는 비명을 질렀다. 다른 도적들과 달리 멋들어진 모자를 쓰고 있는 걸 보니 놈이 도적단의 두목인 모양이다. 놈은 아크가 싸우는 것을 보고 단검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화살을 쏘아 냈다. 두목답게 특수한 스킬을 사용했는지 화살이 검은 기운에 휘감겨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꼼짝도 않고 마주서서 화살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막 화살이 아크의 목덜미에 꽂히려는 찰나! '지금이다!' 아크의 손이 섬광처럼 움직였다. 검 끝으로 튕기듯 화살을 쳐내고, 연결 동작으로 세차게 찔렀다. 섬광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거의 소수점에 해당하는 시간에 쳐내고, 카운터 어택을 날릴만큼 빠르고 정교해진 기술!닷새 동안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화격을 연습해 온건 이순간을 위해서였다. 화살도 공격이니, 쳐 내고 카운터를 먹일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원거리 공격에 대처 방법이 없는 아크가 생각해 낸 고육지책. 그러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쇳소리가 울리며 화살이 튕겨져 나가 도적 두목의 면상에 꽂혀 버렸다. "크아아악, 어,어떻게 이런 일이...........!" 도적은 얼굴을 부여잡고 단검을 사방으로 휘둘러 댔다. 그러나 그런 눈먼 검에 맞을 아크가 아니었다. 곧 아크와 데드릭, 해골이 달려들자 놈은 금세 싸늘한 시체로 변해 버렸다. "크으으윽, 네, 네놈.........!" 두목이 쓰러지자 은빛 활이 떨어졌다. 집어 드니 메시지창이 열렸다. -은빛 화살 도적단의 두목을 해치웠습니다. 증거품을 가지고 기란 경비대를 찾아가면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스빈다. 닷새 만에 드디어 첫 현상금 수배자를 처리한 것이다. "우하하하, 어떠냐! 이 데드릭 님의 실력이!" 데드릭은 마치 혼자 도적단을 섬멸한 것처럼 방방 뛰었다. "뱀, 스킬 전환.아이템 보관" 그러너간 말거나. 일단 도적단을 섬멸한 아크는 주변으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챙기기 시작했다. 도적들은 일반 몬스터에 비해 잡템을 상당히 많이 떨구었다. 기껏해야 가죽이나 몽둥이 따위를 떨구는 몬스터와 달리 단검이나 옷가지등 장비 아이템도 상당히 많았다. 그뿐인가? 일단은 명색이 도적, 야영지를 찾아가 뒤져 보니 별의별 아이템이 다 나왔다. 도적들이 사용하던 식기와 랜턴 그리고 도적질로 모은 잡다한 아이템까지........ 물론 레벨이 높은 도적들은 아니니 큰돈이 되지 않는 헞접스러운 것들뿐이다. 그러나 돈은 돈이다. 아크는 심지어 도적들이 먹던 음식 찌꺼기까지 모두 가방에 쓸어 담았다. '생각보다 짭짤한 구석도 있군' 그렇게 도적단의 구리 동전 한 닢까지 쓸어 담은 아크는 곧바로 다음 목표를찾아 이동했다. 다음 목표는 로델린 마을 근처에서 출몰한다는 회색 도끼단이었다. 은빛 화살 도적단과 달리 워리어 계열로 구성된 도적단이어다. 그러나 상대하기 까다롭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는 전사와 궁수, 마법사 등 여러 직업이 모인 파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방패와 도끼로 무장한 워리어 파티도 상상 이상으로 막강했다. "놈을 썰어 버려라!" 방패를 앞세운 워리어들이 아크를 둘러싸고 도끼를 휘둘러댔다. 레벨도 은빛 화살 도적단보다 5나 높은 75.게다가 엄청나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 한놈을쓰러트리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화격으로 포위망을 뚫고, 소환수와 연습했던 작전을 이용해 치고 빠지며 한 놈씩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워리어를 쓰러트리자 레벨이 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닷새 만의 레벨 업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왜 도적단 현상 수배자를 뜯어 가지 않았는지 알 만하군' 도적단을 섬멸하는 건 ,같은 레벨 몬스터를 3~4배 잡는 것보다 어렵다. 인간 NPC의 영악함과, 직업에 따른 스킬과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가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니니 굳이 힘들게 도적단을 사냥할 이유가 없었다. 도적단이 아니라도 현상 수배자는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까다로운 상대와 싸울수록 임기응변도 늘어난다. 얼마전까지 화살ㅇ르 화격으로 되돌린다는건 생각도 못했던 것처럼, 또한 언제 유저나 인간 NPC와 싸우게 될지 모르니 이 기회에 경험을 쌓아 둬야 해' "자, 이제 털어 보실까?" 아크는 회색 도끼단의 야영지에 널려 있는 아이템을 몽땅 쓸어 담았다. 그렇게 두 도적단을 털어버리자 뱀의 배가 가득 차 버렸다. 다 팔아 봤자 얼마 되지 않겠지만 ,도적단을 털어 푸짐하게 쏟아져 나오는 잡템을 챙기는 재미는 꽤나 쏠쏠했다. 물론 퀘스트 보상이나 대박 아이템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에는 사냥터를전전하는 것보다 수입이 괜찮을 듯싶었다. 아!깜짝했는데, 초등학교 때 아크를 괴롭혔던 녀석들은 4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아크에게 작살이 났다. 아크가 태권도를 배운지 2년 만이었다. 당하면 반드시 배로 갚아 주는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오, 자네가 이놈들을 해치운 건가? 못보던 얼굴인데 신입인가 보지? 잘했네, 두 건이나 처리했으니 이제 자네 얼굴도 기억하겠네. 아, 이건 약속했던 현상금이네 .앞으로도 기란의 평화를 위해 많은 활약을 부탁하네" -현상 수배자를해치우고 보상을 받았스빈다. 성공적인 임무 완수로 기란에 대한 공헌도가 15만큼 상승했습니다. 첫 현상금 사냥을 성공해 헌터 랭크가 E로 승격됬습니다. 기란 경비대에 증거품을 제출하자 현상금 25골드와추가 보상으로 공헌도와 헌터 랭크가 올라갔다. 현상금 이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됐지만 뭔가가 오르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또한 현상범을 잡아 현상금을 받는다. 이 단순한 작업잉 의외로 꽤나 재미있었다. "퀘스트에 대한 정보는 못 얻었지만........뭐, 상관없어. 언젠가는 나오겠지. 한동안은 도적단이나 쓸고 다니며 경험이나 쌓자. 의외로 재미있고 돈도 되는거 같으니까" 아크는 다시 게시판에서 두 장의 현상 수배지를 떼어 냈다. ACT 3 다시 만난 시드 기란의 번화가는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특히 상업지역은 새벽 시간 대에도 물건을 사고팔려는 유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사람 3~4명이 간신히 빠져나갈공간을 제외하고는 길바닥마다 좌판이 깔려있었다. 마치 TV에서 보던 유럽의 큰 벼룩시장 같았다. 아이템의 종류도 각양각색, 몇 쿠퍼짜리 재료 아이템부터 레어아이템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경매장을 이용하면 5%나 되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 아이템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수료도 은근히 부담되는 금액이다. 또한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바로 필요한 아이템을 구할 수 있어 직거래를 선호하는 유저들이 많다. 그러나 직거래는 시세를 모르면 사기 당할 우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뭐,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아크는 그런 장사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필요한 아이템은 자급자족, 또한 수수료 아끼려고 장사를 하느니 그 시간에 사냥이나 하는 편이 이득이라는게 아크의 생각이었다. 아크는 별 생각없이 벼룩시장을 가로질렀다. 빨리 도적단을 털어 모인 잡템을 상점에 팔아 버리고 현상금 사냥에 나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벼룩시장 끝에서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아크의 시선이 후미진 구석에 위치한 허접스러운 옷가지들이 쌓여있었다. -각종 의류 세일합니다. 균일가 50쿠퍼! 뉴월드에는 방어구 이외의 평상복도 존재했다.방어력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이나 도시에서 멋 내기위해 입고 다니는 것들이다. 또한 비싼 옷은 '매력'이라는 옵션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매력은 NPC를 대할때 친밀도에 영향을 주는 스탯이다. 때문에 상인들은 그런 고급 의류를 몇 벌씩은 가지고 다녔다. 물론 그런 고급 의류는 방어구만큼이나 비싸다. 지금 좌판 위에 쌓여 있는 옷은 그저 평상복. 기분 전환 삼아 한번 입어 보는 정도의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 물론 현실에서도 옷에 관심이 없는 아크가 새삼스레 게임의 옷가지에 관심을 보일 리는 없다. 아크가 관심을 보인건 옷이 아니라, 그 뒤에 쪼그려 앉아 있는 호비트 상인이었다. 시선조차 느끼지 못한 듯,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그는 바로 시드였다. '왜 시드가 여기서 옷 장사나 하고 있지?'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드가 전직한 직업은 무역상. 멀리 떨어진마을이나 도시에서 교역품을 사다 팔아야 하는 직업이다. 그런데 고작 50쿠퍼짜리 옷이나 만들어 팔고 있다니? 게다가 시드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느낌은 이전처럶 밝고 명랑하지 않았다. 그 주변에 배경만 흑백으로 변한 듯한 암울한 포스가 뭉게 뭉게 피어올랐다. "저.............." 아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잦 시드가 움찔하며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핫!어, 어서오세요. 각종 의류를 특별 할인가에 팔고 있어요.고급 연료를 사용해서 간지 제대로고요. 요즘 인기많은 깃털 달린 모자나 자잘한 패션 소품도 있어요. 하나 사주세요. 겨우 50쿠퍼밖에 안해요.2개 사시면 10쿠퍼 깎아 드릴게요" "시드 님이 왜 이런 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요?" 주섬주섬 상품을 늘어놓던 시드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잠시 멍청한 얼굴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아크님.....!" 돌연 도토리 같은 시드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크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에에? 왜그래요?" "흑흑흑, 아크님. 보고 싶었어요" "대체 무슨일인데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저........사실은 망했어요" "마,망해요?" "그게 말이죠. 상인 길드에서 대출까지 받아서 물건을 샀는데........훌쩍,죽을 고생해서 돌아와 보니 시세가 바닥까지 떨어지고........킁킁,덕분에 빚을 떠안게 되서............이자 갚기도 버거울지경이라........흑흑,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장사를시작했는데.........재봉 스킬이 낮아서물건은 팔리지도 않고.........이자도 못 내서 빚만 더 늘고........와앙, 팔리지도 않는 물건 만드는 것도 이제 지쳤어요" 꽤나 쌓인게 많았던 모양이다. 콧물 눈물을흐릴며 설명하던 시드가 결국목 놓아 울어댔다. 벼룩시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울어 대자 유저들이 힐끔 거렸다. 덕분에 괜한 눈총을 받게 된 아크는일단 시드를 다독거렸다. 그렇게 간신히 울음을 멈춘 시드는눈가를비비적거리며 한결 진정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제가 기란의 비단 점유율을 올리려고 했던 거 아시죠?" "네, 들었어요" "아크 님하고 헤어졌을 때, 제법 자본금이 두둑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번에야말롤 점유율을 크게 올려 볼 생각으로 교역에 나섰죠.그리고 남부 지방에 도착한 뒤 상인 길드를 통햏 알아보니 마침 기란의 비단 시세가 한참 폭등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시드가 당시의 흥분이 되살아 난듯 조막만 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무리 교역품의 시세가 들쭉날쭉하다지만 폭등하던 게 하루아침에 폭락하는 일은 거의 없다. 막 폭등이 시작됐으니 기란까지 돌아가는 시간을 감수해도 확실하게 이득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판단한 시드는 상인의 운명을 건 승부를걸어 보기로 결정했다. "상위 상인 길드 마이더스는 상인들에게 대출도 해줘요.그래서 저는 가까운 길드를 찾아가 300골드나 대출을 받았어요. 기란에서 비단을 매각하는 대로 갚기로 계약서를 쓰고요. 그리고 비싼 용병 NPC까지 고용해서 서둘러 기란으로 돌아왔는데.........." "비단의 시세가 떨어졌군요" "..............네" 시드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끄덕였다. "속았어요" "속아요?" "사실은 비단 점유율을 두고 저와 경쟁하던 상인이 몇 명있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 상인들 중 하나가 자기 길드의 자금을 동원해 시세를 조작했던거였어요." "시세를 조작해요? 어떻게요?" "남부 지방에서 비단을 사 가지고 온 상인들에게 교역소보다 높은 시세를 제시해 몽땅 매입해 버린 거에요. 당연히 교역소에 비단이 들어오지 않으니 시세가 폭등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내가 비단을 가지고 도착하자, 모아둔 비단을 몽땅 교역소에 팔아 버린거예" 유저들에게 긁어모은 비단을 단숨에 팔아 버린다. 결과는 뻔하다. 갑자기 남아돌게 된 비단의 급격한 시세 폭락! 시드가 기란에 도착했을 때는 구입 가격의 50%도 되지 않는 시세였다. 이런 경우, 상인은 다른 지역엥 교역품을 팔아넘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드는돈을 빌리벼 기한 내에 기란에 매각하겠다고 계약서를 작성한 상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계약 기간이 끝나 버려 상인 길드에 비단을 몽땅 차압당하고 200골드라는 빛까지 떠안게 돼 버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부도가 나 버린것이다. 덕분에 계약 위반을 해 버린 시드의 신뢰도 스탯과 명성이 바닥까지 추락했다. 또한 마이너스 거래를 한탓에 레벨과 각종 스킬의 숙련도까지 하락, 거기에 빚까지 진 상태라 교역품을 살 돈도 없어 완전히 거지가 돼 버린 것이다. "케케케,그럴 줄 알았지 .상인 주제에 멍청하게 생겨서" 데드릭이 히죽거리며 염장을 질렀다. 그러나 시드는 대꾸할 기력도 없는 지 한숨을 불어 내며 옷가지를가리켰다. "지금은 일전에 배워 둔 재봉 스킬로 근근이 옷 장사로 빚을 갚아 나가고 있지만......." 50쿠퍼짜릴 옷을 팔아 200골드를 갚으려면 몇 년이 걸리지 알수 없다. 또한 재봉 스킬이 낮아 옵션도 없는 옷밖에 못 만드니 잘 팔릴 리도 없다. 거기 까지 설명한 시드가 아크를 힐끔 거렸다. "아크님, 혹시............" "저 돈 없어요" 아크가 얼른 말을 끊어 버렸다. 사실 가방 안에는 상당한 거금이 들어 있었다. 기란을 떠날 떄 700골드에 가까운 돈이 있었다 .거기에 이벤트 퀘스트에섯 모아 둔 잡템을 팔고, 방금 전 현상금으로 받은 돈을 합치면 100골드.합이 무려 800골드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아크의 가방은 뚜껑 없는 저금통이다. 한번 들어온 돈을 절대 토해 내는 법이 없었다. 시드 역시 아크의 독한 성격을 기억해 낸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렇군요.하아........." "미안해요.이래저래 나간 돈이 많아서" "아니,괜찮아요.어차피 제가 잘못한 걸요.하하하,열심히 바느질해서 빚을 갚는 수밖에 없죠.뭐,하하하.신경쓰지 마세요" 자포자기한 시드가 살짝 맛이 간 썩소를 지었다. 그렇게 망가져 가는 시드를 보자 은근히 찜찜한 생각이 들었다. 시드는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몇 안되는, 마음에 드는 유저였다. 그를 통해 얻은 유용한 정보도 적지 않았고,블라인드 경매장에서도 꽤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도움을 요청하는 시드를 모른척하다니............ '마치 내가 친척들 같잖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입원하자 하루아침에 안면을 바꿔버렸던 친척들. 아크는그들에게 혐오감을 느꼈고,절대 그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물론 게임이지만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한 시드를 외면하자니 자신이 마치 그들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시드에게 무턱대고 돈을 빌려 줄수도 없고..........내가 손해 보지 않으면서 시드를 도와줄 방법은 없을까? 돈이 안들게........' 잠시 주변을 서성대던 아크는 곧 어렵지 않게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크는 전투형 캐릭터,시드는 상인. 그렇다고 해결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지 않은가? '맞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시드님 ,혹시 저하고 같이 사냥하지 않을래요?" "사냥이요?" "네,저는 한동안 기란 주변을 도면서 현상금 사냥에 전념할 생각이거든요" "하지만 알잖아요. 저는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사냥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설명했다. 아크는 도적단을 사냥하기 위해 넓은 지역을 돌아다녀야한다. 당연히 도적단만이 아니라 자잘한 모스터까지 사냥하게 되리라. 게다가 식재료까지 채취하는데 맹독 스킬을 사용하려면 뱀에게 아이템을 맡길 수도 없다. 때문에 가방 공간이 항상 부족했다. 그리고 가방이 찰 때마다 기란을 왕복하며 버리는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시드가 합류하면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된다.상인의 6개나 되는 가방이 있으니 보관에도 ㅁ누제가 없고, 또한 아크를 대신해 시드가 기란까지 왕복해 주면 이동 시간에도 사냥에 전념할수 있다. "그러니까 판매 대행을 해 달라는 건가요?" "네, 시드님은 가방 공간이 크니까 자주 왕복할 필요는 없을거예요.또 가방이 다 차면 제가 안전한 도로까지 호위 해주면 기란을 오가는 데 위험한 일도 없을 거고요" "그럼 분배는........?" "저도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라 따로 수고비를 드리기는 힘들어요 .대신 아이템의 본래 가격을 제외한, 시드님이 상인 스킬로 남기는 이윤은 가지셔도 좋아요. 적어도 여기서 옷 장사를 하는 거보다는 나을 거에요.덤으로 떨어져 버린 신뢰도와 경험치, 스킬 숙련도도 올릴수 있고 말이죠" 사실이런 방식은 아크가 생각해 낸게 아니다. 기란의 상점앞에 가면 시드처럼 장사에 실패한 상인들이 모여있다. 재기를 꿈꾸며 유저들이 모아 온 잡템을 대신 팔아주고 받는 수수료로 자본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이다. 물론 시드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상인들은 대부분 20%이상 이윤을 남길 수 있는상인들이다. 그러나 무역상을 선택한 시드가 일반 잡템을 판매해 얻을수 있는 이윤은 10%남짓, 유저들이 잡템을 맡길리가 없다. "하,할게요!아니, 하게해주세요!" 시드가 와락 아크의 손을 잡았다. 그는 이미 아크가 얼마나 지독하게 잡템을 긁어모으는지 경험 한 적이 있다. 그 아이템의 전매권, 물건을 정리할 때10%의 추가이윤만 남긴다고 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리라. 가끔 운이 좋아 비싼 아이템이라도 몇 개 주우면 시드 역시그만큼 많은 돈을 벌수도 있다. 적어도 50쿠퍼짜리 옷가지나 팔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후후후,이거 의외로 좋은 생각인지도..........' 아크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지었다. 시드가 합류하면 6개나 되는 가방이 공짜로 생긴다. 게다가 아이템이 쌓이면 자동으로 마을까지 왕복하며 골드로 바꿔주니 걸어다니른 상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역시 아크에게 시드는 가방에 불과했던 것이다. "좋아요. 그럼 일단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부터 처분하고 출발하죠" "네!" 시드는 서둘러 좌판을 정리했다. 그리고 시드가 상점으로 향한 사이,아크는 다시 게시판으로 가서 도적단 수배지를몽땅 뗴어 등록시켰다. 이제 길나에 올 일이 없어졌으니 아예 사냥터에서 살 작정이었다. "모두 15골드나 받았어요. 이윤도 2골드나 남았고요" 다시 광장에서 만난 시드의 얼굴에는화색이 돌았다. "잘됐네요.그럼 그 돈으로 계약서를살수 있죠?" "네?" "상인 계약서, 작성해야죠.그게 1골드 정도 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크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결국시드는 눈물을 머금고 1골드를 지출, 판매 대행 계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크는 신용불량자 호비트 상인 시드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동굴. 두 남자가 동굴을 따라 걷고 있다. 번쩍이는 백색 갑옷을 걸친 금발의 미남.바로 명성도 자자하신 홀리 나이트아란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판금 갑옷을 걸친, 상대적으로 없어 보이는 외모의 사내는 바로 안델이었다. 안델은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데? 정말 여기가 다크브라더라는 놈들의 비밀 아지트가 맞는거야?"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라" 아란이 빛을 뿜어내는 검으로 길을 밝히며 대답했다. 뉴 월드에는 아직 일반 유저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주점의 활용법. 도시 규모의 마을에는항상 주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주점 주인은 일정 금액을 내면 뉴 월드에 떠도는 소문을 알려준다. 어디에 어떤 아이템에 대한 소문이 있다든지. 혹은 퀘스트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이라 막상 고생해서 찾아가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단서를 유저 스스로 찾아야 하는 뉴 월드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메리트가 있다. "하지만 정작 희귀한 정보를 주는 NPC는 따로 있어. 주점의 음유시인이지. 음유시인의 노래를 일정 횟수 이상 들으면 희귀한 정보를 알려주기도해. 뭐, 노래 한번 듣는데 10골드 이상 내야 제대롤 된 정보를 주지만, 음유시인의 정보는 80%이상 신뢰할 수 있어. 일전에 타르샤의 미궁에 대한 단서도 음유시인에게서 얻은 거니까" 그야말로 돈을 물 쓰듯 해야 이용할수 있는 NPC라는 뜻이다. 그렇게 아란은 아크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방법으로 고급 정보를 얻어왔던 것이다. "다크브라더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는100골드나 들었다.이건 틀림없어" "그럼 다행이지만............." "가만, 뭔가가 있다" 그떄, 아란이 펼쳐 놓은 '생명체 탐지' 오라에 뭔가각 걸려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빛나는 검을 들어 올리자 동굴 벽면에 붉은 문장이 떠올랐다. 핏빛 손자국처럼 보이는 문장.그 앞에는 한 노인이 석상처럼 서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기괴한 느낌을 풍기는 노인이었지만, 아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나왔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군" 아란이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여기사 다크브라더의 접선 장소인가?" "이곳에 대한 얘기는누구에게 들었지?" "왕도의 음유시인에게 들었다" "비밀 유지가 허술해진 모양이군. 피의 향기도 나지 않는 자들에게 정보를 흘리다니" NPC가 말하는 피의 향기란 카오틱 성향을 말한다. 노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게다가 홀리 나이트 아란이라니........." "나를 알고있나?" "흐흐흐,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그렇겠지" 노인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성이 자자한 홀리 나이트 아란경꼐서 우리 같은 사람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나서 좋을 건 업을 테니까 .하지만걱정할 필요는 없다. 고객의 비밀 보장. 그게 우리의 철칙이니까. 어쨌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토벌하겠다고몰려오는 멍청이들은 아닌 것 같고.......자, 어디 용건을 들어 볼까,홀리 나이트아란경?" "이곳에서는 모든 일을 대행해 준다고 들었다" "물론이지. 특히 불법적인 일이 특기라고 할수 있네" "죽이고 싶은사람.........아니 ,이방인이 있다" "암살 의뢰인가? 꽤나 정의감이 넘치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군" "생각보다 말이 많군" "거슬리나? 뭐, 좋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가능하다.그런데.............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와 접촉하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여기까지 찾아와 암살을 의뢰할 정도라면........드러내 놓지못할 원한 관계라도 있는 모양이지?" "그런것까지 말해야 하나?" 아란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자 노인이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럴필요는 없지. 알았다,의뢰라면 언제나 환영이지.그런데 물론 우리가 자원 봉사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원하는 보수를 말해봐라" "요구 조건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자네도 이방인이니 알겠지만, 이방인들은 모두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완전한 살해는 우리도 무리다. 그러나 자네가 원하는 만큼의 피해를주는건 가능하지.물론 어느 만큼의 피해를 주는가는 보수에 따라 달라지지" 노인의 말이 끝나자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당신은 소문으로만 떠돌던 비밀 암살 조직 '다크브라더'와의 접선에 성공했습니다. 다크브라더는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비밀결사 조직입니다. 이들은 은밀하게 뉴 월드의 역사에관여해 왔고,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목적을 달성하는 위험한 자들입니다.그러나 이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다크브라더와 접선에 성공한 유저는 이들에게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특별한 일을 의뢰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온한 자들과의 거래는당신의 성향과 명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또한 이들과의 거래 사실이 발각되면 대성당과 적대관계가 될수도 있습니다. {다크브라더에게 의뢰 시,1회에 '선'성향이 50,명성이 500감소합니다} {성향이 0일 경우,-50이 되어 카오틱이 됩니다}] ['다크브라더' 암살 의뢰 설명서 A급 의뢰 : 타깃을 5회 이상 살해.장비 아이템 3개 이상 탈취,수수료 200골드 B급 의뢰 : 타깃을 3회 이상 살해.장비 아이템 2개 이상 탈취.수수료 150골드 C급 의뢰 :타깃을 1ㅇ회 이상 살해.장비 아이템 1개 이상 탈취.수수료 100골드] "A급 위뢰를 선택하겠다" 메시지를 주욱 읽어본 아란은 망설임 없잉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의 눈동자가 흐릿하게 빛났다. "호오, A긃을 의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꽤나 감정이 쌓인 상대인가 보군.좋다,수락하지.우리가 처리해야 할 대상은?" "살수의 능력은 믿을 수 있는 건가?" 그러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동굴 여기저기에서 횃불이 밝혀졌다.주위를 돌아보던 아란과안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그때였다.어느새 뒤에는 검은 복면을 한 3명의사내들이 그들의 등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아,아란!" 안델이 약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란은 오히려 옅은 미소를지으며 끄덕였다. "좋아,믿을 만하군" 아란은 동굴로 들어서면서부터 생명체 탐지 오라를 켜 두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오라로도 알아내지 못할 만큼 '은신'의 레벨이 높다는 뜻이리라. "다시 묻지 상대는?" "........아크!" 아란의 대답에 노인의 눈매가 살짝 흔들렸다. "아크라......작센의 영웅인가? 과연 쉽지는 않은상대로군" "알고 있었나?" "여기는 다크브라더다. 그 정도정보는 기본이지" "좋아, 더욱 믿음직스러워지고 있다" "잠깐만" 그때,안델이 이를 갈아붙이며 한 걸음 나섰다. "내가 척살단과 동행했으면 한다. 내눈으로 직접 그놈이 죽는 꼴을 봐야만 하겠어" "목표물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동행해준다면 우리야 나쁠 것없지. 하지만 우리와 관련된 게 알려지면 좋지않을텐데?" "상관없어!" "알겠네.우리는 언제나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묵고 있는 곳을 알려 주면내일 밤에 척살단을 구성해 보내 주도록 하겠네. 다른 용건은?" "없다." 아란은 200골드를 계산하고 다시 동굴을 되짚어 나왔다. 잠시 말없이 걷던 아란이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괜찮겠어? 척살단을따라다니려면 한동안 레벨 업은 포기해야 할텐데. 작센에서 죽어서 또 스탯이 떨어졌잖아. 아직 복구 못했지?"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아" 안델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중얼걸니다. "어차피 글로벌 엑서스의 입사 시험도 재미삼아 본것뿐이야. 이제 관심없어.내 목표는 오직 아크, 그자식뿐이야. 레리어트가 그놈도 응시자라고 했었지?쳇, 글로벌엑서스 입사에 목숨을 건 거지새끼.......하지만 날 건드린 게 실수였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이 입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도록 만들겠어. 아니,아예 더 이상게임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아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델은 상당한 부잣집의 외아들이다. 지금은 부모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지만,떄가 되면 어지간한 상가 하나쯤은 뗴어 받을 수 있으리라. 글로벌엑서스에 응시한 것도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하는 척이라도 하려는것이었을 뿐 아크처럼절실한 이유따위는 없었다. "어쨌든 고맙다, 아란. 네가 이렇게 까지 나서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네가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부탁했겠냐?" "너도 성향과 명성이 깎였을텐데......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신경 쓰지마" 아란은 짐짓 대범하게 대답했다. 아란이 찾아온 NPC 암살 조직 다크브라더. 원한을 품은 상대가 카오틱이 아닐 경우.자신이 카오틱이 되지 않으면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게임의 밸런스를 위해서인지, 암살 길드를이용하는 데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일단 암살 길드는 비밀조직이라 접선하기도 쉽지 않다. 또한 수수료도 최소 100골드.현슴 1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뿐인가? 암살 의뢰를 하면 성향과 명성까지 깎여나간다. 이미 카오틱 전력이 있어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진 안델과 아란은 입장이 다르다. 명성이 레벨만큼이나 중요한 홀리나이트에게는 그야말로 극약 처방과도 같은것이다. '안델, 너를 위해서가 아니야' 아란은 가볍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아란은 공적 1위를 차지하고 으스대며 전사 길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아크라는 이름을 들었던 것이다. "혹시 아크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나?" 전사 길드 지부장이 물었다. "들어 본적은 있습니다" "실은 자네와 공적치 공동 1위를 한게 그라는 정보가 있네" "네? 그가 말입니까?" "게다가 그는 마법사나 상인도 아니라네. 자네가 아는 사이라면 그와 연락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을까? 전사 길드의 하위 길드에 가입시킬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이어지는 지부장의 말에 아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놈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 지금까지 아랄ㄴ에게 아크라는 존재는 날파리와 다름없었다. 귀찮지만, 굳이 나서서 떄려잡을 만큼 신경쓰이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아란은 흔히 얘기하는 현대판 귀족이다. 그리고 스스로 그런 사실을 잘알고 있다. 운동이면 운동, 학업 성적이면 성적.그는 언제나 최고만을 고집해 왔다. 그리고 원하는 것은 뭐든 손에 넣어왔다. 그것은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서 아란은 최고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 무렵, 아란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발데라스와 한 유저의 동영상을 목격했다. 댓글에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아란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발데라스와 싸우는 유저.......바로 아크였다. '거치적거린다' 아란의 가슴속에서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내가 입사 시험에 합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건 합격이냐, 불합격이냐가 아니야. 수석을 할수 있느냐,없느냐다' 비록 아직 인터넷에서 동영상의 주인공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아크를 주목하고 있으리라. 리포트를 받아 봤을테니까,그리고 굳이 비교한다면............ 아란의 활약보다 아크의 활약이 훨씬 더 임팩트가 있다. 그 말은 평가에서 아란이 아크에게 밀린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란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아란은 내 분신이다. 내 분신의 패배는 곧 나의 패배야.게다가........' 틈만 나면 아크에 대해 떠들어 대는 레리어트의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임 안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가장했지만 레리어트는 면접 날부터 아란이 찍어 놨던 여자다. 때문에 게임을 빌미로 그녀를 끌어들였고, 그녀는 슬슬 넘어오는 중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가 마음먹어서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레리어트가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는게 도저히 용납 되지 않았다. 그게 아란이 아크를 미워하게 된 계기였다. 터무니없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는게 돈깨나 있다는 놈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이제 아크는 그의 자존심마저 건드려 버렸다. 고작 게임 따위지만, 고작 게임 따위니까 더더욱 다른 사람에게 밀릴 수는 없다. 또한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도 당연히 수석을 차지해야 한다. 방해자 따위는 결코 용납할수 없다. '앞을 가로막는 놈이 있다면 그게 누가 됐든 전력을 다해 부숴 버린다!' 그게 아란이 살아온 방식이고, 앞으로 살아갈 방식이다. 아란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안델을 돌아보았다. "네가 싫어하는 놈은 나도 싫다.그뿐이야" "아란, 고맙다. 놈을 박살 낸 다음에는 죽을힘을 다해 너를 도와줄게" 안델은 감격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란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내가 너를좋아하는 건 그 비굴함 때문이야' 이렇게 대아크동맹이 만들어졌다. ACT 4 소녀를 만나다 "취이익, 부,분하다.....!" 우람한 근육질의 오크가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동시에 오크가 걸치고 잇던 사슬 갑옷이 툭 떨어졌다. 꽤나 멋지게 생긴 갑옷이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다. 오크 도적단을 처리하고 얻은 증거품이었다. "휴, 이번 도적단은 시간이 꽤나 걸렸군" 아크는 증거품을 챙겨 넣으며 스탯창을 열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150 명성 : 1,335 레벨 : 85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모두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1,695 마나 : 1,295(+100) 영력 : 100 힘 212(+5) 민첩 252(+17) 체력 322 지혜 31 지능 250 운 42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53) 유연성 : 21 화술 : 23 애정 : 40(+10)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민첩 +2 ,냉기저항 +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노리드 부츠 : 이동속도 +10%,회피율 + 5% 아드리안의 목걸이 : 방어력 +40,애정 +10 부활하는 영혼 : 힘 +5,마나 회복속도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레벨 업 속도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현상금 사냥을 시작한 지도 벌써 2주가 지났다. 처음시작했을 떄 소환수를 훈련시키느라 닷새를 소모했으니, 실제 사냐에 투자한 시간은 9일. 그동안 78이었던 레벨이 85가 됐으니 7레벨이 오른 셈이다. 이벤트 퀘스트에서는 사흘만에 10레벨이나 올렸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에 해당된다. 평범한 사냥으로는 하루 1레벨을 올리는 것도 무리, 하물려 레벨 80이 넘는 캐릭터라면 이틀에 1레벨 올리기도 쉽지 않다. 나타나는 적이 그만큼 강해져 전투와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또한 어느정도 사냥을 하다보면 마을에도 들어야 한다. 장비 수리와 식량 보급, 가방에 가득찬 잡템도 정리해야한다. 또 직업에 따라 궁수라면 화살을 보충해 놓거나, 마법사는 마법에 사용하는 시약도 챙겨 놔야 한다. 마을 -사냥터-마을- 사냥터 이게 모든 게임의 기본 공식인 것이다. 때문에 이동과 마을에서 재정비하며 까먹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건 고레벨 유저일수록 그리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사냥터일수록 커져 레벨 업의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이런 공식도 적용되지 않았다. 개털이 돼 버린 시드를 전속 판매 담당으로 끌어들인 덕분이다. 시드는 계약서대로 충실하게 움직였다. 아크가 긁어모은아이템을 창고처럼 박아 두었다가,가방이 꽉 차면 기란으로 가져가 사냥에 필요한 아이템이나 골드로 바꿔왔다. 그 대가는 판매 금액의 약 10%,그것조차 아크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아니닌 손해 날게 없다. 가히 노예 계약을 방불케 하는 조건이지만 시드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쨌든 덕분에 아크는 9일간 사냥에만 전념할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괴멸시킨 도적단은 하루 평균 2개. 9일간 무려 18개나 되는 도적단을 괴멸시켜왔다.그쯤 되니 도적단 사이에도 아크에 대한 소문이 퍼져 마주치면 슬슬 피해 다닐 정도가 되었다. '쳇, 오크 도적단도 도망다니지만 않았으면 1시간 전에 끝났을 텐데.........' 도적단은 영악해서 한 번 도망가면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좋은 점도 있다. 도망쳐서 매복해 있다가 공격하거나,포위 공격을 해오는 도적들을 상대하다 보니 아크도 여러 스킬을 활용하며 상대해야 했다.덕분에 스킬의 활용도가 높아져 각종 스킬의 숙련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패시브 스킬 검투술 (중급 : 252/300) 검술과 격투술을 갈고닦아 종합 전투력이 상승한다. 서바이벌 요리 ( 상급 : 332/500)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정체불명의 요리를 만들어 낸다. 불굴의 정신 ( 중급 : 134/300) 빈사 상태에서 공격력, 치명타율, 회복능력이 상승한다. 불굴의 육체 ( 중급 : 127/300) 빈사 상태에서 방어력,치명타 회피율,회복 능력이 상승한다. 채취 ( 중급 : 255/300) 자연으로부터 식재료를 채취할수 있다. 식재료 감별 (중급 : 264/300) 식재료의효능을 확인한다. 승마 ( 초급 : 3/100) 등급이 올라갈수록 말을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 아드레날린 ( 초급 : 27/100) 빈사 상태에서 공포를 잊고 반응속도가 상승한다. 카운터 어택 (초급 : 88/100)적의 공격을 흘리며 치명타로 반격한다. 쳐 내기 (초급 : 58/100) 적의 공격을 무기로 막아 데미지를 반감시킨다. 액티브 스킬 간병 (중급 : 234/300 환자에게 희망을 주어 기력과 용기를준다. 마나소모 : 10 고양이의 기백 (상급 : 374/500) 쥐와 소형 몬스터에게 공포를 심어 움직임을 봉쇄하고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르 대폭 하락시킨다. 마나소모 :120 고양이의 눈 (중급 : 230/300) 날카로운 시선으로 적을 파악한다. 마나소모 50 마법 복원 (중급 : 239/300) 아이템을 본래의 형태로 복원한다. 마나소모 : 10 직업 전용 스킬 다크 블레이드 (중급 : 120/300) 적의 빈큼에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마나소모 :100 블레이드 스톰 (초급 : 10/100) 검 파편의 소용돌이로 적을 갈가리 찢어낸다. 마나소모: 400 마령 소환 (중급 : 125/300) 유게에서 세 마리가지 마령을 소환한다. 영력 소모 : 100] 이제 초반에 배운 스킬은 모두 중급에 들어섰다. 특히 직업 전용 스킬인 다크 블레이드와 마령 소환이 중급으로 오른 효과는 컸다. 다크 블레이드는 치명타 공격력이 150%에서 180%로 상향 조정되었고, 마령 소환은 소환수가 잡아먹는 마나가 1초당 1에서 2초당 1로 감소했다. 거기에 부활하는 영혼이라는 반지를 착용해 마나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덕분에 소환수를 불러놓고도 스킬을 여유있게 사용할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도 성장이 가장 느렸던 검투술도 이제는 상급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성장한 건 아크만이 아니었다. 새로운 작전을 발표한 뒤로 소환수에게 음식을 퍼먹일 구실이 생겼다. 덕분에 이제 소환수들을 레벨 40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나쁘지 않아!' 아크는 정보를 확인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정작 도적단을 사냥한 목적이었던 퀘스트 정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도적단에 단서가 있다면 언젠가는 찾을 수 잇겠지. 아크는 편하게 생각했다 .어차피 안달한다고 빨리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지금은 레벨 업과 숙련도 상승에만 관심이 쏠렸다. 그리고 등록시켜 놓은 현상범 리스트를 하나하나 갱신해나가는 재미에 푹 빠져 버렸다. "자, 그럼 재정비를 하고 다음 사냥감을 찾아볼까?" "아, 끝나셨어요?" 숲 외곽으로 나오자 시드가 반겼다. 아크는 도적단에게서 털어온 아이템을 건네주고 모닥불앞에 앉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야영지로 돌아왓습니다.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50%빨라집니다. 몬스터가 선제공격할 확률이 50%감소합니다. 시드의 직업, 무역상 전용 스킬인 '야영지'효과였다. 일단 도적단을 발견하면 상인인 시드가 할 일은 없다. 때문에 시드느 안전한 곳에서 야영지를만들어 놓고 아크를 기다렸다. 그렇다고 시드가 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도 필요한 정보는 못 찾으셧어요?" 시드는 쉴새 없이 손을 놀리며 물었다. 시드는 아크를 기다리며 아이템들을 상인 스킬인 '아이템 분해'로 일일이 손보았다. 가죽을 잘 다듬어서 마름질을 해 놓는다. 그리고 장비 아이템은 연결 부위를 잘라 재료에 따라 분류해 놓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시드가 할 일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잘 분해해서 상점에 팔면 통쨰로 넘기는 것보다 많은 돈을 받을수 잇었던 것이다. "네, 아직......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보다 시드님은 빚 많이 갚았어요?" "50골드는 갚았어요" "많이 갚았네요" "네,잡화 판매 스킬이 올라서 이윤이 15%나 됐거든요.그리고 시간날때마다 옷을만들어서 재봉 스킬도 올랐어요. 그래서인지 기란에 들를 때마다 경매장에 올려놓은 옷도 그럭저럭 팔리더라고요" ...........역시 빚은 함부로 만들 게 아니다. 얼마 전까지 대륙을 횡단하며 교역을 하던 호비트 상인 시드. 그러나 지금은 고작 몇 쿠퍼,몇 실버를더 벌기 위해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바느질을 하고, 아이템을 분해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눈물이 핑 도는장면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시드는 꽤나 긍정적인 유저였다. "이자 내기도 빠듯햇는데 원금까지 갚아 나가니 희망이 보여요. 다 아크님 덕분이에요" 나무 둥치에 올라앉은 시드가 흐뭇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거렸다. '그래,네가 만족하면 됬지 뭐........' "그런데 다음에 갈곳은 어디에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코볼트 도적단이 있어요. 일단 거기로 가 봐야 할거 같아요" "쓸만한 염료를 만들 재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여기보다 조금 레벨이 높은 숲이니 있을 거에요" "와아!그럼 더 좋은 옷을 만들 수 있겠다" 시드가 신 나게 바느질을 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럼 이제 생명력도 다 찼으니 슬슬 출발하죠" "네, 이거 하나만 마주 분해하고요" 그런 시드를 데드릭이 딱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둘은 예전부터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크 이외에는 아무나 대고 밉살맞은 소리를 해 대는데드릭은 시드를 거지 땅꼬마라고 놀려댔다. 덕분에 시간만나면 토닥거리기 일쑤였다. 그런 데드릭조차 지금의 시드에게는 동정심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봐 줄수가 없군" 데드릭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때였다. 근처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며 육중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데드릭!"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순간 데드릭이 빠르게 하늘로 솟아올라 주변을 살폈다. "3시 방향이다. 주인, 트롤 두마리!" 방향을 확인한 아크는 해골과 함께 숲을 가로질렀다. 약 10미터 거리에 트롤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트롤들은 야영지를 향해 접근해 오는게 아니었다. "크르르,인간......인간이다.........잡아먹자!" 트롤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쫓는 사람은 단발머리 소녀였다.숲을 헤매고 잇었는지 옷 여기저기가 뜯겨 나가고, 신발도 한 짝이 보이지 않앗다. 그녀는 상처가 가득한 발을 바쁘게 움직이며 나무 사이로 도망다니고 있었다. 'NPC같은데........이런 숲에 왜?' 쿠쿠쿵! 그때,트롤이 휘두른 곤봉이 나무를 후려쳤다. 막 나무 뒤로 숨으려던 소녀가 화들짝 놀라며 풀썩 쓰러진다. 놀라서 다리를 접질렀는지 발목을 움켜쥐고 바들바들 떨어댄다. 그 모습이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는지 트롤이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곤봉을 치켜세웠다. "........!" 소녀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려 버렸다. 그리고 막 곤봉이 떨어져 내리는 순간...! 퍼퍼펑!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트롤이 서너 발이나 밀려났다. 소녀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들어 올렸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검은 머리칼과 널찍한 등을 가진 청년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정의의 용사는다름 아닌 아크! 아크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부드러운 미소를지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다. 물러나 있어.금방 해결하고 돌아오지" 아아, 이 얼마나 멋진 대사인가? 유저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만 NPC에게는 언제나 다정다감한 아크였다. 물론 그 다정다감함은 그 뒤에 따라올 보상을 바라는,꽤나 작위적인 친절이었지만 말이다. "덤벼라,연약한 숙녀를 괴롭히는 트롤들아!" 아크는 판에 박힌 듯한 유치한 대사를 읊조리며 트롤에게 달려들었다. "방해하지마라.......크르르!" 트롤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아크에게 분노를 터트리며 곤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때, 하늘로 솟아 올랐던 데드릭이 벼락처럼 내리 꽂히며 트롤의 면상을 박아 버렸다.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트롤,곧바로 아크의 연속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이어 해골이 비틀거리는 트롤의 발목을 물어뜯자 고목처럼 넘어져 버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되었다. "받아랏, 다크 블레이드!" "크아아악!" 트롤이 괴성을 터트리며 사라져 버렸다. 한 마리를 처리하자 나머지는 일도 아니었다. 데드릭과 해골, 아크가 세 방향에서 공격을 퍼붓자 금세 빈사 상태에 빠져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크가 집어 던진 해골을 뒤통수에 얻어맞고 백스텝이 터지더니 꼴사납게 쓰러져 버렸다. 아크는 트롤이 떨군 아이템을 챙기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소녀가 불안한 눈망울을 굴리며 끄덕거렸다. 그 뒤로 아크는 멀뚱히 소녀를 바라보았다. 구해 줬으니 뭔가 사례를 하겠다든가, 혹은 퀘스트를 주겠다든가 하는 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소녀는 그저 멀뚱히 아크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때였다. 소녀가 주춤거리며 일어나다가 미간을 찡그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크는 잠시 소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냈다. 아무래도 이 거지꼴을 한 소녀에게서 얻을 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혼자 몸으로 다치기까지 한 소녀를 버려둘만큼 독한 성격은 아니었다. "일단 내게 기대라, 근처에 야영지가 있으니 같이 가자" 아크가 어깨를 내밀자 소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기대왔다. "아크님!어라? 그여자는.......?" "트롤에게 쫓기고 있었어요" "그래요?" 소녀에게 시선을 옮기던 시드는 돌연 움찔하더니,멍청한 얼굴로 소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비록 꼬질꼬질한 상태였지만 소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던 것. 나이는 대략15세가량, 그럼에도 호비트인 시드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만큼 키가 컸다. 아크는 일단 소녀를앉혀 놓고 발목에 간병 스킬을 사용했다. 간병은 치료가 아니다. 때문에 완전히 치료가 된것은 아니었지만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소녀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숙이자 시드가 괜히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가죽 신발을 하나 꺼내 들었다. "신발이 없으시네요.이거 별거 아니지만 신으세요. 헤헤헤,아크님, 이건 제 보수에서 깔 테니까 걱정마세요" "저는 별로 상관없지만........" "아, 혹시 배고프지 않으세요?" 소녀가 배를 만지자 시드는 눈치 빠르게 음식을 꺼내 주었다. 아크는 그런 시드를 괴상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헤매고 있었지? 근처에 마을도 없을 텐데?" 그때였다. 깨작거리며 음식을 먹던 소녀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시드가 당혹해하며 버럭 소리쳤다. "아크님, 그렇게 추궁하듯이 물어보니까 놀랐잖아요!" "에? 내가 뭘..........." "얼른 사과하세요!" 소녀가 나타나자 180도로 변한 시드의 태도에 어리둥절해 할때였다. 소녀가 쓱쓱 눈물을 닦아 내더니 나뭇가지로 바닥에 끼적였다. -도와주세요! "그러니까.........아버지가 도적들에게 납치 됐다는 거야?너는 간신히 도망쳐 나왔고?" 아크의 질문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의 이름은 사라라고 했다. 아크가 구출했을때,사라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야영지에서 어느 정도 안정되자 나뭇가지로 바닥에 글을 쓰며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도 제작사,대륙을 여행하며 여러 지역의 지도를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기란 근처에 아직 알려지지않은 유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도적단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 제작사는직업상 위험한 지역을많이 다녀 몬스터를피할수 있는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도적의 추적을 뿌리칠수 없었다. 결국 아버지는 그녀를숨겨 놓고 도망 다니다가 도적에게 끌려갔고, 그녀는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기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는 얘기다. "우우우,그랬군요. 그러다가 트롤에게........." 시드가 눈물을 글썽이며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이에요.도와주세요.아버지가 끌려가신지 벌써 사흘이 지났어요. "당연히 도와 드려야죠! 그렇죠, 아크님?" 시드가 와락 고개르 돌리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는 잠시 사라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위치가 어디쯤이지?" 그러자 사라가 다시 바닥에 글자를 끼적거린다. '갈색 바위지대...........기란 지역에 경계에 있는 곳이다' 아크는 곧바로 정보창을 열어 등록되어 있는 현상 수배자 정보를 살펴보았다. '역시 갈색 바위 지대의 도적단에 대한 정보는없어' 아크는기란의 게시판에 있는 도적단 현상 수배지를 모두 뜯어왔다. 그리고 70%를 처리했는 데도 아직 퀘스트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남아 잇는 도적단도 갈색 바위 지대에서 목격됐다는 정보는 없었다.그렇다면 답은 하나,현상 수배지에 등록된 도적단 이외에도 도적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맞아, 어째서 그 생각을 못했지? 내가 찾는 건퀘스트 관련 도적단이다. 그게 현상 수배된 도적단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번도 못했어' 아크는 그제야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꺠달았다. 현상 수배된 도적단을 유저가 해결하면 사라진다. 다시 도적단이 생겨나겠지만, 그건 섬멸된 도적단과는 다른 신생 도적단. 아마도 아크가 섬멸해 온 도적단은 그런 신생 도적단이리라. 반면 심혼의 구슬이 도둑맞은 시기는 1년 전이다. '뉴 월드에서는 인과관계가 없는 NPC에게서 단서를얻을수 없어. 그렇다면 심혼의 구슬을 훔친도적단은 1년전부터 존재했었다는 뜻. 그럼에도 현상 수배지에 등록되지않았다면 그동안 활동을 안해단 얘기야' 생각해 보면 간단한 얘기다. 현상금 헌터에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도적단이 퀘스트의 단서를 쥐고 있을 리 없다. 결국 아크는 보름 가ㅏㄲ이 엄한 도적들만족치고 잇었다는 얘기다. '어쩌면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숨어있는 도적단......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게다가 어떤 형태든 NPC의 부탁이니 퀘스트가 분명하다. 떠돌이 여행자라면퀘스트를 해결해도 큰 보상을 기대하기는어렵지만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아크가 그렇게 열심히 머리를굴리고 있을 때였다. 한동안 대답이 없자 시드가 울컥한 목소리로 따져왔다. "아크님, 설마 모른척하려는건 아니죠?" "케케케,당연히 모른척하지. 주인은 돈 안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뭐,뭐야?" "뭣보다 이 데드릭의 주인쯤 되는 자가 어째서 이런 꼬질꼬질한 계집애를 도와야 하지?" "닥쳐,이 피도 눈물도 없는 박쥐 같으니!" "박쥐라니? 이 몸은 유계의 귀족 데드릭 님이시다!" "귀족 좋아하네 .그래봤자 박쥐 주제에........." "너 이자식, 한번 죽어 볼래?" "흥, 누가 겁낼 줄 알아?" 시드와 데드릭이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데드릭, 그만해!시드님도 그만하세요."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사라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마라. 사정을 듣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에엑? 주, 주인!봐봐! 딱 봐도 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계집애를 뭐하러........." "시끄러!" 시드가 와락 데드릭의 입을 틀어막고는 감격한 표정으로아크를 바라보았다. "우우우,아크님. 저는지금 맹렬하게감동하고 잇습니다. 역시 아크님도 감정이라는게 있었군요" 듣고 보니 이상한 말이다. "그럼 대체 지금까지 저를 어떻게 생각한 겁니까?" "............철 가면 수전노" 시드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실실거리며 고맙다고 하더니.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건가? 역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그러나 시드는 금세 방실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이제 아니에요" "눈물 나게 고맙네요" "에이,그냥 해 본 소리에요. 설마 제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시드가 살살거리며 비비적대자 사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엽게 보였는지 시드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터트렸다. "험험, 그렇게 결정했으면빨리 출발하죠. 사라님의 아버지가 언제 화를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잖아요.사라님,아크님이라면 틀림없이 아버지를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거에요" -정말이요? 정말 도와주실수 있으세요? 사라가 확인하듯 똘망똘망한 눈을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래, 아직살아 계시다면 꼭 구출해 주마"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숙였다. 동시에 두두둥,하며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사라의 아버지를구출하라! 당신은 어두운 숲에서 트롤에게 쫓기는 소녀를 구해 주엇습니다. 당신의 따뜻한 배려에 마음을 연 소녀는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함께 여행하던 아버지가 도적단에 납치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의감 넘치는 당신은 소녀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않고, 아버지의 구출을 약속햇습니다. 단, 주의하십시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납치당한지 벌써 사흘이 지났습니다. 도적들이 그를친절하게 대해 주지는 않을 테니,서두르지 않으면 늦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퀘스트를 방은 뒤로 12시간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실패합니다) 난이도 : +E] "어?퀘스트다!" 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퀘스트를 줄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건가?' 아크는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게임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알고있는 시드도 정작 퀘스트의 진행방식에 대해서는 그리 아는게 없었던 모양이다.하긴,상인들의 퀘스트는 대부분 상인길드나 교역소에서 받으니 이런 식의 퀘스트를 경험해 보지는 못했으리라. '어쨌든 난이도는 +E.파티용 퀘스트라 쉽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 E 난이도 퀘스트라면 이전에도 몇번 해결한 적이 있어 .글때보다 레벨과 스킬이 많이 올랐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시드님, 출발하죠" "네!" 시드가 활기차게 대답하며 사라를 부축했다. 상대는 NPC다. 대체 뭘 기대하고 저러는지 아크는도통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사라를 바라보는 시드의 눈망울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으랏차!" 콰쾅! 수백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골렘이 거짓말처럼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체중이 무거운 만큼 낙하 데미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단숨에 350의 생명력이 빠져나간 골렘은 전신이 시뻘겋게 물들며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골렘이 비틀거리며 일어나기가 무섭게 이어지는 메치기! 또다시 맨땅에 헤딩을 해 버린 골렘은 생명력이 바닥나며 박살이 나 버렸다. "으하하하,뭐 별것도 아니군" 골렘의파편 위에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사람은 바로 전직 열혈 형사, 정의남이었다. 이벤트 퀘스트의 실패로 침울해하던 정의남은 아크덕분에 새로운 사냥터를 찾아냈다. 아크가 작센의 소년 영주에게 정의남을 신경 써달락고 부탁한 다음날, 그는 소년 영주를 찾아갔다. "자네의 활약은 크로스 경과 아크에게 익히 들었네" "해야 할일을했을뿐입니다" 정의남은 깍듯이 존댓말로 대답했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NPC,그러나 조직 사회에 익숙한 정의남에게 나이 따위는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한 지역의 영주이니 그만한 대우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전에 소년영주에게 잘 보이라는 아크의 당부도 있었다. "자네들이 작센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규정이 규정이라 이렇다 할 보상을 할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네.그래서말인데.......작센을 구해준 보상은 해 줄수 없지만 편의라면 얼마든지 봐줄수 있네" "편의라면........?" "앞으로 장비 수리와 음식은 내 직속 대장간과 식당을 이용하게 .미라 말해 뒀으니 마을의 상점을 이용하는 것보다 50%는 저렴할 거네" "정말입니까?" 정의남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관념이 없는 정의남은 항상 음식과 수리비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50%나 할인받는가격에 해결할 수 있다니! 그러나 정의남은 금세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냈다. 정의남의 레벨은 벌써 45.레벨 40대의 사냥터만 있는 작센 성에서는 더 이상 레벨을 올리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때문에 슬슬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이런 보너스가 생기다니...... 그 부분에 대해 말하자 소년 영주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인들은 정말 모르겠군.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더 강한 몬스터를 찾아다니는지 말이야. 뭐,그게 이방인들의 생활 방식이라면 어쩔수 없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굳이 작센을 떠날필요는 없네" "네?" "사실 작센 주변에는 너무 위험해서 병사들 이외에는 출입을 제한해 놓은 지역이 몇 군데 있네. 과거 아크가 아버님과 함꼐 들어갔던 유적도 그런 제한 구역중의 하나였지. 물론 아직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네가 원한다면 특별히 출입을 허가해 주겠네" 뉴 월드에는 작센 뿐만아니라 기란이나다른 지역에도 출입이 제한된 구역이 존재했다. 시나리오상, 혹은 다른 이유로 아직 공개돼서는 안 되는 지역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 작센의 경우, 그 제한을 풀수 있는 열쇠가 이벤트 퀘스트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소년 영주가 정의남에게 출입을 허가해 준 ㅈ역은 그림자 숲 안쪽에 자리 잡은 곳, 레벨 30~60의 몬스터가 출현하는 , 썩어가는 수렁이라는 지역이었다. "일단 그곳에서 경험을 쌓게 ,필요할 때가 있을테니........" 소년 영주는 은근히 신경 쓰이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쩃든 덕분에 정의남은아직 누구도 와 보지 못한 사냥터를 독식할수 잇었다. 썩어 가는 수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지역이라그런지 몬스터가 넘쳐흘렀다. 그뿐인가? 몬스터의 아이템 들바율도 상당했다. 거의 세마리마다 장비 아이템을 하나씩 떨어트릴정도, 그리고하루에 한두번은 마법아이템까지 구할수 있었다. 게다가 직속 대장간을 이용하면 수리비도 반밖에 안드니 가방에는 제법 골드가 쌓여갔다. 정의남은 흐뭇한 눈길로 장비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징 박힌 너클 무기 타입 : 너클 공격력 : 12~15 내구력 : 14/40 무게 : 10 사용 제한 : 레벨 45이상 오래전 유명한 격투가가 사용하던 너클.단단한 가죽 위에 날카롱누 쇠 징을 박아 손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격투가의 공격력을 한층 높여준다. {옵션 : 격투 계열 스킬 공격력 +20%}]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트렁크 방어구 타입 : 팬티 방어력 : 20 내구력 : 28/60 무게 : 5 사용 제한 : 레벨 50이상 간편한 복장을 좋아하는 남부 지방에서 개발된 방어구.거치적거리는 밑단을 과감하게 잘라 냄으로써 움직임을 더욱 자연스럽게 해준다. 단, 트렁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굉장히 꼴사나워 보일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옵션 : 반응속도 +10%,품격 -20}] 모두 썩어 가는 수렁의 몬스터들에게서 얻은 아이템들이다. 뭐,생각없이 이것저것 장비를 착용하다보니 트렁크에 민소매 티셔츠를 입은 꼴사나운 모습이 돼 버렸지만 정의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현실에서의 그 역시 지금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후후후,내가 이런 사냥터를 독식하게 될줄이야. 아직 초보 마을 근처에 이런 사냥터가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겠지? 아크 녀석 덕을 톡톡히 보는구나!" "젠장, 뭐하쇼? 폼 잡을 시간 있으면 우리 좀 도와주쇼!" 그때, 옆에서 울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몇몇 유저들이 골렘 두 마리에게 쫓겨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정의남이 끌고 들어온 1401호부터 1410호까지.......일명 갱생단이라고 이름 붙여진 유저들이었다. 처음에는 민병대에 있던 30명가량의 유저들과 함꼐 들어왔지만 모두 떨어져 나가고 갱생단과 로코만이 남았다. 그리고 죽을 고생 끝에 정의남은 45레벨에 들어와서 벌써 55레벨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평균 레벨이 35레벨 밖에 되지않았다. 20레벨에 들어왔으니 15레벨이나 올린 셈이지만 아직 레벨 60의 골렘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모두 용기를 내세요 .대지는 당신들의 친구, 언제나 당신들은 지켜줄 거에요" 갱생단이 열 나게 두들겨 맞자 로코가 하프를 뜯으며 방어력을 올려주는 '보호의노래'를 시전했다. 그러자 바닥에서 자갈들이 솟구치며 갱샌단의 몸을 휘감았다.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로코!" "역시 믿을것 너밖에 없다" "저 사각팬티 아저씨는 뇌까지 근육으로 차서 싸우는 것밖에 몰라!" 갱생단이 와글거리며 로코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그 말, 기억해 두마,1403호!" "젠장, 저 영감은 귀도 밝아" 정의남이 끼어들자 전황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배대뒤치기를 당한 골렘이 낙엽처럼 하늘로 날아오른다. 정의남은 레벨 35지만, 사실상 68이나 다름없었다. 정의감 스탯의 효과였다. 정의감은 다른사람의 전투에 조력자로 난입했을 경우, 스탯 수치만큼 모든 스탯을 상승시키는 레어 급 스탯. 현재 정의남의 정의감이 13이니 전체 스탯으로 따지면 무려 13레벨이나 상승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저 본인도 상식을 초월하는 실전 감각을 익힌 격투가,이미 레벨 60몬스터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정의남이 단숨에 골렘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리자 1406호가 소리쳤다. "기다리세요.좀!아직 안 훔쳤단 말이에요" 1406호가 골렘에게 달려가더니 빠르게 손을 놀렸다. -골렘으로부터 '철광석'을 훔쳐 냈습니다. 갱생단은 현실에서 독특한 전문 기술을 익힌 사람들답게 뉴 월드에서도 특기를 살리는 스킬들을 배우게 됬다.그중 하나가 바로 전직 소매치기 출신이 1406호의 '소매치기',스킬이 성공하면 무조건 빈사 상태의 몬스터로부터 아이템 하나를 훔쳐 내는 기술이었다. "좋아, 이제 끝내세요" 1406호가 철고아석을 들고 히죽거리자 골렘은 곧바로 자갈로 변해 버렸다. 이어 나머지 한 마리의 골렘도 갱생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사라졌다. 그렇게 몬스터를 정리하고 생명력을 회복하는 사이, 잠시 머뭇거리던 로코가 말했다. "저, 이제 가 봐야 할거 같아요.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돼서........" "에? 벌써?" "아, 홍일점이 빠지면 재미없는데........." "아르바이트 때려치우고 같이 게임이나 하자. 내가 수당줄게" 갱생단원들이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코는학교와 아르바이트로 바빠서 그리 오랜 시간 게임을 하지 못한다. 그나마 30레벨까지 올린 것도 로코가 접속하면 갱생단이 경험치를 몰아줘서 가능했던 것. "호호호,내일 같은 시간에 접속할게요" "할 수 없지. 그럼 우리도 일단 작센으로돌아가자. 장비도 수리해야 하니까" 그렇게 또 보람찬 하루를 보낸 정의남과 갱생단은 터덜터덜 작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주 직속 대장간을 찾아가는데, 문득 크로스가 찾아왔다. "선생님,마침 잘 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영주님이 찾고 계셧습니다" "영주님이? 무슨 일 있소?"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알겠소, 곧 가지. 어이, 갱생단.말썽 피우지 말고 얌전히 잇어" 정의남은갱생단을 쨰려주고 크로스와 함꼐 영주를 찾아갔다. 한참 서류를뒤적이던 소년 영주가 자리에서 반가운 기색을 맞이했다. "아, 정의남. 잘왔소" "무슨 일이 있습니까?" "별일은 아니오. 일단 앉아서 얘기합시다" 소년 영주는 자리를 권하고 마주 앉았다. 정의남을 썩어 가는 수렁에 보낼때와 비슷한 미묘한 미소가 입가에 감돌았다. "자네, 아직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음, 잘됐어. 혹시 내가 자네에게 경험을 많이 쌓아 두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나?" "글쎄요.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정의남은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소년 영주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실은 이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 하나 있네. 작센 영지는 지리적인 요건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모이는 곳이었지.또한 얼마전의 사건을 경험했으니 알겠지만,주변에는 아직 생태조차 밝혀지지 않은 몬스터들도 많이 서식하네. 아직 이곳의 규칙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몬스터를 모두 단속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그 어려움은 충분히 짐작합니다" 경찰이니까. "그래서 말인데..........나는 병사들과는 달리 좀 더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영지를 순찰,감독할 민간 조직을 만드렁 보고싶네. 말하자면자치대 같은 것이지. 그러나 마땅한 인재를 찾지 못하던 중 아크에게 자네를 소개받았지. 내 지켜보니 자네는 정의감에 넘치는사람이더군.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그 일을 맡겨 보고 싶은데......어떤가?" "자, 자치대요? 민간 경찰 말입니까?" "경찰? 이방인들은 자치대를 그렇게 부르나?" 소년 영주가 신기한 단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정의남은 그런것에 신경쓸 정신이 아니었다. '경찰.......!' 단어를 들은 것만으로도 몸이 가볍게 떨려 왔다. 수많은 야근과 밤샘. 폭력배와의 혈투,부상, 입원..... 과거 형사 시절을 돌이키면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정의남은 오직 불타는 정의감 하나만으로 살아왔고, 그런 그에게 형사라는 직업은 인생 그 자체였다. 때문에 발포 사건으로 불명예퇴직을 강요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사회에 불필요한 낙오자가 된듯한 기분이랄까? 그런데............그런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공직에 있는 소년 영주가 민생 치안을 위해 그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게임이지만 정의남은 이제야 자신이 설 자리를 찾아낸 기분이었다. "하겠습니다! 꼭 하게 해주십시오!" "아아, 진정하게. 아직 완전히 결정된 일은 아니니까" "네?" "자치대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내 권한을 위임받고 공권력을 가질 수 있는 조직이네. 당연히 그엥 걸맞은 자격이 필요하지. 그래야 영지민이나 귀족도 납득할수 있을테니까" "그,그렇군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정의남이 초조한 기색으로 물었다. "자네들이 몬스터를 상대로 활약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입증됐네. 남은 것은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실적 ,마침 실력을 검증할 좋은 방법이 있다네" 소년영주가 전단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 셀리브리드의 투기장 홍보 전단지였다. "이곳에서는 항상격투 경기가 펼쳐지네. 그리고 한 경기에서 승리할 때마다 승점이 주어지지.또한 일정 승점 이상을 올린강자들은 투기장에서 다달이 배포하는 소식지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네.단체전이든 개인전이든 상관없네.소식지에 게재될만큼 투기장에서 승점을 올리기만 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나?" 다시 말해 소식지에 이름을 올리면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투기장.......민간 경찰..........!' 전단지를 바라보는정의남의 눈동자가 활활타올랐다. 정말이지 바라마지 않던 기회였다. 형사와 함꼐 정의남의 삶의 보람이었던 유도, 그러나 다리를 다치고 나서 유도 대회 따위는 꿈속의 꿈에 불과해졌다. 그런데 현실보다더 현실같은 뉴 월드에도 격투기 대회라는 게 존재했다. 다시 한번 주체 못할 뜨거운 혈기를뿜어낼 수 있게 된것이다. "후후.......후후후"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실실웃음이 베어 나왔다. 살짝 맛이 간 듯한 반응에 소년 영주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이보게,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아니, 아주 좋습니다. 준비가끝나는 대로 바로 출발하죠. 설령 어떤 몬스터가 앞을 가로막는다고해도 셀리브리드에 가서 작센 영지의 위상을 드높이고 돌아오겠습니다" 정의남은 전단지를와락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치대요?" 정의남의 얘기를 전해들은 갱생단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세 정의남과 같은 증상을 보이며 히죽거렸다. "우리가............경찰이 된다는 겁니까?" "그렇다. 경찰은 그야말로 정의!나는 그것이너희들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반대하는 놈있나?" 정의남의 질문에 갱생단원들은 서로의눈치를 살폈다. 범죄자라고 낙인찍혀 버린, 어딜 가나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만했던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좋아서 나쁜 짓을 한게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나쁜 짓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좀 더 떳떳하고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정의남에게 사회 적응훈련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뛰어넘어 경찰이 될 수 있다니.........현실에서는 죽었다 꺠어나도 이루기 힘든꿈! 비록 게임이지만, 뉴 월드는 현실의 삶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 같은 게임이다. NPC들 역시 말하고 생각하는게 진짜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세계에서 경찰이 될수 있다.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없습니다!" 갱생단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정의남과 갱생단원들은 곧바로 작센의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음날 로코가 접속하자마자 곧바로 슈덴베르크의왕도, 셀리브리드를 향해 출발했다. "목표는 개인전과 단체전 석권이다!" "우오오오!" ACT 5 붉은 남자 쿠르르르!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나왔다. 사라를 따라 갈색 바위 지역을 헤매기 시작한 지 30분. 아크 일행은 까마득한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도착했다. 기란 주변을 돌떄, 아크도 한번 지나친 적이 있는 곳이었다. 꽤나 근사한 풍경이라 잠시 휴식을 취하기까지 했지만 주변에 유적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 아크가 주변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사라가 한쪽을 가리켰다. 폭포 뒤쪽에 겨우 한 사람이 통과할만한 공간이 있었다. 물안개가 뿌옇게 올라와 코앞까지 다가가지 않으면 찾을수 없는 통로였다. 사라를 따라 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자 제법 넓은공간이나타났다.그리고 좀 더 안쪽에는 이끼가 잔뜩 눌어붙어있는 아치형입구가 보였다. [정체불명의 도적단 은신처 갈색 바위 지역의 안쪽 깊은 곳에서 오래전에 버려진 듯한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버려진 페허의 하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주변에는 군데 군데 묻어 있는 핏자국과 사람이 오고 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유적 어딘가에 위험한 무리가 숨어 있는게 분명합니다.또한 의도적으로 숨어 있다면 침입자에 대한 대비가 대단할 것입니다.유적 탐사를 할 생각이라면 새심한 주의가필요합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발견하셨습니다. 새로운 발견자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700의 경험치와30의 명성을 추가로 얻을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아크는 당연한 듯 등록 거부를 하고 입구를 살펴보았다. '이런 곳에 던전이 숨겨져 있었다니!' 폭포 앞까지 온적이 있으면서도 던전을 발견하지 못했다. 설마이런 식으로 숨겨 놓았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 던전만이아니리라. 지금까지 아크가 지나온 수많은 지역에도어딘가에 이처럼 던전이 숨겨져있었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라면 놓치지 않았을 텐데........' 아크가 처음 뉴 월드로 들어섰을 때는 주변의 모든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으슥한 숲이나, 수상해 보이는 바위 따위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바위뿐인 지역에 갑자기 나타난 폭포를 보고도 아크는그냥 지나쳐 버렸다. 게임을 오래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이미 알아낸 정보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지나치게 레벨업이나 퀘스트에만 몰입한 탓이다. '하지만 뉴 월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더 많다. 그리고 그 모든건 내가 직접 찾아내야해. 앞으로는 좀 더 주변에 신경 써야겠어' 간단하게 자아비판을 끝낸 아크가 시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드 님은 여기서 야영지를 설치하고 사라와 함꼐 기다리세요" "네" 시드가 용감하게 대답하며 장작을 꺼내 모닥불을 지폈다. 그러자 사라가 시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시드 오빠는 안 싸워요? "어? 나는 상인이라서........" -큰소리는 혼자 다 치더니............. 사라가 슬쩍 눈을 흘기며 바닥에 끼적거렸다. "으으........역시 전사를 선택했어야해" 덕분에 시드는 또다시 자신의 직업 선택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아크는 둘이놀도록 내버려 두고 일단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폭포의 굉음이 던전까지 흔들어 댔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음이 들려오는데도 주변이 기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는 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 아크의 입 끝이 살짝 치켜져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오랜만의 던전이군' "데드릭,주변을 정찰해라" "알았다 ,주인" 아크는 데드릭을 앞세우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전진했다. 그러나 던전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저 통로 하나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뒤져봐도 도적은 커녕 그 흔한 쥐새끼조차 보이지 않았ㄷ. '뭐지? 사라가 도적들이 아버지를 이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걸 봤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 유적 어딘가에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 주변을 살피기 시작헀다. 그리고 몇 분 정도 지났을 무렵, 바닥에서 작은 혈흔 몇개를 발견했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 핏자국............ '이거다!' 사라 아버지가 도적들에게 끌려가며 흘린 피가 분명하다. 다시 말해 혈흔을 쫓아가면 비밀통로가 나올터,아크의 추리는 정답이었다. 띄엄띄엄 이어지던 혈흔은 이내 막다른 곳에서 끊어졌다. 친절하게도 그곳이 비밀 통로라는 것을 가르쳐 주려는 듯 몇방울의핏자국이 벽 안쪽으로 스며들어 있었다. '여기 어디에 스위치가 있는 건가?' 아크는 주변의 벽과 바닥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 봐도 스위치처럼 보이는 물건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지루한 시간이 10분가량 지났을 무렵, 문득 벽너머에서 귀에 익은 폭포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벽에 귀를 바짝 들이댔다. "정말........지루하군" "그러게 대체 언제까지.......이런 ........죽치고 있어야하지?" "별수 있어?..........명령인데, 그...........가 한동안 활동.........숨어 있으라고........" "쳇, .....도 가만 보면 의외로담력이 작다니까.대체 우리가왜.........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의 실력은 너도..........괜히 거슬렸다가는........" "그리고........여기서도..........할일은 있잖아" "아아..........그 남자가 ...........보수로 지불했던............그거 .........말이지?" "이제 곧 제대로 수확 할수 있을...........그것만 잘되면 우리도..........한몫 잡는............." "흐흐흐,하긴 그렇지............." "그보다.........소문 들었어.........요즘 주변도적단을.........헌터가 있다면서?" "아아.......들었지.........파티도 없이.......혼자였다며?" "상당히 강한놈인............모양이야.......우리와는 상관없지만..........." "젠장.........그런 놈이라도........와 줬으면............좋겠어.......지루해서 죽겠다고" 폭포 소리 때문에 내용이 중간중간 끊기기는 했지만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건 비밀 통로 안쪽에 도적들이 있다는 것! "좋아,데드릭, 해골,모퉁이 뒤로 돌아가 숨어 있어" 아크는 작은 목소리로 명령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벽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쾅, 하는 굉음이 터지며 벽이 흔들린다. 검 따위로는 흠집조차 낼수 없는 벽이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벽을 부수려는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엇? 무슨........소리지?" "밖에 들렸는데.......어딘가가 무너져........건가?" "젠장......입구가 무너지면.......귀찮은데......" "일단.......나가보자" 이어 기계음이 울리더니 벽면이 통쨰로 밀려 올라갔다. "뭐야? 멀쩡하잖아?" "그럼 방금전의 그 소리는 뭐였지?" "폭포에서 바위라도굴러 떨어진건가?" 비밀 문 안에서 3명의 도적이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은신'으로 몸을 숨긴 아크는 바로그들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도적들이 조금더 걸어 나왔을때,빠르게 뒤로 접근해 검을 찔렀다. -치명타가 터졋습니다!백스텝 효과에 의해 데미지가 200%가산됩니다. 도적은 10초간 스턴에 빠지게 됩니다. 도적의 생명력이 단숨에 30%나 빠져나가며 휘청거렸다. "뭐,뭐야?" "적이다!" 두 도적이 기겁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아크의 동작이 몇 배나 더 빨랐다. "뱀, 신경마비 독!" 독초를 받아먹은 뱀이 시꺼먼 독액을 뿜어냈다. 독액이 스민 검은 섬광처럼 공간을 가로질러도 적들의 목덜미에 쑤셔 박혔다. 그러자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도적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도적단을 상대하며 익힌 전법중에 하나였다. 공격하는 부위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행동으로, 목을 공격하면 성대가 마비된다. 그렇게되면 영악한 도적들이라도 의사소통이 되지않아 조직력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지금이다, 데드릭, 해골!B-1플랜이다!' 아크의 명령에 모퉁이에 숨어있던 소호나수가 튀어나왔다. 아크가 적 하나를 상대하는 동안 두 소환수가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B플랜 ,거기에 공수의 비율을 70대 30으로 운용하며 적의 퇴로를막는게 B-1D이다. 덧붙이자면 공수 비율이 50대 50은 B-2,20대 70이 B-3,공격을 포기하고 적의 퇴로만 막는게 B-4였다. 숱한 도적단을 해치우며 경험을 쌓은 데드릭고 해골은 도적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반격을 가했다. 그 사이 아크는 백스텝을먹였던 도적에게 맹공을 퍼부어 쓰러트렸다. 일단 적의 조직력을 무너트리면 도적은 아크의 상대가 못되었다. 유저 안에 숨어있던 도적들은 지금까지 사냥한 도적들보다강했다. 레벨도 무려 100! 반면 ㅏㅇ크의 레벨은 85에 불과했지만 이곳은 던전이다. 30%의 어둠 속성 보너스로 보장된 수치는 110에 달했다. 동시에 스킬 숙련도도 30%나 올라가 모든 감각이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고양이의 눈으로 약점이 필요하면 여지없이 감을 쑤셔 받혔다. 휘청거리는 도적에게는 멋들어진 발차기가 적중했다.거기에 중간중간 신경마비 독으로 목을 공격하자 제대로된 연계플레이도 할수 없는 도적들은 금세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또다시 한 놈이 쓰러지자 남느 도적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느 입을 쩍 쩍 벌리며 도망쳤다.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이리라. '놓칠것 같으냐?' 아크는 삐르게 달려가 다리를 베어 넘겼다. 맹독에의해 다리가 마비된 도적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곧바로 발동되는 더블 크리티컬찬스! 그다음의 결과는 보지않아도 뻔하다. "뭐,이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군" 생명력을 확인해 보니 30%밖에 깎이지않았다. 하지만 이안에 얼마나 많은 도적이 숨어 있는지 알숭벗어, 조심해서나쁠건 없겠지"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주변을 밝히고 '은신'으로 몸을 숨긴채 비밀통로로 들어섰다. 비밀 통로 안은 외길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몇 분정도 따라가자 이내 광장 같은 곳이 나타났다. 광장 양옆에는 발코니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각각 2명의 도적들이 보초를 서고있었다. 사각이 없다. 양쪽 발코니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면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리라. 그러나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아크에게 그런 철통같은 경계망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는 발코니로 올라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는군. 그럼더 안쪽으로 발코니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건가? 계단을 찾을 떄까지는 들키지 않는게 좋겠어' 아크는 발소리를 죽이며 광장을 가로질렀다. 아무리'은신'을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주변에섯 감시의눈길을 번뜩이는 곳을 지나려니 꽤나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막 광장을 지나려는 찰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태가 발생했다. 발끝에 뭔가 걸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어깨가 뜨끔해졌다. -트랩이 발동되어 치명타를 맞았습니다!데미지200. '출혈'에 걸려 1분간 5초마다 10의 생명령이 소모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함정이다. 아직까지 아크는트랩을 사용하는 적과 싸워 본적이 없었던것.그러나 문제는 트랩이 아니다. 일격을 허용하자 바로 전투 상태로돌입하며 '은신'이 풀렸다. 순간, 눈뜬 장님이었던 도적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침입자다!"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지?" "뭐든 상관없어!죽여 버려!" 좌우 2명씩, 총 4명의 도적들이 활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화살들!상황이 에기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아크는당황하지 않았다. 도적단을 상대하며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겪어 보았다. 새삼 당황해 허둥댈 이유가없었다. "데드릭 ,해골!B-4다!" "우익, 아,알았다!" 딱딱딱! 데드릭과 해골이 전력을 다해 회피 동작을 펼쳐 두발의 화살을 피해냈다. 그때, 아크는 검을 꽉 움켜쥐고 온 신경을 날아오는 화살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네 발의 화살이 막 닿으려는 순간,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검 끝을 튕기듯 쳐 올리는 것과 동시에 세차게 앞으로 밀어냈다. 순간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 판정이 이뤄지며 화격이 발동되었다. 화살이 쏘아지는 것보다 빠르게 되돌아가 도적들에게 적중되었다. "커억, 어,어떻게 화살을......!" 도적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경악성을 터트렸다. 은빛 화살 도적단에게 궁지에 몰린 뒤로 쉬지 않고 화격을 연마한 성과였다. 덕분에 화격 발동률이 한계까지 올라가 검은 물론, 화살조차 70%의 확률로 화격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일단 화살은 첫 일격을 화격으로 되돌리면 상대하기 편했다. 화살이 적중되면 높은 확률로 상태 이상에 걸린다. 그리고 그것은 도적들도 마찬가지다.2명의 도적이 마비와 슬로우 따위에 걸리자 화살을 날리는 속도가 달라졌다. 즉, 도적들이 위기를 느껴도 네 발의 하살이 동시에 날아올 일은 없다는 뜻!거기에 데드릭과 해골에게 날아가는 화살도 있으니 아크의 부담은 한결 적어졌다. 아크에게 날아오는 화살은 최대 두발이 한계였다. 충분히 화격으로 되돌릴 수 있는 숫자였다. 그렇게 아크가 네 다섯번 화살을 되돌리자 도적들의 생명력이 40%가량 깎여 나갔다. 그러나 100%확률은 아니었다. 화격이 성공해도 되돌리기가 발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화격을 실패하면 패널티가 작동해 몸이 경직되었다. 그럴 때면 속수무책으로 화살에 적중되어 결국 생명력이 50%가까이 깎여 나간다. '놈들은 4명이다. 게다가 화살이 상태 이상에 걸리면 화격의 성공률도 내려간다.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해' 그때, 주변을 날아다니며 화살을 피해 내던 데드릭이 뭔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기 스위치가 있다!" "엇?저,저놈이.........!" "우히히히,제대로 찾아낸 모양이군. 이건 뭐지? 이건 뭘까나?" 철컥, 쿠르르릉! 데드릭은음흉한 웃음을 짓고는당황하는 도적들이 날리는화살을 피해 내며 스위치를 내려버렸다. 그러자 기게음이 울리며 엘리베이터처럼 발코니가 아래로 내려왔다. 따로 계단이 있는게 아니라, 기계로 조작 하게 되어 있었던 모양. "잘했다.데드릭!" 아크의 눈동자에서 섬뜩한 빛이 흘러나왔다. 졸지에 아크의 코앞에 서게 된 도적들이 숨 막히는 비명을 터트리며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궁수 계열의 NPC가 휘두르는 단검 따위에 마을 아크가 아니다. 아크는 곧바로 소환수와 함께 달려들어 4명의 도적을 바닥에 눕혀 버렸다. '휴.......역시 파티 퀘스트라 만만하지 않군' 이곳의 도적단은 레벨도 높고,지리적인 우위도 선점하고있다. 아마도 도적단을 사냥하며 경험을 쌓지 않았다면 바닥에 누워 있는 건 아크였으리라. '어쩌면 이곳을 늦게 찾은게 다행인지도 몰라' 아크는 음식으로 생명력과 마나를 100%회복한 뒤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처음 들어섰을 때보다 더욱 신중해진 걸음걸이였다. '설마 동굴에 트랩이 설치되어 있을 줄이야' 가장 큰 문제는 트랩이다. 다행히 이번에 걸린 트랩은 데미지만 주고 끝났다. 그러나 앞으로 나타날 트랩도 같은 수준이라고는 장담할 수 ㅇ벗다. 만약 동굴 전체에 경보가 울리는 트랩이라도 밟아 버린다면 문제가 심각해질수도 있다. 그러나 아크는 트랩을 발견하기도 해제하기도 힘들다. 트랩관련 스킬은 궁수 계열인 사냥꾼이나 유적 탐험가 같은 직업만 배울수 있다. 물론 모든 행동이 자유로운 뉴 월드의 시스템상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문 지식을 배우지못한 상태에서는 상당한 패널티가 작용해 성공률은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파티용 퀘스트 관련 던전이라 직업 조합이필요하도록 만들어진 모양이다. '어쩌지? 트랩을 무시할 수도 없고........' 아크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떄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해골이 앞으로 나서며 이를 마주쳤다. 충성도가 만땅인 해골! 그러나 데드릭이나 뱀이 앞서 진화해 버리자 활용도가 점점 줄어들었다. 겨우 아크가 집어 던지거나, 적이 발목을 물어뜯는게 요즘들어 해골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음식으로 힘과 체력은 많이 올렸지만 팔다리도없으니 이렇다 할 공격 방법이없었던 것. 그 때문인지 해골은 근래 들어꽤나 의기 소침해 있었다. 뭐, 그래봐야 해골이니 표정을 알아볼수는 없지만 소환주인 아크는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그런데 아크가 난감한 상황에 빠지자 기회는 이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해골, 갑자기 왜그래?" 딱딱딱! 해골은 뭔가 단단히 각오를 한듯, 용감하게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몇 미터를 전진했을 때 돌연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양쪽 벽에서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트랩을 설치한 사람도 설마 해골이 작동시키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으리라. 당연히 인간의 크기에 맞춰 쏟아져 나온 화살은 몽땅 허공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군!그런 방법이 있었어!" 딱딱딱!딱딱딱! 해골이 으스대듯 깡출거리며 이를 마주쳤다. "좋아, 해골. 트랩은 너에게 맡기겠다" 그 뒤로 해골은 항상 10여 미터를 앞서 굴러가며 트랩이란 트랩은 몽땅 작동시켜 버렸다. 당연히 화살이 쏟아지거나, 양쪽에서 날카로운 검날이솟구치는 트랩도 해골에는 무용지물.가끔 위에서 아래로 뭔가가 떨어지는 트랩도 있었지만, 해골도 체력이 높아져서 한방은 거뜬히 버텨넀다. 또한 아크가 걱정했던 경보가 발동하는 트랩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소환수가 트랩을 발동시킨다고 바로 전투 상태로 돌입하지는 않았던것. 멀리 떨어져 '은신'을 하고 있으면 몰려온 도적들에게 발각되지 않는다. 반면 트랩을 작동시킨 해골은 소환해제로 유계로 돌려보내면 간단하게 도적들을 속일수 있다. "뭐야? 트랩이 왜 발동한거지?" "주변에 적이 없잖아?" "젠장, 들쥐 따위가 건드리고 간건가?" 도적들은 몇 분동안 이렇게 떠들며 주위를 경계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대처 방법을 찾아낸 아크는 조금씩 던전안으로 들어갔다. 던전은 비교적단순한 구조였다. 하나로 길게 이어진 통로를 지나면 궁수들이 있었던 곳 같은 넓은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에 대기하고 있던 도적 3~4명을 처리하면 긴 통로가 이어지는 식이었다. 넓은 공간마다 대기하고 있는 도적들은 여러가지 조합을 갖춰 꽤나 까다로웠지만, 이미 도적들의 조합은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본 아크다. 그때마다 적절히 작전을 운용하며 관문을 하나씩 격파해 나갔다. 그렇게 10개 남짓의 방을 지났을 떄였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길게 이어지던 통로가 끝나자 커다란 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가 두목의 방인가?' 트랩과는 다르다. 문을 열면 당연히 상대도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아채리라. 아크는 새삼스럽게 장비를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여전히 폭포 소리가 던전을 울렸지만 문이 마찰되며 흘러나오는 쇳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웬 놈이냐!" 그떄, 갖가지 실험 도구가 널려 있는 방안쪽에서 날 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자 검은 로브를 걸친 인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인간 NPC가 아니었다.인간형 몬스터..........후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놀랍게도 파충류였다. 동시에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드리고니안 신비술사 커클'이 출현했습니다! 뱀의 그것과 같은 노란색 눈동자가 빙글 돌아가며 아크에게 꽂혔다. "현상금 사냥꾼인가? 아니, 현상금이 걸렸을 리가 없는데.......뭐, 상관없지.이곳에 들어온 이상 살아서 나가지는 못한다!" 커클 역시 도적과 같은 레벨 100이었다. 그러나 보스 몬스터 보너스를 생각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역시 같은 + E난이도라 그런지 아드리안과 동급의 보스몬스터였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아드리안에게 쫓겨 다니던 시절의 아크가 아니다.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씨익 웃었다. "그건 네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지" "건방진 놈, 감히 인간 주제에!" 번쩍-! 커클이 주문을외우자 3~4개의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법사로 전직하자마자 배우는 하급 마법 에너지 볼트. 전사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기본 공격 마법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 번에 서너 발이나 날아오니 무시할 수없다. 아크는 바닥을 구르며 마법을 피해 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날아들던 마법에 화격을 날렸다. 퍼퍼펑! "크윽,이, 이럴수가!" 커클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됐어!마법에도 화격이 먹힌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길수 있어!" "데드릭, 해골! A-2플랜이다!" 아크의 명령에 데드릭과 해골이 세 방향으로 퍼졌다. 그리고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정신 사납게 움직이자 커클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당연히 아크에게 날아오는 공격도 적어져서 날아오는족족 화격을 시전할 수 있었다. 커클은 만만치 않다고 느꼈는지 점점 더 강력한마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강력한 마법일수록 캐스팅 시간이 길어지고, 마법의 형태는 더욱 커졌다. 축구공만한 파이어 볼 같은 마법은 오히려 작은 에너지 볼트보다 화격을 성공시키기가 쉬웠다. 콰콰쾅! 또다시 파이어 볼을 되돌리자 커클의 생명력이 10%나 줄었다. 비록 보스 몬스터라도 마법사라 방어력이 형편없었던 것. '아드리안과 같은 레벨이라 긴장했는데, 막장 붙어 보니 그리 어려운 보스는 아니군. 아니, 내가 그만큼 강해진 건가?어쨌든 이 정도면 문제 없어!' 자신감이 붙자 아크는 더욱 집중력이 올라 마법을 날아오는 족족 되돌려 버렸다. 그러나 아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보스 몬스터의 특수 스킬. 그렇게 대략 5분이 지나 커클의 생명력이 50%까지 줄어 들었을 떄였다. 아크에게 공격 마법이 먹히지 않자 커클이 거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더니 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인간 따위에게 이런 방법까지 동원해야 한다니!" "데드릭, 해골!놈이 주문을 외우지못하도록 막아라!" 그제야 뭔가 불길함을 느낀 아크가 소리쳤다. 그러나 데드릭과 해골이 달려들기도 전에 커클의 마법이 완성되어 버렸다. "의태!" 순간 커클의 모습이 훅 하고 사라졌다. 아크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갑자기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아크가 사용하는 '은신'과는 성질이 다른 스킬이었다. '은신'은 전투 중에는 사용할수 없다. 또한 고양이의 눈에는 낮은 등급의'은신'을 간파하는 효과도 있었지만, 커클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커클은 몸을 숨긴채로 마법까지 사용했다. "일어나라, 강인한 암석의 결정체들이여!"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커클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지면이 들썩이더니 인간 크기의 골렘들이 솟아 나왔다. 레벨은 대략 50대 전후,그러나 숫자는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골렘들이 몰려나오자 상황은순식간에 돌변했다. 콰쾅,콰콰쾅! 골렘들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아크와 소환수를 공격했다. 레벨 50이라 맞아도 큰 데미지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아직 레벨 40전후인 소환수의 경우는달랐다. 최대한 회피 동작을 펼치고는 있지만 한방 맞을 때마다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간다.거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커클이 갑자기 날려 오는 마법까지! '젠장, 대체 뭐 이런 거지 같은 기술이......!' 아크는 정신없이 골렘을 쳐 내며 이를 갈아붙였다. 아크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겪어 봤다. 해저에서 먹물을 뿜어내던 옥토와 싸울 때였다. 그떄, 아크는 오직 물살의 흐름과 낌새만으로 적을 찾아 치명타를 날렸다. 그러나 커클에게는 그런 방법도 사용할 수 없다. 20여 마리의 골렘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통에 방 전체가 울려 대니 커클의 낌새를 알아챌 방도가 없었다. 콰직!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먼저 해골이 골렘들에게 밟혀 버렸다.이어 골렘들에게 포위된 데드릭도 커클의 마법에 적중되어 사라졌다. 덕분에 추가 데미지까지 받아 버린 아크는빈사 상태까지 몰려 버렸다. '틀렸어, 이상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다!' 아크는 황급히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왔다. "크크큭, 놓칠 것 같으냐?가라, 충성스러운 하인들이여!" 골렘들이 바닥을 울려 대며 쫓아 나왔다. 그리고 골렘들 사이에 몸을 숨긴 커클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버럭 몸을 돌려세운건 그때였다. '화격!' 아크는 골렘이 휘두르는 팔을 쳐내며 화격을발동시켰다. 방 앞에는좁은 통로가 일자로 이어진 지형. 게다가 상대는 골렘이라도 중형 크기다. 화격에 맞은 골렘은 그대로 튕겨져 날아갔고, 이어 우글거리며 쫓아오던 골렘들과 충돌해 버렸다. 스트라이크! 골렘들이 뒤엉켜 도미노 처럼 넘어졌다. "으윽, 이, 이놈이......!" 골렘사이에 숨어있던 커클도 어딘가에 깔려 버렸는지 마법이 취소되어 버렸다. 그사이, 아크는 미친듯이 통로를 달렸다. 그렇게 1분가량 도망쳐 간신히 추격을 뿌리치자 전투 상태가 풀렸다. 아크는 곧바로 '은신'을사용해 몸을 숨겼다. "이런망할......!놈이 어디로숨은거지? 골렘,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라.놈은아직 이 근처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잠시후 몰려온 골렘들 사이에서 커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여전히의태 상태라 공격할 수단이 없었다. 아크는 할 수 없이 '은신'상태로 다시 비밀 통로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정보창을 살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골렘의 특성인 방어구 파괴 덕분에 모든 장비의 내구력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다. 아직 마법 복원이 중급이라 마법장비를 수리하면 최대 내구도가 깎여 나간다. 아크는 어쩔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몇개 남지도 않은 수리 상자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장비 수리가 아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어찌어찌 도망은 나왔다. 그러나 상황은 이전부터 좋지 않았다. 이미 놈은 의태를 사용하고 골렘까지 소환해 놓은 상태였다. 반면 아크는데드릭과 해골까지 잃어버린 상태. 다시 싸워봐야 결과는 뻔했다. '젠장, 그놈의 의태만 아니라면 골렘이 있어도 별문제는 없는데........' 가장 큰 문제는 커클의특수 기술인 의태였다. 전투 상태에서도 투명 상태를 유지할수 있는 이상, 공격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옥토의 먹물 공격이라면 어떻게든 됐겠지만......' 눈이 안보였던 해저에서의 경험에서 힌트를 찾으려고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었다. 옥토의 먹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래, 보이지 않으면 보이게 만들면 되잖아!' 아크는 벌떡 일어나 던전 입구로 뛰어갔다. 입구에서는 시드가 벽에 기댄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사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던전 안을 살펴 보고 있었다. 누구는죽어라 고생하고 있는데 편하게 낮잠이라니...... "어? 아크님!끝나신 거에요?" "아니요.적 보스가 생각보다 강해요" 아크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하자 사라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괜찮아.무슨 수를써서라도 아버지를 구해줄게" 아크는 걱정말라는 듯이 웃어 보이며 시드에게 말했다. "보스를 해치우려면 시드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네? 하지만 저는........" "싸워 달라는 게 아니에요.'그거'있죠? 그것만 주시면돼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멍청한 놈, 죽으려고 다시 기어들어왔구나!" 아크가 다시 비밀통로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커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바로 골렘들이 몰려들었다. 순간, 아크는 화격으로 골렘을 쳐 내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크크큭, 아무리 지랄해 봐도 소용 없다!네놈이 나를 보지 못하는 한, 결코 잡을 수 없다!" 이미 수 미터나 도망간 커클이 히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아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진건 그때였다. "그럼 꼭 봐야만하겠군" 아크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가방에서 뭔가 큼직한 꾸러미를 꺼내든아크가 그것을 허공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검을 휘두르자 구러미가 터져 나가며 형형색색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커클이 당혹스러운 비명을 터트린건 그때였다. "여, 염료!" 사방으로 튀는 형형색색의 액체는 바로 염료였다. 아크는재봉스킬에 사용하기 위해 시드가 가지고 있던 염료를 몽땅 긁어 온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허공에서 폭파시켜 염료를 사방으로 흩어 버렸다. 그 결과, 삭막하기 이를데 없던 던전은온통 갖가지 색의 염료로 무지개처럼 예쁘게 리폼되어 버렸다 "이,이럴수가........!" 그리 민첩하지 못한 커클역시 염료를 뒤집어 쓰고 무지개 도마뱀이 되어버렸다. 아크는 검을 들어올리며 빙긋 웃었다. "예쁜데? 그럼 어디.......이제 정정당당하게 싸워 볼까?" "고, 골렘,놈을 죽여라!" "상황 판단을 못하는도마뱀이군" 아크는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화격을 날렸다. 그러자 골렘 하나가 튕겨져 나가며 커클과 함께 벽에 처박혔다. 아크가 커클을 어려워한 것은 골렘 때문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은 채로 골렘 사이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그러나 의태가 깨졌다면 상황은 다르다. "뱀, 신경마비 독!" 아크는 맹독을 바른 검을 휘둘러 커클의 목 줄기를관통시켰다. 덕분에 성대가 마비된 커클은 공격 마법조차 외우지 못했다. 또한 골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어 골렘들의움직임이 어수선해졌다. 한순간에 수세에 몰려버린 커클이 허둥지둥 도망쳤다. 그러나 아크는 그럴 때마다 화격으로 골렘을 날려 커클에게 적중시켰다. 간신히 성대마비가 풀린 커클이 버럭 소리쳤다. "으악! 이 멍청한 골렘 같으니!" "어이,어이, 너 성격 나쁘구나. 그래도 너를 위해 목숨을걸고 싸워 주는소환수잖아. 소중하게 다뤄야지" 수틀리면 소환수에게 끔찍한 음식을 퍼먹이는아크가 할 소리는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몇 분 정도 싸우자 커클은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비,빌어먹을!할 수 없군. 두고보자. 인간!가속!" 커클이 이를 갈아붙이고 가속 마법을 시전하며 꽁무니를 뺐다. 당황한 아크가 황급히화격으로 골렘을 날렷지만 가속으로 속도가 2배가 된커클은 이미 모퉁이를 돌아간 뒤였다. 던전 밖에는 폭포가 있다. 놈이 폭포로 염료를 씻어 내기라도 한다면상황은 다시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없는 것이다. "망할 도마뱀 자식, 끝까지 귀찮게 하는군" 아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커클의 뒤를 쫓았다. 그 사이, 커클은 던전 입구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히익, 저, 저게뭐야?" 입구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대던 시드가 괴상한 표정으로 비명을 질렀다.하긴, 온몸을 무지개 색으로 물들인 도마뱀이 미친듯이 달려드니 놀라지 않는건 무리리라. "비켜라, 호비트!" 커클이 달려가며 마법을 외웠다. 그리고 막 커다란 화염구를 쏘아 내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움찔하더니 썩은 짚단처럼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뭐,뭐........?" 뒤따라오던 아크가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멍청이!내가 아무런 대책도 세워 놓지 않았을 것 같으냐?" "서,설마......트랩?" "네놈들에게 배운거지" 정확히 말하자면 트랩은 아니다. 아크와 시드는 트랩을설치할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그러나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는 뉴 월드이니 비슷한 종류라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게 바로 시드가 재봉 기술에 사용하는 바늘! 아크는 다시 던전을 들어서기 전에 입구에 바늘을 촘촘하게 깔아두었다.그리고 서비스로 바늘 끝에는 뱀의 맹독까지 정성껏 발라두었다. 수준 높은트랩이 아니니 노골적으로 반짝였지만 아크에게 좇기던 커클은 미처 발밑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던 것. "마,말도안돼!내가 고작 바늘 따위에.....!" "너무 끈질기면보기 좋지 않아. 기왕 이렇게 된거 깔끔하게 죽으라고" "웃기지마라! 나는 위대한......." 두다리가 뻣뻣하게 굳어 버린 커클이 당항하며 서둘러 주문을 외우려 했다. 그러나 아크가 검을 휘두르는 게 몇배는 더 빨랐다. "다크 블레이드!" 쩍 소리가 나며 검이 커클의 가슴을 관통했다. 의태가 풀리며 본래 모습을 돌아온 커클의 몸이 서서히 사라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커클이 완전히 사라지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오르며 레벨이 86이 되었다. 시드의 머리 위에도 십자 문양이 떠오르는 걸 보니 레벨이 오른 모양이다. 파티 상태였지만 던전 안에서 도적들을 잡은 건 거리가 멀어 시드에게까지 경험치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아크는파티에게 주어지는추가 경험치는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도적의 경험치도 100%독식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도적단을 처리하며 9일만에 7레벨이나 올린것은 그런 방식으로 싸워 온 덕분이다. 그러나 커클은 시드의 앞에서 죽어 경험치가 똑같이 분배 된것이다. '뭐, 경험치를 아까워할 상황은 아니지만.....' "이제야 해치웠네요.어쨌든 시드님이 제대로 연기를 해서 놈을 속였어요" 아크가 아직도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시드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러자 시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정말 무서웠다고요!" '뭐냐,이건......' 게임 초보자도 아니고,상인으로 60레벨까지 올린사람이 그게 할 소리냐? 대체 시드의 현실모습이 어떤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시드의 도움 덕분에 보스를 처리했다. 아크는 시드를 토닥여 주고 두목이 떨군 아이템을 확인해보았다. [어둠의 로브(마법) 방어구 타입 : 로브 방어력 : 20 내구력 : 4/40 무게 : 10 사용 제한 : 레벨 70이상 신비한 마력이 담긴 비단으로 만들어진 로브,비단에 스며 있는 마력에 의해 착용자의 정신을 언제나 평온하게 유지하는 효과를 가지고 이싿. 평온한 정신은 집중력을 대폭 상승시켜 마법을 더욱 원할하게 펼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옵션 : 마법 시전 성공률 + 20%,마법 시전 속도 +20%}] -도적단의 열쇠 [수상한 목걸이 : 70레벨 퀘스트 시작 아이템 희미하게 마력이 감지되는 재질로 만든 목걸이 입니다. 마법 학회에 확인을 의뢰하면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스 몬스터답게 일단 장비 아이템 하나가 떨어졌다. 마법 사용이지만, 옵션을보니 꽤나 잘 팔릴 듯한느낌이 팍팍 든다. '간만에 한 건올렸군.열쇠는 사라 퀘스트에관련된 걸테고 ,그런데 이 목걸이는........?' 아크의 이목을 끄는 것은 수상한 목걸이였다. 목걸이 재질은 바로 샤넨이 보여주었던 ,심혼의 구슬을봉인하고 있던 프로텍트 조각과 같은 재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퀘스트시작 아이템이라고 나온다. 즉, 샤넨에게 퀘스트를 받지 않은상태에서 던전에 왔어도 이 목걸이를 가지고 마법 학회를찾아가면 아크와 같은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군, 원래 그 퀘스트는먼저 이 던전을 찾아내 소탕해도 받을 수 있는 거였어. 나는 이벤트 퀘스트에서 마법 학회와 호감도가 높아져서 순서가 뒤바뀐거야' 다시말해 일단 목적했던 도적단은 제대로 찾아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미간을 찡그렸다. '가만,이게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라고? 그럼 이던전안에는 심혼의 구슬이 없다는 말이잖아? 여기 심혼의 구슬이 있다면 보스가 퀘스트 시작 아이템을 줄리가 없으니까,결국 이제야 퀘스트의 시작 단계에 들어섰다는 말이네.........' 아무래도 마법 학회의 퀘스트는 아크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질 모양이다. 던전을 정리한 아크는 시드, 사라와함꼐 보스가 있던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다른 비밀 통로가 하나 더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자 이름 모를 풀이 뺵빽이 들어찬 공동이 나왔고, 그 안쪽에 감옥이 보였다. 감옥 안에는 10여 명의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아크가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열자 사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 중년 남자에게 뛰어갔다. 그가 사라의아버지인 모양이다. "아직 살아 있어서 잘됐네요" 시드가 감격스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을 때여싿. "비,비켜!" "에엑?"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중년 남자가 달려드는 사라를 밀어내며 수풀 쪽으로 달려갔다. 그만이 아니었다. 감옥 안에 있던 살마들은 아크 일행은 보이지도 않는듯 미친 듯이 수풀로 달려가 풀을 뜯어 입에 우겨 넣었다. 그리고 이내 뭔가에 홀린 것처럼 몽롱한 시선으로 주저앉아 침을 질질 흘려댔다. 중년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라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흔들어 대도 아무런반응조차 없었다. "아, 아크님?" 시드가 어리둥절한 눈길을보내왔다. 아크는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널브러져 있는 수풀로 다가갔다. 아크의 키만큼 자라있는기묘한 형태의 식물.아마도 이들의 이상한 행동은 이 식물과 관계가 있으리라. 식물의 잎을 몇 개 따보니 자동으로 식재료 감별 스킬이 발동하며 정보창이 올라왔다. [누룬마의 잎(식재료) 특수한 환경에섬나 자라는 대마과의 식물. 잎은 진통 효과를가지고 있어 정제하기에 따라 뛰어난 치료제로 사용된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중독성과 환각 성분이 대량 포함되어 있어. 정제 방법에 따라 마약과 같은 효과를내기도한다. 그냥 잎으로 먹어도 효과가 발동되어 과거에는 전사들의 흥분제로도사용되었으나, 한 번 중독 되면 끊기 힘들며 심하면 이성조차 마비되기때문에 현재는 모든 대륙에서 생산과 유통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어있다] "역시 마약인가......." "마,마약이요?" "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은 모두 마약에 중독 된거 같아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제 대강의 상황이 머릿속에그려졌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밖에서 활개 치던 도적단이 갑자기 유적 속에 숨어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 아마도 그 무렵,누군가가 그들에게 이 유적에서 누룬마가 자생한다는 사실을알려 준게 분명했다. 당연히 도적들은 마약을 제조해 한몫 잡아보기 위해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했겠지. "아마도 감옥에 갇혀 있던사람들은, 더 효과 좋은 마약을 만들기 위한 실험 재료로 사용하려고 근처에서 납치해 온 여행자들일 거에요. 그리고 사라의 아버지 역시........" "...........!" 둘의 대화를 듣던 사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사라의 아버지가 납치도니지 게임 시간으로 이틀남짓, 불과 이틀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버지가 어느새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린것이다. 사라는이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중년 남자를흔들어 댔지만 정작 그는 환각에 빠져 실실 거릴 뿐이었다. 보다못한 시드가 울상이 되어 물었다 "아,아크님.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 이대로는 너무......." "확실히 이대로는 곤란하죠" 아크는 머리를 벅벅긁어 대며 대답했다. 정말 이대로는 곤란하다. 갖은 고생끝에 이제야 도적단을 물리치고 사라의 아버지를구했다. 그런데 정작 퀘스트를완료하고 보상을주어야 할 중년 남자가 침이나 질질 흘리고 있으니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마법 학회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어찌됐든 그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통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 보는 수밖에 없지' "모두들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 여러분이느끼고 있는 쾌락은 결코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결국 당신들의 몸과 마음을 파멸로 이끌고 갈 악마의 유혹일 뿐입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유혹을 떨쳧 내십시오. 당신은 할수 있습니다" 아크는간병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중독자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미 환각에 깊게 빠져 아크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상태가 된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생잎을 먹은 탓에금세 약효가 떨어진 사람들은 다시 좀비처럼 몸을일으켜 누룬마의 잎을 허겁지겁 따 먹엇다. "그만둬요!정신 차리란 말이에요!아앗!" ".........!" 시드와 사라가 뛰어다니며 뜯어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중독자들은 오히려 광포하게 둘을 후려치고는 누룬마에 다랄붙었다. 보다못한 아크가 그들을 두들겨 패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두들겨도 그들은 고통조차 느끼지 않았다. 생명력이 1%밖에 남지 않아도 바닥을기어가 누룬마의 잎을 입속으로우겨 넣었다. 아마도 그냥 두면 유적 안의 누룬마가 모두 사라질때까지 같은 상황만 반복되리라. '젠장, 이래서 마약중독이 무섭다는 건가? 그러핟고 이들을 몽땅 죽여 버릴 수도 없고.................이러다가는 끝도없겠군.다시 감옥에 가둬 놓고 상황을 지켜봐야하나?'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번쩍이며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혹시 금 방법이라면......!' 아크는 곧바로 냄비를 꺼내들고 요리를만들기 시작했다. 중독자들이 누룬마의 잎을 따먹는 와중에 한가롭게 요리나 하고잇자 시드와 사라가 어이없는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곧 괴상한 냄새가 풍기는음식 15인분을 만들어냈다. "됐어,시드님,사라.내가 잡고 있을 테니 이 음식을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먹여요!" "네? 그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빨리 먹여요!"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중독자 1명을 잡아 눌렀다. 그리고 발버둥 치는 중독자의 입을 억지로 벌리자 시드와 사라가 음식을 쑤셔 넣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음식을 먹은 중독자가 비틀거리며다시 누룬마의 입을 따 먹었을 때였다. "크윽, 우 ,우웨에에엑!" 중독자는 누룬마의 잎을 삼키기가 무섭게 다시 토해냈다. '역시 생각대로다!' 아크의 눈빛이 반짝였다. 아크가 만든 음식은 바로'입맛을 없애는 스튜'였다. 일단 먹으면 2시간 동안 다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맛없는 스튜. 만약 억지로 음식을 먹을 경우,토하게 되고 그동안 먹은 음식의 효과까지 감소하게 되는 부가효과가 있었다. '어차피 누룬마의 잎도 먹는 음식이다. 먹어서 중독이 되고환각을 본다. 즉, 뉴 월드에서는 마약중독도 음식 효과의 하나라고 볼수 있어.그렇다면.......' 누룬마의 잎을 억지로 먹고 토한다면 '입맛을 없애는 스튜'효과로 그동안 쌓여온 마약중독 효과를 약화 시킬수 있지 않을까?......라는게 아크의 생각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누룬마의 입을먹고 토하기를 수십번, 중독자들의 눈동자가 조금이지만 맑아 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세한 변화에 불과했지만 이제 희망이 보인다. '좋아, 이제부터는 인내심의 싸움이다!' 상대는 마약중독자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단번에 회복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크는그 뒤로 꾸준히 음식을 만들어 먹였다.그리고 잠시라도 이성이 돌아오는 중독자에게는 곧바로 간병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장장 6시간.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한 시드와 게임 시간으로 이틀이 넘도록 제대로 자지 못한 NPC 사라가 벽에 기댄 채 꾸벅 꾸벅 졸았다.아크 역시 잠시라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기절해 버릴 만큼 지쳐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시뻘개진 눈을 부라리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그리고 15명이나 되는 중독자 사이를 뛰어다니며 음식을 퍼먹이고 쉴새 없이 간병 스킬을 난사했다. '퀘스트 완료가 눈앞이다!잠이 오겠냐?' 오직한시라도 빨리 퀘스트를 완료하겠다는집념! 그리고 집념은 기어코 기적을 불러왔다. "악마의 유혹을 이겨 낼수 있는건 오직 당신들의 의지뿐입니다. 이겨 내십시오.자신을 위해 그리고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으락족을 위해! 지금이야 말로 당신이 사랑하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의지를 보여 줄 때입니다!" 몇 번쨰인가? 녹초가 되어 횟수조차 헤아리기 힘들 만큼 간병 스킬을 사용했을 때였다. 아크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지며 공동 안이 환하게 밝혀 졌다. 중독자들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그늘이 녹아들듯 사라진건 그때였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간병으로 많은 살마들을 가장 끔찍한 절망으로 부터 구해 냈습니다. 질병과 상처, 고통만을 겪는 사람만이 병자가 아닙니다. 달콤한 쾌락으로 유혹해 정신을 갉아먹는 마약에 중독되어 혼자 힘으로 벗어날수 없는 사람들 역시 고통 받는 병자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이 병자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을 간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구해 내겠다는 집념과 인내심만이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입니다. 당신은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해 이들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쏟았습니다. 가슴을 꿰뚫는 단 한마디 말이 중요할 때도 잇지만, 진정한 간병이란 이처럼 꾸준한 인내심으로 병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이제 병자들은 당신의인내심을 배워 누룬마의 유혹을 이겨 낼 것입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집념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됬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해, 해냈다!' 아크는 기진맥진한 얼굴로 털썩 주저 앉았다. 그때, 공동을 가득 채웠던 빛에 시드와 사라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막 환각 상태에서 깨어난 중년 남자가 멍한 눈으로 사라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오..........오오, 사라!사라야! 무사했구나!" 사라가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가 중년 사내를 꽉 껴안고 눈물을 펑펑 흘려댔다. 시드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뜨거운 부녀 상봉을 지켜보았다. "아, 아크님. 정말 해내셨군요!" 아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직 퀘스트 해결을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막상 사라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성취감 이상의 그 무엇이 느껴졌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사람이나 NPC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중독자를 치료하는 동안 , 어느새 퀘스트 완료보다 자면서까지 눈물을 흘리는 사라의 못브이 더욱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기적의 간병은 단순히 스킬 레벨이나, 사용 횟수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병마에 시달리는 NPC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진심 어린 간병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런 심경의 변화가 기적의 간병을 성공한 계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사라가 아니었다면 기적의 간병은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방법이야 어쨌든 사라 아버지가 정신을 되찾았으니 퀘스트도 완료할 수 있으리라.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은 사내. 한슨이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와 시드라고 햇는가? 정말 고맙네. 딸아이를 구해 주고, 이렇게 나까지 구해 주다니.대체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야 당연히 보상으로......' 아크는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꿀꺽 삼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쨌든 무사하신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오오!아직 자네 같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니.역시 세상이 아직 못 살만큼 척박해지지는 않은 모양이군. 하지만 도움을 받고도 모른척 한다면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가진 게 없으니......" 한슨은 여기저기에 달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생각해 내!잘 찾아보면 뭔가 있을 거야!더 찾아보라고!' 아크의 응원이 효과를 발휘했다. 잠시 후 한슨은 문득 생각 난듯 허리에 달린 가죽 주머니를 들어 올렸다. "미안하게도 내가 가진 게 이런 것뿐이네. 그것도 하나뿐이군.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네. 지도를 제작하는 요령이지. 괜찮다면 한 사람에게는 이 가죽 주머니를 .다른사람에게는 지도를 제작하는 요령을가르쳐 주겠네. 어느쪽이든 자네같은 이방인이라면 쓸모가 있을 거네" [보상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지도 제작 (스킬 전수) 지도 제작사 한슨이전수하는 지도 제작 스킬. 스킬을 배운 유저가 필요한 종이와 펜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 지나간 자리가 자동으로 그려진다. 또한 마을에 들르면 각종 주요 정보를 파악할 수 있으며, 던전의 지리와 주요 정보도 자동으로 기록된다. 각 지역이나 던전의 지형과 정보를 100%완성하면 지도를 두루마리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 두루마리 지도는 일반 아이템과 동등하게 취급되며 플레이어나 NPC에게 매매할 수 있다. 단, 판매한 지도의 정보는 사라진다. 2. 한슨의 가죽 주머니 기본가방의 25% 용량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 '호오, 보상을선택할 수 잇는 건가?' 정보를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빈티 나는 한슨의 몰골을 확인하고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미는 보상을 보니 꽤 쓸 만하지 않는가? 대도시에서 파는 마법 가방은 기본 용량의 4분의 1짜리가 무려 200골드!보상 하나로 200골드를 버는셈이다. '가방은 항상 부족하게느껴지던 건데.........' 아크는 군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그보다 아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지도 제작 스킬이었다. 유저에게 주어지는 기본 지도는 던전의 지형이 등록되지 않는다. 때문에 복잡한 미궁에 들어가면 익숙한 길임에도 헤매기 일쑤였다. 그러나 지도 제작 스킬이 있으면 더 이상 같은 길을 몇 번 이나 반복하며 헤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100% 완성하면 지도를 팔 수 있단다.당연히 복잡하고 난이도 높은 던전의 지도일수록 비싸게 팔리리라. 가방도 탐나지만 게임에 유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돈까지 벌수 있는 지도 제작 스킬이기에가방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돈만 있으면 언제든 살 수 잇는 아이템과 레어 스킬. 비교할 대상이 아니야'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내린 아크는 슬쩍 시드를 바라보았다.역시나 시드도 지도 제작 스킬에 군침을흘리는 듯이 보였다. 하긴, 마을의 주요 정보까지 등록되는 지도라면 누구보다 상인에게 가장 쓸모가 많으리라.물론 그렇다고 쉽게 양보해 줄 아크가 아니다. "시드님은 상인이시니 당연히 가방이 더 필요하시겠죠?" "네? 아니, 저는........" "괜찬아요.필요 한거 먼저 선택해서 가지세요. 저는 남은거 갖죠,뭐"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뭐라고 입을 열리던 시드가 움찔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정체불명의 광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부담 갖지마세요. 비록 이번 의뢰는 전부 제가 해결한것이나 다름없지만!거의 저 혼자 죽어라 도적과 싸웠지만!중독자를 치료하느라 고생할때 시드님은 주무셨지만!그런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하,저와 시드님사이잔아요.그렇죠? 그러니 더 좋은거 선택해서 가지세요.물론 가방이겟지만" 아크가 악센트를 줄때마다 찔리는 게 많은 시드가 움찔움찔 했다. 그리고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불어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그, 그렇죠, 뭐, 마침.......가방이 필요했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게 아크에게 가방은 양보(?)받은 시드는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아크가 한슨에게 지도 제작 스킬을 전수받자 마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사라의 아버지를 구출하라!'퀘스트가 완료됬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E 퀘스트라 그런지 퀘스트가 완료되자 다시 레벨이 올랐다. 일단 퀘스트 하나를 완료한 아크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혹시 이곳에 계시면서 뭔가 특별한 물건을 본적이 없으십니까?" "특별한 물건?" "네, 그리 크지는 않은 물건일 겁니다. 주먹 하나에서 공만큼의 크기 사이 ? 뭐, 그정도 크기일 겁니다. 그리고 프로텍트가 많이 벗겨졌을 테니 뭔가 불길한 기운이 흐러나왔을수도 있겠군요. 뭔가 짚이는구석이 없으십니까?" "글쎄?" 한슨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처음 이곳에 잡혀 왔을때 뭔가 수상한 물건을 봤네. 철제 상자에 들어 있던 둥그런 물체였는데,이상한 문자가 새겨진 검은 보자기에 싸여 있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지 못했네.그때, 평소와 달리 몸이 떨릴 정도로 두려움이 느껴졌었지. 당시에는 단순히 도적들에게 잡혀와서 겁먹은줄 알았지. 하지만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물건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해" "그겁니다!그건 지금 어디있죠?" "그건 붉은 머리칼의 사내가 가지고 갔을 거네" "붉은 머리칼의 사내?" "그래, 그 역시 굉장히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였네.머리카락만이 아니라 온몸에서 붉은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 나오는 것 같은 사람이었지. 도적단의 두목도 그에게는 존댓말을 썼네.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는 못들었지만 ,도적단에게 이곳을 가르쳐 준사람도 그였던 것 같네. 멍청한 부하가 밖에서 얼쩡거리다가 잡혔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대충상황이 맞아들어간다.한슨의 말을 들은 아크는 비밀 통로 밖에서 들었던 도적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도적들이 말하는 중간 중간 섞여 있는 '그'라는 단어. 아마도 그가 바로 한슨이 말하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밖에서 얼쩡대다가 잡혔다는 도적은 바로 얼마전, 기란의 경비대에 잡혔다는 놈이겠지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십니까?" "글쎄........북쪽으로 간다고 했는데........브란트 산맥.......앙고라 절벽 너머.........아,그래.카이로트네. 맞아.그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브란트 산맥의 앙고라 절벽 근방이라면 카이로트 뿐이네. 지도 제작사인 내 말이니 틀림없어" "카이로트?" 아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시드를 돌아보았다. 카이로트라면 일전에 시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카오틱 유저들이 모인다는 무법 도시!그러나 아크는 아직 카이로트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했다. 카오틱이 되면 자동으로 카이로트 관련 이벤트가 퀘스트를 받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물론 아크는 카이로트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카오틱이 되고 싶은생각은 없었다. "혹시 카이로트의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네. 지도 제작사가 도시의 위치조차 모른다면 말이 안되지. 원한다면 자네의 지도에 위치를 표시해 주겠네" 한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동으로 지도창이 열렸다. 기란 북부에 펼쳐진 브란트 산맥 중간 부분에 붉은 점이 반짝였다. '됐어, 이제 필요한 정보는 모두 모은 셈이군. 마법 학회롤 돌아가 보고하는 일만 남았다' "자, 그럼 밖으로 나가죠" 던전에 익숙하지 않아 답답해 하던 시드가 말했다. 그러나 한슨과 함꼐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마약중독에서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얼빠진 얼굴로머뭇거리고 있었다. 아크가 고개를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저사람들은 왜 아직도 저런 겁니까?구해줬는데도 별로 기뻐하는 기색도 없고.......마치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게아마도.........." 한슨이 한숨을 불어내며 설명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한슨처럼 대륙을 떠돌다가 유연히 이 근처에서 도적들에게 납치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불과 이틀전에 마약에 중독된 한슨과 달리 이들은 오랜 세월마약에 중독되어 대부분 기억을 잃어버리는 후유증이 생겨 버렸다. "하루에 몇 분씩 제정신을 찾을때 알아봤는데.........조금씩 다르지만 증상이 심한 사람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네. 때문에 여기를나가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는거라네. 아마 조금만 늦었다면 나 역시 저들처럼 됐을 거야. 내 딸아이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한슨은 상상만으로 두려운듯 사라를 꼭 끌어안았다. "나쁜 놈들!" 시드가 조막만 한 주먹을 움켜 쥐며 분노를 터트렸다. 뭐, 그래봐야 귀여울 뿐이지만......... 그러나 시드가 분노를 터트리고 있을떄, 아크는 오히려 눈동자를반짝이고 있었다. '호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길 잃은 어린양이라 그거지?' 모든 상황을 퀘스트 해결과 이득으로 연결시키는 아크의 능력이 발동되었다. 아크의 혓바닥이 기름을 바른듯 매끄럽게 돌아갔다.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무작정 길바닥에 내팽개칠 수는 없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마침 제가 아는 개처민 마을가운데 란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용기 있는 주민들이 언제나 새로운 이웃을 반겨 주는 좋은 곳이죠. 기억을 잃은 사람이라도 그 개척민 마을이라면 기쁘게 받아 줄 겁니다. 그러니 이분들을 그곳으로 모셔 가면어떨까요?" "란셀!그곳이 아직 남아 있단 말인가?" 지도 제작사 한슨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아크가 란셀에서 일어난 일을 대강 추려 설명해 주자 한슨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랬군. 역시 자네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 그래, 그런 사정이 있다면 이들을 란셀에 데려가는 게 좋겠네. 이제 자네는 걱정말게.은혜를 보답하는 의미에서라도 이들을 내가 책임지고 란셀까지 데려다 주겠네. 비록 별다른 히도 없는 몸이지만 오랫동안 지도 제작사 일을 해와서 몬스터를 피하는 재주라면 어지간한 마법사 못지 않다네" "그랠 주시면 감사하죠. 란셀에서 제가 보냈다고 말하면 가렌이라는 사람이 편의를 봐줄 겁니다" "알겠네" 한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은 도적단에 잡혀 있던 불쌍한 사람들을 구출해 냈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이들을 개척민 마을,란셀로 인도했습니다. 물론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란셀은 이들을 진심으로 환영하여 주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갓 태어난 아기 새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앞으로 자신을 구해 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준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란셀의 주민으로 거듭나게 할 것입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 성취도 25%}]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민으로 계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성취도가 10%나 올라갔다. 점점 퀘스트 완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아크는 일행을 시드에게 맡기고 던전 밖으로 내보냈다. 아직 아크에게는 할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모두 마약의 재료라는 거지?' 혼자 남은 아크는 공동을 가득 채우고 있는 누룬마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도적들이 숨어서 재배할 정도로 희귀한 식물! 아크의 예민한 후각에 돈 냄새가 풍겨 왔다. 물론 누룬마의 잎을 채취해 봐야 당장은 쓸모가 없다. 뛰어난 치료제의 재료라고는 해도 결국은 마약. 평범한 도시의 상점에서는팔 수조차 없다. 설령 사 줄 NPC가 있다고 해도 곧바로 경비대에 끌려가 버리고 말리라. '하지만 법이 통용되지 않는 도시라면?' 이미 한슨의 입을 통해 카이로트라는 단어를 들었다.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마법 학회의 퀘스트가 이어질 다음 장소는 바로 무법 도시 카이로트,모든 대륙에서 금지된 물건이라도 카이로트라면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약이라는 게 조금 찜찜하지는 하지만............' 카오틱 떄문에 몇 번이나 이를 갈아야 했던 아크다. 카오틱 NPC와 유저들이 설쳐 대는 카이로트에 누룬마를 갖다 파는 일에는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잘 정제하면 치료제가 된다지 않은가? 그걸 치료제로 사용할지 마약으로 사용할지는 카이로트의 상점 NPC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 거기까지는 아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좀 다른 얘기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양념,고추도 처음에는 독으로 인식되었다. 일설에는 임진왜란 때 패퇴하던 일본인들이 조선 사람들을 몽땅 도살시키려고 고추를 심어 놓고 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똑똑하기 이를데 없는 우리의 선조들은 그 고추를 활용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결국 그게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활용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하다는 뜻! '암, 독으로 쓸지 양념으로 쓸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 철저하게 정신 무장을 마친 아크는 곧바로 채취 스킬을 난사하며 누룬마의 잎을 모았다. 모두 채취하니 200개씩 겹쳐지는 누룬마의 잎이 여덞 다발이나 되었다.다해서 무려 1600개!하나에 10실버만 받아도 160골드가 생기는 것이다. 역시나 넘어져도 빈손으로는 일어나지 않는 아크다. 공동을 털고 던전 밖으로 나오자 시드와 한슨 일행이 모여 잇었다.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돌연 사라가 다가오더니 까치발을 세우며 볼에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아크의 손바닥에 글자를 끼적거렸다. -정말 고마워요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시드도 잔뜩 기대되는 표정으로 볼을 내밀었다. 그러나 사라는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팩 돌리고 한슨과 함꼐 떠나 버렸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시드가 분한 눈으로 아크를 노려보려 버럭 소리쳤다. "아크님,너무해!" ACT 6 무법 도시 카이로트 "드라고니안족이라고?" 마법 학회를 찾아 중간보고를 하자 샤넨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마치 도마뱀처럼 생긴 종족이었습니다" "설마 심혼의 구슬에 드라고니안이 관련되어 있을 줄이야. 하긴, 그가 사용했다는 의태라면 심혼의 구슬을 훔쳐 냈을 수도 있지" "대체 드라고니안이 어떤 종족인데 그러십니까?" "그들은.........아니, 아니야.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이니 너무 성급하게 결론 내릴 일이 아닌것 같네. 미안하지만 드라고니안에 대한 일은 자네도 당분간 함구해 주게"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사실 그런 도마뱀 따위에게는 별 관심도 없다. "그보다 문제는 심혼의 구슬이네" 샤넨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까지 심혼의 구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훔쳐 갔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어 보니 그들은 뭔가 목적을 가지고 심혼의 구슬을 훔쳐 낸 듯하군.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걱정하던 것보다 심각하네"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뜻이군요" 샤넨이 땀이 축축하게 배어 있는 손으로 아크의 손을 잡았다. "부탁이네. 이제 믿을 건 자네밖에 없어. 이미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에서는 노골적으로 마법학회를 의심하는 상황이네. 그들의 눈을 피해 마법 학회가 붉은 남자의 행방을 쫓을 방도가 없어. 게다가 프로텍트가 많이 훼손되었을 테니 언제 재앙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역시 한 번 시작한 일을 주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다행히 지도 제작사에게 붉은 남자읭 행방에 대한 단서를 얻었으니 제가 그를 찾아보겠습니다.그리고 늦기 전에 반드시 심혼의 구슬을 되찾아 오겠습니다" 아크가 열변을 토하는 이유는 물론 퀘스트 때문이다. 샤넨의 반응과 퀘스트의 연계 방식에서 달콤한 돈 냄새가 감지되었다. 커다란 재앙, 일단 상황부터가 장황하지 않은가? 그런 사건이라면 당연히 해결보수도 짭짤하리라. 그뿐인가? 연계 퀘스트의 시작 부분부터 파티 퀘스트를 받아 두둑이 한몫 챙겼다. 누룬마의 잎도 그런 보상 중의 하나!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퀘스트! 설사 샤넨이 안 된다고 발악을 해도 기필코 받아 낼 생각이다. "작센에서 자네가 보인 활약을 믿겠네!" 샤넨의 말이 끝나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갱신됐습니다. 심혼의 구슬을 찾아라=심혼의 구슬을 찾아라II 당신은 유적에 숨어있던 정체불명의 도적단으로부터 심혼의 구슬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정체불명의 도적단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붉은 남자는 심혼의 구슬을 가지고 카이로트로 향한 것 같습니다. 모든 사건의 열쇠는 붉은 남자가 쥐고 있습니다. 그를 쫓아 더 많은 정보를 모으고 심혼의 구슬을 되찾아 와야 합니다. 난이도 : C] '어쨌든 첫 번째 관문은 넘은 셈이군. 이제 지겨운 도적 사냥도 끝나는 건가?' 막상 끝내야 한다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더 많은 보상을 위해서는 과감히 포기해야 할때도 있는 법. 아크는 그 길로 마법 학회를 나와 길었던 기란 생활을 정리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기란 경비대였다. 그동안 18개나 되는 도적단을 섬멸시키면서도 기란에 들르지 않아 현상금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무슨 일로 왔는가?" "현상금을 받으러 왔습니다" "필요한 증거품은 가지고 왔겠지?" "네, 물론입니다." 툭,툭,툭,툭......... 아크는 계속해서 가방에서 증표를 꺼내 책상에 올려놨다. 3~4개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하던 관리 NPC는 10개가 넘어가자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마침내 18개를 모두 꺼내 놓자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이,이게 모두........?" "네, 증거품입니다. 확인해 보십시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하자 관리 NPC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놀랍군요. 대부분 현상금을 걸어 놓은 지 한달 미만의 현상범들인데........이 모든 도적단을 한 달 사이에 괴멸시켰단 말인가?" "안 됩니까?" "아, 아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관리 NPC는 증거품을 확인하며 장부에 끼적이더니 두둑한 돈 자루를 건네주었다. 들어 있는 돈은 무려 254골드! 마을조차 오지 않고 9일동안 미친듯이 도적단 사냥에만 매달린 결과였다. 물론 본격적인 사냥 전에 닷새를 수련으로 보냈으니 실제 투자 일수는 보름이다. 그러나 잡템에서 나오는 수입을 제외한 현상금만으로 254골드라면 엄청난 수입이다. 또한 헌터 랭크도 단숨에 C가 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현상금 사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아크가 그렇게 도적단을 많이 잡을 수 있었던 건, 다른 유저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 당연하게도 한 지역에 현상범은 제한이 있었다. 물론 도적단이 섬멸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현상범이 등장하지만, 일반 몬스터와 달리 도적단은 그리 빨리 리젠되지 않는다. 그 역시 게임의 밸런스를 위한 조치이리라. 아크처럼 단숨에 열여덟 건이나 해결할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도적단이 많은 상업도시고, 또 다른 유저가 도적단을 기피한 덕분이다. 실제로 아크가 게시판에서 몽땅 뜯어 간 이후 새로 붙은 현상 수배지는 세 장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 중 두 장은 아크가 퀘스트를 위해 등록을 취소시킨 현상 수배지였다. 그렇겍 두둑한 현상금을 받아 챙긴 아크는 기란 광장으로 향했다. 마침 시드도 잡템을 정리하고 광장으로 오던 중이었다. 광장에서 대강의 계산을 끝내자 아크의 현찰 보유액은 1,000골드를 가뿐히 넘어갔다. '골드는 언제든지 현찰로 바꿀 수 있는 비상금이다. 이제 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흐뭇하게 돈 계산을 끝낸 아크가 시드에게 물었다. "이제 당분간 도적단 사냥은 안 할 건데, 시드님은 어쩌실 거죠?" "아크님, 혹시 카이로트로 가시나요?" "네" "그럼 저도 따라갈래요" 시드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렇게 부려 먹히고도 아직 아크의 진면목을 모르는 건가? 그러나 시드에게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저를요? 하지만 거긴 상인에게 위험한 곳이잖아요" "어차피 더 잃을 것도 없는데요,뭐" 시드는 그렇게 말하고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꼭 가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어요" "뭔데요?" "우후후후,횡재했어요. 실은 말이죠.조금 전에 잡템을 팔려고 상점에 들렀는데, 상인 직업 전용 퀘스트가 생겼어요. 상인 기륻에서 카이로트에서만 파는 아이템을 연구해 보고 싶대요.그래서 연구에 필요한 특수한 아이템을 카이로트에서 종류별로 하나씩 사서 상인 길드에 납품하면 150골드 남은 빚을 탕감해 주겠대요.지도에 카이로트 위치가 표시된 상인에게만 주는 퀘스트인가 봐요" "하지만 카이로트에서 카오틱 전용 아이템을 하나씩 사려면........?" 150골드 이상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자 시드가 씨익 웃으며 종이 하나를 들어 올렸다. "상인 기륻에서 발행한 어음이에요.카이로트의 상점에서 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말하자면 시드가 할 일은 그저 물건을 운반하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카이로트에서 파는 아이템은 보통 마을에서는 구하기 힘든 게 만아요.이번 판매로골드가 약간 모였어요.지금까지는 돈이 생기면 자동으로 빚 변제로 들어갔는데,이번에는 빚 탕감 퀘스트 덕분에 돈이빠져나가지 않았어요 .그러니 그걸 밑천으로 아이템을 사다가 유저들에게 팔면 한 몫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뭐, 저야 시드 님과 함꼐 있으면 좋지만........." "그럼 꼭 데려가 주세요" 시드가 깡충깡충 뛰면서 말했다. 솔직히 아크 역시 시드가 함께 가면 대환영이다. 하루 20시간이나 되는강행군을 군말없이 따라 준것도 시드니까 가능한 것이리라. 또한 성격이 쿨한 편이어서 일단 계약서를 쓰면아크가 얼마를 벌든 자신의 몫만 받으면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가 시드를 좋아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호비트의 몸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6개나 되는........아니 한슨에게 받은 가방까지 합하면 무려 7 개나 되는 가방!역시나 아크에게 시드는 가방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카이로트는 무법 도시.만약을 대비해 맹독 스킬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해 놔야해. 그렇다면 역시 시드가 함께 가는 편이 도움이 된다. 아유, 사랑스러운 내 가방.' "좋아요. 시드 님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에요" "그럼 바로 출발하죠!" 시드가 양팔을 힘껏 휘둘러 대며 아장아장 걸어갔다. 신용 불량자 호비트 상인, 시드와 함꼐하는 여행은 조금 더 계속 될 모양이다. '이,입금됐다...........!' 현우는 감격스러운 눈으로 통장을 바라보았다. 이벤트 퀘스트가 끝나고 경매에 올려놨던 화염의 학살자가 낙찰된 돈이 입금되었다. 사실 경매가 마감된 건 한참 전이었다. 그런데 전산 장애로 박찰받은 사람의 입금 사실이 확인 안된다고 차일피일 미뤄져 불안하게 만들더니 이제야 제대로 입금된것이다. 입금된 금액은 무려 1,116만원! 낙찰가 1,200만원에서 경매 수수료 7%를 제한 돈이었다. 수수료가 무려 84만원이나 나갔지만 그건 어쩔수 없는 지출이다. 유저와 1대1로 거래하다가는 자칫 사기를 당할 수 있다.현우 역시 수년 전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직거래하려다가 10만원짜리를사기 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물며 1,200만원짜리 아이템을 사기 당한다면그대로 피를 토하고 죽어 버리리라. '뭐, 그정도는 세금이라고 생각해야지.그리고 경매장을 이용하면 직거래보다 높은 가격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어쨌든 단번에 1,116만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어제 얻은 어둠의 로브도 90만원에 팔렸으니 내일이면 87만원 정도 더 들어와.' 거기에 통장에 남아 있던 돈을 합쳐 보니 1,400만원 가량이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올라가는 세상이니 얼마나 넉넉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두세 달은 병원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돈이다. 현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은행 문을 나섰다. '아, 오늘은 권화랑 아저씨와 함꼐 병원에 가기로 했었지?' 현우는 아침에 받았던 전화를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권화랑 아저씨 집에 찾아가는 건 오랜만이네.아, 맞아.요즘은 갱생단 형들도 함꼐 지낸다고 했었지? 모처럼 목돈도 들어왔고,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니까......' 갱생단은 권화랑 집에 유니트를사 둔 이후로 거의 살다시피 하며 합숙을 하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 지폐 몇 장을 만지작거리던 현우는 이내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그리고 살점을 깎아 내는 심정으로 치킨 세 마리와 음료수르 사 들었다. 합이 5만 5천원. 하루 세 끼를 2천원짜리 김밥으로 때울때가많은 현우에게는 엄청난 출혈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화랑과 호형호제하는 갱생단이다. 그 정도 지출은 기쁘게.......는 무리겠지만, 너무 아까워해서는 안된다. 권화랑의 집은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누구쇼?" 벨을 누르자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타난 사나이! 현우도 한떄 비행 청소년의 길을 걸으며 심신 양면으로 꽤나 단련이 된 편이다. 그러나 곧 문을 열고 나오는 사내를보자 단숨에 기가 죽어 버렸다. 목에서부터 손목까지 투박한 문신이 새겨진 곰 같은 체구의 사내. 저절로 눈앞에 보스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경고 메시지가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내가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뭐야? 치킨 안시켰는데?" "저........권화랑 아저씨 계세요?" "앙? 권 영감하고 아는 사이냐?" "네, 저는현우라고 하는데요. 오늘 약속이 있어서......." "오!오오오!"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구나! 네가아크구나!" "네, 그,그런데요?" "야!인마, 뭘그렇게 쭈뼛거려? 나야, 1405호.기억안나?" "1405호? 그럼 아저씨가 그......." "그래그래, 야! 일전에는 도움많이 받았다. 음, 그러고 보니 게임 캐릭터하고 똑같이 생겼구나. 미안, 내가 눈썰미가 좀 없어 놔서 말이야. 들어와.들어와" 1405호는 다짜고짜 현우의 팔을 잡고 당겼다. 그렇게 엉겁결에 집에 들어가자 사내는 여기저기 방문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이봐,아크 왔다!" 곧이어...........현우는 맨몸을 사파리 공원에 던져진 기분이 됬다. 그도 그럴 것이 방에서 몰려나온 사내들의 인상이 전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험악했던 것. 솔직히 현우가 사냥했던 도적단의 초상화도 이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런 남자가 10명이나 모여 둘러싸고 있으니!그냥 앉아만 있는데도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을 지경이었다. '권화랑 아저씨가 꼬맹이들, 꼬맹이들 그러더니........이게 어딜 봐서 꼬맹이야?' "권 영감은 조금 전에 급한 용무가있다며 외출했다.너 오면 좀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건 그렇고.......요즘 시대에 핸드폰도 안들고 다니는 녀석이 있다니.........." 얼굴에 섬뜩한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현우는 '죄송해요.당장 핸드폰 살게요'라고 대답할 뻔 했다. "나는 1401호다. 강유진이야.그런데 그건 우리 먹으라고 사 온 거냐?" 강유진이 현우의 손에 들린 조촐하기 짝이 없는 치킨 세트를 바라보았다. "네" 대답하기가 무섭게 치킨은 뼈다귀로 변해버렸다. '1,1분도 안걸렸어.겁난다.나까지 잡아먹는 거 아냐? 괜히 왔나?' 현우가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릴 때였다. 마지막 남은 닭날개를 우물거리던 1405호, 마철웅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불쑥 물었다. "그런데 너, 로코하고는어디까지갔냐?" "네?카페에 같이간 것밖에 없는데요?" 현우의 대답에 사내들이 왁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완전히 숙맥이네" "얼마나 좋아하는 사이냐는말이야" "우후후, 키스 정도는 당연히 했겠지?" "아악, 말하지마! 우리 귀염둥이에게 남자 친구라니......으윽!" "야, 야! 네가 그런 말 하면 그대로 범죄거든?" 일단 말문이 터지자 사내들은 정신없이 수다를 떨어댔다.멍하니 듣고 있던 현우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저, 저는 혜선이하고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냥 친한 동생인데..........." "뭐?" 사내들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서로 수상한 눈빛을 보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에 강유진이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만 좀 해라. 보는 내가 다 창피하다. 그나저나........로코도 참 큰일이군.하필이면 골라잡은게 목석이라니......." "네? 저, 저말이에요?" "아니, 됐어.주책없이 그런일까지 참견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현우야, 아니, 그냥편하게 아크라고 부를게. 괜찮지? 웬만하면 표정 풀고 편하게 좀 앉아라. 기합 받는 것도 아니고 폼이 왜그렇게 어정쩡하냐?" 현우는 그제야 자신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우가 헛기침을 하며 양반다리로 고쳐 앉자 가유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불안해할 것 없어. 겉모습은 확실히 짐승 같지만 우리도 그렇게 나쁜 놈들은 아니야" 마철웅이 끼어들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쁜 놈들이었던건 맞지만" "그래도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걸지는 않았어. 암, 그건 확실하지" "그럼. 특히 너 같은 녀석들은 우리도 싫어하지 않아" "네? 저 같은 살마이요?" "그래, 그러니까........" 마철웅이 입을 열려고 하자 강유진이 입을 막으며 말을 돌렸다. "그냥 마음에 든다는 뜻이야. 그보다 마침 잘됐다. 우리도 나름대로 게임이라면 이골이난 사람들인데 말이야. 이 뉴월드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더라고,어렵게 고수를 만났으니 뉴 월드에 대해 말해보자" "네, 저도 좋아요" 그제야 아는 분야로 화제가 돌아오자 현우는 얼른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현우는 ,아니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전과자라는 말을 듣고 이들을약간 색안경을끼고 본다. 전과자라면 범죄자다. 당연히 냉혹 비정하고,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가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현우는 이들을 특별한 사람........표현이 좀 그렇지만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인종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나눠 보니 그런 생각이금세 사라져버렸다. 특히 처음 소개받았던 1401호.강유진이라는 사람은 얼굴의흉터를 제외하면 보통 사람보다 더 사려 깊었다. 뭔가 틀이 잡힌 느낌이랄까? 목소리도 진중하고, 행동거지하나하나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겉보기는 우락부락해도 막상 좋아하는 게임 얘기가 나오자 애들처럼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현우는 외모와 행동의 괴리감이 느껴져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어쨌든 잠시 얘기를 나눠 보니 그들 역시 현우처럼 나름 진지하게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유저에 불과했다. 덕분에 현우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고,대화가 즐거워졌다. 뭣보다 그들이 게임을 즐기는 방식이현우와 전혀 다른 점도 재미있었다. "자치대를 만들겠다고 했다고요?" 현우는 그곳에서간만에 작센의 소식까지 들었다. "그래, 덕분에 요즘 권 영감이난리도 아니야. 영주가 조건으로 내건 투기장의 승점을 올리겠다고 미친 듯이 왕도로 가고 있어 .뭐, 그 양반은 하루만안 싸워도 몸에 가시가 돋는 체질이거든. 뭐, 우리도 좋아. 몬스터만 떄려잡는 것도 지겹던 참이니까" 현우 역시 언젠가는 투기장에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마 권화랑이 먼저 출발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것도 현우가 소년 영주에게 지나가듯 던져 놓은 한마디 떄문에........현실처럼 제3자의 말이나행동이 다른 유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게 뉴 월드의 장점인 것이다. 그렇게 공통의관심사가 생기자 대화는 더욱 활기를띠었다. 그리고 현우 역시 어느새 그들과 농담까지 하며 대화에 끼어들고 있었다. 특히 재미있는 건 그들이 배운 스킬이었다. 그들은 현실에서 모두 독특한 기술-물론 폭력을 포함해-을 습득한 전문가들이다 .비록 갱생단이라는 이름처럼 갱생의 길을 걷기로 맹세했지만 모처럼익힌 기술을 게미에서까지 봉인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뉴 월드는 그런 것이 바롤 스킬로 적용되는 게임! "후후후, 처음 하룬 마을에서 너무 돈이 달려서 아이템 좀 싸게 달라고 진상을 피웠었지. 그러다 보니 '협박'스킬이 생기더군. 협박 스킬을 사용하면 어떤 상점이든 무조건 물건 값을 10%나 깎아 준다고!뭐, 친밀도는오히려 내려가지만........" 전직 사채 해결사로 불리던 1402호의 말이었다. 그러자 전직 소매치기인 1406호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자랑거리나 되냐? 나는 몬스터가 빈사 상태에 빠지면 무조건 아이템 하나를 훔쳐 낼 수 있는 '소매치기'스킬이 있다. 선량한 NPC등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시끄러. 쪼잔하게 소매치기나 하는 주제에!협박 스킬은 몬스터에게도 통한다고. 가끔 움찔움찔할 때있지? 그게 내가 협박해서 그런거야" "후후후, 하찮은 것들 .협박? 소매치기? 새 삶을살겠다는 둥 하더니 결국 달라진게 없잖아. 나를 봐라.여성 NPC와의 친밀도에 20보너스가 붙는 '연애술'!러브앤 피스 아니냐? 스킬이라면 이 정도는돼야지" "하, 결국 너도 사모님 등이나 쳐 먹던 제비 짓이 게임에서 적용됐다는 거 아냐? 진정한 스킬이라면 나처럼 '사기'정도는 돼야지 .상인이 아닌데도 15%비싸게 팔아먹는 기술" 점잖은 1401호, 강유진도 질 수 없다는 듯 열을올렸다. '헤, 뉴 월드는 정말 별의별 스킬이 다 있구나. 같은 직업을 선택해도 키우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되는게 이래서였구나' 현실에서 익힌 기술이 게임에서 스킬이라는 형태로 구현된다. 현실에서는 세상에 도움이 안되는 기술. 부끄럽게 여겨야 하는 기술. 그리고 다시는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기술이 게임에서는 상당히 쓸모 있게 작용하는 것이다. 다른 유저들도 오히려 대단하다며 부러워한다. 그것이 이들이 뉴 월드에 매료된이유였다. 그리고 현우 역시 더 이상 이들과의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공통의 관심사란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맞아, 그러고 보니..........' 현우는 문득 기란에서 생활하며 만들어 낸 서바이벌 요리를 떠올렸다. 상급 특수 기술인 잡탕으로 만들어진 음식에는 별의별 효과가 붙어있었다. 매력을 올려주는 음식이나, 목소리를 크게 하는 음식 등등.........도통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요리들이었다. 그러나 갱생단 얘기를 듣다보니 그런 음식들이 특정 스킬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을 올려주는 음식은 연애술에,목소리를 크게 하는 음식은 협박에 적용하면 스킬 상승효과가 있을 것 같다. 그런 현우의 생각은 갱생단 사람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어라? 그런 효과를주는 아이템도 있어?" "경매장에서는 본적 이 없는데?" "음식은 유통기한이 붙어 있으니까요. 저처럼 특별한 게 아니면 유통기한이 짧아서 경매장에는 올리기 힘들어요.경매장에는 따로 음식 관련 카테고리도 없고" "그렇구나" "음식 효과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외에도 힘이나 민첩을 올려 주는 것도 있고, 오히려 독에 걸리는 음식까지 괴상한 효과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이야 ,그거 재미있겠는데?" "잘만 사용하면 투기자에서도 도움이 되겠어" "그럼 넉넉하게 만들어 둘게요.다행히 상급으로 만들면 굉자히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까요.그런데 제가 지금은 퀘스트를 하고 있어서 왕도에 갈시간이 없어요 .혹시 카이로트라는 곳까지 오실 수 있어요?" "카이로트? 그건 또 어디에 붙어 있는 거냐? 한번도 못들어봤는데?" "다른곳에서 정보를찾기는어려울거에요.카오틱만 갈수 있는 무법 도시거든요" 무법 도시라는 말에 갱생단원들의 눈에서 빛이났다. "무법 도시? 그럼 할렘가 정도 되는 곳이냐? 호오, 거기도 꼭 한번 가 봐야겠는데?" "좋아, 그럼 수도로가기전에 카이로트에 들러보자" "그럼 제가 위치를 대강 설명해 드릴게요" "그래, 알았다" "후후후,이래서 고레벨 유저를 알아두면 편하다니까" "앞으로 잘 부탁한다. 아크" 갱생단원들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뒤로도 현우는 그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뉴 월드에 대해 수다르 떨었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난뒤에야 권화랑이 돌어왔다. 병원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현우가 아쉬움을 느낄 정도였다. 갱생단원은 밖까지 마중나와 주었다. "아크, 다음부터는 오기전에 전화해라. 치킨은 우리가 준비해 놓으마" 강유진이 현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우리는 비록 내세울 것도 없는 놈들이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살자" "네" 현우는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 그들과 헤어졌다. 그렇게 자가용을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권화랑이 지나가는투로 물었다. "어떠냐, 만나보니까? 보기보다 좋은 녀석들이지?" "네 ,처음에는 조금 겁먹었는데........." "사실은 저 녀석들, 너를 굉장히 만나고 싶어 했었다" "네? 왜요? 그러고 보니마철웅 형도 그런 말을 하던데?" 권화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말이다. 저 녀석들 가운데 전과자가 되고 싶어서 된 녀석은 없어. 모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리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전과자가 되어 버린거야. 좋은 얘기가 아니라 자세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름대로 아픔이 있는 녀석들이다" ".............." "물론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 그떄, 좀더 깊게 생각했으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그래서 모두 너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거다. 부모님이........흠흠,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꿋꿋하게 혼자 힘으로 이겨 내고 있잖아" '그런 거였나? 나 같은 녀석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철웅이 형의 말은.......' 현우는 잠시나마 그들을자신과 다른 인종이라고 생각한게 부끄러워졌다. "저도 권화랑 아저씨가 없었다면..........." "어쨌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저 녀석들 포기할 수가 업어. 한 번 잘못 들여놓은 수렁에서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는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솔직히 마랗면오늘 잠시 자리를 비운건 그때문이야.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르게 살아가는네 모습을 보면 저 녀석들도 깨닫는게 많겠지.나는 뉴 월드와 너를 통해 저 녀석들에게 그런 걸 가르치고 싶었던 거야. 미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하다" 권화랑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담배 연기가 차창으로 흘러나갔다. 현우는잠시 권화랑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다. 그 얼굴이 바로 현우가 처음 만났던 시점의 권화랑이다. 매스컴이 떠들어 대듯이 범죄자에게 총을 쏘는 폭력 경형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범죄자를 이해하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하는.........엄하면서도 따뜻한그 모습이 바로 현우가 존경하는 권화랑의 참모습이다. "괜찮아요. 저도 즐거웠어요. 그리고 그 형들이 좋아요" "다행이구나" "그런데.........이건 ,양아들이 될지도 모르는 나에게 사전에 공작을 펼치는 건가요?" "휘청, 차가 잠시 흔들거렸다. 그러나 권화랑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시트를 뒤로 젖힌 현우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진다. 그날, 현우에게는 전과자 형님이 10명이나 생겼다. '이것도 레벨 업인가?' "저기가 카이로트인가?" 아크는 산등성이 위로 드러난도시의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거지꼴을 한 시드가 맛이 간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 그럼 이제 쉴수 있는 건가요?" "네, 이번에는제대로 찾아온 거 가탕요" 아크가 지도를 펼쳐 대조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다행이다" 시드는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란에서 카이로트를향해 출발한 지 나흘이 지난 뒤였다. 그야말로 처절한 고난의 연속이었던 나흘이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아크의 한마디로 시작되었다. "시간 절약 차원에서 카이로트까지 일직선으로 가죠" 지도 제작사 한슨이 카이로트의 위치를 표시해 주었지만 , 주변 지도까지 밝혀 준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기란에서 제대로 된 길을 찾아 이동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리라. 때문에 아크가 생각한건, 그냥 카이로트까지 방향을 정해 최단 거리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실수 였다. 기란과 카이로트 사이의 밝혀지지 않은 공간. 그곳엔 끝도 보이지 않는 밀림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예상보다 고난이도의 사냥터였는지 레벨 100이 넘어가는 기괴한 몬스터들이쉬지않고 출몰했다. 밤에는 어둠 보너스를 받아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었지만 낮에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군데군데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계곡이나 바닥 없는 늪이 길을 막고 있어 미로에 갇힌 것처럼 헤매기 일쑤, 그야말로 살아서 밀림을 빠져나온게 기적이다. 시드가 퀭한 눈으로 아크를 흘겨보았다. '뭐, 덕분에 밀림에 숨겨진 유적지도 발견하고, 미그미그족이라는 NPC와 친밀도도 올렸지만...........밀림에서 더 헤맸다간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죽었을거야'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무섭게 집착하는 아크의 성격! 밀림에서 상황이 어려워지자 아크는 하루2시간도 자지않았다. 덕분에 덩달아 시드마저 나가지도 못하고 끌려 다녀야 했다. 게다가 쉬지 않고 몬스터에게 쫓기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도 없다. 당연히 엄청난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린 나머지 생명력이 만땅임에도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릴 지경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기란에서 곧바로 밀림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최종 부활 장소는기란. 밀림에서 죽어 기란으로 돌아가면 핑계삼아 쉬기라도 하지만............ 눈치 없는 아크는 항상 전투가 벌어지면 최선을 다해 시드를 보호했다. 물론 뜨끈뜨끈한 우정 떄문만이 아니라는 것쯤은 시드도 알고 있었다. 잡템이 쏟아지는 밈ㄹ림에서 6개의 가방이 없어지면 곤란한 탓이다. 어쨌든 그런 지옥같았던 나흘이 지나고 결국 둘은 카이로트에 도착했다. 그저 멀리 보이는 카이로트를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솟구쳤다. '해냈다,시드!너는 해낸거야! 장하다, 시드! 멋지다, 시드!' "왜 그러세요?" "아, 아니에요.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시드가 도토리 같은 눈망울을 소매로 닦아 내며 말끝을 흐린다. "자,가죠. 정리하고 좀 쉬어야죠" "네!' 쉰다는 말에 시드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곧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갔다. 카이로트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공중 도시 마추피추처럼 상등성이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떠오른 실루엣의 크기는 대략 작센 영지와 비슷한 정도. 지면을 뚫고 올라온 두꺼운 넝쿨이 성벽을 대신해 도시를둘러싸고 있었다. 지도에 표시가 안된 상태로 카이로트를 찾아내기 어려운건.바로 그 넝쿨 탓에 도시전체가 하나의 숲처럼 보였기 떄문이다. 카이로트의 입구에도 경비 NPC가 있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산적 같은 복장을 한 자들이었다. 아크와 시드가 카이로트를 둘러싼 넝쿨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들어서려는 찰나. 그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앞을 가로막았다. "기다려!뭐냐, 네놈들은?" "네? 그냥 도시에 들어가려는 건데요?" "흥!꺼져라! 여기는 네놈들 같은 애송이가 올 곳이 아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당장 꺼지라는 말 들리지 않나?" "또다시 얼쩡 거리면 쓴맛을보여주겠다!" 경비 NPC들이 거칠게 둘을 밀었다. 정말 검이라도 빼 들듯한 분위기 였다. 카이로트에 도착하자마자 NPC와 문제를 일으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아크와 시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돌아 나왔다. "왜 이러는 거지? NPC가 마을로 들어가려는유저를 막다니?" 물론 일반 마을에서도 경비병들이 유저를 밀어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건 카오틱 유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했을 때 아크는 그제야 뭔가 깜빡하고 있었다는 것을 꺠달았다. "아아, 여기는 카오틱 유저들의 도시였지!" "아, 맞다. 카이로트는 카오틱 유저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시드도 그제야 생각 난 듯 난감한 목소리로 말을이었다. "어쩌죠?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죠" 아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예전에 챙겨 놓고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건데........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역시 용도가 불분명한아이템은 일단 챙겨 놓고 봐야 해. 언제 어디에서 필요하게 될지 알수없으니까" "뱀,[거짓말]주문서!" 뱀이 붉은 주문서를 탁하고 뱉어냈다. 주문서를 확인한 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어? 그, 그건!" "예전에 레오에게 빼앗은 주문서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딲히 쓸일이 없을 것 같아 가방 공간이 부족할때는 몇번이나 팔아 버릴까도 생각했던 아이템이다. 그러나 모처럼 얻은 특수 아이템을 그냥 팔아 버리자니 찜찜해서 가지고 있었는데........천만 다행이다. "자, 어디 한번 사용해 볼까?" 아크가 주문서를찢자 정보창이 열렸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200 명성 : 1,635 레벨 : 90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 나이트, 집념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1,745 마나 : 1,355(+100) 영력 : 100 힘 234(+5) 민첩 264(+17) 체력 334 지혜 33 지능 262 웅ㄴ 44 특수 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53) 유연성 : 26 화술 :23 애정 : 55(+10) *장비 아이템 효과 블랙 베어 마우스 가죽 갑옷 : 민첩 +2,냉기 저항 +20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 15,치명타율 + 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노리드 부츠 : 이동속도 +10%,회피율 +5% 아드리안의 목걸이 : 방어력 +40,애정 +10 부활하는 영혼 : 힘 +5,마나 회복 속도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거짓말} 주문서로 플레이어의 레벨과 성향, 스탯을 임의 대로 조종할수 있습니다. 단, 레벨과 스탯은 상하로 10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속 시간 : 1시간}] "레벨과 스탯은 10높게, 성향은 카오틱" 현재 아크의 레벨은 밀림에서 3을 더 올려 90.거짓말로 상향 조정하니 100레벨이 되었다.그리고 카오틱이 되어 이름이 붉게 물들었다. 혹시라도 다른 유저가 시비라도 걸어오면 곤란하니 아예 레벨을 올려 버린 것이다. 굳이 밤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 "지금 가진 주문서는 이거 하나뿐이에요" "글머 저는............?" "제가카이로트에 들어가서 주문서를 넉넉하게 사 올게요. 저도 당분간 이곳에서 정보를 모아야 하니까. 그동안 시드님은 적당한 곳에 숨어계세요. 제가 없을떄 카오틱 유저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그러면 되겠네요.부탁드려요" 시드가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미릴 못 박았다. "이번에 잡템 정리하면 수수료에서 주문서 값은 빼는 거에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카이로트까지 쫓아온 신용 불량자 상인 시드, 그러나아크의 계산법에 동정심이라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역시 있는 놈이 더한 법이다. 시드는 괴상한 표정으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네, 하하!무, 물론이죠" "그럼 다녀올게요.꼭꼭 숨어서 몸조심하고 있어야 해요" 아크는 시드의 몸에 붙어 있는 6개의 가방을 바라보며 거듭 당부했다. 그렇게 시뻘건 이름을 드러내며 다시 도시 입구로 향하자 예상대로 경비 NPC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어라? 조금 전에 왔던 녀석이잖아?" "음? 너..........." 경비 NPC가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음흉하게 웃었다. "크크크, 몸에서 향기로운 피 냄새가 나는군. 그사이 애송이 티를 벗은건가?" "알 만하군. 그 호비트 ,먹음직스러워 보이던데.......역시 해치워 버린 거겠지? 후후후, 이곳까지 동행한 동료를 배신하다니 나쁜 놈이군. 하지만 위선의 탈을쓰고 빌빌거리는 놈들보다는 훨씬 나아. 그리고 이곳은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의 낙원이지. 좋다, 위선의 탈을 벗어던진 사람이라면언제든지 환영이다" 친밀도가 단숨에 치솟아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아크는 기회다 싶어 내친김에 정보를 깨보았다. "혹시 근래에 이곳에 붉은 머리의 남자가오지 않았습니까?" "붉은 머리의 남자? 흠, 글쎼?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군. 이곳은 하루에도 수백명이 드나드는 곳이네. 그리고 대부분 투구나 모자를 쓰고 있지" "그럼 요 며칠 사이에 뭔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거나........" "그런 일도 없는데? 뭐, 무법 도시이니 문제라면 항상 있지만 특별히이상한 일 같은 건 없네. 요즘들어 도시를 보호해 주는 넝쿨이 좀 시들었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말이야. 그런걸알고싶은건 아니겠지?"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하게 ,들어주지" "들어만 준다는 거야. 이방인은 자기 목숨을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경비 NPC들이 킬킬거리며 말했다. 아크는 그들을무시하고 일단 카이로트로 들어섰다. 도시 안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이곳은 무법 도시 카이로트 .경비 NPC도 말했지만이곳에서는 유저끼리 싸우다가 죽든 말든 경비 NPC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최소한의 치안 유지. 카이로트 NPC가 공격받았을 떄뿐이다. 그야 말로' 범죄 권장 지역' 인 것이다. 물론 아무리 카오틱 유저라도 도시안에서까지 미친듯이 싸워야 한다면심신이 고달프다. 때문에 어느정도의 암묵적인 룰 정도는 있겠지만, 카이로트에 청므 발을내디딘 아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역시나........조금 넓은 길을 따라 걷자 여기저기에서 플래시가 터지듯 번쩍 거렸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웅크리고 있던 카오틱 유저들이[간파]따위로 아크의 레벨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떤 유저는 파티를 신청해 오기도 했다. 파티 결성이 목적이 아니라, 아크에게 동료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쳇, 고레벨이잖아" "파티도 있어. 건드리면 피곤해지겠다" "초보가 들어와야 교육 좀시켜 줄텐데" 그제야 골목 여기저기에서 힐끔거리던 유저들이 슬그머니 물러났다. 원래 뉴 월드의 시스템상, 고레벨의 유저일수록 카오틱이 될 가능성은 적었다. 고레벨로 갈수록 카오틱을 푸는 데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소모되고, 또 죽었을경우 잃는 것도 너무 크다. 저레벨에서는 카오틱이 되어 도적질하는 게 이득일지 몰라도, 고레벨이 될수록 이득은 적고 위험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때문에 카이로트에 모인 유저들은 30~40대 레벨이 많았다.그러니[거짓말]로 100레벨까지 올려놓은 아크에게 감히 찝쩍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단 첫 관문은 통과한 모양이군' 아크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상점가를 찾아나섰다. 카이로트는외벽만이 아니라 모든 건물이 넝쿨에 휩싸여 있었다. 덕분에 건물들도 다른 도시처럼 반듯하지 못하고 일그러진 형태가 많았다. 또한 상당히 복잡해서 길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렇게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아크는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도시의 중심 부분, 그곳엔 직경이 10여 미터나 되는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접근 주의! 오래전, 전국시대에 카이로트를 세웠던 위대한 군주 노른 1세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구멍.당시 노른 1세는 이 지역을 침범하던 야만족의 시체를 이곳에 가득 채우겠다고 맹세했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 '나락'.그러나 얼마 후 전쟁이 끝나 맹세는 지켜지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이 구멍이 얼마나 깊게 파였는지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야만족에 대한 노른 1세의 분노가 큰 만큼 깊이 역시 수백미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 떨어지면 100% 즉사!자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다이빙을 허락한다] 도시 중심에 시체 투기장이라니........... 역시 무법 도시답게 명소의 유래도 살벌하다. '아, 이럴때가 아니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구멍을 구경하던 아크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가능하면조금 더 카이로트를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드도 걱정되었고, [거짓말]의 지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상점가를 찾아 주문서를 사는게 급선무였다. 아크는 다시 골목을 누벼 곧 상점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그리고 막 상점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이런.........그러고 보니 지금은 밤이었지?' 착각을 해도 단단히 했다. 아크는 혹시몰라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밤을 택해 카이로트에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본래 목적은생각하지 못했다. 뉴 월드는 NPC들도 사람과 같아서 저녁때가 되면상점 문을 닫고 잠을 잔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니 당연히 모든 상점의 문이 닫혀 있었다. '제,젠장!지금은 뉴 월드의 시간으로 새벽 5시. 8시는 돼야 상점 문이 열리니 아직 3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거잖아?' 주문서의 지속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상점 문이 열리기 전에 지속시간이 끝나 버리면? 경비 NPC에게 공격받게 될게 뻔하다. 그뿐인가? 경비 NPC가 달려들면 당연히 카오틱 유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터!물론 그 전에 '은신'을 사용하면 어찌어찌 빠져나갈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문서 없이는 상점을 이용할수도, 붉은남자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모을수도 없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카오틱이 되면 그만이지만,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카오틱이 돼버리면 그동안 쌓아온 성향과 명성이 30%나 깎여 나간다.그뿐인가? 90대 레벨에서 카오틱을 풀려면 경비대에 자수해야 하고 90골드가 넘는 벌금과 현실시간으로 9일간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패널티! '그건 안돼!뭔가 방법이 없을까?' 아크는 다급한 심정으로 상점가를 뛰어다녔다. 그떄, 상점가끝 부분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했다.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작은 잡화점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새 나오고 잇었던 것이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안에 NPC가 있다면 어떻게든 되지않을까? 아크는 얼른 다가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계십니까?" "이 시간에 대체 어떤 자식이야?" "아, 다행히 계셨군요. 물건을 좀 사러 왔습니다" "문 닫았어. 귀찮으니 꺼져!"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럽니다. 부탁이니 문을 좀 열어 주십시오!" "장사 안한다고 했잖아!" 그러나 아크가 믿을 건 이 상점뿐이었다. 쉬지 않고 두드리자 결국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날 좀 가만 놔둬!그렇지 않아도 미쳐 버리기 일보 직전이란 말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급한 사정이 있어서그럽니다. 잠깐이면 되니 필요한 물건 몇 개만 사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아크가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하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남자의 인상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벅벅 긁어 대다가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저었다. "보아하니 그리 싹수 없는 놈은 아니군. 물론 나도 장사꾼이니 장사를 하고싶네. 하지만 사정이 있는 건 자네만이 아니야. 나 역시 지금은 장사할 형편이 아니란 말이야.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말이지" "네? 장사할 형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말입니까?" "자, 가게 안을 좀 보게. 이러니 장사가 되겠나?" 상점 주인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가게 안을 가리켰다. 가게 안은 난장판이었다. 진열대와 잡다한 물건들이 박살이 난채 바닥을 굴러다녔고, 벽이나 바닥도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딱보기에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 같은 상황. "제가 뭔가 도와 드릴 일은없겟습니까?" "뭐? 뭐라고 했나?" "도와 드릴 일이 없냐고 물엇습니다" NPC를 상대로 친절이 몸에 밴 아크는 자동으로 대답했다. 덕분에 뭔가 생기면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밑지는 게 없으니 말이라도 해 보는 방식이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그러자 상점 주인이 어리둥절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뭐 실수라도......?" "아, 아니네" 상점 주인이 화들짝놀라며 고개를저었다. "너무 오랫동안 들어 보지 못한 말이라서 그러네. 자네도 이방인이지? 사실 이곳에 드나드는 이방인들은 남의 일에 고나심을 보이지않네.하긴, 대부분 살인까지 저지른 흉악범들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하, 그러고 보니 여기는 카이로트였지?' 카오틱 유저들은 퀘스트나 NPC 와의 친밀도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그런 걸 신경 썼다면 애초에 카오틱이 되지도 않았으리라.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하나,카오틱을 풀기전에 얼마나 많은 유저를 PK해서 아이템을 챙기느냐는 것뿐이다. 그러니 NPC의 사정따위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으리라. 아크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했다. "이곳에 온 걸 보면 알겠지만 저 역시 그들과 다름없는 짓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죄를 저지른 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곳에서의 용무가 끝나면 자수해 정당한 법의 심판을받을 생각입니다" 아크의 진심 어린(?) 말에 상점 주인이 고개를끄덕였다. "그랬군,이해하네.종종 그런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 "이제 괜찬으시다면 제게 사정을 설명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는지금까지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짓을 천명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비록 지금은 죄인의 몸이지만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휴, 하지만......." 상점 주인은 뭔가를 고민하다가 힘들게 입을 떼어 놓았다. "보면 알겠지만 지난밤, 상점에 도둑이 들었다네" "도둑이요?" "그래, 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네. 우리 가게에만 요 보름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도둑이 들었지. 자물쇠를 바꿔달아도 소용이 없었어. 그나마 물건만 훔쳐 갔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네. 도둑질을 할때마다 진열대고 가게고 다 박살을 내 놓았네.이젠 나도 지쳤어.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이제 포기했네.어차피........아니, 됐네,나는 이제 가게를 정리하고 이곳을떠날 생각이라네" "이곳에도 경비병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까?"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저끼리무슨 짓을해도 관여하지 않는 경비NPC지만, 상점 주인은 NPC다. NPC의 문제까지 관여하지 않을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으면 카오틱 유저들이 상점을 상대로 무슨 짓을할지 알수 없는 것이다. "그,그건..........흥,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군. 이건 내 문제네.다른사람의 도움따윈 필요없어.자, 어쨌든 이제 됐지? 나는 장사를못하니 이만돌아가 주게" "하, 하지만........." "됐다니까!" 상점 주인은 갑자기 돌변했다. 그리고 아크를 밀어내려는듯 한 걸음 다가오다가 움찔하더니 수상한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아다. "자,자네 설마.......?" "네?" "이, 이럴수가!몸에서 혈향이 사라졌잖아? 그럼 자네 설마 [거짓말]을............!" '아차!' 아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카이로트를 돌아다니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에 주문서의 지속 시간이 끝나 버린것이다 .그리고 그걸 NPC에게 들켜 버렸다. 카이로트는 NPC마저 카오틱. 기란에서 지겹도록 사냥했던 도적단과 다름없는 것이다 만약 상점 주인이 경비 NPC에게 알리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그렇다고 NPC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 카이로트에서 NPC 살해범으로 지명수배를 당하면 마법 학회의 퀘스트는 포기해야 한다. "저, 저는........" 아크가 당황하며 어떻게든 무마해 보려고 기를 쓸때였다. 갑자기 상점 주인이 와락 아크의 팔을 잡아 끌었다. 그리고 가게문을 세차게 닫아 버리고 작은 쪽문으로 밖의 동정을 살폈다. 상점 주인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큰일 날 뻔했네. 만약 누군가 알아채기라도 했다면......" "고발하지 않으실 겁니까?" "고발? 후후후, 됐네. 뭐 좋은 일이라고 일부러 나서서 사람을 모함한단 말인가? 게다가 주문서까지 이용하며 여기 들어왔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 "가, 감사합니다" 상점 주인은 잠시 아크를바라보다가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이 입을열었다. "보답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자네혹시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나?" "물론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자네의 사정이 어쨌든 범죄자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네.하지만 자네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얘기는 다르지.게다가 혼자 힘으로 이곳까지 찾아왔다면 상당한 실력을 갖춘 모험자일터, 그만하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것 같아서 하는 무탁이네"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NPC의 부탁이란 곧 퀘스트!상황을 보니 이 퀘스트는 카오틱이 아닌 상태에서 카이로트에 와야 받을수 있는 퀘스트인 모양이다. 상상도 못했던 전개였다. "사실은 말이네. 나는 상점을 털어간 범인을 알고있네. 도시밖으로 나가 남쪽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오두막에 살고 있는 로렌조라는 백수건달이지" 상점 주인이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자네가 그놈을 따끔하게 혼내주고 도둑맞은 물건을 찾아다 준다면 그만한 보상을 해주겠네. 지금 당장 가진 건 없지만.......아니, 이러면 어떤가? 자네가 물건을 되찾아주면 그 물건에 한해서 가격을 40%깎아 주겠네. 어차피 나도 모두 정리하고 떠나려던 참이니까 짐이 줄어들면 좋지. 어떤가?" '오호!' 아크의 눈동자에서 금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도둑맞은 물건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수없지만 다섯 번이나 도둑맞았다면 적은 양이 아니리라. 당연히그 물건들을 40%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해 다른 도시나 유저에게 팔아넘기면 상당한 이윤을챙길수도 있었다. 시드 역시 그런 목적으로 카이로트까지 따라왔다. "혹시 다른 패거리도 있습니까?" "아니, 내가 알기로 그놈은 혼자 살고 있네" "좋습니다!하지만 그전에......아시겠지만 제게는 지금 [거짓말]주문서가 급히 필요합니다.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이라도 어떻게 구해 주실수 없겠습니까?" "걱정 말게. [거짓말]이라면 항상 몇 장 정도는 가지고 있네" 상점 주인은 품에서 주문서 세 장을 꺼내 내밀었다. "됐습니다. 그럼 바로 가서 해치우고 물건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자, 잠깐만 기다리게" 그때, 상점 주인이 황급히 아크의 손을 잡았다. "오해하지 말게. 나는 그놈을 조금 혼내 줬으면 하는거야. 절대로 그 이상은 안되네" "네? 그게 무슨?" "아니, 그러니까.........어쨌든 도둑질을 한건 괘씸하지만 그래도 내게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건 아니니까 말이지. 만약 내가 보낸 사람에게그놈이 죽는다면 잠자리가 뒤숭숭하지 않겠나? 나는 물건만 돌려받을수 있으면 돼. 그러니 명심하게. 어떤 일이 있어도 그를 죽여서는 안되네. 알겠는가?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자네를 용서하지 않겠네" "..........알겠습니다" 상점 주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크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바로 두두둥,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상점 주인 월커스의 고민 당신은 카이로트에서 잡화점 주인, 월커스를 만났습니다. 그는 보름간 계속해서 가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도둑에게 몹시 화가 난상태입니다. 그는 카이로트의 다른 이방인과 달리, 정의로운 당신에게 이 사건을 해결해 주기를부탁했습니다. 그가 지목한 건달을 혼내 주고 물건을 되찾아야 합니다. {단, 만약 검으로 건달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면 퀘스트는 자동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만약 퀘스트가 실패로 끝나면 월커스는약속을 지키지 않은 당신에게 앙심을 품고 카이로트의 경비 NPC에게 고발할 것입니다} 난이도 : E] ACT 7 다크브라더 '여기인가?' 카이로트를 나와 20분가량 언덕을 따라 올라가니 오두막이 나타났다. '은신'을 사용해 창가로 엿보니 한청년이 앉아 잇었다. 로렌조라는 이름의 NPC는 예상대로 카오틱이었다. 레벨은 80.이외로 높은 수치였지만 그래봐야 90에 어둠 속성 보너스까지 받은 아크의 상대는 아니다. 퀘스트 난이도도 E. 90레벨에 수행하기에는 널널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들이댈 만큼 간단한 퀘스트는 아니었다. 보통 물건을 되찾는 퀘스트라면 목표물을 죽이고 열쇠 따위를 찾아 근처의 창고를열면 해결된다. 그러나 이번 퀘스트에서 로렌조를 죽여서는 안된다.검을 사용할 수도 없다. 즉, 적당히 패 준뒤에 물건의 행방을불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 '이전에 유적안에서 만났던 도적단에서의 실수도 있으니.........' 아크는 대강 오두막의 구조를 살핀 뒤 시드에게 말했다. "예상대로 뒷문이 있네요. 혹시라도 놈이 궁지에 몰리면뒷문으로 도망칠지도 몰라요. 그러니 시드님은 뒷문을 막고 계세요. 밖에서 몸으로 막고 있으면 특별히 위험한 일은 없을 거에요" "네, 알았어요" 시드는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하며 뒤로 돌아갔다. '자, 이제 놈은 독 안에 든 쥐다' 적은 80대 레벨의 NPC 하나, 퇴로를막았다면 작전이고 뭐고 세울 필요도 없다. 일단 협박을 하고, 안통하면 공갈,그래도 안되면 폭력을 휘두르면 만사 오케이다. 아크는 곧바로 문짝을 걷어차고 오두막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자 뭔가 생각에 잠겨 있던 로렌조가 화들짝 놀라면 몸을일으켰다. "너, 너뭐야?" "긴말하지 않겠다. 훔친 물건을 어디다 숨겼지?" "훔친 물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시치미 뗴도 소용없어.이미 다 알고 있다. 네가 카이로트의 잡화상점을 몇번이나 털었다는 것 말이야 .다치기 전에 순순히 부는 게 네 신상에 좋아" "뭐, 뭐야? 도둑? 누가 그따위 헛소리를?" "누구긴 누구야? 월커스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월커스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겠지?" 그때였다. 월커스라는 이름을 들은 로렌조의 미간이 하차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이어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더니 한숨처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월커스가............!" 로렌조는 돌연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으르렁거렸다. "그 영감에게 무슨 헛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물건을 훔친 건 내가 아니야!돌아가!돌아가서 엄한 사람 잡지 말라고 전해!당장 꺼지지않으면 박살을내 버리겠다!" "호오, 박살을 내 주시겠다?"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어디 한번 해 보시지" "이 자식이!" 로렌조가 의자를걷어차 날리며 달려들었다. 의자에 신경 쓰는 틈을 이용해 공격하려는 것이리라.역시 건달답게 싸움에 상당히 익숙한 듯했다. 그러나 한때 비행청소년의 암울한길을 걸었던 아크 역시 싸움이라면 지긋지긋하게 해 보았다. 그 정도 기습은 충분히 대응이 가능한 범위 안이다. 아크는 의자를 옆으로 걷어차고 자세를 잡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섬광처럼 뿜어져 나온 주먹이 연달아 폭음을 터트렸다. 아크의 특기인 연속 치명타! "크어어억!" 순식간에 어꺠와 가슴, 허리, 세 군데에 치명타를 맞아 버린 로렌조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검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아크에겐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갑,고양이 손이있다. 성장혀앙이템인 고양이 손의 현재 공격력은 9~15(+8.9). 어지간한 검보다 나으면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크가 익힌 검투술은검술과 격투술이 합쳐져서 생긴 스킬이다 주먹으로 싸운다고 해서 특별히 패널티가 적용될 이유가 없었다. 단숨에 로렌조의 생명력이 30%나 깎여 나갔다. "크윽, 이,이자식.......!" 로렌조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다시 달려들었다. "우하하하,다구리다!" 그러나 곧바로 데드릭과 해골이 가세하자 로렌조는 제대로 주먹 한번 못 뻗어보고 구석으로 몰려 버렸다. 이어 쏟아지는 아크의 발차기와 주먹! 로렌조의 몸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돌려 차기가 관자놀이에 적중하자 종잇장처럼 날아가 반대편 벽에 처박혀 버렸다. "자, 이제 슬슬 불고 싶어지지 않아?" "젠장 ,아니라고 했잖아!" "아직 혼이 덜 난 모양이군" 아크가 주먹을우우둑 꺾으며 다가가자 로렌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로렌조가 깎여져 나간 생명력은 70%.반면 아크는 고작 10%밖에 줄지 않았다. 애초에 게임이 안 되는 싸움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되겠다 싶었는지 로렌조는 물병을 집어 던지며 와락 몸을 돌렸다. 그리고 뒷문을 벌컥 열려고 했으나........로렌조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이미 반대편에서는 시드가 전력을다해 막고 있어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뭐, 뭐야? 이게 왜 이래?" "후후후 ,내가 아무런 대책도 세워 놓지 않았다고 생각해?" "비,빌어먹을!" 로렌조가 인상을 구기며 벽에 걸려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크의 몸놀림이 그보다 몇배는 더빨랐다. 퍼억! 아크의 앞차기가 로렌조의명치에 쑤셔 박혔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급소에 쑤셔 박힌 치명타! 로렌조는 대번에 스턴에 빠지며허리가 기역자로 꺾였다. 그 상태 이상이 바로 아크의 노림수였다. "뱀, 놈을 묶어라!" 쌕썍! 뱀이 용맹하게 혀를낼름거리며 로렌조의 양팔을 꽉 붙들어 맸다. 로렌조와의 싸움은 그렇게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결말이 나버렸다. 아크는 버둥거리는 로렌조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자, 이제 뭐가 똥이고 된장인기 구분이 가겠지? 그냥 네입으로불래 ? 아니면 내가 불게만들어 줄까 ?참고로 말하자면 나 사람 패는 거 좋아해" "젠장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했잖아! 내가 훔치지 않았다고!" "웃기지마.그럼월커스가 아무런 증거도없이 너를 도둑으로 몰았다는 거냐? 뭔가 의심가는 짓을했으니까 범인이라고 생각하는거 아냐!" "쳇,알게 뭐야? 그따위 영감탱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죽어도 못 불겠다 이거냐?" "불게 없다니까!" "할수 없군" 아크의 눈동자가 싸늘해졌다. 데드릭이 움찔하더니 로렌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불쌍한 녀석 ,제 무덤을 파는군" 데드릭은 아크가 그런 눈빛을 띠었을 떄 무슨 일이 벌어질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역시나............로렌조의 생명력이 조금 회복되자 아크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거 데드릭의 버릇을 길들일때 그랬듯이 말없이 로렌조를 밟아 대기 시작한것.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던 로렌조는 쏟아지는 발길질에 기겁하며 비명을 터트렸다. "크악!이 ,이자식! 무슨 짓이야!" 그러나 아크는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자고로 버릇없는 놈 길들이는 데는 매만 한 것이 없다! 게다가 아크는 시작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일단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이다. 아크는 얼굴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짓밟아 로렌조를 순식간에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생명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밟아 대기를 몇번.......... "아크님, 아직 멀었나..........헉!" 뒷문으로 뺴꼼히 고개를 들이밀던 시드가 비명을질렀다. 뉴 월드는 현실감이 넘치는 가상현실 게임이다. 죽지도 못하고 10분에 걸쳐 아크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린 로렌조의 면상은 18금 폭력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펙타클 하게 변해 있었다. "아,아크님.너무심하지않나요?" "그럴리가요.저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 아크가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시드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렸다. 그럼에도 로렌조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크의 폭력이 도를 더할수록 악에 받친 목소리로욕설을 내뱉으며 버텼다. "퉤,빌어먹을!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헤헤헤, 주인. 그럼 극 방법은 어때?" 그때, 옆에서 보고 잇던 데드릭이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뭔가를 속닥거리자 아크의 입가에 으스스한 미소가 번져나왔다. "흠, 그거 괜찮은데 ? 역시 너는 나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니까" "후후후, 모두 주인덕이다" 데드릭이 으스대며 지껄였다. ........칭찬이냐 ,욕이냐? 어쨌든 데드릭의 조언을 적극 수렵한 아크는 폭력을 멈췄다. 대신 책상위에 냄비와 식재료를 늘어놓고 서바이벌 요리를 만들어 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달콤한 냄새가나는 음식이 만들어졌다. "억? 무, 무슨짓이야?그, 그만둬!" 아크는 로렌조의 턱을 잡아 벌리고 음식을 통쨰로 쏟아 부었다. 로렌조가 돌연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지더니 경련을일으키기 시작한 건 그 뒤였다. '향기로운 독 수프'의 마비 효과가 발동한 것이다. "너........이,이자식!이런......짓을........" 로렌조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마비된 혓바닥으로 떠듬거렸다. 이어 아크는숙달된 솜씨로 끔찍한 맛의 수프 ,공포스러운 샐러드,쓰레기 맛이 나는 젤리, 기타등등....... 그러나 그건 시작해 불과했다. 진정한 공포는 바로 이런 음식들을 짬뽕한 잡탕이었다. 잡탕 스킬로도 낮은 확률로 끔찍한 음식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런 음식은 맛도 효과도 일반 서바이벌 요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가히 '충격적'이었다. 생명력을 조금도 줄지 않게 하면서 오감을 한계까지 괴롭힐 수 있는........... 그건 이미 음식이라기보단 생물학 병기에 가까웠다. 그렇게 이제 어지간히 단련된 소환수마저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잡탕 음식이 줄줄이 만들어졌다.그리고 악마적인 음식들은 곧바로 로렌조의 입 속으로 차곡차곡 들어갔다. 그때마다 로렌조는 생선처럼 펄떡거리며 괴로워했다. 신개념의 음식 고문! "크윽, 나도 차마 보고 있을 수가없어!" 데드릭조차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직 음식의 공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시드에게는 장난처럼 보였게지만.......... "그, 그만!제발 살려 줘! 말하겠다!아니,말할게요!말하게 해주세요!뭐든 말할 테니 제발 음식만은!" 결국 다섯 번째 음식을 만들때, 로렌조가 비명을 지르며 항복을 선언했다. 당연한 결과 였다.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버린 아크에게 불굴의 육체라는 스킬이 생기게 만들었고,데드릭은 음식 먹기 싫다는 말 한마디를 하기위해 언어 능력까지 생겼을 정도다. 인간이 먹고 버틸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아크는 그제야 바쁘게 놀리던 손동작을 멈추고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러니까 진즉에 불었으면 좋았잖아" "자, 잔인한 놈........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렇게 끔찍한 음식을 만들수가.....!" "뭐야? " "아, 아니다!아니, 아닙니다!" "뭐,됐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지.자, 물건은 어디 있지?" "다시 말하지만 물건은 내가 훔친게 아닙니다!" "아, 그러셔? 아직 배가 고픈가 보지?" 아크가 다시 냄비를 집어들자 로렌조는 울먹거리며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기다리세요!정말입니다 .정말 제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누가 훔쳣는지 짐작 가는 놈들은 있습니다. 분명 그놈들이에요" "대충 둘러대려는 거냐?" "제발 믿어 주십시오. 사실은 저도 피해자라고요. 놈들은 잡화상점을 털어서 나를 곤경에 빠트리려는겁니다" "아, 아크님. 그냥 해보는 말은 아닌거 같아요" 시드가 눈치를 살피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앞뒤가 안맞잖아. 잡화상점의 물건을 훔치는게 왜 네게문제가 된다는 거지?" "그게 실은........." 아크가 쨰리자 머뭇거리던 로렌조가 결국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영감.......월커스의 양아들이니까요" "뭐? 양아들?" 로렌조는 어렸을때 부모를잃고 당시 셀리브리드에서 큰 상점을 운영하던 숙부,월커스에게 맡겨졌다. 월커스는 다정다감한 성격이 아니었다. 아직어린 로렌조에게 새벽부터 밤까지 힘든 가게일을 시켰으며 조금만 실수해도 매질을 하기 일쑤였다. 그걸 겨닏다 못한 로렌조는 결국 가출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길바닥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 몇년, 로렌조는 부하까지 거느린 어엿한 건달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로렌조는 다른 건달패거리와 패싸움이 붙었다.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에 사람을 죽여 버리고 만것이다. 그렇게 카오틱이 되어 경비대에 쫓기게 된 로렌조는 간신히 셀리브리드에 숨어들어 월커스를 찾아갔다. 월커스를 협박해 도피 자금이라도 뜯어내려던 것. 그러나 막 상점에 들었을 떄, 그는 상점에서 일하던 점원에게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그동안 로렌조에게 갈취를 당한 사람들에게, 월커스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상을 해 주었다는 것.그리고 그동안 로렌조가 경비대에 찍히지 않은 것 역시 월커스가 손을 써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몰랐던 겁니다. 아버지가..........애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이었다는 걸.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몰랐던 겁니다 .진작 알았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로렌조는약간 목 메인 목소리로 말을이었다. 로렌조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상점을 돌아나왔다. 그리고 경비대와 현상금 사냥꾼의 손길을 피해 간신히 카이로트까지 올 수 있었다. 카이로트 밖에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건, 더 이상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느 맹세 때문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떄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아버지가 갑자기 카이로트에서 상점을 차렸습니다. 아버지는 죄를 지은 적이 없어요.분명[거짓말]로 범죄자를위장해 장사를 하고 있는 겁니다" 로렌조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월커스가 무리를 해 가면서까지 카이로트에서 장사를 하는 이유. 당연히........로렌조 때문이었다. 로렌조는 그런 월커스의 마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한 번 비틀어진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물며 그동안 월커스가 얼마나 힘들어했을지를 생각하면 차마 용서를 구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이런 곳에서 지내는 게 참을수 없었습니다.그래서 틈만 나면 가게를 찾아가 행패를 부렸죠.꺼지라고 ,진심은 그게 아니었는데........용서를 빌고 싶었는데...........차마 그럴 수 없었어요.10년이 넘도록 상처를 주고, 어떻게 멀쩡한 얼굴로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저는........그저 아버지가 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그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물건을 훔쳤다고 생각하는 걸거에요" "그럼 물건을 훔쳤다는 자들은?" "예전에 내가 따르던 형님의 부하들입니다" "뭐? 네가따르던 형님의 부하?" "네, 저는 잘못을 깨닫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조직과 인연을 끊었어요. 그런데 얼마전에 그놈들이 카이로트까지 쫓아왔죠. 큰도적단 밑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일해 보자고요. 물론 저는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놈들은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아버지를가만 놔두지않겠다고 했어요" 거기까지 들은 아크는 모든 의문의 해답을 찾아냈다. 상점 주인 월커스가[거짓말]주문서를따롤 가지고 있던 이유. 그건 바로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 였던 것이다. 또한 아크가 카오틱이 아닌 걸확인한 뒤에야 퀘스트를준건.범죄자를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로렌조를 경비 NPC에게 신고하지 않고, 아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말라고 당부한 이유 역시......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말로 3류 드라마 시나리오로군' 결국 모든 일의 원흉은 도적단의 두목이라는 말이다.거기까지 상상하자 약간 울화가 치밀었다. "흑흑흑, 그랬군요. 이해해요. 아버지를 좋아하지만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마음 이해해요" 지나치게 깊이 몰입해 버린 시드는 눈물까지 글썽이며말했다. 뭐, 그정도는 아니어도, 아크 역시 기분이 편치는않았다. 아크는 갱생단을만남으로 해서 전과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잇어서 어둠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 그들에게도 그들만의 드라마가 존재한다. 무작정 죄를따지며 몰아붙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로렌조는 뒤늦게나마 자신의 죄를 꺠닫고 새 삶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명색이 건달이지만, 한때나마 그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이라면,그의 새 출발을 축하해 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무런 상관도 없는 로렌조의 아버지까지 들먹이며 협박하다니? NPC가운데는 그런 더럽고 치사한 놈들도 있는 모양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것이 존재하는 게임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실은 나도 어젯밤에서야 카이로트까지 쫓아온 놈들이 잡화상점을 몇 번이나 털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주일 안에 대답이 없으면다음에는 아버지가무슨 짓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협박했죠. 그놈들이라면 분명......." 로렌조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더 이상은 참을 수가없습니다" "놈들을 때려잡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때, 시드가 걱정스렁누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놈들은 숫자가많다면서요?" "훗, 어차피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죽든 살든 내가 담판을 지어야 할일이지" "좋아. 뱀, 풀어줘" 아크는 다시 뱀을허리에 감으며 일어났다. "가자!결정 났으면 빨리 해치워 버리는 게 좋겠지" "뭐? 당신 설마.........?" 아크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말했다. "네 말이 사실인지 누가 장담하지? 그냥튈수도 있잖아. 그러니 나도 따라가서 진위 여부를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상점 주인에게도 물건을 찾아서돌아가겠다고 약속했으니 범인이 그놈들이라면 따끔하게 손을 봐 줘야겠지" "아, 아크님!" 시드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로렌조 역시 쉽게 믿기지 않는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얘기해 놓고도 얼굴이 화끈거려 죽을 지경이니까. 하지만 어쩔수 없잖아 ,이대로 돌아가면 퀘스트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반면 데드릭은꽤나 불쾌한 눈길로 아크를 흘기며중얼거렸다. "쳇, 또 시작이군 .주인의 가식적인 행동이.........." 어쨌든 로렌조는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이내어금니를꽉 깨물었다. "고맙다는 말은......하지 않겠습니다" "그런거 필요 없어. 나도 공짜로 도와주는 건 아니니까" 그때였다. 두두둥,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상점 주인 월커스의 고민=로렌조의 누명을 벗겨라. 당신은 로렌조가 상점 주인 월커스의 양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아무래도 용 보름간 잡화상점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를 도적단으로 끌어들이려는 무리의 소행인듯합니다. 당신은 로렌조와 함께 그들의 아지트로 가서 사건이 진위를직접 확인하고 도둑맞은 물건을 되찾아와야 합니다(단, 도중에 로렌조가 사망하면 퀘스트는 자동으로 실패하게 됩니다) 난이도 : D] '제대로 찾은 모양이군' 아크가 씨익 웃었을 때였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가 뒤를 이었다. -안델 님께서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귓속말을 신청하셨습니다. '뭐야? 안델?' 아크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지었다. 뜬금없이 한동안 잊고 있던 안델이 귓속말을 신청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금새 고개를 저었다. 귓속말을 허가하면 무슨 소리를 해 댈지는 충분히 상상이 되었다. 결국 기분만 더러워지리라. 또한 지금은 안델 따위와 말싸움이나 벌이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귓속말 거부" 아크는 가볍게 아델을 무시해버렸다. 그때, 아크는 한가지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못했다. 귓속말은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에게만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았다. 아크 자식!" 안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져 나왔다. 암살자 길드에서 파견된 암살자들과 동행 한지 장장 보름반이엇다. 셀리브리드에서 암살자와 합류한 안델은 곧바로 기란으로 향했다. 아크가 기란의 마법 학회로부터 이벤트 퀘스트를 받았으니 다시 기란으로 향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그러나 그시기에 아크는 이미 시드와 합류해 굳이 기란을 들락 거릴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안델과 암살자들은 기란에서아크의 행방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안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기란 주변을 돌아다니며 쉴 새 없이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귓속말 신청은 일정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상대가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일단[속삭임의 깃털]이 작동한다면 아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카이로트 근방에 들어서자 드디어 [속삭임의깃털]이 작동했다. "놈은 이 근방 어딘가에 있다" 안델의 말에 다크브라더에서 파견된 3명의 암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브란트 산맥에는 마을이 그리 많지 않다. 특정 지을수 있는 곳은 몇 군데 안돼" "좋아, 그럼 각자 거리를 두고 이동하며 [추적]을 사용해라" 암살자들이 주문서를 들고 흩어졌다. [추적]은 목표물이 반경 1킬로미터 내에 있다면 바로 위치를 파악할수 있는 주문서다. 일단 이 근방에 있는건 확실해졌으니, 흩어져서 주문서를사용하면 아크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 문제이리라. '아크, 넌이제 끝장이다!' 안델의 눈동자에서복수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사람 잘못 건드렸다고 했던가? 그말, 그대로 돌려주마. 내가 입사 시험에 불합격한다면 너 역시 절대 합격할 수 없어.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네놈의 발목을 잡아 끌어내려 주마. 아니, 수천만원을 뿌려서라도 아예 두 번 다시는 뉴 월드에 접속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 주마! 가난뱅이 자식!' "몇명이나 되지?" "예닐곱 명 정도 될 겁니다" 로렌조가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크는 시드를 오두막에 남겨두고 로렌조를 앞세운 채 다시 카이로트로 돌아왔다. 건달에서 도적으로 전직한, 로렌조를 협박하는 놈들의 아지트는 카이로트의 후미진 골목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크기로 짐작컨대 로렌조의 말처럼 열예닐곱, 많아도 20명 이상이 숨어있을거 같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퀘스트가 길어지는 느낌이 있지만..........뭐, 나쁘지는 않아' 놈들은 로렌조보다 한참 아래 등급의 도적이라고 했다. 로렌조가 레벨 80의 건달이니, 그보다 한참 아래라면 잘 해야 60~70대 수준. 도적이라면 기란에서 지긋지긋하게 잡아 본 아크에게 그 정도 레벨 20명이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넉넉잡고 10분이면 해결될 퀘스트였다. '일단 완료만 하면 하기에 따라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퀘스트다' 그동안 잡화상점이 세 번이나 털렸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도둑맞은 아이템의 숫자도 상당히 많은 터. 그모든 아이템을 40%나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현재 아크의 전 재산은 약 1,000골드. 거기에 누룬마의 잎이라는 부가 가치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템도 1,600개나 쌓여 있었다. 아크는 퀘스트가 해결되면그 골드를 몽땅 아이템 구매에 투자할생각이었다. '나와 시드의 가방에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득 채워 가면......' 물론 일반 상점에서는 교역품이 아닌 일반 아이템의 경우 구매 가격의 50%에 물건을 매입하는겍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이템을 필요로 하는 유저에게 팔아넘기면 약 80%.게다가 주변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유용한 아이템이라면 오히려 웃돈을 붙여 120%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1,000골드의 아이템을 60% 가격에 사가지고 120%의 가격에 팔아넘긴다면 600골드의 이윤이 남는다는 계산이다. 퀘스트를받는 조건이 까다롭고, 또 물건을 다른 도시의 유저에게팔아야 이득이 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잘만 마무리하면 엄청난 이득이 돌아오는 것이다. '후후후, 시드와 함꼐 오길 잘했어' 물론 아크는 직접아이템을 들고 장사할 생각이 없었다. 1,000골드의 아이템을담을가방도 없고, 유저를 상대로 장사나 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 귀찮은 일은 고스란히 시드에게 돌아갈 몫이다. 뭐, 이윤의 10~20%정도는 떼어 줘야겠지만,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500골드 이상을 벌게 되니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일단 퀘스트만 완료되면 한몫 단단히 버는 건확실해' 카이로트에 오자마자 이런 알짜배기 퀘스트를 받게 될줄이야! 단하나 마음에 걸리는 건 로렌조다. 만의 하나라도 로렌조가 죽어버리면 퀘스트 실패는 물론, 월커스의 원한을 사서 카이로트에 머물기도힘들어진다.그러니 이번 퀘스트의 요점은 도적보다 로렌조 보호에 있었다. "로렌조, 너는 뒤로 물러나 있어" "하, 하지만......" "너만은 결코 다쳐서는 안돼. 네가 여기서 다치기라도 하면 아버지가 얼마나 슬프겠냐? 너를 위해 이곳까지 와 준 아버지를결코 슬프게 해서는 안돼.무슨 말인지......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방금 전까지 죽어라 패고, 음식 고문까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다. 그러나 이윤이 걸린 일에는 언제든 안면을 뒤바꾸는 아크였다. 어쨌든 단순한 NPC,로렌조는 나름대로 감동을 먹었는지 한숨을불어 내며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가능한 조심하도록 하죠" "그럼 됐어" 아크가 다짐을 받고 문을 열려고 할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붉은 빛이 번쩍이며 엄청난데미지가 들어왔다. -암살 스킬에 의한 불의의 기습으로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200X3 '헉, 뭐, 뭐야? 암살?' 순식간에 600이나 되는 생명력이 주욱 빠져나갔다. 아크가 불에 댄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주변에서 흐릿한 형체가 떠오른건 그때였다. 마치 닌자처럼검은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 그모습을 확인한 아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이름은 샴바라였다. '은신'과 '암살'스킬의 연계 공격을 샴바라의 주특기였다.그러나 샴바라는 아니었다. 곧이어 같은 복장의 사내 둘이 양옆에서 나타났다. 두건의 상단에 찍혀 있는 붉은 손의 문장이 유난히 섬뜩한 느낌을 풍겨냈다. "로렌조?" "모, 모릅니다. 이렇게 위험한 놈들은 본적이 없는데?" 로렌조도 당황한 눈길로 고개를 저었다. 그때, 복면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따위 건달이 우리를 알 리가 없지" "너희들 대체 뭐야? 뭐 하는 놈들이냐?" "우리는 다크 브라더다" "다, 다크브라드!서, 설마 그럼 너희들이.......그암살길드의.......!" 순간 로렌조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셀리브리드에서 건달 생활을 했던 로렌조 역시 다크브라더의 소문을 들었던 것.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물었다. "암살길드 ?암살길드가 왜 나를? 암살자들의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온건 그때였다. "크크큭, 여전히 상황파악이 더딘 놈이군" "어? 네, 네놈은?" "다시 만나 반갑군. 네놈을 찾느라 꽤 힘들었지" "안델.......!" 아크는 질겅질겅 씹어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암살자들의 뒤에서 재수 없는 낯짝을 하고 바라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델이었다. "너........그렇게 당하고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렸냐?" "정신을 차려야 할 놈은 너다. 날 건드리고 희희낙락하도로고 놔둘거라고 생각했냐?" "정말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거냐?" "듣던 중 반가운소리다.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너 이자식.........!" 아크가 검을 들어 올리자 세 암살자가 스윽하고 앞을 가로막았다. "네놈들은 뭐야?" "못들었냐? 다크브라더 네놈을 위해 내가 고용한 암살자들이다" "셀리브리드에서 건달 생활할때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특급암살자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조직이라고.이들은 이방인을 살해하는 의뢰를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자들이죠. 그만큼 실력도 상당해서 엄청난 의뢰비를 받는다고 들었는데. 대체 무슨 원한을 졌기에........" 옆에서 로렌조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유저를 전문 으로 사냥하는 NPC라니? 이 무슨 황당한 얘기란 말인가? 그렇다면 의외로 문제가 심각할지도 모른다 .유저를전문으로 상대한다면레벨에 따라 파견되는 암살자도 다를터. 또한 전문적인 PVP용 스킬로 무장했을게 틀림없다. '젠장,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아크가 난감한 표정을 지을때, 암살자가 돌연 기습해 들어왔다. 채챙! 가가각! 아크는 곧바로 회피 동작을 펼치며카운터 어택을 날렸다. 보통 몬스터였다면 당연히 상당한 데미지를 받았으리라.그러나 암살자는 기묘한 동작으로 카운터를 피해내며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리고.......그게 전투 시작종이었다. "죽여라!" 3명의 암살자들이 교묘하게 협공을 펼치며 아크를압박해 들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검격에 아크는 정신없이 뒤로 밀렸다. "데드릭, 해골.B-1플랜이다!" 데드릭과 해골이 1명의 암살자에게 달려들었다.공수를 7대 3으로 나누어 공격하는 전법.그러나 상대는 1대1로도 아크와 거의 평수를 이루는암살자. 소환수들의 공격은 제대로 박히지도 않았다. '맙소사,레벨120........!' 고양이 의 눈으로 레벨을 확인한 아크는 신음했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90,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아도 120수준이다. 그러나 암살자들은 기본 레벨이`120이다. 거기에 암살자니 아크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둠 속성 보너스가 가산되리라. 결국 최소 10레벨 이상 높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암살자들은 그만한 실력을 과시했다. 마치 유령처럼 아크의 검을 모두 흘려내며 카운터를날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누군가? 아크 역시 PVP 전문 스킬로 무장한 다크 워커! 아크는 빠르게 작전을 바꿔 가며 소환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펼쳤고, 뱀의 맹독을 바른 검과 발 차기로 상태 이상 공격을 펼치며 맞섰다. 그렇게 죽을 각오로 싸우자 곧 암살자 하나가 연속 치명타에 적주되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기회를 포착한 아크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리며 아크는 서너걸음이나 밀려났다. 다른 암살자 둘이 아크의 양옆으로 검을 날려왔기 떄문이다. 소환수가 평소처럼 다른 적을 막아주지 못하니 한 놈에게 집중 공격을 펼치기도 쉽지 않았 던 것.덕분에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아크의 생명력이 50%까지 내려가 버렸다. '쳇, 생각보다 까다롭군' "뱀, 회복 포션!" 아크는 두어 걸음 물러나며 포션을 들이켰다. 아니 ,들이켜려는 찰나. 암살자가 빠르게 주문서 하나를 꺼내 찢어버렸다. 순간 막 들이키려던 회복포션이 쩡, 소리를 내며 깨져나갔다.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회복불가} 주문서가 발동했습니다. 전투 상태에서 모든 종류의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지속 시간 : 30분}] '회복 불가?' 암살자들이 120레벨임을 확인한 뒤에도 아크가 전의를 상실하지 않은 이유는, 그동안 모아 둔 회복 포션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포션을 마실때는 뱀이나 소환수로 방해하고,자신은 안전하게 회복 포션을 마신다. 이게 유저를 상대할 때아크의 승리 패턴이었다. 덕분에 상대가 자신보다 레벨이 높아도 걱정없이 전투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고작 주문서 한 장으로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놀랄 틈도 없이 또다시 암살자들의 검이 가슴에쑤셔 박혔다. "후후후,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이방인들의 전투 방식은 이미 대강 알고 있다" 그사이 아크에게 밀리던 암살자는 뒤로 물러나 여유롭게 포션을 마셔 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계속되자 암살자들은 항상 80%의 생명력을 유지했다. 그러나 회복조차 불가능해진 아크는 생명력이 40%까지 내려가 버렸다. '젠장, 저 자식!' 아크는 멀찍이 떨어져 히죽거리는 안델을 노려보았다. 안델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유리한 전투에 굳이 끼어 들어 카오틱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그러는 사이 암살자들의 공격을 더욱거세졌다. "주, 주인!더, 더이상은.......!" 따닥! 따다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데드릭과 해골도 헐떡거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소환수들의 능력은 이제 고작 레벨 40대 중반 수준. 지금까지 그런 레벨로 고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할수 있었던 건 두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전투가 벌어지면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소환수보다 아크를집중 공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환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중 공격을받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는 아크가 상황에 따라 소환수를잘 운용한 덕분이다. 그러나 암살자들은 일반 몬스터들과 다르다. 필요하다 싶으면 소환수를 집중공격했다. 또한 평소와 달리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지금의 아크는 소환수를운용할 만한 여유조차 없었다. 덕분에 서포터를 받지 못하는 소환수들은 순식간에 빈사상태까지 몰려 버렸다. '여기서 소환수를 잃을수는 없다!' "데드릭, 해골.소환해제!' "미안하다. 주인!" 소환수가 사라지자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3명의 암살자가 아크를둘러싸고 쉴새 없이 검을 내리쳤다. 그때였다 .아크가 점차 수세에 몰려 위험해지자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던 로렌조가 와락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야잇, 이 자식들!" 그러나 로렌조의 검은 암살자에게 제대로 데미지조차 주지 못했다. 오히려 암살자들에게 몰매를 맞고 빈사 상태까지 몰려 버렸다. "얌전히 있었으면 몇 분은 더 살았을 텐데. 멍청한 놈!" 암살자가 귀찮은 듯 투척용 단검을 집어 던졌다. '아, 안돼!'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로렌조의 앞을 가로막았다. 미처 검을 휘두를 새도 없이 단검 한 자루가 가슴에깊숙이 쑤셔 박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데미지200! 생명력이 간당간당하던 아크는 단숨에 빈사상태에 빠져휘청거렸다. "다, 당신.......왜 그렇게까지..........." 로렌조가 당혹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크가 위험을 무릅쓰고 앞을 가로막은건, 돈한푼 되지 않는 의리 떄문이 아니다. 아직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으니 로렌조가 죽으면 곤란하다. 400~600골드나 건질 수 있는 퀘스트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이곳에서 죽게 된다고 해도 골드만큼은 절대 포기할수 없었다. 물론 아무리 정신 없는 상황이라도 그런 속내를 대놓고 떠들어 댈 아크가 아니다. NPC에게만큼은 곧 죽어도 정의의 사자인 것이다. "나는 월커스와 약속했다. 절대 너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너는 어떻게든 살아서 놈들을 처치하고 아버지와 화해해야해" "다, 당신은 대체.......!" 시드가 감동한 눈으로 아크를바라보았다. "떠들고 있을 시간 없어.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자!나를 따라와!" 암살자가 로렌조까지 죽이려 한다면상황은 보통심각한게 아니다. 아크는 일단 암살자를 피해 시간을 벌 생각으로 몸을 돌려 세웠다. 그때, 또 다른 암살자가 주문서를 꺼내 찢으며 소리쳤다. "주문서 [자력],타깃 아크!" 동시에 아크의 몸이 덜컥 멈추더니 엄청난 흡인력으로 암살자 쪽으로 끌려갔다. "아,아크님!" "돌아보지 말고 달려!금방 따라가겠다!" 아크는온 힘을 다해 흡인력에 저항하며 소리쳤다. 로렌조는 불안한 눈으로 쭈뼜거리다가 이내 어금니를 깨물며 와락몸을 돌렸다. 그 순간아크는 몸을 돌리며 전력을 다해 암살자에게 달려 들었다. 주문서 [자력]의 흡인력에 의해 가속이 붙은 아크가 달려들자 암살자가 움찔하며 검을치켜세웠다. 당황해서 호흡이 흐트러진 그 순간이 기회다. "연쇄 스킬 화격!" 아크가 기합성을 터트리며 화격을 날리자 암살자가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다른 놈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쓰러졌다. 동시에 강력한 흡인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이다!" 아크와 로렌조가 도망치자 안델이 발광하며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놈들을 잡아!' "크윽, 젠장, 그런 기술을사용할수 있을 줄이야" "하지만 걱정 마라. 다크브라더는 한번 잡은 사냥감은놓치지 않는다" 암살자들이 이를 갈아붙이며 다시 주문서를 꺼내 찢었다. [{추적}주문서의타깃이 됐습니다. 1킬로미터 범위 안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속 시간 : 30분}] [{전투해제 불가}]주문서가 발동했습니다. 적과 거리가 벌어져도 전투상태가 해제되지 않습니다. {지속 시간 : 30분}] '맙소사!' 아크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유저 전문암살자라는 말은 결코 과대광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크가 도망친 이유는 200미터 이상 거리를벌리면 전투 상태를 해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되면 일단 [회복불가]효과를 취소시킬수 있다. 또한 '은신'을 사용해 몸을 숨기면 안델에게 반격을가할 기회를 얻을수 있다. 그러나 모퉁이로 돌아서기직전, 아크에게 두 장의 주문서가 추가되었다. [추적].[전투 해제 불가].암살자가 사용한 것인지. 안델이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두장의 주문서 콤보로 아크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크의 약점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곳은 카이로트 ,진즉에 특수한 주문서에 대한 대비를 해 놨어야 했는데.......' 일전에 시드를 통해 특수한 주문서의 효과를들은 적이 있었다.그러나 설마 이렇게까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줄은 몰랐다. 직접적인 데미지를주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할 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때 조금 더 진지하게 주문서에 대한 정보를모으고, 대처법을 연구해 놨다면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물러서지 않았으리라. '한 번 정신없이몰리기 시작하니 대책이 안 서는 군' "안 되겠어. 여기서 흩어지자" "네? 하, 하지만.....!" "둘이 있어 봐야 나에게는 도움이 안돼. 그리고 어차피 놈들이 [추적]을 사용한 목표는 나다. 여기서 흩어지면 너를 뒤쫓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목숨까지 빚지고 이대로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너를 위해서가 아니야" "뭐?" "오두막에는 시드님이 남아있잖아. 만약 내가 당하거나, 놈들을피해 당분간 숨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시드님을 카이로트의 이방인들로부터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부탁이다.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시드 님을 보호해줘" "크윽.......알았습니다" 로렌조는 한참동안 갈등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역시 아크와 함꼐 있어 봐야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서둘러. 놈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떨어지자" "꼭 살아 돌아오십시오" "걱정 마" 아크는 짧게 대답하며 어두운 뒷골목을 달려갔다. 일단 로렌조와 헤어졌다. 퀘스트가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단 30분을 버티는 게 중요하다' 아크는 골목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주문서 콤보 덕에 현재 아크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니, 솔직히 주문서가 아니라도 세 암살자를 상대로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아크가 상대해온 도적들은 NPC라도 일반 몬스터로 분류되는 자들이다. 지능이 높으니 몬스터보다야 영악하게 전투를 펼쳤지만 어차피 유저의사냥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NPC라도 전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작센 영지의 실피드 기사단이 그 좋은예였다. 그들의 전투 방식이나 스킬의사용법은 오히려 유저보다 더 빠르고 빈틈없었다. 그리고 암살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애초에 유저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NPC인만큼 유저에게 대항하는 능력은 실피드 기사단보다 월등하리라. 그렇게 상성이 최악인 NPC가 3명. 게다가 뒤에는 안델까지 버티고 있다. 카오틱이 되지 않기 위해 물러나 있지만 암살자가 밀리면 구경만 하고 있지 않으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회복불가],[추적],[전투 해제 불가]. 주문서 콤보에 걸려 버려서 사용 할수 있는 모든 수단이 막혀 버렸다. 생각할수록 암담한 상황이다. '젠장, 안델 자식!설마 이런 방법을 사용할 줄이야' 너무 안이했다. 안델이라면 언제 어디서덤비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때무에 안델따위는 아예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아크보다 안델이 뉴 월드에 대한 지식이 월등하게 많다는 점!그리고 막대한 자금과 아란과의 친분으로 조직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안델 하나만 상대한다면문제 될게 없지만 ,이렇게 암살자나 주문서 같은 게임시스템을 활용하며 반격해 오자 대처 방법을 찾기가 난감했다. '이래서 유저들과 엮이기 싫었던 건데..........' 적을 만들기 싫어서 친구조차 사귀지 않았던 아크다. 그런데 첫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한 인연이 결국 이렇게 원치 않았던 상황으로 까지 발전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다!" 돌연 지붕에서 검은 형체가 뚝 떨어져 앞을 가로막았다. 다크브라더의 암살자! 아크가 움찔하며 몸을돌리려 하자 뒤와 옆에서도 암살자들이 떨어졌다. [추적]으로 움직임이 훤히 드러나 버린 아크는 그야말로 부처님 손바닥 안의 원숭이,아무리 미로같은 카이로트의 골목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포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결국 한 번 죽는 건 각오해야 하는 건가?' 죽으면 스탯이 6이나 떨어진다. 경험치 역시 30%나 떨어진다. 레벨이 90이니 30%의 경험치는 결코 적은 게 아니다. 거의 12시간을 쉬지 않고 사냥해야 올릴수 있는 경험치. 그러나 그보다분통터지는건,다른 사람도 아닌 안델에게 당한다는 사실이다. 역시나, 안델이 아크의 최후를 구경하기 위해 달려왔다. "크크큭, 표정이가관이군. 이제 잘난척하던 네놈도 끝장이다" "흥, 고작 이정도로? 설사 이번에는 당한다 해도 나느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말했지? 다시 한 번 덤비면 그때는 정말홀라당 벗겨 놓겠다고 .약속하지. 대륙 끝까지라도 쪼창가서 네놈을홀라당 벗겨 버리고 말겠어!" "정말 둔한 놈이군. 그렇게 상황파악이 안되나?" "뭐?" "홀라당벗겨지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멍청아!어이, 시작해라" 안델의 말에 3명의 암살자들이 동시에 주문서를 꺼내 찢었다. "주문서 [탈취].타깃 아크!" 주문서에서 검은 손길이 쭉 뻗어나와 아크의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붉은 경고 메시지가 중첩 되어 올라온 것은 그때였다. [{탈취} 주문서가 발동 했습니다. 타깃으로 지목된 유저가 사망하면 50%확률로 장비 아이템을 떨어트리게 됩니다. {지속 시간 : 30분}] '뭐, 뭐라고?'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장비 아이템을 50%확률로 떨구다니? 이런 주문서도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같은 주문서가 세 번이나 중첩되었다. 주문서도 재사용 대기 시간이있으니 한 암살자가 세 번이나 반복해서 쓸수 는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암살자가 3명. 3명이 동시에 주문서를 사용해 세번이 중첩된 것이다. 결국 장비 아이템을 떨굴확률은 150%.확률에 절대란 존재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이 정도라면 운이 좋아야 하나, 재수 없으면 3개도 떨굴 수 있다는 말이다. 현재 아크가 장착하고 있는 아이템은 하나라도 없으면 곤란하다. 최악의 경우, 란셀의 검을 떨구기라도 한다면종합 전투력이 30$나 떨어져 버린다. '무슨 이런 개 같은........NPC주제에 이런 무지막지한 주문서를 난사핟니!' 아크가 황당한 눈으로 암살자들을 노려보았다.그러나 아크가 모르고 있던게 있었다. 이렇게 전투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주문서는 한장에 30골드 이상이나 하는 고가품. 즉, 암살자들이 이번 전투에 사용한 주문서만 해도 210가까이 지출했다는 말이다. 300골드에 고용된 암살자들이 210골드나 지출하며 주문서를써 댔을 리가 없다. 그들이 사용한 주문서는 모두 고용인이 사비를 털어 마련해 준 것,다시 말해 아란과 안델이 현찰박치기로 주문서를 구해 암살자들을 무장시켜 놓은 것이다. 빌어먹을 자본주의! 역시 게임도 현실과 다름없이 돈 많은 놈이 유리하게돌아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네놈은 운이 없었어.다른 곳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무법 도시 카이로트.암살자가 활동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게다가 네놈..........카이로트 앞에서 부활장소를갱신 시켰지?" "글쎼?" 아크는 짐짓 태연하게 받아쳤지만 내심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안델은 속내를짐작한 듯 히죽거리며 지껄였다. "훗,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을......! 카이로트 근처에 달느 마을은 없어. 그걸 모를리 없는 네가 부활 장소를 갱신시키지 않았을 리가 없지. 그리고 이곳은 유저가 공격받는 정도로는경비병들이 움직이지 않아. 아니, 오히려카오틱이 아닌 유저를적대시 하는 곳이지. 네가 카오틱이 아닌 상태로 부활하면 마을로 도망갈 수도 ㅇ벗어. 뭐, 마을로 도망와도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 킥킥, 이제 좀 감이 잡히나? 누가 홀라당 벗겨질지?" 정확히 핵심을 찔려 버렸다. 평범한 마을 입구의 병참이라면, 카오틱이 아닌 한, 연속으로 살해당할 위험은 없다. 그러나 이곳은 카오틱 마을 카이로트 .오히려 카오틱이 아닌 유저에게 불리한 장소인 것이다. 조심한다고 부활 장소를 갱신시킨게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그러나 아크는 애써 속내를감추며 빈정거렸다. "나를 바보로 아나? 미쳤다고 이런 곳에서 부활 장소를 갱신하겠냐?" "흥, 그야 죽여 보면 알겠지, 죽여!" 안델이 소리치자 암살자들이 달려들었다. 처음 주문서가 발동하고 이제 겨우 15분이 흘렀을 뿐이다. 남은 시간은 15분.그러나 그때까지 회복조차 못 하는 상태로버틸만큼 암살자들은 만ㅁ나하지 않다. 그나마 잠시 도망 다니는 사이, 생명력이 30%까지 회복한것만도 다행이었다. 암살자들은 빠르게 세 방향에서 아크를 공격해 들어왔다. 한놈에게집중하면 곧바로 등 뒤에서 치명타가 터져나왔다.그렇게 1분이 지나자 아크는다시 생명력이 바닥나 빈사상태에 빠져 버렸다. '틀렸어, 이놈들을이길 방법이 없다!' 아크는 번뜩이는 눈으로안델을 노려보았다. '놈은 내가 이곳에 부활 장소를 갱신했다고 확신하고 있어. 틀림없이 내가 죽으면 병참에서 죽치고 기다리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놈과 같이 죽는 수밖에 없다!암살자락고는 해도 어차피 NPC,저놈이죽으면 암살자들도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거야. 그 사이에 먼저 부화랳서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멀리 도망치는 수밖에 없어' 현재로써는 그게 최선이었다. 또한 암살자까지 고용해서 지랄하는 안델 녀석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 주지 않으면 도저히 잠을자지 못할 것같다. '모험이다!' "바다 정령의 가호!" 아드리안의 목걸이에 담긴 특수 효과를 사용하자 파도가 일어나듯 주변이 파랗게 물들며 바다의 정령이 나타났다. 동시에 방어력이 40%증가,마나가 500회복되었다. 아크는 가방을 열어 낡은 검 한자루를꺼내 들어싿ㄷ. 그리고화격을 사용해 암살자 하나를 밀어내며 안델에게 달려들었다. "받아라 ,블레이드 스톰!" 스킬이 발동하자 손에 들린 검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나갔다. 그리고 강렬한 섬광과 함꼐 잘게 부서지며 안델을 휘감았다. 바다 정령의 가호에 이은 블레이드 스톰의 연계기. 거기에 빈사상태에서 발동하는 불굴 시리즈왕 아드레날린이 발동했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가진 최강의 필살 콤보였다. 뒤늦게 아크의 의도를눈치 챈 암살자들이 투척 단검을던졌다. 그러나 방어력이 40%증가한 아크의 생명력은 그리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운만 따라 준다면 아직도 레벨 60대에서 허덕이는 안델을 쓰러트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는 검의 파편을 바라보며 아크는 확신했다. 그러나 당므순간 ,안델의 입가에옅은 비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이내 주문서 하나를 꺼내 찢자 훅 하고 사라지더니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워, [워프]..........!' 목표를잃어버린 블레이드 스톰은 허공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아크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물들었다. 모든 기력을 쥐어짜 날린 필살 콤보.그게 단 한장의 주문서로 허무하게 실패한것이다.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등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암살자들이 날린 투척단검 두자루가 등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아크가 휘청하며 난간에 몸을기댔다. 고개를 내려 보니 끝도 보이지 않는 구멍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한 번 떨어지면 살아서는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 공동 나락!안델이 서 있는 곳은 카이로트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나락의 가장 자리였다. 안델의 [워프]로 자리가 뒤바뀌어 아크가 나락의 가장자리까지 몰려 버린것이다.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할때 자칫 한발만더 내디뎠으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뻔했다. 아니, 그 자리에 몰려 버린 순간 이미 아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네놈도 여기까지다!" 암살자들이 또다시 투척 단검을 날려왔다. 아크는검을 휘둘러 두 자루의 단검을 쳐 냈지만 나머지 하나가 어깨에 박혀 버렸다.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난 아크,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살아날방법이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죽어서아이템을 떨구면 안델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죽는 건 어쩔수 없다고 해도 그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안델 놈에게 아이템을 주느니 차라리 쓰레기통에 처박고 만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꺠물었다. 버텨 봐야 100%죽는다. 그러나 만약 나락으로 떨어지면? 역시 마찬가지로 죽게 될게 분명하다.그러나 적어도 안델에게 죽는 건 아니다.아이템을 떨궈도 안델의 손아귀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0.01%라도 살아날 가망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선택의 여지가없다. 아크는 곧바로 몸을돌려 난간을 뛰어넘었다.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오던 단검이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발밑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나락........! ACT 8 나락의 끝에서 '........이제 어쩌지?' 어두운 공간에서 엄청난 속도감만 느껴진다. 마치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 얼마나 오랫동안 떨어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져야 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만은확실했다.바닥에 닿는 시간이 길면길어질수록 낙하 데미지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떨어지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지나도록 바닥이나오지 않을 정도라면........ '지금 남아 있는 생명력은 고작 150남짓, 아무리 캣나이트 특수 스킬이 발동한다고 해도 일단 떨어지면 확실히 사망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야. 지역이 카이로트에서 나락으로 바뀌어서 그런지,아니면 1킬로미터 이상떨어져서그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주문서들의 효과는 사라졌다. 그러나 떨어지기 직전에 세번이나 맞은 [탈취]는 대상 자체에 작용하는 주문서라 지역이나 거리 제한이 없다. 죽으면 현재 입고 있는 장비 아이템 중에 1~2개를 잃어버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치명적인타격이 되리라. 그러나 정말 걱정해야 할문제는 그게 아니다. '안델...........!' 정신이 없어서 미처 생각하지못했다. 안델은 몇 백 골드를 써가며 암살자를고용했다. 그리고 굳이 직접나서서 아크를 추격해 왔다. 퀘스트나 레벨업따위를 포기하고 말이다. 이제 그에게 뉴 월드의 최고 목표는 아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내가 카이로트에서 부활 장소를 갱신했다는 확신이 있는 한, 놈은 내가 부활할 때까지 며칠이라도 병참을 지키고 있을 거야' 안델도 사람이다. 24시간 잠도 안 자고 병참을 지키지는 못할터.그러나 암살자와 교대로 지킨다면 도저히 파고 들어갈 빈틈이 없다. 결국 아크는 접속하자마자 장비 아이템까지 잃은 상태로그들과 맞닥트리게 되고, 높은 확률로 PK 를 당하게 되리라. NPC가 유저를 도와주지 않는 무법도시 카이로트.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상황이 없는자에게 이렇게까지 불리하게 작용할 줄은 몰랐다. '정말 이대로 끝나 버리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불안하게 요동쳤다. 말도 안된다. 지금까지 아크를어떻게 키워 왔는데? 고작 안델 따위 때문에 더이상 게임을 못 하게 되다니? 안데렝게 뉴 월드는 게임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아크에게는 현실이자 생활이다. 아크가 매일 먹고 있는 김밥도, 어머니의 병원비도 뉴 월드를 할수있기에 충당하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찾아냈다. 정말필사적으로 찾아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방법.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싶은장소. 포기할수 없어. 안델따위 때문에절대 포기할수는 없어' 내가 하고싶은 것이고,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근성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 아크가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뿐이니까. '살아야해!안델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여기서 살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생각해라, 아크!살아날 방법을 생각해!여기는 현실이 아니야. 뉴월드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어. 포기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살아날 방법이 있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굴렸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크는가속을붙여가며 떨어져 내렸고 이내 까마득한아래로 거친 바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솟아올라 있는 돌기둥들이 엄청난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마치 나락이,살아있는 괴물처럼 송곳니를드러내며 아크에게 달려들고 있는 듯하다. 아크의 머릿속에서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나락의 송곳니!그래, 어쩌면.......!' 아크는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검을 꽉 부여잡고 온 신경을 두 눈에 집중시켰다. '기회는 단 한순간이다!0.1초라도 늦거나빠르면 끝장이다!' 머리를 아래로 향하자 달려드는 바닥이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토마토처럼 으깨져 버릴 것만 같은 고포가 밀려 온다. 그러나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눈을 더욱 부릅떴다. 그리고 막 바닥이 코앞으로 다가오려는 찰나! '화격!' 카카카칵!쩌쩡! 아크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코아팎지 다가온 돌기둥을 검으로 후려치며 밀어낸다! 순간 아크의 팔과 어깨에 엄청난 반탄력이 집중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거릴 좁혀 오던 돌기둥, 따지고 보면이것도 적의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을 날리니 화격이 발동한 것이다. 상대를 10미터까지 밀어내는 화격의특수 효과!그러나 상대가 움질일 리없는 바닥이다 보니 그 충격은 고스란히 아크에게 되돌려졌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몰라도 결과는 쉽게 예측할수 있었다. 덜컥! 아크의 몸이 급 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허공에 멈춰섰다. 동시에 지금까지 계속 중첩되던 낙하 데미지가 일순간에 무효화 되었다. 아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중제미를 돌며 발로 돌기둥을걷어찼다. 그리고 몸의 탄력을이용해 돌기둥을 피해 내며 온 힘을 다해 낙법을 펼쳤다. 격렬한충격이 어깨와 등으로 전해져싿. -캣 나이트의 능력으로 낙하 데미지가 50%경감했습니다. 낙법에 의한 유연성의 효과로 낙하 데미지가 30%경감했습니다. '서,성공이다!' 아크는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도적단과 싸우며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화격을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몸이 돌기둥에 꿰이기 직전의 0.1초에 화격을 성공한 것이다. 거기에 캣 나이트의 특수 능력과 낙법을 펼치자 데미지는 고작 50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나는 수련이 일구어낸 쾌거! 그러나 기뻐할 여유도 없이 눈앞에서 붉은 빛이 연달아 터져나왔다. -흡혈 거머리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데미지 5! '뭐, 뭐야?'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내렸다. 어느새 아크의 주변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시뻘건 거머리들이 우글거리며 몰려들고 있었다.이미 몇 마리는 몸에 붙어서 미친 듯이 피를 빨아 댔다. 아크는검을 휘둘러 서너 마리를 뗴어냈지만 그 사이에 더 많은 검리들이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빨려나가 30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젠장!간신히 살아나서 거머리의 밥이 될거 같으냐?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며 거대한 검은 고양이가 떠올랐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시선을 번뜩이자 거머리들이 부르르 떨며 굳어 버렸다. 피를빨아 대던 거머리들도 나무토막처럼 굳어 툭툭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굳어버린 거머리로 새까맣게 덮어 버렸다. 고양이의 기백으로 마비시킬수 잇는 시간은 1분! '1분안에 거머리를 모두 죽일 수는없어. 게다가 스킬을 사용할 마나도 없어. 생명력이 30밖에 남지 않았으니 놈들이 꺠어나면 끝장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해!' 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 주변을 살폈다. 그때, 어두운 공간 한쪽에 간신히 한 사람이 기어 나갈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선태그이 여지가 없다. 아크느 곧바로 거머리를밟아대며 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다행히 거머리들은 아크를 추격해 오지는 않았다. 아크는 그제야 조금 여유를 되찾고 구멍을 기어 들어갔다. 구멍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낮은 포복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구멍을 따라 기어가기를 몇 분, 문득 팔이 주르륵 미끄러져 버렸다. 그리고 마치 수영장의 미끄럼틀처럼 정신없이 경사를따라 미끄러지다 갑자기 어디론가 툭 떨어졌다.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건 그때였다. "어,어라?" [나락의 지하 미궁 당신은 카이로트의 지하에서 끔찍한 악취를풍겨 내는 지하 미궁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은 카이로트가 세워지기 전부터 존재하던 고개의 미궁인 듯합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상에 카이로트가 세워지자 자연스럽게 미궁에는 온갖 오물과 시체들이 모이게 돼 버렸습니다. ㅌ락한 도시 카이로트에서 버려진 온갖 오물에의해 미궁은 이제 악취가 가득한 마굴처럼 변했고, 미궁의 존재들은 더욱 기형적인 능력이생겨 버렸습니다]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자 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1,000의 경ㅎ머치와 70의 명성을 추가로 얻을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추적]주문서의 반응이 사라졌다" "해치웠군" "생각보다 강한 놈이었다" 암살자들이 나락의 가장자리로 몰려들었다. 나락은 바닥까지의 깊이를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일단 떨어지면 100%사망이다.아니,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다시 기어 올라올 방법은 없다. 죽어서 부활하는 수밖에....... "놈이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장비품을 주울수는 없겠군" "그런 건 상관없어. 놈의 허접스러운 아이템 따위를 탐내서 수백골드나 쓰면서까지 주문서를 사용한 게 아니다. 내가원하는 건 그놈을 거지로 만들어 버리는것뿐이야" "뭐, 그렇다면 상관없지만......일단 한건은 해결한 셈인가?" "아직멀었어" 안델은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내가 놈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이정도로 끝낼 수 없지. 그놈이 나에게 말했던 그대로 갚아 주겠어. 홀라당 벗기고 모든 스탯을 0으로 만들때까지!열번이든 백 번이든 죽여 주겠어" 안델은바람이 일어날 정도로 세차게 몸을돌리며 말했다. "놈이 카이로트의 병참으로 돌아올건 확실하다. 물론 우리가 지키고 있을 걸 예상하고 있을테니 금세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놈도 응시자니 그리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걸. 이제부터는 인내심 싸움이다. 놈이 나에게 그랬듯,며칠..........아니 몇 달이 걸리더라도 죽이고,죽이고 또 죽여서 두 번다시 접속하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다." 안델은 암살자들을 이끌고 병참으로 향했다. 가진 자의 원한이란 무서운 것이다. "등록 거부" 아크는 당연한 듯이 대답하곤 몸을 일으켰다. 안델이 눈이 벌게져서 찾고 있을 것이다. 정보를 올리는 미련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나락의 바닥이 던전과 연결되어 있을 줄은.........' 아크는 몸에 늘어붙은 오물을털어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흑갈색을 변해 버린 벽돌로 만들어진 통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나락의 지하 미궁, 본래의 이름이야 어쨌든 현재는 카이로트의 하수처리장이 돼 버린 곳이다. 썩은 물이 발목까지 차있고, 군데군데 쌓여있는 오물 더미에서는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코만이 아니라 눈까지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지나치게 리얼한 것도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나저나 이제 어쩌나........' 당연히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30에서 간당거리는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아크는 음식을 만들어 생명력을 회복하고잠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일단 살아났다. 접속조차 못 하게 될 뻔한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다. 그러나기뻐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하다. 카이로트에 처음 들어와 나락의 정보를 봤을떄, 나락은 출구가 없어 한번 빠지면 두번 다시 살아서는 나올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아크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내가 도착한 곳은나락이아니다. 숨겨진 던전이야. 출구 없는 던전이있을리가 없잖아. 그래, 일단 출구를 먼저 확보해 놓자' 카이로트로 나가서 안델에게 복수할 방법을 찾아보든, 아니면 모처럼 찾아낸 숨겨진 던전을 탐사하든....어느쪽이든 일단 자신의 안전을 확보해 놓는게 급선무였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죽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수로든 미궁이든 명색이 던전이닌 당연히 몬스터도 있겠지' "마령 소환, 데드릭!" 아크는 영력이 회복되자 먼저 데드릭을 소환했다. 흐릿한 빛과 함께 나타난 데드릭은곧바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휴, 주인. 살아 있었구나. 윽, 그런데 여기는.........?" "사정이 그렇게 됐어. 어쨌든 일단 이곳에서 나갈 만한 출구를 찾는게 시급하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탐색해봐.몬스터가 나타나면바로 알리고" "크........코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군. 알았다" 데드릭이 비틀거리며 통로를따라 날아갔다. 그러나 2분 뒤에 돌아온 데드릭은 난감한표정으로 고개를저었다. "주변에 출구처럼 보이는 곳은 없어. 그리고 지형이 너무복잡해서 어디가 어디인 줄도 모르겠다" "몬스터는?" "못 봣어" "그래?이상하군 .없을리가 없는데......." 와락! 아크가 통로를 기웃거리며 한 걸음 내디뎠을 때였다. 돌연 발밑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발목을 잡아챘다. "헉, 뭐, 뭐야?" 아크가 움찔하며 시선을내려보니 썩은 물에서 튀어나온 뼈만 남은 손이 발목을 틀어쥐고 있었다. 아크가 검을 휘둘러 쳐내고 황급히 뒤로 물러 섰다. 주변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수면이 부글부글하더니 뼈다귀로 만들어진 몬스터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썩어 가는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뼈다귀 몬스터......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던 곳에서 무려 여섯 마리나 되는 몬스터가 솟아나아크를 포위해 버렸다. '폴루션 스켈레톤?' 레벨은 무려 110! 달그락, 따다닥, 달그락! 여섯 마리의스켈레톤 머리통이 빙글빙글 돌다가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순간 퀭한 눈자위에서 시뻘건 불길이 뿜어나오더니 녹슨 철검 따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이런망할!뱀, 신경마비 독!" 쌕쌕쌕! 아크는 시퍼렇게 번들거리는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이 치명타를 맞고 밀려났다. 그러나 마비에 걸린 스켈레톤은 한 마리도 없었다. 살점이라고는 썩어 가는 고깃덩러리 몇 개를 붙이고 있는 게 전부다. 당연히 신경 따위가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폴루션 스켈레톤은 오염 물질로 변형된 스켈레톤. 뱀이 만들어 내는 초급 맹독 따위는 식수나 다름없었다. 맹독 효과가 발동하자 오히려 생명력을회복했다. '맹독 흡수 특성?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럴 때 맹독이 안먹히는 놈들을 만날 건 뭐야?'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폴루션 스켈레톤에게 일격을받았습니다. 데미지 130! '파상풍'에 걸려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1분간 5초마다 10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스켈레톤이 휘둘러대는 무기들은 모두 오물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온갖 세균이 득식거리는 더러운 무기에 얻어맞으면 높은 확률로 파상풍에 걸려 버린다. 파상풍에 걸리자 정신이 아찔해지며 몸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스켈레톤의 공격을피하기 어려운건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너무 맹독에만 의존해 온건가?' 뱀에게 맹독 스킬이 생긴 이후, 확실히 전투는 쉬워졌다. 발 차기와 맹독 콤보를 사용하면 대부분의 몬스터는 상태 이상에 걸려 버렸다. 특히 아크가 자주 사용하는 맹독은 신경마비. 팔이나 다리를 마비시켜 몬스터를 단숨에 장애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맹독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크는 자신도 모르게 동작이 굼뜬 몬스터와의 전투에 길들어져 버린 것이다. 암살자들의 움직임에 대응하지 못하고 헤맸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유저 전문 암살자는 유저가 보유한 대부분의 특수 스킬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검투술이난 화격 같은 정석적인 스킬은 상관없겠지만. 맹독같은 종류의 성공률은 상당히 낮았다. '그래, 지금까지 내가 너무 안일했어. 스킬을 올린답시고 너무 남발했어. 덕분에 전투는 쉬워졌지만, 실제 내 전투능력은 퇴보한거야. 맹독이나 고양이의 눈, 불굴시리즈 같은 스킬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속성에 상관없이 모든 적에게 통용되는 기본 스킬. 검투술을 중심으로 한 내 실력이다!' 그렇다 ,그게 바로 게임의 기본이다. 전사는 검술을, 마법사는 마력을 ,궁수는 궁술을.........그 외의 어떤 스킬이 생기든 캐릭터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직업에 어우리는 주 무기를활용하는 능력!아크의 경우엔검과 발차기로 이루어진 검투술이다. '정신 차려라,아크!헤매고 있을 떄가 아니다!' 자신만을 노리고 복수의 칼날을가는적이 나타났다. 초보 딱지를 뗀지도 오래되었다. 기본적인 것조차 몰라서 헤매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나는 놀고 있는 게 아니야!' 아크는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이다. 마음이 변하면 움직임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각오가 없다면 그 무엇보다 느리게 변하는 게 마음이지만, 각오만 있다면 마음이 변하는 건 일순이다. 불경에서는 말하는 고개만 돌리면 피안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인 것이다. '상대는 열마리, 전장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순간 아크의 시야가 확 넓어졌다. 당장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스켈레톤만이 아니라, 모든 스켈레톤의 움직임이 피부로 느껴졌다. "데드릭, 뒤쪽이다!D-2플랜!" 데드릭이 빠르게 날아와 아크의 뒤덜미를 공격하는 스켈레톤에게 달려들었다. 아크는 뒤를돌아보지도 않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스케렐톤이 검을 휘두른다. 순간 아크는 허리를 비틀어 흘려내며 검을 쑤셔 넣었다. 카운터 어택! 스켈레톤이 충격을 받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양쪽에서 스켈레톤 두 마리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다. 전장의 움직임을 파악한 아크는 이미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크의 몸이 바닥에 낮게 깔리며 바닥을 쓸 듯이 발차기를 날렸다. 하단 차기로, 포인트를 얻을 수 없는 태권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 아크가 무협영화에서 본동작은 태권도식으로 변형해서 만들어 낸 발차기였다. 발 차기에 맞은 스케렐톤들이 우르르 넘어졌다. 뼈다귀뿐이라 체중이 적어 쉽게 넘어진 것이다.그리고 연결되어 터져나오는 검격과 발차기에 스켈레톤들이 조각조각 분해되어 버렸다. '일단 세놈은 해치웠다!' 아크가 다음 상대를 찾아 고개를 돌릴 때였다. 따닥, 따다다닥, 따다닥! '뭐, 뭐야?' 바닥에 널린 뼈다귀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서로엉겨 붙었다. 금이 가고,부러진 것들을 뺀 나머지가 서로 짝을 맞춰 조립되더니 이내 멀쩡한 스켈레톤 한 마리가 만들어졌다. 생명력도 100%!어처구니 없는 장면이다. '쳇, 그저 쓰러트리는 게 아니라 뼈다귀를 모두 못 쓰게 만들어 놔야 한다는 건가?' 아크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전처럼 빈틈만찾아 공격해서는 의미가 없다.각 부위별로 골고루 검격을 날려 뼈다귀를 부서트리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온몸을 부서트려야 스켈레톤이 다시 조립되는 일을 피할 수있다. 덕분에 전투는 상당히 길어졌다. 그러나 다시 영력을 회복해 해골까지 소환해 내자 스켈레톤의 공격이 분산되었고, 결구 15분가량이 지나자 모든 스켈레톤을 박살 낼 수 있었다. 마무리로 해골이 스켈레톤 한마리에게 박치기를 하며 끝내자 데드릭이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극이군.동족상잔이라니......." 딱딱딱! 해골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부서진 뼈다귀를 씹어댔다. 어쨌든 무사히 전투를 끝냈지만 아크는 안심할 수 없었다. '이던전......생각보다 난이도가 높다' 스케렐톤의 레벨이 110이나 되지만,아크역시 어둠 속성 보너스로 120이다. 그냥 여섯 마리를 상대하는 거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만만한 상대와 싸워도 생명력의 손실은 막을 수 없다. 더구나 한 방이라도 맞으면 파상풍에 걸려 버린다. 그뿐인가? 잠시만 방심해도 재조립돼서 덤벼드니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명력이 바닥나 전투가 끝날 때즘에는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번에는 여섯 마리라 어찌어찌 이겼지만 일고여덟마리라면 승산을장담할수 없어' 문제는 그 점이다. 다른 던전이라면 데드릭으로 정찰해서 미리 숫자를파악.위험하다 싶으면 피하거나 유인해서 한 마리씩 해치울 수도 있다. 그러나 놈들은 발목까지 차오른 진창의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포위한다. 결국 놈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조차 알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언제 어디서 기습을 받게 될지 모르니 무엇보다 생명력 관리가 우선이다. 그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 적은 스켈레톤이 반응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어. 스켈레톤이 나타나면 바로 후퇴해서 싸우는 거다' 아크는 일단 스켈리톤이 떨군 아이템을 챙기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발밑이 허전해지는가 싶더니 몸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리고 엄청난 흡인력에 이끌려 어디론가 빠르게 끌려갔다. '이,이게뭐야?' 당황하는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웜홀에 빠져 버렸습니다. 나락의 지하 미궁에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웜홀이 도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웜홀에 빠지면 배관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강제 이동하게 됩니다] 펑! 이어 아크는 막혔던 하수구가 뚫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밖으로 솟구쳤다.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던전 안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에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지역이었다.문득 귓가로 파리 소리처럼 왱왱대는 데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주인?어떻게........된거야?어디.....있어?" "데드릭!넌 괜찮으냐?" "주인........살아 있었구나!갑자기......사라져서 놀랐잖아" 아크는데드릭과 영적으로 연결되어 일정 거리 안에서는통신이 가능했다.그러나 감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걸 보니 꽤나 멀리 떨어지게 된 모양이다. "내 위치를 모르겠나?" "........몰라, 어디로 갔는지 짐작도 .......안돼" "알았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해골과데드릭의 소환을 취소시켰다. 아직 해골을 소환할 떄 사용한 영력이 채 회복되지않았다. 그러핟고 소환수도 없이 나댈수는 없으니 일단아크는 영력이 회복될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젠장,그렇지 않아도 복잡하고 위험한 던전인데 웜홀이라니? 대체 이놈의 던전은........" 아크가 푸념을늘어놓고 있을 때였다. 문득 어깨위로 뭔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아크가 어꺠로 손을 가져가자 끈적끈적한 점액질이 눌어붙었다. "뭐야 ,이게? 윽!오물인가? 정말 여러가지로 기분나쁜........헉!" 별생각 없이 시선을 들어 올렸던 아크가 숨막히는 비명을 터트렸다. 천장에 거대한 젤라틴 덩어리 같은 물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점액질을 질질 흘려 대는 집채만 한 반투명 몬스터!시선이 닿자 몬스터가 와락 달려들어 아크를 휘감아 버렸다.동시에눈앞에서 붉은 빛이 쉴 새 없이 번쩍 거렸다. -폴루션 슬라임의 소화액에 의해 산성독에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데미지 50! "스,슬라임?" 비명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슬라임은 아크를 완전히 감싸고 코와 입으로 물컹한 액체를 쑤셔 넣었다. 그럴 때마다 정신없이 데미지가 가산되며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아크는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점액질을 밀어내면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캑캑거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점액질이 통로를 가득 메운체 꿈틀거리고 있었다. 레벨이 무려 130이나 되는 폴루션 슬라임이었다. '슬라임? 저게 슬라임이란 말이야?' 슬라임이라면 당연히 아크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에서 초반에 만날수 있는 몬스터.그러나 아크가 알고 있는 슬라임은 이렇게 흉측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동글동글하면서 폭신한.......뭐랄까? 몬스터라기보다는 유저들의 사랑을 듬뿍받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눈앞의 슬라임은 유저들의 사랑따위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귀여움은 커녕 악취를 풍기며 꿈틀거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 사이 슬라임의 몸이 주욱 늘어나더니 아크의 팔을 휘감았다.붉은 빛이 번쩍거리며 산성 데미지가 들어왔다. 일격에 데미지는 불과 50밖에 안되지만 ,닿아있는 동안 생명력이 꾸준히 빨려나간다. 산성 속성이라 장비의 내구도도 생명력만큼이나 빠르게 깎여 나갔다.아크는 화들짝 놀라며팔을 잡아 뺐다. '몸 전체가 소화기관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속전속결이다!' 아크가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미끌!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검은 허무하게도 슬라임의 몸에 닿자 점액질에 미끄러져버렸다. 당황한 아크는 한 걸음 물러나며 고양이의 눈을 시전했다. 그러자 스랄임의 몸 중심에서 붉은 점이 떠올랐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밤톨만한 눈알. '아마도 저게 슬라임의 핵인 모양이군' 물리 공격이통하지 않고 작은 핵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아크는 해저에서 같은 특성르 가진 몬스터를사냥해 본적이 있다. 수많은 촉수를 휘둘러댔던 제리피쉬! 짐작컨대 슬라임 역시 제리피쉬처럼 약점이 작은 만큼 일단 공격받으면 엄청난 데미지를 입으리라. '하지만 슬라임은 하수로를가득 채울만큼 거대하다. 검을 어찌어찌 찔러 넣는다 해도 중심에 있는 핵에 닿지도 않잖아?' 아크는 쉬지않고 솟아 나오는 점액질을피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물리 공격에 면역이 있는 만큼 속성 공격에는 취약할게 분명하다.아마도 마법사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라. '어떻게 저 점액질을 밀어낼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관건은 그것이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하나의 스킬을 떠올랐다. '그래, 그 기술이라면........!' "뱀 ,가장 쓸모없는 검!" 아크는 뱀이 뱉어 낸 허접스러운 검을 잡고곧바로 스킬을발동시켰다. "블레이드 스톰!" 아크가 블레이드 스톰을 펼치자 엄청난빛이 터지며 검의 파편이 뿌려졌다. 예상대로 모든 파편은 점액질에 미끄러지며 튕겨 나갔다. 그러나 아크가 노린 것은 처음부터 파편의 데미지가 아니었다. 파편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소용돌이!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자 슬라임의 점액질이 고압산소에밀려나는 지방처럼 얇아졌다. 핵까지 남은 거리는불과 30센티미터! 검을 쑤셔 박으면 닿을 거리다! "지금이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화살처럼 쏘아지며 다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검이 점액질을 파고들어 핵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슬라임의 생명력이 60%나 빠져 버렸다. 그리고 점액질 전체가 부르르 떨리며 다시 두꺼워졌다. 그러나 아크는 소환수르 해제해 마나가 남아도는 상태! 다시 한번 블레이드 스톰과 다크 블레이드 콤보를 날리자 슬라임의 생명력이 바닥나버렸다. 쿠오오오!퍼펑! 엄청난 양의 점액질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덕분에 온몸이 점액질투성이가 돼 버렸지만 더 이상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냈다!" 아크는 그제야 한숨을 불어 내며 털썩 주저 앉았다.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슬라임이 사라지자, 그제야 주변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들어왔다. 웜홀에 빠지기 전에 있던 통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웜홀에 빠지기 전에는 부서진 벽돌 따위만 보였는데, 이곳은 벽 전체에 나무 뿌리 같은 것이 얽혀 있었다. 아크는일단 체력을 회복하고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몇 분가량 걸어가자 안쪽에 군데군데 녹이 번져 있는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출구인가?' 아크는 반색하며 철문으로달려갔다. 그러나 철문을 아무리 삺봐도 손잡이나 열쇠 구멍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막다른 곳을막아 놓은 것뿐ㄴ인가?' 아크가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 때였다. ㅁ누득 손에닿아 있던 부분의 녹이 부스스떨어지며 손끝으로 우둘투둘한 부분이 만져졌다.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녹 안쪽에 뭔가 문양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아큰느 혹시나 싶어 얼른 녹을 털어냈다. 조금씩 드러나는문양에 아크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라?이 문양은 일전에.......아,맞아!' 3개의삼각형이 얽혀 있는 듯한문양! 아크는 얼마 전에 같은 문양을 본 적이 있었다.바로 묘족장로 핫산이 알려 주었던 문양이다. 묘족과 교역을 하던 시절.지저세계의 주민들이 사용했다는 문장이었다.한동안 잊고 있었던 문장을 이런 곳에서 발견하게되다니! 아크가 바쁘게 손을 움직여 녹을 모두 털어냈다. 그러자 문장 옆에 새겨진 작은 글자가 드러났다. 괴상한 형태로 얽혀 있는 이해 할수 없는 문자.그러나 아크는 이런형태의 문자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고있다. 문자에 손을 가져가자 옅은 빛이 퍼져나오며 해독된 내용이 눈앞에 떠올랐다. 고대의맹약에 따라 이곳을 봉인한다. 이곳을 모르는자는 이곳을 지날 수 없다. 목적이 있는 자는 그대의걸음으로 나를 불러라. 나의 이름을 따라 순례하며 존경을 표하는자만이 이곳을 지날수 있으리니................. ['지저 세계의입구'를 발견했습니다. 고대 유물에 대한지식으로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당신은 어둡고 음산한 나락의 지하 미궁 중심에서 고대의비밀로 숨겨져 왔던 지저 세계의 입구를 발견했습니다.그러나 입구는 고대의맹약에 의해 굳게 잠겨 있습니다. 맹약의 조건은 지혜롭고 겸손한 자만통과시키는 것입니다.당신은 지하미궁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내 철문너머로 갈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야합니다. 고대유물'지저세계의입구'의 정보를 습득한보너스. {고대유물의 지식+15,지능이5,명성이30상승했습니다}] '지저 세계의입구가 이런곳에...........!'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다. 사실 아크는 지저세계가 기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했다. 핫산의 말에 따르면 지저 세계 주민들의 대리인들은 북서부에서 넘어왔다고 했다. 묘족의 신전이 있던 곳에서 북서부라면기란. 게다가 지저 세계 주민들이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상업이 번창 했을 터,상업도시 기란과 연관되는 점이 많았 던 것이다.그런데 설마 브란트 산맥,그것도 카이로트의 지하에 입구가 존재하고 있을줄은......... '그러고 보니.......' 문득 자신이 떨어진 곳의 이름이 생각났다. 나락의 지하 미궁.나락은 불교 용어로 지옥이니 심연을 뜻하는 단어다.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땅밑,지저 세계라는 의미도 가지고있다. 결국 나락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저 세계에 대한 힌트였다는 말이다.꽤나 터무니 없는 방식의 힌트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입구를 발견하다니,죽으라는 법은 없군' 이로써 아크의 목적이 분명해졌다 나락에 빠져서 살아나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때문에 아크는 이곳에 출구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그러나 이곳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면 애기는 틀리다. 지저 세계의주민들은묘족과교역을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밖으로 왕래를 했었다는 말.설사 지하미궁에는 출구가 없을지 몰라도 지저 세계 어딘가에는 출구가 존재하는게 분명하다.일단 지저 세계로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 '게다가 지저 세계에는 삼신기 가운데 두 번째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삼신기를 찾는다는 행위는 아크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삼신기는 다크 워커의 힘의 근원.일전에 별의 조각을 찾아 냈을 때처럼 스킬이나 부가 능력치를 얻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한순간에 능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지금 아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바로그것이었다. 카이로트의 병참에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있을 안델. 비록 당장은 힘이 약해 숨어 있어야 하는 형편이지만, 삼신기가 손에 들어온다면 상황은 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히 위기를 벗어나는게 아니라 복수까지도 가능할 지 모른다. '아니,기필코 복수해 주겠다. 이곳은 내가 선택한 내가 살아갈 공간이다. 너같이 장난삼아 게임을 하는 게 아니야.두번 다시 나를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들어 주겠어!' 할일이 확실하게 정해지자 의욕이 되살아난다. 아크는 본격적으로 던전 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락의 지하 미궁은 과연 미궁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엄청나게 복잡했다.단순히 미로처럼 복잡한 것 만이 아니라 수 많은 계단으로 2층,3층까지 연결되어 마치 3차원 입체퍼즐 속에 갇힌 듯했다.덕분에 한 번 지나갔던 길을 기억하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때,아크는 잊고있던 스킬 하나를 기억해냈다. '이럴 때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군' 아크는 새로 익힌 지도 제작 스킬을 시전했다. 한슨에게 배운 지도 제작 스킬을 사용하면 던전에서도한 번 지난간 길은 자동으로 기록되었다.덕분에 아크는 지도를 확인하며 조금씩 던전의 지형을 익혀 나갔다.물론 느긋하게 던전 탐사나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따닥,따다닥!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스켈레톤들이 일어나 공격을 해왔다.적게는 네마리에서 많게는 열마리까지! 덕분에 아크는 한 번전투를치를때마다요리를만들어먹어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슬라임은 덩치가 커서 미리 정찰로 알아내고 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슬라임은 경험치가많지만,지금 아크로서는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하지 않고 이길 방법이 없었다.다시 말해 한번 싸울 때마다 검이 두자루나 소모 된다는 것이다.아무리 잡템이라도 검을 두자루나 써가며 싸울 이유가 없었다.그렇게 미궁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니 미궁 사냥에 요령이 생겼다.막다른 곳에서 슬라임을 만나거나,일곱마리이상의 스켈레톤에게 포위 당했을 때,아크는 얼른 근처의 웜홀을 이용해 위기를 벗어났다. 미궁에는 도처에 보이지 않는 웜홀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웜홀에 한번 빠지면 위치가 자동으로 지도에 갱신 되어 필요할 때는 [워프]주문서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니 미궁도 꽤 쓸만한 사냥터 였다.레벨이 높은 스켈레톤은 경험치도 좋았고,아이템 드랍율도 높았다. 또한 미궁은 카이로트의 쓰레기 처리장이나 다름없는 장소였다.그래서 인지 갈릭의 배 속에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던 것처럼 미궁 역시 군데 군데에 오물더미가 쌓여있었다. 혹시나 해서 뒤져보니 역시 가끔 쓸만한 아이템이 나오기도 했다. '꽝'이 걸리면 독가스가 뿜어지거나 해서 상태 이상에 걸리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이 끔찍한 악취만 없으면 이곳에서 레벨 업을 하며 사는 것 도 나쁘지 않을 텐데' 어쨌든 나쁘지 않다.아니,오히려 좋다. 그러나 지금 아크의 목적은 레벨 업이나 아이템이 아니다. 지저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내는 것이 과제다. 그러나 던전의 지도를 70%까지 그렸는데도 여전히 지저 세계로 들어 갈 방법은 오리무중이었다. 던전 안에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지만,어디를 둘러봐도 단서라고 할 만한게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군. 슬슬 한계가 느껴지는데.......' 아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가방을 살펴보았다. 스켈레톤과의 전투는 항상 생명력이 바닥 날 때까지 싸워야 끝난다.당연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고,덕분에 지금은 식재료가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애초에 갱생단에 줄 음식을 너무 많이 만들어 식재료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미궁에도 식재료를 구할수 있었다.그러나 오물과 세균이 득실거리는 미궁에서 구할 수 있는건 스켈레톤의 뼈나,슬라임의 점액질.시험 결과 그것들은 모두 독이었다.아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문제는그뿐이아니다. 아이템 드랍율이 높다는 말은, 그만큼 가방 공간을 많이 잡아 먹는다는 뜻이다.미궁에 들어온지 24시간. 이미 아크의 가방은 가득 찼고,장착 스킬을 아이템 보관으로 교체한 뱀의 배 속에도 90%가 넘게 아이템이 들어차 있었다. '아이템은 둘째치고,지금은 무엇보다 식재료가 급해. 언제 적이 나타 날지도 모르는 곳에서 음식까지 떨어지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로 죽게 될지도몰라' 아크는 답답한 한숨을 불어내며 바닥에 작은 구멍을 바라 보았다. 미궁 중간 중간에 발견한 배수로였다. 미궁 안에 일정량 이상의 물이 차지 않는 건 그 배수로 덕분 이었다.그렇다면 아마도 배수로는 밖까지 연결 되어 있으리라.그러나 배수로 직경은 고작 10센티미터 남짓,기를 쓰고 들이밀어도 대가리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호비트라도 여길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 하겠지' 아크가 그렇게 중얼리며 일어나려 할 때였다. 문득 머릿 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그렇지!그 방법이라면.......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 ACT 9 미궁의 수수께끼 아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난뒤 밤낮이 네번이나 바뀌었다. 현실 시간으로 32시간이 넘게 지난것이다. 그동안 안델과 암살자들은 병참 앞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간혹 근처에서 죽은 카오틱 유저들이 부활하며 이상한 눈길을 보냈지만 안델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낭나델은 그 시간조차 꽤나 즐거웠다. "아크 자식, 어지간히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군.지금쯤 안달이 났겠지? 응시자가 하루가 넘도록 접속을 못하고 있으니..........접속해서 상황을 알아보고 싶어 미칠 지경일 거다.하지만 어림없다. 일단 내눈에 걸린 이상,너는 끝장이야" 그러나 아무리 복수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안델역시 사람이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을 자야 버틸수 있는 것이다. 결국 40시간을채운 안델은 유니트 안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 늘어지게 하품을하며 말했다. "하루 정도 자리를 비워야겠다.괜찮겠지?" "물론이다" 옆에있던 암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들은 아예 병참 앞에 야영지를 세우고 1명씩 교대로 잠을 자며 지키고 있었다. 항상 2명이 깨어있으니 아크가 갑자기 부활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한 번 의뢰를받은 이상, 한 달이 걸리든 일년이 걸리든 의뢰를 완수할때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좋아, 믿겠다" 안델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접속을 끊었다. "이방인들의 기술은 언제봐도 신기하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는 안델의 모습에 암살자들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어차피 NPC가 고민해봐야 알 수 없는일.또한 시스템상 그 이상의 호기심은 NPC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안델이 사라지자 암살자들은 다시 병참을 노려보몀 석상이되었다. 힐끔힐끔 그때, 멀리떨어진 숲에서 그 모습을 훔쳐보고 있는 사람이있었다. 그는한참동안 암살자들을 살펴보다가 이내 몸을 숙이고 숲을달려갔다. 앙증맞게 보이는 작은 발을 도도도도 움직여 커다란나무뒤에 착 달라붙어 몸을 숨긴다.그리고 다시 두리번거리다가 도도도도 뛰어가기를 반복.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것 같은 숨막히는(?)장면을 연출하던 그는 이내 언덕위에 자리 잡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후아,들킬까봐 진땀뺐네" 오두막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작은 인영이 후드를 벗었다 작은 키에 올망졸망한 이목구비를 한 호비트, 시드였다. 아크가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렵, 로렌조는 무사히 오두막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시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지금까지 오두막에서 아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던 로렌조가 얼른 다가왔다. "어때?형님의 소식은?" 아크는 로렌조와 함께 도적단을 섬멸하기 위해 나서주었고,게다가 암살자왕 싸울때는 로렌조를 대신해 투척 단검을 맞아주기까지 했다. 물론 퀘스트 떄문이었다. 그러나 순진해 빠진 NPC건달, 로렌조는 아크에게 상당한 빚을 져버렸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그날 이후로 로렌도는 아크를 형님이라 부르고 있다. 시드는 어두운 기색으로 고개를저었다. "아직 없어요 .카이로트 안에서도 아크님을 봤다는 사람이 없고요" "역시 나와 떨어진 뒤로 놈들에게 당해 버린건가?"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요" "젠장!역시 나때문에.......!" 로렌조는 분통이 터진다는 듯 책상을 후려쳤다. 그리고 문득 생가난 듯 물었다. "하지만 이반인들은 신기한 기술을 사용하잖아. 큰부상을 입으면 병참으로 순간 이동할 수있는.형님도 이방인이라면 그런 기술을 사용할수 있을텐데?" "그게 문제라고요......." 시드는 답답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아크를습격한 안델과 암살자들이 병참에서 죽치고있다. 그말은 이미 아크는 확실하게 죽었다는 의미였다. 죽지도 않은 사람을 병참에서 기다리고 있을리가 없는것이다. 아마도 아크가 부활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그런 상황을짐작했기 때문이리라. '안델이라고 했나? 대체 아크님하고 무슨관계인지는 모르지만 이건 너무하잖아.병참까지 지키고 앉아있다니. 아예 게임을 접으라는 소리야?' 아크가 안델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는 걸 알리 없는 시드였다. 어쨌든 상호아은 굉장히 좋지 않다. 안델과 암살자들이 병참을 지키고 있는 한 아크는 접속조차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언제까지 지속될지 시드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이럴때 아크님의 전화번호라도 알고 있으면 좀 나을텐데......' 시드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낼때였다. 쿵,쿵,쿵! 돌연 문밖에서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드와 로렌조는 화들짝 놀라며 긴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들켰나? 놈들이 여기까지 쫓아온건가?' 곧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로렌조가 검을 들어 올리고 문가로 다가갔다. "할수 없지. 시드, 뒷문으로 도망쳐.내가 막고 잇을게" "하, 하지만......" "시끄러, 시간이 없어.말했지? 나는형님에게 목숨을 빚졌어.그런데 형님의 부탁까지 져버릴수는 없어.내가 어떻게든 놈드릉ㄹ 상대하며 시간을 벌어볼테니 서둘러" 그렇게 로렌조가 낮은 목소리를 내며 비장한 장면을 연추랗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뭔가가 문 아래쪽으로 기어들어왔다. 슬며시 스며드는 검은 그림자!로렌조가 화들짝 놀라며 검을 들어올리는 그 순간,시드가 황급히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기,기다려요!그건......!" 쌕쌕썍! 시드의 목소리에 물체가 반가운 기색으로 고개를빳빳이 들어올렸다. 혀를날름거리는 그것은 놀랍게도 아크의벨트.......아니, 뱀이었다. 로렌조가 당혹스러운표정으로 시드를 바라보았다. "뭐,뭐야!이 뱀은?" "그냥 뱀이 아니에요. 이뱀은 아크님의 소환수에요" "뭐? 형님의?박쥐와 해골 외에 또 있었던 거야?" "네!그리고 이 뱀이 찾아왔다는건......아크님이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뜻이에요!' 시드는 와락 뱀을 안아들었다. 뱀은 시드의 몸을 칭칭 감으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호비트를 상대로 그러고 있으니 잡아먹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하고는 이내 탁자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입을 쩍 버릴며 아이템들을 왁왁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탁자위에 아이템이 산더미처럼쌓였다. 그 뒤에 뱀은 몸을 꿈틀거리면서 묘한 모양을 만들어 대기 시작했다. 뭐 하는짓인가? 멍하니 바라보던 시드는한 박자 늦게 무릎을쳤다. "글자에요!아크님의 메시지가 틀림없어요!" 시드는 얼른 종이와 펜을 꺼내들고 뱀이 만들어 내는것을 옮겨적었다. 시드에게. 시드님.일단 저는 살아있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서 당분간은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것 같아요.그러니 앞으로 저를 대신해 뱀을 보내겠습니다. 뱀이 가져가는 아이템을 정리하고 지금 제게 필요한 아이템을 뱀을 통해 보내주세요. 상점에서 파는 식재료와 포션, 수리상자가 필요합니다. 다음에도 편지를 보내야하니 종이와 펜도 부탁해요. "......그런 상황에서까지 잡템을팔아 치울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역시 아크님.......!" 시드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게 바로 잡템을 정리할 방법을 고민하던 아크가 찾아낸 해답이었다. 아크는 비록 출구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외부로 통하는작은 배수로를 발견했다. 직경 10센티미터의 배수로, 비록 아크가 통과할 수는 없었지만 뱀이라면 넉넉하게 통과 할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것이다. 때문에 팔아 치울 물건을 몽땅 뱀에게 맡기고 시드와 로렌조가 숨어있는 오두막으로 보내왔다. "어쨌든 됐어. 이제 됐어. 아크님이 살아계시다면 당분간 암살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흥, 멍청한 녀석들. 거기서 백날 기다려봐라" 시드는 그제야 안심이 된듯 콧물을 훌쩍이며 뱀이 뱉어낸 아이템들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거짓말]주문서를 사용해 살금살금 카이로트로 잠입했다. 잡템을 정리하고, 아크가 주문한 아이템을사가지고 돌아오자 뱀이얼른 삼켜 버렸다. "뱀, 조심해라!" 쌕,쌕쌕쌕! 뱀은 사명감이 넘치는 눈으로 끄덕이며 바닥을 기어갔다. "박소미씨" "네" 수납 직원의 호명에 현우가 몸을일으켰다. 창구로 다가가자 직원이흘뜻 바라보더니 계산서를 내밀었다. "모두 해서 521만원나왔네요. 카드로계산하시겠어요?" "네?521만원이요?" 아크가 놀란 표정으로되물었다. "저번 달까지만해도 450만원 조금 넘게 나왔는데요?" "이번 달부터 조금 올랐어요.안내문못받아 보셨어요?" 직원이 안내문을 내밀었다. 읽어 보니 환자를 위해 병원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활자들이 보였다. 그러나 결국 결론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이번 달부터 병원비를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드디어 병원에도 물가 상승의 여파가 밀어닥친 것이다. 사실 병원비 상승에 대한 얘기는 몇 달전부터나왔다. 그러나 그걸 억지로 막아 왔던 게 여론이었다. '의료보험 민영화의 폐해가 드러나고있다' '환자는 의자의 봉인가?' 등등의 시사 프로그램이 연일 방송되고, 보호자 단체에서도 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 병원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결국 병원비를 인상하도록 결정한 모양이다. 하긴, 솔직히 현우는 병원비가 동결되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세상은 힘 있는 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병원은 소위말하는 기득권층.반면 병원비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서민들이다. 두 그룹이 격돌했을때 어느쪽이 이길지는 뻔하지 않은가? 서민 편에 서야할 정부가 의료보험 민영화를 들고나와 서민을 외면했을 떄부터 정해져 있던 결말이었다. ...........언제였던가? 정부가 처음 공기업의민영화 얘기를 들고 나왔을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당연히 기득권의 배만 불릴 민영화를 반대하며 10만이넘는 국민들이 촛불을들고 시위에 참가했다. 비록 시위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서민이라고 불리는 국민 대다수도 이들을 응원했다.분명히 그것이 민심이고 여론이었다.그러나 민심을 천심으로 생각한다는 정부측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오히려 촛불 시위를 폭력 시위로 격하시키며 강경하게 제압,끝내 민영화를 추진시켰다. 물론 정부가 줏대없이 국민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것도 문제지만.......이건 아니지 안은가? 흔히 민심이 나라를 움직인다고 한다. 그건 맞는 말같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민심이 란, 돈과 권력을ㄹ 가진 국민들의뜻이라는 말이지. 가난한 사람들의 뜻은 아니다. 덕분에 없는 사람만 서러운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현우도 서민, 힘이 없으니 그저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대로 뜯기며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얼마라고요?" 현우가 한숨을 불어내며 묻자 직원이 조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521만원이요" '젠장,화염의 학살자를 못 ㅁ거었다면 이번달은 병원비도 내지못할뻔했군' 처음 통장을 확인했을 때만 해도 구름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갖가지 공과금과 방세, 식비 그리고 병원비까지 계산하고 나니1,400만 원이나 됐던 잔고가 50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뭐, 그나마 부족하지 않은게 천만 다행이지만 말이다. '됐어,어쨌든 이번 달은 흑자라는 게 중요해' 현우는 애써 쓰린속을 달래며 2층으로 향했다. 2층 재활치료 센터에 도착하자 유리창 너머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싿. 전문 치료사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나마 한걸음씩 떼어놓는걸보니 우울했던 기분이 한결좋아졌다. '벌써 걷기 연습을 하시는구나!' 한편 더욱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친다. 돈........그렇다. 돈이 중요하다.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할 떄 정부 측에서 내놓은 대의명분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었다. 다행히 그 약속은 지켜졌다. 확실히 의료 서비스는 민영화되기 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어머니만 해도 최신 시설을 갖춘 재활 치료 센터에서 환자 1명당 전문 치료사가 1명씩 따라붙어 관리해주었다. 운동 요법부터 식사까지. 어머니의 병세가 빠르게 호전된 것은 그덕분이었다. 그리고 현우가 병원비를 체납하지 않는한, 그런 의료 서비스는 계속되리라. 현우는 얼마전에 병원을 들어서다가 봤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병원비가 선불로 수납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동도 불편한 노인이 쫓겨나던 장면은....... '어머니가 그런 꼴을 당하게 할수는 없어' 현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그러나 이제 자신이 어머니를 책임져야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해드 릴 수는 업다. 그러나 최소한 아무런 걱정없이 치료에만 전념하도록 해드리고 싶다.지금 현우의 유일한 바람은 그것이었다. 유리창 안에서 어머니가 현우를 발견하고 빙긋 웃어 보인다.현우는 굳은 표정을 풀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재활 치료는 건강한 사람이 상상할수 없을 만큼 힘들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한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현우가 그 이상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아니요.나는 힘들지않아요' 어머니에 비하면 현우의 고생은 고생이라고 할수 도없다. '그래,지금내가 어머니 앞에서 웃을수 있는건,뉴 월드를 하고있기 떄문이야.내게 뉴 월드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뉴 월드를 포기할수 없어. 안델이나 아란이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설사 그들 때문에 바닥을 기어야 하는 한이 있어도 포기할수는 없어!나를 방해한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기어올라가 밟아 버리겠어!가난한 사람의 근성을 보여주마' 현우는 치료실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러려면 하루라도 빨리 지저 세계의 입구로 들어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현우가 나락의 지하 미궁에 들어선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이제 적응이 되었고 ,레벨도 올라 이제 93이 되었다. 코가 떨어져 나갈것 같은 악취만 없다면 꽤나 괜찮은 사냥터였다. '하지만 돈이 안돼' 그게 문제다. 현우는 지금까지 하루평균 20~30골드는 벌어들였다.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현우로써는 그만큼은 벌어야 최소한의 생활이 유지된다. 그러나 나라그이 지하미궁에서는 그만큼의 수입을 올릴수 없었다. 아이템 드랍율이 높다고는 해도 스켈레톤이 그리 자주등장하는 것도 아니었고,또 사냥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또한 한 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음식과 수리 상자를 써 대야 하니 나가는 돈도 무시할 수없다. '아직 통장에 여유가 있으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더 길어지면 곤란해. 하루라도 빨리 지저세계로 드렁가 삼신기를 찾고 나가야하는데........' 그러나 여전히 지저 세계로 들어갈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제 미궁은 1,2,3층까지 모두 돌아다녔다. 그러나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든 지하 미궁 지도의 완성률은 99.9%.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공간에 아직 들어가지 못한 까닭이다. '대체 뭘까? 그 수수께끼는?'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나락의 지하 미궁 지도를 옮겨 그려 놓은 메모지였다.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통로. 거기에 숨겨져 있는 수십개의 웜홀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의 해답은 짐작조차가지 않는다. 게다가 지도 완성률이 99.9%이니 다른 숨겨진 통로가 존재할 리도 없었다. "오래 기다렸지?' "아,어머니!" 그때, 치료실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현우는 얼른 일어나 어머니를 인계받아 소파에 앉혔다. 어머니는 땀을 닦아 내며 방긋 웃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열심히 보니? 요즘에 뭐 공부하는 거라고 있어?" "아, 그런거 아니에요.그냥......" "뭔데 그래?어디보자" 어머니가 메모지를훑어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심심해서 점 잇기 퍼즐하고 있었구나" "네? 점 잇기 퍼즐이요?" "그래, 점과 점 사이를 선으로 이어가면 그림이 완성되는거.그거 아니니? 예전에는 나도 꽤 자주 했었는데.......호호호,네 아버지가 연애 시절에 가끔 그런 퍼즐을 만들어 가지고 오고는 했단다. 하트 문양 같은 걸 숨겨서 말이야. 보아하니 그것도 손으로 그린거 같은데? 아직도 그런 퍼즐을 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왠지 반갑네" 현우는 얼떨떨한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았다. '점 잇기 퍼즐? 이게 그렇게 보였나?' 막상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현우는 지하 미궁의 지도를 대강그려놓고, 그위에 웜홀의 위치를 점으로 표시해 놨던 것이다. 그걸 이어가면 뭐든 그림이 될것도 같았다. '어라? 가만?' 별생각없이 눈으로 점과 점을 이어보던 현우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뭔가 이상함을느낀 현우는 1층부터 3층까지의 지도를 포개놓고 각 웜홀을 펜끝으로 찍어 보았다. 그렇게 1층, 2층,3층의 지도에 있는 모든 웜홀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하나로 이어 보자 완벽한 형태의 도형이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그것도 다름아닌............철문에 그려져 있던 3개의 삼각형이 얽혀 있는 모양!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고대의 맹약에 따라 이곳을봉인한다. 이곳을 모르는 자는 이곳을 지날수 없다. 목적이 있는 자는 그대의 걸음으로 나를 불러라. 나의 이름을 따라 순례하며 존경을 표하는 자만이 이곳을 지날 수 있으리니......... 철문에 적혀 있던 글귀. 이곳을 모르는 자는 이곳을 지날수 없다. '첫번째 힌트는 당연히 지하 미궁의 지형을 완벽히 알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현우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일부러 지도를 그려 놓고 가지고 다니며 연구했다. 그러나 그 뒤에 적혀 있는 두번째와 세번째 힌트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나 그걸 엉뚱하게도 어머니가 풀어 버린 것이다. '목적이 있는자.이건 지저 세계로 들어가려는 자,아크를 말하는 거야!그리고 걸음으로 나를 부르라는 말은 지하 미궁을 모두 돌아다녀야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 그리고 표식을따라 순례하라는 말은........!' 표식은 다름아닌 지하 미궁에 널려 있는 웜홀이다. '풀,풀렸다!마지막에 나오는 그곳을 순례하며 존경을 표하라는 건 그 도형의 형태에 따라 웜홀로 이동하라는 뜻이 분명해!아니, 그것 외에는 생각할 수 없어!맙소사, 이렇게 간단한 걸 사흘이나 모르고 있었다니!' 이제 뉴 월드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하다고 자부하는 현우다. 그런데도 사흘이나 고민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와 고스톱밖에 못 해본 어머니가 단숨에 풀어 버린것이다 게임에 익숙해진 것, 그게 함정이었다. 너무나 게임에 익숙해진 나머지 모든 문제를 게임 시스템에 연관시켜 어렵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뉴 월드를 모른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말했다. 원래 수수께끼란 답을 찾는 사람에게는 보이지않는 법인것이다. 현우는 와락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어머니!어머니가 아크를 살렸어요!" "뭐? 무슨 소리니, 갑자기? 아크는 누구고? 외국인 친구가 생긴거니?" "그런 사람이 있어요. 저의 분신같은" 분신? 너 설마.......여자 친구라도 생긴거니?" "아니, 여자친구보다 소중한 존재예요. 아크는" 현우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병원에서 돌아온 아크는 곧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흐린 빛과 함께 익숙한 미궁의 더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왠일로 기분이 좋아 보이냐, 주인?" 일단 데드릭을 소환해 놓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데드릭 ,슬슬 여기를 빠져나갈때가 됐지?" "뭐? 나갈 수 있으면 나가면 좋지만......." "후후후, 걱정마라. 곧 나가게 해 줄테니" 아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지도창을열어보았다. 이미 어디서부터 시작할지는 접속하기 전에 생각해두었다. '오른쪽 끝 부분부터 시계방향이다 .존경을 표하며 순례를 하라고 했으니 바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거야. 그게안되면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아보고' 아크는 곧이어 해골까지 소환한 뒤에 몰려나오는 스켈레톤을 박살내며 지하 미궁을 가로질렀다. 이미 스켈레톤과는 지겹도록 싸워 보았다. 새로울 것도 특별히 바랄것도 없다. 아크는 대충대충 전투를 하며 웜홀이 나타나면 화격으로 스케렐톤을 밀어내고 뛰어 들었다. 아무리 많은 스켈레톤이 나타나더라도 일단 웜홀로 들어가면 추격을 뿌리칠수 있으니 굳이 몰살 시킬이유가 업다. '지금은 수수께끼의 정답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웜홀로 뛰어들자 곧 다른 지역으로 순간 이동되었다. 지도 제작 스킬을 펼쳐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웜홀과 다른 웜홀을 직선으로 연결했을 떄 그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위치였다. 정답일 확률이 올라간 것이다. '다음 웜홀은 여기에서 20미터 가량 떨어진곳에 있다' 아크는 곧바로 이동해 다음 웜홀에 뛰어 들었다. 그러기를 20여 차례,아크는 하수로를 한바퀴 돌아 처음에 뛰어 들었던 웜홀로 돌아왔다. 덕분에 아크의 몸에는 온갖 오물이 엉겨 붙어 악취를풍겼다. 소환수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같은 실수를반복하지 않으려고 데드릭과 해골을 쥐고 뛰어드는 통에 해골과 데드릭도 오물에 절어 버렸다. "대체 뭐하는거냐? 미쳤냐? 왜 자꾸 똥물에 뛰어드는데?" "시끄러, 틀림없이 이게 마지막이다!" 아크는 데드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음 릴레이를 시작했던 웜홀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웜홀에 뛰어들자 철컥, 하는 기계음이 울리더니 지금 까지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웜홀로 이동하는 시간은 길어야10초, 그러나 이번에는 그보다 몇 배는 길었다. 위로, 아래로,옆으로.......정신없이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뚝 떨어져 버렸다. 콰직, 와르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아크는 얼른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역시 처음 와 보는 곳이다!' 그때,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나락의 지하 미궁'수수꼐끼를 밝혀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 +15,지능이 10,명성이 30 상승했습니다} -'나락의 지하 미궁'을 완벽하게 탐사하여 지도 완성률을 100%달성했습니다. 나락의 지하 미궁 지도의 아이템화가 가능해졌습니다. {경험치 +1000} 아크는 그제야 정답을 찾아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아크가 떨어진 곳은 커다란 공동이었다. 스켈레톤이 설쳐 대는 지하 미궁의 숨겨진 방답게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뼈와 해골이 쌓여 있었다. 하수구를 샅샅이 뒤지면서도 단 한 번도 와 보지 못했던 곳!역시나 뒤쪽을 바라보자 아크가 발견했던 철문의 뒷면이 반대편에 있었다. 드디어 그 징글징글했던 철문을 넘어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어딘가에 지저 세계로 들어가는입구가 있을 거야!' 아크는 얼른 몸을 일으켜 주변을 훑었다. 역시나 맞은편에 아래로 내려가는 동굴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대체 어떤 종족이기에 이런 끔찍한 곳 아래에서 살고 있는걸까? 어라? 그런데 이건 뭐지?' 아크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동굴로 다가갔다.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관문이 남아있었다. 동굴 입구는 맞은편처럼 두꺼운 철문으로 막혀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옆에는 철문을 여는 용도의 스위치가 달려있었지만, 지렛대 같은 형태의 레버의 끝 부분이 부러져 있었다. '이대로는 레버를 당길 수가 없잖아.대체 어쩌라는거야?' 아크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두두두두,따닥,따다닥!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 것처러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면에서 검은 물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주변의 뼈다귀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날아가 물체에 다랄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눈덩이처럼 불어나엄청난 크기로 변해 버렸다. 뼈다위와 해골로 만들어진 거대한 덩어리가 허공에 둥둥떠서 다가왔다. "윽, 또 뼈다귀냐?" 데드릭의 비명과 함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크라켄'이 출현했습니다! '보스 몬스터!' 반사적으로 고양이 눈을 시전하자 크라켄의 정보가 표시되었다. 레벨이 무려 150에 달하는 보스 몬스터! 아크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는 사이,크라켄의 동체에서 길쭉한 것이 솟아 나왔다. 수백 개의 뼈가 연결된 거대한낫! 섬뜩한 기운을 느낀 아크가 바닥을 구르자 허공을 가로지른 낫이 뼈 무더기르 후려쳤다. 박살 난 뼈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렸다. '젠장, 설마 수수께끼를 풀고 들어온 곳까지 보스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죽을 수는 없어.어차피 이판사판,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아크는 검을 뽑아 들고 크라켄에게 달려들었다. "다크 블레이드!" 콰콰쾅! 격렬한 굉음이 울리더니 뼈 무더기가 박살 나며 사방으로 날렸다. 크라켄은 휘청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그게 크라켄의 성질을 건드린 모양이다. 쿠오오오! 크라켄이 부르르 떨며 괴음을 내뱉자 몸 여기저기에서 뼈로 연결되 팔이 솟아 나왔다. 낫,창,검.........뼈와 뼈로 조립되어 갖가지 모양의 무기로 변한 팔이 아크를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네 다섯방향에서 닥쳐오는 공격! 그러나 아크는 스켈레톤과의 전투에서 그런 공격은 수없이 많이 경험해 보았다. 새삼 당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돌려준다!' 아크는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찔렀다. 퍼퍼펑! 크라켄의 팔에 연달아 카운터가 쑤셔박혔다. 뼈로 만들어진 팔은 카운터에 걸리자 산산조각 나며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물론 아크 역시 서너 방을 얻어맞았지만 일격에 깎여 나가는 생명력은 150전후밖에 되지않았다. '좋아, 이녀석. 보스치고는 공격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 속도도 그저 그렇고, 뼈다귀도의외로 손쉽게 부서진다.레벨이 높아도수준은 낮은 편이야. 어렵지 않게 이길수 있겠어!' "데드릭, 해골!B플랜으로 간다!" 상대는 보스몬스터 하나다. 굳이 복잡한 작전을 펼칠 필요도없다. 그렇게 두 소환수가 양쪽에서 크라켄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아크는 본격적으로 반격을 개시했다. 날아오는 팔을 쳐 내며 본체에 몇 번이나 카운터를 먹였다. 그렇게 잠시 맹공을 퍼붓던 아크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뭐지, 이 녀석?' 수차례나 공격이 적중했는데도 크라켄의 생명력은 조금도 깎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이아니다.의외로 상대하기어렵지 않아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막상 자세히 살펴보니 고양이 눈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놈의 약점이 표시되지 않았다.공격이 적중하면 그저 폭음이 울리며 뼈다귀가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어째서 데미지가 들어가지않는거지?' 뭔가가 이상하다. 그러나 일단 아크는크라켄의 공격을 피하며 공격을 퍼부어 보았다. 사실 그 외에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맹공을 퍼붓기를 몇 분,한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자 뼈다귀들이 떨어져 나간틈에서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형체는 붉은 점으로 도배를 해 놓은 듯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제야 아크는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이놈도 제리피쉬나 슬라임처럼 핵을 가진 놈이었어. 뼈다귀는 놈의 갑옷, 결국 뼈다귀를 모두 벗겨 낸뒤에 본체를 공격하면 된다는 말이야!그렇다면 어려울 것 없지!' 아크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핵을 향해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다. 아니, 날리려는 찰나,갑자기 크라켄이 몸을 빙글 돌려세웠다. 동시에 강렬한 돌풍을 뿜어내며 아크를 수 미터나 밀어냈다. 덕분에 다크 블레이드는 불발로 끝나 버렸다. 그러나 아크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망할 놈의 뼈다귀 자식!느리게 움직이더니 막상 약점이 드러나니 재빠르군. 하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다. 공격을 퍼부어 모든 뼈다위들을 벗겨 내면 숨을 곳도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아크가 뒤로 물러나자 돌연 지면이 진동하는가 싶더니 뼈다귀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처음에 그랬듯이 자석처럼 끌려가 크라켄에게 달라붙었다. 때문에 크라켄은 이전보다 몇 배나 두꺼워진 뼈다귀 갑옷속에 숨어 버렸다. 또한 뼈다귀 갑옷이 두꺼워지자공격하는 뼈다귀로 몇 배나 두꺼워지고 속도도올라갔다. 쇄에에엑! 콰쾅! "뭐, 뭐 이런......!" 아크는 바닥을 굴러 피하며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 뒤로도 10분이나 사투를벌였지만 상황은 반복될 뿐이었다. 죽어라 검을 휘둘러 뼈 갑옷을 벗겨 내면 크라켄은 금세 다시 뼈다귀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크라켄은 더욱 크고 강하게 변해갔다. "빌어먹은, 말도 안돼!이런 놈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기어코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공동은 그야말로 뼈다귀 천지다. 크라켄이 그 뼈다귀들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뼈다귀들을 모두 가루로 만들어 버릴떄까지 싸워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설사 아크가한 방도 맞지 않고싸운다고 해도 이런 조건이라면 3박 4일이 걸릴지, 5박6일이 걸릴지 알수 없는 일이다. '피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핵이 드러나며 곧바로 폭풍을 일으켜 밀어내고 뼈다귀를 긁어 모으니 접근할 방법이 없다. 그런 식이라면 블레이드 스톰도 도움이 되지못해. 하지만 공략법은 있을거야. 어떻게 폭풍에 휘말리지 않고 핵에접근할 방법이 없을까?' 순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아크의 눈동자가 문득 해골에게 닿았다. '그러고 보니.....!'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아크는 해골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뼈다귀와 해골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서 굴러다니니 다른 뼈다귀와 분간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수차례나 공격을 받은 데드릭과 달리 크라켄의 공격도 잘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크라켄조차 뼈다귀와 해골을 잘 분간해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해 낸 아크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일었다. '뼈? 해골? 아하, 그렇구나. 굳이내가 접근할 이유가 없잖아!' 뭔가를 생각해 낸 아크는또다시 날아드는 검을 쳐 내며뒤로 물러났다. 남은 마나 양을 확인해 보니 300.아슬아슬한 수치다. "바다 정령의 가호!" 아크는 아드리안의 목걸이를 사용해 방어력을 40%올리고 마나를 500회복했다. 이제 남은 마나는 800!모험을해 볼만하다.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하면 빠르겠지만 이제부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그러니 지금은 마나를 최대한 아껴야 해!' "데드릭, 너도 들어가 있어!소환 해제!" "뭐? 왜?" 한참 열을 올리던 데드릭은 어리둥절하 표정으로 유계로 돌아갔다. 그렇게 마나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인 아크는날아드는뼈다귀를 카운터로 받아쳤다. 검으로 변했던 뼈다귀가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지체없이거리를 좁히며 크라켄의 본체에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격렬한 굉음이 터져나오며 뼈 갑옷이 움푹움푹 파여 나갔다.그렇게 세방, 결국 갈라진 뼈다귀 사이로 크라켄의 핵이모습을 드러냈다. 역시나 예정된 수순대로 크라켄의 몸이 빙글 돌아가며 폭풍을 일으켰다. 그 순간이 바로 아크가 노린 절호의 찬스! "지금이다!해골, 소환 취소 ,재소환!" 폭풍에 휘말려 주르륵 밀려나는 아크의 손에 해골이 소환되었다. 아크는 왼발에 힘을 주고자세를 잡은 뒤에 온 힘을 다해 해골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폭풍이 사라지고 금세 뼈 갑옷을 복구한 크라켄이 다시 아크에게 다가올때였다. 우두둑거리며 뼈로 만들어진 검을 뻗어 올리던 크라켄이 움찔하더니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100%를 유지하던 크라켄의 생명력이 드디어 1%줄어들었다. "성공이다!" 아크가 주먹을 불끈 쥐며 고함을 내질렀다 이게 바로 아크가 노렸던 작전이었다. 크라켄은 계속해서 뼈 갑옷을 복구한다. 그 재료는 바닥에 산처럼 쌓여있는 뼈다기와 해골. 그렇다면아크의 소환수 가운데도 같은 재료가 있지 않는가? 아크는 크라켄에게 타격을 입히고 뼈 갑옷을 복구하려는 순간, 해골을 크라켄의 핵근처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멍청한 크라켄은 해골을 분별해 내지 못하고 끌어들여 갑옷으로 만들어 버렸다. 해골이 달라붙은 곳은 크라켄의 핵 바로 코앞! 아마도지금 크라켄의 뼈 갑옷 안에서 해골의 맹공이 펼쳐지고있으리라. 해골의 공격력은 형편없지만 일단 물어뜯으면 데미지는 들어간다 .게다가 크라켄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제리피쉬나 슬라임처럼 정작 핵의 방어력은 형편없이 낮았다. 해골이 물어뜯자 크라켄의 생명력은 눈에띄게 줄어들었다.크라켄은 해골의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다.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이 오히려물어뜯어 대니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이제 남은 마나는 600이다. 해골 혼자 마나를 먹는다면 10분. 그 안에 해골이 크라켄을 해치우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 쿠오오오! 크라켄이 고통스러운 포효를 터트리며 사방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아예 공격을 포기하고 회피에만 집중하는 아크는 쥐새끼 처럼 날렵했다. 게다가 크라켄은 쉬지 않고 들어오는 데미지에 살짝 맛이가 적중도도 형편 없었다. 크라켄이 밑천을 드러내는 시간은 예상보다 빨랐ㄷ. 불과 5분. 해골의 맹공에 크라켄은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크라켄은 흡인력조차 유지할 수 없는지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뼈 갑옷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해골이 검은 형체의 핵에 딸라붙어 미친듯이 물어뜯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됐어, 수고했다. 해골,이제 물러서" 따닥!딱딱딱! 해골이 입안 가득 물고 있던 크라켄의 살점을 퉤,뱉어 내며 떨어져 나왔다. 동시에 아크의 검에서 남은 마나를 몽땅 쏟아 붕느 공격이 펼쳐졌다. "다크 블레이드!" 어둠과 동화한 검날이 사라졌다가 크라켄 앞에 불쑥 솟아났다. 격렬한 효과음이 터지며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쿠오오오! 기어코 생명력이 0이 돼 버린 크라켄은 경련을 일으키듯 흔들리더니 이내 빛과 함꼐 터져버렸다.폭풍이 휘몰아치며 수많은 뼈다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골! 네 덕분에 이겼다!" 딱딱딱!딱, 딱딱딱! 해골이 하늘을 향해 크게 이를 마주쳤다. ..........웃고 있는 모양이다. 아크는 대견하다는 듯이 해골을 쓰다듬어 주고 고개를 돌렸다. 괴상 망측한 놈이지만 어쨌든 보스 몬스터다. 그만한 전리품을 떨궜으리라. 역시나 크라켄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윤기가 흐르는 검이 바닥에 꽂혀있었다. "어? 이, 이건.......!" 정보를 확인해 본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본 브레이드(저주) 오래전 나락에 버려진 시체의 척추 뼈로 만들어진 검입니다. 이 검은 오랫동안 나락의 지하 미궁을 지배하고 있던 크라켄이 몸의 일부로 활용하여 강력한 저주가 깃들어 버렸습니다. {저주를 풀기 전에는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생긴것 부터가 범상치 않은 무기다. 설명대로 사람의 척추 뼈를 날카롭게 갈아만든 듯한 형태였다. 그러나 형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크가 놀란이유는 바로 아이템에 걸려 있는 저주 때문이다. 저주에 걸린 무기,데드릭을 진화시켰던 란셀의 검 역시 저주에 걸려 있었다. "정화 복원!" 아크는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으로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본 블레이드(마검) 무기 타입 : 한 손 검 내구력 : 70 공격력 : 23~25 무게 : 25 사용 제한 : 어둠 속성 레벨 : 80 이 검은과거 카이로트를세웠던 군주,노른 1세를 섬기던 기사의 척추 뼈로 만들어졌습니다.비록 당시 카이로트를 노리던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나락에 버려졌지만, 불멸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기사의 힘이 깃들어 신비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념의 집합체인 크라켄에게 흡수당해 오랫동안 고통 받아 왔습니다. 만약 누군가 크라켄을 무지르고 기사의 영혼을 해방시켜 준다면 그는당신에게 감사할 겁니다.] -본 블레이드(마검) 의 특수 효과 : 하루 한 번 마검의 주인, 기사 '워릭'을소환할 수 있습니다. "역, 역시 마검이다!" 저절로 환호성을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해저에서 란셀의 검으로 데드릭을 진화시킨 이후로, 아크는 마검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박쥐가 데드릭으로 진화하며 얼마나 큰 변화를겪었는지 직접 체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마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에서 새로운 마검을 얻다니........! 본 블레이드, 이름도 멋지다. '본 블레이드라면 역시 데드릭보다는 해골을 진화시킬 수 있는 검이겠지?' 가능하면 그랬으면 싶다. 이미 진화를 거친 데드릭은 지금 상태로도 활용도가 높다. 반면 능력치도, 스킬도 보잘것없는 해골은 점차 활용도가 사라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나마 방패 역활이라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지자 한 방도 제대로 버티지 못했던 것. '당장 실험해 보자.어떤 놈이 나오려나?' "컥!" 돌연 허리에서 숨 막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본 블레이드를 조사하고 있는 사이, 자동적으로 주위에 다른 아이템이 없나 둘러보던 뱀이 근처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크라켄이 터지며 푹 파여 버린 뼈다귀 틈에서 뭔가 반짝이는 게 삐죽 솟아나 있었다. 뱀은 아크에게칭찬받기 위해 얼른 혀를 뻗었다. 그 순간 뱀의 혀가 착 달라붙어 버렸다. "캑,캑캑캑!" "어라? 뱀! 괜찮아?" 아크는 얼른 뱀의 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뼈다귀가 우수수 흩어지며 뭔가가 끌려 나왔다. 그것은........... "뭐, 뭐야? 이건?"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TO BE CONTINUED TYPING BY tjwnsgur888@naver.com 제블로그 에오시면 판타지, 게임소설블로그로써 다른 게임, 판타지 소설(텍본)있으니 놀러오세요 아크 5권 <차례> ACT 1 지저 세계 ACT 2 너구리를 장악하라 ACT 3 갱생단 ACT 4 진군, 너구리 부대! ACT 5 타락한 이그드라실 ACT 6 어둠의 조각 ACT 7 싸움에 진 개는 한 번 더 밟아 준다 ACT 8 실전 대련 ACT 9 투기장 악실리온 ACT 1 지저 세계 -마검의 주인 워릭을 소환했습니다. 사람의척추 뼈를그대로 뽑아낸 듯한 매니악한 형태의 마검, 본 블레이드가 웅웅 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러기를 잠시, 돌연 검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엇? 뭐,뭐야?' 허공에서 회전하던 검이 세로로 바닥에 꽂혔다. 우두둑, 우두두둑, 철커덕!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검이 변하기 시작 한건 그때였다. 검날의 양쪽에 달려 있는 톱니 같은 뼈가 길게 솟아 나왔다. 검 자루에 오밀조밀하게 달려있던 뼈다귀들도 돌연 몇배로 부풀어 올랐고,큐빅 퍼즐처럼 복잡하게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맞춰졌다.만화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이 변신 장면처럼 보였다.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검날 부분은 몸통잉 되었고, 검 자루의 장식은 머리왕 다리, 그리고 본 블레이드의 부분 부분을 장식하고 있던 금속은 낡은 검과 누더기 같은 체인 갑옷으로 변했버렸다.변신 장면을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어떻게 본 블레이드가 완전한 스케렐톤으로 변신 할 수 있는지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뭐,그런건 만화영화의 변신 로봇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본 블레이드는 레벨 60의 스켈레톤 나이트로 변해버렸다. '그러고 보니 본 블레이드는 나락에 버려진 기사의 척추 뼈라는 설명이 붙어있었지' 그동안 뉴 월드를 여행하며 별의별 걸 다 봐왔다. 이제 어지간한 특수 효과 따위는 신기하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변신할 줄은. 제대로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크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스켈레톤 나이트, 워릭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퀭한 눈자위에서 시퍼런 불길이 일었다. 불길이 일렁이며 주변을 훑어 보던 시선이 아크에게 향했다. '이놈은 또 얼마나 싸가지 없는 놈이려나?' 아크는 반사적으로처음 만났던 마검의 주인, 던필을 떠올렸다. 그러나 워릭은 던필과는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워릭이 턱뼈를덜그럭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방인...........그대가 크라켄을........무찔렀는가?" "그런데?" 워릭이 돌연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대에게.........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뭐?" "나의 이름은 워릭.......한때 존경하는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야만족과 싸우던 명예로운 기사였다. 그러나 내가 죽은 후 본의 아니게............탐욕스러운 마물에게 영혼을 사로잡혀 여명의 언덕으로 떠나지 못하고 본 블레이드에 봉인되어 버렸다" "여명의 언덕?"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의미를 알아챘다. 게임 도중에 간간이 얻게 되는 뉴 월드 역사책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여명의 언덕은 발할라를 말하는 거였지?' 여기서 토막 상식!발할라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사자의 궁전이다. 전장에서 명예롭게 전사한 자들,에인헤르자르가 최고신 오딘의 초대를 받아 갈 수 있다는 성지였다. 에인헤르자르는 그곳에서 전투 기술을닦으며 최후의 결전인 라그나로크를 기다린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뉴 월드는 판타지 게임답게 지역마다 세계각지에서 전승되는 신화가 적용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북부 대륙은 유난히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이 많이 적용되어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결국 워릭은 제대로 저승 세계로 가고 싶었는데 크라켄에게 덜미가 잡혔다는 말이다. 워릭은 회한이 어린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로부터 수백년............마물과 일부가 되어 버린 나의 정신은 타락했고.......명예는 치욕스럽게 더럽혀졌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지.그 악몽을 끝내고..........구원의 빛을내려준 것이 그대다. 감사해야 마땅한 일" 워릭은 생긴 것과 달리 의외로 예의 바른 놈이었다. 아크는 왠지 우쭐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알고 있다" 워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마검의 저주를 풀고 나를 불러냈다면...........그대는 소환의 힘을 가진자.........그대가 나를 불러낸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그리고 나역시...........이런 기횔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는 이미 여명의 언덕에........초대되기에는 너무 더럽혀 져버렸다. .............그러나 진정으로 명예로운 상대를 만나 다시 과거처럼 영혼을불태울.......결투를 할수 있다면........내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그리고 나의 힘과 경험이 다른 존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그 또한 기쁨!자........내가 상대해야 할 자는............누구인가? 크라켄을 무찌른 그대의 소환수라면당연히............기대이상의 기량을 가졌을 터!오오오...........전의가 불타오르는구나!" 워릭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검을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뼈다귀밖에 남지 않은 주제에 혈기가 넘친다. "자, 나는 준비됐다..........나의 전의가 ............사라지기 전에 어서 불러내라!" "이미 소환했는데?" "뭐?" 워릭이 약간 당혹스런 눈길로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한 쪽에 멀뚱히 서 있는 데드릭을 발견하고는 눈자위에 일렁이던 불꽃이 일그러졌다. "확실히..........이 꼬마에게서는 유계의 기운이 느껴지는군........하지만........곤란하다!비록 타락했다고는 하나.........이몸은명예로운 기사!어떻게 어린아이를 상대로.......검을 휘두를 수 있겠는가?" "뭐야? 어린아이? 야, 인마! 너 몇살이야?" 마침 어린아이 모습으로 변해 있던 데드릭이 발끈했다. 그때, 아크가 바닥을 굴러다니는 해골을 가리켰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워릭. 네 상대는이쪽이니까" 워릭의 시선이 아크의 손끝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아크의 지명을 받은 해골이 당당한 모습으로 이를 마주치는 장면을 목격했다. 뭐랄까...........참으로 민망하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워릭은 망연자실한 눈으로 해골을 바라보다가 슬쩍 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농담이겠지? 하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크가 고개를 젓자 점잖던 워릭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나는 그대에게 예의를 지켰다 .그런데 그대는 나를 모욕하는것인가!" "미안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됐어. 그러니 그냥 싸워 주면 안 될까?" "아무리 은인이라도 더 이상 참을 수없군!" 워릭이 위협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아크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순간 해골이 와락 덤벼들며 워릭을 들이받았다. 워릭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해골은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거칠게 이를 마추졌다. 보기 드물게 화가 난 듯한 태도였다. 워릭이 약간 놀란 눈빛으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둘 사이에 뭔가 대화가 오가는 듯하더니 이내 워릭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그렇게 된 거였나? 미안하다.........비록 해골밖에 남지 않았지만...........그대 역시 명예를 알고 있는 전사.........겉만 보고 함부로 무시한 것을.........사과 하겠다" 딱딱딱! 해골이 당연하다는 듯이 턱을 바짝 치켜들었다. 그러나 워릭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대의 투쟁심과 용기는........충분히 알았다..............하짐나 결투는 받아들일 수 없다............이미 그대로 나를 보고 알았을 것이다.........지금 그대는 나를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그 차이가 메워지지 않는 한..............나는 그대와의 결투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딱딱딱! "몇 번을 말해도 내 대답은 같다.............약자를 상대로는 나의 하트가 뜨거워지지 않는다........그런 결투로는 결코 여명의 언덕으로 갈 수없다.........소환수여............나와 싸우고 싶다면 그만한 실력을 키워라........." 해골이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었다. 워릭은 한숨을 불어 내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대에게 빚이 있다.......그러나 은인의 소환수라고........상대를 봐주며 싸울 수는 없다...........그대 또한 자신의 소환수가..........그렇게 불명예스럽게 승리하기를 바라진 않을 터" "아니, 나는 바라는데?" 아크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불명예? 장난하냐? 과정이야 어쨌든 일단 해골이 이기면 진화시킬 수 있다. 굳이 힘들게 몇 번이나 싸울 필요도 없이 워릭이 알아서 져 준다면 고맙기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워릭은 상상 이상으로 꽉 막힌 놈이었다. "바란다고? 훗........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나에게 빈정대는 건가........하긴, 내가 지나쳤다...........크라켄을 물리친 사내가 그런 치졸한 생각을 했을 리 없지.......사과하마.........어쨌든..........그런 이유로 이번 결투는 받아들일 수 없다.........그럼........" "아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나는 네가생각하는 것처럼 꽉 막힌 사람이 아니야. 좋은게 좋은 거잖아? 어이, 이봐!듣고있어? 야! 기다리라니까!" 그러나 아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워릭은 삼단 변신 로봇처럼 검으로 돌아가 버렸다. 데드릭이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별 웃기지도 않은 놈 다봤네" 동감이다. 설마 마검의 주인이 결투를 거부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검의 주인도 여러 가지타입이 있는 모양이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본 블레이드를 집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한 번 소환했으니 24시간동안은 재소환할 수도 없다. 그리고 다시 소환해 봐야 워릭이 결투를 거부하면 결과는 마찬가지. '하긴, 레벨 60짜리라면 지금 해골로는 어림도 없는 상대이기는 하지만........' 현재 소환수의 평균 레벨은 45가량이다. 그러나 평균 수치가 높은 것은 데드릭 때문. 실제로 해골의 레벨은 아직 40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더구나 이렇다 할 공격 스킬도 없다. 워릭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결투를 거부한 게 다행일지도 몰라' 결투에서 지면 해골도 24시간 동안 소환하지 못한다. 그말은 24시간동안 전투를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시키지도 못한다는 뜻이다. 워릭의 능력치를 알아보기 위해 일단 소환해 봤지만 ,질 걸 뻔히 알면서 결투를 시킬 이유는없었다. '일단 좀 더 생각해 봐야겠군' 아크는 아쉬움을 달래며 검을 챙겨 넣었다. 본 블레이드는 란셀의 검보다 공격력이 높다 .그러나 마검의 주인인 데드릭과 함께 싸울 떄 받는 공격력 보너스를 생각하면 란셀의 검이 아직더 쓸 만했다. "어? 뭐야? 해골, 왜 그래?" 걸음 옮기려는데 문득 해골이 옷자락을 물어 당겼다.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데드릭이 쪼그리고 앉아 중얼거렸다. "오오, 그래? 정말이냐?하, 그렇단 말이지? 나야 좋지" "무슨 말이야?" "우헤헤헤,주인.해골이 그러는데 앞으로 새로 음식이 만들어지면 무조건 자기에게 먹여 달라는데? 뭐든 좋으니까많이만 만들어 달래" "뭐? 해골,정말이냐?" 해골이 크게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마주쳤다. 아크 역시 말은 통하지 않지만 느낌으로 알수 있었다. 사실 아크는 결투조차 받아들여지지않아 해골이 의기소침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해골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지금은 비록 몸과 함께 과거의 기억까지 모두 잃었지만 해골역시 명예로운 전사였다고 한다. 아마도 워릭과 나눴던 대화는 그런 내용이었으리라. 그리고 과거 전사였던 시절을 기억해 내고 정정당당히 이겨 진화하고 싶다는 욕망을느꼈을 것이다. 과거 던필에게 꺠진 데드릭이 미친듯이 음식을 먹어 댄 이유는 복수를 위해서다. 그러나 전사였던 해골은 자신과 아크의 명예를 위해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이렇게 마검은 일단 얻고 나면 자연스럽게 소환수의 성장 의욕을 불러일으키는역활을 한다. 그리고 그런 시기의 소환수는성장이 몇 배나 빠르다. "좋아, 해골. 그럼 앞으로 좀 더 힘들게 훈련해야 할 테니 각오해둬" 일단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뼈다귀 방을 가로질렀다. 크라켄이 설치던 방 한쪽은 거대한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지저 세계의 주민들이 사용했다는 문장이 새겨진 철문. 그 문을 여는 장치로 보인느 지렛대 형식의 레버는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크라켄을 처리한 직후. 그 문을 여는 방법을 알아냈다. "뱀, 엑토플라즘 접착제!" 아크의 명령에 뱀이 입을 쩍 벌리더니 뭔가를 뱉어냈다. LPG 가스통만 한 크기의 투명한 튜브 안에서 녹색 점액질이 꿈틀거렸다. 이것이 바로 크라켄이 사라진 뒤, 뱀이 뼈다귀 더미에서 발견한 아이템이었다. [영체 접착제(특수) 엑토플라즘이 모여 만들어진 지옥표 영체 접착제! 나락에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시체가 버려져 왔습니다. 그 시체의 주인이었던 영혼들은 지하 미궁에 떠내려 왔고, 사악한 기운이라는 불순물이 섞여 더럽혀진 엑토플라즘의 형태로 변질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엑토플라즘은어딘가에 달라붙으려는 본능이 강합니다.또한 일단 한 번 달라붙으면 자신의 본체로 인식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엉겨 붙은 엑토 플라즘은 거대한 원한 덩어리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여 더욱 타락해 가게 되었습니다. 그 타락의 결과물이 크라켄이었습니다. 그러나 크라켄의 핵이었던 원념 덩어리가 사라진 지금, 이들은 다시 단순한 엑토플라즘이 돼 버렸습니다. 엑토플라즘을 이용하면 어떤 물체라도 접착시킬 수 있습니다. 본질은 영체라 그 크기와 길이에 제한이 없습니다. 또한 한 번 접합도니 물체는 파괴되지 않는 한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절대 장난 금지!까딱하면 손과 발이 붙은 채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용 횟수 : 5회}] 말하자면 타락한 영혼에 이것저것이 짬뽕으로 섞여 아교같은 접착제로 변한 것. -외로워, 심심해. 붙어 있을 데 없나? -우씨, 뭘 봐 ? 붙어 버린다? -우하하하, 나는 접착제다. 모두 붙여 버리겠다! 튜브를 흔들어 보자 점액질들이 뒤엉키며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튜브를 발견하고 괴상한 표정을 지었던 건 그 때문이다. 공포 영화에서나 나오는 엑토플라즘을 접착제로 사용하다니, 아무리 판타지 게임이라지만........ 게다가 접착제 주제에 일단은 생명체라 조금만 흔들어 대도 쉬지 않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무서워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않는 아이템이다. '대체 이런걸 어디에 쓰라는 거야?' 처음 아이템을확인 했을때는 도통 용도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뭐,그래도 접착제니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사용하겠지만,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 이런 엉뚱한 아이템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아크는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뼈다귀 방의 출구를 여는 부서진 레버. '아하, 그러니까 크라켄을 이기지 못하면 문을 못 열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였구나' 아크는 바닥에서 적당한 크기의 뼈다귀를 들고 레버로 다가갔다. 그리고 튜브를 꾹 누르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꼐 점액질이 질질 흘러나왔다. -우오오옷, 밖이다! -신 난다. 붙자! 붙어 버리자! 레버에 바르고 뼈다귀를 가져가자 점액질이 와락끌어당기며 철썩 달라붙어 버렸다. 성능 하나는 일품이다. 일단 한 번 붙어버리니 뼈와 레버는 처음부터 제 짝이었던 것처럼 한 덩이가 되어 버렸다. 엑토플라즘도 만족했는지 더 이상 중얼거리지 않았다. '이제 드디어........' 아크는 조금 긴장한 눈으로 철문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 철문을 열고 지저 세계로 들어가는 일뿐이다. 해저 세계처럼 아직 누구도 보지 못한 이 신세계! 철문 너머에 엄청난 보물 산이 있을지. 전설의 괴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크는 레버를 당기기에 앞서 장비를 점검했다. 가방의 아이템을 정리하고 내구도가 떨어진 장비는 미리 미리 수리해 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캐릭터 정보창도 꼼꼼히 살펴 보았다. "스탯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00 명성 : 1,695 레벨 : 95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 집념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1,925 마나 : 1,520(+100) 영력 : 100 힘 232(+5) 민첩 282(+15) 체력 362 지혜 31 지능 275 운 42 특수 스탯 : 고대 유물의 지식 : 83 유연성 : 27 화술 : 23 애정 : 55(+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 : 물 속성 저항력 + 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 15,치명타율+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 +100 노라드 부츠 : 이동속도+10%,회피술+5% 부활하는 영혼 : 힘+5,마나 회복 속도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 낼 수 있습니다.] 크라켄을 사냥해 레벨이 2올라 95! "좋아!" 아크는 크게 심호흡하며 레버를당겼다. 쿠르르르, 육중한 소리르 내며 철문이 밀려 올라갔다. 동시에아크의 입도 쩍 벌어졌다. "뭐, 뭐야? 여기가 지저 세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크가 나온 곳은 까마득한 높이의 산 정상이었다. 산, 그렇다, 산이다. 카이로트의 나락을 통해 떨어진 지하 수천 미터 아래. 그곳에서 다시 지하 미궁을 통해 수십 미터를 더 내려와서 작은 철문을 열고 도착한 곳이........어이없게도 엄청난 높이의 산 정상인 것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크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산 아래로 빽빽이 들어찬 숲과 깊은 계곡 그리고 아스라한 지평선이 보였다. 브란트 산맥을 넘어오며 보던 풍경과 다른점은 하나도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심지어 하늘에는 별까지.......어라? 별이 저렇게 가까이...........?" 문득 하늘을올려다보던 아크가 고개를갸웃거렸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분명 보석처럼 수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별들은 마치 손을 뻗으면 당장이라도 잡힐듯이 가깝게 느껴졌다. 아니,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정말 별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상한데? 데드릭, 확인해봐" "어, 알았어" 데드릭이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불과 몇 분만에 별 하나를 움켜잡았다. "이거............별이 아니잖아? 돌이야, 빛나는 돌!" "빛나는 돌? 그럼 천장에서 빛나는 겍 모두 광석이라 말이야?" "응, 다른 곳도 다 바위투성이야"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천장은 광석이 솟아 나와있을 정도로 두터운 암벽으로 막혀 있다. 이곳이 바로 아크가찾아 헤매던 지저 세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아크가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크가 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의 광석! 광석은 각종 생산에 쓰이는 하급 보석이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광석이 대략 20~40실버. '그런데 저렇게 큰 광석이라면......!' 아크가 군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데,데드릭.그거 빼내 올 수 있어?" "윽, 안 돼. 엄청 단단해. 꼼짝도 안해" 하긴 아무리 숨겨진 지역이라도 사람만 한 보석을 마음대로 들고 갈수 있을리 없다. 아마도 아크가 곡괭이를 들고 날아간다고 해도 광석을 캐 내지는 못하리라. 형태는 보석이지만, 어디까지나 풍경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저런 돈 덩어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야 한다니.............' 아크는 핏발 선 눈으로 광석을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림의 떡을 보고 소화액을 질질 흘려 대 봐야 위만 쓰리다. '어쨌든 이곳이 지저 세계인 건 분명해. 그렇다면 여기 어디에 삼신기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당연히 지저 세계의 주민이라는 수인족도 있겠지. 먼저 그들을 찾아야 겠군' 아크는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고 비탈을 따라 내려왔다. 지하라 주변은 어두었지만 광석이 촘촘히 박혀 잇어 일반 던전보다는 밝았다. 어느 정도 가파른 경사가 계속되다가 이내 숲이 펼쳐졌다. 숲에 들어서자 또다시 아크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숲의 나무와 풀들은 밖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아마도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되어 독자적인 생태계가 이루어진 듯. 그때문인지 상상도 못했던 형태의 열매따위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우와! 이거 봐,주인! 열매가 솥뚜껑만 해!" 데드릭도 신기한지 충구공만 한 열매에 달라붙었다. 마침 지하 미궁에서 헤매느라 식재료가 간당간당하던 참이다. 게다가 처음 보는 식재료라면 당연히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낼수 있다는 뜻. 아크는 얼른 달려가 열매는땄다. 그러나 열매는 나무에서 떨어지자 마자 퍽, 소리를 내며 으깨져 버렸다. -채취에 실패했습니다. 몇 번이나 채취에 실패한 뒤에야 겨우 하나를 딸 수 있었다. 그리고 식재료 감별도 두 번이나 실패한 뒤에야 겨우 식재료의 정보를 알 수 있었다. [바오의 열매 (식재료) 지저 세계에서만 자라는특수한 식물인 바오의열매. 크기와 달리 매우 민감한 열매이므로 숙련된 채취 기술이 필요하다. 채취한 열매는 각종 요리나 마법 재료로 사용되며 말려서 가루를 내면 향신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채취와 식재료 감별 스킬은 모두 중급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채취가 어렵다는 건 식재료의 레벨이 높다는 뜻. 과연 하나만 땄는데도 숙련치각 1씩 올라갔다. 물론 그 때문에 식재료를 몇 개나 못 쓰게 돼 버렸지만, 주변에는 식재료가 썩을 만큼 널려 잇었다. '식재료 레벨이 높으면 음식의 효과도 그만큼 강하겠지?그런 식재료가 지천에 널려 있단. 우하하하 .여긴 서바이벌 요리사의 천국이야!' 열매는 열매대로, 약초는약초대로, 독초는 독초대로....... 요리에 독 제조까지 하는 아크에게는 뭐 하나 버릴게 없는 식재료들이다. 아크는 눈에 보인느 식재료를 미친듯이 긁어 모았다. 지저세계를찾아온 이유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텅텅 비어있던 가방이 식재료로 가득 찰 무렵....... 한쪽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며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숨을 죽였다. 지저 세계에 들어서고대략 30분. 아직 그 흔한 늑대 한마리 보이지 않아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그러나 몬스터가 없을 리가 없다.곧이어 수풀 뒤쪽에서 두 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역시나 처음 보는 형태의 몬스터였다. 다리가 2개 달린 거대한 귀뚜라미 같은 몬스터가 나뭇가지를 으깨며 걸어 나왔다. 그리고 온몸에 넝쿨같은 식물을 휘감고 있는 몬스터가 귀뚜라미를 타고 있었다. "적인가? 고양이의 눈" 고양이의 눈으로 정보를 확인하던 아크가 숨을 들이켰다. '강글?레벨이........헉, 150?' "에이드!카라!코그나!" 아크가발견한 강글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더니 다짜고짜 공격해 들어왔다. 가시나무가지처럼 생긴 창이스치고 지나가자 단숨에 생명력이 300이나 빠져 버렸다. 거기에 강력한 출혈까지 추가되며 생명력이쭉죽 줄어들었다. '맙소사, 들어 오자마자 처음 만난 몬스터가 레벨이 150이라니.!' 현재 아크의 레벨은 94.어둠 보너스를 받아도 121남짓이다. 아무리 레벨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아크라도버거운 상대였다. 게다가 선제공격으로 상태 이상까지 걸려버렸다. 아크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이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지금 아크는죽어서는 안된다. 아직 부활 장소를 갱신하지도 못한 상태. 만약 이곳에서 죽으면 안델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 부활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레벨 150짜리몬스터와 싸울 수는없지 않은가? "데드릭, 해골.긴급 상황 D플랜이다. 내가 도망갈 시간을 벌어라!" "쳇, 주인. 한대 맞고 쫀거냐?" "시끄러!장난할 때가 아니야" 아크각 버럭 소리치며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자 데드릭과 해골이 양쪽에서 돌아나가며 강글을 막아섰다. 상대는 두 마리, 이런 경우에 D플랜을 사용하면 거의 80%이상 도주가 가능하다. 보통 몬스터는 눈앞에 보이는 상대부터 공격하기때문이다.그러나........! "시크!시크!우람바!" 강글 한마리가 고함을 내지르며 고삐를 잡아챘다.그러자 귀뚜라미가 살짝 몸을 움츠렸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단숨에 10여 미터를 날아 아크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날카로운 창이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헉, 이게 무슨......!" 아크는 바닥을 구르며 창을 피해냈다. "주인,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닥치고 움직여!C-3이다!한놈이라도 못 오게 막아!" 아크는 버럭소리치며 중심을 잡았다. 강글이 타고 있는 귀뚜라미의 기동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말 귀뚜라미처럼 단숨에 자신의 몇 배에 달하는 높이를뛰어오를수 있는 것이다. 나무와 넝쿨이 빽뺵이 들어차 있는 숲에서 그런 놈을 따돌리고 도망갈 방법은 없다. 그나마 소환수를 제치고 달려든 건 한마리. '그렇다면 소환수가 한 마리를 상대하는 사이.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속전속결!빠른 상황판단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좋다, 어디 붙어 보자. 빌어먹을 넝쿨 자식!뱀, 검!아니, 제일 싸구려 검!" 그 와중에도 조금이라도 싼 검을 찾는 아크. 어쨌든 아크의 훈련으로 제법 아이템 가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뱀이 너덜너덜한 검을 탁 뱉어냈다. 검이 손에 잡히자마자 적자를 각오한 필살 스킬이 펼쳐졌다. "블레이드 스톰!" 너덜너덜한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강글을 덮쳤다. 그러나 위기의 상화에서도 손익을 따지는 아크의 습관을 상황을 악화시켰다. 검은 고작 수십조각으로 쪼개졌다. 파편당 5의 데미지. 수십 조각으로는 다크 블레이드만도 못한 데미지를 안겨 줬을 뿐이다. 블레이드 스톰의 화려한 특수 효과에 움찔했던 강글이 괜히 더 성질을 내며 창을 찔러왔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데미지 500 출혈에 걸려 1분간 10초당 10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스킬 발동 직후의 무방비 상태. 아크는 치명타에 상태 이상까지 걸려버렸다. 덕분에 생명력이 단숨에 40%나 깎여 나갔다. "빌어먹을!" 오랜만에 가슴에서부터 우러 나오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그리고 피눈물을 삼키며 꽤나 쓸만한 검을 빼들었다.안목으로 확인한 가치는 무려 1골드! "밧아랏, 만 원짜리 공격이다!" 역시 현실에서나 게임에서나 돈이 최고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 펼쳐졌다. 일단 돈을 처바르니 특수 효과부터가 다르다. 검에 숨낳은 균열이 번지며 격렬하게 터져나갔다. 그리고 폭풍처럼 회오리치며 강글을 덮쳐 버렸다. 조금 전에 같은 공격을 받았던 강글을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맞아 보니 별거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2천원짜리 공격과 만원짜리 공격의 위력이 같을 리가 없다. 무지막지한 현찰의 위력!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강글의 생명력이 40%나 깎여 나갔다. 그리고 귀뚜라미에서 굴러 떨어지며 단숨에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했다. "젠장, 그 돈이 어떤 돈인줄 알아? 뱀, 맹독이다!" 맹독 효과로 녹색으로 빛나는 검이 다크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방어력을 무시한 데미지에 산성 맹독 데미지가 추가되었다. 휘청거리며 물러난 강글이 황급히 창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눈앞에서 만 원을 날려 버린 아크의 분노는 무시무시했다. 피눈물이 뚝뚝 흐르는 듯한 눈으로 달려들자 오히려 강글이 기겁했다. 그리고 광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연속 공격에 결국 단말마를 지르며 함께 누워 버렸다. "주, 주인! 살려줘!" 뒤에서는 데드릭과 해골이 고전하고 있었다. 레벨 45수준의 소환수 둘로는 벅찬 상대였다. 게다가 귀뚜라미의 기동력까지 있으니, 아마 도적을 상대하며 몸에 익힌 콤비네이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강제송환됐으리라. 아크의 시뻘건 눈동자가 핑그르르 돌아갔다. "경험치로라도 본전을 뽑아야겠다!" 만 원을 날려 버린 분노는 실로 무서웠다. 아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강글은 단숨에 수세에 몰렸다 .그리고 A-2플랜을 사용해 소환수와 함께 파상공격을 펼치자결국 빈사 상태에 몰려 버렸다. "돈의 원한은 무섭다!"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마무리 공격을 날렸다. 순간, 강글이 괴성을 지르자 귀뚜라미가 하늘로 날아올라 거대한 나무위로 도망가 버렸다. "거기서!데드릭, 놈을 막아라!" "오케이!" 데드릭이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그러나 생각과 달리 강글은 도망치지 않았다. 두꺼운 나뭇가지에 올라탄 강글이 돌연 고개를 돌리며 뭐라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에리크,나크, 노라네스!" "헉, 주, 주인!" 데드릭이 기겁하며 허둥지둥 뒤로 물러났다. 우드득, 와드득!콰작! 숲이 움직였다.아니,정확히 말하면 나무였다. 직경이 수 미터는 족지 될 듯한 거목이 서서히 흔들리더니 이내 아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돌연 어둠을 가르며 몇가닥의 넝쿨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지만 생명력이 쫙 빠져나갔다.동시에 아크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쫙 빠져나갔다.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크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거대한 나무 괴물이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가끔 등장하는 엔트리는 나무의고대 정령같았다. 그러나그보다 몇 배는 더 끔찍하고 위협적으로 생긴 몬스터였다. 거대한 고목에 얽혀 있는 수십 줄기의 넝쿨이 촉수처럼 사방으로 흔들리며 아크를 위협했다. 플랜트 골렘........레벨이 무려 250이나 되는 괴물이었다. "이건 사기야!" 보스 몬스터도 아니고 일반 몬스터가 레벨 250이라니? '잘못 들어와 버린건가?' 그제야 아크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모험하다가 가끔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고레벨 지역에 들어서게 되는 경험을 말이다. 그럴 경우 유저는갑자기 말도 안되는 레벨과 능력치를 가진 적을 만나 꽁지 빠지게 도망가거나, 오도 가도 못하게 되어 바닥에 누워 버릴수밖에 없다. 물론 아크 역시 다른게임에서 종종 겪어 본 일이다. 지금이 그런 상황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저세계에 들어오기 전의 지하 미궁만 해도 레벨 100짜리 스켈레톤이 주였다. 슬라임이 레벨 130이었지만, 그건 중간 보스의 개념으로 어쩌다가 한 마리씩 나왔다. 그런데 지저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레벨 250짜리 몬스터라니? 그것도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촉수를 휘두르는 몬스터는 같은 레벨이라도 난이도는 최상급! "빌어먹을 !고작 철문 하나 지나왔을 뿐인데,이 터무니없는 레벨 차이는 대체뭐야?" 아크는사방에서 날아드는 넝쿨을 쳐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지 않아도 20%밖에 남아 있지 않던 생명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내며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안 돼! 생명력이 100%라도 지금 레벨로는 플랜트 골렘을 이길수 없다!' "해골, 데드릭. D-4플랜이다!" "젠장, 알았다!" 아크의 명령에 소환수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해골과 데드릭이 몬스터의 시선을 끄는사이, 아크가 전투 지역을 벗어나는...........가능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은 작전이다. 작전대로 해골과 데드릭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격을먹인후에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그러자 플랜트 골렘이 괴성을 지르며 해골과 박쥐를따라갔다. 그사이 아크는 빈사 상태에서 발동한 아드레날린 효과를 이용해 전력을다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눈앞이 붉어지며 데미지가 들어왔다. -소환수'이름 없는 망자의해골'이 유계로 강제송환되었습니다. 소환수 생명력의 5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날렵하지 못한 해골이 먼저 플랜트 골렘에게 박살났다. 그리고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데드릭까지 강제송환되며 데미지가 들어왔다. 도망치며 회복 포션을 먹어 두지 않았다면 그 데미지만으로 죽어 버렸으리라.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최악의상태다. 소환수가 예상보다 빨리 죽어 버리는 바람에 아직 전투 상태가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여유가 있을 때 그냥 도망갔어야 하는데........' 돈에 눈이 뒤집혀서 오버한 게 실수였다. 다행히 아직 강글과 플랜트 골렘은 아크를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귀뚜라미의 기동력이라면 들키는건 시간문제.일단 눈에 띄게 되면 벗어날 방법은 없다. '여기까지 와서 죽는 건가?' 바로 뒤까지 다가온 강글의 괴성을 들으며 아크는 절망했다. 그리고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돌연 뭔가가 발을 확 잡아당겼다. 동시에 몸이 땅 밑으로 푹 꺼져 들어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뭐,뭐야?" "쉿!"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리자 누군가가 앞을 콱 틀어막았다. 동시에 바로 위에서 귀뚜라미가 머릴 위로 내려서는 소리가 들려왔다.강글의 괴성과 플랜트 골렘의 발소리가 뒤섞여 들여오기를 몇 차례, 머리위에서 서성대던 두 몬스터는 결국 아크를 발견하지못하고 멀리 사라졌다. 아크는 전투 상태가 풀린뒤에야 겨우 참았던 숨을 불어냈다. 그떄, 뒤쪽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방인이지?" "너는.......어? 그모습은.......혹시너........" "헤헤, 맞아. 나는 수인족이야" 어둠 속에서 통통한 소년이 씨익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소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을 닮은 NPC,수인족이었다. 그런데 외모가 이전에봤던 묘족이나 인어족과는 전혀 달랐다. 눈 근처는다크서클이 낀듯 시꺼멓고, 아랫배는 앙증맞게 보일 정도로 톡 튀어나왔다. 그리고 엉덩이에는 줄무늬가 그려진 둥그렇고 짧은 꼬리가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곧바로 머릿속에 하나의 동물이 떠올랐다. "너구리?" ACT 2 너구리를 장악하라 "맞지? 맞지? 이방인이지?" 아크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그러자 너구리 소년은 꼬리로 바닥을 탁탁 내려치며 흥분했다. "역시 그렇구나!와아, 나 이방인을 보는 건 처음이야" 아크 역시 말하는 너구리를보는건 처음이다. "그런데 너는.......?" "나는 너구리족의 전사, 포포야" 포포가 으스대며 대답했다. 잘 봐 줘야 마스코트 캐릭터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앙증맞은 외모라 어디가 전사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아크는 일단 고개를끄덕였다. 너구리족이라.......사실 아크는 지저 세계의 주민이라는 말에 상당히 긴장하고 우락부락한 수인족을 상상했다. 그러나 막상 찾아내고 보니 오동통한 너구리였던 것이다. 왠지 실망스러운 기분이 없지 않았지만, 일단 수인족을 찾는다는 목적은 당설한 셈이다. "나는 아크야" "응, 아크라고 하는구나" 포포는 굉장히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나는 이방인을 굉장히 좋아해" "뭐? 나말고 다른 이방인을 본적 있어?" "아니,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어른들에게 말은 많이 들었어. 이방인들은 우리처럼 한 곳에서 만족하지 않고 넓은 대륙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몬스터와 싸우며살아간다고. 정말 멋져!그거야말로 사나이의 삶이지!나도 언젠가는 이곳을 나가 꼭 그렇게 살거야. 다른 어른들처럼 이런 곳에서 평생 숨어 살지는 않을거야" 포포는 서울 구경하고 싶다는 촌놈처럼 떠들어 댔다. "아크 형도 그런거지? 지저 세계의 몬스터를 쓰러트리기 위해 찾아온거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역시 그럴줄 알았어" 아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크의 목적은 몬스터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삼신기를 찾고,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는것. 그러나 그런 중요한 일을 어린 포포에게 털어놔 봐야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너구리족의 마을을 찾아서 정보를 모으는게 순서다'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포포에게 마을을 안내해 줄수 있느냐고 물었다. 포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안내해 줄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위험해" "뭐? 어째서?" "그건........차차말해 줄게. 일단 이걸 입어" 포포는 그렇게 말하며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옷가지를 건네주었다. 후드가 달린 망토와 비슷한 형태의 옷이었다. 아크가 나뭇가지 옷을 걸치자 포포는 풀을 허리 부분에 쑤셔 넣었다. 그렇게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아랫배를 투실투실하게 만들자 설핏 보면 너구리족 같았다. 그렇게 변장한 아크는 포포를 따라 동굴을 걸었다. 그렇게 10분가량 지났을 무렵, 포포가 앞을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우리마을이야" 넓은 지하 공간이었다. 군데군데 횃불이 밝혀진 공동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NPC들이 우글거렸다. 모두 너구리와 닮은 외모의 수인족, 일명 너구리족이었다. 너구리족의 마을은 화려함을 좋아하는 인어족과 달리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저기 솟아 올라와 있는 암벽에 벌집 같은 구멍이 뚤려 있었는데 그곳이 너구리족의 집이었다. 가끔 상당한 크기의 동굴도 보였지만 대부분은 고만고만했고 ,화려한 장식 따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시장은 마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시장의 양쪽에는 수많은 종류의 공방과 상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아크는 묘족 장로 핫산에게 들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지저세계의 수인족은 손재주가 좋다고 했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볼까?' 아크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공방앞에 진열되어 있는 아이템을 주욱 훑어보았다. 인어족의 도시, 노드리스처럼 너구리족의 아이템 역시 밖에서는 보지 못한 희귀한 재료로 만들어져 있었다. 게다각 장인 종족이란 명칭에 걸맞게 디자인이나 성능이 몇 등급이나 높았다. [무지개 보석 반지(마법) 아이템 타입 : 반지 사용 제한 : 레벨 70 지저 세계에서 구할 수 있는 7개의 보석을 박아 넣은 아름다운 반지. 7개의 보석이 가진 특수한 힘이 더욱 증폭되어 있습니다. {암, 광, 화, 수, 지, 풍, 뇌.일곱 속성의 저항력 +10} 가격 : 2,400L] [사리타의 부메랑(마법) 무기 타입 : 투척 무기 내구력 : 50/50 공격력 : 15~25 무게 :10 사용 제한 : 레벨 100 지저 세계에서만 서식하는거대 새. 사리타의 뼈로 만들어진 부메랑. 적에게 타격을 입히고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오는 투척 무기입니다. 속이 비어 있는 사리타의 뼈에 정밀한 가공 기법을 더해. 바람을 가를 때 날카로운 고주파가 발생합니다. 만약 저항력이 낮은 적이라면 고주파만으로도 높은 확률로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사용자의 레벨보다 낮은 적에게 공포 확률 20%} 가격 : 3,500L] '역시나 가격이무시무시하구나' 경험으로미루어 보면 숨겨진 마을에서 파는 아이템은 모두 성능이 엄청났다. 인어족의 마을이 그랬고, 너구리족의 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속성의 저항력을 올려주는 장신구는 밖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아이템. 투척 무기 역시 마찬가지다. 주로 전사들이 사용하는 투척 무기는 모두 소모품으로 한 번 사용하면그만이다. 그러나 사리타의 부메랑은 투척 무기이면서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마법사나 전사가 봤다면 환장했을 아이템들인 것이다. 그러나 성능 이상으로 경악할 만한 건 가격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지역에 사는 너구리족도 인어족처럼 골드 대신 자신들만의 통화를 사용했다. 바로 L.........이건 아크가 지저 세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봤던 광석 조각을 말하는 것이다. "너구리 족은 하늘에 붙어 있는 광석에서 가끔씩 떨어지는 광석 파편을 돈으롤 사용해. 광석 파편은 많은 공예품의 재료로도 사용되는 물건이라 너구리족에는 필수품이거든" 포포의 설명이었다. '3,500L...........광석 하나에 20~40실버니까. 골드로 따지면 700골드에서 1,400골드!' 골드로 환산하자 어마어마한 가격이 실감났다. 아크의 지갑을 탁탁 털어도 하나 살수 있을까 말까 할 무지막지한 아이템들이었다. 그 밖에 식재료나 각종 재료 아이템을 파는 상점도 있었지만 물가가 높은 건 마찬가지였다. '젠장, 모두 그림의 떡이군'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맞아.너구리족과 인어족은 모두 외부와 차단된 곳에서 생활하는 수인족. 그렇다면 너구리족도 인어족처럼 바깥의 아이템을 잘 모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잡템을 인어족에게 팔아 넘겼을 때처럼 너구리족에게도 고가에 팔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얼른 가방에서 잡템 몇 개를 꺼내 포포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포포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모야도 성능도 영 아닌 아이템이네. 너구리족은 이런건 줘도 안 가져가. 명색이 장인 종족이라 모두 눈이 높거든.그리고 밖에 나가면 이런 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잖아"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아크는 포포의 대답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밖에 나간다고? 그럼 여기서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야?" "당연하지. .너구리족은 계속 인간들과 교역을 하며 살아왔는걸.물론 밖에 나갈때는 정체를 숨기고 공예품만 거래해. 그래서 골드도 사용하지만, 너구리족까리는 L만 사용해 그러니 행여 골드를 쓸 생각은 마. 정체를 들키게 되니까'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내가 묻고 싶은건, 외부와 교류를 한다면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말이잖아.그런데 어째서 내가 외부인인걸 들키면 안된다는거지?" "그건........얼마 전부터 스바르탈프헤임에 문제가 생겼거든" 포포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스바르탈프헤임이란 너구리족이 지저 세계를 가리키는말이었다. 이 역시 본래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지명으로, 검은 꼬마 요정이 살고 있는 지하세계를 가리킨다. 이 스바르탈프헤임은 바깥 세계의 한 영지만큼 거대한 세계였다. 그리고 너구리족은 북유럽 신화에서 세계수라 불리는성수, 이그드라실을 중심으로 10여개의 부락으로 나뉘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오고나서 이그드라실이 변해 버렸어" "그?" 포포가 어금니를 질끈 꺠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열흘쯤 전에 이곳을 찾아온 붉은 머리의 인간이야" '붉은 머리의 남자!' 순간 아크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붉은 머리칼의 남자. 바로 기란 주변의 도적단을 이용해 심혼의 구슬을 훔쳐 카이로트로 향했다는 남자였다.설마 그가 아크보다 한 발 앞서 지저세계에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체 어떻게 지저세계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는 퀘스트 관련 NPC다. 지저 세계롤 통하는지하 미궁은 아크가 최초 발견자지만, 그것도 유저에게나 해당되는 내용. 상대가 NPC라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저세계에 들어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심혼의 구슬 퀘스트도 지저 세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뭔가 일이 복잡하게 꼬여 간다. 그렇다면 붉은 남자의 목적이란 대체.......? 뒤이어진 포포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자신을 구도자라고 했어" "뭐? 구도자?" "응, 너구리족은 인간을 싫어하지만 구도자는 수인족의 친구.너구리족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 그리고 오래전의 맹약에 따라 구도자를 이그드라실로 안내해줬지" "오래전의 맹약이라니?" "어른들 말로는 오래전 마반 영웅과 너구리족이 맹약을 나눴는데, 누군가 마반 영웅의 뒤를 이어 지저세계를 찾아오면 그를 이그드라실에게 안내해 무슨 시험을 받게 해야 한대" "그래서? 그는 시험을 받았어?" 아크가 다급하게 묻자 포포가 고개를저었다. "나도 잘은 몰라. 하지만 그가 이그드라실로 떠나고 얼마되지 않아 무서운일이 벌어졌어.이그드라실이있는 곳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고, 그 뒤로 우리의 수호목인 이그드라실이 오히려 우리를 습격하기 시작했어.그리고 이그드라실에게 공격받은 너구리족은 모두........괴물로 변해 동족을 공격했지" "괴물?" "원래 스바르탈프헤임에는 너구리족 외에는 어떤 몬스터도 살지않아" 그게 무슨 뜻인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크가 움찔하며 되물었다. "그럼.......나를 공격했던 몬스터는?" 아크의 질문에 포포는 울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맞아,이그드라실에게 잡히 너구리족이야.이그드라실에게 잡힌 너구리족은 모두 강글이나 플랜트 골렘처럼 변해버렸지. 그리고 닥치는 대로 부락을 공격하기 시작했어. 내가 살던 마을도 놈들에게......." '맙소사,샤넨이 우려하던 재앙이란 게 이건가?' 이제야 단편적인 정보가 연결되었다. 기란 마법 학회에서 심혼의 구슬을 훔쳐 냈다는 붉은 남자와 지저 세계에 찾아왔다는 붉은 남자가 동일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시 말해 붉은 남자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카이로트가 아닌 지저 세계였다는 말. 샤넨은 심혼의 구슬이 불길한 마력으로 재앙을 일으킬 것이라곡 충고했다. 그렇다. 아크가 만났던 터무니없는 레벨을 가진 몬스터들이 바로 그 재앙인 것이다. 아크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듯 뒤이어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심혼의 구슬을 찾아라II=심혼의 구슬을 찾아라III 당신은 붉은 남자의 흔적을 추적해 지저 세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지저 세계의 주민으로부터 붉은 남자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붉은 남자는 얼마전 지저세계로 들어왔고, 때를 같이해서 지저세계의 수호목 이그드라실이 미쳐 버렸다고 합니다. 때문에 평화롭던 지저세계는 몬스터가 날뛰는 위험한 곳으로 변해 버렸고, 지저 세계의 주미들은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붉은 남자가 훔쳐 낸 심혼의 구슬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 단서들을 조합해 심혼의 구슬을 찾아내야 합니다. {난이도 : +C}] 정보창을 확인하던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단서를조합하면 심혼의 구슬은 이그드라실에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그드라실은 너구리족을 몬스터로 바꿔지저 세계를 위협하는 주범. 당연히 주변에는 레벨 150의 강글이나 250의 플랜트 골렘이 득실거리리라. 현재 아크의 능력으로는 그들을 물리치고 이그드라실을 찾아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난이도 +C!이벤트 퀘스트였던 ++ C를 제외하면 아크가 받은 퀘스트 가운데 최고 난이도! 공격대를 조직해도 가능할지 어떨지 모르는 난이도다. '게다가 이 퀘스트는 삼신기를 찾는 일과 엮여 있어' 생각할 것도 없다. 너구리족은 마반 영웅과 구도자가 찾아오면 이그드라실에게 시험을 받게 하는 맹약을 맺었다고 한다.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이그드라실의 시험이란 구도자에게 삼신기를 전해주는 이벤트. 결국 삼신기 역시 지저 세게의 문제가 핵려돼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대체 붉은 남자라는 놈은뭐야?' 아크는 화가 치밀었다. 만약 그 놈만 아니었다면 좀 더 쉽게 삼신기를 손에 넣을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놈이 엉뚱하게 심혼의 구슬을 뺴돌린 통에 난이도가 엄청나게 올라가 버렸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놈이 아니었다면 지저세계를 찾아내지도 못했겠지만........ '어쨌든 지금 레벨에서 완료할 수 있는 퀘스트가 아니야'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아까 인간들과 교역을 한다고 했지? 그럼 밖에 나갈수 있다는 말이잖아? 이곳이 그렇게 위험해졌다면 밖으로 도망치거나 인간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 "바깥세상으로 나갈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이그드라실 내부에 있어" 포포의 대답에 아크는 완전히 절망했다. 일단 지저세계의 위치는 알아냈다. 그리고 다행히 밖으로 나갈 방법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아크는 이도저도 안되면 일단 밖으로 나가 레벨을 더 올린 뒤에 다시 들어오면 안될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조차 이그드라실과 연관이 있다면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한다는 뜻이 아닌가?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야!" 그때, 갑자기 포포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다른 마을은 모두 이그드라실에게 삼켜졌어. 수천명의 동족하고 함께. 내가 살던 마을의 너구리족도 먹혀 버렸단 말이야.남은 곳은 여기뿐이야.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무도 싸우려고 하지 않아. 입구를 막아버리고 땅굴을 파며 살금살금 눈치를 살필 뿐이야. 이대로는 결국 여기도 당할거란 걸 알면서도!" 포포가 살던 마을은 가장 이그드라실과 가까운 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그드라실에게 가장 먼저 먹혀 버렸고, 살아남은 너구리족은 포포뿐이었다. "하지만 나는어른들과 달라. 나 혼자라도 싸우겠어.형도 그럴거지? 형은 비겁한 너구리족 어른들과 달리 용감한 이방인이니까!형도 나와 함께 싸워 줄거지? 아까 강글을 무찔렀던 것처럼 싸워 줄거지?" 아크는 그제야 포포가 처음부터 호감을 보였던 이유를 알아챘다. "물론 싸워야지.하지만......." 아크가 뭐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흥분해서 소리치는 포포의 팔에 한 너구리족이 떠밀렸다. 그 너구리족은 비틀거리며 옆으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돌연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어? 무슨 일이야? 아저씨, 괜찮아?" "크윽, 크으으윽, 크아아아!" 포포가 놀란 눈으로 흔드는 순간, 갑자기 너구리족이 발작을 일으키듯 몸을 떨어댔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너구리 족의 몸 여기저기에서 넝쿨 같은 것이 솟아 나오더니 온몸을 뒤덮어 버렸다. "강글!" 멀쩡한 너구리가 순식간에 몬스터롤 변해 버렸다. 시장에 몰려 있던 너구리족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롤 도망쳤다. 포포역시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강글의 몸에서 수십 줄기의 넝쿨이 솟아 나와 포포를 휘감아버렸다. "아, 아크형!" "이런 젠장!" 아크가 번뜩이는 동작으로 검을 뽑아든건 그때였다. 콰콰쾅, 아크는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 넝쿨을 모두 끊어 냈다. 그러자 강글의 목표가 아크로 바뀌었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넝쿨. 아크는 빠르게 몸을 회전 시키며 넝쿨을 피해내고 연속 발 차기를 쑤셔 넣었다. "크르르르, 카고, 나미르!" 강글은단숨에 스턴에 빠져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레벨150의 강글,그러나 상대는 한 마리다. 또한 귀뚜라미도 없고, 무기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강글의 넝쿨ㅇ느 플랜트 골렘과 달리 속도도 공격력도 그릴 위협적인 편은 아니다. '한 마리 정도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아크는 넝쿨을 피해 내며 다크 블레이드와 발 차기의 콘비네이션으로 몰아붙였다. 그러기를 5분여.이내 강글은 빈사 상태에 빠지자 와락 몸을 돌려세웠다. 그러나 아크의 몸놀림이 몇 배는 더 빨랐다. "놓치지 않는다!" 아크는뒤따라 달려가다가 몸을 날렸다. 뒤이어 펼쳐지는 그림같은 이단 옆차기!발 차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강글이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아크가 착지와 함께 검을 내리꽂자 더블 크리티컬이 터지며 강글의 생명력이 바닥나 버렸다. "괴, 굉장하다!" "혼자서 강글을 쓰러트렸어!" 아크가 묘기에 가까운 솜씨로 강글을 무찌르자 너구리족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너구리족들은 이내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외지인이다!" "어떻겍 외지인이 여기까지?" 뒤이어 터져나온 목소리에 아크는 아차 싶었다. 강글과 싸우는 통에 포포에게 받은 나뭇가지 옷이 여기저기 찢어져 버렸던 것이다.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이,돌연 군중을 뚫고 가죽 갑옷을 입은 너구리족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잠시 놀란 눈으로 강글과 아크를 번갈아 보았다. "저............" 너구리족 병사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창을 치켜들었다. "우, 움직이지마!너희들을 체포하겠다!" "젠장, 이거놔!" "가만있어!" "나와 아크 형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래?" 포포가 욕설을 내뱉으며 발버둥 쳤다. 그때, 맞은편에서 늙은 너구리족이 화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그제야 포포는 움찔하며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 늙은 너구리가 이 마을의 장로쯤 되는가 보군' 아크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장에서 너구리 병사에게 잡힌 아크와 포포는 곧 넓은 동굴로 끌려왔다. 마을 회관쯤 되는 곳인듯. 동굴 안에는 나이 든 너구리족 10여 명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그중 가장 나이가 많은 너구리가 화난 눈길로 포포를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또 내 말을 어기다니!게다가 인간까지 끌고 들어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너 하나 때문에 마을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 "행!" "아직도 모르겠느냐? 스바르탈프헤임이 왜 이렇게 변해 버렸는지? 바로 인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인간이 이곳에 재앙을 가져왔어! 그자도 마찬가지다!" "아크 형은 달라. 강글을 해치웠다고!" "멍청한 놈!수인족의 친구라는 구도자가 우리를 배신했다. 그런데 이런 인간을 어떻게 믿고 그런 말을 하는거냐?수백 년간 숨겨 왔던 이곳을 찾아온 자다. 분명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게 분명해. 여봐라,당장 포포를 감금하고 저 인간을 처단하라!" "그래, 처단해야 한다!" 다른 너구리족들도 꼬리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는 구도자가 아닙니다" 아크가 입을 연것은 그때였다. 장로의눈가가 살짝 일그러졌다. "뭣이? 무슨 말을 하는거냐?" "다시 말하죠.붉은 머리의 남자는 구도자가 아닙니다. 당신들이 그에게 속은 겁니다" "네놈이 뭘 안다고......." "구도자로 인정받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아크가 장로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구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쥐 만 마리와 블랙 베어 마우스를 해치우고 마반 영웅의 후손인 묘족에게 인정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요 몇백 년간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묘족에게 구도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극 유일한 구도자는 붉은 머리의 남자가 아닙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안다는 거냐?" "당연히 알죠. 요 수 백년간,묘족에게 인정받은 유일한 구도자가 저니까요" "뭐,뭣이!" 장로가 놀란 표정으로 경악성을 터트렸다. "아,아크형?" 포포역시 믿기지 않는 눈길로 멍청하게 아크를바라보았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마을 호관에 모인 모든 너구리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장로는 믿을수 없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 수 없다!설사 그가 구도자가 아니었다는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너 역시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누가 알수 있겠느냐? 네가 구도자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 "증거라면 있습니다. 장로라면 이걸 알아보실수 있겠죠?" 아크는 가방에서 작은 돌조각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장로는 잠시 눈매를 좁히며 돌조각을 훑어보다가 이내 휘청거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벼..............별의 조각......." 그렇다.아크가 꺼낸 것은 해저에서 얻은 삼신기 가운데하나. 별의 조각이었다. 그도자가 아니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아이템. "인정하시겠습니까?" 아크의 확인 사살에 장로는 맥 빠진 얼굴로 끄덕였다. 그러자 포포가 병사들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형이구나!아크 형이 진짜 구도자였어!장로 할아버지,봤죠? 아크형은 구도자에요!수인족의 친구, 진짜 마반 영웅의 의지를 이어받은 용사라고요!"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때 말랑말랑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던 장로가 한숨을 불어냈다. 그리고 지친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네가 구도자라는 것은 알겠네.하지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분명 우리는 과거 마반 영웅과 맹약을나눴다. 그러나 너무 늦었어. 이미 이그드라실은 타락해 버렸고, 우리는 맹약을 지키기는 커녕 생존마저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네. 구도자니 무단으로 마을에 침입한 죄를 묻지는 않겠네. 하지만 이그드라실이 타락한 이상, 자네 여시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겠지. 달라질 건 아무것도없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모르겠어? 아크 형은 구도자라니까!지금이야말고 우리가 나서서 다시 스바르탈프헤임의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할 때잖아!" "닥쳐라!어린애가 나설일이 아니야!" 장로가 버럭 소리치자 포포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겁을 집어먹은 게 아니었다. 포포는 믿을수 없다는 눈길로 장로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미 다른 마을은 다 먹혀 버렸어. 그리고 아무리 꽁꽁 숨어있어도 결국 여기도 언젠가는 발각될 거야.장로 할아버지도 알고 있잖아!시장에 강굴이 나타났어.놈들이 여기로 들어오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뜻이잖아" "으음........" 포포의 말에 마을 회관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참, 이내 주변에서 너구리족들이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하지만........이번 사태는 이그드라실에게서 시작했다. 이그르드라실은...........우리의 수호목. 우리가 이그드라실과 싸워서 이길수 있을 리가 없어." "게다가 강글이나 플랜트 골렘 역시 본래는 우리의 동족..........그들을 죽인다는 것도............" "거짓말!" 포포가 격렬하게 소리쳤다. "솔직하게 말해. 그냥 싸우기가 무서운 것뿐이잖아. 겁쟁이들!그래, 마음대로해!강글과 플랜트 골렘에게 마을이 발견될 때까지 숨어서 벌벌 떨어 보라고!하지만 나는 달라!죽더라도 싸우다가 죽겠어!" 포포는와락 너구리 병사를 밀쳐내며 마을 회관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거기 서지 못하겠느냐? 뭐 하느냐? 저 녀석을 잡아라!" 너구리 병사 2명이 황급히 포포의 뒤를 쫓았다. 아크는 잠자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끼어들어야 좋을지 감을 잡을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포포 덕분에 대강 상황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지금 해야 할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수 있었다. '맞아,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어!' 아크는 너무나 당연한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퀘스트는 유저만의 문제라는 상식의 틀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굳이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뉴 월드는 옛날 RPG게임이 아니야' 옛날, 초창기 시절의 게임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시대에 흔히 쓰이던 게임 시나리오는 대개 마지막에 가면 마왕이 부활한다는 식이었다.마왕이 부활하면 세계가 멸망한다. 그럼에도 게임에서 만나는 수많은 NPC들은, 심지어 전직 용사라는 NPC까지도 직접 게임에 관여하지 못했다. '어쩌지?' '도와주세요' 따위나 지껄이며 우왕자왕할뿐이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고작 주인공 한 사람에게 세계의 운명을 떠맡겨 버렸다. NPC가 능동적으로 생가갛고 움직일 만한 인공지능도 만들어지지 않앗던 시절이고, NPC의 행동에 따른 변수까지 계산할 정도로 CPU의 성능이 따라가지도 못했던 까닭이다. 그러나 여기는 완벽한 미래형 게임이라고 일컬어지는 뉴 월드의 세계다. 유저에게 무한한 자유도를 뷰여하는 게임.그리고 그런 자유도는 NPC에게도 해당되었다. 물론 유저만큼은 아니지만 NPC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아크의 조언에 갱새단에 특혜를 베풀어준 소년 영주처럼 말이다. '여기에 이번 퀘스트를해결하는열쇠가 있다' 만약 이대로 지저 세계가 멸망이라도 한다면 아크에게는 큰일이다.삼신기는물론, 퀘스트를 해결할 방법도 없어진다. 그러나 어차피 아크는 유저.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너구리족은 아니다. 게임을 현실로 생각하는 너구리족에게 지저세계의 재앙은 사느냐, 죽느냐의 일생일대의 문제.오히려 발등에 불이 덜어진 것은 너구리 족이다. '나 혼자서는 떄려죽여도 이그드라실을 처리할 수 없어. 하지만 너구리족을 꼬드겨서 함께 싸울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몰라' 이게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유저가 NPC를 꼬드겨 함께 전투할 수 잇다는 것은 이미 작센에서 확인한 바 있다. '그래 ,확실해. 이게 유일한 해결책이야' 아크는 분위기를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도 포포와 같은 생각입니다" "뭐라고?" "포포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이미 지저 세계의 다른 마을이 몽땅 전멸당했다는 것도요.그리고 지저 세계가 넓다고 해도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꽁꽁 숨어 있어도 언젠가는 발견될거고, 그렇게 되면 포포가 말한 것처럼 이곳도 당하게 될 겁니다." "알고 있네. 우리도 모르는게 아니야" 장로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날때부터 싸움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종족이네. 우리가 왜 지저세계에서 살아가는 줄 아나?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야. 우리는 그저 물건을 만드는 것밖에할 줄 아는게 없는 종족이라는 말이네" "하지만..........." "그만 하게.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아" 아크는그 뒤로도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장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하긴 아크는 이제 막 너구리족 마을에 들어왔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적대 관계였다. 다행히 오해가 풀려 적대 관계는 풀렸지만 여전히 친밀도는 전무했다. 그런 상대에게 말 몇마디로 너구리족을 꼬드겨 봐야 넘어올리 없었다. 오히려 친밀도가 떨어질위험도 있다. '일단 물러나서 꼬드길 방법을 찾아보자' "아크형......." 마을 회관을 나오자 옆에서 포포가 다가왔다. 도망치는 척하고 근처에 숨어 있었던 모양. "봤지? 내가 말한 대로지? 어른들은 모두 겁쟁이뿐이야.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있지만 결국 이방인들처럼 몬스터와 싸울 용기가 없는것뿐이야. 하지만 형은 다르지? 마반영웅의 의지를 이어받은 구도자잖아. 몬스터들과 싸워 줄거지?" 문득 포포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아크가 약간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포포는 소매로 눈을 쓱쓱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다 죽었어.아빠도, 엄마도......모두.........나............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알고있어.내가 살던 마을은 가장먼저 습격을 받았는걸. 분명 아빠나 엄마는 죽었거나 강글이 되어 버렸을거야.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죽지 않을 거야. 꼭 아그드라실을 타락시킨 원인을 찾아 다시 내 마을을 되찾고 말겠어.형.......도와줄 거지?" 아크의 가슴에서 미약한 통증이 되살아났다. 잊고 있었다. 포포가 불과 열흘 전에 부모를 잃은 아이라는 걸. 어째서 눈치 채지 못한 걸까? NPC도 생명이다. 적어도 아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이 부모를잃은 슬픔을 모를리 없지 않은가? 아크 역시 그랬다.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크는울지 못했다. 억지로 슬픔을 삼키고 밤거리에서 객기를 부려댔다.슬픔을 모르는게 아니라, 너무나 슬퍼서 차마 슬퍼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크는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포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도와줄게. 하지만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너나 내힘만으로는 불가능해. 사실 그건 너도 알고 있지?" 포포가 눈물을 훔쳐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든 너구리족을설득해 볼게. 어른들도 차분히 얘기하면 이해해 줄거야.만약 그래도 도와주지 않는다면.......그래, 그때는 너와 내가 힘을 합쳐 방법을 찾아보자.그러니 일단 그때까지는 날 믿고 기다려줘" "고마워, 형" 아크는 포포의 몸을 가볍게 두드리며 빙긋 웃었다.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리라. '자, 일단 말은 그렇게 해 놨는데.........' 일단 포포를 진정시킨 아크는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포포에게는 간단하게 말했지만, 막상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암담하다. 확실히 너구리족은 지금까지 만났던 수인족과는 달랐다. 기본적으로 묘족과 인어족은 전사 부족이었다. 만약 같은 상황이었다면 묘족과 인어족은 아크가 말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리라. 그러나 너구리족은 장인 부족, 전투를 두려워했다. '그래도 가장 가능성있는 방법은 친밀도를 올려 꼬드기는 건데..........' 문제는 친밀도를 올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과거 인어족 같은 경우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별세계라 지상의 아이템만 몇 개 팔아도 친밀도가 쭉쭉 올라갔다. 그러나 너구리족은 격리됐다고는 해도 비밀리에 외부와 교역을 해 오던 수인족이다. 잡템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인어족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서바이벌 요리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은 다소 효과가 있겠지만, 인어족과 달리 불을 사용하는 너구리족이 환장하며 덤빌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한두 번 먹으면금세 질릴게 분명하다. 그 이외의 방법은 퀘스트를 받아 해결해 친밀도를 올리는 것.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너구리족에게 퀘스트 받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다.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친밀도를 올려야 하는데.....'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 음식이라고? 음식이라........어쩌면.............아니, 그 방법 뿐이야.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어' 아크는 얼른 냄비와 식재료를 꺼낸 늘어놓았다. 그리고 갖가지 재료를 섞어가며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댔다.언제나 그렇듯이 수십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하나의 성공작이 만들어졌다. 아크는 일단 성공작을 가죽 주머니에 담아 놓고 다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댔다. 오직 요리만 만들기를 꼬박 하루. 꾸벅꾸벅 졸면서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쉬지 않고 새로운 식재료를 조합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고막을 난타했다. 콰당, 덜그럭, 부글부글! 반쯤 졸고 있던 아크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덜그럭거리며 요동치는 냄비에서 검은 액체가 미친 듯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뭐,뭐야? 무슨일이야? 왜 이런거지?" 쌕쌕쌕! 그제야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바닥을 가리켰다. "에엑 ? 서, 설마 방금 전에 냄비에 쑤셔 넣었던 게.........?" 고개를 돌려 본 아크는 잠이 확깨는 기분이 들었다. 바로 옆에는 식재료와 잡템이 뒤엉켜 쌓여 있었다. 요리를 만들기 위해 식재료를 몽땅 꺼내 놓았다. 분명히.......식재료만 꺼내 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결에 식재료에 섞여 잡템까지 몇 개 꺼내 놓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저도 모르게 그런 잡템 가운데 하나를 냄비에 집어넣었던 것. "뭐지? 대체 뭐가 들어가 버린거야?" 아크는 황급히 가방을 열어잡템 목록을 체크해 보았다. '무기 아이템 5개, 모두 있고.......방어구 아이템도 다 있고........그 외의 잡템도 대강 숫자가 맞는데.......대체 뭐가 들어갔지? 어? 그러고 보니........헉,서,설마?' 한참을 뒤적거리던 아크는 뒤늦게 사라진 아이템을 알아냈다. 지하 미궁에서 폴루션 슬라임을 잡아 얻은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재료) 매우 특수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폴루션 슬라임의 정수입니다. 아직 생태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슬라임은 수천 마리에 하나 꼴로 체내에서 매우 특수한 결정체를 생성해 내기도합니다. 이런 결정체는 독특한 마력을지니고 있어, 마법사나 장인들이 군침을 흘리는 고가의 재료아이템입니다. 슬라임의 정수를 사용하면 상당한 수준의 마법 시약이나 마법아이템을 만들수있습니다] 설명만으로 제대로 알수 없었지만, 일단 돈이 된단다. 때문에 시드에게도 보내지 않고 가방 한쪽에 꼬깃꼬깃 챙겨 두고 있었건만.........그걸 잠결에 냄비에 넣어 버리고 만것이다. 식재료도 아니고 일반 재료를 아이템을 말이다!그러니 냄비가 배탈 난것처럼 요동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 "빌어먹을, 잠결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아니, 아직 슬라임의 정수가 완전히 녹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크는 와락 냄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막 뒤집어엎으려는 찰나!돌연 냄비에서 폭음이 울리며 자욱한 연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아크는 움찔하며 멍청한 눈길로 냄비 안을 내려다보았다.부글부글 끓어 넘치던 검은 액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웬 젤리 같은 검은 덩어리가 냄비 안에서 툭 굴러 떨어졌다. "이, 이게 뭐야?" 아크는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젤리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서바이벌 요리의 숨겨진 비기를 찾아냈습니다. 뉴 월드에는 간혹 오랫동안 살아남아 경험치가 쌓여 결정을 품고 있는 몬스터가 존재합니다. 몬스터의 특성과 경험이 응축된 결정을'정수'라고 합니다. 정수는 일반적으로 각종 생산 아이템의 고급 재료로 사용되지만 또 다른 숨겨진 활용법이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가 서바이벌 요리를 사용한 활용법입니다. 서바이벌 요리로, 정수를 몇몇 약초와 함껙 녹이면'젤리'상태로 만들수 있습니다. 이런 젤리는 특성에 맞춰 다른 진귀한 재료와 혼합시키면 매우 특별한 내단을 연성할 수 있습니다. 경험 많은 상급 서바이벌 요리사라몀ㄴ 본능적으로 내단 연성에 필요한 재료를 파악해 낼수 있을 것입니다.] ['슬라임의 내단'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 1/1 일각수의 뿔 0/1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0/100 달빛을 받은 만드라고라의 뿌리0/100 갈고리 박쥐의 이빨0/100] 아크는 멍청한 눈길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것인지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서바이벌 요리의 숨겨진 비기?' 잠결에 한 실수가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그게 과연 좋은 결과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레시피가 완성되면 만들어진다는 내단이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장점은 낙천적인 성격.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곧 자기 좋을 대로 해석했다. '일단 슬라임의 정수를그냥 날려 버린건 아니다. 그리고 일단 비기잖아. 예로부터 게임의 비기라면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는게 불문율!게다가 내단 연성에 필요한 재료가 상당히 까다로운 것 같으니 완성시키면 분명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거야. 우헤헤헤 ,그래,맞아. 이건 엄청난 횡재가 분명해!' 아크는 히죽거리며 슬라임 젤리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초보자 마을에서 엉겁결에 배운 서바이벌 요리, 단순히 돈 안들이고 밥이나 챙겨 먹자는 생각으로 배운 스킬이지만,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활용법이 무궁무진했다. 앞으로 또 어떤 활용법이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어쨌든 잠결에 비기를 찾아내는 바람에 할일이 늘었지만, 이런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아직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아낸다. 이건 곧 이득과 직결되는 것이다. '당장이라도 레시피를 완성시켜 보고 싶지만, 재료나 찾아다닐 상황이 아니니 일단 챙겨두고.......덕분에 잠이 확 달아났군. 좋아,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야. 더 분발해서 신작 요리를 만들어볼까?' 아크는 의욕이 샘솟는 표정으로 다시 요리를 만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24시간이 지나 강제송환된 소환수를 부러낼 수 있게 되었다. 아크는 해골을 소환한 뒤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엇다. "해골 ,각오는 돼 있겠지?" 따닥........딱딱딱! 해골은 각오를 굳힌듯 크게 앞뒤로움직였다. 그때부터 아크는 만들어 놨던 음식을 몽땅 해골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폭음이 울리며 해골이 기절하기도 하고, 독에 걸려 허덕거리기도했다. 그러나 간간이 플러스 효과를 가진 음식이 나와 능력이 올라갔다. 그러나 아크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었다. '반갑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는건 이런 효과가 아니야'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또다시 음식을 퍼먹였다. 그렇게 새로운 식재료로 조합한 음식이 거의 바닥났을 무렵이었다. "이거다!" 또다시 플러스 효과의 음식으로 해골의 능력치가 올라갔다. 덕분에 해골은 순식간에 능력치가 7단계나상승해 레벨 47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아크가 환호성을 지른 이유는 해골 때문이 아니었다. 해골이 먹은 쿠키의 부가 효과 때문이었다. '이거야!ㅣ이게 이번 퀘스트를 공략할 수 있는 열쇠다!' 아크는 쾌재를 부르며 쿠키를 잔뜩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모두 가죽 주머니에 담아 들고 다시 마을 회관을 찾았다. "또 무슨 일인가? 이전의 그 얘기라면 더 할말이 없네" 아크가 들어서자마자 장로는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크는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아니.오늘은 조금 다른 용건입니다. 그때 그렇게 나가고나서 생각해 보니 제가 너무 경우가 없었더라고요. 새로운 곳을 찾아오면 먼저 어르신들에게 물 한잔이라도 대접하는게 도리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전의 실수를 사과할겸 쿠키를 준비해 왔습니다" "쿠키? 필요 없네. 나가보게" 장로가 쌀쌀맞게 말했다. 그러나 아크는 변죽 좋게 받아치며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에이, 손부끄럽게 왜 그러십니까? 원수진 사이도 아닌데. 그러지 말고 맛이라도 보십시오. 제가 직접 정성들여 만든 쿠키입니다" 아크가 가죽 주머니를 열자 달콤한 향기가 마을 회관에 솔솔 풍겨 나왔다. 각종 향신료를듬뿍 써서 만든 매혹적인 향기! "피, 필요 없다지 않았는가? 가, 가지고 나가게!" 장로는 애써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장로가 덫에 걸려들었음을 확신했다. 코는 벌름거리고, 꼬리는 쉬지 않고 위아래로 흔들린다. '후후후,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너구리' 감정을 숨길 수 없는 수인족의 슬픔 본능이다. "자,자!그러지 마시고 일단 한번 드셔 보세요" "허, 거참.....됐다는 데도 그러네........." 장로가 못 이기는 척하며 쿠키를 하나 꺼내 물었다. 순간 아크의 눈빛이 번쩍였다. '걸렸다. 걸렸어. 너구리가 걸렸어!' 그뒤로는 아크의 작전대로였다. 한 번 음식을 먹어본 장로는 미친듯이 허겁지겁 쿠키를 입으로 가져갔다. 마을 회관의 다른 늙은 너구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쿠키를 집어들더니, 이내 누가 뻇어 먹을까 싶어 양손에 잔뜩 들고 입에 우겨넣었다. 장로가입에 과자 가루를 잔뜩 묻힌채 감탄사를 발했다. "자네 ,요리솜씨가 대단하군. 내 생전 이렇게 맛있는쿠키는 처음이야. 더, 더 없나?" "물론 충분히 있습니다" '게임 끝났군' 가죽 주머니를 건네주는 아크의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몇 분, 이내 가죽 주머니를 몽땅 비워 버린 장로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아, 정말 훌륭하군.혹시 또 만들어 줄수 있겠나?" '지금이다.' 아크가본색을 드러낸건 그때였다. "물론이죠.하지만 그 전에.........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하고싶은데요?" "아까 하던 얘기?" "네,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입니다. 역시 장로님의 생각은 좀 틀린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장로님 입장은 이해합니다. 평생 물건 만드는 일만 해 왔으니 갑자기 몬스터와 싸우는건 두렵겠죠" "두렵다니? 누가 말인가!" 장로가 탁자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그까짓 몬스터 따위는 두렵지 않아. 암, 비록 우리가 물건 만드는 재주밖에 없지만. 대신 훌륭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할 수 있네. 그것들을 동원하면 몬스터 따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어" "암, 그렇고 말고!" 다른 늙은 너구리들도 꼬리로 바닥을 후려치며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이해할수 없다는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대체 우리가 왜 이런 곳에 숨어 있는 거지?" "그러게 말일세. 대체 왜 그따위 몬스터들이 무섭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군" "우리의 수호목인 이그드라실이 사악한 저주에 걸려버렸네. 지금이야말로 일어나야 할때가 아닌가?" "맞네,이라고 있을 떄가 아니야. 당장 주민들을 무장시켜 이그드라실의 저주를풀어야 하네. 숨어 있을 떄가 아니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눈치만 슬슬살피던 너구리들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약효가 제대로 먹혔군'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그려졌다. 이들이 변한 이유는 바로 아크가 먹인 쿠키때문이었다. 너구리족이 싸우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용기가 부족한 탓이다.때문에 언젠가는 몬스터들이 이 마을을찾아낼 것을 알면서도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하나의 식재료를떠올렸다. 도적단의 소굴에서 찾아낸 마약, 누룬마의 잎이었다. 누룬마의 잎은 마약이지만, 오래전에는 전사의 흥분제로도 사용했다는 정보를 기억해 낸것이다. 그렇다면 누룬마의 잎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같은 효과를 낼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누룬마의 잎에 갖가지 식재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해골에게 머깅며 확인한 끝에 드디어 원하던 음식을 발견했다. [전사의 쿠키 누룬마의잎을 주원료로 만들어진 쿠키. 쿠키를 먹으면 주체할수 없이 흥분을 느끼고 전투에 대한 욕구를느끼게 됩니다. 또한 다소의 진통 효과가 있어상처를 입어도 전의를 잃지 않습니다. 흥분은 지속효과이며 전투를치를때마다 조금씩 감소합니다. 단, 약간의 중독 효과가 있어 효과가 사라지면 금단현상으로 인해 장시간 동안 약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사기+100,전투 시 1분당 2씩 감소} {단, 효과가 사라지면 4시간동안 모든 저항력 -50%,쿠키를 먹으면 회복됨}] 결국장로들은 좋게 말하면 사기가 올라 용기가 생긴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마약탓에 살짝 맛이 가 버린 것이다. "자, 어서 주민들에게 전투 준비를 시키도록 하세" "그럼 제가 주민들을 불러 모으겠습니다" 아크는 곧바로 마을 회관을 나와 주민들에게 광자응로모이도록 전했다. 물론 선물이라는명목으로 쿠키를한 봉지씩 나눠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구리족은 별의심없이 쿠키를 받아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흥분제에 중독된 너구리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되자 상황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스바르탈프헤임은 우리의 손으로 되찾아야 한다!자, 일어나라. 동족들이여!" "우오오오!" 완전히 맛이 간 장로의 연설에. 살짝 맛이 간 300명의 너구리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동조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포포가 어릳둥절한 표정으로 아크를바라보았다. "아, 아크형. 대체어떻게........" "진심은 통하는 법이란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포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갈수록 사악함이 일취월장하는 아크였다. 그러나 이정도의 사악함은 아직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쟁 준비를 끝마칠 무렵, 장로와 너구리족들이 아크에게 몰려들었다. "그, 그런데 자네. 아까 그 쿠키 좀 더 만들어 줄수 없나? 왠지 모르게 미치도록 그 쿠키가 먹고 싶어지는군" "아, 이거 말입니까? 뭐, 아직 여분은 있습니다만.........." 아크가 쿠키를 나눠 담은 주머니를 슬슬 흔들어 댔다. 그러자 너구리족은 체면도 잊어버리고 침을 질질흐릴면서 쿠키를 따라 눈동자를움직였다. 슬슬 중독 효과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때, 아크는날름 주머니를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뭐,뭐 말인가?" "일단 병력은 모았는데......설마 그냥마구잡이로 몬스터와 싸울생각은 아니겠죠? 누군가 병력을 지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라면 병력을 지휘해 본 경험이 있는데요" "아,그런가? 그럼 지휘는 자네에게 맡기겠네" 장로는 귀찮다는 듯이 덥석 지휘권을 넘겨줘 버렸다. 이래서 마약이 무섭다는 거다. 일단 중독되면 딸까지 팔아먹는게 마약이다. 물론 쿠키의 중독성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전투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고는 아크뿐.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지휘관에 아크만한 적임자는 없다. 아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너구리족을 지휘하도록 하죠" "그래그래,그러니 쿠키를........." "한 봉지에 1L입니다" "뭐? 돈을 받겠다는 건가?" "아, 재료가 그리 넉넉하지못해서 말이죠. 이것도 무한정으로 만들수 있는건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만들어 놓은 건 한사람에 겨우 한 봉지씩 돌아가겠군요.뭐, 장로님이 안사시겠다면 다른 사람에게 파는 수밖에 없죠" "아, 아닐세!1L이라고 했나? 여기 있네" 장로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광석을 꺼내 계산했다. 전사의 쿠키를 한봉지 만드는데 누룬마의 잎이 하나. 그 외에 다른 식재료와 향신료도 들어가지만, 그것들은 너구리족 마을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는것들이다. 결국 실제 들어가는 재료비는 누룬마의 잎 하나. 아크는 이 누루마의 잎 시세를 대강 10실버로 잡았다. 그런데 쿠키를 만들어 팔면1L,최소 20실버짜리 광석이니 2배로 뻥튀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마약. 아무리 무법 도시라도 판로를제대로 찾을수 있을지 걱정되던 참이다. 그런데 판로는 물론이고, 웃돈까지 받을수 있으니 그야말로 횡재! 이 모든 것이 쿠키에 섞인 마약의 효과! 물론중독성이 있는 쿠키니 앞으로 가격을 더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돈이 된다고 마구잡이로 팔아먹을 수는 없었다. 아크가 준비해 온 누룬마의 잎은 1,600개. 300명의 너구리족을 데리고 꾸준히 전투를 치르려면 공급 조절을 해야 했다. 뭐랄까.............악마적인 잔머리라 할수 있었다. '후후후, 어쩐지 누룬마의 잎을봤을 때 돈 냄새가 풍기더니............' 아크가 회심의 미소를짓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영악한 잔꾀와 뛰어난 화술로'전승 퀘스트'를 찾아냈습니다. 뉴 월드의 여러 지역에는 전승 퀘스트가 존재합니다. 전승 퀘스트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받을수 없으며,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켜야합니다. 전승 퀘스트는 일반 퀘스트와 다른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며 뉴 월드의 전설, 역사를알아나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것입니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상당한 패널티가 적용될수 있습니다. {지혜 +10,화술+10}] [지저 세계의 평화를되찾아라! 당신은 많은 고생 끝에 스바르탈프헤임이라 불리는, 이제는 잊혀버린 고대의지저 세계에 들어올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저세계는 상상했던 것처럼평화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현재 지저 세계와 너구리족은 전멸의 위기에 몰려있습니다. 구도자인 당신은 수인족을 도울의무가 있습니다. 다행히 당신은 노력끝에 그들을 설득해 함께 지저 세계에 평화를 되찾기로 결의했습니다. 당신은 너구리족을 이끌고 이그드라실의 저주를 풀고 지저세계에 평화를 되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삼신기 역시 이그드라실의 저주를풀어야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 퀘스트 제한 : 다크 워커}] '역시 여기서는 너구리족을 회유하는게 정답이었어' 아크는 삼신기 관련 퀘스트를 확인하고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결국 최종 목표는 같았지만 심혼의 구슬을 찾는 일과 삼신기를 찾는 일은 전혀 별개였다. 당연히 이 두가지 목적은 다른 퀘스트로 등록되었다. '그런데 전승 퀘스트?난이도가 별? 대체 무슨 뜻이지?' 아크가 갸우뚱거리고 있을 때, 장로가 눈치를 살피며 물어왔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아크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훈련해야죠" 같은 날오후, 아크는 300명의 너구리족을 모아 놓고 훈련을 개시했다. 전사의 쿠키는 한계가 있다. 사기를 떨어트리지 않고 전투를 치르려면 한시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막상 너구리 족을 모아놓고 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강글로 변하면 레벨이150이나 되지만,너구리족 자체는 평균 레벨이 70대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땅속에서 전투라고는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 무기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집단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건 개개인의 레벨이 아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느냐가 관건이다' 이미 지휘관의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작센에서 경험한 바가 있다. 그리고 지휘관의 역량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군기를 확실하게 잡아 놔야 한다. 때문에 아크는 첫날부터 혹독하게 다뤘다. "거기, 잡담한 너구리, 나와!" 아크가 너구리족 병사 하나를 지목했다. 그리고 잡탕으로 만들어진 끔찍한 음식을 퍼먹였다. 지휘권을 손에 넣은 아크는 곧바로 쿠키 판매를 배급체제로 전환했다. 한계가 있는 자원이니 적절하게 수량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너구리족은 항상 쿠키에 허덕였다.당연히 아크가 쿠키를 쥐고 있으니 너구리족에게 명령 불복종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잘한 병사는 쿠키를 하나라도 더 살수 있는 권한이 생긴다. 이런 상벌 시스템을 도입하자 너구리족 병사는 아크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다. 완벽한 독재 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단숨에 너구리족 병사를 뿌리까지 장악한 아크는 곧 특성을 파악하여 병과를 나누었다. 사실 장로는 너구리족이 전투를 전혀 모른다고 했지만, 아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엄살이었다. 물론너구리족은 전투 관련스킬이 없었다. 그러나 장인 NPC나 수인족의 특성을 응용하면 얼마든지 전투에 활용할수 있었다. 또한 장인 종족이라 마음먹고 무자시키면 꽤나 그럴듯하게 만들수 있었다.전투에서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 역활을 차지하는 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특히 아크의 관심을근 무기는 바로 휴대용 대포였다.대포는 장전 속도가 극악하게 느리지만, 사정거리와 위력이 화살의 몇 배나 되었다. 또한 대형 몬스터에는 추가 보너스가 적용되어 10배가 넘는 공격력을선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대포에 사용하는 탄환의 가격, 하나에1L,20실버나 들어갔다. 그러나 아크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군자금은 모두 너구리족의 장로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이런 무기를 가지고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니............' 의욕이 없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어째든 너구리족이 만들어내는 무기나 방어구는 모두가 상당한 능력치를 자랑했다.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 너구리족은 숨어 있는 입장이라 재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충분한 숫자의 장비 아이템을 만들어 낼수는 없었다. '그럼 구할수 있는 장비에 따라병과를 나눠야 겠군' "좋아, 이제부터 병과를 나누겠다. 먼저1진, 중장병" 아크는 레벨과 체력이 높아보이는 너구리족을 지목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방어구와 무기를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그 숫자가 대략 120이 되었다. 다음은 2진, 민첩성이 높은 너구리족이 우선적을 뽑혔다. 이들에게는 중장병 다음으로 방어력이 높은갑옷과 대포가 지급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3진은 공병으로 각종 아이템으로 후방 지원하며 너구리족의 종족전용 스킬인 굴 파기 따위를 전담시켰다. '내마음대로 NPC를 장비 시키는 것도 꽤 재미있는데?' 너구리족 장로는명색이 장인 NPC라 군자금이 넉넉했다. 공금이라 아크가 중간에서 가로챌 수 는 없지만, 전투에 필요한 아이템은 얼마든지 살수 있었다. 그렇게 일단 병과가 나뉘자 할일이명확해졌다.아크는병과별로 나눈 너구리족을잠도 재우지 않고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우왕자왕하던 너구리족도 점차 훈련이 계속됨에 따라 조금씩 체계가 잡혀갔다.그렇게 현실 시간으로 이틀,게임 시간으로 6일이 지난 뒤에야 훈련을 마쳤다.아크는 너구리 병사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모두 고생 많았다. 아마속으로 내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고생은 결코 남을위한게 아니다. 너희들 자신 그리고 나아가 동족과 수호목 이그드라실을 구해내 스바르탈프헤임에 평화를 되찾아 주기 위함이다. 또한 훈련이 힘들수록 전사자가 줄어드는건 상식. 나는 오직그것을 위해 너희들에게돌 맞을 각오까지 하고 그토록 몰아붙였던 것이다" 그건 진심이었다. 이번 퀘스트는 두번의 기회가 없다. 만약 너구리 군단이 전멸한다면 심혼의 구슬과 삼신기 관련 퀘스트는 무조건 실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너구리 군단으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자, 이제 힘든 훈련은 모두 끝났다. 이제 우리 손으로 스바르탈프헤임의 평화를 되찾는 일만 남았다. 너구리족을 위해서!" "와아아아!" "너구리족을 위해서!" 단순한 너구리족은 사기 백배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진군뿐!아크가 검을 뽑아들며 막 진군 명령을 내리려 할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뉴 월드의 세계에서 들려오는게 아니다. 유니트 밖에서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였다. '뭐야?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없는데?' 현실 시간으로 밤 12시가 넘었다. 적어도 아크가 아는 사람가운데 이런 시간에 전화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냥 무시해 버릴깍 생각하던 아크는 이내 찜찜한 기분이 들어 접속을 풀었다. "잠시 대기!" 모처럼 의욕을 불태우던 너구리족은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ACT 3 갱생단 "현우냐?" 수화기에서 걸걸한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권화랑 아저씨?" "그래 ,나다" "어쩐 일이세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시고?" "나 지금 카이로트 근처인데........" "네?" 현우는잠시 권화랑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방금전까지 너구리족과 으싸으싸하던 참이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뒤이은 권화랑의 말에 그제야 잊고있던 약속이 생각났다. "카이로트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네? 아, 아아........그랬죠. 잠시 무슨 말인가 했어요" "쯧, 젊은 놈이..........." "그 이후로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깜빡했어요" 현우가 갱생단원들을 만나 그 얘기를 한지도 벌써 5일이 지났다. 5일이면 게임 시간으로 보름. 작센에서 일직선으로 카이로트를향한다면 뒤집어 쓰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야야,말도마라" 권화랑이 한숨을 불어 내며지난사정을 설명했다. 사실현우가 권화랑의 집을 다녀갔을 무렵. 권화랑과 갱생단은 이미 수도로 향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시간을아끼기 위해 4명만 카이로트에서 현우를 만났다가 합류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당시 갱생단의 평균 레벨은 고작 35.반면 기란과 카이로트 사이에 펼쳐진 밀림에는 레벨 100에 달하는몬스터들이 득실거렸다. 이런 사실을 알리 없는 갱생단은 멋도 모르고 밀림에 들어섰다가 입구에서 박살이 나 버린것이다. "아, 그렇지. 내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못했네요" 물론 35레벨이라도 길을 따라 이동하면그리 큰 어려움은없다. 저레벨 카오틱도 카이로트에 올수 있는 길이 있으니까. 그러나 아크에게 카이로트의 위치만 대강들었던 갱생단은 단순 무식하게 일직선으로 이동할수 밖에 없었던 것. "어쩌죠? 형들한테 미안하게 됐네요" "미안하기는........좋아 죽더구먼" 권화랑이 키득거렸다.갱생단은 아크처럼 게임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 .권화랑에게 붙들려 한곳에만 죽치고 있었으니 내심 꽤나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밀림이 펼쳐지고 듣도 보도못한 몬스터들이 나타나니 그야말로 신천지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고레벨 몬스터에게 멋지게 밟혀 버렸지만 갱생단은환호했다. '아마존에 가 보고 싶었는데 내 꿈을 이렇게 이루는구나!' '아니, 여기는 쥬라기 공원이야' '직접 공룡을 보게 될줄이야. 여기가 백배는 더 재밌다!' 그러나 환호는 환호고, 그들의 능력으로는 아직 밀림을 돌파하기란 무리. 결국 권화랑과 나머지 갱생단도 방향을 틀어 합류했다. 그리고 살얼음판과 같은 밀림을 미친듯이 공략해 나갔다. 다른파티였다면 일찌감치 사냥을 포기했을 밀림. 그러나 갱생단은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상대가 강하면강할수록 더욱 의욕을 불태워 기필코 쓰러트리고야 말았다. 로코가 합류했을때는 진격. 그리고 로코가 아르바이트로 자리르 비우면 야영지를세워놓고 기다리며 사냥하기를반복하며 나흘, 이제야 카이로트 근처에 도착한 것이다. "크크크, 그 뭐라나.......알고 사우러스라는 놈을 쓰러트리면 보너스 경험치를 엄청나게 주더구나. 비싼 가죽도 만이 나오고, 덕분에 정말 며칠동안 미친듯이 광렙했다. 게다가 도중에 만난미그미족인가 하는 놈들의 부락을 구해줬더니 이상한아이템도 잔뜩 받았다" 권화랑은 신바람 난 목소리로 자랑스럽게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권화랑도 이제 어엿한 게이머가 된 모양이다. 어쨌든 권화랑은 같은 밀림을 가로질렀지만 게임 내용은 전혀 달랐다. 아크는그들보다 레벨이 높았지만, 시드와 둘이서는 알로 사우러스라는 중간 보스 몬스터는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갱샌단의 인원은 12명. 더구나 회복이 가능한 로코까지 끼어 있고, 대장은 넘치는전의를 주체못하는 열혈남이다. 알로 사우러스든 뭐든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는 몽땅 쓰러트리며밀심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게다가 현우 역시 미그미그족을 만났지만 퀘스트를 받지는 못했다. '일정 숫자 이상의 파티에게만 주어지는 퀘스트가 있었던 건가?' 시간과 상황에 따라 항상 변화하는 뉴 월드의 퀘스트 시나리오. 같은 길을 지나온 현우조차 권화랑의 무용담이 재미있게 들렸다. "그런데............" 잠시 얘기를듣던 현우는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제가 지금은 아저씨를 만나러 갈수 없어요" "응? 무슨 소리냐? 벌써 다른 곳으로간거냐? "그건 아닌데.......사정이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곳에 있거든요" "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곤란하네. 꼬맹이 녀석들도 모처럼 널 만난다고 들떠 있던데.......게임 안에서 너를 만난지 꽤 오래됐잖아.뭐, 하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할수 없지. 그럼 얼마나 기다려야 겠냐?" "하지만음식은 바로 드릴수 있어요" "뭐? 어떻게?" "일단 카이로트 밖에서 기다리세요" "밖에서?" "네.사실 저도카이로트에 도착하고 나서 알았는데요. 카이로트는 카오틱 유저만 들어갈수 있어요. 그러니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아는 사람을 통해 음식을 전달해 드릴게요. 시드라는 호비트 상인이에요. 그리고 밀림에서 잡템도 꽤 많이모았죠? 그것도 시드가 알아서 팔아 줄 거에요" "그래,알았다. 그럼 카이로트 근처의 곰바위에서 만나자고 전해줘라" "네" 현우는 전화를 끊고 다시 뉴 월드에 접속했다. 쾅! "뭐야?" 험상궂은 사내가 탁자를 후려치며 입에서 불길을 뿜어냈다. 그 앞에 앉아 있던 땅딸한 호비트가 기겁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취조실에서 어린 용의자가 형사에게 심문을 받는 듯한 장면이다. 무리도 아니다. 호통을 내지른 사내는진짜 전직 형사 출신인 정의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잔뜩 기가 죽어 있는 호비트는 다름아닌 시드였다. "그게 아크가 마중 나오지 못한 이유란 말이냐?" "지,진정하시고......." 시드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그러자 뒤쪽에 늘어선갱생단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게 지금 진정할 문제야?" "이거,간만에 열좀 화끈하게 받아 주시는걸" "감히 우리 동생을 건드렸다 이거지?" "조직의 쓴맛을 봐야 할 놈들이구먼" '으윽, 대체 뭐야? 아크님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들을 알고 있는거야?' 시드는 사색이 된채 바들바들 떨어댔다. 게임을 어느정도 해 본 사람에게는 감이란는게 있다. 신기하게도 게임 캐릭터를 마주 대해 보면 대강 실제 플레이어의 성향이 느껴진다. 촉이 온다고 해야 하나? 대화나 말투, 혹은 미묘한 분위기가 그런 것이다. 그런 시드의 경험으로 미루어 갱생단은'보통'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얼굴에 공격력이 붙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험악한 인상의 캐릭터. 이들이 동시에 인상을 써대니 시드의 좁쌀만한 심장은 당징이라도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시드만이 아니었다. 명색이 건달이라는 로렌조조차 슬슬 갱생단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갱생단의 폭력적인 분위기는건달NPC까지 겁먹을 정도였던 것이다. 어쩄든..............정의남과 갱생단이 이렇게 화를 내는건 바로 아크때문이었다. 조금전, 곰바위에서 만날때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정의남이나 갱생단도 귀여운 시드의 외모에 호감을표시했고, 한동안 숨어 살던 시드도 모처럼 믿을 수 있는 유저를 만나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아크가 안델에게 당한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자 분위기는 180도 바뀌어 버렸다. 정의남과 갱생단에게서 무지막지한 육두문자와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안델이라면 나도 알지. 아란 녀석에게 찰싹 달아붙어 있는 녀석" 정의남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크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건 알고 있었지만........" "하지만 병참까지 지키고 있는건 너무 심하잖아요.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걸까요?" 로코도 짐짓화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러자 전직 조폭 행동대장으로 아크를단숨에 기가 죽게 만들었던 우람한 체구의 사내 1405호........일명 불끈이가 뭐 글너걸 묻냐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물을 것도 없지. 그놈이 나쁜 놈이니까" 갱생단은 단순하다.많이 배우고 덜 배우고의 문제가 아니다.그들은 한때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에 몸담았다. 그런세계에서 선악의 구분은명확하다. 속사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편을 괴롭히면 나쁜놈. 단순 명확한 이분법적 사고방식만으로 충분했다.정의남과 갱생단은 악당에게 후하다. 그러나 자기편을 건드린 놈에게는 일말의 용서가 없다. 경찰도, 건달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했다. "형님, 알고 계시죠?" 1401호가 진지한 눈으로정의남을 바라보았다. 전직 사기꾼이었던 1401호는 갱생단에서 짝퉁으로 불리고 있었다. "이거 그냥 모른척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음..........." 정의남도 심각한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의남과 로코, 갱생단은 아크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아크는 단순히 즐기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글로벌엑서스의 입사시험 그리고 생활을 위해서다. 아크가 쓰는 생활비와 병원비는 모두 뉴 월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그들에게 뉴 월드는단순한 게임이지만 아크에게는 현실이다. 사실 정의남과 로코, 갱생단원들은 이전부터 아크와 함께 게임을 하고 싶었다.그러나 아크에게는 뚜렷한목적이 있었다. 때문에차마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엉뚱한 놈이 나타나서 아크를 괴롭혀? "아크 녀석. 전화할 때도 아무 말 안하더니........" "그야 우리에게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그랬겠죠" 짝퉁이 짐짓 아는척을 했다. 착각이다. 사실 아크는안델마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저 세계에서 생긴 ☆☆☆와 +C퀘스트. 오직 그걸 깨기 위해 너구리족을 훈련시키는 일에만 정신을 쏟아 붓고 있었다. 덕분에 이를 갈아붙이며 닷새각 넘도록 병참을 지키고 있는 안델에 대해서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다.뭐랄까............어찌 보면 안델이 더 불쌍한 녀석이다. 그러나 갱생단이 그런 사실을 알리 없었다. "큭, 역시 아크는 인간성이 된 녀석이야" "그런 녀석은 괜히 더 도와주고 싶어진다니까" "당연하지. 이럴때 아니면 언제 도와주겠어?" "오빠들, 저도도울래요!" "그랴 ,왕자님이 위기에 빠지면 공주님이라도 도와야지" "가자, 가자!" 갱생단과 로코가 팔을 걷어붙이자 짝퉁이 고개를저었다. "그렇게 간단한문제가 아니야. 아크가 왜 우리에게 말을 안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냐?" "그야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 "그러니까 ,고작 네 놈을 처리하는 일을 왜 걱정거리라고 생각했느냐는거다" "에?" 갱생단이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때, 팔짱을 낀채 생각에 잠겨있던 정의남이 툭 던지듯 말했다. "짝퉁 말이 맞아. 어이, 거기 전직 깡패" "네?네? 저요?" 로렌조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크가 그놈들하고 싸울 때 꽤나 고전했다고 했지?" "네, 다크브라더는 이방인 전문 암살자입니다. 형님은 1명도 버거워했죠" 정의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는 거다. 짝퉁,너도 이벤트 퀘스트에서 아크가 싸우는걸 봤으니 알겠지만, 그녀석,보통내기가아니야. 레벨도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고.그런데 암살자 하나를 상대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면 놈들도 레벨이 상당할 거야. 그런놈들이 셋에 유저까지 하나 붙어있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아크는 우리도 그놈들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다는 거야.그리고 로렌조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제로 승산이 없어" 정의남과 갱생단,로코는 밀림을 돌파하며 레벨이 상당히 올랐다. 밀림을 돌파하면서 레벨 100짜리 몬스터를 퍽퍽 쓰러트리며 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현재 정의남은 오래전에 60레벨을 넘어섰고, 갱샌단도 60레벨을 앞두고 있었다. 거기에 회복이 가능한 로코가 40레벨........이 12명의 파티는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레벨 120의 암살자 3명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짝퉁의 말대로다. 현실이라면 무조건 쪽수지 .하지만 여기는 게임이야. 쪽수가 많아도 레벨 차이가 많이 벌어지면 이기기 힘들어. 일단 공격력과 방어력의 수준이 다르니까. 아마도 아크가 1대1로 싸워서 애먹었다면 암살자와 우리의 레벨차이는 2배가량 . 한 두놈 정도야 모르겠지만, 안델까지 네 놈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다." 정의남도 이제 게이머다. 예전의 정의남은 무조건 악으로 깡으로 밀어붙였지만, 그동안 게임을 하면서 이제 레벨에 따른 능력차이는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실력만이라면 정의남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여기는 게임 속이다 10레벨이 100레벨을 공격해봐야 검 자체가 박히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반면 100레벨이 10레벨을 공격하면 그야말로 스쳐도 사망.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저레벨이 고레벨을 이기는 방법은 압도적인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14대 4를 압도적인 머릿수라고 할수 는 없다. "우리까지 여기서 죽어 버리면 아크에게 더 짐만 씌우는 꼴이 돼" "그럼 이대로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이유?"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지" 정의남은 잠시 생각하다가 시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시드라고 했나?" "네" "아크가 놈들에게 당하기 전에 뭘 하고 있었지?" "그게..........." 시드가 로렌조의 눈치를 살피며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잡화상점 주인월커스와 로렌조 사이에 얽힌 퀘스트다.대강의 퀘스트 내용을 전해 들은 정의남과 갱생단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졌다. "아크녀석..........그런 퀘스트를 하고 있었던 건가?" 정의남의 입끝이 슬며시 치켜 올라갔다. 정의남은 전직 형사다 보니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어 보았다. 조직에서 손을 씻고 싶어하는 건달이 조직의 강요와 혐밖에 못 이겨 다시 범죄자가 되는........ 덕분에 정의남은 더욱현실감 있게 로렌조의 사정을 받아들였다. 하물며 그런 상황을 직접 겪어 본 갱생단은 말할것도 없었다. 갱생단은 로렌조의 일을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로렌조, 너도 꽤나 마음 고생 했겠구나" "네? 아니..........그냥..........." "그나저나 역시 아크녀석........." 예쁜 녀석이 하는 짓을 뭐든 예뻐 보이는 법이다" 비록 게임의 퀘스트였지만, 건달 로렌조가 조직에서 손을 씻도록 도왔다는 말에 갱생단은 다시 한번 아크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그때,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짝퉁이 입을 열었다. "형님,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아크의일도 시급하지만, 로렌조의 일도 모른 척할수는 없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그런 일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일이지" "그러면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면 어떨까요?" 짝퉁이 정의남에게뭔가를 속닥거렸다. 그러자 정의남의 눈에 활기가돌았다. "오호, 그거 좋군!어이, 시드라고 했지? 아크가 하던 퀘스트 , 우리도 할수 있는거냐?" "네? 그야........저를 파티에 넣어 봐 주세요" 시드는 정의남의 파티에 들어간 뒤 시스템창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정의남의 눈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파티원 시드님이 진행중인 <로렌조의 누명을 벗겨라>퀘스트 공유를 신청했습니다. 공유를 허락할 경우 동일한 성공 보수, 혹은 실패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공유하시겠습니까? "아,다행히 공유가 되는 퀘스트네요" '글머 당장 해야 할일은 정해졌군" "뭐가 말입니까?" 갱생단의 물음에 정의남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갱생이다!" "네?" "로렌조를 괴롭히는 녀석들 말이다. 놈들도 결국은 그 큰형님인지 뭔지 하는놈에게 명령받아서 그런 짓을 하는 거겠지. 로렌조처럼 마음을 돌린 녀석을 돕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런 녀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우리 일이다. 고로 나는 놈들을 갱생시키겠다. 그리고 정의의 편으로 만들어주겠다."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정의의 편이 된 뒤에는 당연히 정의로운 일을 해야겠지. 가령 피도 눈물도 없는 암살자들을 떄려잡는다든가 하는........." 그게 짝퉁이 제안한 작전이었다. 로렌조를 괴롭히는 건달들은 숫자가 많지만 레벨은 고작 60대. 먼저 건달들은 쥐어 패서 한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면 갱생단의 숫자는 2배이상으로 불어난다. 14대 4가 28대 4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레벨 차이가 많이 나도 7배나 되는 숫자 차이라면 한번 붙어 볼 만하지 않은가! "좋군요" "이제야 제대로 된 일을 해보겠군" 갱생단에게 뉴 월드는 사회 적응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그들의 사회적응 프로그램이란 정의 실천! 모처럼 목적에 딱 맞는 퀘스트를 얻은 셈이다. "7명이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로렌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의남은 고개를 끄덕이며시선을 멀리 떨어진 낡은 건물로 향했다. "좋아, 그럼 아지트에는 대략 10명 정도 남아 있겠군" 오두막에서 작전을 구상한 정의남은 곧바로[거짓말]을 사용해 카이로트에 들어섰다. 정의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행동파다.상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사시미로 무장한 조폭이 득실거리는 곳이라도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게 대한민국 형사다. 물론 모든 형사가 그렇게 겁대가리를 집에 두고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만.......적어도 정의남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정의남이 무조건 몸으로 떼우며 살아온 건 아니다 .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슈퍼맨이 아닌이상 무적이 될수는 없다. 또한 형사는 때때로 폭력배 진압 현장의 지휘를 맡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다른 일선 경찰들까지 지휘하려면 아무래도 책임감을 느끼기 마련. 그때문에 정의남은 전술 지식을 쌓게 되었고, 그것은 훗날 특수 기동대, 테러 대책반, 남미 훈련 교관등을 역임하며 전설적인 무용담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전설적인 무용담의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을 게임에서 십분 발휘했다. '아지트 안의 건달들은ㅇ 레벨이 60~70수준' 반면 갱생단의 평균 레벨은 50대 후반. 레벨이 10이나 차이 나는 유저라면 승산이 희박하다. 그러나 상대는 NPC.정의남과 갱생단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놈들의 숫자다' 건달의 숫자는 17~20명. 반면 정의남 측은 갱생다과 로코, 로렌조, 심지어 시드까지 포함해도 14명밖에 되지 않는다. 평균 레벨이 10이상 차이나고, 머릿수까지 달린다면 너무 부담이 컷다. 더구나 정의남의 목적은 단순히 이기는게아니다. 가능한 죽이지 않고 제압,갱생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사살보다 생포가 어려운건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머릿수를늘릴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지. 놈들의 머릿수를 줄이는거야' 이제 정의남이 도달한 결론이었다. "놈들의 목적은 로렌조를 다시 패거리로 끌어들이는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로렌조의 호출이라면 놈들도 움직일수밖에 업을 거야" 몇 분 뒤, 아지트의 건달들에게 로렌조의 서신이 도착했다. 조직으로 돌아가겠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하게해 둬야 할 문제가 있으니 오두막에서 만나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7명의 건달들이 약속장소로향했다. 남은 건달은 불과 10여명. 확실하게 제압할수 있는 숫자다. "좋아, 놈들이 알아채고 돌아오기 전에 결판낸다. 시작하자!" "흐음,그럼 정의를실천해 보실까?" "옛날 생각 좀나는군" "야,연장 챙겨" 갱생단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무기를 꺼내 들었다. 쇠파이프,사시미,체인......조폭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란 무기는 몽땅 출현했다. 작센의 제한 구역인 썩어가는 수렁에서 구한 일명 연장이다. 뭐,폼은 안나지만 손에 착착 달라붙는다는 이유로 갱생단은 모두 그런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래 봬도 마법 무기다. 쇠파이프는 공격 속도를 올려주고 ,사시미는 높은 확률로 치명타를,체인은 스턴에 걸리게 하는 부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시드를 공포에 질리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역시 이사람들은 보통 사람이아니야' 지금 갱생단은 연장들고 패싸움하러 가는 조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아니, 실제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콰쾅! 문을박차고 들어서자 건물 안의 건달들이 움질하고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흔들리는 문짝,흩어지는 먼지........제법 그럴싸한 배경속에서 등장한 정의남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놈들, 모두 체포다" "에?체포?" "뭐라는 거야? 저 중늙은이가?" 건달들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아...........쪽팔려.형님, 분위기 파악 좀 하쇼.지금 상황이 그런 대사를 읊을 때요?" 불끈이가 정의남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전직 조폭 행동대장이 나서니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불끈이는 밤 세계에서 갈고닦은썩소를 날리며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꿇어.이시간 부로 이 나와바리는 우리가 접수한다" 과연 경력자는 단어 선택부터 질이 달랐다.건달들 역시 곧바로 알아듣고 이번에는 즉각 반응했다. "뭐,뭐야?" "이봐 ,습격이다!담가 버려!" "겁대가리 없는 새끼들, 혓바닥을 뽑아 버려라!" 건달들이 연장을빼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갱생단의 움직임이 몇배는 더빨랐다. "우하하하!멍청한 놈들, 정의와 싸워서 이길수 있을 것 같으냐?" 와르르 넘어지는 탁자.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의자,뛰어오르며 사시미를 휘두르는 건달! 그야말로 조폭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액션 신이 펼쳐졌다. 역시 예상대로 건달들은 갱생단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로렌조와 정의남이 가세한 덕분에 전호아은 팽팽하게 유지되었다. 로렌조는 레벨 80이라 혼자서 두 놈 정도는 너끈히 상대했다. 반면 정의남은 난입 시 터무니없는 능력치가 가산되는,정의감이라는 사기적인 스탯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솔로잉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스탯이지만 집단 전투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유저는 따로 있었다. 음유 시인 로코! 로코가 본격적으로 전투에 가담하자 승기는 단숨에 갱생단 측으로 기울어졌다. 초기에는 벌금을 물면서까지 전직을 취소하고 싶어질 정도로 쓸모없는 직업 음유시인. 음유시인은 공격력이 약해 솔로잉도 못하고, 회복이나 보조 마법도 신관계열보다 약해서 받아주는 파티를 찾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원래 음유시인은 전투 계열 직업이 아니라 상인처럼 전투로 얻는 경험치에도 패널티가 작용한다. 싸움도 못하고 성장도 느리다.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직업이었다. 그러나 악기를 좋아하는 로코는 꾸준히 애정을 가지고 음유시인을 키워왔다. 어차피 로코는 한번도 솔로잉을해본적이 없다. 게임에 들어오면 언제나 정의남과 갱생단이 챙겨 주었다. 때문에 로코도 무시무시한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것보다 오빠들에게 보조 마법이나 걸면서 지내는게 더 즐거웠다. 그리고 얼마전, 음유시인으로는 드물게 40레벨을 돌파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스킬이생긴건 그때였다. [당신은 특수한조건을 만족시켜 음유시인 전용 스킬을배웠습니다. <조건 : 음유시인 40레벨, 예술 스탯 150,세 종류의 악기 스킬 중급 이상> 잔잔한 여운 ( 초급,패시브) :당신은 오랜 시간 동안 진정한 음악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습니다.수많은 악기를다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이의 마음을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당신은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습니다.이제 당신의 음악은 흡사 마력과도 같은 깊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영혼이 깃든 음악은 듣는이의 마음에 잔잔한 파운을 일으키고,연주가 끝나도 여운은 오래도록남게 됩니다. 이 잔잔한 여운은 다른 음악이 연주돼도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음악의 효과를 더욱 높여 주게됩니다. <같은 종류의 음악을 연속으로 연주할 경우,잔잔한 여운에 의한 상승효과로 버프가 최대 3개까지 중첩됩니다. 지속 시간은 마지막 연주 효과의 지속 시간이 적용됩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 그게 현재까지의 로코였다. 그러나 40레벨 스킬이 생기자 상황이 변했다. 잔잔한 여운 스킬의 부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초원을 가르는 한 줄기 질풍이 되어.........." 로코가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를 올리는'질풍의 노래'를 불렀다.'질풍의 노래'로 올라가는 속도는 불과 5%.마법사의 가속 마법이 10%이니 지금까진 별 매력이 없는스킬이었다. 그러나 잔잔한 여운이 생겨 3개까지 중첩되니 얘기가 달라졌다. '질풍의 노래'를 세 번이나 중첩시켜 상승하는 속도는 무려15%!게다가 음유시인의 질풍의 노래는 마법사의 가속마법보다 지속 시간이 길다.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생명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3분간 200의 생명력이 회복되던 '생명의 노래'도 3분에 600의 생명력이 회복되게 되었다.일정 시간동안 생명력을 회복하는 신관의 재생 마법보다 강력한 효과였다.무엇보다 모든 스킬이 광범위 효과! 성장이 느리다는 단점을 제외하면 마법사나 신관에 비할바가아니었다. 정보 사이트에 전용게시판조차 없는 음유시인,어쩌다 음유시인을 선택한 유저는여기저기에서 찬밥 취급을 받으며 서러움을 견디다 못해 전직취소를 선택하고 만다. 그러나 예로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게임의 법칙이 있었으니............ 초반에 약한 캐릭터일수록 고생해서 성장시키면 무지막지한 캐릭터로 변한다는 것이다. 굳이 어떤 게임들이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어쨌든 로코는 때로는하프를, 때로는 류트를 연주하면 쉬지 않고 보조마법을 걸었다. 뒤늦게 로코의 활약을 눈치챈 건달들이달려들었지만, 갱생단이 마스코트가 공격받도록 방관할 리 없다. "이 자식이 어디서 더러운 손으로 우리 귀염둥이를 건드리려고 하는거야?" 건달은 단숨에 3~4명의 갱생단에 연장질에 당해 쓰러졌다. 그렇게 폭력이 난무하기를 10여분. 패싸움은 정의남 파가 압승을 거뒀다. 끝까지 반항하던 건달 3명은 죽고, 나머지는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정의남은 한 놈, 한놈 돌아가며 메치기로 스턴에빠트려 버렸다. "일단 이놈들 모두 묶어서 가둬놔" "네!" 1402호,일명 해결사가 특수 스킬'결박'으로 건달들을묶어 방에다 처박았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밖에 나갔던 나머지건달 7명이 돌아왔다. "젠장, 로렌조 자식!우리를 물 먹이다니........!어엇? 너희들은 뭐냐?" "우리?" "정의다!" 갱생단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달려들었다. 퍼퍼퍽!콰당!콰직!우드득! 곧 나머지 건달들의 면상도 개떡처럼 뭉개졌다. 이번에도 전사자가 1명 발생해 최종적으로 14명의 건달이 생포되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건달을 골방에 몰아넣은 정의남은 본격적인'갱생'작업에 들어갔다. "뭐, 대강의 얘기는 로렌조에게 모두 들었다" 정의남이 헛기침을 하며입을 열었다. "매일 매일 사람이나 쥐어 패고, 협박하고, 돈 뻇고, 심지어 착하게 살아 보겠다는 동료까지 협박하고......!너희들은 정말 뭐 같은 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희들이 근본부터 나쁜놈들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고, 길을 잘못 선택하면 되돌리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인생은 길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을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지. 자, 지금이 그 기회다. 이참에 깔끔하게 손을 씻고 새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느냐?" "쳇, 놀고 있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큰형님이 이사실을 알면 네놈들은..........후후후, 로렌조. 너도 마찬가지다. 네 꼰대와 함게 생매장을 시켜주마" 모처럼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는데 뭐냐, 이 싹수없는 반응은? 정의남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툭 튀어나왔다. "그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마음에 안든다 이거지? 짝퉁" "네!야, 방금 지껄인 녀석들 끌어내" 짝퉁은 흐뭇한 미소를지으며 건달을 끌어냈다. 건달들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분위기로 봐서 모종으 ㅣ폭력을 당할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건달들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입벌려!" 짝퉁은 건달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음식을 퍼먹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인가? 개그냐? 개그를 하고 있는 거냐? 건달들은 모두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음식을 먹은 건달의 입에서는 듣는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음식을 먹은 다름 건달들도 마찬가지였다. "뭐,뭐야?" "독인가?" 건달들이 웅성거리며 영문 모를 시선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그들은 단 한 번 음식을 먹은 것만으로 퀭하게 변해 바들바들 떨어댔다. 독인지 뭔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끔찍한 뭔가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뭔가르 확실하게 알고 있는 로렌조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듯 사색이 되어 버렸다. 건달들에게 먹인음식은 바로 아크의 특제 잡탕이었던 것이다 . 로렌조에게 사전 정보를 들은 정의남이 아크에게 특별 주문을 해놨던 것, 어쨌든 잡탕의효과는 확실했다. 건달들은 도무지정체를 알수 없는 괴상한 고문에 잔뜩 얼어붙어 버렸다. "이제 얘기할 분위기가 잡혔군" 정의남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다시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눈을 감고 과거를 돌이켜 봐라. 참 뭐 같은 인생이 있겠지.앞으로 그렇게 살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돌려먹으면 돼.그러면 너희들 앞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장담한다. 그리고 새롭게 정의를 위해 살아가는 거다. 자 ,그럼 정의가 뭐냐..........." 뒤이어 정의남의 정의론 강좌가 이어졌다. 건달들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참고 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대략 10여분에 걸친 강좌를 끝낸정의남이 짝퉁ㅇ르 가리키며 말했다. ".........란게 정의다. 그럼어떻게 정의를 실천하며 살아가는가? 해답을 대신하는 의미에서, 너희들처럼 암울한 인생을 살다가 이제야 정의에 눈을 뜨고 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의 경험을 들려주고자 한다. 자, 짝퉁 .너부터 시작해라!" "네 , 알겠습니다" 짝퉁은 조금 겸연쩍은 얼굴로 단상에 올라섰다. "에, 그러니까 나는 1401호,짝퉁이라고 한다. 인조인간 제작 넘버 같은게 아니니까 괜한 생각 하지말도록, 어쨌든 사실 나는 어렸을 때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여섯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짝퉁의 인생사가 구구절절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렸을때는 어땠는지, 어떻게 하다가 어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지,거대 사기조직에 가담해서 품은 야망과 우정 그리고 사랑과 배신. 결국 바닥까지 떨어져 겪어야 했던 교도소생활,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는 한 편의 대서사시였다. 그러나 길어도 너무 길었다. 3시간......게임 시간으로는 무려 9시간을 쉬지 않고 떠들어 댄것이다.그러나 건달들은 귀를 바짝 세우고 열심히 경청했다. 감동해서가 아니다. 잠시라도 졸면 곧바로 끌려나가 입에 잡탕이 쑤셔 넣어졌기 때 문이다. "이상입니다" "자, 박수!" 우렁찬 박수소리가 방안을 뒤흔들었다. 이제야 끝났다.건달들은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기뻐했으나 착각이었다. 짝퉁의 간증이 끝나자 휴식시간도 없이'나는 이렇게 살아다'는 주제로 1402호의 연설이 이어졌다. 그 뒤에는 '찔리니 아프더라'라는 주제로 1403호.'교도소 밥은 콩밥이었다'라는 주제로1404호........점점원래 목적이 뭔지 알수도 없는 연설이 계속되었고, 1406호의 연설이끝날 무렵에는 현실시간으로도 무려 이틀이 지나 버렸다. 게임 시간으로는무려 6일. 당연히 갱생단은접속을끊고 교대로 숙면을 취했지만, 건달들은 꾸벅꾸벅 졸다가 잡탕 고문을 당하기를 여러번.이제 핏발 선 눈을 치켜뜨고 악으로 버틸뿐이었다. "자, 그럼다음은 1407호"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건달들이 화들짝 놀라며 부르짖었다. "저희는 충분히 잘못을 꺠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으윽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해 온건지.....당장 자살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후회막급입니다!" "이제 정말 손 씻고 새사람이 되겠습니다" "네, 더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직 정의를 위해살아가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 건달들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애원했다. "흠.........후회한다 이거지 ?정의를 위해 살아가겠다 이거지?" "네, 물론입니다!" "그럼 하나 묻겠다" 정의남이 턱수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착한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 이 근처에 있다. 과연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힌트를 주자면 놈들은사람 죽이기를 밥먹듯이 하는 암살자로 갱생할 여지도 없는 흉악한 놈들이다" "나쁜 놈들에게는 정의의 철퇴를내려야합니다!" "누가 해야할까?" "네? 아, 당연히 우리가 해야합니다!"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정의의 편은 목숨을 아끼지 않습니다!" 건달들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교도들처럼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진심이었다. 어두운방에서 비몽사몽을 헤매며 갱생단의 연설을 듣기를 6일. 건달들은 완전히 세뇌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대로고문을 받으며 연설을 듣느니 싸우다가 죽는편이 행복할 것 같았다. 정의남은 갱생됐다.........라기보다는 세뇌된 건달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정의를 실천하러 가볼까?" "정의 만세!" 건달들의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 [카오틱 NPC를 '교화 '시켰습니다. 죄를 벌하는 일은 오히려 쉽습니다. 그러나 죄를 반성하게 만들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일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그 같은 노력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한 보상을 받게 될것입니다.<교화 보너스 : 교화시킨 NPC X경험치 5,000 성향 : 선 +50>] 건달들을 갱생시키는 동안, 정의남은 몇 명을 보내 안델과 암살자들의 동향을 감시했다. 그리고 3명의 암살자가 교대로 잠을 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14명의 건달을 갱생시켜 숫자가 28명으로 불어났지만 상대는레벨 120의 암살자다. 정면으로 붙으면 적지 않은 피해를감수해야 할터. 게다가 놈들이 주문서까지 사용하면 꽤나 곤란한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피해는 적으면적을 수록 좋지.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없어' 정의남은 암살자를각개격파 하기로결정했다. 그 첫 상대가 바로 약간 떨어진 야영지에서 잠을 자는 암살자였다. 마을과 인접한 곳에는 야영지를 만들수 없었던 것. 때문에 암살자는 병참에서 어느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저,정말 갑자기 공격해도 될까요?" "자고 있는 사람을 공격하는게 조금 비겁한 건 아닌지........" 건달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러나 정의남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 진정한 정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돼" "그,그런겁니까?" "그런거다" 사실 현실에서도 형사가 자고 있는 범죄자를덮치는 건 일상이다. 새삼 찜찜해할 이유가 없다. 정의남 일행은 암살자를 넓게 포위했다. 그리고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각종 연장으로 암살자를 공격했다. 자고 있던 중이라 치명타가 터지며 암살자가 벌떡 일어났다. "헉,네,네놈들........뭐냐!" "시끄러!" "자,다구리다!" "와아아아, 정의 실현!" 뭐라 할새도 없이 정의남 일행이 개떼처럼 물려들었다. 역시 암살자는 레벨 120에걸맞게 강력했다. 자다가 연속으로 치명타를 맞았는데도 생명력은 고작 15%밖에 줄지 않았다. 기본적인 체력과 사용하는 방어구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반면 암살자가 휘두르는검에 맞으면 60레벨건달은 생명력이 25%씩 깎여 나가고, 십중팔구 치명타와 함께 상태 이상까지 발동했다. 레벨 50~60에게는 마치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레벨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도 28대1이다. 다시말해 암살자가 검한번 휘두르며 28방의 공격이 들어온다는 뜻. -공격이 실패했습니다. 레벨 차이가 엄청나다보니 반 이상이 공격 미스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로코가 '집중의 노래'를 중첩시키며 적중률을 올려놓자 60%확률로 공격이 적중되었다. 즉,정의남 일행이 일제히 검을 휘두르면 최소 16방은 꽂히는 것이다.가랑비에 옷 젖듯이 빈사 상태에 빠진 암살자가 주문서를 꺼내들었다. 기회를엿보던 1406호,일명 얍삽이의 눈동자가 빛난 건 그때였다. "소매치기!" -암살자로부터 [워프]주문서를 훔쳐 냈습니다. 얍삽이의 손이 번개처럼 스치며 암살자의 주문서를 가로채버렸다. "무슨 이런.......!" 암살자는 멍청한 눈으로 빈손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멀찍이 물러나 전투 상태를 해제시켰던 정의남이 다시 달려 들었다. 동시에 난입 상태가 적용되며 정의감 스탯이 발동. 각종 스탯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정의남의 그림같은 엎어치기가 작렬했다. 결국 암살자는 집단 다구리의 희생양이 되어 바닥에 누워 버렸다. 암살자가 사라진 자리에 검은 가죽 갑옷이 떨어졌다. 과연 120레벨의 NPC라 그런지 상당한 수준의 갑옷이었다. 가위바위보의 결과,갑옷은 불끈이에게 돌아갔다. "후후후,역시 이런건 나처럼덩치가 되는 사람이 입어야 간지가 나지" 갑옷을 쫄티처러 만들어 버린 불끈이가 히죽거렸다. "일단 한 놈을 처리했다. 남은건 안델과 암살자 두놈!" "막상 붙어 보니 암살자 둘 정도는 처리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델은 아직 레벨이 그리 높지 않을 겁니다. 2명 정도가 안델을 상대하고 나머지가 암살자를 처리하죠" "좋아, 가자!" 정의남은 졸개들을 이끌고 병참으로향했다.한편 ,병참 앞에는 안델과 2명의 암살자가 여전히 죽치고 있었다. 이미 아크가 나락에 떨어진 지도 열흘이 지났다.그때까지 버티고 있는 안델도 꽤나 지독했지만, 그는 그래도 현실감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암살자에게는 열흘이 한달, 처음에는 협조적이던 암살자들도 슬슬 불만을 드러냈다. "정말 놈이 이곳으로 돌아오는게 확실한거냐?" "확실해. 놈도 지금쯤 꽤나 몸이 달아 있을 거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 "하지만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계약했잖아. 300골드나 받아먹고 불평하는 거냐?" "쳇, 이래서야 기다리다가 늙어 죽겠군" 암살자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의남이 건달들을이끌고 병참에 도착한건 그때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오자 안델이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다가 정의남은 발견했다. "엇? 다, 당신은아크 자식과 함께 있던......?" "내 얼굴을 기억하면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크 자식..........왜 안들어오나 했더니........그 사이도움을 요청했던 건가?" "뭐, 그렇다고 해두지.밟아 버려!" "와아아아, 정의다!" "막아, 놈들읆가아라!병참을 뺏기면 안돼!" 안델이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갱생단, 오른쪽 놈을 맡아라.나머지는 왼쪽.나는 안델을 맡겠다!" 정의남이 명령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안델은 정의남을 피해 요리조리 도망치며 시간을 끌었다. 비록 안델의 레벨은 아직 60대 중반에서 머물고 있지만,그는 돈을 처바른 장비로 무장한 전사다. 게다가 마음먹고 도망치고있으니 쉽게 기회를 잡을수 없었다. 그렇게 도망다니며 암살자들이 상황을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황은 안델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먼저 암살자를처리한 것은 로코의 지원을 받는 갱생단이었다. 적중도와 공격 속도를 잔뜩 올려놓고 미친듯이 연장질을 해대자 결국 암살자도 버티지 못하고쓰러졌다. 이어 건달들과 합류해 남은 암살자를 집중 공격했다. 암살자는 주문서를난사하며 버텼지만 숫자가 28명이다. 고작 1명에게 적용되는 주문서를 사용해봐야 별 의미가 없다. 전세를 뒤엎을 수 있는 주문서도 어느정도 균형이 맞춰졌을 때나 통하는것이다. 놈도 채 몇분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버렸다. 암살자가 전멸하자 갱생단과 건달이 안델을 포위해 버렸다. "자, 이제 네놈이 박살 날 차레다!" "비,빌어먹을 ,치사한 자식들!" 안델이 어금니를 깨물며 욕설을 퍼부었다.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두고보자!" 안델이 품에서 주문서를 꺼내며 소리쳤다. 동시에 얍삽이가 짐승처럼 달려들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나 소매치기는 빈사 상태의 상대에게만 통하는스킬.스킬은 실패로 돌아갔고, 안델은 그대로[워프]주문서를 찢으며 사라졌다. 덕분에 막 멱살을 잡고 메치려던 정의남은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렸다. "젠장,생쥐 같은 자식!" "..........어쩄든 일단 해결은 했네요" "그래, 하지만 놈이 이대로 포기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혹시 모르니 아크가 돌아올때까지 교대로 지키고 있는 게 좋겠다. 나머지는 오두막에서 머물면서 사냥이나 하자" "로렌조 관련 퀘스트는 어쩔까요? 창고 열쇠도 얻었는데......." "뭐, 이렇게 됐으니 아크가 돌아오면 함께 완료하는게 좋겠지.어차피 안델 놈 때문이라도 잠시 이곳에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 근처 사냥터도 꽤 쓸만하잖아" "알겠스빈다. 자, 너희들은 교대로 여기서 대기하고,나머지는일단 오두막으로 철수하자" 그렇게 정의남은 병참을 탈환했다. 또한 암살자들이 떨군 아이템까지 덤으로 챙겼다. 그 뒤로 정의남은 2명을 보초로 남겨 놓고 오두막을 기점으로 사냥에 몰두했다. 물론 건달들도 함께 끌려다니며 산야을 해야했다. 몬스터를 처치하는 건 인류에 대한 공헌이라는 이유였다. 진정한 갱생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젠장, 저놈들이........!" 그 무렵, [워프]를 세장이나 사용해 도망쳤던 안델은 다시 카이로트로 돌아와 있었다. '아크 자식에게 여기까지 부를 수 있는동료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네놈들은 큰 실수 한거야.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크 자식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러면 아직 기회는 있어.수백 골드를 들여서라도 아크와 네놈들 모두를거지로 만들어 주마!' 안델은 곧바로 접속을 풀고 전화기를집어들었다. "아란이냐? 나다" "무슨 일이야? 지금이 몇시인 줄이나 알아?" 수화기 너머에서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상황이 골 때리게됐어" "뭐?" "암살자들이 모두 당해버렸다" "아크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리 없잖아!" "아크가 아니야" 안델은 이를 갈아붙이며 상황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분해 죽겠다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도움이 필요해. 아크는 네 적이기도 하잖아" "젠장........말했잖아. 나는 지금 길드 창설 문제로 정신이 없단 말이야" "네가 올 필요까지는 없어. 놈들의 레벨은 고작 60대였어. 그러니 암살자만 더 보내 줘.내가 지금 네 계좌로 500만원 넣어줄게.그리고 돈이 부족하면 나중에 더 넣어줄테니까 최대한 많이 보내" "500만원?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이번에 차 새로 튜닝하겠다며?" "상관없어. 아버지에게 뜯어내면 돼. 그보다 그 자식들......모두 밟아 버리고 말겠어" ".......알았다. 추가 입금은 필요없어.아크 자식을 밟아 버리고 싶ㅇ느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부족한 돈은내가 알아서 하지. 대신 아크를 확실하게 밟아줘야 해. 할수 있겠지?" "당연하지. 차를 팔아서라도 아크 자식만큼은 철저하게 밟아 놓겠어!" 넘치는 돈을 주체할수 없는 인간들의 통화 내용이었다. 한심한 부르주아의 표본 같은 안델ㅇ느곧바로달느곳에전화를걸었다. "네, 방실 용역입니다." 전화기에서 걸걸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 이명반이다" "아,도련님이 웬일이십니까?" "사람을 좀 찾아봐 줄수 있나?" "그게 우리 전문 아닙니까? 아시면서........" "아는 건 뉴 월드라는 게임의 아이디밖에 없어.하지만 얼마전 글로벌엑서스의 입사시험에 응시한 놈이다. 그중에 아크라는 아이디를사용하는 놈이야,어때?" "글쎄요. 그런 상황이라면 알아낼수 있다고 장담할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가상현실 게임을 해킹도 힘들고, 글로벌엑서스는 워낙 보안이 잘돼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어. 없어? 간단하게 말해" "해 보겠ㅅ브니다." "좋아, 그럼 내일 중으로 착수금 보내주지" 안델.............이명반은 수화기를내려놓고 이를 갈았다. "두고 봐라.게임에서 안되면 현실에서 해결사를 고용해서라도찾아내 박살을 내주마!" 현실PK, 한때 사회문제가 되기도했던 일명 현피는 이렇게 이루어지는것이다. ACT 4 진군, 너구리 부대! "와아아아!" 콰콰콰쾅! 어두운 계곡은 굉음과 함성으로 들끓었다. 수백명이 뒤엉켜 검과 검, 검과 방패가 마주치는소리로 귀가먹먹해질 정도였다. 스바르탈프헤임........지저 세계에서 벌어지는 몬스터와 너구리족의 전투 장면이었다. 며칠 전, 너구리 족의 훈련을 마친 아크는 드이어 출별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주변을 돌아다니는 소규모 정찰부대를 요격하며 실전 경험을 쌓아갔다. 소규모 부대라도 레벨 150의 몬스터 강글은 만만치 않았다.300명의 너구리족으로 강글20마리를 상대하는데도 제법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전투란 하면 할수록 느는 법.희생을 치르며 너구리족도, 아크도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그리고 이제 플랜트 골렘까지 쓰러트릴수 있게 됬다. "해,해치웠다!" "우리가 먼저 플랜트 골렘을 공격해서 해치웠어!" 지금까지 너구리족에게 레벨 250이나되는 플랜트 골렘은 난공불락의 적으로 여겨졌다. 그런 적을 쓰러트린 너구리족은 그제야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강한 적을 쓰러트린만큼 레벨도 올라갔다. 뉴월드에서는 NPC도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변화는그 뒤였다. 전투를 끝낸 너구리족 병사들이 뭔가를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음, 점점 검을 사용하는 요령이 생기는것 같아" "맞아,방패를 사용하는 요령도 알것 같아" "대포는 이렇게 사용하면 더 효과적인 것 같은데?" 너구리족도 유저처럼 무기를 오래 사용하다보니 관련스킬이생성된 것이다. 중장병에게는 검과 방패 관련 스킬이 생겨 공격력과 방어력이 올라갔다. 포병에겐 대포 관련 스킬이 생겨 파괴력과 적중도가 올라갔고, 공병에게는 포션 따위의 성능을높이는 아이템전문스킬이 생겨났다. NPC도 새로운 스킬을 배울수 있다는걸 청므 알았다. 물론 그 사이 성장한건 너구리족만이 아니었다. 현재 너구리족의 지휘관은 아크,뉴 월드에서 지휘관은 모든 경험치에 보너스를 받는다. 덕분에 아크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속도로 레벨의 올라갔다. 지휘관이 되어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너구리족은 NPC,심지어 장인NPC라 전투 경ㅎ머이 없고, 전사의 쿠키에 의해 살짝 맛이가 있기까지 했다. 뭐,덕분에 사기는 항상 최고상태 였지만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졌다. 때문에 아크는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했다. '미치겠군, 300명이나 되는멍청이들을 하나하나 움직여야 하다니............'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점차 그런 용병에도 익숙해지자 전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다.과거 아크는 정의남에게 받은 교본을 몇 번이나 독파했다. 하지만 군대조차 다녀오지않은 아크가 모두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그게 300이나 되는병사를 직접 지휘하며 시행착오를 여러번 경험하자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했다. '정의남 아저씨가 책으로 배우는 건 한계가 있다고 한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 아크는 새롭게 깨닫게 된 전술 기법을 고스란히 너구리족에게 적용시켰다. 그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이해도가 깊어지면, 그것이 바로 시스템에 적용되는게 바로 뉴 월드의 시스템!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전술(초급, 패시브):당신은 병력을 운용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전술에 깊은 이해심이 생겼습니다.대규모 전투를 치르는 데 있어서 전술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뛰어난 전술은 당신과 아군에게 보다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 갈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또한 병력을 운용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배워 가게 될 것입니다. 만약, 휘하 병력이 100% NPC로 구성되어 있을 경우 등급에따라 추가전술을 구사할수 있습니다. <아군 전원의 사기, 공격력, 방어력 +10,작전 수행률+5> *초급 추가 전술 무조건 돌격 : 명력 즉시 전 병력이 하나의 목표에게 돌진합니다. 무조건 퇴각: 명령즉시 전 병력이 전투 범위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게 정의남 아저씨가 말하던 전술 스킬이구나!' 그러나 아크에게 생긴 전술은정의남이 설명해주었던 내용과는 약간 달랐다. 정의남에게 생긴 전술 스킬은 전술III이었다. 반면 아크에게 새긴 전술I은 추가되는 부너스도 낮았고 추가 전술의 숫자도 적었다. 당연한 결과다. 평생을 전술 관련 일을 해오며 살아온 정의남과 아크의 이해도가 같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솔로잉 위주로 플레이하는 아크와는 인연이 없는 스킬을 배운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또한 현재 가장필요했던 스킬이기도했다. 스킬이 생기자 너구리족의 움직임이 한단계 성장한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휘하 병력이 유저라면 전술 스킬은 버프 효과 이사의 의미는 없다. 어차피 유저들은 저들이 알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NPC는 그외의 효과 지휘관의 역량에 따른 병사들의 작전수행률이 그대로 적용되어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다. 그 효과는 현재 어둠의 계곡 전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수십 마리의 강글이 일렬로 늘어서서 손도끼를들어 올렸다. "투척 무기다!중장병,전원 방어 태세!" 아크가 소리치자 중장병들이 일제히 방패를들어올렸다. 어둠을 가르며 날아온 손도끼들은 모두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예전에는 아크가 소리쳐도 너구리족의 반응이 느렸다.심지어 몇몇 너구리족은 오히려 앞으로 달려가다 이마에 도끼가 바히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전술 스킬이 생긴뒤부터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륵, 기나치,노리아!" 기습이 실패하자 강글이 괴성을 지르며 날뛰었다. 귀뚜라미를 탄 이십여 마리는 너구리족의 배후를공격하기 위해 뒤어오르기도 했다. "2진 포병,A-3플랜!귀뚜라미를 요격하라!" 아크가 발 빠르게 명령하자 포병들이 자세를잡고 대포를날렸다. 아크가 너구리 족을 지휘하는 방식은 소환수에게 적용하던 전술의 응용이었다. A-3은 아크와 소환수가 상중하로 나뉘어 공격하는 전술.포병에게 적용된 A-3은 상중하로 대포를 발사해 탄막을 치는것이다. "쿠에에에엑!" 귀뚜라미와 강글기병이 한 덩이가 되어 바닥에 처박혔다. 아크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더블 크리티컬 찬스를날리며 명령했다. "1진 중장병, A- 2롤 강글기병을 포위하고 파상공격을 펼쳐라!" 또다시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진형을 바꾼 120명의 중장병이 무방비 상태의 강글기병을 밟아댔다. 뒤쪽에 강글들이 동료를구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아크는 B-3플랜으로 전환해 너구리족의 공수 비율을 30대 70으로 운용하며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B-1로 바꿔 몰아붙이자 강글들은 맥없이 물러났다. "후후후, 이제 예전의 너구리들이 아니다. 이 아크님의 사병이다!" 아크는 신들린 듯이 전투와 용병술을펼치며 전장을 누볐다. 처음에는 너구리 부대를 하나로 움직이는것조차 버거웠지만, 이제 강글과 싸우면서도 대대,중대, 소대별로 모두 다른 명령을 내릴수 잇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런게 가능할수 있었던 것은 데드릭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 ,우측 너구리들이 얻어맞고 잇는데?" "그럼 D-1플랜으로움직이라고 전해. 그리고 3전 공병을 백업시켜!좌측은 어때?" "그쪽은 여유가 있어보여" "A-1플랜이다. 포위 공격해서 빨리 해결하고 우측을 도우라고 전해" "알았어 .다녀올게" 그렇게 데드릭이 하늘에서 전황을 살피고, 전령 노릇을해주었다. 덕분에 전황이 손에 잡힐듯 보여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었다. 그렇게 너구리족은 점점강글을 계곡 안으로 몰아넣어갔다. 그러나 아크가 전투보다 더 신경 쓰는건 따로있었다. "뱀, 지금이다. 몽땅 삼켜!" 쌕쌕쌕! 아크의 명령을 받은 뱀이허리에서 튕겨나갔다. 뱀을 시드에게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냈을 무렵, 아크는 뱀의 활용법을 너무간단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즉, 굳이 허리에 감고 잇지 않아도 아이템을 삼키고 뱉어 내는 기능흘 사용할수 있다는것. 아크의 명령이 떨어지자 뱀은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누비며 강글들이 떨군 아이템을 모조리 삼켜버렸다.집단 전투라강글이 아이템을 떨구는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단 하나의 잡템조차 포기할생각이 없었다. 설사 아이템을 챙기느라 너구리족 병사가 더 희생된다고해도...... 너무한다고? 천만의 말씀! 너구리족은 퀘스트만 해결하면 끝이지만 잡템은 고스란히 아크의 재산이 된다. 어느쪽이 더 중요한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게임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돈!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양심 따위는 언제든지 주머니에 넣어둘수 있는게 아크다. 아크는 번뜩이든 시선으로 전장을 살피다가 너구리족이 아이템을 주우려는 기미를보이면고답로 호통을내질러싿. "어이, 거기 1진!뭐하는거야? 죽고 싶어? 아이템 주울 시간이 있으면 검을 휘둘러!" 날름. 그렇게 너구리족이 움찔하는 사이 뱀이 잽싸게 아이템을삼켜 버리는 것이다. 쇄에에엑!콰쾅! 그때, 돌연 어둠을 가르며 거대한넝쿨이 날아들었다.동시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쪽 진형이 와르르 무너져싿. 아크와 너구리족의 눈동자가 동시에 한쪽으로 향했다. "플랜트 골렘이다!" "나타났구나!" 계곡 반대쪽에서 거대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기가 10여 미터에 달하는 플랜트 골렘이 세 마리나 다가오고 있었다.레벨은 무려 250! 플랜트 골렘의 몸에서 뻗어나온 넝쿨에 맞은 너구리 족은 단숨에 생명력이 40%씩깎여 나가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1진 중장병, 무조건 퇴각!" 다급해진 아크가 추가 전술스킬을 발동시켰다. 추가 전술스킬은 데드릭을 통해 전할 필요도 없이 발동 즉시 전 병력에 적용되었다. 그러자 너구리족은 와, 소리를 지르며 개미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단숨에 진형이 오나전히 와해되자 플랜트 골렘은 어디를 쫓아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그때,아크의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크형!" 고개를돌려보니 너구리 소년 포포가 소리쳤다. "이쪽은 준비 끝났어" "좋아, 데드릭,전군에게 전해라.A-4플랜으로간다" "이봐, 너구리들 !A-4플랜이다!" 데드릭이 허공을 날아다니며 소리쳤다. 그러자 흩어졌던 병사들이 다시 진형읆나들며 한쪽으로 후퇴했다. 목표가 하나로 좁혀지자 강글과 플랜트 골렘들이 뒤쫓았다. 그러기를 잠시, 놈들이 병사들을 따라잡았을무렵,대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동시에 지면이 푹 꺼지며 뒤쫓아오던 몬스터들이 우르르 넘어져버렸다. "성공이다!" 포포가펄쩍 뛰며 고함을 내질렀다. 포포가 땅파기를 전담하는 3진 공병과 함께 그 주변의 땅밑에 굴을 파놨던 것이다 몸집이 작은 강글이지나갈때는 상관없었지만, 10배는 족히 된느 플랜트 골렘이 올라서자 지반이 붕괴되어 버렸다. 덕분에 함께 떨어져 버린 강글들은 플내트 골렘에게 깔려 너구리 포가되어 버렸다. 반쯤 지면에 처박힌 플랜트 골렘들이 괴성을 지르며 기어올라 왔다 . 물론 가만히 보고만 있을 아크가 아니다. "지금이다!2진 포병,A-2플랜!" 포병들이 급선회하며 대포를 난사하기싲가했다. 장전속도가 느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A-2. 과거 나폴레옹의 소총 부대가 사용했다는 전법으로, 각 조별로 나뉘어 발사와 장전을 번갈아 하는 공격법이었다.연속적인 대포 공격에 플랜트 골렘들의 몸에서 섬광이 폭발했다. 대형 몬스터에게 추가공격력이 적용되는 공격이라 플랜트 골렘의 생명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사이 공병은 열심히 포션을 쏟아부으며 중상병을 회복시켰다. "주인, 1진의 회복이 끝났어" "좋아, 마무리다. 무조건 돌격!" "우와아아아아!공격하라!" 아크가 다시 추가 전술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모든 너구리족 병사들이 최상의 스킬을난사하며 플랜트 골렘에게 몰려들었다. 검과 도끼가 플랜트 골렘을 찍어대고, 쉴새없이 날아가는 대포에 섬광이 번뜩였다.그리고 공병은 그 사이를오가며 미친듯이 포션을 쏟아 부었다. "크아아아!" 드디어 마지막플랜트 골렘이 비명과 함께 쓰러져 버렸다. 강글 육십여 마리와 플랜트 골렘 세 마리를 상대로 압슬을 거둔것이다 .처음에 강글 삼십여 마리에게도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경험치가 합산되어 지휘관 보너스로 적용되었다. 전체 경험치의 5%.상대하는 몬스터가 레벨 150,250이니 적지않은 경험치였다. 덕분에 아크는 한 번 전투를 치를때마다 꾸준히 레벨이 올라갔다. 광렙이 아니라, 초광렙!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다시 레벨 하나가 올라 드디어............! "스탯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00 명성 : 1,695 레벨 : 100 (원본에는 10으로 표기되어있음.)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집념의 간병인,작센의 영웅 생명력 : 1,855 마나 : 1,570(+100) 영력 : 100 힘 232(+5) 민첩 262(+15) 체력 362 지혜 41 지능 305 운 42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83 유연성 : 32 화술 : 33 애정 : 55(+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 : 물 속성 저항력 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15,치명타율+10% 마정석 골렘의 머리 : 마나+100 개량형 노라드 부츠 : 이동속도+15%,회피율 +10% 화염의 베일 : 화염 저항력+50% 아드리안의 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 부활하는 영혼 : 힘+5,마나 회복 속도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드디어 100레벨을 돌파했다!' ..............라고 생각했던게 불과 30시간전이다. 100레벨이 됐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아크 역시 딱 떨어지는 숫자를 좋아했다.10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자 뭔가를 이뤄 낸 것처럼 뿌듯했다. 그리고 고작 30시간 만에 다시 6레벨 업! 진군을 거듭할수록 적의 숫자가 많아지니 레벨 업 속도도 가속도가 더해졌다. 덕분에 작센 이벤트 퀘스트를 진행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레벨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크 형, 해냈어. 이제 어둠의 계곡도 점령했어" "음"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 제작 스킬을 펼쳐 보았다. 처음에는 시꺼멓게만 보이던 공간의 3분의 1이 밝아져 있었다. 지저 세계에 존재하는 너구리족 마을은 모두 14개. 그중 13개가 이미 타락한 이그드라실에게 먹혀 있던 지역이다. 그러나 아크가 너구리 부대를 이끌로 궈기한 지 나흘. 요소요소의 진지를 점령하며 진군한 끝에 그중 6개를 되찾았다. 그리고 마을을 되찾는다는 건 단순히 이그드라실에게 가까워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아크는 너구리 부대를 이끌고 새로 탈환한 마을로 진입했다. 역시나 다른 마을처럼 그곳도 이미 검게 변한 나무 넝쿨이 뒤엉킨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건물이나 근처의 나무줄기에 고치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 익숙한 물체였다. "3진, 고치를 해제해라!" "네, 사령관님!" 아크가 명령하자 공병들이 꼬리를 파닥거리며 고치에다라붙었다. 그리고 발톱으로 벅벅 긁어 벗겨 내자 검게 변한 너구리족이 툭 떨어졌다. 그것들은 바로 플랜트 골렘에게 잡아먹힌 너구리족들이었다.플랜트 골렘에게 먹혀 버린 너구리족은 그렇게 고치 속에서 변태 과정을 거쳐 강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덕분이자면 플랜트 골렘은 이그드라실에게 먹혀 변태된 너구리족이란다. 다행히 이 마을에는 아직 강글이 되지 않은 고치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정화 포션으로 치료해 주면 대부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었다. 물론 그런 너구리족은 당연히 전사의 쿠키로 살짝 맛이 간 상태에서 군대에 편입되어, 빡센 훈련 끝에 전사로 탈바꿈되었다. 다시 말해 마을 하나를 점령해 나갈때마다 적의 병력이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아군의 병력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마을을 점령하지 않으면 고치에서 변태를 끝낸 강글들이 뒤통수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이것이 마을을 점령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였다. 수많은 전사자 그리고 이그드라실과 가까워질수록 더 많아지는 강글과 플랜트 골렘!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구리 부대의 병력이 유지되는 비결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마을을 점령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 "포포, 이 마을의 특산품은 뭐였지?" "이 마을에는 옛날부터 대포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았어. 여기서 만드는 대포는 사정거리도 더 길고 ,탄환의 공격력도 강해" "대포 장인들을 얼마나 구출했지?" "10명 정도는 돼" "포병이 70명이니 한 사람당 7명이군" "일단 회복만 되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거야" "포포, 가서 3진에게 먼저 대포 장인들의 회복을 서두르라고 전해. 그리고 장인들이 회복되면 대포를 보여주고 업그레이드에 얼마나 걸릴지 물어봐" "알았어!" 포포가 깡충거리며 마을을 가로질렀다. 지저 세계의 전투는 땅따먹기 고전 게임의 대명사 삼O지와 흡사한 부분이 있었다. 처음에 아크의 전력은 300명의 너구리 병사와 평범한 장비가 전부였다.그러나 전투에서 승리하고 ,마을 하나를 점령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을에 진입할 때는 사상자가 발생해 전력이 줄어 있는 상태가 되지만,마을에서 고치에 갇힌 너구리족을 정화해 병력으로 삼으면 다시 숫자가 늘어난다. 그뿐이 아니다. 본래 장인인 너구리족은 각 마을마다 전문 공방과 생간 NPC들이 존재했다. 덕분에 탈환한 마을의 전문 생산 품목이 가죽 세공이라면 ,너구리 부대의 가죽 방어구능력을 올릴수 있었다. 그리고 검이라면 검을 사용하는 병사들을 더 좋은 검으로 무장시킬수도 있다.심지어 물약 전문 마을에서는 공격력을 올려주는 특수 포션이 제공되기도 했다. 그렇게 각 부락마다 탈환되는 공방의 종류에 따라 고나련 장비의 수리, 업그레이드, 교체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돈이 들었지만 군자금은 너구리 장로의 몫이었다. '아마 여기는 포포의 설명대로 대포의 사정거리와 공격력을 올릴수 있겠지' 포병ㅇ느 너구리 부대의 핵심이다. 원하는 대로 업그레이드만 된다면 너구리 부대의 전체 공격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리라. 이그드라실에 가까워질수록 업그레이드의 수준도 높아져 가고 있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때만 해도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웠는데...........' 역시 뉴 월드에서 불가능은 없다. '너구리 부대의 진군은 이제 궤도에 올랐어'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게 느껴지던 퀘스트,그러나 약간 발상을 바꾸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소되었다. 너구리 부대!덕분에 아크는 레벨200짜리 몬스터를 토벌하며 점차 지저 세계를 점령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꽤 쓸만한 아이템을 얻었고...........' 아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장비창을 확인했다. 아크는 얼마전 들렀던 가죽 세공 마을에서 장비를 2개나 바꾸었다. [화염의 베일(마법) 방어구 타입 : 망토 방어력 : 20 (원본에는 2로 표기되어있음.) 내구력 : 67/80 무계 : 5 사용제한 : 레벨 90 이상 화룡족의 비늘을 가공해 만든 망토입니다.이 망토는 단단한 각질로 되어 있는 비늘을 가공한 것이라 어지간한 무기를 막아낼 정도로 튼튼합니다.또한 용암 속에서 살아가는 화룡족의 특성이 담겨 있어 화염에 대한 저항력이높습니다. <옵션 : 화염 저항력+50>] [개량형 노라드 부츠(마법) 방어구 타입 : 가죽 신발 방어력 : 40 내구력 : 36/50 무게 : 5 사용 제한 : 레벨 60 이상 양질의 그레이트 웜 표피로 만들어진 신발입니다.그레이트 웜은 특수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고대종입니다. 그 표피는 특수한 막에 쌓여 있어 늪지나 화산 지대,심지어 위장 안에서조차 아무런 해를 입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옵션 : 이동속도+15%,회피율+10%> <특수 옵션 : 패널티가 가해지는 지면에서 데미지를 받지 않습니다>] 지저 세계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이다. '설마 노리드가 너구리족일 줄이야' 아크가 가죽 세공 마을에 들어섰을 때 ,구해 낸 장인들 가운데 노라드라는 NPC가 있었다. 아크는 노라드라는 이름을 어딘가에서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을고 민한 끝에 기억해 냈다. 바로 아크가 작센에서 주운 노라드 부츠의 설명에서였다. 오래전 사라졌다고 알려진 방어구 제작의 명가, 노라드! "맞네, 이건 내 할아버지가 만든 거네. 우릴 일족은 대대로 노라드라는 이름을 물려받지" 신발을 보여 주니 노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재료 아이템이었다. 유저에게 맡기기 싫어서 가방 한쪽에 꾹꾹 담아 두고만 있던 재료 아이템. 발데라스에게서 받은 화염의 비늘과 그레이트 웜에게서 얻은 표피였다. 아이템을 보여주니 노라드는 화염의 비늘로 망토를 그리고 그레이트 웜의 표피는 노라드 부츠에 덧대서 개량형 부츠를 만들어 주었다. 성능은 보다시피, 동 레벨에서는 최상급이었다. '가공비로 500L이나 들어갔지만 이 정도 성능이라면 남는 장사야!' 광석은 쿠키 판매로 착실하게 벌어들이는 중이다. 배급 판매제로 바뀐 뒤 은근슬쩍 가격을 100%나 올려 2L에 팔았지만 쿠키는 순식간에 동이났다. 게다가 전장에서 챙겨 온 잡템도 물가가 높은 지저 세계에서 팔아 치워 가방에는 광석이 쌓여만 갔다. '후후후,지저 세계의 전쟁이 꽤나 마음에 드는데? 이대로 지저 세계의 괴물들을 몽땅 쓸어버리면 이번주 내에 레벨 120도 꿈은 아니야!' 어렵게 찾아낸 광렙 사냥터다. 게다가 너구리족을 훈련시키느라 며칠을 투자했던가? 일단 시작했으니 아크는 뽕을 뽑을 생각이었다. 때문에 바로 이그드라실로 향할 수 있음에도 주변을 빙빙 돌며 마을 탈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일확천금과 광렙을 위해서! "이그드라실을 타락시킨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올 거네. 굳이 모든 마을을 탈환하며 진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가끔 장로가 항의를 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쿠키 한 봉지를 쥐어 주면 만사 오케이. 아크가 그렇게 휘파람을 부르고 있을 때 포포가 돌아왔다. "아크 형, 대포 업그레이드에 한나절 정도 걸린대" '한나절........현실 시간으로 대략 2시간 정도인가?' 지저 세계에서 마음에 안드는 게 있다면 이것이었다. 마을을 점령해서 병력이 늘고,장비가 업그레이드되는 건 좋은데, 모든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꽤나 시간을 잡아먹었다. 쉬지 않고 경험치를 먹고 싶은 아크로서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시간이 아깝다고 병력과 업그레이드를 포기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하독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지' "포포, 그럼 나는 잠깐 혼자 있을 테니 준비가 끝나면 알려줘" "에에? 또야?항상 어디가는 거야? 나랑 놀자" "형은 바쁘다. 혼자 놀고 있어" 아크는 툴툴대는 포포에게 가볍게 꿀밤을 먹이고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이건 슬개골인가?" 아크는 오목하게 생긴 뼈다귀를 관절에 가져가 보았다. "딱 들어맞는군. 그럼 에........골반이 F니까 이건 F-4번이 되겠군" 펜으로 슬개골에 F-4라고 적은 아크는 다시 가방을 뒤적이며 다른 뼈다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살펴보다가 버리거나, 넘버를 새겨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해 온 작업이라, 바닥에는 갖가지넘버가 적힌 뼈다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크는 한참을 뒤적이다가 작은 조약돌만한 뼈다귀를 발견했다.그리고 로직 퍼즐처럼 넘버가 적힌 다른 뼈다귀와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곧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 틀림없이 3번 경추야. 이제 다 모였어!" 아크는 나머지 뼈다귀를 몽땅 버리고 곧바로 해골을 소환했다. "해골, 이제야 모두 갖춰졌다!" 딱,딱딱딱! 해골이 감격한 눈빛으로 앞뒤로 움직였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절반만이 남은 것이다. 지저 세계로 들어온지 어느새 일주일............그동안 아크는 단 한번도 해골을 잊은 적이 없었다. 본 블레이드의 주인,워릭을 무찌르고 해골을진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마침 지저세계는 소환수를 성장시키기에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식재료가 지천에 깔려 있는 것이다. 아크는 너구리 부대가 진군할 때는 식재료를 모았다가 마을에 도착하면 몽땅 털어 요리를 만들어댔다. 그리고 요리의 확인 작업은 당연히 해골이 전담했다.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각오로 음식을 먹어 대기를며칠, 드디어 해골은 레벨 60수준까지 도달했다. 아크는 곧바로 워릭을 소환해 결투를 신청했다. "확실히........이전보다는 나아졌군...........좋다........결투를 받아들이겠다" 역시나 능력치를 올려놓으니 깐깐한 워릭도 결투 신청을 승낙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 해골은 데드릭과는 달리 흥분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전투를 펼쳤다. 그럼에도 워릭의 생명력을 50%도 깎아 내지 못하고 강제 송환 돼 버리고 말았다. '역시 그게 문제야' 24시간 후, 아크는 시무룩하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해골을보며 한숨을불어냈다. 패배의 이유는 아크도 해골도 알고 있었다. 해골과 워릭의 결정적인 차이, 생각할필요도 없이 해골에겐 팔다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해골의 전투 이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몇 번이나 아크에게 훈련을 받아 왔으니까. 그러나 팔다리가 없는 해골이 할 수 있는 동작은 그저 굴러다니거나, 턱의 힘으로 뛰어올라 박치기를 날리는 정도.명색이 기사인 워릭에게 그처럼 단순한 공격이 먹힐 리가 없다. 아크나 데드릭과 함께 작전을 펼칠때는 그럭저럭 제 역활을 해냈지만, 막상 1대1이라면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 '이대로라면 해골의 능력치가 70레벨 수준이 돼도 워릭을 이길 가망이 없어' 그제야 아크는 진지하게 워릭을 이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폴루션 스켈레톤!' 지하 미궁에서 싸웠던 폴루션 스켈레톤. 놈들은 한번 부숴 놔도 주변의 뼈다귀를 모아 재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스켈레톤이라는 본체는 해골. 그렇다면 해골 역시 같은 방법으로 팔다리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아크는 곧바로 지하 미궁으로 돌아가 주변의 뼈다귀를 잔뜩 모아왔다. 그러나 막상 뼈다귀를 잔뜩 모아 놓으니 뭐가 어디 뼈인지 도통 알수가 없었다. 아크는 이 문제를 정의남에게 의논했고, 정의남은곧 유도 교본을 건네 주었다. 관절기를 전문으로 하는 유도 교본에는 인체 골격 도감이 부록으로 붙어 있었던 것. 그 뒤로 아크는 자는 시간을 쪼개 뼈다귀를 선별해 이제야 모든 종류를 갖추었다. 그야말로 피땀 어린 노력의 결정체! 덕분에 이제 눈을 감고도 인체 골격을그릴수 있을 정도다. 그동안 뼈다귀에 적어 놨던 넘버에 맞춰 늘어놓으니 그럴듯한 스켈레톤의모습이 되었다. 모자란 부분은 하나, 머리뿐이다. "해골,준비해라" 해골이 합체 로봇처럼머리 부분에 위치하자 비로소스켈레톤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작업은 지금부터다. 뼈다귀를 늘어놓은 것만으로 그게 해골의 몸이 될리 없었다.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하고, 또 해골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뱀, 영체 접착제!" 쌕쌕쌕! 뱀이 입을 벌리며 영체 접착제를 뱉어냈다. 아크가 이 계획을 처음 생각한 것은 바로 이 영체 접착제라는 아이템이 있었기 떄문이다. 접착제로 뼈다귀와 해골을 붙인다. 더구나 단순한 접착제가 아니다. 영체인 엑토플라즘의 집합채,그렇다면 해골의 의지로 엑토플라즘을 신경처럼 사용해 몸을 움직일 수 있지 안ㅇㅎ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도 아니면 모,그건해보지 않으면 몰라' 아크는 영체 접착제를 사용해 뼈다귀를 모두 붙였다. 그리고 해골까지 붙여 놓은 뒤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해골, 이제 모든 게 너에게 달렸다. 어때? 움직일 수 있겠어?" 해골은 반응이 없었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 새로 생긴 몸에 집중하는 듯.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두둑거리는 소리와함께 손가락뼈가 움직였다.처음에는 까딱거리는 정도였지만 이내 손목이 움직이고 팔이 올라갔다. '반응이 있다!' 해골은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그러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듯 몇 번이고 다시 주저앉았다. 아크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해골을 바라보았다. 아마 피노키오를 처음 만들었던 제페트 할아버지가 이런 심정이었으리라. "해골, 너는 할수 있어. 너는 예전에도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생각해! 그때의 감각을 기억해 내는 거야!" 아크는 마치 아버지가 된 듯한 심정으로 간병을 사용했다. 그 순간, 해골이 이를 악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됐다, 성공이야!" 따닥..............딱딱딱! 해골은 신기한 눈길로 새로생긴 팔과 다리를 바라보았다. 일단 한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금세 적응이 되었다. 해골은 갓 태어난 새끼처럼 수백년 만에 되찾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이내 달리고 바닥을 구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러기를 잠시, 해골은 뭔가를 바라는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워릭과의 설욕전을 바라는 것이다. "좋아, 이제조건은 같다.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질 이유가 없어. 너는 데드릭과는 다르니 긴말하지 않겠다. 그동안 나와 함꼐 싸웠던 경험을 잊지마" 아크는 간단하게 충고하고 워릭을 소환했다. 워릭은 달라진 해골을 보고 약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몸은........그렇군.........그대, 훌륭한 주인을 만났군........그래, 그 몸이라면 이제 나와 만족할 만한승부를 겨뤄 볼수 있을 것이다............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와라, 전사여!" 곧 두마리의 스켈레톤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워릭이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지금까지의 해골은 그런 단순한 공격에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과거 해골이 아니다. 해골은 빠르게 옆으로 물러나며 팔을 뻗었다. 해골은 워릭과 달리 마땅한 무기가 없었다. 소환수는 장비 아이템을 장착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아크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미리 손가락뼈를 갈아놨다. 덕분에 약간의 공격력 보너스가 가산된 것인지 워릭이 적지않은 데미지를받고 물러났다. "크윽.........확실히..........예전과는 다르군" 워릭은 오히려 즐겁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사실 아크는 이번 결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다. 비록 뼈다귀밖에 남지 않았지만, 워릭은 기사였던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검과 방패로 무장까지 했다. 반면 해골은 과거의 기억도 없고 방금 전에 막 새몸을 얻은 참이었다. '뭐, 새 몸에 익숙해질 겸,경험 삼아 싸워 보는 것도 좋겠지' 그게 아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예상은 좋은 의미로 빗나갔다. '해골 녀석..........!' 아크는 멍한 눈길로 해골을 바라보았다. 해골의 움직임은 마치 아크와 같았다. 적의 공격을 피해내는회피 동작, 빈틈을 찌르는 카운터,모두가 아크의 특기 였다. 심지어 스텝을 밟으며 거리를벌리고 발 차기를 날리는 동작까지.......아크의 모든 공격 기법을 흉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완성도를 따지면 아크에 비할바가 아니었지만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해골은 그동안 아크의 전투 기법을 완벽하게 배워 왔던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움직이는또 다른 존재. 마치 자식이나 제자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연........크라켄을 무찌른 사내의...........소환수답군!" 워릭의 감탄사가 마치 아크에 대한 칭찬처럼 들려왔다. "가라, 해골!"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해골은 전투가 길어질수록 ㅈ머차 움직임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초반에는 조금 밀리는 듯했지만 이내 따라잡아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맞섰다. 그러나 워릭도 해골이 강해질수록 흥이 나는지 움직임이 점차 좋아졌다. 그렇게 10여분.........! 해골이 생명력 20%,워릭의 생명력 25%! 다시 한 차례 격돌하자 양측이 똑같이 10%씩 깎여 나갔다. "훌륭하다!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다음 일격에 모든것을 걸겠다." 워릭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검을치켜세웠다. 그 자세에서 필사의 결의를 느낀 해골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스텝을 밟으며 워릭의 주위를 돌았다. 바늘끝에 선듯한 아슬아슬한 정적......... '지금이다!' 해골의 스승인 아크는 본능적으로 타이밍을 읽어냈다. 해골이 단숨에 거리를좁히며 손을 찌른건 그때였다. 완벽한 공격타이밍을 잡아내는 기법까지 몸에 익힌 것이다. 그러나 전투 경험이풍부한 워릭도 해골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워릭의 검이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텅, 텅! 워릭은 해골의 양손을 번개처럼 쳐 냈다. 그리고 검을 세워 활짝 열린 가슴팍으로 파고 들어왔다. "멋진 공격............하지만 이번에는........이 몸의 승리다!" 아크의 눈빛이 반짝인 건 그때였다. "해골,지금이다!" 딱딱딱!딱딱딱! 동시에 해골의 견갑골 부분이 쩍 갈라지며 날카로운 뼈가 솟아 나왔다 .그리고 그야말로 앗, 하는 사이에 코앞까지 달려들던 워릭의 양쪽 눈덩이를 꿰뚫어버렸다. 워릭의 눈...........................시퍼런 불꽃이 거칠게 흔들리며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이...........이럴 수가..........어떻게..............!" "해골의 몸은 내가 조립한 거다. 모처럼 새 몸을 주는데 빔리 병기 하나쯤 안 달았을 리가 없잖아"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견갑골 뒤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뼈.본래 인간의 몸에는 없는 뼈였다. 그러나 뼈다귀를 조립하며 뭔가 독특한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싶어서 아크가 연구 끝에 붙여 놓은 비밀 병기였다. 본래 인간의 몸에는 없는 뼈를 해골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모험이었다. 그러나 해골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강한 의지를 발휘, 아크의기대에 보답해 주었다. 워릭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소환수를 믿은 주인과...........그에 보답한 소환수....................후후후,그대와 주인...........멋지군.........내가졌다.............나의 힘을 물려주겠다.............그 힘으로 ...............주인을 섬기도록 해라" 워릭은 뒤끝 없는 놈이었다. "이제야...........여명의 언덕으로갈수 있겠군............고맙다..........그대들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린 워릭의 몸이 서서히 허물어졌다.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건 그떄였다. [플레이어의 소환수'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이 '워릭'을 물리쳤습니다. 이로써 소환수를 합성해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인이 될 소환수를 선택해 주십시오.합성 진화로 만들어진 소환수는 메인 소환수의 능력치에 보조 소환수의 능력치가 가산되어 결정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워릭은 기사답게 공격과 방어의 균형이 좋다. 그러나 해골은 지금까지 아크가 훈련시키고, 직접 몸을 만들어준 분신 같은 존재. 워릭이 아무리 좋다 해도 비교할대상이 아니었다. "메인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 보조 워릭" 결정이 끝나자 해골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빛 속에서 해골의 몸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눈덩이에 시퍼런 안광도 더욱 강렬해졌다. 워릭이 가지고 있던 낡은 검과 방패, 누더기 체인 갑옷도 해골에게 장착되었다. [소환수 합성 진화각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워릭'과 합성으로 '이름 없는 망자의 해골'은 스켈레톤 나이트로 승각됐습니다. 유계의 모든 것을 위대한 의지로부터 '데이모스'라는 이름을받았습니다.이로써 데이모스는 유계의 하급 귀족 신분을얻어 아티팩트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본 블레이드는 이제 데이모스의 아티팩트입니다. <아티팩트를 소유하게 되어 데이모스에게 추가 스킬이 생겼습니다>] [데이모스 기사 워릭의 정신을 이어받아 언데드 기사로 승격한 유계의주민. 기사로서 명예를 숭상하여 불사의 육체와 절대적인 충성심으로 주인을 보필합니다. 닫ㄴ, 기사로서 자각했기 때문에 주인이 불명예스러운행동을 하면 충성도가 깎일 수 있습니다. 종족 : 언데드 성향 : 어둠 등급 : 하급 생명력 : 870(+200) 충성도 : 270(+200) 힘 96(+15) 민첩 63(+15) 지혜 38(+5) 지능 59(+5) 운 35(+15) *데이모스에게 '뼈 수집'의 취미가 생겼습니다. *'검화'의 특성을 배웠습니다. <검화 : 데이모스를 본 블레이드로 변신 시킬수 있습니다. 검화로 만들어진 본 블레이드는 검과 채찍,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채찍으로 사용할 경우,다수의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지만공격력은 30% 감소하게 됩니다. 영력 소모 :100>] '데이모스?' 데이모스라면 아크도 알고 있다. 군신 마르스라고도 불리는 화성의 두 위성 가운데 하나. 즉,아크의 두 소환수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 담겨 있는 모양이다. 이름도 ,성장한 능력치도 마음에 들었다. '능력치는 65~70수준으로 상향 조정됬군' 상승한 능력치는 데드릭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이한점은 생명력고 충성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는 것. 덕분에 생명력이 무려 1070!몸빵용 캐릭터로는 손색이 없었다.게다가 충성도도 올라갔으니 데드릭처럼 반항할 일도 없다. 오히려 더욱 열심히 아크를위해 몸빵을 해주리라. '그런데 뼈 수집이 취미라는 건 뭐지?' 아크가 정보창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떄였다. 데이모스가 돌연 눈빛을 빛내며 워릭의 잔해로 달려갔다. 수북이 쌓인 뼈다귀를 뒤적거리더니 흠집 하나 없는 갈비뼈를 찾아냈다. "어라? 데이모스 ,뭐 하는거야?" 딱딱딱!따닥, 딱딱딱! 데이모스가 갈비뼈를 가리키며 연방 이를마주쳤다. 무슨 모르스 부호도 아니고......알아들을 리가 없는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했다. 졸지에 통역사각 돼 버린 데드릭은 잠시 데이모스와 쑥덕거리더니 괴상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주인, 이 녀석 의외로 건방진데?" "뭐?" "주인이 고생해서 만들어준 몸이 말이야. 별로 마음에 안드나봐. 주인이 고생한 건생각도 하지 않고 미적 감각이 후지네. 성의가 없네 하며 욕을 하는데? 나쁜 놈이지? 그렇지?" 딱딱딱! 그러자 데이모스가 와락 데드릭을 쥐고 흔들어 댔다. "으윽, 이 자식이!몸 생겼다고 어디서 감히.......컥!아, 알았어.제발 날개는 잡아 당기지마.네가 말한대로 전하면 될거 아냐? 우우욱, 거꾸로 잡아 흔들어 대지 말라고 했잖아! 난 박쥐라도 거꾸로 메달리는 취미는 없어. 멀미 난단 말이야!알았다니까!큭, 주인. 욕했다는 건 뻥이었어. 이 녀석 말로는.......주인이 모아 온 뼈다귀들이 별로 좋은게 아니래. 그래서 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나?" 데드릭의 말에 아크는 솔직히 수긍했다. 사실 그건 아크도 알고 있다. 지하 미궁에서 대충 모아온 뼈다귀, 그중에는 제법 쓸만한 것도 있었지만,대부분은 썩고 금이 간 것들이다.그런 뼈다귀를대충 붙여 몸을 만들어줬으니 아무래도 성능 면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뭐, 나도 기왕이면 좋은 뼈다귀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우둑 ,빠각! 아크가 한숨을 불어낼 떄였다. 돌연 데이모스가 자신의 갈비뼈 하나를 뽑아내는게 아닌가? 설마 자해를할정도로 마음에 만들지 않았던 건가? 아크가 황당한눈길로 바라보자 데이모스는 오해하지 말라는듯 고개를저었다. 그리고 빈자리에 워릭에게서 주운 뼈다귀를 끼워놓았다. 신기하게도 워릭의 갈비뼈는 딱 맞춘 것처럼데이모스와 갈비뼈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멋대로 마음에 드는 갈비뼈를조립해 넣은 데이모스가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오른건 그때였다. [데이모스가 '뼈 수집'스킬로 갈비뼈를 재조립했습니다. 스켈레톤 계열의소환수는 몸을 구성하는 뼈에 대한 애착이 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들어 준 뼈대는 허접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이에 불만을 품은 데이모스는 종족 특성이 반영되어 스스로 좋은 뼈를찾아 몸을 재구축하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특수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뼈를찾아내 몸을 재조립할 경우, 그에 따라 데이모스의 능력치가 재조정됩니다. 또한 낮은 확률로 본 블레이드의 능력치도 재종정될 수 있습니다. <워릭의 5번 갈비뼈 : 방어력+10 ,운 -5> <본 블레이드 : 최대 내구도 +10>] "뭐 이런................" 스스로 뼈를 갈아치우는 엽기적인스킬! 어이가 없는 장면이었지만 효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저 뼈를하나 갈아 치웠는데 능력치가 올라간 것이다 그에 따른 패널티도 작용했지만 쓸모없는 운이 5만큼 내려간 건 그리 신경 쓸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몬스터의 뼈를 갈취할 수 는 없겠지만, 요리 이외의 방법으로 능력치를 올릴 방법이 생긴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데이모스가 데드릭보다 빨리성장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모처럼 고생해서 ㅁ나들어준 몸을 제멋대로 갈아 치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아크는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이득이 있다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좋아, 데이모스. 뼈 수집, 마음에 들었다." 단 하나 아쉬운점이 있다면 데이모스와 본 블레이드를 함께 사용할수 없다는 점이었다. 워릭의 특성을 이업다아 데이모스가 본 블레이드로 변신하는 것이다. 본 블레이드를 채찍으로 사용할수 있다고?' 모르는 건 직접 해보는게 제일빠르다. "해골........아니, 데이모스 .검화!" 아크의 명령에 데이모스의 몸이 접히며 본 블레이드로 변신했다. 들고 휘둘러 보니 이전과 별로 달라진점은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손잡이 부분에 못 보던 금속 물체가 달려있었다. 마치 스위치처럼생겼다.아크는 혹시나 싶어 금속 물체를 반대방향으로 돌려놓고 다시 휘둘러보았다. 철컥, 촤라라락, 콰쾅! "뭐, 뭐야?" 아크는 기겁했다.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척추 뼈와 같은 검신의 뼈와 뼈사이가 고무줄처럼 늘어나 5미터 거리의 나무를 후려쳐버렸다. 아크는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짓다가 다시 반대편 바위를향해 검을 휘두렀다. 거리는 대략 6미터.그러나 검신이 쭉 늘어나며 단숨에 바위에 직격했다. "이,이거.......굉장하잖아!" 휘두를 때마다 늘어나는 검! 아크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여기저기에 검을 휘둘러 보니 사정거리는 대략 7미터 안팎이었다. 장거리 무기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검으로 7미터 밖의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그뿐이 아니다. 팍,팍,팍,팍,콰쾅! 아크가 길게 검을 휘두르자 줄지어 있던 나뭇가지들이 차례로 잘려 나갔다. 장거리만이 아니라 한 번에 다수의 적을 공격할수 있다는 뜻!아쉽게도 채찍으로 사용하면 공격력이 30%나 감소하지만 활용하기에따라서는 엄청난효과를 낼수도 있는 무기였다.게다가 사용법도 채찍만큼 어렵지 않았다. 단단한검이 늘어나는 것뿐이라,목표를 정하고 검을 휘두르면 십중팔구는명중했다. "이런 무기가 있다니!" 며칠동안 인체 골격 도감을 뒤적이며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아크가 기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있을 때였다. 쿠르르르, 콰쾅! 콰콰콰쾅! 그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났다 .대지가 흔들린다 싶더니 돌연 지저 세계가 통째로 뒤흔들리며 괴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굵은 균열이 번지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엇? 뭐, 뭐야?" 발밑이 푹 꺼져 들어가 아크는 황급히 몸을 날리며 바닥을 굴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갈라지 지면에서 시꺼먼 기운이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아크형!" 그때, 마을 쪽에서 포포가 다급한 얼굴로 달려왔다. "포포, 이게 무슨 일이냐?" "나, 나도잘 모르겠어. 장로님이 빨리 형을 찾아오래!" ACT 5 타락한 이그드라실 "지진이다!" "모두 광장에 집결하라!" 마을에 들어서자 너구리족 병사들도 혼란에빠져 우왕자왕했다. 아크는 일단 몇몇 부대장에게 혼란을 진정시키라고 명령하고 장로를 찾아갔다. 장로는 얼굴이 뱃짓장처럼 질린채 와락 달려들었다. "아, 아크!" "무슨 일입니까?" "니드호그가........이 지진의원인은 니드호그가 분명하네" "니드호그? 그게 대체 뭡니까? 좀 진정하고 말해 보세요" "우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악한 마신, 스바르탈프헤임보다 더 깊은 곳에 사는타락한 드래곤이네!그리고 암흑 세기에........어둠의 제왕을따르던 여섯 마신 가운데 하나야" "예?"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다. 암흑 세기? 마신? 타락한 드래곤? 대체 무슨 얘기를 한는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그드라실이 아니었나? 아크가 도통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장로가 와들와들 떨며 설명했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 이 북부 대륙은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을 전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니드호그라는 이름역시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드래곤이다. 북유럽 신화에 설명되어 있는 니드호그는 이렇다. 지하세계인 스바르탈프헤임보다 더 깊은 곳에는 니플헤임이라는 얼어붙은 안개와 암흑의 땅이 존재한다. 흔히 지옥이라고 부르는 헬도 니플헤임의 일부였다. 니드호그는 이곳에서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뿌리를갉아먹으며, 지옥에 떨어진 시체를 먹는 드래곤이었다. 여기까지가 아크가 아는 토막상식. "사실 이곳은 암흑세기 당시, 7인의 영웅이 니드호그와 격전을 벌였던 장소네. 그리고 오랜 전투 끝에 니드호그와 그가 이끄는지옥의 군대를 해치울 수 있었지. 그러나 7인의 영웅의 힘으로도 니드호그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없었어. 때문에7인의 영웅은 임시방편으로 니드호그와 지옥의 군대를 니플헤임에 가두고 성수 이그드라실의 힘르 빌려 봉인해 놓았던 거네" "그럼 이그드라실이 타락해서......." "이그드라실이 약해진 틈을 타서 니드호그가 봉인을 꺠고 있는 거야!" 장로가 머리를 감싸 쥐며 악을 써 댔다. "그래서 말했지 않나? 빨리 이그드라실을 찾아가야한다고!" "하지만 그런사정은 한마디도 말해주지 않았잖아요" "그건 너구리족의 금기란 말이야" 장로는 지지않고 받아쳤다. "너구리족은 7인의 영웅과 약속했어. 스바르탈프헤임을 외부와 격리시키고 너구리족의 영지로 인정받는 대신 니드호그의 봉인에 대한 비밀을 지키기로 말이야" "7인의 영웅과?" "그래,그래서 이 위에 눈가림용 도시까지 만든건데.........." 장로의 입에서 놀라운 비밀이 밝혀졌다. 지저 세계는 처음부터 외부와 격리되어 있던게 아니었다. 7인의 영웅과 너구리족의 맹약에 따라 지하미궁이 입구를 막아서게 된 것이다. 카이로트를 세웟던 노룬 1세 역시 7인의 영웅을 따르는후손 가운데 하나, 당시 점차 지하 미궁에 침입하는 야만족들이 많아지자 봉인의 비밀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노룬 1세가 카이로트를 세우고 병사들을 동원해 야만족의 접근을 막아냈다. 그러나 수백년이 흐르는 사이, 노룬 1세의 의지는 사라지고 카이로트는 단순한 무법도시로 변모해 간것이다. '다른 수인족조차 너구리족의 위치를 몰랐던게 그런 이유였나?'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서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 다른 게임이라면 그곳에 그런 것이 있었다. 라는 설정만으로 모든 상황이 끝난다. 지저 세계든, 해저 도시든 그냥 그곳에있으니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뉴 월드는 다르다. 지저 세계든 해저 도시든 심지어 작은 마을까지 그곳에 있어야만 할 이유와 개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지역에 어떤 몬스터가 많이 서식한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과거의 전설,전승,혹은 역사적인 사건으로써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시나리오로 귀결된다. 바로 암흑 세기...........! 순간 아크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심혼의 구슬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니드호그의 봉인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붉은 남자의 목적은 처음부터 그것이었나?' 아크는 붉은 남자라는 NPC를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붉은 남자를 단순한 퀘스트 관련 NPC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이 니드호그와 연관이 있다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7인의 영웅과 암흑의 제왕 그리고 발데라스가 예언했던 어둠의 부활과 관련이 잇는 시나리오에서 막중한 역활을 하는 NP일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작센 영지에서 일어났던 발데라스의 부활도 붉은남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모든 단서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맞아 떨어졌다. 발데라스는 자신이 어떻게 부활하게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만약 그게 발데라스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그를 부활시켰다는뜻 .시기적으로 봐도 대강 맞아 떨어진다. 마법 학회에서 심혼의 구슬이 도난 당한 건 1년전,그러나막상 붉은 남자가 심혼의 구슬을가지고 사라진 건 이벤트 퀘스트가 끝난 뒤였다. 그사이의 공백........ 붉은 남자가 작센 영지에서 모종의 사건을 꾸미고 있었다면 앞뒤가 들어맞는다. '만약 내 짐작이 모두 사실이라면......붉은 남자야마라로 모든 뉴 월드 시나리오의 열쇠를 쥐고 있는핵심 NPC!'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어쩌면.............어쩌면..........!' 글로벌엑서스에서 말했던 합격 조건 아직 그 조건이 퀘스트인지, 이벤트인지도 밝혀지지않았다. 그러나 붉은 남자는 뉴 월드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사건을 일으키는 NPC! 어쩌면 그자에 대한 단서를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바로 글로벌엑서스에서 요구하는 해답일지도 모른다. 아니, 만약 아크의 추리가 정확하다면 틀림없다.그리고 설사 그게 글로벌엑서스에서 요구하는 해답의 전부가 아니라도, 이벤트 퀘스트와 관련된 NPC를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줄수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시 뉴 월드의 모든것은 암흑 세기와 7인의 영웅과 관련이 있어. 그래,입사 시험의 합격 여부는 그 전설에 얽힌 시나리오에 있을게 분명해!' 드디어 단서를 찾아냈다. 글로버엑서스에서 요구하는 해답! '작센 이벤트 퀘스트의 리포트를 보냈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그건 단순히 단서를주기위한 것에 불과했구나.역시 글로벌엑서스다. 그렇게까지 용의주도하게 시나리오를 짜놓고 입사싷멍르 치르다니.........' 눈앞이 확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응시자들은 과연 얼마나 많이 이런 단서를 찾아냈을까? 물론 글로벌엑서스에서 몇 명을 뽑는다고 했으니 다른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어쨌든 아크 역시 단서를 찾아냈으니 이제 해야 할일이 좀더 명확해졌다. '일단 니드호그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 단서를찾았다고 해도 해결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게 사건을 해결하면 분명 차곡차곡 점수가 쌓일거야'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니드호그가 부활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파멸.....파멸이네!니드호그는 암흑 세기 이전부터 북부 대륙 전체를 죽음의 나락으로 몰고갔던 마룡이야. 오히려 암흑의 제왕이 나타나 놈을 굴복시켜서 북부 대륙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수 있지. 하지만 이제 놈을 제지할 암흑의 제왕도 없네. 놈이 깨어나면.......지저 세계는 물론이고 북부 대륙은 불과 몇 달 만에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릴거네" "부활을 저지할 방법은?" "봉인이 깨지기 전에 이그드라실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수밖에 없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말이군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순간,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올라왔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지저 세계의 평화를 되찾아라!=니드호그의 부활을 저지하라! 당신은 스바르탈프헤임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스바르탈프헤임의 지하에는 과거 북부 대륙을 멸망으로 이끌던 마룡 니드호그가 봉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이 타락해 봉인이 약해져 니드호그가 다시 지옥의 군대를 이끌고 부활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니드호그가 부활한다면 북부 대륙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될겁니다. 니드호그의 부활을 막는 방법은 오직 이그드라실을 구해 내는 방법뿐입니다. 당신은 너구리족의 전사들을 이끌고 봉인이 꺠지기 전에 이그드라실을 구해 내야 합니다. 현재 봉인 파괴율 : 30% <난이도 : ☆☆☆ 퀘스트 제한 : 다크 워커>] 콰콰콰쾅! "1진 중장병 후퇴!2진 포병, 1진을 엄호하라!" 중장병이 뒤로 물러나자 후위에서 포병들의 불꽃이 작열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가 플랜트 골렘의 몸에서 폭발했다. "3진 공병, 1진 중장병의 회복에 전력을 기울여라!" 그사이, 땅굴을파고 숨어있던 공병들이 기어 올라와 1진에게 포션을 뿌려댄다. 다시 생명력을 회복한 중장병이 달려들자 플랜트 골렘도 더 이상 버티지못하고 쓰러졌다. "휴식할 시간이없다. 이동하며 포션으로 회복한다. 서둘러!" 아크는 너구리 부대를 다그치며 소리쳤다. 퀘스트가 갱신된 이후 아크는 그야말로 탱크처럼 밀어붙였다. 니드호그가 난리를쳐 준 덕분에 붉은 남자가 입사 시험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건 알아냈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퀘스트에 봉인 파괴율이라는 시간제한이 걸려 버린것이다. 제한시간을 넘기면당연히 퀘스트는 실패. 지저 세계는 멸망한다. <니드호그의 부활을 저지하라!>퀘스트가 실패로 끝나게 되면오랫동안 공들여 온 < 심혼의 구슬을 찾아라 III>퀘스트도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높았다. 그러나 정작 큰 문제는 퀘스트 실패가 아니다. 이그드라실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삼신기도 얻지 못하게 된다. 굵직한 퀘스트2개와 전직에 필요한 아이템이 동시에 날아가는 것이다. 물론 삼신기야 전직 관련 아이템이니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지저 세계조차 절반은 행운으로 찾아냈다. 다시 처음부터 단서를 모아 찾아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또한 입사 시험을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결국 모든게 이번 퀘스트에 걸려있다.' 아크는 마을을 탈환해도 들르지 않았다. 병력과 장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마을에서 최소 2시간 .마을에 들르기는 커녕 회복하는 시간조차 아껴야 한다. 봉인 파괴율이 시간으로 표시되지 않으니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그나마 몬스터들도 혼란에 빠져 있어 다행이다.' 아크는 미친듯이 뒤흔들리는 지저 세계를 둘러보았다. 지진은 진군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니드호그가 봉인을 지금도 계속 부수고 잇으니 당연한 결과 였다.쉬지 안고 굉음이 울리고, 갑자기 바위가 치솟아 오르거나,대지가 쩍쩍 갈라진다.방금 전에는 숲 하나가 통쨰로 함몰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으아악, 사, 살려줘!" "균열이다가온다. 피해!" 덕분에 너구리 부대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엿다. 몬스터도 갑자기 생겨난 크레바스에 추락하거나, 지진을 피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대부분 너구리 부대를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무렵, 포포는 기묘한 능력을 각성했다. "아크형, 이쪽은 위험해. 오른쪽으로선회해야해" 포포가 그렇게 말하면 십중팔구 앞에서 크레바스가생겨났다. 대체 어떻게 갑자기 그런 능력이 생겼는지는알수 없었지만,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떄가 아니었다. 몇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아크는 아예 진군로를 포포의 선택에 맡겨 버렸다.그리고 정신없이 진군하기를 3시간. "이그드라실이다!" 선두의 병사들이 소리쳤다. "저게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세계수...........!" 아크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끝없이 펼쳐진밀림의 중심, 우뚝 솟아오른 언덕에 마치 지저 세계의 천장을 홀로 짊어지고 있는듯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세상 모든 곳에 뿌리를뻗고 있다고 전해지는 너구리족의 수호목, 이그드라실이다. 모든 사건의 핵심답게 언덕 주변에는 수많은 강글과 플랜트 골렘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회는 단 한번뿐이다. 만약 이번에 패퇴하면 다시 병력을 수습해서 돌아올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고 무턱대고 달려들수는 없었다. "데드릭, 1진 중장병은 A-4플랜으로 적을한 부대씩 유인한다. 2진 포병은 대기하고 있다나 A-1플랜으로 집중 공격.3진 공병은 1진을 백업한다. 너는상공에서 다른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변동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았다" 바쁠수록 돌아가라. 아크는 그 격언대로 조급함을 억누르고 너구리 부대를지휘했다. 포포의 예지를 활용하며 미리 지형의 변화를예측,강글과 플랜트 골렘을 따로 떼어 놓고 집중 공격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너구리 병사들도 상황의 다급함을 알고 있어 어느 떄보다도 적극적이었다. 불과 2시간 만에 사냥한 플랜트 골렘만 거의 이십여마리.강글은 수백 마리나 되었다. 너구리 부대의 머리위로 정신없이 십자 마크가 떠오르며 레벨과 스킬이 올라갔다. 아크 역시 레벨이 108이 되었고,전술 스킬 숙련치도 상당히 올라갔다. 그때,데드릭이 날아왔다. "주인,이제 주변 정리는 끝났다.이그드라실까지는 몬스터가 없어" '좋아, 올릴수 있는 레벨과 숙련치는 지금이한계다. 준비는충분해. 승부를건다!' 아크는 곧바로 너구리 병사들을 모아놓고 그동안ㅇ 아껴오던 전사의 쿠키를 몽땅 팔아 버렸다.게걸스럽게 쿠키를 먹어치운 너구리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어깨를 들썩였다. 사기가100% 올라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슈퍼 너구리가 된 것이다. "이쪽이야!" 앞서 나간 포포가 한곳을 가리켰다. 둘레가 몇 킬로미터는 되는 듯한 거대한 이그드라실의 아래, 거대한 동굴처럼 가라진 틈이 있었다. 갈라진 틈이라고는하나,100여명이 횡으로 늘어서서 들어가도 될 만큼 거대한 공간이었다. 아크는 입구 앞에서 일단 행군에 지장을 줄 부상자들을 분류했다. "싫어, 나도 형하고 같이 싸울거야!" "이 앞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해질거야. 너를보호해 줄 여력이 없을지도 몰라" "보호 따위는 필요없어. 나는 너구리족 전사야!혼자서라도 들어갈거야!" ".......알았다. 그럼 내옆에서 떨어지지마. 알았지?" "응, 내가 형을 지켜줄게!" 단검을 휘두르며 댇바하는 포포. 아크는 한숨을 불어냈다. 정말이지 가능하면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포포하나 땜누에 실랑이를 하고있을 시간이 없다. -봉인 파괴율 : 68% '빠듯하다' 아크는 정보창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진격을 명령했다. "돌격하라. 고지가 눈앞이다!" 아크는 병력을 이끌고 이그드라실의 내부로 진입했다. 광석의 빛조차 닿지 않아 내부는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게다가 어딘가에서 검은 기운이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 숨까지 턱턱 막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군데군데 두꺼운 나무줄기가 뒤엉켜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장로를 돌아보며 물었다. "장로님?" "모,모르겠다. 내가 다닐때는 이렇게 어둡지 않앗고 복잡하지도 않았어" "변형돼 버린건가? 할수 없지. 데드릭, 앞서가서 지형을 알아봐라" 아크의 명령에 데드릭이 앞서 날아가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곧 다시 돌아와 고개를 저었다. "안돼 ,너무 복잡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어" "미치겠군. 1진 중장병, 앞장서서 길을찾아라" "네!" 그렇게 어둠 속을 더듬어 가기를 몇 분.......... 쇄에에액, 콰콰쾅! "헉, 무슨 소리지?" "공격이다. 피,피해!으아아악!" "크악!" 어둠 속에서 뭔가 거대한 물체가 날아들며 너구리 부대를공격했다. 고양이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엄청난 두께의 넝쿨이었다. 이그드라실의 내벽 여기저기에서 넝쿨이솟아나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해오는것이었다. "당황하지말고 진형을 유지해라. 1진 중장병은 원형진으로 부대를 보호하고, 2진 포병ㅇ느 A-3플랜으로 탄막을 펴라!3진공병, 부상자 구조에 전념하라" 어둠속에서 날아드는 무시무시한 공격!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이었지만 ,너구리족은 이미 사기가 100%올라간 상태다. 덕분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너구리족은 아크의 명령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소나기처럼 쏘아진 대포가 섬광을 일으키며 작렬했다. 연쇄적인폭발에 넝쿨 3~4개가끊어져 나가갔다. 그러나바닥을 따라 또 다른 넝쿨이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아크 형, 넝쿨하고 싸우는건 아무런 의미도없어!" 포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소리쳤다. "이넝쿨은 이그드라실그 자체야. 넝쿨을 모두끊어 낸다 해도 다시 재생될거라고!서둘러 이그드라실의 핵을찾아 타락시킨 원인을 제거해야해!" "알고 있어!" 아크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정도는 상호아만 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대체 사방에서 몰아치는 넝쿨을뚫고 어떻게 병력을 이동시키라는건가?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뭔가가 떠올랐다. "그래,그거다!" 아크는 곧바로 란셀의 검을 가방에 챙겨 넣고 '검과'를 사용해 데이모스를 본 블레이드로 바꿔 들었다. 본 블레이드...........란셀의 검보다 공격력이 좋지만 소환수 보너스가없어서 사용하지 않았던 검이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공격력보다 특수 효과가 더 필요한 시기다. "뱀, 모든 아이템을 가방으로 돌려! 가방 공간이 부족하면 쓰레기 잡템은 버려도 돼!" 쌕쌕쌕! 뱀이 빠르게 아크의 몸을 타고 올라와 가방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미친듯이 아이템을 토해냈다. 곧가방이 다 차서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아이템도 있었다.1쿠퍼짜리라도 포기하지 않는 아크로서는 눈물이 핑 도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아까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뱀, 마비 독이다!" 뱀이 다시 허리로 들어오자 아크가 독초를 먹이며 소리쳤다. 이미 체내에서 맹독을 만들어 낸 뱀이 독액을 내뿜었다. "간다!" 독액을검에 바르고 ,스위치를 채찍으로 바꾼다. 극 작업을 몇 초만에 해치워 버린 아크는 몸을날리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넝쿨을 향해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촤라라락, 검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반경 7미터내의 모든 넝쿨을 가격했다.맹독의 사용 횟수는다섯번, 그러나 검을 채찍처럼 사용하자 일격에 다섯 번의 사용횟수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아들던 6개의 넝쿨 가운데 3개가 마비에 걸려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많은 적을 공격하니 맹독발동 확률이약간 떨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독초라면 널널하다. "게속 맹독을 만들어라!" 아크는 쉬지 않고 뱀에게 독초를 먹엿다. 그리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렀다. 너구리부대를 공격하던 20여개의 넝쿨이 모두 마비에 걸려 바닥에 떨어졌다. 아크는 넝쿨을 공격하는 너구리부대를 제지하며소리쳤다 "넝쿨을 공격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넝쿨은 우릴 따라오지도 못해!" 너구리부대 역시 중장병을 전후에 배치해 넝쿨의 공격을막으며 진격했다.그러나 미로처럼 되어 있는 던전을 들어감녀 들어갈수록 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결국 완전히 방향 감각을 상실해 어디가 어디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그사이에 너구리 부대는넝쿨의 공격에 하나 둘 쓰러져 갔다. 처음에 300명이었던 것이 무리를 해 가며 이그드라실까지 오느라 200으로 줄었고, 다시 이그드라실의 내부에서 150으로 줄어들었다. '젠장, 이대로 병력을 더 잃게 되면........' 이그드라실을 타락시킨 원인은분명 쉽게 없어져 주지않을 것이다. 십중팔국 보스전이 벌어질 터 .+C라는 난이도를생각하면 너구리 부대의 병력 보존이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솔직히 지금 상태로는 병력보존보다 이그드라실의 핵을 찾는것조차 가능할지 장담할수 없다. -봉인 파괴율 : 80% 입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또다시 모퉁이 하나를 돌아섰을 때였다. 갑자기 가방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뭐지 ?이건......별의 조각?' 가방을 열어보니 삼신기의 하나, 별의 조각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크가 혹시나싶어 별의 조각을 꺼내들자 장로가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중얼거렸다. "별의 조각!그렇군, 자네에게는 별의 조각이 있었지!" "무슨 말입니까?" "이그드라실의 핵에는 또 다른삼신기가 있네. 그리고 전설에 따르면 삼신기는 일정 거리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끌린다고 들었네" 이런 멍청한 너구리 같으니!그걸 이제야 말해? 아크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꾹 눌러 삼켰다. 생각 같아서는 확 수염을 몽땅 뽑아버리고 싶었지만그런 화풀이나 하고 있을 떄가 아니다. 웅웅웅,과연 별의 조각을이리저리 움직여 보자 빛이 강해졌다. 그리고 자식처럼 한쪽에서 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이쪽인가!' 상황을 판단한 아크가 곧바로소리쳤다. "전원 방어 태세!다른건 신경 쓰지말고 오직 내 뒤만 쫓아온다. 안타깝지만 낙오자를 신경 쓸 시간 여유가 없다. 이번 전투는 지저세계뿐 아니라, 대륙의 사활이 걸려있다.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니드호그의 부활을 저지해야 한다!" "우오오오!" 아크는뒤도 돌아보지않고 맹렬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너구리족 병사들은 방패를 머리에 인 자세로 넝쿨 공격을 막아내며 뒤쫓았다. 쉬지않고 날아드는 공격에 몇명이 쓰러졌지만 고개를 돌릴 여유도 없었다 .그들을 돕느라 걸음을 멈추면 다시 넝쿨에게 포위되어 시간을 잡아먹는다. "크윽,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마약 기운에 살짝 건 덕에 제법 기특한 소리도 한다. 물론 아크는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렸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오면 별의 조각이 더 강한 빛을 내는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미친듯이 몰려드는 넝쿨을쳐 내며 내달리기를 수십분........... 돌연 주위가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형, 도착했어!여기가 이그드라실의 중심부야!" 포포가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아크와 너구리 부대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공동이었다.그 중심,뭔가 거대한꽃봉오리 같은 것이 솟아올라 있었다. 안쪽에 주먹만 한 크기의 수정구각 박혀 있었다. 그런데 수정구가 박혀 있는 주변은 섞은살점 같은 괴상한 것이 부스럼처럶 엉겨 붙어 있었다. 두근,두근,두근............. 괴상한 살점들이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한번씩 맥박 칠때마다 불길한 느낌의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 나왔다. 한눈에 모든 정황을 알아낼수 있었다. '저 수정구가 이그드라실을 타락시킨 심혼의 구슬이다!' "1진 중장병,2진 포병!저 수정구에 총공격을퍼붓는다!" "우와아아아아아!" 중장병이검과 창을 뺴들고 달려갔다.그러나 먼저 수정구를 공격한 것은 포병이었다. 포병이 대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50개의 포구에서 불꽃이 뿜어지고 탄호나이 어둠을가르며 날아갔다. 막 결정에 적중되려는 찰나! 돌연 봉우리 주변의 잎사귀들이 솟아오르며 수정구를 보호하듯 감까 앉았다.그러자 모든 탄환은 잎사귀를 들이받고 섬광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주변에서 수비 줄기의 넝쿨이 솟아 나와 몰려드는 중장병을 후려쳤다. "크아아악!" 중장병들이 한쪽으로 와르르 넘어져 버렸다.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보스 몬스터 '각성한 심혼의 구슬'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스캔본에 한장이 빠져있네요...;;) 고치가 외벽을 따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마을을 탈환했을 때 봤던 것의 수십배에 달하는 크기의 고치.그 고치 몇개가 꿈틀꿈틀하며 반으로 갈라졌다. 뒤이어 기어나온 것은........! '플랜트 골렘!' 온몸이 나무껍질로 뒤덮인거인이 고치를 찢으며 기어나온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솜털이 바짝 솟았다. '맙소사.........만약 모든 고치가 부화한다면..........!' 공동 안에는 백여마리의 플랜트 골렘이 득실거리는 곳으로 변하게 된다. 전 병력을 모두 집중시켜도 대여섯 마리를 상대하기도 힘든 플랜트 골렘 백여 마리에게 포위된다면 뒤이어 벌어질 상황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공격전환!1진 중장병은 플랜트 골렘을 막아라. 2진 포병을 꿈틀거리는 고치를 공격해라!" 아크가 소리치자 50문의 포문이 고치를 향해 불을 뿜었다.그러나 그런 형태의 고치는 방어력이 엄청난게 일반적인 상식. 유명한 고전 RTS게임 스타크래O트의 저그도 고치 상태에서는 짜증 날 정도로 강하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고치의 방어력을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100발을 얻어맞은 뒤에야 겨우 고치하나가 폭발하며 미완성된 플랜트 골렘의 시체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세마리의 플랜트 골렘은 부화를 끝내고 기어나왔다. '미치겠군. 무슨 보스의 난이도가.......' 전력을 집중해도 제한 시간 내에 입사귀를부술수 있을지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넝쿨의 공격도 모자라 플랜트 골렘까지 쉬지않고 부화하다니!덕분에 중장병은물론이고, 포병들까지 부화하려는고치를 공격하느라 정작 잎사귀에는 공격할 여력이 없었다. 150이 아니랄 300~400명의 너구리 부대가 있어도 부족할 지경이다. -봉인 파괴율 : 86% '뭐, 이런 객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이런 식으로 대체 어떻게 보스를 깨라는 거야? 제한 시간 내에 수정구를 부수기는 커녕,그 이전에 전멸할 판이잖아!' 정말 한도 끝도 없었다. 간신히 고치 하나를 파괴하면 또 다른 고치가 꿈틀거린다. 게다가 잠시라도 신경을 쓰지못하면 넝쿨이 날아들었다.그렇게 일단 밀리기 시작하니 정심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수습해 나가야할지 감을 잡을수 없었다. 그나마 아크가 맹독과 본 블레이드 콤보로 넝쿨을 마비시켜 시간을 버는게전부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0초 뒤에 넝쿨이 마비에서 풀리면 결국 마찬가지였다. '하다못해 이 넝쿨만 없어도 여유가 생길텐데, 저 두꺼운걸 다 묶어 버릴 수도 없고........가만, 묶어?' 아크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일어난건 그때였다. '맞아, 혹시 그게 통할지도........아니, 내생각이 맞다면확실히 통한다. 단번에 넝쿨과 플랜트 골렘을 봉쇄할수 있어!그리고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결정을 내린 아크는 곧바로 명령했다. "1진 중장병 진격!전력을 다해 봉우리를 공격한다!2진 포병은 플랜트 골렘의 고치만 공격한다. 3진공병, 포병에게 공격력 상승 포션을 마구 쏟아 부어!" "하지만 그렇겍 되면넝쿨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포포가 헐떡거리며 되물었다. "그건 내게 맡겨!검화 해제!" 순간 본 블레이드가 빛에 휩싸이며 데이모스로변했다. "데이모스, 나를 보호해라" 딱딱, 딱딱딱! "뱀, 영체 접착제!" 뱀이 입을 크게 벌리며 거대한 접착제를 뱉어냈다. "이제 나머진 우리의 몫이다!데드릭, 전력을 다해 넝쿨을 이쪽으로 유인해라!" "에엑? 정말 괜찮겠어?'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해!" "흥, 그럼 나는 어떻게 돼도 몰라.자, 이쪽이다!눈도 업는 넝쿨아!" 데드릭이 날개를 활짝 피며 날아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공중을 날아다니며 넝쿨을 후려치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수십 개의 넝쿨이 발끈해서 데드릭을 쫓아 날아들었다. 그리고 ㅁ가 내려치려는 찰나, 살짝 방향을 바꾸자 넝쿨이 아크에게 떨어져 내렸다. "잘했어!" 아크가 빠르게 몸을 날리며 접착제를 뿜어냈다. -......우어어어,다 붙어 버리겠다! 녹색 점액질.........엑토플라즘이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엑토플라즘에 휘감긴 채 후려쳤던 넝쿨은 그대로 바닥에 철썩 달라붙어 버렸다.너쿨은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몇번이나 꿈틀거렸지만 그럴수록 더욱 복잡하게 얽혀갈 뿐이었다. '성공이다!' 아크는그대로 엑토플라즘을 휘날리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데드릭이 넝쿨을 유인해 오면 살짝 피하며 엑토플라즘을 난사한다. 그리고 점액질을 길게 늘이며 다른 넝쿨을 휘감았다 .그러면 두 넝쿨이 엉겨 바닥에 붙어 버렸다. 영체 접착제의 사용 횟수는 고작 다섯번. 이미 두 번을 사용했으니 세번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사용할 때의 용량은 제한이 없다. 재료가 영체인 엑토플라즘이라 길이가 무한대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달라붙으면 부수기 전에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콰쾅! 불의의 기습은 모두 데이모스가 막아주었다. 워릭과 합성 진화를 한덕에 데이모스이 생명력은 1,000이 넘어간다.게다가 방패까지 생겨 방어태세를 굳히면 방어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데드릭, 여기는 정리 끝났ㄷ. 그쪽 넝쿨도 이쪽으로 유인해!" 그렇게 엑토플라즘을 휘날리며 정신없이 공동을누비기를몇 분, 수십 줄기의넝쿨들이 모두 바닥과 벽에 달라붙어 버렸다. "우하하하!어떠냐 ,나무 자식아!" 아크는 기왕 시작한 김에 엑토플라즘으로 고치들까지 휘감아 버렸다. 플랜트 골렘은 고치를 찢고 나오니 완벽한 봉쇄는 되지 않았ㄷ. 그러나 이미 찢어지기싲가한 곳을 붙여 버리면시간을벌수 있었다. 그렇게 넝쿨과 고치를 붙여 버리자 이그드리실은 아무런 공격도 못했다. '이거..........막상 써보니 엄청난 아이템이잖아!' 아크는 새삼 영체 접착제의 효능에 감탄했다. 부서진 레버를수리해 문을 열고, 해골의 몸을 만들어주어싿. 그리고 이제는 단 한번의 사용으로 +C난이도의 보스몬스터를 공격 불능 상태에 빠트린 것이다. 처음에는이게 뭔가 싶었지만 막상 써보니 무궁무진한 활용법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쳇, 이렇게 되니 되게 아갑네. 남은 횟수는 두번,막써서는 안되겠군' 어쩄든 영체 접착제 덕분에 이제 승기를잡았다. 남은 것은............ "좋아,이제 거칠것 없다!무조건 돌격!" 아크가 추가 전술 스킬을 사용하자 너구리 부대가 와르르 몰려들었다. 중장병은 봉우리를 기어오르며 검을 휘둘렀고, 포병은 미친듯이 대포를 난사했다. 심지어 공병까지 폭발 포션을집어던지며 공격을 퍼부었다. 150명의 너구리 부대가 퍼붓는 무지막지한 화력! 점차 잎사귀들이 시들듯 말라 비틀어지며 하나둘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잎사귀가떨어져 나가고 수정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잎사귀의 보호를 받던 수정구는 생명력도 방어력도 그리 높지 않았다 .불과 몇 분 만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생명력이 2%까지 떨어져 버렸다.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인건 그때였다. "전군, 무조건 퇴각!" "에에?" 아크의 명령에 너구리 부대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이제 고지가 눈앞인데 퇴각이라니? 그러나 추가 전술은 NPC에게 절대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스킬.너구리족은 영문모를 표정을 지으면서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이다.블레이드 스톰!" 아크가 검 하나를 꺼내들며 스킬을 시전했다. 필살기 블레이드 스톰의 눈 부신 특수 효과가 발동되었다.검이 조각조각 부서지며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내 한 무리로 결집된 검 파편들은 은하수를 그리며 수정구에 쏟아졌다. 수백 개의 파편 X5의 공격력! 날카로운 충돌음에 뒤섞여 수정구 내부에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던 검은기운이 멈췄다. 그리고 이내 힘을잃은 수정구가 봉우리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동시에 정신업이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하나,둘, 셋.............여,여덟번!' 심혼의구슬이 힘을 잃으며 올라간 레벨은무려 8! 아크가 마지막 순간에 무조건 퇴각을 명령한 건 바로 보스몬스터가 주는 이 무지막지한 경험치를 독식하기 위해서였다. 레벨이 무려 400이나 되는 보스 몬스터! 엄청난 경험치 덩어리였다. 그런 경험치를 너구리 따위와 나눠 먹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여기서 토막 상식하나, 뉴월드에는 1회 습득 경험치에 제한이 있었다. 보스 몬스터나 퀘스트 완료로 한번에 몇 단계나 레벨이 상승하게 될경우, 모든 경험치가 100%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처음레벨이 오를 때는100%,그러고도 경험치가 남아 단숨에 2레벨이 오를때는 90%,3레벨에 적용될 때는 80%........이런 식이다. 즉, 경험치가 상상을 초월하는 보스 몬스터를잡거나,아무리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를 완료해도 한번에 올릴수 있는 레벨은 최대 10을 넘길수 없다. 그런 패널티가 적용되는데도 무려8레벨! 천문학적인 경험치였다. '우하하하, 한 번에 8레벨 업이라니!'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너구리족 병사들은 똥 씹은 표정이되었다. "치사하게..............." "아깝다.쩝" 그러나 그런 말에 눈하나 깜빡할 아크가 아니다. 뭐, 어쨌든 덕분에 지저 세계를 구했으니 너구리족도 만족했으리라. "해,해냈어!아크 형이 해냈어!스바르탈프헤임을구했다고!" 포포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리쳤다. "그래,약속했잖아. 이 형님은 약속을어겨 본적이 없어" 아크가으스대며 포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심혼의 구슬 취급 주의!심혼의 구슬은 고대 마력과 저주가 서려 있는 수정구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심혼의 구슬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이성을잃고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제모든 마력을 잃어 평범한 구슬에 불과합니다.] '역시 이게 심혼의 구슬이었군' 아크는수정구를 집어들고 한숨을 불어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로써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다. "자, 이제 끝났다. 모두 수고했다" 쿠-쿵! 아크가 너구리 부대를 치하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였다. 돌연 공동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멍하니 봉우리를 바라보던 포포가 경악성을터트리며 몸을날렸다. "아, 아크형!위험.........크윽!" 아크는 포포에게 떠밀려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반사적을 고개를 들어 올리다가 이내 숨을 돌이켰다. "포, 포포!" 방금 전의 충격으로 봉우리가 있던 바닥에 거미줄처럼균열이 번져 있었다. 그리고 그틈에서 튀어나온 시꺼먼 형체가 포포를 후려친 것이다. 포포는 일격에생명력이 90%가 깎여 나가며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크가 황급히 달려가 포포를 안아들었다. 우우우우! 그때, 균열 아래에서 섬뜩한 울림이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그때였다. 균열아래, 그곳은 끝도 보이지 않는 암굴이었다. 그 암굴의 벽을 따라 개미뗴와 같은 검은형체들이 기어올라오고있었다. 온몸이 열기에 그을린 몬스터들, 그러나 더욱끔찍한 것은 그 검은 형체들의 중심에 서있는 거대한 존재였다.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찢여 있는 시뻘건 눈동자의 드래곤.수십 미터는 족히 될만한 거대한 드래곤이 검은 ㅎ여체들을 짓밟으며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지옥에서 악마가 기어 올라오는 듯한 광경. 외형에서 느껴지는 느낌도 끔찍했지만,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공포는 드래곤 머리위에 떠 있는 정보였다. 불사군단장 니드호그.레벨500! 7인의 영웅에게 봉인당했던 북부 대륙의 악몽! 숨이 턱 막혔다. '맙소사!' "대체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 심혼의 구슬을 부쉈는데 왜 니드호그가?" "미,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장로가 공황 상태에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뭐? 뭘말입니까?" "니드호그를 봉인하고 있던 것은 이그드라실의 신성한 힘............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심혼의 구슬을 부수기 위해........이그드라실에게도 그만큼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그래서 이그드라실의 힘이 약해지는 바람에 봉인까지............." "무슨 그런...........!" 콰콰쾅! 그때 다시 한번 굉음이 울리더니 균열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틈으로 지옥의망자 몇마리가 기음을 발하며 기어나왔다. "너구리 부대, 정신 차려!공격, 공격해!" 너구리 부대가 화들짝 놀라며 공격을 퍼부었다. 포격을 받은 망자들은 뒤로 주르륵 밀려나더니 다시 균열 속으로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암굴. 니플헤임에서 기어올라오는 지옥의 망자는 수백수천!거기에 니드호그까지 밖으로 기어 나오면........... '빌어먹을,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어!' 아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 나갔다. 이제 믿을수 있는건 영체 접착제뿐이다!아크는 접착제를 사용해 균열을 메워버렸다. 그렇게 균열을 모두 붙여 버리자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역시임시방편,이내쿵,하는육중한충격이 가해지자 다시 새로운 균열이 번져 나갔다. 그곳을 붙이면 다시 바로 옆에서 균열이 번져나간다. 결국 아크가 비명을 터트렸다. "안 돼. 접차제로 막아봤자 소용없어. 정말.......이대로 끝장인가?" "끝이야. 모든게 끝났어!" 너구리 부대도 절망적인 신음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때, 빈사상태에 빠져 있던 포포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떨어댔다. "크으으윽, 아........아크 형!" "포, 포포!" 아크가 와락 포포를 안아올렸다. 포포의 눈동자에서 녹색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봉인 파괴율 :97% "헉!" 같은 시각, 글로벌엑서스의 기획실에서도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이게 뭐야?" 김권태는 시뻘겋게 출혈된 눈을 비비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부터 멀쩡하던 모니터가 시꺼멓게 변하더니 미친듯이 데이터가올라왔다. 마치 갑자기 해킹이라도 당한듯한 현상, 그는 이런 현상을이미 경험해 본적이 있었다. "이,이벤트 퀘스트?" 뉴 월드의 메인시스템에서 이벤트 퀘스트에 필요한 데이터를 갱신시키는 것이다. 김권태의 당혹스런 목소리에 반대편에서 하명우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벤트 퀘스트라니? 무슨 말이야?" "이 엄청난 데이터 양!틀림없습니다. 지금 어딘가에서 이벤트 퀘스트가 시작되려는 것처럼 보입니다.보안레벨은.................헉!" 빠르게 노트북을 연결해 데이터를 점검하던 김권태가 숨막히는 비명을 터트렸다. 그리고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B.............B등급의 이벤트 퀘스트입니다" "무슨 헛소리야? B등급이라면 유저의 평균 레벨이 300대에 들어갔을때나 시작될수 있게 설정되어 있는거잖아? 하지만 아직 유저의 평균 레벨은 100도 안돼" "하, 하지만 사실입니다. 보안 레벨 B의 이벤트 퀘스트입니다!" "이런 망할! 그럼 메인 시스템이 미쳐 버리기라도 했단 거야?" "그렇게밖에는........." 하명우가 책상을 후려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대체 어디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모든 데이터가 모이는 장소는브란트 산맥 근방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렇다할 마을도 없는데.......현재로써는 무슨 퀘스트가 어떻게 발동하는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막아!모든 직원들에게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몽땅 달라붙으라고해!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단 말이다`!지금 상황에서 B등급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되면 게임의 밸런스고 뭐고모두 엉망이 되는거야!알겠어? 안 되면 메인 컴퓨터를 도끼로 찍어서라도 ㅁ가아!" 김권태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미 외부 간섭 코드가 모두 막혀 버렸습니다" "그럼 또다시 이대로 멍청하게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거야?" "그게........엇?" 넋 놓고 데이터의 행렬을 지켜보던 김권태의 눈매가 좁아진건 그때였다. 막 사내 전화기를 들어 올리던 하명우가 고개를 돌렸다. "또 뭐야?" "데이터가 뭔가 이상합니다" "무슨 뜻이야?" "이벤트 퀘스트가 가동되자 어딘가에서 또 다른데이터가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데이터라니? 알아듣게 설명하란 말이야!" 하명우가 전화기를 내팽개치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김권태는 손가락으로 모니터에 올라오는 데이터 몇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와 여기 그리고 여기도, 이건 이벤트 퀘스트 관련 데이터가 아닙니다.오히려 이벤트 퀘스트를 기동시키는 프로그램과 대치되는 데이터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비유하자만 백신 프로그램같은 겁니다" "백신? 바이러스 잡는프로그램?" "네, 백신 프로그램도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동으로 실행되지 않습니까? 그런 프로그램의 소스와 비슷합니다. 지금 그 데이터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이벤트 퀘스트 관련 프로그램들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 프로그램이 완벽하다면" "완벽?" 하명우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김권태는 대꾸할 정신도 없는 지 곧바로 두꺼운 책자를 꺼내 뒤적거렸다. 그리고 잠시 뒤에 한페이지와 모니터 화면을 대조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완벽하면 이벤트 퀘스트는 발동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외부 간섬 코드를 모두 막혀 있지만 이건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프로그램이라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이 프로그램에는 뭔가 중요한 소스 몇개가 빠져 있습니다" "그게 뭐야?" 김권태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리고 설사 안다고 해도 외부에서는 간섭할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팀장님이 예상하신 것처럼 게임 안에서 해결하는 수밖에.......이건 뭐랄까.........마치 인간따위는 무시하고 데이터들끼리 전쟁을 하는듯한........" 현실이 잃어버린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차세대 가상 현실 게임 뉴 월드. 그곳은 운영자에게도 미지의 세계였다. ACT 6 어둠의 조각 "뭐 해? 공병!데드릭, 데이모스, 빨리 공병을 데려와!" 아크가 거친 목소리로 넋 나간 너구리족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어떻게된 일인지 포포의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포포가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 ,아크형............" 아크는 와락 포포의 손을 감싸 쥐며 소리쳤다. "그래, 나 여기 있어. 잠깐만 기다려. 이 정도 상처는 금세 나을거야" "형......우리가 실패한거야? 결국........나쁜 사람들의 계획을 막아내지 .......못한거야?" "아직끝나지 않았어!" "주인, 공병 데려왔어" 그때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공병 하나를 질질 끌고 왔다. 공병이 포션을 쏟아 붓자 포포의 생명력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회복된 생명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가속되는것처럼 느껴졌다. 당황한 공병이 해독, 정화 포션을 사용해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엄마........아빠..........흑흑.스바르탈프헤임은........." 포포는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로 헛소리를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젠장, 너까지 왜 그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상황은 최악을 치달았다.너구리 부대는 공황 상태에 빠져 넋이 낙가 버렸고, 지금 이 순간에도 봉인 파괴가 진행된다.거기에 이제 동생처럼 여기던 포포까지 죽어간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일이 터져 뭐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일단포포부터 살리고 보자' 놀랍게도 그 와중에 아크가 선택한것은 포포였다. 당연히 논리적인 판단의 결과가 아니었다. NPC에 불과하다는건 알고 있다. 어차피 봉인이 파괴되면 너구리부대는 물론이고 아크와 포포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있다.포포를 잡고 씨름하느니 너구리 부대를 움직열 봉인을 막을 방법을 강구하는게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렇지만.........포포를 눈앞에서 죽도록 방치할수는없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판단이었다. ..........그게 인간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제 목숨을 희생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애정을가지고 있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은 많다. 간단한 산수만 할수 있어도 그게 모순투성이라는걸 알수 있으리라.그러나 애정이라는것은 이해득실로 계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포포, 정신차려.너는 죽지않아.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겠어" 아크가 포포의 손을 꽉 움켜쥐며 간병 스킬을 사용했다. 그 순간, 아크의 주변에서 이해할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공동의 시간이 멈춰버렸다. 들썩이던 바닥도,우왕자왕 하는 너구리 보대도,심지어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들까지........모든 것이 완벽하겍 정지해버렸다. '뭐,뭐지?' 번쩍-! 아크가 당혹스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볼때, 돌연 포포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 광채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마치 영사기처럼 한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그려 냈다.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군데군데 노이즈가 끼어 있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 지저 세계의 천장을 떠받든 거대한 나무,이그드라실이 보였다. 주변의 마을에서는 연기가피어오르고 너구리족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진느 영상이었다.그리고 그 안에 부모의 손을 잡고 해맑게 웃는 포포도 보였다. 그러던어느 순간, 마치 클로즈업되듯 한 사내의 모습이 비춰졌다. '저자는.........붉은 남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붉은 눈동자,붉은 머리칼,붉길한 붉은 기운을 내뿜는 남자. 그는 붉은 검을 휘두르며 너구리족 마을을 피로 물들였다.압도적인 힘에너구리 족은 속속쓰러져 갔다. 그중에는 간신히 포포를 숨겨 놓았던 포포의 부모도 섞여 잇었다. 그렇게 너구리족을 모두 죽인 붉은 남자는 이그드라실의 내부로 들어왔다.이그드라실은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그를 막을수는 없었다 .붉은남자는 이그드라실에게 뭔가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거절했고, 붉은 남자는 이그드라실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때 한쪽에서 너구리 소년이 튀어나와 붉은 남자를 공격했다. 숨어서 부모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포포였다. 복수를위해 단검을 품고 붉은 남자를쫓아왔던 것. 그러나 포포는 일격에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이그드라실은 방어 경계로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너구리족이 눈앞에서 참살당하자 방어 결계가 흐트러졌다. 붉은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포포가 뒤쫓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붉은 남자는 동요하는 이그드사리의 결계를찢고 심혼의 구슬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심혼의 구슬은 강력한 마력으로 이그드라실을 집어삼켜 버렸다. 치욕적인 패배!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쥐어짜 포포에게 워프를 사용해 안전한 곳으로 전송시켰다. 이는 고대의 맹약을 지키기위한 안배였다. ...........영상은 거기에서 끝났다. 동시에 포포의 눈에서 뿜어지는 광채가 사라지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흘러갔다. 문득 아크의 귓가로 포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형" "포포.......지금 그건?" "이제야 모든 게 생각났어" 포포의 눈동자에 확신의 빛이 어렸다. "나는 그때 이미 죽었어" "죽,죽었다고?" "내가 살아 있는 건 몸 속에 이그드라실의 일부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야" ".........!" "이그드라실은 그때 이미 알고 있었어. 자신의 힘으로는 붉은 남자를 막을 수 없다는 걸.그래서완전히 마력에 잠시당하기 전에 나에게 정신의 일부를 옮겨 놓은 거야. 언젠가 찾아올 구원자와 함께 그자의 야욕을 막기 위해서.....이제 알았어" 포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그드라실이 기다리던 구원자는 바로 마반영웅의 후손.......아크 형이었어.그리고 형은 이그드라실의 바람대로 나를 다시 이곳으로 데려와 줬어.이제 내 차례야" "네 차례라니......?" 아크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포포는 고개를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배어 물었다. "알잖아. 봉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그드라실의 힘이 필요하다는걸. 이제 내가 나누어 주었던 이그드라실의 힘을 돌려줄 차레야. 니드호그의 부활을 막을 방법은 그것뿐이야" 포포는 아크를 밀어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불안한 걸음으로 봉인이 위치한 곳으로 다가갔다. 아크는그 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가 닫아 버렸다.묻고 싶은게 있었지만 차마 물어보기가 겁이 난 것이다. 봉인 위에 올라선 포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좀 더 살고 싶었어" "...........!" "형을 만나 이제야 밖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됬느느데.......더 많은 걸 듣고 싶어. 이 세상에 대해서......그리고 형에 대해서....형이 어떤 모험을 하고.......어떻게 살아가는지......알고 싶었어. 그리고 가능하면.....가능하면 말이야......." 포포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자, 잠깐만!기다려,뭔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아크는 자신의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상대는 NPC다. NPC가 나서서 이 상황을 깨끗하게 정리해 준단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럴수가 없다. 달리 방법이 업다.하지만......이건 아니다. 이런 식으로 해결되기를 바라지는않았다. NPC지만 그 NPC가 이렇게 허무하게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포포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형...........밖에 함께 나가자는 약속........지키지 못하겠어" 번쩍-! 돌연 포포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불길에 넣어진 쇳덩이처럼 하얗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봉인 파괴율 : 99%,98%,97%.............. 쉴 새 없이 올라가던 수치가 내려가기 시작한 그때였다. 쩍쩍 갈라지던 지면이 저절로 복구되며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진다. "포포........!" 아크는 그저 망연자실한 눈으로 조금씩 흐려지는 포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거의 모든 균열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땅속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시꺼먼 불길이 솟구쳐 올라왔다. 순간 포포의 생명력이 50%나 깎여 나갔다. "크윽!" "크크큭,건방진 너구리 새끼!이 몸은 니플헤임의 제왕이다. 고작 네놈 따위에게 다시봉인될것 같으냐!" 지옥 끝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목소리! 니드호그였다. 니드호그가 지옥의 불길로 포포를 공격하자 간신히 내려가기 시작했던 봉인 파괴율이 다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수백 년이다. 수백 년 동안 봉인되었던 내가 얌전히 물러설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그드라실이 융합하기 전에 네놈을 지옥의 불길로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리겠다" "안돼........내가 막을.......거야..........내가 .........지저 세계와 아크형을............구해 낼거야!" "건방진 놈!" "아아아아악!" 불길이 한층 더 강해지자 포포의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포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버텨냈다. "나.........나는 할 거야........나는 너구리족 전사야.......지지........않아!" "크크크, 네놈 따위가 감히 나에게 반항하겠다고?" 불길이 다시 폭발적으로 강해지려는 찰나! "그래, 포포.너는 할수 있어" "주, 주인!" 아크가 고함을 지르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었다. 동시에 온몸이 저릿저릿한 충격이 느껴지며 생명력이 쭉 빠져나갔다.아크에게 그 정도의 충격이 왔다면 NPC인 포포는 그야말로 불길에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으리라. 그럼에도 포포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 소년이 그런 고통을 참아 내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유저인 아크의 의지를 보여줄 떄다! 아크는 망토를 벗어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구멍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뚜껑을 막듯이 자신의 몸을 포갰다. 화염 속성 저항+50%인 망토,화염의 베일. 다크 워커로 전직하며 얻은 특성 어둠 속성 저항+50%.덕분에 어둠과 화염.두가지 속성을 갖추 어둠의 불길도 공격력이 50%나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 50%마저도 아크가 모두 받아냈다. "아, 아크 형........!" 아크를 바라보던 포포가 움찔하며 굳어 버렸다. 아크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포, 해라. 해 버려!마룡인지 지렁인지 따위 다시 지옥에 처박아 버리는 거야!너는 할수 있어!아니, 너밖에 할수 없어.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뜨겁게 사는 이방인이 되고 싶다고 했지? 아니야, 이방인은 그렇게 뜨겁지 않아 ,그보다 네가 몇배는 더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미칠 지경이야. 젠장, 알겠냐? 포포, 너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수 있는 녀석이야. 그리고..........가능하면 살아라. 사는거야. 살아서 그 빌어먹을 지렁이를 봉인하고 영웅이 되는거야" 아크가 할수 있는 건 그렇게 간병 스킬을 사용하는게 전부였다. 있는 힘을 다해, 모든 마음을 담아 외치는 수밖에 없었다. 순간 아크의 모에서 신비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빛 무리는 어둠속에서 춤을 추듯 흔들리다가 이내 포포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둠의 불길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포포의 정신력이 수직 상승한 것은 그떄였다. "안녕,형........" 포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포포는 이전보다 몇 배나 강한 빛에 휩싸여 버렸다. 동시에 갈팡질팡하며 오르내리던 봉인 파괴율이 엄청난 속도로내려갔다.그리고 마침내! -봉인 파괴율: 0% 봉인이 완전히 복구되었습니다. 촤라라락, 철커덕, 콰쾅! 돌연 공동 안에서 엄청난 두께의 나뭇가지들이 뻗어나왔다. 나뭇가지들은 서로 얽혀 쇠사슬처럼 변해 봉인 위에 몇 겹으로 둘러쳐졌다. 그러자 균열이 단숨에 막혀 버리고 그 위에 선명한 마법진이 떠올랐다. "크아아악, 이, 이럴수가!안, 안돼......!" 봉인 안쪽에서 니드호그의 목소리가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그리고........포포는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빛의 가루로 변해 흩어졌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진정한 간병이란 상대와의 마음의 교류입니다. 간병인은 치료사가 아닙니다. 환자의 상처를 낫게 해줄 수도, 죽음을 막을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해줄수는있습니다. 바로 이해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입니다. 당신은 포포의 행동을 이해했고, 희생할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도 그로 인해 희생의 용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희생이란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포포를 잃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뜻을 존중해 결국 바라는 바를 이루도록 최선을다했습니다. 이것이진정한 희생, 포포와 당신 사이의 교감과 서로에 대한희생은 위대한 세계수 이그드라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로써 포포는 이그드라실의 위대한 의지에 의해 모든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존재로태어날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포포는 더 많은 것을 보고, 수많은 이방인들을 만나며 성장해 나갈것입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증가했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 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희생의 간병인'으로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됬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문득 희미한 빛 무리가 모여 만들어진 결정이 아크의 손에 떨어졌다. [이그드라실의 씨앗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힘으로 만들어진 영혼의 결정체. 이 씨앗엔 자신을 희생하여 스바르탈프헤임을 구해 낸 소년 영웅의영혼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혼은 이그드라실과 교감하고 적합한 대지에 뿌리를 내리며 새로운 이그드라실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방인이여............. 아크의 머릿속에 웅웅 거리는 울림이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이그드라실의 허공에사람의 형체가 홀로그램처럼 맺혀 있었다.하얀 수염을가슴까지 드리운 노마법사의 형체였다. "당신은?" -나는 이그드라실, 이제는 잊힌 고대의 세계수이며 동시에 포포였던 존재다. 이방인이여, 우선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이미 포포의 눈을 빌어 너의 활약을모두 지켜보았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결코 니드호그의 부활을 막을수없었을 것이다. 또한 포포 역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수밖에 없었겠지. "허망한 죽음? 그럼 포포는?" 이그드라실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포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모든 마법을 뛰어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대를 향한 포포의 애정과 포포를 향한 그대의 애정이 빚어낸 결과였지. 생명의 희망이란 실로 불가사의한 힘이야. "그럼 포포가 살아 있다는 겁니까?" -포포는 그 기적의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는위대한 의지로부터다시 한번 삶은 허락받았다. 그 씨앗은 곧 나의 분신이자,포포자신이다.포포의 뜻에 따라 그 씨앗을 그대에게 맡기겠다. 부디 새로운 희망이 가득한 대지를찾아 심어주게. 그 씨앗을 통해 포포는 새로운 시대의 세계수가 될 것이며 원하는 대로 넓은 세상을 볼수 있을 것이다. 아크가 멍한 눈으로 씨앗을 바라볼때였다. -아크 형! 씨앗에서 포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앗 위로 새끼손가락 만한 영상이 떠올랐다. "포, 포포?" -아, 이거 정말 쑥스럽네 포포가 쑥스러운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 들은 대로야. 어쩄든 이렇게 돼 버렸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하하하,하하하하" 아크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렇다. 종종 잊고는 하지만 이곳은 가상형실게임이다. 진정으로 바라는게 잇다면 불가능은없는 곳이다. "끄, 끝났습니다" "끝나?뭐가 말이야?" "이벤트 퀘스트가.......도중에 캔슬되어 버렸습니다" 김권태가 넋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듯이 데이터가 올라오던 모니터.그러나 지금은 간간이 몇 개의 데이터가 올라올뿐이었다. 마치 긴 전쟁을 치르고 주변 정리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건 나도 모니터를 보면 알아!" 하명우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듣고 싶은 건, 대체 왜? 갑자긱 B급 이벤트가 시작 됐고,또 갑자기 취소됐는지 알고 싶은 거라고.뭔가 알아야 보고를 하든지 말든지 할거아냐?" "죄송합니다. 현재로써는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빌어먹을, 그놈의 모르겠다는 말은 이제 지긋지긋해" "저도 동감입니다.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지긋지그삽니다" 김권태는 이마를 짚고 긴 한숨을 불어냈다. 컴퓨터관련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 이렇게까지 컴퓨터에게 무시당해 보기도 처음이다. 운영자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운영이 되는 온라인게임.심지어 운영자의 간섭을 거부하기까지 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일 뿐이겠지만, 종종 정말 살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말 이런 게임이 존재해도 되는 건가?' 문득문득 메인시스템을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건 그만이 아니리라. 그러나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은 웬만한 소국의 국가 예산에 맞먹는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뉴 월드가 폭파하면 글로벌엑서스가 통째로 흔들리리라.폭파는 커녕 서비스를 시작한 이상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건......." 한참 뒤에 김권태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B급 이벤트가 시작되려고 한건 분명 뭔가 인위적인 오류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큽니다. 그리고 일종의 복원프로그램이 작동해 그걸 막았죠. 이건 뉴 월드에 상반되는 두 가지의 프로그램이 공존한다는 뜻입니다" "가만......인위적인? 상반된? 그게 무슨 말이지?" "이번에 구동된 두가지 프로그램은 기본적인 형태가 완벽합니다.처음에 발동한 프로그램도, 뒤이어 발동한 프로그램도 단순한 시스템 에러가 아니란 뜻이죠. 누군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짜 넣은 프로그램이란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두 가지 프로그램은 두 사람이 상반된 생각으로 만든 것입니다" 순간 하명우의 눈동자가 기민하게 돌아갔다. 빙빙 돌려가며 말하짐나 김권태가 하려는 말은 단순하다. "어느 쪽읻느 하나는 당연히 메인 디자이너인 박우성과 관련이 있겠지. 그런데 제 3의 인물이 있다는 건가? 그가 박우성에게 대항하는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그런 거죠" "좋아, 그럼 정리해보자. 그가 이벤트 퀘스트를 가동시킨 쪽인지, 막은 쪽인지는 아직 모르니......글로벌엑서스에 호의적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맞지? 하지만 모든 정황을 살펴 봤을 때, 박우성과 거의 동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겠군. 틀린가?" "아니, 맞습니다" 하명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운영자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바로 박우성이 천재라는 것때문이다. 전세계를 뒤져봐도 그가 걸어놓은 락을 해제할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박우성이 만든 게임 속에 자신의프로그램을 심어놓고 대항하는 사람이 있다. 만약, 그를 끌어들일수 있다면 하명우가 찾던 해답을 얻어 낼수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곧바로 제작자들에게 메일을 보내 '그'에 대해 알아봐. 만약 소재가 파악되면 특별반을 평성해 위치를 추적한다.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알아낸 게 또 하나 있습니다" "뭔가?"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모르겟지만........아니, 제생각에는90% 의도적인 것 같습니다" 김권태는 데이터파일을 정리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번 문제를 해결한 안티 프로그램은 불완전한 상태였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놀라운 수준의 프로그램인 건 확실하지만 몇 가지 코드가 빠져 있었습니다. 실수로놓쳤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노골적이었죠. 대신 간접 변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간접 변수?" "유저입니다" 김권태는 정리한 데이터 파일을 모니터에 띄우며 말했다. 조금 전에 가동된 안티 프로그램의 대략적인 구성표였다. "보십시오.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빠져 있는게 보이시죠? 바로 이 부분이 간접 변수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의 선택사항이 제시되고, 그 선택에 따라 나머지 프로그램이 작동하게 되어 있었던 거죠.마치 분기형 퀘스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간접 변수는 오직 게임 안에서만 접근할 수 잇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 이벤트를 중지시킨게 유저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슬슬 실마리가 풀리는 것도 같군" 김권태의 예상과 달리 하명우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하명우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도 알고 있는 편이 낫겠군.실은 박우성이 종적을 감추기 전에 본사로 메일을 보내왔네" "박우성이 직접 말입니까?" "그래, 메일에는 유저에게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지. 글로벌 엑서스가 아닌 유저에게 말이야. 하지만 본사에서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네 .개발자가 신작 게임을 내놓을 때 흔히 하는 홍보성 멘트라고 판단했어. 하지만 그 직후 박우성은 종적을 감췄고, 뉴 월드에 엄청난 락이 걸렸다는 걸 알게됐지" 그제야 그롤벌엑서스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박우성이 남긴 메일의 내용을 파악하기ㅜ이해 머릴 쥐어뜯었다. 결국 본사에서 도달한 결론은 게임 안에 박우성이 걸어 놓은 락을 해제할 단서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하명우가 입사 시험을 빌미로 유저들을 끌어들인 건 그런 이유였다. 수많은 유저들에게 입사 시험이라는 조건을 내밀면 그만큼 게임에 집착할 터. 그리고 그들이 보내오는 리포터로 게임의 비밀을 파헤치려는계획이었다. "결국 열쇠를 손에 쥐고 있는 건 수백만의 유저라는 말입니까?" "사실 조금 회의적이었는데, 이제 확신이 드는군. 그리고 내가 원하던 유저가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시스템에 관여할수 있는 유저......그들이 알아낸 정보가 필요한 거야 .그 유저의 게임 방식이나,지금까지의 흐르을 파아가하면 박우성이 깔아놓은 락을풀수 있는 단서를 알아낼수 있을지도 몰라 .이번 사건이 일어난 좌표가 어디라고 했지?" "브란트 산맥 주변입니다" "모든 모니터 요원을 그 주변으로 집중시켜. 대체 카이로트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라고 전해. 이벤트 퀘스트가 진행될 정도의 일이라면 분명 뭔가 커다란 변화가 있었을 거야. .그리고 사건을 수습한 유저의 아이디를 알아내" "알겠습니다" 하명우의 명령은 곧바로 메일이 되어 모니터 요원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실제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은 카이로트의 지하 수천미터에 존재하는 지저 세계. 브란트 산맥에서 어슬렁거리는 모니터 요원이 알아낼 리가 없었다. 오히려 그걸 알아낼수 있는 기회는 김권태와 하명우에게 있었다. 그들이 직접 선별한 응시자들의 리포터를 조금만 더 관심있게 살펴봤다면 말이다. 그러나 현우가 보내는 리포트는 여전히 도착하기 무섭게 분쇄기의 먹잇감으로 사라졌다. 현우에게도, 하명우에게도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 무렵, 뉴 월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뉴 월드의 메인시나리오는 시간의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뉴 월드에서 굳이 시나리오를 구분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는 <에피소드 I : 이방인의 등장>의 내용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 시간으로 몇 년이 흘러 자동적으로 에피소드 2로 바뀌었다. -메인 시스템에 에피소드 II에 필요한 데이터를 갱신시켰습니다. <에피소드 II: 이방인의 개척 시대> "결정 된 겁니까?" "그래, 우리는 그냥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지만.....그들의 뜻이 너무 완강해서 말이네" "그렇군요"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드호그가 다시 봉인되는 것으로 지저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아크는 생존자를이끌고 가까운 마을로 돌아가 주변 상황을 정리했다. 먼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전사의 쿠키에 살짝 맛이 간 너구리족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다행히 쿠키는 다른 약초와 섞여 많이 희석된 음식이라 중독성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입맛을 없애는 스튜'를 먹이고간병을 해주니 금세 회복되었다. 그제야 너구리족은 자신들이 중독됐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지저세계는 멸망했을 테니까. 그러나 친밀도가 조금 떨어지는 건 어쩔수 없었다. '뭐, 지저 세계에 또 올일은 없을 테니 별상관은 없지만.........' 그러나 여전히 약간의 문제는 남아있었다. 이그드라실이 본래의 힘을 되찾자 지저세계 역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강글과 플랜트 골렘도 다시 너구리족으로 변했다.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그들은 몬스터로 변했을 때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아아, 나는........나는........" 직접 자신의 손으로 동족을 죽인 너구리족은 괴로워했다. 또한 너구리 부대 역시 강글과 플랜트 골렘을 죽였다. 서로가 서로를 죽였던 기억. 비록 불가항력이었다고는 하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기는 쉽지않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로는 여러 마을 대표와 한동안 회의를했다. 그리고 몬스터로 변했던 너구리족의일부가 지저세계를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장로는 당혹스러워했지만 아크는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번 일도 너구리족이 너무 격리되어 살아와 곧바로 대응하지 못한이유가 큽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좀더 시야의 폭을 넓히는것도 나쁘지 않겠죠. 또 당분간 떨어져 살면서 마음이 수습되면 다시 합쳐도 되고 말입니다" "하지만 밖의 세계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그들이 어떻게 하려는 건지........." 장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인건 그때였다. 그렇다. 아크가 괜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을리가 업다. 원하는게 있으니 은근히 너구리족을 내보내자는 쪽으로 말을꺼낸 것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가?" "방법이랄 것까지는 없지만......마침 제가 아는 개척마을이 하나있습니다. 란셀이라는 마을인데 누구라도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주는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수인족이네" "괜찮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묘족도 살고 있습니다" "묘족이 ?허,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묘족이 용케..........." "그만큼 좋은 곳이란 뜻이죠. 또한 아직 개척중인 마을이라 손재주가 뛰어난 너구리족이라면 누구보다 환영할 겁니다. 너구리족은 대부분 장인이니 기왕이면 필요로 하는 곳이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 말대로네" 장로는 고개를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떠날 준비를 하는 너구리족에게 전하자 그들도 받아들였다. "구도자가 추천하는 곳이라면 저희도 좋습니다" 아크는 그렇게 약 70명의 너구리족을 꼬드겨 아주 허락을 받아냈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은 지저세계에 머물수 없게 된 너구리족을 란셀 마을로 이주시켰습니다. 너구리족은 천성적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타고나는 장신 부족입니다. 이들이 란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닦는다면 란셀 마을은 더욱 빠르고 부유하게 성장해 나갈 겁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성취도 60%>]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주민을 찾았습니다. 장신 부족인 너구리족의 이주로 마을의 상업도가 50%상승했습니다. 그러나 외부와 접촉하기를꺼려하는 너구리족의 성격탓에 일시적으로 화합도는 30%만큼 하락합니다. 만약 화합도가 50% 이하로 떨어지면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생길수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갖춘 이주민을 유치하면 상업도, 무장도, 식량 사정등의 수치도 증감하게 됩니다. 수치에 따라 퀘스트가 완료될때 보너스 보상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됬군요" 아크는 빙긋 웃으며 은근한 눈길로 장로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선행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는 법! '뭐, 보상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기억은 없지만,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고맙다는 말 몇마리로 입 닦으면 그건 배신이지' 아크는 노골적으로 눈동자를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장로에게 압력을 가했다. 한동안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던 장로는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지. 사실 자네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물건이 있네" "그렇겠죠" 아크가 씨익 웃자 장로는 부담스러운 표정을 배낭을 뒤적거렸다. "너구리족에 전해내려오는 투구인데.......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어쨌든 성의로 생각하고 받아주게" 장로가 투박한 가죽 투구 하나를 내밀었다. [너구리 투구(마법) 방어구 타입 : 가죽 투구 방어력 : 60 내구력 : 50/50 무게 : 5 사용 제한 : 다크 워커 전용, 레벨80이상 너구리족에 대대로 물러져 내려오는 가죽 투구. 고대의 너구리족은 원래 변신ㅇ르 자쥬자재로 하며 세상을 누비던 신비한 종족입니다. 스바르탈프헤임에서 외부와 격리도니 생활을 하는 사이 그 능력은 잊혔지만, 고대의 너구리족이 사용하던 투구에는 아직 그 힘이 전승되고 있습니다. 너구리족은 이 투구의 능력을 사용해 정체를 숨긴채 외부와 교역을 해 왔던 것 같습니다. <옵션 : 민첩 +10,지혜+10> <특수 옵션 : 하루에 한 번, 변신이 가능합니다. 지속 시간은 무제한 입니다. 그러나 일단 변신을 풀면 변신을 시도한 시간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다시 사용할수 있습니다>] -퀘스트 '볼테르와 불사군단의 부활을 저지하라'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이템을 받아들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아크는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라 ?뭐야? 경험치가 하나도 안들어와?' 지저 세계에서 받은 퀘스트는 받기부터 해결까지, 뭐 하나 쉬운게 없었다. 게다가 명색이 아직 정보 게시판에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았던 전승 퀘스트. 완료하면 적어도 3~4레벨은 올라갈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아예 경험치가 들어오지도 않다니? 그때, 둥둥거리는 멜로디가 울리며 정보창이올라왔다. ['전승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전승 퀘스트에 걸려있던 ☆ 3개가 캐릭터 정보창에 축적되었습니다. ☆은 뉴 월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칠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 플레이어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훈장입니다. ☆을얻은 플레이어는그 지역에 또 다른 전설이 되어 전승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정 숫자 이상 쌓이면 매우 특별한 보상을 받을 기회가 제공됩니다. 현재 소유한 ☆(3)] 뭔가 알쏭달쏭한 메시지였다.경험치도 안주고 그저 그런 투구하나. 솔직히 그리 달갑지는 않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렇다는데 별수 있겠는가? '하아......아무리곁다리로 해결했다고 하지만, 전승 퀘스트를 해결한 대가가 고작 이런 낡은 투구 하나인가? 아니, 그래도 별을 모아두면 나중에 엄청나게대단한 보상이 주어질지도 몰라. 그리고 투구도 퀘스트의 난이도에 비해서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않지만.......뭐, 마침 필요한 걸 얻은 셈이군' ..........그렇게라도 생각하지않으면 견딜수 없었다. 사실 만족하기에는 투구의 성능이 좀 애매했다. 아크는 초반에 얻은 마정석 골렘의 머리를 투구로 아직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 뒤로 몇 개의 투구를 더 얻었다. 방어력이 월등하게 높은 것은 아니지만옵션으로 마나를 올려주는 능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너구리 투구도 마나를 올려주는 옵션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정석 골렘의 투구보다 방어력이20이나 더 높다. 또한 마령소환의 등급이 올라 마나 소모는 적어진 반면, 마나는 꽤나 많이 올라갔으니 슬슬 바꿔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 마정석 골렘의 머리는 사용 제한이 낮아. 아마 더 늦으면 제 값에 팔지 못할 거야. 그리고 지금은 마나보다 민첩이 더 필요하지' 아크는 그럭저럭 만족하고 너구리 투구를 쓰기로 했다. 그러나 너구리족의 투구에는 아크가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가 붙어 있었다. [세트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었습니다. 뉴 월드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이템은 역사적으로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들입니다. 유명한 사건과 연관이 있거나, 전설적인 영웅이 사용하던 아이템이 그런 종류입니다. 이런 세트 아이템은 일정숫자 이상 갖춰지면새롭게 추가 보너스가 적용도비니다. *현재 장착한 세트 아이템 : <수왕> `{너구리 투구} {고양이 손} {인어족의 갑옷}{??} {??} 3종 세트를 갖춰 <수왕>세트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야생의 능력 : 힘, 민첩 ,체력+10.방어력 +20>] '세트 아이템 효과!'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세트 아이템으로 추가된 보너스는 엄청났다. 아직 오나전히 갖춰진게 아닌데도 아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힘과 민첩, 체력이 각각 10이나 올라가고, 방어력까지 20 추가되었다. '게다가 아직 두 가지 아이템이 더 남아 있다. 만약 모두 찾아내 수왕 셋을 완성시킨다면.......?' 보너스가 얼마나 더 가산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세트 아이템........다른게임을하면서 종종 본적은 있지만, 설마 뉴월드에도 그런 아이템이 있을 줄은 몰랐어.지금까지 그런 정보는 한번도 나오지 않더니......결국 아이템을 3개 이상갖춰야만 세트아이템이지 아닌지알수 있다는 거잔아? 이거 이제 아이템을 팔때도 신중해야겠는데?' 허접스러워 보이는 아이템이라도, 세트 아이템의 하나라면얘기가 다르다. 경매장에 올려놓으면 상당한 금액을 받을수도 있으리라. 뭐든 돈벌이부터 생각하고 보는 아크다. "감사합니다" "응? 뭐,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그드라실을 만나고 바로 지상으로 갈생각이니 미리 작별인사를 하겠습니다" "알겠네" 아크는 장로에게 꾸벅 고개를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마을 회관을 나오자 밖에는 수백의 너구리족이 모여 잇었다. 아크가 나오자 그들은 일렬로 늘어서 길을 만들었다. "받들어, 총!" 중장병이 검을뽑아 치켜세우고,포병은 포문을 하늘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각 부대장이 아크에게 경례를올리자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동시에 어두운 지저세계에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져 나왔다. 마치 올림픽 개막식같은 화려한 연출! "아크 사령관 만세!"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자네 덕에 평화를 찾았으니까. 너구리족은 모두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네 .그리고 자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기꺼이 힘을빌려 줄거네. 자네에게 배운 용기를 발휘해서" 장로가 아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크는 새삼 감회가 서린 눈으로 너구리 병사들을바라보았다. 장로의 말대로다. 그들은모두 아크가 징병해 직접 훈련시키고, 함께 싸웠던 NPC들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가? 작센의 병사들과는 또 다른 애정이 느껴졌다. '그래.............이제 길었던 지저세계도 이걸로 안녕이구나' 아크는 그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며 마을을 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이그드라실을 찾아갔다. 아크를 애먹였던 이그드라실의 내부는이미 신전으로 변해있었다. 넝쿨은 보이지도 않았고, 작은 빛무리가 떠 있어 대낮처럼환했다. 그리고 이그드라실의 의지가 작용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저절로 나무줄기가 갈라지며 길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아크는 일직선으로 중심부에 도착할수 있었다. -어서 오게. 작별 인사는 모두 끝냈는가? 노마법사 형상의 이그드라실이 아크를 반겼다. "네" -그럼 이제 자네가 이곳을 찾은 목적만 남은 셈이군 "삼신기를 찾으려면 시험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그드라실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자네는 이곳에 있는 삼신기가 어떤 것인지 아는가? "아직 못들었습니다. 너구리족 장로도 모른다고....." -내가 보관하고 있는 삼신기는 '어둠의 조각'이네 "어둠의 조각?" 이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그대로 어둠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네. 일설에는 어둠의 제왕의 몸에서 떨어져 나왓다는 얘기도 있지만 나도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군. 어쨌든 어둠의 조각은 삼신기 가운데 가장 위험한 물건이지. 과거 마반 영우조차 그 힘을 제어하기 힘들었다고 하니 구도자에게는 더욱 힘들겠지. 자칫 어둠의 힘에 현혹되어 삿된 길로 접어들 수도 있다는 말이네. 어둠의 조각을 받기전에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그 떄문이었다. 이그드라실이 부드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하지만 자네는 이미필요한 모든것을 증명했네.절망의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않고,어둠조차 포용하며 고난을 극복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지. 때문에 나는 자네를 믿고 과거 마반 영웅과 나눴던 맹약에 따라 어둠의 조각을 건네주겠네 이그드라실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펼치자 그곳에 검은 기운이 감도는돌 조각이 들려 있었다. 이 역시 고대 유물의 지식이 50이 돼야 확인할수 있는 아이템이었다.그러나 아크의 고대 유물 지식은 83. 조각을 받아들자 자동으로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돌의 파편'을 확인했습니다. [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돌의 파편(어둠의 조각) 깊고 타락한 어둠의 기운이 고동치는 어둠의조각입니다. 어둠의 조각에서는 매우은밀하며, 또한 치명적인 유혹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이 힘을 자신의 것으로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둠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강인한 의지와 용기가 있다면 어둠을 자신의 일부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확인해 본 결과 이것은 오래전 암흑세기에 활동했던 마반 영웅이 가지고 있던 삼신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반 영웅은 후인을 위해 자신의 힘 일부분을 이 삼신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구도자가 삼신기를 얻게 되면 마반 영웅의지식 일부분을 얻을수 있습니다. *어둠의 조각 소유자는 마반 영웅읭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험치+30,000.고대 유물의 지식+15.지능이10,명성이 20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어둠의 선물II(초급, 패시브) : 어둠 속에서 발휘되는 다크 워커의 모든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능력치 상승률이 40%로 상향 조정됩니다. '은신'의 지속 시간이 20분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단, 이 스킬은 숙련치를 올릴수 없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다크 댄싱(초급, 액티브) : 마반 영웅의 비전 초식 중 두 번째.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빠른 몸놀림으로 적의 공격을 와해시켜 버립니다. 초식의 성공률은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다릅니다.초식의완성도가 높을수록 적에게 받는 데미지가 경감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의 공격을 반사시킬 수도 있습니다.<마나 소모 :300>] [새로운 연쇄 스킬이 등록되었습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연쇄 스킬 -암격(다크 댄싱+다크 블레이드) 적의 공격을 회피하며 치명타를 가하는 고급 반격기. <연쇄 스킬 성공 시 : 50% 확률로 다수의 적에게 200% 치명타> <연쇄 스킬 실패 시 : 50% 확률로 다크 댄싱이 해제되며 치명타 공격을 받는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지저 세계의 평화를 되찾는 데 걸려 있는 퀘스트는 2개 그리고 삼신기였다. 그리고 니드호그를 봉인하며 몯느 일이 해결되자 보상이 정신없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다크 워커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인 삼신기를 찾아낸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첫 번재가 바로 어둠의 선물 II.이건 이미 어둠의 선물I을 받을 때부터 어느정도 예상했던 옵션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어둠 속에서 보너스 40%라니.......!레벨 100에 140의 효과를 누릴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의외였던 건 새로 생긴 다크 댄싱이다. 정보를 읽어 보니 예상과는 달리 회피기였다. 물론 다른 직업과 달리 아직 아크는 마땅한 회피기가 없다. 바라지는 않았지만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크 댄싱에 들어가는 마나였다. '회피기를 한번 쓰는데 마나가 300?' 데미지를 주는 것도 아닌, 그저 피하는데 마나가 300이라니........!마나100% 상태에서도 네 번밖에 쓰지 못하는 게 무슨 회피기란 말인가? 게다가 다크 댄싱과 함께 생겨난 연쇄 스킬도 마찬가지였다. '암격이라.......얼마나 효과적인 기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사용하는데 무려 마나가 400이나 들어가는군. 블레이드 스톰을 한 번 사용할 마나잖아' 블레이드 스톰은 검을 소모하는 대신 최강의 위력을 자랑한다. 반면 암격은 단순히 치명타 공격력이 늘어나는 것 이외에는 메리트가 없다. 위험할 때 암격을 사용하느니 차라리 검을 소모하더라도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스킬이 늘어나서 나쁠건없겠지' 아크는 아쉬운대로 만족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로써 지저 세계를 찾아온 목적은 모두 달성한 셈이다.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게 "혹시 나머지 삼신기의 행방을알고 계십니까?" 아크는 북유럽 신화에 나왔던 이그드라실의 설명을 떠올렸다.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아홉세계에 걸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혜의 상징이다. 물론 이름이 같다고 신화의 세계수와 지저 세계의 세계수가 같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고대부터 존재하며 직접 마반 영웅과 맹약을 나눴던 장본인이니단서를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의 짐작대로 나는 오래전부터 북부 대륙의 대부분에 뿌리를 뻗고 살아왔네. 그만큼 많은 것을 보고 들어왔지. 하짐나 나머지 삼신기의 행방에 대한 소문을 들은지는 너무나 오래됐군. 어쩌면........이미 그것은 자네가 알고 있는 세상에는 없을지도 몰라. "이 세상에 없다고요? 그럼 파괴되어 버렸다는 겁니까?" 아크의 질문에 이그드라실이 웃었다. -나는 그대가 알고 있는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고했네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아니 ,전혀 다른 말이네. 자네가 알고 있는 세상은 중간계.우리 언어로 말하자면 미드가르드, 아홉 세계의 하나일 뿐이네.다시 말해 인간들이 이계라고 부르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이지. 어둠의 제왕도, 그를 따르던 마신들도,심지어 그대가 부리는 소호나수도 모두 이계의 존재들이지. "그럼 나머지 삼신기가 이계에 있다는 말입니까?"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네. 그러나 자네는 구도자, 이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의 인도에 따라 이곳에 왔지 않은가? 인연이 있다면 분명 그 존재를 찾아낼수 있을것이네.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가?' 아크가 한숨을 불어냈다.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그드라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조심하게. "네?" -아무래도 붉은 남자가 마음에 걸리네. 이곳에 니드호그가 봉인되어 있다는 것은 수백 년 전에도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비밀리에 전해지던 말이네. 그가 무슨 목적으로 니드호그를 부활시키려 했는지는 알수 없지만.......내 짐작이 맞다면....... 이그드라실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목적은 어둠을깨우는것일수도 있어. "그 어둠이란 대체 뭡니까? 사람입니까? 마신입니까?" -어둠은.......어둠이네.이 대륙의 모든 존재들이 두려워하는 재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그리고 붉은 남자의 목적이 정말 어둠을 불어일으키는 것이라면.........그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7인의 영웅의 유산을 잇는 자들이 될걸세.어디서든 결코 그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일세.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됬네. 자, 이만 돌아가게. 자네가 있어야 할 장소로............ 이그드라실이 둥둥 뜬채로 다가와 아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아크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잘게 부서졌다. 작은 빛의 입자가 되어 이그드라실의 중심부에 나 있는 통로를 따라 위로 솟아오른다. 마치 모세관 현상을 따라 이동하는 물처럼 줄기를 따라 솟아오르자시야가 조금씩 밟아지면서 창공이 나타났다. 드디어 너구리 부대를 지휘하며 지저세계를 누비던 모험이 끝났다. 띠리리리,띠리리리. 그때,멀리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ACT 7 싸움에 진 개는 한 번 더 밟아 준다 콰쾅, 채챙-! 카이로트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의 오두막. 쇳소리와 둔탁한 충돌음이 쉬지 않고 터져나왔다. 전투가 시작된지 이미 꽤 지나 바닥에는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 건달과 갱생단원들이다. 그리고 아직 쓰러지지 않은 자들도 생명력이 많이 빠져 잇었다.로코가 쉴새 없이 '생명의 노래'를 불러도 깎여 나가는 생명력을 벌충할 수 없었다. 그들을 공격하고 잇는 자들은 검은 옷을 걸친NPC,바로 다크브라더의 암살자들이었다. "후후후,내가 그냥 물러나 줄 줄 알았냐?" 뒤쪽에서 팔짱을 낀채 구경하는 사내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다크브라더의 암살자를 끌고 나타난안델이었다. 며칠 전 정의남에게 당하고 도망친 안델은 계속 카이로트에 숨어 있었다. 당연히 정의남 일행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병참을 뺴앗겼으니이제 곧 아크가 부활하리라.그러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지도 모르니 몰래 뒤를 밟으려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며칠 동안 아크는 부활하지 않았다. '아크 자식, 현실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안델은 그제야 자신이 삽질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그는 아크가 현실에서 몸이 달아 동동거리기를 바랐다. 그런 상상을 했기에 그렇게 오랫동안 병참을 지키면서도 내심 꽤나 즐거웠다. 그런데 아크가 뭔가 다른 사정이 있어서 부활하지 않았던 거라면,대체 며칠동안 잠도 설쳐 가며 병참을지킨 자신은 뭐가 되는건가? 그야말로 삽질.......... '빌어먹을,정말마음에 안드는 놈이야' 안델은 이를갈아붙였다. 그러나 상황은 안델에게 그리 나쁜 것만은아니었다. 어쩄든 정의남 일행이 카이로트를 떠나지 않고 있다면 아크가 이곳에서 부활한다는 말이다. 즉, 복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는 뜻! '두고 봐라,아크와 정의남.10배,20배로 갚아주마' 안델은 복수의 일념으로 카이로트에 숨어 병참을 지켰다. 그리고.......마침내 복수의 시기가 도래했다.아란이 다시 다크브라더와 접촉해 15명의 암살자를 추가 파견한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암살자15명을 고용하기 위해 들어간 돈은 모두1,500골드. 암살자 길드라곤느 해도 용병과 같은 개념이라 고용할 때마다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결국 처음의 300골드와 합하면 무려1,800골드나 들어간 셈이다. 현찰로 1,800만원. 아무리 안델이라도 꽤나 부담되는 금액이다. '젠장, 그 돈을 긁어내려고 꼰대에게 잔소리 들은걸 생각하면........하지만 아크 자식과 저놈들을 죽일수 있다면 상관없어. 속이 풀릴 때까지 몇 번이라도 죽여 주마!' 안델은 이미 게임의 목적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오직 복수!그걸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작정이었다. '싸우는 사이에 아크 녀석이 부활해서 도망치면 곤란하지' 안델은 암살자 하나를 병참에 대기시키고 나머지를이끌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정의남 일행은 건달14명과 갱생단. 합이28명이나 된다. 그러나 그들의 평균레벨은 고작 60전후. 그동안 카이로트 주변에서 사냥을 했다고 해도 70대 미만이다. 반면 안델의 전력을 레벨120의 암살자 14명! '이런 전력 차라면 지고 싶어도 못 져' 게다가 새로 파견도니 암살자들은 이전보다 신중했다. "우리는 암살자다. 최대한 적은피해를 받고 상대를 죽이는 게 일이지" 암살자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어둠 속성이라 밤이 되면 10%능력치 보너스를받기 떄문. 또한 어둠 속성 캐릭터의 주 무기 가운데 하나인'은신'과 '암살'을 사용할수 있다. "건달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건달보다는 조직력이 강한 이방인 그룹이 더 성가시다" 암살자들은'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오두막 밖에서 대기했다.그리고 막 문을 나서는 3명의 갱생단을 기습했다. 300% 공격력이 나오는 암살스킬! 120레벨의 암살자 14명이 3명을 집중 공격하자 갱생단은 비명을 지를새도 없이 쓰러졌다. "적이다!" 뒤늦게 건달과 갱생단이 몰려나왔다. 그러나 전투는 시작하자마자 기선을 제압한 암살자의 페이스대로 흘렀다.암살자들은 주문서를 난사하며진형을 흐트러트리고,각개격파로 몰아붙였다. 덕분에 건달7명이 순식간에 쓰러졌고, 갱생단에서도 1408호와 1409호가 욕설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크윽, 빌어먹을........!" "하하하,꼴좋다. 건방진 자식들!" 안델이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낄낄거렸다. 이제 남은건 건달 7명과 정의남과 갱생단 6명. 로렌조와 시드, 로코, 모두 합해도 15명뿐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생명력이 50%가량밖에 남아 있지 않다. 암살자도 2명이 쓰러졌지만 남은 암살자들의 생명력은 70%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네놈들도 아크와 함께 거지꼴로 만들어주마!" 건달은 NPC니 한 번 죽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물론 갱생단은 다시 부활하지만 당장 전세에는 영향을 미칠수 없다. 유저가 NPC에게 죽을경우 곧바로 병참에서 부활할수 있는게 뉴 월드의 법칙. 그러나 집단 전투에서 사망할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자신이 사망했던 전투가 완전히 종료될 때까지는 부활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병참 근처에서 계속 부활하며 패싸움을 못하게 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다시 말해 갱생단도 한 번 죽으면 다시 전투에 끼어들수 없다는 뜻. '전투가끝나도 단숨에 모두 살아날수 있는게 아니야' 병참에서 부활 가능한 인원은 한 번에 1명뿐. 같은 병참에서 부활해야 하는 사람이 많으면 죽은 시기에 따라 순차적으로 부활한다. 갱생단을 몰살시키고 병참을 지키고 있으면 부활하는 족족 때려잡을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안델은 암살자의 숫자가 줄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전투만 이기면 상황은 끝난다' 그리고 이제 목표 달성이 코앞이다. 안델이 히죽거리는 사이에도 정의남 일행은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 자식들, 뭐가 이렇게 빨라!" "젠장, 스킬도 제대로 안통하고......" "크윽, 두세놈을 다구리칠때는 몰랐는데. 이놈들 엄청나게 강하군" 정의남이 정의감 스탯을 발동시켜도 1대1로 암살자를 상대할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의 숫자가 적지 않으니 전투 상태를 풀고 난입할 여유를 주지도 않았다. 결국 전투 감각을 살려 정면 대결을 하는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첩성에서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메치기를 시도해도 미스MISS가 날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여지없이 카운터를 맞고 주루룩 밀려났다. "정의남 아저씨!" 로코가 황급히'생명의 노래'를 불렀다. 로코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류트의 음색에 섞여 퍼져 나갔다. 그러자 바닥까지 내려갔던 정의남 일행의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마 로코가 없었다면 전투는 한참 전에 끝났으리라. 전투가 시작될 때 암살자들은[회복 불가]를 난사해 정의남 일행의 포션 사용을 금지해 버렸다. 그러나 아이템 사용을 제한하는[회복 불가] 주문서도 음유시인의 회복 노래에는 효과가 없었던 것. "쳇, 저년이 또...........!" 안델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저년부터 죽여버려!" 안델이 고함을 내지르자 암살자들이 달려들었다. "막아!" "로코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한다!" 정의남과 갱생단이 암살자들을 막아섰다. 그러나 역부족, 수차례 쇳소리가 울리자 정의남 일행의 생명력이쭉쭉 빠져나갔다. 몇몇은 스턴에 걸려 털썩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다. "아저씨!오빠들!" 로코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비명을 터트렸다. 그녀가 정의남 일행과 함꼐 사냥한 지도 두달이 되어 간다.전투에 별 도움이 안되던 시절에도 항상 옆에서 챙겨 줬던 사람들. 이들은 이제 동료라기보다는 친오빠나 삼촌들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게임이지만 그들이 검에 찔리고 베이며 쓰러져 간다. 그것도 안델이 고용한 암살자에게.............. 너무나 분하고 억울한 감정이 솟구쳐 눈물이 핑 돌았다.그때 스턴으로 정의남의 발을 묶은 암살자가 로코에게 달려들었다. "끝이다. 음유시인!' "아악!" 시퍼런 칼날이 코앞으로 밀려든다. 로코는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와락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투명한 뭔가가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왔다. 카칵, 카카칵! 터텅! 아무것도 없는허공에서 격렬한 쇳소리가 울려나왔다. 이어 묵직한 울림이 터지더니 암살자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올린 로코의 눈이 2배로 커졌다. 그녀의 눈앞에서'은신'이 풀리며한 유저가 나타났다. 가죽 갑옷에 뼈로된 검을 들고있는 사내......아크였다. "아, 아크 오빠?" "내가 조금 늦었지?" 아크의 입가에 멋쩍은 미소가 번졌다. "아크?아크라고?" 로코의 목소리에 그곳에 있던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크님!" "아크 형님, 돌아오셨군요!" 시드와 로렌조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안델 역시 경악한 눈으로 아크를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놀란 이유는 아크가 나타나서가 아니다. 그는만약을 대비해 병참에 암살자를 대기시켜 놓았다. 그 암살자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는데 아크가 이곳에 나타났다. 그 말은........? "네, 네놈..............설마 그때 죽은 게 아니었단 말이야?" "말했지? 네놈 손에는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분명 나락에............" "아아, 기어 올라오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 "말도 안돼!" "말이 되는지 안 되는 지는 네놈이 판단할게 아니고.........그보다 꽤 설치고 있었나 보네. 이렇게까지 가불어 댔으니 각오는 돼 있겠지?" "각오?" "말했잖아. 다시 까불면 홀라당 벗겨 주겠다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델은 같잖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네놈 하나 나타났다고 상황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냐?" 그러자 정의남 일행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그렇다. 갑자기 아크가 나타나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지금 이곳은 레벨 120의 암살자가 아직 12명이나 남아있었다. 반면 정의남 일행은 평균 레벨60~70의 15명. 그조차 생명력이 50%도 안되었다. 아크1명이 가세한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닌 것이다. "크크크, 멍청한 놈. 기회가 있을 때 도망가지 못한걸 후회하게 될거다" "나는 너처럼 싸가지가 없지는 않거든"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여유만만했다. "그리고 깜빡잊고 말하지 못한게 잇는데, 사실은 저 밑에서 친구들을 좀 사귀엇어" "뭐? 친구?" "그래, 지금쯤이면 도착할 떄가 됬는데......." "주인!' 그떄, 뒤쪽에서 데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안델의 얼굴이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뭐,뭐야,저놈들은?" 아크의 뒤쪽, 오두막을감싸고 있는 숲이 뒤흔들리더니 여기저기에서 작은 체구의 인영이 불쑥불쑥 솟아났다. 그 숫자가 무려 100여명! 모두가 후드를 꾹 눌러써서 제대로 알아볼수는 없었지만......후드아래로 드러난 코 양옆으로 서너 가닥의 수염이 삐죽 솟아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지저세계의 주민인 너구리족. 아크는 지저세계를 빠져나올때 전화를받았다. 전화는 일찌감치 죽어서강제 종료된 1407호의 전화였다. 안델이 암살자를 14명이나 데리고 오두막을 급습했다는 급보! 아크는 밖으로 나와 잠시 고민했다. 암살자가 14명이나 된다면 정의남 일행에게 승산은 업다. 또한 아크가 달려간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게 바로 너구리 부대였다. '그래, 이곳은 이그드라실을 통해 바로 나올수 있는 카이로트다!' 아크는 곧바로 이그드라실의 씨앗으로 포포를 불러냈다. 포포는 이그드라실과 영적으로 이어져 통신이 가능했던 것. 아크는 이그드라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장로에게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응원 요청은 받아들어졌고, 2진 포병이 전임 사령관을 돕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 사이, 아크는 이동 장소에 데드릭을 대기시키고 전투 준비를 한뒤에 오두막으로 달려왔다. "소개하지, 새로 사귄 친구들이다" 아크는 안델을 향해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다시 말해봐. 조금 전에 머릿수가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이,이 자식........뭐 하냐? 놈을 죽여!" 안델이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12명의 암살자가 검을 찌르며 달려들었다. 레벨 120.확실히 굉장한 레벨이다. 그러나 너구리 부대의 포병이 누구인가? 아크의 지독한 훈련을 받으며 레벨 150,250의 몬스터를 물리쳤던 역전의 용사들이다. 순간, 숲에서 지켜보던 수십명의 너구리부대가 무기를 빼 들었다. 그리고......철컥,철컥 ,날렵한 손놀림으로 장전을 끝낸 대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콰콰쾅! 뒤이어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사방에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터져나왔다. 암살자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나 다름없었다. 포격에 적중될 때마다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가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단순에 9명의 암살자들이 걸레가 되어 널브러졌다. 정의남 일행은 그저 멍한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 이건 말도 안돼!" 순식간에 9명이나 되는 암살자가 죽어나가자 안델이 발작하듯 소리쳤다.그때, 아크가 검을 들어 올려 포격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기회를주지" "뭐?" "이제 암살자가 3명 남았다. 예전에네가 나를 몰아넣었을 때와 같은 숫자지. 다른 사람은 모두 물러서게 하고 내가 나은 암살자와 결투를 하겠다.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난 악연은 잊어버리는 게 어떠냐?" 아크는안델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귀찮아. 그리고 너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 것도싫고, 너 역시 언제까지나 나를 따라다닐수는 없을 거 아냐. 그러니 이번 전투로 결판을 내자" 안델은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의심스러운 투로 물었다. "그 말을 어떻게 믿지?" "정의남 아저씨" 아크가 고개를 돌리며 묻자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조건이라면 방해할 이유가 없지. 알았다. 우리는 끼어들지 않으마" "자, 어때? 이제 네 선택만 남았다" 안델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뜨덕였다. "좋다. 암살자가 진다면.....나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어" "그럼 시작해 볼까?" 안델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멍청한 건 여전하군. 얼마전에 같은 숫자에게 당한걸 벌써 잊어 버렸냐?" "잊을 리가........아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지" 아크가 싸늘한 눈초리로 안델을쏘아보며 대답했다. "그럼 어떻게 될지도 이미 알고 있겠군!가라, 죽여 버려!" 안델이 소리치자 암살자들이 일시에 주문서를 빼들었다. [회복 불가],[전투 해제 불가],[탈취].아크를 나락으로 몰아붙였던 주문서 콤보다. 그렇게 주문서로 모든 가능성을 막아버린 암살자들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검!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인건 그때였다. '자 ,패배를 설욕할 기회다!'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아크가 결투를 신청한 것은 그 때문이다.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다. 그런데 3명의 암살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게임을 접을 위기에까지 몰렸다. 아크는 그렇게 무력한 패배를 결코 인정할수 없었다.같은 상황, 같은 조건에서 갚아주지않으면 직성이 풀리지않는다. 그리고 또 다른이유는 바로 지저세계에서 얻은 수확을 재확인 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올린 레벨과 스킬 그리고 삼신기의 힘으로 얼마나 강해졌는지, 단순한 수치가 아닌 실력으로 증명해 보고 싶었다. 암살자 3명, 이전과 같은 조건에서 승리한다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리라. '이길 수 있어. 아니, 이겨야 한다!' "다크 댄싱!" 아크는 상체를 낮추며 새로운 스킬을 발동시켰다. 돌연 주변이 완연한 어둠으로 물들었다. 그 속에서 3개의 붉은 인영이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영상이 보였다. 첩보영화에서 마치 적외선 모드로 적을 보는 듯한 영상이다. 아크 역시 처음 써 보는 스킬이라 약간 당혹스러웠다. '뭐지? 다크댄싱은 그냥이런 상태로 회피율이 올라가는 스킬이었나?' 그리고 막 검이 날아들려는 찰나. 지면에 붉은 발자국이 하나씩 찍히기 시작했다. 마치 무술 교본에서 보법을 해설할 때 첨부해 놓은 그림 같았다. '저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라는 건가?' 아크는 지면에 새겨진 붉은 발자국에 발을 올려놓았다.발을 올려놓은 발자국이 사라지며 그 앞에 새로운 발자국이 나타났다. 발자국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속도는 횟수를 더할수록 빨라졌다. 처음에는 무난히 따라갔지만 시간이 지나자 발자국에만 집중해도 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그 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스스스슥, 사사사삭! 그저 발자국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발자국에 집중하느라 암살자들의 움직임 따위는 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아크의 몸은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모든 공격을피해 내 버린 것이다. "이,이럴 수가!" 아크가 검을 피해 내며 반대쪽으로 빠져나오자 암살자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보다 놀란 건 아크였다. '이게 다크 댄싱.............!' 회피기라기에 그저 회피율이나 방어력이 올라갈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사용해 보니 그렇게 간단한 기술이 아니었다. 다크 댄싱은 마치 오래전에 유행했던 댄싱게임과 비슷했다. 즉, 상황에 따라 몇가지 패턴의 보법을 지면에 제시하고,그걸 얼마나 완벽하게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데미지를 회피,혹은 경감해 주는 것이다. 방금 전의 완성도는 처음이라 실수가 많아 약 40%. 암살자 3명이 서너번을 공격하는 동안 아크가 받은 데미지는고작 250에 불과했다. 방어력이 상승한 점을감안해도 50% 가까이 데미지를 무효화시켰다는 뜻! '만약 완성도가 높아지면 아예 데미지를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 그뿐이 아니다. 다크 댄싱을 펼치는 동안 손을자유롭다. 이번에는 처음이라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찼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다크댄싱을 펼치면서도 얼마든지 공격을 할수 있다. 물론 말처럼 간단한 얘기는 아니다. 공격에 집중하다 보면 그만큼 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예상치 못한 피해를 받을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완성도가 30%이하로 떨어지면 패널티가 작용해 치명타를 맞을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결국 양날의 검이라는건가? 하지만 공격을하면서도 완성도를 50%이상 유지할수 있으면 엄청난 부가 효과를 발휘할수도 있다. 먼저 패턴에 익숙해져야해!' 아크는 연속적으로 다크 댄싱을 펼쳤다. 바닥에 그려지는 발자국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패턴이 다랄졌다.당연하다. 적이 항상 같은 공격을 할리는없으니까. 그러나 몇 번 반복해 보자 점차 패턴에 익숙해졌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고 반격의 기회를 잡는다. 사실 원리를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아크가 해 온일과 다를게 없는 것이다. "대, 대체 이놈 뭐야?" "어떻게 이런움직임을...........!" 암살자들은 속속 검이 빗나가자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네 번째 다크 댄싱을 펼칠 떄, 완성도는 60%까지 올라갔다. 아크의 반격이 시작된 건 그때였다. "다크 블레이드!" 다크 댄싱과 다크 블레이드의 연쇄 스킬, 암격! 순간 아크의 검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암살자의 목덜미에 쑤셔 박혔다. 방어력을 무시한 치명타를 날리는 다크 블레이드. 거기에 다시 암격에 의해 200%의 치명타 공격력이 추가되었다. 암살자는 생명력이 일격에 30%가량 빠져나갔다. "마, 말도 안돼!" 엄청난 공격력에 안델이 숨을 들이켰다. "하, 뭐야? 지금까지 내가 열흘동안 놀고만 있었다고 생각한거냐?" 아크가 자신만만하게 결투를 신청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크는지저세계에서 광렙에 광렙을 거듭하며 레벨을올렸다. 암살자 3명에게 밀렸던 건 레벨 90때의일. 그러나 지하 미궁에서 레벨이 5나 올랐고, 지저 세계에서 너구리 부대를 지휘하고, 타락한이그드라실과 싸우며 다시 무려21이나 올렸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무려 116! 그뿐인가? 어둠의 조각을 얻어 어둠 속성 보너스가 40%로 상향 조정되었다. 레벨로 따지면 무려 162에 달하는능력치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새로운 장비와 세트 아이템 효과.나락에 떨어지기 전의 아크와 무늬만 같았지.전혀 다른 존재나 다름없었다. 반면 암살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레벨 120.어둠 속성 보너스를받아도 고작 132남짓.아무리 유저 전문 암살자라도 30레벨이나 차이가 나면...... 투쾅! "커헉......!이, 이놈은 대체........" 암살자 하나가 아크의집중 공격을 받고 쓰러졌다. 3대1에서 2대 1로 바뀌자 상황은 더욱 간단해졌다. 아크는 마지막 남은 마나 400을 몽땅 사용해서 또다시 암격을 펼쳤다. 암살자들의 공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공격을 퍼붓자 곧 1명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암살자는 하나, 그러나 아크 역시 마나가 바닥나고, 생명력은 30%까지 떨어졌다. 반면 암살자는 1명뿐이라도 생명력이 80%이상! '이제부터는 오직 실력 승부다!' 아크는 검투술을 펼치며 암살자와 사투를 벌였다. 레벨 차이가 나니 순수한 검투술만으로도 암살자를 압도했다. 카칵, 터텅! 아크는 암살자의 검을 쳐 내며 화격을날렸다. 주욱 밀려나는 암살자를 따라 몸을 날린 아크의공중 돌려 차기가 고나자놀이를 후려쳤다. 뒤이어 착지와 동시에 펼쳐지는 소나기 같은 발 차기! 암살자도 만만치 않았다. 최후의 힘을 쥐어짜 검을 휘둘렀고, 아크를 빈사상태까지 몰아넣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크의 내리찍기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쓰러져 버렸다. "휴우 ,이겼다" 아크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불어냈다. 레벨 120의 암살자 셋을 혼자 물리친 것이다! "이, 이겼다!" "아크 형님이 이겼다!" "와아아아!" 오두막 주변에서 갱생단과 로렌조, 너구리족이 환호성을 터트렸다.그러나 다음 순간, 환호성은 비명으로변해 버렸다. "어엇? 저, 저자식이.......!" "아크 ,위험해!" 마지막 암살자와 사투를 벌이던 때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안델이 와락 아크의 등뒤로 달려들었다.현재 아크의 생명력은 고작 180.만약 치명타라도 맞게 된다면 일격에 강제 조료 될수 있는 상황이다. 아니, 확실히 그렇게 될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막 안델의 검이 아크의 뒷덜미에 닿으려는찰나. 돌연 빛이 터지더니 누군가가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스, 스케렐톤?" 스켈레톤 한마리가 방패를 들고 안델의 검을막아냈다. 안델이 당황하는 사이, 아크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피식 웃었다. "네놈 생각쯤은 훤하게알고 있지" 아크는 처음부터 안델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아니 ,지켜주지 않기를 바랐다. 지저 세계에서 얻은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아크 역시 내심은 결투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고 안델을 봐줄 생각 따윈 없었다. 한 번 찍은 놈은 끝까지 적이다. 때문에 아크는 일부러 빈사 상태로 안델에게 빈틈을 보였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 본 블레이드의 검화를 풀어 데이모스를 불러낸 것이다. 결국 안델은 아크가 쳐 놓은 덫에 걸린 것! "그럼 이제 약속은 깨진 거지?" "나쁜 자식,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은건가?" "이거 황당한 놈이네. 네가 그런 말할 처지냐?" "개자식들, 두고 보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놈들을 밟아 버리겠어!" 안델은 이를 갈아붙이며 주문서를 꺼내 들었다. 어느새 안델의 주특기가 되어 버린[워프]주문서였다. "엇,저, 저 녀석이 또.......!" 정의남과 갱생단이 움찔하는 찰나였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주문서 하나를 꺼내 찢어 버렸다. "주문서[자력],타깃 안델!" 동시에 막 흐려지던 안델의 몸이 덜컥 걸리듯 하더니 주욱 아크에게 끌려왔다. "뭐? 뭐야?" "말했지? 놀고만 있지 않았다고" 아크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지저 세계에서 빠져나온 아크가 너구리족을 기다리지 않고 한 전투준비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크가 안델에게 당한 뒤 가장 후회했던 게 바로 주문서의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 두지않았다는 것이다.때문에 아크는 지저 세계에서 탈환한 마을 가운데,소모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에서 각종 주문서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거기서 배운 지식 가운데 재미있는게 바로[자력]이었다.목표를 자신에게 끌고 오는 주문서.그러나[자력]은 또 다른 용법도 있었다. 상대가[워프]를 사용할때 타이밍을 맞춰[자력]을 사용하면 [워프]의 효력이 사라진다는것이다. 별 쓸모도 없는 [자력]주문서가 [워프] 주문서보다 높은 등급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유는, 이런 숨겨진 비기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주문서의 상성! 사용하기에 따라서 상대 주문서 효과를 없애거나, 오히려 반격을 가할수도 있게 된다. 이것이 주문서 활용의 진정한 묘미인 것이다. "두고 보자며? 지금 보지그래?" 아크가 씨익 웃으며 다가가자 안델이 움찔하며 몸을 사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지껄였다. "흥,그래 봐야 네놈은 나에게 손가락 하나 못대. 나는 [거짓말]을 사용한 상태다. 카오틱이아니니 나를공격하면 네가 카오틱이 되는거야. 레벨 100이 넘는 네가 그런 패널티를감수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NPC에게 죽이라고 명령하는게 전부겠지 .NPC에게 죽어서받는 팬러티 정도는 나에게 아무런 문제도 안돼. 열도 안 받고, 우헤헤헤" "........징그러운 놈이군" 정의남이 어이가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그런걸 겁낼 거라고 생각하냐?" "아크, 네가 나설 필요 없어. 우리가 이놈을 죽여 주마" "기다리세요.형님들" 아크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주문서 하나를 꺼내 들었다.주문서를 발동시키자 안델의 머리 위에 거대한검의 형상이 생겨났다. 검이 내려쳐지자 안델은 단숨에 50%나 되는 생명력이 깎여 나갔고 개구리처럼 바닥에 머리를처밖았다. "커헉!서, 설마 이건.....?" "[진실의 검]!" 시드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진실의 검].......상대가[거짓말]을 사용하고 있을 때만 발동하는 주문서. 발동시키면 강력한 데미지와함께 [거짓말]효과를없애는 주문서였다. 또한 상대의 성향을 깎아 일정 시간동안 카오틱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즉, 안델을 떄려죽여도 전혀 문제 될게 없는 것이다. "오호, 그거 멋지군" "이제 마음껏 패 죽여도된다는 뜻이지?" 갱생단이 안델을 둘러싸며 손마디를 우두둑 꺾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저었다. "아직 멀었어요" "뭐?" "형님들, 꽤 쌓인게 많죠? 이거 받으세요" 아크는 갱생단에 몇 장의 주문서를 건네주었다. 간략하게 설명을 곁들이자 갱생단원들의 눈동자가 어느때보다도 밝게 빛났다. "오오, 아크. 너도 할때는 하는구나" "후후후, 이쯤 되면 오히려 우리가 미안해지는걸" "그래도 어쩔수 없지. 밟을 때 확실하게 밟는게 우리의 규칙이니까" "물론이지.뭐, 그렇게 알라고. 먼저 시비를걸어온건 네놈이니까. 억울해 할 필요는 없어" "대,대체 무슨 짓을......!" 안델이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다. 정의남과 갱생단, 아크와 심지어 로코까지 깔깔 웃으며 주문서를 좍좍 찢어버렸다. -[엿보기]주문서가 발동됐습니다. 시전자가 타깃으로 지목된 유저의 가방 아이템을훔쳐볼 수 있습니다. -[강탈]주문서가 발동됐습니다. 시전자가 타깃으로 지목된 유저의 소지 아이템을지목했습니다. 지목된 아이템은 유저가 사망시 100%확률로 떨어집니다.겹쳐지는 아이템은 하나의아이템으로 적용됩니다. 주문서가 쉬지 않고 안델에게 적용되었다. 암살자에게 지급하기 위해 대량으로 구입해 놨던 각종 주문서 다발, 언제든지 현금화시킬수 있는 금괴, 혹시 덜굴지도 몰라 입지도 않고 가방에 넣어둿던 장비.....돈 될 만한 아이템은 모두 [강탈]의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말했지?다시 덤비면 정말 홀랑 벗겨 버리겠다고" -[탈취]주문서가 발동됐습니다. 타깃으로 지목된 유저가 사망하면 50%확률로 장비 아이템을 떨어트리게 됩니다. 아크와 갱생단이[탈취]를 네 번이나 중첩시켜 버렸다. 현재 안델은 카오틱, 사망 시 장비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상태다. 거기에[탈취]가 네 번이나 걸렸으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지,지독한 놈.......!" "어라? 왜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불운]주문서가 발동했습니다. 타깃으로 지목된 유저의 운이 일시적으로 0이 됩니다. 각종 상태 이상에걸릴 확률과 저주의 발동확률, 장비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극대화됩니다. 만약 카오틱 플레이어가 불운 상태에서 사망할 경우,스탯 감소율이 2배로상승해 4만큼 감소합니다. 아크가 빙긋 우승며 말했다. "싸움에서 진 개는 한번 더 밟아 줘라. 그게 내 지론이거든" 안델의 얼굴이시꺼멓게 죽어 버렸다. "으악,주인!이 여자,이 여자 좀 어떻게 해봐!" 데드릭이 비명을 질러 대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안델을 사뿐히 밟아준뒤, 아크는 간만에 만난 정의남,갱생단 등과 합류 했다.그리고 인사가 오가는 사이 ,마침 꼬마 아이로 변신해 있는 데드릭을 발견한 로코는 맹렬하게 데드릭을 쫓아다니며 애정(?)을 퍼부었다. "호호호, 얘는.........반가우면서 괜히 그래" "안 반가워, 안 반갑다고!" "에이,그러지마 ㄹ고 누나랑 놀자" "누가 누나야? 말했잖아,나는 300살이란 말이야!" "깔깔깔!알았어, 알았어.그래, 너는 300살짜리 어린애야.됐어?" "그러니까 어린애가 아니라고 했잖아!" 데드릭이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이 고함을내질렀다. 그러나 로코는 들은 척도 안하고 데드릭을 껴안고 볼을 꼬집어 댔다. 그러다가 문득 옆에서 쭈뼛거리는 데이모스를 발견하고 미간을 오므렸다. "어머? 너는혹시......해골?" 데이모스가 반가운 기색으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데드릭과 달리 데이모스는 해골시절부터 로코와 제법 친하게 지냈다.그러나 로코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너........좀 징그러워졌구나" 띵!로코의 말에 해골은 충격을 받은듯 시무룩한 표정으로 찌그러졌다. 제 딴에는 꽤나 멋있게 변한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덜그럭, 덜그럭 데이모스는 팩 몸을 돌리며 안델의 시체에 달라붙었다. 잠시 뒤적거리던 데이모스의 눈빛이 번쩍인건 그때였다. 그리고 무슨 심령 치료사처럼 안델의 어깨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나온 손에는 놀랍게도 피 묻은 견갑골이 들려있었다. '설마 유저의 몸에서도 뼈를 수집할수 있는건가?' 아크의 생각은적중했다. 데이모스는 곧바로 자신의 견갑골을 뜯어내고 안델의 것으로 바꿔버렸다. [데이모스가 '뼈 수집'스킬로 견갑골을 재조립했습니다. 뼈를 갈취당한 상대가플레이어일 경우, 플레이어의 능력치와 교환됩니다. <데이모스 : 힘+5,체력+5,지혜 -5,지능-5> <안델 : 힘-5,체력-5,지혜+5,지능+5>] 안델은 전사 계열의 유저다.때문에 뼈를갈취당하자 힘과 체력이 감소했고, 반면 데이모스는 힘과 체력이 올라간 것이다. 이래저래 재수가 없는 안델이었다. 데이모스는 바꿔 낀 견갑골이 꽤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새로운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히죽 웃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웃는 것처럼 보인게아니라 분명하게 웃었다. 히죽하고, 음흉하게 웃었다. '능력치가 오른건 좋지만......이건 완전 공포 영화로군' 아아, 데이모스........대체 네 진짜 성격은 뭐냐? 바닥을 구르며 몬스터를 꺠물던 귀여운 해골의 모습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뼈 수집 덕에 능력치가 올라가는 건 좋지만, 남의 뼈를 뽑아내 자기 몸에 붙이고 좋아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엽기적이라고밖에 할말이없었다. 그런 데이모스의 엽기적인 행동에 갱생단은 모두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아크 역시 비슷한표정을 짓고 있다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녀석이 요즘 이상한 취미가 생겨서요" 어쨌든 그런 와중에도 주변 상황이 대강 정리되고 강제 종료됐던 갱생단도 부활을 마쳤다. 그러자 너구리족 포병 대장이 다가와 아크에게 경례하며 말했다. "사령관님,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음, 수고했어. 장로님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넵!가자!' 포병들이 일제히 경례를붙이고 척척 귀환 장소로 돌아갔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황당한 너구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뭐냐? 단체로 동물원을 탈출한 듯한 저 너구리들은?" "지저 세계에서 사귄 친구들이에요" "지저 세계?" 아크는 호기심을 보이는 정의남에게 지난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정의남이 아쉬운 얼굴로 한숨을 불어냈다. "그렇게 재미있는 곳이 있었다니, 젠장, 미리 알았으면 우리도 들어갔을 텐데........" "죄송해요. 하지만 지저세계로 들어올방법이 없었어요.아저씨나 형님들은 나락으로 들어올수도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 "아!그리고 소개해 줄 녀석이 또 있어요" 아크가 가방에서 작은 씨앗 하나를꺼내 들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이 뭔가 하고 시선을 모으자 씨앗에서 작은 형체가 떠올랐다. 너구리족 영웅 소년,포포였다.포포는 이방인들의 관심이집중되자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꾸벅 인사했다. -헤헤, 안녕하세요? 저는 포포, 아크형 동생이에요 "아앗!" 그러자 데드릭을 괴롭히던 로코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우우..........!귀......귀여워.손가락만한 너구리라니......." -아, 누나가 로코죠? 아크 형에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뭐? 저, 정말? 뭐라고 했는데?" -예쁜 여자 동생이 있다고요.정말 듣던 것처럼 예쁘네요. 앞으로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포포는 생각보다 아부를 잘하는 녀석이었다. "호호호, 너 착하구나. 보는 눈도 있고.......내 동생하고는 딴판이야. 그래, 누나라고 불러.아크 오빠 동생이면 내 동생이나 다름없어. 포포라고 했지? 우리 잠시 얘기좀 할까?아크 오빠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로코는 날름 씨앗을 뻇어들고 멀찍이 떨어졌다. "체!" 그러자 데드릭이 빈정 상한 얼굴로 돌을걷어차며 해골 옆으로 찌그러졌다. 불평을 해 대면서도 은근히 로코가 따라다니는 게 좋았던 모양. 하긴 싫지 않았으니 박쥐로 변해 도망가지 않았겠지만........ "꽤나 즐겁게 사는구나" 붙임성 잇는 너구리 소년.은근히 아크에게 관심있다는것을 내비치는로코,그녀에게 버림받은채 찌그러져 있는 두 소환수.........그렇게 아옹다옹하는 모습들이 마흔이 넘은정의남의 눈에는 꽤나 귀여워 보엿던 모양이다. "뭐........그렇죠" "그런데 안델 녀석은 어쩔 생각이냐?" "그냥 둬요. 어차피 당분간은 접속하지 않을 거에요"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분명 다시 귀찮게 할텐데?" "그렇겠죠. 하지만 신경 안써요. 여기는 무법도시라 당해 버리면 곤란한 상황이었지만, 다른 지역에는 그런 패널티가 없으니 부활 못 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한 번 당하면 배로 갚아 주면 그만이죠. 쉽게 당하지도 않겠지만" "하긴, 방금 전에 네 실력을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것 같더라." "그리고 안델 녀석은 접속하기 전에 다시 암살자를 동원할지도 몰라요. 로렌조나 건달은 NPC라 마을에서 먼저 공격받으면 경비병이 도와주니 상관없지만 우리는 달라요.그러니 더 귀찮게 얽히기 전에 카이로트를 떠나는게좋겠어요" "그게 좋곘다.그런 놈을 상대하기엔 시간이 아깝지" "하짐나 그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아크의 눈동자가 간만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벌써 안델 따위는 까맣게 잊고 돈벌이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시드님.일단 이걸 모두 정리해 주세요" 아크는 시드에게 지저세계에서 모은 잡템을 모두 건네주었다. "헉, 이, 이건.....!" 잡템을 모두 건네받은 시드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잡템 때문이 아니다. 바로 지저세계의 통화 ,광석 때문이었다. 아크는 도적소굴에서 모은 1,600개의 누룬마 잎을 모두 쿠키로 만들어 너구리 부대에 팔아치웠다. 처음에는 1L.그러나 곧 재료가 얼마 없다는 이유로 2L로 스리슬쩍 가격을인상했다. 덕분에 이미 중독으로 살짝 간 상태의 너구리족은울며 겨자먹기로 쿠키를 사먹을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아크가 긁어 모은 광석은 모두 2,400개! 아이템 제작에 500L을 지불하고도 1,900개의 광석이 가방에 쌓여있었다. "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광석을......?" 잠시 안 보인다 싶으면 무지막지한 아이템을 가지고 나타나는아크. 아크는 시드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불가사의한 유저였다. "아니, 그보다 이걸 몽땅 여기서 정리하라고요? 하지만 기란으로 가져다 팔면 최소 20%는 더 받을수 있을 거에요" "상관없어요.그냥 모두 정리해주세요. 그리고 안델에게서 뺏은 아이템도 카이로트에서만 구할수 있는 주문서 종류를 제외하고는 몽땅 골드로 바꿔 주세요. 짝퉁형도 같이 가실수 있어요?" "알았다" 곧 시드와 짝퉁이 아이템을 짊어지고 카이로트로향했다. 짝퉁을 같이 보낸 이유는 그의 전용 스킬'사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아크 덕에 각종 판매 스킬을 상당히 올린 시드였지만 ,모든 아이템을 15%가 넘는 이윤을 받으며 팔수는 없었다. 반면 짝퉁은 '사기'스킬을 사용하면 무조건 15%의 이윤을 붙일수 있었다. "자, 이제 카이로트 생활을 마무리하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갱생단을 이끌고 카이로트로 향했다. 그동안 미뤄 왔던 <로렌조의 누명을 벗겨라>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서였다. 정의남 일행이 미리 얻어 놨던 창고 열쇠로 아지트에 쌓여 있던 물품 상자를 월커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쭈뼛거리는 로렌조를 끌어다 앉혀 놓고 지난 사정을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됬던 겁니다" "그랬구나.......나는 그것도 모르고 무조건 너만 의심했으니.......미안하다" 월커스는아들의 손을 잡으며 회한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로렌조도 응어리가 풀린듯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 모든게 다 제 잘못에서 시작된 일이에요.아버지, 죄송해요" "아버지? 지금 아버지라고 했느냐?" "네, 아버지. 그동안 불러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됐다. 그런 말 말거라. 이 모든게 그동안 모질게 대한 내 잘못이다. 나는 자식을 키워 보지 못해서 무조건 엄하게 대하는 것만이 사랑인줄 알았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어. 아니, 그만하자.과거는 모두 잊자꾸나.네가 새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면 그걸로 됐어" "아버지!" 월커스와 로렌조는 와락 눈물을 흘렸다. 갱생단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두 NPC를 바라보았다. 비록 NPC지만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걸어와고, 또 새롭게 갱생한 로렌조의 모습이 자신들과 겹쳐 보였던 모양이다. "형님, 정의란 정말 좋은 거군요" "음, 그렇지" 정의남도 새삼 뿌듯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러나 아크는피도 눈물도 없었다. "자, 월커스 아저씨.감동은 천천히 하시고 이제 계산을 끝내 보죠" "계산?" "이거 왜 이러십니까? 벌써 약속을 잊으셨어요?" "약속.......아, 그렇지!허허허, 내가 잊었을 리가 있나?그래, 기억하네. 아마 물건을 되찾아 주면 모든 물건을 40%할인한 가격에 팔아 준다는 약속이었지? 알겠네,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 말하게 .아들을 되찾은 내가 뭘 아끼겠는가? 내가 이래봬도 수도에서 큰 장사를 하던 사람이야. 째째한 소린느 하지않아.다른 곳에서 물건을사서라도 자네가 원하는 건 모두 구해주겠네" "아, 아버지.잠깐만요!그건......" 순간 로렌조가 기겁하며 월커스의 입을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월커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크가 눈을 번쩍이며 못을 박았다. "틀림없이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곳에서 물건을 사서라도 내가 필요한 물건을 모두 구해 주겠다고,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죠?" "어? 그, 그랬네.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뇨.전혀 없습니다. 그럼 장사를시작해보죠" 아크는 해맑게 웃으며 카운터에 돈주머니를 턱하니 올려 놓았다. 월커스의 얼굴이시퍼렇게 질려 버린건 그때였다. 카운터에 올려놓은 돈주머니는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5..................5,500골드?" 아크는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여기서 잠깐 아크에게 5,500골드라는 어마어마한 돈이모이게 된 이유를 알아보자. 먼저 카이로트로 올 당시, 아크가 가지고 있던 골드는대략 1,00골드. 지저세계에서 쉬지않고 시드에게보냈던 잡템을 팔아 얻은수익이 대략 300골드. 그러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건역시 너구리족에게 마약을 팔아 모은 불법 자금이다. 역시 나쁜 것은 돈이 되는 법.시드의 보석 거래스킬로 너구리족에게 갈취한 1,900개의 광석을 파니 개당30길버나 되어싿. 그 판매가가 570골드! 덕분에 아크의 자산이 무려 1,870골드로 뻥튀기 되었다. 그뿐인가? 방금 전 안델을 거지로 만들며 긁어 모은 아이템. 카이로트에서 파는 주문서는 굳이 팔 이유가 없으니 제외하고.......나머지 장비아이템과 소모품을 매각하자 무려 500골드가 나왔다. 여기까지가 2,370골드. 물론 아크는 여기서 끝낼생각이 없었다. '일단 최대한 많은 자금을 만들어야해!' "정의남 아저씨,형님들. 이건 제가 보장할게요. 일단 사서 유저에게 팔기만 하면 순수익이 50%나 되는장사에요" "확실히..........." 아크의 설명을 들은 짝퉁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끄덕였다. 일단 물건을 사 두기만 하면 확실하게 이득이 보장되는거래. 그런 거래를 앞두고 돈을 아낄 사람은 없다. "좋아, 우리도 몽땅 투자하마"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게 분할 정도로군" "시간만 많다면 몇 천 골드쯤 사가지고 와서 거래하면 좋을텐데......." "어쩔수 없죠.그래도 형님들이 모두 오셔서 그나마 다행이에요" "흐흐흐 ,너는 복덩이다.나는 돈 벌어 주는 사람이 제일 좋더라" 갱생단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골드를 모으기 시작했다.갱샌단은 비록 레벨 60대에 불과했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전직 어둠의 자식들이었던 갱생단의 모토는 폼생폼사. 설사 게임이라도 찌질하게 돈 몇 푼에 절절매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게임을 시작할떄 경매 사이트에서 사 둔 골드가 제법 되었다. 그들의 주머니를 탁탁 털어 내자 4,000골드가 넘었다.그러나 아크는 그 돈을모두 투자 받지 않았다. 아크는 그중 2,000골드로 장비를구하라고 조언했다. "지금이 형님들 장비아이템을 바꿀기회에요. 제가 다녀온 지저 세계에는 밖에서 구하기 힘든 아이템도 많아요. 그만큼 가격이 비싸지만,성능 하나만큼은 보장해요" 사탕발림에 넘어간 갱생단은 선뜻 2,000골드를 맡겼다. 아크는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곧바로 이그드라실을 타고 지저세계로 돌아갔다. 아크는 지저세계를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이다. 당연히 친밀도는 최상. 정가에서 30%난 할인된 가격으로 지저세계의 아이템을 구입할수 있었다. "우와, 이거 장난이아닌데?" "이 단검은 추가 공격력이 붙어 있잖아?' 갱생단은 아크가 들고 돌아온 아이템을 보고 환호성을 터트렸다. 숨겨진 장인 마을의 아이템이라 가격대 성능비가 최상급이었다. 중저가 아이템도 레어급의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거기에 암살자들에게 얻은 아이템까지 적당히 나눠 장착하자 갱생단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아크가 굳이 장비를 바꾸라고 조언한 목적은 오직 갱생단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것만은아니었다.아크는 기뻐하는 갱생단의 눈치를살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짝퉁 형, 실은 제가 막 퀘스트를 해결한 참이라 물건 값을 좀 할인 받았어요. 그래서 잔돈이 좀 남았는데......." "그럼 그건 너 가져라,수고비다" "그래, 고생했어. 밖에서는 이런 아이템 돈 주고도 못 구하잖아" "그런 건 그냥 아무 말 없이 챙겨도 되는거야 .자식,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전직 건달인 갱생단은 역시나 씀씀이가 대범하기 짝이 없었다. 바로 이게, 거래 스킬이 잇는 시드도 데려가지 않은 이유였다. 온갖 아르바이트로 눈칫밥 경력을 쌓아온 아크는 이미 갱생단의 성격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 "우와, 형님들고마워요!" "자식, 뭘 그런걸가지고......이 형님들은 쨰째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잔돈이 얼마나 남았는데?" "600골드요" "에엑? 600골드?" 넉넉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갱생단의 얼굴이 딱닥하게굳었다.아크는 거랠 스킬도 없으니 ,잘해야 5%할인받아서 100골드 정도 남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그 잔돈이 무려 600골드나 된다는 걸 알았다면 갱생단도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말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났다. 체면 하나로 먹고살던갱생단은 입이 찢어져도 돌려 달라는 말은 하지못했다. 그 역시 아크의 노림수! "형님들 정말 통이 크세요" "하하하 .그, 그렇지.우리가 좀 통이커" "600골드쯤은.........." 갱생단원들이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허세를 떨어댔다.어쨋든 덕분에 아크의 자본금은 600골드가 추가되어 3,000골드에 달했다. 거기에 갱생단의 남은 자본금 2,000골드.시드와 로코의 쌈짓돈까지 합해 5,500골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이 돈으로 모두 아이템을 사겠다는 건가?" "네, 설마 물건이 모자라다는 말은안하시겠죠?" "분명 다른 상점의 물건이라도 사오겠다고 했지만 이건 좀......."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자네는 정말........" 월커스는 결국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내가 졌어, 하아, 아무래도 자네는 직업을 잘못 택한 것 같네. 상인이 되었다면 대성했을 거야.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독한 친구 같으니" "칭찬 감사합니다" "하하하!좋아, 기꺼이 물건을 준비해 주겠네" 월커스는 결국 웃음을터트렸다. 상인으로서는 꽤나 밑지는 장사를 하게됐지만 ,아버지로서는 잃엇던 아들을 되찾았다. 이해득실로 따질수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월커스는 곧 창고읭 모든 아이템을 아크에게 넘겨주었다. 모두가 카이로트에서만 판매하는 고가의 상품들 그리고 약속대로 부족한 아이템은 다른 상점에서 도매로 떼다가 가격에 맞춰 채워 주었다. 주문서처럼 값도 비싸고, 10매씩 겹쳐지는 아이템을 위주로 샀는데도 시드의 가방 6개와 보조가방1개가 터질듯 부풀어 올랐다. "아, 아크님. 가방이 꽉 찼어요" 시드가 행복에 겨운얼굴로 엄살을 떨어댈정도였다. "시드 님. 계약서" "네? 아, 네!" 시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 내용 : 현재 파티원의 아이템 전매. 카이로트에서 구입한 아이템을 시드에게 넘겨주는 시점에서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한다. 시드는 아이템의 판매가 종료된 시점에 모든 수익금을 각자의 지분에 따라 분배해 주어야 한다>] 무려 5,500골드에 달하는 아이템 판매 대행 계약서! 만약 시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계약서를써준다고 해도 절대 맡기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제 아크는 시드를 100%신뢰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5,500골드짜리 계약서를 쓰게 될줄이야" 시드는 계약서를 몇 번이나 확인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게약서에 따른 수익금의 지분은 아크가 58%,정의남과 갱생단이 30%,로코가 5%,나머지 시드가 7%였다. 본래 로코나 시드의 투자금은 그만큼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시드는지금까지와 달리 판매 차익을 모두 가지는 조건이 아니라 지분을올려준 것이다. 그리고 로코는 투자금이 몇 골드밖에 되지 않지만 마스코트니 일종의 보너스다. 거래 단위가 몇 천 골드나 되니 5%만도 장난이 아니었다. 5,500골드의 5%면 275골드. 거기에 판매 수익이 약 40%정도 예상되니 최종적으로 385골드가 손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7%인 시드에게 떨어질 최종 수익금도 무려 577골드.상인으로 재기하기에 충분한 돈이다. 게다가 상인은 장사를 함으로써 성장하는캐릭터. 굳이 상점이나 교역소가 아닌, 유저를상대로 장사해도 거래 스킬과 경험치가 들어온다. 40%의 이윤을 남기며 하는 장사니 모든 아이템을 정리한다면 어마어마한 경험치와 숙련치가 들어오리라. 비단 시세 폭락으로 받았던 패널티 따위는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그동안 아크님의 가방노릇을 한 보람이 있구나!' 시드는 그동안의 설움이 단숨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크는 흐뭇한 표정을지으며 월커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제 아저씨는 어떻게 하실거죠?" "나야.......이 녀석이 앚기 수배 중이라 수도로 돌아갈수없으니 당분간은 이곳에 있어야지. 하지만 수배가 풀리면다시 수도로 돌아갈 생각이네" "그렇군요" "한 가지 걱정은 이 녀석이 과거에 몸담았던 패거리가 어떻게 나올지........"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정의남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마침 우리가 수도로가는 길이니 그 문제를해결해 주겠소" "저, 정말 그래줄수 있소?" "물론이오. 이미 우리가 갱생시킨 건달들에게 큰형님이라는 놈의 위치를 대강들었소" "하지만 당신들이 왜 그렇게까지? 자칫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오" 월커스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자 정의남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크하하하,목숨 따위를 아끼면서 어떻게 정의 실현을 할수 있겠소?" "그렇습니다. 저희가 여기에 온 이유도 정의 실현을 위해서니까요" "또한 건달도 건달나름의 도리라는게 있는 법" "그따위 싹수없는 놈들에게 진정한 건달의 도리를 가르쳐 줘야 겠습니다" 갱생단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뭐, 우리 떄문에 손해를 봤으니 그 정도 애프터서비스는 해 줘야지" 정의남은 겸연 쩍은 얼굴로 둘러댔다. 그렇게 카이로트의 일을 대강 정리한 아크와 정의남은 문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 목적지가 정해졌군요" "그래 ,처음부터 우리 목적지는 수도였으니까" "저도 동행할수 있을까요?" 그때, 시드가 눈알을 굴리며 끼어들었다. "시드님이?" "네, 카이로트의 물건들은 가까운 기란보다 수도에서 더 비싸게 팔릴거에요.수도에는 여유가 잇는 고레벨 유저도 많으니까" 100골드나 200골드의 물건을 정리한다면 모를까, 무려 5,500골드나 되는 물건이다.1%씩만 더 받아도 55골드!그 만한 이윤이라면 멀리 떨어진 수도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갈수있을리라.또한 갱생단과 함께라면 그리 위험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게 좋겠어요.마침 저도 수도로 가려던 참이었으니까" "너도?" "네, 저도 한 번은 들러봐야 해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카이로트를 마지막으로 기란 주변은 다 돌았다. 마침 새로운지역으로 넘어갈 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수도으이 투기장에서 만나자는 샴바라와의 약속도 아직 기억하고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에 휘말려 시간이 조금 지체됬지만 기억하고 있었다. "기란에 들러 마법학회에 퀘스트 보고를 해야하지만" "뭐, 기란이야 수도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까 문제될건 없지. 알았다" "그럼 다 같이 출발하죠" 아크의 말에 로코가 반색했다. "처음으로 모두가 함께 여행하는 거네요?" "그래, 뭐,너는 아크와 둘이 오붓하게 가고 싶겠지만......" "짝퉁 오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로코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덕분에 괜히 아크의 얼굴도 붉어졌다.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왔다. '좋구나.가족 같은 사람들과 함께 웃을수 있다는 건' ACT 8 실전 대련 아크와 정의남 일행이 카이로트를나왔을 무렵.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 셀리브리드는 술렁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 왕성의 대변인이 발표한 내용때문이었다. "슈덴베르크의 모든 국민에게 알립니다. 드디어 브리스타니아왕국과 시니어스 공국 그리고 대슈덴베르크 왕구. 삼국의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로써 길었던 대치 국면이 다행히 전쟁으로 번지지 않고 평화롭게 종결됐음을 알립니다`!" "와아아아!" 뜻밖의 소식에 NPC와 유저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뉴 월드에 존재하는 인간족의 세 왕국. 브리스타니아와 시니어스,슈덴베르크는 사이가 좋지않았다. 때문에 슈덴베르크의 정규병들도 모두 삼국의 국경이 모여 있는 지역에 파견된 상태였고, 유저들 역시 쉽게 국경을 오갈수 없엇다. 이런 냉전 상태는 뉴 월드를 현실로 생각하는 NPC도 그렇지만,유저에게도 이만저만 불편한게 아니었다. 다른 왕국에서 시작한 유저들은 친구 사이에도 만나기가 쉽지않았던 것이다. 또한국경 지역은 대부분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그런 계약이 풀리게되었다.이는 더 많은 지역을 모험할수 있단 의미다. 대변인은 손을 들어 청중을 진정시키고 다시입을 열었다. "이번 정전협정의 골자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삼국의 국민들은 모든 교역을 자유롭게 할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국경을 지날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소수의 교역상에게 부과되던 특별 관세도 페지하고 모든 관셰를 5%로 고정합니다" 그 뒤로 협정의 내용을 시시콜콜 떠들어 대던 대변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정전협정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전투 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되어있는 삼국의 국경 지역. 삼국의 국왕꼐서는 이 방대한 지역을 개척 지대로 선포했습니다" "개척 지대?" "그렇습니다. 이 시간 부로 그 지역의 모든 성을 이방인에게 개방합니다" 이어지는 대변인의 설명에 유저들은 입을 쩍 벌렸다.대변인의 말을 쉽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삼국의 국경이 모인 삼각 지역의 정식 명칭은 나가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가란에서는 삼국의병사들이 쉬지않고 작은 충돌을 벌여왔다. 그러나 근래 들어 작센 영지사건을 비롯해, 뉴 월드 각지에서 흉흉한 사건들이 일어났고, 불안감을 느낀 국왕들은 슬슬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후 정전 협정이 체결되어 나가란에서 삼국의 병사들이 모두 퇴각한 것이다. 그 결과 단숨에 거대한 지역에 세워져있던 성들이 모두공백 상태로 남겨진 것이다. 삼국의 국왕들은 이 공백 지대를 어떻게 처리헤야 할지 고심했다. 병사를 주둔시키면 다시 분라의 여지가 남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해 낸 결론이 바로 이방인이었다. 삼국의 이해타산과는 관계없이 오직 자신들의 삶을 추구하는 이방인. 이방인들에게 나가란을 개방한 이유는 단순하다.삼국과 특별한 이해관계가없는 이방인들이 나가란의 성을 차지하고 있으면 ,군사적 완충지대가 될것이라 판단한것이다. 또한 성을차지한 이방인이 돈을 쏟아부어 영지를발전시키면 삼국에도 이득이다. 머리를 맞댄 국와들은 제법 좋은생각이라고 만족했다. 그러나 국왕이라고 해도 결국은 NPC.그들은 스스로 머리를 쥐어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뉴 월드에 준비 되어 있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 <에피소드 II: 이방인의 개척시대>가 막이 오른것이다. "뛰어난 전사를 보유한 이방인 길드라면 누구라도 성을 차지할기회가 부여됩니다. 또한 성을 차지한 이방인은 삼국의 국왕에게 정식 작위를 받게 될것입니다!" 뒤이어 대변인은 공성전의 룰을 설명해주었다. 성을 차지하는 방법은 의뢰로 간단했다. 나가란 각 성 상층부에는 지배의 왕좌라는 것이 존재한다. 유저가 성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각 파티나 길드의 리더가 지배의 왕좌에 앉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하며 게임시간으로 사흘, 현실 시간으로 24시간 동안 다른 파티나 길드의 공격을막아내야 한다.그렇게 방어에 성공하면 성주가 되어영향권 내의 모든권한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성주라는 지휘는 영원한게 아니다. 성을 차지한 유저는 최소 일주일에한번은 다른유저의 도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패배해 성ㅇ르 뺴앗기면 삼국 공통작위도 박탈도니다. 모처럼 돈을 쏟아부어서 영지를 발전시켜도 죽 쒀서 개 주게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쨌든 대변인의 발표에 유저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성의 주인이 될수있다! 이는 엄청난사건이다.단순히 게임의 성이라도 우습게 볼일이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대한민국의 온라인 게임 가운데 초유의 히트작이자, 처음으로 성을 소유할수잇었던 리O지만 봐도 알수 있다. 당시 성을 차지했던 길드는 막대한부와 명예를 독차지했다. 심지어 성주가 되어 1년만지나면 집을산다고 할정도였다. 하물며 리니O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돈이 굴러다닌다는 차세대 게임 뉴 월드다. 거기서 얻어지는 이득은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대변인의 설명으로도 그랬다. 일단 성주가 되면온갖 혜택과 세금 징수권이 주어진다. 마음만 먹으면 유저의 재산을 몰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폭정이 지나치면 다른 유저드르이 공분을 사게 되어 성주 자리를 지키기 어려워지리라. 그러나 어쨌든 성주로 있는 동안만큼은 그 지역에 대한 권한은 무한대에 가까웠다. '아크 따위에게 신경 쓸때가 아니다' 아란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란은 방금 전, 안델의 전화를 받았다. 1,500골드나 들여 암살자를 15명이나 보냈는데 또다시 당해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기도 차지않는다. 대체 어떻게 하면 레벨 `120짜리 암살자 15명을 데리고도 아크 하나를ㄹ 잡지 못할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아이템까지 몽땅 ㅒ앗겼다며 징징거리다니........... '멍청한자식!' 어렵게 다크브라더를 찾아내 일을 의뢰했다. 아란 역시 명성치와 성향, 거기에 돈까지 투자했다. 이번에 15명이나 고용할때도 명성치와 성향이깎여나간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오히려 아크를 도와준꼴이 된게 아닌가? 물론 안델에게도 그만한 이유는 있었다. 갱생단의 합류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NPC의 출현이다. 그러나 역시 결정적인 문젠 안델의 멍청함이었다. 뉴 월드는 안델이 생각하는것처럼 단순한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암살자라도 의뢰인의 판단에 따라 보다 효과적으로 움직여 준다. 돌려 말하면 ,의뢰인이 제대로 판단해 움직여 주지않으면 제 힘을 발휘할수 없다는 뜻이다. 레벨이 전부가 아니라는건, 유저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닌것이다. '역시 그놈에게 맡기는게 아니었어!' 결국 안델이 당한이유는 투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안델은 죽어도 인정하지않겠지만, 아크보다 능력이 뒤떨어져서다. '어쩄든 이로써 아크 녀석도 조직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게다가 부대 단위의 NPC까지 조정할수 있다면 갈수록 놈을 건드리기 어려워지겠지.그 전에 확실하게 놈을 밟아 놔야 입사시험의 수석을 차지할수 있어. 가능하면 더 늦기 전에 내가 나서고 싶지만.....' 그러나 아란은 고개를저었다. '안 돼. 아크 녀석 때문에 이번 기회를 놓칠순 없어' 사실 아란은 이번 <에피소드 II : 이방인의 개척 시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고 잇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뇌물이 통하지 않는 곳은 없다. 홀리 나이트인 아란은 대성당을 출입할수 있는 몇안되는 유저. 이미 얼마전에 대성당에서 뇌물로 친밀도를 올려놓은 NPC를 통해 삼국의 동향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이미 나가란을 이방인에게 공개하는 것은 결정된 사항이나 다름없네. 만약 자네가 나서 준다면 대성당이 뒤를받쳐 주겠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얼마 전 대성당의 주교가 은밀하게 그를 불러 말했다. 비록 이방인에게 공개했지만, 권력을 가진 NPC가 그 지역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못해도 이렇게 연이 닿은 유저를 움직여 나가라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이다. 아마도 삼대 길드나 다른 왕가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으리라. 그 이후로 아란은 모든 일을 중단하고 길드 창설에 열을 올렸다. 안델은 입사시험 따위는 아무래도좋다고 말했지만, 아란은 다르다. 그에게는 꼭 글로벌엑서스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아란은 입사시험의 합격 조건을 뉴 월드에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성을 빼앗을수 있는 시스템이라지만, 먼저 성을 차지하고 막대한 세금을 거둬 힘을 키운 길드에 성을 빼앗기란 쉽지않아.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다. 곧 각지역의 유저들이 몰려들어 공성전으로 밤을 지새우는 시기가 올거야. 힘 있는 길드가 움직이기 전에 성을 차지하고 최대한 힘을비축해 놔야해' 아란의 눈동자가 빛났다. '어차피 이번일롤 굳이내가 나서지 않아도 다크브라더는 아크 일행을 적으로 간주하게 됐다. 암살자를 18명이나 죽였으니........일단 아크는 그들에게 맡겨두자. 그리고 그 사이에 내가 힘을 키워 놓으면 아크 따위는 언제든지 밟을 수 있다.' 결정을 내린 아란은 곧바로 길드 사무실로 걸음을옮겼다. 일주일 전부터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만든 길드'여명의 칼날'이다. 아란은 길드원의 대부분을 응시자로 채웠다. 그저 게임을 즐기는유저보다 집착도 강하고 레벨도 높은 유저들이다. 이들을 장악해서 성을 차지한다. 그것만으로도 글로벌엑서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수 있으리라.아란은 길드 사무소에서 기다리던 아름다운 엘프 마법사를바라보며 말했다. "레리어트 님, 기다리던 떄가 왔습니다" "네, 저도 들었어요" "이번 공지는 틀림없이 입사 시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겁니다. 그리고 레리어트님은 부길드장으로 저와 비슷한 점수를 받게 될겁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만 따라오십시오. 꼭 합격 시켜 드릴테니까" ".......네" 레리어트는 눈빛이 부담되는지 살짝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아란의 노골적인 접근을 거북스러워했다. 작센 영지의 이벤트를 치를때부터...... '설마.......아크 녀석 때문은 아니겠지?' 여자처럼 남자에게도 육감이라는 게 있다. 분명 레리어트는 아크에게 호감 이상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란은 울컥하며 미간을 찡그렸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래 봐야 너도 다른여자들과 다를바 없어. 내가 유 월드의 모든것을 움켜쥐고 수석으로 합격하면 결국 애정을 구걸하게될거다. 그래, 이 세상은 있는 자를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내게 불만이 있으면서 나를 떠나지 못하는 건그것 때문이지' 아란은 망토를 펄럭이며 몸을 돌려세웠다. "여명의 칼날 길드원을 모두 소집해라" 글로벌엑서스의 안내 데스크를 맡고 있던 미인이 한숨을 불어냈다. 정식 채용되기 위해 입사시험을치르는강미수, 레리어트였다. 그녀는 근래들어 한숨을 불어내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요즘 아란님이 점점 강압적이 돼 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친절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었는데........' 물론 그녀가 게임을하는 이유는분명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오직 그것만이 겡밍르 하는 목적의 전부는 아니었다. 한사람의 유저로서 순수하게 뉴 월드를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다. 누구보다 활발하게 게임을 하던 아란과 함께 다니게 된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아란은 게임을즐기는 여유가 있었고, 동료를 끌어들이는 매력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아란은 돌변했다. 동료들을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응시자에게는 자신만 따라오면 다 합격시켜 주겠다는식으로 말했다. 또 일반 유저는 막대한자금력을 이용해 자신의 뜻대로 조종했다. 반면 말을 안듣거나, 도움이 안되는 유저는 가차없이 길드에서 내쫓아 버렸다. 어떻게 하면 입사 싷머에서 높은 점수를 딸수 있을까,오직 그 생각만으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 뭐가 아란을 그렇게까지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그녀로서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동료들 사이에도 아란 님의 평가가 좋지 않아. 모두 즐겁게 게임하자고 모인사람들이네. 삼삼오오 짝을지어 수군거리기도 하고.......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게임이 아니었는데..........' "어이, 예쁜 아가씨.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그때, 한 사내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평소 알고 지내는 글로벌엑서스의 기획실 사원,호명환이었다. "아, 아니에요" "데스크를 맡은 예쁜 아가씨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의욕이 떨어진다고" "별거 아니에요" 강미수가 방긋 웃어 보이자 호명환은 커피를 건네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입사 시험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할 필요없어. 자네, 아란이라는 친구와 함께 다니지? 아란은 이미 기획실에서도 주목하고 있어. 그의 둘도 없는 파트너인 자네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높다고.이 상태만유지하면 분명 합격할거야" "감사합니다" "나한테 고마워할 일은 아니지" 호명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때, 강미수는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혹시 아크님에대해서는 아세요?" "아크?" 호명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못 들어 봤는데? 아는 사람이야?' "네, 조금........" "흠, 기획실에서 주목하고 있는 아이디는 나도 다 알고 있는데.......내가 못 들어 봤다면 아쉽게도 아직 이렇다 할 활약을 못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제가 듣기에 이벤트 퀘스트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강미수가 이해할 숫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 이미 아란측 사람들은 대부분 아크라는 이름을 알고있었다.이벤트 퀘스트에서 아란을 제치고 마광포탑 폭파 작전을 성공시킨 유일한 유저가 아닌가? 그런 유저를 기획실 직원이 아이디조차 모른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었다. 강미수의 설명을들은 호명환 역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 이상하군. 확실히 그정도라면 주목을 받을 만한데........응시자가 2천 명이나 되다 보니 어딘가에서 누락이 됐을지도 모르겠어. 알았어 .내가 한번 알아보지" "부탁드려요" "오호, 미스 글로벌엑서스인 강미수 양께서 부탁씩이나 하다니.꽤나 마음에쓰이는 남자인가보지? 이거 질투가 나는걸" "그런거 아니에요" "하하하!알았어, 알았어.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고. 그럼 수고해" 호명환은 너스레를 떨어대며 엘이베이터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미수의 눈빛이 복잡했다. 면접 회장에서 단 한번 봤던 김현우.........아니, 아크. 왜 갑자기 그 이름이 떠올랐을까? 솔직히 그녀 역시 잘 알수 없었다. 하지만 만날때마다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아크라는 존재가 왠지 신경쓰인다. 그래, 그냥 신경 쓰인느 것. 그저 그뿐일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자고 있는 사람을 불러 꺠우고......" 현우가 팅팅 부은 눈을 비비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권화랑이 콧방귀를 뀌며 머리를 쥐어 박았다. "이놈아, 너만 게임했냐? 나하고 같이 게임하고 있었잖아. 같이게임하다가 접속 종료하고 똑같이 잤는데 왜 너만 그렇게 죽을 상이야?" "말했잖아요 .지저 세계에 있을때 할일이 많아서 거의 잠도 못잤다고요" "흥, 내가 네 나이때는 일주일도 넘게 밤을 샜어" "그건 어느나라에서 개발한 슈퍼 로봇 얘기인데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다 할수 있어. 정신력의 문제지" "그러니까 제가 왜 잠잘 시간에 그런 정신력을바루히해야하느냔 말이에요" 아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권화랑은 음흉한 미소를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오늘은 우리귀염둥이 혜선이가 접속하는시간에 맞춰 다같이 모이기로 했잖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이참에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그래. 사실 예전부터 소개시켜 주려고 했는데 그놈이 꼴 같지 않게 바빠서시간 내기가 어려웠거든" "소개요? 소개팅이라도 시켜주게요?" "헛소리하지 말고 잠깐 기다려봐.올때 됐어" 벨소리가 들리고 카페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건 그때였다. 170정도의 키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30대 남자였다. 민소매 티셔츠에 헐렁한 반바지,슬리퍼를질질 끄는 모양새가 딱 3류 건달 같은 모습이다. 그는 잠시 카페안을둘러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허락도 없이 권화랑 옆에 털썩 앉았다. 현우는 움찔하며 권화랑을 바라보았다. 권화랑은 전직 형사다. 그러다 보니 갱생단처럼 친한 건달들도 많이 알고 지냈지만 ,반대로 앙심을 품은 건달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았다. 때문에 종종 권화랑과 다니다 보면 알아보고시비를 걸어오는 건달도 있었다. 남자의 외모를보고 그런 건달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권화랑은 반가운기색을 떠올렸다. "왜 이렇게늦었어?" "어이구,형님. 내가 형님처럼 얼라들 데리고 놀수 있는 팔자요? 형사 때려치우더니 팔자 좋아졌소. 초저녁부터 젊은 놈 앉혀 놓고 주책 부릴 여유도 있고, 나도 이참에 경찰청 때려치워 버릴까?" "놀고 있네. 네놈은 경찰 그만두면 천생 깡패밖에 못할 놈이야" "벌이는 그게 경찰보다 낫소" 사내가 씨익 웃으며 대답하고는 슬쩍 시선을 돌려 현우를바라보았다. "저 친구요?" "그래, 아!현우야.인사해라.체육대학 다니던 시절릐 후배다. 이명룡이라고 하지.직업은 들었다시피 별 볼일 없는 깡패 형사다" "반갑다. 이명룡이다.들었다시피 깡패 형사지" 이명룡이 활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과연 형사라 그런지 마주 잡아 보니 돌처럼 딱딱한감촉이 느껴졌다. "김현우 입니다" 현우는 악수를 하며 슬쩍 권화랑을 바라보앗다. 대체 왜 자는 사람을 불러내서 경찰을 소개해 주느냐는 의미였다. "현우,너 요즘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고 했지?" "아침에 2시간씩은 해요" "그래, 게임안에서 보니 예전보다 실력이 많이늘었더리.하지만혼자 운동하는데는 한계가 있을거야. 마침 이 녀석이 근무하는 경찰청이 네 집하고 가까우니까 앞으로는경찰청 체육관에서 운동해라" "네? 하지만......." 현우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확실히 요즘들어 운동을 해도 그리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혼자 운동하는데 한계가 온것이리라. 뭐,그래도 운동을한뒤에 체력도 많이 늘었으니 보통사람이라면 그걸로 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우는 태권도를 게임에 응용하는중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실력을 더 늘리고 싶다는 욕심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뜬금없이 경찰청 체육관이라니? 사전에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던 현우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이명룡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권화랑은 신경쓰지 말라는듯 이명룡의 등을 팡팡 내리치며 말했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경찰청이라고 해도 가끔 일반인들도 들락거리고, 다른 체육관과 다를 바없어. 글고 이녀석이 이래봬도 한때는 태권도 국가대표까지 해먹었던 놈이야. 성질은 더럽지만 태권도만큼은 제대로 배울수 있을거다. 국가 대표는 폭력 사건 때문에 그만뒀지?" "벌써 노망들었소? 애들 앞에서 별소리를 다하시네" "어쨌든 체육관쓰는데는 문제없지? 경찰청 체육관은 네말한마디면 끝나잖아" "뭐, 그야 문제될 거 없지. 하지만 형님도 아시다시피 경찰청 체육관은 동네 도장과는 질적으로 다르잖소. 내가 좀 지랄맞은 성격이라 아무리 형님 조카뻘 되는 친구라도 설렁설렁 애들 장난이나 하는꼴은 못보는데......." 이명룡은 못미더운 눈길로 현우를 훑어보았다. "큭큭큭, 모르는 소리하지마.저 녀석이 겉보기에는 안경잡이에 멀대같이 키만 커서 좀 허접스러워 보이는 구석도 있지만 의외로 강단이 있어. 예전에 내 턱에 돌려차기를먹인 맹랑한 녀석이 있다고 말했었지? 그게 바로 저 녀석이야" "호오,저 친구가? 싸움하고는 거리가 멀게 생긴 관상인데?" "싸움? 말도 마라. 정말이지. 옛날에는 얼마나 살기등등했는데. 다가가기가 겁날 정도였다니까.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사람 된거지. 암." "아,아저씨!" 현우가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쳤다. 날고뛴다는 폭력배조차 두려움에 떤다는 권화랑 형사의 턱에 돌려차기를 먹인 사건!정말이지 기억하고 싶지않은 과거였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직후, 잠시 방황하던 시절에 권화랑이 현우를 찾아왔었다. 어머님 일로 할 말이 있다. 이게 권화랑의 첫마디였다. 그러나 한참 날카로워져 있었던 현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권화랑의 턱에 돌려 차기를먹여 버렸다. 또 어떤 피해자의 변호사가돈이나 뜯으러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돌려 차기를 먹은 권화랑은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권화랑은 이를 드러내며 꽤나 즐거운 표정으로 웃었다. ...........현우가 기억하는건 여기까지 였다. 그 뒤로 몇번인가 심하게 메치기를 당하고 기절했다가 꺠어보니 어머니가 누워 계시는 병원 중환자실앞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흘린 눈물이 정말 참회의 눈물이었는지, 아니면 뼈마디가 시큰거리는 아픔때문이었는지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나를 난생처음 기절까지 시킨 사람이 살기등등?다가가기가 겁나?' 현우가 불만스러운 눈길로 쏘아보자 권화랑이 딴청을 피워댔다. 문득 옆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 건 그때였다. 자칭 타칭 깡패 형사 이명룡이었다. "호오, 어쩄든 형님턱을 날린 그 전설적인 친구가 이 녀석이라 이거죠?" "아니 ,그건 정말 우연이었어요.아저씨가 그냥맞아준거라고요" "그냥 맞아줘? 이 양반이? 농담이겠지" 이명룡은 입 끝을 말아올리며 고개를끄덕였다. "좋아,일어나라. 마침 체육관이 비어있으니 온김에 구경을 시켜주지" "네? 하지만 전 정말........." "사내 녀석이 뭐 그렇게 징징거려? 따라나와!" 이명룡은 대부분의 형사들이 그렇듯 다혈질에 직설적인 성격이었다 .결국 현우는 현직, 전직 폭력 경찰에게 질질 끌려 경찰청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어떨까 싶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상당히 훌륭한 체육관이었다.운동기구도 종류별로 모두 갖춰져있었고 탈의실이나 샤워 시설도 최첨단이었다. 현우가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고 있는데, 사물함을 뒤적이던 이명룡이 도복 한 벌을 툭 던져 주었다. 이명룡은 어느새 도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입어봐라. 대강 사이즈는 맞을거야" "네?" "사내자식이 여기까지 왓다가 그냥 밍밍하게 돌아갈생각은 아니겠지? 무술인이면 무술인답게 입사를 해야지 .아 ,그리고 깜짝했는데 이 체육관에서는 금지 사항이 있다. 손님이라도 못하겠어요. 안할래요. 라는 말을 하면 사형!빨리 갈아입고 나와라" 대한민국 형사가 인권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우는 얼떨결에 도복으로 갈아입고 이명룡과 마주 서게 되었다. 옆에는 은근히 신바람이 난 권화랑이 멀찍이 떨어져구경하고 있었다. 이명룡은 까칠한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경찰청 체육관에 포인트나 반칙같은 째째한 규칙은 없어. 두 가지, 상대가기절하거나 전투 불능이 되면 승부가 나는거다. 무슨말이냐 하면.......이런거지!" 돌연 이명룡이 공처럼 튀어 올라 수 미터의 거리를 좁혀 왔다.이어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섬광 같은 앞차기가 뿜어져 나왔다. 현우는 움찔하며 빠르게 스텝을 밟아 뒤로 물러났다.그러나 채 자세를 잡기도 전에 이명룡의 뒤돌려 차기가 관자놀이를 겨냥하고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숙여 흘려내며 간신히 자세를 잡자 이명룡은 어느새 몇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귀신같은 몸놀림이다. "호오, 괜찮네. 확실히 형님 말대로 보기만큼 맹물은 아닌모양이군" 두 번이나 공격이 실패했지만 이명룡은 오히려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현우도 놀랐다. 이명룡의 발차기는 속도와 연결 동작이 프로 격투가 수준이었다. 현우에게 태권도를 가르쳐주던 사범조차 그에게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였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첫 번쨰 공격에 명치를 얻어맞고,뒤이은 공격에 턱이돌아갔으리라. 그러나현우는두번의 공격을 모두 흘려내고 자세까지 잡았다. '뉴 월드에서 익힌 움직임이 현실에서도 통용된다!' 방금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아크가 사용한 기술은 놀랍게도 뉴 월드에서 익힌 회피술이었던 것이다. 현실의 기술이 게임에서 통용되는 건 알고 있지만, 오히려 역으로 게임에서 배운 기술이 현실에서 통용되다니!게임과 현실이 뒤섞여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가상현실 게임에서 캐릭터를 움직이는 건 유저의 두뇌. 뇌파가 컴퓨터로 증폭된다는 것만 다를뿐, 현실에서 몸을움직이는 방식과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어쨌는 게임의 기술을 사용할수 있었다는 사실에 흥미가 있었다. '이명룡 아저씨의 기술은 섀도우의 변칙 공격이나 강글의 넝쿨 공격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불안정한 지면에서도 섀도우와 강글의 공격을 피해냈어.그보다 강한 상대라도 매트위에서라면 피하지 못할게 없다.' 현우는 발로 매트를 두어번 두들겨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시작해 버린 대련이다. 기왕 시작했다면 이기기위해 최선을 다하는게 도리! 현우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한 템포, 한 템포, 속도를 높여가던 현우가 돌연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나래 차기를 날렸다. "이 녀석 보게. 볼것도 없이 바로 공격이냐? 생긴것과는 정반대구먼!" 이명룡은 좌우로 발을 바꿔 가며 가볍게 발 차기를 흘렸다. 현우가 노렸던 게 바로 그 동작이었다. 현우는 예리한 기합성을 터트리며 회전해 뒤차기를 찔러넣었다.발끝으로 묵직한 느낌이 전해진다. '성공했다!' 현우는 짜릿한 감각을 느끼며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이명룡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돌연 등줄기로 식은땀이 확 뿜어져 나왔다. 이명룡은 두꺼운 팔뚝으로 발 차기를 막아냈다. 그러나 식은 땀이 흐르게 만든 것은 그 동작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는 절대 느낄수 없는 ,기이한 열기가 이명룡의 눈동자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 느낌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당장이라고 예리한 칼에 전신이 베어져 나갈 듯한 느낌! 현우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은 온몸이 근육질로 뒤덮인 사람이 아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도 아니다. 바로........눈에 독이 있는사람이다. 보다 많은 폭력을 ,보다 많은 수라장을 겪어 온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눈동자의 독기. 흔히 무술가들이 말하는 살기다. '위험하다!' 머릿속에서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우는 재빨리 몸을 빼고 서너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생각하고 움직인게 아니다.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을 피해 달아나듯 본능적으로 행해진 동작이다. 그러나 채 준비 자세를 잡기도 전에 이명룡이 달려들었다. 정말 육식동물이달려드는 듯한 섬뜩함! "..........!" 20년 전쯤인가? K-1이니 프라이드니 하는 이종격투기 대회의 붐이 일었던 시기가 있었다. 자아 수련을 하는 무술을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종격투기 대회는 무술의 발전을 크게 앞당겼다. 당시까지 근성이나 정신론만 펼치던 무술세계에 분명한 승패의 선을 긋게되면서 좀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격투 스타일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격투기는 분명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그건 기술적인 면뿐이었다.오히려 격투기의 본래 목적인 실전성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종격투기 대회에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된 기술들............이는 다시말해 실전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술이란 뜻이다. 그러나 이종격투기를 가르치는 체육관에서는 그런 실전 기술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았다. 써서는 안 되는 기술이니 가르치지 않는게 당연한 일. 덕분에 무술가는 송곳니를 잃은 맹수와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도 그런 실전 기술을 배울수 있는 곳은 남아 있었다. 그중 하나다 바로 밤낮 없이 생사를 넘나들어야 하는 경찰 특수 기동대다.그리고 이명룡은 특수 기동대의 타격 대장! 현우처럼 게임이 아닌, 진짜 피가 튀는 실전속에서 갈고 닦은 태권도 고수. 정석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기술. 그러나 변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완벽한 기술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온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는,살기마저 느껴지는 섬뜩한 공격! 팔로 막아내면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뼈가 저렸다. '급소에 맞으면 죽는다!' 자연스럽게 죽음을 연상하게 만드는 살벌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그게 오히려 현우의 독한 성격을 깨워버렸다. '그래도 이대로 막기만 하다가 끝낼수는 없어!' 현우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흔들리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일격!이만한 실력자에게 현우가 공격할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뿐! 현우는 태풍처럼 몰아치는 발차기를 쳐내며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막 이명룡이 돌려차기를 날리기 위한 예비동작에 들어갔을때 빠르게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크 댄싱!' 얼마전 새롭게 배운 다크워커의 보법,다크 댄싱을 응용한 몸놀림이었다. 아크의 움직임이 복잡하게 변하자 이명룡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 사이 현우는 이명룡의 공격을 흘려내며 안면을 향해 고무공처럼 튀어 올랐다. 온 힘을 다한 공중 무릎 차기! 이명룡의 눈가가 움찔했다.설마 태권도 겨루기의 보법을 사용하고 공중 무릎차기까지 나올줄은 예상하지못했던 모양.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언제나예기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는 살벌한 폭력현장이다. 이명룡은 흐르는듯한 동작으로 몸을 낮춰 양팔로 바닥을 짚었다. 순간 그의 몸이 크게 회전하며 이에서 아래로 발차기를 내리꽂았다. 일명 풍차 돌리기라고 불리는 대회전 내리찍기! 이명룡의 발뒤꿈치가 뛰어오르던 현우의가슴을 내리찍었다.현우는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허억!" 한 박자 더디게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는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히죽거리며 지켜보던 권화랑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현우야!너 이자식, 제정신이냐!" 이명룡의 얼굴에 뒤늦게 아차, 하는 표정이떠올랐다. "미,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들떠서 그만....괘, 괜찮으냐?" "네 ,견딜만해요" 현우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했다. 대련........얼마나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인가?게다가 이명룡의 실력은 과거 현우를 가르쳤던 사범보다 몇단계는 위였다. 아니, TV에 나와 지리멸렬한 시합을 보여주는 격투기 선수들보다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실력자와 직접 대련할수 있는 기회가 그리흔하지 않다는 것쯤은 현우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진심으로 상대해 주는 일은.....현우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방금 그 기술은 대회전 돌려 차기죠? 그런건 TV에서밖에 못 봤어요. 다시 시작하죠" "어허, 이놈 보게" 이명룡도 욕심이 나는듯 어깨를 들썩이다가 권화랑의 성난 얼굴을 보고는 움찔했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이만됐다. 당장은 참을 만해도 내일이 도면 꽤 아플거다. 부어오르기전에 찜질이라도 하고쉬어둬.그리고 냉리부터 체육관 나오는 거 잊지 말고, 새벽 5시부터 7시까지가 내가 운동하는시간이다" "네? 그럼 직접 가르쳐 주실 거에요?" "그래 , 그러니 일단 샤워부터 하고 나와라" "네!" 현우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탈의실로 향했다. 이명룡은 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저 녀석이 운동 그만둔 지 5~6년이 됐다고 했소?" "그렇게 들었다" "나이는 스물둘이고?" "그래" 권화랑의 대답에 이명룡이 돌연 어꺠를 들썩이며 웃었다. "크크큭, 그놈 참 물건이네. 형님 말대로 저녀석이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래서 네게 데려온 거야. 나도 예전에 맞아 본 두로 잊고 있었는데 가상현실 게임하면서 보니까 오히려 예전보다 실력이 나아졌더라고. 혹시 모르겠다 싶어서 네게 데려온 건데......솔직히 나도 저정도일줄은 몰랐다.잘 키워봐" "맡겨 두쇼. 확실하게 키워 놓을테니" 권화랑과 이명룡은 서로 마주보고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모종의 꿍꿍이가있는 눈빛이었다. 체육관을 나오니 권화랑이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타라. 데려다 줄테니까" "여기서 집이 몇 정거장이나 된다고요?" "잔말 말고 타" 권화랑은 억지로 현우를 자가용에 밀어넣었다. 이명룡과의 대련은 생각보다 힘들었던 모양이다.그렇지 않아도 자다가 끌려 나와 피로했던 현우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런데 권화랑의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엉뚱한 곳에 도착해 있는게 아닌가? "어라? 여기는 어디에요?" "내려,인마.조 근처에서 서성거리면 아는 사람이 나올거다" "네? 그게 무슨........" "그럼 난 간다" 현우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지만 권화랑은 그대로차를 몰고 휑하니 가버렸다. '대체 뭐야? 아는 사람을 만난다니?' "어? 현우 오빠?" 현우가 잠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을 떄였다. 문득 앞의 편의 점에서 나오던 여자가 놀란 표정으로 멈춰섰다. 익숙한 목소리........정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야간대학이 방학에 들어가 저녁 시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현우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권화랑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짜고짜 현우를 내려놓고 사라진 이유는............. '젠장, 곰인 줄 알았는데 너구리였잖아?' "여기 웬일이에요? 설마.......저 만나려고 온거에요?" "아, 그게........" 현우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우물거렸다. 현우도 곰은 아니었다. 비록 입 밖에 낸적은 없지만 정혜선이 은근히 현우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물론 현우도 정혜선이 싫지는 않았다. 단지 지금까지 동생처럼 생각했고, 그런 관계가 지속 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서 사실대로 털어 놓는 다면 남자도 아니다. "배고프지? 밥.......먹을래?" 현우가 어렵게 입을열자 정혜선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지었다. 그러나 금세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가 쏘는 거죠?" "6,000원 한도 내에서 팍팍 쏜다" "8,000원.이 근처에 돈가스 잘하는 곳을 알거든요" "으음, 좋아. 자판기 커피는 네가 쏘는 거다" "호호호.알았어요. 대신 집가지 바래다 줘야 해요. 너무 예뻐서 밤길이 무섭거든요" 정혜선이 깔깔거리며 현우의 팔짱을 꼈다. 불의의 기습이다!으음, 이 녀석........막상 밖에서 만나니 제법 여자처럼 느껴진다.어쩌면 좀 위험한 상황일지도.............. ACT 9 투기장 악실리온 '흐음, 이거 참 애매하네' 아크는 검붉은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정의남과 갱생단, 로코,시드와 함께 하는여행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방학을 했다지만 로코는 아르바이트로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일행은 로코가 자리를 비울때는 야영지를 세워놓고 주변 사냥에 전념했고, 로코가 합류하면 몬스터를 무시하며 쾌속 질주하는 방식을 셀리브리드를 향해 이동했다. 그렇게 사흘,일행은 기란 이근 지역까지 올수 있었다. 아크는 로코가 자리를 비운사이 일행과 떨어져 기란에 들어 마법학회를 찾았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샤넨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핼쑥한 얼굴로 아크를 맞이했다. "그래 ,부탁했던 일은 어찌되었는가?" "심혼의 구슬은 찾았습니다" "오오, 그게 사실인가?"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니? 무슨 문제 말인가?' "심혼의 구슬이 깨져 마력이 사라졌습니다" 아크는 대강의 상황을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해 주었다.신혼의 구슬로 변화한 몬스터를 만나 싸우다가 깨졌다고...........스바르탈프헤임이나 니드호그의 봉인은 너구리족이 수백 년전부터 많은 희생을 치러가며 지켜왔던 비밀.북부 대륙의 안정을 위해 비밀을 지켜 달라는 이그드라실의 당부가 있었던 까닭이다. 샤넨은 낙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런상황이었다면 할수 없지" "죄송합니다" "아니, 더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원만하게 수습한 것만으로도 잘한거네.나머지는 마법학회에서 알아서 처리할테니 자네는 마음쓰지 말게" 샤넨은 애써 미련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들어댔다. 자초지종이 어찌됬든 심혼의 구슬을 찾았으니 정치적인 부분은 문제될게 없다. 어던 재앙을 불러올지 모르는 위험한 아티팩트.그것을 정체도알수 없는 자에게 도난 당했다. 마법 학회가 걱정하던 것은 바로 그'사실'이었다. 심혼의 구슬이 대륙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결국 마법 학회는 실제로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심혼의구슬로 인해 벌어질 상상 간으한 모든 재앙의 책임을 피할수 없었다. 그러나 심혼의 구슬이 파괴됐다면 얘기는 다르다. 마법학회가 책임질 부분은 관리미숙에 따른 손실.적어도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예측할수 없는 재앙에 대한 추궁은 피할수 있게 된것이다. "심혼의 구슬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적지 않겠지. 하지만 마법학회는 그정도 문제 정도는 무마시킬 힘이 있네.또 그동안 왕가나 삼대 길드의 요구에도 심혼의 구슬을 보여주지 못한 핑계거리도 되고......어쨌든 수고했네.내 눈이 정확했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 "당연히 공적에는 보상이 따라야겠지" 이어지는 샤넨의 말에 아크가 반색했다. 연계 퀘스트로 +C난이도까지 올라갔던 퀘스트다.퀘스트가 완료되자 단숨에 레벨이 4나 올라갔다. 전승 퀘스트에서 경험치를 받지 못해 불만스러웠던 기분이 단숨에 풀렸다. 그러나 아크는 만족이라는 걸모르는 유저였다.처음 심혼의 구슬 퀘스트를 받고, 도적단 찾기에서 부터 카이로트,지저세계에 걸친 장장 한달 남짓의 여행.그 고생을 고작 레벨 올리려고 한게 아니다.아크는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샤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어쩌면 다시 한번 마법학회의 보물 창고에 들어갈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샤넨이 내민 보상은 달랑 낡은 열쇠 하나뿐이었다. [마가로프의 차원열쇠(특수) 오래전 뛰어난 천재 연금술사엿던 마가로프가 남긴 유산입니다.마가로프는 오랜 마법학회의 역사 속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천재였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천재가 그렇듯 독특한 발상과 기행으로 잘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천재가 말년에 들어관심을갖고 연구하던 과제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이계 생물입니다.마가로프는 그 연구를 위해 마법 학회에 보관된 이계의 자료를 몽땅 가지고 종적을 감추엇습니다. 그 뒤의 행적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그가 이계에 대해 알아냈는지,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아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수년뒤 마가로프의 이름으로 마법학회에 이열쇠가 배달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뭡니까?" "왜,이전에 자네가 나에게 이게생물의 생태에 대해 물은 적이 있지 않나?" 뱀의 변태 과정을 끝낼 방법을 찾던 때를 말하는것이다. 물론 그 문제는 해결됬고 아크는 질문을 했던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그런데 샤넨은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 그 뒤로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봤지만 별달느 소득이 없엇네. 그때,이 열쇠를 기억해 냈지. 사실 내가, 아니 현재의 마법 학회는 이계생물에 관련된 지식이 많지 않네. 오래전에 마가로프가 그 방면의 관련책을 몽땅 들고 나가 행방 불명됐기 떄문이지.당연히 그의 연구실을 찾으면 자네가알고 싶어했던 지식을 얻을수 있을것이네" "하지만........" 지금 장난하냐? 죽을 고생을 하며 + C난이도 퀘스트를 완료했는데 보상이 고작 이계 생물의 정보라니? 아크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 할때였다. "단순히 책만이 아니네.마가로프는 한창 마법이 융성하던 시기에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안에 드는 연금술사였네. 특히 발상이나 새로운 발명을 하는데는 천재적이었다고 전해지지. 마법학회에서 파는 주문서나 마법서, 영자이동이나 비공정 역시 그가 발안해서 제작하게 된 거네. 분명 그가 말년을 보낸 연구실에는 놀라운 마법 지식들이 쌓여 있을거야" 아크는 입을 재빨리 닫아버렸다. 샤넨의 말에서 돈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거라면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천재 마법사의 유산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연구실. 거기에뭐가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운만 따라준다면 마법 아이템,혹은 스킬을 배울수 있는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연구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걸 알면 마가로프가 행방불명 됐다고말하겠는가?" 샤넨은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그 뒤로 마법학회는 많은 마법사를동원해 연구실을 찾아왔네. 하지만 수십년 동안 흔적도 찾아내지 못한 채 포기한 상태였지.때문에 지금까지 열쇠도 잊혀 있었던 거네. 그가 남긴 유산과 함께" "............" "내가 이 열쇠를 자네에게주는 것은 나 혼자만으이 결정이 아니네.마가로프의 연구 자료가 보관된 연구실의열쇠.비록아직 위치를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마법 학회에게 있어서 중요한 재산이네. 내 마음대로 이방인에게 줄수 잇는게 아니지" "무슨 말입니까?" "자네에게 열쇠를 주기로 결정한 건 마법 학회 그랜드 마스터네. 그랜드 마스터께서는 자네가 도난 사건을해결하고 돌아오면 마가로프의 열쇠를맡겨도 된다고 하셨네" 샤넨은 마법학회의 슈덴베르크 지부장일뿐, 실제 마법학회의 최고위 마법사는 따로있다. 바로 브리스타니아와국의 마법도시 하슈의 마법 학회장이 그랜드 마스터였다. "이해할수 없네요.저는 그랜드 마스터와 만난적도 없습니다.이 열쇠가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라면 왜 제게 주시는겁니까?" "마법사들은 물건에 정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네.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그 정과 인연이 없는자는 결코 손에 넣을수 없지. 수천명의 전사들이 찾지 못한 물건을 한낱 촌부가 찾아내는 것이 바로 그런 원리네" 결국 물건의 임자는 따로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아크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건 오직 본인의 노력에 달린 일이다. 그러나 실제 중세에는 샤넨 같은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돌에 박힌 검 하나 뽑고 벼락출세한 아더왕도 글너 경우다. 그리고 뉴 월드 역시 중세를 바탕으로 한 세계관을 가진세계. 샤넨의 말은 어느 정도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어머, 이옷은 딱 손님거네요'라고 말하는 의류 매장 점원의 말처럼 못미더운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 열쇠와 정 이 통한다는 겁니까?" "그야 알수 없지. 하지만 자네는이미 불가능해 보읻너 일을 두번이나 해냈네.작센에서 기적을 만들어고, 작은 단서 하나로 심혼의 구슬을 되찾았지.그러니 해낼수 잇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자네에게 열쇠를 맡긴 거네" 그때 아크는 샤넨의 말에서 거슬리는 부분을 찾아냈다.아까부터 샤넨은 열쇠를 '준다'가 아니라'맡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어감의 차이일뿐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단순한 보상은 아닌것같으넫요?"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묻자 샤넨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통찰력이 있군. 맞아,자네에게 열쇠를 맡기는건 이번 일을 해결해 준 보상이자, 마법 학회 그랜드 마스터의 의뢰네" "의뢰요?" "그래 ,마법학회에서 잃어버린 수맣은 책 그리고 천재인 마가로프가 남겼을 연구 자료. 마법학회에서는쉽게 포기할수 없는 유산이네. 때문에 자네에게 연구실을찾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네 .물론 그 일은 직므 자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아니,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자네의 재능과 발전 가능성을 믿고어렵게 결정한 일이네.연구실 안의 모든 물품에 대한 권리를 인정해 주겠네. 어떤가? 해보겠는가?" 샤넨의 제의는 곧바로 퀘스트로 연결되었다. 연금술사는 각종 포션이나 마법 도구, 주문서를 마들수있는 직업이다. 천재 연금 술사가 말년을 보낸 연구실이라면 당연히 그런 아이템이 산처럼 쌓여 있으리라. 만약 마법 학회에게 그 권리를 모두 양도받는다면......... '엄청난 보상이 약속된 퀘스트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해 보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퀘스트가 등록되었다.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샤넨은 당신에게 오래전 실종된 천재연금술사.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했습니다. 그가 사라진 시기는 까마득하게 오래전이고 행방에 대한 단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않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 퀘스트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연구실을 찾아낸다면 마법학회의 절대적인 신뢰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 <퀘스트 제한 : 마법 학회와의 우호도 200이상>] 심혼의 구슬 퀘스트를 완료해 올라간 마법학회의 우호도가 100.승무원 구출과 이벤트 퀘스트를 완료하며 올린 우호도가 각각 50씩. 덕분에 200이 되어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이라는 퀘스트를 받게 된 모양이다. '우호도가 200이나 필요한 퀘스트니 분명 보상도 빵빵할거야' "그리고 자네가 말했던 붉은 남자에 대한 건 말이네" "네 ,알아보셨습니까?" 아크가 자세를 바로하며 되물었다. 붉은 남자,심혼의 구슬로 니드호그를 부활시키려던 정체 불명의 NPC다. 아마도 글로벌엑서스 입사 시험의 가장 중요한 NPC........일지도 모르는자. 그러나 지저 세계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얻을수 없었다.카이로트로 떠나기 전에 편지로 마법학회에도 붉은 남자의 조사를 부탁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마법 학회의 정보망으로도 그의 정체를 알아낼수 없었네" '하긴, 그렇게 쉽게 정보를 얻을수 있을리가 없지' 아크가 실망스러워하자 샤넨이 한마디 덧붙였다. "하지만 마법학회에서도 붉은 남자에 대해 알아내야 할이유가 잇네. 예전에도 말했지만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어. 앞으로도 마법학회의 정보망을 동원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하겠네. 혹 뭔가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연락해 주지" 마법 학회의 지속적인 협조를약속받았다. 그리고 북부대륙 여기저기에 뿌리를 뻗고 있는 이그드라실도붉은 남자의 행방을 꾸준히 조사해 주겠다고 말했다. 엄청난 정보망을 손에넣은 것이다. '이 정도라면 조직력이 있는다른 유저에 비해 정보가 늦어지지는 않을거야. 다른 유저보다 빨리 찾아낼수만 있다면 입사시험 합격,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자네도 붉은 남자나 마가로프의 연구실에 대해서 알아낸것이생기면 간간이 중간보고를해주게. 자네 명의로 전이우편함을 개설해 주지" -아크님 명의로 '전이우편함'이 개설됐습니다. 각종 우편과 아이템을 보다 편하게 받을수 있게 됐습니다. 뜻하지 않은 보너스가 추가되었다. 마침 아크는 전이우편함을 개설해 볼까 생각했던것. 그러나 50골드라는 생돈이 나가는 일이라 정말 필요해질 때까지 미루고 미뤄졌다. '그냥 개설해 버렸으면 피눈물을흘릴 뻔했군' 어쨌든 아크는 그렇게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마법 학회를 나오려다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혹시 대륙에 서식하는 동식물에 대한 자료를얻을수 있을까요?" "그런 자료라면 몇개 생각나는 게 있네. 필요한가?" "네, 꼭 좀 구했으면 하는데요" "그래? 마법 학회의 자료는 반출이 금지되어 잇지만.......알겠네. 자네 부탁이라면 거절할수 없겠군. 그럼 찾아보고 적당한게 있으면 사본을 만들어 전이우편으로 보내주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크는 꾸벅 고개를숙이고 마법학회를 나왔다. 동식물에 대한 자료는 바로 지저세계에서 만든'빛나는 슬라임의 정수'레시피 때문이었다.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부턱대고 찾는 것은 무리. 그러니정보력이 방대한 마법학회의 도움을 얻어 보려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다시 동료들과 합류해 셀리브리드로 향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왠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ㄷ. 마법학회도 진즉에 찾기를 포기해 버린 연구실. 게다가 단서라고는 달랑 열쇠 하나뿐이다. 어디서 뭘 해야 할지도 알수 없는 것이다. '젠장 .뭐야? 결국 연구실을 찾아내지 못하면 개털이잖아?+C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은 이열쇠도 쓸모없어지고.......' "오빠, 뭐해요?" 그때,앞쪽에서 로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회상에서 깨어난 아크는 얼른 열쇠를 뱀에게 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응? 별거 아니야" "몇번이나 불렀는지 알아요? 그새 또 존거에요?" "아니, 잠간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그런데 왜?" "시스템창 못봤어요?" "시스템창?" "셀리브리드에 도착했어요" 로코의 목소리에 아크는 뒤늦게 시스템창을 살펴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동부 대로라고 나오던 지역정보가 셀리브리드로 바뀌어 있었다. "정의남 아저씨와 오빠들이 기다려요.빨리가요" 로코는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다가와 옆에서 팔짱을 꼈다. 그냥...................정의남에게 끌려 본의 아니게 데이트를 한뒤로 로코는변했다. 왠지 아크를 대하는게 유난히 살갑게 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끼기도 했다. 그런 로코의 태도가 은근히 부담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다. 로코에게 끌려간 언덕 위에는 정의남과 갱생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크님. 드디어 도착했어요.저기가 셀리브리드에요" 시드가 벅찬 목소리를내며 아래를 가리켰다. 별 생각없이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입에서 무심결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아..........!" 언덕 아래에 펼쳐진 숲 중심에 거대한 성채 도시가 우뚝 솟아 있었다. 셀리브리드........과연 슈덴베르크의 수도라 스케일의 차원이 달랐다. 엄청난 높이의 백색 성벽은 상업도시 기란의 3~4배는 족히 되보였다.각 구획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에는 시장만도 몇개나 되엇고,다른 도시와는 규모가 다른 웅장한 경매장, 대성당 ,길드 고나리사무소, 각종건물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뺵빽이 들어차 있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아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유선형의 외관을 가진 왕성!슈덴베르크의 수도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카이로트에서 출발한지 일주일만이었다. "각자 정비할 것 한뒤에 1시간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일행은 셀리브리드 성문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오빠, 저는 아르바이트나가야 해요. 밤 11시쯤에 접속할게요" "아크님, 저는 기란에서 받았던 상인 전용 퀘스트 보고하러 갔다 올게요" 로코는 로그아웃을,시드는 상업 지구로 쫄랑쫄랑 걸어갔다. 정의남은 갱생단을 이끌고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은 여러 유저와 NPC에게 정보를모으는 장소. 로렌조를 협박하는 도적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아직 샴바라와 약속한 시간이 좀 남앗군. 그동안 셀리브리드 구경이나 할까?' 사실 지금까지 아크와 샴바라가 확실하게 약속을 나눈 적은 없었다. 작센에서 샴바라가 일방적으로 다음 달쯤에 투기장에서 만나자고 통보한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뒤로거의 한달.아직 샴바라가 말했던 다음달. 10월이 끝난것은 아니었지만29일이나 되어서야 도착한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전이우편함을 개설했을때.관리 NPC에게 샴바라가 등록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샴바라도 전이우편함의 고객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아크는곧바로 샴바라에게 편지를 보냈다. 셀리브리드에 있으면 29일 오후 무렵,정문 앞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답장 없었으니 혹시 다른 지역으로 떠났을지도 모르지만.........' 아크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우와, 대단하다. 저 건물들봐. 사람도 엄청많잖아! 포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방 감탄사를터트렸다. 하긴 지저 세계에서만 살았으니 셀리브리드의 모습에 눈이 돌아갈지경이리라. 사실 아크도 마찬가지다. 셀리브리드는 50~70레벨 유저들이 모이는기란과는 차원이 다르다. 거리를 다니는 수천명의 유저들은 대부분 80레벨 이상,100을 넘긴 유저도 심심치않게 볼수 있다. 눈알이 팽팽 돌아간다 .지금까지 중, 저레벨 사냥 지역인 작센이나 기란 주변에서만 사냥했던 아크는 레벨 100대 유저가 이렇게 만을 줄은상상도 못했던 것. '레벨 100을 넘겼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군' 고레벨 지역이라 NPC들이 취급하는 아이템도 장난이 아니다.상점의 종류나 숫자는 기란보다 적었지만 ,취급하는 아이템은 하나같이 고레벨 전용 아이템! 기란에서상점용으로는 최고로 치는묵철 갑옷 세트가 셀리브리드에서는 중급자용으로 팔리고 있었다. 유저들이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아이템도 최소 레벨 80대다. '어라? 저건 견갑이잖아!' 아크는 벼룩시장을 걷다가 우뚝 멈춰섰다. 유저가 사용하는 방어구 가운데는 어깨에 착용하는 견갑도 존재했다.그러나 견갑은 아직 뉴 월드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템이다. 아직 견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NPC들도 잘 취급하지 않고, 물건도 돌지 않으니 드랍율도 극악하다. 게다가 가장 낮은 등급도 착용 제한이 레벨 80.기란에서는 구경조차 할수 없다. 그런데 역시 고레벨이모이는 곳이라 각종 견갑 방어구도 꽤 많이 볼수 있었다. '가죽 견갑. 방어력이 25에 옵션도 꽤 쓸만하군' 새로운 장착 아이템을보자 저절로 군침이 꼴깍 넘어갔다. '가격이 300골드.비싸기는 하지만 방어력을 생각함녀사두는 것도좋을텐데...........' 그러나 지금 아크는 개털.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카이로트에서 전 재산을 투자해 주머니에는 고작 몇 골드밖에 없다 '뭐,시드가 아이템을 정리하면 거금이 들어오니까. 쇼핑은 그때 원없이 하면 되지. 일단 약속 시간도 다돼가니 성문으로 돌아가자' 아크는 대강시간을 헤아려 보고 성문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성문에서 잠시 주변을 기웃거릴떄였다. 누군가가 어깨를 탁쳐서 고개를돌려보니 검은 복면을 한 유저가 서 있었다. "이봐, 늦엇잖아" "샴바라!" 아크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다행히 그 사이에 우편함을 확인해 본 모양이다. "이번 달까지라고 했지만 말일이 다돼서 오다니.........너무하는 거아냐?" "미안 ,조금 바빴어" "그런데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지?" "왜? 다른 데 볼일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샴바라가 머리를 긁적였다. "실은 벌써 다른 시합을 신청해 버렸어" 아크와 샴바라가 셀리브리드에서 만나자는 약속을한 이유는,단순히 얼굴이나 보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곳에만 있는 투기자에서 정식으로 실력을 겨뤄보고싶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샴바라는 우편함을 늦게 확인한 탓에 이미 다른 시합을 신청했단다. "다른 시합?" "응,내일오전부터 시작하는 시합이야" "그거 끝나고 하면 되잔아" "그렇기는 한데,이번에 신청한 시합은 한판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토너먼트 방식이야.다른 경기 중간중간에 치러지는 거라 현실 시간으로 사흘 이상 진행돼.그리고 시합을 신청해버리면 취소해도 한동안은 다른 시합을 신청할수 없어" "나도 그 시합에 참가하면안돼?" "안 될건 없지. 하지만 이번 시합은 페어야" "페어?" "2인1조로 참가하는 경기를말하는거야" 샴바라의 댇바에 아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말하지만 아크가 샴바라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정식으로 실력을 겨뤄보기 위해서였다.아마 샴바라 역시 마찬가지리라.그러나 이제 샴바라와의 일전은 아크에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격투기에는 이런 격언이 전해진다. 백 번의 생각보다 열 번의 연습이 낫고, 열 번의 연습보다 한 번의 실전이 낫다. 그야말로 진리다. 가끔 사범들 가운데 무술은 심신 수련이고, 자아를 만들어 가는가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다 헛소리다. 무술이 뭔가?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사람패는기술이다. 역사를 살펴봐도 가장 무술이 융성한 시절은 전국시대였지 않은가?그런데 새삼 이제 와서 사람 패는 기술을 심신 수련이라고 주장하는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말 심신을 수련하고 싶다면 차라리 절에 틀어박혀 천배나 하는편이 낫다. 전 태권도 국가대표이자 현 특수 기동대장,근래들어 아크의 사부까지 겸하게 된 이명룡의 주장이었다. ............음, 잠깐 말이 옆으로 샜다. 어쨌든 핵심은 무술실력을 쌓는데는 실전만한게 없다. 아크가 샴바라와의 대련을 기대한 이유가 그때문이었다.상당한 쿵푸실력자인 샴바라. 그와 대련하면 평범한 몬스터나 유저에게는 없는 그 뭔가를 얻을수 있으리라. 마침 며칠 전부터 이명룡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있다. 보통 사람은 하루 수련하면 며칠 동안 앓아누워야 할 수준의 수련........스스로도 지독하다고 생각하는 아크조차 처음 2~3일은 체육관 가기가 겁날 저도였다. 그러나 그런 수련은 고통 이상으로 아크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아크는 그 처절한 수련의 성과를 샴바라에게 시험해 보고싶었다. '사흘.......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모처럼의 기회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가 너무 늦었으니 불평할수는 없지.좋아, 기다릴게.이번기회가 아니면 서로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잖아" "그동안 뭐하려고?" "이 근처에서 사냥이나 하고 있으면 돼" 그러자 샴바라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딱히 할일 없으면 너도시합에 나가보는게 어때?" "시합?" "그래, 너도 투기장에 익숙해져야 하잖아. 너 여깃 처음이지? 투기장에서 열리는 시합은 시합 방식이 모두 달라서 처음 출전하는 사람은 헤매기 일쑤야. 나와 시합할때도 그러면 곤란하잖아. 일일이 설명하자면말이 너무 길어지니까.......자, 일단 따라와봐" 샴바라는 다짜고짜 아크를 잡아끌었다. 셀리브리드의 번화가를 가로지르기를 10여분,둘은 마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생긴 원형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은 상당히 인기가 잇는지 주변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샴바라는 인파를 헤치고 들어가며 설명햇다. "여기가 셀리브리드의 투기장,악실리온이야" "사람이 엄청나게 많네" "당연하지. 악실리온에서는 하루에 몇십개의 시합이 개최돼.그리고 시합마다 상금이나, 다른 곳에서는 구할수 없는 희귀 아이템이 부상으로 지급되기도 하지. 실력과 운이 따라준다면 사냥하는것보다 대박이 나올 확률이 높아" 단순한 시합만이 아니다. 악실리온은 투기장이면서 도박자을 겸하고 있었다. 유저와 유저의 시합은 조작가능성이있어 해당되지않지만, 몬스터와 유저 ,혹은NPC와 유저가 벌이는 시합에는 관중이 돈을걸수있었다. 그리고 마치 경마처럼 배당이 정해지고, 결과에 따라 당첨금이 지급되었다. 때문에 악실리온에서 승률이 높은 유저나 NPC는 단숨에 유명 인사가 되기도 했다. "자, 여기야. 내가 백 번 설명하는것보다 한 번해보는게 나을거야. 절차는 간단해. 시합에 나가고 싶으면 먼저 여기서 원하는 보상이 상금으로 걸린 시합을 찾는거야.단,시합마다 룰이조금씩 다르니 설명을 잘 읽어보고, 그렇게 시합을 선택한 뒤에 저쪽에 있는 중개인 NPC에게 시합 신청을하면돼" 아크는 샴바라가 가리킨 전단지로 시선을 돌렸다. 전단지를 꼼꼼히 읽어보니 악실리온의 운영 방식을 대강 이애할수 있었다. 먼저 악실리온에서 열리는 시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수 있었다. 한 번의 시합으로 끝나는 상금 매치와 여러 사람들이 신청한 뒤에 떨궈 내기 식으로 최종 승자를가리는 토너먼트.싱글 매치는 대부분NPC와 유저의 시합이었고 유저와 유저의 PVP는 일정 자격을 획득해야 신청이 가능했다. 단 ,PVP 싱글 매치에는 상금이 없었다. 물론 PVP는 PK 이외에 결투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그러나 결투는레벨 차이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하는 시합이라 공평하지가 않다. 반면 악시릴온에서 치르는 싱글 매치는 레벨 평준화 같은 제한이 적용되어공평한 시합을치를수 있다. 또한 비록 시합마다 보상은 없지만, 승점을 많이 쌓으면 '명예'라는 수치가 주어지고 ,이는 여러 NPC에게 공식적으로자신을어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명예가 쌓이면 퀘스트 따위의 시스템에 영향을 끼친다. 말하자면 싱글 매치는 순수하게 게임과 재미를 위한 시합이라는말이다.당연히 유저들이 열광하는시합은 수많은 유저와 NPC가 참가하는토너먼트다. 토너먼트는 다시 개인전, 페어,파티,길드전으로 나뉘는데, 각 시합마다 엄청난상금이나 희귀 아이템이 부상으로 지급된다. 또한 도박을 즐길수 잇는 시합도 토너먼트다. 231차 토너먼트 개인전 참가 제한 : 레벨 70~75 전사 계열 게임 방식 : 아이템 사용금지 우승자 상금&부상 : 100골드,영광으 건틀렛 접수기한 : 마감 완료!현재 진행중 147차 토너먼트 파티전 참가 제한 : 레벨 제한 50,인원 10~12명 게임 방식 : 아이템 사용 금지, 레벨 평준화 (모든 참가자 50레벨로 고정) 우승자 상금 &부상 : 500골드 ,레어 비전서(랜덤) 접수 기한 : 마감 임박!31일 PM 5시까지 '흐음, 상당히 괜찮은데?' 아크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전단지를 훑어보았다. 전단지에는 부상으로 주어질 아이템 그림까지 첨부되어 있었다.자세한 설명은 붙어 있지않았지만 딱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의 아이템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상금과 부상이 걸려 있으니그만큼 쉽지 않다는뜻이겠지?' 보통 한 게임에 참가하는 인원이100여명.토너먼트방식이니 최소 일곱번은 이겨야 우승할수 잇다. 토너먼트는 대부분 레벨평준화 방식으로 진행되니 레벨이 높다고 승률이높은 것은 아니다. 승패는 현실의 시합처럼 오직실력에 달렸다는말이다. 그런 조건에서 100여명을 제치고 우승한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악실리온의 기본 규칙 .시합을신청한 유저는 72시간동안 다른 시합을 신청할수 없다. 하긴, 그런 제한이 없으면 무턱대고 아무 시합이나 다 나가려고 할테니까' "어떄? 나가고 싶은 시합이 있어?' 샴바라가 옆구리를 찌르며물었다. "글쎼,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좀더 둘러볼게"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전단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문득 아크의 관심을확 잡아끄는 시합 전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설마 저건.....?' 아크는사람들을 헤치며 전단지를 향해 달려갔다.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 참가 제한 : 레벨 제한 100.인원 2명 게임 방식 : 소모 아이템 사용 금지(단 스킬 고나련 아이템은제외) 레벨 평준화(모든 참가자 100레벨로 고정) 우승자 상금 &부상 : 200골드,마가로프의 비밀지도 접수 기한 : 마감 입박!오늘 PM 6시까지 '마가로프의 비밀지도!' 아크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랐다. 마가로프!바로 며칠전 마법학회에서 받은 퀘스트<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에서 거론됐던 이름이 아닌가?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비밀지도라면.......? '마가로프의 연구실 위치가 적힌 지도일지도 모른다!' 샤넨은 열쇠를 거네주며 인연이 있으면 필요한 단서를 찾게 될거라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표현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이것이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퀘스트 시스템의 한다.즉, 일부 특정 퀘스트는 퀘스트가 시작되고 난뒤에야 관련된 단서가 등장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하나뿐인 퀘스트 아이템이 소실되는 일을막기 위한 조치다. 아크는 이번 퀘스트 역시 그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 예상했다. 열쇠를 가지고 여행하다 보면 틀림없이 단서를 접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기회는 완벽한게 아니다. 적어도 뉴 월드의 퀘스트는 '게임이니까 어떻게 되겠지'라는 안이한 자세로는 절대 완료할수없다. 스스로 궁리하며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단서를 눈치채고 잡을 수 있느냐. 거기서 퀘스트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런데 설마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단서를 찾게 될 줄이야. "갑자기 왜그래? 마음에 드는 부상이라도 발견했어? 어? 뭐야?" 샴바라가 전단지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설마 저 부상에 관심있어?" 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샴바라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짜고짜 아크를 잡아끌었다. 악실리온에서 조금 떨어진곳에서 걸음을 멈춘 샴바라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 부상을 찍은건 아니겠지? 뭐야?" "자세히는 말할수 업어. 그냥 내가 받은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거 같아서" "퀘스트? 그럼 혹시 천재 연금술사와 관련있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샴바라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쳇, 더럽게 꼬였군. 좋아,그냥 속 시원히 까놓고 얘기하자" "좋아" "실은 나도 천재 연금술사 관련 퀘스트를받았어" "어디서? 혹시 마법 학회 NPC?" "마법 학회? 아니야 ,퀘스트 시작 아이템으로 받았어" 샴바라가 가방에서 책 하나를 꺼냈다. 군데군데 찟긴 낡은 책표지에는 '마가로프의 일기장'이라고적혀 있었다. "사실 너한테 연락이 없어서 얼마전에 셀리브리드를 떠났었어. 악실리온에서 원했던 부상을 차지해서 더 이상 볼일이 없었거든 .그런데 며칠전 고대 고분이란 곳에서 언데드를 사냥하다가 이걸 얻었어.처음에는 흔한 역사서인줄 알았는데 막상 주워보니 미확인 상태더라고. 혹시 스킬북인가 싶어서 감정소에서 확인해 보니 이게 나왔어" "내용은?" "몰라, 이런 저런 암호문이 잔뜩 적혀 있어. 제대로 뜻을 알수 있는건 이 부분뿐이야" 샴바라가 마지막 장을펼쳐 보여 주었다. 일평생을 바쳐 연구하던 과제도 이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한한 지식을 추구하는 내가 알고 싶어 하던 세계의 비밀. 이제 그 비밀의 마지막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불안감을 느낀다. 마치어둠속에서 누군가 나를 응시하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때가 많다. 단순히 노파심이라면 좋겠지만...........어쨌든 나는 결코 연구를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알아낸 비밀을전하겠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이 일기를 남긴다. 이 일기에는 내가 알아낸 모든 것이 다겨 있다. 그러나 완전하지 않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내 연결시켜야 할것이다. '지금 내가 잇는 곳!' 틀림없이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지칭하는 단서이리라. "내가 이 부분을 읽을 때 < 수수께끼의 일기장>퀘스트각 시작됐어. 마가로프라는 살마이 자신을 천재 연금술사라고 써놓은 부분이 많은걸 보면 아마도 숨겨진 장소란 그의 레어가 아닐까 생각해. 그래서 다시 셀리브리드로 돌아와 정보를 찾다가 마가로프의 비밀지도가 부상으로 걸린 시합을 발견했지. 아마도 일기에 쓰여 있던 암호문 같은 건 지도에서 마법사의 레어를 찾아낼 힌트일거야" 샴바라는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알아낸건 여기까지야.이제 네차례야.네가 알고 있는 정보는 뭐야?" "...............나는 마법학회에서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를 받았어" "뭐?마법학회?" "그래,아마 네가 추리한 내용은 대부분 맞을거야 .나도 아직은 네가 아는 정도박에 몰라. 하지만 확실하게말할수 있는건 일기와 지도만으로는 퀘스트를 완료할수 없다느거야.뱀,마가로프의 차원 열쇠!" 뱀이 낡고 검붃은 열쇠 하나를 뱉어냈다. "이건 마법학회에서받은 마가로프의 차원열쇠야.너와내 정보를 종합해 보면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는건 일기와 빔리지도 그리고 이 열쇠,세가지각 모여야 될거같아" '젠장, 지도만 찾으면되는게 아니었어?" 샴바라각 와락 인상을 쓰며 짜증을 냈다. 상황이 묘하게 꼬여 버렸다.당연하게도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는 공유되지않는다. 물론 아이템을나눠 가질수는 있겠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고 정당한 보수를 받을수 있는 사람은 하나, 그러나 이미 3개의 단서 가운데2개를 샴바라와 아크가 나눠 가진 상태다. 둘 중 하나가 포기하지 않으면 2명 모두 퀘스트를 완료할 방법이 없는것이다. 샴바라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슬쩍 시선을 돌렸다. "나는 괜찮으니까 네가 가져.......라고 말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 우리?" "슬프지만" "네가 그 뱀에게 먹여 놓으면 죽여서도 못뻇고" "얌전히죽어 주지도않을거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샴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재안을 내놓았다. "좋아, 그럼 상화은 간단해. 이렇게 하자, 일단 지금 우리에게 급한건 마가로프의 비밀지도를 손에 넣는거야. 만약 그게 다른 놈 손에 들어가면우리끼리 아옹다옹해 봐야 소용 없으니까. 그건 너도 동의하지? 하지만 지금은 너나나나 우승한다는 보장은 없어. 하지만 너와 내가 손을 잡으면 얘기가 다르지" "손을 잡아?" "그래 ,다행히 시합이 시작될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그리고 페어처럼 여러명이 참가하는시합은 시합전에 파트너를 바꿀수 있어" "하지만 네 파트너는?" "그 녀석은 신경 쓸 것 없어. 신청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서 대충 아는 후배를끌어들인거야. 그 녀석보다는 너와 폐어가 되는 게 승률이 훨씬 높지. 나 ,이래봬도 너를 꽤 인정하고 있어. 또 내 실력도 믿고, 장담하지. 아마 너와 내가 페어가 된다면 확실하게 우승할수 있을거야." "눈물 나게 고맙군" 샴바라의 제안은 제법 설득력이 잇었다. 아크는 여러명의 유저와 싸워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유저도 샴바라와 같은 기량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같은 레벨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페어!확실히 우승을 노려볼 만하지않은가. "좋아, 너와 내가 페어가 되어 우승했다 치고......다음은?" "상황은 심플하지. 일단 비밀지도를 손에 넣으면 필요한 단서가 모두 갖춰지는 거야. 남은 문제는너와 내가 나눠 가진 단서뿐. 그건 너와 내가 시합을 하면 간단하게 해결돼" "이긴 사람이 모두 차지하는건가?" "그게이치에 맞잖아" 샴바라가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며 끄덕였다. 아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샴바라를 마주보았다. 아마도 작센영지에서 헤어질때 이런 제안을 받았다면 승낙하기 어려웠을것이다. 냉정하게 비교하면 당시 샴바라가 보여 준 전투력은 분명 아크보다 한수 위였다. 그러나 그 뒤로 아크는 많이 성장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는 이명룡이라는 스승을 만났다.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면 메마른 대지는 빠르게 물기를 빨아들인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한동안 별 성과도 업이 제자리 걸음만 해 왓기에 스승을 만나자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좋아지고 있었다. '페어 시합이 끝날때까지 앞으로 사흘, 시합할때만 접속하고 나머지 시간을 모두 수련에 활용하면........샴바라를 상대로도승산이 있다!' 또한 승산이 없다고 해도 거절할 상황은 아니었다. 샴바라가 마가로프의 일기를 쥐고 있는한, 죽이지 않고는 뺏을 방법이 없다. 안델 따위라면 고민할 필요도없겠지만, 샴바라와 그런 원한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독하게 마음먹고 샴바라를 공격한다고해도 결국 싸우는건 마찬가지. 그렇다면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시합을 받아들이는 편이낫다. "좋아, 그렇게 하자" "결정됐군. 그럼 따라와" 샴바라와 아크는 다시 악실리온으로 향했다. 그리고 샴바라는 후배를 호출해 출전을 포기시키고 새 맴버로 교체 신청을 했다.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 출전 멤버를 교체하겠다고 하셨습니까?" "네, 제 이름은 샴바라,교체 멤버는 아크입니다" "샴바라 님은 당연히 자격 확인 절차를 끝내셨고........아크님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50 명성 : 1,875 레벨 : 123 ( 원본에는 12로 표기되었음)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 ,희생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2,065(+50) 마나 : 1,930 영력 : 100 힘 274(+15) 민첩 314(+25) 체력 404(+10) 지혜 43(+10) 지능 367 운 44 특수 스탯+고대 유물의 지식 : 98 유연성 : 35 화술 : 33 애정 : 72(+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갑옷 : 물 속성 저항력 +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 : 공격 속도 +10%,민첩 +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 : 민첩 +10,지혜+10 *<수왕> 세트 효과: 힘 +10,민첩 +10,체력+10,방어력+20 개량형 노라드 부츠 ; 이동속도 +15%,회피율 +10% 화염의 베일 : 화염 저항력 +50% 아드리안의 목걸이 : 방어력 +40,애정+10 부활하는 영혼 : 힘 +5,마나 회복속도+5% *어둠속에서 모든 능력이 3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의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아크가 지저 세계에서 나올당시 레벨 116,심혼의 구슬퀘스트 보고로 120이 되었고, 갱생단과 함께 셀리브리드까지 여행하며 3을 더 올려 123이 되었다. 출전 자격제한은 레벨 100이닌 볼것도 없이 합격되었다. "자격은 충분하시군요. 바로 출전자 교체를 접수시켜 놓겠스빈다. 샴바라, 아크님은 14조입니다 .일곱번째 시합에 출전 예서입니다. 시합 일시는 모레 오전 11시, 조금이라도 늦으면 바로 탈락이니 30분전까지는 대기실에 와 주셔야 합니다.다른 질문 사항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샴바라와 아크가 다시 악실리온을 나왔다. 게임 시간으로 모레 오전 11시라면 현실시간으로 내일 오전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정의남 일행에게 사정을설명한 뒤, 체육관에 들렀다가 한숨 자고 다시 접속해도 될 듯했다. '이명룡 대장님에게 비장의 기술이라도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어' 성문으로 돌아오자 일행이 볼일을 끝내고 모여있었다. 정의남은 아크를 보자마자 짜증부터 내며 떠들었다. "젠장, 도적놈들을 찾아내는게 생각보다 오래걸릴것 같다" "왜요?" "소문을 들어 보니까, 얼마전 국경 근처의 전쟁이 끝나서 정규병들이 모두 돌아왔대. 덕분에 셀리브리드 근처의 도적들이 몽땅 겁을 집어먹고 숨어 버렸다나 ?아무래도 한동안 주변을 돌면서 찾아봐야겠다. 투기장 시합도 중요하지만 그런놈들을 갱생시키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목적이니까" 정의남과 갱생단은 정의 실현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다. 시드 역시 할일을 찾아냈다. "저는나가란 지역으로 가 봐야 할것 같아요" "나가란? " "네, 방금 전에 정의남 아저씨가 말했던 국경 지대의 이름이에요.상인길드에서 퀘스트 완료하면서 얻은 정보인데. 지금 근방의 유저길드가 모두 그곳으로 몰려갔대요. 서을 점령하는 이벤트가 있다나? 하여간 유저길드까지 박터기게 싸우면 주문서나 포션의 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할게 분명해요" 비록 허접스럽기 짝이 없는 시드였지만,상인으로서는 재법 머리가 잘 돌아간다. 시드는 도토리 같은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란에서 50%........아니, 60%의 이윤을 남기고 돌아오겠어요!우하하하 ,기대하세요 .제가 돌아오면 우리는 모두 벼락 부자가 되는거에요!" "오오!기대하마 ,시드!" 전 재산을 투자한 정의남과 갱생단이 있는힘껏 응원해 주었다. 그때, 샴바라가 앞으로 나서며 시드에게 물었다. "상인이세요?" "네,그런데요?" "이번 장삿길은 며칠이나 걸리죠?" "나가란은 가깝지만 장사하는 시간도 있으니 한 나흘 이상 걸릴거에요" "그럼 잘됐네요. 혹시 이걸 맡아 주시고 대신 계약서를 써주실수 있으세요?" 샴바라가제안한 건 아크와의 약속에 대한 내용이었다. 아크가 샴바라는 지난 한달간 서로의 실력을 제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페어 시합에서 상대의 실력에 주눅이 들어 싱글 매치를거부하거나 ,싱글 매치에서 패배하고도 아이템을 주지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사전에 제3자에게 아이템을 맡겨 놓고, 승자에게 아이템을 준다는 계약서를 작성하려는것이다. "계약서 내용은 나와 아크가 시드님에게 아이템을 맡긴다. 그리고 싱글 매치에서승리하는 사람에게 시드님의 아이템을 몰아준다는 내용이에요. 만약 둘중하나가 시합을 거부하면 자동으로 남은 한 사람이 승자가 되는거고, 아크, 너도 이러는편이 좋지?" 물론이다. 만약 샴바라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아크가 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샴바라와 아크는 퀘스트 관련 아이템을 시드에게 넘겼다. 이로써 일행이 앞으로 할일이 모두 정해졌다. 시드는 곧 봇짐을 둘러매고 나가란을 향해 장삿길을떠낫고, 정의남 일행은 정의를 외치며 도적단을 찾아나섰다. 그떄, 으슥한 골목에서 그들을 감시하는 눈길이 있었다. "우리 조직원을 살해 한놈들이 저놈들이다" "어서 본부에 연락해" 검은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내들이 이를갈아붙이며 사라졌다. 가슴에찍힌 붉은 손자국 문장, 다크브라더였다. 그드로가의 악연은 아직 끝나지 않은것이다. 그러나 일행을훔쳐보는 사람들은 NPC만이 아니었다. 다크브라더의 반대쪽 골목에서 몇몇 유저들이 아크와 샴바라를힐끔거리며 속닥거리고 있었다. "저 녀석들이 확실하지?" "네, 조금전에 확실히 마가로프의 유산에 필요한 마지막 단서가 어쩌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나머지 단서를이미 가지고 있단 말이잖아?" "쳇, 벌써 단서를가지고 잇는 놈들이 있었던건가?" "어쩌지?" "놈들도 시합에 참가할 것 같으니 좀더 상황을지켜보자" 유저들은 수군거리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갔다. 그렇게........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아크를 둘러싸고은밀한 사건들이 진행되고 잇엇다. 당연히 이런 일들을 알리가 없는 아크. "그럼 시합 전에 만나자" "컨디션 잘 관리해. 졸면서 시합하는 꼴은 못봐" "걱정마. 컨디션 조절하려고 나가는 거니까" 아크는 샴바라와 약속 시간을정해놓고 접속을 종료했다. 그렇게 아크에서 현우롤 돌아와 곧바로 경찰청 체육관을 찾았다. "하!며칠 동안 빡세게 수련시켜 달라고?" 이명룡은 행복해 어쩔줄을 모르겠다는 얼굴로끄덕였다. "오냐, 마침 오늘은 비번이니 확실하게 괴롭혀 주지. 먼저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스파르타식 수련은 장장 4시간에 걸쳧 이루어졌다. 괴롭힘수준의 훈련으로 시체가 된 현우에게 이명룡이 말했다. "크크크, 매번 오늘처럼만 해라. 슈퍼맨으로 만들어주마" "배트맨 정도로 만족하면 안될까요?" "흥, 남자라면 슈퍼맨이야" 현우는 대꾸할 여력도 없었다. 그러나 현우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제 시작이다.앞으로 최소한 사흘, 잠시도 쉴 틈이없다. 샴바라는강하다 . 페어전이 끝나고 상급 매치를 하기전까지 눈곱만큼,코딱지만큼이라도 더 실력을 키워놔야 한다. 현우는 샤워도 잊은 채 기절하듯 곯아 떨어졌다. 부스스 일어나 보니 순식간에 8시간이 지나있었다. '헉, 시합시작까지 앞으로 30분밖에 안남앗잖아?' 현우는 허둥지둥 유니트에 올라 뉴 월드에 접속했다. 현실에서 게임으로......현우에서 아크로 돌아가자 샴바라의 고함소리가 고막을강타했다. "젠장, 뭐 하다가 이제야 기어들어 온거야?등록하고 뭐하고 하려면 빠듯하다고!" "미안해. 알람을 맞춰 놧는데 피곤해서 못 들었나봐" "다음부터는 조심해.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장해야해" 샴바라는 와락 아크를 잡아끌고 악실리온으로 달려갔다.이때까지만 해도 둘은 자신들에게 닥쳐올 사건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악실리온에서 그리고 수도 셀리브리드와 시드가 떠나간 나가란에서.......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아크 일행을 궁지로 몰아넣을 사건이 착착 준비되고 있엇다. 아크의 파란만장한 모험을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TO BE CONTINUED TYPING BY tjwnsgur888@naver.com 아크4,5권 텍본 http://blog.naver.com/tjwnsgur888/110077556571 에올렸습니다 또한 여기에 판타지,게임소설많으니놀러오세요!! 아크 ARK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차례> ACT 1 다크 울프 ACT 2 화려한 데뷔전 ACT 3 갱생단의 숨겨진 실세? ACT 4 결승전 ACT 5 광란의 밤 ACT 6 팬입니다! ACT 7 란셀 마을 ACT 8 노가다 ACT 9 전설의 유니콘 ACT 1 다크 울프 "미치겠군" 바쁘게 걸음을 옮기던 샴바라가 툭던지듯 말했다. 샴바라는 경기장 밖에서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계속 미간을 징그린 채였다.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나 목소리에도 노골적인 짜증이 묻어 있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어 버렸다. 잘못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 그러나 아예 출전을 못할 만큼 늦어 버린 것도 아닌데 몇 번이나 구박하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아크는 입술을 삐죽거리며구시렁거렸다. "알았어, 미안하다고.미안하다고 했잖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각한 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다음부터 조심할테니까 그만 좀해" 샴바라가 우뚝 걸음을 멈추며 노려보앗다. "맞아, 네 말대로 조심하는편이 좋을 거야.두번은 없어. 또다시 이런 식으로 애먹이면 시합이고 뭐고 칼침부터 놓고 볼테니까" 그냥 농담이 아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원래 샴바라는 용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접속이 해제된 아크의 뒤통수를 후려치던 멍멍이 매너를 가진 분이다.마음에 안들면 살금살금 다가와 옆구리에 살포시 칼침을 놓아 주는 정도는 해맑게 웃으며 할수 있는 유저인 것이다. 용케도 그런 살벌한 녀석과 친해졌다.아니, 친해지기는 한걸까? "네,네.어련하시겠습니까?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까불래?" "알았다고, 나도 까칠한 성격의 파트너에게 칼침을 맞고 싶지는 않아" 아크가 유들유들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샴바라는 못마땅한 눈길로 흘겨보다가 한숨을 불어냈다. "네 녀석은 정말.......뭐 ,됐어. 시합 전부터 바짝 긴장하고 있는것보단 그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특히 이번 시합은 예상보다 힘들어질것 같으니까" "응? 힘들어져?" "아직 모르는 것 같으니 간단하게 설명하지, 전에도 말했지만 일반적으로 악실리온에서열리는 토너먼트에 출전하는 사람은 대략200여명 남짓이야. 그런게 이번 시합은........뭔가가 이상해.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출전 신청을 한 사람이 최소 5배. 1,000명이 넘는단 말이야" "1,000명 이상? 그럼 2인1조로 따져도 500조?"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샴바라는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숫자는 중요한게 아니야" "출전자가 많으면 그만큼 시합수도 늘어날 거아냐" "그렇겠지. 하지만 토너먼트에서는 출전자가 몇 배로 불어난다고 시합 수까지 몇 배나 불어나는 건 아니야 .100여명이 출전했을 떄보다 고작 2,3시합 늘어날뿐이니까" 음, 생각해 보니 그렇기는 하다. 토너먼트 방식은 한 시합을 치를 때마다 절반의 숫자가 떨어져 나간다. 그러니 100조가 출전해도 결승전까지의 시합수는 여덞 번 남짓,500조라고 해봐야 거기서 두세번 시합 수가 늘어날 뿐이다. "문제는 늘어난 시합수가 아니라, 출전자들의 수준이야" 샴바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이번 시합을 좀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너도 들었지? 얼마전에 삼국의 경계,나가란이 공개되어 길드들이 그곳으로 몰려갔어. 악실리온에서 제법 승률이 높은 랭커들은 대부분 길드 소속이지. 그래서 이번 시합의 참가자는 숫자도 적고, 실력도 그저 그런 수준일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꽤 실력있는 녀석들이 몰려들었다?" "맞아, 조금 전에 올라온 이름을 보니 다들 제법 이름이 알려진 녀석들이었어. 덕분에 요행을 바라고 신청했던 피라미들이 속속 기권했지만 ,그래도 1,000명이 남은 거야. 그게 무슨 뜻인지 대강 짐작이 가지?" 악실리온에서는 최종 등록을 하기 전까지 참가자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때문에 실력에 자신이 없는 유저들은 혹시나 하고 참가 신청을 했다가도 시합 직전에 상위 랭커의 이름이 거론되면 얼른 기권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악실리온에는 '승점제'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즉, 복싱처럼 승률에 따라 랭킹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랭킹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을수 있다. 예를 들면 특별한 부상이 걸린 시합의 출전 자격이나, 아실리온 전용 상점에서만 판매하는 아이템.혹은 고급 게임 정보를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는 권리등등......악실리온의 죽돌이들은 대부분 상금이나 부상보다 이런 권리를 목적으로 삼는 유저들이다. 샴바라 역시 처음 악실리온을 찾는 이유는 직업 관련 퀘스트 정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합에서 지면 승점이 많이 떨어져. 그리고 일단 첫 시합을 시작한 뒤에 기권해도 패배로 간주되어 승점이 떨어지지. 하지만 명단이 공개될때 기권하면 바로 다른 시합을 신청할수는 없겠지만, 승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래서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상위랭커들이 많이 출전하면 발을 빼는게 보통인데..........." "다시 말 해 그런 거구나" 아크는 샴바라의 말을 정리했다. "대형 길드가 나가란으로 나간 사이, 어부지리로 승점이나 올리려고 했던 녀석들이 이번시합에 몰렸다. 너는 방금전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 샴바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상위 랭커의 명단이 많이 발표됐는데도 정작 기권자는 200명 .생각할수 있는 이유는 두가지겠지. 첫번째는 남은 녀석들은 그들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자들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승점이 떨어질 위험을 감수할 만큼 부상을 탐낸다는 것" "그래" "악실리온에서 보물 지도 같은게 부상으로 걸리는게 그렇게 드문 일이야?" 아크의 질문에 샴바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악실리온에서 보물지도는 흔한 부상중의 하나야. 그리고 딱히 보물 지도로 대박을 터트렸다는 사람도 없어서 인기도 별로없어.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번 부상에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 들엇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아크는 잠시 팔짱을 낀채 생각에 잠겼다. 보물 지도는 아크도 사냐을 하다가 몇번인가 먹었던 적이 있엇다. 볼프의 보물지도라는 아이템이었다. 보물 지도라니? 얼마나 가슴뛰는 아이템인가? 보물섬 같은 만화영화를 보며 자란 아크는 온갖 꿈에부풀어 죽을 고생을 하며 보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두툼한 보물 상자를 여는순간,기대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보물 상자에서 찾아낸것은 고작 낡은 항아리3~4개,상점에 가져가 보니 3골드밖에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 뒤에 알게 됐는데,보물 지도는 의외로 드랍율이 높은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이런 보물 지도는 터무니없이 높은 레벨의 사냥터에 존재하는 경우도 많았고, 또 갖은 고생 끝에 간신히 찾아내도 빈 상자일 경우가 많단다. 심지어 때떄로 보물상자로 위장하고 있는레벨 300짜리 몬스터,미믹에게 기습당해 골로 가는 수도.......... 요즘 많이 쓰이는 말로 복불복. 물론 정말 보물이라고 할 만한 아이템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기에 꿈과 희망을 걸기에는 확률이 너무나 극악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보물 지도를얻어도 일부러 시간을 투자해서 찾아 나서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가 걸린 시합에 사람이 몰렸다. "마가로프의 지도에 뭔가 대단한 보물의 위치가 적혀 있다는 소문이 퍼졌든지, 아니면 퀘스트 관련 아이템이라는 정보가 샜다는 뜻이군"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확실히 네 말대로 조금 귀찮게 됐는걸"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 고개를 흔들며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달라진건 아무것도 없잖아. 상대가 누가 됬든, 몇 명이나 되든 우리가 해야 할일은 똑같아. 이기는 것, 아니야?" "자신 있어?" "자신 없으면? 그만둘까?" 아크가 의뭉스런 눈길을 보내자 샴바라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배어나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뭐 어쨌든 좋아. 시작부터 파트너가 기가 죽어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네 말이 맞아. 일단 참가한 이상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해야해.내 발목 잡지 않도록 죽을힘을 다하라고"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곧 열리게 될 토너먼트 페어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조속히 등록을 해 주십시오. 시합 개시 10분 전까지 등록하지 않으시면 자동 탈락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토너먼트 페어전이 15분 뒤에 열릴 예정입니다. 참가 선수들은 등록을........... 그때 ,관리 NPC의 목소리가 마법 확성기를 통해 쩌렁쩌렁 울려 나왔다. "가자, 일단 등록부터 해놓자" 관리 사무소 앞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들 앞에는 커다라 토너먼트 대전표가 붙어 있었다. 최종 등록 마감까지는 앞으로 5분.그러나 절반이상이 아직 미등록 상태로 남아있었다. 일단 등록 신청을 해 놨지만 만약 지게 되면 얻는 것도 없이 승점만 깎인다. 그러니 마지막 순간까지 대전 상대를 확인하고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눈치를 보고 이는 것이다. '저 정도 장비를 갖춘사람들도 등록을 망설이는 건가?' 아크는새삼스러운 눈길로 참가자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최소 참가 자격인 레벨 100을 넘기 유저들. 과연 슬쩍 훑어보기만 해도 보통이 넘는 포스를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걸치고 있는 장비들은 절로 군침이 흘러내릴 만한 수준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비 아이템은 승패의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리라. 악실리온의 시합에 설핏 레벨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레벨 평준화 룰로 인해 모든 참가자의 레벨이 100으로 조정되는 까닭. 꽤나 공정한 룰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다. 악실리온에서 조정해 주는 것은 레벨 '뿐'인 것이다. 그 레벨에 걸맞게 올려놓은 스킬과 장비 아이템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다. 그리고 같은 레벨이라면 스킬과 장비가 좋을수록 강한 것은 당연지사. 시합의 승패는 스킬 등급과 장비의 성능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당연히 레벨이 높은 유저가 스킬의 등급도 높고, 더 좋은 장비로 무장하고 있지 않겠는가? 간신히 레벨 100짜리 허접스러운 검을들고있는 유저와 레벨 200짜리 레어검을 들고있는 유저는 죽도와 진검만큼이나 공격력이 차이가 난다. 거기에 스킬까지 몇 등급이나 차이가 난다면 시합이 될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게임 안에서 절대적인 기준은 레벨과 장비야' 새삼스럽지만 절대적인 진리였다. "쳇, 눈치만살피는 한심한 꼴이라니........." 샴바라가 콧방귀를 뀌며 아크르바라보았다. "어차피 우리는 상대가 누가됐든 기권할 생각은 없으니까. 사람이 몰리기 전에 등록해놓고 준비운동이나 하자. 등록할때 시선이 집중될테니 일단 복면부터 써" "복면?" 아크가 무슨 말이냐는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샴바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너 설마..........복면도 준비해 오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무슨 복면 말이야?" "맙소사, 설마 이렇게까지 무식할 줄이야!" 샴바라가 질렸다는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크는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관리소에 들어설때부터 묘한기분이 들었다. 낯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막상 샴바라의 말을 듣고 보니 그 묘한 기분의 정체를 알수 있었다. 관리소에 모인 사람들 ,그들은마치 뗴강도철머 모두가 복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아크는 움찔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호, 혹시 시합에 나가려면 복면이 필요한 거야?" "아니, 없어도 출전하는 덴 아무런 상관없어. 하지만 가능하면 준비해 두는 게 좋아. 특히 이번 시합은......." 샴바라가 머리를긁적이며 설명해 주었다. "우승자에게 지급되는 부상은 종종 레어 급 아이템도 섞여 있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아이템이지.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를 들어 여기에 참가했다가 도중에 패배한 사람들, 혹은 경기를 구경하는 엄청나 숫자의 관중들도 모두 아이템을 욕심낸다는말이야" "아, 그렇구나!"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유저들이 시간을 쪼개가며 시합에 출전하는 이유는 하나,바로 부상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그런 아이템을 수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지한다는건......유저들의 목표가 될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니, 목표가 된다. 그리고 언제 어느때 뒤치기를 당할지 알수 없는 불안한 생활이 시작되리라. 보물은 피를 부른다. 현실에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디........조금만 생각해도 알수 잇잖아? 악실리온에 나오는 사람들은 PVP의 전문가들이야. 하지만 1대1이라면 모를까. 다구리롤 덤벼들면 버틸재간이 없어. 대형 길드의일원이라면 그래도 좀 낫지만,독불장군이라면 거의 100%확률로 습격당하게 돼. 그래서 모두들 복면으로 얼굴을숨기는 거야" 무식해서 용감한 아크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어차피 이름이 밝혀지잖아" "멍청아, 이미 출전 신청을 한 유저의 명단이 왜 아직 공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거야? 최종 등록은 마지막으로 참가의사를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첫 출전자의 링네임을 등록하기 위한 절차이기도 한거야" "링네임?" "그래, 악실리온에서만 사용하는 또다른 이름" 당연하게도 시합이 시작되면 관중들ㅇ느 어떤식으로든 간섭할수 없다. 이는 각종 주문서나 마법으로출전 선수의 정보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뜻이다. 그러니 복면과 링네임을사용하면 개인 정보를 철저하게 숨길수 있는것이다. 출전 신청을 해놓고 접속을 끊었다가 방금 전에야 들어온 아크가 그런 사정을 알리가 없었다. "미치겠군. 그렇지않아도 이번 시합에 걸린 부상에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만아진 상태인데.....만약 얼굴조차 가리지 않고 우승했다가는 카오틱이 벌떼처럼 몰려들거야" '그건 곤란한데.........' 그제야 아크의 얼굴로 심각해졌다. 어쨰서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단지 우승 상품을 빼앗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크는 기본적으로 다른 유저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새로운 던전을 찾아도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그런데 1~2명도 아니고, 수천명의 관중이 모인 시합장에서 정체를 다 드러내 놓고싸워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모두가 침을 뚝뚝 흘려대는 부상을 목표로? '안델과 악연을 만든것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만약우승해서 마가로프의 비밀 지도를받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졌다. 샴바라는 등록 마감을 알리는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짜증을 부렸다. "출전 등록까지 해 놓고 어떻게 그렇게까지 무관심할수 있냐? 네가 얼굴을 드러내 놓고 출전하면 내 정체까지 드러날수 잇단 말이야. 빌어먹을 ,더구나 네가 지각하는 바람에 나가서 복면을 사올 시간도 없고.....혹시 뭔가 얼굴 전체를 덮는 투구같은거 없어?" "그런게 있을리가........" 아크가 한숨을 불어낼때였다. 딸랑,딸랑 하며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그렇지, 혹시 그거라면 굳이 복면을 쓸필요가 없을지도 몰다!' "샴바라 ,잠시만 기다려.금방 돌아올게" "뭐? 지금 사러 가려고? 말했잖아, 나갔다 올 시간이 없어" "머리 가는거 아니야. 넉넉잡고 1분이면돼" "자,잠깐 !어이, 아크!" 아크는 샴바라의 목소리를 가볍게 씹어 버리고 관리소를 돌아나왔다. 이미 대부분의 출전자는 관리소에 모여있어 복도는 한산했다.아크는 후미진 구석을 찾아들어간 뒤에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좋아, 아무도 없지?' "변신!" 투구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온것은 그때였다. 마치 검은 물감 같은 점액질이 뭉클뭉클흘러나와 아크를 뒤덮었다. -너구리 투구의 특수 옵션 '변신'이 활성화됐습니다. 그렇다,지금 아크가 착용한 투구는바로 지저세계에서 얻은 마법 투구!너구리족의 특수 능력인'변신'을 사용할수 있는 너구리 투구였다. '처음 받을때만 해도 '변신'따위를 어디에 써먹을수 있나 싶었는데........' 역시 일단 챙겨두면 어떻게든 쓰게 되는 모양이다. 검은 점액질이 아크를 뒤덮자 새로운 설정창이 떠올랐다. 처음 게임에 접속할때 종족, 성별, 외모따위를 설정하는 시스템이었다. '기왕이면 진짜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른 외모가 좋겠지?어차피 내 본모습이아니니 관심을받아도 상관없어. 그리고 시합전용이니 약간 포악한 인상도 나쁘지 안겠지' 예술적 감각을발휘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아크는 메뉴가 나올때마다 곧바로 대답하며 새로운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그러다 보니 조금 마니악한 캐릭터가 만들어졌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게 설정을 완료하자 검은 점액질이 꿈틀거리며 아크의 외모를 바꾸기 시작했다. 아크는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얼굴이 앞으로 돌출되고, 팔과 다리가 두툼해졌다. 키도 단숨에 30센티미터나 커졌고, 손곽 발이 풍선처럼 부풀어지며 거친 바위처럼 단단해졌다. '대충 만든건데 막상 변하고 보니 그럴듯한데?' 아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관리소로돌아갔다.문을 열고 들어섰을때였다. "헉, 뭐,뭐야?" 무심결에 고개를돌리던 유저 하나가 숨을들이켜며 뒷걸음질 쳤다. 뒤이어 고개를 돌린 사람들도마찬가지였다. "뭐,뭐야? 저 사람은?" "설마.......몬스터는 아닐테고.......그럼 저게 수인족인가?" "자,장난이 아니잖아. 어떻게 수인족이 슈덴베르크의 수도에?" "국경 제한이 풀렸다는말은 들었지만 벌써?" 단숨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 집중되었다. 홍해 바다처럼 갈라지는 인파를 가르며 걷는 사람은 바로 아크!2미터에 달하는 키, 보통 사람의 2배는 될듯한 가슴과 팔의 두께,몸을 움직일때마다바위를 이어붙인듯한 근육이 꿈틀거리며 흔들렸다.그야말로 압도적인 존재감! 그러나 사람들이 놀란것은 그때문이아니었다. 2미터나 되는 거대한 근육질은 온통 시커먼털로 뒤덮여 있었다. 그뿐인가? 당장이라도 시뻘건 피가 흘러내릴듯한 붉은 눈동자. 크게 아픙로 돌출된 상태로 귀밑까지 찢어진 입에는 칼날같은송곳니가 뺴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외모를 보고 떠오르는 이름은 라이칸스로프..........일명 늑대 인간이다. 그러나 몬스터에 불과한 늑대 인간이 셀리브리드 한복판에 나타날릭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수인족.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유저가 선택 가능하다고 알려진 늑대족이었다. 그러나 늑대족이 처음 시작하는 왕국은 시니어스 공국.때문에 슈덴베르크에서 시작한 유저들은 아직늑대족을 본적이 없었다.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평소라면 다른유저의 관심에 질색했을 아크. 그러나 어차피 가면을 썼다고 생각하니 그런 관심도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않았다. 덕분에 아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웃을수 있는여유가 생겼다. "크르르르" 시뻘건 아가리 속에서 위협적인 목울음이 흘러나왔다. 딴에는 꽤나 매력적인 미소라고 생각했으나, 보는 사람들에게는 시비를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않았다. 유저들의 얼굴이딱딱하게 굳었다. 심지어 몇몇 여성 유저들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후후후, 내 미소가 그렇게 박력이 있어 보였나?' 모습을 바꾸자 머릿속이 살짝 맛이 간 아크였다. 어쨌든 그렇게 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샴바라 역시 놀란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크가 다가서자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크르르,기다렸지?빨리 등록을 끝내자" 입을 열자 자연스럽게 으르렁거림이 섞여 나왔다.샴바라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너 혹시......?" 떠듬거리며 묻던 샴바라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막았다. 샴바라는 악실리온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다른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도니 자리에서 본래 이름을 꺼내지는 않았다. 아크 역시 대강 상황을 알아채고 고개만 끄덕였다. "맞아" "정말이지........저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타고났다. 잠깐 사라지나 싶더니 무슨 이런 말도 안된는......아니, 됐어.대체 무슨짓을 어떻게 한거지는 모르겠지만,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듣기로하고, 일단 등록부터 끝내 놓자" 샴바라는 아크를 관리 NPC에게 끌고 갔다. NPC역시 늑대족으로 변신한 아크의모습에 꽤나 놀란표정을 지었다. 연신 웃음을 짓는 늑대족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수정구로 아크의 신상정보를 확인하고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어,어쨋든 참가신청한 본인이 맞는 것 같군요.어떤 모습으로 참가하든 그건 출전자의 자유니까 상관없은 없습니다만........정말 개성적인 모습이군요. 네, 등록을 마쳤습니다.그런데 이번이 첫 출전이신것 같군요.링네임을 정해주시겟습니까? 참고로 말씀드리면 악실리온에서 링네임을한번 등록하면 수정하실수 없습니다." "다크울프" 변신한 모습을 확인했을때 떠오른 링네임이었다. "다크 울프.네,등록시켰습니다. 그리고 파트너는......아, 당신이 푸른검이시군요" "푸른검!" NPC의 말에지켜보던 유저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이어 불길이 번지듯 소란이 일었다. "푸른검이라면 그 소문의 주인공?" "개인전에서 랭킹 베스트 10에 들어갔던 강자잖아?" "그 37연승을 기록한 사람말이야?" "젠장, 한동안 시합에 나타나지 않는다 싶더니...." 샴바라는 예상밖으로 악실리온의 유명인사였다. 하긴,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크 역시 샴바라의 실력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뉴 월드에서 샴바라와 1대1로 싸워서 이길수잇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더구나 이곳은 레벨 평준화의 룰로 실력을 겨루는 악실리온. 샴바라가 주목을받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샴바라에 대한관심이 높아지자 아크에 대한 관심은 하락했다. "그럼 저 늑대족은 겉보기와 달리 별거 아니라는 뜻이군" "맞아,지금까지 푸른검이 페어에 나올때는 허접스러운 사람과 짝을 이뤘으니까.그래서 페어 우승 경력이 없잖아" "그렇다면 해 볼만해" "솔직히 개인전이라면 자신이 없지만 페어전이라면......." 사실 샴바라도 아크처러 교우 관계가 그리 폭넓지 못했다.덕분에 때때로 페어전에 나가야 할때는 대충 아무나 데리고 출전했던것. 이런 전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아크를 호구 취급했다. 아크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자 샴바라가 피식 웃으며 속삭였다. "멋대로들 지껄이는데?" "크르르,상관없어.어차피 금방 결과가 나올테니" "맞는 말이야. 하지만 방심하지는 마,악실리온의 시합은 네가생각하는것만큼 만만하지 않으니까" 샴바라의 말에 아크는 울컥했다. 아크 역시 1대1의 PVP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자신있다.샴바라가 할수 잇는 일을 자신이 못한다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르사람도 아니고,샴바라가 자신을 마치 초보자취급하며 주의를 주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아크가 발끈해서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흠, 푸른검이 그렇게 대단한가?" 문득 뒤쪽에서 은근한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가들려왔다. 고개를돌린 샴바라가 움찔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쥬르!" 샴바라의 목소리에 다른 참가자들도 움찔하며 시선을 모았다. 마법사와 궁사 복장을 하고 있는 두사람. 그들역시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복면에 오망성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실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위해 복면과 링네임을 사용하지만, 출전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복면이나 링네임으로 상대를 알아보았다. 장비 아이템은 자주 바뀌어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복면을 바꾸는 경우는 드문 까닭이다. 샴바라 역시 상대의 복면에 새겨진 문양으로 링네임을 알아낸 모양이다. 쥬르라고 불린 사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도 기억하고 있군" "잊을리가없지" "푸른검이라는 링네임을듣고 설마 해서 와 봤는데 역시 내가 알던 놈이 맞군. 내가 다른곳에 가있는동안 꽤나 실력이 늘었나 보지? 아니면 다른 놈들이 형편없는 건가?" ".........." 샴바라는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러자 쥬르는 대전표를 살펴보더니 한껏 빈정대는말투로 지껄여댔다. "어디 보자, 푸른검과 다크울프라고했지?14종니가? 그럼 우리와는 결승전에서야 만나겠군. 운이 좋은걸. 다행히 노력하면 준우승은 할수 있잖아" "크르르, 저 자식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아크가이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평소라면 그냥 참고 말았겠지만, 외모가 바뀌자 성격까지 바뀐 모양이다. 그러나 샴바라가 아크의 팔을 잡아당기며 고개를 저었다. "다크울프, 상대할 필요없어" 쥬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경험자가 좀 낫군. 상대를 가려가며 덤벼야 한다는 걸ㄹ 알고있으니까" "...........예전과 같다고는 생각하지마" "물론. 예전과 같으면 재미없잖아. 어디, 실력이 늘었다니 결승전까지 올라와 보라고.이번에도 기꺼이 밟아주지" 쥬르가 깔깔거리며 돌아갔다. "젠장, 방금 봣어? 오망성 문양이야. 쥬르와 함께 있던 사람도 오망성 문양이 그려진 복면을 하고 있었어" "빌어먹을,설마 선구자가 참가할줄이야" "우승은 물건너갔군.등록을 좀더 미루는건데" 그들이 사라지자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크는 낯선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다들 왜그러지? 대체선구자가 뭔데그래?" "베타 테스터들이야" 샴바라가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베타 테스터라는 단어는아크 역시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온라인 게임은 상용화에 앞서 각종 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한 취지로,소수의 사람들을 뽑아 클로즈 베타 테스트라는 것을 치른다. 그리고 뉴 월드 역시 상용화하기 전에 크로즈 베타 테스트를 치렀다. 선구자는 여기에 참가한 유저를통틀어 부르는 이름이어다. 뉴 월드의 베타 테스트 기간은 약 두달. 물론 베타 테스터가 키운 캐릭터는 상용화 전에 삭제되었다. 신규 유저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한발 앞서 게임을 접해 쌓아온 정보와 노하우는 삭제할수 없었다.당연히 모든 정볼 선점한 선구자들은 상용화 이후, 독점한 정보를 이용해 신규 유저완 비교도 할수 없는 속도고 성장해싿. "선구자는 상용화가 된지 한달만에 다른 사람들과 레벨이 40이상 차이가 났어. 당연하지, 초반에 숨겨진 퀘스트나 레어 아이템,스킬을 몽땅 독점했으니까.하지만 대부분 고레벨 사냥 지역으로몰려 갔다고 들었는데.........." "선구자와 싸워 본적 있어?" 아크의 질문에 샴바라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악실리온에서 내 전적은 37승 2패야. 그 2패가 처음 악실리온에왔을떄 쥬르 놈에게 당한 거였어" "그렇게 실력이 대단해?" "실력도 실력이지만........" 샴바라가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흔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장비의 차이야. 놈들이 걸친 것들은 대부분 유니크 아이템이야.기본 공격력과 방어력의 수준이 달라. 거기에 특수한 옵션도많이 붙어서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야" "그런 놈들이 갑자기 다시 나타났다는건가? 이래저래상황이 꼬여가는군" 정말이지 뭐 하나 수월하게 풀리는게 없다. 갑자기 참가자가 몇 배나 늘어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선구자가 나타나다니.........정말 날 잡아서 굿이라도 한번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샴바라는 오히려 의욕시 샘솟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오히려 잘됐어. 나도 이전처러 맥없이 당하지는 않아" 샴바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울리며 장내 방송이 들려왔다. -최종 등록이 마감됐습니다. 곧이어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이 시작되겠습니다! 처음느껴 보는 이상한 기분이다. 사실 아크는 최종등록을 할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긴장감이 생기지않았다. 이건 게임이다. 게임 안에서 이벤트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선수 대기실에 들어가자 상황이 바뀌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다음 시합을 기다리는 유저들, 그들이 뿜어낸 분위기에 대기실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통로를 따라 들려오는함성,아크는그럴때마다 흠칫거리며 불안한 눈동자가 자연스럽게 시합장 쪽으로 향했다. 격투기 시합에 출전하기 전의 선수들이 그런 기분일까? 그저 가만히 앉아서 시합을 기다리기만 할뿐인데도 온몸에 땀이 배일정도로 긴장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링네임을 호명하는 장내 방송조차 듣지 못할 정도였다. "뭐해? 빨리 나와!" 샴바라의 목소리를 들은 뒤에야 아크는 화들짝놀라서 벌떡 일어났다.뻣뻣한 동작으로 복도를 따라 걷자 두근두근,점차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철커덩,끼이이익! 곧이어 두꺼운 철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아크는 잔뜩 굳은 눈을 철문 사이로 들어나는 경기장으로 향했다.그러나 문자 그대로 눈을 그쪽으로 향했을뿐이다.보고는있지만어떤 그림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가 한없이 좁아져서 눈앞이 깜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7번째 시합입니다. 이번에 시합을 펼칠 선수들은 13조 저스틴과 디오르 ,그리고 14조 푸른검과 다크울프입니다. 아크는 움찔하며 고개를들어올렸다. 경기장상공에 괴상한 물체가 떠 있었다. 수십개의 눈알이 박혀 잇는 둥근 원형 물체.경기 해설을 하는 마법 생명체 매직 아이였다.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그 아래에 달린 입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용맹한 전사들을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와아아아!" 아나운서의 소개가 끝나자 장내가 함성으로 들끓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눅 들어있던 아크가 숨을 들이켜며 한걸음 물러났다. 샴바라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악실리온의 관중들은 대부분 승패에 돈을 걸고 관전한다. 당연히 승률이 높은 전사에게는 그만큼 많은 관심이 쏠리기 마련, 물론 승률이 높으면 그만큼 배당률은 떨어진다. 그러나 배당률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돈을 걸었다는의미.또한 확실하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선수라는 뜻이다. 그러나 샴바라의 인기는 그것만이 아니다. 격투기 시합이라고는 해도,악실리온에서 벌어지는 경기는 대부분 장비나 스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펼쳐졌다. 그러나 샴바라는 다른 유저와 달리, 마치 진짜 격투기 시합을 보는 것처럼 파워풀한 경기를 펼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때문에 순수한 팬도 적지않았다. 그들은 샴바라가 등장하자 모두 자리에서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푸른검, 이번에도 너에게 걸었다!" "화끈한 시합 부탁해!" "푸른검 오빠, 여기 좀 봐 줘요!" 심지어 플래카드를 들고 설치는 오빠부대까지 보였다. 반면 아크에게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졌다. "어이,푸른검.이번에는 개를 데리고 나온거냐?" "푸른검의 발목을 잡으면 삶아버리겠어!" "다크 울프,관중들이 떠들어 대는 쓸데없는 소리에 신경 쓰지마" "어? 어어" 아크는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사실 샴바라가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알아듣지 못했다. 관중들의 목소리는 물론, 샴바라의 말도 그저 와글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않는다. 무리도 아니다. 사실 아크는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선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 흔한 청소 반장도 못해봤고, 태권도를 배우면서도 대회 한번 나가본적이 없었다. 하물며 다른 사람 앞에서 뭔가 발표를한다는 것은 꿈조차 꿔 본적이 없었다. 의외로 소심한 구석이 있었던 것. 그런 아크가 갑자기 수천 관중이 몰려든 경기장에 떨궈졌다. 덕분에 아크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한 일종의 공황 장애를 일으켜 버린것이다. 아크조차 자신의 그런 약점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이벤트 퀘스트에서 수십명의 유저를 지휘했고, 또 지저세계에서는 수백의 너구리족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NPC,반면 관중은 대부분 유저들이다. 설사 겉으로는 구분조차안되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차이는컸다. '굉장하군'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샴바라는 내심 감탄사를터트렸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완전히 사람이 바뀐것같아. 게다가 지금은 관중들은 물론,내 목소리까지들리지 않는 모양이군.그 정도로 집중하고 있다는 거겠지?' 안그런 척하면서도 주변 상황을 꽤나 신경쓰는아크와 주변상황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샴바라는아예 머리 구조부터가 달랐다. 때문에 샴바라는 아크가 주눅이 들어 공황 장애를 일으킨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사이에 반대편 출구에서도 2명의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스틴과 디오르.저스틴은 강철갑옷으로 무장한 전사였고,디오르는 로브를 걸친 마법사였다. 그들 역시 악실리온에서 제법 잔뼈가 굵은 자들인지 많은 환호성을 받았다. -자 , 그럼 이제 싷바장을추첨하겠습니다! 곧이어 원형 물체의 눈알이 동시에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후, 눈동자가 모두 녹색으로 바뀌었다. -이번 시합장은 늪지가 선택됐습니다!그럼, 고다볼 시작하겠습니다! 쿠-쿵! 동시에 굉음이 울리며 시합장이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했다. 괴장한 풀이 주변에 돋아나고, 바닥은 무릎까지 잠기는 늪지로 변한 것이다. 대체 무슨 원리로 경기장이 통째로 변한 걸까? 뭐, 이제 알고 싶지도않다. 어쨌든 다이나믹한 경기진행을 위해 무작정 싸우는게 아니라, 적절히 지형지물을 이용한 작전도 필요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꽤나 재미있는 시스템이었지만, 정신 줄을 살짝 놓아주신 아크에게는 당혹스러운 시츠에이션일 뿐이다. "뭐,뭐야? 여기가 어디야?"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훑었다. 우거진 수풀과 발목까지 잠기는늪,대체 왜 자신이이런 곳에있는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때, 맞은편에서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념의 사슬!" 끼에에에에엑! 소름끼치는 음향효과와 함께 유령 같은 물체가 쏟아져날아왔다. 마법사의 공격이 시작되자 매직 아이가 활발하게 경기를 해설하기 시작했다. -역시 장거리공격이 가능한 마법사가 선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망념의 사슬에 적중되면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됩니다. 불과 몇 초에불과하지만 격투 시합에서는 치명적이죠. 하지만 워낙 느린 공격이라 적중률은 그리 높지않습니다. 일종의 위협사격일까요? "흥, 꽤나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지?" 샴바라는 코웃음을 치며 빠르게 몸을날렸다. 마치 워프를 반복하는 것처럼 번뜩이는 움직임. 샴바라의 회피기인 순보! 여유 넘치는 동작으로 마법을 피한 샴바라가 무기를 빼들었다. 푸른 기운이 뿜어져 나온느단검,과거 아크가 가지고있던'싸늘한 검은 칼날'을 제련해 만든 세인트 어쌔신 전용 무기였다. 여담이지만 샴바라의 푸른검이라는 링네임은그 단검에서 따온것이다. 샴바라의 입가에 단검과 같은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고작 이런 저급 마법으로 우리를 상대하려고 했다면........에엑?" 샴바라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당연히 피했으리라고 예상한 아크가 망념의사슬에 휘감겨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서, 설마 저녀석........" 샴바라는 그제야 아크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상태였다. 별 기대도 하지않았던 마법 공격에 아크가 걸려버리자 디오르는 쾌재를 부르며 곧바로 긴 주문을 외웠다. "걸렸다!역시 저녀석은 그냥 허수아비였어.깊고 어두운곳에 버려진 저주받은 영혼이여,영혼의 지배자인 내 뜻에 따라 그 깊은 분노로 모든것을 저주하라!" "저 주문은.......!디오르 녀석, 네크로맨서였나?" 샴바라가 다급성을 터트리며 디오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페어전, 디오르의 파트너인 저스틴도 구경만하고있지 않았다. 저스틴은 곧바로 방패를 앞세우고 샴바라에게 돌진해 왔다. 격렬한 쇳소리와 함께 샴바라는 몇 걸음이나 주르륵 밀려났다. 샴바라의 얼굴이 낭패감에 물들었다. '빌어먹을!이 자식,어쩐지 덩치가이상하게 크다 싶더니.........도핑전사였군!' 도핑전사란 각종 능력치 상승 물약으로 도배한 전사 캐릭터다. 이번 토너먼트 페어전에서는 소모 아이템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룰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가지 맹점이있었다.소모 아이템을 시합장안에선 사용할수없지만,시합전에는 얼마든지 사용할수 있다는점! 저스틴은시합 직전에 엄청난양의 포션으로 도핑을 해버린 것이다.체력 최대치를 20%올려주는 '트롤의 비약',힘을15올려주는'사자의힘',공격력과 방어력을 30씩올려주는 '골렘의 비약',5분간 10초당 20의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재생의 성수'등등.....올림픽이라면당장에 약물 복용으로 자격 박탈을 당했으리라. 어쨌든 그런 약물 덕분에 저스틴은레벨이100으로 맞춰진 시합장에 약물 복용으로 130~140대까지 끌어올렸다. 과연 약물의 위력을 굉장했다.저스틴이 휘둘러 대는 방패에 맞을 때마다 샴바라는 속절없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그사이, 디오르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원념의 빙의!" 순간 아크의 뒤로 거대한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눈앞으로 시뻘건 메시지창이 올라온건 그때였다. -'원념의 빙의'에 적중되었습니다. <앞으로 3분간 시전자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아크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 ,매직 아이가 염장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네크로맨서의 원념의 빙의 주문이 완성됐습니다!바보가 아니며 걸리지 않는다는,그래서 지금은 거의 쓰이지않는 마법입니다. 망념의 사슬에 이어 콤보로 사용하지 않으면 약간의 저항력으로도 막을수 있기 때문이지요.역시 다크울프 선수, 모두의 우려처럼 결국 이런식으로 푸른검 선수의 발목을 잡고 마는군요.한심합니다!생긴게 아깝군요 "검둥개 자식, 너때문에 푸른검이 지면 삶아 버릴테다!" 뒤이어 관중들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입이 100개라도 뭐라고 할수 없는 상황이다.원념의 빙의에 걸리자 아크의 몸이 제멋대로움직였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디오르의 손길에 따라 샴바라를 공격하기 시작한것.덕분에 샴바라는 도핑 전사와 아크 그리고 네크로맨서, 3대 1로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검과 마법에 샴바라의 생명력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이런 멍청한 자식!" "미,미안해" "칼질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냐?" 샴바라가 아크의 검을 피하며 이를 벅벅 갈아붙였다. 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그러나 꼭 상황이 나쁘기만 한것은 아니었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니 ,아크는 오히려 다른것에 신경쓰지않고 주변 상황을 정리할수 있었다. "샴바라,조금만 버텨라.빙의가 풀리면어떻게든 벌충해 줄테니까" "흥, 좋아. 한 번만 더 믿어보지,폭!" 샴바라가 세차게 바닥을 차올렸다. 순간 늪지의 흙탕물이 확 튀어 오르며 시야를가렸다. 동시에 샴바라는 순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며 거리를 벌렸다. 아크가 빙의되어 있는 동안은 아예공격을 포기하고 피해를 줄이는 데만 집중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샴바라라도 완벽한 회피는 불가능, 가랑비에 옷 젖듯 생명력이 40%가량 줄어들었을떄, 겨우 아크의 빙의가 풀렸다. "이제 바보짓은 끝났냐?" "미안해. 이제 정신이 들었어" "한 사람 몫만해 .더이상은 바라지도 않아" "그러지" 아크는 진흙범벅이 된 얼굴을 쓰윽 문질러 닦으며 디오르를 노려보았다. 3분동안 꾹꾹 눌러 오던 분노가 이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ACT 2 화려한 데뷔전 "잘도 가지고 놀았겠다!" "흥, 초보자 자식이 노려보면 어쩔건데? 망념의 사슬!"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격!격렬한 소음과 함께 망념의 사슬이 되돌아가싿. "마,마법을검으로 튕겨내?" 디오르가 기겁하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아크의 동작이 몇배는 더 빨랐다.화격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몸을 날린 아크는 옆차기로 디오르의 가슴을 걷어찼다. 디오르가 휘청거리며 파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저스틴!" "아,안돼.푸른검 녀석......엄청나게 강해!" 막상 1대 1상황이 되자 도핑 전사조차 샴바라를 상대하기에 벅찼던 것. 그러나 디오르는 어금니를 깨물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빌어먹을,첫 시합에서 이걸 쓰게 되다니......" 디오르가 꺼내 든것은 수십개의 송곳니엿다. 송곳니를 바닥에 뿌리자 이내 바닥에서 검과 방패,활로 무장한 이십마리나 되는 스켈레톤이 몸을 일으켰다. 매직 아이가 격렬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오, 네크로맨서의 특수 스킬인 재물 소환입니다 .사냥으로 모은 스켈레톤의 송곳니를 재물로 바쳐 충성스러운 슼레레톤을 소환하는 기술이죠. 숫자가 무려 이십 마리에 달합니다!추가 설명을 드리자면 이번 페어전에서는 소모 아이템을 사용할수 없지만, 스킬 관련 아이템은 제외입니다. 다크울프 선수, 조금 전엔 꽤나 활바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늪지에서 다수를 상대하기는 쉽지않겠죠.아무래도 동료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나 샴바라는 고개조차 돌리지않고 저스틴을 공격하고있었다. 매직아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아, 푸른검(원본에는 샴바라로 표기되었음.) 선수.역시 이전과 다름없이 동료를 나 몰라라하고 있습니다.페어전에서 저런 행동은 좋지 않을텐데요? 어쨌든 다크울프 선수, 위기입니다! 디오르도 같은 생각인듯 입가에 조롱의 빛이 떠올랐다. "훗, 버림받았군" "글쎼? 버림받은게 어느쪽일까?" "순식간에 끝내주지. 스켈레톤 부대. 공격하라!" 스켈레톤 궁수가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마령소환, 데이모스!" 데이모스가 방패를 앞세우고 아크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매직 아이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거 의외입니다. 이번에 푸른검과 팀을 이룬 전사는 놀랍게도 소환사인것 같습니다. 아.........하지만 저게 뭔가요? 누더기인가요? 디오르 선수가불러낸 스켈레톤에 비하면 위형부터가 허접스럽기 짝이없군요. 게다가 한 마리에서 끝입니다. 장난하시는건가요? 아무래도 최후의 발악인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아냥은 곧바로 경악성으로 바뀌었다. 정말 허접스러운 외형의 스켈레톤,데이모스. 화살 한 방이면 그대로 부서질 것 같은 데이모스가 방패로 10여발의 화살을 모두 막아낸것이다.그뿐인가? 뒤이어 달려든 다섯 마리의 스켈레톤 검사와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일반적을 소환수의 레벨은 소환자의 60% 그러나 지금처럼 한 부대를 소환할 경우 30%밖에 되지않는다. 다시 말해 레벨 100으로 맞춰진 디오르가 소환한 스켈레톤 부대의 레벨은 30~40대라는 결론. 그러나 데이모스는 보통소환수와는 다르다. 소환자와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능력치가 올라가는 소환수인 것이다.현재 워릭과 융합한 데이모스의 능력치는 레벨 70수준!더구나 디오르의 1회용 소환수와 달리 아크의 전투 기술이 축적되어있었다. 콰쾅, 콰직,우드득! 아크와 데이모스의 맹공에 스켈레톤 검사들의 팔이 부러져 나갔다. "좋아,데이모스. 스켈레톤 검사는 더이상 신경 쓸 필요없어. 이제........" 데이모스의 눈빛이 변한 건 그때였다. 끈적이는 시선으로 스켈레톤 검사들의 몸을훑어 내린다. 스케렐톤 검사들은 알수 없는 불안감에 주춤주춤 두로 물러났다. 그순간, 돌연 데이모스가 이빨을 마주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스켈레톤을넘어뜨리고 뼈를 잡아 뜯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않는지 잠시 훑어보다가 휘 집어던지고 다른 부위를 잡아뜯었다. 스켈레톤 한마리가 페품 더미로 변하는건 한순간이었다. 딱딱딱! 데이모스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돌렸다. 흠칫 ,나머지 스켈레톤들이 화들짝 놀라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때부터 데이모스는 아크의 명령도 듣지 않고 그 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데이모스의 취미, 뼈 수집욕이 발동한 것이다. '저 녀석이 또..............' 아크는 한숨을 불어냈다.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 데이모스는 뼈수집취미가 생긴 뒤로, 종종 이럴때가 있었다. 일단 마음에 드는 뼈를 가진듯한 몬스터를발견하면 뼈를 손에넣을 때까지 오직 그 몬스터만 쫓아다녔다. 뭐, 그런 경우 십중팔구 뼈를찾아 능력치가 올라가지만,그 때문에 아크가 위기에 처했던 적도 적지않았다.단지 작전이 뜻대로 진행되지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때로는 물불 안가리고 적진으로 돌진하는데이모스를 오히려 아크가 몸빵해줘야 하는경우도있었다. '주인이 소환수의 몸빵을 해줘야 하다니.....' 대체 뭘 위한 소환수인지모르겠다. '뭐, 스켈레톤 검사들은 거의 전투 불능 상태니 이번엔 놔둬도 상관없겠지만' 아크는 멍청한눈으로 스켈레톤을 쫓는 데이모스를 바라보았다.그때,맞은편에서 디오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소환수는 주인의 말을잘 듣지 않는모양이군. 좋아, 지금이 기회다. 스켈레톤 검사가 소환수를 유인하는 사이에 놈을 집중 공격하라!" 스케렐톤궁사들이 아크를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아,스켈레톤 궁수들의 공격이 다크울프 선수에게 집중됐습니다!하긴 기껐 소환수를불러놨는데 저렇게 따로 놀고 있은 한심한 일입니다. 다크울프 선수, 이제 고슴도치가 되는건가.......엇? 신나서 떠들어내던 아나운서가 숨이 턱 막히는 소릴 냈다. 화살은 레벨이나 스킬에 따라 날아가는 속도나, 정확도, 위력이 달라진다. 고레벨의 도적들을 상대로 화살 쳐내는 연습을 했던 아크에게 고작 30~40레벨의 스켈레톤이 날리는화살은 멈춰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크는 상체를 낮추며 검을 꽉 움켜쥐었다. 쳐 내기와 카운터의 연쇄 스킬,화격! 열댓 발의 화살은 날아오던 것보다 몇 배는 빠르게 튕겨 나갔다. 아크는 튕겨낸 화살과 함꼐 디오르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마,막아라!놈을 막아!" 디오르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열댓마리의 스켈레톤 궁수들이 단검을 뽑아들고 아크를 포위했다. '다크 댄싱을 쓰면 단숨에 빠져나가 디오르에게 치명타를 날릴수 있겠지만........' 소환수를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를 집중공격한다. 이게 네크로맨서를 상대할때의 기본 전법이다. 네크로맨서는 약간이지만 소환수를 회복시킬수 있는 기술도 있기에 소환수와 백날 싸워봐야 별 의미가없다.차라리 위험을 감수하고 방어력이 약한 네크로맨서를 빨리 처리하는 편이낫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착각했어.이곳은 내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곳과는 다르다.여기서 나는 초보자일 뿐이야. 그렇다면 이곳의 전투 방법을 초보자답게 하나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앞으로 치러야할 시합을 위해서라도 이번에 확실하게 적응해 놔야해' 먼저 악실리온의 분위기에 적응하는게 과제였다. 스켈레톤은 그런 연습 상대로 최적의 상대다. 아크는 슬쩍 시선을돌려 시합장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데이모스는 혼자서도 스켈레톤 검사 네 마리와 팽팽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비록 괴상한 뼈 수집의 취미때문에 약간밀리는 기색은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다. 샴바라 역시 걱정할필요는 없었다. 초반에 40%가 넘는 데미지를 받고 밀렸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저스틴은 샴바라의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경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저스틴의 물약 효과가 하나씩 사라지자 전투는 샴바라의 페이스로 진행되었다. "역시 푸른검이다!" 샴바라의 화려한 공격이 적중할 때마다 관중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제 남은 것은 아크! "자,와라!" 아크가 눈을 빛내며 스켈레톤 궁수들에게 달려들었다.날카로운 송곳니처럼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십여자루의 단검! -아아, 다크울프 선수, 소환사 주제에 스켈레톤 열다섯 마리와 맞짱을 뜨려는 모양입니다. 제정신인가요? 저건 아니죠. 화살좀 쳐냈다고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건가요? 여기서 다크울프 선수가당하면 푸른검 선수가 힘들게 맞춰놓은 균형이 다시 무너지게 됩니다. 매직 아이의 비난에 관중들의 야유가 뒤를 이었다. 그때,아크는 이미 단검을 피하고 하단 돌려 차기로 바닥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360도로 회전한 아크의 하단 돌려 차기에 달려들던 스켈레톤들잉 와르를 쓰러졌다. 뒤이어 검광이 번뜩이자 서너 마리의 스켈레톤 머리통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스켈레톤을 소환한게 네 실수다' 아크는 디오르가 스켈레톤 부대를 선택한 이유를알고있다. PVP에서 네크로맨서가 가장 두려워하는건 근접전이다. 마법사라면 모두가 근접전을 싫어하겠지만 네크로맨서는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하다. 소환수를 부대 단위로 불러낼수 있는대신, 모든 직업 가운데 최악이라고 할만큼 방어력이 떨어지기 때문.내크로맨서가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소환수부대를 불러내 방벽을 쌓는 이유가 그것이다. 특히 선호하는 소호나수가 바로 스켈레톤. 스케렐톤 소환은 재물만 넉넉하다면 수십 마리까지 소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팔이나 다리가 부서져도 죽지않는다.1% 의 생명력이라도 남아 있으면 다른 스켈레톤과 결합햏 생명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거기에 네크로맨서의 소환수 회복을 곁들이면 최강의 방패가 되는것이다. 그러나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고 할만큼 강력한 스켈레톤 방벽에도 약점은 있다. 스켈레톤은 해골을 부숴버리면 단숨에 모든 기능이 마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비교적 강한 공격력과 재조립이 가능한 장점을 가진대신, 치명적인 약점도 가지고 있는것이다. 물론 수십마리의 공격을 받으며 해골만을 부수는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는 아크. 수십개의 촉수를 피하며 핵을 공격해야 하는 몬스터를 상대로 수련해왔다. 더구나 스켈레톤이라면 지하 미궁에서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본 몬스터! 고작 30~40레벨 스켈레톤의 해골을 부수는건 어린애를 상대로 태권도를하는것처럼 간단하다. 아크는 발 차기로 스켈레톤을 상태 이상에 빠트리며 해골만 집중 공격했다. "헉, 소,소환수 회복!" 디오르가 미친듯이 회복 마법을 사용해도 달라질건 없었다. 생명력이 회복돼도 일단 해골이 부서져 버리면 스켈레톤은 무조건 전투 불능. 콰직! 불과 몇 분만에 아크는 마지막 스켈레톤의 해골을부숴 버렸다. "이, 이럴 수가......망념의 사슬!" 디오르가 발악하듯이 외치며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바닥 끝에서는 방귀도 나오지 않았다. 스켈레톤 부대 소환, 소환수 회복을 미친듯이 써버리는 바람에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마나 없느 마법사만큼 만만한 상대는 없다. "크르르르" 아크는 문자 그대로 짐승처럼 웃었다. 회오리처럼 뿜어지는 발 차기과 검격! 디오르는 단숨에 생명력이 50%이상 깎여 나갔다. "저,저스틴!" '쳇, 비장의 수단이었는데......버서커 모드!" 동료가 위기에 처하자 저스틴이 필살 스킬을 발동시켰다. 위리어의 특수 스킬, 버서커 모드! 생명력을 30%회복, 5분간 공격력과 방어력이 50%상승시키는 사기적인 스킬이다.대신 버서커 모드가 끝나면 5분간 행동 불능에 빠져 좀처럼 사용하지못하는 스킬이다. 그러나 시합에서는 보통 5분이상 끄는 경우가 없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자주 사용된다. 악실리온에서 워리어들의 승률이 높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비켯!" 저스틴이 검을 휘둘러 샴바라를 밀어냈다. 이때, 샴바라는 생명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전투는 압도하고 있었지만, 초반에 받은 데미지가 너무 컸던 것. 때문에 공격력이 50%나 올라간 저스틴의 돌격을 정면으로 받을수 없어 길을 터주고 말았다. -아앗, 푸른검 선수, 저스틴을 잘 마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놓쳐 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면 디오르 선수를몰아가던 다크울프(원본에는 아크로 표기되었음.)선수,측면에서 저스틴 선수의 돌격을 받게됩니다. 초반의 부진을 씻고 분전하던 다크울프 선수라도 이번 위기는벗어나기 힘들것 같습니다.위기,위기입니다! 매직 아이의 말처럼 위기였다. 아크 역시 설마 샴바라가 저스틴을 놓쳐 버릴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사실 아크의 생명력도 그리 여유가 있는편은 아니었다. 레벨이 낫다고는해도 열다섯 마리의 스켈레톤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 게다가 막 디오르를 공격하느라 자세가 무너진 상태다. 그 상태에서 측면으로 돌격을 먹는다면 중심이 흩어지고 한동안 경직 상태에 빠지게 된다. '뒤이어 디오르와 저스틴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다!' 아크의 머리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했다. 다행히 데이모스를 소환하느라 소모됐던 영력이 다시 100%회복되어 있었다. 데드릭을 소환해 암흑 돌진으로 저스틴의 돌격을 막아내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데드릭을 불러내기 꺼려지는 사정이 있었던 것. '그렇다면.........!' "소환 해제,재소환 데이모스!" 순간 멀리서 히죽거리며 뼈를 뜯어내던 데이모스가 훅 사라졌다. 그리고 아크의 옆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데이모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코앞으로 돌격해 오는 저스틴을 발견했다. 그리고 눈이 솥뚜껑만하게 커진채 돌격을 받고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흥, 주인은 나몰라라하고 취미생활을 즐긴 벌이다' "뭐,뭐야?" 엉뚱하게 데이모스를 들이받은 저스틴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저스틴이 뒤늦게 검을 들어 올렸지만, 이미 아크는 그의 눈앞에 없었다. 아크는 허공에 떠 있었다. 수직으로 튕겨 올라간 아크의 몸이 잠시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팽이처럼 회전했다.뒤이어 터져 나오는 공중 돌려 차기! 저스틴은 화들짝 놀라며 방패를 들어올렸다.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방패로 전해지는충격은 없었다. "어?뭐, 뭐야?" 저스틴은 멍청한 표정으로 아크의 움직임을 쫓았다. 옆으로 날아온다 싶었는데,어느새 아크의 다리는 수직으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페,페인트?" 그렇다 ,공중 돌려차기는 속임수. 진짜 공격을 바로 이에서 아래로 내리꽂히는 일명 풍차 돌리기! 콰직! 저스틴의 이마에 그림 같은 발차기가 내리꽂혔다. 허공에서 모든 체중을 실어 내리찍은 풍차 돌리기는 발차기 주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그리고 아크의 검투술은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사용할수록 상태 이상 확률이 높아지는 기술. 스턴에 빠진 저스틴의 무릎이 춤을추다가 풀썩 꺾였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지체없이 다크블레이드를 난사했다. 방어력을 무시하는 다크 블레이드는 방어력 하나로 먹고사는 워리어의 천적이었다. 게다가 더블 크리티컬로 치명타가 곱빼기로 가산되자 저스틴은 늪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졌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한 침묵에 휩싸였다. 현실의 격투기 대회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대회전 발 차기에 압도 된것이다. 잠시후, 퍼뜩 정신을 차린듯 매직 아이가 미친듯이 떠들어 댔다. -저, 저게 뭔가요? 아무래도 저게 말로만 듣던 이방인들의 무술인 모양입니다!굉장합니다!다크울프 선수, 소환사라도 생각했는데 무예가인 모양입니다. 그러면 대체 방금 전에 바닥에 처박히 허접스러운 스켈레톤의 정체가 뭘까요? 아,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다크울프 선수가 그저 푸른검선수의 덤이아닌것만큼 분명해졌습니다! "이,이자식!" 그때,디오르가 남아있던 스켈레톤과 함께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아크가 몸을 돌리려는 찰나, 돌연 뒤쪽에서 강렬한 울림이 터져나왔다. "순보, 파광!" 순간 샴바라가 늪지를 가로지르며 디오르를 향해 날아왔다.하늘로 튀어 올랐던흙탕물이 다시 쏟아져 내릴때는 ,이미 샴바라의 단검이 디오르의 갓므을 깊게 박힌 뒤였다. 그렇게 디오르가 쓰러지자 스켈레톤도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샴바라가 진흙을 닦아내며 어깨를으쓱거렸다. "너만 활약하게할수는 없잖아" "음흉한 녀석" 아크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제야 아크는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이해되었다. 처음부터 샴바라는 여유가 있었다. 저스틴이 약무로 도핑을 했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더 빨리 처리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샴바라는 적당히 시간을 끌었다.또한 마지막 순간에 일부러 저스틴의 돌격을 막지않았다. 아크가 시합에 적응하도록 만들어 주기 위함인지,아니면 아크의 실력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결국 처음부터 이 시합은 샴바라의 의도대로 진행된것이다. 과연 37연승이라는 경력을 그냥쌓인게 아닌 모양이다. 뒤이어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처음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 반이상이 아크를 향한 것이란 점이다. -이로써 제 7시합이 끝났습니다!승자는 14조!28연승을 기록한 명성이 자자한 푸른검과 그의 파트너! 혜성처럼 나타나 놀라운 솜씨로 데뷔전을 치른 다크울프입니다!이 영광스러운승자를 향해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와아아아!" "다크 울프, 이렇게 잘하면서 처음에는대체 왜 헤맨거야?" "푸른검,다크울프!최고다.돈은 잃었지만 오늘부터 너희들 팬이 돼 주마!" "다크울프 오빠, 송곳니가 멋져요!" 그러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은 녀석은 따로있었다. 딱딱딱!딱딱딱딱! 바닥에 처박혔던 데이모스가 벌떡 일어나 검을 치켜올렸다. 전생에 기사였던 기억 떄문인가? 의외로 쇼맨십을 좋아했다.데이모스는 아크가 소환해제할떄까지 온갖 폼을 잡다가 영계로 돌아가 버렸다. '어째 진화한 뒤로 성격이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은데..........' 어쩄든 대기실로 돌아오자 관리 NPC가 다가왔다. "두 분 모두 축하드립니다. 참가자가 많아져 예정 시합 수가 늘어난 관계로 다음 시합은 모레에 있을 예정입니다.충분히 휴식을 취하십시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악실리온의 첫 시합에서 승리했습니다. 현재 전적 : 1승 <승리 보너스 : 명성+10> "쿠오오오!" 데드맨 패거리가 괴성을 지르며 창을 휘둘러 댔다. 데드맨은 좀비와 비슷한 종류의 언데드 몬스터인데,좀비와 달리 생전의 갑옷이나 무기를 그대로 장착하고 있어 능력치가 훨씬 높았다. 뭐, 그래 봤자 어차피 아크의 상대는 아니엇다. 데드맨의 레벨은 100.이미 레벨부터 상대가 되지않았다.게다가 악실리온의 경험이 벌써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변칙적인 유저와 시합을 반복하다보니 데드맨의 움직임 정도는 단조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크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창을 요리조리 피하며 검을 슥슥 그어 주었다. 집중 공격을당한 데드맨이 하나둘 재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마리가 돌려 차기에 쓰러지는 순간, 뭔가거무튀튀한 물체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전사의견장 아이템 타입 : 가죽 견갑 방어력 : 15 내구력 : 13/50 무게 : 20 사용 제한 : 레벨 80이상 영혼의 숲은 오래전 암흑 세기에 큰 전쟁이 있었던 지역입니다. 어둠에 맞서던 수많은 전사들은 그들이 사용하던 무구와 함께 이곳에 묻혔습니다. 그로부터 수백년,대부분의 무구는 이미 사라졌지만, 마법의 힘을 가진 무구가 가끔 발굴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무구들은 영혼의 숲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에게 특별한 힘을 주기도 합니다. <옵션 : 힘 +3>] '됐다!드디어 구했다, 견갑!'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악실리온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곳은 아크에게 또다른 세계나 다름없었다. 출전자들은 현우가 만나 왔던 카오틱 유저와는 수준이 달랐다.당연하다. 자기보다 저레벨의 유저의 짐이나 노리는 카오틱 유저와 달리, 그들은 꾸준히 레벨과 스킬을 올리고 장비를 맞춘 사람들이다. 또한 악실리온에서 잔뼈가 굵어 실전 경험도 카오틱 유저보다 풍부했다. 그런 유저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나오니 만만할리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과의 수준 높은 전투에서배울 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실질적인 소득은 전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보통 경기에서 사흘이면 경기는 이미 종반에 접어들었을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경기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참가자가 늘어나 경기 일정이몇배는 길어졌다.하루에 치러야하는 경기숫자도 많아져 ,빨라도 하루에 1경기밖에 치르지 못헀다. 하루에 1전, 현실시간으로 따져도 겨우 하루3전이다.그나마 한 번에 몰아서 해치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합 간격은 8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게다가 다른 시합이 얼마나 걸릴지 알수 없기에 갑자기 시간이 앞당겨지거나, 혹은 예정에 없던 시합을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결국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은 멀리 나갈수도 없다는 듯.때문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대기 시간을 어영부영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마냥 손 놓고 놀리가없다. '밤에는 악실리온도 문을 닫으니 일단 한 시합을 끝내면 최소 8시간 간격이 있다. 전 시합이 빨리 끝나 갑자기 일정이 당겨진다고 해도 1시간 전에 공지를 띄우게 되어 있어.그러니 1시간 내에 셀리브리드로 돌아올수 있는 거리라면 사냥을 나가도 상관없다' 물론 사냥터에 나가있을때 갑자기 일정이 바뀌게 되면연락을 받을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보통유저의 얘기. "너는 오늘부터 여기 붙어 살아. 그리고 혹시 급한 일이 생기면 잽싸게 날아와 알리도록" "뭐? 나보고 종일 여기서 죽돌이나 하고 있으란 말이야?" "혹시 졸거나, 딴청을 피우다가 연락이 늦어지는일이 생기면........그 뒤에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은 차마 내 입으로 말못하겠다. 상상에 맡기마" 아크는 갖은 협박을 한뒤에 데드릭을 악실리온에 붙여놨다.당연히 데드릭은 잔뜩 불평을 해댔지만, 가소로운 반항이다. 아크가 잡탕 몇개를 만들며 히죽 웃어보이자 데드릭은 핼쑥한 얼굴로 얼른 끄덕였다. 이로써 갑자기 시합 일정이 당겨져도 1시간 이내의 거리라면 마음껏 사냥할수 있게된것이다. '자,어차피 셀리브리드에서 멀리 나가지 못한다면 가장 효율이 좋은 사냥터를 찾아야 겠지? 그러려면 경험치와 수입이 괜찮은 사냥터를 알아봐야 하는데......' 그 문제는 샴바라가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다. 이미 한참 전에 셀리브리드에서 자리를 잡은 샴바라는 주변 사냥터 정보에 훤했다. 샴바라는 아크가 여유 시간을 활용해 사냥한다는 걸 그리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혹시 시합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했기 떄문이다. 그러나 데드릭을 게시판에 세워놓겠다고 약속하자 할수 없이 근처 사냥터 정보를 알려주었다. "하여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놈이군. 하긴 엄한 곳으로 갔다가 헤매기라도 하면 내가 곤란하니 적당한 곳을 알려주지. 혹시 그 사이에 시합에 도움이 되는아이템을 구해 두면 나도 편해질테니까" 샴바라가 추천한 곳이 바로 영혼의숲이었다. 샴바라가 이곳을 추천해 준 이유는 두가지였다. 일단 셀리브리드에서 편도로 30분밖에 걸리지않는다는 점.왕복 1시간이니 갑자기 일정이 변해도 시합에 늦을 걱정이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너 아직 팔찌와 견갑을 장착하지 안았지?" "팔찌? 견갑?" "셀리브리드는 일종의 경계 지점이야. 기란 주변의 몬스터에게서는 절대 나오지않는 팔찌와 견갑 아이템이 나오기 시작하거든. 최소 80레벨이 돼야 낄수 있는 아이템이니 기란에서는 나와 봐야 의미가 없지만..........어쨌든 팔찌나 견갑은 방어력이나 스탯 옵션이 있으니 하나라도 구하면 시합에도 도움이 될거야" "근처 사냥터에서도 구할수 있어?" "보통은 몇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고분 지역에가야 하지만,내가 알아본 바로는 영혼의 숲에서도 나오는것 같아. 팔찌와견갑, 두 가지모두 데드맨에게서 얻었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뭐, 드랍율이 장난 아니게 낮은 것 같지만" 샴바라는 그래도 해볼생각이 있으면 해보라는 투로 말했다. 아마 아크 역시 몇시간 버티다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긴 몇 시간씩 같은 몬스터만 죽어라 잡으며 드랍율이 극악한 아이템을 기다린다. 그 몬스터가 좋은 아이템을 준다는 정보를 알고 있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 샴바라는 아크를제대로 모른다. '새로운 장착 아이템!' 그날 이후로 아크는 시합때를 제외하고는 영혼의 숲에서 살았다. 그리고 다른 몬스터와 싸우다가도 데드맨이 보이면죽기 살기로 달려들어 쓰러트렸다. 그러나 데드맨이 떨구는 아이템은 고작 몇 실버짜리 잡템. 그나마 열댓 마리를 잡아야 하나 떨굴까 말까 할정도로 드랍율이 형편없었다. 수백 마리를 사냥할 때쯤에는 아크역시 슬슬 의구심이 들었다. '정말 팔찌나 견갑이 나오기는 하는걸까?'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수백 마리나 헡아치면 의구심이 들기마련, 차라리 그 시간에 좀더 고레벨 몬스터를 잡아 더 많은 잡템이나 경험치를 노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크는곧 고개를저었다. '아니야,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쓸만한 아이템을 얻는건 인내심 싸움이다. 남들이 버틸수 있는 정도만 버텨서는 남들과 같은 결과밖에 얻지못해.남들이 버티는것 이상으로 버텨야 남들보다 좋은 아이템을 얻을수 있다!운이 안따르면 운이 따를때까지 버티는거야!' 그 뒤로 아크는 더욱 집요하게 데드맨을 공략했다. 그리고 셀리브리드를 왕복하며 꼬박 이틀이 지났을때,드디어 원하는 아이템이 하나 떨어졌다. [활력의 암렛(마법) 아이템 타입 : 팔찌 내구력 : 15/20 무게 : 10 사용 제한 : 레벨 80이상 영혼의 숲에 묻혀 있던 오래된 낡은 팔찌 오랫동안 손질을 하지않아 너덜너덜하지만 아직 마법의힘은 남아 있습니다 <옵션 : 생명력+50> <특수 옵션 : 활력(20초당 5의 생명력 회복)> '팔찌다!' 이틀,거의 데드맨 천여 마리를 사냥한끝에 구한 아이템이었다. 뭐, 능력치를 보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생명력+50.현재 아크의 생명력은 2,000대다. 그만큼 몬스터들의 레벨도 높아져서 한대만 맞아도 100이상은 빠져나간다. 그런 상황에서 생명력50증가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연히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게다가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는 특수 옵션까지 붙어 있지 안은가! '팔찌는 2개를동시에 장착할수 있다. 만약 양쪽에 활력의 암렛을 다 채우면 생명력+100에 20초당 10의 생명력을 회복!이건 대박이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아크는 더욱 미친듯이 데드맨 사냥에 매달렸다. 온라인 게임이란 가끔 신기한 구석이있다. 어차피 아이템이 나오는 것은 일정 확률이다. 그럼에도 아이템이 안 나올때는 죽어라 안나오다가도 한번 나온뒤로는 은근히 잘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든다. 그 뒤로 다시 꼬박 하루를 영혼의숲에서 사냥해 결국 견갑 하나를더 얻어낸 것이다. '방어력 15에 힘3이라.......옵션이 달리는게 좀 아수비지만 초급 아이템치고는 꽤 쓸만하군. 사람들이 셀리브리드에서 팔던 것에 비하면 허접스럽지만,300골드나 주고 사느니 옵션이 조금 달리더라도 이걸쓰는편이 훨씬 나아.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견갑이 나올지도 모르고'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견갑을 장착해 보았다. 반쯤 썩은 견갑.어전지 악취도 풍기는 것 같다. 외모에 신경쓰는 유저라면 인상부터 찡그리고 봤겠지만 추가된 방어력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에는 더할수 없이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모양새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중요한건 능력치다!' 오직 실익만을 중시하는 아크! 아크는 견갑을 장착하고 스탯창을 호출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50 명성 : 1,965 레벨 : 125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 희생의 간병인, 작센의영웅 생명력 : 2,115(+100) 마나 : 1,930 영력 : 100 힘 274(+18) 민첩 324(+25) 체력 414(+10) 지혜 43(+10) 지능 367 운 44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98 유연성 : 39 화술 : 33 애정 : 77(+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수왕>세트 효과 :힘+10,민첩+10,체력+10,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개량형 노라드 부츠(신발) : 이동속도+15%,회피율+10% 화염의 베일(망토) : 화염 저항력+50%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부활하는영혼(반지) : 힘+5,마나 회복 속도+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3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생겼습니다(지속 시간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레벨 125.사흘동안 영혼의 숲에서 2를 올렸다. 시합 하며 틈틈이 사냥한 것치고는 괜찮은 수준이다.데드맨은 경험치가 적은 편이었지만,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전투를 끝낼때마다 휴식을 취해야 할정도로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 쉬지 않고 사냥한 덕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낸것이다. '좋아, 이정도면 경험치도 크게 부족한 편은 아니야' 그러나 아크와 달리 데이모스는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냈다. 딱딱, 딱딱딱......... 아크가 집요하게 사냥하는 데드맨 데드맨이 사망하면 시체가 재 가루로 변해 데이모스의 취미생활인 뼈 수집을 즐길수 없었던 것. 그러나 데이모스의 사정 따위를 봐줄 형편이 아니다. 소환수의 능력치 상승도 중요하지만,아크의 능력치 상승보다 중요할리가 없지않은가. "데이모스, 한숨이나 불어낼 시간없어.데드릭이 없으니 네가 두 마리몫을 해야 하잖아. 빨리 일어나!앞으로 팔찌를 하나 더 구할 때까지 휴식시간은 없다" 아크는축 늘어진 데이모스를 닦달해 다시 데드맨 사냥을시작했다. 그렇게 30분 가량 지났을 무렵,문득 귓가에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헉,벌써 시간이 이렇게.......!' 신나게 검을 후두르던 아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똑바로 못하냐?" 이명룡이 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고함을 터트렸다. 물론 현우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몸이 마음먹은 댈만 움직여 주면 얼마나 좋겠는가?정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다리도,팔도 뜻대로 움직여 주지않았다. 심지어 상대의 공격이 날아오는걸 뻔히 보면서도 팔을 들어 막는것조차 힘겨웠다. 퍼퍼퍽,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에 또다시 둔중한 충격이 머리를 흔들어댔다. 현우가 휘청거리며 물러나자 이명룡이 버럭 소리쳤다. "멍청아, 몇 번이나 말해야돼? 맞고 나서 뒤로 물러서는건 잡아먹어 달라는거나 다름없어. 허리를 써!허리를 쓰면서 앞으로 나가란 말이야!" 말은 쉽지........당장 안면에 주먹을 맞고 앞으로 나갈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현우는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주었다. 박살이 나더라도 이명룡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후환이 있을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다!' "이거 완전히 좀비로군" 현우가 불도저처럼 밀고 나오자 상대가 휘파람을불어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현우가 휘두르는 주먹을 가볍게 흘려내며 옆구리에 강렬한 바디 블로우를 먹였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먹은 메뉴지만, 정말 적응이 안되는공격이다. 바디 블로우가 꽂히자 창자가 뒤틀리는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어때? 꽤나 얼얼하지? 좀비에게는 이게 약이지" 그사이 반대쪽 옆구리에 또 1발의 바디 블로우가 꽂혔다. 눈앞이 아득해지며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러나 현우에게는 편하게 바닥에 누울권리조차 없다. "30초 남았다,30초 버티고 이쁨 받을래? 누워 버리고 미움 받을래?" 이명룡의 목소리에 현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끝났다고 생각한 상대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괴상하게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훅, 어퍼컷! 쉴새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펀치! 그러나 현우는 거북이처럼 방어를 굳히고 버텨넀다 그러나 매에는 장사가 없는 법.점차 팔이 내려가고, 다리에도 힘이 풀려갔다. 그리고 결국 양팔이 엿가락처럼 축 늘어졌을때, 상대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현우의 면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룡이었다. "그만!3회전 끝났다" 이명룡의 목소리가 울리자 주먹이 코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현우의 어꺠를 툭툭 치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말했다. "대장님도 대장님이지만,너도 지독하다. 설마 정말로 3회전을 버텨내다니" 그제야 현우는 한숨을 불어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에 대자로 누우니 체육관천장이 보엿다. 정신없이 얻어맞은 후유증인지, 천장이 좌우로 흔들리는것처럼 보였다. '휴우,내가 내 무덤을 팠지.......이러다 정말 슈퍼맨이 되든가, 아니면 죽을지도.........' 아직 남아 있는 훈련스케줄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해졌다. 셀리브리드에 도착한 뒤로,현우는 악실리온의 시합을 위해 이명룡에게 특별 수련을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돌이켜 보면 왜 그런 무모한 짓을했는지 모르겠다. 특별 수련.......그건 스스로 무덤을파는 짓이었다. 이명룡이 현우를 가르치는 방식은, 아크가 소환수를 교육시키는것보다 백배는 더 비인도적이었던 것이다. "슈퍼맨으로 만들어주마"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어느 누가 그 말을 진담으로 생각하겠는가?그러나 세상에는 상식을 모르는인간도 있다. 바로 이명룡.............. 이제 이름만 들어도 식은땀부터 나는 끔찍한 사내다. 지난 사흘간 체험한 이명룡의 수련은 그야말로 인간이 소화해낼수 없는 수준이었다. 권화랑은 이명룡을 깡패 경찰이라고 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명룡은 자신을 매드 사이언스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그리고 만화에서나 가능한 방법으로 현우를 인조인간으로 개조시키려고 마음 먹은게 분명하다. 그렇지않고서야 그렇게 비인도적인 훈련 방식을 생각해 낼수 있을리가 없다. 현우가 체육관을 찾아간 첫날 이명룡은 빙긋 웃으며 국민체조라도 하자는듯이 말했다. "자, 그럼 가볍게 시작해 볼까? 한 손 팔굽혀펴기 양쪽 50회씩" "네? 저는 한 손 팔굽혀 펴기는스무번도 못하는데요?" 솔직히 대한민국 남자들 중에 한손 팔굽혀 펴기를 스무번이나 할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대단하다면 대단한 수준이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차기가 명치에 쑤셔 박혔다. "전에 말했지? 이곳에 들어선순간 못하겠다. 안하겠다는 금지라고" "하, 하지만........" "내가 재미있는 얘기해 줄까?" 이명룡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는 사람을 패면서 웃을수 있는 몇 안되는 인간중 하나다. "내 채대 후배 중에 단거리 육상 선수 출신이 있는데 말이야. 그 녀석이 100미터를 11초대에 달리던 놈이지. 하지만 그 정도로는 국제 대회에 명함도 못 내밀잖아. 죽어라 노력해도 10초대에 진입하지 못해서 결국 포기하고 기동대에 들어오게 됐어. 그렇게 첫 출동을 했는데,이 멍청한 놈이 작전도 잊어버리고 날뛰다가 혼자 건달들에게 포위되어 버린거야. 뭐, 처음에는 다 그래.어쨌든 놈들은 사시미를 들고 죽이겠다며 쫓아왔고, 당연히 그 녀석은 미친듯이 도망쳤지.자,어떻게 됐을까?" "육상 선수였으니 무사히 도망치지않았을까요?" "맞아,그런데 중요한건 그 다음이야" "그다음이요?" "그날 이후로 그 녀석은 10초대에 뛸수 있게 됐거든" "네?어떻게.....?" 이명룡은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간단해 .그 녀석은 처음부터 10초대에 뛸수 있었어.그만한 근육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말이지.그럼에도 못 뛰었던건 할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뛸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하지만 막상 살아야겠다는 생각만가지고 뛰다 보니 스스로 만들어놓은 제약이 사라져 버린거지" "감동적인 얘기네요.그런데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잇나요?" 현우가 불안한 낌새를느끼며 물었다. 역시나 걱정하던 대답이 돌아왓다. "내가 보기에 너도 하면 할수 있는 녀석이야.어때? 뿌듯하지?" "대체.........무슨 근거죠?" " 이 몸의 눈이다!" 아 ,그러십니까? 정말이지 반박할여지가 없는 이유다. 그러나 정말 끔찍한건 이명룡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잇단 점이었다. 이 매드 사이언스는정말 자신에게 천재적인 눈썰미가 있다고 믿었다.그리고 단숨에 인조인간이 될만한 자질을 꿰뚫어 보고 개조할수 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말이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우도 운동을 하다보니 한손 팔굽혀펴기를 자주해봤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스물다섯번 정도 ,그게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명룡의 협박을 받으며 죽을 힘을 다하니 오십번을 채울수 있었다. 폭력의 공포가 육제적 고통을 능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이명룡은 한쪽에서 운동을 하던 기동대원을 불러 말했다. " 이 녀석은 고교 시절 아마추어 복싱을 하던 놈이다. 고작 해야 전국에서 10위권 안에 간신히 들어갇너 허접스러운 놈이지만, 네 상대로는 적당할거다. 복싱 룰로 3회전 실시!" 현우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무지막지한 팔굽혀펴기로 팔 근육이 경련을일으킬정도다. 그런데 태권도도아니고, 주먹만을 사용한 복싱으로 대련을 하라니?게다가 전국10위 안에 들어갔던 전직 복서와? 제발 농담이라고 말해주기를 바랐으나,이명룡 사전에 농담이란 없었다.이명룡은 직접 글러브까지 끼워주며 따뜻한 말로 응원했다. "도중에 기권하면 죽는다" 당연히 제대로 시합이 될리가 없었다. 현우는 3분 3회전.9분동안 떡이 되도록 얻어터졋다. "한심한 녀석, 저런 허접스러운 놈에게얻어터지다니............" 이명룡이 혀를 차며 바로 다음 메뉴를 제시했다. 그 다음에는 복근과 허리 운동이었다. 윗몸 이르키기 200회, 등배 운동 200회,옆구리 운동200회.상하 복근 운동 200회씩.......각종 복근 운동을 무려 천번이나 쉬지않고 시켰다.그리고 잠시의 짬도없이 이번에는 거구의 기동대원을 불러왔다. 최전방에서 대한민국의 정의를 수호하시는 기동대원. 당연히 그만한 체력과 실력을 필요로 하는직업이라,경찰기동대는 각종 운동을 하던 선수들의 직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번에 불러온 기동대원은 그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멋진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현우정도는 가볍게 으스러뜨릴수 있을 정도로 멋진 근육을 말이다. "이 녀석은 아마추어 레슬링을 깔짝대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아까 그놈보다는 좀나아서 전국 대회에서 동메달을 딴적도 잇지. 3회전 실시!" 정말 미치겠다. 미친듯이 복근운동을 시켜놓고, 가장허리 힘이 많이 필요한 레슬링을 하라니?그것도 전국 톱클래스였던 레슬링선수와? 이건 그냥 괴롭힘이 아닌가? 그러나 이명룡의 섬뜩한 시선을 받은 현우는 찍소리도 못하고 대련을 시작했다. 결과는 당연히 떡이 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명룡의 수련은 언제나이런 식이었다. 현우는 그가 태권도 국가 대표라는 말을 듣고 수련은 당연히 태권도 기술위주가 될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이명룡이 태권도를 지도해 주는건 불과15분도 되지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기초 체력 만들기와 대련. 그것도 태권도와는 상관없는 각종 운동선수 출신들이었다. 이부분에 대해서도 이명룡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있었다. "네가운동을하는 이유가 여자친구 앞에서 멋진 발차기를 보여주고 싶어서냐? 아니면 강해지고 싶어서냐?" 강해지고.......싶어서요" "그렇다면 태권도읭 자세따위는 필요없어. 그런거 백날 연습해 봐야 강해지지는 않으니까.실전에서 강해지려면 실전을 경험해야 한다. 그것도 최악의 상황에서 말이야" 항상 수련의 마지막 단계는 다리운동이었다. 서 있기도 힘들만큼 다리 운동을 한 뒤에는 언제나 최종 보스인 이명룡이 출현했다. 그나마 복싱선수나, 레슬링 선수는 어느정도 사정을 봐 주었다. 적어도 그들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룡은 사람도 아니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공격에 현우는 몇번이나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가끔은 이러다 정말 죽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명룡은 히죽거리며 말했다. "사람 몸이라는 건 말이다. 의외로 잘 만들어져 있거든 .여간해서는 죽지않아.게다가 패면 팰수록 강해지기까지 한단 말이야" 매드 사이언스의 발상은 언제나 무시무시했다. 어쨋든 그렇게 사나흘이 지나자 고통에도 조금 적응이 되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렵, 현우는 이명룡의훈련 스케줄이 단순한 주먹구구식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태권도와 비슷해.태권도도 발차기를 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다리 힘이 아니야. 상체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지. 복싱 역시 주먹으로 하는경기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오히려 주먹보다 허리나 다리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복서와 대련을 해야하니, 현우는한대라도 덜 맞기 위해 자연스럽게 허리놀림과 스텝을 익히게 되었다. 레슬링도 마찬가지다.허리 힘이 전부인거 같지만, 실재로는 허리힘에만 의지해서는 제대로 된 기술을 걸지못한다. 오히려 허리에 힘을 배고 자연스러운 자세로 기술을 걸어야 먹히는 것이다.물론 머리로 이해했다고 당장 복싱이나 레슬링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떡이 되면서 하나하나 몸에 익혀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녀석이야? 자네에게 찍힌 불쌍한 친구가?" 현우가 다시 전직 레슬링 선수와 대련을 할때, 한 대원이 이명룡에게 물었다. 이명룡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개조 중이지" "처음에는 며칠이나 갈까 싶었는데, 용케도 아직 버티고 있군. 그만한 훈련을 소화해 낼 정도면 제법 체력도 있는 것 같고.......자네가 직접 붙어서 훈련시킬 정도라면 역시 그걸 염두에 둔거겠지? 자네가........." "쓸데 없는 소리를..........." 이명룡이 미간을 찡그리자 대원은 움찔하며 말을 돌렸다. 기동대원에게도 이명룡은 무서운 상대인 모양이다. "그보다 어때? 재능은 좀 있어 보이나?" "내가 도사냐? 한 번 보고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뭐야? 그럼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저런 훈련을 시킨다는거야?" "난 재능 같은거 볼줄 몰라. 그런거 믿지도 않고, 하지만 한 가지만은 볼줄 알지" 이명룡은 매트 위에서 떡이 되어 가는 아크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버틸수 있는 녀석인지, 아닌지." '슈퍼맨이 되는길은 멀고도 험하군' 현우는 삐거덕거리는 몸을 이끌고 체육관을 나왔다.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시간은 하루에2시간.강도로 따지면 혼자서 운동할 때의 몇배에 달했지만 시간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니, 시간을 더 늘리면 틀림없이 죽을 거다. 어쨌든 한동안 운동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었어도, 현우도 사람이라 체력에 한계가 있었다. 체육관을 나와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다음시합이 밤 9시니 아직 4시간이나남아있었다. 곧바로 다시 접속하면 영혼의 숲에서 3시간은 사냥에 전념할수 있으리라. 그러나 현우는 곧 마음을 돌려먹었다. '아니, 이명룡 사범님이 다시 운동 시간을 새벽으로 바꾸면 어머니를 찾아뵐 시간이 없을거야 .정신없이 퀘스트 할때는 자주 못찾아왔으니 지금처럼 오후에 운동할 때라도 자주 찾아뵙자.게임이 아무리 중요해도 어머니에게 소홀해져서는 안되지' 현우는 곧바로 과일을 사들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 재활 치료를 끝낸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정원으로 나왔다. "요즘은 좀 시간이 나나 보구나" 어머니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전에 재활운동이 끝나 꽤나 피곤할텐데도,그런 기색은 조금도 내비치지 않는다. 현우와 함꼐 있는 시간은 그런 피로도 잊을 만큼 즐거우신 게다. 그런 어머니를 보자 한동안 못 찾아온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죄송해요"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어머니는 고갤 저었다. "내가 어린애인줄 아니? 네가 말하지 않아도 혼자서 고생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단다.그러니 무리해 가면서까지 병문안 올필요는없다. 나는 그저.....네가 하고 싶은걸 하면서 지낸다면그걸로 족해.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러고 있어요" "끼니는거르지 않고?" "네, 꼬박꼬박 찾아먹고 있어요" "그래도 어쩐지 수척해진것 같구나. 전에 없던 상처도 보이고,혹시........?" 어머니가 안쓰러운 눈길로 현우의 얼굴을 더듬으며 말했다. 대련할 때마다 보호장비를 갖추지만, 워낙 험하게 운동하다 보니 여기저기 멍이 들때가 많았다.가능한 얼굴은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마음처럼되는게 아니다. "에이, 괜한 생각하지마세요. 그냥 요즘 다시운동을 시작해서 그래요" 현우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밥 챙겨 먹어라, 몸조심해라 한때는 정말 지겨운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말이다. 어떨 때는 그런 잔소리가 너무나지겨워 어머니엑 소리를 지르며 반항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억이 지금은 상처가 되었다. 막상 그 지겨운 잔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을때, 그 잔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이 시릴 정도로 따스하게 다가왔다. "야위었구나.밥은 챙겨 먹고 있는거냐?" 중환자실에서 깨어난 어머니의 첫말도 그것이었다. 당신꼐서는 손가락하나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식의 야윈 모습이 안쓰럽게 보이셨던 모양이다. 그게 어머니다. 그렇기에 현우가 평생을 사랑해야할 어머니다. "그래, 권 형사님에게 얘기는 들었다. 경찰청 체육관에 다니기로 했다고.그래도...........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는 건데 너무 무리해서 다치지는 말아야지.뭐,권형사님은 후배에게 부탁해놨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셨으니........" "흠,이제 아주 대놓고 권 형사님 노래를 부르네요.사실은 저보다 권형사님이 더보고싶은거 아니에요? 불러드려요?전화만 하면 칼같이 달려올텐데" "이 녀석아,무슨 그런 말이 있어? 나는그냥 믿을 만한 분이니까........" "우헤헤헤,또 빨개졌네? 어머니는 권형사님 이름만들어도 좋은가봐요?" "하여간 너는 갈수록 능글맞아지는구나" "저도 아저씨가 돼 가나 보죠,뭐" 현우는 능글능글하게 대답하며 적당한 벤치를 찾아앉았다. 벤티에 자리를 잡고 앉자 어머니를손가방에서 사과와 과도를 꺼내들었다. "사과 드시게요? 제가 깍아드릴게요" "아니다. 내가 깎아주고 싶어서 그래"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잘 움직이지도 않은 손으로 사과를 깎기시작했다. 답답한 손놀림,행여 다칠까싶어 걱정스러웠지만 현우는 그냥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우는 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문득문득 몇년전의 일이 떠오르고는 했다.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던 어머니........당시 의사들은 어머니를포기했다. 80%는 그대로 돌아가시거나 식물인간이 될거라고, 잔인하도록 차가운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용기가 없어 현우는 밤거리를 헤맸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상태는 극적으로 호전되었다. 권화라에게 끌려온 현우가 어머니 옆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던 때부터였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현우도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고있었다. 그것은 기적도 우연도 아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학창 시절에 현우는 자신의 집이 꽤나 가난하다고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은 새 기종이 나올때마다 핸드폰을바꿨고,메이커 옷으로 몸을도배하고다녔다. 중학교 때이미 유학을 다녀온 친구도 있었다. 반면 현우는 몇달을졸라야 간신히 메이커 옷 하나를 사주셨다. 고작 20만원짜리 옷하나를 가지고......그렇게 돈이 없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고 직후,현우는 자신이 얼마나어렸는지를 깨달았다. 당시 현우는 피해자에게 주어야 할 보상금,어머니의 병원비 따위를 구하기 위해 친척 집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멸시뿐, 결구 친척들의 도움을 포기한 현우는 세간 살림이라도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장롱을 뒤지다가 통장 몇개를발견했다.5개나 되는 통장에는 거의 1억이나되는 거금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게 아니었다. 모두 현우 이름으로된 보험과 적금이었다. 아버지가 생전에 받던 월급은 400여 만원,거의 10년동안,그중 절반이 꼬박꼬박 현우의 이름으로넣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어머니는 10년된옷을 입고, 고기 한번 배부르게 먹지 모샇며 현우에게 메이커옷을 사주셨던 것이다. '당신이 무슨 죄가 있으셔서?' 그날 ,현우는 통장을 부여잡고 밤새도록 울었다. 부모님은 강하다.자식으로 인해 강해진다. 어머니가 일어나신건 그 때문이다. 그런 단순한 사실을 현우는 17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비록 움직이지 않는 손이라도, 칼질을 할때마다 한 움큼이나 되는 과육이 떨어져나가도, 당신의 손으로 깎아 먹여 주고 싶은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현우는 알고 있었다. 그 별거 아닌, 하찮게 보일수도 있는 것이,그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하고싶었던 일이었는지. 그리고 이제야 직접 사과를 깎아주실 만큼 회복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가 힘든 재활 치료를 묵묵히 이겨낼수 있는 이유는 그런 하찮은 일을 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현우는 얼른 생각을 지우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권아저씨는 자주들르세요?" "이 녀석이 또 엄마를 놀리려는 거냐?" "아니에요.저도 요 며칠 못봐서 묻는 거에요" 권화랑은 갱생단을 이끌고 도적단을찾으러 간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그래, 이틀에 한번씩은 들르신다. 그런데 이전하고 많이 달라졌더구나. 표정도 한결 밝아지고.......꼭 다치기 전의 모습을 보는거 같아.네 덕분이라고 하던데,무슨일 있었니?" "제 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데 신경써야죠" "정말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어머니,저 장난으로 하는 소리 아니에요.어린애도 아니고요.저때문에 괜히 부담 가질 필요없어요.권형사님이 어떤 분인지는 어머니도 잘 알잖아요" "너한테 그런 말을듣게 되다니,내가 꽤 나이를 먹긴 했나 보구나" "어머니는 아직 예뻐요.그러니 권형사님이 홀딱 빠졌죠" " 그 얘기는 그만하자" 막상 현우가 진지하게 말하자 어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 모습이 마치 소녀처럼 보여 꽤나 귀엽게 느껴졌다. 그때, 문득 어머니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어봤다. "그보다 너는 왜 그렇게 무심한게냐?" "네?뭐가요?" "네 여자친구 말이다. 엄마한테 언제 정식으로 소개시켜주려고 그렇게 꽁꽁 숨겨놨었니?" "여자 친구요? 에이,저 그런거 없어요" "벌써 만났는데 자꾸 거짓말할 거냐?" "네? 만나다니요?" 현우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직 얘기를 못들은 모양이구나.실은 네 여자친구가 어제 저녁에 죽을 싸 가지고 병실로 찾아왔었다.참 착해 보이더라.이름이 정혜선이라고 했던가?" "혜,혜선이가요?" 현우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정혜선도 현우의 사정을 대강은알고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어머니가 무슨일로 입원해 있는지,어느 병원에 잇는지에 대해서는 말해 준적이 없었다. 하긴,권화랑 일당과 함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알아내는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머니,어머니 하며 하나하나 챙겨 주는게 얼마나 붙임성이 있던지.......엄마는 안심했다" "네? 안심하다니요?" "네가 여자얘기를 한번도 안해서 뭔가 문제가있는게 아닌가 싶었지" "그, 그런거 아니에요.혜선이는그냥 아는 동생이에요" 어머니는 은근한 눈길을 보내며 피식 웃었다. "원래 오빠,오빠 하다가 아빠되는거란다. 엄마도 네 아버지와 그랬거든" "정말 그런거 아니라니까요" "호호호,알았다,알았어.다 큰 녀석이 부끄러워하기는.엄마는 다이해한다" "정말 아니라니까요.어머니는 알지도못하면서......" "알았다니까 그러는구나.그보다 마친 잘됐다. 병실에 빈그릇이 있으니 네가 가는길에 가져다줘라.알았지? 엄마는 현우가 좋다면 오케이다.파이팅!" 어머니는 힘내라는 듯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마음먹고 오해하기로 결심하신 모양이다. 오후 7시.마침 정혜선이 오전 아르바이트에 나갈시간이다.현우는 미리 전화를 걸어 아르바이트에 나가기 전에 만날 약속을 했다. 약속 장소에서 30분 정도 서성이자 곧 멀리서 정헤선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오빠 감동이에요.전화까지 해서 만나자고 하고" "어머니가 이거 돌려주라고 하셔서........" 현우는 쇼핑백을 내밀며 말끝을 흐렸다. 일전에 권화랑의 간계에 넘어가 밖에서 데이트를 한뒤로 처음 얼굴을 보는 것이다. 보고 싶은 생각이 없던 건 아니지만,막상 전화를해서 밖에서 만나려니 뭐랄까....................... "어? 오빠병원들렸다가 오는 길이에요?" "병원은 어떻게 알았어?" 현우는 일부러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정혜선은 약간 움츠러든 목소리로 대답헀다. "권화랑 아저씨에게 들었어요" 젠장, 역시 그럴줄 알았다. 곰의 탈을 쓴 여우같으니! "실은........오빠들이 다 함께 찾아가 보자고 그랬는데,권화랑 아저씨가 오빠들이 몰려가면 어머니 심장에 안좋을거라고 하셔서 오빠들이 준비해준 재료로 제가 죽 만들어서 대표로 간거에요.미안해요.화났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일이 아니다. 아니,오히려 그반대다. 물론 조금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정혜선의 이름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고맙다는 감정이었다. 사고가 난뒤로 친척조차 찾아오지 않아 어머니는 언제나 혼자였다. 병문안을 오는 사람은 고작해야 권화랑과 현우.그런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 그것도 현우와 관계있는 사람이........현우가 밖의 얘기를 하지 않아 내심 걱정하던 어머니로서는 꽤나 반가운 손님이었으리라. 아마도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던 건 그런 이유 떄문이었을 것이다. 현우는 쭈뼛거리며 머리르 긁적였다. "아니,화난 거아니야. 조금 부끄러워서 그래" "네?뭐가요?" "그게........어머니가 아프신게.....자랑할 일은 아니잖아" 현우는 어머니를 단 한번도 부끄럽게 생각한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우의 사정을 듣고 동정했다. 그게 싫었다.아마 정혜선에게 굳이 가정사를털어놓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일것이다. 그러자 정혜선이 황급히 말했다. "저,전그런거 신경 안 써요.오히려 어머니 얘기를 듣고나서 오빠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는걸요.정말이에요.오빠가 더 좋아지면 좋아졌지 싫어지지는........" 정혜선은 쟤 목소리에 놀란듯 와락 입을 막았다. 목소리가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였던 것이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놀라 돌아보고,몇몇 연인들은뭐라고 귓속말을하며 키득거렸다.그러나 정혜선의 반응이 더 가관이었다.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당연히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 몰라 할줄 알았는데,정혜선은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뭘 봐요? 우리 오빠가 그렇게 멋있어요?" "어머, 쟤 뭐라니?" 몇몇 여자가 어이없는눈길을 보냈지만 정혜선은 끄떡도 하지않았다. 덕분에 모두의 시선을한몸에 받아버린현우의 얼굴이 확 달라올라 버렸다. "가요.오빠" 정혜선은 얼른 현우의팔짱을 끼고 혀를 날름거렸다. "아, 쪽팔려 혼났어요"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현우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가 알고 잇는 정혜선은 말수가적고 ,계장에게 혼나면 창고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던 소심한 여자였다. 그런 모습만 봐 왔기 때문에 현우도 단순히 정혜선을 동생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말이 맞다. 밖에서만난 정혜선은 현우가 생각해 왔던 것보다 더 활발하고,억척스러우며.......예뻤다. '이 녀석, 이렇게 예뻣나?' 옆모습으로 보이느 도드라진 입술,눈망울이 묘하게 예뻐 보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남자가 모르는 아니, 알아도 모른척해야 하는 비밀이 숨겨져 잇었다. 지금까지 현우가 밖에서 그녀를 불러낸건 처음. 당연히 정혜선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화장에,옷차림도 꽤나 신경 쓴 것이다. 그리고 여자가 마음먹고 꾸미면 외모+150%의 부가효과가 따라붙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그런 여자는 평소보다 과감해진다. "또 병원에 찾아가도 되죠?" 느닷없이 직구를 날려 오는 정혜선! 아무리 현우라도, 그 질문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를만큼 숙맥은 아니다.그리고 평소라면 일단 대답을 보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150%의 효과가 적용되는 여자는 무적이란다 .현우는 거절할 타이밍을 놓치고 고개를 끄덕여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만 괜찮다면........나는 상관없어" "다행이다.오빠가 안된다고 하면 몰래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뭐?" "호호호,아니에요.어쨌든 오늘은 오빠가 불러냈으니까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바래다줘요.사실 요즘 같이 일하는남자애가 자꾸 치근덕대거든요.오빠랑 같이 가면 앞으로 그러지 않겠죠" "만나 보지 그래? 혹시 알아? 의외로 좋은 녀석일지도 모르잖아" "뭐에요?" 정헤선이 눈썹을 바짝 치켜올리며 쏘아보았다. "농담이야,농담.알았어.바래다줄게" "흥, 다음부터 또 그러면 국물도 없어요" 정혜선은 잔뜩 토라진 얼굴로 팩 고개를돌렸다. 보통이 넘는다. 작정하면 청연기념물 같은 숙맥하나 요리하는건 일도 아닐듯, 그렇게 현우는 반쯤 끌려가다시피 하며 편의점에 도착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이제 시합 시간이1시간밖에 안남았거든" "네" 정혜선은 현우가 멀어지는 모습을확인한뒤에야 한숨을 불어넀다. '역시 짝퉁 오빠 말대로야. 현우오빠는 적극적인 여자에게 약할거라더니...............' 그렇다 ,사실 정혜선이 죽을 싸 가지고 병원을 찾은것, 그리고 길거리에서의 대담한 행동은 모두 현우와 정혜선의 미지근한 관계를 보다못한 짝퉁의 계획하에 벌어진 일이다! 정혜선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호호호,이제 현우 오빠를 잡는 방법을 알았어!' 전직 사기꾼은 무섭다. 그러나 여자는 더 무서웠다. 그때, 편의점 안에서 힐끔거리던 남자가 슬그머니 다가오며 물었다. "혜선아, 방금전의 그 사람 누구냐?" "전부터 말하던 오빠,멋있지?" 정혜선이 으스대며 말하자 남자는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하는 사람인데? 시합 어쩌고 하던데.......운동선수냐?" "지금은 격투기 시합에 나가는중이야" 정혜선의 대답에 남자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정혜선에게 찝쩍거리지 말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것이다. ACT 3 갱생단의 숨겨진 실세? -카오틱 NPC를 '교화'시켰습니다. <교화 보너스 : 교화시킨 NPC X경험치 5,000 성향 : 선+50> -레벨이 올랐습니다. "형님, 30명 모두 갱생을 끝냈습니다." "후후후, 이 근처도 대강 정리가 끝났군" 정의남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오늘도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해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단세포였다. 덕분에 종종 뭔가에 집중하다 보면 본래 목적을 잃고 헤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들이 작센을 떠난 이유,악실리온에서 명성을 쌓아 자치대의 자격을 증명하기위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도중에 들른 카이로트에서 로렌조를 만나 목적이 바뀌었다. 큰형님이라는 도적을 처단하는 것으로, 그리고 이제 또다시 목적이 바뀌었다. 셀리브리드 근방에는 숨어있는 도적이 생각보다 많았다. 정의남은 몰랐으면 모르되,보고도 못 본 척할 만큼 요령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아크는 NPC에게 이 세계는 현실이라고했어. 결국 뉴 월드에서는 유저나 NPC나......아니 ,유저와 달리NPC의 목숨은 하나뿐이니 오히려 NPC가 더 귀한 목숨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도적으로 태어났다고 도적을 죽어야 하는 건 공평하지않아!' 이대로 방치한다면 도적들은 암울한 인생르 보내다가, 지나가던 유저에게 박살나 경험치로 환산되고 말리라. 몬스터도 아니고 마을 주민과 다를바 없는 NPC인데, 도적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경험치가 되다니? '이들을 구해 줄수 있는 사람은 우리들뿐이다!' 자신을 부두O권의 세기말 구세주 정도로 착각해 버린 정의남은 의욕을 불태웠다. '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도적으로 죽는게 뉴 월드의 룰이라면, 그 룰을 바꿔보겠다!' 로마 황제와 맞섰던 주님처럼, 독재 정권과 맞섰던 혁명 전사처럼........대한민국 열혈 형사는 급기야 뉴 월드의 시스템에 의구심을 품고 당당히 맞서기로 다짐한 것이다. 그런 게임 방식은 의외의 성과를 가져왔다. "이게 그냥 사냥을 하는 것보다 백배는 나은데요?" 짝퉁이 정보창을 확인하며 히죽거렸다. 정의남과 갱생단이 상대하는 도적은 대개 레벨70대였다. 레벨 70대의 도적을 사냥해 주어지는 경험치는두당1,000. 그러나 일단 이들을 잡아놓고 갱생시키면 그 5배에 달하는 5,000의 경험치가 주어졌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도적 하나 죽이지 않고도 광렙을 할수 있었던 것이다.덕분에 정의남의 레벨은 87.갱생단은 평균 70대 중바낙지 레벨을 올릴수 있었다. 그뿐인가? 뉴 월드의 NPC는 단순하다. 뭐, 게임 NPC이니 당연한 결과지만, 감금과 폭력, 협박과 고문에 의해 세뇌되다시피 갱생시켜도,일단 성공 메시지가 떠오르면 도적들은 100%새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저희들의 잘못을 꺠달았습니다" 사실 시스템만의 결과는 아니다. 도적들도 일단은 NPC라 생각이란느걸한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은 온통 핍박과 설움뿐이었다. 되고 싶어서 된 도적도 아닌데, 단지 도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언제 NPC다운 대접을 받아본적이 있었던가? 유저들은 도적만 보면 눈이 벌게져서 칼을들고 쫓아오고,심지어 같은 NPC인 경비병들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유저와 NPC,어느쪽에도 환영받지못한다. 그렇다고 몬스터가 될수도 없는.........그게 도적의 슬픈 운명이었다. 그런데 정의남 일행은 달랐다. 비록 무지막지하게 패고, 고문가지 했지만 그 모든 노력이 자신들을 위해서라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다.그들을 그저 경험치나 아이템으로 보지않고, 처음으로 NPC와 동등하게 봐 주는 유저들이 나타난것이다! 평생 단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절절한 감동! "세상에서 버리받은저희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시다니........" "어쩌면,어쩌면 저희는 그동안 누군가 꾸짖어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형님이라고 부르게 해주십시오!" "형님들은 저희들의 은인이십니다" 루루루,라라라 적당한 음악 하나 깔아놓으면 영화 한편 만들어도될듯한 장면이다. 덕분에 정의남의 열혈 게이지는 연일 최고점을 갱신했다. '이거다!이거야!진심으로 대하면 진심으로 보답한다!이게 내가 바라던 세상이다!' 형사시절, 간신히 잡아넣은 범죄자가 교도소에서 나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진심으로 설득해도 끝내 잘못된 길로 가다가 칼침 맞고 쓰러지는 건달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진심으로 대하면 진심으로 뉘우친다. 그뿐인가? 경험치로 보답까지 하지않는가? 정의남은 난생처음 진정한 보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들, 이제야 진심을 알아주는 구나!" 정의남이 와락 껴안자 도적이 눈물을 쏟으며 부르짖었다. "형님-!" "이제 정말 새사람이 되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끝까지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오냐,오늘부터 너희들도 내 아우다!끝까지 너희들을 책임져 주마!" 아아, 그야말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그러나 여기에는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정의남 아저씨!" 한참 감동의 명장면을 찍고 있을때,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흠칫 ,정의남과 갱생단이 움찔하며 마른침을 꿀꺽 삼킨것은 그때였다. 수십 명의 도적이 사시미를 들고 달려들어도 눈하나 깜빡하지않는 정의남과 갱생단.그러나 그들에게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에 무시무시한 류트를 품에 안고 잇는 갱생단의 최종 병기, 로코였다. 정의남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어? 허허허,로코,들어왔냐?" "내가 어제 나가지 전에 뭐라고 했죠?" "어.......그러니까 말이다" 정의남은 불안한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리다가 갱생단을 바라보았다. SOS!구조 요청! 그러나 갱생단원은 모두 먼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부려댔다. "야, 불끈이 저 산 멋지지 않냐?" "그러게.나중에 한번 올라가 보자고" '저,저런 배신자들 같으니.......!' 정의남이 이를 갈아붙이는사이,로코가 다가왔다. "한동안 군식구 늘리지 말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구,군식구라니. 말이 심하구나.허험, 이들은 말이다" "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 그거죠?" "그, 그래!정의다.정의지.암!" 정의남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나 로코는차가운 한마디로 묵살해 버렸다. "정의가 밥 먹여 주나요?" "..........." 그렇다 ,중대한 문제란 바로 이거였다. 지난며칠, 정의남과 갱생단이 셀리브리드 근처를 돌며 갱생시킨 도적은 이미 100명이 넘어간다. 뭐, 거기까지는 좋다. 그만큼 경험치도 챙기고, 무엇보다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정의남의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었다. 도적은 카오틱 NPC 당연히 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한다.그런데 난데없이 갱생되어 도적질도 못하게 되니 먹고살 길이 막막해졌다. 정의남은 그런 도적들을 나 몰라라하지 못했다. 그들 모두를 동료로 받아들여 숙식을 떠맡아 버린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갱생단이 가진 돈도 제법 있었고, 도적들 숫자도 얼마 되지않앗으니까. 오히려 다른 도적을 갱생시킬때 전투에 참가해주니 전력에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숫자가 50을 넘기고, 100을넘어가기 시작하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생활고! 꿈만 먹고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뉴 월드는 또 하나의 현실!당연히 사는데는 돈이 들어간다. 그러나 갱생단이 할줄 아는 일이라고는 도적을쥐어패고 갱생시키는일 뿐.그런데 갑자기 100명이나 되는 도적을 거느리게 되니 하루 세끼 밀빵을 먹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갱생단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어찌어찌 충당헀지만,그것도 하루 이틀.아침 점심 저녁, 특별히 전투를 치르지 않아도 100여명을 먹여 살리려면 하루에 최소 300개나 되는 밀빵이 필요하다. 당연히 갱생단의 주머니는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반면 정의남과 갱생단의 경제 관념은 형편없었다. 대게 힘 좀 쓴다는 남자들이 그렇다. 생활력을 형편없으면서 허세는 또 얼마나 부려 대는지.......................게다가 한때 어둠의 세계에 살았던 버릇까지 남아 있어서, 당장 밀빵을살 돈도 없음녀서 뻑하면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며칠도 되지않아 도적은 물론, 당장 전투를치러야하는 갱생단까지 끼니를 걸러야 할 지경이 된것이다. 만복도가 50%미만으로 떨어질때의 패널티를 생각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오빠들만 믿고 있을수 없어!' 그제야 비로소 로코도 위기감을 느꼈다. '나라도 정신 바짝 차리지않으면 다 굶어 죽겠어!' 갱생단의 경제적 위기는 소녀의 잊고 있던 재능을 꽃피우게 만들었다. 로코도 현실에서는 어엿한 소녀 가장이다.지금까지는 아직 큰어려움을 겪지 않아 정의남이나 갱생단을 따라왔지만, 생활이 걸리면 상황은 다르다. 게다가 갱생단과 아크는 이제 떼려야 뗄수 없는 사이. 이 위기 상황은 아크에게까지 여파를 미칠지도 몰느다. '아크 오빠의돈에 손대는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안돼!내 오빠의 재산은 내가 지킨다!' 로코는 아크를 위해서라도 독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정의남 아저씨하고 오빠들은 너무 경제관념이 없어요.돈은 있을때 아껴써야 하는거라고요.앞으로는 모든돈을 한꺼번에 관리해야겠어요.다들 주머니 털어봐요" 로코는 먼저 경제권부터 장악했다 "하,하지만 로코,이건........." 물론 그렇게 저항하는 세력도 있었다. 훗, 가소로운저항이다. "흑, 오빠들은 저를 못 믿으신느거에요? 저는 그냥오빠들 걱정해서 그러는건데.못 믿겠다면 할수 없죠.하긴 저같은 여자에게 뭘 믿고 돈을 맡기겠어요?" "아,아니다. 그럴리가 있냐?" 갱생당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주머니를 탁탁 털어 주었다.사내들만 득실거리다보니 여자에게는 엄청 약한 갱생단이엇다. 그렇게 일단 경제권을 장악한 로코는 점차 권력을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도적들을 갱생 시킨건 좋아요. 하지만 갱생만 시키면 뭐해요? 먹고살아야 될거아니에요? 앞으로 한동안은 도적들 데리고 몬스터나 사냥하세요. 가죽이든 고기든 구해서 돈을벌어 오란말이에요!할당량 못채운 사람은 밥도 없으니까 알아서해요" 그렇게 정의남과 갱생단은 한끼 밥을 위해 도적단을 이끌고 사냥을 하는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불평을 할수 없었다. 일행의 모든 경제권은 로코가 쥐고 있다. 게다가 까딱하면 눈물이란 최종병기로 위협을 해대니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쨌든 로코의 살림 솜씨는 보통이 넘었다. 소매치기,야생 짐승 고기 채취,가죽 벗기기 등등..... 갱생단원의 각종 스킬을 동원해 사냥에서 얻으수 있는 이득을 최대한으로 늘렸다. 스킬이 있어도 지금까지는 매번 사용하기 귀ㅊ낳아 얼렁뚱땅 넘겨 왔던 것. 그러나 로코가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자 토끼 한마리를 잡아도 가죽은 가죽대로,고기는 고기대로 나눠서 상품화시키게 된것이다. 또한 사기,협박 따위를 동원해 지출을 최대한 줄이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갔다. 로코의 독재 정권이 들어서자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경제사정은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다고 로코가 악랄하게 갱생단과 도적단을 착취하기만 한건 아니었다. "오늘은 수입이 괜찮으니 저녁은 밀빵 대신 고기를 먹어도 되겠어요" 덕분에 정의남 일행은 이틀에 한번은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을수 있게 되었다. 그뿐인가? 수입을 쪼개고 쪼개 가끔 도적단의 무기나 방어구를 바꿔 주기도 했다. 그녀도 어쩔수 없는 여자. 정의남의 무식한 사냥을 따라다니다가 죽어 나가는 도적이 보기에 안쓰러웠던 것이다. "사냥하기 힘들죠? 조금이라도 좋은 방어구를 입고 있어야 안전할 거에요" "오오,한낱 도적에 불과한 우리가 이렇게 따뜻한 온정을 받게 될줄이야" "성녀님이다!이분은 성녀님이야!" 다른 사람의,특히 여자의 온정을받아 본적이 없는 도적들은 감격했다. 덕분에 로코는 이제 명실상부한 갱생단의 숨은 실세로 자리잡았다. 정의남과 갱생단원조차 그저 로코의 눈치만 살피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것도 로코가 접속해 있을 때뿐,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정의남은 금세 폭주했다. 한동안 긴축재정을 선포했음에도 그녀가 자리를 비운사이 다시 군식구를 늘려 놓은,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로코가 한숨을 푹 불어냈다. "내가 나가기 전에 말했잖아요. 이전에 도적들 갑옷을 바꿔 주느라 돈이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당장 다른 도적들을 갱생시키면 힘들어지니 당분간은 사냥만 하라고 했는데.............하여간 남자들은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일만 벌인다니까. 자꾸 그러니까 꼭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요" "그게 저.......미안하다" 정의남은 시무룩한얼굴로 어깨를 늘어트렸다. "할수 없죠. 이미 갱생시킨 사람들에게 다시 도적이 되라고 할수도 없으니,대신 약속해요.살림이 좀 나아질 때까지라도 당분간 사냥만 하는거에요" "그게 말이다" 정의남이 무안한 표정으로 볼을긁적이며 말했다. "실은 이번에 갱생시킨 녀석들에게 우리가 찾던 큰형님이라는 놈의 위치를 알아넀어.그 녀석까지만 갱생시키면 안될까 ?이녀석들을 몽땅 데리고가면 ㄱ므방 끝날텐데" "아저씨!" 로코가 버럭 소리치자 정의남이 움찔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무,물론 그러면 곤란하다는건 안다. 아는데......곧바로 움직여야 아크가결승전 끝날때쯤 셀리브리드로 돌아갈수 있을것 같아서 말이다. 아크 본지도 오래됐고 해서..........." 아크를 들먹이자 로코의 표정이 약간 풀어졌다. 잠시 가방을 뒤적이며 잔고를 확인해보고는 할수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그럼 딱 한번만 더 하는거에요" "아,알았다. 알았어" "그럼 일단 그 옷들부터 벗으세요. 아유,냄새.고작하루사이에 그게뭐에요?도적들도 그렇고 ,짝퉁 오빠,도적들 옷도 모두 모아서 따라오세요" "응? 알았어.야,너희들 갑옷 벗어!" 생활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정의남, 갱생단과 함꼐 생호라하다보니 로코는 자연스럽게 가사 시리즈 스킬이 생겨버렸다. 요리,빨래,청소등등...... 그리고 온라인 게임답게 그런 스킬에도 모두 부가효과가 존재했다. 로코가 특히 마음에 들어하는 스킬은 빨래였다. 천이나 가죽계열의 방어구를 세탁하면 무려 4시간 동안 방어력을 5%올려주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그런 부가효과 때문에 빨래를 하는건 아니다. 단지 쓸데없이 지나치게 리얼한 게임이라 세탁을 안하면 냄새까지 나기때문이었다. 그동안 말을 안해서 그렇지, 깔끔한 성격의 그녀로서는 내심견디기 어려웠던것. "하여간 남자들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다니까" 로코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빨랫감을들고 냇가로향했다. 불끈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말은 저렇게해도 로코가 요즘 유난히 들떠잇는거 같지않아?" "후후후,나는 왜 그런지 알지" 짝퉁이 빨랫감을 들고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로코도 천쟁 여자라는거야" 그 무렵,아크는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8강에 진출해있었다.당연한 얘기지만 시합을 갈수록 어려워졌다. PVP 경험이 그리 많다고 할수 없는 아크는 아직다양한 직업과 싸워본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싸워봤던 안델이나 할로겐, 레오도 전사계열이었다. 떄문에 독특한 스킬을 가진 직업을 만나면그때마다 헤매기 일쑤였다. 게다가 페어전은 단순한 1대1이 아니다. 그런 상대를하나도 아닌 둘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직업을 선택할수 있는 RPG 게임에서 직업의 조합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전사 혼자는 몬스터 다섯 마리를 상대하기 힘들어도,회복이 가능한 성직자 하나가 가세하면 열다섯 마리, 이십마리르 상대할수 있는 건 상식.단순히'1+1=2'가 아니라 10도 ,100도 될수 있는게 RPG게임의 묘미라고 할수 있다.그리고 그런 직업 조합 효과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게 2인1조의 페어전! 첫 상대였던 워리어와 네크로맨서의 조합은 가장 흔한 것이다. 전사-성직자,전사-궁사,마법사-성직자,마법사-도적.......조합에 따른 전략은 무궁무진하고,페어전에 참가하는 유저들은 모두 자신만의 전략을 연구해서 나온다. 특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조합은 의외로 16강전에서 만났던 마법사-마법사였다. 레벨 100을넘긴 마법사의 공격력을 엄청나다. 상급 화염마법은 제대로 맞으면 한방에 생명력이 30%나 깎여 나갈정도.그러나 진정한 위협은 마법사-마법사의 조합에서 사용되는 '정신 교류'마법이었다. '정신 교류'는 마법사끼리 마력을 집약시키는마법.'정신 교류'가 활성화된 상태에서는 마법사끼리 마나를 공유할수 있고, 마법공격력도 배가되었다. 생명력을 일격에 50%이상 태워버리는 무시무시한 화염마법이 탄생하는것이다. 덕분에 아크와 샴바라는 거의빈사 상태까지 몰렸다. 만약 위기의 순간에 아크가 시도한 '화격'이 먹혀들지않았다면 그대로 통구이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반면 상당히 까다로우리라 생각했던 환술사들과의 시합은 의외로 싱거웠다. 환술사의 주 무기는 정신 계열 마법.그러나 아크가 사용하는 간병은 보너스 효과로 정신 계열마법에 저항력이 생기는'간병인의 마음'이 추가로 적용되었다.시합에서 간병은 의외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간병을 사용하면 기력과 용기가 상승한다.직접적으로 생명력을 회복시키지는않지만, 기력이 높아지면 자연 회복력이 강해지는것이다. 게다가 약간이짐나 스탯도 상승하니 종합 버프나 다름없었다. 마법사 계열보다 까다로운 것은 이번 시합상대인 전사-전사 페어였다. 그들 역시 저스틴처럼 경기장에 들어서기 직전 도핑을 한것이다.그들을 보니'돈은 힘이다'라는 말이 절실하게 와 닿았다.하나에 수십 골드나 하는 물약을 처바른탓에그들은 3배나거대해진 몸으로 시합장에 나타났다. 8강까지 올라오니 한 시합을 위해 수백골드나 투자한 모양이다. 그러나 첫 시합에서 도핑전사를 만난 아크도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서바이벌 요리를 사용해 어느정도 능력치를 올려놓고 시합에 나서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무엇보다 아크와 샴바라는 서로 상성이 좋았다. 둘이 처음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계기 역시 바로 그것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손발이 잘 맞는다. 지금까지 아크는 그 이유를 단순히 샴바라도 격투기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시합으로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실리온에서 만난 상대는격투기를 배운듯한 사대도 꽤 있었다. 하긴, 시합의 형식을 띄고 있으니 격투기를 배운 사람들의 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 어떤 조도 아크와 샴바라만큼 손발이 잘맞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건 둘의 직업상성 영향이었다. 다크 워커와 세인트 어쌔신. 두 직업이 사용하는 스킬이나,특성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상호 보완적인 기능을 발휘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석화 점혈!" 샴바라의 '석화 점혈'스킬이 발동되었다. 스킬을 사용할때 나타나는 붉은 반점을 순서대로 찌르면 상대를 20초간 행동 불능 상태에 빠트릴수 있는 스킬이다. 그러나 동시에 방어력이 500%로 상승해 그동안은 거의 데미지를 입힐수 없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때 몇명의 발을 묶어 놓는 정도로밖에 활용할수 업는 스킬인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아크가공격하면 상황이 다르다. "다크 블레이드!" 방어력을 무시하며 치명타를 날리는 공격! 결국 상대는 500%방어력이 올라가도 말짱 도루묵. 뻣뻣하게 굳은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치명타를 맞을수밖에 없다. 그뿐인가?둘은 무엇보다 기본스킬의 융화도가좋았다. 아크가 익힌 검투술의 특징은 상대의빈틈을 공격해 상태이상을 유발하는 기술. 반면 샴바라의 쿵푸를 응용한 권법은 상대의 공격을흘리며 빈틈을 만들어 내는데 최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자연스럽게 샴바라가 순보나 화경으로 빈틈을만들고, 아크가 공격하는 전투방식이 굳여졌다. 물론 전투 방식을 세웠다고 해도 시시각각 변하는 전투중에 신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샴바라의 쿵푸실력을 그런어려움을 극복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사실 샴바라의 수준이 너무높아 초반에는아크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합이 거듭될수록 아크도 점차 샴바라의 페이스에맞춰갔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명룡의 말도 안되는훈련이 효과를 봤다고밖에는할수 없었다. 복싱,레슬링,태권도로 대련을 하다보니자기도모르게 임기응변이 능숙해진것. "지금이다, 아크!" 샴바라가 단검으로 전사의 검을 흘려내며 소리쳤다. 아크는 단숨에 샴바라의 등을 계단처럼 밟으며 날아올랐다. 기겁한 전사가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크는 방패까지 밟고 등뒤에 착지,이어 그림같은 뒤돌려 차기로 전사의 뒤통수를 날려버렸다. "컥, 마,말도 안돼.....!" 치명타가 터지며전사가 휘청거렸다. 동시에 샴바라와 아크의 눈빛이번뜩였다. 전후에서 몰아치는 샴바라의 붕권! 아크의 연속 돌려차기! 샴바라의 공격을 상대를경직시키는 효과를발휘한다. 거기에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아크의 발차기,두가지 모두 발동 확률은 낮지만 양쪽에서 몰아치면 확률이 배가되어 어지간한 적은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한번 갇히면 절대 빠져나올수 없다. 그리하여 붙여진 이름이'죽음의 회오리'였다. 결국 전사는 도핑으로 뻥튀기됐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들며 풀썩 쓰러졌다. 숨을 죽이며 지켜보던 매직아이가발광하듯 소리쳤다. -해,해냈습니다!다크울프와 푸른검 조!오늘도 역시 곡예와 같은 놀라운 솜시를선보이며 각종 약물로괴물처럼 변해버린 강력한 우승 후보를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마지막 결정타는 모두가 기대하던 죽음의 회오리 콤보! "그거야,그걸 보려고 오늘도 비싼입장료를 물고 들어온거라고!" -오오오,푸른검도 대단하지만, 역시 이번 시합의 가장 큰 이벤트는 바로 다크울프입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첫 출전한 무명의 다크울프가 이렇게 선전을 펼칠거라고 말입니다!거기에 개인전에서 몇 차례나 우승을 한 푸른검이 한조가 되어 단숨에 8강을 돌파!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기를 보기위해 악실리온은 연일 만원사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브라보! "와아아아아!" "다크울프,푸른검이 최고다!" 아크와 샴바라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대기실로 돌아왔다. '후후후,이거 기분이 괜찮은데?' 아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수천 명의 관중에게 박수갈채를 받으니 기분이 꽤나 고무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지만, 적응이 되니 짜릿한 쾌감이 느껴졌다. "이제야 제법쓸만한 파트너가 돼군" "크르르,제법? 이 정도면 퍼펙트 한거지" "너무 들뜨지마.아직 경기가 두번 남아있어" "크르르르, 알고 있어" "어쨌든 온르 경기는 이걸로 끝이니까.오늘은 이만 헤어지자" "크르? 대체 매일 어디를 그렇게바쁘게 가는거야?" "셀리브리드에서 알아봐야 할 정도가 있어서 그래. 내 직업에 관련된 정보니까 네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어쨌든 내일 경기 시간에 늦지마" 샴바라는 대기실에서 복면과 망토를 바꿔 장차갛며 말했다 .특별한 갑옷이 아니면 대체로 비슷해 복면과 망토만 바꿔도 사람들은 샴바라를 알아보지못했다. 물론 아크의 경우는 아에 모습을 바꿔버리니 전혀 문제 될게 없었다. 그러나 일단 변신을 풀면 24시간은 재사용을 못하니 시합이 모두 끝날때까지 변신을 풀수 없었다. 때문에 대기실을 나설때는 각자 따로 나와야 했다. "저기 봐, 다크 울프다!" "와 ,역시 포스가 다르구나!" 아크가 악실리온을 나서면 곧바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평소라면 꽤나 부담스러웠을 관심, 그러나 지금은 늑대족으로 변한 상태다. 아무리 관심이 집중돼도 변신을 풀면 다시 평범한 유저로 돌아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니 이벤트 퀘스트를 할때보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악실리온에서 경기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데?'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다. 사실 처음에는 악실리온의 경기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목적을 위해시작은 했지만 가장중요한 경험치와 돈이 안되기 떄문이다.그러나 경기를 계속하면서 의외의 효과를발견했다. '스킬숙련도는 몇배나 빠르게 올라간다!' 한 시합을 치르고 확인해 보면 스킬 숙련도가 상당히 올라가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뉴 월드의 스킬 숙련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단순하게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집중해서 사용하느냐.항상 처음 만나는 몬스터와 싸울때 스킬의 성장이 빠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처음 상대하니 그만큼 집중하게되는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까다로운 몬스터라도 몇 번 상대하다보면 요령이 생기기 마련.수백 마리를 잡을때즘에는 일정한 패턴이 정해지니 스킬의 성장은느려졌다. 그러나 악실리온의 시합은 항상 새로운 스타일의 적과 싸워야한다.게다가 상대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아크처럼 각종 스킬로 무장하 유저!수준 높은 상대와 싸우니 당연히 스킬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덕분에 거의 멈춰져 있다시피 했던 검술이 상급으로 올라갔다. "스킬확인!" [검투술(상급,패시브 316/500) : 당신은 이제 검투술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검도 능속하게 사용할수 있으며,보다 강한 파괴력을 발휘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종류의 검과 너클계열의 추가 공격력을 부여하고 ,회피율과 치명타 확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킵니다.<종합 전투력 40%상승.방패 착용시 검투술의 효과가 사라짐> *추가 효과 : 발 차기를 적중시켰을 때 소형 몬스터8%,중형 몬스터 5%,대형 몬스터 2%확률로 랜덤의 상태 이상을 일으킴. 고난이도의 기술을 성공시킬수록 발동 확률이 높아집니다] 기본 스킬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은 곧 종합 전투력의 상승이다. 게다가 상태 이상 효과의 발동 확률도 올라갔다. 방금 전 시합에서 사용한 죽음의 회오리가 가능하게 된것은 그 효과의 덕이 컸다. 아드레날린과 카운터 어택, 쳐 내기도 모두 중급으로 올라갔다. 아드레날린이 중급으로올라가자 빈사 상태에서 반응 속도가 올라갔고, 카운터 어택과 쳐 내기로 방어율이 상승했다. 당연히 연쇄 스킬인 화격도 더욱 강력해졌다. 성공시키면 중갑을걸친 전사까지 10미터 밖으로 밀어낼 정도! '스킬을 올리는 데는 이만한 곳이없어' 때때로 스킬 성장이 멈추는 상황을 경험해 본 아크에게는 꽤나 유용한 정보였다. "주인, 여기야" 그때 ,골목으로 접어들자 한쪽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올백을 한 소년,사람으로 변신한 데드릭이었다. 아크는 히죽웃으며 데드릭에게 다가갔다. "크르르르,어땠어? 이번 배당률은?" "계속 이기니까 조금 떨어졌어.이번에는 1.2였어.여기 76골드" "크크크,그래도 상한 제한이높아져서 수익률은 이전보다 낫군" 사실 아크가 시합장에서 데드릭을 소환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거였다. 토너먼트 페어전의 승패를두고 돈을 거는 도박. 물론 악실리온이 운영하는 도박장에는 사기 시합을 방지하기 위해서 몇가지 제한이 있었다.먼저 유저와 NPC,혹은 유저와 몬스터가 이루어지는 시합은 유저의 승리에만 돈을 걸수 있다. 몬스터에게 걸어놓고 일부러 져서 한몫 챙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유저와 유저의 토너먼트는,시합 횟수에 따라 돈을걸수있는 상한 제한이 존재했다. 1차전에는 10골드,2차전에는 20골드.........또한 배당률도 최대 2배를 넘기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참가자가 직접 도박에 참가할수 없다는 룰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이런 짭잘한 돈벌이를 놓칠리가 없다.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해 놓고 시합이 시작되면 돈을 걸도록사주했다. 물론 질 생각이 없었으므로 이기는 쪽에걸었다. 1차전을 나서며 잡템을 박박 긁어 만든건 전 재산 10골드. 1차전의 배당률은 1.8.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샴바라가 강력한 우승 후보였지만 무명인 아크가 끼어 있었고, 저스틴과 디오르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유저라 배당률이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18골드가 되었고,2차전에 나서며 다시 올인.1.5배당률로 27골드를 만들었다. 그 뒤로 아크의 인지도 높아져 배당률은 점점 내려갓다.그러나 상한 제한이 높아져 벌어들이는 돈을 모두 올인 할수 있었고, 덕분에 한 시합을 치를 때마다 10골드는 벌어들일수 있었다 .하루에 두 세 경기를 치렀으니 평균 20~30골드는 벌어들인 셈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일단 기본 일단은 채우는 셈이야' '뜻이 있는 곳에 돈이 있다' 이게 아크의 좌우명이었다. 아크가 돈주머니를 들고 히죽거리자 데드릭이슬슬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주인,기분 좋으냐?" "돈 보고 안 좋은 사람도있냐?" "그럼 공돈도 생겼는데 먹을 것 좀 사줘라" "크르르르,뭐야?" 아크의 안색이 바로 굳어버렸다. 셀리브리드에는 수만은 유저가 모이는 곳이라 골목마다 꽤 많은 노점상이있었다. 요리를 배운 상인들이 먹음직스러운 간식거리를 만들어 놓고 장사판을 벌인것. 300살이라고 주장하는 데드릭이지만, 겉모습은 어린애니 그런 군것짓거리에 혹한 모양이다. "크르릉, 음식은 내가 항상 만들어 주잖아!" "윽, 그게 음식이냐 ?고문이지" "시끄러, 저런것들은 겉보기만 그럴듯하지 다 불량식품이야. 몸에 좋은 음식이 입에 쓰다는말도 몰라? 잔말 말고 주는 음식이나먹어" "나도 가끔은 음식 같은걸 먹고 싶단 말야!공돈이잖아!공돈 생겼을 때 인심 한번 쓰면 안돼? 확 악실리온 관리소에 가서 부정 도박했다고 꼰지러 버릴까보다" "크르르르!공돈이라고?"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지금 이돈을 어떻게 번줄 몰라서 그렇게 니껄이는거냐? 이건 네 주인이 그야말로 피땀 흘려가며 싸워서 번돈이야. 그게 나혼자 잘먹고 잘살자고 그런것 같으냐 ?솔직히 너희들 성장시키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줄알아?" "쳇,우리가 언제 용돈 다랄고 했냐. 옷사달라고 했냐?식재료도 공짜잖아" "음식 재료를 캐느라 신발이해지도록 돌아디니고, 비싼 향신룔 사다 쏟아붓고........그건 돈 드는게 아니냐? 그리고 너희들 교육시켰지,불러낼 때마다 피같은 마나를 쏟아붓지.아,젠장,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런데도 내가 언제 너희들한테 돈벌어오라고 싴니적 있냐? 앵벌이 시켰어?" "쳇, 5쿠퍼짜리 풀빵 몇개 사달라고 한게 그런말까지 들어야 할일이냐?" "쿠퍼가 모여서 실버 되고,실버가 모여서 골드되는거야" 이게 아크의 변하지 않는 인생관이다. 아크는 현실세계에서 최소한의 칼로리 섭취를위한것 이외에는절대 돈을 쓰지 않는다. 부쩍 쌀쌀해진 요즘,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에서 붕어빵이 유혹적인 눈빛을 보내도 결코 넘어가지 않았던 아크다. 그런데 소환수의 입에 붕어빵을 물려줘? 약먹었냐? 차라리 그 돈을아껴서 어머니에게 과일하나라도 더 사가는 편이 기쁘다. "뭐하면 내가 붕어빵 비슷한거 만들어 줄까?" "우와,더럽고 치사하다.안먹는다,안먹어!젠장, 역시 주인을 잘못 만났어!" 데드릭이 있는데로 짜증을 부리며 유계로돌아가 버렸다. '흠, 슬슬 이녀석들 군기 한번 잡을때가 됬나?' 데이모스 녀석은 뼈다귀만보면 정신 못차리고, 데드릭은 아예 대놓고 반항질이다. '요즘 시간도 많은데 아예 이참에 군기 한번 잡아?' 아크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골목 안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확실한거죠?" "걱정마.우리에게 이런 시합은 장난이야" "두 분만 믿겠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목소리였다. 마침 주의는 어두운밤.아크는'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골목 안쪽을 훔쳐보았다. '저들은..........?' 골목안에는 일전에 악실리온에서 봤던 유저들이보였다. 오망성이 찍힌 복면을 쓰고 있는 유저. 샴바라를 갈구던 2명의 선구자였다. 그앞에는 후드를 눌러쓴 오동통한 체구의 세 사람이 마주하고 있었다. 오동통한 체구의 세 사람은 연신 주위를살피며 한숨을 불어냈다. "이번에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쓸만한 선수들을 출전시켰는데 모두 도중에 떨어졌어요.이제 남은 건 두분뿐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했잖아. 우리가 나가면 다른 사람들은 필요없다고. 덕분에 시합수만 늘어나서 괜히 시간만 더 잡아먹었잖아.멍청한 녀석들" "하지만............" "그런데 대체 그 비밀지도의 정체가뭐야 우리를 고용할정도면 제법 돈도 있을텐데. 평범한 보물지도에 그렇게 까지 안달할 리는 없겠지.뭔가 쓸만한 정보를 손에넣은건가?" "그,그건 말씀드릴수 없습니다. 극비 정보라........" 후드를 꾹 눌러쓴 사내가 당혹스러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선구자,쥬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뭐,아무래도 좋아.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보물지도 따위에 목을 매는건 초보자들이나 하는짓이지. 하지만 이전에 약속했던 금액으로 넘겨주지는 못하겠다" "네? 그게 무슨?이미 공중인 NPC까지 세워 계약서를 쓰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릴거라고는 말해주지 않았잔아.너희들이 우리를 믿지안고 허접스러운 놈들까지 불러들이는 통에 시간이 2배나 걸렸다고. 당연히 그만큼 보수를 더 받아야지 .안그래? 생각같아서는 2배를 부르고 싶지만 사정을 봐주지.계약한 1,000골드에 500골드.1,500골드다" "그,그런돈은 없어요!" 후드의 사내가 숨을 들이켜며 소리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계약은 없던 거로 해도 좋아. 지도를 사줄 다른 사람을 찾아보면 그만이니까. 뭐,우리가 직접 보물을 찾아도 그만이고" "계약을 어기면........" 계약 위반의 패널티는 계약서를 슨 상인에게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주고받는 거래를 계약서로 쓸 경우, 패널티는 계약 당사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쥬르는 가소롭다는 듯이 눈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우린 선구자다. 그런 걸 겁낼것 같아?" "............당신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않을 물건이에요.1,000골드나 낼 사람도 없을걸요" "그건 우리가 판단할 문제지" 쥬르는 유들유들한 말투로 받아쳤다. 물론 쥬르는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보물 사냥이나 할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상대가 이렇게까지 특정 아이템을 원할때는 그만한 이유가 잇는법. 아마도 막대한 이득에 대한 정보를가지고 있건, 퀘스트,혹은 전직에 관련된 중요한 단서이리라.그걸 알고서도 순순히 제시한 금액만 받고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숨어서 지켜보던 아크도 고개를 끄덕였다. '흠, 제법 거래르 할줄 아는군' 이런 경우는 쥬르가 나쁘다고할수 없다. 오히려 먼저 약점을 보인 후드의 사내들이 나쁘다. 그러니 받아낼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우려내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어쨋든 후드의 사내들은 잠시 고민하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나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좋습니다.1,500골드" "좋아.그럼 내일 두 경기가 끝나면 그건 너희들 거다" 쥬르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반대쪽으로 사라졌다.그들이 사라지자 후드의 사내들이 욕설을퍼부었다. "쳇, 날강도 같은 녀석들,고작 시합 하나로 1,500골드나 요구하다니!" "이럴때는 직업을 잘못선택했다는 생각이듭니다. 형님" "분하지만 어쩔수 없잖아.이제 우리가 믿을건 저 놈들뿐이니까" "하지만 1,500골드라니..........이러다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손해만 보는거 아닙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없어" 형님이라고 불린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상위 길드의 그랜드 마스터가 직접 준 퀘스트야.일전에 그랜드 마스터에게 받은 퀘스트를 두 달에 걸쳐 해결한 사람 얘기 못들었어? 그 사람이 받은 보상이 레어 스킬북에 추가 보상이 4,000골드였어.즉, 이번 퀘스트도 최소 4,000골드는 받을수 있다는 말이야" 그말에 나머지 사내들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4,000골드!현찰 4,000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이아닌가! "하지만 지금 우리 재산을 탁탁 털어도 1,050골드밖에 안되잖아요. 저놈들, 외사으로 해줄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내 하나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아직 결승전까지는 시간이있어. 그 사이에 어떻게든 돈을 융통해봐야지" "흑흑흑, 그럼 또 빚을 지게 되는건가요?" "울지마. 나도 빚지는게 좋아서 이러는게 아니야.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해 .우리 같은 허접스러운 상인이 그랜드 마스터의 퀘스트를 받는 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야. 무슨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를 살려 한몫 잡아야해. 우리의 모든걸 이번일에 거는거야" "네,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 부상을 차지해도 남은 2개는 이미 다른 녀석들 손에 있잖아요 .그건 어쩔생각이세요?" "후후후" 형님이라는 남자가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이번 부상이 특히 더 중요하다는거야. 일단 세 단서 가운데 하나를 우리가 쥐고 있으면 놈들도 어차피 보물을 찾아내지 못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거지. 그때,슬쩍 접근해서 거래를 제안하면돼" "놈들이 쉽게 거래를 받아들일까요?" "그게 우리 특기잖아. 잘 설득해서 계약서에 도장 찍게 하는거. 뭐, 그게 안돼도 다른 방법을 쓰면돼 .어쨌ㄷ느 중요한건 우리가 단서 가운데 하나를 쥐고 있다는 거야.그걸 놓지 않는한 기회는 우리에게 있어" "역시 형님이십니다!" "후후후,그렇지?" "후후후후.그렇습니다" 후드를 쓴 사내들은 음흉한 웃음을 흘려덌다. '뭐야,이것들은?' 바로 뒤에서 아크가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채.................. ACT 4 결승전 '이 아이템을 두고 퀘스트가 몇 개나 겹쳐있는거야?' 아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퀘스트를 받을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않았다. 보상은 괜찮으리라 기대해다. 그러나 일반 퀘스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일 뿐이라고 판단했다.그런데 이게 또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특정 아이템이 필요한 퀘스트가 진행될떄, 특히 그게 한정된 숫자밖에 없는 아이템일 경우에는 여러명에게 퀘스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우호도가 아이템으로 시작하는 퀘스트는 공유가 되지 않는다. 여러명이 퀘스트를 받으면 필연적으로 몇 명은 실패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받은 퀘스트는 마법 학호의 우호도가 필요하다. 샴바라는 퀘스트 시작 아이템으로 퀘스트를 받았어.당연히 공유가 안되니 둘중하나는 포기할수밖에 없다. 그런데 관련 퀘스트를 받은 사람들이 또있어?' 게다가 그들이 퀘스트를 받은 곳이 심상치 않다. 어젯밤, 아크는 그 세사람을 미행했다. 그러나 곧 제한 구역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이 들러간 곳은 상인들만 들어갈수 있는 마이더스, 상위상인길드였다. '그들은 그랜드 마스터에게 퀘스트를 받았다고 말했었지. 그렇다면........?' 상인 길드의 길드장 그랜드 마스터를 자칭하는 말이리라. 아크의 고용주 역시 마법 학회의 그랜드 마스터다. 다시 말해 그것만으로도 이미 삼대 길드 가운데 두 곳, 마법 학회와 상인길드의 그랜드 마스터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뉴 월드의 NPC는 명분없이 움직이지않는다. 그리고 마법 학회의 그랜드 마스터에게는 명분이 있다.마가로프는 마법학회의 일원이었으니 그가 남긴 연구 자료는 마법학회의 정당한 재산이다. 그걸 되찾는 일이니 당연히 정당하다. 그렇다면 상인 길드의 그랜드 마스터는? 일단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없다. 그러나 짚이는 부분니 없는거도 아니다. 마가로프는 꽤나 이름이 알려졌던 천재 연금술사.그가 말년에 남긴 연구 자료는 사용하기에 따라서 큰돈이 된다. 또한 상인 길드에서 직접사용하지 않아도 마법학회와의 정치적인 교섭의 수단으로 사용할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삼대길드는 정략적인 라이벌이다.당연히 서로의움직임 정도는 염탐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마법학회에서 마가로프의 유산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인 길드도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거야. 그렇다면.......샴바라가 일기를 찾은것은 100%우연이라고 해도, 비슷한 시기에 악실리온에서 비밀 지도가 부상으로 나온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이번 시합의 배후에 상인 길드가 있고, 다른 단서를가지고 있는 유저를 알아내기 위한 것일지도......' 어쩌면 상인 길드만이 아닐지도모른다. '평균 100여명이 참가하던 경기에 1,000명 이상 신청했다는 게 수상했어. 그것도 대부분의 대형 길드가 나가란으로 몰려간 상태에서 말이야' 후드의 사내들이 선수들을 고용했다고 했지만 900명이나 고용했을리는 없다.그렇다면 이번 퀘스트에는 또 다른 세력이 개입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삼대 길드 중 나머지 하나, 전사 길드까지 개입했을 가능성이커.이번 시합에 걸린 부상을가져오라는 퀘스트 같은것을......그렇다면......" 상황이 꽤나 재미있게 흘러간다. 물론 아크는 삼대 길드의 세력 다툼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또한 한 퀘스트를 두고 다른 유저와 경쟁하는 것도 달갑지 않다. 아크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점은 단 하나,마법 학회와 상인길드의 그랜드 마스터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그건 그만큼 엄청난 보상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뜻! '그 녀석들이 그랜드 마스터에게 퀘스트를 받았던 유저가 4,000골드나 되는 부상을 받았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번 퀘스트도 그만한 보상을 바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뜻이다!' 돈이 된다 ,틀림없이! 실제로 후드의 남자들은 쥬르에게 비밀지도의 대가로 1,500골드를제시했다. 상인에게는 돈이최고다. 보상조차 불확실한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그만한 손해를 감수할리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퀘스트는 최소한 그 이상의 이득이 보장됐다는뜻! '퀘스트 하나에 수천 골드!'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잘해야 주문서나 포션 따위를 보상받을줄 알았던 퀘스트가 사실은 골드 카드였던 것이다. '후후후 ,뜻밖에 좋은 정보를 얻었어. 변신을 해 둬서 다행이야. 어쨌든 나는 놈들의 정체를 대강 짐작하고, 놈들은 내 진짜 정체를 모른다. 우위에 있는건 나야' 아크는 일단 그 정보를 샴바라에게는 숨겼다. 아직 샴바라는 이번 퀘스트가 얼마나 크게 번져 가는지 짐작하지 못한다. 기왕 받은 퀘스트니 가능하면 해결하고 싶다는 정돠. 그러나 엄청난 보상ㅇ르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걸 알게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알수없다. 최악의 경우 일기의 내용을 공유한 대가로 지분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럴수는 없지. 이건 내 퀘스트야!내돈이야!' 그리고 샴바라는 그런 얘기를 들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준결승과 결승은 같은 날 치러진다. 1시간전, 아크와 샴바라는 준결승을 이기고 대기실에서 다음 시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샴바라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역시 쿵푸를 배운 사람답게 정신을 집중하는 자세도 범상치 않다. 덕분에 아크는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었다. 그때, 돌연 통로를 따라 우렁찬 함성이 들려왔다. -이로써 이전 시합의 승자인 14조 푸른검과 다크울프의 상대가 결정됬습니다!압도적인 기량으로 불과 3분만에 상대를 제압한 89조 쥬르와 듀크!이제 남은 것ㅇ느 최후의 승자를 가릴 결승전뿐입니다. 5분뒤 열리는 스페셜 매치가 끝나는대로 그 어느때보다도 뜨거웠던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의 결승전을 시작하도록하겠습니다! "역시 마지막 상대는 선구자로군" 장내 방송에 반응하듯 샴바라는 눈이번쩍 떠졌다. 눈동자가 미끄러지듯 움직여 아크에게 향했다. "아크,이번에는 따로따로 간다" "크르르?" "선구자 가운데 한놈,흑마법사 쥬르.그놈에게 가팡야 할 빚이 있어. 꼭 내 손으로........" "일전에 두 번 진게 꽤나 분한가 보지?" 의외로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는건가? 아크는 피식웃으며 물었다. 그러나 샴바라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그 이유만은 아니야. 쥬르라는 아이디, 이번 게임에서 처음 본게 아니거든" 눈빛을 보니 뭔가 또 다른 사정이있는 모양이다. NPC라면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고, 꼬치꼬치 캐물었겠지만 상대는 유저다. 퀘스트를 받을수 있는것도 아니고, 돈이 되는것도 아니다. 40대 아저씨가 술먹으면서 읊어대는듯한 과거사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샴바라도 굳이 떠들어 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번 시합은 각개전투로 가자.하긴,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쥬르 녀석 역시 흑마법사라 그런식으로 싸우려고 들겠지만" "크르르,그럴지도..........." 간단하게 마법사라고해도 학파에 따라 마법이나 스킬은 천차만별이다. 가장 크게 나뉘는것은 바로 마법의 범위다. 원소 마법을 위주로 다루는 엘리멘탈리스트나 소서러 같은 경우는 1대 다수를 상대하는 마법이 많다. 각종 버프나 광역 마법도 쓸만하지만 특히 2명 이상의 마법사가 '정신 교류'로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은 발군! 파티가 가장 선호하는 마법사였다. 반면 흑마법사 계열인 다크 매지션이나 마나스토커는 PVP에 특화 되어 있는 직업이다. 흑마법사는 편협한 무리들로 파티를 돕는 마법따윈 없다.버프나 보호마법도 모두 자신에게만 사용하는것이고, 다수보다는 적 하나에게 강력한 데미지를 입히는 마법으로 무장하고있었다.뉴월드의 최강데미지 딜러가 바로 흑마법사들이다. "크르르,이길 자신은 있어?" "솔직히 모르겠어" 샴바라의 대답에 아크는약간 놀랐다. 호기로라도 이길수 있다는 말을 할줄 알았다. 선구자라니 당연히 강하겠지.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샴바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 이상, 호기를 부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강해? 선구자가?" "내가 그 녀석과 싸워본건 한달전이야. 방금전까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봤는데.승률은7대 3이었어.쥬르가 한달동안 놀았기를 기대할수는없겠지.그런 점을 고려하면 5대5" "크르르,부딪쳐 보기전에는 모른다는 말이군" 샴바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흑마법사라도 일단은 마법사.뭉쳐서 싸우는것보다 각개전투를 하는편이 낫겠지. 선구자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기합넣고 가 보자고" 그때 ,다시 확성기를 통해 스페셜 매치가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결승전은 10분 뒤.방송을 들은 아크는 곧바로 냄비를 꺼내 들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약간의 출혈을 각오하는 수밖에 없지. 좋아.대출혈 방출이다. 뱀,'질주하는 칵테일','화끈한 시럽 케이크','개운한 맛의 드링크'재료를 차례대로 내놔" 쌕쌕쌕 아크의 명령에 뱀은 잠시 입을 우물거리다가 식재료를 툭툭 내뱉었다. 요리를 만들때마다 가방을 뒤적이며 재료를 찾는게 꽤나 귀찮은일.때문에 아예 뱀에게 요리 레시피를 달달 외우게 만들어 요리 이름만 대면 필요한 식재료를 뱉어 내도록 교육시킨것이다. 덕분에 요릴 만드는 시간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사냥을 하면서도 어떤 요리의 식재료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바로바로 파악할수 있었다. '역시 소환수는 주인하기 나름이라니까' 뱀의 노력에 대한 대가는 머리한번 쓰다듬어 주면그만이었다.어쨌든 시합은 바야흐로 결승전.여기서 지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아크는 구하기도 쉽지않은 식재료를 몽땅 긁어서 갖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반응속도를 올려주는 칵테일,힘을올려주는 케이크,마법 저항을 올려주는 드링크 등등.........패널티 없이 부가 효과만올려주는 귀한, 그야말로 약선 요리들. 물론 도핑 전사들이 사용하는 약물보다는 아무래도 부가효과가 떨어진다. 그러나 도핑 약물은 전사 전용인 경우가 많다.약효가 세니 아무래도 체력이 받쳐줘야 하는것이다. 반면 요린 직업 제한이 없고, 약물보다 지속 시간이 길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약물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아마 아크가 만드는 요리를 비슷한 효과의 약물로 올리려면 100골드는 들어가리라.그렇다고는 해도 시꺼먼 늑대가 쪼그리고 앉아 요리를 만드는 모습은 뭐랄까......좀 깬다. "크르르 ,다 됐다!" 어쨌든 아크는 순식간에 뷔페를 만들어냈다. 엄선해 만든 열가지의약선 요리들! "샴바라, 나도 최선을 다해 너의 복수를돕겠어. 마음껏 먹어" "고맙다" 샴바라가 약간 감동한 눈빛으로 요리를 하나집어먹었다.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인건 그때였다. "나도 한다면 하는사람이야. 이번에는 화끈하게 반액 세일. 하나에 5골드다" "............" 샴바라가 사례에 걸린듯 컥컥거리며 아크를 돌아보았다. 정말 돈 받는거냐?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다. 아크는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출장 뷔페 비싼건 알지? 하지만 너와 나 사이잖아. 인건비는 과감하게 뺏어,고맙지?" 샴바라는 할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퍼퍼퍼펑! 장장 엿새에 걸쳐 펼쳐지던 토너먼트 페어전도 드디어 결승이다.과연 결승전답게 무대 효과부터가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달랐다. 아크와 샴바라가 경기장에 나서자 여기저기에서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졌고,네 시합장으로 분할되어 있던 경기장도 통합되어 무려 1만여 관중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전례가 없는 참가자로 이슈가 된 시합이라 유저는 물론 NPC들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심지어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VIP석에는 귀족 NPC들도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자, 드디어 나왔습니다!악실리온을 뜨겁게 달구는 신예,검은갈기를 가진 용맹한 늑대 족전사 다크울프!그리고 개인전에서 몇번이나 우승을 해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절대 강자.푸른검입니다!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 "와아아아!" "마지막이다. 지금까지처럼 화끈하게 보여줘!" "너희들에게 100골드를 걸었다!" 관중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로 고함을 질러댔다. -이에 맞서는 전사들은 쥬르와 듀크!놀랍게도 이들은 이세계에 가장 먼저 첫발을 디뎠다고 알려진 이방인, 선구자라고 합니다.과연 놀라운 솜씨로 모든 경기를 3분안에 해치운 강자들. 떠오르는 신예와 선구자의 시합!신구를 대표하는 전사들이 어떤 시합을 펼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가운데.....오오,역시 배당률도 1.5대 1.5 팽팽합니다! 매직 아이의 소개를 받으며 맞은편에서 선구자 쥬르와 듀크가 등장했다. -자,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결승까지 올라온 전사들이 마주섰습니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시합장 선택을........... 매직 아이의 눈이 핑그르르돌아갔다. 그리고 슬롯머신처럼 모든 눈이 ㄱㅁ은색으로 맞춰졌다. '복마전!' 아크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번졌다. 복마전은 이미 한번 경험해본적이 있는 시합장이었다. 폐허가 된 고대유적과 같은 곳에서 펼쳐지는 시합.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해서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있었다. 그러나 이 시합장의 가장 특별한 점은 바로 지붕이 있다는 점이다. 지붕.........그렇다. 복마전은 던전으로 적용되는 시합장인 것이다! '운이 따른다' 어둠속에서의 전투,당연히 아크도 바라는 일이다. 다크워커인 아크는 어둠속에서 모든 능력치가 40%나 올라간다.즉, 특별한 도핑이 없어도 레벨 140으로 조종된다는 뜻.게다가 상황에 따라 '은신'도 사용할수있다. 그야마로 아크를 위한 시합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또한 세인트 어쌔신, 암살자인 샴바라 역시 어둠속에서 각종 보너스를받아 아크 못지않게 능력치가 올라간다. 그때, 쥬르가 키득거리며 중얼거렸다. "복마전이라........옛 기억이 나는군, 여기였지? 네가 걸레가 된 시합장이?" "크르르?" 아크는 의외의 말에 놀란 눈빛으로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샴바라는 똥을 씹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쥬르의 직업은 정확히 흑마법사 계열의 포스 스토커야.어둠속에서 받는 보너스가 우리 못지않아. 그리고 어둠 속에서만 사용할수 있는 강력한 마법도 많지.던전 시합장이라고 좋아할 일이아니야" 젠장,어째 잘풀린다 싶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이렇게 된거, 받은 그대로 돌려줄 수 있으니까" 시합장이 결정되자 매직 아이가 혈압을 높이며 흥분했다. -오오, 과연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올라온 최고의 전사들답게 시작 전부터 신경전이 팽팽하군요. 그러가 누가 더 강한지는 말이아닌 힘으로 결정될 것입니다!그럼 ,시합 개시! 콰콰콰쾅! 경기장이 크게 진동했다. 주위로 기둥과 벽이 솟아나와 어둡고 거대한 유적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내부에서는 더이상 매직아이나 관중들의 모습, 목소리가 들리지않았다. 물론 밖에서는 시합장 내부가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도록 되어있어 관람에 전혀 지장이없었다. "각오해라!" 시합이 시작되자마자 샴바라가 순보를 사용해 쥬르에게 달려들었다. "후후후,애송아. 서두르지 마라.시간제한도 없으니 천천히 하자고" 쥬르가 히죽 웃으며 안개처럼 흩어져 한쪽으로 날아갔다. 어둠 속에서만 사용할수 있는 포스 스토커의 레어스킬. 미스트였다. 몸을 안개로 변화해 이동속도와 회피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스킬이다. "네 상대는 나다. 다른놈은 상관없어" "호오, 1대1시합 신청인가?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지.워프!" "다크 울프 ,듀크는 너에게맡긴다!" 쥬르가 마법을 사용해 샴바라와 함꼐 공간이동을 해버렸다. 다른 사람을 공간 이동시키는 마법은 7서클 이상의 마법. 어지간한 마법사는'정신 교류'를 사용해야 간신히 가능한 마법이다.그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써대는 놈이 상대라니. 최소 레벨 160이상의 마법사라는뜻 .더구나 마법사에게는 레벨보다 어떤 마법을 사용할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레벨 평준화 룰도 마법사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것이다. '저 정도라면 샴바라가 당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야' 그러나 샴바라를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돌연 어둠속에서 화살이 쏘아져 날아왔다. '궁수!듀크는 궁수 계열이었나?'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굴려 피했다. '궁수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지!' 아크는 벌떡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그리고 듀크의 움직임에서 타이밍을 재다가 번개처럼 검을 휘두렀다. 화격!화살은 날아오던 속도보다 빠르게 다시 듀크에게 돌아갔다. 결승전에 진출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화살 정도는 피하리라. 그렇게 예상한 아크는 듀크가 회피 동작을 펼치는 순간 기습을 가할 생각으로 화살을 따라 몸을날렸다. 듀크의 입매가 살짝 치켜올라간건 그때였다. "제법이군.화살 되돌리기 스킬을 배운건가?" 투투투퉁-! 엄청난 속사!듀크는 한번에 10여개의 화살을 꺼내들고 눈부신 속도로 화살을 퍼부었다.3~4발의 화살이 되돌아오던 화살을 막아내고,뒤이어 날아온 화살이 아크에게 쏟아졌다.눈깜빡 할사이에 1발의 화살이 어깨에 박혔다. "크윽!" -화살에 치명타를 맞았습니다!데미지 300!30초간 공격 속도가 10% 감소합니다. 요리로 방어력을 잔뜩 오렬놨느데도 300이나 깎여나갔다. 장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의 유일한 패널티는 공격속도가 느리단 점이다. 그러나 듀크는 오히려 검보다 더 빨랐다. 단순히 궁술 스킬 레벨이 높다고 가능한 일이아니다.아마도 궁슬을 보조하는 갖가지 패시브 스킬을 주렁주렁 달고 있으리라. '역시 선구자.........!' 그러나 아크도 궁수라면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봤다. 다행히 속사에도 허점은 있었다. 속도가 빠른 만큼 정확도가 떨어지는것이다. 10여발의 화살을 날렸음에도 아크가 맞은 건 1발뿐인것은 그때문. '눈먼 화살이라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아크는 회피 동작과 화격을 적절히 섞어가며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냈다. 그리고 조금씩 거리를 좁히다가 단숨에 폭발적으로 가속하며 달려드렀다. 듀크가 막 화살을 시위에 걸던 찰나! 제대로 치명타를 날릴수 이는 타이밍이었다. '됐어!' 그때였다. 돌연 듀크의 신발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몇 미터 뒤로 미끄러지는게 아닌가? 덕분에 아크는 헛손질을 하고, 되려 듀크의 화살에 옆구리를 얻어맞어 버렸다. '컥, 무,무슨 이런.......!' "크크큭. 이런 마법 신발은 구경도 못해봤을거다" '신발? 방금 그게 아이템 효과란 말인가?' 아크는 놀란 눈으로 듀크의 신발을 바라보았다. 접근전이 벌어지면 궁수가 전사에게 밀리는 이유는자세때문이다. 전사는 어떤 자세에서든 검을 휘두를수 있다. 그러나 궁수는 자세를 잡고 시위를 당겨야 하는것이다. 당연히 전사의 검을 피하며 제대로 된 공격을할수 없다. 그러나 듀크의 신발은 그런 패널티를 무시해 버렸다.다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미끄러지듯 움직이니 화살을 날리면서도 얼마든지 거리를 벌일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게 바로 샴바라가 주의를줬ㄷ너 선구자의 무서운점. 비정상적으로 높은 스킬도 문제지만,정작 걱정해야 할것은 그들의 아이템이다. 초반에 광렙을 한 선구자들은 이미 고레벨 사냥 지역에서 각종 레어 아이템을 선정, 도배를 해 놓은 것이다. 듀크가 히죽거리며 염장을 질러댔다. "온라인 게임의 핵심은역시 장비야" 아크는 이를 으드득 갈아붙였다. 물론 알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서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지만 아크는 단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믿었다.그게 전부라면 늦게 시작한 사람은 평생 그들을 따라잡을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그것만큼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밑바닥에서부터 스킬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성장시키고, 매일 운동을 거르지 않았던 자신을송두리째 부정할수 없었다. 아니다, 적어도 뉴 월드에서는 장비가 전부가 아니다! "젠장, 다크 댄싱!" 회피율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스킬! 아크는 지면에 떠오른 붉은 발자국을 밟으며 유령처럼 쏘아졋다. 동시에 듀크가 다시 속사를 퍼부었다. 그러나 아크는 엄청난 속도로 화살을 피해내며 검을 휘둘렀다. 그제야 듀크도 약간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회피 동작을 펼치기시작했다. 서걱, 투투투퉁,콰쾅, 투투투퉁! 마법 신발로 미끄러지며 속사를 날리는 듀크. 다크 댄싱으로 유령처럼 공간을 이동하며 검을 휘두르는 아크.둘은마치 워프를 난사하며 싸우는 마법사처럼 모습조차 보이지않았다. 그저 어둠을 가르는 검광과 화살로 둘의 위치를 짐작할수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아크나 듀크도 눈으로 상대를 확인하고 공격하는게 아니다. 직감적으로 상대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예측공격을 날려댔다.그리고 이런 전투는 아크의 특기다. "크윽, 제법이군" 다크 댄싱이 끝났을무렵,듀크가 신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아크가 화살 한대는 맞는사이, 듀크는 서너번이나 검격에적중했다.그러나 당황한 것은 오히려 아크였다. 각종 요리와 어둠 속성 보너스로 능력치를 잔뜩 올려놓은 아크의 검격에 서 너방이나 맞고도 듀크의 생명력이 고작 10%남짓 밖에 깎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생명력이 터무니없이 높거나, 무지막지한 방어구로 무장한게 틀림업다. 아니, 선구자라면 두 가지 모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공격을 다크 블레이드로 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이정도면 해볼만 하다!' "흠,역시 정면 대결은 꽤나 귀찮군.역시 내 방식대로 즐기는 편이 좋겠어" 듀크가 주르륵 미끄러지더니 모퉁이 뒤로 숨어 들어갔다.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펼치려는 모양. 게릴라전 역시 아크의 특기였지만,고레벨의 궁수를 상대로는 아무래도 불리하다. 만약 발코니 같은곳에서 미친듯이 화살을 퍼부어 댄다면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네 마음대로 하도록 놔둘것 같으냐?" 아크가 와락 모퉁이를 돌아섰다. 그러나 이미 듀크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주변은 넓은 광장, 아무리 빨라도 그 사이에 다른 곳에 몸을 숨겼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설마 듀크도 '은신'을 사용할수 있는건가?' 철컥, 투투투퉁! 그때였다. 돌연 발치에서 기계음이 울리며 허공에서 무수한 화살이 내리꽂혔다. -독화살 트랩이 작동했습니다.데미지 300 <상급 산성 독에 중독되어 3분간 10초당 2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트,트랩? 은신과 트랩,그럼 설마.......레인저!" "후후후,이제야 알아챘나?" 어둠속에서 낮은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궁극의 궁술을 익힐수 있으며 은신, 추적, 트랩 설치에 특화된 ,궁수 계열 가운데서도 특히 전직 조건이 까다로운 직업, 레인저!그게 듀크의 진짜 직업이었던 것이다. 일단 듀크가 직업 특성을 발휘하자 아크는 곧바로 궁지에 몰렸다. 듀크는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크가 트랩에 걸리면 화살을 날리고 도망쳤다.그렇다고 무작정 따라갈수도 없었다.일부러 몸을 드러내 놓고 트랩으로 유인하는 작전을 펼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그뿐이 아니다. '은신'의 유일한 약점은 이동중에 나는 소리까지 없어지지 않는단 점이다. 미끄러질때마다 빛이 나는 신발을 신었으니 듀크 역시 발소리를 완전히 없앨수는없었다. 때문에 그점을 공략하려 했지만........ 왜에에엥! -사이렌 트랩이 작동했습니다. <3분간 청력이 마비되어 주위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선구자인 듀크는 이미'은신'의 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장비, 스킬, 활용법, 모든 면에서 듀크는 아크를 압도 하고 있어다. 레벨이 100으로 고정되어 있기에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아크는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하게 생명력이 줄어갔다.그렇다고 무턱대고 달려들어 트랩을 작동시킬수는없다. 듀크가 사용하는 트랩은단순히 데미지만주는것이 아니다. 마빈,,스턴,결박에 걸리는 트랩도 꽤많았ㄷ. 아느 하나 라도 잘못 걸리면 그대로 패배로 이어질수 있는 위험한 트랩이다. '초반에 할수 이는걸 다 했어야 하는데.....너무만ㅁ나하게 생각했어' 아크에게도 비장의 무기는 있었다. 소환수와 뱀의 맹독.그러나 초반부터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되어 아껴두었다. 실수였다 .차라리 초반부터 할수 있는 기술을 몽땅 사용해 조금이라도 더 생명력을 깎아 두었어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이제는 기술을 쓰고 싶어도 못쓰는 처지가 된것이다. '지금 소환수를 불러내 봣자 도움이 안돼. 데이모스는 트랩을 피할수 없고, 데드릭은 비행 능력이 있는 대신 화살에 취약하다 오히려 강제송환되면 데미지만 받을뿐이야. 뱀의 맹독도 공격할 기회가 없으니........' 순간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소환수, 맹독!그래, 어쩌면........!' "뱀, 마비독이다!" 생명력이 60%까지 줄어들었을때, 아크는 드디어 비장의카드를 꺼내들었다. 뱀에게 독초를 먹여 검을 맹독으로 적신 아크는 벽에 바짝붙어 듀크가 사라졌던 모퉁이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은신'으로 몸을 숨긴채 데이모스를 소환했다. "마령 소환, 데이모스 가라,너의 방어력만 믿는다!" 딱딱딱! 데이모스가 힘차게 이를 마주치며 앞으로 돌진했다. 역시나 모퉁이 뒤쪽에는 듀크가 깔아놓은 트랩이 잔뜩 깔려 있었다. 들어시각 무섭게 굉음과 함꼐 불길과 연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런 데이모스는 방패로 몸을 단단히 굳히며 전진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결박 트랩이 작동하며 데이모스를 칭칭 휘감아 버렸다. "멍청한 녀석, 포기한 거냐?" 듀크가 모습을 드러낸것은 그때였다. 통로 안이 자욱한 연기로 쉽싸여 데이모스를 아크로 착각한 것이다. "지금이다. 다크댄싱!" 아크는 재빨리 모퉁이를 돌아서며 듀크에게 달려들었다.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검격과 발차기! 막 화살을 날리려던 듀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난타당했다.그리고 뒤늦게 데이모스를 확인하고 도망치려 했지만, 간신히 잡은 기회를놓칠 아크가 아니다. 아크는 다크 댄싱으로 듀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쉬지 않고 검격과 발차기를 날렸다. 검에 묻은 마비 독 그리고 발차기로 발동하는 상태이상!그사이,데이모스도 결박에서 풀려난 듀크의퇴로를 봉쇄해 버렸다. '여기서 끝장을 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그러나 듀크의 방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거의30초간 쉬지안고 공격을 퍼부었는데도 생명력은 고작 50%밖에 떨어지지않았다. 그리고 무수하게 겹쳐지던 마비와 상태이상이 약간 풀리자 곧바로 스킬을 발동했다. "젠장, 이건 비싼 건데........워프 트랩!" 듀크가 빠른 손놀림으로 발치에 트랩을 설치했다. 그러자 듀크가 훅하고 사라지더니 10여미터 떨어진곳에서 나타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또다시 선구자의 풍부한 경험이 위력을 발휘했다. 상대를 트랩이 깔린 지역으로 순간 이동시키는 워프트랩. 트랩을 사용하는 유저들이콤보로 사용하는 트랩을 자신에게 사용한 것이다. 아크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탈출법. '하지만 이제 놈의 생명력은 40%.내가 더 유리하다!' "네놈, 용서하지 않겠다!" 듀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번쩍이는 화살을 다발로 꺼내 시위에 걸었다. 1발에 40실버나 하는 마법화살. 게다가 레벨 140.궁수 스킬이 상급이 되어야 사용할수 잇는 익스플로전 애로우였다.그걸 마치 산탄총처럼 한 다발이나 시위에 걸고 발사하자 공간 전체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사방에서 화염이 솟구치며 바위들이 와르르 떨어졌다. 딱딱, 딱딱딱!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데이모스가 와락 아크를 덮쳐눌렀다. 화염과 바위의 낙하 데미지를모두 자신이 받으려는 살신성인의 정신! 정상일때는 이렇게나 충성심이 넘치는 소환수인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모처럼 발휘한 충성심도 전혀 고맙지 않았다. -소환수'데이모스'가 유계로 강제송환 되었습니다. 소환수 생명력의 5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이모스는 트랩과 익스플로전 에로우의 공격에 강제 송환 돼 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데이모스의 생명력,지저세계에서 미친듯이 능력치를 올리는 바람에 무려1,000이 넘어 아크에게 500이 넘는 데미지가 적용된 것이다. 간신히 듀크의 생명력을 40%로 만들어 놨더니 곧바로 아크의 생명력도 40%가 되어 버린 것이다. "큭, 이, 이자식.....!" 듀크는 이미 '은신'으로 몸을 숨긴 뒤였다. "후후후,이제 믿었던 방패막이도 사라졌군. 하지만안심해라.그냥은 안죽여. 천천히 잘근잘근 씹어주마" 어둠속에서 듀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사용할때는 편했지만,막상 적이 사용하니'ㅇ느신'만큼 귀찮은 스킬도 없었다. '젠장, 레인저가 이렇게 까다로운 적일 줄이야' 그 뒤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트랩을 피해 이동할라치면, 뒤에서 마법화살이 날아온다. 또 화살에 집중하려고 하면 트랩이 발동되어 버렸다 .결국 그렇게 아크의 생명력이 20%까지 떨어졌을 떄였다. -샴바라 님꼐서 '전음'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샴바라가? 혹시쥬르를 물리친건가?' 아크는 기대 어린 표정으로 얼른 전음을 수락했다. -아크, 지금 상황이 어때? -솔직히 좋지않아. 너는? 혹시 쥬르를 물리친거야? -........틀렸다. -뭐? -쥬르자식, 이전보다 더 강해졌어.보도 듣도 못한 마법으로 도배를 해 버리는 통에 아까부터 술래잡기만하고 있는 형편이야. 간신히 40%까지 생명력을 떨어트려 놨지만 나는 지금 빈사 상태야. -........젠장!결국 놈들의 손아귀에 있다는 건가? 아크는 이를 갈아붙였다. 시합장이 어두운 던전인게 오히려 이렇게까지 패널티로 작용할줄이야.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쥬르와 듀크 역시 어둠 속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같은 어둠 속성의 캐릭터라도 스킬의 상성이 전혀 다르다. 아크나 샴바라는 근접 전투 전문가.그러나 그들은 온갖 마법과 트랩으로 '사냥'을 하는 직업인 것이다. 미로 같은 어둠속, 근접전투와 사냥 중에 어느쪽이 유리할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미안하다.각개전투를 제안하는게 아니었어. -................. 아크는 잠시 침묵했다. 샴바라는 이미 반쯤 포기한 듯했다. 그러나 아크는 절대 이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지난 엿새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그리고 엄청난 돈이 될지도 모르는 마가로프의 비밀지도는 정체불명의 상인들에게 넘어가게 된다. 상인들은 지도의 가치를 알고 있으니 돈이나 협박으로 뺏을수 있을리가 없었다. 물론 아직 아크는 듀크와 싸울 방법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샴바라가 쥬르에게 패배한다면 아무런 의미가없다. 듀크에 샴바라를 쓰러트린 쥬르까지 가세하면 아크 혼자서 감당할수 있을리가 없다. '내가 아무리 기를 써도 샴바라가 죽으면 모든게 끝장이야.하지만 샴바라는 다른 지역으로넘어갔다.이제와서 합치려고 해봐야 쥬르나 듀크가 보고만있지 않을테고........'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섬광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샴바라, 전에 우리 이 동굴에서 시합을 치렀던 적이 있지? 분명 이 유적은 좌우대칭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어. 그리고 양쪽의 통로가 겹쳐진느 부분이 딱하나있어. -그런데? -그거야. 그걸 이용하자 -그걸 이용하자니? 어떻게? 샴바라의 질문에 아크는 자신의 작전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샴바라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확실히......그래 ,그런 방법이라면 가능성은 있어 -해보는 수밖에 없어.너도 설명을 듣고 대충 감 잡았겠지만, 이번 작전은 타이밍의 승부야. 둘중 하나가 실패하거나 ,1초라도 타이밍이 안맞으면 작전은 실패하고 우리는 진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알고 있어. 그럼 네 작전에 최후의승부를 건다. -앞으로 정확히 1분뒤, 그곳에서 보자! 일단 통신을 끊은 아크는 곧바로 아드리안의 목걸이를 발동시켰다. 비상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 그러나 이번엔 아크가 목걸이를 발동시킨 이유는 방어력 40%증가 옵션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어력을 올려놓은 아크는 조금전에 미리 파악해 두었던 트랩을 밟아버렸다. 뭔가가 푹 터지는 소리가 울리며 나무줄기 같은 것이 아크의 몸을 옭아매 버렸다. -결박 트랩이 작동했습니다. <30초간 이동할수 없게 됩니다> "크하하하, 드디어 걸렸구나!" 트랩이 작동하자 곧바로 듀크가 모습을 드러내며 화살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결박에 걸려도 팔은 움직일수 있었다. 아크는 전력을 다해 화살을 쳐냈다. 그러나 엄청난 속사로 날아오는 마법화살에 생명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방어력을 40%나 올렸음에도결박이 풀렸을때는 빈사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개자식, 비겁하게 놀지말고 제대로 붙어보자!" 그러나 듀크는 곧바로 뺑소니를 쳐버렸다. "후후후, 빈사 상태에 빠지면 내가 정면 대결이라도 할것 같았냐? 천만에.너,방금전에 일부러 트랩을 밟았지? 크크큭, 멍청한 녀석!내가 뭔가 꿍꿍이가있다는 것도 모를 만큼 바보인것 같아? 레인저는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아. 또다시 트랩 지옥을 맛봐라!" "나는 죽어도 네놈과 제대로 붙어 봐야겠다!소환 해제,재소환,데드릭!" 아크는 영력이 100%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헉!" 데드릭이 나타나며 비명을터트렸다. 아크는 경기장에 나타난 데드릭을 보고는 와락 인사이 구겨졌다. 아크는 그동안 도박을 위해 데드릭을 항상 경기장 근처에 소환해 놓고 있었다. 때문에 밖에서 뭘하고 잇는지 알 도리가 없었던것.그런데 막상 긴급 상화에 소환해 놓고 보니 그간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소년 모습의 데드릭은 아버지 손을 잡고 경기장 구경 나온 꼬맹이처럼 고깔모자에 메가폰을 들고 있었다. 게다가 입에는 큼직한 풀빵까지 우겨놓고 우물거리고있었다 .주인은 죽어라 싸우는동안 신나게 응원이나 하며 군것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주인!이,이건 친절한 아저씨가 예쁘다고 준거야.정말이야.절대 배당금에서 꿍친돈으로 사 먹은거 아니야" '데드릭이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았다ㅏ. 고양이에게 생선을맡겼다. 어째 악실리온 도박장의수수료가 조금비싸다 싶더니......... 아크는 출전자라 도박장출입을하지않았다. 데드릭은 영악하게도 그점을 이용해 돈을 삥땅치면서 군것질거릴 사달라는둥 연막을 피운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곤죽이 되도록 패버리고 싶었지만 그럴때가 아닌게 원통할 따름이다. "닥치고 당장 놈을 추격해!" "그, 그럼 이번 일은 없던 걸로......." 이런 망할!갈수록 잔머리만 늘어난다. "알았으니까 놈이 도망치기 전에 빨리따라붙어 !놓치면 죽을줄 알아!" "충성!주인 만세!" 데드릭이 허둥지둥 박쥐로 변해 듀크의 뒤에 따라붙었다. 누군가가 보고있으면 '은신'이 발동되지 않는다. 아크가 생각해 낸 비장의 카드가 그것이었다. '은신'이 발동되지않자 듀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화살을 날려댔다. 그러나 데드릭이 누구인가? 얍삽한 걸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소환수! "헹, 화살 따위는 무섭지 않아!주인이 더 무섭다고!" 데드릭은 기둥을 방패삼아 피하며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노려보았다.덕분에 듀크는'은신'도 못하고 아크의 추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잠시, 아크는 시간을 가늠하다가 데드릭에게 명령했다. "데드릭,좌측의 통로를 막아 놈을 우측으로 몰아라!" "오케이!" 데드릭은 듀크를 앞지러 좌측 통로를 막고 와락 고함을 질러댔다. "에비!잡아먹어 버리겠다!" "크윽, 이런 빌어먹을 박쥐 새끼가!" 듀크가 이를 갈아붙였지만, 데드릭과 아옹다옹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뒤에서 아크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사실 아크는 이미 빈사 상태. 듀크가 두려워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일부러 트랩을 밟으면서까지 근접전으로 몰고가면 이길수 있다는 느낌을 팍팍 풍긴덕에 듀크는 불안했다. '저녀석, 틀림없이 뭔가 있어. 어쩌면 회복할수 있는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을지도........' 심리전의 승리, 결국 황급히 몸을 돌리며 우측 통로로 달려 들어갔다. 그때, 또다시 샴바라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크, 그곳으로 가고 있다! -좋아. 나도 거의 다 몰아가고 있어 -카운트를 센다. 3,2,1........지금이다!내뒤로 6시 방향, 3미터 위! -듀크는 코너를 돌아 바로 정면이다! 아크와 샴바라가 동시에 소리쳤을 때였다. 막 듀크가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순간, 코앞에서 와락 샴바라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시합장으로 사용되는 복마전은 데칼코마니처럼 좌우가 똑같은 구조로 되어있다. 샴바라와 아크는 그 양쪽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던것. 그리고 그 2개의 동굴을 한 점에서 예리한 각도로 꺾어지는 모퉁이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아크와 샴바라는 그곳에서 공격 상대를 바꿔치는 작전을 세운것이다. "뭐,뭐야? 어떻게 이놈이......?" 듀크가 당혹성을 터트리며 활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샴바라는 이미 모퉁이를 돌아서기 전에 필살 스킬을 발동시킨 뒤였다. "뇌검!" 스파크를 일으키는 단검이 엄청난 속도로 듀크를 스쳐 지나가며 전격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숨겨진 직업, 세인트 어쌔신의 비전초식!그파괴력을 어마어마했다. 듀크는 단숨에 빈사 상태에 빠지며'감전'상태가 되어 버렸다.물론,아크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크 역시 마비된 듀크의 등을 밟고 뛰어 오르며 최강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간닷, 블레이드 스톰!" 아크는 가방에 항상 쓸만한 검 한두자루는 가지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에 블레이드 스톰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아크는 가방에서 검을 꺼내 쥐자마자 허공을 향해 블레이드스톰을 발동시켰다. 목표는 샴바라가 말했던 6시 방향, 3미터 위로 향해! 콰르르릉! 굉음과 함께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편이 휘몰아쳤다. 멋도 모르고 샴바라를 쫓아 모퉁이를 돌아서던 쥬르가 나타난건 그때였다. 쥬르는 허공을 둥둥 뜬채, 반투명한 방어막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일정 양의 데미지를 무효화 시키는 보호마법.그러나 블레이드스톰의 무지막지한 공격력에 보호막은 단숨에 갈가리 찢겨 나갔다. 쥬르는 검의 회오리에 휘말려 바닥에 처박혔다. "크윽, 대, 대체 이게무슨.......?" 쥬르는 아직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뭐긴 뭐야? 네놈들이 졌다는 뜻이지!" "크윽, 빌어먹을.......!설마 유인 작전을 쓸줄이야!" "끝장이다!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쥬르에게 달려들며 다크블레이드를 날렸다. "젠장, 깔보지 마라,워프!" 마법사와 전사의 싸움이 근접전으로 펼쳐지면 전사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는이유가 바로 마법 실패율 떄문이다. 마법사라고 그냥 주문만 외우면 마법이 발동하는게 아니다. 마법을 발동시키면 눈앞에 연성진이 나타나고, 그걸 공식에 맞춰 작동시켜야 한다. 당연히 긴박한 상황에서는 마법 발동 속도가 느려지고 ,때때로 실패한느 경우가 있다. 마법을 실패한 마법사의 말로는 보지않아도 알수 있는일. 그러나 썩어도 준치.경험이 풍부한 쥬르는 날벼락을 맞은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주문을 외워 워프를 성공시켰다. 쥬르는 워프로 10여 미터나 거리를 벌리고는 곧바로 미스트 마법으로 도망쳤다. "데드릭, 쫓아라!" "필요없어. 내게 맡겨라 ,아크.그걸 부탁해!" 샴바라가 엉뚱하게 아크에게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관중에게는 어떻게 보였을지 몰라도,아크와........아마도 샴바라 역시 그런 그림을 완벽하게 만들어 낼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샴바라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의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고민을 하고 궁리를 한게 아니라,그냥 번쩍하고 알아버렸다. 그것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아크가 샴바라에게 이상할정도로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는........이 말로 설명할수 없는 정체불명의 교감때문이었다. "화격!" 아크는 샴바라의 검을 쳐내며 화격을 날렸다. 격렬하게 불꽃을 일으키는 두 자루의 검! 아크의 카운터가 샴바라의 가슴을 강타했다. 동시에 화격의 부가효과인 밀어내기가 발동했다. 샴바라는 그 반탄력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추진력을 더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무려15미터나 날아간 샴바라가 단검을 뻗으며 뇌검을 펼쳤다. 한 줄기 번개가 어둠속을가르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샴바라가 안개롤 변한 쥬르의 몸을 관통하고 바닥에 착지했다. 쥬르의 웃기지도 않은 단말마가 터져나온건 그때였다. "크아아아악!이, 이럴수가.......내가..........내가...........이따위 놈들에게!.......!" 자기가 무슨 보스 몬스터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어쨌든 시퍼런 스파크에 휩싸인 쥬르가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크는 슬쩍 시선을 돌려 듀크를 바라보았다. "헉!" 그제야 간신히 감전 상태에서 벗어난 듀크는생명력이1%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게다가 믿었던 쥬르마저 눈앞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리자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듀크는 덤빌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데드릭에게 명령했다. "데드릭,쌓인게 꽤많지?" "으흐흐흐흐,약한 놈 괴롭힌느게 또 내 주특기지. 내겍 맡겨!암흑 돌진!" 데드릭은 바람처럼 날아가 듀크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암흑'상태에 빠진 듀크가 허우적거리며 고꾸라졌다. "이놈!이놈!감히 내가 존경하는주인님께 화살을 미친듯이 쏴 댔겠다? 게다가 데이모스까지 골로 보내? 너같은 놈은 이렇게 해주마!" 그렇게 선구자 듀크는 데드릭에게 밟혀 죽었다. 듀크를 처리한 데드릭은 곧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갖은 아양을 떨어댔다. "헤헤헤,주인.악당은 처치했어.나 예쁘지? 그지?" 정말이지 궁극의 얍삽을 보여주는 데드릭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샴바라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큭, 하하하,하하하하.역시 너와 싸우는건 즐거워!" 아크도 괜히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근래 들어 가장 힘든 전투였고, 또 가장 통쾌한 전투였다. 둘이 그렇게 히죽거리고 있을때, 갑자기 굉음이 울리며 복마전이 사라졌다. 그러나 관중석은 이상할정도로 조용했다. 마치 바늘 하나 떨어지는소리도 들릴만큼........... 매직 아이도, 관중들도 그저 멍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갑자기 매직아이가 화들짝 잠에서 깬 목소리로 고함을 터트렸다. -괴,굉장합니다!푸른검과 다크울프 선수!실력의 열세를 두 사람의 전략과 호흡으로 이겨내고 결국 상대를 쓰러트렸습니다!이것입니다!이게 악실리온 에서 열리는 페어전의 진정한 묘미입니다!아아,이런 멋진 경기를 본게 얼마 만일까요? 이로써186차 토너먼트페어전의 우승자가 결정됐습니다. 이번 시합으로 49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푸른검!그리고 데뷔 이후 충격적인 12연승을 올리는 기염을 토한 다크울프 선수입니다! "우와아아아!" 그제야 경기장이 통째로 진동하는 듯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폭죽이 어둑해지는 밤하늘을 수놓고,모든 관중들이 발을 구르며 푸른검과 다크울프를 연호했다. 쥬르와 듀크에게 돈을 걸었던 유저들도 아낌없이 환호성을 보내주었다. "진짜 격투 시합을 보는것보다 멋졌어!" "이런 시합이라면 비싼 관람료도 아깝지않아!" "최고다. 이제 너희 경기는무슨일이 있어도 본다!" "푸른검과 다크울프 ,이참에 아예 프로로 전향해라!" "그래, 딴거 하지말고 경기만 해라. 매일 보러올게!" 경기장이 들썩 거렸다. 그제야 아크는 1,000여명이 출전했던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ACT 5 광란의 밤 아크와 샴바라는 손을 들어환호성에 답례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꽤나 재미있었어" "다음 시합을 지금처럼 재미있지는 않겠지만" 샴바라가 약간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렇다, 이제 예정대로 페어전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다음 시합을 하게 된다면 상대는샴바라. 세가지 단서의 권리를 놓고 둘이 최후의 결전을 벌어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손발을 맞췄던 사람과 결전을 벌인다.썩 긱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샴바라는 금세 얼굴을 풀고 웃었다. "뭐,그건 그때 일이고, 일단은 즐거워하자고, 악실리온에서 선구자를이긴 사람은 결코 많지 않으니까. 우리는충분히 기뻐할 만한 자격이 있어" 그때,관리 NPC가 대기실로 달려왔다. "푸른검, 다크울프님. 지금 바로 VIP실로 와 주실수 있겠습니까?" "VIP실?" "네, 귀빈께서 두분을 꼭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아크와 샴바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NPC를 따라 VIP실로 향했다. 경기장이 한눈에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방에 들어가자 두툼한 뱃살을 가진 NPC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반겼다. 몸에 붙어 잇는 수많은 장신구가 딸랑거리며 흔들렸다. "오오,어서오시오!악실리온을 빛내준 위대한전사들이여.나는 악실리온의 운영자인 볼테르라고 하오.직접 보니 과연 경륜이넘쳐 보이는구먼!" "무슨 용건이오?" 샴바라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샴바라는 꽤나 있어 보이는 NPC를 대할때도 평소와 다를것이 없었다 볼테르는 두툼한 볼살을 움찔했지만 금세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허허허,훌륭한 전사는 그에 걸맞은 오만함을 가진법이지. 괜찮소,이해하오.그대들은 오만함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주었으니까" 아크는 한마디도 안했는데 도매금 취급이다 "그대들의 경기는 매우 감명 깊게 지켜봤소, 설마 평범한 이방인이 선구자를 물리칠 줄이야!선구자가 출전한다고 하면 너도나도 기권하는 한심한 전사들을 지겹도록 봐 왔소.하지만 그대들은 당당히 맞섰을 뿐만아니라 멋지게 물리쳤지.그처럼 멋진 경기는 나 역시 처음이었소.덕분에 악실리온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오" 볼테르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하려고 부른 거요?' 샴바라가 약간 짜증스런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볼테르는 기민한 눈알을 굴리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참에 전속 검투사가 돼 볼 생각이 없소?" "전속 검투사?" "그렇소.악실리온은 흥행을 위해 몇 명의 전속 검투사를 보유하고 있소,그리고 때때로 스페셜 매치를 벌이지.당연히 그런 전속 검투사의 시합은 평범한 시합으로는 상상도 못할 상금과 부상이 지급되오. 뿐만 아니라 매달 보수를 따로 지급하지.악실리온을 아는 전사라면 누구나 탐내는 직업이오.어떻소?" 불테르의 말이 끝나자 두두둥,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악실리온의 운영자 볼테르에게 '전속 검투사'를 제안받았습니다. 플레이어는 전문 직업 이외에 부직업을 선택할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부직업은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켰을때, 고위 NPC에게서 얻을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직업은 전문직업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부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전용 스킬을 추가로 배울수 있는 기회가 부여됩니다. 단, 부직업을 그만두거나,다른부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전용 스킬도 함께 사라지게 됩니다. <악실리온의 전속 검투사> 악실리온의 운영자에게 고용된 전속 검투사. 관객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사만이 선택할수 있는 부직업입니다. 전속 검투사가 되면 명성치에 많은 보너스를 받고, 검투사 전용 훈련 시설,상점등을 이용할수 있습니다. 또한 예정된 모든 시합의 상금과 부상을 미리 통보받을수 있으며,시드로 출전해 자동으로 16강부터 시작할수 있는 권리도 부여됩니다. 보수는 한달에 30골드.스페셜 매치에는 별도의 보너스가 지급됩니다. 단, 전속 검투사를 필수적으로 한달에 한 시합이상 출전해야합니다. 부직업 '전속 검투사'제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거절하겠소" 샴바라는 생각할것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볼테르는 실망스러운 기색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악실리온을 통해 제법 많은 숙련치와 돈을 벌었다. 볼테르가 제시한 조건도 꽤나 괜찮았다. 월급은 둘째 치고, 그 외의 권리들이 꽤나 그럴듯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있었다. 한달에 한번 이상 시합을 치러야 한다는 조항. 결국 셀리브리드 근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닌가? 뉴 월드는 넓고 할일은 많다. 한곳에 눌러앉기에 아직 아크는 너무 젊지(?)않은가. "저도 전속 검투사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결국 아크도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볼테르는 어깨를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아깝군. 그대들이라면 틀림없이 악실리온의 간판 검투사로 성장할수 있을텐데......하지만 싫다는데야 강요할수는 없지.알겠네.대신 그대들의 멋진 모습을 꼭 다시 한번 보고싶네.언젠가 기회가 닿는대로 다시한번 시합에 참가해주게.약속해 줄수 있겠는가?" "감사합니다. 비록 사정이 있어 제안을 거절했지만, 볼테르 님처럼 명망 있는 귀족께서 한낱 검사 불과한 저를 깊이 생각해 주신 마음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아크는 몸에 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대답했다. 그러자 볼테르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즐거운 표정을지었다. 샴바라가 싸가지 없는 태도를취하니 아크의 과잉 친절이 더욱 빛나 보였던 모양이다. "오오,그대는 훌륭한 실력에 성격마저 겸손하군. 그대처럼 지덕체를 고루갖춘 전사를 보는게 얼마 만인지!아,그러고보니 갑자기 생각나는군.본래 우승자에게는 약속된 보상만 주게 되어 있지만. 자네들 덕에 지난 며칠동안 악실리온은이례적이 대성황을 누렸네.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작은 기념품을 준비했네" 볼테르가 손뼉을 치자 관리자가 두툼한 가죽 팔찌가 들어있는 목함을 열었다. [검투사의 명예(유니크,귀속) 방어구 타입 : 가죽 팔찌 방어력 : 15 내구력 : 60/60 무게 : 10 사용 제한 : 레벨 100이상 악실리온에서 특정 조건을 달성한 검투사에게만 주어지는 명예의 증표. 악실리온에서 관중을 1만 명 이상 동원한 인기 검투사에게만 지급되는 특별보상입니다. 검투사의 팔찌는 장비품으로서도 훌륭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바로 명예입니다. 전사의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들은 당신에게 존경심을 품을 것입니다. 검투사의 명예 안쪽에는'아크'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완벽한 귀속을 뜻하는 것으로 양도,매매가 불가능합니다. 또한 어떤 종류의 마법이나 주문서를 사용해도 뺴앗을수 없습니다. <옵션 : 힘, 민첩 ,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5%>] '유,유니크 팔찌!이제 웬 떡이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보상이다. 사실 아크는 악실리온에서 그 고생을 하고도 고작 퀘스트 아이템 하나밖에 얻을수 없다는 것에 약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합 우승 상품도 아니고, 관객 동원 숫자로 이런 인센티브가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유니크 아이템! 과연 유니크 팔찌의 성능은 엄청났다. 팔찌로는 드물게 방어력이 15나 붙어 있었고,힘, 민첩,체력,주요 스탯을 10이나 올려준다. 그러나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스킬 숙련도+5%의 옵션! 정말 끔찍이도 느리게 올라가는 검투술 스킬을 5%더빠르게 성장시킬수 있단 것이다. 귀속 아이템이라 팔수 없는게 유일한 단점이지만, 검투술 스킬 성장 보너스가 있다면 어차피 팔수 있는 아이템도 아니다. 아크는 영혼의 숲에서 꾸준히 사냥해 팔찌를 양손에 모두 끼고 있었다. 그러나 목적했던 활력의 암렛은 구하지 못했다. 어젯밤에야 간신히 힘을 5 올려주는 완력의 암렛을 구했을 뿐이었다. 그 역시 꽤 쓸만한 아이템이었지만 전사의 명예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아크는 흐뭇한 눈길로 오른쪽 손목에서 번쩍거리는 전사의 명예를 바라보았다. '후후후,이로써 팔찌 2개와 견갑을 모두 쓸만한걸로 맞췄군'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부족함을느끼는게 사람이다. 막상 하나를 착용하니 양 손목에 모두 착용하고 싶어진다.그러나 목 함에 들어있던 나머지 팔찌 하나는 샴바라의 몫. '쳇, 귀속 아이템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꼬드겨 뺴앗아 볼텐데........' 아이템 앞에서는우정이고 뭐고, 눈이 뒤집히는아크였다. "오늘부터 그대들의 우편함으로 매주 악실리온에서 발행하는정보지를무료로 보내주지. 그리고 전속 검투사 제안은 유효하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나를 찾아오게.그대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리겠네!" 역시 NPC에게 예쁘게 보이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말 몇마디로유니크 아이템과 소식지를 무료로 정기구독하게 됐지 않은가? 게다가 약간 아깝다 싶었던 전속 검투사 제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수 있게 되었다. 아크는 '후후후,사회생활은 이렇게 하는거야' 라는 눈빛을 보내며 으스댔다. 그러자 샴바라는'그렇게 살고 싶으냐?'라는 눈빛으로 대응했다. "자, 그럼이만 가보게.우승 상금과 부상은 관리 본부에 가면 받을수 있을거네" 볼테르는 아크에게만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산만한 덩치에 안어울리게 속이 좁은 녀석이다. 어쨌든 관리 본부를 찾아가니 드디어 원하던 보상을 해주었다.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에서 우승했습니다. 현재 전적 : 12승 <토너먼스 우승자 보너스 : 명성+300,경험치+20,000>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의 상금.200골드를 받았습니다. -186차 토너먼트 페어전의 부상,마가로프의 비밀지도를 받았습니다. 악실리온 옆의 후미진골목. 후드를 눌러쓴 오동통한 체구의 상인 A,B,C가 이를 박박 갈아댔다. 어제 저녁, 쥬르와 듀크의 공갈탓에 그들은 정말 눈물나는 24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들은 가난한 상인은 아니었지만, 역시 1,500골드는 결코적은 돈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자금이 투자나 교역품으로 묶여있어 당장 움직일수 있는 현찰은 1,050골드밖에 되지 않았던 것.당장 24시간안에 450골드를 더 구해야 하니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구해야 해. 이건 확실한 투자다!' 그러나 갑자기 돈을 구한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출혈을 각오하고 임대 창고에 쌓아두었던 교역품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치웠다. 그래도 100골드가 모자라 투자금을 담보로'대출도 쇼핑처럼 쉽고 빠르게'해준다는 대출업체를 찾아가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야 했다.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간신히 500골드를 만들었는데........ "무슨 이런 개같은 경우가!" 상인 A가 주먹을 부르르 떨어대며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선구자 녀석들!있는 대로 허세를 떨어대며 가격을 잔뜩 올릴 때부터알아봤어야 하는데!빈 깡통이 요란하다더니!지옥에나 가 버려라, 망할 녀석들!" "돈을 만드느라 고리대금까지 손을 댄 우리는 대체......" "흑흑흑,우리는이제 망했어요" 정작 선구자들이 결승전에서 박살이 나 버린것이다. 선구자들은 시합 직후 종적을 감춰 버렸다. 하긴,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들이밀겠는가? 그 녀석들 덕분에 죽어라 고생해서 돈을 만들어온 그들은 완전히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어 버렸는데! 한참을 훌쩍거리던 상인C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훌쩍, 형님. 우리는 이제 어쩌죠?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빚까지 졌는데 마지막 보루였던 비밀지도까지 놈들의 손에 넘어가 버렸으니" "..........이제 다른 방법이 없어"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상인 A가 짐짓 무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상인 B,C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을 모았다. "형님,역시 그 방법을......." "용병을,용병을 고용할 생각이십니까?" "달리 방법이 없잔아. 우리도 명색이 상인이다. 이렇게 손해만 보고 물러날수는 없어. 가능하면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방법까진 쓰고 싶지 않았지만.........그래, 이건 결국 푸른검과 다크울프가 자초한 일이야" "하지만 놈들은 토너먼트우승자입니다. 굉장히 강할텐데요?" "그래봐야 둘이야 .일전에 정문 근처에서 봤던 동료들까지 포함해도 고작 열두어명. 게다가 그중에 10명 정도는 레벨이 그리 높아 보이지않았어" 그렇다,아크는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이미 다크울프와 아크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문 근처에서 아크와 샴바라의 대화를 들은뒤, 은밀히 뒤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형님!그런 것까지 파악하고 계셨군요!" 상인B,C가 감탄사를터트리자 A는 으쓱했다. "우후후후,내가 상인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건 그 런 통찰력이 있었기 떄문이지.어쨌든 그런 상대라면 레벨 120정도 유저를 20명 정도만 고용하면 확실하게 제압할수 있어. 아무리 푸른검과 다크울프라도 쪽수에는 당할수가 없을테니까" "그렇군요.하지만 우리 목적은 놈들을 죽이는겍 아니잔항요" "물론이지" 상인 A는 씨익 웃으며 주문서 몇 장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상인 B,C가 움찔하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혀,형님!그건 설마......!" "역시 너희들도 알아보는구나.그래,이게 바로 소문의 카오틱 주문서[엿보기]와 [강탈]이다. 가방안에 있는 물건을 훔쳐보고, 지정한 물건을 떨구게 할수 있는 무시무시한 아이템이지. 상인이라면 모두 이 주문서를 두려워하지만 나는 달라. 독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약이 되는법. 혹시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얼마전에 몇장 사놨지" "오오오오,대단한 선견지명입니다!" "우후후후,놀라겠지? 놀랄거야. 아직 카오틱 주문서는 상인 이외의 직업에는 제대로 정보조차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이니까. 설마 이런 주문서를 사용할줄은 꿈에도 모를걸. 얼마전 셀리브리드에서 서성이던 호비트 상인이 이 주문서를팔때,딱 감이 오더라고.필요해질것 같다는.시세보다 좀 비사기는 했지만........." 상인 A는 입맛을다시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푸른검과 다크울프라도 주문서를 막을수는 없어.죽어서 뺏기느니,그냥 아이템을 토해내는 편이 이득이라는 것쯤은 알고있겠지.물론 끝까지 버티면 죽일수밖에 없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야. 분명 주문서로 협박하면 아이템을 토해낼거야" "역시 형님!" "하지만 120레벨 유저를 20명이나 고용하려면 돈이 꽤 들텐데요?" "그건 걱정할 필요없어" 상인 A는입끝을 치며올리며 대답했다. "셀리브리드에는 실업자들이 넘쳐나거든" 안타깝지만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었다. 셀리브리드에는 레벨 100이 넘는 유저도 발에 채일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레벨이 높다고 모두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상인 이외의 직업을 레벨이 높아질수록 가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생명력이 높아지닌 회복도 밀빵이 아닌 고급 음식으로 해야 했고, 걸치고 있는장비도 고급이라 수리비가 장난이 아니다. 재테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전사들은걸치고 있는 장비만 그럴싸하지 거지나 다름없는것이다. 당연히 포션을 마셔대는 전사라면 생활고는 더욱 심해진다. 전사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이유는그것만이 아니다. 셀리브리드에는 악실리온을 비롯해 각종 도박장도 성업중이다. 그리고 단순한전사들은 그런 유혹에 약한 법. 사냥으로 꼬깃꼬깃 모은 돈을 술집에서 흥청망청 쓰거나,부풀려 보련느 욕심으로 도박장을 찾아 장비아이템까지 저당잡힌 전사도 적지 않다. 덕분에 레벨이 100이 넘고도 장비를 찾아올 돈이 없어서 전투에 못 나가는 전사도 있을 정도였다. 아마 갱생단 역시 로코가 없었다면 같은 신세가 됐으리라. 레벨이 높다고 모두 아크처럼 돈을 잘 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인 것이다. 철저한 돈 관리, 1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1쿠퍼라도 기필코 챙기고,10킬로미터를 뛰어가 1쿠퍼라도 깎아서 물건을 사는 투철한 경제관념을 가진 유저는그리 많지 않다. 어쨌든 그렇게 거지가 된 전사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일자리다. 복불복 같은 사냥보다 일이 끝나면 확실하게 입금될수 있는 일자리! "하루 이틀에 1인당 50골드를 준다고 하면 120레벨 전사들이 줄을설걸" "하지만 사람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최후의 일격을 날릴 전사는 제일 레벨이 높은 2~3명으로 한정 지으면 돼. 그리고 그들이 카오틱이 되어 감옥에 들어가면 우리가 보석금을 대신 내주고, 패널티만큼 추가 보상금까지 지급해 준다고 하면거절하지 않을거야.그래도 선구자에게 약속했던 1,500골드까진 안들어가" "오오오,완벽한 계획입니다!" "그렇지? 후후후,나도 가끔 내 머리가 두려워" 상인 A는 기민하게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자, 시간이 없어. 놈들이 단서를 모두 찾았으니 언제 보물을 찾아 나설지 몰라. 그 전에 믿을 만한 용병을 고용하고 필요한 계약서를 작성하려면 시간이 없어" "알겠습니다!" 상인 B,C가 짧은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제 어쩌지?" 그 무렵, 아크와 샴바라는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봉착했다. 페어전에서 우승했으니 남은 것은 아크와 샴바라의 결전.그러나 그 결전을 하기전에 먼저 나머지 단서를 모아야 한다. 그런데 정작 나머지 단서를 맡겨 놓은 시드는 아직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것이다. 혹시나 싶어 마법학회를 찾아가니 편지 한통만 달랑 와 있었다. 아크님,이번 장삿길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아요. 장사는 잘되고 있으니까 걱정하실 필요없어요. 물론 시드가 보내온 편지였다. 편지 내용만으로는 대체 왜 늦어지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아이템을 맡아 놓고 있다는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인데?" 그러나 아크로서는 당장 시드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가난한 상인인 시드는 아직 전이우편함도 없었던 것. 물론 일반 우편을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 우편은 사람이 아닌 마을을 지정해서 보내야한다. 그러나 아크는 지금 시드가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수천 골드나 짊어지고 떠난 시드가 예정보다 늦어지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크는곧 고개를 저었다. '하긴 5,500골드나 되는 물건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긴 할거야. 아이템 숫자가 상당하니까. 그래, 나나 생갱단 형들의 재산을 몽땅 털어 넣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값을 받고 파는게 중요해' "어쩌지,샴바라? 시드님이 한동안 돌아오지 못할것 같다는데?" 아크는 할수 없이 샴바라에게 사실 그대로 설명했다. 샴바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이 안된다면 할수 없지. 당장 아이템을 찾아봐야 소용도 업고. 일단 우리의 시합은 시드가 올때까지 미루는수밖에" "역시 그래야겠지?" 아크는 비밀지도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사실 당장 시드가 돌아온다 해도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는 진행시킬수가 없었다. 비밀 지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격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마가로프의 비밀 지도(퀘스트 시작 아이템) 오래된 낡은양피지 위에 기하학적인 기호와 알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습니다. 대략적인 지형이 그러져 있지만 지도만 봐서는 그 위치를 짐작하기 힘듭니다. 상지적인 기호와 글자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단서가 필요할것 같습니다. <퀘스트 진행 최소 조건 : 1개 이상의 추가단서,레벨 150>] '샤넨이 이번 임무가 어렵다고 한건 이런뜻이었구나' 아크는 샤넨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퀘스트를줄때 지금 아크가 해결하기는쉽지않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그게 일종의 힌트였다. 여기는 가상현실 게임속,당연히 NPC가 의뢰하는 부탁에도 레벨 제한이라는게 존재한다. 그리고 퀘스트 진행 최소 레벨이 150이라면 넉넉잡고 160~180대는 되어야 안심하고 시작할수 있는 퀘스트라는뜻읻. 그러나 아크의 현재 레벨은 127. 악실리온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지만 레벨은 영혼의 숲에서 고작 4밖에 올리지 못했다. 결국 앞으로 레벨을 23이나올려야 퀘스트를 진행할수 있다는 뜻. 샴바라 역시 사정을 아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샴바라 ,어떻게 할래?" "글쎼........" "여기서 시드님이 올떄까지 기다리거나,아니면 레벨을 23이나 올려야하니 아예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쓸만한 사냥터에 갓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는 방법도 있어" "그 문제는 좀 더 생각해 보자. 나는 아직 이 근처에서 해야할일이 있거든. 그게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그때, 누군가가 둘의 등을 팡팡 두드려 댔다. "어이,방금 전에 격투기 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들이 왜그렇게 인상이 꿀꿀해?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날은 그냥 마시는거야!" 아크와 샴바라가 움찔하며 돌아보았다. 변신을 풀고, 샴바라 역시 복면과 망토를 바꿨는데 밖에서 누가 알아보자 경계심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금세 경계를 풀었다. "정의남 아저씨? 어떻게?" "크하하하,네가 결승전을 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 "오빠, 저도 왔어요" 정의남의 옆에서 로코가 혀를 날름거리며 끼어들었다. 둘만이 아니엇다. 사회 정화 작업을 하던 갱생단도 모두 모여 있었다. 경기장에서 단체 응원을 했는지 하나같이 데드릭이 쓰고 있던 고깔모자와 메가폰을 들고 있었다. "아크, 경기 봤다" "꽤 볼만하던데? 샴바라도 그렇고, 과연 우리동생이다" "우헤헤헤,덕분에 너한테 돈을 걸어서 제법벌었다" "간만에 피가 끓던걸.우리도 당장이라도 시합에 나가도 싶어질 정도야" 불끈이가 가슴 근육을 꿈틀거리며 뜨거운 숨을 불어냈다. 그러자 짝퉁이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해.우리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으음,알고있어" "네? 더 중요한 일이요? 큰형님이라는 도적 찾는거요?" "큰형님이라는 녀석은 이미찾았어" 짝퉁이 미묘한 미소를지으며 아크를바라보았다. "실은 그 일을 해결하다가 조금 일이 커져 버려서 말이야. 뭐,일단 그얘기는 나중에 하자. 어차피 너도 알게 될테니까.후후후,아마 이 형님들을 다시 보게 될거다" "지금은 그것보다 술이다!우승했으니 당연히 술 한잔해야지!가자, 아크!" 불끈이가 화색이 도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무나 리얼한 뉴 월드는 게임속에서 술을 마셔도 취기를 느낀다. 물론 진짜 술이 아니니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말끔하게 깨지만, 일단 마실때는 진짜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뉴 월드의 주점은 언제나 성황이었다. 마실때는 기분좋게 취기가 돌지만 숙취는 없다. 굳이 술을 마시면서'컨디션'같은 드링크를마실필요도 없는것. 게다가 주점 분위기는고풍스럽지.술맛 좋지,때때로 예쁜 음유시인이 노래 불러주지.술꾼에게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있겠는가? 덕분에 어던 회사는 아예 회식을 뉴 월드 주점에서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갱생단 역시 뉴 월드에서 한번 마셔본 뒤로 술이라면 사족을 못썼다. 그러나 아크는술을 그다지 좋아하지않았다. 아니 대체 왜 그런것을 비싼돈주고 마셔야 하는지 이해할수없었다. "아니,저는술은좀............." 아크가 슬쩍 빼며 술자리를 거절하려던 참이다. 갱생단이 일제히 움찔하더니 와락 아크를 둘러싸버렸다. "아크 ,설마우리와 술을 마시기싫다는 말을 하려는건 아니겠지?" "야,너 그렇게 안봣는데 성격 참 까칠하다" "확실하게 말해 .술을 마실테냐,인연을끊을테냐?" "네?네? 그게 무슨.........?" 아크는 갱생단의 급변한 태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갱생단은 진지했다. 정말 거절이라도 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 "마,마실게요.마시면 되잔아요" "됐어!아크,역시 너는 사나이다!" 갱생단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로코를향해 비굴한 웃음을지었다. "헤헤헤,로코야.아크가 마시겠대.축하 파티니까. 이런 날은 마셔도 되잖아,응?" "어휴,정말......알았어요.대신 오늘 만이에요.앞으로는 국물도 없는줄 알아요" "우와,됐다!오늘은 마셔도된다!" 갱생단은 덩실덩실춤을추며 아크와 샴바라를 들쳐매고 주점으로 달려갔다. 그도 그럴것이 갱생단은 그렇게 좋아하는 술을 며칠째 구경도 못하고있었다. 당연히 독재자 로코가 지갑을 꽉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갱생단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 아크의 우승 기념 파티라는 명목이라면로코도 지갑을 열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역시 짐작이 맞았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로코는 한숨을 푹 불어내며 지갑을살펴보았다. 그러나아크를 위해서란다. 없던 돈도 만들어 내야 하지 않겠는가. "챔피언을 위해!" 정의남과 갱생단이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술잔을 들어올렸다. 주점에 들어온지 한참이 됐는데도 술을 마실때마다 그 소리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을 마실때마다 아크를연발하면 로코가 중간에그만 마시라고는 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쳇, 설마 네가 먼저 챔피언이 될줄이야" "뭐,결승전밖에 못봤지만 대단하더라.관중들도 장난이 아니던걸" "그래, 마지막 경기에서 너한테 돈을 걸어 제법 한몫 챙겼다. 로코가 도박이라면 질색을 하더니 네 경기라니까 상한선까지 몽땅 걸어 버리던데?" "오늘은 우리가 쏘는 거니까 마음껏 마셔!" "어이, 여기 맥주 30잔 추가!돼지 통구이는언제 나오는거야?" 갱생단은 기회다 싶었는지 아예술집을 통째로 들어 마셔 버릴 기세였다. 역시 갱생단은 과거에 모두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라 노는 수준이 달랐다. 술집이 떠나갈듯 고함을 질러대고, 아예 탁자 위에 올라가 막춤을 추는사람도 있었다.분위기만으로도 얼큰한 취기를 느낄정도였다. 그렇게 어느정도 술이 들어가자 슬슬 술버릇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평소 점잖던 짝퉁도 술이 들어가자 180도로 바뀌었다. "어이,아크........딸꾹.너 말이야........우리가 좋아하는 거 알지? 우헤헤헤,나도 네가 정말 마음에든다. 그런데 말이야......그러면 안돼.........뭐냐........로코 말이야.우욱!어,취한다.어디까지 말했지? 아,그러니까........내가 너를 꽤 좋아하거든?" 짝퉁은 아크에게 들러붙어 같은얘기를 반복하며 주사를 부려댔다. 술집 아르바이트 경력도 꽤 있는 아크는적당히 상대해 주었다. 샴바라에게 눌어붙은 것은 불끈이 였다. 불끈이와 샴바라는탁자위에 1,000CC맥주잔을 늘어놓고 노려보았다. "자,이번에도 원샷이다" 불끈이가 단숨에맥주잔을 비우자 샴바라도 묵묵히 맥주잔을 비웠다. 승부욕이 강한 샴바라는 불끈이의 도발에 한치도 물러서지않고 단숨에 5,000CC나 비워버렸다. "후후후,너, 마음에 드는데? 어디 끝까지 가 보자고" "마셔!마셔!마셔!" 갱생단은 둘을 둘러싸고 탁자를 두드리며 응원했다. 덕분에 갱생단의 인솔을 맡고 있는 로코의 입장이 말이 아니었다. "하아,시끄럽죠? 죄송해요" "허허허,괜찮네.주점이원래 마시고 떠드는 곳이 아닌가?" 주점 주인은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비록 NPC라도 꽤나 마음이 쓰이는듯 로코는 쟁반을 받아들었다 "그건 이리주세요.제가가져갈게요" 문제가 생긴건 그때였다. 쟁반을 들어 나르자,유저들의 눈에는로코도 NPC로 보였던 모양이다. 들어온지 얼만 안되는 사내들이 히죽거리며 수작을걸어왔다. "어이,아가씨.예쁜데?" "팁 줄테니까 여기 앉아서 술이나 좀 따르지 그래?" "뭐예요?" 로코가 바짝 눈썹을 치켜올리자 사내들이 키득거렸다. "호오, 화난 모습이 더 매력적인걸?" "저렇게 가시 돋친 여자가 밤에는 더 정열적이지" "후후후,부장님이 뭐 좀 아는군요" 술집에 가면 꼭 이런 인간들이 하나씩은 있다. 쓸데없이 여자에게 집적대는 인간들. 뉴 월드도 여러 군상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다르지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한참 신 나게 웃고 떠들던 갱생단의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은 그때였다. "어이,너.지금 뭐라고 씨불었냐?" 불끈이가 술잔을 탁 내려놓고 일어났다. 그만이 아니다.정의남과 해결사, 얍삽이,심지어 탁자에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있던 짝퉁까지 벌떡 일어나 그들을 노려보았다. 새로운 삶을 살고있지만 한떄 어둠의 자식들이었던 갱생단이다. 비록 게임속 이라도 그들이 일제히 살기를 띠자 박력이 장난이 아니다. 사내들이 사색이 도니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뭐,뭐야.당신은? 깡패야?" "한 마디만 더 씨불여라.인천앞바다에서 시멘트하고 같이 스쿠버다이빙 하고싶으면" "뭐 하는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누군줄알아?" "뭐 하는 놈인지 지금 결정났네. 물고기 밥으로" 불끈이가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리자 사내들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그러나 여긴느게임 속이다. 셀리브리드에서 술을 마실 정도면 레벨도 꽤 높은유저들. 게다가 사내들의 숫자도 10여명이나 되었다. 갱생단의 분위기가 어쨌든 한번 해볼만한 상황인것이다.분위기가 험악해지는데도 술집은 주인은 그저 괴로운 표정으로 바라볼뿐이었다. 웬만하면 나서서 중재하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것. 그러나 곧 의외의 장소에서 구원의 손길이 뻗쳤다. "오빠들,적당히 좀 해욧!" 로코가 탁자를 쾅 두드리자 갱생단은 순식간에 사자에서 토끼가 되어버렸다. "뭐에요?나잇살 먹은 어른들이주책없이!술집에서 제일 꼴불견이 쌈박질하는 사람들인거 몰라요?주인아저씨도 불안해 하고 있잖아요" "어? 우,우리는 그냥......." "됐어요.계속 이럴거면 그냥 일어나요" 로코가 팩 고갤 돌려버리자 정의남은 헛기침을 했다. "흠흠,그래 ,로코말이 맞다. 뭐,주점에서는 그럴수도 있지. 그냥 술이나마시자" 결국 갱생단은 잔뜩 풀죽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있던 사내들이 들으라는듯이 지껄여 댔다. "쳇, 뭐야? 고작 계집애 하나에 벌벌 떠는 꼴이라니" "뭐,그렇죠.저렇게 생긴놈들이 의외로 알고보면별거없어요" "하여간 요즘은 그게 문제야.개뿔도 없는 것들이너무 설쳐 댄단 말이지. 아마 저놈들도 실제론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이나 하는 놈들일 거야. 망할놈들,아마 저런놈들은 평생가야 부모님의 고생을 이해하지못하겠지" "천박하게 노는꼴들을 보니 대강 짐작이 갑니다" "저놈들은 틀림없이 대학 문턱도 못 밟아 봤을걸" "삥이나 뜯는 양아치일지도 모르죠" 사내들이 한마디한마디 할때마다 갱생단의 이마에 힘줄이 불끈거렸다. 그들은 정확히 갱생단의 아픈 부분을 찔러대고있는 것이다. 로코 역시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로코는 어금니를 지그시 꺠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오빠들,신경쓰지마요" "꺄악,뭐,뭐하는거에요?" 그때,갑자기 주점 한쪽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동시에 갱생단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몇몇 여성 유저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사내 일행 가운데 한 녀석이 그들에게 치근덕대다가 은근슬쩍 몸을 더듬은 것이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한 짝퉁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아가씨가 위기에 처했다!" "대한민국 사내라면 그런걸 모른척하면 안되지!" 불끈이도 벌떡 일어나 행복한 얼굴로소리쳤다. 그떄 로코가 탁자를 쾅치며 벌떡 일어났다. 짝퉁과 불끈이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로코는 잠시 그들을 노려보다가 버럭 소리쳤다. "저 아저씨들,떄려줘요!" 그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갱생단은 미친듯이 환호성을 지르며 사내들에게 달려들었다. 사실 아크 역시 아까부터 그들의 말이 거슬리던 참이다. 갱생단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에 그들의 무책임한 말을 더욱 용서할수 없었다. "다크 블레이드!" 잔뜩 벼르고 있던 아크는 단숨에 탁자를 뛰어넘으며 필살기를 날려버렸다. 부장이라고 불렸던 사내가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올리려는 찰나, 정의남이 와락 멱살을 쥐고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 확실히 사내들은 레벨이 좀 되는 유저였다. 그러나 전투가 아닌,술집의 패싸움이 돼 버리자 갱생단의 상대가 되지않았다.더구나 갑자기 기습을 받아 제대로 검도 뽑아들지 못한 상태.불과 몇 분도 안되어 시퍼렇게 멍이 든채 바닥에 늘어졌다. 그러자 부장이라는 녀석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이,이자식들!여기는 셀리브리드야!우리를 죽이면 네놈들은 무사할것 같으냐?" 그게 문제다 .회색이 된 아이딘 금세 회복되지만,카오틱이 돼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때였다.얌전히 앉아 있던 샴바라가 몸을 일으키더니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신의 대리자..........." 사신의 대리자!행동을 지정해 사신의 허락을 받으면 악행을 쌓거나, 설사 유저를 죽여도 카오틱이 도지않는 세인트 어쌔신의 특수스킬!샴바라는 스킬을 외치고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부장을 바라보며 이를드러내다. "사신도 너희들이 마음에 들지않았다고 하는군.아크,형님들에게 놈들을 둘러싸라고 말해줘.남들이 보면 곤란하거든" 아크와 갱생단은 씨익 웃으며 얼른 등을 돌리고 벽을 만들어주었다.사신의 대리자는 다른 유저나NPC가 보고있으면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곧 등뒤에서 끔찍한 소리가 울리며 사내들은 시체가되어버렸다. 그렇게 샴바라가 처리해 버리자 갱생단은 사내들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을 퍼마셨다. 그러자 잠시후,술집 주인이 시키지도 않은 안주를 가지고 다가왔다. "저쪽의 숙녀분들이 사시는겁니다" "어?" 갱생단이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자 여성 유저들이 살짝 윙크를 보냈다. "멋있었어요.무서운 아저씨들" "짝투아" 불끈이가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나........뉴 월드가 좋아 미치겠다" 로코도 꽤나 기분이 풀렸는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시끄러운 아저씨들도없어졌으니 이 상태로,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거에요" "오오오오,밤새도록!" "예,옛 써!로코만세!" 갱생단은 괴성을 질러대며 미친듯이 술을주문하기 시작했다. 아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로코의 변화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때 다시 자리에 앉던 로코가 휘청거렸다. 아크가 재빨리 몸을 날려 부축하자 로코가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헤헤헤,아크 오빠.......오늘 정말 멋있었어요" 술 냄새가 확 풍겨 온다. "로코, 너 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한잔,아까 그 아저씨들 때문에 화가 나서 딱 한잔 마셨어요오오오" 로코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대답하며 헤벌쭉 웃었다. "오빠,오빠,있죠.내 말좀 들어봐요.전에 내가 얘기했던 같이 일한다는 남자애 있죠? 그 녀석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어제 또 치근덕대는 거에요.저 그런 사람 정말 싫어하거든요.그래서 뺨을 한대 갈려줬죠.헤헤헤,저 잘했죠?매일매일 오빠가 바래다주면 그런일도 없을텐데.......매일매일 오빠도 볼수있고...........로코는 슬퍼요" 옆에서 샴바라가 동정 어린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살벌한 형님들을 한 마디에 잠재우는 데다,화려한 주사까지.......아크,네 앞날도 대강 알만하다" "젠장, 시끌벅적하군" 주점에서 왁자지껄한 술파티가 한창이던 그때. 아직 엑스트라 신세를 벗어나지 못해 상인A,B,C로 불리는 이들은 찬바람이 몰아치는 골목 한 귀퉁이에서 로브를 뒤집어쓴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현실세계처럼 뉴 월드도 가을로 접어들어 밤낮으로 꽤나 쌀쌀했던것. "우우,형님.추워요" 상인 C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조금만 참아.언제놈들이 다른곳으로 갈지 모르잖아.한시도 눈을 뗴면 안돼" "하,하지만........감기 기운이.......콜록!" "젠장,놈들은 지금쯤 신나게 퍼마시고 있겠죠?' 상인B가 분한듯 주점을 노려보았다. "흑, 우리들은 용병을 고용하느라 밀빵을 사는게 고작인데................." 상인 C는 눈물까리 글썽이며 돌처럼 단단한 밀빵을 씹어댔다. "우,울지마.울면 지는거야!" 상인A도 감정이 북받치는지 울컥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리더답게 결연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비록 당장은 춥고 배고프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될거다. 저런 작은 주점 따위는 퀘스트가 끝나면 통째로 전세내서 며칠을 놀수도 있어.그때 가서 저놈들을 마음껏 비웃어 주는거다. 알았지? 그러니 지금은 참는거다.힘들어도 참는거야" "훌쩍,네 ,형님.하지만 너무 추워요" "크흐흑,아우들아.미안하다" "아닙니다. 형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요.저놈들이 나쁜거에요!" "아우들아!" "형님!" 얼음장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셀리브리드의 어두운 골목,상인 A,B,C는 청춘 드라마를찍어대고 있었다.그리고 약간 떨어진 다른 골목, 또 다른 몇쌍의 음습한 눈동자가 주점을 향해있었다. "놈들을 발견했다. 상부에 보고하도록"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사내의 복면에는 붉은 손바닥 문장이 찍혀있었다. ACT 6 팬입니다! "아란, 정말 이러기야?" 안델이 울컥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아란은 답답한 한숨을 불어냈다.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냐?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야" "그럴때가 아니라니? 내가 카이로트에서 무슨짓을 다했는지 모르겠어? 개 취급을 받았어.알아? 개 말이야,개!아크따위가 나를 개 취급했다고!그리고 말하더군. 싸움에 진 개는 한번 더 밟아 줘야한다고.바로 내앞에서 실실거리며 그렇게 지껄였단 말이야!" ........두 번 정도 더 들으면 백 번째다. 안델은 말하면 말할수록 열이 뻗치는지 길길이 날뛰며 침을 튀겨댔다. "너는 내가 그런짓을 당했는데 아무렇지도 않냐? 아니, 그 이전에 그 자식에게 복수하겠다고 했던 말을 벌써 잊은거냐?" 아란은 안델이 무슨 짓을 당했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또한 아크에게 갚아줄 빚이 있는건 안델이지 아란이 아니었다.굳이 따지자면 아크에게 복수를 운운한 이유가 전혀 없는것이다. 눈에 꽤나 거슬린다. 걸림돌이 될것 같다. 아직 아크 떄문에 결정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없으니 현재로써는 고작 그뿐인 감정이다.그래,뭐가능하면 발방주고싶다.아크는 이유없이 미운놈이니까.그러나 다른 중요한 일을 미루면서까지 쫓아다닐 동기가 부족했다. 그때 마침 이를 갈고있는 안델이 옆에 있었다. 적당히 구슬려 거슬리는 녀석을 처리하도록 해야겠다. 단지 그뿐이었다.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아크보다 네가 더 거슬려' 아란이 짜증스런 눈길로 안델을 흘겨보았다. 현재 나가란은 그야말로 내일의 안녕을 장담할수 없는 격전지였다. 이번에 나가란에서 공개된 성은12개.이 성의 오아좌를 노리고 슈덴베르트,브리스타니아,시니어스에서 몰려든 유저는 수만명,길드 숫자만도 수백개에 달했다. 당연히 전쟁을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무턱대고 왕좌를 차지하면 기회를 노리던 길드들에게 집중 공격을 받게된다' 실제로 초반에 멋도 모르고 왕좌를 차지했던 한 길드는 연합공격을 받고 30분만에 전원이 몰살되었다. 그리고 공적이 되어 지금까지 나가란에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못하고 있었다. 그 떄문에 아직 대부분의 길드는 서로 눈치를 살피는 상황이다 .은밀한 뒷거래로 아군을 늘리기도하고, 때로는 평야에서 길드전을 펼치며 상대의 힘을 가늠해 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암투와 배신!막대한 이득이 걸려 있는 만큼 그 수위는 현실이상으로 살벌했다. 그러나 그런 전초전도 슬슬 끝나가고 있다. 다른 길드를힘으로 굴복시키거나, 회유시켜 세력을 키워온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성을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그리고 오랜시간 준비해 온만큼 성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계획을 완벽하게 짜 놨으리라. 물론 아란이 이끄는 '여명의 칼날'도 그런 주요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나가란은 바야흐로 결전의 시기로 돌입한 것이다! '필요한 준비는 모두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타이밍이야.언제,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 된다' 아란이 노리는 곳은 남부에 위치한 시르바나 성. '시르바나는 남부 4개 성가운데 가장 입지 조건이 좋다. 삼국과의 이동거리가 짧고 ,무엇보다 해변과 인접해있어 무역의 중개지로 발전시키기에 좋아. 나가란이 안정되면 틀림없이 뉴 월드에는 무역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거다. 지금 시르바나를차지하고 잘 발전시켜 놓는다면 머지않아 '여명의 칼날'은 최강의 길드가 될수 있어!' 아란은 이를위한 준비를 척척 해나갔다. 그리고 슬슬 시르바나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진군을 하려할때,거지꼴을 한 안델이 찾아온것이다. '생각없는 놈 같으니.......!' 안델은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란이 짧은 시간에 나가란에서 세력을 키울수 있었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아란은 머리가 좋다.다른 사람보다 잘 돌아가는 머리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적당히 다른세력간의 알력을 조정하며 회유 ,혹은 무력으로 물리쳐 온것이다. 대성장의 은밀한 지원도 도움이 되었다. 대성당의 주교는 아란이 시르바나를 차지하면 일정 지분을 받는 조건으로 각종편의를 봐주었다. '여명의 칼날'에 군마 20필을 지원해주고,용병이라는 명목으로 성당 기사를 파견해주기도 했다.또한 막대한 양의 군수품을 신용 거래할수 있도록 보증을 서주기도 했다. 그러나 세력확장에 가장 크게 작용한것은 다름아닌 평판이었다. 홀리나이트로서 아란이 일궈놓은 인지도! 동화책읭 주인고처럼 불의를 싫어하고 오직 정의로운 길만을 추구해 왔다는 이미지!전국에서 그런 이미지는 의외로 중요하다. 저 유명한 삼국지의 찌질이,유비도 그거 하나로 먹고살았지않은가? 뉴 월드에서도 마찬가지.그렇게 철저하게 관리해온 아란의 이미지는 다른길드를 회유할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몇몇 길드는 일부러 찾아와 동맹을 요청하기도 했다. '내게 가장 중요한건 그런 정의로운 이미지다' 만약 그런 아란이 암살자까지 동원해 아크를 매장시키려던 사실이 알려진다면? .......자칫 심각한 문제로 번질것이다. 그게 아란이 안델을 무작정 떼어놓지 못하는 이유다. '안델 녀석은 지금 독이 바짝 오른 상태다. 매정하게 모른척하면 무슨 말을 지껄이고 돌아다닐지 몰라.그렇다고 안델의 요구대로 여명의 칼날을 동원해서 아크를 찾아나설수도없고.......젠장,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나?그렇게 알아듣게 설명했는데 아직도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는 건가? 역시 이녀석과 일을 도모하는게 아니었어' 결국 아란은 일단 군수품 조달이라는 명목으로 안델을 끌곡 나가란 밖으로 향했다. 자리를 비운사이에 안델이 무슨 말을 떠들고 다닐지 모르기 때문.군수품 조달에는 시간이 걸리니 그 사이 어떻게든 안델을 구슬려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몇 번을 설득해도 안델은 요지부동,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 아크를 때려잡아야 한다고 날뛰었다. "아크 녀석은 이미 레벨이 100이 넘었어.게다가 카이로트를 나오기전에 알아보니 제법 돈도 많이 챙긴것 같더라고.그걸 그냥 두고만 보자는 말이야?" "말했잖아.다크브라더는 아크와 완전한 적대 관계가 돼버렸어.굳이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놈들이아크를 가만 놔두지 않을거야" "전혀 이해를 못하는구나.설사 다크브라더가 아크를 수십번 죽인다고 해도,그래서 아크가 게임을 접는다고 해도 그건 우리의 복수가아니야.나는 내손으로 놈을 박살내야 직성이 풀린다고!" "물론 아크는 직접 처리할거다.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있어" "중요한일? 하!대체 그보다 중요한 일이뭔데?고작 게임에서 성하나 차지하는거?도대체 이해를 못하겠군.그래봐야 이건 게임일 뿐이야.네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게임에 목을 매는거야?그보다는 열받는 놈을밟는게 더 중요하잖아?안그래?" "..............." 절로 한숨이 나온다. 초딩도 아니고,이정도 얘기했으면 알아듣는 척이라도 해야하지않는가?차라리 오우거를 앉혀 놓고 설득하는게 더 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란이 입을 다물어 버리자 안델도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삐그덕,삐그덕,그렇게 둘을 태운 마차가 나가란의 경계에 도착했을 때였다. "엇?저,저녀석........!" 잔뜩 볼을 부풀리고 있던 안델이 움찔하며 떠듬거렸다. 나가란 경계 부근,마차를 끄는 한 호비트 상인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카이로트에서 아크와 함께 있던 상인이다!" "휴..........!" 시드는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 시간째 쉬지도 않고 가파른 산길을 이동했다. 마차를 이용하고 있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후후후후" 오히려 짐칸에 실린 묵직한 느낌이 전해질 때마다 실실 웃음이 나왔다. "처음 이곳에 왓을때는 정말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다시 나가란 경계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다. 지난 일주일, 길다면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이다. 그러나 시드는 상인을 선택한 이후, 가장 보람찬 시간이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새삼스럽지만 전사와 상인은 다르다. 미개척ㄱ 지역을 발견하고, 던전의 깊은 곳에서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전설의 아이템을 찾아낸다.그게 모든 전사가 꿈꾸는 판타지다.그러나 상인의 판타지는 새로운 장사 루트를 발견해 막대한 이득을 내는것!일주일 전의 시든느 그런 부푼 꿈을 안고 나가란을 찾아왔었다. '전쟁은 돈이 된다!' 만고불변의 법칙이었다. 길드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지는 나가란! 카오르트에서 구입한 각종 주문서를 팔기에 가장 좋은장소인것이다.그러나 막상 나가란에 도착한 시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이었다. 나가란은 전쟁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즉, 유저를 죽여도 카오틱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어떤 패널티도 없이 유저를 죽일수 있다. 거기에[강탈]따위의 주문서까지 사용할수 있다면 자칫 나가란을 개방한 삼국 국왕의 의도와 달리 단순한 무법지대가 될 우려가 있었다 .아니,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 때문에 나가란 경계에는 이를 방지하기 위한 푯발이 서 있었다. 위대하신 슈덴베르크, 브리스타니아,시니어스 국왕의 명에 따라 나가란 지역내에서 모든 종류의 주문서 사용을 금한다. 만약 주문서를 사용할 경우,삼국 왕가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할 것이다. 시드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7개의 가방에 들어찬 아이템은 각종 주문서가 90%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 님에게 50%이상 이윤을 남기겠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왔는데........' 나가란에서 주문서를 사용할수 없다면 웃돈을 커녕제값의 반도 못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팔리기나 할지 모르겠다. '만약 정가의 60~70%가격에 팔고 돌아가면 아크님이 날 죽일지도 몰라!' 아크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지는 겁날 만큼 잘 알고 있는 시드.5,500골드나 투자한장사가 본전치기나 손해로 끝난다면 정말 시드를 수프로 만들어 마셔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아크님이라면 이런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전사이면서 상인인 시드보다 더 돈을 잘 버는 아크. 암살자들에게 몰려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도 잡템을 팔아치우며 사냥했던 집념의 사나이.그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돈 벌 궁리를 햇으리라. 시드는 그런 아크의 돈을 향한 집념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유일한 유저였다. '아크 님이라면 절대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을거야!오히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벌었겠지. 그래,그거야!' 시드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에피소드 II : 이방인의 개척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뉴 월드에 일어난 변화는 나가란이 공개도니 것만이 아니었다.지금까지 자격을 획득한 소수의 유저만이 왕래할수 있었던 국경이 모두에게 개방된것! 그러나 가장 좋은 이동로인 나가란은 전쟁 지역이다. 때문에 유저들은 나가란이 안정될때까지 험난한 산길을 통해 왕래 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치안이 형편없어진다는점이다. 시드는 곧바로 짐을 싸들고 국경 마을로 향했다. 주 고객은 상인들의 정보를 조사하는 수상해 보이는 전사들이었다. 이들에게 카오틱 주문서를 판매하자정가의 100%가격에도 날개 돋친듯이 팔려나갔다. 이유는 뻔하다. 치안 부재의 상황을 틈타 국경을 넘으려는 상인들을 털려는 속셈이리라! '후후후후,이거다!' 시드는 그제야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시드는 적당히 주문서가 팔려 나가자 곧 근처의 다른 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바로 옆에서 수월하게 강도짓을할수 잇는 줌누서를 수백장이나 팔아먹었다. 당연히 그 지역의 치안상태는 최악의 상황까지 떨어졌다.산길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도적질을 당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상인들은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상태! 이번의 고객은 그런 상인들이었다. 본래 칼을 파는곳에는 방패도 파는법.카이로트에는 각종 카오틱 주문서를 막을수 있는 아이템도 있었던 것이다. "위기 탈출의 정석![워프]주문서 있습니다. 안심하고 용병을 고용할수 있는[심판의 검],[강탈]과 [탈취]주문서로부터 귀한 아이템과 장비 아이템을 보호해주는[가방보호],[장비보호]주문서.한가지 주문서 효과를 없애는[삭제],상인의 안전한 장삿길을 위한 모든 아이템 소량,대량팝니다.시드의 노점상을 이용해주세요!" 금세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워프]주문서 얼마입니까?" "45골드에요.10장 세트로 사시면 10골드 빼 드리고요" "네? 상점가의 110%가격이잖아요? 직접 상점에서 사면 30%까지 할인을 받을수 있는데......" "저도 위험을 무릅쓰고 카이로트에 가서 여기까지 줌누서를 사 들고 왔어요.도중에 몇번이나 도적을 만나서 사용한 주문서도 적지않고요.그러니 110%가격에 팔아도 솔직히 남는게 없어요" "하지만 주문서 하나에 45골드라니....." "당장 현찰이 없으시면 각종 포션도 받아요.대신 포션은 정가의 80%밖에 못 쳐드립니다. 저는 다시 포션을 팔아야 이윤이 남으니까요.상인이시니 이해하시죠?" 상인이 주저하자다른 상인 하나가 옆구리를 푹 찌르며 속삭였다. "교역품 납기일이 얼마 안 남았잖아. 만약 도적에게 털리면 모처럼 받은 퀘스트도 실패하고 신용도가 엄청내려갈거야.그냥 몇 장 사자" "휴........알았어.[진실의 검]2장하고,[워프]2장 주세요" "넵,여기 잇습니다!안전한 여행 되세요!" 시드가 노린게 이것이었다. 상인의 생리는 상인이 아는 법. 국격이 개방된 뒤로 상인들에게 교역품을 운반하는 퀘스트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니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간 내에 국경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것. '후후후,아크님을 따라 다니면서 배운건 이것뿐이다' 돈을 쓸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고, 일단 걸려들면 최대한 쥐어 짜낸다! 한쪽에 미사일을팔면, 반대쪽에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방어 시스템을 세트로 팔아 넘긴다. 세게의 경찰이라고 부르짖는 아메리카도 그런 식으로 장사해서 짭짤하게 벌어드리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장사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팔려 나간 칼이 많으면 많을 수록, 방패의 가격은 폭등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로 인해 받을 상인의 피해 따위는 알바가 아니다.이번 장삿길은 시드에게도 목숨이 걸려있다. 남의 사정을 봐주다가 아크의 냄비속에서 수프가 될수야 없지 안은가. "나는 지금까지 세상을 너무 몰랐어' 이렇게 또 하나의 순진한 상인이 어둠의 길로 들어섰다. 생각 같아서는 몇 번이라도 주문서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이런 장사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곧 돈 냄새를 맡은 다른상인들도 주문서를 들고 국경지대로 몰려들것이다. 시세 폭락은 필연적인 순서! '약간 아쉬울때 털고 일어난다. 아크님의 철칙이었지' 아크는 어느새 싣의 교과서가 되어있었다. 카이로트에서 정가의 60%가격으로 산 아이템을 100~110%에 팔았다. 당연히 엄청난 수입은 물론, 경험치와 각종 스킬숙련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일단 그렇게 장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시드는 간덩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타이밍만 잘 이용하면 더 벌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시드는서슴없이 골드를 투자해 주변에서 고가의 포션이나 공구 상자같은 소모품을 긁어모았다. 주문서를 소모품으로 바꾸니 양이 엄청났다. 시드는 내친김에 거금을 들여 NPC 용병을 고용하고, 마차까지 임대했다.나름대로 계산한게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란이 전투 지역으로 공개 된지 꽤 지낫어.대형길드들이니 처음부터 각종 포션이나 소모품을 잔뜩 가지고 들어갔겠지만, 슬슬 떨어져 갈때각 됬어.전쟁은 소모전이야.누가 얼마나 많은 자금을 단시간 안에 써 버리느냐로 승패가결정되지. 반면 나가란에서 소모품을 보충하려면 셀리브리드까지 왕복해야 하니까........나가란 입구 부근에서 소모품을 팔면 조금 비싸도 시간 절약을 ㅜ이해 사 갈거야!다른 상인들이 채 가기전에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 시드는 드디어 장사꾼으로서 자각했다. 하지만 나가란에서 주문서를 못 쓴다고 죽을때 아이템을 떨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NPC용병 3~4명을 고용했지만 안심할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 '역시 PK가 허용되는 나가란 내에서의 장사는 아무래도 위험해. 장난으로 PK를 하는 사람도 잇잖아. 그런 사람들에게 죽어서 피같은 아이템을 하나라도 떨구면......' 수프가된다. 시드는 오한이 드는듯 몸서리를 쳤다. '조금 이윤을 덜 남기더라도 입구에서 장사를해야해' 그렇게 시드가 나가란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마침 마차를 몰고 보급 물자를 사러 가던 한 전사가 시드에게 다가왔다. "상인이시죠? 혹시 상급 회복 포션과 수리상자,대량으로 주문할수 있습니까?" 시드는 전사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일단 입고 잇는 장비를 보니 장난이 아니다.번쩍번쩍광이 나는게 딱 보기에도 돈깨나 있어 보이는 손님! 시드는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영업용 미소를 떠올렸다. "네,물론입니다.회복 포션만이 아니라,각종 능력치를 올려주는 포션도 많습니다. 개시 손님이니까 가격은 잘 쳐드릴게요.뭐,그래도 상점의 정가보다는 조금 높지만.......에헤헤,그 정도는 이해하시겠죠?" 시드는 카탈로그까지 펼쳐보여주며 열심히 상품을 소개했다. 전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굉장한 양이군요. 이런 큰 장사를 혼자 하십니까?" "헤헤헤,실은 다른 분들이 맡기신 자본금이 90%에요" 시드는 입이 쌌다. 그 말에 전사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시군요. 마침 잘됐습니다. 곧 길드전이 시작될 참이라 셀리브리드까지 다녀올 시간이 없었는데,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진 상인분을 만나다니,행운입니다. 괜찮다면 정가의 110%가격이라면 포션 종류와 수리 상자를 전량 구입하고 싶습니다" "네?네? 상점가의 110%전량 구입이요?"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왔다. '드디어.....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어마어마한 거래의 기회가......!' 상인은 같은 이윤을내더라도 자잘하게 돈을 버는것보다, 한 방에 큰 거래를 성사시킬때 더 맣은 경험치와 숙련치,명성을 얻는다.만약 수천골드에 달하는것을 한 방에 전량 판매한다면 돌아오는 경험치는 감히상상도 할수 없을정도! 시드의 눈에 전사가 백마탄 왕자님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사는호감이 철철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신 저희가 지금은 물건을 받아갈수 없는상황입니다. 그러니 시간과 장소를 정해 물건을 받도록 하죠.저희도 대금을 준비해야 하니까요.내일 오전까지 이 장소로 약속한 물건을 납품 해주십시오" 전사가 지도를 펼쳐 한 부분을 지목해 주었다. 지도를 살펴보던 시드는 약간 움찔 했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나가란 지역 이었던 것이다. "곤란합니까?" "네? 아, 아니요.하지만...." "뭘 걱정하시는줄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유저들이대부분 성 주변에 몰려잇어 외곽은 텅 빈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저역시 여기까지 오는 동안유저를1명도못봤거든요" "알겠습니다. 약속장소에 납품해 드릴게요" 결국 시드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금 불안하다는 리유로 놓치기에는 너무 큰 건수였다. 전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엄청난 양의 물건을 조달할 정도라면 대상인이시겠군요.다른분의 자금까지 관리하신다면 신뢰도 있으신분이고요.나가란 앞에서 시드님같은분을 만난건 행운입니다 .믿을수 있는 상인을 찾고 있었거든요.앞으로 필요한 물건이 더 많아질거 같으닌 이참에 아예 장기게약을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수고스럽고 ,위험부담역시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틀림없이 고생한대가를 지불해 드리겠습니다" "저,저야 감사하죠" "다행이군요.그럼 계약서를 작성해 볼까요?" "네,물론이죠.그런데 성함이......" "아란, 여명의 칼날이라는 길드의 리더인 아란입니다" 전사.....아란이씨익웃으며 대답했다.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하지 않았던 시드는 아란을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크 일행이 광란의 밤을 보낸 다음날......이래 봤자 현실 시간으로는 4시간후. 창가에 어스름한 햇살이 번질때쯤에야 주점을나왔다. 정의남들은 모두 술을 좋아하지만 죽을때까지 마시는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도중에 술이깬 로코가 중간에 계산서를 확인하고 펄펄 뛰는 바람에 더 마실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덕분에 1시간 정도 수다를떨아다 밖에 나와 쌀쌀한 바람을 맞으니 술기운이 말끔하게 가셨다. 로코만이 아직 알딸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악실리온으로가실 거에요?" "아니, 그건 당분간 미뤄두기로했다" "네?큰형님도 찾았다면서요" "그래서 미뤄야 한다는거야" 정의남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문득 씨익 웃어 보였다. "그래, 너희들 지금 당장 할일있냐?" "아니요.당장은........" "잘됐다. 그럼 잠깐 따라와라.너희들에게 보여줄게 있어 .의논할것도 있고" "보여 줄거라니요?"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불끈이와 짝퉁이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후후후,그동안 우리가 이뤄놓은 업적이지" "너희가 우승하는동안 우리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어" "업적?" "자세한건 가보면 안다. 여기서 멀지않으니일단 출발하자. 자세한사정은 도착하면 저절로 알게 될거야.샴바라,너도 잔소리말고 따라와!" 정의남은 다짜고짜 아크와 샴바라를 잡아끌었다. "으음,새벽부터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떤 놈이......" 아크 일행이 웅성거리는곳에서 멀지않은 골목 귀퉁이. 로브를 돌돌 말고 꾸벅거리는3명의 노숙자가 있었다. 바로 상인 A,B,C언제 아크 일행이 움직일지 몰라 접속도 끊지 못하고 감시하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린것이다. 아크 일행이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 버린 상인 B가 짜증을 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그러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엇? 혀,형님!형님!일어나세요"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져 있던 상인 A가 부스스 눈을 떴다. 상인 A가 팅팅 부은 눈을 비비적거리며 오만상을 찌푸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놈들이 이동하고 있어요" "뭐?" 상인 A는 잠이 확 깨는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젠장, 밤새 술 퍼마시던 놈들이 왜 이렇게 빨라? 어이,일어나!" 상인 A는 코를 골아 대는 C를 걷어차 깨우며 명령했다. "너희들은 어제 모집한 용병들을 소집해서 따라와.나는 저놈들의 뒤를 밟고 있겠다.평소대로 통신은 '속삭임의깃털'을 사용하고 빨리 움직여!" 상인 B,C가 짧은 다리로 뒤뚱거리며 골목을 달려갔다. 상인 A도 지체없이 짐을 챙겨 아크 일행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보물을 찾으러 가는구나!' 아크 일행은 시장에서 엄청난 양의 음식을 사모으고 있었다. 유저가 그렇게 많은 양의 음식을 구입하는 이유는 단 하나,어딘가로 긴 여행을 떠날 때뿐이다. 분명 필요한 단서를 다 모으고 본격적으로 보물 사냥을 하려는것이리라.과연 그의 예상대로 아크 일행은 쇼핑을 끝내고 곧바로 셀리브리드를 나섰다. 상인 A는 재빨리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동생들에게 연락했다. -놈들이 셀리브리드를 나섰다. 용병은 얼마나 모였냐? 뭐? 아직이라고? 그 자식들,계속 대기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하여간 전사들이란......음, 좋다. 일단 뒤따르며 중간중간 연락을 보낼테니 용병이 모이는데로 따라오도록,오바 -옛 써,오바 상인 A는 첩보 영화의 스파이처럼 보안 통신 상태를 유지하며 아크 일행을 뒤따랐다. 셀리브리드를 나온 아크 일행은 근처의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길을 벗어나더니 우거진 수풀을헤치며 걸었다. '헉헉헉,젠장.평소에 운동 좀 해 놓는 건데........' 상인 A는 체력이 형편없었다. 1시간도 안되어 숨이턱 끝까지 차올랐다. 더구나 상인이 길도 아닌 ,숲을 헤치며 이동할일은 거의 없었다.익숙지 않은 산길이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1시간도 안되어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더구나 상인이 길도 아닌, 숲을 헤치며 이동할일은 거의 없었다. 익숙지 않은 산길이라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지며 헐떡거려야 했다. '이게 다 다크울프 놈 때문이야!두고봐라,기필코 지도를 탈취해서 절망으로 빠트려 주마!' 상인 A는 복수의 불길을 이글이글 불태웠다........라기보다는 솔직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수가 없었다. 그렇게 침을 질질 흘려 대며 거의 바닥을 기며 뒤따르기를 한참,우거진 숲이 끝나더니 큼직한 산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크는 일행과 얘기를 주고받더니 산채로 들어가 버렸다. '오오오,이것은............절호의 기회다!' 헐떡이는 상인 A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숲 속에 숨겨진 산채.도적 소굴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틀림없어.산채 위에 있는깃발은 상인 길드에서 본적이 있어.셀리브리드 주변에서 조심해야 할 도적단 가운데 한였던 왕눈이 파!그렇다면.......?' 생각할수 있는건 하나,모종의 목적을 위해 도적단을 토벌하려는 것이리라. '하늘이 돕는구나!' 산채 안에서벌어지는 일은 보지 않아도 알수 있었다. 피로 피를 씻는 처절한 전투! 아크를 노리는 그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절호의 찬스였다. 지금 뒤치기를 하면 승률은 100%!그리고 때마침,상인 B,C가 20여 명의 용병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헉헉헉,형님.놈들은?" "후후후,아우들아.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놈들이 멋도 모르고 산채에서 도적들을 토벌하고있어" 상인 A는 섬뜩한 미소를 질질 흘려대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난입해서 뒤 치기를 하면 상황은 간단하게 끝날거야.서둘러라,단서를 가지고있는 푸른검과 다크울프가 도적에게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그 전에 주문서를 걸어놔야해!" "알겠습니다.모두 들었죠?바로 시작합니다!" "돌진!" 상인 A,B,C가 용병들을 이끌고 용맹하게 돌딘했다. 그러나 산채 앞에 도착하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어야 할 산채가 너무나 조용했다. 그뿐인가?심지어 간간이 웃음소리까지 들려왔다. 상인 B는 뭔가 이상하다 싶어 걸음을 멈추려고했다. 그러나 상인 A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듯 와락 문을 열어 재끼며 소리쳤다. "푸른검, 다크울프!너희들을.......어?" 상인 A가 멍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산채 문을 열자 수백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의 면상에 꽂혀 버린것.당연히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아크 일행과 도적들은 멀뚱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있을 뿐이었다. "어,어째서......왜? 왜 안싸우는거야?" "뭐야? 저놈들은?" "푸른검? 다크울프?" 도적들이 불쾌한 시선으로 상인과 용병들을 흘겼다. 그렇다,정의남이 셀리브리드에서 말했던 업적.그건 바로 이곳에 모여 있는 도적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닥치는대로 도적들을 갱생시키던 정의남.그리고 겨우 이틀전에야 큰형님이라는 도적이 있는 산채를 찾아냈다.무려 150이나 되는 부하를 거느린 왕눈이 파의 보스가 바로 큰형님이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못할 상대였지만,그때 정의남에게는 추종하는 세력이 있었다. 셀리브리드 주변을 돌아다니며 갱생시킨 도적들! 정의남은 이들을 지휘해 왕눈이 파와 붙었고, 결국 피 말리는 전투끝에 왕눈이를 굴복,갱생시킬수 있었다. 그리하여 정의남을 추종하는 도적들은 300명으로 불어내게 된것이다. 상인 A,B,C는 뭔가 잘못 돌아간다는것을 깨달았다. "혀,형님?" "딸꾹!" 상인 A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우물거릴 때였다. 잔뜩 얼어있던 상인 C가 딸꾹질을 하며 주문서를 좌악 찢어버렸다.아크에게 사용하려 했던 [강탈].그러나 타깃을 지정하지 않아 엉뚱한 도적에게 적중되었다. 하필이면 그 도적은 일명 큰형님,왕눈이였다.왕눈이는 어이가 없는표정으로 상인 C를 바라보며 웃었다. "뭐야?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아,아니 그게 저........." 상인 A가 주춤주춤 물러나자 한 박자 늦게 상황을 파악한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내가 항상 강조하는게 뭐지?" "내가 먹을것을 내 손으로 구하자.하루에 한번은 좋은 일을하자.그리고 반성하지않는 악당은 화끈하게 담가버린다,입니다!" 300명의 도적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좋아,문 걸어 잠가라" "넵!" 도적들이 우르르 달려가 산채의 문을 달아걸었다. 퇴로까지 막혀 버리자 상인과 용병들은 빼도 박도 못하게돼 버렸다.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결국 용병들은 어금니를 깨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제,젠장!할수 없지!어디 한번 붙어 보자!" "큰형님의 적이다!모두 담가 버려!" 잡탕과 고문으로 완전히 세뇌되어 버린 도적들. 왕눈이 파를 접수한 정의남은 그들에게 이미큰형님으로 통하고있었다.그리고 일단 큰형님으로 모시면 몸을 아끼지않는것이 도적들의 불문율이었다. 도적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히익,혀,형님.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나,난들 알겠냐? 어떻게든 버텨 보는 수밖에 없잖아!" "젠장, 망할 놈들.상대는 열댓명이라며?" 용병들이 욕설을 내뱉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그리고 곧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라고 하기에도 뭐한 싸움이 벌어졌다. 암살자들의 레벨은 도적들보다 30이상높다. 그러나 숫자는 15배 차이가 났다. 20대 300.이게 싸움이 될리가 없다. 더구나 아크의 간병 스킬과 로코의 음악은 광범위 스킬.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간병과 음악으로 각종 버프를 받은 도적들은 괴성을 질러대며 단숨에 용병들을 잘근잘근 밟아버렸다. "흠,어째 싱거운데?" 아크는 전투가 너무나 싱거워서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어제까지만 해도 악실리온에서 선구자 같은 상대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으니.....그들의 수준에 비하면 레벨 120의 용병들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자각하지못했지만 악실리온의 경험 그리고 이명룡의 수련은 아크의 눈높이를 한단계 높여준것이다. 그때, 문득 한쪽에 웬 쓰레기 봉투가 보였다. 도적들이 다시 산채의 문을 열고 용병들의 시신을 적당히 수습하는사이,3개의 쓰레기봉투가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옆으로 도적들이 지나가면 움찔하고 멈췄다가 다시 슬금슬금 움직이기를 반복, 결국 산채 밖 으슥한 곳까지 기어 나왔다. '뭐야, 저건?' 산채 밖까지 쓰레기 봉투를 따라 나온 아크는 이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세 상인이었다. 산채를탈출하기 위해 로브를 뒤집어쓰고 쓰레기 봉투처럼 위장한 것이다. 그 어줍지 않은 위장이 먹힌건지,아니면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용케도 난전에서 살아남은 모양이다. 아크는 검 끝으로 꾹꾹 찔렀다. "어이,너희들.벌써 다 뽀록났거든?" 그러자 쓰레기 봉투가 움찔하며 수군거렸다. "혀,형님!드,들켰어요" "흑흑흑,형님.우리 죽는거에요? 무서워요" "지,진정해라.아우들아.내게 다 생각이 있어" 상인 A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로브가 확 벗겨지며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로브가 확 벗겨지며 그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작고 오동통한 몸을 가진 그들은 드워프였다. 그러나 상인으로 전직한 탓인지 드워프 특유의 근육질은 보이지않았다. 불룩하게 살이 오른 볼이나,뭉뚝하고 오밀조밀한 손, 3명의 드워프가 오돌오돌떨며 붙어있자 드워프보다는 아기돼지 삼형제가 떠올랐다. 상인 A는 돌연 아크의 손을 와락 잡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사,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푸른검,다크울프님!" "뭐?살려줘?" "아,사실은 말이죠,사실.......저희는.......팬!네,그겁니다.저희는 팬입니다!" "팬? 내가 다크울프라는건 어떻게 알았는데?" "그건..관심이죠,네,관심입니다" 상인 A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시합을 보고 너무 감동받은 나머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계속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크울프님이시라는걸 알게된거죠.그리고 불타는 존경심을 주체하지 못해 팬클럽까지 조직해서 쫓아왔던 겁니다" "호오,그래? 왜 쫓아왔는데?" "팬미팅!팬미팅하시죠 ?그겁니다. 아하하하,미리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이번 싸움과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냥 일이 꼬이려다 보니까........몇몇 팬클럽 회원들 가운데 이상한 놈들이 섞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크흑,어쨌든 과연 푸른검과 다크울프 님이십니다. 그놈들도 꽤나 강해보이던데 상대가 안되는군요.아하하하,존경스럽습니다" "혀,형님......." 상인 B,C가 딱한 눈으로 형님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아크는 이미 골목에서 그들이 쥬르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라로프의 단서에 대해 알고 있는 자들. 분명 아크가 받은 비밀지도를 강탈하기위해 용병을 고용해 뒤쫓아왔으리라.그냥 돌려보내면 똑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에는 도적들이 있어서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만약 혼자 있을때 습격을 당했다면 분명 저들에게 지도를 뺏겼을거야. 이참에 확실히 밟아서 두 번 다시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들어야해' 아크의 눈가에 살기가 어른거렸다. '기회다!' 어둠속에서 한쌍의 눈동자가 번쩍였다. 온몸을 검은 옷으로 휘감고 있는 사내,얼굴을 가린 복면에는 기묘하게 생긴 문장이 찍혀있었다. 붉은 손바닥 문장......다크브라더의 암살자였다. 그렇다, 아크 일행의 뒤를 밟던것은 상인들만이 아니었다. 셀리브리드에서부터 아크를 감시하던 다크브라더도 20여명의 암살자를 동원해 아크를 쫓고 있었다.그리고 상인이 아크를 뒤치기할때 틈을 노려 다시 그들을 뒤 치기,전원 몰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판단 실수다. 설마 이곳의 도적들이 아크와 한패였을줄이야.쳇,이럴줄알았으면 상인 놈들따위 신경쓰지말고 산에 들어섰을 때 곧바로 기습했어야 하는데......어쩔수 없다.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는 300이 넘는 도적을 상대할수 없어.분하지만 다음 기회를.........' 산채 밖에 숨어 상황을 살피던 암살자는 할수 없이 몸을 돌렸다.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찾아왔다. 멍청한 상인들이 쓰레기 봉투로 위장해 산채밖으로 기어나왔고,그의 목표인 아크가 그 뒤를 따라 으슥한 곳까지 쫓아나온것이다. 산채 안의 갱생단이나 도적들은 용병들을 헤치우고 경계심을 푼 것인지 밖의 동향에는 관심을 보이지않았다. '이건 절호의 기회다!' 암살자는 망설임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그의 레벨은 무려 250.또한 다른 평범한 암살자들과는 수준이 다른 각종 스킬로 무장한, 다크브라더에서도 손꼽히는 초특급 암살자였다. 그동안 그의 손에 죽어간 이방인의 숫자는 스스로도 헤아릴수 없을정도였다.비록 동료를 동원해 기습할수는 없게 됐지만 ,어정어정 밖으로 기어 나온 아크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차피 다크브라더의 목표는 아크다.다른 놈들은 어찌되든 상관없어.좋아,놈이 산채로 도망갈 시간을 주지않고 단숨에 결판을 짓고 탈출한다!' 필살의 각오를 다진 암살자는 곧바로 온갖 버프로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공격력을 올려주는 '소드오러',기척을 지우는'라이트 스텝',치명타 확률을 극대화시키는 '크리티컬 히트'등등........그러나 그의 필살기는 따로 있었다. 다크브라더의 특급살수만이 익힐수 있는 스킬'피의전율'이었다.생명력의 50%를 공격력으로 전환해 일격필살의 치명타를 날릴수있는 치명적인 암살 스킬!공격이 성공하는 순간 자신의 생명력도 50%가 깍이지만, 지금처럼 속전속결로 암살을 해야할때는 최고의 위력을 발휘한다. 스킬을 사용하자 검이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 암살자는 유령처럼 다가가 아크의 등에 강렬한 일격을 날렸다. -암살스킬에 의한 불의의 기습으로 치명타를 맞았습니다.데미지 250X3피의 전율 스킬에 의해 추가 데미지가 전용되었습니다. 전체 데미지 X2회심의 일격 스킬에 의해 10초간 스턴에 빠졌습니다! 갑자기 등줄기가 욱신거리더니 엄청난 생명력이 빠져나갔다.데미지 250의 3배 750!거기에 다시 2배의 데미지가 가산되어 단숨에 생명력이 1,500이나 빠져나간것이다. 아크의 생명력이 단숨에 500대까지 내려가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추가 효과로 스턴까지 발동하며 마치 술에 취한것처럼 시야가 울렁거렸다. '뭐,뭐야?' 아크가 기겁하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붉은 손바닥 문장이 새겨진 복면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너,너는 다크브라더? 설마 또 안델놈이......?" "천만에,이번에는 다크브라더의 의지다" "뭐?" "다크브라더에서 형제들을 죽인 네놈을 그냥 둘거라고 생각했나? 네놈은 결코 다크브라더의 손길을 피할수 없다. 이방인의 비술로 몇 번을 살아나도 다크 브라더가 있는 한 마을안에서 숨어 살수밖에 없을것이다. 이방인에게는 그게 죽는 것보다 괴로운 일이라지?" 암살자가 나타나자 영문을 모르는 상인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혀,형님.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난들 알겠냐? 어쨌든 잘하면 저 시커먼 녀석이 다크울프를 쓰러트릴지도 몰라" "그럼.........?" "기회를 봐서 주문서를 사용하자!그리고 시커먼 녀석과 교섭하면........." 상인들이 속닥거리며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상인들의 꿍꿍이 따위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젠장,너 이자식.......!" 불의의 기습을 당한 탓에 생명력이 간당간당하다.게다가 스턴에 걸려 시야는 뒤죽박죽으로 흔들리고,몸이 납 자루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스턴에 걸리면 회피와 공격, 스킬 시전이 모두 차단되는것이다.지속 시간은 10초밖에 되지 않지만 암살자의 공격력을 생각하면 서너방안에 승부가 날듯하다. '잠깐의 방심이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불러오다니........' 퍼펑!치명타가 터지며 300의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이어 또다시 검이 아크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맞으면 100%사망! 승리를 확신한 암살자의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뿌렸다. "끝이다!" "아크!" 절체절명의 순간에 돌연 검은 그림자가 산채에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번뜩이는 손놀림으로 막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암살자의 등을향해 소나기처럼 권격을 뿜어냈다. 아크의 목덜미를 노리며 달려들던 검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것은 그때였다. '석화 점혈!'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 나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샴바라!샴바라는 어쌔신 답게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는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있었다. 그 스킬을 사용해 혹시 다른 용병이 없는지 주변을 살피다가 산채 밖에서 아크와 암살자의 기척을 느낀것!그리고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할새도 없이 석화 점혈을 상용했다. "아크,네 차례다!" 샴바라가 한쪽으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이미 악실리온에서 수도없이 사용했던 협공이다. 아크는 스턴이 풀리자마자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방어력이 500%나 상승되는 석화 점혈,그러나 방어력을 무시하는 다크 블레이드앞에서는 그런 패널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퍼퍼퍼펑,격렬한 치명타가 연속적으로 터져나왔다. 그러나 상대는 레벨 250의 암살자. '피의전율'을 사용하느라 50%를 소모했지만 기본 생명력이 많아 3~4발의 치명타를 맞고도 끄떡없었다.그사이 암살자도 석화 점혈에서 벗어나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아크,설사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네놈만큼은 함꼐 지옥으로 데려가주마!" "이런 젠장!"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석화 점혈이 풀리기전에 승부를 낼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때문에 생명력이 200밖에 남지 않았지만, 비싼 포션을 먹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덕분에 한 방이라도 맞으면 사망!푼돈에도 벌벌 떠는 습관이 또다시 위기를 불러왔다. 그러나 뜻밖에 샴바라가 아크의앞을 가로막았다. 악실리온에서 서로를 보조해 주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아크를 보호한 것이다. "아크 ,죽음의 회오리다!" 샴바라가 화경으로 암살자를 밀어내며 소리쳤다. 악실리온에서 개발한 샴바라와 아크의 협공기술! 둘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암살자를 전후에서 포위했다. 그리고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붕권과 발차기! 데미지 자체는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지만,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공격이 양쪽에서 쉴새 없이 퍼부어지자 암살자조차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았다. "크윽, 분하다.하지만 다크브라더가 있는 한 제 2,제3의 암살자가 네놈을........" 결국 암살자는 한심한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암살자를 처리한 아크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은근히 암살자를 으우언하던 상인들이 흠칫 놀랐다. 그리고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얼른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와,역시 다크울프와 푸른검이십니다!하하하,당연히 이기실줄 알았어요" ".........." 아크는 말없이 노려보았다. 그들이 은근히 암살자를 응원했다는 것을 모를 아크가 아니다. 이대로는 죽는다.예민하게 낌새를 알아챈 상인 A가 허둥지둥 계약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뭔가를 빠르게 적어내려가더니 아크에게 내밀었다. "시,실은 이렇게 다크울프님을 찾아뵌 건 이걸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뭐야,이게?" "다크울프님이 시합에만 집중할수 있도록 팬클럽에서 지원하는 후원금입니다!" "후원금?" 상인의 계약서 이 계약서를 소지한 사람은 한 달(10일)에 한 번, 상인 길드 지점에서 10골드를 지급받을수 있습니다. 수취인에게 지급되는 돈은 계약서를 작성한 상인이 상인 길드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한, 우선적으로 결제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계약은 상인이 파산하거나, 계약서가 소실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수취인 : 아크=다크울프> '이거 ...........현금카드잖아?' 계약서를 읽어본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 녀석들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건 틀림없지만.........' 사실 여기서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죽여봐야 딱히 득 될일이 없다. 죽인다고 그들이 지도를 포기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안델처럼 원한을 품으면 귀찮아지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모르는 척 이득을 챙기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은가? 그러나.......모르는척하기에는 돈의 액수가 좀............. "그런데 팬클럽 회원이 모두 몇 명이야?" "네? 그야........저희와 온 사람들...........다하면 23명이네요" "23명이 열흘에 10골드.............1일당 50실버? 후원금과 동냥을 착각하는거 아냐? 내가 언제 돈달랬냐? 네가 먼저 준다고 했잖아.그런데 달랑 그거 내놓고 생색을 내려는거냐? 아니, 정말 팬이긴한거냐?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거 아냐? 그렇다면 당장..........." 아크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노려보았다. 마치 사흘 굶은 사람이 막 익어가는 돼짐통구리를 놀려보듯이! 졸지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상인 B,C가 눈물을 글썽이며 맏형을 바라보았다. 상인 A는 얼른 계약서를 수정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사실은 20골드였습니다" "..........." 아크는 의미심장한 침묵을 지켰고, 상인 A의 얼굴에 슬슬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3,30골드? 크으윽,조,좋습니다. 40골드!더 이상은 아무리 팬이라도..........." 결국 상인 A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렸다. '쳇, 분위기를 보니 여기가 한계로군' 아크는 속으로 혀를 찼다.일단 걸리면 골수까지 빨아먹는 아크 .때문에 상대의 주머니 사정은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감이 있었다. 아마도 여기서 더 쥐어짜려고 하면 놈들이 그냥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설사 계약서를 써 주더라도 곧바로 파산하면 모처럼의 돈줄도 날아간다. 먹고살 만큼은 남겨놔야 더 오랫동안 빨아먹을수 있는 것이다. '열흘에 40골드. 적은 돈은 아니야' "아,역시 팬이었구나. 팬의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되지" 결정을 내린 아크의 얼굴이 180도로 바뀌었다. 역시 세상은 러브 &피스,아크는 이해할수 없는 일도 돈이 생기면 다 이해해 주는 착한 사람이었다. "받아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하지만 우리는 둘이야" "네?" "다크울프와 푸른검의 팬이라며? 그럼 후원금도 공평하게 줘야지.아니면......설마 팬이 아니었던 거냐?" 아크가 인상을 찡그리며 쏘아 보았다. 이미 샴바라도 상황을 알고 있으니 나중에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공돈이라도 40골드를 나눠갖기는 싫었던 것 .덕분에 상인 A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계약서를 만들어야했다. 그제야 아크는 친근감이 뚝뚝 떨어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내게도 너희처럼 근사한 팬이 있다는걸 항상 기억하지.기억하려면 당연히 이름을 알아야겠지? 이름이 뭐야?" "네? 저,저희는 그저........지나가는 팬인데요?" "나는 지나가는 팬 하나도 소중히 여길줄 아는 사람이야" ".........북실이,삽질이,울먹이입니다" "음,북실이,삽질이,울먹이.좋아,기억해두지.아,그리고......혹시라도 누군가 내가 다크울프라는걸 알게 되면 팬클럽 회장인 네가 퍼트린걸로 알겠어.무슨 말인지 알지?" 아크는 뒤에 늘어선 300명의 도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 다물고 얌전히있으라는 협박!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황급히 산채를 빠져나갔다. "다크울프님, 다음 시합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파이팅!" "파,파이팅!" 그렇게 상인들은 삥만 뜯기고 산채를 돌아나왔다. 상인 C,울먹이가 이름처럼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혀,형님.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죠?" "후후후,괜찮아" 북실이는 애써 눈물을 감추며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내가 무서워서 얌전히 삥을 뜯긴줄 알아? 저건 약이야.너희들 저 계약서에 대해 알지? 계약서를 만든 상인은 저 녀석들이 돈을 찾은 상인 길드가 어디 지점인지 알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 "그, 그럼........?" "그래.놈들은 조만간 단서를 조합해서 보물을 찾아 나설거야. 하지만 공돈이 생겼으니 기일이 되면 꼬박꼬박 어딘가에서 돈을 찾겠지.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놈들의 움직임을 알수 있다 이거야.그리고 그 사이에 새로운 작전을 짜서 마지막 순간에......보물을 낚아채면 돼. 어차피 우리 목적은 단서를 조합하는게 아니야. 보물을 손에 넣는거지" "오오오,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는거군요.과연 형님의 잔머리는 국가 대표 급이에요.그런 순간에 거기까지 생각하다니!" "하지만 시간이 걸리면요?" 그때, 삽잘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놈들이 바로 보물을 찾지 않고 딴 짓을 하면요? 한달이면 현실시간으로 열흘이에요.2명이 열흘에 40골드씩이니 80골드,한 달에 240골드가 계좌에서 빠져나가잔아요.두달이면 480골드,세 달이면 720골드........." 그제야 북실이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버렸다. 나갈돈은 생각도 못해 본듯. 그러나 곧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괘, 괜찮아.분명 놈들은 곧바로 보물을 찾아나설거야" "하지만 만약 두 세달 동안 찾지 않으면.......우리는 파산이에요" "........." 상인들은 움찔하며 잠시 침묵했다. 만약 계좌가 빈 상태에서 아크가 돈을 찾으면 그대로 파산,상인은 한번 파산당하면 그야말로 알거지가 된다. 상인 길드의 자금 회수를 담당하는 NPC들이 계좌나 임대 창고의 교역품은 물론, 가방에 들어있는 골드까지 털어가는 것이다. 또한 신용도와 각종 스킬에 주어지는 무지막지한 패널티! 물론 언제까지나 아크에게 돈을 바칠 생각은 없으니 한번 파산 신고를 해야한다. 대신 보물을 가로채 그랜드 마스터의 퀘스트를 완료한다면 금나한 패널티를 감수할만한 보상을 받으리라 계산한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보물을 가로챘을 때의 얘기.만약 그 전에 파산해 버린다면? 볼것도 없이 독박에 피박까지 쓰게 된다. "도,돈 벌러 가자!" 북실이들은 허둥지둥 산을 뛰어 내려갔다. "일단 어떻게든 정리는 됐는데 상황이 조금 귀찬게 됬군" 정의남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뭐가요?" "음, 그게 말이다" 정의남은 팔짱을 낀 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도적들을 갱생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이 녀석들은 아직 완전히 새사람이 된게 아니야. 아니, 새사람은 됐지만 그 뭐냐? 이름이 붉은 거......." "카오틱이요" "그래, 그게 문제야. 카오틱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마을에 갈수도 없잖아. 그러니 사냥을 한다고 해도 물건을 못 팔잖아. 아마 이대로 내버려 두면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다시 도적이 되는 수밖에 없겠지" 도적 NPC의 생계 문제를 걱정한다. 다른유저가 들으면 웃겠지만, 정의남에게는 자신의 레벨업보다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얼마전에 짝퉁이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카오틱 NPC에게도 시효라는게 있단다. 더 범죄를 저지르지않고 시간이 지나면 성향이 조금씩 중립으로 돌아온다고" 그건 아크 역시 알고 있던 정보다. 일전에 카이로트에서 로렌조에게 앞으로의 일을 물었을때, 로렌조는 카이로트에서 시효가 다 될때까지 지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그렇게 성향이 중립이 된 뒤에 도시의 경비대를 찾아가 신고하면 약간의 보석금만으로 완전히 카오틱에서 벗어날수가 있는 것이다. 로코가 지갑을 바짝 조인것도 그때를 위해 도적들의 보석금을 마련해 놓기 위해서였다.그러니 도적들도 진심으로 정의남 일행을 따를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산채에서 이것저것 훈련시켜서 완전히 손을 씻게 만들려고 했는데...다크브라더가 이곳을 알아 버렸지 않냐? 놈들이 다시 올지도 모르고,셀리브리드의 경비병들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우리도 손을 쓸수 가 없어" 정의남이 까칠한턱수염을 긁적였다. 정말이지 가끔은 어떻게 이런 외모로 이렇게까지 착해 빠질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어쨌든 정의남이 하소연에 아크 역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러쿵저러쿵해도 다크브라더가 산채까지 쫓아온 것은 아크 때문이다.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너 습격해다는 암살자도 문제야.네가 상대한 건 한 놈뿐이었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더 많은 숫자가 추적해 왔었던것 같다. 뭐, 다들 도망간것 같지만 다크브라더도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는것 같으니 귀찮아질게 분명해. 한동안 경비병이나 다크 브라더의 눈길을 피해 숨어 지낼곳이있으면 좋겠는데...........300명이나 되는 도적들을 훈련시키려면 마을과 너무 떨어져도 안되잖아.도적질을 그만두면 이것저것 생필품도 마을에서 구할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크 역시 그점이 걱정이었다. 아무래도 다크브라더와 얽힌 일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어찌어찌 위기를 넘겼지만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아크에게도 꽤나 난감한 일이다. 물론 게임이니 언제까지나 아크를 추적하지는 않겠지만, 한동안은 다크 브라더의 눈길을 피해 숨어 지낼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생각되었다. 적당한 마을, 그 말을 듣자 아크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제가 적당한 장소를 알아요" "뭐? 어디?" " 아구스 산맥의 작은 마을인데, 그곳은 아직 경비병도 없고, 주민들도 외부인을 싫어하지않아요.게다가 아직 개척중이라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죠. 아저씨가 도적들을 잘만 간수해 준다면 카오틱이 풀릴때까지 숨어 지낼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오,그런곳이 있어?" "네, 솔직히 카오틱 상태의 도적을 300명이나 받아줄지는 장담할수 없지만........내가 촌장을 만나 어떻게든 설득해 볼게요" "좋아.그럼 일단 그곳으로 가 보자" 정의남은 일단 비벼볼 언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욕이 샘솟는 듯했다. 아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산채를 돌아다니며 도적들에게 여행 준비를 시키기에 분주했다. 그 사이, 아크도 대강 주변 정리를 끝내고 샴바라를 찾았다. 샴바라는 아직도 다크브라더 암살자의 몸을 뒤적이고 있었다. "샴바라, 나는 일단 아저씨와 함께 아구스 산맥에 다녀올생각인데. 너도 같이 갈래?" "나는........아무래도 다른 볼일이 생긴것 같다" "다른 볼일?" "너,아까 이놈들을 다크브라더라고 했지?" 샴바라는 암살자의 복면에 새겨진 붉은 손바닥 문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푸른 단검을 꺼내 옆면을 비교해보였다. "붉은 손바닥 문장!" "내가 전에 말했지? 셀리브리드에서 알아볼게 있다고, 실은 그게 다크브라더의 정보였어. 사실 이 단검은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싸늘한 검은 칼날'을 이방인 100명분의 피로 담금질을 해서 만든거야. 그게 내 직업 퀘스트 중 하나였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댄다. 그러나 샴바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않고 말을 이었다. "단검이 만들어지니 이 문장에 대한 정보를 찾으라는퀘스트로 연결되더라고.그래서 정보가 많이 보이느 셀리브리드에서 헤맸던 건데,이런 식으로 찾아내게 되다니......" "그럼?" "일단'다크브라더'라는 단서를 찾았으니 셀리브리드로 돌아가서 다시 알아봐야겠어.어차피 시드의 일도 있고, 너나 나나 레벨 제한이 걸리잖아. 그러니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레벨 150이 되면 다시 셀리브리드에서 만나 결판을 내면 되잖아. 어때?" "좋아, 볼일이 끝나면편지 보내" "그러지. 그리고......이건 네가 가지고 있는게 좋겠다" 샴바라가 마가로프의 비밀 지도를 건네주었다. "이건 내 직감이지만 아무래도 내가 해야 할 퀘스트는 꽤 난이도가 높을 것 같다. 그러니 일단 이건 네가가지고 있어.전처럼 뱀에게 맡겨 놓으면 떨굴 염려는 없잖아" "그러지 ,아,나도 줄게 있어" 아크는 상인들에게 쥐어짜 낸 계약서 1장을 넘겨주었다. 어차피 수취인이 샴바라라 아크가 가지고 있어 봐야 쓸데가 없다. 샴바라는 주욱 계약서를 훑어보더니 키득거리며 웃었다. "아까 그 드워프들이군. 역시 엄한 놈 잡아다가 돈 짜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니까 " "그래도 생각해서 챙겨 놓은 거야. 싫으면 관둬" "돈 싫다는 놈 있냐?" 샴바라는 냉큼 계약서를 챙겨들고 셀리브리드로 돌아갔다. 모처럼 만난 샴바라와 다시 헤어지니 마음이 약간 휑했다. 그러나 샴바라에게는 샴바라의,아크에게는 아크가 할일이 있다!뉴 월드는 넓고 할일은 겁나게 많은 것이다! "아크, 준비가 끝났다!" "네,출발하죠.개척 마을 란셀로!" ACT 7 란셀 마을 "김 대리님, 혹시 아크라는 유저 아십니까?" "아크?" 김권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누군데?" "응시자 중 1명이라는데요" "글쎄? 못 들어봤는데? 아무리 똑똑한 나라도 2,000명이나 되는 응시자 아이디를 다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그런데 왜? 무슨 쓸만한 정보라도 있어?" "아뇨.그냥 누구에게 설핏 들어서요.혹시 리포트 좀 볼수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사람은 기획실의 신입 사원 호명환이었다. 호명환은 며칠전, 안내 데스크의 강미수에게 아크에 대해 알아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벤트 퀘스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정보를 곁들어서. 그러나 그때 마침 기획실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브란트 산맥에서 갑자기 새로운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하려다가 캔슬된게 그 시기였던 것이다. 덕분에 한동안 잊고 있다가 점심 때 우연히 강미수를 만나고 겨우 기억해냈다. 김권태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자료실의 가인씨에게 가서 물어봐 .그래도 좀 주목할 만한 리포트는 모두 가인씨가 프린트해서 관리하니까. 거기 없으면 볼 가치도 없는거야" "알겠습니다" 호명환은 지료실로 찾아갔다. 마침 자료실 담당인 가인은 어제 들어온 리포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이 ,가인씨. 오랜만이야.혹시 아크라는 유저의 리포트도 들어왔어?" "아크요?" 가인은 이메일 목록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들어와 있네요" "프린트해 놓은 건?" "음............이 유저는 자동 삭제 그룹에 들어 있는데요?" "자동삭제?" "네, 시험 시작하고 몇 달 정도 리포트가 들어왔을때, 선별된 상위 20%를 제외한 나머지 리포트는 읽지도 않고 버렸어요.김 대리님하고 하 팀장님이 둘이서 2,000부나 되는 리포트를 모두 읽어 보기 힘드니 가망 없는 유저들은 일찌감치 제외시켜 놓는거죠.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프린트도 하지않고 메일이 들어오면 바로 바로 삭제시켜버려요" "그런걸 뭐하러 월급까지 줘 가며 리포트를 보내라고 하는거야?" "하 팀장님 속을 누가 알겠어요?" "어쨌든 메일이 남아 있다는 건 ,아직 삭제시키지 않았다는 거지?" "한 부 뽑아 드려요?" "응 ,한 번 줘봐.시간 날때 틈틈이 읽어보게" "삭제 그룹은 볼 것도 없을 텐데.........." 가인은 괜한 짓을 한다는투로 중얼거리며 리포트를 출력해 주었다.호명환은 리포트를 받자마자 왜 그게 탈락자 명단에 끼게 됐는지 알수 있었다. '이건 뭐야? 어린애가 쓴 작문도 이것보다는 낫겠군' 아크의 리포트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내용은 둘째 문제다. 일단 리포트를 작성하는 기본이 안돼 있었다. 리포트는 뭐니뭐니 해도 읽는 사람이 정보를바로 이해할수 있도록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크의 리포트는 깔끔한 정리는 커녕,문장이나 문맥조차 뒤죽박죽이라 꼼꼼하게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때가 많았다. 무리도 아니다. 이력서를 날조한 아크의 실제 학력은 고졸. 그것도 몇번이나 그만두려다가 간신히 졸업했다. 리포트 따위를 써 본 적이 있을리가 없다. 때문에그저 겪은 일을 일기처럼 써 놓은게 전부였다. 그뿐인가? 하룰 평균 17시간 게임을 하다보니 시간도 없어서 꾸벅거리며 리포트를 작성하기 일쑤였다. 당연히 초등학생의 작문 숙제보다도 못한 수준이 될수 밖에. 반면 글로벌 엑서스는 말그대로 엘리트의집합소. 호명환 역시 K대를 졸업한 수재였다. 그런 그의 눈에 아크의 리포트가 글처럼 보였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꾹 눌러참으며 첫 장을 다 읽었을 때쯤.호명환은 자기도모르게 리포트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이게 뭐야? 탈락자 명단에 들어간 유저가 레벨 `127?' 처음 호명환을 놀라게 만든건 레벨이었다. 그가 알기로 현재 상위권에 들어 있는 응시자들도 레벨이 130대였다. 그 유명한 홀리 나이트 아란조차 아직 138.그런데 탈락자가 127이라니? 그러나 호명환이 리포트에 빠져 든건 단순히 레벨 때문만이 아니다. 이번에 아크가 제출한 리포트의 내용은 당연히 악실리온의 시합 내용이었다. 무려 1,000여 명이 출전한 토너먼트 페어전에서 승승 장구!마지막 결승전에서는 선구자와 맞서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대부분의 기획실 직원이 그렇듯, 호명환도 뉴 월드를 하는 게이머다. 비록 시간이 없어 직접 악실리온에서 열린 시합을 볼수는 없었지만, 악실리온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통해 이날의 경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들었다. 당연하다. 1,000명이나 출전한 경기에서 선구자를 제치고 우승했는데 이슈가되지 않을리가 없다. 호명환은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유저가 올려놓은 동영상을 찾아냈다. 수많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발차기를 날려대는 검은 갈기의 늑대족 전사!그 강렬한 인상의 시합 장면은 호명환의 가슴을 세차게 두들겼다. '그,그 소문의 다크울프가 아크였단 거야? 대체 어떻게 늑대족으로 변신한 거지?' 아크의 늑대 모습은 호명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그런 이번 리포트에 지저세계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에 자세한 사정을 알 도리가 없었다. 궁금증, 그게 사람을 더 미치게 만든다. '아니, 변신이 중요한게 아니야.악실리온 토너먼트 페어전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가 타랅자 명단에 들어있다는게 문제잖아? 대체 하 팀장님은 왜 이런 유저를?' 상식적으롤 도저히 납득할수 없었다. '어쨌든 그냥 모른척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엑서스의 사원으로서, 뉴 월드의 유저로서........ 이런 게이머의 활약이 그대로 묻힌느 것을 용납할수가 없다. 아크의 시합장면은 그에게 그런 사명감을 불러 일으킬정도의 박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크를 탈락자로 제쳐 놓은건 기획실 팀장 하명우,말단 사원이 리포트 하나만 보고 이의를 재기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좀 더 지켜보자. 하 팀장님도 주목할만한 내용이 나오면 그때 보고해도 늦지 않아' 호명환은 곧바로 자료실로 돌아가 당부했다. "가인씨, 앞으로 이 친구 리포트가 들어오면 나에게 가져다줘.앞으로 내가 관리할테니까. 아, 그리고 혹시 샴바라라는 유저도 응시자인가?" "잠깐만 기다리세요.아, 있네요.샴바라도 탈락자인데요?" "그 친구도? 알았어. 그럼 그 리포트도 내 쪽으로 돌려줘" "담당도 아니잖아요?" "그냥 개인적으로 관심이 생겨서 그래" "알았어요" 이리하여 아크의 취업활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적어도 바로 삭제되거나,분쇄기 속에 던져지는 일은 피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이게 행운으로 작용할지 불행으로 작용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일이다. "이제 다 왔어요. 곧 란셀 마을이 보일거에요" 아크가 고개를 오르며 말했다. 셀리브리드에서 300명의 도적을 이끌고 여행을 떠난 지나흘,예상보다 이틀이나 앞당겨 도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셀리브리드에서 란셀마을까지,점을 딱 찍어놓고 그냥 일직선으로 와 버린것이다. 물론 이런식의 여행은 보통 유저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대륙에는 저레벨 사냥터와 고레벨 사냥터가 복잡하게 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숫자가 300이다. 뭐가 무섭겠는가? 레벨 200이 넘는 대형 몬스터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아도 전혀 문제 될게 없다. 아니, 오히렬 도적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식칼을 뽑아들었다. "잘됐다. 밀빵도 슬슬 지겨워지던 참인데!" "우후후후,잘 썰면 300인분은 거뜬하겠는걸?" "아크 형님에게 수육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고기가 고픈 300명의 도적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면 순식간에 레벨 200짜리 대형 그리즐리가 300인분의 수육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행군은 거칠것이 없었고, 고레벨 몬스터의 고기로 요리를 만드니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도 쑥쑥 올라갔다. 그뿐인가? 300명이 숲을 헤치고 돌아다니니 식재료를 발견하기도 쉬웠다. 덕분에 고레벨 사냥터의 귀한 식재료까지 꽤나 수북하게 챙길수 있었다. 그러나 모처럼의 쾌적한 여행도 란셀 마을에 도착하며 끝나게 되었다. "저기가 네가 말한 마을이냐?" "어........?" 고개에 올라선 아크는 멀리 보이는 마을 전경에 움찔했다. 란셀 마을은 아크가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일단 마을의 규모부터가 예전과는 달랐다. 40여 채의 가옥이 폐가처럼 버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100여채의 가옥이 늘어서 있었다.그리고 마을 외곽을 따라 죽늘어선 울타리가 그 모든것을 감싸고 있었다. 뭐, 이주민이 늘어났으니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그런데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건 마을 분위기였다. 마을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쳤다. 어떤 집은 나무 위에 있었고, 어떤 집은 반쯤 지면에 쑤셔 박힌 형태였다. 게다가 울긋불긋하게 채색까지 되어있어 무슨 동화책 속에 나오는 마을처럼 보였다. 뉴 월드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꼴을 다 봤지만 이런 마을은 처음이다. '내가 길을 잘못 든 건 아니지?' 아크는 어안이 벙벙해서 지도창을 열어 확인까지 해 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확인해도 란셀 마을이 확실했다. "흠, 어쩐지 느낌이 좋은 마을인걸" "네, 가능하면 이렇게 정감 넘치는 곳에서 살고 싶네요" 다행히 정의남이나 도적들은 그 괴상한 마을이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크는 일단 그들을 이끌고 란셀로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몇몇 안면이 있는 NPC가 아크를 알아보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묘족 전사들 그리고 일꾼 복장을 한 사람들은 처음 보는 얼구이지만, 코 양옆으로 돋아난 수염을 보니 너구리족인것 같다. 그외에도 도적 소굴에서 구해준지도 제작사 한슨 일행도있었다. "아,역시 아크다!아크!" 가장 먼저 달려든 사람(?)은 묘족 무녀자나였다. "흠흠, 역시 내 말이 맞죠? 어쩐지 아크 냄새가 나는것 같더라니까요" 자나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바짝 다가왔다. "어라? 네가 왜 여기 있어?" "혼자 남으니 심심해. 그리고 이제는 여기가 더 편한걸" "하지만 넌 무녀잖아. 신전을 지켜야 한다며?" "상관없어. 뭐, 훔쳐갈것도 없는데......." 뭐랄까.........정말 묘족을 볼때는 역시나 고양이라는 말밖에 안 떠오른다. 얼마나 멋대로면 무녀조차 거짓말을 밥 먹듯 하겠는가? 자나는 신전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듯 금세 아크에게 관심을 드러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코를 벌름거리더니 갑자기 몸을 비비며 달짝지근한 목소리를 냈다. "흐응,흐으응,예전에봤을때보다 더 멋지게 변했잖아? 어때? 전에 내가 한말은 아직도 유효한데? 시간 나면 나랑 연애하지 않을래? 잘해줄게.고양이는 친절하거든" "뭐,뭐에요?" 불편한 눈길을 보내던 로코가 펄쩍 뛰었다. "뭐에요? 대체 그 태도는?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고, 여자가 부끄럽지도 않아요? 아니 ,그보다 대체 아크 오빠와 무슨 관계에요?" "어라? 이 암컷은 뭐야?아크, 나는 싫다더니 그새 여자를 만든거야?" "에...........그러니까......."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자나는 아무래도 좋다는듯 다시 몸을 비벼댔다. "뭐,남자라면 여자 한둘은 있어야지. 괜찮아. 다 이해해.묘족은 일부다처제거든" "이,일부다처제? 미친거 아니에요?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 시끄러,시끄러.아크 저런 앙칼진 여자는 놔두고 가자. 마을 안내해 줄게" "그 손 못놔요?" 로코가 반대쪽 팔을 잡아당기며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의외의복병은 따로 있었다.. 찰싹,찰싹! 갑자기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뛰어나오더니 두 여자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아크의 품에 파고들었다. 한슨의 딸, 사라였다.아크는 사라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황했다. 그러나 아크보다 당황한건 자나와 로코였다. "얘,얘는 또 뭐야? 오빠?" "사라, 저리 비키지 못해?" 두 여자가 방방 뛰자 사라는 겁먹은듯 움찔하며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결국 참다못한 아크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그만 좀해. 내가 무슨 연예인이냐? 그리고 사라는 아직 어린애잖아. 가자, 사라" 아크는 결국 그렇게 사라의 손을 잡고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나 로코는 보였다. 아크가 결국 사라를 선택했을때,그 어린것의 입가에 승리자의 미소가 번지는 것을! 순간 여자의 직감이 말했다. 그 어린것은 적이라고!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어!' 사실 로코는 지금까지 약간 느긋한 기분을 갖고 있었다. 아크가 원래 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니 너무 안달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닦달하면 미움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2명이나 되는 여자가 나타나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자나나 사라는 NPC다. 그러나 설사 상대가 목각인형이라도 좋아하는 남자가 관심을 보이면 불안해지는게 여자의 심리였다. '맞아, 아크 오빠는 누가 봐도 멋진 남자야. 아직 여자 친구가 없는게 이상할 정도지' 솔직히 그건 아니다. 그래도 뭐,제 눈에 안경이니까. '앞으로 현실이든 게임이든 오빠 관리를 철저히 해야겠어' 로코는 내심 각오를 굳혔다. 그리고 자나와 눈싸움을 하며 필사적으로 아크 옆으로따라붙었다. 그러나 정의남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후후후,역시 연애는 경쟁자가 나타나야 뜨거워진다니까" "이제 점점 더 볼만해지겠군요" 그때,핫산이 두툼한 배를 팡팡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역시 구도자야. 암, 마반 영웅의 후예라면 당연히 여자에게도 인기가 많아야지" "당신은?" "나는 묘족 장로인 핫산이네.아크의 가능성을 한눈에 꿰뚫어 보고 구도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준 사람이라네.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정의남이라고 하오.아크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지. 앞으로 더 가까워질 예정이지만 지금은 그렇게만 알아 두시오" "그런가? 흐음, 그런데 우리 어디선가 만난적 있었나?어쩐지 꽤나 정이 가는 얼굴인걸?" "당신도 그렇소? 나도 그렇소" "후후후" "후후후후" 정의남과 핫산은 덥수룩한 수염에 뒤덮인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히죽거렸다. 그러고보니 둘의 얼굴이 좀 닮았다. 세상에는 이런식으로 통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크는 인파에 휩싸여 잡화상점 앞에 도착했다. 란셀 마을의 임시 촌장은가렌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오,아크, 이게 얼마만인가!" 가렌이 활짝 웃으며 반겼다. "마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군요" "음, 모두 자네 공이네 .자네가 묘족 전사들을 보내 준 덕분에 마을이 안전해졌어.그리고 한슨은 많은 지식으로 마을 재건에 도움을 주고 있지. 브란트 산맥에서 자네 소개롤 왔다는 사람들도 빼놓을없겠군. 말수가 좀 적기는 하지만 뛰어난 실력의 장인들이더군. 덕분에 부족하던 집도 새로 짓게 됐고, 아직 시작 단게에 불과하지만 교역도 할수 있게 되었네.요즘은 소식을 접한 이주민들이 찾아올때도 있다네" "다행입니다" "음, 하지만 처음 목적대로 기란과 작센의 중개 지점으로서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갈길이 머네. 미안하지만 자네가 더 수고를 해 줘야 할거 같아"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 얘기를 하고 있는것이리라. 란셀에서 받은 퀘스트는 아직 성취도가 60%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예전의 우울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완전히 다른 마을로 착각할 만큼 변했지만, 가렌이 꿈꾸는 마을은 그보다 크고 멋진 도시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100%고객 만족을 시켜주는 걸 해주는 수밖에. 아크는 잠시 머릿속으로 대사를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오늘 제가 직접 찾아온건 그 문제를 상의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 문제? 이주민을 말하는건가?" "네,이 마을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을 300명 데리고 왔습니다" "300명!" 사람 모으는 취미가 있는 가렌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소리쳤다. "한동안 뜸하다 싶더니 자네,나를 놀리려고 작정을했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이주민을 모았단 말인가? 상의할것도 없네.나야 이주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아크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털어놓았다. 300명의 이주민은 사실 전직 도적들이고,아직 카오틱 상태라는것. 가렌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사정은 잘 알았네.그래,확실히 란셀마을에는 무엇보다 사랆이 필요하지.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면 아무래도.......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은 이제 막 시작하는 개척 마을이 아닌가? 더구나 기란과 작센을 잇는 중개지점을 만드는게 내 꿈이네. 그런 곳에 범죄자들이 300명이나 있다면 누가 마을을 찾아오겠는가? 또한 마을 주민들도......." 가렌의 반응은 아크도 예상했다. 아크가 도적들과 동행을 해야했던 이유가 그 떄문이었다. "가렌 아저씨" 아크는 안타까운 눈길로 가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안타깝군요.아저씨는 벌써 초심을 잃은 겁니까?" "초심?" "그렇습니다. 이 마을을 세운 위대한 지도자란셀이 누구입니까? 그는 한때 어둠에 마음을 빼앗겨 살육의 나날을 보냈지만, 진실로 세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고 이 마을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을을 위해 목숨을 바쳤죠.그가 꿈꿨던 진정한 자유 마을!아저씨가 그 뜻을 이어받아 마을을 재건하겠다고 했을 때 저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때문에 아저씨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겁니다" "그, 그야 그런데........." "네!인정합니다. 제가 데려온 사람들은 도적이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의 짐을 빼앗고, 때로는 목숨까지 빼앗았던 범죄자들입니다.그러나 저분!" 아크는 격앙된 목소리로 정의남을 가리켰다. "도적들도 이제 란셀처럼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새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차갑게 그들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이곳마저 외면한다면 과연 란셀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만약 갈 곳을 잃은 저들이 다시 도적이 된다면 그게 과연 저들의 책임일까요? 아저씨는 정말 란셀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까? 단지 저들은 계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란셀이 이 마을을 세우겠다고 결심했을때와 같은 계기를!" "녀석, 사람을 울리는군" "아크 형님......!" 갱생단과 도적들이 감동 먹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였다. 마을 주민들은 동정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으음.............." 분위기가 묘해지자 가렌이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논리적으로야 어쨌든 감정적으로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가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아크는 재빨리 쐐기를 박았다. "당장 저들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달라는게 아닙니다.저들도 자신들이 당장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거란느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저 마을 근처에서 지낼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뿐입니다" "마을 안에 머무는게 아니라는 말인가?" "네, 저들은 말했습니다. 아직 자신들의 죄가 씻긴게 아니다. 우리같은 범죄자가 주민들 틈에 끼어있으면 틀림없이 폐가 될거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서 진정으로 새사람이 됐을때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서곘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특하지 않습니까?" 물론 이건 란셀 마을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란셀 마을에는 아직 경비병이 없다. 그러나 막 교역을 시작하려는 란셀 마을에 카오틱 NPC를 풀어놓을수도 없는일. 다크브라더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눈에 띄어서는 곤란하다. 떄문에 살아남은 일단 마을 근처에 자리를 잡고 도적들을 교화시킬 생각이었다. 그저 시간을 보내도 NPC의 성향을 중립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모범수라는게 있듯이, 정신교육을 통해 NPC를 더 많이 뉘우치게 하면 복귀가 몇배는 빨라지는것이다. 정의남은 그 작업을 갱생단에게 시켜 볼 생각이었다. 도적들이 변하고 사회에 적응하는 모습을 직접 옆에서 지켜보면 배우는 것도 많으리라. 뉴 월드를 시작한 초기 목적과 결과가 부합되는 일이었다. 결국 아크의 설득에 가렌은 고개을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준다면허락하지" 두두둥, 새로운 정보창이떠올랐다. -화술이 10상승햇습니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은 갈 곳이 없어진 도적 무리를 란셀 마을로 이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카오틱인 도적들은 아직 평범한 주민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되어 있지 않습니다.이들이 온전한 주민으로 탈바꿈될때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만큼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틀림없이 보상을 받게 될것입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성취도 60%(+30%)>] 도적들은 이주민 찾기 성취도에 바로 가산이 되지 않았다.성향이 중립으로 돌아오는 숫자만큼 성취도에 가산이 되는 모양.그때, 다시 추가 메시지가 올라왔다. [특별한 직업이 없는 이주민을 찾았습니다. 도적들의 이주로 마을의 가능성이 70%상승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많은 이주민이몰려 식량과 자재 사정이 50%감소했습니다. 또한 이들의 카오틱 성향 탓에 화합도는 30%만큼 하락합니다. 화합도가 60% 이하롤 떨러져 새로운 이주민이 올 확률이사라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잠재적 재산으로 어떤 수치로도 적용될수 있습니다. 도적 성향이 중립이 되며 배우는 지식과 능력에 따라 상업도, 무장도,식량 사정 등의 수치도 증감하게 됩니다>] 역시나 도적들의 이주는패널티가 상당히 작용했다. 그러나 도적은 갱생해 현재 백수 상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가 다름없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NPC도 새로운 스킬을 익힐수 있는 뉴 월드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수도 있었다. 인구수가 부족하면 도적을 교화시킬때 종교를 가르쳐 성직자로 만들면 된다.혹은 식량 사정이 부족하면 요리사나 농부로,치안상태가 나빠지면 경비병으로 교육시키면 된다. 정의남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자 펄쩍 뛰었다. "한때는 그런 시설을 운영해 보고싶었지" 가렌 역시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자 지원을아끼지 않았다. "언젠가 마을의 일원이 될 사람들을 길바닥에서 자게 할수는 없지" 가렌은 한슨의 조언을 구해 마을과 멀지 않으면서 눈에띄지 않는 장소를 물색했다. 그리고 너구리족을 동원해 간단한 구조의숙소를 세워주었다. 또한 재활 기간 도안 필요한 식량을 대 주겠다는약속도 해 주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그 시설의 감독관으로 모든 교육을 전담했다. 뉴 월드에 삼청교육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어제까지 쓰레기였다. 그런 우리를 받아준 란셀 마을의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한시라도 빨리, 그리고 조금이라도 많이 마을에 이바지할수 있는인간이 되어야한다" "네!" "썩어 빠진 정신은 썩어빠진 육체에서 나온다!앞으로 이교관이 너희들의 육체와 정신을 모두 분해해 처음부터 다시 조립해주마!" 정의남은 그때부터 밤낮을 가리지않고 도적들을 훈련시켰다. 산을 뛰어다니며 체력 훈련을 시키고, 묘족과 함께 몬스터 토벌을 할때도 있었다. 때로는 마을에서 너구리족을초빙해 각종 전문 지식을 가르치기도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훈련소가 어느정도 자리를 잡자 도적들에게서 조금씩 변화각 일어났다. -도적들의 성향이 선으로 5만큼 상승했습니다. 정의남의 교육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훈련의 성과가 바로 수치로 나타나자 정의남은 더욱 고무되었다. 긍정적인효과는 긍정적인결과를 가져오는법. 도적들도 더욱 분발해 훈련에 몰두했고, 마을 주민들에게 깍듯이 예의를 지켰다. 덕분에 60%나 떨어졌던 화합도도 복구가 되어갔다. "됐어. 이제 여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훈련소가 자리를 잡자 아크는 겨우 한숨 돌릴수 있었다. 아크가 훈련소에서 마을로 내려오자 가렌이 다가왔다.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은게 있네" 가렌은 마을 중심가에위치한 집으로 데려갔다. 새로 지은듯 아직 목재의 풋풋한 냄새조차 지워지지않은 오두막이었다. "이 집은 뭡니까? 새로 만든것 같은데?" 가렌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 집이네" "네?" "사실 이전부터 생각하고 잇었네. 내가 자네에게 이주민을 찾아달라곡 부탁했지만, 솔직히 큰 기대는하지 않고 있었네. 하지만 자네는 언제나 잊지않고 훌륭한 주민을 보내주었지. 어덯게 생각할지 모르지만,나와 주민들은 이미 자네를 란셀마을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있네.그렇다면 당연히 집이 있어야지. 그래서 얼마 전에 자네 집도 하나 지어두었네. 어디에 가든 란셀 마을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야. 그간의 노력에 대한 중간 보상이라고 생각해 두게" 가렌이 열쇠를 건네주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아크 님의 이름으로 오두막이 등록되엇습니다. 플레이어는 뉴 월드에서 각종 주택을 소유할수 있습니다. 주택을 소유한 플레이어는 그 마을에 대한 지분을 얻을자격이 생깁니다. 또한 주택은 그 형태나 크기, 선호도에 따라 특별한 옵션을 부여받습니다. <현재 주택 등급 : 8급 오두막> *주택에서 휴식 시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 +1,000% *주택에서 1시간 이상 휴식시 2시간 동안 체력, 정신력 +10% *소형 개인 금고(플레이어의가방 크기만큼 아이템을 보관할수 있습니다)] 아크는 얼떨떨한 눈으로 널찍한 방을 둘러보았다. 물론 뉴 월드에서 유저가 주택을소유할수 있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집 장만이 힘든건 현실이나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한 마을에서 주택을 구입하려면 일단 촌장이나 영주와 친밀도를 엄청 올려야한다. 또한 아무리 친밀도가 높아도 명성이 낮으면 구입할수 없다. 그뿐인가? 자격을 얻은 뒤로도 막대한 세금을 내고 나서야 집을 구입할수 있었다. 그나마 매물이 없으면 마냥 기다려야 하고,간신히 매물이 나와도 당연히 상당한 권리금이 또 들어간다.결국 이래저래 따지면작은 집 하나에 들어가는 돈만 6,000골드 이상!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나, 혹은 저택을 염두에 두었다면 집값은 기하급수적으로늘어난다. 그럼에도 현재 뉴 월드에서 집은 없어서 못 팔정도였다. 각종 버프와 아이템 보관 기능, 게다가 이런 금고는 집만 있다면 상점에서 사다가 얼마든지 늘릴수 있다. 그러니 매번 돈을 내며 길드의 임대 창고를 이용하는 상인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투기 열풍이 불어도 이상하지 않는것이다. 그런 집을 공짜로 얻었다. 물론 산골의 작은 마을이지만....... 사실 아크는 내 집마련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항상 새로운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해야하니 굳이 집이 필요치 않았던 것, 그러나 막상 내 집이 생기자 느낌이 전혀 달랐다. 자기 집이 있는 란셀 마을에 없던 애정까지 새록새록 솟아나는 기분이랄까?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내 집 마련에 목을 매는 모양이구나.' 비록 현실의 셋방보다도 작고 허름하지만, 세상 그 어느곳보다도 안락하게 느껴진다. 더불어 가렌에게 받은 퀘스트를 빨리 해결해야겠다는 욕심이 일었다. '비록 당장 매물로 내놔도살 사람이 없는 집이지만, 어쨌든 집이다. 이주민 퀘스트를 반밖에 해결하지 못했는데 집을 줄 정도면.......퀘스트가 완료되면 그 이상 의 보상이 주어진다는 뜻 !기대해 볼만하잖아!' "감사합니다. 잘쓰겠습니다" 아크는날아갈듯한 동작으로 가렌에게 감사를표했다. '잘됐어. 어차피 한동안은 이 근처에서 사냥에 몰두할생각이었는데' 그렇게 아크는새집에서 앞으로 할일을 정리해보았다. '일단은 레벨 업이 가장 시급한 문제야' 그동안 악실리온에서 실전 경험은 충분히 쌓았다. 그러나 그 경험은 절반의 성장밖에 되지않는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이곳은 게임. 그 실력을 완벽하게 전투에 적용시키려면 필연적으로 레벨이 뒷받침되어야한다. 사실 그동안 너무 퀘스트만 쫓아다녔다. 게임 초기처럼 오직 레벨을 올리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했다고 인정하지않을수 없었다. 퀘스트를해결하며 레벨을 올리는것도 좋지만,그렇게 입맛에 맞는 퀘스트가 언제까지 이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백미는 원래 우직한 레벨 노가다가 아닌가!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를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레벨은 150까지 올려놔야 해.집도 생겼겠다. 당분간 이곳을 중심으로 사냥터를 개척하며 확실하게 레벨과 스킬을 올려놓자!' 물론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냥에나설 생각은 아니었다. 맨땅에 헤딩을 해도 빈손으로 일어나는 법이 없는 아크다. '지금 해야 할일은 두가지다' 첫째는 바로 '신성한 토양'을 찾는것이다. 란셀 마을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 아크는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거의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 포포가 진동하며 입을 연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포의 모체,지저 세계의 수호수 이그드라실이었다. -아크, 아무래도 때가된것 같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포포는 지금 씨앗 상태네. 씨앗이란 언젠가 땅에 심어져가지를 뻗어야 하는 존재. 자네와 함께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는 포포의 바람 때문에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포포를 보호해 줬지만 언제까지나 그럴수는 없다네" 포포가 얼마전부터 급격히 말수가 적어진게 그런 이유떄문이었던 모양이다. 아크는 그동안 포포에게 너무 무관심했다는자책감이 들었다. "포포를 심어주어야 한단 겁니까?" -그래, 하지만 포포는나의분신, 싹 틔우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지. 아무 곳에나 심으면 일대의 대지의 힘을 모조리 흡수해 황무지로 변해버릴것이네 "그럼 어디에 심어야합니까?" -내 포포를 통해 알아보니 자네가 마침 아구스 산맥에 있더군. 아구스 산맥처럼 대지의 힘이 강한 산맥에는 예로부터 신성한 토양이 만들어지는 곳이 존재하네.그 토양이라면 이그드라실이자라는데 필요한 대지의힘을 제공해 줄터.포포에게 신성한 토양을 찾아주게 [신정한 토양 이그드라실의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려면 강력한 대지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 힘을 제대롤 공급해 주기 위해서는 아구스 산맥이나 브란트 산맥처럼 거대한 산맥에만 존재한다는 신성한 토양을 찾아야 합니다. <난이도 : ->] '기왕 하는 사냥이니 확실한 목표가 있다면더 좋겠지' 아크는 기꺼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어차피 이번 기회에 산맥을 샅샅이 뒤져야 하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수락한 아크는 이번에는 가방에서 두툼한 책을 꺼내 탁자위에 펼쳐 놓았다. 샤넨에게 퀘스트를 받을때 부탁했던 몬스터 도감과 식물 도감의 사본. 셀리브리드를 떠나올때 시드에게 메모를 남기기 위해 마법 학회에 들러보니 도착해 잇었다.그러나 공짜는 아니었다. 사본 제작비로 30골드,피 같은 돈이지만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 지불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 어디 보자.........레시피 정보창!" ['슬라임의 내단 '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 1/1 일각수의 뿔 0/1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0/100 달빛을 받은 만드라고라의 뿌리 0/100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 0/1,000] 우연히 발견한 서바이벌 요리의 비기로만들어진 레시피였다. 몬스터 도감과 식물도감에 적힌 정보를 살펴보니, 대부분 아구스 산맥에서도 구할수 있는 재료였다. 아크가 란셀 마을까지 온 이유는 그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당연히 아구스 산맥을 샅샅이 뒤져야 할테니 <신성한 토양> 퀘스트도바로 수락한 것이다. '레벨 업과 퀘스트, 슬라임의 내단을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거야!' "어디 보자. 일단 가장 많이 필요한 재료가 '갈고리 박쥐의 이빨'과 '만드라고라의 뿌리'로군.갈고리 박쥐는 아구스 산맥 동쪽 기슭의 동굴에 많이서식하고 있다고나와있군. 그리고 만드라고라는....아구스 산맥 전 지역에 분포되어있다. 이건 좀 시간이 많이 걸릴테니 동쪽으로 이동하며 찾아보면 되겠어" 할일을 결정한 아크는 곧바로 사냥터로 향했다. 사실 마을에 있는동안 로코와지나, 사라의 등쌀에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모처럼의 사냥이다. 퀘스트가 아닌, 오직 재료 찾기와 레벨 업을 위한 사냥! 이것저것 고민할 필요 없이 사냥에 전념할수 있게 되자 아크는 간만에 활력이 샘솟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 온라인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사냥이다! '마음은 느긋하게,팔은 바쁘게!' "주인, 간만에 신경 쓰이는것 없이 편하게 사냥할수 있겠다!" 딱딱딱,딱딱딱! 간만에 오붓하게 사냥할수 있게 되자 데드릭과 데이모스도 꽤나 즐거워했다. 이 느낌이다. 그렇게양쪽으로 소환수를 거느리고 뭐가 나올지 모르는 곳에서 사냥에 전념하는것. 그것이야말로 다크워커, 아크의 게임 스타일이다. 작센과 기란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아구스 산맥. 이곳은 의외로 유저의 손떼가 묻지 않은 처녀지가 많았다.다양한레벨의 몬스터가 워낙 무분별하게 섞여 있어 초보자들이 사냥하기에는 쉽지않았던 것. 또한 레벨이높아지면 이미 기란이나 셀리브리드로 떠나 버린다. 굳이 아구스 산맥에서 힘들게 고레벨 몬스터 서식지를 찾아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몬스터 도감을 가진 아크는 필요한 사냥감을고를수 있게 되었다. "우우우우!" 동부 지역으로 들어서자 강철 갈기 놀이 몰려나왔다. 몬스터 도감에 적힌대로 레벨 100대의 몬스터들! "몸 풀기에 적당한 사냥감이군. 자, 가라!데드릭, 데이모스!" "우하하하!오랜만이다,개대가리들아!" 딱딱딱! 두 소환수를 앞세운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놀 무리를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개 짓는 소리와 함께 노가다가 시작되었다. ACT 8 노가다 찌직, 찌지직! 한 걸음 내딛자 주변에서 불이 밝혀지듯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뭔가가 바닥을 기는 듯한 소리,퍼덕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소리,전후좌우.................심지어 머리위에서까지 뭔가가 우글거리며 몰려드는 듯한 감각. 짐승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정말 끝도 없이 몰려드는군' "고양이의 눈!" 아크의 눈동자가 고양이의 그것처럼 변하며 번들거렸다.스킬을 사용해 어둠을 밝히자 모골이 송연한 광경이 드러났다.마치 대지가 갈라진 듯한 거대한 동굴 속이었다. 어둠고 음습한 동굴, 그곳에서 아크를 중심으로 엄청난 숫자의 검은 형체들이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몰려들었다.일견하기에는 사람과 비슷한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인간은 아니다. 칙칙거리며 괴음을 발할때마다 드러나는날카로운 송곳니. 바닥을 긁어 대는 날카로운 손톱.어깨에는 보통 사람보다 2배는 긴팔이 괴상한 각도로구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질적인 부분은 손목에서부터 발목까지 이어져 붙어있는피막!놈들이 양팔을 벌리자 피막이 확퍼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박쥐!그렇다. 놈들의 정체는 바로 박쥐,갈고리 박쥐였다. '저 모습에 처음에는 심장이 멎는줄 알았지' 며칠전 ,아크가 갈고리 박쥐를 찾아 아구스 산맥 동부에 들어섰을때였다. 잡다한 몬스터를 처리하며 숲을 헤매고 있는 저녁 무렵. 언덕 위에 앉아 있는사람을 발견했다. 대략 10살 정도로 보이는 체구였다. 소년은 꽤나 쌀쌀한 날씨여서 그런지 망토로 몸을 돌돌 말고 머리까지 파묻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산중에 사람이?' 아크는 얼른 언덕으로 다가갔다. 이곳은 온갖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아구스 산맥 심처.이런 곳에 NPC가 ,그것도 소년이 홀로 앉아 있다. 뭔가 사정이 있으리라. 그리고 NPC의 사정은 퀘스트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당연히 아크는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뭐하는거니?"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망토를 뒤집어쓴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데드릭이 코를 벌름거리며 미묘한 목소리를 냈다. "주인, 어째 낌새가 안좋다. 피 냄새가 나" "설마 이런 곳에서 자는건 아닐테고.....혹시 다치기라도 한건가?" 아크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소년의 어깨를 건드렸다. 아니, 건드리려는 찰나! "끼아아아악!" 돌연 소년이 와락 몸을 돌리며 괴성을 터트렸다. 마치 날카로운 칼로 유리를 긁어 대는듯한 소름 끼치는비명!뉴 월드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일을 다 겪어 온 아크조차 심장이 튀어나올뻔했다. 상대는 분명 소년의모습이었다. 그러나 절대사람은 아니다. 멀쩡한 사람이 시뻘건 눈동자에 송곳니는 몇 십센티나 되고, 양팔에 날개가 달렸을리가 만무한것이다. 몬스터는 손에 들고 있던 토끼 시체를 팩 집어던지고 아크를 노려보았다. 막 저녁 식사를 하시던 중이었나 보다. 방해를 받았으니 기분이 좋을리가 없겠지만, 아크를 보더니 이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저녁 식사 양이 늘어났다고 좋아하는 모양이다. '갈고리 박쥐? 이게 박쥐란 말이야? 레벨은............' 아크는 심장이 벌렁벌렁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막상 고양이의 눈으로 살펴보니 레벨은 고작 90밖에 되지않았던 것. 뉴 월드에서 오래 있다보니 아무리 무섭게 생긴 몬스터라도 레벨이 낮으니 같잖아 보인다. 아크의 레벨은 127.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177남짓, 90레벨의 몬스터가 송곳니를 쑤셔 박아도 무기에게 물린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기가 사람을 통째로 잡아먹겠다고 달려드는 꼴! '건방진 놈, 고작 90레벨 몬스터 주제에 내가 저녁 식사감으로 보인다는거냐?' 아크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 뒤의 상황은 굳이 설명한 필요도 없다. 갈고리 박쥐는 곧바로 잘게 다져져 냄비 속으로 풍덩,갖은 향신료와 함께 아크의 놀란 가슴을 추스르는 보양식이 되었다. '갈고리 박쥐가 레벨90몬스터면 재료를 구하는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군' 그렇게 든든하게 저녁을 해결한뒤,본격적인 갈고리 박쥐사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갈고리 박쥐 사냥은 생각만큼 쉽지않았다. "저기 한 마리 날아간다!" 데드릭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검은 물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갈고리 박쥐 사냥의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그거렸다. 생긴 거야 그렇다 쳐도, 일단 명색이 박쥐니 하늘을날아다닌다는것. 장거리 공격을할수 없으니 갈고리 박쥐를 발견하면일단 무작정 쫓아가야했다. 그러다가 지상과 가까워졌을때야 본 블레이들르 채찍으로 만들어 끄집어 내리고 싸워야햇다. "이러다가는 정말 한도 끝도 없겠군" 그런 식으로 서너마리 처리해 본 아크는 암담해졌다.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는 무려 1,000개.그런데 한 마릴 잡는데 몇십분이나 걸린다. 갈고리 박쥐를 발견하기도 쉽지않았을 뿐더러, 일일이 내려올때까지 뽗아다니며 잡아야 한다. 게다가 갈고리 박쥐는 무조건 송곳니를 떨구지도않았다. 네 마리를 처리했을때에야 겨우하나 나왔다. "무슨 이런 비효율적인 사냥이 다 있어?" 결국 아크는 사냥 방법을 바꿨다. 일단 란셀 마을로 돌아간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 활을 구입한 것이다. 궁수도 아니니 어차피 활의 공격력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다. 때문에 제일 허접스러운 활을 골랐는데도 화살까지 구입하자 10골드나 들어갔다. '크흐흑, 설마 내가 돈을 내고 활을 구입하게 될줄이야!이럴줄 알았으면 쓸만한 호라 나와을때 하나 남겨둘걸' 쓸만한 활을 몽땅 상점에 팔아왓던 아크는 땅을치고 후회했다. 그러나 뒤늦은 후회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는법! '그래, 10골드나 투자했으니 본전을 뽑아야지!' 아크는활을 고르고 다시 사냥터로향했다. 그리고 데드릭으로 주변을 정찰하며 갈고리 박쥐가 발견되는 족족 화살을 날려댔다. -화살이 빗나갔습니다. 궁술 스킬도 없으니 당연히 화살이 제대로 박힐리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화살을 날리면 갈고리 박쥐는 곧바로 내려와 아크를 공격했다. 적어도 내려올때까지 무작정 좇아갈 필요는없게 된것이다. 그렇다고는해도......... '헉헉헉, 갈고리 박쥐가 이렇게 숫자가 적은 몬스터였나?' 3~4시간을 사냥했는데도 갈고리 박쥐는 이십 마리밖에 잡지 못했다. 얻어 낸 송곳니는 6개.게다가 박쥐라서 그런지 낮에는 아예 활동을 하지않는다. 장난하냐? 이렇게, 대체 무슨 수로 송곳니 1,000개를 모은단 말인가? 물론 갈고리 박쥐를 찾는 동안 닥치는대로 몬스터를 사냥해 경험치를 모으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재료가 영 안모이니 짜증이 일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준것은 의외로 데드릭이었다. "주인 ,이 근처에 바쥐들이 모이는 곳이 있을거야" "뭐?" "나야 독립심이 강하니까 어려서부터 혼자였지만, 다른 박쥐들은 모두 뭉쳐 있는걸 좋아하거든. 사냥할때를 제외하고는 한곳에 모여있는게 분명해." 독립심이 강하기는 개뿔,왕따 당해서 찌질하게 혼자 있었던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과거사를 끌어내 모처럼기특한말을 하는 데드릭을 기죽일 이유는 없었다. "그럼 어디에 모여 있을까?" "그야 나도 모르지.뭐,박쥐니까 동굴이 아니겠어?" 데드릭은 여기까지 말해줬는데 더 뭘 바라냐? 라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망할 녀석, 악실리온에서 삥땅치던 것도 그냥 넘어가 줬는데......아크가 호시탐탐 군기 잡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은 데드릭의 버릇이나 고치고 있을 떄가 아니다. '박쥐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그렇다면 그곳을 알아낼 방법은 하나다' 아크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갈고리 박쥐와의 전투를 떠올렸다.갈고리 박쥐의 행동 패턴은 대체로 비슷했다. 화살을 날리면 저돌적으로 공격을 하다가도 빈사상태에 빠지면 버둥거리며 도망치려고 했다. 물론 본 블레이드로 결정타를 날려 쓰러트렸지만.....어쨌든 빈사 상태에 빠져 도망치는 몬스터가 가려는곳은 뻔하다. 안전한 장소, 바로 동료들이 있는 곳이다. '내가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크는 곧바로 갈고리 박쥐를 찾아헤맸다. 한 마리가 데드릭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아크는 일단 검으로 반쯤 죽여 놓은 뒤에 무장을 해제했다. 공격력이 높은 검으로 두들기면 자칫 죽어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후후후,간만에 스트레스 좀 해소해 볼까나?' 우드득, 우드득, 아크는 으스스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갈고리 박쥐는 아크가 무장을해제하자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는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렀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이어지는 속사포 같은 잽과스트레이트! 갈고리 박쥐는 면상에 서너 발의 주먹을맞고 쌍코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플라잉 니킥!아크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무릎으로 놈의 턱을올려쳤다. 검투술 효과로 갈고리 박쥐가 스턴에 빠지자 아크는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배후로 돌아갔다. 양손으로 허리를 감고 그대로 들어 백 드롭! 경찰청 체육관에서 지옥을 넘나들며 몸에 익힌 복싱, 레슬링,태권도 기술이그림처럼 연결되었다. 체계적으로 배운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폭넓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살려고 버둥거리다 보니 몇몇 기술은실전에서도 통용될 만큼 완벽하게 익힌 아크였다. 기술이 하나하나 펼쳐질때마다 갈고리 박쥐의 얼굴은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졌다. 그러나 아크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그동안 갈고리 박쥐를 쫓아다니며 쌓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콧잔등, 눈둦덩이,아픈데만 골라때리고,떄린데 또 떄리고..........게다가 힘을 조절해서 최대한 데미지를줄이고 고통만 선사해주었다.치사하곡 잔인한 공격에 지켜보는 데드릭과 데이모스조차 움찔움질할 정도였다. 사실 단순한 스트레스를해소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최대한 분하게 만들어야 딴데로안 새고 엄마한테 이르러 갈게 아닌가? 결국 갈고리 박쥐는 20초도 안되어 빈사상태에빠져 버렸다. 찌직,찌지지직! 갈고리 박쥐는 욕설(?)을 내뱉으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훗,데드릭.놈을 쫓아라!" "예,옛 써!" 데드릭은 아크의 폭력에 잠시 잊었던 과거가 생각난 모양이다 .화들짝 놀라며 부리나케 박쥐로 변신해 갈고리 박쥐를 쫓아갔다. 그 뒤로 약 5분 .아크는 데드릭의 안내를 받아 숨겨진 던전을 찾아낼수 있었다. [아구스 산맥의 음습한 박쥐 동굴 아구스 산맥의 갈라진 절벽 안에 잇는 넓은 동굴을발견했습니다. 어두운공간 속에서 날짐승도, 들짐승도 아닌 존재들이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 붉은눈을 번뜩이고 잇습니다. 피를 갈구하는거친 호흡과 셀수 없을 정도로 않은 반향음은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들의 먹잇감이 되어 있을것입니다] 협박성 다분한 메시지 따위는 가볍게 무시했다. 역시나 동굴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엄청난숫자의 갈고리 박쥐가 새까맣게 몰려나왔다. 뚝 떼다가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사용해도 지장이 없을 듯한 괴기스러운 장면.그러나 아크는환호성을 지르며 검을뽑아 들었다. "아자,노다지다!" 그 뒤로 아크는 사흘째 던전을 공략하고있었다. "좋아,시작한다.B-2플랜!" 아크의 명령에 데이모스와 데드릭이 빠르게 전형을 만들었다. 데이모스는방패를 들어 올려 아크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게 데이모스로 성벽을 만든 아크는빠른 손놀림으로 화살을날려댔다.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 동안 아크는 몇번이나 장거리 공격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비행 몬스터를 상대할 기회가 없어 그냥저냥잊고 있엇던 것. 그러나 이번기회로다시 필요성을절감했다. 제대로 배워두지는 않더라도,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놔야 할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굳이 활을 사용하는다른 이유도 있었다. '화살을 버릴수는 없어!' 아크는 사냥이 길어질것 같아서 나무 화살을 500발이나 사 두었다. 허접스러운화살이지만100발에 10실버.500발이면 50실버.하루에 수십 골드를 벌어들이면서도 1쿠퍼에 벌벌 떠는 아크에게는 적은 돈이아니었다. 그러나 나무 화살은 단가가 너무 싸 다시 상점에 팔수도 없다. 그걸 그냥 버리면 밤잠을 설치리라. 차라리 손에 물집이 잡히도록 쏴 대서 스킬하나라도 배워두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400발 정도 쏴대자 스킬이 생성되었다.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 궁술(초급, 패시브) : 화살 깃이 귓가에 스치는소리가 낯설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활과 화살을 벗 삼아 전투를 벌인덕에 요령을 깨달은것입니다.그러나안타깝게도당신은자질이부족하여 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수 없었습니다. <정확도, 연사 속도+3%,적중시 사태 이상 확률 +1%> *보다 강한 철제 화살을 사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찮기 짝이 없는 능력치다. 근접공격계열이니 상당한패널티가 작용한탓! 그래도 스킬이 있을때와 없을 때는처지차이다. 스킬이 생기자 90%확률로 빗나가던 화살이 그래도1~2발씩 박히기시작했다.물론 레벨 90몬스터를상댈로 초급궁술에 나무 화살을 쏴대니 데미지는 고작 10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대충모았어!" 데드릭이 갈고리 박쥐를 밟아 대며 소리쳤다. 화살을 사용해야 했던 다른이유가 그 때문이다.동굴 안이라고는하지만 넓이가 엄청나다 보니 갈고리 박쥐들이 날아오르면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아크는 데드릭과 화살을 이용해 일단 갈고리 박쥐들을 끄집어 내렸다. "좋아!데이모스,방어태세로 배후를 지켜라!" 딱딱딱! 아크는 활을 챙겨 넣고 검을 뽑아 들었다. 퍼퍼퍼펑! 일시에 서너 마리의 갈고리 박쥐들에게 폭음이 터져 나왔다. 갈고리 박쥐들은 무조건 떼거지로 몰려나왔다. 최소 이십 마리에서 많게는 오십 마리까지. 레벨이 70이나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 정도 숫자라면 얘기가 다르다. 동굴에 막 들어섰을때는 그런 갈고리 박쥐를 상대하며 애를 먹었지만 ,몇 번 반복해 보니 어느정도 요령이 생겼다. 배후를 데이모스의 방어 태세로 단단히 막고, 데드릭이 몰아오는 놈들을 차례차례 상대하는 전법이었다. 스삭,쩌정,투퉁! 아크의 검은 사방에서 몰려오는 갈고리 박쥐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레벨의 효과는 바로이런데서 나타난다. 동 레벨의 몬스터를 상대할때는 정신을 집중해서 공격해야 치명타가 터질까 말까. 그러나 레벨 차이가 70이상 나면 검을 눈을 감고 휘둘러대도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진다. 발차기 역시 높은 확률로 상태 이상을 일으킨다. 반면 갈고리 박쥐의 공격은 거의 미스로 판정 날때가 많았다. 오십 마리가 일시에 공격해도 실제 데미지를 받는건 열번 정도,게다가 레벨에 맞게 방어력이 높으니 데미지는 30남짓.열번을 맞아도 300밖에 깎이지 않는다. 상태 이상만 아니라면 생명력이 2,000대를 훌쩍 넘기고 방어력도 상당한 아크에겍 그 정도는 가렵지도 않았다. 게임에서 레벨이 절대적인 요소로 작용하는게 바로 이런점 때문이다. 방어구든 무기든 착용 레벨 10짜리 레어 아이템보다 착용 레벨 100짜리 일반 아이템의 능력치가 훨씬 높다. 당연히 아무리 좋은 레어아이템을 갖춰봐야 허접스러운 아이템의 고레벨 유저를 이기기 힘든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얌전히 맞아줄 아크가 아니다. '오른쪽에 세 마리가 머리를 공격한다!아래쪽도 두마리!' 갈고리 박쥐가 달려들자 손톱, 발톱에서부터 아크의 신체부분까지,공격 궤도에 따라 붉은 선 몇개가 그려졌다. 아주 잠깐, 번쩍이고 사라질뿐이지만 타이밍을 맞춰 회피 동작을 하면 높은 확률로 갈고리 박쥐의 공격을 무효화시킬수 있다. 적의 공격을 미리 알아채는 능력! 얼마전에 상급으로 올라간 '고양이의 눈'의 추가효과다. [고양이의 눈(상급, 엑티브): 고양이의 눈 스킬이 상급이 되어 상대에 대한 더 맣은 정보와 약점을 차악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급 보너스로 같은 적을 여러번 상대하면서 그 스타일을 완전히 이해할수 있는 선견지명의 능력을 체득했습니다. <5분간 +나이트 비전, +생명 탐지, +허점 발견, +더블 크리티컬 기회포착, 마나 소모 : 100> *선경지명: 당신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고 움직임을읽어내는 능력을 오랜 기간 수련해 더욱 날카로운 눈썰미를 갖게 됐습니다. 같은 적을 여러번 상대할경우, 백 마리당 5%의 확률로 상대의 공격 궤도를 미리 파악할수 있습니다. 단, 최대치는 70%를 넘길수 없습니다.] 이 기술이 처음 생겼을때는 별 의미가 없었다. 백 마리당 5%확률.즉,백마리를 잡은 시점에서야 기술이 발동하고,그 확률도 어쩌다 한번 상대의 공격 궤도가 미리 표시된다는것이다. 그런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움직이는편이 낫다. 그러나 갈고리 박쥐를 천 마리 이상 잡고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50%확률로 공격 궤도가 미리 표시되는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완벽해도 약간의 데미지를 감수해야 한는 일반 회피와 달리 선경지명으로 피하면 100%데미지를 무효화시킬수 있다.하기에 따라서 50%의 공격을 아예 무시할수 있다는것이다. 또한 미리 공격 궤도를 파악하고 있으면 반격을 가하기도 그만큼 쉬워진다. '카운터 어택!' 아크는 갈고리 박쥐의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묵직한 울림이 터지며 갈고리 박쥐가 반으로 갈라졌다. '확실히 이전과는 느낌이 전혀다르다!' 아크는 선두의 갈고리 박쥐를 모두 쓰러트리고 소리쳤다. "데이모스,데드릭!A-4플랜이다!" 데이모스와 데드릭의 좌우로 벌어지며 갈고리 박쥐를 한곳에 모았다. "우헤헤헤,둔한놈들.고작 그럼 솜씨로 나를 잡을 수 있을것 같으냐? 보여 주지.이 몸의 우아한비행을!" 데드릭은 다른 능력치에 비해 생명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워낙 얍삽한 성격이라 회피 기술만큼은 발군! 날렵한 솜씨로 갈고리 박쥐의 공격을 피하며 교묘하게유인해 냈다.반면 데이모스는 데드릭처럼 스피드나 요령은 없었지만 ,힘과 체력,방어력잉 높았다. 딱딱딱딱! 데이모스는 방패를 앞세우고 힘으로 갈고리 박쥐를 밀어붙였다. 하늘과 땅에서 두 소환수가 훌륭하게 역활을 소화해내자 갈고리 박쥐가 한데 뭉쳤다. 막다른 곳까지 밀어붙였을때, 아크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금이다, 뱀, 검!" 쌕쌕쌕! 아크는 검을쥐자마자 앞으로 내뻗으며 소리쳤다. "블레이드스톰!" 번-쩍 검이산산이 부서지며 폭풍처럼 갈고리 박쥐 떼를 휘감았다.몰려있던 사십여 마리갈고리박쥐의새영력이엄청난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검파편이 회오리처럼 몰아치며 전체데미지를 안겨준 것이다. 공격력이 한마리에게 집중되지 않아 데미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블레이드스톰 한번으로 사십여 마리의 생명력이 평균40%나 깎여나갓다.이미 생명력이 많이 깎여있던 갈고리박쥐는 갈가리 찢겨져 날아가기도 했다. "좋아,화끈하게 가자!데이모스, 검화!뱀, 맹독을 만들어라!" 데이모스가 빠르게 검으로 변해 바닥에 꽂혔다. 아크가 검을 뽑아들자 뱀이 타이밍을 맞춰 맹독을 발라 댄다.순식간에 모든 준비가 끝난다. 본 블레이드가 채찍처럼 움직이며 한 번에 대여섯 마리의 갈고리 박쥐를 몰아쳤다. 이게 갈고리 박쥐를 사냥하는 아크의 방식이었다. 솔직히 아무리 아크라도 레벨 90몬스터 오십여 마리를 상대하려면 생명력이 2배가 되도 버틸수 없다. 방어력이 높다고는 하나 동 레벨 전사보다 떨어지는 것도 사실.그렇다고 오십마리의 공격을 모두 피할수 없다. 결국 정신없이 싸우다 보면 어느새 생명력이 바닥을 기고 있을때가 많았다. 때문에 아크는 다수를 상대할 전략을세웠다. 첫 공세를 막아내고 막다른 동굴로 몰아넣는다. 뒤이어 블레이드 스톰으로 화끈한 전체 데미지를 먹인 다음, 본 블레이드의 채찍 공격으로 다수의 적을 동시에 몰아쳤다.워낙 숫자가 많으니 채찍으로 휘두를때마다 갈고 리 박쥐 대여섯 마리가 데미지를 받았다. 한데 뭉쳐 블레이드 스톰을 맞아 서로 얽혀져 있는 상태.도망도 치지 못한다. "어딜 기어 나와? 얌전히 죽어!" 간간이 한두 마리가 벗어나면 ,데드릭이 암흑 돌진으로 들이박아 다시 처박아 버렸다. 덕분에 본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족족 갈고리 박쥐들이 갈라졌다. "마무리다. 블레이드 스톰!" 아크는 골고루 때려 주다가 적당한 순간에 다시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했다.다시 휘몰아치는 검의 파편! 헐떡 거리던 갈고리 박쥐 삼십여 마리가 일시에 터져 나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갈고리 박쥐 오십 마리를 처리하자 다시 레벨이 올랐다. 몰이사냥의 진수! '후후후,그야말로 경험치를 쓸어담는군' 수십마리의 몬스터를 모아서 단숨에 정리하는 몰이사냥. 광역 마법을 펼치는 마법사만의 전유물이라고 할수 있는 사냥법이었다. 유저들이 방어력도 약하고 PVP에서도 불리한 마법사를 선택하는건 오직 이 몰이사냥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한번 맛들이면 벗어나기 힘들지만,본래 전사 계열에게는 불가능한 사냥법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본 블레이드의 채찍 기능과 블레이드 스톰의 콤보로 몰이사냥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하는 광렙! '레벨이 올라가는속도가 지저세게에서 너구리 부대를 지휘할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왜 유저들이 몰이사냥이라면 환장하는지 알수 있었다. "수고했다. 그럼 이번 전투 성과를 발표하겠다" "에고 ,삭신이야.싸울때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하니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참아야지.주인을 위해서니까,음음.열심히 할거야" 데드릭이 슬슬 눈치를 살피며 공치사를 늘어놓았다. 동굴을 찾은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아크는다시 소환수들을 잡기 시작했다. 한동안 너무 풀어놨다 싶어서 다시 전투 성과에 따라 요리를 퍼먹이는 제도를 부활시킨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데드릭에게 요리를 먹일 구실에 불과했다. '데이모스는 간간이 뼈 수집을 통해 능력치를올린다. 하지만 데드릭은 요리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부쩍 건방져지기도 했으니 이참에 새로운 요리도 시험할겸 먹여놓자' 그 뒤로 아크는 요리조리 꼬투리를 잡아 데드릭에게 요리를 퍼먹였다. 덕분에 새로운 요리 배워,데드릭 버릇 고쳐,능력치 올려.......일석삼조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과유 불급, 넘치면 모자란것보다 못한 법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꼬투리를 잡으면 데드릭 성격에 반항이 더 심해질 건 불 보듯 뻔하다. '데드릭의 능력치도 다시 데이모스와 비슷해졌으니 이제 적당히 상황에 맞춰 먹이자' 그동안 소환수의 능력치 총계를대략90레벨 수준까지 끌어올린 아크는 조금 느긋해졌다. "이번에는 둘다 잘해줬다. 마음 편히 쉬어도 좋아" 딱딱딱,딱딱딱딱! "으헤헤헤,역시 존경하는 주인님, 보는 눈이 있으시군요" "까불지 말고 생명력이나 회복하고 있어 .뱀,아이템을 챙겨라" 쌕쌕쌕! 뱀이 부지런하게 바닥을 기어 다니며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뱀이 '갈고리 박쥐의 송곳이'를 습득했습니다. 오십여 마리의 갈고리 박쥐가 몰살당한 바닥에는 온갖 잡템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식재료로 쓰이는 갈고리 박쥐의 살점부터,재료로 쓰이는 가죽...........잡아 대는 숫자가 숫자이니 만큼 종종 쓸만한 마법 아이템도 나왔다. 90레벨의 몬스터라 70~80대 레벨 아이템이었지만, 사실 경매 사이트에서는 그런 아이템이 더 잘 팔리고 있었다.현재 뉴 월드를 즐기는 유저들의 대다수가 평균 레벨 60~80대였기 때문이다. -뱀이 '묵철검'을 습득했습니다. [묵철검(마법) 무기 타입 : 양손 검 내구력 : 30/45 공격력 : 17~23 무게 : 40 사용 제한 : 레벨 80 이상 전사 계열 귀금속만큼이나 귀하다는 묵철을 제련해서 만든 대검. 전사들 사이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양산품입니다. 그러나 같은 양산품이라도 드물게 걸작이라고 할 만한 검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검들은 같은 양산품이라도 성능이 더 좋으며, 때때로 특수한 힘이 깃들기도 합니다. <옵션 : 공격 속도+10%,힘 +7>] 갈고리 박쥐는 기대 이상으로 짭짤했다. '이건 꽤 쓸만한데? 80......아니, 100만원은 족히 받을수 있겠어!' 아크가 헤벌쭉한 얼굴로 묵철검을 챙겨 넣었다. 그러나 아크가 당장 아이템은'슬라임의 내단'을만드는데 필요한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였다.정작 송곳니는 뱀이 구석구석 샅샅이 뒤졌지만 고작 13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쳇,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드랍율이 낮군" 지난 며칠 동안 하루 3시간만 자며,게임 안에서도 휴식 시간을 최소화하며 오직 사냥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사냥한 갈고리 박쥐는 무려 오 천 마리!잡템을 정리하기 위해 란셀마을을 수없이 들락거려야 했다 .그 와중에 아크는 레벨이15나 올라 지금은 142가 되었다. 그중 13이 동굴에서 오직 갈고리 박쥐만을 잡아 올린것이다. 블레이드 스톰을 연발하며 몰이사냥을 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아직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는 950밖에 모으지 못했다. "앞으로 50개.......대략 칠백 마리 정도 잡으면 되나? 이제 박쥐라면 지긋지긋하지만 그래도 서두르면 어찌어찌 오늘 안에는 끝낼수 있겠군" 아크는 쉴 틈도 없이 다음 전투를 위해 재정비했다. "완전히 걸레가 다 됐군" 방어구를 살펴보니 내구력이 20이상씩 깎여 있었다. 맞는 횟수가 많아 한번 전투를 치를때마다 방어구는 모두 너덜너덜해졌다. 아크는 일단 '마법 복원'을 사용해 장비를 말끔하게 수리했다. '마법 복원'도 이제 상급.마법 아이템까지 내구력 손실없이 수리가 가능해졌다. 인어족의 수호갑옷을 수리할때도 굳이 수리상자를 쓸 필요가 없어진것. '스킬이 하나 오르면 이래저래 부가 효과가 굉장하구나' 말끔하게 고쳐진 갑옷을 보니 새삼 스킬의 중요성이 절감되었다. 장비를 수리하고, 요리로 생명력을 회복한 아크는다시 동굴안으로 들어갔다. 어쩌다 보니 찾아오게 된 동굴이지만,박쥐 동굴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엄청나게 컸다. 산이 쪼개져서 만들어진듯, 절벽의 틈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간간이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공동이 나타나기도 했다.그런 장소는 암벽을 따라 갈고리 박쥐들이 엄청나게 몰려있어 아크조차 조금씩 유인 작전을 펼쳐 소탕해야 했다. '기왕 들어온 던전이니 끝까지 들어가 봐야겠다' 던전 끝에 뭐가 있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누가 알아? 보물 상자라도 있을지?' 아크는 갈고리 박쥐를 처리하며 더욱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갑자기 좁아진 동굴을 따라 들어가자 이내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마치 송곳니 같은 석주가 주렁주렁 매달린 공동! '여기가 동굴의 끝인가?' 아크는 두리번거리며 벽을 따라 걸었다. 키이이이잉.............................. 그떄, 돌연 앞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마치 소리굽쇠에서 울리는 듯한 반향음.아크는 반사적으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공동의 천장에 무너가 엄청나게 큰 물체가 매달려있었다. 거대한 공동에 매달려 있는 시꺼먼 덩어리,뭔가 불안감을 느낀 아크가 숨을 죽이며 지켜볼때였다. 물체가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안쪽에서 붉은 눈동자가 빙그르르 돌아갔다.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기분이 들었다. '헉!저, 저건.......설마 갈고리 박쥐?' "끼에에에엑!" 동시에 그 물체가 양 날개를 활짝 펴며 괴성을 질러댔다. 크기가 무려 20여 미터가 되는 거대한 갈고리 박쥐였다. -보스 몬스터 '동굴의 공포 그림윙'이 나타났습니다! 동굴 끝에서 아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보물상자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였다. '쳇, 설마 이런곳에까지 보스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그림윙이 화살처럼 아크에게 쏘아져 날아왔다. 아크는 바닥을 굴러 피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림윙이 확 날개를 펼쳐 급브레이크를 걸어 버리자 검은 허공을 갈랐다. 뒤이어 등줄기가 욱신거리며 데미지가 들어왔다. -그림윙에게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400! '장난이 아니잖아?' "데이모스,방어 태세로 배후를 지켜라.데드릭, 놈이 멋대로 설치지 못하게 교란시켜!" 데이모스가 방패를 들고 아크의 뒤에 바짝 붙어섰다. 데드릭은 빠르게 그림윙의 주변을 돌며 암흑 돌진ㅇ르 펼쳤다. 그렇게 소환수가 가세한 뒤에야 아크는 여유를 되찾을수 있었다. 이미 갈고리 박쥐라면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보았다. 덩치가 크다고 해도 그림윙 내용물은 결국 갈고리 박쥐.지금까지 그래왔듯 차분하게 소환수를 움직이며 상대하자 그럭저럭 싸워 볼만한 상대였다. 카운터 어택! 아크는 데드릭이 그림윙을 몰아오면 받아치는 방식으로 데미지를 주었다. 그림윙은 비행 몬스터 특유의 민첩함으로 오히려 반격을 가할때도 있었지만, 반은 방어 태세를 단단히 굳힌 데이모스가 대신 받아주었다. 그렇게 약 5분가량 싸우자 그림윙의 생명력이 30%정도 줄어들었다. 아크는 40%가 넘게 빠졌지만 그림윙의 움직임에 익숙해진 덕에 데미지를 받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엇다. '좋아,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이 정도라면 이길수 있어!' 그러나 아직 승리를 확신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돌연 그림윙이 위쪽으로 솟구쳐 괴성을 터트렸다. 뭔가 보이지않는 충격파가 아크와 소환수를 휩쓸었다. 아크는 움찔했지만 이렇다 할 데미지가 들어오지는 않았다.하지만........ "엇? 데이모스? 데드릭? 뭐 하는 거야?"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소환수를 바라보았다. 딱딱,딱딱딱! 데이모스가 갑자기 어두운 공간을 정신없이 달려갔다. 어이없게도 그 앞에는 황금빛 뼈다귀가 둥둥 떠 있었다. 황금 뼈다귀가 나타나자 데이모스는 아크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그저 황홀한 눈으로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홀린듯이 황금 뼈다귀를 쫓아갈 뿐이다. 데드릭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자식들, 모두 죽여 버리겠어!거기 서!" 데드릭의 앞에 나타난 것은 수십마리의 욕설을 퍼부으며 미친듯이 암흑돌진으로 들이받았다. 그러나 박쥐들은 살살 피하며 데드릭을 놀려댔다. 아마도 유계에서 데드릭을 따돌렸다던 그 박쥐들인 모양이다. 황금 뼈다귀와 유계의박쥐들.......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굴에서 저런게 갑자기 나타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환각!' 그림윙이 뿜어냈던 충격파! 데미지를 주는게 아니라, 환각을 일으키는 충격파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크워커인 아크는 공포,어둠,현혹,매혹에 50%의저하력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환각의 영향을 피할수 있었지만, 데이모스와 데드릭은 정통으로 걸려 버린것. 그렇게 두 소환수가 따로 놀자 아크는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어 버렸다. "키키키키 !" 그림윙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웃음을 흘려댔다. 뒤이어 사방에서 몰아치는 공격! 순식간에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아크는 재빨리 반격을 가했지만, 그림윙은 전장 20미터나되는 주제에 다람쥐처럼 재빨랐다.한번 치명타를 안겨 주고 재빨리 솟아올랐다. 급가속과 급제동.단지 두 가지를 반복할 뿐인데도 도저히 타이밍을 맞춰 카운터를 날릴수없었다. '젠장, 급가속과 급제동은 복싱의 기본기 중의 하나인데.......' 체육관에서 복싱을 좀 더 연습했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아크는 화살을 날려보기도 했지만, 초급 궁술로 날려 대는 나무화살이 효과를 발휘할리가 없다.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아크는 어금니를 깨물고 다시 돌진해 오는 그림윙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타이밍을 맞춰 검을 휘둘렀지만 역시나 그림윙은 급제동을 걸어 피해냈다. 그리고 발톱을 휘두르는 순간,아크는 와락 달려들었다. 가슴이 욱신거리며 데미지가 들어왔지만 아크는 그대로 놈의 발목을 껴안아 버렸다. '도망친다면 아예 잡고 패는 거야!' 레슬링을 괜히 배운게 아니다. 그림윙이 요동치며 사방으로 날아다녔지만 단단히 자세를 잡은 아크는 떨어지지않았다.그 상태로 검을 휘두르자 제 위력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확실하게 데미지가 들어갔다. '됐어,너는 이제 엿된거야!커헉!' 쿠콰콰콰쾅! 그때였다. 그림윙은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대로 벽으로 돌진해 들이받아 버렸다. '이런 무식한 자식 같으니!' 벽이 통째로 흔들리며 바위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림윙과 함꼐 벽에 처박힌 아크는 단숨에 생명력이 20%나 깎이며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대위기!아크는 재빨리 일어나 그림윙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공격은 없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래?' "키에에엑!키엑!" 지금까지 그림윙의 상황 판단력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된 것인지 그림윙은 엉뚱한 곳에서 팔을 휘두르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회다.일단 물러나자!' 아크가 와락 데이모스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가까운 좁은 입구로 몸을 피했다. 데드릭은 날아다니는 중이라 소환 해제로 일단 유계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렇게 위기를 모면한 아크는 일단 포션으로생명력을 50%까지 회복시켰다. 그 무렵, 데이모스도 환각 상태에서 깨어났다. 화들짝 정신을 차린 데이모스는 황금 뼈다귀를 찾는듯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시무룩한 얼굴이되었다. 뭐,뼈다귀에 환장한 데이모스는 그렇다 치고.................. '그림윙은 생각보다 강하다.소환수들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길수는 있을것 같은데.....환각 을 사용하면 당할 도리가 없어. 어쩌지? 이대로 포기하고 도망갈 방법을 찾아야 하나? 하지만 도망가기도 쉽지는 않을텐데....'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그런데 조금 전에 그 녀석이 왜 그렇게 정신이 없었지? 바위 때문에 흙먼지가 많이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나를 못찾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흙먼지? 아니야!그 녀석이 나를 못 찾은건 흙먼지 떄문이 아니었어!반대로 바위들이 떨어지면 난 소리 때문이야!맞아,왜 그 생각을 못했지? 공동에 처음 들어왔을떄의 반향음. 그게 그림윙이 볼수 있는 방법이었어.진짜 박쥐처럼 시각보다 청각이 발달한거야. 그리고 잠수함의 소나처럼 초음파를 뿜어내서 내 위치를 읽었던 거야' 아크의 눈동자에서 승리의 확신이 번져 나갔다. '놈에게 약점이 있다!그걸 이용하면 이길수 있어!' 아크의 머리가 맹렬한 속도로 회전했다. 그리고 대략적인 작전을 구상한 아크는 곧바로 데드릭을 소환해냈다. "이 자식, 가만 놔두지 않겠어!" 데드릭은 소환되자마자 와락 아크의 멱살을 잡았다. 제가 아직 환각속을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뒈지고 싶냐?" "헉!주,주인?" 아크가 슬쩍 노려보자 데드릭이 질겁하며 얼른 물러났다. "아,아니.이건 그냥........방금 전에 열 받는 놈들이...." "됐어.알았으니까 입 다물고 잘 들어" "크르르르!" 그림윙은 공동에 몸을 사린채 붉은 눈동자로 주변을 훝었다. 족므전, 아크의 기척을 놓친 뒤로 여러번 초음파를 날렸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낌새조차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도망친건 아니다. 틀림없이 공동 어딘가에 있다. 야생동물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을 죽이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작은 동굴 속에서 아크가 달려 나왔다. 등 뒤에서 달려나왔지만 초음파로 주변을 감시하는 그림윙에게 사각은 없다. 그림윙은 바닥을 차고 올라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는좀 전과는 달리 싸울 생각이 없는지 요리조리 도망만 다녔다. 한참을 쫓아다니던 그림윙은 결국 분노의 포효를 터트렸다. "끼에에에엑!" 강렬한 충격파가 아크를 휘감아 버렸다.그러자 아크가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회심으 미소를 짓던 그림윙은 움찔했다. 아크가 넘어지는순간, 엉뚱하게도 몸이 2개로 나뉘어 버린것이다. "......?" 내 충격파가 그렇게 센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림윙은 곧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다. 잘린 몸중 하나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자식들, 거기 안서? 이번에 잡히면 죽었어!" 아크의 목소리가 아니다. 파리처럼 왱왱거리며 시끄럽게 굴던 박쥐의 목소리였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가 ? 그림윙이 연속적으로 초음파를 날렸을때, 돌연 천장에서 2개의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게 감지되었다. "늦었어,다크 블레이드!" 돌연 머리 위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모든 영상이 일그러졌다. 그렇다, 그림윙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은 바로 아크! 아크가 세운 작전의 내용은 이랬다. 그림윙은 눈으로 상대를 파악하는게 아니다. 초음파로 알아낼수 있는 상대의 정보는 고작해야 크기와 실루엣정도. 거기까지 생각해 낸 아크는 그걸 역이용하기로 했다. 데드릭에게 큼직한 갑옷을 들게 하면 아크와 키가 비슷해 진다. 그 상태로 나가면 그림윙은 데드릭을 아크로 착각할터!그렇게 그림윙이 데드릭에게 집중하는 사이,아크와 데이모스는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데드릭이 목표 지점으로 유인한 순간.......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해 천장에 매달린 조유석을 떨어트렸다. 낙하 지점이 철저하게 계산된 날카로운 종유석! 쿠쿠쿠쿵, 촤악! 종유석은 그림윙의 날개를 종잇장처럼 찢어 버렸다. "자, 이제 공평하지? 어디 제대로 붙어 보자!" 아크는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그림윙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림윙이 분노의 포효를 터트리며 아가리를 벌렸다. 그때, 데이모스가 검으로 천장을 미친듯이 후려쳤다. 아크처럼 종유석을 떨어트릴만한 공격력은 아니다. 그러나 작은 돌 부스러기가 우박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무수한 소음은 청력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그림윙에게는 치명적! 오나벽한 정확도를 자랑하던 그림윙의 공격이 빗나갔다. 동시에 아크는 그림윙의 목 줄기에 연속적으로 치명타를 날리며 착지했다. 뒤이어 벌어진 전투는 완전히 아크의 페이스였다. 날지못하는 그림윙, 게다가 데이모스가 쉬지 않고 돌가루를 뿌려대는 통에 눈뜬 장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림윙은 몇 번이나 데이모스를 향해 환각 충격파를 날리려고 했지만 두고 볼 아크가 아니었다. "화격!" 아크는 그럴때마다 화격을 날려 그림윙을 밀어냈다. 당연히 충격파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훗, 날개와 초음파,두가지를봉인시키니 장난이군' 그러나 사자는 토끼를 잡을때도 전력을 다하는법.더구나 눈뜬 장님이라도 한방의 위력이 있는상대다. 아크는신중하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착실하게 생명력을 줄여갔다. 그때,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자식들,죽여 버릴테다!" 환각에 빠져 공동을 미친듯이 돌아다니던 데드릭이 그림윙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그림윙의 눈동자가 번쩍이더니 와락 데드릭을 잡아채고 목덜미를 깨물어 버렸다. 순간 데드릭의 생명력이 주욱 빠지며 그림윙의 생명력이 복구 되는게 아닌가? '흡혈!맞아,갈고리 박쥐는 흡혈 박쥐였지? 쳇, 소환을 해제해 뒀어야 하는데.......' 아크는 뒤늦은 후회를 하며 소환을 해제하려던 때였다. "으악!이 자식, 물었어? 물었다 이거지 ?나는 송곳니가 없는줄 알아?" 데드릭이 욕설을 퍼부으며 그림윙의 목덜미를 깨물어 버렸다. 그렇게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되자 그림윙의 생명력 회복이 멈춰버렸다. 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다! "좋아,데드릭. 그렇게 물고있어!다크 블레이드!"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검광!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하자 그림윙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3발째가 목덜미에 꽂혔을떄 ,몸을 부르르 떨어대더니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이겼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림윙은 레벨에 비해 경험치를 상당히 많이 주었다. 정신없이 메시지가 올라오며 단숨에 레벨이4나 올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아이템은 기분나쁘게 생긴 반지와 날개밖에 떨구지 않았다. [그림윙의 날개(특수) 돌연변이로 거대화된 박쥐의 날개 용도가 불분명하지만 매우 희귀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 쓸데가 있을지도..........] [심안(레어) 아이템 타입 : 반지 사용 제한 : 레벨 120 그림윙의 제 3의 눈.마침 적당한 형태의 뼈와 연결되어 있어 손가락에 끼울수있을듯합니다. 어둠 속에서만 살아가는 그림윙은 시각이 퇴화된 대신.초음파로 상대를 알아볼수 있는 제3의눈,심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본체가 사라졌지만 적당한 마력을 공급하면 같은 능력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옵션 : '심안'을 사용할수 있습니다> *심안 : 심안을 사용하면 1분간 모든 어둠을 꿰뚫어 볼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 능력은 시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은신',혹은'암흑'따위의 시야 제한 마법에도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모든 지형을 파악할수 이기에 트랩의 위치도 손쉽게 찾아낼수 있습니다. 마나 소모 : 50] '레어 반지!부가 능력치는 없지만 옵션으로 스킬이 붙어있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능력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어둠이나 암흑 마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아크가 사용하는 고양이의 눈은 시각을 극대화 시키는 스킬이라, 오히려 어둠이나 암흑 마법에는취약했던것. 때문에 악실리온에서도 상대가 시각에 영향을 주는 스킬을 사용하면 위기에 빠질때가 많았다. 트랩 위치를 바로 알수 있게 해주는 효과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주변을 꼼꼼히 살피면 누구나 트랩을 찾아낼수 있지만, 듀크와 싸울때처럼 난전이 되면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다. 딱 하나 마음에 안드는것은 생긴게 너무 마니악하다는것. 손가락에 끼우자 징그러운 눈깔이 빙글빙글 돌며 주위를 살핀다. '뭐,됐어.이것도 가만 보면 나름대로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어쨌든 레어잖아. 전사들이 좋아할것 같으니 꽤 높은 가격을 받을수도 있을거야.우연히 찾아낸 던전에서 얻은 것치고는 괜찮은 수확이다. 일단 회복한뒤에 나머지 재료 아이템을 모으러 가자' 아크는 생명력 회복을 위해 자리를잡고 냄비를 꺼내 들었다. 그때,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데드릭이 보였다. 아직 환각이 덜 깼나 싶어 다가가려는데, 데드릭이 좌우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덥석 그림윙의 시체를 물었다. 그리고 다시 놨다가 덥석 물기를 반복하더니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소리쳤다. "그래, 나는 뱀파이어였어!" 뜬금없이 커밍 아웃이냐? 이거 또라이 아냐? "뭔 소리를 하는거야? 그럼 지금까지 네가 뭔줄 알았는데?" "그런 말이 아니야!봐 봐, 나 물수 있었던 거였어!" "그야 뱀파이어니 당연히........"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아크가 움찔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데드릭은 뱀파이어다. 물론 처음에는 뱀파이어의 종자인 박쥐일 뿐이었지만, 데드릭으로 진화하며 뱀파이어가 되었다. 당연히 뱀파이어의 특성이 생겼을터! 그럼에도 뱀파이어하면 딱 떠오르는 흡혈을 못한다는건 어째 말이 안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말은 한마디로 안하던 데드릭이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떤다면......? 그때, 아크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환수'데드릭'이 뱀파이어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박쥐에서 갑자기 벼락출세한 데드릭은 아직 뱀파이어로서의 자각이 없습니다. 때문에 뱀파이어의 특수 능력의 대부분이 봉인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흡혈박쥐인 그림윙에게 물려 뱀파이어의 흡혈 본능에 눈을 뜰수 있었습니다. 보통 뱀파이어는 흡혈로 상대의 힘과 능력을 흡수한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종자에 불과한 박쥐가 뱀파이어로 승격되어 능력을 습득한 경우,뱀파이어의 특성을 100%발휘할수는 없습니다. 한시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능력이 생겼을뿐입니다. *데드릭에게 스킬 슬롯이 1개 생성되었습니다. *흡혈 : 특정 상대의 피를 빨아 스킬을 흡수합니다. <흡혈이 성공했을경우,랜덤으로 상대가 사용하는 스킬 가운데 하나를 흡수해 스킬 슬롯에 저장할수 있습니다. 흡수한 스킬은 1회용으로 한 번밖에 사용할수 없습니다. 만약 슬롯에 스킬이 저장된 상태에서 다른 스킬을 흡수하면 이전 스킬은 자동 삭제됩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 : <현혹 초음파> 전방 20미터 범위안의 모든 개체에게 20초간 '현혹'을 시전합니다. 관련 저항력이 50%이하라면 80%확률로 '현혹'에 걸립니다] '데드릭에게 이런 스킬이 생길수도 있는건가?' 랜덤에 1회용이라지만 적의 스킬을 흡수해서 사용한다. 쓰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편 데드릭은 쉬지않고 그림윙을 물어대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우하하하,맞아.나는 유계의 귀족, 뱀파이어였어!이제 내 존재 의의를 찾았다!" ACT 9 전설의 유니콘 "정말 안 됩니까?" "물론 안 된다네" 마법사가 딱 잘라 대답했다. 10분이 넘도록 실랑이를 하는데도 마법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않았다. 아크는 고통스러운 눈으로 탁자 위에 놓인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슬라임의 내단'에 필요한 두 번째 재료.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였다. 며칠 전,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를 모두 모은 아크는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찾기위해 아구스 산맥을 뒤지며 돌아다녔다. 몬스터 도감에는 아구스 산맥 전역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는 말만 적혀 있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을 돌아다녀도 구경조차 할수 없었다. 결국 잡 몬스터만 잔뜩 사냥하며 돌아다니기를 며칠,아크는 우연히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수 있었다.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글쎄? 뭘 말하는건지 잘 모르겠군. 아, 그럼 마드세인이라는 마법사를 찾아가 보게.그라면 알고 있을지도 몰라" "마드세인이요?" "자네가 마을을 비운 사이에 이주해 온 마법사네.마을 어귀에 주로 마법 재료를 판매하는 상점을 차렸지. 아직 상인들도 잘 왕래하지 않는 곳에 그런 상점을 차리단........도통 알수 없는 친구야" 혹시나 싶어 물어봤던 가렌이 마법 재료 상점을 소개해 주었다. 마드세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마법사였다. 그는 딱히 돈을 벌기 위해 상점을 차린게 아니라,한적한 곳에서 느긋하게 할일을 찾아 란셀 마을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어쨌든 마드세인에게 다시 물어보니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셨군.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라는건 페어리를 잡는다고 구할수 있는게 아니네.페어리들은 몇 달마다 한번씩 더러워진 몸을 벗고 새 몸으로 갈아입는 의식을 치른다네. 뱀이 허물을 벗듯이 말이야. 그때 떨어져 나온 허물을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라고 부르지" "그럼 그냥 길바닥에 떨어져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아구스 산맥에는 페어리가 많이 살고 있다고 들었으니 꽤 있을거네" "감사합니다" 아크가 얼른 인사를 하고 나오려고 할때였다. "또 맨땅에 헤딩하러 가는건가?" "네?" "자네 페어리를 본적 있나? 못 봤지? 아구스 산맥에 많이 살고 있다는데도 자네가 한번도 보지못한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않나?" "그, 그러네요" 아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아구스 산맥은 안 가 본곳이 없을정도로 많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는커녕 페어리의 '페'자도 본적이 없다. 마드세인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페어리는 말이야. 요정이네,요정이란 본래 차원과 차원의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지. 현실 세계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존재라는 말이야.알겠나? 당연히 페어리의 허물 역시 차원과 차원의 틈에 존재하는 물건이네.그걸 찾아내기 위해서는 매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나처럼 말이야" 마드세인은 선반을 뒤적거리더니 주머니 하나를 탁자 위에올려놓았다. 그게 바로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였다. 당연히'특별한 기술' 이 없는 아크는 상점에서 사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하긴 어쩌다가 하나씩 떨어져있는 아이템을 찾기위해 산을 헤매는 것보다는 구할수 있을때 사두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격을 듣는순간 아크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하나에 3골드. 100개가 필요하다고 했나? 그럼 300골드가 되겠군" 300골드!악실리온에서 우승 상금으로 받은 돈 100골드와 시합에 걸어서 벌어놓은 돈이 100골드 남짓.아구스 산맥에서 사냥으로 벌어들인돈 100골드.마드세인은 마치 일부러 약을 올리는것처럼 전 재산에 딱 맞춰서 가격을 불렀다. 아크는 생각할것도 없이 말했다. "제 힘으로 찾아보겠습니다" "그러게" 그 뒤로 아크는 미친듯이 아구스 산맥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마드세인의 말처럼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대로 이틀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크는 다시 마드세인의 상점을 찾았다. 그리고 1쿠퍼라도 깎아보려고 기를 썼지만, 마드세인은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마법사였다. "돈을 벌려고 장사하는거 아니라면서요?" "손해를 보려고 장사하는것도 아니네" 역시 마법사, 말로도 당해내기가 쉽지않다. 게다가 가렌 같은 원주민도 아니고, 근래에 막 이주해 온 NPC.친밀도도 전혀 없으니 깎아 줄리가 없다. 결국 아크는 피눈물을 철철흘리며 전 재산을 탁탁 털어 재료를 구입할수밖에 없었다. '젠장, 송곳니까지 구해놓고 포기할수도 없고.....' 이렇게까지 돈을 처발랐는데 '슬라임의 내단'이 별거 아닌 아이템이라면 복장이 터져 죽을거다. 그러나 한펴능로는 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재료 한가지를 구하는데 300골드나 들어갔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리라. 속이 쓰려 죽을 지경이지만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결국 아이템을 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 이건 투자야.그리고 어차피 시드가 아이템을 정리하고 돌아오면 거금이 들어온다.300골드를 아까워할 필요는 없어.버는 돈이 많으면 투자하는 씀씀이도 커져야지.많이 투자할수록 더많은 이득이 되어 돌아오는게 상식이잖아' 아크는........그렇게라도 생각하지않으면 견딜수 없었다. '어쨌든 페어리의 날개도 다 됐고.......이제 두 가지만 남은 건가?' "정보창" ['슬라임의 내단'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 1/1 임각수의 뿔 0/1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100/100 달빛을 받은 만드라고라의 뿌리 78/100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 1,000/1,000]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를 구하는데 엿새.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구하느라 사흘을 소모하고 결국 300골드 지출.내단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그러나 그것도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였다. '어차피 만드라고라는 산을 돌아다니면 구할수 있는 약초고........' 만드라고라는 약초의 일종으로 아구스 산맥 지역에 서식하고 있었다. 사실 예전에 아구스 산맥에 왔을때도 만드라고라를 본적은 있었다. 그러나 감히 손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처럼 때때로 특별한 약초나 식재료를 채취할때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급 식재료의 하나인 레드비의 벌꿀을 체취할때는 벌을 막을 방법이 필요하고,독을 뿌려 대는 버섯은 먼저 해독제를 복용할뒤에 채취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만드라고라 역시 그런 약초 가운데 하나였다. 만드라고라는 사람 모양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억지로 잡아 뽑을때는 소름끼치는 비명을 터트린다. 그리고 비병 소리에는 유저든 NPC든 100%확률로 즉사시키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아크 역시 초보자 시절에 멋도 모르고 뽑았다가 간만에 차가운 바닥의 감촉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마법 학회에서 보내준 식물 도감 사본에 전통적으로 개에게 줄을 매달라 만드라고라를 체취했다고 적혀 있었던 것. 아크는 개가없다. 그러나 개처럼 부려먹는 소환수는 있었다. 아크는 멀찍이 떨어져 데이모스에게 만드라고라를 뽑도록 지시했다. 데이모스는 모든 몬스터 가운데 유일하게 즉사 마법이 통하지 않는 언데드!만드라고라의 비명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착실하게 만드라고라를모아왔다. 다만, 필요한것은 달빛을 받은 만드라고라.밤에밖에 채취할수 없어 아직 숫자가 조금 부족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문제는 이놈인데.......' 아크는 레시피를 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이제 남은건 일각수의 뿔.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아크는 일각수의 뿔을 가장 먼저 구해놓으려고 했었다. 다른 재료와 달리 하나만 구하면 되니 얼른 해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마침 몬스터 도감에는 일각수의 출몰위치도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아구스 산맥의 북부에 위치한 달빛 연못 주변.그러나 근처를 아무리 뒤져봐도 일각수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틀을 근처에서 헤매다각 포기하고 갈고리 박쥐 사냥을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미룰수도 없게 되었다. '어떻게든 잡아야 하는데........' 아크는 그 뒤로 달빛 연못 근처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하루. '혹시 몬스터 도감이 잘못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나타나지 않을리가 없다. 결국 아크는 자리를옮겨 보려고 달빛 연못에서 나왔을때였다. "히히히힝!" 문득 달빛 연못 근처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연못근처에 외뿔을 가진 백마 한마리가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이,일각수다!' 아크는 곧바로 달빛 연못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일각수는 그림자도 보이지않았다. 경계심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그 뒤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아크가 달빛 연못 근처에서 어슬렁대고 있으면 나타나지않다가.멀리 떨어진 뒤에야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몰라 주변에 소환수를 매복시켜 놔도 마찬가지였다. 경계심이 많은 몬스터답게 조금만 다른 기척이 느껴져도 얼씬도 하지않는다. 게다가 속도는 또 엄청나게 빨라서 멀리서는 데드릭을 날려보내도 따라잡을수가 없다. "미치겠군" 아크느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죽을 고생을 해서 모은 재료들! 이제 마지막 재료만 남았다. 그게 눈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도 도통 잡을 방법이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천년만년 일각수만 따라다닐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아크는 또다시 꼬박 하루를 헤매다가 란셀 마을로 돌어왔다.일각수를 기다리면서 놀기도 뭐해 잡몹을 사냥,잠템이 잔뜩 쌓인것이다. "아크 형님, 이제 돌아오십니까?" 마을로 들어서자 입구를지키고 있던 NPC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아크와 함께 온 도적들. 그들 가운데는 카오틱 성향이 얼마 되지않아 벌써 삼청 교육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리고 교육받은 대로 마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특기를 살려 각자 직업을 구했다. "아크 형님. 저희는 큰형님의 허락을 받고 며칠 전부터 마을 경비를맡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터 잡화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훈련소 살림이 빠듯해서 로코 누님이 항상 울상이니 조금이라도 도우려고요" "저는 목수의 조수로 취직했습니다. 나중에 형님 집을 증축해 드릴게요" 가끔씩 마을에 들르면 전직 도적들이 이렇게 보고를 해왔다. 덕분에 아크의 우울했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도적들이 새 삶을 찾아서가 아니다. 도적들이 하나둘 마을로 내려오자 이제 란셀마을은 집이 130여채나 되는 규모로 커졌다. 마을의 분위기도 한결 밝아지고, 넘치는 인력으로 주변의 도로까지 닦기 시작했다. 마을의 발전. 그것은 직접적으로 아크의 이득을뜻하는것이다. '좋아,좋아.더부지런하게 일해라.부동산 가격좀 올라가게'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NPC들을 바라보았다. 마을이 발전해서 규모가 커진다. 그리고 인지도가 높아진다. 이런 변화에 가장 빠르게 변하는것은 바로 부동산 시세다. 살기 좋은 마을의 집값이 올라가는것은 당연지사. 만약 란셀 마을이 정말 중개 지점으로 자리를 잡으면 상인들이 돈을 싸 짊어지고 집을 사러 달려오리라. 그러면 아크는 앉아서 돈을 벌어들이게 되는것이다. 집을 가지고 있는 이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한동안 집을 비워놨다가 돌아오면 가끔 처음보는 아이템이 있었다. -묘족 장로 핫산이 보낸 선물 꾸러기(놀의 어금니10개) -란셀 마을임시 촌장 가렌이 보낸 선물 꾸러기(남부 특산 과일 세트) 란셀 마을에는 아크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NPC들이 많았다. 아크가 집을 열어두고 비우면 그들은 종종 이렇게 선물을 넣어두었다. 묘족은 근처에서 사냥한 몬스터의 가죽같은 것을, 너구리 족은 집을 장식할 공예품을,한슨 같은 경우에는 근처에 새로운 지역을 발견해 지도를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딱히 돈이 될만한 물건은 없지만, 공짜다. 개똥이라도 공짜를 거절할아크가 아닌것이다. '후후후,이번에는 어떤 선물을 놔뒀으려나?' 아크는 잔뜩 기대하며 집에 들어갔다. "오빠!" 집으로 들어서자안에서 로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로코? 네가 어떻게?" "오빠가 한동안 안보여서 잠깐 들러 봤어요.아유,그런데 집 꼴이 이게 뭐에요? 탁자 위에 먼지하며.....귀신 나오겠네.그래서 본 김에 청소좀 하고 있었어요" 로코가 빗자루를 들고 베시시 웃었다. 어쩐지 집에 돌아올때마다 왠지 깨끗하다 했더니.....이제 아예 자리를 잡고 안주인 행세까지 하려는건가? 아무래도 그럴 모양이다. "그런데 그 꼴이 뭐에요? 갑옷도 너덜너덜, 얼굴도 꾀죄죄하고, 제대로 씼지도 않았죠?" "뭘 게임 안인데........" "흥!현실에서도 뻔하죠.뭐,요즘 하루에 20시간씩 게임한다면서요? 분명 매일 씻지도 않고 라면만 먹을거야. 그렇죠?" 정확히 맞췄다. 말이 하루 20시간이지. 막상 그 정도 게임시간이라면 이미 페인이다. 집에 있을때는 거의 씻지도 않고 ,식사도 유니트 안에서 김밥 한줄로 때울떄가 많다. "그래도 운동은 꼬박꼬박 나가" "그거야 사범님이 엄하시니까 혼나지 않으려고 그러는거죠" "그거야 그렇지만" "어쨌든 게임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어요.깨끗하게 하고 다니는건 기본 에티켓이라고요.다른 사람들은 오히려게임안에서 더 화려하겍 하고 다니던데....." 로코는 중얼중얼 떠들어 대다 말고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문가로 달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얼른 아크를 잡아 끌었다. "일단 여기는 위험하니까 날 따라와요" "뭐? 위험?" "쉿, 지금 자나는 근처 지붕 위에서 자고 있단 말이에요.그리고 사라는 아버지 따라 지도 만들러나갔고, 고것들이 알아채면 귀찮아져요.얼른 따라와요!" 자나와 사라, 로코의 신경전은 아직도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로코는 아크를 이끌고 근처 냇가로 향했다. "일단 갑옷 벗어봐요. 금방 빨아 줄게요.현실이든 게임이든 남자는 항상깨끗하게 하고 다녀야 하는 거라고요.아, 그리고 주말에 내가 반찬 몇개 해서 병원에 가져다놓을게요.뉴 월드와 달리 밖에서는 오래 놔두면 쉬니까 바로 가져다 먹어야해요" ".............." 얼마 전 로코의 쑥스러운 고백을 받은 뒤로 둘은 몇 번인가 만나 같이 밥도 먹고 영화도 봤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아크 역시 게임을 한다는 핑계로 밖에 나가지 못한 시간이 너무길었으니까. 그런데 그 여파는 의외로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로코는 마치 마누라라도 된 것처럼 시시콜콜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현실에서도 그랬지만, 게임에서는 정도가 더 심했다. 특히 란셀 마을에서는.........아무래도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자나와 사라가 꽤나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아크도 그런 잔소리가 싫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입원하시고 몇년 ,주변에서 그런 일상적인 잔소리를 해 줄 사람은 없었다. 스스로는 모르고 있었지만, 꽤나 외로웠던 모양이다. 로코가 그렇게 잔소리를 하는게 때로는 꽤나 사랑스럽게 느껴질때도 있었다. 그리고 점차 익숙해져 가고있었다. "봐요. 훨씬 낫잖아요" 로코가 가죽 갑옷의 물기를탁탁 털었다. 현실과 달리 뉴 월드의 가죽갑옷은 따로 말릴 필요도 없다. 어쨌든 빨래를 끝낸 가죽 갑옷은 찌든떄가 말끔하게 벗겨져 새것처럼 보였다. 마법 복원으로 아무리 수리를 해도 더러움까지 없어지지는 않았던것. 게다가 4시간동안 방어력이 5%상승하는 버프까지 생기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고마워" 아크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갑옷을 걸쳤다. "오빠,마을에 얼마나 있을거에요?" "왜?" "시간 나면 저하고 산책하지 않을래요? 이 근처에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았거든요 .오빠는 요즘 사냥한다고 밖에서 만난지도 오래됐잖아요.그러니 여기서라도 잠깐 데이트해요.네? 오빠 오면 같이 가려고 근처에 봐 둔곳이 있단 말이에요" 로코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안달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의 풍경은 현실 세계와 비교도 안될만큼 아름답다. 이제 서울 근교에서는 산 하나 찾아보기 힘들지만 뉴 월드는 다르다. 마치 아마존 같은 정글 ,그리고 울창한 산림.마음만 먹으면 아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도 얼마든지 찾아낼수 있다.물론 현실 세계에는 없는 몬스터도 즐거운 마음으로 유저들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적당한 장소를 찾으면 굳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나갈필요가 없다. 덕분에 근래에는 일부러 데이트를 게임안에서하는 연인들도 생겨났다. 뉴 월드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활용하기에 최고의 환경이었다. 굳이 멀리 나갈 필요도 없다. 도시나 마을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테마 파크!밖에서는 상상도 못할 신기한 음식도 있고, 술을 마셔도 숙취로 고생할 이유가없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근래 각광받는 뉴 월드의 데이트 코스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이트가 있을정도다. 덕분에 주말이면 손에 손을 잡고 몬스터를 떄려잡으며 애정을 과시하는 커플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아크가 게임 속에서 살다보니 로코 역시 그런 데이트를 생각해 낸것이다. '뭐 잠시 머리를 식히는 것도나쁘지 않겠지' "그래.한 바퀴 돌아보자" "호호호,그럼 따라와요.멋진 곳을 보여줄게요" 로코가 안내한 곳은 예전에 아크가 놀을 때려잡았던 곳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시 와 보니 전혀 다른 곳처럼 느껴졌다. '여기가 이런 풍경이었나?' 그때는 사냥에정신이 없어 미처 주변 풍경은 신경 쓰지 못했던 것. "어때요? 괜찮요? 전에 갱생단 오빠들도 한번 같이 왔었는데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짝퉁오빠는 조만간여자친구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고 하던데요.아, 짝퉁오빠 여자 친구 있는거 몰랐죠? 글쎼 11살이나 차이 난데요.그래서 요즘은 도둑놈이라고 불러요" 로코는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꽤나 즐거운 목소리로 연신 재잘거렸다. 그러나 벌써 아크는 안드로메다를 항해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면 일각수를 잡을수 있을까? 오직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꽉 차 버렸다. '.........망할 말 자식,로코처럼 알아서 찾아와 준다면 얼마나 좋아?' 문득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때였다. 아름다운 풍경, 여자,일각수.......이 세가지가 조합되자 불현듯 어렸을때 봤던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만? 일각수? 일각수는 뿔이 하나 달린 몬스터를 통틀어 얘기하는거잖아? 그리고 내가 봤던 일각수는 말. 그렇다면 결국 유니콘이라는 말인데......?' 아크는 황급히 몬스터 도감을 꺼내 들었다. 일각수 서식지 : 아구스 산맥 달빛 연못 근처. 일각수는 중간계와 환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신비한동물입니다. 그 힘을 이용하여 가끔씩 차원을 이동해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내고는 합니다. 경계심이 많지만 천성이 선하며 정의로운 사람을좋아합니다.반대로 세속에찌든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예민하게 알아채고 절대 나타나지않습니다. 일각수가 가장 좋아하는것은 때묻지않은 갓난아기와 순결한 처녀입니다. 특히 순결한 처녀를 좋아해 본능적으로 이끌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일각수의 뿔에는 강력한 마법효과가 있어 최그급 마법재료로 사용됩니다. 때문에 마법사들의 무차별적인 포획이 이루어져 현재는중간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몇 몇 여행자들이 아구스 산맥의 달빛 연못에서 봤다는 소문이 있을 뿐입니다. '맞아 ,역시..........!' 아크가 떠올렸던 영화 장면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한기사가 유니콘을 잡기 위해 순결한 처녀를 유니콘이 숨어 있는 숲으로 보냈다. 그러자 유니콘은 처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고, 그때 기사가 유니콘을 공격해 쓰러트렸다. 일각수가 나타나지않았던 이유는 당연히 아크 때문이었다. 세속에찌들대로 찌든 남자가 씻지도 않고 어슬렁댔으니 경계심 강한 일각수가 나타날리가 없다. '하지만순결한 처녀라면......?' 전설대로라면 제 발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아크의 눈앞에 그런 여자가 있다! 아크는 와락 로코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로코!나 좀 도와줄수 있어?" "네? 뭐,뭔데요?" "몬스터 한마리를 잡아야 하는데, 꼭 네 도움이 필요해" 아크가 활활 불타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하자 로코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꼭 나라야 해요?" "음, 꼭 네 도움이 필요해!" "아, 알았어요" "그런데........." 아크는 잠시 팔짱을 끼고 로코를 훑어보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유니콘을 불러내는게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유니콘을 불러낸 상대는 단순한 여자가 아니라, 매력 넘치는 여자였다. 물론 로코의 외모가 달린다는 뜻은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 현실에서도 로코는 10점 만점은 아니라도 8점은 된다. 게다가 뉴 월드를 통해 약간의 성형을 했으니 연예인이라고 해도이상하지 않을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뉴 월드의 성형........그게 문제야.....' 문제는 다른 여성 유저들도 대부분성형을 통해 로코만큼의 미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 결국 뉴 월드에선 연예인 급이 보통인 것이다. 몬스터의 눈높이 따위야 알수 없지만 ,뉴 월드의 평균 외모 수준이 높은 만큼 유혹에 넘어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로코에게는 치명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 색기!안타깝게도 로코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러나 아크에게 불가능은없다. '그렇다면 비장의 수단을 써야겠군' 아크는 곧바로 레시피를 확인하며 서바이벌 요리를 만들었다. [매혹의 드링크 각종 향초를 밀리그램 단위로 배합해 정제한 드링크. 드링크를 마시면 치명적인유혹을 발휘하는 달콤한 향기가 몸에서 은은하게 풍겨 나온다.마음에 둔 이성이 있다면 이 기회에 고백해 보자! <1시간동안 매력이 300% 증가합니다>] 조용한 달빛이 스며드는 호숫가. 잔잔한 수면을 따라 낮고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울려퍼졌다.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인이 호숫가에 앉아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실로 한폭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모습. 그러나 속지 말자.그녀의 이름은 로코,세속에 찌들대로 찌든 사내의 사주를 받고 순진한 일각수를 꼬드겨 내기 위해 약을 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환상적인 분위기의 절반은 조명발, 화장발보다 무서운 '매혹의 요리발'이었다. '자, 네가 좋아하는건 다 갖춰졌다.나와라!망할 말 새끼야!' 아크는 멀찍이 떨어진 언덕에 몸을 숨긴채 잔뜩벼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10분,20분.....로코도 아크도 슬슬 지쳐 가고 있을때, 문득 연못으로 뭔가가 다가왔다. 잡티 하나 보이지않는 하얀 몸에 날카로운 뿔을 달고 있는 말, 전설의 유니콘이었다! 갑자기 유니콘이 기척도 없이 나타나자 로코는 움찔했다.그러나 곧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하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좋아,잘한다. 그렇게 꼬드겨!꼬드기는 거야!' 아크의 응원을 받은 로코는 더욱 잔잔하게 연주를 해 나갔다. 그렇게 잠시,경계심을 보이던 유니콘은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로코는 방긋 웃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착하다. 이리와. 피곤하지?" 유니콘은 금세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 댔다. 그리고 냉큼 로코의 다리를 베고 누워 버리는 게 아닌가? 아크가 그렇게 찾을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던 놈이 여자라면 경계심도 뭐도 없이 환장한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패 버리고 싶었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았다. 유니콘은 영리한 놈이다. 섣불리다가가다가 도망치기라도 하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설에 따르면 유니콘은 처녀의 무릎을베고 자는게 취미인 음흉한 놈이라고 했어.꼴 같지 않지만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과연 유니콘은 로코의 무릎에 턱을 괴더니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좋아. 지금이다. 데이모스, 데드릭. 포복으로 세 방향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내가 신호를 보낼때까지는 절대 성급히 움직여서는 안돼" "알았다. 저 자식, 마음에 안들어" 딱딱.......... 데이모스와 데드릭도 유니콘이 하는짓이 꽤나 마음에 안드는 모양이다. 어쨌든 아크와 소환수는 일심동체가 되어 세 방향에서 거리를 좁혀 갔다. 그리고 불과 몇 미터까지 접근했을때, 바스락, 데이모스의 발치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바늘이 떨어지는 듯한 작은 소리. 그러나 유니콘은 귀를 쫑긋 세우더니 벌떡 일어났다. '이런 망할, 무슨 놈의 귀가그렇게 밝아?' "데이모스, 데드릭.지금이다!" 아크가 다급하게 소리치자 데이모스와 데드릭이 와락 몸을 일으켰다. 유니콘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잠시 아크와 로코를 번갈아 보았다. 니들 무슨 사이냐 ? 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다. 약간 죄책감을 느낀 로코가 애써 시선을 피하자 유니콘은 성난 울음을 토하며 투레질을 했다.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는 몬스터 따위의 불평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 됐어. 로코, 나머지는 내게 맡기고 물어나 있어" "오,오빠.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말아요" "상황 봐서!데드릭, 데이모스. A-2플랜이다!" "오케이!" 딱딱딱!따닥, 딱딱딱! 아크는 소환수와 함께 유니콘을 둘러싸고 파상공격을 펼쳤다. 유니콘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뭔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어 대자 뒤쪽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상황이 안좋아지자 환계로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놓칠것 같으냐, 데드릭!" "알았다, 암흑 돌진!" 데드릭이 미친듯이 날아가 받아 버리자게이트가 닫혀 버렸다. 그러자 결국 유티콘도 도주를 포기학 전투태세로 바꾸었다. 비록 겁이 많고 착한 몬스터지만-솔직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다.-명색이 환상의 몬스터다. 레벨은 250.그리 만만한상대만은 아닌것이다. 게다가 유니콘은 다른 몬스터와 달리 비교도 할수 없는 스피드를 가지고 있다. "푸르르륵!" 유니콘은 뿔을앞으로 향하고 황소처럼 돌진해 들어왔다. 순간적인 돌진력은 비행 몬스터인 데드릭조차 따르지 못할 만큼 엄청난 속도였다. 카칵! 검으로 막았지만 아크는 몇 미터나 주르륵 밀려났다. '욱, 일단 밖으로 끌어내기만 하면 간단할줄 알았는데.....의외로 강하잖아?' 아크는 검을 앞으로향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레벨 250의 환수,무작정 달려든다고 능사가 아니다. 그러나 아크 역시 아구스 산맥에서 쉬지않고 사냥해 레벨 151까지 올려놓은 상태다. 게다가 혹시 몰라 서서히 달이 떠오르는 시각에 유니콘을 유인했다. 40%의 어둠 속성 보너스로 211레벨! 꾸준하게 성장시킨 소환수의 능력치도 레벨 90수준이다. 낙승까지는 아니라도 질 이유가 없다. 유니콘은 다시 뿔을 앞으로 향하고 돌진해 들어왔다. '눈으로 쫓으면 이미 늦는다. 중요한건 감이다!' 체육관에서 이명룡에게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아크의 검이 직감적으로 타이밍을 잡아 휘둘러졌다. 카카칵, 터텅! 막고, 쳐 내는 동작이 단 한 템포로 이루어진다. 화격이 터지자 육중한 충돌음이 터지며 유니콘이 몇 미터나 주르륵 밀려 났다.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건 언제나 타이밍이다. 기회를 잡았을떄 사정 봐주지말고 바짝 조여야하는 법! 바짝 거리를 좁히고 들어간 아크의 검에서 또다시 연쇄 스킬이 작렬했다. "다크 댄싱!" 어둠속에서 붉은 발자국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 발자국을 따라 빠르게 몸을 움직이자 아크가 유령처럼 흐릿해졌다. 아구스 산맥에서 능력치를 올릴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다해왔다. 그중 하나가 전투를 치를때마다 마나가 바닥날때까지 스킬을 난사한 것. 급하게 뭔가를 할 필요가 없으니, 전투를 할때마다 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회복을해도 문제될게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각종 스킬의 숙련도가 상당히 올라간 상태! 다크 댄싱도 여러번 쓰다 보니 익숙해져서 완성도가 대폭상승했다. 완성도가 80%에 다다르자 움직임이 너무 복잡해져서 거의 분신이 생기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켰다.유니콘은 당황한 눈으로 사방으로 뿔을 휘둘러댔다. 그러나 그런 눈먼 공격에 맞을 아크가 아니다. 모든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내며 고스란히 다크 블레이드로 갚아주었다. 다크댄싱과 다크 블레이드의 연쇄 스킬, 암격!유니콘의 몸에서 쉬지않고 폭음이 터져나왔다. "우하하하, 뒈져라!나는 너처럼 미끈하게 생긴 놈들이 정말 싫어!" 콤플렉스 덩어리인 데드릭도 평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타다다다........딱딱딱! 데이모스 역시 눈에 불길을 일으키며 히죽거렸다. 때때로 아크의 지시까지 무시하고 다리를 집중 공격한다. 아무래도 유니콘의 튼실한 다리뼈가 탐이 나는 모양이다. 분명.......유니콘은 강했다. 그러나 질투에 살짝 간 데드릭과, 다리뼈에 침을 질질 흘리는 데이모스.그리고 유니콘이 돈으로 보이는 아크의 공격을 버텨낼만큼 강하진 못했다. 결국 5분간의 혈투끝에 유니콘은 빈사상태가 되었다. 뒤이어 아크가 다크 블레이드를 날리자 유니콘은 한차례 비틀거리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더블 크리티컬 찬스가 발동했다. 결정타를 날릴 기회를 놓칠 아크가 아니다. "우하하하,마지막이다!" 아크가 괴상하게 웃으며 검을 내리칠 때였다. "오,오빠! 안돼요!" 돌연 로코가 비명을 지르며 아크 앞을 가로막았다. 아크는 기겁하며 황급히 검을 돌려 바닥을 후려쳤다. "왜, 왜그러는거야? 마지막 일격이면 끝나는데?" "유니콘을 죽이겠다고는 하지 않았잖아요" "뭐? 무슨 그런......몬스터를 불러내는 이유야 뻔하잖아. 그리고 나는 유니콘을 무찔러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어쨌든 유니콘을 죽이면 안돼요!이렇게 예쁜 동물이 죽도록 보고만 있을수는 없어요.게다가 유니콘은 나를 믿고 나와 준거잖아요" 로코는 상처받은 유니콘을 껴안으며 소리쳤다. 아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젠장, 깜빡했다. 로코는 귀엽고 예쁜거라면 사족을 못썼었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확실히유니콘은 성격이야 어쨌든 외모만큼은 아름다웠다. 말이라는게 원래 사람을 매혹시킬만큼 멋진 몸매를가지고있는 동물이다. 하물며 환수라고 불리는 유니콘은 말할것도없다. 은은한 빛이 뿜어지는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몸.'나 무지하게 착해요'라고 주장하는 듯한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ㅏ. 로코가 난리를 피우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아크는도저히 유니콘을 그대로 돌려보낼수가 없었다.상대가 NPC만 돼도 양심에 찔려 도저히검을 들어올리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몬스터,그것도 처녀라면 환장하는 몰염치한 놈이다. 아니, 좋다!백 보 양보해서 유니콘이 떨굴 아이템이나, 경험치는 포기한다고 치자. 하지만 갈고리박쥐의송곳니 1,000개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100개@!며칠 동안 죽을 고생을 하고 300골드나 투자해 긁어 모은 아이템이다. 그 모든 노력과투자가 일각수의 뿔을 얻지 못하면물거품이 되는것이다. "..............알았어? 절대, 그것만큼은 양보할수 없어!" "결국 오빠는 유니콘의 뿔만 있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윽, 그렇게 치고 나오지 할 말이 없다. "그야 그렇지만......." "그럼 유니콘에게 부탁해 봐요.유니콘은 착한 환수에요.잘 설명하면 알아줄거에요" "몬스터 따위에게......." 아크는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납득하기 싫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이어 생각지도 못한 치명타를 먹었다. '윽, 이,이럴수가.......!' 아크가 유니콘을 꼬드겨 내기 위해 사용했던 '매혹의 드링크',매력을 300%올려주는 부가효과는 NPC에게만적용되는게 아니었던 것이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하는 로코의 모습에 아크는묘하게 가슴이 뛰었다. 엄청나게 예뻐 보이고, 그녀가 원하는것은 뭐든지 들어주고 싶은 충동이일었다. 그게 과연 100%드링크의 효과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어쨌든 제 도끼로 발등을 찍은 셈이다. "아,알았으니까 그만해. 순순히 뿔만 내놓는다면 죽이지는 않겠어" 고개를 끄덕이자 로코는 유니콘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폭하게 다뤄서 미안해. 하지만너도 들었다시피 오빧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부탁이야. 오빠가 원하는대로 뿔을 조금 나눠줘" "푸르르륵!" 유니콘은 슬쩍 아크를 바라보더니 같잖다는듯이 팩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싸가지 없는 녀석이.......!' 아크가 울컥하자 로코가 재빨리 다시 입을 열엇다. "부탁이야 .네가 고집을 부리면 나도 오빠를 막을수 없어 .제발 너에게 더 나쁜짓을 하지않을수 있도록 도와줘.나는 정말 네가 죽기를 바라지않아" 로코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하자 유니콘은 한풀 꺾인 표정으로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유니콘이 고개를 숙이자 뿔에 균열이 번지더니 뚝 부러졌다. 유니콘은 씁쓸한 눈망울로 부러진 뿔을 바라보다가 슬쩍 로코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아크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네놈에게 주는게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오빠, 이제 됐죠?" "쳇, 할수 없지" 그러자 멀뚱히 지켜보던 데드릭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말도 안돼!저런 놈을 왜 살려줘야 하는데? 주인, 나를 쥐어 패던 그 성깔 다 어디갔어? 그냥 잡아서 구워 먹으면 되잖아!" "그런 못된 말을 하는 입이 요거냐?" "으아아악, 이거놔!이 지조없는 여자야!" 로코가 주둥이를 잡아당기자 데드릭이 구시렁거리며 물러났다. "자 ,살려줄테니 마음 변하기 전에 꺼져!" 아크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결국 원하는것을 얻었지만 속이 쓰려 미칠 지경이었다. 몬스터 도감의 자료에 따르면 유니콘은 몸 전체가 그야말로 보물이다. 가죽은 상당히 좋은 방어구의 재료로 쓰이고, 뼈는 무기의 재료다. 게다가 다리뼈는 데이모스도 탐내고 있지않은가? 하나 건네주면 좋아라고 능력치를올릴게다. 유니콘의 다리뼈니 민첩이나 이동속도가 올라가리라. 그런데 다 잡아놓고 그냥 놔줘야 한다니......너무 억울해 눈물이 핑 돌았다. 어쨋든 아크의 허락이 떨어지자 로코는'회복의 노래'로 유니콘을 회복시켜주었다. "자, 이제 그만 가 봐. 또 나처럼 나쁜 여자에게 속지 말고 잘 살아야해" 그러나 유니콘은 머뭇거리며 주변을 맴돌았다. "저 녀석이 왜 자꾸 치근덕대는 거야?" 데드릭이 짜증을 부렸다. 아크 역시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아직 '매혹의 드링크'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혼나고도 아직도 여자를 밝히다니? 쓴맛을 덜 본 모양이다. 아크와 데드릭, 그리고 아직 뼈다귀에 미련을 못버린 데이모스가 노려보는 가운데,한참을 서성이던 유니콘은 뭔가결심한 듯 돌아왔다. 그리고 로코 앞에서 앞발을 꿇고 손등을 핥았을때였다. [환계의 명마, 유니콘이 로코 님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유니콘은 지성과 품격을 갖추 환계의 명마입니다. 유니콘은 평생에 한 번, 순결할ㄴ 처녀에게 충성을 맹세할수 있습니다. 만약 유니콘과 맹약을 하면 맹약자가 원할떄, 유니콘은 환계를 통해 맹약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환계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놀라운 속도로 바람처럼 맹약자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단, 투쟁을 싫어하는 유니콘은 설사 맹약자의 요청이 있다 해도 전장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맹약을 나눈 유니콘 *유니콘을 탄 상태에서 이동속도가 1,000% 상승합니다. *유니콘을 탄 상태에서 행운이 100%상승합니다. *유니콘을 탄 상태에서는 몬스터의 공격을 받지 않습니다.] "오,오빠!" 로코가 화들짝 놀라며 아크에게 정보창을 설명해주었다.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음은 말할것도 없다. "뭐,뭐야?" 1필에 수천골드나 하는 말. 그게 덜컥 로코에게 생겨 버린것이다. 게다가 부가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도시에서 파는 말 가운데 현재 가장 빠르다는게 아직 특정 직업만이 탈수 있는 적혈마. 이동속도 500%다. 그러나 유니콘은 2배, 1,000%! 비록 아란의 군마처럼 전장에서 사용할수는 없지만, 이동 할때는 더 바랄게 없을정도의 속도다. 게다가 이동할때 몬스터의 공격도 받지 않는다니 할말 다했다. 그뿐인가? 보통때는 환계로 돌아간다니 유지비도 안든다는 말이 아닌가? 보통말은 살때도 비싸지만, 매번 콩이나 귀리 같은 고급 농작물을 먹여야한다.또 병들면 약 먹여야 하고,마을에 도착하면 마구간에 넣어 두어야 한다. 왠만한 승용차의 유지비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모두 공짜라니....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그만한 탈것이 있겠는가? 아크조차 설마 '매혹의 드링크'가 이렇게까지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자식이.......살려 준건 난데, 어째서?" "푸륵, 푸르륵!" 유니콘은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어쨌든 로코는 유니콘이 생기자 방방 뛰며 좋아했다. "이제 언제라도 오빠 만나러 갈수 있겠다!" "푸륵?" 유니콘은 똥 씹은 표정이되었다. "형님, 다 찾았습니다!' 건달 하나가 퀭한 눈으로말했다. 그러자 덩치 큰 사내가 벌떡 일으키며 물었다. "찾았다고?" "네, 며칠 밤을 세워 이제야 찾아냈습니다" "가져와봐!" 건달이 얼른 뭔가를 건네주었다. 작은 종잇조각을 테이프로 이어붙인 리포트였다. 리포트를 받아든 사내의 이름은 왕호. 떼인 돈을 받아주는 일부터,청부 폭력까지 나쁜짓이라면 골고루 하는 방실 용역의 사장이었다. 그 방면에서 날고 뛴다 하는 건달들도 왕호라면 욕부터 하고 볼 정도였다. 그런 왕호에게 얼마전 평소 알고 지내던 유지의 아들이 일을 이뢰했다.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에 참가한 아크라는 유저의 신상정보를 알아내 달라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군' 글로벌엑서스는 세계적인 대기업이다. 그만큼 보안이 철저해 한낱 건달에 불과한 그로서는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왕호는 특유의 수완으로 곧 방법을 찾아냈다. 글로벌엑서스에는 응시자의 리포트를 검토한 뒤에 분쇄기에 갈아버렸다. 이 정보를 입수한 왕호는 청소 용역 회사의 직원을 매수해 리포트 조각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빈둥거리는 동생들을 불러 일일이 대조하며 이어 붙인 결과........드디어 원하는 정보를 찾을수 있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철야 작업을한 결과 아크의 이름이 적힌 리포트를 찾아낸 것이다. "아크.........크크큭, 네놈이 숨어봐야 벼룩이지" 그러나 리포트에 개인 정보는 없었다. 대신 이메일 주소가적혀 있을뿐이었다. 왕호는 히죽웃으며 중얼거렸다. "뭐, 메일 주소만 알면 게임 끝난거지 .수고했다" 왕호는 이메일 주소를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이,이메일 주소로 개인 정보 알아내는데 얼마나 걸려?" "뒤탈 없이 작업하려면 며칠 정도 걸릴겁니다" 나쁜놈은 나쁜놈들과 통하는 법. 그런 쪽으로 빠삭한 업자가바로 대답했다. "좋아, 내가 이메일하나 불러줄테니까 가능한 빨리 알아봐" 왕호는 이메일을 불러주고 만족한 미소를 떠올렸다. "이제 수고비를 청구하는 일만 남았군" 일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사실 아크의 리포트는 몇 달동안 프린트조차하지 않았다. 만약 그 상태로 유지됐다면 아크의 정보가 알려질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호명환이 관심을 보인 탓에 다시 프린트를 하게 됐고, 분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왕호의 손에 흘러들어가게 된 것이다.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유니콘이구나!" 마을 주민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로코가 유니콘을 타고 란셀 마을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유니콘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유니콘은 뻐기듯 못을 빳빳하게 세웠다. 정말 갖잖아서 못 봐주겠다 .조금 전에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고, 간신히 살아난 주제에.......로코가 같이 마을에 가자니 좋다고 마으띾지 따라왔다. 물론 아크는얼씬도 못하게 했다. 솔직히 그런 성격파탄 유니콘 따위 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쨌든 성격에 문제가 많지만 일단 생긴건 꽤나 번드르르하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영ㄴ신 감탄사를연발하며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이건 유니콘!" 그때였다. 뭔일인가 하고 고개를 내밀었던 마드세인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그리고 감탄스러운 눈길로 유니콘을 훑어보더니 아크에게 다가왔다. "설마 저 유니콘을 길들인 건가?" "뭐, 제가 길들인건 아니지만.........." "그, 그럼 뿔은? 유니콘의 뿔은 어디있나?"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뿔을 내게 팔지 않겠나?" 마드세인이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유니콘의 뿔은 굉장한 마법재료라네. 하지만 현재는 유니콘을 봤다는사람조차 없어서환상의 재료로 불리고있지. 돈이라면 얼마가 드렁도 좋네. 300골드.....아니, 500골드를내지.꼭 내게 팔아주게!" "그건 곤란합니다. 저도 꼭 유니콘의 뿔을 써야 할데가 있거든요" 아크가 대략적인설명을 해주자 마드세인은 금세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몇 번 한숨을 불어 내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그럼 다음 뿔이라도 내게 팔아주게. 꼭 부탁하네" "다음 뿔이라니요?" "모르고 있었나?" 마드세인은 의외라는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니콘의 뿔은 한 번 잘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네" "네?" 유니콘을 로코가 차지해 버려서 은근히 속이 상했던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한 번 잘려도 다시 자라나는 뿔!즉,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잘라 먹을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그것도하나에 500골드나 쳐준다는 아이템을 몇 번이라도 구할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미 로코에게 충성을 맹세한 유니콘이 순순히 뿔을 줄리는 없다. 그러나 일단 근처에 묶어둘수만 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사탕발림, 협박, 감금, 폭력,기타등등...........그리고 아크는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런 방법을 얼마든지 사용할수 있는 사람이다. '이건 뜻밖의 정보다!' 아크는 활짝웃으며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얄미워 보이던 놈이 이제 그렇게 예쁘게 보일수가 없었다. "유니콘,어디 아프지 마라. 먹고 싶은거 있으면 얘기하고" "푸르륵?" 아크가 갑자기 친근하게 돌변하자 유니콘이 수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 이제 그만 돌아가. 태워 줘서 고마워" 로코가 볼에 살짝 뽀뽀를 해주자 유니콘은 펄쩍펄쩌 뛰며 환계로 돌아갔다. 그렇게 바람둥이 유니콘이 돌아가자 로코도 아르바이트에 늦었다며 접속을 끊었다. 대강 주변이 정리되자 아크는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스탯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50 명성 : 2,575(+500) 레벨 : 151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희생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2,485(+150) 마나 : 2,380 영력 : 100 힘 304(+28) 민첩 394(+35) 체력 484(+20) 지혜 53(+10) 지능 457 운 54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98 유연성 : 52 화술 : 43 애정 : 79(+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의 손(장갑) : 공격 속도+10%,민첩+15,치명타율 +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수왕> 세트 효과 : 힘+10,민첩+10,체력+10,방어력+20 전사의 견갑(견갑) : 힘+13 개량형 노라드 부츠 (신발) : 이동속도+15%,회피율+10% 화염의 베일 (망토) + 화염 저항력+50%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 '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 +5,마나 회복 속도 +5% 심안(반지) : '심안'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 +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 ,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 +5% *어둠 속에서 모든능력이 4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있습니다.] 아구스 산맥에 도착하고 20일 남짓. 한시도 손을 쉬지않고 노가다를한 보람이 있었다. 이제 마가로프 관련퀘스트를 할수 있는 150레벨을 넘긴것이다. 그뿐인가? 참으로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어쨌든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 재료도 모두 구했다. 아직 '신성한 토양'의 위치를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마음먹고 찾아다니면 금세 찾을수 있으리라. "자, 이제 시작해볼까?" 아크는 오두막 한쪽에 놓여 있는 개인 금고를 열었다. 갈고리 박쥐의 송곳니, 만드라고라, 페어리의 날개를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재료를 모두 꺼내 놓자 탁자 위에 수북하게 쌓였다. 아크는 흐뭇한눈으로 재료를 바라보며 냄비를 꺼내들었다. 이제 서바이벌 요리의 비기를사용할떄가 된 것이다! "20일의 시간과 300골드가 들어갔다. 어중간한 아이템은 안돼!" 아크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리며 냄비에 재료를 하나씩 넣기 시작했다. 먼저 슬라임의 정수를 넣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빛나는액체가 되었다. 거기에 나머지 재료를 하나씩 더하자 액체는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니콘의 뿔을 던져 넣자 냄비에서 오색 광채가 뿜어지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슬라임의 내단'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내단 연성에 들어갑니다. 내단 연성은혼합=결정화=숙성,3단계를 모두 거쳐야완성됩니다. 예상 소요 시간은 72시간입니다] [1단계 혼합 과정에 들어갑니다. 내단의 재료들은 서로 상반되는 마법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의 하나, 자칫 잘못 섞이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작업이 끝날때까지 모든 재료가 잘 섞일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냄비에서 뿜어지는 광채가 조금이라도 혼탁해지면 냄비를 흔들어 재료를 섞어 줘야 합니다. 얼마나 잘 섞이는가에 따라 내단의 능력치가 달라질수 있습니다> =혼합 과정 남은시간 : 2시간] "뭐야 ?실패할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 고생을 시켜놓고?"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내일 하는건데.......벌써 30시간째 잠도 못잤는데 앞으로 2시간동안 냄비만쳐다보고 있으란 말이야? 게다가 완성될때까지는 72시간이 걸린다고?" 그러나 이미 재료는 끓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2시간떄문에 내단 연성이 제대로 안되면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아크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냄비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약간이라도 광채가 흐려진다 싶으면 얼른 냄비를들고 미친듯이 흔들어 댔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의 결과가 앞으로 2시간 사이에 결판나는 것이다! "혀를 꺠물며 버티더라도 최고의 내단을 만들어내겠다.우오오오!" ------------------------------------------------------------------------------------------------------p TYPING BY tjwnsgur888@naver.com 아크4,5권 텍본 http://blog.naver.com/tjwnsgur888/110077556571 에올렸습니다 또한 여기에 판타지,게임소설많으니놀러오세요!! ----------------------------------------------------------------------------------------------------p 셀리브리드의 대성당 지하 감옥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감옥 안에 넋나간 표정의 호비트가 앉아 있었다. 그는 바로 아크의 판매 대리인으로 한창 주가를올리던 시드였다. 그런 그가 엉뚱하게 대성당 지하 감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반쯤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졸지에 감옥신세를 지게 된 탓도 있지만, 현실의 유니트에 시드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저들은 감옥에 갇히게되면 딱히 할일이 없다. 그러나 일단 감옥에 갇힌 유저는 접속을 해제하지 못하는 상태로 수감 일수를 채워야했다. 시드역시 유니트를 접속 상태로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모양.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철창이 열리더니교도관이 들어섰다. "1590번, 네인.상부에서 출감허가가 떨어졌다" "휴,다행이다" 시드 옆에 앉아있던 상인이 몸을 일으키며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그리고 막 감옥을 나서려는찰나,시드가 부르르 떨며 눈을 깜빡였다. 네인은 걸음을 멈추고 빙긋 웃어보였다. "아, 시드님. 돌아오셨네요.감옥에서 이틀이나 함께 보냈는데 인사도 못하고 나가게 될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나가시는거에요?" "네, 어젯밤에 친구에게 보석신청을 해 달라고 전화해 놨었어요.이제 도착했나 봐요. 시드님은 무기징역 선고받았죠? 힘들겠지만 오해가 풀려 출감하게 되기를 바랄게요" 시드는 도토리 같은 눈을 깜빡이다가 퍼뜩 뭔가가 생각난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네인님. 작센 근처에 갈 일이 있다고 했었죠?" "네,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일정이 좀 늦어졌지만 한번 들를 일이 있어요" "그, 그럼 가시는 길에 란셀이라는 마을에 좀 들러 주실수 있어요?" "란셀이요?" "네, 그곳에 제가 잘아는 분이 계시거든요. 그분은 아직 제가 감옥에 갇혔다는 것도 모를거에요.그러니 네인님이 작센에 들러서 그분에게 제 사정을 알려주세요" "하지만 일정이 빠듯한데........" "제발 부탁드려요.그분의 전화번호를 몰라서 그래요.제가나가는 즉시 네인님의 상인 길드 계좌에 30골드를 입금 시켜 드릴게요.원하시면 제 핸드폰 번호를 알려드릴수도 있어요.지금 바로 전화해 보시면 본인인지 확인하실수 있잔아요" 시드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했다. 감옥에 갇히게 되면 모든 짐을 일시적으로 압수당하기에 현재 가진게 없었던 것이다. 네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고갤 끄덕였다. 작센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것만으로 30골드.꽤나 괜찮은 보수다. 바로 받을수는 없지만 핸드폰 번호까지 가르쳐 준다면 사기 당할 염려도 없는 것이다. "네, 알겠어요" 네인은 고개를 끄덕이자 시드는 교도관의 눈치를살피며 재빨리 쪽지를 건네주었다. "란셀 마을의 아크예요.그분에게 꼭 저의 억울한 사정을 전해 주세요!" TO BE CONTINUED TYPING BY RAYAN ARK 7 차례 ACT 1 마법 탐지 ACT 2 어이없는 죽음 ACT 3 신성한 토양 ACT 4 슬라임의 내단 ACT 5 전쟁이다! ACT 6 전쟁의 신전 ACT 7 동맹의 조건 ACT 8 수호탑 격파 ACT 9 전장의 간병인 ACT 1 마법 탐지 -'슬라임의 내단 '의 혼합 과정이 완료 되었습니다. [2단계 결정화 과정에 들어갑니다. 혼합된 재료를 이제 완전히 녹여 하나의 결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작업은 대장장이가 철광석에서 질 좋은 철을 추출해 낼때와 같은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화력이 필요 이상으로 강하면 재료가 산화되어 내단의 효능이 떨어지고, 충분한 화력을 공급하지 않으면 결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붉은색은 화력이 너무 강한 상태,갈색은 화력이 너무 낮은 상태를 뜻합니다. 재료의 색이 고르게 분홍빛을 띠도록 화력을 맞춰야 합니다. 화력 조절에 실패할 경우, 내단의 효능에 심각한 손실이 발생할수 있습니다.> =결정화 과정 남은 시간 : 6시간 ] '헉,6시간? 정말 나를 죽일 셈인가?' 조바심을 참지못하고 내단 연성을 시작한 대가는 컸다. 30시간 논스톱 사냥!순간순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갈 정도로 피로한 상태다. 그 와중에 2시간 동안 미친 듯이 냄비를 흔들어야 했다. 까딱하면 그동안의 처절한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간신히 2시간을 버텨 내자 이번에는 6시간동안 냄비를 노려보며 불 조절을 하란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메시지창! 울컥하며 살의마저 느껴진다. 아니, 되려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온라인 게임을 하다가 과로로 죽는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되는 사건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라고 죽고 싶어서 과로를 했겠는가? 이렇게 유저의 건강 상태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메시지창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주는 사람도 없겠지. 시스템 메시지는 온라인 게임에서 절대적인 법칙. 다른 온라인 게임을 할때도 비슷한 상황은몇 번 있었다. 피곤해서 죽을 정도인데도 미련을 버리지못하고 '이건 간단하게 끝날것 같으니 마저 하고 자자' 혹은 '모처럼 마음이 맞는 파티를 구했는데 조금만 더 하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뭔가를 시작한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면 몇 시간이나 걸리게 되어 밤을 세우고 출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게 바로 중독성, 게임 페인은 그렇게 양성되는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겠어?' 무턱대고 내단 연성을 시작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그러나 어쨌든 시작했으니 끝장을 보고 말리라! "좋아, 오기로라도 최고의 내단을 만들어 내겠다!" 아크는 빨갛다 못해 시커멓게 변해 버린 눈동자로 냄비를 쏘아보았다. "윽, 점점 빨개진다. 온도 20도 내려.....어라? 잠깐 졸았나? 헉, 갈색이다. 언제 이렇게 온도가 내려갔지? 10도 상승!젠장, 너무 올렸나? 왜 이렇게 빨리 과열되는거야? 다시 5도 내려. 아니, 3도만 내려" 몸을 움직이며 사냥을 한다면 차라리 낫다. 가만히 앉아서 냄비나 노려보고 있으니 잠시라도 방심하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덕분에 비몽사몽,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어디까지가 꿈이고 현실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과 돈을 투자한 작업이다. 마지막까지 와서 졸았다는 이유로 실패할수는 없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고 버티던 어느 순간, 돌연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2단계 결정화 과정이 완료되었습니다. [3단계 숙성 과정에 들어갑니다. 슬라임의 내단 연성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남은 것은 각각의 재료들이 가진 효능을 100% 이끌어 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숙성시키는 것뿐입니다. 완전히 밀봉시켜 직사광선을 피해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십시오. <취급 주의! 흔들거나 충격을 가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 못함> =숙성 과정 남은 시간 : 64시간] "됐,됐다............버텨 냈어!" 이제 냄비를 노려보지 않아도 된다. 레어 아이템을 얻었다는 정보창만큼이나 반가웠다. 아큰느 얼른 냄비를 밀봉하고 개인 금고에 넣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오두막의 문까지 단단히 잠가 두었다. NPC들이 선물을 가져다주니 그동안은 열어 두고있었던 것. '이제 남은 잡템만 정리하고 그만 자야겠다.' 현재 뉴 월드는 저녁, 한숨 자고 다시 접속하면밤일 가능성이 높았다. 당연히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을테니 미리 가방을 비워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잡화상점에 찾아가니 벌써 문이 닫혀있었다. '웬일이지?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는일은 없었는데.....' 한 바퀴 돌아보니 너구리족이 운영하는 대장간은 아직도 영업중이었다. 그러나 란셀에서 가장 가격을잘 쳐주는곳은 역시 30%할인율이 적용되는 가렌의 잡화상점. 게다가 거의 모든 종류의 잡템을 매입해 주니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다른 상점에 팔면 50실버 가까이 차이날거야' 50실버가 뉘 집 개 이름인가? 아크는 눈꺼풀을 억지로밀어 올리며 가렌을 찾아나섰다. 다행히 곧 가렌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어두웠다. 마을 외곽, 가렌은 한슨곽 심각한 얘기를나누며 한숨을 불어내고 있었다. "가렌 아저씨" "아, 아크" "무슨 일 있습니까?" "음,그게........" 가렌과 한슨이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그때 사라가 아크의 손을 잡고 아래를 가리켰ㄷ. 란셀 마을 외곽에 자리 잡은 밭, 그리 큰 밭은 아니지만뉴 월드의 작물은 대부분 1년에 두 번 수확이 가능하다. 란셀 마을이 자급자족할수 있는건 그 밭 덕분이다. 그런데 사라가 가리킨 밭의 작물은 아크가 보기에도 발육 상태가 꽤나 안좋아 보였다. "작물들이 왜 이렇게 시들시들한 거죠?" "예전에 놀 무리 때문에 주민들이 떠난뒤로 밭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둔것 때문인것 같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으니 수확이 형편없을수밖에" 가렌이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자네가 데려온 300명의 주민을 받아들일때도, 곧 수확철이 다가오면 식량 사정이 나아질거라고만 생각했어. 그런데 이렇게 작황이 좋지 않으면........올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막막하구먼" 뉴 월드에서는 유저도 먹어야 산다. 만복도가 떨어지면 각종 불이익을 받고,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로 방치하면 사망한다. NPC역시 마찬가지.아니,NPC에게는 현실이니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그때 한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쪽은 내 밭이잖아!" "뭐야? 여긴 예전부터 내가 가꾸던밭이었어. 내가 밭을 메고 물을 줄때는 아무말도 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네거라고?" "손만 대면 다 네거냐?" "내가 딸린 식구가 얼마나 되는줄 알아?" "내가 알 게 뭐야?" "이 자식, 말이면 단 줄 알아?" 목소리를 높이던 농부들은 결국 멱살까지 잡았다. "이보게들, 이게 무슨 추태인가? 당장 그만두게!지금까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함께 이겨 나갔던 게 우리의 자랑이아니었나?" 가렌이 헐레벌떡 달려가 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개척 마을인 란셀의 주민들도 다른 마을 NPC처럼 밭이나 주택의 소유권을 가지곡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 강해 따로 네것 내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함께 생산해서 함께 쓴다. 그게 란셀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때의 일 .막상 상황이 어려워지니 본인의 욕심이 앞서 자잘한 다툼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가렌이 잡화 상점을 비워두고 밭에 나와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이주민들 사이의 불화를 중재할수 있는 사람은 임시 촌장이 가렌뿐이었던것. "고작 한줌의 식량 때문에 멱살을 잡다니? 마을의 은인인 아크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마을의 은인?" 농부가 인상을 구기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은인은 무슨.....결국 마을이 더 힘들어진 것도 저 사람이 도적 패거리 따위를 데리고 와서 그런거 아닌가? 그들만 아니었다면 작황이 안 좋아도 이렇게까지 쪼들리지는 않았을거야.결국 저 친구 탓에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진 거라고!" "이보게 .무슨 말을 그리하는가? 아크는........!" 가렌이 펄쩍 뛰었다. 그러나 농부는 듣기 싫다는듯 고개를 돌리며 침을탁 뱉었다. "퉤 ,어차피 이방인은 우리들의 고생 따위는 안중에도 없겠지" '뭐야, 이거?' 농부의 반응에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란셀에서 아크의 친밀도는 최상이었다. 주민이 아크 앞에서 이런 행동을 보이는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냥이다 '슬라임의 내단'이다 하며 돌아다니느라 한동안 신경 쓰지 못한 사이, 평판이 바닥까지 추락해 있었다. 아니, 그건 둘째 문제다. 가렌과 함께 마을 회관을 찾아 마을 정보를 확인해 본 아크는 뜨악했다. [식량 사정이 10% 감소했습니다. 화합도가 10% 감소했습니다. 상업, 공업, 무장도가 8%감소했습니다. 마을 주민 2명이 불화로 인해 마을을 떠났습니다.] 가렌 마을의 지난 열흘에 관련된 정보였다. 마을 성장에 관련된 모든 수치가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것이다. 하긴, 생존에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조건이 식량이 부족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잖아?' 아크는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꺠달았다. 평판이 문제가 아니다. 아크는 란셀 마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마을에 문제가 생겨 발전도가 하락한다면 당연히 부동산 시세에도 영향을 미칠터. 부동산으로 한몫챙기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게다가 란셀 마을이 다시 피폐해지면 그동안 고생해 온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도 만족스러운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리라. 아크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그야 다른 곳에서 식량을 사 오면 되지. 하지만 근래 들어 마을에 새집을 짓거나 ,도로를 닦는 등 돈이 많이 들어가서 재정 상태가 썩 좋지 못하네. 소확철까지 작물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올 겨울은 많이 힘들어질 거야." 가렌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결국 제가 갑자기 300명이나 데리고 와서 그런거군요" "그 이유가 전부라고는 할수 없지만......." "또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가장 큰 문제는역시 밭을 너무 오래 방치해서 황폐해진 탓이겠지. 그리고 주변에 몬스터가 많다는 것도 문제라네.몬스터가 많으면 그만큼 들짐승의 숫자가 줄어들어 사냥을 통한 식량 보급도 힘들어지지" 아크 역시 란셀 주변에서 들짐승을 본적이 많지 않다. "몬스터를 잡아먹으면 안될까요?" "아구스 산맥의 몬스터는 대부분 독을 가지고 있다네. 잘 못먹으면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지. 배가 고프다고 독을 먹을수는 없지 않은가?" "큰일이군요" "할수 없지. 일단 묘족과 의논해 당분간은 토끼나 노루 따위를 사냥해 달라고 부탁해 놔야 겠네. 그래도 부족한 식량은 작센 영지에서 조달해 올 방법을 알아봐야지. 그나저나 걱정이군. 같은 수확철이라도 봄과 달리,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가을은 시세가 많이 오르기 마련인데...." 가렌이 한숨을 불어냈다. 아크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았다. 이제 란셀 마을은 뗴려야 뗄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당연히 마을이 힘들어지면 아크에게도 여러가지 불이익이 따를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 사정이 그러면 식용 고기를 비싸게 팔수는 있겠지만........' 당장 푼돈ㅇ르 벌어도 식량 사정이 더욱 어려워져서 마을이 황폐해진다면 결과적으로는 손해. 그러나 식량사정만큼은 아크도 어떻게 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란셀 마을의 인구수는 700이 넘는다. 가끔씩 보이는 들짐승을 사냥해 고기를 가져다 판다고 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식량 사정은 1%도 나아지지 않으리라. "이그드라실의 가호만 있었다면......." 그때 뒤쪽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 보니 너구리족 대표가 우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도,풍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식량 걱정은 하지 않았네. 위대한 아버지, 이그드라실의 가호 덕분이었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막상 밖에 나와보니 그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군.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수 있다면......" 너구리족 대표는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마을회관을 나섰다. 마을 사정이 안 좋아지자 너구리족도 지저세계가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너구리족까지 마을을 떠나고 싶어하자 가렌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크는귀가 번쩍 뜨였다. '이그드라실!' 그렇다,지저 세계의 수호목! 이그드라실의 맹약에 따라 너구리족은 어두운지저세계에서 봉인을 지키게 되었지만, 대신 세계수의 힘으로 너구리족에게 풍족함을 주었다. 만약 란셀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머릿속에 씨았이 떠올랐다. '포포는 이그드라실의 씨았이다. 포포가 란셀에서 뿌리를 내리면 같은 효과를가져올지도 몰라. 아니, 지금 믿을건 그것뿐이다!' 지금까지 레벨업과 '슬라임의 내단'때문에 미뤄놨던 <신성한 토양> 퀘스트! 이제 그 퀘스트의 해결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계속 주민들이 떠나고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결국 식량 부족!퀘스트 해결도 해결이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해. 그래, 정의남 아저씨와 훈련소 NPC들이 나서면 조금은 나아지겠지' 아크는 일단 잡템을 정리하고 정의남을 찾아갔다. "...........그래, 사실 나도 얼마 전에야 그런 사정을 알고 걱정하던 참이다. 우리때문에 란셀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할수는 없지. 알았다, 우리도 당분간은 멀리까지 나가서라도 들짐승을 사냥하도록 하마" 간신히 거기까지 일을 진행시킨 아크는곧바로 접속을 끊었다. 36시간의 강행군, 유니트에서 내려서자마자 무거운 피로가 몸을 덮쳤다. 현우는 비명을 지르며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멍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 보았다. 곰팡이가 번진 방구석, 낡은 장롱 하나, 길에서 주워 온 15인치 TV와 컴퓨터 세트. 그 사이에 방과 어울리지 않는 가상현실 게임 유니트가 자리잡고 있다. 언제나 보던 현우의 월세방이었다. 한참 뒤에야 현우는 한숨을 불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휴, 이제 별 꿈을 다 꾸는 구나' 옷이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잇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무서운 꿈이었다. 어머니가 배가 고프다고 눈물을 훌쩍이는........ 고작 17살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는 가장이 되어 버린 현우. 그런 현우에게 가난,굶주림만큼 공포스러운 일은 없었다. 아니, 굶주리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 드릴수 없는 상황은 귀신이나 괴물에게 쫓기는 꿈보다 몇 배는 더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슬라임의내단'연성에 36시간이나 시달리고, 란셀 마을까지 상황이 안좋다는 얘기를들은뒤에 쓰러지듯 잠들어 그런 악몽에 시달리게 된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시간밖에 못잤지만 그런 악몽을꾼 뒤라 다시 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1시간 뒤에는 체육관에 나가 봐야 하니 기분 전환이라도 하는편이 낫다. 현우는대충세수를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가기 전에 오늘 시세를 한번 훑어볼까?" 현우는 삼각김밥을 우물거리며 경매 사이트에 접속했다.꾸준히 일주일에 평균 2개 이상, 현장 150만원 가량의 아이템을 거래해 왔다. 한 달이면 거의 600만원. 그중 7%의 수수료를 지불하니 경매 사이트에 매달 42만원의 돈을 벌어주고 있는 것이다.덕분에 등급이 쭉쭉 올라 얼마전에 골드 회원이 되었다. 골드 회원이 되면 여러가지 편의가 제공된다. 일단 수수료가 1%할인되고, 각종 아이템에 대한 시세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수 있는 정보창이 제공되었다. 또한 주가처럼 지난한 달 사이의 가격 변동도 상세하게 나와 판매 가격을 책정할때 여러모로 편리했다.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마정석 골렘의 머리 : 80만원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완력의 팔찌 : 45만원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묵철검 : 180만원 -경매가 완료되었습니다. 고급 수리 상자(4) : 48만 원...... '묵철검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하군' 경매 현황을 살펴본 현우는 한숨을 불어냈다. 이제 유저들의 평균 레벨도 꽤나 높아졌다. 떄문에 레벨 60대 이하의 아이템 가격은 꾸준히 하한가를 갱신하고 있었다. 반면 70레벨 이상의 아이템은 가격이 오르는 중이다. 예전에는 130만원 수준이었던 묵철검이 180만원으로 올라간것도 그만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까닭. 그러나 현우는 근래에 고레벨 아이템을 변변히 구하지 못했다. 아니, 구한 아이템만이라면 꽤 된다. 유니크인 '전사의 명예'나 레어 반지 '심안'등등......내 놓기만 하면 수백만원은 받으리라. 그러나 그 아이템은 모두 현우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더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강해져야 하는게 상식. 당장 돈이 된다고 무턱대고 팔아 치울수는없다. '이번 달에 판매한 아이템을 모두 합하면 수입은 400만원 정도인가?' 장부를 확인하며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정확히 470만원.그동안 모아 놓은 포션도 몇개 팔고, 마법 복원이 상급이 되어 필요없게 된 고급 수리 상자도 모두 팔아 치웠다. 너무 시세에 신경쓰느라 시기를 놓쳐 몇가지 아이템은 제값을 못 받았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돈으로는 병원비 내기도 빠듯하다' 현우가 한 달에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가 521만원. 그것도 평균이다. 만약 급변이라도 생겨 예정에 없던 치료를 받거나, 약이 들어가면 600만원을 넘길때도 많았다. 다행히 이전에 '화염의 학살자'를 비싸게 처분해 아직은 통장에 여유가 있다. 그러나 이대로 다음달까지 별다른게 없으면 생활이 꽤나 힘들어지리라. '그래도 이제 목걸이와 반지, 팔찌, 견갑까지 풀 셋을 갖췄어. 앞으로 팔수 있는 아이템이 늘어날거야. 하지만아직은 좀더 허리띠를 졸라매야겠어 .사냥도 빡세게 하고" 죽어라 돈을 벌어도 생활은 항상 빠듯하다. 그러나 현우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힘들다거나,억울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아마 5년전이었다면 견디긱 힘들었을것이다. 풀길 없는 분함을 병원에 계신 어머니에게 풀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우는이제 5년전의 철없는 어린애가 아니다. 병원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중에는 돈이 없어 부모 형제의 고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사람들도 있었다. 비겁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현우는 그들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버티고 있다. 내가 번 돈으로 어머니를치료하고, 어머니가 나아져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약한 소리 따위를 할때가 아니야!' 아버지를 잃고 나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알았다. 때문에 어머니를 위해 뭔가 할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며칠 밤을 세우며 게임을 해도, 그렇게 번 돈이 병원비로 나가도 조금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조금더............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그러려면 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해. 수천만원이 있어도 부족하단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모든것을 해야한다. 현우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사이트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날그날의 아이템 시세를 파악하는 것도 게임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식재료는 여전히 거래가 안되는군' 뉴 월드에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려는사람이 드무니 당연하다.게다가 일반 요리의 재료는 대부분 마을 상점에서 구할수 있기에 아크처럼 독특한 식재료를 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끔 만드라고라처럼 식재료이면서 마법 재료로도 쓰이는 아이템만 몇몇 연금술사들이구하는정도였다. 그러나 그조차 푼돈이라 차라리 요리로 만들어 먹는 편이 나았다. '요리에 유통 기한만 없어도 팔수 있을텐데....' 서바이벌 요리의 유일한 단점이 그것이었다. 비싼 향신료가 들어간다고 해도 같은 효과의 포션ㄷ보다는 재료비가 싸게 먹힌다 대신 그만큼 포션보다 약효가 약하고, 음식이라 유통 시한까지 붙어있었다. 물론 상급이 되어 유통기한이 꽤 길어졌지만 경매 사이트를 통해 판매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언제 썩을지도 모르는 요리를 몇 골드씩이나 내고 살 사람은 없었다. '방부제 같은 재료가 있다면 얼마나 좋아?' 현우가 입맛을 다시며 여기저기를 클릭하고 있을때였다.알람 시계가 요동치며 4시 반을 알려왔다. 쾅,쾅,쾅!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매트가 흔들렸다. 목 감아 돌리기라는 레슬링 기술에 당한 현우는 한순간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러나 이제그런 고통에도 꽤나익숙해졌다. 현우는 튕기듯 일어나 굳히기를 하여 들어오는 상대의 팔을 마주 잡았다. 예전같았으면 바로 반격기를 당했겠지만, 하체를 단단히 굳히고 자세를 낮추니 상대도 쉽게 기술을 걸어오지 못했다. 전국대회 동메달 리스트와 거의 팽팽한 시합! "하, 제법이잖아?" "저런 태클은 그리 쉽게 되는게 아닌데?" "정말 레슬링 처음 해 보는거 맞나?" 기동대원들이 운동을 멈추고 몰려들어 감탄사를터트렸다. 그러자 이명룡이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흥, 매일 그렇게 대련을 하면서 저 정도도 못하면 말이 안되지" "에이, 그건 아니죠. 대련한다고 다 저렇게 빨리 배우면 매일 쌈박질하는 깡패는 모두 달인이게요?" "내말이요. 전국체전 출신 선수를 상대로 저 정도하니까 대단한 거잖아요" "시끄러워,니들이 뭘 안다고 그래 ?니들도 고작 애들 수준 이잖아. 운동 안해? 출동해서 칼 맞고 싶냐?" "쳇, 할 말 없으니까..........." 이명룡이 눈을 부라리자 대원들이 툴툴거리며 흩어졌다. '확실히........' 이명룡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도 내심 감탄하는중이다. 물론 현우가 초보자이니 상대가 봐주는 면도 적지 않다. 아마 진지하게 시합을 한다면 1분안에 끝났으리라.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현우의 성장은 괄목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현우가 짐작한대로 그가 무지막지한 운동을 시킨뒤에 복싱, 레슬링, 태권도 시합을 시키는 것은, 몸 전체를 활용하는 요령을익히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복싱이라고 팔 힘만으로 상대를치는건 아니다. 허리와 발놀림에서 자연스럽게 동작이 뻗어 나와야 제대로 된 펀치라고 할수 있다. 레슬링이나 태권도 역시 마찬가지 .한부분이 아니라 몸 전체를 활용해야 제대로 기술이 먹히는것이다. '멍청해 보이지는 않으니 그 정도는 알아챘겠지만....' 격투기란 머리로 이해한다고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연습과 실전으로 몸에 새겨 가는 것이다. 그런데 현우는 고작 한달만에 요령을 익혀 버렸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쓸만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그것도 하루 종일 게임이나 한다는 폐인 녀석이 말이다. '혹시 정말 내게 재능을 간파하는 안목이 있는 건가?' 그러나 이명룡은 곧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재주라고는 사람 패는 것밖에 없는 내가 그럴리가 없지' 그렇다면 대체 뭔가? '역시 답은 거기에있는건가?' 현우는 자고 ,운동하는 시간 외에는 게임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체육관에 나타날때마다 조금씩 기량이 높아진게 눈에 보인다. 그렇다면 답은하나, 가상현실 게임.......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비밀이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화랑 형님 분위기도 게임을 시작한 뒤로 묘하게 달라진 느낌이 들고.....대체 뭐지?그 가상현실 게임이란게?' 이명룡이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레슬링 3회전이 끝났다. 이어 다리 운동과 태권도 대련까지 끝낸 현우가 헐떡거리며 다가왔다. "사범님, 그만 가 볼게요" "그래라. 그런데 오늘은 스텝이 자연스럽지 않던데? 어디 아프냐?" "그냥 조금........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젊은 놈이 컨디션은 무슨.......들어가 봐" "네" 현우가 꾸벅 인사를 하고 체육관을 나설 때였다. "그런데.......너하고 화랑 형님이하는 가상현실게임이 뉴 월드라고 했었지?" "사범님도 게임에 관심 있으세요?" "관심은 무슨.......알았으니 가 봐라" 이명룡은 겸연쩍은 얼굴로 둘러댔다. 그러나 현우가 돌아간 직후, 그는곧바로 근처 가상현실 게임방으로 향했다. '현우 녀석은 그렇다 쳐도, 대체 뉴 월드라는게 뭐기에 운동밖에 모르던 권화랑 형님까지 미치게 만든거야? 내가 하던 게임하고는 다른건가?' 행동파인 이명룡은 궁금한건 못 참는 성격이었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게임방이라니, 주책이다. 그런 생각에 잠시 게임방 앞을 서성이던 이명룡은 결국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알수 없지' 그렇게 전직 태권도 국가 태표,현직 경찰청 특수 기동대장은 뉴 월드에 발을 들여........ "대장님,본부에서 출동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쳇, 하여간 타이밍 하나는 죽인다니까 .알았어. 대원 소집시켜 놓고 기다려" ........놓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다. '정말 감기가 올려나?' 정말 악몽을 꾼 직후부터 컨디션이 안좋았다. 체육관에서 운동할때는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는데, 다시 집에 돌아오니 몸이 축축 늘어진다. 은근히 두통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크는 다시 뉴 월드로 돌아왔다. 뉴 월드에서 버는 돈이 하루 평균 25만원. 하루를 쉬면 25만원을 깎아 먹는 것이다. '감기 따위로 25만원을 포기할수는 없지!' 란셀 마을에 돌아오니 주위가 어둑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를 하다보면 가끔 시간관념이 뒤죽박죽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금전, 집에 돌아왔을때가 오전 8시였다. 그러나 뉴 월드는 그 사이에 꼬박 하루가 지나 저녁 무렵.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가끔은 어느 시간은 기준으로 살아야할지 알수 없게 되었다. "뭐,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컨디션이 안좋다고 하지만 일단 수면을 취한 뒤라 나가기전보다는 정신이 맑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할일을 정리해볼까?" 아크는 먼저 오두막에서 냄비를 확인해보았다. 별다른 점없이 숙성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은것은 기다린는 일뿐.레벨도 151.이미 목표인 150을 넘겼다. '하지만 이곳에서 할일이 모두 끝난건 아니야' 이그드라실에게 원격 통신으로 받은 퀘스트<신성한 토양>.사실 아크는 지금까지 이 퀘스트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받을수 있는 보상이 애매했기 떄문이다. 퀘스트를 해결해서 씨앗을 심는다고 치자. 대체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지저 세계에 있는 이그드라실이 달려와 보상을 줄리도 없고, 씨앗인 포포에게 뭔가를 얻어낼수 있으리라는 생각도들지 않았다. 아마도 잘해야 명성이나 경험치 보너스뿐이리라. 퀘스트를받으면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은게 유저의 마음이지만, 보상이 별로라는게 뻔히 보이니 유선순위가 밀려나는건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란셀 마을에 불어닥친 식량 위기! 확실하지는 않지만 포포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퀘스트의 보상이 아니라, 란셀 마을의 부동산 시세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지체할수 없었다. '그리고...........그동안 내가 너무 무관심했지' 아크는 찜찜한 눈으로 포포를 바라보았다. 포포는 여행을 시작할 무렵에는가방에서 종종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말수가 줄어들더니 란셀에도착한 뒤로는 불러도 나타내지 않을때가 많았다. 식물은 땅에서 영양분을 섭취한다. 씨앗 상태인 포포는 사람으로 따지면 그동안 먹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뜻.현재포포는 에너지가 바닥난 건전지나 다름없으리라. '퀘스트에 시간제한이 없다고 너무 느긋했어.이대로 가면 포포는 정말 폐건전지가 되 버릴거야. 어쨌든 포포는 이그드라실의자식.만약 포포가 말라죽게 되면 모처럼 올려놓은 이그드라실,너구리족과의 친밀도가 떨어질지도몰라' 사실 아크는 란셀로 이주한 너구리족과는 그리 친밀도가 높지 않았다. 그들은 지저 세계에서 몬스터로 변했던 너구리족. 아크가 물리친 몬스터는 바로 그들의 동료들이다. 싫어한다면 모를까, 좋아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너구리족은 아크가 란셀에 도착하자 친근한 태도를 취했다. '때떄로 오두막에 선물을 가져다 놓을정도로.........' 아크는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이그드라실의 씨앗으로 변한 포포,너구리족이 섬기는 수호목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니 그만큼 친밀도에 보너스를 받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씨앗 좀 잘 봐달라는부탁의 의미다. 그런데 선물은 선물대로 다 받아 챙기고 포포가 가방에서 말라 죽도록 방치한다면? 너구리족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수 없다. 이래저래 <신성한 토양> 퀘스트는 더 이상 미룰수 없었다. '자 ,이로써 당장 할일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막상 마음을 열고 보니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감이 잡히지 않았다. 작정하고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아크도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어차피 아구스 산맥을 뒤지고 다녀야 하니'신성한 토양'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20일을 넘도록 아구스 산맥을뒤진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단서를 발견할수 없었다. '아직 못 가 본 지역도 많이 남아 있지만, 무턱대고 돌아다녀서는 언제 끝날지 장담할수 없다. 뭔가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을까?'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한슨이 떠올랐다. 지도 제작사인 한슨이라면 토양에 대해서 아크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있으리라. 한슨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대답했다. "신성한토양이라......그래, 들어본적은 있네. 대지의 힘이오랫동안 집중되는 지점의 땅은 매우강력한정이 깃들게 된다고 하더군.북방 민족이 그런 정이 깃든 대지를 신성한 토양이라고 불렀던 것 같네" "아구스 산맥에서도 찾을수 있을까요?" "그럴거라고 생각하네. 산맥이란 대지의 힘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장소니까.그중에서도특별히 강한 힘이 모이는 장소라면.......산세가 겹쳐지는 곳을 말하는건 아닐까?" "산세가 겹쳐지는 지점?" "산줄기가 모여드는 계곡 같은 곳을 말하는 거네. 시렞로 북방 민족은 계곡을 신의 쉼터라고 부르며 신성시 여긱기도 했었네. 관계가 있지 않겠나?" "그럼 계곡 바닥에 있는 흙이 신성한 토양이라는 겁니까?" "짐작일뿐이네. 나도 아직 신성한 토양을 직접본적은 없으니까.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찾고도 알아보지 못한 건지도 모르지.신성한 토양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떤 형태인지, 어떤 빛깔인지, 아니,다른 흙과 다르기는 한건지조차 모르지않나?" 한슨의 말에 아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신성한 토양은 대체 어떻게 생긴 흙을 말하는 거지?' 왜아직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을까? 무작정 신성한 토양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을뿐. 정확히 다른 흙과 어떻게 다른지조차 모르지 않은가? 만약 겉보기에 똑같다면? 대체 어떻게 찾아내야 하는걸까? "그럼 신성한 토양을 알아볼 방법이 없다는 겁니까?" "글쎄 ,내가 들은 바로는 신성한 토양은 대지의 정이 깃들어 있어 식물이 잘 자란다고 하네. 그 말대로라면 이상하게 숲이 우거진 곳을 찾으면 되겠지. 하지만 이곳은 남부, 더구나 숲이 울창하기로 소문난 아구스 산맥에서는그런 방법으로 찾아내기 어렵겠지" 한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북방 민족중 숲지기라는 사람들이 있네" "숲지기요?" "그래 ,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남부와 달리 숲에서 얻을수 있는 것도 굉장히 제한적이지. 때문에 아주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고 찾아낼수 있는'특별한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 바로 숲지기야. 그들은 신의 쉼터를 찾아낼수있다고 들었네" "뭔가를 찾아내기 위한 특별한 기술?" 문득 아크의 머릿속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마드세인!'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바가지씌워 팔았던 마법상점의 주인 마드세인. 그에게 같은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보이지 않는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특별한기술이필요하다고.NPC에게서 나온 말이니 우연의일치는 아니리라. "감사합니다" 아크는 곧바로 마을 어귀의 마법 재료 상점으로 달려갔다.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어떻게 찾아냈냐고?" "네, 아저씨가 말했던 특별한 능력이 대체 뭡니까?" 마드세인은 수상한 눈길로 아크를 훑었다. 처음 만나는 NPC에게 질문을 던졌을때 종종 보인느 반응이다. 질문에 대답을 해줄만한 친밀도가 있는지 확인하는과정. 다시 말해 친밀도가 필요한 정보라는 뜻이었닫. 다행히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300골드에 산적이 있어서 약간의 친밀도가 쌓인 상태.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를 한 모양이다. "내가 왜 글너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숨길 이유는 없겠지. 그건 마법 탐지라는 기술이네.슈덴베르크를 통틀어 몇명 안되는 마법사만 익힌 비전의 기술이지" 마드세인이 우쭐거리며 대답했다. 아크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그 기술을 배울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걸 왜 가르쳐 줘야 하지?" 마드세인이 콧방귀를뀌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산골까지 와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구스 산맥에서만 구할수 있는 각종 마법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네.무한한 자연이라고 하지만 그런 귀한 재료는 그리 쉽게 얻을수 있는게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왜 자네에게 그런 기술을 알려줘서 경쟁자를 늘려야 하지? 얼마를 싸들고 오든 기술을 팔 생각은 없네" 당연한 반응이었다. NPC에게 기술을 배운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당한 친밀도가 있거나, 퀘스트처럼 기술을 가르쳐 줘야할 특별한 이유, 혹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지불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전사나, 생산직 기술은 비교적 배우기가 편하다. 전사의 스킬은 대부분 용병NPC에게 적당한 보수를 주면 배울수 있다. 아니, 굳이 돈을 주고 배울 필요도 없다. 한가지 동작을 꾸준히 반복하면 스킬이 되는게 뉴 월드의 법칙. 용병 NPC의 동작을 보고 따라하다 보면 저절로 스킬이 생겨나기도 한다. 생산식 NPC역시 돈을 버는게 목적이니 오히려 스킬을 팔기위해 학원을 차리고 광고를 할 정도다. 그러나 마법사나 연금술사의 스킬은 경우가 다르다. 마법과 연금술은 고대로부터 비밀리에 전수되는 지식! 전사의 스킬처럼 보고 따라 할수 있는게 아니다. 게다가 NPC들의 독점욕도 강해서 뇌물도 먹히지 않는다. 결국 스스로 스킬북을 찾아내는 방법 뿐이니,마법사가 전사보다 몇배나 키우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것이다. 마드세인 역시 상점 주인이지만 마법사 NPC. 그리 쉽게 비장의 스킬을 가르쳐 줄리가 없다. 아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드세인도 일단은 란셀의 주민 .마을의 식량 위기를 해결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설득하면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으리라 기대했던것. 때문에 온갖 화술을 동원해 설득해봤지만, 마드세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내가 왜 그런것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건가? 듣기 싫네.그만 나가 주게" 마드세인은 짜증을 내며 아크를 쫓아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그다지 인상이 좋지는 않았지만, 역시 짜증 나는 녀석이다. 사실 란셀에서 마드세인의 평판은좋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고,제법돈이 많으면서 마을을 위해서는 땡전 한푼도 내놓지 않아 수전노라는 말을들었다. 아크가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구입할때 1큐퍼도 깎아 주지않은 것만 봐도알수 있지 않은가. 그런 녀석이 순순히 스킬을 가르쳐 주리라고 기대한것부터가 실수였다. 그러나 아크 역시 일단 한번 찍은 목표를 순순히포기할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NPC에게 스킬을 배우는 방법은 두가지다' 하나는 퀘스트 보상이나 친밀도를통해 얻는 방법. 뉴 월드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마드세인의 성격을 보자면 그런 방법은 이미 물건너간 듯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가르쳐 줄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마드세인에게 그런 압력을 가할수 있을까? '마드세인이 꼭 필요로 하는물건을 구해 협상을 하거나, 혹은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방법뿐이겠지. 일단 생각나는건 마드세인이 군침을 흘리는 유니콘의 뿔이지만, 그건 언제 다시 자랄지도 모르는거고....뭔가 약점 같은건 없을까? 마법사가 굳이 이런 산골마을까지 왔다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거기에 힌트가 있을지도 몰라' 아크는 일단 란셀을 돌아다니며 마드세인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았다.그러나 마드세인은 란셀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주민들과 이렇다 할 겨류도 없어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주민은 없었다. 결국 몇 시간 허비한 아크도 슬슬 지쳐가고 있을때였다. "마드세인이라.....나도 그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네. 아구스 산맥에서 이런저런 마법재료를 모으며장사를 하고 싶다고 해서 받아준거지. 그 이후로는 상점에 찾아가지 않으면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네.듣자하니 밤에 종종 마법 재료를 찾으러 산에 돌아다니는 모양이야" 그렇게 말한 가렌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였다. "좀 이상했던 건, 그가 예전에 우리 상점에서 구입한 공구들이라네" "공구요?" "음, 해머나 공괭이,수레 따위네. 마법재료를 캐는데 그런 공구가 필요한가?" 가렌의 말에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머나 곡괭이, 수레.....당연히 채취할때 사용할만한 공구는 아니었다. 마법재료를 채취할때를 제외하고는 상점에서 나오지도 않는 그가 대체 왜 그런 공구를 구입했을까? 아크는 직감적으로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리고 일단 그런 정보를 입수한 뒤에 다시 란셀에서 정보를 모으자 새로운 정보가 나왔다. '역시 아무리 현실같아도 뉴 월드는 게임이구나!' 하나의 단서를 얻음으로써 또 다른 단서를얻을수 있는 구조는 RPG의 기본 규칙! 뉴 월드에도 그런 규칙이 적용되어 있었다. 즉, 그냥 마드세인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던 주민도, 일단 가렌에게 수상한 점을 듣고 그 부분을 캐물으니 그들도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며 정보를 술술 불어댔다. "얼마전에 목재와 석재를 대량으로 주문한 적이 있었네. 적은 양이 아니었는데 그걸 다 어디에 쌓아 뒀는지도 모르겠군. 상점의 지하실은 그리 크지 않을텐데 말이야" 너구리족의 증언이었다. "늦은 밤에 종종 땅이 약간 흔들리는것처럼 느껴질때가 있네. 아침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전혀 모른다고 하던데.....내가 요즘에 너무 허약해져서 그런가?" 마법 재료 상점 근처에 사는 주민의 증언이었다. "근래에 숲을 정찰하다 보면 하룻밤 사이에 못 보던 흙이나 자갈더미가 생겨나는 일이 종종 있지. 몬스터들이 했다고 보기에는 좀 그렇고.....대체 누가 흙을 옮겨 놓은 걸까? 뭐, 딱히 알아내고 싶지는 않지만" 란셀 마을의 경비를 맡고 있는 묘족 전사의증언이었다. '공사에나 쓰일듯한 공구 세트. 그리고 대량의 목재와 석재.밤이면흔들리는 땅과 정체불명의 흙더미라, 슬슬 그림이 나오는데'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말 별거 아닌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정보를 하나로 합쳐 보니 수상해도 보통 수상한게 아니다. 그리고 그런ㄹ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를 추측해보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마드세인은 1쿠퍼도 아까워하는 수전노!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망르 회관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법 재료 상점에 등기 관련 정보를 확인한뒤에야 아크는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할수 있었다. '이거다 마드세인.......딱 걸렸어!'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드세인이 눈에 띄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기대했던 반응이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넓은 창고를 몇개나가지고 계시니 도도 많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만큼 돈이 많다면 기술하나 정도는 공짜로 가르쳐 줘도 되지 않습니까?" "창고가 넓다니? 나는 대체 자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군. 상대를 못하겠어. 그런 헛소리를 하러왔다면 그만 나가보게" 마드세인은 얼른 당혹감을 지우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크는 묘한 눈길로 툭 던지듯 물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되냐니? 무슨 말인가?" "그사이에 몇 가지 알아봤습니다. 개척 마을에 이주민이오면 일정 세금을 내기로 약속하는 대신, 무상으로 땅을 배당받죠.그곳에 상점을 만들든 지하창고를 만들든자유입니다.그렇죠? 당연히 아저씨도 이 땅을 받고 정당하게 상점을 만들었죠?" "그런데?" "욕심이 과하셧더군요" 아크는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마을 회관에서 확인했습니다. 아저씨가 받은 땅은 이 주변 반경 10미터. 확실히 이 상점은 적정 기준에 딱 맞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밑도 그럴까요?" "이, 이밑이라니?" "나름대로 꽤 조심한것 같지만.......란셀은 작은 마을입니다. 잡화상점에서 구입한 공구 세트,너구리족에게 구입한 목재와 석재,마법 재룔 상점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그런 것을 어디에 썼을까요?" "그, 그건......." "게다가 밤에 이 주변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숲에는 하룻밤 사이에 정체 모를 흙더미가 생겨나기도 하고요.그 해답은 아저씨가 알고 있을것 같은데요?" 아크는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쏘아 붙였다. 그렇다. 이런 정보를 하나로 모았을때 나오는 결론은 하나, 마드세인은 주민들 몰래 지하 창고 확장 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구 세트와 목재, 석재는 그 작업에 필요한 재료.그리고 밤에 느껴졌다는 진동은 그 공사의 여파였다. 물론 마법사니'침묵'마법으로 소음을 줄였겠지만, 진동까지 완전히 없앨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한 숲에 생겨났다는 흙더미 역시마드세인이 몰래 옮겨 다 놓은것이리라. 건축물 불법 개조는 현실이든 게임이든 범죄다! 자,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왜 마드세인이 몰래공사를 진행했을까? 당연히 마드세인이 수전노이기 때문이다. 이주민에게는 일정량의 땅이 무상으로 지급되지만 ,유저든 NPC든 더 넓히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들어간다. 마드세인은 그 돈이 아까웠던것. 때문에 몰래 지하실을 확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주변에 다 른 주택이 없는 마을어귀에 상점을 세운 이유는 처음부터 그런 꿍꿍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하긴 조금 이상하다 싶었죠. 아저씨는 쉬지않고 마법재료를 모았죠. 이 마을에서 마법 재료가 팔릴리가 없느넫도 다른 마을로 팔러가지고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많은 마법 재료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은 상점의 지하 창고로는 부족하다 싶었거든요.이일을 가렌아저씨가 알면 어떻게 될까요?" "자, 자네 지금 나를 협박하는건가?" "협박이라니요?무슨 그런 살벌한 말을..........." 아크는 느물거리는 표정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협상을 하자는 겁니다" "협상?" "네 ,어차피 세상은 기브&테이크 아닙니까? 나는 아저씨가 창고를 넓히는것에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입을 다물어 드리죠.하지만 아저씨도 그만한 성의를 보여야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원하는게 뭔가?" 마드세인이 험악한 눈길로 쏘아보며 물었다. 그러나 겁날 이유가 없다. 감정을 드러냈다는 건 패배를 인정했다는 말과 다름없는 것이다. 아크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뭘 원하는지는 아실텐데요?" "당치도 않은 소리!고작 그따위 말장난으로 비전의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건가?" "싫으면 관두십시오" 아크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듯이 몸을돌려세웠다. 역시나 마드세인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기, 기다리게!" '끝났군'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사실 익너 실패할리 없는 교섭이었다. 이미 아크는 교섭을 시작하기 전에 가렌에게 마을의 규칙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만약 허가되지 않은 땅에 멋대로 건출물을 지을경우, 촌장은 그 건축물의 모든권리를 빼앗을수 있다. 즉, 마드세인이 가렌의 허가도 없이 넓힌 지하창고 그리고 그곳에 모아두었을 마법재료들을 몽땅 마을에 귀속시킬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란셀 마을은 여러모로 쪼들리는상황. 게다가 상대가 가상 편판이 좋지 않은 마드세인이다. 가렌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쌍수를 들고 환호하며 몽땅 압수하려 들것이다. 돈을 아끼려고 밤잠까지 설치며 공사를했던 마드세인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수백 ,혹은 수천골드를 날리느니 차라리 스킬을 전수해 주는게 낫겠지. 당장 돈이 들지는 않으니까.그리고 나도 마드세인의 재산이 마을에 귀속돼서 크게 득될건 없다. 이기회에 스킬을 배워두는게 백배나아' 스킬을 전수하는게 아크와 마드세인, 양쪽 모두 이익이다. 그러니 실패할리가 없는 협상이라는것이다. '날 원망하지는 마라.네가 스스로 목을 조른거니까' "자, 결정하셨습니까?" ".......만약 기술을 가르쳐 주면 이 사실은........" "평생 입을다물겠다고 맹세하죠" 아크는 다정함이 넘치는 표정으로웃었지만 마드세인에게는 악마의미소로 보일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를 갈아붙이던 그는 책 한권을내밀었다. "망할 놈, 여기있다. 내가 틈틈이 요령을적어놓은비전서다.가지고 나가라" 마드세인이 울분을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팩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 말을 섞었다가는 뭘 뻇길지 겁났던 것이다. "그럼 다음에 봬요" 그렇게 주둥이 하나로 상인 NPC를 초죽음으로 만든아크는 유유히 상점을 빠져나왔다. '후후후,내 돈을 먹고 편할줄 알았냐? 나는 유저든 NPC든 당한만큼 갚아주는 사람이야'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구입하느라 날린 300골드! 마드세인은 단 1쿠퍼도 깎아 주지않았다. 아크는 아직 그때의 원한을잊지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스킬을익혀 볼까?" 비전서를 꺼내 펼치자 정보창이 올라왔다. ['마드세인의 비전서(레어)'로 새로운 스킬을배웠습니다. 마법 탐지(특수 ,초급,엑티브) : 신비한 마법의 힘으로30분간 주변의 마력 변화를 감지할수 있습니다. 몇몇 특수한 효능을 가진 마법 재료는 평범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마법 탐지는 그런 재료를 즉각적으로 파악할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단, 마법탐지로 알아낼수 있는 대상은 마력을 띈 식물과 사물에한정됩니다. 오래전 묻어놓은 추억의물건같은건 찾아내지 못합니다. 시각 관련 스킬과 중복 불가<마나소비 :50>] ACT 2 어이없는 죽음 간만에 새로운 스킬을 익혔다.당장 시험해 보고 싶은생각에 아크는 곧바로 사냥터로 향했다. "자, 어디 시험해 볼까?마법 탐지" 스킬을사용하자 눈동자에서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어둑한 저녁 무렵의 숲에서 시퍼런 눈동자를 번뜩이는 아크!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은근히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오오,주인,어쩐지 굉장한 포스가 느껴진다" 딱딱딱,딱딱! 아크 역시 특수효과는 꽤마음에들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눈동자가 살벌해진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뭐야? 정말 스킬이발동하고 있기는 한건가?" 아크가 애매한 표정으로 숲을 가로지르고 있을때였다. 수풀을 헤치며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근처에 옅은 빛 무리가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뭔가 하고 다가가보니 어디서나 볼수 있는흔해 빠진 자갈이었다. 하지만 그저 흔해 빠진 자갈이라면 빛을 뿜어낼리가 없다. "혹시 이게 마법탐지의 효과인가?" 역시나, 자갈을 집어드니 아이템 정보창이 올라왔다. -수상한 자갈(미확인) <하급 프로텍스>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그렇군 .이게 바로 마법 탐지 스킬의 효과였어!' 바닥에 떨어진 흔해 빠진 자갈. 지금까지 자갈을 주워 본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야영지를 만들거나,혹은 다른 이유로 자갈을주워 본적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단한번도 지금처럼 자갈이 아이템으로 등록된 적은 없었다. 즉, 그게 금덩이라도 금덩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저 돌멩이.삼산을 봐도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잡초에 불과하다. 마법탐지가 필요한 이유가 그때문이다.금덩이를 금덩이로, 산삼을 산삼으로 알아볼수 있는 요령. 그러나 마법탐지는 단순히 그 아이템이 특별하다는 것만 가르쳐 줄 뿐이다.실제로 그게 뭔지 알아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때문에 아이템 정보가 '미확인'으로 나오는것이다. "안목!" [음암광(마법 재료) 음암광은 매우독특한 성질을 가진 마법 재료입니다. 겉보기에는 보통자갈과 다를바 없지만, 실제로는 음자장을띤 마법석의 일종입니다. 가루르 내어 지나치게 강력한 마력을 희석시키는 용도로 폭넓게 사용됩니다. <공용 5급 마법 재료 .가치 : 10~20실버>] 안목을 사용하자 아이템 정보와 평균 시세가 표시되었다. 놀랍게도 10~20실버! 일반 광물은 귀한재료라도 고작 15실버였다. 또한 가치가 설정되어 있어 일반 상점에서는 사지 않는 광물이 많았다. 채취로 얻은 식재료 역시 가치가 붙어 있지만 상점에서는 매각할수 없다. 그러나 일단 마법 재료라는 이름이 붙으면 90%이상 마법 재료 상점에 매각할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감정'스킬이 없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감정소에서는 하급 프로텍트를 해제하는 데만도 5골드가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마법 재료가 아니라면 터무니없는 적자. 그러나 블라인드 경매장에서 익힌 '안목'을사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국 1코퍼도 안들이고 아이템을 팔아먹을수 있다는 말! 그냥 길바닥에서 돈을 줍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줍기만 하면 무조건 팔수 있는아이템!이건 어쩌면.......엄청난 횡재일지도 몰라!' 마드세인이 왜그렇게 기술전수를 꺼렸는지 알만하다. 란셀 마을 주변에는 마법 탐지를할수있는 NPC가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시간날때마다 한바퀴 돌면 다 제것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아크도 마법 탐지를 할수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혼자 먹던것을 나눠 먹어야 하니 얼마나 배가 아프겠는가? '그렇다면 마드세인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챙겨야 겠지!' 아크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아구스 산맥의 마법 재료를몽땅 쓸어버릴테다!" 스킬 하나로 세상이 달라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냥터가 이제 돈 밭으로 보인다. 돈!그만큼 아크를 미치게 만드는 단어가 또 있을까? 사냥을 하면 당연히 아이템과 경험치를 얻는다.그런데 거기에 마법 재료라는 보너스까지 따라붙자 산맥을 헤매고 다니는게 너무나도 즐거웠다.한동안 몬스터가 나타나지않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광석, 식물, 곤충까지.....이런게 다 마법 재료였다니!' 가방에는 지금까지 구경도 못해봤던 아이템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마법과요리에 공용으로 사용할수 있는 나무껍질 틈에붙어사는 애벌레,마력을지닌철광석,열매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는 채취가 불가능했던 식재료도 채취가 가능해졌다. 그 가운데는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도 있었다. 마법 재료들은 그렇게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지속 시간 30분의 마법 탐지를 한번 사용하면 4~5개를 주울 정도. 일반 식재료는 작정하고 나서면 30분에 15개 가량을 모으니 3배나 드랍율이 낮은 셈이다. 그러나 마법 탐지를켜 놓으면 빛으로 표시되니 일반식재료처럼 주위를 기울여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지'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는 바닥에 떨어져 있을때는 유리조각처럼 투명했다.마드세인은 그 투명한 날개에 염색을해서 팔았던것.하나에 3골드나 주고 샀지만 막상 안목으로 평균 가치를 알아보니1골드에 불과했다. 숫자가 적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3배나뻥튀기 시켜서 팔아먹다니....... '젠장, 마드세인은 역시 악덕 상인이었어!' 뭐 그런 말을 할 만큼 아크도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크는 새삼 스킬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마드세인이 1골드짜리를 3골드에 팔아먹을수 있었던것도, 타락한 페어리의날개가 희귀해서라기보다는 마법탐지 스킬을 배운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싸우는게 일인 유저에게 장비 아이템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장비 아이템도 언젠가는 더 좋은것으로 바꿔야한다. 반면 스킬은 한번 배우면 영원히 재산이 된다. 또한 아무리 좋은 장비를 걸쳐도 불가능했던 일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마드세인처럼 1골드짜리를 3골드에 팔아도 스킬이 없는 사람은 울며 겨자먹기로 살수밖에 없지 않은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전문 스킬! 어떤 스킬이라도 일단 배워 둬서 나쁠게 없다. '의외로 식재료로 사용할수 있는 것도 많이 나온다!' 처음보는 식재료. 이건 곧 새로운 요리를만들 기회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소환수의 능력치를 레벨 90대까지 끌어올린뒤로 손놓고 있었던 것은, 언제나 그랬듯 식재료 종류의 한계 때문이었다.아구스 산맥에서 구할수 있는 식재료는 모두 조합해 봐서 신작 요리를 만들수 없었던 것. 그러나 마법 재료를 찾아낼수 있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새로운 식재료에 조합할수 잇는 다른 식재료는 수십가지!서바이벌 요리의 실패율을 감안해도 소환수 한마리당 서너번은 능력치를 올릴수 있다 또다시 소환수를 성장시킬 기회를 손에 넣은 것이다. '다시 바짝 조여야겠군' 아크는 전투를 치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데드릭과 데이모스도 만만치 않았다. '주인의 눈빛이 위험해 보인다!' '젠장, 이게 웬 날벼락이야?' 두 마릴 소환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몸조심해야할때가 왔다는걸!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아크와 함꼐한지도 게임시간으로 1년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소환수는 같은 상황을 여러번 겪어 보았다. 새로운 식재료가 없으면 아크는 어지간한 일은 그냥 넘어간다. 아크의 성격상, 성장 가능성이 없다면 조금 기어오른다고 귀한 식재료를 써대며 고문용 요리를 만들지는 않는다.그러나 새로운 식재료가 생겼다면 상황이 다르다.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일도 꼬투리를 잡아 음식을 퍼먹이는 것이다. 그렇다,'새로운 식재료=꼬투리 잡아 음식 퍼먹이기'는 이미 하나의 공식! 새로운 식재료의 등장은 아크에게는 행복이지만, 소환수에게는 그야말로 재앙!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아아아!받아랏!" 딱딱딱,딱딱! 몬스터가 나타나자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달려들었다. 데드릭은 강철 투구를 쓴 놀에게도 거침없이 박치기를 날렸고,데이모스는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도 다리를 잡고 버텼다. 소환수들의 투지에 몬스터들이 당혹스러워 할정도였다. 그뿐인가? 아크가 아무리 복잡하게 작전을 지시해도 완벽하게 소화시켜 냈다. "으윽,부상을 좀 입었지만.....주인을위해서 정찰을 다녀와야지.주인, 이제 주변에는 몬스터가 보이지않는다. 혹시 심부름시키거 없냐?" 전투가 끝나면 알아서 정찰을 나가기도 한다. '요놈들 봐라?' 소환수들이 갑자기 빠릿해지니 난처해진건 아크였다. 아구스 산맥의 몬스터는 대체로 레벨이 낮은 편이다. 전투가 여유 있는 편이니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할 상황도 별로 없었다. 물론 어차피 핑계에 불과하니 어떻게든 빌미를 만들려면 만들수도 있다.그러나 잘못해야벌을 준다. 그게 지금까지 아크가 지켜온 규칙. 노골적으로 억지스럽게 몰아붙이면 역효과가 생길 유려가 있었다. '하아, 소환수가 너무 말을 잘 들어도 문제로군.처음부터 그냥 돌아가면서 먹이는 방식을 쓸걸그랬나? 하지만 그런방식이라면 지금처럼 말을잘듣지는 않겠지? 어쩐다? 그렇다고 이미 적용한 전략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실수를 하게 만들수도 없고.......' 그러나 그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이제 아구스 산맥에서 아크를 긴장하게 만들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사냥하기 쉽지 않은 몬스터가 있다면 산맥 전역에 세력을 뻗치고 있는 놀. 그중에서도 가장강력한 부족이 레벨 100대의 강철갈기 놀이었다. 그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없는건 아니었지만, 각종 스킬에 조직력까지 탄탄한 강철 갈기 놀은 레벨150의 오우거도 어렵지 않게 사냥했다. 강철 갈기 놀 대여섯 마리로 구성된 파티는 일대에서가장위험한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 놀이라면 지긋지긋하게 상대해 봤다 .놀의 허접스런 전술은 이미 훤하게 꿰고 있으니 소환수를 활용하면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때문에 어둠속에서 한 무리의 강철 갈기 놀이 뛰쳐나왔을때도 아크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또 몰려나왔군. 귀찮으니 빨리 처리해버려야겠다' 아직 익숙하지않은 적이라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주변을 살피고, 신중하게 전황을 파악했을것이다. 그러나너무 자주 상대하다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생각했다. 아마 평소보다 좋지 않은 컨디션도 작용했으리라. ............그런 자만이 실수를불러왔다. "아오오오!" "컹컹컹컹!" 한 부대를 처리해 갈떄, 한마리가 돌연 숲을 향해 울부짖었다. 그러자 숲에서 강철 갈기 놀 네댓 마리가 개 짓는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물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설마 근처에 다른 정찰부대가 있을 줄이야.......' 생명력을 확인해보니 40%밖에 남지 않았다. 강철 갈기 놀 다섯 마리.평소라면 60%이상 남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얕잡아 보고 전투를 대강대강 치렀다. 거기에 컨디션 난조로 평소보다 집중력까지 떨어졌다. 하필이면 그럴떄 강철갈기 놀 지원군이 몰려들다니...... '젠장, 너무 마음을 풀어놓고 있었어' 그러나 아크의 진짜 실수는 그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못이길 정도는 아니다. 소환수들도 빠릿하게 움직여 주고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작전을 펼치면 이길수 있어!' "데이모스, 방어태세로 배후를 지켜라!" 아크가 놀의 틈으로 파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두 마리의 놀 궁수가 배후에서 시위를 당겼지만.신경쓸 필요는 없었다.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데이모스가 알아서 막아주리라. 그러나 막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등으로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강철갈기 놀의 화살에 치명타를맞았습니다! 데미지 240.화살이 박혀 30초간 행동이 느려집니다. "크윽, 뭐, 뭐야?" 예상치 못했던 데미지! 아크는 고개를 돌린 뒤에야 상황을 이해할수 있었다. 명령에 따라 아크의 뒤에서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어야 할 데이모스. 그러나 데이모스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탐욕스럽게 강철 갈기 놀의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저, 저자식..........!"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데이모스의 뼈 수집 스킬이 발동된 것이다. -데이모스가'뼈 수집'스킬로 정강이뼈를 재조립했습니다. 놀의 튼튼한 다리뼈로 교체해 보다 날렵하게 움직일수 있게 됐습니다. <민첩+1,반응속도+2> 데이모스는 새로운 뼈가 꽤나 마음에 드는지 히죽거렸다. 그러자 데드릭이 기회다 싶었는지 데이모스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저런 멍청한 해골 자식이!지금이 취미 생활을즐길떄냐? 웃음이 나와?네놈때문에 주인이 맞는게 안보여 ?주인, 저런 놈은 요리를 퍼먹어야한다" 데드릭이 떠들지 않아도 아크는 폭발 직전이었다. 아크와 소환수의 연계작전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그만큼 전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완벽하게 연계되는 작전은, 한번 어긋나 버리면 더욱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내기 마련. 아크는 데이모스와의 협공을 생각하고 놀 무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데이모스가 딴짓을 하니, 그냥 혼자 포위된것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화살에 맞아 슬로우에 걸린상태! "크르르,혼자 우리를 다 상대하겠다는 건가?" "이 자식, 건방지다!" "죽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갈가리 찢어서 잡아먹자!" "크르르, 많이 패 버리면 육질이 부드러워진다더라" 이어지는 놀들의 다구리! 사방에서 몽둥이가 날아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한방 맞을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휘청거렸다. 스킬을 사용할 겨를도 없었다. 눈앞에서 시뻘건 빛이 터지며 생명력이 쭉쭉 빨려나갔다. 20%까지 곤두박질치고 ,다시 날아온 화살이 팔과 다리에 적중되어공격속도, 이동속도가 저하되었다. "다크 댄싱!" 아크는 회피기를 사용해 놀의 포위를 벗어났ㄷ. 그러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컨디션 난조는 캐릭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30%를 밑돌아 적지않은 데미지를 받고 도중에 해제되어 버렸다. "저놈, 발악한다!" "잡아라!" 놀들이 다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강철 갈기 놀 따위에게 죽을수는 없어!이 녀석들에게사용하기는 아깝지만.....' 결국 아크는 비장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데드릭, 흡혈 스킬 발동!" 갈고리 송곳니의 동굴에서 데드릭이새로 익힌 흡혈 스킬! 몬스터의 피를 빨았을떄, 특성 스킬 가운데 하나를 랜덤으로 흡수,1회용으로 사용할수 있는 능력이었다. 현재 데드릭이 가지고 있는 스킬은 그림윙의'현혹 초음파',개 대가리 따위에게 현혹 저항력같은데 있을리 없으니 발동 확률은 80%! 전황을 한순간에 바꿔 버릴수 있는 스킬! 현혹에 걸린 개떼를 처리하는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선택이 이날 아크가 저지른 가장 결정적인 실수였다. 집중력이 떨어져스킬을 발동시키기 직전 미친듯이 올라오는 데미지 정보창에섞여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오는것을 확인하지 못했던것이다. [데드릭이 강철 갈기 놀에게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기존의 스킬이 삭제되고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 : < 하울링> 주변 100미터 범위 안의 놀을 모두 끌어 모읍니다] 출혈에 걸려 피를 철철 흘리는 강철 갈기 놀. 덕분에 데드릭이 흡혈 본능을 참지 못하고 피를 빨라댄것이다. 스킬을 발동시키자 데드릭이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며 개짓는소리를 냈다. 아오,아오오오!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곧바로 반대 방향에서 화답하는 개 소리가 들리더니 또다시 한 무리의 강철 갈기 놀이 숲을 헤치며 달려왔다. 데드릭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변명헀다. "나, 난몰라!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주인이 하라고 해서 한거야!" "젠장,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말.....!" 한번 일이 꼬이기 시작하자 더럽게도 꼬여 간다. 그러나 데이모스,데드릭에게 성질이나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생명력이 바닥을 기어 빈사 상태. 그런 상황에서 또다시 강철 갈기 놀 한 부대와 맞닥뜨리면 볼것도 없이사망이다. 게다가 중급 포션은 모두 팔아 버려서 남아있는 건 하급포션뿐. 생명력100짜리 포션 1~2개 마셔서 나아질 상황도 아니다. '돔아치는 수밖에 없어!' 아크는 화격으로 놀을 밀어내며 와락 몸을 돌렸다. 아크의 레벨은 151.어둠 속성보너스로 211.그런데도 고작 레벨 100짜리 몬스터를 상대로 도망쳐야 한다니........ 눈물이 핑 돌정도로 자존심이상했지만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컹컹컹컹! 바로 뒤로 강철 갈기 놀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불행중 다행. 빈사상태로 몰린 덕분에 불굴의 정신과 육체,아드레날린이 발동한 상태였다. 덕분에 방어력과 반응속도가 올라가 몇 방의 공격을 버텨내고 거리를 벌릴수 있었다. 그리고 곧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높이는 대략 10여 미터. '남은 생명력은 120.캣 나이트와 유연성 스탯으로 낙하 데미지를 줄이면 버틸수 있어!' "크르르 ,죽어라 ,인간!" 뒤통수를 노리고 놀의 몽둥이가 떨어지는 찰나,아크는절벽을향해 몸을 날렸다. 바짝 긴장하고 있다가 바닥에 착지하는것과 동시에 몸을 말며 낙법을 펼쳤다. 등으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 예상대로 생명력은 30정도밖에 깎여 나가지 않았다. '됐다!살았어!' 아크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크르르, 놈이 살아있다!" "쫓아라,저녁식사다. 놓치면 안되!" 절벽 위에서 놀들이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나 절벽을 돌아내려오려면 몇 분은 걸리리라 .그 사이에 거리를 좀더 벌려 놓고'은신'을 사용하면 일단 안심이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기도 전에 아크의 눈앞에서 붉은 빛이 번쩍였다 -소환수'데이모스'가 유계로 강제송환되었습니다.소환수 생명력의 50%의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이, 이런......!' 아크가 비명을 터트렸다. 그러고보니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어서 소환수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사라졌으니 강철 갈기 놀이 모두 소환수에게 달라붙었으리라. 데드릭이야 비행능력이 있으니 도망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데이모스는 꼼짝없이포위되어 박살이 나 버린것이다. 데이모스는 예전처럼 허접스러운 소환수가 아니다. 충술히 진화시키고 요리를 먹여 레벨 90대를 넘어섰다. 체력은 1,500대.정보창을 보면언제나 흐뭇했지만 이번에는 그 빵빵한 체력이 오히려 아크에게 치명타를 먹였다. 무려 750의 데미지가 아크에게 돌아온것이다. 아찔한 기분이 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 말도 안돼!이런식으로 죽다니.......!' 아득해지는 시선속에서 개떼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아크는 강철 갈기 놀의 저녁식사가 되었다. "하아, 정말 돌아버리겠군" 현우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한숨을 불어넀다. 그저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체온계를 재보니 열이 39도나 되었다. 볼것 없이 감기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는데도 가스비 걱정에 아직 보일러도 돌리지 못했다. 세수도 찬물로 하고 있으니 감기가 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기에 새벽에는 무식한 운동까지 해댔으니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게임을 해야 하는데.......' 현우는 답답한 눈길로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게임 시간은 곧 돈이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어처구니없이죽기까지 했다. 떨어진 경험치와 스탯을 복구하고 싶은생각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어싿. '아니야,지금은 일단쉬어 두는게 좋겠어' 아직은 견딜 만하다. 그러나 더 무리하면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 아픈게 문제가 아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이후로 병원비가 엄청나게 비싸졌다. 의료보험이 안되는 현우는 일단 병원에 가면 10만원은 우습게 깨진다. 거기에 주사와 약값,기타등등을 포함하면 15만원.감기가 심해져 며칠 게임을 못하고 병원에 다녀야 한다면문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침 저녁, 버틸만할때 쉬어 두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현우는쌍화탕을 사다먹고 이불을 둘둘말고 누웠다. 그러나 현우의시련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현우가 오랫동안 접속을끊고 있자,정의남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서 감기기운이 있다고 말하자 1시간도 되지않아 갱생단 형님들꼐서 들이닥쳤다. 소식을 듣고 문병을 온것이다. 현우는 눈물이 핑돌았다. 혼자가 아닌곳은 게임속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있었다. 현실에서도.현우가 감기에 걸렸다느 소식하나만으로 달려와 챙겨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라는 감동이 악몽으로 바뀌기까지는 채 몇분도 걸리지않았다. 우당탕탕! 시작은 부엌이었다. 현우가 깜짝 놀라 나가보니 불린 쌀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손이 미끄러져서......하하하,신경쓸것 없어 .죽 만들 재료는 넉넉하게 사왔거든" 뭐라 말할새도 없이 또다시 와장창 소리가 들려왔다. 청소를 하겠다고 나섰던 얍삽이가 먼지 털이기로 화장대를 가격.치명타를 입히는 바람에 로션따위가 쏟아져 몽땅 깨져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걸레를빨던 불끈이는 넘치는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걸레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이, 이게 대체.......?' 건장한 남자 10명이 좁은 집에서 쉬지않고 사고를쳐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짝퉁 형, 불,불이 너무 세잖아요!냄비가.....헉, 불끈이형.컴퓨터를 그렇게 들어올리면........어? 얍삽이형,그책상은 원래 다리가 망가져서 간신히 중심을 잡아놓은......" 간신히 부엌쪽을 수습하면방에서 ,방을 수습하면 다시 부엌에서.......대체 간병을 하러 온건지 테러를 하러 온건지 알수가 없다. 그런주제에 갱생단은 자신들이 꽤나 집안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현우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갱생단의 꽁무니를 쫓아다녀야 했다. '이, 이러다가는 정말죽을지도.......' 덕분에 점점 열이 심해져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때였다. "동작 그만!"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순간 통제 불능의 갱생단이 우뚝하며 멈춰섰다. 긜고 모두가 두려운 시선으로 목소리가 들려온곳을향했다. 그곳에는.......현우의 구세주가 있었다. 권화랑이 도착한것이다. 그러나 갱생단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목소리는 권화랑이 아닝었다. "혜선이?" 권화랑과 하몌 나타난 사람은 정혜선이었다. "오빠들이 먼저 갔다고 하던데 이럴줄 알았죠" "아니, 우리는그냥......." "됐어요.대강 보기만해도 무슨일이 있었는지 알만하니까. 대체 생각이 있어요? 오빠를 도와주려고 온거에요? 아니면 괴롭히려고 온거에요?" 그렇게 갱생단의 테러는 단숨에 제압되었다. 갱생단이 꼬리를 말자 정의남이 한심하다는듯이 혀를 찼다. "끌끌끌, 내 이럴줄 알았지" 어쨌든 정혜선의 등장은 현우에게 구원의 빛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테러를 진압한 정혜선은 갱생단을 한곳에 모아놓고, 엄청난 속도로 사태를 수습해 나갔다. 여자의 힘은 놀라웠다. 그렇게 난장판이 되어 버린 집안이 하나둘 정리되고, 부엌에서는 고소한 냄새를풍기며 죽이 끓었다.그제야 현우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낼수 있었다. '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긴장이 풀려 죽을 먹고 잠깐 잠이 든 모양이다. 다시 눈을 뜨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깨우지 않으려고 그냥 간건가?' 시게를 보니 밤 10시. 2시간 남짓 잔 것 같다. 몸을 움직여 보니 잠들기 전보다는 한결편했다. 열도 꽤 떨어져있었다. '다행이다. 약 먹고 조금 더 쉬면 감기가 떨어질것 같아' 현우는 남은 죽이라도 마저 먹고 약을 먹을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정혜선이 들어왔다. 다들 갔다고 생각했던 현우는 깜짝 놀라 물었다. "어 ? 혜선아 ,아직 안갔어?" "일어났어요?" "너 아르바이트 갈 시간 아니야?" "오늘은 쉰다고 전화해 뒀어요" 정혜선이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문득 그녀의 손에 들린 세숫대야가 보였다. 물수건을 만들어주기 위한 세숫대야다. '어쩐지 그 사이에 열이 꽤 떨어졌다 싶더니......' 정혜선이 옆에서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던 건가? 저의남과 갱생단 형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그럼 그동안 계속 방에 둘만 있었던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현우의 얼굴이 확 달라올랐다. 정혜선은 그런 현우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뒤늦게 상황을 알아챘는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어, 그, 그러니까..........화랑 아저씨가 오늘 약속이 있는걸 깜빡했다고.....혼자 놔둘수는 없으니 다시 올때까지만 좀 봐달라고 해서......늦었으니 태워다 주신다고 했거든요" '젠장, 그 곰의 탈을 쓴 너구리 같으니!' "아,오빠, 배고프죠? 내가 죽 가져올게요" "아니, 내가 갈게" 정혜선이 얼른 세숫대야를 놓고 문고리를잡았다 뒤늦게 문고리로 손을 가져가던 현우는 그녀의 손을 와락 잡아 버리고 말았다. "........" 순간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때는 바야흐로 야심한 시각. 장소는 혼자사는 남자의 자취방. 여자왕 남자가 손을 마주 잡고 있다. 이만하면 그림이 되지 않는가?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리고,마주 잡은 하얀손이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정혜선은 집안일을 하기위해 긴 머리를 틀어 올리고 있었다.그 밑으로 뻗어나온 미끈한 목선. 도드라진 입술. 데드릭처럼 흡혈 본능이 있는것도 아닌데 괜히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 소리가 천둥보다 크게 들렸다. 현우는 지레놀라 손을 잡아뺐다. 아니,뺴려는찰나 정혜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정헤선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았다. 이해할수 없는 마력이 담긴 한쌍의 눈동자. 현우는 마치 마력에 홀린 사람처럼 한걸음 다가섰다. 남자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그래야만 한다, 라는공식이라도 있는것처럼 스스로도 이해할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한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았다.그리고......... "어이 ,현우야!" 돌연 우당탕하는 소리와함께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공간을 지배하던 마법의 시간이 깨졌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그리고 애써 시선을 피하며 밖으로 나오자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명룡 사범님?" "오,제대로 찾아왔군.집이 너무 코딱지만 해서 한참 헤맸다.화랑형님에게 들었다.역시 감기라며?일찍 와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출동 명령이 떨어져서말이야.뭐,각설하고 ,일단 이거나 마셔라" 이명룡이 히죽웃으며 뭔가를내밀었다. 수상하기 짝이없는 거무튀튀한 액체였다. "이게뭔데요?" "나만의 비법으로 만든 특효약이다.인삼,레몬,당근,계란,기타등등을 넣고 간거다.이거한잔이면 감기따위는 한방에 떨어지지" 있었다.현실에서도 서바이벌 요리를 만들어대는사람이.....! 재료를들은 현우는 사색이되었지만,차마 이명룡 앞에서 못 마시겠다는 말은 할수없었다.억지로 입안으로 밀어넣자 끔찍한 느낌이 목을 타고넘어갔다. 강제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환수의 기분을 이제야 알것같았다. "하핳,어떠냐?이거야말로 남자의 음료수지.어라 그런데 나도 감기가 오려나?왠지 오한이 느껴지는데?집에가서한잔 만들어먹어야겠다.그럼 가보마" 이명룡은 옷깃을 여미며 돌아갔다. 창문 틈으로 그 뒤통수를 노려보는한쌍의 눈동자가 있었다.그녀의 이름은 정혜선,아무래도 이명룡의 오한은 감기때문이 아닌모양이다. 정혜선의 간병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명룡의 서바이벌 요리가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한숨 자고 일어나니 감기 기운이 말끔히 사라졌다. 덕분에 다음날아침,아크는 다시 뉴월드에 접속했다. '젠장!' 란셀마을에서 부활해 사망 패널티가 적용된 정보창을 보니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초보 마을을 나온뒤로 한번도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뭔가 보너스가 적용되는건 아니지만, 은근히 그 부분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런데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아구스산맥에서 고작 레벨 100몬스터에게 어처구니없이 죽었다. '이미 죽으걸분해해 봤자 소용없어.하지만.......' 아크는 통렬한 자아비판 시간을 가졌다. 아구스 산맥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과의 전투에익숙해지면서 너무 나태해졌다. 어차피 만만한 몬스터들이니 신경을 곧추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투는 전투.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이번 사망은 그 간단한 사실을 간과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게 문제의 전부는아니다. '데드릭과 데이모스의 군기도 너무 풀어줬어' 사실 그런 생각을 한건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그러나 '뭐,이정도는......'하고 그냥 넘어갈떄가 많았다. 군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크도 사람이다. 소환수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예전처럼 막 굴리기가 심적으로 불편했던 것이다. 데이모스에게 뼈 수집 스킬이 생겼을때도 그렇게 넘어갔다. 뼈를 보면 환장하는건 언데드의본능이다. 그리고 뼈를 수집하면 능력치가 올라가니 결과적으로 아크에게도 이득이 아닌가? 그러니 하고 싶은대로 놔두자, 그렇게 생각했다. ........실수였다. 뼈 수집으로 능력치가 올라가는건 좋다. 그러나 모처럼 올린능력치도 막상 중요할떄 도움이 안된다면 아무런의미가 없지 않은가? '데드릭도 마찬가지야!' 보스 몬스터에게 뽑아낸 레어 스킬 '현혹 초음파'! 지금까지 그 스킬을 몰라서 쓰지 않은게 아니다. 직접 당해 보니 그 위력은 엄청났다. 더구나 그림윙이 죽었으니 다시 얻지도 못한다. 당연히 아끼고 아꼈다가 꼭 필요할때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데드릭이 제멋대로 흡혈을 해서 '현혹 초음파'를 날려버렸다. 그뿐인가? 엉뚱하게 '하울링'따위를 흡수해서 아크를 개 먹이로 던져 주었다. 이 모든 사태는 소환수를 너무 풀어놔서 그런 거다. 아크는 그렇게 결론지엇다. '잘못된걸 알았으면 고쳐야지' 골방에서 끙끙 앓으며 소환수를 그리워했다. 또 이명룡의 서바이벌 요리를 먹으며 소환수의 고충도 이해했다.그러나 그건 그거고, 아크는 또다시 같은 문제로 눕고 싶은 생각은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마령 소환, 데드릭!" 흐릿한 빛과 함꼐 데드릭이 소환되었다.데드릭은 초조한 기색으로 눈치를 살피다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떠들어댔다. "주, 주인!그동안 뭐 하고 있었어? 걱정했잖아. 아,혹시 화난거 아니지? 정말 어쩔수 없었어. 흡혈은 뱀파이어의 본능이라고, 어쩌겠어.나도 모르는사이에 피를 빨고 있는걸. 그러니까 주인이 잘 확인하고 스킬을......" "본능이라이거지?" "그렇지. 본능,본능이야.알잖아?"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디 그 본능이 얼마나참기 어려운건지 한번 확인해 보자.따라와" 아크는 다짜고짜 데드릭을 끌고 사냥터로 향했다. 재수 없게 걸린 사냥감을 트롤이었다. "일단 컨디션이나 점건해볼까? 다크 블레이드!" 감기를 말끔히 털어낸 아크는 단숨에 트롤을 빈사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뱀에게 출혈 맹독을 만들게 만든뒤에 일격을 가했다. "크오오오!" 옆구리를 찔린 트롤이 뒤뚱거리며 피를 철철 흘려댔다. 이상하다. 흡혈얘기를 하다 말고 왜 난데없이 트롤을 패고 잇는걸까...........의아한 표정을짓고 있던 데드릭의 눈빛이 변한건 그 직후였다.질질 흘러나오는 피를보자 뱀파이어의 흡혈 본능이 발동한것이다. "피.........피다!" "좋은 말로 할때 피 빨리마라. 응?" 아크가 싸늘한 눈초리로 데드릭을 째리며 말했다. 그러나 일단 피냄새를 맡은 데드릭은 통제불능,아크의협박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미친듯이 날아가 트롤의 목에 송곳니를 꽂아넣었다. -데드릭이 트롤에게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빈 슬롯에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 : <재생>5분간 대상의 생명력이 10초당 5씩 회복됩니다. 최고의 재생력을 자랑하는 트롤다운 스킬이었다. "좋으냐?" '"오오오,이 충족감,포만감!뱀파이어로 태어나길 잘했어!" 데드릭이 빵빵해진 배를 문지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자 아크는 빙긋 웃으며 다짜고짜 데드릭을 밟아대기 시작했다. "컥,왜, 왜이러냐,주인?미쳤냐? 한번 눕더니 미친거야?하욱, 아, 아프다!배는 떄리지 마라.방금 밥 먹었잖아,우윽!너,넘어온다!" 풍선 같은 배를 꽉꽉 밟아대자 결국 데드릭이 트롤의 피를 몽땅 토해냈다.덕분에 간신히 얻은 스킬도 날아갔지만 아크는스킬 따위는 관심도없었다. 난데업이 날벼락을 맞은 데드릭은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을흘렸다. "흑흑흑,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거냐? 아무리 주인이라지만 너무하다" "잘못이없어? 내가 분명히 피 빨리 말라고 했을텐데?" "하, 하지만 그건 뱀파이어의 본능......." "말했지? 그 본능이 얼마나 참기 어령누건지 시험해 보겠다고" "헉,서,설마 주인.....?" 데드릭은 그제야 의도를 알아채고 허옇게 질려 버렸다. "마,말도안돼!개도 먹을때는 건드리지 않잖아!이건 인권유린이야!" "인권? 뱀파이어가 놀고있네. 그리고 네가 개냐 ?아니, 개도 훈련시키면 본능 정도는 조절할수 있어.그런데 아크님의 소환수가 그 정도도 못한다는건 말도 안되지. 물론 쉬울거라고는 생각안해.하지만 될때까지 함께 노력해 봐야지.나는 너희들을 '정말'사랑하니까 말이야" 아크가 주먹을 우두둑 꺾으며 해맑게 웃었다. "알겠냐? 그러니까 이건 성장의 고통이야" "......아니 ,그냥 방금 전에 죽어라 두들겨 맞아서 아픈것 같은데........" "그러냐? 그럼 다음 훈련을 하기전에 회복부터해야겠군" 아크는 곧바로 냄비를 꺼내들었다. 그동안 핑계거리를 찾지못해 새로운 식재료가 꽤 많이 쌓였다. 그러나 핑계거리따위는 없으면 만들면 그만. 규칙? 인도주의적 처사? 웃기지 마라. 인도주의적 처사 덕분에 제대로 쓴맛을 본 아크는 더 이상그런 같잖은건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서 먹어라. 방금 다 토해서 배고프지?" "배 안고픈데" "뒈지게 맞고 먹을래? 그냥 먹을래?" 데드릭은 꾸역꾸역 음식을 삼키고 바로 독에 걸려 헐떡 거렸다. 훗, 재수없는 놈은 뭘해도 안된다.그러나 아크는 눈썹하나 까딱하지않고 훈련을 강행했다. 아크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몬스터에게 출혈을 걸어놓고 슬슬피해다녔다. 몬스터가 버둥 거릴때마다 사방으로 날리는 피, 피, 피! 데드릭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면 결국흡혈 본능에 따라 피를빨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곧바로 가해지는 응징!폭력과 음식고문으로 데드릭은 불과 몇 시간만에 수척해졌다. '농담이 아니야. 이대로는 정말 맞아 죽거나, 말라죽는다!' 데드릭의 머릿속에 그런 위기감이 드는것도 당연했다. 그렇게 같은 상황이 수십번.결국 데드릭에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공포는 본능을 이긴다!아니, 새로운 본능을 만들어낸다. 피를 빨면 100%폭력과 음식 고문이 이어진다. 눈앞에서 철철 흘러나오는 피를 빨면 행복하리라.그러나 순간의 쾌락을 즐긴 결과는지옥의 고통이다. 머릿속에서 이런 공식이 성립되자 흡혈 본능이 발동해도 움찔하며 주저했다. 공포가 만들어낸 새로운 본능이다. "으으으........!" 데드릭은 침을 질질흘리면서도 결국끝까지 참아냈다. 처음으로 흡혈 본능을 이겨낸것이다! "봐, 하면 되잖아" 아크는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러나 훈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은 데드릭의 편식습관을 고치는 훈련이었다. 데드릭의 흡혈 본능은 아무 몬스터에게나 발동하는게 아니다. 사람도 더 좋아하는 음식이 있듯, 쓸만한 스킬을가진 몬스터가 옆에 있어도,본능적으로 더 입맛을 자극하는 몬스터를 물게된다. "자, 이번에는 트롤을 물어" 한번 단단히 마음먹은 아크는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데드릭이 찍어 놓은 몬스터에게 출혈을걸어놓고, 다른 몬스터의 피를빨라고 강요했다. 배고픈 사람 코앞에 궁중요리를들이밀고,컵라면을먹으란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예 안먹으면 안먹었지.....한번 피맛을 본 데드릭은 양쪽 모두를 빨라 버렸다. 또다시 이어지는 린치와 음식 고문! 덕분에 데드릭은 불과 8시간만에 6레벨이나 상승할정도였으니....그 처절함을 가히 짐작할수 있으리라. 그러나 처절한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자, 먹어라. 아니, 자만 멈춰" "으으으,꿀꺽!주,주인!" 반색하며 달려들던 데드릭은 시뻘건 눈으로 피를보며 거친숨소리를 흘렸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듯했지만,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도 몸은 꼼짝도 하지않았다.아크의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리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안 돼. 기다려,기다려........" 아크는 마치 고기를 던져주고 개를 골려먹는 주인처럼 잔인했다. 그렇게 대략 5분이상을 끌다가 몬스터를 그냥 죽여 버렸다. 데드리그이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그러나 살벌해진 아크에게 감히 불평을 늘어놓지도 못했다. "됐어.이거다. 아무리 피를빨고 싶어도, 설사 그 몬스터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도, 내가 허락하지않은 몬스터의 피는 빨지 말아야한다. 일단 그 정도 수준은 다시 시작할수 있으니 앞으로도 오늘의 마음가짐을잊지 말도록" "네,넵!" 바짝 군기가 들어버린 데드릭이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그렇게 데드릭의 교육을 마친 아크는 잠시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사망하고 얼추 24시간이 지났다. 강제송환됐던 데이모스를 불러낼수 잇게 된것이다. "마령 소환, 데이모스!" 흐릿한 빛 무리와 함께 데이모스가 소환되었다. 아크는 주먹을 우두둑 꺾으며 빙긋 웃었다. "데이모스,요즘 네가 즐기는 뼈 수집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좀 나눠볼까?" 딱딱딱? 데이모스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갸웃거렸다. 핼쑥해진 데드릭이 동정심 가득한 눈길로 다음 희생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매도 빨리맞는게 나아........." ACT 3 신성한 토양 "좋아, 이걸로 훈련은 모두 끝났다" 딱.......딱..........딱............ 데이모스가 감격에 겨워 턱관절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태생이 방탕하기 짝이 없는 뱀파이어와 달리 전생에 기사출신인 데이모스는 의지력이 남달랐다. 게다가 충성심도 높아 아크의 명령을 지키려는 의욕도 데드릭보다 몇배는 높았다. 거기에 약간의 계기-폭력과 음식 고문-을 만들어주자 교육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몬스터가 뼈를 드러내고 헐떡 거려도 아크의 눈치를 살피게 된것이다. '이제야 다시 체계가 잡혔군' 좋지 않은 일을 겪고 시작한 일이지만 어쨌든 결과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작정하고 하루를 투자한 결과 두 소환수의 군기가 다시 처음처럼 바짝 들었다. 게다가 음식 고문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능력치상승까지! 덕분에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드디어 레벨 100수준의 능력치를 갖게 되었다. '자잘한 몬스터를 사냥한 덕분에 사망 패널티도 다 사라졌고........' 다시 본래 목적인 '신성한 토양'을 찾아나설 때가 되었다. 아크가 란셀을 나오기 전에 한슨은 몇 군데 예상 지역을 찍어주었다. 산세가 집중되는 지점.즉, 계곡이다. 그러나 절반을 돌아다녀도'신성한 토양'은 아직 구경도 하지 못했다. 대신 그 계곡은 다른 지역에 비해 식재료와 마법 재료가 2배 가까이 많았다. 그 말은.......... '재료 아이템의 리젠 속도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는 뜻이야.즉, 한슨이 짐작한 대로 산세가 모이는 계곡에 대지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말이겠지. 신성한 토양은 순수한 대지력이 집약되어 토질이 변한것.분명 신성한 토양은 그런 계곡에 있을거야' 아크는 지도를 살피며 다음 계곡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고개 몇개를 넘자 숲이 점차 어둠에 젖어들었다. 그때 ,문득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현실에서도,뉴 월드에서도 변치 않는 불법의 법칙이다. 그런데서 쪽으로 해가 지고 있는데도 동쪽 산등성 뒤에 빛 무리가 모여 있는게 아닌가? '뭔가가 있다!' 아크는 서둘러 산등성이로 뛰어 올라갔다. "헉, 뭐,뭐야? 저게?" "왜 그러냐,주인?" "왜 그러냐고? 저게 안보인단 말이야?" "그냥 계곡인데? 뭔가 보여야 하는거냐?" 데드릭이 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하는것 같지는 않아. 그럼 나에게만 보인다는건가?' 아크는 멍한 눈길로 다시 계곡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산등성이 아래에 자리 잡은 깊은 계곡,그 계곡 안쪽에서 지금까지 본적도 없는 엄청난 광채가 뿜어져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데드릭과 데이모스에게는 보이지않는게 아크에게는 보인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마법 탐지의 영향으로 보이는 빛이라는 뜻! 지금까지 찾아낸 마법 재료는 고작해야 작은 전구가 깜빡이는 정도였다. 그런데 계곡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빛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계곡 전체가 달아오르듯이 빛을 뿜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저건 식물이나 광석에서 나오는 빛이 아니야. 저 계곡 안쪽의 땅 자체가 마법적인 기운을 가지고 있는 거야!그렇다면 저곳이 바로.......!' 신성한 토양!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찾았다. 데드릭, 데이모스!따라와!" 아크는 곧바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대지력이 집중되는 곳에는 희귀한 마법 재료만 풍성한게 아니었다. 희귀한 물건이 있는 곳에는 부록처럼 몬스터가 따라붙기 마련. 쿠오오오! 아크가 계곡에 내려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에서 거대한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초록빛 근육질을 가진 5미터가 넘는 대형 몬스터! 오우거였다. 오우거의 레벨은 150.아구스 산맥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도 단독 행동을 좋아해서 지금까지는 문제 될게 없었지만, 거대한 돌도끼를 질질 끌며 나타난 오우거는 무려 다섯 마리! 아크의 현재 레벨은 이제 151.150대 오우거를 다섯마리나 상대하기에는 벅차다. 그러나 정보창을 확인해 보자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해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고 있었다.교정된 레벨은 211! 해볼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돼.오우거는 같은 레벨의 다른 몬스터보다 훨씬 강하다' 유저나 NPC가 그렇듯, 몬스터도 단순히 레벨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같은 레벨 150이라도 실제 공격력, 방어력은 종족에따라 천지차이. 그중 오우거는 특히 조심해야 할 몬스터였다. 오우거 하면 힘이다. 민첩이나 지능은 떨어져 둔하기 짝이 없지만, 일격에 전세를 뒤바꿀만한 한방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다. "데드릭 ,C플랜이다 .두마리를 유인해라. 움직임이 느리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게 어렵지는 않을거야.데이모스, 너는 옆에서 보조해라.무리하게 공격할 필요는 없어.상황을 봐 가며 방어태세로 불의의 기습에 대비해라" "오케이!" 딱딱딱, 따닥! 두 소환수가 빠르게 작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쪽이다. 저능한 초록 괴물들아!아쵸!" 그르르르! 데드릭은 오우거의 뺨을 후려치고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오우거는 어금니를 드러내며 돌도끼를 휘둘러댔지만, 그런 공격에 맞을 데드릭이 아니었다. 날파리처럼 재빨리 사정거리를 벗어나자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뒤쫓았다. 두마리가 빠져나가자 세마리가 남았다. "자 ,시작해볼까?" 아크는 오우거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세 방향에서 돌도끼가 달려들었다. 아크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오우거의 다리 사이를 빠져나왔다. 세 자루의 돌도끼가 후려쳐지자 지진이 일어나는것처럼 지면이 흔들렸다. 순간 아크가 튕기듯 일어나며 스킬을 교체했다. "마법 탐지 취소, 고양이의 눈!" '마법 탐지'와 '고양이의 눈'은 같은 눈에 작용하는 마법이라 중첩이 되지않았던것. 아크의 눈동자가 파란색에서 황금색으로 바뀌자 오우거의 등에 붉은 반점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눈으로 포착한 약점! "일단 최대한 빨리 숫자를 줄여놓는다. 다크 블레이드!" 오우거는 피부도 단단해서 방어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다크 블레이드는 방어력을 무시한 치명타 공격! 어둠과 동화한 검날이 약점에 쑤셔 박히자 번쩍하며 엄청난 데미지가 가해졌다. 보통 몬스터라면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으리라. 그러나 오우거는 움찔하는 기색조차 없이 곧바로 돌도끼를 횡으로 휘둘러댔다. 채 검을 회수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반격이었다. '치명타를 맞고도 바로 반격을 해 오다니......!'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바로 이런 몬스터다. 아크의 전투 기술중 가장 효과적인건 역시 치명타다. 보통 전사는 민첩보다 힘 스탯에 많이 투자한다. 기본공격력과 무거운 방어구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크는 현재 힘보다 민첩이 높았다. 아마 전사와 비교하면 2배가량 낮으리라. 때문에 일반 공격은 꽤 약한 편이지만, 치명타 확률은 전사보다 몇배는 높았다. 거기에 고양이의 눈으로 약점까지 파악하고 ,태권도로 다져진 공격 기법이 더해져 치명타 확률은 거의 50%!두번때리면 한번은 치명타가 터지는 것이다. 일반 공격이 약한아크가 전사보다 사냥 속도가 훨씬 빠른 이유였다. 그러나 그런 전투 스타일은 한가지 약점이 있었다. 치명타에 치우친 스탯을 가지다 보니 방어력이 떨어진다. 전사처럼 방어력에 가산점을 주는 방어 관련 스킬도 없다. 생명력이 부족한 아크에게는 부담스러운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아크는 그런 단점을 치명타가 적중됐을때 적용되는 잠깐의 경직 시간을 이용해 회피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대체해 왔다. 그러나 치명타를 맞고도 움찔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일격의 파워가 상상을 초월하는 오우거라면 위험하다. 묵직한 돌도끼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솜털이 바짝 솟아 오를지경! 터텅! 그러나 돌도끼는 방패에 가로막혔다. 데이모스가 배후에서 방어태세를 취해 준것이다. "좋아, 그거다." 아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훈련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데이모스는 뒤쪽에 있는 오우거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오우거의 뼈에 관심이 가는모양.예전같으면 무턱대고 달려들었겠지만, 정신 교육을 받아 전투에 집중하고 있었다. 데드릭도 마찬가지였다. 아크의 반격에 몇몇 오우거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오우거를 유인하던 데드릭은 향긋한 피 냄새에 반사적으로 고개를돌렸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군침을 꿀꺽 삼키며 외면했다. '후후후,역시 일단패고 볼일이군' 더 이상'뼈 수집'과 '흡혈'때문에 전투에 차질이 생길 걱정은 없다. "그럼 화끈하게 처리해볼까? 뱀, 짐을 가방에 옮기고 마비 독을 만들어라" 성장은 데드릭이나 데이모스만 한 것은 아니었다. 뱀 역시 나름대로 자신이 할일을찾아 꾸준히 새로운 능력을 개발했다. 혼자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주워 먹거나, 레시피 재료를 외우고 있다가 필요한 식재료만 뱉어내는 능력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데드릭이나 데이모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강요해서가 아니라 아크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뱀의 자발적인 노력덕분에 얻어진 능력이라는것. 그리고 얼마전에는 또 다른 능력을 개발했다. 아크가 명령을 내리면 뱀이 기어올라 가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배 속의 아이템을 몽땅 가방에 토해놓고, 스스로 스킬을 '아이템 보관'에서 '맹독 제조'로 전환해 맹독을 만들어냈다. 시킨적도 없는데 말이다. "쌕쌕썍!" 맹독 제조를 끝낸뱀이 반들반들한 파란눈동자로 올려다 보았다. 요런 예쁜것 같으니! 이러니 아크도 뱀에게만은 약해지지 않을수없다. 스르르릉,차킹! 맹독을 바르자 검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치명타로 경직이 안된다면 마비 독을 걸어 버리면그만! 아크는 맹독에 절인 검으로 오우거를 난타했다.그리고 뒤이어 발차기를 날려 단숨에 두마리를 쓰러뜨렸다. 그 사이에 데이모스의 생명력이 80%나 빠져버렸다.방어태세로도 오우거의 공격력을 받아내기는 벅찼던것. 예전 같았으면 꽤나 난감했겠지만........ "데드릭, 흡혈 스킬 발동,타깃 데이모스!" "오오오,알았다!" 데드릭이 반색하며 흡혈 스킬을발동시켰다. 현재 장착하고 있는 스킬은 트롤의'재생'.아크는 데이모스가 재생버프로 생명력을 회복할때까지 뒤로 후퇴시켜 놓고 오우거를 처리했다.그리고 데드릭이 유인한 나머지 두마리 오우거를 불러들였다. "데이모스,재생되는동안 쓰러진 오우거의 뼈를 뒤져 봐도좋다.데드릭,스킬 슬롯이 비어 있을때는 아무거나 흡혈해도 상관없어" 딱딱딱,따닥! "우하하하,기다렸다.피가모자라!피를 내놔라,초록괴물들아!" 데이모스와 데드릭이 환호하며 취미 생활을 즐겼다. -데이모스가 '뼈수집'스킬로 갈비뼈를 재조립했습니다.오우거의 갈비뼈로 교체해 보다 튼튼한 몸을 얻게되었습니다. <힘+1,공격력,방어력+1> -데드릭이 오우거에게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빈 슬롯에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파워>30분간 대상의 힘을 20상승시킵니다. 빨아먹을건 다 빨아먹었다. 아크는 다시 검에 맹독을 바르고 오우거를 몰아쳤다. 거기에 간만에 취미활동에 만족한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가세하자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일단 안고있던 문제를 해결하니 상황은 순조롭기 그지없었다. '뼈 수집'을 익힌뒤로 데이모스의 성장을 확실히 빨라졌다.그리고 데드릭의'흡혈'은 아크의 직업상 얻을수 없는 스킬을 사용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상황만 잘맞춘다면 성직자 없이도 '재생'과 '회복' 을 사용할수있었고,각종 버프나 공격 스킬을 조합할수도 있었다. 단하나 아쉬운 점이있다면,'뼈 수집'과 '흡혈',두가지모두 아무 몬스터에게서나 얻을수 있는 건 아니라는것이다. 지금처럼 단번에 얻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대게 수십번을 시도해야 겨우 한번 성공할만큼 확률이낮았다. '그래도 완벽하게 통제만 할수 있다면 활용도가높은스킬이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게 좋은것이다. 그 뒤로 아크는 본격적으로 계곡 입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인 계곡 안쪽. 그러나 계곡 입구에는 상당한 숫자의 오우거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었다. 오랫동안 찾아헤매던 신성한 토양을 발견해 마음이 급했지만, 강철갈기 놀을 상대할때와 같은 실수는 하지않는다. "데드릭,서너마리씩 유인해와라" 아크는 신중하게 적을 유인해 한 무리씩 정리해나갔다. 아무리 까다로운 몬스터라도 일단 공략법을찾으면 어렵지 않다.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자 4시간 만에 계곡 안에서 오우거의씨가 말랐다. 아구스 산맥에서 좀처럼 보기힘든 오우거가 백여마리. 잡몹을 사냥하며151레벨 90%까지 올라있던 레벨이 단숨에 두 단계나 상승해 153이되었다. 아쉽게도 오우거는 잡템을 그리 많이 떨구는 몬스터가 아니다.대신 낮은 확률로'오우거의피'를 떨궜다. 식재료로 사용해도 좋지만,마법재료 상점에서3골드가 넘는 가격에 팔리는 아이템이다. '5개나 주웠으니 이것만15골드다' 경험치도,수입도4시간의 사냥 결과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오우거는 대형 몬스터 중에서도 리젠 속도가 최악인 몬스터였다. 계곡의 오우거 씨를 말렸으니 며칠 뒤에야 다시 리젠되리라.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이제 안으로 들어가볼까? 데드릭, 앞장서라" 아크는 다시 마법 탐지를 시전하고 계곡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쯤 들어갔을까? 좁은 계곡이 일순넓어지는가 싶더니 엄청난 빛 무리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절벽에 둘러싸인 엄청난 광장, 빛은 그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고있었다. "빛이 이 지역 전체에서 뿜어져 나온다.역시 땅 자체에 마력이 담겨져있는거야. 분명 이게 신성한 토양이겠지. 그럼 이 흙을 퍼가면되는건가?"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땅은 틀림없이 흙으로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치 바위처럼 단단하게 굳어 검으로도 흙을 파낼수가 없었다. "젠장, 무슨 놈의 흙이 바위보다 단단한거야?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짜증을 내며 바닥을 후려쳤을때였다. 콰쾅,쿠쿠쿠쿠! 돌연 대지가 크게 흔들렸다. 뒤이어 마치 샘물이 터져 나오듯바닥이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1미터,2미터,3미터........10미터,20미터......!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솟아올랐다. 멍청한 얼굴로 그 흙더미를 바라보던 아크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뭐,뭐야,이게? 설마 .......초대형 골렘?" -보스몬스터 '신성한 대지의 수호거상'이 나타났습니다! "마,맙소사!이게 보스 몬스터란 말이야?" 여기저기 바위나 넝쿨이 붙어 있는 높이 수십미터의 거상!발아래에서 머리부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거의 작은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검을 들고 마주선 아크는 이쑤시개를 든 개미처럼 무모해 보일뿐이다. 그러나 이미 아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쿠오오오! 거상이 별안간 아크를 향해 주먹을 내리 꽂았다. 마치 태산이 무너지는듯한 공격! 아크는 화들짝 놀라 몸을 굴렸다. 그러나 주먹이 내리꽂히자 지면이 들썩이며 몸이 1미터 가까이 튕겨 올랐다. 문자 그대로 대지를 뒤흔드는 일격! 동시에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충격파만으로 데미지가 100!제대로 맞으면 방어력이고 나발이고 그대로 빈대떡이 되어 버리리라. 아크는 단숨에 전의를 상실했다. "틀렸어.이런 놈을 무슨 수로 상대하란 말이야? 퀘스트고 뭐고 일단 후퇴다!" 그러자 거상이 근처 바위를 하나 뚝 뗴어 내 집어 던졌다. 굉음이 울리며 바위가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물론 기어 올라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거상은 얌전히 보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한걸음,단번에 20여미터 거리를 다가오며 다시 주먹을 휘둘러댔다. "젠장,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거냐? 데드릭, 데이모스.A-1플랜이다!" "저,저런 놈하고 싸우겠다는거냐?" 딱딱딱,따닥? "시끄러, 따지고 싶으면 저놈에게 따져!"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한숨을 불어내며 공격에 나섰다. 다행히 거상은 초대형 몸집을 가진만큼 움직임이 턱없이 느렸다. 데드릭은 물론, 비교적 둔한 데이모스조차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할수 있을정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흡혈 스킬 발동. 타깃 아크. 으랏차,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파워'스킬로 힘을 상승시킨 상태에서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다. 그러나 수많은 몬스터를 침몰시켰던 다크 블레이드도 거상의 외피를 살짝 긁는 정도에 불과했다. 다크 블레이드가 직겨한 부위의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질뿐, 거상의 생명력은 0.1%도 닳지 않았다. 필살 기술인 블레이드 스톰 역시 마찬가지였다. 콰콰콰쾅! 무수한 검의 파편조차 거상의 피부에 긁힌 자국을 만들어내는게 전부였다. "맙소사, 블레이드 스톰도 효과가 없다니......" 쿠오오오오!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거상이 제대로 열받아 버렸다. 거상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으로 절벽을 후려치자 쩍쩍 갈라지며 바위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히익!" 데드릭이 기겁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크는 재빨리 다크 댄싱을 사용해 바위를 피해냈다. 그러나 비행능력도, 다크댄싱도 쓸수 없는 데이모스는 바위에 깔려 단숨에 70%나 되는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 그나마 방어태세가 아니었다면 한방에 강제 송환되었으리라. "빌어먹을!데이모스, 소환해제!데드릭, 놈의 시선을 교란시켜!" 아크는 황급히 데이모스를유계로 돌려보냈다. 어차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버티다가 강제송환이라도 당하면 아크에게 치명적인 데미지가 돌아올뿐이다. '이상태라면 나 역시 마찬가지야. 거상의 주먹에 뭉개지든지,바위에 깔려 뭉개지든지........둘중하나다.하지만 공격해봐야 생명력이 줄어드는 기미도 보이지않으니......' 도망다니느것도 한계가 있다. 주먹이나 바위는 어찌어찌 피한다고 해도 충격파는 방어도, 회피도 불가능한 공격이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듯 생명력이 바닥나리라. 그때, 문득 아크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가만, 생명력이 닳징낳는다고? 방금전에 날린 블레이드스톰은 최소한 1,000이상의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런데 0.1%도 닳지않아? 그게 상식적으로 있을수 있는 일인가?'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거상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거상의 레벨은 250.지저세계에서 싸웠던 '각성한 심혼의 구슬'보다도 낮다. 아무리 보스몬스터.그것도 초대형몬스터로 능력치가 조정되었다고 해도 1,000이상의 데미지를 받고도 티조차 나지않는다는건 말이 되지않는다. '맞아,너무 커서 잠시 착각했다. 생명력도 엄청나게 높은 거라고,하지만 그게 아니야.다른 보스처럼 이녀석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다!' 아크는 확신했다. 뉴 월드에서 만났던 보스 몬스터들. 놈들은 일반 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강력했다. 단순히 능력치를 말하는게 아니다. 바로 보스만이 가지고있는 독특한 약점. 그걸 못 찾아낸다면 아무리 레벨이높아도 보스를 이기기가 쉽지않ㅇ느 시스템이다. 결국 보스전의 핵심은 얼마나 빨리,얼마나 효과적으로 약점을 파악하고 공략하느냐! '고양이의 눈으로는 이 녀석의 약점이 표시되지않는다. 그렇다면..........' "마법 탐지!" 아크가 스킬을 발동하자 곧 거상의 몸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신성한 토양으로 만들어진 거상이니 몸 전체가 마력의 집합체인 것이다. "틀렸나? 이래서는 약점을 알아낼 방법이......." 그때, 아크의 머리에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머리위!" 그렇다, 발아래의 아크가 보지못하는 유일한 장소! 약점이 정수리에 위치해 있다면' 고양이의 눈'이나 '마법탐지'로 는 알아낼수 없다. "데드릭, 놈의 정수리에 뭔가 다른게 있는지 찾아봐라" "잠깐만, 어? 있다. 꼭대기에 이상한 혹 같은게 있어!" "거기다!그곳을 공격할수 있겠어?" "그야 어렵지않지" 데드릭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쏘아져날아갔다. 암흑 돌진!그러나 곧 돌을 쪼개는듯한 소리가 울리며 튕겨나왔다. "크헉,아,안되겠어.뭔가 단단한 표피에 둘러싸여 있어서 이빨도 안들어가" 유일한 약점이라면 당연히 방어막이 설치되어 있으리라. 그리고 그 방어막을 뚫을수 있는건 방어력을 무시하는 다크 블레이드. 혹은 단숨에 방어막을 찢어 낼만한 위력을 가진 블레이드 스톰뿐이다. '다시 말해 내가 직접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크는 잠시 거상을 바라보다가 결국 각오를굳혔다. '어차피 도망갈 방법은없다. 그렇다면 끝까지 해 보는 수밖에!' "데드릭,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아크는 거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오오오! "어딜 보냐? 네 상대는 나다!" 거상이 주먹을 내뻗으려는찰나 데드릭이 눈앞을 스치며 시선을 교란시켰다. 결국 거상의 주먹은 바닥을 후려쳤다 .뒤흔들리는 지면 ,아크는 충격파에몸을싣고 뛰어올라 다리에 달라붙었다. '역시 시게 정답이었어. 길이 보인다!" 아크는 넝쿨을 부여잡고 거상의 몸을 훑어보았다. 한때 전국적으로 클라이밍이라는 레저 스포츠가 유행했던 것이다. 인공 암벽에 각양각생의 손잡이를 서리개 놓고 기어올라가는 인스턴트 안벽등반 스포츠였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아크도 몇 개월간 강습을 받아본적이 있었다. 거상의 몸은 바로 이 클라이밍의 인공 암벽과 흡사했다. 전체 모습을 볼때는 미처 눈치채지못했지만, 막상 다랄붙어 보니 바위나 나무뿌리 같은것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그러나 루트를 잘만 파악한다면 정상까지 올라가는것도 가능해보였다. '배운지 오래돼서 요령은 많이 까먹었지만, 이곳은 게임속이다. 현실에 비해 힘과 민첩성이 비교도 할수 없이 높아.체력만 받쳐준다면못할게 없다!' 인공암벽을 오르는 클라이밍은 필연적으로 힘이 필요한운동ㅇ이다.그러나 힘만으로 가능한 운동은 아니었다. 부규칙한 손잡이의 간판을 움직이고 ,파악하고, 자신이 움직이기 편한 루트를 미리 계산해서 움직이지않으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아크는 그런 경험을 해본적이 있기에 신중하게 하나하나 확인해 가며 지상의 몸을 기어올랐다. 쿠오오오! "이쪽이다,인마!헹,열받으면역까지 올라와봐!" 데드릭은 열심히 날아다니며 거상을약 올렸다. 손에닿을듯 말듯 ,게다가 데드릭에게는 충격파도 통하지않았다. 유일하게 먹히는 공격은 바위를 뜯어내 던지는 것뿐이지만 얍합한 데드릭을 맞출만큼 정확도가 높지않았다. 그 사이, 아크는 이미 거사의 허리부부냐니까 기어올랐다. '헉헉, 수십미터..막상 올라가려니 장난이아니군' 게임 속인데도 온몸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것 같았다. '다행히 거상은 내 존재를 잊어먹고 있는것 같군. 하긴 돌대가리니 .......어쨌든 아직 반이나 남았으니 여기서 잠시 숨을 골라야겠어' 아크는 튀어나온 넝쿨을 팔에 감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때였다. 데드릭의 도발에 거상이 분을 못 이기고 세차게 발을 굴렀다. 수십미터나 되는 거상이 발광을 하자 그 여파는 엄청났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지고 거상의 몸에도 지면에서 부터 엄청난 진동이 찌르르 울렸다. 그순간, 아크가 밟고 있던 돌부리가 충격을 이기지못하고 뽑여나갔다. "헉!" 아크는 거상의 표면을 따라 주르륵 미그러져 내려갔다. 대략 2미터 가량 미끄러지던 아크의 몸이 우뚝 멈춰섰다 ... 팔에 감고 있던 넝쿨덕분에 추락사를 면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겨를도 없다. "아차, 이,이런.......!" 고개를 들어올리던 아크가헛바람을들이켰다. 쉬운 나무둥치과 같은 시커먼 눈동자가 아크를 바라보고있었다.표피를 긁어댄탓에 거상이 아크의존재를 알아챈것이다. 흘과 바위로 이루어진 거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리고 고릴라처럼 자신의 허리를 향해 직경이 10미터나 되는돌주먹을 휘둘렀다. 아크는 제대로 중심조차 잡지 못하고 메달려 있는 상황! 데드릭이 와락 눈을가리며 비명을 터트렸다. "주,주인!" 콰콰콰쾅! 거상의 옆구리에서 폭발이 일어난건 그때였다. 바위와 흙이 떨어지며 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서서히 주먹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흙먼지가 사라진뒤에도 아크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주, 주인!정말 죽은거야? 그렇다면......" 데드릭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케케케,쌤통이다!찰떡이 되어 죽다니!이게 다 나를 고롭힌 천벌이다!" "호오, 그게 네 속내라 이거지?" "헉, 뭐,뭐야? 이건 주인 목소리?" 데드릭이 기겁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크는 거상의 주먹에 대롱대롱 매달려 데드릭을 노려보고있었다. 거상의 주먹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줄은.......본 블레이드! 그렇다, 아크는 거상의 주먹에 떡이 되기 일보직전,반사적으로 데이모스를 재소환했다. 그리고 '검화'스킬을 발동시켜 본 블레이드로 바꾸었다. 본 블레이드는 채찍으로도 활용할수 있는 검!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날려 거상의 손목을 휘감고 몸을 날려 주먹을 피해냈다. 말하자면 노구를 이끌고 채찍을 휘둘렀던 인디아나 존스의 액션! 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한 임기응변이었다. "과연 주인!방금 한 말 농담인거 알지? 살아있을거라고 믿었어 ,정말이야!" "정신 사나우니까 닥치고 있어!" 쿠오오오! 그때, 거상이 괴성을 지르며 팔을 치켜들었다. 그대로 절벽을 후려쳐 아크를 떡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지금이다!' 아크는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거상이 머리 위로 팔을 치켜들었을떄 ,아크는 손목을 흔들어 채찍으로 풀었다. 순간 가속도가 붙은 몸이 하늘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크는 곧 중력의 힘에 이끌려 아래로 떨어졌다. 수십 미터의 거상에게 던져져 올라갔다가 떨어진다. 밧줄 없이 번지를 하는듯한 상황.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이라도 공포에 질리리라. 그러나 아크는 공포를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단 한 번 !단한번에 모든걸 건다!' "뱀, 쓸만한 검 하나!" 아크는 뱀이 뱉어내는 검을 움켜쥐고 시선을 집중했다. 과연 하늘 위로 날아 오르니 거상의 정수리에 붙어있는약점이 보였다. 그 어디보다 강렬한 빛이 집결된 바위!아크는 허공에서 자세를잡으며 최후의 필살기를 펼쳐냈다. "블레이드 스톰.......엇?" 검날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번져나갈때였다. 본능적으로 위기르 감지한 거상이 움찔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이대로 블레이드 스톰을 발동하면 맨땅에 헤딩하는꼴!' 그러나 이미 검은 당장이라도 폭발할기세였다. "데드릭, 내 등에'암흑 돌진'을 사용해라!" "뭐야? 정말이야? 주인을 패도돼? 딴말하기 없기다?" "닥치고 서둘러!" "우헤헤헤,알았어!" 데드릭은 그간의 울분을 토해내듯 맹렬하게 날아와 들이받았다. 순간 아크의 몸이 거상 쪽으로 밀려나며 블레이드 스톰이 터져나왔다. 산산이 부서지는 검의 파편!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는 검 파편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거상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방어막이 걸레조각처럼 찢겨져 나갔다. 거상의 생명력이 거짓말처럼 70%나 빨려 나갔다. 공격하기 어려운곳인 만큼 막상 방어막이 부서지자 내구력이 형편없었다. "심안!" 아크느 곧바로 반지의 특수 효과를 발동시켜 암흑상태를 풀었다. 시야가 확 밝아지자 거상의 머리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있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수직으로 세우며 곧바로 다크 블레이드를 발동시켰다. 검이 정수리에 깊이 꽃히며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아크의 생명력도 50%나 줄어들었다. 낙법을 쓰지않아 낙하 데미지를 제대로 분산시키지 못한 탓이었다. 쿠오오오! 거상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거사의 생명력은 10%남짓! 아크가 검을 꽂아 놓은 채로 다시 한번 다크 블레이드를 폭발시키자 코앞까지 다가왔던 주먹이 우뚝 멈췄다. 이어 계곡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쉬지않고 쏟아지던 바위도, 거상의 괴성도 한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아크의 코앞에서 거상의 주먹이 모래처럼 부서져내렸다 .뒤이어 어깨와 머리,다리도 모두 모래로 변해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달아 올라가는 메시지창과 함께 아크는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 파묻혀 버렸다. "푸핫,헉헉헉,젠장,숨막혀 죽을뻔했네" 잠시후,아크가 흙더미를 밀어내며 기어나왔다. 밖으로 나와 거상이 변한 흙더미를 보니 정말 작은 산만한 규모였다. 용케도 그런 괴물을 쓰러트렸다. 그러나 고생한 만큼의 보상은 있었다. 정보창을 확인해보니 레벨이 6이나 올라있었다. 각성한 심혼의 구슬 이후, 가장 많은 경험치는 준 보스 몬스터였다. "쌕쌕쌕!" 그때, 파란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피던 뱀이 허리에서 튕겨나갔다. 그리고 흙더미를 파고 들어가더니 이내 커다란 방패 하나를 건져올렸다. [신성한 대지의 방패(유니크) 방어구 타입 : 강철 방패 내구력 : 23/70 방어력 : 200(+80) 무게 : 50 사용 제한 : 레벨 120 이상 전사 계열 뛰어난 품질의 고급 강철로 만들어진 기사의 방패입니다. 아마도 오래전 이름 있는 기사가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대지력이 집중되는 땅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 철의 성질이 변하고 강력한 마력까지 띠게 됐습니다. 이만한 방패는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어내기 어려울것입니다. 모든 전사가 사용할수 있지만 신성력을 가진 전사라면 성능을 100%끌어낼수 있을것입니다. <옵션 : 힘 +20,체력 +20,신성력+50,방패 방어력+80> <특수 옵션 : 하루에 한번 10분동안 파티원 전체의 공격력, 방어력을 100% 상승시키는 '대지의 가호'를 사용할수 있습니다(신성력이 있는 직업한정)>] "이 ,이게 뭐야? 유니크 방패!" 뱀이 주워 온 아이템을 확인한 아크의 입이 딱 벌어졌다. 레벨 120짜리 유니크 방패! 정보창을 보니 부가 능력치가 어마어마했다. 방어력만 280.거기에 힘과 체력이 20이나 달려있다. 그뿐인가? 신전 기사 같은 유저들이 사용하면 신성력+50에,파티 전체에 방어력을 100%나 상승시키는 '대지의 가호'까지 사용할수 있다니!유니크 중에서도 이만한 옵션을 가지고 있는 아이템은 결코 흔치 않았다. '내가 쓸수 없는 아이템이라는게 좀 그렇지만....' 한동안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한 대신 아크는 이미 풀셋을 맞춘상태였다. 그렇다면 어지간한 레어 아이템보다 직접 사용하지못해도 유니크 아이템이 백배 낫다. 제 값만 받는다면 간만에 은행 잔고에 훈훈한 기운이 감도리라. '됐다!오랜만에 어머니께 고급 과일을 사다 드릴수 있겠구나!' 이게 얼마만의 대박인가?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헤헤헤,주인.절체절명의 순간에 발휘한 천재적인 잔머리.....아니,전략!정말 멋졌다" 데드릭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다가왔다. 지은 죄가 있으니 아부로 무마시켜 보려는 수작이다. 보면 볼수록 얍삽한 녀석이다. 아크는 은근한 눈빛으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주지.하지만 조심해. 지켜보고 있으니까" 모처럼 한건 한덕에 조금은 너그러워진 아크였다. -신성한 토양 오랜 세월에 걸쳐 대지의 힘을 빨아들인 신비한 흙.풍부한 대지의힘을 가지고 있는 만큼,주변을 정화시키고 모든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힘을 가지고있다. "됐어, 이제<신성한 토양> 퀘스트와 란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 정보를 확인한 아크가 불끈 주먹을 움켜쥐었을때였다.돌연 메시지창이 붉은 색으로 변하며 경고 메시지로 바뀌었다. [신성한 토양은 생명체에 가까운 흙입니다. 거상의 형체를 유지하던 '대지의 핵'은 신성한 토양의 힘이 오랜세월 집약되어 만들어진 결정체.힘의 결정체를 잃어버린신성한 토양은 급속도를 힘을잃어가게 됩니다. 남은 시간 : 30분] "뭐,뭐야 이게?"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잇단 말인가? 죽을힘을 다해서 거상을 쓰러트렸다. 그런데 그 덕분에 간신히 찾아낸 신성한 토양이 쓸모없는 흙이되어 버리다니! 아크는 머리르 쥐어뜯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젠장, 핵을 부수면 안되는거였나?" 아마도 제대로 된 신성한 토양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방법이 있었던 모양.그러나 이미 사고를 쳐버린뒤다.아니,다시 같은상황이 된다고 해도 달리 방법이 없을것 같았다. "그럼 신성한 토양이 힘을 잃기 전에 여기에 포포를 심는 방법밖에 없는건가?" 아크는 황급히 포포를 꺼내들다가 움찔하며 멈췄다. 아크의 목적은 단순히 포포를 심는게 아니었다. 식량 위기에 처한 란셀마을을 위해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받게 할 목적도 있었다. 그뿐인가? 여기에 포포를 심어도 고작 30분 만에 신성한 토양의 힘이 사라진다면 제대로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다.최악의 경우,<신성한 토양>퀘스트가 실패로 끝날지도 모르는것이다. '미치겠군.그렇다고 손 놓고 지켜볼수도 없고......' 안절부절못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정보창의 내용이 떠오른건 그때였다. '가만, 신성한 토양은 생명체에 가깝다고 했어.그렇다면? 좋아,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아크는 양손을 바닥에 대고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모든 존재의 어머니인 위대한 대지여!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 존재들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간병!" 신성한 토양은 생명체에 가깝다. 확실히 그게 힌트였다. 아크가 간병스킬을 발동시키자 대지가 고동치듯 꿈틀거리며 광채가 강해졌다. -신성한 토양의 생명력이 일시적으로 강해졌습니다. 남은 시간 :20분 본래 대지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아크가 간병으로 축복 효과를 덧붙이자 신성한 토양의 생명력이 강해진 것이다. 일단 간병이 효과를 보이자 아크는 쉬지않고 마나를 회복시키며 간병을 난사했다.그러나 워낙 넓은 지역에 퍼져있어 시간을 4시간까지 연장시키는게 한계였다. '그래도 일단 간병이 통한 덕분에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여기서 간병으로 시간을 연장시킬수는없어. 시간여유가 있을때 이흙을 란셀로 옮겨야한다' 일단 흙을 란셀로 옮긴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것이다. '하지만 혼자 이 많은 흙을 옮길 방법은 없다. 마을주민을 동원 하지않으면 힘들어' 그러나 현재 마을 주민들은 불화에 휩싸여 아크의 부탁을 들어줄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마을 주민들을 설득하고 부려먹을 방법은......... '그들에게도 이 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돼' 생각을 정리한 아크는 서둘러 신성한 토양을 주머니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곧바로 란셀로 달려와 가렌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 보여줄게 있다니?" 뉴 월드의 시간은 이른새벽,아직 잠이 덜깬 가렌은 피곤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나 뒤이어 일어난 일에 잠이 싹 달아나는 듯한 표정으로 경악성을 터트렸다. "헉, 이,이게 대체.....?" '역시!' 아크는 내심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신성한 토양의 정보를 확인했을때, 아크는 작물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부분에 주목했다. 마침 란셀 마을은 식량 사정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곧 수확기를 앞둔 작물의 발육 상태도 좋지않다. 밭이 황폐해졌기 때문. 하지만 대지의 힘이 응축된 신성한 토양을 이용한다면....... '이그드라실의 가호가 작용한다고 해도 란셀 마을을 식량 위기에서 구할수는 없어. 하지만 신성한 토양의 효과를 이용하면 당장 식량 위기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대지의 힘으로 작물의 성장이 촉진되면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효과를 직접 보여주면 주민들도 팔을 겉어붙이고 흙을 옮겨 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가 일단 시험삼아 신성한 토양을 밭에 뿌려본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 시들시들하던 작물에 곧바로 윤기가 흐르고, 씨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식량문제로 고심하던 가렌의 눈이 솥뚜껑만해진건 당연한 결과였다. "자, 자네 대체 마법을 부린건가?" "이 일로 의논할게 있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죠" 일단 작물에도 효과가 있다는게 확인되었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아크는 마을회관에 주민을 모아놓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성한 토양!결국 찾아낸건가?" 설명을 들은 한슨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가렌 등이 아직도 이해가 되지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한슨이 설명했다. "신성한 토양은 대지의 정이 깃들어 있는 흙을 말합니다. 수백년에 걸쳐 대지의 힘을 빨아들인흙이죠.전 아직 본적이 없지만 작물을 성장시키는데도 효과가 있다면....." "이미 시험해 봤습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가렌이 움찔하며 아크를 돌아보았다. "그, 그럼 방금 전에 밭에 뿌렸던 흙은?" "네, 제가 뿌린 흙은 신성한 토양입니다" "그, 그렇다면?" 한슨이 활짝 핀 얼굴로 끄덕였다. "물론 아크의 설명에 따르면 신성한 토양의 힘은 오래가지않을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작물이 수확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신성한 토양을 옮기고 수확할때까지만 힘을 유지시킬수 있다면 올해 수확은 확실히 늘릴수 있을겁니다." "오오오,그거야말로 지금 란셀 마을에 필요한 흙이 아닌가? 그게 얼마나 되는건가?" 순간 모든 이목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아무리 좋은 흙이라도 양이 적다면 아무런 소용이없는 것이다. 아크는 잠시 뜸을 들여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란셀 마을의 밭에 모두 쓰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우와아아아!" 긴장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주민들이 일시에 환호성을터트렸다. 가렌은 아예 아크를 얼싸안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고맙네,아크!자네는 정말 란셀의 환생이야!" 솔직히 아크 역시 신성한 토양을 찾아나설때는 이렇게 많은 양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만약 신성한 토양이 몇 줌밖에 되지않았다면 아크 역시 이런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으리라.그러나 상상 이상으로 많다보니 다른 활용법을 궁리하게 된것이다. "대체 자네에게 내가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군" 란셀 마을에 문제가 생길때마다 나서서 해결해 주는 아크!정말 가렌은 아크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난 표정이었다.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내가 무슨짓을 하고있는거지?' 신성한 토양은 란셀 마을의 식량 문제를 단숨에해결할수 있는 가치는 가지고잇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흙을 공짜로 퍼줄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인가? 비록 퀘스트를 위한 선택이엇지만, 퀘스트 역시 이득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않은가? '유니크 방패 하나 얻었다고 그새 헝그리 정신을 잊다니......한심하구나,아크야!' 자신에 대한 실망감! 심지어 분노마저 느껴졌다. '반성을 했으면 고쳐야지!' 모처럼 깊이 뉘우친 아크는 재빨리 머리를 굴렀다. '흙을 구해준 대가를 받을수 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뭔가를 달라고 할수는없어. 먼저 흙이 얼마나 마을에 도움이 됐는지를 확인하고 적당한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지않으면 오히려 친밀도가 깎일수도 있다.게다가 모든 주민이 지켜보는데 노골적으로 뭔가를 요구하기도 그렇고,그렇다면................' "굳이 보상을 해주시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신성한 토양을 옮기는일이 급하지 않겠습니까? 한시라도 빨리 옮겨야 수확이 더 많아질거고, 주민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수 있을테니까요.제 보상따위의 작은 문제는 그 뒤에 의논해도 될것같습니다" "역시 자네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다른 이방인이었다면 뒷일은 둘쨰치고 먼저 자기이득부터 챙기려고 했을텐데........" "우하하하,그러니 구도자가 아닌가!" 묘족장로 핫산이 자랑스럽다는듯이 배를 팡팡치며 웃어재꼈다.그만이 아니었다. 한슨 일행과 너구리족, 심지어 타지에서 이주해 온 마을주민들까지 모두 존경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오빠는 내 영웅이에요. 사라는 이런 낯뜨거운 글을손바닥에 써놓고 몸을 비비꼬기도 했다. 가렌은 뿌듯한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자네에게는 언제나 고개가 숙여지는군.알겠네.내 이번일이 끝나면 꼭 자네의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겠네.마을 주민들도 모두 그러기를 바랄거야" '후후후,됐다.이정도까지 자락을 깔아놧으니 최상의 보상을 얻어낼수 있을거야!' 가렌의 말은 아크의 의욕에 불을 댕겼다. "그럼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죠.흙의 양이 꽤 되니 당장 시작해도 며칠 걸릴겁니다." "좋아,당장 마을 주민을 모두 동원해서 흙을옮겨 오세!" 그러자 정의남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나도 훈련소의 인원을 모두 도우언해 돕겠소. "밥을 더 많이 먹을수 있다면 우리도 도와야지.흙을옮겨 오는 길목에 몬스터 따위가 어슬렁대지 못하도록 순찰을 돌아주겠네" "짐수레를 만들어야겠군" 핫산과 너구리족 대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갑자기 불어닥친 식량 위기로 인해 불안감과 다툼만이 계속되던 마을이 희망과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모두가 팔을 걷어붙이고 대대적인 토지개혁을시작했다. 정의남 일행과 란셀마을의 주민을 모두 합하자 인력이 700여 명이나 되었다. 너구리족은 간단한 짐수레를 만들고,묘족은 계곡에서 란셀마을까지의 경호를 책임졌다.그리고 나머진 모두 흙을 져 나르는 이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가장 바쁜 사람은 아크였다. 신성한 토양은 엄청난양이다. 아크가 아무리 목이 터져라 간병을 사용해도 모든 토양에 골고루 영향을 미칠수는 없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 멀리 떨어진 부분, 혹은안쪽 깊은 부분, 위치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달라 막상 흙을 퍼 나르기 시작하자 도중에 효력이 사라지는 흙도 많았다. 때문에 아크는 쉴새없이 돌아다니며 간병을 사용했다. 그래도 차곡차곡.........거사의 사체는 수레에 실려 란셀 마을로 옮겨졌다. 그리고 밭에 뿌려지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시들시들하던 작물들이 금세 윤기가 흐르고,씨알이 굵어진다. 덕분에 주민들은 더욱 분발해서 흙을 퍼 날랐다.사라도 고사리 같은손으로 열심히 흙을 뿌렸다. "사라, 너는 안해도돼" 아크가 빙긋 웃으며 다가가자 사라가 고개를 저었ㄷ. 그리고 양손을 활짝 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즐거운 일이니 모두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의미인 모양이다. 귀여운것!같은 여자라도 나나는 전혀 달랐다. 나나는 근처의 지붕위에 퍼질러져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어대고 있었다. 다른 묘족들도 주변을 순찰하며 일을 거드는 파에 혼자만 파라다이스다. "자나!너도 사라 좀 본받아!" "나는 연약한 무녀라고,무녀가 노가다 하는거 봤어?" 자나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말이나 못하면....... 그때, 로코가 유니콘을 타고 돌아오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너처럼 게으른 무녀도 없을걸" "쳇, 또 시끄러운 여자가 나타났군" 자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돌아누워 버렸다. 로코는 자나를 쨰리다가 유니콘을 몰아 아크에게 다가왔다. "오빠, 묘족이 언덕 위에 있던 놀 부족을 처리했대요" "그래? 그럼 굳이 언덕을 돌아 이동할필요가 없겠군. 계곡에 있는 가렌에게 가서 이동 루트를 바꾸라고 해.그러면 작업이 몇 시간은 앞당겨질거야" "알았어요.사라, 너도 계곡 가 보고싶지? 여기타" 로코가 유니콘을 몰고 다가가며 빙긋 웃었다. 그동안 로코는 사라와 꽤 친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은근히 경계했지만 어차피 어린애라고 마음을놓은 듯했다. 오히려 로코가 자리를 비운사이에 노골적으로 아크를 유혹하는 자나의 경계용으로 쓸만하다고 판단한 모양.한슨과 함께 여행만 하던사라도 금세 로코와 친해졌다. "푸르륵!" 사라가 잠시 쭈뼛거리자 유니콘은 듬직한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아크의 인상이 일그러졌다.아크가 한번 타겠다고할때는 죽을듯이 날뛰더니......여자라면 애, 어른을 안 가리는 망할 말 새끼 같으니! "오빠, 금방갔다 올게요.가자, 유니콘" "히히히힝!" 여자를 둘이나 태운 유니콘은 거친 콧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나갔다. '저 말새끼,뿔만 아니면 당장 구워 먹을텐데............' 아크가 유니콘을 노려보고 있을떄, 정의남이 다가와 중얼거렸다. "아크야. 네 덕분에 살았다" "네? 뭐가요?" "솔직히 란셀 마을의 식량 사정이 나빠진건 우리 때문이잖아.가렌은 괜찮다고 했지만 괜히 눈치가 보이던 참이었는데......정말 다행이다. 이제 우리도 어깨를 펼수 있겠어" 정의남의 목소리에 진심이 묻어났다. 내색은 안했지만 그동안 훈련소를 운영하며 꽤나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말을 들으며 아크는 조금 묘한 기분을 느꼈다. 아크와 달리 정의남은 게임안의 모든 사건을 NPC와 함께 겪어 나가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더 오래 게임을 한 아크보다 오히려 정의남이 더 뉴월드를 현실처럼 느끼고 있었다. 물론 아크에게도 뉴 월드는 더 이상 단순한 게임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정의남처럼 NPC의 사정때문에 일희일비할정도는 아닌것이다. '뭐, 기왕 게임을 하려면 그렇게 하는편이 재미있을지도모르지' 그러나 아크에게 뉴 월드는 오직 돈! NPC를 챙기는 이유도 그저 돈이 되기 때문이다. '내게는 아저씨처럼 게임을 즐길 여유가 없어. 초심을 잃어선 안되지.돈이되지 않으면 뉴월드를 할 이유가 없는거야. 아니, 할수가 없어.' 그렇게 북적거리는사이, 작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그리고 그무렵,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흙을 퍼 나르기 시작한지 꼬박 20시간. NPC인 주민들에게는 이틀이 넘는 시간이다.그때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흙을 퍼 나른 주민들이 지치자 작업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단지 피로가 문제는 아니었다. "이봐, 그 흙은 우리 밭이 먼저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네 밭에는 몇번이나 뿌렸잖아" "빌엄거을, 우리밭에 뿌린 흙은 힘이 별로 없어. 작물이 그다지 좋아지지않았다고!" "시끄러,내가 흙을 옮기는데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신성한 토양을 먼저 뿌린 밭은 당연히 작물의 성장이 더 빠르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자 주민들은 모두 제 밭에 먼저 뿌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게 작업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중 하나였다. "기다리십시오" 결국 두 농부가 멱살까지 잡으려는 찰나,아크가 둘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한쪽 밭에 다가가 양손을 바닥에 대고 간병을 시작했다. "위대한 대지여,당신의 품에서 태어난 자식을 위해 힘을내십시오!" 거의 힘을 잃어가던 토양에서 다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크는 한숨을불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됐습니다. 이 밭은 한동안 괜찮을겁니다" "자,자네.......!" 멍하니 지켜보던 농부가 흠칫하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크의 얼굴에서 코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긴 NPC와 시간개념이 다르다고는 하나, 아크에게도 20시간은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니다. 하물며 잠시도 쉬징낳고 돌아다니며 간병을난사해 댔으니 코피가 쏟아지는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는 별것아니라는듯이 코피를 닦으며 웃어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제가 노력해서 모든 주민이 행복해질수 있다면 그걸로만족합니다.그러니 부디 다투지마시고 모두와 함꼐 흙을 날라주십시오.흙의 힘은 제 몸이 부서지는한이 있어도 수확기까지 유지시키겠습니다" 농부들이 멍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와락 손을 잡았다. "미안하네.우리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모양이네" "자네가 이렇게까지 우리를 생각해 주는 줄도 모르고.........일전에는 자네에게 모진 소리까지 했네.게다가 이틀동안 잠시도 쉬지않은 자네앞에서 다투기까지 했으니..... 부끄럽네.정말 부끄럽네" "내가 욕심에 눈이 멀었었네. 이 흙은 자네밭에 뿌리게" "아닐세.자네는 딸린 식구가있지않나? 하나라도 더 수확해야지" "그럴게 아니라,더 열심히 움직여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흙을 옮기세" "맞아,그게 아크의은혜에 보답하는길이지!" 아크의 행동에 감동의 소나기를 맞아버린 농부들은 더이상 힘들다는 불평도 늘어놓지 않았다.그렇게 다시 분주하게 작업이 계속되어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처음 기대와 달리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헉헉헉,정말 끝이 없군' 그러는 사이에도 아크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며 간병을 난사하고 있었다. 처음 이 계획을 세웠을때까지만 해도 일단 시작되면 나머지 문제는 어떻게든 되리라고 낙관했다. 흙을 옮기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작물 상태가 호전되어 바로 수확에 들어가면2~3일.힘들겠지만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며 간병을 사용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막상 일을 벌여놓고 보니 그리 만만한게 아니다. 한쪽의 신성한 토양을 회복시키면 다른곳이 간당간당하고,이곳으로 뛰어가면 다른곳이 간당간당하다.잠시라도 마음을 놓으면 바로 평범한 흙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도저히 아크 혼자서 감당할수 있는범위가 아니었다. "빌어먹을!" 아크는 또다시 평범한 흙으로 변해 버린 신성한 토양을 보며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분통이나 터트리고 있을때가 아니었다.그사이 바로앞의 토양이 힘을 잃고 평범한 흙이되어 버렸다. 아크가 이를갈아붙이며 와락 몸을 돌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퀘스트고 뭐고.......정말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작물 소확에 큰 기대는 하기 어렵다. 물론 평범한 흙으로 돌아가도 이전까지는 작물에 영향을 미쳤으니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잘해야 20%나 나아질까? 게다가 밭이 급해서 아직 포포에게 필요한 흙을 준비하지 못했다. '버텨야해!포포를 심을수 있을때까지만이라도!' 그러나 마음과 달리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같은 24시간이라도 휴식과 사냥을 번갈아 하는것과,쉬지안고 뛰어다니며 스킬을 난사하는건 몸에 느껴지는 부담이 전혀 달랐다. 그러자 누군가가 아크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개를 도려 보니 가렌과 농부들이었다. "아크, 너무 무리하고 있네. 잠시라도 쉬어두게" "하,하지만......." "알고있네.자네가 쉬는사이에 얼마나 많은 흙이 평범하게 돌아갈지.하지만 자네는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었네. 단순한 수확량이 아니라,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네" "그래, 당장 흙이 평범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작물들은 이전보다는 나은 상태네" "자네가 더 이상 무리할 필요는 없어" "설사 작황이 좋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이제 자네를 탓할사람은 없네" 가렌과 농부들이 애정이 뚝뚝 흘러내리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조금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않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들의 불만 따위는 애초부터 신경도 쓰지않았다. 아크가 죽어라 뛰어다니는 이유는 오직 < 신성한토양>퀘스트 완료와 부동산 시세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 그걸 위해 그동안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제와서 포기하라고? 어림도 없다. "여기서 포기하면 제가 저를 용서할수 없습니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기력을 짜내 간병을펼쳤다. "빌어먹을 신성한 토양!좀더 힘을 내란말이다!"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아크가 간병을 펼치는순간, 손이 닿은 밭에서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물살이 퍼지듯 주변의 모든 흙으로 번져나갔다. 동시에 웅장한 효과음과 함께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대지는 그저 단순한 흙이 아닙니다. 모든생명을 존재하게 만들어준 생명의 원천, 대지가 힘을 잃는 다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게 될것입니다. 대지를 소중하게 여기는것,그것이야말롤 생명의 근원을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당신은 많은 생명을 위해,상처 입은 대지를 위해 생명을 깎아 가며 간병했습니다. 그 헌신과 노력은 대지를 감동시켰습니다. 힘을 잃어 가던 대지는 이제 자신이 낳은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염원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기적의 힘은 모든대지를 풍요롭게 만들어줄겁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 증가합니다. *'신성한 토양'효과가 1,5배 상승하고, 6개월간 지속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대지의 간병인'으로 긍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기적의 간병!'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적의 간병은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간병인을 펼칠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크가 간병을 펼치며 품었던 단 하나의 일념은 바로 부동산 시세였다. 부동산.....즉, 땅이다. 부동산 시세를 지킨다는 것은 다시 말해 땅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였다.엉뚱하지만, 결국 돈에 대한 아크의 집착이기 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 결과는 실로 극적이었다. "오오오오,이,이럴수가....!" 가렌들이 경악한 시선으로 밭을 바라보았다. 빛 무리가 파도처럼 번져나가자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물이 윤기를 되찾았다. 쭈글쭈글하던 열매가 순식간에 탱탱해지고,새끼를 치듯 개수도 늘어났다. 그야말로 기적! "아,아크...........자네는 정말.........!" 가렌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빛나는 흙으로 가져가며 떠듬거렸다. 농부들도 하나같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염없이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벌렁 누워 버렸다.긴장이 풀리자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피로감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루 말할수 없는 성취감! '해냈다........!' 아크는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아크를 연호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귓가에 스며들었다. 유니트에서 2~3시간 잠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어느새 모든 작업이 끝나있었다. 신성한 토양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 모든밭에 뿌리고도 새로운 밭을 더 만들 정도였다. 덕분에 란셀의 식량 사정은 60%,주변 숲의 성장 속도도 빨라져 자재 사정도 40%까지 상승했다. 갱생단과 도적들이 오기전보다 나아진것이다. 그러나 란셀 마을의 진정한 변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때, 아크는 마을 중심으로 향했다. 마을 중심에는 이미 적당한 넓이의 화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너구리 족을 동원해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신성한 토양 4분의 1분량을 쏟아부어 다시 메워 놓은 화단이다. 이그드라실의 씨앗이 자라려면 그만한 양은 필요하리라 판단한것.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크는 가방에서 씨앗을꺼내 들었다. 화단에 묻고 주변에 물을 뿌려 주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비디오를 빨리 돌리듯 순식간에 싹이 돋고, 줄기가 솟아 나오더니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내기 시작한것이다.나무가 푸른 잎사귀로 뒤덮이자 두두둥,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그드라실의 씨앗이 란셀마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그드라실은 세게의 균형을 유지하는 신성한 나무입니다. 나무를 성장시키기 위해 포포는 한동안 의식을 닫아 의사소통을 할수 없습니다.그러나 이제 란셀 마을은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받아 더욱 빨리 성장하게 될것입니다. 또한 이그드라실이 성장할수록 부여되는 효과도 상승합니다. *마을이 몬스터의 공격을 받을 확률이 50%감소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발전 속도가 50%상승합니다. *마을의 가치가 50%상승합니다. *마을을 찾는 모든 플에이어와 NPC에게 '안식'이 적용되어 회복 속도가 200%향상됩니다. *마을의 명성이 1,000 증가합니다.] '역시......!' 아크의 예상이 적중했다. 지저세계를 수호하던 이그드라실!그런 나무가 란셀 마을에 심어지자 상당한 부가 효과가 발동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꼬박 하루를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포포가 뿌리를 내리게 됨으로써 란셀 마을의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게다가 포포가 성장할수록 능력치는 더욱올라가리라. 란셀 마을이 중개지점으로서 발전해 나갈 디딤돌을 마련한것이다. 그러나 포포가 가지를 뻗자 가장 기뻐한건 너구리족이었다. 그들은 포포를 둘러싸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이그드라실이다!" "오오오,수호목의 탄생을 이 눈으로 지켜보게 되다니!" 너구리족에게 이그드라실은 신과 동격이다.그들이 란셀마을에서 힘들어한건 고향을 등진것보다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벗어났다는것 떄문이었다. 그런데 란셀마을에 이그드라실이 심어졌다. 이제 마음의 안식처를 얻은 너구리족은 란셀 마을을 위해 더욱 열심히 움직여 주리라. '그 편이 나에게도 이득이 되지' 아크가 내심 흐뭇한 미소를짓고 있을때였다. -고맙네,아크! 돌연 포포의 무성한 나뭇가지가 우수수 흔들리며 장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그드라실?" -자네 덕에 포포는 새로운 세상에서 또 다른 역사를 지켜보게 되었네 .또한 지저세계밖에 모르던 너구리족이 새 세상을 살아갈 계기도 마련해 주었네. 이 모든게 자네 공이네. "저역시 기쁩니다" 아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아크가 기뻐하는 이유는 이그드라실이 말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돈이 되니까. 그러나 속내를 알리없는 이그드라실은 고마워 어쩔줄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네의 노력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이걸받아주겠는가? 그때엿다. 돌연 나뭇가지 하나에 빛이 집중되더니 툭 끊어져 떨어졌다. [신성한 나뭇가지(특수) 신성한 토양에 뿌리를 내린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 신성한나뭇가지를 가지고 다닌다면 당신은 언제나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받는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수 있을것입니다. 그곳이 설사 사막한가운데라고 할지라도 나무 그늘아래에서 쉬는듯한 편안함을 느낄수 있을것이고, 뜻하지않은 행운이 찾아올 기회도 많아질것입니다. 또한 원한다면 세계수의 이그드라실과 대화를 시도할수도 있습니다. <소유자에게 지속 효과> *행운+30 *모든 스킬의 성공 확률+10% *마법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20% *휴식시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30% *이그드라실과 원격 통신이 가능합니다.] -퀘스트'신성한 토양'이 완료되었습니다. ACT 4 슬라임의 내단 '으헤헤헤,이게 웬 떡이냐?' 아크를 영웅처럼 떠받드는 마을 주민들이 모두지켜보고있다. 이 모든일을 마치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한듯이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참으려고 할수록 경박스러운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이그드라실의 씨앗 옮겨 심기!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않았던 퀘스트다. 잘해야 경험치와 명성, 친밀도 보너스나 받겠지. 사실 아크가 그렇게 생각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저 세계에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심혼의 구슬을 물리치고 이그드라실을 구했다. 당시에는 결과적으로 어둠의 조각을 얻은것만으로 만족해서 미처 생각하지못했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이그드라실에게서는 이렇다 할 보상을 받지 못했다. 어차피 어둠의조각은 오래전 마반 영웅과의 맹약으로 아크에게 건네졌어야 하는 아이템인것이다. '늙은 나무녀석, 결국 은근슬쩍 보상을 건너뛴거 아냐?' 은근한 배신감! 때문에 < 신성한 토양> 퀘스트를 받았을때도 급한 생각이 들지않았다. 더구나 퀘스트를 준 이그드라실은 지저세게에 있다.당사자인 포포는 그냥씨앗, 보상을 줄만한 여건도 되지않는 것이다. 그런데 설마 이런 방식으로 보상을 받게 될줄이야! 이그드라실을 구출하고 씨앗을심는 부분까지....... 그사이에 시간 공백이 많아 미처 눈치채지못했지만, 이게 하나의 연계 퀘스트였던 모양이다.그리고 긴 시간이 걸렸던 연계 퀘스트인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보상을 받았다. 은은한 빛 무리가 감도는 지휘봉만한 길이의 신성한 나뭇가지!모든 스킬 성공확률 10% 상승. 이건 두말할 필요도없이 최고의 옵션이다. 사실 뉴 월드는 다른 온라인 게임에 비해 스킬 실패율이 높은편이다. 다크 블레이드같은 엑티브 스킬은 물론, 서바이벌 요리나 채취같은 패시브 스킬도 마찬가지. 상위 스킬일수록 실패율도 높아진다. 물론 신중하게 스킬을 사용하면 성공확률은 높아지지만, 시스템상 일정확률의 실패는 감수해야한다. 전사나 마법사의 경우 빈사 상태에서의 최후의 일격!생산직의 경우 온갖 고급재료를 구해 마지막 작업을 하는순간!비장의 스킬이 실패한다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때문에 스킬 성공 화귤ㄹ이 붙은 아이템은 모든 유저들이 군침을 흘리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아크를 행복하게 만드는 옵션은 따로있었다. '마법 아이템이 나올 확률 20%!' 뉴 월드의 아이템 드랍율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몬스터를 잡아도 일반 아이템 하나 먹기 힘든 현실. 간신히 하나 먹어도 상점에서 파는것보다 성능이 떨어질때가 많았다. 레벨에 맞춰서 장비를 바꾼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닌것이다. 아크 역시 초보 마을에서구한 장비를 레벨 60~70대까지 사용했었다. 뉴 월드의 아이템 시세가 시간이 갈수록 더 오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역시 돈이 되는건 마법 아이템. 레어나 유니크를 먹으면 큰돈이 되지만 나올 확률이 너무 극악하다. 그야말로 복권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거나 다름없다. 반면 마법 아이템은 비교적 꾸준히 나오는편이었다. '역시 안정적인 수입은 마법 아이템이야. 마법 아이템을 20%더 많이 구할수 있다면 수입이 지금의 20%만큼 높아진다는뜻!' 뭐 어차피 확률이니 무조건20%높아진다고 확신할수는없다.그러나 지금보다 하나라도 더 챙길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신성한 나뭇가지는 가방에 넣어두기만 해도 된다. 장비처럼 레벨에 따라 바꿀필요가 없으니 언제까지나 쓸수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최상의 아이템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크님덕에 신앙을 되찾았습니다. 이제 이곳에도 정을 붙이고 살아갈수 있겠군요" 나뭇가지를 챙기고 돌아서자 너구리족 대표가 다가왔다.얼마전까지만 해도 반말을 하더니 어느새 존칭이다. 에상대로 이그드라실을 심자 너구리족과의 친밀도가 엄청나게 올라간 모양이다. 아니, 친밀도를 넘어서 존경심을 품었다. 그들이 섬기는 이그드라실의 나뭇가지를 소유한다는것은, 신관이 되었다는 의미와도 같았기 떄문이다. "우정을 맹세한 이그드라실과의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오오오" 너구리족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신과 친구라니 아크가 더욱 대단해 보였으리라. "저희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확실하게 못 박아 두었다. 솜씨 좋은 장인 NPC에게 빚을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쓸모가 많으리라. '자, 이제 본론으로들어가 볼까?' 뒤이어 아크는 잡화상점으로 걸음을돌렸다. 자, 정리해보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성한 토양을 옮겨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본건 란셀 마을이다. 비록 원만한 퀘스트 해결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그건 그거고......아크 덕에 이드긍ㄹ 본 NPC가 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지않은가? 아크는 순수한 선의라는 말은 믿지도,실천할 생각도 없었다. 뭔가 베풀었다면 그만한 보답을 받아야한다. 이게 밝고 명랑한 사회의 첫걸음이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지 몰라. 분위기가 좋을때 더욱 바짝 당겨 놔야해' "어서 오게 ,아크!" 상점에 들어서자 가렌이 활짝 웃으며 아크를 반겼다. "자네가 찾아준 신성한 토양은 정말 대단하네.얼마전에 심어두었던 작물은 물론이고,곧 수확할 작물까지 양이 배로 늘어났네. 불과 2~3일 만에 말이야. 믿어지나? 자네 덕에 올 겨울은.....아니, 앞으로 몇년간은 식량 걱정없이 지낼수 있겠어!" "마을에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쁩니다" 정말 기쁘다. 그만큼 더 긁어낼수있을테니! "그런데 일전에 얘기했던 보상말입니다......." 아크가 은근히 말끝을 흐리자 가렌이 살짝 긴장했다. 그러나 가렌과의 친밀도는 최상, 금세 경게를 풀고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네.이미 말했듯이 내가 해줄수 있는거라면 뭐든 해주겠네" '흠,역시 그렇게 나오는건가?' 가능한 범위안에서 뭐든 해주겠다. 과거 히베스틴 자작과 같은 패턴이다. '뭐든지'라고 했지만'가렌이 해줄수 있는'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는것이다. 뭐랄까............사실 이런식의 보상이 가장 까다롭다. NPC가 뭐든지 해주겠다고 해서 욕심에 눈이 뒤집혀 무턱대고 엄청난 아이템이나 돈을 요구하면 당연히 받아들여지지않는다. 아크는 그런 실패를 한번 맛본적이있었다. 기란에서 카이로트로 향할때,정글에서 부상당한 사냥꾼을 돕는 퀘스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사냥꾼 역시 처음에는 같은 말을 했었다. "자네는 생명의 은인이네. 내가 해줄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주고 싶군" 아크느 생각할것도 없이 활을 달라고했다. 블라인드 경매장에서 잔뼈가 굵은 아크의 눈썰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대강 훑어만 봐도 대략적인 가치를 파악할수 있는 수준. 사냥꾼이 가진 물건중에 딱히 돈이 될건 없었다. 그러나 딱하나, 활만은 상당히 질 좋은 재료로 만든것 같았다. '저건 최소한 마법 아이템이다!' 내심 은근히 탐내고 있었던것!그러나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사냥꾼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렇게 안봤는데 자네는 염치라는게 없는 사람이군. 고작 그 정도의 일을 해주고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가보를 달라는건가?" "하지만 뭐든해주겠다고 하지않았습니까?" "나는 분명 내가 해줄수있는 보상이라고 했네. 고작 회복 포션 하나 써주고 음식좀 먹여 준 대가로 내 목숨보다 소중한 가보를 주겠다는 말을하지않았어. 그런데 마치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다니, 승냥이보다 더한사람이 아닌가!" "아,아니,그건............" "됐네.자네 같은 사람에게 호의를 느꼈던 내가 부끄럽군!" 기껏 회복 포션까지 써가며 살려놨더니 사냥꾼은 폭언을 퍼부으며 떠나버렸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억이지만, 덕분에 아크는 한동안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이곳은 뉴 월드라는 거대한 게임속이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사람들은 NCP.................... 인공지능을 가지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지만 결국 시스템의 부속품에 지나지않는다. 사람이 물리법칙을 벗어날수 없는 것처럼 ,NPC는 시스템의 규칙을 벗어날수 없다. 당연히 그들이 유저에게 해줄수 있는일은 상한선이라는게 존재하는것이다. 귀족 NPC에게 퀘스트를 받았다고 해도 레벨 1의 유저가 레벨 100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수는 없다. 이게 현실의 물리법칙같은 뉴 월드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뉴 월드의 법칙은 물리법칙처럼 빡빡하지않다는 것이다. 상황을 잘만 판단하면 레벨 1의 유저가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10수준의 보상을 받을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결국 상한선 내에서 최대한의 이득을 끌어내려면 나름대로 기술이 필요하다는뜻! 때때로 보상까지 유저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그게 바로 뉴 월드만의 자유도! 때문에 아크는 가렌이 보상을 제의했을떄 일단 뒤로 미뤘다.신성한 토양을 옮기고,마을에 얼마나 이득이 돌아왔는지 확연해진다면 가렌이 먼저 구체적인 보상의 상한선을 제시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은 전과 같았다. 다만, 이전보다 상한선의 폭은 조금 더 높아졌으리라. '당장 아이템이나 돈을 요구할수도 있다' 그러나 란셀은그리 넉넉한 마을이 아니다. 더구나 근래에는 훈련소 건설이다 뭐다 하며 재정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말하자면 가장 안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그런상황에서 받을수 있는 보상은 뻔하다. 주변에서 구할수 있는 흔한 아이템이나,100골드 정도가 상한선이리라. 물론 퀘스트를 하다 우연히 생긴 기회이니 100골드도 나쁘지는 않지만...... '인구700명의 마을을 식량 위기에서 구해줬는데 고작 100골드? 역시 뭔가 부족해' 무엇보다 아크는 지금 당장 돈이 급한 상황은아니다. 당장 가방에는 돈이 없지만, 곧 시드가 수천골드를 가지고 돌아온다. 눈앞의 100골드에 목을 맬 이유가 없는것이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장 돈이 급하지 않다면 장기 투자를 하자!' 뉴 월드에서는 유저가 마을이나 도시에 투자를할수 있었다.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촌장이나 영주가 마을의지분을 보장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선제 조건이 필요했다. 그 도시나 마을에 길드 사무소, 혹은 임대 창고 ,주택 따위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어야 투자할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자격이 생긴다고 무조건 투자가 가능한건 아니었다. 주택의 등급이나, 명성, 점유율,친밀도 따위의 여러가지 제한이 걸려있어 아직 마음껏 투자를 할수 있는 유저는 별로 없었다. 때문에 아크 역시 지금까지는 투자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오두막이지만 란셀 마을에 주택을 가지고 있지않은가! 일단 최소한의 자격조건은 갖춘셈이다. 게다가 아크는 이그드라실의 부가효과를 확인하고 머지않아 란셀 마을이 엄청나게 발전할것임을 확신했다. '란셀 마을은 아직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않은 산골 마을이다. 땅값이 가장 낮을때야. 하지만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받으며 점점 발전할테니 곧 정식 마을로 등록될거야.그때는 땅값이 몇 배는더 오르겠지.그래, 지금이 투자 적기다!' 장기 투자에 부동산만한것은 앖다. 드디어 아크의 문어발식 돈벌이가 부동산까지 확대됐다. 사냥이든, 사기든, 부동산 투기든......돈만 된다면 뭔들 못하겠는가? 곧 생각을 정리한 아크는 짐짓 걱정스럽다는듯이 입을 열었다. "여러모로 생각해 봤는데 역시 당장 보상을 바라는건 좀 뭐하네요.근래 훈련소 운영 떄문에 마을도 여유가 없지않습니까?" "역시 자네는 마음 씀씀이가 남다르군.그래,자네덕에 당장 먹고살 걱정은 덜었지만 여러모로 빠듯한건 사실이네" 가렌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냈다. 그때, 아크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 "하지만 모처럼의 성의를 거절하는것도 예의가 아니겠죠.그래서 고민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받을보수를 모두 마을에 환원하기로" "환원?" "네, 당장 보수를 받는 대신, 마을의 지분을 주시면어떻겠습니까?" "마을의 지분을 말인가?" "란셀에 제 집이 있으니 지분을 얻을자격도 있는거죠?" "그야 그렇지만......." 마을의 지분이란 토지에 대한 권리, 아무리 아직 가치가 낮은 개척 마을이라도 그리 쉽게 줄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러나 원래 말이라는 건 '아'다르고'어'다른법! 만약 다짜고짜 지분을 달라고 했다면 가렌도 불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는 '환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차이는 의외로 크다.마치 자신의 이득을 바라지않고 마을을 위해 베푸는 듯한 인상을 풍긴것이다. 가렌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아직 란셀 마을은 이방인에게 지분을 양도할 상황은아니지만,자네에게 큰 빚을 진것은 사실. 자네가 당장 보상을 원하지않는다면 지분을 주도록 하지. 자네의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생각한다면 2%정도가 합당하겠군.어떤가?" 700명이 사는 마을에서 2%지분이면 결코 적은 보상은 아니다. 아마 란셀 마을이 예상대로 크게 성장한다면 0.1%의 지분을얻기도 쉽지않으리라. '친밀도가 최상인 NPC가 제시한것이니 그게 상한선이겟지. 만약 더 욕심을 부리면 예전처럼 아무런 보상도 못받게 될지도 몰라.하지만......' 지분을 받을 기회는 그리 흔한게 아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지않으면 불가능한일.그렇다면 기회가 있을때 0.1%라도 더 늘려 놔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 어차피 모 아니면 도!모험을 해보자'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배가 좀 아파서......" 아크는 핑계를 대고 일단 상점을 나왔다. 그리고 가방에 넣어 두었던 음료수 하나를 꺼내 들이켰다. 로코가 유니콘을 꼬드길때 사용했던 '매혹의 드링크'! 매력을 300이나 올려주는 극상의 요리였다. 심지어 유저인 아크조차 그 효과에 홀려 유니콘을 살려주지않았던가? 그 정도로 막강한 효과라면 이렇게 애매한보상을 받을때 효과적으로 이용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잡화상점을 찾은 아크는 호기를 부렸다. "3%를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3,3%? 욕심이 좀 과하지않은가? 마을의 지분이 얼마나 굉장한건지 알고는 있나? 란셀이 비록 개척마을이라도 2%는 결코 작은게 아니야" 가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 반응은 이미예상했다. ".......물론 알고있습니다. 아저씨가 성의를 다해 제시한 지분이라는건, 그래도.......설사 욕을 먹는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욕심을 부리고 싶군요" 아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듯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방인입니다. 어디 하나 마음 둘곳 없어 떠돌아다닐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죠.그리고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습니다.이 마을의 위대한 지도자인 란셀 그리고 그 뜼을 이어 가려고 노력하는 가렌 아저씨.네,이런곳이라면 평생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하지만 저는 란셀을 떠났습니다. 그게 이방인의 운명이기 때문이죠.그 뒤로 다시 떠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내가 정을 주었던 사람들을 이곳으로보내며 다시 한번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란셀에 와서 확실하게 깨달았죠.그래, 비록 떠돌아다니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지만 이곳이 내 집이다. 내 쉼터고,내 고향이라고!" 아크는 감정을 주체할수 없다는듯 열변을 토했다. "나는 땅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욕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란셀에 애정이 생기자 그런 욕심이 생겨 버렸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마을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갖고 싶다. 한뺨이라도 더 갖고 싶다.그러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어도 사랑해 마지않는 란셀 마을 주민과 언제나 함께 하는 기분이 들지않을까? 그런 욕심이 생겨버렸습니다. 하지만........역시 안되겠죠.저의 지나친 욕심이겠죠" 아크는 세상 모든게 끝난 사람처럼 한숨을 불어냈다. 묵묵히 지켜보던 가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안하네.내가 오해했어. 그런 심정으로 한말인지도 모르고 잠시나마 자네를 의심했네.부끄럽군. 자네가 이유없이 뭔가를 요구할 사람이 아니라는것쯤은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지금까지 노력해준 일은 몽땅 잊어버리고........" '드리크의 효과가 있다!' 아크는 내심 환호성을 터트렸다. NPC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끝까지 방심하면 안된다. 아크는 더욱더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저같은 떠돌이에겐 2%도 과분하죠" "부탁이니 그리 말하지 말게.내 사과하겠네" 결국 가렌은 승복하고 말았다. "자네의 심정은 잘알겠네.하지만3%는 솔직히 무리야.2.5%라면 내 어떻게든 힘써 보겠네. 대신 자네에게 집을 증축할 권리를 주고,증축이 끝나면 지분의 5%까지 투자할수 있도록 편의를봐주지 어떤가?" "감사합니다" 아크는 와락 가렌의 손을 잡았다. 두두둥, 웅장한 효과음과 함꼐 새로운 정보창이 생성되었다. [<투자 관련 정보창> 란셀마을의 지분을 얻었습니다. 주택을 소유한 플레이어는 소속 마을의 지분을 얻을 권리가 생깁니다. 마을의 지분은 마을이 성장함에 따라 그 가치가 올라갑니다 .또한 마을에 큰 이익이 생겼을때는 별도의 배당금을 신청할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흉년이나,몬스터의 습격등, 마을의 존립을 위협하는 피해가 발생했을때는 일정금액의 돈이 청구될수도 있습니다. 플레이어 1인이 한 마을에서 얻을수 있는 지분의 상한선은 2%까지입니다. 단, 마을에 큰 공적을 세우거나 주택의 등급이 올아갈경우, 산한선을 올릴수도 있습니다. 현재 소유한 란셀마을의 지분 (소유/상한) : 2.5/2.5%] '됐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쾌재를불렀다. 이로써 란셀은 단순히 친밀도가 높은 마을이 아니라 ,투자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물론 아직 이지분이 얼마나 이득을 가져올지는 알수 없다. 그러나 신성한 토양으로 앞으로 몇년은 풍년이 약속되었다. 더불어 이그드라실의 가호를 받게 됬으며, 어떤 직업으로든 전직이 가능한 도적이 300명이나 있다. 상품가치가 올라갈 요소는 많아도 떨어질 이유는 없었다. '란셀 마을의 지분은 사 두면 사 둘수록 돈이 된다!' 이득이 보장된 투자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상점에서 나온 아크는 곧바로 너구리족 대표를 찾아갔다. "아크 님의 오두막을 일반 주택으로 증축해 달라고요?" "가렌 아저씨에게는 이미 허락을받아 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 드려야죠.사실 저희도 아크님이 그런 누추한 곳에 사시는게 마음에 걸렸습니다.인건비는 제하고 자재값만 주시면 내일이라도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너구리족도 흙 퍼먹고 사는건 아니니, 역시 돈이 들어갔다.아크는 마법 재료를 팔아 번 돈 50골드를 몽땅 건네주었다. 그리고 공사가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자재 값을결재해 주기로 합의했다. "아크 님을 위해 최고의 솜씨를 부려 보겠습니다" 증축을 하면 8급 오두막은 7급 일반 주택이된다. 그러나 집이라고 다 같은 집이 아니다. 같은 평수를 가졌다고 해도 집이 얼마나 잘 지어졌느냐에 따라 가치가 변하기마련.최고의 장인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최고의 주택이 지어지리라. '시드가 돈을가져오면 증축을 끝내고 상한선이 올라간만큼 투자해야겠어' 란셀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아크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마을이 성장하면할수록 재산이 늘어나는데 애정을 가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란셀이 기란과 작센의 중개지점으로 자리잡는다면?'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다. "우 ,피곤해" 제 시간에 자고 제 시간에 일어나고 싶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온라인 게임이라는게 조금만 더, 조금만더.......하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중독성이 장난 아닌 뉴월드야 오즉하겠는가? 그럼에도 체육관은 빼먹을수 없으니 매일 3~4시간 자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게임이든 운동이든 내가 원해서 시작한거니 불평할수는 없지" 현우의 장점이 그것이다. 해야하고,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결코 도중에 포기하는법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란 각오하고 나서면 대부분의 일은 할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불과 5년전만 해도 어머니의 병원비나, 생활비를 감당할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그러나 죽을 각오로 하니 어떻게든 충당하고 있지 않은가? 막상 고난과 부딪치며 살아보니 세상일의 대부분은 그랬다. 불가능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은 헛소리다 .왜 불가능이 없겠는가? 불가능은 있다. 그러나 아무데나 갖다 붙일만큼 많지는 않은것이다. "후후후후" 문득 현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거상에게서 얻은 신성한 강철 방패가 떠올랐기떄문이다. 레벨 제한 120의 유니크 방패! 과연 얼마나 받을수 있을까? 현우는 참지 못하고 컴퓨터와 유니트를 연결,경매 사이트에 접속했다. "일전에 발데라스에게 받았던 유니크 둔기는 1,200만원에 팔렸어. 보통 무기보다 방어구는 가격이 떨어지지만 이건 착용 제한이 120레벨 이상이야 .옵션을 봐도 유니크 둔기만큼의 가격을 받을수 있을거야" 뉴 월드에 가장 많은 직업은 전사. 수요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같은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전사용은 더 비싼가격에 잘팔리는 것이다. "좋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챙겨놓자" 현우는 과감하게 경매 시작가를 1,000만원으로 설정했다. 경매 기간은 보름,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가격을 받기 위해서였다. "자,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그럼.....이제 리포트만 쓰면 오늘일은 끝나는건가?" 어느새 다시 리포트 제출 날짜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현우는 마감이 코앞에 닥친디에야 부랴부랴 리포트를 작성했다. 특히 이번에는 여기저기 벌여놓은 일이많아서 분량이 상당했다. 그러나 마감까지 남은시간은 1시간 남짓, 현우는 할수 없이 듬성듬성 내용을 건너뛰며 중요한 부분만 적었다. 이메일을 보내자 몸이 축 늘어졌다. "휴,간신히 시간에 맞췄네. 이참에 조금 자 둘까?" 현우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을때였다. "아란님. 오랜만에 다시 뵙네요" '아란?' TV에서 한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 들려왔다. 낯익은 얼굴의 리포터가 방실방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 아란님은 언제나 뉴 월드의 중심에 계신다는 인상을 주시네요.일전에 이벤트 퀘스트에서 1위를 한건 이미 누구나 다 아는사실이죠. 그리고 얼마전에는 나가란에서 성까지 차지하셨다고요? 게다가 뺏기보다 어렵다는 수성전을 벌써 두번이나 성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모두가 궁금해하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아란님만의 요령이 있을까요?" "일전에도 말씀드렷지만, 게임은 저 혼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다행히 저는'여명의 칼날'이라는 길드를 맡고 있고,그분들이 열심히 한 결과일뿐입니다" "아, 정말 겸손하시네요" 리포터가 판에 박힌 칭찬을 늘어놓으며 물었다. "성을 차지하면 상당한 수입이 들어온다던데. 아란님도 곧 부자가 되시겠어요?" "저는 뉴 월드를 돈벌이로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단지 지금은 뉴 월드가 좋고, 또 그곳에서 활동하는 유저와 NPC들이 너무 좋습니다. 제가 성을 차지한것도 그들을 위해 더 재미있는 뉴 월드를 만들어 가고 싶다는 취지였습니다" "훌륭하시네요.그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일단 영지를 성장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개발 지역인 나가란의 영지가 발전하면 거기서 또다시 수많은 컨텐츠가 나오겠지요" "그 말은 앞으로도 성을 지켜낼 자신이 있다는 말이군요" "물론입니다" "그럼 다음 수성전을 저희가 방송할수 있을까요?" "그건 좀 곤란하군요.전투는 곧 전략입니다. 수성전을 방송하면 우리측의 전략을 적대 길드가 모두 알아버립닏. 상당한 패널티겠죠.때문에 당분간은 비공개로 수성전을 치를생각입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안타깝군요.하지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장면이 전환되어다. '아란 녀석.....벌써 성을 차지한건가?' 기분이 복잡했다. 사실 응시자는 다른 유저보다 한 달이나 늦게 시작했다는 패널티가 있다. 얼마전에 봣던 선구자에 비하면 두달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란은 쭉쭉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과연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같은 응시자라도 아란은 어디까지나 경쟁자. 더구나 감정적으로도 아란과 현우는 적대 관계다.언젠가 한버은 꼭 넘어서야만 하는 상대인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놀고 있을떄가 아니야' 죽어라 노력해도 아란을 따라잡기 힘들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노력을 게을리 하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지리라. 쉴시간이 없다. 1%의 경험치라도,1쿠퍼의 돈이라도 더 벌어야한다. 현우는 쫓기는 듯한 심정으로 다시 유니트로 들어갔다. 어엿한 게임 페인이 되어 버린 현우였다. 쫓기듯 들어왔지만 막상 할 만한 일이 마땅치않았다. 란셀에 도착한뒤로 수면시간까지 줄이면서 게임을 한 이유는 시드 때문이었다. 시드가 돌아오면 다시 <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다. 그러려면 먼저 셀리브리드에있는 샴바라와 결판을 내야 하고.....이것저것 할일이 많은것이다. 시드가 도착하기 전에 란셀에서 해야 할일을 모두 끝내야 한다.때문에 쫓기듯 게밍르 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시드에게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게다가 진행하던 일도 모두 정리되니 기다리는 시간이 몇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아크가 란셀에 도착한지도 23일. 악실리온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한달이다. 5,500골드 상당의 아이템이니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지만, 아직까지 처분하지못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아닌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바쁠때는 몰랐는데 한가해지니 불안감이 되살아났다. 시드에게 맡긴 아이템의 58%는 아크의 몫이다. 골드로 따지면 무려 3,190골드!이윤을 붙여 처분하면 금액은 더욱 늘어나리라.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300골드나 내고 살수 있었던것도, 가렌의 보수를 마을 지분으로 바꿀 생각을 한것도, 곧 그만한 목돈이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있으니 장기적인 투자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만약 거기에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뉴 월드에서 모은 전 재산에 문제라니.......생각만으로도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젠장,투자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군.확실한 이득이 보장된 투자에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증권투자같은걸 하는사람들은 다 심장이 강철로 되있는건가?' 아크는 절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나쁜 방향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시드가 조금 순진해 빠진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상인잉. 나보다 아는것도 많잖아. 40%나 할인해서 샀으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손해볼리가 없어 .시드에게도 이번 장삿길은 재기할수있는 기회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남기려고 시간을 잡아먹는 거겠지' 아무생각도 없이 시드에게 그만한 거금을 맡겨 놓은게 아니다. 비록 한번 실패를 경험하고 신용불량 호비트가 돼버렸지만 ,그전까지는 그럭저럭 수완좋은 상인이었다. 오히려 한번 실패를 경험한 만큼 더욱 신중하게 장사를 하리라.무엇보다 시드는 목돈이 생겼다고 뭔가 수작을 부릴사람이 아니다. '어쨌든 한 달이나 지났으니 이제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거야.일단 그때까지 할일을 새각해보자' 당연히 가장 먼저 떠오른건 사냥이었다.그러나 이미 란셀에서 레벨이 상당히 올랐다.주변의 몬스터로는 그다지 경험치가 되지않는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사냥하면 5레벨당 10%의 추가 경험치가 붙는다. 그러나 반대로 레벨이 낮은 몬스터는 5레벨당 10%의 패널티가 작용하는것이다.그래도 갈고리 박쥐처럼 쉬지않고 몰이사냥을할수 있다면 고레벨 몬스터를 잡는것보다 낫다. 그러나 뗴거지로 돌아다니는 몬스터는 몽땅 아크의 경험치로 환산되었다.다시 그만큼 무리를 지을때까지 꽤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떼거리로 있다고 해도 처음 왔을때보다 경험치나 패널티가 30~40%더 작용해.2~3일 사냥해도 1레벨 올리기도 힘들거야. 그렇다면 차라리 스킬을 배워두자!' 게임에서 스킬은 레벨만큼, 아니 때로는 레벨 이상으로중요하다.아크는 그 단순한 사실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마법 탐지'하나 익힌 것만으로 평범한 숲이 마법 재료 밭으로변하고,멀쩡한 땅이 신성한 토양이 됬다. 스킬 하나를 배움으로써 지금까지 모르던 신세계가 펼쳐지는것이다.물론 그런 레어스킬을 배울 기회는 흔치않다. '마법탐지'도 란셀 주민들과의 친밀도가 없었다면 못 배웠으리라. 그러나 일반 스킬이라면 배울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있다. '란셀 마을에는 갖가지스킬도 익힌 친밀도 높은 NP들이 많다. 비전서로 익혀야 하는것만 아니라면 나도 배울수 있는게 있을거야.일단 스킬 정보를 알아보고 필요한것을 추려 시도해보자' 아크는 본격적으로 란셀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이제 란셀마을은 작센 성에 이어 아크의 홈그라운드가 되었다. "오오, 아크.내게 뭔가 질문이라도 있나?" NPC에게 뭔가르 물으면 오히려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는듯이 상세한 정보를 주었다. 스킬을 가장 다양하게 갖춘것은 역시 너구리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인 NPC,쓸만한 스킬은 대부분 직업 제한에 걸려 배우지못했다. 아크가 배울수 있는건 고작'목재 채취'나 '광석채취'같은 1차 생산 스킬에 불과했다. '휴식 시간 틈틈이 활용하면 잔돈은 모으겠지만......' 그러나 이미 식재료 채취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항상 가방이 부족한데,가방공간을 많이 잡아먹는 목재나 광석까지 긁어모을수는 없다. 스킬을 배우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니 1차 생산 스킬을 포기했다. '역시 기왕이면 전투에 활용할수 있는 스킬이 좋겠어' 그러나 묘족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묘족은 수많은 전투스킬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종족 특수 스킬이었다. '하하, 막상 찾아나서니 내가 배울수 있는 스킬이 없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아니지.로코나 갱생단 형들이 익힌 스킬이 남아있다. 갱생단 형들은 직업이 없으니 배우고 있는 스킬도 직접공통.그 스킬이라면 나도 배울수 있을거야. 게다가 직접 지도를 받을수 있으니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아'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훈련소를 찾아갔다. 마침 로코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가사 시리즈 스킬을 올리고 있었다. "어? 오빠 어쩐 일이에요?" 아크를 보자마자 얼굴부터 붉힌다. 덩달아 아크도 얼굴이 붉어졌다. 감기에 걸렸을때 집에서 묘한 분위기가 조성된 이후로 둘의 관계가 어쩐지 서먹서먹 해졌다. 물론 나쁜의미의 서먹서먹함은 아니다. 좀더 서로를 의식하게 됐다고 할까? 그러나 사적인 일은 사적인 일. 아크는 공과 사를 구분할줄 아는 멋진 남자였다. "물어볼게 있어서 왔어. 네가 일전에 썼던 스킬있지?" "스킬요?" "내 갑옷의 방어력 올려줬던 스킬말이야" "아, 빨래말이에요?" "그거 어떻게 배웠어?" "저도 몰라요.그냥 배일 빨래하다보니 생기던데요?" '이거다!' 아크는 곧바로 훈련소의 도적들 옷을홀랑 벗겨버렸다. 300명이나 되니 빨래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크는 산더미 같은 빨랫감을 들고 그때부터 냇가에서 미친듯이 빨래를 해댓다. 그러나 빨래도 생각만큼 만만한게 아니었다. 아크는 그냥 빨래만 하면 되는줄 알았다. 그런 제대로 하지않으면 오히려 옷감이상해 내구력 ,방어력이 떨어지기도 했다. "아크 형님,이건 빨래한 티도 안 나는데요?" "어라? 이 가죽 갑옷은 좀 상한것 같기도 하고........." "아 ,망했다. 이거 방어력이 떨어졌어" 죽어라 빨래를 해놨더니 여기저기에서 클레임이 걸려왔다. 로코조차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유 ,오빠 .그거랑 그걸 같이 빨면 어떻게 해요? 빨래해 본적도 없어요?" 안해봤다. 비록 돌릴때마다 쇳소리가 나는 고물이라도 아크에게는 어엿한 세탁기가있는것이다! 천생 사내인 아크에게 빨래란 세탁기 버튼을 누르는것,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보다 못한 로코가 팔을 겉어붙이고 나섰다. "그렇게 하면 땟국물이 빠질리가 없잖아요.자,봐요.이렇게 양손으로 잡고 박박 문질러야 해요.아, 그건아니죠.가죽 갑옷은 그렇게 무식하게 빨면 옷감이 상하니까 솔로 살살 문질러서 빨아야해요" 빨래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심오했다. 색상 별로, 옷감별로 빨래하는 방법이 다 달랐고, 적절한 힘 조절도 필요했다. 그러나 로코의 친절한(?)지도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마는 아크의 집념이 결국빨래의 세계를 정복했다. 허리가 뽀개지기 일보 직전 ,스킬 정보창이 생성된것이다.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세탁(초급, 패시브) : 진정한 전사라면 갑옷의 성능만이 아니라 청결에도 신경을 쓸것입니다. 아무리 멋진 옷이나 갑옷을 입고 있어도 지저분하고 냄새가 난다면 불쾌감을 안겨 줄 뿐이겠죠? 항상 청결이 유지된다면 갑옷도 제 성능을 발휘할것입니다. <천, 가죽 계열의 방어구에 4시간동안 방어력+5%>] '헉헉헉,드디어 배웠다!' 4시간동안 방어력 5%상승! 수천 벌의 옷을 빨아댄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사실 로코가 빨래를 해주기전에는 이런 스킬이 있는줄도 몰랐다. 아니, 아마 대부분의 유저들이 모르는 스킬이리라 당연하다. 세상에 누가 게임속에서 빨래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리고 설사 알았다 한들, 일반 유저는 수천벌이나 되는 빨랫감을 구하기조차 어려우리라. 그렇다고 스킬 하나 배우자고 몇백벌의 옷을 살수는 없지않은가. 게임에서도 깔끔을 떨어댄 로코와 300명이나 되는도적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욕이 생긴 아크는 갱생단을 만나며 스킬을 찾았다. 갱생단은 모두 독특한 스킬 1~2개씩은 가지고있었다. 그중에서 아크의 관심을 끈것은 해결사의 '협박'이었다. 상인 NPC에게 사용해 물건 값을 깎을수도 있고, 몬스터를 경직시키는등 두루두루 쓸모가 많은 스킬이었다.대신 성공확률이 낮고, 실패했을때 오히려 NPC나 몬스터 를 더욱 열받게 만든다는 단점이있었지만 쓰기 나름 아니겠는가? "흐음, 이 몸의 기술을 배우고 싶다이거지?" 해결사가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항상 아크에게 배우는 처지였다가 입장이 뒤바뀌자 우쭐대고 싶은 모양이다. "'협박'은 일자전승, 문외불출의 비기인걸 알고 하는 말이냐?" 고작 몇 달의 역사를 가진 기술에 언제 일자전승, 문외불출의 규칙이 생겼을까? 갱생단원들도 슬슬 정의남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뭐, 창시자께서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야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배우고 싶습니다" "흠, '협박'의 대단함을 깨닫고 다른놈들보다 나를 먼저 찾아온게 기특하긴 하다만......." 그떄, 아크가 슬쩍 다가가 술 한병을 찔러 주었다. "부탁드립니다" "오냐, 그럼 전수해 주마!" 일자전승, 문외불출의 기술이 술한병에 팔렸다. 어쨌든 해결사는 술병을 얼른 챙기고 아크를 산중턱으로 끌고갔다. "자, 바로 기술전수에 들어가겠다. 먼저 협박의 기본은 눈빛이다. 마치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여기서 밀리면 죽도 밥도 안돼. 그리고 아랫배에 단단히 힘을 주고 단전에서부터 모든 내공을 끌어모아서......아 살라비아 으라차차!" "에에?뭐라고요?"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해결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못 들었냐? 먼저 눈빛으로 상대를........" "아, 아니.그건 다 알아들었는데요.맨 마지막에 그건 뭐에요?" "마지막? 아아, 아 살라비아 으라차차 말이냐?" 해결사는 히죽 웃으며 다시 안드로메다에서나 사용할듯한 외계어를 중얼거렸다. 아크의 얼굴이 대번에 허옇게 질려버렸다. 아 사라비아 으라차차.......미리 말해 두지만 이건 해결사 의 말을 그대로 옮긴게 아니다. 매우 순화시켜서 말한......아크의 머리로는 도저히이해할수 없는, 그리고 별로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었다. "협박을 배우려면 그걸 똑같이 해야 하는건가요?" "후후후,당연하지. 그게 바로 협박의 오의다. 상대를 확실하게 겁주려면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욕을 구사해야하지.볼래? 아 살라비아 으라차차 비루비야.........." "그, 그만하세요" 아크는 기겁하며 해결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말 누가 들을깍 겁나는 욕의 퍼레이드엿다. 18대 조상을 거론하는 것부터 시작해서,별의별 음담 패설 까지.단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욕설들이 랩처럼 흘러나온다. 하긴, 원래 랩도 할렘가에서 갱들이 말싸움하다가 시작됐다고 하니까 관련이 있다면 있는건가? 과연 이만한 욕이라면 겁먹지 않을 상대가 없으리라. '협박을 배우려면 이런 욕을 써야 할줄이야......'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이미 배우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술까지 뇌물도 바쳤는데 그냥 물러나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지않았다. 아크는 해결사의 욕을 메모지에 받아적고 틈만나면 산에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게 아니야!좀더 독하게!좀 더 치사하게!감정의 밑바닥을 후벼파!정말 철천지원수철머!저놈 안 죽이면내가 죽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으윽.......아 살라비아 으라차차!" "좋아,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렇게 목이 갈라지고 쇳소리가 흘러나올떄였다.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협박 ( 초급,액티브) : 당신은 처음보는 사람도 철천지원수로 여길수 있을만큼 협박에 능숙해졌습니다. 떄로는 백 마디 말로 설득하기보다 한마디의 협박이 통할때도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협박을 할경우,공포에 면역이 없는 사람들은 용기와 사기가 반감됩니다.단, 협박과 도발은 한끗 차이입니다.실패할경우 몰매를맞을수도 있습니다. 마나 소모 : 30 < 성공시 NCP에대한 설득력이 50%가산됩니다. 몬스터는 50%확률로 사기가 저하되어 도망치거나, 2초간 경직됩니다. 단, 실패시 적대 수치가 50%상승합니다>] "배,배웠어요!" 아크가 쉬어 터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해결사는 대견하다는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허허허,이 어려운 기술을 불과 8시간 만에 습득하다니.의외로 재능이 있구나. 하지만 진정한 협박의 길은 지금부터다. 더 정신하도록해라"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도사처럼 휘적휘적 훈련소롤 향하는 것이었다. 아크는 그제야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휴, 힘들다. 스킬 하나 배울때마다 삭신이 쑤시는 구나" 빨래를 하느라 허리가 으스러지는것처럼 아프고, 욕을하느라 목이 찢어지는것 같다. 대신 그만큼 보람은있었다. 세탁이나 협박, 모두 초급이라 아직 능력치는 낮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꽤 쓸모가 있을것 같다. 그러나 아크는 잡다한 스킬을 하나라도 더 배워 두려는다른 이유가있었다. '뉴 월드에는 세트 스킬이 있다!' 여러스킬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세트 스킬! 검술과 격투술이합쳐져 검투술이, 마법복원과 간병이 합쳐져 정화 복원이 만들어졌다. 그런 세트 스킬은 일반 스킬보다 부가 효과가 훨씬 좋은것이다. 그러나 어떤 스킬이 어떻게 조합될지는 누구도 알수없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배워 둘 필요가 있었다. 뭐, 하나씩 늘어나는 스킬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 뒤로도 아크는 갱생단이나 도적들을 찾아다니며 스킬을 사냥했다. 그리고 세탁과 협박외에도 독특한 스킬을 몇개 배울수 있었다. 장비아이템의 약점으 공격해 내구력을 깎는'무기파괴'.단시간 이동속도를 200%상승시킬수있는'전력질주'. 검 성능을 일시적으로 올려주는 '칼날 정비'. 일정 시간 공포 따위의 면역력을 올려주는'배짱'. 당장 도움이 될것 같지는 않지만 익혀 두면 언젠가는 한번쯤 쓸만한 스킬들이었다. "후후후,친밀도가 최상까지 올라간 NPC들이 모여있는마을이라 잡다한 스킬을 배우기가 수비구나. 자, 이제 또 무슨스킬을 배워 볼까........." '배짱'까지 익힌 아크는 다시 훈련소로 향하다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가만, 그러고 보니 오늘이.......내단연성을시작한지 3일째!" 아크는 허겁지겁 오두막으로 돌아와 개인 금고를 열었다. 이제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냄비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분,3분,2분.........마침내 시간이 완료되자 냄비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모든 재료가 사라지더니 이내 작은 환약 하나가 나타났다. [숙성 과정이 종료되어 '슬라임의 내단'을 완성했습니다. 당신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비법으로 '몬스터의 내단'을 완성했습니다. 내단 연성은 뉴 월드에 숨겨진 비법 가운데 하나로, 몬스터의 정수에 담긴 힘을 극대화시켜 플에이어에게 적용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내단을 만드는 것은 서바이벌 요리사에게 가장 큰 영광이며, 연금학적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명성이 500상승했습니다. *지능이 20상승했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가 30상승했습니다. *'몬스터의 내단'정보가 갱신됐습니다. <현재 완성시킨 내단 : 1>] "드디어 완성했다!" 아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단을 들어올렸다. 소요 시간만 무려 23일. 거기에수백 골드에 달하는 아이템을 퍼부어 만들어 낸 내단이다. 그러나 아크는 내단을 보며 서글픈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 아이템을 만들어 놓고도 팔지를 못한다니......' 그렇다, 분명 내단은 엄청난효과가 있을것이다. 유니콘의 뿔리 대략 700골드.페어릴 날개가 300골드. 그외에도 상당한 아이템이 들어갔다. 대강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재료비만 1,500골드 상당.희소성까지 고려하면 2,000골드를 불러도 될만한 아이템! 그러나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먹어보지않고는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방법이 없다. 무지막지한 시간과 돈이 들었다고 해도 다른 유저가 보기에는 그저 환약. 효과도 알수 없는 환약을 수천골드는커녕 수십골드를 내고 살 사람도 없을것이다 '분하다. 이걸 그냥 먹어 치워야 하다니......!' 2,000만원!작은 산삼 한 뿌리를 살수 있는 돈이다. 1쿠퍼에도 벌벌떠는 아크가 그걸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려니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그러나 아크는 눈을 질끈 감고 슬라임의 내단을 삼켜버렸다. 동시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슬라임의 내단(내단등급 : B ,완성도 : A) 특수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슬라임의 힘이 깃든 내단. 복용자에게 고대 슬라임의 능력을 부여합니다. *완성도에 따른 추가 보너스 <모든 스탯+5,유연성+30,충격 흡수+20%,독 저항+50%>] [탄력도 스탯이 생성되었습니다. *탄력도(+20) : 탄력도는 둔기 계열에 대한 방어력을 상승시킵니다. 탄력도는 스탯 포인트 1당 둔기 공격 저항력을 0.1%상승시킵니다. 또한 스턴과 경직따위의 상태이상에 대한 저항력도 소폭 상승합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고 둔기에 많이 맞을수록 상승합니다.] [종족 스킬'슬라임의 시간'을 배웟습니다. 슬라임의 시간 : 하루에 한번, 두 가지 스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할수 있습니다. 어떤 스킬을 선택하든 두 가지 모두 24시간이 지난뒤 다시 사용할수 있습니다. 1. 몸을 슬라임처럼 완전한 연체로 바꿀수 있습니다. 슬라임화되면 10분간 물리 공격을 100%무효화시킵니다. 또한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낙하 데미지를 받지않습니다. 단, 마법에 취약해져 100%추가 데미지를 입고, 검까지 말랑말랑해져서 모든 공격력이 100%만큼 감소합니다. 2. 반경 50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슬라임을 호출할수 있습니다.모여든 슬라임은 10분간 플레이어를 도와줍니다. 단, 슬라임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적대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대,대박이다!'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생한 만큼 좋은 옵션이 붙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확인한 결과는 그야말로 기대 이상! 어느정도 능력치가 오를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새로운 스탯과 스킬이 생길줄은 짐작도 못했다. 아크에게 둔기는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기였다. 가죽 갑옷을 입은아크는 둔기에 추가 데미지가 적용되기 떄문이다. 그런데 둔기 계열 무기에 저항력을 올려주는탄력도 스탯이생겼다. 그뿐인가? 설명이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슬라임 종족 스킬까지 생겼다. 오직 관련 종족만이 배울수있는 종족 스킬은 비전서로도 배울수없다. '죽어라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완성도에 따른 추가 보너스도 기대 이상이었다. 모든 스탯 +5에 좀처럼 올라가지않는 유연성 스탯이 30!충격 흡수와 독저항이 각각 20%,50%.슬라임의 내단이라는말처럼 슬라임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것이다. "일단 능력치 확인을........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300 명성 : 3,075(+500) 레벨 : 159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나이트,대지의 간병인,작센의 영웅(원본에는 희생의 간병인으로 표기되있음) 생명력 : 2,625(+150) 마나 : 2,590 영력 : 100 힘 356(+28) 민첩 416(+35) 체력 486(+20) 지혜 55(+10) 지능 499 운 56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13 유연성 : 4 화술 : 46 애정 : 89(+10) 탄력도 : 2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속성 저항력 +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의 손(장갑) : 공격속도+10%,민첩 +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수왕>세트 효과 : 힘 +10,민첩 +10,체력 +10,방어력 +20 전사의 견장 (견갑) : 힘+3 개량형 노라드 부츠( 신발) : 이동속도+15%,회피율 +10% 화염의 베일(망토) :화염 저항력+50% 아드라인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5,마나 회복 속도+5% 심안(반지) : '심안'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 팔찌) : 생명력+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민첩, 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속에서 모든 능력이 40%증가합니다.(원본에는 30%로 표기되있음.)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2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원본에는 15분으로 표기되있음) *공포,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가 20%증가했습니다. *독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뭔가를 얻은 뒤에 정보창을 확인하는 일은 언제나즐겁다. 그러나잠시후 ,그 기분에 찬물이 끼얹어질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크가 대강 오두막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을때였다. 얼마전 자경대원으로 취직한 NPC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크형님, 댁에 계셨군요.밖에 계신줄 알고 한참을 찾았습니다" "나를? 왜요?" "마을입구에서 웬 이방인이 형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방인? 혹시 상인처럼 보이던가요?" "네, 상인입니다. 꼭 전해줄게 있다고 하더군요" '시드다!드디어 찾아온건가?' 한달동안 대체 얼마나 돈을 불려서 돌아왔을까? 아크는 기대감에 젖어 얼른 마을입구로 달려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처음보는 상인이었다. 말끔하게 생긴 상인이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 님이세요?" "네,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는 네인이라고 합니다. 얼마전에 시드라는분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받았어요.그런데 제가 급한 볼일이 생겨 좀 늦었네요" "시드님에게요?" 아크는 네인이 건네준 편지를 읽어보았다. 아크님,간수가 있어서 자세히는 적지못합니다. 어쨌든 억울한 사정이 있어서 지금 대성당 지하감옥에 갇히게 됐어요.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한것 같은데,제가 나갈방법이 없으니 빨리와주세요! 아크가 어리둥저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네인이 덧붙였다.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쨌든 상당히 심각한 사정이 생긴것만은 분명해요.보통 대성당 지하 감옥에 갇히면 적당한 보석금만으로 풀려날수 있는데, 어찌 된일인지 시드님은 보석금도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무슨 거개를 하다가 그렇데 된것 같은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소리야?' 설마 전 재산을 투자한장사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인가? "시드님을 만나면 사례금 잊지말라고 전해주세요" 네인은 그 말을 끝으로 마을을떠났다. 그러나 아크는 네인의 말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당장 셀리브리드로 날아가고 싶은생각뿐이었다. 아크는 곧바로 훈련소로 달려가 로코를 찾았다. "로코, 급한일이 생겨 셀리브리드로 가 봐야겠어.당장 유니콘을 좀 불러줘!" "네? 갑자기 무슨 일인데 그래요?" "아무래도 시드에게 뭔가 큰일이 생긴것 같아" "뭐? 시드에게?" 정의남과 갱생단도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그들 역시 전 재산을 시드에게 맡겨 놓은 것이다. 물론 그들은 아크와 입장이 다르다. 현실에서 가난뱅이인 아크와 달리 제법 돈이 있는 살마들이다.초반에는 그런 풍부한 자금으로 장비를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돈질을 하면 제대로 교육이 되지않는다'라는정의남의 말에 현질이 금지되어 시드에게 맡겨놓은 돈이 뉴 월드의 전재산이었다. "대,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아직 잘 모르겠어요.일단 제가 가서 자세한 사정을 알아봐야 할것 같아요.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하지만 유니콘은 오빠를태워주지 않을텐데......"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일단 불러봐" 로코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유니콘을 불러냈다. 역시나, 로코가 부탁해도 유니콘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여자만 밝히는 싸가지 없는 말새끼가 남의 사정을 봐줄리가 없다. "비켜봐" 아크가 로코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아크는 유니콘을 노려보며 요리하나를 꺼내 우적우적 씹어댔다. 목소리가 커지는 요리, 그 요리가 협박스킬에 영향을 준다는것은 이미 해결사를 통해 파악했다. 뒤이어 아크느 마치 잡아먹을듯이 유니콘을 노려보며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협박을 했다. "이 빌어머을 말새끼.지금까지는 오냐오냐했지만 이번에는 그냥 안 넘어간다. 계속 뻗대면 산채로 가죽을 홀랑벗겨 훈제를만들어주마.아니,아예 삐-ㅡㄹ 삐-하게 만들어줄까? 아니면 삐-를 삐-로 만들어줄까? 내가 못할것 같으냐?" 무지막지한 욕설에 유니콘은 물론, 로코나 갱생단까지 허옇게 질려버렸다. 안하면 안했지. 일단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마는 아크.일단 협박 스킬을 익히자 그 살벌한 욕설과 포스가 해결사를웃돌정도였다. 아니, 그건 협박이 아니었다. 5,500골드가 걸려있다. 돈에 목숨을 건 아크의 눈에 뵈는게 있을리가 없다. 뿔이고 나발이고 정말 가죽을 벗길 기세였다. 아크의 돈에 대한 집착에 한순간 협박 스킬이 최대의 위력을발휘한것이다. "유,유니콘,오,오빠가 저렇게까지 부탁......하니 특별히 허락해주는게......?" "히,히히힝" 유니콘이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콘은 몬스터다. 그러나 로코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NPC가 되었다. 덕분에 설득력을 50%올려주는 협박스킬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역시 스킬은 배우고 볼일이다. 그러나 협박이 성공해도 엄연한 소유주가 있는 NPC를 아크 혼자 탈수는 없었다. 결국 아크는 로코와 함꼐 유니콘을 타고 셀리브리드로 달려갔다. 해결사가 대견한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훗,더 이상 가르치게 없군" "네놈이냐?" 그떄였다. 바로 뒤에서 두툼한 손이 해결사의 어꺠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의남이 시뻘건 얼굴로 노려보고있었다. "네놈이 아크에게 저런 쌍스러운 욕을 가르쳤냐?" "헉,그,그게.......아크가 가르쳐 달라고 하도졸라서......" "가르쳐 달란다고 가르쳐줬다 이거지?" 정의남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협박가 스킬 따위는 비교도 되지않는 살별한 눈빛이었다. ACT 5 전쟁이다! "휴,오빠 ,저는 이제 나가 봐야 해요.아르바이트에 늦었어요" "그래 ,알았어.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나가봐" 란셀에서 셀리브리드까지는 일직선으로 이동해도 나흘은 걸린다. 현실시간으로 따져도 꼬박 32시간. 그러나 유니콘 덕분에 이동속도가 1,000%나 올라간 상태.더구나 몬스터의 공격도 무시할수 있었다. 그뿐인가? 조금이라도 속도가 떨어지면 아크가 곧바로 협박을해대는 통에 유니콘은 벼락 맞은 멧돼지처럼 내달렸다. 덕분에 아크는 불과 3시간만에 셀리브리드에 도착했다. "푸르륵,푸륵,푸르르륵!" 로코가 접속을 끊자 유니콘은 아크를 노려보다가 환계로 돌아갔다. 뿔을 얻기 위해 간시히 올려놨던 친밀도가 바닥까지 내려가 버린게 느껴졋다. 그러나 그런 말 새끼의 기분 따위를 신경 쓸떄가 아니다. 아크는 곧바로 대성당을 찾아갔다. "멈춰라, 무슨 용건이냐?" 지하 감옥으로 향하자 2명의 경비병이 앞을 가로막았다. "지하 감옥에 갇히 사람과 잠깐 면회를 하고싶습니다" "면회? 누구와 말인가?" "시드라고.......이곳에 갇혀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시드라..........." 경비병은 장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죄질이 매우 나쁜놈이군.이 녀석은 주교님의 특별지시로 보석은 물론, 면회도 금지되어 있다. 돌아가라" '정말 뭔가 심각하기는 한 모양이구나!' 경비벼의 말에 아크는 더욱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뉴 월드도 어찌됬든 게임.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NPC가 유저를 며칠씩이나 가둬 두지는않는다. 감옥에 갇히면 당연히 그동안 게임을 못하기 떄문이다. 그런데 며칠을 가두는것도 모자라 보석과 면회까지 금지라니? 아무리 NPC에게도 자유성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물론 시스템상 언젠가는 풀려나겠지만 마냥 손 놓고 기다릴수는 없다. '대체 무슨 짓을한거야?' "사정을 봐주십시오. 잠깐이면 됩니다" 아크가 2실버를 찔러주며 사정 조로 말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수작이냐 ?게다가 고작 2실버? 장난하냐?" '젠장, 역시 액수가 너무 적었나?' 5,500골드가 날아가느냐 마느냐의 순간에2실버..........그렇게 급한 상황에서도 일단 최저 금액으로 시도해 보는것을 잊지않았다. 그러나 2실버로는 턱도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경비병에게 다짜고짜 협박스킬을 쓸수도없다. 그런 스킬이 경비병에게 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실패하면 정말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되리라. '하지만 오두막 증축 자금에 투자하느라 전 재산은 5골드도 안남았잖아'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물러났다. 그리고 어둑한 골목에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니 5골드도 안되는 뇌물이 통할것 같지않아.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데......몰래 감옥에 들어가는 방법이라면 역시 '은신'밖에 없어. 하지만......' 마을안에서'은신'을 사용하다가 NPC에게 걸리면 [거짓말]주문서를 사용하다가 들켰을때와 동등한 패널티가 작용한다. 일정시간 카오틱이 되고 친밀도가 대폭 내려간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런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은신'을 사용해도 경비병들이 저렇게 문을 막아서고 있으면 100%들킬거야' 그게 문제였다. 경비병들이 문을 완전히 막고 있어서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한 공간도 없었다. 당연히 '은신'을 사용해도 접촉이 생기면 100%발각. '경비병을 문에서 떨어트려 놓을 방법이 없을까?' 아크는 끙끙 대며 고민하다가 이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으악!"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돌연 비명이 울렸다. 무료한 표정으로 서있던 경비병들이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골목에서 한 소년이 피를 철철 흘리며 달려나왔다. "사,살려주세요!" "무슨 일이냐? 이피는 대체 뭐고?" "악마가, 악마가 쫓아와요!" "악마?" 경비병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소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소년이 뛰어나온 골목에서 뭔가가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앙상한 뼈만 남아 몸에 방패와 검을 들고 있는 몬스터!스켈레톤이었다. 그러나 스켈레톤은 경비병을 확인하고는 움찔하며 재빨리 골목으로 도망쳤다. "헉, 어,어떻게 셀리브리드에 스켈레톤이......?" "악랄하고 치사하고 사람 잘패는 소환사가 불러낸 악마에요!" "소환사?" "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끌고 가려고 하잖아요.제가 너무 예쁘게 생겨서 유괴하려고 한게 분명해요.하지만 저는 똑독해서 바로 알아채고 도망쳤죠.그러자 저런 악마를 소환해서 저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예뻐? 똑똑해?" 소년의 말에 경비병들이 괴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년이 와락 소리를 지르며 경비병들을 흔들어댔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아, 그렇지.감히 셀리브리드에서 유괴와 살인을 하려고하다니.......!" "당장 저 스켈레톤과 소환사를 잡아야 하네" "하지만 여기를 비워둘수는 없지 않나?" "으악, 아저씨들 바보에요? 스켈레톤이 도망갔으니 소환사도 곧 도망칠 거라고요!" 소년이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소리쳤다. "하긴 그렇군. 소환사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네, 방금전까지 저 골목 안쪽에 있었어요" "다행히 멀리 있지는 않군. 알았다 .앞장서거라!" 정의감이 넘쳐흐르는 경비병들이 창을 곧추세우고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후, 뭔가 흐릿한 형체가 그들이 막고 있던 문으로 스며들어갔다. '데드릭 녀석, 뭐? 악랄하고 치사하고 사람 잘패?' 감옥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다. 당연히 소년은 데드릭, 스켈레톤은 데이모스였다. 경비병들을 문에서 뗴어놓기 위해 한바탕 연극을 벌인것이다. 물론 데이모스는 일찌감치 유계로 돌려보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데드릭이야.......워낙 영악하니 알아서 잘 마무리를 하리라. '소환수를 이런식으로도 써먹을수 있군. 종종 활용해야 겠어' 그러나 감옥에 들어섰다고 다 끝난건 아니었다. 감옥에는 간수들이 있으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아크는 '은신'상태를 유지하며 지하 감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번이나 간수의 순찰을 피하며 감옥을 돌아다닐무렵,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감옥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호비트,시드였다. 아크는 살금살금 다가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시드 님, 시드 님" 몇번을 부른 뒤에야 시드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시드는 퉁퉁 부은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더니 이내 한숨을 불어내며다시 고개를 숙였다. '은신'상태인 아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시드님, 저에요.아크" "아, 아크? 아크 님?" 시드가 와락 창살로 다가왔다. "지금 '은신'을 쓰고 있는거에요.목소리를 낮춰요"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때, 근처를 순찰하던 간수가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썼다. 그러나 얼른 창살에서 떨어지며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고개를젓자 흥, 하며 모퉁이를 돌아갔다. 시드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며 다시 창살로 다가왔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흑.........아크님, 와주셨군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5,500골드가 걸렸는데 너라면 안오겠냐? 아크는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하고 싶은 욕을 다하자면 3박 4일이 있어도 부족하다.그러나 시간이 없었다.현재'은신'의 지속시간은 20분.이미 5분이 지났으니 나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10분도 빠듯하다. "시간이 없으니 요점만 말하죠.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소,속았어요" "속다니요? 대체 누구에게 말입니까?" 시드는 한숨처럼 그간의 사정을털어놓았다. 나가란에서 국경 지대로 옮겨 가야 했던 사정. 그곳에서 카오틱 주문서와 대항 주문서를 팔아 막대한 돈을 벌었던 일 등등............ "정말 분위기가 좋았어요.잘되면 자본금을 2배로 뻥튀기 할수 있다고 생각했죠"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라도 그런 식으로 장사를 했으리라. 주문서와 포션같은 소모품을 물물 교환하는 수법도 나쁘지않았다. 은근슬쩍 가격을 더 올릴수도 있고, 그렇게 한번 더 자금을 회전시키면 이윤은 더 커지는게 상식이다 거기까지는 시드에게 판매를 전담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드의 이어지는 말을듣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국경 지대에서 주문서를 소모품으로 바꿔 나가란으로 갔어요.거기서 운 좋게 꽤 큰 길드의 리더를 맡고 있는 유저를 만났죠. 그리고 나가란 외곽의 한 주둔지로 필요한 물자를 배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그 짐을 몽땅 싸들고 나가란으로 들어갔다고요?" 아크의 목소리가 싸늘해지자 시드가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변명했다. "어,어차피 나가란 안에서는 주문서를 쓸수 없어요.용병 NPC도 고용해서 외곽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어요.또 그 전사도 호위를 해주겠다고 했고요" "..........그래서요?" "처음 몇 번 거래할때는 괜찮았어요.그런데 세번째 거래할떄, 그 길드가 급히 주둔지를 옮겨야 한다고 했어요.그러니 저에게 필요한 자재를 조달해 달라고 부탁했죠.급한 일이라 가능한 빨리해달라고, 대신 가격을 더 쳐주겠다는 조건으로 말이에요" "...........그래서요?" 이미 결말이 뻔히 보이지만 아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었다. "그런데 자재를 들고 다시 나가란에 들어섰을때, 복면강도들이 나타났어요.엄청난 고레벨에 숫자도 많아서......용병 NPC들은 순식간에 죽고........." "아이템을 떨군건가요?" "아니요. 아이템을 떨구지는 않았어요 .나가란은 PK자유 구역이지만 대신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굉장히 낮거든요.1%도 안도리거에요.하지만 셀리브리드에서 부활해 다시 찾아가니 또 놈들이 막고 있었어요.결국 놈들때문에 납기일을 어기게 됐고, 계약서 위반으로 담보로 설정해 놨던 돈이........" "얼마입니까?" "3,000골드..........." 순간 아크의 뒤통수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3,000골드!3,000만원!58%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중의 1,740골드가 아크의 몫이다. 지금 이 빌어먹을 호비트가 1,740만원을 ,김밥 8,700줄을 날렸다고 지껄여 대는것이다. 경악, 허탈, 실의, 각양각색의 감정을 지나 살의가뭉클뭉클 피어올랐다. 감옥이고 뭐고 당장 뜯고 들어가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철창이 막고 있는 게 원통할뿐이다. 아크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시드는 얼른 말을 이었다. "하,하지만 원금은 500골드밖에 손해보지 않았어요" "'500골드밖에'라고요? 그게 말입니까, 똥입니까? 장사 꾼맞아요? 원금이 뭐 따로 있는줄 알아요? 마지막에 내 손에 들어와있는 돈이 원금이에요.시드 님은 원금을 3,000골드 날린거라고요!" 아크의 말에 시드의 얼굴이 헬쑥해졌다. "대체 뭐야? 왜 혼자서 소리를 질러대고 지랄이야? 미친거냐?" 그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수가 다시 근처를 지나며 짜증을 부렸다. 아크와 시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시드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만약 아크가'은신'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시드는 심장마비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악귀!지금 시드를 노려보는 아크의 얼굴은 그야말로 악귀의 형상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정말 패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니, 패버리는것만으로는 성에 차지안는다. 3,000골드다. 그게 패는것만으로 용서가 될리가 없지않은가. 정말 해결사를 동원해서라도 시드에게 긁어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단 시드를 감옥에서 빼냐야 한다. "........일단 사정은 알겠어요.그런데 대체 감옥에는 왜 들어와 있는거에요? 아직 원금이 남았다니 계약 위반금을 물지 못해서도 아닌것 같고,또 네인이라는 사람 말을 들어보니 보석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던데........" "그거게요!" 시드가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치며 울분을 토했다. "저는 처음부터 속았던 거라고요!" "속아요?" "네, 실은 나가란에서 강도를 당했을떄, 우연히 한 유저의 감옷에 새겨진 문장을 봤어요.망토로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히 봤어요. 저와 거래하던 길드 주둔지를 들락거리던 길드의 문장이었어요" 시드의 설명에 아크의 머릿속에 모든 상황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놈들은 처음부터 시드를 노렸다. 돈깨나 있는것 같은 상인.반면 순진하기 짝이 없으니 잘만 구슬리면 금세 넘어올거라 판단했으리라. 그리고 몇번의 거래로 믿음을 준뒤에 큰 담보설정이 된 계약서를 쓰게 만들고 뒤통수를 친것이다. 처음부터 담보를 노린 사기극! 시드는 이를 박박 갈아붙이며 말을 이었다. "이건 명백한사기에요.하지만 그걸 판단하는건 상인길드 소관이 아니라고 하잖아요.왕성과 대성당에찾아가 탄원해 봤지만 마찬가지였어요" 하긴 자초지종이 어쨌든 계약을 못지킨건 분명한사실이다. 반면 강도들이 계약 당사자와 관계있는 길드의 일원이라는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경찰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시드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크 님에게 죽는다!' 그렇게 판단한 시드는 창피함도 무릅쓰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밤낮으로 왕성과 대성당을 돌며 고위 NPC만 보이면 달려가 억울함을호소했다. 그 길드와 리더에 대한 공정한 조사와 처벌을촉구하면서........그렇게 며칠, 그날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줄줄이 써놓은 푯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경비병들에게 잡혀 지하 감옥에 갇혀 버린것이다. "흑흑흑, 그 '여명의 칼날'리더가 명예훼손으로 저를 고발했대요.말도 안된다고, 사정을 설명했지만 소용없었어요.그 리더는 그사이에 영주가 되었데요.그래서 무슨 권한인가가 생겼다나? 흑흑흑, 힘이 없는 사람은 게임에서도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건가요? 억울해 미치겠어요.하지만 아무도 내 말은 들어 주지도 않고......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크님에게 도움을 요청한거에요" "잠깐, 뭐라고요?" 아크가 움찌랗며 철창에 바짝 다가갔다. "여명의 칼날?그럼 그 길드 리더라는 사람이.......?" "홀리 나이트 아란이라는 사람이에요.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이름이 알려진 유저더라고요.TV에도 나왔대요. 그래서 나도 안심했던 건데.......있는 놈이 더한다더니........그렇게 돈도 많은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등쳐 먹을줄은 정말........" 아크는 시드의 말을 들으면 내내 이상하게 생각되던 부분이 있었다. 길드를 조직하려면 상당한 돈이 든다. 잘은 몰라도 3,000골드 이상은 들어가리라. 그리고 길드의 생명은 평판, 자칫 사기극이 들통 나면 길드 자체가 공중분해 될 위험도 있었다. 그런데 나가란까지 진출한 대형길드가 그런 사기극을 벌였다. 왜? 그러나 그 의문은 시드의 다음 대답으로 짐작할수있었다. "혹시 시드님이 가진 돈이 투자금이라는말도 했나요?" "네, 그런데요?" 아크의 얼굴이딱딱하게 굳었다.이제야 이번 사건의 마지막 의문이 해결되었다. 시드는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하지않아서 아크와 아란의 관계를 모른다. 반면 아란은? 물론 시드와 나의 관계를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 안델이 있었다면? 안델은 이미 카이로트에서 시드의 얼굴을 기억한것이다. 그렇다.처음부터 아란이 노렸던 것은 시드나 돈이 아니다. 아크다! '개자식......대체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아크는 이를갈아붙이며 일어났다. "알았어요.내가 좀더 알아볼테니 일단 기다려봐요" "아, 아크님. 저 나갈수 있는거죠?" "나와야죠.몸으로라도3,000골드를 갚아야하니까" 싸늘한 목소리에 시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억울함에 정신이 팔려서 깜빡하고 있었다. 돈에 대한 아크의 무시무시한 집착! 이 불쌍한 호비트의 진정한 고난은 감옥을 나간 뒤부터 시작되리라. 결국 시드는 늑대 입에서 빠져나와도 호랑이 입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 게임 생生은 대체..........' 시드는 암담한 미래에 눈물만 나오는것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같은 수법으로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시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해야할일은 명확했다. 아란은 홀리나이트다. 수인족이 다크워커인 아크를 지지하는것처럼 ,당연히 아란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대성당에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을터.아무리 영주라는 지위를 손에 넣었다지만 명예훼손이라는 애매한 죄목으로 시드를 가둬놓고, 보석신청조차 안받아들이는건 지나치다. 게다가 왕성도 아닌 대성당에......분명 대성당과 아란은 아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밀접한 관계를맺고 있을것이다. '아란.....역시 그냥 놔둬 주지는 못하겠다는 거냐?" 안델이 암살자를 끌고 나타났을때부터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찌질하게 PK나 하고 있던 안델이 혼자서 다크브라더와 접촉해 암살자를 고용했을리가없다. 틀림없이 배후가 있다 .그리고 안델의 배후로 떠오르는 사람은 아란밖에 없다. '안델 따위는 신경 쓸필요도 없어. 아란이 직접 나선 이상 내 상대는 아란이야' 현재 아란의 발언권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는건, 시르바나 영지를 차지하고 있기 떄문이다. 다시 말해 시드를 구출해 나머지 5,000골드라도 되찾기 위해서는 일단 아란을 박살내 영주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사기극에 대한 증거까지 찾아낼수 있다면 담보로 빼앗긴 3,000골드를 되찾을방법도 있으리라. 결국 한번은 아란과 결판을 내야한다. 확실하게 밟든, 확실하게 밟히든, 결판을 내놓지않으면 몇번이고 같은 일이 생기리라. 그리고 기왕 치러야 할 싸움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 '아란, 내가 말했을거다. 상대를 잘못건드렸다고' 아크의 눈에서 불길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달려들일이 아니야.아란에게는 세력이 있다.아란과 정면 대결을 하면서'여명의 칼날'길드와 대성당을 간과 할수는 없어. 더구나 지금 아란은 성까지 차지하고 있으니.........어줍잖은 게릴라전으로는 승산이 없어. 결국 정면 대결을 피할수 없다. 그만한 준비를 해야해.나가란에 대한 정보와 병력을 모아야한다' 아란은 뉴 월드에서 고위 NPC와 친분을 쌓고 많은 유저까지 거느렸다. 그러나 아크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건 아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모든걸 동원한다. 그래,이건 전쟁이다!' 아라넹게 뺴앗긴 3,000골드와 시드의 5,000골드. 8,000골드가 걸려있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아야 한는돈. 이것저것 따질때가 아니었다. 각오를 굳힌 아크는 곧바로 유니트 밖으로 나왔다. "뭐야? 아란 자식이?" 권화랑이 이를 갈아붙이며 고함을내질렀다. 유니트를 나온 현우가 곧바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아려준것이다.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정의를 부르짖는 정의남이기에 그의 분노는 엄청났다. "그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아란이 시드를노린 이유는 말할필요도없어요" "그렇겠지" 권화랑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대답했다. "시드가 우리 돈을 관리한다는걸 알고 그런 짓을벌였다면 놈의 속셈은뻔하지. 우리하고 죽을때까지 한번 떠보자는거야. 그래, 너는 어떻게 대처할 생각이냐?" "가서 잘 타일러 볼까요?" "장난하냐?" "그런 방법은 하나뿐이죠.전쟁!" "그렇게 나와야 아크지" 권화랑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러나 수화기 속에서 현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에요.얼마전에 TV에서 아란이 잠깐 나온적이 잇었어요.놈이 길드장으로 있는 '여명의 칼날'이라는길드는 성을 차지했어요.당연히 길드원의 숫자나 레벨도 상당한 수준이겠죠.뭐,그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문제는 돈이에요.나가란에서 전쟁을 치른다면 각종 소모품도 상당히 많이 필요할거에요" "전쟁이라는게 원래 소모전이지" 전쟁이 소모전이란건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뉴 월드 역시 그런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백명이 모여서 전투를 치른다. 당연히 그에 필요한 소모품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포션을 물처럼 마셔대는 상대와 포션 하나 없이 싸울수는 없는노릇. 각종 포션 값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리라. 어떤 의미에서는 레벨이나 장비아이템보다 자금이 더 중요하다. 1대1이라면 모를까, 전쟁은 결국 경제력이더 튼튼한 쪽이 이기기 마련이다. 아란이 다른길드를 제치고 성을 차지한 힘도 바로 풍부한 자금력이었으리라. 그런 아란을 상대로 싸우려면 얼마를 동원해야 할지 모른다. 아무리 아크라도 그부분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뒤에서 불끈이가 버럭 소리쳤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너는 신경쓰지마!" "그 자식, 감히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려? 재활 훈련삼아 하는 게임이라 가능한 현질따위는하지않으려고 했는데.....이건 자존심의 문제야.돈? 하, 그놈만 돈 있냐?형님, 일전에 더이상 현질 안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번에는 예외입니다" 짝퉁도 인상을 쓰며 정의남을 바라보았다. ".......할수없지.이번은 실제 게임하곤 관련이 없는, 단순한 응징이니까" :좋아.형님 허락이 떨어졌다. 야, 너희들 내일까지 현찰 좀 준비해와 .어디 돈질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지" "알았어. 천만원이면되냐?" 갱생단은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새파란 어린것이 그들의 뒤통수를 때려 버린것이다. 덕분에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린 갱생단은 눈에 뵈는게 없었다. 여차하면 집문서라도 들고 올기세였다. "됐다. 자금은 확보될것 같다. 그런데병력은.....도적들이라면 끌고갈수 있겠지만, 아란의 길드라면 레벨이 꽤 높을거 아니냐? 그냥 레벨낮은 녀석들로 머릿수만 채울수도 없고........그럭저럭 레벨이 높은 도적은30명밖에 안돼" "그건 제게 생각이 있어요" 현우는 이미 구상해 놓은방법을 대략 설명해주었다. "흐음, 잘될지 모르겠구나" "내 예상대로라면 잘될거에요.저는 일단 그곳으로 가볼테니까 란셀 마을쪽은 아저씨가 맡아주세요" "알았다. 건투를 비마" 다음날, 경매사이트에는 한차례 폭풍이 몰아쳤다. 갑자기 아이디도 없이 손님으로 접속한 10명의 유저들이 각종 아이템을 사재기하기 시작한것이다. 레벨 100대에 쓸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 그리고 각종 소모아이템을 미친듯이사들였다. 덕분에 물가가 미친년 널뛰듯 올라가 200만원에 거래되던 물건이 단숨에 400만원까지 올라가는사태가 벌어졌다. 하루에도 수만명이 접속하는 경매 사이트. 그곳의 시세를 고작 10명이 불과 몇시간만에 폭등시켜 버린것이다.그들은 그만큼시세도 모르고 무작정 돈질을 해댔다. 그리고 특별한 유니크가 아니면 어느정도 체계적인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던 참이라 그 여파가 더욱 크게 번진 것이다. "대체 뭐야,이사람들은?" "시세도 모르나? 무턱대고 돈질이네?" "젠장, 다른 아이템까지 갑자기 가격이 폭등하잖아!" "윽, 저건 내가 찍엇던 아이템인데....." 경매사이트에 접속해있던 유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런 현찰 폭풍은 불과 몇 시간만에 끝났다. 갑자기 나타나서 수십종류의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사라진 일당. 폭풍이 몰아친 경매 사이에 남은것은 쓸데없이 거품만 잔뜩 껴 폭등한 시세뿐이었다.이게 웬떡이냐 싶은 유저들이 너도나도 가격을 올려 버린탓이다.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아서 다시 시세가 원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며칠이 걸리정도였다. "대체 뭐였지. 그사람들은?" "공선전이야!" "맞아, 분명 나가란에서 공성전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일거야" "하지만 공성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레벨 100대의 아이템을 사?" "........하긴,거기는 최소 130은 돼야 할텐데?" "대체 정체가 뭐냐고......." 결국 누구도 그들의 정체를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경매 사이트에서 이 사건은 3시간의 황금기로 전설이 됐다가 뭐라나........... "크흐흐흐,역시 현질이 좋긴 좋군" 짝퉁이 새로 맞춘 장비를 걸치며히죽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즉에돈을 써서라도 장비를맞추고 싶었다. 그만큼 이제 그들도 뉴 월드에 깊이 빠져든것이다. 그러나'필요한것은 직접 구한다'가 철칙인 정의남이 금지령을 내려 마음만 굴뚝같았을 뿐이다. 또한 보수적인 로코 역시 결사반대를 외쳤다. "현질은 도박보다 무섭다고요.한번 쓰기 시작하면 못끊는대요" 그러나 이번사건으로 정의남과 로코까지 눈이 뒤집혔다. 그들이 날린 골드가 문제가 아니다.울화통이 터지는건 아크가 날린돈! 그리고 그들은 아크가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는지 누구보다 잘알고 있는것이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아란 따위가 감히 박소미 여사의 병원비를.....!" "아크 오빠가 배곯아가며 모은돈을.......!" "정의의 철퇴로 그런놈의 해골을 박살내는 거야말로 정의다!비록 현질만큼은 절대 하지않는게 내 신조였지만.........박소미 여사의 입원비.......빌어먹을 ,아크 녀석은 내 돈은 받지도 않는단 말이야!으드득,이번만은 예외다. 단한번, 딱 3시간만 허락하마" 그들에게 아란은 남의 병원비를 갈취하는 천하의 죽일놈이었다. "이건 박소미 여사를 위한 ........아니 ,정의를 위한 성전이다.!수단을 가릴것없어!" "네,장래 시어머니를 위한......아니, 정의를 위한성전이에요!" 갱생단이 이런 기회를놓칠리가없었다. 곧바로 현찰을 싸들고 경매 사이트로 직행! "시간이 없다. 형님 마음이 변하기 전에 필요한거 다사들여!" "우하하하,이거 장난이 아닌데? 완전 명품관에 쇼핑 온기분이다" "야야,포션도 눈에 보이는대로 사들여" "좋지.이건 어디까지나 정의와 동생을 위한 일이니까 거릴께 없어!" "물론이지. 이건 성전이라잖아!근데 성전이 뭐냐?" "이런 무식한놈, 성性.즉,형님의 결혼이 걸려있다는 말이잖아" "오오오,그러면 물불 가릴것 없지" "하? 여기에 50만원 올려놓은게 어떤 놈이야? 시간도 없으니 100만원 지른다!" 그렇게 갱생단은 눈이 뒤집혀3시간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덕분에 갱생단은 그동안 염원하던 최고급 장비로 도배할수 있었다. 당연히 쏟아부은 돈과 비례해 공격력 방어력,각종 능력치도 대폭 올라갔다. 장비 빨만으로 20~30레벨 이상의 유저를가볍게 뭉개버릴정도!아란의 도발은 엉뚱하게 갱생단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결과를 가져온것이다. "좋아, 필요한 물자를갖췄으니 이제 병력을 모으자!" 정의남은 곧바로 훈련소 도적들을 소집시켰다. 숫자는 무려 300!그러나 이들을 모두 데리고 갈수는없다.도적들도 그동안 꾸준히 훈련과 사냥을 해와서 제법 레벨이 높아졌다.그러나 아직 다크브라더의 눈길도 신경쓰이고, 그리고 아직 레벨이 낮은 도적들을 데리고 가봐야 포션만 낭비할 뿐이다. 정의남은 왕눈이를비롯해서 최상레벨의도적 30명을 엄선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전재에 참가하도록 하느냐...... "아크 오빠가 위기에빠졌어요.도와줘요!" 그 한마디로 상황이 해결되었다. "우리를 위해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아크 형님이!" "오오오,이제야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다!" "가자!" 그렇게 일단 30명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안된다. 대규모 전투, 혹은 공성전이 될지도 모른다. 숫자도 숫자지만 적절한병력 구성을 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이미 대략적인 병력 구성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정의남 역시 수긍했다. 정의남은 란셀로 내려가 사정을 털어놓았다. "아크가 위기에 빠졌다고?" 핫산이 수염을 빳빳하게 세우며 배를 팡팡쳤다. "묘족은 한번 받은 은혜를 결코 잊지않네. 하물며 우리의 친구인 구도자가 위기에 처했다면 당연히 달려가서 도와야지. 좋아, 마을도 지켜야 하니까 전부는 곤란하지만 묘족 전사 10명을 붙여주겠네.어설픈 용병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거야" "우리도 돕겠소" 너구리족 대표도 나섰다. "아크는 우리 일족의은인이오.이그드라실까지 이곳에 심어줬으니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싶고.비록 이렇다 할 재주는없지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소" 비록 전투 능력이 딸리는 장인 NPC지만, 일단 레벨이 100은 넘는다. 또한 각종 기술이 있으니 활용하기에따라서 전사보다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모두 고맙소!" 정의남은 레벨이 높은 묘족과 너구리족 10명을 선별해 부대로받아들였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도적들과 묘족 전사. 너구리족은 활용하기에 따라서 일반 NPC용병보다 낫다. 친밀도도 높으니 명령에도 잘따를거야. 하지만이들은 아직 집단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 유저길드를 상대로 싸우려면 전략에 익숙한 병력이 필요해!' 정의남은 걱정스런 눈빛으로 한숨을불어냈다. '아크가 잘해내야 할텐데........' 그무렵, 아크는 있는돈을 탁탁털어 마차를 빌려타고 작센 영지에 도착했다. "아크 ,이게 얼마만인가!" 소년영주가 벌떡 일어나 반갑게 아크를 맞이했다. "어쩐일인가, 연락도 없이 불쑥?" "영주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아크는 깊은 한숨을 불어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정을 모두 들은 소년영주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한숨을 불어냈다. "힘든 일을 겪었군. 그래서 나를찾아온 용건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영주님께서 그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도록 힘을 써달라는것입니다" "대성당이 관련됐다면 장담할수는 없지만, 노력해보겠네. 두번째는?" 아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병사를........빌려 주실수 없겠습니까?" "역시 그건가?" 소년 영주는 이미 에상했다는듯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은 잘 알겠네.아란 경이라.......그래, 그라면 대성당이 나서서 비호할만한 명성을 가지고있지. 하지만 세상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보다 자네의 말을믿네. 자네는그만한 믿음을 내게 주었어. 그리고 몯든게 자네 말대로라면 아란의 죄를밝혀내 벌을 받게 해양 마땅하지.하지만......." "대성당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물론 그 부분도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 소년 영주는 고개를돌려 아크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아크 ,나는 자네를 특별하게 생각하네" "알고잇습니다" "자네를 돕고 싶네. 이건 진심이야. 또한 자네와 함께했던 병사들의마음도 그럴거네. 대성당과 문제가 생기더라도 말이야.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왕가에 대항할수는없네" "나가란의 규칙 말이군요" "그래 ,나가란은 삼국.어느곳의 병사도 출입하지못하도록 되어있네. 만약 그 규칙을 어긴다면 슈덴베르크 왕가에반기를 드는것이고, 나아가 브리스타니아가 시니어스에 선전포고를 하는것이나 다름없네. 한낱영주에 불과한 내가 어쩔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렇군요" 아크 역시 셀리브리드에서 나가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가 그런 내용을 알게되었다. 그래도 달려온건 혹시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서 였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현실의 중세 시대와똑같은 법률이 적용되는 뉴 월드.영주가 한낱이방인을 위해 국법을 어길수는 없는것이다. "미안하네" 아크는 억지를쓴다고 될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할수 없지. 이렇게 되면 조금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도적들로 머릿수를 채우는 수밖에' "대신 그 사건에 대해서 최대한 알아보겠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아크가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켯을때였다 소년 영주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아크, 이 사건을 정말아란경이 배후에서조작했다고 확신하는가?" ".......네" "알겠네.그만 나가보게.아!그리고 그런 문제를가지고 온 자네를 환대할순 없네. 남들의 눈도 있으니 미안하지만 나갈때는 뒷문으로 나가주게" 아크는 소년 영주의 냉정한 말투가 은근히 섭섭했다. 그러나 뒷문으로 나서려는 찰나,곧 소년 영주의 태도를이해할수 있었다. "아크!" "크로스경?" 아크는 놀란 눈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경비대장 크로스와 경비병 4명 그리고 실피드 기사단원 15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아크를 에워싸고 섭섭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아, 여기까지 와서 우리도 보지않고 그냥 갈 참이었나?" "죄송합니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우리도 함께 가세" "네?" "하아, 정말 이게 웬 날벼락인지.......실은방금 전에 영주님께서 우리를 모두 해임시켜 버렸다네.덕분에 모두 실업자 신세지.뭐,조만간 복직을 시켜주신다고는 했지만 당장 먹고살길이 암담해서 말이네.웬만하면 우리를 좀 고용해 주지않겠나? 보수는 많이 달라고 하지않을 테니 말이야" 크로스와 병사들은 등 뒤로 짊어진 배낭을 툭툭 치며 빙긋 웃었다. '해임?' 아크는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뒷문에서 올려다보이는 2층 발코니에서 소년 영주가 아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다정한 얼굴. 소년 영주는 아무말도 하지 말라는듯, 손가락을 흔들더니 빙긋 웃어보엿다. 확실히 말은 필요하지않았다. 그 핼ㅇ동이 수많은 설명을대변해주었으니까.크로스가 의뭉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주님의 전언이네.나는 자네를 작센의 영웅이라고 불렀네.그리고 영웅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하지.뭐,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 우리는 전혀 모르겠지만" 작센의 영웅,아크조차 잊고있던 칭호! 그러나 소년 영주는 기억해주었다. '그래, 지금까지 내 선택은 틀리지않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아크는 유저보다 NPC를 더 신뢰했다. 한번 믿음을 주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그 때문에 어려움을당한적도 많았지만 후회할 필요는 없었다. 믿음을 사실이었으니까. 작센의 영웅이라는 칭호가작용한 덕이겠지만, 소년 영주로서도 쉬운 결정을 아니었으리라. 아크는 2층을향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렸다. 이제 전쟁 준비는끝났다. 아크와 정의남, 로코,돈으로 고급 장비로 도배한 갱생단.합이 13명. 그리고 전직 도적 30명,묘족 전사 10명,너구리족 장인 10명,방금 실업자가 된 전직 병사 20명!이로써 NPC의 비율이 80%가 넘는 전무후무한 공격대가 결성되었다 .오직 아크와 정의남만이 만들수 있는 공격대! '이게 내가 뉴 월드를하며 모은 모든것이다. 만약 이 공격대가 밟힌다면 두번 다시 아란 에게 도전하지않겠다!' "가자, 나가란으로!" ACT 6 전쟁의 신전 슈덴베르크 왕국 ,브리스타니아 왕국,시니어스 공국........얼마전,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격돌하던 삼국의 국왕이전쟁의 신전에 모엿다.곳곳에서 보고되는 불온한 사건들. 신전과 선지자들의 불길한 예언등등.......근래 들어 부쩍 정국을어수선하게 만드는 사안들이 많아졌다. 이에 불안감을느낀 국왕들은 당분간 국경지대의 분쟁을 중지하고 정전협정을 맺기로 의견을 모았다. 협정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마무리 단계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전쟁이 벌어지는 나가란 지역에서 삼국의 영향력은 거의 동등.밀고 밀리는 전투를 반복하던 도중이라 국경선을 나누기가 애매했다. 기왕 하는 정전 협정이다. 한뼘이라도 더 자신의 땅을넓히고 싶은게 인지상정.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말싸움을벌였다. "그 영지는 우리것이오.얼마전까지 우리가 영주성을 점령하고 있었지 않소?" "흥,치사한 방법으로 약탈한것뿐이잖소" "포현을 삼가시오.전쟁에 치사하고 자시고가 어디있소?" 슈덴베르크와 브라스타니아 국왕이 투닥거리자 시니어스 공왕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우리가 그 영지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아시오?" "영지는 돈보다 사람이오.그 영지 주민의 반이 우리 왕국에서 이주해 간 사람들이 아니오?" "무슨 소리!중요한건 마지막에 누가 점령하고 있었느냐가 중요하지" "그렇게 따지면 우리 병력이 그 영지로 진군하고 잇었소. 전투가 벌어졌으면 당연히 우리가 점령했을것이오." "뭣이? 브리스타니아의 명예로운 병사들을 모욕하는건가? 정말 한번 해보자는거요?" "못할것 없지!" 내가 먼저 침을 발라놨네,아니그 전에 이미 내가 먼저 침을 발랐네, 사실 내 침은가래침이었네........ 급기야 회담은 초딩도 실소를 터트릴만한 수준 낮은 말싸움으로 변해버렸다. 그때, 중재자의 자격으로 회담을 주선한 전쟁의 신, 마간 교단 대주교가 제안했다. "그렇다면 삼국이 공동으로 나가란 지역의 모든 영지를 갖는건 어떻겠습니까?" "그게무슨 소리요?" "옛말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군주는 군림하나 지배하지않는다고" "군림하나 지배하지않는다?" 국왕들이 웬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폐하들께서 영지를 탐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야 영지를넓힘으로써 왕국 위상을 드높이고, 국민들에게 평안과 안녕을......." "이거 왜 이러십니까?" 대주교는 피식 웃으며 간단하게 정리했다. "영지에서 얻어지는세금, 목적은 그거아닙니까?" "허허험,뭐.그것도 중요하기는 하지" 노골적인 지적에 국왕들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했다.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국왕들이 영지를 탐내는 이유는 바로 돈! 사실 국왕에게 영지만큼 쏠쏠한 돈벌이는 없다. 일단 자신의 것으로만 만들면 대충 아무 영주나 앉혀놔도 매달세금을 요구할수 있다. 그 세금은 왕국 재정과.......국왕의 유흥비에 지대한 도움이 되리라.전쟁은 사업니다.막대한 자금을 처바르며 전쟁을 하는건 결국 더 만은 이득을 얻기 위한 투자,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그렇다면 이런지도는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대주교는 지도를 걷어치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점을 정리하죠.결국 중요한건 나가란의 영지들을 어느 왕국의 영주가 통치하느냐가 아니라.폐하들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느냐 마느냐입니다. 물론 다른분보다 적게 얻는다면 몹시 불쾌하시겠죠.공평하게 모두가 만족할수 있도록 나누는것이 이번 회담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은 매우 간단합니다. 군린하지만 지배하지않으면 되는겁니다" ".......좀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시겠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가란을 이방인에게 공개하자는 겁니다." "이방인에게?" "네, 이방인은 왕궁에 대한 소속감이 별로 없습니다. 각국의 법을 따르고는 있지만,정확히 말하면 국민이라고 할수 없죠.그들에게 나가란의 영지를 통치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영지에서 거둔 세금의 일부를 삼국이 똑같이 나눠가지는거죠" "호오......." 국왕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방인이 얼마나 부지런한 자들인지 굳이 설명하지않아도 아실겁니다.그들에게는 밤낮이없죠. 어던 이방인 상인은 3일 밤낮을 꼬박 세우면서 장사를 하는것도 봤습니다. 그런 자들이라면 밤낮을 가리지않고 영지를 위해 일할겁니다 .폐하들의 주머니는 더욱 두둑해지겠죠" 대주교는 스스로도 만족스럽다는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이방인이 나가란을 차지하고 있으면 ,삼국의 병사가 직접 맞닿을 일이 업습니다. 긴 전쟁으로 각국 병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현재,자칫 사소한 감정싸움이 전쟁으로 번질 위험가지 미연에 방지할수 있는겁니다" "과연........!" 국왕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대주교의 제안에 따르면 힘들게 말싸움을 하지않아도 모든 문제가 말씀하게 해결된다. 양보할 필요가없으니 자존심도 상하지않는다. 타국의 영지가 더 발전해서 수입이 많아져도 배 아플일이없다.나가란의 12개 영지에서 걷히는 세금은 공평하게 3등분될테니까. 뭣보다 오랜전쟁으로 피폐해진 나가란 지역에 막대한 자금을 들여 투자할 필요도 없다. 그때, 시니어스 공왕이 염려스러운 얼굴로 입을열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때때로 너무 지나치네" "음, 맞아.명예로운 우리의 기사들과 달리 정도라는걸 모르는 천한것들이지" "공개적으로 전쟁을허락하면 나가란이 더욱 피폐해질 우려가 있어" "그래서 법이 필요한것 아니겠습니까?" 대주교는 소맷자락에서 두툼한 양피지를 꺼내 펼쳤다. 화려한 동작으로 휘둘리는 펜끝에서 나가란에 적용시킬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대략 이 정도면 되겠군요. 지나치게 간섭을 한다는 느낌이 풍겨도 곤란하니 말입니다" "나쁘지않군" "좋네.자네의 말에따르겠네" 조항을 훑어본 국왕들은 만족스러운 얼구로 정전협정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며칠뒤, 이 소식은 전 대륙에 알려졌다.<에피소드 II : 이방인의 개척 시대 > 는 이렇게 시작된것이다. 12개 영지를 포함한 나가란 지역. 그곳을 모든이방인에게 공개한다는 내용.이로써 NPC가 박터지게 싸우던 나가란은 이제 유저들이 박 터지게 싸우는 전장이 되었다. [나가란 지역으로 진입하셨습니다. 삼국 국왕이 공동으로 서명한 특별법이 적용됩니다. *모든 주문서 사용이 봉인되었습니다. *플레이어를 죽여도 성향에 영향을받지않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소속된 NPC에게도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그러나 중립 성향의 NPC를 공격할경우, 치명적인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또한 사망시 받는 부활 제한, 경험치 ,스탯 다운 패널티는 타 지역과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공성전은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공격대 이상읭 그룹만이 참가할수 있습니다. *나가란 내에서는 부활장소를 갱신할수 없습니다. 단, 성을 차지한 길드와 동맹길드는 거점을 이용해 장소를 갱신할수 있습니다.성을 빼앗기면 취소됩니다.] "여기부터 나가란인가......" 아크는 눈앞에 펼쳐진 평원을바라보았다. 다른곳과 그다지 다른점은 눈에 보이지않지만, 일정 경계를 넘어서자 곧바로 위험지역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무시하고 조금 더 전진하자 방금 전의 메시지가 나타났다.비로소 살인마저 허용되는 살벌한 나가란 지역에 들어선것이다. "아크, 출발준비 끝났네" 크로스가 아직 잠이 덜깬 부스스한 얼굴로 다가왔다. NPC와 함께 다닐때 가장 힘든점이 이런것이었다. 유저의 하루는 뉴월드의 사흘.시간 개념이 다르니 조금만 무리하면 사흘내내 사냥을 할수도 잇다. 그러나 NPC에게 사흘은 말 그대로 사흘.유저와 같은 감각으로 활동할수 없엇다 .사람도 잠을 못자면 힘과 체력이 떨어지듯 ,NPC도 하루이상 휴식을 취하지않으면 각종 스탯에 상당한 패널티가 작용되는 탓이다. 뱀파이어와 언데드인 데드릭과 데이모스에게는 그런제약이 없었기에.때때로 NPC와 함께 행동할 때면 더욱 불편하게 여겨졌다. 물론 그렇다고 2시간을 그냥 보낼 아크가 아니다.야영지를 만들면 주변을 돌아다니며 마법재료와 식재료를 긁어모았다. '버프용 요리재료는 충분히모았다' 아크는 흐뭇한 얼굴로 두둑해진 가방을 문질렀다. 크로스가 질렸다는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잠도 안자고 약초를 캐러 돌아다닌건가?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자네 몸은 쇠로 만들어진 모양이군. 다른 이방인들도 그렇지만, 자네는 유독 심하네.대체 사람이 어떻게 사나흘이나 잠도 안자면서 쉬지않고 돌아다닐수 있는건지......하여간 정말 대단하네" 하긴 요 며칠은 특히 더 잠을 못잤다. 수천골드가 날아가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이니 잠이 올리가 없었던것. "뒤처지지 안으려면 남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맞는 말이야.나도 그런 점은 배워야겠어" "그보다 목적지인 시르바나가지는 아직 꽤 거리가 있습니다. 앞서 출발한 정의남 아저씨와 합류하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알겠네. 그나저나 선생을 보는것도 오랜만이군" 아크는 다시 크로스와 병사를 이끌고 나가란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언덕 하나를 넘어설대였다. 언덕 아래에서 요란한 고함과 쇳소리가 들려왔다. "측면을 공격하라!" "보라매 길드의 영광을 위해서!" "크윽,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않겠다!" "진형이 무너진다. 용병 부대를 투입해!" 수백명이 뒤엉켜 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검과 검이 마주치고, 마법이 폭발한다!그런 대규모 전투에서는 회복 포션도 당장 응급처치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진형이 무너져 적에게 포위되면 눈깜빡할사이에 천단위의 생명력이 빨려나갔다. 포션 1~2개를 마셔서는 회복되는 티도 나지않는다.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물 붓기! 아마 입에 깔데기를 꽂고 회복 포션을 들이부어도 데미지를 따라가지 못하리라. '이게 말로만 듣던 길드전이구나!' 언덕에 숨어 지켜보던 아크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마셔대는 회복포션. 그뿐인가? 마력석처럼 고급 스킬사용에 소모되는 아이템은 또 얼마인가? 아크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용한 아이템은 대략 계산해 봐도 수백 골드는 될것같았다. 무지막지한 소모전!그런 전투가 나가란 곳곳에서 쉴새없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에 나가란에서 날아가는 돈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되지않았다. '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투를 벌일때마다 들어가는 돈도 많아지겠지' 아크는 가방을열어보고 한숨을 불어냈다. 란셀을 떠날때만 해도 빈털터리였지만, 지금은 120골드나 가지고있었다.아크의 뒤통수를 치려던 아기돼지 삼형제에게 뜯어낸 계약서 덕분.계약서는 현실시간으로 열흘에 40골드의 후원금(?)을 지급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계약서를 들고 대략 한달만에 상인길드를 찾았더니 120골드나 되는 돈을 인출할수 있었다. 120골드.......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저런 전투를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다행히 갱생단이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으리라 .본시 돈이란 쓰면 쓸수록 줄어드는것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전투는 최대한 피해야한다. '지금은 아란만으로도 벅차다. 사소한 오해로 적을 늘릴 필요가 없어' "마령소환,데드릭!" "오오오,싸움이냐?" 데드릭은 소환되자마자 주변을 돌아보며 의욕을 불태웠다.거상과의 싸움이후, 한동안 전투가 없다보니 꽤나스트레스가 쌓인 모양이다. 물론 소환수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전투를하고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없었다. "아니, 반대다. 가능한 전투를 피해야하니 주변을 정찰해라" "쳇, 고작 그딴일이나 시키려고 부른거야?" "싫으냐?" 아크가 가방사이로 슬쩍 냄비를 보여주자 데드릭이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알았다. 한다. 하면되잖아" 아크의 선택은 적절했다. 과연 처음 공개된 전쟁 지역나가란이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정말 가는곳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들 돈이 넘쳐나는가 보군' 물론 싸우면 돈이 들어가니 무턱대고 싸우는건 아니리라. 원한 관계, 혹은뭔가 이해득실이 걸려있을것이다. 그러나 전쟁 지역이라 언제 기습을 당할지 모르니,자신보다 세력이 약하다 싶으면 일단 선방부터 날리고 보자는 식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파티도 많았다. 더구나 아크는 아직 전쟁의 신전에 등록도 하징낳아 문장조차없다. 이렇다 할 배경도 없어보이는 20명의 병력,장난삼아 기습을 해올지도 모른다. "주인,골짜기 아래쪽에 이방인 40명이 모여있다" "좋아,골짜기를우회해서 돌아간다" 아크는 곳곳에 숨어있는 지뢰를 피하느라 저녁 무렵에야 시르바나에 도착했다. 시르바나는 의외로 컸다. 제법 큼직한 마을 수십개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 잡고 있었고, 주민들의 숫자도 꽤 많았다. '저기가 아란이 있는 곳인가........' 아크는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회색 거성을 바라보았다. 막상 시르바나 성을 확인하니걱정이 앞선다. 나가란에 몰려든 상당한 실력과 인원, 자금을 갖춘 길드들......아란은 그 모든 길드를 물리치고 12개 영지 가운데 하나를 차지했다 .영주, 당연히 엄청난 명성과 지지세력을 구축 해놨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미 작센에서 봤던 아란은 아니리라. 물론 아크도 작센에 있을때와는 비교할수 없엇다.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플레이.그동안 쌓아온 경험이 과연 아란에게 얼마나 통할지 장담할수 없었다. '그래도 쓰러트려야 한다' 아란을 영주 자리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면 시드의 무기징역을 풀수없다. 함께 무기징역을 받은 5,000골드 .승산이 1%도 되지않더라도 싸움을 포기할수는 없다. '방법은 일단 정의남 아저씨와 합류한 뒤에 생각해 보자' 전화로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하자 간이 막사가 설치도어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너구리족을 감독하던 저으이남이 반색하며 달려왔다. "무사히 도착했구나" "네, 다른 길드를 피하다 보니 조금 늦었어요" "그래, 우리도 그랬다.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살벌한 곳이야" 정의남 일행이 전투를 피해 시르바나까지 올수 있었던것 묘족의 특기 덕분이었다.숲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온 묘족은 뛰어난 전사이자 정찰병이었던것. 크로스가 반가운 기색으로 정의남에게 다가갔다. "선생, 오랜만이오" "자네들, 와 줬군" "아크와 선생의 일인데 모른척할수는 없지 않소" 크로스가 껄껄 웃으며 막사를 둘러보았다. "저들이 우리와 함꼐 싸워줄 동지입니까?" "그래,소개하지. 란셀의 주민들이네" "처음 뵙겠소.크로스라고하오" 정의남은 크로스 일행을 데리고 묘족, 너구리족, 훈련소대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사이 아크는 파티를 해제하고 83명을 인원으로 공격대를 구성했다.본래 그만한 공격대를 만들려면 명성과 통솔력이 필요하다. 용병 NPC를 고용하는것도 수치에 영향을 받는다.그러나 아크 부대의 NPC는 용병 개념이 아니라, 너구리족 부대를 만들었을때처럼 친밀도의 영향을 받았다. 이 역시 아크의 장점중 하나. 공격대 편성을 끝낸 아크는 정의남 일행과 모여앉았다. "자, 할일을 정리해보죠" 아크가 서두를열자 불끈이가 가슴 근육을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정리하고 자시고 할게 뭐있냐? 애들 모았으니 들이받는거지"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단순하지않다니?" "일단 첫번째, 여명의 칼날 길드원 숫자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많아요" 아크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명의 칼날은 길드원이 500명이나 돼요" "500명?" 갱생단원들은 숨이 턱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아크 역시 새삼스럽게 한숨을 불어냈다. 아크는 이미 셀리브리드에 도착했을때, 나가란의 기초적인 지식과 여명의 칼날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보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하나라도 더 알아야 더 많은 기회를 잡을수 있는것이다.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모르는게 약이었던 모양이다. 정보를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상황은 더욱 암담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여명의 칼날도 잘해야 100명 정도겠지' 길드에 관심이 없었던 아크는 다른 온라인 게임을 기준으로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알아보니 뉴 월드는 작은 길드도 200명이 넘었다. 지금 상용화돼 있는 게임 가운데 가장 돈이 되는 게임은 뉴 월드다. 막대한 돈이 움직이는 게임이다 보니 조직도 커지게된 모양. 또한 결속력도 다른 게임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물론 길드 인원에 제한은 있었다.명성은 그렇다 쳐도, 사냥이나 장사를할때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통솔력. 그러나 길드장에게는 가장중요한 스탯 가운데 하나였다.명성과 통솔력에 따라 모을수 있는 길드원의 숫자, 또는 고용할수 있는 용병 NPC의 숫자가 결정되는것이다.뉴 월드의 길드 평균 인원인 200명인것은, 아직 게임초창기라 명성과 통솔력이 높은 유저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아란이 나가란에서 세력을 키울수 있었던건 그 때문이에요" 사실 아크는 처음 아란이성을 차지했다는 말을 듣고 의아했었다. 그러나 길드에 대해 알아보고 이해할수 있었다.아란은 응시자들 가운데 단연 최상위그룹에 속한 유저다. 그러나 뉴 월드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응시자들은 다른 유저들보다 한달이나 게임을 늦게 시작했다는 패널티가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아란이 두각을 나타낼수 있었던 이유! 홀리나이트 특성으로 명성과 통솔력에 상당한 보너스가 적용되는 덕분이다. 500명,아크 공격대의 6배가 넘는 숫자였다. 성을 차지한 길드이니 길드원의 레벨이나 장비가 평균 이상일 것이다. 고작 80여명.그것도 80%가 NPC로 구성된 공격대로 그런 상대와 정면으로 붙는다면 100전 100패.이길 가망이 전혀없다. 집단 전투에 특화된 홀리나이트의 장점이또다시 아크에게 넘지 못할 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정의남이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게릴라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겠군"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 그렇다면 역시 남은건 각개격파다. 나가란에서는 유저에게 고용된 용병 NPC에게 죽어도, 유저에게 죽은것과 같은 패널티가 적용된다. 24시간 접속 불가.즉, 24시간동안'여명의 칼날'길드원을 하나하나 처리하면 아란을 쓰러트릴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이미 알아봤어요.하지만 불가능해요" "불가능하다고?" "성을 차지한 길드는 영지의 NPC와 같은 권리가 생겨요.먼저 선공을 받지않는한, 영지안에서 그들을 공격할수 있는건 공성전 때뿐이에요.그리고 알아보니 아란과 여명의 칼날 길드원들은 성을차지한뒤로 영지 밖은커녕 성을 나온적도없대요" "결국 아란을 쓰러트릴 방법은.......?" ".........공선전을 신청해서 이기는방법밖에 없다는거죠" 막사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란을 물리치기 위해 현질로 장비를 맞추고 병력까지 긁어 모아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상대는 바위고, 아크 일행은 계란이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기에는 손해가 너무 막심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것이다. 그때, 아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공성전을 할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상대가 안된다면서?" "우리뿐이라면 그렇겠죠" "우리뿐이라면?그럼 너.......?" "네 ,동맹이에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이게 셀리브리드에서 일어난 모든 상황을 알고도 아크가 포기하지않은 이유다. 어차피 공성전은 한 길드가 감당할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결국 머리싸움, 쪽수가 많은 쪽이 유리할수밖에 없다. 물론 무작정 사람을 끌어 모은다고 해도 한 세력이 모을수 있는 숫자에는 한계가 있다.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또 성을 빼앗았을때 얻을수 있는 수익과 군자금의 손익계산도 필요하다. 특히 나가란의 영지들은 이제 막 시작 단계라 당장 성을 차지한다고 해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나가란의 공성전은 1,000~2,000명이 동원되는게 일반적이었다. 아크는 이 점에 주목했다. 훗날 영지 규모가 커지면 수만명이 동원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크가 끼어들 틈이없다.잘해야 용병으로나 활동할수 있겠지. 그러나 1,000~2,000명 규모라면 파고들 여지가 있었다. "분명 우리와 동맹을 원하는 길드가 있을거에요" 동맹을 맺어 공성전에 이긴다고 해도 영지는 주축이 되는 대형 길드의 것이 된다. 그러나 애초에 아크는 성에는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 아니, 막대한 이득이 있을지도 모르니 가능하면 차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어찌 성을 차지한다 치자. 몇몇 NPC외에는 이렇다할 지지 기반도 없는 아크가 수많은 길드의 도전을 물리치고 성을 지켜낼수 있을리 없다.된다 싶으면 집요할 정도로 파고들지만, 안된다 싶으면 아예 관심을 가지지않는게 아크다. '사기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서 담보로 빼앗긴 돈까지 찾을수 있으면 좋겠지만,그건 힘들다. 그렇다면 아란을 영주자리에서 끌어내려 시드가 압류당한 돈이라도 찾아야해.그래 ,지금은 아란을 끌어내리는게 가장 중요해' 그때, 정의남이 의문을 제기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동맹 길드를 찾을수는 없잖아. 아직 시르바나에 어떤 길드가 있는지도 모르고, 다음에 어느 길드가 공성전을 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걸 알아보는건 간단해요" 아크가 대책도 없이 말을 꺼냈을리가 없다. "공성전에 대한 규칙을 아세요?" "공성전의 규칙?" "제가 셀리브리드에서 제일 먼저 알아본게 그거에요.수십개의 길드가 도전장을 던진다고 해서 일일이 공성전을 치를수는 없잔아요" "하긴 ,공성전에는 많은 돈이 들테니까. 매일같이 공성전을 치르면 아무리 영지에서 세금을 많이 걷는다고 해도 버틸재간이 없겠지. 그렇다고 도전을 안 받아들여도 된다면 다른 길드가 성을 차지할 기회가 없을거고.......어라? 정말 어떻게 하는거지?" "일주일에 한번. 그게 영주가 최소한으로 받아줘야할 도전이에요" 아크는 셀리브리드에서 수집한 정보를 정리해서 설명해주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영주는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게 공성전의 기본 규칙이었다. 그리고 만약 영주가 일주일내에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을경우,도전 거부권은 소멸된다. 자, 그럼 그 뒤에 영주에게 도전할수 있는 권리는 어느 길드에 돌아갈까?아크가 흥미를 보인게 바로 이부분이었다. "그 도전권은 추첨으로 얻는 거에요" "추첨?" "나가란의 영지에는 모두 전쟁의신전이 있어요.유일한 중립 지역이죠. 그리고 여기서 영주가 가진 공선전 거부권의 마감 시간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을때, 추첨으로 한 길드를 선발해요.영주는 그 길드를 미리 알아보고 강제 공성전때까지 시간을 끌지, 아니면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일지 결정하는거죠" "그것도 영주에게 주어지는 권리라는거구나" "네, 어차피 영주는 영지의 주인이니 여러모로 혜택이 있죠. 그리고 이틀동안 영주와 선발된 길드는 동맹 세력을 모으며 공성전 준비를 하겠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거기서 선발된 길드와 접촉해 보겠다는거냐?" "네" "음.......하지만 100명도 안되는 우리와 쉽게 동맹을 맺어줄까?" "그야 해보기 전에는 모르죠.그리고 어차피 세력이 아닌확률로 추첨을 하는거니까 우리가 뽑힐 가능성도 있어요.도전권을 가지고 있으면 먼저 접근해 오는 길드도 많을거에요" 솔직히 거기까지는 기대도 하지않는다. 뉴 월드를 하며 그렇게 운이 따랐던 기억이 없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만 있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전직 도박꾼으로 '타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갱생단원이었다. "아크야.그 추첨이라는건 어떤 방식으로 하는거냐?" "저도 아직은 잘 몰라요.그냥 제비뽑기 같은 형식이라고만 들었어요" "그래?" 타짜가 슬며시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끄덕였다. "왠지 좋은느낌이 드는걸" "헉,자,자네!그 모습은 대체.....?" 아크가 다크울프로 변신하고 모습을 드러내자 크로스나 다른 NPC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시르바나는 아란의 홈그라운드,물론 공선전 때는 본모습으로 싸울생각이지만, 그 전에 영지에서 각종 이득을 받는 아란 일당에게 들켜서 좋을 일은 없었다.때문에 전쟁의 신전에는 다크울프로 참가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정을설명하자 크로스각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나저나 설마 자네가 다크울프였을 줄이야" "네?" "악실리온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서 봤네.굉장한 시합이었다고" 크로스가 은근히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 뒤로 다크울프로 변신한 적이 없어서 NPC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경험한적이 없다. 그러나 악실리온 시합의 우승자는 대부분의 전사 NPC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물론 그 반대도 있었다. 묘족 전사들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쳇, 하필이면 개 대가리의 모습으로 변신이라니....." 개와 고양이의 사이가 좋지않다는건 상식. 아크도 미처 생각하지못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저도 개를 싫어합니다. 그 때문에 개로 변신한거죠.증오해 마지않는 모습으로 변하면 더욱전의를 불태울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아,그런 거였나? 하긴 그렇지" 묘족들은 금세 헤벌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고양이들 같으니.그나마 개니까 이만한 포스라도 있는거다. 고양이로 변신했으면 시합이 아니라 개그 콘서트가 됐으리라. "자,출발하죠" 준비를 끝낸 아크는 크로스들을 데리고 막사를 나섰다. 전쟁의 신전은 중립 지역이다. 그러나 돌려 말하면 전쟁의 신전을 제외한곳은 모두 전쟁지역이라는뜻.심지어 마을안에서도 내키는대로 살인을 할수 있는 곳이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호위병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정의남과 갱생단을 모두 데리고 갈수는 없었다. NPC들만 놔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정의남은 막사를 지키기위해 남고,갱생단중에서는 짝퉁과 타짜만 따라나섰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죽어도 같이 가야 한다고 부득부득 우겨댔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전은 영주성과 가장 가까운 마을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신전 앞에 도착하자 사제복을 입은 NPC가 추첨 참가 등록을 받고 있었다. 아크는 셀리브리드에서 배운대로 사제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간읭 뜻에 따라 명예로운 전투를........" "정의로운자가 최후의 승리를....!마간의 신탁 의식에 참가하러 오셨습니까?" 사제가 친근한 눈빛을 보내며 물어왔다. "네,공격대도 참가할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입니다. 대신 50명 이상의 공격대라야 합니다" "83명입니다" 사제는 수정구로 아크의 공격대 정보를 파악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83명 ,틀림없군요.하지만 아직 전쟁의 신전에 등록하지않은 공격대로군요.공성전에 참가하려면 공격대를 하나의 세력으로 등록해야 합니다. 지금 등록하시겠습니까?" 아크는 사제의 안내를 받으며 등록서를 작성했다. *공격대 : <다크에덴> *공격대장 : <아크> *부대장 : <정의남> *평성 인원 : <83> 공격대 이름은 대충생각나는대로 적었다. 앜의 이름을 성서에서 따왔으니 ,공격대 이름도 성서에서 따온것이다. "됐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타짜가 사제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추첨은 꼭 공격대장이 해야 하는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길드나 공격대의 누가 나서든 한번만 뽑으면 됩니다" "아크,그럼 추첨은 내가 하마" "그러세요" 아크는 별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확률로 선발되는거니 누가 뽑든 별 상관이 없다. 아니, 아크는 추첨보다 동맹을 맺어줄 상대를 찾아왔으니 정보를 모으기에도 바쁘다. 그렇게 아크는 일행을 데리고 신전으로 들어섰다. 상당한 넓이의 신전은 이미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과연 영지를 노리는 길드의 대표들답게 온갖 고급장비로 무장한 유저들!가슴에 새겨진 문장을 보니 아크처럼 한 길드에서 대략 20여명이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이미 동맹 관계에 있는지 몇몇 무리가 한자리에 모여 있기도 했다. '신진 세력은 곤란하다' 시르바나에서 기반을 닦은 거대 세력을 찾아 접촉해야 승산이 있다. 물론 거대 세력은 이미 유지할수 있는 한계치까지 병력을 모아 허접스러운 아크 부대를 받아들이 확률이 희박하다. 그러나 아크와 비슷한 세력이라면 몇개를 모아봐야 답이 안나오는것이다. 그렇게 아크가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헉, 뭐, 뭐야? 저사람은?" "........검은 늑대족.......설마?" 유저들의 눈길이 일시에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다크 울프다!" "다크울프가 시르바나를 노리는건가?" '어라? 뭐야? 다들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유저들의 열광적인 관심에 아크는 내심 당혹감을 느꼈다. 사실 아크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다크울프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당시 악실리온에서 경기를 지켜본 사람이 무려 1만명! 그러나 다크울프를 알고 있는 유저는 그 몇배에 달했다. 몇몇 유저가 캡쳐해 올려놓은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어 한동안검색 순위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은 경매 사이트밖에 모르는 아크가 그런 사실을 알리없었다. 어쨌든 아크에게는 불편한 시선일 뿐이었다. '젠장, 이럴줄 알았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는건데........' 아크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불어냈다. 그러자 유저들에게는 그 모습조차 꽤나 그럴싸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눈길을 피하는데?"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거겠지" "하긴, 다크울프라면 이미 대형길드에 들어가있겠지" "저만한 실력자라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텐데...." 그말에 아크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어라? 이거 싫어할일이 아니잖아?' 하긴 우연이라도 선구자를 물리쳤으니 그만한 평가를 받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다크울프라는 이름이 다른 길드와 동맹을 맺을때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크울프라는 이름이 다른 길드와 동맹을 맺을때 유리하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였다. 갑자기 신전안에 모인 사람들이 다시 술렁거렸다. "잿빛 날개 길드다!"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한 무리가 신전안으로 들어섰다.나가란에서 영지를 노리는사람들.당연히 경매장에서도 보기힘든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나타난 사람들에 비하니 그조차 초라하게 느껴질 저도였다. 경매장에서 갈고닦은 아크의 눈썰미로도 가치를 짐자갛기 어려운 장비들!주변의 반응만 봐도 이들이 시르바나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짐작할수있었다. 그러나 소요가 가라앉기도 전에 또다른 무리가 나타났다. "나,나왔다. 헤르메스 길드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하며 굳어버렸다. 뒤이어 나타난 무리도 장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가 놀란것은 장비 때문이 아니었다. 리더처럼 보이는 기사의 양옆에 포진한 2명의 유저!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악실리온의 결승전에서 만났던 선구자.......쥬르와 듀크였다. "언제 봐도 포스가 장난이 아니군" "헤르메스 연합에는 선구자가 30명이 넘게 소속돼 있다며?" "젠장, 어지간한 길드는 명함도 못내밀겠군"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뉴 월드에서 최고 클래스에 속하는 선구자가 무려 30명!'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쥬르와 듀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일전에 봤던 오망성은 헤르메스라는 길드의 문장이었던 모양이다. 선구자에, 그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악실리온에서도 굳이 얼굴과 이름을 숨기지않았던 것이리라. '아란은 그런 길드까지 있는 곳에서 성을 차지했다는건가?' 그때,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쥬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쥬르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너 이 자식........!' '젠장, 설마 쥬르와 듀크가 시르바나에 있을줄이야' 아크는 와락 짜증이 일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일이 꼬여간다. 아크와 쥬르의 눈빛이 마주치자 주변에서 더욱 관심을 보였다. "헤르메스 길드의 쥬르다!" "맞아,그러고보니 다크울프의 결승전 상대가 쥬르와 듀크였지?" "당장이라도 한 판 벌일 기세인데?" 그러나 쥬르는 다른 유저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듯 아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시르바나까지 어정거리며 기어들어오다니......" "쥬르" 그때, 누군가가 쥬르의 어깨를 잡았다. 리더처럼 보이는 기사였다. ".......쳇, 알고있어" 쥬르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난번의 원한은 나중에 기필코 갚아주마" "그러든지" 아크 역시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고개를돌렸다. 기사는 슬쩍 아크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쥬르와 듀크를 데리고 물러낫다. 일단 상황은 그렇게 싱겁게 끝낫지만 아크는 내심 머리가 복잡해졌다. '귀찮게 됐는데' 선구자가 상당수 포진한 거대길드. 헤르메스 연합이 시르바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굳이 말할필요도 없다. 시르바나에 들어오자마자 그런 길드와 적대 관계가 돼 버렸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쓸거 없어.어차피 변신을 풀면 그만이다. 그리고 내 상대는 아란이야.영지를 노리는 헤르메스 역시 마찬가지. 고작 길드원 1명때문에 아란이라는 적을 두고 일부러 우리와 문제를 만들려고 들지는 않을거야'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모든 참가자가 모이자 신관이 단상에 올라섰다. "그럼 삼국의 국왕페하께서 정한 규칙에따라 다음 도전권을 획득할 마간의 신탁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등록을 마친 각 공격대와 길드의 대표는 앞으로 나와주시오!" '생각보다 많다!' 아크는 시르바나의 길드 숫자를 50여개로 파악하고 있었다.그러나 실제로 추첨에 나선 사람들은 70여명.아크처럼 약소 공격대도 요행을 바라고 모두 참가한 모양이었다. 결국 당첨 확률은 70분의 1. '그래도 혹시나 싶었는데 도전권을 받기는 힘들겠군' "걱정하지 마" 아크가 한숨을불어내자 타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당첨 확률은 숫자와는 상관없어.몇명이 몰리든 승률은 반반.당첨되느냐,안되느냐 뿐이지" "하지만........" "걱정할필요 없다니까 그러네.너는구경이나 하고있어.형님들이 솜씨를 보여주지" "솜씨?" 타짜는 그저 미묘하기 짝이없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유저들이 대강 모이자 신관이 웬종잇조각을 들어올렸다. "처음 신탁에 참가한 사람도 있을테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소. 여기 보이는 종이를 뽑는사람이 다음 공성전 도전권을 얻게 되는것이오.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장에서는 운도 실력의 하나.공성전에 참가할 기회를 획득하는 것도 마찬가지요.그것이 전쟁을 주관하는 마간의 가르침. 마간께서는 운과실력을 갖춘자에게 신탁을 내려주실것이오" 전쟁의 신이라는 존재도 우습지만 고작 제비뽑기를 하면서 신탁이라니......역시 뉴 월드의 NPC는 중세 시대의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새삼스레 이의를 제기하는 유저는 없었다. 신관은 종이를 추첨함에 넣고 흔든 뒤에 신탁을 진행시켰다. 그때 단상 바로 앞에 있던 타짜가 뒤로 슬쩍 물러나와서 짝퉁에게 물었다. "어때?" "생각외로 간단한데.3분이면 되겠어" 짝퉁은 수상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신탁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나 확률은 70분의 1.그리 쉽게 당첨될리가 없다. 앞서 백지를 뽑아든 30명의 유저들이 욕설을내뱉으며 물러났다. "이런 망할!" 헤르메스 길드의 대표로 나온 기사도 백지를 뽑아들었다. 그때, 잠시 자리를 비웠던 짝퉁이 돌아와 타짜에게뭔가를 건네주었다. "됐어,끝났어.아직 안나왔지?" 타짜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겠어" 절반 가까이 백지를 뽑아들자 참가자들이 슬슬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덕분에 타짜는 곧바로 단상에 올라갈수 있었다. "공격대 다크에덴의 대표입니다." "신탁을 받으시오" "다크울프, 샴페인을 준비해 놔라" 신관이 추첨함을 내밀자 타짜는 아크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추첨함에 손을 집어넣었다. 이내 뭔가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던 타짜가 눈을 질끈 감으며 기합성을 터트렸다. "나온다, 나온다,나온다,이야아아압!" 시선을 집중하던 유저들이 술렁거렸다. "어? 뭐,뭐야........?" "붉은 인장........정말 나온거야?" "이런 젠장!" 유저들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정말 타짜가 전쟁 신 마간의 인장이 새겨진 당첨 쪽지를 뽑아든것이다. "해,해냈다!정말 해냈어!내가 뽑았다!" 화투 패를 쪼듯 살금살금 쪽지를 확인하던 타짜가 펄쩍 뛰며 고함을 내질렀다. 심지어 신관의 눈앞에서 당첨 쪽지를 흔들어 대며 요란을떨어댔다. "내가 뽑았습니다!됐죠? 다음 도전권은 우리 공격대가 갖는거죠?" "그,그렇소.축하드리오.그러니 좀 진정하고........" "우하하하,내가 해냈다!어머니, 제가 해냈어요!" 신관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지만, 타짜는 이리저리 날뛰며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그러다가 결국 추첨함에 다리를 찧고 불썽사나운 꼴로 자빠졌다. 추첨함이 쓰러지며 쪽지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쳇, 꼴좋다" "성을 차지한것도 아닌데 오두방정을 떨어대더니......." 은근히 배 아파하던 유저들이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제야 타짜는 얼구을 붉히며 황급히 일어나 무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아니오.그보다 일단 추첨 쪽지를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네?아!여기있습니다" "음........틀림없군.이로써 이번 도전권은 공격대 다크에덴에게 돌아갔음을 위대한 전쟁 신 마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다크에덴이 도전권을 포기하거나,모레 정오까지 영주가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이지않는다면, 마간의 주재아래 다크에덴이 공성전을 치를것이오" 신관이 선포하자 유저들이 낙담한 표정으로 흩어졌다. 아크 역시 타짜와 짝퉁 ,크로스들을 이끌고 일단 신전을 빠져나왔다. 아크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당첨되다니.............운이 따라 줬어요!" "운? 아크야, 이 세상에 운 같은건 없단다" "네?" 타짜가 시니컬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조금전의 당첨 쪽지가 들려있었다. 새삼스럽게 이걸 왜 다시 보여주는걸까? 멀뚱히 바라보던 아크는 갑자기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가만, 당첨 쪽지는 방금 전에 신관이 가져갔잖아요?" "그게 진짜다" "네?진짜........그, 그럼?" "말했잖아. 이 세상에 운이란건 없다고?" 타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상황을 대강 설명해주었다. 타짜가 짝퉁과 함께 굳이 신관까지 따라온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던 세계가 세계다 보니 이런식의 추첨은 지겹도록 많이 경험해 보았다. "이런 식의 추첨은 공정성을 기한다는 의미로 당첨 쪽지를 보여주고 섞는게 보통이지" 타짜는 거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짝퉁의 전직은 사기꾼,당연히 공문서 위조 따위는 일과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뉴 월드에서 생긴 스킬이 있었으니.......바로'위조'였다. 써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 아직 초급에 불과하지만, 스킬 덕분에 한번 본것은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낼수 있었다. 짝퉁이 잠시 사라졌던 것은 바로 당첨 쪽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것. "다음에는 내 기술이지" 타짜가 추첨 쪽지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시 펼치자 쪽지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일전에 정의남의 집에 들렀을때 같은 기술을 본적이 있었다. 손바닥안의 화투패를 눈깜빡할사이에 숨기는 타짜만의 기술!이 기술은 굳이 스킬이 필요없었다. 평생을 도박꾼으로 살아온 타짜의 몸에 벤 기술이니까. 그 기술을 본 아크는 그제야 방금 전의 상황을 이해할수 이었다. 타짜는 위조된 당첨 쪽지를 들고 추첨함에 손을 넣은것이다. 당연히 나오는 쪽지는 위조된 당첨 쪽지. 평생을 도박꾼으로 살아온 타짜의 현란한 손장난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성공 확률 100%의 도박! "뭐,내 앞에서 당첨이 나왔다면 다 소요없는짓이니,그것도 운이라면 운이겠지"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할수도있구나........'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듣다가 문득 이상한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방금 전에 신관에게 준게 당첨 쪽지라고 했잖아요? 그럼 당첨 쪽지를 뽑았다는말 아니에요?" "맞아, 그게 바로 이번 속임수의 가장 힘든 부분이야" 타짜가 손을 흔들자 다시 위조된 당첨 쪽지가 나타났다. 그냥 손가락만 움직였는데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당첨 쪽지가 신기할뿐이다. "어차피 이건 초급 스킬로 만들어낸 가짜야. 코앞에서 정신없이 흔들어대면 몰라도,가만히 살펴보면 금방 들통이 난단 말이야.뭐,짝퉁이 본실력을 발휘하면 거의 진품이지만, 여긴 게임이잖아.초급 스킬로는 NPC를 완전히 속일수 없어.그래서 나중에 바꿔 치기한거야" "네? 바꿔치다니.......당첨 쪽지는 추첨함 안에......엇? 그, 그럼 혹시?" "빙고!" 타짜가 손가락을 튕기며 끄덕였다. 당첨 쪽지를 뽑아들고 타짜가 야단법석을 피워댈때, 한순간 추첨함이 넘어지며 쪽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이미 당첨 쪽지가 나오는걸 봤으니 유저나 신관은 별로 관심이 없었으리라.그러나 실제로 당첨 쪽지는 아직 그 안에 있었다. 타짜는 쪽지가 쏟아지는 그 짧은 순간, 당첨 쪽지를 찾아내고 다시바꿔친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사기극! "게임에서는 네가 선배지만, 이런 일에는 우리가 전문가야" ".............." 정말이지 더이상 할말이 없었다. 감히 그런 대담한 발상도, 그런일을 해낼 능력도 아크에겐 없었다.오직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타짜와 짝퉁이기에 가능한일! '진짜 전문가란 굉장하구나!' 아크가 새삼 혀를 내두를 때였다. "다크울프님" 뒤에서 30명가량의 유저들이 다가왔다.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됐어,걸렸구나!' 도전권을 가지고있는 아크와 동맹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리라! ACT 7 동맹의 조건 "팔라고요?" 아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이얀이라고 소개한 유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도전권을 저희에게 양도해주시면 지금 당장 300골드를 드리겠습니다" "도전권도 양도할수 있는겁니까?" "모르셨습니까?" 하이얀은 오히려 놀랍다는듯이 되물었다. "신탁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가 공성전을 하려는건 아닙니다. 도전권을 비싼 가격에 살수 있으니 요행을 기대하며 참가한 사람이 반은 될걸요" '그래서 약소 공격대까지 모두 몰려들었던 건가?' 그냥 잠깐 나와서 제비를 뽑는것만으로 운이 좋으면 몇백 골드를 챙길수 있다. 공성전 따위는 관심없어도 한번쯤 참가해 볼만한 것이다. "그렇군요.하지만 저는 팔 생각이 없습니다" "다크에덴은 공격대라고 들었는데......혹시 다른 길드와 손을 잡은 겁니까?" "아니요.이제부터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역시 저희에게 파는게 좋을겁니다" 하이얀이 안심했단느듯한 표정으로 말을이었다. "아무래도 시르바나에 처음 오신듯하니 간단하게 설명드리죠.지금 시르바나에 50개가 넘는 길드와 수십개의 공격대가 있지만 공성전을 치를능력이 있는 세력은 우리 잿빛 날개를주축으로 하는 연합과 헤르메스 연합뿐입니다. 나머지 길드는 아직 이렇다 할 연합 세력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죠.동맹으로 연합을 만드는건 생각만큼 쉬운일이 아닙니다.추첨이 끝나자 다 그냥 돌아가는것 보셨죠?" 그때는 아크도 약간 당황했다. 도전권에 당첨되면 여러 길드에서 동맹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신전을 나설때까지 아무도 접근하지않은 것이다. 하이얀이 이름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이유는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도전권이 있어도 어차피 공선전을 치르지 못할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만큼 승산이 없다는겁니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죠.여명의 칼날은 동맹 세력도 꽤 강한 편이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여명의 칼날이 성을 차지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세번의 공성전을 치른거죠.하지만 세번 다 상대는 신탁을 받은 길드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무슨........?" "공성전 규칙을 잘 모르시는군요.신탁을 받은 길드는 도전권이 생깁니다. 하지만 단서가 붙어있죠.영주의 거부권이 소멸하는 모레까지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이지않았을 경우입니다. 즉, 영주가 그 전에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아무런 효력도 없는거죠.이해하셨습니까?" "그럼 아란은?" "네, 매번 거부권이 소멸하기 직전에 다른 길드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세번 모두 하데스라는 신진 길드였죠.평소에는 시르바나에서 찾아보기도 힘든데,매번 아란경에게 도전장을 보냈습니다. 아란경이 도전을 받아들이면 신탁과 달리 공성전이 100%확정됩니다. 때문에 많은 길드가 동맹 요청을 위해 접촉을 해봤지만 쉽지않더군요" '하데스?'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데스라는 이름은 이미 한번 들은적이 있었다. 시드를 공격했다던 복면강도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던 문장.그게 바로 하데스 길드의 문장이었다. 그렇다면......아크의 머릿속에서 바로 하나의 그림이 오나성되었다. 하데스는 아란과 연관이 있다. 비밀리에 복면강도를 해줄정도니 보통관계가 아니리라. 아니, 어쩌면 아란이 만든 유령 길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아란은 공성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령길드를 만들어놓고 공성전을하는'척'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하데스가 다른 길드의 동맹 요청을 받아들일리가 없는것이다. 아마 지난 세번, 놈들은 공성전이라는 명목으로 모여서 바비큐 파티나 했으리라. '흥,아란 녀석.TV에서는 전략 노출 어쩌구 지껄여 대더니,결국 이런 거였군. 신탁에는 손을 쓸수 없으니 그런 치사한 방법을.......' 아크는 타짜덕에 시스템의 맹점을 찔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란은 이미 그보다 더 높은곳에서 사기를 쳐대고 있었다. '아니 ,나쁜소식만은 아니다. 아란과 하데스 길드가 그런 식으로 공성전을 벌여 왔다면 영주성의 NPC를 통해 둘의 관계를 입증할 방법이 있을거야.그러면 아란이 시드에게 사기를 쳤다는 증거가 된다. 담보로 빼앗긴 3,000골드를 돌려받을수 있을지도몰라!' 이미 반쯤 포기했던 3,000골드를 되찾을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위험한 일을 아란이 누구에게 맡겼을까?아란은 겉보기와 달리 배속에 구렁이가 있는 놈이다. 자칫 명성에 치명적이 될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지는 않았을거야.확실히 컨트롤할수 있는 상대에게 맡겼겠지.그럼 혹시............' "혹시 하데스의 길드장 이름을 아십니까?" "신탁에 참가한 적이 없어서 얼굴을 모르지만,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이름은 안델이라고 하더군요" '역시!' 아란의 붕어 똥인 안델이 시르바나에서 안보인다 싶더니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공성전이 아란과 안델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문제가 심각하다. '젠장, 도전권만 얻으면다 해결될줄 알았는데.......' 그때, 아크는 하이얀의 말에 모순이 있음을깨달았다. "가만, 그럼 왜 제게 도전권을 사려하는거죠? 어차피 아란이 이번에도 하데스의 도전을 받아들이면 도전권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않습니까?" "그게 바로 제가 말하려던 두번쨰 이유입니다" 하이얀이 잘 지적했단 듯이 대답했다. "공성전 규칙에는 별도의 조항이 있습니다. 도전권을 가진 길드의 리더나, 혹은 그 길드원이 40%이상 사망하면 도전권은 자동적으로 소멸한다. 즉, 아란경이 하데스를 지목해도 공성전이 시작되기 전에 안델이나 길드원이 40%이상 죽는다면 취소됩니다. 영주가 도전자를 지목할수 있는건 단 한번, 그런데 하데스의 도전권이 사라진다면 다음 순서는 자도적으로 이번에 신탁을 받은 다크울프님이 되는겁니다" 아크는 도무지 하이얀이 무슨말을 하는지 납득할수 없었다. 일단 내용은 충분히 이해된다. 잿빛날개는 아란이 하데스를 도전자로 지목하면 어떻게든 찾아내 처리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아크의 도전권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뜻이 아닌가? 그런데 하이얀은 아크에게 다른 길드가 절대 동맹을 제의하지 않을거라고 말했다. 유일한 도전권을가지고 있는 아크에게 대체 왜? 그러나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그 규칙은 도전권을 가진 사람에게도 해당됩니다. 즉, 다크울프님이나 다크에덴 병력의 40%이상이 사망하면 도전권이 취소됩니다. 그럴 경우 다시 한번 최종 도전권을 두고 신탁이 치러집니다. 제가 도전권을 사려는건, 그런 귀찮은 일을 생략하고 싶어서라는 말입니다" 아크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말속에 숨겨진 협박의 메시지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시르바나에서 공성전을 치를세력은 잿빛날개와 헤르메스 뿐이다!그 말을들었을때 눈치 챘어야 한다. 그말은 단순히 공성전을 치를 능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다른 길드에게서 강제로 도전권을 빼앗을수 있다는의미다. '그랬군. 그래서 나가란에서 그렇게들 박 터지게 싸웠던 거야!' 아크는 나가란에 들어섰을때 길드들이 싸우는게 의아했다. 어차피 그드르이 목적은 성을 차지하는것. 다른 길드와 싸울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게 도전권을 두고 세력다툼을 하던 과정이었다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도전권............결국 이 작은 권리가 나가란에서 끝없는 전투와 암살을일으키는 주범이었다. 다른 길드가 아크에게 동맹 요청을 꺼리는 이유도 명확하다. 아크와 동맹을 맷게 되면 시르바나 최대 세력인 잿빛 날개와 헤르메스의 타깃이 된다. 아크는 그들을보호해 줄 세력이 없으니 ,차라리 두 길드가 아크를 처리한뒤에 그들에게 동맹을 요청하는편이 나은것이다. 전쟁의 신전에서 나가란은 누구나 영주가 될수 있는 기회의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이든 게임이든 결국 영주가 될수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몇몇 소수로정해져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내심 이를 악물었다. '.......실수했다!' 하이얀은 말을 꺼내기 전에 거대 길드와 동맹 관계냐고 물었다. 만약 아크가 그가 파악하지못한 다른 큰 세력과 손잡았다면 처리하기 껄끄러웠으리라. 아크를 죽여도 다음 신탁에서 당첨된다는 보장도없고, 거대 길드와 적대 관계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아크는 혹시나 동맹을 맺어주지않을까 싶어 없다고 대답했다. 뒤를 봐주는 세력이 없다고 제 입으로 실토한것이다. 치명적인 실수! 하이얀에게 '나 죽여도 아무런 뒤탈이 없어요'라고 떠들어 댄것이나 다름없다. 하이얀은 이 모든걸 계산하고 접근한것이다. '아란도 그렇고.............하이얀도 그렇고.............다들 머리쓰는게 보통이 아니구나. 나가란은 세력만으로 영주가 될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어.그래, 세력만으로 영주가 될수 있다면 시르바나는 선구자들이 모인 헤르메스가 차지했어야한다' 수많은 음모와 계략!동맹과 적대! 뉴 월드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규칙! 그 모든걸 파악하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나가란에서 살아 남을수 있는것이다. '돈에 눈이 뒤집혀서 약간의 정보만으로 무작정 나가란에 뛰어 들어온게 실수다!' "어떻습니까?" 하이얀은 사람 좋은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이만큼 친절하게 설명해 드렸으니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대강 판단이 섰겠죠?" 하이얀의 뒤에서 30명의 유저들이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았다. 거래에 응하지않으면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시! 그런 제스처를 눈치채지 못할 짝퉁과 타짜가 아니었다. "뭐야, 이것들?한번 해보자는거냐?" "소문대로 정말 무법천지로군. 마을에서 이런 식으로 위협을 해오다니!" 크로스와 실피드 기사단원도 인상을 쓰며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잠깐!"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잿빛 날개는 시르바나의 양대 세력중 하나다. 유사시에는 수백명의 병력을 동원할수있다는 말.......유저 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아크나 갱생단은 일단 위기만 벗어나면 공성전 때까지 접속을 끊어 버리면 그만이다. 아마도 안델 녀석도 같은 방법으로 버티다가 공성전이 임박해서야 들어왔으리라. 그러나 지금 아크는 그런 방법을 사용할수 없다. 병력의 80%가 NPC.여기서 도망친다고 해도 NPC들은 곧 잿빛 날개의 추적에 걸려 전멸당하고 말리라. NPC가 주축이 된 다크에덴의 치명적인 약점이 또 하나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있었다. "그럼 우리와 동맹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 잿빛날개와 동맹을 맺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상황이 이렇게 됬으니 아크는 어떤 조건으로라도 동맹을 맺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이얀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미 맴버가 꽉 짜여 있어서요" "하지만..........." "팔지 말지. 그것만 말씀해 주십시오" '젠장, 정말 이렇게 도전권을 포기해야 하는건가?'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NPC를 잃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 콰콰콰쾅! 그때였다. 돌연 골목 바깥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려나왔다.아크와 하이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잿빛 날개. 이런곳에 숨어서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거냐!" "크크큭, 뻔하지. 하지만 네놈들 생각대로는 안될거다!" "그 늑대 자식은 이미 우리가 찍었어" "빌어먹을,헤르메스 녀석들!다 된밥에 재를 뿌리다니!" 하이얀이 이를 갈아붙이며 검을 뽑아들었다. 골목에서 마법을 난사하며 달려오고 있는 것은 바로 오망성의 문장을 단 유저들이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 신전에서 봤던 기사와 쥬르 ,듀크, 그 외에도 수십명의 유저들이 화살과 마법을 난사하며 골목으로 몰려들었다. "볼것 없다. 모두 죽여 버려!" 불시에 기습을 받은 하이얀의 병력은 엄청난 피해를 받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잿빛 날개도 기습에 무너질정도로 만만하지는 않았다. "놈들을 막아라!도전권이 헤르메스에 넘어가면 안된다!" 하이얀이 소리치자 골목에서 20여 명이 튀어나왔다. "쳇, 어째 딴놈들이 안보인다 싶더니 복병을 숨겨놓고 있었군. 그래봐야 오합지졸이다!" 여차하면 아크 일행을 공격했을 잿빛 날개의 길드원들. 그러나 갑자기 헤르메스 길드가 나타나자 상황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양쪽 합해 100여명이나 되는 병력이 비좁은 골목 안에서 싸움을 시작하자 그야말로 난전이었다. 그러나 비슷한 숫자에서는 역시 선구자가 끼어있는 헤르메스가 우세했다. 잿빛 날개는 10여명이 포션을 꺼내들새도 없이 쓰러졌다. 한번 균형이 깨지자 전황은 헤르메스가 압도적으로 우세해졌다. 그러나 두 길드의 싸움이 어찌되든 아크가 알바 아니다. "기회다,튀어!" 아크는 일행을 이끌고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다. "헛, 다크울프가 도망간다!잡아!" "어딜!" 하이얀이 와락 달려 나오자 헤르메스의 리더, 기사가 방패로 후려치며 막아섰다. 하이얀의 입술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라이덴.......이 새끼.........!" "훗, 너와는 한번쯤 승부를 봐야한다고 생각했지" 라이덴이라고 불린 기사는 씨익 웃으며 쥬르와 듀크에게 소리쳤다. "여긴 내가 맡을테니 너희는 다크울프를 쫓아라!" "그러지, 가자!" 쥬르와 듀크가 20여명의 길드원을 이끌고 아크를 추적했다. 잿빛 날개 길드원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쥬르와 듀크가 마법과 화살을 난사하자 금세 진형이 무너졌다. 이어 라이덴이 치고 들어가자 잿빛 날개는 방어하기에도 벅차 보였다. 덕분에 아크는 이를갈아대는 쥬르와 듀크 일행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다크 울프, 놓치지않겠다!" 쥬르의 마법공격 사거리와 공격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수십 미터를 뻗어와 생명력을 쭉쭉 빨아댔다. 듀크 역시 예의 신발의 효과로 이동하면서도 정밀도 높은 화살 공격을 퍼부으며 생명력을 갉아댔다. 악실리온의 레벨 평준화 패널티를 받지않는 만큼 제 위력을 발휘하는 공격은 무서울 정도였다. '이대로는 당한다!' 아크는 불안한 표정으로 크로스를 돌아보았다. 아크나 타짜, 짝퉁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크로스와 실피드 기사단원은 중갑, 이동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때문에 후열에서 방패 역활을 해주고는 있었지만, 곧 따라 잡힐 위기에 처해 있었다. '쥬르와 듀크 그리고 20명의 길드원.힘들겠지만 숫자상으로는 붙어 볼만하다. 하지만 뒤이어 나머지 헤르메스 길드언이 몰려들면 끝장이야!' 그때, 막 모퉁이를 돌아서던 크로스가 와락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할수없지. 여기는 우리가 맏겠다. 도망쳐!" "안돼요!" 아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터트렸다. 그러나 크로스는 짐짓 결연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우리 걸음으로는 놈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힘들다.게다가 우리는 비록 해임상태라도 작센의 병사!저렇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서 놈들에게 쫓겨 도망다니다가 죽을수는 없다!죽더라도 당당하게......" "바보 같은 소리 마세요!" 아크가 와락 걸음을 돌려 크로스의 어깨를 움켰잡았다. "내가 당신들을 이런곳에서 죽게 하려고 데리고 온줄 아십니까? 설사 내가 여기서 죽는한이 있어도 당신들은 살아야합니다!아니, 살리고말겁니다!" "아,아크.........!" 크로스가 움찔하며 충혈된 눈동자로 아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아크는 내심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대체 NPC라는 자각이 있기는 한거야?' 정말이지 울화통이 터진다. 현재 아크에겐 NPC가 전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아크나타짜, 짝퉁은 죽어도 24시간 뒤에 다시 부활할수 있다. 그러나 NPC는 한번죽으면 굿바이다. 힘들게 작센에서 나가란까지 데리고와서 공성전을 해보기도전에 20명이나 되는 전력을 잃을수는 없지않은가? 설사 아크가 죽더라도 NPC가 죽어서는 안된다. '내가 정말 NPC를 위해 목숨을 걸게 될줄이야!' 아크는 열이 뻗쳤지만 일단 속내를 숨기고 말했다. "당신들의 희생으로 내가 산다면 나는 이미 산목숨이 아닐겁니다!" "아크,자네 그렇게까지 우리를........!" "과연 작센의 영웅, 자네를 따라나선 우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자네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아!" 크로스 일행은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팔팔 끓어댔다. "안된다고 했죠? 제발 죽는다는 소리 좀 작작 하세요!짝퉁 형, 타짜형, 어차피 놈들의 목적은 나에요.그러니 먼저 병사들을 데리고 도망치세요!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저 혼자라면 어떻게든 빠져나갈수 있을겁니다" "알았다. 크로스 경, 따라오시오!' 타짜와 짝퉁은 아크의 생각을 짐작하고 병사들을 데리고 다른 골목으로 뛰었다. 앞서 달려오던 헤르메스 길드원이 소리쳤다. "놈들이 흩어진다.!" "흥, 우리 전력을 분산시키려는 거지. 하지만 목표는 어차피 다크울프뿐이다. 놈의 공격대원 몇 마리 잡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도전권은 다크울프에게 있다!" "그렇지, 모두 골목으로 분산해 포위망을 좁혀라!" 쥬르의 명령에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부터 아크는 사냥개에게 쫓기는 멧돼지처럼 몰리기 시작했다.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모두 수준이 높았다. 물론 1대1로붙으면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사방에서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니 어떻게 해볼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쥬르와 듀크였다. "커스 라이트닝!" 쥬르의 손끝에서 검은 번개가 쏟아져 나왔다. 아크가 워낙 빠르게 도망치니 광역마법을 펼친것이다. 광역 마법은 단일 마법보다 위력이낮은게 상식. 그럼에도 300이나 생명력이깎이며 저주까지 걸려버렸다. 듀크의'발자취 추적'스킬도 문제였다.아크가 어디로 숨든 귀신같이 찾아내 길드원들에게 알리는통에 복잡한 골목을 뛰어다녀도 추격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크하하하,다크울프.경기장에서 날뛰던 기세는 다 어디로갔나?" 쥬르가 마법을 난사하며 비아냥거렸다. 울화통에 터지지만 그저 도망가는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미 생명력이 70%나 빠졌다. 이대로 도망쳐서는 1분도 버티지못해!하지만 이 상태로는 어디로 숨을 방도가 없으니.......' 그때,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나가란에 들어설때 읽었던 기본 규칙에 대한 설명. '맞아,전투의 제약이 없는 나가란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분명 이 앞에........!' "마령 소환, 데이모스!" 딱딱,딱딱딱! 데이모스가 검을 치켜들며 뛰어나왔다. "미안하다, 데이모스!벌칙 한번은 면제해 줄게!" 아크는 다짜고짜 데이모스에게 검은 가죽 로브를 뒤집어 씌우고 골목 밖으로 걷어찼다. 엉겁결에 골목 밖으로 굴러나온 데이모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이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 순간, 한줄기 검은 광선이 뻗어나와 데이모스를 후려쳤다. 따닥!따닥! "잡았다........엇? 뭐야? 이놈은 다크울프의 소환수잖아?빌어먹을 소임수를 쓰다니!" 쥬르가 와락 인상을 쓰며 몸을 돌렸다. 나오자마자 걷어차이고 마법에 얻어맞은 데이모스지만,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불타는 충성심으로 와락 쥬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이...........건방진 해골 자식이...........!" 쥬르가 마법의 힘이 담긴 주먹으로 데이모스르 후려쳤다.그렇게 몇번을 후려쳐 데이모스의 생명력이 5%까지 떨어지자 돌연 흐린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아크가 곧바로 소환을 해제한것이다. 뒤늦게 쥬르는 아크를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골목을 따라 빠져나왔을 무렵, 이내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 이런 젠장........!" 골목 맞은편은 시장이었다. 수많은 NPC가 우글거리는 시장. 그렇다, 아크는 데이모스를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시장으로 뛰어 들어간것이다. 무법천지인 나가란에서 유저들이 유일하게 건드리지 못하는 상대!그게 바로 중립 성향의 NPC다.덕분에 쥬르와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공격할수 없었다. "찾아라,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거다!" 쥬르가 짜증을 내며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때,아크는 쥬르와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쥬르의 시선이 데이모스에게 집중되는 사이변신을 풀고 NPC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쥬르가 내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있었던게 천만다행이군'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유유히 시장을 빠져나왔다. '어쨌든 이번일로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다' 다시 막사로 돌아온 아크는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우리 힘만으로는 결코 아란을 쓰러트릴수 없어. 그리고 시르바나에서는 잿빛 날개와 헤르메스,이 두 길드 가운데 하나와 손을 잡을수 밖에 없다' 시간이 없다. 곧 잿빛 날개나, 헤르메스가 아크를 찾아 나서리라. 그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어느 한쪽을 택해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잿빛날개는 이미 정원이 꽉 찼다고 말했다. 일단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다시 타협해 볼여지는 있겠지만, 골목에서의 전투를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면 역시 헤르메스가 잿빛 길드보다 세력이 더 강했다. '하지만 헤르메스에는 쥬르와 듀크가 있어.내가 도전권을 가지고있다고 해도 순순히 동맹을 받아들이지 않을거야. 더구나 아란이 다른길드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도전권도 별 의미가 없다. 헤르메스가 동맹을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아크의 입가에 문득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 의외로 해답은 간단해 .내가 가진 도전권이 유일하도록 만들면 되는거야' 아크는 곧바로'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쥬르를 호출했다.쥬르도 시르바나 영지에서 서성대고 있는듯, 통신은 바로 연결되었다. -아크? 아크가 누구냐?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할때는 본명을 사용해야 한다. 다크울프라는 이름만알고있었던 쥬르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다크울프라고 하면 아실라나? -다, 다크울프!네놈.......! 통신이 연결되자 곧바로 욕지거리를 지껄였다. 그러나 아크는 여유 넘치는 목소리로 받아쳤다. -이봐 ,방귀 뀐놈이 성질을 부린다더니.......화낼사람은 나잖아. -시르바나에 있는한 기필코 네놈을 갈아버리겠다! -그러든지 말든지 내 알바 아니고,제안할게 있다. -제안? 네놈이? -너도 명색이 선구자니 길드에서 제법 발언권이 있겠지? 간단하게 말하지. 다크에덴의 공격대장으로서 헤르메스길드에 동맹을 제안한다. -동맹? 하, 너 미쳤냐? 우리가 뭐 때문에 너같은 놈과 동맹을맺어야 하지? -도전권이 나에게 잇다는걸 잊은 거냐? -그까짓 도전권 네놈만 죽이면 무효다. 그리고 어차피 네놈 혼자서는 도전권을 가지고 있어보야 다른 길드의 밥이나 될뿐이다. 우리는 그냥 다음주까지 기다리면 그만이지. -잿빛날개를 잊은모양이군. -............. 쥬르가 잠시 침묵했다. 약발이 먹힌 모양이다.그건 다시 말해 하이얀이 말한대로 잿빛 날개 역시 충분히 성을 차지할만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는뜻. 그리고 잿빛 날개가 성을 차지하면 헤르메스로서도 꽤나 힘들어질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쥬르의 반응 하나로 둘의 세력 관계를 파악한것이다. '나가란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머리를 써야지' 그러나 쥬르는 곧 코웃음을 쳤다. -잿빛 날개는 솔직히 귀찬은상대다.인정하지.하짐나 놈들이 도전권을 가져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야.놈들은 공성전을 못하고, 너는 버림받을거다. -하데스 때문이지? -........그렇다. 놈들은 우리도 지난 3주 동안 잡으려고 돌아다녔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아마 이번에도 아란은 만만한 하데스를 도전상대로 지목하겠지 .잿빛 날개가 놈들을 처리하지 못하는한 네가 가진 도전권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만약 내가 하데스를 처리해 준다면? -뭐? -분명하게 말하지. 나라면 하데스를 처리할수있다. 아란이 하데스의 도전을 받아들인뒤에 처리하면 다음 도전자는 나로 결정 난다는건 알고 있겠지? 그래도 잿빛날개가 내 요청을 거절할까? 잿빛날개가 성을 차지한뒤에 후회해도 늦을텐데? -네가 어떻게 하데스를 잡을수 있다고 장담하는거지? -자세히 설명할수는 없지만 100%장담한다. -.........길드장과 의논해 보지 아크는 느긋한 기분으로 기다렸다. 물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져놨다. 조바심 칠 이유가 없는것이다. 역시나 몇분도 되지않아서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라이덴 님께서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귓속말을 신청하셨습니다. '역시 라이덴이라는 기사가 헤르메스의 길드장이었군' 아크가 귓솔말을 수락하자 라이덴의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얘기는 들었다. -대답은? -요구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 -동맹을 맺어 함께 공선전에 참가한다. 영지점령에 성공했을때 매달 시르바나 영지수익금의 40%. -너무 과한데? 시르바나는 아직 개발중인 영지야.영지를 점령해도 초반에는 수익금보다 투자금이 더 만이 들어간다. 게다가 이미 4개 길드와 동맹을 맺은상태다. 그들에게도 수익금을 분배해 줘야 하는데 공격대에 불과한 너희에게 40%나 준다면 반발이 심할거야. -내가 아니면 공성전 자체를 못하게 되는데? -너 역시 우리 아니면 공선전을 못하지. 잿빛 날개를 운운했지만, 정말 그럴생각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연락도 하지않았을거라는 것쯤은 알아. 과연 나가란에서 세력을 키운 길드장이라 제법 머리를 굴릴줄 안다. -좋아, 30%.대신 공성전에서 사용될 물자 보급은 모두 그쪽이 떠맡는조건으로 ,그 이하라면 나 역시 너희와 동맹을맺을 이유가 없어. -알았다. 30%로 합의하지.대신 조건이 있다. 네 지휘권은 여섯번째다. 공성전에 참가한다고 아무나 영주가 될수 있는건 아니다. 지휘권을 가진 대표에게만 이지배의 왕좌에 앉을 권리가 주어진다. 그리고 만약 대표가 전사한다면 그다음 순위의 지휘권을 가진 길드장에게 권리가 돌아간다. 즉, 모든 길드장이 죽지않는한 아크에게 영주가 될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 애초에 영주 자리에 별로 관심이 업는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영주성을 차지하면 마음대로 드나들수 있는 권리는 보장해야한다. 또한 공성전이 시작될 때까지 다크에덴을 잿빛 길드에게서 보호해 줘야한다. -동맹이니 당연하지. 그럼얘기는 끝났군. 장소를 정해라. 걱정된다면 혼자 동맹 협정서를 가지고 가겠다. 단, 협정은 네가 하데스 길드를 해치운 뒤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그 뒤로 몇 시간뒤, 아크는 라이덴과 동맹협정서를 교환했다. 동맹협정서 계약자 : 헤르메스 길드장 라이덴=다크에덴 공격대장 아크 헤르메스 길드장 라이덴과의 동맹으로 헤르메스 연합에 가입되었습니다. <세부 사항 : 헤르메스 연합이 시르바나영지를 점령하면라이덴은 아크에게 매달 영지에서 산출되는 수익금의 30%를 분배한다. 계약은 헤르메스가 영지를 점령하고 있을때만 해당된다.단, 동맹협정서는 다크에덴이 하데스 길드를 무찌른 뒤부터 효력이 발휘된다> '흠, 뭔가 찜찜한데?' 아크는 찜찜한 눈으로 동맹 협정서를 훑어보았다. 영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수익금의 30%라면 적지않은 돈일것이다. 솔직히 아크는 10%만 받아내고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순순히 30%를 약속한것이다. 아크보다 몇배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선구자.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동맹협정서는 양자가 합의해야 파기할수 있다. 게다가 나가란에서는 다른 길드와의 신용이 떄로는 무력보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대놓고 배신을 때리지는 못할거야' 아크는계약서에 서명했다. "좋아, 그럼 이제 한배를 타게됬군. 쥬르, 듀크와 안좋은일도 있었던것 같지만 큰일을 앞두고 있으니 사소한 원한은 털어내고, 앞으로 잘해보자. 우리의 적은 아란이다" "그래 ,잘부탁한다" 아크와 라이덴이 굳게 손을 마주잡았다. 아크는 돈을 되찾기 위해, 라이덴은 성을차지하기 위해....... '자, 이제 안델 녀석을 끌어내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길드에서도 안델을 찾고 있으니 그리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것이다. 물론 안델 성격을 봐서 아크를 발견하면 먼저 접근해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러려면 먼저 아크가 안데르이 눈에 띄어야 하는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곧 기발한 계획이 떠올랐다. '놈도 아란에게 도전을 하려면 언젠가는 한번 전쟁의 신전에 들러야 한다. 그럼 전쟁의 신전에서 놈의 이목을 끌만한 상황을 만들어 놓으면 돼' 아크는 전쟁의 신전 앞의 광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데드릭을 불러냈다. "불렀냐,주인?" "그래,지금부터 내가 그만하라고 할때까지 나를 때려라" "에?" 데드릭이 무슨소리 냐는듯이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내가 뭐 잘못한거라도 있냐?" "그런거 아냐.절대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을테니 그냥 나를 때려" 데드릭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뭔가 생각난듯 히죽거리며 말했다. "후후후,주인. 이제야 나를 학대한걸 반성한 거냐?" 단순하기 짝이 없는놈 같으니......귀찬게 말싸움하고 싶지않았던 아크는 대충 고개를 끄덕엿다. "뭐, 그렇다고 해두지" "좋아, 그럼 나중에 뭐가 그러기 없기다?" "자꾸 짜증나게 할래?"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는 찰나.명치에 데드릭의 주먹이 꽂혔다. 숨이 턱 막힌다. 겉모습이 고작 열댓 살의 어린애라 잠시 방심했다.그러나 어쨌든 레벨은 이미상당한 수준, 조막만한 주먹이라도 제법 매웠다. 시켰다고는 하지만 막상 소환수에게 얻어맞으니 기분이 더럽다. 그러나 아크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며 참아냈다. 아크가 별 반응이 없자 데드릭은 본격적으로 아크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마치 그간의 모든 설움을 단숨에 풀려는듯, 아픈데 골라 때리고 때린데 또 때리고.....리얼하기 짝이없는 게임이라 아크의 얼굴은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광장 한복판에서 아크가 꼬마에게 쥐어 터지자 유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저 꼬마는 유저가 아닌것 같은데.....대체 유저가 왜 NPC에게 쥐어 터지고 있지?" "저것도 무슨 퀘스트인가?" "매 맞는 퀘스트가 어디있어?" "맞는걸 좋아하는 유저인가?" 유저들이 어이없는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됐어.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크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이없는 장면을 연출해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것.그만큼 관심이 집중되면 틀림없이 안델도 한번쯤은 관심을 갖게 되리라. 상대가 먼저 아크에게 다가오게 만드는것. 그게 숨어 다니는놈을 찾아내는것보다 더 효율적이다.그러나 데드릭에게 얻어맞는건 단순히 그 이유만이 아니다. -탄력도가 1올랐습니다. 정신없이 얻어터지다 보니 눈앞에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둔기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주는 탄력도! 탄력도를 올리는 방법은 둔기에 맞는 것뿐이다. 검을 사용하는 데이모스가 아닌 데드릭을 불러낸 이유가 그 때문이다.주먹도 일단은 둔기에 속하니 얻어맞다 보면 스탯이 오를거라고 생각한것이다. 스탯도 올리며 안델을 유인해 낸다. 일석이조의 작전! 그렇다고는 해도......... "우헤헤헤,주인,죽어라!" 아크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가자 데드릭은 더욱 흥이 올라 미친듯이 주먹을 휘둘러 댔다. '이 자식, 때린다고 정말 이렇게 무식하게 때려? 두고보자' 마음속 깊이 복수를 다짐하는아크였다. '크크큭, 멍청한 놈들............' 안델은 산더미 같은 우편물을 훝어보며 히죽거렸다. 일주일간 접속하지않다가 공성전 일시를 하루 앞두고 도전장을 보내기 위해 접속한 참이다. 그사이 동맹 요청, 혹은 도전권을 포기하라는 협박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다.대부분 공성전을 하고싶어 안달이 난 잿빛 날개와 헬메스 길드원들이 보낸것이다. '역시 아란은 머리가 좋다니까' 아크가 예측한대로 하데스는 아란이 만든 유령길드였다. 길드원은 150명. 공격대로는 아무래도 옹색하니 일단길드의 구색을 맞췄다. 그렇게 유령 길드를 만들어놓고 신탁을 받은길드의 도전을 거부하는 역활로 써먹은 것이다.공성전 규칙을 교묘하게 이용한 방법이었다. '이제 내일 접속해서 영주성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보내면 되는거군' 안델이 절차를 끝내고전쟁의 신전을 나올때였다. 웬 유저들이 중앙 광장 근처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슬쩍 인파에 끼어들던 안델은 움찔하며 얼른 얼굴을 숨겼다. "엇, 저,저녀석은.........!" 광장에서 괴행을 펼치는 사람은 놀랍게도........아크였다. 안델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기고 아크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어떻게 여기까지........아하, 그렇군.역시 아란의 말이 맞았어.개를 두들기면 주인이 나온다더니.......시드라는 놈에게 대강 사정을 듣고 따지러 온 모양이구나. 그런데 왜 광장에서 저런짓을 하는걸까? 아니, 그런건 상관없어.이건 기회다!시르바나 영지는 나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어.내눈에 띈 이상네놈은 끝장이다!' 안델은 이를 갈아붙이며검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베어버리고 싶었다.그러나 안델도 바보는아니다. 이미 카이로트에서 아크의 엄청난 성장을 확인했다. 반면 안델은 그동안 레벨은 거의 올리지 못했다. 시르바나에서도 정체를 숨기기위해거의 접속도못했던 것이다. 대체 왜 아크가 소환수에게 얻어터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약해서 그런것은 절대 아니리라. 분노만으로는 아크를 떄려죽일수 없다. '어쩌지? 길드원을 불러모을까? 하지만 그 사이에 도망가기라도 하면........' 안델이 그런생각을 하는사이에 아크가 갑자기 소환수를 돌려보내고 광장을 가로 질렀다. '이크,그대로 나가란을 나가버리면 곤란한데......하지만 내 얼굴을 알고 있으니..............' 안델은 허둥지둥 길드원 하나를 수배해 아크의 뒤를 쫓도록 지시했다. 아크는 그대로 마을을 벗어났다. 그리고 숲길을 대략 20분거리를 걸었을무렵,작은 야영지가 나타났다.야영지에는 10여명의 사내들이 모여있었다.저으이남과 갱생단원들이었다. "역시 무리겠지?" "설마 아란이 벌써 영주가 되어있을줄은 몰랐어요.아란이 영주로 있는 이상 싸움을 걸어봐야 승산이 없어요" "할수없지. 3,000골드를 잃은게 분하지만 되지않는 싸움을 할순 없으니까.아란이 우리가 들어온걸 알게되면 귀찮아지니 정찰대가 돌아오는 즉시 정리하고 돌아가자" "네............." 아크가 시무룩한얼굴로 대답했다. 이 소식은 곧바로 안델에게 전해졌다. "돌아간다고? 흥, 누구 마음대로? 들어올때는 자유지만 나가는건 마음대로 안될거다. 마침 놈들이 다 모여 있으니 이번 기회에 굴욕을 갚아주겠다!당장 비상 연락망을 동원해 길드원을 모두 소집해!" "하지만 공성전까지는 24시간도 안남았습니다. 아란경이 꼼짝말고 숨어있으라고 한말을 벌써 잊었습니까? 만약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갑작스러운 솢비령에 길드원들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나 이미 눈알이 돌아버린 안델에게는 개소리로 들릴뿐이었다. "놈들은 고작 열댓명에 불과해. 무슨 일이 생길리가없잖아" "헤르메스나 잿빛날개에서도 우리를 찾고 있지않습니까?" "내가 바보인줄 아냐? 조금전에 잿빛날개와 헤르메스가 다른마을에서 길드전을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놈들을 해치우는 길드원에게는 두당 50골드씩 포상을 내리겠다" "50골드?" 길드원들이 놀란 눈으로 웅성거렸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페가수스에게 백업을 부탁해놔" "하지만 아란경에게 먼저 보고를 하는편이......" "내가 아란의 따까리냐 ?혼자 그정도도 판단 못할것 같아?" 안델이 으르렁거리며 길드원을 노려보았다. "시간도 없어. 놈들이 이제 나가란에서 나갈지몰라. 긜고 설사 작은 문제가 생겨도 상대가 아크였다면 아란도 별 말안할거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테니 서둘러 준비해!" ".........알겠습니다" 길드원이 비상 연락망을 동원하기위해 접속을 끊었다. 동시에 창가에 붙어있던 박쥐한마리가 씨익 웃으며 하늘로 솟구쳤다.박쥐는 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을 가로질러 숲속에 자리잡은 아크의 주둔지로날아갔다. 그 그림자는 데드릭!데드릭은 아크의 어깨에 앉아 재미있어 죽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키키킥, 주인. 그 띨띨이 자식 당장이라도 쳐들어올 기세더라고" "좋아, 일단 먹이는 물었군" 그렇다, 이건 아크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델이 혼자일 가능성은 없다. 때문에 일단 모르는척 마을을 나오며 몰래 데드릭을 재소환 ,안델을 감시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동시에 헤르메스에 연락을 보내 견제하고 있던 잿빛 날개와 길드전을 하라고 부탁했다. 안델이 안심하고 기어 나와 아크를 공격할수 있도록 말이다.역시나 눈이 뒤집힌 안델은 예상대로 움직여 주고있었다. "이제 쥐새끼를 잡을준비를 하죠" "안델이라.......준비운동감으로는그만이군" 정의남이 씨익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신중히 움직여라. 놈들이 눈치채고 도망치면 귀찮아진다" 울창한 숲속, 일단의 병사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한곳을 향해 모여들었다. 안델과 유령 길드 하데스의 길드원들이었다. 비상 연락망을 가동시켰지만 20분 동안 모인 길드원은 100명밖에 되지않았다. 하지만 열댓 명을 상대로는 차고도 넘치는 숫자였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 안델은 멀리 보이는 모닥불을 노려보았다. 한달전 카이로트에서 당한치욕! 아크와 갱생단이 그를 둘러싸고 주문서를 좍좍 찢어대던 장면은 죽을때까지 잊히지 않으리라. '이번에는 내가 네놈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새겨 주지!' 100명이나 동원했으니 이기는건 당연지사. 문제는 어떻게 죽이느냐.비록 나가란의 규칙때문에 주문서를 사용할수는 없지만,잘근잘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치욕적인 죽음을 안겨 주리라! 안델은 신중하게 병력을 움직여 주둔지를 포위했다. 조금더 거리를 좁히니 일렁거리는 불빛 사이로 10명가량의 사내들이 보인다. '후후후,곧 죽는줄도 모르고 한가롭게 잡담이나 하는 꼴이라니...............' "지금이다. 공격하라!" 100명의 하데스 길드원들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주둔지로 달려들었다. 주둔지에 있던 10명의 사내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다음순간, 돌연 바닥에 코를 처박더니 양손을 미친듯이 휘둘러대는게 아닌가? 저게 웬 미친짓이냐, 하고 생각하는 사이,그들은 거짓말처럼 땅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뭐,뭐야?" "굴을 파서 도망가 버렸잖아?" "굴을 파는 스킬도 있어?" 길드원들은 어이없는 눈길로 파헤쳐진 흙더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곧이어 언덕 위에서 열댓개의 횃불이 어둠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횃불이 떨어진곳은 주둔지 곳곳에 쌓여있던 나뭇가지 더미들.거기에 기름까지 뿌려놨는지 단숨에 불길이 번졌다. "헉, 부,불이다!" "함정이다!" "피,피햇!" 길드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사방으로 도망쳤다. 나뭇가지 근처에서 불길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길드원의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다. -화염 데미지 300을 받앗습니다. -'화상'에 걸려 1분간 10초당 10의 데비지를 받게됩니다. -천, 가죽 계열의 방어구에 불이붙어 10분간 방어력이 20%감소합니다. "맙소사!" "세상에 이런게 어딨어?" "크하하하,애송이들.그게 바로 화공이란 거다!" 그때, 언덕위에서 한 사내가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정의남!그렇다. 이번 작전은 모두 정의남이 생각하고 만들어낸것이다. 사실 화공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작전으로 게임에 그대로 적용할수 있는 유저는 거의 없다. 물리법칙이 적용되니 불을 붙이는건 가능해도 그걸 이용해 실제 적에게 피해를 주는건 생각만큼 거의 불가능한것이다.그러나 대한민국 특수기동대장까지 지냈던 정의남이다. 각종 고급 전략을 달달 외울정도의 실력파! 덕분에 이 넓은 뉴 월드에서도 몇명밖에 익히지못한 관련스킬 최고 등급인 '전술 III'을 배 울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항상 도적들을 끌고 다니다 보니 숙련도가 쭉쭉 올라 상급이 되었다. 정의남이 처음으로 칭호를 받은건 그때였다. [당신을 따르는 부하들로부터'명장'의 칭호를얻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전투 경험을 쌓아 전술 운용이 명장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아군은 지휘하는 솜씨는 비할바없이 정밀해지고, 적을 혼란에 빠트리는 솜씨는 더욱 용의주도해졌습니다. 훌륭한 지휘관은 아군의 생존율을 높여줍니다. 명장으로서 이름을 날리게된 당신에게 부하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낼것입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부하들의 신뢰도에 50%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명성이 500상승했습니다. *아군 전체에 공격력, 방어력, 적중률,작전 수행률이 10%증가합니다. *명장이 되어 각종 전략을 성공시킬경우,일반 피해의 100%데미지가 가산됩니다. <해당 전략 :수공, 화공, 매복, 기습,돌진,비산, 공성 전술>] 거기에 '전술 III'의 부가보너스까지 중첩된다. 백수 주제에 집단 전투에서는 정식기사로 전직한 유저이상의 보너스가 적용되는것이다. 그리고 공격대장과 부대장이 같은 효과의 스킬을 가지고 있을경우,더 등급이 높은 스킬이 공격대에 적용되는 룰에 따라 다크에덴에게는 정의남의 전술 스킬이 적용되었다.정의남은 그 전술 스킬을 사용해 펼칠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구상했다. 너구리족을 위장시켜 놓고 안델이 들이닥치자 종족 스킬인 굴파기로 도주,언덕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데크에덴의 병력으로 화공을 펼친것이다. 명장의 칭호를 받은 정의남이 고난이도 전략을 성공시키자 그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일반적인 화공은 성공시켜도 적을 혼란시키기만 할뿐, 데미지는 크게 기대할수없다.그러나 명장의 전략은 일단 성공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안겨줄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 "꽤나 따끔할거다" "으드득, 어디서 이런 개수작을......!" 안델이 이를 갈아붙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덌다. "정신차려,고작 화염데미지다 놈들은 숫자가 얼마되지않아. 머릿수로 밀어붙여!" 안델이 길드원을 이끌고 언덕을 달려올라왔다. 그러나 반도 올라가지 전에 위에서 아름드리나무들이 굴러떨어졌다. 그역시 미리 장신 NPC인 너구리족인'목재 채취'로 베어놨던것.덕분에 하데스 길드원들은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생명력이 쭉쭉 빨려나갔다. "이런 망할놈들!전사 앞으로 ,방어 태세로 밀어붙인다!" 안델의 명령에 전사들이 방패를 세우고 나무를 막아냈다. 그러자 정의남이 씨익웃으며 소리쳤다. "아크,네 차례다!" "전 부대원 대포 장전!" 동시에 양옆에서 40명의 병사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전적 도적과 너구리족이었다. 처음 이들을 한패로 끌어들였을때, 아크는 이미NPC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NPC는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는 약점! 물론 공성전을 치러야하니 어느저도 희생은 각오해야 하지만, 가능한 생존율을 높여야하는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NPC에게 '대포술'을 가르치는것이다. 아크는 갱생단이 구해온 넉넉한 자금으로 너구리족에게 대포제작을 의뢰했다. 아쉽게도 직업이나 종족의 제한으로 묘족과 크로스들은 대포술을 익히지 못했다.그러나 도적들은 아직 백수, 쉬지않고 연습을 시킨결과,30명의 도적들은 '대포술'스킬을 익힌 상태였다. 백수라서 활용할수 있는 방법도 있는것이다. 철컥, 철컥,투투투퉁! 40명이 대포를 난사하자 전사들이 쭉쭉 밀려났다. 방패로 막아도 임시방편, 대포에는 방어구 파괴의 옵션이 붙어있었다. 방패의 내구도가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지니 전사들도 더 이상 방패를 사용할수 없었다. '전투에는 전사만 필요한게 아니다. 때로는 장인 NPC가 섞여 있는게 전력을 몇배나 올려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지저세게에서 너구리족을 지휘하며 알게된 정보였다. 안델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왜 항상 저놈을 죽이려고 하면 엉뚱한놈들이 나타나서 방해하는거야? 대체 뭐하는놈들이야?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대포 따위는 무시하고 공격해!한놈이라도 더 죽여라!" 안델이 길드원을 이끌고 무턱대고 돌진해 들어왔다. 대포를 장비하고 있는 NPC들이 하데스 길드원과 난전이라도 벌이게 되면 곤란하다. '공성전을 생각하면 NPC의 보호가 최우선이다!' "형님들 차레에요!" "오냐, 기다리고있었다!" "모두 용기를 내세요.대지는 당신들의 친구 ,언제나 당신들을 지켜줄거에요" 갱생단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 로코가'보호의 노래'로방어력을 상승시켰다. 아크도 뒤질세라 '간병'으로 스탯과 용기를 상승시켰다. 겹쳐지는 버프효과로 아크 부대의 방어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 사이, 전사들은 언덕을 기어 올라와 코앞까지 다가왔다. "개자식들, 뒈져라!" "화격!" 아크는 검을 휘둘러 전사를 튕겨냈다. "마령 소환, 데이모스!방어태세로 적을 막아라!" 딱딱딱! 그리고 곧바로 '협박'스킬을 날렸다. "건방지게 어디다가 검을 들이미는거냐? 이 아 살루비아 으라차차 같은 놈아!" 난전을 막아야하니 잠깐이라도 길드원을 경직시켜 돌진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초급스킬은 레벨 130이 넘는 하데스 길드원들의 화만 돋우었다. "뭐야?이새끼,똥만 먹고 살았나 ?입 한번 더럽네" "어디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거지?" "머리털 나고 그런 욕은 처음 들어본다. 네놈만큼은 죽인다!" 아크가 순식간에 10명의 길드원에게 둘러싸였을때였다. "어딜 까불지 지랄들이냐?회쳐서 샤브샤브를 해먹어 버린다. 이 삐-같은 삐-자식들아!" 바로 뒤에서 아크와는 수준이 다른 욕설이 터져나왔다. 밑바닥에서 박박 긴 사람들도 들어본적이 없는 참신하고 추잡하기 그지없는 육두문자! 게다가 목소리에 담겨 있는 무시무시한 박력에 길드원들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몸이 굳어버렸다. 해결사가 사용한 상급 협박의 위력이었다. 과연 창시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굉장하다. 한번에 20명을 경직시켜 버리다니.......!'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해결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놀랄일은 그것뿐이 아니다. 100대 83.숫자는 비슷하지만 아크는 NPC를 보호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묘족과 크로스들을 뒤로 물려놓고 아크와 갱생단만으로 전사들을 막으려고 했던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연히 쉽지않은 전투가 되리라. 그런데 한동안 함께 전투를 안한 사이에 정의남은 물론, 갱생단의 전투 능력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갱생단은 아직 전직도 하지않아 딱히 전투 스타일이랄게 없었다. 그런데 독특한 스킬들이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무직이라 배울수 있는 스킬들과 괴상한 전투 스타일! '레벨이 좀 떨어져서 걱정했는데.......설마 저런 방식으로 전투를 할수 도 있을줄이야!' 초반부터 아예 힘만 죽어라 올려온 불끈이는 무조건 한대 맞으면 한대 때리는 식이었다. 그것도 맨몸으로.......그렇게 몇달, 신체 방어력을 50%나 올려주는 '금강불괴'라는 유니크 스킬이 생겨버렸다. 거기에 이번에 현질로 엄청난 장비를 걸치니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크하하하,고작 그거냐? 간지럽지도 않다!" 불끈이는 혼자 3~4명과 싸우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반면 전직 사기꾼인 짝퉁은 '사기술'과 '화술'의 세트 스킬로 생성된 '이간질'을활용했다. "어이, 안델 같은 녀석 밑에서 뭐 먹을게 있다고 개처럼 충성을 바치나? 너는 벨도 없어 ?게다가 봐,공격하라고 해놓고 정작 안델은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잖아" "다,닥쳐,으으으........!" 몇몇 전사는 '이간질'에 혼란에 빠져 마구잡이로 검으 휘둘러댔다. 그러나 변태적으로 캐릭터를 키우는데는 타짜를 따라갈사람이 없었다. 타짜는 누구도 상상할수 없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키웠다.전직이 도박사다 보니 초반부터 무턱대고 운에 엄청난 스탯을 투자한것이다. 덕분에 레벨이 100이 됐는데도 힘과 체력은 고작 70~80.반면 운은 500을 넘었다. 그야말로 변태적인 캐릭터! 초반에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캐릭터였다. 그러나 운이 일정수준 500을 넘어가자 생각지도 못했던 능력이 생겼다. 운은 회피율과 치명타 확률에 영향을 주는 스탯. 거기에 타짜는 이번에 현질로 오직 운과 회피율,치명타 확률을 올려주는 장비로 도배를 해버렸다. 덕분에 어지간한 공격은 모두 회피가 뜨고 ,타짜가 공격을 했다하면 약점이 아니라도 치명타가 터진다. "이봐,이쪽이다.멍청아!" 타짜는 아예앞으로 나서서 적의 공격을 받았다. 생명력이 800밖에 안되는 캐릭터가 몸빵을 하는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격을 회피하니 오히려 불끈이보다 회복 포션을 덜먹었다. 그러나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전직 소매치기인 얍삽이였다. 아크가 10명을 상대하며 생명력이 30%까지 내려갔을때였다. "옛다.이거나 먹어라!" 뒤에서 지켜보던 얍삽이가 회복 포션을 냅다 집어던졌다. 얍삽이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배운 새로운 스킬'포션던지기'였다. 포션이 몸에 닿자 유리병이 깨지며 아크의 생명력이 회복되었다. 돈이 든다는 문제가 있지만, 멀리서 아군을 회복시키는 성직자와 같은 스킬인것이다. 평범하게 키워서는 절대 얻을수 없는 스킬들! 처음부터 자신의 성향에 맞춰 반쯤 장난으로 키우던 갱생단은 결국돌연변이 같은 캐릭터들을 만들어 냈다. 앞에는 갱생단과 아크,뒤에는 NPC들의 포격! 결국 하데스 길드원들은 하나둘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너무 급하게 소집해 포션조차 챙겨오지못한것. 그렇게 절반 이상의 길드원이 쓰러지자 안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페가수스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라!" 안델의 최후의 보루! 고딩어 길드원 하나가 하늘로 신호탄을 쏴올렸다. 이곳으로 출발할 때 아란이 새로 만드는 유령길드인 페가수스에게 근처에서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던것. 비록 50명밖에 되지않는 허접스런 길드지만,전황을 뒤집을수 있으리라. 잠시후, 거친 발소리와 함께 숲으로 50여명의 유저들이 달려왔다. 안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됐다. 아크!네놈이 아무리 날뛰어 봐야 결국 내 손바닥 안이다!" "과연 그럴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뒤이어 다가오는 유저들을 바라보던 안델의 눈이 찢어질듯 커졌다. 신호를 받고 도착한 무리들의 가슴에새겨져 있는 문장은 페가수스의 날개달린 말이 아니었다. 은빛 달 문장!안델을 쫓아다니던 헤르메스의 동맹 길드 실버문이었다. 아크는 이미 데드릭을 통해 안델의 계획을 읽고 실버문을 페가수스가 모이는 장소에 매복시켜 놨던것! 그제야 안델은 모든 상황을 깨달았다. "너,너.........이 자식.설마 헤르메스와......." "매번 당하면서도 아직 모르겠냐?내가 너보다 똑똑하다는걸?" "개자식!" 안델이 이를 갈아붙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안델은 아크의 상대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사정없이 날아드는 발차기! 발차기로 반쯤 죽여놓고 백드롭을 먹이자 안델은 스턴에 빠져 헤롱거렸다. 안델이 순식간에 당해버리자 길드원들이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3주간 이날만을 기다려온 실버문이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퇴로를 봉쇄하고 잔당을 처리해버렸다. "자, 이제 너를 어떻게 해줄까?" 아크는 안델의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이를드러냈다. "너..............너 이 자식.........!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고맙군. 나 역시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어" 그말을 끝으로 안델은 다시 아크의 밥이 되었다. ACT 8 수호탑 격파 "멍청한 자식!" 아란이 짜증나는 얼굴로 이를 갈아붙였다. 방금전, 아란에게 공성 관련 NPC가 찾아왔다. "조금 전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하데스 길드는 길드장 안델이 사망하고, 길드원을 60%나 잃었습니다. 전쟁의 신전규칙에 의해 하데스 길드의 도전권은 박탁됐습니다. 또한 영주의 거부권도 소멸됐으니 내일 오전, 신탁에 의해 선택된 길드와 공성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안델이 하도 난리를 피워대서 할수없이 유령 길드의 길드장을 맡겨놨다. 대신 영지가 안정될 때까지는 허튼짓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는데........결국 사고를 치고말았다.덕분에 원치않던 공성전을 치러야하는 상황이 된것이다. "제대로 공성전을 치르려면 돈이 얼마나 깨지는지 알기는하는건가?" "하지만 이게 정상이잖아요" 그때, 옆에서 레리어트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요?" "솔직히 유령길드까지 세워서 공성전을 회피하는건........결국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해먹는 짓이잖아요.게다가 이 영주성 지하에는.......솔직히 거기 들어갈때마다 소름이 끼친다고요.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정말..........." 아란이 탁자를 쾅, 후려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대체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겁니까? 이건 그냥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우리에게는 입사 시험이라고!그리고 내 덕분에 레리어트님도 이만큼 올라온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제 좀 그만하십시오!계속 그렇게 내 방식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저도 참지 않겠습니다.몇번이나 말했지 않습니까? 정말 글로벌엑서스에 취직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냥 저만 따라오면 된다고!" 레리어트는 몇번인가 입술을 움직이려다가 한숨을 불어내며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제대로 공성전을 치러야할테니 길드원과 동맹 길드를 소집할게요" 레리어트가 나가자 아란은 짜증섞인 눈으로 NPC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공성전을치러야하는 길드는어디지?" "신탁을 받은 사람은 다크에덴의 공격대장 아크와 동맹길드입니다" "아크?" 아란이 놀란 목소리로 서류를 확인했다. 놀랍겍도 아크는 헤르메스 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그것으로 아란은 대강의상황을 추측할수 있었다. 안델이 아무리 바보라도 무턱대고 하데스를 이끌고 밖에 나갔을리가 없다. 분명 그 일의 배후에는 아크가 있다. 안델을 함정에 빠트린건 공성전을 하기위해서. 어떻게 헤르메스와 손을 잡게 됬는지는 모르지만, 아크의 최종목적은 분명 아란.......자신이리라. '건방진 새끼,정말 끝을 보자 이건가?' 아란이 유령길드까지 만들어 공성전을 기피한 이유는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대로 공성전을 치르려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아란은 영지의 발전을 위해 세금까지 올려가며 도로와 토지개간에 쏟아붓고 있다. 시르바나는 아직 개발중인 영지라 돈은 항상부족하다. 영지에서 수입은 커녕, 사재까지 털어넣는 실정이니 공성전을 치를 여유가 없었던것. '젠장, 역시 안델 녀석을 믿는게 아니었어.어쨌든 일이 급하게 됬다. 다크에덴 따위야 어차피 허접스러운 놈들 몇명 모여 있는 것뿐이겠지만, 헤르메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이 성을빼앗기면 모든게 끝장이다. 그동안 쏟아놓은 돈과 길드원의 신뢰,동맹 길드와의 관계도.......만약 아크녀석이 이 영주성의 비밀을 알게되면 내 지지 기반인 대성당과의 관계도 끝장이야' 아란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모든것을 시르바나 성에 걸었다. 만약 여기서 밀린다면 아란은 그저 평범한 유저에 불과하게 되리라. 그것은 이미 80%이상 확정된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이 불투명해지는것을 의미한다. "절대 질수 없다!" 실버문, 노엘,하마네치,풍월......그리고 헤르메스,5개 길드와 다크에덴이 참가한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은 1,600.거기에 용병 NPC200명을 고용해 1,800명이나 되었다. 연합의 리더인 헤르메스 길드는 평균 레벨이 무려 170,라이덴과 쥬르,듀크 같은 몇몇 선구자는 180대나 되었다. 그릭 ㅗ차석인 실버문 길드는 150대.노엘과 하마네치가 140대,풍월은 130대로 간신히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다크에덴은 아크가 159의 레벨을 가지고 있었지만, 평균을 내면 고작 110~120대.덕분에 헤르메스 연합은 다크에덴의 합류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넓은 평원이 새까맣게 뒤덮였다. 공성전이 1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라이덴은 각 길드장을 소집했다. "우리의 병력은 1,800.반면 아란이 모은 여명의 칼날 연합은 1,700남짓. 평균 레벨은 여명의 칼날이 성을 차지할 무렵이 145남짓. 그 뒤로 영주성에서 나오는걸 못봤으니 여전히 비슷한 수준일 것이오.결론적으로 말하면 레벨과 숫자 모두 우리가 우세하단 뜻이지" 라이덴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어조로 설명했다. "갑자기 도전 상대가 바뀌어 준비를 제대로 못했겠지.자, 이번 공성전이 얼마나 어렵게 잡은 기회인지는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것이오.만약 이번 공성전에 실패한다면 다시 전력을 회복하기까지 몇주, 아니 몇 달이 걸리게 될지 모르오.또한 아란의 힘만 빼놓고 잿빛 날개 연합에 기회를 내주는 꼴.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공성전을 성공시켜야 하오.공성전에서 활약하는만큼의 대가를 약속해 줄테니 부디 최선을 다해주기 바라오" "걱정 마십시오" "우리도 이날을 몇주나 기다려 왔습니다" "그럼 작전 개요를설명하겠소" 라이덴이 탁자 위에 지도를 펼치며 설명했다. "이미 알겠지만, 우리가 넘어야 할 첫번째 관문은 수호탑이오" 라이덴은 영주성 양쪽에 자리잡은 2개의 탑을 가리켰다.모든 영주성에는 성을 보호하는 아티팩트가 존재한다.이는 공성전에서 영주측에 부여되는 일종의 보너스로,사기와 용기를 올리거나, 고용할수 있는 용병 NPC의 최대치를 늘려 주는등, 갖가지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여담지만, 과거 작센성에서 마광 포탑의 포격을 막아냈다던 실드 역시 그런 종류의 아티팩트에 속한다. 시르바나 영주성의 아티팩트는 바로 수호탑! 성벽에 실드효과를 부여하고 ,성벽의 내구력을 지속적으로 회복시키는 효과를 가지고있었다. "수호탑의 아티팩트 등급은 A.2개나 되는 수호탑을 방치한다면 제한시간내에 성벽을 부수는것조차 힘들것이오.일반적으로 공성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18시간 안에 성안으로 진입해야 하오. 수호탑을 처리한뒤에 성벽을 부수는 시간까진 고려하면 최소한 14시간안에 수호탑을 파괴해야하오" 라이덴은 곧바로 병력을 나누었다. 세력이 가장 강한 헤르메스와 실버문은 성을 공격한다. 그렇게 본대의 발을 묶어놓는 사이에.노엘과 하마네치가 우측의 수호탑을,풍월과 다크에덴이 좌측의 수호탑을 파괴하는 작전이다.여명의 칼날 연합도 수호탑에 병력을 배치할테니 세 지역에서 동시에 전투가 벌어지는것이다. '라이덴 녀석..........' 아크는 슬쩌 미간을 찡그렸다. 헤르메스와실버문이 성을 공격하는건 좋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강한 노엘과 하마네치를 한데 묶고 제일약한 풍월과 다크에덴을 묶어 버렸다. 전력의 균형을 무시한 편성. 라이덴은 이미 풍월과 다크에덴을 버림수로 쓰기로 작정한것이다.풍월의 길드장도 그정돈 짐작했겠지만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했다. 약한놈은 어딜가나 서러운것이다. '뭐,좋아.어차피 너무 기대를 걸어줘도 부담스러우니까' 편성을 끝낸 라이덴은 동맹 길드에게 물자를 나눠주었다. 수익금을 나누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공성전에 이겨서 성을 차지하는 헤르메스길드.공성전을 치를때는 동맹길드에게 어느정도 군수물자를 제공하는게 관례였다. 아크에게도 계약대로 하급 회복 포션 100개와 중급 회복 포션 100개.곡브 수리상자 10개가 주어졌다. '후후후,이게 웬 떡이냐?' 다크에덴은 갱생단이 들고온 현찰의 힘으로 물자가 풍족한편이었다. 물론 갱생단도 게약내용을 알고있으니 모두 꿀꺽하기는 어렵지만, 성격상 굳이 세세하게 캐묻지는않으리라.아크는 과감하게 중급 회복 포션 100개와 고급 수리 상자 5개를 횡령했다. 동맹협정성에 서명할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지만 정말이지 기대이상의 횡재! '상점가로 따지면 이것만 2,000골드가 넘는다!' 큰건에 끼어드니 떨어지는 콩고물도 규모가 다르다. 아크가 그렇게 나쁜짓을 서슴지않고 하고있을때였다. 뿔나팔소리와 함께 전쟁의 신전에서 나온 참전관 NPC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부터 이곳을 공성전 지역으로 선포합니다!지금부터 공성전이 끝나는 사흘 동안 전쟁의 신전에서 허가한 병력 이외에 어떤사람도 접근할수 없습니다!" 쿠쿠쿠쿵! 동시에 마치 탑처럼 생긴 거대한 모래시게가 돌아갔다. 뉴 월드의 사흘, 현실에서의 24시간 분량의 모래가 담긴 모래시계였다. "공성 병기를 투입하라. 궁수부대,중병기 부대를 엄호하라!" 참전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르메스가 선제공격을 펼쳤다. 투석기가 무거운 울림을 흘리며 성벽으로 접근했다. 대도시의 철공소에서만 제작할수 있는 공성병기!한기에 수백골드나 되는 투석기가 무려 20대!성벽을 부수기 위한 공성병기에만 수천골드를 투자한것이다.거기에 동맹 길드에 준 물자까지.......과연 길드의 사활을 걸었다고 할만했다. 뭐, 아크에게는 돈지랄로밖에 보이지않았지만........ 어쨌든 투석과 수많은 화살이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성벽에 내구력은 내려가는 티도 나지않았다. 오히려 성벽에서 반격해 오는 화살에 헤르메스 연합의 궁수들이 피해를 입고 물어났다. 이게 수호탑의 효과다. "하지만 병력은 우리가 앞선다. 수호탑이 파괴될때까지 쉬지말고 적을 압박하라!" 그렇게 길고긴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수호탑이다!" 앞서가던 풍월 길드원이 소리쳤다. 그가 가리킨 언덕 위,소규모 성곽 중심에 크리스털 탑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풍월 길드장 바론이 다짜고짜 검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모두 총공격!"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아크는 어이없는 얼굴로 바론을 막아섰다. "뭐야?" "수호탑은 시르바나 성의 중요한 방어막입니다. 당연히 그만한 대비를 하고 있을것 아닙니까? 그런데 적의 전력이나 배치도 파악하지않고 돌격이라니요?" "공성전해봤어?" "처음인데요?" "안해봤으면 말을 하지마" 헤르메스 연합의 다른 길드장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녀석이 아크에게는 꼴같지않은 개그까지 하며 지껄여댔다. 아크가 꽤나 하찮게 보인 모양이다. 하긴,총병력 83명.그 가운데 70명이 NPC다. 게다가 도적과 묘족,너구리족의 장비는 가죽 갑옷, 용병중에서도 싸구려 보병 NPC로밖에 보이지않았으리라. 반면 헤르메스 연합에서는 가장 세력이약하다고 하지만 풍월의 길드원도 250명이다. 바론이 목에 힘을주며 말했다. "어차피 수호탑은 전초전이야.아란도 수호탑은 시간벌기에 지나지 않단느걸 알고있지. 그렇지않아도 병력이 달리니 여기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지는 않았을거야.봐, 딱보기에도 병력이 얼마없어보이잖아. 성곽위로 보이는 병사도 50명 정도밖에 안되고"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면........." "지금 무슨 전쟁 영화 찍는줄 알아? 어차피 게임에서의 전투는 레벨과 숫자야" 바론은 무시하는 눈길로 아크를 훑다가 피식 웃었다. "하긴 레벨이나 장비가 안되는 사람은 잔머리라도 써야겠지만,,,,,,,,,자신 없으면 물러나 있어.어차피 다크에덴에게는 별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전사 앞으로!" "우와아아아아!" 바론의 명령에 전사들이 방패를 앞세우도 뛰어나갔다. 순간 철컥하는 기계음과 함께 바닥에서 뭔가가 솟아나왔다. 발등을 뚫고 비어져 나오는 날카로운 송곳!동시에 선두의 전사들이 마비독에 중독되어 뻣벗하게 굳어버렸다. "트,트랩이다!" 바론이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명령했다. "쳇,귀찮게 하는군. 성직자,해독 주문을!" 그러나 채 주문이 완성되기도전에, 100미터가량 떨어진조그만 둔덕에서 쇳소리를 내며 수십개의 작은 창문이 열렸다.그저 평범한 둔덕이라고 생각했으나,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벙커였던 모양.뒤이어 창문에서 수십발의 화살이 빗발쳐 날아왔다. "커헉, 검 한번 못휘둘러 보고 죽다니.......!" 마비 독에 걸린 전사들이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빌어먹을 놈들!전사들은 우회해서 돌격한다!" 바론이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면만이 아니라, 측면,후면까지 수호탑 반경 100미터 안쪽에는 트랩이 빽빽하게 깔려있었다. 마치 반복재생으로 같은 장면을 보듯, 무턱대고 돌진하던 전사들은 마비독에 중독되었고, 이어지는 화살세례에 허망하게 쓰러졌다.그제야 바론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맙소사,그럼 이 주변이 모두......!" 밟는 순간 마비와함께 화살세례가 이어지는 지뢰밭! '아란 녀석........제법머리를 썼군' 아크의 눈동자에도 심각한 빛이 번졌다. 사실 아란 입장에선 수호탑만 지킨다면 굳이 성을 나와 싸울 필요가 없다.견고한 성벽에 수호탑 효과를 적용시키면 투석기를 동원해도 제한시간내에 성벽을 무너트리기조차 힘들다. 아란은 그냥 24시간 동안 성안에 앉아만 있어도 공성전은 허무하게 끝나는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수호탑의 배치 상황은 실로 이상적이었다. 철저한 방어위주의 진형! 마치 스타그래O트에서 테란이 벙커앞에 지뢰를 깔아놓은듯한 상황,저글O처럼 저글저글거리며 달려들어봐야 박살날뿐.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멀리서 요격하는 정도랄까? 그러나 상대는 모두가 활보다 사정거리가 긴 석궁으로 무장하고있다. 더구나 지형적으로 유리한건 언덕위.게다가 벙커에서 석궁대가리만 내놓고 쏴대는 궁수를 무슨수로 상대한단 말인가? 바론이 분한 얼굴로 이를 갈아붙였다. "으드득, 망할 놈들........치사한 수법을 쓰다니............!" 놀고있다.성을 뺏느냐 마느냐에 치사한게 어디있단 말인가? "어쩔수 없군. 일단 전사로 화살을 막으며 트랩을 해제해나간다. 결국 바론은 장기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방법도 아크가 보기에는 영 아니다 싶었다. 일단 트랩을 해제할수 있는 사냥꾼 계열의 직업이 별로 없다. 게다가 트랩은 모두 벙커의 사정거리 내에 설치되어있다. 방패로 화살을 막아낸다고는 하나, 한번에 수십발의 화살이 날아오니 전사들이 생명력이 쭉쭉 빠졌다. "바론경, 더이상 버티는건 무립니다!" "1진 후퇴해서 회복하라.2진 방어태세로 사냥꾼을 보호하라!" 30여명의 전사들이 물러나 회복을 하고,다른 전사들이 방패를 앞세우고 나섰다. 그렇게 트랩이 하나하나 해체되갔지만 아크는 더욱 암담함을 느꼈다. 풍월 길드는 1시간이 지나도록 2~3미터도 전진하지 못한것이다. 단순계산으로도 쉬지않고 작업해도 100미터를 전진하는데걸리는 시간은 30~50시간.공성전이 긑나고하루가 더 지난뒤에야 끝날까 말까 한것이다. '어쩐지 영주성에 궁수가 적다 싶더니.......' 수호탑의 병력을 대부분 궁수로 배치했으니 당연한 결과. '게다가 트랩을 해체하며 접근할수록 더 가까이에서 화살 공격을 받게된다. 벙커를 부수는데도 시간이 걸릴 거고........이런 식으로 작업속도가 2~3배 빨라져도 오늘 안에 못 끝내!' 트랩과 벙커, 단순하지만 버티는 입장에서는 최상의 조합이었다. 작업이 생각대로 안되자 바론이 짜증을 내며 아크를 노려보앗다. "다크에덴은 뭐하는거야? 지금 상황이 안보이나?" 아크는 심드렁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는 트랩 헤제할수 잇는 사람이 없어서 ......." "그래도 방패를 사용하는 전사는 있을거 아니야?" "방금전에는 도움은 필요없으니 빠져 있으라면서요?" ".......그럼 마음대로 해!" 바론이 거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물론 아크도 수호탑을 서둘러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바론의 방식으로는 크로스들을 지원해 준다고해도 그다지 달라질 상황이 아니다. 전사는 어차피 방패로 막는것밖에 할수없고, 그런 전사는 풍월에도 많다. '바론에게만 맡겨 놓을수는 없어. 나는 나대로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라이덴이 한쪽에 병력 비중을 늘린것은 ,수호탑을 하나만 파괴해도 시간내에 성벽을 부술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반대쪽에도 같은 함정이 있겠지만 여기보다 숫자도 레벨도 높으니 어떻게든 해결하겠지.결국 여기는 라이덴의 전략상공성전에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밥값을 해야한다' 아크는 라이덴이 성을 차지하면 수익금의 30%를 받기로 계약했다. 5개 세력의 연합에서 가장 열악한 다크에덴이 30%.일단 아크가 도전권을 가지고 있으니 다른 길드도 어쩔수없이 수긍했겠지만, 밥값조차 못한다면 공성전이 성공리에 끝나도 수익금 분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수도 있다. 사실 그게 제일 겁나는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다.........." 전략의달인인 정의남도 답답한 한숨을 불어냈다. 갱생단이야 말할것도 없다. 잡다한 스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막상 이런식의 전투가 벌어지자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크로스같은 NPC들이야 물어볼것도 없다. "아,오빠!" 그때, 로코가 손뼉을 치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일전에 밖에서 같이봤던 영화 생각나요?" "영화?" 아크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쳤다. 그리고 아크와 로코가 합창하듯 소리쳤다. "죽음의 능선!" 죽음의 능선은 일전에 정의남이 수작을 부렸을때,로코와같이 보게 된 영화였다. 로코는 천생여자라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보자고 졸랐지만 아크는 펄쩍 뛰었다. 남이 연애하는 내용.그것도 비비꼬아 놔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영화를 돈내고 보라니? 돈이 썩어놔도 그 짓은 못한다. 어차피 돈을 내고 봐야한다며 딱 보기에도 돈을 팍팍쓴듯한 영화,폭탄이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스트레스해소용 영화가 백번 낫지않은가.그리하여 아크는 결국 죽음의 능선이라는 전쟁 영화를 보았다. ..........실수였다! 영화에 별 관심이없는 아크는 전쟁 영화라는것만 알고 영화관을 찾았다.그런데그게 하필이면 최신식 탱크도,미사일도 안나오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일줄이야.......덕분에 아크와 로코는 2시간동안 사이좋게 꾸벅꾸벅 졸다가 영화관을 나왔다. 최악의 데이트! 그러나 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부분에서 미군은 한 고지를 점령하고 그곳에 무수히 많은 지뢰와 벙커를세워 베트콩의 공격을막아냈다. 그러나 결국 미군은 허망하게 고지를 빼앗기고 전멸.주인공만 간신히 살아난다는 내용이었다. 현재 아크와 입장만 뒤바꾼 상황! 그때 베트콩이 고지를 공격한 방법은.......어라? "어떤거였지 ? 그 방법이?" 윽, 젠장. 하필이면 그 장면에서 졸아 버리다니! 그러나 다행히 그때 로코는 꺠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거에요.베트콩들을 잘쓰는 방법.그러니까........" "헷, 한심한 녀석들" "꿈지럭거리며 트랩을해제하는 꼴이라니......여기까지 오는데 3박4일은 걸리겠군' "그냥 여기 앉아서 구경이나 하다가 끝나겠군" 벙커안, 30여명의 궁수들이 앉아서 하품을 해댔다. 공성저에서 가장 먼저 공격받는 수호탑! 이곳을 지키는건 죽음을 각오해야만하는 일이다. 덕분에 어제는 꽤나 긴장해 밤잠까지 설쳤는데,막상 시작해 보니 싱겁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하는일이란 벙커안에서 가끔씩 석궁을 날리는 일뿐.너무한가해서 공성전을하고 있다는 실감조차 들지않았다. "어차피 하는거면 죽더라도 화끈하게 싸워보고 싶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아,6시간동안 앉아만 있으니 졸리다.커피라도 마실까?" 궁수하나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을때였다. 들썩들썩, 갑자기벙커중심의 바닥이 움찔거렸다. "뭐야, 여기 왜 이러지?" 궁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섰다. 그리고 들썩거리는 흙더미에 손을가져갈때였다. 돌연 땅바닥 밑에서 우렁찬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쾅! 흙더미를 뚫고 튀어나온 수많은 쇳조각이 벙커안에 회오리쳤다. 바로 앞에 잇던 궁수는 단숨에 생명력이 40%나 날아가버리고, 다른궁수들도 20%가까지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 밖을 노려보다가 날벼락을 맞은 궁수들이 화들짝 고개를돌렸다. "뭐,뭐야?" "대체 무슨......엇? 누,누구냐?"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뿌옇게 피어로는 먼지속에 한사내가 서있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사내의 이름은.......아크! "적인가?어,어떻게.......?" "꽤나 고생했다고,흙을 얼마나 먹었는지 알아?" "고,공격하라!" 궁수들의 석궁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막 방아쇨 당기려는 찰나,그들의 눈앞에서도 흙더미가 솟아올랐다.흙먼지는 속에서 검은 형제들이 튀어나오더니 그들의 멱살을 꽉 움켜줫다. 흉포하게 생긴 거구의 사내를 ,정의남과 경생단이엇다. "화끈하게 싸워보고 싶다고?" "어쩜 우리랑 그렇게 생각이 똑같으냐?" 동시에 글미 같이 엎어치기가 작렬했다. 그뿐이 아니었다.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수십명의 병사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우하하하,이몸도 있다!" "정의의 검을 받아랏!" 크로스와 실피드 기사단, 도적들이었다. "크헉,어떻게 땅밑에서 이렇게 많은 놈들이.......!" 궁수들은 대번에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좁은 벙커안, 도망도 갈수없는 좁은 공간에서 궁수가 근접전의 달인인 정의남과 갱생단의 상대가 될리없었다. 또한 크로스와 실피드기사단은 모두 기사. 단검을 잘 다루는 도적들이 근접전을 잘하는건 새삼스럽게 말할것도 없었다. 게다가 숫자도 30대73!궁수들은 제대로 화살한번 날려보지 못하고 묵사발이 되었다. "모두 처리했다." 저의남이 마지막 한 궁수의 목을 졸라 저승으로 보내는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궁수들이라 그런지 꽤 상대하기가 쉽군' 전투가 너무 쉬워 시시하게 생각될 정도다. '이곳까지 이동하는게 걸린 시간이 5시간........예상보다 오래걸렸지만 나쁘지않다!' 아크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죽음의 능선이라는 영화에서 얻은 힌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고지를 점령하기위해 버둥거리던 베트콩은 결국 마지막 수단을 시도했다. 지뢰와 기관총이 깔린 지상으로 접근할수 없으니,베트콩의 특기,땅굴을 파기로 결정한것이다.그리고 오랫동안 갖은 희생을 치르며 벙커 밑으로 거지줄같은 땅굴을파놓고 일시에 벙커를 기습, 미군을 괴멸 상태에 몰아넣은것이다. 그말을 듣고 아크의 머릿속에 바로 너구리족의 종족 스킬이 떠올랐다. 너구리족 역시 베트콩처럼 땅굴을 파는 재주를 갖고 있지않은가? "가능할것 같습니다. 한번 해보죠" 아크의 말을 전해들은 너구리족은 그때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너구리족은 두더지처럼 땅속을 이동할수 있다. 그러나 장인 NPC라 벙커 안으로 숨어들어봤자 두더지가 고슴도치로 변할뿐이다. 때문에 다른 사람도 이용할수 있는 땅굴을 만들다 보니 100미터 길이의 땅굴을 만드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그나마 갱생단과 NPC,아크까지 동원되어 흙을 날랐기에 5시간만에 가능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베트콩 전술! 뭐,그 겨로가는 보다시피........묘족은 흙구덩이를 기어야 한다고 말하자 질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굳이 묘족이 아니라도 30명의 궁수를 처리하는건 일도 아니다. '설마 그 지루한 영화가 도움이 될줄이야.앞으로 로코와 종종 영화를 봐야겠군' 그렇게 벙커를 점령한 아크는 창문으로 밖의 정황을 살폈다. 아직 밖에서는 내부의 상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바론 역시 여전히 길드원을 다그치며 삽질을 하고 있었다. '후후후,바론,좀더 고생해줘' 나머지 벙커를 처리할때까지 여명의 칼날 연합에서 알아채면 안된다. 베트콩 작전은 2개의 벙커를 모두 장악할때까지 보안이 최우선,상대가 알아채기라도 한다면 오히려 역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때문에 아크는 바론에게도 비밀로 하고 땅굴을 만들었다. '여기서 다음 벙커까지의 간격은 60미터.작업속도로 보면 3시간이면 충분하다' "일단 여기서 잠시 쉬죠.너구리족도 지쳤을테니" 유저와 달린 NPC는 쉬어야한다. 아크는 일단 벙커안에서 2시간을 휴식한뒤에 너구리족을 다그쳐 다시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났을무렵, 벙커에서 벙커로 이어지는 땅굴이 완성되었다. "우하하하,모두 덤벼라!" 아크 일행은 광소를 터트리며 궁수들을 박살냈다. "이제 남은 건 수호탑을 지키는 성곽의 병사들뿐입니다." 아크는 곧바로 너구리족과 도적들에게 명령했다. "20명씩 나눠서 양쪽 벙커에 자리잡는다!" 아크의 명령에 너구리족과 도적들이 양쪽 벙커에 자리잡았다. 뒤이어 벙커의 창문에서 40발의 대포가 소나기처럼 쏘아져나가기 시작했다. 아군 진영이라도 굳게 믿고 있던 벙커에서 갑자기 대포가 빗발치자 성곽을 지키던 병사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도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째서 우리 벙커에서?" "이 탄환은 뭐야? 헉, 데미지가 장난이 아니잖아?" "벙커에 있는 녀석들이'속삭임의 깃털'에도 응답을 안해" "접속이 끊겼다는데?" "맙소사 ,그럼 설마 벙커를 뺏겼다는거야?" "여기는 벙커의 사정거리 안이야!이대로 있다가는 몰살이다.벙커를 부숴!" 성곽의 병사들이 벙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들여 만든 벙커다. 검 따위로는 아무리 후려쳐도 내구력이 깎이는 티도 나지않았다. 그사이에도 벙커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탄환에 1명,2명 쓰러져갔다. 그리고 잠시후,병력이 30여명으로 줄어들자 벙커문이 벌컥 열리며 한무리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크와 갱생단, 크로스들.......공격대 다크에덴이었다. "전투는 이제부터다. 확실하게 몸을 풀어놔!" 이미 생명력이 50%이상 줄어있는 여명의 칼날 연합. 벙커 안에서 느긋하게휴식을 취한 다크에덴의 상대각 될리가 없다. 아크의 발차기와 정의남의 던지기! 그것만으로도 여명의 칼날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갱생단의 괴상하기 짝이없는 스킬이 난무하고,전직 기사단원이었던 NPC가 무지막지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앞세워밀어붙이자 허망하게 쓰러졌다. 그러나 이 상황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다름아닌 풍월길드장 바론이었다. "어라? 어떻게 저 녀석이 저기에 있는거지?" 11시간의 강행군! 슬슬 불평을 해대는 길드원을 닦달해 이제 겨우 40미터정도 전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트랩너머에서 아크가 나타났다. 그리고 삽질이 무색하게도 순식간에 수호탑을 장악해버린것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쉬지않고 삽질을 해댔던 풍월길드원들은 넋나간 얼굴로 길드장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우리 지금까지 뭐한거냐? '라는 눈빛으로....... "대,대체 저녀석 정체가 뭐야!" 그러나 바론의 목소리에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수호탑 1개가 파괴됐습니다. 영주성에 적용되던 방어막이 50%감소했습니다. 영주성에 적용되던 성벽 내구도 회복 속도가 50%감소했습니다.] "됐다!" 라이덴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떨어진 모래 시계의 양을 확인해보니 대략 12시간. 예상보다 2시간이나 빠른속도였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어차피 수호탑이 존재하는한 성벽을 부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성벽을 부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수호탑에 지원군을 보내지못하게 견제하는 의미였다.때문에 라이덴은 무리한 공격을 하지않고, 일정거리를 두고 화살이나 쏴 대는 지루한 전투를 벌여왔다. 그러나 수호탑이 파괴됐다면 애기가 다르다. '분명 노엘과 하마네치 길드다. 풍월과 다크에덴은 아직까지 헤매고 있겠지. 뭐,상관없어.어차피 기대도 하지않았으니까.거기서 시간이나 끌어주면 돼. 지금 우리의 화력이라면 수호탑 하나만 파괴해도 예상시간 안에 성벽을 부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지금이다!투석 골렘을 소환하라!" "대지의 위대한 힘을 결정체여,지배자의 명령에 따르라!" 라이덴의 명령에 헤르메스 소속의 소환사가 주문을 외우자,지면이 쩍쩍 갈라지며 거대한 투석골렘 다섯마리가 기어올라왔다. "헉,골렘이다!" 성벽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레벨 180이 넘어야 소환할수 있는 거대 투석골렘! 선구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상급 소환술!투석골렘은 다섯마리뿐이지만, 그게 뉴 월드에서 볼수 있는 전부이리라.투석골렘은 투석기보다 사정거리는 짧지만 위력은 훨씬 강했다.투석골렘이 지면을 쿵쿵 울려대며 성벽에 접근해 바위를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스플래시 데미지까지 붙어있는 무지막지한 공격력! 수호탑의 가호가 반으로 줄어버린 성벽의 내구력이 뚝뚝 떨어졌다. 거기에 20기의 투석기도 합세해 공격을 퍼부었다. 반면 여명의 칼날 연합은 수호탑에 많은 궁수를 포진시킨 상황!투석골렘의 공격을 막을수단이 없다. "우하하하,어떠냐? 이게 바로 헤르메스의 힘이다!" 라이덴이 광소를 터트리고 있을때였다. 성문이 열리며 수백명의 유저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공격하라!놈들이 성벽을 부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다른 놈들은 볼것도 없다. 투석골렘의 소환사와 투석기를 집중공격한다!" "성벽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마라!" 여명의 칼날 연합이 검과 마법을 난사하며 소환사와 투석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라이덴은 코웃음을 쳤다. "하, 감히 헤르메스와 정면 대결을 해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하긴 수호탑이 무너졌으니 지원군이 합류하기전에 피해를 입혀놓고 싶었겠지" 현재 성앞에 모여 있는 헤르메스 연합은 수호탑에 병력을 보냈음에도 용병까지 합해900.반면 성에서 몰려나온 여명의 칼날 연합은 거의 1,200여 명.수적으로 헤르메스 연합의 열세였다. 그러나 라이덴은 오히려 적의 출격을 반겼다. 선구자가 대거 포함된 헤르메스 길드.그런 헤르메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버문 길드.이들의 레벨이나 장비,스킬 숙련도는 평범한 유저가 따라올 수준이 아니다. 정면충돌은 라이덴이 바라마지않던 상황! "헤르메스 연합의 저력을보여줄때다!놈들을 짓밟아 버려라!" 거친 쇳소리와 함께 두 연합이 충돌했다. 그러나 결과는 라이덴의 예상을 약간 벗어났다. "뭐,뭐야?이녀석들?" 여명의 길드 연합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실력은 둘째 치고 일단 장비의 능력치가 그의 예상만큼차이가 나지않았다. 사실 여명의 칼날 길드원의 정체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에 참가한 응시자.취직이 걸려있으니 장비에 투자를 아끼지않았던것. "여명의 칼날에 무식하게 현질하는 놈들이 모였다더니.......하지만 장비만이 아니다" 장비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당연히 레벨이 높은 쪽이 우세하다.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원의 레벨은 뉴 월드 최고 수준. 그럼에도 전황은 팽팽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여명의칼날도 헤르메스수준의 레벨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어째서? 놈들이 성을 차지할때의 레벨은 우리보다 한참 낮았는데? 그 뒤로 3주일동안 성밖으로 나오는걸 본적도 없는데........어떻게 우리와 대등한 레벨을 가지고 있는거지?" 라이덴으로서는 그점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우세하다.이대로 몰아붙이면........" 라이덴이 그렇게 전황을 낙관하고 있을때였다. 두두두둥,성벽위에서 북소리가 울리더니 성문에서 한기사가 달려나왔다. 하얀 백마를 타고 번쩍이는 갑옷을 걸친기사! "아란이다!" 라이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르바나 성의 영주,아란!물론 아란이 죽어도 여명의 칼날 연맹에 속한 다른 길드장이 남아있는한 공성전은 계속된다. 그러나 아란을 잡으면 중심인 여명의 칼날은 급속도로 전의를 상실하리라. 전황이 불리해지니 보다못해 나온 모양이지만 라이덴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멍청한 놈, 영주가 제 발로 전장에 나타나다니!놈을 잡아..........헉!" 라이덴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다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란의 뒤를 따라 20여기의 기마부대가 쏟아져 나온것이다. 군마 한필의 가격이 수천골드.그걸 한두마리도 아니고 부대 단위로 갖추고 있는줄 누가 알았겠는가!게다가 기마 부대원의 장비는 라이덴조차 처음보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 저런 병력을..........!" "아란을 죽여라!커헉!" 아란의 손에 들린 엄청난 공격력의 유니크 검! 뒤따르는 기마부대가 휘둘러대는 철퇴에 유저들이 펑펑 날아갔다. 기마 부대가 가세하자 대번에 헤르메스 연합의 선두 진형이 붕괴되었다. 가공할 공격력!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공격력이 아니었다. "미러클 포스!천상의 빛!신성한 각인!" 부대전체에 적용되는 오라를 3개까지 중첩시킬수 있는 유일한 직업 ,홀리나이트! 더불어 전술과 통솔력따위의 스탯효과로 아란이 전장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여명의칼날 연합은 능력치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게다가 홀리나이트의 오라는 지속적으로 마나를 소모하는 대신 디버프 계열의 마법으로도 해제할수 없다. 버프가 걸려도 바로 디버프로 해제되는 전장에서 그 차이는 엄청났다. 콰콰콰쾅! 아란의 기마 부대가 소환사를 척살하며 돌아다니자 투석골렘이 하나둘 무너져내렸다. "저주다,저주를 걸어!" 라이덴이 발광하듯 소리쳤다.그러나 흑마법사들의 저주마법은 신성한 각인 오라에 막혀 80%이상이 실패!그나마 20%도 기사들이 직접 주문을 외우자 금세 해제되었다. "뭐,뭐야? 신성 마법? 그럼 저들이 모두 신성기사란 말인가?" 막강한 전투력과 신성력을 가진 직업. 엄청난 행운이 따르지않으면 전직할수 없다는 신전기사가 무려20명! 기마부대의 활약에 여명의 칼날 연합의 사기가 치솟았다. "소환사는 모두 쓰러졌다. 성직자와 마법사,투석기를 집중 공격하라!" "전사들은 5명씩 짝을지어 성직자를 우선적으로 공격하라!" "궁수는 위저드 킬러 화살로 마법사를 요격하라!" "디버프로 놈들의 버프를 날려버려!" "광역 마법을 펼친다. 범위안에서 물러나!" 그야말로 혈전,창백한 가을하늘로 피가 솟구친다! 한번 기세를 타자 여명의 칼날은 순식간에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성직자와 마법사에게 기마부대는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몇배나 빠른 기동력으로 접근해 무지막지한 공격력으로 집중 공격!방어력이 낮은 성직자와 마법사는 일단 걸렸다 싶으면 몇초도 버티지못하고 쓰러졌다. 그사이에 여명의 칼날 전사들은 투석기에 달라붙어 내구력을 뚝뚝 떨어트렸다. "이,이럴수가........선구자들은 기마 부대르 막아라!나머지는 투석기를 지킨다!" 라이덴이 몰려드는 전사들을 쳐 내며소리쳤다. 가장 후열에서 지휘하던 그에게까지 적이 몰려드는 상황인 것이다. 그때,뒤쪽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한 무리의 병사들이 접근해왔다. "노엘과 하마네치 길드가 돌아왔다!" 라이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노에과 하마네치 병력이 가세한다면 전황을 다시 뒤집을수있다!그러나 곧 부대를 확인한 라이덴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당연히 노엘과 하마네치가 수호탑을 파괴하고 돌아오는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전장으로 다가오는 병력을 이끌고 달려오는 사람은 바로 바론과 아크였다. '이게 대체......그럼 설마 수호탑을 무너트린게......실버문과 노엘이 아니라....!' 풍월과 다크에덴이었단 말인가? "그럴리가?대체 어떻게?" 라이덴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어찌됐든 지원군은 지원군,없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바론,아크!아란을 공격하라!" ACT 9 전장의 간병인 '아란!' 라이덴의 목소리에 아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곧 전장 한복판에서 기마부대와 함께 검으 휘둘러대는 아란을 발견할수 있었다. '좋아,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고 말겠다!' "다크에덴 병력이탈, 아란 부대르 친다!" "아,아크님 .저희는?" 바론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아크가 다크에덴만을 이끌고 수호탑을 파괴한 뒤로 바론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본래 자기보다 위라고 판단되면 재빨리 납작 엎드리는 성격인 모양이다. "라이덴을 보호하세요!" 아크는 귀찮다는듯이 대꾸하며 아란의 기마부대에 접근했다. 아란이 나타난 이상, 풍월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아란은 20기의 기마부대를 포함해 100여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을 휘젓고 있었다. 그들과 맞서고 있는 자들은 쥬르와 듀크를 포함한 선구자들.그러나 뉴 월드 최상급이라는 선구자조차 아란과 기마부대에 밀리고 있었다. "크윽,뭐 이런 괴물 같은 놈들이.......!' "암흑 속성 최고 마법이 고작 10%의 데미지밖에 못줘?" "이 자식들, 대체 레벨이 몇이야?" "중장갑을 입은 20명의 기사들이 모두 회복 마법을 사용하다니 이건 사기야!" 아크가 다크에덴을 이끌고 전장에 뛰어든것은 그때였다. "크로스 경, 방어 태세로 적의 공격을 막아주십시오!너구리족과 도적들은 대포로 크로스경이 지목하는 적을 집중공격한다. 로코,뒤에서 보조해줘!그리고 정의남 아저씨,형님들,묘족은.......알아서 싸워요!" "오케이!" 콰콰콰쾅! 아크 부대가 난입하자 격렬한 폭음이 울렸다. NPC들은 정의남의 '전술III'영향을 받는 아크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저놈이다!" 크로스가 방패로 적의 공세를 막아내며 성직자를 지목했다. 그러면 고답로 40발의 탄환이 전장을 가로질렀다. 일반 화살과 비교도 할수 없는 공격력! 전사조차 버텨내기 힘든 공격이었다. 하물며 팔랑거리는 로브를 입은 성직자는 말할거도 없었다. 성직자는 생명력이 단숨에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며 쓰러졌다. "크흐흐,이렇게 적이 만다니!항쟁에 뛰어들었다가 고립됐던 때가 생각나는구나!좋지,상대는 많을수록 좋다!" "불야성 나이트 클럽 사건이 생각나는군" "드이어 우리의 진면목을 보여줄때다!덤벼라 이........삐-를 삐-하는 아 살라비아들아!" 정의남과 갱생단도 신바람 난 얼굴로 전장에 뛰어들었다.그러나 최고의 반전은 묘족이었다. 아직 아크는 묘족이 싸우는 장면을 본적이 없었다. 묘족 신전에서 데브라와의 전투때는 그냥 구경만했었고,안델과의 전투때는 나설기회가 없었다.또한 수호탑때는 흙구덩이 기기 싫다고 전투에 참가하지않았다. 정말 고양이철머 제멋대로인 종족, 그러면서 먹기는 또 얼마나 먹어대는지............괜히 데려왔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전투에서 그럴 생각이 완전히 날아갔다. "우리가 왜 수인족 최고의 전사부족으로 불리는지 보여주자!" "고양이의 우아한전투를 보여주지" 스윽,사사삭,서걱! 묘족의 전투는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발이 보이지않는 신속한 움직임,단숨에 수미터를 뛰어오르는 도약력, 코앞까지날아온 검을 허리 몸놀림으로만피해내는 유연성,곧바로 카운터를 날리는 예리함! 그렇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그렇다기보다는 믿어지지않았지만-묘족은 바로 마반영웅의 후예!아크가 다크워커로 전직하며 익힌 기술들은 본래 묘족의것이었다. 천부적인 전사 부족! "크흐흐흐,느려,느려,너무 느려!" 묘족은 빠르게 검을 피하며 약점을정확히 반격했다. 아크가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야 보이는 약점.그러나 묘족은 원래 고양이의눈이다. 굳이 스킬을 쓰지않아도 약점 따위는 훤히 들여다 보이는것이다. 게다가 아크가 애지중지하는 고양이의 손도 그들은 날때부터 달고 태어난다. 날카롭게 솟아난 손톱은 갑옷 사이로 드러난 목,손목,눈을 정확히 찾아내 살점을 뜯어냈다. "뭐,뭐야? 이것들은?" "무슨 NPC가 저래? 대포를 쏴대질 않나,저건 고양이냐?" "대체 저런 용병은 어디서 무슨 퀘스트를 해야고용할수 있는거야?" 여명의 칼날만이 아니라, 헤르메스 연합 유저들까지 넋을 놓고 지켜볼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가장 빛나는 활약을 보이는 사람은 바로 아크!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아크는 전장을 뛰어다니며 적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여명의 칼날 길드는 대부분 응시자들이다. 그만큼 게임에 열중해왔으리라. 그러나 고양이의 눈으로 확인한 그들의 레벨은 150가량.높은 유저들도 155가 채 되지않았다. 반면 아크의 레벨은 159! 어둠 속성 보너스까지 받으면 무려 222! 반잠을 설치며 열렙해 온 보상을 이제야 받는것 같았다. 죽어라 열렙하고 다시 만났더니 자신보다 강했던 유저보다 레벨이 높더라......게이머에게 이보다 기분좋은 순간이 또 있겠는가? 물론 다른 직업도 이런저런 특수 효과로 능력치가 올라간 유저들도 있겠지만, 아크와 1대1로 맞상대할수 있는 유저는 없었다. 어둠 속성보너스를 받으면 5명이 한번에 몰려 들어도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노가다의 성과!게다가.......! '워리어 스킬인 방패 충격!' 아크는 활시위처럼 방패를 당기는 워리어를 보고는곧바로 적의 공격 패턴을 읽어냈다. 악실리온에서 수만은 직업의 갖가지 스킬을 상대하다 보니 예비동작만으로도 무슨 스킬이 나올지 알수있게 된것. 아크는 반사적으로 거리를 벌려 방패를 피하고,허점에 뒤차기를 찔러넣었다.체육관에서 실전 수련을 한덕에 공수의 전환이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않을 정도로 빠르고 날카로워진 것이다. '예전에는 다른 응시자와는 싸울 엄두조차나지 않았는데.....나는 강해졌다!' 다른 응시자보다 강하다. 그건 입사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자신감이 붙자 아크의 움직임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덕분에 그 지역의 전황은 다시 팽팽해졌다. 아란도 생각지도 못했던 다크에덴의 활약에 당혹성을 터트렸다. "크윽,대체 이 NPC들은 대체? 헛?" 그때,돌연 앞에서 날카로운 검광이 솟아올랐다. 아란이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올리자 찢어지는듯한 쇳소리가 울렸다. 3~4명의 전사를 쳐내며 단숨에 몇미터를 날아와 방패에 일격을먹인 검사! 그를 확인한 아란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흘러나왔다. "아크,네놈이......!" 아크가 멀리서 아란을 확인하고 달려든것이다. "뭘 놀라고 그래? 날 이곳으로 불러들인 사람은너잖아.안그래?" "네놈 따위가 감히 나를 상대하겠다고?" "글쎄? 내가 보기에는 '감히'라는 말을 쓸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건방진 놈!방패 타격!" 아란이 방패를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재빨리 몸을 낮추며 다크 블레이드로 반격했다. 그걸 신호로 아란과 아크는 격렬하게 충돌했다. 홀리나이트와 다크 워커!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걷던 둘은 서로 이를 갈면서도 아직 정식으로 붙어 본적이 없었다. 아니,사실 붙어 보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아크가 열세였다. 초반부터 한참을 앞서 나간 아란은 아크에게 언제나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졌던것.그러나........... '아란이.........생각만큼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란의 공격을 받으며 아크는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 숨겨진 직업중 하나인 다크워커는 어둠속에서 무려 40%나 능력치가 올라가는 ,일반 유저는 상상하기도 힘든 보너스를 받는다. 아크는 그 보너스 덕에 레벨보다 더 강한 상대를 물리쳐올수 있었다. 마침 지금은 밤,다크 워커의 시간인것이다. 그러나 아란은 일반 유저가 아니다. 그 역시 숨겨진 직업중 하나.더구나 그야말로 빛의길을 걷는 영웅 중의 영웅 캐릭터인것이다.당연히 그만한 보너스가 적용되었다.아크가 어둠속에서 보너스를 받는다면 ,아란은 지휘하는 부하의 숫자에 비례해 보너스를 받았다. 지휘하는병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게다가 군마를 타고 있으면 약간이나마 공격력과 방어력에 보너스가 가산된다. 결국 보너스로 적용되는 능력치 상승은 거의 동등! 남은 것은 레벨과 실력이다! '아란의 레벨은 나보다 낮다!' 고양이의 눈으로 확인해보자 놀랍게도 현재 아란은 아크보다 레벨이 낮았다. 아크의 레벨은 159.아란의 레벨은 158이었다. 한때는 정말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목이 아프던 상대.그러나 그 뒤로 몇달 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아크가 앞서고 있는것이다.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리 파티,공격대 위주로 경험치를 쓸어모았다고는 해도,아란은 길드를 만들고 공성전이다 뭐다 하며 사냥에 집중하지 못한 시간이 많았다. 반면 아크는 잠까지 줄여가며 열렙에 열렙을 반복해 온것이다. 토끼라도 낮잠을 자면 거북이에게 추월당하는 법.하물며 발에 모터를 단 거북이라면 말할거도 없는일! '이길수 있어.여기서 아란을 쓰러트릴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1대 1이라면 모를까,수백의 유저들이 혈전을 펼치는전장.더구나 아크와 달리 아란에겐 기마부대라는 든든한 아군이 버티고 있었다.아크가 조금이라도 우세한 상태로 아란을 몰아붙이면 곧바로 기마부대가 태클을 걸어왔다. "크윽, 이 자식이 대체 어떻게.......?" 아란이 아크의 발차기에 맞아 휘청거렸다. 기회다 싶어서 연속공격을 펼치려 하자 다시 기사 몇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사이,다른 기사는 아란에게 회복 마법을 퍼부었다. 물론 아크도 뒤에서 열심히 보조해주는 로코덕에 생명력을 회복하고 있었다.덕분에 둘 모두 이렇다 할 결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이럴때는 블레이드 스톰을 펼치면 될텐데.........' 난전에서는 그게 생각만큼 간단하지않다.아크의 최강 스킬 블레이드 스톰.제대로 사용하면 전세를 뒤바꿀 파괴력을 지녔다. 그러나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하려면 먼저 가방에서 검을 빼들어야 하고,예비동작이나 발동시간이 다른 스킬보다 많이 걸린다. 그런 스킬을 사용하도록 두고 볼 아란이 아니다. '상급 스킬을 사용하려고 한다!' 기미가 보이면 아란은 곧바로 공세를 퍼부어 방해했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다. 아란이 뭔가 위험한 스킬을 발동시키려는 기미가 보이면 다른 공격을 무시하고 방해했다. 둘 모두 숨겨진 직업이라 최상 스킬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서로 결정타가 될것을 알기에 우선적으로 견제하다보니 둘다 스킬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된것이다.마치 둘 모두 핵폭탄을 놔두고 소총으로 싸우는듯한 상황. '아크녀석,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지? 단순히 레벨 문제가 아니야.다른 뭔가가.......' 아란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쉽게 납득되지않았다. 그때, 둘의 싸움에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작용했다. "빌어먹을 놈들,죽어라!버닝 포스!" 기마부대와 접전을 벌이던 쥬르가 마법을 난사했다. 레벨 180대의 선구자가 날리는 강력한 마법! 그러나 기마부대의 신전기사는 반사 실드를 중첩시켜 어렵지않게 튕겨냈다. 아마도 기왕 튕겨 내는것,적군에게 마법을 되돌리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러나 얄궂게도 기사가 튕겨낸 마법은 적진에서 아크와 혈전을 벌이던 아란에게 날아들었다. "아,아란경!" 기사의 당혹성에 아란이 반사적으로 방패를 치켜들었다 뜻하지않았던 강렬한 마법! 방패를 뒤흔드는 격렬한 충격! "아차!" 아란은 한차례 기우뚱거리다가 말에서 떨어졌다. "기회다!놈이 말에서 떨어졌다!" "놈만 잡으면 헤르메스의 승리다!" 동시에기회를 노리던 헤르메스 연합이 몰려들었다.마침 아크와의 접전으로 생명력이 30%미만으로 떨어진 상황!다행히 20명의 신성기사들이 헤르메스 연합을 저지하며 아란을 보호했다. 발빠른 대처 능력! 그러나 아란은 헤르메스연합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아크........!"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 아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으로 바짝 다가오는 사람은...........숙적,아크였다! 수많은 수라장을 겪어온 아크는 기회를 놓치지않았다. '놈은 말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잠시 경직 상태!내 스킬을 방해할 상황이 아니다.신전 기사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회복 마법을 펼칠 여유가 없다!절호의 기회야!' 아크는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공격을 무시하며 소리쳤다. "뱀, 마법검!" 아란이 회복 마법을 받으면 두번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크는 만약을 위해 꼬깃꼬깃 챙겨놨던 마법검을 빼 들었다. 상점에 팔아도 10골드는 받을수 있는 마법검! "블레이드 스톰!" 10만원짜리 마법검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번져나갔다. 아란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했다. 쩍쩍 갈라지는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마력! 이 상태로 맞으면 틀림없이 죽는다! 여기서 죽으면 성을 빼앗긴다! 온몸을 엄습하는 공포에 아란은 와락 근처의 유저를 잡아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아크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레.....레리어트!" "아크님?" 아란이 끌어다 놓은 사람이 하필이면 레리어트였던 것!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돌렸다.옆에서 달려들던 유저하나가 재수없게 10만원짜리 블레이드 스톰에 걸려 갈가리 찢겨 나갔다. 순간 아란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멍청한 놈,그랜드 크로스!" 아란은 20명이 뿌려대는 회복 마법을 받으며 홀리나이트 최강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아란의 검에서 수백개의 빛다발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 거대한 십자검의 형상을 만들어내며 그대로 아크를 향해 내리꽂혔다. 성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아크에게는 사신이 달려들며 낫을 휘둘러대는것처럼 보였다.그리고 사신의 거대한 낫이 목을 꿰뚫으려는찰나,천사가 날아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안돼!" 긴 머리를 휘날리며 아크의 앞으로 뛰어든건 로코였다. 빛의 검은 로코의 심장을 꿰뚫고 바닥에 깊게 박혔다. "로,로코!" "으악, 우리 귀염둥이!" "성녀 님!너.........너 이자식...........!' 정의남과 갱생단,도적들이 경악성을 터트리며 아란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기마부대가 그 앞을 가로막아 아란과 아크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아크는 멍한 눈으로 로코를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레리어트는 당혹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아크님.......!" "젠장, 그랜드 크로스!" "안돼요!" 아란이 다시 스킬을 사용하려하자 레리어트가 화들짝 놀라며 팔을 잡아챘다. 덕분에 빛의 검은 아크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만으로도 생명력이 500이나 깎여나갔다. 그러나 데미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빛의검에 맞자 엄청난 반탄력에 밀려 기마부대의 안으로 떠밀려 들어간것이다. 웬 떡이냐 싶은 기사들이 철퇴로 아크를 난타했다. '맙소사,여기서 죽을수는 없다!' "슬라임의 시간,NO1!" 순식간에 빈사 상태까지 몰린 아크는 아끼고 아꼈던 비장의 스킬을사용했다. '슬라임의 내단'으로 익힌 '슬라임의 시간'. 10분간 물리 공격을 100%방어해 낼수 있는 스킬! 슬라임의 시간을 발동시키자 아크의 몸이 매끈한 점액질에 뒤덮였다. 그러자 기사들의 철퇴도 안마를 받는것처럼 느껴졌다. 완벽한 무적 상태! 아크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철퇴를 몸을 받아내며 뛰어나왔다. 그러나 슬라임의 시간에는 패널티가 존재했다. 10분간 공격을 막아내는 대신,검까지 말랑말랑해져서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수 없다는점. 코앞에서 아란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그사이 아란은 다시 말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모두 공격에 집중하라!이제 놈들의 회복술사가 모두 죽었다!" "아란........!" 아크는 그저 이를 갈아붙이며 지켜볼수밖에 없었다. 레리어트로 공격을 막은것이나,로코를 죽인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수없었다. '하지만.........!' 아크는 단지 무턱대고 아란에게 달려들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로코는 게임에서 죽었을뿐이지만, 여기서 아크까지죽으면 5,000골드를 되찾을방법이 없다. 그리고.......아크가 아니라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미 충분하고도 넘쳤다. "크헉,부,분하다.젠장!" 불끈이가 창에 찔려 강제 종료되었다. 또한 짝퉁과 얍삽이도 빈사상태에 몰려 목숨이 간당간당했다. 로코덕분에 열받아서 마구잡이로 싸움을 벌인 결과였다.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로코는 다크에덴의 유일한 회복술사였다. '잔잔한 여운'으로 회복노래를 3개까지 중첩할수 있게 된 뒤로 그 비중은 더욱 커졌다. 그런 로코가갑자기 죽어버리자 다크에덴은 곧바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실피드 기사단원도 5명이 쓰러지고, 묘족도 4명이 쓰러졌다. 다행히 후열에 있는 너구리족은 아직 피해가 없었지만, 로코를 성녀로 떠받들던 도적들은 기마부대에 달려들다가 12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솔직히 아크는 로코의 죽음보다 그들의 죽음이 더욱 가슴아팠다. 로코는 내일이면 멀쩡하게 살아난다. 그러나 NPC는 죽으면 끝이다. 지금까지 쌓아놨던 친밀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뿐인가? 그들을 전장으로 끌고 온 사람은 아크. 만약 이들이 전멸한다면 ?도적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병사를 빌려준 작센 영주나, 묘족 장로,너구리족 대표와의 친밀도에도 상당항 영향을 끼치리라.아니,거기까지 생각할필요도 없었다. 당장 눈앞에서 다크에덴이 밀리자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던 헤르메스 연합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이미 기마부대의 공격으로 성직자는 씨가 마른상황. 남은 회복 포션도 얼마되지않는다. 반면 여명의 칼날은 20명의 기마부대가 전부 회복 마법을 사용하니................ 그럼에도 아크는 10분간 적을 공격할수도 없는것이다. '이대로 진형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커헉,아,아크.......!' 그때,바로 옆에서 크로스가 치명타를 맞고 휘청거렸다. "아,안돼!모두 기운을내십시오!힘들고 지쳤겠지만, 적도 그럴겁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것만이 진정한 용기가 아닙니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느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검을 휘두르기보다 방패를 드고 살기 위해 싸우십시오!" 아크는 필사적으로 간병을 사용했다. 간병은 회복 마법이 아니다. 그러나 사기와 용기가 올라가면 회복 속도가 약간은 빨라진다. 그리고 축복 효과로 각종 저항력과 스탯까지 올라가니 생존율이 조금은 높아지리라.아크는 전장을 누비며 미친듯이 간병을 사용했다. 불사신이지만 공격을 못하게 됐으니 달리 할수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한번 밀리기 시작하니 전황은 걷잡을수 없이 밀렸다. 전력의 차이도 있었지만 ,회복 포션과 생명력이 바닥난 헤르메스 연합이 소극적으로 변했기때문이다. "제발 용기를 내십시오.쓰러져서는 안됩니다!우리는 이길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크가 목이 터져라 간병을 외쳤을때였다. 뭐랄까........문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당신은 전장의 슬픔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장, 그곳은 끝없는 죄악의 구렁텅이입니다. 그런 곳에서 당신은 검보다 방패의 소중함을 설피했고,위험을 무릅쓰고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는 수백명의 적과 맞서 싸우는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일입니다.죽이는 것만이 일인 전자에서조차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마음.이것은 많은 병사들에게 감동을 줄것이며,생명에 대한 애착을강하게 해줄것입니다.또한 당신은 그들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얻을수 있을겁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증가햇습니다. *명성이 50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증가합니다. *2시간동안 모든 아군의 방어력이 20%상승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전장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사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기적의 간병으로 헤르메스 연합의 유저들의 방어력이 20%나 올라간것이다!기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동시에 290대에 머물러 있던 간병이 단숨에 300으로 돌파!간병이 상급으로 올라갔다. [진심에서 우러난 보살핌으로 간병 스킬의 레벨이올랐습니다. 간병(상급 ,엑티브) : 오랫동안 환자를 돌봐와 각종 치료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종류의 포션 성능을 30% 상승시킵니다.<환자에게 사용시 기력과 용기를 50%상승시켜줌.마나 소모 : 10> *상급 간병 보너스 효과 : 위대한 희생<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모든 치료제의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게 해줍니다(강제적으로 가방 안에 있는 모든 회복 포션을 사용해 주변의 아군에게 회복 효과를 부여합니다 .회복 포션 사용개수 선택 불가.사용되는 회복 포션의 개수와 등급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최소 발동제한 10개 : 반경 10미터 범위안의 아군에게 하급 회복 효과. =50~100개 : 반경 100~200미터 범위안의 아군에게 중급 회복 효과 =100개 이상 : 반경 300미터 범위 안의 아군에게 상급 회복 효과.(추가로 회복 포션 5개당 유효범위가 5미터가 늘어나며 회복양 50씩 증가)] '위대한 희생!' 아크는 멍한 눈길로 메시지창을 바라보았다. 상급 회복이라면 800~1,000이상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신성 마법! 만약 위대한희생을 사용한다면 다시전황을 뒤집을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차마 엄두가 나지않았다. 무조건 가방안의 회복 포션을 다써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패널티! 지금 가방안에 있는 포션은 모두 107개! 그것도 100개는 라이덴에게 뜯어낸 중급 표션이다. 중급 포션 100개를 상점에서 사려면 무려 2,000골드!그걸 사용해서 엄한 놈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줘야한다니.......! '100개는 라이덴에게 받은거지만,내손에들어온 이상 내거다!그걸 왜..............?'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생점 처음으로 포션 100개를 가방에 놓고 흐뭇해 한게 몇시간이나 됐다고 ,마치 일부러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고스란히 토해내라니? 때려죽여도 그렇게는못하겠다. '하지만 여기서 아란에게 지면 다시 공성전을 할 기회는 없다. 그러면 시드는...........' 시드가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허공에 뜬 돈이 5,000골드! 당연히 2,000골드보다5,000골드가 더많다. '나는 평생 이 결정을후회할지도 모른다!하지만......아란에게 밀리수는 없어!그래,이번에 나간 포션은 다시 라이덴에게 뜯어내면 돼.하지만 공성전에서 지면 그조차 못한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아크는 피눈물을 쏟아내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위대한 희생!" 가방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포션 100개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포션이 하나로 뭉쳐 항아리만하게 변해 전장에 흩뿌려졌다. '아아아,내 2,000골드......!' 아크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포션을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바라보았다.역시 돈이 좋긴 좋다. 무지막지한 돈이 들어간 만큼효과는 확실했다. 헤르메스 연합의 길드원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올가가기 시작했다.기적의 간병과 상급 간병이 연달아 적용된 효과!방어력과 생명력 회복은 곧바로 전투력으로 환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메스 연합은 곧바로 그 힘을 공격에 사용하지 못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도 이런 황당한 상황은 처음이었던것. "어라? 언제 방어력이 이렇게 올라갔지?" "기적의 간병 효과라고 하던데,그게 뭐야?" "방금 전의 그 거대한 항아리 포션은 뭐야? 그런 포션도 있었어?" "난들 아냐? 난생처음 보는 스킬이니 어떤 선구자가 비장의 스킬이라도 썼겟지" "하긴,선구자들의 스킬은 우리가 모르는것도 많으니까" 보다못한 아크가협박으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이런 망할 삐-- -!지금이 떠들고 있을때입니까?" 방금전에 2,000골드를 날리면서까지 회복을 시켜놨다.왜? 당영ㄴ히 이기기 위해서다. 1분1초가 아까운 판국에 앉아서 토론이나 하라고 포션 107개를 뿌린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상황 파악이 안되냐, 이 망할놈들아,...........라는 아크의 울분이 담긴 욕설이 전장에 메아리쳤다. 그런데 이 협박은 뜻하지않았던 효과를 가져왔다.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느 욕설! 협박으로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수 있는 상황이었다. -'협박'이 크리티컬로 발동했습니다! 동맹 상태의 유저는 아군이라 협박이 효력을 발휘하지못한다. 덕분에 정작 욕을하려던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반면,엉뚱하게 여명의 칼날 연합의 유저들이 움찔하며 사기가 저하되었다. 집단 전투에서 사기의 저하는 종합 전투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실의 법칙은 그대로 게임에 적용되었다. ['협박'에 의해 영향 범위 내의 여명의 칼날 연합은 용기와 사기가 30%저하되었습니다. 사기는 파티 이상의 규모로 구성된 병력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휘관이 부대르 통솔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것이 사기,사기가 떨어지면 부대에 영향을 미치는 지휘관의'지휘','통솔력'등의 스틋과'전술','전략'등 각종 스킬,또한 지휘관으로부터 받던 버프의 효과가 사기가 회복될떄까지 수치만큼 감소합니다. <여명의 칼날 연합이 지휘관으로부터 받던 영향이 30%감소했습니다>] 삼국지의 고사중,장판교의 얘기가 나온다. 유비의 퇴각을 돕던 장비는 장판교에 막아서고 기백 하나로 수십만의 대군으 막아냈다고한다. 수십만이다. 그냥 우르르 몰려가면 아무리 장비라도 밟혀 죽는게 당연한일.그러나 병사들은 조조가 아무리 난리를 쳐대도 장판교로 다가가지못했다. 전재에서 병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수 있다.지휘관의 역량이 병사들을 움직일수 있는건 사기가 충전돼있을때뿐,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어떤 명령도,전략도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것이다. '협박에 이런 활용법이 있을줄이야!' 과연 뉴 월드! 아크가 알고 있는 건 아직 100분의 1도 되지않는다. 기적의 간병과 상급 간병,협박의 기적 같은 콤보효과!결과적으로 여명의 칼날은 각종 스탯이 떨어졌고 ,헤르메스 연합은 회복에 방어력까지 올라간 상황, 적에게 1을빼고 아군에게 1을더하면 그 효과는 2배! "놈들의 공격이 약해졌다!' "방어력과 생명력이 올라간 지금이 기회다!" "기마부대도 마나가 바닥났다!지금이 몰아붙일 기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헤르메스 연합이 함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쉬지않고 버프와 회복마법을 사용하던 기마부대는 이미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상태! "아란을 잡아라!" "기마부대에게 당한설움을 갚아줄때다!" 헤르메스 연합이 사기충전해 여명의 칼날과 기마부대를 몰아붙였다. "쳇, 일단 투석기는 거의 못쓰게 만들었으니 후퇴한다!" 절묘한 타이밍에 출정한 아란.........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타격을 입혀 놓는다면 공성전의 승리를 70%이상 확신할수있었으리라.그러나 아크의 미라클 콤보에 결국 분루를 삼키몀 퇴각할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거기서 끝장을 봤어야 하는데.............!" 아란이 주먹을 움켜쥐며 이를 갈았다. 지금 헤르메스 연합은 반토막이 나있는 상태다.수호탑하나는 예상보다 빠르게 파괴됐지만, 나머지 하나가 버켜 노엘과 하마네치 길드가 발이 묶였다.그때 승부를봤어야 한다. 긜고 결말을 낼 자신도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말도 안되는 항아리 포션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소환사와 투석기는 모두 처리했으니 성벽만 잘지키면 되겠지만.......' 노엘과 하마네치 길드라면 머지않아 수호탑을 파괴하고 합류하리라.그렇게 되면 더 이상 승리를 확신할수없다. "아란님" 고개를 돌려보니 뒤쪽에서 레리어트가 피로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들이 20시간 가까이 게임을하고 있어 지쳐가고 있었다. 방금전 전장에서의 일이 기억난 아란은 슬쩍 얼굴을 붉히며 변명했다. "레리어트님,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됐어요.그런일은" 레리어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뭔가를 결심한듯 말을 이었다. "아란님을 찾아온건 얘기할게 있어서에요" "말씀하십시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저는 이번 공성전이 끝나면 길드를탈퇴할까 해요" "네? 그,그게 무슨.......방금 전일은 사과했지 않습니까?" "아니,그때문이 아니에요.예전부터 생각해 오던 일이에요" "예전부터라니요? 잊으셨습니까?저와 함께 있으면 입사 시험에 합격할수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레리어트님은 기필코 합격시켜드리겠습니다!" "맞아요.저도 처음에는 입사시험때문에 아란님을 따라다닌거에요.하지만........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좋은 사람과 만나 즐겁게 게임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컸죠.그 상대가 아란님이기를 바랐어요.하지만........." 레리어트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는 지금 전혀 즐겁지가 않아요" "즐겁게 게임? 그런건 입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얼마든지 할수 잇습니다!" "역시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이해를 못한다고요? 내가? 이해를 못하는건 레리어트님입니다" "그럴지도모르죠" 레리어트는 한숨을 불어내며 몸을돌려세웠다. "역시 제가 생각하는 게임과 아란님이 생각하는 게임은 전혀 다르군요" "레리어트님,잠깐 기다리세요!" "어쨌든 제 뜻은 말씀드렸어요.그럼......." "젠장, 대체 왜? 대체 뭐가 불만인 겁니까?" 방을 나서자거칠게 탁자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미 그런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날 공격하지 않았어' 레리어트는 잠시 눈을 감고 방금 전의 상황을 곱씹어보았다. 이곳은 단지 게임속일 뿐이다. 죽고사는건 그리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그런데도 그 순간 그녀의 가슴은 요동쳤다. 아크는 검을 멈췄다.대체 왜? 이유를 알수 업었다. 피곤해서 너무 깊이 생각하고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 왜 그때 검을 멈췃는지, 그때 왜 검을 멈췄는지,그때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에 스쳐간 감정은 대체 어떤의미인지,그리고 어크는 대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알고 싶어졌다. '묻고 싶어.만나서.......묻고 싶어........' 그러나 아란과 함께 있으면 그 질문을 할자격도,기회도 없으리라.그래서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유롭게 되어서 묻고 싶어서......... "중급 회복 포션 100개를 더 내놓으라고?" 라이덴이 어이없는목소리로 물었다. 아란이 성으로 퇴각하고,라이덴이 반격을 위해 병력을 재정비하고 있을 때였다. 아크가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찾아와 포션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전에 거대한 포션 때문에 위기를 모면했잖아!그건 내가 사용한 스킬이라고!" "그게 네가 사용한 스킬이라고?" "그래,중급 회복 포션 100개를 사용해서!못믿겠으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봐.공성전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당장 내놔!" 라이덴은 잠시 미묘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그렇다면 주지" "저,정말이냐? 거짓말 아니지?" 아크가 와락달려들며 되물었다. 사실 별로 기대는 하지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순순히 준다고 할줄이야.젠장,이럴줄 알았으면 한 300개들었다고 말할걸 그랬다. "수호탑도 그렇고,어쨌든 기대이상으로 도움이 된건 분명하니까.그만한 대가를 받을자격이 있지.하지만 당장은 없어.공성전에서 승리한 다음 계산해 주겠다. 공성전을 치르느라 나도 길드의 자금을 거의 바닥낸 상태다.공성전에서 패배하면 그만한 포션값을 치를 여유도,이유도없어" "뭐..........그정돈 양보하지" "그나저나 솔직히 걱정이다 .아란녀석이 날뛰는통에 투석기가모두 고장났어.마법사도 몇 안남았으니 제한시간내에 성벽이나 부술수 있을지......." 라이덴이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공성병기가 고장나면 생상직 유저가 수리를 하기 전에는 사용할수 없다. 그러나 이곳은 공성전 전장, 전쟁을 하면서 생산직 유저나 장인NPC를 용병으로 고용했을리가 없는것이다.그러자 아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좋아,그건 내가 해결해주지" 아크는 라이덴을 데리고 투석기를 모아놓은 곳으로 걸음을옮겼다. 그리고 너구리족에게 점검을 부탁하니 바로 답이나왓다. "한나절이면 됩니다" "NPC에게 한나절이면 2시간.어차피 병력을 재편성하려면 그정도시간은 걸리겠지?" "고칠수 있단거냐?" "물론"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수리비는 대당 50골드야.20대니 1,000골드.이거솓 외상으로 달아 놓을까?" 라이덴이 와락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지,지독한놈........수리비도 따로받겠다는거냐?" "다 먹고살자고 하는짓 아니겠어? 싫으면 관두고" "알았다.외상........." "말뿐인 약속만큼 허망한것도 없이.먼저 계약서를 써줘야겠는데?" 아크가 보기에 라이덴은 공성전을 치르느라 살짝 이성이 마비도니 상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각오,아크에겐 절호의 찬스였다. 아란을 무찔러 되찾는 돈은 어차피 처음부터 아크 돈이고,이참에 마르고 닳도록 라이덴에게 글겅낼수 있는건 몽땅 긁어내야 하지않겠는가? 한번 걸리면 속옷까지 벗겨내야 직성이 풀리는것이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 라이덴=아크> 헤르메스 길드의 길드장 라이덴은 공성전에서 승리,시르바나 영지의 영주가 되는 시점에서 아크에게 중급 회복 포션 100개의 헌물이나 상점 시세에 따른 현찰 그리고 투석기 수리비 1,000골드를 지급한다] 결국 라이덴은 헤르메스 연합의 보급담당을 받고 있던 상인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어째 너무 순순히 내주는게 찜찜하지만.......' 라이덴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리라. '이걸로 3,000골드는 확보했다!' 계약서를 받아든 아크의 심박수가 급격히 상승했다. 전쟁을 치르는데는 돈이든다. 그것도 몇백 골드 수준이아닌,수천골드 수준의 돈이 들어간다.아란을 쓰러트리기로 결심한 뒤에 그게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그런데 막상 전쟁을 시작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면 전쟁을엄청난 돈이든다.그말은 돈을 물처럼 써가며 전쟁을 치르는 사람이 있다는뜻.수천명이 몰리니바닥에 돈이 굴러다니는것이다.그리고 상황을 잘만 이용하면 거기서 얼마든지 군자금을 착복할기회가 생길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뭐든 생각하기 나름이야' 아직 공성전은 몇시간이나 남아있고,라이덴은 영주 자리에 환장해 잇으니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리라.덕분에 한결 느긋해진 아크는 다른곳으로 눈을 돌렸다. "뱀,지금부터 전장을 돌아다니며 뭐든 떨어진게 잇으면 삼켜" 아크는 뱀에게 몇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준뒤에 명령했다. 나가란에서 유저가 아이템을 떨굴 확률은 1%도 되지않는다.게다가 가방에는 포션따위가 가장많으니 그걸 떨어트릴 확률도 높았다. 때문에 아크도 그 부분은 전혀 생각하고있지 않았지만,수호탑 파괴 작전을 실행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개량된 석궁(마법) 무기 타입 : 석궁 공격력 : 15~35 내구력 : 55/70 무게 : 20 사용 제한 : 레벨 80이상 전통적인 석궁을 개조해 만든 최신형 석궁.활대를 특수 기법으로 제련한 강철로 교체하고 시위는 고래 심줄보다 3배나 강하다는 카람의 수염을 사용,공격력과 사정거리를 올린 석궁입니다. 단, 무겁고 다루기 어려워 연사 속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옵션 : 공격력+5,사정거리 +20미터,연사 속도 -30%>] 벙커를 습격할때 궁수하나가 석궁을 떨어트린것이다. '그래,나가란에서 아이템을 떨굴 확률은 거의없다. 하지만 절대 떨구지 않는건 아니야!' 0,1%라도 4000명 가까이 되는 숫자다. 켜켜이 쌓인 시체들 틈에 하나쯤은 떨어져 있지않을까? 게다가 이곳은 고레벨 유저들만 모인 공성전현장! 운 좋게 하나라도 얻어 걸리면 십중팔구 대박! 다행히 지금은 모두가 공성전의 결말에 신경이 집중되어있었다.때문에 눈앞에 방금전 죽은 따끈따끈한 시체가 쌓여있는데도 누구하나 뒤져볼 생각도못하고 있었다.아니,떨어진 아이템을 봤다 한들,보는 눈이 많으니 엄두가 나지않았으리라.그러나 뱀이라면 누구도 눈치채지못하게 시체를 뒤지고 다닐수있다. '아이템을 챙긴다면 지금이 기회다!' "쌕쌕쌕!" 뱀은 용맹하게 시체들 틈으로 기어들어왔다. 그떄서야 아크는 진지하게 방금전 상황을 다시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어쨌든 돈벌이는 돈벌이고........아란자식,로코와 ㅔㄹ리어트를 건드리다니 용서할수없다!' 일단챙길거 다 챙긴뒤에야 새삼스레 분노가 치미는 아크였다. 어쨌든.......이로써아란을 용서할수 없는 이유가 또하나 생겼다. 이번기습으로 헤르메스 연방은 큰 피해를 입었다. 헤르메스와 실버문,풍월 길드원은 40%나 전사했고,다크에덴 역시 적지않은 피해를 받았다. 정의남과 로코를 비롯해 갱생단 6명이 죽고4명만이 살아남았다.란셀과 작센에서 몽느 70명의 NPC도 30명이 죽었다.로코가 죽자 갱생단과 도적들이 날뛰기 시작했고,진형이무너지며 각개 전투 형식으로 전투가 벌어진탓이다. 상대적으로 레벨이 달리는 다크에덴은 공성전에서 개별적인 전투를 벌이기엔 아직 시기상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전쟁이라는점을 감안하면 이해할수 있는 수준. "NPC를 많이 잃은게 마음에 걸리지만 아직까진 괜찮아,전쟁이니 병사를 비려준 영주가 장로들도 그 정도는 예상했을거야.하지만 더 잃으면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제 전황도 유리하고,챙길것도 꽤 챙겼으니 앞으로는 병력 유지에 신경써야 겠다" 아크는 투석기를 수리하는동안 다크에덴의 옷을 몽땅 벗겨들고 우물가로 향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1%라도 방어력을 올려놓아야한다. 이럴때야말로 4시간동안 천,가죽 계열 갑옷의 방어력 5%상승시키는 세탁스킬을 사용할때다. 역시 스킬은 뭐든 배워놓으니 쓸데가 있었다. 로코가 죽었지만 아크가 스킬을 배워둔 덕분에 세탁의 부가 효과를 유지할수 있는것이다. 뭐,덕분에 수십벌의 빨래를 혼자해야 하는 처지가 됐지만 아크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제 됐어.공성전은 우리가 이긴다. 그리고 결국 아란은 쪽박을 차고 나는 부자가 되는거야.빨래 수십벌정돈느 기쁜 마음으로 해주지!크하하하!" 아란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출정했다. 공성전의 사활을 걸었던 출정이라는 말이다.그리고 별 문제가없었다면 아란의 뜻대로 헤르메스 연합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리라. 그러나 뜻하지않은 아크의 활약으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큰 타격을 입은채 퇴각했다.반면 헤르메스는 아직 노엘과 하마네치 길드가 합류하지않은 상태! 곧 그들이 나머지 수호탑을 파괴하고 합류하면 전황은 6대4.아니,7대3정도로 헤르메스 연합이 우세해지리라. "이길수 있다.아니,이겨야 한다.시드와 함께 묶인 돈이 5,000골드!그리고 라이덴에게 뜯어낼 돈이 3,000골드!8,000골드가 걸린전쟁이다. 게다가 영지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의 30%!이 모든게 이기면 내것이고,지면 말짱 황이다. 무슨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해!" 그러나............아직도 아크는 나가란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만 흘러갈리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막대한 돈이 걸린 전투임에야 말할것도 없으리라.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7시간! 아란과의 악연.그리고 무려 8,000골드가 걸린 전투! 배신과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공성전도 최종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TO BE CONTINUDE TYPING BY RAYAN (: 8권 만큼은 주저리를 안하고 싶었지만 ..... 이번권에서 아란의 현상금이 초반엔 300골드였다가 후부터는 500골드로 바뀌어서 나왔습니다 . 뭐가 오타인지 구분할수가 없어서 내비뒀습니다 - -. 제 생각엔 300골드 인것 같지만... 알아서 판단하시길 ;;) ARK 8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차례> ACT 1 캐쉬워커 ACT 2 최후의 승자는? ACT 3 시르바나 성의 비밀 ACT 4 시 유 어게인,시르바나! ACT 5 아란 척살대 ACT 6 살린의 후예 ACT 7 살린의 탑 ACT 8 파멸의 기사 ACT 9 이계의 문 ACT 1 캐쉬워커 "빌어먹을............" 한숨처럼 욕설이 흘러나온다. 한번 일이 꼬이려다 보니 더럽게 꼬여간다. 아란은 소위 대한민국 1%라고 불리는 엘리트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그에 걸맞은 교육을 받았다 .당연한듯 명문대에 들어가 당연한듯 수석으로 졸업했다. 항상 화제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고, 마음먹은 일을 실패한적도 없었다. 그에게 성공이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당연하다.99%의 인간은 1%의 엘리트를 위해 존재하니까.뉴 월드에서도 그래야 한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다. 계호기했던 대로 그는 항상 이슈의 중심에 있었고,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었다.심지어 아란은 밤을 세워 코피를 흘리며 게임을 하는 유저들도 오직 자신을위해 존재하는 NPC와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아크..........!" NPC보다도 못하던 놈 하나가 모든것을 망쳐놓았다. 예상치 못했던 공성전,예상치 못했던 전황,예상치 못했던 레리어트의 길드 탈퇴 선언.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바로 아크............! 아크가 대단한 놈이라면 모르겠다. 그런데 이건 뭐........아란처럼 자금력이 풍부한것도 아니고,선구자처럼 남들보다 게임을 오래한것도 아니다.헤르메스 길드의 라이덴처럼 든든한 조직력을 갖춘것도 아니다.정말이지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는 녀석이,꼭 중요할때마다 툭툭 끼어들어 발목을 잡는것이다.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아란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건방지게 보이니 한번 따끔하게 혼내 줘야겠다. 이게 지금까지 아란이 아크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이었다.그러나 이번 일로 아란은 자신이 너무편한대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가진것 없는 놈들은 괜히 피해의식을 갖고 살기 마련이다. 굶주린 들개가 더 사나워지듯이,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이유 없는 적개심을 느낀다. 그런게 바로 없는 놈들의 천민 근성이다. '그런놈들에게는 힘을 보여 줘야 한다. 이를 드러내면 이를몽땅 뽑아 놔야 두번다시 짖어댈 엄두를내지 못하는거야.이번 공성전이 끝나면 놈을 끝장내 버리겠어!' 아란은 피식 코웃음을 쳤다. '레리어트는 그뒤에 다시 설득하면돼.그녀 혼자서 뭘할수 있겠어? 지금은 흥분해서 나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공성전을 막아내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비록 상황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고 있지만 아란은 아직승리를 확신했다. 조금 전 출정으로 입은피해는 아란측이 더 크다.그러나 아란은 초기목적이었던 투석기와 마법사의 제거에 성공했다.게다가 아직 성벽의 내구도와 회복속도를 올려주는 수호탑 하나가 남아있는 상태.제한 시간내에 성벽을 부숴야 하는 헤르메스 연합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리라. '수호탑이 남아있으니 공성병기 없이 성벽을 부수기는 쉽지 않을것이다. 이대로 성벽을 보수하며 3~4시간만 버텨내면 우리의 승리다' 남은 시간은 7시간.4시간뒤에 성벽이 무너진다고 해도 남은 3시간으로는 아무리 헤르메스 연합이라도 성을 점령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앞으로 3~4시간이 승부의 갈림길! 그리고 투석기를 잃은 헤르메스 연합은 결코 4시간안에 성벽을 무너뜨릴수 없다. '이번 공성전의 결과는 이미 나왔어' 머릿속으로 대강의 상황을 그려본 아란은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웃음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콰콰콰쾅! 돌연 창밖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익숙한 울림.......곧바로 한 길드원이 뛰어들어오며 그 울림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아란경,놈들이 다시 투석기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뭐? 투석기?" "네,상황이 급박합니다. 성벽 보수 속도가 데미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되는.......투석기는 몽땅 파괴했잖아!" 아란은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않았다. 일단 공성전이 시작되면 더이상 외부에서 물자를 조달할수 없다. 결국 망가진 투석기를 수리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헤르메스 연합에 장인 유저가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또한 장인 NPC를 용병으로 고용했다는 정보도 들어보지 못했다. 결국 투석기를 수리할수 업다는 말.그 때문에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석기를 집중공격 한것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아란은 성벽에 올라온 뒤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투석기마다 쫑긋한 귀에 널찍한 꼬리를 달고 있는 NPC가 붙어있었다. 아크와 함께 나타나서 수상한 휴대용 대포르 난사해 대던 다크에덴의 NPC용병! 설마 그 용병이 장인이었단 말인가? 그 장인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는 아크를 발견하자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크!또 네놈이냐?" "아란경.우측의 수호탑도 얼마 버티지못할거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대로는........" "당황할 필요없다!" 아란은 거칠게 몸을 돌리며 명령했다. "그래도 제한시가이 7시간밖에 남지않았다는 사실은 변하지않아.지배의 왕좌를 7시간만 지켜내면 우리의 승리다. 일단 성벽을 지키는데 전력을 기울인다.그리고 너는 곧바로 그곳으로 가서 게이볼트 경에게 만약을 위해 출정 준비를 하라고 전해라" "게이볼트 경이.........다시 나서는 겁니까?" "그게 대주교와의 약속이었다. 성을 빼앗기면 곤란한건 나만이 아니야" "알겠습니다" 길드원이 허겁지겁 성의 후원쪽으로 달려갔다. 콰콰콰쾅!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른 바위가 성벽을 들이받았다.사방으로 파편이 날리며 성벽의 내구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오오,이 ,이럴수가.......!' 라이덴은 그 장면을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지켜보았다. 너구리족이 투석기 수리를 시작한지 2시간뒤,투석기는 정말 새것처럼 말끔하게 고쳐졌다. 그러나 단순히 수리가 된것만이 아니다. "흠,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군" "어째서 이 부분을 이렇게 설계한거지?" "여기를 요렇게 하면 사정거리와 공격력이 훨씬 좋아질텐데........" 처음 수리를 맡겼을때 너구리족은 이해할수 없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군거렸다. 아크가 이런 대화를 놓칠리가 없다. "그럼 지금 있는 자재만으로 투석기의 성능을 올릴수 있다는 말인가요?" "자재는 더필요 없습니다. 아니,오히려 성능을 올리려면 몇가지를 떼내야 할정도입니다. 쓸데없는 장치들을 달아놔서 성능이 떨어진 경우라고 할수있죠" "아무래도 조작법이 서툰 사람들도 사용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이것저것 불필요한 부품을 달아놨던 모양인데.......숙련자가 사용한다면 없는 편이 연사속도도 더 빠를겁니다" "숙련자라면?" "저희같은 직공들을 말하는거죠" 그 대답이 아크에게는 금화가 쏟아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럼 잠깐만 기다리세요.제가 라이덴에게 개조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요" 아크는 바람처럼 라이덴에게 달려가 사정을 설명했다. "업그레이드? 그렇다면 당연히 개조해야지!" 한시가 급한 라이덴은 말할것도 업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그러자 아크는 슬슬 그의 눈치를 살피며 대꾸했다. "그런데 투석기를 개조하는데 꽤 귀한 재료가 들어가.장인 NPC의 기업비밀이라 자세하게는 설명해 줄수없지만........그리고 투석기 성능을 발휘하려면 그들이 직접 조작해야 하고" ".......돈이냐?" 척하면 딱이다. 이제 라이덴도 아크의성격을 100%파악하고 있었다. 아크는 교활한 장사꾼처럼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제안했다. "업그레이드 비용과 NPC들의 인건비로 대당 30골드.모두 해서 600골드야.어때? 이것도 친밀도가 높은 NPC들이라 겨우겨우 설득해서 합의를 본 금액이라고,대신 수리비를 받은게 있으니 중재 비용은 안받을게.고맙지? 빨리 결정해 .시간이 없잖아" 마음만 먹으면 전장에서도 얼마든지 돈을벌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크는 집요하게 라이덴의 주머니를 물고 늘어졌다.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아크의 진짜 직업은 다크워커가 아닌 캐쉬워커인 것이다.라이덴도 뉴 월드에서 잔뼈가 굵은 유저다. 중간에서 아크가 사기를 쳐대고 있음을 모를리가 없다. 그러나 1분1초가아쉬운 상황! "........외상으로 하지" 라이덴은 똥 씹은 표정으로 다시 계약서를 써주었다 "됐어요.서둘러 개조하세요!" 계약서를 받아든 아크는 곧바로 너구리족을 닦달해 작업을 진행시켰다. 사실 아크도 그리 여유가 있는건 아니다. 아란을 밟는건 둘째치고,일단 라이덴이 성주가 되지못하면 지금까지 받은 계약서도 모두 부도수표가 되어버린다. 중급 회복 포션 100개.수리비와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받을 돈이 모두 합해 1,600골드! 어렵게뜯어낸 돈을 청구하기 위해서라도 이기지않으면 곤란하다.다행히 최고의 장인 NPC인 너구리족은 한동한 뚝딱거리더니 곧 모든 작업을 완료했다. "이게 업그레이드된 투석기인가?" 라이덴은 그다지 변한것 같지않은 외관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성능을 확인하고는 얼굴이 활짝 피었다. 개조를 통해 사정거리와 공격력이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엇다. 게다가 유저들이 작동시킬때는 4~5분에 한발이었던것이,너구리족이 달라붙자 거의 2분에 한발! 연사 속도가 2배나 빨라진것이다. ...........그 위력은 바로 확인할수 있었다. 투석 골렘과 함께 공격할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성벽의 내구도가 떨어졌다. 사정거리도 길어져서 이제 성벽에서 날리는 화살도 신경 쓸필요가 없었다.아크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여명의 칼날 연합을 보며 히죽거렸다. "어때? 이정도면 대당 80골드 가치는 있지?" "뭐,그럭저럭......." 라이덴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르 흘겼다. '대체 이자식 정체가 뭐야? 장신 NPC를 거느리고 있질않나.전사 NPC들도 일반용병보다 훨씬 강하잖아.게다가 좀전에 봤던 고양이 같은 녀석들은 아예 날아다니지를 않나.....대체 무슨 방법으로 저런 용병 NPC를 거느릴수 있는거지?' 선구자인 그조차 아크의 게임 방식을 상상할수 없었다. '게다가 돈을 뜯어낼때는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수 있는지......상종 못할놈 같으니..............' 라이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번 약점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니 정말 무서운놈이다. 뉴 월드에서 별의별 놈을 다봤지만 아크 같은 인간은 그조차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대놓고 욕을 할수도없다. 용케 아크는 돈받은 값은 다하는것이다.그것도 정말 필요할때 적절하게 나타나 제 역활을 해주니 돈을 안 뜯길 수가없었다. 사실 이건 아크의 인생관이나 다름없었다. '밥값을 하면 욕을 먹을이유가 없다' 아크가 돈을 밝히기는 하지만 말도 안되는 사기를 치거나,PK따위는 단한번도 한적이 없었다.단지 공짜로 뭔가를 해주지않을 뿐이다. 기브 &테이크! 내가 뭔가를 해주면 상대에게 그만한 대가를 받는건 당연하지않은가? 그런 마인드 덕에 라이덴을 뜯어먹으면서도 언제나 당당한아크다. 어쨌든 한번의 위기를 넘기자 모든 상황은 헤르메스 연합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투석기를 부활시켜 공격을 퍼붓자 여명의 칼날 연합은 허겁지겁 공격에 나섰다.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에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풍월과 다크에덴이 합류해 병력을 재편성한 덕도 잇었지만, 상황이 이전보다 위험해져 아란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나서지않은 영향도 적지않았다. 그렇게 한차례공격을 막아내자 승기는 완전히 헤르메스 연합으로 기울엇다. -수호탑 2개가 모두 파괴됐습니다. *영주성에 적용되던 방어막이 100%감소됐습니다. *영주서에 적용되던 성벽 내구도 회복 속도가 100% 감소했습니다 공성전을 시작하고 19시간만에 이룬 쾌거였다. 뒤이어 우측 수호탑에 파견나갔던 노엘과 하마네치가 돌아왔다. 아크와 달리 힘으로 밀어붙인 탓에 전력에 엄청난 손실을 입은 상태였지만, 용병을 포함해 300명에 가까운 생존자가 본대와 합류할수 있었다. "현재 우리의 병력은 900명가량.적지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놈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수호탑이 없는 성벽의 함락은 이제 시간문제.성안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유리한 지형을 선점한 놈들이 약간 유리하겠지만..........충분히 승산이 있어.아니,틀림없이 이긴다!" 거듭된 낭보에 라이덴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더욱 더 공격을 퍼부어라!이제 얼마 남지않았다!" 라이덴은 철퇴를 흔들며 목이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그리고................. 투투투퉁,콰쾅,콰르르르! 빗발치는 공격에 결국 성문과 성벽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전군,돌격!" 우와아아아! "쓸어버려라.마지막 승리는 헤르메스 연합의 것이다!" 라이덴과 900명의 유저들이 함성을 지르며 성안으로 난입했다.더이상 헤르메스 연합도,여명의 날개 연합도 물러날 곳이 없다. 문자 그대로 최종 결전! 기름에 성냥을 던져 놓은 것처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비행기와 미사일이 날아다니고,핵폭탄으로 수십만을 증발시켜 버리는 현대전에서도 결국 적진에 최후의 깃발을 꽂는것은 보병이다. 뉴 월드의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두 차레의 격돌로 성직자나 마법사는 씨가 말랐다. 남은 것은 생명력과 방어력으로 먹고사는 전사들! 어느쪽의 레벨이 더 높은가? 누가 더 강한 장비를 갖추고,누가 더 많은 포션을 가지고 있는가? 오직 그것만으로 승부를 내야하는 시기가 온것이다.그러나 성내에 난입해 벌어지는전투는 성밖과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성내는 허허벌판이 아니다.각종 시설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다시 말해 몇백 대 몇백이 우르르 몰려들어 칼질을할수 없다는 뜻이다. 또한 요소요소에 배치된 망루나 바리게이트 역시 전략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공격자 입장에서는 여러기간 시설물을 얼마나 빨리,얼마나 적은 피해로 함락해 나가는것이 과제! 반면 지키는 쪽에서는 얼마나 오랜시간을 버텨내느냐에 승부가 달렸다고 할수 있었다. 당연히 전면전보다 더 수준높은 병력 운용이 필요하다.그런점에 있어서 라이덴은 전문가였다. "서두를 필요없다.성벽이 무너져 놈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이다. 선두는 헤르메스와 실버문이 맡을테니,노엘과 하마네치는 좌우를 맡는다. 풍월과 다크에덴은 잔존 세력을 처리하라.자, 2진,전방의 망루를 점령하라!" 라이덴은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본듯 빠르게 명령했다. 광장,병영,무너진 성벽위......곳곳에서 전사들의 혈전이 벌어졌다. 아크와 다크에덴의 생존자들도 난전 한복판에 떨구어졌다. "이제야 큰형님과 짝퉁들의 복수를할때가 왔군!" 타짜가 뜨거운 콧김을뿜어내며 단검을 들어올렸다. 도적과 크로스들,묘족들도 기다렸다는듯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저었다. "아니,다크에덴은 후위에서 보조만 합니다." "뭐?" "우리는 이미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어요.전황이 어렵다면 모를까,굳이 나서서 피해를 가중시킬 이유가 없어요.우리가 여기까지 온 목적은 아란을 무찌르기 위해서잖아요.그런데 아란의 얼굴도 보지못하고 죽으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어디있겠어요?" "그야 그렇지만........" "하지만......기사된 자로서 어떻게......다크에덴의 지휘관인 자네의 명예를위해서라도 우리가 나아가 싸워야 하지않겠는가?" 크로스들이 수긍할수 없다느듯이 말했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기사답지 않은 행동이라는건 저도 압니다. 비난을 받아도 싸죠.하지만 저는 그런 비난보다 여러분을 잃는게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나를 위해 이곳까지 달려와준 실피드 기사단의 죽음을 보느니,차라리 비겁한자가 되겠습니다. 모든 비난은 제가 받을테니 여러분은 살아남는데만 집중해 주세요.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아크.......자네는 정말.........!" 크로스들은 감격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명예보다 병사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지휘관!세상 어느 병사가 그런 지휘관을 따르지 않겠는가? 갱생단과 도적들은 물론,크로스들도 감동받은 얼굴로 끄덕였다. "자네의 명령에 따르겠네" 아크는 안도의한숨을 불어냈다. 'NPC를 더 잃을 수는 없다!' 거듭된 전투로 다크에덴은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정의남과 로코를 비롯해 갱생단 6명이 죽고 4명만이 살아남았다.70명의 NPC도 30명이 죽었다. 아슬아슬하지만 아직까지는 전쟁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수 있는수준.그러나피해가 가중되면 아크로서도 감다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전황도 우세한데 괜히나서서 피해를 늘릴 이유는 없다. 그때, 크로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이런 난전에서 그런식으로 싸울수 있을지......." "그건 걱정마세요" 아크는 씨익 웃으며 만만한 풍월 길드장 바론을향해 소리쳤다. "바론님,먼저 앞으로 가세요" "네? 저희가요?" "어차피 우리는 후위에서 잔당을 처리하면 돼요.모두 적지않은 데미지를 받은 자들뿐이니 풍월의 용사들이라면 충분히 상대할수 있을거에요" "물론 그렇지만 그건 다크에덴도 마찬가지인데......" 바론이 약간 주저하며 눈치를 살폈다. 아크는 방긋,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수익금 지분을받기로 결정되어 있잖아요.하지만 다른 길드는 이번 전쟁에서 세우는 공적에 따라 지분을 받기로 돼 있죠? 공을 세울 절호의 기회예요" "그,그럼........?" "그래도 함께 수호탑을 파괴했던 사이잖아요.다른 길드보다는 풍월이 잘되는게 좋죠.저희가 뒤에서 최대한 백업할테니 마음놓고 싸우세요!" "우와,감사합니다!들엇지? 모두 돌격하라!" 공성전에서는 적을 죽이면 승점이라는 포인트를 받는다.연합의 리더는 공성전이 끝나면 그 공헌도에 따라 보상....그러니까 논공해상을 하는것이다. 그러나 수호탑에서 삽질만했던 풍월은 승점이 전문하다시피 했다. 바론이 길드원들에게 눈총을 받는건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크가 승점을 몰아준다고 말하자,단순하기 짞이없는 바론은 병력을 몰고 적진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게다가 끝까지 성에남아 있는 여명의칼날 연합 유저들은 상당히강한편이었다. 헤르메스 연합에서 가장 열악한 풍월이 내키는대로 학살할 상대가 아니다. "이새끼들,고작 레벨 130밖에 안되는놈들이뭐가이렇게 당당해?" "성벽이 무너지니 우리가 만만해 보이냐?" "우욱,이 ,이놈들.....강하다!" 기세좋게 밀고 나갔던 바론이 당혹성을 터트렸다.그리고 뒤늦게 후퇴하려고 했지만 이미 퇴로는 막혀잇었다. 아크와 다크에덴이 풍월으이 등을 떠밀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우리는 승리할수 있습니다" "모두 일제사격!풍월 길드원을 도와라!" 아크는 간병과 대포를 난사하는 척하며 풍월 길드원을 적진으로 밀어붙였다. 덕분에 바론과 풍월은 본의아니게 임전 무퇴의 각오로 적과 싸우는 수밖에 없엇다. "젠장, 다크에덴이 저렇게 도와주는데 도망갈수도 없고........." "이판사판이다!' 결국 풍월은 아크의 계획대로 다크에덴의 방패막이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그냥놀고 잇는것처럼 보이면 곤란하지' 아크는 데드릭을 소환해 명령했다. "으음, 전장의 향긋한 피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군" "변태 같은 소리 지껄이짐라고 상공에서 주변을 살펴봐.풍월에게당한 적병들은 다른 부대와 합류하려할것이다. 그 위치를 좌표로 만들어 알려줘" "쳇, 이런 일은 항상 나지!" 데드릭이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맡은일만큼은 확실하게 처리했다. "주인,우측 3시부근에 서너놈이 헐떡거리며 이동하고 있다" "좋아,포병,우측에서 이동하는 놈들을 일점사하라!" "주인,8시 방향에 한놈이 죽은척하고 있다" "형님들, 그놈 밟으세요!" 아크는 그렇게 데드릭을 이용해 생명력이 바닥난 적을 곶감 빼먹듯이 대포로 처리하며 승점까지 긁어모았다.그러나 선두에서 죽어라 검을 휘두르는 바론은 아크가 승점을 가로채는 것조차 알아챌 여력이 없었다. 그 사이 다시 영력을 회복한 아크는 데이모스까지 소환했다. "데이모스,너는 크로스경과 함께 포병 앞에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라" 딱딱,딱딱딱! 포병앞에 데이모스가 방어태세로 떡하니 자리를 잡자 완벽한 진형이 만들어졌다 '후후후,이건 뭐 땅 짚고 헤엄치기로군' 어쨌든 풍월의 노력덕에 근처의 적병도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났을무렵,서서히 대세가 결정되었다.성밖에서 충돌했을때도 느꼈던 의문이지만 여명의 날개연합은그동안 성에 틀어박혀 있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레벨이 높아졌다.그러나 오랫동안 우위를 점해왔던 헤르메스 연합에 비하면 다소부족한 감이 있었다. "병영을 합류시켰습니다!" "동쪽 망루를 제압했습니다!" "별관의 전투도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전개도고 있습니다!" "더이상 우리의 진군을막을 세력은 없습니다!" 시시각각 낭보가 전해졌다. "생각보다 힘든 싸움이었지만 모두 잘해 주었다" 라이덴은 감격에어린 시선으로 내성을 바라보았다. 시르바나를 차지하기 위한 오랜 여정도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른 것이다. "본성에서 저항하는 세력은 300이 채 되지않습니다!" "좋아,고지가 눈앞이다!이제 남은건 영광의홀뿐이다!아란놈은 틀림없이 그곳에서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아직 전투중인 부대를 제외한 모든 병력은 영광의 홀로돌입한다!" 라이덴은 300명을 이끌고 본성으로진입했다. 아크는 다크에덴을 이끌고 얼른 그 틈에 끼었다. 아크의 꾐에 넘어간 풍월은 죽어라 싸우다가 거의 괴몰상태까지 몰렸지만, 다크에덴은 아무런 피해도없이 본진과 합류할수 있었다. 물론 라이덴을 위해 최후까지 열심히 싸워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미 전황이 기울었으니 가장 안전한 곳은 역시 라이덴의 옆이다. 성을 함락시키는 결정적인 순간에 헤르메스 연합의 리더인 라이덴 옆에 있으면 그럭저럭 폼도나고 ,위험도 피할수 있다.또한 무엇보다 아란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수 있는 기회도 얻으리라. '자,이제 아란이 망하는꼴을 구경하러 가볼까?' "눈에 보이는 놈들은 모두 죽여버려!" 한껏 기세가 오른 라이덴은 잔당을 처리하며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있는곳에 도착했다. 영광의 홀! 영주 지위를 상징하는 지배의 왕자가 있는방이었다. 철문은 전사들의 철퇴와 아크 부대의 대포로 난타하자 곧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졌다. "아란,도망갈곳은 없다!" "젠장, 막아라!" 방안 구석에서 아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간을 뒤흔드는 쇳소리가 울리며 두 집단이 격돌했다. 영광의 홀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쳐놓고 있던 여명의 칼날 길드원은 대략 250.고르고 고른 길드원인 만큼 실력도 상당했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은 300명이나 되었다. 또한 선구자를 앞세우고 있어 실력면에서도 압도하고 있었다. "열화의 기운이여,모든것을 재로 만들어라.헬 파이어!" 격전을 뚫고 살아남은 쥬르와 듀크가 광역 스킬을 발동시켰다. 여기저기에서 화염 기둥이 치솟고,수십발의 화살이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마법사와 성직자가 씨가 마른 상황에서 광역 스킬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뒤이어 라이덴이 전사들을 지휘하며 몰아붙이자 여명의 칼날은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러나 곧 여명의칼날에서도 광역마법을 발동시켰다. "바람의 칼날이여,토네이도!" "크아아악!" 수많은 진공 칼날이 헤르메스 연합을 휩쓸었다.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유저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쳇, 놈들도 남아잇는 마법사가 잇었던 건가?" 라이덴이 욕설을 내뱉으며 마법사를 쏘아보았다. 반사적으로 그의 시선을 쫓던 아크는 일순 숨이 멎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명의 칼날 최후의마법사......아란의 옆에 붙어 있는 금발의 에프 마법사는 바로 레리어트였다. '아직......살아 있었구나.......' 그때, 라이덴이 고함을 내질렀다. "듀크,저 계집을 저격해라!" 듀크가 빠르게 자세를 잡고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광역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레리어트는 몸을 노출시킨 상황!일정 확률로 즉시 효과가 있는 듀크의 스나이퍼 스킬을피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일까? 상황을 파악한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뛰어나가 듀크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뭐하는짓이야,멍청아!" 듀크가 버럭 소리치며 아크를 밀쳐내고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한 템포 늦은 탓에 화살은 아란의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듀크가 욕설을 내뱉었지만, 아크는가볍게 무시하며 씁쓸한 눈길로 아란의 방패 뒤로 몸을 숨기는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그런 짓을 당하고도 레리어트는 아란을 선택할수밖에 업는건가........' 그녀가 아란과 함께 있는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그러나 막상 전장에서 아란을 돕고 있는것을 보니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패배감,혹은 배신감..........그럼에도 아크는 그녀가 죽는모습을 보고싶지않았다.때문에 몇번이나 포병으로 공격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차마 공격 명령을 내릴수가없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애매한 태도를 취할수 없다는것 정돈 알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고 20여분,영광의 홀에서 유저 400여명이 쓰러졌다. 남은 병력은 양측을합해서 130여명.여명의 날개는 불과 30명도 되지않는다.이제 레리어트를 공격할수있는 기회는누가 봐도 만았다. 반면 장거리 공격수는 듀크와 다크에덴의 포병뿐.아크가 듀크를 견제하니 기회는 다크에덴의 포병뿐이었다. 한두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딴청을 피우면 눈치챌수 밖에 없으리라. '그래 ,이건 전쟁이야.그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거야' 아크가 한숨을불어내며 포병에게 레리어트의 조준을 명령하려 할때였다. 콰콰콰쾅!돌연 헤르메스 연합의 배후에서 격렬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어렸다.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건지 십수명의 기사들이 쐐기진형으로 헤르메스 연합을 가르며 돌진해 들어오고 있었다. "저들은........?"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성문 앞에서 격돌할때, 아란과 함께 나왔던 20명의 기마부대!성밖의 난전에서 몇명은쓰러졌지만 아직 17명이나 남아 있었다. "성에 돌입한 뒤로 안보인다 싶더니!" 17명의 기사들은 그야말로 앗,하는사이에 헤르메스 연합을 짓밟고 들어와 여명의 칼날 잔존세력과 합류했다. "훗, 그렇게 쉽게 이 자리를 내줄것 같으냐?" 아란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중급 회복 포션을 1개 습득했습니다. 쌕............ 정보창을 확인한 뱀을 한숨을 푹 불어냈다. 격전지를 돌아다니느라 뱀은 바다에 고인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잇었다. '어딘가에 쓸만한 아이템이 떨어져 있을지도 몰라.너만 믿는다 ,뱀'이라는 아크의 밀명을 받고 주변을 뒤지기 시작한지 몇시간. 뱀은 아크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시체를 뒤졌다. 어디서 뭐라도 반짝인다 싶으면 죽을 각오로 전장을 가로질러 삼키길 수차례..................... 쌕,쌕쌕쌕 뱀은 꾀죄죄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몽실몽실,머릿속에서 아크의 얼굴이떠올랐다. 뱀은 알고 있었다. 아크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걸리는게 언제인지.말할것도 없이 돈이될만한 아이템을 구했을때다. 사실 뱀은 아이템의 가치따위는 전혀 몰랐지만, 부단한 노력끝에 주인이 원하는'돈이 되는 아이템'이 어던 것인지 알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쓸만한 아이템은 하나도 먹지 못했다.고작해야 포션 몇개를먹었을 뿐이다. 아마도 이대로 돌아가면 아크가 꽤나 실망하리라. 쌕....... 뱀의 파란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너만 믿는다.뱀'이라는 아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죽어라 돌아다녀도 주인이 만족할만한 아이템을먹지 못했다. 어쩌면 아크는 데드릭이나 데이모스처럼 뱀이 농땡이를 피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인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데......나는 왜 이렇게 무능한걸까? 결국 순진하기 짝이없는 뱀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때, 돌연 뱀의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스토킹(초급,종족특성) : 숨겨진 뭔가를 찾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새로운 능력을 깨달았습니다 .아라모네의 혀는 촉각과 후각을 함께 가지고 잇습니다. 혀끝으로 주변의 모든것을 파악하고 ,심지어 목표물의 채취로 언제 어느 방향으로 이동했는지까지 파악할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숨겨진 아이템이나적을 추적할때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것입니다. <주변 200미터 범위의 아이템을 탐색할수 있습니다. 또한 1시간내 그곳을 지나간 상대의 흔적을 찾아 이동방향을 추측할수 있습니다. 등급이 올라가면 범위와 탐색 시간이 늘어납니다.마나 소모 : 30>] 쌕? 뱀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해졌다. 사실 스토킹은 평범하게 태어나자란 아라모네의 유생이라면 어미에게 배울수 있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손에서 자란 뱀에게 그런 기회는 없었다. 그러다가 근래 들어 주인과 떨어져 혼자 아이템을 주워먹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저절로 스킬을 깨우치게 된것이다. 원래 소환수의 정보창은 아크에게 먼저 보이지만, 너무 멀리떨어져 있어 뱀에게만 나타났다.때문에 글을 모르는 뱀은 메시지창의 내용은 알수 없었지만 감각이 예민해졌음은 알수 있었다. 쇄엑...........쇄에에엑! 혀를 날름거리자 멀리서 뭔가그럴듯한 냄새가 느껴졌다. 익숙한 냄새,아크가 좋아하는 돈이 될듯한 아이템의 냄새다.뱀은 곧바로 냄새를 쫓아 바닥을 기었다. 그리고 잠시후, 한기사의 시체를발견했다. 어딘지눈에 익은 듯한 시체였는데,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크를 괴롭히던 기마부대의 일원이었다. 뱀은 화를 내며 꼬리로 기사를 탁탁쳤다. 감히 주인을 괴롭히다니,죽어 마땅한 놈이다.그렇게 한참 분풀이를 한뒤에야 뱀은 시체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시체에 묻혀 보이지않던 건틀렛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영광의 건틀렛'을 습득했습니다. 쇄엑!쌕쌕썍! 냉큼 건틀렛을 집어먹은 뱀은 즐거운 비명을터트렸다. 정보창을 확인할수는 없지만-봐도 모르지만-돈이 될거라는것은 본능적으로 알수 있었다. 이제야 주인의기대에 보답할수 있게 되었다. 뱀은 탐욕스러운 눈길로 주변을 흝었다.혹시 다른것이 없나 싶어서 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떨어진건 건틀렛뿐이었다. 할수 없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할때였다. "지금이다. 놈들으 여명의 날개가 괴멸했다고 판단하고 안심하고 있을것이다.지금 배후를 급습하면 놈들에게 타격을 입히고 사기도 떨어트릴수 있다!" 돌연 뒤쪽에서 한무리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본성으로 달려갔다.시체 밑에 숨어서 지켜보던 뱀은 잠시 고민하다가 은밀히 그들을 뒤쫓았다. 같은 갑옷을 입은기사가 상당히 좋은 아이템을 떨어트렸다. 어차피 그들도 싸우러 가는것 같으니,적어도 몇 놈 정돈 죽으리라. 즉,그들을 따라가면 또다시 괜찮은 아이템을 얻을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쌕쌕썍........... 뱀의 입가에 씨익........미소가 번졌다. 아크의 얼굴을 빼다 박은표정이었다. ACT 2 최후의 승자는? "흥,그래봤자 고작 열입곱 마리가 늘어난 것뿐이야.밟아버려!" 라이덴이 병력을 이끌고 돌진했다. 기사들에게 갑자기 기습당해 30여명이 쓰러졌지만, 아직 헤르메스 연합은 100여명이 남아있었다. 반면여명의 날개 연합은 기사까지 합해도 고작 50에도 미치지않았다. 수적으로는 아직도 2배나 차이가 나는것이다. 게다가 기사들은 공격력이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성밖에서의 접전처럼 말을 타고 마법사만 공격할때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영광의 홀에 모인 유저들은 대부분 중갑을 걸친 전사.그처럼 쉽게 당할사대가 아니다. 아니,2배의 병력이라면 상대하고도 남을 정도다. "아크 ,이제 마지막이다.우리도 돌격하자!" "아니,잠깐 기다리세요" 아크가 짝퉁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분명 모든 상황은 헤르메스 연합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대체 뭐지 ?저 여유는?' 아크는 의아한 눈길로 아란을 바라보았다.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아란은 여유가 업어 보였다. 그런데 기사들이 등장하자 일변했다.1명이라도 생존자를 늘리려고 이리뛰고 저리뛰던 녀석이 지금은 헤르메스 연합이 총공격을 펼치는데도 뒤에서 느긋하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미묘하게 후각을 자극해 오는 불길함........! 다음 순간, 아크는 그 불길함의 정체를 확인할수 있었다. "신의 권능으로 적을 명하라,디바인필드!" 두 병력이 막 충돌하려는 찰나,아란이 광역마법을 펼쳤다. 바닥을 따라 푸른빛이 물결처럼 퍼져갔다.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의 전사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않았다. 홀리 나이트아란의 스킬은 이제 꽤나 알려진 편이다. 아란의존재 자체가 유명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중 광격 공격 마법인 디바인 필드는 언데드에게는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일반 몬스터나 유저에게는 그리 위협적인 스킬이 아니었다. 근접거리에서 데미지를 받는다고 해도 고작 70정도.생명력이 3,000대에 육박하는 전사들에게는 간지러운 수준이다. "이정도는 무시해!" "훗, 왠지 마나를 아낀다 싶더니...........고작 이런 스킬때문이었냐?" "홀리 나이트 아란도 궁지에 몰리니 별수 없군" 전사들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그게 비명으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않았다. "디바인 필드!" 돌연 기사들의 갑옷이 하얗게 달아오르더니 동시에 같은 주문을 외워버린것이다. 바닥이 시퍼렇게 달아올랐다. 아란까지 포함하면 18명! 디바인 필드가 무려 열여덟번이나 중첩되어 발동한것이다. 그 결관느 무려 1,000대의 광역 데미지! "크아아아악!" 격전으로 생명력이 반 이상 깎여있던 전사들이 푸른불꽃에 휩싸여 쓰러졌다. 간신히 사정거리를 벗어난 전사들도 엄청난 데미지에 허겁지겁 포션을 들이켰다.라이덴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뭐,뭐야? 디바인 필드는 홀리나이트의 특수 스킬이 아니었나?" "그,그럼......이녀석들이 모두 홀리나이트라는거야?" "말도 안돼!" 누군가의 목소리에 헤르메스 연합원들이 비명을 터트렸다.그러자 라이덴이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다!홀리 나이트는 숨겨진 직업이야.그렇게 쉽게 전직할수 있을리가 없어!" "그래,놈들은 뭔가 다른 마법으로 사기치고 있는게 분명하다!" "디바인 필드는 재사용 시간이 길어" "최후의 발악이다. 겁먹지 말고 공격해라!" 전사들이 다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란이 씨익 웃으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확실히 최후의 발악이기는 하지.하지만 그리 만만한 발악은 아닐걸.디펜스 오라,엘리멘탈 오라,전사의 기력!" 3개의 오라를 중첩시킬수 있는 홀리나이트의 특성! 아란은 방어력을 올려 주는 디펜스,속성 저항력을올려주는 엘리멘탈, 최대 생명력을 20%올려주는 전사의 기력을 발동시켰다. 홀리나이트가 집단전에서 최강이라고 군림하게 만들어주는 스킬!그러나 그조차 지금처럼 전력이 2배나 차이가 날때는 별 의미가 없었다. 아니,없어야 했다 .그런데........ "디펜스 오라,엘리멘탈 오라,전사의 기력!" 또다시 기사들의 갑옷이 백열되더니 같은 스킬을 상요하는게 아닌가? 동시에 같은 오라 효과가 열여덟번이나 중첩되었다. 무지막지하게 올라간 방어력과 생명력!레벨 180대에 달하는 선구자들의 공격조차 제대로 박히지않을 정도였다.게다가 생명력도 엄청나게 올라가서 치명타가 터져도 생명력이 깎인듯한 느낌조차 들지않았다. 결국 전사들은 반격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아란과 기사들은 굳이 쫓아와 공격하지않았다.아니, 무리해서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자아,이제 한 40분 정도 남았군" 아란이 창밖을 바라보며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멀리 보이는 언덕위,공성전 마감을 아리는 모래시계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란의 말처럼 남은 시간은 고작 40여분. 그전에 지배의 왕좌를 차지하지 못하면 결국 공성전은 실패로 돌아가는것이다. "모두 일제히 사격개시!' 아크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것을 꺠닫고 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일점사로 공격해도 기사가 방패로 막아내자 별 효과가 없었다. .......그야말로 철벽! "뭐,뭐 이런 말도 안되는 놈들이........!" 라이덴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기사들이 원형진으로 아란과 지배의 왕좌를 보호하고 있어 어떻게 접근할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조금전의 난전으로 경갑을 입은 마법사나 도적같은 데미지 딜러들도 모두 죽었다. 기사들이 뒷짐을지고 있어도 제한시간 내에 방어벽을 뚫을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아니,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했다가는 오히려 전멸을 당할지도 모른다. "젠장,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떨어지는 모래의 양만큼이나 라이덴의 입술도 말라갔다.속이 타는건 아크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이 무슨 황당한 일일나 말인가? 만약 이대로 공성전에 실패하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시드는 감옥에서 썩어갈것이고,자본금 5,000골드는 언제 찾게 될지 기약조차 없다. 그뿐인가? 라이덴에게 받기로 했던 수익금과 포션,수리비용도 그냥 허공에 더버린다. 피해 금액은 수천 골드.......! 그건 아크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죽는 한이 있어도 공성전은 성공시켜야 한다!' 그렇게 아크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때였다. 쌕쌕썍? 돌연 발치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숙여보니 뱀이 아크의 다리를 칭칭 감으며 얼굴을 비벼댔다. '어라? 어째서 뱀이 여기에 있는거지?' 아크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뱀의 애교라면 언제나 웃음부터 짓고 보는아크였지만, 지금은 뱀과 놀고 있을때가 아니다. 그러나 뱀은 여전히 뭔가 할말이 있다는듯이 몸을 비벼대더니 이내 뭔가를 토해냈다. 그리고 칭찬해 달라는듯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좌우로 갸우뚱거렸다. '아, 뭔가 그럴듯한걸 챙겨서 칭찬해달라고 찾아온 모양이구나.대체 뭐기에.......'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일단 아이템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정보창을 바라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광의 건틀렛(레어) 방어구 타입 : 강철 건틀렛 방어력 : 75 내구력 : 55/90 무게 : 70 사용 제한 : 레벨 150 이상 신성 기사 계열. 이 놀라운 힘을 가진 건틀렛은 일부 교단에서 신의 선택을 받은 신성 기사를 위해 고대의 힘을 이용해 특수 제작된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결코 이 건틀렛을구할수도,사용할수도 없습니다. 또한 건틀렛을 제작한 교단과 같은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면 신성 기사라 해도 건틀렛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수 없을것입니다. <옵션 : 힘+10,생명력 +500> <특수 옵션 : '디바인 카피'의 권능을 사용할수 있습니다.'디바인 카피'는 같은 종파의 신성 마법을 복제할수 있습니다. 단,마법이 적용되는 대상을 직접 선택하지못하며 같은 마법이라도 능력치는 본래 스킬의 최대치의 70%만큼만 해당됩니다.또한 복제 대상자가 사망하거나,10미터 범위를 벗어나면 복제되었던 모든마법이 해제됩니다. 마나 소비 : 300>] 레어 아이템! 뭐,레어 아이템치고는 능력치가 허접스럽지만, 중요한건그게 아니다. '디바인 카피?' 다른 사람의 마법을 복제할수 있는 특수 옵션! 그 옵션을 확인한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풀렸다. 분명 숨겨진 직업이라고 해서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나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시스템상, 직업의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한은 있으리라. 그렇다면 같은 숨겨진 직업을 가진 이가 18명이나 있다는건 말이되지않는다. 더구나 밸런스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말하는 홀리나이트라면 말할것도없다. '그 해답이 바로 이 건틀렛이다!' 아크는 고개를돌려 기사들을노려봤다. 아니나다를까,기사들은 뱀이 토한 아이템과 같은 건틀렛을 끼고 있었다. 그제야 조금전의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었다. 기사들은 먼저 마법을 사용하지않았다. 아란이 먼저 마법을 사용한뒤에야 뒤따라서 마법을 상용했다. '디바인카피'를 위한 행동이었으리라.또한 아란이 아직 마나에 여유가 있음에도 또다른 마법을 사용하지않는것은,마나부족으로 오라가 해제되면 기사들의 '디바인 카피'효과도 끝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같은 레어 아이템을 신성기사 17명이 모두 가지고 있다니..........' 그 자체가 이미 사기다. 그러나 약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며 그 의문도 쉽게 풀린다. 전직하기 가장 어렵다는 신성기사.게다가 건틀렛으로 '디바인 카피'를 사용하려면 아란과 같은 종파에속한 신성기사라야 한다. 아란을 홀리 나이트로 인정한 종파는 균형의 신,아셔스.............17개나 되는 레어 아이템과 아셔스 교단의 신성기사.이게 그렇게 쉽게 갖춰질수 잇는 조건일리가 없다. '다시 말해.......저 기사들은 NPC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마 성밖에서 2차 격돌을 할때 기마부대가 움직이지않은것은 그 때문이다.유저와 달리 NPC는 한번 전툴르 치르면 그 만큼 휴식을취해야 하는것이다. '결국 기사들은 대성당에서 파견한 NPC,설마 아란이 대성당과 그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을줄이야' 아크는 울컥한 기분이 들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불평한일은 아니다.아크 역시다크 워커로 전직해 말도안되는 NPC.....너구리족이나 묘족의 도움을 받고 있었으니까.어쩌면 그런 배경 세력이야말로 숨겨진 직업의 가장 큰 이점일지도 모른다. '자,그럼 이제 생각을정리해보자.일단 놈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건 알아냈는데....알아 낸것만으로는 저 방벽을 뚫을 방법이 없어.'디바인 카피'를 무너트릴수 있는 방법은 하나,복제대상자인 아란을 처리하는 것뿐이다.하지만..........' 기사들을 피해 아란과 1대 1로 싸울방법이 없다. 어찌어찌 기사를 피해 들어간다고 해도 집중 공격을 받으면 1분도 버티지못하리라.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의 눈동자에 넓은 창문이 들어왔다. 아란이 참전관의 모래시계를 바라보던 그 창문이었다. '좋아, 모험을 해보는 수밖에 없어.어차피 이제 시간이 별로없다. 여기서 아란을 해치우면 공성전은 헤르메스 연합의 승리.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내가죽는건 문제가 안돼!' 아크는 각오를 굳히고 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뱀,수고했다.만약 공성전에서 이긴다면 네가1등 공신이다" 쌕쌕?쌕쌕쌕! 뱀은 행복한 얼굴로 끄덕였다. "데드릭,너는 적이 알아채지 못하게 천장에 달라붙어있어.그곳에서 적병의 모든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알리도록.정신 바짝 차려.만약 하나라도 놓치면......" "알앗다.협박 안해도 한다고!" 데드릭이 슬금슬금 그늘진 곳으로 이동해 샹들리에 뒤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낸 아크는 검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라이덴,우측을 집중 공격해줘.다크에덴은 좌측을 집중 사격을 한다!" "뭐?이럴때 뭐라는거야?" 라이덴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다크에덴이 좌측으로 사격을 집중하자 어쩔수없이 우측으로 병력을 집중시켰다.기사들이 방패를 들고 좌우로 움직이자 중심에 약간의 틈이 벌어졋다. 다른 사람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내지못할 작은 틈,그러나 아크는 다르다! "다크 댄싱!" 아크는 유령처럼 기사들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다크 댄싱은 아무리 작은 틈이라도 교묘한 보법으로파고들어갈수 잇었다 그러나 그정도 수준의 보법을 펼치려면 바닥에 나타나는 발자국에 집중해야 했다 .때문에 상대의 움직임을 볼수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러나............ "기사가 검을 휘두른다. 앞의 기사다 달려오고,왼쪽 기사는 방패로 후려치려고 한다!" 아크는 데드릭의 목소리로 적의 움직임을 상상하며움직였다. 덕분에 보법에 집중하면서 돌진을 막으려는기사들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갈수 있었다. 아크가 접근하자 아란이 기사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아크는 아란의 위치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그러나 샹들리에 위에서 지켜보는 데드릭의 눈까지 피할수는 없었다. "아란의 위치는?" "주인의 오른쪽 뒤,5시방향!" "여기인가? 다크블레이드!" 아크는 팽이처럼몸을 회전시키며 다크블레이드를 뿜어냈다. 다크 댄싱과 다크블레이드의 연쇄 스킬'암격'!방어력을 무시하는 치명타 공격! 각종 버프로 올려놓은 방어력도 다크블레이드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크는 휘청거리는아란을다크댄싱으로 추적하며 연속적으로 '암격'을 쑤셔넣었다. 그러나 잠시 당혹해하던 아란의 얼굴에 금세 여유가 넘쳐흘렀다. "훗, 네 필살기가 고작 그정도냐?" 전사의 기력으로 뻥튀기된 생명력에 비하면'암격'의 데미지는 새발의 피였던 것이다. '쳇, 역시 이걸로는 무리인가?' "흥,멍청한 녀석,무덤속으로 기어들어왔군.홀리라이트!" 아란이 방패로 아크를 밀어내며 신성주문을 외웠다.순간 아란의 머리위에서 작은 빛의 공이 떠오르며 주위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홀리 라이트'에 의해 어둠 속성보너스가 해제되었습니다. '뭐? 어둠 속성 보너스가.......!' 아크의 얼굴이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게임시간으로 새벽 6시에 시작한 공성전,거기에 정확히 사흘이 도어가고 있으니 현재 게임 시간은 새벽 5시였다. 뿌옇게 여명이 밝아오고 잇었지만 아직 어둠이 지배하는 다크워커의 시간!아크가 적진 한가운데서,그나마 아란과 대등하게 싸울수 있는것은 어둠속성보너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사라진다면........ "역시 짐작이 맞았군.어쩐지 레벨에 비해 공격력이 세다 싶더니........" 아란이 싸늘한 비웃음을던지며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과 달리 한방에 생명력이 뚝뚝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어둠 속성 보너스로 올라가있던 방어력과 체력이 떨어졌으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홀리나이트의 공격은 어둠속성에게 추가데미지가 적용되었다. '젠장, 일전에 샴바라가 홀리나이트와 상성이 안좋다는게 이런 뜻이었구나!' 아크는 아란의 방패에 맞아 뒤로 밀려났다. 뒤이어 사방에서 기사들과 유저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수십개의 검과 철퇴가 약화된 아크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불과 몇 초사이에 생명력이 단숨에 바닥까지 내려가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이,이런!아크를 엄호하라!" 라이덴과 전사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리 도움이 되지않았다 .아란은 기사들을 동원해 라이덴을 막고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생명력이 바닥난 아크 정돈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수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후후후,멍청한 놈!" '지금이다!' 아크의 눈에서 섬광이 터진것은 그때였다. 아크는 무모한 돌진을 한것이 아니다.단한번의 기회를 잡기위해 모험을 한것이다. 바로 1대1상황에서 아란이 창문을 등지는 지금 이순간을 위해서! "빌어먹을,어디 끝까지 해보자!" 아크가 와락 아란에게 달려들었다. 아란이 움찔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아크는 공격으 흘리며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허리를 꽉 들어쥐었다. 경찰청 체육관에서 살기위해 익힌 레슬링의 태클 동작!아크는 허리힘을 이용해 아란을 들어올리고 창문을 향해 내달렸다. 그제야 아크의 계획을 알아챈 아란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뭐? 무,무슨 짓을.....같이 죽을 셈이냐?" "까불지마.죽는건,너뿐이다!" 아란은 창틀을 붙잡고 버티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레리어트 님,뭐 하는겁니까? 놈은 빈사상태입니다.마법을.......!" 아크는 움찔하며 고개를돌렸다. 그러고 보니 레리어트가 아란의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아크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주문을 외우던 레이어트가 움찔했고,의도적인지 실수인지 막 완성되던 주문이 해제되어버렸다. 그 순간, 아크는 구원받는 느낌이 들었다. '레리어트 님........!' "이런 빌어먹을.........게이볼트 경!" 아란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기사 하나가 몸을돌리며 양손을 휘둘렀다.백스텝으로 직격하면 아크의 생명력을 바닥낼만한 파괴력을 가진 양손철퇴!그러나 멍하니 레리어트를 바라보던 아크는 돌연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쳤다. "하하하,이제 내게는 무서운게 없다!소환 해제,재소환 데이모스!" 딱딱딱딱딱! 데이모스가 요란하게 이를 마주치며 방패로 양손 철퇴를 막아냈다. 순간 데이모스가 뒤로 튕겨나며 아크의 등에 부딪쳤고,그 충격으로 아란의 손이 창틀에서 미끄러졋다. 순간 아크와 아란, 데이모스는 한덩이가 되어 창밖으로 떨어졌다. "헉.............!" 영광의 홀은 영주성 최상층. 바닥까지는 높이가무려 30미터 가까이 된다. 갑자기 그런곳으로 내던져 지자 아란은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강철 갑옷을 입은 전사에게 낙하 데미지는 공포 그자체.그러나 아크는 이런상황을 수도없이겪어 보았다. "소환 해제,데이모스!뱀,검을!" 아크는 데이모스를 돌려보내고 검 한자루를 받아들었다. 자, 이제 결말을 내야할때다! "블레이드 스톰!" 아란의 코앞에서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폭풍을일으켰다.검의파편에 휘말린 아란은 마치 빨대로 빨아들이듯 생명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아니었다. 채 블레이드 스톰의 효과가 사라지기도 전에 육중한 울림과 함께 아란은 거꾸로 돌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낙하 데미지에 방어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거기에 블레이드 스톰의 폭풍같은 공격을 받으며 가속도가 더해졌다. 그래도 전사의 기력 오라덕분에 바퀴벌레와 같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 아란이라,즉사는 피했지만 생명력이 5%도 남지않은 상태였다. 반면 아크는 낙하 데미지를 80%가지 줄이는 능력이 있다. 거기에 아란을 발밑에 깔고 브레이드 스톰의 반탄력까지 이용해 낙법을 펼친결과 ,데미지는 고작 150에 불과했다. "너,너 이 자식..........!' 아란이 떠듬거리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강철 갑옷을 입은채로 낙하 데미지를 받아 스턴에 걸린 상태.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게 아란이 할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아크는 천천히 몸을일으켜 아란에게 다가갔다. "아란,잘난 척을 하고 싶었다면 좀더 만만한 상대를 골랐어야 했어" "아크,절대........가만 놔두지 않겠다........." "그러면 나도 2배,3배로 갚아주지.안델처럼" "분명히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될............커헉!" 콰직! 고함을 내지르는 아란의 목덜미에 검날이 쑤셔박혔다.울컥하며 피가 뿜어져 나온다. 경련을 일으키고 노려보던 아란을 결국 뜨거운 숨을불어내며 눈을 감앗다. 길었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것이다. 길엇던 복수의 여정이었지만, 막상 그 끝은 기대했던 것만큼의 감흥은 없었다.잠시 아란을 바라보던 아크는 맥이 탁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아직 공성전은 끝난게 아니다. 아크는 일단 음식으로 생명력을 회복한 뒤에 영광의 홀로 달려 올라왔다. 역시 예상대로 아란이사라지자 기사들의'디바인 카피'가 모두 해제되었다. 게다가 '디바인 카피'는 사기적인 옵션만큼이나 마나소비가 300이나 되었다. 그걸 연거푸 네번이나 써댔으니 기사들의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상황. 마나가 없는 신성기사는 질 떨어지는 전사나 다름없다. 기회를 잡은 라이덴은 곧바로 전력 공세를 펼쳤고,기사들과 여명의 칼날 잔당은 속수무책으로 몰리다가 한나둘 쓰러져갔다. '레리어트님도........' 아크는 씁쓸한 눈길로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았다.그러나 그건 헤르메스 연합의 승리를 위해서는 피할수 없는 죽음이었다. 그녀가 끝까지 아란을 도왔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마지막순간,잠시라도 주저 했다는 사실이 아크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상황이 안정되면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 "젠장......두고 보자!"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는사이,마지막 여명의 칼날 연합원이 쓰러졌다. 이제 더이상 라이덴이 지배의 왕좌에 앉는것을 방해할 사람은 없는것이다! "드디어.......!' 라이덴은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왕좌를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이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아란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 여명의 칼날 연합에 소속된 길드장 가운데 살아있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왕좌에 안장 20분만 버티면 시르바나는 라이덴의 영지가 되는것이다. 라이덴은 천천히 왕좌로 다가가 앉으려다가 문가에 서있는 아크를 발견했다. "살아있었나?" 라이덴의 입술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건 그때였다. "잘됐군.그렇지 않아도 여기에 앉기 전에 할일이 있었지" -라이덴 님이 '간계'스킬을 사용했습니다. 간계로 헤르메스 길드와의 동맹이 일방적으로 파기됐습니다! "뭐?" 라이덴이 히죽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그럼 약속은.........!" "이해를못하겠나? 동맹은 끝났다" 아크는 그제야 뭐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있음을 깨달았다.그렇다,수익금 분배를 순순히 양보할때 느껴지던 위화감!그 뒤로도 비슷한 느낌을 몇번인가 받았다. 중급 회복 포션이나 투석기 수리비,개조 비용......아무리 전시 상황이지만,너무 순순히계약서를 남발한다 싶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부터 라이덴은 한푼도내줄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수익금 분배도,아크가 가지고 있는 2장의지불 계약서도,모두 전제조건이 걸려있었다. 동맹 상태에서 라이덴이 시르바나의 영주가 된 뒤부터 효력이 발동한다는. 즉,영주가 되기전에 동맹이 해제되면 계약서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그러나 아크는 양자의 합의하에만 파기할수 있다는 동맹 협정서를 믿었다. 설마 동맹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할수 있는 스킬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도 뉴 월드라는곳을 몰랐다. 이곳은 분명 현실과 다름없지만,게임 속세상. 규칙을 무시할수있는방법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아니,어떤 의미에서는 시스템의 유일한 적은 스킬이다! "으드득.......결국 이렇게 나오는건가?" "네 욕심이 지나쳤다. 이번 승리에 네 역활이 컸다는건 인정한다. 어느정도 였다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하지않았을거다. 하지만 30%........곤란하지.우리에게도 사정이 있어서 너희에게 30%나 되는 수익금을 나눠줄수는없거든" 라이덴의 말에 주변에 늘어선 길드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풍월 길드장인 바론 역시 슬슬 눈길을 피했다.아크를 제외한 나머지 길드장들도 모두 합의한 결과라는 뜻이다. "자, 놈들을 쓸어버려라!" 라이덴이 지배의 왕좌에 앉으며 명령했다. 간산히 호랑이를 죽이고 왔더니 늑대가 아가릴 벌리고 달려드는 상황! 남아있던 헤르메스 연합 유저들이 돌변해서 아크와 다크에덴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헤르메스 연합 유저는 100명 가까이 생존해 있었다. 반면 다크에덴은 아크를 합해도 고작 45명 남짓 .게다가 그중 반 이상이 포병이다. 싸워서 이길수있는 상황이 아닌것이다. '일단 NPC라도 살려야한다!' "라이덴!어찌 기사의 칭호를 가진자가 이런 더러운짓을........!' 크로스가 도저히 참을수 없다는듯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아크는 크로스의 뒷덜미를잡고 밖으로 내달렸다. "다크에덴, 일단 퇴각한다!" 아크는 다크에덴을 데리고 영광의 홀을 빠져나왔다. 이대로 앞으로 20분만 버티면 왕좌를 차지한 헤르메스 길드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성밖으로 추방당한다. 분하지만, 그래도 NPC는 살릴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일단 아크를 적으로 돌린 라이덴은 그전에 몰살 시키고 싶은 모양이다.라이덴의 명령에 100명이 아크 일행을 쫓았다. 그렇게 막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내려가려 할때,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수십명의 헤르메스 연합의 유저와 맞닥뜨렸다. "젠장,이렇게 되면 저더러운 놈들을 한놈이라도...!" "크로스 경,제발 상황 파악좀 해요!" 아크는 또다시 발끈하는 크로스를 잡아끌고 옆방으로뛰어들어갔다.조금 전의 싸움으로 여기저기 무너져 내린방! '됐어.여기람녀 20분은 버틸수 있다!' "놈들이 몰려들기 전에 잔해를 쌓아 방벽을 만들어라!" "뭐? 하지만 그런걸로는 몇분도 버티지못해!" "설명할 시간이없어!내말대로 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다크에덴 맴버들은 허겁지겁 잔해를 긁어모아 방벽을 만들었다. 철퇴로 두세번 내려치면 당장 무너져 내릴듯한 허술한 방벽.그러나 아크는 그 방벽을 성벽보다 단단하게 만들 마법의 아이템이 있었다. 가방에서 꺼대든 커다란튜브! 바로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다는 영체 접착제! '마지막 한번.......아깝지만,여기서 모든 NPC를 허망하게 잃을수는없다!' 아크는 영체접착제로 방벽을 도배해버렸다. -우어어어,밖이다! -다 붙여버리겠다! 영체들이 지껄이는 소리는 여전히 거슬리지만,효과하나는 끝내준다.헤르메스 연합이 철퇴로 후려쳐도 일단 붙어버린 방볍은 끄떡도 하지않았다. '이제 안심할수있다.하지만.........' 일단 안전이 확보되자 참을수없는 분노가 밀려들었다. '정말 여기까지 와서 이대로 배신당한채 끝내야하는건가?일단 아란을 영주자리에서 끌어내렸으니 시드의 혐의를 풀 방법은 있겠지만.........' "헉헉헉,주인!이게 다 무슨일이냐?" 뒤늦게 영광의 홀을 빠져나온 데드릭이 창문으로 날아들어왔다.그순간,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위기의 상황을 기회로 바꿀수있는방법! 아크는 벌떡 몸을 일으켜 창가에 달라붙었다. '좋아,해볼만하다.설사 실패해도 이대로 죽는 것보단나아!' 상체를 내밀고 창밖의 구조를 한번훑어본 아크는 데드릭에게 소리쳤다. "데드릭,시간이없다.빨리 내피를빨아" "에에?뭐,뭐라고?주인,제정신이냐?배싱당해서 살짝 머리가 맛이간거냐? "떠들시간없어.닥치고 빨리빨아!' "하라고 해서 하는거다?정말 나중에 딴말안하기야?" "한마디만 더 지껄여라,튀김을 만들어 벌일테다!' "아,알았다.그럼......잘먹겠습니다....." 아크의 협박에 데드릭이 기겁하며 살포시 송곳니를 박아넣었다.뭔가가 쭉 빨려나가는 느낌.........그러나 아직 멀었다. "아니,그게아니야.다시빨아!' 그렇게 수십번......데드릭도 점점 피맛을 들였는지 신나게 피를 빨아대기 시작했다.문밖에서 수십명의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벽에 육중한 타격음이 전해졌다.그때마다 방벽은 당장이라도 부서질듯 휘청거렸다.그러던 어느 순간,아크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됐다!' "으하하하,맛있다.주인의피가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됐어,그만빨아,인마!" 아크는 달려드는 데드릭을 후려치고 벌떡 일어났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젠장,빈혈 인가보다.그러나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창가로 달려갔다. "이제 10분정도 남았어요.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텨보세요!" "뭐?너는 어쩌려고......엇?아크야!" 어리둥절한 눈길로 바라보던 짝퉁이 비명을 터트렸다.아크가 갑자기 창문밖으로 뛰어나간 것이다. 당연히 투신자살을 하려는건 아니었다.아크는 중간중간 튀어나온 난간을 잡으며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발밑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심지어 빈혈 증세까지있다.그러나 아크는 신성한 토양을 지키던 거상의 몸을 기어올라갔던 전력이있다. 차분히몸을 움직여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그곳은 바로 아란을 안고 뛰어내렸던 영광의홀 창문!아크는'은신'을 사용해 영광의 홀로 들어섰다. "드디어 시르바나가 내손에 들어왔군" "축하드립니다" "다크에덴이 떨어져 나갔으니 수익금배분은 약속대로" "물론이지" 라이덴은 이미 승리에 취해 완전히 경계를 풀고 있었다. 하긴 아크가'은신'을 사용해 다시 영광의홀에 잠입할줄은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이번 계획의 최대장애물은 유일한 마법사,쥬르다.일단 쥬르를 처리해야한다!' 아크는 검을 한자루 뽑아들고 쥬르에게 다가갔다. "블레이드 스톰!" "크아아악,뭐,뭐야?" '은신'으로 백스탭 효과까지 적용된 스톰!엄청난 데미지가 적용되어 쥬르의생명력이 단숨에 50%나 빠져나갔다.그나마 레어 방어구로 도배한 쥬르였으니 그정도지,보통 마법사라면 80%이상 줄었으리라.생각지도 못했던 기습에 쥬르가 휘청거렸다.동시에'은신'이풀리자 사방에서 전사들이 몰려들었다. "엇?이,이자식......!" "다시 돌아온건가?죽으려고 환장했군!" '다른놈은 상대할 필요도없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생명력이 뭉텅뭉텅빠져나갔다.아크는 다크댄싱으로 전사들의 공격을 피하며 온힘을 다해 소리쳤다. "더러운 새끼들,너희 같은놈들은 삐-해서 삐-한 놈들보다도 못해!" -'협박'이 크리티컬로 발동했습니다! 정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욕설! 게다가 이곳에 몰려있는 유저들은 모두 24시간동안 전투를 벌여 극도로 지쳐있었다. 그러다가 승리를 확신하고 마음이풀어진 상태에서'협박'을받자 크리티컬이 터져나왔다 '협박'같은 스킬은 상대의 컨디션에도 그만큼 영향을끼치는것이다.100여명의 전사들이 일시에 얼어붙었다. "쥬르,너만큼은 죽인다!" 아크는 곧바로 다시한번 블레이드 스톰을 날렸다. 쥬르의 생명력이 다시 30%가량 빠졌다.쥬르가 이를갈아붙이며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바로 그게 아크가 노리던 순간이다.상대가 먼저 공격을 해야 발동하는 화격!아크의 반격에 쥬르는 주문을 실패하며 홀밖으로 튕겨나갔다. "크윽,이,이자식......!"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던 쥬르가 몸을 일으켰다.하필이면........아니,정확히 말하자면 아크가 노린것이지만......쥬르가 일어난 곳은 바로 다크에덴 맴버가 숨어있는 방앞이었다.이미아크에게 언질을 받은 다크에덴맴버는 돌무더기틈으로 대포를 겨누고 일제히 불꽃을 뿜어냈다.수십발의탄환!쥬르는 하얗게 피어오르는 탄연에 휩싸여 쓰러졌다. '됐다!' 쥬르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아크가 빙글 몸을 돌렸다.그러나 라이덴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보통이 넘는군.하지만 쥬르를 죽여서 어쩌겟다는거냐?설마 남은 10분동안 이100명을 같은 방법으로 죽일수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글쎼?" 아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가지는확실하지" "..........?" "날 적으로 만든사람은 모두 후회했다는것!" "건방진,죽여버려!" 라이덴이 버럭 소리치자 100명의 유저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몰려들었다. "바다정령의 가호!" 아드리안의 목걸이에서 빛이뿜어져 나오며 바다정령이 나타났다.뭔가 엄청난 소환수를 불러내는건가?헤르메스 연합원들이 움찔하며 긴장했다.그러나 바다의정령은 얌전히 방어력을 40%,마나를 500회복시켜 주고는 사라졌다. "뭐야?방어력을 올려서 어쩌겠다고?" "정말 우리와 싸워보겠다는건가?" "그것도 나쁘지않지.다크댄싱!" 마나를 회복한 아크는 곧바로 다크댄싱을 펼쳤다.동시에 한줄기 바람이되어 100명의 전사를 스쳐지나갔다. 평소에는 다크댄싱을 사용하며 공격까지 생각하니 완성도가 떠어지는건 불가피했다.그러나 지금 아크는 이들과 싸울생각이 없었다.오직 공격을 피하며 라이덴에게 다가갈생각만으로 다크댄싱을 펼치자 완성도가 80%나되었다.완성도가 올라가자 다크댄싱은 몸이연기처럼 사라진듯한 환영을 만들어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공격이 밀리미터 간격으로 스쳐지나간다.그러나역시 100명의 공격은 장난이 아니었다.대부분의 공격에 회피가 뜨고 ,방어력을 40%나 올렸음에도 라이덴 앞에 이르렀을때는 70%의 생명력이 날아간뒤였다. "헛!" 아크가 유령처럼 눈앞에 나타나자 라이덴이 움찔하며 철퇴를 뽑아들었다.그러나 아크는 이미 공격동작에 들어간뒤였다. 뒤이어 라이덴의 관자놀이에 글믿같은 돌려차기가 작렬했다. 라이덴은 철퇴를 든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윽, 이 자식........끝까지............!" 아크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라이덴을 쏘아보았다. "열받아 죽는줄 알았지만, 어쨌든 고맙다" "뭐?" "네가 배신해 준 덕분에 다크에덴은 헤르메스 연합과는 별개의 공격대가 되었다" "그게 무슨........?" "생각보다 멍청하군 ,라이덴.아직도 모르겠나? 여섯번째 지휘권을 가졌던 나도 당당히 지배의 왕좌에 앉을 권리가 생겼다는 말이다.제3세력의 공격대장으로서" "무슨 말 같지않은 소리를........!" "헛소리인지 확인해 볼까?" 아크는 씨익 웃으며 지배의 왕좌에 앉았다. -다크에덴의 공격대장 아크님이 지배의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공성전이 끝날때까지 왕좌를 지키면 영주의 권한이 부여됩니다. 현재 남은 공성 시간 : 5분 라이덴은 이내 어이없는 실소를 머금었다. "멍청한놈, 앉는다고 다해결되는줄 알았냐? 아직 시간은 5분이나 남았다.하긴,보통 유저는 평생 앉아보지도 못하는곳에서 죽는것도 영광이겠지.죽여라!" 라이덴과 100명의 전사들이 몰려들었다.그러나 아크는 느긋한 태도로 다리를 꼬고 앉아 소리쳤다. "데드릭,흡혈 스킬발동!타깃 아크!" "오오오오!" 창문 밖에서 힐끔거리던 데드릭이 스킬을 발동시켰다.동시에 아크의 몸이 노란 점액질로 뒤덮여 버렸다. 바로 '슬라임의 시간'! 그렇다,아크가 데드릭에게 자신을 물게 했던 이유!아크는 얼마전'슬라임의 시간'을 사용해 아직 24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보통 방법이라면 다시 사용할수 없다.그러나 데드릭을 보는순간, 기발한 방법을 떠올린것이다.바로 흡혈한 상대의 스킬을 뽑아내는 데드릭의 흡혈 스킬.문제는 그 흡혈 스킬이 유저인 아크의 스킬도 뽑아낼수 있느냐,다행히 첫번째 물렸을때 데드릭은 그 해답을 알려주었다.곧바로 '채취'스킬을 뽑아낸것이다.희망을 얻은 아크는 몇번이나 흡혈을 반복했고,마침내 '슬라임의 시간'을 뽑아내는데 성공했다.아크가 집요하게 쥬르를 죽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무적 상태가 되는'슬라임의 시간'에도 약점은 있다..물리 공격은 완벽하게 차단하지만,마법공격에는 취약하다는것,그리고 영광의 홀에는 아직 마법사 쥬르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쥬르가 죽은이상,아크는 무적이다!'슬라임의 시간'이 발동하자 전사들의 검과 철퇴가모두 미끄러져나갔다. 전사들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이,이럴수가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푸딩?푸딩이냐?" "말도 안되는 스킬은 이게 아니라 간계지.안그래,라이덴? 그래,간계는 확실히 내가 모르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모르면 당할수밖에 없는게 뉴 월드지.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스킬을 너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반들반들,피부가 슬라임이 되어 버린 아크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이제 남은 시간은 4분여..............4분만 버티면 시르바나를 통째로 삼킬수 있다.다급해진 라이덴이 철퇴를 집어넣으며 소리쳤다. "놈이 이상한 스킬을 사용한다. 그냥 왕좌에서 끌어내려!" 전사들이 아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러나 아크는 왕좌를 꽉 끌어안고 버텼다.매일매일 몇번이나 바닥에 매다꽂히며 살기위해 익힌,붙잡고 늘어지기 기술!덕분에 팔과 손아귀 힘만큼은 레슬링 선수나 진배없었다.반면 몸은 슬라임화되어 반질반질,미끄덩미끄덩.....결국 전사들은 잡기를 포기하고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그러나 죽기를 작정하고 버티는 아크를 떼놓을수는 없었다. '버텨야 한다!앞으롤 3분!' 참으로 리얼한 게임이라 주먹질을 당하자 얼굴이 통통 붓고,코피가 질질 새 나왔다.그러나 아프다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아크는 오직 버텨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이를 악물었다.그리고 어깨가 빠져 버릴듯한 고통의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창 너머에서 긴 뿔 나팔소리가 들리며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오른것이다. [공성전의 제한시간이 완료됐습니다. 지배의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다크에덴의 공격대장 아크님입니다.공성전 규칙에 따라 아크님은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영주의 특수 스킬'권위'를 사용해 성내에 남아있는 모든 적을 추방시킬수 있습니다. <시르바나의 영주 직위를 획득했습니다.명성+3000> <100명 이하,소수 정예로 영주 직위 획득 보너스 : 생존한 모든 공격대원에게 경험치+250,000>]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로 레벨이 단숨에 5나 올라갔다. "마.......맙소사!" 라이덴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아크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전사들의 주먹질에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진 얼굴이지만,입가에는 뿌듯한 승자의 미소가 걸려있었다. "영지는 잘 받도록 하지.그럼 이만 내 성에서 나가주시까? 추방!" 순간 강렬한 빛이 번쩍이더니 헤르메스 연합이 성밖으로 강제 이동되었다. 길었던 전투 끝에 지배의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아크였다! "흠........오늘 공성전이 열리는 영지가 어디였더라?" 호명환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정보창을 검색했다. 나가란의 영지가 12개나 되니 거의 매일 두곳의 영지에서 공성전이 벌어졌다. 공성전의 결과를 모니터하는것이 신입사원인 호명호나의 아침일과였다. 전체적인 시스템의 흐름을파악하려면 유력길드의 세력판도도 알아두어야 하기 떄문이다. "발타니아 영지는 영주가 바꼈군.하긴,보라매 길드는 성을 지키기에는 너무조직력이약했어.자금력도 없었고,한번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이득은 커녕 오히려 엄청난 손해만 봤겠군.보라매 길드는 당분간 재기하기 힘들겠어" 호명환은 혀를차며 중얼거렸다. 사실 호명환이 보기에 나가란의 영지는 빛좋은 개살구였다. 영지를 차지하면 당장 막대한 세금을 꿀꺽할수 있으리라는것은 유저들의 착각이다. 영악하기 짝이없는 뉴 월드의 NPC들-국왕과 전쟁의 신전 대주교-은 그런 상황에 대비해 이미 적절한 안정장치를 만들어 두었다. 조만간 그 실체가 밝혀지겠지만,만약 유저가 정말 이득을 챙기고 싶다면 적어도 한달은 영지를 지켜내야만 가능한 것이다. NPC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는 돼야 영주로 인정할만하다는 것이리라. "그러면서도 국왕들이받는 세금은 조금도 줄지않고......하!어떨때는 NPC가 유저보다 더 영악하단 말이야.하긴,그렇다고 해도 역시 영주가 되는건 게이머의 로망이지" 호명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 영지의 정보를 검색했다. "자,다음 영지는 시르바나였지? 뭐 ......보나마나 아란이.......어라?" 마우스를 움직이던 호명환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그리고 눈을 몇번이나 비비고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아란이 성을 뺏겼다고? 게다가 새로 영주가 된 유저가............!" 놀랍게도 정보창에 올라와 있는명단은 그가 너무나 잘아는 이름이었다. 근래 들어 그가 주목하고 있던 응시자,아크였다! "아크! 아크가 아란에게서 시르바나를 빼앗았다고?" 호명환은 얼른 전쟁의 신전에 등록된 공성전의 정보를 모두 열어보았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그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최초롤 아란이 도전을 받아들인건,하데스 길드인데.......공성전 직전에 하데스 길드가 아크의 공격대에 괴멸됐다고? 아니,거기까지는 좋아.대체 그 뒤에 나오는 데이터는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공성전에 참가한 것은 헤르메스 연합과 여명의 칼날 연합,합이 11개 길드였다. 그중 아크의 공격대는 헤르메스의 말석,여섯번쨰 지휘권을 가지고 참전했다. 사실 말이 좋아 지휘권이 있을뿐이지. 그쯤 되면 천지가 개벽하지않는 이상 영주가 될 가망은 없었다. 그런데 공성전의 결과는 아크가 영주가 됐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당시 헤르메스 연합과 여명의 칼날에 소속된 길드장들이 8명이나 살아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호명환의 머리로는 아무리 상황을 짜 맞춰도 그런 결과가 나올수 없었다.대체 그곳에서 무슨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그러나 전쟁의 신전에 올라온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혹시 공성전 관련 동영상이 있는지 찾아봤지만,그조차 구할수 없었다. 이미 TV를 통해 알려진 대로 공성전 동영상은 영주가 허락해야만 찍을수 있다. 반면 아란은 그동안 공성전 내용을 철저히 비밀로 해왔던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유저가 드이어 일을 벌였다. 호명환은 곧바로 자료를 정리해 기획팀장 하명우를 찾아갔다. 그 정도 성과라면 당연히 탈락 대상에서 제외시켜 줄거라고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하명우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크?처음 듣는 아이디로군" "네,일전에 탈락 대상으로 찍혔던 응시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라니요?탈락 대상이었던 응시자가 최상위 그룹에 속해 있던 아란을 밀어내고.......아니,선구자가 대거 포함된 헤르메스 길드까지 제치고 영지를 차지했습니다.이 정도 결과라면 다시 한번 아크라는 응시자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데이터를 보고도 모르겠나?" 하명우는 자료를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아크라는 응시자가 조직한 공격대는 고작 83명이었네.그 숫자로 정말 아란과 헤르메스 길드를 제치고 제 힘으로 영주가 됐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네? 하지만 결과가.........." "내 생각에 그럴수 있는 방법은 딱 두가지야.어쩌다가 운이 좋아서 영지를 손에 넣었거나,혹은 헤르메스 길드장이 뭔가 다른 목적 때문에 임시로 아크를 영주자리에 앉혔거나.어느쪽이든 아크의 실력과는 무관한 일이지.내가 관심을 갖는건 그렇게 운이좋은 응시자가 아니야.제대로 실력을 쌓은 응시자지" "그럼.........?" "하지만 한번쯤 봐둘필요는 있겠군.이번달 리포트가 언제 들어오지?" "아직 한 일주일 정도 남았습니다" "좋아,딱 다음 공성전이 시작될 때군.내가 자료실에 연락해 놓을 테니 이번에 아크라는 응시자가 리포트를 보내오면 한번 훑어봐.만약 이번 공성전에서 성르 지켜 낸다면 그땐 진지하게 눈여겨볼 필요가 있겠지.하지만 맥없이 성을 빼앗긴다면 평가는 달라지지않아.아크는 여전히 탈락대상자지.이해했나?" "네, 알겠습니다" 호명환은 실망한 얼굴로 물러났다. 사실 그 역시 아크가 진짜 실력으로 영주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러나 하명우처럼 무조건 운이 좋아서 영주가 됐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크.......일전에 악실리온 일도 그렇고,역시 그에게는 뭔가가 있어.그렇게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뉴 월드를 하는 유저는 그리 많지 않을거야.대체 83명밖에 되지않는 공격대로 이번 공성전에서 어떻게 영주가 됐을까? 앞으로 어떻게 시르바나를 지킬 생각일까?' 아크의 리포트가 들어온것은 3주 전........때문에 호명환은 아크가 NPC로 구성된 공격대를 지휘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러니 도저히 어떤 형태의 공성전이 벌어졌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또한 어떻게 시르바나를 지킬것인지도. 그 모든 해답은 다음에 들어올 리포트에 적혀 있으리라. '아크가 정말 영지를 지킬수 있을까? 다음 제출 기한은 일주일 뒤..........미치겠군' 호명환은 답답한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렇게 다음 내용이 궁금하기는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지금이라도 안내 데스크의 강미수.......그러니가 레리어트를 찾아가면 적어도 공성전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정도는 들을수 있으리라.그러나 호명환은 고개를 저었다. '어중간한 내용은 필요없어.그래,기다리는것도 나름의 즐거움이지' 기왕이면 아크의 시각에서 제대로 정리된 내용을 읽고 싶다. 그게 '아크의 숨은 팬'을 자처하는 호명환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ACT 3 시르바나 성의 비밀 "하..........." 아크는 괴로운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냈다. 베라미라는 NPC때문이다. 공성전이 끝나고 간만에 숙면을 취하고 접속하자 시르바나 성의 집무실이었다. 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화로운 집무실! 아크는 그제야 영지를 차지했다는 실감이 들었다.폭신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자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뒤이어 영주가되었다는 뿌듯한 감격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참 달콤한 기분에 젖어있는데,노크와 함께 한 중년 NPC가 들어섰다. "영주의 직속 보좌관인 베라미입니다" 베라미는 영지 관리,법률 자문,자금 운영,기타 등등의 기능을 탑재한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군사,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차관 정도 되는 녀석이었다. 하루아침에 벼락출세한 유저가 영지 관리에 필요한 지식을 모두갖추고 있을리가 없다. 때문에 영지 관리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NPC가 덤으로 따라붙는 것이다.아크는 처음부터 베라미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런 예감은 빗나간적이 없다. "집무실이 마음에 드십니까?" "음,나쁘지 않군" 아크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대답했다.베라미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공성전을 워낙 화려하게 치러놔서 다른곳은 엉망이거든요.사실 멀쩡한 곳은 여기뿐이죠.뭐,그건 그렇다 치고......먼저 삼국 국왕폐하께서 정하신 법에 따라 아크님은 전임 영주님의 작위와 모든 권한을 양도받게 됐습니다.축하드립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말투가 딱 관료주의에 물든 공무원이다. 거기에 살짝 비꼬는 센스까지........정말 공무원이 갖춰야 할것은 모두 갖춘 NPC다.그러나 황홀한 꿈속을 거닐던 아크를 악몽으로 끌어낸것은 그 뒤의 설명이었다. "설명드려야 할건 많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건 자금운용에 관한 문에입니다" "그렇지!" 아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아크 역시 가장 궁금한건 그 부분이었다. 정말 죽을 고생을 해서 차지한 영지.과연 얼마나 이득을 얻어낼수 있을까? 베라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단 현재 시르바나영지에서 벌어들일수 있는 수입은 영지민들의 세금과 각종 소비세,또한 영지에서 운영하는 사업과 통관비 등등........매달 150,000골드입니다" '150,000골드!' 천문학적인 금액에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현실 가치로 따져도 무려 15억!아크는 평생 구경도......아니,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돈이었다. 물론 개인이 아닌 한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한달 수입치고는 그리 큰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세 시대의 경제 개념이 적용되는 뉴 월드라 적다고도 할수 없다. '어쨌든 내가 영주이니 150,000골드를 마음대로 쓸수 있다는건가?' 상상만으로도 심박수가 급상승하고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의 기분이 이런걸까? 그러나......아크가 행복에 젖어있을수 있는것은 여기까지였다. "이제 지출해야 할 금액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역시 삼국의 국왕 폐하께 바쳐야 하는 세금입니다. 매달 영지 수입에서 각각 10%씩,총 30%로 45,000골드입니다" 단숨에 45,000골드가 날아갔다. 마치 사기 당한것 같은 허탈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괘,괜찮아.아직 105,000골드가.........' 그러나 베라미는 잔인하게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 나머지 105,000골드가 영지 운용을 위한 자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그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현재 가장 시급한 건 이번 공성전으로 인해 파괴된 수호탑과 성벽을 보수하는 일입니다. 이건 영주님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그렇다곤 해도.......하아,정말 깔끔하게도 부숴 주셨더군요.대충 견적을 뽑아보니 47,000골드가 들어가겠더군요" 베라미는 짜증난다는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짜증 정도가 아니라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부술떄 죽어라 고생했는데,그걸 고치는데도 따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니! "거기에 한달간 영지의 고용인.즉,성내의 하인들과 경비병들의 고용비가 17,000골드.전쟁의 신전에 기부금이 4,000골드.영지에서 운영하는 각종 기간 시설의 유지비가 대략 10,000골드.그리고 영지 발전 기금이..........." "그,그만!" 아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대체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간다는 거야?" 베라미는 한심하다는눈빛으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럼 영지가 거저 관리되는줄 아셨습니까? 제가 말씀드린 항목은 대략적인 겁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몇날 며칠을 떠들어도 다 설명이 안될정도죠.하지만 영주님은 거기까지는 신경쓰지않으셔도 됩니다. 비록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지만그런것들은 제가 처리 해드릴테니까요" "그럼 내가 쓸수 있는 돈은?" "모르셨습니까?" 베라미가 의외라는듯이 되물었다. "삼국 국왕 폐하께서 발표한 특별법에 의해서 나가란의 영주님들의 권한은 아직 매우 한정적입니다.영지 수익금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순 있지만, 그건 영지 관련 사업에 해달될 때뿐입니다. 영주님이 사적으로 이용하실수 있는,말하자면 수입은 전체 수입의2%,현재 시르바나의 한달 수입이 150,000골드이니 3,000골드입니다" 결국 나가란의 영주는 월급 사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3,000골드라면 확실히 그것만도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공성전을 치를때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생각하면 역시 국왕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밖에 생각할수 없다.게다가 150,000골드를 왈가왈부하다가 3,000골드라니? 그 허탈감이란.........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재 시르바나 영지는 적자상태입니다. 전임 영주이신 아란경이 여기저기 공사를 많이 벌여놓은 탓이죠.때문에 전임 영주님은 오히려 사재를 털어 영지에 투자하고 계셨습니다.뭐,그런 경우에는 부대시설이 완공되면 영지의 수익률이 올라가고,결과적으로 영주님의 수입도 많아지겠죠" 아크는 베라미의 설명을 들으면 영지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단순하게 성만 차지하면 단단히 한몫 챙길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단한 착각이었다.뉴 월드의 시스템과 NPC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크가 탐내던 영지의 공금은 모두 법률로 묶여있다. 즉,대부분의 공금을 영지 발전에 투자할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이건 영주에게도 이득이다. 현재 시르바나는 D급 영지. 영지를 발전시켜 C급이 되면 수익금은 2배로 늘어난다. 수익금에 비례해 영주의 수입도 2배로 늘어나니 6,000골드.......그렇게 만약 A급까지 발전시킨다면 매달 12,000골드의 수입이 보장되는것이다. 현실 시간으로 10일이 게임에서 한달이니 매달 36,000골드다!터무니없는 수입! 그러나 그때까지 몇년이 걸릴지,혹은 영지를 지킬수 있는지는 장담할수없다. '현실적으로 영지 등급을 하나라도 올리려면 게임시간으로 적어도 1~2년은 걸리겠지.현실시간으로도 반년이다. 그동안 영지를지켜내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없어.게다가 그동안 공성전을 치르며 들어갈 돈을 생각하면...........' 영주의 월급인 3,000골드로는 턱도 업다. 아크는 그제야 아란의 심정을 이해했다.아무리 돈이 썩어나는 아란이라도 3,000골드의 월급을 받으며 매번 공성전을 치를수는 없다. 때문에 유령 길드를 만들어 공성전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대한 줄였던 것이리라.그리고 성벽이나 수호탑도 파괴되지않으니 그돈을 모두 부대시설 비용으로 돌려 영지 발전을 서둘렀던 것이다. 아크는 새삼 전쟁의 무익함을 절감했다. '어쨌든 나로서는 무리다' 각종 포션과 수리비,식대,용병 고용 비용............ 전쟁 한번치르는데 수천 골드가 들어간다.뭐,아크는 헤르메스 길드에 빌붙어 최대한 자금을 아꼈지만,그래돋 대포 제작 비용,식대 따위로 600골드가 나갔다. 고작 83명을 운용하며 말이다. 그런데 영주가 되어 더 많은 병력으로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그 몇배의 돈이 들건 불보듯 뻔한일.아란이 지금까지 성을 차지하고 있었지만,금전적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어차피 성에 큰 욕심은 없었으니 그냥 3,000골드만 챙기고 물러나면 되지'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때 아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에서 삼국 국왕들의 교활함이 드러났다. 영주의 월급은 선불이 아니라,후불이었던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영주가 된뒤 한 달이 지나야 첫월급이 나온다는 말이다. 한달이면 현실의 열흘. 즉,적어도 일주일 뒤에 열리는 공성전에서 한번은 승리해야 월급을받을수 있다는것!만약 그 전에 영주가 바뀌면 전임 영주가 받아야 할 주인 없는 월급은 자동적으로 국왕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정말 기가 막힌 법률이었다. '이건 뭐 국왕이 아니라 협잡꾼 아니야?' 아크는 눈앞이 깜깜했다. 당장 다음주에 공성전이 벌어지면 성을 지킬자신이 없다. 물론 영주가 됐으니 마음만 먹으면 동맹세력을 끌어들일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아크에게는 공성전을 치러낼 자금이 없다. 포션 하나도 제대로 사주지못하는 영주를 누가 돕겠는가?차라리 반대편에 붙어서 거지같은 영주를 무찌르는편이낫다. '있는대로 돈을 끌어 모아서 용병을 고용해도 만약 성을 빼앗기면.................' 돈만 꼬라박고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것이다. 세력도 자금도 없는 아크에게 영지는 그야말로 빛좋은 개살구인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영지야.라이덴이나 잿빛 날개의 하이얀이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영지를 탐냈을리가 없어.시르바나는 지리적으로 엄청난 발전 가능성을가지고 있다. 나가란이 안정되면 발전 시키는 방법에 따라 가장 먼저 C나,B등급으로 올라갈거야.그렇게 되면 영주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하겠지' 그때가 되면 군자금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막대한 자금을기반으로 1만명의 대군을 조직하는것도 꿈은 아니리라. '그런 영지를 차지하고도 1쿠퍼도 못건지고 물어나야 하다니........이럴바에는 차라리 처음 계획대로 라이덴이 영주가 됐으면 좋았잖아' 아크는 라이덴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라이덴이 동맹 게약을 제대로 지켜 줬다면 이런 걱정은 할필요도 없다. 중급 회복 포션 100개 가격 2,000골드.투석기 수리비용 1,000골드.개조 비용과 너구리족의 인건비 600골드.합이 3,600골드! 영주의 한달 월급보다 많은 돈을 챙길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라이덴의 배신으로 한푼도 못건지고,빛좋은 개살구 같은 영지만 떠안게 되버렸다. '정말 재수가 지지리도 없지..........' 여기까지가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내게 된 과정이었다. 그러나 베라미는 아크의 기분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듯.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그럼 당장 영지 운용에 대한 결제를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다시 와!"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베라미는 어꺠를 으쓱거리고 집무실을나갔다. 신임 영주의 그런 반응은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태도다. 혼자 남은 아크는 잠시 머리를 정리했다. 아크는 포기가 빠른편이다. 될듯하다 싶으면 죽어라 달려들지만, 안될것 같으면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는것이다. '어차피 내가 일주일 뒤에 성을 지키는건 무리다. 그러니 일단 그 문제는 제쳐 두고........내가 영주로 있을때 할수 있는걸 해야한다. 아란이 실각하고 내가 영주가 됐으니 이제 시드를 지하 감옥에서 빼낼수 있을거야' 일단 그것만으로도 첫번째 목적은 달성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라.아란은 대성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잇어.은밀히 대성당의 신성기사를 파견해 뒤를 봐줄 정도니까.이번일로 아란이 원한을 갖고 있을테니 무슨수를 써서라도 시드의 방면을 방해할거야.그렇게 되면 일이 귀찮아지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다.작센 영주가 나를 도울때 망설였던 이유.그건대외적으로 정규 병사가 나가란에 개입할수 없다는 규칙때문이었어.대성당의 신전 기사도 마찬가지.만약 대성당에서 은밀히 아란을 도왔다는 증거를 잡으면 아란과 대성당에 일격을 가할수있을거야' 대성당의 입지가 흔들리면 시드를 빼내는것도 어렵지않으리라.일단 할일을 정한 아크는 곧바로 성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성내에 신전기사가 20명이나 있었으니 어딘가 흔적이 남았으리라 생각한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흔적을 찾아냈다. 아니,그 흔적은 너무나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뭐야,이게?"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영주성 후원에 호화찬란한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신전 같은 분위기의 건물 ,문을 밀어보니 잠겨있었다. "아,그건 아셔스 신전입니다" "아셔스?" 베라미를 찾아가니 간단하게 내력을 설명해주었다. "네,균형의 여신이죠.흔히 대성당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대륙에서 가장 영향력이 많은 12개 교단이 모여 있는 겁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100여년 전부터 부흥한 아셔스 교단이죠.전임 영주였던 아란경은 독실한 아셔스 신자였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란경이 홀리나이트로 인정받기 위해 시련을 받을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교단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이 신전은........?" "본래 이곳에는 오래된 아셔스 신상이 있었습니다. 아란경이 영주가 된 뒤에 그 자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신전을 지은것이지요" 베라미의 설명에 아크는 수상한 느낌을 받았다. 아란같은 녀석이 아무런 이유도없이 돈을 투자해 신전을 지었을리가 없다. '어쩌면 신전을 지어주기로 하고 아셔스 교단의 도움을 받은걸지도 몰라.교단 측에서도 공짜로 신전이 생기니 NPC를 파견할 만하겠지.하지만.......성내라는게 마음에 걸리는군.아무리 오래된 신상이 있다지만 신도를 모으려면 성밖에 지어야 하는거 아닌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때였다. "아란 경만이 아니라,여명의 칼날 연합원 모두가 독실한 신자였죠" "뭐라고?" "신전이지어지고 난뒤 아란경만이 아니라 여명의 칼날 연합원들은 거의 신전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어떨때는 사흘 밤낮을 신전에서 나오지 않을때도 있었죠" "안에서 대체 뭘했는데?" "모르죠.아란경이 다른 사람들은 근처에 오지 못하도록 명령했거든요.뭐,철야 기도를 한것 아니겠습니까?나올때는 항상 피로한 기색이역력했으니까" 베라미는 별로 관심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흘 밤낮을 신전 안에서 기도한다? 유저가 게임에 접속해서 신전에나 처박혀 시간을 보낼리가 없다. 더구나 아란은 살짝..............아니,완전히 돌아버리지않고서야 정말 아셔스를 열렬히 신봉해서 그랬을리가 없다.믿기만 하면 죽어도 온갖 특별 서비스를 받을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는 현실에서도 넘친다. 굳이 게임속에서까지 사이비 종교를 믿을 이유가 없는것이다. 그런에도 신전을 세우고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뭔가가 있다. '아란과 대성당의 비리를 알아낼 단서가 있다면 여기다!' "내가 여기에 들어가 봐도 되나?" "물론입니다. 성내의 모든건 영주님의 소유물이니까요" 베라미가 처음으로 기특한 소리를 했다. 월급 영주라도,있는 동안은 영주라는 거겠지. "하지만 잠겨 있던데?" "집무실에 가면 영주님 전용 금고가 있을겁니다. 선내의 시설물 열쇠는 모두 그곳에 보관되어 있죠.그 열쇠들은 영주님이라도 성밖으로 반출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전임 영주님의 직위가 해제됬으니,신전 열쇠는 거기있을겁니다" 아크는 곧바로 열쇠를 찾아 신전으로 향했다. 덜컹,키이이익........ 열쇠를 꽂아넣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다른 현실의 성당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기다란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정면에는 약간 높은 단상 안쪽에 아셔스 신상이 서있었다. '뭐야?뭔가 숨기고 말고 할것도 없겠는데? 대체 여기서 뭘 한거지?" 설마 정말 여기서 신상에 대고 절이라도 한걸까? 이해할수 없는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던 아크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뭔가 이상한데?' 아크는 신전 중심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베라미는 이곳에 여명의 칼날 연합원이 모두 모여 사흘밤을 세운적도 있다고 했다. 길드가 아닌 연합이다. 숫자로 따지면 1,700명이나 된다.그러나 신전은 그 인원이 다 들어올만큼 넓지 않았다. 아침 7시의 통근 버스처럼 우겨넣는다고 해도 몇백명이 한계다. 그렇다면 나머지 몇백명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기 어디에 다른출구가 있는건가?' 아크는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이렇다 할부분은 눈에 띄지않았다. 그렇게 몇십분............단상 위를 수색하고 있는데 문득 아셔스 신상 아래에 뭔가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보였다. 고개를 돌리면 어둠이 찾아온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 이런 수수께끼를 적지 않게 경험해본 아크다. 아셔스 신상의 위치를 가늠해본 아크는 곧 글귀의 내용을 이해할수 있었다. 마침 아침 무렵, 사방의 창문을통해 아침 햇살이 비쳐들어 오고 있었다. 그 빛이 집중되는 곳은 바로 아셔스 신상.다시 말해 아셔스 신상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동쪽에서 빛의 상징인 태양이 떠오른다는것은 만고불변의 법칙!돌려말함녀 어둠이 시작되는곳은 서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크는 불손하게도 신상의 얼굴을 잡고 홱 돌려 버렸다. 역시나 짐작대로 얼굴이 돌아갔다. 그리고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자 철컥하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뒤이어 신상이 한쪽으로 밀려나며 어둠속으로 이어지는 긴계단이 드러났다. '역시 비밀 통로가 있었구나!'여명의 칼날'은 바로 이 안에서 뭔가 했던거야!' 생각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시야를 밝히고 계단을 따라 들어갔다. '대체 이 계단은 어디로 이어져있는걸까?' 계단은 예상보다 길었다. 나선형으로 꼬인 계단은 마치 지옥 끝까지라도 이어질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문득 피부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순히 기온이 내려갔다는 느낌이 아니다.마치 차갑고 미끌미끌한 촉수가 온몸을 더듬는 듯한 한기였다. 가슴속에서 정체불명의 공포심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뭐지? 굉장히 기분이 안좋은데?" 아크가 찜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을때였다. 계단이 끝나며 눈앞에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고대 악의 발상지(특수) 영혼마저 떨게하는 차가운 한기가 감도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은 복잡하게 얽힌 미로와 같은 동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원혼들의 신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강력하고 사악한 기운이 그들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동굴의 참혹한 역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뭔가 거대하고 불길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것입니다. 당신이 현명한 모험자라면 결코 혼자 들어가는 만용을 부리지않을 것입니다.] "던전?" 아크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사냥터도 아닌 영주성 지하에 던전이라니? 이해할수 없는 일이지만,일단 던전이면 당연히 몬스터도 있으리라.그것도 던전 설명을 읽어보니 그리 저레벨 던전은 아닌것 같았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나갈수는 없지.던전이라 어둠속성 보너스가 적용되지만,아무정보도 없는 던전이니 만약을 대비하고 들어가야겠다' 아크는 냄비를 꺼내들고 서바이벌 요리를만들었다. 최대 생명력을 올려주는'풍요의 전골',힘과 민첩을 올려주는 '들소의 훈제구이',방어력을 올려주는'갑각류 샐러드',기타등등........온갖 도핑에 데드릭,데이모스까지 불러낸 뒤에야 던전으로 진입했다. "데드릭,주변을 정찰해라.데이모스,옆에 바짝 붙어있어" "으음,기분나쁜 동굴이다" 딱딱딱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도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낀듯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던전에는 이렇다 할 몬스터가 보이지않았다. '하긴,아란 녀석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면 벌써 몇번이나 몬스터를 소탕했겠지.동굴이 얼마나 넓은 지는 모르겠지만,남은 몬스터는 얼마되지 않을지도 몰라'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주,주인!저기!" 데드릭이 허둥지둥 날개를퍼덕이며 돌아왔다. 돌연 데드릭의 등뒤에서 한쌍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눈동자 아래에서 하얀 송곳니가 드러나며 짐승의 악취가 훅 밀려왔다. 크르르르! '몬스터!' 카아아악! 몬스터가 확 달려들었다. 아크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자 곤봉이 바닥을 찍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동굴이 통째로 흔들렸다. 바위조차 으스러뜨릴 듯한 괴력!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공격을피한 아크는뒤로 물러나며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고양이의 눈 효과로 인해 어둠속에서 기어 나온 몬스터의 정보가 머리위로 떠올랐다. 정보를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헉,뭐,뭐야 저놈은........?" 통로를 가득 메울듯한 거대한 몸집! 상체는 인간의 몸이지만,하체에는 염소의 다리가 달려있었다. 얼굴 역시 검은염소처럼 생겼는데,이마위로 세가닥의 두꺼운 뿔이 기괴하게 비틀려 돋아나 있었다. 고대 종교에서 흔히 묘사되는 악마의 형상! 그러나 아크가 기겁한 이유는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몬스터의 이름은 에이션트 이블 고트.한글로 바꾸면고대의 나쁜 염소 정도로 해석할수 있으리라.아니,그런 농담 할때가 아니다.에이션트 이블 고트의 레벨은 무려300!이름 앞에는 붉은 별 표시가 새겨져 있었다. '붉은 별.......엘리트 몬스터다!' 아크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엘리트 몬스터는 일반몬스터의 몇배나 되는 경험치와 마법 아이템을 떨구는 몬스터였다. 더불어 일반 몬스터보다 몇배나 강하다. 단순한 레벨 300몬스터가 아닌것이다. 크아아아아! 고트가 곤봉을 횡으로 휘둘러댔다. 아크는 첫 공격을 피하느라 구석에 몰린 상태! 아크는 검을 들어올려 곤봉을 쳐냈다. 아니,쳐내려고 했지만,곤봉에 담긴 힘은 아크의 상상을초월했다. 콰자자작, 뼈가 으스러지는듯한 충격과 함께 아크는 벽에 처박혀 버렸다. -쳐 내기를 무시당해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640.머리를 뒤흔드는 강렬한 일격에 의해 5초간 '스턴'상태에 빠졌습니다. '맙소사!' 아무리 치명타가 터졌다고는 해도 일격에 640이라니......... 문제는 데미지만이 아니다. 스턴이 발동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서 제대로 움직여 지지도않았다. 그사이 고트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와 곤봉을 들어 올렸다. 딱딱딱딱! 그때,뒤쪽에 있던 데이모스가 고함(?)을 지르며 고트의 옆구리를 들어받았다. 데미지는 티도 안날 정도였지만, 고트가 옆으로 밀리며 곤봉이 아크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 데드릭도 고트의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며 정신을 분산시켰다. 그러나 데드릭의 얼굴에도 평소와 같은 여유가 보이지않았다. "여,여기다.히익!주,주인,아직 멀었어? 이자식.........엄청 빠르다고!" 고트는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지않게 상당히 민첩했다. 결국 데드릭은 성난 고트에게 쫓기다가 뒤통수에 곤봉을 한대 얻어맞았다. 백스텝 데미지!방어력이 낮은 데드릭은 단숨에 생명력이 50%나 빨려 나가며 바닥에 집어던진 찰떡처럼대자로 뻗어버렸다. 고트는뜨거운 숨을 불어내며 발을 들어올렸다. "으악,으악,으악!살려줘!" 딱딱딱딱! 데이모스가 방패로 고트를 밀어내며 데드릭의 앞을 가로막았다.고트가 가소롭단 듯이 철퇴로 후려쳤다. 방패로 막아냈지만 데이모스의 생명력이 20%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데이모스는 한걸음도 물러나지 않고,검까지 휘두르며 고트에게 덤벼들었다. 아크와 데드릭이 행동 불능에 빠졌으니 싸울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판단한듯했다. "데이모스!너,사실은 좋은 녀석이었구나!좋아,그거야!" 데드릭이 감동한 얼굴로 데이모스를 응원했다. 그러나 고트는 용기만으로 상대할수 있는 만만한 염소가 아니었다. 쿵,쿵,콰직!파열음이 울릴때마다 데이모스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결국 몇초만에 빈사 상태에 빠져버렸다. 데이모스가 휘청거리자 데드릭이 버럭 소리쳤다. "야,인마.그렇게 죽으면 난 어쩌라고? 3초만 더 버티고 죽어!" 참으로 염치없는 박쥐다. 그렇게 고트가 최후의 일격을 날릴때였다. "블레이드 스톰!" 돌연 동굴 안에서 수많은 빛의 입자가 은하수 처럼 피어올라 고트의 뒷덜미를 향해 쏟아졌다. 검의 파편이 연속적인 파열음을 울리며 박혀들자 고트는 몇미터나 밀려났다. 데드릭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주인,일어났구나!살려 줘!" 그러나 아크는 대꾸할 여유조차 없었다. '맙소사.......!'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뱀이 뱉어낸 검은 꽤 좋은 검이었다. 마법검까지는 아니라도 몇 골드는 받을수 있는검. 그런 검을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했는데도 생명력은 고작 7%밖에 깎이지 않았다.거의 보스급의 체력을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곳은 좁은 동굴.놈이 거구롤 밀어붙이며 도망갈곳이 마땅치 않다' 아크의 스텝도 좁은곳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않는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위험하지만..........' "데이모스,검화!" 아크의 목소리에 다시 전의를 불태우던 데이모스가 검으로 변해버렸다. 아크는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데드릭,이제 움직일수 있지?" "오케이!움직일수는 있지만 저 염소를 상대로는 좀............." "내 앞으로 날아가면서 혹시 다른 몬스터가 보이면 바로 알려" "그런거라면 얼마든지!그런데 도망가는거야?" "시끄러,시키는대로 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데드릭이 얼른 옆의 통로로 날아갔다.데드릭이 도망가자 고트가 괴성을 지르며 뒤따랐다. "염소 새끼,네 상대는 나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채찍처럼 사용해 고트를 후려쳤다.그러자 고트가 와락 몸을 돌리며 달려들었다.아크는 채찍으로 몇 차례 공격하다가 거리가 가까워지자 데드릭이 날아갔던 통로로 도망쳤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낸 작전이엇다. 채찍의 사정거리는 10미터.거리를 벌려놓은 뒤에 고트가 접근할때까지 채찍으로 공격한다.그리고 거리가 가까워지면 도망가기를 반복.물론 본 블레이드를 채찍으로 사용하면 공격력은 70%밖에 나오지않는다.그러나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생명력이 바닥나리라. 일명 히트&런! 생명력이 바닥나면 종종 써먹던 작전이었다. 크와아아아! 그러나 고트는 아크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거리를 벌리기는 커녕,불과 20미터도 도망가기 전에 고트가 바로 뒤까지 다가와 곤봉을 휘둘렀다. "헉,저,전력 질주!" 다급해진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순간 다리가 솜털처럼 가벼워지더니 단숨에 고트와의 거리가 확 벌어졌다. '이거 의외로 쓸만하잖아?' 란셀 마을에서 시간이 남아돌아 배운 '전력 질주'가 이렇게 도움이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력 질주를 사용하니 이동속도가 50%나 상승했다.불과 몇 초만 적용되는 효과였지만,그것만으로도 작전을 사용하기에는 충분했다. 아크는 전력질주와 채찍 공격을 번갈아하며 고트의 생명력을 착실하게 깎아나갔다.그러나 이 작전에는 단 한가지 위험 요소가 있었다.도중에 다른 몬스터와 맞닥뜨리면 상황이 악화된다는 점이었다. 아크가 먼저 데드릭을 앞서 날려 보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우측 통로에는 몬스터가 있어!이놈도 염소야!" "힉,이쪽은 염소가 두마리나 있다. 다른쪽,다른 쪽!" 고대 악의 발상지는 정말 무시막지한 던전이었다.다른곳에서는 보스급인 고트가 사방에 널려있다. 그러나 다행히 데드릭의 정찰덕에 아크는 다른 고트와 맞닥뜨리지 않고 천천히 고트의 피를 말려갈수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거의 40여분.........고트의 생명력이 10%이하로 떨어졌지만 아크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고트의 일격에 다시 스턴이라도 걸리는 날에는 40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 아크는 마지막까지 깔짝깔짝 ......조금씩 생명력을 갉아 드디어 1%이하까지 깎아 냈다. "이제 마지막이다!" 촤라라락,카카카칵! 아크는 와락 몸을 돌리며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쿠오오오! 무턱대고 달려들던 고트는 치명타를 맞고 결국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헉헉헉,해,해치웠다" 아크는 헐뜩 거리며 털썩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보창을 확인해보니 마나가 30밖에 남지않았다. 고작 20의 마나를 소모하는 전력 질주만 사용했는데도 마나가 바닥이 난것이다. 스치듯이 서너방을 맞앗는데도 생명력이 1,500이나 줄어있었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159.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아 222.그럼에도 정면 대결론 절대 이길수 없는 상대였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일단물리치자 경험치가 상당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과연 엘리트 몬스터! 단숨에 레벨이 2나 올랐다. 게다가......... 쌕쌕쌕,쌕쌕! 곧바로 뱀이 헐떡이는 아크에게 아이템을 물어왔다. [묵직한 사슬장갑(마법) 방어구 타입 : 사슬 장갑 방어력 : 65 내구력 : 13/50 무게 : 50 사용 제한 : 레벨 150 이상 사슬을 촘촘하게 연결해 만든 장갑.연대를 추즉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된 물건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낡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은구하기 힘든 마법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옵션 : 힘+20,체력+15>] '처음 만난 몬스터에게서 마법 아니템이......!' 엄청난 경험치와 마법 아이템! '이제야 알겠군' 아크는 그제야 공성전을할때 느꼈던 의문점을 알아냈다.라이덴은 여명의 칼날 연합이 영지를 차지하고 나서 몰라보게 강해졌다고 했다.성에서 나온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 해답은 바로 이 던전이었다. 엘리트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던전을 독점하고 사냥해 왔으니 강해질수밖에 없었던 것. '일너 던전을 독점할수 있다면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그런데 대체 아란은 이곳을 어떻게 알아냈을까?그리고 이곳은 대체 얼마나 큰거지? 아까 도망가면서 보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는 것 같던데......이 던전에는 뭔가 비밀이 잇어'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조금 더 탐색해 보기로 결정했다.물론 다시 고트와 맞장뜨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한마리도 간신히 처리했다.만약 더 강한 놈이나,두세마리가 나온다면 지금 능력으로 감당할수 없다. 아크는 소환수를 돌려보내고 '은신'으로 몸을 숨겼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조금더 들어가자 고든이 두세마리씩 모여 있는게 보였다. 악마를 닮은 레벨 350의엘리트 레서데몬도 간간이 보였다. '아무래도 안되겠다.놈들의 간파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접근할수는 없어.은신이 풀리기전에 돌아갔다가 형님들이 부활하면 함께 들어와야겠다.' 뉴 월드를하며 처음으로 어둠이 두렵게 느껴졌다. 아크는 일단 던전을 되돌아 나왔다. 그때,한 통로를 스쳐지나는데 돌연 코가 떨어져 나갈듯한 악취가 밀려왔다. '뭐,뭐야?이 냄새는?여기인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아크는 움찔하며 멈춰섰다.악취가 풍겨나오는 공동 안에 밖에서 본 것과 같은 아셔스 신상이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상 특유의 성스러운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어둠속에서 봐서 그런가?오히려 어딘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 마저 들었다.그뿐이 아니다.신상 주변은 마치 악마 숭배 집단의 집회 장소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니,실제로 그런 모양이다.주변에는 기괴하게 생긴 제구祭具와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와 썩은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마치공포영화의세트장에들어온기분이다. 마치 공포 영화의 세트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쌕쌕?쌕쌕쌕! 그때 주변을 훑어보던 뱀이 펄쩍 뛰어나가 바닥을 헤집었다.그리고 주변에서 3~4개의 반짝이는 물체를 꺼내들었다. '어라?저건..........?' 주먹만한 크기의 수정들,크기는 다르지만 예전에 해저도시에서 봤던 크리스털과 같은 재질. 아크는 그제 어떤 용도의 아이템인지 알고있다.고대 유적에서 종종 발견되는 메모리 크리스털이라는 것이다. 암흑세기 이전에는 책대신 메모리 크리스털을 이용해 문자나 영상을 보관했다고 전해진다.아쉽게도 고대의지식이 사라진 현재는 단순한 돌멩이에 불과하지만........다크 워커의 특수스킬,고대 유물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아크는 다르다. 역시나........크리스털을 집어들자 눈앞에 영상이 떠올랐다.그러나 해저 도시에서 봤던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었다. 오래된 필름처럼 흐릿한 영상이 비춰내는곳은 지금 아크가서있는 공동이었다. 그곳에 검은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알수없는 주문을 외우며 아셔스 신상을 향해 절을 한다.그렇게 분위기가 고조되었을때,몇명이 벌거벗긴 사람들을 끌고 들어왔다. 그들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검은 옷의 사람들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들짐승처럼 탐욕스럽게 웃으며 그들에게 몰려들었다. 기괴하게 비틀린 검이 그들의 살을 찢고 뼈를 갈랐다. 공등에 메아리치는 비명,비명,비명......! 광란의 시간이 끝나고 제물의 피가 아셔스 신상에 흩뿌려졌다. 아셔스 신상의 얼굴이 일그러진것은 그때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얼굴전체가 꿈틀꿈틀거리더니 이내 완전히 다른 형상이 떠올랐다.붉은 눈동자를 가진 까마귀의 얼굴이다!뒤이어 천둥소리 같은 고함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위대한 아셔스를 경배하라! 아셔스야말로 사자死者의 신 앙크의 현신이다! 균형은 파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피는 파괴의 상징! 아셔스를 위해 피를 바쳐라! 균형을 위해 파괴해라! [고대 유물의 대한 지식으로 '메모리 크리스털'의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메모리 크리스털에는 고대의 악마를 섬기던 비밀결사의 숨겨진 역사가 담겨있었습니다. 신으로 숭배받는 존재의 정체는 고대의 악이 쓴 가면에 불과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25,지능20,운10,명성이 200상승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메모리 크리스털이 먼지처럼 부서졌다.순간 벼락이 머리에 내리꽂히는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모든 의문이 풀렸다!' 대성당이 신성기사를 파견하면서까지 아란을 도운이유!아셔스 교단의 정체는 악마를 섬기던 비밀결사다.그리고 그들의 발상지가 바로 이곳,시르바나 성 지하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아마도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나가란을 전란의 땅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리라.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끝나고 나가란이 유저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던전에 남겨진 것들을 처리할 시간도 없이 말이다. 유저들이 호기심이 많다는것은 NPC들도 알고 있다. 누군가 시르바나 성을 차지하면 던전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 몇번이나 바뀌는 영주 가운데 고대 유물의 지식을 가지고있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아셔스 교단은 믿을만한 이방인을 내세워비밀을 봉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게 아셔스 교단의 인가를 받은 홀리나이트 아란이다!' 아란이 12개의 영지가운데 유독 시르바나를 노렸던 이유가 그때문이다. 시르바나를 차지하고 비밀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교단의 조력을 약속받은게 분명하다.그리고 아란은 비밀을 대가로 이던전의 비밀을 교단과 공유하게 되었겠지. '그렇다면 게이볼트라고 불리던 신전 기사 일당은........아란을 도우며,아란이 비밀을 지키도록 감시하는 역활을 함께 가지고 파견된게 분명하다.어쩌면 기회를 봐서 증거물을 없애려고 했는지도 모르지.하지만 던전이 워낙 크고 복잡해서 미처 다 발견하지 못한거야' 메모리 크리스털이 바닥에 묻혀 있었으니 보통 사람들은 찾기 힘들었으리라. 거기까지 알아낸 아크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어차피 나와 대성당은 가까워지기 힘들다.반면 아셔스교단은 이미 비밀을알고 있는 아란과 떨어지려야 떨어질수 없는 사이.아란이 재기하면 아셔스 교단은 다시 내 걸림돌이 될거야.그렇다면...........!' 답은 하나,함께 무너뜨려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던질 폭탄은 얼마든지 있었다. 재단 주변에 흩어져 있는 메모리 크리스털! '후후후,아란,너는 이제 끝났어!' ACT 4 시 유 어게인,시르바나! 우지끈! 거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뒤이어 몇몇 기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한참 기도를 올리고 있던 사제들이 놀란 표정으로 일어났다.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여기가 어디인지 모릅니까?" "닥쳐라!" 기사가 사제를 밀어내며 병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병사들이 역한 냄새가 풍기는 양동이를 들고 와 신상에 확 끼얹었다.신상의 얼굴이 꿈틀거리며 까마귀의 형상으로 변한것은 그때였다. "사자의 신 앙크!" 기사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검을 뽑아들었다. "더 볼것도 없다. 이 사악한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뒤이어 방안에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돔아가려는 사제들, 검을 뽑아들고 저항하는 사제들, 그들과 병사들이 뒤엉켜 방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 방만이 아니었다.대성당의 한 부분 ,아셔스 교단이 자리잡은 신전 곳곳에서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그러나 이미 신전 주변은 병사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제들은 곧 저항을 포기하고병사들에게 결박되었다. "이방이 아셔스 교단 대주교의 방이다!" 신전을 제압한 병사들이 최상층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방에 대주교의 모습은 없었다.이미 낌새를 채고 튀어버린것이다. "젠장........아직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것이다. 관문마다 수배지를 보내 도주로를 막아라!"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허둥지둥뛰어나갔다. 슈덴베르크 왕국 병사들의 아셔스 교단 급습! 뒤이어 대성당 내부에서도 앙크를 숭배하는 비밀 집회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압수수색으로 그동안 아셔스 교단이 저지른 온갖 비리도 모두 밝혀졌다. 아쉽게도 그 전에 대주교와 몇몇 고위 성직자는 도주했지만, 그것은 그대로 아셔스 교단의 파멸로 이어졌다.그러나 이 모든일은 놀랍도록 조용히 처리되었다. 왕국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대를 풍미하던 아셔스 교단이 조용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덕분에,대성당의 지하감옥에서 무기징역을살고있던 호비트가 풀려났다. "읏,눈아파...........!" 호비트는 따가운 햇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른아닌 꼬박 한달을 감옥에서 보낸 시드였다. "대체 왜 나를 풀어준걸까?" 시드 역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알수 없었다.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범수로서 열심히 감옥 생활을 하는데,갑자기 병사가 들이닥치더니 물었다. "네가 시드냐?" "네?네,그런데요?" "출감이다" 병사는 다짜고짜 시드를 끌어냈다. 도대체 영문 모를 상황이지만, 시드는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이제야 다시 게임을할수 있겠구나.이제 대성당 주변에는 두번다시 안온다!" 시드는 얼른 지긋지긋한 대성당을 벗어났다. 그러나 모처럼 자유를 찾은 시드의 얼굴은 몇분만에 다시 어두어졌다. 우편함에서 아크의 편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왔죠? 나가란의 시르바나 영지로 당장 튀어 오세요! 압수되었던 5,000골드는 돌려받았지만 사기당한 3,000골드는 돌려받을 길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크각 두부나 먹여주려고 부르지는 않았으리라. 결국 이 불쌍한 호비트는 늑대 아가리에서 기어나와다시 호랑이 아가리로 기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편지를 보니 아크님이 어떻게 손을 쓴 모양인데......안 갈수는 없겠지............' 시드는 한숨을 푹 불어내고 터덜터덜 나가란으로향했다. '대체 내 게임 생生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걸까?' 제대로 가고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들으신 국왕 폐하께서 자네의 공을 높이 치하하셨네.허나 아직 사교 세력의 잔당이 남아있네.또한 대륙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던 아셔스 교단이 사교 세력이었음이 밝혀진담녀 걷잡을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 것이네.그러니 국왕 폐하의 허락이 떨어질때까지는 모든일은 비밀로 해야하네.대신,혼란한 정국이 진정되는 대로 폐하를 알현할 기회를얻을수 있을거네. '후후후,좋아,이걸로 대성당과 아란은 정리됐군' 아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다,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아셔스 교단몰락의 배후에는 아크가 있었다. 던전에서 메모리 크리스털을수집해 나온 아크는 곧바로 작센의 소년 영주에게 파말마를 띄웠다. 자신이 추리해낸 정보에 증거품으로 메모리 크리스털을 곁들여서.그뒤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소년 영주는 증거품을 가지고 왕성을 찾았고,국왕은 병력을 동원,아셔스 교단을 급습한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아셔스 교단의 내부 비리에 얽힌 일이라 아란이나 시드와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1등 공신자인 아크가 미리 선처를구한덕에 시드도 곁다리로 감옥에서 풀려날수 있었던 것이다. 뭐,애초에 아셔스 교단과 관련도니 사건이 모두 재조사되고 있으니 애매한 죄목으로 갇혀있던 시드는 조만간 풀려났겠지만............어쨌든 그보다 아크를 기분좋게 만든 내용은 아란에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자네가 보낸 보고서도 국왕 페하께 보여드렸네. 모든 정황을 미루어 보아 자네 주장처럼 아란은 아셔스 교단과 모종의 밀약을 나누었던것 같네.교단에서 압수한자료에도 신전 기사를 아란에게 보냈다는 증거가 나왔어.아란은 이미 교단의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도 숨겨 왔던 것이 분명하네.아쉽게도 시드라는 상인에게 행한 짓을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이로써 아란은 사교의 잔당이라는 죄목에서 벗어날수 없게 되었네.곧 왕성에서 아란에 대한 수배가 떨어지겠지.물론 아직 사교에 대한 내용은 비밀로 해야하니 사교 잔당이 아닌,나가란에서 유령 길드를 만들어 삼국 국왕을 기만했다는 죄목이지.하지만 잡히면 큰 벌을 면키 어려울것이네. '두고 보자고했지?하지만 네게는 이제 기회가 없어' 사교의 비밀을 숨긴죄. 유령 길드를 만들어놓고 국왕들을 속인죄. 아란은 하루아침에 영주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길드장이 수배자가 되어버렸으니 여명의 칼날도 그대로 공중분해 되어 버리리라.결국 아란은 세력과 지지기반을 모두 잃어버렸다.그뿐인가? 수배가 풀릴떄까지는 제대로 사냥조차 못하리라.이쯤되면 사실상 홀리나이트 아란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더불어 아란의 붕어똥인 안델도 같은 신세가 되겠지. '그러니까 상대를 봐가면서 덤볐어야지' 아크는 앓던 이가 빠진것처럼 시원했다. 그러나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싸움에 진개는 한번더 밟아줘라,그게 아크의 지론 아니었던가? '결론적으로 내가 이긴 셈이 됐지만,아란은 내 돈 3,000골드를 꿀꺽한 놈이다. 이 정도로 끝낼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않는 게 좋아.내 돈을 먹은 죄 그리고 레리어트를 이용한죄,로코를 죽인죄,적어도 서너번은 더 죽여 놓지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아!' 한번 독하게 마음먹으면 누구보다 집요한 아크다. "우리도 같은 생각이다.이걸로는 성이 안차" 정의남과 갱생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소미 여사의 병원비.......으드득, 3,000골드의 원한은 깊다!" "감히 우리 눈앞에서 귀염둥이 로코를 죽이다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아란이라는 사람,여자를 방패로 삼다니.....!그런 사람은 뉴 월드에 두번다시 발을 못 붙이게 만들어야 해요" 로코도 씩씩 거리며 무섭게 이를 갈아붙였다. 아크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문제는 아란의 위치를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거에요.아란은 영주라 영주성 병참이 부활장소였어요.그런데 이번에 성을 빼앗겼으니 부활 장소가 최소되고 ,영주가 되기 이전의 장소에서 부활하겠죠.하지만 나가란 주변에 마을이1~2개가 아니라 알아낼 방법이 업어요.그리고 아란은 수배중이니 예전처럼 돌아다니지도 못할거고" "이제 내 실력을 보여 줄때가 왔군" 그때,해결사가 씨익 웃으며 끼어들었다. "사람 찾아내는건 내가 전문 아니겠냐?" 해결사........즉, 그는 전직,떼인 돈을 받아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돈 떼어먹고 숨은 사람을 찾아내는데는 이골이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여긴 게임안인데요?" "그래도 사람 찾아내는 방법은 다를게 없어.숨어다니는 놈들의 습성은 다 비슷비슷하거든.나가란 주변에서 탐색해가다 보면 곧 꼬리를 잡을수 있을거다" 해결사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아크는이미 얼마전에 짝퉁과 타짜가 특기를 살려 신고나까지 속여 넘기는것을 보았다. 해결사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데도 그만한 이유가있으리라. "혼자서는 힘들고.......사람 몇명만 붙여줘,며칠안에 아란 녀석을 찾아낼테니까" "내가 가지.어차피 나는 레벨업은 별로 관심없으니까" "혹시 위험해질지도 모르니 나도 가지" 타짜와 불끈이가 자원했다. "좋아,그럼 바로 출발하자.아란의 정보는 내가 우편으로 보낼게" 그렇게 해결사와 타짜,불끈이는 의기투합해 아란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일단 그렇게 주변을 정리한 아크는 이제 시르바나 영지의 문제로 눈을 돌렸다. 어차피 아크의 힘으로 시르바나를 지킬 방법은 없다. 군자금을댈 돈도 없고,아란처럼 유령 길드를만들 조직력도 없다. 다음 공성전이 시작되면 100%영주 자리를 빼앗길 수밖에없으리라. 기껏 영주가 되고도 1코퍼도 못챙기고 쫓겨나면 억울해서 잠도 못자리라.그러나 아크는 그 문제는 해결할방법을 이미 찾아냈다. "라이덴에게 잠시 성을 넘겨줄 생각이에요" "뭐?" 정의남과 갱생단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그,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를 배신한 놈에게 성을 넘겨주다니?" "물론 공짜는아니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시겠지만,우리로서는 성을 지킬 방법이 없어요.하지만 도전자를 고를 권리가 있죠.그 권리를 라이덴에게 파는거에요.이번에 도전 자격을 얻게 되면 확실히 성을 차지할수 있으니 라이덴도 거절하지못할걸요" "그야 그렇지만......." "어렵게 차지한 영지를 그런놈에게 넘겨준다는 게 영........." "못 들어셨어요? 잠시라도 했잖아요" "응? 잠시라니?" 정의남과 갱생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자신이 구상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정의남과 갱생단은 입을 쩍 벌리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그런 방법이.....!" "이제 아시겠죠? 당장은 아니지만 시르바나는 언젠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거에요.그런 곳을 그냥 넘겨줄 수는 없죠.라이덴에게 넘겨주기 전에 몇가지 장치를해놓을거에요.그리고 방금전에 말씀드린건 내가 대략적으로 구상한거니까,아저씨와 형님들이 가능한지 제대로 한번 검토해주세요" "알았다.그건 우리에게 맡겨라" 갱생단이 신바람난 얼굴로 팔을걷어붙였다.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네가 왜 거래상대로 라이덴을 골랐는지 알겠다" "한번 당했으니 갚아줘야죠" 아크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란도 그렇지만,라이덴에게도 아직 받아내지 못한 빚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부터 몇 시간뒤,아크는 영주 집무실에서 라이덴과 마주앉았다. 라이덴은 공성전 이후로 잠도 못잤는지 핼쑥한 얼굴이었다. 하긴,목구멍으로 넘어가던 영지를 도로 토해놔야 했으니 잠이 올리 없었겠지,라이덴이 토해낸것을 홀랑 집어삼킨 아크는 생글생글 웃으며 마음껏 비아냥거렸다. "꽤나 얼굴이 상했는데?" "너 이 자식........!" 라이덴이 당장이라고 검을 뽑아들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뭐,뽑아봐야 정규 병사 NPC들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고 쫓겨날 뿐이지만......... 아크는 여유가 넘쳐흐르는 얼굴로 실실쪼개며 말했다. "네가 나에게 화를 낼 상황은 아니잖아" "그따위 말을 하려고 부른거냐?" "그럴리가,내가 아주 좋은 제안을하려고 부른거지" "뭐?제앙ㄴ?" "느긋하게 잡담이나 나눌만큼 오붓한 사이는 아니니까 간단하게 말하지.시르바나,갖고싶지?" 라이덴의 눈가가 움찔했다.(원본에는 달틴이라도 표기되있음.) ".........무슨 뜻이냐?" "다음 공성전까지는 앞으로 5일.원한다면 그때 너희에게 시르바나를 넘겨주지" "진심이냐?" 달틴은 수상한 눈길로 아크를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역시 원본에는 달틴이라고 표기되있음.) "물론 공짜는 아니야.6,000골드" "뭐,뭐라고?이 자식,제정신이냐?" 라이덴이 펄쩍 뛰었다.(원본에는 달틴으로 표기.)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이,지금 내가 거래하려고 하는 영지야.구멍가게에 서 파는 과자 부스러기를 말하는게 아니라고,영지를 고작 6,000골드에 넘겨주겠다는데 비싸다는거야? 게다가 너는 일전에 내게 3,600골드를 주겠다고 했잖아.군자금으로 그만큼을 쓰면서 영지를 구입하는데 6,000골드가 아깝다는거냐?" "그,그건..........." "처음부터 줄 생각이없었으니 공수표를 남발했겠지" 아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아크는 공성전때 라이덴이 돈을뿌려대는것을보고 영지를 차지하면 엄청난 수익을 얻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영지를 차지하고 보니 그게 아니다. 분명 영지는 정기적으로보면 이득이 약속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익이 날때까지 영지를 지켜내야 가능한일.헤르메스가 아무리 거대 길드라도 그때까지 공성전의 군자금을 조다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리라. 나가란에서 잔뼈가 굵은 라이덴이 그점을 모를리가 없었다. 아마도 라이덴은 다른 연합 길드와 그 부분에 대해서 이미 의견 조율을 했을것이다. 5개 길드가 공동으로 투자해서 영지를 성장시킨 뒤에 이익이 나기 시작하면 분배하는 식으로........ 결국 수익금의 30%를 약속할때부터 라이덴은 다크에덴을 배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아니,아크가 수익금 운운할때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라고 판단했으리라. "그 문제는 내가영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것도 있으니 넘어가지.어쨋든 내 요구 조건은 6,000골드다.받아들일지 말지는 네가 결정해" "시르바나 영주가 받는 월급은 고작 3,000골드야!" 역시 선구자라 정보 하나는 빠삭하다. 그러나 아크는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받아쳤다. "그래,고작 두달치 급료밖에 안되지" "까불지마.내가 바보인줄 아냐? 뉴 월드의 두달이면 3주다. 그사이에 공성전을 세번이나 더 치러야 한단 말이다. 그 돈은 모두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적자없이 공성전을 치를만큼 영지를 발전시키는데만도 몇달은 걸릴거다. 그런데 개뿔도 없는 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6,000골드를 챙기겠다는 거냐?" "너야말로 까불지 마라" 아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크는 상체를낮추며 위협하듯이 이를 드러냈다. "애초에 그걸 모르고 공성전을 시작했냐? 그만한 부담을 짊어지더라도 이득을 낼 자신이 있으니 시작한거 아냐? 그리고 몇번만 잘 방어해 내면 확실히 그만한 이득이 생길거야.그래,네말대로 나는 당장 영지를 지킬 능력이 없어서 네게 거래를 제안하는거다.하지만 지금 나는 영주야.도전자를 고를수 있다는거지" "뭐.........?" "너아니어도 영지를 사줄사람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예를 들면 잿빛 날개같은" "잿빛 날개!" "잿빛 날개라면 너처럼 투덜대지 않고 내 거래에 응하겠지.그럼에도 나는 너를 먼저 만나고 있는거다.비록 마지막에는 배신을 당했지만 영지를 차지한건 어쨋든 네 덕이었으니까.나는 나름대로 의리를 지키려고 찾아온거란 말이다.간단하게 말해.살래,말래?" 아크의 말에 라이덴은 눈깔을 데굴데굴 굴렸다.(원본에 달틴으로 표기되있음.) 그러나 어차피 나올 대답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만약 시르바나 성이 잿빛날개에게 넘어가면 라이덴은 다시 공성전을치를수밖에 없다. 또다시 수천골드에 달하는 군사금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도 공성전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어느쪽이 이득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라이덴이 할수 있는 것은 고작 가격 흥정뿐이다. 역시나,라이덴은 한풀꺾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당장 6,000골드라니.........." '바로 꼬리를내리는군.나가란에 대해서는 빠삭하지만 거래는 초보자야' 아크는 이제 라이덴이 예전처럼 대단해 보이지않았다.어려서부터 가계를 떠맡아 돈 되는 일이라면 안해본게 없는 아크,돈을 놓고 하는 거래에서만큼은 아크가 그보다 한참 선배인것이다. "간단하게 말해.그럼 얼마까지 구할수 있어?" "솔직히 일주일 안에 구할수 있는건 3,000골드뿐이다" "힘들겠군" "자,잠깐.대신 보름 안에 나머지 3,000골드를주겠다는 계약서를 써주겠다" "나는 이제 계약서는 안믿어" 아크는 싸늘하게 말하고는 은근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사정이 어렵다니 나도 한발 양보하지.현금 4,00골드.나머지 2,000골드를 현물로 대신 결제해 준다면 고려해 보지" "현물이라니?" "듀크가 사용하던 신발......꽤 괜찮아 보이던데?" 그러자 달틴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무리야." "할말은 그걸로 끝났어.4,000골드와 듀크의 신발을 벗겨 오든지.아니면 다음다음 주에 잿빛 날개와 공성전을 치르든지,그건 네 자유야.내일까지 연락이 없으면 거절하는걸로 알고 잿빛 길드와 거래하겠다" 아크는 그걸로 협상을 끝냈다.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이동할수 있는신발! 사실 아크의 주목적은 그 신발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라이덴은 어제 공성전을 치렀다. 다시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있는돈 없는돈을 박박 긁어 군자금을 댔으리라.그런 라이덴에게 6,000골드나 되는 자금이 남아 있을리가 없다. 최대한 긁어내봤자 4,000골드.때문에 아크는 일단 6,000골드를 찔러넣고 한발 양보하는것처럼 슬그머니 듀크의 신발을거래조건으로 끼워넣은 것이다. 이런식의장사는 암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아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이덴은 절대 거절할수 없어.듀크를 두들겨 패서라도 신발을 가져올거야' 예상대로 다음날, 라이덴은 거래에 응하겠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일단 계약금으로 1,000골드다.나머지는 헤르메스의 도전을 받아들일때 결제하지" "좋아" '아마 라이덴은 이 결정을 평생 후회하겠지' 아크는 내심 사악한 미소를지으며 1,000골드를 챙겨 넣었다. 어쨌든 이로써 골치를 썩던 시르바나의 문제가 해결되었다.앞으로 6일뒤에 속 빈 강정이었던 시르바나는 4,000골드와 유니크 신발로 탈바꿈되리라. '그동안 놀고 있을수는 없지!' "아저씨,제가 말했던것 다 처리했죠?" "그래,나머지는 베라미가 알아서 할게다" "그럼 NPC들을 모두 모아 오세요.이제부터 던전 탐험에 들어갑니다!" "좋지,나도 그 엘리트 몬스터라는 것 좀 구경해 보자!" 정의남이 껄껄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 "뭐? 그걸 말이라고 하는겁니까?" 듀크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라이덴을 바라보았다.라이덴은 난감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그게.......너도 나만큼 길드 사정을 알잖아.공성전을 치르느라 그동안 모아놨던 자금이 바닥났어.며칠안에 6,000골드는 커녕4,000골드도 모을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수 없어." "그렇다고 다른놈도 아닌 아크 녀석에게 내 신발을 주자니? 그게 말이 됩니까?" "나라고 좋아서 이러는게 아니야!바로 코앞에서 그놈에게 영지를 빼앗겼다. 열받는걸로 따지면 내가 몇배나 더 받는다고!생각같아서는 수십번을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지경이야!" 다시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듯 이를 갈아붙이던 라이덴이 설득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영지를 차지할수 있을지 장담할수 없단 말이야.알아,안다고.나도 협박을 받는것 같아 기분이 더럽기 짝이 없어.하지만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잖아.이미 아크녀석에게 계약금 1,000골드를 줬어.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몽땅 떼이는 거라고!게다가 만약 아크놈이 잿빛 길드에 성을 넘겨 버리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거야" "하긴.........." 주변에 모여있던 길드원 몇몇이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까지 헤르메스와 잿빛 날개의 세력은 6대 4정도로 헤르메스가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잿빛날개가 영주성을 차지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미 공성전을 치러봤으니 알겠지만,공성전이란 본래 공격하는 입장보다 방어하는 입장이 유리하다.여기에 헤르메스가 이번 공성전 실패로 입은 피해까지 감안하면4대6.......아니,3대7까지 잿빛 날개가 유리한 입장이 된다. 일단 영주성이 잿빛 날개의 수중에 떨어지면 되찾을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갈지는 누구도 장담할수 없게 되는것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따질떄가 아니었다. "약속하지,성을 차지하면 제일 먼저 네게 보상해 주겠다" "그래,길드장의 말이 맞아" "신발은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든 구해 주면 되잖아" "설마 신발 하나때문에 길드원들을 배신하지는 않겠지?" 길드원들이 듀크를 둘러싸며 은근한 압력을 가해왔다. '젠장,이놈이고 저놈이고 ,남의 아이템이라고.......' 듀크는 목구멍까지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이동하면서도 정밀사격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신발! 말할 필요도 없이 레인저에게는 최상의 옵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선구자에 비해 레벨이 떨어지는 그가 라이덴이나 쥬르와 어꺠를 나란히 할수 있는것도,반 이상은 그 신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아크에게 주라니? 솔직히 상황이 이쯤되니 아크보다 신발을 줘 버리라는 라이덴이나 길드원들에게 더 화가 치밀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길드원들은 점점 거리를좁혀왔다. 아무래도 이미 듀크의 신발을 벗겨 성과 바꿔먹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역시 안돼!절대 못줘!" 듀크는 잠시 라이덴과 길드원들을 노려보다가 와락 몸을 돌렸다.이렇게 되면 신발을 지킬방법은 하나.다음 공성전까지는 앞으로 며칠,그때까지 숨어있는 방법 뿐이다. 뭐,나중에 길드원들에게 욕은 먹겠지만 이대로 신발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그편이 백배 낫다. "엇? 자,잡아!" 듀크의 의도를 알아챈 라이덴이 방방 뛰며 소리쳤다. 그러나 듀크는 신발을 사용해 미끄러지며 재빨리 길드원들의 포위를 벗어났다. '됐어!훗,이런 신발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것 같아?' 듀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을 나서려 할때였다. 돌연 바닥에서 수십줄기의 쇠사슬이 솟아 올라와 듀크를 칭칭 감아 버렸다. -상급'속박'주문에 걸렸습니다. <1분간 이동할수 없습니다> 문앞에서 덜컥 걸려버린 듀크는 기가 막힌 눈길로,앞에 서 있는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엇? 쥬,쥬르 너마저.....!" "상황이 이러니 별수 없잖아.이번에는 네가 좀 양보해라.그만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잖아.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아크에게 갚아 줘야 할빚이 있어.놈이 나가란으 나가면 그동안 까불었던 대가를 이자까지 쳐서 두들겨 주고,신발을빼앗아 오면 되잖아" "망할놈, 네 일 아니라 이거지?" 듀크는 분통을 터트렸지만 ,속박에 걸린 순간 이미 상황은 끝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뒤로 길드원들이 둘러싸고 장장 20시간에 걸쳐 회유와 사탕 발림,협박,현혹,구타 등등을 하자 결국 듀크도 백기를 들어올릴수밖에 없었다. "젠장, 알았어!알았다고!크흐흑,줄게,더러워서 준다.주면 될거아냐!"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치는 듀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그러나 신발을 손에 넣은 라이덴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휴,일단 신발은 됐는데........며칠안에 잔금 3,000골드는 또 무슨 수로 구하지?" 잡템을 바닥까지 박박 긁어 팔아도 3,000골드를 만들수 있을지 모르겠다. 새삼스레 눈앞이 아득해져 오는 것이다 "지금이다!포병,일제사격!" 적당히 고트의 생명력을 깎아놓은 아크와 갱생단이 두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후열에서 준비하고 있던 도적들이 일제히 대포를 난사했다. 투투투퉁! 쿠오오오! 결국 고트는 화염에 휩싸여 쓰러졌다. 그사이,또다른 고트는 묘족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 부족인 묘족이 일곱마리나 달라붙었는데도 고트는 조금도 밀리지않았다. 오히려 아크를 기겁하게 만들었던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과시하며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 혼자서 싸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생명의 원천!" 뒤에서 로코가 '회복의 노래'를 열창하자 묘족이 생명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거기에 아크와 갱생단,도적들의 대포가 가세하자 결국 나머지 고트도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우하하하,이게 얼마만의 광렙이냐!' 아크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시르바나를 팔아넘기기로 결정한 아크는 그뒤로 갱생단과 NPC들을 데리고 '고대 악의 발상지'던전에서 살다시피 했다. 엘리트 몬스터가 지천에 깔린 던전,한마리를 잡을때마다 경험치와 마법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런 던전을 독점할수 있는것이다! 다만 몬스터 능력치가 너무 높아 혼자 사냥할수 없다는게 단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갱생단과 NPC를 동원하면 문제가 되지않는다. 덕분에 갱생단과 친밀도 높은 NPC까지 광렙을 할수 있으니 일서이조! '역시 이 던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를 잘했어' 아크는 작센 영주에게도 던전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메모리 크리스털은 성내에 의심가는 몇군데에서 찾은것이라고 보고했다. 왕성에서 알게되면 던전에 조사단이 파견될것은 당연지사,최악의 경우 던전이 페쇄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황금 어장을 그렇게 놔둘 아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이 던전을 오래 사용할수는 없다' 시르바나를 팔아넘기면 던전도 들어올수 없다. 아크는 거의 잠도 자지 않고 미친듯이 사냥에 열중했다.덕분에 4일만에 지하 5층까지 던전을 공략할수 있었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350 명성 : 6,375(+500) 레벨 : 178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 나이트,전장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2,940(+150) 마나 : 2,805 영력 : 100 힘 359(+28) 민첩 499(+35) 체력 549(+20) 지혜 58(+10) 지능 542 운 69(+30) 특숫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83 화술 : 46 애정 : 105(+10) 탄력도 : 147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수왕> 세트 효과 : 힘+10,민첩+10,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개량형 노라드 부츠(신발) : 이동속도+15%,회피율 +10% 화염의 베일(망토) : 화염 저항력+50%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5,마나 회복 속도+5% 심안(반지) : '심안'사용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민첩,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2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현혹,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원본에는 어둠속의 능력치 상승은 30%로,은신지속시간은 15분으로 표기되어있음.) 공격대로 사냥했는데도 며칠만에 무려 14레벨 업! 비교적 레벨이 낮았던 갱생단과 NPC들도 영지를 차지하며 얻은 보너스 경험치와 던전 사냥으로 평균 20레벨 이상 올라갔다. 몬스터에게서 쏟아지는 마법아이템도 상당히 많았다. 물론 공격대로 사냥을 하니 아크 혼자서 몽땅 챙길순없었다. 눈물이 날정도로 아까웠지만 적당히 아이템을 나눠야 했다. 뭐,혼자서는 제대로 사냥조차 할수 없으니 불평할수는 없지만..... '그럭저럭 나도 300골드가량은 챙겼으니 나쁘지 않아' 어쨌든 덕분에 갱생단과 NPC들의 장비도 좋아져 사냥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남은시간동안 한마리라도 더 사냥해야 한다!' "데드릭,다음 사냥감을 찾아라!" 흥이 오른 아크가 명령하자 정의남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손사래를쳤다. "헉, 바로 사냥하려고?" "네,시간이 없잖아요" 아크가 당연한듯이 대꾸하자 갱생단이 앓는 소리를 냈다.NPC들은 어쩔수 없이 중간중간 쉬었지만 아크와 갱생단은 잠도 자지않고 사냥을 한것이다. "헉헉,아크야,이러다 죽겠다" "너혼자 있을때 항상 이런식으로 게임하는거냐?" "어제 3시간 자고 나서 30시간째 논스톱으로 사냥하는거라고!너 체육관 안가?" "사범님에게 며칠 쉬겠다고 말해뒀어요.이렇게 즐거운 사냥을 할 기횐 많지 않거든요" 아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침 이명룡도 근래 들어 바빠져서 체육관에 못나올때가 많았다. "지,지독한 놈........!" "우욱............토 나온다!" 그때,눈치 없는 ..........아니,눈치빠른 데드릭이 얼른 고트를 몰고왔다. "이런 빌어먹을!" "내 두번 다시 너하고는 사냥 같이 안한다!" 갱생단은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몸을 일으킬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다시 사냥에 전념한지 10시간. 아크가 레벨 180을 달성했을때,라이덴이 잔금을 치르기로 약속했던 날이 되었다. '됐어,일단 목적했던 레벨을 달성했다.마음같아서는 더 하고 싶지만........' 라이덴에게 영지를 넘겨주기 전에 처리해야 할일이 많았다.일단 아크는 사냥을 끝내고 던전을 빠져나왔다. 전쟁의 신전으로 향하자 먼저 도착한 라이덴이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해 왔나?" "여기 있다. 잔금 3,000골드와........." 라이덴이 돈주머니를 건네주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뒤에 서있던 듀크가 붉으락 푸르락하는 얼굴로 노려보다가 신발을건네주었다. 장비하고 있던 아이템을 벗어준다. 게이머에게 이보다 더 눈물나는 일도 없으리라. 일단 길드 전체의 이득과 결부된 일이라 어쩔수 없이 물러났지만,신발을 바라보는 듀크의 눈은 정말 피눈물이 쏟아질듯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고맙게받지,걱정마.애지중지 잘 쓸테니까" "으으으!" 아크가 얼른 신발을 챙기자 듀크는 당장이라고 울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그러나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욕을 꿀꺽 삼키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라이덴은 그런 듀크를 미안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크,이제 네가 약속을 지킬차례다" "알았어.나는 너와 달리 약속을 지킨다고" 아크는 유들유들하게 대답하며 신관을 불러말했다. "다음 도전 상대로 헤르메스 길드를 지목한다" "알겠습니다. 등록됐습니다. 공성전은 내일 오전 6시입니다." 뒤이어 신관이 공성전관련 정보를 설명해 주었다. "이제 내일이면 이 영지는 네것이다" "...........알았다.내일보자" 아크는 전쟁의 신전을 나서는 둘을 보며 헤벌쭉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드디어 이 신발이 내손에 들어왔다!자,어디 볼까?' "정보창!" 바람정령의 장화(유니크) 방어구 타입 : 가죽 신발 방어력 : 50 내구력 : 60/60 무게 : 15 사용 제한 : 레벨 150 이상 바람의 정령 실프의 힘이 깃든 장화. 오래전 활동했던 전설적인 정령사가 사용하던 장화입니다.혈영마의 가죽을 정성스럽게 다듬어 만든 부츠에 실프의 영혼을 담아 착용자의 움직임을 빠르게 해줍니다. 또한 다리를 움직이지 않아도 미끄러지듯 움직일수 있는 기능이 있습니다. <옵션 : 민첩+30,이동속도+30%,공격속도+10%> <특수 옵션 : 스킬'슬라이드'를 사용할수 있습니다. 슬라이드를 사용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플레이어는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할수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동할때 공격속도,공격력,방어력에 패널티를 받지않습니다. 단,1회의 이동속도는 동일하며,이동거리는 최대 30미터를 넘을 수 없습니다. 마나소모 : 10>] 기절할듯한 능력치! 가죽 방어구치고는 방어력도 엄청나고,최상급의 옵션까지 달려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크가 탐내던 것은 바로 '슬라이드'라는 자동 이동! 사용하기에 따라서 활용법이 무궁무진한 스킬이다. '됐어,이제 챙길건 모두 챙겼다.남은 시간은 앞으로 20시간,눈치 볼 필요 없이 마무리 작업을 끝내 놓자!' 그때부터 아크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아크는 일단 베라미를 찾아갔다. "베라미 ,내가 지시한 일은 끝났나?" "네,일단 끝내놓기는 했습니다만......." 베라미가 영주성 근처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라이덴과 협상을 한뒤,아크는 베라미에게 영지에 대규모의 교역소를 세우라고 지시했다. 물론 그 돈은 영지의 공금이다.공금은 아크가 개인적으로 착복할수 없엇지만, 공적인 용도라면 어디에 쓰든 결정권은 영주에게 있다. "다른 모든 공사를중단하고 교역소를 짓는데 전력을 다하도록" 그 명령을 들었을때 베라미는 어이가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현재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것은 수호탑과 성벽을 보수하는 일입니다. 설마 그 공사까지 중단하라는 겁니까?" "물론이지" 아크는 짐짓 진중한 얼굴로 끄덕였다. "시르바나의 발전이 늦어지는 이유는 그렇게 무의미한 공성전을 반복하며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야 그렇습니다만......." "나라도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지.나는 어차피 이번 공성전을 이길 자신이 없다.그렇다면 내가영주로 있는 동안 영지민들을 위해 뭐라도 하나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시르바나는 무역중개 지점으로 자리잡을수 있는위치다. 영지에서 관리할수 있는 교역소가 지어진다면 시르바나의 발전을 앞당길수 있을거야.그렇게되면 영지민들의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겠지.그런 귀한 자금을 내자리를 지키기 위해 낭비할수없다" "여,영주님!" 베라미의 눈길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이 영주는 영지를 지키는데만 급급하던 지금까지의 영주와 뭔가 다르다! 진심으로 시르바나와 영지민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말해두지만 아크는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니다. 이 똑똑한 베라미가 그렇게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팔팔 끓으며 공사를 진행시키는사이,아크는 짝퉁과 함께 은밀히 다른 계획을진행시키고 있었다. 아크는 공사를 지시한 직후,카이로트에 연락을 보내 월커스를 불러들였다. "월커스 아저씨,예전에 셀리브리드에서 큰 상점을 운영했다고 했죠?" "그랬지" "그럼 이곳에서 교역소를 운영해 보시겠습니까?" "교역소?" "네,시르바나 영지 소유의 교역소지만 ,잘 운영하면 아저씨도 상당한 보수를 받을수 있을겁니다. 만약 아저씨가 교역소를 맡아주겠다면 영주의 권한으로 로렌조도 수배가 풀리때까지 시르바나 영지에서 살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드리겠습니다" "그,그게 정말인가?"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든 내가 거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최선을 다해 이곳을 슈덴베르크 최고의 교역소로 만들어 보이겠네" 월커스는 덥석아크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지의 공금으로 만든 시설물은 유저에게 맡길수가 없다. 그러나 관리자를 고용하는것은 시설물을 만든 영주의 재량,아크는 일단 그렇게 교역소에 자신의 사람을 앉히는데 성공했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교역소의 수입은 모두 영지에 괴속된다. 교역소가 아무리 잘돼도 아크에게는 이득이 없다는 말. 그러나 아크는 라이덴을 통해 배운점이 있었다. '시스템의 규칙을 무너뜨릴수 있는것은 스킬이다!' 현실에서도 그렇지만 뉴 월드에서도 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스킬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법망을 피해갈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아크는 토지를 구입하고,교역소를 지을때부터 짝퉁과 함께 서류를 조작했다. 흔히 말하는 '이중등기'!물론 이중등기를 만들어도 당장 교역소가 아크것이 되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중장부를 만들어 수익금의 일부를 따로 빼돌렸다가 아크가 다시 시르바나를 차지하면 교역소와 돈을 사용할수 있도록 조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물론 그것은 교역소를 맡고 있는 NPC의 도움이 필요한일.월커스에게 내건 조건이 바로 이 이중장부를 만드는것이었다.그리고 그 감시역은 시드에게 맡겼다. "죄송해요" 며칠전 도착한 시드는 불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크와 갱생단이 맡긴 자본금 5,500골드.그러나 시드가 대성당에서 돌려받은 돈은 5,000골드 뿐이었다. 아란에게 사기당한 3,000골드는 보상받지 못한것이다.그러나 아크는 시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요.그 때문에 시드님도 그동안 감옥에서 고생하셨잖아요." "아,아크님...........!" "하지만 그건 그거고..........역시 돈을잃은건 시드님의 실수죠?" 아크가 빙긋 웃으며말했다. 역시 그냥 넘어갈 아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드가 불안한 눈으로 떠듬거렸다. "저,저는 지금 돈이 없어요!" "알아요,알아.저도 사람인데 설마 그걸 당장 다 갚으라고 하겠어요? 그냥 벌어서 갚으면 되잖아요" "버,벌어서요?하지만........." "후후후,제가 벌써 일자리까지 준비해놨어요.앞으로 시드님은 이곳에서 월커스아저씨와 함께 교역소를 꾸려나가주세요.고맙죠? 이 취업난에 .월커스 아저씨라면 보수를 넉넉히 챙겨줄거에요.물론 그 보수의 50%는 차압하겠지만,4,000골드를 모두 갚을때까지" "4,000골드? 어,어째서......?" "수입의 50%씩 뗴서 갚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잖아요.은행에 넣어놔도 이자가 붙는데.......그 정도면 싸게 해주는거라고요" 아크의 말에 시드는 사색이 되었다. 그러나 은근히 노려보며 협박을 해대니 달리 도리가 없었다. 결국 시드는 4,000골드가 될때까지 수입의 50%를 아크에게 주겠다는 계약서를 쓰고 말았다.완전한 노예 계약서!어쨌든 덕분에 아크는 교역소에 자신의 사람을 2명이나 심어둘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해놔도 아크가 다시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지않으면 아무런 소용이없다. 떄문에 아크는 또다른 계획도 진행시켰다. '비밀 던전은 성내에 있다!' 아크는 그점에 주목했다. 만약 언젠가 공성전을 벌일때,그곳을 이용할수 있다면 전세를 뒤바꿀수도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그동안 너구리족을 동원해 성밖으로 던전으로 들어가수 있는 비밀 통로를 만들었다.그리고 던전 입구를 봉쇄해 버렸다. 오직 너구리족의'굴파기'스킬로만 뚫을수 있도록....... '됐어,이제 언제든 세력만 모아 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면 성을 다시빼앗을수 있다' 그것이 바로 아크가 순순히 라이덴에게 성을 넘겨준 이유였다. 다른사람이 영주가 되어 고생고생해서 영지를 발전시켜 놓으면 날름 집어삼키기 위해! 그렇게 모든작업을 끝낸 아크는 다시 베라미를 찾아갔다. "베라미,성에남은 자금이 얼마나 되지?" "교역소를 서둘러 완공시키느라 50,000골드가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다른 공사는 모두 중단한 상태라 고용인들의 급료 17,000골드를 제외한 나머지 33,000골드가 남아있습니다" "공금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수 있다고 했지?" "네,물론입니다.단,영주님의 개인적인 용무로는......." "성에서 일하는 병사와 관리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싶은데" "네?" 베라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NPC영주나,유저 성주가 그들에게 보너스를 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크처럼 일찌감치 성을 포기하는 유저가 없었기 때문. "무,물론 가능합니다만........." "그럼 자네가 알아서 병사들과 관리에게 보너스를지급해.그리고 20,000골드는 영지민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도록.자네에게 특별히 200골드를 지급하지" 어차피 남의 돈이다. 아크는 한껏 기분을 내며 돈을 뿌려댔다. 아크의 선심에 베라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공금을 그렇게 기분내키는 대로 사용하면 당연히 앞으로의 영지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진다. 더구나 아크는 아직전쟁의 신전 기부금이나,각종 시설 유지비도 결제하지 않았다. 그 부분까지 생각하면 무리한 교역소 건설로 영지는 심각한 적자 상태나 다름없었다.한번 심각한 적자에 빠지면 그 여파는 몇달,아니,몇년이 갈지 모르는것이다. 그러나 베라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님의 배려에 모든 영지민이 감사할것입니다" 사람이든 NPC든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아크가 이렇게 공금을 뿌려대는 이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바로 라이덴을 골탕먹이기 위해서였다. 새삼스럽지만,아크는 라이덴의 배신을 용서한게 아니다. 때문에 설사 직접 손댈수 없는 공금이라도 라이덴에게는 땡전 한푼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날 건드리면 후회하게 된다고 경고했지? 어디,빈깡통이 되어 버린 적자 영지에서 마음껏 열받아 보라지!' 그리고 두번째 목적은 훗날 다시 시르바나를 차지했을때를 위한 포석이었다. -시르바나 영주민들의 친밀도가 올랐습니다. -널리 알려질 선행으로 명성이 300올랐습니다. 병사와 영지민들에게 돈다발을 안겨주자 아크의 친밀도가 급상승했다 .이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언젠가 아크가 다시 시르바나를 차지하려할떄 어떤식으로든 도움이 되리라. 그렇게 시르바나에서 폭풍같은 일주일이 지났다. 공성전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아크는 NPC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다. "내가 영지에서 해야할일은 모두 끝났습니다.비록 부족함이 많았지만 조금이나마 여러분에게 도움이 잊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제 곧 공성전이 시작될것입니다. 하지만 저는영주자리를 지킬능력이 없습니다. 무익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이대로 성을 떠날 생각입니다. 하지만 약속하겠습니다. 시르바나는 나의 제2의 고향,언젠가 영지를 지킬 힘을 얻게되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아크는 빙글 몸을 돌려성을향해 양팔을 활짝 펼쳤다. "잘있어라,시르바나 ,곧 되찾으러 오마!" "아크 영주민 만세!" "크흐흑,안녕히 가십시오.영주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꼭 다시 돌아와 주셔야 합니다!" '저희는 영주님만 기다리겠습니다!" 베라미와 병사,영지민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열광했다. 뭐랄까...........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드디어 시르바나가 내 손에 들어왔다!" 라이덴은 최상층 집무실에 앉아 광소를 터트렸다. (:원본에는 달틴으로 표기....이하생략 ) 그렇게 오랫동안 염원하던 영지를 드이어 손에 넣었다. 당장은 큰돈이 되지 않겠지만,곧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주리라! 우울하게 바라보던 듀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수익이 나기 시작하면 저에게 약속한 지분을주시기로 한거 잊으면 안됩니다" "물론이지.두달만 참아라,영지가 B등급까지만 올라가면 그런 신발쯤은 몇개라도 사줄테니.아크녀석,이 영지의 가치도 모르고..............크크큭!" "영지의 재정 상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베라미가 집무실로 찾아왔다. 라이덴은 한껏 오만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말해봐라" "현재 영지는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현재 성내의 재정은 0골드이며,며칠 안으로 결제해야 하는 돈은 12,000골드입니다.기간 시설물의 보수,유지 비용을 한동안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임 영주께서는 일전에 부서진 성벽과 수호탑의 보수를 하지않으셨습니다. 다음 세금이 걷힐때까지 시간이 걸리니,만약 보수를 원하신다면 영주님의 사비로 충당해 주셔야합니다. 아,그리고 재정적자를 메우기 전까지는 영주님에게 급료를 지불할수 없습니다" "가,가만!그게 무슨소리야?재정이 0골드라니?" "전임 영주님께서 굉장히 좋은 분이셨다는 말이죠" 베라미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가 보기에 아크는 진심으로 영지민을 생각하는 좋은 영주였다. 비록 그 결과 영지가 적자에 허덕이게 됐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그런 착한 영주를 몰아내고 들어앉은 라이덴이 곱게 보일리가 없었다. 베라미는 관료식 비아냥을마음껏 날려주었다. "한번 예산을 뽑아 볼까요?" 그제야 라이덴은 아크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이 자식........아크!네놈이 감히.......!" 라이덴의 입에서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기껏 영주 자리를 차지하고도 무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처지가 된것이다. 그뿐인가? 당장 다음주에 공성전도 치러야 한다. 지금부터 당장 성벽과 수호탑을 보수해도 빠듯한 일정.그러나 세금은 며칠뒤에야 들어온다. 사재를 털지 않으면 공성전때까지 보수를 끝내지도 못할 판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돈 빨아먹는하마를 떠안아 버린것이다. "죽인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크 자식을 죽여 버리고 말겠어!" "그 전에 성을 지키는게 먼저입니다" 신발까지 날려먹은 듀크가 안절부절못하며 말했다. "빌어먹을......할수 없지.헤르메스 연합원들을 모두 불러모아!일단 자금을 확보해서 성벽과 수호탑의 보수공사를 시작하는게 급선무다. 여기서 성까지 뺴앗기면 우리는 끝장이야" "알겠습니다" 듀크가 허둥지둥 밖으로 뛰어나갔다. 라이덴은 거칠게 탁자를 후려치며 이를 갈아붙였다. "으드득,기다려라,아크............영지가 안정되면 라이덴을 농락한 대가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무슨 짓을해서라도 기필고 네놈에게 이 빚을 받아내겠다!" 그러나 라이덴의 복수는 꽤나 시간이 걸릴듯하다. *ACT 4에서 라이덴이 원본에는 달틴으로 표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대체 달틴은 누구신지..) ACT 5 아란 척살대 "음,좀 난감한데?" 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정신없이 게임을하다보니 또다시 리포트를 제출해야하는날짜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현우는 마감이 코앞에 닥쳐서야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겨울방학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부랴부랴 밀린 숙제를 하는식이다. 그래도 매번 1~2시간이면 리포트를 끝냈으니 이번에도 큰문제는 없으리라.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어디까지 편집해야 하지?' 공성전 얘기가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영지를 팔아넘기는 과정이 문제였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영지의 매매나 양도는 불법.물론 게임안에서의 얘기니 현실에서는 크게 문제 될게없었다.그러나 사실 말이좋아 매매지 실상은 사기나 다름없었다.게다가 교역소에는 '이중등기'에 이중장부.비밀 던전에는 나중에 영지를 뺴앗기 위해 땅굴 1호까지 파놓았다. 결국 이번 영지 매매는 비리와 위법의 결정체라고 할수 있었다. 스스로는 정당성이 있다고 굳게 믿는 현우였지만, 글로벌엑서스에서도 그렇게 생각해 줄지는 알수 없다. '역시 그 부분은 몽땅 빼 버리는게 좋겠어' 문제가 생길일은 최대한 피하는편이 좋았다. 결국 다사다난했던 일주일은 그냥'성을빼앗겼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다. 어쩐지 밋밋하다 싶었지만 ,어떻게 쓰든 성을빼앗겼단 사실은 변하지않으니까. "자,이제 리포트도 끝났고............" 현우는 이메일을 발송하고 기지개를 쭉폈다. 비밀던전에서의 사냥과 영지 매매...........정말 숨쉴틈도 없는 일주일이었다. 그래도 모든 일을 끝낸뒤에 푹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새벽에 운동을 다녀와 리포트까지 보내놓고 나니 이제야 한달이 지났다는 실감이 났다. 그러나 한달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 "가계부를 정리해볼까나!" 현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때라면 항상 빠듯한 가계부에 한숨부터 나왔겠지만,이번달은 다르다! 현우의 가계부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잇었다.현실의 가계부와 뉴 월드의 가계부.두 가계부는 이미 떼려야 뗄수 없는 관계다.그리고 마치 시소 처럼 어느한쪽이 올라가면 반대쪽은 내려갈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을 팔지않으면 실질적인 수입을 얻을수 없는 까닭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런 공식이 깨졌다. '2,000만원!' 며칠전 '신성한 강철 방패'가 낙찰된 가격이다.사실 그정도까지는 기대도 안했다. 예전에 유니크 철퇴,'화염의학살자'를 ,700만원에 팔았던 적이 있었지만,같은 유니크라도 무기와 방어구는 비교할수 없었다. 게다가 방패는 방어구 가운데서도 가격이 낮은 편이었다. 1,500만원만 받아도 잘받은거지,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경매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나도록 1,40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2,000만원을 올려놓고 즉시 구매를 요청한것이다. "헉,보............봉이다!" 마침 경매 사이트에 접속해 있던 현우는 얼른 승낙했다. 즉시 그매는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남은 경매기간을 취소하고 곧바로 낙찰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시스템.낙차가만큼의 돈을 미리 입금시켜놔야 요청할수 있다. 다른 사람처럼 괜히 한번 찔러보는게 아니라는뜻이다. 과연 몇시간도 되지않아 수수료를 제외한 1,860만원이 동장으로 입금되었다.대체 아이템 하나에 2,000만원이나 뿌려대는 인간의 뇌 구조를 이해할수 없었지만,그렇게 머리에 총맞은 인간 덕에 현우는 올겨울을 따뜻하게 보낼수 있게 되었다. "이것만으로도 두세달은 거뜬하겠어!" 행운이든 불행이든 올때는 한번에 몰려오는 모양이다. 현우는 대강 가계부를 정리하고 ,이번에는 아크의 가계부를 펼쳐보았다. 그곳에도 현실 가계부와같이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숫자들이 노닐고 있었다.일단 첫번째 항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드르 석방시켜 되찾은 5,000골드.더이상 시드에게 큰돈을 맡겨 놓을수 없었으므로,아크는 그 돈을 지분에 따라 분배했다. 아크의 지분은 58%,2,900골드였다. 거기에 영지를 팔아 받은 돈 4,000골드! 그러나 참으로 아쉽게도 영지판매 대금은 현우 혼자 꿀깍 할수없었다. 영지는 혼자 힘으로 차지한게 아니다.경생단과 NPC들의 도움이 80%이상 작용했으니 어느정도 지분을 양보해야한다. 갱생단은 이번 공성전을 치르느라 투자한 돈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크로스와 실피드 기사단도 피해가 컸다. NPC라도 어느정도 보수는 챙겨줘야한다. 대놓고 보수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묘족이나 너구리족,도적들에게도 어느정도 뗴어 줘야 하고.....유저들은 몰라도 NPC들에게는 절대 치사하게 보이면 안돼' 현우는 10원짜리 하나에 목숨을 걸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바보는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세상에 나와서 별의별꼴을 다 경험했다.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고,안겪어 본일이 없을정도였다. 그런 과정에서 한가지 배운것이 있다면..........돈이란 두가지 종류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즉,혼자 먹어도 소화가 잘되는 말랑말랑한 돈과 혼자 먹으면 100%채하게 되는 돈이 있다는 말이다. '공성전을 함께한 NPC들은 내가 뉴 월드에서 닦은 기반의 전부다' 믿을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공성전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았다.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그들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생기리라.NPC들도 현실의 인간과 다름없다. 뭔가를 해줬으면 그만한 보답을 원하는게 인지상정. '훗날을 위해서라도 결코 인색해서는 안된다' 현우는 영지의 판매 대금가운데3,000골드를 과감하게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가장 고생한 정의남과 갱생단에게 1,000골드 그리고 크로스 들과 도적,묘족,너구리족에게 2,000골드를 적당히 분배해 주었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우리는 자네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달려온것이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 순수한 우정이죠.하지만 내마음이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말하지는 못했지만 저 때문에 전장에서 죽어간 동료가 가슴에 맺혀 잊히지 않느군요.여러분이 적당히 알아서 유족에게 전해주십시오" 아크는 짐직 대범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할수 없군.자네의 그 말을 그대로 전해주겠네" 크로스들은 그제야 한숨을 불어내며 돈을 챙겼다. 마치 뼈와 살을 깎아내는 기분이었지만, 과욕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법이다. '그래도 이번에 들어온 수입은 3,900골드나 된다!' 거기에 아기돼지 삼형제의 현금카드로 다시 40골드를 찾아 160골드가 되었다. 모두 4,060골드!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들었다. NPC들에게 수고비를 챙겨줄 이유는 여기에서 나오는것이다. '이번 달은 그동안 고생한 보상을 한방에 몰아 받는 기분이군.매달 이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뭐,세상이 그렇게만만하면 가난한 사람따윈 없겠지만.....' 현우는 가계부를 챙겨넣고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바로 뉴 월드에 접속할까 하다가 시계를 확인하고 TV를 켰다. 마침 게임 특종이 방영할 시간이었다. 정보는 곧 힘이다. 그리고 온갖 유언비어가 판치는 정보사이트와 달리 TV방송의 정보는 공신력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방송되니 정보의 신선도는 떨어지는 편이지만,대신광범위한 정보를 다뤄주어 꽤 도움이 되었다.몇 개의 광고가 흘러간 뒤에 곧바로 게임 특종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시청자 여러분" 이제 익숙한 여성 리포터가 예쁘게웃으며 인사했다.그리고 짐짓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분들도 계시겠지만, 먼저 저희 취재원이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인 셀리브리드에서 입수한 화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곧이어 화면이 바뀌며 셀리브리드 광장이 보였다. 수많은 인파가 모인 광장에서는 왕성의 대변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이번에 시르바나에서 대성당의 한축을 차지하고 있던 아셔스 교단이 실은 수많은 비리를 저질러 왔음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교단의 특권을 이용해 수많은 이권에 개입했음은 물론,무고한 자를 모함해 누명을 씌우는 등 그 참람된 행위는 더이상 묵과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대변인은 깊은 한숨을 불어낸뒤 말을 이었다. "이에 국왕 폐하꼐서는 교단을 폐쇄하고 철저히 조사,직접적으로 사건에 개입한 자들을 엄중 처단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떤식으로든 이들을 돕거나,숨겨주는자가 있다면 같은 죄목으로 처벌받게 될것입니다" '결국 진상은 덮어두기로 한모양이구나' TV에서 자신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기분이 이상했다. 어쨌든 고민끝에 국왕은 사자의 신 앙크에 대해서는 불문에 붙이기로 한 모양이다. 심상치않은 사건이 줄지어 터져나오는 근래,암흑 세기에 대륙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앙크가 거론되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유려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아셔스 교단을 방치할수도 없는 노릇. 때문에 다른 건수로 엮어서 지도자급의 NPC에게 수배령이 내린것이다. 현우에게도 나쁘지않은 상황이다.진상이 모두 밝혀지면 자연스럽게'아크'에 대해서도 말이 나올터.유저들의 관심은 사절인 현우에게는 이 정도가 딱 좋았다.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온 화면안에서 리포터가 말했다.그러자 남자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뉴 월드의 배경 설정을 살펴보면 대성당의 지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전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12교단의 성지.그게 바로 대성당이죠.그런데 그 대성당의 교단가운데 하나가 비리와 관련해 폐쇄되다니요.아셔스 교단을 따르던 신도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일이었을겁니다" "뉴 월드에 미칠 파장이 적지않겠죠?" "물론입니다. 일단 아셔스 교단의 신자들은 자진 신고 기간내에 관청에 신고하면 죄를 묻지는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을테니 말입니다" "아셔스 교단과 관련된 직업이나 부직업으로 전직한 유저들에게도 해당이 되나요?" "그렇죠.NPC에게는 유저나 NPC나 같은 사람일 뿐이니까요.그러나 큰 변화는 없을겁니다. 신고하고 다른 교단을 선택하면 직업은 그대로 유지되니까요"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까요?" "일단 올라온 정보에 의하면 아셔스 교단의 수뇌부는 대부분 잠적했다고 합니다. 잔당을 색출해 내는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죠.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점은 국왕의 결정이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과 아셔스 교단이 너무 조용히 물러났다는 것입니다.또한 왕권이 교권을 침범했는데도 다른 교단 역시 아무런 항의를 하지 않았고요" 남자 진행자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대외적인 명분 이외에도 뭔가 다른이유가 있지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머지않아 큰 사건으로 연결될게 분명합니다" 여성 리포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역시 게임의 이벤트를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할수 있을까요?" "글쎼요.글로벌엑서스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하지않고 있습니다" "너무 비밀이 많네요" "뭐,이해합니다. 그 점이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니까요" 남자진행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화제를돌렸다. "그런데 이번 사건으로 또 다른일이 밝혀졌다고요?" "네..........정말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여성 리포터는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이번 아셔스 교단 사건으로 뉴 월드의 많은 NPC가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면,이번소식엔 많은 유저들이배신감을 느끼리라 생각됩니다. 바로 홀리나이트로 알려진 아란경에 관련된 소식인데요" "공성전 방식이 문제가 됐다죠?" "네,전쟁의 신전에서 조사한 결과 밝혀진 일입니다. 그동안 아란경은 공성전 영주가 도전 길드를 선택할수 있다는 규칙을 악용해,시르바나에 유령 길드를 만들어놓고 계획된 공성전을 치러왔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공성전에 관련된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은..........." "연극이 탄로 날것을 염려한 것이겠죠" 여성 리포터는 우울한얼굴로 하소연하듯이 말을이었다. "솔직히 조금 속상하네요.많은 여성 유저들이 그렇겠지만 저도 아란경의 팬이었거든요.물론 누구라도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방법일지도 모르죠.하지만 하필이면 그 사람이 언제나 정정당당하게 게임을 한다고 주장하던 아란경이라니,믿었던 만큼 실망감이크네요" "그렇게 생각하는건 이혜원 리포터만이 아닙니다. 아란경은 그동안 수많은 유저들의 귀감으로 존경받던 유저였죠.때문에 더 크게 실망했을겁니다. 저희 홈페이지에도 아란경을 비방하는 글이 수천건 이상올라오고 있습니다. 반면 옹호하는 글도 적지않습니다. 정당한 수단은 아니지만, 방법자체는 규칙을 어긴게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오히려 시스템의 맹점을 파악하고 활용한 아란경이 대단하다는 평도 있더군요.그런데 이게 앞으로 나가란의 판도에 영향을 줄까요?" "전쟁의 신전에서는 나가란에 적용되는 특별법을 재정비,곧 영주가 도전자를 지정하는 조항을 삭제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영주가 위협적인 길드의 도전을 피할수 없게 된 만큼,더욱 치열한 공성전이 벌어질것입니다" '하,이번 게임 특종은 모두 나와 관련이 있는 내용뿐이네' 아셔스 교단의 몰락과 아란의 유령길드. 모두 현우가 밝혀낸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벌인일이 TV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고,수천수만명이 댓글을 올리는 일들이 벌어지자 짜릿한 느낌이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사건이 확대되는것 같아서 겁도 났다. '내 이름을 거론하지않은게 천만다행이다" 내심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자 진행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아란경의 입장이 꽤나 곤란해졌겠군요" "네,사실 유령길드 문제는 유저들의 반감을 샀지만,말씀드렸다시피 뉴 월드에서 범법 행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란경과 아셔스 교단의 관계가 문제가됐죠.이번에 왕성에서 조사하는 과정에서 아셔스 교단이 은밀이 상위NPC를 파견해 아란경을 돕고 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이는 분명한 범법 행위죠.그리고 아란경은 그 대가로 교단의 비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숨겨왔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란경도 아셔스 교단의 잔당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아란경이 수배자가 됐다는 건가요?" "네,왕성에서 직접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아란경이 수배자가 되는 바람에 여명의 칼날 길드도 해산되었고,불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하긴,무엇보다 평판이 중요한 길드의 리더가 유저와 NPC,모두에게 지탄받으니 더 이상 길드를 유지하는것도 의미가 없겠죠" "아란경의 심경이 복잡하겠군요" "그렇겠죠.TV로 얼굴까지 공개되었으니 더 그럴겁니다. 제가 찾아갔을때도 인터뷰는 커녕,만나주지도 않더군요.아시겠지만 뉴 월드는 한사람이 한 캐릭터밖에 만들지 못합니다.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재기할수 있을지는 두고봐야겠죠" "높이 날수록 떨어질때의 충격도 커지는 법이죠.그만큼 유명했던 아란경이기에 역경을 딛고 일어나기는 더욱 힘들겁니다. 하지만 게임은 게임,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돌파구가 있단게 게임의 매력 아니겠습니까? 비록한때의 실수로 어려운상황에 처했지만,유저들에게도 '경'이라는 칭호로 불릴만큼 뛰어난 게임센스를 가진 만큼 다시 재기 할 날이.........." ".............오지 않아" 현우는 TV를 끄며 중얼거렸다. 남자 진행자의 말은 정석이다.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현실에서는 그대로 인생 끝인 상황이라도 게임속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유저가 게임을 포기할정도로 몰아붙이는 게임은 존재하지않는다. 재기할방법은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으리라 .설사 살인을해도 유효기간동안 숨어다니면 카오틱수치가 내려가듯이 말이다.아니,수배자가 됐으니 경비병이나 헌터에게 당해 감옥살이를 하는것만으로 모든 죄가 사라진다. 비록 한번 잃은 세력을 다시 규합하기는 쉽지않겠지만,풍부한 자금과 영악한 잔머리를 가진 아란이라면 어떻게든 재기할수 있으리라.그러나 여기에는 남자 진행자가 모르는 변수가존재했다. .............아란의 상대가 바로 현우라는 것이다. '아란,말했지?너는 상대를 잘못 건드렸다고' 이미 갱생단과도 합의가 끝났지만 ,현우는 이정도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첫번째 이유는 물론 원한 때문이다. 레리어트와 로코에게 한짓도 그렇지만 3,000골드의 원한은 무서운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바로 아란본인에게 있었다. 아크는 아란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지만,그점은 아란역시 마찬가지리라. 만약 아란이 수배를 풀고 다시 예전과 같은 세력을 얻게 된다면 그 칼날은 틀림없이 현우에게 향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우는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더 귀찮아질게 뻔하다.현우는 얌전히 그때까지 기다려줄 정도로 물렁하지않다. '바닥이라고? 천만에,이건 시작일 뿐이야' 싸움에 진개는 한번 더 걷어차라! 다시말해 걷어찰수 있을때 실컷 걷어차야 한다는 말이다. 밟으면 밟는만큼 아란의 재기는 느려지고,현우는 안전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안좋으면 아란이 당분간 접속하지 않을지도 몰라' 해결사와 짝퉁, 불끈이가 아란을 찾아내겠다고 떠난게 벌써 일주일이 다 돼간다. 물론 부활장소도 모르고 유저를 찾아내는게 쉬운일은 아니지만,이렇게까지 오래 걸린다면 아란이 아예 접속을 하지않을 가능성도고려해 봐야 한다. '하지만 아란은 응시자야.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을수는없어' 그때,전화벨이 울렸다. "나다, 아란을 찾아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불끈이였다. "아란을 찾았다고요?" "그래,젠장!아란 녀석이 수배자라 나가란 근처에서 얼쩡대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어.셀리브리드 근처까지 와있더라고" "셀리브리드?" 아크가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크 역시 아란이 나가란 근처에 숨어 있으리라 생각했다.수배자가 된 아란은 경비병의 공격 목표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약이 덜한 나가란이 활동하기가 편한것이다. 그런데 보통 마을도 아니고,경비병과 헌터들이 우글거리는 셀리브리드 지역으로 들어오다니?죽으려고 작정을 했나?이해할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쨌든 나에게는 기회다!' "어쨌든 지금 해결사가 뒤를 쫓고 있어.우리만으로는 놈을 따라잡아도 어떻게 할수 없으니 최대한 빨리 셀리브리드로 날아와" "네!" 현우는 집어던지듯 전화를 끊고 유니트에 올아탔다. [아란(이방인) 아셔스교단과 모종의 음모를 꾸몄던 범죄자. 홀리 나이트로 실력이 뛰어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 최종 목격 지역 : 나가란 이후 행적이 묘연함 난이도 : ??? 현상금 : 300골드 현상금 지급자 : 셀리브리드 대법관] '근사한걸!' 셀리브리드에 도착하니 아란의 수배 전단지가 보였다. 슈덴베르크의 각 영지에 있는 게시판에는 요 며칠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현상금 수배자가 등록되었다. 아셔스 교단의 NPC들이었다. 보통 NPC수배자는 그 지역에서만 적용되는 반면,왕성에서 현상금을 내건 아셔스 교단 잔장은 적국적으로 수배가 되었다. 아란은 역시 당당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상금 300골드! NPC가 유저에게 거는 현상금으론 전례가 없는 액수. 현상금의 액수는 곧 패널티의 강도다. 보통 10골드에 24시간. 만약 아란이 감옥에 갇힌다면 적어도 한달은 햇빛구경을 못하게 되리라. 한 달...........그만큼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응시자인 아란은 어떻게든 수배가 풀릴때까지 도망다닐수 밖에 없다. "쳇, 이 자식, TV에 나와서 잘난 척하더니........." "결국 그렇게 키운것도 다 그런 치사한 방법을 사용한걸거야" "그래도 한때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실망이야.얼굴만 그럴듯한 거였어!" 주변 사람들은 게시판에 열이면 아홉은 이렇게 욕설을 퍼부었다. 사실 아란이 이렇게 까지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전쟁의 신전에서 조사한 결과,아란처럼 유령 길드를 사용하던 길드들이 더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아셔스 교단과의 일도 게임을 하다보면 그럴수 있다. 그럼에도 유난히 아란만 집중포화를 받는 이유............TV에서 말한것처럼 높이날수록 떨어질때의 충격은 큰것이다.아마도 자존심이 강한 아란 입장에서는 이게 성을 잃은것보다 더 큰 타격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동정심이 생기지는 않는다. '주제가 안되면 정의의 용사라는 가면따위는 쓰지말았어야지' 아크가 속으로 마음껏 비웃어 주고 있을때였다. "아크야!" 연락을 받은 불끈이가 달려왔다. "아란은요?" "여기서 멀지않은 산에 숨어 있다. 해결사와 짝퉁이 감시하고 있어" "그럼 출발하죠" "그런데 큰형님과 다른 녀석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괜찮겠냐?" "걱정 마세요.이제 아란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닐거에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불끈이와 함꼐 셀리브리드를 빠져나왔다. 불끈이는 '속삭임의 깃털'로 해결사와 교신하며 아란을 뒤쫓았다. 그리고 대략 10분뒤,어두운 숲 안쪽에서 아란을 발견할수 있었다.아란은 너덜너덜해진 장비를 걸치고 곰팡이가 핀 밀빵을 먹고 잇었다. 마을에 들어가지 못하니 수리도 제대로 못하고,음식도 사지못해 가끔 도적들이 떨구는 밀빵으로 만복도를 채우고 있는 것이리라. 일주일 전만해도 1천여명의 연합원을 거느린 영주였던 아란치고는 비참하기 짝이 ㅇ벗는 모습이었다. '동전이라도 하나던져 주고 싶은 몰골이군' 아크는 진심으로 동정심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주변에 이전 길드원 몇명쯤은 붙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마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무렵의 아란이라면,그래도 몇명은 의리를 지켰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레리어트가 고민했던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아란은 변했다. 길드원을 마치 부속품 취급하며 냉정하게대했다. 그래도 길드원들이 따랐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응시자였기 때문.명성이 자자한 아란과 함께 다니면 합격 확률이 올라가리라 기대한 것이다.그러나 이제 아란은 그 모든 명성을잃어버렸다. 굳이 수배자와 함께 다니며 위험을 자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아란의 인덕은 이해득실의부산물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불쌍한 녀석.........그런 몰골로 앉아 있으면........더 패주고 싶어지잖아' 아크는 인정사정없는 인간이었다. "형님들,놈이 도망갈지도 모르니 주변을 포위하세요" "뭐? 정말 너 혼자 상대해 보려고?" "한번 해봐야 할것 같아서요" ".........알았다." 해결사와 짝퉁,불끈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자리잡은 것을 확인한 아크는 여유롭게 걸어나갔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아란은 놀란 토끼처럼 흠칫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반쯤 씹던 밀빵이 발치로 툭 떨어졌다. 정말 눈물나서 못 봐주겠다. "너........네가 어떻게............!" 아크의 얼굴을 확인한 아란이 이를 갈아붙였다. "말했지 ?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고" "너 이지식, 잘만났다!" 아란이 다짜고짜 달려들며 검을휘둘렀다. 검으로 막아낸 아크가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불시의 공격이라 충격을완전히 분산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입가에는 오히려 옅은 미소가 번져나왔다. '역시 예상대로다!' "상황 파악을 못하는군" 아크는 곧바로 자세를 잡으며 검을 내찔렀다. 무턱대고 다려들던 아란이 움찔하며 방패를추켜올렸다. 평소라면 가볍게 막아냈을 공격,그러나 방패에서 굉음이 울리며 아란은 뒤로 몇걸음이나 물어났다. 방패로 막았음에도 생명력이 적지않게 빠져나갔다. "이.이게 무슨.......?" 아란이 당혹스러운얼굴로 중얼거렸다. 아크는 쓰윽 훑어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이제야 좀 상황 판단이 되시나 아란경?" 한차례의 격돌로 나온 결론은 단순하다. 놀랍게도 아크의 능력치가 아란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아크는 이미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란의 직업은 홀리 나이트 ,홀리나이트의 최대 강점은 바로 병력을 활용할떄 최대의 능력이 발휘된다는 점이다. 거느린 병사 숫자만큼 능력치가 가산되는 특성! 또한 명성이 높아질수록 스킬의 위력이나 효과 범위에도 보너스를 받는다. 때문에 집단 전투에서는 아크가 레벨이 훨씬 높아도 아란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아란은 이제 완전히 외톨이 신세,능력치를 올려줄 병력이없다. 그러나 아크는 아란이 주저앉는 동안 오히려 성장했다. 시르바나의 비밀 던전에서 레벨은 180까지 올려놓았다. 여기에 어둠 속성 보너스를 적용하면 무려 252! 반면 아란은 그동안 고작 4레벨을 올려 160이었다.이제 레벨도, 추가 능력치도 아크가 훨씬 높은 것이다. 중갑을 입었다고 해도 아크의 검격이 꽤나 아프게 느껴지리라. "어디,정정당당하게 맞짱 한번 떠 보자고!" ........솔직히 별로 정정당당하지는 않다. 퍼퍼퍼펑! 어쨌든 아크는 본격적으로아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며 몸을 회전시킨다. 보통 전사라면 가장 빈틈이 많이 생기는 타이밍,그러나검투술을 익힌 아크는 이미 오래전에 그런약점을 극복했다. 기회다 싶어 달려드는 아란에게 뒤돌려 차기가 작렬했다.중갑을 입은 아란에게 묵직한 발차기가 쥐약이었다.능력치까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면 말할것도 없다. "헉, 상태 이상?" 아란은 비틀거리며 '슬로우'에 걸려버렸다. 이어 아크의 손에서 화려한 검격이 펼쳐졌다. 정확히 갑옷의 틈을찔러 들어가는 정밀한 공격!연속적으로 치명타가 터지며 아란의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가싿. "빌어먹을,홀리 라이트!" 아란이 황급히 신성 마법을 펼쳤다. 빛의 구슬이 어둠을 밝히자 어둠 속성 보너스가 해제되었다. "천상의 빛, 미러클 포스,디펜스 오라!" 뒤이어 아란이 세가지 오라를 중첩시키자 공격력과 방어력 따위가 급상승했다. 그러나 홀리나이트의 신성 마법은 명성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카오틱이 되는 바람에 명성이 바닥까지 내려가 버프효과도 반감되었다. 그래도 아크의 어둠 속성 보너스가 해제되고,아란의 능력치가 올라가자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흥,그래도 한때 날렸다 이거냐?" "아직 네놈에게 당할 정돈 아니야!" 아란이 폭풍처럼 검을 휘두르며 아크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실력에서는 여전히 아크가 앞서고 있었다. 오직 혼자서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 온 경험만큼은 어떤 버프로도 따라잡을수 없는 것이다. 터텅,카카칵! 아란의 공격이 한번 적중될때,아크의 공격은 서너번이 적중했다. 그러나 생명력이 깎이는 속도는 오히려 아크가 약간 빨랐다. 어둠 속성에게 추가 데미지를 주는 홀리 나이트의 특성,거기에 갑옷도,검도 레어급 아이템으로 도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란도 그 점을 깨달았는지 검을 휘두르는 속도에 더욱 힘이 붙었다. "멍청한 놈, 혼자 내 앞에 나타난걸 후회하게 해주마!"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네" "뭐?" "미안하지만 내 힘은 이게 전부가 아니야.마령 소환,데이모스!" 순간 아크의 앞에서 흐릿한 빛과 함께 데이모스가 소환되며 아란의 검을 막았다. 그 사이는 몇 미터 뒤로 물러났다. "하,언데드 따위로 나를 막겠다고?" 아란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데이모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홀리 나이트에게 언데드따위는 수수깡만도 못한 상대인 것이다. 그러나 아란의 검이 막 데이모스를 갈라놓으려는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 였다. "슬라이드!" 아크는 듀크에게 뜯어낸 바람 정령의 부츠 특수 옵션 '슬라이드'를 전개했다. 그러자 발 차기를날리는 동작 그대로 주욱 미끄러졌다. 아크가 몇 미터가 떨어져 있어 안심하고 있던 아란은 옆구리를거어차여 한발 물러났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바람정령의 부츠를 탐냈던 이유다.보통 발차기는 주먹의 3배에 달하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실전에서 태권도가 복싱에 밀리는 이유......발차기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싱은 주먹을 날리면서도 상체를 움직이거나 스텝을 사용할수 잇다.그러나 발차기는 사전동작에서는 현란한 스텝을 밟아도 일단 공격자세로 들어가면 움직임을멈출수밖에 없다.자유롭게 상체를 움직일수도 없고,스텝을 밟을수도 없다. 실전에서는 이게 엄청난 패널티로 작용한다. 위력은 강하지만, 그만큼 반격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격투기 대회에서 화려한 발차기가 제대로 빛을 보지못하는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같은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발차기보다 복싱을 사용하는게 더 유리한것이다. 현실에서는 결코 넘을수 없는 벽! 게임에서도 그런 벽은 존재했다. 때문에 초반에는 발차기의 비율이 높던 아크도 점차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지면서 발차기를 제대로 호라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발차기 동작에 들어간상태로 이동할수 있다면? 아크는'슬라이드'를 사용하며 듀크를 보며 그런 발상을했다.그리고 그 조합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자유자재로 거리를 조절하며 날려대는 발차기! 데이모스에게 붙잡혀 있는 아란은 속수무책으로 발차기에 두들겨 맞았다. 빙판을 미끄러지는듯한 동작으로 날려대는,일명 슬라이드 킥이다.아이템하나도 상황이 일변했다. 그것이 게임의 묘미! 데이모스를 공격할라치면 아크의 슬라이드 킥이 두통수를두드린다. 아크를 쫓아나서려고 하면 데이모스가 방패로 후려친다. 언제나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이런 협공을 받아본적이 없는 아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명력만 깎여 나갔다. 강력한 스킬은 커녕 회복 마법조차 제대로 사용할수 없었다. 그러나 레어급의 중갑을 걸친 아란은 꽤 오랫동안 버텨내고 있었다. 물론 블레이드 스톰을 사용하면 금방 결판을 낼수 있었지만 아크는 집요하리만치 슬라이드 킥만 사용하며 아란을 몰아붙였다. '잘근잘근 씹어주마!' 그동안 맺힌 원한을 한방을 풀수는 없는 것이다. "크윽.......!" 아란의 뒤로 물러나며 회복 포션을 꺼내들었다. 연방 회복 마법을사용하다가 결국 마나까지 바닥을 들러낸것이다. "어림없다. 마령 소환 데드릭!" "아하,내 차례인가!암흑 돌진!" 데드릭은 소환되자마자 아크의 의도를 알아채고 맹렬하게 돌진했다. 데드릭이 손목을들이받자 아란은 포션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크와 두 마리의 소환수에 둘러싸여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 끝장이다!" "젠장, 할수 없지.플래쉬!" 순간 아란의 몸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플래쉬'마법이 크리티컬로 발동했습니다. '플래쉬'효과로 인해 10초간 시각 마비가 되었습니다. 방심했다! '플래쉬'는 가장 초급 마법으로 마법이 발동할때 눈만 감아도 피할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러나 정면에서 받은 아크의 눈은 그대로 기능을 상실 해버렸다. "우아아악,내 눈깔!" 데드릭역시 눈을 부여잡고 헤매다가 나무를 들입가고 떨어져버렸다. "심안!" 아크는 재빨리 반지의 효과를이용해 시각마비를 풀고 검을 들어올렸다. 기회를 잡은 아란이 강력한 필살기로 반격해 올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사이 아란은 데이모스를 밀어내고 반대쪽으로 도망치고 있었다.그 모습을 확인한 아크는 피식 웃었다. "너무 늦었어,아란" "가긴 어딜가?" 그때, 앞에서 불끈이가 불쑥 나오더니 아란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아란이 벌러덩 자빠졌다. 뒤이어 양옆에서 짝퉁과해결사까지 나타나자 아란의 얼굴이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죽음을 직감한것이다. "귀염둥이를 죽인 원한은 깊다!" "..........재신의 가호,장비 교체!" 불끈이와 짝퉁, 해결사가 와락 달려들자 아란이 어금니를 깨물며 소리쳤다. 순간 아란이 빛에 휩싸이더니 철컥철컥하며 장비아이템이 교체되었다. 여유만만하던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헉!아,안돼!죽여요,아란을 죽여요!" 아크가'전력 질주'를 사용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불끈이와 짝퉁,해결사가 일제히 공격을 날렸다. 쩡,하는 소리와 함께 아란의 생명력이 바닥났다.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아란의 입끝이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나를 죽이는.......것만도 영광으로 ............생각해라...........그 이상은 바라지마........" "빌어먹을!"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나왔다. 카오틱 캐릭터는 사망 시 받는 패널티가 2배다. 경험치 60%와 모든 스탯-2!그러나 그보다 무서운 패널티는 무조건 장비 아이템 가운데 하나를 떨군다는것. 아란의 장비는 모두가 레어급이니 뭐든 떨어지면 대박이다. 전투중에는 입고 있는 방어구를 교체할수 없으니 확률은 100%다. 그런데 아란은 마지막 순간에 괴상한 스킬로 장비를 몽땅 잡템으로 바꿔 버린것이다. [낡은 신발 방어구 타입 : 가죽 신발 방어력 : 15 내구력 : 7/35 무게 : 5 사용 제한 : 레벨 70 이상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신발입니다] 허접스럽기 짝이없는 정보창을 보자 울화통이 치밀었다. "젠장,아란 자식........야, 이놈 뜯어 먹어!" 아크의 명령에 소환수들이 아란의 시체에 달려들었다. [데이모스가 '뼈 수집' 스킬로 갈비뼈를 재조립했습니다. 뼈를 갈취 당한 상대가 플레이어일 경우,플레이어의 능력치와 교환됩니다. <데이모스 : 체력+5,방어력 +2> <아란 : 체력-5,방어력-2>] [데드릭이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빈 슬롯에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 : <디펜스 오라>방어력을 20%올려줍니다. 마나 소모 : 초당10] 시체까지 탁탁 털어먹었는데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않았다. 아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각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혹시 아란이 마지막에 갱신한 병참이 어딘지 아세요?" "그래,셀리브리드의 북문 근처 병참이다" "...........그래요?" 해결사의 대답에 아크의 얼굴이 환해졌다. 카오틱 유저는 죽을때마다 아이템을 하나씩 떨군다.입고 입은 장비가 우선적이지만,그걸 몽땅 떨구면 가방에 있는 아이템을 떨구기 시작하리라.그렇다,아란의 장비를 빼앗을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죠?" "물론이죠!" "그럼 적당히 사냥하다가 내일 병참으로 가죠.아란이라면 분명 제시간에 접속할거에요" 아크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크가 부활장소를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건지,아니면 아크가 무서워 접속 안하는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는지,정확히 24시간 뒤에 셀리브리드 병참에서 부활했다. "어이,되게 반갑네" "아크......!" 아란이 잡아먹을 듯이 아크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뉴 월드엔 분노만으로 상대를 죽이는 스킬은 없다. 이번 전투는 훨씬 쉬었다. 이미 정의남과 갱생단도 모두 합류한 상태.13명이 둘러싸고 다구리를 때리자 아란은 맥없이 누워 버렸다. 또한 아란도 이미 반쯤 포기했는지 전투가 걸리자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않았다. 아란이 죽자 또다시 허접스러운 잡템이 하나 떨어졌다. 그러나 아크는 그다지 신경 쓰지않았다. 자존심 강한 아란의 성격상 몇번을 죽여도 악에 받쳐 계속 부활할것이다. 그때마다 때려죽이다 보면 언젠가는 쓸만한 아이템을 하나 떨구지않겠는가? '어라? 왠일이지?' 그러나 두번이나 죽은 아란은24시간이 지나도 접속하지 않았다. '힘빼기를 하자는건가?' 어차피 응시자인 아란이언제까지나 접속하지 않을수는 없다. 아마도 아크가 기다리다 지쳐 포기하기를 바라는 모양.그러나 집요하기로는 아크도 만만치않다. 아크는 갱생단 3~4명과 교대하며 병참을 지켰다. 그렇게 12시간.......아크도 슬슬 지쳐가고 있을때, 갑자기 병참에서 아란이 부활했다. '하,그러면 그렇지.네가 부활하지 않고 배겨?' 아크와 갱생단이 벌떡 일어나 아란을 포위했다. "재신의 가호,장비 교체!" 그때였다.아란이 다시 스킬을 사용해 본래의 장비로 바꾸었다.그리고 곧바로'돌진'을 사용하며 방패로 짝퉁을 후려쳤다. 방어력이 낮은 짝퉁이 벌러덩 넘어지자 아란은 껑충 뛰어넘어전력을 다해 달려갔다. "도망가 보겠다는 건가? 어.......?" 서둘러 뒤쫓던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아란이 도망가는 곳은 셀리브리드였다. 전국에 지명 수배된 카오틱이 경비병이 우글거리는 도시 안으로 도망친다. 그건 그야말로 죽여 달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뒤늦에 아크는 아란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렇군,저 자식.도망가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제 발로 감옥에 가려는 것인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수배자가 헌터나 경비병에게 죽으면 자동적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크가 아란의 수배지를 등록시키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현상금도 좋지만 헌터로 등록하면 아란은 한번밖에 죽일수 없는 것이다. 아란은 그점을 이용하려는게 분명했다. 아크에게 계속 죽어 장비 아이템을 떨구느니 차라리 경비병에게 죽어 감옥에서 썩다 나올 생각이리라. "그렇게 놔둘것 같으냐? 뱀, 검!블레이드.......엇?" 뱀이 뱉어 내는 검을 들고 스킬을 사용하려던 아크가 움찔하며멈췄다. "엇, 저,저자는........?" "아란이다!" 아란이 북문으로 달려가자 경비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그곳에 블레이드 스톰을 난사하면 경비병들까지 휘말려 버린다. 그렇게 되면 아크는 당당히 범죄자로 등록되리라. 아크는 다시 검을 챙겨 넣고'전력 질주'로 달려갔다. 어떻게든 경비병보다먼저 아란을 처치해야 한다! "이런,뭐하는 거야 ? 방해되잖아!" "어이쿠 죄송합니다. 저도 헌터라 아란을 잡으려다 보니까........" 아크는일부러 경비병들의 진로를 막으며 거리를 좁혀갔다. 그러나 이미 아란은 수많은 경비병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그런데 아란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죽으려도 뛰어든 녀석이 쉬지않고 회복 마법을 사용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부활 직후의 행동도 이상하다. 죽을 작정이라면 장비 교체를 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건가?' 아크는 아란이 도망가는방향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저,저건........설마 아란 녀석?' 아란이 달려가고 있는 곳에는 우체통이 있었다. 분명 일반 우체통으로는 아이템을 주고 받지 못한다. 하지만 일반 우체통으로도 아이템을 주고받을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경매 사이트! 자 ,여기서 경매 사이트의 아이템 배송 방법을 알아보자. 아크가 던전 같은 곳에서 바로 아이템을 경매에 올려놓고,또 구입한 사람이 받을수 있는 것은 독특한 뉴월드의 시스템 덕분이었다. 유니트와 컴퓨터를 연결한 상태에서 경매 사이트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아이템을 경매에 올려놓을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팔린 아이템은 결제가 완료되면 자동적으로 구매자의 우편함으로 전송된다. 게임안에서는 물건이라도,현실에서는 데이터 이기에 가능한 방업이었다 . '아란 놈은 분명 이 상황을 벗어날 아이템을 구입한 거야.그렇다면 그 아이템은.........?' 레어 중갑과 회복 마법으로 바퀴벌레와 같은 생명력을 가지게 된 아란은 결국 우체통에 도착했다.그리고 황급히 짐작대로 두루마리 다발을 꺼내들더니 쫙 찢어버렸다. 경비병들 사이에서 아란이 연기처럼 사라진건 그때였다. '역시 [워프]주문서!' 그렇게 아란은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쳇, 다 잡았는데........" 코앞에서 수배자를 놓친 경비병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흩어졌다. 그러나 아크만큼 분한 사람이 또 있을까? '[워프]의 이동 거리는 대략 500미터.하지만 주문서를 다발로 가지고 있었으니 미친듯이 사용할거야.어디로 이동했는지 알아내지 못하면 추격할 방법이 없다' 아란은 카오틱 유저에게 가장 필요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무작위로 순간 이동을 시키는 주문서! [워프]주문서는 아크는 물론, 아란조차도 자신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예측할수 없다. 추격자에게 그보다 까다로운 주문서는 없는 것이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건가?' 물론 해결사들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낼수 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얼마나걸릴지 장담할수 없었다. 또한 아크가 추적하고 있다는것을 알았으니 시간을 주면 무슨 수작을 부릴지도 모른다. "빌어먹을,헌터 등록이라도 해놨으면 300골드라도 건졌을텐데........" 아크가 분한 목소리로 이를 갈아붙일 때였다. 쌕썍?쌕쌕쌕! 갑자기 뱀이 펄쩍 뛰어 내려가 아란이 사라진 곳으로 기어 갔다.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더니 이내 한방향을 향해 몸을 빳빳하게 세웠다. 뱀이 이정표처럼 화살표 모양으로 한쪽을 가리키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뱀이'스토킹'을 사용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공격했던 적의 현재 위치를 파악해 낼수 있습니다. '워프'나 '텔레포트','포탈'따위를 사용했을경우,마나의 흐름으로 이동 위치를 예측할수 있습니다. 단, 정확한거리 계측은 불가능하고 방향만을 알아낼수 있습니다. 또한 1시간 이상 정보를 갱신시키지 못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현재 마나의 흐름 : 남서 방향>] "어라? 스토킹?" 아크는 솥뚜껑만한 눈으로 뱀을 바라보았다. 뱀의 정보창을 확인할 이유가 없었기에 지금까지도 그런 스킬이 생겼단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혼자서 배운거야?" 쌕!쌕쌕쌕! 뱀이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끄덕였다. "됐다!어이구 ,귀여운 내 새끼!" 아크는 뱀을얼싸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그러자 뱀이 도움이 되어 행복하다는 눈빛으로 볼을비벼댔다. 아크는 곧바로 갱생단을 불러모아 상황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예 헌터 등록을 마친뒤에 넓은포위망을 만들어뱀이 가리킨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란 ,이번이 마지막이다.감옥에 보내주지,내 손으로.........' ACT 6 살린의 후예 "헉헉헉!" 아란은 숲을 헤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워프]주문서를 썼을때 완전히 아크를 따돌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크와 갱생단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놈이 [추적]주문서를 가지고 있는 건가?' 반경 1킬로미터 내에서 지정한 상대의 위치를알아낼수 있는 [추적]주문서! 만약 아크가 주문서를가지고 있다면 위험하다. 다급해진 아란은 [워프]를 난사해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아크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때,아란은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아크 일행은 분명 아란이 이동한 지점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위망을 만들어 좁혀온다는것은,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략적인 방향만 알수 있단 건가?' 주문서가 아니라면 뭔가 특수한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란은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란은 목적지로 이동하다가 포위망이 좁혀졌을때만 주문서를 사용해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게 아란의 실수였다. 만약 아란의 주문서를 1시간이상 사용하지 않고 버텼다면 뱀의'스토킹'으로도 방향을 알아내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아란이 적절하게 주문서를 사용하는 바람에 뱀은 계속해서 정보를 갱신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집요한 추격전 끝에 결국 주문서도 1장밖에 남지않았다. '젠장,한 다발이면 충분할줄 알았는데........하지만 괜찮아,이제 목적지가 코앞이다. 그곳에 도착만 하면........오히려 아크놈들을 몰살 시킬수도 있어!' 아란은 멀리 있는 산등성이를 바라보았다. 카오틱인 자신이 안전하게 쉴수 있는 곳. 아니,자신을 도와 아크를 죽여줄자들이 있는곳! 그런 세력은 뉴 월드에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다크브라더! 그렇다, 아란이 위험을 무릎쓰고 셀리브리드까지 온 이유는 다크브라더와 접촉하기 위해서였다. 아크가 그렇듯,아란역시 아크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아크만 없었다면 영지를 빼앗기지도,수배자가 되지도 않았을것이다!내가 뉴 월드에서 쌓아온 모든것을 한순간에 먼지로 만들어 버린 자식........수백, 아니 수천 골드를 써서라도 네놈만큼은 기필코 게임을 접게 만들고야 말겠다!' 어쩌면 아크를 따돌리지 못하는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다크브라더와 함게 찾아다닐 수고를 하지않아도 되니까. '현실이든 게임이든 결국 최후의 승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다. 가진것 없는 놈은 결코 있는자에게 이길수 없어!내가 그 사실을 네놈의 뼈에 새겨주마!' 아란은 분노를 에너지 삼아 결국 산등성이를 넘어섰다. 기억을 더듬어 숲을 뒤지자 곧 수풀로 가려진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다크브라더의 접선 장소로 이어진 동굴.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가자 예의 손바닥 문장이 그려진 공동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이전에는 모두 어둠속에 숨어있던 암살자들이 공동 안을 돌아다니다가 아란을 발견하고 검을 뽑아들었다. "웬 놈이냐? 그놈들은아닌것 같은데.......?" '그놈들?' 뭔가 이상했지만 아란은 그런걸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다크브라더인가? 일을 의뢰하러왔다" "일을?이곳은 아무에게나 의뢰를 받는 곳이 아닌데?" "나는 아란이다. 일전에 한번 일을 의뢰한적이 있다" "아란? 홀리나이트 아란?"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 암살자들은 저들끼리 뭔가를 속닥거리다가 곧 아란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안쪽까지 들어가자 어둠속에서 누군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넓은 등에는 예의 손바닥 문장이 새겨진 망토가 펄럭이고 있었다. 일전에 봤던 노인은 아니었지만, 암살자들의 태도를 보니 책임자인 모양이다. "인도자님,아란이라는 자가 일을 의뢰하고 싶다고 합니다" 인도자라고 불린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상대는?" "아크?시르바나 영주를 말하는건가?" "놈은 벌써 성을 빼앗겼어,이제 영주가 아니다" "그런가? 모처럼 빼앗은 성을 호락호락하게 넘겨줄 녀석이 아닌데?" 사내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그런건 나와 상관없지.하지만 그 이름도 유명한 아란경께서 허겁지겁 달려와 의뢰를 할정도면 아크라는 자가 그리 만만한것 같지는 않군" "돈이라면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 다크브라더 전체를 고용하지.목적은 아크의 무한암살!기간은 아크가 뉴 월드에서 사라질때까지다" "그런 조건이라면 대가가 장난 아닐텐데?" "돈은 얼마나 들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흠, 꽤나 쌓인게 많은 모양이군 .하긴, 나도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얻어서 너와 아크의 관계는 알고 있다.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라지? 그리고 유저와 NPC,모두에게 찍혀버린 지금의 네게는 다크브라더 외에는 기댈데가없겠지" "받아들일 거냐, 아니냐?" 아란이 불쾌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아란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크브라더는 NPC조직이다. 하지만 방금 사내는 '유저'와 'NPC'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뉴 월드의 NPC에게 그 두가지 단어는 금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사람은 유저라는 말이 아닌가? 그것도 아크와 아란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저? 아란은 경계심이 깃든 얼굴로 한걸음 물러났다. "누구냐, 너!" '그러고 보니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한적은 없었군" 사내가 처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마스크를 쓰고있어 정호가한 외모는 알수 없었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분명 처음 보는 유저는 아니다. 어디서 봤던가........잠시 기억을 더듬던 아란의 입에서 경악성이터져 나왔다. "헉,너............작센에서...........!" "기억해 주니 고맙군" 알고 있다! 작센에서 항상 아크의 옆에 있던 사내,그 이름은......! ".........샴바라라고 한다" "네 ,네가어떻게?" "말하자면 길지. 하지만 다 생략하고 결론을 말하잠녀 네 의뢰는 거절한다" "뭐?" "아크와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이 있거든. 뭐,꼭 그때 문은 아니지만........어쨌든 대상이 아크가 아니라도 다크브라더는 지금 의뢰를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야,돌아가라"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곘다. 네게도 따로 돈을 지불하지.얼마면 되겠나?" 아란이 다급한 어조로 소리쳤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현재 샴바라는 다크브라더에 강한 영향력을행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NPC조직에 돈을 낸다고 샴바라의 주머니에 들어가진 않을터.아란은 샴바라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않으니 의뢰를 거절했다고 판단했다. "...........건드려 버렸군" 순간 샴바라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않아.특히 돈 때문에 사람을 배신하는인간을 경멸하지. 하지만 경멸이라는 말조차 쓰기 아까워하는 인간이 있다. 누군지 알아?" 샴바라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너처럼 돈을앞세워 배신하도록 시키는 놈들이다" "............!" "잘됐군 .아크와는 아직 해결할일이 남아있지. 어떻게 시간을 내서 아크와 결판을 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너라면 교환 조건으로 충분한 값어치가 있을것 같아" "너 이자식!" "놈을 생포해라" 샴바라의 명령에 사방에서 암살자들이 몰려들었다. 상황이 급변하자 아란은 와락 몸을 돌리며 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 와서 허망하게 죽을순 없다!' 아란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단검을 쳐내며 도망쳤다. 상대는 암살 기술만을익힌 암살자들! 암살자들은 교뵤하게 아란을 몰아붙이며'마비'나 '슬로우'따위의 상태이상을 걸어왔다.그러나 아란도 명색이 홀리나이트다. 곧바로 3개의 오라를 중첩시켜 상태 이상 저항력과 방어력을 최대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쉬지않고 회복 마법을 사용해 버텨왔다. 중갑을 입고 회복 마법을 사용하는 홀리나이트가 이렇게 방어 일변도로 가면 바퀴벌레에 버금가는 생명력을 가진다. 아란은 방어태세를 유지하며 조금씩 포위망을 벗어났다. "순보!" 그때, 뒤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함을 느끼고 돌아보자 샴바라가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란이 움찔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샴바라는'화경'을 펼쳐 검격을 흘려내고 명치에 단검을 쑤셔 박았다. 뒤이어 단검을 뽑아내며 붕권을 날리자 우적하는 소리와 함께 아란은 몇미터나 투이겨 나갔다. 샴바라의 연쇄 스킬! 연속 공격에 단숨에 500의 생명력이 깍여 나갔다. '이런 망할.......!' 배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밀려 본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전부턴 그야말로 동네북이 따로없다. 아크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으며 쫓겨 왔더니,이제 샴바라가 두들겨 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병력을 갖추고싸우면 아크나 샴바라 따윈느 얼마든지 뭉개 버릴자신이 있었다. 아니,하다못해 명성만 원래대로 회복되어도 이렇게 맥없이 당하지는 않으리라.그런 놈들을 상대로 이런 비참한......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그러나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다. 암살자들과 함께 공격하는 샴바라는 아란에게 너무나 강한적이이었다. "방어력 상승, 이동력 상승!" 아란은아이템에 붙어있는 옵션이란 옵션은 모두 발동시켰다. 그리고 다시 방어 태세로 암살자를 쳐내며 도망쳤다. 한심하지만 그게 아란이 할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방어력을 올려도 데미지를 무시할수 없다. 가랑비에 옷젖듯 생명력이 줄어들어 10%밖에 남지않았다. '하지만 일단 포위는 풀어냈다!포션을 마시며 달리면.......' 아란이 그렇게 약간의 희망을 품었을때였다. 마치 닌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샴바라가 벽을 밟으며 앞질러와 앞을 가로막았다.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다. '포박'!" 샴바라의 입에서 마치 스파이더맨의 거미줄같은 것이 뿜어져 나왔다. 빈사상태의 적을옭아매는 어쌔신 계열의 전용 스킬! '아,안돼!이놈에게 잡히면 다시 아크에게......!' 번뜩,서걱! 밧줄이 막 아란의 몸을휘감으려는 찰나! 어둠 속에서 몇개의 검광이뻗어나와 밧줄을 갈가리 끊어버렸다. 동시에 몇명의 복면인들이 뛰어나와 샴바라를 공격하는 장면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들의 복면에도 손바닥 문장이 찍혀있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샴바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쳇, 이놈들이 아직도....!" '뭐야? 어째서 암살자가 샴바라를?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란이 잠시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이네,아란경!" "당신은........?" 다급한얼굴로 손짓하는 사람은 노인이었다 .일전에 아란에게 직접 의뢰를받았던 나베인이란 이름의 노인! '뭐가 뭐지는 모르지만, 기회다!' 아란은 뒤에서 달려드는 암살자를 방패로 쳐내며 나베인에게 달려갔다. "자, 퇴각한다!" 새로 등장한 암살자들이 아란과 나베인의 뒤로 몰려들어 입구를 막아섰다.뒤이어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고 ,그사이 아란은 나베인과 함께 동굴을 빠져나올수 있었다. 동굴 밖에서 10여명의 암살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베인,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저들을 오래붙잡아 둘수는 없어.게다가 곧 다른놈들도 몰려들거야.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하네" "다른 자들?" "앞뒤가 꽉 막힌 멍청한 자들이지!" 나베인이 거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어쨌든 따라오게!당신에게도 나쁜 얘기는 아닐테니" 아란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나베인을 따라 달려갔다. 어차피 동굴안에는 샴바라 그리고 아크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추적해 오고있다. 달리 갈곳이 없는 것이다. "대체 이자식 어디로 숨은거야?" 아크는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아란의 예측대로 아크는 바로 코앞까지 아란을 추적해 오고있었다.그러나 뱀의'스토키'으로 알수 있는 정보는방향.아란이 복잡한 동굴속으로 들어가자 뱀은 동굴이있는 절벽을 가리킬뿐.더이상의 정보는 알아내지못했다. '절벽을 따라 한바퀴 돌았지만 여전히 뱀은 절벽을 가리키고 있다. 바위에 박혀 있을리가 없으니 여기 어딘가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단건데.......' 아크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스토킹'의 지속시간은 1시간, 그전에 아란을찾거나,[워프]로 이동한 장소를 찾아내야 다시시간이 갱신된다,그러나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만약 그때까지 아란을 찾아내지 못하면 추격의 실마리가 끊기는 것이다. '놈이 던전 같은 곳으로 들어가니 오히려 헛갈리는 구나' 쌕쌕쌕! 그때,뱀이 목을 빳빳하게 세우더니 혀를 날름거렸다. 처음으로 절벽과는 다른 방향을가리키고 있었다. "뭐야? 뱀, 혹시 아란이 동굴을 나온거야?" 쌕쌕!쌕쌕쌕! 뱀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고개를끄덕였다. "데드릭,남쪽이다!수색해!" 아크는 얼른 뱀이 가리킨 방향으로 데드릭을 날려보냈다. 그리고 뒤따라 달리자 잠시후,앞서 날아갔던 데드릭이 허둥지둥 돌아왔다. "주,주인!놈을 발견했어" "어디냐?" "여기서 300미터쯤 앞이야.그런데 혼자가 아니야" "혼자가 아니라고?" "응,복면을 쓴놈들 10여명 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어" "복면?설마......다크브라더?" "맞아,복면에 재수없는 손바닥그림이 그러져 있었어" '그렇군,다크브라더.......이제야 알겠어' 이제야 아란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으로 도망쳤는지 이해할수 있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다크브라더의 암살자들을.............. 아란은 그 와중에도 아크에게 복수할 생각을 버리지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크브라더라면 아란이 카오틱이됐어도상관없이 의뢰를 받아들이리라. '젠장,설마 이곳이 다크브라더의 영역일 줄이야' 상황이 다급해졌다. 지금까지는 쫓는 입장이었지만,아란이 다크브라더에게 암살을 의뢰하면 이제 쫓기는사람을 아크와 갱생단이 될것이다. 더구나 이곳은 다크브라더의 안마당,놈들이 작정하고 나서면 빠져나갈수 있을지도 장담할수 없다. '이미 아란은 다크브라더와 접촉했다. 그들이 아란을 보호하면 죽일 방법이 없어. 하지만 아직 암살자들이 움직이는 기미가 보이질 않는 걸 보면 의뢰를받지않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좋아,물러날때 물러나더라도 정확히 알아봐야겠다' "데드릭,적당한 거리를두고 놈들을 뒤쫓는다" 아크는 데드릭을 앞세우고 아란의 뒤를 은밀히 밟았다. "저기로 들어갔어" 데드릭이 교묘하게 숨겨진 동굴을 가리켰다. "주변에 암살자는?" "보이지않아" "그렇다면........." 아크는 조심스럽게 동굴에 접근했다. 입구를 위장해 놓고 앞에 보촐르 세우는 얼간이는 없다. 그러나 그 안쪽에는 암살자들이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으리라. 아크는 일단 데드릭을 대기시키고 동굴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던전효과가 적용되었다. 아크는 곧바로 '은신'으로 몸을 숨긴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들킬 염련 없다' 뒤이어 아크는 발소리를 죽이며 동굴을 따라 들어갔다. 동굴안은 무슨 비밀 기지처럼 몇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각 지역마다 상당한 숫자의 암살자들이 모여있었다. "'은신'이 풀리면 볼것이 없이사망이군" 다행히 어둠 효과로 레벨 252에 달하는 아크의'은신'을 간파하는 암살자는 없었다. 그러나 안심할수 없다. 발소리를 내서 상대가 의심하도록 만들거나, 옷깃이 마주치면'은신'이 발각될 확률이 높아진다.더구나 상대는 암살자,그들도'은신'을 사용하는 만큼 간파하는능력도 일반 NPC보다 뛰어나리라. '들키지 않는다고 해도 지속 시간은 15분밖에 안돼.그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한다' 아크는 조심스럽게 동굴의 구조와 암살자들의 숫자를파악해 나갔다.그렇게 거의 동굴 끝 부분까지 들어갔을때, 문득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 가 들려왔다. "살린?" '아란의 목소리다!' 아크는 재빨리 모퉁이에 붙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촛불의 어스름한 빛이 번져있는 공간에서 아란과 한 노인이 마주앉아 있었다. 노인........나베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살린........세상에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살린은 바로 7인의 영웅 가운데 1명이었던 세이난의 진명이지" '세이난?' 세이난이라면 사냥할때 종종 나오던 뉴 월드의 역사책에서 거론되던 이름이다. 7인의 영웅 가운데 가장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사람.그는 본래 7인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둠과 싸우던 도중에 한 영웅이 쓰러지고 위기에 몰렸을때 ,혜성처럼 나타나 영웅들을 구해주었다고 한다.그 뒤로도 다른 영웅들은 흉내조차 낼수없는 놀라운 기술을 선보이며 활약해 최후의 결전에서 영웅의 칭호를받게 되었다. "여기서 왜 세이난의 이름이 나오는 거지?" 아란이 기특하게도 아크의 질문을 대신해주었다. 나베인이 한결 낮아진목소리로 대답했다. "세이난.......아니,살린은 어쌔신 마스터 였네" "어쌔신 마스터?" "그래 ,모든 암살자들의 정점에 군림하는자 ,암살자 주의 암살자 살린" 나베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역사의 비밀을 떠들어 댔다. 살린은 당시 위세를 떨치던 다크브라더의 수장이었다. 그리고 암흑 세기 말기,다크브라더 그의 인생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의뢰가 들어왔다.대륙을 위협하던 강대한 적, 어둠의 제왕을 암살하라는........... 며칠을 고민하던 살린은 결국 의뢰를 받아들였다. 어둠에서 살던 다크브라더가 빛의 존재로 인정받을수 있는 기회라도 판단한것이다. 이로써 6명에 불과했던 영웅들은 비로소 전설의 7인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7인의 영웅은 어둠의 제왕을 무찔렀다. 살린은 한낱 암살자에서 당당한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고,세이난이라는 이름으로 시니어스 공국의 초대 공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어째서 다크브라더가 이런 곳에.......?" "영웅이 되면 다크브라더가 어둠속에서 나올수 있다고 생각한건 살린의 착각이었네.수백년에 걸친 역사는 한사람의 힘으로 어쩔수 있는게 아니었지.결국 다크브라더는 살린이 시니어스의 공왕이 된뒤로도 어둠속에서 그를 도왔네.하지만 당시는 암흑세기가 끝난 평화기,점차 다크브라더의 입지는 좁아져 갔네.그리고 결정적으로 살린의핏줄이 끊기게 되면서 다크브라더는 시니어스 공국와 결별하게 되었네.그때,구심점이되었던 보물까지 사라져 다크브라더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 "보물?" "본래 다크브라더는 먼이국의 유랑민이었네.당시 그들은 이 대륙으로 넘어올때 세가지 보물을가지고 왔다고 하지.그 보물의 힘을기반으로 다크브라더를 만들게 된거네.살린이 어쌔신 마스터로 불렸던 이유는 바로 그 세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었기 떄문이지" 나베인은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둠의 베일,모든 어둠의 힘을 막아낼수 있는 마력이 깃든 망토라고 전해지네.이것은 지금 다크브라더의 장로가 가지고 있네.그조차 없었다면 이미 다크브라더는 오래전에 사라졌을거야" "나머지 2개는?"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수천명의 피로 담금질한단검과 사체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이라고 하네.그것들을 하나하나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세가지가 모두 모이면 봉인을 풀어 어쌔신 마스터의 능력을 얻을수 잇다고 전해지네.하지만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모르네.살린의 혈통과 함께 역사속으로 사라졌지.아니,사라졌어야했어" 나베인은 와락 얼굴을구기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샴바라따위가 가지고 나타나서는 안되는 물건이란 말이야!" '샴바라!' 아크는 경악성이 목까지 치밀어 올랐다. 사실 아크는 나가란으로 가기전에 샴바라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답장이 없었다. 무슨 퀘스트를 해야한다고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오래걸리는 모양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곳에서 샴바라의 이름을듣게 될줄이야! '그럼 샴바라가 다크브라더와 관련된 퀘스트라고 했던게..............' 살린의 보물을가지고 다크브라더를 찾아가는 퀘스트였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대강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샴바라의 단검에 새겨져 있던 다크브라더의문장.그렇다,아크가 샴바라에게 팔아넘겼던 칼날은 보물의 일부였다. 샴바라 역시 그 단검을 완성하니 퀘스트가 발동했다고 했다. 7인의 영웅 살린의 보물 중 하나! '샴바라는 떠나기 전에 전직과 관련 있는 퀘스트라고 했어.어쩐지 직업도 스킬도 독특하다 싶더니........세인트어쌔신 역시 7인의 영웅과 관련이 있는 직업이었던 거야.그리고 전직 퀘스트란 살란의 세 보물을찾아내 최종적으로 어쌔신 마스터가 되는 거겠지' 묘하게 스킬의 호환성이 좋았던 것도 수긍할수 있었다. 과거 함꼐 어둠과 맞서 싸웠던 7인의 영웅.그들의 능력을 이어받은 아크와 샴바라가 손발이 안맞을리가 없는것이다. 게다가 어둠의 속성을 가진 마반영웅이나 어쌔신 마스터살린은 7인의 영웅 가운데서도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둘의 관계는 결코 평범하지 않앗으리라. 시공을 초월해서 그런 두영웅의후예가 만났다. 둘은 서로를 몰라봤지만 스킬은 과거를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치고는 정말 기가 막히는군' 아크는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뉴 월드의 장대한 세계관에 혀를내둘렀다. '어쨌든 내가 묘족이나 너구리족을 장악한것처럼 샴바라는 다크브라더를 장악했다는 말이잖아.그렇다면 더 이상 다크브라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단 건가?' 아크가 그런 기대감에 젖어있을때였다. 아란 역시 같은 의문을 느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샴바라가 살린의 보물을......그렇다면 접선 장소에 그가 나타났던 것도 이해가 되는군.그런데 어째서 나를 구해준거지? 그가 살린의보물을 가지고 있다면 다크브라더는..............." "인정할수 없네!" 나베인이 발악하듯이 고함을내질렀다. "나 역시 살린은 인정한다 .하지만 살린은 수백년전의 인물이야.그의 혈통도 아니고 ,우연히 그의 보물을 손에넣은 애송이에게 다크브라더가 좌우돼야 한다니.......말이 되는가? 수백년동안 다크브라더를 지켜온건 우리란 말이다!" "샴바라는 아직 다크브라더의 수장이 된게 아닙니까?" 아란의 질문에 나베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수장? 어림도 없지.아무리 신물을가지고 있어도 애송이따위를 수장으로 섬길리가 있겠는가?하지만 장로는 그를 받아들일 생각이네" "발아들인다?" "그래 ,다크브라더의 세력이 약해진것은 보물이 흩어졌기 때문이야.그러나 샴바라를 받아들이면 두가지가 모이는 셈이지.흩어졌던 다크브라더의 후예들을 모을 명분이 생긴다는 말이네.뭐,그것 때문만은 아닌것 같지만........" 나베인은 짜증섞인 목소리로 구시렁거리고는 말을이었다. "어쨌든 장로는 아직도 다크브라더가 어둠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있어.때문에 샴바라를 수장의후보로 인정하고,과거 살린이 그랬던 것처럼 시련을 부여할 계획이네.최정적으로는 나머지 신물을 찾아 샴바라라는 애송이를 어쌔신 마스터로 만들려는 거겠지"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붙이지만,정리하자면 간단하다. 샴바라는 7인의영웅 관련 직업으로 전직했다. 그리고 아크가 마반영웅이 남긴 삼신기를 찾아내야 하는것처럼, 샴바라 역시 살린의 세 보물을 찾는게 바로 2차 전직을 할수 있는 방법.그리고 마지막 3차 전직을 통해 전설의 어쌔신 마스터로 가는 열쇠가 되는것이다. 그러나 이건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아크 역시 묘족이나 너구리족에게 인정받기까지 쉽지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것을 실패하면 당연히 상위직업으로 전직할수 없다.새삼스럽지만 영웅 관련 직업을 가졌다고 모두 영웅이 되는건 아닌것이다. 즉 2차전직으로 가는 시련이란 말인데......샴바라의 경우는 이나베인이라는 놈의 방항을 어떻게 잠재우느냐가 관건인 모양이다. 역시 게임이라 복잡한 원한 관계도 간단하게 정리된다. 자,그렇다면 나베인은 어떻게 샴바라를 방해할 생각인가? 나베인은 아크가 궁금해하는것을 줄줄이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장로의 헛된 몽상 따위는 더이상 따를수 없어.살린조차 해내지 못한 일을 그따위 애송이가 할수 있을리가 없지.때문에 나는 다크브라더에서 떨어져 나왔네" "그럼........?" "얼마전에 샴바라는 장로가 부여한 시련을 통과했네.이제 시련을 통과한 대가로 곧 장로가 샴바라에게 어둠의 베일을 수여하겠지.근본도 없는 이방인따위에게 두가지 보물이 모인느걸 두고 볼수는 없네" 나베인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뿜어져나왔다. "기회는 그때뿐이야.두 보물의 힘을 공명시키는 의식을 위해 샴바라도 단검을 풀어놓게 되지.그때가 놈에게서 단검을 빼앗을수 잇는 유일한 기회야" "반란을 일으키겠다는 건가?" "반란이 아니네.빼앗긴 보물을 되찾고,장로와 샴바라를 숙청하는거지.그리고 내가 두 신물의 주인이 되어 다크브라더의 과거의 영광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나베인이 살짝 간듯한 목소리로 광소를터트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암살자가 많을것 아닙니까?" "그정도는 이미 조치해두었네.우리가 그동안 틈틈이 공격을 가했으니 의식이 진행되면 대부분의 형제들은 만약을대비해 외곽 수비에 동원될거야.그리고 다크브라더의 본영.........살린의 탑에는 우리 생각에 동조하는 형제들이 많아.거사를일으키면 함께 싸워주겠다는 약조를 받아놨네" 나베인이 음습한 미소를지으며 아란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장로의 결정을 지지하는 멍청한놈들도 적지않아.우리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지만 쉽지않은 전투가 되겠지.위험을 무릅쓰고 자네를 구한 이유가 그것이네" "도와달라는 건가?" 아란은 이미 나베인의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되물었다. "나쁜얘기는 아닐거야.자네의 사정이 어떤지는 나도 이미 알고있네.이미 자네는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설자리가 없어졌지.길드원들도 모두 흩어졌고,헌터들이 추적해오고 있으니 혼자서는 편히 쉴수도 없을거야.하지만 자네가 우리를 도와 거사를 성공시킨다면 잃었던 모든것을얻게 될거네. 다크브라더는 자네의 안식처가 될것이고,필요하다면 전력을 다해 자네의적을 물리쳐 줄거네" 아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영주에서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거기에 2차 전직을 약속했던 아셔스 교단마저 몰락했다. 어디에도 기댈수 없는 상황,그런 아란에게 노인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아니,달리 선택의여지가 없다. 다크브라더의 도움을 받을수 없다면 ,당장 코앞까지 닥쳐온 아크의 검조차 피하지못한다. 샴바라와도 적대 관계가 됐으니 다크브라더의 추격까지 받아야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나베인이 아란에게 거사에 대해서 털어놓은것은 친절해서가 아니다. 거절하면 살아서 나가지 못한다면 협박의 메시지였다. "좋아,협조하지" "자네라면 받아들일거라고 생각했네" 나베인이 듬성듬성한 이를 내보이며 히죽웃었다. 나베인이 위험을무릅쓰고 아란을 구한 이유......비록 아크와 샴바라에게 동네북처럼 얻어맞던 아란이지만,그에게 병력이 생긴다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홀리나이트의 각종 스킬은 병력이 많을수록 위력을발휘 하는것.게다가 그 모든 스킬으 부대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전쟁에서 홀리나이트의 존재는 수십명에 필적하는전력인것이다. "그전에 장비를 점검하고 쉬고 싶ㅇ은데.......장비를 봐 줄 사람이 있나?" "물론이지.말해둘테니 거사때까지 푹 쉬어두게" "거사는 언제지?" "내일,내일 자정이네" '내일 자정.......!' 아크는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시켜 놓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내일 자정이라면 대략 10시간후,다행히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일단 정의남 아저씨와 의논해 봐야겠다' 모르면 몰라도 일단 알게 됐으니 그냥 넘어갈수 없었다. 동굴을 빠져나온 아크는 정의남과 갱생단을 불러모았다.암살자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땅바닥을 박박 기었다. 덕분에 거지꼴이 된 아크를 본 로코가 비명을 지르며 세탁과 목욕을 시켰다는 .........기타등등의 상황은 바쁘니까 건너 뛰고,어쨌든 아크는 동굴에서 들은 얘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알려주었다. "네 말대로 모른척할수는 없겠군" 정의남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대부분의 전력이 본영에서 나가있는 사이에 배후를 치겠다............그 사전 준비를 위해 본영을 몇차례 습격할 정도의작전을 짤수있는 자라면 배후로 숨어들어갈 방법도 이미 준비해놨겠지.내부에서 동조하는 세력까지 있다면 반란은 성공할 확률이높아" "거기에 아란의 오라와 지휘,통솔력의 영향까지 받는다면..........." "게임 끝나는거지" 아란1명이 가세함으로써 부대가 얼마나 강해지는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5대 5의 싸움도 아란이 가세하면 7대3까지 차이가 벌어진다.카오틱이 되어 능력치가 많이떨어졌다고 하지만, 홀리나이트는 여전히 뉴 월드 최강 직업의 하나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아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샴바라가 당한다면 다크브라더는 아란이 장악하게 될 가능성이 커요"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엄청난 위협이 되겠지" 아란이 여명의 칼날을 이끌때는 그래도 위선의 탈을 쓰고 있었다. 문제가 생겨도 겉으로는 정의로운 기사를 연기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아란은 더이상잃은 명성도 없는 몸이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런 아란이 다크브라더를 장악하게 되면 무슨 짓을할지 알수없다. 유일하게 확신할수 있느 것은 아란의 첫번째 목표가 아크와 갱생단이란 것뿐이다. 모든 다크브라더 암살자들의 표적이 된다! 암살자들은 정상적인 NPC와는 다르다. 경비병들은 적대관계가 되도 게임조차 못할정도로 유저를 몰아붙이지는않는다. 그러나 암살자들이라면,그것도 아란의 명령을 받는 암살자들이라면 그런것도 서슴지않으리라.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부분은 바로 그것이다. "아란 녀석, 끝까지 귀찮게 구는군" "단순한 거야" 그때 ,짝퉁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지금 아란이 살수 있는 방법은 우리를 밟아버리는 수밖에 없어. 같은 의미로 우리가 살자면 아란을 밟아버리느 수밖에없다는 말이지" "흐흠,불구대천의 원수라는 거군" 타짜가 제법유식한 문자를 써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놈을 막기 위해서는 나베인의 반란을 막아야해" "샴바라에게 먼저 알리는게 시급하겠군" "하지만 샴바라와 연락이 안돼요.내일 자정에 의식이 열린다고 했으니 편지는 보내고 받아보지 못할거에요.다크브라더 본영이란곳의 위치도 모르고 찾아갈수도 없고........" "이걸 써보자" 정의남이 주문서 몇장을 꺼냈다. 정의남이 늦게 도착한것은 그 주문서를구하기 위해서였다. 아란이[워프]를 사용하자 혹시 몰라[추적]을 사들고 달려온것이다. 그러나 샴바라의 이름으로는[추적]이 발동하지않았다. 다크브라더의 본영이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있거나, 일반 필드와 달리 도시로 분류되어 있다는뜻이다. 각종 주문서도 도시 안에서는 제약이 많다.[추적]역시 도시안에 있는 유저의 위치를 알아낼수 없는 것이다. "이제어쩌죠?"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자 정의남은 잠시 생각에잠겼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다크브라더의 본영 위치는 모른다. 하지만 기습하려는 놈들은알고 있겠지" "아,그럼........?" "놈들은 내일 자정에 샴바라를 기습한다고 했지?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놈들을 막을수 없다. 그렇다면 아예 숨어서 감시하다가 뒤따라가서 놈들과 샴바라의 전투가 벌어졌을 때, 난입해서 놈들을 공격하는거야.어쩌면 그편이 샴바라와 함께 놈들과 정면대결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거다" "뒤통수를 치는놈들의 뒤통수를 치잔거군요" "바로그거지"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뒤로 아크는 암살자들의 은신처를 감시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냥 시간을 허비할순없다. '다크브라더의 암살자들은 강하다' 이미 몇번 싸워본 아크는 암살자들의 무서움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아크는 그때에 비할수 없을 만큼 강해졌지만.......... '뉴 월드에서는 NPC들의 레벨도 고정되어 있는게 아니야' NPC들도 레벨업을한다. 물론 그런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잇었다. 그러나 막상 NPC들과 전투를 앞두게 되니 그부분이 꽤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NPC의 전투를 처음본게 하베스틴 자작과 실피드 기사단이었다.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 실피드 기사단 레벨은 50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 레벨 20이었던 아크의 눈에 그들은 먼치킨처럼 보였다. 그러나 레벨 70무렵에 이벤트 퀘스트에 참가할때는 당연히 그들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피드 기사단은 여전히 강했다. 아크만큼이나 레벨을올렸다는 말이다. 유저들의 평균 레벨에 맞춰 NPC들도 레벨을 올린다는 뜻.혼자서 암살자 3~4명을 상대했다고 지금도 그럴수 있으리라는 보장은없다. '다크브라더 역시 예전에 나와 싸웠던 수준 그대로는 아닐거야' 아크는 감시하는 틈틈이 서바이벌 요리로 각종 버프음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꼬박 10시간이 지나 마침내 다음날자정.......... "이상한데?" 정의남이 고개를갸웃거렸다. "벌써 자정이잖아?다크브라더의 본부가 가까운곳에 있다고 해도 자정에 습격하려면 한참전에 움직였어야하는데.....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러고 보니.........." 아크 역시 아까부터 그점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는가금씩 동굴 근처를 순찰하던 암살자들도 보이지않았다. "제가 한번 살펴보고 올게요" 아크는'은신'을 사용해 동굴로 숨어들었다. '뭐,뭐야?어떻게 된거지?' 100여명이 넘게 우글거리던 암살자들이 하나도 보이지않아다.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 다급해진 아크는 동굴으 뛰어다니며 샅샅이 뒤져봤지만 고잭해야 3~4명의 암살자들밖에 찾을수없었다. '설마.......벌써 출발한 건가? 하지만 동굴 입구에서 한번도 눈을떼지않았는데..................대체 어떻게 그 많은 인원이 들키지 않고..........' 나베인의 말을 곱씹어 본뒤에야 그 이유를 알아냈다. "아차,잘못 생각했다.그 노인은 수비를 위해 병력이 외곽으로 나갔을때 기습한다고 했어.그렇다면 정면으로 쳐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이잖아.본영의 내부로 통하는 빔리 통로가있다는 뜻이야.그리고 놈들이 이곳을 나가지 않았다면 비밀 통로는 여기 어딘가에 있다!' 그렇다면 이미 아란과 나베인은 다크브라더의 본부로 이동하고 있으리라!다급해진 아크는 곧바로 동굴을 빠져나와 상황을 알려주었다. "젠장, 서둘러 비밀 통로를 찾아라!" 정의남과 갱생단이 동굴로 뛰어들었다. "뭐,뭐야 ?네놈들은 누구냐?" "보면 모르냐 ?정의의 편이다!" 콰직,퍽,우당탕! 시간이 없는 관계로 3~4명의 암살자들은 순식간에 박살이 났다. 해결사가 빈사 상태에 빠진 암살자들을 '결박'스킬로 묶어 버렸다. "크윽.........샴바라가 보낸놈들이냐?" "말해!여기있던 놈들은 어디로 갔냐?" "크크크,이미 늦었다.해방군은 한참전에 출발했어" "해방군 같은소리하고 자빠졌네.어디냐?다크브라더 본영으로 연결된 통로가?" "말해줄것 같으냐?괜한 기대하지 말고 죽여라!" 암살자가 제법 강단있는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용기도 해결사 앞에선 몇초도 버티지 못했다. "아 살루비아 으라차차!정말 삐- 해서 삐- 를 당하고 싶으냐?" 상급 협박! 암살자는 대번에 얼굴이 창백해지며 떠듬거렸다. "초,촛대..........." 해결사의 말에 아크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봤을때와는 촛대의 위치가 미묘하게 달랐다.아크가 촛대를 잡고 반대 방향으로 비틀자 기게음이 울리며 한쪽 벽면이 밀려들어 갔다. 그제야 '협박'에서 벗어난 암살자가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로 지껄여 댔다. "크크크,이미 늦었다. 지금쯤이면 이미 장로와 샴바라는 피떡이......." 퍼퍼퍽! 암살자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피 떡이 되었다. "시간이 없어요.샴바라가 당해버리면 모든게 끝장이에요!" 아크는 갱생단을 이끌고 비밀 통로로 뛰어 들어갔다. ACT 7 살린의 탑 "네,네놈들............" 사내가 피가 흥건한 가슴을 부여잡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리자 십여구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검은 옷에 복면을 쓴 암살자들........암살자들에게 죽음이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남을 죽인다. 그것은 나의 죽음을 각오해야 가능한일. 그들에게 죽음은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그의 눈동자에 비친 죽음은 다르다. 그의 형제들을 죽인 20명의 복면인들은 남이 아니라,이제까지만 해도 형제라고 믿고 잇었던 자들이다. 배신!어둠속의 살기에 더더욱일어나선 안될일이 벌어지고 있는것이다. 사내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더러운 배신자들 ,너희들의 손에 들린 검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비록 어둠 속에서 살아갈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지만 나름의 자긍심이 있었다.위대한 영웅 어쌔신 마스터 살린의 후예라는.너희들은 나베인의 꼬임에 넘어가 그조차 잊어버린건가?" "잊지않았다 .잊을리가 없지" "때문에 저따위 이방인을 수장 후보로 이정할수 없다" "우리는 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살을 잘라낸느 심정을 일을 벌인것이다" ".........정말 그런가?" 사내가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를둘러싼 암살자들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장로님께서 항상 말씀 하셨지. 어둠 속에서 살아도 결코 어둠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비록 영원히 닿을수 없다해도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름을 되찾는 그날까지.......하지만 너희들은 결국 자신의 손을 형제의 피로 물들이며 어둠 그 자체가 되고 말았군 .딱하다" "닥쳐 ,우리에게 이런짓을 강요한건 장로다!" "너라면 이미 상황을 파악했겠지?" "대답하라 ,358호.우리와 함께 새로운 다크브라더의 영광을 위해 살겠느냐 ,과거의 헛된 망상과 함께 죽겠느냐?" "쓸데 없는 소리!"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목을 바짝 치켜들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미 다크브라더가 아니다" ".......할수 없군" 암살자들이 일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순간 어두운 복도에서 우렁찬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다크 블레이드!" 어둠 그 자체가 날카로운 검이 되어 공간을 갈랐다. 막 검을내리치던 암살자가 엄청난 데미지를 받고 튕겨 나갔다. 암살자들이 일제히 몸을 돌렸다. 반대쪽 복도에서 10여명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살린의 탑에 있는 자들은 오직 검은 옷에 복면을 쓴 암살자들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뒤죽박죽, 아무 갑옷이나 되는 대로 입고 있었다. 그렇다, 암살자들의 은신처에서 비밀 통로를 따라 달려온 아크와 갱생단들이었다. 물론 암살자들은 그들의 정체를 몰랐으므로 당연한 질문을 던져왔다. "네놈들은 누구냐?" "샴바라의 친구들이다!" "뭣이?" 암살자들이 움찔하며 일제히 검을 추켜올렸다. 그러자 아크가 씨익 웃으며 정의남을 향해 말했다. "봤죠? 검을 들어올린 놈들은 모두 적이에요" "부상 입은 암살자만 빼고 몽땅 처리하면 된다는 말이군" 정의남은 상체를 숙이며 폭발적인 가속도를 붙여 암살자들에게 접근했다. 암살자가 화들짝 놀라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정의남은 측면으로 회전하며 암살자의 어깨를 갈고리 같은 손으로 꽉 틀어쥐었다. 아니, 틀어쥔다고 느끼는순간, 이미 암살자는 허공을 날아 반대쪽 벽에 처박혀 버렸다. "휘유,노인네가 아주 펄펄 나는군" "이제 현역 시절하고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는데?" "특수 기동대의 호랑이가 완전히 부활하는 것도 얼마 남지않았군" 갱생단원들이 그림 같은 배대 뒤치기에 혀를 내둘렀다. 레벨이 올라가면 당연히 강해진다. 그러나 정의남의 경우는 그 의마가 약간 달랐다. 한때 특수 기동대의 호랑이라 불리며 조폭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정의남.시합은 몰라도 실전에서 그와 1대1로 싸울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을 탁탁털어도 몇 되지않았다. 그러나 부상을 입고 은퇴한지 몇년,그 칼날 같던 실력은 녹이 슬어버렸다. 그리고 두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정의남은 근래들어 부쩍 그 감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나이가 들면 근력과 스피드가 떨엊니다. 그러나 뉴 월드에선 스탯으로 부족한 근력과 스피드를 보충할수 있었다. 되살아나는 실전 감각을 고스란히 전투력으로 환산시킬수 있는 것이다. "자, 어디 마음껏 덤벼 봐라!" 정의남남은 물만난 고기처럼 암살자들을 집어 던졌다. "노인네 따위에게 질수는 없지!" "우린 얼마전까지도 현역이었다고!" "크하하하,어디 한번 네놈들의 실력 좀 보자!" "오늘 날 잡았다. 이 삐- 하고 삐- 한자시들아 !" 갱생단도 각자 연장을 들고 암살자들에게 달려들었다. 슈,파파파팍! 타짜는 놀라운 손재주로 익힌 '단검 던지기'스킬로 닫ㄴ숨에 5개의 단검을 뿌려댔다. 불끈이는 강철로 된 권투 글러브를 끼고 암살자들의 면상을 닥치는대고 뭉개 버렸다. 암살자들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전열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해결사의 '협박'에 순간순간 경직되자 맥이끊겨 제대로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히트는 로코의 노래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진달래 꽃 살구 꽃......." 로코가 자리를 잡고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암살자들의 동작이 느려졌다. [로코 님의 등록된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이 발동됐습니다. <범위 안의 모든 카오틱 캐릭터의 투쟁심이 감소합니다 .힘-20,민첩-20,공격력-20>] 그동안 로코도 레벨이 많이올라 예술 스탯이 250이 되었다.거기서 또다시 새로운 능력이 생겼는데, 로코가 적당한 노래를 선곡해 스킬로 저장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성격에따라 발동 효과가 달라지는것이다. 가령 이번에 발동시킨 '나의 살던 고향'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카오틱 캐릭터의 투쟁심을 깎는것. "젠장, 매일 죽고 죽이고.......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으으으,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스킬이 발동하자 암살자들은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치 드라마에서 범죄자들이 슬픈 음악을 들으며 회의를 느끼는듯한 장면이었다. 음유시인,처음에는 허접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키울수록 괴상한 캐릭터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 조만간 노래하나로 카오틱을 자수하게만드는 스킬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정의남과 갱생단의 조직력은 예전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역시 경험만 한게 없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언제,누가 어떤 스킬을 사용해야 전투에 도움이 된느지 알게 된것이다. 나가란에서 공성전을 치른 경험이 뼈가 되고 살이 된것이다. 게다가 비밀 던전에서 밤을 세우며 광렙.......아니, 폭렙하며 각종 스킬도 엄청나게 올려놓았다. 그뿐인가?아크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음식으로 각종 능력치도 뻥튀기가 되었다. 덕분에레벨 140대의 암살자들을 상대로도 그리 힘든 기색이 없었다. '이제 형님들의 전투 방식도 완전히 자리를 잡았군' 아크는 흐뭇한 눈길로 갱생단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크 역시 놀고만 있진 않았다. "화격!" 아크는 암살자의 공격을 쳐내며 곧바로 되받아쳤다. 카운터로 인한 연쇄 스킬 화격! 암살자가 튕겨 나가자 뒤에 있던 자들까지 볼링 핀처럼 와르르 넘어졌다. "시간이 없어. 속전속결이다!뱀, 검 한자루!" 아크는 검을 받아들고 '블레이드 스톰'으로 폭발 시켰다. 공간을 가득 메우며 휘몰아치는 검의파편! 날카로운 파편이 성난 괴물의 발톱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암살자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댔다. 갈고리 박쥐를 사냥할때와 같은 몰이사냥.그러나 암살자들은 갈고리 박쥐처럼 간단하게 당하지만은 않았다. "크윽, 이, 이놈들......!" 암살자 몇명이 파편의 소용돌이를 뚫고 검을 휘둘렀다. 자세가 무너진 아크에게 치명타를 먹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검이 닿기도 전에 아크의 몸이 뒤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주르륵 미끄러졌다. 바람정령의 부츠를 이용한 '슬라이드'! "헛! 뭐,뭐야?" 덕분에 자세가 무너진건 헛손질을 한 암살자였다. 아크의 입 끝이 치켜 올라갔다. "슬라이드 킥!" 다시 미끄러져 들어오며 뿜어지는 상단 돌려차기! "무,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커억!" 관자놀이에 상단 차기를 얻어맞은 암살자는 치명타가 터지며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렇게 아크가 4명의 암살자를 처리하자 갱생단도 나머지를 처리하고 손을 탁탁 털었다. "좋아,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어" 갱생단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는 암살자 3~4명도 감당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장족의 발전이다. "후후후,죽어라 레벨을올린보람이 있구나" 실력을 키워 이기지 못했던 상대를 쓰러트린다.물론 이런 것은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몇 달, 몇년이 걸리는 일. 그러나 뉴 월드에선 보다 빠르고,명확하게 강해진다는 실감을할수 있다. 모든 게임 중에서 RPG가 가장 중독성이 강한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당신들은 대체 누구요?" 그때,뒤에서 사내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크는 조금 전의 상황으로 이미 대강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당신은 장로쪽 사람입니까?" "장로쪽?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있다는 말이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샴바라를 돕기 위해 달려온 겁니다" "샴바라라면......인도자?인도자를돕기 위해?"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샴바라가 이곳에서는 인도자라고 불리는 모양이군요.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죠.저희는 우연히 이 근처에서 샴바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지리는 전혀 몰라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모르겠군요.도와주실수 있겠습니까?" 사내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다크브라더의 본영인 살린의 탑은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되어있다. 그런 곳에 갑자기 이방인들이 나타나 돕겠다고 한다. 말 몇마디로 쉽게 믿을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크 역시 그의 심정을 짐작하고 있었지만,이런 상황에서 '나는 샴바라와 이런 사이다'라는 주제로 풀 스토릴르 떠들어 댈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아크란 이름을 대기도 뭐하다.상황이 묘하게 꼬였지만 ,아크는 아직 다크브라더와 적대 관계인 것이다.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팔을 들어 올렸다. "다크브라더라면 이걸 알아보겠죠?" "그건 ........인도자의 손목에 있던............전사의 명예?" "그렇습니다. 이걸 차고 있 사람은 단 2명.나와 샴바라 뿐입니다" "그럼 당신이............?" "악실리온에서 샴바라와 페어로 출전했던 다크울프가 접니다" "다크 울프!" 사내가 경악한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세상천지가 알고 있는 다크울프라는 이름을 다크브라더가 모를리가 없다. 그리고'전사의 명예'가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아이템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으리라. 덕분에 사내는 아크에 대한 의식을 털어냈다. "지금 상황이 어떻습니까?" ".......좋지 않소" 사내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얼마전 다크브라더를 이탈한 자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것은 알고 있었지만,설마 이렇게까지 치밀한 작전을 세워 의식적으로 날 노릴줄은......게다가 내부에서도 배신자가 기습을 가해 수많은 형제들이 쓰러진 상황이오" "샴바라는 ?" "인도자는 아직 무사할거요.아무리 놈들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정예가 지키는재림의 탑이 호락호락하게 무너질리 없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는........." "재림의 탑?" "의식이 행해지는 곳이오" "안내해 줄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오" 로코의 치료를 받은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자 ,나를 따라오시오.나는 358호라고 하오" 사내의 말에 의하면 다크브라더 일족은 특수한 직책을 갖고 있는 자가 아니면 이름을 갖는게 허락되지않는다고 한다.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할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어쌔신 마스터뿐이다. 때문에 살린 이후로 수백년동안 다크브라더는 번호로 불리고 있단다. "인도자가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어쌔신 마스터가 되어 우리의 이름을 되찾아 주는것. 이는 모든 형제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었소.그리고 몇백년 만에 처음으로 인도자가 나타났는데 나베인 일당이............." 358호는 바쁜 와중에도 NPC의 역활을 잊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다크브라더의 정보를 떠들어 대는것이다. 물론 아크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갱생단은 크게 공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남 일 같지가 않은데?" "하긴 숫자로 불리는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빌어먹을 간수 놈들 ,뻔히 이름을 알면서도 수인 번호로 부른단 말이야" "358호라........왠지 친근감이 드는걸" "자,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서두르죠" "알겠소" 아크 일행은 358호의 안내로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암살자들의 본부라고 해서 음침한 동굴 따위를 상상했는데, 막상 밖으로 나와보니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멋들어진 탑 내부였다. '이래서 밖에서는 찾을수가 없었구나' 창을 통해 내다보니 주변에 병풍처럼 절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자연의 힘으로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그곳에 수십 미터 높이의 탑 3개가 세워져 있었다. 약속의 탑, 재림의 탑, 결속의 탑.이 3개의 탑이 바로 수백년간 비밀의 베일에 숨겨져 있던 다크브라더의 본영,살린의 탑이었다. 아크 일행이 도착한 곳은 그중 좌측에 자리잡은 결속의 탑이었다. 어쨌든 살린의 탑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벌집처럼 뚫린 창문 안에서 수많은 암살자들이 뒤엉켜 혈전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피가 튀고 궁지에 몰린 암살자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 똑같은 복장이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 "상황이 안좋은 겁니까?" "그렇소" 358호가 신음처럼 중얼거리며 중심에 위치한 탑을 가리켰다. "저 탑이 의식이 열리던 재림의 탑이오.장로님과 인도자는 저기 있을거요" 재림의 탑에서도 한참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어 전황을 파악하기가 쉽지않았다. "마령 소환, 데드릭!탑을 살펴보고 와!" "알았다!" 데드릭이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재림의 탑을돌아 보고 온 데드릭이 설명했다. "다들 똑같은 복장이라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지만 탑 내부에서 샴바라가 아란에게 밀리고 있는 건 확인했어 .아직은 직접 둘이 붙진 않고 있는데........꽤 위험해 보이던데?" "아란!"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치자 358호가 암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도 아란을 알고 있소?" "네, 실은 그놈을 쫓다가 이번 일을 알게 된겁니다" "그렇군. 한동안 잠적했던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저자의 가세로 놈들의 능력이 엄청나게 올라갔소.아란이 이미 재림의 탑에 들어섰다면 시간이 없소" "장로를 지지하는 다른 병력은 없습니까?" "장로님의 직속 부대원들은 모두 외곽 경비에 동원되어 있소.설마 장로님조차 모르는 비밀 통로가 있을거라고는느 상상도 못했지.그들이 와준다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장로님의 대행을 맡고 있던 나베인은 누구보다 살린의 탑을 잘 알고 있소.놈이 기습과 동시에 붕화대를 장악해서 직속 부대가 이곳의 상황을 알아차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오" "당분간 도움을 기대할수 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소" "그렇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아란 놈의 뜻대로 되도록 놔둬서는 안돼!" 정의남과 갱생단이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358호를 안내자로 선택한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살린의 탑은 외관이야 어찌됐든 암살자들의 은신처.밖에서 보는것과는 달리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아크 일행이 이렇게 늦게 도착한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비밀 통로로 도착한 지하실에서 나오는데만도 한참 걸렸던 것이다. 게다가 도우러 왔다지만, 다크브라더는 카오틱 NPC.장로측이든 아란 측이든 아크에게는 똑같은 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암살자들 역시 그러리라. 그러나 358호를 안내자로 삼으니 그런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358호는 곧 한 무리의 암살자가 싸우는곳에 도착하여 크게 소리쳤다. "살린의 뜻을 따르는 자들은 한쪽 소매를찢어라!" 한데 엉켜 싸우던 자들중 일부가 소매를 찢었다. "소매를 찢지 않은 자들이 적이오!" "흠, 알아보기 편해서 좋군. 가자!" 정의남은 갱생단을 이끌고 난전에뛰어들었다. 찢은 소매의 암살자들이 수적으로 밀리는 상황이었지만, 아크 일행이 난입하자 상황이 돌변했다. 늑대 무리와 같은 돌격!각종 스킬과 아이템발로 선두에 나서서 10여명의 적을 쓰러트리자,나머진 아군 암살자들이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전투가 끝나자 찢은 소매의 암살자들이 다가왔다. "헉헉헉,358호.이 이방인들은 누구입니까?" 358호는 꽤나 높은 직위를 가진 암살자인 모양이다. "인도자를 돕기 위해 오신 분들이다" "인도자를?" 대강 사정을 설명하자 암살자들이 경계심을 풀었다.아마도 358호가 아니었다면 도와주고도 되려 공격을 받았으리라. "과연 인도자의 동료들다운 솜씨였소.염치없지만 도움을 받겠소" "잠깐만" 아크는 무턱대고 달려가는 암살자들을 막아섰다. "일단 공격대를 재편성해야 할것 같습니다" 방금전, 전투를 치르던 찢은 소매 암살자는 대략 20여명.그러나 전투가 끝나고 살아남은 암살자는 13명밖에 되지않았다. 파티도 편성하지않고,게다가 카오틱 NPC라 광역 스킬인 로코의 노래나 아크의 간병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오틱 NPC라도 일단 같은 공격대에 포함되어 있으면 버프 효과가 적용된다. 또한 공격대원이 되면 전술이나 지휘의 영향으로 전투력도 올라가고,적과 구별하기도 쉬워진다. "내 생각에도 그게 나을것 같다" "알겠소,당신들은 이방인이지만 목적이 같다면 꺼릴이유가 없지" 정의남과 암살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크는 파티를 해산하고 암살자들을 포함해 공격대를 재편성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사실 난전이라고 해도 살린의 탑에서 일어나는 전투는 굉장히 기이했다. 수백명이 탑 곳곳에서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피가 튀고 화염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그 흔한 비명소리하나 들리지 않았다.마치 음소거 상태로 전쟁 영화를 보고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전장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바로 목이 잘리는 순간에도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훈련받은 암살자들의 전투이기 때문이다. 그런 암살자들답게 전투도 예민한 감각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무턱대고 뛰어가다 보면 어딘가에서 갑자기 검이 솟아 나온다.'은신'이나 '매복'을 사용해 숨어있던 암살자들이다. 아마도 갱생단 뿐이었다면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으리라. 그러나 암살자들을 앞세우자 그런 위험이 줄었다. "이놈들 ,감시 살린의 탑에서 그따위 어설픈 수작이 통할것 같으냐!" 358호와 암살자들은 뭔가 번뜩이자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막았다. 자신보다 한참 레벨이 떨어지지않으면 '은신'을간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암살자들은 상대가 공격하는 찰나에 반응하는 속도가 갱생단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암살자답게 위기 대처능력이 특화되어 있는 것이다. 기습을 가했던 암살자들의'은신'이 풀렸다. 그러나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새도 없이 뒤이은 아크와 갱생단의 폭격에 쓰러졌다. 암살자들은 카오틱 NPC.카오틱 유저만큼은 아니지만아이템을 떨구는 확률도 높았다. 게다가 반란에 정신이 팔린 암살자들은 그런 아이템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 몽따아크와 갱생단이 챙길수 있었다. '암살자들 레벨이높은 편이라 이것도 나름 쏠쏠한데?' 그렇게 탑을 올라가는 동안, 위기에 처했던 장로측 암살자들을 구출해 공격대의 숫자는 더욱 불어났다. 거기엔 로코의노래가 크게 작용했다. 보통 전투였다면 상대고 어느정도 직업 조합을 갖춰 바로 디버프로 해제하거나, 같은 버프를 사용하기 마련,그러나 이곳에 있는 적들은 모두가 암살자.버프는커녕 ,회복도 포션이나 약초밖에는 상요할수 없었다. 집단 전투에서 이차이는 엄청나다. 덕분에 전투가 지속될수록 유리해졌다. 최상층에 도착했을떄는 이미 암살자만 80여명에 달해 있었다. "이곳을 통해 재림의탑으로 진임할수 있소!" 358호가 계단을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뭐,뭐야? 저놈들은?" "대체 다른 놈들은 뭐하고 자빠져 있는거야?" "막아라,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장로와 인도자만 쓰러트리면 우리의 승리다!" 계단 위에서 수십명의 반란군이 암기를 쏟아부었다. "빌어먹을 배신자들이......!" 앞서가던 358호가 데미지를 받고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아크가 358호의 어깨를 밟고 뛰어오르며 검을 폭발 시켰다. "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쾅! 격렬한 검의파편 소용돌이가 반란군을 휘감았다. 아크는 그대로 휘청거리는 반란군 사이에 떨어졌다. 사방에서 공격이 날아오자 아크는 곧바로 '다크 댄싱'으로 회피하며 '다크블레이드'로 연결시켜 연쇄 스킬'암격'을 쏟아냈다. 아크가 이렇게까지 저돌적으로 공격할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무기 때문이다. 암살자들의 무기는 크게 두가지였다. 암살의 대명사,단검과 또다른 하나는 블랙잭이라는 타격무기다. 블랙잭은 쇳가루 따위를 채워넣은 가죽 주머니 같은 무기인데,모양새와 달리 한대 맞으면 높은 확률로 '스턴'이나 '기절'에 걸리는 위력을자랑한다. 실제 중세 시대에도 암살자들이 흔적 없이 상대를 처리할때 종종 상용했던 역사적인 무기인 것이다. 그러나 아크에겐 오히려 행운이었다. -탄력도에 의해 블랙잭의 데미지가 20% 경감했습니다. 기절 효과가 발동했지만 탄력도로 저항했습니다. '미친듯이 올려놓기를잘했다!' 아크는 나가란에서부터 틈틈이 탄력도를 올려놓았다. 다른 스탯과 달리 얻어맞기만 하면 올라가는 스탯이다. 때문에 아크는 둔기를 든 몬스터를 만나면 빈사 상태까지 얻어맞았고,쉬는 시간에는 데드릭을 불러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보름동안 올린 탄력도는 무려 200! 둔기 데미지를 무조건 20%경감시키는 것이다.거기에 '다크댄싱'으로 회피율을 올려놓으니 블랙잭 공격은 거의 데미지가 들어오지 않았다 퍼퍼퍼펑! 아크가 연방 스킬을 발동시키자 암살자들의 진형이 무너졌다. 거기에 갱생단과 암살자로 구성된 공격대가 밀고 들어오자 전투는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계단을 통해 밖으로 나오자 재림의 탑으로 연결된 교각이 나타났다. 그곳은 이미 나베인의 반란군이 장악한 상태였다. 아마도 장로와 샴바라들은 재림의 탑 안에서 버티고 있으리라. "뚫고 들어간다!" "엇? 네놈들은?" 아크 일행이 교각으로 진입하자 반란군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교각은 폭이 5미터밖에 되지않았다. 적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한번에 상대하는 숫자는 고작 3~4명!아크의 정의남, 갱생단이 선두에서 몰아붙이자 반란군이 우르르 밀려났다. "화격!" 아크가 반란군을 튕겨내며 교각의 중간까지 이르렀을때였다. 재림의 탑안에 몰려있는 암살자들 사이에서 유난히 번쩍이는 갑옷이 눈에 들어왔다. "아란!" "아크,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란이 움찔하며 인상을 구겼다. "네놈 뜻대로는 안될거다!" "결속의 탑을 장악하고 있던 병력이 전멸한건가?" 아란은 아크와 함께 밀고 들어오는 암살자들을 보고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나 당혹감도 잠시 ,이내 아란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을 위해 준비해 놓기를잘했군" 아란이 손뼉을 치자 반란군이 빠르게뒤로 물러났다. '뭐지?' 아크는 의아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반란군의 시선을 따라 교각의 난간으로 시선을돌리자 수많은 주문서가 빼곡힣 붙어있었다. 순간 등줄기르 타고 얼음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폭발]주문서!' 나가란에서 몇번 본적이 있는 마법 주문서였다. 그제야 아란의 의도를 알아챈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멈춰,뒤로 물러서라!" "늦었다.!" 아란이 씨익 웃으며 주문서를 한장 꺼내 북 찢어버렸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교각의 난간을 후려쳤다. 그리고.....................! 콰콰콰쾅! 화염에 적중된 수백장의 주문서가 연쇄적으로 타들어갔다.동시에 주문서 효과가 발동하며 엄청난 화염과 충격파가 주의를 휩쓸었다. 사실 [폭파]는 그리 대단한 주문서가 아니다. 데미지는 고작 40~50.그러나 수백장이 동시에 터지자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견고한 석고 교각이 산산이 부서져 나간것이다. 불길과 함께 교각이 부서지자 로코가 비명을 터트렸다. "오빠!" 가장 선두에 있는 아크는 폭발에 휘말려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맙소사!' 아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폭파]주문서의 목표는 교각이라, 아크가 받은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불길이 휩싸였지만 그것도'화염의 베일 '망토의 50%화염 저항력으로 데미지를 반감시켰다. 문제는 정의남과 갱생단을 피신시키느라 교각과 함께 떨어져 버렸다는 것. 물론 낙하 데미지를 80%까지 줄일수 있으니 죽지는 않으리라.그러나 반란군이 득실거리는 탑 아래에 혼자 떨어지면 어차피 죽은 목숨. '게다가 아란을 막을수도 없다!' 거기까지 생각했을때 하늘로 떠올랐던 몸이 빠르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찔해지는 순간이지만 아크는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다. "마령 소환, 데이모스,검화!" 데이모스가 소환되자마자 검으로 변했다. 아크는 곧바로 채찍으로 변환,칼날을 뿜어내 난간을 휘어감았다. 얼마전 거상을 상대할때 생각해낸 인디아나 존스 액션! 이어 다시 검으로 바꾸자 칼날이 줄어들었고,아크의 몸도 함께 딸려 올라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기도 전, 덜컥하며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폭발에 휘말린 반란군 하나가 다리르 잡고 있었다. "혼자 죽지는 않는다!" 반란군이 단검을 들어오렸다. 이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100%사망이다! "그만두지 못해, 이 빌어먹을 삐- 한 삐- 같은 놈아!" 아크가 온힘을 다해 '협박'을 사용하자 반란군이 움찔하며 경직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암살자는 금세 정신을차리고 와락 검을 휘둘렀다. 바로 그 순간, 자욱하게 깔린 먼지구름을 뚫고 뭔가가 날아와 반란군의 면상을 밟아버렸다. "주인!" "데드릭!" "아코,대가리야!주인,구하러 왔다!이놈,이놈!떨어져라!" "크윽 ,이놈의 박쥐 새끼가......!" 반란군은 욕설을 터트리며 단검을 휘둘러 댔지만, 그런 허접스러운 공격에 맞을 데드릭이 아니다. 데드릭은 요리조리 피하며 발로 놈의 콧잔등을 꽉꽉 밟아댔다. 그때마다 조금씩 미끄러지던 반란군은 결국 옷자락을 놓치고 떨어져 버렸다. 그덕에 아크는 간신히 다시 다리위로 기어올라갈수 있었다. "오빠!" 로코가 울먹이는 얼굴롤 달려와 회복의 노래를 폭포철머 쏟아부었다. "우하하하,어떠냐,주인.고맙지? 응,고맙지?"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자 데드릭이 잘난듯이 뻐기며 으스댔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그러나 칭찬이나 하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젠장.........!" 아크는 울화통이 터지는얼굴로 재림의 탑을 바라보았다. 폭발로 교각이 끊어져 버렸다. 결속의 탑에서 재림의 탑으로 갈수 있는 유일한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358호,다른 길은?" "재림의탑에는 따로 입구가없소.남은건 약속의탑과 연결된 교각 뿐이오.하지만.............." 약속의 탑도 이미 나베인 무리가 거의 장악한 상태다.놈들을 처리하며 반대편 교각까지 오려면 결속의 탑을 지나온 시간이상이 소모된다. 그때까지 샴바라들이 버텨주리라는 보장이 없다.아니,분위기를 보면 불과 10~20분도 버틸수 없을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아란이 장로와 샴바라를 처리하면 아크 일행은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그리고 기약없이 다크브라더의 공격을 받아야 하리라. '으드득, 아란 자식......!' 이미 반대편에 아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크의 생사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어차피 교각이 끊어졌으니 아크가 방해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다크브라더의 반란을 성공시키면 어차피 아크는 죽은 목숨이다. 굳이 지금 안달복달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상황은 최악이지만 적어도 샴바라와 합류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가 있을텐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교각을 넘어갈방법이 떠오르지않았다. 그리고 설령 방법이 있다고 해도 아크 혼자 넘어가봐야 재림의 탑 입구는 아란이 장악하고 있다.아크가 샴바라와 합류하도록 구경만 할리가 없다. '뭐든 좋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해'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오" 그때, 358호가 입을 열었다. "당장 장로님과 인도자를 구할 방법이 없다면 직속부대를 한시라도 빨리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소.지금 우리의 병력이라면 나베인이 장악한 봉화대를 탈환할수 있을것이오" "봉화대를 탈환한다 치고,직속부대가 돌아올때가지 걸리는 시간은?" "봉화대를 탈환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대략 1시간반정도 걸릴거요" 1시간 반이면 실제 시간으로 30분.......게다가 직속부대가 도착한다고 바로 상황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나베인 무리를 제압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아무리 새각해도 그때까지 샴바라가 버텨낼거라는 확신이 서지않았다. 그때,문득 결속의탑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날카로운 지붕!순간 아크의 머리속에서 터무니없는 그림이 그려졌다.아크는 고개를 돌려 다시 재림의 탑을바라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아니,성공 확률은 거의 없지만.......만약 성공한다면 재림의탑으로들어갈 방법이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나 혼자서 샴바라와 합류해 봤자 큰 도움이 되지않아.만약나 이외에 다른사람을 데려갈수 있다면.......' 아크의 눈길이 로코에게 닿았다. 전황이 이렇게 까지 일방적으로 기울어진건 아란이 회복과 각종 버프를 사용할수 있는 홀리나이트이기 때문이다. 회복이라 봐야 약초나 우적우적 씹어대는 암살자들에게 이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그러나 아크에게도 회복과 버프를 사용하는 유저가 있다. 바로 로코! 만약 아크와 로코가 샴바라에게 가세한다면? 아란을 무지를수 있다는 장담을 할수 없지만, 장로의 직속부대가 올때까지 버틸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2명이 시도하면 성공률은 2배로 낮아지지만,지금은 이 방법 밖에 없어!' 아크는 마음을 굳히고 로코에게 작전을설명해 주었다. "내,내가요?" 설명을 들은 로코가 기겁했다. 정의남과 갱생단도 걱정스런 표정으로 만류했다. "아무리 그래도...........그건 너무위험하지 않냐?" "하지만 아란이 다크브라더를 집어삼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어요.그리고 나혼자 재림의 탑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전황을 바꿀 정도의 의미는 없을거에요" "그도 그렇지만........." 정의남이 한숨을 불어냈을때였다. 로코는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뭔가 결심한듯 주먹을 꼭 말아쥐었다. "알았어요.오빠와 함께라면 죽어도 좋아요"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꽤나 충격적인 고백으로 들렸을말이다. "고마워" 아크가 손을 꽉 쥐자 로코가 얼굴을 붉히며 끄덕였다. "뭐,그렇다면 할수 없지.어쨌든해볼수 있는건 다 해보는 수박에.일단 성공해서 조금만 더버텨라.우리도 최대한 빨리 봉화대를 탈환해서 직속부대를 불러들이마" 정의남과 갱생단은 358호를 앞세우고 봉화대로 달려갔다. 경사도가 60도가 넘는 첨탑. 시선을내리자 바로 100미터는 족히 넘을듯한 아찔한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덕분에 로코를 짊어지다시피 하고 첨탁을기어올랐다. "미,미안해요.오빠, 나 무겁죠? 다이어트 할걸........." 이런 상황에서 잘도 그런 말이 나온다. "아니,하나도 안 무거워" 아크는 땀을 뚝뚝 흘리며 객기를 부렸다. 잠시후 ,아크는 피뢰침이 붙어있는 첨탑 꼭대기까지 도착했다.피뢰침을 부여잡고 아래를 바라보니 아크 역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람이 높은 곳을두려워하는 이유는 상상력, 떨어질떄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상상할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당현이 게임 속이라고 해서 공포심이 줄어드는건 아닌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해 .실패하면 모든게 끝장이다!' "꽉 잡고 있어 ,로코" "아,알았어요" 로코는 눈을질끈 감고 아크에게 메달렸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개물고 지붕에 본 블레이드를 꽂아넣었다. "데이모스,검화 해제!" 따닥,따다다닥! 데이모스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타워 실드에 검을 들고 있는 스켈레톤 나이트! "데이모스,방패를 바닥에 깔아라" 따다닥? 아크의 명령에 데이모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일단 명령이니 바닥에 방패를 깔았다. 아크는 데이모스에게 중심을 잡도록 명령한뒤 방패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피뢰침을 높았다. 순간 방패가 엄청난속도로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마치 스노보드처럼 방패로 경사면을 미끄러지며 가속도를얻는다 .그리고 낙차를이용해 스키 점프처럼 뛰어올라 끊어진 교각을 뛰어넘으려는 것이다. 각도를 잘만 조절하면 단숨에 재림의 탑 안으로 들어갈수 있다! '스노보드라면 많이 타봤어!' 바람이 칼날처럼 부딪혀 왔지만 아크는 더욱 눈을 부릅떳다. 단 한번.........중심을 잃거나 점핑 타이밍을놓치면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하게 된다! 아크와 로코,데이모스를 태운 방패는 순식간에 가장자리까지 내려왔다. "지금이다, 데드릭!" "젠장, 약속했어? 음식 고문 세번은 면제시켜 줘야해!" 당연하게도 미끄러지기만 하면 그대로 땅바닥에 꼴아박힐 뿐이다. 가속도를 비행 에너지로 바꿔줄 활주로가 필요하다.본의 아니게 그 역활을 맡은게 데드릭이었다. 데드릭이 욕설을 내뱉으며 첨탑 가장자리에 달라붙는 순간, 방패가 데드릭의 등줄기를 타고 솟아올랐다. "으아아악!뜨,뜨거워!내 등!내 머리!" 마찰에 의해 데드릭의 등에서 뒤통수까지 이어진 털이 홀라당 벗겨졌다. 어쨌든 데드릭의 희생 덕에 방패는 아크의 계획대로 하늘을날았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듯한 기묘한 부유감......... 그러나 아크는 모처럼의 비행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멀리 보이던 재림의 탑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벽에 처박히면 차바퀴에 깔린 개구리 꼴이 되리라! "데이모스,로코,우측으로 체중을 이동해!" 전력을 다해 몸을 비틀자 궤도가 창문으로 바뀌었다. "됐어,몸을 숙여 충격에 대비해!' 와장창!터텅,쿠르르르....... 방패는 그대로 창문을 부수며 탑안으로 들어갓다. 격렬한 소리를내며 바닥을 미끄러지는 방패는 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뭐,뭐야?" 동시에 탑안에서 미친듯이 싸우던 암살자들이 동작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시켰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아크와 로코가 일어난건 그때였다. 아크가 조용해진 전장을 둘러보는데 한쪽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아 ,아크?" 소리친 사람은 다름아닌 샴바라였다. "어이,샴바라.도와주러왔다" "어,어떻게........아니,그보다 거긴 적진이야,멍청아!" "뭐?" 아크가 돌아보자 약간 떨어진 곳에 아란이 보였다. "아크.......죽여라!놈을 죽여버려!" 멍하니 지켜보던 암살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ACT 8 파멸의 기사 "소환 해제,데이모스!로코,꽉 잡아!"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슬라이드!" 신속의 부츠를 사용하며 온힘을 다해 돌려차기를 날렸다.그러자 놀라운 효과가 발휘되었다. 빙글,빙글,빙글........돌려차기와 '슬라이드'를 동시에 사용하자마자 마치 고전 대전 게임 스트리트 파0터 캐릭터의 질풍각 같은 기술이 펼쳐졌다. 돌려차기로 암살자들을 쳐내며 이동하는 아크! 암살자들이 사방에서 공격해 왔지만 탄력도로 데미지르 줄이고,아크에게 메달린 로코가 쉬지않고 회복의 노래를 불러 결국 포위를 뚫고 샴바라 진영에 도착할수 있었다. "아크,대체 어떻게 된거야?" "자,잠깐만.......우욱!" 쉬지않고 돌았더니 속이 뒤집힌다. 대체 어떻게 스트리0 파이터는 멀미도 하지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헛구역질을 한주제에 아크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말했잖아,도우러왔다고" "무슨 도깨비도 아니고........하여간 사람 놀래키는 재주는 타고났다니까." 그때,샴바라의 뒤에서 붉은 복면을 쓴 NPC가다가왔다. "인도자님,아는 분인가요?" "네,저와 함께 악실리온에서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럼 이분이 인도자님이 말하시던......!" NPC는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다크브라더의 장로,이사벨이에요"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장로라고 하기에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였다. 아크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샴바라가 불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아,아니........그보다.......상황이 안좋아 보이네" "네눈에도 그렇게 보이냐?" 샴바라가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탑안의 상황은 아크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않았다. 고양이의 눈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암살자들의 생명력이 적지않게 내려가 있음을 알수 있었다. 이미 포션이나 약초도 대부분 소모한듯, 생명력이 20%밖에 남지않은 암살자도 회복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반면 반란군은 숫자도 훨씬 많고,아란의 버프와 회복 마법덕에 생명력을 60%이상 유지하고 있었다.그나마 주변 잡기를 이용해 바리케이드 비슷한 것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상황은 벌써 정리됐으리라. "바리케이드를 뚫어라!" 아크가 나타나자 아란이 더욱 반란군을 몰아붙이며 공세를 퍼부어댔다. 잠깐 사이에 바리케이트 하나가 무너지며 3~4명의 암살자가 쓰러졌다. "일단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얘기하고,지금 탑안의 암살자들은 모두 공격대를 구성하고 있지? 나와 로코는 공격대 탈퇴하고 왔으니 신청해줘" "너......그래서 로코와 함께........." 샴바라도 그제야 아크가 무리해 가면서까지 로코를 데리고 온 이유를 알아챘다. 그리고 아크와 로코를 공겨대에 포함시키자 상황이 일변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모든 존재의 어머니 빛의 손길이 어루만지며.........." 로코가 멀미를 참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분에 200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회복의 노래'.거기에 '잔잔한 여운'으로 3개를 중첩시키자 재림의 탑에 모여있던 모든 암살자들의 생명력이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아크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샴바라, 암살자들의 포션을 모두 모아!" "뭐?" "설명할 시간없어.서둘러!" "모두 남은 포션을 아크에게 건네주세요!" 이사벨이 나서서 말하자 암살자들이 포션을 모아왔다. 숫자는 간신히 50개가 넘었다. 아크는 포션을 받아 몽땅 가방에 넣으며 소리쳤다. "위대한 희생!" 순간 50개의 포션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항아리 포션이 나타났다. 시르바나에서 나타났던 것보다는 작지만 200미터 범위안의 아군에게 중급 회복 효과를 부여하는 항아리 포션! '회복의 노래'와 '위대한 희생'의 콤보로 암살자들은 80% 이상 생명력을 회복할수 있었다. "저,저건.......그때 그 포션도 저놈의 짓이었단 말인가?" 적 진영에서 아란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용기를 내십시오.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뒤이어 아크가 간병을 사용하자 암살자들의 용기와 사기가 50%나 상승! 하급 축복 효과와 각종 스탯까지 상승했다. 이런 변화는 회복과 버프를 전혀 받지 못하던 암살자들에게 기대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아직 포기할때가 아니다!" "변절자 놈들에게 다크브라더를 넘겨줄수는 없다!" "외곽에 나가있는 형제들이 달려오고 있을거다.조금만 더 버티면 돼!" "살린의 영광을 위하여!" 지금까지 계속 밀리기만 하던 암살자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재림의 탑 암살자들은 장로의 측근인만큼 반란군보다 레벨이 높다. 비록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지만,생명력을 회복할수 있다면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반란군도 만만치 않았다. "흥, 그래봤자 두 연놈이 늘어났을뿐이다!전력을 다해 공격하라!" 아란이 방패로 암살자들을 밀어붙이며 각종 오라를 중첩시켰다. "아란,이번에는 결코 네놈의 뜻대로 되지 않을것이다!" 음유시인의 버프가 홀리나이트의 버프를 능가할리 없다. 잠시 기세가 올랐지만 아란이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자 암살자들은 다시 맥없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약속의 탑에서도 수십명의 반란군이 밀고 들어오자 바리게이트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졌다. 샴바라들은 곧바로 구석까지 밀려났다. "크윽, 자,장로님........!" "힘을 내요.살린의 탑을 저런자들에게 넘겨줘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사벨의 목소리에서도 생기가 느껴지지않았다. 그런 이사벨을 바라보던 샴바라가 이를 갈아붙였다. "아란 자식.............." "샴바라" 아크가 샴바라의 어깨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상황은 간단해. 반란군이 실력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란 때문이다. 아란만 처리하면 수적으로 열세라도 버틸수 있어. 그사이 정의남아저씨들이 봉화대를 탈환하고 직속부대를 불러들이면 상황은 정리될거야" 역시 결론은 하나뿐이다. 아란을 잡는다! "쉽지는 않겠지만 너와 나,둘이라면 해볼 만하잖아?" "나쁘지 않군" 샴바라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큭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샴바라와 합류하려던 이유가 이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전투의 열쇠는 아란이 쥐고있다. 뜻이 통하자 둘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아란도 자신의 역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때문에 씹어먹어도 시원치않을 아크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후열에서 마나를 관리하며 버프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다시말해 아란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의 반란군을 뚫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숫자가 수십.아무리 아크나 샴바라라도 쉽지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둘이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다! "인도자님,조심하세요.당신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에요" 이사벨의 말에 샴바라는 잠시 그녀의 눈을 마주보다가 와락 몸을 돌렸다. "아크, 먼저 간다!" "오케이!" 악실리온을 떨쳐 울렸던 둘의 협공이 펼쳐졌다. "석화 점혈!" 샴바라가 동시에 3명의 반란군에게 석화 점혈을 걸어놓고 뛰어 넘었다. 그러면 곧바로 아크가 뒤따르며 다크 블레이드를 날려 끝장을냈다. 뒤이어 둘은 '다크 댄싱'과 '순보'를 사용해 적을 헤집으며 폭풍같은 연속기를 날려댔다. 샴바라가 화경으로 놈들의 빈틈을 만들면 곧바로 아크의 발 차기가, 아크의 발차기로 상태 이상에 빠지면 샴바라의 단검이 날아가 반란군의 목숨을 앗아갔다. 너무나 익숙한 공격 방식이라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반란군의 레벨도 140이상, 회복까지 하니 쉽게 포위를 뚫어 낼수 없었다. "일일이 놈들을 상대할 필요없어.그냥 밀어내 버려!" "알고 있어!" 아크의 '화격'과 샴바라의 '붕권'! 둘이'화격'과 '붕권'을 난사하자 반란군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이 스킬의 유일한 단점은 공격 딜레이가 크다는점.그러나 둘이 번갈아 가며 사용하자 반란군은 접근조차 못했다. 그렇게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자 곧 알맹이가 나왔다. 까만 콩 시루속에 썩여있는 하얀콩처럼 눈에 확 띄는 아란! 아란에게 초점을 맞춘 아크의 눈동자가번뜩였다. "저기다!" "시간을 끌면 우리가 당한다. 속전속결이야!" "알고 있어!" 아크와 샴바라는 마치 짜기라도 한것처럼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양쪽에서 아란을 공격해 들어갔다. "이 자식들,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홀리 라이트!" -'홀리 라이트'에 의해 어둠 속성 보너스가 해제됐습니다. 빛의 구슬이 떠오르자 주변이 환해지며 아크와 샴바라의 능력치가 확줄어들었다. 뒤이어 아란은 샴바라의 공격을 방패로 막으며 아크에게 검을 휘둘렀다. 채챙,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아크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젠장, 깜빡했다' 그동안 허약해진 아란만 상대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아란은 홀리 나이트.혼자일때는 아크 혼자서도 얼마든지 아란을 죽일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아란에게는 반란군이 있다. 병력이 많을수록 스탯에 보너스가 추가되는 홀리나이트의 특성.반면 아크는 어둠 속성 보너스까지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레벨은 20이나 높았지만, 병력을 소유한 아란은 20레벨을 무시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혼자가아니다!' "개자식,죽어라!" 중심을 잃은 아크에게 아란이 검을 휘둘렀다. 순간 옆에서 샴바라가 파고들며 '화경'으로 아란의 검을흘려냈다. 이어 아크가 바닥을 쓸듯이 하단 차기를 날리자 아란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크윽,이 자식들.......!" "지금이다,아크!" "좋아!" 아크와 샴바라는 싱크로나이즈 선수처럼 똑같은 동작을 펼치며 아란을 몰아붙였다. 퍼퍼퍼펑,여기저기에서 치명타가 터져나왔다.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에서 치명타가 터진다. 위를 막으면 아크의 하단 차기가, 하단 차기를 피하면 샴바라의 단검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홀리나이트가 아니라,홀리나이트 할아비가 온다 해도 둘의 협공을막아낼수 없으리라. 아란이 위기에 빠지자 사방에서 반란군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크와 샴바라가 교묘하게 서로 위치를 바꾸며 '화격'과 '붕권'으로 반란군을 밀어내고 다시 아란을 공격했다. 비록 반란군의 방해때문에 집중이 필요한 큰 스킬을 상요하긴 힘들었지만, 그건 둘의 연속 공격에 밀리는 아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자잘한 공격만으로도 레어급 중갑으로 도배한 아란의 생명력을 확실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좋아,공격이 궤도에 올랐다. 놈은 오라의 마나를 관리하느라 회복 마법을 아끼고있다. 생명력이 30%아래로 내려가면 반란군의 공격을 받더라도 '블레이드 스톰'과 샴바라의 '뇌검'으로 결정타를 날리자.아무리 아란이라도 그 공격을 받으면 버티지 못할거야!' 아크가 그런 작전을 구상하고 있을때였다. "헉!" 싸우는 내내 한쪽을 힐끔거리던 샴바라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말릴새도 없이'순보'를 사용해 뒤로 달려갔다. 샴바라가 달려간곳은 이사벨이 있는 곳이었다. 정신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사이,3명의 반란군이 장로의 뒤로 접근하고 있었던 것! "위험합니다!" 샴바라가 이사벨을 확 껴안으며 몸을 돌렸다. 순간 격렬한 소음이 울리며 샴바라의 등에 세발의 치명타가 꽂혔다. 이미 아란과의 전투로 생명력이 깎여 있던샴바라는 단숨에 빈사 상태로 빠져버렸다. "인도자님!" "물러나 있어요!" 샴바라는 와락 몸을 돌리며 반란군에세 달려들었다. 그리고 폭발적인 스킬을 난사해 단숨에 숨통을 끊어놓고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치명타를 맞을때,독에 중독된 것이다. 현기증 증세를 일으키는 독이었는지 샴바라는 신음을 흘리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아크는 어이가 없었다. 샴바라를 하루 이틀 봐온게 아니다. 그리고 아크가 아는 샴바라는 절대 NPC를 위해 죽음을 각오할 사람이 아니다.물론 이사벨이 전직 관련 NPC이기는하지만, 샴바라는 거의 본능적으로 뛰어나갔다. 역시 이해할수 없는 반응이었다. 뭐,그건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아크였다. 갑자기 샴바라가 빠져 버리자 아크는 곧바로 아란과 반란군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이런 망할......!' "크크큭,버림받은 건가?" 아란과 반란군들이 염장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다크 댄싱!슬라이드!" 아크는 다크댄싱과'슬라이드'를 연속으로 사용하며 후퇴........아니,문자 그대로토꼈다. 그러나 그냥 순순히 놔줄 아란이 아니다.아란은 아끼고 아끼던 마나를 들이부어 각종스킬로 아크를 난타했다 .이어 반란군까지 가세하자 생명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다행히 탄력도와 회피율 보너스 덕분에 살아서 아군 진영까지 물러나기는 했지만, 생명력이 5%도 남지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대체 뭐하자는 플레이............" 아크는 와락 샴바라에게 달려들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바로 옆에서 이사벨이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차마 뭐라고 할수가 없었다. '젠장, 다 잡은 기회를 놓쳤다.!' 그대로 몰아붙였다면 아란을 잡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기회는 물건너갔다. 로코가 열심히 '회복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지만, 로코의 회복은 즉효성이 없다. 광범위라 대규모 전투에서는 도움이 돼도 1명의 생명력을 빠르게 회복시킬수 없는 것이다. '회복의 노래'를 3개 중첩해도 3분에 600. 3,000이나 되는 아크의 생명력을 70%까지 회복시키려고 해도 9분이나 걸린다 .물론 그동안 아란이 손가락을 빨며 기다려 주지는 않겠지. "지금이다. 샴바라와 아크가 싸울수 없을때 몰아붙여라!" 역시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놈이다. 기세가 올라간 반란군이 함성을 지르며 밀어붙였다. 아란을 보호하느라 제대로 공격에 가담하지 못했던 반란군까지가세하자 암살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러나 아크의 악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가만, 설마 저 방패는.....!' 아란을 노려보던 아크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불이 들었다. 놀랍게도 아란이 가방에서 꺼내드는 방패로 바로 '신성한 대지의 방패'!다름아닌 아크가 거상을 쓰러트리고 얻었던 유니크 방패였다. '그럼 내가 팔아먹은 '신성한 대지의 방패'를산게 아란?' 아란이 셀리브리드의 우체통에서 찾은건 주문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아란도 그 방패를 판사람이 아크란느 것은 몰랐으리라. 아란이나 아크나 경매 사이트의 아이디를 서로 다른 것을 썼으니까. 그러나 어쨌든 방패는 아란의 손에 들려 있다. 그리고......... '맙소사, 그렇다면............?' 방패의 위력은 누구보다 아크가 잘 알고 있다! "신성한 대지의 가호!" 순간 아란과 반란군의 몸이 석회암처럼 하얗게 변했다. 10분간 공격력과 방어력이 100%나 상승하는'신성한 강철 방패'의 특수 옵션 효과! 정보를 확인할때도 생각했지만,정말 사기적인 옵션이었다. 100%라면 2배!일격에 100의 데미지를 주던공격에 200의 데미지를 받는다는뜻이다. 그리고 상대의 데미지는 오히려 반감, 무지막지한 버프에 반란군은 문자 그대로 암살자들을 뭉개 버렸다. "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모든 존재의 어머니..........." 로코가 목이 터져라 '회복의 노래'를 불렀다. 아크역시 간병과 데드릭의 흡혈 스킬로 등록된 '디펜스 오라'등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에는 소용이 없었다. 불과 1분도 되지않아 거의 모든 암살자가 쓰러졌다. 그리고 반란군은 바로 아크의 코앞까지 육박해 들어왔다. "크크큭, 역시 돈이 좋긴 좋군" 아란이 만족스러운 결과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럴 수가......!' 아크는 아연실색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자신이 판 유니크 아이템이 자신의 숨통을 조를줄...... "남은 것은 장로와 샴바라, 아크뿐이다. 놈들을 밟아라!" "우오오오!" 반란군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슬라임의 시간, NO 1!" '슬라임의 내단'으로 익힌 '슬라임의 시간'.10분간 물리공격을 100%방어해 낼수 있는 스킬!슬라임의 시간을 발동시키자 아크의 몸이 매끈한 점액질에 뒤덮였다. 아크는 그 상태로 장로와 샴바라,로코를 감싸안았다. 등으로 무수한 타격이 느껴졌지만 모두 회피가 떴다. "흥, 또 그 스킬인가? 하지만 그 스킬도 언젠가는 풀리겠지.그리고 이미 모든암살자가 죽었다.죽는 시간이 조금 연장된 것뿐이야" 분하지만 아란의 말대로였다. '슬라임의 시간'지속 시간은 10분.물론 '신성한대지의 가호'도 10분이니 그 전에 풀리겠지만, 이제 장로를 보호핟너 암살자들은 전멸했다. '슬라임의 시간'이 풀리면 고작 4명이서 100여명의 반란군과 맞짱을 떠야 한다는 말이다. "오,오빠........." "미안하다.아크.하지만............" 로코와 샴바라가 죽는 소리를 해덌다. 그렇게 대략 7분.생명력은 60% 이상 회복됐지만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야 하는건가?' 아크가 허탈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을때였다. 문득 탑 천장에 거대한 구조물이 보였다.수백 톤의 철을 녹여 만듣 듯한 손바닥!다크브라더를 상징하는 구조물은 몇가닥의 쇠사슬로 허공에 떠 있었다. '만약 저거 떨어뜨릴수 있다면?' 그러나 몇가지 문제가있었다. 먼저 강철 손바닥은 10미터가 넘는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또한 아래에서는 마법으로도 쇠사슬을 공격하지 못하는 위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벽면은 매근해 기어 올라가서 쇠사슬을 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기어 올라갈수 있다고 해도 아란이나 반란군이 밑에서 응원만 하고 있을리 없었다. "그래도 방법은 그것뿐이다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뭔가............' 그때,죽어라 머리를 굴리던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래,그 방법이라면!' "데드릭, 날아와라!" 아크의 명령에 상공에서 전황을 살피던 데드릭이 펄럭거리며 날아왔다. "주인,이제 큰일났다. 어떡하냐? 응? 어떡하지?" "닥치고 가만있어.마령 소환,데이모스.검화!데드릭,받아!" 아크가 데이모스를 검 사태로 소환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데드릭이 얼른 본 블레이드를 잡아챘다. "올라가라!저곳으로!" 그렇다,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소환수를 이용한느것! 아크가 구조무락지 올라갈 방법은 없다. 또한 무기가 없는 데드릭 역시 쇠사슬을 끊어 내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검을 가진 데이모스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데이모스를 본 블레이드로 변환시키면 소형 소환수인 데드릭이라도 들고 날수가 있는 것이다. 데드릭이 구조물 위까지 올라간 것을 확인한 아크가 소리쳤다. "데이모스 검화 해제!쇠사슬을 끊어라!" 딱딱딲,딱딱딱딱! 데이모스가 용맹하게 이를 마주치며 검ㅇ르 휘둘렀다. 쿵,강렬한 충격에 구조물이 거칠게 요동쳤다. 그러자 뒤늦에 아크의 의도를 눈치챈 아란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이,이런........물러나라!" "하지만 이미 결속의탑과 연결된 교각은 끊어졌습니다" "멍청이 ,약속의 탑으로 가면 되잖아!" "하,하지만 장로의 직속부대가 약속의 탑으로 진입했다고.............." "뭐라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그 전에 장로와 샴바라를 처리할수 있을것 같아서........" 반란군의 말에 아크의 입끝이 치켜져 올라갔다. "역시 이번에도 승자는 내가 될 모양이다. 아란." "너,너.............!" 그때까지 열심히 쇠사슬을 후려치던 데이모스가 결국 하나를끊어버렸다. 거대 구조물이 휘청거렸다.그러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쇠사슬도 연쇄적으로 끊어져 나갔다.그리고.........맹렬한 속도로 구조물이 떨어져 내렸다. 쿠쿠쿠쿵!콰쾅!콰콰콰콰! 구조물은 수십명의 반란군을 짓뭉개며 바닥에 내리꽂혔다. 그러나 아크가 노렸던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수백톤의 구조물이 떨어졌다. 아무리 튼튼한 구조의 바닥이라도 그 화중을 견뎌 낼리가 없었다. 과연........뒤이어 바닥이 움푹 꺼지더니 거의 100미터에 달하는 낭떠러지가 입을 쩍 벌렸다. "데이모스,소환 해제!장로님,샴바라,로코,내 어깨에 올라타!" 이사벨과 샴바라,로코가 허둥지둥 슬라임 아크의 어깨로 올라왔다. 동시에바닥이 완전히 내려앉으며 탑안의 모든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잠시의 비행......... 철퍼덕! 슬라임이 된 아크는 떨어지는 소리부터가 달랐다. 소리만 들으면 굉장히 참혹한 꼴이 된 것 같지만 아크의 생명력은 1도 줄어들지않았다.'슬라임의 시간'은 낙하 데미지도 100%무효화시키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의 어깨에 올라탄 3명도 낙하 데미지를 받지않았다. '후후후,어디 구경이나 좀 해볼까?' 아크는 흐뭇한 얼굴로 우수수 떨어지는 아란과 반란군을 바라보았다.3명이나 짊어지고 떨어진 덕에 그들보다 한참 앞서서 착지한 것이다. 눞이가 100여 미터,생명력이 적지 않게 줄어 있던 반란군들은 그대로 떡이 되었다. 중갑은 입은 아란이야 말할것도 없으리라.그러나 아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란이 거의바닥에 닿을때쯤,주문서를 꺼내더니 좍 찢어버렸다.그러자 홀연히 모습이 사라지더니 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낸것이다. '[워프]주문서!' [워프]주문서는 사용자를 무작위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로 이동시킬 리가 없으니 언제나 이동장소는 지상 .그 법칙은 허공에서 사용해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낙하 데미지를 무효화시키는 절묘한 방법! 대신 패널티(?)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허공에서 사용한 탓에 이동범위가 한정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크조차 상상도 못했던 기발한 발상! 덕분에 데미지를 받지않은 아란이 옅은 미소를지었다. "이제 네놈의 수작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아크는 멍한 눈길로 아란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냈다. "도대체 똑똑한 건지,멍청한건지 모르겠군" "뭐?" "뒤를 돌아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지" 확실히 아란은 아크보다 똑독한 구석이 있었다. 나가란에서도 그렇고,한번 추락사를 경험하고는 곧바로 대응방법을 알아내는것도 그렇고.................아마 시간만 충분하면 무지막지한 방정식도 척척 풀어내는 우등생이리라. 그러나 아란은 아크에 대해 순발력이 엄청 떨어졌다. 말하자면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하는 것이다. 고개를 돌린 아란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가 아크와 샴바라를 상대로 몰아붙일수 있었던 이유. 그건 100여명의 반란군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반란군들은 모두 아란의 주변에서 떡이 되어있었다.즉, 아란은 다시 벌거숭이 임금님이 됐다는 말이다. "여기가 마을에 속하는 지역이라는건 알고 있지?" 아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주문서가 그렇지만 ,마을에서 [워프] 주문서를 사용해도 이동 범위는 제한적이다. 아무리 주문서를 사용해도 마을안에서만 이동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아란이 셀리브리드에서 주문서로 탈출할수 있었던것은 입구 근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살린의 탑 중심.그리고 살린의 탑은 이미 직속 부대가 장악한 상태다. 물론 아란에겐[워프]주문서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자, 샴바라.정리해야지?" "물론이지" 샴바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버프와 스킬을 난사해 마나조차 없는 아란. 악실리온에서 1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둘의 상대로는 꽤나 부족했다. 2명이 달라붙자 바로 수세에 몰린 아란은 이를 갈아붙이며 발악했다. "아크,내가 살아있는 한 ,결코 네놈을 그냥 두지않을것이다!내 모든 힘을 동원해서 네놈에게 진짜 절망이 뭔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지!" "그러든지 말든지..........뱀,제일 허접스러운 검" 아크는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검을 폭발시켰다. 그러자 샴바라 역시 자신의 최강 필살기로 싸움에 종지부를 찍었다. "블레이드 스톰!" "뇌검!" 결국 아란은 화려한 특수 효과와 함께 바닥에 누워 버렸다. 아란이 허망하게 쓰러지자 번쩍이는 투구 하나가 툭 떨어졌다. '재신의 가호'인지 뭔지,장비 교체를 할 마나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노르헨의 투구(레어) 방어구 타입 : 철제 투구 방어력 : 65(+10) 내구력 : 31/80 무게 : 50 사용 제한 : 레벨 130 이상 전사 계열 오래전 전설적인 기사로 명성을 떨치던 노르헨의 투구. 노르헨은 한때 놀라운 지략과 용맹함으로 야만족을 물리쳤다고 전해진 명장입니다. 이 투구는 그의 애장품으로 그가 전장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함께 했습니다. 투구에 새겨진 수많은 검흔이 그의 용맹함을 증명할것입니다. <옵션 : 방어력+10,힘+20,체력+10%> <특수 옵션 : '전장의 용맹함'을 사용할수 있습니다. '전장의 용맹함'은 모든 파티,공격대원의 사기를 30%올릴수 있습니다. 또한 지휘관이 사용하면 전술과 스탯에 추가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마나 소모 : 50>] '이것도 몇백만원은 받을수 있겠군' 레어아이템을 주워든 아크의 얼굴은 그리 밝지못했다. 어차피 카오틱은 무조건 장비 아이템을 떨군다. 그렇다면 기왕 떨굴거 '신성한 강철 방패'가 떨어지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어쨌든 샴바라가 달라고 하기전에 챙기자!' 아크는 얼른 투구를 뱀의 배 속에 우겨 넣었다. 그러나 걱정곽 달리 샴바라는 아이템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모양입니다. "괜찮으십니까?" "네,고마워요" 이사벨이 샴바라의 손을 잡고 일어나며 대답했다. 살려준건 아크인데,왜 샴바라에게 고맙다고 하는거야? 아크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옆에서 로코가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오빠,멋있었어요" 뭐,덕분에 아이템도 독식했으니 이 정도로 참아줄까? 아크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바닥에 널브러진 아란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감옥으로 이동되겠지?앞으로 한달은 못 보겠군.아니,어쩌면 영원히 못 보게 될지도........훗 ,잘가라' 아크는 아란의 머리를 한번 꾹 밟아주고는 몸을 돌렸다. 아크 일행은 뒤늦게 달려온 갱생단이 내려준 줄사다리를 타고 밖으로 나올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모든 상황이 정리되어 있었다. 반란군은 모두 직속 부대에 제압당해 감옥에 갇혔고,나베인은 끝까지 꽥꽥 거리다가 목이 떨어졌다. 다크브라더의 항쟁은 그렇게 결말을 고했다. '어째서 강제 종료가 되지않는거지?' 아란은 멍하니 아크 일행이 사라지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보통 카오틱이 죽으면 시체는 남아도 유니트는 강제종료된다. 24시간동안 접속할수 없단 룰때문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종료되지않는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다. '아크 자식, 헌터 등록을 한 모양이군' 카오틱이 헌터나 경비대에게 죽었을경우,이때는 바로 종료되지않고 일정 시간이 지난뒤에 자동적으로 감옥에서 부활한다. 그리고 현상금 액수만큼의 징역을 살아야하는것이다. 헌터에게 죽으면 보석금으로 징역 일자를 줄일수조차 없다. 결국 꼬박 한달은 감옥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말. '이대로.............이대로 끝이라는건가?' 한달이나 뒤처지면 입사 시험 결과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결국 그동안의 노력이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아크..............!' 가슴속에서 믿을수 없을만큼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불과 얼마전까지만해도 같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하찮기 짝이없는 인간! 그런 놈에게 한번도 아니고,무려 네번이나 죽임을 당했다.도저히 인정할수 없는 일이다. 이제 시르바나 성이나 깎인 경험치,스탯은 문제가 아니다. 그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자긍심이 진흙발로 짓밟혔다.만약 복수를 포기하면 죽을때까지 패배자라는 낙인을 짊어져야 하리라. '이대로 포기할수 없어!죽인다. 내 모든것을 다 쏟아부어서라도 네놈만큼은 죽인다!' 아란은 칼로 살가죽에 새겨놓는 심정으로 복수를 다짐했다.그러자 찢어지는듯한 비명이 고막을 뒤흔들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스탯 '증오'가 생성됬습니다. 증오(+10) : 인간이 품고 있는 감정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증오입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상대를 파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증오,복수를 위한 가장 적절한 힘입니다. <증오는 오직 카오틱 성향을 가진 플레이어에게만 생성됩니다. 증오를 품은 유저는 카오틱 성향 1당 증오 스탯의 0.1%에 해당하는 스탯 보너스를 얻게 됩니다. 또한 모든 스킬에 0.1%에 해당하는 증폭 효과가 적용됩니다. 단, 성향이 선으로 바뀌면 증오 스탯도 함께 소멸합니다>] '증오.........이런 스탯도 존재하는건가?' 아란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한달이나 감옥에 갇히는 마당에 그런 스탯이 무슨 위안이 되겠는가? 그때였다.문득 가슴 부근에서 미약한 진동이 일어났다. 뒤이어 홀리나이트로 전직하며 받았던'축복의 펜던트'에서 검은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이게 뭐지? 어째서 홀리나이트의 아이템에서 검은 기운이?' 그때,다시 새로운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특수 아이템이 발동했습니다. 증오 스탯의 추가로 특수 아이템 '영웅의 펜던트'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특수 아이템의 효과로 단한번,정해진 부활 장소를 무사하고 숨겨진 지역인 '고대 악의 제단'에서 부활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시겠습니까?[ '뭐지? 아이템 정보를 볼때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아란은 잠시 고민하다가 부활을수락했다. '고대 악의 제단'이라는 이름이 조금 걸렸지만,어디든 감옥보다야 낫지않겠는가? 이미 아란은 더 나빠질 것도 없는 몸이었다. 아란이 부활을 수락하자 이내 그의 몸은 붉은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어둠이 찾아오더니 점차 시야가 밝아졌다. 몇번 눈을 깜빡이던 아란은 곧 한 노인을 발견했다.나이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노인.놀랍게도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아란은 튕기듯 일어났다. "다,당신은..........?" "자네가 올줄 알았네" 노인은 음습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란은 와락 인상을 구기며 거칠게 쏘아붙였다. "올줄 알았다고? 잘도 그따위 소리를......!내가 당신때문에 무슨 꼴을당했는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그것은 내 탓이 아니네.자네가 선택한결과였지" "뭐라고?"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자네가 어둠의 의지에 선택을 받았다는 걸까?" "어둠의 의지? 무슨 말도 안되는.........." "말이 안된다고?" 노인은 키득거리며 아란의 목걸이를 가리켰다. "자네가 그 목걸이의 힘을 발동시켰다는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네" "목걸이..........." 아란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방금전의 상황을 돌이켜보았다. '증오'스탯이 생기며 작동했던 목걸이.'증오'가 카오틱만 얻을수 있는 스탯이라면 목걸이 역시 카오틱 상태에서만 발동한다는 뜻이다. 즉, 노인은 그 목걸이를 줄때부터 아란이 카오틱이 될것을 예상했다는 말이 아닌가? "이 목걸이를 준것은 당신!그렇다면 모든게 당신의 음모였단느 건가?" 아란은 거친 목소리로 소리치며 노인을 쏘아보았다. 그렇다,노인의 정체는 바로 아셔스 교단의 대주교,마스튜아라!아니,사자의 신 앙크의 추종자였다. 셀리브리드에서 잠적했던 마스튜아라는 바로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예전, 그는 아란이 홀리나이트를 전직하자 곧바로 초청장을 보내 아란의 후견 교단을 자청했다. 그리고 그 증표로 건네준 유니크 목걸이가 바로 문제의 '축복의 펜던트'였다. 그렇다면 모든것이 마스튜아라의 계략이라고 추측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다. "천만에,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마스튜아라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알고는 있었지.자네는 홀리나이트로 이방인으로서는 더할수 없는 영광을 누렸네.하지만 나는 자네가 세인들이 말하는것처럼 성스러운자가 아니라는것을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어.그래서 시험했던 거네.과연 언제까지 세상을 속이며 홀리나이트로 살아갈수 있을지.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고밖에 말할수 없겠군.이제 자네와 가슴속에는 성자라면 절대깃들지 말아야할것이 자리잡고말았어.이제야 위선의 탈을 벗어던지고 내가 원하던 본모습을 드러냈다는 뜻이지" 마스튜아라는 끈적한 눈길로 아란을 훑었다. "자네를 비난하려고 하는게 아니야.덕분에 더 큰 영광을 누리게 도리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거네.한낱 명성에 연연하는 홀리나이트가 아닌,위대한 어둠의 대리자로서" "어둠의 대리자?" "그렇지.그 누구보다도 강하고 거짓되지않은 진정한 악중의 악!그게 바로 내가,아니 우리가 기다리던 어둠의 대리자네" 마스튜아라가 혈압을 높여가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란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누구보다 강하다고?하,병사들을 피해 도망쳐 온 당신에게 그런 힘을줄 능력이 있을까?" "도망쳐?" 도발적인 말투에 마스튜아라는 키득거리며 대꾸했다ㅏ. "나는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네" "때라니?" "어둠이 세상을 뒤덮어야 할때!" 마스튜아라가 빙글 돌며 팔을 활짝 펼치자 주위에서 수천쌍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시선을 집중한 뒤에야 아란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챘다. 마치 방금 지옥에서 기어올라 온듯한 이형의 존재들!밖에서 볼수 있는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강력한 기운을 풍기는 악마형 몬스터들이었다. "이,이것들은 대체..........." "이것이 어둠의 힘이네.그리고 네가 이끌어야 할 존재들이지" "내,내가?" "그렇다.수많은 시련을 이겨내야겠지만,저들은 결국 자네 힘의 일부가 될 것이네" 아란은 멍하니 악마들을 바라보다가 떠듬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쨰서 지금에서야 그런 말을?" "지금까지 네게는 가장 중요한것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중요한것?" "말했지 않나? 성자에겐 결코 깃들수 없는것.증오.........." 마스튜아라는 천천히 아란을 돌아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이제 자네는 어둠의 대리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것을배웠네.믿었던 동료의 배신과 죽음.그리고 절대 용서할수 없는 적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무슨 말인지는 자네가 더 잘알겠지? 자,이제 선택하게.이대로 홀리나이트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것인지,아니면 어둠의 세례를 받고 위대한 어둠의 일부가 되어 자네를비난하던 쓰레기들을 파괴할 힘을 얻을 것인지..........." 동시에 두두둥,하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사자의 신 앙크 교단의 대주교로부터 '어둠의 대리자'에 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당신은 어둠의 대리자가 될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어둠의 세례를 받으면 숨겨진 직업 '파멸의 기사'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전직하면 '홀리 나이트'는 자동 취소되며 레벨과 스탯을 제외한 모든 스킬과 특성이 초기화됩니다. 또한 '파멸의 기사'는 특수 직업으로 두번 다시 취소가 불가능하며 '파멸의 기사'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상위 직업이외엔 전직할수 없습니다. 대신 '파멸의 기사'직업의 발동 조건에 따른 보너스로 2차 전직을 하기 전까지 모든 경험치와 숙련치를 50%추가 획득할수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아란은 잠시 직업 정보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힘들게 올려놓은 모든 스킬과 특성을 다시 배워야하니 초반에는 지금보다 몇배는 힘들것이다. 그러나 파멸의 기사는 명칭처럼 홀리나이트와 달리 공격성향이 강한 직업이다. 일정 수준 이상까지 성장시킨다면 홀리나이트 따위는 비교도 되지않으리라. 만약 아란이 아크를 찍어누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차피 더이상 홀리나이트의 2차 전직은 힘들게 됐다' "좋습니다" "훌륭한 선택이네" 마스튜아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둠의 기운을 뿜어냈다. 순간 아란의 순백색 갑옷이 칠흑처럼 물들었다. -어둠의 세례를 받아'파멸의 기사'로 전직했습니다. 아라은 뒤이어 떠오른 정보창을 훑어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파멸의 가슨ㄴ 예상대로......아니,예상 이상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크 ,나는 이대로 죽지않는다!설사 모든것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네놈만큼은........!' 마스튜아라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그러나 오래지않아 너는 세상 모든것을 대신할만한 어둠의 영광을 얻게 될것이다" ACT 9 이계의 문 아란이 어둠으로 굴러 떨어질 무렵. 살린의 탑에서는 또 다른 의식이 진행중이었다. "샴바라,위대한 살린의 뜻에 따라 그대를 '인도자'로 칭하노라!" 반란을 진압하고,주변 정리를 끝낸 이사벨은 다음날 자정을 맞아 다시 다크브라더의 의식을 진행시켰다. 이사벨은 천천히 샴바라에게 다가와 어둠에서 뚝 떼어낸듯한 베일을 휘감아 주었다. 살린의 보물 가운데 하나,어둠의 베일이었다. "인도자의 앞날을 위해서!" "일족이 빛을 찾는 그날까지!" 그러자 재림의 탑에 모인 암살자들이 일제히 부복했다.마치 고대 중국 황실에서 수많은 신하들이 황제를 향해 절을 하는듯한 장면이었다. 다크브라더가 오래전에 넘어왔다는 이 대륙은 어쩌면 중국 대륙을 모티브로 설정해 놓은 세계일지도 모르겠다.어쨌든 살린의 보물이 두가지가 모여 암살자들은 샴바라에게 강한 존경심을 보였다. 아직은 인도자에 불과하니 명령권까지는 없지만, 아크와 수인족의 관계처럼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것이다. "부디 다크브라더의 오랜숙원을 풀어주세요" 이사벨의 목소리에 샴바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알겠군' 아크는 멍한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원본에는 아크가 '아란'으로 표기되어있음.) 이사벨은 의식을 위해 붉은 복면을 벗고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을 보니 왜 샴바라가 그렇게까지 그녀를 보호하려 했는지 이해되었다. ㅇ깨까지 내려오는 비단 같은 검은 머리칼.갸름하고 하얀얼굴에 박혀 있는 흑요석같은 눈동자.그렇다,이사벨은 미인이었다. 그것도 마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미인! 그런 미인이 위기에 처하면 아크라도 몸을 던졌으리라. 정의남과 갱생단도 같은 생각인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오빠!" 아크가 헤벨쭉한 얼굴로 이사벨을 바라보자 로코가 옆구리를 꼬집었다. 덕분에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크는 부러운 눈길로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이사벨 때문이 아니라,그의 몸에 휘감긴 베일때문이었다. '그나저나..........저건 분명히 직업 관련 레어나 유니크아이템이겠지?' 아크는 침을 꼴깍 삼키며 어둠의 베일을 바라보았다. 아크가 모으는 삼신기처럼 살린의 힘 일부가 담겨있는 아이템! '젠장, 나도 죽어라 고생했는데...........' 덕분에 아란에게 아이템도 빼앗고 아란을 감옥에 처넣었지만!덕분에 500골드의 현상금을 받을수 있겠지만!그건 그거도 이건 이거다.어쩐지 재주는 아크가 부리고 돈은 샴바라가 챙긴다는 찜찜함을 떨쳐 낼수가 없었다. '역시 뭐라도 한 소리 해야겠는걸?' 그때,이사벨이 아크에게 시선을 옮기며 빙긋 웃어보였다. 아아,젠장.........역시 예쁘다.이건 뭐,불만을 터트릴 방법이 없잖아? "어쌔신 마스터 살린의 절친한 동료였던 마반 영웅의 후예,구도자 아크님.제가 경험이 부족해 나베인에게 대행을 맡겨 놓은 건 큰 실수였어요.다크브라더에게도 구도자는 벗이에요.지금까지 다크브라더가 저질렀던 무례를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반란이 끝난뒤,아크의 신분을 알게 된 이사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영웅인 살린은 마반 영웅을 가장 절친한 벗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런 마반 영웅의 후예를죽이겠다고 쫓아다녔으니 미안하기도 했으리라. "뭐,이미 지난 일이니까..........." 아크는 이사벨의 외모에 홀딱 빠져 꽤나 너그러워졌다. "우리가 그런 무례를 저질렀음에도 인도자님을 돕기 위해 닫ㄹ려와준것,아크님을 보기가 너무나 부끄럽고 어떤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런 말은 아무래도 좋으니까 뭔가 그럴듯한 보상을 달란 말이야!' 역시 여자의 외모보다는 아이테이다. 이사벨이 말로 때우려는 기색을 보이자 아크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다크브라더의 존립을 위협하는 반란을 막을수 있었던 것은 아크님과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부디 우리에게 그 은혜를 보답할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이사벨은 생긴것만큼 마음 씀씀이도 예뻤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13명의 복면인이 커다란 목함을 들고 줄지어 들어왔다. '보상!보상이 있는거야?' 아크에게 주어진 목함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검 ㅎ나자루가 들어 있었다. [귀살검鬼殺劍(레어) 무기 타입 : 양손 검 공격력 : 45~60 내구력 : 200/200 무게 : 45 사용 제한 : 레벨 190,검술 관련 스킬 상급 이상 이 대륙에서 수천 마리의 요괴를 베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귀검鬼劍.돌을 내리쳐도 이 하나 나가지 않는 강도와 머리카락을 떨구면 그대로 네 토막이 날 정도로 예리함을 자랑하는 검입니다.귀살검은 아무리 두꺼운 가죽을 가진 몬스터라도 단숨에 베어 버릴것입니다. 단 ,귀기가 지나쳐 자칫하면 사용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을수도 있습니다. <옵션 : 민첩+20,반응 속도+10> <특수 옵션 : '귀기개방'을 사용할수 있습니다.검에 담겨 있는 귀기를 일깨워 공격력을 20%증폭시킬수 있습니다. 단,귀기개방을 사용하면 1초에 5의 생명력을 소모합니다>] '헉,이,이게 뭐야? 레어 검?'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잘 벼린 일본도처럼 매끈한 모양의 검! 지금까지 레어 무기를 먹어본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검 계열은 처음이었다. 검은 양손이라도 둔기나 도끼에 비해 데미지가 떨어진다. 그러나 사용하기가 편하고 공격 속도나 공격력의 균형이 잘잡혀 있었다. 때문에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무기였다. 현재 아크가 사용하는 검은 란셀의 검과 본 블레이드.본 블레이드가 공격력이 높다고는 해도 고작 23~35에 불과했다. 그나마 데드릭과 함께 사용하면 협공 보너스가 적용되기에 대부분 란셀의 검을 쓰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귀살검은 무려 45~60! 게다가 '귀기 개방'이라는 옵션을 사용하면 공격력을 20%나 더 올릴수 있단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상대하는 몬스터 레벨이 높아져서 검을 바꿔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같은 아이템이다. '단 하나,양손 검이라는게 조금 걸리지만..........어차피 검투술은 모든 종류의 검을 다룰수 있는스킬이니 금방 익숙해지겠지.대신 공격 속도는 조금 느리겠지만, 공격력이 그 정도로 차이난다면 상관없어.우하하하,이게 웬 횡재냐?' 검을 바꾸는 것만으로 당장 종합 전투력을 30%이상 끌어올릴수 있으리라. 물론 레어 검이 생겼다고 당장 란셀의 검이나 본 블레이드를 팔아먹을수는 없다. 일단 마검을 사용할수 있는 직업이 워낙없었고,데드릭과 데이모스가 마검의주인이라 다른 마검을 구할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레벨 제한이 190이니 아직 그림의 떡이지만.....지금이 레벨 180이니 며칠 뒤면 사용할수 있다!' 아크는 입맛을 다시며 귀살검을 가방에 잘 챙겨넣었다. "오오오,이,이건.......!" "헉,레어 아이템이다!" 정의남과 갱생단원들도 입을 쩍 벌리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아크처럼 그들의 목 함에도 직업 관련 아이템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로코의 경우,'세이렌의 하프'라는 마법악기가 지급되었고,정의남에게는 '맹독의 장갑',타짜에게는'데스 나이프',불끈이에게는 '죽은 자의 갑옷'............ 모두 현질로 구한 아이템이 허접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부디 그동안의 은원을 잊어 주었으면 해요" "원한이라니요 ?그게 뭡니까?" 아크는 얼른 검을 챙겨 넣으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아크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샴바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숨겨진 세력'다크브라더'와의 관계가 적대에서 호의로 바뀌었습니다. 이로써 더이상 다크브라더는 신경 쓰지않아도 되었다. 더구나 다크브라더 내에서 샴바라의 위치가 상승했으니,여차하면 이용해 먹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란을 쫓다가 우연히 개입한 일이지만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이제 샴바라만 잘 구슬리면.........' 의식이 끝난뒤,아크는 샴바라를 따로 불러냈다. 아크는 샴바라의 옆구리를 찌르며 은근한 눈길을보냈다. "어이,보기보다 제법이잖아?" "무슨 소리야?" "이사벨..........굉장한 미인이던데?" "쓸데없는 소리" 샴바라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가가 붉어졌다. 아크는 실실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빠지지는 말라고,상대는 NPC야" "NPC가 어때서?" 샴바라가 의외로 날카롭게 반응했다. "어때서라니? 정말 NPC하고 사귀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너는 여자 친구를 왜 사귀냐?" "엥?" "이사벨은 비록 NPC지만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여자야.그리고 나와 함께 대화를 나눌수도,만질수도 있다. 더 뭐가 필요하다는 거지?" 아크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그녀가 NPC라는 것만 제외하면 현실의 여자친구와 다를게 전혀없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적으로는 선뜻 납득이 되지않았다. 그래도 NPC아닌가? "저는 이해해요!" 그때, 로코가 와락 샴바라의 손을 잡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모든 것을 뛰어넘는 사랑!솔직하게 마음이 가는대로 느끼고,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음마저 불사하는 사랑!그래요,그게 진정한 사랑이에요.이제 보니 샴바라 오빠도 멋진 사람이었군요.누가 좀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어이,그렇다는데?" 샴바라가 아크를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너는 관심꺼!"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얼굴이 붉어진 아크는 심통맞은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괜히 무안해져 로코를 멀찍이 떼어놓고 슬슬 본론을 꺼냈다. "샴바라,이제 인도자가 되었으니 앞으로 한동안 다크브라더의 일에 집중해야겠지?" "그렇겠지" 샴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사벨에게 대강의 얘기는 들었다. 현재 다크브라더는 여러 유파로 갈라져 대륙 곳곳에퍼져있었다. 살린의 보물이 흩어진 탓이다. 때문에 샴바라가 2차전직을 위해 해결해야 할 첫번쨰 시련은 인도자로서 살린의 나머지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다크브라더를 찾아 규합해 일족의 부흥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것. 아크는 히죽웃으며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그러면 다른 일을 할 정신이 없겠네?" "미리 말해 두지만 지도와 일기는 양보 못해" 아크의 수작을 눈치챈 샴바라가 딱 잘라말했다. 이미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아크가 처리해야 할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퀘스트에 필요한 아이템 가운데 열쇠와 일기는 아직 시드가 가지고 있었다. 아크와 샴바라가 악실리온에서 시합을 벌여 승자가 갖기로 합의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다시 악실리온으로 돌아가 경기 신청이다 뭐다 시간을 잡아먹게 된다. 게다가 무조건 아크가 이기리라는 보장도 없다. 시르바나에서 레벨과 스킬을 잔뜩 올렸지만 ,아란고 싸우면서 가늠해보니 여전히 샴바라는 무시못할 상대다.더구나 샴바라는 이번에 어둠의 베일까지 손에 넣었다. 어둠의 베일은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다.아크가 삼신기르찾으면 능력치가 잔뜩 올라가는 것처럼,세인트 어쌔신인 샴바라도 살린의 보물을 얻어 능력치가 상당히 올라갔으리라.때문에 아크는 날로 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샴바라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뭐야,정말 치사하게 나올래? 너 바쁘다며?" "누가 치사한데? 그리고 게임이 꼭 해야할일만 하는거냐? 어차피 각지의 다크브라더를 찾아다니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거야.나도 그동안 할일이 있어야 하잖아" "사랑하는 이사벨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해야지.딴짓할 시간이 어디있어?" "까불래?" "어라? 노려보냐? 잘하면 치겠다? 내가 죽을 고생하며 도와준걸 벌써 잊었냐?"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냐? 그리고 그 보상이라면 이미 충분히 얻었잖아. 아란이 아이템 떨군걸 내가 못봐서 가만있었는줄 알아? 게다가 이사벨에게도 받았잖아" "그,그건.........어쨌든 내가 널 돕기 위해 달려온건 사실이잖아" "나때문에? 아란 때문에 귀찮아질것 같아서는 아니고?" '이런 눈치 빠른 놈 같으니...........' "야,정말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거야?" 원래 방귀 뀐 놈이 성내는법이다. 속내가 들통 나자 아크는 되려 성질을 내며 볼을 부풀렸다. 그러나 샴바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템에 그다지 욕심은 없어.그래서 아란의 아이템도 눈감아 준거고.하지만 받아놓은 퀘스트를 포기하는건 자존심 문제지.또 포기한다고 딱히 이득이 있는것도 아니잔아.너한테 뭔가 바라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충분히 경험했으니까" "이득이 왜 없어? 나의 애정!" "됐거든" 아크가 양팔을 활짝 펼치자 샴바라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샴바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원하는걸 준다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원하는거? 설마 퀘스트 보상을 나누자는............"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보상은 됐고" 샴바라는 아크를 흘겨보다가 물었다. "아가 네가 사용했던 스킬.......뭐지?" "스킬?" "나도 뉴 월드에서 별의별 스킬을 다 경험했지만 네가 썼던 그 이상한 스킬은 처음이야.몸이 물컹물컹하게 변하는거.내게 그런 스킬이 있었다면 이사벨을 위험하겜나들지도 않았을텐데.........." "물컹물컹? '슬라임의 시간'말이야?" "그게 '슬라임의 시간'이라는 스킬이냐?아무리봐도 평범한 방법으로 배울수 있는 스킬같지는 않던데......대체 어떻게 배운거냐? 그리고 내 짐작으로 둔기에 저항력이 있는것 같던데? 같은 공격력의 단검을 맞을때와 블랙잭에 맞았을때 생명력이 줄어드는게 전혀 다르던걸. 내 짐작으로는 그것도 그 스킬하고 관련이 있을거 같은데........." 역시 샴바라는 예리했다.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주었다.어차피 '슬라임의 내단'은 서바이벌 요리가 없으면 만들지도 못한다.샴바라가 알아봤자 그다지 문제 될게 없었다. 그러나 얘기를 모두 들은 샴바라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좋아,그걸 만들수 있게 도와준다면 퀘스트 아이템은 포기해주지" "뭐,뭐야?" 아크가 펄쩍 뛰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말했잖아,그거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지.필요한 재료 구하는데만 20일이 걸렸다고.거기에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사는게 들어간 돈이 300골드야.그걸 고작 퀘스트 아이템하고 맞바꾸자고?" 물론 퀘스트를 해결하면 몇천골드의 이득이 에상된다. 그러나 그런것까지 줄줄이 털어놓을 아크가 아니다. "누가 너보고 만들어 달래?" "서바이벌 요리로밖에 만들지 못하는 아이템을 달라는게 그 말이잖아!" "너는 '슬라임의 내단'을 만드는 스킬 주문서만 만들어 주면돼.나머지는 내가 천천히 구해보지.고작 줌누서 하나 만들어 달라는건데,나쁜 조건은 아니잖아?" "스킬 주문서?" "내가 설명하는것보다 직접 보는편이 빠를거야" 아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자 샴바라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으로 웃기지도 않지만, 살린의 탑도 일단은 암살자들의 수도 같은 곳이라 탑 내부에 꽤 많은 상점이 존재했다. 샴바란는 그곳에서 주문서 하나를 사서 건네주었다. [비전의 주문서 특정스킬을 담을 수 있는 특수 주문서입니다. 단, 이미 주문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는 스킬은 담을수 없습니다. 또한 주문서를 사용해 생산품을 만들어낼 경우,결과물은 실제 능력치의 70%밖에 되지않습니다. <사용 호시수 : 1회,상급 스킬 전용>]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숨겨진 마을의 상점에는 독특한 아이템을 팔고 있다. 이른바 특산품이라는 것인데,숨겨진 마을을 찾아낸 보상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설마 이런 어처구니없는 주문서까지 존재할줄은 상상도못했다. 결국 샴바라의 말은, 아크에게 비전의 주문서에'슬라임의 내단'제조법을 담아달라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샴바라 혼자서도 재료를 구해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수 있다. 실제 능력치의 70%에 해당하는 결과물이지만............ "탄력도 같은 스탯은 일단 생기면 얼마든지 올릴수 있다며? 그리고 '슬라임의 시간'스킬도 원래 두가지라며? 그러면 둘중에 하난 생기지않겠어? 사실 나는 독 저항이나 탄력도만 생겨도 만족해" 샴바라가 별로 문제 될게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아크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이런 주문서가 있다면 돈이 되겠는데?' '슬라임의 내단'을 한번 만들어 먹고 잊고 있었던 이유! 내단은 한사람당 한번밖에 효과를 볼수 없다. 다른 몬스터의 내단이라면 당연히 효과를 볼수 잇지만 이미 슬라임의 특성을 가지게된 아크는 '슬라임의 내단'을 다시 만들어 먹어도 효과를 볼수 없다. 그때,아크는 내단을 만들어 팔아볼까 생각했다. 그러나 재료를 구하는게 너무빡세다.또한 현재 아크의 레벨은 180(원본에는 175로 표기되어있음). 이제 폴루션 슬라임이나 갈고리 박쥐를 사냥해도 경험치가 되지않는다. 아이템 만들어 팔자고 레벨업을 포기하고 카이로트와 란셀을 왕복할수는 없지않은가? '하지만 내가 직접 만들 필요가 없다면.......?' 돈모으는게 취미이자 특기인 아크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정의남 아저씨나 갱생단 형님들은 아직 재료를 주는 몬스터를 잡아도 레벨업이가능하다.게다가 필요하면 도적들이나 너구리족,묘족을 동원할수 있어' 그들이 카이로트와 란셀에서 사냥을 한다면 재료는 얼마든지 모을수 있다.재료 가운데 유니콘의 뿔이 마음에 걸리지만 세상에 유니콘이 망할 말 새끼 하나뿐일리가 없다. 아니,어차피 재료에 필요한건 '일각수의 뿔'.꼭 유니콘의 뿔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 이미 아크가 '슬라임의 내단'효과를 확인했으니 굳이 먹지않아도 효과를 확인할수있다. 구매자가 군침을 흘리도록 만들수 있단 말이다. '목돈을 만질수 있는 기회다!' 대충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이런저런 인건비를 빼도 개당 200골드 이상 남길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재료 공급 루트만 잘 개척해놓으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수 있다는 뜻!그것도 아크는 주문서와 정보만 제공하고 말이다. '뭐,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건 아이디어니까' "좋아,그 제안 받아들이지 하지만 문제가 있어" "문제?" "재료 중에 '타락한 페어리 날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구할수 없어.그러니 그건 내가 구해주지.대신 너는 '일각수의 뿔'을 2개 구해서 교환하자" "그러지" 샴바라는 조금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그렇게 계약을 채결하고 주문서에 '슬라임의 내단'제조법을 담아주었다.그렇게<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퀘스트에 필요한 아이템은 아크의 소유가 되었다. 사실 말은 밉살맞게 했지만 샴바라도 내심 아이템을 포기할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아크는 빈 주문서를 20장 사들고 정의남을 찾았다. "슬라림의 내단?" "네, 잘만하면 레벨도 올릴수있고,하나 만들때마다 상당한 가격에 팔수있을거에요.70%능력치라고 해도 희소성이 있으니 하나당 1,500골드는 가뿐해요" 아크는 자세하게 사업아이템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정의남과 갱생단이 주축이 되어 사냥터를 개척한다.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면 남아도는 저레벨 도적들을 투입,꾸준하게 재료를 모은다. 그렇게 모은 재료는 란셀마을에 집결시켜서 완제품을 생산.그 완제품은 다시시드를 통해 시르바나에 만들어놓은 교역소를 통해 위탁판매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인건비가 적지않게 들어가겠지만 그게 가장 효과적이다. 게다가 도적들과 란셀 마을,시르바나의 교역소를 모두 성장시킬수도 있었다. "과연............그렇게되면 놀고 있는 도적들도 할일이 생기는구나!" "하지만 다른 재료야 사냥으로 어떻게 구할수있지만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는..........." "그건 제가 여행하며 구하는대로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하지만'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는 워낙 고가의 마법재료라 100개당 300골드는 주셔야해요" "너도 마드세인에게 300골드 주고샀다고 했으니 당연하지" "그리고 주문서 가격으로 100골드 정도 받았으며 하는데............" 아크의 계획이바로 이것이었다.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상점에 팔면 개당 1골드. 그러나 슬라임 공장을 세워 직접 운영하면 마드세인처럼 3골드에 팔아먹을수 있다. 여기서 떨어지는 금액이 200골드.그리고 친밀도가 높은 샴바라를 통해 주문서를 대량 구입하면 장당 30골드에 구입할수 있으니 다시 70골드가 떨어진다. 결구 '슬라임의 내단'을 한달에 하나만 만들어도 아크에게 매달 270골드의 순수익이 떨어지는것이다. 또한 중개 역활을 맡게 되는 란셀 마을의 상업도가 올라가 부동산 가격도 상승한다. 일석이조.아니,정의남이나 갱생단도 내단 효과를 보면 일석 삼조! 아크의 속내를 알리없는 정의남은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갱생단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 그럼 우리야 좋지!" "우리도 내단 하나씩 만들어먹으면 능력치가 팍팍 올라갈거고" "좋다,하자!" 그러나 갱생단이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르바나 비밀 던전에서의 사냥,그 이후로 갱생단은 불안감을느끼고 있었다. '30시간을 쉬지도 않고 사냥하다니..............아크녀석은 사람도 아니야' '두번 다시 그런 끔직한 경험은 하고싶지않아!' '아란 사냥도 끝났는데 또 사냥하자고 하면 어쩌지?' '젠장 ,그렇다고 힘들어서 같이 못다니겠다고 할수도 없고............' 갱생단은 아크와 본격적인 사냥을 같이 한적이 없었다. 이동할때만 잠깐 동행했기에 평소 아크와 사냥 스타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같이 사냥해 보니 정말 토 나올 정도였다.때문에 어떻게든 핑계를 찾으려고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크가 딴소리를 할까 싶어 얼른 일어났다. "당장 란셀로 돌아가 작업조를 편성해야겠다!" "그래!가자,가자!" "아크하고 같이 사냥 못하는건 정말 아쉽지만" "그렇지? 정말 아쉽지만 할수 없지!" 아크는 일단 20장의 빈 주문서에 '슬라임의 내단'제조법을 담았다.그리고 갱생단의 주머니를 털어 다시 20장의 빈 주문서로 '슬라임의 시간 NO2'스킬을 담았다. 슬라임의 내단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는 '슬라임의 정수',그러나 '슬라임의 정수'를 주는 폴루션 슬라임은 숫자도 드랍율도 꽤 낮았다. 주변의 슬라임을 긁어모으는 '슬라임의 시간 NO2'를 사용하면 그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리라. "자, 준비끝났다.돈벌러가자!" 다음날, 정의남은 갱생단을이끌고 란셀로 향했다. 로코는 그들과 달리 꽤나 아쉬워했지만 어차피 하루 18시간이나 사냥을 하는 아크를 쫓아다닐형편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게속 오빠와 함께 다닐수는 없어요.하지만 종종 찾아갈게요" 로코는 아란을 추적할때도 종종 자리를 비웠지만 금세 따라붙었다.이동속도1,000%의 유니콘이 생긴 덕분이다.사실 아크 역시 로코가 불쑥불쑥 찾아오는게 싫지않았다. 어쨌든 아크는 그렇게 살린의 탑에서 일행과 작별했다. '이제 새로운 사업 하나가 다시 시작됐고...........' 여기저기 가는곳마다 사업을 확장시키는 아크! 하지만 이번 사업도 시스템이 자리를 잡고 제대로 수익을 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한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퀘스트를 해결할 시간이 된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두가지인데.........' 아크는 살린의 탑에서 앞으로의 할일을 정리해보았다. 현재 아크에게 남은 퀘스트는<이주민을 찾아라>와<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그러나<이주민을 찾아라>는 어차피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것도 아니니,당장 어떻게 할수 있는게 아니다. '남은건 <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뿐인데.......아니지,또 있었지' 아크는 얼마전에야 한가지 중요한 아이템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방을 정리할때 우연히 이런 아이템을 발견한것이다.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휘장 : 150레벨 퀘스트 시작 아이템.< 고대 유물의 지식이 100이 돼야 확인할수 있습니다> 작센의 이벤트 퀘스트 보스,발데라스가 떨군 퀘스트 싲가아이템이었다. 제한은 레벨이 150에 고대 유물의지식이 100! 당시 아크에게는 너무 까마득해 가방에 넣어놓고 잊어버렸다.레벨이야 그렇다 쳐도 고대유물의 지식은 올리고 싶다고 올릴수있는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레벨 180에 고대 유물의 지식138!(원본에는 레벨이 175로표기되어있음). 아크가 다시 휘장을 조사하자 퀘스트가 등록되었다. [화룡족의 고향 대륙 북부의 차가운 대기 안에 숨겨진 가장 뜨거운곳. 그곳은 오래전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전해지는 화룡족의 고향입니다. 한때 훌륭한 군주로 작센을 통치하던 발데라스는 어둠에 잠식당해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제정신이 돌아오자 그에게 가장 절실하게 남겨진 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그의 염원이 남아있어서일까? 휘장은 슬픈 기운을 풍기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안타까운 발데라스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다면 화룡족의 비밀이 잠들어 있는 장소를 찾아내야 합니다. <난이도 : C>] 퀘스트와 함께 지도의 한 부분에 붉은 마크가 새겨졌다.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의 북부 산맥..........!' 가는데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짐작도 할수 없는 지역.이제 레벨도 있으니 난이도 C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사업도 벌여놨는데 갑자기 그런 먼곳까지 여행을 나서려니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 ,일단 <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퀘스트부터 해결해 놓고 생각해보자' 아크는 일단 휘장을 챙겨두고 연구실을 찾아나서기로 결정했다. '먼저 시드에게서 아이템을 받아야지' 그러나 아크가 직접 나가란까지 갈 이유는 없다. 그냥 편지로 적당한 장소를 지정해 튀어오라고 하면 그만이다. 3,000골드 덕분에 노예 계약서를 써버린 시드는 이제 아크가 오라면 오고,가라면 갈수밖에 없는 신세인것이다. '후후후,노예 하나 생기니 여러모로 편하군.본전 뽑을때까지 팍팍 굴려 먹어야지!' "자 ,그럼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해 볼까? 데드릭, 데이모스 앞장서라!" "오케이!" 딱딱딱! 간만에 혼자가된 아크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살린의 탑을 나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소환수를 앞세우고 또 다른 모험을 찾아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엔 어떤 몬스터와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기대만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세차게 요동쳤다. 아크는 천생 모험자인것이다. '하아................' 레리어트는 씁쓸한 한숨을불어냈다. 그녀는 약속대로 공성전이 끝나자 마자 여명의 칼날 길드를나왔다. 하긴, 그녀가 나오지않았어도 여명의 칼날 이 해체되었으니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어쨌든 그 뒤로 그녀는 혼자서 뉴월드를 돌아다녔다. 아크를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지만 막상 나오지 그게 생각처럼 쉽지않았다. 아크가 시르바나를 나온뒤로 소식이 묘연했기 때문이다.덕분에 딱히 갈데가 없어진 그녀는 홀로 사냥을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너무나 쓸쓸했다. 게다가 항상 길드원들과 함께 행동하다가 혼자가 되니 사냥도 몇배나 힘들게 느껴졌다. 언제나 앞을 막아 주던 존재가사라지니 레벨 150을 넘겼음에도 오우거 한마리도 제대로 사냥하기 힘들었다. '그동안 보호만 받고 게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겠지' 누굴 탓하겠는가? '아크님은 어디에 있을까?' 레리어트는 문득 아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실 아크와 연락할 방법은 있었다. 글로벌엑서스의 기획부를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자면 못할것도 없다. 아니,그럴것도 없이 게임안에서 편지를 보내도 된다. 그러나 막상 우체통 앞에 서면 말성여졌다. 딱히 어떤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건 아니다.그러나 그렇게 노골적인 방법으로 아크를 만나고 싶지는않았다.그리고...............표현하기는 애매하지만 과연 지금 만나도 되는것인지 자신이 서지않았다. '대체 왜 이럴까? 그냥 아는 사람과 연락하는것뿐인데?' 그녀조차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주저하는것인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나도 모르겠어.하지만..........'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내며 걸음을 옮길때였다. 마을 어귀에 앉아있던 노인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저.......혹시 마법사님이십니까?" "네,왜 그러세요?" "혹시 부탁 좀 들어주실수 있겠습니까?" "부탁요?" 레리어트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주민을 바라보았다. NPC의 부탁이라면 퀘스트다. 그러나 그녀는 이 마을에 처음왔다. 아무런 친밀도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퀘스트를 의뢰해 오는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아마도 그만큼 간단한 퀘스트이리라.레리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아,다행입니다. 마을에 들르는 마법사들은 모두 거절해 서 걱정하던 참이었는데 ,실은 며칠전부터 마을 주변에서 유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령이요?" "네,아직 딱히 마을에 피해를 끼치는 건아니지만 밤마다 동쪽 언덕에 유령이 나타나 흐느끼니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퇴치해 달라는건 아닙니다. 다만 저희는 유령과 대화를 할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그러니 마법사님이 사정을 좀 들어봐 주십시오.나오지않도록 설득해 주시면 더 좋고 말입니다" '역시 그렇게 어려운 퀘스트는 아니구나' 순한 유령을 설득하는 일이라면 레리어트도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다. "한번 해볼게요" "그런데...........보다시피 이 마을은 그리 넉넉한 편이 못됩니다.부끄럽지만 저희가 해드릴수 있는건 식사와 잠자리뿐입니다" 노인이 레리어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마도 다른 마법사들이 퀘스트를 해결해 주지않은건 그 때문이리라.노인은 레리어트도 같은 이유로 거절할까 싶어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감사합니다" 곧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르노 마을의 유령 소동 고르노 마을 주변에 며칠전부터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무슨 사연인지 밤마다 흐느끼는 유령 때문에 주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유령을 설득하거나 퇴치한다면 주민들은 감사의 표시로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할것입니다. <난이도 : F 퀘스트 제한 : 선 성향 200>] '아, 성향 때문에 퀘스트가 시작된 거구나!' 레리어트는 퀘스트 정보를 본 뒤에야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성향이 상당히 높은편이었다. 여명의 칼날과 함께 행동할때,아란이나 다른 길드원들은 자잘한 퀘스트는 듣지도 않았지만 그녀는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도와주었다. 덕분에 몇 가지 작은 칭호를 받고 성향도 꽤나 높아졌다. 길드원들은 그런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했지만,그녀는 NPC를 돕는것 자체가 꽤나 즐거웠다. 그런걸 NPC가 알아주니 쓸쓸했던 기분이 조금이나마 훈훈해졌다. 레리어트는 마을에서 저녁때까지 기다렸다가 유령이 나온다는 언덕을 향했다. 그러나 그날은 유령이 나오지않았다. 레리어트는 일단 그날밤은 마을근처에서 사냥을 하다가 다음날 다시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1시간 정도 주변을 돌아보다가 내려오려 할때였다. 언덕위에 뭔가 희미한 형상이 나타났다.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유령은 작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소년은 깊은 한숨을 불어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뭔가 사정이 있어보여,그렇다면 말로 해결할수도 있을거야' 레리어트는'영혼 감응'마법을 사용해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얘,무슨 일이니?" -엇? 소년 유령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나에게 말을 건거죠? "나는 마법사란다." -마법사.......... "그래,어제 저녁에 이아래 마을에 도착했는데 한노인분이 너에대해서 말해줬어.며칠전부터 여기에 유령이 출몰해서 주민들이 무서워하고 있다고.일부러 주민들을 괴롭히려고 그런것 같지는 않은데......누나에게 무슨 사정인지 말해 주지않을래? 내가 도울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줄게" 레리어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했다. 소년유령은 머뭇거리다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란이라는 악당 때문이에요. "뭐?" 레리어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유령에게 아란이라는 이름을 듣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레리어트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아란이라고 했니?" -네 ,혹시 알아요?홀리 나이트 아란. "그,그래.소문은 들었단다.그런데 아란 때문에 울고 있었다니?" -사실 저는 수백년 전에 홀리나이트를 섬기던 종자에요. 소년 유령이 슬픈 목소리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이미 소년 유령은 아란을 만난적이 있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아란이 초보자 시절에 홀리 나이트 전직 퀘스트를 부여한 NPC가 바로 그 소년 유령이었던 것이다. -주인님께서는 숨으 거두시기전에 제게 주인을 찾아 홀리나이트의 명성을 이어달라고 부탁하셨죠.하지만 수백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지않았죠.그러다가 우연히 아란이란 이방인을 만났어요.그는 정의로운 사람이었어요.아니,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보였죠.그래서 저는 주인님의 유언대로 그에게 홀리나이트가 될수있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여기까지 설명한 소년 유령은 돌연 이를 갈아붙였다. -하지만 그건 제 실수였어요.아란은 나와 주인님의 뜻을 배신하고 대륙 전체에 알려질 악행을 저질렀어요.주인님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명예를 더럽혔다고요! "하지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란다" 레리어트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더이상 소년 유령의 사정이 남 일처럼 생각되지않았다. 아란을 믿었다가 실망감을 맛본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아란에게 실망해 결국 떠나오지 않았던가? 그러자 소년유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제 잘못이에요. "........그것 때문에 이렇게 울고 있었던 거니?" -아니 ,제가 울고 있던 것은 그것때문이 아니에요 소년 유령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졌다. -며칠전부터 주인님의 묘비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어요. "검게 물들어?" -그게 뜻하는것은 하나뿐이에요.아란이 악에 물들어 홀리나이트의 직업을 버린거에요.한번 홀리나이트가 됐던 아란은 주인님과 떨어질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묶여있었죠.그때문에 천상에 계시던 주인님의 영혼은 이름없는 망령이 되어 유계를 떠돌고 계세요.주인님의 고통은 모두 제가 전인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에요.하지만 저는 하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소년 유령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와락 레리어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누나,부탁이에요!누나가 주인님을 도와주세요! "뭐?내,내가?" -네,제가 여기서 며칠을 울고 있었지만 말을 걸어준 사람은 누나가 처음이에요.제가 부탁할 사람은 누나밖에 없어요.부탁이에요.저 대신 아란에게 배신당하고 유계를 떠도는 망령이 된 불쌍한 주인님을 구해주세요! "하,하지만 나는 유계로 가는 방법을 몰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주인님의 묘비로 차원의 문을 만들수 있어요.영적으로 이어진 문이니 바로 주인님이 계신 유게에 도착 할수 있을거에요.그리고 주인님이 본래의 모습을 찾으시면 곧바로 돌아올수 있을거에요.할수 있다면 제가 가고 싶지만 저는 주인님의 묘비와 맹약의사슬로 묶여있어요. 레리어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다른 차원으로 가라니......거기가 어딘지 알고 가란 말인가? 게다가 홀리나이트를 구해달라고 했지만 어떻게 구해야 할지도 알수 없다. 그러나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년 유령을 보니 차마 거절할수가 없었다. 결국 레리어트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란 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그건 내 책임이기도 해.그래,할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이 아이의 부탁을 거절할수는 없어.혼자서 해 볼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까찟거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래,한번 해볼게" -고마워요! 소년 유령은 몇번이나 고개를 조아리며 레리어트를 숲속으로 데려갔다. 깊은 숲속 옹달샘 근처에 검게 물든 낡은 묘비 하나가 나타났다. 홀리나이트는 7인의 영웅이다. 암흑 세기가 끝나고 7인의 영웅은 모두 각자의 고향에서 국왕이 되었다고 들었는데,어째서 이런 한적한 숲속에 그의 묘지가 있는걸까? 게다가 낡은 묘비에 소년 유령 하나가 지키고 있을 뿐이라니.......... 그러나 소년 유령은 자세히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소년 유령이 묘비를 어루만지자 그 앞의 공간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누나.......부디 주인님의 영혼을 구해주세요. "그래 ,노력해 볼게" 레리어트는 긴장된표정으로 천천히 차원의 문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상상도 하지못한채..................... 크아아아아! 괴성과 함께 거대한 갈색 몬스터가 쓰러졌다. "헉헉헉,이,이겼다!" 아크는 거친 숨을 불어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살린의 탑을 나온 아크는 시드에게 아이템을 받아들고 연구실을 찾아나섰다. 일기의 암호와 지도를 대조한 결과 찾아낸 장소가 바로 이곳, 붉은 황야라고 불리는 지역이었다.그런데 막상 붉은 황야에 들어서니 장난이 아니었다. 방금 전에 쓰러트린 베어울프,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경직'을 거는 괴기스러운 외모의 비홀더........레벨 300대의 몬스터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퀘스트 레벨 제한이 150이라 넉넉하리라 생각했던 아크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바람정령의 장화가 없었다면 여기까지도 못왔을거야' 아크는 붉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장화를바라보았다. 바람정령의 장화에 붙어 있는 '슬라이드'스킬. 이 스킬의 가장 좋은 점은 어떤 공격법과도 조합할수 있단 점이다. 덕분에 여러가지 새로운 전투 스타일을 만들어냈고,그 효과는 기대이상의 시너지 효과를가져왔다. 그럼에도 붉은 황야의 몬스터들은 어둠속성 보너스를 받지않으면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만약 바람정령의 장화가 없었다면 진즉에 뼈를 묻었으리라. 어쨌든 한번 전투를 치를때마다 휴식을 취해야 하고,낮에는 몬스터가 몰려있는 곳에 아예 다가가지도 못했다. 덕분에 일정이 늦어져 목적지까지 가는데만 며칠이 걸렸다.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붉은 황야의 몬스터들은 경험치가 제법 두둑하단 것이다. 덕분에 레벨은 9나 올릴수 있었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250 명성 : 6,675(+500) 레벨 : 189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전장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생명력 : 3,040(+150) 마나 : 3,055 영력 : 100 힘 359(+28) 민첩 509(+35) 체력 569(+20) 지혜 53(+10) 지능 592 운 69(+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88 화술 : 46 애정 : 109(+10) 탄력도 : 210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 (장갑) : 공격 속도+10%,민첩 +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 +10,지혜+10 *<수왕> 세트 효과 : 힘+10,민첩 +10,체력+10,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 : 민첩+30,이동속도+30%,공격 속도 +10%,'슬라이드'사용 가능 화염의 베일(망토) : 화염 저항력+50%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 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5,마나 회복 속도 +5% 심안(반지) : '심안'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 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튜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체력+10,명성 +500,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시간 2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현혹,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 :원본에는 어둠속 능력치 상승이 30%,'은신'지속 시간 15분으로 표기되어있음.) '이제 레벨 189!앞으로 1만 더 올리면..........!' 그렇다, 당장은 전투 한번,한번이 버겨울 지경이지만, 이단 190레벨을 달성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귀살검을 사용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처음 얻은 레어검........어떤 느낌일라나?빨리 써보고 싶어 미치겠군' "으아아아,춥다,추워!" 아크가 정보창을 보고 있을때 데드릭이 날개를 비벼대며 요란을 떨어댔다. 이제 뉴 월드도 완연한 겨울.더구나 붉은 황야는 문자 그대로 황무지라 칼날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1쿠퍼에도 벌벌 떠는 아크조차 주만간 두툼한 외쿠라도 하나 사야 하나 고민스러울 정도였다. 딱딱딱,딱딱딱딱! 뼈다귀밖에 없는 데이모스가 뭘 이 정도로 호들갑이냐는듯이 이를 마주쳤다. "닥쳐,나는 너와 달리 섬세한 몸이란 말이야!" "적당히 해두고 일어나.거의 다 왔으니까" 아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붉은 황야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하며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그러나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도착한곳은 허름한 오두막이었다. 게다가 안에는 먼지가 뿌옇게 쌓인 잡동사니가 굴러다닐뿐,연금술에 관련된 책이나 기구 따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이게 뭐야? 잘못 찾아왔나?" 아크는 어이없는 얼굴로 몇번이나 지도와 일기를 살펴봤지만, 역시 알아낸 정보가 가리키는 곳은 이 오두막이었다. 아니,이곳 이외에는 달린 생각할수 없었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일기에서 봤던 구절이 떠올랐다. 피로 물든 대지의 그곳, 그러나 그대가 알고 있는 것만이 세상의 진실은 아니다.낡은 거울의 뒤편,혹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곳에도 또다른 세계가 있을지도 모르는일. '그러고보니 아직 열쇠는 사용하지않았다!' 아크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오두막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곧 커다란 상자 안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고풍스러운 액자에 담긴 그림이었는데,특이하게도 다른건 하나도 없고 잠겨 잇는 문 하나만 덩그러니 그러져 있었다. '설마...........?' 아크는 혹시나 싶어서 열쇠를 자물쇠 부분에 가져갔다. 철커덕, 키이이익! 순간 열쇠가 그림에 스며들더니 쇳소리가 울리며 그림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 암연에 잠긴 공간이 펼쳐졌다.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자 마치 물에 손을 담근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림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맞아,그러고보니 마가로프는 이계에 대해서 연구하던 중이라고 했어.만약 그의 연구가 성공했다면 그림 너머는........이계!내가 찾는 연구실도 이계에 있다는 말이다!' "이계라........과연 어떤 곳일까?" 아크에게 미지의 땅에 대한 공포심 따윈 없었다. 이계라고는 해도 어차피 게임 세계,지금까지 모험한 지역과 다를것은 없는것이다. 아크는 한번 씨익 웃어주고는 거침없이 그림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크가 그림 속으로 사라지고 몇분뒤........... "봤어? 봤지?" "봤어요.그림 속으로 쏙 들어가는걸" "후후후,아크 녀석. 우리가 감시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걸" "저 그림속에 엄청난 보물이 잇겠죠?" 털모자가 달린 두꺼운 옷을입고 오두막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바로 북실이,삽질이,울먹이.아기 돼지 삼형제였다. 아크가 붉은 황야로 들어오기 전,마을에서 현금카드를 사용한것을 알아차리고 은밀히 뒤를 밟은 것이다. 물론 상인인 그들에게 붉은 황야는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었지만, 아크가 앞서가며 몬스터를 처리해준 덕분에 그들도 무사히 오두막에 도착할수 있었다. "아크 자식. 200골드나 꿀꺽한 뒤에야 보물을 찾아 나서다니..........." "덕분에 우리는 허리가 휘었어요" 울먹이가 그간의 설움이 북받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북실이가 다독거렸다. "하지만 괜찮아.기회를 봐서 보물을 차지하면 우리의 승리다!" "우후후,놈이 우는꼴을 보고 싶네요" "좋아,각오는 됐지? 가자!" 그렇게 아기 돼지 샴형제도 그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띠리리리. 늦은 시간, 핸드폰이 진동하며 벨소리를 흘려냈다. 핸드폰을 받아들자 익숙한 목소리가들려왔다. "방실 용역의 왕호입니다" ".........알아낸건가?" "네,이름과 집 주소까지 모두 알아냈습니다" "이름이 뭐지?" "김현우,올해 스물둘입니다" "어린 새끼가........!" 이를 갈아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사람은 바로 안델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왕호의 질문에 안델은 잠시 생각하다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몇달 동안은 게임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팔을 분질러.양팔을 모두 분지른 뒤에 사진을 찍어 보내면 약속대로 대금을 입금시켜 주겠다. 그 정도는 할수 있겠지?" "그게 저희 전문입니다. 걱정마십시오.문제없게 처리하겠습니다" 왕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에게는 비밀이다" "물론이죠" 전화를 끊은 안델은 스산한 눈빛으로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나가란에서 아크에게 당한뒤로 뉴 월드에 접속도 못했다. 도전권이 아크에게 넘어가는 바람에 아란은 시르바나 성을 빼앗기고,수배자가 되었다는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안델은 감히 빗발치게 걸려오는 아란의 전화를 받을 엄두도 나지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다' 아크가 팔이 부러져 징징 짜는 사진을 보여주면 아란도 이번일은 그냥 넘어가 주리라.물론 그보다 중요한건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것이지만............ '아크...........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천만에,잘못 고른 사람은 너야' 그렇다,아크의 적은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게 아니었다. TO BE CONTINUED TYPING BY RAYAN (: 무한베포 ,오타수정 가능하지만 아이디는 보존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까페[텍스트소설자료실] http://cafe.daum.net/JustABC 아크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ARK 9 차례 ACT 1 얼라이브 ACT 2 절벽에서 떨어지면 기연을 만난다더라 ACT 3 전설의 주인공? ACT 4 라둔 ACT 5 이계? 유계? ACT 6 아기 돼지 삼 형제의 비극 ACT 7 망자 사냥꾼 ACT 8 아크 척살대 ACT 9 니노센스 나이트 ACT 1 얼라이브 휘오오오오! 어두운 공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눈이라고는 해도 떠오르는 것처럼 포근한 느낌의 눈은 아니다. 칼날처럼 예리하게 살점을 파고드는 얼음 파편이었다. 그런 얼음 파편이 쉬지않고 쏟아져 켜켜이 쌓여간다. 시계 제로..............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오직 얼음과 눈 그리고 절망적인 어둠뿐이었다. 생명을 가진 존재를 허라하지않는 극한의 대지,그게 바로 이름없는 대설산의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그 대설산 한복판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눈이 두툼하게 쌓인 망토를 뒤집어쓴 사람.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발을 가로지르는 그는 바로 ...............아크였다. '여기가 대체 어디쯤일까?' 아크는 절망적인 눈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입김이 그대로 얼음가루가 되어 푸스스 흩어졌다. ".........정말 제대로 가고있기는 한걸까?' 지금까지 수도없이 떠올렸던 질문. 대체 이설산에서 며칠이나 헤맨건지 모르겠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마치 거대한 마수의 아가리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아니,실제로 설원은 마수처럼 살아 있었다. 엄청난 눈보라 탓에 코앞도 제대로 보이지않는다. 게다가 며칠째 계속된 눈보라로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설산의 지형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심지어 방금 전 찍은 발자국도 몇분사이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아버리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분간할수 없을정도였다. '정말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허무하게 죽을수 없다는 오기와 몇번의 우연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달해 있었다. 눈보라도 눈보라지만 무엇보다 아크를 괴롭히는건 바로 추위!'뼛속을 파고드는'이라는 표현도 부족하게 느껴지는 살인적인 추위였다. '이대로는 정말 얼어 죽는다' "우으으으........주,주인.나,나 이제 더는 못 버티겠다" 문득 품안에서 데드릭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아크보다 더 다급한건 데드릭이었다. 온혈동물의 특성상,덩치가 작은 데드릭은 체온을 더 쉽게 빼앗길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뼈다귀밖에 없는 데이모스도 관절이 얼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이니,데드릭은 말할것도 없다. 임시방편으로 망토안에 넣어두었지만, 아크의 몸도 얼음장같으니 체온 유지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냉형돌물은 뱀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린지 오래였다. "조금만 더 참아.눈보라를 피할만한곳에서 정제수를 끓여 줄게" "흑,더 이상 물도.........못 마시겠다. 물 마시면 더 배고파............." 데드릭이 눈물을 글썽이면 어린애처럼 칭얼거렸다. 그때,살짝 얼린 옷깃 사이로 얼음장 같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찬바람을 크리티컬로 얻어맞자 순식간에 눈앞이 아찔해지며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파로 인해 체온이 10%떨어졌습니다! 체온이 50%이하로 떨어져 각종 능력치가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칭얼대던 데드릭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어............주인..........왠지 갑자기 따뜻해졌다..........헤헤헤.............그런데 졸리다........." "머,멍청아,정신차려 ,잠들면 죽는거야!" "죽어? 아...........몰라...........나 그냥 잘래.........자고 싶어..........자게 해줘...........응?" "안된다고 했잖아!" 아크는 버럭 고함을 지르며 데드릭의 뺨을 후려쳤다. 얼어붙은 뺨을 후려치자 금세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그러나 데드릭은 느낌조차없는지 오히려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때려도 좋아..........잘수 있게만 해줘.........." 딱딱딱...........딱딱딱딱........... 그때, 갑자기 데이모스가 풀썩 눈밭에 쓰러졌다. 움찔하며 돌아보니 데이모스도 안광이 흐려지며 맥없이 이를 마주쳤다. 그나마 잘 버텨주던 데이모스도 이제 한계에 달한 모양이다. "데이 모스 ,너,너 까지......안돼!여기서 죽으면 안된다고!" 아크는 서둘러 냄비를 꺼내 주위의 눈을 퍼담았다. 당장 떨어진 소환수들의 체온을 조금이라도 올릴 방법은,눈을 끊여 정제수로 만들어 먹는 것뿐이었다. 그런 방법으로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아크 역시 꽁꽁 얼어붙어 손발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않았다. '빌어먹을..........무턱대고 들어오는게 아니었어!' 아크는 울컥하며 며칠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대설산의 조난 기록'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이상하지않을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은 상황. 아크가 난데없이 이런상황에 처하게 된것은 며칠 전이었다.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붉은 황야를 지나 이계로 들어왔을때,아크를 반긴것은 천재 연금술사의 유산도,거대한 몬스터도 아닌...........대자연의 공포였던 것이다. "굉장하다!"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문이 그려진 그림 액자로 발을 들여놓은 지 잠시............ 눈앞이 확 밝아지며 끝없는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계라고 해서 무슨 지옥같은 풍경을 상상하던 아크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곧 주변의 놀랍고 장엄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크가 도착한곳은 그저 설원이 아니었다. 설원의 가장자리로 다가가자 경이로운 장관이 펼쳐졌다.발아래로 몇겹이나되는 구름이 깔려있었다.그 구름을뚫고 마치 침봉처럼 이루 헤아릴수 없는 숫자의 산봉우리가 솟아올라 있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봉우리.........TV에서나 구경하던 히말라야의 정상에 올라와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크가 멍하니 발아래를 내려와볼때,돌연 메시지가 떠올랐다. ['잃어버린 세계=스탄달'을 찾아냈습니다. 수많은 역사의 비밀을간직한 뉴월드,당신은 끝없는 탐구심으로 그비밀의 하나인'잃어버린세계=스탄달'을 찾아냈습니다. 당신은 모험 도중 발견한 역사서로 스탄달에 대한 지식을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서를 통해 습득한 지식에 의하면 뉴 월드는 다중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알려진 정령계나,환계도 전혀 별개의 세상이 아닌 ,중간계-뉴 월드의 주 무대-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것입니다. 고대에는 이계와 중간계가 자유롭게 교류했다는 근거 자료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어떤 시점을 가해 이계와 중간계는 완전히 별개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수많은 추측이 난무할뿐,아직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뉴 월드의 5대 불가사의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뉴 월드에서 이계를 여행했다고 알려진 사람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경험치+50,000,명성+1,000.] [이계로 들어와 '위대한 모험가'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신세계를 찾아낸 상위 100명의 모험가는 순위 따라 특별한 칭호를 받습니다. 현재 아크님은 여덞번째로 S급 칭호인 '위대한 모험가'가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여행에 전문가가 되어 보다 효과적으로 모험을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직업과 관계없이 모험에 유용한 각종 스킬을 배울기회가 폭넓게 제공 될것입니다. <길눈이 밝아져 비전투시 이동속도가 10%상승합니다.또한 효과적으로 피로를 푸는 방법을 터득해 휴식시 생명력 ,마나 회복 속도 10%,음식을 섭취할때 만복도에 10%보너스 효과가 적용됩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5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0 상승합니다. *스킬 '탐험가의 지식'과 '야영'을 습득했습니다.] [탐험가의 지식(특수,초급, 패시브) : 뛰어난 모험가라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며 얻은 지식을 무의미하게 넘기지않을 것입니다. 모험을 하며 보고 듣고 깨달은 지식을 응용해 기술을 향상시키는 기지를 발휘해 보십시오.새로운 지역을 탐험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새로운 지역과 던전, 역사적으로 가치있는 유물을 발견시,보너스로 스킬포인트를 획득할수 있습니다. 획득한스킬 포인트는 임의대로 사용해 필요한스킬을 성장시킬수 있습니다. 단, 보너스 스킬 포인트는 정보의 희소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잃어버린 세계=스탄달' 발견 : 스킬 포인트 +50)] [야영(초급 ,패시브) : 세상의 풍파에 익숙해진 모험가라면 때로는 안락한 휴식공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모험가로 이름이 알려진 당신은 이제 어떤 곳에서도 휴식을 취할수 있는 야영지를 만들수 있게 되었습니다.단, 야영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텐트,혹은 불을 지필수 있는 불씨와 땔감이 필요합니다.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50%빨라집니다. 몬스터가 선제 공격할 확률이 50%감소합니다. 또한 야영지 반경 100미터 내에서는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습니다>] '뭐야? 위대한 모험가?'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해졌다. 이계에 발을들여놓자 기대도 못했던 경험치와 명성치가 들어왔다. 그러나 더 놀라운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S급칭호, 위대한 모험가! 동시 접속자가 수백만명에 이른다는 뉴월드! 그 가운데 먼저 이계에 도착한 100명에게만 주어지는 보너스인것이다. 만약 미리 그런 정보를 알았더라고 기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그런데 간신히 100위안에 들어간것도 아니고,여덟번째! 천문학적인 경쟁률을뚫은 보너스는 실로 엄청났다. 상인인 시드가 사용하던 '야영'은 아크도 꽤나 탐내던 스킬이었다.그러나 아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새로운 지역을 발견할때마다 스킬 포인트가 축적되는'모험가의 지식'이라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뉴 월드.........아니,모든 종류의온라인 게임에서 스킬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스킬 등급이 낮다면 공격도 방어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검술'이나 '방어'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검이나 방어구를 착용해도 관련 스킬이 없다면 80%의 성능밖에 낼수없다.검이나 방어구를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니 20%의 패널티가 적용되는것. 스킬을 익히고 나서야 패널티가 사라지고 중급,상급으로 올라가면 추가 공격력이 적용된다. 아크가 익힌 '검투술'같은 경우는 상급 보너스가 종합 전투력 40%증가.결국 스킬이 없는것도 공격력이 60%나 차이가 난다는것이다. 물론 이것은 알기 쉬운 수치로 나타낸것이고,실제로는 단 1포인트 차이로도 검이 박히는 느낌부터가 달라진다.때문에 모든 유저들이 스킬에 목을 매는 것이다. 문제는 스킬을 올리는게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다는것.등급이 하나 올라갈때마다 포인트가 올라가는 속도는 몇배나 느려지고,다음 등급까지 포인트는 2배 가까이 필요하다. '뭐,그래도 죽어라 쓰다보면 언젠가는 올라가겠지만.........' 그것도 간단한 스킬에나 해당되는 말이다. 블레이드 스톰같은 스킬은 마나를 꽉 채워도 서너번을 사용하기에도 빠듯하다. 게다가 몇몇 특수한 스킬은 그저 반본벅인 행동만으로는 포인트가 가산되지않기도 한다.무턱대고 허수아비를 친다고 전투 관련 스킬이 계속 오르지 않는것이다 .대부분은 실제로 생사를 오가는 전투에서 스킬을 사용해야 하며,때로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경우도 있다. "그런데 스킬 포인트를 공짜로 준다고?" 아크는 흥분한 표정으로 얼른 스킬 정보창을 띄워 보았다. [-패시브 스킬 M검투술(상급 : 425/500)검계열 사용시 종합 전투력 40% 상승. m궁술(초급 : 58/100)활 계열 사용시 패널티 없음. *전술 (중급 : 159/300)부대원들에게 사기와 공격력 방어력에 보너스 효과. M서바이벌 요리(상급 : 432/500) 정체불명의 요리와 잡탕을 만들어 낸다. m불굴의 정신 (중급 : 168/300)빈사 상태에서 공격력,치명타율,회복 능력이 상승한다. m불굴의 육체(중급 : 161/300) 빈사 상태에서 방어력,치명타 회피율,회복 능력이 상승한다. m채취(상급 : 379/500) 자연으로부터 식재료를 체취할수 있다. m식재료 감별(상급 : 306/500) 식재료의 효능을 미리 확인해 볼수 있다. *승마 (초급 : 3/100) 말을 더욱 능숙하게 다룰수 있다. m카운터 어택(중급 :230/300) 적의 공격을 흘리며 공격 성공시 추가 데미지 적용. m쳐 내기(중급 : 212/300) 적의 공격을 무기로 삼아 데미지를 반감시킨다. m세탁(초급 : 58/100) 가죽과 천 계열의 방어구를 세탁해 일정시간 방어력을 올린다. m무기 파괴 (초급 : 20/100)적의 무기나 방어구를 직접 공격해 내구력을 깎는다. m야영(초급 :0/100) 텐트를 치거나 불을 피워 야영지를 만든다. m배짱(초급 : 15/100) 용감해져서 공포에 둔감해진다. -액티브 스킬 m간병(상급 : 398/500)환자에겍 희망을 주어 기력과 용기를 복돋아 준다 .마나 소모 : 10 m고양이의 기백(상급 : 374/500)쥐와 소형 몬스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공격력과 방어력 ,사기를 대푹 하락시킨다. 마나 소모 : 120 m고양이의 눈(상급 : 321/500) 날카로운 시선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한다. 마나 소모 : 50) m마법 복원(상급 : 393/500)망가진 아이템을 본래의 형태로 복원한다.마나 소모 : 10 m안목(중급 : 168/300) 미확인 아이템의 중급 프로텍트를 해제한다. 마나 소모 : 30 m협박(중급 : 126/300) 상대를 모욕해 사기를꺾는다. 마나 소모 : 30 M전력 질주(초급 : 69/100) 단시간 이동속도를 폭발적으로 상승시킨다. m칼날 정비(초급 : 58/100) 무기의 공격력을 약간 상승시킨다. 마나 소모 : 20 -직업 전용 스킬 M다크 블레이드(중급 : 215/300) 어둠과 동화되어 회심의 일격을 날린다 .마나 소모 : 100 m블레이드 스톰(촉브 : 67/100) 검 파편의 소용돌이로 적을 갈가리 찢어낸다. 마나 소모 : 400 M다크 댄싱(중급 : 136/300)어둠 속을 흐르듯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피한다. 마나 소모 : 300 m마령 소환 ( 중급 : 125/300) 소환수를 불러냈을때 소모되는 마나가 줄어든다.영력 소모 : 100 -스페셜 스킬 슬라임의 시간 : 슬라임을 불러들이거나 ,몸을 슬라임화시켜 물리 공격을 무효화시킨다. 모험가의 지식 : 새로운 지역을 발견할 때마다 보너스 스킬 포인트를 얻는다. 지도 제작 : 던전을 탐험할때 자동으로 지도를 만들수 있다. 정화복원(세트,간병+마법 복원) : 아이템에 걸린 저주를 해제시킨다. 아드레날린(세트,불굴의 정신+육체) : 빈사 상태에서 반응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킨다. 화격(연쇄,쳐 내기+카운터 어택) : 계산된 반격으로 적을 밀어낸다. 암격(연쇄,다크 댄싱+다크 블레이드) : 어둠 속의 연속 공격으로 적에게 추가 데미지를 준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추가 효과,고양이의 눈) : 무방비 상태의 적에게 추가 데미지를 준다. 선경지명(추가 효과,고양이의 눈) : 같은 적을 상대할시 일정 확률로 공격을 파악할수 있다. 간병인의 마음(추가 효과,간병) : 간병에 축복 효과를 추가한다. 위대한 희생(추가 효과,간병) :포션을 이용해 아군 전체에 회복 효과를 부여한다. 잡탕(추가 효과,서바이벌 요리 ) : 두가지 이상의 요리를 섞어 다른 요리를 만들어 낸다. *사용 가능한 스킬 포인트 : 50] '그동안 참 많이도 익혔구나.' 주르륵 나오는 스킬 목록은 그동안 노력한 결과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정신이 없으니 이참에 스킬 정보창 좀 정리해 보자' 아크는 내친김에 스킬 목록을 정비했다. 얼마전 ,샴바라에게 들은 정보 때문이다. 스킬에 대해 얘기를나누다가 아크가 검투술이 너무 안 오른다고 툴툴 대자 샴바라가 말했다. "원래 공격 계열의 패시브 스킬은 메이저롤 등록해 놔도 성장 속도가 느려" "메이저?" 아크가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샴바라가 어이없는 얼굴로 물었다. "뭐야? 설마 너 기본 공격 스킬을 메이저로 등록시키지도 않은거야?" "그게 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검투술이 상급이라고 했지? 거기까지 올린게 신기할 정도다.잘들어,이 무식한 놈아.스킬 정보창 열면 위쪽에 특화 훈련 등록이라는 목록이 있지? 거기에서 스킬을 메이저,마이너,비활성으로 등록시킬수 있어" "그럼 뭐가 달라지는데?" "똑같이 스킬을 사용해도 메이저로 등록시킨 스킬은 성장 속도가 120%로 적용돼.대신 마이너는 80%,비활서은 스킬을 사용해도 성장이 되지않아.단, 특화 훈련 등록창을 사용할경우,모든 스킬을 다 등록시켜야해.메이저만 등록시킬수는 없다는말이야" 샴바라가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메이저는 5개까지 등록시킬수 있고,마이너는 20개.비활성은 무제한......즉 ,사용 빈도가 높은 5개 스킬을 올리기 위해 다른 스킬의 성장은 일정 부분 포기한단 뜻이다. 때문에 아크는 정보를 듣고도 잠시 망설였다. 현재 아크의 스킬은 성장하지 않는 특수 스킬을 제외해도 무려 27개.5개를 제외한 나머지 스킬에 패널티가 적용되거나,아에 숙련도가 오르지 않는다니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성장 속도가 극악한 검투술이나 블레이드 스톰을 더 쉽게 올릴수도 있고,스킬 포인트를 모아 뒀다가 나중에 비활성 스킬로 한번에 몰아줄 수도 있어.선택의 여지가 넓어졌으니 스킬을 등록시켜서 메이저 스킬을 빨리 올리는편이 나아' 아크는 가장많이 사용하는 검투술과 서바이벌 요리,다크 블레이드,다크 댄싱,전력질주를 메이저로 등록하고 나머지는 마이너에,승마나 전술처럼 당장 사용하지 않는 스킬과 특수 스킬은 비활성에 등록시켰다. 그리고 새로 얻은 스킬 포인트는 일단 잘 챙겨두었다. M은 메이저,m은 마이너로 선택된 스킬이라는표시다. '새로 생겼다고 무턱대고 사용할순 없지' 정리를 끝낸 아크는 흐뭇한 얼굴로 정보창을 닫았다. 모험가의 지식,야영........정말 기대 이상의 스킬을 얻었다. 게다가 추가로 경험치가 50,000이나 들어와 레벨도 올랐다. 이제 레레 190! 염원하던 귀살검을 사용할수 있게 된것이다. 이계로 들어오자마자 일이 술술 풀리는게 정말 뭔가 될듯한 분위기다.즐거워한느것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우하하하,이게 멋진데!주인,이거 봐라!" 딱딱딱,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정신 나간 강아지처럼 눈밭을 뛰어다녔다. 뱀 역시 마찬가지였다.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이 신기한듯 살짝 꼬리를담가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그러나 그것도 잠시,몇번 꼬리로 눈을 툭툭 치다가 금세 익숙해진듯 두 소환수와 함께 눈밭을 굴러다녔다. 아크는 흐뭇하게 소환수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눈을 본게 언제였더라.........'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온난화가 가속되고 있는 현재. 겨울이라도 서울에서 눈 구경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은 아크조차 태어나서 처음 보는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보너스로 기분이 날아갈 듯했던 아크는 모든것이 즐겁고 아름답게만 보였다.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때 돌연 뒤통수를 눈덩이가 후려쳤다. 멍청한 얼굴로 돌아보자 소년 모습의 데드릭이 눈덩이를 뭉치며 까불었다. "우후후,주인.덤벼라!" "어쭈?한번 해보자는거야?"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뒤통수로 눈덩이가 날아왔다. 뒤쪽으로 접근해 오던 데이모스가 날린 눈덩이였다. "하,요 놈들.....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아크는 히죽 웃으며 눈을 한가득 퍼 올렸다. 그리고 아크와 두 소환수 사이에 치열한 설상 전투가 펼쳐졌다. "감히 내게 도전장을 내밀다니.....눈사람으로 만들어 주마,다크 댄싱!" "에엣? 치사하게 눈싸움에 스킬을 사용하냐?" "스킬 쓰지 말라는 규칙은 없잖아!" 아크는 번뜩이는 몸놀림으로 움직이며 소나기처럼 눈덩이를 뿜어냈다. "어푸푸.......차가워!으윽,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데이모스 ,A-3플랜이다!" 딱딱,딱딱딱! 과연 아크의 스파르타 훈련을 받은 소환수 다웠다. 일방적으로 밀리자 데드릭은 박쥐로 변해 하늘에서 융단 폭격을 가해왔다. 그리고 데이모스는 방패를 세워놓고 뒤에서 눈덩이를 날려댔다. 게다가 주인에게 치사하고 야비한 것만 배운덕에 가르쳐 주지않았는데도 눈덩이에 살짝살짝 짱돌을 끼워 넣은 기발함까지 선보였다. "으악!이, 이자식들이 비열하게........" "우헤헤헤,우리가 누구의 소환수인데? 다 주인에게 배운 거라고!죽어라!" "망할놈 .이제 나도 안 봐준다!" 아크는 눈덩이보다 더 큰돌을 끼워넣고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래 전투란 이쪽이 대포를 사용하면 저쪽에선 미사일을 사용하기 마련이다. 짱돌에 얻어맞고 코피를 흘린 데드릭은 아예 짱돌에 눈을 살짝 묻히기만 하고 던져댔다. 그렇게 아크와 소환수들이 눈싸움을 가장한 피비린내 나는 혈투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크악-!" 짱돌(?)에 얻어맞은 데드릭이 눈밭에 추락했다. 기회를 잡은 아크는 눈을 한가득 퍼 들고 달려들었다. "후후후,각오하라.박쥐자식!" "크윽,이대로 당할수는 없다!데이모스 엄호를......어라? 주인, 저기 좀봐" 데드릭이 도망치다가 놀란 눈으로 한쪽을 바라보았다. "보길 뭘 봐? 그런 얕은 수에 속아 넘어갈것 같아?" "그게 아니야.저기 보라고" "뭐? 아무것도 없잖아" "그게 문제라니까 .우리가 들어온 문이 없어졌잖아" "어라? 그러고 보니........" 그제야 아크는 동작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데드릭의 말대로였다. 눈싸움에 정신이 팔린 사이,근처에 열려있던 차원의 문이 사라진 것이다. 모처럼 달아올랐던 기분이 금세 가라앉았다. "한번 열어 놓으면 계속 유지되는게 아니었나?" 아직 이곳에 대해 아는게 없다. 이곳에 어떤 몬스터가있을지.주변에 마을이 있는지도 알수 없다.심지어 중간계로 돌아갈 다른 게이트가 있는지도 알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돌아갈길이 없어졌으니 걱정이 앞섰다.그러나 아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너무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어' 오두막에서 이계로 통하는 게이트가 일방 통행이라면 분명 다른 게이트가 존재하리라. 그리고 이곳은 아크 이전에 도착한 사람이 불과 7명에 불과하다. 이 넓은 대륙에 유저는 아크를 포함해서 고작 8명.수많은 퀘스트와 아이템을 독식할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막대한 보상이 기대되는 천재 연금술사의 비밀 연구실도 여기 어딘가에 있으리라. 사전에 게이트가 사라진다는걸 알았다고 해도 그냥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하나,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붉은 황야를 지나느라 가득 차 버린 가방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돌아가 봐야 붉은 황야의 오두막이잖아' 붉은 황야에서 다시 마을로 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그리고 설사 아이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붉은 황야를 지나면 상황은 같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이곳에서 마을을 찾는게 빠르지 않겠는가? '결국 게이트가 사라지지 않아도 선택은 달라질게 없어' 아크는 게이트를 깨끗하게 단념했다. "어쨌든 여기서 노닥거릴떄가 아니다. 더 늦기 전에 산을 내려가서 마을을 찾아보자" "알았다. 주인" 그렇게 아크는 소환수들을 이끌고 설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곧 닥쳐올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못했다. 가장 먼저 아크를 당혹하게 만든것은 지형이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볼때는 꽤나 단순해 보였지만, 막상 그것을 헤매게 되니 미로나 다름없었다.평지와 같은 지형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가파른 경사가 나타나거나,방벽의 균열인 크레바스가 앞을 가로막는게 예사였다. "젠장, 여기도 막혔나?" 덕분에 한참을 내려왔다가도 다시 산을 기어 올라가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게다가 만년설에 뒤덮인 설산,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푸경,그렇게 몇번을 헤매다 보니 지형은커녕 거리감마저 사라졌다. 이런곳에는 지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계로 들어와 지도가 갱신되었지만 그래 봐야 전체 지도다.아크가 헤매고 있는 설산은 대략적인 형태로만 표시되었다. 지리산은 헤매며 대한민국 지도를 펼쳐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도로 알아낸 것은 고작 '이스트 월'이라는 설산의 명칭뿐이었다. "안되겠다. 데드릭,위에서 지형을 살펴봐" "아,알았어" 데드릭이 오돌오돌 떨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드릭의 정찰 기술도 그리 도움이 되지않았다. 설산이라 위에서 훑어보기만 해도 지형을 파악할수 없었던 것.게다가 찬바람을 정통으로 맞아야 하는 하늘에서 데드릭이 버틸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으와아아아,날개가 얼어서 더, 더는 못 날아" '이거 어쩌면 꽤나 위험한 상황일지도.........' 그제야 아크의 얼굴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역시 가장 걱정스러운것은 식량 문제였다. 붉은 황야를 지날때,몬스터들이 생각보다 강해 전투가 끝날때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했다. 물론 주변에 풍부한 식재료가 널려 있었지만 가방 공간이 부족해 챙겨두지않았던 것이다. '식재료는 어디서나 채취할수 있으니 잡템이 먼저다' 지금까지 음식은 항상 자급자족해 왔기에 크게 걱정하지않았던 것이다.그러나 이곳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설산 .그 흔한 토끼나 사슴따위도 보이지않았다. 반면 추위와 싸우며 산을 오르내리니 피로 게이지는 쭉쭉 올라가고,만복도는 뚝뚝 떨어졌다. '젠장, 설마 끼니 걱정을 하게 될줄이야.들짐승이나 몬스터는 커녕 잡초하나 안보이니 일단 식재료를 구할때까지 입이라도 줄여야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소환수 역시 먹어야 사는 생물이다. 식재료가 빠듯해지자 아크는 일단 데드릭과 데이모스를 유계로 돌려 보냈다. 아니,돌려 보내려고 할때였다. -소환 해제 명령이 실패했습니다(지역 제한) <현 지역에서는 모든 유계 소환수의 소환/해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소환수 사망시 모든 스탯에 10%의 손실이 생기고 중간계로 돌아갈때까지 재소환할수 없습니다. 대신 소환수를 불러낸 상태에서도 마나가 소모되지 않습니다> '뭐,뭐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였다. 사실 아크가 부족한 식재료를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은것은,만약의 경우 데드릭이나 데이모스를 돌려보낼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입이 2개로 줄어드니 아껴서 사용하면 며칠은 더 버틸수 있으리라.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소환과 해제가 불가능? 게다가 소환수가 죽으면 스탯이 10%나 깎여?맙소사,무슨 이런 개 같으 경우가.......!' 결국 죽어도 같이죽고,살아도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새삼스럽지만 만복도가 50%이하로 내려가면 일시적으로 스탯이 깎이기 시작하고,바닥까지 내려가면 생명력이 닳기 시작해 최악의 경우 사망할수도 있다. 레벨 190에 서바이벌 요리까지 익힌 아크가 굶어 죽을 걱정을 해야하는 어처구니 없는상황인 것이다. 만약죽으면서 장비아이템이라도 떨군다면? 당연하지만 이런 설산에서 떨군 아이템을 다시 찾을 가능성은 없다. 분명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되리라. '그래도 아껵 먹으면 하루 정도는 버틸수 있을거야.그전에 들짐승이 사는곳까지 내려가면 어떻게든 버틸수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크는 허겁지겁 설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아직 아크는 설산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르고 있었다. 정말 끔찍한 시간은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찾아왔다. 휘이이잉.......! 갑자기 눈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것이다. 살점을 엘 듯한 칼바람이 엄청난 양의 눈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덤으로 설산의 지형은 시시각각 변해 어디가 어디인지도 알아볼수 없었다. 설상가상,산기슭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해도 사라지며 주위는 완전한 어둠에 잠겨 버렸다. 어떤 산악인이 말했다. 산은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존재라고...... 그 말대로였다.비록 얼음으로 뒤덮인 설산이지만,그래도 낮에는 견딜 만했다. 그러나 어둠에 뒤덮이자 설산은 문자 그대로 죽음의 산으로 돌변했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모든것이 얼어 붙었다. 아크가 폭등한 가스비가 무서워 12월에도 여간해서는보일러를 돌리지 않았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내성이 생겨 추위에 강한 편이었다.그러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산의 추위는 대한민국의12월의 기온과는 비교조차 되지않았다. 단순히 춥다는느낌이 아니라,통증이느껴질 정도였다. 게다가 뉴 월드의 추위는 피부로 느끼는게 아니라 유니트에 접속된 뇌로 직접 한기를느끼게 만든것이다. "무,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추위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우아아아,어,언다........주,주인,나,나 죽어......!" 딱딱딱딱! 쌕쌕쌕쌕! 데드릭과 데이모스,뱀도 아크에게 찰싹 달라붙어 바들바들 떨어댔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또다시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한파로 인해 체온이 10% 떨어졌습니다! <체온이 떨어지면 10%당 모든 스탯이 5%,공격 속도와 이동속도가 5%,만복도의 소모도가 5%증가합니다. 만약 체온이 50%이하로 떨어지면 10초당 5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또한 체온이 100%떨어지면 생명력과 관계없이 동사하게 됩니다. 체온 관리에 신경 써 주십시오.체온은 음식으로 올릴수 있습니다> '맙소사!' 정말 눈앞이 깜깜해지는 메시지였다. "으.......덜덜덜........주,주인...........이,이제 어쩔거야?" 데드릭이 망토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망,망토 안에 있어도.......몸이 얼어붙는것 같아.........그,그래서 ............내가 마을에 들렀을때 외투를 사두자고.......했잖아!" 뉴 월드도 얼마전부터 3년만에 겨울이 찾아왔다. 덕분에 각 마을 잡화점에서는 두툼한 외투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아무런 능력치도 없이 그저 한파에 대한 저항력만 달린 외투를 돈 주고 살 생각은 없었다. 어지간한 추위는 버틸수 있다. 그리고 사냥하다 보면 하나쯤은 나오겠지.하고 막막하게 기대했던 것이다.그 구두쇠 근성이 이번에는 아크의 목을 졸랐다. '이대로 산을 헤매는건 무리다' 아크는 일단 하산을 포기하고 바람막이가 돼 줄 장소를 찾아나섰다. 야영지를 만들면 한결 버티기가 수월해지리라.그러나 야영 스킬도 텐트나 땔깜이 없으면 사용할수 없다.결국 아크가 할수 있는거라고는 체온 유지를위해 소환수와 함께 망토를 뒤집어쓰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대략 1시간이 지나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한파에 대한 저항력이 0.1%상승했습니다. -소환수와 한마음이 되어 애정이 1 상승했습니다. '이런 망할........몇 시간 동안 개 떨듯이 떨고 한파 저항력 0.1%?애정? 장난하냐?' 이제 그런 메시지를 봐도 욕밖에 안나온다. '버티자!그래도 날이 밝으면 조금 견딜 만해질거야' 그러나 날이 밝아도 한번 시작된 눈 폭풍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그래도 밤보다는 낫다.더 늦기전에 길을 찾아야해' 아크는 뜨끈한수프를 만들어 먹으며 다시 설산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눈보라가 강해지면 다시 추위를 피해 숨어있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6시간,게임 시간으로 꼬박 이틀이지났다. 평소 같으면 사나흘은 족히 사용할 식재료였지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30분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으니 이틀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이제 음식도 한번밖에 만들수 없다.최소한 체온이라도 유지할수 있다면.........' 여전히 기세가 줄지않는 눈보라를 보며 아크가 한숨을 불어낼때였다. '가만? 체온을 올리는걸 꼭 음식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아크는 혹시나 싶어 주위의 눈을 긁어모아 냄비에 담았다. 아크는 지금까지 물만 넣고 서바이벌 요리를 한적이 없다.물을 넣고 끓여 봤자 끓은 물밖에 더 되겠는가? 그리고 잊어 먹고 있었는데,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같은상황에서는 끓는 물도 도움이 되지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서바이벌 요리를 시전하자 금세 끓는 물로 변해버렸다. '역시 예상대로다' -서바이벌 요리로'정제수'를 만들었습니다. 오염되지않은 눈을 녹이면 순수한 정제수를 얻을수 있습니다.정제수는 가장 기초적인 식재료로 요리에 사용하면 약간의 능력치 상승을 기대할수 있습니다. 과연 끊는 정제수를 먹으니 배 속이뜨끈해지며 체온이 20%나 상승되었다. 역시 서바이벌 요리! 이런 오지에서도 확실하게 제몫을 하고 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음식을 먹으면 30분동안은 같은 음식을 먹을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30분안에 20%이상 체온이 떨어지는 상화이다. 결국 버티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는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뜻. '게다가 정제수로는 만복도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식량을 찾아야해' 주위가 어둠에 뒤덮이고 기온이 더욱 떨어졌지만 이제 바위틈에서 추위를 피할 여유도 없다. 남은 식재료는 아크와 소환수가 한번씩 먹을 분량.그 뒤로는 굶어죽는게 먼저일지,얼어죽는게 먼저일지를 기다리는 일뿐이다. '여기서 죽을수는 없어!' 아크는 눈보라를 헤치며 식량을 찾아나섰다. '아무리 설산이라도 뭔가가 있을거야.눈으로 찾을수 없다면....그래,그거다!' "마법 탐지!" 아크의 눈동자가 푸른빛에 물들었다. 혹시나 싶어 마법탐지를 발동시키자 눈밭 군데군데에서 흐릿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낮이었다면 못 보고 넘어갔을수도 있는작은 빛.그러나 어둠속이라 선명하게 보였다. '오오오,뭔가가 있다!' [만년설의 결정(마법 재료) 만년설 안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결정체입니다. 폭풍이 수억년에 걸쳐 굳어진 것으로 불조차 얼려버리는 한기가 담겨있습니다.] [설모초(마법 재료 ,식재료) 만년설 안에서만 자란다는 신비의 약초.눈 덮인 바위 표면에 이끼처럼 자생하는 약초가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강력한 해열 효과가 있어 각종 질병의 치료제로 사용됩니다.] '젠장 ,이게 뭐야?' 아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예전 같으면 ,돈이 되는 마법 재료를 찾으면 기뻐 날뛰었겠지만 ,지금은 당장 사느냐,죽느냐가 문제다.1골드짜리 마법 재료보다 1쿠퍼짜리 식재료가 더욱 간절한 것이다. '그래도 일단 챙겨는 둬야지' 그래도 아크는 아크다. 당장 얼어죽을 상황에서도 돈 되는 아이템을 포기할수는 없다. 아크는 추위와 맞서가며 주변의 만년설 결정과 설모초를 모두 긁어모았다. 그렇게 눈을 헤집으며 돌아다니자 만복도와 체온이 금세 바닥까지 내려갔다. 슬슬 생명력이 깎일 위험한 상황이라 어쩔수 없이 남은 식재료를 탈탈 털어 음식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이었다. "이게 마지막 음식이다. 알고 있지? 이제 만복도가 떨어질때까지 식량을 못 구하면 우리는 모두 끝장이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잠들면 안돼!정신 차리라고!" 그로부터 몇시간 뒤가 바로 첫 대목의 상황이다. 기나긴 추위와 굶주림! 아크와 소환수들은 퀭하게 변해버렸다. 그나마 아크와 데이모스는 아직 체온을 60%이상 유지하고 있었지만, 추위에 취약한 데드릭은 체온과 만복도가 50%이하로 내려갔다. 덕분에 생명력까지 깎여 나가자 헛소리를 해대기 시작한것이다. "싫어......졸립단 말이야............" "잠들면 죽는다니까!여기서 죽으면 힘들게 올려놓은 능력치도 깎이고,나갈때까지 얼굴도 못봐!그래도 좋은거냐? 자, 생각해봐.네가 능력치를 올리기 위해 고생했던 나날들을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쌓은 추억들을!" "추억.........주인과의추억..........." 데드릭은 몽롱한 눈빛으로 지난날을 떠올렸다. 첫 만남? 왕따 박쥐라고 무시당했다. 말을 하기 시작했을때 ?끔찍한 음식을 입에 쑤셔 넣어서 참다못해 입이 열렸다. 진화했을떄? 인권을 주장하다가 죽도록 맞았다. 흡혈 스킬을 배웠을때? 피 빠는 교육시킨다고 또 죽도록 팼다. 돌이켜 보니 데드릭의 추억이란 참으로 뼈(?)에 사무치는 것들뿐이었다. "..........역시 죽을래" 데드릭은 울컥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에엑? 뭐야,너!그 표정은?" "몰라,내가 얼마나 불쌍한 소환수인지 새삼 꺠달아서 그래." "뭐야? 이 자식, 남은 애써 걱정해 주고 있는데......" "말 다했냐?" "다했다. 어쩔래?" 굶어죽든 얼어죽든 주인에게 맞아죽든 거기서 거기다.데드릭은 어차피 죽을 목숨,할말 다하고 원없이 개겨나 보자는 식으로 덤벼댔다. "빌어먹을 ,그래.이런 주인의 소환수가 된 내 잘못이지.부려 먹고 두들겨 패는거? 좋다,이거야.하지만 적어도 굶기지는 말아야지.정식 풀코스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저기 보이는 저런 들짐승 고기라도......음,고놈 참 맛있게 생겼군.저 도톰한 몸집..........피는 얼마나 맛있을까? 핫!먹잇감?" 악다구니를 써대던 데드릭이 눈을 비비적대더니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뭘 보고 헛소리를 하나 싶어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눈동자도 커졌다. 저 멀리에서 뭔가 작은 물체가 보였다. 도도도도,눈밭을 달리다가 몸을들어 올리고 코를 벌름거리는 작은 물체......놀랍게도 그건 설산에 사는 생쥐였다. "주인!" 아크와 데드릭이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생쥐를 바라보며 동시에 소리쳤다. "고기다!" 아크와 데드릭,데이모스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생쥐를 향해 몸을 날렸다. 생쥐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다. 눈이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니 재빠른 생쥐를 따라잡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누군가? 무려 만 마리의 생쥐를 잡아 캣 나이트의 칭호를 받은 용사가 아닌가! "놓칠것 같으냐!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찌익-! 순간 아크의 머리위로 사자와 같은 고양이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자 생쥐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요놈,우하하하,잡았다,잡았어!" "오오오,주인,멋지다.지금까지 본 모습중 제일 멋진 장면이었다!" 아크가 생쥐를 잡아 올리자 데드릭이 군침을 뚝뚝흘려 대며 소리쳤다. "우하하하,어떠냐? 내가 바로 아크다!" 레벨 190의 유저가 생쥐 한마리를 잡고 우렁찬 사자후를 터트렸다. 꼴사납기 짝이 없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아크는 곧바로 검을 뽑아 생쥐를 후려쳤다. 생쥐는 단숨에 반 토막나 가죽과 고기로 분리되었다. 요리로 만들면 만복도 20%짜리 쥐 고기 수프가 된다. 정제수를 사용해 조금 효과를올린다고 해도 데드릭과 데이모스,뱀과 나눠 먹으면6~7%.모기 눈물만큼의 만복도밖에 되지않지만 이것도 지금의 아크에게는 감지덕지다. "우후후후,주인,빨리.....빨리 끓여라" "알았어,인마.잠깐 기다려" 아크는 히죽웃으며 냄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정제수와 쥐 고기를 넣으려는 찰나. 우득,우드드득! 돌연 발밑에서 뭔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시선을 내리던 아크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하게 굳어졌다. '맙소사,여,여기는.........서,설계............?" 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오래전에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히말라야를 정복하려는 등산가들의 역경을 담은 영화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로 설계라는 것이었다. 빙하가 갈라진 틈,크레바스.설계는 바로 그런 크레바스위에 눈이 쌓이며 살얼음처럼 굳어져 평지처럼 보이는 장소를 말한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눈밭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허공에 뜬 상태로 눈이 덮인 것이라 사람이 올라서면 단숨에 허물어져 버린다. 설산에서 사망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이 설계에 속아 크레바스에게 삼켜지는 것이다. '다,다행히 아직 무너질 정도는 아니다.조금씩 움직여서 탈출하면.........' 아크는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미끄러지듯이 한걸음 움직였다. 그때,관절이 얼어 한걸음 늦게 도착한 데이모스가 다가왔다. 아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안돼!데이모스......멈춰!" 딱딱딱? 데이모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우뚝 멈춰섰다. 그러나 이미 데이모스는 설계 위로 올라온 상태였다. 와드드득,쩌쩡-! '빌어먹을.......끝장이다!' 아크의 귓가로 파멸의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발밑이 허전해지며 까마득한 크레바스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ACT 2 절벽에서 떨어지면 기연을 만난다더라 "슬라임의 시간 NO.1!" 아크는 반사적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끝도 보이지않는 크레바스의 틈.체온과 만복도가 떨어진 상태가 아니라도 그대로 떨어지면 사산이 분해되어 버리리라.그러나 아크에게는 비장의 수단이 있었다. 물리 데미지와 낙하 데미지를 100%무효화시키는 슬라임의 시간! 스킬을 사용하자 아크의 몸이 노란 점액질로 뒤덮였다. 아크는 그 상태로 허우적거리며 데이모스에게 다가갔다. 소환 해제가 되지 않으니 데이모스가 박살 나는 꼴을 보기 싫으면 직접 잡아 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크가 데이모스를 잡아채는 순간,눈앞으로 지면이 확 다가왔다. 티잉!티잉!티잉! 지면과 부딪치자 아크의 몸이 물 풍선처럼 튀어 올랐다. 그렇게 서너번을 튕긴 뒤에야 제대로 바닥에 착지할수 있었다. "헉헉헉,사,살았다.......!" 뒤늦게 온몸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예전에도 100여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적은 있었다. 그러나 미리 계산하고 떨어진것과 갑자기 떨어진것은 받아들이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한순간 아크는 정말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잇,이런 멍청한 뼈다귀 같으니!" 데드릭이 성질을 부리며 데이모스를 쏘아보았다.그러나 그것도 잠시,뒤늦게 움찔하며 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핫,그러고 보니 생쥐!생쥐 고기는?" "생쥐 고기는..........."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데드릭의 얼굴에 정말감이 번졌다. 그러나 뒤이어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손을 펼쳤다. "당연히 꽉 붙잡고 있었지" "아앗,주,주인.놀랐잖아.흑흑흑.....정말 놀랐다고" 데드릭은 정말 식겁한 표정으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녀석.......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하긴,서바이벌 요리를 배운 아크다. 그동안 억지로 음식을 쑤셔 넣은 적은 있어도 굶긴 적은 단 한번도 없다.또한 아크는 소환수가 아무리 잘못해도 밥은먹여 가면서 팼다. 현실에서 끼니 거르기를 밥 먹듯한 아크는 배고픈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식량을 무기화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후후후,녀석.그렇게 놀랐냐?" "아잉,몰라.주인 미워.빨리 수프 만들어줘" 안심하자 데드릭이 콧소리까지 내며 애교를 떨어냈다. 딱딱딱딱. 데이모스도 안광을 빛내며 바짝 다가왔다. 언데드조차 굶주림에는 별수 없는 모양이다. 소환수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아크는 냄비를 꺼내들었다. 딱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식량이다. 아크는 정제수와 온갖 향신료를 듬뿍 사용해 심혈을 기울여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이내 냄비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오며 요리가 완성되었다. [서바이벌 요리로'최상의 쥐 고기 수프'가 완성되었습니다! 요리는 정성이 반이라도 할 정도로 성의가 중요합니다. 재료를 귀하게 여기고, 먹는 사람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이야말로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입니다. 좋은 물과 향신료를 사용해 성심성의를 다한 덕분에 쥐 고기 수프는 일품요리로 거듭났습니다. <민첩+2,만복도+20%> <일품 요리 보너스 : 민첩+2,생명력+400,만복도+20%>] "오오오오!" 아크와 소환수들이 일제히감탄사를 터트렸다. 간병을 사용할떄 전력을 다하면 특수 효과가 붙는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효과가 서바이벌 요리에도 적용된다는것은 아직까지 몰랐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식재료가 항상 넘치다 보니 굳이 신경 스면서 요리를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 '하지만 같은 요리는 한번에 하나밖에 못 먹는다. 게다가 한번에 먹을수 있는 요리의 숫자도 10개가 한계.만약 스탯을 많이 올려주는 음식을 일품요리로 만들면 똑같이 10개를먹어도 적용되는 보너스는 몇 배!'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다면 절대 얻지 못했을 정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식재료가 넉넉할때나 쓸수 있는 정보. 지금 아크에게는 그저 만복도가 더 올라간다는 사실이 고마울 뿜이었다. "다리는 내거다!건들면 죽어!" "앗, 치사해 !그럼 왼쪽 뒷다리는 내거!" 딱딱딱,쌕쌕쌕! 아크와 소환수들은 아귀처럼 달려들어 쥐 고기를 뜯어댔다. 순식간에 육수까지 쪽쪽 빨아먹자 각자 만복도와 체온이 10%씩 올랐다. 그렇게 당장 급한 불을 그자 오히려 허기는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암담한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다시 만복도가 내려가기 전에 뭐든 찾아야 할텐데......" 아크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까마득히 높은 얼음벽이 바람을막아주어 다행히 심한 한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안 좋았다. 일단 식량........설산에서는 찾지 못했던 식량을 크레바스아래에서 찾을수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 미로처럼 얽힌 크레바스에서나갈 방법도없다. 암벽타기와 방벽타기는 수준이 다른것이다. "주인,이제 우리는 여기서 굶어 죽는거지?" 데드릭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체력이 버틸때까지라도 길을 찾아보자" 솔직히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일. 아크는 일단 소환수들을 이끌고 크레바스를 따라 걸었다. 꼬르르륵.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간신히 허기를달래 놓은 배에서 참으로 없어 보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복도를 확인해 보니 50%에서 간당간당하고 있었다. '젠장, 여기까지 인가.........'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낼 때였다. 쌕쌕? 쌕쌕쌕? 파란 눈돈자로 아크의 눈치를 살피던 뱀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몇번 갸웃거리더니 이내 투이기듯 허리에서 떨어져 나가 쏜살같이 얼음 계곡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어? 뱀, 어디가는거야?" 아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따라 들어갔다. 좁은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자 돌연 정보창이 떠오르는게 아닌가? [설산의 숨겨진 동굴 얼음으로 뒤덮인 천형의 설산,이스트 월. 당신은 이스트 월의 크레바스에서 숨겨진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고대의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신비롭고 아름다운 동굴은 얼음과 바위가 수백,수천년 이상의 세월이 만들어낸 예술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놀랍게도 이 동굴에는 설산에서는 볼수 없었던 넝쿨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차가운 공기를 타고 풍겨 나오는 섬뜩한 짐승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이곳이 결코 안락한 휴식처가 아니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모험가의 지식 : 숨겨진 던전 보너스(스킬 포인트 : 10>] -아직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새로운 발견자로서 명예의 전당에 등록하면 2,000의 경험치와 130의 명성을 추가로 얻을수 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숨겨진 던전!'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정보창에서 이런저런 말로 겁을 주고 있지만, 아크에게 숨겨진 던전만큼 반가운 것도 없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던전! 이곳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게다가 던전 입구에는 나무 덩쿨이 얽혀 있었다. 즉, 식물이 자란다는 뜻.무엇보다 식재료 보충이 시급했던 아크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보너스 스킬 포인트까지!' 아크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오,여기는 크레바스 안보다 더 따뜻한데?" 딱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이제야 좀 살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에스키모들이 사는 얼음집 이글루처럼 크레바스와 얼음동굴이 이중으로 바람을 차단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얼음동굴이니 당연히 기온은 영하겠지만, 밖의 기온과 비교할순 없다.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체온이 떨어지는 속도가 몇배는 느려진것이다. '하지만 만복도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다.먼저 식량을 구해야해.입구에 나무덩쿨이 있으니 찾아보면 쓸만한 열매나 약초를 구할수 있을지도 몰라' 역시나 넝쿨을 더듬으며 들어가보니 작은 열매 몇개가 붙어 있었다. '됐어.동굴을 돌아다니며 긁어모으면 당분간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겠어.여기서 잔뜩 비축해 놓고 출구를 찾아산을 내려가면 되겠어!' 아크는 얼른 열매를채취하며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좋아,뱀.일단 이것들은 네가 가지고......어라?" 허리춤이 허전했다. 그제야 아크는 아직 뱀이 돌아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데드릭, 데이모스,뱀 어디있어?" "뱀? 몰라 .방금전까지 여기있었는데?" 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크는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뱀이 명령도 없이 움직인것은 동굴을 찾기 위해서였으리라.그렇다면 아크가 동굴에 들어선 직후 곧바로 다시 허리로 돌아왔어야 한다. 그런데 돌아오기는 커녕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것이다. 뱀의 생명력은 고작 50.평소에는 허리에 감겨 있어서 공격을 받을 걱정이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혼자 행동하다가 몬스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한방에 즉사!물론 몬스터가 뱀을 공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곳에서는 어찌된일인지 소환수를 불어내지 못하게 되있다.만의 하나라도 뱀을 잃는다면 돌아갈때까지 가방 하나를 못쓰게 된단뜻이다. "뱀!어디 있냐?" 아크는 고함을지르며 동굴로 뛰어들어갔다. 쌕? 쌕쌕........! 그렇게 100여미터를 달려들어갔을때였다. 동굴 벽을 타고 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 달려가 보니 길이 몇 갈래로 나뉜 부분에서 뱀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휴........대체 이런곳에서 혼자 뭐하는거야? 갑자기 없어져서 놀랐잖아" 그때였다. 안쪽 통로에서 시커먼 그림자 몇개가 빠르게 뛰어나왔다.아크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그림자의 눈동자를아크를 향해 있지 않았다. 놈들이 노리는것은 아직 상황파악도 못하고 있는 뱀!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헉,뱀!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있어!슬라이드!" 아크는 바닥을 따라 미끄러지며 옆차기를 날렸다. 꾸에에에엑! 동시에 돼지 멱따는 듯한 괴성이 울리며 그림자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뱀에게 달려들던 그림자의 정체는 족제비처럼 생진 몬스터였다.뒤늦게 몬스터를 확인한 뱀이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아크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고양이의 눈!" 아크는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이름을 확인하자 왜 놈들이 다른 몬스터와 달리 뱀에게 먼저 달려들었는지 이해되었다. 몬스터의 이름은 아이스 몽구스.몽구스라면 뱀을 잡아먹기로 유명하다.아크를 부모로 생각하는 뱀은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본능적으로 몽구스가 천적인 것은 아는 모양이다. 몽구스가 나타나자 뱀은 평소와 달리 아크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와들와들 떨어댔다. 사실 뱀이 아니라도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이다. 아이스 몽구스를 동물원에서 키우는 귀여운 동물처럼 생각하면 큰오산이다. 크기는 무려 5미터!바짝 솟은 귀가 동굴 천장에 닿을 정도였다. 게다가 날카롭게 솟아있는 송곳니와 발톱은 북극곰 따윈 한방에 날려버릴만큼 무시무시했다. '레벨 250...............' 현재 아크의 레벨은 200이다. 던전이니 어둠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240.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아크는 체온과 만복도가 떨어져 스탯과 공격 속도에 상당한 패널티가 적용되어 있다. 한마리라면 모를까,서너마리를 상대로는 승산을 장담할수 없다. 그러나........ "고기다!" 아크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뒤따라 날아오던 데드릭도 환호성을 터트렸다. "우홧,큰 고기다!쥐보다 대빵 큰 고기야!"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가오던 몽구스들이 정체모를 섬뜪함에 움찔했다. "횡재했다. 주인!얼른 잡아먹자!우하하하!숫자도 네 마리,한마리씩 먹을수 있다!" "좋아,한마리는 수프로 만들어 먹고,나머지는 통구이로 만들어 먹자!" 딱딱딱딱! 아크와 소환수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었다. 굶주림에 헐떡이던 아크와 소환수에게는 레벨 250의 몬스터도 고기로밖에 보이지않았던 것이다. "자,어디 성능 테스트를 해볼까?" 아크가 등에 차고 있던 검을 양손으로 빼 들었다. 순간 잘 벼려진 검날 특유의 시퍼런 예기가 번뜩였다. 이사벨에게 받은 귀살검!이계로 들어오며 레벨 190이 되었지만 아직 사용해 보지못한 레어 양손검이었다. 수천 마리의 요괴를 베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귀검이 처음으로 빛을 발한것이다. 캬아아악! 거리를 좁히자 몽구스가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아크는 귀살검을 비스듬히 세워 공격을 흘려냈다. 그리고 튕겨 올리듯 아래에서 위로 쳐 올렸다. 그렇게 검날이 몽구스의 몸을 가로지르는 순간, 아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뭐야,이느낌은?' 검날이스치고 지나가자 몽구스는 일격에 15%나 되는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 레벨 250짜리 몬스터임을 감안하면 대략 300전후의 데미지! 란셀의 검이라면 치명타를먹여도 될까말까 한 데미지였다. 그러나 소스라치게 놀란것은 공격력 때문이 아니다. 레어 검이라면 그 정도 공격력은 나오리라고 예상했으니까. 아크가 예상하지 못한것은 바로 '베는 맛'이었다. 사아아아악,양손검이라고는 믿을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게 가죽을 파고드는검날!마치 면도칼로 피부를 가르는 듯한 느낌이 너무나 리얼하게 손끝으로 전달되었다. 살을 베는 느낌이 썩 좋을리가 없지만, 귀살검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그처럼 단순하게 않았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상쾌함! 마치 온몸의 세포가 검날과 동조한 느낌이랄까? '이게 레어 검............!" 얼빠진 얼굴로 검을 바라보던 아크이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번져 나왔다. 아크는 단숨에 귀살검의 마력에 사로잡혀 버렸다. '사람들이 레어검에 목을 매는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이런 검을 사용하다가 평범한 마법검을 사용하면 몽둥이를 휘두르는것 같을거야' 순간 귀살검의 검날에 옆에서 달려드는 몽구스의 모습이 비쳤다. 아크는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치잉-! 란셀읭 검으로 치명타를 터트리면 둔중한 파열음이 울렸지만, 귀살검을 컴날이 진동하는 듯한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손끝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 '이 느낌......미치겠군' 아크는 마치 검에 홀린 사람처럼 몽구스에게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러댔다. 물론 귀살검에도 단점을 잇었다. 일단 양손검이라 공격속도가 예전처럼 빠르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손에 익지도 않고,무게감도 상당해서 검을 휘두르며 발차기를 할때 중심 잡기가 힘들었다. 또한 양손 검의 특성상 약점을 정확히 공격해도 치명타가 잘 터지지않았다. 그러나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란셀의 검보다 몇배나강한 파괴력을 선보였다. 서걱,사아아아악,치잉-! 검광이 번뜩일때마다 몽구스의 생명력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그사이 데드릭과 데이모스도 걱정과 달리 여유롭게 몽구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우헤헤헤,이놈들 보기보다 별거 아니잖아?" 데드릭이 빠르게 동굴을 날아다니며 낄낄 거렸다. "그런 뻔한 움직임으로 이 몸을 잡을수 있을것 같냐?" 딱딱딱딱! 데이모스도 몽구스의 공격을 방패로 막으며 간간이 역습을 가할 정도였다. 소환수들의 이런 변화는 바로 경험 덕분이었다. 아크가 나가란으로 들어서면서부터 그들의 상대는 유저와 암살자들이엇다. 그리고 유저는 말할것도 없고,암살자 역시 인간형 NPC로 인공지능이 상당히 높다.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전략이나 공격패턴은 아주 복잡했다. 아크와 소환수들은 지난 한달간 계속해서 그런 적을 상대해 온것이다. 그러다가 지능이 낮은 일반몬스터를 상대하니 공격패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크가 난이도 높은 붉은 황야를 지나올수 있었던 것도 그런 경험 덕분이다.더구나 지금은 몽구스의 고기로 배를 채워야겠다는 목표아래 아크와 소환수가 똘똘 뭉쳤다. "데드릭,뒤쪽의 몽구스에게 암흑 돌진!데이모스,측면으로 방어 태세!" "옛써!" 명령을 소환해내는 속도도 예전과는 비교할수 없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데드릭이 뒤쪽에서몸을 움츠리며 도약하려던 몽구스를 들이받았다.이어 측면에서 아크에게 달려들던 몽구스는 데이모스의 방패에 막혀 튕겨 나갔다. 절호의 기회! 아크는 다크 댄싱을 펼쳐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두 마리를 집중공격했다. 이미 생명력이 상당히 빠져있던 몽구스들은 몇번 검날이 스치자 반으로 갈라졌다. '됐어,나머지는 두 마리,이 정도면낙승이다!' "A-2플랜!집중 공격이다!" 아크와 소환수들은 파상공격을 펼치며 나머지 몽구스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불과 몇분도 되지않아 몽구스들은 귀살검에 목이 날아가며 쓰러졌다. "됐다.이제 식사 시간이다!" 데드릭이 침을 질질흘리며 몽구스의 시체로 날아갈때였다.갑자기 동굴 안쪽에서 붉은 형체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왔다. 가장 먼저 그 형체를 발견한 데이모스가 와락 방패를 치켜들고 데드릭의 앞을 막아섰다. 순간 동굴을 뒤흔드는 육중한 울림이 터져나오며 데이모스가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놀라 고개를돌린 아크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르! 눈앞으로 몽구스한마리가 걸어나왔다. 평범한 몽구스가아니었다. 다른 놈들보다 몸집이 더 크고 붉은 털로 뒤덮인 몽구스! 정보를 확인해 보니 레벨 300.다른 몽구스보다 50이나 더 높았다. '이 녀석, 스폐셜 몬스터다!' 아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전에도 이런 몬스터를 몇번인가 만난적이 있었다. 보통 같은 부류의 몬스터들 가운데 덩치가 조금 더 크고 다른 옷차림이나 피부색을 가진 몬스터.이런 놈들이 바로 유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스폐셜 몬스터다. 물론덩치가 큰만큼 레벨이나 능력치가 높아 보통 몬스터보다 상대하기가 쉽지않다.그러나 높은 확률로 고급 아이템을 떨구었다. '이런 곳에서 스폐셜 몬스터를 만나다니.........!" 아크는 군침을 꼴깍 삼키며 붉은 몽구스의 몸을 더듬었다. "헹,뼈다귀에게 한방 먹였다고 폼 잡기는........그래봐자 너도 통구이야!" 데드릭이 콧방귀를 뀌며 암흑돌진을 날렸다. 순간 레드 몽구스의 입이 쩍 벌어지며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우왁!불,불이다!뜨,뜨거워!" 꽁지에 불이 붙은 데드릭이 퍼덕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이런.........!" 데드릭은 아직 생명력에 여유가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계속 몽구스들의 공격을 방패로 받아낸 데이모스에게는 여유가 없다. 화염에 휩싸이면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나리라! 이곳에서는 24시간이 지나도 데이모스를 재소환할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 큰 문제는 데이모스가 죽을때 아크에게 적용되는 데미지였다. 꾸준한 성장으로 데이모스의 전체 생명력은 현재 1,800.그중 50%가 데미지로 적용되니 900이다. 생명력이 30%밖에 남지않은 아크에게는 치명적인 데미지였다. 아크는 망토를 휘감고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염 저항 50%인 화염의 베일! 아크는 그대로 쏘아져 나가며 불길을 뿜어내는 몽구스의 아가리에 귀살검을 쑤셔 박았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치잉,하는 청아한울림과 함께 몽구스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데이모스,뒤로 물러나 있어" 딱딱딱,딱딱딱딱! 데이모스는 불길을 뚫고 구출하러 온 아크를 한번 바라보고 뒤로 물러났다. '이곳은 좁은 동굴 안이다. 놈이 방금 전처럼 화염 공격을 하면 데드릭이나 데이모스는 피할 공간이 없어.화염 저항력이 없는 소환수에게는 치명적이다' 더구나 데드릭이나 데이모스,모두 생명력이 15%내외. 다시한번 화염을 뒤집어쓰면 곧바로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리리라. 그리고 한마리라도 죽으면 강제송환 데미지로 아크역시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데드릭,데이모스,너희들은 멀찌감치 물러나 있어" "뭐? 주인........혼자서 싸우려고?" 데드릭이 꽁지에 불을 얼음에 비벼끄며 되물었다. "어차피 너희들은 도움이안돼" "하지만 주인도.........." 데드릭이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크도 그리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다. 비교적 손쉽게 이겼다고는 하지만 몽구스 네 마리를 쓰러트린 직후다.게다가 곧바로 다른 몬스터가 나올거라고는 예상하지못해서 남은 생명력에 신경쓰지않았다. 덕분에 현재 남은 생명력은 고작 30%.아크는 검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그래도 1대 1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크아아아아! 그때,주위를 돌려 기회를 노리던 몽구스가 펄쩍 뛰어 달려들었다. 아크는 검으로 원을 그리며 날아드는 발톱을 쳐냈다. 그리고 그대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가슴에 카운터를 먹였다. "화격!" 투퉁,둔중한 울림과 함께 몽구스가 두어걸음 물러났다. 다른때 같았으면 곧바로 따라붙어 연속 공격을 먹였겠지만, 아크는 신중하게 숨을 고르며 양손으로 검 자루를 단단히 잡고 중단 자세를 취했다. '생명력에 여유가 없다. 공격보다 수비에 신경 써야해' 귀살검은 공격속도가 느리다. 그만큼 공격에 빈틈이 많다는뜻. '란셀의 검은 지근거리에서 싸우면서도 빠르게 공수 전환할수 있다. 하지만 귀살검은 성격이 전혀 달라.양손으로 사용해야 해서 공격범위도 좁고,공수전환도 느려 적의 반격에 빠르게 대처할수 없다. 긴 검날도 근접전에서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짜릿한 손맛에 현혹되어 무턱대고 달려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수밖에 없어' 이게 방금전 몽구스들을 상대하며 깨달은 점이다. 압도적인 공격력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양손검은 오히려 방어적인 무기였다. 한손검이 기관총이라면 양손검은 대포. 긴 검날을 활용해 간격을 유지하며 한방,한방 확실하게 공격해 나가야한다. 공격 속도가 느린 만큼 한번 빗나가면 딜레이가 상당한것이다. 그런 결론에 도달한 아크가 선택한 것인 검도의 중단세와 같은 자세.공격보다는 수비 쪽에 가까운 자세였다. 캬아악,캬악! 몽구스가 양팔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검을 사선으로 비껴세우며 공격을 받아냈다. '과연...........데이미가 거의 들어오지않는다' 귀살검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크가 익힌 유일한 방어스킬'쳐 내기'.성공하면 검 공격력을 방어력에 가산해 주는 스킬이다. 중급 쳐 내기는 검공격력 X4!공격력 45~60의 귀살검이니 적용되는 방어력이 무려 180~240! 전사들이 사용하는 강철방패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완벽한 방어는 아니지만, 데미지의 상당부분을 경감시킬수 있었다. 아크는 그렇게 쳐 내기로 방어를 굳히며 중간중간 화격을 날렸다. 그렇게 몇분,아크는 몽구스의 생명력을 70%나 깎을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 역시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생명력이 빠져나가 10%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20%를 주고 70%를 깎았으니 이 상태만유지하면 이길수 있다!' 아크가 그렇게 생각했을때였다. 번번이 공격을 박고 반격을 가해오니 몽구스도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깡충 뛰어 뒤로 물러나더니 화염을 뿜어대기 시작했다.아크는 단숨에 생명력이 10%이하로 내려가며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젠장, 이 자식 몽구스 주제에.........약점을 눈치챘구나!' 당연히 화염은 검으로 막을수 없다. 화염 저항 망토가 있지만 경감시킬수 있는 데미지는 50%.게다가 반격기를 먹일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할수 없지.승부다!귀기 개방!" 아크가 귀살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끼야아아악! 순간 귀살검의 검신이 파르르 떨리며 소름끼치는 귀곡성이 터져나왔다. 뒤이어 끔찍한 형상의요괴들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더니 검날에 달라붙었다. 마치 문신이라도 한것처럼 한폭의 요괴도가 검날에 새겨졌다. 생명력을 대가로 공격력을 20%나 상승시켜 주는 귀살검의 특수옵션,귀기 개방! 거기에 빈사 상태에 빠지며 불굴 시리즈와 아드레날린이 발동되었다. 공격력과 치명타,회피율,반응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 믿기지않는 힘의 파동이 당장이라도 살을 찢고 뛰쳐나올것만 같은 느낌! "받아랏,다크 블레이드!" 끼야아아아악,서걱,치잉-! 검을 휘두를때마다 귀곡성이 울리며 몽구스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몬스터의 방어력을 상회하는 압도적인 공격력~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빠진 몽구스가 기겁하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크의 얼굴에 다급함이 번졌다. 귀기개방은 양날의 검이다. 한순간 공격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그 대가는 무려 1초의 5의 생명력.300밖에 남지않은 생명력으로는 고작 1분도 버티지못한다. 이미 40여초가 지나 남은 생명력은 100.20초안에 승부를 내지못하면 요괴에게 잡아먹히는것이다. 말하자면 다른 혹성에서 와서 몇분동안만 울0라맨이 되는 옆나라의 실업자 영웅이나,열받으면 초록 괴물로 변하지만 금세 쪼그라드는 아메리카의 헐0와 비슷한것이다.우득,우득.......귀살검의 요괴들도 아크의 생명력이 얼마 남지않았음을 눈치챈 모양이다. 검신에 새겨진 요괴 모양이 팔을 타고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은 15초........그 안에 쓰러트리지못하면 내가 죽는다!' "전력 질주!" 아크는 총알처럼 튀어나가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놈의 펑퍼짐한 엉덩이가 코앞에 왔을때 몽구스가 갑자기 와락 몸을 돌렸다. '헉,유인 작전이었나?' 놈을 일경에 쓰러트리려면 백스텝을 성공시켜야한다. 일격에 쓰러트리지 못하면 반격으로 아크가 위험해지는것이다. 그러나 이미 멈추기에는 늦었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 아크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온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귀곡성과 함께 날카로운 비명이 동굴을 뒤흔들었다. 몽구스의 몸이 단숨에 반으로 갈라지며 두두둥,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초급,패시브) : 적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적을 단숨에 갈라버리는 일격필살의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사용자의 실력보다 검의 성능, 적을 일격에 갈라버릴 예리함과 중량감이 더 중요합니다. 뛰어난 장인이 혼심의 힘을 다 바쳐 명검이라고 불리는검.그중에서도 양손검을 사용하는 사람만이 이 기술을 터득하고 사용할수 있습니다. <적 생명력 10%이하일경우 치명타 공격에 성공하면 10%확률로 즉사시킬수 있습니다. 일도양단으로 적을 처치할경우 경험치 x1,2최상 아이템을 떨굴 확률 X1,2가됩니다. (레어급 이상의 양손검으로만 사용가능)>] '레어 양손검 전용 스킬?' 그러나 느긋하게 정보창이나 읽고 있을때가 아니다. "귀기개방 해제!" 아크가 서둘러 소리치자 심장부근까지 올라왔던 요괴 문양이 재 가루처럼 부스스 흩어졌다. 남은 생명력은 불과 7.1초만 늦었어도 검에게 잡아먹힐뻔한것이다. '휴.......이거 함부로 슬 스킬이 아니군' "우와........!" 뒤늦게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입을 쩍 벌리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주인, 왠지 굉장히 멋졌어" "그렇게 아부하지 않아도 배불리 먹여 줄테니 걱정마" "헤헤헤,눈치챘어?" "어쨌든 주린 배를움켜쥐고 싸우느라 너희들도 고생했다. 양껏 먹여주지" "역시 주인밖에 없어.알아? 내가 주인 존경하는거?" 언제는 음식 먹인다고 난리를 떨어대더니 .하여간 사람이든 소환수든 굶어봐야 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모양이다. 가끔은 굶길 필요가 있을지도......... '하긴,란셀 마을에서 재교육 이후로 음식 투정은 하지 않으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아크는 데드릭의 너스레에 피식 웃으며 전리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역시 짐승 계열의 몬스터라 나오는 아이템이 허접스러웠다. 인과 관계가 명확한 뉴 월드에서는 몬스터의 속성에 따라 나오는 아이템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즉, 인간형 몬스터는 아무리 잡아도 고기나 가죽을 떨구는경우가 없다. 대신 무기나 방어구를 떨구는 확률은 높다. 반면 짐승 계열의 몬스터에게는 무기나 방어구를 얻기 힘든것이다. 물론 나올 확률이 아예 없는건 아니다.식인 동물의 경우,사람을 잡아먹고 소화시키지못한 장비를 배 속에 품고 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확률은 극악할정도로 낮다.역시 전리품은 몽구스의 가죽,뼛조각,고기따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당장 급한 식재료는 구했으니 다행이군' 아크는 아이템을 쓸어담고 스폐셜몬스터에게 다가갔다. 스폐셜 몬스터는 높은 확률로 고급 아이템을 떨군다. 일도 양단으로 죽였으니 스폐셜 몬스터가 줄수 있는 최상의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올라갔다. 아크는 잔뜩 기대 어린 시선으로 몽구스의 시체를 뒤졌다. "억, 이,이건.........?" 몽구스의 몸에서 나온 아이템은 빨간 구슬이었다. 아크는 이전에 같은 형태의 아이템을 본적이 있었다. 바로 몬스터 내단의 재료인 '빛나는 슬라임의 정수'.아크는 떨리는 심정으로 얼른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몽구스의 정수(火) 이계의 설산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진 몽구스의 정수입니다. *상급 서바이벌 요리사의 뛰어난 직감으로 몽구스의 정수에 관련된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몽구스 가운데는 몇백 마리에 한 마리 꼴로 특수한 속성을 가진 돌연변이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몽구스들은 몸안에 힘의원천이 되는 결정체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현재 밝혀진 바로는 이러한 결정체는 모두 일곱 종류로,각각 화,냉,지,풍,뇌,암,광이 존재합니다. 각각의 정수는 해당 속성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한 플레이어가 이 모든 속성을 모으면 원소를 자유롭게 다룰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몬스터의 정수 등급 : D>] '역시 몬스터 내단이다.게다가............' 종류가 무려 7개나 되는 내단! 말하자면 세트 내단이란 말이 아닌가? 슬라임의 내단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얻었다. 물론 슬라임의 정수는 B등급.D등급의 몽구스의 내단은 그만한효과가 없으리라. 그러나 7개나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보너스를 일곱번이나 받을수 있다는 뜻.게다가 모두 모으면 세트 보너스가 적용된다. '모두 모으면 슬라임의 내단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건 없을거야.게다가 며칠 동안 설산을 돌아다녔지만 몽구스를 본적이 없다. 그 말은 몽구스가 모두 이 동굴에 모여있다는뜻.이 동굴을 다 돌아다니면 나머지 정수도 구할수 있을거야.문제는 나머지 재료아이템인데........' 아크는 얼른 정수를 냄비에 넣고 가열해 보았다. 곧 검은 연기와 함께 젤리 상태의 붉은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이전처럼 메시지창이 떠오르며 레시피가 등록되었다. ['몽구스(火)의 내단'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몽구스의 정수(火)1/1 정제수 3/10 만년설의 결정 16/20 설모초 14/20] 레시피를 확인한 아크는약간 실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필요한 재료 아이템은 모두 근처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도 필요한 개수는 고작 20여개씩.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효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는 이내 고개를저었다. '아니,어쩌면 슬라임의 내단이 유난히 재료 모으기가 힘들었던 걸지도 몰라.그리고 효능이 많이 떨어져도 이정도면 바로 만들어 먹을수 있다. 재료를 못 구하고 버벅대는 것보다 낮은 효능이라도 바로 먹어서 보너스를 받을수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아크는 희망을가지고 재료를모으기 시작했다. 재료를 모으는건 식은죽 먹기였다. 크레바스로 나가 눈을 뒤지니 결정이 제법 많이 나왔다. 그리고 동굴안의 넝쿨 주변에서 설모초도 구할수 있었다. 정제수야 사방에 널린게 눈이니 그저 냄비에 넣고끓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다. 그리고 막 내단 연성을 시작하려고 할때였다. "주인,대체 밥은 언제 줄거냐?" "잠깐 기다려.이것만만들고 금세........"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던 아크는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가만? 이거 무턱대고 만들일이 아니잖아?' 정수 때문에 흥분해서 잠시 잊고 있었다. 내단 연성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작업인지를........몇시간 동안 냄비를 흔들고 불 조절을 하고 숙성을 시켜야 내단이 완성된다.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때 걸린 시간이 무려 72시간! 등급이 낮은 내단이니 그렇게까지 걸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몇시간은 걸릴것 이다. '시간이 걸리는거야 어쩔수 없지만, 그동안 다른음식을 만들수가 없다' 그게 문제였다. 내단이 완성될때까지 냄비를 사용할수 없는것이다. 무턱대고 내단 연성을 시작해 버리면 기다리는동안 다 굶어 죽는것이다. 뒤늦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식은 땀이 흘러나왔다. '큰실수를 할뻔했구나' 아크는 일단 재료를 챙겨두고 몽구스 수프를 만들었다. "자,재료는 넉넉하니 이건 너 혼자 다 먹어라" 새로운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지만 굶주림에 지쳐잇던 데드릭은 망설임없이 수프를 들이켰다. 다행히 몽구스 수프는 좋은 효과를 주는 음식이었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따뜻한 몽구스 수프'입니다. 지방이 풍부한 살코기에 약초를 섞어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수프입니다. 깔끔한 맛의 향신료가 첨가되어 고기의 감칠맛이 살아있습니다. <만복도+70%,체온+70%,10분간 만복도와 체온이 떨어지지않습니다>] "하아,하아.......이제 더는 못먹어" 데드릭이 잔뜩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자 능력치가 올라가며 음식 정보가 나타났다. 얼음 동굴에서 먹기 딱 좋은 음식이 만들어졌다. '좋아,이제 식재료는 얼마든지 구할수 있어.일단 몽구스 고기와 약초를 긁어모아 음식을 많이 만들어놓고 내단연성을 시작해야겠다' 아크는 각자 먹을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재료 수집과 나머지 몽구스 내단을 글거옴으기 위해 동굴 탐사를시작할 참이었다. "동굴을 샅샅이 뒤져서라도모든 스폐셜 몬스터를 잡아주겠어!아,그 전에........뱀,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혼자 다니고 그럼 안돼.알았지?" 아크는 뱀에게 주의를 주는것도 잊지않았다. 쌕쌕쌕............쌕쌕쌕! 그런데 뱀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일부러 아크가 주의까지 주었는데도 자꾸 동굴 안쪽을 힐끔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처음에는 천적인 몽구스 때문에 불안해서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보니 그렇게 단순한 이유가 아닌 모양이다. 천적의 낌새를 느꼈다면 혼자서 동굴 깊은곳까지 올리가 없지않은가? ' '가만? 그렇다면 혹시?' 뱀의 스킬'스토킹'의 영향이 아닐까? '스토킹'은 주변의 아이템을 찾아낼수 있는 뱀의 종족 특성 스킬.본능적으로 동굴 어딘가에 숨겨진 아이템을 알아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군.뱀의'스토킹'을 이용하면 던전에 숨겨진 아이템을 쉽게 찾을수 있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아크느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뱀, 뭔가 끌리는게 있는거야?" 쌕쌕쌕! 뱀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어차피 탐사할 생각이었으니 안내해.먼저 그곳으로 가보자" 아크는 뱀이 혓바닥으로 가리키는방향으로 향했다. 역시나 모퉁이를 하나 돌아설때마다 몽구스가 떼를 지어 몰려있었다. 적게는 서너마리에서 많게는 열마리까지.이제 음식으로 만복도를 가득채운 아크에게 서너마리는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열마리를 상대하는건 무리. "데드릭, 주변을 정찰해라" "넵!" 아크는 적당한 숫자의 몽구스를 쓰러트리며 전진했다. 얼음 동굴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는게 아니라,한 방향으로만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러나 아크는 지루하단 생각이 들지않았다. "설산도 그랬지만, 여기도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군" 아크는 얼음동굴의 경관에 넋이 빠졌다. 바위와 얼음이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계곡.그 위에 걸려있는 아슬아슬한 얼음 다리.두께가 수 미터는 될듯한 얼음 기둥이 줄지어 늘어선 곳도 있었다. 까마득한 천장 틈에서 들어오는 빛이 얼음 기둥에 반사될때는 프리즘처럼 동굴전체가 무지갯빛에 잠기기도 했다. 마치 동화속 크리스털 궁전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흠,꽤 들어온거 같은데......' 아크는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들어진 던전 지도를 확인해 보았다. 입구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이동한 거리가 꽤 되었다. 그동안 떄려잡은 몽구스의 숫자만도 거의 백 마리.이제 가방에 고기가 넘치도록 쌓여있었다. 그렇게 충분한 식량을 비축해 놓으니 여유가 생겼다. '대체 이 동굴은 얼마나 큰거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때였다. 유난히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빙판으로 이루어진 광장이 나타났다. 잠시 주변을 둘러봤지만 더 이상 이어진길은 없었다. "그럼 여기가 목적지인가?"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맞은편 벽을 가리켰다.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벽으로 다가갔다. 방벽 안에 뭔가가 보인다. 산처럼 뭔가를 쌓아올린 듯한 물체.그러나 울퉁불퉁한 얼음이 막고있어 정확한 형체는 파악할수 없다. '뭔가 있기는 있는데.......대체 뭐지?' 아크는 뿌옇게 올라온 서리를 소매로 닦아내고 얼굴을 바짝 붙였다. 그러나 여전히 물체의 전체적인 실루엣만 보일뿐이다. 그때,문득 방벽 뒤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산처럼 쌓여 있는 것들 뒤에서뭔가 거대한 물체가 스윽하고 올라왔다. 물체의 상단부에서 붉은 빛이 번뜩였다. 너무나 익숙한 감각이 전신을 훑어내렸다. '몬스터!' 아크의 머릿속에 그단어가 떠오른 순간,놈의 몸이 화염에 휘감겼다.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아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방벽에 얼굴ㅇ르 바짝 붙이고 있던 아크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어났다. 동시에 굉음과 함께 방벽이 깨져나갔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얼음 가루속에서 몽구스가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아! 동굴을 쩌렁하게 울리며 포효하는 거대한 몽구스!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이스트 월의 악몽'갈가쉬'가 나타났습니다. "보,보스 몬스터!" 빙판을 데굴데굴 구르던 아크가 비명을 터트렸다. 갈가쉬는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에 5개나 되는 꼬리가 달려있었다. 양쪽에 붉은 눈동자 그리고 이마에 하얀 눈하나.3개나 되는 눈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놈이 아가리를 좌우로 찢으며 웃었다. 빼곡히 늘어선 톱날 같은 송곳니가 드러났다.그 사이에 아크를 넣고 잘근잘근 씹고 싶어어쩔줄 모르는 눈빛! "헉!" 황급히 몸을일으키던 아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파바바바바,번뜩-! 채 자세를 잡기도전에 갈가쉬가 달려들어 발톱을 휘둘렀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아크는 다시 벌러덩 넘어져 10여미터나 미끄러졌다. '빙판이라 중심잡기가 힘들다!' 아크가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다시 갈가쉬가 달려들었다. 딱딱딱,딱딱딱딱! 뒤에 있던 데이모스가 방패를 빼 들고 달려왔다. 그러나................미끌! 데이모스는 허둥지둥 달려오다가 빙판에 머리를 처박았다. "주인-!" 순간 데드릭이 암흑돌진으로 갈가쉬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동시에 아크는 슬라이드를사용해 옆으로 이동했다. 갈가쉬가 발톰을 휘둘렀지만 잠시 암흑 상태에 빠져 정확도가 내려간상태.덕분에 아크는 간신히 공격을 피해낼수 있었다. 그제야 아크는검을 뽑아들고 제대로자세를 잡았다. "갑작스럽지만 보스전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아크에게 보스는 곧 아이템이다.보스를 잡으면 최소1개이상의 마법 아이템이 떨어진다. 게다가 경험치도 엄청나다. 없어서 못잡지,나오는걸 피할이유가 없는것이다. '놈의 레벨은 400.........좀 무리다 싶지만..........' 스폐셜 몬스터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잡은 몽구스로 레벨이 2 올랐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202.어둠 속성 보너스를 적용하면 241정도.60레벨 차이. 그러나 아크는 같은 레벨의 유저에 비해 능력치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게다가 귀살검까지 사용할수 있다. 낙승을 장담할순 없지만, 한번 붙어볼만은 했다. '문제는 레벨이 아니라,장소다' 바닥은 미끌미끌한 빙판. 서있는것은 몰라도 빠르게 움직이기는 쉽지않다. 반면 갈가쉬는 날카로운 발톱을 스파이크처럼 이용해 평지와 다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크가 압도적인 속도 차이를 느꼈던것은 바로 그때문이었다. '하지만 슬라이드라면 지형조건에 제약을 받지않는다.그리고 갈가쉬도 몽구스.지금까지 몽구스를 상대하며 대강의 패턴을 알아두었어.에측하며 움직인다면 속도차이를 메울수 있을거야' "슬라이드!" 아크는 머릿속에서 이미지한 대로 미끄러지며 갈가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갈가쉬의 공격패턴은 몽구스와 크게 다르지않았다. 달려들어 물어뜯거나 ,사방으로 점프하며 발톱을 휘두르는 공격! 아크는 갈가쉬의 예비동작으로 공격 궤도를 예측하고 슬라이드로 빠져나갔다. 가가가각,그때마다 갈가쉬의 발톱이 빙판을 긁었다. 점차 빙판이 사라지고 바위 바닥이 드러났다. 덕분에 데이모스도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가할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런 환경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데드릭이었다. 환경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데드릭이었다. "이쪽이다.살찐 몽구스 자식아!" 데드릭이 눈앞에 알짱대던 갈가쉬가 성난 울음을 터트리며 뛰어올랐다. 데드릭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공비행으로 공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아크와 데이모스는 갈가쉬가 바닥에 착지하는순간을 노렸다가 맹공격을 퍼부었다. 착지할때의 경직시간을 노린 공격이었다. 갈가쉬는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됐어,이대로만끌고 나가면 이길수 있다!' 아크가 내심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때였다. 쿠오오오오! 갈가쉬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꼬리 하나를바짝 추켜세웠다. 그리고 세차게 바닥을 후려치자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콰지지지직-! 바닥이 시퍼렇게 달아오르며 스파크가 튀었다. -전격 데미지를 받았습니다.데미지 100! <3분간 30초에 한번 ,50%확률로 '충격','감전','스턴'가운데 하나에 걸립니다><'감전 상태에 빠졌습니다.10초간 모든 움직임이 90%느려집니다>] '뭐,뭐야? 전격 마법?' 온몸이 저릿저릿해지며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려졌다. 뻔히 갈가쉬가 달려드는 장면이 보이는데도 제대로 팔다리가 움직여주지않았다. 콰직,전신을 뒤흔드는 충격에 아크는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아찔한 기분이들었다. 반명 10미터 범위의 광역마법,게다가 3분이나 지속되는 마법.결국 3분동안 30초마다 50%확률로 데미지와 상태 이상이 발동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추가 데미지가 들어오는 '충격'은 그나마낫다. 그러나 움직임에 패널티가 적용되는'감정'이나 '스턴'은 보스전에서 치명적인 상태 이상 가운데 하나다. 순식간에 전황이 일변했다. 스파크가 닿기만 해도 상태 이상이 발동된다. 덕분에 아크는 스파크를 일으키는갈가쉬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법이없는 것도 아니다!' "데이모스,검화!" 아크는 재빨리 데이모스를 본 블레이드로 바꾸었다. 어차피 갈가쉬가 전격 마법을 펼쳐놓고 있으면 데이모스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못한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로 아슬아슬하게 스파크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며 공격했다. 데드릭이 스파크의 영향을 받지않는 공중에서 합세하니 그럭저럭 상대할만했다. 그러나 갈가쉬의 마법은 스파크만이아니었다. 이내 다른 꼬리로 바닥을 치자 이번에는 강렬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바람이 스치자 피부가 쩍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바람의 칼날에 맞았습니다. 데미지 100! <바람의 칼날에 적중되면 50%확률로 '출혈','힘줄 끊기'가운데 하나에 걸립니다.><'힘줄 끊기'에 걸렸습니다.10초간 힘과 민첩이 20% 감소합니다> '광역 바람 마법?' 갈수록 가관이다. 갈가쉬의 바람 마법은 단순히 공격만 하는것이 아니다. 갈가쉬 주변에 폭풍의 결계가 처져 채찍의 궤도가 틀어져 버렸다. 게다가 바람 마법은 비행 몬스터에게 치명적이었다. "으악!" 칼바람에 휩쓸린 데드릭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갈가쉬는 참으로 다양한 마법으로 아크를괴롭혔다. 5개의 꼬리가 다섯가지 속성의 마법을 가진듯,꼬리를 바꿀때마다 다른 마법이 터져 나왔다. 마법의 데미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법에 맞을때마다 발동되는 상태 이상! 얼음마법에 적중되면 '결빙'이 발동해 동작이 느려지고,대지마법의 바위에 맞으면'스턴'이 발동한다. '맙소사,일너 무지막지한 보스라니.........' 도저히 상대할 방법이 없다! 아크는 제대로 공격조차 못하고 빈사 상태에 빠져버렸다. "안돼,더는 버틸수 없어.분하지만 일단 살고 봐야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며칠이 걸렸다. 만약 죽는다면 붉은 황야의 진입로에 있던 마을에서 부활한다. 다시 동굴까지오는데 며칠이 걸리는것이다. 아니,이스트 월에서 아크가 떨어졌던 크레바스를 찾아낼수 있다는 보장도없다. 세트 내단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것이다. 판단을 내린 아크는 곧바로 몸을돌려세웠다. 입구는 좁고 길다. 일단 그곳으로 도망가면 보스가 따라 붙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상대는 보스 몬스터. 그렇게 쉽게 놓아줄 상대가 아니다. 아크의 의도를 눈치챈 갈가쉬가 펄쩍 뛰어올랐다. 단숨에 10여미터를 뛰어오른 갈가쉬는 아크의 앞에착지하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이,이런............!"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릴때 뱀이 허리에서 뛰어나갔다. 순간 갈가쉬의 눈동자에 망설임이 번졌다. 제법 씹는맛이 있을듯한 아크와 본능적으로 끌리는 뱀. 그러나 갈가쉬는 반사적으로 뱀을 따라 뛰었다. 쌕쌕,쌕쌕쌕! 뱀이 바닥을 기며 소리(?)쳤다. '내가 유인할테니 아빠는도망가세요!' 아크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주인을 위해 천적을 향해 몸을 날리는 충성심!이에 감동한 아크는........뒤도 돌아보지않고 도망쳤다. "전력 질주!" 설산에서 콩 한쪽도 소환수들과 나눠먹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왜냐고? 상황이 다르니까. 설산에서야 어차피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다시 동굴을 찾아올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한 무슨짓을 해서라도 살고봐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뱀 가방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데드릭,뱀을 살려와라!" "으헥? 왜 또 나야?" "뱀이 죽으면 굶겨 죽일 테다!" 아크의 협박은 효과가 있었다. 데르릭은 빠르게 몸을날려 막 갈가쉬에게 삼켜지려는 뱀을 낚아챘다. 코앞에서 먹이를 뺴앗긴 갈가쉬가 발광하며 바람 마법을 날렸지만 ,데드릭은 곡예비행을 하며 모두 피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갈가쉬의 시선이 아크에게 꽂혔다. 꿩 대신 닭! 갈가쉬가 다시 꼬리를 휘두르자 온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아크를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방벽을 깨고 나올때 사용했던 마법이다. 설마 그렇게 빠를줄은몰랐던 아크는 몸을돌리며 검을 치켜세웠다. 순간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러나 갈가쉬가 화염 마법을 사용한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아크는 화염 저항력 50%의 망토가 있다. 덕분에 화염 데미지를 반감시키고 상태 이상도 걸리지않았다. 그리고 갈가쉬가 들이받은덕분에 빙판에 미끄러지며 입구로 골인! "주인,살려왔어.밥줄거지?" 그사이 데드릭도 뱀을 잡아들고 입구로 날아들어 왔다. "잘했어.이제 튀어!" 아크는 벌떡 일어나 뱀을 집어들고 좁은 통로를 따라 달렸다. 크아아아앙! 등 뒤에서 갈가쉬가 얼음벽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두더지가 아닌 다음에야 아크를 따라잡을수는 없으리라. "젠장, 뭐 저런 놈이 다있어?" 일단 입구까지 돌아나온 아크는 분통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별의별 보스를 다 만나봤지만 이렇게 답이 안나오는 놈은 처음이다. 아크가 던전에서 해야할일은 두가지. 세트 내단을 완성시키는것과 크레바스를 벗어날 또다른 출구를찾는것이다. 다시 말해 보스가 출구를 지키고 있는게 아니라면 꼭 쓰러트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란셀 마을에서 본 거상 이후로 처음 만난 보스 몬스터다. '이곳에서 뼈를 묻는 한이 있어도 잡고야 말겠어!' 사실 출구를찾아도 아크는 당분간 얼음 동굴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스페셜 몬스터를 모두잡아 세트 내단을 완성시키기 전까지는말이다.그리고 얼음 동굴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나 숫자의 몽구스가 있으리라. 그놈들을 처리하며 레벨을 올리고 내단을 모으다보면 놈을 이길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회는 한번뿐이다. 다음번에도 지금처럼 도망칠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확실히 이길수 있다는 자신이생기기 전에 싸워서는 안돼' 하지만 과연 얼마나 레벨을 올려야 승산을 장감할수있을까? 사실 레벨로만 따지면 지금도 그럭저럭 상대할만하다.문제는 갈가쉬가 사용하는 각종 속성 마법들.레벨을 아무리 올려도 그 마법의 상태이상에 거린다면 의미가 없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그러나 고민한다고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결국 죽어라 레벨을 올려보는 수밖에 없는건가?' 아크는 일단 보스 문제는 당분간 접어두기로 했다. 사실 보스가 아니라도 할일은 많았다. 아크는 일단 냄비를 꺼내들고 모아온 고기를 몽땅 수프로 만들었다. 그렇게 식량을 확보한뒤 본격적으로 내단 연성에들어갔다. '자,시작해 볼까?' 시작은 몽구스의 정수.그리고 정제수와 설모초,만년설의 결정을 차례로 넣자 냄비에서 오색 광채가 뿜어져 올라오며 메시지창이 열렸다. ['몽구스의 내단(火)'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내단 연성에 들어갑니다. 내단연성은 혼합=결정화=숙성.3단계를 모두 거쳐야 완성됩니다. 예상 소요 시간은 12시간입니다.] 등급이 낮아서인지 몽구스의 내단 연성시간은 12시간밖에 되지않았다. 다행히 혼합과 결정 과정은 각각 1시간씩. 아크는 일단 심혈을 기울여 전 과정을 끝내놓고 냄비를 구석으로 가져갔다. 남은 시간은 10시간,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아크는 바닥에 몽구스 수프를 쌓아두고 말했다. "데드릭, 잘지키고 있어.난 잠시 자고 있을테니까" "알았다" "음식 많다고 막 먹지 말고,데이모스,데드릭을 감시해" 딱딱딱딱. 데이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는 소환수의 해제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아크가 게임을 나가도 소환수들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하느것이다. 다행히 여기서는 마나를 안먹어 아크가 마나를 공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소환수들이 몽구스의 습격을 받으면 곤란하다. 동굴입구까지 돌아나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렇게 아크는 냄비 앞에 보초를 세워두고 접속을 종료했다.그리고 수면과 운동,현실 생활을 하다가 들어와보니 내단이 완성되어 있었다. [숙성 과정이 종료되어 '몽구스의 내단(火)'를 완성했습니다. *명성이 200 상승했습니다. *지능이 5상승했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가 10 상승했습니다. *'몬스터의 내단'정보가 갱신됬습니다. <현재 완성시킨 내단 : 2>] 아크는 잔뜩 기대 어린 눈으로 내단을 바라보다가 꿀꺽 삼켰다. 동시에 눈앞에 떠오르는 정보를 확인한 아크는이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현실에서도 쉬지않고 갈가쉬를 때려잡을 방법을 고민하던 자신이 바보처럼 생각되었다. "하,그렇구나.이거였어.갈가쉬를 잡는 방법!" 아크는 이곳이 게임 속임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문제가 있으면 근처에 해답이 있는 게 게임의 법칙. 뉴 월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무적처럼 여겨지던 갈가쉬를 쓰러트릴 방법은 바로 몽구스의 내단의 정보 안에 담겨 있었다. "좋아,무슨 뜻인지 알겠어.내단을 모두 모으면 갈가쉬를 쓰러트리는건 문제도 아니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자,내단을 모으러 가자!던전 털이다!" ACT 3 전설의 주인공? "휴,날씨가 많이 추워졌네" 얼마전까지만 해도 가을이다 싶었는데 어느새 12월이다. 며칠전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이제 두툼한 점퍼를 입었는데도 소름이 바짝 돋을 정도로 날씨가 매서워졌다. "하필이면 이런 날에 부르실건 또 뭐야?" 이런날은 그저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게 최고다. 뭐,게임에 접속하면 이 정도는 비교도 할수 없는 추위가 기다리고 있지만.........그래도 게임속에서는 몽구스 수프 한그릇이면 한동안은 추위가 느겨지지않는다. 그리고 설사 그런 수프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개떨듯이 떨거라면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것보다 돈을 벌며 떠는 편이 백배 낫지 않은가. "그렇다고 게임때문에 못 나오겠다고 할수도 없고........" 권화랑이나 갱생단 형들이라면 그런 핑계로 먹히겠지. 그러나 오늘 현우를 불어낸것은 그런 핑계가 먹힐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게임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시체로 변하리라. "그나저나 망년회라.......벌써 1년이 지난건가?" 현우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게임에만 묻혀 살다보니 제대로 실감이 나지않았다. 그러나 막상 돌이켜 보니 흔해 빠진 표현처럼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뭣보다 고마운건 어머니가 많이 나아지셨다는 거지" 며칠전 병문안을 갔다가 돌아나올때,어머니는 병실 앞까지 배웅해주었다. 혼자 힘으로 휠체어도 없이 말이다. 침대에서 문까지 고작 몇걸음.그것만으로도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주저앉으셨지만 어머니는 활짝 웃어 보였다. 낫고 있다..........현우야,곧 함께 병원을 나가자꾸나. 어머니는 그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리라. "무리하지 마세요.괜히 더 나빠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현우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나왔지만, 결국 병원문앞에서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너무나 기쁘고 흥분돼서 감정을 주체할수 없었다. 침대에 앉혀 드리면 양손으로 다리를 하나씩 잡고 몇번이나 기를 써가며 올려놓던 어머니다.그런 모습을 볼때마다 현우는 자신의 다리라도 잘라 드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걷게 되었다. '꼬박꼬박 병원비를 갖다 바친 보람이 있구나!'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병원비........ 만약 뉴 월드에서 돈을 벌어들이지 않았다면 감당할수 없었으리라. 현우가 뉴 월드를 시작한 뒤로 번돈은 작년수입의 3배에 달했다.노력과 운이 따라 준 결과 였다. 그리고 올해의 대미를 장식할 세트 내단도 거의 완성단계에 와있었다. '7개의 세트 내단 가운데 이미 5개가 완성됬다.남은 건 앞으로 2개.아직 이틀이 남았으니 올해 안에 세트 내단을 완성시킬수 있어!그리고 내년부터는 다시 돈을 긁어모으자!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만 해결해도 수천 골드가 들어올거야' 현우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룰루랄라 약속 장소로 향했다.그때,맞은편에서 험상궂게 생긴 사내 4명이 다가왔다.척보기에도 그리 좋은 성격같지않은 사내들. 이런 사내들은 그저 흘깃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시비를 걸어온다. 본의 아닌 밤거리 생활로 그런 상황을 적잖이 경험해 본 현우는 일부러 크게 돌아 그들을 비켜갔다. 그러자 4명의 사내는 간격을 좁혀 앞을 가로막았다. "네가 현우냐?" "..........?" 현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다시 봐도 역시 모르는 얼굴이었다. "누구세요?" "현우냐고 물었잖아" 사내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뭔가 찜찜하다.대체 무슨 일인지 알수 없었지만, 그들의 태도나 눈빛으로 몇가지만은 확실하게 알수 있었다. 이들이 호의를갖고 말을 걸지않았다는것.그리고 작정하고 폭력을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시비를 거는 사람과는 눈빛부터가 다른것이다. "아닌데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아니라고? 어디 민증 한번 까봐" 현우가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지나치려 하자 사내하나가 와락 어깨를 잡아챘다. "이거 왜 이래요?" "어린 새끼가 어디서 개기고 지랄이야?" 사내의 어깨가 한껏 뒤로 당겨졌다.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를 현우가 아니다. 위기를 느끼는 순간, 현우의 발이 반사적으로 튕겨 올라갔다. 덜컥, 하며 턱이 튕겨져 올라간 사내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가.........!" 옆에서 3명의 사내들이 달려들었다 일단 일이 벌어졌다. 현우의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려퍼졌다. 이제 도망가지못하면 걸레가 될때까지 얻어맞는 일만 남게 된다. '도망가야한다!' 단순명료한 명령어를 떠올리자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였다.현우는 빠르게 달려드는 사내의 주먹을 피하고,무릎으로 안면을 찍어 올렸다. 사내가 코피를 흘리며 휘청거렸다. 현우는 곧바로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레슬링 기법을 사용해 구석에 패대기쳐 버렸다. 그리고 양쪽에서 몰려드는 사내들의 급소를 걷어찼다. 2명이 무릎을 꿇어버리자 정면에서 한 사내가 달려들었다. 현우는 복싱에서 익힌 동작으로 스텝을 밟으며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앞으로 쏘아지듯 몸을 회전시키며 공중으로 떠올랐다.마치 전방회전낙법을 펼치는듯한 동작! "엇? 뭐,뭐야?" 사내가 멍청한 얼굴로 떠듬거렸다. 순간 몸이 회전하며 한껏 위로 치켜 올라갔던 다리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대회전내리찍기! 틈틈이연습해 두었던 비장의 기술이었다. 어깨를 찍힌 사내가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기술이통한다!' 현우는 스스로의 움직임에 놀랐다. 그동안 경찰청에서 정말 미친듯이 운동했다. 그러나 대련 상대는 레슬링 선수,복싱 선수,심지어 태권도 국가 대표였다. 매일 파김치가 될떄까지 얻어맞는게 일이라 스스로 강해졋다는 자각이 생기지않았다. 그리고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폭력배를 상대로,그것도 기습이라고는하나 사내넷을 순식간에 제압한것이다. "뭐야? 무슨일이야?" "영화 찍나?" "오,멋진데?"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동영상까지 찍어댔다. '빌어먹을 ,이렇게 무식하게 영화찍는놈이 어딨어? 그럴 시간 있으면 경찰에 전화나해!' 현우는 울컥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들과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비록 건달들을 쓰러트렸지만, 이곳은 현실이다. 몽땅 전투불능에 빠트리지않는한 싸움은 끝나지않는다. 그렇다고 칼을 빼 들수도 없는일. 그게 게임과 현실의 차이인것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해!거기 도착하면 어떻게든.......' 네 사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현우는 구경꾼들을 헤치고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골목을 지나가면 약속장소.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위험한 일은 피할수 있으리라. 현우는 전속력으로 골목을 내달렸다. 그리고 막 골목을 벗어나 눈앞에 약속 장소의 간판이 보이는 순간............갑자기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휘청........중심을 잃자 누군가가 머리채를휘어잡았다. 엄청난 완력!현우를 휘어잡은 사내는 질질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 구석에 집어던졌다. 그리 작은 편이아닌 현우가 가볍게날아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이어 사내는 구둣발로 현우의 명치를 몇차례 걷어차 축 늘어지게 만든뒤에 손을 툭툭 털었다. "병신 같은 놈들, 이런 애송이 하나 제대로 처리못하냐?" "죄,죄송합니다. 형님" "다른 놈들 기웃거리지 못하게 골목이나 막아" 뒤따라 들어온 건달들이 골목 입구를막아섰다.그제야 현우는 겨우 사내의 얼굴을 확인할수 있었다. 짧은 머리에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거구의 사내.누가 봐도 폭력배라고 할 만한 외모였다. "대,대체 왜 이러시는 거에요? 커헉!" 사내는 다시 한번 배를 걷어찼다. 현우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자 사내가 가죽 장갑을 끼며 비릿한 웃음을 띠었다. "닥치고 잘들어.긴말하지 않겠다. 우리도 딱히 원한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니까 말이야.그냥 눈 딱 감고 팔이나 하나 부러져 주면돼.반항하지않으면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사진 한장 근사하게 박고 끝나는거다" "네?" "아니면 걸레가 되어 사진이 찍히든지.네가 선택해라" "그,그게 무슨........!" 현우는 어이없는 얼굴로 멍하니 사내를 바라보았다.갑자기 길가는 사람을 붙잡아다 놓고 팔 하나 부러지면 된다니?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그러나 사내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것쯤은 알수 잇었다. 눈빛이나 동작, 말투 하나하나에서 그런 종류의 일을 세끼 밥 먹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게 해치워 왔다는 포스가 풀풀 풍겨 나왔다. '대체 뭐지? 이사람들은 누구지?' 현우의 몸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게임속에서는 몇 미터나 되는 오우거가 뗴로 몰려와도 눈하나 깜빡하지않는다. 그러나 역시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오우거에 비하면 땅꼬마에 불과한 사내.그러나 그 가 뿜어내는 현실적인 위압감은 게임속의 오우거와는 비교도 할수 없었다. 또한 그가 하려는 짓 역시 현실적인 폭력이다. 그 폭력을 상상하는데서 오는 공포란 엄청난 것이었다. "대,대체 누구세요?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예스,아니면 노로만 대답해라.다른 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이빨을 몽땅 뽑아버리겠다"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할수 없군" 현우가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입을 다물자 사내는 피식 웃으며 한팔을 잡아챘다. 그리고 적당한 벽돌 위에 올려놓더니 구둣발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내리찍어 팔을 분지르려는 것이다. 순간 현우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뒤이을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팔이 부러지면 게임을 제대로 못한다!' 당연히 게임을 못하면 돈을 벌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 병원비는 ? 생활비는? 대출금 상황은.......어느 광고 카피처럼 그 순간 현우의 머릿속에는 열일곱가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결론은 간단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팔이 부러져서는 안된다는 것.현우가 온 힘을 다해 팔을 돌리자 구둣발이 팔꿈치 안쪽을 찍었다. "크악!" "이새끼가 정말......다리까지 못쓰게 되고 싶냐?" "무,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발 이러지 마세요!" "닥치라고 했지? 야,이 새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 건달들이 사지를 잡고 고정시켰다. 그러자 사내는 다시 팔을 걸쳐 놓고 구둣발을 들어올렸다. 이제 구둣발에 내려찍힌 현우의 팔은맥없이 부러져 나가리라! "아,안돼!" 현우가 비명을 터트렸을때였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억울한 상황. 지금까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 봤지만 단 한번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은 없었다. 조금전 핸드폰으로 동영상이나 찍어대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신고했다면 벌써 경찰이 달려왔으리라. 그렇다,그게 현우의 인생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현우의 비명이 울리자 골목 바깥쪽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건 또 무슨 그림이야?" 건달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골목 안으로 한 사내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들어서고 있었다. 트레이닝 복 차림에 키가 170도 안되어 보이는 왜소한 사내였다. 그를 확인한 건달들이 험악하게 인상을 써댔다. "넌 뭐야? 죽고싶지 않으면 꺼져" 보통사람이라면 얼른 고개를 조아리고 도망쳤으리라. 그러나 사내는 웬 똥개가 짖냐는 듯한 표정으로 가볍게 무시하며 다가왔다. "거기 현우냐?" 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 ,이명룡 사범님?" "어라? 정말 현우네? 왜 안오나 했더니 이런데서 놀고 있었던 거냐?" 왜소한 사내.......이명룡이 어이없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사범? 무슨 태권도 도장에서 사범질이나 하는 놈인 모양이군" "괜히 체면 구기지 말고 얼른 도망가라 응?" 건달들이 이명룡을 노려보며 협박했다. 하긴,폭력배에게 태권도장 사범 따위는 우습게 보일 뿐이리라.그것도 키가 170도 안되는 왜소한 체격이니 대수로워 보일것이다. 그러나 잘못봐도 한참 잘못봤다. 그들이 협박하는 사람은 전직 태권도 국가 대표에 현직 경찰청 제 1기동대장을 맡고 있는 이명룡.사시미를코앞에 들이대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는 강철 심장의 사나이다. 이명룡이 들은 척도 안하자 건달이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휘둘렀다. 퍽-! 메마른 소리와 함꼐 이명룡의 얼굴이 90도로 꺾였다. 이명룡은 한숨을 불어내며 입가의 피를 닦았다. "퉤,오랜만에 맞아보니 꽤 아프네.뭐, 이제 됐냐? 그만 하자,응?" "뭐야,이 자식?" 다시 퍽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이번에는 흉터의 사내가 구둣발로 명치를 걷어찼다. 190은 족히 될 듯한 거구의 사내가차올렸다. 왜소한 이명룡은 맥없이 뒤로 밀려 세차게 부딪히고 쓰러졌다. "사,사범님........!" 현우은 믿기지않은 눈길로 이명룡을 바라보았다. 비록 기습이지만 건달들은 현우도 한번은 쓰러트렸다.그런데 경찰청 체육관에서도 당할자가 없다는 이명룡이 제대로 공격조차 못하고 얻어맞다니? 대체 왜? "하,이 새끼.사범이 나타나서 안심했던 모양이네" "도장에서느 저 새끼가 졸라 세다고 구라를 떨었나 보지?" "내 발에 차였으니 내일쯤에나 일어날거다.얼어죽지않으면 말이야" 사내는 킬킬거리며 다시 현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구둣발을 들어 올렸을때였다. 완전히 녹다운됐을거라고 생각했던 이명룡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며 투덜거렸다. "제자 앞에서 쪽팔리게........." "뭐,뭐야.저 자식?" "자, 어디보자.입 안쪽이 완창 벗겨졌고........명치에도 멍이 들었을거야.이쯤이면 보통전치 4주는 나오지.4주면 개 박살을 내놔도 일단 정당방위 성립,어이,너희들,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이명룡이 얼굴과 명치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니들 이제 뒈졌다는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저새끼, 밟아버려!" 사내가 소리치자 건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몇몇은 각목까지 집어든 살벌한 분위기! 그러나 이명룡은 현우를바라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떠올렸다. "현우야,야외 수업이다!" "사범님 ,위험해요!" "뭐가?" 이명룡은 히죽 웃으며 가볍게 각목을 피해내고 팔을 뻗어올렸다. 덜컥! 건달의 턱이 덜컥거리며 흔들리더니 흐느적거리며 주저앉았다. 이명룡은 산책하듯 가볍게 걸음을 옮기며 뒤이어 주먹을 내뻗는 건달의 팔을 잡아당겼다. 상체가 아래로 끌려 내려오자 뒷덜미에 가볍게 팔꿈치 한방.그 건달 역시 거짓말처럼 풀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못했다. 나머지 두 건달도 마찬가지였다. 옆구리와 관자놀이를 찍어누르듯 발뒤꿈치로 걷어차자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런 놈들은 거머리처럼 끈질기다고.한방에 침몰시켜야 딴짓을 못해" "뭐,뭐하는거야!병신 새끼들!일어나지 못해?" 그러나 건달들은 식은땀을 뚝뚝 흘릴뿐,바닥에 널브러져 숨조차 제대로 쉬지못했다. 결국 거구의 사내가 와락 이명룡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면상에 한방!" 주먹이 보이지도 않았다. 뭔가 희끗한 것이 번뜩이자 빠각,하는 소리와 함꼐 사내의 얼굴이 90도로 돌아갔다. "그리고 배에 한방" "허걱!" 사내는 숨막히는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정말 희한한 광경이었다. 작고 왜소한 사내는 그저 앞으로 걷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 걸음 움직일때마다 그 앞에서 거구의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밀려났다.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물들었다. 아직 쓰러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건 사내의 맷집 덕분이 아니었다. 쓰러트리지 않았을 뿐이다. 이명룡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걸어왔다. 그리고 구석에 패대기를 치더니 속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지갑을 꺼내 명함을 확인한 이명룡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방실 용역 사장 왕호라..........어쩜그리 생긴것과 이름이 똑같냐?" "너.............너, 이 새끼..........이런짓을 하고도 무사하리라고 생각하냐? 네놈의 체육관을 찾아내 박살을 내 놓고 말겠다!" "뭐?" 이명룡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왕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정말이냐? 그러면 나야 좋지.앉아서 실적도 올리고 말이야" "뭐,뭐야?" "이 새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되는 모양이네" "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그때, 골목 밖에서 어깨가 떡 벌어진 청년 몇명이 기웃거렸다.현우도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하는 특수 기동대원들. 복싱 선수 출신이나 레슬링 선수 출신의 대원도 보였다. 그렇다,이 엄동설한에 현우를 불러낸 사람은 이명룡. 망년회란 경찰청 제 1특수 기동대의 회식이었다. "별거 아니야.상황 정리하고 들어갈테니 기다리고 있어.어이,통성명이나 하자고" 이명룡이 키득거리며 왕호에게 지갑을 꺼내 던져주었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지갑을 열어보던 왕호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지갑 안에는 경찰청 제 1특수 기동대장이라는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내가 사범짓하는 체육관이 여기서 멀지않거든?" "제 1기동대라면 서,설마.........경찰청의 귀신이라 불리는............" "그게 나지.그리고 이 녀석은 내 하나뿐인 애제자야.푸핫,내 입으로 말하니 쑥스럽군.뭐,어쨌든 이제 네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되냐?" 이명룡이 잔뜩 얼어붙은 왕호의 볼을 찰싹찰싹 두드리며 말했다. "자, 정리해보자.상황을 보아하니 이유없이 양아치 짓을 할 군번은 아닌것 같고.......이대로 개처럼 끌려가서 있는죄 없는 죄 다 덮어쓰고 콩밥 좀 먹을래? 아니면 순순히 내가 알고 싶어한느걸 까발리고 잠수 탈래? 어느쪽이든 환영이다. 너도 굴러먹을 만큼 굴러먹은것 같은데.......순순히 불지않으면 취조라는 이름의 폭력이꽤 오랫동안 벌어질거란 것쯤은 알고있겠지?경찰을 팬죄는 무겁다고" 왕호는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눈알을 굴려댔다. 잠시 기다리던 이명룡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안되겠군.어디,네 인내심을 시험해볼까?" "자,잠깐만요.실은.........저희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부탁?" "네,거래처의 아드님이 저 청년의 팔을 부러트리고 사진을 찍어 오라고 시켜서........정말 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저흰 돈 안되는 싸움 같은건 안합니다" "호오,사람을 시켜서 팔을? 꽤나 고상한 취미를 가진개새끼로군.그놈 이름은?" "이명반이라고.............." 이명룡이 현우를 바라보았다 .아는 이름이냐는 뜻이다. 현우가 고개를 젖자 이명룡이 왕호를 쏘아보았다. "뒈질래?" "저,정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게임 안에서 뭔가 원한이 있다고 했습니다. 뉴 월드라는 게임입니다. 제게 지시한 사람은 안델이고 말입니다" "안델!" 현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대강 상황을 알아챈 이명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어낸 말은 아닌 모양이군.좋아,놈의 주소는 알고 있겠지?" 이명룡은 주소를 받아적고는 왕호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네놈들 같은 잔챙이 잡아넣어 봤자 조서 쓰는 시간이 아까워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나는 너같은 놈들만 보면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이야.만약 현우가 다시 너희를 봤다는 말만 해도........알지?" 왕호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룡은 놈의 뺨을 툭툭 치고 일어났다. "가자 ,현우야" 과연 경찰청 제 1 기동대장답게 이명룡의 행동은 거침없었다. 골목을 나오자마자 택시를잡아타고 주소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말로만 듣던 강남의 100평짜리 아파트였다. 보통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한다는 귀족의 성.그러나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고 경비실을 무사통과,단숨에 적의 심장부로 돌진했다.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어요"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현우가 불안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명룡은 들은 척도 하지않고 벨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가 문득 벨 옆에 붙어있는 이경호라는 문패를 발견하고는 멈칫하며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빌어먹을,어쩐지 낯익은 주소다 싶더니........" "왜 그러세요?" "아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끝장을 봐야지" "누구요?" 벨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1 특수 기동대장 이명룡입니다" "아,알지.이 대장이 어쩐 일인가?" "들어가서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곧 문이 열리며 50대의 장년인이 둘을 맞아들였다. 축구를 해도 될 듯한 넓은 응접실.한쪽에서 위층으로 이어진 계단이 있는 걸 보니 복층인 모양이다. 덕분에 현우는 단숨에 기가 죽어버렸다. 대체 뭘하는 인간이기에 100층짜리 아파트에 구멍까지 뚫어놓고 사는걸까? 현우가 무서워하는것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다. 돈이 넘치도록 있는 인간들은 무슨 짓을 할지 알수 없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니 이명룡과 안면도있는것 같았다.이래저래 여간 찜찜한게 아니었다. "그래,어쩐 일인가?" "아드님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 아들?" 장년인...........이경호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명룡은 한숨을 불어내며 조금전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그러자 이경호의 안면 근육이 실룩거리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하나꺼내 물었다. "나는 또 무슨 일인가 했네.이보게,설마 그런 불량배 따위가 지껄인 말을 믿는건 아니겠지? 딱히 내 아들일이라 하는말은 아니지만, 그런 버러지 같은 놈들이야 원래 되는대로 지껄여 대지않는가? 뭐,자네도 그냥 조사 차원에서 찾아왔겠지만" "..............뭐,그렇죠.아드님을 볼수 있을까요?" "말귀가 어둡군" 이경호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명룡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지갑에서 100만워나리 수표를 하나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불민한 일이 있었다니사회적인 어른으로 모른척할수는 없군.게다가 내 아들 녀석 이름까지 거론됐다니까 말이야.나도 현역으로 뛰는 후배에게 연락해서 한번 알아볼테니 자네는 신경 끄게.그리고 저 친구가 좀 다친것 같으니 이건 치료비에 보태쓰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분명 협박이었다. 그것도 건달들의 고함소리보다 훨씬 위협적인 협박! 현우는 그말로 이경호의 신분을 대강 눈치챘다. 아마도 전직 경찰 고위 간부.때문에 이명룡이 문패를 보고 인상을 찌푸린것이리라. 이명룡은 수표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필요하냐?" "........아니요.냄새나는 돈은 싫어요" 현우가 아무리 돈에 환장했어도 이따위 돈을 받을만큼 미치지는않았다. 이명룡은 슬쩍 입끝을 올리더니 양손으로 탁자를 탁 치고 일어났다. "이경호 씨" "뭐? 이경호씨?" "말씀하신대로 증거가 없으니 오늘은 이쯤해두죠.대신그 돈으로 책이라도 사서 아들 교육이나 다시 시키십시오.만약 또다시 이런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이경호씨를 찾아오지않겠습니다. 직접 아들 새끼를 만나보죠.물론 이경호씨라면 몇시간 만에 풀려나겠지만,그 정도면 애 하나 작살내는건 일도 아니죠" "너,너이새끼 협박하는거냐?" "협박이요? 그렇게 들리셨습니까?" 이명룡이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끄덕였다. "잘들으셨습니다" 그말을 끝으로 이명룡은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죄송해요.괜히 저 때문에........" 현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걷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는 현직,혹은 전직 경찰 고위 간부. 아마 이명룡은 화를 억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냄새나는 돈 운운하며 그 화를 폭발시킨것은 현우다.그건 자신이 당한일 때문이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이명룡을 무시하는 태도에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일이이렇게 되고 보니 괜한짓을 한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현우도 바보는 아니다. 이번일이 이명룡에게 좋게 작용할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식,건방 떨지말고 술이나 한잔하자.저 양반 성격에 아들 녀석을 그냥 놔둘리 없겠지.어쨌든 이제 안델이라는 놈도 더는 귀찬게 하지않을거다" 이명룡은 현우의 어꺠를 탁 치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중세의 성처럼 높게 솟아있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건방진 새끼............." 이경호는 담배 연기를 불어내며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나 이경호라는 사람이오.경찰청장 좀 바꿔주시오.전직 검찰부장이라면 알거요.그래,아,자넨가? 나야 ,음,자네 밑에 이명룡이라는 친구있지? 그 친구 실적은 좀 어떄? 아니, 별일은 아니고........" 뭔가 일이 꼬여간다. 현실은 게임처럼 간단하지 않은 것이다. "역시 팀장님 말대로인건가?" 호명환이 볼펜을 돌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근래 그의 관심사는 아크라는 응시자에게 집중되있었다. 비록 실제로는 본적이 없지만,레포트를 토해 그의 게임을 간접 체험해 왔다.어떻게 보자면 아크는 그에게 소설속의 주인공같은 인물인것이다. 그리고 기획실 누구도 관심을 두지않았던 그의 진면목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만족감도 느꼈다. 아크라면 분명 뭔가 제대로 사건을 터트린다. 그렇게 믿었고,빨리 그런 사건이 터져주기를 기대했다. 그런 아크가 얼마전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었다. 그것도 공성전에 참가했던 톱클래스 응시자 아란과 선구자들을 제치고 말이다. 하명우는 우연과 행운이 겹친것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레포트를 꼼꼼히 읽어왔던 호명환은 다른 뭔가가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포트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도착한 레포트는 실망 그 자체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크가 조직했던 다크에덴은 공성전 도중에 피치못할 사정이 생겨서 별도의 공격대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여명의 칼날과 헤르메스가 박 터지게 싸우다가 빈사 상태에 몰렸을때 어부지리로 영주가 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영지를 지킬힘이 없어 다음 공성전에 바로 영지를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실제로 벌어진 일은 비리와 계략의 결정체나 다름없었다.그러나 은근히 소심한 현우는 행여 글로벅엑서스에서 안좋게 볼까싶어 내용을 몽땅 뺴 버리고 뼈다귀만 적어 제출한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뼈다귀는 기획실 팀장인 하명우가 예상한 그대로였다. 호명환으로서는 맥 빠지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되는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크라면,지금까지 읽어온 레포트의 주인공이라면 뭔가 다른 일면을 보여줄거라고 기대했다. 영주성을 지키는것까지는 바라지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레포트에 적힌것처럼 맥없이 내주지는 말아야할것 아닌가? '이대로라면 안타깝지만 결산 보고에서 탈락 1순위로 오를거야' 이번 입사 시험을 시작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아직 글로벌엑서스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킨 응시자는 없었다. 물론 본사에서도 1년사이에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그러나나 응시자에게지급되는 돈은 한달에 150만원이지만,무려 2,000명이다. 매달 300억의 돈을 쏟아붓는 프로젝트인것이다. 글로벌엑서스의 규모를 생각하면 큰 부담은 아니지만, 수익을 내야하는 기업체에서 언제까지나 관망만 하고 있을리가 없었다. [기대치를 밑도는 응시자에게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차라리 그 자금을 가능성 있는 응시자에게 투자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는게 상부의 판단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몇달간 더 지켜보다가 하위 50%의 응시자에게는 탈락 메일을 보내고 유니트를 회수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획부도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주십시오.] 얼마전 본사에서 내려온 공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기획부에서는 탈락 예정자를 모두 선별해 놓았다. 아크 역시 그중 하나,때문에 호명환은 이번레포트에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영주성까지 그냥 빼앗겼으니.......이제 앞으로 두세달.그 안에 기획부의 의견을 바꿀만한 사건이 일어나기는 힘들겠찌?' "이봐,오늘 아침에 올라온 동영상 봤어?" 그떄,하명우가 바쁜 걸음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네? 동영상이요?" "아직 못본 모양이군.내가 불러주는 주소로 접속해봐" 하명우가 알려준 주소대로 접속하자 뉴 월드 관련 정보사이트가 열렸다. "이거야 ,이걸 클릭해봐" 하명우는 동영상 게시판을 가리켰다. 몇 시간 사이에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제목은 '실감나는 싸움장면'. 조회수가 상당하기는 하지만 그런 동영상은 하루에도 수천건이 올라온다. 그런데 팀장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걸까? 호명환은 의아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클릭해보았다. 핸드폰으로 촬영한듯,그다지 좋지않은 화질의 영상이 펼쳐졌다.어쨌든 막상 확인하니 확실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었다. 제목처럼 내용은 어두운 길거리에서 1대 4로 누군가가 싸우는 장면이었다. 여기까지는 흔한 동영상과 다르지않았다. 그러나 잠시후,청년이 발차기를 날리면서부터 호쾌한 액션이 펼쳐졌다. 앞차기로 턱을 올려치고,무릎으로 안면을 찍는다. 그러나 절정은 몸을 회전시키며 날리는 대회전내려찍기.일명 풍차 돌리기라는 기술이었다. 실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발차기! 동영상은 청년이 골목으로 도망치며 1 분만에 끝났지만 꽤나 강렬한 인상이었다.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면 상당한 실력자다. 동영상 아래에는 벌써 수천건의 댓글이 올라와 있었다. -돌려차기가 상당히 멋지네요 -바보냐? 딱 보니 100%연출이네.새로나오는 영화를 이렇게 홍보하는거아냐? -연출 아닙니다. 저도 그떄 우연히 봤습니다. -그런데 저 남자,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요? -아, 찍으려면 끝까지 찍어야지.이제 뭡니까? 댓글을 읽던 호명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멋지긴 합니다만,이 동영상이 뭐 잘못됐습니까?" "그게 아니야.좀더 아래쪽을 봐" "네?" 호명환은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을 내렸다. 그리고 곧 이 동영상이 왜 뉴 월드 관련 정보 사이트에 등록됐는지 알수 있었다. -그런데 동영상의 남자,이 캐릭터하고 비슷하게 생기지않았나요? 댓글을 달아놓은 사람이 그 옆에 동영상을 첨부했다. "어? 이........이건?" 호명환도 수십번이나 봤던 동영상이다. 몇달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화제의 동영상. 뉴 월드의 이벤트 퀘스트,그 대미를 장식했던 보스 발데라스와 한 유저의 전투 장면이다. 당시 발데라스를 쓰러트린 사람을 두고 NPC 냐,유저냐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시스템 접근 권한을 상실한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덕분에 하명우는 TV에 나와 진땀을 빼며 변명해야했던 것이다. 호명환이 놀란 눈으로 동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나는 핸드폰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을 찍어 흐린 화면,게임화면은 안개가 끼어흐른 화면,양쪽 모두 확실하게 주인공의 얼굴이 나와있지는 않다. 그러나 언뜻언뜻 보이는 얼굴 윤곽,체형,헤어스타일은 놀랄만큼 닮아있었다. 게다가 발차기를 할때의 동작도 비슷하다.같은 발차기라도 사람마다 예비 동작이나 손동작, 다리를 뻗는 각도가 다르다. 일부러 비슷하게 흉내를 내려고 해도 어려울 정도. "혹시.........?" "영상 분석실에 들렀다가 오는 길이다. 분석실에서 판독한 결과 같은사람일 확률이 82%라고 하더군.그게 우연일 리가 없지.이제야 찾았어" 하명우가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하명우는 그동안 발데라스와 싸웠던 유저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문제의 주인공은 명예의 전당에도 등록되지않았고,한창 게시판이 시끄러울때도 밝히지않았다. 때문에 하명우도 그가 NPC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몇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단서가 나타난 것이다. "호명환,일전에 시르바나의 영주가 됐다는 그 유저.......아이디가 뭐라고 했지?" "아크 말입니까?" "레포트가 들어왔는데도 보고가 없더군" "그게..........." 호명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레포트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하명우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괜히 탈락자 명단에 들어간게 아니야.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어쨌든 이제 그렇게 영양가 없는일에 관심갖기 말고 오늘부터 이 동영상에 나온 사람을 찾아봐.우연으로 이렇게 비슷한 얼굴이 나왔을리가없어.그가 발데라스와 싸운 유저이거나,아니면 그 주변 사람일 거야" "어떻게 말입니까?" "이렇게 요란하게 싸움이 났으니 경찰이 개입했을지도 몰라.그리고 정보 사이트를 찾아다니다 보면 좀더 화질이 좋은 동영상이나,봤다는 사람이 있을지도모르지.사정이 있어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보상금을 걸면 뭐든 걸려들거야.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해봐.단,글로벌엑서스가 개입됐다는건 비밀로 해야해.발데라스를 쓰러트린 상대는 유저든 NPC든 공개적으로 우리가 관리하는걸로 되어 있으니까.무슨 말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바쁘게 손을 놀리는 호명환의 책상위에는 읽다가 던져 놓은 아크의 레포트가 뒹굴고 있었다.하명우는 바로 앞에 찾는 사람을 놔두고여전히 삽질을하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이제 호명환도 엉뚱한 곳에서 삽질을 시작했다. 뭐랄까............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었다. ACT 4 라둔 typing by rayan "데이모스,반대쪽 막아!" 달그락,달그락! 데이모스가 뼈다귀를 흔들어 대며 내달렸다. 슬라이딩을 하듯 빙판을 주르륵 미끄러지다가 몸ㅇ르 돌리며 방패를 치켜세웠을때였다. 뭔가가 방패에 부딪히며 어둠속에서 잠시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곧바로 다시 사라지기는 했지만 분명 몽구스! 검은 털의 몽구스였다. "됐다.몰아넣었어.데드릭,다른 몽구스들을 유인해 시간을 벌어라" "알았어,주인.이쪽이다" 데드릭이 엉덩이를 흔들며 몽구스 세마리를 도발해 끌고갔다.그사이 아크는 다른 한쪽 통로를 막아섰다. "심안!"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마치 심해잠수함에서 뿜어내는 소나SONAR같은 음파가 울리자 주변의 형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보이지않는 존재로 찾아내는 레어 반지'심안'의 마법 효과였다. 소나가 공간을 훑고 지나가자 사라졌던 검은 털의 몽구스가 드러났다. 한쪽은 데이모스,다른쪽은 아크가 막아서자 놈은 특수스킬'그림자'를 사용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눈알을 굴려댔다.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아크가 얼음동굴에 들어온지도 꼬박 2주가 지났다. 그동안 아크의 최우선 목표는 '몽구스의 정수'모으기. 우글거리는 몽구스 뗴와 혈전을 벌이고 얼음동굴을 샅샅이 뒤져가며 돌아다닌 결과,파란 털을가진 수 속성의 몽구스,노란 털을 가진 뇌 속성의 몽구스...........놈들은 각자 속성에 맞는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혼자 있는 경우도 없었다. 처음 잡은 화 속성의 몽구스는 우연히 부하와 따로 상대할수 있었던 운좋은 경우. 보통은 네다섯 마리의 부하와 붙어있어 매번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치러야했다. 물론 처음에는 부하까지 감당할수 없었다. 때문에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부하를 유인한 사이 속전속결로 스페셜 몽구스만 처리하고 '전력질주'로 도망치는 방식으로 사냥했다.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전투였다. 그렇게 어찌어찌 레벨이 올라가자 조금 여유가 생겼다. 레벨에 따른 능력치 상승보다는 귀살검을 다루는데 익숙해진 영향이 더 컸다. '검투술 스킬이 있다고 모든 무기를 마구잡이로 바꿄 ㅜ있는게 아니었구나' 아크는 지금까지 사용해온 귀살검의 공격력은 100%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같은 검이라도 단검과 장검,대검은 특성이 전혀 다르다. 당연히 갑자기 무기를 바꾸면 특성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그것이 바로'적응도'시스템. 검을 바꾼 직후 느꼈던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귀살검을 계속 사용하다보니 공격력이 점점 세지는것을 체감할수 있었다. 그리고처음 사용할때 느꼈던 미묘한 밸런스의 흐트러짐도 보정이 되었다. 덕분에 이제 아크는 귀살검의 공격력을 100%발휘할수있게 되었고,발차기를 펼치는데도 위화감이 없었다. 면도날 같은 귀살검,둔중한 타격을 주는 발차기! 아크는 콤비네이션을 구사하며 몬스터와 싸우는 재미에 홀딱 빠졌다.그렇게 2...........드디어 화,수,지,풍,뇌5개의 몽구스 정수를 모을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크의 눈앞에 있는 놈이 암 속성을 가진 스페셜 몽구스. '젠장, 이놈 때문에 벌써 며칠을 소모한거야?' 사실 암 속성의 몽구스를 찾아낸것은 며칠전이었다. 그러나 이놈은 다른 속성의 몽구스와 전혀 달랐다. 암 속성 몽구스는 아크가 부하들과 싸우는 사이에'그림자'로 몸을 숨긴뒤 도망쳤다. 더 짜증 나는 것은 이놈의 '그림자'스킬은 '은신'과는 달랐다. 놈이 먼저 공격하지않는한,아크에게 공격을 받아도'그림자'상태가 해제되지않았다. 덕분에 아크는 번번이 놓쳐 버렸고,한번 놓쳐 버리면 다시 찾아내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무려 다섯번,이제야 아크는 놈을 몰아넣을수 있었다. '심안의 지속 시간은 1분.속전속결이다!' "귀기개방!" 끼야아아아악-! 귀살검의 봉인이 풀리며 검신에 귀기가 감돌았다. 아크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다크 블레이드로 놈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케에에엑! 암속성 몽구스가 벌러덩 자빠졌다. 그 순간 일시적으로 형상이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그림자'효과로 다시 어둠과 동화되었다. "다크 댄싱!" 아크는 빠른 몸놀림으로 놈에게따라 붙으며 연속적으로'암격'을 퍼부었다. 도망 전문인 암 속성 몽구스는 다른 몽구스보다 속도가 빨랐다. 대신 공격력과 방어력은 일반 몽구스보다도 약했다. 일단 잡아놓기만 하면 때려잡는건 시간문제.귀기에 휩싸인 검으로 후려치자 순식간에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놈이'암흑'따위를 걸어왔다 .그러나 '심안'을 사용하는 아크에게 시야 제한 마법은 통하지않는다. 아크는 끈질기게 몽구스의 뒤를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몽구스를 빈사 상태까지 몰아넣었을때,돌연 시야가 밝아지며 몽구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1분이 지나'심안'의 효과가 사라진것이다. "이런.........다 잡았는데........!" 동시에 지면을 울리던 발소리도 사라졌다. 영악하기 짝이없는 몽구스가 아크가 모습을 놓쳐버리자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 놓치면 또 몇시간을 허비해야 할지 몰라.어디있지?' 아크가 당혹스러운 눈길로 주변을 훑었다. 데이모스가 막고 있는 곳은 몽구스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도 없다. 놈이 도망갈 생각이라면 비교적 넓은 반대편,아크가 있는곳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검을 휘두를 수는 없다. 만약 방향을 잘못 잡고 움직이면 놈은 곧바로 전력을 다해 도망치리라. '기회는 한번.......그렇다면........' "어디에 숨은거냐.이 망할 삐--같은 삐--자식아!" 아크의 목소리가 동굴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중급'협박'!순간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얼음 가루가 부스스 떨어졌다. 아크의 눈빛이 번뜩인것은 그때였다. "저기다,전력질주!" 아크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검을 휘둘렀다. 손끝으로 짜릿한 감각이 전해졌다.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쩍 갈라지더니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검은 털의 몽구스........몽구스는 괴상한 신음 소리르 내뱉으며 반으로 갈라졌다. "됐다,드디어 잡았다!" "주,주인.나 좀 살려줘.이제 무리야!" 그때,반대편에서 데드릭이 퍼덕거리며 날아왔다. 날개가 여기저기 찢겨나가 빈사상태가 된채로 몽구스 세마리에게 쫓기고 있었다. "수고했다. 너는 이제 쉬고 있어.데이모스,가자!" 아크는 씨익 웃으며 데이모스와 함께 달려들었다. "고양이의 눈!" 얼음동굴에서 2주.그동안 잡은 몽구스만 수천마리다. 같은 몬스터 백마리를 사냥할때마다 5%확률로 적의 공격 방향을 보여주는 고양이의 눈 추가 효과인'선견지명'.수천마리를 사냥하니 한계치인 70%확률로 적의 공격 방향이 표시되었다. 몽구스가 팔을들어 올리자 레이저처럼 붉은 실선이 아크의 가슴으로 향했다. 아크가 몸을 회전시키자 몽구스의 팔이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검으로 팔을 내리치자 치명타가 터지며 잘려나갔다. "아자,성공이다!" 적의 신체부위를 잘라낸다. 이건 바로 새로 익힌 스킬'일도양단'이 중급이 되면서 추가로 생긴 기술이었다. 빈사 상태의 적을 즉사시킬수 있는 스킬! 게다가 일도양단으로 쓰러트리면 경험치와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1.2배나 된다. 제대로만 확용하면 경험치와 아이템을 쓸어담을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과연 레어 양손검을 통해서만 배우고 사용할수 있는 스킬다웠다. 아크가 이런 기회를 놓칠리가 없다. 그 뒤로 아크는 몽구스와 싸우며 빈사상태의 적에게는 계속'일도양단'을 시도했다. 그러나 성공 확률이 높지않아 숙련치가 잘 오르지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스킬 포인트 60이 있다!' 일단 40까지 올린 아크는 스킬 포인트 60을 몽땅'일도양단'에 투자해 중급으로 만들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초급,패시브 100/300) : 당신은 명검을 사용하는 기술이 더욱날카로워졌습니다. 단숨에 적을 두 토막낼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적 생명력 10%이하일 경우 치명타 공격에 성공하면 15%확률로 즉사시킬수 있습니다. 일도양단으로 적을 처치할경우 경험치X1.4,최상 아이템을 떨굴 확률 X1.4가 됩니다. 레어급 이상 양손 검으로만 사용가능> *추가 효과(부위절단) : 적의 신체 부위를 노려 치명타를 성공시킬 경우,5% 확률로 무력화시키거나 잘라낼수 있습니다.] 추가 효과 부위 절단! 팔을 자르면 공격이,다리를 자르면 이동이 봉쇄되는 것이다. 물론 움직이는 팔이나 다리에 치명타를 먹이는 것은 몸통의 몇배에 달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하지만 어려운 만큼 일단 성공시키면 엄청난 쾌감이 느껴졌다. "자,이제 시작해 볼까?" 이제 아크에게 몽구스 세마리는 간식거리도 되지않았다. 아크는 몽구스를 상대로 부위 절단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몽구스는 생명력이 50%나 남았는데도 사지가 몽땅 잘려나가 전투 불능이 되기도 했다. "으윽,주인.갈수록 잔인해진다" 바닥에서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몽구스의 모습에 데드릭이 질겁했다. 아크 역시 좀 잔인하다 싶었지만, 이렇게 연습을 해 둬야 필요할때 제대로 쓸수 있지않겠는가? 그렇게 아크는 문자 그대로 몽구스들을 썰어버렸다. "됐어.일단 필요한건 다 얻었으니 아지트로 돌아가자" 아크는 유유히 아이템을 챙겨들고 얼음동굴 입구로 향했다. -야영지에 돌아왔습니다.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가 50%빨라집니다. 몬스터가 선제공격할 확률이 50%감소합니다. 모닥불의 효과로 체온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사이 아크는 얼음동굴 생활에 완전히 적응했다. 아크가 가장 먼저 한일은 얼음 동굴에 휴식처를 만드는것이었다. 소환수 해제가 되지않으니 아크가 없는 사이에 지낼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던 것. 때문에 일단 주변에서 나무 넝쿨을 긁어모아 불을 지폈다.물론 불을 지피는것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부싯돌도 없었으므로 원시적인 방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마찰시킨끝에야 간신히 불씨를 얻을수 있었다. 불을 지피고 야영 스킬을 사용하자 곧 야영지가 만들어져다. 그렇게 일단 야영지가 만들어 지면 그 주변에서는 몬스터가 리젠되지않는다. 더구나 생명력과 체온을 유지할수있으니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도 안심할수 있다. 지금까지 아크는 그 야영지를 거점삼아 얼음동굴을 공략해 온것이다. "하아,따뜻하다.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는데........" 쌕쌕쌕. 딱딱딱,딱딱딱딱. 야영지로 돌아오자 소환수들이 얼른 불가로 몰려들었다. "다행히 아직 불씨가 남아있군.데드릭,불좀 살아나게 말린 넝쿨 좀 넉넉하게 넣어" "예이,예이,명령대로 합죠.쳇,궂은일은 언제나 나지" 데드릭이 툴툴거리며 넝쿨을 넣자 불길이 금세 살아났다. "영차,그럼 일단 아이템부터 좀 내려놓자" 아크는 야영지 구석으로 걸어갔다. 얼음동굴에서 2주가 지나자 이제 야영지는 완전히 살림집이 되어 있었다. 사실 아크느 붉은 황야를 지나며 이미 가방이 거의 꽉 차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던전에서 2주나 살았으니 가방용량을 초과한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떨어진 잡템을 포기하는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않는다.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야영지를 아이템 보관소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동안 꽤나 많이 모았군" 구석에는 설모초,만년설의 결정,몽구스의 가죽이나 뼈,각종 요리까지..............아이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보기만해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광경이다. 그러나 아크는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냈다. "그래도 얼음동굴에서 가지고 나갈수 있는건 가방에 담을수 있는 양만큼이다. 아무리 많이 모아 둬 봤자 결국 반이상은 버리고 가야해" 몬스터의 가죽이나 뼈따위는 다발로 팔아봤자 몇골드도 되지않는다. 그러나 막상 그냥 버려야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할수 없지.조금이라도 더 돈이 될만한 것들만 골라서 가져가는 수밖에.어쨌든 일단 그것도 볼일 다 끝내고 고민할 문제고..........." 아크는 아이템 더미를 뒤적여 몇가지 재료를 꺼내 들었다. 음식을 넘치도록 만들어 놨으니 곧바로 몽구스의 내단을 만들생각이었다. 소환수들이 불가에서 시시덕거리는 동안,아크는 혼합,결정화를 끝내놓고 일어났다. "자,나는 잠시 자리를 비울테니 너희들도 밥먹고 한숨자둬,불 꺼트리지말고" "알았어,잔소리좀 그만해" 그로부터 10시간뒤,아크는 볼일을 보고 다시 얼음 동굴로 돌아왔다. "주인,이거 다 됐어" 데드릭이 냄비를 들고 다가왔다. 과연 냄비안에는 검은 빛깔의 내단이 신비로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크가 냉큼 집어삼키자 정보창이 올라왔다. [몽구스의 내단(暗)(내단 등급 : D,완성도 : A) 특수한 환경에서만 서식하는 속성 몽구스의 힘이 깃든 내단.복용자에게 속성 몽구스의 능력을 부여합니다. <모든 스탯+3,어둠 속성 저항력+25%> *완성도에 따른 추가 보너스 <영력+100>] '슬라임의 내단'을 먹었을때와 비교하면 간단하기 짝이없는 정보창,이게 몽구스 내단의 기본 효과였다. 처음'몽구스의 내단'을 먹었을때 아크는 실망감을 감출수 없었다. 그러나 곧 이게 그렇게 적은 보너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몽구스의 내단'은 비록 D급이지만 세트 내단이다. 즉, 보너스를 일곱 번이나 받을수 있다는 뜻! "내단 하나에 모든 스탯이 3씩 오른다. 스탯 보너스 18을 얻는 효과.그게 7번이면.........." 무려 126의 스탯 포인트를 얻는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완성도를 A로 만들면 추가로 또 다른 보너스가 주어진다. 지금까지는 그것도 힘이나 민첩같은 스탯 보너스였다. 내단 으로 인해 스탯이 엄청나게 상승하는것이다. '이번에는 영력 보너스!이제 데드릭과 데이모스를 동시에 불러낼수 있다!' 물론 소환과 송환이 불가능해진 지금은 의미가 없지만,중간계로 돌아가면 전투 양상이 확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당장 지금 필요한 보너스도 있었다. 바로 각각 속성에 따른 저항력 보너스! 아크가 화염 속성 내단을 먹고 갈가쉬를 이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건 그때문이었다. 처음 만들었던 붉은 내단은 화염 저항력을 25%올려주었다. 즉, 나머지 내단 역시 속성별로 저항력을 올려 준다는뜻.일곱 가지 내단을 모두 먹으면 7속성 저항력이 모두 25%올라가는것이다. '갈가쉬를 상대하기 힘든건 마법 상태 이상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놈이 화염 마법을 사용할때는 상태 이상에 걸리지않았어.화염의 베일에 붙은 화염 저항은 50%.그것만으로도 방어가 가능하다면 상태 이상은 갈가쉬의 마법에 붙은 특수효과가 아니라는뜻이다.' 마법 자체가 상태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면 저항력이 높아도 회피하기가 쉽지않다. 그러나 갈가쉬가 사용한 상태이상은 원소계열 마법의 일반 상태 이상. 마법에 강제적으로 '화상'을 입히는 효과가 붙어 있는게 아니라,불에 닿으면 당연히'화상'을 입는다는식의 단순한 상태 이상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 이상은 관련 속성의 저항력이 약간만 있어도 대부분 무효화할수 있다. 결국 모든 내단을 먹으면 갈가쉬를 상대하는건 일도 아니란 뜻! "내단 정보창!" [몽구스의 내단(火)(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3,화염 속성 저항력+25%> *완성도 보너스 : 힘 +10 -몽구스의 내단(冷)(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3,냉기 속성 저항력+25%> *완성도 보너스 : 지능 +10 -몽구스의 내단(地)(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 +3,대지 속성 저항력+25%> *완성도 보너스 : 체력+10 -몽구스의 내단(風)(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3,바람 속성 저항력 +25%> *완성도 보너스 : 민첩+10 -몽구스의 내단(電)(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3,전격 속성 저항력+25%> *완성도 보너스 : 지혜+10 -몽구스의 내단(暗)(내단 등급 : D,완성도 : A ) <모든 스탯 + 3,암흑 속성 저항력+25%> *완성도 보너스 : 영력+100] 한번에 띄워놓으니 가히 장관이다. 현재까지 얻은 스탯 보너스만 176,그뿐인가? 내단을 만들때마다 내단 연성 보너스가 적용되어 명성치 1,200에 지능 30,서바이벌 요리 숙련도가 55나 올랐다. 내단만으로 레벨 18~29이상을 올린 효과를 봤다는뜻이다 거기에 2주간 몽구스를 때려잡으며 레벨도 엄청나게 올랐다. 얼음동굴에 들어올때 아크의 레벨은 200.몽구스의 레벨은 250이다. 레벨 5당 10%의 경험치가 가산되니 그동안 100%의 경험치를 더 먹으며 사냥한것이다.거기에 '일도양단'스킬을 사용해 간간이 1,4배의 경험치를 얻으니 하루에 레벨이 2이상 올라갔다. 덕분에 현재 아크의 레벨은 무려 227! 어둠 속성을 적용하면 317......일도양단으로 몽구스를썰며 놀수 있는 여유는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동굴에서 구한 식재료로 소환수들의 능력치도 120수준까지 올려두었다. 그야말로 미친듯한 성장속도! '이런 내단을 대량생산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2주나 얼음동굴에서 살았지만 아직 붉은털의 몽구스느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스페셜 몬스터라 리젠이 보스만큼이나 느린것이다. 게다가 몽구스의 내단을 구할수 있는 곳은 오직 이게의 얼음동굴뿐,그것도 이스트 월의 수천 크레바스 가운데하나의 밑바닥이다. 푯말이라도 달아놓지않는 한 한번 나가면 다시 찾아올수 있다는 확인이 들지않았다. "어쨌든 이제 슬슬 나가야할때다" 아무리 좋은 사냥터라도 언제까지나 죽치고 있을수는 없다. 아직 몽구스와 레벨 차이가 나서 추가 경험치가 40%나 적용되지만 처음에 비해 경험치가 올라가는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여기서 아무리 많은 아이템을 얻어도 가지고 갈수 없다는게 마음에 들지않았다. "이제 남은건 광 속성의 내단뿐이다" 그러나 이미 광 속성의 내단을 어떤 놈이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아크는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든 던전 지도를 펼쳐 들었다. 그동안 던전을 샅샅이 뒤져 지도의 완성도는 99%나 되었다. 나머지 1%는 보스가 있던 곳의 빙벽 안쪽을 조사하면 완성되리라.즉, 보스를 제외하고는 던전의 모든 몽구스를 한번씩은 잡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직 내단이 하나 빈다. '광속성의 내단은 바로 보스가 가지고 있다. 아마 이마에 박혀 있던 구슬 같은 물체가 광 속성의 내단일거야.좋아,놈을 잡고 내단을 완성한뒤에 얼음 동굴을 나가자!' 아크는 본격적으로 갈가쉬를 사냥할 준비를 시작했다. '마법 복원'으로 장비를 수리하고,'칼날 정비'로 검 공격력을 올렸다. 넘치도록 만들어놓은 정제수를 이용해 '세탁'으로 방어력도 올려두었다. 마지막으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자리에서 일어났다. "캐릭터 속성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레벨 : 227 직업 : 다크워커 종족 : 인간 성향 : 선+350 명성 : 8,875(+500) 칭호 : 캣 나이트,전장의 간병인,작센의 영웅,위대한 모험가 생명력 : 3,580(+150) 마나 : 3,745 영력 : 200 힘 437(+28) 민첩 587(+35) 체력 667(+20) 지혜 81(+10) 지능 720 운 87(+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92 화술 : 46 애정 : 127(+10) 탄력도 : 254 <캐릭터 종합 전투력(아이템,스킬로 인한 추가 적용 수치)> [생명력 회복 속도] : 100(활력의 암렛+5초당 10) [마나 회복 속도] : 100(부활하는 영혼+5%) [공격력] : 110~122(상급 검투술+40$) [방어력] : 292(아드리안의 목걸이+40,수왕+20) [공격 속도] : 146(고양이 손+10%,바람정령의 장화+10%) [반응 속도] : 293 [이동 속도] : 100(바람정령의 장화+30%) [치명타 성공도] : 337(고양이 손+10%) [회피 성공도] : 184 <캐릭터 저항력(아이템,스킬로 인한 추가 적용 수치)> *원소 계열 저항력 [화염 저항] :25%(화염의 베일+50%) [냉기 저항] :25% [대지 저항] :25% [바람 저항] :25% [전격 저항] :25% [어둠 저항] :25%(직업 특성+50%) *정신 계열 저항력 [공포 저항] :50% [현혹 저항] :50% [매혹 저항] :50% *자연 계열 저항력 [독 저항] :20% *환경에 대한 저항력 [수중 저항] :0(인어족의 수호갑옷+100%) [한파 저항] :16% *기타 저항력 [충격 흡수] :20% [둔기 저항] :0(탄력도+25,4%) [낙하 저항] :50%~80%] 속성 정보창은 캐릭터의 전투력만을 확인할수 있다.레벨업을 한다고 수치가 크게변하는게 아니라 한동안 열어 보지않았지만, 간만에 확인해 보니 부쩍 성장했음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확인하려던것은 바로 원소 계열의 저항력.원소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갈가쉬를 상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수치였다. '갈가쉬의 마법은 그리 레벨이 높지않아.문제는 상태 이상이 함께 발동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저항력이 25%만 넘어도 하급 상태 이상은 대부분 방어할수 있으니까' "자, 이제 복수할때다!" 아크는 소환수들을 이끌고 보스 방으로 향했다. 아크는 느긋하게 얼음동굴을 가로질렀다. 이제 얼음동굴에서 몽구스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아크가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그때문이기도 했다.몽구스는 리젠속도가 상당히 느려서 동굴을 한번 털고나니 전투와 전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졌다. 쉬지않고 사냥하다가 리젠된 몽구스를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니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뭐,보스만 잡고 나갈거니 이제 별로 상관없지" 아크는 곧 갈가쉬가 도사리고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크아아아앙! -보스 몬스터 이스트 월의 악몽 '갈가쉬'가 나타났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굉음이 울리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갈가쉬가 맹렬하게 달려오다가 펄쩍 뛰어올랐다. 2주간 아크는 몰라보게 강해졌다. 그러나 그동안 갈가쉬는 자빠져 놀기만 한 모양이다. 머리위로 떠오르는 레벨이나 공격패턴에 눈곱만큼의 발전도 보이지않았다. "에라,이거나 처먹어라!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슬라이드'로 뒤로 물러나며 검을내찔렀다. 치잉,검날이 울리며 갈가쉬가 빙판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한방 얻어맞은 갈가쉬가 톱날 송곳니를 비벼대며 아크를 쏘아보았다. 섬뜩한 붉은 눈동자!그러나 아크는 더욱 섬뜩한 눈빛으로 놈의 이마를 노려보았다. '저거다,저게 나머지 광 속성의 내단이야!' 아크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놈의 이마에 박혀있는구슬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갈가쉬가 깨갱하는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후후후,이미 늦었어.이마에 박힌 구슬을 파내주마!가라,데드릭,데이모스!" "우아아앗!받아랏!" 딱딱딱딱! 초반의 전투는 이전과 같은 양상으로 펼쳐졌다.데드릭이 위에서 알짱대면 갈가쉬가 포효를 지르며 뛰어올랐다. 그때,아크와 데이모스는 착지 지점에서 기다리다가 폭격을 퍼부어댔다. 예전과 다른점이 있다면 아크가 노리는곳이 한군데로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저항력이 올라갔다고 해도 역시 놈이 마법을 쓰면 거치적거린다. 데이모스와 데드릭은 원소 계열 저항력이 거의 없으니 그 전에 손을 써 둬야해' 아크는 무턱대고 갈가쉬의 생명력을 깎지 않았다. 저번 전투에서 갈가쉬가 마법을 사용하는것은 생명력이 50%이상 깎였을때였다. 다시 말해 생명력이 50%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 '놈이 마법을 사용하는것은 꼬리다!' 아크는'슬라이드'로 갈가쉬의 주위를 돌다가 꼬리를 집중 공격했다. 한꼬리만을 십여차례 집요하게 내려치자 결국 꼬리가잘려나갔다. '일도양단'의 부위절단이 발동한것이다. 이번에 잘려나간 꼬리는 놈이 바람 마법을 사용할때 치켜들던 꼬리였다. 이제 데드릭을 위협하는 무기가 사라진것이다. '좋아,다음은 대지 마법용 꼬리다!' 아크는 다음목표를 정하고 다시 집중 공격을 펼쳤다. 대지 마법은 공격력도 상태 이상도 그리 대수롭지 않다.그러나 갈가쉬의 방어력을 상승시키는옵션이 붙어있어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꽤나 귀찮았다. 서걱,서걱,치잉,서걱,치잉!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갈가쉬를 정신사납게 몰아붙이는 사이,아크는 '슬라이드'를 연발하며 놈의 엉덩이만 쫓아다니며 귀살검으로 꼬리를 썰어댔다. 처음에는 엉덩이에 따라붙기도 힘들었지만, 익숙해지자 점차 치명타 확률이 올라갔다. 댕강! 결국 엉덩이에서 또다시 꼬리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갈가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댔다. "크하하하,이거 재미있는데?" 그렇게 꼬리 2개를 잘라내자 갈가쉬가 본격적으로 마법 공격을 시작했다. 아크도 짐짓 긴장된 표정으로 검자루를 꽉 쥐었다. '진짜 싸움은 여기부터다!' 갈가쉬가 꼬리로 바닥을 후려치자 지면이 시퍼렇게 달아 오르며 스파크가 일었다. 그러나 아크는 피하지않고 그대로 스파크를 받았다. '여유가 있으니 일단 한번 맞아 본다!' -전격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미지 75 <전격 저항력으로 '감전'상태에 저항했습니다> '역시!'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갈가쉬의 저급 마법은 저항력 25%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사실 저항력을 25%씩 올려놓고도 아크는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저항력이란 상대적이다. 아크가 사용하는검도 힘이나 민첩,검투술의 영향으로 공격력이 올라가듯이,마법 역시 스킬이나 지팡이 따위의 영향을 받는다. 즉, 만약 상대가 마법 공격력을 200%로 상승시키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저항력 25%가 있어도 175%의 데미지를 받게 되는것이다. 실제로 마법사 유저들이 사용하는 '증폭'은 기본 200%의 마법 데미지를 날리고,'마나 폭발'같은 스킬을 사용하면 300~500%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게다가 원소 계열이나 자연계열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뿐,마법 속성은 종류가 엄청나게만았다. 심지어 물리 데미지를 주는 무속성마법의 경우는 저항력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않는다. 마법사가 무서운게 바로 그 때문이다. 마법 저항력을 1,000%로 만들어 놔도 안심할수 없는것이다. 하긴,그래야 키우기쉬운 전사와 극악한 마법사가 밸런스가 맞겠지만......... 음,얘기가 잠시 옆으로샜다. 어쨌든 갈가쉬의 마법은 순수한 원소 계열의 저급 마법이라 아크의 저항력이 온전히 위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몇번 더 맞아봤지만 상태 이상역시 90%이사의 확률로 무효화되었다. '이제 마법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데미지도 경감되니 놈이 물리 공격을 하는 것보다 마법공격을 해주는편이 나아.이정도면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수 있다' "데드릭,데이모스.마법 범위 밖으로 피해 있어라!" 이제 소환수들은 있어봤자 거치적거릴 뿐이다. 아크는 갈가쉬의 광역 마법 범위 안으로 뛰어들었다. 30초마다 추가 데미지와 상태 이상이 발동했지만 저항력이 모든것을 해결해 주었다. 아크는 상태 이상을 모두 무효화시키며 신나게 검을 휘둘렀다. 그제야 갈가쉬도 아크가 이전과는 다르다는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마법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않자 갈가쉬는 육탄 돌격했다. "멍청한 놈,알아차리는게 너무 늦었어" 이제 갈가쉬는 덩치 큰 몽구스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몽구스라면 지난 열흘동안 수천마리를 썰어본 아크였다. 눈을 감아도 몽구스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훤하게 들여다 보였다. "자, 그럼 승부를 내 보자.귀기 개방!" 얼음동굴을 뒤흔드는 귀곡성과 함께 검에 귀기가 서렸다. 시퍼렇게 변한 귀살검은 곧바로 갈가쉬의 급소에 꽂히기 시작했다. 갈가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갖은 수단을 다 부렸지만,어차피 부처님 손바닥 안일뿐이었다. 결국 갈가쉬는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아크는 숨을 고르며 뒤로 물러났다. 갈가쉬의 생명력은 이제 고작 3%남짓, 한두방이면 끝난다. 그러나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2주나 기다린 끝에 잡게 된 보스 몬스터! 놈에게 얻을수 있는건 마지막 기름 한방울까지 쪽쪽빨아내야 한다. '승부수는 경험치와 최상급 아이템이 나올 확률을 1,4배나 올려주는 일도양단!' 그러나 상대는 보스 몬스터. 그리 쉽게 '일도양단'의 기회가 포착되지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공격을 피하며 버텼다.그렇게 20분.... 계속 헛발질을 하던 갈가쉬가 결국 자포자기한듯 불길을 몸에 두르고 돌진해 들어왔다. 크아아아앙! "지금이다,전력질주!" 아크는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귀살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갈가쉬와 아크,둘이 마주치자 격렬한 굉음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거의 찰나의 시간, 아크는 갈가쉬의 등을 가르며 튀어나왔다. 몸을 가르며 관통해 버린것이다. 문자 그대로 일도양단! "성공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갈가쉬가 쓰러지자 정신없이 메시지가 올라왔다. 레벨 227에서 400짜리 보스를 쓰러뜨렸음에도 레벨이 7이나 올라갔다. 일도양단으로 경험치가 1,4배 적용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관심사는 레벨이 아니었다. "아이템,아이템!" 아크는 하이에나처럼 침을 질질 흘리며 갈가쉬의 시체에 달라붙었다. [몽구스의 정수(光)] [갈가쉬의 모피(레어) 방어구 타입 : 망토 내구력 : 13/50 방어력 : 25 무게 : 30 사용 제한 : 레벨 180이상 설산의 악마라고 불리는 갈가쉬의 모피,적당한 크기로 바로 몸에 두를수 있도록 잘려 있습니다. 이 모피를 걸치면 아무리 추운곳이라도 체온이 떨어지는 일은 업을것입니다. 또한 갈가쉬의 마력이 남아 있어 사용자를 보호합니다. <옵션 : 한파 저항+100%,민첩+20> <특수 옵션 : 착용자의 생명력이 50%이하가 되었을경우,'마력보호'가 발동합니다. '마력보호'가 발동하면 적에게 공격을 받을시 10%확률로 화, 냉, 지, 풍, 뇌 속성 가운데 하나가 발동합니다>] [갈가쉬의 발톱(특수) 사용 제한 : 레벨 180 이상 아이템 타입 : 개조용(신발) 날카로운 갈가쉬의 발톱으로 신발에 장착해 성능을 올릴수 있습니다. <신발 개조시 추가 효과 : 날카로운 발톱이 얼음을 파고들어 빙판에서도 미끄러지지않습니다. 3분내라면 90도의 빙벽 등반도 가능합니다. 또한 격투술 계열의 스킬을 익힌 플레이어가 발톱이 장착된 신발로 발차기를 사용할경우 10~15의 추가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아이템을 원하는 신발에 가져가면 장착됩니다(탈착 가능)] "오오오옷!" 20분이나 버티며 '일도양단'을 성공시킨 보람이 있었다. '몽구스의 정수'야 기본 아이템이라고 해도 레어 망토에 특수 아이템까지 나온것이다. 망토는 그동안 아크를 귀찮게 했던 한파 저항력이 100%!과연 망토를 바꿔보니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게다가 자동으로 마법을 발동시키는 특수 옵션까지. 갈가쉬의 마법이 그리 강한편이 아니라 유저를 상대로는 그다지 효과가 없겠지만 몬스터를 상대로는 꽤나 도움이 되리라.그런 아크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갈가쉬의 발톱! 신발에 새로운 능력과 공격력을 부여해주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탈착이 가능하니 새로운 신발을 구해도 마르고 닳도록 사용할수 있다. 듣도보도 못한 아이템이었다. "크하하하,이계로 들어오니 별게 다 나오는구나!" 아크는 얼른 전리품을 챙겨들었다. "일단 성능 테스트는 나중에 하고,내단부터 만들어보자" 아크는 얼른 냄비를꺼내 들었다. 일단 보스까지 죽였으니 이제 얼음동굴은 아크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굳이 입구까지 돌아갈것도 없이 여기서 내단을 만들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뱀, 필요한 재료 좀 꺼내봐" 아크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뱀은 허리에 없었다. 뱀은 갈가쉬와의 전투가 끝나자 뭔가 홀린것처럼 광장을 가로질러갔다. "어? 뱀, 왜그래?" 쌕쌕쌕! 뱀이 움찔하더니 구멍 뚫린 방벽을 가리켰다. '맞아,그러고 보니........' 아크는 그제야 처음이곳에 왔을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보스 방을 찾아오게 된것은 뱀을 따라서였다. '어쩌면 저 방벽 속에 또 다른 아이템이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뱀을 따라 방벽으로 향했다. 갈가쉬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들어서자 이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 들어서자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설산의 숨겨진 빙굴'을 완벽하게 탐사하여 지도 완성률을 100%달성했습니다. 설산의 숨겨진 빙굴 지도의 아이템화가 가능해졌습니다.<경험치+3,000> 예상대로 그곳이 지도의나머지 1%였던 것이다. 그러나 공간의 내부 광경은 아크를 당혹스럽게만들었다. "뭐야? 윽, 되게 춥네.여기는 ........냉장고?" 데드릭이 뒤따라 들어오며 중얼거렸다.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얼음 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리는 커다란 공간,그곳에는 온갖 몬스터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여기저기 뜯겨서 뼈만 남은 사체가 쌓여 있었고,반대쪽에는 먹다 남긴듯한 사체가 쌓여있다. 마치 소고기가 주르륵 매달린 냉동 저장고와 같은 풍경이었다. 아니, 분명 냉장고다.몽구스들이 설산에서 사냥한 짐스들을 모아놓은 곳이 틀림없다. 아마도 설산에 몬스터가 보이지않던 것은 몽구스가 증식했기 때문이리라. '뭐야? 그럼 갈가쉬는 이곳에서 엄청 먹고 살쪄서 나가지못하게 됐다는 말인가?' 어째 하나밖에 없는 통로인데도 갈가쉬가 드나들기에는너무 작다 싶더니,그런 비밀이 있었던 모양이다.나 차마 무슨 곰돌이 푸우도 아니고.......... 쌕쌕쌕! 그때 좀더 안쪽에서 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 생각없이 고개를돌리던 아크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뱀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곳엔 놀랍게도 똑같이 생긴 뱀의 사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제야 모든 의문이 풀리는군' 몽구스들이 잡아놓은 식량 가운데는 뱀이 엄청나게 많앗다. 아마도 뱀은 동굴에서 그런 동족의 낌새를 느끼고 이곳으로 오려고 했던 것이리라. '가만? 뭔가 이상한데? 지금까지 뱀과 함께 뱀 사냥을 한적도 많았는데? 그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왜 갑자기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지?' 아크가 묘하게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할 때였다.문득 뱀 사체더미에서 흐릿한 빛이 번져나왔다. 뭔가 거대한 존재가 움직이는 기척! '뭐,뭐야? 설마 이곳에도 몬스터가........!" 아크가 반사적으로 검 자루를 잡았을때였다. -이럴수가.............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직 생존한 아라모네가 남아 있었다니.......하지만 어떻게 여기에.............? 의문이 담긴 목소리와 함께 어둠속에서 뭔가가 스르르 움직였다. 거대한 구렁이,예전에 만났던 쿤다리니만큼은 아니었지만 ,TV에서 보던 아나콘다보다는 훨신 큰 초록색 구렁이였다. 그러나 거대한 구렁이는 여기저기 살점이 뜯겨나간 비참한 몰골이었다. 어쨌든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렇군,이 아이는 선택받은 자였군. 그렁이는 힘겨운 눈으로 뱀과 아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끄덕였다. -경계할 필요없다. 이방인이여,나는 그대의 적이 아니다.또한 설사 적이라고 해도 이미 내 육체는 죽어있는 상태.그대의 위협이 되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놀란 이유는 전혀 달랐다. "구렁이가 말을.........?" -나는 뱀이 아니다. "에? 그럼 당신이라고 말해야 하나?" -나는 아라모네.이 세계에 남은 최후의 아라모네.....라고 생각했지 "아라모네!" 뜻밖의 말에 아크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다 싶더니.........그렇다면 결국 뱀이 이끌려온것은 종족에 대한 회귀본능 때문이었다는 건가? 하지만 역시 의문이 남았다. "아라모네는 멸종했다고 들었는데?" 뱀을 처음 만났을때 정보창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그렇다. 아라모네는 호기심이 많아 물건을 모으는 습성을 가졌지. 때문에 언제나 다른 종족의 목표가 되었고 아라모네는 거의 멸종했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아라모네들은 그들의 위협을 피해 먼 여행을떠났고,마침내 이스트 월이라고 불리는 변경에 도착했다. 아라모네가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 주지못했다. 설마 이곳이 우리의 천적인 몽구스 일족이 사는 곳일줄이야........우리는 하나하나 놈들에게 잡혀 식량으로 전략하고 말았다.그리고 나역시 이곳에 갇혀 저주받을 악마 갈가쉬에게 살점을 뜯기며 살아있는 식량이 되고 말았지. 구렁이는 상처의 고통이 되살아난듯 꿈틀거렸다. -그 고통속에서도 버틸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라지면 아라모네 일족은 영원히 역사에서 사라진다는 정말 때문이었다. 그런데...........살아서 아라모네의 후손을 만나게 될줄이야!그것도 수백년만에 주인을 만난 아라모네를!이땅을 지배하는위대한 의지여............감사합니다. 구렁이는 감격 어린 눈길로 뱀을 바라보았다. 쌕썍쌕! 뱀은 겁먹은 얼굴로 얼른 아크의 다리에 휘감겼다. 그리고 힐끔힐끔 구렁이를 바라보았다. 본능에 이끌려 찾아왔지만 막상 동족이라는 생각은 들지않는 모양이다. 하긴, 알에서 꺠어날 때부터 아크와 함께였다.아크를 부모로 생각하니 뱀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굳게 믿는것이다. 그러나 구렁이는 오히려 기쁜듯이말했다. -그 아이를 보니 그대가 얼마나 소중히 대해줬는지 알수 있겠군.애정을 주는 주인을 만나 섬기는것이야말로 아라모네의 기쁨.훌륭하게 자라고 있는 아라모네의 후손을 확인했으니 이제 편히 눈을 감을수 있겠구나! 아라모네는 하염없이 뱀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보아하니 그 아이는 알 상태에서부터 그대와함께 함것 같군.내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역시.........처음 봤을때부터 아라모네치고는 이상하다 싶더니........이대로라면 그 아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진정한 아라모네로 성장하지못할거네.일족의 부모 형제로부터 배워야 할것은 배우지못했기 때문이지. "네? 그럼.........?" -이제야 위대한 의지께서 내 목숨을 거둬가지 않으셨던 이유를 알겠군. 일족의 생존자로서 아직 할일이 남았던 거야.자, 그 아이를 이리로 보내주게 쌕쌕? 쌕쌕쌕! 뱀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저었다. 그러나 아크는 억지로 뱀을 떼어 구렁이 앞으로 밀어주었다. 구렁이의 말을 들으며 이게 뱀을 성장시킬 기회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뱀이 불안한 표정으로 어쩔줄 몰라하는사이,문득 구렁이의 입가에 작은 결정이 맺히더니 뚝 떨어졌다. 움질하던 뱀이 호기심 어린눈으로 ,결정으로 다가가서 구렁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구렁이가 고개를끄덕이자 혀를 내밀어 낼름 삼켜버렸다. 번쩍 -! 순간 뱀의 몸이 활처럼 휘며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이어 껍질이 쩍쩍 갈라지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라모네의 유생이'성장의 결정'으로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멸종됐다고 알려진 아라모네 최후의 생존자가 뱀에게 성장의 결정을 주었습니다. 성장의 결정엔 아라모네의 경험과 지식의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이로써 뱀은 아라모네 일족의 지식을 흡수해 성체로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성체가 된 뱀은 비로소 완전한 아라모네가 되어 종족 스킬을 하나씩 얻어갈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체가 된 뱀은 유계의 위대한 의지로부터'라둔'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라둔 아라모네의 생존자로부터 경험의 일부를 물려받아 성체가된 유계 생물.성체가 된 라둔은 아라모네로서 완전히 각성했습니다. 더 맣은 아이템을 저장할수 있고,많은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습니다.또한본능에 따라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자신만의 능력을 배워나갈것입니다. 종족 : 유계 생물 성향 : 어둠 등급 : 성체 생명력 : 1,000 충성도 : - 힘- 민첩 - 체력 - 지혜 - 지능 - 운 - *스킬 장착 슬롯이 2개로 확장됐습니다. *아이템 보관 용량이 2배로 확장됐습니다. *'라둔마'로 변신할수 있습니다.] [라둔마 : 성장한 라둔은 일정 시간 라둔마로 변신할수 있습니다. 라둔마는 질풍같은 속도를 자랑하며 ,라둔의 기능인 아이템 보관까지 가능해서 고대의 전사들이 사용하던 최상급 이동 수단의 하나입니다. 단,라둔마로 변신하면 거대화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소환자의 마나를 10초당 5씩 소모해야 합니다. *라둔마로 변신할 경우 생명력:2,000 *라둔마를 탄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이동속도+500% *라둔마를 탄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공격력과 방어력+10%] '헉!라둔마? 탈것?' 정보창을 확인하던 아크의 눈이찢어질듯 커졌다. 뱀을 성장시킨다고해도 그리 큰 기대는 하지않았다. 가방 공간이나 좀 커져도 감지덕지였다. 사실 스킬이 생겨도 스킬 슬롯이 하나뿐이라,맹독 스킬도 제대로 활용하지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장하다 그런 문제가 사라졌다. 스킬 장착 슬롯이 2개!가방 공간 2배! 2배로 커진 가방기능과 맹독을 함께 사용할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반가운 스킬은 '라둔마'였다. 이제 아크에게도 탈것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유니콘처럼 이동수단만이아니라 전투시에도 사용할수 있다. 수천골드나 하는 군마가 공짜로 생긴셈! -수백년만에 선택받은 아라모네의 후예.어쩌면 아라모네의 왕이 다시 탄생하게 될지도 모르지.그렇게 되면 아라모네 일족은 다시부활하게 될것이다. 이방인이여,부디 이아이를 끝까지 잘 보살펴 주게.............. 그말을 끝으로 구렁이는 눈을 감았다. 쌕쌕쌕?쌕쌕썍! 그제야 라둔도 구렁이가 동족이라는 실감이난듯 슬프게 울었다. 이제 정말로 아라모네 일족의 마지막 생존자가 된것이다. -몽구스의 내단(光)(내단 등급 : D, 완성도 : A) <모든 스탯 +3,광 속성 저항력+50%> *완성도 보너스 : 운+10] 아크가 마지막 몽구스 내단을 삼켰을때였다. 돌연 던전에서 드겁고,차갑고,짜릿했다가 무겁게가라앉는둥........화, 냉, 지, 풍, 뇌, 암, 광의 기운이 서로 치고 받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내 기운이 조용히 가라앉더니 눈앞에 정보창이 올라왔다. [몽구스 속성시리즈 세트 내단이 완성되었습니다! 모든 속성 내단이 몸에서 융화되어 새로운 힘을 각성했습니다.플레이어가 그 힘ㅇ르 이용하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1. 7속성 융합 : 단전에서 7속성의 힘을 융합시켜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수 있습니다.<융합을 선택하면 스탯에 20의 세트보너스가 적용됩니다> 2. 7속성 균형 : 단전에서 7속성을 원형 그대로 유지시킨 상태에서 원소의 힘을 활용할수 있습니다<균형을 선택하면 화, 냉, 지, 풍, 뇌 속성 내단의 세트 효과로'엘리멘탈 소드'.암, 광 속성 내단의 세트 효과로 '그림자 숨기'스킬을 배울수있습니다>] '크윽!뭐,뭐야 이건?' 아크는 입을 쩍 벌린채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세트 내단을 완성시킨 보너스는 기대이상이었다. 그러나 모든 보너스를 다 받을수는 없다.스탯을 보너스로받거나,2개의 스킬을 배우거나...................... '젠장.............차라리 보여 주지를 말든가.............크윽, 대체 여기서 어떤걸 고르라는 말이야?' 모든 스탯에 20보너스!전체 스탯으로 따지면 무려 120이다. 보너스 스탯만으로 당장 레벨이 12나 올라가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당연히 군침이 흐를만한...........아니,환장할만한 보너스!그러나 그 보너스를 받게 되면 특수 스킬을 2개나 배울 기회가 날아가 버린다. "빌어먹을,이건 고문이야!" 아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아크에게 지금 상황은 마치 자식 둘을 바다에 빠트려놓고 하나만 구하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머리를 쥐어뜯어봤자 소용없는일.한참을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선택했다. '그래,어차피 내단을 모으면서 스탯 보너스는 많이 받았다.그리고 앞으로도 스탯 보너스를 받을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하지만 특수 스킬은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배울지도 모른다!' 슬라임 내단으로 배운'슬라임의 시간'스킬을 얼마나 유용하게 쓰고 있는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스탯보너스때문에 그런 스킬을 배울 기회를 포기할수 없다. "좋아,7속성 균형!" 아크가 절규하듯 소리치자 단전에서 7속성의 힘이 빙글빙글 회전하다가 이내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졌다. 이어 눈앞에 새로운 스킬 정보창이 떠올랐다. [엘리멘탈 소드(특수,액티브) : 화, 냉, 지, 풍, 뇌, 오대 속성의 원소 가운데 하나를 검에 부여해 일시적으로 마법검의 위력을 발휘할수 있습니다. 속성이 부여된 무기는 적에게 추가 속성 데미지와 상태 이상의 피해를 입힙니다. 단,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가 아닌경우,몸에 깃들어 있는 속성 저항력을 한계까지 끌어낸 영향으로 일정 시간 동안 관련 저항력에 극도로 취약해질수 있습니다. <관련 저항력을 24시간동안 100%낮추는 대가로 무기에 속성을 부여할수 있습니다.(저항력이 마이너스'-'상태의 속성은 무기에 부여할수 없습니다.)속성 부여시 30분간 기본 공격력+10%.치명타 성공시 속성별 상태 이상 발동.단 ,사성에 따라 추가 공격력의 적용이 달라질수 있습니다(같은 속성을 가진 적에게 사용시 공격력 =20%.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적에게 사용시 공격력+20%) 마나 소모 : 300>] [그림자 숨기(특수 ,패시브) : 낮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라면 '은신'을 사용할수 있도록 해줍니다. 단,전투 상태에서는 사용할수 없으며 햇빛에 닿으면 해제됩니다] '속성 공격력을 10%나 올려주는 엘리멘탈 소드!그림자 숨기!좋아,이거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정보창을 살펴보던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다행히 '엘리멘탈 소드'와 '그림자 숨기'는 120이나 되는 스탯 보너스를 포기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특히 만족스러운 것은 '엘리멘탈 소드'였다.기본 공격력을 10%나 올리고 상성에 따라 추가데미지가 더 적용된다.게다가 치명타가 터지면 속성 관련 상태 이상까지! 물론 강력한 스킬이라 패널티도 있다. 검에 속성을 부여하면 관련 저항력이 100%다운된다는것.예를들어 저항력이 25%있는 냉기를 부여하면 24시간동안 -75%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즉 ,24시간안에는 검에 같은 냉기 속성을 부여하지못하고,만약 저항력이 회복되기전에 냉기 마법을 맞으면 자칫 골로 갈 위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냉기 공격을 하는 적을 상대로,냉기 속성 검을 사용할 일은 없어.반대되는 화염 속성을 사용하니 떨어지는건 화염 저항력.다시 저항력을 회복하는데 24이나 걸린다는게 좀 걸리지만.......좀 주의해서 사용하면크게 문제될건 없어' 아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크게 끄덕였다. 설산에서 생사를오가며 찾아낸 숨겨진 던전! 그리고 그곳에서 2주에 걸친 노가다! 그 보상은 실로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뱀이 라둔으로 진화하고,아크는 세트 내단을 완성해 무지막지한 보너스를 받았다. 거기에 검에 마법 속성을 부여할 수있는 '엘리멘탈 소드'와 낮에도'은신'을 사용할수 있게 해주는 '그림자 숨기'까지! 일일이 열거하는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이런 엄청난 보너스를 받게 될줄이야!' 이 모든게 이계를 찾아낸 보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이스트 월밖에는 더 많은 퀘스트와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리라.아직 들어온 사람이 10명도 안되니 가능성은 무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자,이제 슬슬 본격적인 이계 탐험을 시작해 볼까?" 아크는 씨익 웃으며 한 뭉치의 발톱을 꺼내 들었다. 바닥에 내려놓고 장화로 꾹 밟자 철컥하며 장화 바닥에 장착되었다. 신발 개조 아이템,'갈가쉬의 발톱'이었다. 사실 갈가쉬를 처치해도 어떻게 크레바스를 빠져나가나 걱정했다. 무론 던전이 있는 곳이니 어딘가에 빠져나갈 길이 있겠지만, 던전과 달리 대략적인 전체 지도로 지형을 확인해야 하는 밖에서 미로와 같은 크레바스를 헤매야한다고 생각하니눈앞이 깜깜했다.그러나'갈가쉬의 발톱'을 얻어 그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됬다. "라둔,배가꽉 찰때까지 아이템을 챙겨!" 쌕쌕쌕!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야영지에 있는 아이템을 삼켰다. 워낙 모아둔게 많아서 용량이 2배나 늘었음에도 반도 삼키지 못했다. "아깝지만 할수 없지.데이모스,검화!" 아크는 데이모스를 본 블레이드로 검화시켰다. 그리고 체조를 하듯 몸을 쭉쭉 스트레칭한뒤에 빙벽을 향해 내달렸다. "전력 질주!" 팍, 팍, 팍, 팍! 장화에 붙인 갈가쉬의 발톱이 빙벽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90도의 깎아지른 듯한 빙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갈가쉬의 발톱으로 빙벽을 오를수 있는 시간은 3분.그러나 쉬지않고 전력질주를 펼치자 2분내외로 다시 설산까지 올라갈수 있었다. "으앗,추,추워...........!" 설산에 올라가자 다시 엄청난 한기가 밀려왔다. 데드릭은 비명을 지르며 얼른 아크의 망토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우,여기는 천국이다!" "라둔, 라둔마 변신!" 스킬을 발동시키자 라둔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썩어가던 구렁이만큼은 아니지만, 대략 망아지만 한 크기로 커졌다. 그리고 가슴과 엉덩이 부분에서 살이 부풀어 오르더니 두툼한 4개의 다리가 솟아났다. 커다란 도마뱀같은 그 모습이 바로 변신한라둔마였다. "자,이제 내려가자.본격적인 이계탐험이다!" 아크는 갈가쉬의 모피로 몸을 가리고 라둔마의 등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바바바바! 라둔마가 4개의 다리를 파파팟,움직이며 눈밭을 내달렸다.뭉뚝한 다리가 일견 코믹하게도 보였지만, 그래도 속도만큼은 어지간한 말보다 빨랐다. 그렇게 아크와 소환수들은 눈 폭풍을 헤치며 이스트월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몇시간뒤,눈 폭풍이 잦아들더니 이내 넓은 평야가 나왔다. 본격적인 이계탐험의 시작이었다. ACT 5 이계? 유계?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기는군" 라이덴이 의자에 몸을 던지며 긴 한숨을 불어냈다. 영주성을 차지하고 3주.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영주성의 공금 잔고는 0. 게다가 아크는 영지의 기간 시설 운영에 써야할 공금까지 몽땅 긁어다가 영주민들에게 뿌려버렸다. 덕분에 영지는 라이덴이 영주가 되었을때는 이미 파산 직전상태였다. '아,아크 이자식........!' 그제야 아크가 자신을 농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이덴은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열심이 갈아봣자 이밖에 더 부서지겠는가? 아크가 농간을 부렸다고 해도 어쨌든 현재 시르바나의 영주는 자신이다. 그리고 그대로 놔뒀다가는 각종 시설 운영비가 없어 영지의 반 이상이 차압당할 판국이었다. 결국 라이덴은 부랴부랴 사재를 털어넣고 세금을 올렸다. 그러자 곧바로 영지민들의 불만이터져나왔다. "전임 영주는 교역소를 만들면서도 영지민들에게 보너스를 주셨다. 그런데 이번 영주는 영주가 되자마자 세금부터 올리다니!너무하지않은가?" "돈 관리를 어떻게 하기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건가?" "우리는 영주의 봉이 아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도 더는 못 참는다!" '빌어먹을,그 전임 영주때문에 세금을 올려야 하는거란말이다!' 라이덴은 울화통이 터졌다. 대체 왜 아크가 저질러 놓은 일을 자신이 수습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세금을 올린다고 해도 이미 라이덴역시 돈을 처박을대로 처박았다. 그런데도 영주민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으니 너무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영주민들이 그런 속사정을 알리가없다. 아니,대강의 속사정을 알고 있는 직속 보좌관 NPC베라미의 태도도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곤란합니다. 이대로라면 정말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요"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뉴 월드에는 '반란'이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세금을 갑자기 너무 올리거나,기간시설 운영을 잘못하면 영주의 권위와 친밀도가 떨어진다.그리고 영주민들의 불만이 한계치가 넘어가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는것이다.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일단 반란을 진압하기 전까지 세금을걷을수 없다. 그리고 만약 반란을 진압하지못하면 영지는 무정부 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정식 공성전 절차를 밟지 않고도 달느 길드가 영주성을 공격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시르바나에 몰려있는 길드들이 벌떼처럼 몰려들면 아무리 헤르메스라도 성을지킬수 있다는 보장이없다. 결국 라이덴은 며칠만에 슬그머니 세금을 내릴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필요한 자금만이 아니었다. 영주가 된 다음주,라이덴이 자금 압박을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한 잿빛 길드가 도전권을 사서 공성전을 걸어왔다. 정말이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버텨야 해.여기서 영지를잃으면 나는끝장이다!' 아크에게 4,000골드와 레어 신발을 갖다 바치고 간신히 얻은 영지다. 그뿐인가? 영지를 유지하기 위해 적금을해약하고 아끼던 자가용까지 팔아치워야했다. 만약 이대로 영지를 빼앗긴다면 화병으로 앓아눕게 되리라. 또한 헤르메스 길드도 그대로 공중분해가 될게 뻔하다.라이덴은 길드원들의 쌈짓돈까지 털어서성벽과 수호탑을 보수했다. 그리고 악에 받친 저투끝에 다행히 잿빛 길드의 도전을 물리칠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흘이 지난뒤에야 라이덴은 한숨 돌릴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세금이 걷혀 급한 자금 문제가 해결되고,잿빛 날개는 공성전 실패의 여파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물론 시르바나에는 잿빛 날개 외에도 수많은 길드가 있지만, 잿빛 길드를 제외하고는그리 위협이되지않았다. 20여일을버틴 끝에야 간신히 안정권에 들어선것이다.그러나 문자 그대로 안정권에 들어섰을 뿐이다. "3주다!3주동안 이득은커녕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으드득!" 간신히 한숨돌리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3주를버티고도 이득은 커녕 남은건 빚뿐이다. "아크 자식,감히 이따위 짓을 하다니,용서할수 없어!" "물론입니다!" 듀크 역시 이를 갈아붙이며 대답했다. "놈에게 빼앗긴 신발을 생각하면.........." 듀크는 허접스럽기 짝이없는 가죽신발을 내려다보았다. 라인덴은 영주가 되면 곧 더 좋은 신발ㅇ르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라이덴은 돈을 마련하느라 자가용까지 팔아치워야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길드원들의 쌈짓돈까지 털어야 하는상황에서 신발따위를 사줄여력이 있을리가 없다. 덕분에 듀크는 번쩍이는 레어장화대신 상점에서 파는신발을 사용하고 있었다.그래도 미안했는지라이덴이 꽤 비싼 신발을 사줬지만, 레어 신발을 사용하던 듀크의 눈에는그저 가죽 덮개 정도로밖에 보이지않았다. "이제 영지운영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다. 하지만그렇게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지 굳이 섦여할 필요도 없을거다.그리고 이 모든 고생은 단 한놈,아크 자식때문이다. 결코 놈을 용서할수 없어!" "동감입니다!" 길드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웅성거렸다. "놈은 일부러 우리를 골탕먹인 겁니다" "아크 자식에게 헤르메스를 농락한 대가가무엇인지 알려줘야 합니다" "놈에게 당한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지경입니다" "하지만 놈이 어디에숨었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한 길드원의 말에 모두의얼굴에 답답함이 어렸다. "놈이 바보가 아닌다으멩야 벌써 멀리 도망갔을겁니다" "국경을 넘어 다른 왕국으로 갔다면 찾을 방법이없지않습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없어" 그때,쥬르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내가 그따위 놈에게 듀크의 신발을 순순히 넘겨줬을거같아?" "무슨 말이야?" "신발을 건네주기 전에 '마나퍼퓸'을 걸어뒀지" "마나퍼퓸?" 쥬르가 히죽웃으며 '마나퍼퓸'에 대해 설명했다. '마나퍼퓸'은 하나의 아이템ㅇ르 지정해 쥬르만이 감지할수 있는마나의 흔적을 새겨두는 포스 스토커 전용저주마법이다. 그리고'마나퍼퓸'과 세트로 이루어진'메모리 오브 퍼퓸'으로 아이템이 어디있든 위치를 추적할수 있다. 당연히 이 저주는 아이템 정보창으로 확인할수 없다. 또한 저주가 걸려도 실제로는 아이템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사용자가 알아차리기는 쉽지않다.유일한 바업ㅂ은 감정을하는것뿐,그러나'마나퍼퓸'은 아직 알려지지않은 스킬이다. 그러니 이미 확인된 아이템을 다시 감정하는 유저가 있을리 없다. 사실'마나퍼퓸'은 마법사가 아끼던 아이템을 카오틱에게 도난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걸어두는 저주였다.그걸 쥬르는 아크에게 발마정령의 장화를 건네주며 걸어두었던 것.아크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쥬르는 이런일이없었어도 기회를 봐서 복수할 심산이었다. "놈이 어디에 있든 그곳이 게임안이라면 찾아낼수 있어" ".............결정 났군" 듀크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놈에게 선구자를 적으로 돌린다는게 어떤건지 가르쳐줘야겠군" "신발을 되찾는것만으로는 어림도없어" "몇번이든 죽여서 몽땅 털어버리겠어" 그때 팔짱을 낀채 생각하던 라이덴이입을 열었다. "남은 문제는 누가 가느냐다.일단 놈을 추적하기 위해 쥬르는 빠질수 없게 됐고........듀크 는?" "당연히 가야죠.무슨일이 있어도 갈겁니다" 듀크가 이를갈아붙이며 대답했다. 라이덴도 말릴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끄덕였다. "그렇겠지.하지만 둘만으로는 안심할수 없어.놈에게는 다크에덴의 동료들이 있다. 전쟁이 끝났으니 지금까지 용병 NPC들을 끌고 다니지만 않겠지만. 그때 봤던 10여명의 유저는 같이다니고 있을지도 몰라" 라이덴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르르 몰려갈수도 없어.일단 위기는 넘겼지만 아직 영지가 완전히 안정됐다고는 할수 없으니까.이미 쥬르와 듀크가 빠진 상황에서 헤르메스의 주축인 선구자 몇명을 더 차출하는건 곤란해" "그럼 라이덴님이 알고지내는 다른 선구자들에게 부탁해보면 어떨까요?" 그렇다,헤르메스길드에 소속된 선구자는 대략 30명. 당연하게도 그게 선구자의 전부는 아니다. 선구자라고 불리는 유저들은 그 외에도 수백명이나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라이덴이나 쥬르,듀크보다 월등한 레벨과 실력을 갖춘 선구자도 얼마든지 있다. 쥬르와 듀크가 선구자라고 폼을 잡지만, 실상 선구자들 사이에서는 중급자 수준밖에 되지않는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구자들은 홀로 고레벨 사냥터를 돌아다녀 다른 유저들의 눈에 잘 띄지않는 것뿐이다. 라이덴은 선구자들 사이에서도 발이 넓은 편이라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몇몇 선구자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몇명만 불러 쥬르,듀크와 파티를 이룬다면 상대가 10명.아니,20~30명이라도 문제가되지 않으리라. 그때,쥬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고작 아크따위 때문에 그들에게 아쉬운 소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들을 기다리고 앉아있을 만큼 한가안 기분도 아니고요.어차피 아크 자식은 나와 듀크의 상대가 안됩니다. 그리고 그때 같이 있던 녀석들도 실력은 좀 있어보였지만 레벨은 한참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길드원 가운데 하위 레벨을 몇명만 데려가도 놈들을 해치우는데는 무리가 없을겁니다. 하위 레벨이라면 길드전력에도 큰 영향은 없을테고 말입니다" "하위 레벨 길드원이라.......괜찮겠나?" "무슨 말입니까? 상대는 고작 아크일당입니다" 쥬르가 하찮다는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긴,이제 헤르메스 길드원은 대부분레벨 200을 넘긴 상태였다. 선구자들은 말할것도 없지만 하위권길드원이라도 레벨 180~190수준. 어디를 가도 꿀릴만한레벨은 아니다. '좋아,굳이 말할 필요도없지만 이제 아크자식은 헤르메스 길드의 숙적이나 다름없어.가능하면 나 역시 우리의 힘으로 놈에게 복수하고 싶다. 듀크,쥬르와 길드원 8명을 붙여줄테니 놈을 박살내라" "알겠습니다" "헤르메스의 문장만 봐도 오줌을 지리도록 만들어놓겠습니다" 그렇게 쥬르와 듀크는 길드원들과 함께 아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뒤,일명 척살대는 붉은 황야의 버려진 오두막에 도착했다. "마나의 흔적이 이 그림 안쪽으로 이어져 있다" 듀크가 오두막 한쪽에 세워진 그림을 가리키며말했다. 그러자 일루셔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길드원이 그림을 조사하고 대답했다. "이건 게이트다.그것도 상당히 멀리까지 이동하는게이트같아.게다가 느껴지는 마나의 움직임으로 봐서 일방통행이야.좀찜찜한데...........어쩔래?"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듀크는 망설임없이 그림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는 아크 척살대다.놈이 간곳이라면 설사 지옥이라도 따라간다" "놈에게 복수할때까지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않아" "좋아,가자!" 쥬르와 나머지 길드원도 하나둘 그림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또다시 한 무리의 이방인이 이계로 향했다. "대체 뭐야, 여기는?" 그 무렵,아크는 멍청한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실 설산에서 헤맬때만 해도 이곳이 이계라는 실감이 들지않았다. 아니,당장 얼어죽을 상황에 그런걸 따질 여유도 없었다. 거란 막상 설산을 내려오니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생각하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란 것이 실감되었다. "방금 전까지 폭염이 쏟아지더니 이제 눈이 내려?" 가장 황당한것은 이계의 날씨였다. 설산을 내려와 황야로 들어서자 찌는듯한 폭염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내 하늘이 어두워지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다시우박이 내리더니 이제 찬바람이 쌩쌩 불며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미친년 널뛰듯 하는것도 유분수지........." 적응하기 힘든건 날씨만이 아니다. 주변 지형도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나무나풀이 모두 돌로 이루어진 숲,쇳가루로 이루어진 사막,마치 물감을 몽땅 풀어넣은 듯 수십가지 빛깔을 띄고 있는 강,심지어 가만히 올려다보면 하늘도 빙글빙글 돌았다.깔깔 웃어대는 꽃밭을 가로지를때는 정신이 혼미해질정도.마치 정신병자의 머릿속을 여행하는기분이었다. 그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들도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땅을 뚫고 나와 기습하는 모래 사냥꾼,일반 검으로는 상처조차낼수 없는 유령계 몬스터 스펙터가 대낮에 돌아다니지를 않나........모두 보도 듣도 못한 몬스터들이었다. 가아아아아- 지금도 머리위에는 가오리를 닮은 몬스터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다. 이래저래 정말 아찔하다. 게다가 이계의 몬스터들은 중간계의 몬스터보다 강하다.같은 레벨이라도 능력치가 높고 괴상한 스킬을 구사해서 상대하기가 보통 까다로운게 아니다. 예전이라면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그러나 설산에서 능력치를 뻥튀기한 아크는 어렵지않게 처리하며 황야를가로질렀다. "그래도 용케 이런 풍경에 익숙해지는군"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쌕쌕,쌕썍쌕! 바쁘게 다리를 움직이던 라둔의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라둔 멈춰라" 라둔이 걸음을 멈추고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 거렸다. 그리고 아크가 등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귀여운 것,고생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라둔은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내며얼굴을 비벼댔다. 라둔이 라둔마로 변신할수 있게 된 덕분에 이동속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러나 일반 군마처럼 제한없이 사용할수 있는건 아니다. 라둔마는 10초에 5의 마나를 잡아먹는다. 아크의 마나가 대략 3,000이니 1시간에 한번은 쉬어주어야한다. 게다가 라둔마로 변신하면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서 한번 변신할때마다 4~5인분의 음식을 먹어치웠다. 그러나 이런 단점은 조금도 문제되지않았다. 현재 아크의 가방은 빈 공간이 하나도 없을정도로 아이템이 들어차 있다 설산에서 헤맬때와는 반대로 식재료든 머든 하나라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인것이다. "자,일단 여기서 쉬고 간다" 아크는 야영지를 세우고 요리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각종 고급 식재료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5인분의 요리가 만들어졌다. "먹어라,부족하면 말하고" 쌕쌕쌕? 쌕쌕........... 라둔은 침을 꼴깍 삼키다가 아크를올려다보았다. 식비 부담을 늘려서 미안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괜찮아.너는 밥값을 충분히 하니까 많이 먹을자격이 잇어" 그제야 라둔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음식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행동 하나하나가 예쁘기 짝이 없는녀석이다. 라둔은 성장한 뒤로도 여전히 아크에게 절대 충성이었다.진화했다고 곧바로 안면 갈아엎고 버르장머리 없이굴던 데드릭과는 태생부터가 다른것이다. 하물며 로코가 키우는 싸가지없는 말새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아크는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다시식재료를 꺼내들었다. "자,이제 너희들도 밥 먹어야지?" 그러자 데드릭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렸다. "쳇, 또 실험용 음식이지? 젠장, 라둔은 맛있는것만 해주고........이건 편애야!" "새로운 음식이 뭐가 어때서? 덕분에 강해졌잖아.뭘더 바래? 자꾸 반찬 투정할래?" 아크가 찌릿 노려보자 데드릭은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할말은 해야겠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나도 좀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싶단 말이야!" "항상 새로운 음식을 먹는것만큼 기쁜게 또 어딨어?" "에이,말을 말아야지" 데드릭이 팩 토라진 얼굴로 고개를돌렸다. 사실 데드릭의 불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이계,황야를 가로지르며 발견한 식재료는 대부분 처음보는것들이었다. 덕분에 아크는 환호성을 터트렸지만,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비명을 터트려야했다. 게다가 지금 상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예전에는 일단 식재료를 챙겨놓고 기회를 봐서 먹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방에 여유공간이 없다. 하나의 공간이 아쉬우니 식재료를 구하는 족족 요리를 만들어 먹여야 했던 것이다. 아마 예전 같으면 데드릭이 난리를 쳤어도 몇번은 쳤을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심하게 반항하지않앗다. 이유는 세가지였다. 하난 란셀에서 한번 빡세게 굴려놔서 군기가 아직 빠지지않아서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설산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덕에 이제야 음식 귀한줄(?)알게 된것이다.먹고 죽은 귀신이 떄깔도 좋다지않는가. 상한 음식이라도 굶어죽는것보다는 일단 먹고 설사를 좍좍 하는편이 나은것이다. 아크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요리를 만들어 소환수들에게 내밀었다. "자, 신작 요리다.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도록" "알았어,알았다고.먹으면 되잖아" 데드릭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맛을 보더니 겨우 안심한듯 입에 쏟아넣었다. 데드릭이 심하게 불평하지않는 마지막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계의 식재료를 사용하면 높은 확률로 좋은 효과의 요리가 만들어졌다. 덕분에 소환수들의 능력치도 쭉쭉 올라 레벨 130대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좋은 결과만 내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서바이벌 요리는 복불복 시스템! 따닥-!딱딱딱,딱딱딱딱. 생각없이 음식을 삼키던 데이모스가 픽 쓰러지더니 바들바들 떨어댔다. -데이모스가 두통에 걸렸습니다! 서바이벌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수프'입니다. 효능은 10분간 엄청난 두통에 시달려 아무런 행동도 할수없습니다. 이런 음식은 개나 줍니다. "꺄하하하,멍청이,그렇게 수상한 음식을 무턱대고 퍼먹으니 그런거야!" 데드릭이 배를 잡고 구르며 웃어재꼈다. 하여간 하는짓 하나하나가 밉살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면서도 또 그렇게 밉지는 않단 말이야' 아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마을이 나오는거지? 아니,여기에도 마을이 있기는 한건가?' 라둔마로 황야를 가로지른 지도 벌써 6시간이 지났다. 500%나 되는 이동속도를 생각하면 30시간 거리를달려온셈이다. 그러나 아직 마을은커녕 사람도 구경하지못했다. 만약 이계에 마을이 없다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아이템 처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여기 들어온 목적,마가로프에 대한 단서를 얻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 넓은 이계를 무턱대고 돌아다닐수는 없지않은가? '어쨋든 설산의 게이트가 닫혔으니 일단 계속 가 보는 수밖에 없겠지' "이제 휴식끝났다. 출발할 채비해" 아크가 탁탁 털고 일어났을때였다. 갑자기 지면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바로 앞에서 흙더미가 솟아 올라왔다. 그리고 곧 굼벵이처럼 생긴 거대한 몬스터가 기어나왔다. 크기는 거의 20여 미터! "포식자다!" 아크가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황야를 지나오며 몇번인가 만난적이 있는 몬스터다. 땅속에 숨어있다가 근처로 다가오는 몬스터따위를닥치는대로 집어삼키는 흉포한 놈이다. 레벨은 300.게다가 몸 주변에는 산성 독을 내뿜는 조그만 구더기 백여마리가 붙어있다. 어둠속성 보너스를받지않으면 70가까이 레벨 차이가 나는상태! 그러나 아크의 얼굴에는여유가 넘쳤다. "식후 운동으로 딱 좋은 상대로군" 처음 포식자를 만났을때는 아크도 움찔했다. 그러나 막상 전투를 시작하자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않았다. 포식자는 생긴것처럼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리다. 그러나 그보다는 얼음동굴의 기연(?)으로 70레벨차이의 몬스터를 쓰러트릴만한 능력치를올렸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화염에 약했지? 엘리멘탈 소드,화 속성!" 스킬을 발동시키자 검날에서 불길이 뿜어져나왔다. 이글거리며 불길을 뿜어내는 대검은 그야말로 장관!동시에 패널티가 작용해 화염 저항력이 -75%까지 곤두박질쳤지만 산성 속성을 가진 몬스터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좋아,얼마나 빨리 잡을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가라,데드릭,데이모스!" "옛썰,맡겨만 줘!" 딱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양쪽으로 갈라지며 포식자를 포위했다.포식자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아크는 빠르게 접근하며 검을 휘둘렀다. 펑, 펑, 펑, 펑! 화염이 폭발하자 포식자가 움찔움찔하며 밀려났다. -엘리멘탈 소드(火)로 치명타를 터트렸습니다. -포식자가'화상'에 걸렸습니다. <1분간 10초마다 10의 데미지를 입게 됩니다> 포식자는 화염에 취약해 20%의 추가데미지를 받았다. 게다가 엘리멘탈 소드로 치명타를 터트리면 상태이상까지 일으킨다. 몸 여기저기에 불이 옮겨 붙자 포식자가 요동치며 괴로운 비명을 터트렸다. 쿠오오오-! 본격적인 싸움은 그때부터였다. 포식자에게 붙어있는 백여마리의 구더기는 장식품이 아니다. 우글우글 아크가 있는 방향으로 몰려들더니 가래침을 뱉어냈다. 산성독이다. 손가락만한 구더기가 뱉어내는 독이라 데미지는 고작 10밖에 되지않는다. 그러나 문제는숫자.백여마리가 소나기처럼 뱉어내니 반만 뒤집어써도 데미지가 500이다. 물론 보너스로 전투의욕이 뚝뚝 떨어질정도로 기분이 더럽다. 어쨌든 그런 놈들이 포식자에게 달라붙어 미친듯이 침을 뱉어댄다. 아무리 방어력이 높은 전사라도 버텨내지 못하리라. 그러나 아크에게 구더기따위는 문제도 되지않았다. "흥,가소로운것들,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 거대한 고양이의형상이 황금 눈동자를 번뜩이며 날카롱누 포효를 터트렸다. 그러자 백여마리의 구더기들이 딱딲하게 굳어 바닥에 우수수떨어졌다. "데드릭,데이모스!밟아죽여!" "우헤헤헤,뾱뽁이다.뽁뽁뽁뽁............크으,이 느낌이 죽인단 말이야.중독되겠어" 데드릭이 신나게 구더기를 밟아죽이며 히죽거렸다. 쿠오오오,쫘아아아아-! 구더기들이 으깨지자 포식자가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가래침을뱉었다. 구더기가 내뱉는 가래침관 비교도 되지않는 양! 뒤집어 쓰면 생명력은 물론,방어구의 내구도도 뚝뚝 떨어지리라.그러나 그런 단순한 공격에 당할아크가 아니다. '슬라이드'로 횡 이동을 하면서 화염검으로 밀어붙였다. 움직임이 둔하기 짝이없는 포식자는 제대로 방향조차 맞히지못했다. 그렇게 옆구리에 칼침 몇번 놔주자 포식자는 단숨에 빈사상태에 빠져버렸다. "좋았어,간다,전력질주!" 아크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검을 크게 휘둘렀다. 순간 일도양단이 터지며 포식자의 몸이 쩍 갈라졌다.이어 배속에서 노란 액체와 함께 온갖 잡동사니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황야에서 포식자가 집어삼킨것들이다. "크...........많이도 처먹었군.어라? 여기도 망자들이 있네" 아크가 몸에 들러붙은 오물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포식자의 배속에서는 각종 몬스터와 함께 사람처럼 생긴 것들도 나왔다. 황야에서 가끔 눈에 띄던 좀비처럼 생긴 녀석들이다. NPC? 몬스터? 구분하기가 애매한데,이놈들은 아무것도 하지않는다 그저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닐뿐이다. 처음발견했을때는 이 녀석들이 이계의 주민인줄알앗다. 그도 그럴것이 이름이 파란색으로 표시됐던 것이다. 때문에 말을 붙여보기도 했지만 ,망자들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볼뿐 다시 흐느적거리며 주변을돌아다녔다. 포식자 배속에서 채 소화가 되지않은 망자들 역시 멍청한 얼굴로 흩어졌다. '뭐,그냥 배경 같은 거겠지' "그나저나 기껏 잡았는데 챙긴건 없군" 아크는 포식자의 시체를 살피며 입맛을 다셨다. 일도양단으로 잡아 포식자는 꽤많은 아이템을 떨궜다. 그러나 대부분이 고깃덩이나 반쯤 썩어있는 잡템이었다. 가방에 있는 물건을 버리고 주울만한 아이템이 아닌것이다. "푸하!여기가 어디냐? 지옥이냐? 천국이냐?아,난 착하니까 천국이겠지? 어라? 밖이잖아? 오오오,살아난 건가?크하하하,살아났다!아마 포식자에게 먹히고 살아난 사람은 내가 처음일거야!" 아크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갑자기 포식자 시체속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계에 들어와서 처음 듣는 사람 목소리!아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포식자 배속에서 기어나온것은 바퀴벌레처럼 생긴 종족이었다. 그는 엉금엉금 기어나와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크를 발견하고는 와락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당신이군.그렇지? 당신이 포식자를 물리치고 나를 구한거지?" "다,당신은?" "나? 아,내 소개가늦었군. 나는 레이드라고 해.자랑스러운 갈킨족의 후예지.갈킨족 알지? 대륙을 여행하며 장사를하는 행상이야.원래 이런 변경까지는 안나오는데 내가 원체 호기심이많아서 말이야.한번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서 달려왔지.그런데 이런 포식자에게 잡아먹힐줄 누가 알았겠어? 크하하하,하지만 살았으니됐잖아" '갈킨족? 그렇다면 이계에도 몇가지 종족이 사는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바퀴벌레처럼 생긴 종족이라니..........어쨌든 이 수다스러운 바퀴벌레가 이계에 사는 종족 가운데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이계에 들어온지 보름이 넘어서야 말이 통하는 NPC를 만난것이다. 게다가 행상인이라면 잡템을 처리할수 있다는 말이아닌가? "행상인이라고 했습니까?" "그래그래,필요한거 잇으면 말만하라고,아,그럴게 아니라 좀 보여줄까? 보통 갈킨족은 사기는 쳐도 손해나는 장사는 하지않지만,생명의 은인이니 잘 쳐줄게" 레이드가 얼른 가방을 풀더니 바닥에 아이템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망자들이 관심을 보이며 다가오자 레이드가 돌을 집어던지며 툴툴거렸다. "쉿,쉿,저리가!젠장, 멍청한것들.........." "저 망자라는것들은 뭡니까?" "신경쓸거 없어.그냥 멍청이들이야.그보다 어때? 마음에 드는것 있어?" "아니,저는 물건을 사려는게 아니라,처분하려는 겁니다" 레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듬이(?)를 흔들었다. "처분? 처분이라니?" "제 물건들을 돈으로 바꾸고 싶다고요" "돈? 그건 또 뭐야?" 레이드는 난생처음 듣는 말이라는듯 되물었다. 답답해진 아크는 1쿠퍼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러자 레이드는 신기한 눈으로 동전을 살펴보더니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돌려주었다. "뭐,그냥 철조각이잖아.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도 이런 물건하고는 안바꿔" "네? 그럼 이곳에서는 돈으로 사고팔지않는다는 말입니까?" "돈이 뭔지는모르겠지만, 물건을바꾸려면 그만한 쓸모가 있는걸 줘야할거 아냐?" 레이드가 당연하지않냐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물건과 물건을 바꾼다. 다시말해 레이드가 말하는 거래방식은 물물 교환이었다. 게다가 레이드는 이계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행상인.그가 돈이라는 개념을 모른다면 이계에서는 그런 물물교환이 일반적이란 말이아닌가? 결국 아무리 잡템을 많이 모아도 이게에서는 사랑스러운 골드로 바꿀 방법이없다는뜻! 짤랑거리는 골드로 바뀌기를 기대하며 죽을둥 살둥 온갖 잡템을 짊어지고 온 아크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망했다. 물물교환이라면 가방 용량을 줄이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잖아?그럼 이 잡템을 계속 싸 짊어지고 다녀야한다는거야? 아니,그래도 혹시 몰라'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는 곧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물물 교환밖에 할수 없다면 쓰레기 아이템을 몇개주고 좀더 비싼 물건으로 바꿀수 있지않을까? 그렇게 거래를 되풀이하면 가방 공간을 확보할수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레이드에게 물었다. "그럼 잠시 물건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봐.모두 쓸만한 것들이니까.조건만 맞는다면 거래하지" 레이드가 자랑하듯이 자신의 아이템을 가리켰다. 그러나 막상 아이템을 훑어본 아크의 얼굴에는 실망감이번졌다. 알수없는 가죽에 고깃덩어리,버섯이나 나무열매.........대부분이 아크가 황야를 지나오며 바닥에 버려두었던 것들이었다. 장비 아이템도 몇개 눈에 띄엇지만 그 역시 헝겊으로 만든 방어구나 낡아빠진 검 따위였다. '젠장, 바퀴벌레답게 쓰레기 더미를 가지고 다니는구나' 그때,문득 아크는 묘한 아이템을 발견했다. [속이 빈 강철 틀니(마법) 무기 타입 : 틀니 내구력 : 13/50 공격력 : 10~15 무게 : 30 사용제한 : 뱀파이어 소환수 전용 속이빈 빨대처럼 만들어진 틀니입니다. 이 강철 틀니는 오래전 활동하던 뱀파이어가 늙어 이가 빠지자 송곳니를대신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오직 뱀파이어만 사용할수 있으며 틀니를 이용하면 보다 쉽게 피를 빨수 있습니다.<옵션 : 흡혈 사용시 스킬 흡수 성공률+30%>] [시가시의 가죽 망토 방어구 타입 : 망토 내구력 : 13/50 방어력 : 10 무게 : 20 사용제한 : 모든소환수 사용가능 유계의 산양과에 속하는 시가시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 망토입니다. 시가시는 거친환경에서 살아가는 짐승이라 가죽이질기기로 정평이나있습니다. 거친 솜씨로 만들어져 폼은 나지않지만 몸을 보호하는 데는도움이 될것입니다.] 능력치는 아크가 가지고 있는 잡템과 크게 차이가 없다. 중간계에서도 잘해야 1~2골드나 받을까? 그런데 문제는 바로 아이템에 붙어있는 사용제한이다. 소환수가 사용가능이라니? 이런 사용제한은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걸소환수가 사용할수 있단 말입니까?" "소환수? 아아,중간계에 불려가는 종족 말이지? 후후후,놀랐어? 갈킨 족 행상인은 아는게 많다고.어쨌든 맞아,이것들은 그런 종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거야.보기에는 이래도 굉장히 귀한 물건이지.소환수는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중간계로 불려갈때는 벗겨지지만,이건 달라.차원을 넘을수 있는 소재로 만들어졌거든.하짐나 요즘 유계에서는 중간계로 불려나가는 종족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야.그래서 다른 물건하고 바꿔주는 사람이 없어" 레이드가 툴툴거렸다. '유계? 유계라고?'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아크는 이곳이 이계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이 유계란 말인가? 유계는 바로 데드릭과 데이모스,라둔이 사는 세계가 아닌가? '그렇구나.그래서 얼음동굴에 아라모네가 있었던 거야.맙소사,아라모네와 그렇게 대화를 해놓고도 그걸 알아채지못했다니........' 아크는 맥이 쭉 빠지는 기분이들었다. 이제야 이계로넘어와서 소환과 해제가 안되는 이유를 짐작할수 잇었다. 중간계에서야 영력으로 차원의문을열어 소환수를 불러낸지만, 이곳은 본래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사는세계다.소환을 시키면 일종의 공간이동을시키는 형태가 되니 소환이 불가능하게된것같다. 또한 이곳에서 죽으면 강제송환이 아닌,실질적인 죽음이니 능력치에 패널티가 적용되는 것이리라. '그나저나 알에서 나올때부터 나와 함께 있었던 라둔이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데드릭이나 데이모스도 그걸 모를수가 있지?' "어 ?난 몰라.여기는 처음보는곳이라고.난 내가 사는 곳에서 나가본적이 없단 말이야.사실 말이 나왓으니 말이지만 주인이 소환수로 만들어버려서 유계로 돌아오면 이동할수 있는 거리에 제약이 있다고" 딱딱딱,딱딱딱딱 데드릭이 황급히 변명하자 데이모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말인즉슨 이렇다. 유계의 주민이소환수가 되면 자신의영역안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제약이 생긴다고한다. 데드릭의 경우,아크의 소환수가 되기전에는 뱀파이어의 종자였다.때문에 바깥세상은 구경도 못해봤고,데이모스 역시 그저 묘지에서 굴러다니던 해골이었으니 비슷한 신세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다른 유계를 돌아다니느냐.........정확한 해답은 아크 역시 알수 없었지만, 짐작해 보자면아크가 소환한 상태로 유계에 들어왔기 때문 아닐까 ?아마도 계약 주인이 옆에 잇으니 제약에 저항할수 잇게 된것이리라. 뭔가 복잡한듯 하지만 알고보면 단순한 얘기였다. '어쨋든 여기서는 소환수가 사용할수있는 아이템도 있다는 말이잖아?" 소환수에게 아이템을 장착한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못한 일이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소환수를 다른방향으로 성장시킬수도 있다는 뜻이아닌가? "이걸 제게 팔지않겠습니까?" "음,제법 물건을 볼줄 아는군.아까도 말했지만 이게 임자를 못만나서그렇지 정말 귀한 물건이라고.다른데를 돌아다녀도 이런 물건을 보기 힘들걸.하지만 약속했으니까 적당한 물건만 있다면 얼마든지 바꿔줄게" 아크는 얼른 가방에 모아놓은 잡템을 보여주었다. 한참을 둘러보던레이드가 몇가지 아이템을 지목했다. "이게 좋겠군.보기드물게 좋은 품질의 가죽이야.이거 100장과 시가시의 망토를 바꿔주지.그리고 이뼈와 약초도 쉽게 볼수 없는 물건이군.좋아,각각 50개씩 주면 틀니와 바꿔줄게.절대 손해나는 장사는 아닐거야" 레이드가 가리킨건 몽구스 가죽과 뼈,설모초였다. 각가 1,000개 이상 가지고있어 처치곤란이던 아이템들. "좋습니다. 교환하죠" 아크는 얼른고개를 끄덕이며 아이템을 교환했다. 그리고 강철 틀니는 당연히 데드릭에게 ,시가시의 망토는 데이모스에게 건네주엇다. 데드릭은 틀니를 끼고 몇번 이빨을 마주쳐 보더니 환호성을 터트렸다. "오오옷, 이거멋진데? 갑자기 피를 빨고 싶어져!" 딱딱딱,딱딱딱딱! 데이모스 역시 망토가 꽤나 만족스러운듯 펄쩍 펄쩍 뛰었다. 아크 역시 펄쩍펄쩍 뛰고 싶은 기분이었다. 설마 넘치는 잡템을 이런 아이템과 바꿀수 있을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이계를 돌아다니며 좀더 아이템을 긁어모으면 데드릭과 데이모스의 능력치도 엄청나게 올라가리라. '좋아,이곳에서 소환수들의 장비를 풀세트로 맞추고 돌아가자' "음음,좋은 거래를 했군.이제 너는 어쩔거야?" 레이드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시 짐을 챙기며 물었다. "레이드는 유계를 돌아다니며 장사를한다고했죠? 혹시 마가로프라는 이름을들어본적 있습니까? 저와 비슷하게생긴 종족인데.........." 아크는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레이드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마가로프라........들어본적이 없는 이름이군.하지만 너와 비슷하게 생긴사람들이 사는 마을을알고있어" "이곳에 저와 비슷한 종족이잇다고요?" "음,뮤탈이라는 종족인데,본래 흉포하지만 이 근방에 사는 뮤텔들은 비교적 온순해.그 마을에 가면 혹시 아는 사람이 잇을지도 몰라.아,그러고보니 그 마을에 굉장히 오래산 노인이 있엇어.아는것도 많다고 하니까 한번 찾아가봐.갈킨족의 행상인 레이드가 보냈다고하면 나쁘게 하지는 않을거야" "마을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으로 반나절 정도 가다보면 계곡이 나올거야.뮤탈의 마을은 그안에 있어.어쨌든 그 마을로 간다면 이제 그만 헤어져야겠군.나는 다른곳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레이드는 끙 소리를 내며 배낭을 짊어지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좋아,저쪽에 마을이 있단 말이지? 라둔,변신해라!" 쌕쌕쌕! 라둔의 몸이 다시 커다랗게 변하며 다리가 솟아났다. 아크는 그 위에 몸을 싣고 다시 황야를 내달리기 시작했다.이계..............아니,유계의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ACT 6 아기 돼지 삼형제의 비극 typing by rayan 바바바바,바바바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황야를 질주하는 대형 도마뱀! 아크를 태운 라둔이었다. 레이드와 헤어진 아크는 쉬지않고 황야를 가로질렀다. 살짝 맛이 간 날씨와 제대로 맛이간 배경을, 살짝 무시해주며 달리기를 1시간. 드디어 레이드가 말했던 계곡을 찾아낼수 있었다. 그리고 계곡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작은 규모의 마을이 나타났다. "이게 이계의 마을인가?" 규모는 대략 란셀 마을의 2~3배 정도. 그러나 발전도는 상당히 떨어지는듯 건물들은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텐트처럼 뼈대를 세워놓고 그 위에 가죽을 덮어 만든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천막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니 무슨 난민 캠프처럼 보였다. 하긴 화폐도 없이 물물 교환으로 거래를하는 종족이니 수준이야 뻔하지않겠는가. '어쨌든 마을이니 필요한 정보를 얻을수있을거야' "라둔, 수고했다" 쌕쌕쌕,쌕쌕쌕! 라둔이 피시식 줄어들며 허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입구로 걸어가자 가죽옷에 짐승 뿔로 만든듯한 창을 든 경비병이 보엿다. "퍼렁이,퍼렁이다.우하하하,저것봐" 경비병을 본 데드릭이폭소를 터트렸다. 레이드의 말처럼 뮤탈이라는 종족은 인간과 다를것이 없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피부색이 파랗고,눈동자는 황금색이었다. 어린이 뮤지컬에서 스머프 변장을 한 배우가 떠올라 아크 역시 피식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그러나 처음 만난 종족의 면전에서 히죽거릴 수는 없는일.정보를 얻어야 하는 입장이니 친밀도를 떨어트릴 만한행동은 자제해야 한다. "데드릭,입 다물고 있어" "하,하지만 웃기잖아.대체 얼마나 두드려 맞아야 저렇게 되지?" "너도 저렇게 되고 싶냐?" "...........입 다물게" 데드릭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듯한 재스처를 취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아크가 다가가자 경비병들이 약간 긴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누구인가? 근처에서는 못 보던 얼굴인데?" "네,저는 엄청나게 먼곳에서 얼마전에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오랫동안 황야를 헤매서 그런데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가도 되겠습니까?" "흠,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을 마을에 들여놓는건 좀 내키지않는군" 경비병이 아크를 위아래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그리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였다. 중간계에서는 처음 도착한 마을이라도 명성이나 성향에 따라 어느정도 친밀도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유계에서는 그런 수치가 적용되지않는 모양이다. "혹시 레이드를 아십니까?" "레이드? 갈킨족의 행상인?" "네,그분의 소개를 받고 찾아온겁니다. 이 마을의 뮤탈들은 용맹하고 강인하지만,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부드러움도 겸비하고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더군요.오랜 여행으로 지친 저에게 그런 너그러움을 나눠주실수는 없겠습니까?" "호오,레이드가 그런말을?" 레이드도 그랬지만 유계의 주민들은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입에 발린 말로 꼬드기자 경비병들은 금세 히죽거리며 끄덕였다. "하긴, 지친 여행자를 쫓아내는건 못할일이지.알겠네,마을에 들어가도 좋네.하지만 말썽 피우면안되네" "감사합니다" 아크는 빙긋 웃어보이고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뒤쪽에서 경비병들이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여행이꽤나 힘들었나 보군" "그러게 말이야.어떤 부족의 젊은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색이몽땅 빠져버렸군" 아무래도 뮤탈 종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누어져 있는 모양이다. 일단 생김새는 똑같으니 아크 역시 같은 뮤탈 종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퍼렇지 않다고 동정을 사다니......애꾸마을에서는 정상인이 병신이라더니 딱 그짝이다. 어쨌든 병신 취급을 받아도 일단 마을에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니 많은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유계에는 상당히 많은 종족이 뒤엉켜 살고 있었다. 황야에서 만났던 갈킨족도 그렇지만, 실제로 뱀파이어 일족인 데드릭이나 언데드 데이모스도 유계의 주민이다. 다시말해 유계에서는 NPC와 몬스터의 차이가 명확하지않다는 뜻이다. NPC라도 카오틱이면몬스터고,몬스터라도 카오틱이 아니면 NPC인것이다. '이런곳이라면 데이모스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녀도 되겠는데?' 아크는 전투할때를 제외하면 항상 데이모스를 검으로 만들어 차고다녔다. 라둔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그리고 갑자기 NPC를 마났을때 친밀도가 깎이는것을 방지하기위해서였다. 스켈레톤과 함께 있는것을 보고 호감을 느낄 NPC는 없는것이다. 실제로 중간계에서는 데이모스와 함께 다니면 친밀도가 깎이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반면 데드릭은 오히려 친밀도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성격이 더럽기 짝이 없지만 일단 변신하면 귀여운 소년이다. 때문에 나이 지긋한 노인들에게는 제법인기가 있었던 것. 어쨌든 마을을 둘러보니 그런건 별로 문제가 되지않아보였다. 드물기는 하지만 황야에서 만났다면 일단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을 외모의 몬스터도 더러 눈에 띄었던 것이다.그들에 비하면 데이모스도 그리 튀지안을정도. 그러나 중간게에도 수많은 종족이 살지만 가장 일반적인 NPC는 인간.유계에서는 바로 뮤탈이라는종족이 중간계의 인간처럼 가장 일반적인 NPC인 모양이다. 유계 곳곳에 퍼져사는 뮤탈들은 성향이나 문명도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은 부족 단위로 살아가지만 개중에는 왕국을 건설한 뮤탈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 만난 여행자에게 그런곳은 화폐를 사용한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네.하지만 웬만하면 가지않는편이 좋아.그들은 다른 종족을 좋아하지않거든. 같은 뮤탈이라도 다른 부족을 적대시하지" 마을 어귀에 있던 상점 주인의 말이었다. 일반 정보를 가장 쉽게 얻을수 있는 방법은 바로 상점을 이용하는것이다. 여행자들이 마을에 들르면 제일 먼저 상점부터 찾으니 많은 소문이 모여들수밖에 없다. "잘들었습니다. 그럼 물건을 좀 볼수 있을까요?" "그러게" 상점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열장을 가리켰다. 역시 발전도가 낮은 마을이라 이렇다 할 물건은 없었다. 척 보기에도 흔해 빠진 잡템들뿐이었지만, 아크는 꼼꼼히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레이드에게 산것처럼 잡템이라도 소환수 전용 아이템이 있지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레이드의 말처럼 그런 물건은 그리 흔한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신 아크가 쓸만한 아이템을 발견할수 있었다. [움마의 수액 고대 식물의 하나인 움마의 마력이녹아있는 수액. 수십 그루의 움마에서 채취해야 겨우 작은 병 하나를 채울수 있습니다. 고밀도의 영양 성분이 녹아있어 몸과 마음의 피로를 순식간에 회복시켜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용 즉시 생명력+400.단,질병이나 독과 같은 상태 이상에는 효과가 없슴>] [나딩카의 열매 고대 식물인 나딩카는 일명 거머리 풀이라는악명으로 잘 알려져있습니다.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뭔가에 사로잡혔다면 십중팔구 나딩카의 뿌리입니다. 그러나 나딩카는 딱히 해를 끼치지않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여행자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갈뿐입니다. <적에게 사용하면 1분간 이동속도가 50%감소합니다>] 발전도가 낮아서 소모 아이템도 식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러나 원시적인 세계라 그런지 식물의 효과는 상당히 좋았다. 움마의 수액만해도 마나까지 회복시키며 중급 회복 포션보다 성능이 좋았다. '이런 아이템이라면 중간계에서 팔아도 돈이 되겠다' 그러나 소모 아이템임에도 수량이 넉넉하지않았다. 움마의 수액은 5개,나딩카의 열매는 50개가 전부였다. 아크는 일단 설산에서 긁어모은 가죽과 뼈 그리고 몇개의 잡템을 건네주고 몽땅 사들였다. '젠장, 겹쳐진 아이템이 워낙 많아서 가방 공간은 그대로군.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물물 교환을 할수도 없고.......돈으로 환산되지않으니 싼건지 비싼건지 감을 못잡겠어.어쨌든 당장 팔지도 못할 아이템을 쓸만한 물건으로 바꿨으니 불만은 없지만.........' 상점에서 할일을 끝낸 아크는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이 마을에 주변에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이 계시단 말을 들었습니다" "아, 베스튜라님 말이군" "그분이 어디사시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가장 큰집을 찾게.거기가 베스튜라 님의 집이네" 아크는 그길로 상점을 나와 큰길을 찾아나섰다. 작은 마을이라 집을 찾아내는건 그리 어렵지않았다. "계십니까?" 그러나 밖에서 몇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엇다. 잠시 기다리던 아크가 슬쩍 보자 문이 열렸다. 집으로 들어서자 벽을 따라 선반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선반에는 돌돌 말린양피지 다발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유계에서는 책대용으로 양피지를 사용하는 모양이다. 아크가 엄청난 양의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안으로 들어섰을때였다. "아아........젠장 ,미치겠군.대체 어떻게 된거야? 왜 아직까지 돌아오징낳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렸던 건데........" 구석에서 한 노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실례합니다" "만약 무슨일이 생겼으면 어떡하지? 정말 그렇다면 나는버틸수 없을거야" "저......말씀 좀 묻겠습니다" "아아,나는 정말이지 걱정되고 걱정되서........빌어먹을 경비병놈들,이렇게 불안한데 내 말은 들은척도 하지않다니..........만약 보나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가만두지않겠어" "저기요" 아크가 살짝 어깨를 두드리고 나서야 노인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백발에 가슴까지 오는 수염을 기른 노인,드디어 파파 스머프의 등장이다. "핫!뭐야,너는? 누구맘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는거야?"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없으셔서........" "불러서 대답없으면 마음대로 들어와도 되는거냐?" "그게 아니라........." "대체 뭐야? 무슨용건인데?" 노인은 제대로 대답할 틈도 주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주변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베스튜라 님께 여쭤 볼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뭐야? 이런 빌어먹을, 나가!난 지금 한가하게 잡담이나 주고받을 시간 없어!" "잠깐이면 됩니다. 혹시 마가로프라는 사람을......." "듣기 싫다고 했잖아!" 노인,베스튜라가 길길이 날뛰며 지팡이를흔들어 댔다. 그러나 다음 순간,베스튜라는 움찔하며 다가오더니 망토를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아크를 보며 물었다. "자네,혹시 이스트 월을 넘어온건가?" "네,그렇습니다" "그럼 역시 이건 갈가쉬의 모피?" "맞습니다. 갈가쉬라는 몽구스의 모피입니다" 아크가 고개를끄덕이자 베스튜라의 눈빛이 돌변했다.잠시 눈을 굴리던 베스튜라는 갑자기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오랫동안 악명을 떨치던 갈가쉬를 쓰러트리다니 자네,이제보니 굉장한 전사였군.그래,훌륭한 전사는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지.여기앉게,아아,대충 치우고 앉으면 되네.그런데 무슨 용건이라고 했지? 사람을 찾는다고 했나?" 무슨 치매환자인가? 순식간에 안면을갈아엎다니.......정말 적응이 안되는 노인네다. 어쨌든 덕분에 분위기는 좋아진것 같으니 다행이다. 아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네,마가로프라는 사람입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마가로프........혹시그도 자네처럼 중간계에서 넘어온 사람인가?" "제가 어디서왔는지 아십니까?" "괜히 나이를 먹은게 아니네.자네가 알고 있는것 이상을 알고 있지" 베스튜라가 히죽웃으며 대답했다. 살짝 맛이간듯한 노인네지만 역시 뭔가 알지도 모르겠다. "네,맞습니다. 저는 그를찾아 이곳으로온겁니다" "넘어온 시기는?" "수백년 정도 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겠군.하지만 알아낼 방법은 있네" 베스튜라가 집안 가득 쌓여있는두루마리를 가리켰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이주변에서 일어난 모든것을 기록하는 일을 하고잇지. 맞아,유계의 역사를 기록으로남기는것.그게 우리 일이야.멋지지않나? 만약 그가 이 근처를 지나간적이 있다면 그에대한 기록도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걸세.어쩌면 자네가 알고 싶어하는것 이상의 정보를 찾을수도 있을거야" "알아봐 주실수 있겠습니까?" 아크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베스튜라는 기다렸다는듯이 대답했다. "물론이지.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말이야" "네? 부탁?" 이제 처음 본 사람에게 뜬금없이 무슨 부탁이란 말인가? 아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자 베스튜라는 한숨을 불어내며 말을 이었다. "실은 지금 나는 매우 큰 곤경에 빠져있네" "............곤경이라면?" "자네도 이곳까지 오면서 망자라는 존재를 봤을거네" "네,몇번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사실 망자들은 유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는 존재들이라네.그건 유계를 지탱하는 힘의 흐름과 관련된 문제인데.......아니,그건 됐고,어쨌든 망자들은 이세계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들이지.그런데 근래들어 주변에서 망자들이 사라지는 일들이벌어지고 있네" 베스튜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긁적였다.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는 기록자네.소문의 진상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나는 망자들이 사라진다는 하겔숲으로 조수를 파견했지.그런데 호기심많은 손자녀석이 부득부득 따라가겠다고 우긴거야.무슨 일이야 있겠냐 싶어서 허락했는데........." "아직 돌아오지않았군요" "바로 그거네.아직가지 돌아오지않은걸 보면 분명 무슨일이 생긴거야.조수가 제법 경험 많은 녀석이라 안심한게 실수였어.아아,보나.......보나에게 무슨일이라도 생겼다면 나는...........손자 녀석 걱정때문에 도저히 다른일을 할수없을 지경이네.그런데도 이 마을 경비병놈들은 들은척도안하지 뭔가? 그렇다고 내가 갈수도 없고 말이네" 베스튜라는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자,부탁이네.자네가 손자를 좀 찾아와 주면 안되겠나? 갈가쉬를 해치운 자네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않나? 응? 그렇게만 해주면 자네가 원하는건 뭐든지 해주겠네" '퀘스트다!' 아크의 눈동자에서 반짝반짝 빛이났다. 유계에서 받은 첫 퀘스트.어떤 보상을 줄지 알수없다. 게다가 보너스로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의 단서를 찾아낼 가능성도 많았다. 거절할 이유가없는것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두둥,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베스튜라의 걱정 유게 변경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한 노인의 의뢰를 받았습니다. 베스튜라라고 불리는 노인은 주변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근래,주변에서 수상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하겔숲으로 조수와 손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돌아올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없습니다. 하겔 숲에서 이들을 찾아 무사히 데려와야 합니다. <난이도 : C >] '그러고보니 퀘스트도 꽤나 오랜만이구나'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퀘스트 정보창을 바라보았다.막상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공성전에,아란 척살에,다크브라더의 일까지.......정말 정신없이 지냈지만 정작 퀘스트는 받지못했다. 그러나 역시 게임의 백미는 퀘스트.그리 복잡한 퀘스트도 아닌듯하니 기분 전환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자,그럼 출발해 볼까?" 아크는 베스튜라의 집을 나와 마을 입구로 향했다. 먼저 하겔숲으로 떠나기 전에 해야할일이 있다. 퀘스트의 난이도는C.현재 아크의 레벨을 생각하면 그리 높은 난이도는 아니다.그러나 세상일은 모르는법.만의 하나라도 죽었을때를 대비해 부활장소를 갱신해 두어야한다. '지금 부활장소로 등록된 곳은 중간계의 붉은 황야 밖이다. 게이트가 닫혔으니 만약 여기에서 부활장소를 갱신하면현재로서는 중간계로 돌아갈 방법이 없어' 그런 생각 때문에 마을에처음 도착했을때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유계에서 마가로프의 단서를 찾아냈으니 그런 위험한 상태에서 퀘스트를 진행할수 없다. 마을 입구에는 뼈와 짐승 가죽으로 만들어진 토템이 서있었다. 토템은 예전에 카이로트로 향하는 정글에서 본적이 있었다. 인간의 마을에서는 병참이 부활 장소로 사용되지만,다른 종족의 경우 마을 입구에 세워진 토템이 병참 역활을 대신하는것이다. 역시나 토템에 손을 가져가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유계의 변경에 위치한 '계곡 마을'을 새로운 거점으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하면 이전 거점이 취소되며 사망시 패널티와 함께 토템에서 부활할수 있습니다> 등록을 끝낸 아크는 지도를 펼쳐보았다. 베스튜라가 표시해준 붉은 점이 멀지 않은 곳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라둔을 이용하면 10~20분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거리. "자,그럼 출발해 볼까? 라둔,변신을...........어라?" 막 라둔을 변신시키려던 아크는 놀란 눈길로 계곡 입구를 바라보았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입구로 3명의 그림자가다가오고있었다. "가만..........저 통통한 것들은 설마............?" "헉헉헉,마,마을이다!" "흑흑흑,얼어죽는줄 알았어요" "몬스터에게 쫓기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배고파요.형님" "조금만 참아.마을에 들어가면 좀 쉴수 있을거야" 모래바람을 헤치며 마을로 다가오는 오동통한 3명의 상인.그렇다,이들은 아크의 뒤를쫓아 유계로 들어온 아기돼지 삼형제였다. 이들은 그림안으로 뛰어들떄만해도 온갖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안에 꿈에도 그리던 보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거라고 기대한것이다. "후후후,이제 모든 고생은 끝났다. 기회를 봐서 아크 놈에게 이걸 사용해 뒤통수를 치고 보물을 가로채기만 하면돼!" 이들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아크의 뒤를 쫓은건 아니었다. 3명이 모두 달려들어봤자 아크를 이길수 있을리가 없다. 때문에 그들은 진즉에 몇날 며칠을 경매장에서 헤맨 끝에'비장의 무기'를 손에 넣엇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알고 있는 사기적인 아이템,최후의 순간 확실하게 아크의 뒤통수를 칠수 있는 무기말이다. "자,이제 고생 끝 행복시작이다!" 푹, 푹, 푹! 아기돼지 삼형제는 그대로눈속에 묻혀버렸다. 게이트로 도착한곳에는 그들이 기대하던 보물따위는 그림자도 없었다. 사방이 온통 눈!그리고 살벌한 추위만이그들을 반겨줄뿐이었다. 게다가 앞서 들어온 아크의모습도 보이지않았다. 사실 오두막과 유계를 이어주는 차원의 문은 들어올때마다 위치가 바뀌는 구조였다. 즉, 아크가 들어온 문이 사라진건,뒤이어 아기돼지 삼형제가 차원의 문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부터 그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중간게에서는 제법 돈을 만지던 상인이다. 그러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설산에서 그들은 그저 세상에 버려진 아기돼지 일뿐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몰래몰래 아크를 뒤쫓기 위해 가방을 온통 여행 관련 물품으로 가득 채워놨다는 점이었다. 두툼한 외투도 가지고 있었고,식량도 충분했다. 그리고'야영'스킬과 템트도 잇었기에 아크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은 상인이다. 아크보다 먼저 설산을 내려왔지만 황야는 그들에게 너무나 위험한곳이었다. 멀리서 몬스터만 보아도 줄행랑을치기를 반복, 결국 식량이 바닥을 드러낸 뒤에야 마을에 도착했다. 반면 아크는라둔을 타고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것이다. "이 마을에서 아크에 대해 아랑보자" "그런데 이곳에 온지 보름이 넘었잖아요" "놈은 벌써 보물을 챙기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요" 삽질이와 울먹이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북실이도 그게 가장 걱정스러웠다. 만약 아크가 벌써 볼일 다보고 돌아갔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삽질로 끝나버리는것이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는 않앗더라도 보름이나 행적을 놓친 아크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알수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수는 없잖아.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어" "그건 그렇지만............" 그렇게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두런두런 떠들며 마을에 도착했을때였다. "이런곳에서 만나니까 되게 반갑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올린 북실이는 목까지 튀어나오던 비명을 가까스로 삼켰다. 팔짱을 낀채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놀랍게도 아크였다.삽질이와 울먹이도 놀랐는지 숨을 들이켜며 다급한 목소리로 속닥였다. "헉,아,아크다.형님 .아크예요" "나도 보고잇어.젠장,찾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마주쳐 버리다니........." "어쩌죠? 들키면 안되잖아요?" 북실이는 뒤룩뒤룩 눈깔을 굴리다가 중얼거렸다. "아니야.차라리 잘됐어.어쨌든 우리도 놈을 찾지 못하면 죽도 밥도 안되잖아.게다가 어차피 들켜버린이상 도망쳐 봐야 소용없어.놈이우리의 목적을 의심하면 몰래 따라붙기도 힘들거야.그렇다면 차리리 놈과 함께 잇자.같이 다니다가 뒤통수를 치는거야" "하지만 놈이받아줄까요?" "후후후,내게 생각이 있어.놈은 단순해.일전에 우리가 팬이라고 한말도 믿었잖아.분명 놈은그런것에 약한 타입인게 틀림없어.왜있잖아,주변에서 칭찬해 주면 정말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저녀석도 그런게 틀림없어.잠깐 나 좀 가려봐" 그렇게 말한 북실이는 살짝 몸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눈을 푹 찔렀다. 순식간에 눈이 시뻘겋게 변하며 눈물이 질질 흘러나왔다. 북실이는그 상태로 아크에게 달려왔다. "아이고,아크님!이제야 만났군요!" "흠............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거지?" 아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며 물엇다. 북실이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대며 대답했다. "아크님을 찾아왔습니다" "나를?" "네,실은말입니다. 팬클럽에서 아크님을 후원하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런데라니요? 우리 팬클럽은 아크님의멋진 경기 장면에 반해서 생겨난겁니다. 하지만 요 글내 통 경기를 하지않으시니 회원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요" "그래서? 후원금을 못 주겠다는거냐?" "아,아니요!그건 절대 아닙니다. 어쨌든 그래서 아크님을 존경하는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크님의 멋진 모습을 회원들에게 홍보할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 냈죠.아크님처럼 훌륭하신 분이라면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게 멋진 모험을 하고 계시겠죠? 만약 그 멋진 모험을 영상에 담아 보여주면 회원들도 감동할겁니다. 게다가 회원수가 늘어나면 후원금도 더 많아지겠죠" 북실이가 손을 비비적거리며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어때요? 기가 막힌 생각 아닙니까? 그래서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저희들이 대표로 아크님을 찾아나선겁니다. 오직 존경하는 아크님의 활약상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히............정말 우연히.........붉은 황야로 가셨다는 소문을듣고 따라오다보니 이런곳까지 오게된겁니다" 북실이는 불쌍한 표정으로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크흑,저희가 여기까지 오기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실겁니다. 하지만 오직 아크님을 만나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버텨냈지요.제가 생각해도 참 대견스럽습니다" "형님!" "아우들아!" 설움이 북받치는지 아기 돼지 삼형제가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다.............정말이지 '쌩쇼'를 하고있다. '이자식들이 어떻게 내 뒤를 밟은거지?' 아크는 미간을 찡그리며 놀고있는 아기돼지삼형제를 쏘아보았다. 그따위 웃기지도 않는 핑계를믿을 아크가아니다. 놈들도 마가로프의 유산을 노린다는것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 어떻게 아크의 뒤를 밟아 유게까지 따라왔는지는 모르지만, 결국은 뒤통수를 치려는 속셈이리라. '죽어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군' 아기돼지 삼형제를 포장육으로 만들어 버리는건 일도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향,고작 이런 놈들을 죽이고 카오틱이 된다는게 영 마음에 들지않는다. 그렇다고 놈들의 요구대고 달고 다닐수도 없는일. '어쩐다............가만,이녀석들 상인이잖아? 그렇다면.......' 순간 아크는 아기돼지 삼형제를포장육으로 만드는것보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크는 대강 머리를 정리한뒤에 다가갔다. "나는 정말 감동했다." "네?" "나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팬이 있다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의 부탁을 들어주기가 부담스럽다. 솔직히 이곳은 나혼자 살기도벅차.원래 다른 사람하고 같이 다니는 체질이 아니라 너희들을 보호해줄 자신도 없고.어쩌면 내 이득을 위해 너희들을 죽음으로 몰아야하는 상황이 생길지도몰라" "그런거라며 거거정하실 필요없습니다" "네,저희는 죽음도 두렵지않습니다" "아크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같이 다닐수 있게만 해주신다면 잔심부름이든 뭐든 다할게요!" "나를 위해서는 뭐든 한다 이거지?" 아크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오른건 그때였다. "좋아,그럼 하나 묻자.너희들 이곳에 들어와서 부활장소 갱신한 적있냐?" "아뇨.여기가 처음이에요.이제 막 하려던 참입니다" "하지마라" "네?" "사실 그렇지않아도 내가 아주 곤란한 상황에 빠져있던 참이야.여기저기에서 아이템을 잔뜩 긁어모았는데 이곳에서는 팔아치울수가 없단 말이지.뭐,멀리 떨어진 도시에서는 거래가된다고 하는데 당장 가방에 여유가 없단 말이야" "그,그런데요?" 아기돼지 삼형제는 정체불명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간단해.너희들 중 1명이 대신 좀 팔아줘야겠다" "여기서는 물건을 팔수 없다면서요?" "그러니까 너희중 1명이 다시 중간계로 돌아가서 팔아야지" "에엑? 하,하지만 저희는 돌아가는길도 몰라요" "부활 장소 갱신 안했다며?" ".........!" 그제야 아크의 의도를 알아챈 아기돼지 삼형제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버렸다. 그렇다, 이계로 들어와서 부활장소를 갱신하지않았으니 죽으면 중간계에서 부활할게 아닌가? 다시 말해 아크는 자신의 물건을 받아들고 죽으라고 말하는것이다. 사실 이런 방법은 온라인게임에서 종종 사용되었다. 마을까지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릴경우,그냥 죽어버리는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른게임에서나 사용하는 방법.죽으면 경험치와 스탯이 깎여 나가는 뉴 월드에서 그런 방법을 쓰는 유저는 없다. "너희들 내 팬이라며?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는 팬이 그정도도 못해줘?" "하,하지만 그건........." "그리고 너희들도 내가 모험을 해야 영상을 찍든 말든 할거아니야? 솔직히 나는 지금 물건을 팔러 중간계로 돌아가야 할상황이라고.고작 물건 팔러 다시 돌아가는 그런걸 찍고 싶은거야?어차피 촬영하는데 3며이나 필요없잖아" 아기돼지 삼형제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잠시 얘기좀하고 올게요" 결국북실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후미진 곳으로 물러났다. 울먹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울먹였다. "혀,형님.어쩌죠?" "음.........사악한 놈같으니.우리 목숨을 파리똥처럼 생각하는게 틀림없어.하지만 꼭 나쁘게만 생각할일은 아니야.어쨌든 놈이 같이 다니는거에 대해서는 별말 하지않는걸보니 우리 목적을 눈치채지는 못한거 같아.기회가 있다는 말이지" "그럼..........?" "울먹아,이번에는 네가 좀 고생해야겠다" 북실이가 막내의 어깨에 족발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주,죽으란 말이에요?" "달리 방법이 없잔아.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놈이 어떻게 나올지몰라.게다가 이미 놈에게 들켰으니 몰래 따라다니기도 힘들고.일단 요구를 들어주고 같이 다니는 수밖에 없어" "크흑...........너무해요" 울먹이의 눈망울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미안하다.이 형이 못나서..........하지만 네 희생은 결코 헛되게 하지않으마.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물을 가로채겠어.그때가 되면 웃으면서 오늘일을 얘기할때가 올거다" "흑흑흑,알았어요" "미안하다.울먹아!" 아기돼지 삼형제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틈만나면 쌩쇼다. "알겠어요.아크님을 존경하니까.부탁을 들어드릴게요" 잠시후 아기돼지 삼형제가 눈이 팅팅 부은 얼굴로 돌아왔다. "아,이제 살았다. 고마워.은혜는 잊지않을게.그럼 계약서 좀 써줘"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 울먹이=아크> 울먹이는 아크에게 받은 아이템을 판매하고,마법 학회에 등록된 아크의 전이우편함으로 송금한다.판매 대행에 대한 수수료는 일절 없으며 모두 무료 봉사한다] 아크는 계약서를 받은뒤에 잡템을 몽땅 건네주었다. "그럼.........가볼게요" 울먹이는 잠시 두 형을 바라보다가 쓸쓸히 몸을 돌리고 죽으러(?)갔다. "크흑.........울먹아,네 희생을 헛되이 하지않으마........." 북실이와 삽질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먼길 떠나시는 막내의 모습을지켜보았다. 그러나 아크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훗,감히 누구앞에서 잔머릴 굴려?' 물론 아크는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유게의 몬스터들은 잡템을 많이 떨군다. 다시말해 이곳에 있는한,가방이 가득 차는상황은 다시반복될터.북실이와 삽질이는 그때를 위한 비상가방이다. 가방이 꽉 찰때마다 핑계를 붙여 한 놈씩 황천으로 보내 판매대행을 시킬 속셈이었다. 아니,굳이 힘들게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적당한 시기에 계약서만 미리 받아놓으면 전투 상황에서 죽도록 유도할수도 있는것이다. '두놈이 남앗으니 앞으로 두번은 써먹을수 잇다!' 이제 한동안 가방 걱정 없이 살수 있다.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기전에 네놈들은 몽땅 상점행이다' 그야말로 사악함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찍어놓은 상대에게는 인정사정없는 아크였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북실이는 아크와 동행하는동안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다. 만약 그걸 유저들이나 게시판 따위에 공개하면 아크의 행적이 드러나게 된다. 가능하면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안은 아크에겐 꽤나 곤란한 문제다. 그렇다고 찍지말라고하면 이들을데리고다닐 핑계가 없어진다. 그러나 그 문제도 잠시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기록은 어떻게 남길 생각이지?" "네? 그야 동영상 캡쳐용 아이템을 사용해서......." 북실이가 가방에서 만원경 비슷하게 생긴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황금 만능주의가 만연한 뉴 월드에서는 동영상을 캡쳐하는것도 아이템을 구입해야 가능했다. [레지컬의 마법 영사기 마법 학회가 자신있게 내놓은 명품 마법 영사기! 고대의 비술인 메모리 크리스털의 기술을 응용해 만든 영사기로 눈앞에 벌어지는 모든일을 기록으로 남길수 있습니다. 단, 메모리는 1시간용이며 영사기와 별도 판매합니다] 취미용 아이템치고는 제법 비싼 편이지만 뉴월드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이다.로코도 진지하게 구입을 고려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럼 변신해야겠군.내 팬들은 다크울프로 알고있으니까" 그렇다,다크울프로 변신하면 아크와는 별개의 인물이 되는것이다. 동영상 공개는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말! "자,그럼 갈까?" 다크울프로 변신한 아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늑대와 아기돼지...........이들의 관계는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TYPE BY RAYAN ACT 7 망자 사냥꾼 "흠............이것도 쓸만하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속. 늑대 한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열매를 모으고있다. 윤기가 흐르는검은털을 가진 늑대,아크가 변신한 다크울프였다. 마을을 나온 아크는 1시간이 지난뒤에야 하겔숲에 도착했다 .라둔을 타고오면 20분도 안될 거리였지만 아크는 그냥 걸어왔다.북실이와 삽질이를 라둔에 태우고 싶지도 않았고,다른 할일이 넘쳤기 때문이다. "후후후,마음놓고 아이템을 긁어모으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군" 보름이 넘도록 가방에 신경쓰느라 아이템 하나 마음편이 못 집어먹었다. 뭔가를 집어넣으면 뭔가를하나 뱉어내야하니,그럴때마다 스트레스가 팍팍 쌓였던것.그러나 이제 돼지들 덕분에 가방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니,어쨌든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기전에 몽땅 죽여야하니 아이템을 팍팍 모아야한다. 때문에 아크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닥치는대로 아이템을 긁어모았다. 숲에 널린 각종 식재료,'마법탐지'로 찾은 마법재료,뭐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크르르르...............! 어두운숲에서 몬스터뗴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 역시 깔끔하게 썰려 아크의 가방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얼음동굴과 황야를 지나며 올린레벨,추가로 올린 능력치,어둠 속성 보너스.............이미 주변에는 아크를 위협할만한 몬스터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레벨도 레벨이지만,능력치로 보면 아크를 따라올 유저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덕분에 사냥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아크의 가방이 묵직해질때마다 북실이와 삽질이의 얼굴은 점점죽어갔다. 아크의 가방이 꽉 찬다.그건 둘중하나가 죽어야한다는뜻임을 알고 있는것이다. 덕분에 두마리 돼지는 늑대의 도시락(?)이 된듯한 심정으로 오들오들 떨어야했다. "자,일단 주변의 식재료는 다 챙겼고,이제 본격적으로 퀘스트를 해결해 볼까?" 아크는 손을 탁탁 털며 탐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숲은 생각보다 넓어서 좀처럼 단서를 찾아낼수 없었다.그때,혀를 날름거리며 주변을 훑던 라둔이 꼬리를 바짝 세우며 한쪽을 가리켯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라둔이 '스토킹'을 사용했습니다. 라둔은 숲에서 수상한 발자국과 바퀴자국을 찾아냈습니다. 라둔이 스토킹으로 알아내자 자국의 윤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퀴자국? 베스튜라는 조수와손자만 보냈다고 했는데.주변에 나있는 발자국은 최소한 20명이상이다. 그렇다면 내가 찾는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건가? 아니야,혹시 모르니 일단 알아봐야겠다' 쌕쌕쌕쌕! 라둔은 뿌듯한 얼굴로 끄덕이며 앞쪽을 가리켰다. 발자국와 바퀴자국이 향한 방향이었다. 아크는 라둔을 앞세우고 바퀴자국을 쫓아 숲으로 더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따라 들어갔을까? 넓은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문득 앞쪽에서 미약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누군가 부상을 입고 나무둥치에 기대어 있었다. '파란 피부........뮤탈이다.혹시..........?' 아크가 얼른 다가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괜찬습니까?" "크...........누,누구요?" "저는 계곡 마을에서 베스튜라라는 분의 부탁을 받고 온사람입니다" "베,베스튜라.............선생님 말입니까?" 사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려 아크를 바라보았다.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베스튜라 님의 손자는 어디있습니까?" '이런젠장............' 아크는 지금 상황에 필요한게 뭔지 알고있다. 보통 퀘스트 도중 부상을 입은 NPC를 만났을때,그런 NPC는 죽지않은 상태라도 자동으로 생명력이 회복되지않는다. 회복마법이나 포션을 사용해야만기력을 찾는것이다. 퀘스트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NPC를 죽도록 놔둘수 없는 노릇. 아크는 눈물을 머금고'움마의 수액'하나를 건네주었다. 그제야 사내는 기력을 찾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베스튜라 선생님의 조수로 일하는 그란이라고 합니다.얼마전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보나 님과 함께 이숲을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크족을 만나는 바람에............" "나크족?" "북부일대를 지배하는 뮤탈입니다. 우리와 달리 호전적이고 같은 뮤탈이라도 서슴없이 살해하는 끔찍한 놈들이죠.왜인지는모르지만, 선생님이 조사하던 망자 실종사건은 놈들 짓인거같았습니다. 철창이 쳐진 마차에 망자를 싣고가는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선생님에게 알리기위해 돌아나오던 도중에 놈들에게 들켜 습격 받고말았습니다" "그럼 보나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놈들에게 당하고 쓰러진 사이에 끌려간것 같습니다. 크윽,이러고 있는 사이에 보나님이 놈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서둘러야겠군요.안내하십시오" 아크가 대수롭지않게 말하자 그란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도와주겠단 말입니까?" "도와줄 생각이 없다면 여기까지 왜 왔겠습니까?" "하,하지만 놈들은 나크족입니다. 게다가 아마 20명은 될겁니다. 나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봤지만 놈들에게는 제대로 창조차 휘둘러보지못하고 당했습니다. 그래도 도와주겠단 말입니까?" "무고한 사람을 잡아가는 놈들을 어떻게 모른척하겠습니까?" 그란은 멍청한 눈빝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꽤나 감동 먹은 모양이다. 하긴,갑자기 숲에서 나타난 사람이목숨을 걸고 도와준다니 감동받을 만하다. 그러나 사실 아크는 보나의 목숨따위는 관심없었다. 목숨을 거는 이유는오직 퀘스트를 위해서.그리고 답지않게 목소리를 까는 이유는............ "오케이,불의를 참지않는 주인공의모습.아,좋았어요.이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죠" 뒤에서 마법 영사기를 돌리던 북실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일단 아크를 따라올 핑계였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한 북실이는 본격적이었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아크는 검을,북실이는 마법 영사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마치 전문 사진작가처럼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촬영하겠답시고 슬라이딩까지 해가며 마법 영사기를 돌렸다. 처음에는 그런 북실이가 꽤나 거치적거렸다. 그러나 아크의 생각이 변한건 촬영 내용을 검열해 본뒤였다. 아크는 자신이 게임하는 장면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검은 늑대가 검을 휘두르며 거대한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장면을 보니꽤나 근사했다. '이런장면을 다른사람들에게 보여줄거라 이거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크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다.어차피 다크울프로 변신해서 정체가 밝혀질 일은없다.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한번 찎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란은 멍청한 얼굴로 북실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게 뭡니까?" "그런게 있습니다"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쪽입니다" 수풀에 몸을 숨긴 그란이 앞쪽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몇분 정도 이동한 아크는 곧 나크족을 찾을수있었다. 숲 안쪽에 위치한 둔덕 위,모닥불가에 20여명의 나크족이 모여있었다. '퍼렁이 다음에는 빨갱이냐?' 뮤탈은 부족에 따라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있는데,나크족은 붉은색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란이 말한 철창 마차가 보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십수명의 망자들이갇혀있었다. 물론 망자 따위는 어찌되든 관심없다. 구출해야 할 상대는 그속에 섞여있을 베스튜라의 손자,보나였다. 그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역시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아직 다 회복도 못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맡겨 주십시오" 아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크족의 레벨은 290~300사이. 반면 아크는 황야에서 레벨을 더 올려 238.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333이다. 그러나 이제 아크는 레벨로 전투력을 판단할 시기가 지났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스탯 보너스를 받아 레벨에 비해 모든 능력치가 상당히 높앗다. 그리고 어둠 속성 보너스는 단순히 레벨을 올려주는게 아니다. 전체 능력치를 40%올려주는 특성이다. 지금까지 받은 스탯보너스가 고스란히 적용된다는뜻.거기에 항상레벨 30~40이상의 유저와 맞짱 뜨던 전투감각까지 고려하면 실제종합 전투력은 그보다 한참 높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덤벼들수는 없지' "데드릭,가서 대여섯 놈 정도만 끌고와봐" "알았다 ,주인" 데드릭이 거침없이 나크족의 야영지 근처로 날아갔다. 보통 이렇게 야영지에서 무리지어 있는 몬스터에게 접근해 일부를 유인해 내기는 쉽지않다. 그러나 데드릭은 이런일에 전문이었다. 게다가 전투 중에도 항상 한두마리를 유인하는일을 도맡다 보니 새로운 전문 스킬까지 생긴 상태였다. -소환수'데드릭'이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도발(초급,액티브) : 상대를 화나게 해서 자신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도록 만듭니다. 더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상대를 열받게 만들수록 지속 시간과 효과 범위가 넓어집니다. <10미터 거리 내에서 사용가능.마나소모 : 30> 데드릭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스킬이다. 데드릭은 인내심을가지고 놈들이 주변을 순찰할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후,딱 알맞게 7명이 야영지에서 나오자 작은 돌하나를 집어던졌다. "뭐야?" 나크족이 고개를돌리자 데드릭이 씨익 웃어보였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썩소! 괜히 기분이 더러워진 나크족 전사들은 무기를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데드릭은 나뭇가지 사이를 빠르게 가로지르며 놈들을 숲속 깊이 유인했다. 요란스럽게 전투를 벌여도 다른놈들이 알아차리지못할만큼 거리가 벌어졌을떄,'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아크는 출격했다. 첫 일격은 뒤통수를 노린 백스텝! "컥, 뭐,뭐야?" 나크족 하나가 벌렁 넘어지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7명.약간 빡셀거 같지만 일단 한번 붙어보자!" 아크는 귀살검을 휘두르며 나크족 사이로 뛰어들었다. 확실히 나크족은 일반 몬스터에 비해 강한 편이엇다. 힘이나 체력도 그리높은 편이 아니었고,허접스러운 가죽갑옷을 입고 있어 방어력도 낮았다. 그러나 민첩성과 공격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놈들은 모두 얇은 쌍검을 사용하고 있었는데,휘두르는 속도가 눈부실 정도였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서너방의 공격이 들어올정도! 그러나 아크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웃음이 번졌다. "소곧로 붙어 보자는거냐? 좋지,받아라,섬아!" 순간 아크가 한줄기 빛이되어 쏘아져나갔다. 그리고 마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벼락처럼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나크족을 휩쓸었다. 스사사사삭,푸아아악! 동시에 소름끼치는 기음이 울리며 피 분수가 뿜어져 올라왔다. 일격,단 일격에 7명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새로익힌 세트 스킬'섬아'의 위력이었다. 일단 무슨 스킬이든 배워두면 좋다.혹시라도 우연히 짝이 맞아 세트스킬을 배울수 있을지도모르니까. 그런 아크의 생각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그 효과가 나타난건 '다크댄싱'에 이어'전력질주'까지 중그으로 올랐을때였다. [많은 경험으로'전력질주'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강력한 검이나 튼튼한 방어구로 생존 확률을 높이는데는한계가 있습니다.도망치는것은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적에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만용이야말로 부끄러운 행동임을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검과 방어구보다 빠른 다리가 더욱 도움이 되는법입니다. 중급이 되어 보다 많은 마나를 폭발시켜 더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초간 이동속도+75%,마나소모 : 30> *'검투술'과 '다크 댄싱','전력질주'의 3종 세트효과로 오의奧義'섬아'스킬을 익혔습니다.<습득 조건 : 검(검투술)계열의 스킬과 직업특수 보법(다크댄싱)계열,대쉬(전력질주)계열은 모두 중급이상,숙련치 합계가 500이상이 되어야 익힐수 있는 오의(각각의 직업에 따라 배울수 있는 스킬의 종류와 효과가 다릅니다.)>] [섬아閃牙 : 마나를 폭발시켜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를 한계치까지 상승시키는 오의.플레이어는 검신일체가 되어 섬광처럼 전장을 누비며 주변의 모든 적을 공격할수 있습니다. 단,속도에 치중한 필살기라 공격력은 떨어지게 됩니다. 대신 놀라운 반응속도와 반사신경 덕분에 회피율과 치명타확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섬광 발동시 반경 20미터 내의 모든 적에게 공격력의 70%전체 데미지,회피율,치명타 발생확률 30%상승.마나소모 : 500>] 메이저스킬에 '다크댄싱'과 '전력질주'를 등록시켜 성장 속도를 올린덕분이다. 한번검을 휘두르면 채 검을 거두기도 전에 반경 20미터 범위의 모든 적에게 데미지를 가한다. 검으로 사용하는 광역스킬이나 다름없었다. 공격력의 70%만 적용되는 게 아쉽지만 '칼날정비'나 '엘리멘탈 소드'로 공격력을올려놓으면 문제가 되지않는다. 황야에서는 몬스터가 한마리씩밖에 나오지않는다. 데미지로는 다크블레이드보다 못하면서 마나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섬아'를 쓸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마리의 적이 상대라면 얘기는 180도 달라진다! "섬아,섬아!" 아크가 연달아 '섬아'를 날리자7명 모두 생명력이 40%나 깎여 나갔다. 쉴새없이 뿜어져 올라온 피가 비가되어 내릴정도! "크으윽,괴,괴물이다!" 나크족의 사기가 단숨에 바닥까지 내려갔다. "이제 딱 알맞게 익었군.데드릭,데이모스,밟아라!" "덤벼라,빨갱이들아!" 딱딱딱딱! 시작부터 절반이나 생명력을 깎아놓고 하는 전투다. 아크와 소환수들이 파상공격을 펼치자 나크족 전사들은 허망하게 쓰러졌다. 4명이 쓰러지자 나머지가 겁을집어먹고 도망쳤다. "우리 실력으로는 무리다.도움을 요청해!" "어림없다" 아크는 도토리만한 나딩키의 열매를 꺼내 손가락으로 튕겼다. 열매가 나트족에게닿자 넝쿨같은것이 확 뿜어져 나오며 팔다리를 휘감았다. 덕분에 놈들의 움직임이 슬로비디오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눈 깜빡할사이에 귀살검에 썰려 바닥에 누웠다. "이,이럴수가 전신戰神,전신이다!" 순식간에 7명의 나크족을 처리하자 그란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마법영사기를 돌리던 북실이도 입을 쩍 벌린채 말을 잇지못했다. 그러나 사실 가장 놀란 사람은 아크였다. 그 역시 나크족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압승을 거둘줄은 예상하지못했던것.황야에서 몬스터를 한마리씩 상대할때는 그러려니 했는데,막상 많은 숫자와 싸워보니 강해졌다는 실감이 들엇다. 아니,이건 강해졌다는 정도가 아니다. 레벨 290이상 나크족 일곱마리를 처리하고도 생명력이 40%밖에 줄지않았다. 게다가 데드릭과 데이모스는 거의 생명력이 줄지않았다. 그만큼 부담이 없었다는 뜻이다. '혹시 나크족이 엄청나게 약한건가?' 그런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든 이정도면 10명...........아니,나머지 15명도 너끈하다.하지만 같은 전투를 반복하면역시 지루하겠지? 마침 딱 좋군.어디,간만에 한번 써먹어 볼까?' 아크는 마법 영사기를 힐끔거리며 연극하듯 말했다. "음,역시 만만치 않는 놈들이다. 물론 못 이길정도는 아니지만, 진정한 전사라면 언제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최선의 방책을 짜내야 하는법" 아크는 곧바로 냄비를 꺼내들고 요리를 만들었다. 설산에서 얻은 만년설의 결정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거기에 몇가지재료를 섞자 곧 서바이벌 요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만들어진 것은 완성된 요리가 아니었다. -만년설 빙수 만년설의 차가움이 그대로 녹아 있는 빙수.각종 음식에 섞어 속성을 바꿀수 있습니다. 단,함부로 먹으면 서서히 체온이 내려가 한기가 뱃속까지 스며듭니다. <음식에 섞을때 추가 효과 : 10분간 냉기 속성 저항력+50%,화염 저항력+50%>] 아크는 빙수를 들고'은신'을 사용해 야영지로 숨어들었다.마침 나크족은 저녁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엇다. 아크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솥에 빙수를 쏟아넣었다. 그리고 다시 물러나 상황을 지켜보았다. "음,맛있는 냄새가 나는군.이제 먹어도 되겠어" "야,다들 저녁 먹어!" "아직 순찰 나간 녀석들이 안왔는데?" "그놈들건 따로 남겨두면 되잖아" "어라? 오늘은 왠지 수프가 더 맛있는걸" 나크족 전사들은 게걸스럽게 수프를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기 않았을때였다. "어라 ? 그런데 수프를 먹었는데 왜 더 추워지지?" "으으으,장난 아니잖아.왜 이렇게 추운거야?" '지금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크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북실이가 마법 영사기를 돌리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크님,저희는 응원할게요!멋진 장면 부탁해요!" 아크는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살짝 웃어주는것을 잊지않았다. "라둔,변신!가자,데드릭,데이모스!" 쌕쌕쌕! 아크는 라둔마를 타고 야영지로 돌격했다. 콰콰콰쾅! 라둔마가 돌진하자 야영지는 순식간에 난장판이되었다. 불붙은 장작개비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솥단지가 뒤집혔다. "뭐,뭐야? 이 도마뱀과 검은 늑대는?" "습격이다!" "됐어!라둔,돌아와라!" 아크는 냉큼 라둔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사실 라둔마를타고 돌진한건 그럴듯한 영상을 위해서였다. 물론 라둔마는 전투시에도 사용할수 잇다. 라둔마를 타고 싸우면 공격력과 방어력에 10%의 보너스까지 붙는다. 그러나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앞으로 돌격할때는 이동속도가 500%나 되지만, 뒤로 물러나거나 방향전환을 할때는 상당히 느리다.승마 스킬이 올라가면 좀 나아지겠지만 아직 아크의 승마스킬은 초급.그래도 아군들과 파티를 이루고 돌진할때는 상관없지만, 일대다수의 전투에선느 오히려 불리한것이다.때문에 마상 전투는 대규모 전투나,중갑을 입은 기사가 아니면 하기힘든 전투 스타일이었다. '어쨌든 방금전의 장면은 꽤 그럴듯했지?' 아크는 씨익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엘리멘탈 소드,얼음 속성!" 스킬을 발동시키자 귀살검이 하얀냉기로 휩싸였다. 그상태로 나크족을 후려치자 얼음 알갱이가 튀어오르며 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좋아,예상대로 효과가 나온다!' "섬아!" 아크는 빛의 송곳니가 되어 벼락처럼 나크족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얼음의 검에 두들겨 맞은 16명의 나크족이 모두 시퍼렇게 질려버렸다. 아크가 노린게 바로이것이었다. 놈들은 이미 빙수를 먹어 냉기 저항력이 50%나 내려갔다.거기에 얼음의 검으로 후려치니 추가 데미지와 상태이상'결빙'에 걸려버린 것이다. '엄청난 효과다!' 얼음 속성의 좋은 점은 '결빙'이 중첩된다는점이다. '결빙'에 한번 걸릴때마다 15%의 속도 감소. 서너 방을 중첩시키면 50%이상 속도를 감소시킬수 잇다. 게다가 100%가 되면 한동안 '냉동'상태가 되어 움직이지못하게 된다. 얼음속성의 마법 무기가 유난히 비싼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스킬을 자유자재로 써서 얼음 속성 검을 사용할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섬아'를 사용하니 모든적에게 동시에 얼음 속성 데미지를 주게된 것이다. 물론 치명타가 터져야 상태 이상이 발동한다.그러나 아크는 원래 엄청난 민첩과 치명타율로 먹고살던 유저.게다가'섬아'에도 치명타 확률이 붙어있어 한번에 16명의 적을 '섬아'로 공격하면 적어도 5명은 치명타가 터지며상태 이상에 빠져버렸다. 서바이벌 요리와 엘리멘탈 소드,섬아의 스킬 조합! 아크는 연속으로 다섯번이나 섬아를 난사했다. "크악!" "으으으,추,추워............" "모,몸이 안움직인다!" 나크족은 단숨에 생명력이 50%이상 빠지고 몽땅'결빙'에 걸려버렸다. 나크족의 장점인 공격속도가 완전히 봉쇄되어 버린것이다. 본래 속도로 움직일수 있는사람은 아크뿐이었다. "결빙이 풀리기전에 화끈하게 가자.귀기개방!" 꺄아아아악! 간만에 봉인이 해제되자 요괴들이 미쳐 날뛰었다. 엘리멘탈 소드에 이어 귀기까지 덧씌워지자 귀살검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소나기처럼 공격을퍼붓자 얼어있던 나크족이 산산이 부서져 날아갔다.빈사상태에 있던 나크족은 일도양단이 발동하며 냉동 고등어처럼 반토막이 나기도했다. 그사이 상태 이상이 풀린 몇몇 나크족이 쌍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렁ㅆ지만, 이미 승기는 완전히 아크에게 기운 상황이었다. 번뜩이는 귀살검의 칼날이 서너번 스치자 놈들도 결국 맥없이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다. "쳇,촬영한다고 너무 막가는거 아냐? 우리가 활약할 기회가 없잖아" 딱딱딱,딱딱딱딱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불만을 터트릴 정도였다. "훗, 너희들의 전의에 찬물을 끼얹었군.미안하다.하지마 전투에서 자기가할일은 자기가 찾아야하지않는가" 아크는 검을 챙겨넣으며 독백했다. 여전히 혼자서 영화를 찍고 있는것이다.그러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도 심장이 쿵쾅거릴 정도로 흥분해있었다.1대 16의 싸움.얼마전까지만해도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못했던 전투였다. 그런 전투에서 깎인 생명력은 고작 60%.압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아크님,굉장해요!" "그많은 적을 혼자 처리하시다니............진정한 전사의 로망이십니다!" 북실이와 삽질이가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긴,상인이 그런 전투를 구경이나 해봤겠는가? "이럴떄가 아니다.서둘러!무고한 사람들을구출해야지" 아크는 판에 박힌대사를 읊조리며 슬쩍 나크족의 시체를 뒤졌다. 역시 인간형 적이라 간만에 장비 아이템이 떨어졌다. [뮤탈 세검(마법) 무기 타입 : 한 손 세검 공격력 : 20~25 내구력 : 23/25 무게 : 20 사용 제한 : 레벨 120,민첩 200이상 유계의 뮤탈 나크족이 사용하는 날카로운 세검.거의 무게를느끼수 없을정도로 가벼워서 사용하기가 매우 용이합니다. 나크족의 종족 특성인 '쌍검'으로 두 자루를 장비하고 휘두르면 아무리 방어력이 높은 적이라도 버티지 못할겁니다. <옵션 : 공격 속도+20%>] [더러운 열쇠 나크족 마차의 철창을 열수 있는 공용 열쇠] '뮤탈 세검? 레베렝 비해 공격력은 형편없지만 공격속도와 옵션이 장난아니군' 나크족의 공격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세검의 영향이었던 모양이다. 공격 속도 20%짜리를 2개나 장비했으니 40%. 두방 떄릴걸 세방떄린다는 말이다.나크족이 둘러싸고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 속도로 두들겨 댔다면 아크라도 버티지못했으리라. 새삼스럽지만 얼음의 검을 사용한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보나님,보나님 괜찮으십니까?" 그때,숲에서 지켜보던 그란이 마차로 뛰어갔다. 그러자 마차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년이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란, 살아있었군요!" "네, 나크족에게 당했지만 선생님이 보내신 이 전사 분꼐서 구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보나가 철창을 부여잡고 아크에게 존경 어린 눈빝을 보내왔다. 아크는 빙긋 웃어보이곤 마차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물쇠를 찾다가 움찔하며 동작을 멈췃다. 마차 안쪽,그곳에서 하얀색 로브를 걸친 여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뮤탈이 아니었다. 아크와 같은 유저,그것도 아크가 아고 있는 여자였다. "레,레리어트님?" 아크가 멍청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레리어트............한동안 잊고 있던 레리어트가 철창안에 있었던 것이다. 레리어트가 움찔하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어,어떻게 제 이름을 아시죠?" "네? 그게 무슨?" 아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뒤늦게 다크울프로 변신했음을 깨달았다. "아,접니다.아크에요" "아,아크님?" "네,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늑대족으로 변신한거에요" "아크님이 어떻게 여기에?"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아크와 레리어트는 잠시 멍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우연한 만남이란 언제나 예상밖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상 밖이라도 이건 심하지않은가? 지금까지 유계로 들어온 유저는 고작 8명.아니,아기 돼지 삼형제까지 포함하면 11명.수백만의 유저가운데 11명이다. 그런곳에서 서로 만나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라고밖에 할수 없었다. "저,저는 퀘스트 때문에..............망자를 쫓아다니다가.........." "아,잠깐만요.일단 마차부터 열어드릴게요" "헉,저,저게 뭐야? 아크님!위!위!위!" 아크가 뒤늦게 열쇠를 마차에 가져가려 할때였다. 숲에서 촬영에 여념이 없던 북실이가 비명을 터트렷다. 반사적으로 고개를들어올린 아크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그림자가 쏘아져 내려왔다. 이어 격렬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몬스터가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뭐야?" "드,드라칸!" 데굴데굴구르던 그란이 고개를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드라칸은 중간계의 와이번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그러나 와이번보다 덩치가 더 크고 흉포한 외모를 가지고있었다. 바닥에 내려선 드라칸은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괴성을 뿜어냈다. 크롸롸롸롸롸-! 숲에서 지켜보던 북실이와 삽질이가 비명을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란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드라칸이 사용한 강렬한 피어 때문이었다.그러나 아크는 직업특성으로 공포에 대한 면역이 50%.새로익힌 패시브 스킬'배짱'까지 합해 공포 면역이 60%나 된다. 괴성따위에 겁을 집어먹고 꼬리를 내릴 아크가 아닌것이다. "이 자식이...........다크블레이드!" 아크는 귀살검을 휘두르며 뛰어올랐다. 드라칸은 뒤로 물러나 마차를 움켜쥐더니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그러자 마차가 통째로 들어올려졌다. 레리어트가 당혹성을 터트리며 창살에 달라붙었다. "아,아크님!" "레리어트님!전력질주!" 아크는 전력을 다해 쫓앗지만 이내 드라칸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일이었다. 그렇게 아크가 멍하니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때였다.공포가 풀린 북실이가 그제야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오며 중얼거렸다. "야아,이번에도 그림 좋앗습니다. 운명의 만남과 납치,흥미진진합니다!" 아크의 입술이 치켜 올라가며 섬뜩한 목울음이 흘러나왔다. "뒈질래?" "준비됐다.슬라임들 불러들여!" 정의남의 말에 갱생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짝퉁이 주문서를북 찢었다. -'슬라임의 시간 NO.2'주문서를 사용했습니다. <반경 500미터 이내의 슬라임을 호출했습니다. 호출된 슬라임은 10분간 아군을 도와 적을 공격합니다. 단,선제공격을 하면적이 되어버립니다> 주문서가 효력을 발휘하자 앞쪽에서 거대한슬라임이 기어나왔다. "한마리 나왓다. 다른놈이 오기전에 처리하자!" 우와아아아! 갱생단이 무기를 빼들고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살린의 탑에서 아크와 헤어진뒤,정의남과 갱생단은 계획대로 '슬라임의 내단'대량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이미 도적단과 묘족은 란셀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갈고리 박쥐의 송곳니'를 긁어모으기 시작했고,채취기술을 가진 너구리족은 '달빛을 받은 만드라고라의 뿌리'를 찾아돌아다녔다. 덕분에 벌써 란셀 마을에는 상당한 양의 재료가 모여있었다.남은 재료는 '일각수의 뿔'과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그러나 이 재료의 조달은 아크가 맡기로 했으므로 정의남과 갱생단은 카이로트 지하미궁에서'슬라임의 정수'를 모으는일에 열중했다. 사실 '슬라임의 정수'이외의 재료는 돈을 주고 구할수도 있었기에 그게 가장 중요한일이나 다름없다. 갱생단은 아크가 만들어준 스킬주문서로 폴루션슬라임을 불러들여 다구리를 치며 사냥했다. 그러나 폴루션 슬라임은 물리 공격을 대부분 회피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마법사가 없는갱생단에게는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자,시작한다. 모두 준비해!으라차차!" 정의남이 양손으로 슬라임을 꽉 붙잡고 배대 뒤치기를 날렸다. 그러자 슬라임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슬라임은 물풍선 같은 형태의 몬스터.바닥에 처박히자 잠깐 동안 점액질이 짜부러지며 핵이드러났다. "지금이다,다구리!" 갱생단원이 우르르 몰려들어 핵에 연장질을해댔다. 슬라임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가다가 이내 점액질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참으로 무식하기 짝이없는 사냥법! 어쨌든 정의남과 갱생단은 그런 방법으로 하나둘 몰려드는 슬라임을 족족 박살냈다. 슬라임의 시간 스킬이 좋은점은,먼저 공격하기전에는 아군으로 인식한다는 점.슬라임이 몇마리가 몰려들어도 느긋하게 하나씩 처리하수 있었다. 게다가 가끔 폴루션 스켈레톤이 나와도 오히려 슬라임이 처리해주었다. "와,여기 또 하나나왔어요!" 뒤따라오며 잡템을 챙기던 로코가 슬라임의 정수를 들어올리며 꺅꺅거렸다. "우헤헤헤,그럼 다해서 5개인가?" "나머지 재료만 구하면 곧바로 5개가만들어지는건가?" "게다가 슬라임의 경험치도 제법 쏠쏠하고 말이야" 갱생단원들이 히죽거리며 떠들어댔다. "어제 란셀 마을에 들렀는데 다른 재료들도 엄청나게 모아놨어요.일각수의 뿔하고 페어리의 날개만 구하면 당장이라도............" 그때,갑자기 오한이 든듯 로코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로코야,왜 그러냐?" "몰라요.그냥 갑자기 오한이 느껴지네요" "감기 오려는거 아냐? 요즘 날씨꽤 춥잖아" 정의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런가? 왠지 그런건 아닌거 같은데..........." "감기가 예고하고 오냐? 오늘은 일찍 종료하고 쉬어" "흠..........." 로코가 찜찜한 얼굴로 머리를긁적였다. '이상하네.왜 이렇게 불안하지? 어디선가 굉장히 불쾌한 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혹시 아크오빠에게 무슨일이라도 잇나?설마 딴 여우같은 계집애가 홀리고 있는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만...........아유,오빠가 너무 멋있어서 안심이 돼야지.세상에는너무 여우가 많단 말이야' 여자의 직감은 무섭다.특히 눈에 콩깍지가 씐 여자의 직감은 정말 무섭다. '안되겠어.요번 주말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데이트를 하자고 졸라야지' 소녀는 그렇게 다짐하는 것이었다. TYPE BY RAYAN ACT 8 아크 척살대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두운 하늘. 돌연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검을 구름에서 뇌전이 일어났다. 뒤이어 잔뜩 벼르고 있던 짐승이 뛰쳐나가듯 한줄기 벼락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세상이 하얗게 타오르며 하늘을 가르는 검은 그림자를 떠올렸다. 가아아아아아-! 폭우속을 가로지르는 네마리의 가오리. "쳇, 날씨 한번 지랄맞군.그란!" 아크가 가오리의 고삐를 꽉 틀어쥐며 소리쳤다. "벼락이라도 맞으면 큰일입니다. 골짜기 사이를 저공비행 하죠" "알겠습니다. 이럇!" 그란이 고삐를 세차게 휘두르자 가오리가 날개를 접고 쏘아져 내려갔다. 뒤따르는 나머지 가오리도 바짝 뒤쫓아서 골짜기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크 뒤를 바짝쫓아오던 가오리의 등에서 북실이와 삽질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히에에엑,떠,떨어진다!" "꽈,꽉 잡아!노, 노, 노, 놓치면 끝장이야!" "키키키,저 얼굴 구겨지는것봐.바람 빠진 풍선같아" 데드릭은 재밌어 죽겠다는듯이 중얼거리며 웃어제꼈다. 자,아크 일행이 어떻게 가오리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느냐.....................사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잠시 되돌리면 하겔 숲에서 드라칸에게 마차를 도둑맞은 아크는 곧바로 데드릭을 따라붙게 했다. 그러나 잠시후 데드릭은 기진맥진한 얼굴로 돌아왔다. "틀렸어,주인.따라잡을수가 없어" "이 밥값도 못하는 놈!" 아크가 방방 뛰자 그란이 끼어들었다. "드라칸이 어디로 갓는지 알고 있습니다" "알고있다고요?" "네,드라칸의 목덜미에 나크족의 인장이 찍혀 있었습니다. 분명 나크족이 사육하는 드라칸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놈이 간곳은 절망의 언덕.나크족의 동부 전진기지일겁니다" "그곳의 위치를 알고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하지만 절망의 언덕은 아무리 빠른 말을 타고가도 꼬박 이틀은 걸리는 거립니다. 게다가 중간에 험난한 바위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위험하기 짝이없습니다. 저희 부족이 그동안 나크족의 위협을 받지않았던것도 그 바위산 덕분이죠" "젠장............."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계곡 마을로 돌아가죠" 그렇게 아크는 그란과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손자가 나크족에게 유괴됐다는 말을 전해들은 베스튜라는 반쯤 실성해버렸다. "으아악,이럴줄 알았어!이럴줄 알았다고!그래서 내가 그렇게 말렸거늘............빌어먹을,이제 끝이야.아아,보나야!" 베스튜라가 백발을 쥐어뜯으며 발광하자 그란이 뜯어말리며 말했다. "진정하십시오,선생님.이럴때가 아닙니다" "지금 진정하게 됐냐? 앙?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네가 보나를 지키지 못해서.........." "어떻 벌이라도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보나님을 구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멍청이!나크족의 주둔지로 잡혀간 보나를 무슨수로 잡는단 말이냐?" "저분이라면 가능합니다" 그란이 믿음이 넘치는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저는 이 두눈으로 저분의 실력을 봤습니다.저분의 무예는 평범한 뮤탈의 것이 아니엇습니다. 전신.......부족에 전해내려오는 위대한 전신 라르칸의 현신이 틀림없습니다. 저분이라면 절망의 언덕에서 보나님을 구출할수 있을겁니다. " 그란의 설명을 들은 베스튜라가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오오오,그래.이제 믿을건 자네밖에 없네.제발 손자를 구출해 주게" "걱정마십시오.무슨일이 있어도 되찾아 오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끄덕이자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퀘스트가 갱신되엇습니다. 베스튜라의 걱정=보나를 구출해라! 당신은 하겔숲에서 보나를 찾았지만, 나크족의 드라칸이 납치해 갔습니다. 베스튜라는 유일한 혈육인 보나의 걱정에 실성할 지경입니다. 이대로 두면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에게서 원한느것을 얻고 싶다면 드라칸을 뒤쫓아 보나를 구출해 와야 합니다.그러나 이 임무는 결코 쉽지않을 겁니다. 절망의 언덕은 나크족의 전신기지,믿을만한 동료가 없다면 목숨을 보장할수 없습니다. <난이도 : B>] 퀘스트는 난이도 B로 연계되었다. 처음 받아보는 난이도 B퀘스트.그러나 이미 아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베스튜라에게 원하는 보상을 받기 위해서가 전부는 아니다. '설마 여기서 레리어트님을 만나게 될줄이야' 머릿속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아크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 첫눈에 반했다...............라고 표현하면 좀 과장된 면이 없지않지만, 난생처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품게되었다. 처음 만났던 상황이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녀가 내밀어 주었던 손은 단순한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그러나 아크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저은 연애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웠다. 때문에 아란와 함게 있는걸 보고 금방 포기할수 있었다. 그런데 인연이란 참으로 얄궂다. 그 뒤로도 기묘하게 얽히기를 반복하더니 이제 이런곳에서까지 만나게 되다니....... '어쨌든 모른척할수는 없어' 퀘스트 해결과 레리어트의 구출. 스스로도 어느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판단이 서지않았다. '해야할일이 같다면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지' "자,서둘러야하네.이쪽으로오게" 바스튜라는 일행을 데리고 마을 뒤쪽 계곡으로 향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계곡 마으르이 뮤탈들은 조련사가 많았다. 야생 몬스터를 포획해 길들여 가축으로 활용하는 직업이었다. 계곡 마을에 몬스터 NPC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였던 것.그란이 계곡 마을로 달려온것도 길들여 놓은 하늘 가오리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아크가 황야를 지날때 종종 목격했던 날아다니는 가오리였다. "절망의 언덕까지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란이 하늘 가오리의 등에 오르며 말했다. 그렇게 아크 일행은 하늘 가오리를 타고 절망의 언덕으로 향했다. 황야와 돌로 만들어진 숲,무지갯빛의 강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1시간이 지났을무렵,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하며 마지막 관문,바위산이 나타났다. "이 골짜기만 통과하면 나크족의 주둔지가 나올겁니다" 그란이 폭풍우를 뚫고 날아가며 소리쳤다. 하늘 가오리는 날카로운 바위가 송곳니처럼 솟아나온 골짜기를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막 골짜기를 빠져나올무렵,돌연 머리위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크롸롸롸롸롸! 반사적으로 고개를들어올린 그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드,드라칸...........!" "공격해 온다.피해!" 두마리의 드라칸이 일행을 향해 쏘아져 내려왔다. 아크는 재빨리 고삐를 잡아당겨 하늘 가오리를 멈췄다. 그러자 바로 코앞으로 드라칸의 날카로운 발톱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란 역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드라칸의 공격을 피해냈다. "젠장, 설마 이런 상황에서 기습을 받을줄이야" 아크는 암담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벼락을 피해 날카로운 바위가 들어찬 골짜기로 들어왔다. 지상에 착지할 공간이 없는 것이다. 다시말해 공중에서 드라칸과 전투를 치러야하는 상황!그러나 하늘 가오리를 타고는 스킬은 커녕 제대로 검을 휘두르기도 쉽지않았다. "그래도 해보는수밖에 없지.데드릭,내가 한놈을 상대할동안,다른 놈이 그란이나 아기돼지들을 공격하지못하도록 붙잡고있어!" "나,나 혼자?" "보면 몰라? 어쨌든 버틸때까지 버텨봐!" 아크는 버럭 소리치며 드라칸을 향해 날아갔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고삐를 몸에 감아 중심을 잡고 귀살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곳은 하늘 ,드라칸은 방향을 틀며 어렵지않게 공격을 피해냈다. 공중전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지상과 달리 엄청난 속도로 비행하며 간격이 갑자기 좁아지기도,갑자기 멀어지기도한다.불과 1미터가 조금 넘는 검으로 간격을 맞춰 공격을 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일이 아닌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라둔을 계속 타고다녔지만 승마 스킬은 아직 초급.하늘 가오리가 뜻대로 조종되지않아 타이밍을 잡기가 몇배는 힘들었다. 반면 드라칸은 자유자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아크를 몰아붙였다. 콰직! 드라칸이 스쳐지나가자 어깨가 욱신거리며 생명력이 쭉 빠져나갔다.그러나 문제는 앜의 생명력이 아니다. 드라칸은 아크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바로 하늘가오리!드라칸은 주위를 선회하다가기회가 나면 재빨리 달려들어 하늘 가오리를 후려쳤다. 덕분에 불과 몇분만에 하늘가오리의 날개가 너덜너덜해졌다. '크윽............이대로는 얼마 버티지못해!" 하늘 가오리가 상처를 입어 갈수록 조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한쪽 날개가 거의 뜯겨 나가 방향이 털어졌고,고도도 점차 내려갔다. 그 상태로 한두번 더 공격당하자 하늘 가오리가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크가 완전히 통제력을 잃어버리자 드라칸이 아가리를 쩍 벌리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크롸롸롸롸롸! '맙소사!' 눈앞으로 확 다가오는 송곳니를 보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날카로운 바위가 바늘처럼 솟아있는 골짜기에 떨어지면 끝장이다. 순간 아크는 반사적으로 본 블레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채찍으로 바꿔 드라칸으 ㄹ향해 휘둘렀다. 촤라라락,채찍이 드라칸의 송곳니에 걸리는것을 확인한 아크는 하늘 가오리의 등을 박차며 솟아올랐다. 콰드드드득! 하늘 가오리가 드라칸의 아가리에서 으스러졌다. 그사이 아크는 본블레이드를 밧줄처럼 이용해 드라칸의 등에 올라탔다. '이 자식,마음대로 설쳤겠다?' 아크는 드라칸의 목을 양다리로 꽉 조이고 무기를 귀살검으로 바꿔들었다. "어디 맛좀 봐라,귀기 개방.다크블레이드!" 크롸롸롸롸롸! 귀기가 감도는 귀살검으로 뿜어내는 다크블레이드! 드라칸이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날뛰었다. 불과 몇초만에 하늘과 땅이 수십번바뀌고 엄청난 중력이 몸을 후려쳤다. 그러나 아크도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양다리로 목을 휘어감은 채로 뒤통수에 미친듯이 스킬을 쑤셔박았다.연속적으로 백스텝이 터지며 드라칸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리고 놈이 빈사상태에 빠졌을떄........귀살검이 번뜩이더니 목이 댕강 잘려나갔다. 엄청난 양의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드라칸은 목이 잘린 닭처럼 조건반사로 날개를 파닥거리며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레벨은 잘도 올라간다. "으아아악,주,주인!나 죽어!캑!" 한편,나머지 드라칸을 유인하던 데드릭은 빈사상태에 빠져있었다 .하늘 가오리 조종술이 뛰어난 그란이 도와주고는 있었지만, 드라칸을 상대하기엔 벅찼던것.데드릭은 빈사상태에 빠져있었고 그란과 아기돼지들이 타고있는 하늘가오리도 날개가 너덜너덜해진채로 간신히 버티고있었다. "히이익!사,살려줘!" 북실이는 그 상황에서도 마법 영사기를 돌리는 프로근성을 보여주었다. 어쨌든.........아크 역시 드라칸과 함께 추락하고 있는 상황.그야말로 절체절명! "라둔,드라칸의 아이템을 챙겨라" 그러나 그상황에서도 아크는 아이템을 놓치지않았다. 라둔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드라칸의 몸을 훑어 아이템을 챙겼다. "데드릭,이쪽으로 날아와!" "아,알았어.으악,쫓아온다!" 데드릭이 아크에게 향하자 드라칸이 바짝 뒤를 쫓았다. 순간 아크는 추락하는 드라칸의 등을 차고 데드릭을 향해 날아올랐다. "엇? 주,주인..........설마 내등에 타려고..........그,그건 무리............으악!" 아크는 징검다리처럼 데드릭의 머리를 밟고 추격해오는 드라칸의 등에 올라탔다.뒤이어 펼쳐진 장면은 조금전과 같았다 .다리로 드라칸의 목을 옭아매고 미친듯이 퍼붓는 다크블레이드! 드라칸의 생명력이 단숨에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이 녀석은 먼저 죽은 드라칸보다 용감(?)했다. 빈사 상태에 빠지자 바늘처럼 솟아있는 골짜기로 쏘아져내려갔다. 목이 잘리느니 아크와 함꼐 바위에 찔려죽는길을 택한것이다. "아크님-!" 그란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왓다. 그러나 이미 드라칸은 바닥고 충돌하기 일보직전! "너같은 놈하고는 같이 안죽어!" 아크는 드라칸의 머리통을 잡아 홱 돌려버렸다. 그러자 드라칸이 반사적으로 아가리를 벌리며 아크의 손을 물어뜯었다. 아니,물어뜯으려는 순간,아크의 검이 번뜩였다. "걸렸군.멍청한 날도마뱀 자식,화격!" 송곳니를 쳐내며 곧바로 카운터 어택! 연쇄 스킬 화격이 발동했다. 적을 10미터 이상 밀어내는 공격.그러나 목을 휘감은 다리를 풀면서 펼치자 아크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왔다. 반면 드라칸은 추락해 더욱 가속도가 붙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크롸롸롸롸롸! 바늘처럼 솟아난 바위에 드라칸은 꼬치가 되었다. "아크님.여깁니다!" 뒤이어 날아온 그란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아크가 손을 잡자 그란이 존경스러운눈으로 바라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당신은 진정 전신의 현신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기도 전에 덜컥거리며 하늘가오리가 휘청거렸다. 드라칸에 의해 날개가 너덜해진 상태에서 2명이나 태웠으니 버티기가 힘들었던 모양. 아니,아크가 아니라도 그란이나 아기돼지들의 하늘 가오리는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버텨라,너희들은 할수 있어.골짜기만 벗어나면 나크족의 본거지다!" 아크가 쉬지않고'간병'을 사용하자 하늘 가오리가 약간의 기력을 되찾았다.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펴고 활강하기를 잠시.........날카로운 골짜기를 벗어날수 있었다.그러자 곧 거대한 악마상이 세워진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냈습니다!나크족의 본거지입니다!" 그란이 나크족의 본거지라고 부른곳은 기이한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마치 지하를 향해 세워진탑과 같은형태............ 언덕 위에 거대한 크레이터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 던전 같은 건축물들이 아래르향해 나선형으로 배열되어 있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바닥에는 제단 같은것들이 보였다. '저기가 목적지인가?' 아크가 그런생각을 할때였다. 덜컥하더니 간신히 골짜기를 벗어난 하늘가오리가 불시착했다. 다행히 간병의 도움으로 하늘 가오리가 마지막 기력까지 짜내 아크와 그란,아기 돼지들은 추락 데미지를 받지않았다.그렇게 아크가 하늘 가오리에서 내려가자 두두둥,하며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절망의 암연 당신은 날카로운 골짜기를 지나 나크족의 본거지에 도착했습니다.절망의 암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수백년전부터 나크족이 신성시 여기던 성지입니다. 그러나 나크족은 피와살육을 즐기는 종족.참혹한 역사가 증명하듯 성지에서는 후각이마비될듯한 피비린내가 풍겨나옵니다. 제아무리 훌륭한 검과 방패를 가지고 있다 해도 안심할수 없는 죽음의 땅.이곳에 들어서기위해서는 용기보다는 만용이 필요할것입니다. <모험가의 지식 :새로운 던전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 : 10)>] "휴............그래도 일단 목적지까지는 온셈이군" 아크는 위협하듯 서 있는 악마상을 가볍게 무시하고 냄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데이모스의 검화를 해제한뒤에 각종 요리로 아크와 소환수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고 능력치까지 빵빵하게 올려놓은 뒤에 던전으로 들어섰다. 시간이 없다. 망설일 여유가 없는것이다. "가자, 이제부터가 진짜다" 지이이잉................. 아크의 등뒤에서 마법 영사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섬아!" 한줄기 빛이 나크족을 스치고 지나갔다. 10여명의 나크족이 동시에 시퍼렇게 질리며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이미 생명력이 간당간당하던 나크족은 그대로 숨이끊어졌고,남겨진 나크족은 '결빙'에 걸려 동작이 느려졌다. 섬아와 엘리멘탈 소드의 콤보효과엿다. "지금이다,데드릭,데이모스.놈들을 한군데로 모아!" "오케이!여기다,이놈아" 딱딱딱딱! 데드릭이 나크족의 머리를 후려치며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상대를 몰아넣는건 데이모스의 방패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땡강-! 데이모스가 주위를 돌려 방패로 후려치자 나크족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사실 그동안 데이모스는 공격보다 방어쪽에 치중된 전투벌여왓다.공격력이 그리높지않았고,적과 섞여있어봐야 아크가 싸우는데 거치적거린다.때문에 방어태세로 아크의 등뒤를 지키거나 적의 퇴로르 막는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저 방패로 막는 행동도 나름대로 요령이 필요하다.또한 효과적으로 적의퇴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방패를제대로 활용할줄 알아야한다 . 그리고 그런 전투를 수도없이 반복하는 동안 데이모스는 드디어 방패 사용의 요령을 깨달았다. [소환수'데이모스'가 스켈레톤 나이트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방패 치기 (초급 ,패시브) : 기사 워릭의 기량을 이어받은 데이모스는 다양한 전투 경험이 쌓이면 워릭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기술을 익힐수 있는기회가 생깁니다. 방패 치기는기사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 가운데 하나로 방패로 적을 강타해 밀어낼수 있습니다. <방패 치기로 적 공격시 공격력+20%,밀어낼 확률 증가,10%확률로 경직 발동>] 데드릭이 던필을 쓰러트리고 뱀파이어가 된 뒤로 경험을 통해 본래의 능력을 각성해 나가는것처럼,데이모스도 스켈레톤 나이트의 능력을 각성해 나가는것이다. 아마도 데드릭처럼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했다면 더많은 기술을 각성했으리라.그리고 실제로 데이모스는 처음 진화했을때는 더 적극적으로 전투를 하고싶어했다. 그러나아크가 방어태세만을 고집한탓에 공격스킬보다 먼저'방패 치기'를 익힌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스킬을 익히고도 지금까지는 별로 신경쓰지않았다. 솔직히 고생해서 익힌 기술치고는 허접스러운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스킬이 없어도 방패로 적을 밀어낼수는 있다. 스킬이 생겨서 달라진점은 약간의 공격력 증가와 밀어내는 거리증가,10%확률로 경직.게다가 경직은 잠시 움질하는 정도로,상태 이상이라고 할수도 없다. 물론 이건 데이모스만의 문제는 아니엇다. 원래 전사계열의 스킬이라는게 그렇게 수수한 편이다. '그래도 지금은 어지간한 공격스킬보다 도움이 된다' 데이모스가 방패로 후려치며 돌아다니자 나크족이 한덩이가 되었다.보통은 몸놀림이 빠른 나크족을 이렇게 쉽게 모을수 없겠지만,놈들은'결빙'이 몇번이나 중첩되어 속도가 바닥까지 내려간 상황. "됐다.라둔,검!블레이드 스톰!" 아크의 손안에 들어온 검이 폭발했다. 날카롭게 부서진 검 파편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나크족을 휘감았다. 피보라가 몰아치며 나크족이 속속 쓰러졌다. 간신히 살아남은 나크족은 고작 4명. "귀기개방!" 끼야아아아악! 귀곡성과 함께 귀살검에 귀기가 덧씌워졋다. 연속적으로 엄청난데미지가 가해지자 결국 남아있던 나크족도 버티지못하고 쓰러져버렸다. 그야말로 스킬퍼레이드! 수십번이나 반복돼 온 장면이었다. 절망의 심연은 나크족의 본거지인 만큼 엄청난 숫자가 우글거렸다. 그것도 적게는 10명부터 많게는 30명까지 부대를 이루고 있었다. 게다가 부대사이의 간격도 좁아서 자칫 잘못하면 다른 부대까지 애드되어 난감한 상황에 빠질수도 있다. '적당한 숫자를 유인해서 속전속결로 처리하는게 최선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레리어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했지만 아크는 신중하게 던전을 공략해 나갔다. '눈앞의 적보다 주변의 적이 애드되지않도록 처리하는게 더 중요하다' 때문에 아크는 일단'은신'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던전의 구조는 꽈배기처럼 꼬여서 아래로 향하게 되어 있다.전체적으로는 단순한 구조지만,실제 그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하다.보이지않는 모퉁이뒤,혹은 벽뒤에 다른 나크족 부대가 숨어있을지도 모르는일. 어디서부터,어떤 부대를 유인해야 각개격파할수 있을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주변 지형과 적배치를 파악하면 데드릭으로 한부대씩 유인했다. '도발'스킬을 사용한 데드릭의 유인은 일품! 가까운 간격으로 두 부대가 있어도 용의주도하게 한부대만을 꼬드겨 올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아크와 데이모스가 퇴로부터 차단하고 몰아붙엿다. "그란,북실이,삽질이,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네,네!" 세마리의 짐작이 구석으로 도망가면 곧바로 '섬아'가 터져나왔다. 아크는 일단 '섬아'를 서너번 먹여놓고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섬아'가 아니다. '엘리멘탈 소드'로 전격이나 얼음 속성을 씌워 날리는 '섬아'! 전체 공격이라 적이 열마리든 스무마리든 시작하기도 전에 40`~50%의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그뒤에는 한곳에몰아넣고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주는 '블레이드 스톰'이나'귀기개방'으로 아작을 내 버리는것이다. 그야말로 무인지경! 물론 미친듯이 스킬을 난사하니 한번 전투를 치를때마다 마나가 바닥났다. 그러나 식재료가 넘치도록 잇으니 문제가 되지않는다. 또한 비상용으로 생명력을 회복하는 움마의 수액도 이지않은가? 덕분에 아크는 거칠것이 없었다. 그렇게불과 1시간만에 지하 20층까지 내려올수 있었다. '이제 3층만 더 내려가면 된다' 아크는 통로 중간중간에만들어진 발코니로 위치를 확인할수 있었다. 하늘 가오리를 타고 오며 확인했듯이 바닥의 광장 중심에는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광장 양쪽으로 철문이 잇었다. 글철문 안쪽에 보나와 레리어트가 잡혀있으리라.그리고 퀘스트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보스가 있을 가능성도 높았다. '여기서 뛰어내려도 상관없지만 보스를 처리하기전에 나크족을 몽땅 잡아둬야해' "좋아,너희들은 시체를 치워둬" 그란과 아기돼지들이 얼른 뒷정리를 시작했다. 도적 소굴처럼 적의 본거지인 경우,가끔 랜덤으로 순찰을 도는녀석들이 존재했다. 그런 적에게 시체가 발견되면 몇부대가 배후를 공격해 오기도 한다.때문에 시체가 사라질때까지 적당한 곳에 숨겨두는 재치가 필요하다. 그사이 아크는 정비를 점검하며 휴식ㅇ르 ㅜ치했다. '그래도 부대단위로 처리하니 경험치나 아이템도 꽤 쏠쏠하군' 한번에 평균 스무마리씩 처리하니경험치가 미친듯이 올라갔다. 게다가 그중 50%정도는 일도양단으로 마무리해 1,4배의 추가 경험치가 가산되었다.덕분에 레벨을 올린 직후에 들어왔음에도 불과 몇시간만에 3이나 더 올라갔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350 명성 : 9,075(+500) 레벨 : 242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나이트,전장의 간병인,작센의 영웅,위대한 모험가 생명력 : 3,795(+150) 마나 : 3,985 영력 : 200 힘 460(+28) 민첩 620(+55) 체력 710(+20) 지혜 84(+10) 지능 768 운 100(+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92 화술 : 46 애정 :131(+10) 탄력도 : 276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저항력+100%,수주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 (투구) : 민첩+10,지혜+10 *<수왕>세트 효과 : 힘+10,민첩+10,체력+10,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 : 민첩+30,이동속도+30%,공격속도+10%'슬라이드'사용가능 갈가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100%,ㅁ니첩+20,생명력 50%미만 '마력보호'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 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 +5,회복 속도+5% 심안(반지) : '심안'사용 가능 화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민첩,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2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어둠,현혹,매혹,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스킬 포인트 : 10] 아크의 레벨은 242! 두둑한 경험치 덕분에 어둠속성 보너스를 적용하면 무려 338로 부대장급 나크족보다 높아진것이다. 덤으로 얻어지는 전리품으로 벌써 가방의 60%나 채웠다. '조만간 또 한놈 보내야겠군' 아크는 슬쩍 마법 영사기를 돌리는 북실이를 바라보앗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상처 하나없이 살려둬야 하는것이다. 아크가 신중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기도 했다. 애드가돼도 아크 혼자라면 탈출할수 있지만, 그란이나 아기돼지들에게는 무리다. "자,그럼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해.다시 주변을 정찰하고 올테니까" "알겠습니다" 정비를 끝낸 아크는 '은신'을 사용해 주변을 정찰했다. '아래층으로 가는 통로에 세 부대.......넉넉잡고 10분이면 이 층도 끝이군' 둥, 둥, 둥, 둥! 그때,갑자기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헉,뭐,뭐지? 순찰병이 시체를 발견한건가?' 걱정하던 문제가 발생했다 .순찰병이 시체를 발견하면 던전전체에 비상이 걸린다. 그렇게 되면 몬스터들이 경계 태세로 바뀌어 전투가 몇배나 힘들어진다. 심할때는 던전 전체의 몬스터가 시체가 발견된곳으로 모이는 경우도 있다. '젠장, 잘 치워 놓으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아크가 어떻게 해야하나 갈팡질팡하고 있을때였다. "오오오,의식의 떄가 왔다" "타무라드 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근처에 있는 병사들은 모두 제단으로 모여라" 계단을 지키던 나크족이 아래로 몰려 내려갔다. '의식?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잇는거지?' 어쨌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우려하던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크는 곧바로 근처의 발코니를 찾아 제단을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따라잡았다" 쥬르가 눈앞에 솟아잇는 악마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해?" "음,틀림없어.이던전 속에 있다" 쥬르는 '메모리 오브 퍼퓸'스킬로 레이더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눈종이처럼 눈금이그려진 화면 중앙에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바로'마나퍼퓸'을 걸어놓은 바람정령의 장화.즉,아크의 위치였다. 유계로 들어온 그들은 레이더를 따라 일직선으로 이동해 이제야 아크를 따라잡은 것이다. "아까 산을 내려오면서 보니 이 던전은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엿어" "그럼 출구가 이것 하나밖에 없다는 말이군" "이제 놈은 독안에 든 쥐야" 쥬르와 듀크,헤르메스 길드원들이 입구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그들이 유게에 들어온것은 고작 며칠밖에 되지않았다. 그러나 레이더로 아크를 향해 일직선으로 쫓아왔기에 헤매지않고 도착할수 있었다.그렇다고 이들이 아무런 고생도하지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아크나 아기돼지 삼형제만큼은 아니지만, 이들 역시 지난 며칠동안 낯선 유계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왔다. 덕분에 그들은 모두 거지꼴을 하고있었다. "그래도 운이 좋았어" "그마을의 멍청한늙은이.아크와 친구라고 하니 탈것까지 내주다니 말이야" "덕분에 놈이 던전에 있을때 덜미를 잡을수 있게 됏지" 그렇다.이들이 이렇게 빨리 아크의 뒤를 쫓을 수 있었던 것은 베스튜라 덕분이었다. 혹시나 싶어 계곡 마을에서 아크에 대해 수소문해 보니 베스튜라가 달려왔다. 그리고 아크를 돕고 싶다고 말하자 하늘가오리까지 내주며 응원해준것이다. 그때,듀크가 약간 찜찜한 기색으로말했다. "그런데 좀 이상한데?" "뭐가?" "이곳으로 오면서 우리도 몬스터를 꽤 잡앗잖아" "그런데?" "그 몬스터들 레벨이 대부분 300대 아니었어? 게다가 여기는 나크족의 소굴이라며?몬스터가 부대 단위로 있을텐데 아크 자식이 무슨 베짱으로 들어갔을까?" "하늘 가오리를 준 영감이 아크가 다른 3명과 함께 출발했다고 했잖아.그 동료들이 제법 레벨이 높은가 보지.아마 아크 자식이 이계로 들어온것도 그사람들이 도와줘서 인지도 몰라.아니,분명히 그럴걸" 그렇게 대답한 듀크가 입꼬릴 올렸다. "그래봤자 유저 동료는 고작 둘이야.허접스러운 NPC를 포함해도 셋.반면 우리는 10명이다. 문제될건 없어.아니,아크 놈의 동료라면 가만 놔둘수 없지" "하긴 그렇지" 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쥬르와 듀크,거기에 비록 하귀권이라지만 헤르메스 길드원이 8명이나 있다. 직업 조합을 맞춘 파티라는점을 감안하면 나크족 정도는 한번에 육칠십 마리는 너끈하게 해치울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미 던전의 몬스터는 놈이 거의 정리했을거야.우리는 그냥따라 들어가서 놈을 박살내기만 하면돼" "놈이 아직 보스를 잡지않았으면 좋겠군" "잡았어도 상관없어.어차피 놈이 가지고 있는건 모두 우리것이 될테니까" 쥬르가 주문서다발을 들고 씨익 웃었다. 그들이 시르바나를 나와 가장 먼저 한게 바로 주문서를 구하는일이었다.[강탈],[탈취],[엿보기],[불운]..........아이템을 빼앗기 위한 주문서는 종류별로 다 갖춰놓았다. 이제 걸어놓고 죽이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자,가자.놈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시간이다" 그렇게 아크 척살대가 절망의 심연으로 들어섰다. '휴....................어쩌다 일이 이렇데 됐담?' 레리어트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녀가 갇힌 마차안에는 수십마리의 망자들이멍한 눈으로 하늘을올려다 보고 있었다. 레리어트는 그중 한 망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 사람이 틀림없어' 그녀는 망자의 정체를알고있었다. 그녀가 유계로 들어온 이유는 소년 유령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란 덕분에 유계의 망자로 전락한 전설의 홀리나이트를 구해달라는............소년 유령은 홀리나이트의 묘비가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거라고 말했다.그리고 유계로 들어와 처음만난 망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 망자였다. 그녀는한눈에 그 망자가 천계에서 떨어진 홀리나이트임을 알아보았다. 다른 망자와 달리 가슴에 성인聖印이 찍힌 아름다운은색 목걸이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영혼감응'으로말을 걸어봐도 묵묵부답. 망자는 침을 질질 흘리며 유게를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결국 레리어트는 망자의 뒤치다꺼릴 하며 따라다녀야했다. 그냥두면 다른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언제 죽을지 알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남을보호하면서 전투를 치르게 된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예전에 몰랐던 많은것들을 배울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중 다행으로 ,망자가 돌아다니던 숲의 몬스터는 들짐승뿐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강한 몬스터가 있어서 도망쳐야 할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기술을 배워 그럭저럭 버티며 레벨을 올렸다.그러던중,망자를 사냥하던 나크족에게 잡혀 이곳까지 끌려온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흑흑흑흑" 그때,문득옆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잡힌뒤 얼마 안돼서 들어온소년이었다. "무서워요.할아버지가 보고싶어요" "괜찮아,괜찮을거야" 레리어트는 안쓰러운 얼굴로 소년을 안아주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나크족은 같은 뮤탈도잡아먹는 흉악한 놈들이라고 했어요.우리는 몽땅 잡아먹힐거에요" "그렇지않아.너도 봤지? 여기로 끌려오기전에 우리를 구출하려던 사람.그사람은 결코 우리를 그냥 놔두지않을거야.아마 지금쯤 벌써 근처에 와있을지도 몰라.아니,틀림없이 그럴거야" "저,정말요?" "그래,그 사람은............정말 강한 사람이란다" 잠시망설이던 레리어트는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어보엿다. 그때,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며 철문이 열렸다. '대체 무슨일일까? 안좋은 일이 아니면 좋겠는데........' 한편 아크는 발코니에서 숨을 죽이며 제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놈들이 모두 몰려 제단 주변에는 나크족이 200명이나되었다. 나크족은 몸을 조아리며 광신도처럼 괴성을 질러댔다. "타무라드!" "뮤탈의 절대자!" 그때,제단 한쪽에 있던 철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섰다. 10미터나 되는 몸을 가진 거인.장막처럼 흐느적거리는 로브를 걸친 거인은 뼈로 만들어진 지팡이를 들고 제단으로향했다. 그리고 깊이 눌러쓴 후드사이로 드러난붉은 눈동자로 주변을 주욱 훑고는 지팡이를들어올렸다. "드디어 때가 도래했다!" 순간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몬스터 네크로맨서 마스터'타무라드'가 나타났습니다! '보스몬스터!' 역시 예상대로 절망의 심연에는 보스몬스터가 있었다. 레벨은 500. 만만치 않은 전투가 예상되는 놈이다. 어쨌든 타무라드는 지팡이를 휘둘러대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어둠에 떨어진 지도 참으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이제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끝났다. 마침내 위대한 어둠의 힘이 깨어날때!진정한 어둠과 마의 권능을 불러일으켜 나크족이 유계를 지배할때가 되었다" "오오오,타무라드!" "그리고 유계의 모든 힘을 움켜쥐고 일어나 우리를 어둠에 처박은 더러운자들의 피와살로 축제를 벌이리라!그때는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없을것이다!보라,이것이 바로 진정한 어둠과 마의 결정체!우리가 섬기는 신의 모습이다!" 타무라드가 세차게 지팡이로 바닥을 후려쳤다. 그러자 쇳소리와 함께 광장의 일부분이 꺼져들어갔다. 그안에서 나타난것은 끝없는 어둠............어둠보다 더 어두운,칠흙같은 형체가 신음을 흘리며 질퍽거렸다. 믿어지지않을정도로 불길한 기운이 광장에 소용돌이쳤다. 타무라드가 고개를 치켜들고 뻥 뚫린 천장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10년만에 찾아온 완전한 어둠의 날!천계으 ㅣ신들조차 어둠에 삼켜지는 그믐이다. 그리고 그믐이야말로 위대한 어둠이 부활할수 있는 기회!자,제물을 준비하라!" '헉,저,저건..............!' 돌연 아크의 눈이 움찔하며 확대되었다. 뒤이어 반대쪽 철문이 열리며 나크족이 30여대의 마차를 끌고 나왔다. 마차안에는 각지에서 잡아들인 망자들이 갇혀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쯤,드라칸이 납치해간 보나와 레리어트가 갇힌 마차가 섞여있었던것이다. "시작하라!" 타무라드의 명령에 마차하나가 구멍으로 떨어졌다.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검은 기운이 끓어오르며 그들을 삼켜버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기름에 얼음을 던져놓은 듯한광경이 이어졌다. 격렬한 소리와함께 망자들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어둠속에 흡수되어 버린것이다. 동시에 불길한 기운이 한층더 강해졌다. '뭐,뭐야? 이거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아크는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두면 얼마되지않아 보나와 레리어트가 갇힌 마차도 구덩이안으로 떨어지리라. 물론 심정적으로는 레리어트를 더 구하고 싶었지만, 다급한건 보나였다. 레리어트는 죽어도 어딘가에서 부활하겠지만, 보나는 NPC다.보나가 사망하면 퀘스트는 그대로 실패.그렇다고 무턱대고 광장으로 뛰어내릴수도 없다. 200명의 나크족이 보스와 함께 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아크 혼자 어쩔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이다. '빌어먹을,놈이 나타나기전에 나크족을 몽땅 잡았어야하는건가?' 상황을 보자니 타무라드는 일정 조건이 갖춰져야 나타나는 보스몬스터같다. 출현조건은 아마도 그믐날 자정.결국 그전에 절망의 심연에있는 모든 나크족을 처리해야 타무라드와 맞짱을 뜰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 시기를 놓치면 무려 200이나 되는 나크족과 함께 보스몬스터를 처리해야한다. '이제야 이 퀘스트 난이도가 왜B인줄 알겠군.이건 공격대 퀘스트엿어!'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여기까지 와서 레리어트와 퀘스트를 포기해야한단 말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올라오더니 뒷덜미가 욱신거렸다. -레인저의 '육감'에 의해 '은신'해제되었습니다. -'정밀 사격'에 적중되어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데미지 400!<출혈에 걸려 3분간 10초당 30의 데미지를받게됐습니다> '헉,뭐,뭐야?' 아크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했는데,'육감'을 켜놓기를 잘했군" "아크..........아니,지금은 다크울프인가?" "혼자 있는걸 보니 동료들은 벌써 죽었나 보지? 숨어서 엿보는 꼴이라니............" 아크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너,너희들...........너희들이 어떻게 여기에?" "다시 볼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나?" "그렇게 생각했다면 우리를 물로 봤다는 소리군" 놀랍게도 아크의 등뒤에 늘어선 사람은 쥬르와 듀크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원이었다. 물론 아크 역시 자기가 한짓이 있으니 놈들이 언젠가는 추적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슬슬 다른 왕국으로 넘어갈 생각이라 크게 신경쓰지않았던것. 그런데 이렇게 빨리,그것도 유게에서 그들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쥬르들은 생각할 시간도주지않았다. "이제 네놈은끝장이다!" "헤르메스 길드를 농락한 대가가 어떤것인지 가르쳐주마!타깃 아크!" 쥬르들이 일제히 주문서를 꺼내 찢어버렸다. -[불운]주문서가 적용되었습니다. -[강탈] 주문서가 적용되었습니다............... 눈앞에서 10개의 경고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갔다. '맙소사!주문서 콤보..............!' 아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주문서 콤보,그 위력이라면 누구보다 아크가 잘알고 있다. 한번 당해 보기도 했고,또 직접 사용해서 안델을 거지로 만들어본적도 있다. 만약 이대로 당해버리면 퀘스트고 나발이고 재기불능이 되어버리리라.그리고 아무리 이계에서강해졌다고 해도 쥬르와 듀크를 포함한 10명의 헤르메스 길드원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나도 예전과는 달라.헤르메스 길드원이라도 5명정도라면 어찌어찌 상대할수있을지도 몰라.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쥬르와 듀크까지 포함한 10명은 무리다.일단 도망가야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몸일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지금 아크가 서있는곳은 발코니.한걸음만 잘못 내디뎌도 200명의 나크족과 보스에게 둘러싸인다. 유일한 탈출구는 쥬르 일당이 막고있는 복도! "다크 댄싱!" 아크는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키며 놈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속도는 '섬아'가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수비가 목적이라면'다크댄싱'이 훨씬 나앗다. "어림없다!" 듀크가 자세를 낮추며'속사'로 화살을 내쏘았다. "슬라이드!" "젠장,빌어먹을 놈!" 아크가 '슬라이드'를 사용해 직각으로 이동하며 화살을 피해냈다.듀크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음은 말할것도 없다. 그렇게 아크가 공격을 피하며 복도로 나오자 쥬르가'마나폭발'로 마력을 증폭시키며 파이어볼을 날렸다. "지금이다.섬아!" 아크는 망토로 몸을 감싸며 파이어 볼을 향해 달려들엇다. 콰콰콰쾅-! 쥬르는 어느정도 간격을 계산하고 파이어볼을 날렸다.광격 마법의 경우,자칫하면 아군에게 피해가 가기때문이다. 그러나 아크가 '섬아'로 돌진하자 파이어볼이 쥬르의 코앞에서 폭발했다. 좁은 복도가 화염에 삼켜지자 쥬르 일당잉 전체 데미지를 받고 움찔거렸다. 아크는 화염 저항력을 75%나 가지고도 데미지가 400이나 들어왔다. 화염저항이 없는 놈들에게는그 배 이상의타격이 전해졌으리라. 뒤이어 숨수리틈도 없이 아크가'섬아'로 전체 데미지를 날리자 놈들의 생명력이 단숨에 30%나 깎여나갔다. 그러나 일당중 회복술사가 곧 전체 회복을 펼쳐10%를 다시 회복했다. '젠장,마법사에 레인저,전사에 회복술사.나하나잡자고 제대로 구색을 갖춰놨군' "크윽,건방진 놈..........죽여라!" 쥬르의 명령에 놈들이 진형을 갖추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가 스킬을 난사하며 공격한것은 제대로 붙어보기 위해서가 아니다.놈들의 포위를 뚫고 탈출로를 만들기위한 작전.아크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나당카의 열매를 한주먹 꺼내 집어던졌다. 몸에 닿자 넝쿨이 확뿜어져 나오며 쥬르들을 휘감았다. "억? 이,이건 뭐야?" "전력질주!" 동시에 아크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반대쪽으로 도망가기시작했다. "자,잡아라!" "젠장,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회복술사가 해제마법을 사용해 넝쿨을 털어냈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전력질주를 펼쳐 놈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다행히 이미 주변의 적은 모두처리하고,나머지 나크족은 제단에 모여있어 아크를 막을상대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이다. 던전에 들어와 있는 이상,'전력질주'로 언제까지나 놈들의 추격을 따돌릴수는 없다. 게다가 쥬르들은 아크가 아무리 복잡하게 방향을 꺽어도 놀라울정도로 정확하게 따라붙고 있었다. '나는'지도제각'스킬로 만든 지도를 가지고있으니 그렇다 쳐도........놈들은 어떻게 이렇게 길을잘 아는거지? 게다가 내가 도망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고 쫓아오는것 같다.아니,그전에 어떻게 유계,그것도 이 던전을 딱 집어서 나를 쫓아올수 있었던 거지?' 일부러 뒤를 밟은 아기 돼지삼형제도 유계에서 잠시 아크의 행방을 놓쳤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빨리 아크를 찾아내다니? 설사 그들이 아크보다 먼저 유계에 들어와있었다고 해도 아크를 찾아낸 방법은 설명되지않는다. '뭔가 내가 모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게 분명해.내 위치를 알아낼수 있는 방법.......대체 뭐지? [추적] 주문서도 일정 거리밖에는 탐지할수업는데........그렇다고 놈들이 나한테 뭔가 수작을 걸어놨을...........가만,설마?' 아크는 잠시걸음을 멈추고 장화를 벗었다. '놈들과 연관이 있는게 있다면 이것뿐이다!' "안목!" 안목을 사용하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바람정령의 장화에 '마나퍼퓸'의 저주가 걸려있습니다. <'마나퍼퓸'에 걸린 아이템은 독특한 파장을 발산합니다. 이 파장은 저주를건 사용자가'메모리 오브 퍼퓸'마법으로 감지할수 있습니다.> '역시.........!" 뉴 월드에서 이해하기 힘든일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 스킬에 얽혀있는것이다. '미확인 아이템만이 아니라.다른 사람에게 아이템을 빼앗았을때도 일일이 확인을 해봐야하는거여어.젠장, 설마 이런 스킬이 있었을줄이야.어쨌든 저주계열의 마법이니'정화복원'으로 풀수잇을거야' 이미 아크는 궁지에 몰렸다. 저주를 푼다고 당장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는건 아니었다. 그래도 위치를 알려주면서 도망가는것보단 나으리라.그러나 막 정화복원을 사용하려던 아크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놈들은 장화로 내 위치를 알아낸다. 그렇다면...........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좋아,어차피 마나가떨어져 '전력질주'를 못하게 되면 놈들을 따돌릴수없어.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놈들을 해치우는것뿐이다' 아크는 전력질주로 한바퀴 빙돌아 거리를 벌려놓고 그란 들이 숨어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아크 님,무사하셨군요" "이상한 북소리가 들리고 소식이없어서 걱정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없어.일단 삽질이,이 물건들 받고 계약서 써!" 아크는 서둘러 가방의 아이템을 몽땅 건네주고 계약서를받아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유심히 봐두었던 주변의 길을 알려주며 말했다. "시간없어.내가 가르쳐 준곳으로 달려!" "네,무,무슨 일인데........" "설명할 시간없다고 했잖아.나중에 알게될테니 일단 뛰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삽질이가 화들짝 놀라며 달려나갔다. 그가 달려나가는걸 확인한 아크는 사악한 미소를지으며 장화를 데드릭에게건네주었다. "데드릭,이거 들고 삽질이를 따라가" "이쪽이다!" 쥬르는 레이더를 확인하며 복도를 내달렸다. "젠장, 엄청 빠르군.쥐새끼같은놈!" "하지만 놈도 언제까지고 그런 속도로 도망가지는 ㅁ소할거야" "그리고 내 마법을 알아채지 못하는한 우리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멍청한 놈,지금 어딘가에 숨어있는 모양이야.아까부터 한곳에서 움직이지않아.숨어있으면 우리가 못찾을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쥬르가 히죽거리며 중얼거릴때였다. 잠시 멈춰있던 아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러나 이전처럼 빠른 속도는 아니었다. "드디어 놈의 마나가 바닥나나것같다. 멀지않으니 금세 따라잡을수 있겠어!" 쥬르가 일행을 안내하며 붉은 점을 쫓아달렸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바로 눈앞에 모퉁이 뒤에서 허둥지둥 도망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크족이 모두 사라졌으니 쥬르 일당을 제외하면아크뿐이다. 쥬르 일당이 바짝 추적하자 붉은 점은 몇개의 모퉁이를 지나 다시처음 만났던 발코니로 향했다. "흥,등잔 밑이 어둡다는건가? 하지만 내게는 안통한다.아크!" "히익!" 발코니 끝에 숨어있던 아크가 기겁하며 몸을 돌려세웠다. 아니,그랬어야 한다.그러나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리는 사람은 아크가 아니었다. 땅딸한 체구의 드워프 상인,삽질이었다. "뭐,뭐야? 너는 누구냐?" "다,다른놈일리가없는데........분명레이더에........" 그때,쥬르의 눈에 삽질이의 머리위에서 파닥거리는 박쥐가 보였다. 박쥐가발로 꽉 붙들고 잇는 장화............바로'마나퍼퓸'이 걸린 바람정령의 장화였다. "맙소사,놈이 알아차린건가? 그럼 아크놈은 대체어디에........?" "여기있다,망할자식들아!" 등뒤에서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쥬르와 듀크들이 움찔하며 몸을 돌려세웠다. "너희들이 내 대신 수고좀 해줘야겠다.라둔,돌격!" 쌕쌕쌕! "뭐,뭐야.이 도마뱀은?" 라둔마로 변신한 라둔이 쥬르 일당을 향해 돌진했다. 쥬르 일행이 모여있는 곳은 사람 2~3명이 늘어서면 꽉차는 좁은 복도.거대해진 라둔이꽉 틀어막고 돌진하자 쥬르들은 그대로 주르륵 밀려났다.전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대항했지만.............멍청한 짓이다. "화격!" 아크가 '화격'으로 반격하자 전사들은 되려 튀겨나왔다. 그 떄문에 놈들은 발코니 끝에서 오들오들 떨던 삽질이와 한 덩어리가 되어 발코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발코니는 고작 3층 높이,추락 데미지는 그리 크지않았다.그러나.......그들이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한참 괴성을 지르며 의식을 진행하던 타무라드와 200나크족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웬놈들이냐?" 타무라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다니......죽여라!놈들을 갈기갈ㄱ 찢어 제물로 바쳐라!" "우오오오!" 나크족이 벌떡 일어나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헉,도,도망쳐!" "이,이미 포위됐어.도망갈길이 없다고!" "으으으,버텨,이대로 아크 자식을 코앞에 두고 죽을수는없어!" 쥬르 들은 마법과 스킬을 난사하며 몰려드는 나크족을 공격했다. 그렇게 10명의 헤르메스 길드원대 나크족 이백마리의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함께 떨어진 삽질이느 전투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나크족의 발에 깔려죽었다. "흑흑흑,삽질아.............." 북실이가 마법 영사기로 그의 숭고한(?)최후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었다. '이제 아기 돼지 삼형제도 하나밖에 안남았군' 쥬르들을 확실하게 속이기위해 어쩔수 없는 희생이었다. "주인,받아" 그때,데드릭이 장화를들고 날아왔다. "후후후,어설픈 스킬만 믿고 까부니까 그런꼴을 당하는거다" 아크는 씨익웃으며 다시'정화복원'으로 저주를 풀고 장화를 착용했다. 놈들은 스킬을 너무 믿엇다. 만약 아크를 뒤쫓으며 한번이라도 [추적]을 걸어놨다면 이런 수작에 걸리지않았으리라.덕분에 놈들은 200의 나크족을 상대로 가망없는 전투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행히 아직 보나와 레리어트도 무사하군.그란,북실이,따라와" 아크는 일행을 이끌고 유유히제단으로 내려갔다. TYPE BY RAYAN ACT 9 이노센스 나이트 "마나폭발!마법 융화!간다,블리자드!헬 파이어!" 콰콰콰쾅,쥬르가 스킬을 사용하자 양손에서 불과 얼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그러자 양쪽에서 몰려들던 나크족이 한쪽은 화염에,한쪽은 얼음에 휩싸였다. 주변을 쑫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고레벨 마법의 향연! "마법 화살,애로우 샤워!" 이어 듀크가 한 다발의 마법 화살을 하늘로 쏘아올렸다.영화에서나 볼수있는 화살의 소나기가 불과 화염에 휩싸인 나크족에게 쏟아졌다. 강력한 광역 스킬이 몇개나 중첩되자 몰려들던 나크족의 생명력이 단숨에 50%나 깎여나갔다. 그러자 6명의전사가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영웅의 일격!" "전사의 힘,할 원드!" 회오리치는듯한 검의 파상공격에 나크족이 속속 쓰러졌다. 과연 헤르메스 길드원의 파티다운 힘과 조직력이다. 그러나 상대는 200이다. 쥬르와 듀크,두 선구자가 최강 스킬을 동원해 순식간에 삼십여 마리를 쓰러트렸지만 나크족은 금세 빈자리를 채우며 밀려들었다. "죽여라!" "신성한 의식을 방해한 이방인에게 죽음을!" 아무리 날고뒤어 봤자 쪽수에는 장사가 없는것이다. "크억..........이,이런곳에서............" "길드의 숙원을 풀지 못하고 죽어야 하다니........분하다!" 둘이나 되는 회복술사가 쉬지않고 회복 마법을 걸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결국 선두에서 방어태세로 버티던 전사 2명이 다구리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공격에 집중하던 나머지 전사가 바로 방패를 꺼내들었지만 역부족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둠의 분노를 느끼거라!어둠의 손길!" 그때,갑자기 허공에 시꺼먼 손이 나타나 전사 하나를 잡아들었다. 그러자 전사의얼굴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하며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전황을 지켜보던 타무라드가 사령마법을 펼치기 시작한것이다. 타무라드가 가세하자 쥬르들의 진형은 단숨에 허물어졌다. "젠장, 이렇게 죽을수는 없어.볼케이노!" 쥬르가 발악하듯이 지속성 최강 마법을 시전했다.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바위가 치솟아 올라 나크족을 후려쳤다. 또다시 나크족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지만,그대가로 쥬르도 마나가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사이 나크족에게 둘러싸인 듀크는 수십개의 검날에 걸레가 되어쓰러졌다. "크윽...............바,바람정령의 장화만 있었어도..........." 하여간 미련이 많은 녀석이다. "듀크-!젠장, 으드득.........아크.......너,이 자식.........!" "쥬르님,저희도 마나가......." "버텨,버텨야해!이대로 죽을수는 없잖아!" "크아아악!" 번뜩이는 검광과 피!함성과 비명!쉬지않고 타오르는 마법의 불꽃! 실로 처절하고 장엄한 전투였다. "룰루랄라............" 그러나 아크에게는 어차피 남 일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전장에 집중된 사이,아크 일행은 콧노래를 부르며 마차롤 달려갔다. "엇,네놈은 또 누구냐?" 마차를 지키던 나크족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크족이 쥬르들과 혈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마차를 지키는 나크족은 고작 10명밖에 되지않았다. "정의의 용사다,어쩔래?" 아크는 귀살검을 휘둘러 화끈하게 썰어버렸다. 그리고 운명이라고밖에 할수 없는 재회가 벌어졌다. "각도 좋고,상황좋고.......액션!"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북실이의 신호를 받고 아크와 그란이 마차로 달려갔다. "레리어트님!" "보나 님!" "아크 님!" 넋놓고 전투를 지켜보던 레리어트가 깜짝놀라 창살에 반짝 다가왔다. "잠깐 기다리세요.바로 열어드리겠습니다" 아크는 하겔숲에서 얻은 열쇠로 자물쇠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마차에 갇혀있던 망자들과 보나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그란이 와락 달려나와 보나를 꽉 껴안았다. "보나 님!" "그,그란!흑흑흑,그란!무서웠어" "죄송합니다. 제가 지켜 드리지못해서............" 음,참으로 보기좋은 광경이다. 귓가에서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레리어트가 마차에서 나와 아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잠시 수많은 감정이 얽힌듯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셨군요.와 주실거라고 믿엇어요" "당연히 와야죠" 물론 반 이상은 퀘스트 해결이 목적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런 상황에서 그런것까지 시시콜콜 따질정도로 조잔한 성격이 아니다. 이럴때는 그냥 대범하게 숙녀를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온 기사의 역활을 해주는거다.게다가 마법 영사기가 돌아간다는 생각에 아크는 닭살돋는 대사도 거리낌 없이 날렸다. "레리어트 님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 끔찍한 곳이라도 망설이지않았을겁니다" 그러나 사정을 알리없는 레리어트는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허우적거렸다. "그,그렇게까지........!" "묻고싶은것도 많고,또 알려드리고 싶은말도 많지만,일단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하죠.비록 지금은 제 절친한'동료'들이 놈들을 상대하고 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겁니다. 그란,북실이!레리어트 님과 보나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 있어" "아,알겠습니다. 보나님,레리어트님.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걱정스러운눈길로 아크를 보며 물엇다. "아크 님은안가세요?" "저는 해야할일이 있습니다. 무고한 보나와 레리어트님을 잡아다가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악마같은 놈을 두고 도망갈수는 없지않습니까?또다시 이런 비극이일어나징낳게 하기위해서라도 저놈을 처단해야 합니다" 아크가 검을 들어올리며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보나를 구출했으니 이대로 도망가도 퀘스트 완료에는 문제가 없다.그러나 이렇게까지 일을 벌여놓고 퀘스트완료만으로 만족할아크가 아니었다. '미쳤냐? 보스를 잡으면 얼마나 이득이 많은데 그냥 돌아가? 게다가 놈은 출현 조건이 필요한 보스 몬스터!일단 잡으면 레어 이상 아이템을 떨굴거야.이제 계곡 마을에 부활장소도 갱신했으니 죽더라도 한번 붙어봐야 하잖아!' 이게 아크의 진짜 속내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볼 동영상을 찍으며 그렇게 대놓고 욕심을 부릴수는 없었다. 레리어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을 굳힌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군요.그렇다면 저도 돕겠어요" "네? 레리어트님이요?" "네,부탁이에요.아크님을 돕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뒤에서 보조마법 위주로 싸워주세요" 앞에서 알짱대면 '섬아'같은 기술을 사용할때 거치적거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위기에 취한 레리어트의 귀에는 '당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수 없습니다'라는 말로 들렸으리라. '나는 지금까지 아란경을 도우며 아크님을 힘들게만 했는데.......고작 면접장에서 한번 본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게다가 저렇게 아크님을 위해 목숨을아끼지않는 동료들까지 있다니.........아란이 위기에 처하자 뿔뿔이 흩어진 여명의 칼날 길드원과는 달라.역시 아크님은 내가 상상했던 사람이었던 거야!' 한번 오해하기 시작하자 레리어트는모든 상황을 편할대로 해석해버렸다. "역시 아크님은........" "네?" "아,아니에요.아크님 말대로 뒤에서 보조만할게요" 레리어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저었다. 아크와 레리어트가 그렇게 말도안되는 드라마를 찍고 있는 사이,불쌍하기 짝이없는 쥬르일당은 하나둘 쓰러져 갔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다. "빌어먹을 놈들,죽을때 죽더라도 한놈이라도 더죽이고 죽겠다!" 남은것은 회복술사 하나와 쥬르,둘뿐.......그러나 쥬르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완성까지 1분이나 소모되는 최후의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나크족이 몰려들었지만 쥬르는 회복술사의 회복마법을 폭포수처럼 맞으며 결국 마법을 완성시켰다. "크하하하,이게바로 선구자의 최후다,자폭!" 퍼퍼퍼펑! 순간 쥬르의 몸이 터져나가며 엄청난 폭발이일어났다. 주위에 몰려있던 나크족의 생명력이 단숨에 바닥까지 내려갈정도의 위력이었다.심지어 보스인 타무라드도 폭발에 떠밀려 몇미터나 밀려날 정도였다. 과연 선구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않은 최후였다. 그러나 쥬르의 장렬한 전사도 결국은 다 헛지랄이었다. 아마 아크가 뒤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것을 알았다면그들은 나크족과 싸울생각도 하지않았으리라.그러나 미처 아크를 발견하지 못한탓에 나크족의 숫자만 줄여주곡 죽는꼴이 되었다.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게되면 복장이터져 죽을지도............ '헤르메스 길드의 파티............생각보다 더 굉장하군.설마 이렇게까지 해 줄줄이야!'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나크족과 타무라드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나크족의 숫자는 200에서 90으로 줄어있었다. 쥬르들이 백십마리나 정리해준것이다. 게다가 광역 스킬을 난사해 준덕분에 남은 구십마리의 나크족도 생명력이 30%전후밖에 남지않은 상태였다. '이건 그야말로 경험치 밭이다!네놈들이 남긴 경험치,이몸께서 고맙게 접수하마!' "엘리멘탈 소드,화염!" 아크는 속성 마법 가운데 가장 파괴력이 강한 화염 마법을 귀살검에 걸었다. 아크가 전투 준비를 하자 뒤에서 대기하던 레리어트도 보조마법을 걸어주었다. "소드 오라,고스트 아머!"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주는 보조마법! "레리어트님,놈들에게 광역마법을 펼쳐주세요!" "네,바람의 칼날이여,토네이도!" 레리어트가 마법을 펼치자 무수한 바람의 칼날이 나크족을 휩쓸었다. 그러나 레리어트의 마법은 쥬르에 비할수 없었다. 고작 앞으로 몰려드는 이십여마리의 생명력을 5%남짓 깎앗을뿐이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해,간다!" 바람 마법의 뒤를 따라 아크가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감히............!" 선두에서 다가오던 타무라드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나 아크의 목표는 타무라드가 아니었다. 슬라이딩을 하며 지팡이를 피해낸 아크가 번쩍 몸을 일으키며 스킬을 폭발시켰다. "귀기 개방,섬아!" 번쩍-! 순간 검에 귀기가 감돌더니 한줄기 빛이 되어 나크족을 관통했다. 반경 20미터 내의 모든 적에게 데미지를 주는 '섬아'! 마침 남은 구십마리의 나크족은 타무라드의 뒤에 바짝 붙어 모여있던 중이었다. 그곳을 섬아가 관통하자 일시에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져 올라오며 구십마리의 생명력이 쫙 빠져버렸다. 아크가 연달아 섬아를 두번 난사하자 레리어트의 광여감법에 맞았던 나크족 이십여마리가 먼저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 섬아가 불을 뿜자 나머지 구십여마리가 일시에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단 세번의 스킬로 구십마리 몰살!게다가 그중 사십여 마리는 일도양단이 발동해 허리가 잘려나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졸개들만으로 단숨에 레벨이 2개나 올라갔다. "괴,굉장해!이,이런 장면은 처음이야!" 2층 발코니에서 마법 영사기를 돌리던 북실이가 입을 쩍 벌렸다. 레리어트도 마법을 외우다 말고 넋나간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놀란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타무라드도 믿기지않는다는 눈빛으로 피바다 속에 침몰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이,이럴수가.......!" "자, 이제 네 차례다.타무라드" 아크는 '귀기개방'을 해제하며 빙글 몸을 돌렸다. '귀기개방'은 속전속결로 처리할때만 사용해야한다. 장시간 사용하면 건강에 해로운것이다. "으드득, 네놈의 뼈를 잘근잘근 씹어먹고 말겠다!" "누구 맘대로? 자,가라.데이모스,데드릭.이제부터가 본편이다!" "우헤헤헤,기다리고 있었어!" 딱딱딱딱! 아크와 데드릭,데이모스가 세 방향에서 타무라드에게 달려들었다. 타무라드가 사령마법을 펼치려 하자 데드릭이 얼굴에 달라붙어 눈을팍 찔러버렸다. 이어 데이모스가 방패치기로 후려치자 움찔하며 마법이 해제되었다. 그 순간............! "라둔 ,검!엘리멘탈 소드,뇌전 !" 아크는 라둔이 뱉어낸 검에'엘리멘탈 소드'를 불어넣어 스파크를일으켰다. "으라차차,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콰! 강렬한 폭음과 함께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파편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검폭풍이 아니다. '엘리멘탈 소드'로 인해 일시적으로 뇌전 속성을 띤 검이 폭발하자 소용돌이치는 검 파편 사이에서 시퍼런 번개가 일렁거렸다. "크아아악,이 ,이놈!" 몸 여기저기에서 스파크가 튀어 오르며 타무라드가 뒤로 물러났다. 레벨 500의 보스몬스터 타무라드.그러나 마법사 계열의 몬스터라 방어력은 낮은 편이었다. 이미 쥬르 들의 광역 스킬에 각종 저항력이 내려가고 생명력이 40%가까이 빠져있는 상태.거기에 블레이드 스톰이 박히자 10%나 되는 생명력이 빠져나갔다. '좋아,이길수 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수 없다. 마법사 계열은 방어력과 공격속도도 가장 느리다. 그럼에도 많은 유저들이 마법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마법의 일격에 전황을 바꿀만한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콰콰콰쾅! 역시 타무라드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장난이 아니었다. 네크로맨서의 저주마법인 검은 안개가 퍼지자 상당한 암흑 속성 데미지와 맹독 데미지가 들어왔다. 그러나 아크는암흑속성 100%에 독 50%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저항력만 놓고 보자면 암흑 마법사의 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검은 안개에 휩싸이자 단숨에 300이상의 데미지가 들어왔다.게다가..........! "일어나라, 어둠의 자식들이여!" 타무라드가 양손을 활짝 펼치며 주문을 외우자 검은 기운이 확 퍼져나갔다. 그러나 나크족의 시체가 꿈틀거리며 좀비로 부활했다. 그러나 완전히 박살나거나,아크의 일도양단에 반토막 난것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숫자는 오십여 마리.그것도 생명력과 능력치가 50%미만의 상태로 부활했다. "젠장, 네크로맨서의 특수 마법인가?섬아!" 아크는 '섬아'를 난사해 좀비가 일어나는 족족 박살 냈다. 생명력이 50%라도 능력치가 50%밖에 안되어 방어력이 엄청나게 낮았다. 덕분에 좀비들은 섬아를 연사하자 확률로 일도양단되며 경험치로 환산될뿐이었다. 그러나'섬아'를 난사한 탓에 4,000에 육박하던 아크의 마나도 바닥을 드러냈다. '역시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진다. 속전 속결!' "데드릭, 쉬지말고 놈의마법을 방해해라!" "알았어.아쵸!여기다 ,이놈아!암흑돌진!" "데이모스,쉬지말고 방패 치기를 날려!" 딱딱딱딱,땡-! "크윽,이 날파리 같은 놈들이.......!" 마법사의 생명은 집중력.비록 데미지 자체는 얼마되지않지만 데드릭과 데이모스가 날리는 공격은 모두 약간의 경직을 발생시키는 기술이었다. 그런 자잘한 기술을 사용하며 깔짞거리자 마법 발동이 느려졌다. 거기에 레리어트까지 공격 마법을 난사하며 가세했다. "아크 님 .위험해요.선더 볼트!" 레리어트의 손끝에서 벼락이날아가 타무라드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딱딱? 딱딱딱딱! 그때,엉뚱한 상황이 벌어졌다. 타무라드가 면상을 맞고 휘청거리자 데이모스가 펄쩌 뒤며 레리어트를 향해 성질을내며 뭐라고 떠들어댔다. 레리어트가 당혹스러워하자 데드릭이 동시통역했다. "타무라드의 얼굴은 웬만하면 공격하지 말아 달라는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힉!" 데드릭이 어깨를으쓱거리다가 화들짝 놀라며 타무라드의 공격을 피했다. 근래 들어 부쩍 말을 잘듣게 된 데이모스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보스전 와중에 그런 사소한문제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엇다. '그래도 이제 거의 끝났어!' 그러나 그건 아크의 오산이었다. 타무라드가 결국 빈사상태에 빠졌을때였다. "크으으윽.........이,이럴수는 없어.이따위 놈에게 당하다니.........안 돼!나는 죽을수 없다!" 타무라드가 아크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아크는 재빨리'슬라이드'를 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타무라드의 목표는 아크가 아니었다. 그대로 앞으로 돌진하더니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던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다. 순간 엄청난진동과 함께 구덩이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올라왔다. "무,무슨 짓을..........?" 보스 몬스터가 자살하다니? 아크가 망연자실하고 있을때였다. 쿠-쿵! 돌연 구덩이에서 시커먼 팔이 솟아올라왔다.끈적끈적한 기름에 젖은 듯한 손.........이어 검은 점액질에 뒤덮인 타무라드가 구덩이속에서 불쑥 솟아올라왔다. 시커먼 형상에서 붉은 눈동자가 빙글 움직이며 아크에게 향했다. 그 혐오스러운 모습에 데드릭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힉,저, 저게뭐야?" [타무라드가 '진마眞魔의 파편'을 사용해 마魔속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마 속성의 보호막에 휩사여 타무라드의 바어력이 500%,능력치가 100%상승했습니다. 또한 모든 스킬의 추가 데미지를 무효화시킵니다. 단,신성 계열 속서이나 봉마封魔,멸마滅魔의 특성을 가진 무기는 마 속성의 보너스를 무효화시킬수 있습니다. <마 속성 : 전설로 전해지는 고대 마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속성입니다. 마 속서은 모든 속성 가운데 가장 우위에 있는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마의 파편?' "크흐흐흐,힘.........이게 어둠의 힘............파멸.........파멸이다.......모든것을.........파멸........!" 타무라드가 양팔을 들어올리며 희열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느낌이 안좋다. 데드릭,데이모스!A플랜이다!" "알았다 ,주인!" 딱딱딱딱! 아크는 데드릭,데이모스와 함께 타무라드에게 달려들었다.능력치가 100%상승했다고 해도 이제 남은 생명력은 10%도 되지않는다. 집중공격하면 1분안에 승부를 낼수 잇으리라. 그때,타무라드가 와락 몸을 돌리더니 지팡이로 마차를 후려쳤다.그러자 갇혀 있던 망자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타무라드가 망자 하나를 집어 와드득와드득 씹어삼켰다. 그러자 생명력이 조금씩 회복되었다. -타무라드가 '생명흡수'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적을 씹어삼켜 생명력의 일부를 흡수할수 있습니다> '뭐,뭐라고?' 아크가 경악성을 터트렸다. 이제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한 보스가 회복이라니?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아크는 기겁하며 재빨리 공격했지만 타무라드는 뒤로 물러나며 망자들을 몽땅 집어삼켰다. 그렇게 생명력을 30%까지 회복시킨 타무라드가 또 다른 마차를 부숴버렸다. '맙소사..........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이제 마나도 없다. 아크의 생명력도 30%미만이다. 그런 상황에서 보스의 능력치가 100%나 올라가고 생명력까지 회복할수 있다니? 게다가 망자가 담긴 상자가 몇개나 되니 앞으로 얼마나 더 회복할수 잇을지 모른다. "다크 블레이드!" 다급해진 아크가 마나를 박박 긁어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지만 타무라드의 생명력은 닳는 티도 나지않았다. 모든 공격 스킬의 추가 데미지를 무효화시키는 마 속성의 특성탓이다. 다크 블레이드의 최대 강점,방어력 무시가 발동하지않으니 평타나 다름없었던 것. '여기에 생명력까지 100%회복한다면........모든게 끝자이다. 어떻게든 회복만은 막아야해!하지만 공격을 해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으니.......신성 계열의 공격을할수 잇다면 모르겠지만 그 속성은 회복술사나 신전 기사밖에 사용할수 없는데.............젠장!' 망연자실한 얼굴로 타무라드를 바라보던 아크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쩌면 회복을 막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정신 차리십시오.그대들은 비록 한낱 이름없는 망자에 불과 할지라도 소중한 이 세계의 생명입니다. 결코 사악한 악마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굳센 의지로 악마와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십시오!" 아크가 온힘을 다해'간병'을 펼쳤을때였다. 퍼펑-! "크으으윽.......!" 막 또 하나의 망자를씹어대던 타무라드의 입에서 하얀 섬광이 터져나왔다.그러자 타무라드는 회복은 커녕,오히려 적지않은 데미지를받고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역시 예상대로다!간병으로 놈의 회복을 막을수 있어!아니,잘만하면 오히려 놈을 해치울 수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망자를 먹다가 오히려 데미지를 받은 타무라드. 이건 바로 아크가 사용한 간병의 부가효과가 작용한 덕분이었다. 아크조차 잊어먹고 있던 간병의 부가 효과........바로 축복이다. 그리고 축복은 신성 속성. 신성 속성이 뜨게된 망자를 먹자 오히려 데미지를 받은것이다. 원래 망자는 부상자가 아니라서'간병'효과를 받을수 없다. 그러나 타무라드가 생명흡수를 하기위해서는 망자를 씹어야한다. 그순간 망자는 부상자가 돼버린다. 아크는 그 찰나의 시간을 노렸다가 간병을 사용한것이다. 그뒤로도 아크는 타무라드의 공격을 피하며 정신을 집중해 망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리고 타무라드가 망자를 삼키려는 찰나에 간병을 사용해 회복을 막으며 데미지를 주었다. 그렇게 서너번 간병을 사용해 회복을 막았을때였다. 또다시 타이밍을 노리다가 재빨리 간병을 사용하자 아크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나왔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망자를 생각하는 당신의 진심은 공간과 종족의 한계마저 뛰어넘었습니다. 생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왕국을 지배하는 국왕이나,길거리를 헤매는 한 마리 들개나,소중한 생명이라는것은 다를바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심지어 성직자조차-그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수많은 생명을 돌봐온 당신은 그같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저 유계를 떠도는 의지없는 생명체,망자 역시 하나의 생명입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망자의 생명조차 저버리지 않은당신!당신은 진정 간병인의 귀감이 될만한 업적으로 인해 간병인으로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증가했습니다. *성향이 선으로 50증가합니다. *2시간 동안 모든 망자에게 '축복'효과가 적용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상승합니다.] '이거야 말로 진짜 기적이다!' 기적의 간병 효과로 인해 모든 망자에게'축복'이 적용되었다. 말하자면 타무라드의 음식들이 모두'맹독'으로 바뀌어 버린것이다. 덕분에 타무라드의 생명력 회복은 50%에서 멈춰버렸다. 그러나 회복이멈췄을뿐,사실 상황은 그리 나아지징낳았다. 타무라드에게 적용되는 마 속성 보너스는 여전히 건재했고,마나까지 바닥난 아크로서는 공격할 방법이없었다. "크으으으,이놈........감히 이몸의 식사를 방해하다니........!" 식사(?)를 방해받은 타무라드가 분노의 일갈을 터트렸다.순간 타무라드의 몸을 휘감은 검은 점액질에서 수백개의 손이 뻗어나왔다.순식간에 망자 수십마리가 검은 손아귀에 잡혔다. 그러자 망자들의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더니 눈 깜빡할사이에 재 가루처럼 변해버렸다. -타무라드가'죽음의 손길'을 사용했습니다! <죽음의 손에 잡히면 1초에 10의 생명력이 빠져나갑니다> "헉,뭐,뭐야?슬라이드!데이모스,데드릭!전력을 다해 피해라!" 아크가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검은 손을 피하며 소리쳤다. 다행히 본능적으로 위기를느낀 데이모스와 데드릭역시 하늘을 날고,바닥을 구르며 검은 손을 피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애꿎은 망자들만 검은 손에 틀어잡혀 재 가루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순간,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레리어트는 검은 손이 닿지않는 곳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발을 굴러대고 있었다. 그런데 검은 손 하나가 근처의 다른 망자에게 향하자 기겁하며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안돼-!" "레,레리어트님?"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레리어트가 망자를 밀어내고 대신 타무라드의 손아귀에 잡혀버린것이다. 레리어트의 생명력이 빨대로 빨리는것처럼 쭉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생명력이 바닥나려는 순간........! 번-쩍! 돌연 눈이 멀어버릴것만 같은 섬광이 터져나왔다. 아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돌리자 한쪽에서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리어트에게 밀려난 망자가 갑자기 탈피하듯이 갈라지더니 빛에 휩싸인 기사가 나타났다. 검과 방패를 든 빛의 기사! 번뜩,그가 타무라드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가 검으로 손아귀를 내리쳤다. 번쩍,콰콰쾅! 아크의 공격에는 끄떡도 않던 타무라드가 휘청거리며 스턴 상태에 빠져버렸다 .그틈에 빛의 기사가 레리어트를 받아들고 아크의 옆으로 날아왔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거야? 이놈은 또 뭐야?' 아크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그때,창백한 얼굴의 레리어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홀리나이트......!" "홀리나이트? 홀리나이트라니? 설마 이게 아란이란 말입니까?" 아크가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빛의 기사는 아크의 질문을 가볍게씹고 레리어트를 향해 말했다. -백옥처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숙녀여......그대의 희생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빛의 기사가레리어트를 향해 살짝 고개를숙였다. -그대가 알고있는것처럼 나는 홀리나이트 로니안이다. 나와 영혼으로 연결된자가 어둠에 물들어서 나 역시 타락해 유계로 떨어져 이름없는 망자가 되었지.만약 그대가 아니었다면 망자인채로 어둠의 일부가 되어 영원히 고통받았을것이다. "당신의 종자에게 부탁받았어요.그래서......." -알고있다. 조니.......불쌍한 녀석.그대가 나를 찾아낼수 있었던 것은 조니가 인도해준 덕분이었지.그리고 그대는 그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였다. 나는 그동안 그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는지 알고있었다.그러나 내가 짊어져야 햇던 절망은 상상이상이었다. 나 스스로도 이겨내지 못할 만큼......... 로니안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의 팬던트를꽉 움켜쥐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다시 눈을 뜨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대들은 모든것을 잃어버린내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저 사내가 내게 축복을 내린 덕분에 약간의 정신이 돌아올수있었다. 그리고 그대는 인간이 할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로 나를 보호해주었다. 바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그대의 아름다운마음은 나의 정신을 완전히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대가 나의 뜻을 이어준다면 나는 다시 예전처럼 천계로 돌아갈수 있을것이다. 로니안이 팬던트를 풀어 레리어트에게 내밀었다. -아름다운 처녀여........그대는 나의 뜻을이어주겠는가?받아주겠다면 그대에게 홀리나이트를 뛰어넘는 가장 성스러운 칭호'이노센스 나이트'를 부여하겠노라. [홀리나이트 로니안으로부터'이노센스 나이트'의 전직을 권유받앗습니다. 로니안의 제안을 승낙하면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이 가능합니다. 이노센스 나이트는 홀리나이트 계열의 여성 전용 직업니다. 이노센스 나이트는 대부분의 특성이 홀리나이트와 동일합니다. 단,같은 무기나 방어구를 착용해도 적용되는 공격력과 방어력이 약합니다. 대신 신성 계열의 마법은 홀리나이트보다 많은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전직하면 현재 직업인 '매지션'은 자동으로 취소되며 레벨과 스탯을 제외한 모든 스킬과 특성은 초기화됩니다. 대신 로니안의 능력을 이어받아 특수 보정치가 가산됩니다. 지금까지 올려놓은 스킬 포인트의 50%를 돌려받을수 있습니다. 돌려받은 스킬포인트로 임의대로 스킬을 올릴수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정보창을 바라보며 고민하던 레리어트가 고개를끄덕였다. ".............전직하겠어요" -그대의 뜻대로 될 것이다! 로니안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레리어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크으으으........이놈.........감히........죽음을........!" 그때,스턴에서 벗어난 타무라드가 둘에게달려들었다. 레리어트는 재빨리 스킬 목록을 훝어보고는 바로 신성 마법을 시전했다. "순결한 방패!" 순간 둘 앞에 빛의 방패가 나타났다. 콰쾅,격렬한 충격과 함께 폭음이 울렸다. 당연히 급조한 빛의 방패로는 타무라드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수는 없었다. 그러나 놀라운것은 타무라드의 반응이었다. 공격을 한 타무라드(:본문에는 라르칸으로 표기되있음)가 오히려 데미지를 받고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래,놈의 약점은 신성마법이었지!' 이제 로니안과 레리어트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관심없다. 지금 중요한건 레리어트가 전직을 한 덕분에 타무라드를 공략할 방법이 생겼다는 점이다. "레리어트님,검에 신성 마법을 추가할수 있습니까?" "하,할수 있을것 같아요" 레리어트가 다시스킬 정보창을 열고 목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돌려받은 스킬 포인트를 사용해 '순결한 검'을 중급으로 만들고 아크에게 걸어주었다. ['순결한 검'으로 귀살검에 신성 속성의 마법이 적용되었습니다<데미지+15%,암흑 속성에 대해서 방어막 무효화,추가 데미지+15%>] "좋아,귀기 개방!" 아크는 귀기까지 덧씌워 타무라드를후려쳤다. 퍼퍼퍼펑-! 검은 점액질에서 폭음이 일어나며 타무라드가 휘청거렸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검으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않던 놈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효과가 있다!' 아크의 눈에 다시전의가 샘솟았다. 그사이 레리어트는 열심이 스킬 정보를 읽어보고 두가지 오라를 찾아 스킬 포인트를 투자해 중급으로 올려놓았다. "순결한 영혼,전사의 기력!" 암흑계열의 공격을 일정확률로 반사시키는 순결한 방패! 암흑 계열의 공격에 방어력이 30%상승하는 순결한 영혼! 생명력을 20%올려주는 전사의 기력! 이노센스 나이트도 홀리나이트처럼 버프를3개나 중첩시킬수 있었다. 그렇게 오라를 중첩시킨 레리어트는 뒤이어 회복마법도 중급으로 올려놓고 아크에게쏟아부었다. 덕분에 다크는 타무라드와 팽팽하게 맞설수있었다. 그렇게 몇분간 밀고당기는 전투가 계속될 무렵,검은 점액질이 떨어져 나가며 균열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고양이의 눈으로 간파된 타무라드의 급소! 아크는 본능적으로 결정타를 날릴 기호임을 깨달았다. "바다정령의 가호!" 아드리안의 목걸이가 빛을 뿜어내며 바다정령이 방어력과 마나를 상승시켜주었다. "라둔,뮤탈 세검!" 쌕쌕쌕! 아크는 세검을 양손으로 쥐고 균열을향해 블레이드스톰을 날렸다. 격렬한 소리가 울리며 검이 균열에 쑤셔 박혔다. "받아랏,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쾅! 검은 기운안에 쑤셔박힌 세검이 격렬하게 폭발했다. 순간 검은 점액질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확 수축했다. 그리고 잠시 기뵤한 정적이 흐르더니 허물이 벗겨지듯 타무라드의 몸에서 검은 점액질이 우수수 떨어져나갔다. 다시 드러난 타무라드의 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아크는 곧바로 귀살검을 뽑아들며 횡으로 그었다. 번뜩,일도양단이 발동하며 목이 댕강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메시지 창이 주르륵 올라갔다. 단숨에 레벨 9상승!한번에 올라갈수 있는 레벨의 한계치까지 경험치가 가산되었다. 일도양단으로 죽여 경험치에 추가 보너스가 적용된 덕분이었다. "이,이럴수가..........어둠의 ...........어둠의 제왕의 힘이........" 바닥을 구르던 타무라드가 훅 하고 숨을 불어내며 떠듬거렸다. "이 힘을 부활시키면........절대적인 힘을 얻게 된다고......세상을 파멸시킬 위대한 어둠의 힘을 얻게 된다고......그자가,그자가......말했는데......거짓말이었단......말인가......." '그자?' 수상하기 짝이없는 단어에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릴때였다. 타무라드의 입이 벌어지며 검은 구슬 같은 것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크가 움찔하며 검자루를 움켜쥐려는 찰나....... 삐이이이익-! 돌연 날카로운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검은 독수리가 벼락처럼내리꽂혔다. 그리고 앗,하는 사이에 구슬을 낚아채더니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일이라 미처 대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뭐,뭐야? 저 독수리는?" 눈으로 독수리를 쫓던 아크는 곧 절망의 심연 꼭대기,악마상의 머리에서 한 사내를 발견할수있었다. 달조차 모습을 감춘 밤하늘을배경으로 서있는 사내.자세한 형상은 확인할수 없었지만 화염처럼 일렁이는 붉은 머리칼과하얀 가면이 유난히 도드라져 눈에 박혔다. '설마.......붉은 남자!' 이그드라실이 보여줫던 영상 속에 나타났던 붉은 남자! '설마 타무라드가 말했던'그자'가 바로 저 붉은 남자였단 말인가 ?그렇다면........이 사건의 배후에도 붉은 남자가? 그럼 구슬에 뭔가 다른 단서가 있다는 말이다!' 아크는 당장 뛰어 올라갈 기세로 움찔하다가 멈췄다. '젠장, 여기쏟아져 있는 아이템이........!' 지하광장에는 200이나 되는 나크족이 떨군아이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게다가 아직 타무라드가 떨군 아이템도 확인하지 못한 상태! 붉은 남자를 쫓자고 이 모든것을 포기할수없다. 그리고 이제와 서 쫓아봤자 잡을수도 없었다. 붉은 남자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독수리가 다가오자 다리를 잡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곧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데드릭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속도! 아크와 레리어트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수밖에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레리어트가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와락 아크를 껴안았다. "꺄악,이겼어요!우리가 타무라드를 쓰러트렸어요!" 동시에 아크는 붉은 남자에 대한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레,레리어트님?" 팔짝팔짝 뛰던 레리어트는 움찔하고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죄,죄송해요.너무 기뻐서.........." "아,아니요.그냥 안고 계셔도 되는데........." "네?" "아닙니다" 아크는 얼른 고개를저으며 입을 다물었다. 둘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기를 잠시.....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레리어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렀다. "저...........저는 일단 여기서 해야할일을 다했어요.그런데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을 모르겠어요.제가 들어온 게이트가 바로 사라졌거든요" 뭔가 기대하는눈빛으로 바라보던 아크는 실망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저도 아직은 나가는방법을 못찾았습니다. 제가 들어온 게이트도 일방통행이었거든요.도움이 못돼서 죄송해요" "아니,그게 아니고.........게이트를찾을때까지 아크님하고 같이 다녀도 될까요?" "네?" 아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리어트를 바라보앗다. 레리어트와 함께 다닌다. 이건 게임을 시작할때부터 바라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번 보스저에서 레리어트의 덕을 톡톡히 본 아크는 그녀와 동행해도 나쁘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아이템을 나눠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호감은 호감이고,현실은 현실이 아닌가? 그 부분을 확실하게 못 박아놔야 할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녀와 동행하는걸로 인해 수입이 반으로 줄어든다면 아무리 호감을 가진 상대라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문제였다. "저도 도와주는 분이 계시면 좋죠.하지만 그전에 아이템에 대한것은............." "그냥 잠시 동행해 주시면되죠.다른건 안바랄게요" 아무래도 레리어트는 게임 초기부터 재벌 유저인아란과 함께 생활해서 그런지 아직 배고픔을 모르는 모양이다.그렇지않고서야 아이템이 필요없다는 말이 나올리가 없다. 아니면 사양해도 그녀가 필요한 아이템은 아크가 알아서 챙겨줄거라고 생각하는걸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단단히 잘못봤다.물론 잡템 몇개 정도는 양보해 줄수있지만, 그이상은 설사 정의남이라도 양보할 생각이없다. '그래,그녀는 이번에 새로 기사 계열로 전직했어.지금까지는 마법사 장비 아이템을 입고 있었으니 기사용 잡템만 챙겨줘도 뭐라고 하지않을거야' 어쨌든 레리어트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고마워요.그럼 저는 잠시 스킬 좀 정리하고 있을게요.스킬이 모두 바뀌어서 새로정비해 놔야하거든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리어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보나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태도에서 약간 묘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크는 이내 고개를저었다. '유계에서 혼자 헤매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놓였을뿐일거야'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속마음보다 더 궁금하게 있었다. '타무라드의 아이템!' 고생한 만큼의 보답을 주는 보상 아이템이다! "좋아,라둔.너는 주변에 떨어진 잡템을긁어모아" 쌕쌕쌕! 아크는 라둔을 풀어놓고 타무라드에게 다가갔다. [네크로맨서의 정수 이계의 설산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진 몬스터의 정수입니다. (:원문에는 몽구스의 정수로 표기되있음) *상급 서바이벌 요리사의 뛰어난 직감으로 몬스터의정수에 관련된정보를 파악했습니다. 강력한 사령마법으로 절망의 평원 나크족을 지배하던 네크로맨서 마스터 타무라드의 정수입니다. 마력이 깃들어 죽음의 세계와 연결된 신비로운 지식의 결정체입니다. 내단을 완성시키면 죽음의 세게와 관련된 일부를 습득할수있을것입니다. <몬스터의 정수 등급 : A>] "헉 ,A등급 몬스터의 정수..........!"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중간게에서는 하나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정수가 유계에서는 벌써 두번째다.그것도 하난 세트 정수 그리고 이번에는 A급 정수! A급 내단이라면 '슬라임의 내단'보다 강력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는 듯.그 보너스는 상상을 초월하리라. '일도 양단의 효과일까? 아니면 유계에서는 원래 정수가 나올 확률이 높은건가?' 나오기만 한다면 뭐가 됐든 상관없다. 아크는벌렁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죽음이 각인된 지팡이(유니크) 무기 타입 : 지팡이 공격력 : 35~40 내구력 : 55/90 무게 : 40 사용제한 : 레벨 200이상 네크로맨서 계열 네크로맨서 마스터 타무라드가 사용하던 지팡이.엄청난 숫자의 시체에서 뽑아낸 뼈를 녹여만든 사악한 아티팩트입니다. 죽음을 지배하는 강력한 마력이 깃들어있습니다. <옵션 : 정신력+30,지능+20,생명력+200,네크로맨서 스킬 능력치+10%> <특수 옵션 : 네크로맨서 전용 스킬 '죽음의 권능'효과가 적용됩니다. '죽음의 권능'은 소환한 모든 언데드 몬스터의 능력치에 30%의 보너스를 적용시켜 줍니다>] 아이템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빙글빙글돌았다. 이것 역시 말할것도 없는 대박 아이템이었다. 레어 이상 아이템에는 대부분 스킬 옵션이 붙어있지만, 패시브 옵션이 붙어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그 효과가 언데는 소환수의 능력치 30%상승! 일반 옵션에도 네크로맨서의 모든 스킬을 10%상승시켜주는 패시브 옵션이 붙어있다. 네크로맨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고 싶어할 아이템이었다. '네크로맨서는 초반에 사령 소환에 들어가는 제물이 많이 소모돼서 자금에 여유가 있는 유저가아니면 키우기 힘들어.그런 캐릭터를 레벨 200이상 키운 유저라면 이 정도 아이템은 비싸게 불러도 살거야!' 유계는 아직 10여명밖에 들어오지못한 미개척 지역이다.대부분의 몬스터와 보스가 아크에게 처음 죽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 몬스터가 떨구는 아이템 가운데 최상급 아이템이 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거기에 확률을 더 높여 주는 일도양단까지 있으니 유계는 아크에게 노다지 광산이나 다름없었다. 딱딱딱,딱딱딱! 그때,타무라드의 머리가 떨어진곳에서 데이모스가 이를 마주치는 소리가들려왔다. 무슨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아크의 눈앞에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이 펼쳐졌다. 우둑,우둑,우두두둑! 데이모스가 잘려나간 타무라드의 머리를 집어들고 살점을 뜯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머리통을 해골로 만들어버린 데이모스는 흐뭇한 눈길로 이내 자신의 해골을 잡아뜯었다. 그리고 타무라드의 해골을 떡하니 올려놓았다. 그러자 해골의 눈두덩이에서 타오르던 파란불꽃이 사그라지더니,새로운 해골의 눈두덩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저게 뭐야? 맙소사......그럼 데이모스가 타무라드의 머리를 공격하지 말라고 날뛰었던 이유가..........?' 타무라드의 해골이 탐나서였단 말인가? 아무리'뼈 수집 취미'가 있다고 하지만 머리통까지 바꾸다니? 엽기도 이런 엽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아크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데이모스가 해골을 바꾼것은 단순한 뼈 수집이 아니었다. 해골을 바꾼 데이모스의 몸이 붉은 광채에 휩싸인건 잠시뒤였다. 곧이어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TYPE BY RAYAN TO BE CONTINUED 도 서 명 : 아크 10 지 은 이 : 유성 펴 낸 이 : 이종주 출 판 사 : 로크미디어 출판년도 : 2009년 3월 30일 봉 사 자 : 김연경 <지은이 소개/ 유성> 작가 유성의 변신이 놀랍다! 그의 전작 (로스트 킹덤)은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전략, 전술이 어우러진 정통 판타지로 다소 무게감 있는 글이었다. 그런 그가 180도 변신해 돌아온 작품 (아크)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게임 소설이 지닌 재미를 극대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크)는 맛있다. 마치 지금 막 담은 겉절이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처럼 신선함이 화악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르 문학 사이트 ‘문피아’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된 (아크).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올여름 작가 유성의 손끝을 주목한다. <사진설명> 붉은 실오라기가 휘날고 있다. 검은색과 황색이 적절하게 조합된 배경으로 구성되어있다. <차례> 1 데이모스의 직업은? 2 조삼모사 3 이명룡의 굴욕 4 계곡 마을의 아르바이트 5 연구실을 찾아서… 6 마이 페어 레이디 7 갈킨족의 재난 8 명의 아크 9 마가로프의 연구실 1 데이모스의 직업은? (플레이어의 소환수 ‘데이모스’가 신체를 이루는 모든 부품을 재구성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언데드는 강한 원념이나 저주의 영향으로 생겨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은 완전한 육체와 생명에 대한 욕망 그리고 저주에 가까운 질투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들에 대한 언데드의 밑도 끝도 없는 적개심은 그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플레이어가 대충 조립한 육체는 허접스럽기 짝이 없어 데이모스의 진화는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신체를 구성하는 208개의 뼈와 마지막으로 두개골까지 교환해 ‘퍼펙트 스컬’이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부품을 융합, 신체에 맞도록 최적화시킨다면 새로운 진화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충 조립한? 허접스럽기 짝이 없는?’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찌그러졌다. 옛 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다. 아크가 소환수에게 느끼는 감정도 역시 마찬가지. 비록 수틀리면 두들겨 패는 게 일이지만, 그게 어디 패고 싶어서 패는 건가? 다 지들 잘되라고 패는 사랑의 매다. 그렇게 하나하나 몸에 좋은 음식(?)만 골라 먹이고, 뼈에 사무치는(?) 교육을 시키며 자식처럼 기운 소환수들…. 그러나 아크도 사람인지라 모든 자식이 다 똑같이 예쁠 수는 없었다. 원래 부모란 손이 많이 가는 자식에게 더 애정이 가는 법. 영악한 데드릭은 비록 조금만 방심해도 싸가지를 상실해 버리지만, 박쥐 시절부터 어디에 던져둬도 살아남을 생존력 강한 소환수였다. 라둔 역시 데드릭보다는 떨어지지만 항상 허리에 감겨 있으니 손이 갈 일은 없었다. 반면 데이모스는 처음 만났을 때 그저 해골이었다.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특기도 없었다. 오죽하면 몬스터에게 집어 던지는 투척 무기로 사용했겠는가? 그런 해골을 어엿한 스켈레톤으로 만든 것은 아크였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의남에게 인체 도감을 빌려 며칠 밤을 새우며 달달 외웠다. 그뿐인가? 수백, 수천 마리의 스켈레톤을 잡으며 각종 뼈를 긁어모으고, 직소 퍼즐처럼 끼워 맞춰 지금의 데이모스를 만들어 냈다. 데이모스는 진정한 의미로 아크의 창조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소환수 한 마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소환사는 없겠지?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뿌듯한 걸.’ 덕분에 밥값을 할 수 있게 된 데이모스를 보면 은근히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여 만든 몸을 대충 조립한 허접스러운 몸이라니? 정보창에 분노를 느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아니, 정보창만이 아니다. 결국 데이모스 역시 ‘뼈 수집’으로 뼈를 긁어모은 게 아크가 개고생하며 만들어 준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단 말인가? 그것도 206개를 몽땅 갈아 치울 정도로? 그동안 뼈를 갈아 치울 때마다 능력치가 상승하니 좋아했지만 막상 그런 부분에 생각이 미치자 은근히 배신감까지 들었다. “데이모스, 진화하게 돼서 좋긴 좋다만… 뼈를 몽땅 갈아 치울 만큼 내가 만들어 준 몸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냐?” “오오오, 이제야 깨달은 거냐, 주인?” 그러자 옆에서 수상한 눈치를 보이던 데드릭이 바짝 다가와 주둥이를 놀려 댔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이놈은 처음부터 주인이 고생해서 만들어 준 몸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주인을 위해서 더 강한 몸을 만들고 싶다고 둘러댔지만, 속으로는 이딴 몸을 만들어 주고 생색낸다고 욕하고 있었을걸. 이놈은 그런 놈이야, 음흉한 자식! 겉으로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 같아도 언데드 따위는 믿으면 안 돼. 뼈다귀밖에 없는 놈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알겠어?” 데드릭이 슬쩍 빛에 휩싸여 있는 데이모스를 흘기더니 샐쭉, 입술을 추켜올렸다. “내가 치사한 것 같아서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주인이 못 알아듣는다고 저 녀석이 얼마나 욕하는 줄 모르지? 고생은 고생대로 시키고 붕어빵 하나 안 사 주는 치사한 인간이라는 둥, 스킬 하나 잘못 써서 자기가 죽었다고 며칠 동안 힘없는 소환수를 두들겨 패며 분풀이를 하는 인간 망종 같은 놈이라는 둥….” 딱딱? 딱딱딱딱! 한참 빛에 휩싸여 있던 데이모스가 데드릭의 이간질에 화들짝 놀라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데드릭은 예상하고 있었던 듯 재빨리 아크의 등 뒤로 숨었다. “이거 봐, 놈이 본색을 드러내잖아! 진실을 은폐하려고 하잖아! 주인이 구두쇠에 폭군에 망할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고… 커헉, 주, 주인?” “이 자식, 말이면 단 줄 알아?” 아크가 와락 목을 잡아채자 데드릭이 숨 막히는 비명을 터뜨렸다. “수, 숨 막혀! 왜 이러는 거야? 그건 모두 저 해골바가지가 지껄인 말이라니까!” “이 몸을 바보로 알아? 붕어빵 사 달라고 졸랐던 것도, 아구스 산맥에서 스킬 잘못 써서 이 몸을 개밥으로 던져 준 것도 모두 네놈이잖아!” “어? 그, 그런가?” 데드릭은 움찔하며 눈알을 굴리다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에이,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거지.” “호오, 그러셔?” 화, 화난 거 아니지? 주인이 마음이 바다보다. 넓잖아.“ “아니, 나는 구두쇠에 폭군에 망할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 속도 요만한 놈이다.” “… 주인, 팰 거냐?” 안 되겠다 싶었는지 데드릭이 불쌍한 표정으로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아크는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젠장, 마음대로 해! 할 말 다 했으니 원은 없다!” 자포자기한 데드릭이 대자로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가 살짝 빈정 상한 기색을 보이자 기회다 싶어 평소하고 싶었던 욕을 떠들어 대고, 더불어 데이모스와 아크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던 데드릭의 야심은 철저히 응징되었다. 쌕쌕쌕쌕! 딱딱딱딱! 아크는 물론, 라둔도 아빠(?) 를 욕한 데드릭에게 화가 치밀었는지 거대화되어 발로 밟아 댔다. 게다가 막 진화를 앞둔 데이모스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방패로 후려쳤다. 아크와 두 소환수가 밟아 대자 데드릭은 몇 초 만에 뭉개 놓은 반죽처럼 변해 버렸다. “크흐흐흑, 그래, 패라, 패, 항상 나만 나쁜 놈이지.” 빈사 상태에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데드릭이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다가 와락 몸을 일으키더니 구석으로 도망치며 소리쳤다. “흥, 데이모스, 너도 방금 날 때렸지? 진화하게 됐다고 벌써 잘난 척하는 거냐? 웃기지 말라 이거야. 두고 봐! 나도 곧 굉장한 소환수로 진화할 테니. 그때가 되면 너나 주인도 나를 지금처럼 무시할 수는 없을 걸!” “하여간 저놈은….”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째 쓸데없는 짓을 한다 싶더니… 괜히 그런 건 아닌 모양이다. 지금까지 데드릭이 데이모스보다 능력치가 낮았던 적은 없었다. 진화는 한참 먼저 했고, 신작 요리를 먹는 벌칙도 더 많이 받아 항상 능력치가 데이모스보다. 앞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데이모스가 진화하면 상황이 역전된다. 데드릭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완전 어린애가 따로 없군.” 딴에는 영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데드릭의 한계다. 그래서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진화를 하게 된 건 확실하군.” 아크는 시선을 돌려 휩싸인 데이모스를 바라보았다. 예상 밖이라기보다는, 너무나 뜬금없이 아직도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환수의 진화는 오직 마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다. 때문에 종종 경매 사이트에서 마검을 찾아보기도 했다. 소환수를 진화시킬 수 있다면 원칙을 깨서라도 현질을 해서 마검을 살 마음이 있었다. 그만큼 소환수의 진화는 아크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화하게 될 줄은…. 그런데 이렇게 진화하는 것과 마검으로 진화하는 게 뭔가 다른 건가? 아니면 원래 내 소환수는 첫 번째 등급만 마검으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방법으로 진화시켜야 하는 건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면 성장시키는 조건에 따라 소환수의 능력치나 성향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건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있는게 없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도 새삼스럽지만, 역시 숨겨진 직업으로 전직한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숨겨진 직업은 공개된 직업과는 다르다. 문자 그대로 숨겨진 직업이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다는 뜻. 하나하나 아크가 직접 플레이하며 알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특히 소환수 부분은 더욱 그랬다. 물론 뉴 월드에는 소환수를 다루는 다른 직업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직업이 네크로맨서와 정령사. 아크 역시 처음에는 이들의 정보를 자주 찾아보았다. 그러나 두 직업 모두 아크의 소환수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네크로맨서에게 소환수는 1회용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소환할 수 있지만 지속 시간이 지나면 그걸로 끝. 소환수를 성장시킨다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성장이라고 한다면 스킬을 올려 더 강한 소환수를 불러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정령사의 경우는 그래도 최초에 소환한 정령을 데리고 다니며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크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정령은 유저의 관련 스킬이 성장하면 함께 성장한다. 즉, 정령술 스킬이 하급에서 중급이 되면, 정령도 중급이 되는 것. 때문에 네크로맨서나 정령사의 정보는 아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아크는 다른 소환 계열 직업보다. 복잡한 다크워커의 소환수 성장 시스템이 상당한 페널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그만한 메리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소환수에게 전투 교육을 시키는 게 당연한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 네크로맨서나 정령사의 소환수는 모두 자신의 의지가 없었다. 전투가 벌어져도 주인이 명령하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다. 정령은 등급이 올라가면 조금 영리해진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역시 간단한 패턴 몇 가지를 익힐 수 있는 정도. 데드릭이나 데이모스처럼 스스로 알아서 전투에 참가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리고 어렵게 성장시킨 만큼 서로 애착이 깊어지는 것도 장점이겠지.’ 아크는 피식 웃으며 아직도 투덜거리고 있는 데드릭을 바라보았다. 항상 북적북적한 분위기. 외아들인 아크는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가 꽤나 거추장스러웠지만,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소환수가 없는 뉴 월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솔로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소환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 이런 생각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데드릭이 설쳐 댄 탓에 잠시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샜다. 아크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진화를 실행하겠냐는 질문이 눈앞에서 깜빡거리고 있었다. “어쨌든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지, 진화!” 이로써 데이모스는 드디어 두 번째 진화를… 이라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뉴 월드라는 곳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뒤어어 정보창이 사라지더니 엉뚱하게 아크의 눈앞에 거대한 원반이 나타났다.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반은 룰렛처럼 색깔별로 분할되어 있었고, 상단에 붙은 손가락뼈가 한 지점을 가리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뭐야, 이게?”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데이모스’의 특수 진화를 시작하겠습니다. 현재 데이모스를 구성한 뼈는 전사 계열 32%, 도적 계열 27%, 마법사 계열 8%, 언데드 계열 15%., 기타 18%입니다. 그 구성으로 진화할 수 있는 직업은 모두 열일곱 가지입니다. 그러나 소환수의 직업은 플레이어가 임의대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가 데이모스의 구성과 성향에 따라 가장 적합한 직업이 부여될 것입니다.) “뭐, 뭐야? 진화할 수 있는 직업이 열일곱 가지라고?‘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검으로 진화할 때는 주인이었던 마령의 직업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직업을 물려줄 마검의 주인이 없다. 대신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뼈다귀들만 있을 뿐이다. 덕분에 데이모스는 그 뼈다귀들로 조합되는 모든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과연 수십 개로 분할된 룰렛 판에는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이 적혀 있었다. “이 중에서 얻어 걸리는 직업으로 전직한다는 건자?” 따다다다다! 그때, 아크가 직업명을 다 읽기도 전에 뼈 소리를 내며 룰렛이 돌아갔다. 한참 신 나게 돌던 룰렛이 점차 느려진다 싶더니 이내 한지점에서 멈췄다. 작고 크게 분할되어 있는 룰렛 판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검은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 부분에 아무런 명칭도 적혀 있지 않다는 점. “아무것도 없는 건 뭐지?” 아크의 궁금증은 곧바로 풀렸다. 퍼퍼퍼펑! 폭발음과 함께 데이모스가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의지가 ‘데이모스’의 진화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꽝’이 나왔습니다. 페널티로 영구적으로 생명력 200. 모든 스탯이 10만큼 소멸합니다. 진화에 주어진 기회는 20분 간격으로 세 번입니다. 세 번 모두 실패하면 추가 페널티를 받고 진화는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단, 그냥 취소하면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헉, 이, 이게 뭐야?” 아크가 기겁하며 얼른 데이모스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역시나 메시지에서 나온 것처럼 생명력과 모든 능력치가 깎여 있었다. “빌여먹을, 뭐가 유계의 위대한 의지냐? 이건 그냥 복불복이잖아? 유계의 위대한 의지의 정체는 복불복이었던 거냐?”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죽어라 음식을 해 먹이고, 뼈 수집을 통해 올려놓은 스탯이 허망하게 깎여 나간 것이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목구멍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일단 꽉 눌러 참았다. 하긴 참지 않으면 어쩔건가? “그래도 진화시킬 기회가 세 번이라 다행이다. 페널티를 받을 채로 진화할 기회까지 완전히 사라졌으면…!” 열 받쳐서 유니트를 부숴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 두 번이나 기회가 남아 있어. 아니, 두 번밖에인가?” 아크는 심호흡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룰렛을 살펴보았다.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직업에는 성향에 맞는 직업과 안 맞는 직업이 있다는 뜻. 임의대로 선택할 수 없다고 해도 일단 그중에 데이모스에게 가장 잘 어울릴만한 직업이 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각종 뼈를 긁어모은 덕분에 룰렛에는 정말 별의별 직업이 다 있었다. 스켈레톤 돌격대장, 스켈레톤 이모탈, 스켈레톤 기습병… 전사, 마법사, 도적 계열의 직업이 일정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뭔가 애매한데…?” 아크는 심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막상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되자 난해했다. 아크가 상대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나 능력치는 항상 데드릭이나 데이모스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비행 능력을 가진 데드릭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모스는 입장이 다르다. 데드릭처럼 비행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악하지도 않다. 전투가 벌어지면 정면에서 몬스터를 상대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럼에도 데이모스가 제 몫을 해낼 수 있는 것은 기사 계열로 전직한 덕분이었다. 방어력과 생명력이 올라가 배후의 기습에 대한 방어막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그 외에는 달리 활용할 방법이 없었다는 편이 맞다. 아무리 방어력이 올라갔다지만 전면에 나서 월등히 레벨이 높은 몬스터와 맞짱을 뜰 수는 없었다. ‘확실히 지금 데이모스의 종합 능력치를 보면 전사나 기사 계열도 그다지 메리트 있는 직업은 아니야. 진화로 방어력과 생명력이 더 올라간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몬스터의 레벨이 너무 높으니 서너 방 버티던 것을 대여섯 방 버티는 정도로 바뀌겠지. 전사 계열의 스킬도 뻔하니까 큰 기대 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그래도 전사 계열이라면 조금 낫다. 만약 도적 계열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도적은 의외로 영리함을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몸빵만 해오던 데이모스가 도적으로 전직하면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소환수가 돼 버릴 위험이 있었다. 마법사 계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지능이 낮은 데이모스가 어떤 마법을 익힐 수 있을지도 모르고, 설사 쓸 만한 마법을 익혔다고 해도 아크의 마나를 사용해야 한다. 당연히 마법은 엄청난 마나를 잡아먹는다. 마나가 7,000 이상 되는 마법사도 전투 한 번만 치르면 마나가 바닥나 헐떡거리기 일쑤. 물론 갓 마법사가 되는 데이모스가 그런 마법을 사용할 리가 없지만, 수준 낮은 마법을 쓰느니 그 마나로 아크의 스킬을 한번 더 쓰는 편이 나은 것이다. ‘게다가 도적이나 마법사 계열은 방어력이 형편없다. 아마 지금처럼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몬스터라면 한두 방도 버티지 못하고 강제송환당할 거야. 그렇게 되면 나 역시 생명력의 절반에 달하는 데미지를 받게 된다. 진화를 하고서도 오히려 전투가 몇 배는 더 힘들어질지도 몰라.’ 이것저것 조합을 생각해 봤지만 역시 최선의 선택은 전사나 기사 계열이라는 결론이다. ‘어쨌든 전사 계열이라면 지금처럼 활용하면서 능력치는 훨씬 높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조차 입맛대로 고를 수가 없다는 것. 그때였다. 잠시 한숨을 불어 내던 아크의 눈에 의외의 직업명이 보였다. 전체 면적이 2%도 안 되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직업! “헉, 저, 저건… 데스나이트!” 아크는 입을 쩍 벌어졌다. 아직 뉴 월드에서 데스나이트를 직접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데스나이트는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모든 온라인 게임에서 언데드 계열 최강 몬스터로 군림하는 검은 갑주를 걸친 불멸의 기사, 데스나이트! ‘역시 복불복… 다 고만고만한 게 아니야. ’꽝‘이 있으니 대상도 있었던 거야. 이거다, 이게 대상 당첨이야. 할당된 공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레어 직업이라는 뜻이겠지. 진화하는 직업에 따라 보너스 능력치가 달라진다면 이게 지금 데이모스가 진화할 수 있는 최상의 직업인 게 분명해! 데스나이트로 전직한 뒤에 이곳에서 적당한 판금 갑옷을 구해 주면 진정한 몸빵 소환수가 될 수 있어!’ 아크가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였다. (-제한 시간 20분이 완료되었습니다. 룰렛을 회전시키겠습니다.) 따다다다다! 메시지와 함께 다시 룰렛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약간 당혹스럽지만 사실 시간이 많다고 해도 아크가 어쩌고 자시고 할 부분이 없었다. 그저 기도하는 심정으로 데스나이트가 걸려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제발 … 제발… 걸려라, 데스나이트!‘ 아크는 로또를 들고 추첨 방송을 보는 사람처럼 눈이 빠져라 룰렛을 쏘아붙았다. 그렇게 피 마르는 시간이 흐르고, 룰렛은 점차 속도가 느려졌다. 덜컥, 덜컥, 룰렛은 투박한 소리를 내며 스켈레톤 상급 기사, 스켈레톤 기습병을 지나 데스나이트로… 가다가 막판에 뒷심이 부족했던지 멈춰 버리고 말았다. “이, 이런 망할…!” (-축하드립니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가 ‘데이모스’의 진화를 인정했습니다.) (선택된 직업은 ‘스켈레톤 행상인’입니다. 이는 매우 독특한 직업으로 ‘ 스켈레톤 행상인은 부락을 이루고 있다면 심지어 상대가 몬스터라도 물품 거래가 가능하도록 해 줍니다. 또한 각종 물품에 대한 안목이 높아지고 때때로 각종 뼈와 가죽을 가공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단, 소환수라 자신이 직접 아이템을 가지고 다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스켈레톤 행상인이 직접 NPC와 거래할 수 없고 단지 플레이어가 거래할 때 각종 계산을 대행하거나 이윤에 보너스를 제공할 뿐입니다. 그러나 언데드를 적대시하는 NPC를 상대로는 거래할 수 없습니다. 《선택하면 진화, 취소하면 페널티가 적용된 뒤에 다시 한 번 시도할 수 있습니다.》) 스켈레톤 행상인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직업인이었다. 게다가 상인인 주제에 직접 물건도 들고 다닐 수 없단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크가 상점에서 거래할 때 옆에서 조언해서 가격을 조금 올려 받게 해 주거나, 계산을 대행해 주는 정도다. 어쩌라는 건가? 이건 말이 좋아 상인이지, 그냥 해골처럼 생긴 휴대용 계산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런 걸로 진화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나아!” 진화를 안 하면 안 했지, 행상인 따위로는 할 수 없다! 아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진화를 취소했다. 그러자 ‘꽝’ 이 나왔을 때처럼 폭음과 함께 데이모스가 휘청거렸다. “빌어먹을, 어쩐지 일이 술술 잘 풀린다 싶더니… 이거 좋아할 일이 아니잖아?” 또다시 데이모스의 생명력과 스탯이 깎여 나가자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쩐지 한 번에 너무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 싶었다. 하지만 막상 일이 이렇게 되도 보니 이건 기회가 아니라 위기나 다름없었다. 두 번의 진화 실패로 데이모스의 생명력이 400, 모든 스탯이 20이나 깎여 나갔다. 보름? 한 달? 죽을 고생을 해서 올린 능력치가 불과 10여 분 만에 깎여 나간 것이다. ‘남은 기회는 한 번. 만약 이번에도 행상인 같은 직업이 걸린다면?’ 또다시 능력치가 깎여 나간다. 최악의 결과! 결국 얻는 것도 없이 능력치만 왕창 빠져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진화를 포기하면 그나마 남은 능력치라도 지킬 수 있어.’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능력치는 찾지 못한다. 게다가 모처럼 얻은 진화 기회도 날아간다. 그렇다고 그게 아까워 다시 배팅했다가 자칫하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데스나이트로 진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포기하는 것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땅문서를 걸어놓고 도박을 벌이는 사람의 심정이 이럴까? 아크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그렇게 아크가 갈팡질팡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데드릭이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슬금슬금 다가와 중얼거렸다.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저런 암울한 언데드 녀석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왔다는 것부터가 사기야. 저놈에게 그런 행운이 있다면 언데드가 됐겠어? 역시 그런 행운은 나처럼 고귀한 뱀파이어에게나 어울리지. 암.” “너 정말…!” “아,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야.” 아크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자 데드릭이 찔끔하며 입을 다물었다. 성질을 박박 긁어 대는 태도에 화가 치밀었지만, 데드릭이나 패고 있을 시간이 없다. 이미 제한 시간이 4분이나 경과한 것이다. 남은 시간은 16분, 그 전에 포기할지 한 번 더 도박을 해 볼지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아크의 마음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역시 이대로 기회를 포기하기는 너무 아까워.’ 만약 룰렛을 돌리기 전에 모든 정보를 알았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오물을 뒤집어써 버렸다. 그렇다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누굴 탓하겠어? 어차피 내 복이 그것뿐인 걸. 다시 능력치가 깎이면 죽어라 음식을 퍼먹이는 수밖에….’ 아크는 눈을 질끈 감고 룰렛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방금 전 데드릭의 말이 전두엽 말초신경을 후리치고 지나갔다. ‘가만? 행운? 데이모스의 행운이라고?’ 순간 쇼크를 받은 아크의 전두엽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크는 룰렛을 돌리며 그 결과가 단순히 복불복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새삼스럽게도 지금 이곳은 게임 속이다. 그리고 게임 속의 모든 결과는 ‘우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그거다!’ 그제야 아크는 눈앞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근래 들어 아크는 유난히 아이템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포포를 심고 받은 ‘신성한 나뭇가지’ . 이것저것 옵션이 붙어 있지만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운+30과 마법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20%다. 아크는 그걸 얻은 뒤부터 나가란에서 공성전만 벌였기에 그 효과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유계에 들어오고 나서야 제대로 효과를 본 것이다. 그렇다, 하다못해 몬스터가 떨어뜨리는 아이템 하나도 온갖 수치의 계산에 따라 나오는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같은 상황에서 뭔가 적용될 만한 게 있다면 하나… 바로 운 스탯! “캐릿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인간 명성:9,125(500) 레벨:253 직업:다크워커 칭호:캣 나이트,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생명력:3,910(+150) 마나:4,050 영력:200 힘503(+28) 민첩663(+55) 체력733(+20) 지혜87(+10) 지능781 운103(+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138 유연성:98 화술:46 애정:141(+10) 탄력도:285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페널틱 무효 고양이 손(장갑):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민첩+10, 지혜+10 *《수왕》세트 효과:힘+10, 민첩+10, 체력+10, 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민첩+30, 이동속도+30%, 공격 속도+10%, ‘슬라이드’ 사용 가능 갈가쉬의 모피(망토):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50%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방어력+40, 애정+10, ‘ 바다의 가호’ 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힘+5, 마나 회복 속도 +5% 심안(반지): ‘심안 ’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아크의 운은 현재 103.. ‘신성한 나뭇가지’ 효과를 적용해도 133. 그러나 어둠 속성 보너스는 모든 능력치가 40% 증가된다. 즉, 보정된 수치는 186. 다른 스탯에 비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에서 행운 수치로는 절대 낮은 편이 아니다. ‘역시 이상해. 운이 186이나 되는데 첫 번째는 ’꽝‘ 이 나오고 , 다음번은 가장 실속 없는 직업이라니? 그렇다면 이 룰렛에는 내 운 스탯이 적용되지 않는 거야.’ 그렇다면 역시 답은 하나, 룰렛에 적용되는 운은 바로 당사자인 데이모스의 스탯! 정보창을 열어 보니 역시나 데이모스의 운은 고작 26이었다. 사실 데이모스가 처음 진화할 때까지만 해도 운이 50이었다. 그러나 ‘ 뼈 수집’을 사용할 때 힘이나 민첩이 올라가는 대신 운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것. 아크는 운 스탯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운이 떨어져도 힘이나 민첩이 올라간다면 대환영. 때문에 그런 메시지가 나와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게 될 줄은 몰랐다. ‘데드릭의 투정도 가끔은 쓸모가 있군.’ 만약 데드릭이 암울한 언데드의 행운 운운하지 않았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룰렛의 대기 시간이 20분.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왜 대기 시간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스킬! 20분간 시간을 줄 테니 능력이 있다면 한 번 법칙을 바꿔 봐라 이건가? 어쨌든 뭐가 문제인지 알았다면 해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지!’ 절망에 빠져 있던 아크의 얼굴이 밝아졌다. “남은 시간이 없다. 서바이벌 요리 레시픽 목록!” 아크가 소리치자 눈앞에 수백 종류의 요리 목록이 주르륵 떠올랐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14분 남짓. 아크는 일단 필터를 사용해 필요한 요리를 추려 냈다. 추가 효과로 ‘운’ 이 붙은 요리는 대략 40여종. 그 가운데 당장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불과 다섯 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다섯 가지 요리를 모두 만들면 운을 60 정도 올릴 수 있다. 그래 봤자 데리모스의 행운은 고작 86. 그 정도로는 2%확률밖에 되지 않는 데스나이트가 걸릴 가능성이 적어.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행운을 올릴 수 있는 식재료를 항상 여분으로 챙겨 두는 건데….’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하지만 행운을 86 이상 올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야.’ 아크는 식재료를 꺼내 놓고 온갖 솜씨를 발휘해 요리를 만들었다. 냄비의 온도 조절도 섬세하게 신경 쓰고, 비싼 향신료도 듬뿍 첨가했다. 그러자 이내 냄비에서 화려한 빛이 터져 나오며 근사한 요리가 만들어졌다. (서바이벌 요리로 ‘ 최상의 네 잎 클로버 팬케이크’ 가 완성되었습니다! 잘 구운 팬케이크에 행운을 상징하는 네 잎 클로버로 장식한 요리. 장식 때문인지 이 팬케이크를 먹으면 왠지 행운이 따를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비교적 간단한 요리지만 성심성의를 다한 덕에 일품요리가 되었습니다. 《3분에 걸쳐 생명력이 400 회복. 1시간 동안 행운+15》 《일품요리 보너스:생명력 200 가 회복. 행운+10》 “됐다!” 아크가 노린 게 이것이었다. 온갖 정성을 들인 요리에만 붙는 일품요리 보너스! 사실 이런 ‘ 일품요리’ 나 ‘기적의 간병’ 같은 효과는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해서 될 만큼 간단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아크에게 행운 수치는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뇌를 스캔하는 유니트에 그런 절박함이 감지된 덕분에 일품요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리라. “우왕? 뭐야, 이건? 아하, 드디어 나한테 잘못했다는 걸 깨달은 거냐? 후후후, 그렇다고 이렇게 요리까지 해 바칠 필요는 없는데… 뭐, 하루 이틀 억울한 대접을 받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기왕 만든 거니 잘 먹어 주지.” 향긋한 냄새에 데드릭이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왔다. “거치적거리게 하지 말고 저리 비켜!” 아크는 데드릭을 걷어차고 얼른 데이모스에게 팬케이크를 먹였다. “에엑? 주, 주인! 정말 이럴 거야?” 덕분에 눈가에 멍이 든 데드릭이 울컥하며 불평을 쏟아 냈다. 그러나 분위기 파악도 못 하는 소환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 전에 음식을 모두 만들어 먹여야 해!’ 아크는 분주하게 손을 놀려 나머지 요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른 나머지 다음 요리는 ‘ 일품요리’ 에 실패하고 말았다. “젠장! 빌어먹을 ! 아니, 아니야. 진정하자.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 자, 데드릭, 이건 네가 먹어 치워라.” “싫어,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 우욱!” 아크는 실패한 음식 쓰레기를 데드릭의 입에 우겨 넣고 심호흡을 한 뒤에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몇 차례의 실패를 더 한 뒤에야 겨우 ‘일품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크윽… 내, 내가 음식물 쓰레기통이냐? 커억, 배, 배가 터질 것 같아.” 덕분에 데드릭은 배가 터질 만큼 부풀어 올랐다. 어쨌든 그렇게 모두 일품요리로 만들어 먹이자 데이모스의 행운이 140을 넘어섰다. “됐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140이면 행운 수치로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야. 데스나이트라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최소한 스켈렌톤 워리어라도 걸려 줘라, 데이모스!” 딱딱딱딱! 데이모스도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둣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한시간 20분이 완료되었습니다. 룰렛을 회전시키겠습니다.) 따다다다다! 아크와 데이모스, 라둔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룰렛을 바라보았다. 데드릭은 산만 해진 배를 문지르며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바라보았다. 뭐, 그따위로 분위기를 깨는 소환수가 한 마리 있었지만 어쨌든 뼈 룰렛은 힘차게 회전했다. 그리고 점차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할 무렵, 아크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어렸다. “좋아, 좋아, 분위기가 좋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따다다… 다다다… 다다… 다…. 룰렛이 데스나이트에 접근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거리와 속도가 줄어드는 시간을 가늠하면 데스나이트에 걸릴 확률이 높았다. 대박이 터질 듯한 분위기! 아크와 데이모스, 라둔은 물론,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던 데드릭도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들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은 룰렛이 드디어 멈췄다. 순간 아크의 눈이 이따만 해졌다. “돼, 됐다… 데스나이트!” “헉, 저, 정말 된 거야? 그 ,그, 그… 에취!” 기겁하며 일어났던 데드릭이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푹 찌르며 재채기를 했다. 그때였다, 운명의 장난인가? 간당간당하게 데스나이트에 걸려 있던 룰렛이 ‘딱’ 소리를 내며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 버렸다. 순간 아크와 모든 소환수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뭐, 뭐야? 너 데드릭…!” “나, 나는 아니야! 내 재채기에 저렇게 큰 룰렛이 움직일 리가 없잖아!” 데드릭이 사색이 되어 비명처럼 소리쳤다. 물론 그건 아크도 알고 있었다. 룰렛을 임의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아크도 진즉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룰렛은 반투명한 형태로 보이기만 할 뿐, 손으로도 만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저 까마귀 날자 배가 떨어졌을 뿐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감정적인 문제다. 아까부터 괜히 툴툴거리며 콧구멍을 후비는 등, 불성실한 놈이 재채기를 하자마자 그런 일까지 벌어지자 와락 화가 치밀었다. 데드릭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입을 꾹 다물고 침묵했다. “너, 각오해!” 아크가 이를 빠드득 갈아붙이며 쏘아붙였다. ‘빌어먹을, 데스나이트로 진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나저나 데스나이트 다음에 있던 직업이 뭐였지? 스켈레톤 워리어였나? 그나마 다행이군.’ 그래도 마지막은 쓸 만한 직업이 걸려 진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데스나이트가 될 뻔했던 것을 생각하자 엄청난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때,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가 ‘데이모스’의 진화를 인정했습니다.) (선택된 직업은 ‘데스 마스터’입니다. 데스 마스터는 네크로맨서 마스터 타무라드의 두개골로부터 얻어진 단편적인 지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데스 마스터에 관련되어 공개된 정보는 없습니다. 진화하면 플레이어의 소환수는 죽음과 관련된 스킬을 익힐 때 상당한 보너스가 적용되며, 때때로 죽음마저 뛰어넘는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언데드 소환수엑 추천할 만한 직업입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기회가 모두 끝났습니다. 선택하면 진화, 취소하면 페널티가 적용되고 진화 시도는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그래, 스켈레톤 워리어도 그나마… 엥? 뭐? 데스 마스터?” 아크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스 마스터라니? 룰렛에서 그런 직업은 보지도 못했다. 아크는 뭔가 착오가 있나 싶어 룰렛에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워리어 사이, 정말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작은 틈이 있었다. 그리고 개미 코딱지만 한 글자로 데스 마스터라는 직업이 적혀 있었다. “데스 마스터? 이게 뭐지?” 들어 본 적도 없는 직업이었다. ‘어쨌든 데스 마스터에 할당된 공간은 고작 0.5%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렇다면 결국 데스나이트보다 더 낮은 확률의 레어 직업이라는 건데… 이런 게 걸리다니… 맙소사, 그럼 행운을 너무 올려 버렸다는 말이잖아?’ 아크가 심란한 표정으로 룰렛을 바라보았다. 이건 그야말로 1등 상을 노리고 제비를 뽑았는데, 대상에 당첨돼 버린 황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문제는 아크는 데스 마스터라는 게 어떤 직업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름도 그렇지만, 정보창에 나온 설명만으로는 대체 어떤 계열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확률이 낮은 직업이니 나름대로 쓸 만하기는 하겠지만….’ 선뜻 선택하기에는 어쩐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이번에도 진화시키지 않으면 생명력이 모두 600이나 빠지고 스탯이 30씩 빠져나간 채로 끝난다. 그리고 진화할 기회도 사라져.’ 직업이 애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페널티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또한 데이모스의 반응도 그랬다. 스켈레톤 행상인이 나왔들 때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데스 마스터가 나오자 활기가 넘치는 눈빛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데리모스가 ‘뼈 수집’을 배울 때나 데드릭이 ‘ 흡혈’을 익힐 때와 비슷하다. 소환수가 뭔가를 강렬히 원할 때는 들어주는 편이 좋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좋아. 뭐가 됐든 한번 해보자. 진화!” 결국 아크는 눈 딱 감고 진화를 선택했다. 우두둑, 우두두둑…! 순간 섬뜩한 뼈 소리와 함께 데이모스의 몸이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데이모스는 누더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우거의 갈비뼈, 놀의 어깨뼈 등등… 각양각색의 몬스터 뼈다귀에, 심지어 안델과 아란의 뼈다귀까지 섞여 있다. 다른 종족의 뼈를 멋대로 갖다 맞춰 놨으니 모양새가 딱 떨어질 리가 없었던 것. 거기에 후줄근한 망토까지 걸쳐 놓으니 구석에 앉아 있으면 쓰레기 더미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진화를 시작하자 그런 뼈다귀들이 검은 윤기로 번들거렸다. 검은 뼈로 만들어진 스켈레톤… 눈두덩에서 붉은 광채까지 번들거리니 음산한 포스가 흐른다. 딱… 딱딱… 딱딱딱…. 어깨 이를 마주치는 소리도 예전보다 음산해진 듯하다. (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모은 부품이 데스 마스터로 성장하기 적합한 형태로 최적화되었습니다. 유계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위대한 의지로부터 유계의 중급 귀족으로 인정받으며 데스 마스터 ‘ 라자크’라는 이름을 부여 받았습니다. 이로써 라자크는 데스 마스터로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자크 스스로 수집한 뼈로 진화한 유계의 주민. 네크로맨서 타무라드의 두개골이 남아 있던 단편적인 지식을 흡수해 죽음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졌습니다. 특성상 오만해졌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변함없으며 언데드라 데스 마스터 관련 스킬을 익힐 경우 추가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또한 소유한 아티펙트 본 블레이드의 성능도 올라갔습니다. 종족:언데드 성향: 어둠 등급:하급 생명력:1,724(+250) 충성도:620(+30) 힘253(+20) 민첩95(+20) 체력279(+20) 지혜58(+50) 지능76(+50) 운26(+10) *본 블레이드의 공격력이 7, 내구력 50, 채찍의 공격 범위가 5미터만큼 증가했습니다. *‘죽음의 방정식’ 스킬을 배웠습니다. *‘죽음의 맹약’ 스킬을 배웠습니다.) (죽음의 방정식(초급, 액티브): 죽음의 공식을 이해한 자는, 이를 역산해 영혼이 떠난 육 체를 일정 시간 뜻대로 조종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라자크의 뼈를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제물로 바칠 뼈의 개수는 대상의 지위나 등급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기준치 이상을 제물로 바칠 경우, 랜뎜으로 약간의 능력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습디다 부활한 대상의 생명력과 능력치는 정상치의 50%를 넘을 수 없으며, 대상을 조종하는 동안 주술자는 움직일 수 없습니 다 움직이거나 사망하면 계약이 해제됩니다. 《A등급 소생: 뼈 3개 소모. B등급 소생:뼈 2개 소모. C등급 소생.:뼈 1개 소모》) (죽음의 맹약(초급, 엑티브): 죽음의 맹약은 소환수가 주인에게 표할 수 있는 최상의 충성 입니다. 죽음의 맹약이 발동한 상태에서 플레이어가 사망할 경 우, 자동으로 주인과 소환수는 남은 생명력을 교환하게 됩니다. 단, 소환수가 플레이어 대신 사망할 경우, 플레이어에게 적용되 되는 모든 스탯-1에 해당하는 사망 페널티가 동일하게 적용됩 니다.) ‘이거… 기뻐해야 하는 건가?’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읽어 내려갔다. 일단 진화를 시키니 각종 스탯이 상승했다. 생명력과 충성도는 그렇다 쳐도 스탯이 추가된 수치는 170. 레벨17이 올라간 효과였다.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데스 마스터는 마법사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힘이나 민첩보다는 지혜와 지능 쪽에 많은 보너스가 집중된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법사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진화한 뒤에도 검과 방패로 그대로 들고 있었고, 적지만 힘과 민첩, 체력도 올라갔다. 당연하게도 확인해 보니 공격력과 방어력도 약간 상승했다. 데이모스를 마법사로 키울 생각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아크로서는 일단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마법사로 키워야 할지 전사로 키워야 할지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일단 본 블레이드의 공격력이 올라간 건 그다지 의미가 없어. 공격력이 7올라가 봐야 30~42. 귀살겁보다 약하다. 한 손 검치고는 제법 센 편이지만 겨우 귀살검에 익숙해졌는데 검을 바꿀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채찍은 가끔 사용할 때가 있으니 공격력이 올라가면 좋긴 하다. 문제는 ‘죽음의 방정식’과 ‘죽음의 맹약’ 이라는 스킬이었다. 죽인 몬스터를 부활시켜서 마음대로 사용한다. 설핏 생각해 보면 굉장한 기술 같지만, 한 마리 살릴 때마다 라자크의 뼈를 지불해야 한다. 그건 ‘ 뼈 수집’으로 얻은 능력치도 함께 깎인다는 뜻! 물론 다시 ‘뼈 수집’으로 복구할 수 있겠지만, 고작 50%능력치로 몬스터 한 마리를 부활시키기 위해 일부러 능력치를 깎아 내야 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 보스 같은 걸 부활시키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몬스터라면 뼈를 3개나 지불해야 한다. 게다가 라자크는 움직이지 못하니 멀리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의 맹약’도 그렇다. 아크 대신 라자크가 대신 죽고 남은 생명력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도 그 순간에 라자크의 생명력이 많이 남아 있을 때나 좋다. 만약 라자크의 생명력도 바닥인 상태라면 아크는 아크대로 죽고, 괜히 라자크의 능력치나 깎는 결과만 가져온다. ‘직업도 그렇고, 스킬도 대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군.’ 아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에 진화하며 생긴 ‘ 뼈 수집’은 능력치를 올리는 스킬이었다. 반면 이번에 진화하며 생긴 스킬은 능력치를 깎는 스킬뿐이었다. ‘무턱대고 사용하다가는 뼈다귀가 남아나질 않겠어.’ 모처럼 새로운 스킬이 생겼지만 시험 삼아 써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쨌든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나쁘지는 않아. 데스 마스터는 전사형도 아닌 것 같지만 마법사형도 아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낮아진 것도 아니니, 지금처럼 간단한 몸빵은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스킬도 독특한 만큼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의외로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거야. 뭐, 조금 부족하다 싶은 스탯은 지금처럼 음식으로 벌충하면 되니까.’ 아크는 일단 결과에 만족하기로 했다. 데스나이트로 진화하지 못한 게 여전히 아쉬웠지만, 데스마스터도 쓸 만한 직업 같았다. 뭣보다 스켈레톤 행상인이나 ‘꽝’보다야 백배 낫지 않은가? 아크는 빙긋 웃으며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좋아, 어쨌든 진화하느라 수고했다. 데이모스… 아니, 이제 라자크인가?” 딱딱… 딱딱딱…. 라자크가 느릿하게 이를 마주치며 끄덕였다. 사실 진화하고 나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비록 누더기 뼈다귀뿐이었지만 데이모스는 발랄한 느낌이 있었다. 알게 모르게 애교도 있었고… 그런데 데스마스터로 진화하자 그런 느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제법 강렬한 포스는 느껴지지만 그 이상으로 음산하고 칙칙한 분위기였다. 데드릭도 그런 라자크를 불만스러운 눈길로 쏘아보았다. “쳇, 건방진 자식, 꼴 같지 않게 분위기를 잡고 지랄이야?” 딱딱? 딱딱딱…. “뭐야? 하, 이제 출세했다 이거냐? 웃기지 마. 고작 뼈다귀나 주워 모아서 진화한 조립식 장난감 따위가! 나는 고귀한 피를 물려받은 뱀파이어라고! 너 같은 조립식 장난감과 같은 수준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딱딱딱, 따악… 딱딱딱딱! 라자크가 피식 웃으며 (?)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뭐라고? 이 자식, 말이면 단 줄 알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이나 굴러다니던 놈이 갑자기 출세했다고 이 데드릭 님을 무시해? 어디 한번 붙어 볼래?”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드릭이 발끈하며 펄펄 뛰었다. “데드릭, 그만 좀 해. 정신 사납게 아까부터 왜 자꾸 앵앵거려?” “뭐야? 주인도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보다 못한 아크가 한마디 하자 데드릭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너 지금 개기냐?” “그래, 개긴다. 왜? 또 패려고?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는 진화도 못 하는 뱀파이어라 이거지?하, 좋다고, 좋아! 패고 싶으면 패! 배 째라 이거야!” ‘이 녀석 아까부터 왜 이렇게 막 나가는 거야?’ 아크는 어이없는 눈길로 데드릭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혹시 이 녀석… 아하, 그런 거였구나.’ 아크는 뒤늦게 데드릭의 생각을 알아채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면 이 두 녀석이 박쥐와 해골이었던 시절, 그다지 사이다 좋지 않았다. 데드릭은 처음부터 말도 할 줄 알고 비행 능력도 갖췄다. 때문에 그저 바닥을 굴러다니던 해골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아크> 박쥐> 해골> 뱀. 이게 데드릭의 머릿속에서 구성된 서열 관계였다. 게다가 먼저 진화까지 했으니 그 잘난 척은 정말 보는 아크까지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해골이 데이모스로 진화한 뒤로도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런 서열 관계가 깨진 것이다. 데드릭은 지금까지의 순서로 봤을 때 당연히 자신이 진화해야 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둔과 라자크가 먼저 진화해 버리니 지금까지의 권위-그런 게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 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게다가 데드릭은 뱀파이어답게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니 그런 반응은 정말 칼 같았다. “웃어? 내가 우스워 보이냐? 빌어먹을, 웃기지 말란 말이야! 이 몸은 데드릭 님이라고!” ‘좋아, 아주 좋은 반응이야.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데드릭이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대들었지만 속내를 알아챈 아크에게는 코흘리개의 투정 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실 충성도가 높은 라자크는 굳이 이런저런 핑계를 붙이지 않아도 음식을 먹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항상 불평불만을 토로했던 것은 데드릭. ‘맞아, 지금까지 두 소환수를 균형 있게 키우려고 했던 것부터가 실수였을지도 몰라. 라자크와 차이를 벌려 놓으면 자존심 강한 데드릭은 굳이 핑계를 댈 필요도 없이 먼저 음식을 달라고 졸라 댈지도 몰라. 큭큭큭, 이거 또 새로운 방법인걸.’ 이로써 데드릭의 소심한 반항은 또다시 아크의 마수에 약점이 잡히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 녀석은 영악하면서도 확실히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단 말이야.’ 쌕쌕쌕! 그때, 주변을 돌아다니던 라둔이 돌아왔다. 이백 마리의 나크족이 몰살당한 지하 광장. 그곳을 샅샅이 훑은 라둔의 배 속에는 300개나 되는 잡템이 들어 있었다. 특별한 아이템은 없어 모두 정리해 봐야 큰돈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역시나 넘쳐 나는 아이템은 아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쨌든 아크는 그렇게 볼일을 모두 끝내고 일행이 기다리는 2층으로 향했다. “자, 이제 올라가자.” “흥, 펫, 쳇!” 데드릭이 연방 투덜거리며 뒤를 따랐다. 2. 조삼모사 2층에는 그란과 보나, 북실이와 레리어트가 모여 있었다. 그란과 보나는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북실이는 마법 영사기에 찍힌 장면을 재생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레리어트는 아직도 새로운 직업의 스킬 정비가 끝나지 않았는지, 관련 정보창을 열어 놓고 끙끙대고 있었다. “아크 님, 볼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아크가 다가가자 그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대강 끝났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크 님이 아니었다면… 보나 님.” 그란이 시선을 보내자 보나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보나는 꽤나 귀엽게 생긴 미소년이었다. 정말이지 하얀 모자만 얹어 놓으면 딱 스머프 같은 외모였다. “다친 데는 없니?” “네.” “그렇다면 내가 더 고마워해야겠구나. 무사히 있어 줘서 고맙다.” 아크는 정감 넘치는 눈길을 보내며 보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크의 살가운 태도에 데드릭이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 말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100% 진심이었다. 보나가 무사히 있어 준 덕분에 이제 아크는 B난이도 퀘스트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뻐 보이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후후후, 이제 이 스머프가 아이템으로 바뀐다 이거지?’ 아크는 군침을 질질 흘리며 보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속내를 알 리 없는 보나는 일순 나크족으로 착각할 만큼 얼굴이 붉어졌다. “저는… 저는… 이 담에 아크 형처럼 멋진 전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부족을 위협하는 나크족을 물리치겠어요.” 그러든가 말든가 별로 관심 없었다. 그러나 NPC에게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이게 바로 아크의 슬로건이다. 아크는 대견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나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래, 나크족에게 잡히고도 꿋꿋하게 버텨 낸 너라면 훌륭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아버지를 안심시켜 드려야겠지?” “네!” 보나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끄러운지 금세 그란에게 달라붙었다. 음, 역시 저 스머프가 가가멜을 무찌르기에는 아직 까마득 한 것 같다. “자, 그럼 일단 이곳을 나가자.” “네, 저도 준비했습니다.” 한참 마법 영사기를 주물럭거리던 북실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아크의 목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스킬 정보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마법사였다가 갑자기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하게 되어 모든 마법이 삭제되고 새로운 스킬이 등록되었다. 때문에 홀리 나이트 로니안의 배려로 돌려받은 50%의 스탯 포인트를 재분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아크도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마냥 기다려 줄 수도 없었다. “레리어트 님?” 아크가 한 걸음 다가가자 그제야 알아차린 레리어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아크 님.” “아직 스킬 조종이 안 끝났습니까?” “스킬 효과를 일일이 확인하느라 조금 시간이 걸리네요. 하지만 방금 끝났어요.” 레리어트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아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막 보스전이 끝났을 때는 경황이 없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정면에서 보니 역시 레리어트는 예쁘다. 물론 뉴 월드를 하는 여성 유저들은 모두 연예인 뺨치는 외모로 성형을 한다. 로코 역시 캐릭터 외모는 화장품 CF를 찍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크는 알고 있었다. 다른 유저와 달리 레리어트이 외모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크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정말 앞으로 함께 다니게 되는 건가?’ 아크는 아직도 이런 곳에서 그녀를 만났다는 것과 또 함께 다니기로 약속한 게 제대로 실감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퀘스트를 하고 보스를 물리치고 보니 그렇게 돼 버린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아크는 대한민국의 신체 건강한 청년이다. 미모의 여성과 함께 다니는 게 싫을 리가 없었다. 아니, 작센에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몇 번이나 꿈꿔 왔던 일이다. 그러나 막상 일이 이렇게 되니 은근히 부담이 되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심장 언저리가 쿡쿡 찔리는 기분도 들었다. ‘이상하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따지고 보면 그럴 만한 이유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뇌 용량의 99%를 돈벌이에 활용하는 아크는 그 이유를 도통 할 수 없었다. 역시 세상은 공평한 것 같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영악하면,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바보가 되는 게 세상 이치인 것이다. ‘그나저나 레리어트 님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군.’ 여자 경험이 없는 아크에게는 그조차 걱정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결국 답을 찾기를 포기한 아크는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저… 새로 전직한 직업은 어때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아란 경의 홀리 나이트와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에요. 홀리 나이트 스킬이라면 지금까지 계속 봐 왔으니 대강 어떤 스킬이 쓸모가 많은지 감이 잡히거든요. 아….” 레리어트가 입을 가리며 아크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의 태도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아크는 뒤늦게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아란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이제 남은 감정 같은 건 없어요.” 사실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 아란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었다. 그러나 이제 갚을 만큼 갚아 줬고, 뺏을 만큼 뺏었다. 덕분에 아란은 아크에게 원한을 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100% 그렇겠지만, 아크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 아크는 일단 자기 볼일만 끝나면 남의 원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한 남자인 것이다! ‘게다가 아란 녀석은 이미 감옥에 처박아 뒀잖아. 앞으로 한 달은 그곳에서 꼼짝도 못하겠지. 그리고 출감했을 때는 나와 엄청나게 차이가 벌어져 있을 거야. 후후후, 이제 놈은 완전히 끝났어. 내가 그런 놈에게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온라인 게임은 무한 경쟁사회다. 레벨이 아무리 높아도 며칠만 방심하면 따라잡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이나 감옥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뿐인가? 아크는 비록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바보지만, 게임에 관한 눈치는 100단이다. 로니안과 레리어트의 대화를 미루어 짐작컨대 홀리 나이트의 직업에도 모종의 페널티가 가해질 것 같다. 한 달의 감옥 생활과 직업적인 페널티! 결론적으로 이제 아란은 확실하게 끝나 버렸다. 그런 놈에게 신경을 쓰는 건 쓸데없는 칼로리 낭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레리어트가 자초지종을 알 리 없었다. ‘지금끼지 아란 경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원한을 한 번 싸우고 나서 깨끗하게 털어버리다니 아크 님은 속이 넓은 남자인가 봐.’ 이렇게… 마음먹고 오해하자고 덤비면 끝도 없는 것이다. 레리어트에게서 반짝반짝 날아오는 미묘한 존경의 눈빛! ‘뭐지? 왜 저런 눈으로 보는 거지?’ 아크가 영문 모를 눈빛에 당혹스러워할 때였다. “… 맞아, 이제 기억난다! 너, 아란하고 같이 있던 계집애지!” 아까부터 레리어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데드리이 버럭 소리쳤다. “멍청한 주인은 속일 수 있어도 내 눈은 못 속이지. 뭐야? 무슨 짓을 하려고 주인에게 접근하는 거냐? 아무 이유도 없이 이 주인에게 접근할 리가 없어. 분명 아란이라는 놈의 사주를 받고 뭔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딱딱? 딱딱딱! 쌕쌕쌕쌕! 그 말에 라자크와 라둔도 경계심을 품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소환수들이 경계심을 드러내자 레리어트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자 데드릭은 더욱 기가 살아서 아크에게 배웠던 욕을 총동원하며 떠들어 댔다. “주인, 모르겠어? 봐, 그 아 살루비아 같았던 계집애라고! 공성전 때도 저 망할 년이 삐- - 한 마법을 삐-- 해서… 헙!” 아크는 기겁하며 데드릭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나올 만한 욕은 다 튀어나온 뒤였다. 레리어트는 난생처음 그런 욕을 들어 본 듯 하얗게 질린 채 입도 열지 못했다. 하긴 아크조차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그녀는 오죽했겠는가?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그란과 보나, 북실이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데드릭이 손을 밀어내며 다시 지껄여 댔다. “푸핫, 주인!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모르겠어? 그년이라고….” “제발 닥치고 조용히 있어라, 응?” 아크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평소와 다른 무시무시한 살기에 데드릭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좀 생각이 없는 소환수라서….” “아, 아니에요.” 레리어트는 애써 웃어 보였지만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잠시의 미묘한 침묵 끝에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얼버무렸다. “험험, 일단 저는 다시 계곡 마을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요. 당분간 아크 님을 따라다니기로 했으니까요.” 다행히 데드릭의 폭언에도 불구하고 동행하기로 한 그녀의 생각은 바뀌지 않은 모양이다. “… 아, 네. 그럼 가시죠.” “네.” 그렇게 일단 아크는 일행을 이끌고 위층으로 향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조금 전과 달리 서먹서먹하기 그지없었다. 분위기-100의 위력을 가진 데드릭의 망말 덕분임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젠장, 모처럼 분위기가 좋아졌는데 이 망할 놈 때문에….’ 아크가 잡아먹을 듯이 데드릭을 쏘아보았다. 더 열 받는 것은 아직도 데드릭은 제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눈치는 빠른 놈이라, 아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때, 뒤따르던 북실이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아크 님, 이거 생각보다 그림이 되는데요?” “그건 또 뭔 소리냐?” “무슨 소리냐니요? 악당들에게 납치된 여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적의 본거지에 뛰어드는 전사! 이런 장면은 일부러 연출하기도 쉽지 않다고요.” 이건 또 무슨 옆구리 긁는 소리냐? 그렇지 않아도 심기가 불편했던 아크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레리어트 님하고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에이, 다 아는데 이제 와서 무슨….” “아니라고 하잖아. 자꾸 까불래?” “네? 하지만…” 의뭉스럽게 달라붙던 북실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잠시 눈알을 굴리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대충 상황을 파악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아크 님과 레리어트 님은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닌가요?” “자주 만나기는커녕 올해 초에 한 번밖에 못 봤어. 뉴 월드에서는 몇 번 더 봤지만.” “아하, 그렇군요.” 북실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렇다는 거야?” “우후후후, 아크 님은 의외로 둔하네요.” “뭐야?” “이걸 보시지요.” 북실이가 마법 영사기를 꺼내 방금 전까지 녹화된 장면을 재생했다. 아크와 타무라드가 싸우는 장면이었다. 정신없이 싸울 때는 몰랐지만 막상 이렇게 녹화된 영상을 보니 꽤나 그럴듯했다. 그러나 북실이가 보여 주고 싶은 장면은 그게 아니었다. 북실이는 영상이 재생되는 중간 중간 레리어트가 찍혀 있는 부분에서 화면을 멈추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보세요. 자,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겠죠?” “잘 모르겠는데?” “아아, 정말 절망적이네요. 둔한 것도 이 정도면 차라리 불쌍하네요.” “뭐야? 말 다 했냐? 앙?” 아크는 아직 다크울프로 변신한 상태였다. 검은 갈기의 늑대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인상을 쓰자 북실이는 기겁하며 설명했다. “아,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하려는 건 이겁니다. 여기 보세요. 아크 님을 바라보는 레리어트 님의 눈빛, 표정 변화. 이런 감정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고요. 아크 님은 어떨지 모르지만, 레리어트 님은 100%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 아크는 화들짝 놀란 얼굴로 북실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서먹하기 이를 데 없는데 레리어트가 이런 헛소리까지 들으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그란과 보나, 레리어트는 10미터 정도 뒤에서 따라오고 있어 둘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북실이를 노려보았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 멍청아.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서도 아크는 힐끔거리며 마법 영사기에서 재생되는 레리어트를 훔쳐보았다. 비단 같은 머릿결을 흩날리는 아름다운 레리어트… 확실히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놀라움과 기쁨, 걱정 따위의 감정은 오직 한 사람, 아크에게 향해 있었다. 흑요석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는 그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북실이의 말을 들은 뒤에 재차 그 모습을 확인하자 새삼스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동시에 미묘하게 가슴이 벌렁거렸다. ‘혹시 정말 북실이의 말처럼…?’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야. 레리어트 님은 … 역시 아니야. 그렇잖아? 이런 곳에서 갑자기 납치당했는데 누군가 구하러 와 주면 반가운 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도와주러 온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걱정되는 것고 당연하고. 그런 반응은 굳이 내가 아니라도….” “뭐, 막상 듣고 보니 그렇기는 하네요.” ‘뭐야? 이 자식이!’ 북실이의 대답이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남을 잔뜩 심란하게 만들어 놓고 저 무책임한 태도는 또 뭐냐? 그러나 북실이는 그다지 관심 없다는 듯이 족발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사실 그건 별로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그런 ‘ 분위기’라는 겁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아크 님 모습도 멋졌지만 역시 조금 삭막하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제 레리어트 님도 당분간 동행하기로 했으니 분위기를 바꿔 볼 기회라는 거죠. 두 분이 실제로 호감을 가진 사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말했다시피 내가 필요한 건 그럴듯한 ‘ 분위기’ 니까요.” ‘이 망할 자식이…!’ 아크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으로 레리어트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말해 놓고 그런 말에 화를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제 동영상은 아크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사실 아크가 갑자기 생각을 바꿔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납치된 소년을 구출하기 위해 나크족과의 결전, 장대 같은 빗줄기 속에서 드라칸과의 공중전! 생각보다 좋은 장면들이 찍혔어요. 이 정도면 정식 사이트에 올려도 베스트 10안에 진입할 수도 있을 거예요.” 죽음의 심연에 들어서기 직전에 북실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식 사이트?” “네, 글로벌엑서스의 정식 사이트 말이에요. 그곳에 게임 동영상을 올리면 매달 순위가 정해지거든요. 베스트 10위라면 조회 수가 50,000건 이상이라는 말이에요. 그 정도 되면 아크 님이 일약 스타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죠.”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하는 것이다. 아직도 정확한 합격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응시자보다 튀어서 눈도장을 많이 받아 놓으면 이득이 될 것은 자명한 일. ‘정식 사이트에서 내 동영상의 조회 수가 많아지면 입사 시험에 도움이 될 거야.’ 현재 아크는 다크울프로 변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크의 레포트를 읽어 본- 아크 혼자만의 착각이지만 - 글로벌엑서스에서는 다크울프가 아크 본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동영상이 인기를 끌면 다른 유저들에게는 비밀 보장이 되면서 글로벌엑서스에는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 아닌가?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동영상이 내게 이득이 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쉽게 보내 버릴 수는 없지.’ 때문에 기회가 나면 북실이도 장삿길(?)로 보내 버리려던 아크는 생각을 바꿨다. 일단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니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야 한다. 때문에 어울리지도 않는 연기까지 해 가며 북실이의 촬영에 협조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북실이가 살짝 건방져진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제 말 알아들었죠? 어쨌든 중요한 건 분위기예요. 하지만 아크 님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그냥 보통 남자들이 호감 가는 여자에게 하는 정도만 해 주면 돼요. 나머지는 제가 적당히 알아서 편집할게요. 아, 그리고 레리어트 님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저도 앞으로는 몰래 촬영할 테니까.” “뭐? 그건 왜?” “아크 님이나 레리어트 님이 무슨 연예인입니까? 아크 님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레리어트 님까지 마법 영사기를 신경 쓰면서 행동하면 분명 어색해질 거라고요. 게다가 연기를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일부러 연출한 듯한 동영상은 이제 인기가 없어요. 요즘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라고요. 마법 영사기를 최대한 인식하지 않는 게 좋다고요. 저도 조심스럽게 촬영할 테니 아크 님도 신경 써 주세요.” 북실이는 의외로 이런 방면의 전문가였다. 북실이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유저들이 각자 배역을 맡아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든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판에 박힌 내용에 싫증을 내고, 비교적 소탈해도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동영상이 인기를 끄는 추세였다. 뭐, 요즘은 TV에서도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니까. ‘결국 레리어트 님이 어떻게 반응하든 나 혼자 광대 짓을 해야 한단 말인가?’ 아크가 찜찜한 표정을 짓자 북실이가 확인하듯 덧붙였다. “이게 다 아크 님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라고요. 기왕이면 베스트 10 안에 들 만한 멋진 동영상이 만들어지는 편이 좋을 거 아니에요.” “… 알았어, 신경 쓸게.”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인데 어째 갈수록 일이 커지는 것 같다. 그리고 레리어트에게 비밀로 하고 촬영해야 한다는 게 무슨 몰카를 찍는 것처럼 생각되어 은근히 찔렸다. 그러나 북실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면 둘의 관계가 더욱 어색해질 뿐이다. ‘그래,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레리어트 님도 응시자잖아. 동영상이 글로벌엑서스의 주목을 끌면 그녀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아크는 고개를 돌려 레리어트를 힐끔거렸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는 그녀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그러나 그 감정은 연애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반인이 연애인을 보며 설레는 그런 느낌을 뿐이다… 라고 아크는 줄곧 생각해 왔다. 레리어트는 누가 봐도 예쁘다. 아마 북실이도 현실에서 그녀를 봤다면 지금처럼 태연하게 행동하지 못했으리라. 게다거 글로벌엑서스에 응시할 정도면 학력도 제법 된다는 뜻. 매달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허덕이는 아크와는 어차피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그녀 앞에서는 괜히 쭈뼛거리고, 주눅이 들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다. 레리어트 님에게는 아란 같은 남자가 어울리겠지.‘ 아크의 입에서 씁쓸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뉴 월드에서 아크는 아란을 영주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란은 귀족, 아크는 서민일 뿐이었다. 그리고 레리어트는 서민보다는 귀족에게 어울리는 여자였다. 사실 이때까지도 아크는 레리어트와 아란이 사귀는 사이라도 믿고 있었다. 그녀가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아란이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면접 날 불안해하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야. 단지 그뿐이야. 레리어트 님이 내게 보이는 호의도 비슷한 거겠지. 뭐 게임 안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까. 당연하지, 그 외에 뭐가 있겠어?’ 아크는 그렇게 대충 정리하고 생각을 털어 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아크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뇌 용량이 1%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보다 심도 깊게 상황을 정리할 만한 하드웨어가 갖춰져 있지 않은 인간인 것이다. 어쨌든 괜히 북실이가 바람을 집어넣어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사실 아크는 그것 말고도 고민해야 할 일이 넘칠 지경이었다. 일단 어찌어찌 《보나를 구출하라》퀘스트는 정리가 됐다. 그러나 아직 유계에서 처리해야 할《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퀘스트가 남아 있다. 그리고 타무라드를 처리한 뒤에 잠시 나타났던 붉은 남자도 마음에 걸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추격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유계에 있는 것을 확인한 이상 정보를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나중 문제. 막상 죽음의 심연을 나오니 좀 더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쳤다. 볼일을 끝내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계곡 마을로 돌아가는 게 문제였다. 아크 일행이 타고 온 하늘 가오리는 드라칸에게 전멸. 덕분에 올 때와 달리 걸어서 계곡 마을까지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늘로 일직선으로 이동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복잡한 지형의 바위산을 걸어서 이동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리라. “그란, 여기서 계곡 마을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사나흘 정도 걸릴 겁니다.” 그란의 대답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나흘이면 대략 현실의 하루. 그러나 아크가 암담한 표정을 지은 것은 단순히 시간이 아까워서만이 아니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아크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아크는 유계까지 따라 들어온 쥬르 일당을 전멸시켰다. 그 말은 24시간 후에 쥬르 일당이 부활한다는 뜻이다. ‘쥬르 일당이 내 이동 경로를 따라왔다면 계곡 마을에서 부활 장소를 갱신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내가 계곡 마을에 도착하기 전에 부활하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번에도 운이 따라서 쥬르 일당을 전멸시켰지만, 사실 쥬르와 듀크가 포함된 10명의 척살대는 아크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만약 벌판에서 그들과 마주친다면 승산이 없었다. 아니, 승산은커녕 도망치기도 쉽지 않으리라. ‘그렇다고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없고….’ 일행이 4명이나 되니 라둔마를 이용할 수도 없다. 가아아아아-! 그때, 문득 아크의 머리 위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둑해진 하늘에서 몇몇 하늘 가오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늘 가오리? 가만, 그러고 보니 계곡 마을의 뮤탈들은 몬스터를 조련할 수 있다고 했어.’ 아크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란을 바라보았다. “그란, 혹시 저 하늘 가오리도 조련할 수 있습니까?” “몬스터 조련은 특수한 재능을 가진 몇몇 뮤탈만이 할 수 있습니다. 보나 님도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기는 하죠. 하지만 몬스터 조련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험 많은 조련사라도 한 마리를 길들이는 데 한 달 이상 걸리죠. 보나 님이라면 그 배 이상을 걸리고, 한 번에 두 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거느리지도 못할 겁니다.” 그란의 설명에 보나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몬스터 길들이다가 늙어 죽겠군.’ “그런데 이상하군요. 이 지역은 드라칸의 서식지라 하늘 가오리는 접근하지고 않는데… 엇? 가만, 저건…?” 그란이 뭔가를 발견한 듯 시선을 집중했다. “역시, 저건 이미 한 번 조련했던 하늘 가오리입니다.” “한 번 조련됐던 하늘 가오리?” “네, 고삐가 매여 있으니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숫지가 꽤 되는군요. 대략 열 마리 남짓? 대체 어째서 조련된 하늘 가오리가 열 마리나… 어라? 저건 혹시 선생님의….”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대강의 상황이 그려졌다. ‘맞아, 쥬르 놈들은 내가 죽음의 심연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뒤쫓아 들어왔어. 계곡 마을에서 죽음의 심연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저주 마법으로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걸어서는 그렇게 빨리 쫓아올 수 없어. 그렇다면?’ 쥬르 일당도 하늘 가오리를 타고 쫓아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놈들은 계곡 마을에 들렀다가 나를 뒤쫓아 온 거야.’ 이제야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한 번 조련됐던 하늘 가오리라면 타고 갈 수도 있다는 말이겠죠?” “가능은 하지만… 저 하늘 가오리들은 각인이 풀린 상태입니다.” “각인?” “네, 원래 조련된 몬스터는 조련사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수 없습니다. 지배력이 약해져서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에? 하지만 우리는 하늘 가오리를 타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게 바로 각인의 효과입니다.” 그란이 소매를 걷어 손목을 보여 주었다. 손목에는 검은 문양이 찍혀 있었다. 계곡 마을에서 하늘 가오리를 타기 전, 베스튜라가 찍어 준 문양으로 아크와 북실이의 손목에도 찍혀 있었다. “조련사가 각인을 찍어 주면 일정 시간 동안 몬스터는 그를 조련사로 인식합니다. 때문에 각인된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는 지배력이 풀리지 않는 거죠. 지금 저 하늘 가오리들은 각인이 찍힌 사람들이 죽어서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인 겁니다. 다시 길들이는 건 무리….” 그때, 보나가 끼어들었다. “아직 완전히 야생 상태로 돌아간 건 아니에요. 야생 상태로 돌아가기 전에 각인을 갱신하면 원래되로 돌아올 거예요.” “하지만 각인은 원래 주인의… 아, 그렇군요!”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란이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맞습니다. 저 하늘 가오리가 선생님의 몬스터라면 우리가 가진 각인으로 갱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각인도 선생님의 것이니까요. 물론 각인을 갱신시키는 것도 기술리 필요하지만, 조련사의 자질을 가진 보나 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혼란에 빠진 하늘 가오리를 어떻게 잡느냐는 건데….” 그란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하는 위에서 날아다니는 하는 가오리를 쳐다보았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풀려 주면 남은 것은 아크 몫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죠. 데드릭, 네가 나설 차례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하늘 가오리는 수십 미터 상공에 떠 있는 공중 몬스터지만, 데드릭으로 유인해 오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 당연히 들려와야 할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데드릭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야, 인마, 뭐 해? 안 들려 ?‘ 역시나 묵묵부답…. 데드릭은 하품을 하며 목덜미를 긁적거렸다. ‘이 녀석, 아까 구박 좀 했다고 아직까지 꽁해 있는 건가?’ 아크의 눈매가 치켜 올라갔다. 아무래도 하늘 가오리보다 먼저 소환수부터 다시 조련시켜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데드릭이 이렇게 대놓고 반항하기 시작하면 한두 대 패는 걸로 해결되지 않는다. 자존심이 강한 만큼 한 번 틀어지면 여간해서는 버릇을 고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서너 번은 빈사 상태로 만들어 놔야 정신을 차리리라. 그러나 지금은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아무리 아크라도 레리어트나, 아크를 존경한다고 주장하는 보나 앞에서 연소자 관람 불가 딱지가 붙을 만한 폭력을 휘두르기는 조금… 또한 그렇게 노닥거릴 시간도 없었다. ‘젠장, 이 녀석이, 그런 사정을 뻔히 알고 어깃장을 부려대는 거야.’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면 데드릭을 쏘아보았다. ‘가만? 저 녀석이 토라진 이유는 라자크가 진화에 성공해서 그런 거잖아? 그렇다면 ….’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는 이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말 잘 들으면 지금까지 모은 식재료를 탁탁 털어서 새로운 음식을 열 번이나 만들어 줄 생각이었는데. 싫다면 할 수 없지.” “…?” 데드릭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로운 음식이라면 때려 죽여도 먹기 싫은데 마치 포상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다니? “여기서 구한 식재료들은 대부분 몸에 좋은 효과가 있었지? 뭐, 약간은 독도 있겠지만, 아마 70% 이상은 좋은 효과일 거야. 하지만 네가 싫다면 할 수 없지. 몽땅 라지크에게 먹이는 수밖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건데… 그러다가 라자크가 나보다 세지는 거 아냐?” 그제야 데드릭이 귀를 쫑긋 세우며 돌아봤다. “뭐, 뭐라고? 앞으로도 계속?” “그래, 이제 방침을 바꿨거든.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내가 너무했던 것 같아. 깊이 반성하고 있어. 그래서 앞으로는 음식을 먹기 싫다면 굳이 먹이지 않을 생각이야. 정말 강해지고 싶어하는 라자크에게만 먹여야지, 뭐.” “그, 그건 얘기가 다르잖아!” “얘기가 다르다니? 항상 네가 원했던 일이잖아.” “그, 그거야 그렇지만….” 데드릭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떠듬거렸다. 확실히 새로운 요리를 먹기는 싫다. 그러나 아예 안 먹는 것고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라자크가 먼저 2차 진화를 해 버려 능력치 차이가 벌어졌는데, 앞으로 라자크만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질 게 아닌가? 어쩌면 넘버2(?)에서 라둔이나, 라자크의 따까리 신세로 전락하게 될지고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렇게 되리라. 따까리라니… 소환수가 되기 전에 박쥐들에게 왕따 당하던 시절과 다름없지 않은가? 동요하는 데드릭을 보며 아크는 사악한 어른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네가 그래 봐야 어린애지.’ 아크의 이 수법은 사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다. 아크는 어렸을 때 열이 펄펄 끓어도 절대 약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고집은 또 얼마나 센지 보다 못한 어머니가 매를 들어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결국 반쯤 포기한 어머니는 꾀를 내었다. “이걸 먹지 않으면 아빠처럼 어른이 될 수 없는데… 할 수 없지. 이건 그냥 옆집 아이 다 줘야겠다. 옆집 아이는 쑥쑥 자라겠지만 현우는 그냥 꼬맹이겠지. 동네 애들이 모두 학교에 다닐 때도 현우는 혼자 놀아야 할 거야. 아, 우리 현우 불쌍해서 어쩌나.” 어머니는 약을 들고 방을 나서자 아크는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약을 먹으면 쓰다. 이건 어린 아크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죽어도 먹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자기 것을 남 준다고 하니 어린 마음에 서럽기 짝이 없었다. 그 뒤로 아크는 약도 잘 먹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약이 좋아서가 아니라, 남 주기 싫어서…. 음, 아무래도 그때부터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어쨌든 데드릭도 4살 때의 아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새로운 음식을 먹기는 싫다. 그러나 막상 몽땅 라지크에게 준다니 마치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서러워진 것이다. 그때 아크는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데드릭에게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야 말이지만 내가 라자크가 먼저 진화한 게 좋기만 할 것 같아?” “…응?” “생각해 봐.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있으면서 정말 도움이 된 게 누구라고 생각해?” “… 누군데?” “이런 답답한 녀석, 그야 당연히 너지.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너를 넘버 2로 생각하고 있어. 항상 문제가 생길 때마다 너를 혼내는 이유가 그거야. 윗사람을 혼내서 아랫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생각 때문이지. 네가 잘하면 나머지는 당연히 잘 따라오니까. 왜냐고? 라둔이난 라자크도 내심 너를 넘버 2로 생각하고 있거든.” “… 정말이냐?” “당연하지. 너에게만 반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건 그 때문이야.” 과연 그럴까? 그저 라둔이나 라자크는 말을 못 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네가 먼저 진화해서 지금처럼 위계질서를 잡아 주기를 바랐어. 물론 네가 먼저 진화하는 게 전투에도 더 도움이 되고 말이야. 알지? 이번만 해도 네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늘 가오리를 잡을 수 없어. 라자크는 진화까지 했는데도 별로 쓸모가 없단 말이야. 모처럼 얻은 기회를 포기할 수 없어서 라자크를 진화시키기는 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고.” 아크는 아쉽다는 듯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네게 새로운 요리를 몰아줘서라도 라자크보다 강하게 만들고 싶었는데… 네가 싫다면 할 수 없지. 넘버 2 자리도 네가 부담된다면 라지크에게 맡길게. 음식도 앞으로는 라자크에게만 주고. 그럼 됐지?” “누, 누가 싫데?” 데드릭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아크가 와락 데드릭의 입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쉿, 작게 말해. 라둔이나 라자크가 들으면 안 돼.” “왜?” “바보야, 내가 너만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다른 녀석들이 알면 안 되잖아.” “특별하게?” “그래, ‘특별’ 하게.” 아크가 악센트를 주며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러자 데드릭은 입술을 움찔움찔하며 히죽거렸다. “주, 주인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아, 흠흠, 라자크는 진화했는데도 이 몸보다 쓸모가 없다 이거지? 후후후, 뭐 그렇지. 진화해 봐야 해골이야. 고귀한 뱀파이어와 비할 바가 아니라고. 주인이 그걸 알고 있는 줄은 몰랐어. 후후후후, 그렇다면 역시 내가 넘버2로서 아랫것들에게 모범을 보여야지. 대신 앞으로 새로운 음식은 다 나 주는 거다?” “물론이지. 너는 ‘특별’ 하니까.” “좋아, 저 넓적한 녀석들을 주인에게 끌고 오면 되는 거지?” “역시 너밖에 없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구나.” “괜히 넘버2겠어?”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띠링’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리어의 소환수 ‘데드릭’이 살짝 존경스러운 눈빛이 보냅니다. 《소환수의 충성도가 10만큼 상승했습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데드릭이 한껏 우쭐대면 엄청난 속도로 날아올랐다. “우하하하, 넘버 2가 나가신다! 받아랏!” 데드릭은 단숨에 거리를 좁혀 하늘 가오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용맹하게…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알짱거렸다. 맹렬하게 ‘도발’ 스킬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못한 하늘 가오리 한 마리가 성난 울음을 토하며 데드릭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한껏 기세가 오른 데드릭! 날렵하게 공격을 피하며 아크가 있는 곳으로 하늘 가오리를 유인했다. “주인, 넘버 2가 하늘 가오리를 유인해 왔다!” “역시 네가 최고야! 라자크, 검화!” 순간 라자크의 몸이 조립식 로봇처럼 검으로 변신했다. 라자크의 외모가 변한 것처럼 본 블레이드도 약간 외형이 변형되었다. 척추뼈와 같은 검신의 양쪽에 가시 같은 것이 돋아 있었고, 전체적으로 검은 기운이 흘렀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집어 들고 채찍으로 바꿔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촤라라락! 진화한 덕에 5미터나 더 길어진 검날이 하늘로 쏘아졌다. 라자크는 본 블레이드로 진화해도 의식이 남아 있다. 채찍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아크가 자유자재로 공격하거나, 물건을 휘감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역시나 아크의 의도를 알아챈 라자크는 검날의 가시를 이용해 하늘 가오리를 단단하게 옭아맸다. 가아아아아-! 하늘 가오리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비틀어 댔다. “지금입니다. 도와주세요!” “네!” 아크가 하늘 가오리를 포획하는 장면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란과 보나, 북실이와 레리어트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려 왔다. 그러나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니는 몬스터다. 5명이나 달라붙었는데도 쉽게 끌려 내려오지 않았다. “무조건 잡아당기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놈이 반항할 때는 적당히 풀어 줬다가 지쳤을 때 단숨에 잡아당겨야 합니다. 제 구령에 맞춰 완급을 조절하세요. 풀었다가… 당기세요!” “영차, 영차, 영차!” 5명이 구령을 맟춰 본 블레이드를 잡아당겼다. “이 자식, 어딜 눈깔을 번뜩거려? 가오리 주제에 반항하냐? 나 넘버 2야, 이놈아!” 데드릭도 위에서 하늘 가오리를 밟아 대며 거들었다. 그렇게 몇 분… 결국 하늘 가오리는 기진맥진 상태로 끌려 내려왔다. 데드릭을 미끼로 시도한 하늘 낚시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헉헉헉, 자, 이제 얌전히 있어. 보나, 네 차례다. 일단 내문양부터 각인시켜.” “네.” 보나가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그리고 문양이 새겨진 아크의 손목을 하늘 가오리의 몸에 가져가더니 눈을 감고 주문 같은 것을 외웠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나자 곧 아크의 눈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조련사의 각인을 성공적으로 갱신했습니다. 하늘 가오리는 각인의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아크 님을 따르게 됩니다. 《각인의 남은 시간:2시간》) “좋아, 일단 한 마리만 포획하면 나머지는 일도 아니지!” 아크는 하늘 가오리에 올라타 세차게 고삐를 잡아챘다. 다시 온순한 몬스터로 돌아온 하늘 가오리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데드릭, 방금 전처럼 멋지게 하늘 가오리를 나에게 유인해 와!” “멋졌냐? 크헤헤헤, 알았다. 주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데드릭이 그 순간 고래가 되었다. 데드릭은 신바람을 내며 정말 화살처럼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하늘 가오리를 유인해 오면 아크는 곧바로 본 블레이드로 칭칭 감아 바닥까지 끌어 내렸다. 5명이 달라붙어도 쉽지 않은 상대지만, 같은 하늘 가오리를 활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아크는 금세 열 마리의 하늘 가오리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문양을 가진 사람은 3명밖에 되지 않지만, 일단 각인을 하고 뒤따라오도록 명령하면 되는 것이다. “우헤헤헤, 어떠냐, 주인?” 하늘 가오리 사냥이 끝나자 데드릭이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음, 역시 넘버 2는 너밖에 없어. 앞으로 네가 라자크보다 더 능력치가 오를 때까지 새로운 음식은 몽땅 너에게 몰아주마. 너는 그만한 자격이 있어, 암.” “정말이지? 약속했다?” 데드릭이 입을 쩍 벌리며 몇 번이나 확인했다. 조삼모사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 원숭이에게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의 먹이를 주니 적다고 화를 냈단다. 그래서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좋아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쩐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데드릭은 원숭이보다는 조금 지능이 높아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아크가 다시 넘버 2 운운하며 추켜세워 주자 금세 잊어버리고 히죽거렸다. 정말이지 그 단순함이… 안타깝다 못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크 님, 모두 각인을 끝냈습니다.” 그사이 각인을 끝낸 그란이 다가왔다. “그럼 서둘러 출발하죠.” 포획한 것은 모두 열 마리, 아크 일행이 이용하고도 남는 숫자였다. 뒤이어 그란과 보나가 익숙한 몸짓으로 하늘 가오리의 등에 올라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하늘 가오리를 타고 폭풍우를 뚫느라 죽을 고생을 한 북실이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올라탔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쭈뼛거리며 망설였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혹시 이걸로 하늘을 날아갈 건가요?” 레리어트가 몸서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저, 저는… 이런 데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니, 그보다 하늘을….” “별로 위험하지 않아요.” 아크가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지만 레리어트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 제가 … 심하지는 않지만 … 고소공포증이 약간….” 의외로 문제에 아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련된 하는 가오리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해 놓은 상태라도 제대로 타려면 직접 조종해야 한다. 항상 장거리 이동을 하는 상인인 북실이는 말을 빌려 탈 일이 많아서 승마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아크 역시 그동안 라둔마를 타고 다녀서 승마 스킬의 숙련치가 제법 되었다. 물론 승마 스킬이 없어도 요령만 있다면 금세 적응되겠지만, 고소공포증 환자에게 비행기를 조종하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그때, 그란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재 안을 내놓았다. “할 수 없군요. 힘들기는 하겠지만 레리어트 님은 뒤에 타고 가야되겠습니다. 하늘 가오리가 열 마리나 있으니 조금 부담되더라도 도중에 한두 번 갈아타면 될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보다시피 보나 님이 아직 하늘 가오리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란은 보나를 앞자리에 앉혀 놓고 있었다.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북실이는 얼른 시선을 돌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혼자 타고 올 때도 죽을 고생을 했는데 어떻게 고소공포증 환자를 데리고 타냐는 태도였다. 아크는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제 뒤에 타세요.” “….” 레리어트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결국 그녀는 아크가 내민 손을 잡고 하늘 가오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마치 남자 친구의 오토바이에 처음 탄 여자처럼,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간신히 옷자락 끝을 말아 쥐었다. “자, 가죠! 그란, 안내하세요.” “네, 이럇!” 그란이 고삐를 잡아채자 일시에 열 마리의 하늘 가오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거의 수직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하늘 가오리! “꺄악!” 동시에 레리어트가 비명을 터뜨리며 와락 아크의 등을 껴안았다. 덕분에 아크는 너무 놀라 고삐를 놓칠 뻔했다. “레, 레리어트 님?” 아크는 당혹감을 터뜨렸지만 이미 레리어트는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등에 얼굴을 파묻고 쉬지 않고 비명을 질러 댈 뿐이었다. 그 상황이 북실이의 프로 근성을 자극한 모양이다. 마법 영사기를 들고 옆으로 날아오며 연방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때 아크도 살짝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거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기사 계열로 전직했지만 레리어트는 아직 로브 차림이었다. 당연히 등에 바짝 달라붙자 부드러운 촉감과 따스한 체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여자라고는 어머니와 동생 같은 로코밖에 모르는 아크는 아직 여성 저항력이 0%이다. 그런 아크에게 이런 경험은 뇌 기능을 마비시키고 남을 파괴력이었다. 그렇게 하는 가오리는 빙글빙글 도는 유계의 하늘을 가로 질렀다. 아크의 머릿속도 빙글빙글 돌았다. “역시 뭔가 좀 찜찜한데….” 그 뒤를 데드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쫓고 있었다. 3. 이명룡의 굴욕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반백의 장년인이 날카로운 눈매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경찰청 특수 기동대 과장, 조영환이다. “그다지.”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는 사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복장 불량, 자세 불량, 태도 불량…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이 사내는 바로 제 1특수 기동대장, 동시에 경찰청 제1의 깡패로 불리는 이명룡이었다. 조영환은 이명룡을 쏘아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정말 이럴 거야?” “뭐가 말입니까?”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야 위에 올라가서 짖어 대기라도 할 거 아냐?” “짖어 댄다고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조영환이 책상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 그 말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고 있다는 말이군.” “모른다고 한 적 없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이봐, 이명룡.” 조영환은 양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꾸짖듯이 말했다. “내가 너를 모르냐? 네가 나를 모르냐?” “목욕탕을 수도 없이 같이 갔으니 알 만한 건 다 알죠.” “장난치지 마, 그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너와 내 몸에 있는 흉터를 모두 합치면 경찰청 총인원만큼을 될 거다. 우리가 사는 게 그렇지. 현장에서 사시미에 회 쳐지면서도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총알받이가 되는 게 우리 같은 말단이야. 그리고 그 정도 각오하지 않고서 대한민국 경찰 하는 놈도 없어.” “국회로 나가 보시죠. 경찰 표가 몽땅 몰릴 겁니다.”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조영환이 주먹으로 거칠게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을 내리친 주먹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비록 지금은 과장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지만 그 역시 몇 년 전까지는 특수 기동대장을 하던 사람인 것이다. 경찰청의 불곰. 조폭 같은 별명을 가진 그가 바로 조영환이었다. “나도 공무원이야. 괜한 상처 입기 싫다고.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 밑에 있는 녀석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여기저기 팔려 가는 꼴을 얌전히 보고 있을 만큼 좋은 성격은 아니야. 생각 없는 위 대가리들이 쏜 총알이 오발이면 대신 맞아 줄 각오 정도는 하고 있단 말이야.” 이명룡은 입술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그래서 화랑 선배는 절름거리며 경찰청을 나갔죠.” “너 정말!” 조영환이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이명룡은 지지 않고 노려보다가 이내 힘을 풀며 중얼거렸다. “과장님에게 불평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경찰 밥 하루 이틀 먹습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위 대가리들이 쏘는 총알은 오발이라도 기가 막히게 정확하다는 걸. 아니, 오발일수록 더 정확히 맞히려고 기를 쓰는 게 위 대가리들이죠.” “….” 잠시 침묵하던 조영환은 맥 빠진 얼굴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명룡이 오기 전에도 꽤나 펴 댔는데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조영환은 폐 속을 일주한 담배 연기를 코로 뿜어내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네가 꼴 같지 않은 말을 지껄이는 걸 보니… 어지간히 열 받는 모양이군.” “열 받았냐고요? 네, 열 받았습니다.” 이명룡이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렇다, 비록 웃고 있었지만 그는 지금 목구멍까지 화가 치밀어 오를 상태였다. 비아냥거리기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지명수배가 될 만한 일을 벌이고 싶을 정도로…. 사건은 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끝내고 출동하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과장실로 호출되어 달려와 보니 뜬끔없이 특수범죄대책과로 발령이 났단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그 새끼가…!’ 이명룡은 머리 회전이 빠른 사내가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꼴통과에 속한다. 경찰청에 들어온 것도 단지 태권도 국가 대표였다는 이력 덕분. 시험을 봤다면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사는 세계가 세계다 보니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해서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었다. 특수범죄대책과…. 이름만 들으면 강력 범죄를 다루는 부서로 들릴 만하다. 그러나 ‘수사과’가 아니라 ‘대책과’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책상에 앉아서 사건을 저지르고 잠수를 탄 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뭔가 실마리가 잡히면 수사과에 넘겨주고 땡. 단지 그뿐인 한직이었다. 일단 명목은 업무 교대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특수 기동대… 그것도 대장이나 되는 이명룡이 아무런 사전 보고도 없이 갑자기 그런 곳에 발령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과장으로부터 얘기를 전해 들은 이명룡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아니, 사실 며칠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다는 편이 맞았다. 이경호. 얼마 전 현우와 함께 찾아갔던 안델이라는 놈의 아버지다. 그 중늙은이는 검찰부장 출신으로 검찰에 재직할 당시부터 경찰청장과는 막역한 사이였다. 그리고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명룡과 경찰청장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권화랑이 경찰을 그만둬야 할 당시, 기동대원들과 함께 정면으로 경찰청장과 대립했던 과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경찰청장에게 이명룡은 눈엣가시. 그러나 실적이 좋은 편이라 대놓고 이명룡에게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거기에 경찰 관계자와 인맥이 넓은 이경호가 가세한 것이다. 이번 일은 이 두 인간의 합작품이리라. 두 인간이 바라는 것은 뻔하다. 이명룡이 이번 발령에 발끈해 반항하거나, 사표를 집어던지는 것. ‘이까짓 말단 공무원… 당자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확실히 이명룡은 이경호를 찾아가 한 방 먹여 주고 사표를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을 알고도 그런 늙은 너구리들의 뜻대로 움직여 줄 만큼 이명룡은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게다가 만약 이명룡이 경찰을 그만두면 현우도 대강 눈치를 채리라. ‘그 녀석, 그런 쪽으로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현우를 떠올리자 입가에 씁씁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존심이라고 해고 좋고, 오기라도 해도 좋다. 명색이 사범이다. 하나뿐인 제자가 그 따위 더러운 빚을 만들어 주고 싶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정말 못 해 먹겠군. 아래에서 무슨 일을 진행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툭하면 잘랐다. 붙였다… 경찰이 지들 놀이터야? 너도 그래,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 내게 의논이라도 했으면 좋았잖아.”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조영환이 거칠게 비벼 끄며 짜증을 부렸다. “어쨌든 됐어. 보아하니 당장 사표를 쓸 생각은 없는 것 같고. 그럼 나도 일단은 한 걸음 물러나서 좀 더 상황을 관망해 보마. 휴가라고 생각하고 두어 달만 그곳에서 쉬고 있어. 그 사이에 뭔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그러죠.” “조금 전에 그곳 과장에게 연락해 뒀다. 한글도 모르는 놈을 보내 줄 테니 적당히 알아서 자리 만들어 달라고. 말이 통하는 친구니 알아서 잘 챙겨 줄 거다. 나가 봐.” “네, 가능하면 한글은 떼고 돌아오죠.” 이명룡은 유들유들하게 대답하고 과장실을 나왔다. 말은 거칠게 하지만 조영환도 이명룡이 사표를 낼까 내심 걱정했던 모양이다. 사전에 특수범죄대책과에 연락을 보내 놨다면 어떻게든 뜯어말려서 보낼 생각이었다는 말이겠지. “사무직이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라나.” 이명룡은 한숨을 푹 불어 내며 특수범죄대책과로 발길을 옮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명룡은 자신이 무슨 업무를 맡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 자네가 조 과장이 얘기하던 친구로군. 나는 이곳을 맡고 있는 최덕필이네.” 특수범죄대책과로 들어서자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내가 웃으며 다가왔다. 전형적인 사무직 직원의 외모였다. “네, 한글도 못 뗀 이명룡입니다.” “하하하, 잔뜩 꼬였구먼. 이해하네, 나도 이런 식의 발령은 그다지 달갑지 않으니까. 하지만 조 과장의 반응을 보면 그리 오래 있지 않아도 될 거야. 뭐,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은 한 식구니까 잘해 보세.” “뭘 하면 됩니까? 복사? 커피 심부름?” “흠, 그것도 좋지만 특수 기동대 최고의 재원을 써먹기에 더 좋은 게 있지. 마침 잘됐어. 사실 그렇지 않아도 자리가 비어서 걱정하던 참이었거든. 어쩌면 자네 적성에도 맞을 거야. 이리 오게.” 최덕필은 귀퉁이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로 안내했다. 사무실이라고는 해도 이렇다 할 사무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원형 캡술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뭡니까, 이게? 새로 발굴한 공룡 알입니까?” “이걸 처음 보나?” “네, 고고학에는 관심이 없어서요.” 최덕필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유니트라는 기계네.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하기 위한 컴퓨터 같은 거지. 이 녀석은 그 중에서도 요즘 뜨고 있는 뉴 월드라는 게임 전용 유니트라네.” “뉴 월드요?” 이명룡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그것도 모르나?” “아니, 뉴 월드라면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다행이군. 순간 자네가 구석기 사람으로 보일 뻔했어.” 최덕필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명룡은 최덕필의 중년 아저씨 개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기동대원이나 현우에게 말로만 들어 온 유니트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이게 경찰청에 있는 겁니까?” “현장직인 자네는 아직 모르나 보군. 요즘은 온라인 게임 안에서 수사하는 일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네. 그리고 제법 실적도 올리고 있지.” 최덕필이 대충 간추려서 설명해 주었다. 범죄를 저지르고 잠수를 타는 자들은 대부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 게다가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하루 종일 어두침침한 방 안에서 지내야 한다. 그건 의외로 버티기 힘든 일이다. 심지어 숨어 살다가 우울증에 걸려 자수하러 온 범죄자가 있을 정도니까. 그런 범죄자들에게 가상현실 게임은 좋은 탈출구였다. 위험하게 밖에 나가지 않아도 넓은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놈들은 대부분 가상현실 게임으로 대리 만족하고 있다네. 심지어 게임 안에서 길드… 아, 모임이네. 어쨌든 그런 걸 만들어 놓고 정기 모임을 가지며 범죄 정보를 교환하는 웃기지도 않는 놈들도 있다네. 이럴 경우, 놈들의 정보 교환에 대한 단서를 알아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지.” 때문에 경찰에서도 수사 요원을 게임 속으로 파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수사 방식은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되어 나름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그럼 이 유니트도…?” “맞네, 뉴 월드라는 게임이 상용화되고 나서 우리가 주시하던 용의자들이 대거 그쪽으로 몰려들었다는 정보가 있었네. 그래서 몇 달 전에 글로벌엑서스에 요청해서 테스트 기종을 몇 개 지원받았네. 이건 그중의 하나야.” 이제 유니트가 왜 경찰청에 있는지는 대충 알겠다. 그러나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제가 알기로는 게임에 접속하려면 아이디를 만들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디는 주민등록번호나 개인 정보를 모두 기재해야 된다던데….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게 할 것 없이 게임 회사에 자료 제공을 요청하면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친구, 완전히 깡통은 아니군,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최덕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네 말대로 아이디를 만들려면 개인 정보를 입력해야 하지. 하지만 그건 예전 방식이고, 요즘은 망막 스캔 같은 생채 데이터로 아이디를 만드다네. 개인 정보를 숨겨 예전보다. 알기가 더 까다로워진 거지.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야.” “그게 문제라니요?” “기어거 안 나니? 몇 년 전에 대부분의 회사에서 보안 유지를 위해 생체 데이터로 로그인하는 방식으로 바꿨을 때, 인권이다 뭐다 정보 관련 법규가 엄청나게 까다로워졌네. 현재는 개인 정보 관련 데이터가 저장된 블랙박스는 국가 규모의 테러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열람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 하여간 정보화인지 뭔지가 진행될수록 경찰이 일하기는 더 힘들어지니다니까.” 최덕필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하긴 이 정도쯤 되면 머리가 복잡해질 만도 했다. “그런데 저는 뭘 하면 됩니까?” “간단하네. 현실의 탐문 수사와 별로 다를 건 없어. 우리가 그동안 알아낸 자료를 줄 테니 그걸 토대로 용의자나 그들의 길드를 찾아보는 거야. 일단 용의자로 의심되는 자를 발견하면 접근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 주소, 전화번호, 사건에 대해서라든지…. 게임 안에는 그런 내용을 녹화하는 기능도 있네. 그런 단서를 녹화해 두면 나머지는 실무 팀이 알아서 할 걸세.” 저보고 뉴 월드에서 수사를 하라는 겁니까?“ “새삼스럽기는 … 그게 우리 일이지 않나?” “하지만 저는 사람 패는 일밖에 모릅니다.” “그게 자네가 적임인 이유네.” “네?” 이명룡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자 최덕필이 씨익 웃으면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실 나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말이네. 전임자의 말에 따르면 뉴 월드는 기존의 가상현실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던군. 게임 안의 모든 것이 정말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거야.” “원래 그런 게 가상현실 게임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뉴 월드는 조금 의미가 달라. 단지 눈에 보이는 풍경이 똑같은 의미가 아니야. 유저가 가진 지식과 경험 안에서 살릴 수 있다는 뜻이지. 물론 100%는 아니지만 신체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더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고 하더군. 그게 자네를 추천하는 이유야. 게임 방식은 시간만 조금 투자하면 익힐 수 있지만, 자네만 한 신체 능력을 갖추려면 몇 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까.” “대체 뭔 소리를 하시는 건지….”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잘은 몰라. 어쨌든 전임자가 그렇게 말했으니 뭔가 있겠지. 다른 것은 자네가 게임을 하며 차근차근 풀어 가 보게, 자, 이게 현재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용의자들의 아이디네. 물론 신상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서 이들 가운데 누가 진짜 용의자인지 접촉해 보지 않고는 몰라.” 최덕필은 두툼한 서류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서 게임을 시작해서 모두 상당한 고레벨이라는 거야.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는 레벨 차이가 많이 나면 만나는 것조차 힘들다고 하네. 덕분에 전임자도 두 달 동안 게임 속에서 살았지만 아직 1명도 만나 보지 못했어. 그래서 자네를 생각해 낸 거지 특수 기동대에서 날리던 자네라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야.” 최덕필은 새삼스럽게 단단한 이명룡의 몸과 자신의 불룩한 똥배를 비교해 보고는 한숨을 불어 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 가질 필요는 없네, 어차피 게임 속의 수사는 보조적인 수단이니까. 일단은 그냥 편한 마음으로 게임에 들어가 봐.” “흐음….” 이명룡은 까칠한 턱을 문지르며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최덕필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 해 보겠나?” “뭐, 커피 심부름보다는 낫겠군요.” 최덕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탁 쳤다. “잘 생각했네. 처음이라도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전임자가 캐릭터 레벨 150 정도까지 키워 놨다고 들었으니까. 돈도 제법 벌어 놨다고 하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전임자는 다른 게임을 맡으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네. 죽 쒀서 개 줬다고 말이야. 다른 직원들도 모두 해 보고 싶어 안달하고 있지. 솔직히 이건 특채나 다름없어.” “네?” 이명룡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 게임도 생채 데이터를 사용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키우던 걸 제가 물려받을 수 있는 겁니까?” “맞네, 보통은 그렇지.” 최덕필은 제법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아까도 말했듯이 글로벌엑서스에서 사용하던 테스트 유니트야. 시스템 점검할 때 직원들이 사용하던 것이라, 예전처럼 일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할 수 있게 특수 제작된 거네. 이 서류 위에 적힌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하면 돼.” 최덕필은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전해 주고 사무실을 나갔다. 그렇게 집기 하나 없는 사무실에 이명룡과 유니트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이명룡은 팔짱을 낀 채 잠시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네가 뉴 월드의 컨트롤러라 이거지?“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 유 월드… 현우 덕분에 관심이 생겨 언젠가 한 번 보려던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방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면 항상 호출이 와서 몇 번이나 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아무리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게임을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시작하게 될 줄은…. “뭐, 좋아. 휴가 삼아 놀기에는 나쁘지 않겠어.” 드디어 이명룡이 유니트에 올라탔다. 흐릿한 빛 무리와 함께 작은 마을에 한 유저가 등장했다. “호오, 이게 게임 속이란 말이지?” 사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변경의 작은 마을인 듯, 집 몇 채가 드문드문 있을 뿐 주변에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주위 풍경도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숲에 둘러싸인 한적한 산골 마을. 뉴 월드를 여행하는 유저들에게는 그저 잠시 여장을 풀고 숨이나 돌릴 휴식처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사내에게는 그렇게 흔한 풍경도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이게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건가? 흙, 바람, 냄새… 모든 게 실제와 똑같다.’ 입고 있는 옷도, 묵직한 가방도 그가 뉴 월드의 초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난생처음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한 사람처럼 흙을 만져 보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며 팔다리를 움직여 보기도 했다. 그렇다, 그 유저는 바로 경찰청에서 접속한 이명룡이었다. 그가 받은 서류에는 전임자가 남긴 각종 자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차피 서류나 뒤적이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똥이 됐든 된장이 됐든 일단 한 번 먹어 보는 편이 이해가 빠르지 않은가? 때문에 이명룡은 서류는 진즉에 구석에 처박아 두고 곧바로 뉴 월드에 접속한 것이다. 그렇게 게임에 접속한 이명룡의 반응도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대부분 초보 유저들이 그렇듯 뉴 월드의 놀라운 기술력에 감탄했다. 십수 년을 수련해 한계까지 발달한 그의 예민한 감각조차 현실과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허… 현우에게 얘기는 들었지만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군. 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게 가능한 거야? 아니, 그보다 이렇게 팔다리가 자유롭게 움직이는데 내가 정말 유니트 안에 앉아 있는 건가?’ 이명룡은 잠시 얼을 빼놓고 서 있었다. 막상 게임에 들어오기는 했는데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문득 시야 가장자리에 반투명한 물체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캐릭터 정보창, 가방, 기타 등등…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아이콘이었다. 사실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런 아이콘을 ‘숨김’ 으로 설정하고 명령어로 열람한다. 그러나 게임 초보인 이명룡을 위해 전임자가 아이콘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다행히 게임 백치에 가까운 이명룡도 그게 아이콘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 내가 어떤 놈인지는 알아야겠지. 이건가?’ 이명룡은 먼저 사람 모양의 아이콘을 손가락으로 찍어 보았다. 역시나 캐릭터 정보창이 열리며 각종 수치가 눈앞에 떠올랐다. 보통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유저의 정보창은 간단하다. 그러나 이명룡이 떠맡은 캐릭터의 레벨은 150. 그동안 바뀌고 추가되어 복잡하기 짝이 없게 변한 각종 정보창이 주르륵 올라오자 뭐가 뭔지 정신이 없었다. 간신히 그가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150레벨과 ‘이슈람’ 이라는 이름뿐이었다. “이슈람이라… 일단 이름은 나쁘지 않군. 왠지 강해 보여.” 그 아래로 힘, 민첩, 체력 등등의 스탯과 특성 따위가 잔뜩 붙어 있었지만 RPG라는 이름조차 생소한 이명룡에게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그게 어디에 적용되는지, 그게 높은 건지 낮은 건지도 알 리가 없다. ‘쳇,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군. 이딴 건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고, 다음은….’ 이명룡은 보따리 같은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해 보았다. 이번에는 가방이 열리며 엄청난 양의 아이템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역시 알아볼 수 있는 건 800골드라는 금액뿐이었다. 그 외에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아이템은 어디에 쓰는 건지, 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800골드? 이게 많은 건가? 그런데 이 밑에 있는 것들은 뭐야? 라파나의 잎사귀 묶음? 일각수의 뿔? 진주 모래? 이런 알 수 없는 것들을 대체 뭐 하러 가지고 다녔던 거야?’ 다른 유저가 가방을 봤다면 군침을 질질 흘렸을 고가의 아이템들이었다. 그러나 뉴 월드의 물품 가치를 알 리가 없는 이명룡에게는 그저 쓰레기 더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에이, 몰라. 뭐 어딘가에 쓸데가 있겠지. 일단 현우 말에 따르면 뉴 월드에서는 몬스터라는 걸 잡으면서 논다고 했어. 그게 거의 실전과 비슷할 정도로 리얼하다고 했지? 좋아, 먼저 그 몬스터라는 것부터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몬스터를 만날 수 있는 거지?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봐야겠군.’ 이명룡… 아니, 이슈람은 골치 아픈 창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정보를 알아낼 만한 사람을 찾아 마을 안을 돌아다닐 때였다. 문득 마을 어귀에서 한 노인이 몇몇 사람들을 붙잡고 부탁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정말 안 되겠습니까?” “… 죄송합니다.” “여러분의 실력이라면 아주 잠깐이면 될 겁니다.” 노인이 간절한 눈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나 가죽 갑옷에 장검을 걸친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그런 몬스터는 수도 없이 잡아 봤으니까요.” “저희도 시간만 충분하면 도와 드리고 싶지만….” “길드에서 급하게 소집 명령이 내려와서요.” “다음에 들르면 꼭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봐, 서둘러야 해. 소집 시간에 늦겠어.” “알았어, 출발하자.” 전사들은 그 말을 끝으로 분주히 마을을 빠져나갔다. “아아, 몇 주 만에 만난 전사들인데….” 노인은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그때, 멀뚱히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이슈람이 얼른 노인에게 다가갔다. “지금 몬스터라고 하셨습니까?‘” “음? 자네는 낯이 익은데 누구였더라?” “아, 저는 이명룡… 아니, 아수라. 아니, 이슈람? 아니, 잠깐만요.” 아직 게임에 적응하지 못한 이슈람은 얼른 정보창을 열어 보고 다시 말했다. “아, 네, 저는 이슈람이라고 합니다. 듣자니 방금 전에 몬스터 어쩌고 하시는 것 같은데… 이 근처에 몬스터가 있습니까?” 노인은 자기 이름도 헛갈리다니 웬 덜떨어진 사람인가… 하는 눈으로 이슈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라는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할 정도네. 몇 주 전부터 어디서 굴러 들어왔는지 놀 떼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단 말이네. 덕분에 마을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 하지만 보다시피 이곳은 모험자들도 잘 찾지 않는 산골 마을에네. 간신히 조금 전에야 마을을 지나는 전사들을 만나 퇴치를 부탁하던 참이네. 하지만 자네도 봤다시피 바쁜 일이 있다며 거절하더군. 이제 어쩌면 좋을지….” “그러니까 그 놀이라는 게 몬스터라는 거죠?”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이슈람이 확인 차 묻자 노인이 괴상한 얼굴로 되물었다. “당신도 보아하니 제법 경험이 많은 사람 같은데 놀이 몬스터냐니?” “어쨌든 몬스터가 맞다는 거죠?” “어허, 이 사람이 정말 어디가 모자란 건가? 그래, 몬스터네. 그렇다면 어쩔 텐가?” 급기야 노인의 눈에 짜증이 번졌다. 그러나 이슈람은 살짝 무시하고 얼른 말했다. “그 놀이라는 놈들을 제가 처리해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슈람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지금 그 말을 진담으로 하는 건가?” “안 됩니까?” “아, 아니… 솔직히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지경이라… 누가 됐든 몬스터만 퇴치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만… 아, 그렇군. 혹시 근처에 믿을 만한 동료라도 있는 건가?” “아니, 그딴 건 없습니다.” “엥? 없다고?” “어쨌든 제게 맡겨 주십시오. 그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 저기 보이는 언덕을 넘어가면 놈들이 먼저 나타날 거네. 일단 급한 대로 쉰 마리만 처치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 노인이 얼떨결에 대답하자 이슈람의 눈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 놀 퇴치 (반복 퀘스트) 당신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변경 마을에서 곤경에 빠진 노인을 만났습니다. 마을 주변에 약탈자로 악명을 떨치는 놀이 나타나 마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놀을 처치하고 증거품을 50개 모아 오면 노인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변경의 작은 마을이라 큰 보상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기대할 수 있는 건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 그리고 약간의 은화입니다. 난이도: D)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오호, 퀘스트라는 걸 이렇게 받는 거구나. 경찰이 직접 찾아가 민원을 접수받는 것 같군. 그럼 이 노인은 진짜 사람이 아니라. NPC라는 건가? 참 잘도 만들어 놨군.’ 이슈람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노인을 훑었다. 살짝 맛이 간 듯한 이슈람이 수상한 눈길로 훑어보자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가? 나, 나는 처자식 있는 몸이네. 그런 묘한 취미는 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엇? 이보게, 잠깐만!” 이슈람이 몸을 돌리자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러나 이슈람은 벌써 마을 밖으로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후후후, 나도 알 만한 건 다 알아. 현우가 일단 퀘스트가 나오면 무조건 받고 해결해야 한다고 했어. 자, 어디 몬스터라는 놈들하고 붙어 볼까?’ 이슈람은 현우를 통해 뉴 월드에 대해 자주 들었다. 뭐, 그게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들어 봐야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밖에 되지 않겠지만, 게임 먹통인 이슈람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이해했다. 현실보다 더 실감 나는 전투! 게다가 현실의 실전 기술이 상당 부분 적용되는 시스템! 현우만이 아니었다. 특수 기동대원 중에도 뉴 월드를 하는 대원이 몇몇 있었다. 그들은 모이기만 하면 실전 기술이 뉴 월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슈람은 그런 정보를 접하면서도 아직 뉴 월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게임=애들 놀이‘ 라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만든 캐릭터와 싸워 봐야 수준은 뻔하지 않겠는가? 리얼하다고 해 봐야 고작 스트리트 파0터의 최신 버전 정도겠지. 그러나 뉴 월드는 불과 몇 초 사이에 이슈람이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인식을 180도로 바뀌었다. ‘방금 전 노인도 진짜 사람하고 똑같았어!’ 주위환경, 심지어 NPC마저 이렇게 실감 난다면 전투 역시 기대해 볼 만하리라! 그리고 어차피 게임이란 싸워야 레벨도 올라가는 게 아닌가? ‘흠, 좋아. 정말 몸을 움직이는 감각도 현실과 다를 게 없어. 아니, 오히려 현실보다 개운한 느낌이 든다. 이런 컨디션으로 상대를 죽일 때까지 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지? 크흐흐흐,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잘됐다. 어디 뉴 월드의 몬스터라는 놈들이 어떤 수준인지 한번 붙어 볼까?’ 이슈람은 연방 히죽거리며 단숨에 언덕을 넘어갔다. “캬아아악, 인간이다!” “크르르르, 혼자 이곳까지 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다.” “그럼 죽이자!” “키키킥, 오랜만에 싱싱한 고기를 마음껏 먹겠군.” 언덕을 넘자마자 숲 속에서 흉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 서벅서벅, 하며 숲에서 흉측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거대한 개를 닮은 듯한 얼굴에 귀까지 찢어진 입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꿈에 나올까 겁나는 외모! 난생처음 그런 괴물을 봤다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랐으리라. 그러나 이슈람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을 뿐이었다. “오호, 니들이 몬스터냐? 개머리라… 실제로 이런 놈들을 보니 좀 쇼킹하기는 하군. 탕으로 끓여 소주를 곁들이면 제대로인데…. 뉴 월드에서는 음식도 진짜 먹는 것처럼 느껴진다는데, 그럼 이것들도 먹을 수 있는 걸까?‘ 대답무쌍! 놀을 보며 보신탕을 떠올리는 유저도 흔치 않으리라. 이슈람이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오히려 입맛을 다시자 놀들이 움찔했다. “크르르르. 뭐, 뭐야? 이놈은 ?” “이 녀석… 사실은 엄청난 전사인다?” “크르릉, 아니, 하지만 저놈을 봐… 저건….” “그렇지? 그렇지?” 놀들은 저들끼리 수군거리더니 이내 이슈람에게 와락 달려들었다. “좋아, 이제 시작하는 거냐?” 이슈람이 슬쩍 입꼬릴를 말아 올렸다. 확실히 놀의 공격은 제법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구인가? 한때 태권도 국가 대표 그리고 특수 기동대에 들어와서 밤낮으로 조폭과 혈투를 벌여 심지어 조폭들에게 경찰청 제1의 깡패라고까지 불리는 사람이다. 만약 이게 현실이라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강철 심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리고 이슈람은 나름대로 승리를 확신하는 근거가 있었다. ‘아까 마을에서도 딱 보기에 비리비리한 녀석들도 어렵지 않다고 했잖아. 보기에는 이래도 이놈들은 굉장히 약한 몬스터일 거야.’ 그에게 아까 노인의 요청을 거절하던 전사들도 그에게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이슈람 정도 되면 눈매나, 걸음걸이만으로도 그 사람이 강한지 아닌지 파악할 수 있다. 뭐, 눈매는 게임 속이니 그렇다고 쳐도, 자세나 걸음걸이는 현실과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격투가로서의 느낌을 받을 수 없었던 것. ‘그런 놈들에게 쉬운 상대라고 말했으니 수준이야 뻔하지. 아무리 첫 상대라지만 너무 약한 놈들을 찾은 거 아냐? 뭐, 어른 처리하고 돌아가면 더 강한 상대를 찾을 수 있겠지.’ 역시나 이슈람에게 놀의 단순한 움직임은 하품이 나올 만큼 느리게 느껴졌다. 크아아악! 바짝 다가온 놀이 날카로운 손도끼를 휘둘렀다. ‘크크크, 누가 개 머리 아니랄까 봐 기본조차 안 돼 있군.’ 이슈람은 씨익 웃으며 재빨리 스텝을 밟아 손도끼를 흘려냈다. 그리고 놀의 중심이 무너진 틈을 타서 폭팔적으로 튀어나가 속사포처럼… 우둑! ‘어라? 우둑?’ 반격을 위해 쏘아져 나가던 이슈람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뒤이어 발목이 시큰해지더니 몸이 한쪽으로 기울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힘과 민첩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작을 취해 발목이 삐었습니다! <30분간 이동속도, 반응속도-30%>)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정보창이었다. “에익? 발목이 삐어? 아욱!”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납 주머니를 달고 남산을 쉬지 않고 달려 올라갈 수 있는 이슈람이 고작 이 정도 움직임에 발목이 삐다니? 기막혀 할 겨를도 없이 뒤통수가 뻐근해졌다. 좌측 하단에 위치한 붉은 게이지가 쭉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메시지에서 나왔던 말처럼 발목이 삐자 몸이 무거워지며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려졌다. 마음은 벌써 10미터 밖에 있는데 실제로는 1미터도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이슈람은 꼴사납게 바닥을 굴러 뒤이은 공격을 피해 냈다. “이런 빌어먹을, 갑자기 발목이 삐다니? 혹시 싸우기 전에 준비운동이라고 해야 하는 거였나?” 아무래도 뉴 월드는 현실과 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되는 모양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아직 이슈람은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흥, 그래 봐야 발목이다. 이 몸은 발목이 삔 것 정도로 강아지에게 당할 만큼 만만하지 않아! 갑자기 움직여서 근육이 좀 놀란 것 같지만 문제없어.” 움직임이 느려졌다면 움직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슈람은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전신의 근육을 풀었다. 그때 놀 한 마리가 곤봉을 휘드르며 달려들었다. 이슈람은 상체를 흔들어 공격을 피해 내며 카운터로 정권을 날렸다. 빠각-! 살과 살, 뼈와 뼈가 충돌하는 묵직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힘의 배분, 타이밍, 자세… 모두가 완벽한 카운터였다. ‘좋아, 이번에는 정확히 먹혔다.! 크흐흐흐, 아찔했을 거다!’ 이슈람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그려졌다. 크르르르! 2미터 거구도 단숨에 쓰러뜨리는 이슈람의 철권! 그러나 놀이 가소롭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놈의 관자놀이에 일격을 먹인 손이 90도로 꺾여 덜렁거리고 있었다. (-격투술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무리한 공격을 한 탓에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데미지 100, 손목 골절로 30분간 맨손 공격력, 공격 속도 -50%>) (-격투술에 아무런 지식도 없이 무리하게 허리를 움직여 척추 디스크에 걸렸습니다! <데미지 100, 척추 디스크로 30분간 상체 움직임이 제한됩니다.>) “헉, 뭐, 뭐 이런 개 같은… !” 이슈람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하나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발목이 삐고, 손목이 부러지고, 척추 디스크까지 걸려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려졌지만 이슈람은 끝까지 전의를 불태우며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열세 군데가 골절되고, 결국 2분 만에 개밥이 되었다. “이런 망할,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잠시 후, 이슈람은 마을의 병참에서 부활했다. “쯧쯧쯧, 역시 당한 모양이군.” 그러자 마을 어귀에서 어슬렁대던 노인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덕분에 상당히 쪽이 팔려 버린 이슈람이 변명하듯 말했다. “노, 노인장, 이번에는 실수였습니다.” “실수고 자시고 대체 생각이 있는가? 분명 이 근처의 놀들이 경험이 풍부한 모험가라면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네. 그리고 자네는 그만한 경험을 가진 모험가임인 게 확실해. 하지만 그것도 검을 다루는 경험이 풍부한 전사일 때나 가능한 거지. 검 한 자루도 제대로 들지 못할 것 같은 빈약한 몸으로 어떻게 놀을 퇴치하겠다는 건가?” “에?” 이슈람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제대로 훑어보았다. 평상시 움직임이 다를 바 없어 그저 자신의 몸이라고만 생각했다. 비록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은 아니지만 다년간 수련으로 다져진 다부진 몸, 그가 생각하는 모든 기술을 실천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전투용 육체 말이다. 그러나 막상 자세히 살펴보니 현실이 몸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여기저기 주머니 달린 가죽옷 사이로 비어져 나온 앙상한 팔과 다리, 드르륵 훑으면 실로폰 소리가 흘러나올 것만 같은 갈비뼈. 굳이 말하자면 짝 빠진 모델형 몸매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슈람이 보기에는 그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헉, 뭐, 뭐야, 이 몸은?” “뭐, 그래도 상인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몸이지만… .” “상인?” 이슈람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정보창을 다시 열어 보았다. 아까는 너무 복잡해서 제대로 확인을 못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캐릭터 레벨 옆에 ‘발주상인’이라는 직업이 적혀 있었다. 이슈람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사실 ‘발주상인’은 직접 물건을 가지고 다니기보다. 계약서만으로 장사를 하는 직업이었다. 때문에 계약 관련 스킬은 상당히 높은 대신, 힘이나 체력은 다른 상인보다도 낮은 캐릭터였다. 이슈람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자 노인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둣이 중얼거렸다. “어쩐지 낯이 익다 싶었는데 이제 기억났네. 자네는 저번 주에 우리 마을의 특산품을 전매 계약하겠다고 찾아왔던 상인 아닌가? 그런데 마치 처음 오는 것처럼 굴다니. 어디에 머리라도 부딪혀서 기억을 잃은 건가?” 그렇다, 이명룡이 맡기 전에 이슈람을 키우던 전임자는 수사관이다. 때문에 한 곳에서 사냥이나 하는 전사보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기 용이한 상인으로 전직한 것이다, 당연히 레벨 150이 될 때까지 스탯을 몽땅 상인에 맞춰 지혜와 지능, 운에 투자했다. 상인으로서는 나름대로 괜찮은 스탯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현실의 초인적인 육체를 다뤘던 것처럼 이 빈약한 상인을 움직이려고 했던 것이다. 즉, 용달차에 F-1 레이싱 엔진을 탑재한 것과 같은 상황. 그러니 이명룡의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 이슈람의 몸이 부서져 나간 것이다. 현실과 게임의 차이… . 만약 이명룡이 초보 마을에서 레벨 1부터 시작했다면 자연스럽게 관련 지식을 배우고 움직임에도 익숙해졌으리라. 원래 초보 마을이라는 게 그래서 존재하는 거니까. 그러나 아무런 지식도 없이 150레벨 캐릭터를 떠맡아 이렇게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도와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만두게.” 노인은 혀를 차며 몸을 돌려 버렸다. 이슈람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 뉴 월드는 그가 상상한 것보다 더 쓸 만한 놀이터였다. 아무리 기동대원이라도 몸에 익힌 무술을 현실에서 마음껏 펼칠 수는 없다. 경찰의 이빨이 나가면 ‘업무상 사고’지만, 폭력배의 이빨이 나가면 ‘공권력의 횡포’ 일 뿐이다. 물론 실제로 공권력의 횡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정말 많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를 입는 공무원도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곳, 뉴 월드는 그런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무술가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낙원 같은 곳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됐는데… 상인이라니? 뉴 월드에서 리얼한 전투의 매력을 알아 버린 마당에 고작 장사나 하며 살란 말인가? 조폭들도 설설 긴다는 경찰청의 귀신, 제1 특수 기동대장인 이 몸께서? 현우나 다른 기동대원… 아니, 심지어 초딩들도 레벨만 올리면 때려잡을 수 있다는 몬스터조차 피해 다니면서? “못 해! 아니, 안 해!” 이슈람은 와락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자존심이 있지, 설사 게임이라도 그렇게는 못 하겠다. ‘빈약한 몸? 상인? 캐릭터가 어쨌든 알맹이는 나, 경찰청 제1 특수 기동대장 이명룡이다. 이 몸께서 고작 개 대가리 따위에게 벌벌 떨면서 행상이나 다녀야 한다고? 웃기지 말라 이거야. 몸이 안 되면 되도록 만들면 그만이야.’ 이미 아크를 단련시키며 증명한 바 있듯이 이슈람은 몸이란 혹사시킬수록 강해지고, 맞을수록 단단해진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게임이고 현실이고 해서 안 되는 일은 없어. 그래 어차피 할 거면 쉬운 것보다 어려운 게 도전하는 맛이 있지. 어디 내가 이기나, 게임이 이기나 해보자! 수사고 뭐고 몰라. 그 망할 개 대가리를 때려잡지 못하면 절대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 이슈람은 마을 구석으로 달려갔다. “먼저 몸을 만든다. 하압, 정권 찌르기 5,000번! 발 차기 5,000번!” 그리고 미친 듯이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뭐?” “저 상인은 누구야?” 마을에 요란한 기합성이 울리자 NPC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슈람은 시선도 주지 않고 오직 육체 개조에만 전념했다. 몇 번이나 발목이 삐고, 손목이 부러져도 이를 악물고 수도와 발 차기로 기둥을 후리쳤다. 여기서 잠깐, 이슈람은 또 한 가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사실 뉴 월드의 테스트 기종 유니트에 상용 버전에는 없는 ‘ 패인 ’ 이라는 수치를 조종할 수 있는 버튼이 붙어 있었다. 이게 뭔고 하니… 몬스터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실제 유저에게 얼마만큼의 충격이 가해야 적당한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그 버튼은 ‘리얼리티’ 에 맞춰져 있었다. ‘리얼리티’는 현실과 동급의 고통을 주는 최상 수치. 즉, 이슈람은 지금 팔이 부러지면 정말 그만한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자자자, 승룡권!” 우두둑, 콰직! “아욱! 크… 역시 가상현실 게임… 정말 팔이 부러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군. 하지만 이 정도는 현우나 다른 기동대원들도 다 겪는 거잖아. 내가 겨우 이 정도에 죽는소리를 할 수는 없지! 하압!” 문자 그대로 뼈와 살을 깎는 육체 개조 현장이었다. 4 계곡 마을의 아르바이트 “휴… 이제야 도착했군.” 새벽 무렵, 계곡 마을 입구에 하는 가오리가 내려앉았다. 그때까지도 레리어트는 눈을 꽉 감고 매달리다시피 아크의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미 땅에 내려왔는데도 허리를 감은 팔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레리어트 님, 이제 괜찮아요.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레리어트는 슬쩍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땅을 확인하고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낸 그녀가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무, 무, 무, 무서웠어요. 정말 무서웠다고요.” “… 잘 참으셨어요.” “두, 두 번 다시 안 탈래요. 내, 내릴 거예요.” 레리어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하늘 가오리에서 내려왔다. 그러난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아, 아직도 속이 울렁거려….” ‘하긴, 무리도 아닌가?’ 아크는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하는 가오리의 승차감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생김새를 떠올리면 알겠지만, 가오리는 몸 전체가 날개처럼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날개를 펄럭거릴 때마다 몸 전체가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유원지의 놀이 기구처럼 따로 안전장치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다. 달려 있는 거라고는 달랑 고삐 하나, 그럼에도 날개짓을 할 때마다 위아래로 요동치니 고소공포증 환자가 아니라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도 남을 만한 탈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유계는 하늘을 날아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곳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기를 한 번, 돌풍에 휘말리기를 두 번, 야생 하늘 가오리의 습격을 받은 게 두 번… 이게 불과 1시간 동안 비행하면 겪은 일이었다. 당연히 그때마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마치 청룡 열차처럼 복잡하게 비행하며 대항해야 했고, 그건 레리어트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레리어트는 고소공포증과 더불어 하늘 가오리 공포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얻게 되었다. “무서웠다고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정말, 정말, 정말 무서웠단 말이에요. 흑흑흑, 안 탈 가예요. 이제 절대 안 탈 거라고요. 알았어요? 훌쩍.” 레리어트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녀는 상당히 진지하게 하는 말이리라. 하지만 뭐랄까… 항상 반듯한 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어린애처럼 칭얼대는 걸 보니…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는 한참을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이럴 때가 기회다. 이럴 때 다정한 말을 건네며 위로해 주면 호감도가 급상승한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정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크에게 그런 요령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부분에서는 데드릭이 아크보다 훨씬 나았다. “쳇, 비행의 낭만을 이해 못 하다니… 이래서 여자들은….” 데드릭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뭐, 아까는 조금 미안했다. 주인이 어차피 앞으로 같이 다녀야 한다고 했으니까 나도 동료로 인정하지. 하지만 나는 넘버 2니까 함부로 대하면 안 돼.” 마치 4살 먹은 어린애가 놀리던 여자아이에게 사과하는 듯한 행동. 아크는 그 유치함에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그런 유치한 말이 레리어트에게 먹혔다. 하얗게 질려 있던 레리어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져 나온 것이다. 동시에 1시간 전까자만 해도 바닥을 기던 데드릭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라? 대체 저건 또 무슨 그림이야? 저런 사과로 됐다는 거야?’ 아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아크가 레리어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곧바로 건방지기 짝이 없는 데드릭의 주둥이에 주먹부터 날렸으리라. 아무래도 여자와 남자는 정신세계가 다른 모양이다. ‘뭐, 어쨌든 데드릭과 레리어트 님이 화해했으니 잘됐지.’ “저는 하는 가오리를 사육장으로 데려다 놓고 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많이 기다리실 테니 아크 님은 보나 님과 먼저 가십시오.” 그란이 하늘 가오리를 사육장으로 몰고 가며 말했다. 아크는 일행과 보나를 데리고 계곡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을 가로지르자 중심가의 집 앞에 베스튜라가 불안한 얼굴로 서성대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는지 초췌한 안색이었다. 지금까지는 제법 당차게 행동했지만, 막상 할아버지를 보니 감정이 북받친 듯 보나가 눈물을 왈칵 쏟으며 달려 나갔다. “할아버지!” “헛, 오… 오오오… 보, 보나야!” 베스튜라는 믿어지지 않는 얼굴로 보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장장 이틀 만의… 어라? 그러고 보니 아크가 계곡 마을에 처음 도착한 뒤로 이제 고작 16시간, 게임 시간으로도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너무 정신없이 사건이 터져서 기분으로는 한 일주일은 지난 것 같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반쯤 포기하고 있던 손자가 살아 돌아왔으니 감격할 만도 하리라. “다행이에요.” 조금 혈색이 돌아온 레리어트는 눈시울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보나와 함께 갇혀 있다 보니 제법 정이 들었던 모양. 물론 조손의 극적인 상봉은 아크도 감격스러웠다. 가가멜에게 먹힐 뻔한 아기 스머프를 구출해 주었다. 이제 파파 스머프의 보상을 받을 때가 된 것이다.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는가?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베스튜라가 일행을 집으로 맞아들였다. “미안하네. 설마 그들이 자네를 돕겠다고 하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네. 설마 자네를 노리고 이곳까지 따라 들어온 악당들이었다니… 마음이 너무 급해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게 실수였어.” 역시 쥬르 일당에게 하늘 가오리를 내준 사람은 베스튜라였다. 그러나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쨌든 그들의 도움을 받은 건 분명하니까요.” 확실히 쥬르 일당이 없었다면 타무라드를 쓰러뜨릴 수 없었으리라. 베스튜라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손자를 구출했으니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솔직히 나크족에게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모두 틀렸다고 생각했네. 그런데 이렇게 손자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다니… 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는 그저 어린 소년이 사악한 무리에게 희생되는 것을 모른 척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성의를 거절하면 베스튜라 님의 마음이 불편하시겠죠.” 아크가 어울리지도 않은 겸손을 떨며 대답했다. 북실이가 돌리는 마법 영사기를 의식한 대사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보상은 받겠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 두는 한 마디. 여자에 대해서는 깡통인 주제에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굴러가는 아크였다. 어쨌든 베스튜라는 감동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정말 라르칸의 현신과 같은 사람이군.” “라르칸? 예전에 그란도 그런 말을 하던데… 라르칸이 누구입니까?” 아크가 물어본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란은 아크가 활약할 때마다 라르칸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렸다.NPC가 같은 단어를 계속 입에 올린다면 그건 중요한 정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예를 들어 그 단어를 캐물으면 퀘스트를 주거나, 아니면 보상으로 관련된 아이템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옛날 RPG에서 NPC의 대사에 굵은 글자로 나오는 그거다. 역시나 베스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라르칸은 우리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용사라네.” “전설의 용사?” “정확히 말하자면 라르칸은 우리 부족이 모시는 풍요의 신이네. 그런데 아주 오래전에 우리 부족이 북부에서 쫓겨 나올 때 추격해 온 나크족에게 몰살당할 뻔한 적이 있었지. 그때 한 전사가 나타난 우리 부족을 구해 줬다고 전해지네. 그 뒤로 보상은커녕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던 그 사람을 우리는 라르칸의 용사라고 부르게 된 거지.” 보상도 받지 않고 사라져? 아무래도 살짝 맛이 간 녀석이었던 모양이다. “아아, 그렇군. 맞아!” 그때, 베스튜라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헐레벌떡 서재 구석에 쌓여 있는 상자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아니, 이건 아니야. 어딘가에… 오오, 여기 있군!” 이내 베스튜라가 작은 보석함을 들고 돌아왔다. “자네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자네가 라르칸에 대해 물어본 덕분에 마침 좋은 게 생각났네. 이러라면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보석함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상당히 오래된 듯 낡아 있었지만 은은한 묵 빛이 흐르는 세련된 디자인의 반지였다. “이 반지는 당시 라르칸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특수 제작한 것이네. 우리 바란족은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북부에서 살던 때만 해도 제법 세력이 있었다네. 그리고 이 반지는 당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재료를 세공해서 만든 물건이야. 하지만 라르칸은 이 반지조차 받지 않았지. 그 뒤로 쭉 바란족의 기록자인 우리 가문이 보관하고 있었지만… 라르칸의 현신으로 인정한 자네라면 이 반지를 받을 자격이 있네.” 뭔가 구구절절이 사연이 담긴 반지라는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최신제품일수록 성능이 좋지만, RPG세상에서는 오래된 물건일수록 좋다는 건 상식! ‘고대의’ 나 ‘ 전설의’라는 명칭이 붙으면 최상급 아이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헉, 레벨 제한 200짜리 유니크 반지!’ (라르칸의 반지(유니크) 아이템 타입:반지 사용 제한: 레벨 200 이상 유계의 주민인 바란족이 전설의 용사 라르칸을 위해 특수 제작한 반지입니다. 이 반지는 오래전 바란족이 융성했던 시대에 제작되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유계에서도 희귀한 마법 광석을 수백 종류나 합성해 만들어져 흔치 않은 마력을 띠게 되었습니다. 또한 반지에 박힌 보석 시오니움은 어둠 속에서 착용자를 보호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지 안쪽에 ‘라르칸에게 존경을 담아서’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옵션: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특수 옵션: 스킬 ‘어둠의 보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용하면 5분간 물리 방어력이 20%, 마법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대기시간:2시간>) 정보창이 확인한 아크는 입이 떡 벌어졌다.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대박 중의 대박이었다. 이건 반지다. 반지는 무기나 방어구와 달리 그저 약간 보조하는 수준의 옵션이 붙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지금 아크가 착용하고 있는 레어 반지조차 추가 보너스 없이 ‘ 심안’ 스킬이 붙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옵션이 3개나… 그것도 2개는 공격 속도와 치명타율 증가라는 희귀 옵션이다. 마법 아이템 가운데도 이 두 가지 옵션은 좀처럼 보기 힘든 것이다. ‘무기를 귀살검으로 바꿔 공격 속도와 치명타율이 떨어졌는데… 방어구도 아니고 반지로 올릴 수 있다니…!’ 그뿐인가? 특수 옵션으로 ‘어둠의 보호’ 스킬까지 얻었다.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20%씩 상승. 스킬치고는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니었지만, 다른 아이템 스킬과 달리 대기 시간이 2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역시 라르칸에 대해 질문하기를 잘했어! 설마 유니크 반지를 얻게 될 줄이야!’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서 잠시 설명하자면, 뉴 월드의 아이템은 크게 다섯 종류가 있다. 일반, 마법, 레어, 유니크, 레전드. 한 번이라고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다섯 종류가 뭘 뜻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일반은 지긋지긋하게 보게 되는 평범한 잡템, 마법은 드물게 나오는 그럭저럭 쓸 만한 아이템, 레어는 구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대신 최상급 옵션이 붙은 아이템이다. 여기서 독특한 것은 바로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유니크 아이템은 사실 성능만 따지면 레어 아이템과 비슷하거나, 약간 좋은 수준이다. 게다가 간혹 오히려 낮은 성능을 가진 것도 있었다. 그럼에도 경매 사이트에서 레어 아이템보다 비싼 이유는 하나, 바로 희소성 때문이었다. 레어 아이템은 똑같은 아이템이 몇 개씩이나 존재할 수 있지만, 유니크 아이템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뉴 월드를 통틀어도 ‘ 라르칸의 반지’ 는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뭐, 레전드 아이템은 성능과 옵션, 희소성에서 최상의 아이템이지만, 그런 건 아직 보지도 못했으니 넘어가고… 어쨌든 유니크 아이템은 그만큼 손에 넣기가 힘들었다. 당연히 경매 사이트에서 최고가에 팔리는 아이템이었다. ‘역시 유계는 기회의 땅이다!’ 아직 몇 사람 들어오지 않은 유계. 이곳에서 하는 퀘스트들은 대부분 아크가 처음이다. 그 말은 그 퀘스트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을 챙길 수 있다는 뜻! 당연하다. NPC 라고 아이템을 찍어 낼 리가 없다. 그러니 그 NPC에게 처음으로 퀘스트를 받는다는 것은 NPC가 소유한 아이템 중 가장 좋은 걸 받을 기회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앞서 챙겨 버리면 누군다 비슷한 퀘스트를 해도 그만한 보상을 받지 못할 테니까. 이게 바로 새로운 지역을 찾아낸 유저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보상이었다. 물론 그런 기회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 라르칸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면 다른 아이템으로 대체되었으리라. 같은 일을 하고도 보다 큰 보상을 받아 내는 요령. 이게 바로 게임의 경력이다. “어머, 예쁘게 생긴 반지네요.” 역시 여자라 레리어트가 반지에 관심을 보였다. “어허험,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순간 움찔한 아크는 괜히 크게 헛기침을 하며 반지를 챙겨 넣었다. (퀘스트 <보나를 구출하라>가 완료되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레벨이 3이나 올라갔다. 이로써 겨우 유계에서 받은 첫 번째 퀘스트가 완료된 것이다. “그런데 제가 알아봐 달라고 한 것은….” “아, 마가로프는 사람에 대해서였지?” 마가로프라는 이름이 나오자 북실이는 움찔했다. 그러나 아크는 일부러 못 본 척하고 말을 이었다. “알아보셨습니까?” “미안하네. 보나 걱정 때문에 아직 찾아보지 못했네.” 베스튜라가 엄청난 양의 두루마리가 빽빽이 꽂혀 있는 서고를 가르켰다. “지금부터라도 찾아봐 주지. 하지만 보다시피 여기에는 지난 수백 년의 기록이 모두 모여 있네. 뭐, 특별한 사건에 관련된 기록이라면 따로 표시해 뒀으니 금세 찾을 수 있겠지만, 단순한 방문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하나하나 다 열람해 봐야 할 거야. 그러니 넉넉잡고 사흘만 기다려 주게나.” ‘사흘…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이제 쥬르 일당이 계곡 마을에 부활 장소를 갱신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죽음의 심연에서 놈들이 죽은 게 대략 5시간 전, 부활 때까지는 아직 19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게임 시간으로 사흘이면 현실의 24시간. 결국 쥬르들은 그 전에 이곳에서 부활하게 된다는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이내 방법을 찾아냈다. “알겠습니다. 사흘 동안 기다리지요. 하지만 그 전에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뭔가? 뭐든 말만 하게.” 보나 덕분에 친밀도가 급상승한 베스튜라가 친근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크가 속닥거리자 이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어렵지 않지. 알겠네, 이틀 뒤라고 했지?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리고 알아봐 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아크는 타무라드를 쓰러뜨린 뒤에 나타났던 붉은 남자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붉은 머리칼에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분명 그 역시 중간계에서 유계로 넘어왔을 겁니다. 아무리 빨리 들어왔어도 대략 서나 달? 그사이에 유계로 들어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혹시 그에 대한 자료도 있으면 함께 찾아봐 주십시오.” 지저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의 배후에도 그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중간계에 있었다는 뜻. 그 뒤에 바로 유계로 들어왔다고 해도 서너 달 이전은 아니리라. 아크는 이번 퀘스트로 붉은 남자가 입사 시험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겼다. 게다가 그가 뭔가를 가지고 도망갔다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고 모른다. 마가로프 관련 퀘스트를 하는 동안 틈틈이 그의 정보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알겠네. 걱정 말고 느긋하게 쉬고 있게.” 베스튜라가 팔을 걷어붙이고 서고로 향했다. 그렇게 일단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크 님, 정보를 얻을 때까지는 이곳에 계실 거죠? 그럼 저는 좀 나갔다가 들어올게요. 아까 비행 때문에 아직….” 레리어트가 핼쓱해진 얼굴로 말했다. “네, 내일 이 시간까지만 들어오시면 돼요.” “저, 저도… 15시간 동안 게임을 했더니 졸려서….” 아크에게 끌려 다니느라 밤을 꼬박 새운 북실이도 게임을 종료했다. “자, 그럼 이제 나는 뭘 하나….” 그렇게 혼자 남게 된 아크가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밤을 꼬박 새웠으니 현실은 새벽이다. 평소 같으면 이쯤에서 종료하고 체육관을 나갈 시간이었다. 그러나 어제, 아크는 이명룡에게 의외의 전화를 받았다. “현우야, 내가 사정이 있어서 한동안 체육관을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 내가 다시 연락할 때까지 너도 체육관에 나오지 마. 그렇다고 마냥 놀지는 말고, 적당히 네가 알아서 운동하고 있어. 두어 달 뒤에 다시 연락할 테니까. 절대 체육관에 나가면 안 된다. 알았지?” 경찰청에는 이명룡이 특수범죄대책반에 ‘좌천’ 됐다는 소문이 다 퍼졌다. 이명룡은 혹시나 아크가 체육관에서 그런 얘기를 들을까 싶어 출입을 금지시킨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굳이 시간 맞춰 자고 운동을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 ‘마냥 마을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이참에 잠이나 좀 자 둘까, 아니면 근처에서 사냥이나 할까? 아, 그전에….” 아크는 얼른 가방에 처박아 뒀던 ‘라르칸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레리어트가 있을 때는 눈치가 보여 착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심안’을 뺐다. ‘심안’은 레어 반지였지만, 다른 옵션 없이 스킬만 사용할 수 있었다. 반면 ‘부활하는 영혼’은 힘과 마나 회복 속도를 올려 준다. 지속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마법 반지가 나은 것이다. ‘심안은 자주 쓰는 스킬이 아니니, 필요한 때만 껴도 상관 없어.’ 아크는 두근거리는 기분으로 ‘라르칸의 반지’를 손가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막 깨우려는 순간…! “아크 님!”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크는 화들짝 놀라서 반지를 떨어뜨려 버렸다. “히익, 내 반지! 내 반지! 여, 여기 있다. 내 반지!” 아크는 누가 뺏을세라 허둥지둥 바닥에 엎드려 반지를 꽉 움켜쥐었다. 사흘 굶은 거지가 빵 조각을 주워 드는 듯한 ‘꼴사나운 몰골. 자기도 모르게 본능대로 행동하고 만 것이다. 핫, 하고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슬며시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나가 눈을 깜빡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험험험, 이곳은 토질이 꽤 괜찮군.” “반지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봐요?” 아크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에 보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보나의 친절한 배려에 아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아… 넘버 2인 내가 다 쪽팔린다.” 데드릭조차 얼굴을 붉히며 한숨을 불어 냈다. 아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그렇지….” “그보다 아크 님 , 따라오세요. 제가 마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마을 구경?” 아크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살짝 먼치킨스러운 아크라도 일단은 인간이다. 꼬박 20시간을 넘게 게임을 했는데 피곤하지 않으면 그레 사람인가? 그런데 사냥도 아니고 마을 구경이나 하자니? 그러나 보나는 아크의 팔을 잡고 질질 끌어 댔다. 방금 전에 못 볼 꼴을 보인 뒤라 차마 거절하기도 뭐했던 아크는 할 수 없이 보나를 따라갔다. 그러나 막상 따라나서고 보니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라? 이 마을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아크가 알고 있던 계곡 마을은 50%도 되지 않았다. “여기는 수액 정제소예요. 이 근처의 숲에는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나무가 많거든요. 우리는 수액을 채취, 이곳에서 정제해서 멀리 떨어진 동족 마을과 물물교환을 해요. 그 외에도 각종 식물을 재배하는 밭도 있고요.” 보나가 안내한 작업장은 처음 들렀을 때는 출입하지 못했던 곳이다. 마을의 생산과 직결된 곳이라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했던 모양. 그러나 보나가 함께 다니자 대부분의 지역을 출입할 수 있었다. 그곳들을 둘러본 아크는 뮤탈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뮤탈… 아니, 바란족은 아크가 생각하는 것만큼 미개한 종족이 아니었다. 아크가 구입했던 ‘움마의 수액’ 이나 ‘나딩카의 열매’도 그저 숲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직접 제작한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단지 숫자가 적었던 것은 대부분의 생산품이 다른 부족과 거래할 때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화폐가 쓰이지 않는 건 거래하는 부족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인 건가?’ 보다 많은 곳에서 여러 물품을 거래한다면 당연히 화폐를 사용하는 게 좋다. 그러나 한정된 부족과 1대1로 교환한다면 굳이 화폐를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생산에는 문제가 없지만 소비에 한계가 있어서 경제 시스템이 발전하지 못한 상태라는 거군. 아쉽다, 중간계와 이동이 자유롭다면 중개무역으로 한몫 잡을 수도 있을 텐데….” 아크는 습관처럼 모든 상황을 돈벌이에 연결시켰다. 그리고 확실히 이곳은 돈벌이가 될 만한 재료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유계에 바란족이 계곡 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넓은 지역에 퍼져 있어서 그렇지 모두 합하면 꽤 많은 숫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족들의 생산 목록을 작성한 뒤에 중개무역을 한다든가, 혹은 뮤탈들에게 화폐를 사용하도록 만든 뒤에 환전소를 운영해서 수수료만 챙겨도 어지간한 영지3~4개를 운영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중간계와 유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을 때의 얘기였다. 유계 안에서는 지금처럼 생활해도 문제가 없으니 아크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뭐, 할 수 없지. 어쨌든 지금은 퀘스트나 던전을 독점할 수 있는 것만도 행운이니까.’ ‘여기는 몬스터 사육장이에요.“ 보나가 큼직막한 동굴로 아크를 안내하며 말했다. 사실 계곡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조련한 몬스터를 관리하는 사육장이었다. “아, 아크 님, 오셨습니까?” 먼저 사육장에 와 있던 그란이 손을 흔들었다. 그란은 할아버지를 도와줄 때를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하늘 가오리를 돌봐요.“ “실은 그게 제 본업입니다.” 그란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가 굉장히 많군요.” “네, 저희 마을에는 선생님을 포함해 조련사가 20명가량 있습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한 분이 대략 열 마리가량 조련하고 있으니 이백 마리 정도 되지요.” “음, 관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겠네요.” “그래도 몬스터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정착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란이 뿌듯한 눈으로 몬스터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 조련한 몬스터들은 그냥 밥이나 먹고 똥이나 싸는 게 아니었다. “이미 타 보셨으니 알겠지만 하늘 가오리는 다른 마을로 물물교환하러 갈 때 사용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힘이 좋은 몬스터들은 밭일을 시키기도 하고요.” 그란의 말처럼 바란족이 몬스터를 이용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황야를 지나며 아크가 몇 번이나 때려잡았던 포식자는 밭일 담당이었다. 이 녀석은 생긴 것처럼 특성이 지렁이와 비슷했다. 흙은 삼키고 배설하면 밭에 좋은 비료가 되는 것이다. 바란족이 척박한 땅에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것은 포식자 덕분이었다. 그 외에도 헬 하운드라는 몬스터는 이름처럼 마을을 지키는 경비견이었다. 전투 능력이 낮은 바란족이 몬스터들의 습격을 물리칠 수 있는 것도 헬 하운드 덕분이었다. “몬스터와 바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입니다.” 그러나 몬스터 사육장을 둘러보는 아크의 머릿속은 엉뚱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이 녀석들을 적당히 풀어놓고 사파리를 만들면 짭짭할 텐데… 저레벨 유저들은 연습 삼아 대련할 수도 있는 체험 농장으로… 그리고 하는 가오리는 유계 일주 패키지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 쉬지 않고 기발한 사업 구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아크는 곧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을 흔들었다. ‘에휴, 그래 봐야 어차피 그림의 떡이지.’ 그 역시 유계와 중간계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전제하의 사업. 그리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해고 초기 사업 투자비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게 뻔했다. 아크가 죽을 둥 살 둥 벌어들인 4,000골드로는 턱도 없으리라. ‘돈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시작조차 해 볼 수 없다니….’ 아크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털레털레 사육장을 나왔다. 그러자 보나가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아크 님, 왜 그러세요?” “어린애는 몰라도 돼.” 아크는 괜히 심통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사육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에에에에, 메에에에에. “이 녀석, 가만히 있지 못해?” 고개를 돌려 보자 한 뮤탈이 식칼을 들고 양처럼 생긴 동물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아크가 호기심을 보이자 보나가 얼른 설명해 주었다. “저기는 축사예요. 페페라는 식용 가축을 키우는 곳이죠. 아저씨!” 보나가 손을 흔들며 알은척을 하자 축사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아, 보냐냐? 그란에게 얘기 들었다. 큰일을 당했다면서?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망할, 멍청한 조수 놈이 납입 날짜를 잘못 알고 있어서 내일 중으로 이백 마리나 잡아야 한단 말이야. 그런데도 그놈은 갑자기 병이 났다고 나오지도 않고. 정말 큰일이다.” 축사 주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백 마리나요?” “그래, 나흘 뒤에 모래바람 마을에 이백 마리분 가죽과 고기를 납품하기로 되어 있다. 거기까지 날라야 하니 내일 저녁때까지 모두 잡지 않으면 안 돼. 오! 그래, 보나야, 너도 좀 도와주지 않겠나? 페페를 손질하는 건 무리지만 짐이라도 좀 날라 다오. 정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야.” “저도 도와 드리고 싶지만….” 보나가 슬쩍 아크의 눈치를 살폈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서 뭔가 반짝였다. ‘가만, 고기와 가죽이라고? 그럼 혹시…?’ “저도 보나와 함께 거들면 안 되겠습니까?” “음? 자네는?” “저를 구해 주신 분이세요.” “오오, 자네가!” 축사 주인은 놀란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지금은 누구라도 환영이네. 그런데 가축을 다뤄 본 경험이 있나?” “아뇨, 처음이지만 가르쳐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음, 마음 자세가 됐군. 알겠네. 그럼 내가 페페를 잡을 테니 자네는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 주게. 보나는 이 친구가 해체해 놓으면 건조실로 가져가고, 기일 내에 작업을 마칠 수 있게 된다면 수고비는 넉넉하게 챙겨 주겠네.” 축사 주인이 흔쾌히 승낙하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계곡 마을의 페페 잡기 계곡 마을의 축사 주인은 납품 일을 잘못 알고 있던 탓에 큰 곤경에 처했습니다. 앞으로 이틀 동안 이백 마리의 페페를 잡아 가죽과 고기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작업이 순조롭지 못해 납품 일을 맞추지 못한 다면 축사 주인은 신용을 잃게 될 것입니다. <난이도:-> ) 그렇게 해서 아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간단한 퀘스트는 초보 마을에도 있었다. 물건을 나르거나, 창고 정리, 혹은 상점에서 주인 대신 가게를 봐 주는 등의 일이었다. 물론 간단한 퀘스트이니 만큼 보상도 상당히 적었다. 그러나 아크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굳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젠장, 설마 그런 게 필요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아크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끈불끈 화가 치밀었다. 이제 와 말이지만, 아크는 타무라드를 해치우고 ‘네크로맨서의 정수’를 얻었다. 그리고 라자크를 진화시킨 뒤에 냄비에 넣어 필요한 레시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내단’ 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네크로맨서의 정수1/1 죽은 자의 심장0/2,000 죽은 자의 피부0/2.000 )0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뜨악했다. ‘죽은 자의 심장’ 이나 ‘죽은 자의 피부’는 언데드 몬스터에게서 가끔 나오는 아이템이었다. 처음에는 드랍율이 상당히 낮아서 뭔가 쓸 만한 아이템인 줄 알고 꾸역꾸역 모았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냥 잡템. 어디에 쓸데도 없을뿐더러 상점에서도 사지 않았다. 때문에 나오는 족족 폐기 처분시켰던 아이템인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려 4,000개나 필요하다니? ‘빌어먹을, 내가 지금까지 버린 것만도 1.000개는 될 텐데….’ 내단 재료의 4분의1을 그냥 버린 것이다. 하긴 그걸 버리지 않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 재료 아이템은 드랍율이 상당히 낮다. 그동안 아크가 때려잡은 언데드의 숫자가 만 마리를 헤아릴 정도인데 고작 1,000개를 구한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사만 마리를 잡아야 내단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며칠 … 아니, 몇달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에이, 몰라. 언젠가는 되겠지.’ 그 때문에 아크는 레시피를 보자마자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축사 주인의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가만, 만약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축사 주인에게 가죽 채취와 도축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잖아? 그럼 재료 모으기가 더 쉬워질지도 몰라.’ 그렇다, 아크가 괜히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나섰을 리가 없다. 물론 그런 스킬이 없어도 몬스터를 잡으면 가죽이나 고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확률이 고작 20% 남짓, 그러나 죽은 몬스터에게 가죽 채취나 도축 스킬을 사용하면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70%이상 재료 아이템을 수집할 수 있다. 사실 이전에도 이런 스킬을 익힐 기회가 있었지만 ‘서바이벌 요리’로 식재료를 채취하기도 벅찼기에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죽은 자의 심장은 언데드의 고기, 죽은 자의 피부는 가죽이다. 가죽 채취나 도축 스킬을 익히면 재료 수집이 몇 배는 빨라질 거야.’ 마침 시간이 남으니 지금이 적기였다. “자, 그럼 바로 작업을 시작해 주게.” 축사 주인이 해체용 칼을 하나 건네주었다. 그 뒤로 아크는 자리를 잡고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이 녀석!” 메에에에엑! 축사 주인이 페페를 잡아 오면 먼저 가죽을 벗기고, 고개를 부위별로 잘라 놓았다. 그러나 단순할 것 같은 작업도 막상 시작해 보니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축사 주인에게 해체 방법을 자세히 들었지만 손에 익지 않은 작업이라 가죽을 찢어 먹거나, 고기를 상하게 하기 일쑤였다. 하긴, 스킬도 없이 일을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해체용 칼을 잘못 사용해 페페의 가죽이 못쓰게 됐습니다. <페페의 가죽 상품 가치가 70% 하락했습니다>) (-해체용 칼을 잘못 사용해 페페의 고기가 못쓰게 됐습니다. <페페의 고기 상품 가치가 40% 하락했습니다>) 이런 메시지가 떠오를 때마다 축사 주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런 젠장, 자네는 우리 농장을 다 말아먹을 셈인가?” “죄, 죄송합니다.” “내가 상품 가치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이 녀석들을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는지 아는가? 새끼 때부터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고… 크윽, 비록 가축이지만 이 녀석들은 내 자식과도 같단 말이네. 한 마리, 한 마리 잡을 때마다 피눈물이 흐를 것 같은 심정이네 그 귀한 가죽과 고기를 못쓰게 만들다니?” 젠장, 자식 같으면 애초에 팔지를 말든지. 식칼 들고 돌아다니면서 서걱서걱 목을 잘도 따더니 새삼스럽게 무슨 자식타령이냐….라고 쏘아 주고 싶었지만 아크는 꾹 눌러 참았다. 그래도 이렇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NPC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아크에게는 지원군도 있었다. “아저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크 형은 아저씨가 힘들어해서 도와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일이 좀 서툴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죠. 게다가 아크 형은 전사예요. 이런 일이 서툰 게 당연하잖아요.” ‘오오오, 보나야, 구해 준 보람이 있구나! 이 형은 지금 맹렬히 감동하고 있다!’ 보나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축사 주인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불어 냈다. “하긴 그렇군. 미안하네. 내가 잠시 눈이 뒤집혀서….” “아닙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죠. 저 역시 아저씨의 자식 같은 페페의 가죽과 고기를 망치게 돼서 정말 가슴 아픕니다. 더 노력할 테니 요령을 좀 더 자세히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알겠네.” 축사 주인은 잠시 도축을 미루고 아크 옆에 앉아 칼을 쥐는 요령부터 다시 가르쳐 주었다. 아크가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축사 주인의 말을 듣는 이유는 이해도 때문이었다. 뉴 월드에서 공용 스킬을 배울 때 필요한 것은 ‘ 이해도’ 였다. 그 일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나타내는 수치였다. 물론 이 이해도는 같은 작업을 반복해도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전문 지식을 가진 NPC의 지도를 받으면 일정 시간 동안 이해도가 오르는 속도가 몇 배나 빨라지는 것이다. 아크는 교활하게 그런 시스템을 이용했다. “으악! 또 망쳤어! 빌어먹을, 나는 쓰레기야! 아저씨가 자식처럼 키운 페페를 또 못쓰게 만들다니… 크흐흐흑,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해!” 또다시 실패가 뜨자 아크는 칼을 들고 길길이 날뛰며 자학했다. 그러자 막 성질을 내려던 축사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 “뭐야? 그렇게 가르쳐 줬는데 또… 엇? 이, 이보게, 진정하게, 물론 페페가 내 자식 같은 녀석들이지만 사람 목숨만 하겠는가? 자네가 마음 써 주고 있다는 건 잘 알았네. 그래, 처음이니 그리 쉽게 손에 익을 리가 없지. 내 다시 처음부터 요령을 알려 줄 테니 일단 앉아서 얘기하세.” 축사 주인은 다시 아크를 앉혀 놓고 처음부터 요령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아크의 이해도가 쭉쭉 올라 5시간이 지났을 무렵….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가죽 채취(초급, 패시브): 해채용 칼을 이용해 몬스터나 들짐승, 가축의 가죽을 얻을 수 있 습니다. 얻어진 가죽은 각종 방어구나 의복의 재료로 사용됩니 다. 단, 몬스터의 레벨과 스킬 등급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집 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도축(초급, 패시브):해체용 칼을 이용해 몬스터나 들짐승, 가축으로부터 고기를 얻을 수 있 습니다. 얻어진 고기는 각종 요리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단, 몬스터의 레벨과 스킬 등급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집니다.) ‘됐다!’ 드디어 원하던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가축은 고작 레벨 1, 일단 스킬이 생기자 페페의 가죽을 벗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뒤로 아크는 번뜩이는 손놀림으로 페페를 가죽과 고기로 분리해 나갔다. 게다가 반듯하게 잘린 가죽과 고기의 상품 가치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오오, 이제야 요령을 깨친 모양이군.” “후후후, 아저씨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렇게 아크는 잡담을 나누면서도 가죽을 벗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덕분에 작업 속도에 탄력이 붙어 3시간 만에 나머지 페페를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휴, 처음에는 어찌 될까 싶었는데 자네와 보나 덕에 납품 일을 어기지 않아도 될 것 같네. 일을 도와줬으니 뭔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아, 그렇지. 이걸 받게. 내가 쓰던 해체용 칼인데 보기에는 그래도 꽤나 길이 잘 든 칼이야. 그리고 이건 페페의 고기네.” 작업이 모두 끝나자 축사 주인이 보상으로 해체용 칼과 고기를 나눠 주었다. (도축업자의 칼 가죽이나 고기를 얻을 때 사용하는 전문가용 칼입니다. <가죽 채취나 도축에 사용 시 성공 확률+20%>) (페페의 등심(5) 유계에서 자란 가축 페페의 고기. 육회로 먹어도 될 만큼 신선합니다.) (퀘스트 <계곡 마을의 페페 잡기>가 완료되었습니다. <추가 보상:가죽 채취, 도축 숙련도+20>) 동시에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생산 퀘스트라서 그런지 약간의 경험치와 관련 스킬 숙련도에 보너스가 주어졌다. ‘작업용 아잍템과 식재료, 보너스 숙련도까지! 아르바이트 퀘스트치고는 짭짤한데!’ “감사합니다.” “하하하, 내가 더 고맙지. 페페 고기 한번 구워 먹어 보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네. 쩝쩝, 그러고 보니 나도 좀 당기는데? 납품을 끝내 놓고 한 마리 잡아먹어야겠군.” 메에에에에, 메에에에에! 축사 주인이 스윽 훑어보자 통통하게 살이 붙은 페페들이 오들오들 떨어 됐다. 어이, 어이, 자식이라며? 잡을 때마다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피눈물을 흘려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겠다는 거냐? 이쯤에서 한 번 딴지를 걸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피곤했다. 보나 구출 퀘스트를 받은 이후로 아직까지 눈 한 번 붙여 보지 못한 것이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크는 축사를 나와 보나와 헤어지고 곧바로 접속을 종료했다. 5. 연구실을 찾아서… “젠장!” 흐릿한 빛과 함께 토템에서 한 마법사가 나타났다. 절망의 암연에서 장렬하게 자폭 테러를 감행했던 쥬르였다. 쥬르는 곧바로 캐릭터 정보창을 확인해 보고는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였다. “망할 아크 자식… 이번 일은 몇 배로 되갚아 주마!” 자폭 마법은 적에게도 치명적이지만, 쥬르 본인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죽으면서 적에게 엄청난 광역 데미지를 입히지만 그 대가로 일반 사망 페널티의 3배가 적용되는 것이다. 즉, 경험치 90%와 모든 스탯-3. 이미 그런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빌어먹을, 경험치 90%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데… 게다가 스탯을 18이나 복구하기 전에는 레벨 업도 못 하잖아?’ 이 모든 게 아크 때문이다. 아크 때문에 열 받친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런 스킬 따위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쥬르의 자폭 때문에 아크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까지 알게 된다면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쥬르가 자폭하고 싶어지리라. 역시 모르는 게 약이다. 그렇게 쥬르가 이를 갈아붙이는 사이, 나머지 멤버들도 이를 갈아붙이며 부활했다. 듀크가 헐레벌떡 달려오며 물었다. “쥬르, 아크 자식 지금 어디 있어?” “젠장,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왜 성질이야? ‘메모리 오브 퍼퓸’ 있잖아.” “당연히 벌써 써 봤지.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뭐? 놈이 저주를 풀었단 말이야?”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냐? 운 좋게 <저주해제> 주문서라도 들고 있었나 보지.” “… 이제 어쩌지?” 듀크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지만, 쥬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크 척살대원들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근처에서 서성대다가 그들을 발견한 베스튜가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이, 이보시오, 당신들…!” “엇? 저 노인은 아크에게 퀘스트를 줬다는?” “부탁이네. 제발 내 손자를, 내 손자를 구해 주게!” “그게 무슨?” 베스튜라가 쥬르의 팔을 잡고 애원했다. “사정은 이미 들었네. 당신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크라는 자가 돌아왔었네. 막상 절망의 심연에 가 보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도망쳤다고 하더군. 그리고 낸가 아무리 부탁해도 뿌리치고 가 버렸네 하지만 토템에서 나타난 걸 보니 자네들은 끝까지 나크족과 싸워 주었던 모양이군. 아크라는 자와 달리 말이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아크라는 놈과 질적으로 다릅니다.” 쥬르가 콧김을 뿜어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예감이 맞았군. 그래, 이제 믿을 건 자네들밖에 없네 이제 막 돌아온 자네들에게 염치없지만 제발 부탁이네. 다시 절망의 심연에 가 줄 수 없겠는가?” 베스튜라의 말을 듣고 있던 쥬르와 듀크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눈빛을 교환하던 쥬르가 슬쩍 입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렇군요. 하긴, 우리가 모두 전멸했으니 그 녀석도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몇 번이라도 찾아가서 손자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고맙소!” “그런데 아크라는 놈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건 왜…?” “실은 우리가 손자를 구출하기 위해 나크족과 싸우다가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사이, 놈은 우리의 장비를 훔쳐 달아난 겁니다. 그런 비열한 놈을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손자를 구출한 뒤에 반드시 그 녀석을 찾아내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입니다.” 쥬르의 설명에 베스튜라가 치를 떨며 대답했다. “그자가 그런 더러운 짓을… 어쩐지 이상하다 했소. 당신들이 기다렸다가 함께 가 달라는 부탁을 거절하고 도망치듯 떠나더니 다 이유가 있었군. 알고 있소. 북부 산맥 너머의 도시로 가야 한다는 말을 설핏 들었소.” “탈것을 이용했습니까?” “아니오. 손자를 버려두고 온 자에게 탈것을 빌려 줄 이유가 없지. 걸어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리 멀지 가지는 못했을 거요. 손자를 구해 주면 그자를 쫓을 수 있도록 하는 가오리를 빌려 드리겠소.” 거기까지 들은 쥬르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듀크, 들었지? 저 산맥 너머 도시로 갔단다.” “오케이, 다들 준비해라. 출발하자.” “엇? 이, 이보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럼 내 손자는…?” “그런 거 알게 뭐야!” 쥬르는 마치 파리를 쫓듯이 베스튜라를 밀어냈다. “네놈 손자는 이미 타무라드에게 아작아작 씹혀 먹혔을 거야.” “어차피 실패할 퀘스트 따위는 관심 없어.” “그보다 아크다. 자, 출발하자!” 쥬르는 곧바로 파티원에게 ‘신속’ 마법을 걸었다. 덕분에 이동속도가 20%나 상승한 아크 척살대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북쪽으로 몰려갔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잠시 후, 근처의 담장 뒤에서 힐끔거리던 보나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흥, 못된 사람들 같으니, 역시 아크 형 말대로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었어요.” “… 그런 모양이구나.” 베스튜라가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감히 보나를 구해 준 은인을 괴롭히려 하다니. 북부 산맥 너머의 도시는 나크족의 대족장 영토다. 어디 한번 고생이나 해 보라지.” “그런데 할아버지, 아크 형이 찾아 달라는 건 찾았어요?” “물론이지. 자, 돌아가자꾸나. 아크가 돌아오겠다고 한 시간이 다 됐다.” 베스튜라와 보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이제 안심하게. 놈들은 북부 산맥으로 떠났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그저 자네가 말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네.” 베스튜라의 대답이 아크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이제 한동안 놈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조만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낯선 곳에서 마법의 도움도 없이 다시 나를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이로써 걱정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마가로프에 대한 단서를 알아보는 것뿐이었다. 아크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자 베스튜라가 빙긋 웃으며 끄덕였다. “자네가 필요하다던 정보를 찾았네.” “마가로프 말입니까?” “그래, 그는 대략 100년 전에 이곳을 찾아왔다고 적혀 있네. 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읽어 보는 편이 빠를 거네. 자, 자네가 알아볼 수 있도록 번역해 놨으니 읽어 보게.” 베스튜라 가문이 기록해 온 자료들은 비밀 유지를 위해 특수한 암호를 사용한다니? 아마도 유계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모여 있는 만큼, 유저들이 함부로 정보를 얻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인 모양이다. 어쨌든 정보를 얻을 자격이 생긴 아크에게는 베스튜라가 직접 번역한 두루마리를 건네주었다. ‘드디어 마가로프의 행방을 알 수 있겠구나!’ 아크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다. 역시 기록이라고는 하나, 마치 일기나 편지처럼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었다. … 그는 자신을 마가로프라고 소개했다. 마가로프는 보기 드물게 예의 바르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뭣보다 그가 중간계에서 넘어왔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오래전에는 중간계와 유계의 왕래가 자유롭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으나,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전해 들은 얘기를 전설이나 신화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간계가 틀림없이 존재하고, 또 이곳보다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굉장히 영리했다. 분명 이곳의 동식물을 처음 보는 것일 텐데도, 며칠 만에 특성을 파악해 내고 오히려 우리에게 활용법을 알려 주었다. 덕분에 우리 부족은 식물의 수액을 정제해 상처를 치료하는 법이나, 가축을 키우는 법을 배워 보다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뒤 그는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유계로 들어왔고, 그‘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노력해 준 보답으로 자료를 찾아 동부 황야에 위치한 ‘ 생명의 숲’ 을 알려 주었다. 그가 그곳에서 필요한 것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안타깝게도 두 번 다시 그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렇게 됐던 건가?’ 아크는 글을 읽으며 몇 가지 기묘한 연관을 알아챘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봤던 수액 정제소, 그곳을 봤을 때 아크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법 학회의 연금술 연구실이었다. 설비의 수준은 많이 달랐지만, 구조는 어쩐지 그곳과 비슷했던 것이다. 기록을 읽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수액을 이용하는 방법은 바로 천재 연금술사 마가로프가 알려 줬던 것이다. ‘역시 마라로프는 연금술의 대가다. 그런 마가로프가 유계까지 들어와 연구하려던 ’특별한‘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 확실히 돈 냄새가 나기는 한다. “나도 이 문서를 읽어 보고 놀랐네. 설마 우리에게 수액이나 약초의 이용법을 알려 준 게 중간계에서 넘어온 사람이었을 줄은 몰랐거든.” “생명의 숲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동부 황야에서 남동쪽으로 이동하면 나온다고 들었네.” 동시에 지도창이 펼치지며 한 지역이 붉은색으로 표시되었다. 위치를 살펴보니 아크가 지나온 설산에서 상당히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다. ‘일직선으로 이동해도 며칠은 걸리겠군. 그래도 일단 위치를 알아냈다.’ 아크는 지도를 갈무리하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같이 부탁했던 붉은 남자에 대한 정보는?” “아, 그거 말인가?” 베스튜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을 듣고 찾아봤지만 그런 사람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네.” “그렇습니까?” 아크는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마가로프에 대한 정보는 어치피 퀘스트를 받고 찾는 것이다. 퀘스트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임 속에서 퀘스트에 대한 단서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붉은 남자는 퀘스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다가 아크는 그의 어떤 것을 조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막연하게 그에 대해서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 찾는 사람도 뭘 찾아야 할지 모르니 제대로 된 단서가 잡힐 리가 없었다. 뭣보다. 붉은 남자가 정말 아크가 추측하는 것처럼 입사 시험의 ‘열쇠’라면 그냥 얻어 걸리는 식으로 정보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으리라. ‘할 수 없지. 당장은 그에 대해 알아낼 게 없으니 당분간 덮어 두자.’ 정보 수집을 끝낸 아크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 여장을 꾸렸다. 장비를 재점검하고, 잡화상점에 들러 그사이 들어온 쓸만한 약재를 물물교환으로 구입했다. 그 무렵 충분히 휴식을 취한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생생해진 모습으로 접속했다. “아크 님, 늦이 않았죠?” “네, 딱 시간 맞춰 오셨어요.” “이제 어디로 가죠?” “동부 황야 너머에 있는 생명의 숲입니다. 거리가 꽤 되니 서둘러 출발하죠.” 아크가 당장이라도 떠날 것처럼 굴자 베스튜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흠, 날이 저무는데 내일 아침에 출발하지 그러나?” “아닙니다. 쉴 만큼 쉬었으니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습니다.” 사실 다크워커에게는 밤이야말로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그럼 하는 가오리라도 타고 가겠는가?” 그러자 레리어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펄쩍 뛰었다. “하, 하늘 가오리요? 아, 아크 님… .” “감사하지만 그것도 됐습니다. 이번에는 걸어가죠.” 아크가 피식 웃으며 거절하자 레리어트가 십년감수한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나 아크가 거절한 건 레리어트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늘 가오리가 빠르기는 하지만, 이동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유계에는 처음 보는 식재료가 아직도 많았다. 하는 가오리를 타고 가면 그런 것들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게다가 계곡 마을로 오면서 확인한 바로는 동부 황야의 상공에는 야생 가오리가 상당히 많았다. 날아서 이동하면 하는 가오리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상전과 달리 공중전은 변수가 너무 많아. 절망의 심연에서 돌아올 때 서너 마리를 상대하기도 쉽지 않았는데, 떼로 덤벼들면 레리어트 님과 북실이를 지키면서 전투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늦더라도 걸어서 이동하는 편이 나아. 뭐, 당장 급한 일도 없으니까… .’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언제든 들러 주게. 자네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아크 형, 레리어트 누나, 볼일 끝나면 꼭 다시 와야 해요!” 보나가 입구까지 쫓아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알았다. 자, 가시죠.” “네.” 레리어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던 아크는 잠시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침 떨어지기 시작한 노을이 주변은 붉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둡지만 밝은, 안타깝도록 슬퍼지지만 가슴 설레는… 그 신비로운 공간 속에 그녀가 서 있었다. 온몸에 신비로운 색채를 휘감은 그녀는 현실적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유계 여행이 지루하지는 않을 것 같아.’ ‘뭔가… 뭔가 이건 아니잖아.’ 동경하던 여자와 함께 신비로운 세상을 모험한다! 마치 모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숙명적으로 만난 히로인과 함께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곳을 탐험하고, 괴물과 맞서 싸우고, 때로는 위기에 빠진 히로인을 구해 준다. 그렇게 수많은 역경을 이겨 낸 두 주인공은 드디어 보물을 찾아내고 서로에게 심란하기 짝이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모든 남자가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엔딩 부분까지는 아니지만, 레리어트와 함께 계곡 마을을 나왔을 때 아크도 그런 달콤한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아크는 현실은 그렇지 만만하지 않았다. 아크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물끄러미 한창 식사 중인 동료… 아니, 밥벌레들을 바라보았다. “아, 이거 정말 맛있는데?” “정말요. 아크 님은 요리도 잘하시네요.” “그래? 맛있어?” 게걸스럽게 냄비 바닥을 핥아 대던 데드릭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깔끔하게 비워진 냄비를 들이밀며 당연하다는 투로 지껄여 댔다. “주인, 들었지? 이거 한 그릇 더.”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죽어라 모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게다가 아크는 생명력이 50% 밖에 없는데도 아직 숟가락 한 번 대 보지 못했다. 그런데 냄비를 싹싹 비워 놓고 한 그릇 더? 게다가 명령조? 평소라면 당장 조직의 쓴맛(?)을 보여 줬을 것이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주먹이 치켜져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 “죄송해요. 아크 님은 아직 식사 전인데 우리만 먹어서.” 레리어트의 한마디에 아크의 주먹이 스르륵 펴지더니 데드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아닙니다. 잘 먹으면 좋죠. 하하하.” “그래, 신경 쓰지 마. 주인은 남에게 음식 먹이는 게 취미거든.” 데드릭이 히죽거리며 지껄여 댔다. 그러자 레리어트는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원래 요리가 취미라고 하셨죠?” “네? 아, 네… 그렇죠, 뭐.” 아크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데드릭을 째리며 복화술로 속삭였다. “너, 이 자식! 후환이 두렵지 않냐?” “내가 뭘?” 데드릭이 먼 산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뭔가… 뭔가 가슴속에 봉인해 놨던 구타 본능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는 기분. 잠깐 예뻤던 적도 있었지만, 한 번 얄밉게 굴기 시작하지 더할 수 없이 얄미운 놈이다. ‘젠장, 실수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넘버 2다 뭐다 하면서 추겨세워 주는 게 아니었는데… 이 자식이 한번 추켜세워 주면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놈이라는 걸 깜빡했어.’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이런 상황을 만든 게 다 자신의 실수 때문인 것을 … . 아크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눈물을 머금고 몇 개 남지도 않은 식재료를 꺼내 냄비에 쏟아 넣었다. ‘대체 아쩌다가 내 신세가 이렇게 돼 버린 걸까?’ 아크는 머릿속에서 파란만장했던 지난 기록을 재생해 보았다. 처음에는… 그래, 처음 계곡 마을을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좋았다. “어머, 저 강 좀 봐요. 무지개 색이에요.” “이거 봤어요? 꽃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으면 웃음소리가 나오네요. 호호호.” “저 괴목은 사람 얼굴처럼 생겼네요 징그러워.” 레리어트는 어린애 마냥 신기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재잘댔다. “조심하세요. 그 괴목은 가까이 가면 공격하는 몬스터예요.” “네? 정말요?” 레리어트가 화들짝 놀라자 아크가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하. 가까이 가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으니 괜찮아요.” 그녀는 아크보다. 먼저 유계에 들어왔다. 그러나 처음 떨어진 숲에서 망자가 된 로니안만 쫓아다니다가 나크족에게 잡혀 정작 유계을 관광(?)할 시간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즐거워했다. 아크 역시 그런 그녀를 보며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가 관심을 보일 때마다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설명해 주며 약간은 우쭐해 있었다. 누군가에게 … 특히 관심 있는 여자 앞에서 뭔가 잘난 척 할 수 있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인 것이다. 간간히 몬스터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역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아크가 설산에서 계곡 마을을 향할 때 몇 번이나 싸워 본 적이 있는 몬스터들. 레벨은 높은 편이었지만 한두 마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아크는 그때보다 레벨이 훨씬 높았다. 절망의 심연에서 수백 마리의 나크족을 처리하고 퀘스트를 완료해 레벨 256! “북실이, 잘 찍어 둬라.” 아크가 북실이에게 속삭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온갖 화려한 동작을 뽐내며 몬스터를 처리했다. 촬영도 촬영이지만, 레리어트가 보고 있으니 평소처럼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와! 굉장해요. 그렇게 강해 보이는 몬스터를 쉽게 처리하다니… .” 레리어트의 감탄사에 아크는 콧대는 더욱 높아졌다. “별거 아닙니다.” 아크는 짐짓 겸손을 떨어 댔다. 그렇게 레리어트가 그때그때 반응을 보이자 아크는 오버하기 시작했다. 아크는 쓸 만한 식재료가 나오면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소환수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다. 그녀 앞에서 속 좁은 남자로 비치기는 싫었던 것. 어쨌든 아크의 그런 행동 하나하나에 레리어트는 연방 감탄사를 터뜨렸다. 음, 역시 다시 기억을 재생히 봐도 흐뭇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레리어트와 함께해서 좋았던 것은 딱 그때까지였던 것 같다. 그녀와의 여행이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은 것을 황야를 지나온 뒤였다. 황야의 남부로 이동하자 곧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여기부터는 숲이군요. 아무래도 이 숲이 생명의 숲으로 통하는 관문 같습니다. 이곳은 저도 처음이니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몰라요. 데드릭, 정찰해라.” “알았다. 주인.” 며칠 동안 데드릭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갔다. 그러나 채 몇 미터도 날아가지 못하고 헐떡거렸다. “뭐야, 왜 그래?” “모, 몰라. 왠지 굉장히 숨이 찬데?” 아크가 주위를 훑어봤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대체 뭔가… ? 아크는 불안한 눈길로 새삼스럽게 데드릭을 몸을 살펴보았다. 아크는 그제야 데드릭이 미묘하게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야? 이 자식 언제 이렇게… ?’ 그동안 아크는 레리어트에게 음식 솜씨를 뽐내느라 식재료를 있는 대로 사용해 음식을 종류별로 만들어 댔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대식가가 아니다. 음식은 항상 반 이상이 남았고, 그때마다 제 밥을 다 먹은 소환수나 북실이가 먹어 댔던 것이다. 반면 황야의 몬스터는 고작 한두 마리씩밖에 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굳이 데드릭으로 정찰할 필요도, 함께 싸울 필요도 없었다. 그 결과… 데드릭은 항상 바쁘게 지내다가 간만에 휴가를 받아 방구석을 뒹굴거리며 명절 음식을 퍼먹은 셀러리맨처럼 변해 있었다. 즉, 영양 과잉 섭취와 운동 부족으로 며칠 사이에 살이 피둥피둥 올라 버렸다는 말이다. 그건 라자크나 북실이도 마찬가지였다. 북실이는 … 뭐, 원래 돼지였으니까 넘어간다 쳐도, 뼈에는 살이 찌는지, 라자크마저 며칠 사이에 뼈가 조금 더 두꺼워져 있었다. ‘맙소사, 왜 대체 지금까지 몰랐지?‘ 레리어트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알 리가 없지. 어쨌든 아크가 그제야 그 사실을 눈치채고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을 때였다. 키키키키! 키키키, 키키키키! 문득 주변의 나뭇가지가 요란하게 흔들리더니 사방에서 붉은 눈동자가 몰려들었다. ‘엇, 몬스터! 그것도 십여 마리다!’ “북실이, 레리어트 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데드릭, 라자크, 방어 대형!” “우, 힘든데… 알았다, 주인.” 딱딱… 딱딱딱! 소환수가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자세를 잡았다.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뒤이어 상당한 숫자의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뛰어나왔다. 원숭이와 늑대를 합성시켜 놓은 것처럼 생긴 몬스터, 쿠룬이었다. 쿠룬의 정보를 확인한 아크는 약간 긴장을 풀었다. 놈들의 레벨은 고작 200. 십여 마리라는 숫자에 놀랐지만,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지 않아도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좋아, 레리어트 님, 버프를 걸어 주세요!” “네! 천상의 빛, 이모탈 오라, 순결한 검!” 레리어트가 뒤에서 각종 버프로 능력치를 올려 주었다. “자, 이제 순식간에 썰어 주지. 엘리멘탈 소드, 화 속성!” 스킬을 발동하자 검날에 마법의 화염이 휘감겼다. 뒤이어 아크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쿠룬을 관통 했다. 섬아-! 우르르 몰려들던 쿠룬들이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섬아를 연속적으로 날려 쿠룬의 생명력을 반이나 깎아 놨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아크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당연히 쿠룬의 공격에 아크의 생명력도 제법 빠져 있었다. 그런데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사용하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아크에게 몰려들던 쿠룬의 일부가 번뜩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왜 갑자기… 아차!’ 그제야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몬스터에게는 ‘분노’라는 수치가 존재한다. 똑같은 유저가 2명이 서 있을 때, 자신을 보다 많이 두들겨 팬 유저에게 달려들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바로 회복 마법. 이 마법은 몬스터에게 직접 데미지를 주지 않지만, ‘분노’를 상당히 증가시키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보통 파티 전투를 할 때는 사제가 회복 마법을 사용해도 몬스터가 몰리지 않도록 전사가 적당히 타이밍을 맞춰 ‘도발’을 걸어야 한다. 이게 바로 파티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어그로 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솔로잉만 해 온 아크에게 그런 요령이 있을 리가 없었다. 간혹 로코와 함께 전투를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갱생단원들이 몸빵을 한 것이다. “꺄악, 도, 도와주세요!” “헉, 비, 비켜! 히익!” 쿠룬이 몰려들자 후미에 있던 레리어트와 북실이는 단숨에 위기에 몰렸다. 상인인 북실이는 말할 것도 없고 레리어트도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사실 신성 기사 계열은 회복 마법은 사제보다 못하고, 전투 능력은 전사보다 못하다. 하지만 돌려 말하면 전투 능력은 사제보다 높고, 회복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뜻. 하물며 신성 기사 계열 최고 직업인 이노센스 나이트는 홀리 나이트처럼 성향이나 명성에 따라 추가 스탯 보너스가 주어진다. 때문에 그녀는 레벨이 160 수준이었지만 실제 능력치는 200 이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가 얼마 전까지 마법사였다는 점이다. 입고 있는 장비는 천으로 만든 로브… . 물론 지금까지 여명의 칼날 길드에서 대접을 받은 덕에 상당히 좋은 마법 아이템이었지만, 방어력은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아직 근접 전투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쿠룬이 달려들자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이, 이런… 데드릭, 도발로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어? 알았어. 야, 이놈들아, 여기다!” 데드릭이 ‘도발’을 사용하자 한두 마리의 쿠룬이 데드릭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데드릭은 빠르게 놈들을 스치고 날아가… 지 못했다. 피둥피둥 살이 찐 데드릭은 헐떡거리며 날개짓을 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 아, 정말 놀고 있다. “이, 이런 망할 ! 라자크, 방어 태세로 둘을 보호해라!”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살찐 뼈를 흔들어 대며 뒤뚱거리면서 달려갔다. 그나마 라자크는 살이 쪄도 데드릭보다는 조금 나았다.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늦지 않게 둘의 앞을 가로막았다. 덕분에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리 방어 태세를 유지한다고 해도 라지크 혼자서 쿠룬의 공격을 다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새삼스럽지만 데드릭과 라자크는 레벨로 따지면 몬스터 한 마리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다. 이제 겨우 라지크는 레벨 150수준, 데드릭은 130 수준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소환수들이 레벨 300대의 몬스터와도 싸울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걸치며 아크와 완벽한 팀 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아크와 떨어지면 데드릭과 라자크는 그저 허접스러운 소환수에 불과했다. 하물며 살까지 피둥피둥 쪘다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망할 … 하필이면 이럴 때…!’ 아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50% 이상 생명력을 깎아 놓은 쿠룬을 포기하고 뒤로 달려갔다. “주, 주인, 살려 줘!” 데드릭이 공처럼 부푼 몸을 굴리며 SOS를 날려 왔다. 아크는 와락 데드릭을 잡아채며 곧바로 ‘다크 댄싱’을 펼쳤다. 그리고 유령처럼 공격해 오는 쿠룬들 사이르 비집고 들어가며 ‘다크 블레이드’를 사용해 연쇄 스킬 ‘암격’을 발동시켰다. 그렇게 강렬한 연속 공격을 날려 쿠룬들을 밀어냈지만 상황은 더욱 암담해졌다. 두 소환수와 레리어트, 북실이가 몽땅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아크 역시 무리하게 적진을 뚫은 덕분에 생명력이 50%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쿠룬들은 시작하자마자 섬아로 두들겨 준 덕에 생명력이 꽤 깎여 있었지만 아직 한 마리도 쓰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놈들은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자 뒤로 물러나서 돌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다크 댄싱이나 섬아로 거리를 좁히고 연속 공격을 펼치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지만….’ 아크는 그제야 파티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깨달았다.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북실이가 있어도 황야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상대할 때나, 던전에서 적을 원하는 장소로 유인해 상대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방이 뚫린 장소에서 다수의 적을 상대하게 되자 대번에 약점이 드러났다. 중갑을 입을 수 없는 아크는 당연히 방어력이 전사보다. 낮다. 때문에 회피 동작으로 데미지를 줄이며 싸워야 한다. 그러나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런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크가 피하면 그 공격은 고스란히 레리어트와 북실이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파티에 전사가 필요한 이유! ‘젠장, 일단 버티는 수밖에 없어.’ 아크는 쿠룬이 날리는 짱돌을 ‘화격’으로 쳐 내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잠시,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으로 생명력을 60%이상 회복했다. “레리어트 님, 이제부터 회복 마법을 라자크에게만 집중해 주십시오. 라자크, 방어 태세로 레리어트 님과 북실이를 보호해라. 잠깐이면 돼!”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방패를 세우며 이를 마주쳤다. “전력질주!” 아크는 빗발치는 짱돌을 맞으며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섬아’를 사용해 쿠룬을 휩쓸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있는 마나를 몽땅 긁어서 세 번을 날리자 쿠룬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바다정령의 가호!” 아크는 아드라안의 목걸이까지 사용해서 마나를 박박 긁어모아 다시 한 번 ‘섬아’를 날렸다. 그렇게 네 번이나 섬아를 날리고 나서야 남은 쿠룬을 모두 소탕할 수 있었다. “헉헉헉, 간신히 이겼다.” 아크는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생명력을 확인해 보니 고작 5%도 남지 않았다.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써 준다고 해도, 라자크에게 모든 쿠룬의 공격이 집중되면 버티지 못한다. 때문에 아크는 ‘섬아’를 사용하면서도 라자크의 짱돌 대부분을 몸으로 받아 내야 했던 것이다. 전투가 끝나자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달려왔다. “휴, 일단 위기는 넘겼군요.” “죄송해요. 괜히 저희들 때문에 ….” “아니, 괜찮습니다. 그보다 먼저 휴식부터 하죠. 언제 몬스터가 다시 습격해 올지 모르니, 기회가 있을 때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해 둬야 합니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일단 야영지를 만들었다. 아크뿐만이 아니라, 레리어트도 마나가 바닥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고작 레벨 200짜리 몬스터들에게 이렇게까지 당하다니….’ 아크는 슬쩍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데드릭과 라자크를 쏘아보았다. 데드릭과 라자크도 잘못을 알고는 있는지 슬슬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더욱 화가 치밀었지만 아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좀 더 근본적인 문제야.’ 그렇다, 사실 데드릭과 라자크가 없었다고 해도 쿠룬 열 마리 정도는 가지고 놀면서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해야 했던 이유는 하나, 바로 레리어트와 북실이라는 짐 탓이었다. 짐이 북실이 하나였을 때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둘이 되자. 상황이 전혀 달랐다. 두 사람에게 집중되는 공격을 아크 혼자서 막아 내야 하는 것이다. 중갑을 입는 전사가 아닌 아크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의외로 심각한 문제야. 황야에서 레벨 300대 몬스터가 나오다가 갑자기 레벨 200대 몬스터가 나온다. 그 말은 이곳의 몬스터는 대부분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는 뜻이야. 숲 초입에서 열 마리라면, 안으로 들어갈수록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야. 열 마리 이상을 상대로 지금처럼 몸빵 하다가는 목숨이 몇 개라도 부족해.’ 라자크 역시 마찬가지다. 아크와 함께 싸운다면 적당히 막고 빠지기를 할 수 있지만, 레리어트와 북실이에게 향하는 공격을 몽땅 막으려 들면 불과 1~2분도 버티지 못하리라.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아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그리고 정말 길고 긴 고민 끝에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결심했다. ‘그래,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어.’ “레리어트 님.” 아크는 불가에서 마나를 회복하고 있는 레리어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무턱대고 숲에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습니다. 몬스터 숫자가 많아서 제가 막아 드리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북실이야 상인이니 할 수 없지만, 레리어트 님은 기사 계열로 전직했으니 방어력을 올려 두면 제 부담이 좀 줄어들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알지만… 저는 마법사용 아이템밖에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 손을 넣어 몇 가지 아이템을 골라냈다. 그렇다. 레리어트에게 제대로 갑옷을 입혀 방어력을 올려 놓으면 그만큼 아크의 부담이 적어지는 것이다. 물론 아직 근접 전투 스킬이 제대로 갖추지지 않았지만, 기본 방어력만 올라가도 생명력이 깎이는 속도가 한결 느려지리라. 그러나 역시… 결심을 했다고는 해도 막상 실행하려니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 번 가방에 챙겨 넣었던 걸 다시 꺼내자니 식은땀까지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아크도 할 때는 하는 남자다! “받으십시오!” 아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와락 가방에서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얼마나 대단한 걸 주려고 저렇게 식은땀까지 흘리나, 하고 지켜보던 레리어트와 북실이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너덜너덜한 하프 플레이트 방어구 타입:철제 갑옷 방어력:0 내구력:0/0 무게 사용제한 :100이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프 플레이트 갑옷입니다. 오랫동안 손빌이 되지 않은듯, 군데군데 곰팡이가 피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인이라도 이걸 쓸 만한 갑옷으로 수리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말해 두지만 팔아봐야 얼마 받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정보창에서 대놓고 얼마 안 된다고 할 정도의 아이템! 그 뒤에 꺼낸 장갑이나, 신발, 견갑도 갑옷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었다. ‘저게 뭐야? 혹시 저런 걸 주는 게 미안해서 그렇게 망설였던 건가?’ 레리어트와 북실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흑, 그래도 이거 하나 갖다 팔면 하나에 1골드는 받을 텐데… 세트로 다 팔면 적어도 4골드는 건질 수 있는 걸 그냥 줘야 하다니….’ 상점에서 팔지도 못하는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4골드가 그냥 날아간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4골드면 4만 원이다. 삽 들고 나가서 3시간 동안 땅을 파봐라. 천 원짜리 한 장이 나오나. 물론 레리어트는 아크에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만약 아크가 그저 재미 삼아 게임을 하고 있다면 잡템 몇 개… 아니, 마법 아이템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있다. 돈을 번다! 오직 그 하나의 목표가 있기에 1 쿠퍼도 결코 허투루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런 잡템을 주는 것조차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것이다. “네… 가, 감사합니다.” 레리어트는 차마 싫다고 하지 못하고 갑옷 세트를 받았다. 사실 레리어트가 입고 있는 천 방어구는 상당히 좋은 것들이었다. 돈을 물 쓰듯 하는 아란이 살뜰하게 챙겨 줬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천 방어구임에도 방어력도 오히려 아크가 준 갑옷 세트보다. 높을 정도! 그러나 뉴 월드에는 직업 특성이라는 게 존재한다. 즉, 특별한 직업 제한이 걸려 있지 않으면 마법사도 판금 갑옷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직업 특성으로 패널티가 작용해서 방어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마법사가 로브를 입고도 마법사 때보다 방어력이 낮아진 건 그 때문이었다. 기사가 로브를 입고 있어서 페널티로 방어력의 40%가 경감된 것. 반면 아크가 준 아이템은 명색이 갑옷이다. 허접스럽기 짝이 없지만 제 방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됐어, 아깝기는 하지만 이제 내 부담이 조금은 줄어들거야.’ 그러나 그건 아크의 오산이었다. 기껏 갑옷을 입혀 놨더니 레리어트는 자기가 당장 기사라도 된 듯 착각한 모양이다. 몬스터가 나타나자 이번에는 아예 잡템 검을 들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전투 센스는 정말이지 최악이었다. “제가 도와 드릴게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 “아악!” “헉, 레리어트 님!” 레리어트는 무턱대고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다가 되레 얻어맞고 바닥을 뒹굴었다. 덕분에 아크는 싸우다 말고 허둥지둥 달려가 대신 맞아 줘야 했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한다. 얼마 전까지 마법사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기사의 전투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크가 검을 휘두를 때 앞으로 끼어들지 않나, 엉뚱하게 검을 휘둘러 아크에게 데미지를 입히지 않나… 이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그나마 로브를 입고 있을 때는 생명력이 쭉쭉 빠지니 겁을 집어먹고 뒤에서 회복 마법에만 집중했지만, 방어력이 조금 받쳐 준다 싶으니 되도 않는 싸움을 하겠다고 나서서 아크를 괴롭혔다. 덕분에 전투를 치를 때마다. 아크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렇다고 명색이 기사에게 대놓고 닥힐 - 닥치고 힐이나 주셈- 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죄송해요. 제가 잘 못하죠?” 사랑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크는 땀을 삐질거리며 힘겹게 웃어 보았다. “아, 아닙니다. 열심히 하시던데요.” “… 그런데 너무 움직여서 그런지 공복도가 60%밖에 안 돼요.” “… 밥할게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아크는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면 죽어라 대신 맞아 주고, 전투가 끝나면 밥이나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전고 달리 이제 입이 다섯이다. 매번 전투를 치를 때마다 5인분의 식사를 만들다 보니 가방에 꽉 찼던 식재료도 바닥을 드러냈다. 때문에 아크는 그때그때 식재료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정작 자신은 끼니를 건너뛰어야 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데드릭이 슬슬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어라? 이상하네. 예전 같으면 벌써 주먹질을 했을 주인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지?’ 살이 투실투실 오른 데드릭이 머리를 굴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주인 녀석, 저 계집애에게 뭔가 약점이 잡힌 거야. 그래서 아란 녀석과 붙어먹던 저 계집에게 쩔쩔 매는 게 분명해. 그리고 나나 라자크에게도 큰 소리를 못 내는 거야. 우후후후, 이건 그동안의 설움을 갚아 줄 기회다! 소환수의 한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마!’ 그렇게 생각한 데드릭은 휴식 때만 되면 소년을 변신해 레리어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처럼 시시콜콜 참견하며 아크를 괴롭혀 댔다. “어이, 주인. 이게 뭐야? 나는 고기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심지어 기껏 음식을 해다 바쳤더니 냄비를 걷어차며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살짝 맛이 간 게 틀림없었다. ‘이, 이 자식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게다가 열 받는 건 데드릭만이 아니었다. 아크가 고분고분해지자 왠지 모르게 북실이의 태도도 건방져졌다. ‘아크 님, 왠지 요즘 좋은 영사이 안 나오는데요? 분발 좀 하시죠?“ 북실이가 수프를 끓이는 아크의 어깨에 족발을 떡하니 올려놓으며 지껄였다. ‘이것들이 정말 좀 풀어 줬더니 사람을 완전히 병신 취급하네?’ 정말이지 쌍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레리어트 앞에서 쌍욕을 퍼부으며 어린 소년이나 아기 돼지 때려죽이는 … 아니, 살짝 어루만져 버릇을 고쳐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니야. 이건 뭔가 아니야!’ 그렇게 며칠 사이에 행복했던 여행이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6 마이 페어 레이디 ‘아, 안 돼… 더 이상은 무리야.’ 아크의 인내심도 슬슬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레리어트가 속을 썩이고, 전투가 끝나면 데드릭이 대놓고 괴롭힌다. 그 와중에도 계속 식재료를 채취해서 밥을 해야 하니… 따가리가 따로 없었다. (-플레이어 덕분에 편히 놀고먹을 수 있게 된 소환수가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애정도+2>) 오죽하면 이렇게 염장을 지르는 메시지가 떠오를 정도였겠는가? 덕분에 스트레스가 쌓여 아크는 고작 하루 만에 핼쑥해졌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레리어트 님의 전투를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게 만들 방법, 그리고 레리어트 님 몰래 저 싸가지 없는 데드릭 자식의 버릇을 고쳐 놓을 방법! 만약 이대로 방법을 찾지 못하면 내 명에 못 죽을 거야.’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레리어트를 힐끔거렸다. 사실 아크는 그녀를 대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원래 여자를 어려워하는 탓도 있었지만, 한때 마음이 흔들렸던 상대라서 더욱 그랬다. 때문에 그녀 때문에 죽도록 고생하면서도 차마 대놓고 제대로 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겠다. ‘그냥 한 번 눈 딱 감고 한마디 해 볼까?’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상대가 레리어트라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히 여자에게 약간 건지 모르겠다. 하긴 로코에게도 기를 못 펴니 천성이 그런 것 같다. ‘하아… 내가 이명룡 사범님의 반만 닮았어도….’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이명룡을 떠올랐다. 경찰청 체육관에는 여경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이명룡은 다른 기동대원이나 여경이나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았다. 뭐, 그렇다고 여자에게 폭력을 쓰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동대원들과 똑같이 굴렸다. “여자 대접받고 싶으면 집에서 빨래나 해!” 이게 이명룡의 방식이었다. 물론 여경들도 불만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수련을 하기 위해 체육관에 나오니 제대로 못 하면 사범에게 기합을 받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었다. ‘어라? 가만?’ 그런 생각을 하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순간 아크는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다. 아크는 벌떡 일어나 레리어트에게 다가갔다. “레리어트 님, 할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레리어트 님은 이제 기사로 전직했습니다. 이노센스 나이트는 홀리 나이트와 비슷한 직업이죠? 그렇다면 신성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입니다. 중요한 건 신성 마법보다 검과 방패를 활용하는 전투죠. 레리어트 님도 그 때문에 무리해서 전투에 끼어드시는 거죠?” “네….” 레리어트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아란을 보아 온 레리어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전투 기술을 익혀야 아크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몬스터와 근접 전투를 벌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법사로 생활한 시간이 많아서 갑자기 근접 전투에 숙달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전투에서는 회복 마법을 위주로 저를 보조해 주시고, 전투 기술을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우시는 게 어떨까요? 원하신다면 제가 기초부터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아크 님이 가르쳐 주신다고요?” “네. 검을 다루는 법부터 전투 시에 움직이는 방법까지, 모두 알려 드리죠.” 레리어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한번 해 볼까요.” 그녀의 대답에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 그녀가 전투를 제대로 모르면 가르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아크와 레리어트는 정식으로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되었다. 여자라면 몰라도 제자라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얼마나 나아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전진하는 것보다는 나아.’ 아크는 곧바로 레리어트를 적당한 장소로 데려간 뒤에 지시했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죠. 먼저 검 휘두르기 1,000번!” “네? 1,000번요?” “다른 전사들은 레벨 1부터 계속 검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본기가 있어야 레벨 200짜리 몬스터와 제대로 싸울 수 있죠. 레리어트 님이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매일 그 정도는 휘둘러 줘야 합니다.” 일단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되자 아크는 가차 없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1,000번 끝내 놓으세요. 다음은 방어 수련입니다.” 아크는 레리어트에게 수련을 시켜 놓은 뒤에 야영지에서 뒹굴거리는 데드릭과 라자크, 북실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너희들 다 따라와.” “헉, 뭐, 뭐? 서, 설마 으슥한 곳에 데려가서 팰 셈이냐?” “패다니? 수련이야. 레리어트 님도 더 강해지기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수련하시는데, 명색이 남자인 너희들이 밥이나 먹고 뒹굴거릴 수는 없잖아. 어차피 레리어트 님을 수련시키기 위해서 며칠 여기서 묵을 생각이니까, 너희들도 이참에 수련이나 하자. 하지만 너희들은 이미 기초 과정은 다 졸업했으니 대련을 해야겠지?” “시, 싫어, 나 안 해!” “저도 안 합니다. 상인이 수련은 무슨….” “시끄러, 따라와!” 아크는 소환수와 북실이를 질질 끌고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 대련을 빙자한 무차별한 폭력이 장장 자행되었다. 그렇게 2시간 뒤, 소환수와 북실이의 얼굴이 팅팅 부어 더 이상 팰 데가 없어질 무렵이야 일단 수련(?)을 끝내고 아크는 소환수와 북실이를 데리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그러자 한참 검을 휘두르고 있던 레리어트가 깜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머, 왜 얼굴이….” “수련입니다. 레리어트 님이 수련하시는 걸 보더니 이 녀석들도 의욕이 솟았는지 수련을 시켜 달라고 졸라 대지 뭡니까?” 아크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지껄이자 소환수와 북실이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러나 아크가 빙긋 웃으며 한 번 흘겨보자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2시간 동안 교육을 받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으아, 시원하다! 역시 사람이든 소환수든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들은 패야 돼.’ 아크는 그제야 10년 묵은 숙변이 빠져나가는 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아크는 아예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며칠 동안 수련에 매진했다. 덕분에 레리어트는 ‘검술’ 스킬과 ‘중갑방어’ 스킬이 새로 생겼고, 소환수와 북실이는 그동안 찌웠던 살이 몽땅 빠져 버렸다. 그리고 덤으로 군기까지 바짝 들었다. ‘후후후, 진즉에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대충 체계가 잡혀 가는군.’ 어느 정도 자세가 잡히기 시작하자 아크는 곧바로 현장 실습을 시작했다. “자, 먼저 파티 플레이가 뭔지 보여 드릴 테니 잘 보고 기억해 두세요. 데드릭, 라자크!” “넵, 주인!” 딱딱딱! 군기가 든 데드릭과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명령에 따라 A플랜부터 D플랜까지 공격을 전환한다. 실시!” 아크는 소환수를 이끌고 한 무리의 쿠룬 무리와 전투를 시작했다. 그러자 레리어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사실 그녀는 지금까지 아크가 전투를 벌여도 그저 그러려니 했다. 치고 빠지는 타이밍, 검을 내리치는 각도와 발놀림! 모두 수준급의 기술이었지만, 애초에 그런 기술을 알아 볼 눈이 없으니 다른 전사들과의 차이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에게 전투 기술을 전수받은 덕분에 이제 그게 얼마나 높은 수준의 전투인지 알아보게 되었다. 게다가 소환수와의 연계 플레이는 어지간한 파티 플레이 저리 가라였다. ‘그저 레벨만 높은 게 아니었구나! 이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크 님에게 방해가 됐는지 알겠어.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다니… 전투 기술을 가르쳐 준다고 한 것도 내가 무안해할까 봐 배려해 준 거였어.’ 레리어트의 눈에는 존경심마저 어른거렸다,. 어쨌든 그렇게 교과서적인 파티 플레이를 선보여 준 아크는 그녀에게도 소환수에게 적용하던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수련을 했다고는 하나, 아직 레리어트의 실력은 레벨 30의 전사 수준이다. 그러니 차라리 소환수처럼 아크가 적당히 지시할 생각이었다. 사실 예전이라면 그녀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건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스승과 제자가 되어 이것저것 가르치다 보니 이전처럼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에는 왜 그렇게 쩔쩔맸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그녀는 그저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야.’ 이제 더 이상 레리어트는 조심해야 할 ‘손님’ 이 아니었다. 비로소 함께 여행하는 동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공밥을 먹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관계가 확립되자 아크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레리어트 님, 여명의 칼날 길드가 해체됐다고 하셨죠? 지금은 저와 함께 있으니 상관없지만, 언젠가는 혼자 다니셔야 하니 앞으로는 혼자 여행하는 데 필요한 스킬도 배워 둬야 할 겁니다. 아시겠지만 그중 가장 필수적인 것은 요리죠. 이참에 식재료 채취를 배워 두시면 나중에 요리를 배웠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될 겁니다. 제가 가르쳐 드리죠. 북실이, 너에게도 식재료 채취를 가르쳐 주지.” “네? 하지만 저는 아크 님의 활약을 촬영할 역사적인 사명이….” 북실이가 얼른 고개를 저었지만 아크가 스윽 노려보자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아크는 반강제적으로 식재료 채취를 가르쳐 주었다. 물론 유계의 식재료는 대부분 높은 등급이라 실패가 많았지만, 며칠 고생하자 북실이와 레리어트에게 식재료 채취 스킬이 생겼다. “꺄악, 배웠어요. 식재료 채취!” “축하합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중요해요.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숙련도를 높여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앞으로 전투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식재료를 찾아 수집하세요.” 그 뒤로 아크는 식재료 채취를 몽땅 북실이와 레리어트에게 떠넘겨버렸다. ‘휴, 이제야 나도 식재료 채취에서 벗어나 ’가죽 채취‘와 ’도축‘을 올릴 수 있겠구나.’ 사실 아크가 둘에게 식재료 채취를 떠넘긴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나중에 언데드의 가죽과 심장을 모으려면 미리미리 ‘가죽 채취’ 와 ‘도축’을 올려 둬야 한다. 그러나 소환수까지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려다 보니 정작 필요한 스킬을 올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좀 쾌적한 여행이 되겠구나!’ 역시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덕분에 그동안 같잖게 점잖을 떨며 쌓였던 스트레스가 단숨에 날아갔다. 그러나 다시 여행을 재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곧 새로운 시련이 닥쳤다. “A-1플랜! 레리어트 님, 뒤에서 공격하세요!” 이미 아크는 레리어트에게 세부적인 작전까지 교육시킨 상태였다. A-1 플랜을 발동시키자 아크와 소환수, 레리어트가 네 방향에서 몬스터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다른 쿠룬의 2배에 달하는 덩치를 가진 스페셜 쿠룬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리고 생각지고 못했던 아이템을 떨군 것이다. (가람 나무의 탄력 방패(마법) 방어구 타입:중형 방패 방어력:250(+40) 내구력:320/400 무게:25 사용제한:레벨 150이상 기사 계열 강철보다 단단한 가람 나무에 가죽을 덧씌워 만든 방패입니다. 가람 나무는 오래전부터 신성한 나무로 취급되어 신상을 제작하는 재료로 많이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 나무로 방어구를 만들 경우, 신성한 기운이 착용자를 보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옵션:체력+10, 지혜+20, 방어력+40> <특수 옵션: 신성 마법을 사용할 경우 마력 증폭+10%>) ‘레이급 마법 아이템이다!“ 아크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템의 성능이다. 기사만 사용할 수 있는 방패, 게다가 신성력 증폭까지 붙어 있다. 레리어트와 동행하기로 했을 때, 나오는 아이템은 모두 아트가 갖기로 이미 합의를 봤다. 그러나 이 방패는 누가 봐도 신성 기사, 즉, 레리어트가 사용해야 할 아이템이다. 아무리 합의를 봤다지만 파티 사냥에서 막상 그럼 방패가 탐나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건 그냥 마법 아이템 아니냐. 특수 옵션까지 붙은 레어급 방패라고! 경매 사이트에 올리면 적어도 100만 원은 받을 수 있는데 조금 찔린다고 양보할 수는 없어!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잡템을 몽땅 내가 챙겼는데 이것까지 챙기면….’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레리어트의 시선을 피하면 슬쩍 방패를 들어 올렸다. 역시 아무리 양심에 찔려도 10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 어쩌면 손해 안 보고 생색을 낼 수 있을지도 몰라.“ “레리어트 님, 혹시 이 방패 필요하십니까?” “네? 아니, 저는….” 레리어트가 말끝을 흐리면서도 방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크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사실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했는데도 아직 이렇다 할 기사 전용 아이템도 없잖아요. 제가 드린 건 모두 잡템이고.” “… 아이템은 모두 아크 님에게 양보하기로 했잖아요.” “그래도 이런 아이템이 나오니 제가 가지기가 좀 그렇네요.” “하지만 제가 너무 미안해서….” 레리어트가 반색하면서도 약간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그때 아크가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혹시 바란족의 거래 방법에 대해 아세요?” “네? 바란족의 거래 방법이요?” “비슷한 가치가 있는 것끼리 물물교환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레리어트 님이 예전에 쓰던 마법사용 장비품은 이제 필요 없으니 그런 걸 다른 장비품과 바꾸는 거죠. 뭐, 그렇다는 겁니다.” 순간 엉뚱하게도 옆에서 지켜보던 북실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크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챈 것이다. 말하자면 레리어트의 돈 되는 아이템과 방패를 바꾸자는 제안! 치사함도 이 정도 되면 대단하다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크는 얼굴에 철판을 쫙 깔았다. ‘쪽팔림은 순간이지만 챙겨 놓은 돈을 쓰지만 않으면 영원하다!’ 이제 아크는 레리어트 때문에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여전히 레리어트는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다. 수련을 시키며 많이 편해졌지만, 지금도 가끔씩 그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거지? 안 돼, 정신 차려!’ 아크는 레리어트가 자신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때문에 한때는 묘한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가 사랑을 고백한다고 해도 아크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아크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바쳐 사랑한다! 가볍게 떠들어 대는 싸구려 멘트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연인, 나의 생명, 나의 과거이자 미래. 나의 영원한 페어 레이디! ‘어머니… 그래, 누가 뭐래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야. 어머니에게 좀 더 좋은 치료를 받게 하고, 좀 더 좋은 음식을 먹여 드릴 수 있다면 약간 쪽팔린 게 무슨 상관이야?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짓이라도 할 수 있어!’ 부끄럽지 않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이것이 아크가 그렇게 쪽팔린 짓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러나 의외였던 것은 레리어트의 반응이었다. “아, 그러면 되겠네요. 네, 저도 그냥 받으면 미안하니까 적당한 마법사용 아이템과 바꿔요. 앞으로도 기사용 장비품이 나오면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죠?” “네? 아, 네….” 그녀가 오히려 그렇게 시원스럽게 나오자 아크가 오히려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레리어트도 아크의 행동이 그리 좋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거리낌 없는 태도가 싫지만은 않았다. 지금까지 여명의 칼날에 있으면서 그녀는 아란에게 지나칠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게 부담이 되어 여명의 칼날을 떠날 결심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아란과 달랐다. 그녀가 여자라고 무조건 잘해 주지도 않고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다. 현실에서도 미인인 그녀에게 아크 같은 태도를 보이는 남자는 좀처럼 없었다. 때문에 앝크의 모든 행동이 그녀에게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미인일수록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말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방패는 레리어트가 사용하던 지팡이로 바뀌어 아크의 가방 속에 들어갔다. “자, 그럼 다시 출발해 볼까요?” 산뜻하게 거래를 끝낸 아크가 밝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크의 출발한 단순히 ‘앞으로 전진’이 아니었다. “그럼 북실이는 저쪽, 레리어트 님은 저쪽에서 이동하며 식재료를 모아 주세요.” 전투가 끝나자 북실이와 레리어트는 다시 ‘체험! 삶의 현장’ 에 동원되었다. 그래서 둘은 또다시 허리가 끊어지는 둣한 고통을 참으며 식재료를 채취해야 했다. 그동안 둘이 고생한 덕분에 이미 가방에 식재료가 제법 모였지만 아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식재료도 모으고 숙련도도 올릴 수 있는데 놀면 뭐합니까?” ‘설마 중간계로 돌아갈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레리어트는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한편, 옆에서 노가다를 뛰는 북실이는 다른 의미에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러다가 만약 가방이 다 차면 나도 동생들처럼…!’ 그러나 둘의 생각이 어쨌든 아크는 지금의 상황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우헤헤헤, 역시 나도 이래야 해. 이제야 좀 스트레스가 풀리는구나!’ 아크는 그렇게 두 남녀를 착취하며 생명의 숲으로 돌진했다. 콰콰콰콰쾅! “파이어 월!” 쥬르가 손가락으로 지면을 가리키며 주욱 긋자 그 궤적을 따라 화염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촛불처럼 맥없는 불꽃이 아니다. 엄청난 압력에 떠밀이듯 지면을 뚫고 뿜어져 올라오는 불길! 단숨에 수십 명의 나크족이 불길에 휩싸여 ‘화상’에 걸려 버렸다. “피어싱 애로우!” 듀크는 측면에 자리 잡고 화염의 장벽을 지나오는 나크족에게 화살을 날렸다. 강철 대궁과 화살로만 사용할 수 있는 피어싱 애로우! 시위를 떠난 강철 화살은 나크족의 몸을 관통하며 동시에 십여 명에게 데미지와 상태 이상을 안겨 주었다. 쥬르와 듀크는 선구자답게 3~4명 몫을 해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마법사와 궁수라는 직업 특성상 광역 스킬이 많아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원거리 공격 전문이라 방어력이 낮다는 점. “강철 장벽!” 그러나 전사들이 방패 스킬을 난사하며 앞을 막아 주었다. 덕분에 쥬르와 듀크는 여유를 가지고 능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적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쓰러뜨린 적이 백여 마리, 그럼에도 밀려드는 적의 숫자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막에서 모래를 한 숟가락 떠낸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젠장,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나오라는 아크 놈은 안 나오고 웬 빨갱이들이….” “설마 도중에 다른 길로 샌 건가?” 쥬르가 이를 갈아붙이며 중얼거렸다. 정보를 입수하고 아크의 뒤를 쫓은 지 며칠. 얼마 전, 쥬르 일당은 북부 산맥을 넘을 수 있었다. 물론 그조차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북부 산맥은 절망의 심연이 위채해 있는 산이다. 그들이 처음 그곳으로 향할 때는 하늘 가오리를 이용했지만, 막상 걸어서 그곳을 지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북부 산맥에서 나오는 몬스터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난감한 것은 북부 산맥이 지형… 바닥과 벽, 천장이 모두 칼날 같은 종유석으로 뒤덮인 동굴, 손만 닿아도 부서져 내리는 허망하기 짝이 없는 바위로 만들어진 절벽. 모두 평범한 방법으로는 지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지형이었다. 그러나 쥬르 일당은 세상물정 모르는 어딘가의 들장미 소녀처럼 괴로워도 슬퍼도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어딘가 지나갈 방법이 있을 거다.” “아크 놈이 지나갈 길을 우리가 못 지나간다는 건 말도 안 돼!” 아크를 향한 복수의 일념! 쥬르 일당은 그 복수심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결국 북부 산맥을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북부 산맥 너머에 고생 끝에 찾아온다고 전해지는 행복이라는 녀석은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크가 아닌 새까맣게? 아니. 새빨갛게 몰려드는 나크족이었던 것이다. “침입자다!” “잡아라, 바란족이 보낸 첩자가 분명하다!” “헉, 이게 뭐야? 후퇴!” 쥬르 일당은 기겁하며 도망갔다. 그러나 등 뒤는 북부 산맥이 떡하니 막고 있었다. 어째 아크만 찾아 나서면 나크족이 떼거지로 나타나는 걸까? 같은 일이 두 번이나 반복되니 심지어 아크가 나크족을 조종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안 돼, 이전처럼 허망하게 죽을 수는 없다. 놈들을 안쪽 계곡으로 유인해라!” 절망의 심연에서는 미처 상황도 파악하기 전에 당해 버렸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때때로 멍청한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선구자다. 쥬르는 곧바로 상황을 판단, 파티원을 계곡 안쪽에 포진시켰다. 한 번에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좁은 병목 지역을 이용해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적의 숫자를 제한시키는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덕분에 수백 마리의 나크에게 몰렸지만 직접 대치하는 나크족은 이십여 마리씩밖에 되지 않았다. 쥬르는 전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나크족의 돌진을 막으며 원거리 공격수로 숫자를 줄여 갔다.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백여 마리나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도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함을 모를 쥬르가 아니었다. ‘이대로 버텨 봐야 마나가 바닥나면 끝장이다. 그 전에 어떻게든 포위를 뚫고 달아날 방법을 찾아야 해. 여기까지 와서 아크 놈을 보지도 못하고 죽일 수는 없다!’ 쥬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머리를 굴릴 때였다. 눈동자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듀크가 소리쳤다. “쥬르, 계곡 입구 근처에 놈들의 대장이 있다!” 마치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보는 것처럼 반경 200미터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레인저의 상급 스킬 ‘매의 눈’! 듀크가 적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매의 눈’을 사용해 주위를 살필 때 나크족 돌격대장이라는 거구의 빨갱이를 발견한 것이다. “거리는?” “놈들의 돌격대 바로 뒤야. 레벨은 350.” “좋아, 상황은 호전시킬 기회다!” 쥬르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유저들 간의 전투에서도 그렇지만, 몬스터들 역시 대장의 존재는 중요했다. 전투 도중 대장이 쓰러지면 부하들은 한동안 공황 상태에 빠진다. 또한 사기가 떨어져 능력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지휘 체계도 무너져 지금처럼 전략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그것만으로 이 많은 나크족의 포위를 뚫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놈을 쓰러뜨리고 놈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포위를 벗어나자!” “알았어, 모두 삼각 대형으로 적을 관통한다. 목표는 전방 50미터 앞의 돌격대장!” “가자!” 콰콰콰쾅! 전사들이 방어 태세에서 공격 태세로 전환하며 나크족을 밀어붙였다. 쥬르와 듀크가 관통 속성의 공격을 퍼붓고, 전사들이 방패로 후려치자 무턱대고 달려들던 나크족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렇게 쥬르 일당은 순식간에 선두의 적을 박살 내며 엘리트 몬스터 돌격대장을 찾아냈다. 거대한 도끼를 양손에 든 거인이었다. “졸개들은 신경 쓰지 말고 대장을 집중 공격해라!” “우오오오, 영웅의 일격!” 10명의 파티원이 돌격대장을 둘러싸고 미친 듯이 스킬을 난사했다. 돌격대장은 엘리트 몬스터답게 엄청난 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구자를 포함한 파티의 집중 공격을 받자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듀크의 정밀사격이 무릎에 적중되어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크으으윽, 이, 이놈들…!” “마지막이다!” 삐이이이익-! 전사들이 검을 휘두르며 돌격대장에게 달려들 때였다. 돌연 하늘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거대한 검은 독수리가 전장에 날아들었다. 동시에 돌격대장 앞으로 벼락처럼 한 줄기 섬광이 내리꽂혔다. 강렬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전사들이 우르르 밀려 넘어졌다. “크윽, 뭐, 뭐야…?” “사람? 사람이 떨어졌다.” 쥬르 일당이 와락 무기를 들어 올렸다. 흩어지는 먼지 속에서 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하얀 가면에 붉은 머리칼을 흩날리는 남자! ‘뭐지, 이놈은? 적인가? 하지만 왠지 분위기가…?’ 쥬르 일당이 잠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절망의 심연에서 본 사람들이군. 마침 잘됐어.” 붉은 남자가 쓰윽 시선을 돌려 쥬르 일당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나와 손잡지 않겠는가? 나를 위해 일해 준다면 그만한 대가를 약속하지.” “뭐? 손을 잡아? 뜬금없이 나타나서 뭔 소리야?” “아니면… 여기서 죽겠는가?” 붉은 남자가 손을 휘저어 주위를 가리켰다. 쥬르는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니 방금 전까지 미친 듯이 몰려들던 나크족이 그가 나타나자 공세를 멈췄다. 심지어 상태 이상에서 깨어난 돌격대장도 한 걸음 물러나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렇다면 붉은 남자가 나크족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요청을 거절하면 어떤 상황이 될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는… 누구냐?” 쥬르는 잠시 눈알을 굴리다가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가면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에 웃음기가 어렸다. “유저다. 너희들과 똑같은.” 7 갈킨족의 재난 크아아앙! 우렁찬 포효가 숲을 뒤흔들었다. 전체적으로 쿠룬처럼 생겼는데 특이하게도 머리가 3개, 꼬리가 5개나 달린 ‘키메라-크로메틴’이라는 기묘한 이름의 몬스터였다. 레벨은 250. 평균 네다섯 마리가 몰려나왔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편이라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이미 몇 번이 전투를 통해 공격 패턴에 익숙해져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낮에는 조금 버겁지만, 어둠 속성이 적용되는 밤에는 아크 혼자서도 너끈히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소리쳤다. “A-3플랜. 레리어트 님, 두 마리만 유인해 내세요.” “네? 네! 홀리 볼트, 홀리 볼트!” 레리어트가 신성 마법으로 크로메틴 두 마리를 공격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그녀를 쫓아 움직인 것은 한 마리뿐이었다. 그러자 레리어트의 어깨에 앉아 있던 데드릭이 방방 뛰며 성질을 부렸다.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너 바보야? 유인 작전을 쓸 때는 거리 조절이 중요하다고 말했잖아! 공격을 해도 거리가 너무 멀면 제대로 ‘ 도발’ 이 되지 않는다고!” “하, 하지만 너무 무섭게 생겨서….” “뭐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네가 무슨 공주냐? 검 들고 있으면서 ‘몬스터가 무서워서 못 때리겠어요?’ 그러면 몬스터가 ‘ 아, 그러십니까?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럼 무섭지 않게 웃고 있을 테니 살짝 때려 주시겠습니까?’ 라고 할 것 같아? 그리고 당분간 마법은 쓰지 말랬잖아! 검과 방패만 쓰란 말이야!” “아, 알았어.” “아앗, 뭐 하는 거야? 몬스터가 코앞까지 다가왔잖아! 검, 검! 방패, 방패!” 데드릭이 레리어트의 귀에다 대고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저 녀석… 다시 조금 기를 살려 줬더니 금세 방방 뜨는군. 하긴, 그래서 맡긴 거지만.’ 아크는 시끌시끌한 데드릭의 목소리를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레리어트에게 수련을 시킨 지도 며칠이 되었다. 그동안 레리어트도 실력이 꽤나 향상되어 이제 제법 기사다운 티가 났다. 그저 뒤에서 회복 마법이나 걸어 주던 수준에서 몬스터 한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데 된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아직 까마득했다. ‘뭐, 검과 방패를 다루는 요령은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게 아니니까 할 수 없지만….’ 그렇다, 사실 레리어트는 이슈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부터 신성 기사를 염두에 두고 키웠다면 자연스럽게 검과 방패, 갑옷을 사용하는 요령을 배우고, 필요한 스킬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레벨 160에 갑자기 전혀 다른 직업으로 전직한 탓에 그런 지식과 스킬이 전무했다.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하며 생긴 스킬은 신성 마법 같은 직업 전용 스킬. 검술 같은 공통 스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깨치거나, 용병 NPC에게 돈을 주고 배워야 했다. 그러나 아크의 친절한(?) 가르침 덕에 그녀도 조금씩 전투 요령이 생기고 있었고, 전사 계열의 공용 스킬도 하나둘 익혀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전투에 도움이 되려면 그보다는 먼저 파티 플레이에 적응해야 해.’ 물론 레리어트도 여명의 칼날에서 파티 플레이는 지긋지긋하게 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파티 플레이에서 마법사와 기사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게다가 여명의 칼날은 항상 수십 명이 몰려다니는 공격대로 사냥을 했다. 한두 사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3~4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파티는 한 사람의 역할이 전황을 좌우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레리어트는 머리가 좋았다. ‘일단 기본 플랜은 다 외웠지만 … 역시 실전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좀 더 폭넓은 시야를 갖기 위해서는 전투 상황에서 하나하나 가르쳐 줄 필요가 있어.’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레리어트의 교육을 분업화했다. 검으로 몸놀림은 아크가, 방패나 방어구를 다루는 요령은 전직 스켈레톤 나이트였던 라자크가, 그리고 전술 부문은 데드릭에게 맡겨 전투 시에는 아예 레리어트에게 붙여 버렸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실 얼마 전 아크의 재교육을 받고 다이어트에 성공한 데드릭은 살짝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런데 넘버 2에 이어 ‘전술조교’라는 새로운 지위를 하사받자 또다시 충성도가 상승하며 완전히 기사 살았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차마 아크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시원하게 떠들어 주었다. “아, 정말 미치겠네. 너 바보지? 대체 몇 번을 말해 줘야 아는 거야? 유인해 내라고 했다고 이렇게 멀리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지금은 괜찮지만 위험할 때 다른 몬스터라도 애드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몬스터를 유인해 내면 근처를 빙글빙글 돌며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고!” 데드릭의 주둥이는 여자를 상대로도 거침없었다. “멍청아, 그게 아니라고 했잖아! 보조 마법을 쓰려면 먼저 상대와 거리를 벌리든가, 밀어내든다 해야지! 무턱대고 마법을 쓰면 그게 먹히냐? 먹혀? 그사이에 네가 잡아먹히겠다. 어유, 야, 라자크, 시범 한 번 보여 봐!” 딱딱딱딱, 땡강-! 라자크가 방패를 휘둘러 크로메틴을 밀어냈다. 그러자 데드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봤어? 저렇게 한 발을 내디디며 탁! 알았지?” “헉헉헉, 아, 알았어. 해 볼게.” “제대로 해, 제대로. 이 몸이 한가해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데드릭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거만을 떨어 댔다. ‘하는 짓이 꼴 같지 않지만, 가르칠 때는 저런 방식이 나올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덕분에 레리어트도 점차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자, 이제 레리어트 님도 지쳤을 테니 슬슬 끝내 볼까?’ “간다, 데드릭, 라자크, 놈들을 한 군데 모아.” 딱딱딱딱! “옛써, 교관님! 잘 봐라, 훈련생. 유인이란 이렇게 하는 거야!” 레리어트의 어깨에서 날아오른 데드릭이 눈부신 솜씨를 보이며 크로메틴을 유인해 아크의 코앞에서 대령했다. 라자크 역시 ‘ 방패 치기’로 주변의 몬스터를 모았다. 그렇게 밥상이 차려지자 아크가 숟가락을 … 아니, ‘섬아’를 난사했다. 콰콰콰콰쾅! 순간 번뜩이는 섬광이 거미줄처럼 얽히며 크로메틴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렇게 크로메틴들이 빈사 상태에 빠지자 아크와 레리어트가 가볍게 정리해 버렸다. 모든 크로메틴이 쓰러지자 아크가 서둘러 명령했다. “라둔, 떨어진 아이템을 빨리 삼켜!” 쌕쌕쌕쌕! 라둔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아이템을 확인할 새도 없이 삼켜 버렸다. 그사이 아크는 긴장을 풀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휴… 다행히 아직 안 나타났구나….’ 그렇게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머리 위에 십자 문양이 떠오르자 레리어트가 팔짝팔짝 뛰며 비명을 터뜨렸다. “또 레벨이 올랐어요! 꺄악, ‘방패막기’ 스킬도 생겼어요!”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전술조교는 엄했다. “그렇게 실수를 많이 해 놓고 뭐가 좋다고 난리야? 기술 좀 생겼다고 다가 아니야!” 데드릭이 차갑게 쏘아붙이자 레리어트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아크가 빙긋 웃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제다 보기에도 많이 좋아졌어요. 전투 중에 자꾸 마법에만 의지하려는 습관을 아직 남아 있지만, 그런 습관만 고치면 이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기사예요.” “모두 아크 님 덕분이에요.” 아크의 칭찬에 레리어트가 살짝 볼을 붉혔다. “흥, 뭐가 부끄럽지 않은 기사야? 아직 멀었어!” “그만해라, 데드릭. 내가 보기에는 검을 다루는 솜씨는 굉장히 좋아졌어.” 그렇게 데드릭과 아크의 말이 오갈 때마다 레리어트의 얼굴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말하자면 당근과 채찍! 이게 레리어트가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럼 마나도 회복할 겸, 이곳에서 잠시 쉬고 가죠.” 아크는 야영지를 만들고 크로메틴의 사체를 모았다. 그리고 ‘도축업자의 칼’을 꺼내 들고 가죽과 고기를 분리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아크는 라둔이 아이템을 모을 때처럼 연방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젠장,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문득 아크의 눈동자에 짜증이 어렸다. 계곡 마을을 나선 지 어느새 일주일… 어제 저녁에야 목적지인 생명의 숲에 도착했다. 사실 아크 혼자였다면 이미 한참 전에 도착했을 거리였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직장인이라 낮 시간에는 접속하지 못했다. 때문에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야영지를 만들어 놓고 주변에서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뭐, 어차피 당분간은 급한 일도 없으니까.’ 예상보다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그리 조바심이 생기지는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뭣보다 근처의 몬스터들은 경험치가 쏠쏠했던 것이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선+400 명성:9,125(+500) 레벨:269 직업:다크워커 칭호:캣 나이트,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생명력: 4,110(+150) 마나:4,250 영력:200 힘543(+28) 민첩703(+55) 체력773(+20) 지혜107(+10) 지능822 운103(+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138 유연성:107 화술:46 애정:152(+10) 탄력도:305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공격 속도 +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민첩+10, 지혜+10 *<수왕>세트 효과:힘+10, 민첩+10, 체력+10, 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민첩+30, 이동속도+30%, 공격속도+10%, ‘슬라이드’ 사용 가능 갈가쉬의 모피(망토):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50% 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힘+5, 마나 회복 속도+5% 라르칸의 반지(반지):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가능 활력의 암렛(팔찌):생명력+50, 생명 회복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증가했습니다. ) 덕분에 일주일 만에 레벨이 13이나 올랐다. 하루에 6시간밖에 게임을 못 하는 레리어트 역시 8이난 레벨이 올라 170 가까이 되었다. 뉴 월드에서는 택시-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과 파티를 해서 경험치 많은 몬스터를 잡는 일-를 방지하기 위해 레벨 차이에 따라 경험치에 페널티가 가해짐에도 그만큼 레벨 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의 숫자도, 경험치도 만족할 수준이다. 이 정도 레벨 업 속도라면 던전 못지않아.’ 아크는 생명의 숲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단 한 종류의 몬스터만 제외하면 … . (-‘가죽 채취’로 ‘크로메틴의 가죽’ 채취에 성공했습니다.) 꾸준한 노력 덕분에 얼마 전에 ‘가죽 채취’가 중급에 도달했다. 그러나 아직 레벨 250짜리 몬스터의 가죽 채취 성공률은 고작 5%도 되지 않았다. ‘신성한 나뭇가지’로 스킬 성공률을 올려도 고작 15%. 습관적으로 칼을 놀리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기대하지도 않았던 결과였다. 그러나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의 얼굴에 떠오른 건 기쁨보다는 다급함이었다. ‘헉, 넋 놓고 있다가 뺏기겠다!’ 아크는 얼른 가죽을 움켜쥐고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때, 숲에서 부스럭하며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식, 역시 근처에 숨어서 노리고 있었구나!’ 아크는 분노가 담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어두운 숲 속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뭔가가 멀어져 갔다. 바로 그놈이다! 용담호혈의 아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몬스터! ‘설마 저런 몬스터가 있을 줄이야.’ 아크도 놈의 실체를 본 것은 두세 번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부터 아크는 놈이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은 존재임을 직감했다. ‘키메라=밴디트 폭스’라는 이름의 몬스터였다. 말하자면 도둑여우라는 뜻인데…. 이놈들은 항상 ‘보호색’으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이템 냄새만 나도 귀신같이 나타나 집어삼키고 뺑소니쳤다. 어떨 때는 아크가 들고 있던 아이템을 가로챌 때도 있었다. 게다가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 ‘전력질주’로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일단 먹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주인 같은 놈들이 또 있다니 … .” 도둑여우의 아이템에 대한 집착은 데드릭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크가 전투가 끝나자마자 라둔에게 아이템을 챙기게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이템 수집 담당인 라둔은 특히 도둑여우를 싫어했다. ‘망할 놈들!’ 아크가 뿌득뿌득 이를 갈아붙였다. 어쨌든 조심만 하면 도둑여우에게 아이템을 빼앗길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명의 숲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아크의 식재료’였다. 생명의 숲은 이름처럼 수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정글이었다. 식물의 종류도 다양해 색다른 식재료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 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도둑 여우 때문이었다. 아크는 잔뜩 기대하며 생명의 숲을 뒤졌지만 아직까지 식재료는 고작 3~4개밖에 모으지 못했다. 식재료가 리젠될 때마다 도둑여우들이 먹어 치우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숲에 있는 도둑여우를 몽땅 때려잡을 수도 없고 … .’ 잡으려면 못 잡을 것도 없다. 그러나 은신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보호색’을 사용하는 데다 너무나 재빨리 한 마리를 잡는 데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한두 마리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이다. 도둑여우가 몇 천, 몇 만 마리가 살지 누가 알겠는가? ‘할 수 없어. 도둑여우보다 먼저 발견해 챙기는 수밖에.’ “자, 이제 그만 일어나죠. 식재료 채취 시간입니다.” 아크의 말에 북실이와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자, 레리어트 님은 저쪽으로, 북실이는 이쪽으로 훑으면서 전진한다.” “하지만 도둑여우가 다 챙겨서 하나 찾아내기도 하늘의 별 따기잖아요. 차라리 그럴 시간에 연구실이라는 거나 찾죠. 생명의 숲이 엄청나게 넓으니 다 돌아다니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 아니에요?” “모르는 소리.” 북실이의 불평에 아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구실은 놔둬도 도망가지 않지만 식재료를 놔두면 도둑 여우에게 뺏기잖아. 도둑여우들이 있으니까 더욱 열심히 식재료를 모아야지.” “하아… 이제 식재료도 충분하면서….” “지금까지는 다행히 식재료가 풍부했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생각해 봐. 우리가 굶주림에 지쳐 있을 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그래도 그냥 포기하자고 하겠어? 뭣보다 저놈들은 우리 것을 빼앗고 있다고. 분하잖아!” “우리게 아니라 아크 님 거죠….” 북실이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지만 아크가 한 번 노려보자 찔끔하며 숲을 뒤졌다. “어쨌든 이럴수록 더 지독하게 긁어모아야 합니다!” 아크는 그런 이유를 둘러대며 둘을 강제 노역에 동원시켰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소득도 없이 허리 통증만 유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꺄악, 뭐, 뭐야? 헉, 저리가!” 약간 떨어진 숲에서 작업하던 레리어트가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레리어트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대고 있었다. 그러자 뭔가가 머리를 감싸 쥔 채 비명을 지르며 숲에서 튀어나왔다. “히익, 그, 그만! 때리지 마!” ‘어라? 저 녀석은 혹시…?’ 레리어트에게 쫓겨 나온 사람(?)은 안면이 있었다. 마치 바퀴 벌레를 닮은 듯한 외모의 NPC. 바로 일전에 아크가 포식자의 배 속에서 구해 준 갈킨족 상인 레이드였다. 레리어트는 외모만 보고 바퀴 벌레형 몬스터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레리어트 님, 잠깐 기다리세요!” 아크는 레리어트의 앞을 가로막았다. 머리를 감싸고 도망 다니던 레이드도 그제야 아크를 알아봤는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너, 너는?” “아크입니다. 예전에 한 번 만났죠.” “오오오, 이런 곳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신의 도우심이다. 도와주게!” 레이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더 이상 공격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크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정작 공포에 질려 있는 사람은 레리어트였다. 하긴, 곱게만 자란 듯한 그녀는 평생 한 바퀴 벌레가 코앞에서 나타났으니 식겁할 만도 하리라.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크도 레이드를 처음 봤을 때는 꾹 밟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혼났다. 그러나 레이드는 더듬이를 흔들어 대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내가 아니야. 지금 내 가족들이 다 죽게 생겼단 말이야.” “네?가족이라니요?” 레이드가 울먹거리며 사정을 설명했다. “너도 알겠지만 우리는 행상인 부족이야. 성인이 되면 바로 행상을 시작해서 가족도 자주 만나지 못하지.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장소를 정해 놓고 가족이 모여 회포를 푸는 게 전통이야. 일전에 내가 근처에서 볼일이 있다고 한 것도 이번에 회합 장소를 이 숲으로 정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런데… 어제저녁에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가족들이 모두 시름시름 앓고 있는 거야.” “앓아요?” “그래, 흑, 모두 죽어 가고 있단 말이야. 급한 대로 내가 가지고 있던 약을 이것저것 먹여 봤지만 소용없었어. 분명 뭔가 정체 모를 병에 걸린 게 분명해. 아아, 생명력이 끈질기기로 소문난 갈킨족이 병이라니…. 그것서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거야. 혹시 그런 병을 치료할 방법이 없겠나? 중간계에는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 들었어. 너도 중간계에서 왔잖아.” “….” 아크는 고개를 돌려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병을 치료하는 기술이라면 ‘질병회복’ 따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침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한 레리어트는 ‘질병회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크 님. 정말 저런 바퀴 벌레를 도우러 갈 생각은 아니죠?” 물론 도우러 갈 생각이다. 왜냐고? 당연히 이득이 되니까. ‘레이드의 가족이라면 갈킨족 행상인이라는 말이잖아? 뭐, 거저 줘도 싫은 잡동사니가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어쩌면 전에 레이드에게 구했던 소환수 아이템 같은 보상으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유계에서 쓸 만한 아이템을 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계곡 마을에도 물물교환하는 상점이 두세 군데밖에 없었다. 물론 ‘움마의 수액’처럼 간간이 쓸 만한 아이템을 팔기는 했지만, 숫자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행상인이 하나도 아니고 떼로 몰려 있단다. 그런 백화점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아크는 잠시 머리를 굴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리어트 님, 레이드는 비록 바퀴 벌레를 닮았지만 분명히 유계에서 사는 주민입니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단지 지저분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병자들을 한 번 봐 주지도 않고 무시한다면 그게 인종차별과 뭐가 다릅니까?” 아크가 일장 연설을 하자 레이드가 와락 손을 잡았다. “고맙다, 네가 갈킨족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줄 몰랐어!” ‘이 망할 바퀴 벌레 자식, 왜 손을 잡고 지랄이야? 얼른 손부터 소독해야겠다.’ 아크라고 바퀴 벌레가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닌 척해야 한다. “하, 하지만….” “전 레리어트 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아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레이드까지 그런 눈빛- 그래 봤자 더욱 기분이 더러워질 뿐이지만- 을 보내자 그녀도 차마 거절할 수 가 없었다. “휴, 알았어요.” ‘후후후후, 퀘스트 하나 공짜로 먹었다!’ 아크는 내심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각종 회복 마법을 가진 이노센스 나이트가 나서 준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되리라. 파티원인 레리어트까지 허락하자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갈킨족의 재난 행상을 생업으로 삼는 레이드와 가족들은 한 달 만에 생명의 숲에서 회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이드가 도착했을 때, 그의 가족들은 원일 모를 질병에 걸려 앓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질병에 걸린 원인을 파악해 도와줘야 합니다. <난이도;c>) '역시 바퀴 벌레는 바퀴 벌레로군.‘ 잠시 후, 아크는 레이드의 안내로 회합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하고 새삼스럽게 깨달은 건, 두 발로 걸어 다니고 말을 한다고 해도 역시 바퀴 벌레는 바퀴 벌레라는 것이다. 생명의 숲은 이름 그대로 활력이 넘치는 숲이었다. 조금만 찾아보면 우거진 수풀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드는 따뜻한 양지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갈킨족은 좋은 곳 다 놔두고 음습하고 침침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썩어 가는 나무가 널려 있는 장소에 도착하자 사방에 바퀴 벌레들이 널려 있었다. 레이드의 말처럼 상황이 꽤나 심각해 보였다. “으으으, 추, 추워… 누가 좀….” “엄마, 엄마… 배가 아파요… 흑흑흑….” “허억, 허억…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아….” 여기저기서 바퀴 벌레들의 신음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어떤 바퀴 벌레는 팔다리에서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고, 어떤 바퀴 벌레는 온몸에 반점이 생긴 채 계속 구토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끔찍한 외모의 갈킨족이 떼거지로 병에 걸려 있는 장면에 레리어트는 하얗게 질려 아크의 등 뒤로 숨었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갈킨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외삼촌, 숙모, 이종사촌…!” 그러고 보니 이곳의 바퀴 벌레는 모두 레이드의 가족이라고 했다. 음, 역시 바퀴 벌레의 증식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여보, 아들들아!” 정신없이 족보를 따라 내려오던 레이드가 한 곳으로 달려 갔다. “아, 아빠… 아파요.” “오오오, 그래. 이제 걱정 마라. 이 아빠만 믿거라. 내가 도와줄 사람을 찾아왔단다. 저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널 낫게 해 줄 거다.”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레이드를 바라보았다. … 바퀴 벌레 주제에 처자식까지 있었던 거냐? 어쨌든 레이드의 말에 여자… 인 것 같은 바퀴 벌레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부, 부탁이에요… 저는 어찌 돼도 좋으니 이 아이만이라도….” “무슨 소리얏! 포기하면 안 돼!” 레이드가 펄쩍 뛰며 와락 그녀(?)를 부둥켜 안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낼 거야. 그러니 포기하면 안 돼!” “여보….” 으음,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다. 바퀴 벌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현실에서는 매일 바퀴 벌레와 전투를 치르면서 유계에 와서 바퀴 벌레의 증식을 도와줘야 하다니…. 뭐, 어쨌든 금방 해결될 문제지만….’ 아크는 퀘스트를 위해서라면 바퀴 벌레에게도 친절한 사람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은 곧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오, 아크, 아크! 부탁해.” 레이트가 발발대며 아크에게 매달렸다. “네, 이 일은 제 사명입니다.” 그렇게 아크는 잘난 듯이 지껄여 대고는 슬쩍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사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크가 가진 유일한 치유 계통의 스킬은 간병. 그러나 간병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지만 병을 치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반면 이노센트 나이트의 ‘질병치료’는 문자 그대로 병을 치료하는 마법이었다. 레리어트도 알고 있기에 주저하며 바퀴 벌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차마 손을 대기가 두려운 듯 약간 떨어져서 마법을 펼쳤다. “성스러운 신이시여, 이들의 몸에 깃든 병마를 거둬 주십시오. 질병치료!” 그러나 바퀴 벌레의 몸이 하얀 빛 무리에 휘감겼다. ‘후후후, 끝났군. 이제 보상을 챙기면 되는 건가?’ 아크가 희희낙락하고 있을 때였다. 기대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레이드가 더듬이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뭐야? 아무런 변화가 없잖아.” “네, 당연히 그 정도 병은 한 방에… 네? 뭐라고요?” “눈이 있으면 보라고.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단 말이야.” 레이트의 말처럼 여자 바퀴 벌레의 증상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온몸에 돋아난 반점은 그대로였고, 파랗게 변한 생명력 역시 회복되지 않았다. 레이어트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저주인가? 저주해제!”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질병치료, 저주해제, 심지어 각종 버프까지 사용해 봤지만 상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사이 증상이 더욱 악화된 몇몇 환자들은 당장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다급해진 아크가 ‘간병’을 사용했다. “기운을 내십시오. 당신들은 유계를 돌아다니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낸 갈킨족이 아닙니까? 고작 이런 곳에서 질병 따위에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간병’이 효과가 있었다. 약간이지만 바퀴 벌레의 안색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펼치자 일단 바닥까지 내려갔던 생명력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간병’이나 회복 마법으로는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대체 뭐야? 병에 걸렸는데, 질병치료 스킬이 안 먹히면 대체 어쩌라는 거야?’ 일단 아크와 레리어트는 야영지를 돌아다니며 간병과 회복 마법으로 바퀴 벌레들의 생명력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바퀴 벌레의 증식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골치가 아팠다. 워낙 숫자가 많아 모든 바퀴벌레에게 간병과 회복을 해주는 데만 1시간이나 걸렸다. 어쨌든 그렇게 일단 위기는 넘겼다. 앞으로 아크가 간병만 적절히 써 준다면 바퀴 벌레들이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 역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 이제 어쩌지?” 레이트가 불안한 눈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레리어트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불어 냈다. “어쩌면 제 스킬이 초급이라서 그런지도 몰라요. ‘질병치료’나 ‘저주해제’는 자주 쓰이는 게 아니라서 숙련도를 올려놓지 않았거든요. 이제 남은 숙련도 보너스도 없고….” 레이트의 시선이 아크에게 옮겨졌다. 아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간병을 사용하면 병이 진행되는 건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바퀴 벌레들의 생명을 연장시키자고 이곳에서 살림을 차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게다가 레리어트가 ‘질병치료’를 중급으로 올릴 때까지 버틴다고 해도, 그만한 시간을 투자할 만큼 큰 대가를 기대할 수 있는 퀘스트도 아니었다. ‘이번 퀘스트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아, 아, 아크! 아, 안 되네. 부탁이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분명 무슨 방법이 있을 거야! 알잖아? 다른 사람을 찾을 시간도 없어. 네가 포기하면 내 가족들은 죽는 수밖에 없단 말이야. 뭐라도 좋아. 뭐든 할 테니 제발 포기하지만 말아 줘!” 레이트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정말 해 볼 건 다 해 봤다. 퀘스트 보상이 걸려 있으니 아크도 가능하면 해결하고 싶다. 그래서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간병까지 쓴 게 아닌가? 그런데도 방법이 없는 걸 대체 어쩌라는 건가? 옆에서 그런 과정을 봤으니 알 만한 데도 억지를 써 대며 매달리자 울컥 짜증이 일었다. “그만해요. 이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였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지? 지금 이 느낌은…?’ 아크는 이해할 수 없는 감각에 당혹감을 느꼈다. 대체 왜 갑자기 이런 소름 끼치는 느낌이 엄습해 오는 걸까?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아크는 문득 레이드를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기억났다, 왜 갑자기 그런 불쾌한 감정이 들었는지!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습니다. -힘들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벼락 소리와 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다, 아크는 방금 자신이 한 것과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의사들이 했던 말이다. 그랬다.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했고, 조금도 안타깝지 않은 얼굴로 아크를 위로했다. 돈 받은 만큼은 일했으니 그다음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듯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지 관심 없다는 듯이 너무나 간단하게 죽음을 이야기했다. 과연 의사들이 그때 아크가 느꼈던 절망감을 짐작이나 하고 있었을까? 그때의 절망감은 아직도 섬뜩한 칼날처럼 심장 언저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심장을 긁어 대며 악몽을 헤매게 만들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잘 회복하고 있어 지금은 어느 정도 잊고 있었지만,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병원에 불이라고 싸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의사와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지껄이고 있다. 갈킨족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그저 퀘스트를 해결하지 못해 아쉽다는 감정만 느끼며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 둔 레이드 앞에서 잘났다는 듯이 말이다. ‘나라는 놈은….’ 아크는 그런 자신에게 환멸감이 들었다. 이곳이 게임 속인지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내가 감히… 감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문득 레리어트가 울며불며 매달리는 레이드에게 타이르듯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아크 님도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안 되는 건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아크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 다하지 않았습니다.” “네? 아크 님?” “저는 …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그게 무슨…?” 아크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레이드의 손을 잡았다. “맞아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레이드. 나는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이들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확답을 해 줄 수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치료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약속드리죠.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노력해 보죠.” 아아, 이 말이다! 그때, 그 중환자실 앞에서 아크도 그 말을 듣고 싶었다. 위험하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 아크도 눈이 있으니 굳이 그런 말을 해 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중환자실 앞에서 밤새 의사를 기다렸던 게 아니란 말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진심 어린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았다. 소문난 명의가 아니라도, 집도의가 아니라도, 그저 실습 나온 레지던트라도 좋았다. 누구라도 어머니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 주겠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그랬다면 … 아크도 지금처럼 병원을 돈만 잡아먹는 하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아, 아크 님 하지만….” 아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레리어트 님이 불편해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이들을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설사 이들의 시체를 모두 제 손으로 묻는 한이 있어도 말입니다.” 아크의 단호한 태도에 레리어트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리며 끄덕였다. “제가… 뭘 하면 되죠?” “소용없는 줄은 알지만 계속해서 ‘질병치료’ 마법을 걸어 주십시오. 만약 정말 ‘질병치료’ 마법의 등급이 낮아서 효과가 없다면 그렇게라도 숙련도를 올려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 간병’을 하면서 나름대로 다른 방향으로 조사해 보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병과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8 명의 아크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흔해 빠진 CF 카피 문구지만, 확실히 진리였다. 마음을 바꿔 먹자 이제 바퀴 벌레들이 그저 도움을 바라는 병자들로 보였다. 마음을 한 번 바꾼 것만으로 외모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인종차별, 종교전쟁, 심지어 근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왕따 같은 것들은 나와 그들이 달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와 그들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다.… 으음, 살짝 오버했나? 어쨌든 아크는 더 이상 갈킨족의 손발을 만지는 것이 꺼림칙하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에 대한 생각도 잊어버렸다. 아크가 예전에 의사에게 바랐듯이, 환자만 보았다. 그러자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야영지에 모여 있는 갈킨족은 대략 50여 명. 그런데 이들이 호소하는 증세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이곳에서 뭔가 질병에 걸렸다면 증세가 똑같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갈킨족이 겪고 있는 증세는 열 가지가 넘어. 그것도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모두 복합적이다. 어쩐면 이건 단순한 질병이 아닐지도 몰라.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아크는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해석해 보기로 했다.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갈킨족이 증세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숲에 들어온 직후, 그렇다면 숲에서 뭔가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행동이 질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환자들에게 숲에 들어온 뒤의 상황을 캐물었다. “숲에… 들어온 뒤… 별로 평소와 다른 것은… 헉헉헉.” “뭐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이니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냥… 언제나처럼… 간만에 모인 기념으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고… 춤을 추며 논 것밖에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하나둘씩 앓아눕기 시작….”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먹어?’ 아크는 혹시나 싶어 다시 물었다. “ 평소와 다른 식재료를 사용하지는 않았습니까?” “아니…. 가지고 있던 식재료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에서 구한 것을 몇 가지 쓰기는 했지만 … 종류는 항상 먹어 왔던 것이네….” ‘잘못 짚었나?’ 아크는 이들이 독성을 가진 식재료를 먹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들은 행상인, 여행이 직업인 종족이니 당연히 식재료에 대한 지식도 제법 있으리라. 처음 오는 숲에서 정체불명의 식재료를 무턱대고 먹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당장 짚이는 건 그것뿐인데, 속는 셈치고 한번 알아보자.’ “재료를 구한 곳이 어디입니까?” “이 근처에서는 이상하게 식재료를 제대로 구할 수 없어서… 멀리까지 나갔지… 다행히 여기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 몇 가지를 발견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과 섞어 먹었네…. 저기 보이는 큰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나올 거야….” “레리어트 님,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아크는 레리어트와 북실이에게 환자를 맡겨 놓고 강가를 찾아 나섰다. “데드릭, 저 큰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가서 강을 찾아봐.” “찾았다, 저기 있어.” 잠시 후, 정찰을 나간 데드릭이 돌아와 강가로 안내했다. 강은 유계에서 흔히 보던 무지개 색이었다. 그러나 역시 강가 근처에서 식재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후각이 예민한 도둑여우들이 식재료가 자라날 때마다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는 인내심을 가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겨우 하나를 발견했다. “어디 한번 볼까? 식재료 감별!” (아사타로드 강가에서 자생하는 식용 풀. 뿌리와 잎을 모두 먹을 수 있으며 향기가 좋아 향신료로도 사용됩니다.) “역시 괜한 생각이었나?”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 때였다. 경쾌한 음향 효과와 함께 또다시 정보창이 올라왔다. (‘식재료 감별’ 상급 효과로 추가 정보를 파악했습니다. 현재 소지한 아사타로드는 오염된 강에서 자란 탓에 기형적인 효능을 가지게 됐습니다. 저항력이 없는 사람이 섭취할 경우, 치명적인 두통과 발열 증상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단, 이 아사타로드는 독성과 함께 약성도 띠고 있습니다. 처리 방법에 따라 이로 인해 생긴 증상을 치료하는 약성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식재료 감별이 상급이 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추가 효과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뭐야, 오염된 강?” 정보창을 읽은 아크는 강물을 떠서 다시 식재료 감별을 시도했다. (오염된 강물 생명의 숲을 흐르는 평범한 강물, 음식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상급 추가 정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정체불명의 화학 약 품이 뒤섞여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종류의 화학 약 품이 뒤섞여 섭취했을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 다, 이 정도의 오염이라면 주변의 동식물에게도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 다.) “역시 갈킨족이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여기까지 조사한 아크는 자신의 추리가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갈킨족의 복합적인 증상에 대한 원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강물에는 수많은 약품 같은 것이 녹아 있다. 몸에 좋은 약품이나 나쁜 약품까지. 그리고 강 주변의 식물들은 그런 약품을 빨아들이고 성장해 기형적인 효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아마도 갈킨족이 아크처럼 상급 ‘식재료 감별’ 을 익히고 있었다면 이런 위험천만한 식재료는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평소에 봐 오던 식재료라 별생각 없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각자 다른 증상을 호소하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갈킨족의 병명은 일종의 식중독과 약물 중독이다. 그러니 레리어트의 ‘질병치료’나 , 아크의‘ 간병’이 효과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바퀴 벌레가 식중독이라니….’ 벌레에게조차 환경오염은 심각한 사회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원인을 찾았다면 해결 방법도 있을 거야.’ 아크는 ‘식재료 감별’로 알아낸 정보를 떠올렸다. 강에는 독성이 강한 약품만 녹아 있는 게 아니다. 좋은 효능의 약품도 녹아 있다. 때문에 주변의 식재료 역시 독성과 좋은 효능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다. 독이 되는 것은 약도 될 수 있는 법. 그러니 처리 방법에 따라 같은 식재료에서 독성을 중화시킬 수 있는 약성을 추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음식으로 생긴 병은 음식으로 고치라는 말인가?’ 아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강가를 바라보았다. 일단 방법은 알아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실천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 먼저 어떤 갈킨족이 어떤 식재료를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명확한 증상과 처치 방법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다행히 갈킨족의 의식이 분명하니 일단 문진으로 알아보면 되고, 나머지는 어떻게 약을 만들어 내느냐는 건데….’ 정보창에는 식재료를 처리하는 방법에 따라 약성을 추출할 수도 있다고 적혀 있다. 말하자면 물에 불리거나, 말리거나, 튀기거나, 찌거나… 그런 수많은 처리 방법 중에 약성을 추출할 방법이 있다는 뜻. 그걸 하나하나 시험해 보고 조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차후 문제. ‘당장 시급한 문제는 강가에서 자라는 식재료를 종류별로, 적어도 20~30 개씩은 모아야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크는 암담한 눈으로 강 주변을 바라보았다. 숲을 가로지르는 강은 상당히 큰 규모다. 그러나 근처를 아무리 뒤져 봐도 식재료는 보이지 않았다. 도둑여우가 몽땅 먹어 치운 덕분이다. 아크 역시 10분을 헤맨 끝에 겨우 하나를 구할 정도인데 수십 종류를 20~30개씩 모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갈킨족에게 ’간병‘을 써 줘야 하니 계속 자리를 비우고 식재료만 찾아다닐 수는 없어. 레리어트 님과 북실이는 ’채취‘ 스킬이 초급이라 어렵게 식재료를 찾아내도 못쓰게 될 확률이 많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이내 뭔가를 떠올렸다. ‘그렇군. 조금 부담되지만 그 스킬이라면 가능해.’ “데드릭, 하켄. 그쪽에서 몰아!” “알았다, 우어어어!” 딱딱딱딱! 데드릭과 하겐이 고함을 지르며 숲을 들쑤셔 댔다. “레리어트 님, 북실이는 거기서부터 몰아오세요!” 반대편에서도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수풀을 헤집었다. 아크는 그 중심에서 잠시 눈을 감고 청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기를 잠시, 문득 근처에서 사박사박하며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아크는 번쩍 눈을 뜨며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근처에 있다, 심안!” 그러자 손가락에 붙어 있던 눈알반지가 핑그르르 돌아가며 초음파를 뿜어냈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공간에 흐릿한 영상이 맺혔다. ‘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있던 도둑여우였다. 카멜레온처럼 색이 변하는 털을 가진 도둑여우는 모두 세 마리, 아크의 시선이 닿자 도둑여우들은 화들짝 놀라며 바람처럼 도망쳤다. 도둑여우는 누군가가 다가가면 무조건 엄청난 속도로 뺑소니친다. 때문에 아크도 도둑여우에게 골치를 썩었던 것. ‘후후후, 네까짓 것들이 그래 봐야 동물이지.’ 아크가 씨익 웃었을 때였다. 커헝-!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도둑여우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도둑여우들이 몸에 달라붙은 넝쿨을 떼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나딩카의 열매! 아크는 미리 놈들이 도망갈 길목에 지뢰처럼 ‘나딩카의 열매’를 깔아 둔 것이다. 그리고 데드릭, 라자크, 레리어트, 북실이를 동원해 주변의 도둑여우를 지뢰밭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덕분에 엄청난 속도로 항상 아크를 따돌리던 도둑여우들의 이동속도가 50%나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빠른 속도였지만, 따라잡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됐다, 전력질주!” 아크는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들었다. “귀기개방, 엘리멘탈 소드 화 속성, 섬아!” 귀기와 화염이 덧씌워진 검이 도둑여우를 관통했다. 도둑여우의 레벨은 고작 100. 과분하기까지 한 스킬 난사였다. 그러나 ‘나딩카의 열매’ 지속 시간은 고작 1분, 그사이에 효과가 풀려 도망쳐 버리면 십중팔구 놓쳐 버린다. 때문에 아크는 공격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섬아를 난사했다. “휴, 막상 작정하고 잡으니 그리 어렵지는 않군.” 다행히 방어력이 낮은 도둑여우는 두 방으로 완전히 정리되었다. 쌕쌕,쌕쌕쌕쌕! 도둑여우들이 시체를 변해 버리자 라둔이 펄쩍 뛰어내려 꽉꽉 물어 댔다. 아크처럼 라둔 역시 도둑여우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던 모양이다. “라둔, 그만해. 자, 이제 시체를 옮기자. 한두 마리씩 들어.” 아크는 도둑여우 시체를 들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야영지에는 이미 도둑여우의 시체 세 구가 더 있었다. “모두 합해서 여섯 마리.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너무 많아도 곤란하지.” 아크는 도둑여우의 시체를 한 곳에 모아 놓고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자, 아크가 왜 뜬금없이 도둑여우를 잡았느나…. “라자크, 네가 진화한 효과를 보여 줄 차례다. 죽음의 방정식!” 그렇다, 데이모스가 라자크로 진화하며 새로 익힌 스킬, 죽음의 방정식! 그러나 아크는 이 스킬을 지금까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굳이 쓸 이유도 없었고, 설사 쓸 일이 있다고 해도 어렵게 모은 라자크의 뼈를 소모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번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의 손해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라자크는 역시 아까운지 한숨을 푹 불어 내며 갈비뼈 6개를 뜯어냈다. 뒤이어 갈비뼈가 가루처럼 부서지며 도둑여우에게 뿌리쳤다. (-하겐이 갈비뼈를 제물로 사용해 ‘죽음의 방정식’을 사용했습니다. <체력-2, 방어력-1> ‘죽음의 방정식’으로 인해 ‘키메라=밴디드 폭스 A,B,C,D,E,F'가 부활했습니다. ‘키메라=밴디드 폭스’는 주술이 유지되는 동안 주술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할 것입니다. 단, 주술자가 현재 위치에서 움직여 정신 집중에 실패하거나, 사망하면 주술은 해제됩니다.) 스킬이 발동하자 도둑여우들이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일종의 좀비가 되어 부활한 탓에 눈이 썩은 동태 눈알 같았다. 생명력이나 능력치는 50%,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좋아, 이제부터 너희들을 싹쓸이 부대로 명명한다. 너희들은 강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식재료는 몽땅 긁어모으도록. 하지만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모은 식재료는 모두 나에게 가져오도록,실시!” 컹컹컹컹! 좀비 도둑여우 부대가 척 경례를 붙이고 강가로 뛰어갔다. 아크가 도둑여우를 사냥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도둑여우는 능력치가 50%로 부활해도 아크가 ‘전력질주’를 사용한 것과 맞먹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변의 식재료를 찾아내는 예민한 후각과 채취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즉, 도둑여우를 한 마리 부활시캐며 아크가 ‘전력질주’로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긁어모으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역시 해답은 항상 문제 속에 있는 것이다. 뭐, 덕분에 갈비뼈를 6개나 뽑아낸 라자크는 가슴 한복판이 휑해졌지만…. 아마도 그걸 다시 복구하려면 며칠을 걸리리라. 어쨌든 여섯 마리의 도둑여우가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긁어모은다. 강가의 식재료를 싹쓸이하는 것쯤은 일고 아니리라. “됐어,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딱딱… 딱딱딱…. 갈비뼈를 빼앗긴 하켄이 야영지 구석에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불쌍하게 이를 마주쳤다. 컹컹컹컹! 또다시 도둑여우 한 마리가 식재료 하나를 물고 돌아왔다. 그냥 집어 먹는 게 아니라, 가지고 와야 하니 한 번에 하나씩밖에 물고 오지 못했다. 게다가 가끔은 상처를 입고 돌아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다른 도둑여우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간혹 공격을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일단 부활한 도둑여우는 라자크에게 절대 충성, 몰매를 받아 쩔뚝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식재료를 날라 왔다. ‘흠, 남아 있는 식재료 숫자가 워낙 적은 데다 하나씩만 물고 오니 효율이 그리 좋지는 않군. 그나저나 막상 저렇게 상처까지 입은 모습을 보니 조금 미안한걸.’ 쌕쌕? 쌕쌕쌕쌕! 그러나 라둔은 싸늘한 눈초리로 쏘아보다가 도둑여우가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을 확인하면 곧바로 달려들어 꽉꽉 물어 댔다. 지금까지 아크의 아이템을 훔쳐 먹었으니 당연한 처벌이라도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한편, 북실이는 그 장면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무섭다, 저 사람은 정말 착취의 신이다. 우리를 착취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시체까지 이용해 식재료를 긁어모으다니… . 자칫하면 나도 도둑여우 꼴이 날 거야. 말 안 듣는다고 죽여 놓고 식재료를 모으게 할지도 몰라. 이 사람에게서는 죽어서도 도망갈 수 없어.’ 이리하여 이 가련한 돼지 상인에게 또다시 새로운 공포를 심어 준 아크였다. 어쨌든 3~4 시간이 지나자 제법 많은 종류의 식재료가 모였다. “레리어트 님, 환자들의 증세를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주세요. 그리고 북실이는 메모장을 들고 내가 부르는 말을 그대로 다 적어.” “네? 네!” 북실이가 바짝 군기가 든 얼굴로 메모장을 들고 다가왔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도둑여우가 식재료를 모아 오는 동안, 미리 충분한 휴식을 취해 둔 아크는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작업은 식재료를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식재료 감별!” (가란타트라 강물 속에서 자라는 물이끼. 수프에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납니다. *상급 추가 정보: 오염된 물속에서 자라 치명적인 독성을 띠게 됐습니다. 저항력이 없는 사람이 먹으면 강한 발작과 함께 온몸에 부스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방법으로 정제하면 진정과 소염 효과가 있는 약성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짐작한 대로 강가의 모든 식재료는 오염되어 있었다. 그런 식재료를 이것저것 짬봉해서 먹었으니 아무리 바퀴벌레라도 식중독에 걸릴 수밖에 없었으리라. 이제 아크가 알아내야 하는 것은 대체 누가 어떤 식재료를 섞어 먹었느냐. ‘그건 레리어트 님이 조사한 환자의 증상과 식재료의 독성 효과와 비교하면 대략 해답이 나올 거야. 문제는 그 식재료에서 어떻게 약성을 추출해 내느냐는 거다.’ 아크는 갈킨족의 짐에서 각종 기구를 꺼내 늘어놓았다. 그리고 식재료를 하나하나 선별해서 몇 개는 구워서 빻아 보기도 하고, 또 몇 개는 맑은 물에 담가 보기도 하면서 다시 ‘식재료 감별’로 효과가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북실이에게 꼼꼼히 기록하도록 지시했다. 수백 가지 식재료를 갖은 방법으로 시험하며 기록해 나가는 작업은 그야말로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내가 포기하면 50명의 갈킨족은 모두 죽는다!’ 마치 약의학을 연구하는 학자처럼 사명감마저 느꼈다. 그렇게 무려 8시간이 지났을 때, 아크는 다름대로 식재료의 효능 변화에 어떤 공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대락적인 흐름을 알게 된 것이다. ‘음… 대부분의 식재료는 맑은 물에 30분 이상 담가 놓거나, 삶으면 독성이 많이 중화된다. 반면 찌거나 구우면 오히려 독성이 강해져, 다시 말해 삶으면 해당 효능이 약해지고 구우면 강해진다는 뜻이다. 그럼 한 번 삶은 뒤에 구우면 약성을 강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크 역시 이런 식재료도, 이런 작업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식재료를 넣고 조리는 대부분 스킬이 자동으로 처리하도록 놔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방식으로 조리할 수가 없었다. 하나하나, 식재료 손질부터 조리과정까지 일일이 직접 손을 사용해 확인해 나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식재료를 1차 처리만 하면 결과물 역시 식재료라는 것이다. 만약 이런 것까지 요리로 분류되면, 서바이벌 요리의 특성상 먹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다. 결국 아크 역시 독에 찌든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어쨌든 아크는 식음을 전페하고 식재료 연구에 집중했다. 그러나 다른 일에 완전히 손은 놓을 수도 없었다. “아크 님, 회진 시간이에요.” 어느새 백의의 천사가 돼 버린 레리어트가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연구 도중에도 갈킨족은 여전히 병마에 시달리며 생명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간간이 연구를 중단하고 회진을 돌며 ‘ 간병’을 사용해 주어야 했다. “연구에 진척이 있으니 절 믿고 용기를 내십시오. 약만 만들어지면 예전보다 건강해져 배낭을 짊어지고 행상을 다닐 수 있게 될 겁니다.” 덕분에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갈킨족은 매시간 야위어 갔다. 그러나 아크의 진심을 알아챈 갈킨족은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야아, 고맙네.” “아크 님만 믿겠습니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여한이 없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크는 마음이 아릿했다. 그들의 모습이 마치 의사의 조금만 친절에도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어머니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쉬고 있을 여유가 없어. 내가 쉬는 만큼 환자가 고통 받는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약성 추출 방법을 알아내야 해.’ 아크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집중해 식재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사이에 레리어트가 한 번 접속 종료를 하고 다시 들어왔다. 꼬박 하루가 지난 모양이다. 그동안 아크는 게임에서는 물론, 현실에서도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중간 중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현기증이 일어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텼다. 보다 못한 레리어트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좀 쉬세요.” “아니, 전 괜찮아요. 이제 작업도 거의 끝나 가요. 조금만 더 하면….” 아크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고 오직 작업에만 열중했다. 레리어트는 복잡한 눈길로 그런 아크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 일주일이 넘도록 함께 여행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 아크는 여전히 모를 사람이었다. 유계에서 처음 아크를 만났을 때는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그리고 아크가 구하러 달려와 내뱉은 대사- 촬영용 멘트였다- 에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여자가 모든 남자와 로망이라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와 주는 남자는 여자의 로망인 것이다. 그게 비록 게임 속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감동도 잠시, 아크는 곧 묘한 일면을 보였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들처럼 무작정 그녀에게 잘해 주기만 했다. 그런데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 뒤로 그런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게다가 그녀와 북실이에게 ‘채취’를 가르쳐 착취까지 할 때는 요즘 말로 정말 확 깼다. 물론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나쁘기만 보이지는 않았다. 이미 말했다시피 그녀는 과잉 친절만 받아 왔다. 그러나 그게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여자이기에, 미인이기에 받는 친절일 뿐이다. 비록 그녀를 착취하지만 적어도 아크에게는 그런 의도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레리어트는 오히려 지금이 더 아크를 대하기 편했다. 아니, 자신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쳐 주는 모습에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건 막연하게 품어 왔던 호감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런 감정이 요 하루 사이에 또다시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그것도 NPC에 불과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이들의 생김새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도와주기도 싫었는데… 아크 님은 달라. 처음에는 퀘스트 보상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오랫동안 안내 데스크에서 일해 온 덕분에 사람의 진심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수고한다고 해도 정말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인지는, 눈빛이나 목소리만 들어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아크는 정말 진심으로 갈킨족을 돕고 싶어 하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보상 때문에 라자크의 스탯까지 투자할 리가 없는 것이다. 어쨌든 눈앞에서 땀을 흘리는 사내는 지금까지 그녀와 북실이를 착취하던 아크가 아니었다. ‘도대체 모르겠어. 대체 어떤 게 아크 님의 진짜 모습이지? 내게 잘 대해 줄 때? 전투 기술을 가르쳐 줄 때? 우리를 착취할 때? 아니면… 밤을 새우며 갈킨족을 돕는 지금?’ 레리어트의 머릿속에서 아크는 점차 이해 불능의 남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쨌든 아크 님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다정한 사람이야.’ 그렇게 긴 고민 끝에 나온 해답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크의 등을 힐끔거리며 빙긋 웃었다. ‘그래, 솔직히 다른 사람들처럼 여자 앞에서 무조건 착한 척하는 것보다는 훨씬 솔직하고 좋잖아. 게다가 작은 단서만으로 이렇게까지 일을 진척시키다니… 머리도 상당히 좋을 거야. 혹시 정말 의대를 나오거나 한 건 아닐까? 환자를 대하는 것도 능숙하고.’ 그건 정말 아니다 싶지만… 어쨌든 그녀는 또다시 오해를 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크처럼 가난에 두들겨 맞고, 굶주림에 담금질되며 단련된 체력이 없었으므로 잠을 자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 접속했다. 꼬박 32시간이 지난 것이다. 북실이는 마법 영사기를 안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는 여전히 식재료를 찧고 빻고 하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부러 일찍 일어나 접속했지만, 레리어트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므로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다크울프로 변한 아크가 꼬리를 흔들며 작업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코믹스럽기도 했다. “흠, 원래 얼굴이면 더 좋았을 텐데… .”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이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배시시 웃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크하하하! 됐다, 됐다! 이제 모든 식재료의 정보를 알아냈다. 아크가 갑자기 광소를 터뜨리며 펄쩍펄쩍 뛰었다. 덕분에 북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마법 영사기를 집어 들었다. “헉, 뭐, 뭐야!?” “아크 님, 이제 다 끝난 거예요?” “네, 끝났어요! 이제 여기 있는 모든 식재료의 특성과 약성 추출 공식을 완벽하게 파악했어요! 이제 남은 건 환자에 맞춰 음식을 조절하며 먹이는 일뿐이에요.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니 제가 처리해 놓은 식재료 좀 들고 따라오세요.” “…아크 님, 눈 밑이 까메요.” 꼬박 32시간을 버틴 아크는 도둑여우와 같은 안색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잠만 못 잤지만 갈킨족은 그동안 고통을 참으며 내 연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들을 치료한 뒤에 얼마든지 잘 수 있으니 치료가 먼저입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크는 의사가 되면 이런 대사를 꼭 해 보고 싶었다. “좋습니다, 그 말 멋졌어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북실이가 몰카를 돌리며- 레리어트에게는 아직 촬영에 대한 것은 비밀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곧 한 편의 휴먼 의학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아크는 진중한 표정으로 환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 다시 증상을 빠짐없이 얘기해 보세요.”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프고… 온몸에 종기가 나서 가려워 죽겠습니다. …. 물만 마셔도 구토가 나서 음식도 못 삼키겠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두통에 효과가 있는 ‘말려서 가루를 낸 라로나 씨앗’, 종기에 효과에 있는 ‘한 번 쪄서 독성을 빼낸 우라나 뿌리’ . 음식을 못 먹는 건 위장이 상해서 그런 것이니 맑은 물에 24시간 넣어 놨던 ‘갈파나 잎을 사용하면’ 효험이 있을 겁니다.” 아크는 마치 동의보감을 읽듯이 중얼거리며 냄비에 식재료를 넣었다. 그리고 북실이가 멀리서 공수해 온 맑은 샘물을 넣고 서바이벌 요리를 시전하자 곧 필요한 요리가 만들어졌다. 약성만을 추출해서 그런지 묘하게 한약 냄새가 흘러나왔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렇게 약성만 추출한 요리는 갈킨족의 병에만 효과가 있기에 100%안전해도 소환수의 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아크는 건더기를 버리고 맑은 수프만 걸러 내 환자에게 먹였다. “오오오, 몸이… 몸이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일단 몇 가지 증세는 사라질 겁니다. 그 뒤에 증세를 살피며 적당히 약을 쓰면 완전히 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자, 다음 분은 증세가 어떻게 되시죠?” 아크는 일일이 찾아다니며 증세를 듣고 즉석에서 약을 조제해 주었다. 한 바퀴 돌자 환자들이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그 뒤에 아크는 다시 한 번 남은 증상을 듣고 약을 만들어 먹이자 갈킨족의 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오오, 이, 이럴 수가…!” “그렇게 많은 증상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다니!” “솔직히 이제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레이드의 처자식들도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며칠을 병마에서 허덕이던 갈킨족의 시선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이게 모두 아크 님 덕분입니다!” “아크 님이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명의이십니다!” “저는 그저 식재료를 적당히 조합했을 뿐입니다.” 아크가 짐짓 겸손을 떨자 갈킨족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우리도 장님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아크 님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다 봤습니다. 며칠 밤을 새우며 손가락이 부어터지도롤 그 많은 재료를 일일이 손질하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크 님의 그런 모습을 봤기에 우리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겁니다. 정말 아크 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흑… 감사합니다!” 50명의 갈킨족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졸지에 야영지는 감동의 도가니탕이 되어 펄펄 끓어 댔다. “크흑, 이건 정말 휴먼 다큐멘터리야!” 마법 영사기를 돌리는 북실이도 눈물을 콸콸 흘려 댔다. “헹, 바보 같은 주인 같으니, 고작 이런 바퀴 벌레들을 살리려고 그동안 그렇게… 킁.” 데드릭은 밉살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슬쩍 눈가를 훔쳤다. 그때,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아크의 눈앞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식재료에 대한 깊은 고찰로 ‘서바이벌 요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최상급, 패시브):당신은 식재료에 대한 깊은 고찰로 요리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식재료의 숨겨진 효능을 100% 이끌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비법을 통해 식재료에 담긴 효능을 일정 확률로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식재료의 활용법에 더욱 능숙해져 모든 요리의 유통기한과 부가 효과, 페널티가 대폭 상승합니다.) 사실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는 이미 오래전에 499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뒤로 아무리 요리를 만들어도 500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등급이 최상급이 되기 위해서는 뭔가 새로운 깨달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보너스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보창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정보창이 올라왔다. (‘서바이벌 요리’ 가 최상급이 되어 ‘식의를 부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식의> 최고 등급의 요리사. 먼 이방인에서는 예로부터 자연을 이용한 의술이 발달했습니다. 그곳에서 비전되는 말 가운데 ‘의식동원’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식과 병을 치료하는 약재는 그 근본이 같다는 말입니다. 그거 길거리에 놓인 잡초 하나라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약재료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바이벌 요리는 그런 이방의 지식이 전승되어 발전한 기술입니다. 이제 당신은 서바이벌 요리의 달인이 되어 의식동원을 실천할 수 있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식의’ 가 되면 전용 스킬을 익힐 수 있으며 서바이벌 요리의 성공도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부직업으로 ‘식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크는 멀뚱멀뚱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부직업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이전에 제안받았던 ‘악실리온의 검투사’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시합에 참전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거절했지만, 이런 직업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서바이벌 요리’의 성공도에 보너스까지 적용된다지 않는가? “부직업 ‘식의’ 선택.” (부직업으로 ‘식의’ 를 선택하셨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의 마스터가 될 자격이 생겼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와 채취, 식재료 감별의 숙련도에 50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최상의 요리를 만들 확률이 20% 상승했습니다. *부직업 전용 스킬 ‘한약 달이기’를 습득했습니다. ) (한약 달이기(초급, 패시브): ‘식의’는 식재료를 감별할 경우, 몇몇 상급 식재료에 한하여 음식으로 만들었을 때의 효과와 별도로 약성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약성 정보는 식재료를 한약으로 달였을 때 부가되는 특수 효 능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한약은 각종 치료 효과와 자양 강장 효과를 발휘하며 빈 병에 담아 넣으면 일반 포션과 동 일 하게 취급됩니다,. 한약은 전투중에도 사용할 수 있으며, 유통 기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헉, 이게 뭐야?’ 식재료를 달여 한약을 만들 수 있는 스킬이라니? 게다가 일반 포션처럼 취급된다면 전투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즉, 간단하게 말하면 일반 연금술처럼 포션을 만들 수 있는 스킬이라는 말이다. 그것도 비싼 마법 재료가 아닌 일반 식재료를 이용해서 말이다. 물론 상급 식재료만 한약재로 사용할 수 있고, 아직 초급이라 쓸 만한 포션은 만들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냥 음식을 만들어 먹는 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가 주목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지금처럼 팔지도 못하는 식재료가 남아돌 때 일부러 먹어 없애지 않아도 된다!’ 한약으로 만들어 놨다가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에 터져 나왔다. 역시 뉴 월드다! 노력하면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그렇기에 며칠 밤을 새우면서도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긴장이 풀리며 핑 도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갈킨족과 레리어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레리어트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말했다. “됐어요, 이제 됐어요. 그만 쉬세요.” 그러나 아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네? 이제 환자들은 다 치료됐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아크는 힘겨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레이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며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 보상 내놔.” 한순간에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얼어붙어 버린 것이었다. ‘맙소사!’ 현우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 들어갔다. 어떻게 이런 실수를 해 버렸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실수를 깨달은 건 불과 1시간 전이었다. 며칠 밤을 새워 바퀴 벌레를 떼로 구해 낸 현우는 쓰러지듯 잠들었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뉴 월드에 접속했을 때였다. 마침 비슷한 시간에 접속한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크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해피 뉴 이어입니다!” 순간 현우는 정신이 멍해졌다. “저기… 죄송하지만 오늘은 게임을 못 할 거 같아요. 큰 집에 가기로 했거든요.” 레리어트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 아크가 퍼질러 자는 사이 해가 바뀌어 오늘이 바로 새해 첫날이었던 것이다. “헤헤헤, 아크 님, 저는 레리어트 님과 달리 시간 많아요.” “그럼 식재료나 캐고 있어!” 아크는 버럭 소리치며 접속을 끊었다. 그리고 허둥지둥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산 거야?’ 새삼스럽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뉴 월드에 팔아먹었지, 뭐…. 물론 아크도 나름 화려한(?) 망년회를 치렀고, 새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매일 새벽에 운동을 나갔으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운동을 잠시 쉬게 되고, 게다가 바퀴 벌레를 구하느라 32시간이나 버텨 버린 바람에 현실의 시간 감각이 잠시 흐트러진 것. ‘한심한 놈… 그렇다고 어떻게 설날을 잊어버릴 수 있어?’ 사실 현우에게 설날은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새해가 되면 친척들은 물론, 부모님의 지인들이 몰려들었고, 현우는 적지 않은 세뱃돈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모든 상황이 변했다. 혹시라도 현우가 아쉬운 소리라도 할까 겁났던 걸까? 지인은커녕 친척들조차 연하장 한 장 보내온 적이 없었다. 사람의 정이라는 게 이렇게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현우가 허탈함을 느낄 정도였다. ‘나는 아무런 상관없어. 어차피 명절 따위….’ 그러나 어머니는 아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병실에서 연말과 새해를 맞이해야 하는 어머니는 아니다. 지금까지 평탄한 인생을 살아오셨기에 이런 시기에 느끼는 상실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하나뿐인 자식이라는 놈이 온라인 게임에 미쳐서 새해 첫날에. 오후가 되도록 얼굴조차 내밀지 않다니? 이런 경우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봐요, 복도에서 뛰지 말아요!” 계단을 뛰어 올라가자 지나가던 간호사가 쏘아붙였다. 새해 첫날 근무에 신경이 곤두선 모양이다. 하지만 간호사의 기분 따위 알 게 뭐냐? 현우는 가볍게 씹어 버리고 병실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리고 막 병실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다가 움찔하며 멈추 섰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손이 허전하다. 정신없이 뛰어나오느라 과일 바구니 하나 준비하지 못했다. 뒤늦게 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지갑도 허전하다. 미리 돈 찾아 놓는 것도 깜빡한 것이다. ‘어쩌지? 현금인출기를 찾아 과일이라도 사 와야 하나?’ 현우가 잠시 병실 앞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하하하, 하긴 그렇죠. 그 녀석이 확실히 애교는 없어요. 일전에 말입니다.” “오빠들, 여긴 병실이에요. 목소리 좀 줄여요.” “잘 말했다, 혜선아. 시끄러운 녀석들… 여기가 무슨 시장 바닥인 줄 알아? 하여간 못 배운 놈들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그래서 네놈들은 오지 말라고 했던 거야.” “아, 형님, 너무하시네. 제가 못 배우는 데 도와준 거 있습니까?” “이해해라, 불끈아. 형님은 우리 때문에 새해 첫날 누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돼서 괜히 신경질을 내는 거야. 속 넓은 우리가 이해해야지.” ‘오호, 그래서 아까부터 저렇게 붉으락푸르락하는 거였군.“ “뭐, 뭐야 이놈들이… 그, 그런 게 아니야!” “으흐흐, 어린애처럼 홍당무가 되어서 그런 말 해 봤자. 설득력 없수다.” ‘혜선이? 게다가 이 목소리들은… ?’ 현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병실 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권화랑과 10명의 갱생단원… 그리 넓지 않은 병실에 심상치 않은 떡대를 가지고 있는 사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명절 음식이 푸짐하게 놓여 있었다. “아, 현우야.” 갱생단에게 둘러싸여 있던 어머니가 현우를 보고 빙긋 웃었다. “어머니, 이게 대체… .” “모두 널 만나러 오셨다는구나.” “네?”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갱생단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틈에서 활짝 웃고 있는 어머니를 보자,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형님들… !” 아크조차 이제야 겨우 명절이라는 걸 알고 부랴부랴 달려 온 참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갱생단이 한 발 앞서 병원을 찾아 준 것이다. 명절 음식까지 준비해서… . 현우는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일까?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 굉장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잊지 않고 챙겨 준다는 느낌이 이런 것이었나? 아니, 사실 그들이 현우에게 뭔가를 줬다면 이렇게까지 당혹스럽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어머니를 챙겨 주니 그 고마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오빠, 늦었잖아요!” 어머니 옆에 바짝 붙어 있던 정혜선이 톡 쏘듯 말했다. 마치 이미 약속이나 하고 찾아온 사람처럼 말이다. “어… 그래.” 현우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현우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권화랑과 정혜선, 갱생단이 병원을 찾아 준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 가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로 현우는 그들과 어울려 한참을 웃고 떠들어 댔다.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역시 게임 폐인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화제는 뉴 월드로 이어졌다.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혜선이었다. “저기 오빠… 그 유계라는 곳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왜 심심해?” “흥, 누가 그렇데요?” 현우가 빙긋 웃으며 묻자 혜선이 살짝 토라진 얼굴로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카이로트 주변에서 소문을 들었어요. 오빠에게 현우 상금이 걸렸다고요.” “현상금? 나한테?” 현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뉴 월드에서는 유저도 다른 유저에게 현상금을 걸 수 있다. 그러나 관청을 통해 정식으로 현상금을 걸려면 대상이 카오틱 상태라야 한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범법 행위- 뉴 월드에서는 카오틱이 되는 것- 가 없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현우는 카오틱이 아니므로 현상금이 걸렸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관청에서 정식으로 현상금을 건 게 아니에요.” “뭐? 그럼… ?” “헤르메스 길드에서 카오틱 유저들에게 엄청난 양의 ‘상인의 계약서’를 뿌렸다나 봐요.” 혜선이 계약서의 내용을 주워들은 대로 설명해 주었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라이덴 = 불특정 다수> 이 계약서를 소지하고 아크를 해치우는 사람에게는 100골드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정식으로 아크를 수배자로 만들 수 없었던 라이덴은 그런 계약서를 만들어 실력 있는 카오틱 유저들에게 뿌렸다. 그리고 란셀 마을과 카오틱 마을인 카이로트를 왕래하던 혜선이 우연히 그런 소문을 들은 것이다. “상당히 많은 계약서가 뿌려졌다고 들었어요.” “흥, 라이덴 녀석… 역시 잔머리를 쓰는 데는 보통이 아니군.‘ 혜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현우는 콧방귀를 뀌었다. 확실히 예전 같았으면 꽤나 위협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크에게 카오틱 유저 따위는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대체로 카오틱 유저들은 각종 페널티가 적용되어 일반 유저보다 성장이 더디다. 더구나 100골드라는 금액이 많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유저의 입장에서는 거기에 목을 맬 정도는 아니다. 다시 말해 100골드에 눈이 뒤집혀 아크를 찾아다니는 카오틱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을 거라는 뜻. 이미 쥬르나 듀크 같은 선구자조차 3~4명을 처리할 수 있게 된 현우에게 그런 카오틱 유저가 위협이 될 리가 없었다. 설사 파티를 이룬다고 해도 말이다. ‘아마 라이덴도 카오틱 유저들이 날 잡을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을 거야. 흥, 이미 내가 유계로 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게 그 증거야.’ 헤르메스 길드… 그중에서도 선구자들이라면 오프라인으로도 연락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즉, 라이덴은 이미 쥬르나 듀크를 통해 유계의 존재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아크가 그곳에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카오틱들에게 유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처럼 찾아낸 신세계를 독점하고 싶은 생각이겠지. 그러면서도 중간계에서 계약서를 돌린 것은… 내가 중간계로 나왔을 때 신속하게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야. 계약서를 가진 카오틱이 나에게 덤벼다가 죽으면 라이덴은 앉아서 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즉 카오틱 유저들은 중간계에서 날 찾아내기 위해 라이덴이 풀어놓은 사냥개들이야.“ 결국 라이덴은 1쿠퍼도 안 들이고 다량의 정보원을 풀어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역시 라이덴… 잔머리 굴리는 솜씨 하나만큼은 보통이 넘는다. ‘어쨌든 카오틱들이 들러붙으면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카오틱을 죽이면 명성이 올라가고, 100% 확률로 장비품도 하나씩 떨군다. 그런 돈다발 같은 녀석들이 제 발로 현우를 찾아와 준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헤르메스 길드가 용케 시르바나에서 자리를 잡은 모양이군. 이런 짓까지 할 여유가 있는 걸 보면 말이야. 후후후, 뭐 좋아. 시르바나가 안정되어 적당히 발전해 줘야 나중에 가로챘을 때의 보람도 커지니까. 그때까지 어디 마음대로 설쳐 봐라.’ 현우는 씨익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계약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관청에서 정식으로 현상금이 걸린 게 아니라면, 실질적인 페널티는 없으니까.” 그때, 아크의 눈치를 살피던 짝퉁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입을 열었다. “저기 있잖아… 뉴 월드 말이 나와서 말인데, 슬라임의 내단 생산 계획에 약간 차질이 생겼다.” 현재 권화랑과 정혜선, 갱생단은 아크의 계획대로 카이로트의 지하 미궁에서 ‘슬라임의 정수’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일단 작업 진행 과정을 보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슬라임의 정수‘ 도 꽤 모았고, 덕분에 그들의 레벨도 적지 않게 올린 것이다. 그러나 막상 ‘슬라임의 내단’ 제작에 들어가려 하자 의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로 바로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 사실 이건 아크가 사냥을 하면서 모아 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유계로 날아가 버린 탓에 공급에 차질이 생겨 버린 것. 그리고 두 번째 문제는 그보다 조금 더 심각한 ‘일각수의 뿔’이었다. “아무래도 ‘일각수의 뿔’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인 모양이야. 게다가 예전에는 700골드 정도였는데 근래 들어 이상하게 가격이 폭등해서 1,000골드에도 구하기 힘들어졌어.” “저도 들었어요.” 현우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우도 얼마 전 경매 사이트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의외로 사이트에는 유니콘의 뿔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각수의 뿔’ 에 대한 새로운 용도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각종 최상급 포션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될 뿐이었는데, 근래 들어 마법사의 지팡이나, 전사의 검을 만들 때 첨가하면 상당한 부가 옵션이 추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대로 무분별한 포획으로 현재는 찾아 보기도 쉽지 않은 유니콘. 품귀 현상으로 인해 가격이 폭들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생산 라인을 돌릴 때를 잘 못 맞췄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어서 이윤을 내려면 ’ 일각수의 뿔‘을 700골드 미만으로 구해야 한다. 1,000골드 이상이라면 이윤을 내기 힘들어. 게다가 지금 나는 ’페어리의 날개‘ 를 구하러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만약 그것까지 모두 상점에서 구입해야 한다면 내단을 만들어 봤자 적자다.’ 만들어도 이윤을 기대할 수 없다면 그냥 삽질에 불과할 뿐이다. ‘쳇,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할 수 없죠. 일단 슬라임의 내단 공장은 중단하죠.” “그, 그럼 지하 미궁에서 나와도 된다는 거지?” 갱생단원들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사실 갱생단원이 이렇게 죽는 소리를 해 대는 것은 단순히 재료비가 올라서만은 아니었다. 아크가 유계에 들어간 지도 대략 한 달… 다시 말해 갱생단이 지하 미궁에 처박혀 사냥만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레벨도 빨리 오르고, ‘슬라임의 정수’ 를 구하는 게 쏠쏠한 재미가 있었지만, 한 달이나 되고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우으으으, 대체 오늘이 며칠째지?” “이제 스켈레톤과 슬라임만 봐도 토 나온다.” “햇빛… 햇빛을 보고 싶어….” “독방에 갇혀 있는 기분이야.” 다른 사람이라면 식량 보급을 위해서라도 바깥 공기를 쐴 수 있겠지만, 때가 되면 정혜선이 유니콘을 타고 날아와 식량을 던져 주니 그런 핑계도 댈 수 없었다. 그런 로코의 친절한 배려 덕분에 그들은 꼬박 한 달을 냄새나는 오물 처리장(?)에서 보낸 것이다. 이제 카이로트 지하 미궁이라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올 지경. 뭐, 수집 노가다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네, 그런데 지금까지 구한 ‘슬라임의 정수’가 몇 개죠?” “… 10개다.” “그럼 이미 구한 정수를 썩힐 수는 없으니 화랑 아저씨와 혜선이, 형님들 몫으로 2개만 더 구해 12개 맟춰 놓고, 돈이 좀 들더라도 내단으로 만들어 먹는 게 좋겠어요. ‘일각수의 뿔’이나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는 제사 시간 나는 대로 시드와 의논해서 싸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그래, 우리도 시간 나는 대로 알아보마.” “그리고 네게 지급하기로 약속한 로열티도 계산해 줄게.” “아니, 그보다 그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 현우가 시원스럽게 허락하자 갱생단원들이 감지덕지하며 로열티까지 약속해 주었다. 어쨌든 갱생단을 만난 덕분에 유계에서 살다시피 한 아크는 샴바라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갱생단은 ‘일각수의 뿔’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샴바라가 보낸 것이었다. 샴바라는 처음 주문서를 건네줄 때 이미 ‘일각수의 뿔’을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와 교환하기로 약속했다. 역시 샴바라라고 해야 하나? 샴바라는 이미 따로 ‘타락한 페어리의 날개’를 구해 내단은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효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분의 ‘일각수의 뿔’을 갱생단에게 보내 준 것이다. 물론…. 외상 장부를 달아 둔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아크와 샴바라는 선뜻 아이템을 건네줄 만큼 우정이 넘치는 관계는 아닌 것이다. ‘어쨌든 ’일각수의 뿔‘을 2개나 구할 정도면 샴바라도 얼마 전에 시작한 다크브라더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돼 간다는 뜻이겠지. 그 녀석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게임을 잘 풀어 나간단 말이야. 어쩌면 나보다 먼저 2차 전직을 하게 되는 거 아냐?’ 살짝 위기감이 드는 현우였다.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짝퉁이 문득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저희들끼리만 떠들어 대서… 심심하시죠?” “괜찮아요.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이해심 많은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짝퉁이 한숨을 불어 내며 권화랑을 힐끔거렸다. “하아… 역시 형님에게는 아까운 분이시란 말이야.” “뭐, 뭐야!” “그렇게 발끈하지 마세요. 그래도 저희는 형님들 응원할 겁니다.” 짝퉁이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지하 미궁에서 친해진 너구리족과 작별 인사도 해야 하니 이제 슬슬 뉴 월드로 돌아가 볼까? 형님은 남아서 정리 좀 하고 오시죠. 야, 가자. 너희들도 일어나. 눈치 없이 굴면 미움 산다.” 짝퉁이 그렇게 갱생단을 끌고 병실을 나가 버렸다. “어머니, 며칠 있다가 다시 들를게요.” “저도 현우 오빠랑 같이 올게요.” 현우 역시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므로 정혜선과 함께 갱생단을 따라나섰다. 현우와 정혜선, 갱생단이 우르르 복도로 나오자, 주변에서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뭐야, 저 사람들?” “누가 사채라도 빌려 쓴 건가?” “하긴 저 병실의 환자는 큰 수술을 몇 번이나 했다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명절에 병원까지 찾아오다니 너무 하는군.” 그렇게 거리를 두고 수군거리는 것이다. 하긴 누가 봐도 조폭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10명이나 몰려다니니 그런 오해를 살 만도 하다. 아마도 그동안 권화랑이 이들을 병원에 데리고 오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리라. 수군거리는 말이 들렸는지 불끈이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가. “혜선아, 현우야, 좀 떨어져서 따라와라.” “왜요?” 당연히 현우에게도 주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갱생단과 모르는 사이였다면 현우 역시 그들처럼 수군거렸으리라. 그러나 현우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리고 오히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형님들, 모처럼 나오셨으니 제가 점심 쏠게요. 근처에 잘 아는 식당이 있어요.” 갱생단원들이 움찔하며 현우를 돌아보았다. 현우는 빙긋 웃으며 형님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갱생단은 물끄러미 현우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식, 별게 다 고맙다.” “가자. 어디 오늘은 현우가 쏘는 밥 한 번 얻어먹어 보자.” “밥만 먹고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저와 영화를 볼 거라고요.” 정혜선이 약간 토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따라붙었다. 그들과 어울려 병원을 나서는 현우는 입가에 모처럼 미소가 번져 있었다. … 한편 덕분에 덩그러니 병실에 남게 된 권화랑은 박소미 여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 결국 권화랑은 마치 뭔가 죄를 진 사람처럼 쭈빗거리며 갱생단이 어질러 놓은 병실을 정리하기 위해 일어났다. “에이, 망할 녀석들… 죄송합니다. 평소에는 저렇게 번잡스럽지 않은데… .” “… 조금만 더 앉아 계시지 않을래요?” 그때, 박소미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네? 네? 뭐, 뭐가요?” “현우가 저렇게 웃는 거… 정말 오랜만에 봐요.” 박소미는 물끄러미 현우와 갱생단이 몰려 나간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 “모두 권 형사님 덕분이에요.” “저, 저는 … 아닙니다. 저 녀석이 원체 … 그러니까… .” 당혹스러운 얼굴로 떠듬거리던 권화랑의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왔다. 적어도 권화랑은 그렇게 느꼈다. 박소미가 살포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왔기 때문이다. 여자에 면역력이 없는 건 현우나 권화랑이나 오십보백보였던 것이다. 어쨌든 비록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병실이지만, 권화랑에게는 주위가 온통 꽃밭으로 보일 뿐이었다. 새해가 밝았다. 권화랑에게는 정말 해피 뉴 이어가 될 모양이다. 마가로프의 연구실 ‘후후후, 횡재했다.“ 하루를 푹 쉬고 다시 접속한 아크는 입김을 불어 대며 램프를 닦고 또 닦았다. “어이구, 예쁘게 생기기도 했지.” 아크는 반질반질해진 램프에 볼을 비벼 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손잡이 부분에 해골 문양이 새겨진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낡은 램프, 이게 바로 <갈킨족의 재난 >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은 보상이었다. 물론 퀘스트 보상 아이템인 만큼 그저 골동품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옵션이 붙은 마법 아이템! 문제는 램프에 붙은 특수 효과라는 게 참으로 애매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똑똑한 아크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램프야말로 어지간한 레어 아이템보다 가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적어도 다크워커인 아크에게는 말이다. 퀘스트를 끝내고 잠들기 직전… 그러니까 레이드에게 보상을 달라고 했을 때였다. “보, 보상… .” 레이드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급한 마음에 부탁하기는 했지만, 아직 어떤 보상을 해 줘야 할지는 생각해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 가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무, 물론이다. 보상! 당연히 준비했다. 우리 목숨을 살려 줬으니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좋은 걸 준다. 기다려라.” 레이드는 곧 다른 갈킨족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구석에 모여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에이, 뭘 줘야 하는 거지?” “글세? 중간계의 인간이 뭘 좋아하는지 알 수가 있나?” “이건 어때? 남부에서 구한 건데… .” “이것도 쓸 만해. 랑케 열매를 300씩이나 주고 바꾼 거야.” 그렇게 한참 의견을 나누다가 레이드가 주섬주섬 세 가지 물건을 보여 주었다. 3명이서 동시에 공유 퀘스트를 받았기에 보상도 세 가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사실 예전에 레이드와 물물교환을 해 본 아크는 갈킨족의 물건 보는 안목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퀘스트를 받으면서도 큰 보상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레이드가 제법 자신 있게 내민 아이템 <유계 서부 지역 많이 먹기 대회 우승 트로피(이걸 소지한 사람은 서부 지역의 가맹점에서 하루 1회, 음식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단다> .<갈킨족 일가족이 새겨진 조각상(소지하고 있으면 갈킨족과 친밀도가 약간 올라간다>, 그리고 <레이드의 자랑스러운 컬렉션 10종 세트(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였다> 보상 목록을 살펴본 아크는 울컥했다. ‘가맹점에 한해서 무료 시식권? 장난하냐? 유계의 많이 먹기 선수권 대회 가맹점이 어딘지 알게 뭐야? 게다가 바퀴 벌레 일가의 조각상이라고? 이미 퀘스트로 갈킨족과 친밀도가 최상인데 더 이상 바퀴 벌레와 친해져서 뭐 하라고? 그래도 여기까지는 옵션이라도 붙어 있지. 대체 이 쓰레기는 뭐야?’ 분명 아크는 식재료를 연구할 때는 오직 갈킨족을 살리고 싶었다. 진심으로 어지간한 손해쯤은 감수해야 좋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감동과 환희의 순간이 지나자. 아크는 곧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말하자면 본전 생각이 난 것이다. 오염된 식재료야 원래 음식에 쓸 수 없는 것이었다고 쳐도, 32시간을 투자했다. 거기에 라자크의 갈비뼈를 6개나 뽑아냈다. 그만한 보상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쓸 수 있는 아이템을 줘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퀘스트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이니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받아들이려 할 때였다. “마음에 안 드냐? 그럼 다른 걸 보여 줄까?” 아크가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레이드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물건을 보여 줘? 그럼 이번 퀘스트는 보상을 선택 할 수 있다는 건가?’ 지금까지 아크는 퀘스트 보상은 주는 대로 받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간혹 종족에 따라 보상을 주는 방식이 다르기도 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성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지. 갈킨족은 행상인이다. 상품으로 보여 주는 물건 이외에도 쓸 만한 것들이 있을지도 몰라. 좋아, 어차피 지금 내놓은 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이템이니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때, 눈치 없는 북실이가 조각상에 족발을 들이밀었다. “어? 이게 꽤 잘 만든 조각상인데요?” 탁, 아크는 족발을 후려치며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보아하니 모두 소중한 소장품인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은 부담스러워서 받을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물건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모처럼 올려놓은 친밀도를 깎을 이유가 없으니 아크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노골적으로 사양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레이드는 눈치를 밥 말아 먹은 바퀴 벌레였다. “그런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너에게 뭘 줘도 아깝지 않아.” “… 그래도 굉장히 부, 담, 스, 럽, 거, 든, 요.” 아크가 한 음절, 한 음절 힘을 주어 말하자 그 박력이 레이드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바퀴 벌레들을 불러 수군거렸다.. “야, 이건 너무 좋다는데?” “음… 역시 청렴결백한 사람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은인에게 아무거나 줄 수는 없잖아?” 그렇게 한참을 의논한 끝에 레이드가 다시 세 가지 물건을 골라 왔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부담스럽다며 돌려보냈다. 역시 첫 번째 물건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던 바퀴 벌레들도 슬슬 얼굴에 짜증이 어렸다. 물론 아크 역시 그리 즐거운 기분은 아니었다. 32시간을 버틴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며 저절로 눈꺼풀이 내려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좋은 보상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고작 졸리다는 이유로 대충 아무거나 받을 수 없어. 최소한 쓰기라도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받아 내야 해!’ 아크는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버텼다. 레이드가 가져오는 보상 아이템은 완전히 랜덤이었다. 간혹 그럭저럭 쓸 만한 아이템이 하나 섞여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역시 아크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자 이제 오기가 치밀었다. ‘젠장, 좋다. 이렇게 되면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패스, 패스, 패스, 패스,패스!” 급기야 아크는 물건을 제대로 보지고 않고 ‘패스’를 연발했다. 그때마다 지친 표정으로 아이템을 챙겨 돌아가는 레이드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제야 레이드도 아크가 정말 ‘부담스러워서’ 받지 않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이봐,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저 사람이 나흘 동안 잠도 안 자고 버티는 거 봤지?” “이러다가 앞으로 며칠 동안 이 짓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래도 안 되겠다. 비장의 수집품이든 뭐든 꺼내 봐.” “빨리 줘서 보내 버리지 않으면 우리가 지쳐 죽겠다.” “하지만 정말 더 좋은 물건은….” 바퀴 벌레들이 슬슬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그때, 새끼 바퀴 벌레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칭얼거렸다. “아빠, 나 너무 피곤해요.” “여봇! 전에 자랑하던 물건들 있잖아요.” 보다 못한 레이드의 마누라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레이드는 움찔하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지만 이것들은 ….” “그런 물건이 나와 아이들보다 소중하다는 거예요?”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군요, 당장 이혼이에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하지만 이것들이 아크의 마음에 들 리가 없어. 힉, 알았다. 그렇게 노려보지 말라고. 보여 줄게, 보여 주면 되잖아.” 마누라가 쏘아보자 레이드는 투덜거리며 따로 챙겨 놓은 보따리를 뒤적거렸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그들은 상인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레이드가 말한 바 있듯이 ‘사기는 쳐도 손해나는 장사는 하지 않는 행상인 종족‘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아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장사꾼인 갈킨족은 생명의 은인이라도 차마 자신들의 최고 상품을 보상으로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아크가 물건을 빼돌렸다. 그리고 ‘ 이렇게 똑같은 것만 보여 주면 포기하겠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장사꾼! 그러나 그런 장사꾼조차 아크의 지독함에는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뭐, 반 이상은 마누라의 눈총 때문이기는 했지만…. “아, 아크, 이건 어때? 역시 마음에 들지 않지? 그럼 다른 걸 보여 줄게.” 레이드가 살짝 보여 주고 얼른 다시 보따리를 챙겼다. 그게 실수였다. 사실 아크는 이제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다. 때문에 거의 반자동으로 ‘패스’를 연발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레이드가 자세히 보여 주려 했다면 그 역시 ‘패스’로 넘어갔으리라. 그러나 수상하게 스치듯 보여 주고 챙기려는 행동이 오히려 아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잠깐만요. 그것들 좀 다시 보여 주세요.” “이, 이거? 별거 아냐. 볼 필요도 없는 걸.” “다시 보여 주세요.” “하하하, 역시 그렇지? 금방 다른 거 가져올게.” “다시 보, 여, 주, 세, 요.” 레이드가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지만 아크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국 레이드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으며 마누라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누라가 눈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자 결국 한숨을 불어 내며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면서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 볼 것도 없는 건데… 이 램프는 몇 년 전에 우르바사 계곡을 지날 때 주운 거야. 그런데 고장 났는지 작동이 안하더라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여기저기에서 주운 장난감이나 낙서 따위라 너에게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어둠의 램프(특수) ) 아이템 타입:램프 사용 제한:없음 연대와 만든 사람을 알 수 없는 오래된 마법으로 램프입니다. 바닥에는 알 수 없는 도형이 복잡하게 그려진 있습니다. 이 램프는 보통 램프와 달리 사용하는 동안 주변이 어둠에 물들게 됩니다. 낮잠을 즐기고 싶을 때도 좋지만, 밝은 곳을 싫어하는 갈킨족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보물. 레이드는 이 램프로 다른 갈킨족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단, 램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둠 속성을 가진 마법 재료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어둠 속성의 마법 재료 10개를 연료로 사용해 30분간 반경 10미터를 어둠에 물들입니다. 램프의 유효 거리 안에 있는 존재는 ‘밤’과 동일한 환경 효과가 적용됩니다.) ‘이, 이게 뭐야?’ 순식간에 잠이 싹 달아났다. 이런 아이템이 있을 거라고는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이건 평범한 유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아이템이었다. 어둠을 좋아하는 바퀴 벌레이기에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램프. 보통 사람은 고작해야 낮잠 잘 때나 사용할까? 그러나 아크에게는 레어 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램프를 이용해 주변을 ‘밤’ 상태로 만든다. 다시 말해 낮에도 어디에서나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언제든지 필요할 때 능력치+40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아이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집념 어린 ‘패스’ 끝에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해 낸 것이다. 다른 두 가지 아이템도 애매하기는 하지만 과연 레이드 비장의 소장품! 지금까지 보여 준 것들보다는 좋았다. (지혜의 고리(특수) 아이템 타입:특수 소모품 사용제한:없음 철사나 쇠붙이를 이용해 다양한 도형을 얽히게 만들어 놓은 퍼즐형 놀이 기구. 자세한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상당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제작한 것 같습니다. 지혜의 고리는 레벨 1부터 5까지 세트로 되어 있으며 레벨이 올라갈수록 풀기가 어렵습니다. 레벨 5까지 풀어내려면 상당히 머리가 좋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혜의 고리를 풀 때마다 지혜가 3만큼 증가합니다. 단,한 번 해답을 찾아낸 지혜의 고리를 다시 풀 경우에는 보너스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천객만래 아이템 타입: 소장품 사용 제한: 없음 오래전 유명한 서예가가 일필휘지로 내려 쓴 멋들어진 소장품. 이 소장품을 가게에 붙여 놓으면 왠지 모르게 장사가 더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상점을 운영할 경우, 모든 상품의 판매 가격의 3% 더 올려 받을 수 있습니다.> 아크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혜의 고리’는 아크에게 별 의미가 없다. 퍼즐을 풀 때마다 지혜+3. 최종적으로 지혜가 15나 올라간다. 그러나 지혜는 아크에게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없는 스탯이었다. 그러나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레리어트에게 지혜는 힘이나 민첩보다 중요하다. 지혜 수치에 따라서 신성 마법의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뭐, 이번 퀘스트는 레리어트 님도 고생했으니까.’ 아크는 큰맘 먹고 지혜의 고리는 레리어트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북실이에게 나머지 아이템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천객만래는 의외로 쓸모가 많은 아이템이야. 이런 아이템을 저런 돼지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다행히 귀속 아이템은 아니니.’ 아크는 씨익 웃으며 아이템을 받아 챙겼다. 레이드에게 받을 수 있는 최상의 보상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감사합니다. 레이드가 말한 것처럼 ‘망가진 램프’나 ‘장난감’, ‘낙서’ 같은 거라면 저도 큰 부담 갖지 않고 받을 수 있겠네요.” “바, 받겠다고?” “네,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갈킨족을 생각하겠습니다.” 아크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레이드가 사색이 되어 뭐라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2시간 반 만에야 겨우 아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갈킨족이 우르르 몰려와 레이드의 입을 틀어막으며 떠들어 댔다. “이야, 정말 감탄했습니다.” “고작 이런 물건을 감사의 표시로 받아 주겠다니….” “우리는 이만 가 봐도 되겠죠?” “그럼 나중에 다시 보죠. 가능한 먼 미래에. 정말 정말 먼 미래에.” 그리고 울먹이는 레이드를 짊어지고 쏜살같이 도망가는 것이었다. 아크는 퀘스트를 하기 전에 그들에게서 소환수 전용 아이템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미 그들의 판매용 아이템은 모두 훑어본 뒤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마땅한 아이템이 없었으므로 그냥 도망(?)가도록 놔 두었다. 어쨌든 그렇게 감동적인 퀘스트는 웃기지도 않는 촌극으로 결말을 맞았다. “레리어트 님,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레리어트 님에게 필요한 아이템인 것 같네요.” “… 감사합니다.” 갈킨족이 사라지자 아크는 레리어트에게 ‘지혜의 고리’를 건네 주었다. 그녀 역시 내심 ‘지혜의 고리’를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반색하며 받아 들었다. 그렇게 아크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녀에게 아이템을 나눠 주자 북실이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아크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아크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저는 잠시 종료하고 쉬겠습니다. 6시간 뒤에 여기서 다시 뵙죠.” 북실이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꿀꿀거렸다. “아, 아크 님, 뭔가 잊은 거 없으세요?” “응? 뭐가?” “그러니까… 이번 퀘스트는 우리 3명이 받았잖아요. 그런데….” “아아, 그거?그거 말이지?”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북실이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하하하, 네, 그거. 에이, 다 아시면서….” “괜찮아,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아.” “네? 그게 무슨…?” “퀘스트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하다는 말하려는 거 아니야? 괜찮아, 나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북실이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아크가 한 박자 먼저 치고 들어갔다. “괜찮다니까 자꾸 그러네. 내가 32시간 동안 식음을 전폐한 덕분에 퀘스트가 해결되고, 그 때문에 네가 경험치를 받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비록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심지어 내가 죽어라 고생할 때 옆에서 졸기만 하며 내 의욕까지 뚝뚝 떨어뜨렸지만, 우리는 동료잖아. 사소한 것 가지고 서로 기분이 상할 필요는 없지, 안 그래?” 아크가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북실이는 양심이 쿡쿡 찔리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소한 것’ , ‘기분이 상할 필요 없다.’ 라는 말에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괜히 사소한 아이템에 욕심 부려서 내 기분 상하게 만들지 마라, 응?’ 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꾹꾹 눌러 담은 말인 것이다. 북실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네, 뭐… 그, 그렇죠. 이해해 주셔서 … 가, 감사합니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 하지 말자. 너도 나의 소중한 동료잖아. 음하하하하.” … 그렇게 해서 아크는 ‘어둠의 램프’와 ‘천객만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덕분에 북실이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런 돼지의 심정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요즘 조금 가까워졌지만 어차피 아크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노리는 놈이다. 그런 놈에게 아이템까지 챙겨 줄 의리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게다가 아크는 이미 ‘천객만래’의 용도를 생각해 두었다. ‘후후후, 일단 시드에게 비싸게 팔아 치운 다음에 잘 꼬드겨서 시르바나의 교역소에 걸어 놓게 만들어야지. 교역서의 수입이 높아지면 당연히 시드가 받는 월급도 올라가겠지. 그렇게 되면 나는 빚도 빨리 받아 낼 수 있고, 비자금 늘어 가게 된다!’ 현재 시르바나의 교역소에서 한 달에 오가는 돈이 수천만 골드다. 3% 수입이 올라가도 적지 않은 금액이리라. 그리고 월커스가 이중장부를 이용해 그 일부를 비자금으로 챙겨 두고 있는 것이다. 훗날 아크가 다시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기만을 기다리며… . 시드에게 팔아 용돈 벌고, 비자금 늘어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이런 걸 비열한 돼지 따위에게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자, 그럼 출발하죠.” 아크는 반질반질 닦은 램프를 허리에 차고 일어났다.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따라 일어나며 물었다. “식재료를 모을까요?” 이제 아크가 ‘가자’ 고 하면 자동적으로 ‘식재료 채취’ 룰 떠올리게 된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바로 목적지로 가죠.” “네? 하지만 아직 연구실을 못 찾아잖아요.” “연구실에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오세요.” 아크가 빙긋 웃으며 앞서 나갔다. 아크는 이미 갈킨족 퀘스트를 하며 연구실 위치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단서는 바로 이번 사건을 일으킨 주범… 오염된 강물이었다. ‘어쩌면 갈킨족 퀘스트는 연구실을 찾아낼 단서를 제공하기 위해 발생한 건지도 몰라.’ 아크가 ‘식재료 감별’로 강물을 조사했을 때, 강물이 오염된 이유는 상류에서 각종 화약 약품이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은 상류에 강물을 통째로 오염시킬 만큼의 화학 약품이 있다는 뜻. 그러나 유계는 그렇게 많은 화학 약품을 만들어 낼 정도로 연금술이 발달한 세계가 아니다. … 자,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렇다. 오래전 연금술 연구를 위해 생명의 숲으로 들어온 천재 연금술사! 강물을 오염시킨 것은 아마도 그가 사망하고 방치된 실험실에서 흘러나온 화학 약품이리라.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강물을 따라 올라가 오염의 근원지를 찾아내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 추리해 낸 아크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물을 조사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생명의 숲에 흐르는 강물 활력이 넘치는 생명의 숲을 가로지르는 강물입니다. 각종 영양 성분이 풍부해 식물 재배나, 요리에 사용 시 탁월한 효과를 냅니다.) 드디어 강물이 오염되지 않은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오염된 강물이었어. 그렇다면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화학 약품이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아크는 소환수와 레리어트, 북실이를 동원해 주변을 수색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서 수풀에 숨겨진 동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숨 막히는 약품 냄새에 찌든 동굴 당신은 생명의 숲 깊은 곳에서 지독한 냄새가 풍겨 나오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동굴 주변에는 생명의 숲에서 보지 못했건 기형적인 식물들이 군집해 있습니다. 발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불쾌한 점액질은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들짐승이나 몬스터조차 드나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험가의 지식: 던전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10)> 동굴로 들어서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그러자 레리어트와 북실이의 얼굴이 의기양양해졌다. 그들 역시 10위권 안에 유계로 들어와 ‘위대한 모험가’의 칭호를 받았다. 그 상태에서 파티로 새로운 동굴을 찾아내자 아크처럼 보너스 스킬 포인트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새로운 던전은 곧 예기치 못한 위험과 직면하게 된다는 말이다. “데드릭, 하켄, 주위를 경계해라.” “오케이.” 딱딱딱딱! 역시나 경험 많은 두 소환수는 긴장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쌕쌕, 쌕쌕쌕쌕!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던 라둔이 움찔하더니 위협적인 울음을 흘렸다. ‘몬스터인가?’ 선두에 서 있던 아크와 소환수들이 반사적으로 공격 자세를 잡고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뭔가 흐릿한 영상이 떠올랐다. 길게 이어진 동굴 벽을 따라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몬스터들은 공중에 둥둥 뜬 상태로 마치 죽은 것처럼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라? 저 몬스터들은… ?’ 잠시 상황을 살피던 아크는 조심스럽게 몬스터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곧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몬스터들은 … 커다란 물주머니 같은 곳에 갇혀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배양되고 있었다. 새끼 몬스터부터 성장한 몬스터까지, 마치SF 영화 속에서 클론은 배양하는 캡술처럼 물주머니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몬스터들은 생명의 숲에서 봤던 ‘키매리=크로메틴’과 ‘키메리=밴디트 폭스’였다. 아크는 캡술을 보고 나서야 몬스터들의 이름이 특이했던 이유를 알아챘다. ‘키메리… 맞아, 어디선다 들어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판타지에서 키메라는 인조 몬스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였어. 그리고 이곳은 마가로프의 연구실. 그렇다면… 이 몬스터는 모두 마가로프가 만들어 풀어놨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몬스터들의 독특한 능력도 대강 이해 되었다. 아마도 크로메틴은 연구실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도둑여우는 아크가 이용했듯이 생명의 숲에서 각종 마법 재료를 긁어모아 연구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러나 마가로프가 늙어 죽자-아마도- 지배력이 소멸해서 야생화된 것이다. ‘이로써 두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군.’ 역시 마법 학회에서 안달할 정도로 마가로프는 천재적인 연금술사라는 것, 그리고 연구를 하겠답시고 멋대로 인공몬스터를 만들어 낼 정도로 맛이 간 매드 사이언스라는 것. ‘뭐, 어차피 늙어 죽었을 테니 별 상관은 없지만.’ “아, 아크 님….” 레리어트가 불안한 목소리로 떠듬거리며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몬스터, 그것도 막 생기다가 만듯한 기형적인 형체들에게 둘러싸이니 공포심이 생긴 모양이다.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죽은 상태예요.’ 아크의 말대로 캡술 안의 몬스터들은 오랫동안 방치된 듯 모두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소름 끼치는 듯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레리어트의 반응에 아크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제 이 앞에 마가로프의 연구실이 있다는 것은 100%확실하다. 그리고 연구실에는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나, 각종 결과물이 산처럼 쌓여 있으리라. 연구 자료는 마법 학회에 갖다 주고 퀘스트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물건, 결과물은 마법 학회와 사전에 얘기된 대로 발견자인 아크의 소유물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크는 그 아이템을 레리어트나 북실이와 나눠 가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곳을 찾기 위해 죽도록 고생한 사람은 아크인 것이다. ‘레리어트 님은 몰라도, 북실이는 마가로프의 유산을 노리고 있다. 유산을 손에 넣을 때까지 방심하면 안 돼. 마침 북실이를 떼어 놓을 구실이 필요했는데 잘 됐다. ’ “그럼 북실이와 함께 이 앞에서 잠시 기다리세요. 어차피 분위기를 보니 몬스터는 없는 것 같네요. 저 혼자 들어가서 상황을 살펴볼게요.” 아크의 말에 역시나 북실이가 펄쩍 뛰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는 아크 님의 영웅적인 모험담을 기록에 담기 위해 여기까지 쫓아온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적인 순간에 뒤에서 기다리라니요?” “안 돼, 이 앞에는 무슨 위험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그리고 레리어트 님이 저렇게 불안해하는데 그런 말이 나와? 누군가가 옆에 함께 있어 줘야 할 거 아냐? 그럼 내가 여기 남고 네가 들어가 볼래?” “하, 하지만….” 아크가 째리자 북실이는 한풀 꺾인 얼굴로 물러났다. “죄송해요.” 레리어트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지만, 북실이는 잔뜩 부은 얼굴로 시선을 외면했다. 어쨌든 이렇게 정당하게 둘을 떼 놓은 아크는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보물을 향해 달려갔다. 한참을 들어가자 동굴이 점점 밝아졌다. 무슨 마법적인 약품을 발라 놓은 것인지. 동굴 벽 전체에서 희미한 빛이 새 나오고 있었다. ‘거참, 별의별 약품이 다 있군. 벽 전체에 야광 처리라… 집에 발라 놓으면 전기세가 안 나가 좋기는 하겠다.’ 동굴 전체가 번쩍이는데 고작 전기세… 그게 서민 아크의 한계였다. 어쨌든 빛을 따라 더 들어가니 곧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다. ‘드디어… 드디어 도착했다.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 신대륙을 찾아낸 달걀 좋아하는 아저씨의 기분이 이랬을까? 엘도라도를 찾아낸 모험가의 기분이 이랬을까? 안쪽을 둘러본 아크는 환호성을 터뜨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크가 도착한 공간에는 TV에서난 보던 연구실처럼 수많은 실험 기기가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에는 각종 두루마리와 서적 그리고 형형색색의 액체가 담긴 약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천재 연금술사가 남긴 약간의 단서만으로 길고 긴 추적 끝에 드디어 비밀 연구실을 찾아낸 것이다! ‘역시 북실이를 살려 놓기를 잘했어.’ 연구실에 있는 두루마리와 약물은 아크의 소유물이다! 아직 어떤 효능을 가진 아이템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재 연금술사의 물건이니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리라. 아니, 다 하급 회복 포션이라도 숫자가 숫자이니만큼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금액이리라.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양이다. 너무나 많아 가방을 몽땅 비워 놓고 꾸역꾸역 담는다고 해도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 ‘북실이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쉽게 당하지는 않아. 그 전에 다시 군기를 잡아 놓고 계약서만 받아 놓으면 돼, 그리고 이 가방에 미어터질 만큼 쑤셔 넣고 중간계로 날려 보내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퀘스트 완료에 필요한 자료는 챙겨 놔야겠지? 자, 어떤 게 퀘스트 완료에 필요한 연구일지 알라나….’ 아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연구실로 들어섰다. 동시에 입구 모퉁이 뒤에 숨어 지켜보던 그림자가 흠칫 떨었다. ‘나쁜 자식… 실실 쪼개는 것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겠군.’ 살짝 분노에 치를 떠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의 걸어 다니는 가방(?) 북실이었다. 북실이 역시 바보는 아닌지라, 아크가 굳이 혼자 연구실을 찾아온 이유는 알고 있었다. 때문에 레리어트에게 아크의 활약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이 어쩌구… 떠들어 대는 슬금슬금 뒤를 밟아 온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 연구실에서 혼자 히죽거리고 있는 아크를 발견했다. 그 미소를 보자. 해체용 식칼을 보고 떠는 페페처럼 본능적으로 몸이 떨린다. 머릿속에서 무슨 악랄한 계획을 세우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북실이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흥, 이번만은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걸? 아크 자식, 지금까지 마구 부려 먹었겠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역시 모진 학대와 착취를 참고 버텨 온 나다. 이제 곧 나를 우습게 본 걸 후회하게 해 주마!‘ 북실이는 가방에 손을 넣어 ‘비장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삽질이, 울먹이 먼저 간 아우들아…! 천국(?)에서 이 형님에게 힘을 다오!’ 각오를 다진 북실이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달려 나가려 할 때였다. 돌연 아크가 손을 뻗는 책장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아크가 기겁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그보다 몇 배나 긴장하고 있던 북실이 역시 심장이 튀어 나올 만큼 놀라며 황급히 다시 모퉁이 뒤로 숨었다. 뒤이어 책장 뒤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넝마와 같은 로브에 백발과 수염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노인… 그는 잠시 아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는 누군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그렇게 말하는 영감님은 누구십니까?” “허, 참 재미있는 친구로군. 남의 집에 불쑥 들어와 오히려 누구냐고 묻다니. 하긴, 앞에 문패를 걸어 놓은 것도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남의 집이요?” “그래, 이곳은 내 집이네. 정확히는 연구실이지.” “연구실? 설마… 당신이 마가로프?” 아크의 목소리에 노인이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가?” 동시에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마가로프? 마가로프라니? 이게 무슨 황당한 말인가? 마법 학회장 샤넨의 말에 따르면 마가로프는 실종된 것은 백하고도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실제로 유계에서 찾은 기록에도 그는 100여 전에 들어왔다고 했다. 당시 마가로프는 이미 여든이 넘은 나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면 이미 200살이 넘었다는 말이다. 반면 뉴 월드의 평균 수명은 대략 70세. 아크가 초보 마을에서 ‘간병’한 요한슨 할머니도 일흔을 넘기지 못하고 늙어 죽었다. 그런데 200살이라니? 지가 무슨 드래곤이라도 되는 줄 착각하는 건가? ‘이런 망할… 연금술로 불로불사의 비약이라도 만들어 먹은 거야?’ 사실 아크는 그가 200년 살든, 2000년을 살든 관심 없었다. 문제는 바로 연구실에 쌓여 있는 산더미 같은 아이템들! 아크가 이 아이템을 소유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바로 ‘주인이 없는’ 상태라야 한다. 그런데 주인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면 결국 퀘스트의 부수입인 마가로프의 유산은 그림의 떡이 되는 게 아닌가?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아크는 당장 이 늙은이의 목이라도 졸라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유산 상속 때문에 노인을 죽이는 인간 망종은 될 수 없었다. ‘하아, 내가 받을 수 있는 것 퀘스트 보상뿐이라는 건가?’ 그때, 약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마가로프가 다시 물었다.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네.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건가?” “실은… 저는 마법 학회의 의뢰를 받고 오랫동안 당신을 찾았습니다.” “마법 학회에서?” 마가로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지, 맞아, 이제야 생각났네. 내가 유계로 넘어 오면서 반 장난삼아 마법 학회에 몇 가지 단서를 보내 놨지. 그렇다면 자네는 그 모든 단서를 모아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말이로군. 설마 정말 여기까지 찾아올 줄이야… 놀랍군.” “뭐, 쉽진 않았죠.” 이미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아크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마가로프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마법 학회도 참 어지간하군. 인내심이 없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없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사람까지 고용해서 찾느라 난리를 치는 건지. 쯧쯧….” 아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받아쳤다. “얼마나 되다니요? 제가 알기로도 이미 백수십 년이 넘게 지났는데.” “백수십 년?” 마가로프가 눈을 둥그랗게 뜨더니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핫핫핫, 무슨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건가? 내가 유계로 넘어온 건 고작 10년 전이야.” “네?”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멍청한 목소리를 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마법 학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 대체 왜? 아니, 마법 학회만이 아니다. 분명 계곡 마을의 기록에도…. 그러나 마가로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자네에게 일을 의뢰한 사람이 장난이라도 친 모양이군. 백수십 년이라고? 풋, 그럼 지금까지 살아 있는 나는 무슨 드래곤이라도 된다는 건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래, 마법 학회에서는 왜 자네를 보낸 건가? 내게 전할 말이라도 있는가?” “마가로프 님의 연구 자료를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연구 자료?” “네, 마가로프 님이 그동안 연구한 자료 말입니다.” 아크가 다시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을 하고 있던 마가로프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내가 그동안 연구한 자료… 내가 연구한… 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얼굴에 금이 쩍쩍 가지 시작하더니 각질처럼 피부가 우수수 떨어졌다. 뒤이어 나타난 얼굴은… 마치 흉측한 괴물의 살점을 이어 붙인 것처럼… 그렇다, 컴퓨터 그래픽을 만든 공포영화에서나 보던 프랑케슈타인 같은 얼굴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크가 얼이 빠져 있는 사이, 마가로프는 백발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마치 쇳가루가 튀어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연구 자료, 연구 자료, 연구 자료! 생살을 깎아 내는 것같은 고통을 참으며! 수십 년 연구한 나의 생명과도 같은 연구 자료! 네놈… 내게서 그걸 훔쳐 가기 위해서 쥐새끼처럼 숨어든 거냐? 내 생명을 빼앗겠다는 거냐? 감히 내게서!” “지, 진정하시죠. 혈압이….” “닥쳐라, 죽인다! 내 연구 자료를 노리는 놈들은 모두 죽이겠다아아아!” 마가로프가 괴성을 터뜨리는 순간! 급기야 몸이 찢어발기며 거대한 괴물이 뛰쳐나왔다. 눈으로 보기에도 괴로울 정도로 일그러진 육체. 거미처럼 얼굴에 몇 개나 되는 눈알이 박혀 있었고, 사자와 닮은 몸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팔이 10개나 붙어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셀 수조차 없는 물집 같은 것들이 울긋불긋 돋아나 있었다. 정말 어제 먹은 밥알이 곤두설 정도로 끔찍한 형체의 몬스터…!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광란의 연금술사 ‘마가로프’가 출현했습니다!) 도 서 명 : 아크 11 지 은 이 : 유성 펴 낸 이 : 이종주 출 판 사 : 로크미디어 출판년도 : 2009년 3월 30일 봉 사 자 : 김연경 <지은이 소개/ 유성> 작가 유성의 변신이 놀랍다! 그의 전작 (로스트 킹덤)은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전략, 전술이 어우러진 정통 판타지로 다소 무게감 있는 글이었다. 그런 그가 180도 변신해 돌아온 작품 (아크)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게임 소설이 지닌 재미를 극대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크)는 맛있다. 마치 지금 막 담은 겉절이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처럼 신선함이 화악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르 문학 사이트 ‘문피아’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된 (아크).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올여름 작가 유성의 손끝을 주목한다. <사진설명> 붉은 실오라기가 휘날고 있다. 검은색과 황색이 적절하게 조합된 배경으로 구성되어있다. <차례> 1 끝나지 않은 퀘스트 2 비정한 도시 3 새로운 취미 4 복실이는 집돼지? 5 바란족 구출 작전 6 X를 공략하라! 7 위기일발! 8 아크 상회 9 세계수의 진실 1 끝나지 않은 퀘스트 ‘이게 뭐야? 마가로프가 보스 몬스터란 말이야?’ 아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연출에 뜨악했다. 사람 몸이 무슨 4차원 공간이냐? 어떻게 왜소한 노인의 몸에서 10미터가 넘는 괴물이 나오는 거냐? 명색이 중세의 과학자인 연금술사라면서 질량 보존의 법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냐? 아크는 상식을 가진 현대인으로서 진지하게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살짝 맛이 가신 마가로프는 여전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서 헛소리를 지껄여 댔다. “크흐흐흐,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어! 이 모든 것은 내 것이다.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다! 빼앗으려 드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대화를 하자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수많은 보스를 봐 왔지만 이렇게까지 겁나게 생긴 놈은 또 처음이다. 마치 생체 실험에 실패한 괴물을 마구잡이로 이어 붙인 듯한 끔찍한 몸. 각자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 눈알. 10개나 되는 팔에, 등에 돋아난 총천연색의 물집들까지… 유전 법칙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사람을 식겁하게 만들 요소만 갖다 붙여 놓은 듯한 괴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헉 , 저, 저게 뭐야?” 마가로프가 변신하자 모퉁이 뒤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웬 돼지 한 마리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아 꽥꽥대고 있었다. 레리어트에게 ‘역사적 사명 어쩌구’ 핑계를 대고 몰래 아크의 뒤를 밟은 북실이였다. 몰려 숨어 ‘비장의 무기’ 를 사용할 기회를 엿보다가 마가로프를 보고 얼어 버린 모양이다. 그러자 마가로프의 눈알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북실이에게 집중되었다. 아크의 몸이 이성보다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저, 저런…멍청한 자식이…!” 아크는 ‘전력질주’ 로 뛰어가 북실이를 들이받았다. “꿀-!” 북실이가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동시에 마가로프의 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달려들었다. 검을 들어 막아 냈지만 엄청난 충겨에 몸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무시무시한 괴물의 박력 넘치는 공격을 받아 내자 온몸의 모공에서 식은땀이 확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 아크 님? 저를 구해 주시려고…?” “멍청아, 멋대로 까불다가 죽지 말란 말이야!” “아크 님!” 북실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당연히 아크가 마가로프의 유산을 차지하려는 순간에 ‘비장의 무기’ 를 사용하기 위해 몰래 따라온 것이다. 말하자면 뒤통수를 치기 위해…. 그런데 죽음에 직면한 순간에 아크가 몸을 던져 막아 주자 뭔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아아, 비록 악랄한 면이 있지만 아크 님은 그동안 나를 정말 동료로 생각했던 거야. 그런데도 나는… 나는… 그런 아크 님과 함께 다니면서도 항상 뒤통수를 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어. 크흑…! 나는 정말 치살한 놈이다. 인간도 아니야. 인간 실격이야!’ 그러난 그런 감동은 불과 몇 초도 이어지지 않았다. “네가 죽어 버리면 여기 있는 아이템을 누가 챙겨다가 파냔 말이야!” ‘이런 망할 자식, 나는 가방이냐?’ 뒤이은 아크의 말에 북실이의 얼굴이 휴지처럼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몸을 일으켜 아크가 마가로프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당혹감이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기쁨, 마치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한 사람처럼 기쁨이 좔좔 넘쳐흘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마가로프가 맛이 간 상태라면 나는 살기 위해 ’정당하게‘ 마가로프를 썰어 버릴 수 있어. 그리고 마가로프가 쓰러뜨리면 유산은 몽땅 내 차지다!’ 처음에는 공포 영화 같은 연출에 식겁했다. 그러난 아무리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도 돈이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설사 묘령의 아가씨가 TV에서 기어 나온다 해도, 혹은 꼬리를 9개 달고 국가 대표 체조 선수처럼 텀블링을 잘하는 아가씨가 간하고 허파를 덤으로 달라고 애원해도, 13일의 금요일만 되면 이유 없이 전기톱을 들고 나와 설쳐 대는 맛이 간 외국인이라도… 쓱싹 처리하고 아이템을 갈취할 수 있다면 언제든 웰컴이다. 덕분에 이제 마가로프는 아크에게 돈다발을 든 노인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죽여 버리겠다.’ 라는 말조차 ‘유산을 상속해 주마.’ 라는 말로 들릴 정도! 그러난 돈에 살짝 맛이 갔다고 해도 아크는 역시 전투에 있어서는 냉철했다. ‘방금 전에 검으로 느껴진 충격으로 가늠해 보면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어떤 특수 공격을 할지 모르니 무턱대고 싸우기는 부담이 커. 승리의 첫째 조건은 최대한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는 것!’ “뭘 멍청하게 앉아 있어? 따라와! 데드릭, 라자크, 뛰어!” 아크는 북실이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더러운 쥐새끼… 놓치지 않겠다!” 마가로프가 괴성을 지르며 뒤쫓아왔다. 그러나 아크는 ‘전력질주’를 반복하며 추격을 뿌리쳤다. “아크 님!” 그렇게 입구 근처까지 나오자 불안한 얼굴로 앉아 있던 레리어트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이어 쫓아오는 마가로프의 흉측한 모습에 비명을 터뜨렸다. “꺄악, 저, 저건…?”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일단 버프를!” “네? 아, 네! 전사의 기력, 고결한 생명력, 순결한 빛!” 레리어트가 연달아 3개의 버프를 중첩시켰다. 최대 생명력을 올려 주는 전사의 기력 그리고 3분 동안 일정양의 생명력을 꾸준히 회복시켜 주는 고결한 생명력, 마나 회복 속도를 향상시키는 순결한 빛…. 이노센스 나이트는 전투 능력은 홀리 나이트보다 떨어지지만 버프의 효과는 더 강했다. 물론 아란보다 레벨이난 숙련도가 떨어져 상대적으로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난 없는 것보다는 백배 나은 것이다. 게다가 버프는 아군 전체 효과라 레리어트와 아크는 물론, 북실이와 소환수들에게도 효과가 적용되었다. 파티 전체의 전투력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됐어.’ 아크는 걸음을 멈추고 빙글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마가로프를 ‘화격’으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A-1 플랜이다. 데드릭, 라자크, 좌우에 자리를 잡아라.” “알았다!” 딱딱딱딱, 따다닥! “레리어트 님, 뒤에서 놈을 공략해 주세요. 고결한 생명력이 걸려 있으니 방어보다는 공격에 중점을 두고 네 방향에서 집중 공격을 펼치겠습니다.” “네, 해 볼게요!” 레리어트는 두려운 눈으로 마라로프를 바라봤지만, 그녀도 어린애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섭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북실이, 너는 거치적거리니까 뒤로 물러나 있어!” “네, 해 보겠습니다!” 북실이가 용맹하게 대답하며 얼른 도망갔다. 아크가 마가로프의 주의를 끄는 사이, 아크와 소환수, 레리어트의 포위망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아크는 ‘엘리멘탈소드’로 검에 화염 속성을, 데드릭은 ‘암흑돌진’, 라자크와 레리어트는 검격과 ‘방패치기’사용할 수 있는 모든 스킬을 동원해 마가로프를 몰아쳤다. “크아아악, 이, 이놈들…!” 사방에서 폭풍처럼 몰아치자 마가로프의 생명력이 단숨에 30%나 깎여 나갔다. 물론 마가로프는 만만하기만 한 상대는 아니었다. 레벨은 무려 500. 레벨에 어울리는 공격력을 가진 10개나 되는 팔이 기괴하게 꺾이며 전후좌우로 공격을 퍼부어 댔다. 아마도 아크 혼자였다면 고전을 면치 못했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꾸준히 음식을 퍼먹여 능력치를 올려놓은 소환수가 있었고, 지난 열흘간 아크의 스파르타 교육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레리어트가 있었다. ‘가르친 보람이 있군.’ 아크는 흐뭇한 눈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물론 스승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 가르쳐야 할 게 더 많아 보인다. 그래도 노력한 보람이 있어 레리어트도 이제 아쉬운 대로 한 사람 몫을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이노센스 나이트의 최대 장점은 중갑을 입고서도 회복 마법을 펼칠 수 있다는 점! “치유의 손길!” 레리어트는 방어 태세로 공격을 막으면서도 틈틈이 회복 마법을 펼쳐 주었다. 전사가 회복 마법을 받는 것과 아닌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덕분에 아크는 생명력을 걱정하지 않고 오직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크으으윽, 이놈… 감히 도둑놈 주제에…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마가로프의 생명력이 50%까지 깎였을 때였다. 또다시 귀살검에 치명타를 얻어맞은 마가로프가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꺾었다. 동시에 마가로프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블 크리티컬 찬스! 기회다!’ 아크가 정말 한 마리 늑대처럼 몸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돌연 마가로프가 10개의 팔을 움직여 등의 물집 같은 것을 헤집었다. 그리고 다시 나왔을 때, 그 손에는 각양각색의 약병이 들려 있었다. “연구 자료가 필요하다고? 크흐흐흐, 좋다, 받아라! 이게 바로 내 연구의 성과다!” 휘리리릭, 퍼펑, 퍼펑, 쿠콰콰콰쾅! 마가로프가 집어 던진10개의 약병이 땅에 떨어지자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과 독가스, 번개와 돌풍…! (뇌전 폭발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미지150.) (화염 속성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데미지250….) 온갖 속성 데미지가 정신없이 들어왔다. 마가로프가 던진 약병에는 속성 데미지를 주는 폭발성 액체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크는 몽구스의 내단 덕에 어지간한 속성에 모두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엘리멘탈 소드’를 사용하느라 저항력이 100%나 줄어들어 -25%까지 내려간 화염 속성은 추가 데미지가 적용되어 일격에 250의 데미지가 들어 왔다.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뒤이어 마가로프가 다시 약병을 꺼내 입으로 던져 넣자 생명력이 쭉쭉 올라갔다. 회복 포션으로 회복까지 하는 것이다. “크크크, 어떠냐? 어리석은 놈… 이게 연금술의 위력이다!” 마가로프는 회복 포션을 마셔 대며 히죽거렸다. “무, 무슨 이런 개 같은…!“ 마가로프는 쉬지 않고 2개의 팔로 회복 포션을, 나머지 팔로 폭발 포션을 날려 댔다. “헉, 라둔, 포션을 삼켜라!” 쌕쌕, 쌕쌕쌕! 아크의 명령에 라둔이 혀를 쏘아 내 폭발 포션을 낚아챘다. (라둔이 ‘화염 폭발 포션’을 습득했습니다.) 그러난 라둔의 혓바닥에 모터를 달아도 한 번에 8개의 폭발 포션을 몽땅 집어삼킬 수는 없었다. 라둔이 집어삼킨 포션은 고작 하나, 나머지 7개는 고스란히 폭발을 일으켰다. 쿠쿠쿠쿠, 쿠쾅, 콰콰콰쾅! 마치 하늘 위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크는 전력을 다해 ‘다크 댄싱’을 펼쳤지만 애초에 좁은 동굴에서 폭발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간신히 직격탄를 피하며 레리어트의 회복 마법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자 마가로프가 시선을 레리어트에게 돌렸다. “흥! 감히… 어설픈 수작을…!” ‘안 돼, 레리어트 님은 아직 폭발 포션을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아크는 ‘전력 질주’로 마가로프를 지나쳐 레리어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소리쳤다. “레리어트 님! 무기를 들어 올리세요!” “네?” 레리어트가 영문도 모르고 무기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아크는 그대로 달려들어 ‘화격’으로 방패를 후리쳤다. “꺄악-!” 레리어트가 데구르르 구르며 10여 미터나 밀려났다. 동시에 아크의 주변에서 폭발 포션이 깨지며 강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크는 눈앞에 시뻘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단숨에 1,500에 가까운 생명력이 빠져나가자 게이지가 뚝 잘려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아, 아크 님! 치유의 손길, 치유의 손길!”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마가로프가 쉬지 않고폭격을 가하자 회복되는 양보다 줄어드는 양이 더 많았다. 제대로 반격할 기회도 없다! 게다가 간신히 치명타를 안겨 줘도 마가로프는 곧바로 회복 포션을 이용해 생명력을 회복했다. 그런 와중에 소환수의 자잘한 공격이 먹힐 리가 없었다. 10개나 되는 팔로 포션을 물처럼 써 대면 이렇게 무지막지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빌어먹을… 이렇게 물약으로 도배하는 놈을 무슨 수로 쓰러뜨리라는 거야?’ 쓰러뜨리기는커녕,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방에서 터지는 포션, 소환수들도 이미 명령을 따를 상황이 아니었다. “으악, 불, 불이다!” 딱딱딱, 딱딱딱딱!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목숨을 부지하기도 벅찬 것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폭팔이 일어나자 벽면에 있던 캡슐도 박살 났다. 캡슐 안에 있던 끈적한 액체와 조각난 키메라의 사체가 사방으로 흩어져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빌어먹을 놈, 제가 만들어 놓고 저렇게 막 부숴도 되는 거야?’ 그때, 아크는 문득 바닥에 널브러진 키메라의 사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놈은 포션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레리어트 님, 내가 이놈을 잡고 있는 사이에 밖으로 도망가세요!” “네? 하, 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 아크가 소리치자 레리어트가 황급히 동굴을 빠져나갔다. “데드릭, 라자크, 너희들도 동굴 밖으로 나가!” “뭐? 주인! 그게 무슨 소리야?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딱딱, 딱딱딱딱! 데드릭과 라자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하, 평소에는 지긋지긋하게 속 썩이다가 꼭 이럴 때만 기특한 말을 한다. 그러나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그 계획을 정신 감응으로 설명해 주자 데드릭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주인의 사악한 잔꾀가 또 시작됐군!” “잔말 말고… 이거 받고 빨리 나가. 시간이 없어.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잘해야 10분이다. 만약 10분 안에 계획대로 처리해 주지 못하면 나는 100% 죽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걱정 단단히 붙들어 매셔!” 데드릭과 라자크는 아크가 건네준 보따리를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자, 이제 어디 1대1로 한번 붙어 보자. 10분 안에 날 죽이면 승리다!” “크흐흐흐, 감히…!” 마가로프가 같잖다는 듯이 히죽거리며 약병을 날려 댔다. 아크는 아예 반격을 포기하고 ‘슬라이드’와 ‘다크 댄싱’을 난사하며 약병을 피해 다녔다. 그리고 적당한 시기에 동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같은 폭팔 포션을 맞아도 생명력이 20~30%나 더 빠져나갔다. ‘쳇, 던전이라고 무턱대고 뛰어든 게 실수였어.’ 던전 안에서는 무조건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된다. 때문에 굳이 밤에 공략할 이유가 없어 낮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밖으로 나오자 어둠 속성 보너스가 해제되어 능력치가 40%나 주어든 것이다. ‘하지만….’ “라둔, 어둠 속성 마법 재료 10개!” 쌕쌕쌕, 쌕, 쌕쌕쌕쌕쌕! 라둔이 우물우물하다가 마법 재료를 탁탁 뱉어 냈다. 아크는 마법 재료를 허리에서 달랑거리는 램프의 아랫부분에 넣고 레버를 당겨 불을 지폈다. 순간 주변이 커튼에 가려진 것처럼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의 램프’에 의해 30분간 주변이 ‘밤’ 상태로 유지됩니다. 어둠 속성 보너스(모든 능력치+30%)가 적용됩니다.) “라르칸의 반지, ‘어둠의 보호’ 발동!” 반지를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아크의 몸이 검은 회오리 같은 기운에 휩싸였다. 물리 방어력, 마법 저항력을 20%나 상승시켜 주는 ‘라르칸의 반지’ 옵션 효과! 물론 이 ‘어둠의 보호’ 역시 어둠 속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어둠의 램프’가 발동하고 있으니 문제 될게 없다. 아크는 정신없이 ‘슬라이드’와 ‘다크 댄싱’을 펼쳤다. 일부러 동굴 밖으로 나온 이유는, 좁은 공간에서는 포션의 폭팔 범위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곳은 넓은 숲, 두 스킬을 적절히 사용하면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포션에 아크의 생명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 급기야 빈사 상태까지 몰려 버렸다. 덕분에 가끔씩 ‘길가쉬의 모피’에서 반격기로 ‘마력 보호’가 발동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젠장… 벌써 15분이 지났는데….’ 아크가 주변을 힐끔거렸지만 아직 레리어트나 데드릭의 반응은 없었다. 그사이 화염이 일어나며 생명력이 3%나 깎여 나갔다. ‘안돼, 더 이상은 무리다!’ 아크가 절망적인 눈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폭팔 포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됐어, 주인! 가라, 라자크!” 딱딱딱, 딱딱딱딱! 꽤나 먼 곳에서 라자크의 잇소리가 들려왔다. 그때였다. 돌연 주변의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더니 검은 그림자들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재주 넘듯 펄쩍펄쩍 뛰어다니자 쏟아지던 폭팔 포션들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헉! 무, 무슨… 네, 네놈들은… 키메라!” 그렇다, 숲에서 뛰어나온 것은 썩은 동태 눈깔을 하고 있는 도둑여우였다. 아크는 부서진 캡슐에서 나온 도둑여우의 사체를 보고 이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동굴 주변에는 이상한 약물 냄새가 나서 몬스터가 접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자크가 ‘죽음의 방정식’으로 조종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미리 레리어트와 북실이, 데드릭과 라자크를 내보낸 것은 바로 이 작전을 위해서였다. 이전에 도둑여우를 잡았듯이, ‘나딩카의 열매’를 이용해 도둑여우를 사냥하기 위해서. 아직 레리어트가 미숙해 잘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도둑여우를 사냥하고 좀비화시킬 수 있었던 모양이다. 뭐, 덕분에 라자크의 갈비뼈는 또다시 숫자가 줄었겠지만… 진화를 하고도 계속 능력치가 떨어지는 불쌍한 라자크였다. 어쨌든 덕분에 전황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아크는 귀살검을 떡하니 어깨에 걸쳐 놓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 어디 그 잘난 약물을 던져 보시지.” “이…이 자식이…!” 마가로프가 다시 폭발 포션을 집어 던졌다. 그러난 멀찍이 물러난 있던 도둑여우들이 몰려와 폴짝거리며 몽땅 집어삼켰다. 아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비아냥거렸다. “어라? 약병이 다 어디 갔지? 와, 신기하네?” “이, 이 멍청한 놈들이…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마가로프는 자신이 만들어 낸 도둑여우의 배신에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난 만들어 냈다고 다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사후 관리인 것이다. 쓸모없는 박쥐와 해골, 달걀을 애정 하나로 데드릭과 라자크, 라둔으로 키워 낸 아크처럼 말이다. “다했어? 이제 내 차례지? 레리어트 님, 회복 마법을 걸어 주세요!” “네, 치유의 손길!” 뒤늦게 쫓아온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난사했다. “자, 간다. 귀기개방!” 끼야아아아악! 귀살검의 봉인이 풀리며 요괴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아크는 귀기에 휩싸인 검을 휘두르며 마가로프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쭉쭉 빨려 나가는 생명력! 순식간에 50%나 깎여 나간 마가로프가 뒤로 물러나며 회복 포션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회복 포션은 도둑여우들도 꽤나 좋아하는 아이템인 모양이다. 기회만 노리던 도둑여우들이 피라니야 떼처럼 몰려들어 빼앗아 먹어 버렸다. “이, 이 망할 놈들… 저리 가지 못하겠느냐!” “어딜 보고 있는 거야? 네 상대는 나라고!” 서걱, 서걱, 치잉-! 간만에 귀살검이 제 위력을 발휘하며 마가로프의 살점을 베어 냈다. 순식간에 남은 생명력은 고작10%. 폭발 포션을 사용하지 못하는 마가로프는 그저 덩치만 큰 몬스터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난 아크는 결정타를 날리지 않고 야금야금 생명력을 갉아 댔다. 그렇게 다시 남은 생면력에서8%를 떼어 내자 마가로프가 동굴 쪽으로 도망쳤다. “이제 밑천이 떨어진 거냐? 미안하지만 그냥은 못 보내지. 간다, 전력질주!” 아크는 쏜살같이 달려가며 검을 세차게 내리그었다. 동시에 마가로프의 몸이 쩍 갈라지며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라습니다….) 일도양단이 터지며 경험치에*1.4 적용되었다. 주르륵 올라가는 메시지는 일곱 번, 단숨에 레벨이 7이난 올라간 것이다. 또한 파티원인 레리어트와 북실이의 머리 위에서도 십자 문양이 팽이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아크와 레벨이 거의 100이나 차이 난 경험치 페널티가 적용되는데도 6~7가까이 올라간 듯했다. “됐다! 성공했다!” 그러나 아크의 관심은 경험치보다 아이템이었다. 아크는 곧바로 우수수 떨어지는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마가로프의 차원 이동 가루 주머니<20킬로그램> 천재 연금술사 마가로프가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 낸 놀라운 마법 아이템입니다. 차원을 이동한다고 알려진 신비한 요정의 가루를 정제한 것입니다. 이 가루를 적당량을 사용해 주머니에 새겨진 마법진을 따라 그리면 중간계와 유계를 잇는 차원 게이트가 만들어집니다. 마법진의 크기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며, 보다 큰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가루가 소모됩니다. 단, 마법진이 손상되면 효력이 없어집니다.<유계=중간계 간의 마법 게이트>) (마가로프의 최상급 연금 도구<레어> 아이템 타입 : 마법도구 사용제한 : 상급 연금술 스킬 천재 연금술사 마가로프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연금술용 도구 세트입니다.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도구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재질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특수 제작품입니다. 또한 천재 연금술사가 질을 잘 들여 놓아 같은 제작물을 만들어도 더 강력한 효과를 낼 확률이 높아집니다. 숙련된 연금술사가 사용하면 때때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놀라운 발견을 할 기회도 있을 것입니다. 장담하건대 이만큼 훌륭한 도구는 그리 쉽게 구할 수 없습니다. <소유자에게 지속 효과 : 지혜+20, 지능+20, 운+10> <특수옵션 : 제작되는 모든 연금 물품의 성공률+30%, 최상품이 만들어진 확률+10%>) ‘연금 도구?’ 마가로프의 최상급 연금 도구는 묵직한 가방이었다. 분쇄기나 비커 같은 각종 실험 기재가 담겨 있었다. 연금술은 원래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직업이다. 그 이유는 마법 재료가 비싸다는 것도 있지만, 물품 제작시 대장장이나 재봉 같은 스킬보다 실패율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계속 똑같은 아이템만 만들면 그 물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실패 확률이 낮아진다. 그러난 연금 관련 숙련도를 올리려면 항상 새로운 제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 경우, 실패율은 다른 직업의 3배나 된다. 그리고 실패 시 날아가는 금액도 다른 직업의 몇 배에 달한다. 때문에 연금술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아이템이 바로 성공률을 올려 주는 것! 그런데 성공률 30%, 거기서 서바이벌 요리로 치면 ‘일품요리’처럼 최상 옵션이 붙는 제작품이 만들어질 확률도 10%나 붙어 있다. 연금술사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아이템인 것이다. ‘연금 용품의 시세는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최소한 수백만 원이다!’ 다음으로 얻은 게 차원 이동 아이템.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중간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분량에 한계가 있으니 아껴 써야지. 아직은 한정된 사람밖에 들어올 수 없지만, 언젠가 정보가 공개되면 사람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 거야. 그 전에 먼저 유계를 찾아낸 이점을 살려 최대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독식해 놔야 해.’ “자, 이제 남은 건 연구실이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덕분에 이제 마가로프가 사라졌다. 이제 명실공히 연구실은 아크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아크는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먼저 퀘스트 해결 아이템을 찾기 위해 책장에 손을 가져갈 때였다. 이전에는 마가로프가 나타나서 제동을 걸더니 이번에는 북실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앞으로 나서며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후후후후.” 북실이는 마법 영사기를 내리고는 족발을 들어 아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까지다, 아크. 솔직히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역시 너는 나를 실망시켰어. 그러니 이제 거리낌 없이 말하겠다. 미안하지만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뭐?” 아크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휘적… 책장으로 뻗은 손이 뭔가 허전했다. 손을 뻗었으니 당연히 책이 손에 잡혀야 한다. 그런데 신기루처럼 손이 책장을 그냥 통과해 버린 것이다. “어라? 이게 대체…?”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다시 손을 뻗어 보았다. 그러나 몇 번을 다시 해 봐도 손은 책을 그냥 통과해 버렸다. 혹시나 싶어 다른 물건을 집어 들어 보았지만, 그것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포션이나 책, 두루마리… 무엇 하나 집어 들 수가 없었다. “뭐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크는 당혹성을 터뜨리며 연구실을 돌아다녔다. 그때, 입구 근처에 서 있던 레리어트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얇은 책자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크 님, 여기 이 책은 만질 수 있어요.” 아크는 허둥지둥 달려가 책자를 펼쳐 보았다. 책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마가로프의 일기장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써 내려간 듯 삐뚤빼뚤한 글자가 가득 적혀 있었다. 157쪽 유계를 찾아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어 간다. 그러나 아직 내가 원하는 지식을 손에 넣지 못했다. 아니, 이제 대체 내가 뭘 위해서 유계까지 와서, 이런 곳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저…. 그러나 이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ㅇ대로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내 인생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328쪽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결국 선택했다. 내가 이곳에서 연구한 키메라에 대한 자료를 종합해 스스로 진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연금술사들에게 터부시되던 금단의 비법! 그러나 이건 결코 내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다. 이제 내 길고 긴 연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 평생을 바친 연구가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연구를 끝내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402쪽 다행히 1차 실험은 성공한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던 몸에 오랜만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신이 맑아지고 무슨 연구라도 단순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420쪽 뭔가 이상하다. 가끔씩 내가 내 욕구를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의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험의 부작용일까? 불안하다. 459쪽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아,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뭘 어떻게 조합했기에 연구실의 모든 것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변화되어 버린 것일까? 분명 그것은 내가 진행하던 실험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게 분명하다. 아마도 이게 오래전에 유계 전역에서 일어났다던 그 현상이리라. 만약 그렇다면 내가 찾아오던 해답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맙소사, 오랜 세월 연구해 온 자료들을 내 스스로도 만질 수 없게 되다니…! 이제 내가 만질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일기장뿐이다. 그러나 이 일기장조차 내가 쓴 글들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있는가?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모르겠다…. 나는… 나는… 속은 것인가? 누구에게…? ‘그럼 마가로프가 살짝 맛이 간 게 스스로를 키메라로 만들어서였던 건가?’ 일기장엔 한 천재 연금술사가 너무 연구에 매진한 나머지 살짝… 아니, 제대로 맛이 가게 된 과정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더 연구를 하고 싶어서 자기 몸을 개조했다가 단기기억상실과 치매, 심지어 성형 부작용까지 겪으며 슬슬 미쳐 갔던 것이다. 역시 머리가 너무 좋아도 인생은 순탄치 못한 것이다. 그렇게 아크가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읽자 돌연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신기루 서재> 당신은 오랜 시간 천재 연금술사의 발자취를 쫓아 마침내 숨겨진 연구실을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망하게도, 당신은 연구실에서 아무것도 손에 넣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마가로프가 사라졌으므로 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떻게 해야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는지는 스스로 알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난이도 : ???>) ‘이런 망할… 연구실만 찾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었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짜증이 솟구쳤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가? 달랑 열쇠 하나 들고 시작해서 투기장, 살린의 탑을 돌고나서야 겨우 유계로 들어오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다 모았다. 그리고 유계로 들어오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다 모았다. 그리고 유계로 들어온 뒤에도 절망의 암연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나서야 겨우 연구실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완료’가 아닌 ‘갱신’ 이라니? 이게 무슨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보상을 얼마나 대단하게 주려고 이렇게 굴려 대는 거야?’ 성질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퀘스트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고생을 하고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연구실에서 만질 수 있는 것은 이 일기장뿐이다. 하지만 일기를 쓴 마가로프도 연구실에서 일어난 현상을 해결할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그렇다면 이 서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알아봐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나 아크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유계에서 아크가 알고 있는 마을은 달랑 하나, 계곡 마을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근방에서 제일 유식하다는 팔불출 노인네, 베스튜라가 있지 않은가? 가업으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록해 놨다고 하니,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짐작 가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유계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일기장의 구절은 그것을 암시하는 힌트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아크의 다음 목적지가 정해졌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계곡 마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대강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슬쩍 고개를 돌려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계속 말해 보지? 역시 뭐라고?” “네? 아, 아니… 그게 ….” 북실이는 불안하게 눈알을 굴려 대다가 이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크 님의 것이라고. 헤헤헤, 네, 그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저나 레리어트 님이 아닌, 아크 님 거죠.” ‘흥, 같잖은 놈. 역시 뭔가 숨겨 놓은 게 있기는 한 모양이군.’ 아크는 잠시 북실이를 노려보았다. 새삼 그 부분에서 아크는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북실이는 상인, 무슨 짓을 해도 아크를 이길 방법이 없다. 그 사실은 아마도 북실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그런데 대체 왜 죽을 위험까지 안고 아크를 따라다니고 있는 걸까? 분명 거기에는 아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확실히 아크에게서 유산을 가로챌 수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뭔가가…. 대체 그게 뭘까? 아크가 아직 모르는 스킬? 주문서? 아이템? ‘지금 저놈을 두들기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아직 유산을 차지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실이는 아직 이용 가치가 많았다. 프랑스에서 송로버섯을 찾을 때 돼지를 이용하는 것처럼 식재료 채취용으로, 보조 가방용으로, 혹 금전 거래가 가능한 곳을 찾으면 판매 대행용으로 그리고 우연히 시작하게 된 동영상 촬영도 가능하면 제대로 끝마치고 싶었다. 거기까지 계산한 아크는 짐짓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새삼스럽게 인정해 주니 고맙군.” “아이고, 무슨 그런… 당연한 일이죠.” “역시 그렇지?” “헤헤헤헤, 그렇습니다, 나리.” 북실이가 족발로 이마를 탁탁 치며 너스레를 떨어 댔다. 둘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레리어트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자, 어쨌든 일단 계곡 마을로 돌아가자. 이제 길을 모두 파악했으니 올 때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라둔, 우리 3명을 태우고 갈 수 있겠어?”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힘들지만 해보겠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아크는 라둔마를 타고 계곡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상상도 못 했다. 지금 달려가고 있는 계곡 마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두 해결했다고 생각했던 이 퀘스트가, 유계와 중간계, 아니 뉴 월드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리고 그 모험이 아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비정한 도시 “네? 없다고요?” "그래, 한 달 전쯤에 몇 개 들어왔는데 바로 다 팔려 버렸네.“ “그럼 다음 물건은 언제 들어오는데요?” 꾀죄죄한 몰골의 상인이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특산품 상점 주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알았으면 좋겠네. 어떨 때는 서너 달 만에 들어올 때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반년이나 걸릴 때도 있지. 보통은 네 달 정도 걸리는 편이네. 납품일이 확실하지도 않은 데다 수량도 적어서 우리도 판매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뭐, 워낙 희귀한 물건이니 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 그럴수가….” 상인이 울상을 짓자 상점 주인이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래도 자네는 꽤 운이 좋은 편이네.” “네?” “우리 상점은 1년에 한 번씩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해 감사 세일을 한다네. 진열되어 있는 모든 상품을 15%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다네. 딱 이번 주까지야. 어떤가? 모처럼 멀리서 찾아왔으니 이참에 물건 좀 사 두지 않겠나? 이곳은 비록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지만, 보기 힘든 특산품이 많네. 다른 지방에 가져가면 좋은 가격을 받을 거야.” 상점 주인은 폭탄 세일이니 가격 파괴니 떠들어 대며 꼬드겼다.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귀가 솔깃해질 얘기였다. 그러나 진열대를 한 번 쓰윽 훑어본 상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습니다.” 다른 직업의 유저와 상인의 게임 플레이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다른 직업의 유저들은 NPC와 거래할 때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이용하는 잡화상점이나 무기상점 등에서 취급하는 물건들 역시 마을마다 판매, 매입 시세가 약간씩 다르다. 그러난 뭔가 큰 이유가 없는 한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상인이 주로 거래하는 특산품이나 교역품은 얘기가 다르다.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엄청나고, 갑자기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해 사전에 정보를 입수해 놓지 않으면 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뿐이 아니다, 특산품이나 교역품을 취급하는 상점의 NPC들은 가격이 폭락했음에도 속이고 이전 가격으로 파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처럼 감사 세일이나 뭐니 하며 팔리지도 않는 재고품을 떠넘기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상인이 순진하게 NPC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하루아침에 파산. 상인에게 거래는 곧 상점 주인과의 진검승부인 것이다. “그러지 말고 잘 생각해 보게. 이런 질 좋은 물건들은 다른 데서 구하기 힘들다니까. 게다가 세일이잖아? 좋아, 15%할인에 덤으로 자주 들러 달라는 의미에서 100골드 이상 구매하면 특별 선물도 하나 끼워 주겠네.” 상점 주인이 이렇게까지 나오면 100% 팔리지 않는 재고품이다. “됐어요. 다음에 다시 들를게요.” “흠, 아쉽군. 특별 선물을 2개 끼워 줄 수도 있는데…. 생각이 바뀌며 언제든 찾아오게.” 참으로 끈덕진 상점 주인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특산품 상점을 나선 상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들어? 딱 봐도 반값도 건지기 어려운 재고품이구먼. 하여간 촌구석이라도 상점 NPC는 방심할 수가 없다니까.” 그렇게 투덜대는 유저는 다름 아닌 호비트 상인 시드였다. 확실히 예전 같았으면 감사 세일이라는 말에 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시드도 예전처럼 헐렁하지 않았다. 아크의 친절한 배려(?)에 갖은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덕분에 이제 상인으로서 제법 경륜이 느껴질 만큼 성장했다. 아니, 단순히 경륜을 쌓은 정도가 아니라, 시드가 활동하는 나가란 일대에서는 대상으로서 명성을 날리는 중이었다. 찌질하기 짝이 없는 시드가 그런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현재 나가란의 복잡한 정세도 한몫 거들었다. “아크 님이 시르바나를 떠난 지도 그럭저럭 두 달이 지났구나….” 시드는 까마득한 과거를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그동안 나가란의 12개의 영지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없이 반복되는 길드전과 공성전, 그 숫자만큼이나 영주가 바뀌었다. 그러나 혼란의 시기가 있으면 안정의 시기도 오기 마련. 의욕적으로 영주 자리에 도전했던 많은 길드가 소모전을 버티지 못하고 누더기 되어 나가떨어지는 가운데, 몇 번이나 방어전에 성공하는 연합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자리를 잡자 다른 연합과의 차이가 더욱 벌어져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른바 나가란 5대 연합! 그렇게 5개의 연합이 자리 잡자 판도가 달라졌다. 나가란으로 진출한 대부분의 거대 길드는 영지 하나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먼저 모든 유저의 첫 번째 목표는 영지를 차지해 영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주가 되면 동시에 명예 자작의 칭호를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출발점에 불과했다. 만약 더욱 세력을 확대해 3개 영지를 손에 넣으면 작위가 올라가 명예 백작이 된다. 차지한 영지가 많으니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배당금도 많아지게 된다. 6개의 영지를 손에 넣으면 대영주로 승격되어 명예 후자의 작위를 받는다. 그리고 나가란의 12개 영지를 모두 손에 넣으면 명예 공작 작위와 함께 ‘공왕’의 칭호를 받게 된다. 아직 ‘공왕’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로써는 유저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직위였다. 거기서 얻어질 수 있는 수익은 분명 상상을 초월하리라! 돈과 명예가 있는 곳에는 피가 마르지 않는 법. 이제 곧 나가란이 ‘정복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5대 연합의 세력은 거의 대등. 아직 다른 영지로 진출한 만한 여력을 가진 연합은 없었다. 아니, 설사 여력이 있다고 해도 섣불리 야심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튀어나온 돌이 정을 맞는 법! 섣불리 꿈지럭거렸다가는 나머지 세력에게 다구리를 당하게 되리라. 때문에 5대 연합은 서로를 견제하며 내실을 다지는 한편, 다른 영지에서 소모전을 반복하는 약소 길드를 회유, 원조하는 방식으로 세력을 넓혀 갔다. 인류의 역사가 그랬듯이,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조종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냉전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냉전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경제력이었다. 5대 연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처럼 각자의 영지에 돈을 쏟아부으며 발전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영지의 등급을 올려 더 많은 수입을 얻어, 그걸 군사력으로 바꾸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대략 한 달… 5대 연합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세력이 나타났다. 그 세력이 바로 시르바나를 차지한 헤르메스 연합이었다. 과거 아란이 탐을 냈고, 아크 역시 그 지리적인 이점을 인정한 시르바나! 일단 헤르메스 연합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투자하자 시르바나는 눈부시게 발전해 얼마 전에는 처음으로 C급 영지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그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것은 엉뚱하게도 아크의 선견지명(?)으로 세워진 교역소였다. 영주가 바뀐 뒤 ‘대륙상회’로 이름을 바꾼 교역소는 다른 영지보다 한 발 앞서 각종 교역품을 선점, 하루가 다르게 세를 불려 가고 있었다. “후후후후, 그 배후에는 이 몸, 캐러번인 시드가 있었지.” 시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시드는 아크에 의해 낙하산으로 대륙상회에 취직했다. 그리고 대륙상회의 현 회장은 아크교의 광신도 NPC, 월커스다. 당연히 시드는 그야말로 에스컬레이터 승진을 반복해 현재는 대회사업부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대륙상회에서 취급하는 모든 상품의 구매, 판매를 총괄하는 직위였다. 일주일에 1만 골드가 넘는 돈이 시드를 통해 움직이는 것이다. 이 무지막지한 거래를 총괄한 덕분에 시드는 각종 스킬이 정말 미친 듯이 올라갔다. 게다가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들어오는 경험치로 이미 레벨 200을 넘긴지 오래였다. 그리고 실적을 인정받아 얼마 전에는 모든 상인이 꿈에 그리는 캐러번의 칭호까지 받았다. “오오오, 저사람… 시드다!” “일주일에 몇만 골드를 움직인다는 전설의 상인!” “불과 두 달 만에 대륙상회의 대외사업부2장이 됐다는 사람이야.” “얼마 전에는 실적을 인정받아 상인 길드 마이더스에서 캐러번 칭호를 받았다며?” “맞아, 저 가슴에 달려 있는 훈장은 캐러번의 칭호를 받은 사람에게만 지급되는 거래.” “굉장한다, 캐러번 칭호를 받은 사람은 아직 몇 명 되지도 않잖아?” “그뿐이 아니야. 캐러번이 되면 상인 길드에서 VIP 대접을 받으며 각종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분명 그런 고급 정보를 이용해서 엄청나게 벌어들이고 있을 거야. 아마 지금 가진 자금만으로도 당장 길드 1~2개는 만들 수 있을걸.” 교역소나 상인 길드에 시드가 나타나면 상인들이 선망의 눈길을 보내왔다. ‘후후후, 존경해라. 더 존경해라!’ 그럴 때마다 시드는 우쭐한 기분에 젖었다. 그러나 간혹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돈이 많다는 사람이 입고 있는 게 왜 저래?” “그러게. 어째 궁상맞아 보이는데?” 이때가지도 시드는 저레벨 시절에 입었던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더구나 항상 바쁘게 오가다 보니 세탁도 제대로 못해 꼬질꼬질하기 짝이 없었던 것. “정말 돈 많은 사람들은 옷차림 같은 건 원래 신경 안 써.” “하긴, 돈 많은 사람들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귀티가 나긴 하지….” 상인들은 제멋대로 떠들어 대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시드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들이 썩었냐? 나한테 귀티가 난다고? 젠장, 옷은커녕 밥 먹을 돈도 없다고!’ 그렇다, 대륙상회의 대외사업부장! 일주일에 1만 골드의 돈을 움직이는 상인! 상인 길드에서도 인정한 캐러번…. 이런 것들은 사실 빛 좋은 개살구에 불구했다. 실체는 대륙상회의 월급쟁이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처음과 달리 지금은 월급과 성과금을 합해 제법 수입이 짭짤했다. 다른 상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자는 아니라도, 먹고살 만큼은 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수입조차 대부분은 아크에게 차압당하는 상태였다. ‘흑… 이래서 빚은 만들면 안 되는 거야.’ 처음에는 아크는 시드의 수입 중 50%를 차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드가 수입이 좀 나아지자 어떻게 알았는지 로코를 통해 이런 전언을 보내왔다. (월급이 많이 올랐다면서요? 돈이 있으면 빚을 먼저 갚아야겠죠? 월커스에게 시드 님의 급료 가운데 90%를 꼬박꼬박 내 앞으로 보내라고 말해 놨어요.) …귀신같은 인간이었다. 덕분에 시드는 월급이 올랐음에도 더욱 궁핍한 생화를 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무슨 자기 집 마당쇠로 생각하는지 걸핏하면 잔심부름을 시켜 댔다. 사실 시드가 나가란을 떠나 이런 촌구석까지 오게 된 것도 아크 때문이었다. 얼마 전 또다시 로코가 찾아와 아크의 전언을 전달했다. “아크 오빠가 ‘일각수의 뿔’을 구해 란셀 마을로 오래요.” “네? 몇 개나요?” “갱생단 오빠들이 마련할 수 있는 돈이 4000골드니까 거기에 맞춰서요.” ‘빌어먹을, 지는 발이 없어? 손이 없어? 수고비 한 번 준적도 없으면서!’ 시드는 발끈했지만 별수 있겠는가? 아직 아크에게 갚아야 할 돈이 3600골드나 남았으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알았어요. 돈 주세요.” 시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그러자 로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돈요?”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사든지 말든지 하죠.” “아, 그거요? 실은 아직 갱생단 오빠들에게 돈이 없어요.” “그럼 어떻게 물선을 사라고요?” “잘은 모르겠는데… 아크 오빠 말로는 시드 님 캐러번이 됐다면서요? 캐러번이 되면 상인 길드에서 4000골드 정도는 대출받을 수 있을 테니 일단 그걸로 처리하라던데요? 란셀 마을로 가지고 오면 결제해 주겠다고.” “에에?” 시드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그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물론 캐러번이 된 시드는 상인 길드에 대출을 신청할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대출은 말 그대로 빚. 신청하는 절차가 꽤나 복잡할 뿐만 아니라 기간에 따라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뿐인가? 일단 대출을 신청하는 것만으로도 어렵게 쌓아 올린 신용도가 상당히 깎이게 된다. 뭐, 자기가 시켰으니 이자 정도는 아크가 계산해 주겠지만… 대체 얼마나 뻔뻔하면 수고비 한 푼 안 주고 심부름을 시키면서 빚까지 지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어쩌면 그편이 나을지도 몰라.’ 그러나 시드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구매 요청자는 다름 아닌 아크다. 그 사악하지 짝이 없는 성격을 생각하면 제값에 물건을 사다 줘도 어떻게든 깎으려 들 게 분명하다. 그러나 대출받아서 물건을 구해 가면 그럴 걱정이 없었다. 이는 상인 길드에서 시행하는 대출 제도의 룰 때문이다. 상인 길드에서 대출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골드를 빌려 주는 게 아니다. 상인 길드의 이름으로 골드 없이 물건을 구매 할 수 잇도록 보증을 서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인 길드에 대출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일종의 차용증을 발급해 준다. 그러면 상인은 그 차용증의 한도만큼 NPC가 운영하는 상정에서 상품을 신용 구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제약이 있었다. 차용증을 발급받은 상인은 그 이후로 가방에 항상 그 금액에 준하는 골드나 상품을 소지 하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즉, 4000골드의 차용증으로 물건을 샀다고 치자. 이 경우 만약 상인이 1000골드의 가치가 있는 다른 소지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물건은 3000골드에 처분할 수 없다. 남은 소지품과 물품을 판 대금을 합쳐도 차용증 4000골드가 되지 않는다면, 상인 파산했을 겨우 상인 길드가 대출금을 회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출받은 골드를 팔아먹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만약 어쩔 수 엇이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거나(기간이 정해져 있는 교역품, 도중에 도적을 만나 털리는 경우) 대출금을 갚고도 이자를 갚지 못하면 상인은 그날로 파산. 시드가 예전에 신용불량자가 됐을 때처럼 상인 길드의 살벌한 빚 독촉에 시달려야 한다. 어쨌든 이 규칙 덕분에 대출을 받아 물건을 사 가면 아무리 아크라도 제값을 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아크 님이다. 신용도까지 깎아 먹으면서 대출을 받아 구해 갔는데 설마 깎자는 말은 못 하겠지? 그래, 안전하게 가는 편이 나아.’ 그렇게 판단한 시드는 셀리브리드에서 신용도를 깎으며 4000골드짜리 차용증을 발행받았다. 그리고 ‘일각수의 뿔’을 구하기 위해 기란의 경매장을 향할 때였다. 불현듯 머릿속에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가만, 일각수의 뿔이라고?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맞아!’ 상인은 가금 상점이나 상인 길드의 NPC에게 특정 물건의 정보를 얻는 경우가 있었다. ‘이건 소문인데 말이야.’ 라거나 ‘자네라면 믿고 말할 수 있겠군.’ 으로 시작하는 말이라면 100% 돈벌이에 관련된 정보였다. 그중 시드는 얼마 전에 ‘일각수의 뿔’ 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 일각수의 뿔이 계속 가격이 오르고 있잖아? 그래서 좀 알아봤는데 말이야. 기란에서 멀지 않은 산골 마을의 특산품 상점에 가끔 근처 산속에 사는 사냥꾼들이 ‘일각수의 뿔’ 을 팔러 온다고 하더군.” NPC가 바짝 다가와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량이 많지 않지만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운이 좋다면 시세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거야. 뭐, 그렇다고 해도 굉장히 고가지만, 자네 같은 캐리번이라면 취급할 수 있겠지. 혹시 기란에 갈 일이 있으면 한 번 들러 보라고.” 이런 정보를 워낙 많이 들어서 잊어 먹고 있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좋은 기회이다. “아크 님이 ‘일각수의 뿔’ 구매 대금으로 제시한 돈이 4,000골드. 현재 시세가 대략1,000골드니 4개를 사 오라는 뜻이겠지. 그런데 시세보다 싸게 구할 수 있다면… 남은 돈은 몽땅 내가 먹을 수 있는 거잖아? 개당 50골드만 싸게 구입해도 400골드다!” 시드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대륙상회에서 구매 대행을 할 때는 모두 기록에 남겨져 삥땅을 칠 수 없었다. 그러난 상대가 유저라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삥땅을 칠 수 있지 않은가? 하물며 상대가 아크라면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드는 곧바로 방향을 바꿔 ‘일각수의 뿔’ 이 들어온다는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결과는 허탕…. 특산품 상점 주인으로부터 이미 한참 전에 다른 상인이 몽땅 사 갔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이다. 덕분에 모처럼의 꿈에 부풀었던 시드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불어 냈다. “쳇, 잘만 하면 빚을 많이 갚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앞으로 아크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장장 3,600골드. 그 생각만 하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었다. 시드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가방에서 커다란 돼지 저금통을 꺼내 들었다. “역시 믿을 건 너뿐이다.” 상인 퀘스트를 하다가 우연히 얻은 아이템이었다. (행운의 복돼지<특수> 아이템 타입:저금통 사용제한: 상인 황금빛이 감도는 멋진 돼지 저금통입니다. 자고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사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도 좋지만 상인이라면 작은 돈의 소중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돈을 소중히 하는 사람에게 이 저금통은 그야말로 저축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 줄 것입니다, 단 저금통이 가득 차기 전에는 돈을 꺼낼 수 없습니다. 《하루에 한 번 1골드를 저축할 수 있습니다. 최대 금액인 100골드가다 차면 10~30%의 이자가 랜덤으로 붙어 나옵니다.》) 하루에 1골드씩 100골드. 100일 동안 꼬박꼬박 저금해야 10~30골드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난 빚에 쪼들리는 시드는 그나마 이 저금통을 채워 가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후후후, 이제 반 정도 찼군. 그래, 이렇게 안전하게 돈을 버는 게 최고야. 이렇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언젠가는 아크님의 마수에서 벗어난 독립하고 말 거야.” 대륙 제일의 상인이 되겠다는 호비트 상인의 웅대한 포부는 어느새 ‘아크에게서 독립’ 하는 소박한 꿈으로 변해 있었다. 땡그랑, 땡그랑. 어쨌든 돼지의 배 속에서 들려오는 동전 소리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 시드였다. 캐리번이니 뭐니 해도 결국 시드는 시드일 뿐인 것이다. “핫,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서둘러야겠다. 늦으면 또 무슨 욕을 먹을지 몰라.” “으라차차차-!” 시드가 막 마을을 나오려 할 때였다. 갑자기 한쪽에서 쩌렁쩌렁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춘 시드가 고개를 돌리자 한쪽 구석에서 웬 달밤에 체조하는 사람이 보였다. “핫, 핫, 핫, 핫! 정권 지르기5,000번 끝! 다음은 발차기!” “뭐야? 저 사람은?” 시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유저, 그것도 여기저기에 달린 가방을 보니 상인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제정신이라면 상인이 찬 바람이 몰아치는 공터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려 대면 정권 지르기나 발차기를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저 오버는 뭔가? “크아아악, 크… 젠장, 또 부러졌군. 크윽!” 나무에다가 미친 듯이 발차기를 하던 상인이 시퍼렇게 부어오른 발목을 잡고 신음했다. 물론 뉴 월드는 현실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부상을 입었을 때 약간의 충격이 전해졌다. 그러나 그 충격은 정전기가 일어날 때와 비슷한 수준.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상인은 정말 다리가 부서진 사람처럼 오만상을 찡그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시드가 알 리가 없었다. 그의 눈앞에서 신음하는 사람은 정말 다리가 부러진 듯한 통증을 겪고 있음을…. 그렇다, 뉴 월드에서 정말 리얼한 고통을 맞보고 있는 유일한 유저! 그 상인은 바로 이명룡, 아니 이슈람이었던 것이다. 시드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마을이 바로 이슈람이 죽어라 고생하며 육체 개조를 하고 있는 그 마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드와 이슈람의 운명적인 만남이….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네.” … 시작되지 않았다. 시드가 살짝 맛이 갔다고 판단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괜히 미친 사람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며 기란으로의 길을 서둘렀다. 그렇게 마을에서 나온 지 대략 10분이 지났을 때였다. 크르르르. 시드가 들렀던 마을은 너무나 외진 곳이라 이렇다 할 길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숲을 헤치며 걷고 있는데 문득 멀지 않은 곳에서 낮은 목울음이 들려왔다. ‘헉, 놀이다!’ 시드가 기겁하며 얼른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아니나 다를까, 곧 근처에서 개 머리를 단 몬스터, 놀 네 마리가 나타났다. ‘크르르르, 이상하다. 이 근처에서 인기척이 났는데….“ “아니야, 들었다고.” “혹시 그 미친 상인 아니야?” 한 놀의 말에 다른 놀들이 움찔하며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한 마리가 고개를 흔들어 대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놈 냄새는 멀리서도 느낄 수 있어. 가만있어봐. 킁킁킁, 분명히 그놈은 아니야. 이 근처 어딘가에 있는것 같은데? 맞아 희미하기는 하지만 분명 이 근처야.” 놀이 코를 벌름거리며 수풀 쪽으로 다가왔다. ‘어, 어째서 이쪽으로 오는 거야? 헉, 서, 설마…?’ 시드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얼른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곧 아무런 지속 효과도 걸려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맙소사,『안전여행』 주문서 효과가 풀렸잖아?’ 상인은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전투력은 그야말로 ‘안습’이다. 레벨300이 돼도 고작 놀 한 마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 때문에 상인이 먼 길을 갈 때에는 항상 용병이 필요하다. 그러나 저레벨 지역을 오가면서까지 용병을 고용하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 얼마 되지도 않는 이윤에서 호위 비용을 지불하면 적자가 날 때도 있었다. 이에 상인 길드에서 개발한 특수 주문서가 바로 『안전여행』이었다. 효과는 2시간 동안 사용자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에게 습격당할 확률을 낮춰 주는 것. 바로 코앞에서 마주쳐 버리면 피할 방법이 없지만, 직접 눈에 띄지만 않으면 후각이 예민한 몬스터에게도 발각되지 않는다. 때문에 상인들은 자신의 레벨보다 높은 레벨의 몬스터가 있는 지역으로 갈 때는 용병을 고용하고, 낮은 지역에서는 『안전여행』을 사용한다. 시드가 레벨은 200. 주문서만 사용하면 고작 레벨100 전후의 놀에게 발견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주문서의 지속 시간이 2시간이나 되다 보니 한 번 사용하고 잊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발견되기 전에 주문서를 사용해야 해!’ 시드가 황급히 가방을 열었다. 그러난 아무리 찾아봐도 주문서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런… 셀리브리드 상인 길드에서 대출 신청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주문서 사는 걸 깜빡했잖아!’ “크르르르,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오오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호비트냐?” “고놈 참, 탐스럽게도 생겼군.” 섬뜩한 목소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시드가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크르르르, 놓칠 것 같으냐?” “받아랏!” 그때 놀 한 마리가 들고 있던 곤봉을 집어 던졌다. 빠각, 하는 돌 파이는 소리와 함께 시드는 벌렁 자빠져 버렸다. (뒤통수에 치명타를 맞았습이다. 데미지 400! 《스턴에 걸려 10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컹컹컹컹! 상인이 놀들 코앞에서 ‘스턴’ 에 걸려 버렸다. 뒤이어 벌어질 일은 보지 않아도 뻔했다. 놀들은 그야말로 개떼처럼 몰려들어 시드를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스턴에 걸린 건 10초지만, 시드가 잘근잘근 다져져 한 끼의 개밥이 되는 데는 10초도 필요 없었다. ‘망할 … 부활 장소가 셀리브리드인데….’ 놀에게 밟힌 시드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울분을 삼켰다. 레벨 200이 넘어 고작 놀 떼에게 먹히다니, 새삼스럽지만 상인을 선택한 게 분할 뿐이다. ‘상인을 선택하고 나서 좋은 일을 하나도 없구나. 아크 님에게 가방 취급을 받질 않나, 무지막지한 빚을 지고 착취당하지를 않나, 이제 개밥이라니….’ 너무 비참해서 이제 눈물도 나지 않는다. 그때였다. 빈사 상태까지 몰렸을 무렵, 엉뚱하게 귓가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다~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 시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풀 속에서 한 사내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어라? 저 사람은…?’ 한참 놀에게 물어뜯기는 와중에 시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마을 공터에서 달밤에 체조하던 이슈람이었다. 시드는 금세 낙담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 냈다. ‘젠장, 혹시 지나가던 전사라도 나타났나 싶었는데… 그 이상한 사람이잖아? 역시 제정신이 아닌 거야. 상인 주제에 놀들 앞에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오다니….’ 그래 봐야 개밥 한 그릇이 두 그릇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이슈람은 여전히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흥얼거렸다. “이, 이, 이, 이, 이슈람~엄청난 기운이~.” 이 상황에서 70년대 만화 영화 주제가라니… 역시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런데 놀들이 반응이 의외였다. 상인의 천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놀이 오히려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 크르르르. 저, 저놈은…?” “미친 상인! 미친 상인이다!” “빌어먹을, 요 며칠 안 보여서 다른 곳으로 갔는 줄 알았는데….” “젠장, 그래 봤자 상인이다. 죽여 버려!” 컹컹컹컹! 그래도 명색이 놀이라 상인을 보고 도망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주춤거리던 놀들은 곧바로 곤봉을 흔들어 대며 이슈람에게 몰려들었다. 이슈람의 입술이 살짝 치켜져 올라간 건 그때였다. “훗, 이놈들은 도망을 안 가서 좋단 말이야. 좋아, 수행의 성과를 보여주마!” 그리고… 시드는 믿어지지 않는 장면을 목격했다. “으라차차차, 승룡권! 아도도도, 질풍각! 섬머 솔트 킥!” 상인이다. 아무리 봐도 상인이다. 그런데도 놀과 거의 대등! 아니,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상인이라 공격력과 방어력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놀라운 타이밍으로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자 높은 확률로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너 놀라운 것은 승룡권이나 질풍각이니 말도 안 되는 동작을 펼치는데도 놀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간닷, 파일 스크류 드라이버!” 꾸에에에엑! 심지어 놀을 잡고 뛰어올라 거꾸로 메다꽂기까지 했다. 그렇게 대략 3분, 설마 설마 했는데 이슈람은 정말 놀 네 마리를 처리해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드에게 이슈람이 다가왔다. “소년, 괜찮은가?” “네? 아, 네….” 시드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런데 혹시 상인 아니세요?” “음, 안타깝게도 그런 모양이더군.” “상, 상인이 어떻게 놀을… 그것도 네 마리나…?” “후후후후, 류와 켄, 춘리, 장지에프 등등을 스승으로 둔 나에게 놀 따위는 이미 상대가 아니다.” 이슈람이 한껏 잘난 척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연 이슈람의 몸 여기저기에서 우둑, 우둑 하는 뼈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아 식은땀을 뚝뚝 흘려 댔다. “크윽, 젠, 젠장… 역시… 이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는군….” “무, 무슨 일이세요?” “괘, 괜찮아… 이 정도는…. 조금만 지나면….” 이슈람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70년대 만화 주제가를 부르지 않나, 류와 켄이 스승이라고 하지를 않나, 이제는 갑자기 발작이라니? 시드는 가능하면 이런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지만, 도움을 받아 놓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드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작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대략 10분이 지나자 이슈람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 이제야 좀 살겠군. 어이, 초면에 못 볼 꼴을 보였다.” “아, 아니에요.” 시드는 고개를 저으며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는 왜 그러신 거예요?” “훗, 영웅의 시련이라는 거지.” 이슈람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역시 알 수 없는 소리다. 그러나 시드는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무슨 정신 나간 대답이 나올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다. “그보다 대체 아저씨는 상인이면서 어떻게 놀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거죠?” “말했잖아. 켄과 류, 춘리, 장지에프 등등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그게 누군인데요?” “에? 너, 그 이름을 몰라?” 시드가 고개를 젓자 이슈람은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한숨을 불어 냈다. “하긴, 요즘 애들은 모를라나? 에휴… 이럴 때 나이 먹었다는 걸 실감한다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린 시절 나의 혼을 버닝시켰던 굉장한 무술가들이다.” “…?” “놀을 쓰러뜨린 건 그들을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수행에 수행을 거듭한 결과지. 하지만 이 정도 실력을 쌓기까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지. 너도 상인이니까 알겠지만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생을 해야 했어.” 이슈람은 새삼 지난 보름간의 기억이 떠오른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 그 보름은 이슈람 생애에 잊지 못할 굴욕과 고통의 나날이었다. 시작하자마자 개밥 신세가 되어 버린 이슈람은 그 뒤로 미친 듯이 수행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슈람은 상인. 오히려 직업에 맞지 않는 수련을 강행군한 탓에 툭하면 팔다리가 부러져 나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가끔 수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놀과 전투를 벌였다가 죽기라도 하면 정말 잡아먹히는 듯한 고통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 경찰청에 배치된 유니트는 패인 수치가 ‘리얼리티’에 맞춰져 있어 캐릭터가 느끼는 고통이 100% 상태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크으… 정말 끔찍하군. 대체 왜 이런 고통을 참아 가면서까지 게임을 하는 거지?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설마 전투를 하면서 한 대도 맞지 않는 건 아닐 테고…다들 변태 아니야?’ 이슈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젠장, 자존심이 있지. 이 몸이 고작 개 대가리 따위에게 당한 채 순순히 물러설 성싶으냐?’ 물론 이 문제는 아무나 잡고 물어보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슈람이 누구인가? 비촉 게임에서는 허접스러운 상인이지만, 현실에서는 경찰청에서 당할 자가 없다는 제1특수 기동대장이다. 그런데 초딩도 하는 게임을 아파서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이건 이제 자존심의 문제였다. ‘상인이고 뭐고 그런 거 몰라! 죽을 때까지 해 보는 거야!’ 놀에게 당할 때마다 이슈람의 눈에는 독기가 서렸다. 그리고 더욱 미친 듯이 게임에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여졌다. 또다시 놀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발목이 나가고, 손목이 부서져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미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이슈람은 이대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놀의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크아아악! 이 지독한 자식, 문다, 물어!” “히익, 광견병 같은 거 옮는 거 아냐?” 장난하냐? 어쨌든 개 대가리들이 헛소리를 짖어 대고 있을 때였다. 이슈람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호신술<초급, 패시브> : 당신은 오랫동안 수련을 쌓아 신체를 활용하는 기초적인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호신술은 비전투 직업을 가진 유저만이 익힐 수 있는 기술로, 최소한의 전투 능력을 발휘하도록 해 줍니다. 또한 호신술을 사용해 부상의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비전투 직업의 전투 패널티가 소멸합니다. 부상에 대한 저항력이 30& 감소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웠습니다. 악바리 근성<초급, 패시브> : 당신은 절망적인 전투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잡초 갑은 근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사람은 전투 동중 신체가 손상돼도 행동에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생명력이 50% 이상 감소하면 특수 상태인 ‘악에 받친 상태’가 되어 전투력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단, 전투가 끝나면 전투 도중 받았던 모든 신체 손상이 적용됩니다. <<악에 받친 상태 : 생명력이 50% 이하로 내려갈 경우 ‘흥분<전투력 +10%, 상태 이상 저항력 +10%>’ 발동, 생명력이 70% 이하로 내려갈 경우 ‘광폭<전투력 +15%, 상태 이상 저항력 +20%>’ 발동, 생명력 90% 이하로 내려가 빈사 상태가 될 경우 ‘이판사판<전투력+20%, 상태 이상 저항력+30%>’ 발동>>) ‘에? 이게 뭐야?’ 어쨌든 아직 게임이 낯선 이슈람은 정보창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도 곧바로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라? 이게 웬일이지?’ 사실 이슈람은 처음 놀을 상대할 때부터 공격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겪은 그에게 NPC의 단순한 공격 방식은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유는 하나, 바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상인의 신체 능력 때문이다. 조금만 빨리 움직여도 발목이 삐고, 적을 때리면 데미지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손목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가는데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악바리 근성’이 생기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단 전투 도중에 부상을 당해도 행동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된 것이다. 이미 전투 능력은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에 달한 이슈람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게다가 전사의 ‘검술’ 처럼 상인 전용의 전투 스킬인 ‘호신술’이 생겼다. 뭐, 스킬이 생겼을 때는 이미 빈사 상태였기에 결국 죽었지만, 이슈람은 드디어 놀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됐어, 드디어 수련의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스킬 효과를 확인한 이슈람은 미칠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그건 이슈람의 착각이었다. 사실 이 ‘악바리 근성’ 은 ‘환상의 스킬’이었다. 추가 능력치가 환상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스킬이라는 뜻이다. 사실 뉴 월드 제작 초기의 시험적으로 만들어진 패인 수치에는,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스킬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개발이 중단된 것이다. ‘악바리 근성’ 은 그렇게 제작이 중단된 스킬 중 하나이다. 당연히 패인 수치가 없는 일반 유니트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슈람은 그런 스킬을 익힌게 100% 수행의 성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악바리 근성’ 은 제작 중단된 스킬 가운데 가장 위험한 스킬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너무 맞는 데 익숙해져 변태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점, 또 하나는 전투가 끝날 때 발동하는 어마어마한 패널티 때문이었다. (전투가 끝나 ‘악바리 근성’ 스킬이 자동 해제되었습니다. ‘악에 받친 상태’ 가 해제되며 전투 도중에 받았던 모든 부상이 일시에 적용됩니다.) (한도 이상의 충격에 의해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한도 이상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목이 삐었습니다!) (한도 타격으로 인해 갈비뼈에 금이 갔습니다…. “크아아악, 이, 이게 뭐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악바리 근성’ 은 전투 시 부상을 당하지 않게 해 주는 스킬이 아니었다. 부상을 입어도 전투가 끝날 때까지 영향을 받지 않게 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모든 부상에 대한 효과를 전투가 끝난 뒤에 한꺼번에 적용시킨다. 동시에 팔이 부러지고, 발목에 삐고, 갈비뼈가 나가는… 덤프트럭에 치였을 때나 겪을 고통! 이슈람이 놀을 때려잡고 갑자기 식은땀을 뚝뚝 흘린 것도 바로 이 페널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실신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 온정신으로 버텨 낸 게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시드에게는 그저 발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슈람은 그 뒤로 마을 주변의 놀을 박살 내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잡은 놀의 숫자는 무려 삼백 마리. 그쯤 되자 이슈람은 완전히 놀의 공격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부상 확률을 줄여 주는 ‘호신술’ 덕분에 고통도 꽤 줄일 수 있었다. 그러자 천생 무술가인 이슈람은 좀 심각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예전에 한참 빠져 있던 스트리트 파0터라는 격투 게임이 생각났다. “그래, 어차피 게임이니 조금은 즐기는 편이 좋겠지.” 그렇게 생각한 이슈람은 격투 게임에 나왔던 캐릭터의 기술을 흉내 내며 놀았다. 그래서 류와 켄이 마음의 스승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저… 괜찮으세요?” 문득 옆에서 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회상에서 깨어난 이슈람은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어쨌든 상인이라 처음에는 고생깨난 했다는 말이야.? “그렇군요.” 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네. 그렇게 전투를 하고 싶으면 차라리 죽어라 돈을 모아서 전직 취소하고 전사로 다시 키우면 되잖아? 굳이 상인으로 하는 건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건가?’ 그렇다, 뉴 월드에는 초기 직업에 한해 200골드의 벌금을 지불하고 전직을 취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슈람을 키우던 전임자가 전해 준 서류에도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물론 패인 수치에 대한 정보도…. 결국 지금까지 이슈람의 노력은 그야말로 삽질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럼 정보는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라 시드는 설마 레벨 150이나 되는 이슈람이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슈람이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다면…. 모르는 게 약이다.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밥이난 같이 먹자.” 이슈람은 언제 아팠냐는 듯이 휘파람을 불며 냄비를 꺼내 들었다. 그 말에 시드가 반색했다. 빚에 쪼들리느라 그동안 식사는 항상 밀빵으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냄비를 꺼내 드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요리를 먹여 주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식재료를 준비하는 이슈람을 본 시드는 기겁했다. “힉, 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뭐라니? 음식 만들잖아?” “서, 설마… 놀을 먹는 거예요?” “아, 너 혹시 개고기 못 먹냐?” “아니, 개고기는 먹지만….” “그럼 됐잖아, 사실 나도 처음에는 말하는 놈들을 먹는 게 좀 그랬는데, 막상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더라고. 쫄깃쫄깃한 게 정말 개고기하고 똑같더라고. 게다가 몸에도 좋아.” 이슈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냄비에 놀의 시체를 썰어 넣었다. 이슈람이 상인이면서도 놀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는 비밀이 여기에 있었다. 뉴 월드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고기는 요리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식용으로 분류되지 않는 몬스터의 고기는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놀은 고기도 적지만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놀을 요리해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개에게 물린 상처는 개고기를 먹으면 빨리 낫는다고 했지?” 그러난 어디서 말도 안 되는 토막 상식을 주워들은 이슈람은 놀을 먹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보닌 이게 정말 개고기와 맛이 비슷했다. 평소 개고기 마니아를 자처하는 이슈람은 곧바로 놀 멍멍탕의 팬이 돼 버렸다. 물론 놀 고기의 독성 때문에 상태 이상에 걸렸지만, 그런 자잘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상태 이상에 걸린다고 금방 죽는 것도 아니고… 금세 회복하잖아.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어? 독이 무서워서 이 맛을 포기할 수 없지.” 그렇게 대략 이백 마리를 멍멍탕으로 만들어 버리자 엉뚱한 스킬이 생겼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엽기 요리<초급, 패시브>: 당신은 기괴한 몬스터를 이용해 엽기적인 요리를 만들어 먹는 데 재미를 붙였습니다. 엽기 요리를 사용하면 몬스터 고기를 독성을 중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한 종류의 몬스터를 일정 숫자 이상 요리해 먹었을 경우, 은연중에 채취가 몸에 배어 해당 몬스터에게 공포감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몬스터의 고기를 먹었을 경우, 그 횟수에 따라 같은 종류의 몬스터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습니다. 공포에 빠진 몬스턴는 전투력이 감소합니다.》) 사나운 개조차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의 근처에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개고기의 인이 박여 개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게 바로 놀들 사이에서 이슈람이 공포의 존재가 된 이유였다. “흐흠, 벌써 다 익었군. 이곳은 요리하는 데 시간이 안 걸려서 좋단 말이야. 아, 멍멍탕에 이게 빠지면 안 되지.” 이슈람은 군침을 꿀꺽 삼키며 가방에서 술병을 꺼내 들었다. 멍멍탕을 해 먹기 시작할 무렵, 혹시난 싶어 마을 주점에 들렀다가 구한 술이었다. 한 병에 10골드나 하는 술이었지만, 금전 감각이 없는 이슈람과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비싼 술을 병째 들이켜자 곧 화끈한 느낌이 목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안주 삼아 놀의 넓적다리를 한 입 물자 방금 전의 고통이 단숨에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크으… 죽이는군. 크하하하, 근무 시간 중에 마음대로 술과 멍멍탕을 먹을 수 있다니, 처음에는 어쩌나 싶었는데 막상 적응하고 나니 천국이 따로 없군! 이렇게 술과 고기를 진탕 먹어도 조금만 지나면 술기운도 사라지고 배가 고파지니 또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단 말이야. 뭐야? 왜 안 먹어?” "아니… 저는… 그냥 밀빵 먹을게요.“ 시드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진저리쳤다. “거참, 입맛이 까다로운 녀석이군. 그럼 술이라도 한잔 해라.” “저 아직 미성년자인데요?” “어른이 주는 술은 받아도 돼.” “네, 그럼 조금만….” 시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잔을 받아 들었다. ‘막상 알고 보니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닌가 봐.’ 처음에는 한 잔만 마실 생각이었지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고, 이내 네 잔, 다섯 잔을 넘기게 되었다. 덕분에 얼큰하게 취해 버린 시드는 곧 이슈람과 통성명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 그래서 심부름으로 이곳까지 왔다가 허탕 치고 돌아가는 중이었다고?” 시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슈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아크라고 했나? 그 녀석하고 갱생단이라는 놈들, 심보 한번 고약하군. 그런 식으로 빚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부려 먹다니? 게다가 3,000골드에 이자가 1,000골드?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내가 한 번 손 좀 봐 줄까?” “힉, 그, 그만두세요.? 시드가 기겁하며 손사래 쳤다. “아저씨는 아크 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지금까지 아크 님하고 엮어서 좋은 꼴을 본 사람이 없다고요.” “그렇게 강하냐?” “그냥 강한 것만이 아니에요. 그리고 사실 아크 님이 딱히 나쁘기만 한 사람도 아니고요. 처음 만났을 때도 레오라는 카오틱에게 죽을 뻔한 걸 구해 줬는걸요.” 그리고 호위비로 엄청나게 뜯어 갔다. “… 그리고 제가 신용불량자가 됐을 때도 도와줬고요.” 그냥 가방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 그리고 카이로트에서 엄청난 이윤이 남는 장사를 맡겨 주기도 했고요.” 덕분에 4,000골드의 빚을 지게 되었다. 어째 말할수록 비참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시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쨌든 아크 님도 나쁜 사람은… 아닐 거예요. 빚이 생기기도 했지만 취직도 시켜 줬고, 덕분에 저도 그럭저럭 레벨이 오르고 있거든요.” “뭐, 네가 그렇다고 상관없지마.” “그나저나 앞으로가 큰일이네요.” “뭐가?” “깜박하고 『안전여행』주문서를 챙겨 두지 못했거든요. 그 주문서는 대도시의 상인 길드에서만 파는 건데… 당장 기란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함께 가 주마.” “네? 이슈람 아저씨가요?” “그래, 슬슬 이곳에서 노는 것도 지겨워서 다른 곳에 가 볼 생각이었거든. 그리고 나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 봐야 할 이유가 있어. 기란이 이 근처에 있는 대도시라고 했지? 마침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을 때 같이 가는 게 좋겠지.” “저, 정말요? 그럼 저야 좋죠.”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바로 출발하자.” 이슈람이 남은 술을 털어 넣고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해서 시드는 이슈람의 호위를 받으며 기란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쾌적하기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둘은 도중에 몇 번이나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 그러나 솔직히 시드에게는 몬스터보다 전투가 끝난 뒤의 이슈람이 더 무서웠다. “후후후, 별거 아니군. 이 정도 놈들이라면… 크아아아악!” 전투를 한 번 치를 때마다 이슈람은 얼굴이 허옇게 질리며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리고 발작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 몬스터를 요리해 먹었다. “흠흠흠, 이 트롤이라는 녀석은 고기가 좀 질긴데? 하지만 씹는 맛이 있어. 육즙도 많고 더 두들겨 패서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면 막창 비슷한 느낌이 나겠군.” 트롤을 잡아먹으며 이런 소리를 해 대니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공포와 스릴이 넘치는 여행도 반나절 만에 끝났다. 기란 성문을 넘어선 시드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덕분에 안전하게 올 수 있었어요.” “하하하, 나도 네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글쎄다… .” 이슈람이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목적이 있어서 게임을 시작했으니 사람이 많은 곳으로 오기는 했는데, 기란이라는 곳은 자신이 생각했던 곳보다 훨씬 더 크고 사람도 많았다. 지금까지 유저를 보기도 힘든 산골에 묻혀 있다가 갑자기 북적거리는 대도시로 나오자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뭐 일단 이곳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보다 문제는… .’ 돈이다. 이슈람이 캐릭터를 넘겨받았을 때 가방에는 800골드가 있었다. 그러난 한 병에 10골드나 하는 고급술을 퍼 마셔 댄 탓에 잔고가 텅텅 비어 버린 것이다. 뭐 밥이야 몬스터를 잡아먹으면 되니 상관없지만, 술을 사지 못하면 곤란하다. ‘전투를 치를 때마다 죽을 고생을 하는데 술도 못 마신다면 무슨 재미로 게임을 해?’ 근무 시간에 술을, 그것도 밖에서는 구경도 못 해 본 맛있는 술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게 이슈람의 유일한 낙이었던 것이다. 이슈람이 쭈뼛거리며 그런 사정을 설명하자 시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떨궜다. “죄송해요. 저도 지금 가진 돈이 없어서… .” “아,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돈 달라는 소리가 아니야.” “하지만… .” 시드가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아저씨 가방에 잡템이 무지하게 많다고 하셨잖아요?” 함께 여행하며 잡은 몬스터가 잡템을 떨궜을 때, 이슈람은 가방에 넣을 자리도 없다고 툴툴댔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이슈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그런 물건을 팔아 돈을 마련한다고 했었지?” “에엑? 아저씨, 상인이면서 아직 장사해 본 적도 없어요?” “음, 사정이 좀 있어서… .” “하아, 정말 알다가도 모를 아저씨라니까. 장사도 안 할거면서 대체 왜 상인을 한 거예요? 뭐, 어쨌든 사정이 그렇다면 제가 도와 드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저씨도 상인이니 스킬을 올리려면 직접 파는 편이 좋겠지만, 당장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면 제가 팔아 드릴게요‘” 시드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헤헤헤, 사실 제가 이래 봬도 거래 스킬이 상당히 높거든요. 적어도 30% 이상 더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보통 그런 경우 수수료를 받지만 아저씨는 공짜로 해 드릴게요.” “오오오, 정말이냐? 부탁한다.” 이슈람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시드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함부로 물건을 건네주면 안 돼요!” “어? 왜?”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그야 당연히 물건을 가지고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그렇죠. 판매 대행을 시킬 때는 먼저 계약서를 받아 놔야 한다고요.” 레벨 150의 상인에게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난 이슈람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으므로 시드는 직접 계약서를 작성해 가며 설명해 주었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이슈람=시드》 시드는 이슈람에게 받은 아이템을 판매하고, 모든 수익금을 돌려준다. 단 판매품은 모두 구입 가격보다 높아야 한다. 판매 대행에 대한 수수료는 일절 없으며 모두 무료 봉사한다.) “잘 보세요. 상인에게 물건을 맡길 때는 항상 이런 계약서를 받아 둬야 해요. 그리고 간혹 자기 스킬을 올리려고 구입 가격보다 시세가 낮은데도 팔아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녀석들도 있으니 꼭 구입 가격보다 높게 팔아야 한다는 조항도 적어 놔야 해요.” “음, 은근히 복잡하구나.” “곧 익숙해질 거예요. 자, 이제 물건을 건네주세요.” 시드가 빙긋 웃으며 거래를 신청했다. 그렇게 물건을 건네받던 시드는 곧 뜨악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방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슈람. 당연히 물건도 몬스터의 가죽 따위가 고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슈람이 건네주는 물건은 거의 대부분이 고가의 교역품과 특산품이었다. ‘대, 대체 이런 것들을 다 어디서 구한 거야? 비단에 산호, 진주…이건 다 남부 지역의 특산품들이잖아? 이것들만 팔아도 700. 아니, 800골드는 넉넉하게 받겠어. 또 무슨 물건이 있는 거지? 어라? 이, 이, 이건… !’ 마지막으로 건네주는 물건을 받아 들던 시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음? 왜 그러냐?” “아, 아니에요. 어쨌든 이것들 다 파실 거죠?” “그래, 돈 좀 되겠냐? 나는 잘 몰라서… .” “그, 글쎄요? 저도 팔아 보기 전에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시세를 알아보고 적당한 가격에 팔아 드릴게요. 1시간 뒤에 이곳에서 다시 봐요.” 시드는 떠듬떠듬 대답하고 얼른 상점가로 뛰어갔다. 그리고 골목을 돌아 벽에 찰싹 달라붙어 슬쩍 가방을 열어 보았다. “부, 분명… 그거였지?” 역시나, 이슈람에게 받은 물건 중에는 문제의 ‘그것’ 이 있었다. 바로 시드가 대출까지 발행받아 가며 사러 갔던 ‘일각수의 뿔’!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4개나 들어 있었다. 게다가 상인 스킬로 구입 가격을 조사해 보니 개당 850골드였다. 현재 시세가 1,000골드니 무려 150골드나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럼 내가 도착하기 전에 그 마을에서 ’일각수의 뿔‘ 을 구입한 사람이 이슈람 아저씨였던 거야? 장사도 할 줄 모른다면서 대체 이게 돈이 된다는 건 어떻게 알고 사 놨던 거지?’ ‘일각수의 뿔’ 을 보자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어쨌든 이슈람은 이 물건의 시세를 모른다. 물론 계약서로 구입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판다고 해 놨으니 850골드 이상 쳐줘야겠지만 그 이상이라면 851골드라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걸 아크에게 시세대로 1,000골드에 넘기면 개당149골드. 합이 596골드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미 판매 대행 계약서를 써 주고 말았다. 시드가 중간에 아이템을 가로챌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시드가 가진 것은 차용증. NPC가 운영하는 상점이나 경매장을 이용할 때는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지만, 직접 현찰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슈람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려면 먼저 실제 시세를 알려 줘야 하는데…. 어떤 미친놈이 1,000골드라는 걸 알고 851골드에 넘기겠는가?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시드가 이렇게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문제없이 ‘일각수의 뿔’ 을 851골드에 가로챌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러나 이슈람은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다. 그리고 이곳까지 오면서 제법 정도 쌓이지 않았던가? 비록 돈이 걸려 있다지만 그런 사람의 믿음을 배신할 수는 …. ‘아니지! 왜 못 해?’ 시드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흥, 지금까지 정직하게 살아와서 내게 남은 게 뭐야? 아직 3,600골드나 남은 빚뿐이잖아? 역시 아크 님의 말대로야. 이 세상은 속는 쪽이 바보인 거라고! 아크 님도 하는 걸 나라고 왜 못 해? 맞아, 기회는 항상 오는 게 아니야. 왔을 때 잡지 못하면 평생 찌질하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빚에 시달리는 사이, 시드도 아크처럼 타락해 버린 것이다. 일단 확실하게 마음을 굳힌 시드는 곧바로 근처 상점을 찾아 적당한 크기의 상자를 구입해 ‘일각수의 뿔’ 을 넣었다. 그리고 단단히 봉해 놓은 뒤에 상인 길드의 NPC 를 찾아가 상자를 건네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경매장을 찾아갈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저 대신 상인 길드에서 이 물품을 블라인드 경매장에 올려놓아 주실 수 있을까요? 조건은 제시 가격에 즉시 판매. 그리고 가능하면 제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은데요.” “어려운 일이 아니군요. 알겠습니다. 약간의 수수료만 지불하시면 이 물품은 상인 길드의 이름으로 블라인드 경매장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드가 수수료를 지불하고 상인 길드를 나와 곧바로 블라인드 경매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경매장 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으니 10분 뒤에 상인 길드 NPC가 상자를 가지고 와서 경매장에 등록시켰다.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블라인드 경매장의 물건은 손을 댈 수 없었다. 즉, 상자 안에 뭐가 있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뜻. 그런데 시드가 경매가로 제시한 금액은 ‘일각수의 뿔’ 을 개당 851골드로 계산한 3,404골드였다. 당연히 팔릴 리가 없는 것이다. 시드가 얼른 경매장 NPC 를 찾아가 소리쳤다. “제가 이 상자를 구입하겠습니다!” “허어, 이걸 말입니까?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물건에 3,404골드나 지불하시다니… 굉장한 도박을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결제해 주시겠습니까?” “상인 길드에서 발행한 차용증으로 신용 구매 하겠습니다.” “음, 신용은 확실하군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경매장 NPC는 4,000골드짜리 차용증에 경매장에서 3,404골드를 수납했다는 사인을 해 주었다. 시드가 대출금을 갚을 때 경매장에서 사용한 3,404골드와 그에 따른 이자만 지불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현찰 한 푼도 없이 4개의 ‘일각수의 뿔’ 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속임수 경매 방법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은 아크였다. 블라인드 경매장에서는 자기가 올린 경매품을 낙찰 받을 수 없으니 상인 길드의 대행 판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난 실질적으로 아무런 소득도 없이 상인 길드와 경매장에 수수료를 내야 하닌 결과적으로는 손해라 실제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말이다. ‘설마 그때 배워 둔 걸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이야!’ 시드가 상자를 받아 들고 쾌지를 불렀다. 뒤이어 다른 아이템을 상점에서 정리하고 상인 길드를 찾아가니 낙찰 금액인 3,404골드를 현찰로 받을 수 있었다. 상인 길드에 경매 대행 수수료로 지불한 40골드를 제해도 556골드나 싸게 구입한 셈이다. 이제 ‘일각수의 뿔’ 을 아크에게 넘기면 그 돈이 고스란히 시드의 몫이 되는 것이다! “헉헉헉, 다녀왔어요. 생각보다 많이 받았어요.” 잠시 후, 시드는 약속 장소에서 이슈람을 만났다. 그리고 잡템과 경매장에서 세탁한 돈을 건네주었다. “오오오, 4,580골드! 그 물건들이 이렇게나 비싼 거야?” “네, 영수증을 보면 알겠지만 모두 시세보다 비싸게 받았어요.” “이야, 널 만난 게 행운이야! 아니, 이럴 게 아니다. 모처럼 돈도 생겼으니 내가 거하게 한 번 쏘지. 여기서 제일 비싼 주점이 어디냐?” “아니, 됐어요. 제가 지금 바로 가 봐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래? 음… 그럼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자, 이건 수고비다.” 세상물정 모르는 이슈람은 100골드를 내밀었다. 아아, 이렇게 좋은 아저씨에게 사기를 치다니! 시드가 새삼스레 양심이 쿡쿡 찔리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사기를 쳤다. 새삼스레 양심은 무슨 양심이냐? 어차피 세상은 속는 사람이 바보인 거다! 평소 보아 왔던 아크를 본받아 단단히 정신 무장한 시드는 날름 수고비를 받아 들고 도망치듯 이슈람과 헤어졌다. ‘우헤헤헤, 해냈다! 단숨에 656골드를 벌었다!’ 일단 돈맛을 본 시드에게 더 이상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었다. 이렇게 상인 도시 기란에서 아크 2세의 싹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허허허, 설마 그 쓸데없는 물건들이 이렇게 돈이 될 줄이야. 시드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야. 음 착한 녀석을 만나 다행이야.” 뉴 월드의 찌질이 시드에게 사기 당한 이슈람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랄까, 수없이 많은 상인들이 호시탐탐 서로의 주머니를 노리는 기란….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고 혼자 떨궈진 이슈람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3. 새로운 취미 바바바바, 바바바바! 끝없이 펼쳐진 황야에 거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황야를 가로지르며 흙먼지를 뿜어 올리는 것은 한 마리 도마뱀! 라둔이 거대화된 라둔마였다. 당연히 등에 타고 있는 것은 아크와 레리어트, 북실이였다. “이제 얼마나 온 거죠?” 레리어트의 질문에 아크가 지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3분의 1정도 왔네요. 하루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굉장하네요. 올 때는 보름이 넘게 걸렸는데….” “다 이 녀석 덕분이죠.” 아크는 뿌듯한 표정으로 라둔의 목 언저리를 툭툭 쳤다. 레리어트도 새삼 감탄하는 표정으로 라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 그 허리의 뱀이 이렇게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물건도 보관해 주고, 탈것으로도 변하다니. 데드릭이나 라자크도 그렇고… 정말 볼수록 신기하네요. 소환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이런 소환수들은 처음 봐요. 대체 어디서 구한 거예요?” “몇 번을 말해야 되냐? 이 몸은 그냥 소환수가 아니야. 우계의 귀족이라고! 게다가 구하다니? 우리가 무슨 덤으로 끼워 주는 사은품이냐? 그 발언은 종족 차별이야!” 데드릭이 발끈하며 레리어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방방 뛰었다. “야야야야, 미안, 미안해.” “닥쳐, 하여간 인간들이란….” 데드릭이 거친 목소리로 소리치며 쏘아보았다. 그러나 레리어트가 손가락으로 데드릭의 두툼한 아랫배를 꾹꾹 찌르며 배시시 웃었다. “미안하다고 했잖아. 아이, 화내지 마. 다음부터 조심할게.” “윽, 윽, 윽! 이, 이게 어딜 건드리는 거야? 하지 마, 하지 말라고! 거기는 민감한 부분이란 말이야. 간지럽다고! 윽, 윽!” “그럼 화 안 났다고 말해. 안 그러면 계속 찌른다?” “이게 정말… 윽, 윽 알았어. 알았다고!” “호호호, 고마워.” “헉헉헉… 요즘 것들은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니까.” 잠깐 사이에 데드릭은 기진맥진해졌는지 축 늘어져 헐떡거렸다. 그러나 입으로는 구시렁거리면서도 얼굴에는 묘하게 만족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사실 이게 아크가 요즘 놀라고 있는 부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데드릭의 막말에 레리어트는 대번에 주눅이 들었으리라. 그러나 데드릭을 전술 조교로 붙여 놓은 지 보름. 이제 레리어트는 데드릭이 험한 말투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어떤 먼에서는 아크보다 소환수들을 더 잘 다뤘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레리어트가 능숙하게 소환수를 다루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실은 부모님이 집에 애완동물을 몇 마리 키우거든요. 아크 님의 소환수들은 그 애완동물들하고 비슷해요.” “애완동물요?” “네, 데드릭은 치와와를 닮았고, 라자크는 말이 없고 의젓한 게 시베리안 허스키하고 비슷해요. 그리고 라둔은 눈망울이 카멜레온 같고요.” 한 마리에 몇백만 원이나 하는 고급 애완동물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크로서는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대체 뭐하러 애완동물을 키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뭐, 물론 애완동물이 도움이 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거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나 아이들 정서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친구에게는 천 원짜리 한 장도 쓰지 않으면서 애완동물에게는 몇만 원씩 하는 사료를 먹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치 핸드백처럼 유행 따리 샀다가 싫증 나면 버리는 인간들은 그야말로 최저다. 아, 또 머릿속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하여간 뭔가 생각하면 너무 깊게 파고드는 게 문제다. ‘뭐, 레리어트 님이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만… .’ 그때, 스쳐 지나가던 잡목림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라둔, 잠깐 멈춰 봐.”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바쁘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추고 거친 숨을 불어 냈다. 라자크는 ‘검화’ 시키고, 데드릭은 박쥐 상태라고 하지만, 아크와 레리어트, 북실이까지 3명을 태워야 했기에 라둔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데드릭, 저쪽에 보이는 잡목림을 살펴봐. 내가 보기에는 툰툰 무리 같은데?” 걸음을 멈춘 아크는 곧바로 데드릭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잡목림을 살펴보고 돌아온 데드릭이 혀를 내둘렀다. “우와! 하여간 지독하다니까. 그 와중에 그건 또 언제 봤대?” “돈이 되니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여기서 잠시 내용을 되돌리자면 … 며칠 전, 이제야 겨우 완료를 눈앞에 두게 됐다고 생각한 《천재 연금술사의 연구실》퀘스트가 미궁에 빠져 버렸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기대감에 부풀었던 아크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데다 심지어 똑똑하기까지 한 아크는 곧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마가로프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오래전 유계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 그 말은 연구실에서 발생한 ‘어떤 사건’ 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유계의 역사라면 베스튜라가 전문가다. 유계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이라면 그야말로 대사건. 그에 관련된 기록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서둘러 계곡 마을로 돌아가고 있었다. 완료를 목전에 뒀다고 생각한 퀘스트가 또다시 꼬여 버리면 마음이 굉장히 조급해진다. 퀘스트에 정신이 팔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태가 돼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물론 아크 역시 조바심이 일었다. 때문에 최대한 빨리 계곡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 가능하면 전투를 피했다. 그러난 그것도 그저 그런 몬스터의 경우고, 경험치가 쏠쏠하거나 높은 확률로 쓸 만한 아이템을 떨구는 몬스터라면 얘기가 다르다. “라둔, 여기서 잠시 쉬고 있어. 북실이, 너도 여기 있고, 레리어트 님은 저를 따라오세요.” 아크는 라둔의 등에서 내려 잡목림 근처로 다가갔다. 간단하게 말해서 황야라고 하지만, 그저 허허벌판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잡목림이 있었고 대개의 경우, 몬스터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아크가 발견한 툰툰이라는 몬스터도 그 잡목림 안쪽에 모여 있었다. 푸쉬-! 푸쉬-! 주둥이 앞으로 솟아 나온 날카로운 어금니와 집채만 한 체구를 가진 시커먼 멧돼지가 어깨를 들썩이며 거친 숨을 뿜어냈다. 황야에서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툰툰은 생긴 것처럼 엄청난 공격력과 체력을 자랑했다. “우후후후, 좋은 놈들을 발견했군.” 툰툰 무리를 확인한 아크가 군침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툰툰은 사냥하기 까다롭지만 그만큼 경험치가 많다. 또한 툰툰에게서 얻을 수 잇는 어금니는 바란족이 굉장히 좋아하는 아이템이었다. 어금니 3~4개만 가져가도 상급 포션과 맞먹는 ‘움마의 수액’과 교환할 수 있다. 중간계의 시세로 따지면 개당 20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가죽이나 고기 역시 다른 몬스터에게서 얻는 것보다 품질이 좋았다. “툰툰을 한꺼번에 여섯 마리나 발견하다니, 운이 좋은걸.” “이전에 사냥할 때와 똑같은 전법으로 가나요?” 레리어트도 이제 꽤나 익숙해진 태도로 전투를 준비하며 물었다. “네, 저와 라자크가 먼저 정면에서 치고 들어갈게요. 레리어트 님은 데드릭과 함께 배후로 돌아가 보조해 주세요.” “버프 종류는?” “음… 여섯 마리면 큰 부담은 안 되니까 공격형 3종 세트로 가죠.”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제 아크와 레리어트의 파티 플레이도 확실하게 자리가 잡혔다. 아크와 라자크, 데드릭의 훈련 그리고 그동안 꾸준하게 레벨과 숙련도를 올려 보조 스킬을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 덕분이었다. 레리어트는 레벨 150이 넘은 상태에서 직업을 변경해서 그런지,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스킬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 180을 달성하자 예전에 아란이 사용하던 버프와 비슷한 효과의 스킬을 모두 습득할 수 있었다. 아크가 그런 다양한 버프 효과를 써먹지 않을 리가 없다. “이제 버프를 좀 더 체계화해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어요.” 아크가 레리어트에게 제안했다. 이노센스 나이트는 홀리 나이트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직업이다.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신성 기사와 달리 버프를 3개까지 중첩시킬 수 있다는 점. 당연히 어떤 버프를, 어떻게 조합해서 활용하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 파티 전체의 성격이 달라진다. 방어 관련 버프를 중첩시키면 지구전에 강한 파티가 되고, 마력 증폭이나 마나 회복 계열의 버프를 중첩시키면 마법 전투형 파티가 되는 것이다. 이노센스 나이트는 거의 모든 종류의 버프를 가지고 있는 전천후 보조 계열 직업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활용해 주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 뒤로 아크는 각종 버프를 시험하며 조합 방식에 대해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게 바로 공격형, 방어형, 평균형, 버프3종 세트였다. 공격형을 주문받은 레리어트가 곧바로 버프를 날려 댔다.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웅의 기상, 전사의 집중력, 질풍의 호흡!” 공격력을 10% 올려 주는 영웅의 기상! 치명타 확률을 20% 상승시켜 주는 전사의 집중력! 검 계열 무기의 공격 속도를 10% 증가시키는 질풍의 호흡! 공격형 버프 3종 세트로 무장하자 각종 능력치가 쭉쭉 올라갔다. ‘뭐, 그래 봤자 ’어둠의 램프‘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아크는 허리 어름에 달려 있는 낡은 램프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낮에도 40%의 능력치를 올려 주는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게 해 주는 아이템! 처음에는 그 매력에 빠져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한 번에 마법 재료 10개를 소모해야 했지만 모아 놓은 게 많으니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본격적으로 사용해 보니 의외로 부담이 컸다. 게다가 ‘어둠의 램프’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용하지 않을 때 상대적으로 전투가 굉장히 힘들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안되겠다. 이거 중독되면 끊기 힘들겠어.’ 아크는 그제야 위기감이 느껴졌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좋은 장비품으로 무장하고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허접스러운 장비품으로 바꿔버리면 게임하기가 엄청 짜증난다. ‘어둠의 램프’를 사용하고 안 하는 것도 그런 차이가 있었다. 한 번 맛들이면 쉽게 끊을 수 없게 될 게 분명하다. ‘그건 곤란해. 마법 재료는 식재료와 달리 상점에 팔 수 있어. 마법 재료를 필드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돈이 나가는 거야.’ 반면 레리어트의 버프는 능력치 뻥튀기가 덜하지만 공짜다. 게다가 회복 마법까지 받을 수 있으니 굳이 돈이 드는 ‘어둠의 램프’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먼저 갑니다, 귀기개방!” 아크는 잡목림으로 뛰어들며 곧바로 귀기를 개방했다. 레리어트가 합류해서 좋은 점이 바로 이것이다. 다른 혹성에와서 컵라면처럼 3분 만에 불어 터져 버리는 섬나라의 부실한 영웅 울트라맨처럼, 아크 역시 귀기개방을 사용하면 몇 분 싸우지 못한다. 적에게 받는 데미지까지 고려하며 대략 5분이나 마음 편히 싸울까? 그러나 회복술사가 뒤에서 버티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끼야아아아악! 귀살검이 파르르 진동하며 귀기가 뿜어져 나왔다. 섬뜩한 기운이 풍겨 나오자 툰툰들이 흠칫 놀라며 공격 대세를 잡았다. 동시에 집채만 한 툰툰 다섯 마리가 어금니를 세우며 돌진해 왔다. 집채만 한 크기의 맷돼지 여섯 마리가 달려들자 바위산이라도 단숨에 박살 낼 듯한 무시무시한 박력이 전해졌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복돼지가 몰려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좋아, 맛있게 먹어 주마. 엘리멘탈 소드, 화 속성. 섬아!” 번뜩이는 섬광이 관통하자 일시에 툰툰 무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아크에게 특히 좋아하는 ‘ 전사의 집중력’ 버프 덕분이었다. 아크는 본래 치명타 성공도가 엄청나게 높은 편이다. 서너 방을 때리면 한 방은 무조건 치명타가 터질 정도. 거기에 다시 20%가 가산되니 두세 방에 한 번씩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치명타가 터질 때마다 상태 이상이 발동되는 ‘엘리멘탈 소드’ 와 조합하면 추가적으로 입힐 수 있는 데미지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 이런 스킬 조합은 기초적인 예에 불과했다. ‘역시 영웅 관련 직업은 다른 직업 조합보다 스킬 조합에 따른 상승효과가 크다.’ 아크는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세인트 어쌔신 샴바라, 홀리 나이트 아란, 다크워커 아크… . 지금까지 아크가 확인한 영웅 관련 직업은 이 세 가지다. 그리고 이 직업들은 활용하기에 따라서 다른 직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난 영웅 관련 직업의 힘이 100% 발휘될 때는 바로 다른 영웅 직업과 파티를 이뤘을 때였다. 물론 다른 직업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였지만, 악실리온에서 확인한 것처럼 영웅 관련 직업은 그 상승효과가 더욱 컸다. 그리고 레리어트 역시 홀리 나이트와 같은 영웅 직업!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웅 관련 직업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하긴, 7인의 영웅은 암흑 세기의 전설적인 파티원들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 “라자크, 배후에서 툰툰의 돌격을 막아라!” 딱딱딱딱! 아크는 라자크에게 등 뒤를 맡기고 여섯 마리의 툰툰 틈에 뛰어들었다. 궤에에엑, 꽤에에엑-! 사방으로 검을 휘둘러 대자 돼지 멱따는 소리가 울리며 툰툰들이 픽픽 나가떨어졌다. 낙승, 한 손으로 코를 후비면서도 가뿐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일부러 생명력이 반쯤 빠진 툰툰 두 마리를 슬쩍 레이어트 쪽으로 몰았다. 스승을 자처한 이상, 제자의 성장을 간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여유가 있을 때 레리어트에게 더 많은 실전을 경험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레리어트 님, 그쪽으로 두 마리 갑니다.” “네, 알았어요!” 레리어트 역시 이런 상황을 몇 번 경험해 봐서 침착하게 대응했다. 방패를 꼭 말아 쥐고 대기하자 데드릭이 타이밍을 맞춰 소리쳤다. “지금이다, 방패 치기!” 탁, 땡강-! 정확한 타이밍! 맹렬하게 돌진하던 툰툰이 방패에 얻어맞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숙달된 훈련 조교의 눈에는 아직도 부족해 보였던 모양이다. 데드릭이 커튼을 젖히듯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며 귀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아, 이 멍청아!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체중이 너무 앞으로 쏠렸잖아. 그렇게 되면 연결 동작을 빠르게 펼칠 수 없단 말이야!” “어머? 아앗!” 과연 데드릭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레리어트의 체중이 앞으로 쏠리자 다른 툰툰이 돌진해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한 마리 이상을 상대할 때는 항상 적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다음 동작을 계산해야 한다고 했잖아. 얼씨구, 그건 또 뭐하는 짓이야? 에잇, 정말 못 봐 주겠군! 어이, 돼지. 이 몸이 상대해 주마! 컴 온~.” 레리어트가 바닥에 나뒹굴자 데드릭이 날아오르며 툰툰을 도발했다. 물론 맞짱을 뜨려는 건 아니었다. 툰툰이 콧김을 뿜어내며 달려들자 데드릭은 곧바로 몸을 돌려 도망쳤다. 사실 데드릭은 레벨은 아직 140대 수준이라 200대의 툰툰과 1대1로 붙이면 한입이라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끝까지 잘난 척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됐어, 이놈은 잠시만 내가 맡아 주지. 한 놈은 처리할 수 있지?” “응, 고마워. 할 수 있어.” 레리어트가 먼지를 쓱쓱 닦아 내며 벌떡 일어났다. 아아, 저 다부진 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뭐랄까… 참으로 튼튼하게 잘 자라 줬다. 그러나 솔직히 아직 레리어트에게 전사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단순히 전투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레리어트는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하며 엄청난 페널티를 받았다. 지금까지 올린 스킬 숙련도가 50%가 깎인 건 그렇다 쳐도, 스탯 포인트는 아예 고정된 채로 전직이 돼 버린 것이다. 즉 마법사 시절에 지혜와 지능에만 투자한 스탯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기사가 됐다는 말이다. 당연히 근접 전투에 필요한 힘과 민첩, 체력은 바닥 수준. 전직한 뒤로 레벨 업 할 때마다 모든 스탯 포인트를 힘, 민첩, 체력에 쏟아붓고 있었지만 아직 근접 전투에서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툰툰에게 살짝 옆구리를 받힌 것만으로 바로 넘어져 버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 문제만큼은 아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빨리 레벨을 올려 스탯 포인트를 얻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실력이 꽤 늘었어. 하지만 저건 좀….’ 힐끔거리며 레리어트를 바라보는 아크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얍, 얍, 얍, 얍!” 레리어트는 깡충깡충 툰툰의 주위를 돌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움직임. 아크가 자주 사용하는 태권도식 스탭이었다. 알고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검을 휘두르거나, 공격을 피하는 동작이 아크를 닮아 가고 있었다. 뭐, 근접 전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본 전사가 아크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아크의 입장에서는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꺄아, 해치웠다!” 어쨌든 레리어트가 드디어 툰툰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기뻐할 새도 없이 툰툰에게 쫓기는 데드릭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늦어! 늦다고! 헉헉헉, 빨리 이놈 좀 어떻게 해 봐!” “알았어. 내게 맡겨! 얍, 얍!” 레리어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검을 휘드르며 달려갔다. 그 무렵, 이미 아크와 라자큰는 나머지 툰툰을 깔끔하게 썰어 버린 뒤였다. 그리고 한가롭게 둘러앉아 레리어트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어떠냐, 라자크? 네가 보기에도 처음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다 이 몸의 가르침 덕분이지.” 그러자 레리어트에게 몬스터를 넘겨준 데드릭이 날아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 척했다. 그러고는 문득 마지막 남은 툰툰에게 동정심 가득한 눈빛을 던졌다. “뭐, 불쌍한 건 저놈들뿐이지.“ 꿰에에엑-! 꽤엑-! 레리어트와 사투를 벌이는 툰툰은 온몸에 피를 철철 흘려 대고 있었다. 상대가 아크라면 이미 죽어도 여러 번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레이어트는 공격력이 낮았다. 검도 허접스럽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툰툰에게 한 번에 줄 수 있는 데미지는 고작 50~100. 결국 아크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찔러 대야 툰툰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이다. 덕분에 툰툰은 문자 그대로 누더기처럼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툰툰이 아크를 힐끔거리며 ‘차라리 네가 패 줘라’ 라는 눈빛을 보내오겠는가? 그러나 아크의 눈에는 그런 불쌍한 툰툰의 눈빛은 보이지도 않았다.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아크의 흉내를 내는 레리어트만 보일 뿐이었다. 아크는 피식 웃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꽤 귀엽지 않냐?” 그러자 데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주, 주인, 성격이 암울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 그러고 보니 짚이는 부분이 없지 않아. 아니, 솔직히 너무 많았지. 우리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하던 거나… 맞아,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기는 했어. 어쨌든 이제 확실히 알겠다! 역시 주인은 변…. “… 뒤에 한 글자 더 붙이면 뒈진다.” 아크가 인상을 구기며 쏘아붙이자 데드릭이 움찔하며 중얼거렸다. “아니면 뭐야? 정상인 사람이, 난도질을 당해 죽어 가는 툰툰이 귀여워 보인단 말이야?” “이 멍청이가! 누가 저따위 멧돼지가 귀엽데? 그러니까….” “꺄아, 해치웠어요!” 처절한 비명과 함께 레리어트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확실히….’ 고개를 돌린 아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온통 피로 물든 숲 속에 완전히 누더기로 변한 툰툰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장면을 연출한 여자가 검을 들고 폴짝거리며 즐거워했다. 주변이 조금 더 어둡고 음산한 배경음악이 흐르면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활용해도 될 듯한 그림. 그런데도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니… 머리가 살짝 맛이라도 간 건가? “무슨 얘기 하고 있어요?” 레리어트가 얼굴에 튄 피를 쓱쓱 문질러 닦으며 다가왔다. 젠장, 반칙이다. 왜 그런 모습도 예쁘게 보이는 거냐? ‘별거 아니야. 주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토론하고 있었… 합!“ 아크는 와락 데드릭의 주둥이를 움켜잡으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 레리어트 님의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는 말을 하고 있었어요.” “정말요? 그렇게 보여요?” 모처럼의 칭찬에 레리어트가 얼굴을 붉히며 활짝 웃었다. 덕분에 살짝 넋이 나간 아크는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조금만 더 연습하면 혼자서도 어디든 갈 수 있을 거예요.” “혼자서….” 순간 레리어트의 눈가에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기색이 비쳤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예요. 그런데… 혹시 아크 님은….” “이야, 수고하셨습니다!” 레리어트가 머뭇거리며 뭔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이걸로 피 좀 닦으시죠.” 멀리서 지켜보던 북실이가 전투가 끝나자 잽싸게 달려와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족발을 비비적거리며 뻔히 보이는 아부를 늘어놓았다. “이번에도 정말 멋졌습니다. 특히 레리어트 님의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셨군요. 소인은 그저 감탄, 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러나 아크는 가볍게 씹어 버리며 레리어트에게 물었다. “좀 전에 뭐 물어보시려고 했던 거예요? 뭐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니에요. 그, 그보다 여기서 좀 쉬었다가 가실 거죠?” “네? 아, 네…. 라둔도 좀 쉬어야 하고, 저도 마나를 회복해야 하니….” “그럼 제가 북실이 님하고 나뭇가지 좀 모아 올게요.” 레리어트는 왠지 허둥대는 반응을 보이며 북실이를 끌고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갑자기 왜 저러시지? 내가 또 뭔가 실수라도 했나?’ 아크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번만이 아니다. 요 며칠 사이에… 정확히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나온 뒤부터 레리어트가 조금 이상해졌다. 문득문득 아크의 눈치를 살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지금처럼 대화 중간에 황급히 화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왜 그러는 거지?’ 아크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역시 내가 너무 거리낌 없이 대해서 불편한 건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지. 사정이 있어서 함께 다닌다고는 하지만 레리어트 님에게는 남친이 있잖아. 조심하려고 하지만 나도 모르게 오해할 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오해다. 물론 아크가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기는 했지만, 연애 감정과는 거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동경의 대상으로 그리고 지금은 믿을 수 있는 동료 이상의 관계로, 언감생심… 그 이상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뭣보다 그녀에게는 이미 남자 친구-아크는 아직 아란이 레리어트의 남자 친구라고 생각했다.-가 있지 않는가? 그게 하필이면 아란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건 아크가 주제넘게 관여할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아크는 레리어트와 함께 있으면서도 아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크의 입에서 아란에 대해 좋은 얘기가 나올 리가 없다. 여자 앞에서 다른 남자를 흉보는 치졸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또한 남자 친구의 험담을 하는 것 역시 딴 마음이 있다는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나도 모르게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몰라. 레리어트 님이 돌아오면 넌지시 말해 두는 편이 좋겠다.’ “자, 그럼 일단 전리품이나 챙겨 볼까?” 아크는 도축업자의 칼을 들고 툰툰에게 다가갔다. (‘가죽채취’로 ‘툰툰의 가죽’ 채취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가죽이 지나치게 손상되어 상품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역시나….’ 아크는 너덜너덜 가죽을 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레리어트에게 맡겨 놓은 몬스터는 나중에 가죽을 벗겨 보면 십중팔구 이런 메시지가 떠올랐다. 너무 많이 칼질을 해 놓은 탓에 가죽이 상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처럼 잡은 몬스터의 가죽을 못 쓰게 되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런 가죽이라도 일단 벗기는 데 성공하면 스킬 숙련도가 올라간다. 아크가 죽어라 ‘가죽채취’를 사용하는 이유는 당장 돈벌이보다 숙련도를 올려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들기 위해서인 것이다. “다녀왔어요.” 잠시 후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돌아왔다. 마침 가죽과 고기를 모두 분리해 놓은 아크는 기회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레리어트 님, 아까 하던 말 말이에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저는 그만 나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레리어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자 막 모닥불을 피우던 북실이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버, 벌써 나가시게요?” “벌써라니요? 벌써 새벽 3시가 넘었어요.” “…그러세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덕분에 또다시 말한 타이밍을 놓쳐 버린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리어트가 종료 준비를 하다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모로 죄송해요.” “네? 뭐요?” “저 때문에 많이 불편하지죠? 이것저것 가르쳐야 하고, 또 매번 이렇게 도중에 나가 버려서 한참 기다리셔야하고….” “에이, 난 또 무슨 말이라고. 말했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정말 전 괜찮다니까요.”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레리어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아크 님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럼 오늘 오후에 봬요.” “오후요?” “주말이잖아요.” “아, 벌써 주말이군요. 제가 시간개념이 없어져서. 그럼 오늘 오후부터는 달려야겠어요.” “호호호, 알았어요. 최대한 빨리 들어올게요.” 레리어트가 맑은 웃음소리를 남기고 접속을 종료했다. 레리어트가 나가 버리자 북실이가 아크의 눈치를 살피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 아크님, 식재료 재취하러 갔다 올게요!” “뭐? 그동안 비축해 놓은 게 많아서 급할 거 없는데.” “놀면 뭐합니까? 저는 전투에 도움이 안 되니 이렇게라도 밥값을 해야죠.” “그런 마음가짐은 꽤나 바람직하지만….” “다녀오겠습니다!” 북실이는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눈썹이 휘날려라 숲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데드릭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 요즘 왜 저래? 징그럽게 아부를 떨지 않나, 됐다는데도 알아서 앵벌이를 하질 않나…. 주인, 혹시 또 팼어?” “내가 무슨 깡패냐? 만날 패게?” “그런데 애가 왜 저래? 보는 내가 다 민망하잖아.” “내버려 둬. 저러다 말겠지.” 아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내심 짐작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불평불만투성이였던 북실이가 모 TV의 ‘우리 집 돼지가 달라졌어요.’라는 방송에 출연시켜도 될 정도로 달라진 이유. 북실이가 켕기는 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잠깐 내비쳤던 꿍꿍이였다. 사실 아크는 이전부터 북실이의 꿍꿍이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때 북실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북실이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아크 자식은 눈치가 빨라. 분명 그때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거야. 어쩌지? 놈이 그때 일을 문제 삼아서 추궁하기 시작하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최악의 경우 놈이 ’비장의 무기‘를 알아자리는 날에는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될지도 몰라. 그것만은 절대 안 돼!’ 두 동생을 희생시키고, 간, 쓸개 다 팔아 가며 간신히 여기까지 따라왔다. 이제 와서 아크에게 버림받으면 그 모든 게 삽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위기감을 느낀 북실이는 어떻게든 아크의 비위를 맞추려고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행여 그때의 일을 추궁할까 싶어 최대한 둘만 남는 상황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뭐랄까…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그러나 북실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혼자 남은 아크는 곧 가방을 열어 색재료를 주섬주섬 꺼내 늘어놓았다. 요 며칠 사이, 아크에게 새로 챙긴 취미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사실 직장인인 레리어트와 함께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진심이었다. 비록 그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한다고 해도 몇 시간씩이나 같은 곳 있는 게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새로운 취미가 생긴 지금은 그런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취미란 바로 부직업 식의가 되면서 배운 ‘한약 달이기’! “후후후, 이게 의외로 깊이가 있단 말이야.” 아크는 팔을 걷어붙이고 한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스킬이 생겼을 때는 그저 포션을 만드는 스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 삼아 몇 개 만들어 본 뒤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한약 달이기’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현재까지 크게 세종류로 나뉘었다. 아크가 처음 한약을 만들었을 때, 만들어졌던 것은 끈적끈적한 점액질이었다. 아무래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정보창을 확인해 봤더니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고약’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고약: 한방에서 각종 약소를 배합해 만드는 외상 치료제로 가장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치료체입니다. 고약의 종류에 따라 삔 데, 멍든 데, 타박상, 관절염, 출혈, 기타 등등의 상태 이상에 효과가 있습니다. <상태 이상에 걸렸을 때 해당 부위에 해당 효과를 발휘하는 고약을 붙이면 빠르게 상태 이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단, 스턴이나 현혹 같은 정신 계열 상태 이상에는 효과가 없습니다.>) “상태 이상 치료제!” 아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타박상이난 골절 따위의 상태 이상에 걸리면 이동속도나 공격 속도가 떨어진다. 또한 관절염 같은 상태 이상은 보통 몇 시간이나 지속되는 경우가 있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물론 이런 상태 이상을 바로 회복할 수 있는 물약이 있지만, 가격이 싼 편이 아니었고, 수십 종류나 되는 물약을 항상 휴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지금까지 그냥 몸으로 때워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팔 수도 있어.” 고약은 색깔에 따라 효과가 달랐다. 붉은색과 노란색, 하얀색, 검은색… 각각 색깔에 따라 출혈이나 타박상, 골절에 효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그다지 활용도가 높지 않았다. 상태 이상에도 등급이 있다. 당연히 치료제에도 등급이 있기 마련. 현재 아크가 만드는 고약은 ‘하급 상태 이상’ 밖에 치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유계의 몬스터들은 레벨이 높아 ‘상급 상태 이상’ 을 사용했다. “어쨌든 스킬 등급을 올리면 더 높은 등급의 고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아크는 쉬는 시간마다 고약을 만들어 댔다. 그러던 중, 또 다른 형태의 한약이 만들어졌다. 달짝지근 하면서도 농익은 듯한 향기를 풍기는, 그야말로 한약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는 엑기스였다. (처음으로 ‘보약’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보약: 각종 약초를 오랫동안 달여서 만들어 낸 엑기스. 보약은 종류에 따라 허해진 기를 보충하거나 여러 장기를 튼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기간 먹어서는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복용해야 합니다. 《보약은 꾸준히 섭취하면 종류에 따라 스탯이난 각종 수치가 상승합니다. 단,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하루에 한 번씩, 게임 시간 기준으로 최저 30일에서 180일을 복용해야 효과가 발동합니다. 복용 시간이 긴 보약일수록 적용되는 수치가 상승합니다. 단 도중에 약을 빼먹으면 그만큼 보너스에 페널티가 적용합니다.》) “헉, 뭐야? 한약으로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이잖아?” 아크는 그야말로 보물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스탯을 올리는 약을 만들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사실 연금술에도 힘이나 체력을 1~3 까지 올려 주는 약물을 만들 수 있는 제조법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런 약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비싼 마법 재료를 쏟아부어야 한다. 당연히 가격도 비싸서 개당100~500골드나 나갔다. 그러나 보약을 만드는 재료는 평범한 약초난 식재료!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좀 애매한걸.”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 역시 아직은 그다지 쓸 만한 보약을 만들 수 없었다. 아크가 처음 제작한 보약은 ‘초급 스킬’ 로 만들어져서 올라가는 능력치가 고작 공격력+1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복용 기간은 30일…현실 시간으로 10일이다. 무려 10일 동안 꼬박꼬박 시간 맞춰 30번을 만들어 먹어야 공격력이 1 올라가는 것이다. 또한 보약은 여러 가지 중복해서 먹을 수 없었다. 한 번에 한 종류.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어쨌든 연금술 물약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어. 그리고 이것도 스킬 등급이 올라가면 힘이나 민첩을 올리는 보약을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때 30개 세트나, 180개 세트로 만들어서 경매장에 올려놓으면 제법 돈벌이가 될 거야.” 아크는 벌써분터 보약을 만들어서 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물론 아크는 레시피를 등록시켜 놓고 그때부터 꼬박꼬박 보약을 챙겨 먹었다. 10일 동안 챙겨 먹어도 고작 공격력 1이지만, 올라가는 편이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든 게 바로 문제의 한방차였다. (처음으로 한방차의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한방차:한약의 약효를 가장 간단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보약과 달리 한방차는 마신 직후에 곧바로 효능을 발휘합니다. 또한 몇 종류를 중첩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효과를 빨리 보는 대신 일시적인 효과를 발휘할 뿐입니다. 《한방차를 마시면 종류에 따라 일정 시간 특수 효과를 발휘합니다.》) “뭐야? 서바이벌 요리와 효과가 똑같네? 그럼 굳이 한방차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 아크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미 아크의 서바이벌 요리는 최상급이다. 등급이 올라간 만큼 이제 요리에 따라붙는 부가 효과도 장난이 아니었다. 서너 가지의 부가 효과가 따라붙는 게 보통이었고, 올라가는 능력치도 힘+20, 마법 저항력+20% 등등 상당한 수치였다. 몇 개만 먹어도 바로 전투가 편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 같은 재료를 소비해서 굳이 낮은 등급의 한방차를 만들어 먹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한방차에 붙어 있는 부가 효과의 설명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라? 이게 뭐야? 부가 효과로 눈이 맑아진다고?” 한방차에 붙은 부가 효과는 힘이나 민첩, 공격력을 올리는게 아니었다. 눈이 맑아진다거나, 손놀림이 좋아진다거나, 걸음이 빨라진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눈이 맑아지고, 손놀림이 좋아진다는 게 무슨 뜻이야?”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크는 경험으로 이런 종류의 아이템에는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을 무턱대고 먹었다가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때문에 일단 아크는 가축을 상대로 생체 실험을 해 봤다. 대상은 언젠가 잡아먹을 생각으로 키우는 돼지… 북실이였다. “어때? 뭔가 좀 달라진 느낌 들지 않아?” 북실이를 꼬드겨 한방차를 먹인 아크가 물었다. 그러나 북실이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딱히 변한 게 없는데요?” "그래? 이상하네? 알았어. 혹시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되면 말해.“ “네? 뭡니까! 이상한 점이라니? 뭔가 수상한 걸 먹인 겁니까?” “아니야, 인마. 몸이 좋은 거야.” 적잖이 실망한 아크는 툭 쏘아붙이듯 말했다. ‘젠장, 뭐야? 그냥 보통 차에 불과했던 건가?’ 그러나 그 뒤로 잠시, 이외의 상황에서 한방차의 효과가 발동했다. “헛? 뭐지? 뭐야? 왜 이렇게 식재료 채취가 쉽지? 오오오오, 게다가 이렇게 빨리 채취할 수 있다니…! 마치 내 손이 아닌 것 같아!” 식재료를 채취하던 북실이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왜 그러난 하고 가 봤더니 북실이가 미친 듯이 손을 놀리며 식재료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게다가 실패율이 높은 식재료도 어렵지 않게 척척 캐내는 것이 아닌가?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거다, 한방차에 붙어 있던, 손놀림이 좋아진다는 효과가 아니였어!’ 드디어 한방차의 비밀을 밝혀낸 아크는 곧바로 다른 한방차를 만들어 북실이에게 먹였다. “우오오오, 이게 뭐야? 갑자기 주변의 식재료가 너무 잘 보이잖아? 헛, 저기 그늘에도 식재료가 숨어 있네? 우왓, 뭐야? 걸음은 또 왜 이렇게 빨라졌어? 식재료를 캐는 것도 너무 쉽다. 마치 식재료 채취의 달인이 된 기분이야!” 북실이는 갑자기 슈퍼맨이 된 것처럼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주변의 식재료를 싹싹 긁어모았다. 덕분에 아크의 가방에는 순식간에 처치 곤란한 만큼의 식재료가 쌓이기 시작했다. 한방차에 붙어 있는 효과는 앵벌이 전용이었던 것이다! ‘한방차를 먹이니 북실이 혼자서도 주변의 식재료를 몽땅 모을 수 있잖아? 좋아, 그럼 앞으로는 레리어트 님은 전투 훈련을 계속 시키고, 식재료 채취는 북실이에게 맡기자.’ 한방차의 효능을 알게 된 아크는 철저하게 써먹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아크의 예상대로 이런 종류의 스킬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한방차를 먹여 가며 앵벌이를 시킨 지 꼬박 하루. 또다시 한방차를 리터 단위로 마셔 대던 북실이가 갑자기 온몸이 팅팅 불고, 여기저기에서 종기가 나기 시작했다. “어? 이거 왜 이래? 윽, 가려워! 가려워! 으악, 미치겠다!” 북실이는 미친 듯이 몸을 긁어 대며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가 화들짝 놀라 북실이의 몸을 살펴보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식의의 직업 특성으로 북실이 님을 ‘진맥’ 했습니다. 북실이 님의 증상은 약물 과다 복용에 의한 중독입니다. 한방차는 가장 약효가 약하지만, 엄연히 약입니다. 여러 종류를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경우, 오히려 몸이 상해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증상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일정 스탯이 영구적으로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북실이 님의 증상은 심각하지 않아 8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회복됩니다.) ‘심하면 스탯이 소멸한다고? 역시 북실이에게만 시험해 보기를 잘했다.’ 아크는 새삼 자신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아, 아크 님, 알아내셨어요? 제 몸이… 아이고, 왜 이러는 거죠?” “응? 아아, 별거 아니야. 8시간이면 회복된다네?” “헉! … 8시간요? 이 상태로 8시간이나 있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크의 대답에 북실이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8시간 동안 그야말로 지옥 같은 경험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북실이가 아크와 둘이 있기를 더욱 두려워하게 된 게…. 뭐, 어쨌든 아크도 그 뒤부터는 한방차를 남용하지 않았다. 북실이가 고생하는 게 가슴 아파서는… 물론 아니었다. 북실이가 병이 나 버리면 식재료를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 귀한 노동력이니 관리를 잘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후후후, 어쨌든 이로써 북실이를 협박할 무기를 하나 더 생긴 셈이군.’ 그렇게 오늘도 사악함을 더해 가는 아크였다 북실이는 집돼지?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선+400 명성:9,125(+500) 레벨:280 직업:다크워커 칭호:캣 나이트,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생명력:4,360(+150) 마나:4,350 영력:200 힘563(+28) 민첩723(+55) 체력823(+20) 지혜107(+10) 지능842 운103(+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138 유연성:112 화술:46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민첩+10, 지혜+10 *《수왕》세트효과:힘+10, 민첩+15, 체력+10, 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민첩+30, 이동속도+30%, 공격속도+10%, ‘슬라이드’ 사용가능 갈가쉬의 모피(망토):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50%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힘+5, 마나 회복 속도+5% 라르칸의 반지(반지);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생명력+50. 생명 회복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증가했습니다.) 아크는 마가로프를 쓰러뜨려 7, 계곡 마을로 돌아가며 4를 더 올려 이제 레벨 280을 달성했다. ‘혼자 사냥하는 것보다 훨씬 낫군.’ 아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말이지만 아크는 현재 파티가 꽤난 만족스러웠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지금까지 아크는 파티 사냥에 회의적이었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먼저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이 그렇듯, 뉴 월드에서도 파티를 맺어 사냥하면 추가 경험치가 지급된다. 파티원의 숫자에 따라 적게는 100%에서 400%까지.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설핏 이득인 것 같지만, 그렇게 증가된 경험치를 다시 파티원이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자, 1,000의 경험치를 주는 몬스터가 있다가 들어온다면 4,000. 그러나 이걸 10명이 나누면 고작 400이다. 물론 혼자 사냥할 때보다 빠르고 지속적인 사냥을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쉬지 않고 사냥할 수 있을 만큼 몬스터가 우글거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파티 사냥의 단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정작 큰 문제는 사냥할 때가 아니라, 사냥한 다음이다.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파티 사냥을 할 때 전리품의 분배에는 크게 몇 종류가 있었다. 그 가운데 ‘국민 룰’ 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쓰이는 방식이 바로 ‘순획과 직주’ 였다. ‘순획’ 은 파티원이 차례되로 한 번씩 아이템을 먹는 방식. 그리고 ‘직주’는 마법 이상 등급의 아이템이 나왔을 경우, 착용이 가능한 직업에게 우선적으로 소유권을 주고, 관련 직업이 둘 이상 될 때는 주사위를 굴려 숫자가 높은 사람이 먹는 방식이다. 설핏 보면 굉장히 공평한 방식. 그러나 실상은 생각만큼 공평하지 않았다. 아크가 여러 사냥터나 던전을 전전하며 깨달은 점 하나는, 몬스터가 주는 아이템은 완전한 랜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파티를 맺어 도적 산채를 털었다고 치자. 도적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방어구는 대부분 도적 전용 아이템이 많다. 결국 함께 파티를 맺어도 쓸 만한 아이템은 몽땅 도적 계열 유저가 독식하게 된다는 말이다. 반면 다른 직업은 고작 잡템 몇 개. 죽도록 사냥하고도 포션값은코녕 수리비조차 건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돈이 되는 아이템을 다른 직업 유저가 챙기는 것을 그저 손가락 빨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마법 아이템이라면 그래도 낫다. 혹시라도 레어 아이템이 떨어지면, 그것도 자기가 쓸 수 있는 건데 주사위에 져서 빼앗기게 되면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것이다. 자다가도 10원짜리 동전 굴러가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는 아크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파티는 그야말로 이상적이지.’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레리어트와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물론 초반에는 좀 불편한 감이 있었지만, 이제 레리어트를 대하기도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그녀도 한 사람 몫은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뿐인가? 비록 전투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북실이 역시 쉴 새 없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모아 밥값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이 파티를 좋아하는 건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크도 사냥을 하면 경험치를 3명이서 나눠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바로 저레벨의 고속 레벨 업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 파티원의 레벨 차이가 많이 나면 대부분의 경험치가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에게 들어온다는 점이다. 현재 아크와 레리어트, 북실이의 레벨 차이가 거의 100이나 된다. 때문에 몬스터를 잡으면 경험치의 50% 이상을 아크가 독식했다. 반면 파티 추가 경험치는+100%. 결과적으로 200%의 경험치 가운데 50% 이상을 챙기니 혼자 사냥할 때보다 많은 경험치를 받는 것이다. 아크가 사흘 만에 4레벨이나 올릴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뿐인가? 이미 사냥과 채취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몽땅 아크가 독식하기로 합의했다.파티 사냥으로 전리품을 얻을 확률이 높아졌으니 혼자 있을 때보다 수입도 나은 것이다. ‘후후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어!’ 그야말로 아크에 의한, 아크를 위한, 아크의 파티라고 할 수 있었다. “아, 아크님!”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숲으로 들어갔던 레리어트와 북실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달려왔다. “왜 그러세요?” “모, 몬스터예요, 붉은 몬스터!” 북실이가 허옇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붉은 몬스터?”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리어트가 덧붙였다. “절망의 심연에서 봤던 나크족 말이에요.” “나크족! 나트족이 이 근처에 있다고요?” “네, 그것도 우리가 본 것만 스무 마리가 넘어요.” 이어지는 레리어트의 말에 아크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크족은 북부 산맥 너머에 살고 있는 종족이다. 베스튜라의 말에 의하면 북부 산맥은 쉽게 오갈 수 없는 지형이라, 나크족이 남부 지역까지 넘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도 예전에 하겔 숲에서 만난 나크족은 드라칸을 이용해 넘어왔으리라. ‘그때 놈들은 망자를 사냥하기 위해서 넘어왔던 거였어. 하지만 타무라드를 처치했으니 이제 나트족이 남부 지역으로 넘어올 이유가 없을 텐데? 게다가 나크족과 계곡 마을의 바란족은 적대 관계다. 그런데 이렇게 마을과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크르르르. 문득 뒤쪽에서 위협적인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크와 레리어트가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검 자루를 움켜 쥐었다. 동시에 수풀이 흔들리더니 섬뜩한 붉은 갈기를 가진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의 모습을 확인한 아크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라? 저 개는 계곡 마을의 몬스터 사육장에서 봤던…?’ 그 개는 바란족이 사육하는 헬 하운드였다. 그러난 아크가 봤던 헬 하운드는 검은색, 순간 붉은색으로 보였던 이유는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는 헬 하운드의 등에는 역시 부상을 입은 소년이 업혀 있었다. 놀랍게도 그 소년은…! “보, 보나?“ 뒤늦게 소년의 정체를 알아낸 아크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소년의 몸이 움찔하더니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아크 형?” “그래, 나야. 대체 무슨 일이야? 어째서?” “아, 아크 형… 도, 도와줘요! 마을이… 할아버지가….” “마을? 할아버지? 뭐야? 무슨 말이야?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거냐?” “도, 도와줘요. 도와줘요…!” 보나는 아크의 손을 잡고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떨궜다. 동시에 헬 하운드도 기력을 다했는지 풀썩 쓰러졌다. 아크가 얼른 다가가 보나를 받아 들고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헬 하운드와 보나는 부상 탓에 정신만 잃은 듯, 가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크 님, 대체 이게…?” 레리어트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난 아크라고 알 리가 없었다. 어쨌든 나크족이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세한 사정을 알기 전에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 아크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발로 모닥불을 비벼 끄며 말했다. “서둘러 정리하세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겠습니다.” (‘그림자 숨기’가 적용되어 ‘은신’ 상태가 유지됩니다.) ‘저 자식들…!’ 아크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계곡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철그럭, 철그럭. 다리에 족쇄를 찬 사람들이 헐떡거리며 바위나 목재를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채찍을 든 감독관들이 눈을 번뜩이며 감시하고 있었다. 마치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듯한 이 장면이 바로 현재 계곡 마을의 상황이었다.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바란족, 감독관은 나크족이었다. “이놈들, 뭐하는 거냐?” “빨리빨리 못해?” 나크족이 채찍을 휘둘러 대며 고함을 내질렀다. 그때, 커다란 바위를 끌던 황소가 거친 숨을 불어 내며 풀썩 쓰러졌다. 볼카누스라는 이름의 황소는 계곡 마을에서 짐마차용으로 활용하는 조련된 몬스터였다. 바란족만이 아니라, 계곡 마을에서 사육하는 몬스터들 역시 모두 작업 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었다. 볼카누스가 쓰러지자 나크족이 호통을 치며 달려왔다. “이 자식, 감히 꾀를 피우다니! 뜨거운 맛을 덜 본 모양이군!” “더,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잠시만, 잠시만이라도 쉬게해 주십시오!” 조련사인 듯한 중년인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애원했다. 그러나 나크족은 매몰차게 그를 걷어차 버리고 볼카누스에게 채찍질을 하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조련사가 와락 볼카누스를 껴안았다. “뭐야? 감히 이놈이 노예 주제에 반항을 해?…좋다,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크윽, 으아아악, 제, 제발…!” 조련사는 살을 파고드는 채찍질에 등이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상처가 깊어질수록, 비명소리가 높아질수록 폭력에 도취된 나크족의 손속은 더욱 매서워질 뿐이었다. 그렇게 조련사가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만둬라!” 돌연 뒤쪽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어서 지켜보던 아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몇 명의 나크족과 함께 그곳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놀랍게도 쥬르 일당이었다. ‘역시 보나의 말이 사실이었어. 하지만 저놈들이 대체 어떻게…?’ 아크는 침음성을 삼키며 조금 전의 기억을 재생해 보았다. 대략 30분 전, 숲에서 보나를 발견한 아크는 일단 나크족을 피해 작은 동굴에 몸을 숨겼다. 사실 마음만 먹으며 나크족 스무 마리는 아크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상을 입고 쫓기는 보나를 확인한 순간 직감적으로 뭔가 복잡한 일이 얽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크의 판단은 정확했다. 잠시 후, 레리어트의 회복 마법을 받고 정신을 차린 보나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해 주었다. 사건은 일주일 전, 그러니까 현실 시간으로 약 이틀 전에 일어났다. 평화로운 계곡 마을을 약 400명의 나크족이 습격한 것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계곡 마을을 점령하고 바란족을 노예로 삼아 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아크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 베스튜라에게 듣기로 나크족은 북부 산맥 너머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북부 산맥은 워낙 길이 험하고 복잡해 도저히 병력이 이동할 수 없었다. 이전처럼 드라칸을 이용해 소수의 인원을 침투시킬 수는 있지만 몇백 명이나 되는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바란족이 나크족의 위협을 받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400이나 되는 병력이 갑자기 북부 산맥을 넘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보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잘은 몰라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분명 그들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들?” “아크 형을 따라 유계로 넘어왔다고 했던 이방인들요.” 아크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크를 따라 유계로 넘어왔다는 이방인. 즉, 아크 척살대 쥬르 일당이다. 그렇다면 쥬르 일당이 나크족의 앞잡이가 되어 계곡 마을을 습격했다는 말이 아닌가? 나크족은 비록 유계의 한 종족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카오틱 성향을 가진 몬스터다. 그렇다면 몬스터와 손을 잡았다는 말인가?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는 건가? 그리고 대체 어떻게 수백의 나크족을 데리고 북부 산맥을 넘어왔을까?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나 뭐 하나 속시원히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현재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일이 더럽게 꼬였다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유저가 몬스터와 손잡고 NPC 마을을 점령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 봤다. 그러나 막상 일이 벌어진 뒤에 차근차근 생각해 보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물론 중간계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유저가 그런 짓을 벌인다면 슈덴베르크, 시니어스, 브리스타니아 왕가에서 구경만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곧바로 현상 수배가 되는 건 물론이고, 왕국 기사단이 출동해서 박살을 내리라. 그러난 이곳은 유계다. 나크족이 북부에 왕국을 건설했다고는 하나, 남부는 그야말로 무주공산, 마을을 보호할 만한 NPC 세력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두 번째 의문으로 넘어갔다. 일단 쥬르 일당인 나크족과 손을 잡고 계곡 마을을 습격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런 짓을 했냐는 것이었다. ‘쥬르 놈들이 베스튜라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해도, 나크족과 손잡고 계곡 마을을 습격한 건 이상해. 그 녀석들은 나를 잡으려고 유계까지 쫓아왔어. 그리고 이미 계곡 마을에 내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계곡 마을을 점령한 거지? 나크족 역시 단순히 마을 하나 점령하는 건 별 의미가 없을 텐데?’ 아크는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가정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난 결론은 쥬르 일당에게나, 나크족에게나 그럴 만한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쥬르 일당을 봐도 그렇다. 마을 하나를 점령하면 분명 이득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은 몰라도 거기서 얻어지는 이득은 나크족과 나눠야 한다. 게다가 이곳은 돈이 아닌 물물교환이 당연시되는 세계. 얻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잡템이라는 말이다. 그런 잡템을 얻는 대가로 유계의 남부 일대에 사는 바란족과 적대 관계가 된다? 아무래도 득보다는 실이 많다. 나크족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계곡 마을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북부 산맥을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고작 400명만 넘어왔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계곡 마을을 노략질해고 전리품을 본국으로 보내기 쉽지 않다는 말. 굳이 힘들게 북부 산맥을 넘어와 계곡 마을을 점령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마을을 점령하고 사육된 몬스터와 아저씨들을 모아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뭔지는 할아버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보나는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못했다. ‘뭔가를 만들고 있다…. 어쨌든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로군.’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보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 아크 형, 도와주세요. 이대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크족에게 시달리다가 죽을 거예요. 저와 함께 탈출하다가 잡혀 간 할아버지와 그란도….” 마을을 습격당한 것치고는 바란족 생존자가 많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쥬르 일당이 강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투 부족인 나크족의 숫자도 400. 200명에 불과한 주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놈들이 비열하게도 습격하자마자 마을의 아이들을 인질로 잡았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포로가 된 것이다. 그러던 중 그란과 베스튜라는 기회를 엿보다가 조련된 헬하운드를 이용해 보나를 구출, 탈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다른 바란족 마을에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도중에 나크족에게 발각되어 보나만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음….” 아크는 보나의 몸에 새겨진 상처를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레리어트의 치유 마법 덕분에 많이 아물었지만 아직 보나의 몸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처가 있었다. 나크족의 추격을 받으며 입은 상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채찍질에 의해 생긴 상처였다. 나크족이 마을을 점령한 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했다. 그런 장면을 떠올리자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어린애에게 이런 짓을… 개자식들 같으니!” “하아?” 딱딱딱딱? 데드릭과 라자크는 괴상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뭐야?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데?” “아니… 주인이 그런 말을 하니 좀….” “내가 뭘?” “아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야.” 데드릭이 입술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따지고 보면 데드릭이 소년으로 변했을 때는 보나보다 어리다. 그런 데드릭을 말 안듣는다고 며칠 동안 두들겨 팬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보나의 상처도 아크에게 맞아 떡이 되었던 데드릭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심지어 유저인 북실이까지 두들겨 패며 착취해 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크는 남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남자다. 누가 뭐래도 소환수를 패는 건 ‘ 사랑의 매’ 북실이를 착취하는 것은 ‘상부상조’ 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건 말이지….” “아, 됐어. 알았다니까. 뭐 주인이 ‘착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런 주인을 모시게 돼서 우리는 정말 ‘행복’ 하다고” 데드릭이 묘하게 악센트를 주며 빈정거렸다. “이, 이 자식이 정말…!” “뭥야? 또 패려고? 헹, 본색을 드러냈구먼. 북실이, 너도 뭐라고 한마디 해 봐.” 아크가 발끈해서 달려들자 데드릭이 잽싸게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크 님도 데드릭도 그만 좀 하세요. 장난할 때가 아니잖아요!” 북실이의 고함 소리에 아크와 데드릭의 움직임이 멈췄다. “어이, 돼지…?” 데드릭은 멍청한 얼굴로 몇 번 눈을 깜빡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나 북실이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보나의 상처에 고약을 발라 주며 중얼거렸다. “나쁜 자식들, 어린애에게….” 북실이의 진지한 태도에 분위기가 갑자기 서먹서먹해졌다. 아크가 눈으로 ‘어이, 저 녀석 왜 저러냐? 뭐 잘못 먹었냐?’ 라고 묻자 데드릭은 눈알을 좌우로 돌리며 ‘ 내가 아냐? 바보 주인!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아크가 뭐야? 바보 주인? 너 대체 뭘 믿고 개기냐? 정말 죽어 볼래? 라고 말하자 데드릭은…. “북실이 님 말이 맞아요. 장난할 때가 아닌 거 같아요.” 그때,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한 덕분에 아옹다옹 하던 아크와 데드릭은 더욱 무안한 표정이 되었다. “아크 님, 이제 어쩌죠?” “글쎄요.”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민에 빠졌다. 데드릭 때문에 살짝 대화가 안드로메다로 향했지만, 확실히 장난이나 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른 문제는 둘째 치고, 당장 베스튜라를 구출하지 않으면 《신기루 서재》퀘스트의 단서를 알아낼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해야 하는데….’ “레리어트 님과 북실이는 이곳에서 보나를 치료하고 계세요. 일단 제가 마을을 살펴보고 올게요. 차후의 문제는 그때 가서 의논하죠. 데드릭, 너도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그렇게 아크는 동굴을 나와 계곡 마을로 향한 것이다. ‘그래도 유저라고 NPC보다는 좀 낫군.’ 바위 뒤에 숨어서 지켜보던 아크는 쥬르가 나크족을 막아서자 피식 웃었다. 비록 아크와는 원수지간이지만, 나름대로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쥬르는 조련사의 얼굴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이를 드러냈다. “귀중한 노동력을 함부로 다치게 해서는 쓰나. 어디 보자, 휴식이 필요하다고 했나?” “네, 네. 부탁드립니다…. 볼카누스는 … 이제 한계입니다…. 잠시라도 좋으니….” “좋아, 사정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마음껏 쉬어라.” “네? 저, 정말요?” “물론이지. 그럴 수 있다면 말이야.” “네? 그, 그게 무슨…?“ “어이, 이놈의 자식을 데려와라.” 뒤이어 나크족 몇 명이 족쇄를 찬 소년을 데려왔다. 쥬르는 소년을 걷어차 넘어뜨리고 다짜고짜 채찍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헉, 무… 무슨 짓을…!” “크하하하, 말했지? 하루를 쉬든 이틀을 쉬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 대신 너와 그 황소가 쉬는 동안 네 아들이 채찍질을 당할 거다.” “아악, 아버지!” “그, 그만두시오! 하겠소. 일하겠소. 그러니 제발 그만…!” 조련사가 비명을 지르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쥬르가 침을 탁 뱉으며 중얼거렸다. “ 흥, 감히 어디서 잔꾀를 부리려고 들어? 이번에는 이 정도로 넘어가지만 또다시 귀찮게 굴면 너와 아들 놈,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 아들 놈을 끌고 가라.” “네? 네!” 쥬르의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에 나크족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러난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히죽거리며 쥬르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오오, 쥬르, 이번에는 정말 악당 같았어.” “후후후, 내가 좀 하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크는 어이가 없었다. ‘S냐? S에 눈을 떠 버린 거냐, 너희들?’ 아크는 정의의 사자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수백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봐도, 자신의 입 주변에 난 염증이 더 짜증 나고 아팠다.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상대가 NPC라도 어떻게 저런 망설임 없이 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울부짖는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으며 히죽거리는 꼴이라니…. 생각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턱을 날려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상대는 쥬르 일당과 400의 나크족이다 사실 400의 나크족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절망의 심연에서 아크가 처리한 나크족의 숫자는 600이 넘는다. 물론 동시에 400을 상대할 수는 없지만, 적당히 유인 작전을 펼치며 처리하면 400이든, 600이든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몬스터와 유저의 연합 세력이라는 점이었다. 유저를 상대로 그런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작전이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미치겠군. 쥬르 일당만 마을에 없어도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그나저나 대체 쥬르 놈들의 목적은 뭐지? 방금 전의 상황을 보자면 쥬르와 나크족들이 별 의미 없이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것 같지는 않아. 그렇다고 뭔가 목적이 있다는 말인데… 대체 그게 뭘까? 석재와 목재를 옮기는 곳이 저 안쪽인가? 아무래도 확인해 봐야겠군.’ 아크는 ‘그림자 숨기’ 를 사용해 마을 외곽을 따라 돌았다. 그렇게 반대쪽으로 넘어가자 곧 문제의 구조물이 보였다. 벌써 50%정도 완성되어 가는 탑이었다. ‘어라? 저 구조물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던 아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기억에 있는 탑이었다. 중간계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마법 학회의 탑! 물론 그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대략적인 형태는 비슷했다. 그리고 상층부에는 기묘하게 생긴 구체가 흐릿한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그 구체를 보는 순간 아크는 쥬르 일당과 나크족의 음모를 알아챘다. ‘저건 영자 이동에 이용되는 수신탑이다!’ 그렇다. 쥬르 일당은 이곳에서 영자 이동의 수신탑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영자 이동은 마법 학회도 아직 연구 중인 공간 이동 기술이다. 유저에 불과한 쥬르 일당이 만들 수준의 것이 아니다. 하물며 문명이 뒤떨어지는 나크족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영자 이동의 수신탑을 건설할 수 있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난 만드는 이유만큼은 아크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맙소사, 나크족은 계곡 마을을 기점으로 유계를 정복하려는 거였어!’ 그렇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곳에 수신탑을 만드다면 아마도 나크족의 왕국에 송신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탑을 이용해 북부 산맥을 너머 대군을 남부에 진군시키려는 것이 분명했다. 나크족이 마음대로 남부로 넘어올 수 있게 된다면 뒤이어 벌어질 일은 뻔하다. 남부에 퍼져 사는 바란족은 제대로 대항조차 못 해 보고 계곡 마을처럼 점령되고 말리라. ‘이거 어쩌면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할지도 모른다.’ 아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쥬르가 그것까지 알고 나크족과 손을 잡았다면, 결코 혼자만의 결정이 아닐 것이다. 헤르메스 연합장 라이덴도 개입했으리라. 그리고 나크족이 유계를 정복하는 것을 돕는 대신 일정 영토의 지배권을 받는 방식으로 계약했을 확률이 높았다. 중간계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물론 현재로써는 당장 유계의 마을을 장악해고 이렇다 할 이득이 없다. 하지만 유계와 중간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야. 비록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내가 들어온 통로를 이용해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그렇게 헤르메스 연합이 본격적으로 유계로 진출해 조직적으로 마을을 지배한다면? 헤르메스 연합은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 모든 힘은 시르바나에 집중되겠지.’ 아크 역시 정의남을 통해 현재 나가란의 정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비슷한 힘을 가진 5대 연합이 자리를 잡고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한 연합이 갑자기 힘을 키우면 나머지 연합이 힘을 합쳐 견제하기에 이런 구도는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난 다른 연합이 상상도 못 할 곳에 숨어서 세력을 키울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라이덴이 노리는 게 바로 그것일 것이다. 유계에 숨어서 힘을 비축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을 때 단숨에 시르바나에 집중시켜 나가란을 집어삼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나가란과 유계를 장악하면 헤르메스 연합이 모든 길드의 정점에 군림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헤르메스 연합과 원수지간이 된 아크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맙소사, 이건 남의 일이 아니었어!’ 아크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버렸다. 헤르메스 연합이 그만한 힘을 갖게 되면 아크가 시르바나를 되찾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교역소를 만들어 조성해 놓은 비자금과 비밀 던전에 땅굴을 만들어 놓은 게 모두 뻘 짓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뿐인가? 헤르메스 연합은 뉴 월드 전역에. 중간계는 물론이고 유계까지 영향력을 갖게 된다. 아크가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크족과 쥬르 일당이 유계를 정복하면 끝장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그러나 상대는 헤르메스와 나크족의 연합 세력이다. 헤르메스 연합이야 시르바나를 비워 둘 수 없으니 유계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나크족은 수백 년간 호시탐탐 남부 지역을 노려 왔을 테니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나크족은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라 한 왕국의 병사들. 결국 한 왕국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이건… 막을 수 없어…. 난 이제 끝장이야….’ 아크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번뜩이며 보나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보나는 베스튜라와 함께 다른 바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탈출한다고 했지? 맞아, 나크족이 유계를 정복한다는 것은 바란족을 공격한다는 뜻과 같아. 비록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살지만 상황을 알면 힘을 합쳐 싸워 줄지도 몰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귓가로 데드릭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주인… 나크족에게 발각돼서… 급해졌어…. 빨리….” 거리가 상당히 많이 떨어져 있다 보니 통신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대강 내용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마도 보나를 추격하던 나크족에게 발각됐다는 뜻이리라.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런 젠장, 맞아. 만약 보나가 다른 마을에 도움을 요청하면 일이 커진다. 당연히 나크족이 보나의 추격을 쉽게 단념할 리가 없었어. 미리 사정을 알았다면,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었는데….” 만약 보나가 나크족에게 잡혀 버리면 한 가닥 남아 있던 희망도 사라진다. 아크는 황급히 마을에서 빠져나와 라둔에게 소리쳤다. 쌕쌕? 쌕쌕쌕쌕! 아크는 변신한 라둔을 타고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리고 은신처가 있던 숲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주인… 이쪽이야…. 주변이 놈들이 있으니… 조심해서 와.” 은신처와 반대 방향에서 데드릭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아직 잡히지 않았구나!’ 아크는 라둔의 등에서 내려 ‘그림자 숨기’로 몸을 숨기고 목소리를 쫓아갔다. 그리고 곧 수풀이 우거진 언덕 위에 숨은 레리어트와 보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네, 하지만 복실이 님이….” “북실이?” 아크는 그제야 북실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자 레리어트가 어두운 표정으로 언덕 아래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아크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 자식은…!” 언덕 아래에서 10여 명의 나크족과 한 유저가 모여 있었다. 바로 듀크! 듀크는 각종 추격 스킬을 가지고 있는 레이저라 이번 일을 맡은 모양이다. 그리고 듀크의 발치에는 이미 반쯤 생명력이 빠진 북실이가 쓰러져 있었다. 꽤나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이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동굴에 숨어 있는데 갑자기 나크족 몇 명이 들이닥쳤어요. 다행히 일단 데드릭과 제가 나크족의 공격을 막으며 도망쳤죠. 그런데 갑자기 저 듀크라는 사람이 나타난 거예요. 도저히 저와 데드릭의 힘으로는…. 그래서 거의 잡힐 뻔했는데, 북실이 님이 저들을 가로막고 버텨 줘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포위돼서 더 도망치지 못하고 이곳에 숨어 있는 거예요.” 레리어트가 설명했다. 아크도 이곳까지 오면서 수십 명의 나크족이 숲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은신’ 같은 기술이 없는 레리어트로서는 이곳에 숨는 게 고작이었으리라. ‘그렇다고는 해도….’ 북실이가 몸을 던져 이들을 구했다는 것은 의외였다. “이 자식, 빨리 불지 못해?” 언덕 아래쪽에서 듀크가 북실이를 걷어찼다. 북실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제, 젠장… 레리어트 님과 보나는 벌써 숲을 빠져나갔다고 했잖아!” “흥, 웃기지도 않는 소리. 숲은 이미 포위했어.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을 리가 없어. 분명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멍청한 놈들.” 듀크가 품에서 주문서 한 장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주문서를 확인한 북실이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 버렸다. ‘추적’ 주문서… 그렇다. 1킬로미터 범위 안의 상대 위치를 파악하는 주문서였다. “이제 알겠냐? 그 연놈들은 어차피 잡히게 되어 있어.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그따위 계집애와 꼬맹이가 아니다. 내가 잊었을 것 같으냐? 네놈들… 전에 아크 자식과 함께 있던 놈들이잖아!” “아, 아크 님은 여기 없어!”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네놈들을 발견하고 곧바로 아크 자식에게 ‘추적’주문서를 써 봤으니까. 하지만 유계에서 같이 다닐 정도면 아직 연락 정도는 하고 있겠지? 말해, 아크 자식은 어디에 숨어 있냐?” “몰, 몰라, 난 몰라!” “정말 죽고 싶냐?” 듀크가 손을 추켜올리자 주의의 나크족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꿨는지 옅은 웃음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거래를 하자. 사실 널 죽여 봐야 내가 좋을 건 없어. 아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준다면 너만은 살려주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크 자식은 그렇게 의리를 지켜 줄 가치가 없어. 그놈이 얼마나 비열하고 악랄한 놈인지….” “알아, 안다고! 너보다 내가 100배 더 잘 알아. 아크 님은 지독한 수전노에 철가면이야. 폭력은 밥 먹듯이 사용하고, 여차하면 밥에 몰래 독을 타서 괴롭히는 악질 중의 악질이지. 나도 그런 사람에게 지킬 의리는 없어!” ‘저, 저 자식이 그런 중상모략을…!’ 숲을 쩌렁쩌렁 울리는 북실이의 목소리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듀크는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말이 통하는 녀석이었군. 자, 그럼 거래가 성립된 거지?” “하지만, 하지만….” 북실이가 갑자기 듀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야잇, 네놈들만큼 악랄하지는 않아! 적어도 어린애를 붙잡아 두고 채찍질할 만큼 악랄한 사람은 아니란 말이야! 빌어먹을, 어린애를… 어린애를 말이야!” “엇, 이, 이 자식이…!” 북실이의 기습에 듀크가 볼을 얻어맞았다. 그래봐야 상인의 주먹이라 생명력이 1%도 줄지 않았지만…. 듀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걷어차자 북실이가 바닥을 굴렀다. 평상시의 북실이라면 바로 죽는소리를 내며 끙끙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북실이는 뭔가가 달랐다. 떡이 되도록 얻어맞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듀크에게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아크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저따위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지저분한 돼지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터였다. 오히려 듀크의 이목을 집중시켜 주면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거냐? 대체 왜? 돼지 따위에게 지킬 의리는 없을 텐데…. “야잇, 죽여 봐! 죽여 보란 말이야. 빌어먹을 놈아!” “이 자식이 미쳤나? 좋아, 정 그렇다면….” 듀크가 욕설을 내뱉으며 활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막 북실이의 목덜미를 향해 화살을 날리려는 순간! 쩍! 듀크의 턱이 90도 돌아가 버렸다. 엄청난 데미지를 받고 쓰러진 듀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북실이 아페 두터운 가죽 망토를 휘날리며 한 사내가 서있었다. 아크! 그렇다, 아크가 언덕에서 뛰어내리며 그림 같은 뒤돌아차기로 듀크의 턱을 돌려 버린 것이다. “너… 이 자식…!” 튜크가 우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아크는 씨익 입술 끝을 치켜세우며 중얼거렸다. “어이, 듀크. 누가 이 녀석을 때려도 좋다고 말했지?” “아, 아크 님!” 북실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모처럼의 감동도 이어지는 아크이 말 한마디에 싹 사라졌다. “이 녀석이 이래 보여도… 멧돼지가 아니야.” “에? 멧돼지?” “이 녀석은 내가 키우는 집돼지란 말이야!” ‘그, 그랬던 겁니까? 나도 몰랐는데… 저는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집돼지 였던 겁니까?’ 북실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바란족 구출 작전 “큭, 큭큭큭큭.” 듀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키득거렸다. 그리고 아크와 북실이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아크, 네놈도 생각보다 무르군. 동료가 죽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냐?”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집돼지라니까.” 아크가 얼굴을 붉히며 쏘아붙였다. “흥, 어쨌든 멍청한 짓을 했군.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빌어먹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도 벌써 후회하고 있다, 인마.’ 아크는 내심 한숨을 불어 냈다. 대체 제정신인가? 돼지를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적진 한복판에 뛰어들다니? 상대는 듀오와 오십여 마리의 나크족…. 아무리 아크라도 승산 따위는 모기 눈물만큼도 없었다.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다. 그리고 아크는 시작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시작한 전투를 포기한 적은 없다. ‘적진대로 돼 주기를 바랄 수밖에….“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공격하라!” 듀크의 명령에 오십여 마리의 나크족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아크의 몸을 갈가리 찢어 낼 기세로 쏘아져 들어오는 50개의 검과 창날! “슬라임의 시간, NO 1!” 투투투 퉁-! 아크의 몸이 노란 점액질에 휩싸이자 검과 창날이 튕겨져 나갔다. 자신도 공격할 수 없지만, 대신 10분간 물리 공격에 대해 무적 상태가 되는 스킬이었다. 사실 뮤탈이라는 종족은 마법이 발달하지 않았다. 바란족의 마을에서나, 절망의 심연에서 본 나크족 가운데 마법사는 찾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즉, 아크 척살대는 쥬르만 없으면 ‘슬라임의 시간’ 스킬을 마음 놓고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좋아, 이걸로 일단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흥, 또다시 그런 잔꾀를… 하지만 어림없다, 연사!” 듀크가 연속적으로 화살을 날리며 달려왔다. 동시에 아크의 몸 여기저기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익스플로전 애로우에 적중됐습니다. 데미지 450! 《마법 저항력이 100% 하락된 상태라 추가 데미지를 받고 ‘화상’ 에 걸렸습니다》) ‘아차, 마법 화살!’ 듀크가 마법 화살을 사용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마법 화살은 마법 속성이 부여된 화살. ‘슬라임의 시간’ 을 사용한 상태에서는 100%의 추가 데미지를 받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슬라임의 시간’을 사용하면 아크는 온몸이 점액질에 뒤덮인다. 그러면 검까지 말랑말랑해져서 공격력이 0이 돼 버린다. 결국 아크는 반격조차 못 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야 하는 상황에 빠져 버린 것이다. “크크크크, 제 꾀에 제가 빠졌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이를 눈치챈 듀크가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아 댔다. 사방에서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생명력이 쭉쭉 빠졌나갔다. ‘빌어먹을, 역시 안 하던 짓은 하는 게 아니었어.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닌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잖아.’ 아크는 울컥한 눈길로 북실이를 쏘아보았다. 대체 왜 이런 녀석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일단 일이 벌어졌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아크는 와락 북실이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뭘 멀뚱하니 보고 있는 거야? 튀어!” “네? 아, 네!‘” 북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아크의 뒤를 쫓았다. “놓칠 것 같으냐?” 그러나 듀크가 바짝 쫓아오며 마법 화살을 날려 대자 코앞에서 화염이 치솟아 올라왔다. ‘이대로 도망쳐 봐야 승산이 없다!’ 아크는 북실이를 잡고 바닥을 굴러 대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듀크의 직업은 레인저다. 그리고 추적자인 레인저는 다른 직업에 비해 기본 이동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한 번 목표를 포착하면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도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뿐인가? ‘은신’ 간파 능력까지 덤으로 붙어 있어 도적 계열에게는 최악의 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아크는 북실이를 붙잡고 ‘다크 댄싱’ 을 펼치며 나크족 사이로 뛰어들었다. “죽여라!” 나크족이 사방에서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점액질에 뒤덮인 아크는 무리 공격의 무적 상태! 오히려 아크가 나크족 사이로 뛰어드는 바람에 곤란해진 것은 듀크였다. “뭐야? 이, 이런 멍청이들, 비켜!” 아크가 오십 마리의 나크족 사이에서 돌아다니니 화살을 날리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마법 화살은 스플래시 데미지가 발동한다. 잘못 날리며 주변의 나크족이 몽땅 폭발에 휘말리게 된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챈 나크족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순순히 놔줄 아크가 아니었다. 아크는 거머리처럼 나크족에게 따라붙었다. “흥, 쥐새끼 같은 놈.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어 봤자. 네놈에게는 승산이 없어!” ‘확실히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겠지.’ 나크족을 방패 삼아 버티는 것도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 ‘슬라임의 시간’ 이 끝나면 방패가 되어 주던 나크족이 몽땅 검으로 변하리라. 그렇게 되면 검 한 번 제대로 못 휘둘러 보고 다구리를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듀크는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듀크가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을 의혹… . 아크가 이렇게 궁지에 몰렸음에도 항상 따라다니던 소환수나 레리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슬라임의 시간이 끝나 간다. 아직 멀었나?’ 스킬 지속 시간을 확인하는 아크의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지속 시간이 불과 10초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귓가로 데드릭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주인… 준비가 … 끝났어… .” 동시에 아크가 몸에서 점액질이 사라졌다. 듀크의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놈의 스킬이 끝났다. 공격하라!” “우오오오!” 예상대로 나크족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아크가 ‘화격’ 을 날려 선두에서 달려드는 나크족을 쳐 냈다. 튕겨져 날아간 나크족이 동료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우르르 넘어졌다. 그 사이 아크는 재빨리 나크족 틈에서 뛰어나와 좁은 언덕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크크크, 멍청한 놈, 막다른 곳으로 도망가다니… 쫓아라!” 나크족이 검을 휘두르며 아크를 바짝 쫓아왔다. 아크는 오십여 마리의 나크족이 모두 따라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본 블레이드를 뽑아 들었다. 채찍으로 변환시킨 뒤 휘두르자 하늘을 향해 쏘아진 검날이 언덕 위의 나뭇가지를 휘감았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잡고 단숨에 언덕을 타고 오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라둔!” 그때였다. 언덕 위의 수풀에서 거대한 도마뱀이 펄쩍 뛰어내렸다. 라둔마로 변신한 라둔이었다. 라둔이 언덕의 입구를 막아서자 나크족이 움찔했다. “헉, 뭐, 뭐야?” “라둔, 그대로 밀어붙여!”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덩치로 나크족을 밀어붙였다. 덕분에 좁은 언덕 틈에 끼인 나크족이 우르르 밀리기 시작했다. “젠장! 뭐야, 이 도마뱀은?” "죽여 버려, 갈가리 찢어 버려라!“ “헉, 잠깐… 뒤, 뒤를 봐!” 나크족이 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가장 안쪽에 있던 나크족이 뒤를 힐끔거리다가 비명을 터뜨렸다. 라둔이 나크족을 밀어붙이는 언덕 안쪽… 그곳에는 마치 거울처럼 보이는 둥근 원형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크족이 그곳으로 밀려들어 가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어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라둔에게 밀린 나크족이 몽땅 원형의 공간 속에 삼켜져 버렸다. ‘성공이다!’ 언덕 위에서 지켜보는 아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그렇다, 바로 이게 아크가 생각해 낸 작전이었다. 북실이를 구출하기 위해 언덕에서 뛰어내리지 직전, 아크는 레리어트에게 한 가지 아이템을 맡겼다. 바로 ‘차원 이동의 가루’ 그리고 아크가 시간을 끄는 동안 언덕 사이에 숨어서 중간계로 이동할 수 있는 마법진을 만들도록 시킨 것이다. 그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나크족을 언덕 틈으로 유인해 몽땅 중간계로 날려 버리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귀한 가루를 500그램이나 사용해야 했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나크족을 삼켜 버린 차원 게이트가 서서히 사라질 무렵, 듀크가 달려 들어왔다. “아크 자식을 잡아… 어라? 다들 어디 간 거야?” 듀크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좁은 언덕 사이로 몰려 들어간 나크족이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당혹스럽기도 하리라/ 그때, 언덕 위에서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좋은 곳으로 보내 줬지. 아마 꽤나 환대를 받을걸.” “핫, 너,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말했잖아. 좋은 곳으로 보내 줬다고. 하지만 네 자리는 없어.” “너 이 자식… !” 듀크가 와락 활을 들어 올렸다. 그러난 아크가 몇 배는 더 빨랐다. 아크는 뚝 떨어지듯 나뭇가지에서 몸을 날리며 발꿈치로 듀크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10여 미터 벼락처럼 내리꽂힌 내리찍기! 듀크는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단숨에 ‘스턴’ 상태에 빠져 버렸다. “자, 이제 어디 정정당당하게 싸워 볼까? 물론 내 식의 정정당당이지만 말이야.” 주변에서 레리어트와 라자크, 데드릭이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것으로 듀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라자크, 놈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아!” 딱딱딱딱, 땡강-! 라자크가 상황 파악을 못 하는 듀크를 방패로 후려쳤다. “크하하하, 예전에 이 몸에게 화살을 날려 댔겠다? 이 몸은 은혜는 3초만 기억하지만, 원한은 300년을 기억한다. 받아랏, 암흑돌진!” 뒤이어 데드릭이 그야말로 아크처럼 지껄여 대며 면상을 들이받아 버렸다. “크으윽, 네 네놈들… !” 듀크는 당혹성을 터뜨리며 사방으로 화살을 날려 댔다. 그러나 아크의 파티원 중에는 ‘암흑’ 에 걸려 장님 신세가 된 듀크의 화살에 맞을 멍청이는 없었다. 아니, 하나 있기는 있었다. “으악!” 괜히 앞에서 얼쩡거리던 북실이가 불룩한 아랫배에 화살을 얻어맞고 비명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생명력이 쭉 빠지며 단숨에 빈사 상태가 되었다. 뭐랄까…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야단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멍청아, 얼쩡거리지 말고 뒤로 빠져 있어. 레리어트 님, 공격형 3종 세트 부탁해요!” “네,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웅의 기상, 전사의 집중력, 질풍의 호흡!” 버프가 쏟아지자 공격력과 공격 속도, 치명타 확률이 올라갔다. 그러나 굳이 그런 버프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뭐야? 이 녀석이 정말 듀크 맞나?‘ 듀크는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생명력이 30%나 날아갔다. 그러나 역시 썩어도 준치, 선구자답게 듀크는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악실리온에서 싸울 때만 해도 한 방, 한 방이 필살기처럼 느껴지던 화살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붙어 보니 어이없을 정도로 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듀크가 약해졌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 ‘내가 유계에서 그만큼 강해졌다는 건가? 선구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듀크는 그동안 계속 시르바나에서 공성전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공성전의 최대 단점은, 죽을 경우 페널티가 적용되지만, 상대가 유저라 적을 무찔러도 경험치가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그동안 아무런 성장도 하지 못했다는 뜻, 유계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크의 뒤만 쫓느라 정작 사냥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다. 반면 아크는 유계로 들어온 뒤로 얼음 동굴에서 그리고 절망의 심연에서 광렙을 거듭했다. 다른 건 둘째 치고라도 이미 레벨로 듀크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레리어트까지 가세하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듀크 역시 맞붙고 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기는 뭐가 없어?” 데드릭이 히죽 웃으며 대담하게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아크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리자, 소환수에게조차 얕잡혀 보인 것이다. “ 이, 이런 젠장, 두고 보자! ‘ 치타의 발’!” 듀크는 결국 아크와의 실력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단 도망칠 생각으로 ‘ 치타의 발’ 을 사용했다. 일정 시간 이동속도를 30%상승시키는 도주 스킬! 그러나 바로 그게 아크가 노리던 순간이었다. “전력질주!” 아크는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듀크의 다리에 검을 휘둘렀다. 등을 보여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듀크의 다리에 검이 적중하자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크가 노린 것은 데미지가 아니라, 치명타와 함께 터져 나온 상태 이상이었다. (-‘일도양단’ 의 부가 효과 ‘부위절단’ 이 발동했습니다. 《듀크 님의 아킬레스건이 절단되었습니다.》 부위절단! 몬스터에게 ‘부위절단’을 성공시키며 다리가 잘려 나간다. 그러나 상대가 유저라서 그런지 힘줄만 끊어져 그렇게 끔찍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어쨌든 아크가 성공시킨 ‘부위절단’은 일방적으로 다리를 공격당해 이동속도가 저하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잠시 이동속도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동안 아예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다리에 걸었던 ‘ 치타의 발’ 스킬도 해제되었다. “이, 이게 무슨…!” 졸지에 2급 장애인이 돼 버린 듀크가 절뚝대며 필사적으롤 반격했다. 그러나 원래 레인저는 두 다리가 멀쩡해도 움직이며 활을 쏘며 정확도와 연사 속도가 떨어진다. 하물며 한쪽 다리를 못 쓰는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다 화살은 거의 50% 확률로 빗나가고 연사 속도도 바닥까지 내려갔다, 아크는 느긋하게 화살을 피해 내며 반대쪽 다리를 집중적으로 썰어 댔다. 그렇게 대략 몇 분, 듀크는 결국 반대쪽 다리의 아킬레스건도 잘려 나가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나 아크의 잔인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젠장, 죽여라!” 듀크가 자포자기해서 소리쳤지만 아크는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렇게 쉽게 끝내 줄 수는 없지. 자, 이번에는 팔이다!” “뭐, 뭐라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듀크의 주위를 돌며 팔을 공격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곧 듀크의 생명력이 3%남짓 남았을 때 양팔이 축 늘어졌다. 덕분에 듀크는 2급 장애인과 1급 장애인을 거쳐, 이제 사지를 못 쓰는 특급 장애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너, 너… !” 듀크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꼴사납게 지껄였다. “아크 님, 화난 건 알겠지만 … 이건 너무 심해요.” 레리어트가 불쌍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하자 듀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긴, 명색이 선구자가 이런 몰골로 자빠져서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리라. 그러나 아크가 듀크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저 자존심이나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거기에는 바다처럼 넓고 깊은 뜻이 있었으니…. 아크는 씨익 웃으며 얼굴이 팅팅 부어올라 있는 북실이에게 다가갔다. “북실이, 이제 네 차례다.” “네?뭐, 뭐가요?” “뭐라니? 몰라서 물어? 내가 왜 이렇게 귀찮게 저놈의 팔다리를 썰었는데?” “그, 글쎄요? 그야 아크 님 성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뭐야?” "아, 아니, 제가 어떻게 아크 님의 깊은 뜻을 알겠습니까?“ “하아… 네가 그러니까 맞고 사는 거야.” 아크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북실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새대가리야? 메멘토야? 겨우 몇 분 전의 일이 기억 안 나? 저놈이 널 팼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맞아 죽었겠지. 그뿐이 아니야. 이놈들 때문에 절망의 심연에서 스스로(?)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삽질이를 떠올려 봐. 그런 철천지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형이라는 녀석이 소 닭 보듯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냔 말이야.” “하지만 저는 상인이에요. 저는 아크 님처럼 강하지 않다고요.” 북실이가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 냈다. 아크는 그런 북실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을 귓가에 바짝 들이대고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지금 저 녀석은 너보다 더 약하거든.” “그, 그럼 혹시… ?” “내가 주는 신년 선물이라고 생각해.” 아크가 다정하기 이를 데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북실이는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듀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아크가 뒤에서 ‘ 너도 남자잖아, 할 때는 한다는 걸 보여 줘! 화끈하게 너와 동생의 복수를 하는 거야!’ 라고 부추기자 서서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팡이를 꺼내 들고 듀크를 후리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방금 전에는 잘도 때렸겠다? 맛 좀 봐라! 이놈, 이놈!” 약한 사람일수록 갑자기 힘을 갖게 되면 더 폭력적이 된다고 했던가? 북실이가 딱 그랬다. 일단 짜릿한 손맛을 경험하자 아드레날린과 엔돌핀, 도파민이 짬뽕된 뇌 내 마약이 철철 넘쳐흐르는지 완전히 광분 상태가 되어 듀크를 두들겨 댔다. 눈알이 빙글빙글 도는 게 좀 위험한 상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북실이는 북실이. 모처럼의 광분 상태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너… 이 자식… 북실이라고… 얼굴하고 이름 기억했다… . 제대로 게임할 생각은… .” 면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인 듀크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떠듬거렸다. 순간 북실이는 찬 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핫, 내, 내가 무슨 짓을… !” 그제야 북실이는 아크의 충동질에 살짝 맛이 가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북실이도 이제 듀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바로 나가란에서 자리를 잡은 5대 연합 가운데 하나인 헤르메스 연합의 선구자! 그에게 원한을 산다는 것은 곧 헤르메스 연합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일개 상인이 그런 거대 길드와 원한 관계가 된다면 제대로 게임을 할 생각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저 … 저는 이럴 생각이… .” 북실이가 떠듬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듀크의 머리를 밟아 버리고 말았다. … 그게 치명타였다. 간당간당하던 듀크의 생명력이 그 일격으로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북실이는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며 얼른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아크가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과연 북실이! 마지막 일격은 최고였어. 설마 머리통을 밟아 끝장낼 줄이야. 저따위 협박에 눈 하나 깜박하지 않겠다는 네 의지의 표현이자? 멋지다, 음음!” “아, 아니, 아크 님! 저는 그런 뜻이…….” “으드득! 좋다, 너 이 새끼……! 어디 두고 보자……!” 듀크는 이를 갈아붙이다가 결국 풀썩 고개를 떨구었다. 명색이 선구자가 상인에게 문다 그대로 밟혀 죽은 것이다. 밟혀 죽은 듀크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었지만, 밟아 죽인 북실이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북실이의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두두둥, 소리와 함께 파티 정보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티원 북실이 님이 플레이어를 살해해 카오틱이 되었습니다!) “헉, 카, 카오틱!” 북실이가 붉게 변하는 이름을 보고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는 그런 북실이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계획대로다.’ 그렇다, 아크가 힘들게 듀크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북실이를 꼬드긴 것은 그 때문이었다. 쥬르 일당은 NPC마을을 습격해 점령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헤르메스 길드원은 카오틱이 되었지만, 교활한 쥬르와 듀크는 성향이 떨어지지 않았다. 바란족을 공격하면서도 카오틱이 되지 않기 위해 직접 결정타를 날리는 일은 피했기 때문이리라. 그게 문제였다. 만약 아크가 듀크를 죽이면 당연히 카오틱이 될 수밖에 없는 것. 물론 일반 유저를 죽이고도 카오틱이 되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상대엑 먼저 선제공격을 받았을 경우, 상대의 성향이 일시적으로 내려가 회색이 된다. 그때는 상대를 죽여도 카오틱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북실이 때문에 잠시 흥분한 나머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먼저 듀크를 공격했다. ‘레벨이 280이 넘어서 카오틱이 되면 페널티가 엄청나다!’ 듀크와 싸우는 도중에 퍼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때문에 듀크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 놓고 처리를 북실이에게 떠넘긴 것이다. ‘후후후, 덕분에 듀크도 처리했고, 북실이도 딴생각을 못하겠지.’ 상인이 카오틱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마을조차 제대로 드나들 수 없는 상인이 장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전사처럼 전투력이 높은 것도 아니니 다른 유저들에게 끝장, 그나마 헌터나 경비병에게 걸리면 그나마 낫다. 카오틱이 풀릴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으면 되니까. 그러나 카오틱이 풀리기 전에 일반 유저에게 걸리면 탈탈 털리고 말겠지. ‘게다가 헤르메스 연합과도 적대 관계가 돼 버렸으니…….’ 이제 북실이는 아크의 보호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돼 버렸다. 또한 카오틱이니 조금만 수상한 눈치를 보여도 아크가 거리낌 없이 죽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적어도 카오틱이 풀릴 때까지 배신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리라.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크하하하,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좋을까?’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북실이에게 다가갔다. “잘했다, 북실이. 너도 역시 사나이구나!” “네? 저, 저는…….” “너는 당당하게 동생의 복수를 한 거야! 후후후, 고맙지? 고마워 미치겠지? 말해 두지만 이게 다 누구 덕인지 잊지마. 나한테 하나 빚진 거야. 알지?” 그렇게 불쌍한 상인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 뜨려놓고 갖은 생색을 내는 아크였다. ‘당했다! 이 자식, 처음부터 작정하고 있었던 거야! 잠깐이나마 이런 놈에게 고마움을 느꼈다니…… 나는 멍청이야!’ 북실이는 아크가 나타났을 때 잠깐이나마 감동했던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나갔다. 이제 약점을 잡혔으니 골수까지 빨아 먹힐 일만 남았다. “아크 님, 이제 어떻게 하죠?” 그때 레리어트가 숨겨 두었던 보나를 데리고 오며 물었다. “글쎄요…….”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듀크를 해치운 것까지는 좋았지만, 사실 문제는 해결된 것이 없었다. ‘ 자 일단 해야 할 일을 정리해 보자.’ 먼저 아크의 목적은 베스튜라를 구출해 퀘스트의 단서를 찾는 것.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재 아크의 전력은 레리어트와 돼지 한 마리 그리고 어린애와 개 한 마리다. 그런 전력으로 쥬르 일당과 400이나 되는 나크족과 싸워 베스튜라를 구출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아크는 보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보나, 아까 베스튜라와 함께 다른 마을에 도움을 요청하러 가던 중이었다고 했지? 남부에 퍼져 사는 바란족 부락이 많이 있네?” “네, 굉장히 많아요. 그중에는 계곡 마을보다 몇 배나 큰 도시도 있고요.” “그들을 찾아가면 도와줄까?”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은 그것이었다. 어차피 아크 혼자 힘으로는 베스튜라를 구출하긴 힘들다. 또한 나크족이 본격적으로 유계를 정복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나크족의 위협을 받게 될 바란족에게 사실을 알려 그들을 규합해 대항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보나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바란족은 남부 전역에 퍼져 살아서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제가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바란족은 전투에 대해서는 모르거든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아까 전에 했던 말은……?‘ “사실 바란족 가운데도 전사의 혈통을 가진 뮤탈이 있어요. 오래전 바란족이 북부에 살고 있을 때, 나크족이나 몬스터와 싸우던 뮤탈이죠. 그들이 나서 준다면 바란족도 나크족과 싸워 줄 거예요. 하지만 나크족에게 북부를 빼앗기고 남부로 쫓겨 오면서 그들도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들이 나서주지 않으면 다른 바란족도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그럼 그들을 찾아가면 되잖아?” “그들은 다른 부족과 교류가 없어서 찾기 힘들어요.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맹약의 봉화’를 올려야 해요.” “맹약의 봉화?” “네, 갈기 산맥 정상에 있는 봉화예요. 하지만 그 봉화를 피울 수 있는 뮤탈은 바란족의 장로들뿐이에요. 그리고 할아버지가 바란족의 장로 중 1명이죠.” ……결국 그 역시 베스튜라를 구출해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미치겠군. 대체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아크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쥬르 일당도 듀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마을의 경계는 더욱 철저해지고, 쥬르 일당은 아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겠지. 현재 아크의 힘으로는 그들을 물리칠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망칠 수도 없고……. ‘가만? 쥬르 자식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느낌표가 떠올랐다.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아크는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려 바닥에 널브러진 듀크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아크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어디 한번 모험을 해 볼까?” “후후후,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군.” 쥬르가 점차 형태를 갖춰 가는 탑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된 보상을 받게 된 기분이었다. ‘설마 유계에서 이런 행운을 얻게 될 줄이야.’ 쥬르는 잠시 지난 며칠간의 기억을 떠올렸다. 얼마 전, 아크의 뒤를 추격하다가 나크족에게 포위당했을 때였다.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쥬르 일당은 놀랍게도 나크족을 부리는 붉은 머리칼의 유저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제의를 받게 되었다. 헤르메스 연합이 나크족이 유계를 정복하는 것을 도와주면 남부 지역 일부의 지배권을 양도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쥬르는 곧바로 이 사실을 라이덴에게 알렸다. 마침 라이덴도 그동안 쥬르에게 연락을 받으며 유계라는 곳을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 “거절할 이유가 없지. 일이 안 된다 싶으면 ‘간계’로 동맹 파기하면 그만이니까.” 라이덴은 곧바로 유계의 전권을 쥬르에게 일임해 주었다. 그렇게 헤르메스 연합과 나크족은 동맹 세력이 되었다. 헤르메스- 나크족 연합이 유계 정복을 위해 처음 시작한 일은 바로 계곡 마을 점령이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지금까지 나크족이 유계 정복을 하지 못한 것은 북부 산맥 탓이다. 물론 나크족에게는 드라칸이 있다. 그러나 바란족들이 하늘 가오리를 이용해 주변을 살필 때가 많아 대규모로 남부를 침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400이나 되는 나크족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남부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쥬르 덕분이었다. 포스 스토커의 상급 스킬인 ‘매스 텔레포트’를 이용해 한 부대씩 남부로 순간 이동을 시켰던 것. 물론 이동거리가 그리 길지 않아 10여 번을 사용해야 겨우 파티를 남부로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안전하고 비밀스러게 병력을 이동시키는 데 그만한 스킬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계곡 마을을 점령해 유계 정복의 전진기지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탑만 완성시키며 유계 정복의 전진기지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 탑만 완성시키면 유계 정복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쥬르가 설계도를 보며 히죽거렸다. 그렇다. 지금 쥬르가 주민을 동원해 만들고 있는 탑은 아크가 짐작한 대로 영자 이동을 할 수 있는 수신탑이었다. 그리고 북부 산맥 너머 나크족의 영토에서는 이미 송신탑이 완성되어 있었다. 송신탑만 완성되면 나크족의 본진이 남부로 쏟아져 들어오리라! “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이런 설계도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거지?” 쥬르는 새삼 놀라운 눈길로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영자 이동의 수신탑 설계도(설계자:마가로프) 영자 이동의 수신탑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수신탑을 건설하면 ‘영자 이동의 오브’를 사용해 쌍으로 이루어진 송신탑에서 순간 이동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놀랍게도 이 설계도는 중간계에 존재하는 영자 이동의 탑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기술이 응용되었습니다. 아마도 연금술의 대가다 기존의 기술을 보완해 설계한 것이 분명합니다. 《필요 스킬: 마법학(상급), 연금학(상급), 건축학(상급)》) 이 설계도 역시 붉은 남자가 건네준 것이다 마법학과 연금학은 쥬르가, 건축학은 파티원 중 한 전사가 가지고 있어 곧바로 수신탑을 건설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붉은 남자가 쥬르 들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리라. 나크족을 지배하고, 레어 설계도를 손에 넣고, 게다가 이렇게 엄청난 계획을 세우는 정체불명의 유저, 수상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그러나 쥬르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봤자 놈은 혼자다. 우리는 놈이 유계를 정복하는 걸 지켜보다가 콩고물이나 얻어먹으면 돼. 그리고 나가란을 장악한 뒤에….’ 라이덴과 쥬르는 붉은 남자가 던져 주는 먹이만으로 만족할 위인들이 아니었다. 일단 유계에서 힘을 비축해 나가란을 정복하고, 다시 그 힘을 이용해 언젠가는 유계까지 홀라당 삼켜 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이미 라이덴에게 유계에 대한 권한은 모두 위임받았으니 유계를 지배하는 건 나다!’ 쥬르가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을 때였다. 문득 멀리서 누군가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쥬르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듀크 아니야? 어떻게 됐어? 그 꼬맹이는?” 그렇다, 그는 다름 아닌 듀크, 몇 시간 전에 당돌하게도 탈출을 시도했던 보나의 뒤를 쫓아 나갔던 듀크였다. 그런데 어째 듀크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얼굴이 시꺼멓고, 눈이 썩은 동태처럼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함께 데리고 나갔던 나크족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왜 혼자야? 얼굴은 또 왜 그래?” 그러자 듀크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쪼그리고 앉아 글자를 끼적거렸다. -그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크가 나타났어. “뭐? 아, 아크?” 쥬르가 화들짝 놀라며 되묻자 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냐? 어디 있어?”  -동부에 있는 숲 근처야. 서둘러야 해. 놈은 계곡 마을 근처까지 왔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도망치려고 하고 있어. “뭐, 뭐야? 그럼 지금 당장…!” -문제는 놈이 혼자가 아니라는 거야. 놈이 여기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를 처리할 작정이었나 봐. 예전에 공성전에서 봤던 놈의 동료들 있지? 그놈들을 데리고 왔어. “동료를 데리고 왔다고? 어떻게?” -나도 잘 몰라. 어쨌든 내가 끌고 갔던 나크족은 모두 놈에게 당해 버렸어. 나도 간신히 도망 나온 거야. 덕분에 놈이 우리가 나크족과 연합했다는 사실을 눈치챘어. 그러니 아마 다시 도망치려 할 거야. 빨리 병력을 모아서 놈을 추적하지 않으면 또 놓쳐 버릴 거야. 듀크의 설명에 쥬르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크가 제 발로 찾아왔다면 지금이 기회다. 만약 쥬르 일당이 나크족과 연합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도망치면 유계에서 다시 찾아내기는 힘들다, 뿐만 아니라, 유계 정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아크를 찾아다닐 시간도 없다. 기회가 왔을 때 복수를 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쥬르는 곧바로 병력을 긁어모았다. “놈이 예전의 동료를 모았다면 50명은 될 거야. 유저도 상당히 많으니 마을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두고 몽땅 아크를 쫓는다. 서둘러!” 쥬르는 주민들을 감시할 병력 150만 남겨 두고 나머지 나크족과 헤르메스 길드원을 이끌고 아크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생각난 듯 듀크에게 물었다. “어이, 그런데 너 왜 갑자기 귀찮게 글을 쓰고 그래?” 듀크가 움찔하며 허둥댔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끼적거렸다. -감기에 걸려서 목이 심하게 부었어. X를 공략하라! “엘리멘탈 소드 냉기 속성, 섬아-!” 한 줄기 섬광이 나크족을 휩쓸었다. 동시에 주변에 하얀 한기가 어리며 나크족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느려졌다. “다크 댄싱!” 아크는 복잡하게 발을 놀리며 느려진 나크족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크족의 배후를 잡고 ‘ 다크 블레이드’를 펼쳐 연쇄 스킬 ‘ 암격’ 을 발동, 속사포 같은 치명타로 연결시켰다. 유령처럼 움직이며 치명타를 쏟아붓는 아크의 기습에 나크족이 우왕좌왕했다. “크윽, 뭐, 뭐냐?” 정신 차려, 놈은 혼자다! 포위해서 움직이며 봉쇄해!“ “헹, 누구 마음대로?” 그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데드릭이 나타났다. 데드릭은 그대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 나크족을 들이받으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제자야!” “알았어, 신성한 대지여, 타락한 자들을 허락하지 말지어다. 이노센스 필드!” 뒤에서 버프를 날리던 레리어트가 뛰어들며 광역 마법을 펼쳤다.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대지가 하얗게 달아오르며 강렬한 기운이 소용돌이쳤다. 지상형 몬스터에게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며 방어력을 감소시키는 이노센스 나이트의 광역 마법! 그렇게 아크와 레리어트, 데드릭의 공격에 나크족은 그야말로 녹아내렸다. ‘ 라자크가 잘 버텨 줘야 할 텐데….’ 아크는 나크족을 몰아붙이며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해야 계곡 마을에서 베스튜라를 구출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아크에게 문득 예전에 북실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크에게 끌려 다니느라 항상 수면 부족 상태인 북실이는 이동하는 중간 중간 졸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며 ‘으악, 아크 님, 제발 살려 주세요. 말 잘 들을 테니 도둑여우처럼 좀비로 만들지만 말아 주세요!’ 라는 웃기지도 않는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그 잠꼬대가 힌트가 되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데드릭의 ’흡혈‘도 유저에게 사용할 수 있었어. 그렇다면 혹시 라자크의 스킬도 유저에게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저 녀석을 조정할 수 있다면…?’ 아크는 듀크의 시체를 보며 머릿속으로 기발한 작전을 떠올렸다. 바로 라자크의 ‘죽음의 방정식’을 이용해 듀크를 살려 내는 것이다. 현재 아크가 난감해하는 것은 400이나 되는 나크족이 듀크 일당과 함께 있다는 점. 만약 쥬르 일당과 나크족일부를 마을에서 유인해 낼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지리라. 물론 ‘흡혈’처럼 소환수의 스킬을 유저에게 사용하면 성공 확률이 낮다. ‘죽음의 방정식’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듀크는 레벨이 높아 한 번 시도할 때마다 3개의 갈비뼈를 뽑아내야 했다. 무지막지한 손해.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라자크, ‘죽음의 방정식’을 사용해라!”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한숨을 푹 불어 내며 갈비뼈를 잡아 뜯었다. 엉뚱한 직업으로 진화한 덕분에 암울하기 짝이 없는 라자크였다. 어째든 무려 3번… 9개의 갈비뼈를 뜯어낸 뒤에야 간신히 스킬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그렇다, 바로 쥬르 일당을 끌고 나간 듀크는 좀비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좀 애매하다 싶었지만 막상 써먹어 보니 엄청나게 쓸 만한 스킬이잖아?’ 아크 역시 ‘죽음의 방정식’을 이렇게 활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그렇게 밑 작업에 성공한 아크는 마을을 기습했다. 그러나 쥬르 일당이 병력의 일부를 데리고 나갔다고는 해도 아직 마을에는 백오십 마리나 되는 나크족이 남아 있었다. ‘이십여 마리씩 유인해서 처리하면 되겠지만….’ 쥬르 일당이 언제까지 속아 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죽음의 방정식’에도 몇 가지 제한이 있었다. 되살린 좀비를 조종할 수 있는 유효 거리가 상당히 긴 편이지만, 무한대는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라자크는 근처에 숨어서 좀비 듀크를 조종, 쥬르 일당이 마을 주변을 헤매게 만드는 중이었다. 당연히 쥬르 일당을 속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전에 빨리 주민들을 구출해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쥬르 일당이 빠져나가자마자 곧바로 전력을 다해 한곳을 집중 공격한 것이다. 아크가 노리는 곳은 바로…. “크아아아악!” “기습이다, 기습이다!” 주변에 있던 이십여 마리의 나크족이 모두 쓰러지자 망루에 있던 정찰병이 경적을 울려 댔다. 동시에 백여 마리의 나크족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나크족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황급히 시체를 뒤지며 소리쳤다. “라둔, 나크족이 흘린 아이템을 몽땅 챙겨!” 쌕쌕쌕쌕! 라둔이 용맹하게 뛰어나가며 시체를 뒤적거렸다. 아크의 눈앞으로 라둔이 집어삼킨 각종 잡템의 정보가 주르륵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크는 그 목록 가운데 자신이 원하던 아이템을 발견했다. (라둔이 ‘나크족의 조잡한 열쇠’를 습득했습니다.) “그거다, 라둔. 내게 던져!” 아크의 명령에 라둔이 삼켰던 열쇠를 탁 뱉어냈다. 아크는 열쇠를 받아 들고 뒤에 있는 철창을 열었다. 철창이 열리자 계곡 마을의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렇다, 아크가 기습한 곳은 바로 아이들이 갇혀 있던 감옥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야말로 아크가 나크족을 무찌르기 위해 준비한 무기였다. 아이들이 몰려나오자 아크는 곧바로 준비해 온 음식을 먹였다. 협박 스킬의 창시자, 해결사가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요리였다. “아, 아크님, 놈들이 바로 앞까지 왔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 먹었니?” 감옥 안에서 꽤나 굶주린 듯, 음식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크는 지휘자처럼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자, 그럼 형이 신호하면 아까 말해 준 걸 있는 힘껏 소리 치는 거다?” “네!” “아빠! 저희들 아크형이 구해 줬어요!” “좋아, 다음이다. 하나, 둘!” “나크족이 몰려와요! 살려 주세요!” 목소리가 커지는 음식을 먹은 아이들이 합창하자 마을이 들썩거렸다.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뭐, 뭐야! 이 소리는?” “아이들, 아이들의 목소리다!” “아크? 아크가 누구지?” “얼마 전에 보나를 구출했다던 이방인이야! 그 사람이 돌아온 거야!” “오오오, 그 사람이 아이들을 구출했단 말이가?” “하지만 위험한 것 같아. 도와 달라고 하잖아!” 수신탑 건설 현장에 동원되었던 계곡 마을의 어른들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을 감독하던 나크족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채찍을 휘둘러 대며 소리쳤다. “이 자식들, 얌전히 있지 못해? 죽고 싶냐?” “닥쳐!” “뭐, 뭐야? 이것들이 미쳤나?” “미친 건 네놈들이다! 아이들을 가둬 놓고 협박하다니…! 볼카누스, 들이받아!” 쿠오오오오! 조련사의 명령에 볼카누스가 괴성을 터뜨리며 감독관을 들이받았다. 그만이 아니었다. 다른 조련사들도 곧 몬스터를 이용해 감독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바란족 역시 곡괭이나 삽 따위를 휘두르며 가세했다. 그렇게 건설 현장에서 바란족이 난동을 피워 대자 아크에게 달려들던 나크족들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됐다, 성공이다!’ 아크는 혼란에 빠진 마을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작전이었다. 바란족은 스스로 전투 종족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아크가 보기에는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게 느껴졌다. 물론 힘이나 체력 따위는 나크족에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들에게는 조련된 몬스터라는 무기가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싸워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겁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 아크가 그들을 도와도 마찬가지이리라. ‘하지만….’ 아크는 알고 있었다. 자식이 위험을 처해 있을 때 부모가 얼마나 용감해지는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랬다. 평소에는 말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하시겠지만, 아크가 어디서 맞고 돌아오기라도 하면 상대가 건달이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머니 역시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오직 아크를 위해서이리라. 그리고 그런 점은 뉴 월드의 NPC들도 부모의 마음을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나크족 역시 그들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걸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됐어! 북실이, 보나,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 네, 아크 형. 자, 날 따라와!” 보나가 야무지게 끄덕이며 아이들을 데리고 물러났다. “레리어트 님은 저를 따라오세요!” 아크는 레리어트와 함께 몰려드는 나크족을 밀어내며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건설 현장에는 바란족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몬스터를 이용한다고 해도 바란족이 나크족을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초반에는 당황한 나크족이 조금 밀리는 듯했지만, 이내 전열을 재정비하고 밀어붙이자 몬스터와 바란족이 속속 쓰러졌다. 역시 현실은 현실. 자식을 위해 싸운다고 당장 슈퍼맨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나크족의 병력은 대략 100. 반면 바란족은 70명에, 조련된 몬스터 백이십여 마리. 숫자상으로는 바란족이 압도했지만, 실제 전력을 비교하면 바란족이 열세였다. 게다가 바란족의 무기는 고작 삽이나 곡괭이. 반면 나크족은 갑옷과 검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모두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아크는 바란족과 합류하며 소리쳤다. “아까 들은 것처럼 아이들은 안전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여러분이 모두 당한다면 아이들이 다시 위험에 빠질 겁니다. 기필코 나크족을 무찔러야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싸워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전열을 재편성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이 아크다! 아이들을 구출한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나? 저 친구가 한때는 내 밑에서 일했었다는 걸? 그때 벌써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봤다고!” 아크에게 아르바이트를 시켜 줬던 축사 주인이 펄쩍 뛰며 주책을 떨어 댔다. 그러자 바란족이 아크에게 몰려들었다. “좋소, 당신 말을 따르겠고.” “아이들을 구해 낼 수 있다면 뭐든 하겠소!” “아이들을 구해 낼 수 있다면 뭐든 하겠소!” 아크는 순식간에 바란족의 지휘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아크는 바란족을 공격대에 가담시키고 지휘권을 레리어트에게 위임했다. 아크가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한 일은 단지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 간단한 조치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노센스 나이트의 특성은 홀리 나이트와 같다. 그리고 홀리 나이트의 진정한 위력은 바로 전장에서 빛을 발한다. 휘하의 모든 병력에 3개의 오라를 중첩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직업 특성에 따라 휘하 병력은 홀리 나이트의 영향으로 사기난 용기 따위가 상승한다. 그야말로 전쟁을 위해 존재하는 직업, 전장의 마에스트로! 이는 홀리 나이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홀리 나이트보다 보조 계열의 능력이 강화된 이노센스 나이트라면 말할 것도 없다. “오오오, 왠지 용기가 솟구친다!” 쿠오오오! 바란족만이 아니라 소환수까지 사기가 치솟았다. 변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모두 공격하세요!” 레리어트가 검을 앞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나크족이 달려들었지만, 그녀는 방패로 쳐 내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다, 그녀도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직업에 눈을 뜬 것이다. 휘하 병사를 거느린 이노센스 나이트와 그렇지 않은 이노센스 나이트는 ‘전혀’ 라고 해고 좋을 만큼 달랐다. 아크가 어둠 속성 보너스로 능력치를 40%까지 상승시킬 수 있는 것처럼, 또 다른 영웅 직업인 이노센스 나이트는 휘하 병력의 숫자만큼 스탯 보너스가 적용되는 것이다. 현재 그녀의 레벨은 180. 그러나 70명의 공격대장이 된 지금은 200대 중반에 다다랐을 것이다. 한때 아크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아란의 홀리 나이트 특성이 이제 무엇보다 강력한 원군이 되었다. “얍, 얍, 얍, 얍!” 덕분에 앙증맞게만 보이던 그녀의 공격에 나크족이 픽픽 쓰러졌다.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나크족을 몰아치는 모습은 마치 영화 잔다르크의 한 장면 같았다. 문자 그대로 순결한 기사, 이노센스 나이트인 것이다. 어쨌든 그녀의 활약 덕에 전황은 거의 대등해졌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이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야. 쥬르 일당과 나크족이 돌아오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전에 베스튜라를 구출해 빠져나가야 해.’ 그러나 건설 현장에서 베스튜라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베스튜라 행방을 묻자 한 바란족이 대답했다. “베스튜라 님 말인가? 그분은 얼마 전에 탈주하다가 붙잡혀 끌려갔네. 나크족과 함께 온 이방인들이 베스튜라 님의 집에서 묵고 있었으니 아마도 그곳에 갇혀 계실 거야.” ‘베스튜라의 집!’ 아크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데드릭과 레리어트 님에게 맡겨 놔도 될 것 같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베스튜라부터 구출해 놔야겠다.’ “레리어트 님, 저는 베스튜라를 구출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네? 아, 네!” 레리어트는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 대며 대답했다. 어쨌든 아크는 전장을 이탈해 베스튜라의 저택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병사들이 건설 현장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마을 안에도 산발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크는 상황을 봐서 바란족이 밀린다 싶으면 잠시 가담해 칼질을 몇 번 해 주며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몇 분, 아크는 곧 베스튜라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각종 두루마리가 빽빽이 들어찬 선반과 책장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저택. “베스튜라 님!” 저택 안으로 들어선 아크가 소리치자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핫, 이, 이 목소리는 아크… 아크 아닌가? 이쪽이네, 이쪽이야!” 목소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천장에 새장처럼 생긴 감옥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는 누더기처럼 변한 베스튜라와 그란이 갇혀 있었다. 아크는 일단 기둥에 묶여 있는 쇠사슬을 풀어 새장을 내렸다. 그러자 베스튜라가 철장에 달라붙어 소리쳤다. “자, 자네가 어떻게 이곳에?” “설명하자면 깁니다.” “혹시, 혹시 보나를 보지 못했는가?” “걱정 마십시오. 보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어쨌든 묻고 싶은 게 많으니… 어라?”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특정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열쇠는 대부분의 자물쇠에 사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갇혀 있는 감옥의 열쇠로 바란족의 족쇄를 풀었던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아크는 새장도 그 열쇠로 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사용해 보니 열쇠가 맞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다른 열쇠가 필요한 건가?’ 아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던 그란이 갑자기 경악성을 터뜨렸다. “아크 님, 뒤! 조심하세요!” 쿠콰콰콰쾅! 동시에 입구에서부터 책장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며 아크를 덮쳐 왔다. 높이가 수 미터나 되는 엄청난 무게의 책장! 깔리면 완전히 빈대떡 신세가 되리라! 아크는 반사적으로 전력을 다해 새장을 밀며 그 위에 올라탔다. 쇠사슬에 묶인 새장이 그네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뒤로 날아가자 아크가 있던 자리를 책장이 내려찍으며 박살났다. 수백, 수천 장의 두루마리가 썰물처럼 밀려와 수북하게 쌓였다. “대체 이게…?” 끼익, 끼익, 흔들리는 새장 위에서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돌연 옆에서 뭔가 시꺼먼 것이 다가온다 싶더니 옆구리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아크는 단숨에 수 미터나 날아가 선박을 들이받았다. “아크!” 새장 안에서 베스튜라와 그란이 짹짹거렸다. 그러나 아크의 귀에 그들의 목소리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맙소사…!’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린 아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격을 날린 그림자는 거대한 양손 도끼에 엄청난 두께의 강철 갑옷으로 무장한 거인이었다. 투구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시뻘건 안광이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만들었다. “크크크크, 이곳으로 올 줄 알았지.” 거인의 목소리와 함께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크족 부대장 칼자프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경고 메시지를 확인할 새도 없었다. “나크족의 대업을 방해하다니… 죽어라!” 칼자프의 양손 도끼가 폭풍을 일으키며 떨어져 내렸다. 아크는 재빨리 몸을 굴리며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 생명력을 확인해 보자 50%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건설 현장에서 전투를 치르느라 생명력이 깎인 상태에서 회복을 하지 않았다. 설마 중간 보스급 몬스터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분명 아크가 저택에 들어설 때 확인한 생명력은 60%.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일격에 10%의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는 뜻! ‘제대로 맞으면 앞으로 다섯 방도 버티기 힘들다는 말이잖아? 젠장, 레벨은 350밖에 안 되는 주제에 공격력이 무지막지한 놈이로군. 하지만 생긴 건 둔해 보인다. 공격력이 강하니 힘이 엄청나게 높은 대신 민첩이 떨어지는 거야. 게다가 저렇게 두꺼운 판금 갑옷을 입고 있다면 상대하기 어렵지 않아.’ 잠시 당황했지만 상대를 파악한 아크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공격력이 높아도 맞지 않으면 그만. 사실 공격력과 방어력만 높고 움직임이 둔한 기사는 아크에게 밥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PK한 안델이나 레오 들도 모두 그런 타입의 전사였다. 숱하게 해치워 본 만큼 약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다크 댄싱!” 아크는 현란한 발놀림으로 칼자프를 혼란에 빠뜨렸다. 예상대로 칼자프의 움직임이 느렸다. 엄청난 두께의 갑옷을 입은 탓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쿵쿵거리며 저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 그런 육중한 무게로 아크의 움직임을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낙승할 거라는 아크의 예상은 빗나갔다. 터텅! 기회를 노렸다가 검을 휘둘렀을 때였다. 육중한 울림이 울리며 손목이 시큰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칼자프의 생명력은 고작 1%밖에 줄지 않았다. 갑옷이 너무 두꺼워 제대로 충격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숱한 기사를 침몰시켰던 아크의 특기인 태권도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둔기와 같은 타격으로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경직 효과를 발휘하는 발차기! 그러나 갑옷의 두께가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발차기도 소용없었다. 칼자프는 발차기를 무시하며 무식하게 돌진해 도끼를 휘둘러 댔다. 길이가 몇 미터나 되는 양손 도기를 미친 듯이 휘둘러 대자 눈 깜빡할 사이에 아크는 구석으로 몰려 버렸다. ‘움직이지 못하면 당한다!’ 다급해진 아크는 일단 ‘화격’을 날려 칼자프를 밀어냈다. 아니,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상대는 거인. 그것도 몇 톤은 될 듯한 갑옷을 걸친 거인이다. ‘화격’을 날리자 오히려 아크가 튕겨져 날아갔다. ‘뭐 이런 무식한 놈이 다 있어?’ 그야말로 탱크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공략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탱크에도 약점이 있다. 갑옷이 튼튼하다면 갑옷이 없는 곳을 공격하면 돼!’ 고양이의 눈으로 살펴보니 역시나 칼자프의 갑옷 틈에서 붉은빛이 어른거렸다. 칼자프의 약점이라는 뜻이다. 약점을 확인하고 일단 전략을 수정한 아크는 다크 댄싱으로 칼자프의 주위를 빠르게 회전했다. 그렇게 칼자프의 배후로 돌아가 앞으로 치고 들어가며 갑옷 틈으로 검을 찔렀다. 순간 아크는 상상도 못했던 장면을 목격했다. 사실 아크는 칼자프가 나타났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이상하냐 하면… 보통 갑옷은 앞과 뒤가 전혀 다르게 생겨야 정상이다. 그러나 칼자프가 입고 있는 투박한 갑옷은 앞과 뒤가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뭐 저렇게 웃기게 생긴 갑옷이 있나 싶었는데…. 우두두둑! 아크가 등 쪽의 갑옷 틈에 검을 찔러 넣으려는 찰나. 삐 소리가 울리며 칼자프의 머리가 180도로 회전했다. 그뿐 아니라, 양팔도 뒤로 꺾였다. 한순간에 완전히 앞과 뒤가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검을 찔러 넣는 순간 칼자프는 칼날이 솟아 나오는 장갑으로 아크를 후려쳤다.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550! <카운터가 적용되어 3초간 경직됩니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아크가 책장을 들이받고 쓰러졌다. 한순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릴 정도의 충격! 그러나 그나마 칼자프가 기운이 넘치는 녀석이라 다행이었다. 만약 카운터를 맞고 날아가지 않고 바로 앞에서 경직상태에 빠졌다면 연속 공격에 너덜너덜해졌으리라. 날려 간 덕분에 다행히 칼자프가 오기 전에 경직에서 풀려났지만,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아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사각으로 접근해 갑옷 틈을 공략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앞과 뒤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놈에게 사각이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카운터 어택까지 구사한다면…. ‘젠장, 네가 무슨 터미네이터의 T-4000이냐?’ 불평을 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갑옷 틈을 공략한다고 해 봐야 아크가 한방에 줄 수 있는 데미지는 고작 3% 남짓. 그러나 카운터를 당하면 아크의 생명력은 10%씩 날아간다. 주판을 튕겨 보면 생명력이 100%상태에서 세 방에 한 번씩만 카운터를 맞으면 30%의 생명력도 깎기 전에 박살 난다는 결론이다. “크크크크, 벌써 밑천이 바닥난 거냐?” 칼자프가 도끼를 휘둘러 대며 비아냥거렸다. 분하지만… 사실이다. 정면 대결은 승산이 없고, 태권도도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특기인 배후를 잡고 약점을 공략하는 전략도 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아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리저리 도망치는 것뿐이엇다. 다행히 높은 민첩성 덕분에 칼자프의 공격을 대부분 회피했지만, 뉴 월드의 전투 시스템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완벽하게 회피해도 일정양의 데미지를 받게 되어 있었다. 덕분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아크의 생명력은 조금씩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아크가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칼자프는 바로 쥬르 일당이 북부 산맥을 넘어갔을 때 만났던 나크족의 돌격대장이었다. 비록 레벨은 350에 불과하지만 쥬르 일당 10명과 맞짱을 뜰 만큼 강력한 몬스터였던 것이다. ‘설마 이런 복병을 만나게 될 줄이야. 이대로 가면 꼼짝없이 당한다!’ 아크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만약 칼자프에게 당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아크가 죽으면 라자크의 ‘ 죽음의 방정식’도 깨진다. 그렇게 되면 쥬르는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을로 돌아오리라. 건설 현장의 전투가 어떻게 될지도 보지 않아도 뻔하다. ‘뭣보다 지금 내 부활 장소는 계곡 마을이야. 쥬르 자식기 그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 마을을 점령하고 부할 장소를 지키고 있겠지. 그렇게 되면 나와 레리어트 님은 두 번 다시 부활하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거야!’ 아크는 ‘움마의 수액’ 으로 쭉쭉 빨아 대며 버텼다. 그러나 ‘움마의 수액’ 으로 회복되는 생명력은 고작400 그조차 4개밖에 남지 않아 다 먹어 치워도 1,600밖에 회복할 수 없었다. “크크크크, 도망쳐 봐야 소용없다!” 그렇게 헤매는 사이, 칼자프는 다시 아크를 코너에 몰아넣고 도끼를 휘둘렀다. 다급해진 아크는 상체를 바짝 낮추며 ‘슬라이드’를 사용해 칼자프의 가랑이 사이로 미끄러져 코너를 빠져나왔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못 하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굴욕적인 행동 덕분에 아크는 의외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크윽, 이 자식이…!” 칼자프가 움찔하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에야 아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뭐야? 방금 전의 그 반응은?’ 칼자프는 동작이 둔한 반면 눈치는 굉장히 빨랐다. 아크가 ‘ 다크 댄싱’을 사용해도 타깃을 놓치지 않을 정도. 그 때문에 배후를 잡고 공격해도 곧바로 앞뒤를 바꿔 카운터를 날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크가 가랑이 사이를 빠져나가자 비록 잠깐이지만 아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혹시 저 녀석…?’ “슬라이드!” 아크는 혹시난 싶어 다시 ‘슬라이드’를 사용해 칼자프의 가랑이를 통과해 보았다. 이번에는 처음만큼 당황하지 않았지만, 역시 아크의 위치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틀림없어. 저 녀석… 자기 발밑은 제대로 볼 수 없는 거야!’ 그렇다, 칼자프는 엄청난 두께의 갑옷을 걸치고 있다. 투구 역시 두껍기는 마찬가지! 그런 두꺼운 투구를 쓰고 있으니 발 아래를 제대로 내려다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놈의 사각은 등 뒤가 아니라, 발밑이었다. ‘아하, 그렇단 말이지!’ 거기까지 생각해 낸 아크는 곧바로 데드릭에게 통신을 보냈다. ‘데드릭, 그곳 상황은 어떠냐?’ “이곳은… 좀 버겁기는 하지만 … 계획대로 진압하고 있는 중이다… 오버!” ‘좋아, 그럼 지금 당장 베스튜라의 저택으로 날아와!’ 아크는 그렇게 명령해 놓고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책장을 들이받기 시작했다. 저택을 가득 채우고 있던 책장이 와르르 넘어지며 두루마리가 쏟아져 내렸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수북이 쌓인 두루마리에 발목이 잠길 정도였다. 그때 마을을 가로지른 데드릭이 저택 안으로 날아들었다. “주인, 바빠 죽겠는데 왜 부르고 난리… 헉! 제게 뭐야?” “넌 또 뭐냐?” 아크를 쫓아다니던 칼자프가 와락 고개를 돌리며 도끼를 휘둘러 댔다. 그러나 한 발 앞서 뛰어간 아크가 데드릭을 잡아채고 두루마리 속으로 다이빙했다, 그리고 배를 바닥에 찰싹 붙인 채 바퀴벌레처럼 발발거리며 칼자프의 공격을 피해 냈다. “크으으, 이 자식, 어디냐? 비겁한 자식!” 칼자프가 사방으로 도끼를 휘둘러 댔지만 아크는 이미 멀찌감치 도망간 뒤였다. 한 방에 골로 갈 뻔했던 데드릭이 헥헥거리며 중얼거렸다. “주, 주인, 저 덩치는 뭐야?” “시끄러, 시간 없으니까 잘 들어.” 아크가 빠르게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대강의 상황을 이해한 데드릭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러니까 저 덩치 큰 바보를 놀려 주자 이거지?” “바로 그거야.” “알았어. 그런 건 내가 전문이지.” 데드릭이 발발거리며 두루마리 속을 헤엄쳐 이동했다. 그때까지도 칼자프는 아크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선이 닿지 않는 발밑, 게다가 발목까지 차오른 두루마리 속에 숨어 버리니 알아낼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두루마리가 움찔거렸다. “그곳이냐? 쥐새끼 같은 놈!” 칼자프가 성큼 다가가며 도끼를 휘둘렀다. 순간 두루마리가 흩어지며 박쥐 한 마리가 천장으로 솟아 올랐다. 데드릭은 단숨에 양손 도끼의 사정거리를 벗어나 천장에 달라붙어 혀를 쭉 내밀었다. “애비~.” “뭐, 뭐야? 박쥐? 크윽!” 칼자프는 당혹성을 터트리기가 무섭게 괄약근이 시큰해졌다. 칼자프가 데드릭에게 시선을 집중한 사이, 두루마기 속을 잠수하며 접근한 아크가 가랑이 사이에 칼침을 놓은 것이다. 아무리 눈치가 빠른 칼자프라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공격까지 즉각적으로 반을할 수는 없었다. “이, 이 자식들이…!” 칼자프가 곧바로 전후를 바꾸며 공격했지만, 아크와 데드릭은 이미 두루마리 속으로 잠수한 뒤였다. 그 뒤로 칼자프는 완전히 바보가 되어 버렸다. 아크와 데드릭은 두루마리 속을 발발거리며 기어 다니다가 시간차를 두고 뛰어나와 칼자프를 공격했다. “이쪽이다, 바보야!” 데드릭이 먼저 뛰어나와 소리치며 칼자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때 뒤로 접근한 아크가 X침을 놓았다. 칼자프도 완전히 바보는 아닌지,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먼저 뛰어나오는 ‘그림자의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180도 회전시켰다. 먼저 나오는 것은 데드릭, 그렇다면 뒤에서 아크가 공격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그런 단순한 대응책도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잘못 짚었어. 이번에는 내가 진짜야.” 이번에는 앞에서 나타난 아크가 씨익 웃으며 X침을 찌르고 도망쳤다. “오오오, 저 칼자프가 꼼짝도 못 하다니!” “역시 아크 님은 라르칸의 후예입니다!” 새장에서 지켜보던 그란과 베스튜라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 솔직히 감탄사를 터트릴 만큼 멋진 싸움은 아니었다. 바퀴벌레처럼 두루마기 속을 발발거리다가 튀어나와 X침을 놓고 도망가는 싸움이 멋질 리가 없다. 그러나 방식이야 어쨌든 효과는 최고였다. 그 전략을 사용한 뒤로 아크는 한 방도 맞지 않고 칼자프를 빈사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다!” 아크가 튀어나오며 또다시 칼자프의 괄약근을 공격했다. 치질 환자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명이 터져 나올 무시무시한 공격! 역시나 칼자프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터뜨리며 항문을 부여잡고 풀썩 쓰러졌다. 그렇게 아크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나크족 돌격대장은 수십 차례나 괄약근을 공격당한 끝에 팅팅 부은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불쌍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숨이 끊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쉽게도 난이도에 비해 레벨이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2 밖에 오르지 않았다. “막상 이런 꼴을 보니 좀 불쌍한데?” 그러나 데드릭은 팅팅 부어 있는 칼자프의 엉덩이를 걷어 차며 광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하! 다짜고짜 도끼를 휘둘러 대더니 꼴좋다.” 그러자 칼자프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아이템 2개가 툭 떨어졌다. (칼자프의 열쇠.)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마법) 방어구 타입: 판금 장갑 방어력: 55(+15) 내구력:55/90 무게:40 사용제한: 레벨200 이상 전사 계열 나크족 돌격대장 칼자프가 사용하던 판금 장갑. 비운의 역사를 가진 나크족은 다른 종족에 대해 강렬한 증오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 증오는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품에도 영향을 주어 보다 어둡고 타락한 힘이 깃들게 됩니다. 더구나 수치스러운 최후를 맞이한 칼자프의 증오심은 상상을 초월해서 그가 사용하던 장비품에 특수 옵션이 생성됐습니다. 《옵션: 힘+20, 방어력+15》 《특수 옵션: ‘광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광분’은 증오를 증폭시켜 20분간 공격력을 5% 상승시킵니다. 단 ‘증오’ 스탯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사용 시간:2시간.》) “어라? 이게 뭐야?” 보스 몬스터가 아니라 그런지 칼자프가 떨군 것은 마법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정보창을 읽어 보던 아크는 뭔가 색다른 내용을 발견했다. 칼자프가 분노 만땅 상태로 죽은 덕분에 특수 옵션이 새로 생겼다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몬스터가 죽을 때의 상황에 따라 떨구는 아이템의 성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나크족을 더 열 받게 만들어서 죽이면 아이템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같은 방식으로 아이템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다른 몬스터가 있을지도 몰라.’ 당연히 부가 효과가 더 좋은 아이템은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다. ‘좋은 정보를 알아냈다!’ 상대를 열 받게 만드는 데 X침 이상의 기술은 없다. 아크는 새로 터득한 X 침 기술을 더욱 갈고닦을 것을 다짐하며 열쇠를 집어 들었다. 위기 일발! “대체 아크 자식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쥬르가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병력을 이끌고 계곡 마을을 나선 지 1 시간. 쥬르 일당은 마을 외곽을 몇 번이나 돌았지만 아직 아크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그러나 레인저의 듀크가 계속 아크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말해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때쯤, 쥬르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제 다 왔어. 아크가 방금 전에 이곳을 지나간 듯한 흔적을 발견했어. “대체 그 말이 몇 번째야?” -이제 다 왔어. 아크가 방금 전에 이곳을 지나간 듯한 흔적을 발견했어. 계곡 마을을 나온 뒤로 듀크는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사실 이제 와 말이지만 라자크는 글을 모른다. 때문에 라자크가 쥬르를 끌어낼 때, 바닥에 썼던 글은 모두 아크가 써 놓은 글자를 따라 쓴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크가 계곡 마을을 향하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아크가 마지막에 적어 놓은 글을 반복해서 적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체 이 자식 왜 이래? 뭐 잘못 처먹었나?’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쥬르는 듀크가 감기에 걸려 살짝 맛이 갔나 싶었다. 뭐, 감기에 걸렸다고 하니 정상은 아니겠지만…. 쥬르는 불끈불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듀크의 뒤를 쫓았다. 그때, 문득 귓가에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쾅! 게임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현실에서 문을 두들겨 대는 소리. 그러나 쥬르는 무시해 버렸다. 일단 게임에 접속하면 자신은 포스 스토커 쥬르다. 짜증나는 현실의 일 따위는 알 바 아니다. 기껏 문을 열어 봐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도를 믿습니까?’ 한느 헛소리나 지껄여 대겠지. 아크를 잡느냐 마느냐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그런 헛소리를 들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쥬르는 결국 유니트에서 잠시 내려야 했다. “야, 인마! 뭐야?” ‘어라? 이 목소리는… 어, 어떻게?’ 쥬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유니트에서 나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역시나 방문자는 베타 테스트 때부터 함께 게임을 해 온 친구였다. 뉴 월드 아이디는 듀크… . 그러나 듀크는 지금 게임 안에서 함께 아크를 쫓고 있지 않은가? 생체 데이터를 이용하는 뉴 월드는 본인 이외에는 캐릭터를 조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체 게임 안에서 쥬르와 함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젠장, 너 왜 전화를 안 받아?” 듀크가 짜증을 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야… 내가 게임 시작하면 전화 안 받는 거 알잖아. 그보다 네가 어떻게…?“ “어떻게라니?” 듀크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묻고는 곧 씩씩거리며 떠들어 댔다. “뭔 말인지 모르겠고. 하여간 급해.” “뭐, 뭐가?” “빌어먹을! 아크 말이야. 보나라는 놈을 쫓다가 우연히 아크 자식을 찾아냇는데 방심해서 당해 버렸어 그래서 네게 미친 듯이 전화했단 말이야. 놈이 있는 곳을 알려 주려고. 그런데 전화가 돼야 말이지. 뭐, 이미 도망쳤겠지만…. 어차피 24시간 동안 접속도 못 하고… 하도 답답해서 쫓아온 거야.” “아크! 아크에게 당했다고?” 쥬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자신이 있던 곳이 뉴 월드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뉴 월드에서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십중팔구 스킬! ‘듀크가 아크에게 죽었다. 그리고 듀크의 귀신이 나타나서 운운하며 우리를 마을 밖으로 끌어냈다. 그 얘기는….’ 무슨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크가 쥬르를 속였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부러 마을 밖으로 유인해 냈다면 놈의 목적은 마을에 있다! 사실 아크가 그 작전을 생각할 때 한 가지 큰 오류를 범했다. 바로 강제 종료된 듀크가 현실에서 쥬르와 전화 통화를 하게 되면 대번에 발각된다는 점이었다. 게임 속의 스킬만 생각하다 보니 미처 현실의 사정까지는 계산에 넣지 못한 것. 그래도 다행히 일단 게임에 접속하면 전화조차 받지 않는 쥬르의 습관 덕에 이 허점투성이의 작전 이 1시간이나 지속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듀크가 직접 쥬르를 찾아오면서 끝나 버렸다. “빌어먹을! 듀크 이 새끼, 너 죽었어!” 쥬르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유니트로 뛰어 들어갔다. “뭐, 뭐야? 내가 뭘?” 졸지에 죽일 놈이 된 듀크는 멍청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할아버지!” “오오오, 보나야. 무사했구나!” 새장에서 풀려난 베스튜라가 보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에 같은 곳에서 같은 장면을 본 것 같은데… 데자뷔인가? 뭐, 그런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고, 아크는 일단 계곡 마을의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아크가 칼자프의 괄약근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는 동안, 잔다르크가 이끄는 노예해방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나크족을 무찌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전투의 열기가 식자 그들은 곧 참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나크족을 무찌르기 위해 희생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바란족은 70명에서 30명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선두에서 싸웠던 몬스텨의 피해는 더욱 커서 백여 마리가 죽고 스무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새삼 나크족과 바란족의 전투력 차이가 실감 나는 수치였다. 덕분에 고아가 된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흑흑흑, 아빠… 엄마….”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아크였지만 아이들의 울음소리에는 약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부모를 잃은 슬픔은 누구보다 아크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부모에게 싸움을 하도록 만든 사람은 아크인 것이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네.” 아크의 속내를 짐작한 듯 베스튜라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나는 새장에 갇혀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네. 저 탑이 완성되면 놈들은 우리를 모두 죽일 생각이었어. 자네는 40명의 뮤탈을 죽인 게 아니라, 30명의 뮤탈을 구해 낸 것이네. 그리고 30명의 아이들 역시. 그러니 희생자들은 그만 잊게.” 물론 그럴 생각이다. 아크는 그런 자책감에 사로잡힐 만큼 감상적인 성격이 아니다. 상대는 NPC. 때로는 인간적인 정을 느낄 때도 있을 만큼 잘 만들어진 NPC라도 NPC는 NPC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었다. “나크족이 건설하던 탑이 어디에 쓰이는 건지 알고 계십니까?” “그것도 들었네. 믿을 수 없지만 저 탑이 완성되면 나크족이 마음대로 북부 산맥을 넘어 이동할 수 있다고 하더군. 놈들의 목적은… 유계 정복이야!”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마치 엄청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떠들어 대는 베스튜라였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탑을 무너뜨려 놓기는 했는데….” 쥬르 일당과 손잡은 나크족이 유계를 정복하면 아크에게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때문에 아크는 나크족을 처리하자마자 몬스터를 동원해 탑의 주요 기관을 못 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난 베스튜라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불어 냈다. “잘했네. 하지만 그건 시간 벌기에 불과할 뿐이야. 놈들은 저 탑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었네.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이상, 놈들의 남부 침략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어.” “그러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네. 바란족을 규합해 놈들과 맞서 싸우는 수밖에.” “승산이 있습니까?” 베스튜라는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부정의 의미를 담은 침묵이다. 하긴 아크 역시 이번 전투로 바란족과 나크족의 전력 차이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바란족이 규합해 전쟁으로 차이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게다가 바란족이 규합해 전쟁으로 번지면 헤르메스 연합이 본격적으로 가세할 가능성도 있었다. 허약한 바란족으로써는 당해 낼 방도가 없으리라. ‘유계가 놈들의 손에 넘어가는 걸 막을 수 없단 말인다….’ 아크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냈다. 베스튜라 역시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다가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뿐인네. 과거 바란족은 나크족에게 쫓겨 이곳으로 도망쳤지만, 이제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어. 모두 죽는 한이 있어도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지. 한시라도 빨리 동족들에게 알려서 준비해야 하네.” ‘아, 그 전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아크는 베스튜라를 잡고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겪은 일을 설명해 주었다. 대강의 설명을 들은 베스튜라가 잠시 미간을 좁히며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것… 혹시 ‘언더그라운드’ 를 말하는 건가?” “언더그라운드?” “그래, 분명 들은 적이 있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래전 대재앙이 일어난 직후, 차원이 뒤틀리면서 몇몇 지역이 그렇게 차원의 틈새에 갇혀 버리게 됐다고 말이야.” “차원의 틈새에 끼었다고요? 그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있습니까?” “나도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네. 그 사건은 거의 전설이나 다름없어서 말이지. 하지만 당시에 차원이 뒤틀리게 된 원인을 찾는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맞아, 그 전설에 대한 기록은 A 열의 책장에….”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던 베스튜라의 얼굴에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칼자프와 싸우는 동안 모든 책장이 쓰러져 수천 장의 두루마리가 바닥에 쏟아져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크가 그 속에서 헤엄을 친 탓에 이리저리 뒤섞여 어느 두루마리가 어느 책장에 있었던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맙소사! 여기서 두루마리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는 말인가?” 베스튜라가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듯이 신음을 흘렸다. 아크도 그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발목까지 차오른 수천 장의 두루마리 속에서 하나를 찾아내야 하다니? 게다가 지금은 시간 여유도 없다. 언제 쥬르 일당이 나크족을 이끌고 마을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직 라자크에게 연락이 없는 걸 보면 걱정할 일은 없는 것 같지만….’ 무턱대고 두루마리를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유일한 퀘스트의 단서를 쥬르가 점령한 마을에 놔두고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계가 헤르메스 연합의 손에 넘어가든 어쨌든 하던 퀘스트는 완료를 해 놔야 할 게 아닌가?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아이템이 떠올랐다. “혹시 그 두루마리에 특별한 표시라도 있습니까?” “표시? 아니, 그런 건 없네. 하지만 전설에 관련되 기록은 모두 A열의 책장에 넣어 두었지. 그러니 두루마리를 감고 있는 끈에 A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거네. 내 기억으로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내용은 A-20에서 A-30사이에 두루마리에 있었던 것 같군.” “알겠습니다.! 레리어트 님, 주민들을 모두 이곳으로 불러 모으세요!” 곧 주민들과 아이들 60여 명이 저택으로 들어섰다. “북실이, 레리어트 님, 일전에 제가 드린 한방차를 모두 꺼내 주세요.” 그렇다, 아크가 생각해 낸 아이템은 바로 한방차였다. 아크는 눈이 맑아지는 효과가 있는 한방차와 손놀림이 빨라지는 한방차를 주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 구획을 정해 주고 A-20에서A-30 까지의 두루마리 수색 작업을 부탁했다. 하여간 사람 이용하는 데는 도가 튼 아크였다. “오오오오, 이게 뭐야?” “내 손이 이렇게 빨랐나?” “와, 저 멀리 있는 깨알 같은 글씨도 다 보이네.” 한방차의 약효는 즉각적이었다. 바란족은 마치 먹이를 쪼아 먹는 비둘기 떼처럼 엄청난 속도로 두루마리를 찾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속 필요한 주문서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좋아, 벌써 다섯 장째다. 이제 나머지 다섯 장만 더 찾으면….’ 아크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딱딱딱딱! 갑자기 저택 안으로 라자크가 뛰어 들어왔다. 그러자 두루마리 속에 파묻혀 있던 데드릭이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주인, 놈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대!” “뭐야?” 아크는 화들짝 놀라 뛰어나갔다. 저택 밖으로 나와 시선을 집중해 보니 멀리서 먼지구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쥬르 일당이 이백여 마리의 나크족을 이끌고 마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젠장, 어떻게 알아챘지? 이제 다섯 장만 더 찾으면 되는데… .” 앞으로 10분. 아니, 작업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으니 7분만 더 버티면 되는데….“ “맙소사! 저렇게 가까이… .” 뒤따라 나온 레리어트가 신음을 흘렸다. 쥬르 일당이 알아챈 이상, 어떻게든 아크와 바란족을 잡으려 할 것이다. 반면 아크는 아이들까지 포함된 일행을 데리고 도망쳐야 하니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지금 곧바로 도망치기 시작해도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아니, 솔직해 말해서 30%의 가능성도 없었다. 하물며 7분이나 더 지체하면 말할 것도 없다. 마을을 나서기가 무섭게 포위되어 전멸당하고 말리라. “아크, 부탁이 있네.” 그때, 베스튜라가 아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부탁요?” “그래, 보나에게 들었네. 자네에게 중간계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자네도 알다시피 이제 곧 유계에는 전쟁이 시작될 거네. 그리고 이기든 지든 바란족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겠지. 그건 피할 수 없늠ㄴ 운명이야. 하지만… .” 베스튜라는 고개를 돌려 저택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아이들에게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네. 그리고 어차피 나크족이 이렇게까지 접근한 상태에서 저 아이들을 데리고 갈기 산맥까지 도망치는 것도 무리. 자네가 저 아이들과 보호자들을 안전한 중간계로 피신시켜 주지 않겠는가?” 순간 아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렇다. 아크에게는 언제든지 중간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있었다. 두루마리만 챙기면 굳이 쥬르 일당과 추격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냥 악몽에서 깨어나듯이 문 열고 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도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네. 지금 남아 있는 하늘 가오리는 일곱 마리. 이이들이 없으면 나와 그란 그리고 조련사들은 하늘 가오리를 이용할 수 있네. 나크족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또한 동족들에게도 신속하게 상황을 알려 줄 수 있을 거네.” 물론 아크도 놈들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두루마리를 찾을 수 있고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두루마리는 모두 베스튜라 가문에 전해지는 암호로 작성되어 있었다. 베스튜라가 함께 가지 않는다면 누가 암호를 해독해 준단 말인가? 그러나 이 똑똑한 노인네는 이미 그것까지 생각해 둔 모양이다. “비록 아직 미숙하지만 보나도 두루마리의 암호를 풀 수 있을 거네.” 하, 할아버지!“ 보나가 깜짝 놀라며 베스튜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스튜라는 보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빙긋 웃어 보였다. “걱정하지 말거라. 아크라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틀림없이 너희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줄 거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이 할애비가 꼭 데리러 가마.” 보나가 눈물을 글썽거렸지만 억지를 부릴 만큼 철이 없지는 않았다. 베스튜라를 꼭 끌어안더니 소매로 눈물을 쓱쓱 닦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이에요. 꼭 데리러 와야 해요.” “오냐.” 베스튜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란과 몇몇 조련사를 데리고 하늘 가오리에게 다가갔다. 그때, 한참 동안 망설이던 레리어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저도, 저도 가겠어요!” “레리어트 님이요?”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크 님은 다시 유계로 돌아올 거죠?” 물론이다. 그 때문에 두루마리를 찾고 있는 거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아크 님밖에 할 사람이 없잖아요. 하지만 이곳에도 누군가 한 사람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유계의 상황을 알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하늘 가오리로 간다고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제가, 제가 이들을 보호할게요.” 아크는 잠시 멍한 눈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제안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베스튜라 일행을 따라가면 그렇게 ‘질색팔색’ 하던 하는 가오리를 타야 하지 않는가? 그런 일을 감수하면서까지 유계에 남겠다는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레리어트가 남아 준다면 아크로서는 나쁠 게 없다. 아크는 아직 유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정말 쥬르 일당이 유계를 차지하면 아크는 설자리가 없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놈들의 야심을 막으려면 바란족의 힘이 필요하다. 전쟁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레리어트가 바란족을 돕는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리어트는 잠시 우물우물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전화번호 가르쳐 주세요.” “네? 전화번호요?” “아크 님이 중간계로 가 있을 때 유계 상황이 변하면 알려드려야 하잖아요. 하지만 유계에서는 ‘속삭임의 깃털’ 을 사용해도 중간계와는 통신이 되지 않으니까… .” “아, 네… .”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레리어트는 볼을 살짝 붉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베스튜라가 끌고 온 하늘 가오리를 보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베스튜라의 허리를 부러뜨릴 기세로 졸라 대며 비명과 함께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렇게나 무서워하면서도 자청해서 남겠다니… 레리어트 님은 의외로 책임감이 강하구나.’ 아크는 레리어트가 남는 이유를 바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리어트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아크가 그렇듯이 그녀 역시 아직 아크에 대한 감정은 애매한 부분이 많았다. 이성적인 관심인지 단순한 동료로서의 감정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레리어트는 좀 더 아크와 함께하고 샆었다. 때문에 아크가 ‘혼자… .’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당혹해하며 화제를 돌려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중간계로 넘어가면 계속 아크를 따라다닐 명분이 없어진다. 그러나 유계에 남으면 당분간 더 아크와 함께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방금 전처럼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딸 수도 있지 않은가? 의외로 머리가 잘 굴러가는 레리어트였다. 어쨌든 베스튜라 일행을 떠나보낸 아크는 곧바로 저택으로 들어왔다. ‘차원 이동의 가루는 대략 10그램에 한 사람이 이동할 수 있다. 현재 남은 인원은 어른과 아이를 합해서 50여명. 500그램의 가루를 사용해 마법진을 만들면 되겠군.’ 아크는 바닥에 깔린 두루마리를 밀어내고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크 형, 또 한 장 찾았어요!” ‘됐어, 이 정도면 시간 내에 모두 찾아 이동할 수 있겠어!’ 그러는 사이에도 바란족은 분주하게 두루마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덕분에 마법진을 다 그렸을 무렵에는 두루마리를 아홉 장이나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한 장,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마지막 하나가 문제였다. “아크 형, 다 뒤져 봤는데 한 장은 못 찾겠어요.” 50여 명의 바란족이 한방차까지 먹고 이 잡듯이 저택을 한 번 훑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장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마을로 들어선 쥬르 일당이 저택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베스튜라가 말한 두루마리 열 장 가운데 하나에 언더그라운드의 기원이 적혀 있다. 찾아낸 아홉 장 중 하나에 그 내용이 적혀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나머지 한 장이라면? 지금까지 한 일은 삽질이 되는 것이다. ‘아홉 장을 찾았으니 확률은 90%. 하지만 재수 똥 튀기는 내 팔자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못 찾은 나머지 한 장이 빙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흐릿하게 빛나는 게이트를 가르켰다. “할 수 없지. 나머지 한 장은 포기한다. 모두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세요. 아이들 먼저! 그리고 어른들입니다. 서둘러요. 이미 놈들이 저택 앞에서 왔어요.” 아크의 인도에 따라 바란족이 하나둘씩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아크에 옆에 붙어 있던 보나가 아쉬운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며 게이트로 들어서려 할 때였다. 갑자기 눈동자를 빛내며 보나가 소리쳤다. “아크 형!저기예요, A-7!못 찾은 마지막 한 장이에요!” “뭐라고?” 아크가 와락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시선을 집중하자 보나가 말한 두루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장을 입구 근처에 쓰러진 책장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다. 두루마리를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쥬르 일당이 저택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크-!” “엇, 저 게이트는 뭐야? 바란족이 도망친다!” “빌어먹을,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는군.” 아크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데드릭, 보나를 데리고 먼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라자크, 검화!” 딱딱딱, 딱딱딱딱!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라자크가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집어 들고 ‘전력질주’ 를 펼치며 쥬르 일당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연히 아크가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던 쥬르 일당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순간 아크의 입에서 필살기가 터져 나왔다. “야, 이… 아 살루비아 같은 녀석들아! 삐- 하고 삐-해 버릴 테다!” 차마 문자로 표현하기조차 낯 뜨거운 육두문자가 속사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중급 ‘협박’을 뒤집어쓴 쥬르 일당이 한순간 돌처럼 굳어 버렸다. 동시에 아크는 달리는 속도 그대로 뛰어올라 선두에 서 있던 전사의 면상을 밟았다. 그리고 마치 징검다리를 건너듯 연속적으로 면상을 밟으며 이동해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채찍으로 변한 검날이 쏘아져 날아가 책장 사이에 낀 두루마리를 관통했다. 이어 다시 검으로 되돌리자 두루마리가 딸려 와 아크의 손에 들어왔다. ‘됐다!’ 두루마리를 챙겨 넣은 아크는 게이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막 다리를 움직이려는데, 경직이 풀린 전사가 발목을 잡아챘다. 덕분에 아크는 개구리처럼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미처 낙법을 펼칠 여유도 없이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잡았다, 이 자식!” “기회다, 박살을 내 버려. 영웅의 일격!” “충격, 파쇄, 내려찍기!” PVP를 하다가 적진 한가운데 떨어져 본 적이 있는가? 이미 추억이 돼 버린 게임이지만 2000년 대 초반에 인기를 끌었던 아ㅇ온에서 상대 진영의 포스에 둘러싸여 본 적이 있는가? 그런 기억이 있다면 아크의 현 상태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킬의 폭포수 아래에 들어간 기분! 쥬르 일당과 나크족에게 둘러싸이자 생명력이 증발되듯이 쭉쭉 빠져나갔다.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다!’ 아크가 바닥에 굴러 간신히 공세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미 빈사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빈사 상태에 빠진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덕분에 불굴 시리즈와 ‘ 아드레날린’ 이 발동하며 각종 방어력과 반사 신경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아크는 ‘다크 댄싱’을 펼쳐 공격을 피해 내며 게이트로 달려갔다. 그리고 막 게이트를 향해 몸을 날릴 때였다. 갑자기 바닥에서 수십 줄기의 쇠사슬이 솟아올라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절망적인 메시지가 떠올랐다. (-상급 ‘속박’ 주문에 걸렸습니다. 《1분간 이동할 수 없습니다. 단, 공격을 받으면 자동 해제됩니다.》) 일명 ‘메즈’ 라고 불리는 마법사의 속박 주문이었다. 물론 이렇게 장시간 이동을 제한하는 스킬은 지속 시간이 남아도 공격을 받는 순간 해제된다. 때문에 파티가 많은 몬스터를 상대할 때 한두 마리에게 걸어 놓고 그사이 다른 몬스터를 처리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는 빈사 상태, 치명타를 한 방만 맞아도 끝장인 상태였다. “건들지 마, 내가 처리하겠어!” 쥬르가 앞으로 나서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쥬르가 익힌 최강의 마법, 마나 폭발로 마력을 중폭시키고, 마법 융화로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집약시킨다. 주문 영창 시간이 상당히 길어 1대1 전투에서 쓸 엄두도 낼 수 없는 마법. 그러나 일단 발동하면 전사의 생명력도 단숨에 40%나 날려 버리는 위력의 마법이었다. ‘제, 젠장…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남겨 두고… 아, 안돼-!’ “으드득, 잘도 가지고 놀았겠다! 블리자드, 헬 파이어!” 쥬르의 양손에서 적과 백, 화염과 얼음의 기운을 품은 두가지 마법이 나선형으로 꼬이며 아크의 몸에 작렬했다. 순간 격렬한 충격이 몸을 뒤흔들며 남은 생명력을 모두 태워 버렸다. 그리고 …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 보고 싶지 않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쥬르 님에게 공격당해 사망했습니다!) “해치웠다! 해냈어!” 아크가 풀썩 쓰러지자 쥬르가 미친 듯이 웃으며 날뛰었다. 계곡 마을을 점령하면서도 영악하게 머리를 굴려 피했던 카오틱이 되었지만, 상대가 아크라면 카오틱도 훈장이다. “놈의 부활 장소는 계곡 마을이야. 이제 놈은 독 안에 든 쥐다!” 그러나 쥬르는 모르고 있었다. 아크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져 있었음을…. ‘좋아, 지금이다!’ 아크가 머릿속으로 소리쳤을 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손에 들려 있던 본 블레이드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늘게 떨리던 것이 점차 강해져서 나중에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리고 진동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본 블레이드가 터져 나가며 아크의 생명력이 회복되었다. (-라자크의 ‘죽음의 맹약’ 스킬이 발동했습니다. 자동으로 라자크와 아크 님의 생명력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 데스 마스터의 특수 스킬 ‘죽음의 맹약’! 소환자가 죽으면 자동으로 소환수와 주인의 생명력을 맞바꾸는 절대적인 충성의 증거였다. 덕분에 라자크는 아크가 받아야 할 모든 스탯-1의 페널티가 적용되지만, 아크는 3,000의 생명력을 회복하며 부활할 수 있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아무리 급해도 그냥 갈 수는 없지. 귀기개방!” “으악!” 아크는 벌떡 일어난 귀살검을 뽑아 들고 방방 뛰는 쥬르의 괄약근에 찔러 넣었다. 칼자프와 싸우며 필살기, X침이다. 게다가 그냥 X침이 아니라, 귀기개방으로 요기를 불러일으킨 검으로 날리는 X침이다. 갑자기 괄약근에 귀기의 습격을 받은 쥬르가 뭐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터뜨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라자크의 복수다!” 아크는 차가운 미소를 날려 주고는 게이트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제야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쥬르 일당도 몸을 날렸지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게이트가 사라져 맨땅에 헤딩을 해 버렸다. 그렇게 닭 쫓던 개가 되어 버린 헤르메스 길드원들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 쥬르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괄약근… 괜찮으냐?” “대장님, 잠시만… .”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명룡에게 기동대원이 다가 왔다. “뭐야?” “그게… 좀 수상한 녀석이 찾아왔습니다.” 이명룡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자 기동대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전에 망년회 할 때 말입니다. 그때 현우가 거리에서 건달 놈들에게 습격받았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그때 현우가 싸우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해 놨던 모양입니다. 뭐 얼굴도 흐릿하게 나와서 현우라는 걸 알아볼 사람은 없을 것 같던데요. 방금 전에 어떤 놈이 그 영상을 가지고 와서 혹시 아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고요. 동영상을 보고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주점 주인에게 그때 우리가 근처에서 회식했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 “뭐하는 녀석인데? 경찰이야?” “경찰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찾는냐고 물어봐도 자세히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그냥 자기가 게임하면서 만난 사람과 비슷하게 생겨서 찾는다고만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수상하다고 말한 건 그 녀석이 은근히, 정보를 주면 사례를 하겠다고 지껄여 대더라고요.” “경찰청에 와서 민주 경찰에게 대놓고 욕을 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놈이죠. 지금이 어느 땐데… 생각 같아서는 몇 대 쥐어 패고 싶었지만, 뭐 민주 경찰 아닙니까?” 기동대원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든 그냥 보내려다가 현우와 관련된 일이라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기동대원의 말에 이명룡은 커피잔을 돌리며 잠시 생각했다. 핸드폰 영상만으로 현우를 찾는다. 현우와 제대로 아는 사이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뇌물까지 찔러 넣어 주며 찾으려고 한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답은 간단하다. 사람이란 착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보다는, 나쁜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 더 돈응 잘 쓰는 동물이다. 즉 뭔가 안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뜻. 자, 그럼 그 목적이 뭘까? 그 답도 이미 나와 있다. 게임에서 본 사람 같아서 찾는다면, 아마도 뉴 월드에서 현우에게 원한을 품은 놈이리라. 그리고 안델처럼 현우를 찾아 원한을 갚으려는 게 분명하다. “현우 녀석, 대체 게임을 어떻게 하기에 천지사방에 적을 만들어 놓은 거야?” 이명룡이 머리를 벅벅 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기동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게임? 이번에도 전처럼 게임 때문입니까?” “아니면 뭐겠어?” “하아, 도대체가 모르겠군요. 고작 게임 때문에 일부러 사람을 찾아다니다니….” “야잇, 게임을 무시하지 마!” 이명룡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사실 이명룡도 처음 안델과 현우 사이의 일을 알았을 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봐야 고작 게임. 그런 일을 현실까지 가져와서 현피니 뭐니 운운한다는 자체가 우습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막상 게임을 해보니 이제 이해할 만했다. 정말 팔다리가 부러져 나가는 고통을 참아 가며 키운 캐릭터… 이명룡에게도 이슈람은 이미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이슈람이 무슨 일을 당한다면 그 역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명룡은 울컥하며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식도 걸리면 죽었어.’ 얼마 전 이명룡은 시드라는 상인을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처음 친해진 유저라 일부러 기란이라는 곳까지 데려다 줬는데, 1,000골드나 하는 ‘일각수의 뿔’을 851골드에 팔아 치우고 날라 버렸다. 기란에서 뒤늦게 그런 사실을 알고 이명룡은 며칠 동안 이를 갈아붙였다. 당시의 기분을 생각하면 해결사까지 고용해 원한을 갚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이명룡이 특수범죄대책반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동대원들에게 비밀이라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이명룡은 이번 일을 못 들은 척할 수 없었다. 기분은 이해하지만 현상금까지 걸고 복수라니?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또라이거나, 21세기 대한민국을 건 맨들이 활약하는 서부 시대라고 착각하는 덜떨어진 놈이 분명하다. 그런 또라이들은 그냥 두면 안델처럼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자식 지금 어디 있어?” “체육관 근처의 대기실에 떨궈 놨습니다.” “체육관이라고?” 이명룡이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좋아, 그럼 일단 체육관에 데리고 가서 내가 시키는 대로 작업 좀 해 놔.” “견학요?” 기동대원의 말에 20대 청년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었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그는 다름 아니 글로벌엑서스의 신입 사원 호명환이었다. 그가 경찰청을 찾아온 이유는 업무 때문이다. 얼마 전, 하명우가 인터넷에 뜬 동영상을 보고 예전에 이벤트 퀘스트의 보스 몬스터 발데라스와 전투를 벌인 유저일 지도 모른다고 판단, 호명환에게 동영상의 주인공을 찾도록 특명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동영상의 주인공을 찾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단 동영상이 너무 멀리서 촬영되어 얼굴을 제대로 확인 할 수 없었다. 혹시나 싶어 주변 경찰서를 돌아다녀 봤지만 폭력 사건으로 신고된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주변 주점에서 같은 날 경찰청 기동대원들이 망년회를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된 것이다. ‘기동대원이라… 맞아,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동영상의 주인공은 척 보기에도 무술 실력이 상당하잖아. 아마 오랫동안 무술을 연마한 사람일 거야. 혹시 그 사람이 기동대원일지도 몰라. 기동대원이라면 폭력배와 싸워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그게 호명환이 경찰청까지 찾아오게 된 배경이었다. 그리고 기동대원에게 물어보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제대로 찾아왔어. 화면을 보고 왠지 아는 눈치였어. 후후후, 고작 흐릿한 동영상 하나로 여기까지 찾아내다니, 나도 제법이잖아? 혹시 탐정 체질 아니야?’ 호명환이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기동대원이 돌아왔다.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외근 중이라서… 저도 이제 운동해야 할 시간이고요. 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그동안 체육관 견학이라도 하시겠습니까?” ‘흠, 요즘 경찰들은 되게 친절하네.’ “알겠습니다.” “따라 오십시오.” 호명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동대원이 체육관으로 안내해주었다. 깔끔한 현대식 시설을 갖춘 체육관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한겨울임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에 호명환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야, 경찰들은 시민을 지키기 위해 매일 이렇게 몸을 단련하는구나!’ 왠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뿌듯해지는 호명환이었다. 호명환은 기동대원이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아 각종 무술의 대련 장면을 구경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지루해진다 싶을 때, 조금 전의 기동대원이 다가왔다. “지루하시죠?” “아니, 뭐… .” “심심하시면 한 번 체험 실습해 보시겠습니까?” “체험 실습요?”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냥 가볍게 대련을 하는 거죠. 사실 경찰청에서는 가끔 일반 시민들의 호신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체험 실습을 하거든요. 도복도 치수별로 다 준비되어 있으니 그냥 가벼운 기분으로 땀을 흘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동대원의 말에 호명황의 어깨가 들썩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호명환도 한때 태권도 붉은 띠를 둘렀던 숨겨진 고수(?)였다. 또한 주말마다 격투기 대회를 관람하며 베개를 상대로 관절기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 한번 해볼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에 사인해 주십시오.” 기동대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엔 대련하다가 부상을 당해도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윗부분에 서둘러 쓴 듯한 글자로 ‘체험 실습 신청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내용이 꽤나 으스스하지만 대한민국 경찰을 100% 신뢰하는 호명환은 신청서 양식이 의례 그러려니 하고 사인해 주었다. “자, 옷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빼앗듯 신청서를 받아 든 기동대원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호명환은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체험 실습을 하게 되었다. 호명환이 도복으로 갈아입고 기동대원을 따라 링 위로 올라가자 왠 왜소한 사내가 서 있었다. 키가 170도 안 되어 보이는 사내. 반면 호명환은 190이다. 그리고 틈틈이 보디빌딩을 해서 제법 근육도 잡혀 있었다. 아무리 기동대원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체격 차이가 나는 상대와 대련을 해야 한다는 게 왠지 쪽팔렸다. “저… 여기는 체급별로 대련하지 않습니까?” 호명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질문하자 사내가 물었다. “체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잘은 모르지만 90킬로그램이 좀 넘으니 헤비급이 아닐까요?” “저하고 같군요. 마침 저도 헤비급입니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호명환이 사내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자 그럼 갑니다.” 사내의 몸이 번뜩거렸다. 호명환은 그렇게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기 전에 복부를 해머로 두드리는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주먹에 맞았는지 발차기에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헤비급의 파괴력이었다. … 그게 파란만장한 경찰청 실습기의 시작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온몸을 난타하는 무지막지한 주먹과 발차기의 향연.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뿐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무자비한 공격에 호명환은 몇 번이나 ‘그만’ 이라고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라는 말이 나오기를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목덜미며 복부에 발차기를 쑤셔 넣어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주, 죽이려는 거야. 이 사람은 날 죽이려는 거야!’ 그 순간 호명환은 확실하게 보았다. 꽃밭 저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짓하는 장면을…. “핫!” 호명환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생존 본능에 따라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 끔찍한 발차기는 날아오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호명환이 몸을 일으킨 곳은 탈의실이었다. 두들겨 맞고 기절한 뒤에 탈의실로 옮겨진 모양이다. 호명환이 멍청한 얼굴로 탈의실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샤워실 문이 열리더니 다부진 몸매의 사내가 나왔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호명환은 심장수가 급상승하며 전신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방금 전 링에서 호명환을 죽이려고 했던 그 왜소한 사내였던 것이다. “여어, 깨어났나?” 사내가 씨익 웃으며 호명환에게 다가왔다. 마치 악마가 사신이 다가오는 듯한 공포감에 호명환을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호명환의 반응에 사내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어개를 툭툭 쳤다. “음, 실습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이군.” “무, 무슨…?” 사내는 갑자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바짝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잘 들어. 한 번만 말한다. 네 주민등록증 복사해 놨어. 만약 또다시 동영사의 청년을 찾는답시고 주면을 기웃거리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불만 있으면 특수범죄대책반의 이명료을 찾아와라. 뭐 네가 사인한 동의서에 죽어도 원망하지 않겠다는 조항이 붙어 있지만 말이야.” 말하자면 호명환은 사인 한 번 잘못해서 합법적으로 얻어 맞았다는 뜻이었다. 왜소한 사내… 이명룡은 어깨를 툭툭 치고는 탈의실을 나가 버렸다. 호명환은 그저 멍하니 이명룡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원망한다고? 불만이 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동의서 같은 것은 상관없다. 솔직히 말하면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도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명룡이 나가자 호명환은 벌떡 일어나 엄청난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도망치듯 경찰청을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 타고 몇 킬로미터나 떨어진 뒤에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긴장이 풀리자 여기저기에서 악 소리가 나올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으으으, 몸살 기운이… 그나저나 대체 뭐야? 동영상의 주인공은? 경찰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패면서 숨기려고 하다니? 서, 설마 내가 알아서는 안 될 뭔가를 알아 버린 건가? 혹시 그 청년은 FRB? CIA? 뭐, 그런 건가?’ 아무래도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어쨌든 청년의 정체가 뭐든 호명환은 더 이상 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글로벌엑서스의 현우 찾기는 또다시 미궁 속에 빠지게 되었다. 아크 상회 “가렌 아저씨.” “음? 이 목소리는 … 아크, 아크 아닌가?” 마을 회관에 들어서자 서류 더미 속에서 가렌이 뛰어나왔다. “이게 어쩐 일인가? 자네가 왔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방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어쨌든 잘 왔네. 아니, 잘 돌아왔다고 해야 하나? 이제 자네도 엄연한 란셀의 주민이니까 말이야. 그것도 지분을 가진 지주가 아닌가? 아, 차 한잔하겠나?” “괜찮습니다. 그보다 부탁이 있는데요.” “부탁?” “네, 사람들을 좀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아크가 마법진을 그릴 때 머릿속에 떠올린 곳은 바로 란셀 마을이었다. 중간계에서 파란 피부를 가진 이계인, 그것도 50명이나 되는 인원을 조건 없이 받아 줄 마을은 ‘종족 불문, 과거 불문, 방문자 무조건 환영’ 을 외치는 란셀 마을밖에 없었다. 차원 게이트를 통해 아크가 도착한 곳은 란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훈련소였다. 아크가 훈련소로 이동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란족은 이주할 목적으로 넘어온 게 아니다. 이주빈에게는 정착할 땅을 마련해 주는 게 란셀의 전통이지만 바란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훈련소였다. 한때 300명의 도적이 정신교육을 받던 훈련소도 졸업생들이 마을로 내려가 꽤나 한산했다. 때문에 아크는 바란족을 당분간 이곳에서 생활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단 훈련소를 재활용하면 잠자리 문제는 해결되다, 그러나 사람이 잠만 자면서 살 수는 없는 법, 먹어야 산다. 그러나 아크가 50명이나 되는 인원의 식비를 댈 수는 없었다. 또한 란셀에 틀어박혀서 게속 그들을 돌볼 수도 없다 때문에 일단 바란족을 훈련소에 대기시키고 가장 먼저 가렌을 찾아온 것이다.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자네의 부탁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살던 마을이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갈 곳이 없어졌다니 남의 일같이 들리지도 않고 말이네. 지금 마을은 계속된 풍작으로 비축힌 식량이 넘쳐 날 정도라네.” 일전에 아크가 신성한 토양을 구해 밭에다 쏟아부은 덕분이었다. “뭐, 풍작이 아니라도 식량 걱정을 할 필요도 없어졌지만 말이야. 자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 마을 상업이 많이 발전했거든. 어쨌든 마을 재정이 여유가 있으니 50명 정도 맡아 주는 건 문제가 아니네. 일단 한번 만나 보도록 하지.” 가렌이 시원스럽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웟다가 추웠다가, 심지어 어떤 곳은 내내 밤만 지속되거나 낮만 지속되는 말도 안 되는 기후를 가지고 있는 유계와 달리 중간계는 시간개념이나 계절 감각이 정상이었다. 그리고 현재 뉴 월드의 중간계는 한겨울의 새벽녘이라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오면서 봤는데 마을이 많이 변했더군요.” 아크가 오랜만에 찾아온 란셀 마을을 돌아보며 말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란셀이 한창 발전 중인 마을이라는 게 실감 났다. 찾아올 때마다 마을이 부쩍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너구리족이 합류한 뒤부터는 건물들이 엄청나게 화려해져서 무슨 테마파크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거리에는 NPC는 물론, 유저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많았다. “인근에 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방문객이 예전의 몇 배로 늘었다네.” “소문이요?”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렌이 씨익 웃으며 한곳을 가리켰다. 지붕 위에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투실투실한 배를 드러내고 단잠에 빠진 묘족 장로, 핫산이 누워 있었다. 여자 유저들은 코를 골 때마다 출렁이는 뱃살과 아래로 늘어져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를 보며 꺅꺅거렸다. “꺄아, 저기 봐. 저기도 있다.” "투실투실한 게 되게 귀엽다.“ 핫산… 묘족의 자긍심은 어디다가 팔아먹은 거냐? 어쨌든 핫산만이 아니었다. 너구리족이 일하는 제재소나 공방 근처에도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는 척하면서 너구리족을 힐끔거렸다. “저 사람들은 왜 저기 모여 있는 거죠?” “좀 지켜보면 알 걸세.” 너구리족 하나가 ‘끙’ 소리를 내며 목재를 들어 올렸을 때였다. 뿅-! 돌연 엉덩이에서 너구리 꼬리가 튀어나왔다. 평소에는 사람 모습으로 변신해서 생활하지만 갑자기 힘을 쓸 때나, 놀랐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수염이나 꼬리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봤어? 봤어?” “킥킥킥! 봤어, 둥글둥글한 꼬리. 수염도 잠깐 나오던걸.” 유저들은 그런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킥킥거리는 소리에 너구리족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리자 유저들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아직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너구리족 뿐일 거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물론, 가끔 찾아오는 이방인들도 다 알고 있지. 어쨌든 이제 너구리족과 묘족은 마을의 명물이네. 일부러 그들을 구경하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지. 덕분에 너구리족의 공예품이나 묘족이 구해 오는 진귀한 가죽도 불티나게 팔린다네.” 가렌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덕분에 아크 역시 행복해졌다. 란셀 마을은 작센과 기란의 중개 지점으로 한층 더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는 곧 마을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뜻. 란셀 마을에 지분과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아크의 주머니도 두둑해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포포의 영향도 적지 않겠지.’ 아크는 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세계수 묘목, 포포를 바라 보았다. 마을에 지속적으로 가치와 발전 속도가 상승하는 효과를 주는 포포. 유저들은 그렇다 쳐도 NPC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이나 관심도는 포포의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 묘족이나 너구리족 그리고 완전히 갱생해서 자리를 잡은 산적들, 포포… 란셀 마을의 모든 것은 아크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때문에 란셀 마을에 올 때마다 변한 모습을 살펴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마을을 돌아보며 아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바란족의 문제를 해결해 놓는 게 먼저다. “오호, 저 사람들인가?” 훈련소에 도착한 가렌의 호기심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크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바란족의 파란 피부를 직접 보니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네, 보나. 이 아저씨가 마을의 촌장이야.” “아, 안녕하세요?” 보나가 쭈뼛거리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가렌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다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르. “모, 몬스터! 힉, 저기도? 저기도? 저기도? 아, 아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가렌이 보나 옆에서 어슬렁거리는 헬 하운드를 가리키며 비명을 터뜨렸다. 계곡 마을에 있던 몬스터들은 조련사가 떠난 버렸으니 대부분 야생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30며의 아이들 중에는 보나처럼 조련사의 재능을 가진 아이들도 3~4명 있었다. 예전에 보나에게 들은 바로는 그런 아이들은 대부분 조련사 훈련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애완동물처럼 작은 몬스터를 한 마리씩 키운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그런 몬스터가 가족 같은 존재라 계곡 마을을 떠날 때 품에 안고 온 것이다. 아크에게 설명을 들은 가렌의 눈동자가 갑자기 반짝반짝 광이 났다. “호오, 호오! 몬스터를 조련시키는 재능을 가졌다고? 파란 데다 그런 신기한 재주까지 있단 말이지? 이거 멋진걸.” 가렌의 특이한 사람 모으는 취미가 발동한 것이다. “좋아, 아주 좋네, 아크. 역시 자네야. 어디서 이런 재미있는 사람들을 찾아온 건가? 알겠네, 이 사람들은 내가 맡지. 마을의 주민으로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펴 주겠네.”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이 사람들은 이주하려는게… .” “알고 있네. 알고 있다니까. 전쟁을 피해 잠시 피난 온 거라는 말 아닌가? 상관없네. 암, 그런 사람들을 돕는 건 당연하지. 하지만 정 붙이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기서 살다 보면 이곳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겠지. 음하하하,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종족 차별하는 인간들을 제일 혐오한다네. 만약 정착할 마음이 있다면 각종 복지는 물론 일자리와 살 집도 마련해 주겠네. 어떻냐? 살고 싶은 생각이 팍팍 들지 않냐?” … 역시 가렌은 아크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번에 바란족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렌은 마치 교문 앞에서 코 묻은 돈을 노리는 장사꾼처럼 아이들을 꼬드겨 댔다. 그러자 보나가 주춤주춤 아크에게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아, 아크 형, 이 아저씨 어쩐지 무서워요.” “뭐 … 나쁜 사람은 아니야. 취미가 좀 이상하게 발전해 버려서 그렇지.” 아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두두둥, 하며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으라》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은 유계의 주민 바란족의 아이들을 란셀에 데리고 왔습니다. 이들은 유계의 혼란을 피해 잠시 피신하려는 것뿐, 이주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란셀 마을을 키우는 것이 삶의 목적인 가렌은 이 특이한 종족을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이로써 바란족이 란셀 마을의 주민이 될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성취도 90%(+20%)》)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주민을 찾아냈습니다. 유계의 주민인 바란족 가운데는 몬스터 조련사의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독특한 능력으로 만약 아이들이 란셀의 주민이 된다면 마을에 ‘특수성’ 과 ‘희소성’이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특수성은 각종 산업 수치에 영향을 주고, 희소성은 마을의 가치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아이들을 주민으로 만들고 싶다면 잘 꼬드겨 봅시다.) ‘어라? 바란족도 주민이 될 수 있는 거야?’ 아크는 놀란 눈으로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사실 아크도 바란족을 데리고 올 때 이 퀘스트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도적들이 모두 갱생해서 성취도가 90%. 이제 10% 밖에 남지 않아 어떻게든 이주민을 모으고 싶었다. 그러나 베스튜라가 잠시 피난시켜 달라고 못을 박아 놔서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계곡 마을은 완전히 나크족에게 점령됐지? 이들이 다시 유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해. 그리고 고아가 된 아이들도 있으니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야!“ 가능성이 20%니 반만 건져도 길고 길었던 퀘스트가 끝나는 것이다. 게다가 마을의 산업과 가치가 올라간다고 하니 몇 명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보나야. 이곳은 엄청나게 좋은 곳이란다. 주민들도 하나같이 친절하고, 안전하지. 지금은 겨울이라 춥지만 봄이 되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몰라. 가렌 아저씨도 저렇게 환영한다니까. 혹시 이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며 언제든지 말하라고 해.” 아크는 금세 태도를 바꿔 바란족을 꼬드겼다. 그러자 가렌이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내 말이 그 말이야. 역시 자네는 알아주는군.” “바란족이 여기서 사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신경 써 주세요.” “맡겨 주십시오, 형님!” “가족처럼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삼촌이라고 불러라.” 아크의 말에 훈련소의 도적들이 바란족 아이들의 손을 잡고 벙긋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졸업생도 거의 떠나고 몇 명밖에 남지 않아 그동안 꽤나 적적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도적들은 나름대로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아크를 형님으로 부르지만 나이는 대부분 중년. 한 번쯤 가정을 가졌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 뭐, 흔한 드라마 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가 도적이 됐다는 말이다. 반면 바란족 아이들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잘만 하면 의외로 일이 잘 풀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바란족 아이들이 부모를 잃은 것은 불과 얼마 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바란족 문제는 일단 해결됐고… .' "보나야, 두루마리의 암호를 푸는 데 얼마나 걸리겠니?“ “… 해 봐야 알겠지만 며칠은 걸릴 거예요.” “알았어, 부탁할게. 야, 넌 여기서 밥 축내지 말고 따라와.” 아크는 보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북실이를 데리고 훈련소를 나왔다. “데드릭, 너도 일단 유계로 돌아가 있어.” “핫, 그러고 보니 … 이곳에서는 돌아갈 수 있었지?” 아크의 어깨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데드릭이 화들짝 놀랐다. 그렇다, 유계에서는 소환 해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 다시 중간계로 돌아왔다. 어차피 한동안 마을에 있어야 하니 굳이 데리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데드릭도 한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해 꽤나 울적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좋겠다, 저 녀석 드디어 집에 가는구나… .” 라자크가 죽는 장면을 보며 이렇게 부러워할 정도였다. “우하하하,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게 됐구나. 주인, 급한 일 없으면 부르지 마. 알았어?” 데드릭은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 놨는지 얼른 유계로 돌아가 버렸가.그리고 가렌도 마을로 내려오자 곧 할 일이 있다며 마을 회관으로 돌아갔다. “난 이만 가 봐야겠네. 모처럼 만났으니 좀 더 함께 있고 싶지만 요즘 마을 일이 부쩍 늘어서 상점 일을 볼 시간도 없을 지경이라네. 나중에 차라도 한잔하세.” 덕분에 이제 아크는 북실이와 둘만 남게 되었다. “저…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북실이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뭐가?” “저는 … 그게… 이제 카오틱이잖아요… . 마을에 들어오면… .” “말했잖아, 여기는 괜찮아.” 그때, 마을을 순찰하는 경비병들을 발견한 북실이가 기겁하며 아크의 등 뒤로 숨었다. 카오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마을 경비병, 일단 걸리면 여지없이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그러나 아크의 말대로 란셀 마을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적어도 아크와 함께 있는 동안은 말이다. “어? 아크 형님,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조금 전에 왔어요. 볼일이 좀 있어서.” “연락 좀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런데… 그 뒤에 있는 돼지 같은 녀석은… .” ‘거, 걸렸다. 이제 끝장이야!’ 경비병이 미간을 좁히며 바라보자 북실이가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나 경비병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입생입니까?” “신입생은 아니고 제가 데리고 다니면서 교육을 시키는 녀석이에요.” “여전히 고생이 많으시군요.” 경비병이 북실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너도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힘내라. 형님 너무 속 썩이지 말고.” “네? 네? 네?” “그럼 형님, 순찰 중이라 이만 가 볼게요. 시간 나면 경비병 숙소에 한 번 들리세요.” 북실이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멀어지는 경비병과 아크를 바라보았다. 카오틱이 경비병에게 격려를 받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아크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대체 이 인간은 정체가 뭐야? 마을 촌장에게 50명이나 되는 피난민을 덜컥 맡겨 버리지를 않나. 마을 주민들도 다 찾아와 알은척을 하고… 카오틱과 함께 있는데도 경비병들이 인사만 하고 그냥 가?’ 아크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북실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마을의 NPC들이 모두 아크를 찾아와 알은체를 했다. 상점 주인은 물론, 경비병, 공사를 하는 일꾼들까지… 그런 모습에 북실이는 물론 마을을 찾아온 유저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음, 유저들이 많아지니 아무래도 좀 불편해지는군.’ 아크 역시 간만에 그런 시선을 받으니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인사는 유저들 없을 때 천천히 하고 일단 증축한 집이나 찾아가 봐야겠다.’ 아크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걸음을 돌릴 때였다. 돌연 한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중심가에 NPC와 유저들이 벌 떼처럼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은 작은 단상 위에 낯익은 여자가 올라가 있었다. 잘 빠진 몸매에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달고 있는 여자, 묘족 무녀 자나였다. 자나가 단상에 올라가 잠시 눈을 감자 환호성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리고… 아크는 믿어지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자나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어디선다 통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흐릿한 빛이 모여들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들이 나타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냥, 냐냥, 냐냐냥, 냥, 냥, 냥. 묘족 신전에서 선보여 주었던 쪽팔리기 짝이 없는 춤! 그렇게 잠시, 고양이 댄스가 끝나자 관중들이 꽃다발을 집어 던지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역시 최고다!” “저 귀와 꼬리의 움직임은 예술이야!” “오오오, 몇 번을 봐도 질리지가 않어!” “젠장, 감동이야. 난 소문을 듣고 시니어스 공국에서 찾아 왔다고!” 자나 님, 여기 좀 봐 주세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 춤은 뭐고, 저 사람들은 또 뭐야?’ 아크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꽃다발을 받아 들며 키스를 보내던 자나가 문득 코를 실룩거렸다. “어머, 이 냄새는 …?” 자나가 활짝 웃으며 얼굴을 돌렸다. “역시 아크네. 호호호, 돌아왔구냥!” 자나가 깡충 뛰어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치 오랜만에 주인을 만난 고양이처럼 꼬리를 살랑거리며 몸을 비벼 댔다. “흐응, 흐응, 오랜만이냥. 갈수록 멋있어지는구냥. 방금 전에 내 공연 봤냥?” “공연? 그게 공연이었어?” “후후후, 이제 이 몸도 유명인이다냥.” 자나가 뾰족한 귀를 만지작거리며 으스댔다. 자나의 말에 따르며, 얼마 전 그녀가 춤을 추는 것을 본 한 유저가 감동을 받고 주변에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덕분에 코스프레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이제 그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팬 때문에 여관이 생겼을 정도. 그 뒤로 가렌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자나는 매일 한두번씩 공연을 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뭐야, 그 말투는?” “후후후, 이거 말이냥?” 자나가 씨익 웃으며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대답했다. “장로님이 가르쳐 줬다냥. 잘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면 남자들이 뻑 간다고 했다냥. 해 봤더닌 효과 만빵이다냥. 이제 자나 인기 최고다냥. 냐하하하!” 그놈의 고양이 영감탱이,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이제야 세상이 내 귀와 꼬리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는 거다냥.” … 어때? 이제 좀 끌리냥? 너도 뻑 갔냥?“ … 전혀, 그저 민망할 따름이다. “언제든지 생각 있으면 말해냥. 고양이는 이외로 일편단심이다냥.” 자나가 아크의 볼을 할짝거리며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분에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고? 자칭 자나의 팬클럽 회원들이 죽일 듯한 눈초리로 아크를 쏘아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자나 멋대로 떠들게 놔뒀다가는 정말 검을 빼 들고 결투라도 신청할 기세였다. “아앗-!” 그때였다. 돌연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한 여자가 괴성을 질러 댔다. 비명을 지른 여자는 갑자기 멧돼지처럼 인파를 뚫고 들어 와 자나를 와락 밀쳐 냈다. “못된 계집애! 틈만 나면 꼬리를 치고 난리야?” “쳇, 또 시끄러운 꼬맹이가 냄새를 맡고 나타났다냥.” “누가 꼬맹이냐? 오빠, 이런 여자는 상대하지 말아요. 난잡하다고요!” “우냥? 요 계집애가! 말 다했냥?” “흥! 매일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 오빠도 참, 마을에 왔으면 먼저 집을 찾아와야죠. 오려면 연락이나 미리 하지. 얘기 듣고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요?” 여자, 로코가 혀를 날름거리며 아크의 팔을 잡아당겼다. 갱생단이 ‘슬라임의 내단’ 노가디를 그만두기로 결정한 뒤, 로코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란셀 마을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크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쳇, 망할 계집애.” 자나가 로코를 쏘아보다가 이내 방실거리며 아크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꼬맹이에게 싫증 나면 언제든지 찾아와냥. 고양이는 과거는 신경 쓰지 않는다냥.” “시끄러, 에로 고양이!” “냐하하하, 꼬맹이가 에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까냥?” 정말이지 두 여자 틈에 끼이며 말 한마디 할 틈도 없었다. 로코에게 끌려가는 아크는 뒤통수에 뭔가가 푹푹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여자 친구도 있으면서….’ 자나의 팬클럽 회원들이 보내는 저주의 메시지였다. “여기가 오빠의 새 집이에요.” 로코의 말에 아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크는 유계에 가 있는 동안에도 너구리족에게 꾸준히 주택 증축 자금을 보내 주었다. 물론 유계에 우편 시스템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 대금은 모두 시드가 떠맡아야 했다. 꼬박꼬박 아크에게 갚아 나가야 할 빚을 증축 자금을 대납하는 것으로 대신해 온 것이다. 때문에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니 아크도 그동안 반쯤 잊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증축된 저택을 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허름한 오두막이 옛날에 TV에서 봤던 러브 하우스에서나 나올 듯한 근사한 2층 집으로 변해 있었다. 집 앞에는 작지만 화사한 분위기의 정원도 있었고, 2층에는 발코니까지 있었다. ‘확실히 이 정도면…!’ 조금 전에 만난 너구리족 대표가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는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난 막상 확 바뀐 집을 보니 안 남긴 게 아니라, 오히려 밑지면서 증축해 준 것 같았다. 역시 NPC하고는 친해 두고 볼 일이다. “아, 아크 님, 집도 있었어요?” 북실이가 입을 쩍 벌리며 존경스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내 집 장만! 상인들의 꿈이자 로망이다. 그런데 장사가 목숨 거는 상인도 아니고, 전사형 직업을 가진 아크가 2층 집을 소유하고 있다니 놀랄 만도 하다. 로코는 그제야 북실이를 발견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그 사람은?” “들어가서 설명해 줄게.” 아크는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갔다. 멋진 외관에 어울리게 실내 인테리어도 상당히 잘 꾸며져 있었다. 너구리족의 선물인지 못 보던 가구도 몇 개 추가되어 있었다. 한결 넓어졌는데도 덕분에 휑한 느낌은 없었다. 집 안에 들어선 아크는 로코에게 유계에서 겪은 일을 대강 추려서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동안 틈틈이 만나거나 통화를 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아크는 로코에게 설명하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닌데. 지금까지 유계의 얘기를 하면서 레리어트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 로코와 자주 연락을 하며 지내기는 했지만 로코를 딱히 여자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레리어트와 뭔가 섬싱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로코에게 레리어트에 대해 얘기하기가 껄끄럽게 느껴졌다. 남자란 참으로 알 수 없는 동물이다. ‘뭐, 괜한 오해는 피하는 게 좋으니까.’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 근황을 물었다. “갱생단 형들은?” “어젯밤에야 오빠 말대로 ‘슬라임의 정수’ 를 12개 채웠어요. 오빠가 온다는 거 알았으면 바로 란셀로 왔을 텐데…. 아마 지금은 작센으로 가고 있을 거예요.” “작센? 거기는 왜?” “원래 정의남 아저씨가 작센을 떠난 건 작센 영주가 악실리온에서 경력을 쌓으라고 해서잖아요.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생겨서 아직 악실리온에 못 가서 시간 날 때 영주를 만나 사정을 설명해야겠다고 하셨어요.” “작센이라… 하긴 나도 가 본 지 꽤 오래됐지.” 아크는 향수에 젖은 얼굴로 잠시 작센의 전경을 떠올려 보았다. 작센은 아크에게 특별한 마을이다. 그곳에서 전직을 하고 초보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또한 아크가 위기에 처했은 때는 영주와 병사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란셀 마을을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아직도 게임 속의 진짜 고향은 작센처럼 느껴졌다. “시드는?” “시드 오빠는 아마 란셀로 오는 중일 거예요.” 어쨌든 란셀에 있으면 그동안 못 본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뭘 하나?’ 유계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란셀 마을로 돌아오니 왠지 멍해졌다. 보나가 두루마리를 해독하기 전에는 다른 데로 이동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란셀 마을 주변에서 사냥을 할 수도 없었다. 이곳의 몬스터는 레벨 100대라 282레벨의 아크가 사냥을 해 봐야 경험치가 들어오지도 않는다. 또한 레벨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몬스터를 잡으면 아이템도 얻을 수 없단다. 단지 피로만 쌓일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놀고 있을 수도 없고… 아, 한약이나 만들까?’ 아크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 한약 달이기’ 스킬이나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약 달이기’ 는 특정 조건을 달성해야 배울 수 있는 상급 스킬이라 숙련도가 엄청나게 안 올라간다. 100개를 만들어야 1이 오를 정도. 사냥을 하며 틈틈이 올려서는 티도 나지 않는 것이다. ‘란셀 마을 주변에는 식재료나 약초가 풍부한 편이야. 북실이도 그냥 놀릴 수 없으니 식재료나 채취해 오도록 시켜 놓고 이참에 숙련도나 팍팍 올려놓자.’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갑자기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가만? 여기는 유계와 달리 유저가 많이 오가는 곳이잖아? 그렇다면 한약을 그냥 먹어 치울 필요가 없어. ’한약 달이기‘ 가 좋은 물약처럼 장기간 휴대하고 다닐 수 있다는 점. 한약을 만들어서 팔아먹을 수 있다는 말이잖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한약을 만들어서 아크는 아직 상품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만들 수 있는 고약과 보약, 한방차는 효능이 그리 좋지 않았다. 고약은 등급이 낮아 중급 이상의 상태 이상을 치료할 수 없었고, 보약도 장기간 먹어야 하는 데 비해 능력치가 얼마 오르지 않았다. 한방차도 마찬가지, 독특한 효능은 있지만 유저의 구매력을 당길 만한 메리트는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아이템을 자신의 레벨을 기준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레벨이 낮은 유저는 당연히 저레벨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 그리고 저레벨 몬스터가 거는 상태 이상은 하급이다. 오히려 고급 장비품으로 도배한 고레벨 유저는 상급 상태 이상에 걸려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저레벨 유저에게 하급 상태 이상은 치명적이 될 수도 있었다. 아크 역시 저레벨 시절에는 간단한 상태 이상에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지 않았던가? 결국 상태 치료제는 저레벨 유저에게 더 귀하다는 말이다. 보약이나 한방차도 그렇다. 30일 먹어서 공격력 1, 고레벨 유저에게 가소로운 수준이지만 저레벨 유저에게 공격력 1도 엄청난 수치였다. 또한 저레벨 유저들은 한창 생산 스킬을 올리는 사람이 많아 한방차의 효능도 감지덕지하리라. ‘그리고 란셀 마을은 레벨 100 전후의 유저들이 많이 오는 곳이야. 그 말은 란셀이 그런 아이템을 팔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뜻이다. 내가 왜 지금까지 그걸 생각하지 못했디?’ 한약은 재료비가 적게 들어 연금술 물약보다 싸게 팔 수 있다. 한 푼이 아쉬운 유저들은 일부러 찾아와서라도 한약을 사 갈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아크는 돈을 벌고, 란셀 마을의 상업도는 더욱 올라간다는 말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좋은 돈벌이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아크의 하급 한약들은 결코 비싼 가격에 팔지 못한다. 하루 이틀 장사를 하고 만다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기란 같은 곳이라면 모를까, 란셀 마을에서 노점상을 벌여 몇 개 팔아 봐야 시간이 아까울 것이다 . 제대로 하려면 각종 물건을 대량으로 쌓아 놓고 장기간 팔고, 때때로 대량 거래도 해야 만족할 만한 이윤을 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가게와 아르바이트 점원!’ 아크는 씨익 웃으며 증축된 저택을 둘러보았다. 란셀 마을에 지으진 2층 주택, 놀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아크가 상점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 아르바이트 점원이 필요한데… . 그것도 가능하면 거래나 회계 관련 스킬을 익힌 상인이라면 바랄 게 없다. 그리고 마침 아크는 써먹을 수 있는 상인을 알고 있었다. 노예 계약서로 묶인 불쌍한 호비트 상인, 시드. ‘하지만 시드는 시르바나 교역소와 나의 연결 끈이야. 이런 곳에 묶어 두면 이득보다. 손해가 더 크다. 그렇다면 남은 상인은… .’ 아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북실이에게 말했다. “북실이, 너 동생들하고 연락되지?” “네? 네, 그야…‘” “당장 이곳으로 튀어 오라고 전해.” "왜, 왜요?“ “좋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려고.” 아크가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을 나온 아크는 곧바로 마을 회관을 찾아갔다. 마을에서 상점을 개업하려면 먼저 촌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겠다고?” 아크의 말을 들은 가렌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네, 저도 이 마을에 제대로 정착하려면 뭔가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요.” “흠,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쉽지 않을 텐데….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허가해 주는 건 어렵지 않네. 하지만 이방인은 마을 지분이 3% 이상이 되지 않으면 주택을 소유하고 있어도 상점을 운영할 수 없네. 그건 알고 있겠지?” 당연히 알고 있다. 이방인이 마음대로 상점을 운영할 수 있었다면 뉴 월드의 마을은 모두 상점으로 도배되어 있을 것이다. 마을에 공헌도가 없는 일반 유저가 투자로 얻을 수 있는 지분은 2%. 즉, 공헌도가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상점을 운영할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현재 아크가 가지고 있는 란셀 마을의 지분은 2.5%. 주택 증축이 끝나면 투자 한도가 올려 준다는 가렌의 약속 덕분에 돈만 있으면 최대 5%까지 올릴 수 있었다. “0.1% 올리는 데 얼마입니까?” “200골드네.” “네?” 가방을 뒤적거리던 아크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아크가 지분을 받을 때만 해도 80골드였던 시세가 120골드나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란셀 마을이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고, 아크가 가지고 있는 지분도 비싸졌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란셀 마을은 아직도 발전 중이다. 지분은 주식처럼 유저에게도 팔 수 있으니 투자해 놓으면 확실히 이윤을 볼 수 있었다. ‘좋아, 어차피 은행 잔고도 여유가 있고, 당장 돈 쓸데도 없으니….’ 현재 아크의 소지금은 4,000골드!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과감하게 3,500골드를 떼어 내 가렌에게 건네주었다. 확실하게 이윤이 남는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분 1.5%와 상점 허가증 500골드. 3500골드입니다.” “허, 자네 이번 여행에 상당한 행운이 따랐던 모양이군.” 수북한 돈 자루에 가렌이 혀를 내둘렀다. 어쨌든 가렌에게 관련 증서를 받아 드니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투자 관련 정보창》 란셀 마을에 대한 지분이 4%로 상승했습니다 지분이 3%를 넘어 개인 상점을 소유할 수 있게 됐습니다 플레이어가 상점을 운영하면 실적에 따라 마을의 상업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장사가 번창해 마을의 상업도를 올릴수록 공헌도가 가산되어 지분의 상한선이 올라가게 됩니다. 단, 장사에서 큰 손실을 보거나 마을의 평판을 깎아 먹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지분의 상한선이 내려갈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허가증을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현재 소유한 란셀 마을 지분(소유/상한):4/5% ) 현실이든 게임이든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었다. 어쨌든 이제 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했다. 아크는 곧바로 너구리족 대표를 찾아가 주택을 상점으로 리모델링해 달라고 부탁했다. 작정하고 화려하게 만들자면 한도 끝도 없으므로 간단하게 간판을 달고, 내부에 선반이나 칸막이 창고를 만드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렇게 다시 100골드. 덕분에 4,000골드라는 빵빵한 재산이 10분의1,400골드로 줄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내 가게다!” ‘아크 종합상점’ 이라는 간판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집, 내 가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내 집 장만, 내 가게 장만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살다 보면 때때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대가 있다. 아크가 개업 준비에 한창일 무렵, 드디어 시드가 란셀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드와 북실이가 만나는 순간 둘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버렸다. ‘저 드워프 상인, 내가 교역소에 묶여 있는 동안 내 대용품으로 아크 님에게 이용당했구나.’ ‘저 호비트 상인, 나 이전에 아크에게 착취당하던 사람이구나.’ 굳이 묻지 않아도 안다. 그동안 아크에게 얼마나 많은 설움을 당했는지…. 경험자들은 서로를 너무나 잘 이해했다. “고생이 많으시죠?” “아니, 그쪽이야말로….” 시드가 말에 북실이가 한숨을 푹 불어 내며 족발을 흔들어 댔다. 그리고 잠시 서로를 마주 보다가 갑자기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와락 부둥켜안았다. 마치 오래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는 두 마리 꽃사슴처럼, 비록 지금은 약하기 짝이 없는 상인이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악마 같은 착취자의 등에 비수를 꽂을 그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둘은 뜨거운…. “어이, 시드. 뭐하고 있어?” “네, 아크 님!” 아크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드는 금세 방실거리며 달려갔다.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리게 된 불쌍한 시드였다. “내가 얘기한 거, 구해 왔어?” “아, 물론이죠.” 시드가 얼른 가방에서 ‘ 일각수의 뿔’ 을 꺼냈다. “어유, 말도 마세요. 요즘 ‘ 일각수의 뿔 ’ 가격이 계속 올라서 어찌나 구하기 힘든지, 1,050골드에도 안 판다고 한다니까요. 하지만 제가 누구입니까? 아크 님 말이라면 사막에서 얼음도 구해 오는 시드 아닙니까? 부탁한 대로 4,000골드에 4개를 구해 왔습니다. 헤헤헤, 대금 결제는 어떻게….” 시드가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양손을 비비적거렸다. 아크는 그런 시드의 태도에 살짝 눈매를 좁혔다. 확실히 시드는 아크의 밥이다. 하지만 대출로 물건을 사서 이렇게 멀리까지 오라고 했는데도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다. 그러나 시드가 내민 것은 확실히 ‘ 일각수의 뿔’ 이다. 그리고 시세가 1,050골드로 올랐다는 것도 경매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뒤였다. 갱생단의 재산은 여전히 로코가 꽉 틀어쥐고 있었다. 로코가 원래 란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유가 시드에게 물건을 받고 결제해 주기 위해서였다. “바로 결제해 줄게. 어차피 차용증으로 산 물건은 그냥 주고받을 수가 없잖아. 네 가방에 차용증 금액과 동등한 가치의 골드나 아이템은 있어야 하니까.” “아, 역시 아크 님, 잘 아시네요.” “4,000골드면 되지?” “넵!” 아크가 로코에게 받아 둔 주머니를 꺼내 들자 시드가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순간 아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사실 이건 아크의 함정이었다. 아크는 상인 길드의 대출 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시드가 함께 돌아다니던 시절에 주워들은 지식이었다. 그때, 시드는 대출을 받으면 돌려줄 때 약5%의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시드가 4,000골드의 대출을 받았으니 이자만 200골드가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드는 수수료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4,000골드만 받아도 수수료를 지불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더니, 잘은 몰라도 어디서 ’ 일각수의 뿔‘을 싸게 구입한 모양이군. 하, 이 자식 많이 컸네? 감히 나를 속이려 들어?’ “먼저 상인 길드에서 발행한 차용증부터 보여 줘.” “네?왜, 왜, 왜, 왜요?” 시드가 기겁하며 떠듬거렸다. “잘 모르나 본데, 나도 이제 상점을 운영하기로 했거든? 그런데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잖아. 거래할 때마다 확실하게 전표 같은 것을 확인하고 잘 기록해 둬야지. 차용증으로 물건을 구입하면 정확하게 얼마나 샀는지 찍히지? 네가 4,000골드가 있을 리가 없으니 그사이에 대출금을 갚았을 리도 없고.” “그, 그, 그, 그건… .” “… 뒈질래?” 아크가 씨익 웃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가 시드가 눈물을 글썽이며 차용증을 내밀었다. 역시난 기란의 경매장에서 3,404골드만 지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개당 851골드에 사서 아크에게 1,000골드에 팔아먹으려고 한 것이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보니 간덩이가 팅팅 부은 모양이다. 그러나 뭐, 상인이라는 직업이 원래 그런 거니까.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자세는 칭찬해 줄 만하다. 개업을 앞두고 모처럼 너그러워진 아크는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생각보다 싸게 샀군. 잘했어. 여기 3,404골드.” 목돈을 만질 기대에 부풀어 있던 시드는 한숨을 불어 내며 돈을 받았다. 그리고 대강 계산기를 두드려 보다가 그제야 이자에 생각이 미쳤다. “아, 아크 님, 대출금 이자….” “아앙?” 아크가 와락 인상을 쓰며 눈을 부라렸다. 다시 말하지만 적극적으로 이윤을 남기려는 시드의 자세는 칭찬할 만하다. 상대가 아크만 아니라면 말이다. “뭐야? 방금 전에 4,000골드 주겠다고 할 때는 그런 말없었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자리니? 너 지금 날 등치려는 거냐? 앙? 내가 호구로 보여?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이번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지. 어디 한번 진지하게 따져 볼까?” “… 는 당연히 제가 알아서 해야겠죠? 하하하, 당연하죠.” “아, 그런 말이었어? 하하하, 그래 주면 고맙지.” 아크는 금세 인상을 풀며 다정하게 시드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물론 아크가 로코에게 받은 결제 대금은 이자를 포함해서 4,200골드. 그중 시드에게 3,404골드를 지불하고 남은 796골드는 당연히 아크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개업 준비로 현재 전 재산이 400골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아크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골드였다. 그리고 돈 좀 만져 보겠다고 양심까지 팔아 치운 시드는 200골드의 빚만 늘었다. 다행히 멍청한 이슈람이 100골드나 되는 사례비를 챙겨 줬지만 판매 대행 수수료가 40골드 나갔으니 ‘200-100+40=140’ 으로 여전히 140골드가 고스란히 시드의 빚으로 남았다. 어설프게 잔꾀를 부리려다가 되려 ‘피박’을 써 버린 것이다. 이슈람은 시드에게, 시드는 아크에게 … 결국 먹이사슬의 최정상에는 아크가 있었다. ‘하아, 남의 일 같지가 않군.‘ 북실이는 암울한 포스를 휘감고 구석에 찌그러진 시드를 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자세한 자초지종을 모르겠지만, 시드가 또 한 번 아크에게 당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오오, 삽질아! 울먹아!” 고개를 돌린 북실이가 모처럼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북실이의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온 두 동생, 삽질이와 울먹이였다. 유계에서 헤어지고 처음으로 상봉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북실이가 없는 동안 둘도 꽤나 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난 옷차림이 꾀죄죄하기 그지없었다. “크윽, 이 녀석들 이게 얼마 만이냐?” “형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와락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려 댔다. 그때 문득 삽질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번 눈을 깜빡거리더니 움찔하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혀, 형님… 이 느낌은… 서, 설마 카오틱이….” “아, 봤냐? 이게 말이다.” 북실이가 한숨을 불어 내며 설명하려고 할 때였다. 카오틱이라는 말에 울먹이도 움찔하더니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니, 이게 다 사정이 있는 거야. 실은 네 복수를 하다가… 삽질아?” 사사사삭. “우, 울먹아?” 사사사삭. 북실이다 다가가자 삽질이와 울먹이가 슬슬 피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카오틱은 아니죠.” “훌쩍. 형님, 그사이에 나쁜 놈이 되셨군요.” “너, 너희들마저…!” 믿었던 두 동생의 태도에 북실이는 쇼크를 받았다. “야, 너 왜 거기서 얼쩡대? 이제 곧 개업해야 하는데 카오틱이 앞에서 어슬렁거리면 재수 없어. 괜히 어슬렁거리다가 헌터에게 걸리지 말고 유계에 갈 때까지 창고에 틀어박혀 있어.” “아크 님 말대로 하는 게 좋겠는데요?” 결국 북실이도 암울한 포스에 휘감겨 시드 옆자리로 찌그러졌다. 시드와 북실이, 이 두 상인이 불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크만이 알리라. 어쨌든 이로써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인테리어도 바꾸었고, 필요한 상인 출신 아르바이트 점원도 구했다. 물론 멀쩡한 상인 둘이 산골 마을의 점원이 되고 싶을 리 없겠지만, ‘ 아크는 북실이가 카오틱이 풀릴 때까지 데리고 다니는 조건’으로 삽질이와 울먹이를 박봉에 고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 아크 종합상점’이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자, 오늘부터 돈을 갈퀴로 긁어 대는 거야!” 아크는 상점 입구에 부적 같은 것을 붙여 놓고 의욕적으로 말했다. ‘천객만래’ . NPC 를 상대로 3%나 물건값을 더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상점용 아이템이었다. 원래 시드를 꼬드겨 팔아먹을 생각이었지만 상점이 생겼으니 직접 사용하는 게 이득! (란셀 마을에 ‘ 아크 종합상점’ 신장개업! 잡템에서 마법 아이템까지 모든 아이템을 사고팝니다! 중간계에 존재하지 않는 각종 진귀한 아이템을 염가 세일합니다! 오직 아크 종합상점에서만 파는 각종 한약의 효능을 몸으로 느껴 보세요! 채집의 달인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권장! 한방차: 1~3실버 상태 이상 치료제의 가격 혁신! 고약:10~15실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진다! 보약(30일분): 2~5골드 개업 기념 30개 한정 판매! 나딩카의 씨앗:2실버) 아크는 계획대로 한약을 주력 상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처럼 저레벨 유저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란셀 마을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이었다. 마을의 규모가 커진 만큼 상점도 늘어 잡화상점만 3개. 각종 상점을 모두 합하면 12개나 되었다. 그리고 그 상점은 모두 마을 어귀나 중심가에 밀집되어 있었다. 반면 주택가에 있는 상점은 아크 종합상점뿐. 유동인구가 없으니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뭐야, 이거? 이래서야 투자비도 못 건지잖아?’ 아크는 파리만 날리는 상점을 보며 조바심이 일었다. 물건 품질은 자신 있다. 고약은 같은 효능의 물약에 비하면 50% 이상 저렴하고, 능력치를 올려 주는 보약은 100레벨 유저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물건이다. 그러나 아무리 상품이 좋으면 뭐하겠는가? 유저들이 써 봐야 좋은지 안 좋은지 알 것 아닌가? ‘역시 장사는 광고야. 광고 효과는 아이돌이 최고지.’ 아크는 연예계로 진출한 묘족 자나를 찾아가 상점 홍보를 부탁했다. 평소 아크를 흠모(?) 해 오던 자나는 기꺼이 수락했다. “안녕하세요, 우냥. 여러분, 제 멋진 남자 친구 아크 아시죠? 냥냥, 실은 그분이 주택가에 상점을 개업했거든요. 정말 좋은 물건들을 팔고 있으니 앞으로 자주자주 이용해 주냥.” 고양이 춤 공연이 끝난 뒤에 자나가 팬클럽에 상점을 홍보했다. … 효과가 있었다. -망할 놈, 꺼져라. -자나는 모두의 연인이다. -여기 물건 사면 삼대가 망한다! 그 즉시 아크 종합상점의 벽에는 온갖 욕설과 저주가 빼곡하게 적히게 되었다. 아크는 광고 전략을 대폭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치겠군. 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한참을 머리를 쥐어뜯던 아크는 결국 새로운 마케팅을 개발했다. ‘가만? 이거 너무 쉽게 살 수 있으니 좋은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가? 그렇다고 가격을 올리면 저레벨 유저들이 부담스러워할 거고, 그럼 아예 반대로 가 볼까? 광고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숨기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란셀 마을에서 아크는 NPC에게 무조건 OK 라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엄청나다. 그렇다면 활용해 주지 않을 수가 없다. 아크는 간판과 상품 목록을 적어 놓은 푯말을 치워 버리고 묘족, 너구리족, 전직 도적 출신의 주민들을 만나며 마을을 돌아다녔다. 란셀 마을에 묘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건 그 뒤였다. “이봐, 소문 들었어?” “음, 들었어. 엄청난 효과가 있다며?” “소개를 받고 찾아가야만 판대.” 묘족이나 너구리족, 도적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그러다가 유저들이 근처에 오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얼른 입을 다물었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니 유저들이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RPG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비밀 상점 같은 것을 찾아낼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상점에서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진귀한 상품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체로 온라인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게임광이 많았으므로 NPC들의 반응에 비밀 상점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유저들은 때로는 친밀도를 올리고, 때로는 엿듣고, 때로는 협박까지 하면서 비밀 상점에 대해 캐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어서 오십시오!” “무슨 상품을 찾으시나요?” 첫 손님이라 사원 교육을 위해 아크가 손님을 맞았다. 전사 차림의 손님은 심드렁한 눈으로 진열장을 훑어보았다. 가죽이나 뼈, 기타 등등… 진열장에는 아크가 유계에서 모아 온 잡동사니가 주욱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사는 실망하지 않았다. NPC에게 들은 정보로 그런 것은 모두 위장이라고 한다. “흠흠, 여기 소개받은 사람에게만 보여 주는 진귀한 아이템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 어, 어디서 그런 얘기를…?” 아크가 긴장한 표정을 보이자 전사는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알 만한 사람에게 소개를 받았소. 좀 보여 줄 수 있겠소?” “하지만 그건 비밀리에 회원 분들께만 판매하는 것이라….” “어허, 이러면 곤란하오. 소문내지 않을 테니 내게만 좀 보여 주시오.” “하아, 다 듣고 오셨다니 할 수 없죠. 알겠습니다. 대신 사든 안 사든 절대 다른 곳에 가서 여기서 샀다는 말은 하시면 안 됩니다.” “음음, 알았소.” “그럼 먼저 이 메모지를 보십시오. 여기에 이곳에서 ‘선택된 분들’에게만 판매하는 물품 목록과 그 효능이 자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상품명을 말씀하지 마시고 은밀히 필요한 물품 목록과 수량만 적어 주십시오.” 아크가 속닥거리자 전사는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딴청을 피우면서 메모지를 읽어 보았다. 메모지에는 아이템의 상세한 정보와 아크가 직접 사용해 보며 응용해 봤던 방법까지 모두 적혀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길가에서 나눠 줬다면 읽지도 않고 버렸으리라. 그러나 ‘비밀’이라는 유혹에 이끌린 전사는 몇 번이나 다시 읽어 보고는 감탄사를 발하며 물품 종류와 수량을 적어 건네주었다. “이런 아이템들이 있는 줄은 몰랐소. 이것과 이것을 10개씩 주시오.” “아, 하지만 고르신 물건들은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아서….” “개당 1실버씩 더 주겠소.”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자 전사는 안달하며 웃돈까지 약속했다. ‘후후후후, 성공이다!’ 아크는 물건을 받아 들고 허둥지둥 나가는 전사를 보며 씨익 웃었다. 이 마케팅의 핵심은 ‘비밀’에 있었다. 그리고 ‘비밀’은 원래 ‘비밀이 아닌데’에 매력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누군가 비밀을 알고 있다. 아마도 꽤나 우월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으면 그런 우월감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아크 종합상점을 찾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크가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얼마 뒤에는 곧 다른 유저를 데리고 와서 ‘내 친구인데 이 녀석도 나처럼 살 수 있게 해 주시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템 효능을 확인하며 놀라는 친구에게 ‘후후후, 어떠냐? 나는 이런 비밀 상점도 알고 있다.’ 라는 표정을 지으며 뻐겨 대는 것이다. 마케팅은 대성공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기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유저들이 은밀하게 아크 종합상점에 모여 들었다. 그리고 매번 ‘매진 임박’이라는 말에 10개, 20개씩 사재기를 해 댔다. 덕분에 그렇게 많던 한약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우와,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북실이 혼자만으로는 재료 공급이 턱도 없겠는데?’ 재료 공급이 판매를 따라가지 못하자 아크는 훈련소의 바란족을 찾아갔다. 수액 채취 따위를 하며 살았던 바란족은 대부분 ‘채취’ 스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아크는 금전 개념이 없는 그들에게 적당히 잡템을 나눠 주고 란셀 주변의 식재료와 약초, 마법 재료를 몽땅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파란 피부의 NPC가 돌아다니며 재료를 긁어모으자 ‘란셀 마을에 스머프가 산다.’는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건… 좀 더 훗날의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아크의 상점은 ‘비밀스럽게’ 유명해졌다. ‘이제야 상점이 궤도에 올랐군. 하지만 아직 멀었어. 주택까지 생각하면 투자금이 거의 4000골드 이상 들었어. 서너 달은 이 상태를 유지해야 수익이 남을 거야. 뭐, 이제 란셀 마을에도 우편함이 생겼으니 내가 꾸준하게 물건을 조달해 주면 되겠지만….’ 그 무렵 예상외로 장사가 너무 잘되자 아크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장사가 잘되는 건 좋은데 너무 정신이 없는걸. 이제 상점이 자리 잡으면 시드를 통해 시르바나의 교역소와도 연결해서 큰 장사를 해야 할 텐데. 내가 빠지면 삽질이와 울먹이만 남잖아. 둘에게 상점과 그런 일들을 다 맡기기는 좀 그런데….’ 그렇다, 아크는 고작 란셀 마을의 비밀 상점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상점을 만들 때부터 시르바나 교역소와의 연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아크가 시르바나를 되찾으면 시르바나와 란셀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역 루트를 확립한다는 장대한 포부의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인도 아닌 아크가 란셀 마을에서 상점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삽질이와 울먹이에게 위임시켜 놓기도 불안했다.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그때 아크의 귓가에 로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 물건은 가장 회전율이 좋은 거잖아요. 바깥쪽에 쌓아야죠.” “여기 먼지 좀 봐. 대체 청소는 언제 한 거예요? 시켜야 한다는 자세가 문제라고요.” 요즘 로코는 게임에 접속하면 상점에 눌러앉아 삽질이와 울먹이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일과가 되어 있었다. 물끄러미 그런 로코를 바라보던 아크는 손가락을 튕겼다. ‘아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로코는 갱생단의 경제권을 쥐고 300이나 되는 도적의 뒷바라지를 한 경험이 있었다. 당연히 손익 계산에 밝은 것은 물론이고 시드나 삽질이, 울먹이는 이미 로코에게 꽉 잡혀 있었다. 뭣보다 로코와는 항상 전화 통화를 하기에 멀리 나가 있어도 상점의 상황을 파악하고, 바로바로 필요한 지시를 내릴 수 있다. 그야말로 점장을 맡기기에 최상의 조건! “로코, 너 상점의 점장을 맡아볼래?” “점장요?” “그래, 내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은데 너라면 믿고 맡길 수 있어.” “할게요. 저 할게요!” 아크의 말에 로코가 팔짝팔짝 뛰며 소리쳤다. “보수는….” “보수는 필요 없어요.” ‘오빠 돈이 내 돈인데요, 뭐….’ 로코가 헤벌쭉하게 웃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그런 로코의 머릿속에서 이미 기름기 좔좔 흐르는 판타지가 상영되고 있었다. “오빠, 골드를 이따만큼이나 벌어 왔어요!” “오오오, 역시 내 내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버닝 러브다, 마이 달링!” “호호호, 저 푸른 초원 위에 골드로 집을 지어 봐요.” “아하하하, 우리 솜사탕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우헤헤헤,’ 로코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침을 뚝뚝 흘려댔다. 삽질이와 울먹이가 주춤주춤 물러나며 떠듬거렸다. “저, 저 여자 왜 저래? 왜 침을 질질 흘리며 히죽거리는 거야?” “살짝 맛이 간 게 분명해요. 혀, 형님, 우리 저 여자 밑에서 일해야 되는 거예요?” “악마 같은 사장에, 미친 점장이라니… 대체 우리는 왜 항상….” “흑흑흑, 형님, 무서워요.” 삽질이와 울먹이는 부둥켜안고 공포에 떨어 댔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로코는 아크 종합상점의 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세계수의 전설 “며칠 전에 셀리브리드에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TV를 켜자마자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임 특종의 메인 MC를 맡고 있는 여성 진행자의 목소리였다. 한 주간 뉴 월드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을 다루는 코너였다. 이번 주에 그 코너를 장식한 사건은 바로 셀리브 리드의 몬스터 습격 사건이었다. 실제 게이머라고 알려진 남성 리포터가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셀리브리드는 가장 많은 유저가 시작하는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입니다. 도시 내부는 물론, 외곽에도 엄청난 숫자의 경비병이 몰려 있는 철옹성이죠. 설사 드레곤이라도 셀리브리드에 난입할 수는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깨는 사건이 벌어졌죠?” “그렇습니다. 놀랍게도 셀리브리드 안에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난입한 것입니다.” “일단 자료 화면을 보시지요.” 곧이어 화면이 바뀌어 셀리브리드 광장이 나타났다. 한가하게 길을 거니는 상인들, 분수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오랜 여행을 끝마치고 벤치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는 전사… 실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정경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연 광장 한복판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게이트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실로 무시무시한 외형의 몬스터가 수십 마리나 몰려나온 것이다. “크윽, 여, 여기가 어디냐?” “이방인이다. 이방인들이 이렇게나 많이…!” “모두 적이다. 죽여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유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긴급 출동한 수비대원들 덕분에 큰 피해 없이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몬스터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던 셀리브리드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화면이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실로 경악할 만한 일입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아직 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뒤 곧바로 고위 마법사들이 동원되어 주변을 살폈지만 그 의문의 게이트에 대해서는 아직 공식 발표된 내용이 없습니다. 단지 그런 종류의 게이트나 몬스터들이 아직 보고된 바가 없어 다른 차원과 연결된 게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여성 진행자가 과도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다른 차원이라니? 뉴 월드에 다른 차원이 존재하나요?” “물론입니다. 제작사 측에서는 아직 정확하게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저들이 알고 있는 중간계를 포함해 몇 가지 차원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번 사건에 많은 유저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가 그 때문이겠군요.” “네, 지금까지 소문으로만 돌던 다른 차원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혹시 이번 사건이 과거 작센 성의 이벤트 퀘스트처럼 또 다른 전쟁을 예고하는 건 아닐까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에 제작사인 글로벌엑서스는….” 현우는 그 일이 TV에까지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셀리브리드의 몬스터 습격 사건, 사실 이 사건의 주범은 현우였다. 현우는 계곡 마을 근방 숲에서 듀크와 맞붙었을 때, 오십 마리의 나크족을 처리하기 위해 ‘ 차원 이동의 가루’로 게이트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렇다, 셀리브리드에 나타난 게이트는 바로 이 게이트의 출구였다. 몬스터는 게이트에 쳐 넣어진 나크족 무리. 그 뒤로 잊어 먹고 있었는데 그게 TV에 나온다고 다 믿을 건 못 되는군.“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번에 올려놨던 경매품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경매가 완료됐습니다. 죽음이 각인된 지팡이:1,110만원) (-경매가 진행 중입니다. 마가로프의 최상급 연금 도구: 현재 900만 원….) 유계로 들어가 얻어 것 가운데 가장 굵직한 아이템들. 과연 예상대로 엄청난 가격에 판매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죽음이 각인된 지팡이’ 는 예상보다는 못 받았다. 처음에 올려놨을 때 500만 원부터 시작했는데 하루 만에 경매가가 1,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경매가가 이렇게까지 빨리 올라간 적은 처음이라 2,000만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10만 원씩 몇 번 올라가더니 결국 1,110만 원에 낙찰되었다. “네크로맨서를 키우는 유저가 그만큼 적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아이템 하나에 1,110만 원이면 엄청난 대박인 건 분명했다. 반면 ‘마가로프의 최상급 연금 도구’는 상승 폭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경매 만료일까지 아직 3일이나 남았으니 이 추세라면 ‘죽음이 각인된 지팡이’ 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될 듯싶었다. 네크로맨서와 달리 연금술사는 꽤 많은 유저가 키우고 있는 덕분이다. “수수료를 떼도 2,000만 원은 손에 들어온다.” 현재 현우의 은행 잔고가 대략 1,200만 원. 매달 600가량을 지출해야 하는 현우로서는 제법 많이 모은 셈이다. 거기에 이번에 얻은 수입을 합하면 3,200만 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현우는 잔고가 없을 때보다. 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돈이란 참으로 묘한 놈이다. 없을 때는 그러려니 하는데 조금이라도 모이면 왜 그렇게 쓸데가 많은 것처럼 생각되는지 모르겠다. 현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돈이 모이기 시작하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어머니도 많이 나아지셨으니 머지않아 통원 치료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때가 되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좀 더 위생적인 집으로 이사해야 할 텐데…. 그리고 언제 입사 시험이 끝날지 모르니 만약을 위해 유니트를 구입할 정도의 돈은 따로 만들어 둬야 해.’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숨 막히던 시절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었다. “어쨌든 수입이 불안정한 만큼 함부로 돈을 쓸 수는 없어.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면 더 바짝 벌어야 해. 게다가 이번에 상점을 만드느라 3,500골드나 지출했잖아. 투자라도 일단 지출은 지출이야. 당분간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겠다.” 그때 마우스를 움직이던 현우의 손이 움찔하며 멈췄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를 봤기 때문이다. (-즉시 구매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400만 원) “즉시 구매? 그것도 400만 원?” 현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칼자프를 처치하고 얻은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 이건 마법 아이템이라 아크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특수 옵션이 붙어 있었지만 같은 레벨의 방어구와 비교하면 성능에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게다가 ‘증오’ 라는 듣도 보도 못한 스탯이 없으면 특수 옵션조차 사용할 수 없다. ‘잘해야 200만 원이나 받겠지.’ 그리고 불과 어제만 해도 180만 원에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2배에 달하는 400만 원이로 즉시 구매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야?” 너무 어이가 없어 현우는 일단 구매 요청자의 아이디를 검색해 보았다. “어? 어라? 서, 설마 이 녀석…!” 경매 사이트 아이디 ‘매력 남’! 놀랍게도 일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아이디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크는 이 아이디를 가진 사람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신성한 대지의 방패’를 즉시 구매해 갔던 사람. 그리고 그 방패는 살린의 탑에서 현우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렇다,‘매력 남‘ 은 아란의 아이디였다. 사실 현우는 유계로 들어가기 직전에 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일전에 현우는 헌터로 등록하고 현상 수배된 아란을 처리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유계로 향하기 전에 셀리브리드에 들러 500골드의 현상금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법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전해 들었다. 현상 수배자가 헌터에게 죽으면 자동으로 감옥에 갇힌다. NPC는 그걸 확인하고 현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관의 NPC 는 아란의 감옥에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현우는 아직 현상금 500골드를 받지 못한 상태였던 것.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분명 아란은 내가 죽는 걸 확인 했는데….’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 뒤로 아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어딜 가나 화제를 뿌리고 다니는 녀석이 갑자기 증발해서 현우는 아란이 게임을 접었다고 생각했다. 하긴, 캐릭터 자체를 삭제해 버리면 현상금을 못받게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경매 사이트에 나타나 아이템을 구입하는 것이다. 뉴 월드는 한 사람이 2개의 캐릭터를 가질 수 없으니 분명 아란이다. 그것도 레벨 200대의 아이템을 구입한다면 그동안 레벨을 꾸준하게 올렸다는 말이 아닌가? ‘이상한 건 그뿐이 아니야. 아란은 돈이 없는 놈이 아니다. 썩어 날 정도로 많이 있지.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내 아이템을 사려는 거지? 경매 사이트에 레벨 200대의 레어 판금장갑도 많이 올라와 있는데? 400만 원이면 내 판금 장갑보다 더 좋은 마법 장갑을 살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상대가 아란이 아니었다면 굳이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다. 그리고 현우는 곧 이유를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아란 녀석은 꼭 이 장갑이 필요한 거야. 그 이유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2배로 즉시 구매를 요청할 정도면 이 판금 장갑이 아니면 안 되는 겨야. 그렇다면…’ 현우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상대는 돈이 많이 놈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서 이용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현우는 즉시 구매 요청을 거절하고 갱생단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들 경매 사이트에 아이디 있죠?” “어, 있지. 왜?” “뭐 하려고?” “돈 좀 벌려고요.” 현우가 키득거리며 대답했다. 보통 경매 사이트는 계좌 번호와 직결되기 때문에 남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갱생단원은 별다른 질문도 없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이렇게 10개의 아이디를 손에 넣은 현우는 곧바로 시세 조작에 들어갔다. “남은 경매 기간은 앞으로 나흘. 어디 그동안 장난 좀 쳐볼까?” 현우는 먼저 짝퉁의 아이디로 401만 원으로 입찰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정도 지나니 ‘매력 남’이 450만 원으로 다시 입찰했다. 그러면 현우는 1시간 정도 있다가 다시 불끈이의 아이디로 접속해 451만 원으로 입찰했다. 그렇게 대략 8시간 동안 핑퐁 게임을 하자 200만 원짜리 판금 장갑이 600만 원까지 올라갔다. ‘후후후, 약 오르지? 약 오를 거다. 만 원씩 올리니 포기하기도 자존심 상하고, 잔챙이를 따라와야 하니 약이 올라 죽겠을 거다. 이번 기회에 못 받은 현상금까지 받아 내 주마.’ 현우는 히죽거리며 다시 601만 원에 입찰했다. 그런데 입찰을 하고 한참이 지나도 재입찰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야 현우는 더럭 겁이 났다. ‘뭐, 뭐야? 설마 이 자식… 그냥 포기했나?’ 고작 200만 원짜리 판금 장갑을 600만 원에 팔아먹을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현우가 보기에도 머리에 총 맞지 않으면 600만 원 주고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장난 반, 욕심 반으로 한 번 더, 한 번 더 하다가 600만 원을 넘겨 버린 것이다.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입찰해라….’ 현우는 이제 기도하는 심정으로 뚫어져라 모니터를 노려보았다. 만약 이대로 아란이 포기하면 이번에 입찰한 얍삽이 통장에서 600만원이 지급된다. 물론 그 돈은 현우에게 돌아오니 문제 될 게 없지만 7%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생돈 42만 원이 그냥 날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판금 장갑을 다시 팔아야 하니 또 한 번 수수료가 날아간다. 아란이 이대로 포기하면 현우에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돼도 재입찰이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망했다!’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경매 사이트를 나오려 할 때였다. (즉시 구매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800만 원) “8…800만 원!” 현우가 경악성을 터뜨리며 확인해 보니 역시 아란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사기로 한 모양. 그렇다면 이게 아란이 제시할 수 있는 한도액이라는 뜻이다. 대체 아란이 왜 이 판금 장갑에 목을 매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세의 4배에 팔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현우는 얼른 컴퓨터로 다가가 승낙 버튼을 눌렀다. “후,후후후후, 아란, 역시 너는 봉이었어!” 그렇게 비록 뉴 월드는 아니지만 또 한 번 아란에게 승리한 현우였다. 잠시 후, 현우는 전화로 임금을 확인하고 흐뭇한 얼굴로 유니트에 올라탔다. 유니트가 뇌에 접속하는 소리가 울리며 다시 현우의 직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고생한 만큼의 대가를 약속해 주는 땅, 뉴 월드였다. “흠….” 아크는 두루마리를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상점에서 접속한 아크는 로코에게 보나가 찾아왔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드디어 두루마리의 해독이 완료된 것이다. “어떤 게 아크 형이 원하는 정보인지 몰라서 일단 열 장을 모두 해독했어요. 따로 번역본을 만들어 놨으니 읽어 보세요.” 베스튜라가 지목했던 열 장의 두루마리는 유계의 탄생에 얽힌 한 편의 서사시였다. 그것을 쭉 읽어 보던 아크는 곧 원하는 정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서사시의 특성상 워낙 추상적이 표현이 많아 일일이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놀랍게도 수백 년 전 유계는 원래 중간계의 일부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하늘을 가르고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대재앙이 닥쳤다. 수많은 종족과 대지가 그 대재앙에 삼켜져 사라졌다. 그 가운데 유계의 균형을 유지하던 세계수도 있었다. 세계수가 사라지자 유계에는 엄청난 차원의 폭풍이 몰아쳤다. 유계는 그 폭풍에 휘말려 중간계에서 떨어져 나와 전혀 다른 차원에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차원의 폭풍은 여전히 유계의 하늘에서 난폭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아크가 빙글빙글 돈다고 느꼈던 유계의 하늘은 사실 이 차원의 폭풍이었던 것이다. 또한 유계의 지형이나 날씨가 제멋대로 돌아가던 것도 이 차원의 폭풍의 영향 때문이었다. 어쨌든 당시 모든 대지가 온전한 상태로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작은 조약돌이난 나무 한 그루, 때로는 거대한 산맥이 차원의 뒤틀림 속에 갇혀 ‘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형태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베스튜라가 말했던 ‘ 언더그라운드’ 였다. 아쉽게도 두루마리에 적혀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정작 아크가 필요로 하는 언더그라운드를 본래의 형태로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두루마리의 내용을 해독한 덕분에 중요한 단서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유계의 세계수!’ 유계에도 중간계처럼 세계수가 있었고 그게 파괴되어 차원의 폭풍에 휘말려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건의 핵심에는 세계수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세계수의 일이라면 세계수로부터 알아낼 수 있으리라.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아크는 가방에서 ‘ 신성한 나뭇가지’ 를 꺼내 들었다. 포포의 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 신성한 나뭇가지’. 뭐, 이런저런 효과가 있지만 지금 아크에게 필요한 건 세계수 이그드라실과의 통신 기능이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해야 통신이 연결되는 거지?” 아크는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돌려 봤지만 역시 다이얼이나 통화 버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일단 나뭇가지를 이마에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그드라실을 떠올리자 갑자기 아득한 기분이 들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헉, 여, 여기가 어디야?”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랍게도 아크는 잠깐 사이에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숲 속에 위치한 훈련소에 있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이 펼쳐진 넓은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금화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문자그대로 돈 밭이었다. 이쯤 되면 여기가 어디인지 궁금해할 여유가 없다. “이, 이게 웬 횡재야!” 아크가 괴성을 지르며 돈 밭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금화를 퍼담았다. 그러나 금화는 아크의 손에 닿기가 무섭게 모래로 변해 손가락 사이로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당황한 아크는 다시 금화를 집어 올렸지만 몇 번을 다시 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뭐야? 장난해?”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퍼부을 때였다. 눈앞에 흐릿한 빛이 어리더니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랫만에 다시 보는군, 인도자여. “엇? 이그드라실!” 아크는 벌떡 일어나 이그드라실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대체 어디입니까?” -하하하, 그러고 보니 자네는 이곳이 처음이겠군. 이곳은 자네의 정신세계라네. 이곳의 모든 풍경은 자네의 심상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지. 그렇다고 해도… 자네의 정신세계는 … 뭐랄까… 참 … 대단하네. “놀리지 마세요.” -놀리다니! 정말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세속적인 정신세계는 나도 처음 들어와 보네. 이그드라실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긴 아무리 게임 속이라지만 돈 밭이라니? 어쩐지 좀 심하다 싶었다. 아크가 암울한 표정으로 한숨만 불어 내자 아그드라실이 먼저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나를 부른 건가? “아, 물어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아크는 그제야 본래의 목적을 기억해 냈다. -물어볼 일? “네, 유계의 세계수에 대해서입니다.” -뭐라고? 유계의 세계수? 설마 자네 유계에 갔던 건가? 이그드라실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며 아크에게 다가갔다. 격렬한 반응에 아크는 어리둥정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 사정이 있어서 그동안 유계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계를 여행하던 도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필요한 어떤 물건이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차원의 틈새에 끼게 된 것니다. 그 물건은 근래에 그렇게 된 것 같지만, 원래 그런 현상은 유계의 세계수가 파괴된 게 원인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아크가 두루마리에서 읽은 내용을 대강 간추려서 전해 주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 두루마리의 내용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네. 아무래도 얘기가 길어질 듯하군, 하지만 이제 자네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지. 이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도 한 번 말한 적이 있지만 세계수는 이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실로 세계수의 역할을 잘 표현한 말이지. 그리고 원래 이 세계에는 네 그루의 세계수가 존재했었네. 이 네 세계수는 각각 동서남북의 세계를 고정시키고 있었지. 그중 하나가 바로 나네. 밑도 끝도 없이 뉴 월드의 역사 강의를 시작하는 이그드라실이었다. 어쨌든 이그드라실의 말에 따르면 본래 뉴 월드는 지금보다 훨씬 큰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백년 전 그 대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암흑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자의 손에 의해서…. 당시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려던 암흑의 제왕은 7인의 영웅에게 패퇴해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암흑의 제왕에게는 최후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어둠에 속한 모든 존재의 생명력을 끌어 모아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갈 강대한 마법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것이 두루마리에 적혀 있던 대재앙이었다. -끔찍했지. 세상의 모든 것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네. 하지만 어둠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는 항상 그에 대항하는 빛이 있는 법.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7인의 영웅도 고대의 비전서를 찾아 내 강력한 결제 주문으로 맞섰네. 7인의 영웅이 어둠의 마법에 대항할 수 있는 마력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네 세계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세계수가 모든 마력을 결제 주문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제 마법으로도 어둠의 마법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했다. -결제 마법 덕분에 넓은 대지와 수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네. 하지만 결제 마법의 외곽에 있던 곳은 어둠의 마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 강력한 저주가 대지를 휩쓸었고, 수많은 생명이 불타 버렸네. 세계수는 이를 막기 위해 남아 있던 모든 힘을 사용해야 했지. 세계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힘까지 말이양. 이그드라실은 아득한 눈길로 먼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덕분에 그 땅의 생명들은 지킬 수 있었지만 나를 제외한 세 세계수가 힘을 잃고 시들어 버렸네 . 이때 그 세계수들이 관장하던 대지는 이 세계에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차원의 폭풍 속으로 떨어져 나가게 된 거네. 그중 하나가 세계수 유즈리아가 관장하던 스탄달… 자네가 말하는 유계네. 이 세계가 잃어버린 대륙. 아크는 그제야 유계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왔던 정보창을 떠올렸다. 분명 그 정보창에는 유계가 아닌 ‘잃어버린 세계= 스탄달’ 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간계가 잃어버린 세계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뭐 덕분에 뉴 월드 역사 공부는 꽤 됐지만 사실 아크가 알고 싶은 건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그럼 언더 그라운드를 본래의 차원으로 되돌릴 방법은….” -자네가 말한 내용대로라면 그 언더그라운드라는 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면 유계의 차원을 안정시키는 방법뿐이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한 일이지. “어떤 방법입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유계의 세계수… 유즈리아는 생명이 다한 것이 아니야. 정말 유즈리아의 생명이 다했다면 유계가 차원의 밑바닥에서 버티고 있을 리가 없지. 단지 차원의 틈에 갇혀서 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네. 그렇다면 해답은 간단하지. 유즈리아를 부활시킨다면 유계는 다시 본래의 세계로 돌아오고 모든 차원이 안정되겠지. “세계수를 부활시켜요?” -그렇지. 그 열쇠는 이미 자네의 손에 있네. ‘신성한 나뭇가지’. 그것은 새 시대를 살아갈 세계수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보물이네. 짐작컨대 현재 유즈리아는 몸 깊은 곳에 정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 거네. 만약 자네가 유계로 돌아가 유즈리아에게 그 힘을 일부를 나눠 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네. 이그드라실이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인도자여, 나도 부탁이네. 유즈리아는 온몸으로 이 세계를 지켜 낸 존재네. 그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이고, 자네라면 그를 도울 수 있으리라 확신하네. “헹, 이런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에게 그런 기대를 해도 될까요?“ 아크는 이외로 속이 좁은 녀석이었다. 빈정 상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그드라실이 빙긋 웃으며 하늘을 가리켰다. -이런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니 그런 기대를 하는 걸세. “무슨… 헉!” 이그드라실의 손끝을 따라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올리던 아크가 기겁하며 비명을 터뜨렸다. 세속적이다 못해 천박하기까지 한 아크의 정신세계. 그곳의 금화가 번쩍번쩍 빛을 낼 수 있는 하늘에서 떠 있는 태양 덕분이었다. 아니, 태양인 줄 알았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빛을 내뿜는 어떤 존재였다. 천박한 아크의 정신세계가 어둠에 삼켜지지 않게 빛을 내뿜어 주는 그 존재는…. “어, 어머니!” -… 정신세계에서 저렇게까지 빛을 내는 존재는 나조차 처음…. “할게요. 한다고요! 목숨 걸고 하면 되잖아요!” 아크는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 이그드라실의 입을 틀어 막았다. 그제야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유계 세계수의 부활 당신은 이그드라실로부터 감춰진 역사의 일부를 전해 들었습니다. 세계의 균형을 되찾는 것은 뉴 월드의 모든 플레이어의 사명입니다. 그 첫 단계는 유계의 세계수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는 일입니다. 만약 세계수의 부활을 성공한다면 중간계와 역사에서 사라졌던 스탄달은 다시 예전처럼 중간계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난이도:☆☆☆☆》 ‘퀘스트? 게다가 난이도가 별!’ 이 퀘스트가 바로 전승 퀘스트라는 뜻! 전승 퀘스트는 뉴 월드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한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퀘스트다. 그러나 이전에 한 번 해 본 바로는 어렵기는 죽어라 어려운 반면, 보상은 난이도에 걸려 있는 별 외에는 딱히 없었다. 실속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별이 4개니 예전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아닌가? ‘무슨 슈퍼 마ㅇ오도 아니고… 별을 모아 대체 뭘 하라는 거야? 뭐, 이 퀘스트가 아니라도 유즈리아를 되살리기는 해야 하지만….’ 정신세계를 나온 아크는 한숨을 불어 냈다. 퀘스트를 해결할 방법을 알아냈다. 그러나 막상 꼼꼼히 생각해 보니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면 목적했던 대로 언더그라운드가 사라진다. 그러나 동시에 유계 자체가 중간계로 이동한다.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지금까지 아크가 독식해 온 유계가 중간계로 떠오른다면 유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게 뻔하다. 그러나 그것도 차후 문제였다. 만약 아크가 퀘스트를 하는 사이 나크족과 헤르메스 연합이 유계를 정복하면? ‘현재 유계는 바란족과 나크족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크족과 헤르메스 연합이 유계를 정복하면 헤르메스 연합이 유계의 남부를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커. 그 상태로 유계가 중간계의 일부가 돼 버린다면….’ 헤르메스 연합이 얻게 될 이득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막연하게 바란족이 나크족의 정복을 막아 주기를 바랄 수도 없다. 이미 베스튜라도 말했지만 바란족이 모두 힘을 합쳐 나크족과 싸워도 승산이 별로 없다. 하물며 헤르메스 연합이 뒤를 받쳐 준다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대로 손놓고 지켜본다면 헤르메스 연합이 유계를 차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는 뜻. 사실 퀘스트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물론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세력이 있었다. 예전에 시르바나를 차지했던 다크에덴, 갱생단과 란셀 마을의 묘족, 너구리족, 전직 도적 그리고 작센 성의 병사들로 구성된 공격대. 그러나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도 고작 수십 명이다. 반면 이번에 치러질 전쟁은 길드전이나 공성전의 범주가 아니었다. 바란족과 나크족의 종족 전쟁! 수십 명의 지원군이 바란족에게 가담한다고 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면으로 맞붙으면 나크족은커녕 헤르메스 연합조차 당해 내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격대 수준이 아니라, 한 종족과 맞먹는 레벨의 세력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크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세력이 말이다. ‘꼭 나크족을 쳐부수지 못해도 상관없어. 어차피 나크족이 유계를 정복하지 못하면 헤르메스 연합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을 거야. 즉, 나크족의 공세를 막으면 이전 상태만 유지할 수 있어도 목적은 달성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가 그런 세력을 ….’ 한숨을 푹 불어 내던 아크의 머리가 튕기듯 치켜 올랐다. ‘있다! 뜻대로 될지는 모르지만 유계의 전황을 바꿀 만한 세력이 있어!’ “샴바라!” 도 서 명 : 아크 지 은 이 : 유성 펴 낸 이 : 이종주 출 판 사 : 로크미디어 출판년도 : 2009년4월 27일 봉 사 자 : 고부경 <지은이 소개/ 유성> 작가 유성의 변신이 놀랍다! 그의 전작 『로스트 킹덤』은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전략, 전술이 어우러진 정통 판타지로 다소 무게감 있는 글이었다. 그런 그가 180도 변신해 돌아온 작품 『아크』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게임 소설이 지닌 재미를 극대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크』는 맛있다. 마치 지금 막 담은 겉절이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처럼 신선함이 화악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르 문학 사이트 ‘문피아’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된 『아크』.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올여름 작가 유성의 손끝을 주목한다. <차례> ACT 1 소환수는 애정을 먹고 자란다? ACT 2 유계로 GO, GO, GO! ACT 3 Show me the money! ACT 4 전쟁은 사업이다 ACT 5 특공대 ACT 6 아게이론 ACT 7 관문 돌파! ACT 8 붉은 남자의 역습 ACT 9 유계 떠오르다! <소개 글, 서평> 게임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하나 초반부터 꼬여 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아크, 그의 집념 어린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 현재, 미래 그리고 가상현실까지 잡초의 끈질긴 모습을 보여 주마! <약초!!!> -지금껏 읽은 게임 소설 중 남희성 작가님의 『달빛조각사』 이후로 가장 제 맘을 이끄는 소설입니다. 『아크』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되어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일리나드> -딴말 말고, 읽으면 재미있음. 수많은 독자들의 호평! 이제 그것을 확인할 때다! 소환수는 애정을 먹고 자란다? “에? 이게 뭐야?” 어두운 동굴 속에 당혹성이 울렸다. “분명 여기가 틀림없는데….” 아크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지형지물을 확인하고, 지도를 확인하고, 기억을 되살려 봐도 역시 이곳이다. 잘못 찾아왔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이전에 이용했던 통로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육중한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크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생각에 잠겼다. 현재 아크가 있는 곳은 슈덴베르크 왕도, 셀리브리드의 남부에 위치한 산속이었다. 란셀 마을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공사다망한 아크가 몸소 이곳까지 행차하신 이유는, 바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전문 암살 조직 다크브라더와 접선하기 위해서였다. 아크의 눈앞에 닥친 시련…이라기보다는 퀘스트《신기루 서재》와 《유계 세계수의 부활》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크브라더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아무리 게임이라도 한 세력을 뜻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크는 얼마 전 다크브라더의 반란 진압을 도와 친밀도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 또한 유계의 상황을 파악하고 다크브라더를 설득할 만한 명분을 생각해 냈다. ‘예상대로 얘기가 진행된다면 교섭을 성공시킬 수 있어!’ 그러나 아크의 계획은 엉뚱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다크브라더의 본거지 살린의 탑은 ‘숨겨진 마을’이다 그곳으로 통하는 통로는 둘, 암살 의뢰를 받는 접선 장소와 반란을 일으켰던 나베인의 은신처에 숨겨진 비밀통로. 지금 아크가 앉아 있는 곳도 그 동굴 속이었다. 그런데 없다. 분명히 이 앞에 있던 통로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설마 몽땅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리는 없고, 살린의 탑은 분명 이 안쪽에 있을 텐데… 대체 왜 입구를 다 막아 놓은 거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혹시 전문 헌터 조직 따위에게 본거지를 들켜 피치 못하게 피난 갔다든지….’ 만약 그렇다면 이만저만 난감한 게 아니다. ‘아니지, 그건 절대 아니야.’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수백 년간 어둠 속에서 암약해 온 다크브라더. 그들이 유저나 NPC 조직과 심각한 마찰이 생겼다면 인접한 셀리브리드는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시끄러워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곳에 오기 전에 들렀던 셀리브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조용했다. ‘그렇다면 다크브라더가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니야. 분명 이곳에 있다. 단지 어떤 사정이 있어서 입구를 막고 은신 중인 거야.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상 아무리 입구를 막았다고 해도 수백 명이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을 리는 없겠지. 즉… 다른 통로가 있는 가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무슨 사정으로 입구를 숨겨 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에 물러설 내가 아니지.’ 그렇다. 입구를 막았다고는 하나, 이 부근에 본거지가 있는 이상 암살자들은 이 숲을 정찰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은신’을 사용하겠지. 그러나 아무리 ‘은신’을 사용해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 “라둔, ‘스토킹’으로 주변을 탐색하라.” 쌕쌕, 쌕쌕쌕쌕! 동굴에서 나와 명령하자 허리에서 라둔이 펄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훑으며 혀를 날름거리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라둔이 ‘스토킹’을 사용했습니다. 1시간 내에 근방을 지나간 모든 생명체의 발자국을 찾아냈습니다. 스킬이 발동하자 예상대로… 아니, 예상 이상으로 많은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덕분에 아크는 더욱 난감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맞아, 그로고 보니 이곳은 셀리브리드 남부 지역이었지.’ 당연히 그만큼 유저나 NPC의 이동이 활발한 곳이다. 반면 라둔의 ‘스토킹’ 은 특정 대상을 지정하지 않으면 그 주변의 모든 흔적을 검색한다. 수십, 수백 개의 발자국이 뒤엉켜 사방으로 뻗어 있으니 어떤 것이 암살자의 발자국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는 것이다. “미치겠군.” 쌕쌕? 쌕쌕쌕쌕? 스킬을 성공시킨 라둔이 칭찬해 달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러나 아크가 여전히 한숨을 푹푹 불어 내자 ‘아빠, 내가 뭐 잘못했나요?’ 하는 눈빛을 보내며 눈치를 살폈다. 아크는 쓴웃음을 지으며 라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야, 잘했어. 이렇게 많은 발자국을 찾아내느라 고생했다.” ‘하지만 도움은 안 된 거죠? 그렇죠?’ “그래도 아무런 단서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미안해요, 아빠. 전 쓸모없는 뱀이었어요.’ 아크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라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데드릭이나 라자크가 이런 장면을 봤다면 툴툴거렸겠지만, 정말이지 이 녀석은 도저히 미워할 구석이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건 뻥이다. 좀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또 감각이 무딘 손가락도 있는 것이다. 덕분에 라둔에 대한 아크의 애정은 항상 120%! 이제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아프든 안 아프든 열 손가락이 다 필요하지만…. ‘뭐, 어쨌든 앉아서 발자국만 노려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일단 어디든 찾아봐야….’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몸을 일으킬 때였다. “어라?” 발자국을 바라보던 아크는 문득 묘한 부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아크는 라둔이 찾아낸 발자국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그런데 막상 이렇게 수백 종류의 발자국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발자국의 생김새가 약간씩 다르다!’ 숨은그림찾기나 다른 그림 찾기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처음 발견하기는 힘들지만, 한 번 찾아내면 지금까지 왜 그걸 못 봤을까 싶을 정도로 그 차이는 뚜렷해지기 마련이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발자국들이 약간씩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알아내자 그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맞아, 그러고 보니 뉴 월드에도 신발은 여러 종류가 있어. 그리고 신발을 신는 유저나 NPC의 체격도 전혀 다르다. 신발의 종류와 신는 사람의 체격에 따라 발자국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거야. 그렇다면?’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봤던 외국 드라마가 떠올랐다. 오래전 유행했던 과학수사를 다루는 미국 드라마 CSI! 그 드라마 속에서 수사관들이 발자국 하나만으로 범인의 체격이나 성격, 습관 등등 많은 정보를 알아내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수사관이 잘난 척하며 ‘발자국은 제 2의 지문이다.’라고 말하던 장면도 생각난다. 뉴 월드에서도 그런 방법을 적용시킬 수 있지 않을까? ‘CSI 정도는 아니지만 간단한 정보는 나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다시 발자국을 살피며 나름대로 추리해 보았다. “어디 보자… 이 발자국은 깊이가 얕으면서도 발의 형태가 고스란히 찍혀 있어. 분명 천 계열이라면 상인이나 마법사 직업을 가진 캐릭터라는 말이겠지? 반면 이 발자국은 깊이가 투박하다. 체중이 꽤 많이 나가고 투박한 신발을 신었다는 말이니까, 전사나 기사로군. 내가 찾는 건 암살자니까 가죽 계열의 신발을 신고 있을 거야. 여기에는 없군. 라둔, 좀 더 찾아봐.” 쌕쌕? 쌕쌕쌕! 갑자기 아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자 덩달아 신 난 라둔이 꼬리를 흔들어 댔다. 그리고 주변의 발자국이란 발자국은 몽땅 찾아냈다. “좋아, 이거다! 확실해!” 소거법으로 하나하나 지워 가던 아크는 곧 모든 조건에 부합되는 발자국을 찾아냈다. 가죽 신발을 신고 찍힌 듯한 발자국. 가죽 신발은 일반 NPC나 유저들도 많이 사용한다. 아크 역시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찾는 발자국은 보폭이 좁고 촘촘한 것이다. 일반 NPC나 유저가 산속에서 좁고 촘촘하게 보폭을 남길 일은 없다. 그런 발자국이 남아 있다면 십중팔구…. “이런 ‘은신’ 을 사용한 상태로 가능한 소리를 내지 않고 정찰할 때 생기는 발자국이야. 내가 ‘은신’ 을 사용해 정찰할 만한 NPC는 다크브라더밖에 없어. 이제 이걸 뒤쫓아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쌕, 쌕쌕쌕쌕쌕! 아크의 놀라운 과학적 수사 기법! 그 과정을 지켜본 라둔은 새삼 존경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둔이 주인으로부터 새로운 전문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소환수는 각종 스킬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이 떨어집니다. 때문에 유저와 달리 기계적으로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도 숙련도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만약 소환수의 스킬 등급을 올리고 싶다면, 주인이 그 스킬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한 뒤에 소환수에게 직접 응용법을 전수해 성장 욕구를 자극해 주어야 합니다. 아크 님의 ‘스토킹’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라둔의 등급을 올릴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단,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진심 어린 애정이 필요합니다. 소환수의 스킬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일정 수치의 ‘애정’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라둔이 ‘스토킹’ 스킬을 중급으로 올리기 위해 필요한 애정 : 50》 *라둔의 ‘스토킹’ 등급을 중급으로 올리겠습니까? “어라? 이건뭐야?” 아크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소환수 스킬 등급을 올리는 데 나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사실 그동안 아크도 소환수의 스킬에 대해 약간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소환수 스킬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가 라둔을 예로 들자면 ‘보관’이나 ‘라둔마 변신’처럼 고정된 스킬이다. 이런 스킬은 아크의 스페셜 스킬처럼 특별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배울 수 있고, 등급이라는 게 정해져 있지 않다. 그 자체로 완성되어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일반 스킬. 라둔의 ‘스토킹’과 라자크의 ‘방패 치기’, 데드릭의 ‘도발’처럼 필요에 의해 습득하고 등급을 올릴 수 있도록 되어있는 스킬이었다. 소환수의 스킬 정보창에도 초급이라는 메시지가 나오니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뜻. 그러나 소환수의 스킬을 검색할 때 숙련도라는 게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어.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 이미 한참 전에 소환수들의 그런 스킬들은 중급이 됐어야 하는데 아직 초급. 심지어 숙련도가 얼마나 올랐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뭔가 다른 종류의 조건이 필요한 건가?’ 아크는 그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한 정보창으로 그간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소환수들의 등급 업을 위해 필요한 것은 교육. 그리고 교육을 위해서는 당연히 가르치는 사람이 그 스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교육이란 사랑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교육에 필요한 것이 바로 소환수에 대한 애정도! “애정 수치를 이렇게 사용하는 거였구나!” 아크는 눈앞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중 ‘고대 유물의 지식’은 고대 문자나 아티팩트의 정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연성’은 회피율이나 낙하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역할, ‘화술’은 NPC를 설득할 때, ‘탄력도’는 둔기의 데미지를 줄여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애정’이라는 수치는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소환수와의 관계에 적용된다고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미 그런 용도의 스탯은 소환수의 ‘충성도’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애정이 아무리 높아도 데드릭은 여전히 싸가지 없이 틈만 나면 반항질이다. 결국 애정 수치가 소환수와의 관계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때문에 아크는 그동안 애정은 상징적인 의미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애정도는 일종은 소환수용 보너스 스킬 포인트였던 거야!’ 그렇다, 진화를 하며 익히는 스킬이야 그렇다고 쳐도, 소환수 입장에서 애정이 없는 주인을 위해 스킬을 갈고닦을 이유가 없다. 소환수가 스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을 돕기 위한 방편. 즉, 주인의 애정에 대한 보답이다. 때문에 스킬 등급을 올리는 데 애정이 필요하다는 게 정보창의 설명이었다. ‘하, 정말 뉴 월드에는 필요 없는 수치가 없군.’ “스탯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400 명성 : 9,125(+500) 레벨 : 284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 나이트,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생명력 : 4,460(+150) 마나 : 4,450 영력 : 200 힘 563(+28) 민첩 723(+55) 체력 843(+20) 지혜 107(+10) 지능 862 운 103(+30) 특수 스캣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115 화술 : 46 애정 : 167(+10) 탄력도 : 320 ‘애정 167… 젠장, 진즉에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애정 수치를 팍팍 올려놓는 건데… 라자크나 데드릭의 스킬도 벌써 중급이 됐을 거야.’ 아쉽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좋아, 라둔의 ‘스토킹’. 등급 업!” 당신은 애정 50을 사용해 새로 알아낸 스킬 응용법을 라둔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주인의 열성적인 교육에 라둔은 진지한 자세로 공부에 열중했습니다. ‘스토킹’ 스킬이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스토킹(중급, 종족 특성) : 새로운 응용법을 익힌 라둔은 스킬을 보다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각도 더욱 예민해져 탐색 범위와 유효 시 간이 늘어났습니다. 또한 주인의 뛰어난 관찰력을 본받아 발자 취만으로 대상의 간략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탐색 범위가 300미터로 넓어졌습니다. 탐색 유효 시간이 1시 간 30분으로 늘어났습니다. 등급이 올라가면 범위와 탐색 시간 이 늘어납니다. 마나 소모 : 50》 +중급 부가 효과(날카로운 추리력) : 스킬이 성공할 경우, 대상의 간략한 정보를 파악한 다. 쌕쌕! 쌕쌕쌕쌕! 등급을 올려주자 라둔은 한결 지적(?)이 된 눈망울로 발자국을 살폈다. 그러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자국이 구별하기 쉽게 색으로 물들었다. 아크가 찾아냈던 발자국은 검정. 색깔이 구분되자 발자국 옆으로 작은 정보창이 만들어졌다. -대상 발자국의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구분 : 도적 계열, 성향 : 노멀 유저, 이동 시간 : 48분 전》 ‘도적? 이 발자국을 따라갔으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뻔했구나!’ 아크가 따라가려던 발자국은 도적의 것이었다. 아마도 ‘은신’을 사용해 사냥감에게 접근하던 중 찍힌 발자국이었던 모양. 물론 아크가 찾는 목표는 아니었다. 한결 쉽게 발자국을 파악할 수 있게 된 아크는 다시 라둔을 앞세우고 숲을 뒤졌다. -대상 발자국의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구분 : 암살자 계열, 성향 : 카오틱 NPC, 이동 시간 : 26분 전》 “이거다! 라둔, 이 발자국을 추적해라!” 아크의 말에 라둔이 고개를 돌려 어두운 숲을 주시했다. 저녁 무렵, 차례대로 가로등이 밝혀지듯이 라둔의 시선을 따라 붉은 발자국이 주르륵 떠올랐다. 그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니 곧 으슥한 바위 사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전에 이용하던 동굴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네? 어쨌든 이 주변에서 발자국이 사라졌으니 어딘가에 살린의 탑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을거야.” 아크는 신중하게 바위를 더듬어 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바위틈에 손을 집어넣자 고리처럼 생긴 손잡이가 잡혔다. ‘찾았다, 이게 문을 열 수 있는 장치가 분명해!’ 챙강-! 그때, 돌연 날카로운 단검이 귓가를 스치며 바위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흔들렸다. 그 사이에서 마치 1900년대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스텔스 모드로 움직이는 유닛처럼 흐릿한 형상이 보였다. 뒤이어 숲 전체가 웅웅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라. 이곳은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은근한 살기가 배어 있는 협박! 그러나 아크는 빙긋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는 아크다.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아크?” 잠시의 침묵 끝에 숲에서 약간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뒤이어 바로 위의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한 복면인이 코 앞으로 뚝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와락 달려들어 손을 잡고 흔들어 댔다. “정말 아크 님이시군요. 이게 얼마 만입니까?” “…?” “접니다. 358호였던….”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복면인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아크는 복면인의 목소리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다크브라더가 반란군에게 공격받을 때 아크와 갱생단이 구출해 준 암살자였다. 아크가 알아보자 358호는 가슴을 쭉 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이, 모두 나와서 인사드려라. 이분이 바로 내가 말했던 구도자, 아크 님이시다!” 그러자 스스슥, 하는 기음과 함께 숲에서 10여 명의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아크는 살린의 탑으로 통하는 통로가 막혀 있어 또 뭔가 일이 생긴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암살자들의 태도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또한 아크와 우호적인 것도 여전한지 신분이 확인되자 암살자들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몰라 뵈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이름을 밝힌 것만으로 암살자들이 절을 하다니, 왠지 뿌듯해지는 기분이다. 그사이 358호가 손잡이를 조작해 비밀 통로를 열고 직접 아크를 안내했다. “저들은…?” 아크는 밖에서 비밀 통로를 닫는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전의 암살자보다 수준이 높아 보였던 것이다. 그러자 횃불을 들고 앞장선 358호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 아크 님은 직접 보신 적이 없겠군요. 저들은 장로님의 직속대원들입니다.” “직속부대원?” “좀 전에 ‘358호였던’ 이라고 말씀드렸죠? 보십시오. 지금은 206호입니다. 직속부대의 조장을 맡고 있죠. 이게 다 아크 님 덕분입니다.” 358…아니, 206호가 이마에 적힌 숫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크브라더의 아마에 찍힌 숫자는 이름이자 직위를 나타내는 표식이다. 숫자가 낮을수록 높은 직위를 가졌다는 의미. 206호는 배신자들에게 살린의 탑이 점령당할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아크를 도와 반란을 저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다고 덧붙였다. “축하드립니다.” “아니요, 아크 님 앞에서 잘난 척하려면 아직 멀었죠.” 206호가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암살자 주제에 은근히 순진하다. “그런데 찾아오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이전의 통로는 왜 폐쇄한 겁니까?” “네? 연락 못 받으셨습니까?” “연락이라니요?” 아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206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이전에 사용하던 통로는 아크 님이 떠난 직후에 폐쇄 했습니다. 분명 인도자님이 연락을 드리겠다고 한 걸로 아는데… 아무래도 요즘 바쁘셔서 깜빡 잊어버리신 모양이군요.” ‘뭐야? 샴바라 이 자식….’ 206호의설명에 아크는 불끈 화가 치밀었다. 물론 아크는 샴바라의 연락 따위는 받지 못했다. 샴바라가 연락하지 않은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십중팔구 일부러다. 아크의 성격상 우호도가 높은 NPC를 그냥 둘 리 없다. 아마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살린의 탑에 찾아와 이사벨을 꼬드겨 뭘 뜯어 갈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리라. ‘망할 자식, 친구를 그렇게 못 믿어?’ 그러나 솔직히 아크는 불평을 늘어놓을 자격이 없었다. 사실 이번에 찾아온 것도, 샴바라가 없는 사이 이사벨을 꼬드겨 다크브라더를 우계 전쟁에 끌어들일 목적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곳으로 출발할 때 아크 역시 일부러 샴바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샴바라가 함께 있으면 시시콜콜 따지고 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크가 그런 인간이라 샴바라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이다. “그나저나 과연 수인족의 구도자이십니다. 저희가 오랫동안 공들여서 숨겨 놓은 비밀 통로를 찾아내시다니… 세상 사람들이 다 아크 님 같으면 저희는 간판 내려야겠군요.” 206호가 동굴 안에서 또다시 숨겨진 비밀 문을 열며 중얼거렸다. 이전보다 몇 배나 엄격해진 보안에 아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존의 통로를 다 폐쇄해야 했던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요즘 주변이 좀 시끄러워져서 말입니다.” 206호가 한숨을 불어 내며 사정을 설명했다. 문제는 아란이었다. 일단 아크의 도움으로 나베인과 아란을 물리치고 반란을 제압했지만, 아란이 살린의 탑 위치를 알아 버렸다. 게다가 아란은 다크브라더에게 원한을 품은 상황. 아란이 관청에 다크브라더의 본거지를 밀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다크브라더의 손에 암살도니 슈덴베르크 왕가의 귀족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살린의 탑 위치를 알아낸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죠. 게다가 오랫동안 끌어오던 삼국의 전쟁도 끝나 병사들도 대도시 주변의 도적 소탕에 대거 동원됐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206호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근래 들어 이 근처에 이방인의 왕래가 잦아진 것도 이유입니다.” 그건 당연한 수순 이었다.온라인 게임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고레벨의 유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벌써 뉴 월드가 상용화된 지 1년, 이제 작센 같은 초보 지역보다 고레벨 지역인 셀리브리드 주변에 유저들이 집중되고 있다. “그럼 기존의 접선 장소를 폐쇄하고 의뢰는 어떻게 받습니까?”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뉴 월드에서는 NPC도 먹어야 산다. 즉, 암살자는 암살 의뢰를 받고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존의 접선 장소를 폐쇄하면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일부러 숨고 나서 약도가 첨부된 광고지를 뿌릴 수도 없지 않은가? 물론 암살자들이 밥을 굶든 말든 아크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다. 때문에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는데, 그게 의외로 심각한 걱정거리였던 모양이다. 206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의뢰는… 이제 받지 않습니다.” “암살자 조직이 암살 의뢰를 받지 않아요?” “이미 아시겠지만 다크브라더는 옛 땅을 잃고 유랑하던 동방 민족의 후예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대륙에 도착한 선조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크브라더의 숙명이 되어 버린 암살이었죠.” “네, 그 얘기는 일전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희의 고향은 잃어버린 옛 땅이 아니라 대륙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고, 또 돌아가야 할 명분도 없는 이상, 대륙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죠. 그러나 이대로 암살자를 고집한다면 다크브라더는 앞으로 수백 년이 더 지난다고 해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때문에 다크브라더의 장로인 이사벨은 오래전부터 그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샴바라, 인도자의 출현이었다. 이에 이사벨은 샴바라에게 다크브라더의 운명을 걸기로 결심했다. 샴바라가 다크브라더의 어두운 역사를 끝내고 양지로 이끌어 주기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다크브라더에게 숙명처럼 지워진 피의 역사에 결별을 고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이제 다크브라더는 암살을 하지 않는 겁니까?” “장로님의 뜻은 완고합니다만….” 206호는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불어 냈다. “뭔가 문제가 있군요.” “네, 그 때문에 인도자님도 하던 일을 중단하고 탑으로 돌아와 고심하고 계십니다.” “지금 살린의 탑에 샴바라가 와 있다고요?” 아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아크는 이곳으로 오면서 일부러 샴바라에게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물론 아크의 목적을 생각하면 최종적으로는 샴바라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둘째 문제, 샴바라는 까다롭기가 짝이 없다. 게다가 아크의 제안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볼 게 분명하다. 때문에 샴바라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먼저 순진한 이사벨부터 포섭해 놓을 생각이었다. 이사벨을 확실하게 내 편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녀에게 살짝 맛이 간 샴바라도 아크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이미 샴바라가 살린의 탑에 돌아와 있다니…. ‘젠장, 샴바라 자식 성격을 생각하면 분명 순순히 협조하지는 않을 텐데….’ 그런 걱정을 하던 아크는 문득 206호의 말에서 뭔가 ‘쓸 만한 정보’의 냄새를 맡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현재 다크브라더는 조금 사정이 복잡한 상태다. 그리고 외교란 상대의 약점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 설득해야 하는 상대가 뭔가 곤란한 일을 겪고 있다면 아크에게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제가 모르는 사이에 뭔가 곤란한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한때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이제껏 저는 다크브라더를 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크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지껄여 댔다. ACT2 유계로 GO, GO, GO! 딸랑, 딸랑, “어서 오슈.” “뭐 필요해서 왔수? 뭐, 별거 없지만 대충 골라 보슈.” 종소리가 울리자 상인 3명이 하품을 하면 중얼거렸다. 한때 제법 잘나가던 상이이었다가, 아크를 만나서 게임생 제대로 꼬이고, 이제 철없이 카오틱이 돼 버린 큰형 덕분에 ‘과노동 저임금’의 조건으로 아크 종합상점의 점원이 돼버린 아기 돼지 삼 형제였다. 뭐, 반강제적이라고는 해도, 세 돼지는 점원이 되는 것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사실 아기 돼지 삼 형제가 지금까지 해 온 게임 방식은 몰아주기였다. 이게 뭐냐 하면… 상인은 각종 거래로 스킬과 레벨을 올린다. 당연히 한 번에 많은 물건을 가져다 팔면 그만큼 성장이 빠르다는 말이다. 그리고 레벨이 오르면 같은 물건을 보다 저렴하게 구입하고 비싸게 팔 수 있다. 때문에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처음부터 모든 물건의 구입과 판매를 북실이가 도맡아서 처리했다. 덕분에 북실이는 다른 상인보다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그 레벨을 이용해 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 삽질이와 울먹이의 레벨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상인으로서는 무능한 편에 속하는 이들이 한때나마 잘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편법을 사용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북실이가 아크를 따라다니느라 빠져 버린 뒤로 둘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죽을 둥 살 둥 교역을 해 봐야 손해날 때가 다반사, 레벨 업은커녕 오히려 돈을 까먹고 빌빌거리던 중 아크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 있으면 손해 보고 경험치가 깎이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월급도 받잖아. 그래, 큰형님이 역사적인 대업을 완수할 때까지 이곳에서 점원으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차피 이런 상점이 잘될 리도 없으니 대충 시간이나 때우지 뭐.’ 이게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속내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약간 불안한 출발을 하던 아크 종합상점은 이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매출로만 따지면 란셀 마을의 상점 가운데 1~2위를 다툴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덕분에 아기 돼지 삼 형제는 그야말로 밥 먹을 틈도 없이 바빴다. 의도와도 다른 전개. 그러나 세 돼지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래도 아크 녀석은 상인이 아니야. 상점을 차려 놨지만 이곳에서 뭉개지는 않겠지.’ ‘놈이 다른 곳으로 가면 우리 세상이다! 장사 따위는 대충하며 시간이나 때우자!’ ‘우리가 아크 녀석이 잘되는 꼴을 두고 볼 것 같으냐?’ 로코가 점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코웃음을 쳤다. ‘흥, 우리가 고작 계집애 따위의 말을 들을 것 같아?’ ‘후후후, 아크만 사라지면 곧 울면서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하게 만들어 주마.’ ‘우리는 생긴 것처럼 순진한 아기 돼지로만 생각했다면 착각이야.’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음흉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확실히 로코는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력을 가지고 있어 당찬 구석이 있었다. 재고나 금전 계산에도 빠삭했고, 손님을 상대하는 것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아직 소녀에 불과한 여자라, 아크처럼 아랫것들(?)을 휘어잡는 힘은 부족했던 것. 그럼에도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빠릿하게 말을 잘 들었던 건 당연히 아크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가 상점을 비우자 세 돼지는 곧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계획했던 대로 흉악하게! 재고 파악도 안 해 놓고, 청소도 안 하고, 출근 시간을 밥 먹듯 어기고, 손님도 대충 상대하는 등 무시무시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대기 시작한 것이다. “후후후, 봤냐? 우리도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야.” “혀, 형님,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다니 약간 떨려요.” “괘, 괜찮아. 그동안 아크에게 당한 일을 생각해 봐. 게다가 월급이라도 해 보야 하루 12시간 노동에 너희 둘을 합쳐서 한 달에 60골드잖아. 내 몫은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사실 월급만 생각하면 그리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 뉴 월드의 한 달은 현실의 열흘, 현실의 한 달 수입은 180골드가 되는 것이다. 게임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치고는 꽤나 짭짤한 수입. 그러나 여기에는 아크의 함정이 있었다. 아크는 예전에 아기 돼지 삼 형제에게 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50골드를 지급받을 수 있는 계약서를 강탈했다. 그러나 현재 각종 장사에 실패한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잔고가 바닥나서 지원금의 지급이 미뤄지고 있는 상황. 아크는 삽질이와 울먹이의 월급을 이 지원금에서 까 나가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둘이 받을 수 있는 월급은 한 달에 10골드. 그것도 식비까지 포함된 금액이라 실제 수령 금액은 1골드가 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착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흑, 갑자기 슬퍼지네요.” “울지 마, 약해지면 안 돼.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아크를 제대로 물먹여 보는 거야.” 북실이의 말에 삽질이와 울먹이는 더욱 분발(?)해서 땡땡이를 쳐 댔다. 그나마 로코가 방방 뛰면 약간 하는 척을 했지만, 로코마저 자리를 비우면 노골적으로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오는 손님도 돌려보낼 정도였다. 덕분에 며칠 동안 미친 듯이 올라가던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 수량이 얼마나 있냐고요? 모르겠는데요?” 이번에도 세 돼지들은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보통 이런 식으로 대꾸하면 손님들은 심드렁하게 둘러보다가 나가 버린다. 그런데 이번 손님들의 반응은 평소와 달랐다. “…확실히 듣던 대로군.” “아무래도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겠죠?” 손님들은 저들끼리 뭔가를 수군거리더니 문득 1명이 카운터로 다가왔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눈이 부리부리한 거구의 사내였다. 그는 한참 카드놀이에 빠져 있는 삽질이와 울먹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카운터를 쾅, 내려치며 고함을 터뜨렸다. “차렷!” “헉, 왜, 왜 그러세요?” “왜 그러냐고? 아하, 좋은 질문이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북실이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나는 불친절한 점원만 보면 패고 싶어지는 사람이라서 말이다.” “네? 그, 그게 무슨…?” “시끄럿!” 퍼퍼퍽, 콰직,우드득, 쩍! 뒤이어 상점 안에서는 참으로 다채로운 형태의 폭력 효과가 터져 나왔다. 졸지에 샌드백이 되어 버린 아기 돼지 삼 형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유저는 게임 안에서 얻어맞아도 실제와 같은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느낌도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얻어맞으면 정전기가 일어나는 정도의 느낌이 있다. 고통이라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뿐이지, 결코 멀쩡하지는 않은 것이다. 게다가 치명타을 맞으면 충격도 3~4배나 강해지니 지금처럼 몰매를 맞으면 정말 죽을 맛이었다. “헉, 가, 강도다!” “겨, 경비병, 살려 주세요. 이 사람들이 죽이려고 해요!” 세 돼지는 간신히 바닥을 기어가 문을 열고 소리쳤다. 마침 주변을 순찰 중이던 경비병 서너 명이 SOS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돼, 됐다. 이 악랄한 녀석들, 너희들은 이제….” “이 자식들이 정말 정신 못 차리네.” 그러나 사내들은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거칠게 둘을 밟아 댔다. 대체 이게 무슨 똥배짱이냐? 마을 안에서 경비병이 보고 있는데도 사람을 패다니?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경비병들의 반응이었다. “앗, 대장님. 언제 오셨습니까?” “아, 너희들이었냐? 방금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돼지들은 왜 패고 계십니까?” “별거 아니야. 그냥 하던 일이나 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혹시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경비병들이 척하니 경례까지 붙이고는 돌아가 버렸다.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마을에서 선량한 점원이 떡이 되고 있는데 경비병이 모른 척? 게다가 도울 일이 있으면 부르라니? 같이 패 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경비병만이 아니었다. 근처를 지나는 주민들도 그런 만행을 목격하면서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묘족 장로 핫산은 그 와중에 이 조폭들의 두목처럼 보이는 사내와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다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기도 했다. ‘뭐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맞는 게 주민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 건가?’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도저히 현재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다.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또 있을까? 세 돼지는 고통과 억울함에 북받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비명을 터뜨렸다.…… “엉엉엉,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흑, 제, 제발 그만 때려요. 우리는 착한 돼지라고요!” 그렇게 반쯤 정신이 나갔을 무렵, 귓가에 구원의 빛과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이건…?” 바란족이 훈련소에 모아 놓은 약초를 받으러 갔던 로코가 돌아온 것이다.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력을 다해 로코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저, 점장님!” “살려 주세요. 저희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저 사람들이 죽이려고 해요!” 아기 돼지 삼 형제가 팅팅 부은 얼굴로 사내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꽤나 로코의 속을 썩였던 아기 돼지 삼 형제. 그러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세 돼지의 편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던 걸까? 로코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세 돼지의 코피를 닦아 주며 사내들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오빠들, 이게 대체 뭐예요?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얼굴은.” “어, 그랬지?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만.” “나 참,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장사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로코는 툴툴거리며 꼼꼼하게 세 돼지의 얼굴을 닦아 주고 빙긋 웃으며 일어났다. “자, 이제 됐어요. 계속하세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북실이는 멍청한 얼굴로 로코를 바라보다가 흠칫하며 다시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 사내들을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셀리브리드에서 아크와 함께 있었던 11명의 사내! 그렇다, 그들은 바로 정의남과 갱생단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기억해 냈을 때였다. 북실이는 보았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로코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져 있는 것을…. 순간 북실이는 마치 공포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맙소사, 이거였구나. 시드가 말했던 게…!’ 로코의 미소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해 버린 것이다. 얼마 전 아크가 란셀을 떠날 때, 일을 도와주던 시드도 시르바나로 돌아갔다. 그때, 시드와 친해진 북실이는 시드에게 자신의 계획을 슬쩍 비친 적이 있었다. 아크가 떠나면 로코를 괴롭히고 상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그러자 시드는 진지한 표정으로 북실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요, 그만두는 편이 좋을걸요. 로코 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직 몰라서 그래요. 아크 님과 친한 거 보면 딱 감이 오지 않아요?” 그러나 북실이는 시드의 말을 곧바로 잊어버렸다. 아크가 상점을 비운 뒤로, 로코는 아기 돼지 삼 형제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코가 방방 뛸 때는 아크가 버티고 있을 때뿐이다. 그렇게 판단한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로코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더욱 기어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선배의 말은 들어 뒀어야 한다. ‘그럼 이 모든 게 로코가 사주한… 악마, 저 여자도 악마였어!’ 북실이는 로코의 등에서 시꺼먼 날개가 파닥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악마의 여자 친구는 악마다. 그 단순한 사실을 너무나 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아기 돼지 삼 형제가 다진 고기가 되어 가고 있을 무렵, 로코는 정의남과 갱생단원을 2층으로 안내했다. 정의남과 갱생단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가게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야아, 대강 얘기는 들었지만 아크 녀석, 정말 상점을 차렸네.” “하여간 아크 녀석, 언제 이런 것까지 준비해 놓은 거지?” “제법 물건도 많고 아주 본격적이잖아?” “그런데… 이 상점을 당분간 네가 맡기로 했다며?” “네, 그렇게 됐어요.” 로코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일단 오빠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기는 했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닐까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에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사실 그동안 로코도 아기 돼지 삼 형제 때문에 적지 않게 마음고생을 했다. 열심히 벌어서 아크와 저 푸른 초원 위에 골드로 집을 지어야 하는데… 아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죽어라 말을 안 듣는다. 덕분에 매출은 뚝뚝 떨어져 아크가 있을 때의 반도 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 본 로코는 이런 경함이 처음이 아니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도 사장이 자리를 비우면 같이 일하던 남자는 툭하면 일을 로코에게 떠넘겼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한다. 어떨 때는 대놓고 음담패설을 지껄여 대며 히죽거릴 때도 있었다. 물론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치졸한 반항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자라서 깔보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다. ‘아크 오빠에게 말하면 금방 해결되겠지만….’ 모처럼 점장으로 맡겨졌는데 아크에게 약한 소리를 하기는 싫었다. 그때 생각난 게 마침 작센에 들렀다가 란셀로 오고 있던 갱생단이었다. 상황을 설명하자 정의남이 곧바로 이번 일을 계획한 것이다. 다짜고짜 세 돼지를 두들겨 팬 것도, 적당한 때에 로코가 나타나 은근히 공포감을 심어 준 것도 정의남의 계획이었다. “신경 쓰지 마. 저런 놈들은 잡을 때 확실하게 잡아 놔야 정신을 차려.” “맞아, 지금 네가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면 당장은 몰라도 금세 다시 기어오를걸.” “감히 로코를 괴롭히고 아크의 상점을 말아먹으려 하다니, 제정신이 아닌 거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런 놈들 군기 잡는 건 우리가 전문이니까.” 갱생단은 이참에 아예 뽕을 뽑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보다 로코야, 드디어 해냈구나!” “네?” “후후후, 드디어 아크의 살림을 떠맡은 거 아니냐?” 정의남이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돈 벌러 가는 남자가 살림을 맡겼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거지.” “힘내라, 로코. 이제 한 걸음만 남은 거야. 이 오빠들은 응원하고 있다.” “아이, 그런 거 아니에요. 오빠들은 참….” 로코가 짐직 토라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커다란 쟁반에 각종 한방차와 요리를 하나 가득 담아 와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저희 상점에서 취급하는 상품이에요. 맛 좀 보세요.” 로코는 참으로 알기 쉬운 성격이었다. “오오, 역시 우리 귀염둥이. 너밖에 없다.” “많이 드세요. 그동안 카이로트의 지하 미궁에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잖아요.” “지, 지하 미궁!” 로코의 말에 요리로 향하던 갱생단의 손길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암울한 포스를 줄줄 흘려 대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그렇지,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 “세 달이야. 햇빛도 못 보고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시궁창을 뒤지며 해골바가지와 슬라임의 사냥을 시작한 게 벌써 세달 전…. 그동안 우리는….” “지하 미궁에 비하면 감방은 천국이었어. 적어도 햇빛은 볼 수 있었잖아.” “우욱, 그, 그만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토 나올 거 같아.” 갱생단은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갱생단에게 지하 미궁의 노다가는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생각해 보라, 그들이 있던 곳은 말이 좋아 지하 미궁이지, 실제로는 시체가 썩어 가는 악취로 가득 찬 하수구다. 게다가 만난 상대라고는 스켈레톤과 슬라임뿐이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레벨도 빨리 오르고 아이템을 모으는 재미도 쏠쏠해 버틸 만했지만, 세 달 동안 그곳에 처박혀 있자 잠을 자도 지하 미궁을 헤매는 꿈만 꾸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자폐증’에 걸렸습니다. 《정신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1시간 동안 마나가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어져서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감소합니다.》 오죽하면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상태 이상에 걸리기까지 했겠는가? 그러나 갱생단은 자존심 하나로 먹고살아 온 사람들이다. 아크에게 잘난 척을 하며 큰소리를 쳐 놨으니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만약 ‘일각수의 뿔’ 가격이 폭등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지하 미궁에 처박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으리라. “다시 지하 미궁에 들어가느니 차라리 사고 한번 치고 감방에 들어가겠어!” 짝퉁의 말에 갱생단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 로코가 분위기를 전환할 요량으로 말했다. “그, 그래도 고생한 덕분에 ‘슬라임의 내단’을 몇 개 만들 수 있게 됐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다행히 갱생단의 표정이 약간 밝아졌다. “샴바라가 보낸 ‘일각수의 뿔’하고, 이번에 시드가 4개를 구해 왔다고 했지? 그럼 일단 5개는 확보한 셈인가?” “6개예요.” “6개?” “…아크 오빠가 하나 더 구했거든요.” 로코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그렇다, 아크는 란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이미 ‘일각수의 뿔’의 출처는 바로 로코의 애마, 유니콘이었다. 아크와 함께 있을 때 로코는 별생각 없이 유니콘을 불러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유니콘을 훑어본 아크의 눈빛이 갑자기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뿔을 잘라 먹은 지 대략 반년, 유니콘의 뿔이 다시 돋아난 것이다. “로코, 저 뿔…!” “안 돼요.” 로코는 딱 잘라 거절했다. 유니콘의 뿔이 반년 만에 재생된 건 로코의 노력 덕분이었다. 역시 유니콘은 멋진 뿔이 있어야 폼이 난다. 그렇게 생각한 로코는 틈틈이 정보룰 모아 유니콘의 몸에 좋다는 풀을 찾아 먹이고 정성을 다해 돌봐 왔던 것이다. 로코가 딱 잘라 거절하자 유니콘이 아크의 면상에 콧방귀를 뀌며 약 올렸다. 그러나 유니콘은 아직 여자의 심리를 잘 몰랐다. “로코, 부탁이야. 응? 뿔은 내가 자르고 수입은 7대 3으로 나눌게. 나만 좋자고 그러는 게 아니잖아. 갱생단 형들도 고생했는데 고작 5개밖에 못 만들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그래도 안 돼? 좋아, 그럼 8 대 2. 어때? 거기다가 이번 주말에 네가 고르는 영화 한 편 보고 저녁까지 쏜다.” “저, 정말요? 영화에 저녁? 약속했죠?” 결국 정성 들여 재생시킨 유니콘의 뿔은 영화와 저녁 식사에 팔려 버렸다. “자, 흰둥아, 잠깐 형하고 얘기 좀 할까?” 히힝? 히히히힝? 히히히힝-! 아크는 씨익 웃으며 유니콘의 목을 잡고 으슥한 곳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단말마와 함께 유니콘은 또다시 아크에게 뿔을 뜯기고 알았다. 그리고 그 뿔은 곧바로 갱생단의 비자금과 바뀌어 아크의 주머니에 20%, 200골드로 적립되었다. ‘미안해. 하지만 오빠와 3주 동안 데이트를 못 했는걸.’ 사랑에 빠진 여자는 때로 잔혹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정을 갱생단에게 모두 말할 수는 없어 로코는 대충 둘러댔다. “일단 급한 대로 제가 오빠에게 500골드를 내줬어요. 부족한 건 나중에 주기로 했고요.” “잘했다.” 정의남이 ‘일각수의 뿔’을 챙겨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체 아크는 상점을 너한테 맡고 놓고 어딜 쏘다니고 있는 거냐?” “아, 그렇지. 아저씨하고 오빠들은 아직 못 들었겠군요.” “뭘 말이냐?” “실은….” 로코는 아크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대강 추려서 설명해 주었다. 현재 헤르메스 연합이 나크족과 손잡고 유계 정복을 하려 한다는 것. 아크는 그것을 막기 위해 다크브라더의 도움을 요청하러 갔다고 말했다. 설명이 끝나자 정의남과 갱생단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헤르메스 놈들이….” “유계까지 들어가서 아크를 괴롭혔단 말이야?” “게다가 선량하게 살고 있는 바란족 마을을 습격해 노예로 부려 대?” “형님, 우리가 이런 일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네, 헤르메스 연합이 얽혀 있다면 우리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지하 비궁 같은 데 다시 가기 싫어서는 아닙니다.” 갱생단의 말에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몰랐으면 몰라도, 알면서 모른 척할 수는 없지. 그나저나 아크 녀석, 그런 일이 있었으면 먼저 우리와 상의를 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러자 로코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고 아크 오빠가 떠나기 전에 저한테 미리 말해 놨어요. 오빠들이 오면 사정을 설명하고 유계로 와 달라고 부탁하라고요. 당연히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 거라고요.” “오오, 그러냐?” “그렇겠지. 후후후, 아크가 우리를 잊어버렸을 리가 없어.” “전쟁이라… 간만에 피가 끓는구나.” “새로 전직한 직업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야.” 정의남과 갱생단의 말에 로코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전직요? 작센 성에서 전직하셨어요?” “후후후, 했지. 드디어 우리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았거든.” 정의남이 두툼한 가슴을 탕탕 치며 씨익 웃었다. 그제야 로코는 정의남과 갱생단이 이전과는 뭔가 달라졌음을 알아챘다. “어라? 오빠들, 가슴에 달린 그건… 훈장? 훈장이에요?” “이제야 눈치챘구나.” 정의남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가슴에서 빛나는 훈장을 소매로 슥슥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뿌듯한 얼굴로 작센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정의남과 갱생단은 얼마 전까지도 직업이 없었다. 물론 그건 의도한 게 아니었다. 1차 전직을 할 수 있는 작센 성에 도착하자마자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해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 퀘스트가 끝난 뒤에 다시 진지하게 전직을 고려할 대 작센 영주로부터 의의의 제안을 받았다. 악실리온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오면 자치대를 조직하도록 후원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때문에 정의남과 갱생단은 입신양명의 포부를 품고 셀리브리드로 향했다. 그러나 그 뒤로 도적단과 얽히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전무후무한 200레벨의 백수들이 탄생한 것이다. 정의남 일행이 이번에 작센 영주를 찾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센 영주가 그들에게 제안한 게 벌써 서너 달 전, NPC에게는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 악실리온 문턱도 못 밟아 봤으니 모처럼 선처해 준 작센 영주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그에 대한 해명을 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간 것이다. “…불쾌하기 짝이 없군.” 이제 어엿한 청년티가 나기 시작하는 작센 영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정의남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미안해야지. 내가 고작 그 정도의 일로 자네들을 탓할 정도로 속 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게다가 자네들이 시간을 끈 탓에 작센은 좋은 인재를 잃게 되지 않았는가?” “네? 그게 무슨…?” 이어지는 영주의 말에 정의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크로스가 빙긋 웃으며 끼어들었다. “선생,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영주님은 모든 사정을 알고 계시오.” “그동안 자네가 도적들을 교화시켰던 란셀 마을은 작센 영지의 코앞에 있네. 그리고 아크를 도와 아란 경과 아셔스 교단의 불온한 음모를 파헤칠 때는 크로스 경이 함께했지. 그런데도 내가 자네들의 행적을 모르고 있을 거라도 생각했던 건가?” 영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듬직한 정의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 매우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 짝이 없다네. 기쁜 이유는, 내가 마음에 담아 둔 자네들이 슈덴베르크 아니, 대륙을 위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는 뿌듯함 때문이네. 그리고 아쉬운 이유는, 그토록 훌륭한 자네들을 내 밑에 둘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네. 크로스 경, 그것들을 가져오게.” 영주가 손짓하자 크로스가 화려한 목함을 꺼내 들었다. 목함 안에는 푸른 보석이 박혀 있는 금장 훈장 11개가 들어 있었다.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지만, 자네들의 명성과 기량은 이미 자치대를 맡길 수준을 넘어 버렸네. 때문에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국왕 폐하께 상소문을 올렸네. 자네들에게 합당한 명예와, 또 자네들이 앞으로 스스로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지위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그리고 마침 며칠 전에 국왕 폐하께서 답을 보내 주셨네. 이 수호자 훈장으로.” 영주가 정의남에게 훈장을 달아 주자 두두둥, 정보창이 떠올랐다. 수호자 훈장(특수, 획득 시 귀속) 아이템 타입 : 1등급 훈장 사용제한 : 성향100, 명성 6,000 이상 슈덴베르크 국왕에게 특별한 업적을 인정받은 사람에게 수여되는 명예 훈장입니다. 이 훈장을 획득하면 ‘가디언’의 칭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가디언은 진정한 정의를 수호하는 자라는 의미로, 과거 암흑 세기에 국경을 초월해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던 민병대에 붙어졌던 명예로운 칭호입니다. 비록 지금은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가디언이라는 칭호는 여전히 대륙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회받고 있습니다. 훈장을 소지한 사람을 모든 관청에서 소유한 명성에 따라 특별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만약 대룩에 변란이 일어났을 경우, 민병대가 소집되면 귀족들은 이 훈장의 소지자에게 우선적으로 지휘를 맡기려고 할 것입니다. 《옵션 : 소지자가 명성 획득 시+20% 추가 적용.》 정의남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읽어 내려갔다. 그때, 다시 장중한 북소리가 울리더니 새로운 정보창이 떠 올랐다. 전직에 관련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직업을 선택하지 않은 시점에서 3등급 이상의 훈장을 획득할 경우, 훈장의 종류에 따라서 새로운 직업으로 전직할 기회가 제공됩니다. 정의남 님에게 수여된 1등급 수호자 훈장으로 정의남 님이 전직할 수 있는 직업은 ‘가디언=제너럴’입니다. 현재 정의남 님은 1차 전직을 하지 않은 상태라 전직에 따른 페널티가 없습니다. 전직하면 과거 민병대를 이끌었던 ‘가디언=제너럴’에 관련된 각종 스킬을 배울 기회가 생깁니다. 단, 이 직업은 특수 계열에 속해 한 번 선택하면 취소할 수 없으며, ‘가디언=제너럴’ 카테고리에 속하는 상위 직업으로만 전직할 수 있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저, 전직?” 뒤이어 훈장을 수여받은 갱생단원들이 웅성거렸다. 정의남처럼 그들에게도 각각 훈장에 어울리는 전직 정보가 갱신된 것이다. 설명을 읽어 보니 ‘가디언’은 일종의 자유 기사 같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검을 사용하는 기사가 아니라, 각자 익혀 온 스킬 종류에 따라 특화된 몇 다지 종류의 직업이 설정되어 있었다. 군대에서 말하는 병과다. 가디언으로의 전직은 단순히 훈장만 받는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필요한 조건은 무직 상태로 성향 100에 명성이 6,000을 달성하는 것. 보통 레벨 15~20 사이에 전직하는 유저들은 상상도 못 할 전직 조건이었다. 그 외에도 직업별로 최소한의 힘이나 체력, 민첩 수치의 제한이 설정되어 있었다. 사전에 가디언 전직 정보를 알고 능력치를 올렸다고 해도 최소 레벨 100은 넘어야 가능한 수치!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그때까지 전직도 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그러나 레벨 200이 될 때까지 엉뚱한 짓만 해 온 정의남과 갱생단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자네들이 그 훈장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라고 확신하네.” 영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훈장으로 얻을 수 있는 직업으로 전직하라는 조언이리라. 그 말에 정의남은 마음을 정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선행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려고 한다. 현실에서조차 반쯤은 포기하고 살았던 것이 게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설사 그 직업이 터무니없이 안 좋은 것이라도 정의남은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전직하겠습니다!” “새로운 가디언에게 경의를 표하라!” “와아아아!” 영주의 목소리에 좌우에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검을 치켜들며 환호했다. 동시에 정의남의 눈앞에 직업 정보창이 떠올랐다. 가디언=제너럴 오래전 암흑 세기에 민병대를 이끌고 싸웠던 지휘관에게 하사되었다고 알려진 명예직. 단, 훈장으로 전직하는 제너럴은 명예직이라, 공식적으로 왕국 병사들에 대한 영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여 각종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대를 통솔하는 각종 스킬을 보다 전문적으로 습득할 수 있습니다. 직업 상성에 따라 ‘가디언’을 부하로 삼으면 부가 보너스가 추가되며 특별한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추가 보너스 : 생명력(+200) 마나(+200) 힘(+50) 체력(+50) 민첩(+20) 지혜(+20) 지능(+10) 운(+10)》 일반적으로 전사 계열에서 전직 보너스가 가장 많은 것은 워리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디언의 전직 보너스는 그보다 배나 높았다. 1차 전직임에도 보너스 스탯만으로 레벨이 16이나 오른 효과! 거기에 각종 지휘관《용 스킬이 7개나 추가되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전략’이나 ‘지휘’처럼 겹치는 스킬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숙련도가 상승하며 등급이 하나 올라갔다. 뒤이어 갱생단도 각자의 성향과 명성, 익히고 스킬에 따라 적절한 직업이 선택했다. 가디언=돌격병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하던 민병대의 돌격병 강력한 힘과 체력으로 어둠의 군단을 무찌르던 용사 중의 용사입니다. 지팡이 계열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다룰 수 있으며 방패와 판금 갑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가디언=돌격병’은 검술과 방어술, 기마술이 기본 스킬로 제공됩니다. 또한 레벨에 따라 돌격, 철벽 방어 등의 특수 스킬을 익힐 기회가 제공됩니다. 《추가 보너스 : 힘(+60) 체력(+60) 민첩(+15) 지혜(+15) 지능(+5) 운(+5)》 가디언=정찰병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하던 민병대의 정찰병. 뛰어난 민첩성과 육감으로 어둠의 군단을 교란시키던 척후의 엘리트입니다. 주 장비품은 단검과 활, 가죽 방어구입니다. ‘가디언=정찰병’은 단검술과 궁술, 은신이 기본 스킬로 제공됩니다. 또한 레벨에 따라 암습, 육감, 은폐, 엄폐, 등의 특수 스킬을 익힐 기회가 제공됩니다. 《추가 보너스 : 힘(+30) 체력(+30) 민첩(+60) 지혜(+20) 지능(+5) 운(+15)》 가디언=공병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하던 민병대의 공병. 각종 전문 지식으로 각종 장비를 다루며 민병대를 보조하던 만능 재주꾼입니다. 주 장비품은 장창과 공구, 사슬 방어구입니다. ‘가디언=공병’은 장창술, 특수 무기, 건축이 기본 스킬로 제공됩니다. 또한, 레벨에 따라 각종 공성 무기 제조, 함정 설치, 보급 등의 특수 스킬을 익힐 기회가 제공됩니다. 《추가 보너스 : 힘(+20) 체력(+20) 민첩(+20) 지혜(+40) 지능(+40) 운(+20)》 가디언=전략가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하던 민병대의 전략가. 뛰어난 전략으로 제너럴을 보좌해 각종 전략의 성공률을 높이는 책략가입니다. 주 장비품은 장검과 깃발, 전의입니다 ‘가디언=전략가'는 검술과 영악한 회피, 보좌가 기본 스킬로 제공됩니다. 또한 레벨에 따라 책략, 풍수지리, 계략 등의 특수 스킬을 익힐 기회가 제공됩니다. 《추가 보너스 : 힘(+10) 체력(+10) 민첩(+10) 지혜(+50) 지능(+50) 운(+30)》 10명의 갱생단은 각각의 가디언으로 전직을 끝마쳤다. 모든 직업명에 ‘가디언’ 이라는 칭호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이로써 제너럴을 지휘관으로 하나의 가디언 부대가 완성된 것이다. “후후후, 이제 우리는 갱생단이 아니야. 발음도 멋진 가디언이다.” “새로 익힌 스킬들을 어디에서 시험해 봐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잘됐다.” “유계 전쟁이라… 간만에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있겠군.” 정의남과 갱생단은 벌써부터 끓어오르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주책을 떨어 댔다. 그러다가 정의남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유계로 넘어가려면 아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요. 오빠가 안내원을 남겨 뒀어요.” “안내원?” “어이, 북실이 오빠!” 정의남과 로코가 수다를 떠는 사이, 아래층에서는 아기 돼지 삼 형제의 정신교육이 끝났다. 로코가 부르자 곧 쿵쾅거리며 뭉개진 밀가루 반죽처럼 변한 북실이가 뛰어 올라왔다 “네, 넵, 부르셨습니까, 점장님!” “아크 오빠에게 얘기 들었죠? 유계로 안내할 사람들이 이 오빠들이에요.”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북실이라고 합니다. 부디 개처럼 부려 주세요.” 북실이가 온몸에서 육즙을 질질 흘려 대며 굽실거렸다. 아무래도 정신교육의 약발이 지나치게 먹힌 모양이다. 어쨌든 ‘차원 이동의 가루’는 사용자가 목표를 지정해야 한다. 가루를 가지고 있어도 유계에 가 본 적이 없는 갱생단은 사용할 수 없었다. 아크가 북실이를 상점에 남겨 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간만에 동생들과 함께 있게 된 북실이는 잠깐 반란의 기미를 보였으나, 그 결과는 돼지에서 개로 감등…. “좋아, 이제 출발하자!” 게이트가 만들어지자 정의남과 갱생단이 일어나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로코가 깜짝 놀라며 달려왔다. “가다니요? 오빠들, 계산은 해 주고 가야죠.” “응? 무슨 계산? ‘일각수의 뿔’ 값은 예전에 줬잖아. 새로 하나 구한 건 나중에 500골드마저 계산하기로 했고.” 정의남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로코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 말고요. 방금 전에 먹은 요리하고 챙겨 준 보약값 말이에요.” “에엑? 그, 그거 돈 받는 거야?” “무슨 소리예요? 상품을 먹었으면 당연히 돈을 내야죠.” “하,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은 모두 네가….” 갱생단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로코가 코웃음을 쳤다. “흥, 다들 비상금 챙겨 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요? 쫀쫀하게 굴지 말고 얼른 내놔요. 요 며칠 삽질이와 울먹이 때문에 장사가 안 돼서 힘들단 말이에요. 30일 분 보약 열한 첩에 고급 음식 11개. 한방차 열한 잔. 다 해서 18골드 32실버예요. 나도 내 아이템이면 돈 안 받아요. 하지만 아크 오빠 거란 말이에요. 말해 두지만 반품도 외상도 안 돼요. 돈이 없으면 갑옷을 저당 잡히든가.” 로코의 말에 정의남과 갱생단은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이제 막 전쟁터로 떠나려는 전사들에게 갑옷을 저당 잡히라니… 그게 할 말인가? 결국 눈치를 살피던 갱생단은 비상금을 털어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서야 유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점장 하나는 기가 막히게 골랐다. “여, 친구! 오랜만이야. 잘 있었냐?” 아크가 생글생글 웃으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샴바라는 한참 이사벨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아크를 돌아보고는 처음에는 약간 놀란 눈빛을, 마지막에는 꽤나 찜찜하기 짝이 없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뭐야? 네가 여기엔 웬일이야?” “야야, 숨 좀 쉬자. 이사벨 양, 잘 있었어요?” “걱정해 주신 덕분에 별 탈 없이 지내고 있답니다.” 아크는 중세 기사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이사벨의 손등에 가볍게 키스를 보냈다. 현대라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사법이겠지만, 역시 중세를 배경으로 살고 있는 이사벨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입까지 맞추자 샴바라의 눈매가 와락 일그러졌다. “왜 왔냐고 묻잖아!” 샴바라가 칼자루로 옆구리를 푹푹 찔러 대며 복화술(?)로 웅얼거렸다. “윽, 윽! 내가 못 올 데 왔냐? 나와 다크브라더는 우정을 맹세한 사이라고,” “언제부터 네가 다크브라더와 우정을 맹세했다는 거냐?” “당연히 함께 나베인을 물리쳤을 때부터지. 안 그렇습니까, 이사벨 양?” “네, 아크 님은 귀한 손님이에요, 인도자님.” 이사벨이 예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크는 밉살스럽게 웃으며 샴바라의 어깨에 떡하니 팔을 걸치고 으스댔다. “수장님께서 그렇다고 하시잖아. 응, 인도자님?” “망할 녀석.” 삼바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이며 팩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크는 샴바라에게 바짝 몸을 붙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너 왜 이렇게 신경질적이냐? 이사벨 누님하고 잘 안 돼? 내가 상담해 줘?” “…뒈질래?” “이크, 자하면 정말 치겠다? 아서라, 아서. 네가 곤란해 한다는 것을 알고 모처럼 좋은 애기를 가져왔는데 다짜고짜 폭력을 휘두르는 건 너무 심하지 않아?” “곤란해? 내가? 하긴 지금 널 패지 못하면 혈압이 좀 높아지기는 하겠지.” “후후후, 이거 왜 이러실까?” 샴바라가 주먹을 치켜들자 아크는 얼른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이사벨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오는 찾아온 건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입니다.” “말씀하세요.” “그 전에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크는 장난기를 지우며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다크브라더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크의 질문에 이사벨과 샴바라가 움찔했다. 이사벨은 잠시 망설이다가 슬쩍 시선을 돌려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삼바라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크는 그런 반응에서 예전보다 한결 진척된 둘의 관계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이사벨은 중요한 용건의 답변을 샴바라에게 미뤘다. 이것은 샴바라를 그만큼 신뢰하고 의지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샴바라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선 행동은, 스스로도 그녀의 입장을 대변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크는 예민한 눈썰미로 이렇듯 간단한 행동 하나만으로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정작 본인 옆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샴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곤란하다고 말할 수준은 아니야. 조금 잡음이 있을 뿐이지.” “그 잡음 때문에 네가 여기 와 있는 거고 말이지?” “다 알고 있으면서 괜히 여기저기 찔러보지 마. 대체 뭐야, 하고 싶은 말이?” 아크가 빙빙 돌려가며 말하자 샴바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러지.”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브라더에게 생겼다는 문제는 방금 전 206호에게 들은 내용이었다. 아크가 유계에서 놀고(?) 있는 사이, 다크브라더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샴바라의 전직 퀘스트. 대륙을 돌아다니며 오래전 흩어진 다크브라더의 분파를 규합하는 것이었다. 현재 샴바라의 퀘스트 성취도는 60%. 절반 이상의 세력을 규합해 점차 다크브라더의 본모습을 찾아 가고 있었다. 암흑 세기의 어쌔신 마스터, 살린 이후로 그만한 세력이 규합한 건 처음이었다. 다크브라더가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는 이사벨에게 이런 변화는 희망의 전주곡처럼 들렸으리라. 그리고 샴바라가 임무를 100% 완수하리라 ale어 의심치 않고 서둘러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새삼스럽지만 다크브라더를 모두 규합하는 것만으로 염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과거 살린도 모든 세력을 규합했지만 다크브라더의 염원을 이룰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이사벨에게 샴바라가 이렇게 조언했다고 한다. “일전에 저희를 도운 갱생단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은 예전에 도적단을 제압해 교화시켰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도적단도 평범한 주민이 되어 생활하고 있죠.” 도적단이 평범한 주민이 되어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갱생단이 이룩한 업적은 이사벨에게 큰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그리고 갱생단의 도적단 갱생 프로젝트를 롤-모델로 삼아 다크브라더의 개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 첫 단계가 암살 임무를 중단하고 내실을 다지는 것. 그러나 이사벨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먼저 가끔 상인들이나 털고 사는 도적과 유저나 귀족을 암살하며 살아온 다크브라더의 카오틱 수치는 자릿수가 달랐다. 도적이 카오틱을 푸는 데 한 달이 걸렸다면 다크브라더는 1년이 걸릴 정도. 게다가 도적들은 어중이떠중이의 집단이라 직업이 없는 자들도 많았다. 반면 다크브라더는 태어날 때부터 암살자. 싸우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도,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런 다크브라더가 암살을 그만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도적들은 몇 달 동안 란셀 마을의 도움을 받았지만, 다크브라더는 그럴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그 와중에 흩어진 세력이 규합되어 식구는 더 늘었다. 수입은 없어지고, 군식구가 늘어 버리니 당장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물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암살 조직이니 쌓아 놓은 재산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재산이 바닥나기 전에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설사 이사벨의 뜻대로 된다고 해도 이미 재산이 바닥나 버리면 그다음은? 땡전 한 푼 남지 않은 다크브라더는 암살자에서 그냥 실업자가 될 뿐이지 않은가? “수장님의 뜻은 이해합니다. 그건 수장님만이 아니라 일족의 염원이니까요.” “하지만 의욕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의 건조가 왜 암살자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잊으셨습니까?” “우리에게도 가족이 있습니다. 피의 역사를 끊는다고 해도 그들이 굶주린다면 우리는 다시 선조들과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각 분파의 장로들에게 슬슬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몇몇 장로들은 다시 독립해 암살자로 돌아가겠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샴바라가 임무 수행을 중단하고 살린의 탑으로 돌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죽어라 분파를 규합해도 이런 상황이면 언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뭐, 사실 그보다는 궁지에 몰린 이사벨이 걱정돼서겠지만…. ‘하지만 샴바라가 온다고 별수 있겠어?’ 아크와 샴바라는 게임 방식이 전혀 다르다. 아크는 이득이 된다면 유저든 NPC든 온갖 감언이설과 사탕발림을 사용해 내 편으로 만들어 놓고 보는 성격이다. 반면 샴바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묵묵히 돌진하는 타입. 그런 성격 덕분에 암살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샴바라나 이사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나에게 절호의 기회다!’ 입구에서 206호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아크에게 목숨 빚은 진 206호의 친밀도는 다크브라더 가운데서도 치상. 만약 206호가 만나지 못했다면 내부 사정을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들을 수는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덕분에 아크는 이번 협상을 최상의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슬쩍 운을 떼었다. “다크브라더의 문제, 어쩌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가?” 샴바라는 좀 수상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나 아크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계속 말을 이었다. “자, 정리해 보자. 지금 다크브라더의 문제가 뭐지?” “그야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거지.” “그래, 그게 핵심이야. 일을 못 한다. 그러나 돈을 못 번다. 게다가 할 일 없이 시간만 많으니 괜히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게 가장 큰 문제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을 해야 해. 하지만 다시 암살을 시작하면 다크브라더가 밝은 세상으로 나갈 길은 더욱 멀어질 뿐이지” “…용건만 말하라고 했을 텐데?” 하여간 대화의 A, B, C도 모르는 녀석이다. 주변의 상황을 콕콕 짚어 가며 한 발, 한 발 본론에 다가가는 묘미를 모르다니… 괜히 심통이 난 아크는 머리, 꼬리를 다 잘라 내고 몸통만 툭 던졌다. “정당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면 돼.” “뭐?” “본론만 말하라며?” “너 정말….” 샴바라가 와락 눈가를 찌푸리자 이사벨이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정당한 일자리라니요? 자세히 말씀해 보세요.” “저기 시꺼먼 녀석은 마음에 안 들지만… 수장님의 부탁이라면. 자, 그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행을 하다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차원 세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차원의 주민들은 지금 적대 종족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도우라는 건가요?” “이해가 빠르시군요.” “그게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냐?” 옆에서 듣고 잇던 샴바라가 툭 끼어들었다. 아크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쯧쯧쯧, 이렇게 느려서야 어디…. 그렇게 이해가 안 되냐? 내가 말했지? 그곳은 이차원이라고. 즉, 중간계의 법규 따위는 통하지 않아. 다크브라더가 암살자라도 그곳에서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거야. 아니, 그곳의 주민들을 도와 적대 종족을 막아 주면 오히려 환영하겠지. 다크브라더가 그곳에서 새로운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말이야.” 그제야 삼바라의 얼굴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샴바라는 이내 한숨을 불어 냈다. “하지만 이차원의 주민을 위협할 정도의 세력이라면 상당한 규모일 텐데?” “그렇지 않다면 다크브라더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지.” “잘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 “중간계에서 목적을 이루는 데는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으냐?” “….” 샴바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네 목적대로 된다고 치자.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밝은 세상의 세력으로 자리를 잡는 거야. 그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 산다면 지금과 다를 게 없잖아.” 좋아, 이제야 얘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얘기가 끝난다면 그렇겠지.” “거기서 얘기가 끝난다면?” “나는 일단 적대 동족의 공격을 막아 내면 이차원, 유계를 중간계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대륙에 신세계가 나타난다는 말이지. 자, 그럼 어떻게 될까?” 샴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느려, 느리다고, 샴바라 군, 그렇게 상상력이 빈약해서 히 험한 세상 살겠어?” 아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럼 힌트를 좀 더 주지. 대륙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는 거야. 그때 중간계의 주민들, 혹은 귀족들은 유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게 될까? 어떤 행동을 취하려고 할까?” “서, 설마 네 말은 …?” “이제야 이해한 모양이군.”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사벨이 경악성을 터뜨리며 일어났다. “알겠어요, 아크 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만약 아크 님의 말대로 유계라는 곳이 중간계의 일부가 된다면 그건 신대륙. 문명 세계에서 신대륙이 발견되면 벌어질 일은 두 가지뿐이지. 약탈이나 친선.” “… 계속해 보십시오.” 아크는 이사벨을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덕분에 용기를 얻은 이사벨은 더욱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현재 삼국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아요. 또한 얼마 전까지 나가란에서 전쟁을 치르느라 군사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취할 방법은 하나, 친선이에요. 믿기 어렵지만 만약… 만약 정말 신대륙이 나타난다면 삼국은 앞다퉈 신대륙의 세력과 교류하기를 원할 거예요.” “잘하셨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하죠. 만약 유계가 등장한 시점에서 다크브라더가 적대 종족은 제압하고 유계 주민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기반을 잡았다면? 미리 말해 두지만 유계 주민들은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어서 아직 국가 규모의 친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죠.” “유계의 대표로서 대륙의 삼국과 친선 회담을 대행할 사람은 다크브라더밖에 없어요.” 이사벨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한참을 빙빙 돌려 말했지만 이게 아크가 준비한 ‘설득의 무기’ 였다. 사실 이런 설득 내용은 이미 란셀에서 대강의 밑그림을 그려 두었다. 그러나 206호의 얘기를 듣고 아크는 설득 방법을 약간 바꿨다. 같은 말이라도 먼저 다크브라더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닌 ‘도움울 주는’ 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결과라도 전제 조건이 달라지면 얻는 것도 달라지기 마련. ‘우후후후, 이로써 나는 다크브라더에게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거지.’ 나날이 잔머리만 늘어 가는 아크였다. 그러나 역시 샴바라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딴지를 걸어 댔다. “하지만 그 얘기를 가져온 게 다름 아닌 아크입니다.” “샴바라 님은 친구를 믿지 못하나요?” “아아,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아크가 불쌍한 얼굴로 한숨을 불어 내자 이사벨이 너무한다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덕분에 나쁜 놈이 돼 버린 샴바라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돌렸다. “그, 그게 아니라 우리는 아직 유계라는 곳을 모릅니다. 유계 주민을 위협한다는 적대 종족에 대해서도 모르고 말입니다.” “저희 선조가 처음 대륙에 발을 디뎠을 때도 그랬죠.” “물론이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용기, 그게 위대한 선조의 피를 물려받은 다크브라더의 자세 아니겠습니까?” “아크, 넌 조용히 해!” 샴바라가 버럭 소리치며 다시 이사벨에게 말했다. “수장님이 태어난 살린의 탑을 포기해야 하는데도 말입니까?” “…다크브라더의 숙원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정들면 고향 아닙니까?” “아크, 넌 좀 빠지라니까!” 샴바라가 계속 고춧가루를 뿌려 대는 아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전투라면 모를까, 말싸움으로 샴바라가 아크를 당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교묘한 말재간으로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화술이 20 상승했습니다.》 NPC를 완전히 꼬드겼을 때 올라가는 화술! 정보창의 결과대로 이사벨은 이미 완전히 마음을 굳힌 표정이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모두 털어 버리고,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 태어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야말로 다크브라더의 숙원. 후세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뤄야만 하는 일이죠. 인도자님, 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이사벨에게 푹 빠져 있는 샴바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게 바로 아크가 이사벨을 집중 공략한 이유였다. ‘후후후, 샴바라. 너는 아직 멀었어.’ 어쨌든 아크의 목적대로 일이 성사되었지만 다크브라더에게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미 말한 대로 둘도 없는 기회였다. 즉,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이다. 그때 샴바라가 히죽거리는 아크를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좋아, 네 뜻대로 됐다. 이제 다 털어놔 봐. 뭔가 바라는 게 있겠지?” ‘그 질문을 기다렸다.’ 아크는 때마침 그런 질문에 던져 준 샴바라가 고마웠다. 사실 아크는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아크가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다크브라더에게 살길을 열어 준 것이 된 것이다. 아크가 《신기루 서재》와 《유계 세계수의 부활》 퀘스트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뭐, 그렇지. 만약 일이 잘되면 몇 가지 부탁이 있어.” 아크는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고 생각해 놓은 보상을 설명했다. 아크가 이득도 없이 이런 얘기를 하려고 일부러 찾아왔을리는 없다. 분명 뭔가 다른 목적이 있다. 그렇게 의심하던 샴바라는 아크의 노골적인 보상 요구에 오히려 의심을 풀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정도라면 수용할 수 있을 거예요. 뭣보다 일족의 운명이 걸린 일이니까.” 이사벨은 아크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곧바로 회의를 소집해 유계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아크도 장비를 점검하며 유계로 돌아갈 준비를 서둘렀다. “마령 소환, 데드릭, 라자크!” “아아, 젠장… 모처럼의 휴가도 끝났구나.” 소환되자마자 데드릭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잠시 안 보는 사이에 군기가 빠진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데드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살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짜증 내지 마.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또 휴가를 줄 테니까.” 그러자 데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헉, 무, 무슨 소리냐? 주인, 뭐 잘못 먹었냐?” ‘이 자식이 정말….’ 아크는 다시 불끈하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아크가 그렇게 참는 것은 ‘애정’ 스탯 때문이었다. ‘애정’ 의 새로운 활용법을 알아냈으니 조금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서는 일단 폭력을 삼갈 필요가 있었던 것. 목적을 위해서라면 소환수의 반항도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아크였다. “자, 마법진을 만들자!” 아크는 소환수와 함께 살린의 탑 광장에 초대형 마법진을 만들었다. 다크브라더의 운명이 걸린 유계 원정인 만큼 원정대의 규모도 상당했다. 수장 직속의 정예 병력 400. 다크브라더의 가장 뛰어난 암살자 800명으로 조직된 원정대다. 지휘관은 의욕이 넘치는 이사벨이 맡겠다고 방방 뛰었으나, 샴바라의 간곡한 만류로 일단 샴바라가 맡기로 했다. 대신 이사벨은 살린의 탑에 남아 후방 지원과 다크브라더 전체의 유계 이주를 준비하기로 결정되었다. “오래전 새로운 희망을 찾아 대륙에 발을 들여놓은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어요. 물론 우리가 가야 하는 곳도 결코 안락한 땅만은 아닐 거예요. 많은 고통과 희생이 따를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가야만 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다크브라더의 영광을 위해서!” 이사벨의 연ㄴ설이 끝나자 수백 자루의 검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바야흐로 유계와 다크브라더의 운명을 건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ACT3 Show me the money!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다크브라더와 함께 무사히 유계로 넘어온 아크는 하겔 숲 인근에서 북실이와 함께 들어온 정의남 일행가 합류했다. 아크에게는 항상 툴툴거리고 못마땅해 하는 삼바라였지만, 정의남과 갱생단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지키며 인사했다. 정의남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샴바라, 오랜만이군. 살린의 탑에서 보고 처음이지?” “네, 형님들도 함께 계시니 좀 안심이 되는 군요.” 샴바라가 노골적으로 아크를 흝어보며 중얼거렸다. “무, 무슨 소리야? 나 혼자는 안심이 안 된다는 말이야?” "네가 언제 믿음이 가는 짓을 한 적이 있냐?" 샴바라가 콧방귀를 뀌며 쏘아붙였다. 윽,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아크는 자신이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착하고, 선량한 사람인지에 대해 3박 4일 정도 알려주고 싶었으나, 사실 현재 상황이 그리 널널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여전히 쥬르 일당과 나크족은 유계 정복 계획을 진행하고 있으리라. 한시라도 빨리 바란족과 합류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 “샴바라, 너는 나중에 나하고 진지하게 한번 대화를 해야겠다. 아크는 일단 병력을 이끌고 유계를 가로질렀다. ‘저곳이 바란족의 회합 장소인가?’ 갈기 산맥 아래에 도착하자 급하게 세워 놓은 듯한 막사와 무장한 바란족이 보였다. “뭐, 뭐냐! 너희들은?” 아크가 병력을 이끌고 다가가자 수십 명의 바란족이 앞을 가로막았다. 카오틱 암살자를 발견하고 적으로 판단한 모양이다. 하긴 카오틱이 아니라도 이미 모든 바란족에게 나크족의 침공 사실이 전해졌을 테니, 외부인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 안쪽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뛰어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베스튜라와 먼저 갈기 산맥을 찾아온 레리어트였다. “그들은 적이 아니에요! 바란족을 도와주기 위해 오신 분들이에요!” “도와주러 왔다고?” “네, 이분이 바로 베스튜라 님이 말했던 아크 님이에요.” 레리어트의 설명에 바란족은 슬쩍 아크 일행을 훑어보고는 길을 터 주었다. 그제야 레리어트는 아크를 돌아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연락받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크는 유계로 들어오기 전에 미리 레리어트에게 전화를 걸어 두었다. 때문에 아크는 이미 이곳의 상황을 대강 파악한 상태였다. 레리어트와 함께 도착한 베스튜라가 ‘맹약의 봉화’를 올려 바란족 전사들을 소집한 것 그리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바란부족의 장로들도 이곳에 모여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바란족 전사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묻자 레리어트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왜 그러시죠?” “그게… 저기 보이는 바란족이 전사들이에요.” “네?”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가 가리키는 야영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몇 번 눈을 깜박거리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농담이시죠?” “….” “그, 그럼 다른 전사들은 어디에 잇습니까?” “…저게 전부예요.” 레리어트의 한숨 섞인 대답에 아크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옛날 바란족 전사들은 언젠가 빼앗긴 북부를 되찾을 것을 맹세하고, 약속이 그날이 올 때까지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고난을 찾아 각지로 흩어졌네. 분명 이 순간에도 뼈를 깎는 수련을 반복하며 ‘맹약의 봉화’가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이게 아크가 베스튜라에게 들었던 바란족 전사들의 이야기였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아크는 그런 설명을 들으며 강력한 포스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우람한 근육질의 스머프를 떠올렸다. 가가멜과도 맞짱을 뜰 수 있는 그런 강력한 스머프 말이다. 때문에 아크는 어느 정도 안도하고 있엇다. 결코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바란족에게도 그런 전사들이 있다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전설, 현실은 그처럼 멋지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이건 뭐, 전사라기보다는 난민이군. 밥이나 먹고 다니는 건가?” 아크의 어깨에 걸터앉은 데드릭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번만큼은 아크도 데드릭의 의견에 100% 동감이었다. 막상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바란족 전사의 실체를 확인해 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바란족 전사들은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오지의 원주민들 같았다. 전사다운 근육은커녕 비쩍 말라 한 1년은 굶은 사람들 같았다. 물론 명색이 전사라 갑옷이나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너덜너덜해서 갑옷인지 누더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거지의 혈통을 전사의 혈통이라고 잘못 말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숫자도 고작 1,000여 명….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얘기하고 다르잖아요.”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자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설명했다. 바란족이 북부에서 쫓겨나던 당시, 남부는 그야말로 황폐한 땅이었다. 바란족 전사들은 일족을 지키지 못하고 그런 곳으로 쫓겨나게 한 데에 책임을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찾아 길을 떠났다고 한다. 거기까지는 전설대로였다. 그러나 전사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어 먹고 있었단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전사다. 싸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무기와 방어구조차 일족에게 수리를 맡겼던 형편이라, 가지고 있던 장비품도 곧 폐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벌거숭이가 되어 황야에 버려진 것이다. 게다가 가축을 키우거나 밭을 일굴 줄도 모른다. 숲에서 식재료를 채취할 줄도 모른다. 그럼에도 명색이 전사라 자존심은 있어서 다시 일족을 찾아가지 못했다. 덕분에 바란족 전사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계형 전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100여 년이 흐른 지금, 간신히 살아남은 전사들은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변해 버린 것이다. “바란족 전사들이 ‘맹약의 봉화’를 보고 달려온 건 전쟁이 시작되면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래요.” ‘무슨 춘추 전국시대 난민 병사들도 아니고… 밥만 먹여 주면 아무래도 좋다는 건가?’ 레리어트의 말에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런 전사들을 주 전력으로 삼아 헤르메스 나크족 연합 세력과 싸워야 한다니? 두 종족의 전력 차이가 이렇게까지 난다면 나크족이 남부로 넘어올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어쩌면 유계가 나크족의 손에 넘어가는 게 뉴 월드의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는 현실처럼 ‘절대’라는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저들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세계, 그게 뉴 월드다. ‘설사 그게 뉴 월드의 시나리오라도 다크브라더가 참전한 것으로 뒤집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어. 그리고 아직 바란족이 남아 있다. 나크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니 너구리족처럼 일반 병사를 모을 수 있을 거야. 조련사도 잘만 이용하면 상당한 전력이 되겠지. 그래, 아직 실망하기는 일러.’ 아크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할 때였다. “실은 문제는 바란족 전사가 아니에요.” “네, 이보다 큰 문제가 있다고요?” “…일단 따라오세요. 저 막사에 바란족 장로들이 모여 있어요.”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막사로 향했다. 그녀의 풀죽은 모습에 아크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바란족 전사만으로 충분히 실망스러운데 그보다 더한 문제가 있다니? 아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갱생단원들이 와락 달라붙었다. “너, 너, 너, 너, 저 여자는 뭐냐?” “네, 뭐라니요? 말했잖아요, 레리어트 님이라고.” “혹시 예전에 아란하고 같이 있던 여자 아니야?” “아, 그건 사정이 좀 있어서….”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리자 갱생단이 침을 튀겨가며 떠들어 댔다. “너 이 자식, 그럼 그동안 유계에서 저 여자와 시시덕거린거냐?” “적과의 동침이냐? 그런 거냐?” “로코는 상점에 처박아두고?” “용서 못 해! 정의의 이름으로 널 심판하겠다.” “조강지처 버리면 벌 받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레리어트 님하고 저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아크의 대답에 길길이 날뛰던 갱생단이 움찔했다. “아, 아니라고?” “네, 그냥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 같이 있는 것뿐이라고요. 그리고 조강지처는 대체 뭐예요? 로코하고도 그런 건….” 아크가 툴툴거리며 말했지만 이미 갱생단은 듣고 있지 않았다. 뭔가 수상한 눈빛을 주고받던 갱생단이 이내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우후후후, 아무 사이가 아니란 말이지?” “이차원에서 만난 묘령의 처녀라, 왠지 좋은 느낌이 드는걸.” “어이, 침 흘리지 마. 저 아가씨는 내가 찍었어.” “뭐야? 누구 마음대로?” 하여간 누가 노총각들 아니랄까 봐….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한 생각하지 마세요. 레리어트 님은 남친 있거든요.” “쳇,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그 골키퍼가 재벌쯤 되는데도 들어갈까요?” 아크는 한마디로 갱생단을 침몰시키고 장로들이 있다는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분위기는 방금 전 어뢰를 맞고 침몰한 갱생단보다 더 암울했다. 막사에 모인 10여 명의 바란족 장로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한숨만 푹푹 불어 내고 있었다. 아크가 들어섰을 때도 힐끗 쳐다볼 뿐,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로들의 냉담한 반응에 베스튜라는 뭔가 단단히 틀어진 표정으로 인상을 쓰다가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 레리어트에게 얘기 들었네. 지원군을 데리고 왔다고?” “네, 막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런 겁니까?” “그게 말이네….” 베스튜라가 한숨을 불어 내며 작은 목소리로 대강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자네들이 도착하기 전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나크족은 얼마 전 계곡 마을에 영자 이동 탑을 완성시켰다고 하네. 그리고 속속 나크족의 병사들이 이동해 현재는 2,000 이상의 병력이 남부에 주둔하고 있지. 놈들은 이미 동부 일대를 거의 점령한 상태라네.” “벌써 2,000….” 입속으로 되뇌는 숫자가 까끌까끌한 모래알처럼 느껴졌다. 현재 바란족의 전력은 전사…를 가장한 거지 떼 1,000, 다크브라더 800, 거기에 아크와 갱생단이다. 반면 나크족은 2,000이라고 하지만 수신탑이 완공됐으니 이제부터 숫자는 가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 질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숫자에서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열세인 것이다. 역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바란족 전체의 힘을 모아 대항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나크족이 동부 일대를 점령하는 것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입니다. 전사들에게만 기댈 수 없어진 지금, 우리도 서둘러서 병력을 모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게….” 베스튜라가 장로들을 흘기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때, 침묵을 지키던 한 장로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나크족과 싸울 생각이 없네.” 아크는 잠시 동안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되물었다. “뭐라고요?” “싸우지 않겠다고 말했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습니까?” 아크가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자 장로가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자네들은 그저 이방인이 아닌가? 나크족과 바란족에 대해 뭘 안다고 나서는 건가? 물론 베스튜라에게 얘기를 들어 대강의 상황을 알고 있네. 멀리서 우리를 도우러 와 줬다는건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자네도 봤다시피 우리는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의 뜻을 밝혔다. “자네가 데려온 지원군 800이라고 했나? 수천의 나크족을 상대로 고작 800명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자네들은 이방인.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상황이 안 좋아지면 금세 발을 빼겠지. 그런 자들에게 우리 일족의 목숨을 맡길 수는 없어.” “이보게, 말이 심하지 않은가!” 베스튜라가 소리쳤지만 장로들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됐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자네도 봤지 않은가? 지금 막사 밖에 모인 난민들이 우리가 믿었던 전사의 실체네. 우리는 그동안 당치도 않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네.” “나크족이 북부 산맥을 넘어 침공해 온 순간부터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었어. 대항하면 죽을 뿐이지. 하지만 항복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미안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가능성에 걸어 보겠네.” “베스튜라, 일족의 장로라면 그 무엇보다 일족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는 것도 용기라네.” 장로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에 아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크에게 유계의 일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때문에 바란족도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바란족에게 아크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게다가 바란족은 대부분이 일반 NPC. 물론 바란족 전사들이 기대처럼 멋지게 등장해 줬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그들의 실체에 실망한 바란족은 최소한의 용기마저도 잃어버렸다. 너구리족처럼 전쟁을 두려워하는 바란족이 이방인의 말 몇 마디에 목숨을 걸고 나서 줄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분명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대로 바란족이 전쟁을 포기해 버리면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신기루 서재》와《유계 세계수의 부활》퀘스트를 실패하는 것은 물론, 중간계에서조차 설자리가 없어진다. 게다가 아크의 말만 믿고 유계까지 따라온 다크브라더와의 관계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이건 이제 아크에게도 사활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걱정할 여유도 없었다. 아크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때 돌연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샴바라 님께서 ‘전음’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전음을 허락하자 곧바로 샴바라의 살벌한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어 댔다. -너 이 자식,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다크브라더까지 끌어들인 거냐? 이사벨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하여간 어떻게든 네가 해결해. 만약 이대로 다크브라더의 유계 진출이 막혀 이사벨을 실망시킨다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 어디서 뭘 하든 항상 뒤통수를 조심해야 할걸. ‘젠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지껄이고 싶은 대로만 떠들어 대고….’ 아크는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젠장,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너구리족 때는 마약이라도 먹였지만 당장 그런 걸 구할 방법도 없잖아. 정말 환장하겠군. 샴바라 녀석, 눈빛을 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만약 이대로 일이 틀어지면 헤르메스고 뭐고 샴바라가 먼저 죽이려고 달려들겠지.’ 답답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아크가 돌연 고개를 번쩍 치켜세웠다. ‘가만, 죽인다고? 아하, 그렇군. 좋아,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라면 나도 이판사판이다. 어디 한번 다같이 죽어 보자고!’ 어차피 궁지에 몰렸다. 못 할 게 뭐가 있겠는가? -좋아, 샴바라. 어떻게든 해 보지. 대신 네가 날 도와줘야겠다. 아크는 엄청난 속도로 머릿속에서 꿍꿍이를 세우고 전음으로 샴바라에게 대강의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알았어. 일단 한번 믿어 보지. 샴바라의 대답을 들은 아크가 갑자기 탁자를 내리쳤다. “그만 닥쳐!” 아크는 ‘협박’을 사용해 위협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협박’은 NPC를 설득할 때 성공률의 50%가 가산된다. 그러나 실패할 경우 몰매를 맞는다는 무시무시한 페널티가 존재하지만 어차피 장로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아크는 파리목숨이다. 이판사판인 것이다. ‘자,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화술’과 ‘협박’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어.’ ‘협박’의 경직 효과 덕분인지 한순간에 소란스럽던 회의실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장로들이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닥치라고 했다.” “뭐, 뭐라고? 감히…!” “감히? 당신들이 ‘감히’ 라는 말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가?” 아크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과격하게 말했다. “굴욕을 감수하는 것도 용기라고 했나? 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좋다, 당신들은 그렇다고 치다. 굴욕을 감수하는 용기인지 뭔지 마음껏 발휘해. 하지만 당신의 아이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베스튜라, 당신은 보나마나에게 용감하게 노예가 되자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니… 나는… 못하네.” 베스튜라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떠듬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떨궜다. 아크는 찌르는 듯한 눈매를 장로들에게 향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계곡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있다. 그곳의 주민들도 너희와 같은 바란족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되었지. 나는 그들을 보며 바란족이 얼마나 후륭한 종족인가를 알게 되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돕고 싶어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뭐라고? 굴복하는 용기? 빌어먹을, 멋대로 지껄이지 마라!” 아크는 이들을 설득할 생각으로 ‘협박’을 시작했다. 그런데 말을 하다 보니 정말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든 도와주려고-물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지만-지원군까지 데리고 왔는데 정작 당사자들이 무서워서 못 싸우겠다니? 세상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는가? 덕분에 잔뜩 화가 치민 덕분에 ‘협박’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진 것이다.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아크의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된 장로들은 감히 입을 역 엄두도 내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과연 아이들이 지금의 당신들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 자신의 것을 빼앗기면서도 항복할 생각밖에 할 줄 모르는 어른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고작 복종하고 개처럼 부려지는 것뿐이겠지. 좋겠군, 당신들의 아이들은 보고 배운 대로 ‘굴복하는 용기’를 발휘해 바닥을 기어 다니며 개처럼 충성을 다할 테니 말이야.” 아크는 혐오스러운 눈길로 장로들을 쏘아보다가 소리쳤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따위 더러운 꼴을 보고 있을 만큼 좋은 성격이 못 돼. 다크브라더!” “네, 아크 님.” “이들을 모두 처리하라!” 아크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장로들은 물론, 갱생단과 레리어트, 다크브라더의 눈가에도 당혹감이 번졌다. 너무나 뜻밖에 명령에 샴바라도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브라더는 아크의 명령에 복종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어느새 막사로 숨어든 암살자들이 장로들의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아, 아크, 이게 무슨 짓인가? 이들은 바란족의 장로들이네.” 베스튜라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얼어붙은 장로들을 노려보았다. “왜들 그러지? 설마 적에게 항복할 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도 각오하지 못했나? 웃기는군. 대체 무슨 근거로 항복만 하면 적이 당신들을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노예로 삼기 위해? 물론 놈들이 침략해 오는 건 노동력 착취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젊은 사람이나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 당신들처럼 늙은 사람들은 그저 밥이나 축낼 뿐이다. 살려 둘 이유가 없지 않나?” 장로들이 움찔하며 ‘그러고 보니 너희들 꽤 늙었다.’라는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크는 샐쭉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비굴하기 짝이 없지만, 그 용기만은 대단하군. 일족을 살리기 위해 늙은 목숨을 초개처럼던지다니. 멋져. 뭐, 그 정도 각오를 했다면 길게 끌 이유가 없지. 기왕 죽을 목숨, 조금이라도 쓸모 있게 죽어라. 단, 바란족이 아닌 나를 위해서.” “뭐?” “왜 놀라지? 당신들이 말한 대로 나는 바란족과 상관없는 이방인이다. 그렇다면 굳이 바란족을 도울 이유가 없지. 밥벌레에 불과한 당신들의 목을 나크족에게 넘겨주고 협상하는 편이 낫겠지. 걱정 마라, 당신들 뜻대로 나머지 바란족은 나크족의 노예로서 살려 달라고 부탁하지. 그리고 후손들에게 전해주마. 너희들이 노예로 살게 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당신들의 용기 덕분이라고. 아하, 후손들은 감격에 겨워 당신들의 용기를 대대로 칭송하며 눈물을 흘릴거야. 좋겠군.” “대,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건가?” “그게 유언인가? 멋대가리 없지만 꼭 후손에게 전해 주도록 하지.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암살자들이 검을 치켜들자 당로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자, 잠깐만 기다리게. 우리가 생각이 짧았네.” “생각이 짧았다고? 무슨 말이지?” “그, 그래, 물론 굴복하는 용기도 필요하지. 필요해. 하지만 때로는 맞서 싸우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그래, 그거네. 자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그걸 깨달았네. 그렇지 않은가?” “아아, 맞아, 그거네. 자네는 정말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해 주고 있었군.” 장로들은 나잇값도 못 하고 방금 한 말을 180도 뒤집어 버렸다. 자기편이라고 믿을 때는 아무 소리나 마구 해 대더니, 막상 위협을 가하자 금세 꼬리를 내린다. 이게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썩은 근성이다. 교통경찰이 조그만 실수를 해서 길이 막히면 차에서 내려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양아치들이 길을 막고 난동을 부리는 곳에 달려가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드물다. 양아치를 잡는 경찰에게는 강자처럼 행동하다가도 막상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면 곧바로 약자로 돌아서 버리는 것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항복하겠다는 말은 농담이었네 아니, 아니지. 사실은 자네들이 얼마나 굳은 각오를 하고 우리를 도우러 왔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어. 맞아, 그거네. 하하하, 그러고 보니 보통 각오가 아니구먼. 잘 알았네. 자네들이라면 믿고 따르겠네. 나크족은 우리의 원수! 당연히 맞서 싸워야지, 암.” …지금 그걸 핑계라고 대냐? 오죽하면 베스튜라가 얼굴을 붉히며 신음을 흘렸겠는가? 어쨌든 장로들이 완전히 백기를 들어 올리자 두두둥, 정보창이 떠올랐다. 보다 수준 높은 ‘협박’을 성공시켜 스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협박(상급, 액티브) : 협박은 단지 욕을 해서 상대를 겁먹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대화 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냐에 따라 같은 말도 설득이 될 수 있고, 협 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협박에 능숙해진 당신은 보다 많은 상황 에 협박을 적용시켜 상대를 설득, 혹은 굴복시킬 수 있는 카리스마 를 가지게 됐습니다. 마나 소모:50 《성공 시 NPC에 대한 설득력이 60% 가산됩니다. 몬스터는 60% 확률로 사기가 저하되어 도망치거나, 3초간 경직됩니다. 단, 실패 시 적대 수치가 60% 상승합니다.》 +상급 협박 보너스 효과 : 카리스마《눈빛에 범접하기 어려운 경륜이 서리게 됩니다. 협 박의 보조 효과로 일상 대화에서 NPC에 대한 설득력을 30% 상승시켜 줍니다. 또한 몬스터에게 협박이 성공할 경우, 경직과 함께 5% 확률로 ‘통제 불능’ 상태에 걸리게 됩니다.》 ‘어라? 이게 웬 떡이냐?’ 대부분의 스킬이 그렇듯이 ‘협박’ 역시 숙련도299 상태에서 등급이 잘 안 오르고 있었다. 중급까지는 대체로 수월하지만 상급 이상으로 올라가려면 특별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협박’의 경우에는 중대한 사안이 걸린 회의에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게 등급이 올라가는 조건이었던 모양. 장로들을 ‘협박’ 으로 요리하자 상급으로 올라가며 ‘카리스마’라는 부가 효과까지 덤으로 따라붙었다. 일석이조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상황이 이쯤 되자 정의남과 갱생단도 아크의 의도를 알아챘다. “아크,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그만 참아라.” “그래, 잠깐 우리를 시험해 봤다고 하잖아.” “이제 저들도 적극적으로 우리를 도울 거야.” “…알겠습니다.” 아크는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장로들을 향해 한마디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크의 진심 어린 설득(?)에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암살자들이 둘러싼 상태로 장로들은 곧바로 바란족=다크브라더 연합군을 결의하였고, 총사령관으로 아크가 추대되었다. 물론 사안이 사안이라 형식은 장로들의 다수결 방식을 이용했는데, 실제로는 독재자로 군림한 아크의 의견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모든 병사의 지휘는 양측의 사정을 잘 아는 내가 맡는 걸로 하겠습니다.” “찬성이오!” “장로님들의 말대로 현 상황에서 나크족과 정면충돌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다행히 나크족은 동부 일대를 점령하고 있는 중, 그러나 일단 동부는 포기하고 그 틈에 전력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찬성이오!” “아, 그전에 좀 쉬어 둬야 할 것 같은데…” “찬성이오!” 적어도 지금 막사 안에서 아크의 권력은 히틀러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아크가 의견을 내놓으면 저녁 메뉴로 개똥을 먹자고 해도 만장일치로 가결될 정도였다. ‘후후후, 이거 ’협박‘도 써 볼 만하데? 하지만 아직 방심 할 수는 없지.’ “각 부족 간의 원활한 연계를 위해서 장로님들은 앞으로 전투가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장로들이 최전선에 있어야 병사들도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을 테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장로님들의 안전은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 드리지요.” 이어지는 아크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 버렸다. 말인즉, 전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볼모로 잡아 두겠다는 뜻이었다. 갱생단과 샴바라는 아크의 일 처리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아크는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샴바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후후후, 멋지지? 이게 바로 경륜이라는 거야. -정말… 할말이 없다. 어쨌든 이로써 아크는 바란족을 장악하고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현우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정기 검진을 받은 게 사흘 전이었다. 어머니처럼 복합적인 증상을 가진 환자는 대개 두 달에 한 번 종합 진단을 받게 되어 있었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을 거친 환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한결 호전된 것 같아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다 당연히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더 강한 약을 사용하거나, 심하면 재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요 1년 사이에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2년 전ㄴ과 3년 전에도 호전되는 것 같다가 갑자기 악화된 적이 있었다. 때문에 현우는 언제나 검진 결과를 받으러 올 때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괜찮을 거야. 요즘은 어머니 안색이 많이 좋아졌잖아. 분명 좋아졌을 거야.’ 현우는 허벅지 아이에 양손을 끼워 넣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가슴을 졸였다. “809호 박소미 환자라….” 담당 의사가 모니터로 기록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때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혹시 뭔가 안 좋은 결과라도 나온 걸까? 현우는 불안한 눈으로 모니터를 힐끔거렸다. 그러나 의학과는 인연이 없는 일반인 전문용어를 알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환자나 보호자도 알아볼 수 있게 좀 쉬운 말로 써 놓으면 좋을 텐데, 어째서 의사들은 저렇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암입니다, 곧 죽겠네요.’라는 내용을 환자가 알아 볼 수 있어도 문제이긴 하겠다. “현우 씨?” 현우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담당 의사가 회전의자를 돌리며 현우를 마주 보았다. “네? 네!.” 현우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하자 담당 의사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일단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매우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지난 6개월간의 기록을 살펴보면 회복기에 접어든 게 확실합니다. 물론 X-ray나 MRI, 혈액 검사 등에도 특별한 소견이 없습니다. 아직 정상인처럼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 없다를 거론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 추세라면 희망을 가지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우는 와락 의사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불꽃이 터지는 듯한 머릿속으로 지난 몇 년간의 기억이 빛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5년… 횟수로 6년이다. 처음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섬뜩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의지로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의사조차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신해야 했다. 솔직히 현우는 어머니가 완전히 정상인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만, 계셔 준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6년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불안에 시달려야 했던가? 그런데 이제 의사에게 희망을 가져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의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현우지만, 병원에서 의사는 하느님이나 다름없다. 의사의 한마디, 손짓 하나에 환자와 보호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현우도 의사의 긍정적인 말에 단숨에 천국으로 올라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의사가 정말 부처님이나 하느님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환자와 보호자의 의지 덕분입니다.” 의사도 역시 좋은 결과를 말할 때가 아무래도 더 기분이 좋으리라. 담당 의사는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슬슬 통원 치료를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통원 치료요?” “네, 물론 앞으로의 예후를 지켜봐야겠지만, 두 달 뒤의 정기 검진에서도 지금 상태가 유지된다면 통원 치료로 바꾸는 편이 나을 겁니다. 다행히 박소미 환자 같은 경우에는 잘 견뎌 내고 있지만, 보통 입원 생활이 길어지면 정신적으로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주위 환경을 바꿔 주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소미 환자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고요.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병원비를 줄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리라. 그렇다고는 하나, 의사가 어머니의 말만 듣고 통원 치료를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기 검진의 결과 그대로 두 달 위면 통원 치료를 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다는 말이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희소식에 현우는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예전처럼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다!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일인가? 현우는 날아갈 듯이 진료실을 나와 병실로 뛰어갔다. “어머니, 들으셨어요? 두 달 뒤에는 통원 치료를 해도 될 거래요!” “그래, 나도 방금 전에 들어다.” 어머니가 주사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를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꼭 그렇게 돼야 할 텐데….” 이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현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무슨 자장면에 식초를 뿌려 대는 소리란 말인가? “그런 말이 어딨어요? 당연히 그렇게 돼야지요. 의사 선생님도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했단 말이에요. 혹시 저랑 같이 사는 거보다 병원이 더 좋아서 그런 거예요?” “얘는…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그럼 두 번 다시 그런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저 정말 화 낼 거예요.” 현우가 세 살 먹은 어린애처럼 볼을 부풀리며 투정을 부려댔다. 길거리에서 조폭들과 맞짱을 뜨고, 뉴 월드에서 온갖 감언이설로 NPC를 우려먹는 현우도 어머니 앞에서는 그저 어린애에 불과했다. 아니, 언제까지나 어린애이고 싶었다. “알았다, 알았어.” 어머니가 호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밝은 웃음소리에 현우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슴속에서 행복 에너지가 마구마구 차올라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기분! 정말이지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뭐지? 뭐예요? 어머니, 뭐 갖고 싶은 거 없어요? 아니, 그보다 통원 치료를 하려면 뭐가 필요하지? 아, 그래, 옷! 옷이다. 이참에 정장을 몇 벌 사 둘까요?” “무슨, 벌써부터… 그리고 집에 예전에 입던 옷이 많이 있잖니.” “그런 건 벌써 유행이 지났다고요.” “됐다는데도 그러는구나. 내가 언제 옷에 신경 쓰면서 살았니?” ‘그러니까 사 드리고 싶단 말이에요.’ 현우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나서 현우는 몇 년 동안 원룸을 전전하며 살았다. 원룸이라고는 하나, 보증금도 받지 않는 낡은 단칸방. 당연히 많은 살림살이를 중고품으로 팔거나 버려야 했다. 그때 어머니의 옷가지를 정리하다가 현우는 문득 깨달았다. ‘이게 어머니의 옷이었던가?’ 왠지 낯이 익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선 옷가지들…. 현우는 그때까지 어머니의 옷차림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니까, 그냥 어머니니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드시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새삼 어머니의 옷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솟구쳤다. 시장에서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옷들, 그조차 몇 벌 되지 않고 여기저기 꿰맨 자국까지 보인다. 아버지의 옷도 마찬가지였다. 10년이 넘어 곰팡이 냄새까지 나는 양복 몇 벌, 색이 바랜 셔츠 몇 벌, 그게 전부였다. …부모님은 그런 옷을 입고 계셨던 거다. 철없는 아들이 20만 원, 30만 원짜리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동안, 철마다 새 옷을 사 달라고 생떼를 부리는 동안, 정작 부모님은 그런 옷을 닳도록 입고 계셨던 것이다. 몰랐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버이날만 되면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사랑’을 목청 높여 불러 대면서도 정작 그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게 뭔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도 몰랐다. 못난 아들이 기죽어 지내는 걸 보기 싫어서 정작 그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게 뭔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어.’ 그날 현우는 다짐했다. 그리고 기죽어 지내는 법을 배웠고,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사용될 법한 억척스럽다는 말도 배웠다. 책이나 드라마에서나 사용될 법한 억척스럽다는 말도 배웠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배운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은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명품 핸드백인들 못 사 드리겠는가? 자가용인들 못 사 드리겠는가? “어머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건강만 신경 쓰세요. 통원 치료를 시작하면 제가 맛있는 것도 얼마든지 사 드리고, 요즘 유행하는 옷도 다 사 드릴게요. 아셨죠?” “말만 들어도 고맙다.” “말만이 아니라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녀석아, 간호사가 놀라겠다.” 현우가 소리치자 어머니가 어린애를 달래듯이 말했다. “저기… 저는 괜찮은데요. 이제 물리 치료받으실 시간이에요.” “아, 네. 간호사 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잘 돌봐 주세!” 현우는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몇 년을 봐 왔지만 참 좋은 아드님이세요.” “제… 아들이랍니다. 하나뿐인… 아들이에요.” 간호사의 말에 어머니는 물끄러미 병실 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쨌든 병실을 나선 현우는 여전히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뭐든 좋다,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좋다, 누구라도 붙잡고 어머니가 좋아졌다고 자랑을 늘어놓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아, 화랑 아저씨!”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권화랑이었다. 그렇다, 권화랑이라면 누구보다 어머니의 회복을 기뻐해 주리라.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검사 결과가 나왔느냐고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댔었다. 현우는 공중전화를 걸까 하다가 그냥 버스를 타고 권화랑의 집으로 향했다. “오오오, 그,그, 그게 정말이냐?” “축하한다, 인마!” “젠장, 드디어… 누님께서…!” “이, 이럴 게 아니야. 뭔가 축하 선물을!” “그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 쓰냐? 야, 돈 모아!” 역시나 권화랑과 갱생단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덩치가 산만 한 사내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때, 당장 병원으로 달려갈 듯이 어깨를 들썩이던 권화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현우야, 어머니가 통원 치료를 하게 되면 살 곳은 정해 놨냐?” “네?” 현우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권화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를 모셔 올 집. 너무 들떠서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해 보지 못한 것이다. 지금 현우가 살고 있는 집은 단칸 월세방이다. 컴퓨터와 TV, 유니트만으로 가득 차서 옷도 대충 박스에 넣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화장실도 실외에 있어 꽤나 불편했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그런 집에 모셔다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머니가 퇴원하면 침대도 들여놔야 한다. 당연히 화장실도 실내에 있어야 하고, 적당한 크기의 욕실도 필요하다. 또한 병원이 너무 멀면 급한 일이 생겼을 때 곤란하니 병원과 가까워야 하고,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니 1층이라야 한다. 그게 최소한이다. 물론 일이 잘 풀려도 두 달 뒤에나 필요하겠지만, 새집을 구한다는 게 하루 이틀 준비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알아봐야지요.” “아직 이사철이 아니라 조건에 맞는 집은 쉽지 않을 텐테….” 권화랑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한 사내가 히죽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형님, 그런 일은 제가 전문이라는 걸 잊었우?” 그렇게 말하며 나선 사람은 유안국. 전직 부동산 전문 사기범으로, 갱생단에서 부동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내였다. “너는 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런 망할, 설마 내가 동생 녀석에게 사기 치겠습니까?”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순식간에 기가 막힌 집을 구해 줄 테니. 이 부동산, 아직 죽지 않았다고요.“ 부동산은 곧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대기 시작했다. “오오… 그래? 내가 말한 조건은? 아아, 그래? 야, 그거 좋은데? 어디라고? 알았어. 금방 갈 테니까 딴 놈에게 넘기지 말고 기다려. 알았어, 금방 간다니까.” 대략 30분, 부동산이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저하고 지금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현우야, 너도 따라와라.” “네? 지금 당장요?” “좋은 집을 구하는 건 타이밍이야. 일단 따라와 봐.” 부동산은 다짜고짜 권화랑과 현우를 데리고 병원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김 사장, 나야. 아까 말한 집 좀 보여 줘.” 그렇게 해서 현우는 말을 꺼낸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집을 구경하게 되었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권화랑과 갱생단원들의 행동력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다. 김 사장이라는 사람이 안내한 집은 작지만 정원까지 딸린 3층 주택이었다. “이 집은 1층이 주인집이고 2, 3층은 전세를 놓고 있는데, 주인집이 사정이 있어서 몇 년 동안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1층을 전세 놓으려는 중이야. 아마 자네가 말한 조건에 딱 들어맞을 거네. 방금 전에 전화해 놨으니 주인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자세한 설명은 일단 들어가서 하지.” “어, 이 집은…?” 김 사장을 따라 집에 들어선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보기에는 별반 다를 게 없는 집이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구조가 이상했다. 현관부터 거실, 방에 이르기까지 벽 옆에 철봉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거치적거리며 철봉을 인테리어라고 해 놓지는 않았을 거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철봉을 달아 놓은 걸까?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집주인이 나왔다. “집 보러 오셨습니까?” “네, 이 친구가 아까 전화로 설명드렸던 청년입니다. 김 사장의 말에 집주인이 갑자기 현우의 손을 잡았다. “얘기는 들었어요. 힘들겠지만 힘내세요.” “네? 그게 무슨…?”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을 구하신다고 들었어요. 실은 저희도 처지가 비슷하답니다. 수년 전에 아버님이 쓰러지셔서 아직도 거동이 불편하시죠. 이 봉들은 아버님이 생활하시는 데 불편하지 않게 해 드리려고 달아 놓은 거예요.” 그제야 현우는 철봉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가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달아 놓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병원의 복도에도 허리 높이의 난간이 설치된 걸 본 기억이 있었다. 거실이나 방만이 아니었다. 화장실도 환자가 사용하기에 도움이 되는 구조로 모두 개도되어 있었다. “외국에 친척이 있어서 아버님을 모시고 잠시 그곳의 재활 병원에서 지내도록 할 생각이에요. 그 방면으로는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집을 이 상태로 두고 싶어서 그냥 사용해 줄 세입자를 찾고 있던 중이랍니다.” 현우는 집주인의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나는 아직 멀었구나!’ 혼자 들떠서 정작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어쨌든 현우는 이 집이 대번에 마음에 들었다. 정상인이 생활하기에는 불편해 보였지만,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최상의 환경이다. 게다가 지금 현우가 살고 있는 집보다 햇빛도 잘 들었고, 병원도 가까웠다. 이사를 많이 다녀 본 현우는 이렇게 완벽한 조건의 집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외, 외국에는 언제 나가시죠?” “아직은 날씨가 추우니 한두 달 뒤로 예정하고 있어요.” 시간까지 딱 떨어진다! 이쯤 되니 현우는 이 집이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사 오겠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와 사정이 비슷하다니 남 같지 않네요. 그런 분이 이사 와 준다면 고맙죠.” 그 뒤로 뭐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자 부동산은 김 사장을 끌고 가 중개 수수료를 팍팍 깎아 댔고, 그 와중에 현우는 집주인과 가계약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큰일 해냈다는 기분에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오다가 갑자기 비명을 터뜨렸다. ‘헉, 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집은 100% 마음에 든다. 그 점에 대해서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집주인이 제시한 전세금이었다. 무려 8,000만 원. 그것도 9,000만 원에서 현우의 사정을 이해한 집주인이 개조된 집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1,000만 원 깎아 준 것이다. 그래도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현우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경매 사이트에서 입금되어 현재 은행 잔고가 대략 4,500만 원. 최소한 두 달 치 병원비는 남겨 놔야 하니 계약금으로 2,000만 원을 걸어 놨다. ‘나마지 잔금은 6,000만 원. 다행히 아크가 5,000골드 가까이 가지고 있으니 언제든지 현찰화할 수 있어. 이제 두 달 사이에 1,000골드만 구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현우는 그렇게 생각하고 가계약을 한 것이다. 그러나 정신이 없어 중요한 사실을 깜빡하고 말았다. 분명 아크의 가방에는 5,000골드에 가까운 골드가 있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전, 아크 종합상점을 만드느라 3,500골드 상당을 투자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현재 남아 있는 돈은 1,500골드 남짓. 그것도 시드에게 뜯어내고, 유니콘의 뿔까지 잘라 내서 복구한 골드였다. 다시 말해 두 달 동안 벌어야 하는 금액은 1,000골드가 아니라 4,500골드! 만약 두 달 안에 그 돈을 벌지 못하면 계약금 2,000만 원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혹시 잔금이 부족하면 말해라.” 돌아오는 길에 권화랑이 넌지시 속삭였다 그러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부동산이 키득거렸다. “이참에 아예 저 집에 신혼살림을 차릴 꿍꿍이 아닙니까?” “이, 이 자식이 무슨 그런… 현우야, 오해 마라. 절대 그런 거 아니다.” “알아요. 하지만 잔금은 제가 구해 볼게요.” 현우의 대답에 권화랑은 약간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물론 현우라 권화랑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부동산의 농담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어머니가 재혼한다면 권화랑 이외의 상대는 없다. 그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재혼과 전세방을 마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머니에 대한 문제만큼은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해 보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두 달 사이에 4,500만 원…!’ 현우는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좋아, 구하겠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하겠다! 가진 거라고는 악착같은 근성밖에 없는 현우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3,500골드는 그냥 쓴 돈이 아니야. 투자다. 두 달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회수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마그로프 관련 퀘스트를 완료하면 상당한 돈이 들어올 거야. 그래,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유계의 일 따위 후딱 해치워 버리고 돈을 벌어야 해!’ 현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유니트에 올라탔다. ‘돈,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우우우웅, 유니트가 진동하며 현우를 현실에서 뉴 월드로 안내해 주었다. 뉴 월드로 돌아온 아크의 눈동자는 어느 때 q;h다도 돈에 목말라 있었다. “쇼 미더 머니!” 아크의 사자후가 뉴 월드에 울려 퍼졌다. ACT4 전쟁은 사업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수립한 아크가 이렇게 운을 뗐다. 나크족이 수천이라고 했지만 아직은 바란족 병력보다 500~1,000가량 많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미 계곡 마을에는 아크가 중강계로 가 있는 사이, 영자 이동의 탑이 완공되었다. 남부로 이동하기가 수월해진 만큼 병력이 불어나는 건 시간문제이리라. “하지만 영자 이동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영자 이동의 오브’라는 아이템이 필요하죠. 그리고 제 짐작에 나크족은 그 아이템을 그리 많이 보유하고 있지는 않을 거예요.” “어째서?” 머리 회전이 느린 샴바라가 물었다. 똑똑한 데다 친절하기까지 한 아크는 머리 나쁜 샴바라를 위해 설명해 주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영자 이동 수신탑이 계곡 마을에 있는 건 하나뿐이라는 거야. 예전에 마법 학회에서 들은 바로는 영자 이동은 일종의 전파 같은 거라서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숫자가 정해져 있다고 했어. 그리고 한계 숫자까지 이동하면 다시 필요한 에너지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리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샴바라도 그제야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영자 이동의 오브’가 충분하다면 빠른 병력 이동을 위해 탑을 여러 개 건설했겠지. 하지만 놈들에게는 그런 기미가 없어. 즉, 탑을 여러 개 건설하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뜻. 하지만 건설해도 남은 ‘영자 이동의 오브’를 소화해 내기 충분하다는 말이지?” “맞아.” 간단하게 말하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병력을 만들어 내는 바락 건설을 생각하면 된다. 병력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 미네랄이 넘친다면 바락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미네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무리해 가면서 바락을 늘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시간이 없다는 거야. 놈들의 병력 생산에 한계가 있다면 최대치를 채우는 것과 동시에 공격해 올 가능성이 많아. 그러니 최소한 일주일 안에 5,000의 나크족과 싸울 준비를 마쳐야 해.” “가만, 일주일 동안 5,000?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숫자가 나온 거야?” “…당연히 계산해 봤지.” 샴바라의 질문에 아크가 영악한 눈동자를 빛내며 씨익 웃었다. “베스튜라를 통해 일전에 놈들이 계곡 마을에서 수신탑의 건설 속도를 알아봤어. 대략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이면 완공된다고 하더군. 그런데도 수신탑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재 놈들에게 남은 ‘영자 이동의 오브’는 일주일 남짓이면 소모할 수 있는 양이라는 거야. 그리고 수신탑을 이용해 이동할 수 있는 숫자는 탑의 완성도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탑이 완성된 뒤로 놈들의 병력이 늘어난 수치를 역산해 보면 하루에 300~400.” “말하자면 우리가 전쟁 준비를 할 시간은 최대 일주일. 놈들의 병력은 하루에 300~400씩 늘어나니 2,100~2,800. 현재 2,000가량 있으니 최종적으로 5,000 남짓이 된다는 뜻이구나.” “이제 이해가 가나요, 샴바라 군?” 아크가 안경을 치켜 올리는 듯한 동작을 하며 으스댔다. 샴바라는 꽤나 빈정이 상한 얼굴로 콧방귀를 뀌었다. “쳇,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잔머리가 아니라 명석한 두뇌가 빚어낸 뛰어난 추리력이지.” 어쨌든 이로써 불확실했던 적의 실체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아크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그동안 5,000의 적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더 이상 아크가 관여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의 평소 행동 수칙 중 하나는 ‘잘하지 못하는 일은 잘하는 사람에게 맡겨라.’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혼자 하겠다고 설치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현재 아크 일행에는 군사 전문가인 정의남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정의남 아저씨, 가능하겠어요?” “후후후, 남미에서 반정부 게릴라와 대치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군.” 남미 반정부 게릴라? 정의남의 과거 전력은 들으면 들을수록 액션 블록버스터다. 그게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무섭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이명룡이 정의남에게만큼은 공손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아크는 이 람보급 군사 전문가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사실 아크가 총사령관을 맡은 것은 어디까지나 구색에 불과했다. 뉴 월드에서는 수십 명 단위는 파티, 수백 명 단위는 공격대, 수천 명 단위는 군단으로 구분한다. 파티는 단순히 파티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격대부터는 구성이 약간 복잡해진다. 리더인 공격대장은 부대장을 임명할 수 있고, 각 파티별로 조장도 선발한다. 그 상위 조직인 군단은 더욱 복잡하다. 일단 리더인 군단장 그리고 그 밑에 2명의 부관을 임명할 수 있었다. 아크가 부관으로 선택한 사람은 정의남과 레리어트였다. 정의남은 당연히 모든 군사적인 일을 도맡을 역할로서 필요하다. 그리고 레리어트는 이노센스 나이트의 직업 특성으로 각종 버프나 보너스를 군단 전체에 적용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미 아크가 구성해 봤던 공격대 다크에덴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병력에 대한 특수 효과는 군단장이나 부관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적용시킬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그런 특수 효과가 가장 강력한 것은 이노센스 나이트인 레리어트였다. “열심히 할게요.” 모처럼 큰 직함을 받은 레리어트는 의욕에 찬 모습이었다. 일단 그렇게 전체적인 상황과 구성을 잡아 놓자 정의남이 앞으로의 할 일을 정리했다. “일단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군사적 요충지로 자리를 옮겨 방어 설비를 구축하고 바란족에서 군사를 징병하고 부족한 병력을 보충해 훈련시키는 일이다.” “생각해 놓은 거점은 있으세요?” “베스튜라의 도움을 받아 대략적인 유계 남부의 지도를 만들었다. 유계는 몇 개의 산맥으로 각 지역이 구분되어 있더구나. 그리고 현재 나크족이 주둔하고 있는 계곡 마을은 남동부. 이곳에서 남서부에 속하는 곳까지 진격하려면 필연적으로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정의남이 지도를 펼쳐 놓고 한 지점을 가리켰다. 갈기 산맥의 아랫부분에 위치한 협곡이었다. “베수튜라의 말을 들어 보니 마침 이 근처에는 오래전에 버려진 하만이라는 성곽이 있다고 한다. 거의 폐허나 다름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잘만 보수하면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거다. 일단 하만을 보수하는 한편, 병력을 훈련시켜야겠다.” “일주일 안에 모든 준비가 가능할까요?” 아크의 질문에 정의남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얼마나 버티는 게 목표냐?” 당연한 말이지만, 이번 전쟁은 승리가 목표가 아니다. 바란족이 남부로 진입한 나크족을 모두 물리치고 북부 산맥을 넘어 진격, 나크족을 몰아내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이번 전쟁의 목표는 나크족의 유계 정복을 막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아크가 승부수를 던질 ‘그때’가 될 때까지 말이다. “전쟁 준비에 일주일이 소모되면 남은 시간은 일주일이에요. 최소 일주일은 버텨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될 거다.” 그렇게 하만 요새로 이동한 정의남은 곧바로 전쟁 준비에 착수했다. 역시 가장 먼저 한 일은 남부 일대의 바란족 부락에서 병력을 모으는 일이었다. 이미 아크가 장로들을 인질로 잡아 놓은 상태라 병력을 모으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 사이에 모인 바란족 병력은 2,000. 바란족 전사와 다크브라더를 합하면 3,800. 아직 나크족의 예상 병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싸울 만한 숫자가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다크브라더 800밖에 없어. 나머지는 그냥 어중이떠중이다. 시간이 없으니 제대로 군사교육을 시킬 수는 없고… 아무래도 개개인의 특기를 살려 병고별로 전문 훈련을 시켜야겠다. 이렇게 해서 바란족은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받게 되었다. 정의남은 일단 바란족을 각자의 능력에 따라 구분, 각 부대로 편성했다. 그리고 이들의 훈련과 지휘를 맡는 부대장 역할은 갱생단에게 맡겨졌다. 일단 그나마 전사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바란족 전사 1,000명은 돌격 부대로 편성했다. 당연히 이들의 훈련과 지휘를 맡은 사람은 '가디언=돌격병‘으로 전직한 불끈이 외 2명. 다음은 징병한 바란족 가운데 지도 제작이나 사냥을 하던 주민들을 골라 정찰 부대를 편성했다. 정찰 부대는 ‘가디언=정찰병’으로 전직한 얍삽이 외 2명. 그리고 농부와 건축가를 골라 공병 부대를 창설했고 이들은 ‘가디언=공병’으로 전직한 부동산 외 2명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스튜라처럼 지식이 많은 소수의 노병들은 따로 모아 갱생단에서 유일하게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짝퉁이 지휘하는 전술 부대에 편입시켰다. 정의남의 결정에 아크는 조금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정의남 아저씨야 전문가니 그렇다 쳐도, 누군가를 가르쳐 본 적이 없는 형님들이 바란족을 훈련시킬 수 있을까?’ 그러나 첫날 훈련장을 둘러본 아크는 걱정을 접었다. “이 자식들 똑바로 못 해?” “어허, 눈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제대로 못하면 오리걸음 2킬로미터 행군이다!” “히에에엑!” 바란족이 비명을 터뜨렸다. 갱생단에서 전문적인 전술 훈련을 받은 사람은 정의남뿐이었다. 그러나 갱생단도 문외한이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대한민국에는 군복무 의무라는 게 있었고, 갱생단은 모두 군필자들이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병장을 구르며 각종 전술 훈련을 받아 온 것이다. 평소 사회생활에서는 좀처럼 그런 면이 드러나지 않지만, 막상 위에서 작전 임무가 하달되면 대한민국 남자들은 곧바로 군인이 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잠재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갱생단은 한때 어둠의 자식들로 살아왔던 암울한 과거까지 있다. 그런 조직 생활에서 아랫사람 군기 잡는 건 필수 과목. 덕분에 유계에서 여유 만만하게 살아왔던 바란족은 무시무시한 교관들 사이에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라? 이것들 봐라?” “고작 이 정도에 죽는소리를 하는 건 군기가 빠져서다.” “대한민국에서는 예비군도 이 정도 훈련은 졸면서 받는다.” “이번 모의 훈련에서 다른 부대에 뒤처지면 각오해라!” “우리 부대의 구호는 악으로, 깡으로!” 모처럼 수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게 되자 갱생단은 경쟁의식까지 불살랐다. 덕분에 죽어나는 건 나크족뿐이었다. “우으으으, 이대로 훈련을 받다가는 죽을 거야.” “아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몰아. 빨리 나크족과 싸우게 됐으면 좋겠어.” 오죽하면 바란족이 이런 말까지 하겠는가? 어쨌든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 이틀, 게임 시간으로 6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부대의 체계가 잡히고, 각자의 특기를 전술적으로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특히 발군의 성장을 보여 준 것은 돌격 부대였다. 비록 생활고에 찌들어 난민처럼 변해 버렸지만, 바란족에서 유일하게 전사의 혈통을 계승한 자들이다. 갱생단의 강도 높은 훈련에 그런 전사의 잠재력이 눈을 떴는지, 나크족 전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갔다. 잊었던 전투 스킬도 빠르게 각성해 나갔다. 또한 정찰 부대는 다크브라더와 합동 훈련을 하며, 공병 부대는 하만 요새를 복구하며 레벨과 스킬을 올려 갔다. “좋아, 이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바란족의 훈련 장면을 둘러본 아크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음 날, 아크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에 직면했다. “아크 님, 무기 공급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레리어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갱생단처럼 훈련을 시킬 수 없는 그녀는 남부 일대의 바란족 부락에서 군수물자를 징발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바란족은 농경 사회가 중심이라 농사를 짓거나 광물을 채취라거나 가축을 키우는 종족이다. 말하자면 1차 생산직을 가진 종족, 장로들을 앞세워 징발을 시작하자 군량은 넘칠 만큼 모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군수물자인 무기와 방어구는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았다. 물론 바란족에도 얼마 안 되지만 대장장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만드는 것은 갈퀴나 삽 따위, 무기를 제작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바란족은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는 경우가 많았고, 성능도 나크족의 장비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땡강-! “헉! 차, 창이 부러졌다!” 훈련 도중에 창이 부러져 나가는 건 예사. 하나밖에 없는 창을 잃어버릴까 봐 투창도 못 할 정도였다. 전쟁에서 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무기의 성능이 곧바로 전투력으로 직결되는 게임에서는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치겠군. 하나를 해결하면 또 하나가 터져 나오니.’ 아크는 한숨을 푹푹 불어 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기 생산만큼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대장장이를 육성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무기를 만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숙련된 대장장이 1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뭐, 바란족은 다 생산직이라 필요한 광석을 얼마든지 구 할 수 있겠지만….’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 문제는 제게 맡기세요.” 아크는 곧바로 ‘차원 이동의 가루’를 사용해 란셀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너구리족 대표를 찾아가 유계에서 가져온 광석을 보여 주었다. “이 광석들. 어떻습니까?” “오호, 굉장히 순도가 높은 광석이군요.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장인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너구리족은 돈보다 광석에 대한 탐욕이 강했다. 예상대로 너구리족 대표가 광석을 살펴보고는 탐난다는 듯한 눈빛을 보였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제안했다. “실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이 광석으로 쓸 만한 무기를 만들어 공급해 주시겠습니까? 최대한 많이. 무기 제작이 필요하니 석탄이나 숫돌 같은 것도 전량 제가 대 드리죠. 대신 무기 제작 대금을 광석으로 결제하게 해 주십시오.” “모든 대금을 광석으로?” 너구리족 대표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차피 우리에게 광석은 현찰이나 다름없으니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광석이라면 한 번쯤 다뤄 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군요.”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이거였다. 바란족 부락에서 허접스러운 무기 대신 광석을 징발해 너구리족에게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다. ‘이제 바란족의 무기 공급 문제는 해결된다. 게다가….’ 너구리족과 무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 아크가 히죽 웃었다. 군수물자는 NPC의 재산이다. 사령관이 되었다고 아크가 마음대로 착복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하만 요새에 쌓여 있는 군수물자를 보면서도 군침만 꼴깍꼴깍 삼켜야 했다. 그러다가 레리어크의 말을 듣고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현재 아크는 사령관으로서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아크가 군수물자를 꿀꺽할 수는 없지만, 전쟁 준비에 필요한 물건과 물물교환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너구리족과 직거래를 하면 중간에서 내가 이득을 얻을 방법은 없어.’ 너구리족과 체결한 계약은 광석, 석탄 따위와 무기의 1 대 1 교환. 중간에서 뭔가 이윤이 떨어질 구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마음만 먹으면 우물가에서 커피를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크가 아닌가? ‘후후후, 중개업자를 통해 거래를 하면 수수료가 발생하지.’ 아크가 생각해 낸 것은 란셀 마을에 자리잡은 아크 종합상점이었다. 거래 방법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아크가 유계에서 광석 1,000개를 가져와 상점에 매각한다. 이 단계에서 광석 판매 대금은 아직 NPC 재산이다. 핵심은 여기부터였다. 상점은 너구리족에게 광석을 넘기고 10개의 무기를 만들었다고 치자. 무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바란족에게 너구리족의 고급 무기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전쟁 중이니 가치가 더욱 상승해 광석 1,200개와 물물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아크는 그 광석을 다시 상점에 넘기고 무기 제작을 의뢰하면 된다. 즉, 처음 광석 1,000개를 살 때를 제외하고는 돈 한푼 안들이고 한 번 거래할 때마다 200개의 광석을 얻을 수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남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 놓는 것. 이것이 바로 중간 수수료라는 것이다. ‘대략 무기 10개당 공석이 200개. 무기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현재 필요한 무기와 방어구가 대략 1,000개. 이걸 다 작업하면 무려 20,000개의 광석이 생긴다. 이걸 모두 무기나 방어구로 만들어 팔면 최소 2,000골드의 이윤이 떨어진다!’ 그동안 아크가 할 일은 그냥 가방에 광석을 넣고 유계와 란셀을 왕복하는 일뿐이었다. 물론 이동할 때마다 ‘차원 이동의 가루’를 써야 하지만 어차피 가루는 남아돈다. 게다가 유계가 떠오르면 쓰지도 못할 가루가 아닌가?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우하하하, 역시 전쟁은 돈이 된다!’ “북실이, 너는 이제부터 유계와 란셀 마을을 오가며 무기를 날라!” 거래 루트를 만들어 놓은 아크는 놀고 있던 북실이에게 교역을 전담시켰다. 결국 거래 루트를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 2,000골드 상당의 이윤을 착복한 것이다. 게다가 바란족의 장비품 부족 문제까지 단숨에 해결해 버렸다. 그 무렵, 아크는 대장장이의 생산품도 항상 같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크가 만들어 내는 일품요리처럼 대장장이 역시 대략 50~60개 사이에 하나씩 명품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명품은 같은 동급 아이템보다 능력치가 월등히 좋았다. 명품 아다만티움 장검(마법) 무기 타입 : 한 손 검 공격력 : 33~38 내구력 : 400/400 무게 : 50 사용제한 : 레벨 200이상 유계의 광석인 아다만티움을 사용해 만든 장검입니다. 뛰어난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보기 드문 명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명품 무기는 일반 제작 아이템에 비해 10%가량 성능이 우수합니다. 또한 정밀한 조정으로 사용자의 손에 착착 감깁니다. 《옵션 : 방어구 파괴+20%, 반응속도+10%》 “보통 명품은 공임을 더 받아야 하지만 아크 님이 주문하셨으니 같은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횡재다!’ 아크는 이런 명품이 나오면 일단 상점에서 매입하는 걸로 처리해 놓고 갱생단에게 좀 더 비싸게 팔아 치웠다. 마침 전직한 뒤로 갱생단은 무기와 방어구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명품을 시중 가격보다 싸게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건 보통 40~50골드 하는데 형들에게는 30골드에 드릴게요.” 아크가 선심 쓰듯 말하자 갱생단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오오, 역시 너밖에 없다.” 덕분에 정의남과 갱생단은 장비를 몽땅 명품으로 도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갱생단의 장비가 좋아질수록 아크의 주머니도 따뜻해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두 달 안에 4,500만 원을 모아야 한단 말이다!’ 사실 정의남이나 갱생단도 중간에서 아크가 이득을 남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크라는 녀석은 성격이 좀 괴팍한 데가 있었다. 이번에 전세 계약을 하고 나서도 정의남이나 갱생단은 아크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아크는 사기를 쳤으면 쳤지, 그런 일방적인 도움은 절대 받지 않았다. 정당한 대가만 자신의 돈이다. 그게 비록 사기로 모은 돈이라도. 그게 아크의 지론이었다. 아크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했다. “이런 아이템이라면 50골드도 괜찮은데….” “아니요, 30골드면 돼요.” 아크는 친형들처럼 생각하는 갱생단이라고 손해나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유저나 NPC에게 하는 것처럼 폭리를 취하거나 사기를 치지는 않았다. 돈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나름대로 확고한 기준은 있는 것이다. 이게 갱생단이 항상 돈, 돈, 돈 하는 아크를 얄밉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였다. 어쨌든 그렇게 며칠, 무기가 1,000개 정도 확보되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투자 관련 정보창》 아크 님이 소유한 상점이 활발한 거래를 계속해 란셀 마을의 상업도가 상승했습니다. 란셀 마을에 대한 공헌도가 올라가 아크 님의 평판이 10만큼 상승했습니다. 소유할 수 있는 최대 지분이 1% 상승했습니다. 현재 소유한 란셀 마을 지분 (소유/상한) : 4/6% ‘후후후, 한 번 물꼬가 터지니 술술 풀려 나가는군.’ 아크 종합상점을 경유해 거래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엄청난 물자가 아크 종합상점을 통해 거래됐다. 또한 마을 NPC인 너구리족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아크는 마을의 상업을 부흥시킨 공적을 인정받아 지분 소유 상한이 올라간 것이다. 아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데드릭과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자, 너희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에엑? 우리도 훈련하는 거야?” 딱딱? 딱딱딱딱? 데드릭과 라자크가 질겁하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당연하지. 너희들은 바란족이 강해지는 걸 보면서도 의욕이 안 생기냐?” “무슨 그런, 이미 우리는 전문 과정을 뗐잖아, 저런 것들하고 비교가 돼? 원래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중요한 전투를 앞뒀을 때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며 힘을 비축하는 법이라고! 저런 기초 훈련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사냥이나 하는 편이 나아.” 하여간 말이나 못하면…. 그러나 데드릭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데드릭이나 라자크는 이미 몇 차례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온 전력이 있다. 덕분에 항상 작전 수행률은 90% 이상. 위기 상황의 임기응변도 상당한 수준이다. 때문에 자신보다 레벨이 100 이상 높은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아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환수가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바란족과 같이 기초 훈련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아크는 얼마 전 라둔을 통해 ‘애정’을 이용해 소환수의 스킬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단순히 ‘애정’을 투자한다고 스킬이 올라가는 게 아니다. 아크와 소환수가 그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야 비로소 스킬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하긴 스킬 이해도를 높이는 데 굳이 훈련을 할 필요는 없지. 사냥을 하면서도 스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이해도를 올릴 수 있을 거야. 덤으로 경험치와 잡템도 챙기고. 게다가 애정을 올리려면 소환수의 의견을 받아 주는 너그러움도 보여 줘야지.’ “좋이, 그럼 사냥을 하자.” 아크는 바란족이 훈련을 하는 동안 외곽을 돌며 사냥에 전념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주일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특성을 살려 주변에서 사냥하며 나크족의 동태를 살피던 샴바라가 다크브라더를 이끌고 요새로 돌아왔다. “아크, 놈들이 서부 지역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채챙, 서걱-! 날카로운 쇳소리와 살점이 베이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적을 베어 넘기면 그 앞에 더 많은 적이 검을 휘두르며 몰려들었다. 한 번의 눈 깜빡임, 한 번의 호흡도 결코 방심할 수 없다. 날카로운 검과 그보다 더 날카롭게 세운 감감만이 목숨을 지킬 유일한 방법. 그것이 전장이다. ‘이게 몇 번째 전투지?’ 아크는 몰려드는 나크족을 쓰러뜨리며 생각했다. 나크족과 전투를 시작한 지 벌써 5일째, 그동안 수십 차례의 전투가 치러졌다. 나크족의 전력은 예상대로 5,000 남짓. 반면 바란족은 그사이 병력을 조금 더 모아 4,500가량까지 늘릴 수 있었다. 덕분에 숫자상으로는 거의 대등했지만, 전사 태생인 나크족과 민간인에 불과한 바란족은 전투력 자체가 다르다. 그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나, 일주일간의 벼락치기로 이 차이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바란족이 몇 차례나 패퇴해 1차 방어진을 세워뒀던 협곡에서 하만 요새까지 밀려났다. ‘정의남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바란족은 한참 전에 전멸했을 거야.’ 아크는 고개를 돌려 언덕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정의남을 바라보았다. 사실 정의남은 전쟁 초기의 열세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고지를 지키는 것보다 병력 보존을 우선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나크족이 협곡 안까지 진군하자 전략을 대폭 수정, 역습에 나섰다. 정의남이 선택한 전략은 일명 ‘뒤따라가기’. 나크족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면 일단 후퇴했다가 우회해 B지점을 공략하는 방식이었다. NPC도 먹어야 사는 뉴 월드의 전쟁은 현실의 전쟁과 비슷했다. 즉, 병력을 진군시키려면 먼저 보급로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보급로가 끊기면 당장 식량이 부족해지고, 무기, 방어구의 수리를 받을 수가 없다. 또한 병사들의 불안감이 커져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나크족은 다시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B지점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정의남은 다시 회군해 A지점에 방어 진지를 건설했다. 덕분에 한때 하만 요새 앞까지 진군했던 나크족은 협곡에서 발이 묶여 버렸다. 물론 이런 전략은 고대 시대부터 사용되던 것이었다. NPC는 몰라도 나크족과 함께 잇는 쥬르라면 이 정도 전략은 대번에 간파했으리라.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수천의 병력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해 머릿속에 구상한 전략을 성공시킨다!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에서 이 단순한 명제를 성공시키기 얼마나 어려운지는 RTS, 리얼타임 시뮬레이션 게임만 해 봐도 알 수 있을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실제 전장을 방불케 하는 뉴 월드의 전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정의남의 전문 지식 그리고 레리어트가 영향을 주는 뉴월드의 전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정의남의 전문 지식 그리고 레리어트가 영향을 주는 통솔력, 둘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물론 갱생단과 다크브라더의 활약도 정의남의 전략을 수행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크아아아, 모두 죽여 버리겠다!” “허약한 바란족 따위가 건방지게!” 전투가 생각만큼 쉽게 풀리지 않자 나크족이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덕분에 바란족의 방어선이 무너졌지만, 정의남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훗, 40분 정도 지나니 역시 통제력을 잃기 시작했군. 흥분한 놈들이 무턱대고 돌격해 준 덕분에 적의 측면이 벌어졌다. 다크브라더, 작전대로 요격하라!” 정의남이 명령하자 옆에서 레리어트가 ‘휘광’이라는 스킬을 시전했다. 각종 조명발로 여자 직업인 이노센스 나이트의 매력 수치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진 스킬. 정의남은 그녀의 ‘은신’md로 몸을 숨기고 있던 다크브라더였다. 콰쾅, 콰릉, 콰릉, 콰릉! 수백 명의 다크브라더가 일시에 백스텝을 날리자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계속된 전투로 이미 생명력이 적지 않게 빠져있던 나크족 병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크윽, 이, 이놈들이 어디서…!” “후, 후퇴하라. 일단 놈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 진열을 재정비한다.” “하지만 이미 돌격대가 적진 깊숙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여기서 후퇴하면 돌격대가 모두 고립되고 맙니다.” “돌격대에게는 드라칸 부대를 지원 보내라.” 당황한 나크족 진영에서 쉴 새 없이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수십 마리의 드라칸이 전장을 가로지르며 돌진해 왔다. 크롸롸롸롸롸! 하늘을 자유롭개 날아다니고, 강렬한 피어와 공격력을 갖춘 드라칸! 한 마리가 바란족 10여 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나크족의 몬스터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놈들 때문에 바란족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위기에 처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드라칸의 출현은 정의남에게 오히려 기회였다. “전술 부대, 드라칸을 요격하라!” 명령이 전달되지 협곡의 양쪽 언덕에서 수백 명의 병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공격을 분산시키면 안 돼. 내가 징표를 찍은 놈에게 공격을 집중한다.” 짝퉁이 스킬을 발동시키자 드라칸 한 마리의 머리 위에 선명한 징표가 찍혔다. “일단 저놈부터다. 모두 총공격. 이참에 아예 몰살시켜버려라!” 철컥, 철컥, 투투투퉁, 콰콰콰쾅! 전술 부대의 손에 들린 것은 너구리족의 대포, 동시에 백여 발의 대포에 얻어맞은 드라칸은 마치 추락하는 전투기처럼 피 분수를 뿜어 대며 지면을 들이받았다. 아크는 너구리족에게 무기 제작을 의뢰하며 특수 무기인 대포도 만들었다. 대포는 전술 부대에 딱 맞는 무기였다. 전술 부대는 머리는 좋지만 힘이 약한 나크족이었다. 당연히 근접적보다는 장거리전에 적합했던 것. 그리고 대포는 무기라기보다는 기계로 분류되는 장비품이라 전사보다는 생산직 NPC가 사용할 때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술 부대를 지휘하는 사람은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짝퉁. 짝퉁이 배운 스킬 중에 ‘풍수지리’라는 것이 있었다. ‘풍수 지리’는 전투 시 적용되는 상성 효과와 지형 효과를 50% 더 상승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즉, 대포의 특수 효과인 대형 몬스터에게 주는 데미지 증가,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해 사격 시 공격력과 정확도 증가, 이런 효과가 50%씩 상승하는 것이다. “헉, 이, 이럴수가…!” 나크족 병사들이 속속 추락하는 드라칸을 보며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순식간에 드라칸을 처리한 전술 부대의 대포가 나크족에게 향했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다. 게다가 나크족은 협곡에 몰려 있어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의 상황! 일단 대포를 쏘면 빗나갈 일이 없었다. 짝퉁이 신바람 난 얼굴로 소리쳤다. “공격, 공격, 공격! 저놈들은 징표도 필요 없다. 마구잡이로 난사해!” 투투투퉁, 투투투퉁! 언덕 위에서 소나기처럼 빗발치는 포탄에 나크족의 진영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건 아직 전초전에 불과했다. -그라타 언덕의 경비탑 1, 2, 3호가 완성됐습니다.! “됐다!” 아크의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투가 계속되는 사이, 타짜와 부동산 등이 이끄는 공병부대는 세 부대로 나뉘어 언덕에서 경비탑을 건설하고 있었다. ‘가디언=공병’ 으로 전직해 ‘건설’ 스킬이 생긴 덕분이었다. 물론 아직 초급이라 경비탑을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내구력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크족이 경비탑이 세워진 언덕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아크가 지휘하는 2차 방어선까지 돌파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경비탑을 직접 공격할 수 없다는 뜻! 경비탑…워크래프트 같은 RTS를 해 본 사람이라면 경비탑의 위력은 잘 알고 있으리라. 경비탑에서 화살을 날리면 사정거리와 공격력에 엄청난 보너스가 적용된다. 게다가 적이 화살로 반격해도 경비탑이 부서지기 전에는 병사들이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대신 경비탑 하나 만드는 데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지만, 바란족은 자원이 넘치는 종족인 것이다. 경비탑과 전술 부대의 대포! 언덕에서 화살과 포탄의 소나기가 쏟아지자 나크족의 생명력이 EnrENr EJfdjwuT다. 정의남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진 것은 그때였다. “자, 이제 승부수를 던져 볼까? 돌격대 진격!” “우와아아아!” 쿠콰콰콰콰콰! 전장에 몰려 있던 바란족이 홍해처럼 갈라졌다. 이어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1,000여 기의 기마대가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이게 바로 바란족의 주력 돌격대였다. 이들이 타고 있는 것은 바란족 조련사들이 조련하던 몬스터. 사실 정의남은 이 몬스터를 전쟁에 활용할 방법을 두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몬스터는 네다섯 마리로 겨우 나크족 하나를 상대한다. 게다가 전장이 복잡해지면 조련사 혼자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없었다. 정의남은 그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몬스터를 기마 부대로 활용하는 방식을 생각해 냈다. 헬 하운드나 불카누스, 카젤 울프 따위에 바란족 전사를 태우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돌격대의 이동속도 향상은 물론, 바란족 전사와 몬스터가 서로를 보조해 공격력이 월등하게 향상된 것이다. 이 돌격대가 가세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전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었다. 돌격대가 출현하자 아크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우후후후, 지금이다, 라둔. 변신해라!” 쌕쌕, 쌕쌕쌕쌕! 바바바바, 바바바바! 드디어 활약할 기회가 생긴 라둔이 아크를 태우고 돌격대의 뒤를 쫓았다. 곧이어 돌격대가 충돌하자 굉음이 울리며 나크족이 펑펑 날아갔다. 그러나 아크는 슬쩍 속도를 늦춰 후열로 뒤처졌다. 아크가 전선을 이탈해 돌격대의 뒤를 쫓은 것은 열심히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협곡 안에서 벌어지는 수천 대 수천의 전투! 수많은 병사들이 얽혀 싸우기 보니 그만큼 떨어지는 아이템도 많았다. 그러나 워낙 정신없는 전장이라 제대로 움직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 아무리 아크라도 아이템을 챙겨 먹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돌격대가 적진으로 밀고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돌격대의 돌격에 한 번에 수십 명의 나크족이 쓰러진다. 그리고 일반 바란족 병사들과 엄청난 속도로 밀고 올라가는 기마 부대 사이의 공간은 텅텅 비어 버린다. 그곳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인 것이다. 바로 아크가 기다렸던 순간! 아크는 돌격대를 바짝 뒤쫓으며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몽땅 쓸어 담았다. “저기다, 저쪽에 아이템이 떨어졌다!” 쌕쌕, 쌕쌕쌕쌕! 아크가 눈을 번뜩이며 소리치자 라둔마가 재빨리 뛰어가 혓바닥을 휘둘렀다. 라둔마가 ‘나크족 장창’을 습득했습니다. 라둔마가 ‘드라칸의 가죽’을 습득했습니다. ‘으하하하, 이거야말로 아이템 밭이구나!’ 아크는 라둔마를 타고 돌격대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또다시 딴 놈이 차려 놓은 밥상에 떡하니 숟가락을 올려 놓는 아크였다. 치사해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짓이라도 하지 않으면 두 달안에 4,500만 원을 구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아크, 뭘 하고 있는 거야? 놀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때, 아크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샴바라가 버럭 소리쳤다. “우리의 임무를 잊은 거냐?” “알고 있어. 네가 떠들지 않아도 다 찾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아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자 샴바라가 슬쩍 노려보고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다, 명목상이라도 사령관인 아크가 전장 한복판에 있는 것은 당연히 자잘한 아이템이나 주워 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막중한 특수 임무 때문이었다. ‘하긴 어차피 이런 아이템은 아무리 모아도 잔돈밖에 되지 않아.’ 아크는 날카로운 눈으로 전장을 훑었다. 그때, 하늘 위에서 전장을 살피던 데드릭이 무선통신을 보내왔다. “삐삐. 치익, 치익. 들리냐, 주인… 목표를 발견했다… 오버.” ‘어디야?’ “지금 주인이… 있는 곳에서… 6시 방향으로… 50미터 지점.” ‘6시라… 오케이, 찾았다!’ 나크족 진영을 살피던 아크의 눈에 목표가 포착되었다. ‘오호, 이번 상대는 쥬르인가? 운이 좋군. 샴바라 녀석이 억울해하겠는걸.’ 아크는 사방으로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쥬르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역시 이런 전쟁에서 가장 거슬리는 존재는 유저인 헤르메스 길드원이었다. 그리고 아크와 샴바라에게 주어진 특수 임무도 난전 시, 헤르메스 길드원을 찾아내 처리하는 것이었다. 난전 상황에서 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살마은 아크와 샴바라뿐이었다. 아크 역시 이 특수 임무를 가장 우선시했다. 이유는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헤르메스 길드원은 NPC를 상대로 전쟁을 한 덕에 모두 카오틱이 된 상태. 사망하면 2배의 페널티와 장비품을 무조건 하나씩 떨군다. 다시 말해 놈들은 확실하게 쓸 만한 아이템을 떨구는 스페셜 몬스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나크족을 지휘하기 위해 각자 EJfdjwu 있으니 아크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제 쥬르도 예뻐 보이는군. 자, 이번에는 뭘 줄라나?’ “라둔, 우측이다. 돌진해!” 바바바바, 바바바바! 라둔이 빠르게 방향을 틀어 쥬르에게 달려들었다. “헉, 저, 저놈은…!” 아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자 정신없이 싸우던 쥬르가 비명을 터뜨렸다. 사실 이게 쥬르와의 첫 대면은 아니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될 때 두 번이나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쥬르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쥬르의 완패. 이제 선구자 쥬르는 아크의 상대가 아닌 것이다. 자존심 강한 쥬르도 두 번이나 완패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번의 패배는 두 번의 페널티와 아이템을 빼앗겼다는 의미였다. “마, 막아라! 저놈이 오지 못하게 해!” 쥬르가 나크족에게 소리치며 뒤로 빠졌다. 그러나 힘들게 찾아낸 돈줄을 그냥 놓칠 아크가 아니었다. “하, 도망치시겠다고? 어림없다!” 아크는 허리에서 본 블레이드를 꺼내 집어 던졌다. 허공을 가로지른 본 블레이드가 쥬르의 앞에 꽂혔다. “검화 해제, 라자크, 방패 치기다!” 아크가 검화를 풀어 버리자 본 블레이드가 라자크로 변신했다. 쥬르가 움찔하는 사이 라자크는 재빨리 달라붙으며 방패로 후려쳐 버렸다. 이게 아크가 헤르메스 길드원을 사냥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었다. 따다다당, 연속적인 울림이 터지며 쥬르가 아크의 코앞까지 밀려났다. 중급 방패 치기의 위력이었다. 소환수 ‘데이모스’의 ‘방패 치기’스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방패치기(중급, 패시브) : 방패를 다루는 기술이 더욱 정밀해져 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밀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동시에 세 개체의 적에게 방패 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개체에게 세 번의 공격을 모두 성공시킬 경우, 밀어내는 거리가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방해 치기로 적 공격 시 공격력+30% 적용, 밀어낼 확률 증가, 12% 확률로 경직 발동, 중급이 되어 일격에 세 번의 방패 치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일주일간 사냥에 전념하며 아크는 ‘방패 치기’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법 몇 가지를 라자크에게 전수해 주자 라둔처럼 애정을 50 소모해 ‘방패 치기’의 등급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크윽, 이, 이 자식….” 휘청거리며 밀려난 쥬르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경직에 걸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의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다. “닥치고 아이템이나 토해 내! 귀기개방, 다크 블레이드!” 돈에 눈이 멀어 버린 아크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쥬르는 단숨에 생명력이 30%나 깎여 나갔다. 뒤이어 경직에서 풀려났지만, 헤르메스 길드에서 최강이라는 쥬르는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뭐, 뭣들 하는 거냐? 이놈을 막아!” 수세에 몰린 쥬르가 바락바락 소리치자 나크족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나 아크는 밉살스럽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여기에 네 편만 있냐? 돌격대, 밀어붙여!” 아크의 고함 소리를 듣고 바란족 돌격대가 나크족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몇몇 나크족은 공세를 뚫고 쥬르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때, 하늘 위에서 데드릭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며 나크족을 향해 가래침 융단폭격을 퍼부어 댔다. “네놈들의 상대는 이쪽이다, 빨갱이들아?!” 이 역시 애정 50을 소모해 중급으로 올라간 도발! 소환수 ‘데드릭’의 ‘도발’ 스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도발(중급, 액티브) : 도발을 더욱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도발로 인한 상대의 적개심을 더욱 상승시키고 유효 범위가 20미터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한번에 적용되는 숫자가 최대 5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더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상대를 열 받게 만들수록 지속 시간과 효과 범위가 넓어집니다. 《20미터 거리 내에서 사용 가능. 마나 소모 : 30》 “크아아악, 저, 저 박쥐가 더럽게 침을!” “크하하하, 그냥 침이 아니다. 가래침이다!” “가, 가래침? 이 망할 박쥐 새끼, 찢어 죽여 버리고 말겠다!” “이, 이 멍청이들, 어디 가는 거야!” 때문에 카오틱이 된 뒤로는 일부러 좋은 아이템을 빼놓고 어중간한 아이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차피 전쟁이니 좋은 아이템을 착용해도 전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할뿐더러, 까딱 실수해서 죽었을 경우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나크족이 주는 아이템보다는 비싸고, 그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으니 헤르메스 길드원 사냥을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쥬르는 다른 녀석들보다는 비싼 아이템을 장비하고 있는 편이야. 일전에 때려 줬던 전사 녀석은 고작 10만 원짜리 갑옷을 입고 있었지? 거지같은 놈들.” 아크가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쨌든 샴바라보다 한 놈이라도 더 잡아야지.” 그러나 주변에 헤르메스 길드원 사냥을 시작하자 놈들도 몸을 사렸다. 대체적으로 후방에 있거나, 나크족 안에 파묻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 아쉬운 대로 나크족 십부장이나 백인대장을 사냥해 볼까?’ “데드릭, 인공위성 모드 전개!” “쳇, 편한 대로 아무 이름이나 갖다 붙이지 마, 이건 감시 모드라고!” 데드릭이 툴툴거리며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 멀지 않은 곳에서 나크족 백인대장 한 마리를 발견했다. 같은 몬스터라도 아무래도 직위가 높은 몬스터가 더 좋은 아이템을 주는 것은 당연지사. 꿩 대신 닭, 아크는 헤르메스 길드원 대신 나크족 간부를 찾아다니며 썰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득템을 향한 불굴의 의지였지만, 전황에서도 아크의 활약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오오오, 아크 님이 적의 백인대장을 쓰러뜨렸다!” “놈들은 별거 아니다!” 아크가 나크족 간부를 쓰러뜨리면 바란족은 사기가 올라갔다. 그사이 샴바라도 헤르메스 길드원 몇 명을 처리하고 백인대장으로 목표를 바꾸었다. 드라칸 부대의 전멸, 거기에 헤르메스 길드원과 백인대장들이 속속 쓰러지자 나크족 진영이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략 2시간가량 흘렀을 무렵…. “크으으윽, 퇴각, 전군 퇴각하라!” 나크족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도망쳤다. ACT5 특공대 “지원군?” 라이덴이 인상을 구기며 되물었다. “나크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 지가 며칠이나 됐다고 그런 말이야?” “그, 그게….” 수화기 저편에서 쥬르가 떠듬거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뮈, 변명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의 재방송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크와 갱생단, 다크브라더의 합류로 나크족의 유계 정복에 붉은 불이 켜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연전연승했으므로 쥬르는 라이덴의 지원을 거절했다. 라이덴의 도움을 받으면 훗날 쥬르가 받을 유계의 지분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황이 뒤바뀌어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나크족의 지원군도 ‘영자 이동의 오브’ 부족으로 당분간 받지 못한다. 그뿐인가? 쥬르와 듀크, 헤르메스 길드원들은 전투에 참가할 때마다 아크와 샴바라에게 박살 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진즉에 지원을 받아들였으면 이런 문제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쥬르의 맥 빠진 목소리에 라이덴이 한숨을 불어 냈다. “좋아, 어차피 당장 시르바나에서 우리에게 덤빌 만한 세력은 없으니 여유가 있어. 길드원 몇 명과 용병을 고용해서 보내 주지. 하지만 붉은 황야를 거쳐서 그곳까지 이동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지?” “진격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당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기다려.” 라이덴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뉴 월드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동안 비축해 놓은 막대한 골드를 풀어 용병을 고용했다. 그 수가 대략 천여 명, 이들이 유계에 유입된다면 전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리라. ‘큰일이다!’ 그때, 유계로 떠나는 용병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시르바나의 교역소, 대륙상회의 대외사업부장 시드였다. 라이덴은 고용한 용병들에게도 극비로 할 정도로 쉬쉬하며 병력을 모았지만, 시르바나의 자금 이동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는 시드의 레이더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이미 아크에게 라이덴의 동태를 살피라는 언질을 받은 시드는 그 사실을 로고에게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쳤다. 그리고 이 정보는 곧바로 아크에게 전달되었다. “와아아아!” “놈들을 물리치고 그라타 협곡을 탈환했다.” “정의남 사령관 만세!” 나크족과 전쟁을 시작한 지 일주일…. 그동안 협곡에서만 다섯 차례의 전투를 치러, 나크족을 몰아낸 바란족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더불어 아크와 샴바라, 정의남과 갱생단 등의 인기도 덩달아 치솟아 올라갔다. “역시 자네들을 믿고 맡겼던 우리의 선택은 탁월했어.” 장로들도 완전히 아크 일행의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툭하면 안면을 갈아엎는 장로들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넘어가자. “…이번 전투의 승리는 의미가 크다. 이로써 대략적인 방어선이 완성됐어.” 정의남이 지도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방금 전의 전투까지 승리로 장식한 나크족 연합군은 그라타 협곡에 10개의 경비탑을 완공할 수 있었다. 하만 요새로 진격하기 위해서 그라타 협곡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나크족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리라. 물론 경비탑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받쳐 줄 병사가 없다면 경비탑은 그저 평범한 건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단 협곡 안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강력한 요새로서 기능을 발휘해 승률을 높여 줄 것이다. 게다가 언덕 위의 경비탑을 이용하면 감시 범위도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아직도 협곡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나크족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하만 요새의 증축까지 끝나면 놈들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겠지. 또한 놈들은 이미 남동 지역에서 긁어모은 보급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경비탑을 이용해 드라칸의 물자 이동을 막으면 버티지 못하고 계곡 마을까지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야 전력의 약세를 딛고 안정권에 접어들게 됐군요.” 샴바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렵, 아크 일행은 너 나 할 것 없이 유계 전쟁에 흠뻑 빠져 있었다. 게임 안에서 이 정도의 대규모 전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NPC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지만 유저에게는 어차피 게임. 모처럼 화끈한 전투를 체험할 수 있게 됐으니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의남과 샴바라의 의욕은 상당했다. 같은 전쟁이라도 이전의 공성전과는 상황이 180도로 다르다. 공성전은 그저 전쟁이었을 뿐. 그러나 이번 전쟁은 명분이 있다. 정의남에게는 선량한 주민들을 돕는다는 명분 그리고 샴바라에게는 소중한 여친(?) 이사벨의 염원을 위해서라는 명분! 당연히 전쟁에 임하는 각오부터가 다른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몬스터형 NPC. 유저끼리 치고받는 소모전에 불과한 공성전과 달리 한 번 전쟁을 벌일 때마다 엄청난 경험치와 명성, 각종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전쟁은 직위를 가진 유저에게 추가 경험치가 적용된다. 덕분에 부관인 정의남과 레리어트는 말할 것도 없고, 각 부대장인 갱생단, 심지어 보급 창고 담당인 북실이의 레벨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많은 경험치를 독식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령관, 아크였다. 바란족이 쓰러뜨린 모든 나크족에게서 일정량의 경험치를 받는 총사령관! 덕분에 아크는 일주일 만에 레벨이 16이나 올라 드디어 레벨 300을 달성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400 명성 : 10,725(+500) 레벨 : 300 직업 : 다크워커 칭호 : 캣 나이트, 버림받은 자들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생명력 : 4,710(+150) 마나 : 4,700 영력 : 200 힘 593(+28) 민첩 753(+55) 체력 893(+20) 지혜 107(+10) 지능912 운 103(+3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 유연성 : 119 화술 : 66 애정 : 31(+10) 탄력도 : 358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 (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수왕》세트 효과 : 힘+10, 민첩+10, 체력+10, 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바람정령의 장화(신발) : 민첩+30, 이동속도+30%, 공격 속도+10%, ‘슬라이드’ 사용 가능 길가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10% 민첩+20 생명력 50%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힘+5, 회복 속도+5%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 +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지휘관이 되어 명성도 상당히 올라갔다. 갱생단은 평균 레벨이 220에 이르렀고, 레리어트도 200수준이 되었다. 레벨이 낮으니 아크보다 적은 경험치를 먹고도 레벨 업 속도를 따라오는 것이다. ‘레벨이 오르면 이게 안 좋아. 같은 경험치를 먹어도 레벨업이 느리단 말이야.’ 턱도 없는 불평을 늘어놓는 아크였다. 그러나 역시 아크를 기쁘게 하는 것은 레벨보다 골드, 현찰이었다. 현재 바란족의 너구리족 무기 보급률은 80%에 달한다. 필요한 게 1,000개였으니 이미 800개가 완성되어 아크의 손을 거쳐 전달됐다는 뜻이다. 덕분에 아크는 1,600골드 상당의 광석을 뚝 떼어먹을 수 있었다. 물론 무기로 만들고 상점에서 팔아야 현찰이 되지만 말이다. ‘중개무역이란 엄청나구나!’ 아크는 새삼 중개무역이 엄청난 이득에 감탄했다. 그냥 루트를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1,600골드를 벌었다. 만약 이보다 더 큰 거래를 독점하며 중개무역을 할 수 있다면 수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 ‘유계가 떠오른 뒤에 시르바나와 란셀, 유계를 잇고 중개무역을 독점할 수 있으면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돈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 항상 앞서 가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법. 아크는 이번 장사를 통해 자신의 포부를 좀 더 현실적으로 구상할 수 있었다. 전장에서 아크가 주워 담은 전리품 역시 상당한 양이었다. 이미 북실이를 통해 그런 잡템을 몽땅 아크 종합상점의 진열장으로 옮겨 놓았다. 그것만 팔려 줘도 대략 300~400골드는 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수지가 좋은 것은 헤르메수 길드원을 두들겨서 얻은 장비품이었다. 비록 본래 놈들이 쓰던 장비는 아니라도 고레벨 마법 아이템이다. 경매 사이트에서 평균 30~50골드는 받을 수 있으리라. 지금까지 헤르메스 길드원에게 얻는 아이템이 20개나 되니 600~1,000골드가 확보된 것이다. ‘크크크, 그 레벨에 카오틱이 되다니… 멍청한 놈들.’ 그렇게 일주일 사이에 번 돈을 계산해 보니 대략 3,000골드! 무려 3,000만 원을 벌어들인 것이다. ‘전세방 계약을 하고 나서 보름밖에 안 지났는데 3,000골드를 벌었다. 뭐, 거의 현물이지만 두 달 안에는 다 팔리겠지. 이 추세로만 나가면 전세방 잔금 정도는 문제가 아니야!‘ 아크는 그야말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언제까지 전쟁을 질질 끌 수는 없다. ‘헤르메스 연합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크는 시드에게 헤르메스 연합이 용병을 움직였다는 보고는 받았다. 그러나 시르바나에서 공성전이 시작된다는 소식은 없다. ‘그렇다면 용병이 이동하는 장소는 유계. 지원군을 보낸 거야.’ 현재 유계 전쟁의 전황은 6 대 4로 아직까지는 바란족이 약간 우세한 정도. 그러나 이 상황은 언제 뒤바뀔지 장담할 수 없었다. 먼저 나크족 본진에서도 ‘영자 이동의 오브’를 생산할 수 있다면 언제 지원군을 보내올지 모른다. 거기에 헤르메스 연합의 용병까지 가세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협곡에 10개나 되는 경비탑을 박아 놨다지만, 개떼처럼 몰려오는 저글링에게는 캐논도, 벙커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RTS의 역사가 증명한다. 결국 대가리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긴다. 이건 핵폭탄이 날아다니는 현대전이라면 몰아도, 검과 방패로 싸우는 중세 시대에서는 절대 법칙, 게임과 현실을 통틀어 모든 전쟁의 불문율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든 정황을 들은 샴바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어.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일이야.” “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이제 와서라니? 처음부터 말했잖아. 어차피 우리가 우세해도 바란족을 이끌고, 나크족 본진을 공략할 수는 없어. 결국 지키기 위한 전쟁, 그리고 백전백승을 장담할 수 없는 한 지키기 위한 전쟁은 지게 되어 있어.” “그럼 질 걸 뻔히 아는 전쟁에 우리를 끌어들였다는 거냐?” 샴바라가 벌떡 일어나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이 녀석, 아무래도 전쟁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진짜 목적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아크는 한심하다는 눈으로 샴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이제 본론에 들어갈 때가 됐다는 말이야.” “본론?” “하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랴? 샴바라, 네가 여기 들어온 목적이 뭐냐?” “목적이라니… 그야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유계가 떠오르면….” “그거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잊은 건 아니겠지? 우리의 목적은 유계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유계를 중간계로 끌어올리는 것, 그게 목적이지.” “잠깐만요. 유계가 중간계로 떠오르기만 하면 바란족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요?” 레리어트가 그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되물었다. 샴바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유계가 떠올라도 나크족에게 당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이래서 머리 나쁜 사람하고 얘기하면 피곤하다는 거다. 착하고 잘생긴 데다, 똑똑하기까지 한 아크가 그런 문제도 생각해 보지 않고 이런 일들을 벌였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크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생각해 봐. 만약 유계가 중간계로 떠오르면 일어날 가장 큰 변화가 뭐겠어?” “가장 큰 변화…?” “유계에 일어날 가장 큰 변화. 뭐, 이사벨에게 했던 말처럼 삼국의 사절이 방문하는 건 둘째 문제고, 우리에게 가장 큰 변화는 유저들이 손쉽게 유계로 들어올 수 있다는 거야.” “그야 그렇겠지.” “그 유저들이 유계에서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일 건 바로 퀘스트겠지?” 아크가 생각해 둔 유계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그거였다.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유계로 몰려온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나크족의 침략을 받고 있는 바란족이리라. 평범한 유저들이 그런 상황을 보고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바란족은 피부색처럼 이름도 파란, 선량한 NPC다. 반면 같은 뮤탈이라고는 하나, 나크족은 피부색처럼 시뻘건 이름표를 단 몬스터. 말하자면 유저의 적이다. 쥬르 일당이 어떻게 나크족과 손을 잡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상적인 유저라면 NPC를 도와 나크족을 물리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리라. “그 유저들에게 바란족 장로들이 각종 상품을 걸고 나크족 섬멸을 의뢰하는 거야.” 마치 유계에 들어오면 필수적으로 요새 방어전을 거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순진한 유저들은 너도나도 의용군에 자원하리라. 그렇게 되면 헤르메스 연합이 보내는 용병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의 지원군이 바란족에게 가담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저들은 죽어도 되살아나는 불사신. 쓰고 쓰고 또 써도 재활용이 가능한 병력이라는 말이다. 나크족을 물리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유저들이 대거 바란족에게 가담하면 헤르메스 연합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지.” 유계가 떠오르는 시점에서 나크족이 유계를 완전히 점령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엄연히 주민 NPC가 존재하는데 몬스터를 도와 유저들과 싸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안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헤르메스 연합은 유저들의 공적이 되어 버리리라. “이게 내가 이번 전쟁을 지키는 전쟁이라고 말한 이유야. 그리고 유저들이 들어오면 장로들이 상품을 걸고 나크족 토벌을 의뢰한다는 부분은 이미 상의가 끝났어.” “…하여간 머리 하나는 비상하단 말이야.” 샴바라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저마저 NPC처럼 굴려 먹는 작전! 그러나 이건 아크의 장대한 계획의 일부에 불과했다. 갑자기 유계에 들어와 요새 방어전 의뢰를 받은 유저들. 당연히 이 유저들을 관리 감독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미 정의남과 갱생단, 다크브라더는 바란족과 함께 유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 자연스럽게 유저들을 감독하는 권한은 아크 일행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즉, 유저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유계의 절반-바란족영역-의 권리는 아크 일행이 독점한다는 뜻이다. 머리만 잘 굴리면 거기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을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바란족의 경제 시스템은 아직 청동기시대 수준이다. 그러나 유저들이 많이 들어온다면 경제 시스템도 바뀔 수밖에 없어. 다크브라더의 자본을 이용해 그런 경제 시스템을 미리 구축해 놓는다면 거기에서 얻어지는 이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거야.’ 비록 암살 일을 때려치웠지만, 다크브라더의 자금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일전에 반란을 일으키려다가 먼 길 가신 나베인이 딴 건 몰라도 돈을 버는 재주는 있었던 것이다. 그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바란족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 노른자를 미리 선점해 놓는다면 앞으로 유계가 발전됨에 따라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쿠후후후, 다크브라더의 자금력을 이용하면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사업 아이템을 모두 실현시킬 수 있을 거야. 당연히 나에게 떨어지는 콩고물도 엄청나겠지.’ 처음 아크가 유계에 들어왔을 때는 그저 던전이나 퀘스트를 독점해서 이득을 올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런 것은 하찮은 수준이었다. 아크는 계곡 마을을 둘러보며 생각했던 각종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하늘 가오리를 이용한 유계 여행 상품, 조련된 몬스터 사파리, 심지어 새로운 바란족 통화를 만들어 수수료를 받고 환전하는 시스템까지…. 그걸 단순히 유계를 찾는 유저만이 아니라, 대륙의 삼국과 교역을 할 때도 적용할 수 있었다. 아크는 그 모든 사업을 다크브라더의 막대한 자본을 끌어들여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다크브라더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유계가 떠오른 뒤에 삼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을 하려면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크는 다크브라더가 시작하는 각종 사업에 약간의 자본금을 살짝 찔러 넣고 나중에 잔뜩 부풀려 돌려받을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허락은 이미 다크브라더가 유계로 진출하기 전에 이사벨에게 계약서까지 받아 놓았다. 그렇다, 유계 사업에 동참할 자격. 그게 아크가 이사벨과 샴바라를 꼬드길 때 내밀었던 ‘정보에 대한 보상’이었다. “흥, 그런 꿍꿍이가 있었군,” 그제야 샴바라가 아크가 제시했던 조건이 생각만큼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크는 안면에 철판을 쫙 깔고 너스레를 떨어댔다. “이게 나 잘되자고 그런 거냐? 다 다크브라더를 생각해서 하는 거야.” 아크는 샴바라의 시선을 씹으며 얼른 말을 돌렸다. “자, 자! 집중. 어쨌든 중요한 건, 방어선이 갖춰졌으니 유계를 띄울 때가 됐다는 거야.” “그렇군, 그런데 이전부터 말은 들었지만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데? 유계를 중간계로 끌어올리겠다는 거야?” “사실 문제는 그거야.” 아크가 ‘우리’라는 말을 강조했다. 아크의 퀘스트 해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목적을 위해 세계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즉에 세계수를 부활시켰으면 좋았잖아.” 샴바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 그렇다면 유계로 오자마자 세계수를 부활시켰으면 간단하지 않은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크가 그러지 못한 이유는 세 가지나 있었다. 첫째, 유계가 떠오르는 시점에서 다크브라더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하면 차후에 아크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줄어든다는 점. 둘째, 유계의 세계수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계수는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라 각자 속성을 지니고 있어. 유계 세계수의 힘의 원천은 달. 이미 완전히 힘을 잃었던 유계 세계수를 부활시키려면 달의 힘이 최고조에 달하는 보름달이어야 성공 확률이 높아.” “그,렇군. 그러고 보니 내일이 보름이었지?” “그래, 그래서 처음부터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최소한 일주일은 버텨야 하나도 말했던 거야. 또 무리해서 나크족을 밀어붙이지 않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고. 만약 그 전에 위기를 느낀 쥬르 일당이 헤르메스 길드의 지원군을 불러 대면 곤란하니까. 알겠지?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문제는….” 아크가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바로 세계수가 있는 장소다.” 아크가 가리킨 곳은 유계 북부 산맥 너머, 나크족의 본진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 “이그드라실에게 들은 바로는 유계의 세계수는 원래 뮤탈들의 신목이었어. 당연히 바란 족은 그 주변에 성곽을 세웠지. 그러나 바란족이 나크족을 쫓아내고 그곳에 자리를 잡은거야. 그 때문에 처음에는 나도 세계수를 부활시키려면 병력을 이끌고 그곳까지 진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게다가 이제 헤르메스 연합이 용병을 원정 보냈으니 시간도 없어.” “나크족 본진…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야.” 아크는 손가락으로 하만 요새에서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주욱 그으며 말했다. “소수 정예로 적진에 잠입해 세계수를 부활시키는 것.” “특공대를 조직해서 치고 빠지자는 건가?” “맞았어, 하늘 가오리를 이용하면 일단 북부 산맥은 넘어갈 수 있어. 게다가 나크족은 남부 전쟁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지. 많은 숫자는 힘들겠지만, 적은 인원이라면 잠입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슨 수를 쓰든 적진을 돌파해서 세계수만 부활시키면 상황은 끝나.”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자 최후의 작전이군.” 정의남도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뉴 월드는 현실의 3배 속도로 시간이 흐르면서도, 보름달은 현실과 똑같이 15일에 한 번씩 떠오른다. 결국 내일을 놓치면 앞으로 15일을 기다려야 다시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며칠 사이에 헤르메스 연합 용병이 도착할 걸 생각하면 기회는 단 한 번.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군.” 샴바라가 중얼거리다가 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연히 나도 참가해야겠지?” “물론이지. 목적지는 적의 본거지. 아무리 많은 병사가 몰려간다고 해도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소수의 인원으로 히트&런.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는 소수 정예가 필요해.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너만큼 든든한 아군도 없지.” “그럼 나도 간다.” “나도, 이런 일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작전이 정해지자 갱생단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번 작전은 숫자가 많으면 안 된다. 들키지 않고 잠입하려면 최대 10명 안팎. 그리고 아크는 이미 머릿속에서 함께 적진에 잠입할 사람을 생각해 두었다. 일단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인 샴바라 그리고 회복술사도 필요하니 레리어트. 그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정의남이었다. 그러나 세계수를 부활시켜도 그사이에 하만 요새가 함락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정의남은 요새에 남아 있어야 한다. 대신 갱생단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불끈이, 떡대, 해결사, 얍삽이, 짝퉁, 타짜가 동행하기로 결정되었다. 레벨도 레벨이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러 작업을 조합할 필요가 있었다. 바란족 전사 10명도 동행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잠입 작전에는 오히려 거치적거린다. 때문에 바란족 전사는 북부 산맥을 넘어갈 때까지 길잡이역할만 맡기로 했다. 결국 적진을 뚫고 세계수를 부활시키는 원대한 사명은 이들 9명의 몫이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아크는 곧 장비를 점검하며 원정 준비를 시작했다. “유계의 운명은 너희들 어깨에 달렸다.” 정의남이 굳은 표정으로 선발된 갱생단에게 ‘슬라임의 내단’을 건네주었다. 유계에서 틈틈이 만든 슬라임의 내단, 정의남과 갱생단은 숫자가 6개밖에 되지 않아 아직 누가 먼저 먹을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특전은 특공대로 선발된 6명에게 돌아갔다. “오오, 이거 끝내주는데? 능력치 업에 스킬까지!” 불끈이들은 ‘슬라임의 내단’ 효과에 입을 쩍 벌렸다. 덕분에 나머지 4명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셔야 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특공대가 하늘 가오리에 오르자 정의남이 말했다. “북부 산맥 일대는 나크족이 풀어놓은 드라칸이 순찰을 돌고 있다. 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일단 우리가 먼저 나크족을 기습해 이목을 집중시킬 테니, 너희들은 협곡을 우회해 북부 산맥으로 진입해라.” “…알겠습니다.” “건투를 빈다.” 특공대는 비장한 표정으로 경례를 붙이고 하늘로 날아왔다. 그러자 정의남이 한 걸음 물러나 빙글 몸을 돌렸다. 요새 광장에 모여 있던 수천의 바란족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 “아크 사령관님, 무운을 빌겠습니다.” 쿠오오오오! 피부를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운 돌풍을 몰아쳤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달려드는 듯한 압박감! “상체를 바짝 숙이세요. 돌풍에 휘말리면 끝장이에요!” 아크는 하늘 가오리의 등에 찰싹 달라붙으면 소리쳤다. 바란족이 나크족을 기습해 이목을 집중시킨 사이, 하만 요새를 출발한 아크 일행은 갈기 산맥을 따라 우회해 오후 무렵에는 북부 산맥은 송곳니 골짜기에 진입할 수 있었다. 북부 산맥을 관통하며 남부와 북부를 잇는 송곳니 골짜기는 흔히 생각하는 골짜기가 아니었다. 마치 그랜드 캐넌처럼 북부 산맥 전체에 걸쳐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가 봤던 ‘절망의 심연’처럼 중간 중간 나크족의 주둔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늘 가오리를 탄 상태로 그 주둔지를 돌파하는 것은 무리였다. 또한 설사 돌파한다고 해도 특공대가 본진으로 향한다는 정보가 알려지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바란족 전사를 길잡이로 동행시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송곳니 골짜기에는 나크족이 모르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굉장히 위험한 곳이지만, 나크족에게 들키지 않고 아게 이론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은 그뿐입니다.” 바란족 전사가 말한 비밀 통로는 송곳니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동굴이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하늘 가오리를 이용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동굴을 통과하면 곧바로 나크족의 본진, 과거 발란족의 중심지였던 아게이론 요새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좋아, 돌입한다.” 아크가 하늘 가오리의 등에 붙어 동굴에 들어서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송곳니 골짜기의 숨겨진 용암 동굴 당신은 미로처럼 복잡한 송곳니 골짜기에 숨겨진 용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은 오래전 바란족이 북부에서 쫓겨날 때 이용했던 탈출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굴은 용암에 의해 전혀 다른 형태를 띠게 됐습니다. 또한 동굴 벽을 따라 희미하게 섬뜩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결코 안전한 통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모험가의 지식 : 숨겨진 던전 발견 보너스 (스킬 포인트 : 10)》 “엇? 전해 내려오는 얘기와 다르잖아?” 나크족 전사들이 미로처럼 복잡한 동굴 구조에 당혹성을 터뜨렸다. 정보창에서 확인한 것처럼 1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동굴의 형태가 많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예전 모습 그대로라도 나크족 전사들은 동굴에 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오래전 선조들이 북부에서 탈출할 때 그려 놓은 엉성한 지도 한 장이 동굴 정보의 전부였다. 덕분에 일행은 동굴을 헤매느라 적지 않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게다가 동굴은 마치 짐승의 입속처럼 위아래에 날카로운 바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동굴 속을 비행하며 그런 바위를 피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짜증 나는 건 이 더위야….” 사실 아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숨 막힐 듯한 더위였다. 나크족 전사가 안내한 곳은 바닥에 시뻘건 용암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간간이 불어오는 돌풍도 마치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바람처럼 열풍이었다 그런 돌풍에 얻어맞으니 피부라 벌겋게 달아올라 쓰라릴 정도였다. 아크가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 내자 또다시 정보창이 갱신되었다. ‘폭염으로 인해 피로도가 10% 상승했습니다! 《피로도가 올라가면 10%당 모든 스탯이 5%,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가 5%, 만복도의 소모도가 5% 증가합니다. 만약 피로도가 50% 이하로 상승하면 10초당 5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또한 피로도가 100% 상승하면 생명력과 관계없이 과로사하게 딥니다. 폭염을 피해 휴식을 취하거나, 차가운 음식으로 피로도를 내릴 수 있습니다.》 동굴로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나타난 정보창이었다. 아크가 유계에 처음 들어와 얻어맞은 ‘한파’와 비슷한 효과였다. 다행히 한파보다는 회복기가 쉬운 상태 이상이었다. 열기를 피할 수 있는 적당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으로 피로도를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사방이 날카로운 바위로 가득한 동굴. 바닥에는 용암까지 흘러댄다. 쉴 만한 장소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 일행인 이미 피로도가 40% 가까이 올라간 상태였다. “젠장, 이런 곳에서 송곳니 바위에 꿰였다가는….” 용암의 열기에 자글자글 익어 꼬치구이가 되어 버리리라. 아니, 바위에 꽂히지 않아도 여기서 계속 헤매다가는 산 채로 오븐 구이가 돼 벌릴 것만 같았다. “아, 이곳은 지도에 표시된 곳입니다. 다행히 안쪽은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아크 일행이 열기에 지쳐 헐떡거리자 바란족 전사가 응원을 보내왔다. ‘젠장, 말이 쉽지.’ 얼마 전에야 안 사실이지만, 원래 뮤탈들은 더위와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기후가 봄 처녀 변덕처럼 바뀌는 유계에 살다 보니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해진 것이다. 때문에 바란족 전사의 응원도 아크에게는 남의 허벅지를 긁어 대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팥빙수라도 만들어 먹으면 좀 나을 텐데… 마땅히 착륙할 곳도 없고….’ 아크가 헐떡거리며 주변을 돌아볼 때였다. 문득 동굴 저편에서 뭔가 검은 형체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아크는 가물가물한 시선으로 멍하니 검은 형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드, 드라칸?” 크롸롸롸롸롸! 아크의 비명 소리에 메아리처럼 드라칸의 괴성이 동굴을 울려 댔다. 선두에서 일행을 이끌던 나크족 전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헛, 야, 야생 드라칸입니다!” 정면에서 다가오는 것은 십여 마리의 드라칸이었다. “젠장, 날아가는 것만으로도 숨 막혀 죽겠는데… 전투 대형!” 아크와 삼바라가 선두, 다음이 갱생단, 레리어트, 나크족 전사가 일자 형태로 늘어섰다. 유일한 회복술사인 레리어트를 보호하며 전 방향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대형이었다. 대형을 갖춘 아크가 나크족 전사에게 물었다. “출구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지도에 따르면 멀지 않습니다. 여기서 대략 1킬로미터. 놈들은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드라칸이라 일단 출구만 벗어나면 뒤쫓아 오지 않을 겁니다.” “좋아, 샴바라, 그대로 관통해서 돌진한다, 다크 블레이드!” “오케이, 유섬격!” 샴바라와 아크가 화살처럼 돌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후열에서도 짝퉁과 타짜가 대포로 드라칸을 공격했다. 그러나 고작 서너 마리의 드라칸을 밀어냈을 뿐, 곧 나머지 드라칸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빌어먹을, 공격력이 반도 나오지 않고 있잖아.” 아크가 급선회해 드라칸의 반격을 피해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평소라면 방금 전의 공격으로 드라칸을 밀어내고 관통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아크 일행은 ‘폭염’에 피로가 누적되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단순히 스탯이나 공격력이 떨어진 게 문제가 아니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사람처럼 실제로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것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크윽, 제대로 조준할 수가 없어!” “하늘 가오리를 조종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아크와 달리 샴바라나 갱생단은 하늘 가오리를 타고 전투한 경험이 없다. 드라칸에게 겁을 먹은 하늘 가오리를 진정시키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 날뛰는 하늘 가오리에서 제대로 대포나 활을 날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야생 드라칸은 아크가 상대해 본 드라칸보다 레벨과 공격력이 높았다. “허억, 으아아악-!” 결국 드라칸의 공격에 바란족 전자 둘이 용암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또 다른 전사가 드라칸에게 산 채로 잡아먹혀 버렸다. 그런 끔찍한 장면이 연이어 연출되자 바란족 전사들의 사기가 뚝뚝 떨어졌다. ‘역시 이곳에서 드라칸과 싸우는 건 무리다. 일단 빠져나가야 해!’ “할 수 없지. 샴바라, 형님들 드라칸을 한곳에 모아 주세요!” 아크가 검 한 자루를 꺼내 들며 소리쳤다. “아, 알앗다. 우힉!” 갱생단이 드라칸의 공격을 피하며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그렇게 잠시, 곧 열 마리의 드라칸이 일렬로 늘어섰다. 그때, 아크가 하늘로 솟구쳤다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검을 폭발시켰다. “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콰, 콰콰콰콰! 강렬한 섬광과 함께 몰아치는 검 파편의 폭풍! 폭풍에 휘말린 드라칸들이 엄청난 압력에 눌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능하면 그대로 용암에 다이빙을 해 줬으면 했지만, 드라칸들은 곧 중심을 잡고 다시 날아올랐다. 그러나 블레이드 스톰 덕분에 잠시 드라칸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었다. “지금이다! 길잡이들, 앞장서라. 그대로 출구까지 돌파한다!” 아크는 바란족 전사를 앞세우고 엄청난 속도로 동굴을 가로질렀다. 크롸롸롸롸롸! 등 뒤에서 분노에 찬 드라칸의 울음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마치 뒷덜미에 드라칸의 거친 숨결이 느껴지는 듯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아크 일행은 마치 오토바이 선수처럼 하늘 가오리의 등에 바짝 몸을 붙이고 동굴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드리프트를 연발하며 코너 몇 개를 돌아섰을 때였다 “다 왔습니다! 이제 이 앞의 출구를 벗어나면… 헉!” 막 코너를 돈 바란족 전사가 비명을 터뜨리며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절망적인 신음을 흐렸다. “이, 이럴수가…! 전사가 말했던 출구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 출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콰콰콰콰! 출구가 위치한 동굴 벽, 그 외의 천장에서 엄청난 양의 용암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염 저항이 75%나 되는 아크조차 물방울처럼 작은 파편에 맞아도 엄청난 화염 데미지가 들어오는 용암이다. 샴바라나 갱생단은 용암 폭포에 들어가자마자 뼈만 앙상하게 남아 버리리라. “이런 빌어먹을!” “아크, 드라칸이다!” 샴바라의 경고에 고개를 돌려 보니 드라칸들이 코너를 돌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드라칸이 아니었다. 사실 드라칸 정도는 전력을 기울이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출구가 막혀 버렸다면 드라칸을 무찔러도 별 의미가 없다. ‘이제 곧 저녁, 일단 달이 떠오르면 아침까지 4시간, 돌아갈 여유 따위는 없어.’ 동굴을 빠져나가 다시 송곳니 골짜기를 거슬러 아게이론에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이번 작전은 보름달이 지기 전까지라는 시간제한이 붙어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전에 몇 개나 되는 나크족 주둔지를 거쳐야 하니 도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젠장, 미리 잠입로를 답사해 놨어야 했는데….’ 아크는 드라칸의 공격을 피하며 어금니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역시 이곳의 출구를 통해 아게이론까지 진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용암 폭포를 지나갈 방법이 없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화염 저항이 한 1,000% 정도 달려 있는 강철 우산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그때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가만, 우산이라고…? 어쩌면… 아니, 우산이 있다!’ “샴바라!” 아크는 곧바로 샴바라에게 다가가 작전을 설명했다.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그리고 그런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악실리온에서 호흡을 맞췄던 샴바라밖에 없었다. 아크의 설명을 들은 샴바라는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상황을 그려 보더니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볼 만하군. 자신 있어?” “달리 방법이 있냐?” “좋아, 믿어 보지.” 샴바라가 고삐를 잡아채며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나머지는 이곳에서 방어 대형을 유지하며 버티세요!” “으힉, 아, 알았다. 으힉, 공중전은 싫은데….” 갱생단과 전사들이 비명을 질러 대며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다행히 레리어트의 스킬 가운데 ‘정신의 균형’ 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스킬을 받으면 설사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어도 정확하게 자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덕분에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하늘 가오리를 진정시키고 드라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드라칸과 접전을 벌이는 사이, 또다시 바란족 전사 둘이 희생되었다. 그들의 조종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적진에 돌입할 갱생단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다가 당한 것이다. “저희들의 희생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번 임무는 바란족 전체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기특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다. 그러나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크는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바란족 전사가 희생되었을 때 샴바라의 전음이 고막을 울렸다. ?아크, 준비가 끝났다. 이제 한 방이면 돼. ?오케이, 이제 내 신호를 기다려. 잊지 마, 이건 타이밍 승부야! ?내 걱정 말고 너나 똑바로 하시지. “데드릭, 네 차례다. 드라칸 한 마리를 용암 폭포 근처로 유인해!” “익, 지금 주인 눈에는 내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 데드릭이 송곳니를 번뜩이며 달려드는 드라칸의 아가리를 피하며 버럭 소리쳤다. “믿을 건 너밖에 없어, 넘버 2! 라자크나 라둔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단 말이야.” “쳇, 알았어. 야, 이 날도마뱀 자시들아, 어디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라!” 데드릭이 욕설을 퍼부으며 다르칸 한 마리를 도발했다. 드라칸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자 데드릭은 날렵하게 송곳니 바위 사이를 비행하며 용암 폭포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뒤따라온 드라칸이 용암 폭포 앞을 스쳐 지나갈 찰나! ?지금이다, 샴바라! “뇌검?!” 천장에서 샴바라가 섬광을 일으키며 뇌검을 날렸다. 그러자 고드름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던 날카로운 바위가 쩍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지금이다, 타이밍, 타이밍, 타이밍!’ 아크는 온 신경을 집중하며 떨어지는 바위를 노려보았다. 움직이는 물체의 타이밍을 잡는 방법은 태권도를 배울 때 몸으로 익혔다. 아크는 머릿속으로 타이밍을 계산하며 바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바위와 충돌하는 순간, 검을 번개처럼 움직이며 ‘쳐내기’와 ‘카운터 어택’을 연결시켜 ‘화격’을 발동시켰다. 카가가가각, 투퉁! 둔중한 울림과 함께 바위가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아크가 돌진하며 ‘화격’을 사용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낙하하는 거대한 바위에 그냥 ‘화격’에 속도 에너지를 추가하면 육중한 바위라도 화살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날려 보낼 수가 있었다. 물론 적지 않은 반탄력이 느껴졌지만 아크는 시선을 집중하며 바위를 노려보았다. 화살이 된 바위의 목표는 데드릭을 쫓는 드라칸! 콰직, 우드드득, 콰콰콰쾅! 바위는 정확히 드라칸의 가슴을 꿰고 벽에 박혀 버렸다. 곤충 표본처럼 드라칸이 박혀 버린 곳은 용암 폭포의 윗부분! 드라칸이 중간을 막아 버리자 마치 우산을 씌워 놓는 것처럼 용암 폭포가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출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에 꿰어 용암 폭포로 샤워를 하게 된 드라칸이 발버둥쳤다. 그러나 단단히 벽에 박혀 버린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게 아크의 작전이었던 것이다. “성공이다, 모두 저를 따라 출구를 빠져나가세요!” “오오오, 출구다!” 아크의 외침에 갱생단거ㅏ 바란족 전사들이 드라칸을 밀어내고 방향을 돌렸다. 일단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가 출구로 들어섰다. 그사이 용암 샤워를 하던 드라칸의 생명력이 바닥났다. 이어 강렬한 열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용암 동굴에서 사는 드라칸이라도 용암의 열기를 정통으로 받으니 버틸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서둘러요. 얼마 버티지 못할 거예요!” “아, 알았다!” 대포와 화살로 드라칸의 접근을 막던 갱생단이 황급히 출구로 들어왔다. 그때, 우지끈 소리가 들리며 뼈만 남은 드라칸이 용암 폭포에 휩쓸려 떨어져 버렸다. 동시에 점차 좁아지던 출구가 다시 용암 폭포에 막혀 버렸다. 막 뒤따라 들어오려던 해결사가 방향을 틀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젠장!” “해결사 형!” “망할! 할 수 없다… 아무래도 나는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출발해…. 나는 바란족 전사와… 일단 하만 요새로 돌아갈 테니까.” “죄송합니다… 사령관님만 믿겠습니다.” 우렁찬 폭포 소리에 섞여 해결사와 바란족 전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드라칸 떼에 둘러싸여 있다. 하만 요새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그들만으로 용암 동굴을 빠져나가는 것은 솔직히 무리였다. “어쩔 수 없어. 늦은 놈이 잘못이야. 그렇게 생각해.” 짝퉁이 아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다시 출구를 나가 해결사와 바란족 전사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아크는 잠시 용암 폭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이것은 아크와 다크브라더 그리고 유계의 운명을 건 잠입 작전이다, 낙오병을 걱정하며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ART6 아게이론 아게이론 용암 동굴을 탈출하자 당신의 눈앞에 광대한 도시가 나타났습니다, 한 때 유계 북부에서 번창하던 바란족의 옛 도시, 아게이론입니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바란족은 세계수 유즈리아를 섬기며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적감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크족이 아게이론을 차지한 지금, 예전의 아름다움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도시 전체가 회색 암석과 녹슨 강철로 덮여 있을 뿐입니다. 암울한 분위기의 도시 중심에 서 있는 말라붙은 세계수 유즈리아가 더욱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모험가의 지식 : 숨겨진 도시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 : 20)》 ‘어쨋든 도착했군.’ 아크는 멀리 보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용암 동굴은 북부 산맥을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일종의 터널이었다. 어렵게 드라칸을 따돌리고 출구를 따라 이동하자 북부 산맥의 반대편, 유계 북부로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유계 북부라고 모두 나크족의 영역은 아니었다. 동굴을 나와 산줄기를 따라 조금 더 이동한 뒤에야 목적지인 아게이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부를 이동하며 아크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베스튜라는 북부를 원시림이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북부를 둘러보니 아름답기는커녕 남부보다 더 황폐했다. 거의 대부분이 거친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고, 간간이 보이는 숲에서도 활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이것도 세계수의 영향인가?’ 아크는 예전에 보나가 해독했던 두루마리를 떠올렸다. 두루마리에 원래 유계는 북부든 남부든 똑같이 풍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수가 힘을 잃자 멀리 떨어진 남부부터 황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나크족이 북부로 몰려들어 아게이론을 빼앗았다. 그러나 세계수가 힘을 잃은 상태가 100여 년이나 지속됐다. 게다가 나크족이 여기저기 주둔지를 세우며 무분별하게 숲을 훼손하자 결국 북부도 황폐해져 버렸다. 반면 비록 황무지로 쫓겨났지만 환경 보호에 열심인 바란족 덕분에 오히려 남부는 조금 더 나은 환경이 된 것이다. ‘그렇게 상황이 역전되니 나크족이 다시 남부에 군침을 흘리게 된 건가?’ 환경 보호를 제대로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대강의 사정을 알고 나니 새삼 나크족이 괘씸하게 생각되었다. 어쨌든 아게이론은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마치 중세의 성채 도시처럼 몇 겹이나 되는 성벽이 원형으로 둘러쳐져 있고, 성벽과 성벽 사이에 각종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하늘에 닿을 듯이 솟아 있는 거대한 세계수 유즈리아가 있었다. 물론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고목으로 변해서 말이다. ‘ 저 도시를 가로질러 유즈리아를 부활시켜야 한다 이거지?’ 아게이론에 우글거리는 엄청난 숫자의 나크족을 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현재 일행은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불끈이, 떡대, 짝퉁, 타짜, 얍삽이, 8명뿐이다.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유즈리아의 부활뿐, 아게이론의 나크족 전체와 싸울 이유는 없었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유즈리아까지 이동해서 볼일만 끝내고 도망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유저인 쥬르 일당이 있다면 쉽지 않겠지만, 상대는 NPC. 옛날 온라인 게임 유저들이 즐겨 하던 ‘직보(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최대한 빨리 보스만 처리하는 게임 방식)’처럼 적절하게 스킬을 사용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걸 목적으로 직업을 조합해 놨으니까.’ “일단 모두 이걸 드세요.” 아크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각종 요리를 만들어 뷔페를 차렸다. 고급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만든 요리들! “오, 너하고 같이 다니면 이래서 좋아.” 용암 동굴을 탈출하느라 지쳐 있던 일행은 순식간에 뷔페를 싹싹 긁어 먹었다. 그사이 아크는 파티 전원의 장비품을 수리, 보수까지 해 주었다. 간만의 출혈 서비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파티의 전력을 올릴 수 있는 뭐든 해 둬야 했다. 거기에 레리어트의 버프까지 받아 일행은 각종 능력치를 상당히 올릴 수 있었다. “보조 효과 일람.” 적용딘 보조효과 정보창 *음식 효과 【기운찬 드링크】【툰툰 통구이】【새콤달콤한 파스타】【약초 샐러드】【새우 튀김】 +요리 효과의 토털 상승 능력치 : 힘+45, 체력+24, 민첩+30, 지능+5 *버프 효과 【질풍의 호흡(공격 속도+10%) 지속 시간 : 30분】 【전사의 집중력(치명타 확률+20%) 지속 시간 : 30분】 【영웅의 기상(공격력+10%) 지속 시간 : 1시간】 *특수 스킬 효과 【중급 칼날 정비(검 공격력+3%) 지속 시간 : 1시간 】 【중급 세탁(방어력+7%) 지속 시간 : 4시간】 【이노센스 나이트의 지휘, 통솔의 영향으로 파티의 공격, 방어가 7% 상승한 상태입니다.】 *현재 복용 중인 보약 효과 【십전대보탕(힘+!, 체력+1) 복용 기간 : 18일째】 적용된 보조 효과를 한 번에 열람해 보니 가히 장관이었다. 현재 아크의 서바이벌 요리는 최상급, 요리의 효과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상급이 되어 안 좋은 면도 없지 않았다. 원래 요리는 같은 종류만 아니라면 한 번에 열 가지 종류까지 먹을 수 있었다. 단, 여기에는 한 가지 제한이 있었다. 바로 만복도. 요리를 하나만 먹어도 만복도가 100%라면 더 이상 요리를 먹을 수 없었다. 같은 의미로 요리 효과의 지속 시간이 끝나도 만복도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라면 요리를 못먹는다. 때문에 식재료가 쌓여 있어도 무턱대고 요리를 만들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최상급 서바이벌 요리의 단점이 이 점이었다. 요리의 부가 효과가 올라간 건 좋다. 그런데 부가 효과와 함께 가산되는 만복도도 올라간 것이다. 어지간히 요리는 만복도가 30%가 넘었다. 덕분에 최상급 요리는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요리가 3~5개가 한계였다. ‘만복도가 적게 올라가면서 부가 효과가 높은 요리의 식재료는 구하기 힘들단 말이야.’ 아크는 몇 개 남지 않은 귀한 식재료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최소 2골드는 받아야 하는 요리들인데….’ 그러나 아무리 아크라도 차마 이런 상황에서 밥값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요리 덕분에 특공대의 능력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갔다. 그뿐인가? 이미 중급까지 올려놓은 ‘칼날 정비’와 ‘세탁’ 으로 공격력과 방어력까지 올려놓았다. 도적 계열인 아크가 보조 전문 직업인 레리어트의 버프와 맞먹는 능력치를 올려놓은 것이다. 부가 효과 정보창을 확인한 샴바라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너 정체가 뭐야? 잡캐도 너 같은 잡캐는 처음 본다.” “나도 내 정체가 궁금해.” 아크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그렇게 정비를 끝낸 특공대는 언덕을 내려와 아게이론으로 접근했다. 하늘 가오리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만약 하늘 가오리를 타고 아게이론에 접근하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버리리라. 여기서부터는 문자 그대로 잠입.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며 숨어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세계수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 들키지 않고 들어가느냐는 건데….” 샴바라가 난감한 표정으로 아게이론을 바라보았다. 아게이론은 나크족의 본진. 마치 몇 달 동안 안 빤 팬티에서 증식한 세균처럼, 엄청난 숫자의 나크족이 득실거렸다. 도시라 주민도 있었지만 전사 부족이라 그 가운데 70%가 병사였다. 이미 주위는 어둠에 잠기고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덕분에 어둠의 자식들인 아크와 샴바라, ‘가디언=정찰병’으로 전직한 얍삽이는 ‘은신’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곳 시간은 10여분, 게다가 이렇게 많은 나크족 틈에 섞여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우후후후, 우리의 실력을 보여 줄 때군.” 그때 갱생단이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얍삽이, 아게이론 근처로 잠입해서 제일 흔한 물건이 뭔지 알아봐.” 타짜의 말에 얍삽이가 ‘은신’ 을 사용해 아게이론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바닥에 자신이 보고 온 물건을 대강 그려 보이며 설명했다. “술통이야. 와인을 저장하는 것처럼 생긴 술통. 여기저기 널려 있던데?” “술통이라고? 좋아.” 타짜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에서 이것저것 목재와 공구를 꺼내 놓았다. 그리고 슥슥삭삭 톱과 망치를 휘둘러 대더니 이내 그림과 똑같이 생긴 술통 8개를 만들어 냈다. “자, 모두 이 술통을 뒤집어써.” 아크가 술통을 뒤집어쓰자 메시지가 올라왔다. ‘복제’ 스킬로 만들어진 ‘나크족 술통’을 사용했습니다. 적대 세력의 가재도구를 본떠 만든 물건을 사용하면 ‘위장’ 효과가 적용됩니다. ‘위장’이 적용되면 적대 세력에게 의심을 받지 않습니다. 단, 적대 세력이 관심을 보이면 ‘위험도’가 증가합니다. 위험도가 증가한 상태에서는 약간의 행동으로도 들킬 확률이 증가합니다. 《현재 위험도 : 0》 타짜는 예전에 신탁을 받을 때 사용했던 ‘위조’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가디언=공병’으로 전직하며 ‘위조’의 상위 스킬인 ‘복제’를 익힐 수 있었다. “풍수지리!” 뒤이어 짝퉁이 소리치자 또다시 정보창이 올라왔다. 파티에 ‘풍수지리’ 스킬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풍수지리는 ‘가디언=전략가’의 고유 스킬입니다. ‘풍수지리’를 사용하면 모든 환경 효과, 지형 효과에 대한 상성치가 상승합니다. 적보다 높은 곳에 있을 때는 공격력이 가산되고, 낮은 곳에 있을 경우에는 페널티가 반감합니다. 또한 어둠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해 몸을 숨길 경우 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감소합니다. 《적에게 의심받을 확률을 30% 감소시킵니다.》 ‘역시 직업을 조합해 오기를 잘했어.’ 아크는 새삼 뉴 월드의 다양한 스킬에 감탄했다. 그러나 괴상한 스킬이라면 아크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이제 제 차례네요. 데드릭 위성 감시 모드!” “오케이-!” 아크의 명령에 데드릭이 100여 미터 상공에 떠올라 눈을 부릅떴다. “정면… 좌우에 망루가 있다…. 감시병 하나씩… 이건 무시할 수 없겠는데…. 그리고 그 주변에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골목을 순찰하는 나크족 정찰병이 네 부대… 각각 5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어….” 데드릭이 주변의 정보를 파악해서 달려 주자 아크의 지도에 움직이는 붉은 점들이 표시되었다. 이게 바로 나크족과 전쟁을 치르며 데드릭이 새로 배운 스킬이었다. 소환수 ‘데드릭’이 새로운 스킬을 익혔습니다. 위성 감시 모드(초급, 종족 특성) : 50미터 상공에서 직경 100미터 내의 주변의 지형과 적의 동태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할수록 보다 ‘높은 곳에서 정찰이 가능해 시야가 넓어집니다, 파악한 정보는 소환자의 지도에 표시됩니다. 단, 스킬을 발동시키면 소환자의 마나가 10초당 5씩 지속적으로 감소합니다. 《직경 100미터 내의 지형, NPC, 유저의 정보를 미니 지도에 표시합니다.》 꾸준히 데드릭을 정찰 위성으로 써먹은 덕분이다. 어쨌든 아게이론은 거대한 도시, 술통에 숨어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 복잡한 도시의 골목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술통에 숨었다고는 하나, 나크족이 근처에 있을 때 움직이면 발각될 확률이 높아진다. 지형과 주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목적으로는 위성 감시 모드가 가장 쓸 만했다. “자, 이제 적진으로 잠입하죠.” 뒤이어 10개의 술통이 아게이론을 향해 움직였다. 도도도도…. “멈춰요! 요 앞의 모퉁이에서 순찰병들이 접근하고 있어요.” 막 아게이론에 진입하던 아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특공대는 걸음을 멈추고 술통 속에서 숨을 죽였다. 그리고 불과 몇 초의 차이로 모퉁이에서 10여 명의 나크족 병사들이 돌아 나왔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술통을 발견하고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어라? 이런 곳에 웬 술통이지?” “흠, 술통을 보니 갑자기 목이 마른걸.” -위험도 : 20% ‘헉, 이, 이 자식들! 가, 그냥 가!’ 아크가 술통에 난 구멍으로 나크족을 노려보며 기도했다. 다행히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나크족 1명이 동료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이봐, 근무 중에 술을 마셨다가 무슨 경을 치려고 그래?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 지껄이지 말고 순찰이아 마저 돌자, 나 좀 쉬고 싶다고.” “알았어, 알았어. 술통이 보이기에 한번 해 본 소리야.” 나크족은 아쉬운 듯이 술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순찰병들이 멀어지자 다시 위험도가 0이 되었다. ‘휴… 망할 놈들, 그냥 갈 거면 처음부터 그냥 가지, 괜히 겁주고 난리야?’ 그제야 특공대원들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도도도, 움찔! 도도도도, 우뚝! 도도도도, 찰싹! 술통을 이용한 잠입은 순조로웠다. 일단 아게이론은 대도시처럼 건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적의 시선을 피할 지형지물이 많은 것이다. 게다가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비슷하게 생긴 술통이 많아 그곳에 섞여 있으면 어지간한 일로는 위험도가 상승하지 않았다. 큰 소리를 내거나, 나크족이 보고 있을 때만 움직이지 않으면 들킬 염려가 없었다. ‘이거 은근히 재미있는데?’ 마치 잠입 액션 게임 메탈기어 솔리드를 하는 기분이랄까? 미니 지도로 지형과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잠입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렇게 적진에 잠입한 지 대략 20분, 특공대는 첫 번째 관문에 도착했다. 술통들은 관문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군거렸다. “여기는 망루가 많아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위험해.” 적진에 잠입할 때 가장 귀찮은 게 바로 망루였다. NPC가 망루에 올라가 있으면 감시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지고, ‘은신’을 사용해도 시야에 걸리면 자동적으로 해제된다. 실제로 술통에 숨은 특공대 역시 움직이지 않고 있음에도 감시병의 시야에 들어가면 곧바로 위험도가 50%까지 상승했다. 발가락만 꼼지락거려도 들킬 만한 수준인 것이다. 관문 근처에는 그런 망루가 10여 개나 있었다. “하지만 모든 망루가 위험한 건 아니야. 벽에 바짝 붙어 이동하면 다른 망루의 시야에는 걸릴 위험이 없어. 하지만 3시와 4시, 6시 방향의 망루는 계속 시야가 겹쳐서 이대로 돌파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냥 갈 수 없다면 처리할 수밖에 없지.” 샴바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히 현재 거치적거리는 망루는 3개. 3시와 4시, 전방의 2개는 너와 내가, 위험도가 낮은 6시 방향의 망루는 얍삽이 형님이 맡으면 어떻게 될 거야.” “다른 망루에 있는 감시병이 시선을 돌린 사이에 처리해야 해. 자신 있어?”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멍청아.” 잠입하기 위해서는 먼저 망루를 무력화시켜야 한다. 적진 한복판에서 망루를 무력화시킬 방법은 하나, 암살이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크보다 샴바라가 전문가인 것이다. 아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하자. 혹시 모르니 ‘전음’ 상태를 유지해. 놈들의 움직임을 알려 줄 테니까.” 뒤이어 3개의 술통이 각각의 망루로 접근했다. 발발거리며 접근하다가 감시병이 시선을 돌리면 멈추기를 반복, 이내 3명은 망루의 사다리가 놓인 곳에 도착했다. 아크는 미니 지도로 적의 동태를 살피며 머릿속으로 타이밍을 계산했다. 술통 안에서는 망루 위의 상황을 살필 수 없기에 전적으로 데드릭의 감시 모드에 의지해야 했다. -샴바라, 감시병이 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확인했어. 그런데… 네 박쥐 되게 편하다. 혹시 박쥐는 한 마리 더 없냐? 샴바라가 민첩하게 감시병의 시야를 벗어나며 말했다. -있어도 안 줘, 인마. -치사한 자식. -잡담은 그만하고, 자, 준비해. 지금이다. 놈들의 시선이 모두 분산됐어. “라둔, 맹독 마비.” 아크가 ‘은신’ 상태로 술통에서 뛰어나오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라둔이 우물우물하다가 녹색 액체를 검에 뱉어 냈다. 동시에 아크는 샴바라와 타이밍을 맞춰 고양처럼 민첩하게 망루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관문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감시병의 뒷덜미에 백스텝을 먹여 주었다.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마비 독에의해 나크족 감시병이 안면 근육이 5초간 마비되었습니다.》 감시병이 바닥에 쓰러진 채로 나무토막처럼 굳어 버렸다. 마비 독을 사용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놈이 비명을 질러 대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이미 암살이 아닌 되는 것이다. 뒤이어 아크는 ‘다크 블레이드’를 속사포처럼 쏟아부었다. 감시병의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그러나 잠시 후 마비가 풀린 감시병이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러나 아크는 그럴 때마다 면상에 치명타를 날려 마비를 발동시키며 감시병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레벨 300에 어둠 속성 보너스까지 적용된 아크가 나크족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는 불과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감시병을 처리한 아크가 약간 우쭐한 기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샴바라 역시 이미 감시병을 처리한 뒤였다. ‘쳇, 저 자식은 대체….’ 아크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유계에서 미친 듯이 폭렙을 했다. 이제 쥬르나 듀크조차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정도. 덕분에 우쭐해진 아크는 샴바라와도 상당한 차이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샴바라의 처리 속도를 보니 그리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았다. ‘하긴 암살은 나보다 샴바라가 전문이지만….’ 역시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그때 돌연 미니 지도에서 움직이던 붉은 점에 느낌표가 찍혔다. 지도에 표시되는 붉은 점은 나크족, 느낌표는 애드됐다는 의미였다. 아크가 깜짝 놀라 시선을 돌리자 샴바라가 접수한 망루 아래쪽에 나크족이 보였다. -샴바라, 우측 아래, 7시 방향! 동시에 샴바라의 눈동자가 핑그르르 돌아갔다. 순간 입을 쩍 벌리던 나크족의 아가리 속에 시퍼런 단검이 쑤셔 박혔다. 샴바라의 스킬 ‘단검 던지기’! 원래 암살 전문 직업인 세인트 어쌔신은 검이나 단검에 극독을 바를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그것도 라둔의 맹독 제조 보다 강력한 독! 단검에 맞은 나크족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뒤이어 샴바라는 체조 선수처럼 망루에서 뛰어내리며 나크족의 정수리를 검으로 내리찍었다. 암살 스킬에 낙하 데미지가 중첩되며 무지막지한 데미지가 터져 나왔다. 엄청난 충격을 받고 ‘스턴’에 빠져 버린 나크족은 몇 번의 칼질에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무, 무서운 놈…!’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날렵한 솜씨였다. 그나마 동료가 됐으니 망정이지, 적이 되면 저만큼 두려운 놈도 없으리라. -자, 서둘러 철수하자. 망루 위의 시체는 위장해 놓고 바닥의 시체는 치워 둬. 아크는 망루는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다른 망루의 감시병이 이쪽 망루에 이변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곤란한 것이다. 아크와 샴바라가 전방의 망루를 처리하는 사이, 얍삽이도 맡았던 망루의 감시병을 처리하고 합류했다. 갱생단들이 다시 술통을 뒤집어쓰고 관문을 넘으며 히죽거리며 말했다. “후후후, 이거 생각보다 쉬운데?” “처음에는 좀 걱정했는데 이런 식이면 어렵지 않겠어.” “방심하지 마세요. 세계수 앞까지 가도 일단 들키면 그 순간 끝장이에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아크 역시 약간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갱생단의 말처럼 이 상태라면 이외로 쉬울 것 같았다. 술통 속에 숨어 이동하는 방식에도 익숙해져서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잠깐, 요 옆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요.” 도도도도, 움찔, 찰싹! 또다시 아크의 목소리에 10개의 술통이 건물 뒤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나크족 소년이 모퉁이를 돌아섰다. ‘뭐야? 어린애였잖아?’ 잔뜩 긴장했던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아무래도 병사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어른보다는 어린애가 더 호기심을 드러내는 법. 게다가 어린애는 무슨 짓을 할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역시나… 술통 옆을 지나치던 소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빤히 바라보았다. -위험도 : 50% 소년이 관심을 보이다 단숨에 위험도가 50% 상승했다. ‘뭐, 뭐야? 뭘 보는 거야? 여기는 아무도 없어. 그냥 가!’ 아크가 소년을 노려보며 강력한 염파를 날려 댔다. 그러나 역시 어린애의 행동은 예측 불능이었다. 소년이 멀뚤멀뚱 바라보다가 술통에 난 구멍으로 손가락을 푹 찔러 넣은 것이다. 대체 왜 길가의 술통에 손가락을 찔러 대는 거냐? 아니,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손가락으로 눈을 찔려 버린 아크가 벌러덩 넘어지며 비명을 터뜨렸다. “으아아악, 뭐, 뭐야?” “헉, 귀, 귀신이닷!” 소년도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근방 수십 미터 안의 나크족의 시선이 집중되어 버린 것이다. -위험도 : 100% 《‘위장’과 ‘풍수지리’ 스킬이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마, 맙소사…!” 아크는 팅팅 부어오른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신음을 흘렸다. 삼바라가 술통에서 뛰어나오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고맙다. 멍청한 자식아!” “야, 인마, 너도 눈 찔려 봐. 비명이 안 나오나! 젠장, 이 자식…!” 아크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년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그러자 나크족 소년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크 님, 그만두세요. 나크족이라도 어린애잖아요.” “멍청아, 지금 어린애에게 복수할 때냐?” “아크, 어른스럽지 못하게….” 레리어트와 샴바라, 갱생단의 말에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팩 고개를 돌렸다. 애든 어른이든 싸가지 없는 것들은 패 줘야 한다는 게 아크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미 다 들통 난 마당에 어린애나 패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젠장,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아크가 특공대를 데리고 골목을 달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겁에 질려 있던 소년이 갑자기 안면을 갈아엎으며 히죽 웃었다. “케케케, 침입자구나. 멍청한 놈들, 네놈들은 이제 다 죽은 목숨이다. 네놈들이 갈가리 찢기면 내가 제일 먼저 먹어주마. 특히 너, 나를 겁준 네놈의 눈알은 내가 먹어 주마!” 어린놈이 그렇게 싸가지 없이 지껄여 대며 도망치는 것이었다. 덕분에 특공대는 한순간 이성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 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면 저런 골통이 되는 걸까? 정말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 아니, 부모도 카오틱 NPC일 테니 오히려 잘했다고 칭찬해 줄까? “아크!” 아크의 쓸데없는 생각은 샴바라의 고함 소리와 함께 끝났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저… 저그다!” 스타그래프트에서 저그의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병력 수 제한 200을 저글링으로 꽉꽉 채워서 러쉬하는 저그의 공격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마린 여덟 마리밖에 없는 상황에서? 지금 아크의 기분이 딱 그랬다. “침입자다. 죽여라!” ‘감히 아게이론에 잠입하다니!’ 주변의 건물에서 엄청난 숫자의 나크족이 꾸역꾸역 몰려 나왔다. 그 숫자는 수백…! 뉴 월드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꼴을 다 경험한 아크도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몬스터에게 둘러싸여 보기는 처음이었다. 광장은 물론 좁은 골목까지 순식간에 나크족으로 꽉 들어차 버렸다. 그리고 나크족의 숫자만큼 많은 검과 창, 화살이 특공대를 향해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콰콰콰쾅, 서걱, 콰직, 우드득! 고작 여덟밖에 되지 않는 특공대는 순식간에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이건 뭐, 막고 자시고 할 틈도 없다. “치유의 손길, 여신의 가호!” 레리어트가 회복 마법을 폭포처럼 쏟아부어도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되지 않았다. “레리어트 님, 버프3종세트를 방어형으로 전환해 주세요!” 이런 상황에서는 공격력을 올리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버티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아크의 요청에 레리어트는 최대 체력 상승, 방어력 상승, 회피율 상승의 방어형 버프 3종 세트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다시 회복 마법을 퍼붓자 약간이나마 생명력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려졌다. “치유의… 아악!” 회복 마법을 뿌려 대던 레리어트가 비명을 터뜨렸다. 치유나 버프 계열의 마법은 적대치를 엄청나게 상승시킨다. 때문에 연속적인 스킬 난사로 주변에 있던 나크족의 공격이 레리어트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물론 아크는 이럴 때를 대비해 ‘가디언=돌격병’ 으로 전직 해 ‘방어 태세’와 ‘도발’을 익힌 불끈이와 떡대를 데려왔다. 그러나 지금처럼 수백에게 둘러싸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둘이서 레리어트를 보호하는 것은 무리! ‘레리어트 님이 쓰러지면 바로 전멸이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그녀에게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검화 해제, 라자크, 방패 치기!”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레리어트의 앞으로 떨어지며 사방으로 방패를 휘둘러 댔다. 몇 명의 나크족이 뒤로 밀려났다. “XX 요격!” 그사이 아크는 레리어트의 주변을 돌며 엄청난 속도로 검을 찔렀다. 그렇다, 데드릭과 라자크가 새로운 스킬을 배우는 동안 아크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꾸준한 노력으로 새로운 스킬을 배웠으니… 그 이름도 섬뜩한 XX 요격! 이 스킬은 바로 칼자프를 침몰시켰던 비장의 기술, X침으로 나크족의 아이템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 아크는 집중적으로 기술을 사용했고, 드디어 스킬을 승화시킨 것이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XX 요격(초급, 액티브): 적의 특정 부위를 집중 공격하는 특수 찌르기. 몇몇 특성을 가진 몬스터의 경우 XX 요격으로 특정 부위를 공격해 분노치를 상승 시키면 일정 확률로 전리품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특정 부위는 굉장히 고통스러우므로 공격을 받은 적은 이동속도 가 둔화됩니다. 고통을 주어 움직임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공격 성공 시 5% 확률로 적의 움직임 5% 둔화(최대 다섯 번까 지 중첩). 단, 공격을 성공할 때마다 적의 분노 수치가 상승해 ‘강제 도발’과 같은 효과가 발동합니다. 》 "으, 으악!" “뭐, 뭐냐? 이 익숙지 않은 고통은…?》” “크으으윽, 찌…찢어지는 것 같아!” “아… 아침에 화장실 안 갔는데….” X침을 맞은 나크족이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X침에 맞은 나크족의 엉덩이가 순식간에 팅팅 부어올랐다.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게 된 나크족의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그러나 아크가 노린 것은 그런 효과가 아니었다. X침을 맞은 나크족은 수치심과 분노에 휩싸여 아크에게 강렬한 적의를 불태우며 몰려들었다. ‘강제 도발’ 효과! 아크가 X침을 남발한 덕분에 레리어트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치사한 자식!” “싸우는데 치사한 게 어디 있어? 섬아!” 아크가 몰려드는 나크족을 관통하며 전체 데미지를 주었다. 그러나 무슨 스킬을 쓰든 상황은 여전히 암담했다. 우측 상단에 걸어 두었던 미니 지도는 완전히 시뻘건 색이었다. 붉은 점으로 표시되는 나크족이 너무 많아 지도 전체가 붉은색으로 뒤덮여 버린 것이다. 설사 생명력이 버텨 준다고 해도, 나크족을 모두 쓰러뜨리기 전에 검과 방어구의 내구력이 바닥나 버릴 정도였다. “아크, 이쪽이다!” 그때, 머리 위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샴바라는 어느새 지붕 위에서 기어 올라오는 나크족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 상태로 나크족에게 둘러싸여 공격받는 것보다 지붕 위에서 싸우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크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술통을 밟고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레리어트와 갱생단을 잡아 올려 주었다. 일단 지붕에 올라오니 싸우기가 한결 쉬웠다. 지형적으로는 유리했고, 한 번에 상대해야 하는 적의 숫자도 확 줄어들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가 시야가 넓어진 덕분에 암담한 상황은 더욱 적나라하게 보였다. 특공대가 있던 골목만이 아니었다. 이미 아게이론 전체에 비상이 걸려 천지사방이 모두 나크족이었다.. ‘망했다, 이제 모두 끝장이야!’ 도망갈 수 없다. 여기서 도망가면 세계수 부활은 물 건너가는 거다. 앞으로 진격할 수도 없다. 그나마 여기는 아게이론의 외곽, 앞으로 진격하면 할수록 나크족의 숫자는 더욱 불어나리라. 들통 난 그 순간 이마 특공대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아크, 뛰어라!” 그때 짝퉁이 뒤에서 소리쳤다. 아크가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짝퉁이 손을 들어 다음 관문을 가리켰다. “저기다. 일단 저기까지만 가면 살아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이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해!”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크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일단 짝퉁의 말대로 관문을 향해 달렸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특공대는 날아오는 창과 화살을 쳐 내며 다음 관문까지 도착했다. 관문 주변에는 지붕이 없었으므로 일단 일행은 바닥에 뛰어내려 관문을 넘어섰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두 번째 관문 너머에서도 수백의 나크족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400, 500, 600, 700… 몰려드는 나크족의 숫자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짝퉁 형, 대체 무슨 방법을…?” “계속 달려!” “네?” 짝퉁과 얍삽이, 타짜가 와락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그 장면에 아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짝퉁과 얍삽이, 타짜의 의도는 알 만하다. 일단 그들이 관문을 막고 있는 사이에 계속 진격하라는 뜻이리라. 그러나 전직했다고는 하나 그들은 전략가, 정찰병, 공병이다. 수백 명의 나크족에게 둘러싸이면 30초도 되지 않아 떡이 되어 버리리라. 그때 짝퉁 들이 씨익 웃으며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훗, 나도 한때 머리 하나로 살았던 사람이다. 슬라임의 시간 NO 1!” ACT 7 관문 돌파! 짝퉁 들의 몸이 노란 점액질에 뒤덮였다. ‘슬라임의 시간’! 그렇다, 이제 슬라임의 시간은 아크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물론 주문서로 만들어 능력치 상승은 100%의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갱생단도 ‘슬라임의 내단’ 을 먹어 ‘슬라임의 시간’ 스킬을 배운 것이다. 효능은 바로 10분간 물리 공격 100% 무효화, 마법사가 없는 나크족을 상대로 완벽한 무적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짝퉁 들을 바라보았다. 짝퉁의 의도는 이해했다. 그리고 현재로써는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짝퉁 들은 죽겠지만 게임 안에서 유저의 죽음은 단순히 능력치가 떨어진다는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큰 목적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수 있는 페널티인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걱정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까지 이르는 과정이었다. ‘불완전한 ’슬라임의 내단’ 에 그런 페널티가 붙을 줄은 몰랐어.’ 새삼스럽지만, 갱생단이 만들어 먹은 ‘슬라임의 내단’ 은 ‘정품’이 아니었다. 정상적으로 만들려면 내단 하나에 118시간이나 걸린다. 6개를 만들려면 무려 708시간이 걸린다는 뜻! 결국 갱생단은 정식으로 서바이벌 요리를 사용해 만든 것이 아닌, ‘비전의 주문서’를 사용해 만들어진 B품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B품의 내단은 본래 성능의 70%밖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가산되는 능력치가 적어지는 게 아니었다. ‘B품 슬라임의 내단’에는 상상도 못 했던 페널티가 붙어 있으니… 바로 내단으로 배우는 스킬이었다. 종족 스킬 ‘슬라임의 시간’을 배웠습니다. 슬라임의 시간 : 하루에 한 번, 두 가지 스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 다. 1. 몸을 슬라임처럼 완전한 연체로 바꿀 수 있습니다. 슬라임화되면 10분 간 낙하 데미지와 물리 공격을 100% 무효화시킵니다. 단, 마법에 100% 추가 데미지를 입고, 공격력이 100%만큼 감소합니다. (B품 페널티 : 불완전한 내단을 섭취해 슬라임으로 변했을 경우, 온몸의 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공격을 받을 때 느끼는 고통이 50배로 증폭됩니 다.) 2. 반경 500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슬라임을 호출할 수 있습 니다. (B품 페널티 : 불완전한 내단을 섭취해 슬라임을 불렀을 경우, 슬라임을 사용자를 동료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용자를 수상해 집중 공격 하게 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페널티였다. 뉴 월드에서 공격을 받을 때 느끼는 통증은 고작 짜릿한 정도. 그러나 50배로 증폭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두 번 다시 ‘슬라임의 시간’ 스킬은 쓰지 않겠어.” 앞서 ‘B품 슬라임의 내단’을 먹고 성능을 테스트 해 봤던 샴바라가 치를 떨며 말했을 정도였다. 스킬을 사용하고 몇 대 맞아 봤는데 현실에서 맞는 것보다 서너 배는 더 아팠다고 한다. 짝퉁 들이 10분 동안 관문을 막아서면 고작 몇 대가 아니다. 현실보다 아픈 통증을 수백, 수천 대 버텨 내야 하리라. “짝퉁 형, 형들이 익힌 ‘슬라임의 시간’ 스킬은 제가 사용하는 것과는….” ‘형님들…!’ 아크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삼키며 소리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 그야말로 처절한 돌진이었다. ‘쿠케케케, 이런 즐거운 장면을 놓칠 수는 없지.’ 한편 데드릭과 갱생단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데드릭은 소환수가 되기 전, 왕따를 당했던 암울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로는 유난히 지위에 집착하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유계의 귀족이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것도, 매번 착취당하면사도 넘버 2라는 아크의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가는 것도 그런 괴팍한 집착 탓이었다. 어쨌든 얼마 전 아크가 공식적으로 데드릭을 넘버 2로 인정한 이후로는 그런 집착은 한결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라자크나 라둔은 물론, 레리어트나 북실이도 대놓고 부하를 다루듯이 대했다. “이 몸은 유계의 귀족이자 넘버 2다. 주인이 없을 때는 내가 대장이야!” 아크가 자리를 비우면 이렇게 당연한 듯이 대장 행세를 했다. 같잖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아크 역시 은연중에 그런 데드릭의 월권행위를 인정했다. 어차피 유계에서는 아크가 게임을 종료해도 소환수들은 남아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라둔과 라자크를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레리어트는 아크보다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더 많다. 또한 북실이는 믿을 수 없다. 그러니 남은 소한수 가운데 가장 영악한 데드릭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데드릭은 확고한 넘버 2 자리를 굳히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얼마 전, 데드릭의 콧대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아크가 다크브라더=바란족 연합의 사령관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가만, 주인의 바로 다음은 나잖아? 그럼 이 수천 명의 연합군 가운데 실질적인 넘버 2는 이 몸? 오오옷, 드, 드디어… 출세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어! 권력 지향주의에 빠진 박쥐는 기어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슬슬 눈치를 보다가 아크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후후후, 주인이 자리를 비웠으니 이제부터 이 몸이 사령관의 대행을 맡겠다! 미리 말해 두지만 이몸은 주인처럼 노골노골한 성격이 아니야!” 데드릭은 하만 요새를 날아다니며 시시콜콜 참견해 댔다. 이쯤에서 누군가 태클을 걸어 줬으면 좋았을 것을…. 이미 아크에게 완전히 잡혀 버린 바란족 족장들은 데드릭에게도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레리어트와 북실이 등은 평소 보아 오던 것이라 그러려니 했다. 덕분에 데드릭은 더울 심각한 착각에 빠져 버렸고, 급기야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버렸다. “어이, 너희들, 똑바로 못해?” 제정신이 아닌 데드릭이 이렇게 지껄인 상대는 갱생단이었다. 갱생단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눈을 부라렸다. “뭐? 너 지금 뭐라도 지껄였냐?” ‘윽, 이, 녀석들… 눈깔이 왜 이렇게 살벌해?’ 데드릭은 순간 실수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쫄면 안 돼. 예전에 나가란에서 공격대를 만들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대장은 주인이었잖아. 이 녀석들은 결국 주인의 부하들이야. 그리고 나는 주인의 바로 아래, 넘버 2! 이 녀석들도 내 부하나 다름없어! 부하가 반항한다고 쪼는 기색을 보이면 권위고 뭐고 끝장이야.’ “어쭈? 어딜 노려봐? 반항질이냐? 한번 죽어 볼래?” 데드릭은 기어코 핵폭탄의 스위치를 눌러 버렸다. 그리고 데드릭은 전직 ‘형님’ 들이었던 갱생단에게 문자 그대로 떡이 되어 버렸다. 불과 몇 분 만에 데드릭은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할 정도로 박살났지만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크윽. 너, 너 이 자식들… 주인에게… 다 이를 거다….” “하? 그러셔? 얘들아, 이 박쥐가 더 맞고 싶단다.” “아욱, 아욱! 그, 그만… 그만 때려… 아니, 아니. 용서해 줄게….” “용서해 줄게? 하아, 이거 완전 골통이네.” “우욱, 아욱! 흑흑흑, 아파요. 그만 때려요. 이제 용서해 주세요.” 결국 데드릭은 손바닥이 발바닥이 될 정도로 빌고 나서야 집단 폭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데드릭의 파란만장했던 집권기는 그렇게 피멍만 남기고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후후후,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불과 일주일 전에 그런 끔찍한 경험을 했던 데드릭은 나크족에게 두들겨 맞는 짝퉁 들을 보니 10년 묵은 숙변이 쑥 빠져나가는 듯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데드릭의 얼굴에서 점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크윽, 이거… 자, 장난이 아니잖아?” “허억, 정말 칼에 난도질을… 당하는 느낌이야.” “비, 빌어먹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짝퉁과 얍삽이, 타짜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50배나 증폭된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말 칼로 찔러 대고 철퇴로 두개골을 부숴 대는 느낌! 생명력은 1%도 줄지 않았지만, 짝퉁 들은 정신적으로 빈사 상태에 빠져 휘청거렸다. “허억!” 결국 얍삽이가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안 돼, 정신 차려! 크윽, 우리가 버티지 못하면… 아크와 유계는 끝장이야!” “아, 알고 있어!” 얍삽이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덜덜 떨리는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막 몸을 타 넘으려는 나크족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이런 지독한 놈들!” 나크족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얍삽이의 몸을 난도질했다. 그때마다 얍삽이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았다. “크으으윽. 갱생… 갱생단의… 근성을 보여 주마!” “우리가… 폼으로… 정의를… 외치는 게… 아니야!” “우오오오! 의지를 보여 주자!” 허물어지던 성벽처럼 휘청거리던 짝퉁 들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다시 굳게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또다시 사방에서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중얼거렸다. “크, 비명을 지르지 마라…. 먼저 간 동료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돼….” “참기 힘들면… 차라리 노래를 해….” “오오, 그거 좋군…. 흡, 크… 좋아…. 전우의 시체를… 허억,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짝퉁 들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나크족을 노려보며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검에 살점이 베이는 고통이 느껴질수록 목소리를 더욱더 커져 갔다. 섬뜩하기까지 한 그들의 집념에 전투 종족인 나크족 전사들마저 움찔하며 물러날 정도였다. “저, 저 녀석들… 저렇게까지…!” 상공에서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던 데드릭이 떠듬거렸다. 데드릭의 얼굴에 더 이상 갱생단에 대한 원한이나 비웃음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이 80년대 전쟁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장면은 자기밖에 모르는 박쥐의 심금까지 울려 버린 것이다. “제, 젠장! 저 녀석들… 왜 저렇게 멋진 거야?” ‘야, 인마, 뭐하고 자빠졌어? 감시 모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잖아?’ 그때, 아크의 목소리가 데드릭의 고막을 울렸다. “바, 바보 같으니!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짝퉁 들이 얼마나 용감하게 적을 막아 내고 있는 줄이나 알아? 흑, 나는… 나는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서….” ‘시끄러, 우리가 여기서 헤매다가 죽으면 짝퉁 형들의 희생도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 몰라? 당장 튀어 오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 “쳇, 피도 눈물도 없는 주인 같으니!” 데드릭이 구시렁거리며 눈물을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군가를 부르는 짝퉁 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부동자세를 취하며 척, 경례를 올려붙였다. “너희들은 진정한 군인이다!” 쨘짜라 쨘, 멋진 음악이 흘러나올 듯한 분위기였지만, 데드릭의 고막을 흔들어 댄 것은 아크의 고함 소리였다. ‘야, 너 정말 죽을래? 당장 안 튀어 와?’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우측 3시 방향, 궁수 부대 접근 중!” 데드릭은 잠시 짝퉁 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바람을 가르며 전선에 합류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아크 일행은 다시 데드릭의 보조를 받으며 적진을 가로지를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건 마지막 관문!’ 아크는 ‘다크 댄싱’ 을 사용해 나크족을 따돌리며 다음 관문으로 향했다. 나크족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싸워서 이길 상황도 아니고, 10분 안에 다음 관문에 도착하지 못하면 밀고 들어온 나크족까지 합세해 아크 일행을 문자 그대로 밟아 죽일 것이다. 2차 관문과 3차 관문 사이에는 방금 전처럼 주택이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아크 일행은 건물의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 반대편 참문을 부수고 나오며 나크족을 따돌렸다. 불끈이나 떡대는 돌진으로 적을 뚫으며 달려갔고, 샴바라 역시 ‘다크 댄싱’ 에 버금가는 보법으로 적을 따돌리며 앞서 나갔다. 그러나 이렇다 할 회피 기술이 없는 레리어트는 번번이 나크족에게 발목이 잡혔다. ‘할 수 없군.’ 아크는 혀를 차며 레리어트를 안아 들었다. “어멋!”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아, 아니, 저는 괜찮아요.” “일단 레리어트 님은 ‘명상’ 을 사용해 마나 회복에 집중해 주세요.” “네….” 얼굴을 붉힌 레리어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젠장, 한 발 늦었다!” 그 모습에 불끈이와 떡대가 부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솔직히 그렇게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비록 게임 안이지만 사람을 안아 들면 무게감이 느껴진다. 당연히 민첩성을 요구하는 ‘다크 댄싱’ 을 펼치기가 힘들어져 완성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그러나 지금 회복술사를 잃으면 특공대는 100% 전멸. 당장은 부담이 되더라도 레리어트를 떨궈 놓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됐다, 마지막 관문 돌파!” 먼저 도착한 샴바라가 관문 앞을 막고 있던 나크족을 쓰러뜨리며 소리쳤다. 아게이론은 세계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만들어진 성채 도시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자 정면에 고목으로 변한 세계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아게이론과 세계수 사이에는 나크족이 보이지 않았다. 세계수를 신성하게 생각했던 바란족이 그 근처에는 건물을 지어 놓지 않은 것이다. “일단 세계수 안으로 들어가요!” 세계수의 뿌리 부분에는 몇 명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갈라진 틈이 있었다. 틀림없이 그 안쪽에 유즈리아의 정이 숨겨져 있으리라. 아크는 일단 동료들을 데리고 갈라진 틈으로 뛰어 들어왔다. 짝퉁이 그랬던 것처럼 관문은 3명이 나란히 늘어서야 막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이다. 그러나 세계수의 입구는 남은 불끈이와 떡대, 둘이서도 충분히 나크족을 막아 낼 수 있는 넓이였기 때문이다. “놈들이 세계수로 들어갔다!” “잡아라, 놈들을 죽여 버려!” 불끈이와 떡대가 몸을 돌려 관문을 넘어 몰려오는 나크족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차례로군.” “후후후,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가라, 아크. 슬라임의 시간 NO 1!” 그렇게 불끈이와 떡대는 말랑말랑해진 몸을 던져 적의 진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갱생단의 희생 덕분에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는 세계수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자, 서두르자.” 아크는 곧바로 몸을 돌려 세계수 내부로 달려갔다.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아크도 내심 갱생단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곳은 게임 속, 유저에게 죽음이란 현실이 아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역시 죽음이란 유쾌하지 않은 일을 감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물며 10분간의 처절한 고통까지 덤으로 붙어 있다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너한테는 좀 과분한 형님들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야 한다. 이제 앞으로 10분, 그 전애 세계수를 부활시키지 못하면 간만에 갱생단의 멋진 희생도 그냥 삽질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계수 내부를 달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이 나타났다. “여기가 세계수…!” 레리어트가 몽롱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고목이 돼 버린 세계수의 중심부는 썩어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 푸른 보름달 빛이 스며들어 와 이끼와 넝쿨 그리고 넝쿨 끝에 달려 있는 거대한 밤송이 같은 열매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중심, 달빛이 집중되는 장소에 도드라진 봉오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레리어트 님, 이제 됐습니다.” “네?” 아크의 말에 레리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잠시 후, 얼굴을 붉히며 얼른 아크의 품에서 내려왔다. 그때까지 레리어트는 아크의 품에 안겨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큰 짐(?) 하나를 덜게 된 아크는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봉오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전에 이그드라실의 내부에도 이런 봉오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핵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이 안에 유즈리아의 정이 들어 있겠지? 어라?” 봉오리를 들춰 본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예상대로 봉오리 안에는 정이 놓여 있었던 듯, 움푹 파여 들어간 부분이 보였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정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나크족이 정을 다른 곳으로 옮긴건가?’ 만약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때, 갑자기 안쪽 벽면이 흔들리더니 우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벽으로만 보였던 공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도끼로 나무를 내려치는 듯한 메마른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리며 벽의 일부가 뜯겨져 나왔다. 그렇게 같은 장면이 몇 번 반복되더니 이내 거대한 존재가 떨어져 나왔다.지저 세계에서 싸웠던 플랜트 골렘처럼 나무껍질에 뒤덮인 거인! 나무껍질에 파묻힌 시커먼 눈동자가 일행에게 향했다. “…인간이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지? ‘그’ 의 동료인가?” “다, 당신은? 혹시 유즈리아입니까?” “유즈리아?” 나무껍질 거인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유즈리아를 빼앗으러 온 놈이구나! 감히 이방인 따위가!” 콰콰콰쾅! 주먹이 내리쳐지자 공간이 통째로 흔들렸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변화한 나크족장 ‘위그리마’가 출현했습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경고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는 욕설을 퍼부어 댔다. 재수 똥 튀기는 아크의 운세에 어째 예상 밖으로 일이 잘 풀린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싸가지 없는 어린애가 눈을 찔러 돌아 버리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보스 몬스터가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것도 레벨이 무려 600에 달하는 나크족장! 어째서 저런 나무괴물이 나크족장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꽤나 귀찮게 됐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8분 정도. 그 안에 보스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을까?’ 솔직히 무리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아크 혼자라면 말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크와 함께 악실리온을 평정했던 일명 ‘푸른검’ 샴바라가 함께 있다. 그리고 회복과 보조의 스페셜리스트 레리어트가 있다. 영웅 직업을 가진 유저가 3명이나 모여 있는 것이다. 뭐, 그래도 천여 명의 나크족에게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기는 했지만, 보스 몬스터와 1 대 3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아니, 데드릭과 라자크까지 합하면 1 대 5인가? 후후후, 잘하면 몰매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앞으로 8분이라는 시간제한이지만….’ “주인 위험해!” 그때, 데드릭의 목소리가 고막을 후려쳤다. 아크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위그리마가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모처럼의 기습이었지만, 10미터나 되는 거인이라 그리 민첩하지 않았다. 아크는 곧바로 ‘다크 댄싱’ 을 펼쳐 위그리마의 주먹을 피해 냈다. 주먹이 바닥을 후려치자 공간이 통째로 흔들렸다. ‘공격력은 엄청 강한 것 같지만 생긴 것처럼 움직임은 느리다. 아무리 강해도 맞지 않으면 그만. 의외로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겠어.’ 아크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슈슉, 슈슈슈슈슉! 위그리마의 주먹에서 넝쿨이 솟아나 바닥에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동시에 아크의 발밑에서 송곳니처럼 예리한 나무줄기가 솟아 올라왔다. 상상도 못 했던 공격! 아크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민첩하게 몸을 회전시켜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나무줄기는 뱀처럼 허공에서 각도를 바꾸며 쏘아져 날아왔다. 게다가 움직일 때마다 가지를 늘여 잠시 후에는 그물처럼 아크를 휘어 감고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옆구리를 꿰뚫었다.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700! 《부식 독에 중독됐습니다. 5초당 2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3분 내에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 부위가 완전히 부식되어 1,000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헉, 이, 이게 대체…?’ 아크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크흐흐흐, 네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퇴비로 만들어 먹어주마!” 그냥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퇴비로 만들어 먹겠다니… 나무껍질에 뒤덮여 머릿속까지 나무가 되어 버린 모양이다. 물론 퇴비가 되고 싶지 않은 아크는 정신없이 나뭇가지를 피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피하면 피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위그리마가 바닥을 한 번씩 내려칠 때마다 뿌리가 박히며 바닥에서 날카로운 나무줄기가 솟아 올라왔다. “젠장, 뭐야?” 샴바라가 검을 휘둘러 나무줄기를 잘라 버렸다. 그러나 그건 피하는 것만도 못했다. 나무줄기가 잘리자 마치 세포분열을 하는 것처럼 잘린 부분이 수십 줄기로 늘어났다. 결국 샴바라도 수십 개의 나무줄기에 쫓기다가 치명타를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크윽, 나무 따위에게 얻어맞다니…!” 레리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패로 막자 나무줄기는 90도로 궤도를 바꿔 뒷덜미를 후려쳤다. “아악!” 백발백중! 위그리마가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나무줄기는 목표에 적중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분열하며 날아와 꼭 치명타를 날린 뒤에야 사라지는 것이다. “젠장, 뭐 이딴 게…!” “하지만 약점은 있어.” 위그리마의 공격 패턴을 관찰하던 아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크는 지금까지 수많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해 봤다. 그리고 뉴 월드의 보스 몬스터는 대개 독창적인 기술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무턱대고 레벨이나 스킬만 믿고 덤벼들면 십중팔구 그 기술에 걸려 꼴사나운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레벨의 높고 낮음은 둘째 문제. 보스 몬스터의 패턴이나 약점을 파악해 공략하는 것. 그게 뉴 월드 보스전의 핵심이었다. ‘어떤 보스 몬스터에게도 약점은 있다!’ 아크는 샴바라와 레리어트가 얻어맞는 사이 보스 몬스터를 꼼꼼히 관찰했다. 일견 완벽해 보이는 위그리마의 기술에도 허점은 있었다. 아크는 폭사해 오는 나무줄기를 상체의 움직임으로 피하며 설명했다. “삼바라, 놈이 공격할 때가 기회다!” “뭐?” “잘 봐, 나무줄기가 수십, 수백까지 분열하며 공격해 오지만 목표는 하나뿐이다. 지금 내가 공격을 계속 피하는데도 바로 옆에 있는 너는 공격하지 않잖아. 마치 전체 공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명에게밖에 집중할 수 없는 거야. 그리고 팔이 바닥에 뿌리를 내리면 놈은 움직이지 못한다.” “…화려한 범위 공격은 눈속임이라는 건가?” 샴바라도 새삼 날아드는 나무줄기를 확인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가지가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나도 결국 목표는 하나. 양팔을 모두 사용한다고 해도 최대 2명밖에 공격하지 못한다. 그리고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명중할 때까지 계속된다는 점도 약점이었다. 주먹을 바닥에 붙이고 있어야 하니 그 동안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다. “훗, 의외로 별거 아닌 놈이었군.” “자, 이쁨 설명했으면 공략법이 나오지?” 슈슈슈슈슉! 아크는 또다시 날아오는 나무줄기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레리어트 님, 최대한 뒤로 물러나 계세요! 그곳에서 회복마법과 치유 마법만 써 주시면 돼요. 라자크 혹시 모르니 레리어트 님 앞에서 방어 태세를 유지해라.”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레리어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데드릭, 네가 나무줄기 하나를 맡아라. 레리어트님이 회복 마법을 써 줄 테니 최대한 피하다가 도저히 못 피할 때는 번갈아 가면서 맞으면 버틸 수 있을 거야.” “에엑, 왜? 왜 또 나야?” “너하고 장난할 시간 없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데드릭이 잔뜩 불만 어린 표정으로 팩 고개를 돌렷다. 이런 경우 방어력과 생명력은 높은 라자크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라자크는 민첩성이 떨어진다. 반면 데드릭은 민첩할 뿐만 아니라 비행 능력까지 있어 공간을 100% 활용할 수 있었다. 아마도 라자크가 서너 번 공격을 받을 때 데드릭은 한 번밖에 받지 않으리라. 물론 방어력이 달려 한 방에 50~60%의 생명력이 깎이겠지만, ‘도발’로 위그리마의 팔 하나를 맡아 주면 레리어트가 공격받을 걱정이 없다. 바로바로 회복해 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야, 이 나무 자식아, 좋아, 덤벼라!” “크윽, 고작 박쥐 따위가…!” “내가 먼저 해보지. 시험해 보고 싶은 보법이 있거든.” 샴바라가 번개처럼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예상대로 위그리마가 나머지 주먹을 바닥에 처박으며 나무줄기로 방벽을 쌓았다. 그리고 그 방벽은 그대로 수십 개의 검이 되어 샴바라를 덮쳤다.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샴바라를 따라 이동하는 나무줄기! “순, 개, 열, 섬!” 샴바라가 짧게 말하자 확 분열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문자가 상징하는 것처럼 몸이 움직이며 모든 나무줄기를 흘려 냈다. 샴바라의 주력 보법은 순보. 그러나 사실 그 보법은 완전한 게 아니었다. 원래 그 보법은 열 가지로 분류되는데 순보는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현재 샴바라는 나머지 보법을 모두 배워 십자화결을 완성한 상태였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뉴 월드에서 아크의 시간만 흐르는 게 아니다. 아크가 게임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도 게임을 하고, 항상 새로운 스킬과 능력을 얻는 것이다. 샴바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샴바라가 이사벨에게 받은 퀘스트는 다크브라더 분파의 규합. 사실 이 퀘스트는 세인트 나으트 전용 스킬을 익혀 가는 과정이었다. 각지로 흩어진 다크브라더 일족은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완전히 다른 기술 체계를 발전시켜 오게 되었다. 어떤 일족은 보법을, 단검술을, 암살술을… 그리고 샴바라는 이들을 찾아가 힘으로 굴복시키는 과정에서 일족의 스킬을 하나씩 배워 갔다. 아크에게 기연이 생기듯, 샴바라. 다른 유저들에게도 기연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왜냐고? 이곳은 뉴 월드, 유저를 위해 만들어진 게임 속 세상이니까. “크윽, 이, 이놈이…!” 샴바라가 번뜩이는 움직임으로 나물줄기를 피해 내자 위그리마가 이를 갈아붙였다. 공격이 실패할 때마다 나무줄기가 수백 개로 늘어났다. 그 사이 데드릭도 필사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피한 덕에 광장은 완전히 나무줄기로 뒤덮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물줄기가 늘어나도 아크나 레리어트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크는 그사이 배후로 접근해 검 한 자루를 폭발시켰다. “시간이 없으니 화끈하게 처리해 주지, 블레이드 스톰!” 콰콰콰콰! 강렬한 폭음과 함께 검 파편의 소용돌이가 위그리마를 휘감았다. 엄청난 위력에 위그리마의 생명력은…. “뭐, 뭐야? 데미지가…!” ‘블레이드 스톰’이 폭발하자 나무껍질이 뜯겨져 나가며 위그리마의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엄청난 속도로 다시 생명력이 복구되는 게 아닌가? “나무껍질이다!” 아크가 빠르게 재생하는 나무껍질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검 파편의 소용돌이에 나무껍질이 뜯겨져 나가자 안에서 새살이 돋듯 새로운 나무껍질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크윽!” 그사이 결국 나무줄기에 얻어맞은 샴바라가 치명타를 받고 휘청거렸다. 레리어트가 곧바로 회복 마법과 치유 마법을 퍼부어 생명력을 회복하고 중독을 풀어 주었다. 그러나 샴바라와 위그리마의 회복은 질적으로 다르다. 위그리마는 마나 게이지가 없다. 즉, 마나을 사용하지 않는 스킬이니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건방진 놈!” 위그리마가 다시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쳤다. 이번 목표는 공격을 감행했던 아크였다. 아크가 곧바로 ‘다크 댄싱’ 을 사용해 회피하는 사이, 이번에는 샴바라가 배후로 접근해 ‘뇌검’ 을 날렸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젠장, 대체 이게 뭐야?” “크크크크, 어리석은 자들, 이제야 알겠냐? 이 몸은 무적이다. 이곳에 들러온 이상 네놈들은 퇴비가 될 수밖에 없다! 자아, 죽어라! 죽어서 이 몸의 양식이 되어라!” 위그리마가 우쭐대며 미친 듯이 나무줄기를 뻗어 댔다. 절대로 표적을 빗나가는 법이 없는 공격! 거기에 생명력이 닳지 않는 보스 몬스터! 덧붙여 아크에게는 시간제한까지 붙어 있었다. 불끈이들의 스킬이 끝날 시간이 이제 5분밖에 남지 않았다. 5분 뒤에는 수백의 나크족까지 이곳으로 몰려들어 오리라. ‘미치겠군. 뭔가 방법이 없는 건가?’ 한 방 얻어맞고 샴바라와 교대한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블레이드 스톰은 아크의 스킬 중 가장 공격력이 강한 스킬. 블레이드 스톰으로도 데미지를 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아크의 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거대한 열매들이 보였다. 지금까지는 그냥 배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 저런 귀찮은 것들이 붙어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정말 저게 배경일 뿐인 걸까? 아크는 관찰력을 발휘해 나무 열매를 살펴보았다. 철퇴처럼 표면에 삐죽한 것들이 솟아나 있는 밤송이 같은 나무 열매는 엄청난 크기였다. 게다가 정말 쇠붙이처럼 단단해 검으로 두들겨 보니 깡깡 하는 쇳소리가 울렸다. ‘가만… 이걸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크의 얍삽한 두뇌가 회전하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좋아, 밑져야 본전이다. 한번 해 보자!’ “샴바라, 잠깐만 더 버텨 줘!” “이런 망할 자식, 남 얘기라도 쉽게 말하기냐? 헉! 열, 순!” 샴바라는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날렵하게 나무줄기를 피해냈다. 역시 쿵푸를 익힌 사람이라 일반 유저와는 몸놀림이나 반응속도가 남달랐다. 어쨌든 그 틈에 아크는 적당한 나무 열매를 골라 위그리마에게 조준하고 ‘화격’을 날렸다. 엄청난 중량의 나무 열매가 약간 흔들렸다. 이쯤 되면 위그리마도 아크의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팔을 바닥에 처박은 상채라 눈알만 뒤룩뒤룩 굴러 댈 뿐, 움직이지 못했다. 아크는 마치 그네를 밀듯이 타이밍을 맞춰 연속적으로 ‘화격’ 을 날렸다. 그렇게 점점 가속도를 붙이던 아무 열매가 드디어 위그리마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콰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위그리마가 휘청거리며 몇 걸음 물러나 털썩 주저앉았다. “우우욱, 이, 건방진 놈들이… 커억, 쿨럭!” 위그리마는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었지만 다시 나무껍질이 재생하며 회복되었다. ‘쳇, 이걸로 데미지를 줘도 안 되는 건가? 아크가 짜증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위그리마가 기침을 할 때… 아주 잠깐이지만 목구멍 속에서 뭔가가 넘어오려고 했던 것이다. 내용물은 수박만 한 크기의 구체. 아크는 그런 구체를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저거다, 저게 유즈리아의 정이 틀림없어!’ 아크는 그제야 위그리마의 특수 능력을 100% 이해할 수 있었다. 세계수 안에서 사라진 유즈리아의 정은 위그리마가 삼켜버린 것이다. 본래 나무를 조정하는 것은 세계수의 능력. 위그리마는 유즈리아의 정을 삼킴으로써 그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몸이 나무껍질에 뒤덮이게 됐으리라. 그러나 충격을 받고 토하려 한 걸 보면 완전히 흡수한 건 아닌 모양이다. ‘아하, 그래서 처음 나타났을 때 유즈리아를 빼앗느니 마니 떠들어 댄 거였군.’ 그렇다면…! ‘다시 유즈리아의 정을 토해 내게 만들면 된다!’ “샴바라, 레리어트 님, 열매예요! 열매를 움직여 놈을 공격하세요!” 일단 공략법만 찾아내면 보스전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때려잡으면 막대한 경험치와 아이템이 쏟아지는 것이다. 아크는 위그리마의 주위를 돌며 ‘화격’을로 열매를 날려 댔다. 샴바라도 적을 밀어낼 수 있는 스킬로 열매를 움직였고, 레리어트도 라자크와 함께 ‘방패 치기’를 난사하며 열매를 흔들어 댔다. 위그리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나뭇가지로 방벽을 쌓았지만, 놈이 막을 수 있는 것은 공격했던 곳처럼 두 곳이었다. 세 방향에서 날려 대니 위그리마는 곧 열매에 얻어맞고 휘청휘청 흔들렸다. 그렇게 십여 차례 열매를 날렸을 때, 복부를 얻어맞은 위그리마가 털썩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커헉, 크… 아 안돼…!” 동시에 놈의 입에서 구체가 반이나 튀어나왔다. 아크는 몸을 날려 라자크의 해골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라자크, 검화!” 딱딱? 딱딱딱딱! 라자크는 머리를 잡힌 채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그리고 채찍 모드가 되어 공간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구체를 휘어 감았다. “미안하지만 이건 임자가 따로 있어!” 구체가 아크의 손에 들어오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유즈리아의 정 스탄달의 균형을 유지하던 세계수 유즈리아의 정입니다. 비록 예전의 몸은 생명의 빛이 꺼졌지만 유즈리아는 이 정 속에 모든 생명을 담아 보관해 두었습니다. 필요한 조건만 갖춰진다면 유즈리아는 다시 완전한 세계수로 재생될 것입니다. 역시 예상대로 구슬은 유즈리아의 정이었다. “헉, 내… 내 유즈리아가… 유즈리아가… 크아아아악!” 구체를 완전히 뽑아내자 위그리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동시에 온몸에서 푸른 연기가 뿜어져 올라오더니 나무껍질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보스 몬스터 위그리마가 아닌, 계곡 마을에서 상대했던 칼자프와 같은 나크족 부대장이었다. 레벨도 600에서 350으로 뚝 떨어졌다. “호오, 그게 네놈의 본체인가?” “이, 이놈… 내놔라, 그건 내 것이다.!” “헛소리하지 마! 지금입니다, 레리어트 님, 공격형 3종세트!” “네,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웅의 기상, 전사의 집중력, 질풍의 호흡!” “시간이 없습니다. 방어는 생각하지 말고 집중 공격하세요!” 보스전을 시작한 지 8분 여. 이제 2분밖에 남지 않았다. 등급이 뚝 떨어졌다고 해도 중간 보스 몬스터다. 방어력이 상당하니 3명이 집중 공격을 펼쳐야 했다. 돌아가며 레리어트의 회복 마법을 받은 3명은 생명력이 100%인 상태였다.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는 방어는 무시하고 필살 스킬을 날리며 위그리마를 몰아쳤다. 위그리마는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방패 뒤에 숨어서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악, 도, 도와줘. 호위병, 호위병!” ‘뭐야, 호위병? 설마 이곳에도 다른 나크족이 있는 건가?’ 아크가 움찔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뭐야? 그냥 헛소리인 건가?’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쉬지 않고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그렇게 잠시, 돌연 격렬한 뇌전이 일어나며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새로운 협력기가 등록되었습니다. 협력기 : 상성이 70% 이상 동조되는 동료와 함께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할 경우, 매우 드 문 확률로 협력기를 배울 기회가 제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아크 님과 레리어트 님, 샴바라 님의 상성 동조율은 83%입니다. 또한 특정 닉업 전용 스킬을 사용하는 조건을 만족시켜 새로운 협력기가 등록되었습니다. 단, 협력기의 발동 확률은 5%이며 3명이 제한 시간 내에 연결된 스킬을 하나라도 실패하면 스킬이 취소됩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협력기 -천신의 분노 다크 블레이드(속성 : 임)=뇌검(속성 : 실)=그랜드 크로스(속성 : 성) 《협력기 성공 시 : 각각의 스킬 데미지+500%의 추가 데미지 발동.》 ‘엇? 이, 이게 뭐야?’ 아크가 놀란 표정으로 정보창을 읽을 때였다. 채 정보창의 내용을 다 읽을 새도 없이 눈앞에서 검은빛이 깜빡거렸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회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검을 찌르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순간 검날이 훅 하고 사라지더니 위그리마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검은 검날이 나타났다. 뒤이어 같은 메시지창을 확인한 샴바라가 재빨리 뇌검을 날렸다. 그러자 샴바라의 단검도 사라지며 검은 칼날에 스파크가 추가되었다. 스킬 속성이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협력기를 거기까지 진행시킨 아크는 뒤늦게 움찔하며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아차, 레리어트 님은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게….’ “그랜드 크로스!” 그러나 아크의 걱정은 기우였다. 레리어트는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 본 사람처럼 곧바로 ‘그랜드 크로스’를 날려 협력기를 완성시켰다. 그러자 스파크가 흐르는 거대한 검은 칼날이 십자 검의 형태로 변하며 위그리마의 머리를 관통해 버렸다. 촤라라락, 콰콰콰콰쾅! 광장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강렬한 폭음이 울렸다. 각각의 스킬 데미지×500%의 데미지! 30%정도 남아 있던 위그리마의 생명력이 단숨에 증발해 버렸다. 시간제한을 1분 정도 남기고 위그리마를 해치운 것이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3명 모두의 레벨이 2씩 올라갔다. “꺄악, 성공했어요, 협력기!” 레리어트가 깡충깡충 뛰며 고함을 질러 댔다.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레리어트 님, 협력기르 써 본 적이 있으세요?” “네? 당연하죠. 전 지금까지 공격대 사냥만 해 왔는걸요.” 사실 협력기는 레벨 100 이상 되는 유저가 오랫동안 파티사냥을 하다 보면 간간이 한 번씩 발동한다. 때문에 항상 파티나 공격대로 사냥해 온 레리어트는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던 것. 반면 항상 솔로잉만 하던 아크는 그런 기술이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 파티를 해도 NPC나 무직이었던 갱생단과만 파티를 했으니 협력기가 발동할 리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레리어트 님에게 협력기에 대해 자세히 물어봐야겠군.’ “그래도 이렇게 엄청난 데미지를 주는 협력기는 처음이에요. 보통은 5명 이상의 파티에서 협력기가 발동해도 추가 데미지는 200∼300%가 고작인데…. 그때는 이렇게 특수 효과가 화려하지도 않았어요.” 레리어트가 ‘천신의 분노’ 위력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당연하다, 이번에 새로 익힌 협력기는 다름 아닌 영웅 직업의 협력기다. 과거 어둠의 제왕과 싸웠던 파티의 협력기니 일반 직업의 협력기와 비교할 수 없었다. ‘일단 그건 그거고….’ 아크는 슬슬 눈치를 살피며 위그리마가 떨군 아이템을 집어 들었다. 절망과 증오의 강철 방패(마법) 방어구 타임 : 강철 방패 방어력 : 160(+30) 내구력 : 55/100 무게 : 70 사용 제한 : 레벨 200 이상 전사 계열 나크족 족장으로 있던 위그리마가 사용하던 강철 방패. 한때 나크족의 부대장에 불과했던 위그리마는 유즈리아의 정을 흡수해 족장의 지위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차지한 힘을 토해 내 위그리마는 절망과 증오에 휩싸여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위그리마의 그런 절망과 증오의 영향으로 장비품에 특수한 옵션이 생성됐습니다. 《옵션 : 힘+10, 체력+10, 방어력+30》 《특수 옵션 : ‘생존의 욕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생존의 욕구’는 위기의 상황에서 적에 대한 증오를 방어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20분간 방어력을 50% 상승시킵니다. 단, ‘증오’ 스택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사용 가능 시간 : 1시간》 ‘뭐야, 이게?’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방법을 찾아내고 비교적 쉽게 잡았다고는 하지만 레벨 600의 보스 몬스터를 물리쳤다. 그런데 보상이 고작 마법 방패 하나라니? 그것도 이전처럼 ‘증오’라는 스탯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는 특수 옵션이 걸린 마니악한 방어구!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 기껏 잡은 보스 몬스터가 고작 200만 원이나 받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아이템? 게다가 레벨도 2밖에 안 올랐잖아? 장난하냐? 왠지 구슬을 토해 내고 중간 보스 몬스터로 변할 때 찜찜하다 싶더니….’ 그렇다. 분명 위그리마는 레벨 600의 보스 몬스터였다. 그러나 정을 토해 내는 바람에 레벨 350의 중간 보스로 등급이 떨어졌다. 때문에 경험치나 보상도 등급이 낮아진 것이다. ‘쳇, 시간제한만 아니었으면 보스 몬스터인 상태로 때려잡을 다른 방법을 찾아봤을 텐데….’ 아크는 한숨을 푹 불어 내며 ‘당연하다는 듯’ 방패를 챙겨 넣었다. 레리어트와는 이미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하게 정해 놓았다. 그리고 샴바라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템 하나 가지고 딴지를 걸 성격이 아니다. 덕분에 아크가 아이템을 독식해도 이렇다 할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전리품은 불만스러웠지만 어쨌든 이로서 모든 일이 끝났다. ‘이제 세계수만 부활시키면 전승 퀘스트와 마가로프 퀘스트가 끝난다!’ 아크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광장 중심의 봉오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막 작업을 시작하려다가 움찔하며 멈췄다. ACT 8 붉은 남자의 역습 “위그리마 녀석, 꼴좋군.” 유즈리아의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세계수 나무 위…. 우람한 체구를 가진 나크족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멋대로 세계수의 정을 삼킬 때부터 알아봤지.” 그렇게 말하는 나크족은 ‘쿠란카’라는 이름을 가진 전사였다. 사실 나크족의 족장은 원래 이 쿠란카였다. 그러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곳에 숨어든 위그리마가 세계수의 정을 삼키고 족장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덕분에 쿠란카는 하루아침에 족장에서 호위대장으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쿠란카가 위그리마를 돕지 않은 이유는 과거의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모두 이행자님의 뜻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쿠란카가 옆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얀 가면을 쓴 붉은 머리칼의 남자! 아크가 받은 《유계 세계수의 부활》퀘스트는 공격대 전용의 전승 퀘스트다. 그런 퀘스트의 보스가 이렇게 허망하게 쓰러질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본래 위그리마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쿠란카와 10여 명의 호위병이 붙어 있었다. 그들 전체와 싸워야 했던 것이 이번 퀘스트의 마지막 시련…. 원래라면 그렇게 됐어야 한다. 도중에 이런 진행을 막은 것은 바로 나크족을 장악하고 있는 의문의 사내, 붉은 남자였다. 붉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모든 것은 예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크크크크, 이제 저 멍청한 놈들이 나크족의 100여 년에 걸친 숙원을 이뤄 주는 일만 남았군요. 그리고 유계 역시 우리의 손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쿠란카가 혹시나 하는 눈으로 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쥬르라는 놈들은 어쩌실 생각입니까? 이제 이용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유계를 정복하면 남부 지역 일부의 권리를 주겠다는 약속을 꼭 지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쥬르 놈들이 소속된 헤르메스라는 길드는 중간계에서 꽤 힘을 가지고 있다. 나를 위해서나 나크족을 위해서나 아직 이용 가치가 많아. 일단은 더 두고 보도록 해라.” “이행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쿠란카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다시 아래에 있는 아크를 바라보며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저놈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아래에서 아크는 유즈리아를 들고 봉오리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붉은 남자는 비웃음이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으니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모양이지, 놔둬라. 어차피 놈이 이곳까지 온 목적은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는 것. 달리 뭘 하겠는가?” 그때였다. 한ㅊ남 뭔가를 구시렁거리던 아크가 돌연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빛나는 모래를 사용해 바닥에 괴상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지켜보던 붉은 남자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어린 것은 그때였다. “엇, 저, 저것은 마가로프가 만들던 ‘차원 이동 가루’! 설마 놈이… 막아, 막아라!” “네? 그게 무슨… 헉!” 쿠란카가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였다. 아크가 마법진을 완성하자 공간이 흔들리며 게이트가 나타났다. 이어 어쩌고 자시고 할 틈 없이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가 게이트로 사라져 버렸다. “이, 이런… 멍청한! 유즈리아를 들고튀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설마… 놈은 이미 내 목적을 간파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붉은 남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리다가 거칠게 몸을 돌렸다. “놈은… 놈은 유즈리아를 바란족 영토에서 부활시킬 생각이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따위 건방진 생각을 할 줄이야. 막아야 한다, 놈의 뜻대로 된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병력을 모아라.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아직 시간이 있을 거다. 놈을 잡아 유즈리아의 정을 되찾아와야 한다!” “네, 병력을 모아라!” 쿠란카가 황급히 뛰어나갔다. “쿠케케케,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지.” 아크가 게이트를 빠져나오며 히죽거렸다. 사실 아크는 그곳에서 유즈리아의 정을 부활시킬 생각이었다. 아니, 그럴 생각이었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유즈리아의 정’을 되찾았을 때 떠오른 정보창을 확인하고 석연치 않은 부분을 발견했다. ‘필요한 조건이 갖춰진 곳’에서 부활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유즈리아의 정’이 봉오리에 고정되어 있었다면 그런 내용은 무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그리마 덕분에 ‘유즈리아의 정’을 소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아게이론이 아니라도 조건만 갖춰지면 어디서든 부활 시킬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유계를 떠올려야 하니 부활시킬 장소는 보름달이 뜬 유계에 한정되어 있지만….’ 세계수의 가호를 받는 곳은 엄청난 부가 효과를 받는다. 아직 묘목에 불과한 포포조차 란셀 마을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아게이론에서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면 그 부가 효과가 몽땅 나크족에게 돌아간다. ‘내가 미쳤어? 왜 죽을 고생을 해서 나크족에게 좋은 일을 해 줘야 되는데? 아직 보름달이 질 때까지는 시간이 있어. 그 사이에 하만 요새에 유즈리아를 부활시킬 준비를 갖춰 놓으면 되는 거야. 아마도 정보창에 나왔던 필요한 조건이란….’ 이미 세계수를 부활시켜 본 아크는 그게 뭔지 짐작이 갔다. 아마도 ‘신성한 토양’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아크는 충분한 토양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란셀 마을… 예전에 포포를 심고 남은 ‘신성한 토양’을 밭에 뿌려 놨다. 이제 란셀 마을의 식량난도 해결됐으니 ‘신성한 토양’을 좀 걷어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또한 이곳의 ‘신성한 토양’은 예전에 아크가 기적의 간병으로 효과를 증대시켜 놓았다. 비록 채소를 키우는 데 사용하던 중고품이라도 충분한 효력을 발휘리라. ‘유즈리아를 하만 요새에서 부활시키면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엄청난 이득이 돌아올 거야.’ 그렇다, 아크는 붉은 남자의 존재나 계획 따위는 알지도 못했다. 단지 더 돈이 될 만한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엇, 아크다냥!” 아크가 란셀 마을 광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한창 춤을 추던 자나가 뛰어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안으려다가 레리어트를 발견하고는 바짝 귀를 치켜세웠다. “뭐냥? 이번에는 또 다른 계집애냥? 정말 바람둥이다냥!” “시끄러,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크는 방방 뛰는 자나를 밀쳐 내고 광장을 가로질렀다. “냥! 밀었냥? 이제 치는 거냥? 아크 나쁜 남자다냥.” 자나가 눈썹을 바짝 치켜세우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냥냥냥, 하지만 자나는 나쁜 남자 싫어하지 않는다냥, 왠지 더 끌린다냥.” 그러자 자나의 팬들이 수상한 눈빛을 띠기 시작했다. ‘역시 대세는 나쁜 남자인가?’ ‘나도 한번 도전해 봐?’ 어쨌든 그런 제정신 아닌 인간들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시간싸움이다. 유즈리아가 부활할 수 있는 시간은 유계의 보름달이 지기 전까지. 아게이론 돌파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신성한 토양’을 옮기고 유즈리아를 부활시킬 준비를 끝내 놔야 한다. “가렌 아저씨!” “오오, 아크? 마침 잘 왔네. 자네의 상점 말일세….”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닙니다. 급히 사람들을 모아 주십시오!” “사람을? 무슨 일인가?” 가렌의 질문에 아크는 서둘러 유계의 상황을 설명했다. “유계라면 보나라는 아이들이 있던 곳을 말하는 건가? 알았네, 바란족은 이미 우리 마을의 소중한 고객. 게다가 어차피 ‘신성한 토양’의 소유자는 자네네.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밭에서 ‘신성한 토양’을 모으겠네. 얼마나 모으면 되겠는가?” “넉넉잡아 예전에 포포를 키웠던 화단에 사용한 양의 2배 정도면 될 겁니다.” “그럼 밭 3∼4개 분량이군. 바로 준비시키겠네.” 가렌은 곧바로 뛰어나가 농부들을 불러 모았다. 예전에 ‘신성한 토양’을 가져올 때 아크에게 크게 감동을 먹은 농부들은 불만 없이 흙을 모아 주었다. 그리고 대략 1시간이 지나자 커다란 마차 네 대 분량의 ‘신성한 토양’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럼 바로 가 보겠습니다.” “성공을 비네.” 준비를 끝낸 아크는 다시 마법진을 그렸다. ‘가만, 그런데 마차 네 대 분량의 흙을 옮기려면 ’차원 이동의 가루'를 몇 킬로그램을 써야 하는 거지? 에이, 몰라. 어차피 유계가 떠오르면 써먹지도 못할 가루인데….‘ 마음이 급해진 아크는 아예 남은 가루를 탈탈 털어 마을 구석에 거대한 게이트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게이트로 뛰어 들어가자 하만 요새가 나타났다. “아크, 어떻게 된 거냐?” 하만 요새에 도착하자 정의남과 갱생단이 달려왔다. 이미 나크족과 한 번 전투를 치른 정의남 일행도 요새에 돌아와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불끈이들도 있었다. 아게이론에서 죽은 뒤에 바로 하만 요새에서 부활한 것이다. “대체 뭐야? 이번 일을 성공하면 유계가 떠오른다며?” “혹시 실패한 거냐?” “아니요, 이제부터 시작할 겁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정의남이 껄껄 웃으며 아크의 어깨를 탁탁 쳤다. “우하하하, 과연 아크다. 누가 그런 상황에서 거기까지 생각하겠냐? 좋아, 그렇게만 된다면 더 바랄게 없지. 병사들을 불러와라.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자!” “오오오, 전설로만 들어오던 세계수의 부활을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건가?” 베스튜라와 장로들도 감격한 얼굴로 팔을 걷어붙였다. 곧이어 바란족 병사들은 하만 요새 중심에 삽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제대로 화단을 만들어 놔야 유즈리아가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크는 간간이 고개를 들어 보름달을 올려보았다. 마치 대지와 맞닿을 정도로 거대한 보름달이 산중턱까지 내려와 있었다. ‘달이 지기까지는 아직 40분 정도 여유가 있다. 지금 작업 속도라면 충분해!’ 덕분에 아크가 조금 느긋한 기분에 젖어 있을 때였다. 문득 거대한 보름달 안에서 검은 형체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무슨 새 떼들인 것처럼 보이더니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눈매를 좁히며 지켜보던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처럼 커진 것은 몇 분 뒤의 일이었다. “드, 드라칸…!” 그렇다, 달빛에 드러난 형체들은 북부 산맥을 넘어오는 드라칸 부대였다. 그것도 이전처럼 이삼십 마리 수준이 아니었다. 거대한 달을 뒤덮을 듯이 몰려오는 드라칸은 거의 오백여 마리! 게다가 등에는 검, 창을 흔들어 대는 나크족까지 타고 있었다. “뭐라고 드라칸?” 정의남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경악성을 터뜨렸다. “드, 드라칸이 저렇게나 많이…! 어, 어째서? 저렇게 많은 드라칸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거지?” 아크나 정의남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나 생각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사령관님, 물러났던 나크족이 협곡으로 진군해 오고 있습니다!” “뭐, 뭐야?” 정의남이 허둥지둥 성벽으로 뛰어올라갔다. 경비병의 말처럼 나크족의 전 명력이 그라타 협곡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유즈리아의 부활을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하늘과 땅에서 나크족의 총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작업을 서두르세요.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면 우리에게 상당한 부가 효과가 적용될 거예요.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유즈리아를 부활시켜야 해요!” “아, 알았다. 서둘러라!” 정의남의 명령에 바란족이 미친 듯이 삽을 움직였다. 덕분에 드라칸 부대가 하만 요새에 도착하기 전에 화단 조성 작업이 완료되었다. 아크는 ‘유즈리아의 정’을 꺼내 들고 화단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막 땅속에 넣으려는 찰나! 삐이이이익-! 돌연 한 마리 거대한 검은 독수리가 아크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뒤이어 아크의 눈앞으로 한 줄기 벼락이 내리꽂혔다. 순간 주변으로 강렬한 충격파가 퍼져 나왔다. 아크는 덤프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을 받고 수 미터를 날아 바닥에 처박혔다. 충격으로 인해 들고 있던 ‘유즈리아의 정’이 떨어져 구석으로 굴러갔다. “크윽, 뭐, 뭐야?” 아크가 휘청거리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때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구름 속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몸을 휘감은 돌풍에 피처럼 붉은 머리를 휘날리는 하얀 가면의 사내! “…붉은 남자!” 붉은 남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붉은 머리칼과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하얀 가면, 쥐어짜면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사슬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갑옷의 중심에는 마치 인도 신의 제왕 인드라와 같은 형상이 양각 문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붉은 남자가 한 걸음 다가오자 사슬 갑옷이 출렁이며 인드라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 녀석이…?’ 아크는 그 기묘한 분위기에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글로벌엑서스 입사 시험의 중요한 단서를 쥐고 있는 -아크의 생각일 뿐이다-붉은 남자.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정면에서 마주쳐 버리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니, 붉은 남자의 출현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붉은 남자가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유즈리아의 정’을 돌려받아야겠다.” “뭐?” 아크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을 때였다. “하, 이 녀석 뭐야?” “혼자서 뛰어들어? 간덩이가 부은 놈이군.” “크하하하, 딴 놈들이 오기 전에 박살을 내 주마!” 근처에 있던 불끈이와 떡대가 검을 휘드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양쪽에서 두 자루의 검이 날아드는 순간, 붉은 남자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받아랏… 어? 어라? 이놈이 어디… 헉!”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불끈이가 움찔하며 숨을 들이켰다. 대체 어떻게? 무슨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붉은 남자가 불끈이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던 것이다. 불끈이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순간 붉은 남자의 손바닥과 불끈이 사이의 공간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나왔다. 콰콰콰쾅! “크허허허헉!” 불끈이의 몸이 수 미터나 날아올랐다. 불끈이의 몸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붉은 남자는 이미 떡대의 앞으로 이동해 있었다. 떡대가 움찔하며 방패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가 손바닥을 붙이자 떡대 역시 불끈이처럼 방패로 막는 자세 그대로 수 미터나 튕겨져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아크는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레벨은 둘째 치고, 불끈이와 떡대는 전직 조폭 행동대장이었다. 직업이 싸움, 특기가 싸움, 취미가 싸움이었던 사람들인 것이다. 레벨이나 능력치가 달린다면 어쩔 수 없지만, 순수하게 싸움에 대한 숙련도만 따진다면 A급. 그런 두 사람이 미처 손써 볼 새도 없이 당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갱생단 내에서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가디언=돌격병’임에도 일격에 30%에 가까운 데미지를 받고 ‘스턴’에 걸려 버렸다. “저, 저 자식이…!” “잡아, 다구리다!” 근처에 있던 갱생단과 바란족이 붉은 남자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마치 융단폭격이 떨어지듯 붉은 남자 주변에 검은 형체들이 떨어졌다. 쿵, 쿵, 쿵, 쿵! 쿠란카와 나크족을 태운 드라칸이었다. 수백 마리의 드라칸이 내려앉자 요새 광장에 돌풍이 일어났다. 엄청난 양의 흙과 먼지, 자갈 따위가 날아다니며 주변은 마치 연막탄을 터뜨린 것처럼 시야가 제한되었다. 불과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병장기가 충돌하는 쇳소리와 나크족과 바란족의 고함 소리, 간간이 터지는 비명만이 고막을 울려 댔다. “크흐흐흐, 모두 쓸어버려라!” “막아라, 하만 요새가 함락당하면 바란족의 미래는 없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크는 자욱한 흙먼지 속을 더듬으며 ‘유즈리아의 정’ 을 찾았다. 대체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아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세계수의 부활이었다. 설사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세계수를 부활시켜 놓으면 다시 기회를 노릴 수가 있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저, 저기 있다!’ 바닥을 기던 아크는 곧 ‘유즈리아의 정’ 을 찾아냈다. 발에 차여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세계수인데… 동족이 그런 취급을 받는 장면을 봤다면 이그드라실이 땅을 치고 통곡했으리라. 어쨌든 아크가 허겁지겁 달려가 유즈리아의 정을 잡아챘다. 돌연 훅, 하고 붉은 남자가 먼지구름을 뚫고 달려들었다. “…!” 아크가 반사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붉은 남자는 불끈이를 상대할 때처럼 사라지더니 다시 아크의 옆에 나타났다. 옆구리에 붉은 남자의 손바닥이 밀착되는 감각이 느껴졌다. 순간 아크의 등줄기로 오싹한 소름이 돋았다. 머리가 아닌 몸이, 이성이 아닌 본능이 경고하는 공포! ‘맞으면 위험하다!’ 아크는 전력으로 ‘다크 댄싱’ 을 펼치며 물러났다. 몸이 분신까지 만들어 내며 단숨에 10여 미터를 이동했다. ‘이 정도면… 헉, 이럴수가!’ 이 정도면 당연히 추격을 떨궜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려는 찰나, 믿을 수 없게도 등 뒤에서 붉은 남자의 기척이 느껴졌다. 정면도 아닌 배후, 완벽하게 움직임을 읽히고 따라잡혔다는 뜻이었다.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다크 댄싱’ 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등에서 엄청난 충격이 폭발했다. 콰콰콰쾅, 쩌저저적! 몸 내부에서부터 뭔가가 찢어져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지지직, 눈앞이 노이즈로 가득 차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차크라의 파동’에 적중되었습니다. 《‘센의 파동’ 효과로 몸 내부에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무시되어 8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신체의 마나 밸런스가 깨져 마나가 1,000 증발했습니다. 가격 부위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어 5분간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10% 경감했습니다. 경직에 걸려 3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허억, 차, 차크라의 파동?’ 무술에 관심이 많은 아크는 ‘차크라’ 라는 단어를 들어 보았다. ‘차크라’를 제대로 설명하자면 너무 장황하고, 조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인도에서 말하는 일종의 기다. 다시 말해 ‘차크라의 파동’이란 동양에서 말하는 기파… 일종의 장풍이라는 뜻인가? 그것도 멀리서 날리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밀착시키고 직접 몸 안으로 때려 넣는 장풍? 뭐, 토막 상식은 이쯤 해 두고… 어쨌든 아크가 받은 데미지는 무시무시했다. 일종의 기를 다루는 기술이라서 그런지 방어력 무시 효과가 붙어 있어 일격에 800데미지. 게다가 동양적으로 표현하면 내상까지 입어 마나까지 1,000이 날아갔다. 덧붙여 경직에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떨어지는 상태 이상까지.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 스킬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아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번의 일격으로 확실하게 알았다. 역시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사실 그건 붉은 남자를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크는 포포의 기억 속에서 붉은 남자가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혼자서 너구리족 마을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세계수 이그드라실마저 붉은 남자를 당해 내지 못하고 정신을 닫아 버리는 게 전부였다. 유저라고 생각하기에는 하는 짓이나 힘이 너무 상식 밖이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붉은 남자를 NPC라고 생각했지만…. ‘놈은… 유저다!’ ‘고양이의 눈’으로 파악한 정보창은 NPC와 달랐다. 그러나 이름과 레벨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표시되는 경우는 두 가지. 샴바라처럼 특정 스킬로 정체를 숨기거나, 아크와 레벨 차이가 100 이상 나는 유저라는 뜻이다. 하긴 굳이 정보창이 아니라도 한 방 맞아 보니 얼마나 레벨 차이가 나는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물러날 곳은 없어. 싸워서 쓰러뜨려야 한다!’ 아크가 검을 꽉 움켜쥐며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는 아크 따위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잠시 아크를 바라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차, 그러고 보니…!' 멍청한 눈으로 붉은 남자를 쫓던 아크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방금 전 ‘차크라의 파동’을 맞고 날아가며 떨어뜨린 ‘유즈리아의 정’이 굴러간 장소였다. 이대로 ‘유즈리아의 정’이 붉은 남자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게 끝장이다. 아크가 튕기듯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챙, 콰콰콰콰콱! 돌연 뒤에서 기관총처럼 연속적으로 단검이 날아왔다. 첫 발은 ‘유즈리아의 정’을 맞춰 멀리 튕겨 내고, 나머지는 붉은 남자를 향해 쏘아졌다. 막, ‘유즈리아의 정’을 집어 들려던 붉은 남자의 눈가를 일그러뜨리며 단검을 쳐 냈다. “아크, 뭐하고 있는 거냐? 정신차려!” 먼지구름을 뚫으며 샴바라가 뛰어나왔다. “오오옷, 샴바라, 나이스 타이밍!” “치유의 손길, 여신의 가호!” 뒤이어 옆에서 레리어트도 달려오며 회복 마법을 펼쳤다. 덕분에 아크는 생명력과 상태 이상을 회복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 됐다. 이제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샴바라와 레이어트가 나타나자 아크는 곧바로 기세등등해졌다. 그렇다. 솔직히 아크는 붉은 남자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단, 혼자라면 말이다. 그러나 샴바라와 레리어트가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다. 1 대 3 아니, 소환수까지 1 대 5라면! “데드릭, 라자크, 레리어트 님을 보호해라. 샴바라, 알고 있지? 양쪽에서 간다!” “좋아. 발목 잡지 마라. 아크.” “누가 할 소리. 다크 블레이드!” “단검 던지기, 뇌검!” 레리어트의 버프가 적용되는 것과 동시에 아크와 샴바라가 양쪽으로 갈라졌다. 둘은 마치 원을 그리듯 붉은 남자의 양쪽으로 접근하며 스킬을 난사했다. 아크는 ‘다크 댄싱’과 ‘슬라이드’를 사용해 붉은 남자를 현혹시키며 연쇄 스킬 ‘암격’과 ‘화격’을 쉬지 않고 날려 댔다. 샴바라 역시 쉬지 않고 ‘십자화결’과 ‘뇌검’을 날려 대며 붉은 남자를 몰아쳤다. 악실리온의 페어전을 평정했던 둘의 콤비네이션! 콰콰콰쾅, 쩌쩍, 우르르릉! 마치 검은 먹구름 속에서 뇌전이 일어나듯,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먼지구름 속에서 쉬지 않고 섬광과 굉음이 울려 나왔다. 아니, 먼지구름이 아니라도 붉은 남자와 아크 일행의 전투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쾌속 이동과 연쇄적인 스킬을 폭발! 마치 수백 명이 싸우는 전쟁 장면을 4배속으로 돌리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괴, 굉장하다…!’ 뒤에 물러나 있던 레리어트와 소환수들이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사실 가장 놀라고 있는 사람은 아크와 샴바라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나?’ 게임을 하다 보면 가끔 묘한 각성을 경험할 때가 있다. R[G든, FPS든, 대부분의 게임들에는 타이밍과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 타이밍을 계산하고 곧바로 컨트롤해서 대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그런 일이 가능해질 때가 있었다. 마치 모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뉴 타입처럼. 머릿속에서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며 집중력 반사 속도, 상황 판단력이 120% 상승하는 이른바 무아지경! 지금 아크와 샴바라의 상태가 그랬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위기에 약한 사람과 위기에 오히려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아크와 샴바라는 후자에 속했다. 지나치게 강한 상대를 만나자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이길 수 있다, 둘이라면 놈을 쓰러뜨릴 수 있어!’ 쭉쭉 빠져나가는 붉은 남자의 생명력을 확인하며 아크는 승리를 확신했다. 결국 생명력이 50%까지 내려간 붉은 남자가 휘청거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아무리 높은 레벨과 막강한 실력을 갖췄다고 해도,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세 영웅 직업 유저를 상대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겁도 없이 혼자 덤빈 게 네놈의 실수다!” 아크는 히죽 혼자 다시 검을 들어 올리는 찰나, 문득 붉은 남자의 눈매가 좁혀졌다. 그리고 갑자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건방진… ‘시바의 신역 선포’!” 쿠콰콰콰콰콰! 그때였다. 돌연 거대한 석상이 지면을 뚫고 올라왔다. 힌두교의 세 주신 가운데 하나. 4개의 팔, 4개의 얼굴, 3개의 눈을 가지고, 목에 뱀과 송장의 뼈를 감은 모습을 하고 있는 파괴신 시바의 형상을 닮은 석상이었다. 지면을 뚫고 솟아난 석상이 4개의 팔을 기묘하게 움직이자 이내 주변의 지면이 붉게 달아올랐다. 뒤이어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시바의 신역 선포’ 스킬이 발동했습니다. 시바 석상을 중심으로 직경 300미터 공간이 스킬의 영향권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영향권 안에서 시전자는 파괴신 시바의 가호를 받아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또한 신속, 증폭, 철벽의 효과가 부여되며, 영향권 내에서는 사용이 제한된 ‘신격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 시간이 끝나거나, 석상이 파괴되면 스킬이 취소됩니다.》 “뭐, 뭐야? 이 황당한 효과는? 뒤로 물러나던 붉은 남자의 손이 허리 어름으로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순간 망막을 태워 버릴 듯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아크와 샴바라의 넓적다리가 쩍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올라왔다. - ‘차크라의 비검’에 적중했습니다. 《1,2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검기에 갑옷의 내구도가 20%, 방어력이 20% 경감했습니다. 가격 부위에 심각한 검상을 입어 5분간 이동속도가 20% 경감했습니다.》 “영웅 직업의 능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붉은 남자가 검은 기운이 이글거리는 검을 비껴들고 중얼거렸다. ‘헉, 이, 이게 무슨… 맙소사, 그러고 보니…!’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은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제야 아크는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확실히 조금 전부터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포포의 기억 속에서 봤던 붉은 남자는 지금까지와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그렇다, 아크가 그를 ‘붉은 남자’라고 기억하고 있던 것은 단순히 머리칼이 붉은색이어서가 아니었다. 너구리족을 학살하던 장면에서 봤던 그는 지금처럼 붉은빛에 휘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회상 장면의 특수 효과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어, 그때도 지금 붉은 남자가 사용한 스킬이 발동하고 있었던 거야. 너구리족을 학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스킬 대문이었던 거야. 즉, 이 상태야말로 놈의 능력이 100% 발휘되는 상태!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거기까지 생각하자 방금 전까지 후끈 달아올랐던 열기가 거짓말처럼 식어 버렸다. “아크, 온다!” 샴바라의 목소리에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이이이잉… 콰쾅! 동시에 붉은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자욱한 먼지구름조차 붉은 남자가 지나가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갈라질 정도의 속도! 뒤이어 아크의 검에 마치 원자폭탄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검날이 당장이라도 부러져 나갈 듯이 흔달리며 아크는 몇 미터나 밀려났다. 샴바라가 배후에서 단검을 날려 댔지만, 붉은 남자는 상체만을 흔들어 피해 내고 샴바라에게 검기를 날려 댔다. “크아아악!” X자로 치켜든 양팔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올라왔다. 검을 뽑아 든 붉은 남자는 조금 전과는 ‘전혀’ 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랐다. 검기를 날려 움직임을 끊고, 접근해 센의 파동을 날려 댄다. 아크와 샴바라는 제대로 공격도 못하고 전력을 다해 회피 동작을 펼쳤지만 단숨에 생명력이 30%까지 내려갔다. “치유의 손길!” 레리어트가 황급히 다가와 회복 마법을 날렸다. “쓸데없는 짓을…!” 붉은 남자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미 레리어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데드릭, 라자크, 막아라!” “힉, 아, 알았어. 이 자식, 네 상대는 이 몸이다!” 딱딱딱, 딱딱딱딱! 데드릭과 라자크가 붉은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가 양손으로 검을 잡고 바닥을 내리찍자 강렬한 충격파가 퍼지며 데드릭과 라자크는 허망하게 튕겨나갔다. 뒤이어 배후로 돌아간 붉은 남자가 연속적으로 ‘센의 파동’ 을 뿜어내자 레리어트는 단숨에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아, 안 돼, 놈을 막을 수 없다!’ ‘시바의 신역 선포’ 영향권 안에서는 붉은 남자를 당해 낼 수 없다! ‘방금 전 정보창의 설명을 보면 ’시바의 영역 선포‘도 약점이 있다. 첫째는 시바 석상을 부수면 스킬이 취소된다는 점, 둘째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시간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놈은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어. 갱생단이나 바란족이 나크족을 막느라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만으로 놈을 따돌리고 석상을 부수는 건 무리다.’ 그러나 다행히 ‘시바의 영역 선포’ 는 공간 한정 스킬이었다. 만약 석상을 중심으로 직경 300미터 범위만 벗어나면 붉은 남자의 능력은 본래 상태로 돌아가리라. 즉, 붉은 남자의 무적 상태도 지역 한정이라는 말이다. 일단 영향권만 벗어나면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가 약간 더 우세하니 붉은 남자도 무턱대고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영향권 밖으로 도망쳐 ’시바의 영역 선포‘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버티면 돼. 이 정도의 효과를 가진 스킬이라면 적어도 대기 시간이 24시간 이상은 될 거야.’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는 것처럼 보이던 붉은 남자도 이렇게 하나하나 분석해 보니 상대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만 문제가 있어.’ 아크는 곁눈질로 먼지구름 속에 굴러다니는 구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문제다. 붉은 남자의 목적은 바로 ‘유즈리아의 정’. 그리고 ‘유즈리아의 정’ 은 ‘시바의 영역 선포’ 영향권 안에 있었다. 아크 일행이 무사히 영향권 밖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놈이 ‘유즈리아의 정’을 손에 넣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은가? ‘먼저 ’유즈리아‘의 정을 확보하는 게 먼저다!’ “샴바라, 좌우에서 놈을 공략한다! 레리어트 님, 보조해 주세요!” “훗, 어리석은 놈들. 아크와 샴바라가 또다시 좌우에서 달려들자 붉은 남자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붉은 남자의 시선이 둘에게 집중되는 순간, 아크가 머릿속으로 명령했다. ‘지금이다! 데드릭, ’유즈리아의 정‘ 이다. 먼저 ’유즈리아의 정‘부터 챙기고 도망쳐!’ “아, 알았어!” 주인의 의도를 알아챈 데드릭이 저공비행을 펼치며 ‘유즈리아의 정’ 으로 날아갔다. “우하하하! 잡았다, 잡았어. 주인! 어때? 역시 내가 최고지?” 발로 ‘유즈리아의 정’ 을 잡아챈 데드릭이 광소를 터뜨렸다. 아크가 기겁하며 욕설을 터뜨렸다. “저, 저런 멍청한 자식!” 이미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아크와 샴바라가 목숨을 걸고 붉은 남자의 관심을 돌려놓았다. 그런데 눈치를 밥 말아 먹은 데드릭 덕분에 붉은 남자의 시선이 팩 돌아간 것이다. 동시에 하얀 가면 밖으로 드러난 붉은 남자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어디서 얕은 수작을…!” “도망쳐, 도망쳐라. 데드릭, 수직 상승이다!” “힉, 아, 알았어!” 데드릭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올랐다. “귀찮게 하는군. ‘신결 스킬, 인드라의 뇌격’!” 돌연 볽은 남자 등 뒤에서 4개의 둥근 원판이 떠올랐다. 파지직, 파지직, 파지지직, 번쩍― ! 갑옷에 새겨진 인드라와 같은 형상이 새겨진 원판, 뒤이어 원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데드릭을 향해 엄청난 뇌전을 뿜어냈다. 마치 분노한 인드라가 벼락을 일으켜 적을 섬멸하듯이, 뇌전이 공간을 찢으며 퍼져 나갔다. “데, 데드릭… 헉!” 데드릭에게 달려가던 아크가 날아오는 뇌전을 확인하고 검을 치켜세웠다. 뇌격이 충돌하자 검이 시퍼렇게 달아오르며 ㄴ앞에 붉은 빛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 ‘인드라의 뇌격’에 의해 2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 ‘인드라의 뇌격’에 의해 2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 ‘인드라의 뇌격’에 의해 2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맙, 마솟사’ 아크는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뇌격에 한 번 걸려들자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바닥까지 내려갔다. ‘건담? 검담이냐? 그건 건담의 판넬인 거냐?’ 아크는 강렬하게 딴지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뇌격에 맞으면 경직 상태에 빠지게 되는 듯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사이, 전격에 휩싸인 레리어트와 샴바라의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내며 쓰러졌다. 그리고 20%, 15%, 10%… 쭉쭉 빨려 나가던 아크의 생명력도 결국 바닥을 드러내 버렸다. “커헉, 이… 이 자식…!” 아크는 검을 든 자세 그대로 잿가루가 되어 버렸다. ACT 9 유계 떠오르다! “히익, 뭐, 뭐, 뭐야?” 북실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크가 아게이론에서 돌아오고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후후후, 이제 유계가 떠오르면 이 ’비장의 무기‘로 아크의 뒤통수를 치고 마가로프의 유산을 날름하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모진 학대를 견뎌 낸 보람이 있었어!’ 북실이는 그렇게 행복한 단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가 나타나자 상황이 일변했다. 세계수의 부활은 중단되었고, 붉은 남자와 드라칸 부대가 요새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협곡으로 몰려든 나크족까지 하만 요새에 속속 난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이 전력을 다해 병사들을 지휘하며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이미 난입한 드라칸 부대와 나크족은 바란 족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북실이는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는 바란족을 보며 이를 갈았다. 하만 요새에는 병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물자 보급을 위해 일반 NPC가 모두 동원되어 어린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창고 담당을 맡은 북실이는 지난 보름을 대부분 이들과 함께 보냈다. 그런데 자신과 함께 짐을 나르며 땀을 흘리던 주민들, 자신이 놀아 주던―비록 돼지라고 놀림을 받았지만―아이들이 눈앞에서 무참히 살육당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크라면, 아크라면 어떻게 해 줄 거야!” 북실이는 아크를 좋아하지 않ㅇ는다. 가끔 의외의 면을 보여 주다가도 금세 본색을 드러내니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실력만큼은 북실이도 인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숱한 유저를 만나왔지만 그만큼 역정에 강한 캐릭터는 보지 못했다. 분명 아크라면 이 상황도 어떻게든 해결해 주리라. 그러나 막상 먼지구름을 기어 다니며 아크를 찾아낸 북실이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아크는 물론, 샴바라와 레리어트까지 속수무책으로 얻어 맞고 있었던 것이다. ‘헹, 꼴좋다.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북실이는 왠지 모를 통쾌함에 히죽 웃었다. 그러나 그건ㅅ도 잠시,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는 저리 구르는 아크를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정체불명의 감정이 불끈불끈 치밀어 올랐다. ‘…뭐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는 그런 캐릭터가 아니잖아. 그 죽어도 못 이기겠다는 표정은 뭐냐고? 정신 차려. 잘난 듯이 나와 레리어트 님을 착취하던 근성은 어디 간거야? 네가 그렇게 허망하게 당해 버리면 네게 착취당했던 나는 뭐가 되는 거냐고!’ 왠지 모르겠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아크가 밉다. 정말 밉지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돌연 붉은 남자가 뇌격을 뿜어내더니 아크가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순간 북실이의 눈에서도 뇌격이 터져 나왔다. ‘저, 저 자식이 감히…!’ 멍청하게 잿가루로 변한 아크를 바라보던 북실이가 이를 갈아붙이며 몸을 일으켰다. …뭘까, 이 기분은? 잘은 모르겠지만 아크가 죽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북실이의 머릿속에서 뭔가 철커덕하며 풀려 버렸다. 친하게 지냈던 나크족의 죽음 그리고 아크의 퀘스트 실패. 이 모든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짬뽕이 되어 북실이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런 분노는 몽땅 붉은 남자에게 향했다. ‘저, 저놈 때문이다. 모든 게 다 저놈 때문이라고!’ 북실이는 유유히 ‘유즈리아의 정’으로 다가가는 붉은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와락 주문서 한 장을 꺼내 찢으며 소리쳤다. “받아랏, 개자식아! 『추방』!” 주문서를 발동시키면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의 빛이 터져 나온다. 그 빛이 목표에게 적중되며 특수 효과가 발동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북실이가 발동시킨 주문서에서 나온 빛은 앞에 둥둥 떠 있을 뿐, 붉은 남자에게 날아가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너무 오랫동안 넣어 놓고 다녀서 망가졌나? 아니, 그,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럼 대체… 아, 마, 맞아!” 그러고 보니 너무 정신이 없어서 타깃을 지정하는 것을 깜빡했다. 북실이는 허둥지둥 『하급 간파』주문서를 꺼내 붉은 남자에게 사용했다. 『추방』주문서의 효과가 취소되기 전에 붉은 남자의 아이디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후후후, 네놈 아이디만 알아내면… 헉, 이건 또 뭐야?” 회심의 미소를 짓던 북실이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상대 유저의 정보를 알아내는 『간파』를 사용했음에도 붉은 남자의 정보가 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간파』주문서를 써 버린 탓에 붉은 남자에게 들켜 버렸다. 붉은 남자가 움찔하며 몸을 돌려세웠다. “뭐냐, 네놈은?” “힉!” 북실이는 비명을 터뜨리며 털석 주저앉았다. 붉은 남자는 몸을 돌린다 싶은 순간,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겁에 질린 북실이는 와락 머리를 감싸며 고함을 내질렀다. “빌, 빌어 먹을, 모, 몰라! 『추방』, 타깃은 날 때리는 놈! 발동! 발동! 발동!” 궁지에 몰린 북실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소리쳤을 때였다. 일단 발동했지만 타깃을 찾지 못해 점차 약해지고 있던 빛이 돌연 북실이의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붉은 남자의 검이 북실이에게 닿자, 빛은 마치 뱀처럼 검을 타고 솟아올라 붉은 남자의 가슴을 후려쳐 버렸다. 번쩍! 터텅 ― ! “크윽, 뭐, 뭐냐? 이, 이럴 수가…!” 주문서에서 붉은 섬광이 뿜어져 나오자 붉은 남자는 마치 홈런을 얻어맞은 야구공처럼 지평선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북실이는 멍한 눈으로 붉은 남자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오옷, 저, 정말 이런 식으로도 발동할 수 있는 거였어?” 생각지도 못했던 주문서의 새로운 활용법! “크하하하, 해, 해냈다! 재가 갱생단도, 샴바라나 아크도 상대가 되지 않았던 괴물을 날려 버렸다! 역시 내 생각대로 이 주문서는 최강이야!” 뉴 월드를 다 뒤져도 10여장 밖에 구할 수 없다는 초레어 주문서 『추방』! 사용 즉시 지목한 대상을 10킬로미터 밖으로 날려 버리는 주문서였다. 그렇다, 그동안 북실이가 믿고 있던 ‘비장의 무기’는 이 주문서였다. 모든 일이 끝나고 아크가 마가로프의 유산을 손에 넣으려는 순간, 전 재산을 털어 구입한 『추방』주문서로 날려 버리고 아이템을 챙겨 달아날 심산이었다. 그러나…. “핫? 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광소를 터뜨리던 북실이는 뒤늦게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으악, ‘비장의 무기’를 써 버리면 아크 녀석의 뒤통수를 칠 수가 없잖아!”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북실이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북실이는 마치 정신분열증에 걸린 환자처럼 다시 번쩍 고개를 치켜 올리며 ‘유즈리아의 정’을 바라보았다. “가, 가만? 그게 아니야. 어차피 붉은 남자의 손에 들어가면 마가로프의 유산을 얻을 방법이 없어 하지만 다행히 ‘유즈리아의 정’은 여기 잇다. 그리고 아크는 유저에게 죽었으니 24시간 동안 부활하지 못해. 그렇다면?” 이미 세계수를 부활시킬 준비는 다 끝났다. 만약 아크가 부활하기 전에 세계수를 부활시키면 마가로프의 유산을 독차지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한 북실이는 얼른 ‘유즈리아의 정’을 향해 뛰어갔다. “그래, 일단 이것만 차지하면 모든 게 내 계획대로….” 그러나 북실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하나는 세계수를 부활시키려면 아크가 가지고 있는 '신성한 나뭇가지'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어이, 돼지. 그건 내 건데?” “히익, 뭐, 뭐, 뭐, 뭐…?” 북실이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놀랍게도 뒤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방금 전에 잿가루로 변한 아크였다. 그렇다, 아크는 이미 한번 죽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그냥 죽을 아크가 아니었다. 붉은 남자의 뇌격은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데드릭에게만 집중되었다. 그사이 아크는 만약을 대비해 라자크를 멀찌감치 도망시켜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라자크의 ‘죽음의 맹약’ 덕분에 되살아난 아크는 기회를 봐서 붉은 남자의 뒤통수를 치고 유즈리아의 정을 빼앗을 작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착각에 빠진 북실이가 붉은 남자를 날려 버린 것이다. “이제 대강 알겠군. 그게 네가 숨기고 있던 ‘비장의 무기’ 였던 건가?”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북실이를 노려보았다. 북실이는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세계수, 세계수를 부활시켜야지요!” “그렇지, 세계수!” 아크가 움찔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만 요새는 드라칸 부대와 협곡을 통과한 나크족이 난입해 혼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붉은 남자가 사라졌다고는 해도 이 상태라면 하만 요새가 위험하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건 세계수밖에 없어.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면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그리고 설사 이곳에서 패퇴한다고 해도 유계는 띄울 수 있다. 지금 나로서는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어.’ “북실이, 주문서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아크는 화단으로 달려가 ‘유즈리아의 정’ 을 땅속에 묻었다. 그리고 이그드라실에게 들은 대로 ‘신성한 나뭇가지’ 를 꺼내 화단의 한쪽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신성한 나뭇가지’에서 옅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화단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됐다, 반응이 있어. 이제…!” 뾰롱! 흙을 뚫고 새싹이 돋아났다. 새싹… 그렇다, 아무리 봐도 새싹이다. 두 장의 떡잎만 나와 있는 새싹. 아크는 한참 동안 새싹을 노려봤지만 더 이상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뭐, 뭐야?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치자 정보창이 올라왔다. 당신은 ‘신성한 토양’에 유즈리아의 정을 심었습니다. 신성한 토양과 신성한 나뭇가지, 보름달, 필요한 조건은 모두 갖춰졌습니다. 그러나 유즈리아는 위그리마의 체내에서 오랫동안 힘을 흡수당해 이그드라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쇠약해진 상태입니다. 유즈리아가 신성한 토양과 신성한 나뭇가지, 보름달의 힘을 흡수해 완전히 부활할 때까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유즈리아의 부활까지 남은 시간 : 2시간》 한 번 꼬이기 시작하니 더럽게 꼬여 간다. 한시가 급한 판에 2시간이라니? 당연히 아크는 그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었다. 이미 달이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날이 밝을 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0여 분. 만약 날이 밝으면 유즈리아의 부활은 실패, 다음 보름달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그때까지 하만 요새가 버텨 줬을 때 얘기였다. “말도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명색이 세계수라는 놈이 고작 몬스터에게 힘을 빼앗겼다고 헐떡거려서야 말이 돼? 싹은 돋았으니 좀 더 힘을 내. 너는 하면 할 수 있는 녀석이야!” 아크가 화단을 내리치며 ‘간병’ 을 난사했다. 예전에 ‘신성한 토양’ 에도 효과가 있었으니 혹시나 싶어서였다. 역시 ‘간병’ 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즈리아 역시 위그리마에게 힘을 빼앗겨 약해져 있으니 일단은 환자, ‘간병’ 을 사용하자 떡잎이 흔들리더니 약간 더 밀려 나왔다. -‘간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한 유즈리아의 성장이 약간 빨라졌습니다. 《유즈리아의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55분》 그러나 한 번 성공해도 겨우 5분밖에 단축되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마, 막아라, 크윽!” 그 와중에도 바란족이 속속 쓰러졌다. 선두에서 지휘하던 갱생단은 드라칸 부대에 전멸했고, 후방에서 지휘하는 정의남만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 성벽을 넘어 난입한 나크족은 화단 근처까지 진군해 있었다. “아크, 아크 자식을 찾아라!” 먼지구름 속에서 쥬르와 듀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런 젠장… ’간병‘ 조차 못 쓰게 하는 건가?’ 현재 아크의 생명력은 고작 1,500가량, 레리어트가 죽어 회복도 못 한다.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드라칸 기병이나 쥬르 일당에게 발각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수를 부활시키지 못하면 곤란해지기는 마찬가지. 아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드라칸 몇 마리가 아크의 등 뒤로 달려들었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투투투퉁! 아크가 절망적인 표정을 떠올렸을 때였다. 돌연 수십 발의 폭음이 울리더니 드라칸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아크 님이다, 저기 아크 님이 있다!” “모두 아크 님을 도와라. 장전, 발사!” 익숙한 목소리에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방… 먼지구름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게이트에서 중무장한 너구리족이 몰려나오며 대포를 난사해 댔다. “역시 뭔가 수상하다 싶었다냥!” “아크 오빠!” 뒤를 이어 자나와 유니콘을 탄 로코도 뛰어나왔다. “오오오, 싸움인가? 요즘 마을 주변에 놀이 없어져서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묘족이여, 손톱을 들어 올려라!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친구 구도자를 돕자!” “냐아아아앙!” “우리의 은인, 아크 형님을 도와라!” 핫산과 묘족, 전직 도적들까지 나타나 나크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들이 어떻게 유계에… 아, 그렇구나!’ 아크는 그들이 몰려나오는 게이트를 보고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남은 가루를 몽땅 쏟아부어 만든 차원 게이트. 덕분에 네 대의 마차를 옮겨 놓은 뒤에도 여전히 게이는 란셀과 유계를 잇고 있었다. 아크가 사라진 뒤 마을 구석에서 게이트를 발견한 몇몇 주민이 호기심에 들여다보고는 아크가 위험해지자 주민들에게 알려 지원군을 몰고 들이닥친 것이다. 친밀도가 100%인 란셀이었기에 가능한 일! 엉겁결에 따라 들어온 유저들까지 전쟁에 휘말렸다. “뭣들 하냥? 용감하게 싸우는 사람에게는 지나가 뽀뽀해 준다냥!” “옷, 그, 그게 정말이야?” “자나에게 점수 딸 수 있는 기회다! 코스프레 마니아의 힘을 보여주자!” “오아아아!” “오, 뭐, 뭐야? 이 징그러운 눈빛을 한 녀석들은?” 살짝 맛이 간 유저들까지 가세하자 나크족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덕분에 아크는 위기를 넘겼지만, 그것도 잠깐의 시간 벌이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아크가 란셀 주민을 이번 전쟁에 참전시키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본래 병사가 아닌 NPC는 유저에 비해 레벨 업이 상당히 느린 편이다. 너구리족이나 묘족, 전직 도적들의 레벨은 아직 150~180수준. 이미 200정도 되는 소환수보다도 낮았다. 평균 레벨이 280대인 나크족과의 전투에 참전시키기에는 무리였다. 역시 아크의 예상대로 조금 밀어붙이던 란셀 주민들은 금세 수세에 몰렸다. 그나마 장거리 공격수인 너구리족이나, 회피율이 높은 묘족은 그럭저럭 나크족과 싸울 수 있었지만 전직 도적들은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쓰러져 갔다. ‘’아아… 젠장…!‘ 아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와주러 온 건 고맙지만, 결코 원치 않았던 일이다. 아크의 눈앞에서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바란족, 다크브라더, 란셀 마을의 주민까지…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 이제 유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대로 밀려 버리면 쥬르 일당에게 아크의 거점인 란셀 마을을 들키게 된다. 차원 게이트를 통해 쥬르와 나크족이 란셀 마을로 난입하지 말란 법이 없다. 유저와 달리 NPC의 목숨은 하나뿐이다. 이대로 져 버린ㄴ다면 항상 짓궂게 아크를 놀리던 자나도, 웃기게 생긴 핫산도, 아크를 졸졸 따라다니던 사라도, 항상 아크을 응원해 주던 가렌…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사라진 란셀 마을은 다시 예전의 황폐한 마을로 돌아가리라. ‘그건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 잃는다는 공포, 그건 누구보다 아크가 잘 알고 있었다. 아크는 미친 듯이 화단을 내려치며 비명처럼 소리쳤다. “부탁이다, 유즈리아! 네가 유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세계수라면… 지금이 바로 네가 필요할 때다. 제발… 제발 깨어나라. 다시 일어나서 너를 따르던 바란족을 도와줘!” 아크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을 때였다. 갑자기 ‘신성한 나뭇가지’ 가 빛을 내뿜으며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유즈리아의 싹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폭발하듯이 하늘로 치솟으며 거대한 세계수로 변해 버렸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세계수 유즈리아를 감동시켰습니다. 언제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남을 위한 마음입니다. 오직 자신을 위해 세계수의 부활을 염원하던 당신은 수많은 희생을 보며 마음을 돌려먹었 습니다. 자신보다 다른 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면 진정한 간병인의 마음가짐이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같은 행동을 해도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 절실한 마음은 심지어 의지를 잃은 유즈리아를 감동시킬 만한 것이었습니다. 모두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 세계수마저 감동시킨 당신! 진정한 간병인의 귀감이 될 만한 업적으로 인해 간병인으로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 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2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200 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 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세계수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200상승합니다. 진심 어린 기도는 기적을 일으킨다! 갑자기 요새 중심에서 세계수가 출현하자 전장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세, 세계수다…!” 먼지구름을 뚫고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솟아오른 세계수! 모두가 넔 놓고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세계수 앞에 방패를 든 아름다운 여자의 영상이 나타났다. 허공에 둥둥 뜬 여자는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위대한 전사의 후예 아크여. 그대의 간절한 기도는 들었어요. 나의 부활을 위해 기도해 준 그대에게 나 유즈리아, 세계수의 명예를 걸고 그대의 바람을 이루어 주겠어요! 세계수 유즈리아가 하만 요새에서 부활했습니다. 세계수 유즈리아는 ‘잃어버린 세계=스탄들’의 균형을 유지하는 신성한 나무입니다. 힘을 잃고 오랫동안 의식을 닫았던 유즈리아는 새로운 힘을 얻어 완벽하게 부활했습니다. 세계수는 각각 자신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즈리아의 속성은 달, 달은 여성과 편안함, 아늑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여성 의 역할은 나아가 싸우는 것이 아닌, 재산과 자손을 지키는 방어. 유즈리아의 보호를 받는 한, 바란족은 그 어떤 역경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만 요새 주변의 모든 건축물의 내구력이 50% 상승했습니다. *하만 요새 주변의 모든 마을에 몬스터에게 공격받을 확률이 50% 감소했습니다. *하만 요새 주변의 모든 마을의 발전도와 방어도가 50% 상승했습니다. *하만 요새 주변의 모든 플레이어, NPC에게 ‘안식’ 이 적용되어 회복속도가 200% 향상됩 니다. *하만 요새의 명성이 5,000 증가합니다. 과연 성목이라 부가 효과가 묘목에 불과한 포포와는 수준이 달랐다. 쿠쿠쿠쿠쿠! 세계수가 부활하자 요새 외벽을 따라 엄청난 두께의 나무 넝쿨이 솟아올랐다. 카이로트의 외벽을 감싸고 있던 나무 넝쿨 성벽과 같은 종류. 성벽을 넘어오던 나크족이 밖으로 밀려났다. -나의 종속들이여, 타락한 자들을 응징하라. 철벽의 가호! 유즈리아가 소리치자 거대한 보름달에서 하만 요새를 향해 빛무리가 쏟아졌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으며 바란족의 몸에서 공채가 뿜어져 나왔다. 유즈리아가 ‘대보름의 영광’ 을 발동시켰습니다. ‘대보름의 영광’ 은 유즈리아의 특수 기술로, 마나가 가장 충만한 보름달이 떠 있을 때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른 방어력 관련 버프와 중복될 수 없습니다. *주변의 모든 아군의 생명력이 50% 회복되었습니다. *30분간 주변의 모든 아군의 방어력이 500% 상승했습니다. *30분간 주변의 모든 아군의 마법 저항력이 300% 상승했습니다. “헉, 바, 방어력500%, 마법 저항력300%?” 정말 비명이 나올 정도의 버프였다. 유즈리아의 버프가 쏟아지자 전황은 180도로 바뀌었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아크가 몸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자욱한 먼지구름이 사라지자 전장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나크족은 나무 넝쿨 성벽에 밀려 밖으로 떨려 났지만, 깊숙이 난입해 온 나크족 수백과 드라칸 부대는 요새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모처럼 의욕이 샘솟은 쥬르와 듀크는 아크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바란족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너, 너 이 자식…!” 쥬르와 듀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욕설을 터뜨렸다. …그게 쥬르의 유언이었다. 드라칸에 나크족, 거기에 쥬르와 듀크까지 가세해서 뛰어다닌다고 해도, 방어력 500%, 마법 저항력 300%가 상승한 바란=란셀 연합군을 당해 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게다가 넝쿨 성벽 때문에 전력까지 반으로 나뉘어 버린 상황. 아크는 바란=란셀 연합군족을 이끌고 문자 그대로 밟아 버렸다 쥬르와 듀크가 죽고 상황이 어려워지자 드라칸 부대도 결국 도망쳤다. 넝쿨 성벽 앞에서 발악하던 나크족 부대도 뒤 이은 반격에 허둥지둥 도망쳤다. “와아아아, 물리쳤다!” “사령관님 만세, 유즈리아 님 만세!” 나크족이 물러가자 바란족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상황이 정리되자 유즈리아는 푸근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둥둥 뜬 상태호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 그대 덕에 이제 나도 위대한 신께서 내게 내려 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대가 나의 은인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거예요. 이제 그대는 나의 마음이 벗, 그대를 친애한다는 뜻으로 나의 일부를 드리니 부디 받아 주세요. 유즈리아는 세계수의 정상에서 빛나는 가지를 떼어 내 아크에게 건네주었다. 신성한 나뭇가지 《레벨 2》(특수) ‘신성한 나뭇가지’ 에 유즈리아의 정수가 부가된 나뭇가지. 유즈리아의 힘이 부가되어 ‘신성한 나뭇가지’ 가 보다 강력한 마력을 지지게 되었습니다. 각종 능력에 추가 보너스가 주어지고, 유즈리아의 속성이 더해졌습니다. 《소유자에게 지속 효과》 *행운+30(+30) *모든 스킬의 성공 확률+10%(+5%) *마법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20%(+5%) *휴식 시 생명력과 마나 회복 속도+30%(+10%) *추가 : 방어력+10% *추가 : 이그드라실, 유즈리아와 원격 통신이 가능합니다. ‘오오오, 대박이다!’ 나뭇가지를 받아 든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사실 ‘신성한 나뭇가지’ 가 사라졌을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계를 떠올려서 얼마나 이득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신성한 나뭇가지’를 잃어버리는 것은 엄청난 손해라고 생각됐다. 그런데 업그레이드까지 시켜서 돌려주다니…, 역시 예쁘게 생긴 여자라 같은 전승 퀘스트를 해결해도 입 싹 닦은 이그드라실과는 격이 달랐다. 아크가 ‘신성한 나뭇가지’ 를 받아 들자 이내 전승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전승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전승 퀘스트에 걸려 있던 ☆, 4개가 캐릭터 정보창에 축적되었습니다. ☆은 뉴 월드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칠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 플레이어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훈장입니다. ☆을 얻은 플레이어는 그 지역에 또 다른 전설이 되어 전승될 것입니다. 또한 ☆이 일정 숫자 이상 쌓이면 매우 특별한 보상을 받을 기회가 제공됩니다. 현재 소유한 ☆ : 7 유계 전체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한건 그때였다. 뒤이어 빙글빙글 회전하던 하늘에 굵은 균열이 번져 나가더니, 뱀이 허물을 벗듯 부서진 공간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갈라진 공간 사이로 보이는 것은 지금까지 보던 잿빛 하늘이 아니라, 여명이 밝아 오는 중간계의 하늘이었다. 그렇다, 드디어 유계가 수백 년 만에 차원 폭풍을 뚫고 중간계로 부상하는 것이다! “핫, 란셀 주민들은 모두 게이트로 돌아가세요!” 유계가 떠오르면 차원 게이트가 사라진다. 유계가 어느 지역에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란셀 주민 대부분이 넘어와 있으니 이대로 떠오르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크의 설명에 란셀에서 넘어온 주민과 유저들이 허둥지둥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그때, 돌연 귓가로 붉은 남자의 목소리가 스며 들어왔다. -제법이군, 아크라도 했나? 이번에는 비긴 걸로 해 주지. 나도 일단은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달성한 셈이니까. 하지만 다음번에도 내 앞을 막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뭐야, 이 자식? 어디 숨어서 지껄여 대는 거야?’ 아크가 인상을 구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북실이에게 당해서 날아간 주제에 입만 살아서 떠들어대다니. 게다가 뭐? 다음번에는 용서하지 않겠다고? 2류 악역이냐? 어딘가에 숨어서 일방 통신을 보내오는 주제에…. 그렇게 구시렁거리던 아크는 곧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 저편에서 독수리를 타고 날아가는 붉은 남자를 발견했다. 그러나 아크를 경악하게 만든 것은 붉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날아가는 하늘 저편, 갈라지는 공간의 틈에서 뭔가 거대한 물체가 보였다. 가아아아아아-! ‘…초거대 하늘 가오리? 차원의 균열 속에서 일부만 모습을 드러냈지만 틀림없는 하늘 가오리였다. 예전에 해저에서 만났던 백경, 갈릭보다 몇 배나 거대한, 전장이 수십 킬로미터에 달할 듯한 거대한 하늘 가오리! 그런 하늘 가오리가 차원의 틈에서 길게 늘어진 꼬리를 휘적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더 놀라운 것은 하늘 가오리의 등이었다. 하만 요새의 서너 배는 될 듯한 거대한 고성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은 전설의 천공성… 공중 요새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이봐, 빨리 시스템을 점검해! 김 대리는 자료를 모으고, 서둘러!” 그 무렵, 뉴 월드 제작사 글로벌엑서스의 기획실은 발칵 뒤집혀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던 뉴 월드 메인 시스템이 돌연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게 어젯밤, 엄청난 전력을 잡아먹으며 풀가동을 시작하더니 제멋대로 예정에 없었던 에피소드를 시작해 버렸다. -메인 시스템이 에피소드 Ⅲ에 필요한 데이터 갱신을 완료했습니다. 《에피소드 Ⅲ : 신대륙의 출현》 “신대륙이라니? 그게 대체 뭐야?” 하명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동시에 수십 대의 컴퓨터에 접속해 자료를 모으던 김권태가 고개를 돌렸다. “팀장님, 찾았습니다.” “뭐?” “제작 초기에 제출된 연구원의 보고 자료에 에피소드Ⅲ의 발동 조건에 관련된 자료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번에 출현한 신대륙은 지금까지 유계라고 불리던 지역인 것 같습니다. 정식 명칭은 스탄달. 출현 장소는 슈덴베르크 왕국과 브리스타니아 왕국의 접경 지역에서 약 250킬로미터 떨어진 공해상입니다. 좌표는 X3489 Y5673." “내가 연구원의 보고 자료도 아직 못 읽어 봤을 것 같아? 그건 벌써 알고 있어!" 하명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왜 갑자기 예고도 없이 '에피소드Ⅲ'가 시작됐냐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잖아. 분명 메스컴에서 그 이유에 대해서 물어 올 텐데 대체 뭐라고 대답하냔 말이야!" “글쎄요 연구원의 보고 자료에는 유계의 세계수 전설과 관련된 전승 퀘스트가 발생 조건이라고 하는데…." “그게 문제라고. 아직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TV에 각 분기별 에피소드에 대한 자료를 보낸 적이 있어. 그때 다음 에피소드는 NPC가 아닌 유저들의 활약에 따라 발동 시기가 결정된다고 말해 놨단 말이야." 하명우가 방방 뛰며 정보를 모으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게 말해 놨으니 매스컴에서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게 뻔하다.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은 그 전승 퀘스트의 내용 그리고 어떤 개연성으로 스탄달이 떠오르게 됐는지 하는 부분이다. 그 대답을 해 줘야 하는 사람이 하명우. 그러나 하명우가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유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에피소드 Ⅲ가 시작 됐다. 와, 신기하다… 한심하지만 그게 전부인 것이다. ‘젠장, 왜 항상 내가 TV에 불려 나가 어릿광대가 돼야 하는 거야?' “뭐라도 좋아. 정보 사이트든, 어딘가의 게시판이든, 유언비어라도 긁어모아 봐!" 하명우는 마치 뉴 월드 시스템에게 놀림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정보 사이트를 살펴보던 호명환이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티, 팀장님, 찾았습니다!" “뭘 말이야?" “유계가 떠오르게 된 이유… 아무래도 제가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이야? 어디야? 어디에서 찾은 거야?" “보십시오. 메인 스크린에 띄우겠습니다." 호명환이 컴퓨터를 조작하자 120인치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떠올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 영상은 어제 새벽 공식 사이트의 게시판에 올라온 동영상이었다. 관리자들이 엉뚱한 곳에서 삽질을 하는 동안, 이미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 동영상을 열람해 조회 수가 13,000건에 달하고 있었다. “저기가 유계인가?" 기획부 직원들은 글로벌엑서스의 직원임과 동시에 뉴 월드의 유저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유계가 나타나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관심을 집중했다. 동영상의 제목은 사악한 늑대의 유계 탐험. 제목처럼 동영상의 주인공은 검은 늑대였다. 동영상 시작부분은 그 늑대가 꼬리를 흔들어 대며 유계에서 식재료를 모으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빨갛게 생긴 몬스터 수십 마리와 싸우며 내용이 전개되었다. “아앗, 저, 저런!" 동영상에는 코믹과 활극, 로맨스까지 관중을 즐겁게 할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었다. 드래곤처럼 생긴 몬스터가 미모의 여자가 갇힌 마차를 들고 날아갈 때는 안타까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늑대가 전직에 돌입해 여자를 구해 낼 때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리고 보스전이 시작되면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손에 땀을 쥐었다. 그렇게 장장 2시간… 수많은 역경을 이겨 낸 늑대는 유계에서 세계수를 부활시켰다. 그러자 차원이 갈라지며 유계가 중간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일을 끝낸 늑대가 파랗게 생긴 NPC의 환호를 받으며 중간계로 향하는 게 마지막 장면이었다. “누… 누구야? 저 늑대는?"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던 하명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그러나 무슨 등장인물 소개가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 기획부 직원들이 알 리 없었다. 직원들이 고개를 젓자 하명우가 호명환에게 소리쳤다. “동영상, 동영상을 올린 사람을 알아봐." “아이디가 북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실이? 그게 늑대의 이름인가?" “…아닐 겁니다. 게시판의 자기소개에 북실이는 슈덴베르크 출신의 드워프 상인이라고 적어 놨습니다.” “그럼 북실이가 촬영자인 모양이군. 당장 전화해서 늑대의 정체를 알아봐.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지만, 소재가 파악되는 대로 자네가 만나봐. 분명 그만한 일을 진행할 정도면 시스템에 상당히 접근해 잇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포섭해서 프로젝트에 참가시켜야 해!” “알겠습니다.” 호명환은 사이트에 접속해 북실이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정식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개인 정보를 등록시켜야 한다. 명목은 불건전 동영상의 등록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메인 시스템에서 유저의 정보를 열람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유저의 정보를 모으려는 의도였다. 뭐, 어쨌든 관리자 아이디로 접속한 호명환은 곧 북실이의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긴 뉴 월드에 검은 늑대가 아크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 게다가 아크라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런 사람이 이런 동영상을 올릴 이유가 없잖아.’ 호명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반복되다가 이내 한 사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실례합니다. 여기는 글로벌엑서스 기획부입니다.” “글로벌 엑서스 기획부요?” “네, 어제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려놓으신 북실이 되십니까?” “그, 그런데요?” “동영상의 주인공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은데요.” “주인공이라면… 혹시 아크 님 말인가요?” “아, 아크요?” 북실이의 말에 호명환이 의자에서 튕겨 일어났다. “지금 아크라고 하셨습니까?” to be continued <저자 후기>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굉장히 생소했다. 게임과 친하지 않은 터라서 ‘재미있을까? 재미 없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본 다른 여러 독자들의 평처럼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 안에 들어간 것 마냥 생생했다. 굉장히 실감이 났다. 아크와 함께 다니면서 모험을 하는 것 같고,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이 다음 편, 13편이 벌써 기대가 된다. 도 서 명 : 아크13권 지 은 이 : 유성 펴 낸 이 : 이종주 출 판 사 : 로크미디어 출판년도 : 2009년 6월 1일 봉 사 자 : 양세진 <지은이 소개/ 유성> 작가 유성의 변신이 놀랍다! 그의 전작 로스트 킹덤은 한 인간의 처절한 투쟁과 전략. 전술이 어우러진 정통 판타지로 다소 무게감 있는 글이었다. 그런 그가 180도 변신해 돌아온 작품 아크는 적절한 유머와 위트 그리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게임 소설이 지닌 재미를 극대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크는 맛있다. 마치 지금 막 담은 겉절이를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는 것처럼 신선함이 화악 눈길을 사로잡는다. 장르 문학 사이트 ‘문피아’에서 이미 인기가 검증된 아크. 과연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올여름 작가 유성의 손끝을 주목한다. <차례> ACT 1 마지막 삼신기의 행방 ACT 2 특별 관리 대상 ACT 3 이슈람의 사건 기록부 ACT 4 스승과 제자 ACT 5 스탄달의 영웅 ACT 6 뱀파이어 성 ACT 7 강제 노역소 ACT 8 소년 가장 테드릭 ACT 9 혈투, 뱀파이어 VS 뱀파이어? ACT 1 마지막 삼신기의 행방 <<에피소드 3 : 신대륙의 출현>> 슈덴베르크 왕국과 브리스타니아 왕국의 동부 공해상에 ‘잃어버린 세계=스탄달’이 출현했습니다. 수많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스탄달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해 보십시오. 며칠 전, 뉴 월드에 접속한 모든 유저들은 이런 메시지를 보았다. 당연히 이 소식에 유저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새로운 몬스터, 새로운 사냥터, 새로운 던전! 스탄달의 출현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 있는 유저들에게 불을 당긴 것이다. 그러나 흥분제를 맞은 돼지처럼 날뛰는 유저는 전사들만이 아니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새로운 문명의 출현은 기존의 경제관념을 통째로 뒤흔들 만한 사건이었다. 흔히 대항해 시대로 불리는 16세기에 유입된 차와 향료, 비단 따위가 유럽의 역사를 바꿔 놓았던 것처럼 말이다. 눈치 빠른 뉴 월드의 상인들 역시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상인 도시 기란은 스탄달의 얘기로 떠들썩했다. “가자, 기회의 땅, 스탄달로!” “다른 길드보다 늦으면 안 돼, 서둘러라!” 폭주하는 유저들 덕분에 며칠 사이에 대륙 동부 해상의 여객선 운임이 배나 뛰어올랐을 정도였다. 그렇게 전사와 상인들이 구름처럼 스탄달로 몰려들 무렵, 정작 아크는 스탄달을 나와 기란에 도착해 있었다. ‘휴, 여기도 정신이 하나도 없군.’ 아크는 먼지를 털어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륙에서 들렀던 도시나 마을은 NPC나 유저 할 것 없이 온통 스탄달에 대한 소문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숫자의 유저들이 스탄달로 몰려들었는지, 언제나 바글거리던 기란의 거리가 한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덕분에 아크는 오히려 대륙에 도착한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뭐, 스탄달에 사람들이 몰려서 나쁠 건 없지.’ 아크는 흐뭇한 눈길로 스탄달로 향하는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유저들이 몰려들면 그만큼 사냥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 지금까지 스탄달의 몬스터나 던전을 거의 독식하다시피 해 온 아크에게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넓은 스탄달의 사냥감을 나 혼자 독식할 수는 없어.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제 스탄달은 이전과는 상황이 180도 다르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자연히 발전이 빨라진다. 그렇게 되면 던전 한두 개 독식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득이 생긴단 말이지.’ 아크는 며칠 상이에 스탄달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줬어.’ 스탄달이 중간계로 떠오른 것은 대륙에서도 큰 사건이었지만 스탄달의 주민, 바란족에게는 더욱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들이 수백 년 동안 알고 있던 세상 자체가 변한 것이다. 당연히 바란족 장로들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였다. 이런 반응은 너무나 당연했다. 과거 대항해 시대에도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신대륙이었지만, 정작 원주민들에게 유럽인은 무서운 약탈자였을 뿐이다. 비록 역사 과목에서 간신히 60점을 받던 아크였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때문에 스탄달이 떠올랐을 때, 발 빠르게 장로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스탄달이 떠오른 이상, 대륙과의 교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대륙은 어떤 곳인가?” “스탄달의 수십 배나 되는 거대한 곳이죠. 그곳에는 브리스타니아, 시니어스, 슈덴베르크라는 세 왕국이 있는데, 한 왕국이 수만의 병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발전도도 놓아 병사들의 장비품도 이곳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 그럼 만약 저들이 침략해 오면 어떻게 하지?” “이제야 겨우 나크족의 위협을 막아냈는데.......” 장로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아크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척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 위험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큰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제 바란족도 예전처럼 약한 종족이 아닙니다. 나크족의 위협에 맞서 싸워 물리쳤지 않습니까? 장담하죠. 그때처럼 똘똘 뭉쳐 대처하면 아무리 강한 대륙의 왕이라도 감히 침략할 생각은 하지 못할 겁니다.” “으음.......” 장로들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네. 하지만 우리는 저들에 대해 아는 게 없네. 어떻게 저들과 친선을 맺고 앞으로 교류해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 모르겠다면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면 되니까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대륙의 삼국은 스탄달을 침략할 여력이 없었다. 대륙에서 조사단이 온다면 그건 100% 친선을 위한 사절. 그럼에도 병사 운운하며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적당한 세력을 갖추고 대륙의 정세에도 밝은 ‘스탄달의 대표’로 다크브라더의 수장인 이사벨을 추천하기 위한 밑 작업이었던 것이다. “오오,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그래, 다크브라더의 수장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지.” 불안에 떨던 장로들은 만장일치로 이사벨을 대표로 추대했다. 직후, 이사벨은 모든 다크브라더를 이끌고 스탄달로 이주했다. 그리고 하만 요새에 정착한 뒤에 명칭을 ‘동방 민족’으로 개명했다. 이사벨과 다크브라더는 드디어 피로 얼룩진 과거와 결별하고 그토록 바라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으로 이사벨과의 계약 조건은 완료다.’ 물론 아크가 이렇게 밑 작업을 한 것은 이사벨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크는 모든 일이 원만하게 끝나면 이사벨에게 두 가지 보상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보상은 이사벨이 스탄달의 대표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이사벨이 하만 요새에 자리를 잡을 무렵, 대륙의 사절단이 스탄달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깐 설명하자면, 대륙의 사절단이 나크족이 아닌 바란족을 찾아온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나크족이 카오틱 종족이라는 점, 그리고 둘째는 이미 나크족은 대륙을 침공(?)한 전력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도 대담하게 슈덴베르크의 수도를 말이다. 그렇다. 아크가 계곡 마을 근처에서 50여 명의 나크족을 셀리브리드로 날려 보냈던 그 사건이었다. 때문에 대륙의 사절단은 나크족을 위협적인 몬스터 세력이라고 판단하고 바란족에게만 친선 사절을 보내왔던 것이다. 반면 이사벨은 같은 카오틱이라도 나크족과는 비교도 안되는 미모로 사절들에게 호감을 심어 주었다. “저희는 삼국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유계는 아직 대륙처럼 문명이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대륙에서 구하기 힘든 독특한 자원이 풍부합니다. 틀림없이 서로 도움이 되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단, 저희와 교류를 하려면 저희 주재관을 각 왕국에 파견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앞으로의 교섭 내용은 주재관을 통해 하겠어요.” “네, 그야 물론.......” 그렇게 동방 민족은 삼국에 공식적인 지부를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이사벨은 슈덴베르크 왕국에 조건을 걸었다. “슈덴베르크 왕국에 세워질 지부는 란셀 마을로 했으면 좋겠어요.” 슈덴베르크 왕국 사절이 난색을 표하며 되물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란셀마을은 동부 해안과 인접하지도, 왕도와 인접하지도 않은 산골 마을입니다. 그런 곳에 주재소를 설치하면 번거로울 텐데요?”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란셀마을은 이미 스탄달과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네? 어, 어떻게 말입니까?” “그건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란셀 마을과 결연을 맺었으니 슈덴베르크 왕국도 저희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말한 수 있겠죠. 이에 대한 우정의 표시로 앞으로 란셀 마을을 통한 슈덴베르크와의 교역에는 다른 왕국보다 많은 이득을 약속하겠어요.”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습니다만.......” 사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지만 그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더 많은 이득을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후후후, 됐다. 됐어!” 이게 아크가 이사벨에게 약속받은 보상 중 하나였다.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정치, 외교의 중심지는 상업도 발전하기 마련이다. 슈덴베르크와 스탄달의 소통 창구로서 란셀 마을이 지정되면, 수많은 고위 NPC와 유저들이 몰리게 된다. 산골 마을에 불과했던 란셀 마을은 새로운 교역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부동산 가격은 물론, 아크 종합상점도 엄청난 호황을 누리게 되리라. ‘이제 스탄달과 슈덴베르크의 교역은 아크 종합상점이 독점하는 거야!’ 물론 아직 문화 수준이 낮은 스탄달은 이렇다 할 생산품이 없다. 그러나 자본력을 가진 동방 민족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의욕이 넘치는 이사벨은 벌써 자금을 풀어 하만 요새를 중심으로 각종 부대시설을 만드는 중이었다. 모든 공사가 완료되고 스탄달의 발전도가 올라가면 교역도 활발해지리라. 그런 상황에서 슈덴베르크와의 교역을 아크 종합상점이 독점하면 어마어마한 이득이 따라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 아크는 이사벨에게 받은 계약서를 펼쳐보았다. <<계약자 : 이사벨=아크>> 다크브라더의 수장 이사벨은 스탄달이 떠오른 시점에서 란셀 마을을 슈덴베르크의 교섭 창구로, 아크 종합상점을 중계 무역 창구로 지정한다. 또한 다크브라더가 스탄달에 세우는 교역소 가운데 하나를 구입,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동방 민족이 설립하는 교역소를 구입할 수 있는 권리! 이게 이사벨에게 약속받은 보상의 두 번째였다. 스탄달의 교역소를 손에 넣으면 슈덴베르크와의 교역만이 아니라, 브리스타니아나 시르바나와의 교역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직 미개척지인 스탄달이라도 명색이 교역소다. 앞으로 올라갈 부동산 시세까지 고려하면 수천...... 아니, 만 단위의 골드가 필요하리라. 어쩌면 교역소를 손에 넣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 보통 상인이라면 그 권리 하나만을 손에 넣는 데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교역소 소유 자격은 권리만 팔아도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 거야. 거기에 훗날 시르바나를 탈환해 대륙상회의 지분까지 손에 넣는다면.......” 시르바나와 란셀, 스탄달을 잇는 삼각무역의 형태가 잡히는 것이다. 상인도 아닌 아크가 나가란과 슈덴베르크의 상권을 장악하는 것도 꿈은 아니다. ‘스탄달이 떠올라서 헤르메스도 탄불 폭 꺼졌으니 시르바나의 탈환도 이제 가능성이 있어.’ 퍼즐을 맞출 때도 하나를 맞추면 다른 것들도 줄줄이 맞춰지는 법이다. 사실 얼마 전까지 헤르메스의 세력이 상상 이상으로 커져 시르바나 탈환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헤르메스는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시드에게 들은 정보로는 용병 고용비만 3,000골드 가까이 깨졌다지? 후후후, 라이덴 녀석, 열불 좀 나겠군. 게다가 이제 와서 바란족과 친하게 지낼 수도 없으니 헤르메스 연합은 스탄달에 발도 들여놓지 못할 거야.’ 지금쯤 라이덴은 땅을 치고 통곡하고 있으리라. 아크에게 몇 번이나 장비품을 빼앗긴 쥬르 일당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때문에 헤르메스 연합 내부에서 적지 않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분열 조짐까지 있다는 시드의 정보였다. ‘뭐, 그 정도에 몰락할 만큼 약한 세력은 아니지만, 내부에서 잡음이 일어난다면 분하고 억울해도 당분간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거야.’ 어쨌든 아크로서는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 셈이다. 그렇게 주변 일이 정리되는 사이, 아크의 주변 인물들 거취도 결정되었다. “아직 나크족은 계곡 마을을 거점으로 바란족을 위협하고 있다. 유계가 완전히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우리도 당분간 하만 요새에 남아야겠어.” 정의남은 좀 더 하만 요새에 남겠다고 말했다. “바란족을 훈련시키며 우리도 레벨 좀 올려놔야겠어.” “붉은 남자라고 했나?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놈을 다시 만날 때까지 열렙이다!” 갱생단 역시 이를 갈아붙이며 말했다. 붉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게 상당한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 점은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탄달에서 폭렙을 한 덕에 쥬르와 듀크는 이제 상대도 되지 않는다. 때문에 아크는 내심 우쭐해 있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를 만나고 그런 자만심을 일격에 박살 나 버렸다. ‘나는 아직 멀었어. 놈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입사 시험을 위해서라도 놈과 싸울 만한 실력을 키워야 해!’ 이제 아크의 목표는 붉은 남자였다. 그리고 그 목표를 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더한 강행군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아크의 의중을 읽은 것인지 레리어트도 당분간 하만 요새에 남기로 했다. 사실 그동안 직장인인 그녀는 아크와 함께 게임을 하느라 꽤난 무리를 해 왔던 것이다. 아크 역시 어느 정도는 그녀의 페이스에 맞춰 왔기에 아쉬움 반, 시원한 반이었다. ‘뭐, 그래도 갱생단 형님들과 함께 있으면 자주 만날 수 있을 거야.’ 이제 주변 인물들 가운데 거취를 결정하지 않은 사람은 북실이뿐이다.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은 의외로 아크였다. <<유계 세계수의 부활>> 퀘스트가 자동으로 완료되자 아크는 곧바로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역시 차원이 안정되자 신기루 서재는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아크는 그야말로 돈벼락을 맞았다. 드디어 그곳에 쌓여 있던 엄청난 양의 포션과 주문서를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 양은 무려 상급 표션 200개, 주문서 150장! 당연히 아크는 아이템을 몽땅 아크 종합상점에서 판매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템들은 모두 레벨 제한이 붙은 상급자용이었다. 최소 레벨 200이상. 고작 레벨 100 전후의 유저들이 모이는 란셀에서는 반액 세일을 해도 팔리지 않으리라. 때문에 아크는 북실이에게 맡겨 하만 요새에서 장사를 시켰다. 스탄달이 떠올라 많은 유저들이 하만 요새에 몰려들고 있는 상황. 그들은 대부분 고레벨 유저였다. 신세계를 여행하기 위해 각종 소모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리라. 그들을 대상으로 상급자용 포션을 판매하면 정가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북실이는 그렇게 탐내던 아이템을 판매 대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아크가 판매 대행 계약서에 명시한 수수료는 총매출의 10%!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까지 같이 고생했고, 북실이의 추방이 없었다면 스탄달을 떠올리지도 못했으리라. 때문에 아크는 아무 말 없이 두둑하게 수수료를 계산해 주었다. 여기저기에서 기대 이상의 수입이 생기다 보니 조금 너그러워진 덕도 있었다. ‘후후후, 이제 모든 일이 정리되면 수천 골드 정도는 손에 들어올 거야.’ 현재 아크의 재산은 잡템을 팔아 번 돈을 합쳐도 고작 900골드. 그러나 바란족에게 무기를 공급하며 벌어들인 광석 16,000개, 쥬르 일당에게 뜯어낸 각종 전리품 20여 개가 아크 종합상점에 쌓여 있었다. 거기에 북실이가 팔고 있는 포션과 주문서. 골드로 환산하면 5,000~6,000골도 상당. 아크가 1년간 게임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 팔아 치우는 것뿐이야. 다 팔려주면 전세방 잔금은 문제없어!’ 덕분에 아크는 한결 가벼운 기분이 되었다. ‘역시 마라로프 퀘스트는 엄청나게 돈이 되는 거였어!’ 퀘스트 하나만으로 수천 골드에 해당하는 아이템을 챙긴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직 마법 학회로부터 정식 보상을 받지 못한 것이다. 아크가 기란을 찾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자, 이제 죽도록 고생한 퀘스트의 정식 보상을 받으러 가볼까?” “어서 오게, 아크. 기다리고 있었네.” 마법 학회에 들어서자 샤넨이 반가운 기색으로 맞았다. 샤넨은 아크를 접객실로 안내하고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아침에 오늘의 운세를 점쳐 보니 기다리던 손님이 올 거라고 하더군. 그래서 딱 감을 잡았지. 그래, 밝은 표정을 보니 내가 기뻐할 만한 소식을 가져왔다고 생각되는군.” “역시 마법사시군요.” 아크는 빙긋 웃으며 연구실에서 챙겨 온 책을 꺼낸 놓았다. 두툼한 책 200여권. 그중 150여 권은 마가로프가 마법 학회에서 대여해 갔던 유계 관련 책이었고, 나머지 50권이 마가로프가 남겨 놓은 연구 자료였다. 아크에게는 어디다 팔지도 못하는 잡동사니에 불과했지만 샤넨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오오오, 해냈군. 자네가 정말 해냈어!” 역시나 샤넨은 침을 튀겨 가며 노고를 칭찬했다. “그래, 대체 마가로프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샤넨의 질문에 아크는 지금까지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흥미롭게 듣던 샤넨은 마가로프의 최후에 대한 대목에 들어서자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그렇군, 하긴 마가로프라는 사람이 외골수적인 면이 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네. 그의 비참한 최후는 그런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겠지. 어쨌든 연구 자료를 보니 그는 유계를 중간계로 불러오는 연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마가로프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자네가 그 꿈을 대신 이루게 된 것이니 그도 원망하지는 않을 거네.”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는 내가 해야지.” 샤넨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사실 마법 학회는 오랫동안 침체기에 빠져 있었네. 그러나 마법 학회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고 칭송받던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가 돌아온 이상, 마법 학회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네. 마법 학회를 대신해서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새삼스럽지만 샤넨은 현재 마법 학회가 자랑하는 비공정 실버 애로우나, 영자 이동의 이론도 사실은 마가로프가 초안을 잡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천재가 돌연 사라지자 실버 애로우와 영자 이동 따위의 기술이 불완전한 상태로 남게 되었고, 마법 학회가 침체기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마법 학회는 이제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를 손에 넣었다. 샤넨은 불완전한 기술을 보완하고, 새로운 포션이나 주문서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크는 행복한 표정으로 그런 샤넨의 수다를 들어 주었다. 연구 자료가 마법학회에 끼치는 영향이 크면 클수록 보상도 커진다는 말이니까. 다행히 샤넨은 적당한 수준에서 수다를 멈추고 듣고 싶은 얘기를 꺼내 주었다. “자, 이제 마법 학회의 은인에게 그만한 보상을 해 줘야겠지. 일다 이것을 받게.” 샤넨이 두루마리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건......?” “마법 학회 마스터께서 친히 작성하신 정회원 자격증이네. 마스터께서는 이미 자네가 이 의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마법 학회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셨네. 미리 말해 두지만 이건 아주 특별한 권리라네.” 두루마리를 받아 들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마법 학회 마스터로부터 ‘마법 학회 정회원’ 칭호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동안 마법 학회를 위해 봉사한 대가를 마법 학회 정회원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마법 학회는 전 대륙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조직의 정회원이 된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입니다. 이로써 당신은 마법 학회의 마법사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각종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마법 학회의 정회원이 되면 마법 학회에 개인 창고와 연구실이 지급됩니다. 또한 마법 학회의 모든 지부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15%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 최대 세 명까지 마법 학회 소속 고위 마법사 NPC를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약간의 보수를 지급해야 하지만, 친밀도나 고용 목적에 따라 무료 봉사할 경우도 있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5씩 증가합니다. +마법 학회에 대한 우호도가 200만큼 상승했습니다. +명성이 300 상승합니다. 개인 창고와 연구실, 각종 마법 상품 할인 혜택까지! 마법사가 받았다면 환호성을 지를 만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딱히 마법에 관심이 없었다. 대단하다고 생각된 건 모든 스탯+5의 보너스. 칭호에 대한 보상치고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지금까지 고생한 것에 비하면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크가 원하는 것은 좀 더 실질적인,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돈이 되는 보상이었다. “이게...... 전부는 아니겠죠?” “허어, 이 보상이 마음에 들지 않나?”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아크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자 샤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알고 있네. 마법 학회의 영웅인 자네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준비해 뒀네.” 샤넨이 손뼉을 치자 젊은 마법사가 다가왔다. “이 친구를 15층 비고로 안내해 주게.” 젊은 마법사는 경기를 일으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공손하게 말했다. “......따라 오십시오.” 아크는 기대에 찬 얼굴로 마법사를 따라 나가다가 멈칫하며 다시 샤넨을 돌아보았다. “아 참, 그 전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자네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소환 포틀를 두 개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소환 포트?” 샤넨은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 가운데 있을 겁니다. 13권이었나?” 사실 아크가 만사를 제쳐 두고, 마법 학회로 달려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헤르메스의 야욕도 꺾고, 퀘스트를 해결한 것도 좋은데....... 막상 스탄달이 떠오르자 아크에게 한 가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아크가 그 문제를 알아챈 것은 스탄달이 떠오르고 24시간 지난 뒤, 붉은 남자와의 결전에서 죽은 라자크와 데드릭을 다시 소환하려고 할 때였다. 소환 명령이 실패했습니다. (지역제한) <<현 지역에서는 모든 유계 소환수의 소환/해제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소환수 사망 시 모든 스탯에 10%의 손실이 생기고 중간계로 돌아갈 때까지 재소환할 수 없습니다. 대신 소환수를 불러낸 상태에서도 마나가 소모되지 않습니다.>> “어라? 이거 왜 이러지?” 나오라는 소환수는 안 나오고 엉뚱한 붉은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아직 24시간이 안 지나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몇 시간이 더 지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간계로 떠올라도 스탄달 내에서는 안 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일단 대륙으로 돌아와 다시 소환해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메시지만 나올 뿐이었다. 그제야 아크는 문제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 가만? 스탄달에서 소환수를 불러내지 못했던 이유는 소환수와 내가 같은 차원에 있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이제 아예 스탄달이 중간계의 일부가 되어 버렸으니...... 헉!” 즉, 스탄달에만 해당되던 소환 페널티가 중간계에도 적용된다는 말이 아닌가? “뭐, 뭐야? 그럼 앞으로 소환수를 불러내지 못한다는 말이야?”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난 1년간 죽을 둥 살 둥 키워 온 소환수를 잃어버린다니? 아니, 그 이전에 앞으로 소한수도 없이 게임을 해야 한다니......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 아닌가? “아, 안돼. 이건 아니야!” 그때부터 아크는 미친 듯이 해결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마가로프의 일기장에서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일기장에는 마가로프가 유계에 와서 연구했던 목록도 적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영자 이동 기술을 응용한 ‘소환 포트’였다. ‘소환포트’는 일종의 소형 마법탑 같은 것으로, 특정 위피에 박아 놓고 대상을 등록시켜 놓으면 차원이나 공간의 제약 없이 소환을 가능하게 해 준다고 한다. 마가로프가 평생을 바쳤던 스탄달을 띄우는 연구의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소환 포트’로 이동할 수 있는 종재는 계약된 소환수뿐이라 포기했던 모양이다. “휴, 다행히 죽으라는 법은 없군.” 새삼스럽지만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예상 밨의 문제가 생겨도 틀림없이 해결 방법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걸 라자크나 데드릭이 있는 곳에 박아 넣으면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었다. 마가로프의 연구실에는 실험용으로 제작한 ‘소환 포트’가 하나빴에 없었다. 대신 설계도가 있었지만, ‘소한 포트’를 만들려면 희귀한 마법 재료와 상급 마법학, 상급 연금술이 필요했다. 때문에 아크는 마법 학회에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아아, 찾았네/ 여기 있군. 호오, 이런 방법이...... 역시 마가로프는 천재야.” 자료를 뒤적거리더 STISPS이 감탄사를 발했다.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구조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니 하루면 될 걸세. 공방에 최우선 사항으로 제작하도록 말해 두지. 단지 필요한 마법 재료가 모두 상당히 고가라 가격이 좀 비싸질 것 같네. 어디 보자, 대략 개당 700골드 정도는 되겠군.”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조, 조금만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미안하지만 그건 곤란하네. 말했다시피 이거 희귀한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말이야. 다름 아닌 자네의 부탁이라 인건비는 제하고 순수한 재료비만 말한 거네. 인건비까지 합하면 800골드는 받아야 정상이지.” 아크 역시 설계도를 봤기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라크의 눈알’, ‘숨 쉬는 수정’, ‘마나 동력’ 등등...... ‘소환 포트’에 필요한 마법 재료는 하나같이 고가품들이었다. 게다가 몇 단계 처리 과정까지 거쳐야 하는 것이라 유저에게 의뢰하면 1,000골드는 줘야 했다. 그래도 친밀도가 높아진 상태라 혹시 좀 더 깎을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샤넨은 눈썹 한나 까딱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어쩐지 마가로프 퀘스트의 부수입이 기대 이상으로 짭짤하다 싶더니.......’ 역시 세상살이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소환 포트’ 두 개에 1,400골드. 아마도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얻은 수익의 절반은 토해 놔야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크에게 소환수는 이미 700골드의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몰라. 만약 스탄달을 다른 사람이 떠올렸다면 한참을 헤매다가 포기하거나, 간신히 방법을 찾아도 생돈 2,100골드를 써야 했을 거야. 다행히 내가 마가로프의 연구실을 찾아 소환포트 하나를 얻고 연구실에서 얻은 아이템으로 나머지 소환포트 값을 충당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알겠습니다. 내일 찾아갈 때 계산해 드리죠.” “곧바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겠네.” 샤넨이 빙긋 웃으며 공방으로 향했다. “자, 그럼 따라오시죠.” 한숨을 푹푹 불어 내는 아크에게 마법사가 다가왔다. ‘그래, 그렇게 꿀꿀해할 필요는 없어. 마법 학회의 보상이 있잖아.’ 예전에 아크에게 허락된 비고는 10층. 그곳에도 수백 골드에 달하는 무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15층이다. 대체 어떤 아이템이 있을까? 아크는 예상 밖의 지출을 잊어버리기 위해 열심히 마법 학회의 보상을 상상하며 비고로 향했다. “정말 놀랍군요. 15층 비고는 저도 처음 와 보는 곳입니다. 당연히 이방인도 처음이죠. 아니, 죄송합니다. 이제 정회원이시니 이방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겠군요. 어쨌든 10층 비고의 보물도 그렇지만, 15층 비고의 보물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저도 짐작조차 가지 않습니다.” 잠시 후, 비고의 문 앞에 도착한 마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크를 바라보는 눈빛에 존경의 빛마저 느껴진다. “저도 비고를 구경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제게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기다릴 테니 들어갔다 오십시오. 아시겠지만 선택은 단 한 번뿐입니다. 한 번 선택하면 아무리 마법 학회 정회원이라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실수하지 마시고 충분히 생각하신 다음에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들었지? 이번에도 멋대로 집어 먹으면 혼난다.”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옛날 생각이 나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렸다. 단단히 주의를 준 아크는 드디어 비고로 들어섰다. “과연......!” 비고에 들어선 아크는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15층 비고는 10층보다 아이템 숫자가 적었다. 각 종류별로 단 하나의 아이템. 그러나 한눈에 보기에도 마법학회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별해 놓은 아이템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그중에서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것은 역시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예전에 같은 상황을 한 번 경험해 보았다. 때문에 비고라는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해 둔 아이템이 있었다. “역시 검이다, 검밖에 없어!” 모든 장비품 가운데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검! 물론 아크는 지금 귀살검이라는 멋들어진 레어 검을 가지고 있다. 공격력도, 성능도 최상품! 반면 오랫동안 써 온 방어구는 레벨에 비해 능력치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 어차피 많은 장비품 중에서 골라야 한다면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검이 좋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출이 생겼으니 더욱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 물론 같은 비고에 있는 아이템이니 대부분 가치는 비슷할 거야. 하지만 그건 NPC에게 팔았을 때 얘기지. NPC와 거래하는 가격과 유저와 거래하는 가격은 전혀 달라.’ 사실 아크가 애지중지하는 귀살검도 NPC의 상점에 팔면 600~700골드밖에 받지 못한다. 그게 NPC가 생각하는 레벨 180대의 레어 검 시세다. 그러나 경매 사이트라면 얘기가 다르다. 1.000골드는 기본이고 구매자에 따라 1,500골드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방어구는 레어라고 해도 1.000골드가 한계. 무조건 방어구를 받아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굳이 500골드나 싼 장비품을 고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검은 딱 두 자루, 한 손 검과 양손 검이군.’ 아크도 이 부분에서는 약간 갈등했다. 아마도 15층 비고에 있으니 두 자루 모두 품질보증서가 붙어 있는 레어 검이리라. 일단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훌륭해 보였다. 한 손 검은 특별한 장식은 없었지만 시퍼런 기운이 감도는 검날이 범상치 않은 게, 상당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양손 검은 양날이 톱날처럼 되어 있고 표면이 파충류의 비늘처럼 번들거렸다. 대체적으로 전사들이 선호하는 검은 방패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한 손 검. 당연히 구매자도 많고 가격도 좀 더 높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는 양손 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또한 레어 양손 검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일도양단’도 버릴 수 없는 스킬이다. ‘팔 것만 생각하면 한 손 검이 좋겠지만, 만약 이게 귀살검보다 좋은 검이라면 당연히 양손 검이 더 낫다. 써먹을 만큼 써먹고 팔 수 있으니까. 그리고 레어 양손 검은 한 손 검보다 상급 스킬을 익힐 기회가 더 많아.’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당한 이득이 보장되어 있었다. ‘자, 돈이냐, 활용도냐.......’ 관건은 조금이라도 더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이템이 떠올랐다. ‘아, 그렇지! 혹시 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크는 품에서 작은 구리 동전 하나를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흠집이 가 있는 1쿠퍼짜리 동전...... 얼마 전 아크 종합상점에 찾아왔던 한 유저가 돈이 모자라 이 동전을 1골드에 쳐줄 수 없냐고 물었었다. 솔직히 아크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장사 초기라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받아 준 것이 다. 그런데 이게 꽤나 재미있는 아이템이었다. 행운의 동전(특수) 오래저 한 상인이 행운의 부적으로 가지고 다니던 동전.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이 동전으로 점을 치면 65% 확률로 좋은 결과가 나올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점은 어디까지나 점. 이 동전을 가지고 있던 상인은 너무 동전의 효능을 맹신한 나머지 모든 일을 동전으로 결정하다가 파산했다고 합니다. 확실히 65% 확률이라면 애매하다. 이득이냐, 손해냐를 두고 이런 동전을 사용하면 35% 확률로 손해를 본다는 뜻. 그러나 현재 아크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이득이 보장되어 있었다. 65% 확률로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한번 동전에 걸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앞이 나오면 양손 검, 뒤가 나오면 한 손 검이다!” 아크는 눈 딱 감고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리고 손등에 받아 놓고 화투 패를 쪼듯이 조금씩 열어 보았다. “뒷면...... 한 손 검인가?” 그러나 아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사람의 심리는 참으로 묘하기 짝이 없어서, 막상 결과가 나오니 왠지 양손 검이 더 끌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한 손 검을 잡아들려다 머뭇거리기를 반복하던 아크는 결국 와락 양손 검을 집어 들었다. “에라, 동전은 무슨 동전이냐? 내가 언제부터 그런 걸 믿었다고!” 보상을 선택하자 얄짤 없이 기계음이 울리며 진열장이 닫혔다. 동시에 양손 검의 정보창이 아크의 눈앞에 떠올랐다. 약속의 검(레어) 무기타입: 양손 검 공격력: 40~50 내구력: 200/200 무게:45 사용제한: 레벨 250, 검술관련 스킬 상급 이상 검날에 복잡한 마법 문자가 새겨진 고대의 검. 윤기가 감도는 검날에 새겨진 마법 문자는 현재의 지식으로는 해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검날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가늠해 보면 뭔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숨겨진 것처럼 생각됩니다. 검날과 검 자루의 연결 부분에 뭔가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검의 비밀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옵션 : 함+20, 체력+10>> <<소켓(4)>> “에엑?”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공격력 40~50. 사용 제한이 레벨 180인 귀살검과 똑같았다. 게다가 민첩과 반응속도가 붙어 있는 귀살검에 비해 고작 힘과 체력, 보통 레어 아이템에 붙어 있는 특수 옵션조차 없다. 특징이라고는 단지 수상쩍은 소켓이 네 개가 있다는 것뿐이다. “젠장, 동전의 선택이 옳았던 건가?” 역시 검의 가치는 뭐니 뭐니 해도 공격력이다. 그런데 레벨 180짜리 검과 같은 수준이라니? 물론 명색이 레어 검이니 250레벨의 마법검보다는 낫겠지만, 압도적인 차이가 아니라면 제 가격을 받기 힘들다. 두세 배의 가격을 치르고 약간 더 좋은 검을 살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생겼다. 뉴 월드에서 아직 소켓이 있는 무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옛날 온라인 게임에 나오던 그런 소켓 아이템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성능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래, 아직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소켓 아이템이 있으면 당연히 거기에 끼울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야. 혹시 알아? 소켓을 다 채우면 굉장한 아이템이 될지?’ “그걸로 선택하셨습니까?” “네.” 비고를 나와 마법사의 질문에 대답하자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신기루 서재>>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천재 연금술사 마가로프 카테고리의 퀘스트가 모두 종료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120무렵에 시작해서 레벨 300대가 되고서야 끝난 퀘스트! 오랜 시간을 투자한 만큼 경험치가 엄청났다.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한도, 레벨 10이 단숨에 올라간 것이다. 그렇게 퀘스트를 완료한 아크는 마법 학회에 새로 생겼다는 창고와 연구실을 한번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 인간 성향: 선+450 명성: 11,425(+500) 레벨: 314 직업: 다크워커 칭호: 캣 나이트, 세계수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학회 정회원 생명력: 5,005(+150) 마나: 4,995 영력:200 힘 602(+28) 민첩 729(+55) 체력 952(+20) 지혜 118(+10) 지능 971 운 112(+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138 유연성: 127 화술: 66 애정: 57(+10) 탄력도: 415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5 *<<수왕>세트 효과 : 힘+10, 민첩+10, 체력+10, 방어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바람정력의 장화(신발) : 민첩+30, 이동속도 +30%, 공격 속도+10%, ‘슬라이드’ 사용 가능 갈가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 50%미만, ‘마력 보호’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 민첩+10, 공격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활려그이 암렛(팔찌) :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산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스킬 포인트 : 30 모든 일을 정리하자 아크의 레벨이 314에 달했다. 나크족과의 전투에 이어 굵직굵직한 퀘스트가 모두 정리된 덕분이었다. 이제 남은 퀘스트는 단 두 개, <<화룡족의 고향>>과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뿐이다. 뭐, <<화룡족의 고향>>은 브리스타니아 왕국에 갈 때 해결하면 되고,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도 이제 시간문제였다. 스탄달이 떠오르고, 란셀에 주재소가 생기자 피난했던 그곳으로 바란족도 굳이 서둘러 돌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거기에 가렌의 열성적인 설득으로, 하나 둘 란셀의 주민이 되어 현재 퀘스트가 성취도가 95%다. 지금 추세라면 굳이 아크가 나서지 않아도 나머지 5%도 금세 채워질 것 같았다. ‘이제 소환포트를 받아서 다시 스탄달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 문제는 ‘소환 포트’를 찾을 때 필요한 1,400골드를 지불한 뒤에야 ‘소환 포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것도 아니야. 이제 이걸 가지고 라자크나 데드릭이 강제송환 된 장소를 찾아가 박아 놓아야 해. 하아, 왠지 한심하다. 들어간 돈이야 그렇다 쳐도...... 무슨 가정방문 선생님도 아니고, 설마 소환수의 집까지 찾아가게 될 줄이야.’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막상 스탄달이 떠올라 버리니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소환수 문제도 그렇고, 차원 이동도 못 하게 되어 갈 때마다 일일이 동부 해안을 통해 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나는 죽도록 고생만 하는데 그 녀석들만 놀게 놔둘 수는 없어. 일단 ‘소환 포트’만 박아 놓으면 본전을 뽑을 만큼 팍팍 부려먹어야지. 쿠케케케, 어? 뭐, 뭐야?” 그때였다. 걸음을 옮기던 아크는 마치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온통 금화 천지였다. 아크는 순간 눈동자를 번뜩였지만 이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다름 아닌 아크이 정신세계였던 것이다. 갑자기 이곳에 왔다면 범인은 뻔하다. 역시나 주변을 둘러보자 근처에 이그드라실과 유즈리아가 앉아있었다. “뭡니까, 갑자기? 허락도 없이 남의 정신세계로 들어오고? 놀랐잖아요!” -허허허, 미안하게 됐네. 이그드라실이 짓궂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어서 말이네. “불렀다고요?” -느끼지 못했나?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가방에서 뭔가 진동을 느낀 것 같다. 그러나 기분 탓이려니 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신성한 나뭇가지’가 무슨 핸드폰도 아니고 진동 모드라니...... 그런 기능을 붙여 놓으려면 아예 벨소리 모드까지 만들어 놓든가. -이그드라실, 그런 말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유즈리아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유즈리아는 숙녀처럼 보이지만 나이는 이그드라실과 같았다. 갓 태어난 포포의 정기를 빨아먹고 회춘했다나? 하여간 유즈리아나 이그드라실이나 나무 주제에 가지가지 한다. 어쨌든 이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아크, 일단 유즈리아를 도와준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며 나와 자네는 붉은 남자에게 속은 것 같네. “네? 속다니요?” 붉은 남자 얘기가 나오자 아크도 약간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붉은 남자는 이제 단순한 추적 대상에서 당당히 강대한 적이 되었다. 게다가 차원 폭풍이 사라질 때 봤던 거대한 하늘 가오리도 내내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실은 나도 유즈리아와 대화를 나눠 보고 나서야 모든 정황을 알게 되었네. 예전에 붉은 남자가 지저 세계에 찾아왔던 목적은 저주받은 용. 니드호그를 불러내려는 목적만이 아니었네. 진짜 목적은 바로 ‘신성한 나뭇가지’를 찾기 위해서였어. “신성한 나뭇가지를?” -그래, 놈의 목적은 그것을 이용해 유즈리아를 부활시키려는 것이었지. 하지만 당시 내가 모든 힘을 포포에게 넘겨준 뒤라 놈도 찾지 못하고 포기했던 것 같네. “잠깐만요. 붉은 남자의 목적이 유즈리아의 부활이었다고요? 대체 왜요?” -그건 내가 설명하지요. 아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유즈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당신도 스탄달이 왜 차원의 밑바닥에 가라앉게 됐는지 들었겠죠? 내가 최후의 마법을 막느라 힘을 모두 잃은 탓이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어요. 유즈리아는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나조차 스탄달을 떠올릴 때까지도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내가 스탄달을 봉인한 진짜 이유를....... 그건 바로 어둠의 제왕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를 봉인하기 위해서였어요. 만약 최후의 마법 직후, 미쳐 버린 뤼겐베르크가 중간계에 남아 있었다면 중간계의 모든 종족은 어둠의 세력에게 멸망했을 거에요. 뤼겐베르크는 피폐해진 중간계를 전멸시킬 만한 힘이 있었죠.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 혹시 거대한 하늘 가오리처럼 보였던 게.......” -네, 그게 바로 어둠의 제왕 왕좌가 있었던 뤼겐베르크의 본체에요. 최후의 마법이 발동할 당시 뤼겐베르크는 스탄달을 공략하고 있었고, 나는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으로 뤼겐베르크를 차원의 틈새에 함께 가둬 놓을 수 있었던 거에요. 붉은 남자의 목적은 나를 부활시켜 차원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뤼겐베르크를 빼내는 것이었죠. “뤼겐베르크를? 가만? 그렇다면 붉은 남자의 목적은?”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목적은 어둠의 제왕의 부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그리고 이제 뤼겐베르크를 손에 넣었으니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겠죠. 유즈리아의 설명에 아크의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이제야 붉은 남자가 했던 말이 완전하게 이해되었다. 붉은 남자가 이번 사건으로 이루려고 했던 계획은 두 가지, 뤼겐베르크의 탈환과 나크족의 스탄달 정복이다. 아크가 유즈리아를 하만 요새에 옮겨 심어 스탄달 정복의 야욕은 막혔다. 그러나 결국 진짜 목적인 뤼겐베르크의 탈환은 오히려 도와준 꼴이 되었다. 붉은 남자가 비겼다고 말했던 것은 ‘절반의 성공’을 의미하는 말이리라. ‘망할 자식......!’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들자 분통이 터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붉은 남자의 정체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 남자가 NPC가 아닌 유저라도 여전히 아크는 입사 시험의 당락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번 일로 확신이 굳어졌다. 스스로 뉴 월드의 시나리오를 진행시키는 유저, 게다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레벨과 스킬로 무장한 유저...... 제작사와 연관이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응시자들에게 시련을 주고 입사 시험을 채점하는 감독관일지도 몰라. 다음에 또 만나면 가능한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다짐하는 아크였다. 어쨌든 그가 감독관이라면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다. “혹시 앞으로 그가 무슨 일을 할지 짐작 가는 부분은 없습니까?” -알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어요. “네? 그보다 중용한 일이라니요?” -실은 자네를 부른 용건은 그 때문이네. 이그드라실이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나? 마반 영웅이 숨겨 놓은 삼신기의 위치를 중간계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 “네, 그랬죠. 이계에 있을지도...... 엇? 가만? 이계라면?” 이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생각대로네. 나는 스탄달이 떠오른 직후, 그곳에서 삼신기의 존재를 느꼈어. “어, 어디입니까?” 아크가 와락 이그드라실에게 달려들어 물었다. 아직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던 삼신기! 그것만 찾으면 또다시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삼신기가 모여 2차 전직을 할 수 있으리라. 어쩌면 난 공불락처럼 여겨졌던 붉은 남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그드라실은 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나도 정확한 위치는 잘 모르네. 내가 있는 곳에서 정확히 2,600킬로미터 떨어진 스탄달의 영역이라는 것밖에는....... -흥, 마반 영웅이 당신과 친하지 나와 친한가요? 너구리족에게 떠받들어지는 당신과 달리 나는 수인족과 인연이 없어요. 그런 내가 왜 마반 영웅이 남긴 유물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인연도 없는 사람의 위치를 대강 파악하고 있는 것만도 대단한 거예요. -쳇, 말이나 못하면....... 이그드라실이 불쾌한 표정으로 유즈리아를 흘겼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크는 얼른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유즈리아 님도 삼신기와의 거리는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내가 있는 곳에서 70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곳이죠. “됐습니다!” 아크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덜떨어지 세계수들은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삼각측량법이라는 게 존재한다. 즉, 이그드라실에서부터 2,600킬로미터. 그리고 유즈리아에서부터 700킬로미터라면 그 직선거리가 겹쳐지는 부분은 딱 두 군데뿐이다. 양 직선이 삼각형 모양으로 맞물리는 곳. 다시 말해 지도에 축적을 적용시켜 자를 대고 죽죽 그어 보면 대략의 위치가 나온다는 말이다. 아크가 곧바로 지도에 이런 공식을 적용시켜 보니 정확히 두 지점이 나왔다. 그러나 한 곳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대해(큰 바다). 스탄달의 영역에 있다고 했으니 반대편이리라. -허어, 자네...... 보기보다 똑똑하군. 보기보다? 그럼 지금까지 날 뭐로 본 거냐? 게다가 이건 초등학교만 나와도 알 수 있는 방법이거든? 하긴, 아무리 뉴 월드라도 나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가 있을 리가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붉은 남자가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려는 게 확실해진 이상, 누군가가 나서서 막아야만 하네. 대륙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네와 우리들뿐, 부디 마반 영웅의 유산을 물려받아 그의 음모를 저지해 주기를 바라네. 할 말 다해 줬으니 이제 발을 빼겠다는 말이다. 뭐, 좋다. 이 정도라도 얻어들은 게 어디냐? 아크는 정신세계에서 빠져나와 다시 기란으로 돌아왔다. “자, 이제 목적이 분명해졌군. 붉은 남자야 어차피 찾아다닌다고 순순히 나와 줄 놈이 아니니...... 그 전에 소환수 문제를 해결하고 마지막 삼신기를 찾아 놔야겠다. 스탄달로 출.......” 다시 힘차게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아크의 귓가에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모처럼 의욕적으로 시작해 보려는데 왜 이렇게 거치적거리는 게 많단 말인가? 울컥 짜증이 솟구친 아크는 무시해 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을 불어 내며 유니트에세 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아크 님이십니까?”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현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게임 아이디부터 들먹인다면 병원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요? 누구시죠?” “저는 글로벌엑서스 기획부에서 근무하는 호명환이라고 합니다!” ACT 2 특별 관리 대상 ‘갑자기 무슨 일이지?’ 현우는 초조한 눈으로 주변을 기웃거렸다. 오전 11시, 점심시간도 되기 전이라 카페는 텅 비어 있었다. 현우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카페에 나와 있는 이유는 조금 전에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상대는 글로벌엑서스의 기획부 직원, 호명환이었다.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닙니다. 일단 좀 만나죠. 어디가 편하시겠습니까?” 호명환은 아크라는 아이디를 확인하자마자 자세한 설명도 없이 불러냈다. 입사 시험이라는 명목으로 뉴 월드를 시작한 지 1년. 글로벌엑서스에서 직접 연락을 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그동안 그 점이 꽤나 찜찜하게 느껴졌었다. 어쨌든 명색이 입사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 관리 차원에서라도 가끔은 연락을 해야 정상이 아닌가? 그럼에도 연락 한 번 없었다. 좋게 해석하자면 딱히 연락이 필요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의미지만, 나쁘게 해석하자면 제작사에서 관심을 기울일만한 응시자가 아니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중간. 그게 현우가 예상하는 현재 자신의 위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만나지고 한다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연락을 할 만한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과연 어는 쪽에 관련된 용건일까? 그때, 딸랑딸랑 소리가 들리며 카페 안으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건장한 체구를 가진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잠시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던 청년이 창가에 앉아 있는 현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혹시 아크 님 되십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현우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대답했다. “아, 네, 제가 아크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전화드렸던 호명환입니다.” 호명환이 익숙한 동작으로 명함을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명함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아크 님 전화번호는 제 컴퓨터에 등록되어 있으니까요. 본명은 김현우 씨죠? 하지만 저는 리포트로만 접해 와서 아크라는 이름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군요. 아크님으로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편하신 대로.......” 현우 역시 이제는 본명보다 아크라는 이름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만나는 사내들이 대부분 그렇듯, 둘은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뒷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시네요.” “네?” “제가 뉴 월드에서 활약하는 아크 님을 본 건 두 번입니다. 처음은 악실리온의 페어전 결승의 동영상, 두 번째는 얼마 전에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동영상입니다. 두 번 모두 근육질의 검은 늑대 모습이었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근육질의 유저를 상상했습니다.” 경찰청 체육관에 나가지 않은 이후로도 현우는 꾸준히 운동을 해 왔다. 그러나 현우가 수련하는 태권도는 보디빌딩처럼 근육을 키우는 운동이 아니었다. 물론 꾸준히 운동을 하는 만큼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였지만, 옷을 입고 있으면 말라 보이는 체형이었다. 운동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식생활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호명환이 상상과 다르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외견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뉴 월드에서의 아크-북실이가 촬영한 동영상-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달변가였다. 또한 북실이나 레리어트를 대할때도 그랬고, 바란족 장로들을 말 몇 마디로 굴복시킬 만큼 수완가였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만나 보니 오히려 내성적인 성격처럼 느껴졌다. ‘뭐, 온라인 게임의 캐릭터와 실제 유저의 성격이 정반대인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으니까.’ 평소 온순한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인격이 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온라인 게임도 구와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과묵한 사람이 일단 게임에 접속하면 수다쟁이로 변신하거나,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휴머니스트가 PK 전문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평소 억눌러 오던 감정의 표출이라고 하던가? ‘이 사람도 그런 거겠지. 그나저나...... 왠지 낯설지가 않은데?’ 호명환은 현우의 얼굴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현우를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얼굴이나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인 실루엣이나 분위기랄까? 뭐라고 딱 집어 얘기할 수 없는 미묘한 부분이 말이다. “그런데 혹시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네? 어디선가 만나다니요?” “아니, 어쩐지 낯이 익어서 말입니다.” “글쎄요, 저는 처음 뵙는데요. 제가 글로벌엑서스에 간 건 면접 때뿐입니다.” “아니, 그때가 아니라...... 아주 최근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렇다, 호명환은 현우를 본 적이 있었다. 다크울프로 변신한 아크가 아니라, 현실의 현우를 말이다. 그 기억의 정체는 바로 얼마 전, 현우가 해결사와 싸우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은 동영상이었다. 당시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 이벤트 퀘스트에서 발데라스를 무찌르고 사라진 의문의 유저와 동일인이라고 생각한 하명우는 호명환에게 조사를 지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호명환은 아쉽게도 거리가 멀고 화질이 좋지 않아 동영상으로 현우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호명환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사람과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그 동영상의 주인공과 현우를 연결시킬 수 없었다. 둘을 연결할 만한 유일한 단서는 이벤트 퀘스트에 관련된 현우의 리포트뿐이었지만, 그 역시 모두 폐기 처분되어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호명환은 그때 수십 번도 넘게 동영상을 확인했었다. 물론 얼굴 같은 것은 전혀 확인하지 못했지만, 막상 현우를 만나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대체 어디서 봤을까?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호명환의 생각은 더 진행되지 못했다. 부르르르. ‘헉, 뭐, 뭐지?’ 잠시 기억을 더듬던 호명환은 갑자기 오한이 들며 식은땀이 줄줄 흘러나왔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더 생각하면 안 될듯한 느낌. 동시에 동물적인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이건 위험하다! 한 걸음만 더 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금단의 상자를 열어버리게 된다! 밑도 끝도 없이 이런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호명환에게 그런 두려움을 각인시켜 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경찰청 제1 기동대장 이명룡이었다. 호명환은 동영상의 주인공을 찾다가 상황을 오해한 이명룡에게 그야말로 뜨거운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본 생명의 위협! 그날 이후로 몇 번이나 악몽에 시달렸던가? 덕분에 동영상과 관련된 모든 일은 호명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때문에 호명환은 아직 현우가 그 동영상의 주인공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일을 당하고 난 뒤로 동영상 따위는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현우를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트라우마가 발동해 생각에 브레이크가 걸려 버렸다. 참으로 놀라운 인체의 신비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정말 놀라운 것은 그 정도의 트라우마를 심어 놓은 이명룔일지도....... 날고뛴다 하는 조폭들조차 이명룡이라는 이름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호명환은 얼른 머리를 흔들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기억을 털어 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착각한 모양이네요.”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호명환이 갑자기 식은땀을 줄줄 흘려대자 현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특별히 감기 같은 것에 걸린 건 아닌데...... 하하하, 신경 쓰지 마세요.” ‘쪽팔리게 갑자기 웬 오한이여? 요즘 몸이 좀 허해졌나?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 하나?’ 그러나 정작 호명환은 자신이 왜 오한을 느끼는지조차 몰랐다. 그날 이후로 이명룡과 동영상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봉인해 버렸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건 그런 ‘잊어버릴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호명환은 괜히 헛기침을 하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험험, 제가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아, 그런가요?” 호명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런데 좀 궁금해서 그런데요. 원래 응시자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습니까?” “네? 무슨 말씀이시죠?” “입사 시험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잖아요. 그동안 글로벌엑서스에서 이메일 한 통도 받은 적이 없어서요. 매달 보내는 리포트에 대해서도 별말이 없고요. 원래 그런 겁니까?” “그, 그건.......” 현우의 질문에 호명환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호명환은 예의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회사의 방침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입사 시험이라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응시자가 자유롭게 플레이 하는 것입니다. 자세한 것은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우리가 마련한 과제를 어떻게 찾아내고 해결해 내느냐가 이번 시험의 핵심이죠.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고 응시자들이 아무래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거짓말이다. 게임 결과로 신입 사원을 채용한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상식 밖이다. 게다가 시험을 치르는 응시자들에게 한 달에 150만 원의 지원금까지 지급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그리 큰 액수가 아니지만 응시자가 무려 2,000명! 한 달에 30억이나 되는 돈이 시험 비용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연매출이 수십 족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도 단순한 시험에 그 정도 돈을 투자할 리가 없다. 글로벌엑서스가 그런 상식 밖의 시험을 시작한 것은 사원채용보다 중요한 프로젝트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시험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천재 게임 디자이너 박우성이 숨겨 놓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숨겨 놨을 것으로 예상되는, 뉴 월드에 걸려 있는 모든 락을 풀어낼 마법의 열쇠, 일명 마스터 코드를 찾는 것! 그러나 현재로써는 그게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박우성이 종적을 감추기 전에 글로벌엑서스로 보내온 메일로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다. 이제 와 말이지만, 사실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에 지원한 사람은 거의 만여 명이었다. 그 가운데 면접까지 올라온 사람은 불과 2,000명. 그러나 그 심사 기준은 사실 학력이나 이력 따위가 아니었다. 글로벌엑서스에서 눈여겨본 부분은 오직 하나, 응시자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온라인 게임 경력’이었다. 글로벌엑서스에서 바라는 응시자는 실무 능력이 아니라, 뉴 월드에서 마스터 코드를 찾아낼 가능성이 있는 게이머. 때문에 설사 학력이 중졸이라도 타 온라인 게임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던 게이머의 경우에는 일부러 시험을 권유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결국 현우가 면접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위조까지 한 학력이 아니라 그 아래, 반 장난삼아 써 놨던 ‘온라인 게임 경력 10년, 모든 게임에 자신 있음’이었다. 어쨌든 글로벌엑서스에서 이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기획부에서는 시험 초기부터 상위권으로 분류된 응시자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반면 진즉에 탈락 예정자로 분류된 현우는 완전히 잊힌 응시자로 무시당했다. 아마도 북실이의 동영상이 없었다면 아직도 같은 상황이었으리라. 그러나 과정이야 어쨌든 잊혔던 현우도 이제 스탄달 사건으로 유력한 응시자로 부상한 것이다. 어쨌든 새삼스럽게 그런 사정을 털어놔서 기분을 상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유력한 응시자로 떠오른 이상, 기획부에서는 현우의 협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현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렇군요. 그런데 오늘은 왜......?” “입사 시험의 중간 점검에 대해 설명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중간 점검요?” “네, 말씀하신 대로 얼마 전에 입사 시험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기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죠. 처음 면접장에서 팀장님이 설명한 것처럼 이번 입사 시험은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예가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1년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2년, 3년이라도 진행시킬 생각이죠. 하지만 1년이 지났으니 이제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중간 점검을 거칠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합격 조건은 게임 내에서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겁니다. 그때까지는 응시자 모두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특별한 조건’까지 도달하는 데는 당연히 나름대로의 절차와 수준을 필요로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복권이 당첨되듯이 ‘특별한 조건’을 클리어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그야 그렇겠죠.” 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이라는 형식을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다. 호명환의 말처럼 시험 과제가 길 가다 돈을 줍듯이 해결된다면 그건 이미 시험도 뭣도 아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이라면, 몇 개의 관문을 차례대로 클리어해야 골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으리라. 물론 현우가 생각한 방식과 글로벌엑서스가 생각하는 방식은 약간 다르다. 그러나 박우성이 숨겨 놓은 마스터 코트 역시 나름대로 찾아가는 공식이 존재할 거라는 게 글로벌엑서스의 추측이었다. 때문에 서로 입장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때문에 이번에 기획부에서는 지금까지의 리포트를 토대로 응시자들을 선별했습니다. 레벨이나 진행한 퀘스트, 게임 방식을 봤을 때 지금부터 분발해도 전혀 가망이 없거나, 상위 그룹과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50%는 탈락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가 1차 시험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1차 시험을 통과한 나머지 응시자들에 대한 지원을 늘릴 계획이죠.” 호명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크 님은 당당히 1차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현우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물론입니다. 아크 님이 스탄달을 떠올려 에피소드 3가 시작됐습니다. 그뿐입니까? 그 과정을 촬영한 북실이 님의 동영상은 조회 수가 30만을 넘었죠. 다음 주에 동영상을 게임 특종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특집으로 방송하기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그런 일을 해낸 응시자가 1차 시험에 떨어질 이유가 없죠. 아니, 오히려 그런 일을 해낸 유저가 응시자 가운데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그 동영상이 TV로 방영된다고요?” “물론입니다. 벌써 방송국에서 판권 관련 비용을 지불한 걸로 아는데.......” “방송국에서 돈까지 나왔다고요?”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혹시 모르셨습니까?” “아, 아니,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 새삼 놀라워서요.” 현우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속으로 불끈 화가 치밀었다. ‘북실이 이 자식......!’ 어쩐지 좀 이상하다 싶었다. 북실이는 그렇게 고생하고도 마가로프의 유산을 몽땅 빼앗겼다. 그런데도 불평 한마디 안 하기에 기특해서 판매 대행 수수료를 10%나 떼어 주기로 했는데, 그사이 뒷구멍으로 돈을 챙기고 있었을 줄이야! 난데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현우가 지분을 요구할 만한 자격은 없었다. 동영상을 촬영한 마법 영사기나, 메모리 크리스털은 북실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몰래 찍은 것도 아니고, 궂은일을 하는 대신 촬영 허가를 받고 찍었다. 하지만 어쨌든 동영상의 주인공은 아크가 아닌가? ‘이 음흉한 돼지 새끼, 동영상을 팔아먹고도 나한테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거지?’ 모르면 몰라도, 알고서 그냥 넘어갈 현우가 아니었다. 그 음흉한 돼지를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호명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의 리포트를 살펴봤을 때 아크 님의 플레이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높이 평가받은 것은 이번에 스탄달을 떠올린 겁니다. 이로써 아크 님은 1차 시험에 통과해 본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2차 시험에 도전할 자격이 생겼습니다.” 호명환은 어깨를 쭉 펴며 씨익 웃었다. ‘좋으냐? 좋겠지. 좋을 거다, 후후.’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뭐, 제가 아크 님을 추천한 덕도 있지만 말입니다.” “호명환 씨가요?” “네, 사실 이전의 리포트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예전에 탈락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나는 아크 님에게 다른 응시자들과는 다른 뭔가를 봤다. 아직은 여러모로 미숙하지만 분명 합격될 만한 성과를 낼 거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탈락이 미뤄진 겁니다. 제가 평사원이지만 파워가 좀 있는 편이거든요. 어쨌든 결국 제 말대로 된 거죠.” 호명환이 잔뜩 뻐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현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북실이의 소행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글로벌엑서스의 입사 시험, 지원자 2,000명 가운데 열 명을 뽑는 200 대 1의 경쟁률! 개중에는 이름만 대면 감탄사를 발할 만한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었도, 그것도 모자라 아란처럼 돈을 물 쓰듯 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가진 거라고는 ‘근성’밖에 없는 현우가 그런 응시자들을 상대로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는 것은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말인데, 1차 시험을 통과한 응시자들에 대한 시험 방식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리포트만으로 플레이를 확인했지만 응시자가 줄어든 만큼 앞으로는 보다 세밀하게 감독할 생각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먼저 이걸 받으십시오.” 호명환이 하드디스크만 한 크기의 기기를 꺼내 놓았다. “이건 유니트에 자유롭게 장착할 수 있는 일종의 모뎀입니다. 이걸 장착한 뒤에 게임을 하면 자동적으로 게임 영상이 모두 본사의 컴퓨터로 전송됩니다. 저희는 리포트를 받을 필요도 없이 그걸 모니터하는 것만으로 아크 님의 플레이를 더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거죠. 그 영상은 평가나 홍보 자료로도 활용될 겁니다.” “자, 잠깐만요. 제 플레이가 모두 저장된다고요?” “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문제가.......”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현재 현우의 게임 플레이는 여러모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상황이 아니었다. 게임 플레이를 모두 기록한다면 그동안 현우가 한 온갖 치사한 행동, 아기 돼지 삼 형제나 시드를 협박해 이용해 먹는 것이나, NPC들에게 사기 치고 다니는 것까지 몽땅 탄로 난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현우는 조금도 양심에 거리낄 게 없었지만, 과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현우가 벌이는 사업에도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란셀 마을에 만든 아크 종합상점이야 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에 넣은 거니 그렇다 쳐도, 스탄달의 교역소 지분이나 특히 시르바나의 교역소 지분은 사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얻은 것이다. 물론 제작사가 게임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은 드물지만, 예전에 아란의 예가 있다. 당시 아란은 시스템의 허점을 노려 다른 길드의 도전을 피했던 적이 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곧바로 시스템의 보완이 이루어져 그런 방법이 차단되었던 것이다. 현우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도 그런 태클이 틀어오지 말란 법이 없었다. 아니, 현우는 응시자니 일반 유저보다 더 강하 제재가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안 돼. 그것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란셀, 스탄달, 시르바나의 무역 루트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또한 거기에 쏟아 부은 돈은 얼마나 많은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엄청난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겠지만, 일단 계획대로만 된다면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 주리라. 만의 하나라도 그게 문제가 된다면 현우의 기반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것이다. 물론 응시자라고 해도 아직은 일반 유저의 입장이니 크게 문제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한다면? 이미 게임 아이템의 현찰 거래는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제작사의 직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때문에 현우는 그동안 리포트에도 아이템 판매나, 각종 사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적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글로벌엑서스의 직원이 되면 연봉 1억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 몇 년 동안은 5,000~6,000사이일 거야. 그 정도 수입으로는 500~600만 원씩 들어가는 생활비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당연히 현우는 합격해도 직장과는 별개로 게임에서 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런데 모든 플레이를 제작사에서 감시한다면 당장 수입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글로벌엑서스 입사와 온라인 게임. 어느 쪽이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 월드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현재 현우의 재산은 은행 잔고와 전세 계약급, 란셀의 상점에 투자한 금액까지 합해 대략 9,000만원. 거기에 1년 동안 한 달에 500여 만 원씩 지출했다. 모든 걸 합산하면 믿어지지 않지만 1년 동안 뉴 월드를 하며 벌어들인 돈은 1억 5천만 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거기에는 글로벌엑서스에서 지급하는 지원금도 포함되어 실제로는 더 적겠지만, 정식 직원이 되어 받는 연봉보다 많았다. 만약 아크의 계획대로 무역 루트가 완성되면 수입은 몇 배로 뛰어오르리라. 그럼에도 현우가 입사 시험에 목을 매는 이유는 하나, 자신의 학력으로는 꿈도 못 꿀 직장의 사원이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또한 게임은 어디까지나 게임. 지금은 뉴 월드로 그만한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 언제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도 권화랑 아저씨에게 대강 내가 뭘로 돈을 벌고 있는지는 들었을 거야. 굳이 말은 안 하시지만 내가 괜찮은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겠지. 그리고 글로벌엑서스에 취직하면 꾸준히 월급도 올라 언젠가는 게임에서 얻는 수입보다 많아질 거야.’ 현우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1차 시험을 통과했다. 50%가 떨궈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쟁률은 10 대 1. 될지 안 될지조차 알 수 없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현재의 수입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문제를 다 떠나서 수입이 줄면 당장 생활비와 병원비조차 조달할 수 없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꼭 그 기기를 달아야 하는 겁니까?” “그게 회사 방침입니다.” “하지만 아까는 응시자가 아무런 부담 없이 자유롭게 플레이 하게 하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게임 플레이를 전송받아 모니터한다면 결국 감시나 다름없다는 말인데, 부담이 없을 리가 없잖아요.” “윽, 그, 그건.......” 현우가 논리적으로 반박하자 호명환이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저는 상부에서 지시받은 대로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현우의 역공에 당황한 호명환은 결국 평사원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비장의 필살기, ‘상부의 지시받아서 나는 모른다.’를 난사했다. 현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저는 입사 시럼을 포기하겠습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시험을 포기하겠다니요?”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사실 이번에 올리 동영상도 제가 원해서 찍게 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글로벌엑서스의 방침대로 자유롭게 플레이해 왔습니다. 1차 시험을 합격한 것도 그렇게 자유롭게 플레이를 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모니터를 하는 것은 무슨 참견을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모니터.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소심한 성격이라 글로벌엑서스에서 제 게임 플레이를 모두 감시한다면 지금처럼 플레이하지 못할 겁니다. 결국 시험에서 떨어지게 되겠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편하게 게임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현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기기를 달고 지금까지처럼 게임을 해도 그만이다. 하지만 치사하고, 때로는 악랄하게 게임을 하는 현우의 모습을 모두 지켜본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십중팔구 2차 시험의 관문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지리라. 그리고 자칫 현우가 진행시키는 사업까지 들통 나 제재가 가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예 말끔하게 포기해 버리고 사업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고 판단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절대 사업만은 포기할 수 없어.’ 물론 시험을 포기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시험을 포기하면 당연히 유니트도 반납해야 한다. 조만간 각종 아이템이 정리되면 수천 마 원가량이 들어오겠지만, 전세방 잔금을 치러야 하니 유니트를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당분간 게임방을 이용하면서 죽어라 돈을 모아 사는 수밖에.......’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나 호명환은 현우보다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호명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호명환은 허둥지둥 카페를 나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울린 뒤, 이내 기획실 팀장 하명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갔던 일은 잘 해결됐나?" “아, 아니요. 그것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아크가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뭐,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결론이 나오는 건데?” “아무래도 게임 플레이 전체를 우리가 모니터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는 거야? 제대로 설명은 한거야? 우리는 모니터만 할 뿐이고,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혹시 뭔가 기분 나쁘게 말한 거 아냐?” “아니, 제대로 설명했습니다.” 호명환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사실 호명환은 마치 은혜라도 베푸는 양 말했지만, 현우의 플레이를 모니터하는 것은 기획부로서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었다. 기획부에서 동영상을 보고 의논한 결과, 현재 이번 시험의 목적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현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응시지든 아니든, 기획로서는 돈을 싸 짊어지고 와서라도 현우를 포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기획부는 몇몇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유저를 찾아내 응시자로 편입시키거나, 지원금을 주며 모니터를 하고 있었다. 마스터 코드를 찾아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었다. 사실 하명우는 이번에도 상당한 지원금을 약속하고 현우를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명환 덕분에 현우가 응시자임이 밝혀지자 태도를 바꿨다. “응시자라면 굳이 따로 돈을 줄 필요는 없어. 적당히 핑계를 대고 모니터 허락을 받아.” 그렇게 해서 호명환이 현우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혹시 벌써 다른 쪽에서 접촉한 거 아냐?” 잠시 생각하던 하명우가 찜찜한 목소리로 물었다. 온라인 게임 시장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자본이 움직인다. 그리고 게임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보. 각종 게임 회사들은 이 정보를 얻기 위해 유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게임 시장의 이면에서 치열한 정보전을 펼치고 있었다. 글로벌엑서스느 온라인 게임 업계의 30%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게임 회사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리고 근래 들어 글로벌엑서스가 뉴 월드의 시스템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얼마 전에는 그런 경쟁사들이 프로 게이머를 고용해 뉴 월드에 잠입시켰다는 정보까지 있었다. 이른바 스파이다. 때문에 글로벌엑서스의 기획부는 바짝 긴장했다. 만의 하나, 뉴 월드의 모든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는 마스터 코드가 경쟁사로 넘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런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마스터 코드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는 유저는 몽땅 포섭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우가 그런 경쟁사와 접촉했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아니,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더 말이 안 되잖아. 참견하지도 않겠다는데 대체 왜 포기하겠다는 거야?” “그, 글쎄요. 단순히 게임을 다른 사람이 감시하는 게 싫다고 합니다만.......” “젠장, 할 수 없지. 그럼 지원금을 늘려 주겠다고 해 봐. 100만원 더 주겠다고 해! 응시자가 아닌 유저를 포섭할 때도 그 정도는 주니까.” “하긴 그만두겠다는 이유도 명확한 게 아니니 그 정도면 넘어올 것도 같습니다.” 호명환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카페 안으로 돌아갔다. “방금 팀장님과 통화해 봤습니다. 하지만 역시 모니터는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곤란합니다. 대신 이러면 어떨까요? 현재 150만 원씩 지급되는 지원금을 250만 원으로 늘려 드리겠습니다. 이건 다른 응시자들에게는 없는 특혜입니다.” “하지만.......” 현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매달 250만 원, 8시간짜리 편의점 아르바이트 한 달 급료와 맞먹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게임에서 자유롭게 돈벌이를 못 하는 것과 맞바꿀 수는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건 당장 돈 몇 푼이 문제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현우의 되지도 않는 핑계에 자신만만하던 호명환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호명환이 다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걸자 하명우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그래도 포기하겠다고 한다고?” “네, 그게...... 자기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지금 장난하나?” “아니, 아크 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그 자식, 미친 거 아냐? 누가 수갑이라도 채워 놓는데? 그냥 모니터만 하자는데 무슨 자유로운 영혼을 찾고 지랄이야?” “어떻게 하죠?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겁니까?”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네가 자신만만하게 설득할 수 있다고 해서 이미 위에 보고까지 올렸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거절하는 걸 보면 분명 뭔가 다른 게 있어.” “다른 거요?” “그 너구리 같은 자식. 어쩌면 이미 경쟁사와 접촉했을지도 몰라. 그쪽에서 뭔가 나름대로 조건을 제시했겠지. 분명 그 조건을 저울질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온다면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말이겠지.” “설마.......?” “그래, 마스터 코드에 대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 경쟁사가 원하는 ‘뭔가’에 대한 단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설사 경쟁사와 접촉하지 않았더라도 그놈이 시험을 포기하고 마스터 코드를 찾아내면 문제가 심각해져.” 핸드폰으로 하명우가 이를 갈아붙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놈이 조건을 저울질하고 있다면 할 수 없지. 경쟁사는 아직 우리가 마스터 코드를 찾고 있다는 것까지는 몰라. 그냥 의심이 가니 여기저기 찔러보는 거겠지. 그런 상황에서 정체도 모르는 일에 300만 원 이상 제시하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 우리는 지원금을 100만 원 더 올린다. 그리고 시험 성적에 300점을 가산해 준다고 해. 300점이 가산되면 현재 응시자들 가운데 톱이라는 말도 붙이고.” “이번 시험에 따로 점수가 붙습니까?” “너 바보냐? 그냥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 그래도 포기하겠다면 지금까지 지급한 지원금을 몽땅 회수한다고 협박해!” “하지만 계약서에 그런 조항은.......” “시끄러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모니터 허락을 받아 오란 말이야! 못 하면 모가지다!” “아, 알겠습니다.” 호명환은 식은땀을 닦아 내고 카페로 들어갔다. 이제 현우에게 허락을 받아 내지 못하면 자신의 목이 위험해질 상황이다. 호명환은 조금 전까지 으스대던 태도를 180도로 바꿔 절절매면서 하명우의 말을 옮겼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현우는 호명환의 태도에 오히려 당황했다. 이번 스탄달 사건으로 글로벌엑서스가 요구하는 어떤 조건을 충족시킨 것 같다. 그러나 단지 그뿐 아닌가? 딱히 어떤 실무능력을 증명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매달 350만 원에 추가 점수라.......’ 상황이 이쯤 되자 현우도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지원금보다 뉴 월드에서 시작한 사업의 안전을 지키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혹시 계속 버티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하지 않을까?’ 현우가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호명환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게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입니다.” ‘음,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지원금을 더 올려 주지는 않을 것 같군.’ 그렇다면 역시 거절할 수밖에 없다.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젓자 호명환은 울 듯한 표정으로 매달렸다. “제발 부탁입니다.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만 역시 강제적으로 모든 플레이를 감시당하는 건 좀...... 이번에 올린 동영상처럼 제가 필요한 부분을 찍어 보내 드리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네?” 호명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러면 되는 거였습니까?” “그러면 되는 거냐니요?” “저희는 응시자들이 어떻게 시나리오를 풀어 가는지 정보를 모으려는 겁니다. 모니터라고 말씀드렸지만 1,000명이나 되는 응시자의 플레이를 24시간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정보는 응시자가 어디서 어떤 퀘스트를 하는지, 그 퀘스트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입니다. 현재까지의 리포트로는 그런 것들을 충분히 숙지할 수 없기에 영상이 필요한 거고요. 그런 주요 장면을 제외한 부분은 당연히 필요 없죠.” 현우와 호명환은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막상 그렇게 풀어 보니 문제 될 게 없지 않은가? ‘뭐야?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거 아냐?’ 현우는 내심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해한 덕에 지원금을 200만 원이나 더 받고 300점의 추가 점수까지 얻었다. 현우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오해해서 거절해 왔다는 걸 알게 되면 모처럼 얻어 낸 조건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휴, 할 수 없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겠군요.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제가 동영상을 찍어 보내도 된다는 조건이면 허락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호명환은 절이라도 할 듯이 현우의 손을 잡고 흔들어 댔다. 어째 응시자와 감독관의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았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호명환은 곧바로 간이 계약서를 작성했다. “저희가 24시간 모니터를 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유저를 만날 때는 상관없지만 퀘스트를 받거나, 완료하는 장면은 꼭 촬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촬영된 동영상은 따로 편집해서는 안 됩니다.” 그거라면 문제 될 게 없었다. 현우가 숨기고 싶은 것은 스탄달이나 시르바나의 교역소에 관련된 정보뿐, 그 외의 것은 숨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글로벌엑서스는 마스터 코드가 퀘스트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응시자들의 퀘스트를 모두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또한 중간에 편집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은, 혹시나 현우가 퀘스트 도중에 마스터 코드에 관련된 정보를 얻고도 숨기려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이렇게 현우가 숨기고 싶은 부분과, 글로벌엑서스가 보고 싶은 부분이 다르니 처음부터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하던 현우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런데 아까 동영상이 홍보용 자료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하셨죠?” “네, 간혹 TV에서 자료를 요청하거나, 게임 동영상을 광고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 물론 그럴 때는 따로 연락을 드리고, 많지는 않지만 소정의 출연료도 지급될 겁니다. 게임 캐릭터에도 초상권이 있는 시대니까요.” “그건 상관이 없는데...... 가능하면 실명이나 캐릭터 아이디는 공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능하면 얼굴도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무슨 사정이라도 있으십니까?” 호명환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저는 자유롭게 게임을 하고 싶습니다. 유저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지면 그만큼 게임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을 위해 그런 조항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실제로 홍보 자료로 사용되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요. 혹시 그럴 상황이 생기면 미리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현우 덕분에 한번 진땀을 뺀 호명환은 매우 협조적이었다. 호명환이 싹싹한 태도를 보이자 현우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역시 붉은 남자는 이번 시험과 연관이 있는 캐릭터죠?” 방금 전까지 시험을 포기하려고까지 생각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해 온 플레이에 방해받지만 않는다면, 입사 시험까지 합격해서 꿩 먹고 알 먹는 게 가장 좋은 해피 엔딩이다. 때문에 모처럼 제작사 직원이 싹싹하게 나올 때 평소 의문을 가지고 있던 정보를 알아낼 작정이었다. “네? 붉은 남자요?” 호명환이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현우가 스탄달에서 붉은 남자를 만난 것은 두 번. 그러나 절망의 암연에서 마주쳤을 때는 거리가 너무 멀어 제대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고, 붉은 남자가 하만 요새를 습격했을 때는 모래 폭풍이 일어나 북실이가 제대로 촬영을 하지 못했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붉은 남자는 북실이의 동영상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당연히 호명환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저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어요. 시험과 연관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면 지저 세계나, 스탄달을 넘나들며 음모를 꾸밀 리가 없잖아요.” “자세히 말해 주시겠습니까?” 현우의 말에 호명환은 움찔하며 귀를 바짝 세웠다.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현우는 붉은 남자가 시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막강한 실력과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려는 음모에 대해서....... “역시 시험 과제 중 하나겠죠?” “그건...... 아직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호명환은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 당혹스러운 표정에 현우는 확신이 들었다. 만약 붉은 남자가 시험과 관련이 없다면 굳이 이런 식으로 얼버무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사실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자신들이 뭘 찾아야 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현우의 말 덕분에 ‘붉은 남자’라는 단서를 찾은 것이다. ‘명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지만, 저렇게 당황해하는 걸 보면 붉은 남자는 시험과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해. 식은땀을 질질 흘리는 것이나 허둥대는 폼을 보니 좀 어수룩해 보이는 사람 같아.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붉은 남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이게 현우의 생각. ‘설마 뉴 월드에 그런 캐릭터가 돌아다니고 있을 줄이야. 어쩌면 아크 님 말대로 그가 우리가 찾는 ‘뭔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건 뜻하지 않았던 정보다! 아크 님을 잘 이용하면 그에 대해서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이게 호명환의 생각이었다. “이제 아크 님은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됐으니 자주 연락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아크 님의 게임 방식을 좋아합니다. 제작사 직원의 입장을 떠나 응원하고 있으니 이후로도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십시오.” 붉은 남자를 계속 추적해봐라. 제작사 직원의 입장이지만 언질 정도는 해 주겠다. 현우는 호명환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네, 어쩌면 같은 회사에서 일할지도 모르니 친하게 지내죠.” 현우와 호명환은 굳게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현우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후후후, 이게 대체 웬 횡재냐? 지원금이 350만 원으로 뻥튀기된 데다, 잘하면 제작사 직원에게 정보까지 얻을 수 있게 되다니...... 이제 입사 시험 합격도 꿈은 아니야.’ 간만의 외출이라 좀 피곤했지만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트에 올라탔다. 현우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은 그곳에 있었다. ACT 3 이슈람의 사건 기록부 “후후후,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어둠 속에서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짐승 가죽으로 만든 가죽 갑옷에 사람만 한 크기의 대검을 찬 거구의 전사였다. “뭘 혼자서 낄낄거리고 있는 거야? 말했지? 긴장 풀지마.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지금까지 고생한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거야.” “쳇,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전사가 투덜거리며 옆의 여자를 흘겨보았다. 하얀 사슬 갑옷에 장창처럼 생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여자였다. 이들은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저였다. “하지만 내가 흥분하지 않게 됐냐? 벌써 이놈의 던전에 들어온 지 열흘째라고.” “하긴 햇빛 본 지가 좀 오래되기는 했지. 덕분에 피부는 좀 하얗게 된 것 같지만.......” 레디안이 옷깃 사이로 드러난 뽀얀 피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브레드가 힐끔거리며 히죽거렸다. “후후후, 정말 그런 것 같은데? 왠지 더 섹시해 보이잖아.” “뭘 힐끔거리는 거야?” “뭐 어때?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까불래?” 레디안이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브레드가 한 걸음 물러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둬, 그놈의 지팡이 맛은 지겹게 봤다고.” “그러면서 왜 매번 맞을 짓을 하냐? 뇌가 없어? 학습이 뭔지 몰라?”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래. 대체 무슨 던전이 이렇게 시시한지 모르겠네. 이렇게 엄청난 던전에 그 흔한 오우거 한 마리 없다니. 있는 거라고는 시시한 드라칸이나 포식자뿐이잖아. 그것도 고작 서너 마리. 그 정도는 졸립다고.” “하여간 누가 바바리안 아니랄까 봐....... 드라칸이나 포식자 서너 마리가 시시하다고 할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시시한 건 시시한 거야. 아, 젠장 좀 더 강한 녀석 없나?” “정신 사납게 징징거릴 시간 있으면 너도 비문이나 찾아봐.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다행히 거의 마지막 관문까지 온 것 같기는 하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브레드가 툴툴거리며 근처의 석상을 뒤지기 시작했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들어와 있는 곳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미로가 펼쳐진 지하 석실이었다. 두 사람이 이 던전에 들어온 것은 열흘 전, 그러나 던전을 찾아내기까지 걸린 시간을 합하면 몇 배가 넘게 걸렸다. 그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은 두 달 전, 브레드가 대륙의 고레벨 지역에서 우연히 만난 칼롭스라는 필드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얻은 한 장의 문서 때문이었다. 문서를 집어 들자 퀘스트가 발동했다. 아슈벨의 메모 전설적인 모험자로 알려진 아슈벨의 여행 일지 중 일부입니다. 내용이 모두 암호로 되어 있어 해석하려면 ‘상급 고문서 해독’이 필요합니다. <<난이도 : C>> “엇, 아슈벨의 메모?” 브레드는 모험자 길드에서 아슈벨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전설적인 모험자로 길드 앞에 그의 동상까지 세워져 있을 정도였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브레드는 평소 알고 지내는 레디안을 찾아가 문서 해독을 부탁했다. 그리고 곧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건...... 엄청난데? 너, 엄청난 물건을 주운거야!” 레디안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모험자 길드의 동상에 적힌 아슈벨에 대한 설명 봤지? 그는 평생을 걸쳐 각지를 여행하면서 신비한 무구를 모으다가 나이가 들자 모든 컬렉션을 모두 길드에 기증하고 모습을 감췄다고 적혀 있지. 하지만 이 문서를 보면 아슈벨이 모든 아이템을 길드에 기증한 게 아니래. 아슈벨은 컬렉션 가운데 최고의 아이템을 골라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숨겨 놨다는 거야. 그리고 그 장소에 대한 힌트를 각지에 흩어 놨대.” 브레드가 찾아낸 문서는 바로 그 단서의 일부였다. 뼛속까지 모험자인 아슈벨은 말년이 되자 보물을 찾는 것만이 아니라, 이제 보물을 숨기고 싶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보물을 숨겨 놓고 새로운 모험자들에게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전설적인 모험자 아슈벨의 컬렉션 중 가장 좋은 거라면......?” “최상품, 레전드급 아이템이 분명해.” 레디안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도 끼워 줄 거지?” “나하고 정식으로 사귄다면 생각해보지.” “까불지 마. 솔직히 너도 내 도움 없이는 보물은 못 찾을걸. 아슈벨이 여기저기에 단서를 숨겨 놨다면 퍼즐도 보통 난이도가 아닐 거야. 몬스터라면 아무리 강한 놈이라도 문제없겠지만 퍼즐은 네 돌머리로 무리지. 실제로 너는 이 문서조차 해독을 못하잖아.” “쳇, 알았어. 하지만 7 대 3이다.” “6 대 4. 그 이하로는 안 돼. 나만큼 유능한 마법사는 찾기 힘들다고. 거절하면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닌다? 경쟁자가 많아져서 좋을 건 없잖아. 안 그래?” “끙...... 사악한 것, 좋아. 대신 비밀 엄수다. 알았지?” “호호호, 넌 돌머리지만 말이 통해서 좋아.” “이용해 먹기 편하다는 말로 들리는데?” “네 머리도 돌아가기는 하는구나. 맷돌과 같은 구조로 돌아가는 건가?” “뭐야!” 그렇게 해서 이 바바리안과 마법사는 본격적으로 보물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역시랄까? 전설적인 모험자의 보물을 찾는 여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아슈벨이 흩어놓은 단서는 하나를 찾으면 다음 단서의 위치에 대한 힌트가 적혀 있었는데, 그 위치들이 하나같이 어이없는 곳이었다. 와이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둥지의 깊은 곳, 눈빛만으로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메듀사의 신전, 공포스러운 리치의 레어. 평범한 유저라면 감히 근처에도 가지 못할 고레벨 지역이었다.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에서 상새할 자가 없다는 브레드와 레디안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모른다. 게다가 단서를 하나씩 찾을 때마다 퀘스트 난이도도 올라가 이제 난이도 +A가 되었다. 그러나 난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둘은 의욕이 넘쳤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퀘스트일수록 보상이 빵빵하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한 달 보름. 둘은 드디어 모든 단서를 모아 아슈벨의 보물이 숨겨진 던전을 찾아냈다. “여기인가? 아슈벨 자식이 보물을 숨겨 둔 곳이?” 브레드가 거대한 유적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말년에 노망이 나서 보물을 숨겨 두고 이렇게 뺑뺑이를 돌렸으니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고생은 뒤이어 겪은 황당한 고생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뭐야? 주변에 아무것도 없잖아. 몬스터도 없고. 정말 여기가 맞아?” “잠깐, 이전에 얻은 문서에 여기 어딘가에 최후의 단서가 있다고 적혀 있었어. 세 명의 신이 마주 보는 장소...... 아, 저기 신상이 있다. 그럼 신상의 시선이 모이는 곳이라는 말인데...... 찾았다. 이게 분명해. ‘고문서 해독’!” 레디안이 유적 구석에서 고대 문자를 발견하고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문자가 푸르스름하게 빛나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나는 이름 없는 모험자다. 이 유적 지하의 비밀 던전에 내가 평생을 걸쳐 찾아낸 보물을 숨겨 두었다. 용기 있는 자, 원한다면 나를 찾아와 보물을 손에 넣어라. 그러나 알아둬라. 이 던전에는 평생 보물을 찾아온 나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함정을 만들어 두었다. 그렇다. 이 던전은 내가 후세의 모험자들에게 보내는 도전장이다.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용기는 물론, 힘과 체력, 지식과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미리 말해 두지만 무작정 달려들어서는 평생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없다. 만약 던전에 내가 만들어 놓은 퍼즐 중 하나라도 잘못 건드린다면...... 던전은 모든 침입자를 밖으로 몰아내고 두 번의 보름달이 떠오를 때까지 봉쇄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던전이 열려도 모든 퍼즐의 위치와 해답이 바뀔 것이다. 자, 도전자여, 그래도 자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 보라! “이런 망할 놈의 늙은이 같으니.......” “이건 그냥 악취미잖아.” 메시지를 확인한 브레드와 레디안이 툴툴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불평해 봐야 아슈벨은 이미 오래전에 먼 길 가신 고인. 별수 없이 둘은 유적 지하에서 숨겨진 던전을 찾아내고 탐사를 시작했다. 유적 근처에는 아무런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지만, 던전에는 엄청난 고레벨 몬스터들이 득실거렸다. 그러나 둘을 괴롭힌 건 몬스터가 아니었다. 문제는 관문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해결해야 하는 퍼즐. 일반적인 던전에서 볼 수 있는 퍼즐과는 수준이 달랐다. “맙소사, 이번 관문은 5,000피스짜리 직소 퍼즐이잖아?” “헉, 이 벽의 점들은 다 뭐야? 이 점들을 움직여서 모든 별자리를 맞추라고?” “히익, 이번에는 주역에 나오는 산술식을 응용해서 풀어야 한다는데?” 머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레디안조차 퍼즐이 나올 때마다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물러설 수 없다. 브레드는 곳곳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를 썰어 댔고, 그사이에 레디안은 인터넷을 뒤지고, 전문 서적을 뒤지고, 머리를 쥐어짜며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동안 찾아온 단서들에 각 관문마다 퍼즐을 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이 뭔지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그조차 없었다면 어떤 식으로 퍼즐을 풀어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으리라. “휴, 정말 엄청나군. 이렇게 수준 높은 퍼즐을 한 번만 잘못 풀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니....... 게다가 보름달이 두 번 뜰 동안이라면 한 달. 달의 주기는 현실과 같으니 실제로 한 달이야. 한 번만 실패해도 그동안 아예 던전이 닫혀 버린다니....... 여기까지 와서 실패한다면 정말 미쳐 버릴거야.” 레디안이 생각만 해도 겁난다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힘내라고.” “쳇! 너는 좋겠다. 무식하게 검만 휘둘러 대면 되니까. 아, 여기 있다. 마지막 관문의 비문. 자, 어디 보자. 이번에는 좀 쉬운 퍼즐이면 좋겠는데...... 헉, 이, 이게 뭐야?” “왜 그래?” “이, 이번 퍼즐은 카발라로 되어 있어.” 레디안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무식한 브레드는 그게 무슨 음식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카발라? 캐러멜 비슷한 거냐?” “멍청아, 카발라는 고대 연금술사들의 암호문이야. 문자를 복잡하게...... 아니다. 내가 너한테 뭘 기대하겠냐? 젠장, 대체 이 던전은 어떤 놈이 설계한 거야? 게임 속에서 카발라 암호문을 해독하게 만들어 놓다니.......” 짜증을 내던 레디안이 문득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대학원 다니는 언니가 있는데 예전부터 카발라 암호에 관심이 많아. 어쩌면 이번에는 예전보다 빨리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아. 잠깐 기다려봐. 이거 적어 가서 알아보고 올게.” 레디안은 비문에 적힌 암호를 받아 적고 브레드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동안 얌전히 있어. 심심하다고 아무거나 만지면 안 돼. 만약 괜히 엉뚱한 거만져서 던전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가만 안 둔다.” “알았어. 내가 바보냐?” “바보보다 심각한 상태니까 하는 말이지.” 레디안이 툭 쏘아붙이고 접속을 끊었다. 그리고 대략 2시간이 지나 혀를 내두르며 다시 접속했다. “우와, 정말 질렸어.” “왜? 아직 못 풀었어?” “아니, 풀긴 풀었어. 대학교 때부터 카발라 암호를 연구하던 언니도 이걸 보더니 혀를 내두르더라고. 이렇게 복잡한건 처음이라고. 대체 어디서 이런 걸 찾았냐고 물어보던데?” “어쨌든 풀긴 풀었다는 말이지?” “그래, 이게 마지막 관문이니 드디어 우리가 해낸 거야.” “빨리, 빨리 문을 열어 봐!” 레디안의 자신에 찬 대답에 브레드가 강아지처럼 깡충거리며 닦달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처음 퀘스트를 받고 무려 두 달 만에 보물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의연했던 레디안도 짐짓 긴장된 표정이 되었다. “자, 시작한다.......” 레디안이 해독해 온 메모를 확인하며 비문의 퍼즐에 손을 가져갈 때였다. 쿠쿠쿠쿠쿠! 돌연 던전이 통째로 진동하더니 근처 석상들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뭐, 뭐아? 대체 무슨 일이야?” 브레드가 당혹성을 터뜨리는 찰나, 눈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퍼들 조작에 실패했습니다. <<던전의 모든 침입자를 추방하고 보름달이 두 번 떠오를 때까지 봉쇄됩니다.>> “헉, 시, 실패라고? 레디안! 어떻게 된 거야?” “아니, 나는 몰라. 아직 비문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레디안이 비명처럼 소리쳤을 때였다. 석상들의 눈동자가 더욱 강렬하게 빛나며 둘에게 쏘아졌다. 순간 둘은 아득한 기분과 함께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서서히 밝아지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브레드의 눈에 절망의 빛이 떠올랐다. “바...... 밖이다. 정말 던전에서 추방됐어.” “두 달...... 두 달간의 노력이.......” 레디안도 멍청한 표정으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둘이 완전히 넋이 나가 있을 때였다. “진정들 하세요. 자, 놀라지들 마시고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인원 점검하겠습니다.” ‘어라? 사람 목소리?’ 브레드가 움찔하며 몸을 일으켜 목소리를 따라갔다. 던전이 위치한 유적 안, 그곳에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들고 있었다. 브레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웬 퍼렇게 생긴 NPC가 다가왔다. “어라? 출발할 때는 못 본 분인 것 같은데? 관광객인가요?” “관광객?” 브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NPC가 붙임성 좋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직접 이곳에 찾아온 분인 모양이군요. 스탄달이 떠오르고 나서 요즘 대륙에서 이방인들이 많이 찾아오십니다. 저희는 그런 분들을 위해 하늘 가오리를 이용해 안전하게 스탄달의 명소를 관광시켜 드리는 일을 하고 있죠. 현지 접수도 받고 있는데, 한번 이용해 보시겠습니까?” 브레드는 잠시 NPC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은 스탄달, 이전까지 유계라고 불리던 곳이었다. 하나의 퍼즐만 잘못 만져도 초기화되어 버리는 위험천만한 던전, 만약 이런 던전이 대륙에 있었다면 브레드나 레디안이 대책을 마련해 놓지 않았을 리가 없다. 용병이라도 고용해서 다른 사람의 던전 진입을 막았으리라. 그러나 둘이 던전에 진입할 때까지만 해도 스탄달은 유계인 상태였다. 며칠을 돌아다녀도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던전 정복에 이렇게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브레드와 레디안은 별걱정 없이 던전에 진입한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에 스탄달이 떠오른 것도 모자라 유적에 관광객이 몰려오다니....... “그럼 방금 전에 진정하라고 말한 건......?” “아아, 그거 말입니까? 실은 관광객 중 한 분이 근처에서 던전 비슷한 곳을 찾았답니다. 그리고 뭔가 건드렸다는데...... 갑자기 붉은 빛이 나타나더니 밖으로 밀려났지 뭡니까? 하하하,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번에 사고사 있었지만 저희가 안내해 드리는 관광지는 모두 안전이 보장된 곳입니다.” “으으으으!” NPC의 설명에 브레드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둔하기 짝이 없는 브레드라도 이쯤에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이놈들이다. 두 달이나 걸려 간신히 던전의 마지막 관문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그 퍼즐도 풀고 드디어 보물을 손에 넣으려는 순간에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 버린 놈들은, 다름 아닌 이 망할 NPC와 관광객들이다. “으아아아, 다 죽여 버리겠어!” 브레드가 괴성을 지르며 대검을 뽑아 들었다. 돌머리지만, 전투력만큼은 브리스타니아 최고라고 자부하는 브레드! “헉,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으아아악!” “앗, 저 사람 뭐야?” “가이드를 죽였다!” “헉, 우리를 봤다. 설마 우리까지 죽일 생각인가?” “젠장, 미친놈이잖아? 스탄달에까지 PK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우리는 열 명이 넘어. 고작 미친놈 하나쯤은.......” 브레드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대자 관광객들도 검을 뽑아 들었다. 관광객이라도 스탄달까지 넘어올 정도라 최서 레벨 150, 개중에는 250대의 레벨을 가진 유저들도 있었다. 살짝 맛이 간 카오틱 하나 해결하는 건 일도 아니다. 관광객 일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커헉, 뭐, 뭐야! 이 무지막지한 데미지는?” “이, 이 자식...... 대체 레벨이 몇이야? 검이 제대로 박히지도 않잖아?” “물리 방어력이 엄청 높은 것 같아. 마법이다. 우리가 막고 있을 테니 마법으로 태워버려!” “아, 알았어.” 몇몇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려 할 때였다. “오호호호, 빌어먹을! 깔깔깔깔, 젠장! 네놈들이지?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감히 그따위 짓을 해 놓고 뭐라고? 우리를 태워 버리겠다고? 어디 한번 화염 마법이 누가 더 강한지 해 보자, 망할 자식들아! 초고속 영창! 불타는 지옥의...... 이하 생략, 볼케이노!” 브레드 뒤에서 레디안이 실성한 사람처럼 소리치면 엄청난 속도로 주문을 외웠다. 동시에 지면이 쩍 갈라지면 시뻘건 용암이 솟구쳐 관광객들을 삼켜 버렸다. 무지막지한 데미지! 7서클 화염 마법의 위력이었다. “헉, 괴, 괴물이다! 마녀와 괴물이다!” 순식간에 생명력이 바닥난 관광객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브레드와 레디안의 공격에 하나 둘 쓰러져 결국 몇 분 만에 전멸하고 말았다. “헉헉헉, 젠장! 이걸로는 분이 안 풀려.” 브레드가 씩씩대며 검으로 시체를 토막 내며 중얼거렸다. 레디안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감히 잠자는 마녀의 코털을 건드렸겠다?” “어라? 너 코털도 있었냐?” “닥쳐, 이 돌탱이야! 지금 내가 농담할 기분처럼 보이냐? 그 눈깔 용암으로 씻어 줘?” “아니, 됐어 용암 없어도 충분히 열 받았으니까.” “젠장.......” 레디안이 잔뜩 독이 오른 표정으로 입술을 씹어 댔다. “두고봐. 여기로 놈들을 끌어들인 관광업체인가 뭔가부터 박살 내 버리겠어. 아니, 그거로도 분이 안 풀려. 맞아, 유계가 떠올랐다면 분명 떠올린 놈이 있겠지? 그래, 그놈이 모든 일의 원흉이야. 그놈도 찾아내 박살을 내 놓겠어.” “어? 관광업체야 그렇다 쳐도 유계를 떠올린 사람은 관련 없지 앟나?”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리자 레디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뭐야? 그럼 너는 이런 꼴을 당하고도 그냥 넘어가겠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잔소리 말고 따라와.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던전에서 쫓겨난 것도, 카오틱이 되어 버린 것도 모두 그놈 탓이야. 어차피 카오틱이 된 거...... 그놈을 찾아내서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복수해 주고 말겠어! 오호호호, 브리스타니아의 백색마녀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가르쳐주지.” ‘아아, 레디안이 저 상태가 되면 아무도 못 말리지.’ 브레드는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 상관없겠지. 나도 어딘가에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까. 그리고 기왕 풀 스트레스라면 강한 놈이 좋겠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유계를 뛰울 정도니까 꽤나 강하겠지. 후후후, 좋아, 당분간 레디안과 함께 놀아 주기로 할까?’ 쏴아아아, 끼룩, 끼룩.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는 해안의 작은 도시. 슈덴베르크 동부 해안에 위치한 항구 루벤트였다. 이곳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항구였지만 근래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동부 해상에 최근 화제가 집중되고 있는 스탄달이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루벤트가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항구였다. 자연히 스탄달로 향하는 수많은 유저와 NPC가 몰려들어 작은 항구 도시 루벤트는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곧 스탄달로 향하는 정기선이 출항 준비를 끝마칠 겁니다. 스탄달로 향하는 여행자들은 미리 표를 끊고 부두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오늘은 이 정기선이 마지막입니다.” 정기선 관리NPC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정기선이 한 번에 태울 수 있은 인원은 200명, 늦으면 다음 정기선이 출발하는 아침까지 4시간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NPC의 목소리에 근처에서 기다리던 유저들이 으르르 몰려들었다. 그사이에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체구의 상인이 있었다. “젠장, 멀기는 더럽게 머네.” 상인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앞쪽에 있는 몇몇 유저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상인의 이름은 이슈람, 경찰청 제1 기동대장 이명룡의 분신이었다. 그리고 이슈람이 노려보는 유저들은 현재 그가 속한 파티의 멤버들이었다. 이슈람이 이들과 파티를 맺고 루벤트 항까지 오게 된 사연은 이렇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슈람이 기란에 도착한 이후. 이슈람은 한동안 이를 갈아붙이며 기란을 뒤지고 다녔다. 몬스터 밥이 되려던 것을 구해줬더니 뒤통수를 치고 도망간 시드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드는 사기를 치자마자 기란을 떠난 상태, 결국 이슈람은 허탈한 심정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으드득, 두고 보자. 다음에 눈에 띄기만 하면 박살을 내놓을 테다!” 그러나 이슈람은 아직 뉴 월드가 어떤 곳인지 모르고 있었다. 전임자의 캐릭터를 물려받은 이슈람은 그때까지 산골 마을에서 헤맸다. 그리고 처음 도착한 도시가 바로 기란이다. 상인들의 도시. 아니, 상인들의 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조금이라도 어수룩하게 보이면 주저 없이 사기를 치는 상인들의 도시인 것이다. 레벨은 놓아도 갓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슈람은 그들에게 좋은 먹이였다.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다가오는 상인들은 하나같이 사기꾼이었다. 물론 이슈람이 좀 무식한 면이 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또한 명색이 경찰이다 보니 이런저런 범지자를 많이 다뤄 봐서 여러 사기 수법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는 현실에 맞는 사기 수법이 있었고, 뉴 월드에는 뉴 월드에 맞는 사기 수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각종 스킬과 시스템을 이용한 사기 수법! 스킬과 시스템은 물론 아이템 시세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슈람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게 사면서 손해 보고, 팔면서 손해보고, 속상해서 술 마시느라 손해 보고....... 전임자 덕분에 시작할 때부터 부족함이 없이 살아왔던 이슈람도 결국 보름 만에 개털이 되었다. 이슈람은 그제야 위기감이 느껴졌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도 밥도 안 되겠다.” 물론 이슈람이 아무 생각 없이 기란에서 버티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이슈람이 게임을 하는 목적은 경찰청 리스트에 올라 있는 용의자의 정보를 찾아내기 위한 것. 그러나 기란에서 사는 동안 이슈람은 무작정 주먹구구식으로 찾아다닌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에서는 현실의 방법이, 게임에서는 게임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역시 무술이든 게임이든 기본이 가장 중요해.” 레벨 1의 초보 마을부터 시작했다면 자연스럽게 익혔을 각종 스킬과 시스템 정보들. 이슈람은 레벨 150부터 시작해서 이런 기초정보가 부족했고, 또 처음부터 돈도 많아서 돈을 제대로 쓰는 방법도 몰랐다. 결국 이슈람은 뉴 월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런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익혀 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이슈람은 낮에는 기란 주면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저녁이 되면 길드나 주점을 찾아 각종 스킬이나 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익혀 나갔다. 그야말로 주경야독. 덕분에 한 달가량 지난 뒤에야 이슈람은 초보티를 벗을 수 있었다. ‘후후후, 뭐야, 하면 되잖아. 별것도 아니네.“ 그때부터 다시 주점을 들락거리며 적응 훈련을 시작했다. 사실 이전에 이슈람이 주점을 자주 들락거린 것은 술을 마시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탐문 수사를 위해서라는 명목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었던 것은 이슈람과 다른 유저들은 아예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아, 정말 그 힐러 완전 발컨(발로 컨트롤하는 것처럼 못한다)이야. 다구리 당해서 튀튀(전원 도망치기)하는 판에 몹한테 피뻥(최대 생명력 상승 스킬)을 날리더라니까. 열 받아서 적진 한 가운데에서 강퇴(강제 추방)시켜 버렸지. 바로 다이(사망)하더라고.” 처음에 이슈람은 그게 중국어나 일본어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노력한 보람이 있어 이제 유저들의 잡담에 섞여 나오는 게임 전문 용어도 알아듣게 되고, 어떤 일이 벌어지면 어떤 시스템이나 스킬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자 이슈람도 슬슬 자신이 붙었다. 그러나 원래 아무것도 모를 때보다 어중간하게 알 때가 더 위험한 법. “어이, 자네, 이 주점에 자주 들르던데...... 상인이지? 마침 내가 제법 돈이 될 만한 장사를 시작하려는데 말이야. 아쉽게도 자본금이 약간 부족하거든. 어떤가? 생각 있으면 투자 한번 해 볼 생각 없나? 딱 사흘 만에 30%의 수익을 약속하지.” 주점에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데, 한 상인이 다가와 말했다. 물론 이슈람도 예전처럼 어수룩하지 않아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별로 생각 없습니다.” “어허, 그러지 말고 좀 들어 봐. 자네도 상인이니 어차피 거래를 해야 먹고살 것 아닌가? 아니면 혹시 나를 못 믿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거 보게 . 이건 상인 길드와 공식적으로 체결한 계약서네. 내가 거래를 끝내면 상인 길드에서 수익금을 지급해 줄 걸세. 그리고 만의 하나, 내가 실수해서 파산한다고 해도 자네가 투자한 자본금은 상인 길드에서 보장해 준다네. 그래도 못 믿겠나?” 상인은 계약서까지 보여 주며 끈질기게 권유했고, 이슈람도 그동안 배운 지식을 동원해 이것저것 확인해 보니 딱히 의심 가는 부분이 없었다. ‘흠, 계약서도 제대로 쓰여 있고, 거래 품목도 문제없어. 30%의 수익이라면 며칠 동안 앵벌이를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한 푼이 아쉬운 나에게는 적은 돈이 아니야.’ 결국 이슈람은 전 재산 200골드를 몽땅 털어 상인과 계약했다. 그리고 며칠 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슈람이 투자한 자본금 200골드. 305의 수익금을 붙여 준다고 했으니 260골드가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상인 길드에서 이슈람에게 지급된 돈은 고작 26골드였다. 이슈람은 곧바로 상인을 찾아가 따졌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다니? 뭐가 말인가?” 상인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계약서대로 돈을 지급했네. 못 믿겠다면 다시 확인해 보게.” “계약서대로 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 계약서를 꺼내 훑어보던 이슈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계약서는 분명 예전에 확인한 것과 똑같았다. 그러나 단 하나, 이슈람의 투자금 항목에 ‘0’이 하나 빠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슈람이 투자한 돈은 실제로 200골드였지만 20골드로 적용된 것이다. 그제야 이슈람은 또다시 사기 당했음을 깨달았다. 계약할 때 상인이 몇 번이나 계약서를 보여 줬다. 그러나 정작 계약할 때는 자세히 확인하지 않았던 게 실수였다. 상인이 이슈람을 설득할 떄 보여 준 계약서와 실제 거래할 때 준 계약서가 달랐던 것이다. 가장 흔해 빠진 사기, 일명 계약서 바꿔치기다. 이슈람이 넋 나간 표정으로 계약서를 보고 있자 상인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게. 상인에게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하는 거 아닌가?” “너, 이 자식...... 내가 물로 보이냐?” 그 말 한마디에 결국 이슈람이 폭발했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라면 이 정도 일은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200골드...... 그러나 이 200골드는 예전의 200골드와 무게가 전쳐 다르다. 전임자에게 처음 물려받았을 때는 골드의 가치를 잘 몰랐다. 때문에 수십 골드짜리 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마셨다. 그러나 한 번 개털이 되고 골드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로 문자 그대로 피땀 흘려 가며 앵벌이를 해서 간신히 200골드를 만들었다. ‘내가 한 달 동안 철야에 코피까지 쏟으며 번 돈을......!“ 이슈람이 멱살을 잡고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비록 게임에서는 빼빼 마른 상인이지만 실체는 조폭들조차 공포에 떨게 만드는 제1 기동대장! 일반인은 평생 겪어 보기 힘든 무지막지한 살기에 상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잠시 주변을 둘러본 상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이, 어이, 진정하라고. 여기는 도시 안이야. 설마 이런 곳에서 폭력을 휘두를 참이냐?” “그래, 폭력을 휘두를 참이다!” 이미 이슈람은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슈람은 상인을 잘근잘근 밟아 대기 시작했다. 주점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경비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빠진 상인이 비명을 질러 대며 도움을 요청했다. “으악, 저놈, 저놈...... 미쳤습니다. 살려 주세요!” “어이, 뭐하는 짓이냐? 그만두지 않으면 체포하겠다!” “시끄러워, 체포하려면 저놈을 요절낸 다음에 해!” 이슈람은 엄청난 속도로 경비병들의 어깨를 밟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마치 텀블링을 하듯이 회전하며 그대로 발뒤꿈치로 상인의 면상을 박살 내 버렸다. “크악!” 상인에 불과한 이슈람의 화려한 발차기에 경비병들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라며 창을 들이밀었다. “네놈, 살인죄로 체포한다!” “.....젠장!” 이슈람은 욕설을 내뱉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고뛰는 이슈람도 뉴 월드에서는 상인에 불과했다. 초인적이 반사 신경과 무술을 익히고 있었지만 게임 안에서는 동 레벨의 전사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하물며 기란의 경비병들을 상대로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명색이 경찰이라 경비병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슈람은 떡하니 팔짱을 끼며 소리쳤다. “복수는 끝났다. 마음대로 해!” 그렇게 체포된 이슈람은 징역 15일을 선고받았다. 수없이 사기를 당하고 결국 별까지 달게 된 이슈람은 완전히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슈람의 게임생은 감옥 안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참인가? 징역 몇 개월이야?” “......15일.” “풋내기구먼. 나는 들어온 지 열흘 됐는데 아직 20일이나 남았어.” “무슨 짓을 했는데?” “뭐, 뻔하잖아. PK이지. 건방지게 구는 놈이 있어서 몇 대 패줬더니 픽 죽어 버리더라고. 그래서 어차피 카오틱이 된 거, 두 달 정도 정신없이 죽이고 다녔더니 카오틱 수치가 좀 쌓인 모양이야. 후후후, 그래도 그동안 짭짤하게 벌어 뒀으니 손해날 건 없지. 어쨌든 앞으로 찬하게 지내자고. 열흘 동안 혼자여서 심심했거든.” 거구의 유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래 봬도 꽤 잘나가는 편이거든. 고레벨 친구들도 많고. 친해 둬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야. 아, 소개가 늦었군. 나는 가람이라고 한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이슈람의 눈이 번쩍 떠졌다. 이슈람은 지난 몇 달간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과가 게임 속에서 찾아야 할 용의자의 아이디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기억력이 나쁜 이슈람이 100여 개에 달하는 아이디를 줄줄 외울 정도였다. 가람은 그 명단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용의자를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이런 걸 엎어졌다가 돈 줍는다고 하는 건가? ‘그나저나 이 녀석도 정말 막장이군. 제 버릇 개 못 주는 건가? 현실에서 출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다시 살인미수로 경찰에 쫓기는 놈이 게임에 들어와서까지 사람을 죽이고 감방 생활을 하고 있다니. 뭐,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건 둘도 없는 기회다!’ 이슈람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감방이다. 앞으로 15일 동안은 좋든 싫든 얼굴을 봐야 하는 처지. 그때부터 이슈람은 가람과 친밀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감방 동기라는 것 때문인지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덕분에 형기가 끝나 갈 무렵에는 가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원하던 정보는 얻어 내지 못했다. 역시 도피 중인 범죄자라 개인 정보의 노출은 꺼리는 듯한 눈치였다. ‘너무 집요하게 캐물으면 의심받을지도 몰라. 일단 좀 더 가까워져서 자연스럽게 전화번호를 주고받을 상황을 기다려야 해. 아니면.......’ 현실에서 가람을 체포하려면 최소한 전화번호는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해져서 직접 털어놓게 만드는 것. 물론 특수범죄대책과 과장이 다른 방법도 알려 주었지만, 그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서둘러서는 안 돼. 가람은 현재 수배 중인 다른 용의자들과 같은 조직에 속해 있다. 가람에게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면 놈들이 더욱 경계하게 될 거야.’ 먼저 형기를 끝마치고 나온 이슈람은 앵벌이를 하며 번 돈으로 가람에게 사식을 넣어 주며 점수를 땄다. 그러던 어느 날, 가람이 또다시 감방을 찾아온 이슈람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왜 그렇게 꾀죄죄하냐? 어라, 피도 묻어 있는데?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사냥 좀 하고 오느라고.” “사냥? 상인이 무슨 사냥을?” 가람이 음식을 우물거리다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가만, 너......전에 감방 들어오기 전에 사기 당해서 땡전 한 푼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매번 어떻게 이렇게 호화로운 사식을...... 그럼 설마 너...... 이 사식을......!” “신경 쓰지 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이슈람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다. 사식은 이슈람이 사냥 앵벌이를 해서 번 돈으로 사 온 것이다. 비록 상인이라도 이슈람은 기란 주변의 몬스터 정도는 장난삼아 잡을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감방을 찾아올 때는 일부러 몸에 흙과 피를 묻혔다. 너를 위해 이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광고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역시나 단순한 가람은 감동을 먹어 버렸다. “우우우, 현실에서도 이렇게까지 챙겨 준 사람은 없는데.......” “그런 소리 하지 마. 우리는 감방 동기잖아.” “고맙다, 이 은헤는 꼭 갚을게. 내가 이래 봬도 의리 빼면 시체야.” “은혜는 무슨....... 그보다 좀 씁쓸하네.” “응? 뭐가?” “내가 사실 사교성이 없는 편이거든. 이 넓은 뉴 월드에 너 말고는 아는 사람도 없어. 그래도 지금은 이렇게 면회라도 오면 너하고 만날 수 있지만, 너도 이제 며칠 있으면 출감하잖아. 난 또 외톨이야. 게다가 운도 지지리 없어서 장사만 시작하면 매번 사기를 당하거나, PK를 만나서 털리기 일쑤고 말이야.” 이슈람이 불쌍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가람이 가슴을 탕탕 치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알겠지? 나는 의리 빼면 시체인 놈이야. 출감만 하면 앞으로 너는 내가 책임질게. 전에 얘기했지? 내가 예전부터 알고 재내는 동료들이 몇 명 있다고. 그 녀석들 중 몇 명이 이번에 새로 생긴 스탄달이라는 곳에 있는데, 벌이가 꽤나 짭짤하다고 하더라고. 감방을 나가면 그 녀석들하고 그곳에서 한몫 잡기로 했어. 너도 같이 가자.” “내가 껴도 될까? 난 상인인데?” “괜찮아. 인원이 많아지면 짐꾼도 필요하니까 녀석들도 싫다고는 안 할 거야. 그리고 내 마음의 친구라는데 감히 누가 뭐라고 하겠어? 어때, 생각 있어?” “나야 고맙지!” 그렇게 이슈람의 노력은 20일 만에 결실을 맺었다. 가람이 동료라고 말한 유저들은 역시 수배자들이었다. ‘잘만 하면 굴비처럼 줄줄 엮을 수 있겠군.’ 그리고 다시 며칠 후, 드디어 가람이 출감했다. 이슈람은 준비해 온 두부를 잔뜩 먹인 뒤 가람을 앞세워 용의자들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바로 루벤트항. 이곳에서 가람은 마중 나온 동료 두 명과 접선했다. 타커스와 러컨. 그들 역시 용의 선상에 올라 있는 수배자들이었다. “오랜만이다, 가람. 볼일 보러 잠시 나왔다가 시간이 맞을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런데 같이 온 사람은 누구야?” “내 마음의 친구다. 앞으로 같이 다니기로 했어.” “......믿을 수 있은 사람이냐?” “뭐야? 지금 내 마음의 친구를 의심하는 거냐?” 그동안 완전히 이슈람을 믿게 된 가람이 버럭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수배 신세라 조심성이 많아진 타커스와 러컨은 조금 탐탁지 않은 눈치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일단 출발하자. 제페트 형님이 기다리고 계셔. 다른 녀석들은 모두 합류했고, 이제 너만 도착하면 돼.” 그렇게 해서 이슈람은 수배자들과 동료가 되어 스탄달로 향하게 되었다. ‘후후후, 일이 술술 풀리는군. 이슈람의 게임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슈람이 히죽거리며 배에 오르고 있을 때였다. “우하하하, 비켜, 비켜! 이 몸이 일착이다!” 모처럼의 여행에 잔뜩 들뜬 가람이 황소처럼 범선을 향해 달려갔다. 정기선과 부두를 잇고 있는 것은 판자 하나뿐, 그곳에 200여 명의 유저들이 몰려 있으니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런 곳을 거구의 가람이 뛰어 들어가자 부두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터져 나왔지만 가람은 되려 눈알을 부라렸다. “뭐야? 이 몸이 일착으로 배에 타겠다는데 불만 있어? 불만 있으면 나와!” ‘저 녀석, 정말 개 버릇 남 못 주는군.’ 이슈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람과 동료가 된 건 좋은데, 이 녀석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정말 피곤했다. 현실에서도 제멋대로 살아온 녀석이라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시비를 걸곤 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람이 캐릭터를 현실보다 몇 배는 더 흉악하게 만들어 놔서 대부분의 유저들이 겁을 집어먹어 싸움까지 번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훗, 덤비지도 못할 것들이...... 어라? 뭐야, 저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으스대던 가람이 인상르 찡그렸다. 그 와중에도 한 사내가 가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배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자식이...... 야, 인마. 내 말 못 들었어? 내가 일착이라고 했잖아! 가람이 콧김을 뿜어내며 사내의 어깨를 와락 잡아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사내가 기우뚱거리다가 바다로 떨어져 버렸다. “크하하하, 꼴 좋다. 건방진 자식!” 가람이 배를 잡고 킬킬거렸다. “......뒈질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가람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바다에 떨어졌던 사내가 부두로 기어 올라와 가람을 쏘아 보고 있었다. ‘젠장! 가람 자식, 적당히 좀 하지. 귀찮게 됐군. 일이 커지기 전에 막아야겠다.’ 이슈람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슈람의 눈이 솥뚜껑만 하게 커진 것은 그때였다. ‘뭐, 뭐야? 저, 저 녀석...... 설마...... 헉, 맞다. 현우다!’ 가람을 쏘아보고 있는 사내는 다름 아닌 현우, 아크였다. ACT 4 스승과 제자 이슈람은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슬쩍 사람들 틈으로 훔쳐보니 역시 얼굴이 현우와 꼭 닮아 있었다. ‘저 얼굴은 틀림없이 현우야. 젠장,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아직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크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아크 때문에 좌천당한 사실도 숨기고 싶었고, 지금처럼 허접스러운 상인이라는 것도 들키기 싫었다. “지금 네가 지껄였냐?” 그때 , 가람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아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중얼거렸다. “귀가 먹은 거냐?” “뭐야?” 가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흠, 안면 근육 장애까지 있냐? 장애인이었군. 미리 말해줬으면 양보했을 거 아냐.” “자, 장애인? 너, 너, 너 이 자식 말 다했냐?” “더듬기까지? 이거 심각한데. 아, 내가 미안했다. 그렇게 심각한 상태인 줄 몰랐어.” 아크의 유들유들한 빈정거림에 이슈람은 혀를 내둘렀다. ‘저 녀석이 저렇게 잘 빈정대는 성격이었나?’ 이슈람이 봐 온 아크는 오히려 과묵한 편이었던 것이다. 아크도 게임 속에서는 인격이 변하는 건가? 어쨌든 상황이 꽤나 귀찮게 됐다. 사실 가람의 성격이 성격이다 보니, 루멘트 항까지 오는 길에도 이런 시비에 수없이 휘말렸다. 그리고 몇 번은 싸움 직전까지 갔었다. 그걸 온몸을 던져 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슈람이었다. 물론 가람이 예뻐서는 절대 아니었다. 현재 이슈람은 가람을 통해 용의자들을 엮어 놓으려는 잠입 수사 중. 만약 도중에 가람이 사람을 죽여 카오틱이 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가람이 죽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히 가람이 마음의 친구라고 부르는 만큼, 지금까지는 이슈람이 나서면 가람도 한 걸음 물러서 주었다. 그러나 상대가 아크라면 얘기가 다르다. ‘현우가 날 알아보고 이름이라도 부르는 날에는 잠입 수사고 뭐고 말짱 도루묵인데....... 그렇다고 그냥 지켜볼 수도 없고...... 젠장, 어쩌지?’ 이슈람은 도움을 요청하는 눈길로 타커스와 러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원래 인간이란 끼리끼리 모이는 법. 둘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그렇게 이슈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아크의 빈정거림에 분노 게이지가 만땅으로 올라간 가람이 주먹을 휘둘렀다. 전사인 가람은 칼날이 붙어 있는 너클 같은 무기인 세스타스를 사용했다. 주먹으로 사람을 팰 때의 짜릿한 느낌이 좋다나? 가람은 감방에서 그런 말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정도로 가람은 싸움에 익숙한 건달이었다. 이슈람이 기억하기로 가람은 폭력 전과를 몇 개나 달고 있었고, 이번에 수배된 죄목도 맨주먹으로 사람을 반신불수 상태까지 몰아놓아 살인미수였다. 역시나 그런 전력은 뉴 월드에서도 글대로 적용되었다. 그저 주먹질에 불과했지만 속도나 위세가 만만치 않았다. 빠각-! 주먹에 얻어맞은 아크의 턱이 팽이처럼 돌아갔다. 순간 이슈람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저, 저 자식이 뭐하는 거야? 고작 저따위 주먹에 얻어맞아? 내체 지금까지 뭘 배운 거야?’ 상황이 어찌 됐든 아크는 이슈람의 하나뿐인 제자다. 막상 눈앞에서 제자가 한낱 건달에게 얻어터지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가람의 주먹이 보통 이상이기는 했지만, 체육관에서 확인한 아크이 실력이라면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력이 되는데도 못 피한다. 결국 싸우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어 둔해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조폭들도 벌벌 떠는 이슈람의 애제자가 건달 따위에게 겁을 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그건 아직 이슈람이 뉴 월드라는 곳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때렸겠다?” 아크가 입가의 피를 쓱 문질러 닸으며 씨익 웃었다. 뉴 월드에서 선제공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공격을 시작해 상대를 죽이는 유저는 100% 카오틱이 돼 버린다. 그러나 먼저 공격을 받은 사람은 상대를 죽여도 카오틱이 되지 않는다. 아크가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맞아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역시나 아크를 공격한 가람의 이름이 회색으로 변했다. 이제 가람을 죽여도 정당방위가 성립되는 것이다. “때렸다, 어쩔래?” 가람이 다시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아크는 빠르게 스텝을 밟아 가며 주먹을 흘려 냈다. 뒤이어 안쪽으로 파고들며 몸을 빙글 돌려 눈 깜빡할 사이에 가람의 배후를 차지했다. 아크의 속사포 같은 발차기가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하단, 중단, 상단으로 이어지는 연속 돌려차기! “허억, 이, 이 자식이......!” 가람이 휘청거리다가 와락 아크를 부둥켜안았다. 그러나 아크는 전국 대회 동메달 리스트에게 떡이 되면서 레슬링을 배운 몸이다. 가람의 손이 어깨에 닿는다 싶은 순간, 번개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들어 메치기로 반격해 가람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옳지, 옳지, 잘한다. 과연 내 제자다. 그동안 놀지는 않았구나.’ 이슈람은 자신의 처지도 잊은 채 내심 박수를 보냈다. “크으으윽...... 좋다, 어디 한번 제대로 붙어 보자!” “제대로? 좋지.” 가람이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아크가 빙긋 웃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시퍼런 칼날을 보고서야 이슈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젠장! 헌우 녀석,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한 건 좋은데...... 여기까지 와서 가람이 죽어버리면 곤란하다고! 가람이 없으면 터머스나 러컨이 날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리가 없어. 하지만 현우에게 들키면 말짱 황이고.......’ 이슈람이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구경꾼 가운데 누군가의 방패에 비쩍 마른 몰골의 상인이 비쳐졌다. 이슈람은 한참 방패를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게 자신의 모습임을 깨달았다. 그렇다, 게임 속에서 거울을 볼 일이 없어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슈람은 실제 자신의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아크가 알아볼 리가 없었다. “그만, 그만해, 가람!” 거기까지 생각한 이슈람은 곧바로 둘 사이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이미 아크와 가람은 검과 주먹을 교환하던 중이었다. 그 사이에 갑자기 이슈람이 끼어들자 둘은 움찔하며 물러났지만, 공격을 멈추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헛, 갑지기 무슨......” “이슈람, 위험해!” 아크와 가람이 동시에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정말 당혹스러운 상황은 그 뒤에 벌어졌다. 이슈람은 한 손으로 가람의 주먹을 부드럽게 받아넘기며 동시에 발로 아크의 손목을 차올렸다. 아크와 가람이 공격을 멈추려고 했다지만, 상인이 전사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양쪽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낸 것이다. 사실 이슈람에게 그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공격력과 방어력은 전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기술면에서는 상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수인 것이다. 물론 이곳은 게임, 현실의 실력이 100% 적용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슈람은 얼마 전에는 ‘받아넘기기’ 라는 회피스킬을 익힌 상태였다. 다른 유저와 달리 고통을 100%느끼다 보니 최대한 ‘안 맞고 싸우는’ 기술을 연구한 결과였다. “괘, 괜찮으냐? 다친 데 없어?” 가람이 황급히 이슈람에게 달려왔다. “음, 난 괜찮아.” “대체 무슨 짓이야? 상인 주제에 싸움에 끼어들다니? 다행히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빗나갔지만 상인은 제대로 한 방만 맞아도 생명이 위험하다고. 날 마음의 친구를 죽인 놈으로 만들 셈이냐?” 가람은 이슈람이 공격을 모두 회피해 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하긴 평범한 건달이 그런 수준 높은 기술을 알아채는 건 무리였으리라. “미안하다, 어쨌든 이제 그만둬. 어이, 자네도 이제 그쯤 해 두지?” “저야 뭐.......” 아크는 잠시 묘한 눈길로 이슈람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가람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아무리 네가 말려도 안 돼. 저 자식, 으깨 놓고 말겠어!” “제발 부탁이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키면 동료도 못 만나잖아.” “하, 하지만 저 자식이......!” “싸울 건지 말 건지 빨리 좀 결정해 주겠어? 좀 바쁜데?” “봐, 봐! 너도 들었지? 자, 자식이 자꾸 엉겨 붙잖아!” 아크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리자 가람이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멈추시오!” 그때, 항구 경비병들이 인파를 헤치며 뛰어 들어왔다. “이곳은 루벤트 영주님이 관리하는 항구다. 소란을 피운다면 당장 체포한다.” “이런 젠장.......” 가람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제야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던 타커스와 러컨이 다가왔다. “가람, 여기까지다. 제페트 형님이 기다린다고 했잖아. 여기서 발이 묶이면 귀찮아져.” “......알았어.” 가람은 잠시 아크를 쏘아보다가 쿵쾅거리며 배에 올랐다. 경비병들이 바라보자 아크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그렇게 일단 상황이 정리됐다. 뒤이어 구경하던 유저들도 뒤따라 배에 올랐다. 모든 승객이 승선하자 선교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선장이 나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애송이들, 잘 들어라. 우리 뱃사람들은 육지에서의 싸움은 관여하지 안는다. 하지만 배 위에서 그따위 짓을 하면 꽁꽁 묶어 바다에 던져 머리겠다. 자, 출항한다. 진로를 잡아라!” “이야이야호!”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이 우렁차게 대답하며 출항 준비를 서둘렀다. 뒤이어 돛이 활짝 펴지며 스탄달을 향한 항해가 시작됐다. “쳇, 기분 더럽군. 경비병들이 조금만 늦게 왔어도 작살을 내는 건데.” 갑판에 자리를 잡고 앉은 가람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그러자 타커스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열 받을 필요 없어.” “보통 저렇게 싸가지 없게 구는 놈들은 다 초딩이야. 초딩한테 무시당했는데 너 같으면 열 안 받게 생겼냐? 으윽 생각하니까 또 열 받는다.” “그런 말이 아니야.” 타커스가 가람에게 다가가 적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저 녀석과 우리는 목적지가 같아. 무슨 말인지 알아? 루벤트 항에서 네가 그 자식을 죽였다면 경비병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배를 탈 수 없었을 거야. 하지만 일단 스탄달에 도착하면 얘기가 다르지.” “뭐? 그럼?” “후후후, 스탄달의 중심지인 하만 요새는 항구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 그리고 항구에는 경비병들은 있지만 숫자가 많지 않아.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셋이서 놈을 공격하면 경비병들이 오기 전에 작살낼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제페트 형님도 필드에 나가 있으니까 굳이 도시에 들어갈 필요도 없거든. 게다가 스탄달에 도착했을 때 죽이면 놈은 루벤트항에서 부활하겠지 그편이 더 열 받지 않겠냐?” “오오, 구거 좋은데?” 가람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헤벌쭉 웃었다. “그러니까 그동안 선실에 내려가서 포커나 하자. 복수는 좀 미뤄두고 말이야.” “그러지, 역시 너희들밖에 없다. 후후후, 기대되는데?” 가람과 타커스, 러컨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역시 현실에서 나쁜 놈은 게임 속에서도 나쁜 놈이었다. “이슈람, 너도 포커 한 게임 할래?” “아니, 나는 속이 좀 불편해. 갑판에서 바람이나 쬐고 있을게.” 이슈람은 그렇게 둘러대고 일행과 떨어져 갑판으로 향했다. 그러자 잠시 뒷모습을 바라보던 타커스가 약간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 녀석, 왠지 거동이 수상한데? 우리 계획을 아까 그놈에게 일러바치는 거 아냐?” “뭐하러 그런 짓을 하겠어?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이슈람은 내 마음의 친구야. 어떤 이유로든 이슈람을 의심하면 내가 가만있지 않겠어.” “......뭐, 정말 믿을 만한 놈인지 아닌지는 도착해 보면 알겠지, 가자.” 타커스가 의심한 대로, 이슈람은 그들이 선실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아크를 찾아갔다. 성격상 못 들었으면 몰라도, 듣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자 선수의 난간에서 바람을 맞고 있는 아크가 보였다. 이슈람이 천연덕스럽게 옆으로 다가가자 아크는 흘깃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음, 뭐라고 말을 붙인다?’ 잠시 고민하던 이슈람은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방금 전의 발차기, 꽤나 쓸 만하더라. 뭔가 무술이라도 배우는 거냐?” “태권도.” ‘어라? 말이 짧네.’ 현우의 얼굴을 달고 있는 아크가 반말로 지껄여 대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긴, 이 녀석은 나를 가람의 동료로만 알고 있겠지. 후후후, 그래, 나는 이 녀석을 알지만, 이 녀석은 나를 못 알아본다 이거지?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드는걸. 그래, 이런 상황에서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었지.’ “꽤나 오랫동안 수련한 것 같더군. 하지만 자세를 보아하니 한동안 수련을 그만뒀던 모양이지? 다시 시작한 건 1년 전후, 근래에는 스승에게 집중 훈련을 받았을 거고. 맞나?” “그, 그걸 어떻게?” 묵묵히 바다를 바라보언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나 정도 되면 슬쩍 자세만 봐도 알 수 있지.” “역시 방금 전에 끼어들었을 때 공격이 빗나간 게 아니라......?” “허어, 그걸 알아챈 건가?” 이슈람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약간 과장되기는 했지만,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이슈람은 가람 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때 실수하는 것처럼 기술을 펼쳤다. 어지간히 눈썰미가 좋은 사람의 아니었다면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솔직히 그걸 아크가 알아채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은 건 스킬의 영향이겠지만, 움직임 자체는 스킬과 무관해 보이던데? 무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뭔가 그럴듯한 포스를 풍기자 곧바로 말이 길어졌다. 이슈람은 짐짓 점잖을 떨어 대며 대답했다. “뭐,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하지.” “그런 사람이 왜 상인을 하는 거죠?” “전사는 원래 강하지 않은가? 진정한 무인이라면 자신을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어 놓고 육체와 정신을 다스리는 법. 나는 류와 케, 춘리, 장지에프 등등을 스승으로 모시며.......” 이슈람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다, 평소 무협지 광인 이슈람은 ‘은거기인’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듣던 아크는 류와 켄 얘기가 나오자 바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아크는 고전 격투 게임의 대명사, 스트리트 파이터를 알고 있는 모양이다. 덕분에 무안해진 이슈람은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험험, 뭐 어쨌든, 내가 보니까 자네는 아직 내딛는 발이 좀 약한 것 같더군. 본래 발차기는 차는 발보다 축이 되는 발이 더 중요한 법이네. 물론 지금도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힘차게 내디디면서 쭉 뻗어 주면 발차기가 한결 안정될 거네. 혹시 자네 스승도 평소 그렇게 말하지 않던가?” “어떻게 아셨어요?” “후후후, 고수끼리는 통하는 법이지.” 히죽거리며 대답하던 이슈람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제자를 보면 스승의 실력을 알 수 있지. 보아하니 훌륭한 스승을 보시고 있는 것 같군. 기술의 예리함이나 정확도가 보통 수준이 넘어. 그 정도 기술을 갈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말이야. 어떤 사람인가, 네 스승은?” “스승님.......” 아크는 문득 아련한 눈으로 수평선을 응시했다. 벌써 현실에서 아크를 못 만난 지 세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게임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아크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비록 게임 속이라도 현우와 같은 얼굴의 아크가 그리워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반장난삼아 물어봤던 이슈람도 뭔가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감동은 불과 1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제 스승님은 무자비한 사람이에요. 무턱대고 사람 두들기는 게 취미인 데다, 제자가 위액을 토하든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죠. 제가 처음 체육관에 나갔을 때부터 얼마나 피를 말려 대는지, 솔직히 아직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하, 하지만 그것도 다 제자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겠지. 안 그래?” “그야 그렇죠. 인간인 저를 초사이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 문제지만.” ‘이, 이 자식 평소 나를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야?’ 아크의 대답에 이슈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박살을 내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은 이슈람. 머릿속에서 빅뱅이 일어날 정도로 열 받아도 훗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뭔가 좋은 점이 있겠지? 잘 생각해 보게. 틀림없이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잖아.” “글쎄요?” 이슈람은 간신히 화를 참으며 달래듯이 물었지만 아크의 대답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두고 봐라, 나중에 체육관으로 불러내서 떡을 만들어 버릴 테다!’ “걸렸다! 오, 이거 월척인데?”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실 스탄달에 도착하기까지는 4시간이나 걸린다. 멋진 범선을 타고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곧 질려 버린 유저들은 대부분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병이 생선을 낚아 올리자 아크가 귀를 쫑긋 세우며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갔다. “와, 정말 멋진 흑돔이군요. 이거 제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즉석에서 회와 매운탕을 끓여 드릴게요. 원래 약간의 수고비를 받아야 하지만 첫 손님이니 공짜로 해 드리겠습니다.” “어? 정말이요?” 유저가 반색을 하며 큼직한 흑돔을 내밀었다. 낚시 스킬은 어지간한 유저라면 대부분 익히고 있는 공통 스킬이었다. 예전에 한 정보 사이트에서 달인 낚시꾼이 레어 장비품이나 대형 가방을 건져 올렸다는 루머 때문이었다. 반면 요리는 식재료를 구하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일반 요리 스킬로는 상점에서 파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요리밖에 만들 수 없었다. 때문에 낚시를 배운 유저는 많지만 정작 낚은 생선을 요리할 줄 아는 유저는 드물었다. 아크는 바로 이 틈새시장을 노리기 위해 갑판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는 해체용 칼을 꺼내 들고 능숙한 솜씨로 흑돔의 회를 뜨고 나머지로 매운탕을 끓였다. 모든 장사는 개시가 가장 중요하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재료에 온갖 솜씨를 부려 가며 요리를 만들자 이내 회와 매운탕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서바이벌 요리로 ‘최상의 흑돔 회’가 완성되었습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흑돔의 회입니다. 비교적 단순한 요리지만, 그만큼 요리사의 실력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리입니다. 숙련된 요리사의 솜씨덕분에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육질의 맛이 살아 있어 최상의 식감을 자랑합니다. <<체력+10, 만복도+15%>> <<일품요리 보너스 : 체력+3, 마나+200, 만복도+10%>> 서바이벌 요리로 ‘최상의 흑돔 매운탕’이 완성되었습니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흑돔에 갖은 재료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낸 요리입니다. 자칫 비린내가 심해질 수 있는 요리지만 숙련된 요리사의 솜씨 덕분에 맛이 깔끔합니다. <<힘+12, 만복도+20%>> <<일품요리 보너스 : 힘+%, 생명력+400, 만복도+15%>> “자, 드십시오.” “와,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아크가 순식간에 회와 매운탕을 만들어 내자 유저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오오오, 이, 이 맛은...... 놀라운 속도로 흑돔을 해체하면서도 살을 하나도 다치지 않게 회를 떠내다니! 흑돔 회가 마치 캐러멜처럼 쫀득하고 달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매운탕! 대충 아무거나 넣고 끓인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 게다가 몸에도 좋잖아. 요리에 붙은 이 무지막지한 스탯 보너스는 대체 뭐야? 이렇게 많이 올라가는 요리는 본 적이 없어!” 흑돔을 건네줬던 유저는 마치 요리 만화의 심사 위원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어 댔다. 매운탕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에 지켜보는 유저들은 혀를 쭉 내밀고 헐떡거렸다. “저기요, 혹시 제가 생선을 낚아도 회를 떠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회와 매운탕은 물론이고, 생선 탕수육, 생선 스프, 뭐든지 주문대로 만들어 드립니다. 또한 스탯 보너스가 필요하신 분은 휴대하고 다니기 좋게 건어물로도 만들어 들립니다. 물론 적당히 양념을 곁들여 먹기 좋게 만들어드립니다.” “오오오, 그럼 상어를 낚으면 샥스핀 수프도 만들 수 있는 건가?” “참치는? 참치 초밥은?” 유저들의 질문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사실 아크는 예전에 해저 세계를 여행할 때 모든 생선을 종류별로 다 요리해 봤다. 해산물로 만들어 보지 않은 요리가 없는 것이다. 아크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하신 요리도 모두 가능합니다. 하지만 요리를 만들 때는 각종 양념이나 향신료가 들어갑니다. 주문하시는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에 따라 10실버에서 20실버 정도의 수고비를 주셔야 합니다.” 스탄달로 향하는 유저들은 대부분 레벨 200이상. 그들에게 10~20실버의 수고비는 그야말로 껌값이었다. “그건 문제도 아니지.” “낚자, 생선을 낚자!” 유저들이 너도나도 낚싯대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마땅한 요리 스킬이 없던 유저들은 모처럼 생선이 낚여도 딱히 쓸데가 없었다. 상점에다 팔수는 있지만 가격은 고작 몇 실버가량, 게다가 해산물 식재료는 빨리 썩어 시간이 지체되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때문에 낚시에 별 관심이 없던 유저들도 아크가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 주니 미친 듯이 생선을 낚아 올렸다. “생선 삽니다. 한 마리에 30실버 드려요!” “저는 50실버 드립니다. 광어나 참돔은 2골드까지 드려요!” 낚시를 배우지 못한 유저들은 갑판을 뛰어다니며 생선 구입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몇 실버밖에 하지 않는 생선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마침 저녁 시간, 출출했던 유저들에게 아크의 영업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것이다. ‘대체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이슈람은 얼빠진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갑판에 모인 유저들이 쉴 새 없이 생선을 낚아 올리자 아크도 쉴 틈이 없었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다. 정기선의 유저들이 모두 배를 채운 것이다. 그동안 아크가 만들어 낸 요리는 200여 가지. 생선을 요리해 주는 것만으로 30골드나 벌어들일 수 있었다. “후후후, 역시 예상대로야.” 아크가 한결 두둑해진 주머니를 두드리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 기분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얼마 전 기란 마법 학회에서 ‘소환 포트’를 구입하느라 1,400골드나 날렸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루벤트와 스탄달을 왕복하는 정기선의 운임도 올 대는 7골드였는데, 갈 때는 12골드나 들었다. 유저들이 많이 몰려 가격이 올라간 것이다. 덕분에 아크의 수중에는 구리 동전 몇 개밖에 남지 않았다. 당연히 주머니 무게에 따라 잠정이 변하는 아크는 꿀꿀하기 짝이 없었다. 만약 주머니가 빵빵했다면 바다에 떨어졌을 때도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분이 더럽기는 했겠지만, 눈에 띄는 행동을 피하고 싶어 참았으리라. 어쨌든 30골드에 불과하지만 주머니가 채워지니 찜찜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수고비를 줄 테니까 이것도 회 좀 쳐 줘.” 그때, 이슈람이 광어 한 마리를 아크에게 내밀었다. 아크가 곧바로 회를 쳐 주자 한 점 먹어 본 이슈람이 감탄사를 발했다. ‘호오, 이 녀석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나? 응? 뭐야?’ 게걸스럽게 회를 집어 먹던 이슈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님들이 모두 사라지자 아크가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광어회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뭐하는 짓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아크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선 수백 마리를 회 치면서도 정작 아크는 한 점도 먹어보지 못한 것이다. “뭐야? 배고프냐?” 끄덕. “그럼 자네도 생선 한 마리 사다가 구워 먹든 삶아 먹든 하면 될 거 아닌가?” “돈 없는데요?” 아크의 대답에 이슈람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방금 전에 30골드가 주머니로 들어가는 걸 봤는데 돈이 없다니? 노골적으로 얻어먹겠다는 수작이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아크에게 화가 나 있던 이슈람은 보라는 듯이 남은 회를 입에 쑤셔 넣고 우물거렸다. 그러자 아크가 불쌍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얄미운 생각이 들어 심술을 부렸지만, 막상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약간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먹는 거 가지고 너무 치사하게 굴었나? 그러고 보니 저 녀석, 게임으로 돈을 벌어서 어머니 병원비를 대고 있다고 했었지? 아, 젠장. 도로 토해 낼 수도 없고.......’ 이슈람은 어른스럽지 못하게 행동했다는 생각에 찜찜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석양이 지기 시작하며 수평선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 주린 배를 움켜쥐고 물끄러미 석양을 바라보던 아크가 약간 감상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거 말이에요.” “그거?” “아까 물어봤던 거요. 스승님의 좋은 점. 딱히 좋은 점이라기보다는, 제가 체육관에 못 나간 지 세 달 정도 됐거든요. 스승님이 사정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제 곧 스승의 날도 돌아오는데 그 전에는 꼭 다시 나가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어지는 아크의 목소리에 이슈람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눈빛과 표정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이 녀석...... 하필이면 이럴 때 진지하게....... 괜히 더 미안해지잖아.......’ 왠지 그곳에 있기가 부담스러워진 이슈람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할 말이 있었다. 네가 아까 싸웠던 녀석하고 그 친구들이 배가 스탄달에 도착하면 널 기습하겠다고 하더라. 세 명이나 되니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죽기 싫으면 배가 정박할 때 선교에 가 있어라. 선원들과 함께 있으면 놈들도 배 안에서는 자네를 공격하지 않을 거야. 믿어도 돼. 나는 저들의 동료가 아니니까.” 이슈람은 그렇게 말하고 선미 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직 낚시를 하고 있는 유저에게 1골드를 쥐여 주며 말했다. “아까 요리해 주던 사람 봤죠? 제가 시켰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 녀석에게 생선 두 마리만 가져다주세요. 그냥 선물이라고 하고.” 뒤이어 이슈람은 선실 근처에 숨어서 아크를 지켜보았다. 역시나 생선을 받은 아크는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며 곧바로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사실 아크가 생선을 사 먹지 않은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항상 식재료를 현지 조달하다 보니 아무리 싼 식재료라도 사서 먹는 건 아까웠을 뿐이다. 게다가 게임 속에서 음식을 먹어 봐야 실제로 배가 차는 것도 아니다. 20실버짜리 생선을 사 먹느니, 그냥 현실에서 김밥이나 한 줄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아크가 행복하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걸 보니 이슈람도 뿌듯해졌다. ‘그래도 역시 제자는 스승이 챙겨야지. 후후후, 나도 그러고 보면 정말 괜찮은 놈이야. 가람 들이 문제도 일단 경고는 해 놨으니 현우가 알아서 하겠지. 어라? 그러고 보니 현우의 아이디를 안 물어봤네? 아무렴 어때? 아이디야 나중에 직접 만나서 물어보지, 뭐.“ 이슈람은 시원한 표정으로 선실로 향했다. 선실에서는 아직도 가람과 타커스, 러컨이 포커를 하고 있었다. 가람은 이미 상당한 돈을 잃었는지 인상을 벅벅 써 댔다. 그러나 포커 따위에 관심이 없는 이슈람은 구석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승객들은 모두 갑판에 모여 주십시오, 곧 스탄달에 도착합니다!” “도착했다!” “나가자!” 가람 들이 벌떡 일어나 갑판으로 달려 올라갔다. “잠깐만, 놈이 우리가 노리는 걸 눈치채면 배에서 안 내릴지도 몰라. 일단 선실 모퉁이에 숨어서 놈이 배에서 내리는 걸 확인하고 기습하자.” 용의주도한 타커스가 선실 문 근처에 몸을 숨긴 채 검을 뽑아 들었다. 그사이, 정기선이 드디어 스탄달의 항구에 입항했다. “좋아, 승객들을 하선시켜라!” 선장의 우렁찬 목소리에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곧 정기선과 부두를 잇는 판자가 놓여지고, 유저들이 스탄달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크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머뭇거렸다. “뭐야, 저 녀석 왜 안 내리지?” “혹시 눈치챈 거 아니야? 우리가 선실에 있는 사이에 누군가 미리 귀띔을 줬거나.......” 타커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슈람을 바라보았다. 그때, 모퉁이 너머로 아크를 주시하던 러컨이 손을 저었다. “놈이 내리고 있다!” “그것 봐, 내가 이슈람은 믿어도 된다고 했잖아.” 가람이 불만스럽게 투덜거리자 타커스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미안하다 괜한 의심을 했어.” “아니, 괜찮아 너희들은 오늘 처음 봤으니 그럴 수도 있지, 뭐.” 이슈람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뭐야, 현우 녀석, 아까 내가 한 말을 못 들었나?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리는 거야? 젠장, 가람 놈들이 단체로 달려들면 현우 녀석이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못 당해 낼 텐데. 게다가 그런 상황이면 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지금이다, 가자!” 그때 타커스와 가람, 러컨이 차례대로 뛰어나갔다. 어쩔 수 없이 이슈람도 그들과 함께 달려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됐으니 할 수 없지. 현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녀석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치는 수밖에.’ 네 명은 각자 무기를 뽑아 들고 단숨에 갑판을 가로지렀다. 그리고 막 스탄달에 발을 내디디려는 현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네 명의 고레벨 유저가 날리는 백스텝 공격! 아크는 단숨에 40%나 되는 생명력이 날아가며 데구르르 굴러갔다. “크하하하! 어떠냐, 건방진 애새끼야!” “다음부터는 상대를 잘 보고 덤...... 어?” 주먹을 흔들어 대며 아크에게 다가가던 가람이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타커스와 러컨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둣가에는 100여 명의 인파가 모여 있었다. 정기선에서 내린 승객들이 아니었다. 갑옷과 검으로 무장한 파란 피부를 가진 바란족 그리고 온몸을 시커먼 천으로 휘어 감은 동방 민족. 스탄달의 주민들이었다. 동방 민족은 북이며 나발을 들고 있었고, 바란족은 ‘환영, 전임 사령관!’ 따위의 문구가 쓰인 플랜 카드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사실 아크는 가람 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가람 들은 경비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스탄달의 항구나 하만 요새는 아크의 홈그라운드다. 경비병만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아크가 공격당하면 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아니라도 아크는 혼자서 가람 들을 모두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아크가 끝까지 배에 남아 서성거렸던 이유는 오히려 바란족과 동방 민족 때문이었다. 스탄달로 출발하기 전, 아크는 정의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니 미리 베스튜라에게 연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바란족과 동방 민족이 아크를 마중 나온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다른 유저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모든 승객이 흩어진 뒤에 배에서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내리던 아크가 갑자기 기습을 당해 쓰러졌다. 신 나게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 대던 바란족과 동방 민족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뭐야, 저놈들? 미친 거 아냐?” “스탄달에서 우리의 은인에게 검을 휘둘러 대다니!” “아주 죽으려고 발광을 하는구나.” “볼 것 없어. 밟아 버려!” 눈앞에서 아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병사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헉, 뭐, 뭐야?”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아흑! 우욱!” 가람과 타커스, 러컨은 눈 깜빡할 새에 병사들에게 밟혀 죽었다. 위이어 100여 쌍의 눈동자가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이슈람에게 향했다. 움찔한 이슈람이 황급히 손을 저으며 소리쳤다. “기, 기다려. 나는 적이 아니야!” “헛소리, 네가 저자들과 함께 공격하는 걸 봤다!” “죽여, 이놈도 한통속이다.” “저, 정말이야! 못 믿겠으면 물어봐!” 이슈람의 말에 병사들의 눈동자가 아크에게 향했다.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난 아크는 슬쩍 이슈람을 바라보다가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광어.” “뭐, 뭐라고? 헉, 너...... 설마, 쌓아 두고 있었던 거냐?” “음식에 맺힌 한은 무섭다고.” “기, 기다려 사실 그 뒤에 낚시꾼에게 부탁해서.......” 이슈람이 황급히 사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성난 병사들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물론 병사들이 아크와 친밀도가 만땅이라고 해도 NPC가 마구잡이로 유저를 공격할 리가 없다. 정상적인 유저였다면 아크가 무슨 말을 해도 공격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이미 이슈람도 아크에게 일격을 날려 회색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병사들은 이슈람을 공격할 명분이 있었다. 하물며 그들이 공격한 상대가 아크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광어라고 하신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령관님께서 원한이 있다고 하신다!“ “이놈도 적이 분명해!” 성난 병사들이 이슈람에게 몰려들었다. 경찰청 제1 기동대장? 태권도 국가 대표 상비군? 다 필요 없다. 100여 명의 병사들의 몰려들지 이슈람은 찍소리도 못하고 밟혀 버렸다. ‘맙소사, 제자의 졸개들에게 밟혀 죽다니.......’ 그러나 살실 이렇게 죽은 게 이슈람으로서는 다행이었다. 비록 그 뒤에 다시 루벤트 항에서 부활해 일정이 늦어졌지만, 가람 들과 함께 죽은 덕분에 이슈람은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이슈람만 살아났다면 그들의 의심을 받아 다른 용의자들과 접선하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이슈람의 잠입 수사는 계속된다! ACT 5 스탄달의 영웅 “흥, 어디서 수작을 부려?” 부듯가를 나온 아크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아크는 이슈람이 한 말 따위는 눈꼽만큼도 믿지 않았다. 만약 이슈람이 정말 동료와 아크가 싸우는 걸 말리고 싶었다면, 루벤트 항에서 말렸어야 했다. 그러나 이슈람은 내내 싸움을 지켜보다가 가람이 밀릴 때가 돼서야 나섰다. 가람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동료가 아니라고?’ 때문에 아크는 처음 이슈람이 접근할 때부터 의심하고 있었다. 힘으로 안 될 것 같으니 뭔가 계략을 꾸미는 게 분명하다. 아니나 다를까, 스탄달이 가까워지자 은근슬쩍 수상한 정보를 흘리는게 아닌가? ‘나를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었겠지. 왜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나름대로 계략이 숨어 있겠지. 뉴 월드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해.’ 놈의 목적은 아크가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 그렇다면 배에서 내리는 것만으로 일단 놈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놈들과 정면 대결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아크는 이슈람의 충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기습을 당했다가 일어났을 때, 아크는 곧바로 고양이의 눈으로 이슈람의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회색...... 결국 이슈람도 아크의 뒤통수에 일격을 날렸다는 뜻이다. 이로써 아크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이놈도 가람 놈들과 한통속이었어!’ 다시 말하지만 절대 광어회를 혼자 먹어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결국 불신과 의심이 그런 사제 간의 비극적인 사건을 초래한 것이다. 어쨌든 이런 자잘한 시비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뉴 월드에는 가람처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이해 못 할 인종이 넘쳐 나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런 일고 다를 바가 없었고, 덕분에 아크는 부둣가를 나오자마자 말끔하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게임 못 하지. 그나저나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군.’ 항구와 하만 요새를 둘러본 아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나흘 만에 다시 찾은 스탄달은 빠르게 변화해 가고 있었다. 아크가 기란으로 향할 때 몇 개의 가건물만 있던 항구도 그럴듯한 목조건물이 10여 채나 세워져 있었고, 아직은 기초공사에 불과했지만 주변에 성곽까지 건설 중이었다. 스탄달의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하만 요새 역시 마찬가지였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유저들 덕분에 여관이 다서 개나 세워졌고, 각종 기관시설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물론 아직은 여러모로 정비가 안 된 부분이 눈에 띄었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모든 공사가 완료되고 시스템 정비가 끝나면 하만 요새는 완전한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되리라. 요새에 들어서자 입구에 커다란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만 요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처음 방문하신 분들을 위해 잠시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탄달의 주민인 선량하고 착한 바란족은 오래전부터 사악한 나크족의 위협으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야욕을 드러낸 나크족이 수많은 바란족을 학살하며 침공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있습니다. 다행히 위대한 지도자가 바란족을 이끌어 나크족을 물리쳐 현재의 하만 요새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만세! “후후후, 위대한 지도자라...... 좀 낯 뜨겁기는 하군.” 게시판에 쓰여 있는 위대한 지도자는 다름 아닌 아크였다. 과거 아크는 아란 을 보면서 많은 점을 배웠다. 아란은 슈덴베르크는 물론, TV까지 출연해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을 떠받들어 주는 사람보다, 이유 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의 훨씬 많다. 유명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을 모두 적으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아란이 그렇게까지 유명해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몰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크는 그런 아란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나 외모를 철저히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항구에 마중 나온 환영단이 아크라는 이름을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방금 전의 시비도 내가 유명인이었다면 좀 더 귀찮아졌겠지.’ 아크는 새삼 자신의 선견지명을 칭찬하며 게시판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직 나크족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현재 스탄달의 대표이신 이사벨님은 용기 있는 모험가들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온몸을 불사를 수 있는 용기 있는 모험자라면 자치대의 정의남 님을 찾아 나크족의 섬멸 작전에 참가하십시오. 나크족을 처단하고 증거품으로 ‘나크족의 붉은 머리털’을 수집해 오면 보상이 지급됩니다. +나크족 10마리 사냥 보상(동 훈장 : 훈장이 없으면 하만 요새에서 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나크족 50마리 사냥 보상(은 훈장 : 상점 거래 시 10%의 할인율이 적용됩니다.) +나크족 100마리 사냥 보상(금 훈장 : 상점 거래 시 20%의 할인율이 적용됩니다.) +나크족 부태장 사냥 보상(황금 티켓 : 정기적으로 추첨을 통해 마법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어쨌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가?” 이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도 아크였다. 이미 모든 상황이 정리됐음에도 나크족은 여전히 계곡 마을 을 차지하고 영자 이동으로 병력을 보내오고 있었다. 어차피 바란족의 세력이 커지면 나크족의 입지가 좁아지니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리라.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일. 하만 요새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 해도 숫자가 불어나면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있었다. 이에 아크는 유저들을 이용해 나크족의 숫자를 꾸준히 줄여 갈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현재 스탄달은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동방 민족의 막대한 자금을 풀었다고 해도 진행 중인 공사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태. 모든 참가자에게 일일이 그럴듯한 보상을 해 주기에는 자금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만약 보상을 해 주느라 스탄달의 발전이 늦어지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사든 상인이든 이곳에서 활동하려면 상점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 그래서 아크가 고안해 낸 방법이 바로 훈장 시스템이었다. 처음 스탄달에 들어온 사람은 바란족이나 동방 민족이 운영하는 상점을 이용할 수 없다. 최소한 ‘동 훈장’을 받아야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은 훈장’, ‘금 훈장’으로 올라가며 할인 혜택이 늘어나도록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스탄달에 온 유저들은 무조건 나크족과의 전쟁에 참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탄달을 찾는 유저들의 평균 레벨은 200. 반면 나크족은 250~280대다. 덕분에 게시판 주변에는 파티를 구하는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크족 사냥 함께 가실 분들 모집합니다!” “놀고 있는 마법사 데려가실 분 없나요?” 그러나 가장 난감해하는 직업은 상인이었다. 교역을 위해 스탄달을 찾은 상인들에게 상점이용 금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게다가 그냥 상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이윤을 남기려면 할인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해 상인에게 필요한 것은 ‘금 훈장’, 그러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며 모를까, 요새 주변의 나크족을 사냥하는 데 상인을 데려갈 파티가 있을 리 없었다. “ ‘나크족의 붉은 머리털’ 삽니다, 개당 20실버 드립니다!” “붉은 머리털 100개 세트로 190골드에 삽니다!” 상인들은 게시판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증거품을 사들였다. 덕분에 아예 하만 요새에 눌러앉아 증거품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사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이 의뢰를 뜯어보면 그야말로 조삼모사나 다름없었다. ‘후후후, 원래 하만 요새는 전쟁 중이라 적인 나크족을 많이 잡으면 NPC의 호감도가 올라서 자동으로 할인율이 적용되지.’ 결국 훈장 시스템은 겉보기만 그럴듯한 보상이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유저를 부려 먹는 수법! 이게 아크의 특기였다. 그러나 아크가 훈장 시스템을 만든 데는 더 엄청난 계략이 숨어 있었으니......! ‘나중에 모두가 훈장을 가지고 있으면 별 의미가 없겠지만 현재 훈장을 소지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레벨 200대에서 나크족을 사냥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잡는다고 무조건 증거품을 떨구는 것도 아니니까.’ 때문에 아직 많은 유저들이 상점을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저들은 빡센 사냥을 해야 하니 각종 소모품이 부족한 상태. 물론 대륙에서 넘어온 상인들이 파는 소모품도 있었지만 전사들은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허덕이고 있었다. ‘이 기회에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얻은 소모품을 몽땅 팔아 치우는 거야!’ 결국 아크는 자기 물건을 제값에 팔아 보겠다고 스탄달 전체으 상점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권력 남용! 사악한..... 실로 사악하기 짝이 없는 아크였다. ‘흥, 치사해도 어쩔 수 없어. 이제 전세방 잔금을 치르기로 한 날까지 20일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정리할 수 있는 건 모두 정리해서 현찰을 만들어야 해. 그리고 어차피 하만 요새에도 의용군이 필요하잖아. 난 양심에 거리낄 거 전혀 없어.’ 아크는 그런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정신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어쨌든 게시판에는 그 외에도 이런저런 발전 상황이나 새로운 이벤트들이 적혀 있었다. <<금주의 이벤트>> *숨은 동방 민족을 찾아라! : 하만 요새의 주민인 동방 민족은 모두 ‘은신’을 익힌 술래잡기의 달인입니다. 이들이 스탄달을 방문한 이방인들에게 도전장을 보내왔습니다. 이마에 A부터 F까지 적어 놓은 동방 민족이 하만 요새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이들을 찾아내 증표를 모아 오면 동방 민족이 마련한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감지’, ‘추적’, ‘육감’ 등의 기술을 가진 이방인들의 참가를 권합니다. <<시설 안내>> *일일 체험 농장 : 스탄달의 각종 식물이나 페페 같은 가축을 구경하고 직접 수확해 볼 수 있습니다. 친절한 농장 주인으로부터 실물 채취나 가죽 채취, 도축 스킬을 내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현재 성업 중.) *베스튜라의 안내소 : 오랫동안 스탄달의 역사를 기록해 온 현자 베스튜라로부터 스탄달의 역사와 각지의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스탄달에서 새로운 모험을 찾아낼 힌트가 될 것입니다. (현재 성업 중.) *몬스터 사파리 : 스탄달을 여행하기 전에 각종 몬스터의 성향이나 약점. 대처법을 익힐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현재 공사 중. 근일 개장합니다.) *스탄달 관광 : 이곳에 도착해 시커먼 지도를 확인하고 암담하셨습니까? 스탄달 관광을 이용하시면 하늘 가오리를 타고 편하고 안전하게 주요 지역을 여행해 지도를 밝힐 수 있습니다. (내부 사정으로 인해 잠시 휴업 중입니다.) 란셀 마을도 그렇지만 스탄달도 어째 점점 놀이공원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뭐, 즐길 수 있는 게 많을수록 좋으니까.’ 아크는 피식 웃으며 하만 요새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크가 번화가로 나오자 여기저기에서 동방 민족이나 바란족이 알은척을 해 왔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제 스탄달도 완전히 자신의 홈그라운드가 됐다는 생각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런 기분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크가 스탄달에 돌아온 건 발전 상황이나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 마지막 삼신기와 소환수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일단 삼신기의 위피는 대강 파악이 끝났고.......’ 문제는 데드릭과 라자크가 살고 있는 곳이다. 아크는 돌아오기 전에, 하만요새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유즈리아와 접촉해 보았다. 스탄달의 세계수이니 각 종족의 분포에 대해 알고 잇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유즈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는 수탄달 전역에 뿌리를 뻗고 있었어요. 세계수는 그 뿌리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죠.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이전의 육체를 버리고 이곳에서 시로 타어나 아직 그리 많이 뿌리를 뻗지 못했답니다. 하여간 세계수라는 것들은 정작 중요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행히 아크에게는 스탄달의 역사를 줄줄 꿰고 있는 베스튜라가 있었다. 아크가 출발하기 전에 미리 정의남에게 연락해 놓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여기인가?’ 아크는 하만 요새 한쪽에 자리 잡은 목조건물을 바라보았다. 스탄달이 떠오른 직후, 베스튜라가 차린 ‘베스튜라의 안내소’였다. “어서 오세요. 베스튜라의 안내...... 어? 아크 형!”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달려왔다. 스탄달이 떠오르자 기대와 달리 란셀 마을로 피신해 있던 바란족은 대부분 돌아왔다. 보나 역시 곧바로 돌아와 베스튜라를 도왔다. 덕분에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는 아쉽게도 성취도 98%에서 멈춰 있었다. “와, 언제 왔어요?” “방금 전에. 할아버지는 계시니?” “할아버지는 형이 부탁한 자료를 모으려고 잠깐 다른 장로님 댁에 가셨어요. 계곡 마을에 모아 뒀던 자료는 아직 못 찾았잖아요. 하지만 금방 오실 거예요.” “혼자 가게를 보고 있는 거야?” “헤헤, 저도 이제 제법 많이 안다고요. 아크 형이라면 공짜로 안내해 줄게요.” 보나가 가슴을 쭉 펴며 제법 으스댔다. “오오, 그래? 그럼 어디 나도 한번 안내를 받아 볼까? 요즘은 어떤 정보가 있지?” 아크가 장난스럽게 물어보자 보나가 무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 아직은 형이 나보다 더 많이 알잖아요. 다 알면서...... 아, 맞아! 형, 그건 모르죠?” “그거?” “실은요, 얼마 전에 정말 큰일이 있었어요.” 보나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레리어트 누나에게 들은 얘기인데요.......” “아, 레리어트 님은 잘 계시지? 오면서 자치대를 잠깐 둘러봤는데 레리어트 님이나 갱생단 형님들이 안 보이더라고. 무슨 일 있었니?” 현재 나크족과 싸우던 병사들은 ‘자치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 자치대를 이끌고 있는 것은 정의남과 갱생단, 레리어트였다. 란셀 마을에서 이루지 못한 자치대의 꿈을 스탄달에서 이룬 것이다. 얘기가 다른 쪽으로 새자 보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아이참,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계속 말해 봐.” “얼마 전에 스탄달 관광에서 동부 유적지로 나갔던 사람들이 몰살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가이드하고 관광객 열세 명이 전부요.” “뭐라고?”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로부터 며칠 뒤, 스탄달 관광 사무소가 어떤 전사와 마법사에게 습격당했어요.” “하만 요새 안에 들어와서 말이야?” “네, 엄청나죠? 그 일로 사무소 직원 20명과 근처에 있던 자치대원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곧바로 자치대가 총출동했지만 아직 못 잡았대요. 이미 대륙으로 도망쳤을지도 몰라요.” 보나는 정의남과 갱생단, 레리어트가 마중을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자치대 지휘관들이 직접 추적에 나설 정도로 강한 상대라는 말이다. 나크족에는 마법을 사용하는 NPC가 없다. 마법사가 끼어 있었다면 결국 유저라는 말인데, 대체 얼마난 간이 크면 도시에 쳐들어와서 NPC를 학살한단 말인가? “하지만 어째서 대륙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거지? 항구에도 자치대원들이 지키고 있잖아. 정기선은 범죄자가 이용할 수 없을 텐데?” “그건 말이죠.......” “근래에 어딘가로 밀항선이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네.” 그때, 베스튜라가 들어오며 대답했다. 그러자 보나가 잔뜩 토라진 얼굴로 빽 소리쳤다. “할아버지, 아크 형은 제 손님이란 말이에요!” “허허허, 미안하구나. 잘 있었나, 아크? 마중 나가지 못해서 미안하네. 자네가 부탁한 자료를 찾아보느라고 말이네. 보나라도 보낼까 했지만 시작한 지 얼마도 안 되는 가게를 비워두기도 뭐해서 말이네.” “아닙니다. 제가 부탁한 일인데요, 뭐. 그리고 주민들이 환영해 주시는 게 고맙긴 하지만 솔직히 좀 난감합니다. 다음부터는 베스튜라라도 좀 말려주세요.” “음, 그렇게까지 자신의 업적을 숨기려 하다니...... 역시 자네는 진정한 용사의 자질을 갖추고 있어.” 베스튜라는 단단히 오해라고 있었다. “그런데 밀항선이라니요?” 아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베스튜라가 의자에 앉으며 한숨을 불어 냈다. “말한 그대로네. 정기선을 이용할 수 없는 범법자들이 등록되지 않은 배를 타고 몰래 스탄달로 숨어들고 있는 게네. 그뿐이 아니네. 얼마 전에는 시니어스에서 오던 정기선이 인근 해역에서 범법자들로 구성된 해적선에 습격당한 사건도 있었네. 스탄달 어딘가에 범법자들이 모이는 무법 항이 존재한다는 거지. 때문에 자치대가 해안을 중심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 그들이 나크족과 접촉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네.” 막상 듣고 보니 사태가 의외로 심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만 요새에서는 나크족이 몬스터 취급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역시 스탄달의 주민이다. 헤르메스 연합의 전례가 있듯이 유저가 교류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카오틱이라도 스탄달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었다. 유저 가운데는 상선을 소유한 사람도 있으니, 카오틱을 스탄달로 보내 주며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해상 교역이 활발해진 점을 이용해 아예 가오틱을 고용해서 해적질을 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어쩌면 무법 항의 배후에 헤르메스 연합이 있을지도 몰라.’ 이미 헤르메스는 나크족과 연합을 맺은 상태다. 만약 무법 항이 나크족의 영토에 존재한다면 그 배후에는 틀림없이 헤르메스가 존재하리라. 그 말은 아직 헤르메스가 스탄달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바란족이 삼국과 친선을 맺은 상태라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암암리에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의남 아저씨나 갱생단, 레리어트 님도 그 때문에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 찾기에 열을 올리는 거겠지. 스탄달도 아직 갈 길이 멀구나.’ 진정한 평화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이다. “어쨌든 그 정보도 아직 정확한 게 아니니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네.” 아크가 심각한 표정을 짓자 베스튜라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자네가 부탁했던 것 말이네.”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짐작 가는 곳이 있네.” 베스튜라가 지도를 펼치며 한 지점을 가리켰다. “자네의 소환수가 뱀파이어와 언데드라고 했지? 내 생각에는 일단 뱀파이어가 살 만한 곳은 여기네. 스탄달의 서북단에 위치한 곶. 이곳은 아직 누구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하는 장소네. 그런데 장로들이 보관하고 있는 고문서를 살펴보다가 묘한 대목을 발견했지.” “묘한 대목?” “그래, 오래전...... 아마도 암흑 세기 이전이라고 생각되네만, 스탄달을 여행하던한 여행자가 있었는데, 서북단에서 어둠에 휩싸인 영토를 발견했다고 하네. 그리고 그곳에는 인간의 피를 빠는 종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지. 그들은 외부인에게 적대적이었는데, 잡아도 살려 둔 채로 피를 빨았다고 하네. 여행자는 늙어 죽을 때까지 피를 빨렸다고 하더군.” “여행자가 죽었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기록이 남아 있는 겁니까?” “죽기 전에 병에 구원의 메시지를 넣어 바다로 흘려보냈다는 것 같더군. 고문서의 기록자는 그걸 주운 모양이고. 그때 메모에 쓰여 있던 위치가 방금 전에 가리킨 이 부근이네.” 피를 빠는 종족. 뱀파이어다. 아크는 다시 지도를 확인하다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혹시 여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낀 아크가 자신의 지도를 펼쳐 보았다. ‘틀림없어. 이곳은 이그드라실과 유즈리아가 지목했던 삼신기가 있는 장소다! 뭐지? 그럼 설마 마지막 수인족은 뱀파이어라는 말인가? 하지만 뱀파이어가 사람으로 변신 할 수는 있지만 수인족은 아닌데, 혹시 뱀파이어와 수인족이 같이 사는 건가? 아니면 수인족이 잃어버린 삼신기가 뱀파이어 영역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건가?’ 아크는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어쨌든 삼신기와 데드릭을 동시에 찾을 수 있다는 거잖아.’ “이곳으로 가는 길을 아십니까?” 사실 스탄달에서 생활한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 가 본 지역은 그리 많지 않았다. 동부와 남부는 이스트 월과 하만 요새 주변 그리고 북부는 아게이론이 전부였다. 스탄달 전체 지역을 놓고 보면 5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 지도는 대부분이 시꺼멓게 가려져 있었다. 스탄달이 마치 벽처럼 몇 줄기의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정확한 길을 모르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도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스탄달 관광사업이 쏠쏠하게 재미를 봤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음...... 실은 그게 문제네.” 베스튜라가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 역시 스탄달의 지도였지만, 마치 13세시 세계 지도처럼 대략적인 땅덩이만 그려져 낙서처럼 보였다. 당연히 그런 지도로 제대로 지형을 확인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그래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있었다. “자, 이곳을 보게. 이게 북부 산맥이고, 이게 서부 산맥이네. 이 산맥들 때문에 스탄달은 동부와 서부, 남부, 북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 높은 산맥이 기류까지 차단하고 있어서 각 지역의 기상은 물론 생태계까지 다르다네. 그런데 자네가 이곳에 가려면 그 산맥들이 모두 모이는 곳을 넘어야 하네.” 베스튜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모두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각 산맥을 타고 몰려드는 기류가 충돌해 항상 폭풍이 휘몰아친다고 하네. 당연히 육로는 물론, 하늘 가오리로도 넘을 수 없지. 심지어 나크족이 사용하는 난폭한 드라칸조차 이 근처에는 접근하지 못한다고 하네.” “그럼 이곳에 갈 방법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까?” “......예전에는 전혀 불가능했네.” “현재는 가능하다는 말이군요.” 아크의 질문에 베스튜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스탄달은 지금까지 차원의 폭풍 속에 있었네. 이 지도 밖의 지역은 차원의 폭풍 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지. 사실 지금까지 우리는 그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스탄달이 떠올랐지. 섬으로.” “역시 바다로군요.” 거기까지 들은 아크는 곧바로 해답을 찾아냈다. 그렇다, 아크가 가야 하는 장소는 해안과 맞닿은 곶. 산맥을 넘을 수 없다면 바다를 이용해 들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리고 싶네. 아까도 말했듯이 이곳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아는 거라고는 사람의 피를 빠는 무시무시한 뱀파이어가 살고 있다는 것밖에.” “그래도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그곳이 드레곤의 레어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가.......” “언데드의 영토에 대한 정보도 있습니까?” “음, 그곳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곳이네. 내가 일전에 만자들의 스탄달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 이유는 망자들이 차원의 틈새, 그러니까 언더그라운드를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기 때문이네. 사실 그동안 스탄달은 차원의 폭풍에 휘말려 언더그라운드가 점차 넓어지고 있었다네. 하지만 망자들이 언더그라운드와 스탄달을 왕래할 때마다 침식 속도가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냈지.” 밑도 끝도 없이 설명하던 베스튜라가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스트 월 산맥의 북쪽 끝에 위치한 곳이었다. “아, 얘기가 잠시 옆으로 샜군. 어쨌든 그 망자들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여기. ‘죽은 자의 도시’. 언데드의 영토라네. 원래 이곳도 언더그라운드였지만, 스탄달이 떠올랐으니 그곳도 정상으로 돌아왔을 거네. 하지만 언데드들의 영토이니만큼 그곳 역시 위험하겠지.”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베스튜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리게. 자네에게 줄 것이 있네.” “네? 줄거요?” “실은 자치대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주려고 했던 건데...... 자네가 떠들썩한 걸 싫어해 내가 조용히 건네주기로 했네. 관광 사무소 습격 사건 때문에 어수선하기도 하고 말이야. 어쨌든 일족의 대표로서 말하겠네.” 베스튜라가 주머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들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를 만나고 바란족은 정말 많은 것을 배웠네. 아마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또다시 모든 것을 빼앗겼을 거야. 그래서 스탄달이 떠오른 직후, 장로들과 의논해 봤네. 자네에게 어떤 보답을 해 줘야 할지 말이야. 역시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더군.” “그건......?” “일전에 말했지? 우리 일족의 은인, 라르칸에 대해. 우리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라르칸의 반지’를 만들었네. 그리고 자네 역시 라르칸과 같은 우리의 은인. 이에 보답하고자 ‘아크의 반지’를 제작했네. 비록 고대 지식이 남아 있던 시절에 만든 ‘라르칸의 반지’ 보다는 못하지만 장로들에게 남아 있던 모든 마법 광석을 녹여 만든 것이라네.” 목함을 열자 오색 빛이 감도는 반지가 나타났다. 아크의 반지(유니크, 획득 시 귀속, 상점 거래 불가) 아이템 타입 : 반지 사용제한 : 레벨 200 이상 유계의 주민인 바란족이 일족의 은인인 아크님을 위해 특수 제작한 반지입니다. 이 반지는 오래전부터 바란족 장로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마법 광석을 제련해 만들었습니다. 아쉽게도 바란족의 고대 지식이 사라져 마법 광석의 힘을 완벽하게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희귀한 보석을 다섯 개나 박아 사용자의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지 안쪽에 ‘일족의 영웅 아크에게 존경을 담아서’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옵션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특수 옵션 : 스킬 ‘능력의 폭주’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킬을 사용하면 30분간 힘, 민첩, 체력, 지혜, 지능, 다섯 가지의 능력이 40씩 상승합니다. 단, 폭주의 영향으로 지속 시간이 지난 뒤에는 5분간 ‘쇠약’ 상태에 빠집니다. 대기시간 : 24시간>> ‘헉, 유니크 아이템!’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운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를 5나 상승시켜 주는 반지! 비교적 추가 능력치가 적은 반지치고는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단지 획득 시 귀속에 상점에서도 팔 수 없는 아이템이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아이템을 획득한다는 것은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오오오, 나크족을 물리치고 스탄달을 떠올린 뒤에도 바란족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어서 내심 찜찜해하던 참인데.......’ 아무래도 바란족의 보상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예전에도 인어족이나 묘족의 보상도 그런 식으로 받은 적이 있었다. “있죠, 아크 형은 반지를 되게 좋아해요.” 아크가 감동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보나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라르칸의 반지를 떨궜다가 허둥대던 기억이 난 모양이다. 그러나 보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새로 대표가 되신 이사벨님도 자네가 오면 꼭 뵙고 싶다고 말씀하셨네.” ‘오오, 아직 뭔가 남은 건가?’ 아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사벨을 찾았다. 그러자 이사벨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서 오세요, 아크 님. 제가 인도자님의 연락을 받고 스탄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크 님이 떠나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아쉬웠는지 몰라요.” 이사벨이 스탄달 대표가 된 것은 아크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지만, 정작 아크는 기란에 가느라고 이사벨이 스탄달에 도착하는 것까지는 지켜보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현재 동방 민족은 모든 자금을 동원해 스탄달을 발전시키고 있어서 당장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일족의 은인으로서 항상 감사하고 기억하겠어요. 또한 아크님이 우리를 위해 그랬듯이, 아크님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힘을 빌려 주겠어요. 동방 민족의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스탄달의 대표로서 약속합니다.” 이사벨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스탄달의 대표 이사벨에게 ‘스탄달의 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고 스탄달에 관련된 모든 메인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이로써 바란족은 나크족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동방 민족은 오랜 숙원이었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스탄달은 수백 년 만에 중간계로 떠올라 본래의 모습을 찾아 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해냈다고는 믿기 어려운 업적! 범인이 상상할 수 없는 업적을 이루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당신의 영웅적인 업적은 스탄달의 역사에 기록되어 오랫동안 전승될 것입니다. <<스탄달의 영웅은 ‘숨겨진 영웅’ 의 칭호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신은 명성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명성보다는 남에게 더욱 도움이 될 방법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때문에 ‘숨겨진 영웅’은 ‘진실의 추구’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성은 뉴 월드 곳솟에 숨어 있는 ‘전승자’에게 명성을 대가로 특별한 기술을 배울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모든 동방 민족과 친밀도가 최대치로 상승했습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진실의 추구’ 영향으로 히든 NPC인 ‘전승자’를 만날 경우, 명성을 대가로 숨겨진 비기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소모되는 명성은 비기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뭐야, 아이템이 아닌 거야?’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자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동방 민족의 수백 년에 걸친 염원을 풀어 준 대가가 고작 칭호라니....... 하지만 뭐 이미 교역소 지분에 대한 계약서도 받아 챙겼고, 동방 민족도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진실의 추구‘는 또 뭐야?’ 이번에 얻은 칭호는 보너스가 그리 많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바로 칭호의 특성인 ‘진실의 추구’였다. ‘히든 NPC를 만나면 명성을 대가로 비기를 배울 수 있다고? 그 비기라는 건 스킬과는 다른 건가? 다크워커에게 딱히 쓸데도 없는 명성이 소모되는 거야 상관없지만, 히든 NPC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게 뭐야? 뭐, 어쨌든 언젠가는 한 명 정도는 만날 수 있겠지. 이 특성은 히든 NPC를 만난 뒤에나 쓸 만한 건지 알 수 있겠군.’ 그 뒤로 아크는 이사벨과 좀 더 대화를 나누었다. 이사벨의 말에 의하면 샴바라는 모든 일이 정리된 뒤에 다시 전직 퀘스트, 흩어진 동방 민족을 모으기 위해 대륙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제 동방 민족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이전보다 모으기가 더 쉬워졌으리라. ‘늑장부리면 샴바라보다 전직이 느려질 수 있겠는데?’ 이사벨의 설명에 아크는 약간 부담이 느껴졌다. 그렇게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 돌아 나오려던 아크는 뭔가 떠올랐다. “아, 혹시 이곳에 적당한 자리 좀 없을까요?” “적당한 자리라니요?” “이 녀석이 쉴 수 있는 곳요.” 아크가 라둔을 가리키며 말했다. 라둔 역시 소환수다. 전투에 써먹는 데드릭이나 라자크와 달리 항상 허리에 감겨 있어 거의 죽을 일이 없지만, 만약 죽으면 라둔 역시 스탄달의 어딘가로 날아간다. 때문에 ‘소환 포트’가 세 개나 필요 했던 것이다. 이미 강제 송환된 뒤 데드릭이나 라자크는 아크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지만, 라둔은 적당한 장소에 ‘소환 포트’를 박아 두면 되는 것이다. 단, 라둔이 강제송환 뒤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 안전한 곳이라야 한다. 그리고 현재 스탄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 역시 동방 민족의 성이 아니겠는가? 아크의 설명에 이사벨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곳이라면 제 방이 어떨까요?” “이사벨 님의 방요?” “네, 그곳은 저밖에 이용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가끔이라도 이렇게 귀여운 소환수와 만날 수 있잖아요. 어때? 너는 싫으니?” 쌕쌕? 쌕쌕쌕쌕! 이사벨이 머리를 쓰다듬자 라둔이 몸을 베베 꼬며 고개를 흔들었다. 뱀도 예쁜 여자는 싫지 않은 모양이다. 어쨌든 이사벨이 좋다면 아크 역시 대찬성이다. 스탄달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동방 민족의 성 그리고 더 안전한 곳이 항상 수백 명의 동방 민족에게 보호받는 이사벨의 방이다. 그뿐인가? 이사벨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샴바라도 라둔의 보디가드가 되는 것이다. 뭐, 나중에 샴바라가 알게 되면 펄쩍 뛸지도 모르겠지만....... 아크는 이사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소환 포트’를 박았다. 마치 마법봉처럼 생긴 ‘소환 포트’를 꽂아 놓자 상단에 위치한 보석이 반짝거리며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등록시킬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소환 포트에 아크 님의 소환수 ‘라둔’이 등록됐습니다. 등록된 소환수는 앞으로 소환이 해제되면 이곳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만약 소환자나 소환수가 사망하면(실제로는 소환자의 마나를 공급받지 못하게 될 경우) 일반 소환처럼 24시간 동안 재소환을 할 수 없습니다. 소환된 상태에서 사망할 경우에는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소환 포트’가 파괴되거나, 이미 송환된 상태에서 소환수가 사망할 경우, 스탯 포인트가 10% 감소합니다. ‘소환수가 돌아갈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소환 포트를 사용해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군. 그나저나 이게 하나에 700골드라니.’ 소환수 때문에 이렇게 무지막지한 돈이 들어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일단 소환수만 다 찾으면 제대로 본전을 뽑아야겠어.’ 어쨌든 이로써 라둔은 아크의 소환수이자 이사벨의 애완 동물이 되었다. ‘자, 이제 나머지 일을 정리하고 출발해 볼까?’ 다시 거리로 나온 아크는 상점가로 향했다. 상점가에는 길을 ?라 10여 개의 상점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아직 스탄달 전체가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문을 연 곳은 반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상점을 이용하려면 훈장이 필요해 아직 상점가는 한산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점가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가 있었다. “대륙에서도 구하기 힘든 특급 포션이나 주문서 팝니다. 망설일 필요 없습니다. 염가예요, 염가! 서두르세요. 이제 몇 개 안 남았습니다!” 길목에 좌판을 펼쳐 놓고 소리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북실이였다. “어이, 북실이.” “네, 어서 오십시오. 어라? 아크 님!” 북실이가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전에, 그보다 얼마나 팔렸어?” “후후후, 무, 물어보나 마나죠.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장사는 제법 하거든요. 특수 포션은 다 팔았고, 회복 포션과 주문서 몇 장만 남았습니다. 현재 매출은 3,320골드입니다.” “생각보다 많은데?” “말했지 않습니까? 장사는 제법 하는 편이라고. 스탄달을 돌아다니면서 현재 풀려 있는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고, 가격을 조금씩 올렸거든요. 수요와 공급, 장사하는 사람에게 그 정도는 기본이죠. 그리고 대략 70% 정도 팔린 다음부터는 가격을 20% 올리고 한꺼번에 다섯 개씩만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팔았죠.” ‘호오, 이 녀석 제법인데?’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북실이를 보았다. 사실 아크가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얻은 아이템의 가치를 대강 파악했을 때 나온 계산은 대략 2,500골드였다. 거기에 스탄달의 특수성, 상점 거래를 제한하는 훈장 시스템을 고려하면 최대 3,000골드까지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실이는 그냥 파는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시장 상황을 체크해 10% 이상 초과 달성한 것이다. “제가 받을 수 있는 판매 대행 수수료, 332골드 맞죠?” 북실이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눈동자를 반짝거렸다. 물론 10%를 주기로 했으니 332골드가 맞다. 그러나....... “아니, 132골드다.” “네? 네? 그,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동영상 판권료.” 아크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자 북실이가 움찔했다. “방송국에 전화해서 다 알아봤거든? 동영상 판권 넘기면서 200만 원 받았다며?” 이어지는 말에 북실이는 온몸에서 육수를 쭉쭉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호명환에게 동영상 판권에 대한 정보를 얻은 아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방송국에서 그런 부분을 쉽게 가르쳐 줄 리가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다시 호명환을 통해 방송국과 연락해 가격을 알아냈다. 그게 200만 원. 그러니 332골드에서 200만원을 제외한 것이다. 북실이가 족발을 흔들어 대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 하지만 그 동영상을 촬영한 사람은 나고...... 200만 원을 몽땅 제하는 건.......” “뭐야?”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자 북실이가 숨 막히는 비명을 터뜨렸다. “물론 나도 200만 원을 다 가로챌 만큼 뻔뻔하지 않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판권 따위는 관심 없었어. 네가 진즉에 나와 의논했더라면 달라고도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진즉에 의논했더라면 아크는 방송국과 담판을 지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받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혼자 꿀꺽했으리라. 그러나 일단 북실이의 약점을 잡았으니 그런 속내를 드러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너는 어떻게 했지?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내 심정이 어땠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정말 너를 믿었다. 친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고작 200만 원 때문에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거야. 크흐흑, 네가 내 심정을 알기나 해?” 아크의 열변에 북실이는 쩔쩔매며 족발을 비벼 댔다. “죄,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크 님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는 줄은.......” “닥쳐, 용서 못 해! 내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 줄 알아? 나는 너 때문에 인간 불신증까지 걸릴 정도라고! 200만 원? 흥, 솔직히 332골드를 몽땅 뺏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야. 아니, 정말 그래 버릴까?” “힉, 아, 안돼요. 돈 들어올 거 생각하고 홈쇼핑했단 말이에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흑흑흑, 다음부터는 절대 안 그럴게요. 뭐든 아크 님에게 허락을 받겠습니다. 믿어 주세요!” “다음부터는?” 돌연 아크가 안면을 싹 바꾸며 중얼거렸다. “그 말은 앞으로도 내 동영상을 찍겠단 말이지?” “흑흑흑, 다 할게요. 뭐든지 할게요. 동영상...... 엥? 네? 동영상요?” 그제야 북실이는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크는 시치미를 떼고 말을 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이번에는 용서해 주지.” “자, 잠깐만요. 동영상이라니요?” “사정이 생겨서 앞으로도 동영상을 찍어야 할 필요가 있거든. 너, 이제부터 딱히 할 일 없지? 고마워해라. 내가 널 고용해 주마. 앞으로 내 전속 카메라맨이 되는 거야.” “기다리라니까요. 대체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요?” “아아, 걱정하지 마. 나도 그렇게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야 한 달에 50골드씩 월급을 주지. 어때? 엄청나지?” 사실 이게 아크의 목적이었다. 입사 시험의 방식이 바뀌어서 앞으로는 계속 동영상을 찍어야 한다. 그러나 아크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전투 장면 같은 것을 찍기에는 좀 부담이 되었다. 때문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북실이를 달고 다닐 생각이었다. 북실이라면 아크가 신분 노출을 꺼린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잘 찍어 주리라. 게다가 가방 공간도 확보되니 일석이조! 사실 북실이와 떨어지고 나서 가장 걱정하던 게 바로 가방 공간이었다. 마음대로 써먹던 북실이의 가방이 없어지니 가방이 엄청 작아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번 달부터 지원금이 200만 원이나 올랐다. 동영상과 상인의 가방 공간이 거저 생긴다면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지출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니야.’ 그러나 문제는 북실이였다. 상인은 제대로 플레이한다면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다. 지금까지는 목적이 있어서 손해를 보면서도 아크를 쫓아다녔지만, 이제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역시나 북실이는 온몸을 흔들어 대며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 하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계획이라는 게.......”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아, 알아주시는 겁니까?” “뭐, 본인이 싫다는데 할 수 없지.” 아크의 대답에 북실이는 지옥에서 살아 나온 사람처럼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때, 아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번에 들었는데 말이야. 게임 캐릭터에게도 초상권이라는 게 있다던데.......” “네? 초상권요?” “예를 들자면 말이야. 만약 어떤 사람이 팔아넘긴 동영상을 그 주인공이 초상권을 주장하면서 그 동영상을 방송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방송 못 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방송국에서 동영상을 판 사람에게 위약금을 물릴지도 몰라.” “헉, 그, 그게 무슨......?” “듣자 하니 방송 관련 계약금은 위약금이 10배라고 하던데...... 200만 원의 10배면 2,000만 원 아냐? 와! 장난 아니네. 너 돈 있냐? 아, 이번 달에 돈 들어갈 데가 있다고 했었지? 만약 그렇게 되면 정말 난처하겠네. 어라? 왜 떨고 있냐? 그냥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하는 말이야. 어? 너 우냐? 울긴 왜 울어? 그냥 해 본 말이라니까. 정말 어지간히 원한이 있지 않은 이상에 누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그런데 아까 그 동영상 얘기 말인데.......” “할게요, 하겠습니다! 아니, 제발 시켜 주세요!” “어? 정말? 야, 역시 북실이다. 좋아, 모처럼 네가 협조적으로 나오니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예정에 없던 거지만 계약금을 주지. 일단 앞으로 반년 계약하는 걸로 하고 50골드다. 자, 132골드에 50골드, 합해서 182골드!” 아크는 선심이라도 쓰듯이 182골드를 내밀었다. 332골드에서 아크가 입은 정신적 충격에 대한 위자료로 200골드를 제하고 - 절대 방송국에서 지급한 돈을 제한 게 아니다. - 50골드를 더해 182골드....... 이게 아크의 계산법이었다. ‘벗어날 수 없어. 6개월이 아니야. 이 사람에게는 평생 벗어날 수 없어.’ 182골드를 받아 들며 북실이는 아크이 소환수가 돼 버리는 기분이었다. “자, 그럼 또 기운차게 모험을 떠나 볼까?” 아크는 사색이 된 북실이를 질질 끌고 해안가로 향했다. 이제 아크가 가야 할 곳은 ‘뱀파이어의 땅’ 과 ‘죽은 자의 도시’. 둘 중 한 곳을 골라야 한다며 삼신기도 찾을 수 있는 뱀파이어의 땅’이 먼저였다. 문제는 그곳은 바닷길을 통해서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으로 가는 상선이나 여객선이 있을 리가 없다. ‘상선을 전세 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상선을 전세 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겨우 두 사람의 탈 수 있는 작은 상선이라도 200~300골드는 필요하다. 전세방 잔금 결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지출을 할 수는 없었다. ‘미치겠군. 그렇다고 인어의 비늘을 입에 물고 바다 밑을 걸어서 갈 수도 없고...... 어라?’ 잠시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잊어 먹고 있던 아이템이 생각났다. ‘맙소사, 내가 왜 지금까지 그 생각을 못 했지?’ “라둔, ‘인어족의 피리’!” 쌕쌕쌕, 쌕쌕쌕썍! 곧바로 라둔이 작은 뿔피리를 탁 뱉어 냈다.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돌고래를 불러낼 수 있는 ‘인어족의 피리’. 받았을 때 한 번 써먹은 뒤로, 바다에 올 일이 없어서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진즉에 기억해 냈다면 일일이 배 삯을 내며 대륙을 왕복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뭐, 덕분에 배 위에서 생선 요리로 용돈을 벌 수 있었지만....... 어쨌든 다음부터 잊어버리지 않도록 특수한 아이템은 따로 정리해 놔야겠어.’ 아크는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이동해 피리를 불었다. 그러자 조용한 바다에 파문이 일더니 돌고래 떼가 뛰어올랐다. 돌고래의 등에 올라탄 아크가 힘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출발하자. 목표는 뱀파이어의 땅이다!” ACT 6 뱀파이어 성 “으윽, 허리가 뽀개지는 것 같네.” 돌고래의 등에서 내린 아크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돌고래는 돈이 안 든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그러나 쾌적한 범선을 탈 때와 달리 돌고래는 척추에 상당한 무리가 온다는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이전에 유즈리아는 삼신기가 직선거리로 7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크는 해안을 따라 돌아왔으니 1,000킬로미터는 됐으리라. 물론 게임 속은 현실의 거리 감각과 다르지만 목적지까지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휴, 어쨌든 허리가 부서지기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군.” 아크가 긴장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녁에 출발해서 5시간이 걸렸으니 한낮. 그러나 눈앞의 대지는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근처 해안에 도착하기 전에 떠올랐던 정보창 때문이었다. -‘어둠의 대지’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모험가의 지식 : 숨겨진 지역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 : 20)>> 정체불명의 마력으로 창조된 ‘블러드 다크’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블러드 다크’의 영향권 안의 모든 플레이어는 시야에 페널티를 받고 능력치가 30% 감소합니다. 단, 어둠 속성의 플레이어는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반된 ‘성’, ‘광’ 속성을 가진 유저는 ‘블러드 다크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모든 스킬이 봉쇄되고 ,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게 됩니다.>> 확인한 것처럼 주변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 달빛조차 없는 완전한 어둠, 과연 뱀파이어의 땅다웠다. ‘그건 그렇고,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설마 삼신기가 데드릭이 사는 지역에 숨겨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쨌든 잘됐어. 일단 데드릭을 찾으면 삼신기가 숨겨진 장소를 찾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먼저 데드릭을 찾아 지형 정보를 얻는 게 순서다.‘ 하지만 데드릭이 사는 곳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약 이곳이 정말 뱀파이어의 땅이라면 데드릭 외에도 다른 뱀파이어가 있을 것이다. 아크가 뱀파이어를 소환수로 부린다고 그들이 호의적으로 나오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판타지 세계에서 뱀파이어는 뛰어난 두뇌와 엄청난 마력을 겸비한 강력한 마족. 다행히 어둠 속성이라 ‘블러드 다크’ 영향은 받지 않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아, 아크 님, 여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능력치도 팍 깎여 버리고. 대체 여기는 뭐 하는 동네예요?” 아크의 상륙 장면을 찍고 있던 북실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말 안 했나? 여기는 뱀파이어의 땅이야.” “네? 배, 뱀파이어요? 저, 저는 바쁜 일이 생각나서 여기서 그만.......” “뒈질래?” “흑흑, 정말 무섭다고요. 흡혈귀 드라큘라 같은 건.” 뭐, 이곳이 위험하다고 북실이가 겁을 집어먹을 이유는 없었다. 실제로 뱀파이어가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뱀파이어도 몬스터에 불과하다. 나타나면 잡아 버리면 그만 아닌가? “잔말 말고 따라와.” 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활성화시켜 놓고 해안의 숲으로 들어갔다. 지도상으로 확인했던 어둠의 대지는 동부에 위치한 생명의 숲을 몇 개 합해 놓은 것처럼 거대했다. 그리고 생명의 숲처럼 수풀이 울창했다. ‘검은 안개를 빼놓고는 뱀파이어의 땅이라도 특별할 건 없잖아?’ 그러나 막상 숲에 들어선 아크는 뭔가 찜찜한 기분에 휩싸였다. ‘뭐지? 이 느낌은?’ 아크는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변에는 나무와 풀 이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다. 아니,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렇다, 이 찜찜한 느낌의 정체는 그거였다. 숲은 울창하지만 정작 그 숲에서 생명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딜 가나 반겨 주던 몬스터도, 심지어 작은 새나 동물의 낌새조차 없었다. 완벽한 침묵, 뒤에서 북실이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이상해, 뭔가가 이상해.’ “히에에엑, 히에에엑! 아크 님, 아크 님, 뒤에서 뭔가가, 뭔가가......!” “뭐야? 어디?” 잔뜩 긴장하고 있던 아크가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북실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하, 하, 하지만 분명 뭔가가 스스슥 하고 내 목덜미를 만지고.......” “적당히 좀 해! 괜히 놀랐잖아.” 아크는 이상을 쓰며 다시 숲을 더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북실이가 하도 요란을 떨어 대서 그런지 이제 아크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숲 저편에서 정말 뭔가가 스르륵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치 밤길을 혼자 걸을 때 누군가가 쫓아오는 듯한 기분....... 그때마다 북실이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북실이는 생긴 것과 달리 귀신이나 유령에 약했다. 북실이는 뱀파이어도 귀신의 한 종류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북실이가 좀 과민반응을 보이지만, 뭔가 기척이 있는 건 사실이야.’ 아크는 혹시나 싶어 기척이 느껴졌던 곳에서 라둔의 ‘스토킹’을 펼쳐 보았다. 그러나 이렇다 할 뭔가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스토킹’을 켜 놓고 있는 편이 좋겠어.’ 어쨌든 가끔씩 느껴지는 불길한 낌새를 제외하면 숲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어쩐 일인지 몬스터나 동물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울창한 숲에는 각종 열매나 약초 따위가 풍성했다. 마침 잡템을 몽땅 처분해 가방이 텅텅 비어 있던 아크는 식재료를 보이는 대로 긁어모으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쌕썍쌕? 쌕쌕쌕쌕! ‘스토킹을 펼치며 주변을 훑던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한곳을 가리켰다. 뭔가 싶어 얼른 쫓아가 보니 수풀 사이로 발자국이 나 있었다. -대상 발자국의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구분 : 전사계열, 성향 : 노멀 NPC, 이동 시간 : 38분 전>> “노멀 NPC? 뭐얌? 그럼 여기에도 주민이 산다는 말인가?” 아크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뱀파이어의 땅이다. 전 지역에 걸쳐 결계까지 쳐 있는 곳에 노멀 NPC라니? 그렇다면 이곳에선 뱀파이어와 일반 NPC가 사이좋게 살고 있다는 건가? ‘어쨌든 노멀 NPC가 있다면 나쁜 일은 아니야. NPC가 산다면 근처에 마을이 있을 거야. 일단 그곳에서 뱀파이어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라둔, 발자국을 추적해라.” 쌕쌕쌕, 쌕쌕쌕쌕! 아크는 라둔을 앞세우고 발자취를 추적하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대략 30분가량 어두운 숲을 가로질렀다. 눈앞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뭐야? 정말 마을이 있잖아?” 마을에는 대략 100여 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아크와 북실이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마을 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막상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도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우람한 덩치였다. 심지어 얼굴은 꿈에 볼까 겁날 정도로 우락부락했다. ‘게다가 입고 있는 건 모두 가죽옷이잖아? 주변에서 짐승은 한 마리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가죽옷을 입고 있는 거지? 게다가 표정들이 다 왜 저래? 넋 나간 사람들처럼.’ 어쨌든 어렵게 만난 NPC다. 아크는 마을로 들어서 입구 근처에 있던 주민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헉, 다, 당신은......!” 주민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하며 마을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말을 거는 사람마다 흠칫 놀라거나, 두려운 표정으로 도망쳤다. “대체 다들 왜 저래? 멧돼지를 통째로 씹어 먹을 것처럼 생긴 사람들이?” “아, 아크 님! 왠지 이상해요, 이 마을.” 북실이가 쭈뼛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괴상하잖아요. 여자까지 무슨 헐크처럼 생겨서...... 아, 생각났다.” “뭐가?” “저 사람들, 분명히 뱀파이어에게 물린 거예요. 왜 영화에서 나오잖아요. 뱀파이어에게 물린 사람은 뱀파이어가 되거나, 괴상한 괴물로 변하는 거. 맞아요, 분명 그거예요. 뱀파이어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 모두 목을 가리고 있었어요. 나, 나도 물리면 어떻게 하죠? 빈혈 있는데...... 혹시 혈액형이 안 맞으면 물지 않으려나? 나 Rh-형인데...... 설마 Rh-형 뱀파이어는 없겠죠?” ......정말 놀고 있다. 무섭다는 거지 개그를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이 뱀파이어의 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얘기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좀 떨리는데?’ “외지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그때, 갑자기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크와 북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공격 자세를 취하자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 제가 놀라게 해 드렸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다, 당신은......?” “저는 알버트라고 합니다. 이 마을에 살고 있죠.” 자신을 알버트라고 소개한 사람은 20대의 청년이었다. 그 역시 얼굴이 험악하게 생겼는데, 아무래도 이 마을 주민의 유전자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알버트는 빙긋 웃으며-솔직히 무서워 보였다-말을 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태도를 불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외지인을 보는 게 처음이라 무서워하는 것뿐입니다. 우리와는 조금 생긴 게 다르니까요.” “그럼 당신은?” “뭐,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요.” 알버트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다. 뭐, 문제라도?” 알버트가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이 되묻자 아크는 오히려 할 말이 없어졌다. ‘어라? 뭐야, 이 반응은? 뱀파이어잖아? 뱀파이어는 사람의 피를 빠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뱀파이어에 대해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잖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설마?’ “그, 그럼 혹시 당신이 뱀파이어입니까?” “헉!” 아크의 말에 북실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알버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뱀파이어들은 귀족입니다. 이런 마을에서 살 리가 없지요.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걸 보니 밖에는 뱀파이어와 함께 살지 않는 모양이군요.” “뱀파이어와 함께 산다고요?” “물론입니다.” 알버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이곳에 처음이시라니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사실 뱀파이어는 우리들의 은인입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로드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죠.” “로드?” “네 뱀파이어 로드요.” 알버트는 주변의 숲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 지역에 오래전에 큰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돌연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세상을 뒤덮었죠.” 스탄달이 중간계에서 떨어져 나와 차원의 폭풍에 휘말릴 때를 말하는 모양이다. “당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 갔습니다. 그때 뱀파이어 로드가 일족을 이끌고 이곳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강력한 마력으로 이 지역에 결계를 만들어 주었죠.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 결계 덕분이었습니다. 또한 로드는 이 지역에 서식하던 몬스터까지 몰아내 주셨습니다. 덕분에 숲의 자원이 풍부해져서 먹고살 걱정도 하지 않게 됐지요. 뭐, 너무나 걱정 없이 살게 되어 겁은 좀 많아졌지만 말입니다.” 알버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마을을 가리켰다. 아크가 고개를 돌리자 창문 틈으로 훔쳐보던 주민이 움찔하며 몸을 숨겼다. 어쨌든 알버트의 설명은 놀라웠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에 나타난 뱀파이어는 적어도 아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는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피를 빨아 대는 흡혈귀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공생하는 평범한 NPC였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가 펼쳐 놓은 강력한 결계-그게 ‘블러드 다크’인 모양이다-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스탄달이 떠올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호오! 밖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몬스터의 위협 따위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자원에 둘러싸인 이곳이야말로 저희에게는 지상낙원. 저희는 이곳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이 주변 숲은 열매 따위가 풍부했다. 그리고 알버트의 말에 의하면 숲 안쪽에는 들짐승도 많이 서식한다고 했다. ‘하...... 참, 별의별 지역이 다 있구나. 설마 뱀파이어 영지에 주민이 있을 줄이야.’ 어쨌든 아크에게는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이곳에 사는 뱀파이어가 착한 NPC라면 데드릭과 삼신기를 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데 외지인께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겁니까? 당신 말에 따르면 뱀파이어를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런 뱀파이어가 사는 땅에 이유 없이 오시지는 않았겠죠?” 마침 알버트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실은 누굴 좀 찾아왔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찾는 사람은 둘...... 아니, 두 종류라고 해야 하나? 하나는 데드릭이라는 뱀파이어입니다. 귀족이라고 하더군요.” “아, 데드릭. 알고 있습니다. 근처에 살고 있는 뱀파이어죠.” “정말입니까?” “네, 원차신다면 제가 안내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죠. 그런데 또 한 사람은?” “수인족입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수인족을 보신 적 없습니까?” 아크의 질문에 알버트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수인족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수인족을 찾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좀...... 죄송합니다.” 삼신기는 NPC에게도 보물이다. 아무리 친근하게 군다고 해도 보물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발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크가 난색을 표하자 알버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호기심이 좀 많은 성격이다 보니....... 어쨌든 데드릭 님에게 안내해 드리죠. 아, 그전에...... 혹시 소문만 듣고 뱀파이어를 퇴치하러 왔다거나.......” “절대 아닙니다. 아마 데드릭도 절 만나면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뱀파이어를 퇴치할 사람이라면 결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겠죠. 자, 따라오십시오. 대신 볼일이 끝나면 밖의 얘기 좀 해 주십시오.” 알버트가 유쾌한 목소리로 웃으며 앞서 나갔다. 하긴, 원래 뱀파이어는 어둠 속성의 마족이라 제대로 싸우려면 ‘광’속성을 가진 성직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블러드 다크는 ‘광’ 속성의 스킬을 모두 봉쇄하고,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결계였다. 다시 말해 뱀파이어의 천적은 아예 이곳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대체 뱀파이어 로드는 얼마나 강력하기에 그런 결계까지 치는 걸까?’ 그러나 정작 이곳에 사는 알버트도 뱀파이어 로드를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뱀파이어들은 나름대로 서열이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나, 지위가 높은 측근 뱀파이어들은 어둠의 대지 중심에 위치한 이모탈 캐슬에 살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데드릭은 외곽에 나와 살고 있다. “아크님, 뭔가 수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숲을 가로지르고 있을 대, 북실이가 귓가에 속삭였다. 아크는 약간 짜증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되물었다. “또 뭐가?” “그렇잖아요. 뱀파이어와 친구처럼 지내는 인간이라니...... 분명 저 사람도 뱀파이어에게 물려서 조종당하는 사람일 거예요.” “적당히 좀 해라. 저 사람 목을 봐. 물린 자국이 있냐?” 아크가 알버트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아크 역시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때문에 목을 살펴봤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아크는 뱀파이어를 북실이처럼 공포스러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크 역시 뱀파이어를 소환수로 부리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데드릭을 생각하면 뉴 월드에 사는 뱀파이어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뱀파이어이니 당연히 피는 빨겠지만 흡혈로 사람을 조종한다거나, 아예 흡혈귀로 만들어 버리는 스킬이 존재할지 어떨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게다가 설사 그런 흡혈귀가 존재한다고 해도 무턱대고 의심하며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어.’ “저기가 데드릭 님의 성입니다.” 대략 30분이 지났을 무렵, 알버트가 숲 밖에 우뚝 솟아 있는 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저기가 데드릭의 성이라고?” 아크와 북실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성은 엄청난 높이의 절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영국이나 프랑스의 여행 정보지에서나 나올 듯한 고성. 어둠 속에 잠겨서 음산해 보였지만, 뭐, 그러야 뱀파이어 영지에 있는 뱀파이어 성이니 당연한 거겠지. 어쨌든 아크는 고성을 보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뭐, 뭐야. 데드릭 자식...... 엄청난 부자였잖아?’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데드릭은 귀족이다. 게다가 진화할 때 해치운 던필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말끝마다 귀족이니 뭐니 잘난척하던 것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그래도 그렇지. 소환수 주제에 저렇게 엄청난 성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왜 그러십니까?” 아크가 똥 씹은 표정을 짓자 알버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아닙니다.” “그럼 조심해서 따라오십시오. 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릅니다.” 성이 자리 잡은 까마득한 절벽에는 나선형의 돌계단이 있었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이 보였다. 이만한 규모의 성이면 고용인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조차 아크에게는 기분 나쁘게 보였다. ‘얼씨구? 경비병까지? 야, 이거, 데드릭 많이 컸네.’ “잠깐 기다리십시오.” 알버트가 병사들에게 다가가 한참을 얘기한 뒤에 돌아와 말했다. “성함을 말씀드렸더니 경비병이 성주님에게 확인을 해 주셨습니다. 바로 만나시곘다고 하더군요. 경비병을 따라가면 안내해 주실 겁니다. 그럼 전 이만.......” “저를 따라오십시오.” 알버트가 돌아가자 경비병 몇 명이 아크 일행을 맞아들였다. 성안으로 들어간 아크와 북실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겉에서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더 놀라웠다. 정말 중세 귀족의 성에 들어온 것처럼 벽에는 각종 미술품이 장식되어 있었도, 돌아다니는 병사나 하인의 숫자도 수십명이나 되었다. 심지어 레이스가 달린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메이드도 보였다. 물론 마을에서 본 여자처럼 괴상한 얼굴이라 좀 그렇긴 했지만....... 어쨌든 거무죽죽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젠장, 주인님께서 죽어라 고생하는 동안 그놈은 이곳에서 주지육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거지? 하긴, 그러니까 매일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거겠지. 두고 보자. 일단 포트만 박으면 벅벅 길 정도로 부려 먹어 주마!’ 아크는 줄지어 늘어선 계단을 올라가며 맹세했다. 그렇게 대략 10층 높이의 계단을 올랐을 때였다. 아크는 꼴 같지 않게 박쥐 문양을 새겨 놓은 문 앞에 도착했다. “자, 들어오십시오.” 두꺼운 문이 활짝 열리며 드디어 데드릭이 사는 방이 공개되었다. 고작 소환수가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숨에 주눅이 들 정도로 호화로운 방이었다. 그리고 맞은편, 큼직한 의자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성주님, 데리고 왔습니다.” ‘성주님? 그럼 저기 앉아 있는 게 데드릭이란 말인가? 요놈 봐라? 분명 경비병이 내 이름을 확인했다고 했는데 고개조차 안 돌려? 주인님이 행차한 걸 알고도 저따위 태도를 보인다 이거지?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일단 먹고 들어간다는 거냐? 며칠 안 보는 사이에 간덩이가 붓다 봇 해 아예 배 밖으로 나왔구나. 좋아, 네놈이 아무리 잘난 척해 봐야 아크 님의 소환수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끼게 해 주마!’ “야, 인마! 너.......” 발끈해서 소리치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의자가 빙글 돌아가며 성주라는 사내가 몰습을 드러냈다. 반듯하게 머리를 빗어 올린 청년. 그는 슬쩍 아크를 바라보더니 입술을 치켜 올렸다.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것은 날카로운 송곳니...... 라고 해봐야 어차피 뱀파이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가 데드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성에 방문한 건 진심으로 환영하네, 이방인.” “어라? 누구......?” “이 몸은 뱀파이어 일족의 백작, 카라클이라고 하네. 백작으로 통하지.” 카라클이 자랑스럽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카라클 백작? 그, 그럼 데드릭은?” “데드릭? 어디선가 들어 본 기억이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군.” “에? 하지만 여기가 데드릭의 집이라고 들었는데......?” 그러자 돌연 카라클이 고개를 치켜들고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인간이라는 하등 동물의 머리통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군. 여전히 멍청해. 불안해하면서도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 주면 금세 속아서 넘어온다니까.” “뭐?” “아직도 모르겠나? 너희들이 내 성에 오게 된 것은 실수가 아니다. 후후후, 운이 좋았지. 심심풀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런 행운을 얻게 될 줄이야. 나는 네 녀석들이 내 영지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내 눈으로.” 그때였다. 돌연 북실이의 뒷덜미 부근이 들썩이더니 뭔가가 둥둥 떠올랐다. 놀랍게도 그건 눈알이었다! 자신의 뒷덜미에서 눈알이 나타나자 북실이가 돼지 멱따는 비명을 질러 대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사이, 눈알은 둥둥 떠서 카라클에게 날아갔다. 카라클은 눈알을 집어 뻥 뚫린 왼쪽 눈에 쑤셔 넣으며 피식 웃었다. “시끄러운 돼지로군. 뭐, 곧 조용해지겠지만.” ‘뭐, 뭐야? 눈알? 그럼 설마 숲에서 느꼈던 찜찜한 기척은......?’ 아크는 그제야 숲에서 느꼈던 찜찜한 기분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눈알, 그러니 라둔의 ‘스토킹’으로 감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구 뒤로는 북실이의 뒷덜미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결국 내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부터 저 뱀파이어가 감시하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결국 저 녀석이 나를 유인했다는 말인가? 대체 왜?’ 아크가 움찔하며 한 발 물러서자 카라클이 피식 웃었다. “훗, 아둔한 인간,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군.” “대, 대체 네놈은 뭐냐? 왜 나를......?” “아아, 정말 어쩔 도리가 없을 정도로 바보로군. 수백 년 만에 만난 인간이 이런 바보라니. 이런 놈의 피를 빨면 나까지 머리가 나빠지는 게 아닐까 무서울 정도야.” “피를 빨아?” “적당히 좀 해! 이건 뭐, 말이 통해야 분위기를 잡지. 장난하냐? 그럼 내가 뭐하러 귀찮게 네놈을 유인했다고 생각하는 거냐?” 카라클이 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크는 여전히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안다. 뱀파이어가 피를 빠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며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알버트는? 성안의 경비병이나 고용인들은?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멍청아, 뱀파이어가 사는 곳에 인간 따위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카라클이 망토를 세차게 휘젓자 돌연 검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아크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경비병이었다. 아니, 경비병이었던 존재였다. 돌연 경비병의 몸이 갑자기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입이 좌우로 길게 찢어지며 주둥이가 앞으로 밀려 나왔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가득 찬 입에서 훅 하고 짐승 냄새가 풍겨 나왔다. 동시에 살가죽이 터지듯 찢겨 나가며 섬뜩한 선홍빛 괴물로 변해 버렸다. ‘헉, 이, 이게 대체 뭐야?’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경비병을 후려치며 물러났다. 그러자 괴물로 변한 경비병은 재주를 넘듯 뒤로 물러나며 몸을 사렸다. 어둠 속에서 타오르듯 붉게 빛나는 눈동자! 아크가 재빨리 ‘고양이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블러디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곧 다른 경비병들도 허물을 벗듯 가죽을 찢으며 블러디로 변신해 버렸다. ‘맙소사, 그럼 성에서 본 다른 경비병이나 고용인도 모두 블러디였단 말인가?’ 결국 제 발로 뱀파이어의 송곳니 사이로 걸어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라클은 이곳에 인간이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아크는 수백 년 만에 나타난 맛있는 식사. 카라클은 그런 아크가 혹시나 겁먹고 도망칠까 싶어 감시하다가, 알버트를 보내 성으로 유인한 것이다. 뱀파이어에게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설마 몬스터 주제에 이렇게까지 머리를 굴릴 줄이야.’ 그렇다, 사실 아크가 알버트의 말을 믿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뱀파이어도 어쨌든 몬스터. 설마 게임의 몬스터가 그렇게까지 잔머리를 굴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아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자신이 직접 부리는 데드릭도 가끔 심부름하던 돈을 삥땅칠 정도로 잔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것이다. ‘블러디들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아크는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블러디들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곳에서 핏빛 괴물들이 살기를 발하며 다가오니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그러나 시각 효과만 제외하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상황은 아니었다. 블러디의 레벨은 평균 350. 반면 아크의 레벨은 314다. 그러나 블러드 다크는 다른 유저들에게는 엄청난 페널티를 적용시키지만 아크에게는 오히려 보너스다. 40%의 보너스를 적용하면 무려 439레벨! 블러디가 많아도 도망치는 거라면 어떻게든 가능하다. 그러나 카라클의 레벨을 확인한 아크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맙소사, 레벨 500......!’ “후후후, 간만에 만난 이방인의 실력을 좀 감상해 볼까?” 카라클이 음흉한 표정으로 히죽거렸다. “으아아악,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요, 엉엉엉!” “시끄러, 이대로 얌전히 헌혈을 할 것 같으냐?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북실이의 뒷덜미를 잡아채며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카라클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면 끝장이다. 다행히 놈은 전투를 장난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일단 힘들어하는 척하면서 문을 막고 있는 놈들을 밀어내고 탈출해야 해!’ 그때, 다크 블레이드를 피한 블러디가 발톱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옆구리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지며 아크는 서너 걸음을 물러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머지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아크는 일단 적당히 상대하며 기회를 엿볼 생각이었으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뭐, 뭐야? 이놈들...... 정말 레벨 300이야?’ 블러디는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발톱이나 송곳니의 공격은 생명력을 쭉쭉 빨아 댔고, 움직임도 지금까지 상대해 본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민첩했다. 단 세 마리를 상재로 전력을 다해도 100% 승산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 블러드 다크로 능력치가 올라간 것은 앜크만이 아니었다. 뱀파이어가 펼쳐 놓은 결계이니 당연히 뱀파이어와 블러디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잘못 계산했다. 어차피 같이 적용된다면 내 레벨은 여전히 314나 다름없는 거였어!’ “어둠의 보호, 능력의 폭주!” 아크가 쌍가락지의 특수 스킬을 몽땅 발동시켰다. 물리, 마법 방어력 20% 상승! 모든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아크는 ‘다크 댄싱’과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싱싱하군, 아주 싱싱해!” 역시나 부하들이 얻어맞는데도 카라클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쳐 댔다. 그렇게 정신없이 스킬을 난사한 뒤에야 간신히 블러디 한 마리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마리에게 집중하는 사이, 나머지 두 마리에게 등을 얻어맞고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백스텝이 적용되어 적지 않은 생명력이 빠져 나갔지만, 사실 이번 공격을 맞은 것은 아크의 계산이었다. 놈들이 뒤로 돌아오느라 입구가 열린 것이다. “지금이다! 북실이, 뛰어!” 아크는 비명을 질러 대는 북실이의 뒷덜미를 잡아채고 뛰어갔다. 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번뜩이는 뭔가가 앞을 가로막았다. 놀랍게도 카라클이었다. “후후후, 수백 년 전부터 인간들은 이런 잔꾀를 잘 사용했었지.” 카라클이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생각했던 것만큼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라 다행이군. 솜씨도 나쁘지 않아. 강한 놈일 수록 피 맛은 더욱 진한 법이지. 오랜만에 인간의 피로 공복감을 달랠 수 있겠군. 아아아, 더 이상 갈증을 참을 수 없어. 아쉽지만 이제 장난은 끝이다.” 순간 카라클이 훅 하고 사라졌다. 아크가 움찔하며 몸을 돌려세우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다. -카라클에게 공격받았습니다. 데미지 500! ‘헉, 뭐야 이건......?’ 단 일격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각종 방어 스킬을 발동시켰는데도 데미지 500! 제대로 맞으면 800이상 데미지가 나온다는 뜻이다. 역시 평범한 레벨 500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어쩌면 블러드 다크 때문에 올라간 능력치는 카라클이 나보다 높을지도 몰라. 하긴 뱀파이어가 펼친 결계니 뱀파이어에게 가장 유리하게 작용하겠지.’ 결국 1대1로 싸워도 승산을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거기에 블러디까지 붙어 있다면 승산이 없다. ‘젠장, 이런 곳에서 뱀파이어의 밥이 될 수는 없어!’ “다크 블레이드! 암격! 화격!” 아크가 스킬을 난사하며 버티자 카라클이 히죽 웃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내 성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네놈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카라클의 명령에 두 마리의 블러디가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아크는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화격’으로 놈들을 밀어냈다. 그리고 일단 한 걸음 물러나며 전열을 다잡으려는 순간, 뒷덜미가 뜨끔하며 힘이 쭉 빠져나갔다. 기겁하며 몸을 돌리자 카라클이 뒤로 물러나며 입가를 쓱쓱 문질러 닦았다. “크으...... 수백 년 만에 맛보는 인간의 피 맛...... 역시 좋군.”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정보창이 떠올랐다. 카라클이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흡혈’은 뱀파이어에 따라 적용되는 효과가 조금씩 다릅니다. 카라클의 ‘흡혈’은 ‘속박’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속박’을 당하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감소합니다. 또한 랜덤으로 대상의 스킬 세 가지를 10분간 봉쇄합니다. ‘헉 이, 이게 뭐야?’ 뒤이어 떠오르는 정보창에 아크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상황에 공격력과 방어력이 경감한 것도 모자라, 주공격 스킬인 다크 블레이드와 다크 댄싱, 채취까지 봉쇄한다니? 죽으라는 소리가 아닌가? “크하하하, 산 채로 잡아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모두 짜내 주마!” 아크가 휘청거리자 카라클이 다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또 한 번 물리면 끝장이다!’ “라둔, 검. 블레이드 스톰!” 쌕쌕, 쌕쌕쌕쌕! 아크는 라둔이 토해 내는 검을 받아 들고 폭발시켰다. “크윽, 이 자식이...... 어디서 잔꾀를....... 놈을 잡아라!” 그 순간, 아크는 ‘전력 질주’로 문을 박차고 나와 미친 듯이 계단을 굴렀다. 그때 뒤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있던 북실이였다. “히이이익, 아, 아, 아, 아크 님!”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카라클이 북실이를 잡고 목에 송곳니를 꽂아 넣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가, 강 너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러자 투실투실하던 북실이의 몸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해 털썩 쓰러졌다. “크흐흐흐, 일단 한 놈은 처리했고...... 블러디, 나머지 놈을 잡아라!” 우오오오오! 카라클의 명령에 블러디가 허공을 향해 긴 목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성안에 있던 모든 경비병, 시종들이 가죽을 벗으며 블러디로 변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 수는 거의 50여 마리! 아크는 그야말로 악마의 성에 초대받은 것이다. ‘맙소사!’ 아크가 절망적으로 신음할 때였다. 문득 계단 중간에 있는 커다란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좋아,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아크는 ‘전력 질주’로 오히려 브러디를 향해 달려들었다. 블러디들이 몰려들며 발톱을 휘둘러 댔다. 순간, 아크는 ‘상급 협박’을 사용해 놈들을 경직시키고 몸을 날려 앞서 나오는 블러디의 면상을 밟고 뛰어올랐다. 뒤이어 홍콩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몸놀림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듯 머리통을 밟아 대며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막 창문을 부수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텅-! 아크는 엄청난 반탄력에 뒤로 튕겨져 나갔다. “자살 따위는 용납할 수 없다!” 간발의 차이로 망토를 펼쳐 탈출을 막아 낸 카라클이 송곳니를 세우며 달려들었다. 아크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블러디 한 마리가 몸을 던져 검을 받아 냈다. 그사이 아크의 뒤로 접근한 카라클이 덥석 목덜미를 물어 버렸다. 이미 생명력이 바닥나 빈사 상태에 빠진 상황! 간당간당하던 생명력이 정말 빨대로 빨리는 것처럼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팽팽했던 뭔가가 끊어지는 느낌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피가 빨린 아크는 북실이처럼 미라로 변해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이런 곳에서 죽다니...... 다시 돌고래를 타고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건가?’ 그러나 상황은 아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했다. 뱀파이어의 ‘흡혈’에 당해 ‘피의 속박’이 발동했습니다. 카라클의 흡혈에 플레이어의 영혼이 사로잡혔습니다. 뱀파이어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플레이어는 이전에 등록시킨 부활장소가 강제로 변경됩니다. 또한 모든 능력이 봉인됩니다. ‘피의 속박’은 카라클이 사망하거나, 영향권 밖으로 벗어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피의 속박’에 의해 부활 장소가 강제로 변경됐습니다. +‘피의 속박’에 의해 모든 장비가 해제되었습니다. +‘피의 속박’에 의해 모든 능력치가 80% 경감합니다. +‘피의 속박’에 의해 모든 특성과 스킬이 봉쇄됐습니다. +‘피의 속박’에 의해 가방의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이, 이게 뭔 소리야?’ 이번에는 현실의 아크 얼굴에서도 핏기가 사라져 버렸다. ACT 7 강제 노역소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퍼뜩 정신을 차린 아크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어보았다. “뭐, 뭐야. 여기는? 어떻게 된 거지?” 퀘퀘한 냄새가 가득한 어두운 공간이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데 문득 손에 뭉클한 뭔가가 만져졌다. 시선을 집중해 보니 북실이가 바닥에 코를 박고 쓰러져 있었다. “어이, 북실이! 괜찮으냐? 정신차려!” “으으음...... 아, 아크 님?” 거칠게 흔들어 대자 북실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그리고 잠시 멍청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더니 움찔하며 발딱 일어났다. “헉! 배, 뱀파이어! 뱀파이어가 피를 쭉쭉...... 어라? 여기는 어디죠?” “나도 방금 정신을 차려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크르르르. 그때 바로 옆에서 섬뜩한 목울음이 흘러나왔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에서 시뻘건 눈동자가 떠올랐다. 하나가 아니었다. 앞에서 , 옆에서, 뒤에서 수십 쌍의 눈동자가 위협적인 빛을 발하며 다가왔다. “히익, 히익, 나, 난 못 봤어. 아무것도 못 봤어. 기절할래. 기절시켜 줘요.” 정신을 차리자마자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괴물들에게 둘러싸이자 북실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그러나 기절한다고 상황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어라?’ 아크는 재빨리 자세를 잡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뽑아 들려고 했다. 그러나 당연히 허리에 있어야 할 검이 잡히지 않았다. 검만이 아니었다. 입고 있던 갑옷이나 장신구도 모두 사라지고 웬 넝마 조각 하나만 달랑거리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장비가 몽땅 벗겨진 거지?’ 가방을 열어 확인해 보려고 하자 붉은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피의 속박’에 의해 가방 사용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피의 속박? 설마 조금 전에 봤던 그 메시지가!’ 아크는 그제야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 카라클에게 피를 빨리는 상태로 사망한 아크는 ‘피의 속박’이라는 저주 스킬에 걸린 상태였다. 확인한 정보창에 의하면 일단 ‘피의 속박’에 걸리면 영혼이 사로잡혀 죽어도 뱀파이어 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능력치의 80%가 제한되고, 장비, 스킬, 가방의 사용이 금지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기억해 낸 아크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황당한.......” 그때 주변에서 다시 목울음이 울리며 붉은 눈동자들이 더욱 가까워졌다. 장비나 스킬은커녕 능력치까지 깎여 나간 아크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지금 상태에서 이만한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면 눈 깜빡할 사이에 걸레처럼 찢겨지리라. “이, 이 녀석들은 대체 뭐지?” “키키라, 쿠라! 그만둬라...... 다 같은 처지에.......” 아크와 북실이를 포위한 붉은 눈동자들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문득 뒤쪽에서 왱왱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위협적인 살기를 풍기며 다가오던 눈동자들의 움찔하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눈동자들 사이에서 뭔가가 깡충거리며 튀어나왔다. “이해하게....... 이곳에 인간이 들어온 건 처음이라...... 이 녀석들도 해칠 생각은 없었네....... 해칠 이유도...... 의욕도 없지....... 그저 신기해서 몰려들었을 뿐이야.......” 그때쯤 돼서야 아크의 눈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조금 밝아지자 주변을 둘러본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아크가 깨어난 곳은 지하 석실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우글거렸다. 지렁이처럼 생긴 몬스터에, 황소처럼 생긴 몬스터, 몬스터 박물관처럼 별의별 몬스터가 다 모여 있었다. 유일하게 공통된 점은 하나같이 비쩍 마르로 혈색이 창백하다는 것이었다. 아크에게 말을 건 플립은 어린아이만 한 크기의 벼룩처럼 생긴 몬스터였다. 생김새만으로 보자면 몬스터들 중 가장 약해 보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몬스터들은 플립의 눈치를 살폈다. 어쨌든 다행히 플립은 딱히 적대적인 분위기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벼룩의 표정 따위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굳이 느낌을 말하자면 호감을 보이는 것 같았다. “대체 여기는 어디입니까? 그리고 당신들은?” “이곳은...... 카라클 백작의 성, 지하 감옥이네.......” 플립이 어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카라클 백작에게 사로잡힌 몬스터들이지....... 이제 자네들도 그렇지만...... 뭐, 여러모로 당혹스럽겠지만..... 잘 지내보세........” “사로잡혀요? 그럼 이 근처에서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던 건 카라클 백작에게 잡혀서?” “뭐, 그렇지....... 하지만 카라클 백작만은 아니야.......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 오래전부터 몬스터를 잡아 끔찍한 마력으로....... 부하로 만들어 왔지....... 자네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핏빛의 괴물들....... 그렇게 뱀파이어의 마력에 의해 변한 몬그터를 블러디라고 부른다네.......” 플립의 말에 따르면 블러디는 원래 존재하던 몬스터가 아니라, 정상적인 몬스터가 뱀파이어의 마력에 의해 변한 괴물이었다. 다시 말해 알버트가 말한 것처럼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이유는 뱀파이어가 물리쳐서가 아니라, 모두 뱀파이어가 부하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플리비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갇혀 있는 몬스터들은...... 블러디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네....... 몬스터가 모두 블러디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 뭐, 그게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계속 이곳에 같혀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는 이곳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네.......” “두 가지 일?” 아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을 때였다. 뒤쪽에서 철커덩거리는 쇳소리가 들리더니 블러디 몇 마 리가 들어왔다. “이봐, 일할 시간이다!” 블러디가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치자 몬스터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일러났다. 플립 역시 탁탁 튀어-벼룩이라-밖으로 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일단 밖으로 나가세....... 미리 말해 두지만...... 이곳에 들어온 이상...... 반항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어차피 죽어도 도망칠 수 없는 곳이네.......” “뭘 꾸물거리는 거냐, 빨리 나와!” “히익, 가요! 갈게요! 때리지 마세요!” 꾸물거리다가 채찍에 얻어맞은 북실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뛰어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넓은 지하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빨리 시작해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놈들은 각오해라!” 블러디가 옆에 쌓여 있는 삽이며 곡괭이를 가리키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대체 이걸 가지고 뭘 하라는 거야?’ “이 자식, 뭘 멀뚱하니 서 있는 거야?” 아크가 삽을 들고 잠시 머뭇거리자 블러디가 채찍을 휘둘렀다.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북실이가 채찍을 맞고 비명을 질러 댈 때는 엄살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은 게임 속, 보기에는 엄청 아픈 것 같지만 실제로 느껴지는 통증은 정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짜릿한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맞아 보니 지금까지 느꼈던 통증은 비교도 되지 않았다. ‘크윽, 뭐, 뭐야, 이 통증은? 아니, 그보다 이 자식이......!’ 아크가 노려보자 블러디가 욕설을 내뱉으며 마구잡이로 채찍을 휘둘러 댔다. 살점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고통! “기, 기다려 주십시오.......” 그때 플립이 달려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소리쳤다. “이, 이 녀석은 신참이라...... 제가 잘 가르칠 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플립인가?” 블러드는 잠시 플립과 아크를 번갈아 보더니 침을 탁 뱉으며 몸을 돌렸다. “좋다, 네 얼굴을 봐서 이번은 그냥 넘어가 주지. 네가 단단히 교육시켜 놓도록.” “감사합니다....... 이봐, 뭐하나......! 자네도 감사하다고 해야지.......” 플립이 굽실거리며 아크의 머리를 꾹꾹 눌러 댔다. 순간 아크는 눈물이 핑 돌았다. 레벨 314씩이나 돼서 몬스터 따위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굽실거려야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그러나 현재로써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실 방금 전에도 참다못해 블러디에게 달려들 생각이었지만,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긴 갑자기 능력치가 80%나 깎여 나갔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게다가 장비도 스킬도 없이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어이...... 투실투실한 인간은 고분고분한 것 같으니...... 네가 데리고 가서 일시켜.......” “헉! 아니, 나, 나는 아크 님하고...... 히익!” 북실이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지렁이처럼 생긴 몬스터는 그대로 북실이를 칭칭 감고 다른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사이 플립은 아크를 데리고 약간 떨어진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크의 발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도 한 성깔 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성질 죽이는 게 좋을 거야...... 어차피 탈출할 수도 없는 이상...... 자네만 힘들어질 뿐이네...... 어떤 몬스터도 그 족쇄를 찬 상태로는 블러디의 채찍질을 버텨 낼 수 없어.......” “족쇄?” 아크가 의아한 눈으로 발목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뭔가가 거치적거린다 싶었는데, 발목에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딱히 쇠사슬로 연결된 것도 아니라 지금까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정보창을 조사한 아크의 얼굴의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고통의 족쇄 뱀파이어가 노예에게 채워 놓는 족쇄입니다. 뱀파이어의 마력으로 창조된 이 족쇄로 몸에 느껴지는 고통이 10배로 증가합니다. 족쇄를 만든 뱀파이어가 사망하거나, 영향 범위를 벗어나면 자동으로 풀립니다. ‘이런 빌어먹을!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피의 속박’에 걸린 것도 모자라 족쇄까지 채워져 버렸다. 아크는 정말 눈앞이 깜깜해졌다.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피의 속박‘을 풀려면 카라클을 해치우거나, 탈출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카라클은커녕 블러디 한 마리도 상대할 수 없어. 아니, 여기 있는 노예 몬스터 한 마리도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이곳은 지하. 위로 올라가는 길은 저기 보이는 좁은 통로 하나뿐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을 해결할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세차게 고기를 저었다. ‘그래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그래, 누가 뭐래도 이곳은 게임 속이다. 설마 유저를 이런 곳에 처박아 두도록 만들어 놓지는 않았겠지. 분명 문가 탈풀할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려면 좀 자존심이 상해도 일단 놈들의 명령에 따르는 척하면서 정보를 모아야 한다.’ 어쨌든 계속 반항질을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얻어맞기밖에 더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죠.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으음...... 이제야 얘기가 통하는군.......” “그런데 여기서 대체 뭘 해야 하는 겁니까?” “일단...... 그 삽으로 주변을 파 보게.......” 아크는 플립이 시키는 대로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자갈이 상당히 많은 곳이라 30분 정도 지나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헉헉헉! 대체 왜 삽질을 하는 거야? 나오는 거라고는 다 자갈뿐이잖아? 그냥 시키는 거냐? 그냥 잡아 두고 있기 뭐하니까 삽질이나 하라는 거냐? 그런 거냐?’ 명색이 스탄달의 영웅인데 뱀파이어에게 잡혀서 채찍질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삽질이나 하는 신세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크는 화풀이를 하듯이 더욱 세차게 삽을 휘둘러 댔다. 그때 갑자기 플립이 흙더미에서 작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거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게 이거야.......” 플립이 집어 든 돌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옅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월석(마석) 땅 속에서 오랫동안 달의 기운을 흡수해 마력을 띠게 된 마석. 뉴 월드의 땅에는 흔치 않게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신비한 돌이 있습니다. 이런 돌은 묻혀 있는 장소에 따라 성질이 변합니다. 화산 근청에 묻혀 있는 돌은 불의 속성을 띠게 되고. 설산 근처에 묻혀 있는 돌은 얼음의 속성을 띠게 됩니다. 이렇게 속성을 띠게 된 돌을 마석이라고 부릅니다. 월석 역시 그런 마석 가운데 하나입니다. 월석은 달의 기운을 흡수한 마석으로, 같은 속성 캐릭터의 마력을 강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주로 마법 재료로 사용되며, 플레이어가 사용할 경우 약간이지만 마나를 회복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또한 소켓 아이템과 결합해 아이템에 신비한 힘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직접 사용 시 : 사용 즉시 마나+10, 사용한 월석은 소멸합니다.>> <<소켓 사용 시(방어구 전용) : 마나 회복 속도+2%>> ‘이게 뭐야? 마석?’ 아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돌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소켓 아이템을 얻었다. 그 소켓에 끼워 넣을 보석을 이런 곳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약속의 검에 이런 돌을 끼워 넣는 거였군.’ 그러나 월석의 정보를 살펴본 아크는 곧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켓으로 사용할 때 추가되는 성능은 고작 마나 회복 속도 +2%. ‘약속의 검’에 뚫려 있는 구멍 네 개에 몽땅 끼워 넣어도 8%다. 물론 그 정도라도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겠지만, 애써 가며 마석을 찾을 만한 메리트가 없지 않은가? 뭐, 사실 좋은 아이템이라도 가방 사용이 금지되어 챙길 방법도 없지만 말이다. ‘설마 마석이 모두 이렇게 허접스러운 건 아니겠지?’ 아크가 찜찜한 표정으로 마석을 바라보자 플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카라클 백작이...... 블러디로 만들지 못한 우리를 살려둔 천 번째 목적은...... 바로 여기서 이 돌을 캐내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라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성 지하에는...... 평범한 자갈을 월석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 카라클 백작은 이 월석을 이용해 자신의 마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네.......” “이곳에는 뱀파이어의 적도 없는데 왜 그렇게 강해지려는 거죠?” “흠...... 자네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먼....... 뭐, 나도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그동안 심심했으니...... 말해 주지....... 하지만 블러디들이 보고 있으니 손은 멈추지 말게.......” 플립이 호미로 땅을 파헤치며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카라클 백작은...... 아니, 이곳에 사는 모든 뱀파이어들은...... 항상 서로의 영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네....... 그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마력을 올리고...... 더 많은 블러디를 거느리려고 하는 거네.......” “네? 이곳은 뱀파이어 로드가 지배하는 게 아닙니까?” “맞네....... 뱀파이어 로드가 지배하는 곳이지.......” “그런데도 일족이 서로 싸우는 걸 지켜보기만 한단 말입니까?” “그게...... 뱀파이어의 무서운 점이지.......” 확실히 플립은 그동안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꽤나 심심했던 모양이다. 일단 입을 열기 시작하자 묻지 않은 것까지 술술 털어놓았다. 사실 뱀파이어가 엄청난 마력을 가진 종족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약점이 많았다. 십자가만 보면 경기에 걸리고, 마늘 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혼미해진다. 게다가 꽤나 민감한 피부라 일광욕이라도 할라치면 살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뿐이 아니었다. 현실 세계였다면 그게 전부였겠지만, 이곳은 판타지 세상. 여기서 한 걸음만 나가도 뱀파이어에게 쥐약인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성직자들이 우글거리는 것이다. “뱀파이어들 가운데서도 천 년 넘게 살아왔다는 로드나...... 로드의 측근인 최상위 귀족들은...... 그런 약점조차 극복했지만...... 성장기에 있는 뱀파이어들은...... 한때 교단 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고 멸종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었다고 하네.......” 때문에 뱀파이어 로드는 일족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에 결계를 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수백 년, 로드의 의도대로 천적이 사라진 뱀파이어 일족은 급격히 숫자가 불어났다. 로드가 뱀팡이어들의 싸움을 묵인하는 이유는 말로 그 때문이었다. 어둠의 대지가 넓다고는 해도 무한하지는 않다. 그런데 어둠의 대지에서 무적에 가까운 뱀파이어는 숫자가 계속 늘어나 인구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게다가 뱀파잉어의 수명은 수백 년, 어지간해서는 늙어 죽지도 않는 것이다. “처음 어둠의 대지가 만들어졌을 때는...... 모든 뱀파이어들이 로드가 있는 이모탈 캐슬에 모여 살았지....... 하지만 뱀파이어가 지나치게 늘어나자 로드는 최상위 귀족만 남겨 놓고...... 모두 내보냈네....... 뱀파이어라고는 해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고 늙어 죽지....... 하지만 로드는 회호의 존재...... 불멸의 존재네....... 그리고 이모탈 캐슬은 그런 로드의 마력이 지배하는 곳이라...... 다른 뱀파이어도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는 약속 받은 땅이네.......” 때문에 그곳에서 쫓겨난 뱀파이어들은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모탈 캐슬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귀족 뱀파이어를 쓰러뜨리고 영지를 빼앗아 지위를 높이는 것. 그렇게 로드의 눈에 들정도로 세력을 늘린 뱀파이어는 최고위 작위를 받고 이모탈 캐슬의 입성이 허락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모탈 캐슬에 들어간 뱀파이어의 영지는 다시 새로운 뱀파이어들에게 분배되어 같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뭐야? 결국 로드가 생각해 낸 인구문제 해결책이 동족상잔?’ 어처구니없지만 역시 뱀파이어다운 해결책이었다. “뱀파이어 간의 싸움은...... 생각보다 보잡하다네.......” “그건 무슨 말입니까?” 뱀파이어들의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과는 방식이 전혀 달랐다. 어둠의 대지에서 전쟁을 치르는 뱀파이어들에게는 몇 가지 절대적인 규칙이 있었다. 이모탈 캐슬에서 쫓겨난 하위 뱀파이어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영지에 들어가려면 먼저 자신의 지배력이 미치는 영지의 흙으로 길을 만들어야 한다. 즉, 남의 땅에 자신의 흙을 덮으면 자신의 땅이 된다는 말이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 때문에 뱀파이어들은 한 마리라도 많은 블러디를 거느리려고 하는 것이다. “ 때문에 어둠의 대지에서 싸우는 것은 거의 블러디네....... 블러디는 뱀파이어 같은 제약이 없으니까....... 상대 영지의 블러디를 공격해 방해 하면서 주인의 영지를 늘려가는 게 블러디가 해야 하는 일이지....... 하지만 아무리 블러디를 많이 거느리고 있어도...... 정작 본인이 약하면 소용없지.” “어째서요? 블러디를 엄청 몰고 가서 상대 블러디와 뱀파이어를 해치우면 그만 아닙니까?” “말했지 않나...... 이곳의 뱀파이어들은 로드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뱀파이어들끼리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만약 다른 종족이 뱀파이어를 죽인다면...... 로드의 분노를 사게 되네....... 로드는 오래전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둠의 제왕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존재네....... 설사 드래곤이라도 로드의 분노를 사면 끝장이야.......” ‘뭐야? 그럼 내가 이곳을 탈출해 힘을 찾아도 카라클을 죽일 수 없단 말이잖아?’ 어둠의 대지에서는 카라클조차 1대1로 붙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한참 서열이 높은 최상위 귀족과 로드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건가? 그런 괴물에게 찍히면 정말 그날로 제삿날이 되리라. ‘하긴 지금은 카라클을 쓰러뜨리는 게 문제가 아니지만.......’ “결국 뱀파이어들의 싸움은 블러디로 길을 만들고...... 상대 영지로 찾아가 결투를 신청하는 방법뿐이네....... 뱀파이어는 같은 뱀파이어에게 결투 신청을 받으면 거부할 수 없지....... 때문에 힘이 약한 뱀파이어는 어떻게든 상대의 블러디를 막으려고 하고...... 카라클처럼 힘이 강한 뱀파이어는 길을 만들기 위해 블러디를 동원하는 거라네.......” 카라클은 그런 뱀파이어들 중에서는 상당히 강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미 주변의 많은 동족을 숙청하고 상당한 영지와 지위를 손에 넣은 것이다. 물론 만약 다른 뱀파이어가 카라클을 쓰러뜨리면 그 모든 걸 한 번에 얻을 수 있지만, 주변에 그만한 힘을 가진 뱀파이어는 없었다. 때문에 다른 뱀파이어들은 카라클의 눈치만 살피며 방어에 전념하는 상황이었다. ‘뱀파이어로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세상살이의 고달픈 건 어디의 어느 종족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카라클 백작이 그렇게까지 강력한 마력을 가지게 된 것은...... 이 마석 때문이라고 하네....... 어찌 된 건지 이 마석은 여기서만 나오는 모양이야. ” ‘그렇게 대단한 건가? 이 돌이?’ 설명을 들은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월석을 바라보았다. 달의 속성을 가진 종족의 마력을 올려 준다고 나와 있지만, 사실 아크에게는 그저 돌에 불과했다. 마나 회복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고작 10. 마나 500짜리 스킬 한 번 쓰려면 50개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마 상점에 가져다 팔아도 몇 실버 받지 못하리라. 차라리 회복 포션보다 비싸지만 마나 포션을 사 먹는 편이 낫다. 소켓 아이템으로서의 기능도 마찬가지. 아마 상점에 가져다 팔아도 몇 실버 받지 못하리라. ‘뭐, 아직 어떤 정보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NPC를 만나서 다행이다. 적어도 알버트가 준 정보보다는 믿을 만하겠지.’ 아크는 이참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혹시 어둠의 대지에서 수인족을 본 적은 없으십니까?” “수인족...... 어떤 종족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군....... 인간은 본 적이 있지만.......” 플립의 대답에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라니요?” “자네는 본 적 없는가....... 해안 근처에 인간들이 살고 있다네....... 어째서 카라클 백작이 그들을 살려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분명 카라클은 어둠의 대지에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다고 말했다. 때문에 아크는 그 마을 주민들도 당연히 블러디가 위장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라니? 카라클도 그렇고, 플립도 그렇고, 굳이 아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말이 맞고, 누구의 말이 틀리다는 말인가? 아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보던 플립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런데...... 내가 왜 처음 본 자네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지 궁금하지 않나.......” “네?” “그건 내가 자네에게...... 고마워하고 있기 때문이야.......” “고맙다니요? 뭐가 말입니까?” “오늘 작업은 이걸로 끝이다. 모두 이곳으로 모이도록!” 그때 지하 광장으로 한 무리의 블러디가 들어섰다. 그리고 붉은 눈동자로 스윽 훑어보자 몬스터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부르르 떨었다. “훗, 미천한 것들. 걱정마라, 오늘은 지명이다. 거기 건방지게 생긴 녀석하고 투실투실 녀석! 나와라, 백작님의 호출이다.” 블러디가 아크와 북실이를 지목하자 몬스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아크가 영문을 몰라 하는 사이, 블러디들이 우악스럽게 아크와 북실이를 잡아끌었다. 북실이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질러 댔다가 몇 대 맞고 픽 쓰러졌다. 어차피 저항할 수 없다면 굳이 북실이처럼 매를 벌 이유가 없다 이미 채찍으로 그런 교훈을 얻은 아크는 아무 말 없이 블러디를 따라 성을 올라갔다. 그렇게 카라클의 방에 도착한 아크는 단번에 상황을 알아챘다. “후후후, 이제 오는 군.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는 카라클의 목에는 냅킨이 둘러져 있었다. ‘맙소사! 이, 이 자식......!’ “감사히 먹겠습니다!” 뭐라 입을 열 새도 없이 카라클이 북실이에게 달려들어 목을 덥석 물어 버렸다. 쪽쪽쪽, 쪽쪽쪽쪽. 이미 한 번 피를 빨려 핼쑥해졌던 북실이의 얼굴이 쥬스팩처럼 쪼그라들었다. 순식간에 북실이를 미라로 만들어 버린 카라클이 이번에는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온몸의 피가 빨려 나가는 듯한 더러운 기분! 몸이 점점 차가워지면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다. 뒤이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 저편에서 돌아가신 할머니가 손짓하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렇게 거의 빈사 직전까지 피를 빨라먹은 카라클이 입가를 닦으며 물러났다. “흐음, 흐음, 좀 아쉽지만 과식은 좋지 않지. 그나저나 역시 싱싱한 인간의 피는 좋군. 한번 맛보니 다른 놈들의 피는 도저히 못 먹겠어. 당분간 식사는 이 녀석들로 해야겠어. 됐다, 데려가라.” ‘젠장, 죽일 테다. 절대, 기필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 버리고 말 테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미라가 돼 버린 아크와 북실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마치 말라비틀어진 헝겊처럼 늘어진 둘은 블러디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그렇군, 이게 플립이 말하던 두 번째 일이었어.’ 아크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카라클이 몬스터들을 살려 둔 이유는 단순히 노동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식용으로 피를 빨아먹기 위해서다. 플립이 아크에게 친절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까지는 지하 감옥의 몬스터들을 무작위로 끌로 갔던 모양. 그러나 싱싱한 인간이 멘메뉴에 추가됐으니 몬스터의 피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리라. 때문에 플립은 당분간 카라클의 식사 당번은 아크와 북실이가 도맡을 거라고 짐작한 것이다. ‘맙소사, 강제 노동을 당하는 것도 모자라, 도시락 취급까지 받아야 하다니.......“ 마음 같아서는 복도의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피의 속박’ 때문에 부활 장소가 지하 감옥으로 변경된 상황. 자살해 봐야 스탯만 깎일 뿐이다. 그나마 카라클에게 피를 빨려도 스탯은 깎이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지하 감옥에 도착하니 다른 몬스터들은 이미 모두 곯아떨어져 있었다. ‘하아, 정말 탈출할 방법이 있기는 한 건가?’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때, 문득 어둠 속에서 플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나아....... 내가 이곳에서 생활한 지 20년이 지났네....... 용케 아직까지 살아서 뱀파이어의 마력을 쐬다 보니 말까지 할 줄 알게 됐지....... 하지만 아직 탈출에 성공한 몬스터를 본 적이 없어....... 괜히 수상한 짓 해 봐야 자네만 힘들어질 뿐이야.......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면 일찌감치 자 두게.......” 플립은 한 줄기 기대조차 앗아 가 버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고 코를 골아 댔다. 뒤이어 옆에 누워 있던 북실이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흑흑흑, 이제 끝났어. 게임이고 뭐고 이제 다 끝났어. 흑흑흑, 이제 어쩔 거예요? 이게 다 아크 님 때문이에요. 내가 진즉에 돌아가자고 했을 때 돌아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젠장, 정말 아무런 방법도 없는 건가?’ 아크는 대꾸할 기운도 없어 벽에 기대앉은 채 한숨을 불어냈다. 그때였다. 문득 허리 부근이 움찔움찔하더니 넝마 사이로 뭔가가 쑥 밀려 나왔다. 쌕쌕, 쌕쌕쌕! “라, 라둔......!”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다가 움찔하며 입을 막았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몬스터들을 한번 살펴보고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속삭이듯 말했다. “라둔, 네가 어떻게?” 아크의 질문에 라둔은 혀를 날름거리며 온몸을 비비 꼬고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아크는 혹시나 싶어 얼른 캐릭터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450 명성 : 11,425 레벨 : 314 직업 : 다크 워커 칭호 : 캣 나이트, 세계수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5,005 마나 : 4,995 영력 : 200 힘 604<<-80%>> 민첩 764<<-80%>> 체력 954<<-80%>> 지혜 120<<-80%>> 지능 973<<-80%>> 운 114<<-8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38<<-80%>> 유연성 : 127<<-80%>> 화술 : 66<<-80%>> 애정 : 57<<-80%>> 탄력도 :<<-80%>> *장비 아이템 효과 <<‘피의 속박’으로 장비 해제 중>> *캐릭터 특성 효과 <<‘피의 속박’으로 특성 봉인 중>> *사용 가능한 스킬 <<‘피의 속박’으로 스킬 봉인 중>> *스킬 포인트 : 50 그러나 현재 아크는 80%가 제한된 것 외에 기본 스탯 수치에 변화가 없었다. 즉, 아크는 카라클에게 당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피의 속박’을 당해 정신을 잃었던 것뿐이었다. 때문에 소환수인 라둔이 강제송환 되지 않았던 것. 그 이후 영리한 라둔은 기절한 아크가 넝마로 갈아 입혀지는 사이, 재빨리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몬스터들이 잠들자 살금살금 기어 나온 것이다. “잘했어, 라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아크에게 라둔은 한 줄기 빛과 같았다. ‘피의 속박’ 영향으로 장비, 스킬과 함께 가방 사용까지 금지되었다. 그러나 라둔은 이미 불러낸 소환수. 아크에게 적용된 제한은 라둔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라둔, 일단 배 속에 든 아이템을 하나씩 꺼내 봐. 뭔가 도움이 될 게 있을지도 몰라.” 쌕쌕, 쌕쌕, 쌕쌕! 라둔이 입을 쩍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며 아이템을 하나씩 확인시켜 주었다. 라둔의 배 속에 넣어 둔 아이 템은 퀘스트 아이템이나 귀중품들이었다. 혹시 강제로 해체된 장비들이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것들은 모두 메인 가방으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다. ‘아, 이거다! 이걸 사용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크가 집은 아이템은 ‘신성한 나뭇가지였다.’ ‘신성한 나뭇가지’를 사용하면 이그드라실이나 유즈리아와 통신할 수 있다. 아크는 유즈리아를 불러내 정의남이나 이사벨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물론 플립에게 들은 바로는 타 종족이 몰려와서 카라클을 처치하면 로드의 분노를 산다고 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할 문제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게임을 접어야 하는 판국에 그런 것을 따질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신성한 나뭇가지’를 이마에 붙이자 피직거리는 노이즈 소리만 들리더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재 위치는 수신 불가 지역입니다. <<‘블러드 다크’ 영향으로 ‘신성한 나뭇가지’의 통신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게 무슨 구닥다리 핸드폰 같은 메시지란 말인가? 역시나 이그드라실과 유즈리아는 정작 중요할 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다음에 아크가 선택한 아이템은 마법 학회에서 받은 ‘약속의 검’이었다. ‘당분간 쓸 생각이 없어서 라둔에게 넣어 놓기를 잘했어. 이거라면 쓸데가 있을지도 몰라.’ 그날부터 아크의 처절한 사트가 시작되었다. 아크는 낮에 노역을 하고 저녁에는 카라클에게 피를 빨리는 게 하루 일과였다. 덕분에 감옥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될 정도로 피곤했다. 그러나 아크는 몬스터들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검을 사용해 벽을 조금씩 긁어 대기 시작했다. 숟가락 하나로 감옥을 탈출한 빠삐용처럼! 그러나 그 역시 며칠 만에 포기해야 했다. 감옥의 바위벽이 생각보다 튼튼했던 것이다. 게다가 능력치가 80%나 깎인 상태라 며칠을 긁어 대도 흠집조차 내기 힘들었다. 물론 빠삐용처럼 몇십 년 동안 긁어 대면 언젠가는 탈출구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아크에게는 그만한 인내심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최후의 수단까지 가망이 없어지자 아크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미치겠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 어떻게든 나갈 방법이 있기는 할 텐에.......’ 덜컥! 아크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삽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삽 끝에 뭔가 둔탁한 물체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체불명의 몬스터 뼈다귀 오래전에 이곳에서 노역에 시달리다가 죽은 불쌍한 몬스터의 뼈다귀입니다. “겁나는군.” 먼 미래에는 이곳에서 아크의 뼈다귀가 발굴될지도 모르겠다. 아크는 한숨을 푹 불어 내며 뼈다귀를 집어 던지려다가 움찔하며 멈췄다. ‘가만? 뼈다귀라고? 어쩌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아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이거다. 분명 이곳에는 다른 뼈다귀도 많이 묻혀 있을 거야. 그걸 모아서 잘만 사용하면 탈출할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아니, 할 수 있어! 오오오, 이제야 방법이 보인다!’ 아크는 블러디의 시선을 피해 뼈다귀를 얼른 라둔의 배 속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북실이에게 다가가서 슬쩍 귓속말을 보냈다. “북실이, 이제부터 땅을 조금만 더 깊게 파 봐. 혹시 뼈다귀가 발견되면 블러디들 모르게 나에게 가져와. 잘하면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네? 어, 어떻게요?” “나중에 설명해 줄게. 일단 뼈다귀를 모아.” 그때부터 아크와 북실이는 미친 듯이 삽질을 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어 매장됐던 몬스터의 뼈다귀는 꽤 깊은 곳에서 출토되었다. 때문에 아크와 북실이는 다른 몬스터들보다 두세 배는 깊게 땅을 파고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거의 일주일, 현실 시간으로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발굴(초급, 패시브) : 삽과 곡괭이를 다루는 솜씨가 더욱 능숙해졌습니다. 발굴을 사용하면 땅을 파기가 더욱 쉬워질 뿐만 아니라, 땅속에 묻혀 있는 아이템을 발견할 확률도 증가합니다.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땅, 뉴 월드에는 예기치 못한 곳에 놀라운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심이 가는 곳이 있다면 일단 파 봅시다. <<삽과 곡괭이 속도+20%, 아이템 발굴 확률+10%>> ‘오호, 이게 뭐야?’ 기존의 스킬은 모두 봉쇄됐지만, 새로 배우는 스킬은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스킬이 생기자 뼈다귀 발굴 작전은 더욱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아무리 땅을 파 대도 찾을 수 없는 각종 아이템들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낡은 쇳조각이나 나무토막 따위의 잡동사니였다. 그러나 하루 종일 삽질을 하면 비록 코딱지만 한 크기지만 에메랄드나 자수정 같은 보석이 발굴되기도 했다. ‘고작 몇 실버밖에 안 하는 보석들이지만, 역시 뭔가가 나오니 꿀꿀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군. 이참에 월석도 최대한 챙겨 놔야겠다.’ 노역소의 수인들에게 할당된 월석은 하루 열 개. 처음 시작할 때는 하루 종일 허리가 부서지도록 삽질을 해야 겨우 채울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익고 ‘발굴’ 스킬까지 생기자 하루 20개는 너끈히 캐낼 수 있었다. 아크는 할당량을 제외한 나머지 월석과 잡동사니들 가운데 쓸 만한 것들을 골라 몽땅 라둔의 배 속에 쓸어 담았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어쨌든 일을 하면 돈이 들어온다.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좋아, 이 기세로 밀어붙이는 거야!’ 모처럼 의욕이 샘솟은 아크는 더욱더 미친 듯이 삽질을 해대며 돌아다녔다. “허! 저 녀석, 장난이 아니잖아?” “저녁마다 백작님에게 피를 빨리면서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지?” “어이, 신참. 좀 쉬엄쉬엄해. 그러다가 쓰러지면 우리가 곤란하다고.” 심지어 블러디들이 걱정을 해 줄 정도였다. 아크는 굵은 땀방울을 닦아 내며 해맑게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몸 하나는 튼튼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백작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허 참, 기특하기는 하지만 인간들은 어지간히도 재주가 없는 모양이군. 저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데도 막상 결과는 간신히 할당량을 맞추는 정도라니.” 블러디들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아크가 라둔을 이용해 아이템을 빼돌린다고는 상상조차 못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물집이 잡혔다가 아예 굳은살이 박였을 무렵, ‘발굴’ 스킬이 중급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마치 손에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삽질 속도가 빨라졌다. 또한 월석은 물론, 뼈다귀, 잡동사니의 발굴 확률도 20%로 상승했다. 덕분에 더욱 의욕적이 된 아크가 다시 바닥에 삽을 꽂아 넣었을 때였다. 돌연 띠링, 하는 소리가 들리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숙련된 솜씨로 땅을 파헤치다가 흔치 않은 매장품을 발굴해 냈습니다. <<발굴 스킬 숙련도+10>> 뱀피릭 스톤(레어 마석) 수백 년간 뱀피이어의 마력을 흡수한 마석입니다. 뱀파이어의 마력을 흡수한 마석은 실제 확인된 숫자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당연히 굉장히 귀한 마석으로 각종 고급 마법 재료에 사용되며, 소켓 아이템에 꽂아 넣을 경우 뱀파이어의 특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소켓에 사용 시(무기 전용) : 적에게 입히는 데미지의 5%를 흡수해 사용자의 생명력을 전환합니다.>> ‘오오오, 이, 이게 뭐야?’ 아이템 정보를 확인한 아크이 눈이 1센티미터 정도 튀어 나왔다. 다시 말해 카라클의 성에서 수백 년을 푹푹 썩은 덕분에 뱀파이어의 속성을 띠게 된 레어 마석이었다. 과연 레어 마석이라 성능의 월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적에게 입히는 데미지의 5%를 흡수하는 효과! 즉, 100의 데미지를 입히면 5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격의 회복량으로 보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보통 레벨 300대 몬스터들의 체력은 6,000~8,000에 이른다. 한 마리를 사냥할 때마다 300~400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뜻. 한 마리를 사냥할 때마다 중급 회복 포션을 마시는 효과를 발휘란다는 뜻이었다. ‘꿀꺽, 만약 이런 마석 네 개를 몽땅 꽂아 넣으면.......’ 생명력 흡수 20%! 적당한 수준의 몬스터라면 무한 사냥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미친 듯이 땅을 파고 돌아다녔지만 ‘뱀피릭 스톤’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하긴 고작 ‘중급 발굴’로 이런 레어 마석을 찾아낸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루에 20시간씩 지금까지 거의 일주일. 그동안 쉬지 않고 삽질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얻을 수 없었으리라. 또한 그런 레어 마석이 한 장소에서 두 세 개씩이나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어쨌든 그렇게 정확히 일주일이 지나서야 뼈다귀를 원하는 만큼 모을 수 있었다. “라둔, 몰래 성으로 숨어 들어가서 뭔가 끈 같은 것을 찾아봐. 철사면 더 좋고.”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옥 구석의 쥐구멍으로 스르르 들어갔다. 그리고 곧 실타래 같은 것을 들고 돌아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몬스터들이 잠든 것을 확인한 아크는 일단 뼈다귀를 몽땅 꺼내 놓았다. 그리고 밤을 새워 꼼지락거리며 일주일 동안 준비한 비장의 탈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역시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군. 됐다, 그만 가봐라.” 카라클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 앞에는 또다시 미라처럼 변한 아크와 북실이가 쓰러져있었다. 저녁 시간, 노역을 끝내고 또다시 카라클의 저녁 식사로 불려온 것이다. ‘으윽, 피 빨리는 느낌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군.’ NPC들에게는 하루에 한 번이지만, 뉴 월드의 하루는 현실의 8시간. 오늘까지 8일 동안 스물네 번이나 피를 빨린 것이다. 그 정도 됐으면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매번 송곳니가 목덜미를 파고들 때면 소름이 끼쳐 왔다. 게다가 아무리 캐릭터라도 매일 피르 뽑히니 아크와 북실이는 마른 북어처럼 홀쭉해졌다. “흠, 갈수록 양이 적어지는군. 며칠 숙성시켜야 할라나?” 그런 불쌍한 둘을 보고 카라클은 이따위 말이나 지껄이는 것이다. ‘망할 자식,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출해 주마!’ 뒤이어 아크와 북실이는 블러디들에게 이끌려 복도로 나왔다. 그렇게 방을 나오자 아크는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 세우며 손을 저었다. “아, 호, 혼자 걸을 수 있습니다. 너도 괜찮지?” 그러자 비실비실하던 북실이도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하하하! 이제 적응이 돼서 괜찮아요.” “훗, 마음대로 해라.” 블러디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놔둬도 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긴 부축하지 않으면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사람이 블러디들의 포위를 뚫고 어떻게 도망가겠는가? 그렇게 블러디들이 둘을 포위한 상태로 복도를 가로지를 때였다. 막 커다란 창문 근처를 지나던 아크는 돌연 북실이의 뒷덜미를 잡고 난간으로 뛰어올랐다. 마음을 놓고 있던 블러디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엇, 무슨 짓이냐?” “멍청한 놈, 여기서 뛰어내려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백작님의 마력에 잡힌 이상, 자살해 봐야 소용없다.” “자살? 천만에, 탈출이다.” “뭐야?” “라둔, 지금이다, 행글라이더!” 아크가 힘차게 소리쳤을 때였다. 라둔이 옷깃 사이로 얼굴을 내밀더니 찢어질 듯 입을 버렸다. 그러자 마치 쥐똥만 한 마법 램프에서 거대한 지니가 나오듯, 그 작은 입에서 전장이 10미터는 될 듯한 검은 물체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 준비한 탈출 수단! 행글라이더였다. 아크는 지난 며칠 동안 모은 뼈다귀들 가운데 가볍고 튼튼한 것을 골라내 밧줄로 묶어 행글라이더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라둔의 배 속을 뒤지다가 이 아이템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림윙의 날개(특수) 돌연변이로 거대화된 박쥐의 날개. 용도가 불분명하지만 매우 희귀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 쓸데가 있을 지도....... 아구스 산맥의 박쥐 동굴에서 그림윙을 잡고 얻은 아이템! 아직까지 용도가 불분명하던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막상 접쳐 있는 날개를 펴 보니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좌우의 길이가 거의 10미터! 그 형태를 보고 있던 아크는 순간 행글라이더를 떠올렸다. 아크가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의 위치 때문이었다. 카라클의 성은 수십 미터가 넘는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세워져 있었다. 반면 아크는 낙하 데미지를 줄일 수 있는 특성이나 아예 무효화시키는 ‘슬라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기회를 노려 창문으로 뛰어내린다고 해도 100% 사망인 것이다. ‘하지만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성을 탈출해 카라클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 이 계획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행글라이더가 두 사람이나 태우고 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아크와 북실이는 그동안 카라클에게 스물네 번이나 피를 빨렸다. 방금 전에도 피를 빨려 미라처럼 변한 상태! “북실이, 중심 잘 잡아!” “네, 여기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어요!” “좋아, 간다!” 아크와 북실이는 양쪽 손잡이를 잡고 난간을 따라 전력 질주하다가 뛰어올랐다. 행글라이더는 갑자기 허공에 떨어지자 잠시 불안하게 휘청거렸지만 이내 중심을 잡았다. “엇, 저, 저놈들이......!” “쫓아라, 놓치면 안 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블러디들이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아크가 뛰어내린 곳은 성의 10층, 블러디가 성을 나와 뒤쫓을 때쯤에는 이미 카라클의 영지를 벗어난 뒤이리라. “아크 님, 해냈어요!” 드디어 악마 같은 카라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자 북실이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나 채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뒤에서 거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건방진 놈들,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힉, 아, 아크 님!”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북실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카라클이 창문을 깨고 쫓아오고 있었다. 역시 카라클은 뱀파이어답게 박쥐로 변신할 수 있었는데, 얼굴은 카라클, 몸은 박쥐인 괴상망측한 모습이었다. “저 변태 자식......!” 아크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행글라이더는 하늘을 날 수는 있지만 따로 동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면 카라클은 직접 날개를 움직여 추적하니 당연히 행글라이더보다 속도가 빨랐다. 역시나 추격전을 시작한 지 5분 만에 아크를 따라잡은 카라클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행글라이더를 공격했다. “히익, 히익! 나, 날개가 찢어졌어요!” “젠장, 알고 있어. 몸 흔들지 마!” “크하하하, 어리석은 놈들!” 카라클이 행글라이더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날개가 너덜너덜해졌다. 덕분에 행글라이더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북실이가 발광을 해 대는 탓에 균형마저 제대로 잡히지 않아 뼈대가 우직거리며 흔들렸다. ‘젠장, 이대로라면 놈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전에 추락한다.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끝장이야. 이미 블러디들에게 라둔까지 들켰으니 두 번의 기회는 없어.’ 입술을 잘근잘근 깨불던 아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북실이, 꼭 구하러 오마.” “네? 그게 무슨......?” “미안하다. 한 명이라도 살아야 구출하러 올 거 아니냐?” “헉! 서, 설마 아크 님, 자, 잠깐 기다리세요!” “북실이, 너의 용기 있는 희생을 잊지 않으마.” 아크는 몸을 빙글 돌리며 전력을 다해 북실이의 면상을 걷어차 버렸다. “으라차차, 가랏! 돼지 미사일 발사!” “으아아아악, 아, 아크 님-!” “헉, 뭐, 뭐야? 커헉!” 순간 튕겨져 날아간 북실이가 막 공격하러 다가오는 카라클과 정면충돌했다. 그리고 하늘을 날다가 돼지 미사일에 요격당한 카라클은 날개를 잃은 폭격기처럼 바닥에 추락했다. 북실이의 원한에 찬 비명과 카라클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도플러효과를 일으키며 멀어졌다. “아크 님, 너무해애애애애.......” “네, 네놈...... 그러고도 인간이냐아아아아.......” “남의 피나 빠는 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아크는 뻔뻔스럽게 대답하며 유유히 어두운 하늘을 가로질렀다. 지옥을 벗어나 장장 8일 만에 맛보는 자유는...... 실로 달콤했다. ACT 8 소년 가장 데드릭 -카라클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습니다. ‘피의 속박’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고통의 족쇄’가 풀렸습니다. ‘됐다, 성공했어!’ 돼지 미사일로 카라클을 격추시키고 도망치기를 10여 분. 숲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을 넘어가자 메시지창이 올라오며 족쇄가 풀렸다. ‘카라클의 영지를 벗어난 거야. 블러디가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고, 뱀파이어는 자신의 영지를 떠날 수 없다고 했으니 카라클의 추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착륙했다. “이건 또 쓸모가 있겠어, 마법 복원!” 상급이 된 ‘마법 복원’을 사용하자 누더기처럼 변한 행글라이더가 말끔하게 고쳐졌다. 그 모습에 아크는 왠지 찡한 감동을 느꼈다. 장장 8일 만에 처음으로 스킬을 사용해 본 것이다. 그러나 감동을 곱씹어 가며 즐기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카라클의 영지는 벗어났지만, 이곳 역시 뱀파이어의 영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적당한 은신처를 찾아 정비를 해야겠다.’ 아크는 행글라이더를 라둔의 배 속에 집어넣고 곧바로 ‘은신’을 펼쳤다. 그러자 돌연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근처에 지켜보는 적대적 세력이 있어 ‘은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헉, 뭐, 뭐야? 아직 장비도 제대로 걸치지 못했는데 적이......!’ 일단 전투 상황이 되면 장비품을 교체할 수 없다. 다행히 검과 방패는 예외라 검은 뽑아 들 수 있었지만, 아직 방어구조차 제대로 걸치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칠 수도 없다. 자칫하면 더 많은 적을 끌어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젠장, 만약 이놈들이 또 다른 뱀파이어의 블러디라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만약 다시 뱀파이어에게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될 것 같으며 차라리 자살하는 편이 나아.’ 아크는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까지 각오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렇게 잠시, 기분 나쁠 정도로 조용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흐흐흐, 밥이다.” 어두운 숲에서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처에서는 보지 못했던 놈이야.” “좀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잘 씻어 먹으면 되니까.” ‘맙소사, 세 놈이다......!’ 아크는 내심 침음성을 삼켰다. 뱀파이어들의 모두 부하로 만들어 버려 어둠의 대지는 몬스터가 거의 없는 곳이다. 다시 말해 이곳에서 만나는 적은 뱀파이어나 뱀파이어의 부하, 아니면 동등한 힘을 가진 몬스터뿐이다. 어느 쪽이든 방어구조차 갖추지 못한 아크로서는 부담되는 상대였다. ‘빌어먹을! 재수 없는 놈은 방귀를 뀌어도 똥이 나온다더니...... 뱀파이어 성을 탈출하자마자 다른 놈들에게 걸릴 줄이야. 정말 늦기 전에 자살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아크가 심각하게 자살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숲 속에서 뭔가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아크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블러디 정도 되는 적이라면 이런 서툴기 짝이 없는 공격은 가볍게 피해내고 반격을 가해 오리라. 그러나 지금까지 긴장한 게 허탈하게도 달려들던 적은 정통으로 맞아 버렸다. “으악!” 뭔가가 검에 얻어맞고 바닥에 코를 처박았다. “앗, 동료가 당했다!” “제길, 강한 놈이다. A-3플랜, 좌우에서 협공이다!” 아크는 어이없는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상대를 바라보았다. 날개를 파닥거리며 바닥을 벅벅 기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박쥐였다. 그냥 박쥐가 아니라, 엄청나게 약한 박쥐였다. ‘뭐야, 이놈들은? 게다가 방금 A-3플랜이라는 건 대체?’ “크윽 이, 이놈...... 강적이다!” “번개처럼 빠른 우리를 격추시키다니, 검의 달인이 분명해.” “네놈, 인간 주제에 이런 짓을 하고도...... 우욱, 무, 무슨 짓이냐? 우욱! 살려 줘!” 멍하니 지켜보던 아크가 발로 배를 꾸욱 누르자 박쥐가 핼쑥한 얼굴로 파닥거렸다. 그러다가 발을 떼자 이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무, 무슨 짓이야, 인마?” “죽고 싶냐?” “방금 전에는 방심해서 당했지만 제대로 싸우면.......” “제대로 싸우면?” 아크가 몸을 숙여 얼굴을 바짝 붙이며 으르렁거리자 박쥐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겁에 질려 눈물을 글썽이면서 중얼거렸다. “너...... 너...... 후회할 거다. ” “후회? 한번 후회하게 해 보시지.” “너 정말 후회할 거야. 비록 우리는 당했지만 근처에 영주님이 있다고......!” “그, 그래...... 우리 영주님은 엄청 강하다!” “옆 동네 카라클 백작도 우리 영주님은 건들지 못해!” 이어지는 박쥐들의 말에 아크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박쥐들이 너무 약해서 깜빡하고 있었다. 이곳은 카라클 백작 영지의 바로 옆, 그렇다면 카라클 백작과 맞먹는 힘을 가진 뱀파이어의 영지라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이 박쥐들은 그 뱀파이어의 부하! ‘깜빡했다, 박쥐들이나 상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물러났다. 박쥐들 때문에 방어구도 못 입고 ‘은신’도 할 수 없는 상황, 뱀파이어와 마주쳐 버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박쥐들은 금세 기세등등해졌다. “흐흐흐, 이제야 주제를 파악한 모양이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와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는 영주님께서는 이미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곧 도착하실 거야.” “영주님이 도착하면 네놈은 끝장이다!” 그때였다. 돌연 수풀이 우수수 흔들리더니 공간을 뒤흔드는 괴성이 터져 나왔다. “쿠오오오, 감히 어떤 놈이 이 몸의 영지에 침입한 것이냐!” “영주님, 여기입니다!” 박쥐들이 팔짝팔짝 뛰며 소리쳤다. ‘이, 이런 젠장!’ 숲을 뒤흔드는 목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카라클처럼 뱀파이어들은 박쥐로도 변신할 수 었으니 이제 와서 도망쳐도 늦은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이 상태로 부딪혀 보고 안되면 자살하는 수밖에.’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때 다시 숲 전체가 요동치듯 흔들리며 다시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앞으로 셋을 세겠다. 살고 싶다면 그 전에 도망쳐라!” ‘어라?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모처럼 각오를 다지고 있던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해버렸다. 셋을 세기 전에 도망치면 봐주겠다니? 그게 뱀파이어가 할 소리인가? 이상한 건 그것뿐이 아니었다. 상대는 아까 전에 나타났던 곳에서 숲을 뒤흔들고 있을 뿐. 정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건 대체 뭐하는 수작이지? 가만...... 그러고 보니 이 목소리...... 왠지 낯설지 않은데....... 게다가 이 박쥐들이 소리치던 A-3플랜이라는 말도 그렇고...... 설마......?’ 그때 숲의 목소리가 둘까지 외치고 잠시 머뭇거렸다. “둘...... 으음, 아직도 도망가지 않았다면 빨리 도망가라. 이 몸이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흔치 않아. 둘 반......이제 도망갔느냐? 정말 이제 기회는 없다. 둘 반의반.......” ‘역시, 이렇게 속 보이는 짓을 할 놈은 또 없어.’ 아크가 검을 떡하니 어깨에 걸쳐 놓고 성큼성큼 숲으로 걸어갔다. 수풀을 헤치자 웬 소년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대며, 나뭇잎을 돌돌 말아 만든 메가폰에 대고 고함을 질러 대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다, 둘 반의반의 반.......” “......셋.” 아크의 목소리에 소년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멍하니 아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돌연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영주님, 영주님, 이놈입니다! 이놈입니다!”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박쥐들이 아크에게 손가락질을 해 대며 파닥댔다. 그러나 소년은 아무런 말도 안 들린다는 듯이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마치 태엽을 감아 놓은 장난감 인형처럼 뻣뻣한 동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영주님?” “어디 가세요? 이놈이라니까요?” “......모두 동작 그만!”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소년의 몸이 돌덩이처럼 굳었다. 그리고 끼기기긱 소리가 들릴 정도로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아, 그러니까...... 음...... 오, 오랜만이지?” 그렇게 말하는 뱀파이어 소년은 다름 아닌 데드릭이었다. 데드릭의 반응에 박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영주님, 이 인간을 아세요?” “아, 그게...... 이 사람이 나를 소환하는.......” “헉! 그, 그럼 이 인간이 바로 영주님이 말씀하시던 아크?” 박쥐들이 기겁하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후후후, 이제야 알겠냐, 이 건방진 박쥐 새끼들아!’ 아크가 떡하니 팔짱을 끼고 박쥐들을 깔아 보았다. 설마 데드릭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쨌든 데드릭을 만났으니 이제 상하 관계가 확실해졌다. 아크는 박쥐들이 영주라고 부르는 데드릭의 주인. 다시 말해 박쥐들의 주인의 주인이다. 데드릭에게 평소 아크의 명성을 익히 들었을 테니 이제 박쥐들도 실수를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하리라. “이 인간이 영주님을 소환한다는 사람이군요.” ‘훗, 이제야 알아봤냐? 자, 이제 이 몸에게 용서를 구해봐라. 용서해 줄 생각은 없지만.’ 아크가 이 박쥐들을 어떻게 요리해 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이 녀석이 구두쇠에 악랄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 이거죠?” “듣던 대로 악랄하게 생겼네요. 하지만 영주님이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육시켜 겨우 인간 만들어 놨다면서요? 영주님은 역시 대단하세요.” “어쩐지 인간치고는 강하다 했더니 영주님에게 배운 인간이라 그랬군요.” 이어지는 박쥐들의 말에 아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눈치채고 데드릭을 향해 어금니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호오, 그거 처음 듣는 말인데? 분명히 데드릭이 그렇게 말했다 이거지?” “아, 아니 나는.......” 아크가 한 걸음 다가가자 데드릭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러자 역시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때 박쥐 한 마리가 아크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소리쳤다. “뭐야, 이 자식! 영주님의 부하 주제에 데드릭이라니?” “부우하아? 내가 데드릭의 부우하아?” “역시 배은망덕한 놈이야. 영주님 덕분에 간신히 사람 노릇 하게 된 주제에 어딜 기어올라?” “영주님이 착하셔서 그냥 봐주는 모양이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용서하지 않겠다. 만약 또다시 영주님을 함부로 부르면.......” 드디어 아크의 머릿속에서 간당간당 인내심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함부로 부르면?” 살짝 이성이 마비된 아크가 괴상한 표정으로 웃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자아, 어쩔 건데? 함부로 부르면? 응?” “뭐, 뭐야! 이 녀석, 눈빛이 왜 이래?”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살기에 박쥐들이 움찔하며 데드릭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왔다. “여, 영주님.......” “오오! 그래, 영주님, 자, 어쩔 건데요? 데드릭 님 덕분에 간신히 사람 노릇 하게 된 이 인간쓰레기가 함부로 부르면 어쩔 겁니까, 네?” 아크가 히죽이죽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가자 데드릭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리고 아크가 코앞까지 다가와 주먹을 치켜들자 귓가로 데드릭의 비명 섞인 통신이 들려왔다. ‘주, 주인! 제, 제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 줘! 맞을게, 주인이 화 풀릴 때까지 얼마든지 맞을게. 하지만 제발 저 녀석을 앞에서는 참아 줘. 부탁이야. 드래곤 입에 뛰어들라고 해도 군말 없이 뛰어들 테니까. 흑흑흑, 맹세해! 앞으로는 시키는 건 뭐든지 다 할게.’ 순간 아크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데드릭의 필사적인 목소리에 아크는 대강의 상황을 파악했다. 비록 아크에게는 구박덩이지만, 데드릭도 어쨌든 뱀파이어 귀족. 나름대로 체면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나중에 얼마든지 맞아 주겠다고 애걸복걸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의외로 자존심이 셌지? 여기서까지 묵사발로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더 엇나가게 될지도 몰라. 생각 같아서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한데 모아 놓고 군기 한번 잡고 싶지만...... 어쨌든 여기서는 데드릭의 도움도 필요하고 좋아, 그럴 상황도 아니고 하니까 일단 여기서는 은혜를 베풀어 주고 넘어갈까? 그편이 앞으로 데드릭을 더 편하게 부려 먹을 수 있을 것도 같으니까.’ 아크는 크게 한숨을 불어 내며 한 발 물러섰다. “좋아. 앞으로 조심하지요. 데드릭 님.” 아크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하자 잔뜩 겁먹었던 데드릭이 안도의 한숨을 부어 냈다. 그러나 덕분에 박쥐들은 더욱 기가 살아서 아크를 걷어찼다. “뭐야, 이 자식! 왜 분위기는 잡고 난리야?” “우리가 선배야. 앞으로 우리한테 존댓말 해!” “그, 그만둬. 멍청이들아!” 그러자 데드릭이 펄쩍 뛰며 박쥐들을 떼어 놓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도 나지 않는다. “미, 미안해. 이 녀석들이 좀 철이 없어서.......” “아닙니다. 뭐, 어쩔 수 없죠. 저야 데드릭 님 덕분에 사람 노릇하게 된 사람인데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시간 넉넉하게 잡아서.” 빙긋 웃으며 대답하는 아크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서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곧 데드릭의 성(?)으로 향했다. 데드릭의 성은 아크가 있던 곳에서 불과 1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 성을 중심으로 반경 10미터가 데드릭의 엉지 전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판자로 겨우 바람만 막아 놓은, 다리 밑의 거지 움막 같은 곳이 데드릭의 성-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었다. 그럼에도 꼴에 거적때기를 걸쳐 놓고 방을 두 칸으로 나눠 쓰고 있었는데, 하나는 박쥐 삼 형제가 사용하고, 나머지 하나는 데드릭이 집무실 겸, 침실 겸, 거실 겸, 주방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영주님은 청렴결백하시다.” “그래, 악랄하게 다른 뱀파이어들의 영지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을 뿐이야.” 박쥐들의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며 말했다. 덕분에 아크는 데드릭의 군기를 잡을 생각조차 사라졌다. 아크를 성으로 안내한 데드릭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치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이가 선생님에게 구멍 뚫린 양말을 들켰을 때처럼, 혹은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나왔을 때처럼 말이다. 글러니 화낼 마음이 들겠는가? 어쨌든 데드릭의 졸개들은 아직 어린 박쥐들이었다. 성에 도착하자마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곯아떨어졌다. 데드릭은 박쥐들을 일일이 들어다가 옆방에다 눕혀 놓고 곧바로 태도를 바꿔 아크 앞에 납작 엎드려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우우, 주, 주인. 고마워. 나중에 얼마든지 때려도 좋아. 이제 무슨 일을 시켜도 정말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할게.” 아크는 데드릭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물었다. “너, 던필의 재산까지 다 물려받은 거 아니었어?” “그게.......” 데드릭이 그제야 훌쩍거리며 그동안 숨겼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본래 던필은 뱀파이어들 중에 그리 잘나가는 편은 아니었다. 블러디를 만드는 재주도 없었고, 마력을 높이는 방법도 잘 몰랐다. 그러나 다행히 던필의 영지를 탐내는 뱀파이어가 없어 그럭저럭 살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카라클 백작이 주변의 뱀파이어들을 해치우면서 세력을 불려 갔어. 원래 카라클은 거의 반대편에 살고 있었지만 영지를 빼앗으며 이 근방까지 오게 된 거지. 덕분에 겁을 집어먹은 던필은 자신의 영지를 몽땅 카라클에게 바치고 손바닥만 한 영지로 물러나는 대신 공격하지 않겠다는 양속을 받은 거야.” 어쨌든 막강한 뱀파이어으이 옆에서 던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만 한 영지조차 데드릭에게 빼앗긴 것이다. ‘하긴, 던필 녀석은 데드릭에게도 질 정도로 약한 뱀파이어였으니까 카라클에게 덤빌 엄두조차 못했겠지. 그나저나 그런 던필도 처음 나왔을 때는 무지하게 잘난 척했었지? 잘난 척은 뱀파이어의 천성인가?’ “아? 그 박쥐들도 던필의 부하였어?” “아니, 저 녀석들은 서쪽 동굴에 살던 내 사촌들이야.” 데드릭이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에서 태어나는 박쥐들은 뱀파이어 귀족의 부하가 되는 게 최고의 출세야.” 어둠의 대지에서 박쥐가 뱀파이어의 부하가 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블러디와 달리 박쥐는 전투 능력이 떨어져 보통 전령으로 사용하는데, 어둠의 대지에 사는 뱀파이어에게는 굳이 정령이 핑요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던필의 부하가 됐을 때 부모님이 잔치를 벌였을 정도였어.” 잠시 그리운 기억을 더듬던 데드릭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부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데드릭은 던필과 다른 박쥐들의 괴롭힘을 받다가 쫓겨났다. 데드릭의 부모님은 그 일로 충격을 받고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고, 데드릭은 일족의 불명예라는 딱지를 달고 박쥐 동굴에서도 쫓겨났다. 데드릭이 던필에게 증오심을 불태웠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방황했지.” 데드릭이 10대 불량소년이 고백하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정말 뱀파이어 주제에 별짓을 다 한다. 어쨌든 데드릭은 그렇게 방황하다가 우연히 아크의 소환수가 되었다. 그리고 어찌어찌하다 보니 던필을 물리쳐 뱀파이어 귀족으로 벼락출세를 하게 된 것이다. 비록 얻은 건 쥐똥만한 영지와 거지 움막뿐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얼마 전, 방황하던 시절에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숙부가 죽었음을 알고, 고아가 된 사촌들을 거두게 됐다는...... 한 마리 박쥐의 눈물겨운 사랑고 감동의 대서사시였다. “웅, 영주님...... 더 열심히 영지를 지킬게요.......” 거기까지 설명했을 때 옆방(?)의 박쥐 한 마리가 이불을 걷어차며 잠꼬대를 했다. 데드릭은 다시 이불을 덮어 주고 돌아와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녀석들은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아. 저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더 출세해야 하는데.......‘ ‘데드릭이 왜 그렇게 지위에 집착하는지는 대강 알 만하군. 지금까지는 그냥 싸가지 없는 소환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쓸 만한 구석도 있는걸. 적어도 그 사람들보다는 나아.’ 아크는 몇 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삼촌들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뻔질나게 드나들며 용돈을 타 가던 삼촌들이다. 그러나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입원하자 행여 돈이라도 달랠까 싶어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뉴 월드의 NPC는 기본 성격만 프로그램 되어 있고, 실제 행동은 자체적인 인공지능으로 결정한다고 한다. 결국 데드릭의 행동도 스스로 판단한 결과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삼촌들보다 오히려 NPC에 불과한 데드릭이 더욱 사람 냄시가 나지 않은가? ‘데드릭이 집에 오고 싶어 했던 건 박쥐들을 챙기기 위해서였던 건가?’ 막상 모든 사정을 듣고 나니 새삼 데드릭이 달이 보였다. “좋아, 이곳에 있는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체면을 지켜 주지.” “저, 정말이야?” “대신 밖에서 소환되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 돼.” “고마워, 주인. 주인도 인정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었구나!” “뭐야?” “아, 아니야!” 데드릭이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모습도 밉살스럽게 보였겠지만, 왠지 지금은 밉지 않았다. 역시 가정방문은 해 보고 볼 일이다. “그런데 주인, 스탄달이 떠올랐는데 또 내가 강제송환 되면 어쩌지?” “걱정 마, 방법을 찾아왔으니까.” 아크가 소환 포트에 대해 설명하자 데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할 거야?” “아니, 그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 “뭔데?” “북실이를 구해야 하지만...... 일단 그건 둘째 문제고, 어둠의 대지에 삼신기가 숨겨져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당연히 북실이는 구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카라클에게 당한 것도 갚아 줘야 한다. 물론 카라클을 죽이는 건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문제지만, 이대로 당하기만 하고 물러서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카라클의 블러디라도 몽땅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글러나 지금 능력만으로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삼신기를 손에 넣고 2차 전직까지 할 수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몰라.’ “여기에 삼신기가?” 데드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하지만 여기에 수인족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짐작 가는 곳이 있어. 일단 소환 계약부터 다시 하고 같이 가 보자.” 아크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환 포트’를 사용해 데드릭을 소환수로 등록시켰다. 본래 이모탈 캐슬의 고위 뱀파이어를 제외하면 뱀파이어는 자신의 영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건 데드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데드릭은 뱀파이어면서 동시에 소환수다. 아크와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는 것이다. “저것들이 수인족이라고?” “그래 , 내 짐작이 맞다면.......”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을을 바라보았다. 아크가 찾아온 곳은 어둠의 대지에서 처음 찾아갔던 마을이었다. 아크는 성에 갇혀 있는 동안, 남아도는 시간을 이용해 플립에게 어둠의 대지에 관련된 여러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단서를 조합하고 추리해본 결과, 이곳에 수인족이 산다면 그들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대체 어디가 수인족이라는 거야? 저것들은 아무리 봐도 사람이잖아. 이곳은 아까 내가 말했던 카라클이라는 강력한 뱀파이어의 영지야. 놈은 자신의 부하를 사람의 형상으로 위장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알고 있어. 카라클 자식은 이미 만나 봤거든.” “엥? 카라클을 만나 봤다니? 그런 말은 없었잖아?” “아아, 갚아 줘야 할 빚이 있지. 되찾아야 할 짐도 있고.” “자,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주인 설마?” 카라클을 대한 말이 나오자 데드릭이 기겁하며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댔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안 돼! 카라클은 안 된다고. 카라클은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대영주야. 조금만 거슬리는 짓을 하면 내 영지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솔직히 내가 카라클의 영지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단 말이야. 만약 저놈들이 카라클의 부하라면.......” “그래서 지금 확인해 보려는 거 아냐.” “힉, 자, 잠깐 기다리라니까!” 데드릭이 화들짝 놀라며 아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아크는 데드릭을 질질 끌며 마을로 들어섰다. 그러자 마을 입구 부근에 앉아 있던 주민이 유령이라도 본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쳤다. 아크는 ‘전력 질주’로 앞질러 가 주민의 앞을 가로막으며 씨익 웃었다. “잠깐 얘기 좀 하죠.” “왜, 왜 이러는 건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네. 상관하고 싶지 않아!”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뭘 모른다는 거죠? 뭘 상관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까?” “그, 그건.......” “역시 이곳 주민들은 카라클의 부하는 아닌 모양이군요.” 주민의 반응에 아크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이들이 사람으로 변신한 블러디였다면 공격했거나, 알버트처럼 유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아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두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만약 내 예상이 틀렸다고 해도 이 마을은 해안과 가깝다. 충분히 도망갈 수 있어.’ 아크는 그렇게 생각하고 인적이 드물 때를 노렸다가 마을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중요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 뭘 말인가?” “혹시 이런 걸 본 적이 있습니까?” 아크가 가방에서 두 개의 삼신기를 꺼내 들었다. 순간 주민의 눈이 미사일처럼 튀어나왔다. “그, 그건...... 그걸 어디서 구한 건가? 설마 자네......?” “구도자입니다..” 아크의 대답에 주민은 충격을 받은 듯 하얗게 질린 얼굴로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던 주민이 서둘러 말했다. “이, 이곳은 위험하네. 이쪽으로 오게.” 주민이 허둥지둥 근처에 있는 집으로 아크를 끌고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 앉아 있던 노인이 아크를 확인하고 움찔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민이 얼른 다가가 뭐라고 속닥거리자 이내 놀란 눈으로 아크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창문 틈으로 밖을 살펴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오늘은 보이지 않는군.” “뭐가 말입니까?” “눈 말이네. 카라클 백작의 눈. 처음 자네가 마을에 왔을 때 자네 동료에게서 카라클 백작의 냄새가 났네. 그래서 우리들은 자네들을 카라클 백작이 보낸 자들이라고 생각했지. 뒤이어 알버트가 나타나서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설마 아직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네.” ‘아하, 그렇게 된 거였나?’ 아크는 그제야 마을 주민들의 반응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은 미안한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애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신기를 다시 보여 줄 수 있겠나?”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삼신기를 꺼내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더듬듯 삼신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오오! 진짜다. 틀림없는 삼신기야. 설마 내 눈으로 ‘별’과 ‘어둠’을 보게 될 줄이야.” “네, 틀림없는 삼신기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머지 삼신기를 소유한 수인족이겠죠.” 노인이 움찔하더니 한숨을 불어 내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어떻게 알았나?” 아크가 이들이 수인족이라고 확신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카라클은 분명 어둠의 대지에 인간 따위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립은 인간이 있다고 말했다. 서로 상반된 주장, 과연 어는 쪽이 진실일까? 그 문제를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둘 다 진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뱀파이어는 원래 몬스터보다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현재 유저들의 선택할 수 있는 종족, 오크보다도 더 인간과 가까웠다. 반면 수인족은 묘족이나 너구리족, 인어족을 보면 알겠지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당연히 뱀파이어가 보기에 수인족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100% 순종 몬스터가 보기에 수인족은 어딜 봐도 인간이다. 뱀파이어에게는 인간이 아니고 몬스터에게는 인간인 종족...... 수인족밖에 없었다. 아크의 설명에 노인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자네 짐작대로 우리는 수인족이네.” “하지만 지금 모습은 수인족이라기보다는 인간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아크가 걱정하는 유일한 문제가 바로 그거였다. 수인족은 인간과 짐승의 중간 형태,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지나칠 정도로 험악하게 생겼지만, 짐승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부하를 인간처럼 변신시키는 카라클의 능력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인족이 카라클의 영지에서 살고 있으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아크는 만약을 위해 도주로를 확보해 놓은 것이다. “혹시 이곳의 수인족은 카라클 백작의 부하가 돼 버린 겁니까?” “무슨 그런....... 아니네. 부하라니? 절대 아니야! 비록 우리가 카라클에게 사로잡힌 몸이지만, 결코 영혼까지 팔아먹지는 않았네.” 아크와 노인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창가에서 밖을 살피던 주민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럼 원래 그런 모습이라는 말입니까?” “아니, 우리는 본래 태초의 늑대 펜릴의 피를 이어받은 늑대족이네.” “늑대족?” “그래, 늑대족 가운데서도 가장 명예롭고 고귀한 전사의 혈통, 월랑족이지.” 노인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월랑족의 장로네. 월랑족이 어둠의 대지에 들어오게 된 것은 100여 년 전이지.” 역시나 장로의 입에서 밑도 끝도 없는 월랑족의 역사 강의가 시작되었다. 묘족 역시 전사 혈통의 수인족이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적에 가까웠다. 반면 늑대족은 순수한 전사 혈통, 때문에 유저들의 선택할 수 있는 늑대족도 직업은 전사 계열밖에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월랑족은 그런 늑대족 가운데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종족이었다. “수백 년 전, 암흑세기가 도래했을 때, 우리 월랑족은 마반 영웅과 함께 최전선에서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웠네. 실로 명예로운 전투였지. 수많은 동족이 죽었지만 누구 하나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았어. 어쩌면 그때가 월랑족의 전성기였을 거네. 차라리 그때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장로는 슬픈 눈으로 과거를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암흑 세기 말기. 7인의 영웅이 어둠의 제왕과 결전을 벌이기 위해 떠났을 무렵, 월랑족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내려졌다. 연합군과 함께 스탄달로 향한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의 공격을 저지하는 것. 월랑족은 이 위험한 임무를 명예롭게 받아들였고, 수많은 휘생을 치러 가며 뤼겐베르크와 혈전을 벌였다. 뤼겐베르크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스탄달이 무사했던 것은 이들의 희생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7인의 영웅에게 패퇴하던 어둠의 제왕이 마지막 순간, 궁극의 파괴 마법을 펼쳐 스탄달은 차원의 폭풍에 갇혀 버렸다. 덕분에 월랑족도 스탄달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이 뤼겐베르크와 전투를 벌이던 장소가 바로 베스튜라가 말했던 산맥들이 모이는 접점!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과 폭풍만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곳에 고립된 선조들의 삶은 실로 비참했네. 그곳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죽어 버린 대지.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지.” 세상을 위해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운 월랑족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추위와 굶주림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월랑족은 그곳에서 하나 둘 목숨을 잃어 갔다. “흑, 그 기분 알아. 죽어라 고생하고도 아무런 대가를 못 받는 심정.” 아크의 어깨에 앉아 있던 데드릭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월랑족 장로는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박쥐와는 근본부터가 달랐다. “아니, 우리는 처음부터 대가를 바라고 어둠과 맞서 싸운 게 아니네. 우리가 원하는 게 있다면 단 하나, 명예롭게 싸우다가 전사하는 것뿐이네. 선조들이 고통스럽게 생각한 건 그 때문이네. 우리가 남겨진 그곳에는 어떤 명예도 없었지. 그저 허망한 죽음뿐이었어.” 어쨌든 100여 년 전, 월랑족은 겨우 죽음의 산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선조들이 찾아낸 땅이 바로 이곳, 어둠의 대지였네. 물론 이곳은 이미 뱀파이어들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선조들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아니, 오히려 싸우다가 죽는 것은 바라는 일이었네. 그런데 다행이랄까? 우리가 도착한 영지를 지배하던 던필이라는 뱀파이어는 화평을 제의해 왔네.” ‘어라? 던필? 아, 그렇지. 이 주변은 원래 던필의 영지라고 했었지?’ 또 이렇게 연결되는 건가? 어쨌든 허약한 던필이라면 월랑족이 나타나자마자 겁을 집어먹고 화평을 제안할 만도 했다. 그러나 몇십 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던필이 자신의 영지를 몽땅 카라클에게 넘기고 도망친 것이다. 그런데 카라클은 던필처럼 만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카라클은 우리를 부하로 삼으려고 했네. 하지만 설사 과거의 영광을 잃었다고 해도 우리는 월랑족, 죽으면 죽었지 뱀파이어의 부하 따위가 될 수는 없었지.” 당연히 월랑족과 카라클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렇게 수십 년, 치열한 전투 끝에 월랑족도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대부분의 블러디를 물리치고 카라클의 성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카라클을 처단할 수 있었네. 그런데.......” 장로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중얼거렸다. “결전의 전야, 일족 가운데 하나가 배신을 해 버렸네. 알버트...... 그놈이 일족의 보물을 훔쳐 카라클에게 바쳐 버린 것이네. 선조들이 쌓아 온 월랑족의 명예를 짓밟아 버리고!” “자, 잠깐만요. 일족의 보물? 설마 그게......?”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묻자 장로가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찾던 삼신기네.” 장로의 대답에 아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수인족을 찾으면 당연히 마지막 삼신기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힘을 얻은 뒤에 방법을 궁리해 북실이를 구출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삼신기가 카라클의 수중에 있다니? 그렇다면 카라클을 처리해야 삼신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거 생각보다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어둠의 제왕과 결전을 하러 가기 전 마반 영웅은 우리에게 보물을 맡겼네. 그만큼 우리를 믿었던 것이지. 그런데 마반 영웅의 유산을 한낱 뱀파이어에게 빼앗기다니......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 구도자여, 마음껏 비웃어 주게. 선조가 물려주신 용맹스러운 송곳니와 발톱이 뽑히고,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용기조차 식어 버린..... 지금의 이 모습은 일족의 보물을 잃어버린 대가라네.” 장로가 자학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물을 잃어버린 월랑족은 외모와 함께 용기도 사라졌다. 그렇게 싸울 힘을 잃어버린 월랑족을 카라클은 이곳에 가둬 놓고 틈만 나면 피를 빨아 댔다고 한다. 비록 모습은 변했지만 과거 어둠의 제왕과 싸웠던 용맹한 월랑족, 그 전사의 피로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월랑족에게는 굴욕의 나날이었다. 그때 아크는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가만, 외모가 변한 게 삼신기를 잃어버려서라고요?” 아크는 월랑족의 모습이 변한 이유가 카라클의 저주 같은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삼신기가 없는 것만으로 힘을 잃는다면, 그 삼신기를 마반 영웅이 가지고 있을 때는 어떻게 싸웠단 말인가? 그러나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 일족의 힘의 원천은 달이네. 때문에 우리는 달이 뜨는 밤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반면 달이 보이지 않는 낮에는 힘이 약해지지만, 낮이라고 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네. 때문에 우리는 월랑족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네. 하지만 이곳을 감싸고 있는 어둠의 기운은 달마저도 완전히 가려 월랑족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거네.” 말하자면 늑대족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늑대인간과 같은 종류였다. 그러나 약간 다른 점은 밤이고 낮이고 달이 존재하는 한 늑대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달의 힘이 완전히 차단된 이곳에서 어떻게 월랑족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 그게 바로 월랑족이 가진 삼신기의 힘이었다. “우리 일족이 보관하고 있던 삼신기는 ‘달의 조각’. 달의 힘이 담긴 보물이네.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도 달의 가호를 받을 수 있었지. 하지만 그게 카라클의 손에 들어가자 달의 가호를 받지 못해 힘을 잃어버린 것이네.” ‘달의 조각!’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야 마지막 의문이 풀렸다!’ 카라클이 월랑족을 왜 성에 가둬 두지 않고 이렇게 멀리 떨어뜨려 놨는지. 아마도 월랑족이 다른 몬스터였다면 당연히 지하 감옥에 가둬 두고 노역을 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월랑족이 지하 감옥에 갇히면 다시 힘을 되찾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크가 강제 노역을 하던 지하 감옥. 카라클이 ‘달의 조각’을 숨겨 놓은 곳은 바로 그 지하 감옥의 어딘가가 분명하다. 달조차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달의 힘을 흡수한 ‘월석’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이제야 모든 문제를 해결할 답이 나왔어!’ 복잡하게 엉켜 있던 실타래가 일시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카라클이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삼신기를 찾기 위해서는 카라클을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은신’을 사용해 지하 감옥에 숨어 들어가는 방법도 있지만 ‘달의 조각’이 정확히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지하 감옥에서 ‘은신’을 풀고 삽질을 해 댈 수는 없지 않은가? ‘나 혼자서는 절대 블러디들과 카라클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저는 꼭 ‘달의 조각’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혼자서는 무리죠. 삼신기의 수호자였던 월랑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도 돕고 싶네. 설사 일족이 모두 전멸한다고 해도 말이네.” 장로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보다시피 아무런 힘이 없네. 송곳니와 발톱은 물론, 용기마저 잃었네.” “달의 힘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겠죠.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돌 하나를 툭 뱉어 냈다. 지하 감옥에서 슬쩍해 둔 월석! 월석을 발견한 장로가 비명을 터뜨리며 와락 손에 쥐었다. “헉, 이, 이것은...... 설마!” 스스스스. 월석을 쥔 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손목을 따라 은빛 털이 솟아 나왔다. 뒤이어 섬뜩한 손톱과 길게 비어져 나온 주둥이로 번들거리는 어금니가 돋아났다. 순식간에 거구의 은빛 늑대로 변한 장로가 희열에 찬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오오오오, 이 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투지...... 이거다, 이게 월랑족의.......” “월석은 마을 주민들에게 모두 나눠 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자, 도와주시겠습니까?” “물론이네. 아니, 꼭 돕게 해 주게! ‘달의 조각’을 찾고 지난 굴욕을 갚을 기회야. 게다가 자네는 구도자. 위대한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반 영웅의 후예와 함께 싸울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 해도 더 바랄 게 없네. 카라클과 일족의 배신자 알버트를 처단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게.” 그때 두두둥 하며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월랑족의 복수 당신은 어둠의 대지에서 월랑족의 후예를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월랑족은 뱀파이어 카라클에게 보물을 빼앗기고 굴욕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월랑족을 도와 카라클과 일족의 배신자 알버트를 처단해야 합니다. <<난이도 : +B>> “알겠습니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2~3일만 기다려 주십시오. 물론 그때까지 카라클이나 알버트에게 들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 일은 아직 다른 주민들에게는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 변신도 하면 안 되고요.” 아크가 월석을 빼앗자 장로는 다시 쭈글쭈글한 노인네로 변해 버렸다. 그때 데드릭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잠깐, 설마 정말 카라클과 싸울 생각이야?” “지금까지 뭘 들었냐?”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주인은 카라클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게다가 설사 이길 수 있다고 해도 만약 이곳에서 주인이 카라클을 죽인다면.......” “이미 알고 있어.” 모든 뱀파이어의 정점, 어둠의 제왕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전해지는 불멸의 존재 로드의 분노를 사게 된다. 로드가 나서면 아크는 물론 월랑족도 한순간에 전멸하게 되리라. 결국 카라클과의 싸움은 지든 이기든 100% 사망에 이르게 되는 전투였다. 그러나 아크는 씨익 웃으며 데드릭의 어깨를 꽉 잡았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카라클을 해치우는 건 뱀파이어인 네 몫이니까.” “아아, 그런 거였구나. 난 또...... 에엑? 뭐, 뭐, 뭐, 뭐라고?” “못 들었어? 나와 월랑족은 너를 카라클과 싸울 수 있는 상황까지만 만들어 주는 역할이야. 적장을 무찌르는 가장 멋진 역할은 네 몫이지. 뱀파이어들끼리 죽이는 건 상관없다며?” “마, 말도 안 돼! 나 같은 건 열 마리가 있어도 카라클은 못 이긴다고!” 패닉 상태에 빠진 데드릭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아까 전에 내 명령이면 드래곤 입속이라도 뛰어든다며?” “하, 하지만.......” “너도 명색이 뱀파이어잖아. 사촌동생들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을 거 아냐?” “하지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걱정 마, 내가 이기게 만들어 주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ACT 9 혈투, 뱀파이어 VS 뱀파이어? “준비됐습니까?” “으음, 돼, 됐네.” 아크의 물음에 월랑족 장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라클의 성이 보이는 어두운 숲 속, 100여 마리의 은빛 늑대인간이 모여 있었다. 이들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서 옅은 빛을 발하는 돌은 아크가 지급한 월석이었다. “제한 시간은 30분 내외입니다.” “알고 있네.” 월석이 월랑족을 변신시킬 힘이 있다지만, 실제로는 마치 건전지처럼 ‘달의 조각’이 내뿜는 힘의 일부를 흡수한 것에 불과하다. 틀림없이 뭔가 제한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일단 출발하기 전에 월석을 테스트해 보았다. 그 결과 월랑족이 가진 힘을 100% 발휘하면 30분밖에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분이면 넉넉한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적을 전멸시키는 게 목적은 아니다. 30분 안에 내가 카라클이 있는 곳까지 가기만 하면 돼.’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겁니다.”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어. 하지만.......” 장로가 질질 흘러나오는 콧물을 슥슥 닦으며 물었다. “......정말 ‘그게’ 도움이 되기는 하는 건가?” “네, 절 믿으십시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작전을 설명했다. “저와 장로님 그리고 선발한 정예 열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성에 돌입하면 요소요소에 병력을 분산시킬 겁니다.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번 싸움은 전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물러나도 좋습니다.” “하지만 만약 작전이 실패하면 퇴로가 막혀 자네가 위험할 텐데?” “설사 작전이 실패해도 후퇴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음, 과연 마반 영웅의 후예답네.” 아크의 대답에 월랑족 전사들의 눈동자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지휘관이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보이면 졸개들은 당연히 사기가 치솟는 법이다. “자, 그럼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알겠네. 월랑족의 전사들이여, 드디어 출진이다! 송곳니를 갈아라. 발톱을 세워라!” “우오오오!” 월랑족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라둔, 가자!” 쌕쌕쌕쌕! 바바바바! 아크의 명령에 라둔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성으로 달려 나갔다. 그 뒤를 100여 마리의 월랑족이 은빛 갈기를 휘날리며 뒤따랐다. 월랑족이 엄청난 기세로 가파른 경사를 올라 성 앞에 육박하자 경비병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헉, 저, 저놈들은......?” “다른 영지의 블러디들이 침공한 건가?” “아니다, 해변 마을의 월랑족이다. 하지만 놈들의 능력은 봉인됐을 텐데? 어, 어떻게 변신한 거지?” “서둘러! 백작님께 알려라! 나머지는 놈들을 막는다!” 경비병들이 인간 가죽을 벗어 던지고 블러디로 변하며 소리쳤다. “어림없다, 다크 블레이드!” 콰콰콰쾅! 라둔은 가속이 붙은 그대로 블러디들을 들이받았다. 동시에 아크가 몸을 날리며 막 성안으로 뛰어 들어가던 블러디의 뒤통수에 다크 블레이드를 먹여 주었다. 이만한 규모의 기습이라면 전령을 막아도 금세 알려지겠지만, 조금이라도 연락을 늦추는 편이 이득인 것이다. 제대로 백스텝 데미지가 터지자 블러디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크는 일어나려는 블러디의 면상에 사커 킥-넘어진 상대를 축구공으로 차듯이 걷어차는 발차기-을 올려붙이고 ‘XX요격’으로 중요 부위를 난도질해 버렸다. 생전 처음 받아 보는 고통에 블러디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렸다. “크윽, 이, 이놈이......!” 크아아아, 크아아앙! 좌우의 블러디들이 창을 휘두르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밀려온 월랑족이 단숨에 수 미터를 날아 블러디들을 덮쳤다. 묘족의 전투는 빠른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하며 급소를 반격하는 방식, 그러나 월랑족의 전투는 보다 단순하고 화끈했다. 엄청난 덩치와 완력으로 블러디를 찍어 누르고 송곳니로 살점을 물어뜯었다. 블러디가 창검으로 반격했지만 강철 같은 월랑족의 가죽은 그 자체가 방어구였다. 게다가 생명력도 체력이 가장 높은 직업, 위리어와 비슷할 정도로 빵빵했다. 월랑족의 공격에 블러디들은 걸레처럼 찢겨져 녹아내렸다. 아오오오오! 입가를 피로 물들인 월랑족이 포효를 터뜨렸다. 과거 막강한 블러디 군단을 보유한 카라클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월랑족의 부활이었다. “짖어대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크가 모처럼 분위기를 잡는 월랑족을 무시하며 성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침입지다!” 성안에 진입하자 수십 명의 경비병, 고용인, 메이드 따위가 허물을 벗으며 블러디로 변신했다. 그 자체만으로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장면이었지만 아크는 그 역시 싹 무시해 버렸다. 제한 시간 30분, 그 전에 카라클이 있는 10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것저것 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1조, 1층을 맡으세요!” 아크의 명령에 월랑족 열 마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월랑족이 단숨에 10여 미터를 도약하며 뛰어다니자 사방에서 피와 살점이 튀어 올랐다. 그러나 오랫동안 힘을 빼앗겨 전투 감각을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복수심이 앞선 탓인지 지나치게 공격만 해 대다가 중상을 입고 쓰러지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와 월랑족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진격했다. “됐다, 2조, 2층을 맡으세요!” 또다시 10여 마리의 월랑족이 대열에서 이탈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아크는 각 층마다 열 마리의 월랑족을 풀어놓으며 쉬지 않고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그렇게 5층 정도 올라가자 나타나는 블러디의 숫자가 배로 늘어났다. 각 층을 맡기로 한 열 마리의 특공조로는 다 감당해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반면 각 충을 올라올 때마다 월랑족은 열 마리씩 숫자가 줄어 돌파력도 점차 약해졌다. 계단을 막아서는 블러디들을 돌파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려 후열에 있는 월랑족이 발목이 잡히는 일이 많아졌다. 일단 그렇게 대열에서 이탈하면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졌다 . 그러나 그들을 도울 여유도 없었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자칫 성내의 모든 블러디에게 포위돼 버리는 것이다. 크아아앙! 그래도 역시 월랑족이랄까? 적에게 발목이 잡혀도 구원을 요청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온몸이 찢겨 나가면서도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블러디의 발과 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아크 일행은 점점 불어나는 블러디를 뚫고 10층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9개 층에 90마리를 분산시켜 남은 월랑족은 고작 10여 마리였다. 반면 복도에는 거의 50여 마리에 가까운 블러디들이 우글거렸다. “이놈들, 여기까지 오다니!” “막아라! 한 놈도 백작님의 방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라!” “야, 이 삐---같은 삐---들아!” 아크가 전력을 다해 ‘상급 협박’을 날렸다. 노도처럼 밀려오던 블러디들이 움찔하며 경직되었다. “자, 이제 목표가 눈앞입니다. 모두 용기를 내십시오!” 이어지는 ‘상급 간병’에 지쳐 가던 월랑족의 눈동자에 활력이 샘솟았다. “우오오오, 지금이다! 지금이야말로 월랑족의 저력을 보여 줄 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단숨에 적진을 돌파하라!”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으면 블러디들과 함께 죽어라! 그것이야말로 명예로운 죽음이다!” 아크와 월랑족은 거대한 한 자루의 검이 되어 블러디들을 관통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칼날! 선두에 선 월랑족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자 양팔을 활짝 펼쳐 네다섯 마리의 블러디를 부둥켜 안고 창문을 부수며 뛰어내렸다. “우리는 뱀파이어의 식량이 아니다! 월랑족이다아아아아!” “구도자님, 잘 보십시오, 이것이 월랑족입니다아아아!” 연쇄적으로 창문이 박살나며 도플러효과가 꼬리에 꼬리를 이었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어쨌든 월랑족의 자폭 테러 덕분에 블러디 숫자가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화격!” 그사이 아크는 주변의 블러디를 쳐 냈다. 그리고 ‘전력 질주’를 펼치며 화살처럼 날아가 문을 박하며 뛰어들었다. 데구르르 굴렀다가 벌떡 몸을 일으킨 아크는 방 안을 확인하고 움찔했다. 빠라빠라빠라, 빰빠바. 촛불 몇 개만 켜진 어두운 방 안, 카라클은 주변의 상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정적인 손짓으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크와 활짝 열린 문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월랑족, 심지어 블러디들까지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하여간 뱀파이어라는 것들은.......’ 정말 욕 나온다. 역시 카라클은 더럽게도 재수 없는 놈이었다. “카라클!” 아크가 버럭 소리친 뒤에야 카라클이 연주를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훑어보더니 송곳니를 드러내며 피식 웃었다. “크흐흐흐, 어떤 놈이 시끄럽게 떠드나 했더니 얼마 전 성에서 탈출한 식량이었군. 대체 뭘 믿고 겁도 없이 돌아온 거지? 혹시 졸래졸래 따라온 그 개 떼인가? 훙, 불쌍해서 목숨을 살려 줬더니 감히 이를 드러내? 여시 들개는 어쩔 수 없군. 알버트만 아니었다면 그때 몽땅 죽였을 텐데.......” 카라클이 여유로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네놈들이 이 몸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글세? 해 보지 않으면 모르지.” “건방진 놈, 모두 죽여라.” 카라클은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멈칫하던 블러디들이 다시 무기를 들어오렸다. “카라클, 도망치는 거냐?” “뭐라고?” 카라클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시선을 돌릴 때였다. “마령 소환, 데드릭!” “으앗, ‘암흑돌진’!” 제드릭이 눈을 질끈 감고 카라클에게 돌진했다. 이어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카라클이 한 걸음 물러났다. “크윽! 뭐, 뭐냐, 이놈은?” “카, 카, 카라클 백작. 배, 뱀파이어의 율법에 따라 결투를 신청한다!” “뭐? 네놈은?” “던필의 작위를 이어받은 데, 데드릭이다!” 데드릭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멈춰라!” 카라클의 목소리가 방 안을 쩌렁 울렸다. 막 월랑족을 공격하려던 블러디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카라클은 이마를 감싸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데드릭을 쏘아보았다. 분노롤 일그러진 눈동자가 시뻘건 빛으로 물들었다. “던필...... 내가 무서워 도망쳤던 놈의...... 고작 그런 하급 뱀파이어의 후손 따위가...... 감히...... 결투라고?” “아, 아, 아니요. 그게.......” 데드릭이 사색이 된 얼굴로 바들바들 떨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그, 그, 그렇다!” “그게 뭘 뜻하는 건지 알고 지껄이는 거겠지? 어둠의 대지에서 뱀파이어의 결투는 로드가 주관하시는 신성한 의식. 설사 네가 소환의 계약을 맺은 존재라도 패배는 곧 죽음. 영원한 소멸을 뜻하는 것이다.” “알아, 젠장! 알고 있다고!” “크하하하! 알고 있다고? 그걸 알면서도 이 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는 말이냐?” 광소를 터뜨리던 카라클이 돌연 이를 갈아붙였다. “감히 이 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냐!” 동시에 방 안이 통째로 흔들리더니 창문이 몽땅 깨져 나갔다. 폭풍 같은 기운을 휘감은 카라클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데드릭에게 다가갔다. “좋아, 네놈의 손바닥만 한 땅은 관심 없지만 죽여 주지.” 그때였다. 돌연 카라클과 데드릭을 중심으로 직경 10미터 가량 되는 공간에 둥근 핏빛 원이 그려졌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뱀파이어 결투가 시작했습니다. 어둠의 대지를 지배하는 뱀파이어 로드의 결계가 발동했습니다. 뱀파이어 결투가 시작되면 주위 100미터 내에서는 어떤 전투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결투장에는 해당 뱀파이어 외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공간 결계는 외부의 모든 물리적, 마법적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합니다. 결투가 끝나면 자동으로 해제되며 승자는 패자의 모든 것을 소유할 자격이 부여됩니다. 그러나 패할 경우, 영지와 종자를 빼앗기고 소멸하게 됩니다. ‘됐다, 일단 목적은 성공했다!’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손바닥만 한 영지를 가진 데드릭이 정식으로 방문해 문을 두드린다고 카라클이 받아 줄 리가 없다. 때문에 아크는 무리하게 적진을 돌파하며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적어도 어둠의 대지 뱀파이어는 어떤 상황이든 일단 동족과 마주 서 결투 신청을 받으면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단 결투가 시작되면 뱀파이어가 거느린 병력은 전투를 할 수 없었다. 사실 아크와 월랑족을 데리고 온 데드릭의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결투 결과가 나오면 상대의 병력은 자신의 수하가 된다. 무의미한 전투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환수를 사용해 내게 도전하다니...... 잔머리를 굴렸다만, 후회하게 될 거다. 이놈을 처리하고 네놈들에게 지옥의 고통을 선사해 주리라.” “글세, 과연 그게 말처럼 쉬울라나?” 아크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지껄일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다.” 카라클이 낮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일순 훅 하고 사라지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데드릭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힉, 뭐, 뭐야?” 데드릭이 기겁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카라클이 팔을 날개로 바꿔 따라붙으며 데드릭을 걷어찼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데드릭의 생명력이 단숨에 30%나 날아가 버렸다. “크크크크, 결투를 신청하기에 그래도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장난이군. 이런 실력으로 용케 귀족이 됐구나. 인간, 이런 놈을 믿고 덤볐다는 건가?” 카라클은 데드릭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아크에게 말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데드릭은 카라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현재 데드릭의 능력치는 대략 레벨 220~230 수준. 그것도 결투를 준비하는 이틀 전부터 미친 듯이 요리를 먹여서 간신히 올려놓은 레벨이었다. 그러나 카라클의 레벨은 500. 무려 2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보다 차이가 더 벌어졌다. 이곳은 어둠의 대지, 로드가 뱀파이어를 위해 창조한 땅이었다. 당연히 뱀파이어에게 부가되는 보너스는 어마어마했다. 아크가 카라클에게 당했던 것도 미처 그 부분을 계산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같은 뱀파이어라도 데드릭은 카라클처럼 순혈종이 아니다. 박쥐에서 진화했기에 아직 뱀파이어로서의 특성이 약했고, 같은 이유로 이곳에서 받는 능력치 보너스가 낮았다. 덕분에 한 방에 날아가는 생명력이 30%. 세 방, 잘해야 네 방이면 소멸이다. 상대가 다른 몬스터라면 비행 능력으로 회피율을 올릴 수 있겠지만, 같은 뱀파이어라면 그조차 힘들다. 결국 제대로 붙으면 1분도 안 돼 박살이 나리라. ‘확실히 데드릭은 뱀파이어라고 부르기도 무안할 정도다. 하지만 같은 뱀파이어가 상대라면 그건 단점이 아니야. 장점이다!’ “데드릭, 무작정 도망 다니며 버텨!” “으와아아아, 사, 살려 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데드릭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아크의 무지막지한 훈련을 받아 도망치는 것 하나만큼은 경지에 오른 데드릭. 덕분에 카라클은 몇 번 헛손질을 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크크크크! 네놈들이 세운 전략이 고작 이거냐? 도망치는 거? 하지만 이곳은 결투장이다. 결투가 시작된 이상 무슨 짓을 해도 도망치지 못해.” “도망치지 못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지.” “뭐야? 도망? 이 몸이?” 카라클이 어이없는 얼굴로 되물었을 때였다. “지금입니다. 월랑족, 응원 준비! 응원 도구를 꺼내세요!” 결투가 진행되는 사이, 결투장을 둥그렇게 둘러싼 월랑족이 일제히 뭔가를 꺼내 들었다. 무슨 짓인가 하고 지켜보던 카라클이 돌연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허억, 뭐, 뭐냐, 저건? 이 소름 끼치는 감각은......!” “훗, 어둠의 대지에서 태어난 네놈은 이게 뭔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뱀파이어의 본능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 ‘십자가’를 말이야.” “시, 십자가?” 카라클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게 아크가 돌고래를 타고 하만 요새까지 가서 공수해 온 필승 응원 도구 중 하나였다. 타짜가 ‘복제’ 스킬을 발휘해 만들고 레리어트가 ‘축복’을 걸어 놓은 십지가! 어둠의 대지에서 태어나 십자가를 본 적도 없는 카라클이었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에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나 월랑족이 결투장을 둘러싸고 있으니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래? 저게 뭐 어쨌다고?” 카라클이 흠칫흠칫하며 물러나자 데드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쥐 출신이라 아직 뱀파이어 성향이 낮은 데드릭에게는 십자가도 그저 나무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카라클은 공황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결국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크으으윽, 비, 비겁한 녀석, 신성한 뱀파이어의 결투에.......” “비겁? 뭐가? 우리는 그냥 응원하는 건데?” 아크가 십자가를 흔들어 대며 히죽거렸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응원을 시작해 볼까? 플레이, 플레이, 데드릭!” “플레이, 플레이, 데드릭! 이겨라, 이겨라, 데드릭!” 아크가 선창하자 월랑족이 입을 쩍쩍 벌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방 안에 괴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잠시 코를 벌름거리던 카라클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꽤에에엑, 뭐, 뭐냐! 이 지독한 냄새는? 코가...... 아니, 뇌까지 마비되는 듯한......!” 이게 바로 아크의 응원 도구 제2탄! 마늘 냄세 공격이었다. 뱀파이어는 마늘이 쥐약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 때문에 아크는 월랑족 정예에게 마늘이 듬뿍 들어간 수프를 잔뜩 먹여 놨다. 출발하기 전에 장로가 콧물을 질질 흘렸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당연히 입을 벌릴 때마다 지독한 마늘 냄새가 생화학 가스처럼 폴폴 풍겨 나왔던 것이다. 십자가와 마늘 냄새의 더블 어택! 응원 소리가 들릴 때마다 카라클은 무지막지한 정신적 데미지를 받고 비틀거렸다. 결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눈을 감고 양손으로 코를 막은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러 댔다. “우헤헤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기회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참으로 인간적인 데드릭! 카라클이 맛이 가 버리자 데드릭이 와락 달려들었다. “헉, 그, 그만둬!” “뭐...... 우악!” 데드릭이 달려들자 카라클이 번쩍 고개를 치켜들며 손톱을 휘둘렀다. 십자가와 마늘 공격으로 오감이 마비된 카라클이지만, 데드릭이 달려들 때 반격을 가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카운터를 맞아 버린 데드릭은 치명타 데미지가 적용되어 단숨에 생명력이 50%나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생명력은 고작 20%. 데드릭이 벌새처럼 날개를 파닥거리며 허겁지겁 도망쳤다. “이 멍청아! 아무리 그래도 네가 저 녀석과 붙어서 이길 리가 없잖아!” “하, 하지만 공격을 안 하면 무슨 수로 이겨?” 데드릭이 울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말했지? 너는 도망만 다니면 된다고. 응원 제 3단계 준비!” “우오오오!” 아크의 명령에 월랑족이 일제히 거울을 꺼내 들었다. “라둔, <비전의 주문서>!” 쌕쌕, 쌕쌕쌕쌕! 아크는 라둔이 뱉에 내는 주문서를 찢으며 소리쳤다. “간닷, 필살 주문, ‘성자의 광휘’!” 그때였다. 돌연 주문서에서 엄청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레리어트가 사용하는 ‘성자의 광휘’. 일명 ‘자체 발광’이다. 이 성자의 광휘는 일반 몬스터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어둠 속성의 마족이나 언데드에게는 치명적인 데미지를 안겨 주는 스킬이었다. 하물며 상대가 햇빛에 쥐약인 뱀파이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본래 이 마법을 사용하려면 레리어트가 직접 오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이곳은 어둠의 대지. ‘블러드 다크’ 결계 탓에 ‘성’이나 ‘광’ 속성의 유저는 이곳에서 모든 스킬이 봉쇄될 뿐만 아니라 숨 쉬는 것만으로도 지속적인 데미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아크가 생각해 낸 아이템이 동방 민족이 팔고 있는 <비전의 주문서>였다. 아크는 지난 이틀 동안 <비전의 주문서>를 잔뜩 구입해서 레리어트의 마법을 담아 들고 돌아온 것이다. 단, 여기서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모든 물리적, 마법적 효과를 차단하는 뱀파이어의 결투장이다. 당연히 ‘성자의 광휘’도 마법 공격의 하나로 간주되어 결계에 막혔다. 그러나 천재적인 잔머리의 소유자 아크가 그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3단계는 조명 응원이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주문서에서 발동한 ‘성자의 광휘’는 월랑족이 들고 있는 거울에 반사되어 카라클에게 집중되었다. 그렇다, 마법만 사용하면 공격이지만, 일단 한번 거울을 거치면 그냥 반사광에 불과하다. 마법을 막는 결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다른 마족이라면 모를까, 뱀파이어에게는 그냥 ‘성스러운 빛’만으로도 충분했다. “크아아악, 뜨, 뜨거워! 뜨겁다! 뜨거워!” 결투장을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빛줄기! 빛에 닿자 카라클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뭐냐! 뭐냐, 이건? 살이, 살이 타들어 간다!” 눈조차 뜨지 못하는 카라클은 자신의 몸을 태우는 게 뭔지조차 몰랐다. “우후후후, 뭐긴 뭐야? 이게 바로 ‘신성한 빛’이라는 거다.” “뭐, 뭐라고? 신성한 빛? 어, 어떻게...... 크아아악!” 카라클이 박쥐로 변해 미친 듯이 결투장을 날아다녔다. 그러나 월랑족이 그때마다 거울의 각도를 바꾸며 추격했다. 아무리 카라클의 능력이 대단해도 어차피 결투장을 벗어날 수 없다. 직경 10미터의 원통에 갇힌 카라클은 연방 빛에 적중되어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카라클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돼 버리자 월랑족은 더욱 신이 나서 거울을 흔들어 댔다. “크하하하! 이거 재미있는데?” “데드릭, 알고 있겠지? 너는 무조건 도망만 다니는 거야.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돼!” 아크가 주문서를 계속 찢어 대며 소리쳤다. “아, 알았어!” “이, 이런 비겁한 놈.......” “비겁? 뭐가? 내가 뭘 했는데? 화살을 쐈냐, 아니면 마법을 썼냐?” 아크가 뻔뻔스럽게 대꾸하며 히죽거렸다. “크으으윽, 감히 신성한 결투에...... 크윽, 뜨거워....... 이따위 간계를 부리다니......! 브, 블러디, 놈들을 죽여라!” 카라클이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그러나 결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 지역 일대에 ‘전투 금지’가 선포된다. 블러디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몸으로 빛을 막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월랑족은 엄청난 도약력으로 뛰어다니며 계속 빛을 반사시켰다. “크으윽! 하지만 그렇게 빛이...... 난반사되면 네놈의 소환수도...... 모두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생명력이 얼마 없으니...... 몇 번만 스쳐도.......” 그의 말대로 카라클을 따라 움직이던 빛이 데드릭에게 적중되었다. 데드릭이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터뜨렸다. “아아악, 그, 그럴 수가......! 이 빛은...... 이 빛은...... 아유, 눈부셔. 아잉, 주인, 너무 눈부시잖아.” “뭐, 뭐라고? 네, 네놈이 어떻게?” 카라클이 움찔하자 아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후후후, 미안하지만 데드릭은 짝퉁 뱀파이어거든.” “헉, 짝퉁? 서, 설마......?” “그 설마다. 아직도 모르겠나? 착각한 모양인데 데드릭은 던필의 후손 따위가 아니야. 원래 박쥐 출신이다.” 물론 데드릭은 빛을 받으면 약해진다. 그러나 좀 기분이 나쁘고 능력치가 20% 정도 깎이는 정도. 순혈종 뱀파이어 카라클처럼 직접적인 데미지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카라클은 일단 빛에 적중되면 1초에 30이나 되는 화상 데미지를 받고 능력치도 50%나 경감된다. 덕분에 카라클은 빛 공격에 전신 7도가량의 화상을 입고 생명력이 80%나 빠져나갔다. “으드득! 이대로...... 박쥐 따위에게 이대로 당할 수 없다...... 뱀피릭 템페스트!” 그러나 대부분의 고레벨 몬스터에게 비장의 필살기가 있듯이, 카라클에게도 숨겨둔 비자의 카드가 있었다. 카라클이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자 결투장 안에서 격렬한 폭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칼날처럼 펼쳐진 망토가 점차 범위를 넓히며 닥치는 대로 갈라 버려싿. “엇, 저, 저 녀석이...... 빛을 집중시키세요!” 아크의 다급한 목소리에 월랑족이 빛줄기를 다발로 갈겨댔다. 그러나 블러디들이 필사적으로 블록해 실제 적중되는 것은 반 정도. 폭풍의 칼날이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 데드릭을 휩쓸기 전에 카라클을 녹여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데드릭이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댄 바람에 현재 생명력은 고작 20%. 카라클의 필살기에 휩쓸리면 일격에 아웃이다. “주, 주인, 살려 줘!” 데드릭이 결계에 바짝 달라붙어서 불안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크의 머리가 120% 풀 회전을 시작했다. “모두 거울 앞에 십자가를 세우세요. 이판사판이다. 성자의 광휘!” 아크는 남아 있던 <비전의 주문서> 다섯 장을 한꺼번에 찢으며 소리쳤다. 순간 방 안은 눈을 멀게 만들 듯한 엄청난 광채에 잠겨 버렸다. 유일하게 빛이 닿지 않는 곳은 결계가 쳐진 결투장 안.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열 개의 거울에 반사된 빛이 결투장을 꿰뚫었다. 지금처럼 그냥 빛이 아니다. 거울 앞에 십자가를 세워 놔 선명한 십자 문양이 그려진 빛줄기! 콰콰콰콰콰쾅! 카라클의 몸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뱀피릭 템페스트’ 스킬이 해제되며 카라클이 튕겨져 나갔다. 시커먼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전신에는 선명한 십자 문양이 찍혀 있었다. 그 때문일까? 카라클은 빛이 사라진 뒤에도 지속적인 데미지를 받으며 바닥을 굴러댔다. “지금이다, 데드릭! 흡혈 스킬 발동, ‘해머링’!” “우오오오, 받아랏!” 크게 몸을 띄운 데드릭이 마치 망치질을 하듯이 카라클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불끈이의 피를 10여 차례나 빨아서 흡수한 비장의 카드, ‘해머링’! 발동 시간이 많이 걸려 실전에서 사용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적중하면 400%의 데미지를 가산해 주는 스킬이었다. ‘해머링’에 적중되자 뭔가가 박살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3%에서 간당거리던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낸 카라클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이, 이럴 수가...... 이 몸이 박쥐 출신의 뱀파이어 따위에게.......”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카라클이 쓰러지자 아크의 눈앞으로 연달아 메시지가 올라왔다 .무려 7레벨 상승! 그렇다, 소환수는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대신 적을 쓰러뜨려도 경험치를 먹지 않는다. 때문에 데드릭이 얻은 경험치가 몽땅 아크에게 적용된 것이다. “우와아아아! 카라클을 쓰러뜨렸다!” 카라클이 쓰러지자 월랑족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고작 레벨 220~230정도의 데드릭이 레벨 500의 뱀파이어를 쓰러뜨린 것이다. 뭐, 데드릭이 한 일이라고는 도망 다니다가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밖에 없지만...... 결과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 저, 정말...... 이긴 거야?” 데드릭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해, 해낸 거야? 내가 정말? 주, 주인, 나 챔피언 먹었어!” 그건 대체 무슨 패러디냐?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이제 지하에서 삼신기만 찾으면 2차 전직을 할 수 있을 거야!’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방 중심의 결계가 서서히 옅어진다 싶은 순간, 돌연 뻥 뚫린 창문으로 강렬한 돌풍이 들이닥쳤다. 거친 흙먼지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뜬 아크가 한 걸음 물러났다. “헉! 뭐, 뭐야? 대체 언제......?” 언제 나타난 건가? 결투장이 있던 공간에 뭔가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가 둥둥 떠 있었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치렁치렁한 예복을 걸치고 후드를 턱까지 눌러쓴 존재.......주변에는 망토처럼 두른 어둠의 기운이 일렁거리고 등에 달린 거대한 검은 날개가 흐느적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월랑족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배, 뱀파이어 심판관.......‘ “뱀파이어 심판관?” “로, 로드의 직속으로 영지를 감독하는 최상급 귀족이네.” 심판관은 과연 최상위 뱀파이어 귀족답게 엄청난 포스를 발하고 있었다. 레벨은 무려 900! 그러나 아크가 들은 바로는 이모탈 캐슬의 뱀파이어는 밖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종족이 뱀파이어를 죽이는 경우를 제외하면....... ‘설마 결투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찔리는 게 많은 아크가 잔뜩 긴장한 눈으로 심판관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심판관은 아크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데드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데드릭.......” “네? 네!” 싸가지 없는 데드릭조차 포스에 눌려 납작 엎드렸다. “그대는 뱀파이어 결투를 통해 카라클 백작을 쓰러뜨렸다.” 심판관은 주변의 월랑족과 아크를 훑어보고는 살짝 입 끝을 치켜 올렸다. “약간 편법을 쓴 것 같지만...... 나는 로드가 정한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위대한 뱀파이어 로드의 율법에 따라 카라클 백작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것은 이제부터 그대의 것이다. 데드릭, 로드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승리의 영광을 하사하노라.” 심판관이 손을 들어 올리자 카라클의 몸이 파란 불꽃에 휩싸이더니 검은 결정이 떠올랐다. 검은 결정은 심찬관의 손길을 따라 움직여 데드릭에게 흡수되어 버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의 소환수 ‘데드릭’이 상위 뱀파이어 ‘카라클’을 물리쳤습니다. 이로써 데드릭은 카라클의 혈정을 흡수, 합성해 진화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메인이 될 소환수를 선택해 주십시오. 합성 진화로 만들어질 소환수는 메인 소환수의 능력치에 보조 소환수의 능력치가 가산되어 결정됩니다. ‘진화? 오오오, 이게 웬 떡이냐?’ 아크는 눈앞에 나타난 정보창에 입을 쩍 버렸다. 물론 뱀파이어의 율법에 따라 데드릭이 카라클을 물리치면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진화할 계기까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음?” 그때 심판관이 살짝 고개를 흔들더니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데드릭의 소환주인가?” “그,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아크가 얼른 벌어진 입을 닫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심판관은 잠시 묵묵히 훑어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혈족을 소환수로 삼았던 존재는 지금까지 단 한 명, 마반 영웅..... 호오, 그런가? 그의 후예가 나타난 건가?” 적의가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어딘지 모르게 그리움이 담긴 듯한....... “마반 영웅을 아십니까?” 아크가 되물었지만 심판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막연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마반 영웅의 후예라면 소환수의 진화를 선택할 수 있겠군. 이미 알고 있겠지만 카라클은 뱀파이어 일족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힘과 재능을 겸비한 자였다. 이미 죽었지만 만약 그대가 진화를 선택할 때 그의 인격을 선택한다면 데드릭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력한 소환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인격으로 진화시킬 생각인가?” 데드릭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막상 진화 시기가 되자 불안해진 모양이다. 그러나 아크는 고민하지 않았다. 능력치? 앞으로 배우는 스킬?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크가 소환수에게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이번에 소환수 없이 며칠을 보내고 나서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만약 데드릭의 인격이 사라진다면, 진화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데드릭입니다.” 아크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심판관의 입술이 살짝 치켜져 올라갔다. 웃는 건지, 불쾌해서 찡그리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잠시 대답이 없어서 아크가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돌연 심판관의 몸이 폭발하듯이 수백 마리의 박쥐로 변하며 창밖으로 몰려 나갔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다. 그대의 의지대로 선택하도록!” 아크는 그제야 한숨을 불어 내며 긴장을 풀었다. 어쨌든 심판관도 결투에 대해서 문제 삼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진화를 진행시키자 데드릭의 몸이 핏빛 광채에 휩싸였다. 박쥐에서 뱀파이어가 될 때처럼 딱히 변한 것은 없었지만, 몸에서 옅은 어둠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카라클의 힘을 흡수해 데드릭이 승격됐습니다. 뱀파이어 일족을 지배하는 위대한 로드로부터 ‘라카드’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이로써 라카드는 상위 뱀파이어로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카라클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과 종자에 대한 권리를 습득했습니다. 라카드 결투를 통해 상위 뱀파이어 카라클을 무찌르고 백작 지위를 손에 넣은 뱀파이어. 카라클의 혈정을 흡수해 보다 강력한 마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한 혈정에 남겨진 카라클의 단편적인 지식을 흡수해 뱀파이어의 능력에 대한 각성이 빨라졌습니다. 단, 그만큼 뱀파이어의 피가 진해져 빛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졌습니다. (아직 불안전한 존재라 햇빛에 데미지를 받지는 않지만, 낮에는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못하며, 능력치가 50% 감소합니다. 또한 ‘어둠’ 속성의 저항력이 50% 증가하고 ‘광’, ‘성’ 속성에 대한 저항력은 50% 감소합니다.) 종족 : 마족 성향 : 어둠 등급: 중급 생명력 : 1,520(+150) 충성도 : 78(+20) 힘 113(+20) 민첩 95(+20) 체력 279(+20) 지혜 58(+50) 지능 166(+50) 운 36(+10) +란셀의 검 공격력이 9, 내구력이 80만큼 증가했습니다. +‘흡혈’ 스킬의 슬롯이 두 개로 증가했습니다. +‘흡혈’ 스킬에 ‘스킬 봉쇄’ 효과가 추가됐습니다. +‘블러드 레인’ 스킬을 배웠습니다. 스킬 봉쇄 <<흡혈 보조 효과>>(초급, 종족 특성) : 카라클의 특수 스킬. 흡혈 스킬을 사용할 경우, 10% 확률로 적의 스킬 하나를 봉쇄합니다. 단, 봉쇄되는 스킬은 랜덤으로 정해집니다. 스킬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확률과 봉쇄되는 스킬의 종류와 지속 시간이 증가합니다. 블러드 레인(초급, 종족 특성) : 어둠의 존재인 뱀파이어의 피에는 강력한 저주의 힘이 깃들어있다고 전해집니다. 블러드 레인은 그런 뱀파이어의 피를 뿌려 일정 지역에 강력한 저주를 내리는 기술입니다. 피를 뒤집어쓴 적은 50% 확률로 현혹, 혼란, 광분, 절망의 상태 이상에 빠져 전투력이 크게 저하됩니다. 그러나 피를 사용한 뱀파이어 역시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에 빠지고 흡혈로 부족한 피를 회복할 때까지 50%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단, 블러드 레인은 밤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50% 확률로 10미터 범위 안의 모든 적에게 10분간 지속되는 각종 상태 이상 발생.>> 콰콰콰쾅!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진 공간이 굉음에 뒤흔들렸다. 동시에 거구의 레서데몬이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졌다. 피에 젖은 대검을 든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뜨거운 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드렁 올렸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먹만한 보석을 꺼내 들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길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잠시 들여다보던 기사가 피 웅덩이에 보석을 담갔다. 그러자 눈앞에 검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의 보석’에 레서데몬 666마리의 정수를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직업 특성에 따라 ‘마의 보석’을 통해 레서데몬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제야 끝났군.” 기사가 입 끝을 살짝 치켜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문득 뒤쪽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한 노인이 나타났다. “축하하네, 드디어 레서데몬도 정복할 만큼 강해졌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당연하지. 레서데몬은 지금까지 상대한 악마와는 수준이 다르네. 당연히 소환하는 것도, 물리치는 것도 몇 배는 힘들지. 하지만 이제 레서데몬의 능력까지 손에 넣었으니 자네도 드디어 제대로 된 파멸의 기사가 됐다고 할 수 있네.” 파멸의 기사! 그렇다. 검은 갑옷의 기사는 다름 아닌 아란이었다. 아크에게 뼈져린 패배를 경험한 아란은 ‘증오’ 스탯을 손에 넣어 파멸의 기사로 전직했다. 그 뒤로 마스튜아라가 제공한 사냥터에서 고레벨 몬스터를 상대하며 파멸의 기사 관련 스킬을 배워 가고 있었다. 파멸의 기사가 몬스터나 마족의 정수를 모으는 것! 파멸의 기사는 ‘마의 보석’을 이용해 해당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현재까지 아란이 흡수한 스킬은 20여 가지에 달했다. 모두 고레벨 몬스터나 악마에게서 흡수한 것들이라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독특하고 강력한 스킬들이었다. ‘파멸의 기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직업이다. 스킬 흡수도 그렇지만, 레벨에 따라 올라가는 공격력이 홀리 나이트와는 비교도 안 돼.’ 물론 파멸의 기사를 키우는 게 말처럼 쉬운 이른 아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소환 결계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를 잡기만 해야 했던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강해지는 게 싫은가?” “그건 아니지만.......” “후후후, 걱정 말게. 이곳에서의 수련은 끝났으니까.” 마스튜아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 다시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누군가가 결계 안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이번에 나타난 사람은 붉은 남자, 붉은 머리칼에 하얀 가면을 쓴 유저였다. 그가 나타나자 마스튜아라가 열의에 들뜬 얼굴로 말했다. “이분은 진정한 역사의 이행자, 모든 어둠의 주인이네.” “네가 ‘이번’ 파멸의 기사인가?” “당신은?” “들은 대로다, 역사의 이행자. 잘못된 역사를 올바르게 바로잡는 게 내 일이지. 네가 그 일에 힘을 보태 줬으면 한다. 가능하면 지금 당장. 말해 두지만 어쩌면 내가 하려는 일은 네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고 깊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이 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혹시 입사 시험을 말하는 건가?’ 물론 아란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는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몇 달 전까지. 현재 아란이 게임을 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 아크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만약 복수심이 없었다면 몇 달이나 이런 곳에 처박혀 있을 수도 없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먼저 그 시작으로 스탄달처럼 또 다른 차원으로 떨어져나간 세계를 중간계로 불러오는 일이다. 이미 대강의 준비를 끝내 놨다. 어떤가? 그 세계와 함께 세상에 등장하는 건?” 입술을 움직이던 아란이 움찔하며 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란 역시 얼마 전에 공식 사이트에 올라왔던 아크의 동영상을 보았다. ‘아크 녀석이 한 일이라면 나 역시 할 수 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크 놈을 찾아 나서고 싶지만 그렇게 재미없게 시작할 수는 없지. 좋아, 이건 아크에 대한 도전장이다. 이계를 떠올리며 놈에게 공식적인 도전장을 보내 주지. 기다려라, 아크!’ “좋다, 일단 따르도록 하지.” 잿빛 투구 안에서 섬뜩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to be continued 아크 14 by.라크 ACT 1. 애완견 카라클이 허망한 최후를 맞은 직후. 라카드는 뱀파이어 결투의 규칙에 따라 카라클의 모든 권리를 상속받았다. 영지와 성 그리고 피의 계약으로 카라클에게 종속되어 있던 수백 마리의 블러디까지 라카드의 소유가 됐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블러디들은 손바닥 뒤집듯 재빨리 태도를 바꾸었다. "오오, 번뜩이는 카리스마, 멋지십니다!" "과연 자수성가한 분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이렇게 훌륭한 영주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온몸을 바쳐 영주님을 섬기겠습니다." 블러디들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이미 100여 년이나 섬겨 왔던 카라클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뭐, 블러디와 카라클의 관계는 훈훈한 충성심이 아닌 강제적인 피의 계약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백작... 라카드 백작.." 라카드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블러디들의 환호성에 점점 얼굴에 환희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백작, 그래, 이 몸은 이제 백작이다. 우하하, 이 성도, 영지도 몽땅 내 거다! 모두 내 거란 말이야, 우하하하, 어라? 저 지저분한 물건은 뭐야? 왜 내 방에 저런 게 있지?" 라카드가 방 안에 굴러다니는 시커먼 덩어리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블러디 한 마리가 재빠릴 달려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대답했다. "네, 저건 예전 영주였던 카라클입니다." 어둠의 대지를 한 손에 쥐고 흔들어 대던 강력한 뱀파이어 카라클. 그러나 마늘 냄새와 십자가, 조명의 3중 콤보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이다. 블러디의 대답에 라카드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흥, 그게 뭐 하는 놈이냐? 여기는 내 방이야. 지저분하니 빨리 치워. 방도 정리하고." "네, 알겠습니다. 뭣들 하냐? 이 지저분한 물건을 치워라." 유능한 전투원이자 전문 가정부인 블러디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자 빠른속도로 방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부서진 가재도구 따위가 치워지고 여기저기 묻어 있던 핏자국도 말끔하게 닦였다. 그리고 강력한 뱀파이어 카라클은 불연성 쓰레기로 분리되어 질질 끌려 나갔다. 어느 세계에서나 패자의 말로는 비참한 것이다. "후후후, 백작이라...백작이란 말이지?" 라카드는 카라클이 애용하던 의자에 앉아 짧은 다리를 흔들어대며 히죽거렸다. 그러다가 아크와 월랑족에게 잔쯕 거리듬을 피우며 말했다. "아아, 봤어? 봤지? 이 몸은 이제 백작이야. 뭐,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어. 이 몸은 그렇게 권위주의적인 뱀파이어가 아니니까. 게다가 나는 약간 도와준 주인과 월랑족에게 고마워하고 있다고. 그러니 내 성에서는 편하게 지내도 돼. 음하하하!" 그러나 아크는 함게 웃어주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젠장, 이건 아니잖아." 아크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물론 라카드의 뜻하지 않았던 진화는 아크로서도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라카드가 진화하며 추가된 능력치의 합계는 무려 170. 단숨에 17이나 올라간 효과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가산된 능력치가 아니라 소환수나 몬스터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계급, 등급이었다. 사실 아크도 근래 들어서야 알게 됐지만 소환수나 몬스터의 정보창에 나오는 등급은 단순한 분류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몬스터의 전투력은 레벨이나 능력치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유저 역시 같은 레벨이라도 스킬의 등급이나 활용에 따라 전투력이 전혀 달라진다. 그런 기술의 활용도를 몬스터에게 적용시킨 것이 바로 등급 시스템. 몬스터도 등급에 따라 상황 대처 능력이나 스킬의 활용법, 심지어 같은 공격에 받는 데미지까지도 달라진다. 때문에 같은 레벨 100짜리 몬스터라도 하급 몬스터는 레벨 80대의 유저가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벨 100에 중급 몬스터는 동레벨의 유저도 상대하기 쉽지 않다.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높아져 상급이 되면 몬스터보다 레벨이 20 정도 높아야 사냥할 수 있었고, 최상급은 파티 사냥을 해야 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것이 아크가 근래 들어 라카드를 전투보다는 위성 감시 모드 같은 보조용으로 활용한 이유였다. 현재 아크가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중급 몬스터. 그리고 라자크의 경우, 두 번의 진화를 거쳐 중급 소환수가 되었다. 그러나 한 번밖에 진화를 하지 못한 라카드는 하급. 때문에 중급 몬스터를 공격할 때는 페널티가 적용되어 제대로 된 데미지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 공격을 받을 때는 추가 데미지가 적용되어 잠깐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몰렸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고레벨 지역으로 갈수록 몬스터의 등급이 높아진다. 그리고 아무리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려도 등급 페널치가 적용되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고레벨 지역에서 소환수를 활용하려면 소환수의 진화는 필수 불가결. 아크가 음식으로 능력치를 올릴 수 있으면서도 소환수 진화에 목을 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어쨌든 이제 라카드도 중급이다. 중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아.' 다시 라카드를 적극적으로 전투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흡혈에 추가 슬롯이 하나 더 늘었다. 마침 흡혈 스킬의 슬롯이 하나밖에 없어 불편하던 참이었다. 지금까지는 슬롯이 하나뿐이라 쓸만한 스킬을 저장하고 있으면 흡혈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슬롯이 두 개가 됐으니 저장용과 활용용을 따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비록 10% 확률이지만 스킬 봉쇄 효과까지 붙었다. 이미 카라클에게 스킬 봉쇄를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아크는 굳이 정보창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봉쇄되는 스킬이 랜덤이라 운이 많이 작용하지만, 제대로만 걸리면 적을 단숨에 무력화시킬 만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거기에 광역 저주 마법 블러드 레인까지. 두말할 필요 없이 이번 진화는 성공적이었다. "좋아. 카라클을 해치우고 라카드도 진화하고...다 좋다고. 하지만..." 아크가 훈숨을 푹푹 불어 내며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카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라카드가 입고 있는 붉은색 턱시도였다. 아크가 울상을 짓고 있는 이유는 그 턱시도 때문이었다. [핏빛 턱시도(레어) 방어구 타입: 특수의상 내구력: 23/60 방어력: 30 무게: 15 사용제한: 뱀파이어 전용 뱀파이어가 가장 좋아하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멋들어진 턱시도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카라클 백작이 즐겨 입었던 옷답게 최고급 원단을 사용한 명품 의류입니다. 어둠의 대지에서도 이런 명품 턱시도를 입을 수 있는 뱀파이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몸에 걸치는 것만으로도 뱀파이어로서의 품격이 올라갈 ㄷ것 같습니다. 옵션: 체력5+, 지혜+10 특수옵션: 뱀파이어의 품격을 30% 올려줍니다. 품격은 뱀파이어가 사용하는 종족 전용 스킬의 효과와 성공률에 영향을 미칩니다. 품격의 영향으로 흡혈과 블러드 레인의 효과가 15%, 성공률이 15% 상승했습니다.] 간만에 얻은 레어 아이템이 뱀파이어 전용이라니... 뱀파이어는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종족이 아니다. 또한 뱀파이어를 소환할 수 있는 유저도 아크뿐이다. 다시 말해 뱀파이어 전용 아이템은 라카드가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아크 역시 기회가 생기면 소환수의 장비를 맞춰줄 생각이었지만. 왜 하필이면 그게 보스급 몬스터를 처치하고 나온 레어 아이템이냐고! 뱀파이어 전용만 아니었다면 수백 골드는 받을 수 있는 레어 아이템. 그걸 고스란히 라카드에게 입혀야 한다니!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아크는 턱시도를 입고 잔뜩 폼을 잡고 있는 라카드를 보니 뭔가가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빌어먹을 소환 포트를 사는데만도 700골드나 들었는데 저런 레어 아이템까지 소환수에게 입혀줘야 한다니? 내가 재벌이냐? 대체 뭐야? 왜 갑자기 이렇게 소환수 유지비가 많이 드는거야? 반면 라카드 녀석은 이런 성에 부하까지 생겼잖아.' 이쯤되면 아크가 본전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때 입술을 질근질근 씹어대던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성이라고? 아하, 그렇군.' 방 안을 둘러본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제와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카라클은 어둠의 대지에서 꽤 잘나가는 뱀파이어였다. 뱀파이어는 허영심이 많고 품잡기를 좋아하는 족속. 성안에는 그림이나 동상처럼 쓸데없이 요란하기만 한 장식품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그 장식품의 주인은 라카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라카드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 라카드는 콧대가 높아지다 못해 살짝 맛이 간 상태였다. "우하하, 그래. 이제 이 몸은 백작이다! 손바닥만 한 작은 영지의 움막에서 살던 데드릭이 아니라 뱀파이어 로드에게 인정받은 라카드 백작! 그게 나다! 오오오, 이 몸을 경배하라!" 갑작스러운 출세에 살짝 맛이 간 데드릭은 자기가 무슨 교주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런 웃기지도 않은 짓이 먹혀든다는 점이었다. "오오오, 라카드 백작님 만세!" "새로운 영주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사실 이제야 말하지만 저희들도 그동안 카라클 백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블러디들의 반응에 데드릭은 더욱 심각하게 맛이 간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우후후후, 더, 더 고개를 조아려라!" "어이, 라카드." 아크가 다가간 것은 그때였다. "뭐야? 감히 어떤 놈이 이 몸의 존귀한 성함을 함부로...힉, 주, 주인!" "호오, 큰 거냐? 내가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못할 정도로 커 버린거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뱀파이어 백작이고 뭐고간에 라카드는 여전히 아크의 소환수일 뿐이다. 예전에 데드릭으로 진화를 하고 나서 잠깐 기어올랐다가 며칠을 두들겨 맞았던 라카드는 그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혹시 이번에도 괜히 트집 잡고 두들겨 패려는 게 아닌가 싶었던 라카드는 지레 겁을 집어먹고 떠듬거렸다. "주, 주인인지 몰랐어. 정말이야." '흠, 예전에 정신교육을 제대로 했던 효과가 있군.' 아크는 라카드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뭐, 진화를 하면서 다시 건방져진 기색이 보이니 기회를 봐서 군기를 잡아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뭐, 좋아. 너도 이번에는 고생했는데 사소한 일로 트집잡고 싶지는 않아." 아크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라카드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 때 아크가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네가 출세해서 나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말이야, 그게 모두 누구 덕분이지?" "에? 그, 그야... 고마워하고 있어." "그러냐? 고마워하고 있다 이거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라카드의 어깨에 팔을 걸쳐 놓았다. "그러면 나도 말을 꺼내기가 한결 편하지." "응? 말이라니? 무슨?"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너는 내 덕분에... 음음, 전적으로 내 덕분에 수백 마리의 부하와 이렇게 멋진 성까지 갖게 됐잖아. 그런데 정작 죽어라 고생한 내가 얻은게 뭐냐? 없잖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만큼 고생했으면 뭔가 생기는 게 있어야지." "에엑? 하,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설마 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겠냐?" 아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너만 괜찮다면 성에서 기념품을 몇 개 가져가고 싶은데 말이지..." "기, 기념품?" "이 성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그림이나 조각상 같은거 말이야. 어차피 너는 그런 데 별로 관심도 없잖아. 그냥 놔두고 썩히느니 내가 기념으로 가져가는 게 어떨까 해서 말이야. 어때? 괜찮지? 너는 성이 깨끗해져서 좋고, 나는 기념품이 생겨서 좋고. 어차피 너도 네 출세를 위해 고생한 나에게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을거 아냐. 그렇지? 분명 그럴거야." 즉, 내 덕에 출세했으니 그만한 뭔가를 내놓으라는 협박이었다. 그렇다. 이게 아크의 속셈이었다. 물론 성 안에 장식된 그림이나 조각들은 그저 장식품이다. 그러나 원래 상인들의 교역에 활용되는 물품은 대부분 그런 장식품이었다. 다시 말해 어떤 부가 효과도 없는 장식품이라도 교역소를 통하면 팔아먹을 수 있다는 뜻.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성안의 장식품을 몽땅 걷어다 팔아치울 속셈이었다. 그제야 아크의 속내를 알아챈 라카드가 펄쩍 뛰었다. "하, 하지만 주인.." "뭐야? 설마 아깝다는 거냐?" "아, 아니, 아깝다기보다는... 아무리 그래도..." "흥,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치사해질 수밖에 없지." 아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좋아. 그럼 어디 계산대로 해 보자고. 너 필요경비라고 알아?" "피, 필요 경비?" "나도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너를 이렇게까지 출세시키는 데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는지 알아? 그 동안 먹은 음식이 대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 그뿐이냐? 이번에 소환포트를 사는데 들어간 돈이 얼마인줄 알아? 카라클과 싸우기 위해 준비한 응원 도구를 구하느라 들어간 돈은 어떻고? 그게 다 누구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냐?" "그, 그건..."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마디도 안했다. 그런데 너는 고작 장식품 몇 개 때문에 치사하게 군다 이거지? 그렇다면 나도 너 때문에 들어간 필요 경비를 확실하게 받아내야겠다. 얼마나 되는지 계산기 두들겨 봐? 너도 내가 빚은 확실하게 받아내는 사람이라는 거 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야." 아크가 살기를 살살 풍기며 말하자 라카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일단 돈이 걸리면 아크가 얼마나 치사하고 악랄하게 변하는지 모를 라카드가 아니었다. 한 번 찍힌 이상 장식품은 이미 아크의 것이나 다름없다. 괜히 버텨봐야 좋을게 없는 것이다. 라카드도 뱀파이어라 장식품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 년 간의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배운 라카드는 결국 백기를 들어 올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가져가, 가져가면 되잖아." "후후후, 역시 너라면 알아줄거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해서 아크는 성의 장식품에 대한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NPC와 유저에 이어, 이제 소환수의 재산까지 강탈하는 수준이 된 아크였다. "뭐, 그렇다고는 해도 이번 전투로 부서진 것도 많고, 어차피 장식품이니 다 내다 팔아도 그리 많이 벌지는 못할거야. 잘해야 몇 백 골드? 하지만 그렇게라도 벌충하지 않으면 성이 안 풀려. 부족한 돈은 앞으로 라카드를 더욱 부려먹는 걸로 참아야지." 그렇게 아크가 소환수를 협박하며 삥을 뜯고 있을 때였다. 멀뚱히 지켜보던 월랑족 장로가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아, 그렇죠." 아크는 그제야 자신의 목적을 생각해 냈다. 아크가 카라클을 물리친 진짜 이유는 라카드의 진화 때문이 아니었다. 목적은 오직 하나, 월랑족의 보물이자 마지막 삼신기 달의 조각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분명 이 성 어딘가에 달의 조각이 숨겨져 있을 거네." "달의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달빛조차 들어올 수 없는 어둠의 대지에서 유일하게 달의 힘을 흡수한 월석이 만들어지는 장소. 달의 조각이 있는 곳은 성의 최하층, 지하 노역소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무렵, 월랑족에게 나눠 줬던 월석은 이미 마력을 소진해 평범한 돌로 변해 있었다. 덕분에 월랑족은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왔지만, 블러디들이 모두 라카드의 부하가 되어 버렸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아크는 라카드를 앞세워 성안 곳곳에 흩어졌던 월랑족을 모으며 지하 노역소에 도착했다. "자, 이제 이곳에서 달의 조각을 찾아내면 끝나는건가?" 아크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노역소를 둘러보았다. 지하 노역소는 굉장히 넓었다. 게다가 명색이 보물이니 카라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겨두지는 않았으리라. 피의 속박에 걸려 스킬이 봉쇄된 상태에서는 월석 하나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 아크는 마법탐지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다. 삼신기 역시 마력을 품은 아이템. 설사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해도 찾아내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노역소에 숱하게 묻혀 있는 월석 역시 마력을 품고 있으니 함께 표시되겠지만, 월랑족을 동원하면 그 중에서 삼신기를 찾아낼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달의 조각을 찾으며 월석도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지. 물론 월석이 딱히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설사 1쿠퍼라도 돈은 돈! 사방 천지에 돈이 묻혀 있는곳을 아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렇게 아크가 마법탐지를 발동시키려 할 때였다. "어엇, 저, 저놈은?" 문득 코를 벌름거리던 장로가 와락 시선을 돌려 한 곳을 쏘아보았다. 노예 몬스터들을 감시하던 블러디의 초소. 웬 사내가 초소 안에서 정신없이 삽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월랑족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저, 저놈은 알버트!" 월랑족의 목소리에 사내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20대 청년의 외모를 가진 사내는 바로 월랑족의 배신자, 알버트였다. 알버트는 시선을 집중해 아크와 월랑족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쳇, 벌써 여기까지...!" "일족의 배신자 놈, 이런 곳에 숨어 있었나? 잡아라. 저 놈만은 용서할 수 없다." 월랑족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며 뛰어나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알버트는 도망가지 않았다. 10여 마리의 월랑족이 이를 갈아붙이며 달려든다. 그들에게 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를 리가 없는데도 도망갈 생각은 커녕 오히려 더욱 삽질을 해대는 게 아닌가? "뭔지? 알버트 자식... 카라클이 죽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어재서 진즉에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 있는 거지? 게다가 삽질은 왜?" 의아한 표정으로 알버트를 바라보던 아크는 뒤늦게 그 이유를 알아챘다. "가만, 저 녀석 혹시...! 잡았다!" "일족의 명예를 더럽힌 대가를 치러라!" 그 사이 수백 미터를 달려 나간 월랑족이 알버트를 덮쳐 누르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월랑족의 중심에서 흐릿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돌연 폭발하듯이 10여 마리의 월랑족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뒤이어 안쪽에서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와 순식간에 수십미터를 이동했다. 월랑족을 쳐 내고 튀어나온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알버트였다. 그러나 방금 전의 알버트는 아니었다. 월랑족의 본 모습, 은빛 갈기를 휘날리는 거대한 늑대의 모습이었다. 알버트의 손에 들린 돌조각을 확인한 월랑족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월석? 아니야, 저건... 달의 조각이다." "역시 그곳에 숨겨져 있었나?" 사실 아크 역시 노역소에 오기 전부터 달의 조각이 숨겨진 위치를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땅 속에 묻혀 있음면서 노예 몬스터에게 발견되지 않고, 노역소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그런 장소는 오직 하나. 블러디의 감시초소밖에 없지 않은가? 알버트가 곧바로 도망가지 않고 노역소에 숨어 들어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인간의 모습으로는 멀리 도망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월랑족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해 주는 달의 조각을 손에 넣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 저놈이! 배신자 주제에 일족의 보물을...!" "크캬캬캬, 멍청한 놈들. 내가 당하고만 있을줄 알았냐?" 알버트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광소를 터트렸다. 그 모습에 월랑족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아크는 그저 머리를 긁적였을 뿐이다. "뭐야? 저 녀석 바보인가?" 물론 은빛 늑대로 변신한 알버트는 인간일 때보다 몇 배나 강력했다. 그러나 달의 조각은 고작 한 마리를 변신시키는 허접스러운 월석과는 차원이 다른 보물이다. 과거 월랑족이 어둠의 대지에 깔린 블러디 다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카라클과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달의 조각에 깃든 강력한 마력 덕분. 역시나 달의 조각이 밖으로 나오자 다른 월랑족들도 다시 늑대의 모습으로 변신해 버렸다. 게다가 노역소의 출구는 하나. 알버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늑대로 변신한 다른 월랑족을 물리치고 탈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 월랑족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성 안의 블러디들은 이미 모두 라카드의 부하가 되었다. 거기에 아크까지 출구를 막아서고 있다. 알버트가 무사히 탈출할 가능성은 0.0001%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알버트가 개기는 것은 매를 버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뭐, 끝까지 그렇게 나와 주니 오히려 고맙군. 으드득, 싸가지 없는 늑대 새끼. 너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 참에 아예 잘게 다져서 수육으로 만들어주마." 아크가 뼈마디를 우두둑 꺾어대며 한 걸음 내디뎠다. 그러자 알버트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멈춰라! 누구라도 한 걸음 더 움직이면 달의 조각을 삼켜버리겠다." "하아, 이거 완전히 골통이네. 지금 그걸 협박이라고 하는 거냐? 그렇게 소화 능력에 자신 있어? 어디 한번 해 볼까? 내가 네놈의 배를 갈라 버리는 게 빠를지, 네가 달의 조각을 똥으로 만드는게 빠를지." "자, 잠깐만 기다리게." 아크가 콧방귀를 뀌며 검을 뽑아들자 장로가 화들짝 놀라며 앞을 가로막았다. "알버트가... 아니 월랑족이 달의 조각을 삼키면 큰 일이 벌어지네." "에? 정말 달의 조각이 순식간에 소화라도 된단 말입니까?" "월랑족은 달의 종족, 만약 월랑족이 달의 조각을 삼키면 너무나 강력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해 감다하기 어려운 괴물로 변신하게 되네. 신멸수 펜릴로 말야. 과연 펜릴로 변신한 알버트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장로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니요?" "한 번 마력이 폭주해 버리면 달의 조각은 평범한 돌로 변하게 되네. 물론 일족의 보물이라 다시 달빛을 받으면 마력을 되찾겠지만 그때까지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네. 알버트 자식, 이런 방법을 쓸 줄이야." 장로가 이를 갈아붙이며 중얼거렸다. 그제야 아크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사실 알버트가 펜릴로 변신한다는 것은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멸수라고 해봐야 어차피 미친 몬스터. 이곳에는 월랑족과 블러디가 수백마리나 있다. 아무리 대단한 몬스터라도 혼자서 이만한 병력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따. 그러나 삼신기가 힘을 잃는다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다시 힘을 되찾는 데 10년, 20년이 걸린다니? 그럼 달의 조각을 얻어도 보너스 능력치는커녕 그때까지 전직에 대한 단서도 찾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크캬캬캬, 이제야 상황을 알겠냐? "너 이 자식!"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다가가려 하자 알버트가 달의 조각을 아가리로 가져갔다. "말했지?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삼켜버리겠다고." "달의 조각을 삼키면 너도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된다." "흥, 멍청한 카라클이 당해버린 이상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다. 이렇게 되면 나도 이판사판이야. 그냥 당하느니 차라리 펜릴로 변해 네놈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 물론 그 결과 달의 조각은 그냥 돌덩이가 돼 버리겠지만 크크.." "저, 저 자식이 감히...!" "장로님,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저따위 놈은 갈가리 찢어버려야 합니다." 월랑족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촉즉발의 순간, 아크가 그들을 제지허며 한숨을 불었다. "...원하는 게 뭐냐?" "크캬캬캬, 그렇게 나와야지. 역시 인간이군. 사지에 몰려서도 명예만 따지던 멍청한 늑대와는 달라. 말이 통한단 말야." 알버트가 히죽 웃으며 요구 조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스탄달이 중간계로 떠올랐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곳에 있을 이유가 없겠지. 먼저 내가 요구할 것은 안전보장이다. 이 몸이 어둠의 대지를 나가 중간계에 갈 때까지 누구도 따라오거나 미행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돈이다. 홀로 중간계에서 살아가려면 역시 인간들이 사용하던 돈이라는게 필요하겠지. 5천 골드. 당장 5천 골드를 준비해라." 알버트는 인질을 잡은 테러리스트처럼 멋대로 지껄여 댔다. 아니, 실제로 알버트는 달의 조각이라는 인질을 잡고 있었다. "가만, 그럼 달의 조각은?" "월랑족 어린아이를 동행시켜라. 내가 돈을 가지고 중간계로 넘어간 뒤에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아이와 달의 조각을 보내 주지. 어차피 어둠의 대지를 나가면 달의 조각이 없어도 힘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네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 어떻게 믿지?" "믿는 안 믿는 네 자유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텐데?" 알버트는 협박하듯 쩍 벌린 아가리 앞에서 달의 조각을 흔들어댔다. 자신을 카라클의 노예로 팔아넘겼던 늑대 따위에게 협박을 당해야 하다니? 혈압이 단숨에 300까지 치솟는 기분이었지만 알버트가 정말 달의 조각을 삼켜 버리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물거품이 된다. 게다가 그토록 염원하던 2차 전직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놈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어." 5천 골드라니. 5천 골드가 뉘집 애 이름인가? 현재 아크는 그만한 돈도 없을뿐더러. 설사 있따고 해도 저따위 늑대에게 줄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또한 요구를 들어준다고 알버트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아니, 장담하건대 약속은 100% 지켜지지 않는다. "이 자식, 내가 바보인줄 알아?" 만약 아크가 알버트의 입장이라면 절대 달의 조각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알버트는 중간계로 넘어가면 달의 조각이 굳이 필요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변신할 때는 필요 없겠지만 달의 조각은 혹시 모를 아크나 월랑족의 추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무기다. 그런 무기를 순순히 넘겨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놈이 삼키도록 놔둘 수도 없고... 좋아. 이렇게 되면 나도 이판사판이다. 암담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내던 아크가 라카드에게 통신을 보냈다. -"라카드. 내가 놈의 주의를 끌고 있을 테니 몸을 숨기고 놈의 배후로 접근해라. 놈은 지금 월랑족과 나에게만 신경 쓰고 있어. 네가 박쥐로 변해 포복으로 접근하면 눈치채지 못할거야. 놈이 방심하고 있을 대 네가 달의 조각을 탈취하는 거다." 아크의 말에 라카드는 불안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려댔다. 비록 카라클을 물리치고 백작이 됐지만 막상 늑대로 변한 알버트와 붙어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 이곳은 어둠의 대지다. 놈도 살기 위해서 교섭하려는 거니까 상황이 위급해져도 너를 죽여서 로드의 분노를 사려고 하지는 않을거야. 그제야 라카드도 조금은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대신 성에서 장식품을 가져가기로 했던 일은 없던 걸로 해 줘." 뭐? 귓가로 스며드는 목소리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라카드는 모르는 척 먼 산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휘파람을 불어 댔다. 주인의 위기를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 하다니? 이게 소환수가 할 짓이란 말인가? 하긴 소환수의 재산을 강탈하는 주인도 없겠지만... 소환수나 주인이나 그 밥에 나물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당장 느물거리는 라카드의 면상에 다크 블레이드를 꽂아주고 싶은 생각이 불끈거렸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정말 알버트가 달의 조각을 삼켜 버리면 장식품 몇 개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조, 좋아. 대신 확실하게 해야 해." "오케이." 의욕적으로 대답한 라카드가 월랑족의 뒤에서 박쥐로 변신해 포복으로 알버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할 수 없지.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5천 골드는 없어." "돈을 구할 수 없다면 협상도 없다." "자, 잠깐 기다려! 돈은 구해 주겠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해. 닷새. 5천 골드는 적은 돈이 아니란 말야. 지금 당장 어둠의 대지를 나가 돈을 구해 와도 그 정도는 걸릴 거야." "...나에게 닷새나 여기서 이러고 있으란 말이냐? 역시 무리겠지? 그럼 50 골드는 어때? 그 정도면 지금 당장 줄 수 있는데." "뭐, 뭐라고? 이 녀석이... 명색이 구도자라는 놈이 달의 조각을 두고 흥정을 하자는 거냐? 게다가 50 골드? 100분의 1이잖아." "그럼 어떡해? 당장 돈이 없는데?" "뭐 저런 녀석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알버트의 콧잔등이 움찔한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잠시 코를 벌름거리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숨 막히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힉!" 포복으로 근처까지 접근하던 라카드였다. 알버트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아크를 쏘아보았다. "네 놈, 감히 얕은 수작을! 젠장, 그러고 보니 저놈 늑대였지?" 개 과에 속하는 늑대의 후각을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아차 싶은 아크가 얼른 손을 저으며 변명했다. "아니, 난 모르는 일이야." "헛소리, 네 놈이 이렇게 나온다면 교섭은 결렬이다." "쳇, 막아라. 라카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아, 알았어." 아크의 다급한 목소리에 라카드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아크 역시 전력질주를 펼치며 알버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아직 라카드와 알버트의 거리는 50여 미터. 아크와의 거리는 수백 미터나 된다. 라카드나 아크나 음속을 돌파하지 않는 한 알버트가 달의조각을 삼키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망할... 정말 이대로 삼신기가 넘어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건가? 아크는 막 놈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려는 달의 조각을 바라보며 신음을 흘렸다. 땡강! 그때였다. 돌연 청량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울리며 알버트가 휘청거렸다. 동시에 손에 들려있던 달의 조각이 떨어졌다. 아크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아니 파악할 여유도 없었다. 휘청거리던 알버트가 황급히 손을 뻗어 달의 조각을 받아들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알버트의 손에 떨어지기 직전에 다크 블레이드를 날려 달의 조각을 쳐올렸다. "라카드, 지금이다!" "알고 있어. 마이볼 캐치!" 아크의 목소리에 라카드가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허공에서 달의 조각을 잡아챘다.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월랑족은, 라카드가 달의 조각을 잡아챈 뒤에야 퍼뜩 정시을 차렸다. 곧바로 수십 마리의 월랑족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달려와 버둥거리며 도망치려던 알버트를 잡아 눌렀다. "크아악, 이, 이럴수가!" 그렇게 불과 몇 초 사이에 달의 조각 유괴 사건이 해결되었다. [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신비한 돌의 파편. 표면에서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는 신비한 돌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이 50이 돼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하기 전까지 소유자에게 모든 스탯에 -50%의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달의 조각은 라카드를 거쳐 아크의 손에 들어왔다. 그리고 알버트는 월랑족의 밑에 깔려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늘어졌다. '휴, 다행히 잘 해결됐군. 그런데 방금 전에 알버트를 공격한 건 누구지?" "나, 나다." 그때 알버트의 뒤쪽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어라? 당신은?" 잠시 시선을 집중하던 아크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삽을 들고 톡톡 튀며 다가오는 사람은 바로 노예 몬스터 조장 플립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아크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노역소에는 수십 마리의 노예 몬스터가 잡혀 있었다. 이미 그들은 피의 속박과 고통의 족쇄가 풀려 카라클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파악하지 못해 계속 지하 감옥에 숨어 있다가 알버트와 아크의 대화를 듣게 된 것이다. "대강의 사정은 알겠네. 비록 족쇄는 풀렸지만... 아직 우리가 노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네. 그리고 우리의 처우를 결정한 사람은... 자네의 소환수, 아니.. 자네겠지. 그래서 자네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어떻게 바로 뒤까지 접근할 때까지 알버트가 알아차리지 못한 겁니까?" "후후후, 나는 절대 털을 가진 녀석들에게는 들키지 않네." 톡톡 튀며 대답하는 플립을 지켜보던 아크는 곧바로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새삼스럽지만 플립은 벼룩형 몬스터였다. 그리고 알버트는 늑대의 모습을 한 월랑족. 당연히 알버트의 갈기 속에도 벼룩의 냄새에는 둔감했던 것이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아니, 고맙다는 인사는..." 플립이 약간 두려운 눈빛으로 라카드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릴 때였다. 노예로 수십 년을 살아온 플립에게 가장 두려운 상대는 월랑족도, 아크도 아닌 카라클의 유산을 물려받은 새로운 영주 라카드였다. 그때 쭈뼛거리며 감옥에서 몰려나오는 노예 몬스터들 사이에서 돌연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 이 자시이이익!" 아크와 월랑족, 플립이 동시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웬 무말랭이처럼 생긴 몬스터 한 마리가 맹렬한 속도로 아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퀭한 눈자위와 시커먼 얼굴, 몸을 감싼 넝마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뼈마디! 마치 수백 년 동안 지옥에서 굶주렸던 악마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몬스터였다. "이, 이놈은 뭐야? 노예 중에 이런 몬스터도 있었나?" 상황이 정리되어 안심하고 있던 블러디와 월랑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 틈에 놈이 아크에게 달려들며 곡괭이를 휘둘러댔다. 아니, 휘두르려던 모양이다. 아크가 반사적으로 물러나며 검 자루를 움켜쥐었을 때였다. 툭, 콰당, 데굴데굴. 몬스터는 자기가 걸친 넝마 자락을 밟더니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아크는 반격하려던 생각도 잊은채 멍청한 얼굴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야? 대체 뭐하는 놈이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몸개그를 보여주는거야?" "우욱, 우욱..." 그때 바닥에 자빠진 몬스터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어라? 울어? 어이, 플립. 대체 이 녀석 뭐야?" "그게..." 플립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 때였다. 아크의 의아한 목소리에 반응하듯이 몬스터가 움찔댔다. 그리고 와락 고개를 치켜들며 다시 곡괭이를 휘둘러댔다. "뭐냐고? 뭐냐고 했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아아!" 빠각! 몬스터가 무턱대고 덤벼들자 아크는 앞차기로 턱을 올려붙여서 바로 침몰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치 좀비처럼 몸을 일으킨 몬스터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흑, 때려? 네가 날 때려? 그래, 차라리 죽여라." "뭐라는거야, 이 녀석? 어라? 가만, 이 목소리는?" 곡괭이를 피하던 아크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켰다. 뒤이어 몬스터의 머리 위에 떠오른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에엑? 부, 북실이?" 놀랍게도 몬스터의 정체는 북실이였던 것이다. 아크가 비명을 터트리자 북실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윽, 그럼 정말 날 알아보지도 못했다는 말야?" "아니, 하지만 대체 그 몰골은 뭐야?..."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냐!" 북실이가 이를 갈아붙이며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내가 왜 이 꼴이 됐냐고? 잠도 못 자고 하루종일 땅만 파 봐! 게다가 저녁때만 되면 혼자서 2인분의 피를 빨렸단 말야. 네놈이 날 버리고 가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가 탈출하자 카라클은 열 받았다. 그러나 이미 아크가 영향권 밖으로 도망갔으니 그 분노는 고스란히 북실이에게 향한 것이다. 그리고 아크와 탈출을 시도했던 죄, 돼지 미사일로 변해 카라클에게 일격을 먹인 죄, 기타 등등이 적용되어 북실이의 수감 생활은 이전보다 몇 배나 더 처절해졌다. 하긴 아크 역시 혼자 남겨진 북실이가 꽤나 힘들어지리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아크가 성을 탈출했다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사흘. 그러나 그 사흘은 이전의 8일보다 몇 배나 더 힘든시간이었으리라.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그런 지옥같은 생활은 아크가 결정적인 순간에 북실이를 돼지 미사일로 써먹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그런 것을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그리고 그때 탈출에 성공했기에 카라클을 무찌르고 북실이도 구할 수 있게 된게 아닌가? "아, 음.. 그러니까... 어쨌든 미안하게 됐다." "뭐, 뭐, 뭐? 그게 지금 미안하다는 말로 정리될 일이냐?" "자식, 뭐 그렇게 따지냐? 어쨌든 결과적으로 잘 해결됐으니 된거 아냐?" 아크는 어색하게 웃으며 북실이의 등을 탁 쳤다. 그 때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북실이의 눈알이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북실이가 황급히 바닥을 더듬으며 얼른 눈알을 집어들었다. "히익, 내 눈... 내 눈..." "에엑? 뭐, 뭐야?" "너 눈이 왜 그래? 몰라서 물어? 이것도 너 때문이야." "무슨 소리야? 등을 친다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호러틱한 몸뚱이가 왜 내 탓이냐?" "몰라, 몰라. 다 네 탓이라고!" "침식...당한거네..." 플립이 머리를 긁적이며 끼어들었다. 이 황당한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다시 말하지만 아크가 탈출한 뒤로 카라클은 매일 북실이의 피를 2인분씩 빨아댔다. 아무리 북실이가 영양 과다의 돼지라고 해도 매일 그만한 양의 피를 빨리면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당연히 북실이는 불과 며칠 만에 온몸의 피가 고갈되어 버렸다. 그러나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카라클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을 기세로 북실이의 피를 빨아댔다. 그리고 이때, 북실이는 물론 카라클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북실이의 혈관이 텅텅 비어 완전히 진공상태처럼 되어 버려 가끔 되려 카라클의 피가 북실이에게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만약 카라클이 이모탈 캐슬에 사는 로드나 최상급 귀족처럼 강력한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면 북실이는 그대로 뱀파이어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일족을 증식시킬 정도의 마력을 갖지 못한 카라클의 피는 고작 몬스터를 불러디로 변화시킬 정도의 능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방인은... 블러디로 변하지 않지. 그래서 카라클 백작도 가끔 피가 역류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본의 아니게 카라클의 피를 수혈받은 북실이에게 엉뚱한 스킬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카라클이 사용하던 스킬 뱀파이어 아이. 예전에 카라클이 영지를 감시할 때처럼 눈알을 뽑아 사용하는 괴상망측한 스킬이었다. 그러나 북실이는 아직 이 스킬을 제대로 활용할 줄도 몰라 어깨만 쳐도 눈알이 빠져 버리는 이상한 생명체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하여간 저 녀석은 지지리 복도 없군. 어차피 얻을 거면 좀 더 그럴듯한 스킬이 생기든지. 기껏 죽을 고생해서 얻었다는 게 고작 눈알을 빼는 스킬이냐? 아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자 눈알을 소맷자락으로 닦아 다시 끼워 넣은 북실이가 발끈하며 와락 멱살을 잡았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오냐?" "그럼 어쩌라고?" 아크는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잖아. 아니면? 나까지 다시 잡혀 왔어야 되는 거였나? 내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너나 나나 아직 지하 감옥에서 땅이나 파고 있을 거 아냐? 하지만 내가 탈출한 덕분에 카라클을 무찔렀다. 너도 풀려나게 됐지. 그런데 대체 뭐가 불만이야?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그, 그걸 지금 말이라고..." 북실이는 고목처럼 말라비틀어진 입술로 떠듬거렸다. 으음, 저런 몰골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좀 찔린다. 그러나 말한 것처럼 이제 와서 뭘 어쩌란 말인가? 게다가 미안하다고 한들, 북실이가 수긍하고 넘어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아크는 얼굴에 철판을 쫙 깔고 되려 북실이의 멱살을 잡았다. 생각해 보니 열 받니? 남은 기껏 구하러 와 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곡괭이를 휘둘러 대?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앙?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말도 안되는 억지에 북실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뭐라고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아크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래도 네 기분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조금 야속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과연 나에게 덤비는 게 현명한 행동일까?" "못할게 뭐야? 이제 그런 협박은 안 통해. 난 이미 지옥 밑바닥까지 갔다 온 몸이라고! 그 지옥 밑바닥에 다시 들어가면? 뭐?" 북실이가 움찔하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는 방실방실 웃으며 조용한 어조로 타이르듯 말했다. "잘 생각해 봐. 너는 카라클에게 잡혀서 지하 감옥에 갇혔지? 그런데 카라클이 죽고 새로 이 성을 차지하게 된 건 내 소환수거든. 다시 말해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를 다시 지하감옥에 처박아 두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냐?" "...!" 당장이라도 곡괭이를 휘두르려던 북실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어라? 너 떨고 있냐? 진정해. 그냥 지금 상황이 그렇다는거야." 아크는 북실이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내 볼까? 탈출할 때 작은 문제가 생겨서 널 데리고 가지 못한,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서운함 때문에 나한테 덤비는 게 좋을까, 아니면 결론적으로 너를 구출한 것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잊어버리는 게 좋을까?" 더 개기면 다시 지하 감옥에 처박아 두겠다는 협박! 북실이의 얼굴이 일순 공포로 물들었다. 북실이는 알고 있었다. 아크는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눈하나 깜빡하지 앟고 해치울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북실이는 수분 한 방울 없는 몸임에도 육수가 질질 흘러나왔다. 그리고 결국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크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북실이에게도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알았어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저도 부하를 만들어 주세요." "에? 뭐라고?" "사실 이전부터 말하고 싶었다고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식재료 캐랴, 동영상 찍으랴, 거기에 아크님 잔심부름까지 다 제가 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제 지위는 쫄따구. 요즘은 소환수들까지 저를 무시한다고요. 그래도 한때는 나도 동생이 둘이나 있었는데... 노동 의욕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저도 부려 먹을 수 있는 부하가 필요해요." "젠장, 그게 내 탓이냐? 허접스러운 네 탓이지?" 아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무시해 버렸을 말이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지금 아크가 북실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북실이는 NPC와 달리 유저. 당연히 협박만으로 끌고 다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이번 일도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서 웬만한 일이라면 들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쫄따구를 만들어 달라니... 다시 말해 소환수들을 자신의 부하로 확실하게 못 박아 달라는 말이 아닌가? 물론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실이를 자신의 쫄따구 정도로 생각하던 라카드가 순순히 아크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라둔이나 라자크 역시 마찬가지. 방금 전에 백작까지 된 라카드에게 억지로 북실이를 형님으로 모시라고 하면 틀림없이 귀찮아질거야. 게다가 북실이 녀석이 부하가 필요하다는 건 부려 먹거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쓰려는 거겠지? 아무리 내가 형님 대접하라고 시켜도 라카드나 라자크가 북실이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만약 북실이가 완전히 수틀려서 동영상 촬영을 거부하거나, 아크 상점에서 일하는 동생들을 그만두게 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다시 지하 감옥에 처박겠다는 아크의 협박에 지금은 물러서는 기미를 보이지만, 어둠의 대지에서 나간 뒤에 눈이 뒤집힌 북실이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펫이라도 한 마리 사 주는 건데... 뉴 월드에는 소환수 이외에도 펫이라는 애완용 동물이 존재한다. 그러나 펫은 다람쥐 같은 동물 하나가 몇백 골드나 된다. 게다가 북실이는 원하는 부하는 단순한 펫이 아닌, 실제로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를 말하는 것이다. 가만, 부하라고?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좋아. 부려먹을 수 있는 부하를 만들어 주면 되는 거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월랑족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당장 이놈을 갈기갈기 찢어 배신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네, 이놈 때문에 당했던 굴욕을 생각하면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월랑족은 피떡이 된 알버트를 둘러싸고 흉흉한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아크는 슬쩍 월랑족 사이에 끼어들어 장로에게 말했다. "장로님. 혹시 이 녀석을 제게 맡겨볼 생각 없습니까?" "자네에게 맡기다니? 설마 이놈을 살려주자는 건가? 저 역시 알버트 때문에 카라클에게 잡혀 노예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여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알버트는 여러분처럼 마반 영웅과 함께 어둠과 맞서 싸운 월랑족의 후예. 만약 이대로 알버트를 처단한다면 월랑족은 배신자가 있었던 종족으로 남아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겁니다. 또한 일족을 배신했던 자에 대한 처분으로는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그렇기는 하지." 장로가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알버트를 데리고 다니면 어떨까요? 월랑족은 원래 마반 영웅을 따르던 일족. 제가 알버트를 데리고 다녀도 월랑족의 명예에 흠집이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또한 나를 따라다니며 고생하는 것으로 벌을 대신할 수도 있고, 잘하면 알버트도 정신을 차리고 월랑족의 명예를 다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있지만 아크의 속내에 알버트를 북실이의 부하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로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 확실히 저런 녀석이라도 마반 영웅의 후예를 따라다니다 보면 갱생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녀석이 지은 죄는 너무나 크네. 고작 자네의 종자 역할을 하는 게 적당한 처벌이 되겠는가? 또 저 녀석이 자네 말을 들을지도 모르고." "그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증명해 드리죠." 아크는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알버트에게 다가갔다. "어이, 알버트! 얘기 들었지? 네 생각은 어때?" "크윽! 누, 누가 네놈의 종자 따위가 될 것 같으냐. 비록 이런 꼴이 돼 버렸지만 나 역시 월랑족이다. 차라리 죽여라..."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라둔, 고통의 족쇄."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라둔이 거무튀튀한 족쇄를 뱉어냈다. 예전에 아크가 잡혀 있을 때 차고 있던 족쇄였다. 카라클의 영지를 벗어나자 바로 벗겨졌지만, 혹시 쓸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챙겨놨던 것이다. 아크는 휘파람을 불며 족쇄를 알버트에게 채웠다. "너도 이게 어떤 효과가 있는 족쇄인지는 알지?" "이, 이건... 네놈... 대체 무슨 짓을..." "네가 생각하는 게 정답이야." "기, 기다... 깨깽!" 그때부터 아크는 다짜고짜 알버트를 밟아대기 시작했다. 카라클이 죽었지만 고통의 족쇄는 어디까지나 아이템. 아이템에 적용되는 효과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고통의 족쇄 효과는 바로 고통을 10배로 증폭하는 것! 오랫동안 태권도를 배워 온 아크는 어디를 어떻게 대리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었다. 아크는 그런 지식을 총동원해서 급소만 골라 때렸다. 거기에 고통의 족쇄 효과가 더해져 한 방에 인사불성이 될 만한 고통이 무려 10배로 증폭되는 것이다. 월랑족에게 피떡이 될 때까지 얻어맞으면서도 버티던 알버트의 아가리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네, 네놈! 크아악!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늑대의 탈을 쓴 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 "그, 그만! 사, 살려줘. 아, 아니... 차라리 죽여 줘..." "싫은데?" "으아악! 깨깽!" 아크는 코웃음을 치며 쉬지 않고 알버트를 밟아댔다. 고문도구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폭력! 그 모습에 노예 몬스터들과 월랑족, 심지어 블러디들조차 공포에 질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먹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대던 알버트가 와락 아크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부르짖었다. "하겠습니다! 무슨 짓이든 하겠습니다. 아니, 제발 시켜 주십시오. 때리지만 마세요!" 그제야 아크는 얼굴에 묻은 피를 쓱쓱 닦아내고 장로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흠, 말을 듣겠다는군요. 장로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자네를 따라다니는 게 죽는것보다 더 심한 처벌이 되겠군." 장로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월랑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알버트를 불쌍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북실이는? 이 녀석을 부하로 삼아주면 되지?" "네? 네? 네!"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묻자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북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장로가 한숨을 블어내며 앞으로 나왔다. "알버트, 정말 진심으로 저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며 지난 잘못을 반성하겠는가?" "네..." "좋다. 비록 배신자라고는 하나 너 역시 월랑족. 월랑족이 주인을 섬긴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네가 정말 그런 각오가 되어 있다면 월랑족의 관례에 따라 복종의 맹세를 해라." 장로의 말에 알버트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곧 옆에서 째려보는 아크를 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북실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뒤로 발라당 누우며 배를 드러냈다. 그렇다. 동물에게 상대의 앞에서 배를 드러내는 행동은 복종을 의미하는 것. "자, 이제 자네가 배를 쓰다듬어 주게. 그것으로 복종의 맹세가 성립되는 거네." 북실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배를 문지르자 알버트는 혀를 길게 내밀고 헥헥 댔다. 장로와 월랑족은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솔직히 웃기지도 않았다. 뭐, 어쨌든 그렇게 알버트는 당당하게 북실이의 애완견이 되었다. 간단하게 북실이와 알버트의 문제를 해결한 아크의 시선이 이번에는 라카드에게 향했다. "라카드, 아까 했던 말 말인데... 네가 알버트에게 달의 조각을 찾아오면 장식품을 그냥 놔두기로 했던거..." "그,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하하하. 나, 난 기억 안 나는데? 뭐, 정말 그런 말을 했어도 달의 조각을 되찾은 건 내가 아니잖아." "음, 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그럼 장식품은 약속대로 가져가도 되겠지?" "무, 물론이지. 가져가. 나는 처음부터 그런 거 관심없었어." 라카드가 바짝 얼어붙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폭력의 효과는 북실이에게만 적용된 게 아니었다. 백작으로 진화해서 살짝 건방져졌던 라카드도 알버트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예전에 자신이 밟혔던 기억을 적나라하게 떠올린 것이다. 새삼스러지만 역시 북실이나 라카드를 다루는 데는 폭력만 한 게 없었다. "자, 그럼 해피엔딩이군." 온몸에 피칠을 한 아크가 해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따라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ACT 2.[전직 퀘스트] "어이, 백구." "배, 백구? 뭡니까, 그게?" 피떡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알버트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크가 느물느물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게 이제부터 네 이름이다." "하, 하지만 제게는 알버트라는..." "호오, 내가 지어준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냐?" 아크가 히죽 웃으며 바짝 얼굴을 들이밀자 알버트가 움찔하더니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반항이라도 하려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힘없이 늘어져 있는 귀, 사타구니 사이로 돌돌 말려 들어가 있는 꼬리, 머리를 떨구고 잔뜩 움츠린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몰골은 누가 봐도 겁에 질린 강아지였다. 알버트는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백구든 뭐든 편한대로 부르십시오. 다가오지는 마시고..." "흠, 약발이 좀 과하게 먹힌 모양이군." 아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크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알버트를 두들겨 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애완견을 키우려면 초장부터 주종 관계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놔야 하는 것이다. 개라는 동물은 야생성이 강해서 초장에 확실하게 교육시켜 놓지 않으면 갈수록 길들이기가 힘들어진다. 하물며 늑대족인 알버트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아크의 목소리만 듣고도 겁에 질릴 정도로 만들어 놓지않으면 언제 다시 반항질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굳이 알버트의 이름을 애완견의 대명사 백구로 바꾸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제 알버트는 앞으로도 백구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오늘의 고통을 기억하게 되리라. "좋아, 백구.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오늘부터 너는 북실이의 애완견이다. 애완견이 뭔지 알지? 서열로 따지면 밑바닥. 당연히 나나 소환수보다 아래에 있는 북실이가 네 직속상관이다. 알겠냐? 북실이..." 알버트, 아니 백구가 북실이를 돌아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아크에게는 어쩔 수 없이 굴복했지만 백구는 그래도 명색이 늑대족이다. 마반 영웅의 후예인 아크라면 모를까, 돼지의 부하가 돼야 한다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뭐야, 그 표정은? 불만 있냐?" "아, 아닙니다." 그러나 아크가 슬쩍 인상을 쓰자 곧바로 다시 착한 애완견이 되었다. 아크는 슬슬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좋아, 좋아. 그래야 착한 애완견이지. 어이, 북실이. 이제 너도 부하가 생겼으니까 불만 없겠지? 아, 그리고 앞으로 백구는 네가 돌봐줘야 한다." "네? 제, 제가요?" "당연하지. 네가 원해서 구해 준 애완견이니까." 백구도 어쨌든 생물, 함께 다니다 보면 식대다 뭐다 이것 저것 돈이 들어간다. 아크는 북실이가 원해서 백구를 키우기로 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 모든 경비까지 북실이에게 떠넘겨 버렸다. 난데없이 백구의 식비까지 떠맡게 된 북실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지만, 방금 전 아크의 살벌한 폭력을 지켜 본 덕분에 입도 뻥긋 못했다. "젠장, 역시 아크님에게 개기는 게 아니었어." 결국 북실이에게 남은 것은 때늦은 후회뿐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자!" "네? 일이라니요? 아직 뭐가 남았어요?" "음,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지." 아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해피 엔딩 다음에는 당연히 해피 에필로그가 따라붙는 법이지.' 그렇다. 어떤 명작 동화든 사실 정말 중요한 내용은 본문이 아니다. 독자들이 열광하는 것은 언제나 이런저런 개고생을 했지만 결국에는... 으로 시작하는 에필로그. 착하고 열심히 살아온 주인공이 벼락부자가 되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개고생을 하면서도 착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런 결말의 동화책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게 된다는 기브앤 테이크적인 자본주의 사상이다. 아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따라서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아내는 데는 조금의 망설임도 있을 수 없었다. "백구, 너는 이 성에서 오랫동안 살았지? 지금부터 성을 샅샅이 안내해라." 물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뱀파이어 성을 관고아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성안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차압해 라카드를 진화시키기까지 들어간 경비를 벌충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접객실입니다." "잠깐 기다려 봐. 호오, 여기에는 제법 장식품이 많은데?" 아크는 백구를 앞세우고 성을 돌아다니며 사방 천지에 빨간 딱지를 붙여댔다. 그리고 빨간 차압 딱지가 붙여진 물건은 뒤따라오는 북실이의 가방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사실 예전에 골동품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아크는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상당했다. 돈이 될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파악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만약 아크 혼자였다면 신중하게 골라서 돈이 될만한 물건만 챙겼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북실이가 있다. 북실이는 얼마전 스탄달에서 잡템을 모두 팔아 치워 여섯 개나 되는 가방이 텅텅 비어 있는 상태. 게다가 비록 작지만 NPC인 백구에게도 작은 배낭이 하나 있었다. 가방 걱정도 없는데 굳이 물건을 고를 필요가 없지. 아크는 1쿠퍼라도 일단 팔 수 있을 것 같은 물건에는 몽땅 빨간 딱지를 붙였다. 덕분에 아크가 지나간 자리는 문자 그대로 포크 하나 접시 하나 남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쏠쏠한데?" 특히 아크를 만족스럽게 한 곳은 창고였다. 사실 어둠의 대지에서는 장식품 이외의 아이템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블러디가 사용하던 무기나 방어구도 장비품이 아니었다. 몬스터에서 블러디로 변신하며 손톱이나 두꺼운 가죽이 장비품으로 변한 것이었다. 때문에 블러디가 죽으면서 떨구는 전리품도 고작 손톱이나 가죽이 전부였다. 그런데 창고에는 상당한 양의 월석과 함께 이란 장비품도 꽤 있었다. 카라클이 가끔 해안가에 떠내려오는 물건들을 모아둔 겁니다. 그게 블러디의 설명이었다. "후후후, 카라클 녀석. 마지막까지 날 행복하게 해 주는군." 당연히 아크는 창고에 있는 아이템까지 몽땅 챙겼다. "쳇, 마법 아이템은 없잖아. 하지만 이거 몽땅 처분하면 적어도 600~700골드는 될 것 같아. 간신히 소환포트 하나 가격이지만 뭐, 예상 외의 수입이니 그럭저럭 괜찮군." 그렇게 한 바퀴 돌며 닥치는대로 쓸어담자 성이 폐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우우, 내 성이... 내 성이..." 라카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훌쩍거렸다. 누가 소환주가 소환수의 집에 찾아와 세간 살림을 털어 갈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런 불쌍한 라카드를 지켜보던 월랑족이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선조들이 기다렸다던 마반 영웅의 후예가 저런 사람이었습니까?" "어째 듣던 거와는 다른데요? 그, 글쎄... 나도 마반 영웅을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장로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들의 목소리는 아크에게도 들렸지만 아크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월랑족이 마반 영웅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설의 영웅이라고 흙만 퍼먹으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여행을 할 때도 필요 경비가 들어가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RPG 게임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런 현실이 반영되어 있었다. "욱, 얼마 전에 집에 도둑이 들었네. 도둑을 잡아주지 않겠는가?" "그런 천인공노할! 알겠습니다. 당장 잡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주제에 정작 주인공은 마왕 퇴치라는 명목하에 아무 집에나 들어가 항아리를 부수고 장롱을 뒤져가며 NPC들에게 삥을 뜯지 않는가? 그게 묵인되는 이유는 단 하나! 우후후, 나는 용사니까 괜찮아. 그렇다. 전설의 용사란 의외로 생활력이 강하지 않으면 못되는 직업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크는 그런 용사들보다 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당장 전세금을 구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영웅의 후예란 말야!" 물론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얻은 잡템도 모두 정리했고, 아크 상점은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어 걱정과는 달리 큰 무리 없이 전세금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전세금을 해결하면 아크의 재산은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1쿠퍼라도 일단 챙기고 보는거야. 어쩌면 아크는 게임 역사상 가장 생활력이 강한 영웅의 후예가 아닐까? 그런 아크가 퀘스트 보상을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뱀파이어 성을 탁탁 털어먹은 아크는 곧바로 월랑족 장로에게 다가갔다. 장로님, 이제 월랑족도 뱀파이어의 지배에서 벗어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겠군요. "아, 이게 모두 자네 덕분이네. 일족을 대표해서 감사하는 바이네." "네, 월랑족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아크는 방실방실 웃으며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얘가 왜 이러나? 하는 눈길로 바라보던 장로가 뒤늦게 생각난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뭔가 보상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군.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이곳에서 100여 년이나 카라클에게 지배당하며 살다보니 마땅한 것이 없군. 이런 거라도 괜찮다면 받아 주겠는가?" 장로가 허리 어림의 배낭을 뒤적이다가 은빛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꺼내들었다. [늑대의 발(레어) 방어구 타입: 가죽 신발 방어력: 60 내구력: 60/60 무게: 15 사용제한: 레벨 200 수백년 전 마반 영웅과 함께 싸웠던 전설적인 늑대족 전사의 힘이 깃든 장화. 이 장화를 사용하면 마치 늑대처럼 초원을 질주할 수 있으며, 늑대의 용맹함이 깃들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투지를 잃지 않습니다. 옵션: 공포에 대한 면역, 이동속도+40%, 공격속도+10%. 특수옵션: 스킬 도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약 사용하면 10미터까지 점프할 수 있습니다. 대기시간: 5분 마나소모:50] (라크 왈.. 아나 -_-... "이거 언제 다 붙여!!") -월랑족의 복수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오, 레어 아이템이다!" 아크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역시 난이도가 +B 정도 되니 보상도 레어 아이템이다.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신발이냐?' 그 점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현재 아크가 착용하고 있는 신발은 바람정령의 장화. 물론 착용 제한 레벨이 있으니 방어력이나 부가 옵션은 늑대의 발이 약간 더 좋았따. 그러나 부가효과만으로 큰 변화를 체감할 정도로 월등한 수치가 아니었다. 게다가 바람정령의 장화에 붙어 있는 슬라이드는 활용도가 상당히 높은 스킬이 아닌가? 늑대의 발에 붙어 있는 아이템 스킬은 도약? 10미터까지 점프할 수 있다고? 전투에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네. 대기 시간도 5분이나 되고. 뭐, 언제까지나 바람정령의 장화만 쓸 수는 없으니 바꾸기는 해야겠지만 성능이 좀 애매하단 말이야. 일단 전투에서 써 보고 결정해야겠다. 아크는 그런 생각으로 일단 신발을 바꿔 신어 봤다. 그러자 돌연 두둥, 하는 효과음과 함께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세트 아이템 효과가 추가되었습니다. [장착한 세트 아이템의 새로운 파츠를 입수했습니다. 세트 아이템은 특별한 장인들이 만든 명품이나, 고대의 영웅이 착용하던 한 벌의 장비품을 말합니다. 당연히 한 벌로 제작되었기에 장착한 아이템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만약 한 벌을 모두 갖추면 모든 봉인이 풀려 다른 장비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장착한 세트 아이템: 수왕] -너구리 투구, 고양이 손, 인어족의 갑옷, 늑대의 발 4종 세트를 갖춰 수왕 세트에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야생의 능력: 함+10(+10) 민첩+10(+10) 체력+10(10) 방어력+20(20) '세트 아이템! 이렇게 되면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사실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너구리 투구나 한 번 업그레이드시켜 레어가 된 고양이 손은 그렇다 쳐도, 초반에 구한 인어족의 갑옷은 레벨 200~300대의 가죽 갑옷에 비해 방어력이 많이 떨어졌다. 수중 페널티를 무시하는 특수 효과가 붙어 있다지만, 근래에는 물가 근처에 갈 일도 없었다. 때문에 가끔 상점이나 경매 사이트에서 좋은 가죽 갑옷을 보면 하나 구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아크가 갑옷을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세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세트 아이템 보너스를 포기하면서까지 갑옷을 바꾸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레벨이 올라서 갑옷을 바꾸면 세트 아이템 보너스가 적용되는 것보다 방어력이 훨씬 많이 올라서 고민하던 참인데... 이런 곳에서 세트 아이템을 찾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덕분에 힘과 민첩, 체력이 10씩 더 오르고 방어력도 20이 추가됐으니 당분간 갑옷도 그대로 써야 할 것 같다. 네 개만 장비해도 그 정도 추가 효과가 나온다면... 세트를 모두 갖추면 엄청난 부가 효과가 적용되리라. 그러나 세트 아이템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하루에 몇천 명이 접속하는 정보 사이트에서도 세트 아이템을 모두 갖췄다는 유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직접 찾은 건 불과 한 두 개. 나머지는 대부분 경매장을 이용해서 구입했다고 한다. 때문에 아크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그러고보니 내가 가진 세트 아이템은 모두 수인족에게 받은 거잖아?" "게다가 세트 아이템 명칭도 수왕! 남은 세트 아이템도 수인족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전에 핫산에게 묘족과 인어족, 너구리족 이외에도 수인족의 종류는 상당히 많다고 들었어. 시간이 되면 이그드라실에게 알아봐서 다른 수인족도 찾아봐야겠다. 어쨌든 이제 네 개는 찾았다. 완성할 가능성이 보여.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자네가 좋아해 주니 다행이네." 사실 장로는 아크가 반쯤 강탈하듯이 보상을 받아 내자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가 어린애처럼 좋아해 주자 그런 불쾌감도 많이 사라진 듯했다. 아크는 장화를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이제 월랑족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네." "계속 어둠의 대지에 계실 생각은 아니죠?" "그야 물론이지.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아니, 대부분의 일족은 난생처음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네. 이 용맹한 모습이 진정한 월랑족이지. 달의 조각을 찾았지만 그 보물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마반 영웅의 후예. 어둠의 대지에서는 자네가 떠나가면 우리는 다시 과거의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네." 장로는 이전 같은 생활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행히 자네를 통해 어둠의 대지가 예전처럼 고립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고, 또 막을 사람도 없으니 바깥 세상으로 나갈 생각이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나를 포함해서 이곳의 월랑족은 누구 하나 바깥세상을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그럼 제가 적당한 마을을 소개시켜 드릴까요?" 아크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적당한 마을?" "네. 실은 대륙에 제가 잘 아는 마을이 있습니다. 본래 인간의 마을이지만, 지금은 묘족과 너구리족도 많이 살고 있죠. 그곳이라면 대륙을 모르는 월랑족이 살기에 딱 좋을 겁니다." 아크가 말하는 적당한 마을이란 당연히 란셀 마을이었다. 사실 얼마전, 스탄달에서 피난해 있던 바란족 가운데 이주자가 나와 아크는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가 완료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주자가 기대보다 적어서 현재 성취도는 98%에서 멈춰져 있었다. 여기에 월랑족을 이주시키면 드디어 지긋지긋하게 끌어왔던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처럼의 제안이지만 거절하겠네." "네? 어째서요?" 당연히 간단하게 받아들여 주리라 생각했던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본래 월랑족은 늑대릐 피를 이어받은 수인족. 비록 카라클에게 잡혀 이곳에서 100여 년을 살게 됐지만, 이제야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던 삶이 무엇이었나를 깨달았네. 미지의 세상을 자유롭게 질주하는 삶이야말로 우리의 본능.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대륙을 뛰어다니며 잃어버렸던 야생의 본능을 되살리고 싶네." "그, 그러면 곤란합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곤란하다니?" "아, 아니, 그러니까 제 말은..." 아크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한숨을 불어 냈다. '젠장,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야? 이제 월랑족만 이주시키면 그 길었던 퀘스트가 끝나는데, 못 가겠다니? 안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주시켜야 해. 퀘스트도 퀘스트지만 묘족이나 너구리족을 이주시켜서 얻은 이득이 엄청나잖아.' 인구에 수인족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란셀마을에서 아크의 영향력이 커진다. 그뿐인가? 일단 마을에 붙잡아 두면 묘족이나 너구리족처럼 필요할 때 병력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묘족보다 강력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월랑족을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유사시에 써먹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꼬드겨야 하는데... 하지만 월랑족은 늑대. 게다가 명예심이 높아서 더부살이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고... 가만, 명예?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의 머릿 속에 그럴듯한 핑계가 떠올랐다. 생각을 정리한 아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월랑족이 꼭 그 마을에 가 줬으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월랑족이 걱정할까봐 지금까지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대륙은 예전처럼 평화롭지 못합니다." "평화롭지 못하다고?" "네. 저도 마반 영웅의 발자취를 쫓다가 얼마 전에야 알아낸 정보가 있습니다. 물론 수백년 전, 7인의 영웅과 많은 의인들이 희생해 준 덕분에 어둠의 제왕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둠의 제왕은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고, 사악함에 물든 몇몇 악인은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킬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어둠의 제왕을?" "그렇습니다. 제가 마반 영웅의 유산을 서둘러 찾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들이 정말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려 한다면 그걸 막는 것이 바로 마반 영웅의 후예인 제게 주어진 숙명. 하지만 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사실 아직 비밀입니다만... 란셀 마을에 수인족을 불러 모으는 것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안배인 것입니다. 마반 영웅의 후예인 제가 진심으로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사가 수인족 이외에 있겠습니까?" "오오오, 과연. 과연 마반 영웅의 후예!" 아크의 설명에 장로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떠들어댔다. "솔직히 카라클을 해치운 뒤에 자네의 행동을 보고 좀 못 미더운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자네는 마반 영웅의 후예였군. 그래,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던 거였어. 세상을 진정한 악으로부터 구해 내려면 그만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염려하는 것은 진정한 영웅의 자세가 아니야." "네, 저는 세상을 구할 준비를 해 놓기 위해서 수전노라는 오명까지... 크흑!" 아크는 울컥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는 연기까지 해 보였다. 덕분에 라카드와 북실이는 토할 것 같은 표정이 되었지만, 장로는 정말 감명을 받은 듯 와락 아크의 어깨를 부둥켜 안으며 말했다. "됐네, 됐어. 말하지 않아도 되네. 영웅의 길은 그렇게 외로운 법이라네." "알아주시는 겁니까?" "알지. 알다마다. 우리 역시 최전방에서 어둠과 싸웠지만 그 대가로 뱀파이어에게 사로잡히는 처지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모른다면 누가 그 고귀한 뜻을 알아주겠는가?" "감사합니다. 그럼 마을로 이주하는 건..." "음,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명예로운 월랑족으로서 거절할 수는 없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뜻이라면 우리가 마을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보다, 거친 들판을 뛰어다니며 다시 선조들의 용맹함을 되찾는 게 만약의 사태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솔직히 지금 우리의 힘으로는 만약에 사태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군." "그, 그건...! 가면 가는거지, 왜 이렇게 이유가 많아?" 장로의 대답에 아크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장로의 말도 틀린 건 아닌데... 솔직히 나중에 월랑족을 쓸 일이 있을 때 지금보다 강하면 나도 좋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주민 퀘스트는... 가만... 이주민이라... 그렇다면 결국 내가 란셀 마을에 등록된 인구수만 늘려주면 된다는 거잖아? 혹시...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는 곧바로 혓바닥을 놀려댔다. "장로님 뜻이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월랑족이 야생의 본능을 되찾아도 정작 필요할 때 연락이 안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인가?" "일단 제 말대로 월랑족을 데리고 란셀 마을에 가는 겁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란셀 마을의 주민이 되어 그곳을 거점으로 삼은 뒤에 대륙을 여행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만약의 사태에 제가 월랑족을 찾기도 한결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말하자면 일단 주소지만 옮겨 놓는 위장 전입! "흠,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어. 하긴, 우리는 어둠의 대지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아직 다른 수인족을 본 적도 없지. 대륙에 대해서도 모르고. 좋네, 자네 말대로 하지. 대륙으로 나가면 꼭 란셀 마을의 주민이 되겠네." 그렇게 결국 아크는 장로의 허락을 받아냈다. 동시에 아크의 눈 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당신은 어둠의대지에서 살던 월랑족에게 란셀 마을의 주민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이들이 여행을 끝내고 란셀 마을에 도착하면 퀘스트 성취도와 마을의 발전도에 관련된 각종 수치에 월랑족의 능력치가 적용됩니다 새로운 이주민 찾기: 성취도 98%(+15%) (패러독스 왈 : 라크님 제가 님의 뒤를 이어서 안된부분과 빼먹은 부분을 고치도록...) -성취도가 100%를 초과하면 란셀 마을에서 약속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됐어. 이제 이 퀘스트도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겠네. 이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대륙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장로는 월랑족을 이끌고 해변 마을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라자크는 성주로서의 업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라자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영지 각지에 흩어져 있는 블러디를 불러들여 조촐한 영주 취임식을 하는 것이었다. 성에 있던 블러디는 300~400마리였지만, 다른 인접 뱀파이어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견됐던 블러디를 모두 모으니 거의 800마리나 되었다. '이 정도면 다른 뱀파이어의 침략은 걱정할 필요 없겠군.' 사실 아크는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라카드는 어둠의 대지를 독식해 오다시피 한 카라클을 물리쳤다. 그러나 실제로 라카드의 능력은 어중간한 뱀파이어와 맞짱을 뜰 만한 실력도 되지 못한다. 그 사실이 밝혀지면 다른 뱀파이어들이 라카드를 가만 놔둘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아크가 떠난 뒤에 다른 뱀파이어가 침략해 결투라도 신청하면 바로 박살이 나리라. 다행스러운 것은 바로 로드가 정한 규칙. 다른 뱀파이어가 결투를 신청하려면 먼저 라카드의 블러디를 물리치고 본인 영지의 흙으로 성까지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카라클에게 넘겨받은 블러디는 무려 800! 주변의 어떤 뱀파이어보다 병력이 많은 것이다. 또한 라카드에게는 수십 마리의 노예 몬스터가 있었다. 사실 의외였던 건 이 노예 몬스터들의 반응이었다. "저희를... 계속 노역소에서 일하게 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취임식이 끝날 무렵, 플립이 노예 대표로 나와 말했다. 아크가 노예로 있을 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노예들은 최소 10년에서 20~30년이 된 노예들도 있었다. 그리고 현실에서도 10년 이상 감방에서 썩다보면 오히려 감방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고 한다. 이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곳은 어둠의 대지. 밖으로 나가 봐야 딱히 몬스터들이 살기 좋은 환경도 아니고, 재수 없으면 다른 뱀파이어에게 잡혀 죽을 때까지 피를 빨릴뿐이다. 물론 라카드도 뱀파이어니 피에 대한 갈증은 있지만, 아크의 소환수라 대부분의 식사를 밖에서 해결한다. 때문에 다른 뱀파이어보다 차라리 라카드가 낫다고 생각했다. 이제 지하 노역소에서 달의 조각도 회수했으니 더 이상 월석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땅을 파다 보면 자잘한 잡동사니와 드물게 보석도 나오니 남겠다는 몬스터들을 굳이 내보낼 이유가 없었다. '후후후, 혹시 나중에 또 어둠의 대지에 오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때는 몬스터들이 모아 놓은 잡동사니를 몽땅 갈취해야겠다.' "좋아. 딴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마."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 주인, 멋대로..." 라카드가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지만 한 번 째려보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그 외에 남은 것은 자잘한 일뿐이었다. 아크는 움막에 꽂아두었던 소환포트를 성으로 옮겨 재등록을 마쳤고, 라카드는 움막에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아기 박쥐 삼형제를 근사한 성으로 데려갔다. "와, 이 성이 이제 영주님 거라고요? 우후후, 과연 영주님이 마음만 먹으면 카라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그런데 카라클도 의외로 검소한 성격이었나 보네요. 성은 이렇게 크고 멋진데 다른 뱀파이어 성처럼 그럴듯한 장식품 하나 안 보이잖아요." "뭐, 그렇더라고..." 라카드가 슬쩍 아크를 흘겨보고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대답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아기 박쥐들은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흠흠, 이제 영주님은 걱정마세요." "네, 영주님이 밖에 나가셔도 우리가 성을 잘 지킬께요." "신입. 영주님의 대단함을 잘 봤겠지? 앞으로는 더욱 잘 모셔야 해! 영주님, 잘 다녀오세요!" 그러나 이미 아크의 귀에 세상 물정 모르는 아기 박쥐들의 헛소리는 들어오지 않았다. 성을 나온 아크는 드디어 달의 조각을 꺼내 들었다. "자, 이제 귀찮은 일은 다 해결했으니 시작해 볼까? 삼신기를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가? 처음 해저 도시에서 별의 조각을 얻고 거의 1년여. 드디어 삼신기의 마지막 조각을 찾아낸 것이다." 삼신기를 찾아낼 때마다 엄청난 보너스와 스킬이 주어진다. 그러나 달의 조각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보너스 능력치뿐만이 아니라, 짐작이지만 다크워커의 2차 전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아니, 분명해. 삼신기는 2차 전직을 위한 아이템이다!" 아크가 이제야 달의 조각을 꺼내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 중대한 의식을 잡무나 해결하면서 덤으로 처리하기 싫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끝낸 아크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달의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손에서 작은 진동이 일어나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돌의 파편을 확인했습니다. -고대의 힘이 서려 있는 돌의 파편(달의 조각) 이 석판은 매우 신비하고 두려운 힘의 일부분입니다. 이것은 암흑의 힘으로 만들어졌지만 빛의 속성을 띠고 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확인해 본 결과, 이것은 오래전 암흑 세기에 활동했던 마반 영웅이 가지고 있던 삼신기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었씁니다. 마반 영웅은 후인을 위해 자신의 힘 일부분을 이 삼신기에 남겨 두었습니다. 구도자가 이 신기를 얻게 되면 마반 영웅의 지식 일부분을 얻을수 있습니다. 달의 조각 소유자는 마반 영웅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경험치+3만. 고대 유물의 지식+15. 지능 10. 명성 20 상승했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어둠의 선물3(패시브): 어둠 속에서 발휘되는 다크워커의 모든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능력치 상승률이 50% 상향 조정됩니다. 은신의 지속 시간이 30분으로 상향 조정됐습니다. 단, 이 스킬은 숙련치를 올릴 수 없습니다.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배웠습니다. 문 라이트 섀도우(초급, 액티브): 마반 영웅의 비전초식 중 세 번째. 달의 힘을 방출시켜 최대 생명력과 방어력의 30%를 지닌 분신을 최대 3명까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분신은 움직일 수 없으나, 몬스터의 적개심을 자극하는 기운을 뿜어 주변의 몬스터들을 유인합니다.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했을 때 탈출용으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단, 이 스킬은 다크워커의 체내에 받아들인 달의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먼저 하룻밤에 해당하는 달빛을 받아 충전시켜 놔야 합니다. 마나 소모:500 "오오오, 어둠의 선물 3이다!" 아크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기대대로 달의 조각을 찾자 엄청난 보너스가 적용되었다. 아크가 가장 바라고 있던 것은 바로 어둠의 선물 3. 지금까지 삼신기를 하나씩 찾을 때마다 등급이 올랐으니 이번에도 버전업이 될 거라고 기대했다. 역시 삼신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 어둠의 선물 세 번째 단계가 되어 적용되는 어둠 속성 보너스는 무려 모든 능력치+50%. 어둠이 깔리고 어둠을 걷는 자, 다크워커를 위한 시간이 도래하면 레벨 300대의 아크는 150레벨 이상의 능력치가 보너스로 적용된다. 사실 아크가 삼신기에 목을 매는 이유는 어둠의 선물 때문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별의 조각으로 은하수를 상징하는 블레이드 스톰을, 어둠의 조각으로 어둠의 은밀함을 상징하는 다크 댄싱을 배웠듯이, 달의 조각에 걸려 있는 봉인을 풀자 환상을 상징하는 문라이트 쉐도우를 배울 수 있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스킬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아." 정보창을 읽어본 아크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 라이트 쉐도우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더미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었다. 범위 공격이 없던 아크가 지금까지 일 대 다수로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소환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적이 10마리를 넘어가면 벅차게 느껴졌다. 한 마리씩 상대하면 10마리는 물론 20, 30 마리도 거뜬했지만 일단 포위되면 제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럴때 분신을 만들어 몬스터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고 탈출한다 이거지? 뭐, 분신이라도 생명력이 30% 정도밖에 안되는데다 움직이지도 못하니 적에게 둘러싸이면 순식간에 박살 날거야. 하지만 다크댄싱과 병행해서 사용하면 나름대로 쓸 만하겠군. 일단 달의 조각에서 얻어진 능력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뭐지? 설마 이게 다인가? 아크는 달의 조각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삼신기.. 문자 그대로 세 개의 신기라는 말이다. 설마 삼신기라고 해 놓고 네 개나 다섯 개일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만 마반 영웅의 유산을 다 찾아냈다는 뜻인데, 전직에 대한 정보는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된거지? 설마 삼신기가 전직과는 상관없다는, 그런 황당한 결말은 아니겠지? 물론 삼신기가 전직에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아크이 짐작일 뿐이었다. 실제로 묘족이나 인어족, 너구리족은 젅딕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단지 삼신기에 마반 영웅의 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러면 안되지. 라둔, 삼신기, 다 뱉어 봐!" 쌕썍? 쌕쌕쌕! 아크의 명령에 라둔이 나머지 두 개의 조각을 뱉어 냈다. 그리고 아크가 삼신기를 모두 손에 들었을 때였다. 돌연 삼신기가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게 하나의 원판으로 변한 삼신기는 다시 아크의 손으로 돌아왔다. 삼신기를 왜 조각이라고 부르나 했더니 원래 하나의 원판이었던 거였구나. 그때 원판의 중심에서 흐릿한 빛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 빛이 닿자 눈앞에 괴상한 형태의 노이즈가 자글자글 퍼지기 시작했다. 무슨 문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노이즈였다. 뭐지? 이 노이즈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노이즈인데? 잠시 기억을 더듬던 아크는 곧 노이즈의 정체를 알아냈다. 일명 매직아이. 설핏 보면 노이즈처럼 보이지만 눈의 초점을 조정하면 입체적인 그림이나 문자가 떠오르는 신기한 그림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원판에는 마반 영웅의 유산에 관련된 정보가 들어 있다는 건가? 거기에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초점을 변경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노이즈에서 입체적인 형태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치 색맹 테스트를 할 때 사용하는 도형처럼 갖가지 색이 뒤엉켜 대체 무슨 형태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젠장, 뭐야 이거? 대체 이런 도형을 어떻게 알아보라고... 아! 고양이의 눈!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른 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켰다. 그렇다. 마반 영웅은 묘족. 만약 그가 구도자만이 볼 수 있는 뭔가를 생각해 냈다면 그 해답도 역시 묘족의 기술에 있으리라. 눈과 관련된 묘족의 기술! 역시나 주위가 녹색으로 변하자, 수없이 많은 색이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던 것처럼 보이던 곳에서 선명한 문자가 떠올랐다. 나는 마반 영웅이라고 불리던 묘족이다. 오래전 나는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멸하려던 어둠의 존재와 싸웠다. 그리고 물리쳤다...라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둠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대했고, 영웅이라 불렸던 나와 동료들조차 그를 봉인하는 것만으로 모든 힘을 잃어버렸을 정도였다. 두렵지만 어둠의 존재가 부활하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이 아닌 사실이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오래전에 봉인했어야 할 삼신기를 세상에 흩어 놓은 사람은 나다. 인연이 있는 자에게... 두려운 어둠과 맞서는 가혹한 인연이겠지만... 내가 어둠과 맞서며 깨닫게 된 힘을 전수해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메시지를 남기고 있을 때에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익혀 온 힘만으로는 어둠의 존재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둠과 맞서기 위해서는 또다른 어둠. 분노와 광기의 어둠이 아닌, 진정한 안식을 전해주는 어둠의 힘을... 하지만 이미 내게 주어진 운명의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나는 내가 가장 믿을 수 있으며 영원을 살아가는 벗에게 그 힘을 맡겨두었다. 그를 만난다면 왜 그대가 그곳으로 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힘을 찾아 진정한 어둠의 의미를 이해하라. 꽤나 그럴듯하지만 진지하게 살펴보면, 딱히 별거 없는 내용의 메시지가 끝나자 글자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새로운 메시지로 변했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이 뒤바뀐 대지에서 오래된 영웅의 별을 따라 길을 찾아라. 잊힌 전장, 최고의 자리에서 흩어진 달을 찾아 평등한 휴식처로 인도받아라. 진정한 어둠 소에서 세월을 잊은 자가 그대를 반길 것이다. 뒤어어 또다시 문자가 변하더니 웬 입체지도가 나타났다. 눈에 익은 지형... 그 입체 지도는 다름아닌 스탄달 전도였다. 그 지도의 한 부분이- 아마도 그곳이 단서를 풀어야 할 장소겠지만- 표시됐는데 놀랍게도 그곳은 다음에 아크가 가려고 생각했던 장소, 죽은 자들의 도시가 있다는 언데드의 영토였다. 마지막 삼신기가 뱀파이어 영지에 있고, 삼신기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가야 하는 곳이 언데드의 영토? 이건 우연인가 아니면 뭔가 개연성이 있는 건가? 물론 아무리 현실 같아도 뉴 월드는 게임. 말하자면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제작자가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사건일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뉴 월드를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다른 게임처럼 날벼락이 떨어지듯이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뭔가 사건이 벌어지려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마반 영웅의 유산이 언데드의 땅에 숨겨져 있어야 할 이유라니... 그게 뭘까? 아크가 당혹스러워할 때였다. 돌연 두둥, 소리가 울리더니 눈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전직 퀘스터: 위대한 유산 당신은 마반 영웅이 남긴 삼신기를 모두 입수했습니다. 당신은 다크워커로서 구도자의 첫발을 들여 놓고, 마반 영웅의 발자취를 쫓아 드디어 삼신기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 여정은 결코 물질적인 삼신기를 얻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별을 섬기는 인어족과, 어둠을 섬기는 너구리족과, 달을 섬기는 늑대족을 이해하고, 밤을 벗삼아 살아가는 수인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삼신기를 모두 손에 넣은 당신은 마반 영웅의 진정한 유산을 물려받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삼신기에 남겨진 단서를 풀어 마반 영웅의 유산을 찾아내야 합니다. 난이도: ?? 퀘스트 제한: 다크워커, 별의 조각, 어둠의 조각, 달의 조각 모두 소유 전직 퀘스트! 드디어 다크워커의 상위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는 퀘스트를 받은 것이다. 아크가 삼신기를 찾는 것만으로 전직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그 때문이다. 정식으로 전직 퀘스트를 받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2차 전직을 끝낸 사람들의 게시물을 읽어보니 모두 전직 퀘스트를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사실 뉴월드의 2차 전직이 다른 온라인 게임보다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전직 퀘스트의 난이도 때문이 아니라 전직 퀘스트를 발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에 대한 단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제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고 확실하게 퀘스트를 받았다. 그 보상은 의심할 바 없는 2차 전직! '해결하는 일만 남았다면 오늘 전직하든, 내일 전직하든 크게 상관없어.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소가 언데드의 영토라면 나야 좋지.' "가자! 데드릭, 라둔, 북실이 그리고 백구야." 삼신기를 챙겨 둔 아크가 기운차게 걸음을 내디뎠다. 다음 목표는 라자크와 2차 전직이다! "젠장, 뭐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군." 근래 들어 쥬르의 생활은 짜증과 불만의 연속이었다. 쥬르가 그렇게 스트레스 넘치는 일상을 보내게 된 이유는 역시 스탄달에서의 임무 실패가 원인이었다. 만약 쥬르가 계획대로 스탄달을 점령했다면 이를 기반으로 헤르메스 길드는 상당한 잠재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막대한 사명을 안고 현장 책임자로 임명된 사람이 바로 쥬르. 그러나 대박의 기대와는 달리 결과는 쪽박이었다.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쥬르가 박살나 용병 고용 비용 3천만 날렸다. 3천 골드나 되는 거금을 길바닥에 뿌린 꼴이 됐으니 얼마나 열 받겠는가? 그러나 열 받는 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스탄달이 떠오른 것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하지만 헤르메스 길드는 지은 죄가 있는지라 아직까지도 떳떳하게 스탄달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헤르메스 길드가 스탄달 출입 금지를 당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스탄달의 중심지 하만 요새의 자치대를 맡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정의남 일행과 다크브라더. 그들에게 헤르메스 길드원이라는 게 알려지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길드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의 목표는 스탄달 침공 현장 책임자였던 쥬르에게 집중되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헤르메스 길드의 2인자로 군림해 오던 쥬르의 위상이 바닥까지 추락했다. '이게 다 그 자식 때문이야, 아크!' 쥬르는 이를 갈아붙이며 돌부리를 걷어찼다. '아크... 아, 그렇게 짜증나는 단어가 이 세상에 또 존재할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예전에 쥬르가 악실리온의 페어전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것도, 시르바나 공성전에 실패했던 것도, 스탄달을 정복하지 못한 것도, 헤르메스 길드원이 마음놓고 스탄달을 드나들지 못하게 된 것도, 모두 아크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야. 한 달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보름 전에 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어제 어머니에게 욕먹은 것도, 어쩌면 지구온난화도 다 그 자식 때문일지도 몰라. 결국 쥬르의 피해망상은 조속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어쨌든 그놈만큼은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쥬르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5대 연합이 자리를 잡고 한동안 잠담하던 나가란에 다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라이덴 역시 만약을 대비해 연합원들에게 비상소집령을 내린 상황이다. 그럴 때 명색이 2인자인 쥬르가 복수를 하겠답시고 멋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크는 이미 쥬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크를 확실하게 처단하려면 최소한 10명. 넉넉잡아 15명은 동원해야 한다. 아무르 쥬르라도 전시체제에 돌입한 연합에서 그만한 인원을 빼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박혀 있는 지금도 아크 자식은 실실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어제저녁에 먹은 콩나물이 곤두서는 것이었다.' 쾅, 쾅, 쾅! 쥬르가 그렇게 정신 건강에 해로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성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굉은이 울려 나왔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쥬르님, 큰일 났습니다!" 반대쪽에서 달려오던 길드원이 쥬르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지금 어떤 자들이 성문을 공격하고 있답니다!" "성문을? 어떤 놈들이 선전포고도 없이 침공했다는 거야?" "아니, 공격하는 자들은 둘이라고 합니다." "둘? 둘이라니? 둘이서 성문을 공격한다고? 그럼 이게 고작 둘이서 내는 소리야? 아니, 그 이전에 대체 경비 NPC들은 뭐하고 있는데?" "저도 경비 NPC에게 듣기만 해서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 뭐, 뭐야, 이건?" 길드원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성문으로 달려온 쥬르가 입을 쩍 벌렸다. 정말 성문을 공격하고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짐승 가죽을 걸친 거구의 바바리안과 은빛 갑옷을 걸친 엘프 마법사. 그런데 이들의 행동은 쥬르의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바바리안이 기둥 같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성문이 투석기에 맞은 것처럼 내구력이 뚝뚝 떨어졌다. 무론 성문 근처에는 경비 NPC도 있었다. 공성전에는 참가하지 않지만 평상시에 하인이나 경비병 같은 영지 소속 NPC들은 주어진 임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비병의 임무는 이런 불법 침입자를 막는 것. 그러나 경비병들은 바바리안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 정말 귀찮네.' 바바리안의 뒤에 앉아 있는 엘프 마법사가 하품을 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때마다 달려들던 경비병들이 수십 미터씩 튕겨져 날아가는 것이다. "레디안, 귀찮다고 죽이지는 마. 나가란에서 NPC들 죽이면 꽤나 귀찮아진다니까." "돌머리 주제에 누구한테 충고야? 알고 있어." "너는 너무 변덕이 심하니까 하는 소리야." "맙소사, 저 사람들은...!" 한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둘을 지켜보던 쥬르의 눈이 솥뚜껑처럼 커졌다. "저 사람들이 왜 이곳에?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자, 잠깐만요. 브레드 형님, 레디안 누님, 그만두십시오!" "음? 뭐야, 저건?" 쥬르가 소리치며 달려가자 바바리안이 검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 바바리안 전사와 엘프 마법사는 다름 아닌 브레드와 레디안. 스탄달에서 십수 명의 관광객을 살해하고 잠적했던 흉악범들이었다. "저 녀석이 어떻게 우리를 아는 거지?"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자 레디안이 혀를 차며 말했다. "벌써 잊어 먹었냐? 저 녀석 예전에 잠깐 우리를 따라다녔던 쥬르잖아." "아, 그 찌질이. 그 녀석도 이곳에 있었던거야? 뭐, 저 녀석이야 원래 라이덴하고 친하게 지냈으니까." "훗, 다른 사람 졸졸 쫓아다니는 건 변하지 않는군." 브레드와 레디안이 노닥거리는 사이, 달려온 쥬르가 헐떡거리며 말했다. "형님, 누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대체 여기는 어쩐 일로? 아니, 그보다 저희 성문은 왜? 혹시 뭔가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 뭐, 기분 나쁜 일이라기보다는..."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자 레디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경비병들이 헤르메스 소속이 아니면 따로 신청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잖아. 귀찮아서 그냥 브레드가 노크를 하고 있었던 거야." "노, 노크요? 그게 노크였습니까?" 쥬르가 멍한 얼굴로 여기저기 떨어져 나간 성문을 바라보았다. 투석기 공격을 받으면서도 몇 시간을 버티는 성문의 내구력이 10%나 깎여 있었다. '젠장, 성문 수리비가 얼마나 비싼데...' 쥬르는 울컥 화가 치밀었지만 둘 앞에서는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브레드와 레디안은 그런 것 따위는 관심조차 없는 태도였다. "어쨌든 잘 나왔다. 라이덴 녀석 있냐? 좀 알아볼 일이 있는데." "성주님요? 무슨 일로..." "우리가 너에게까지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하는거냐? 아, 아닙니다. 따라오십시오." 브레드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자 쥬르가 움찔하며 얼른 둘을 성안으로 안내했다. 집무실로 들어서자 업무를 보고 있던 라이덴이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쥬르? 왜 이렇게 밖이 시끄러운..." "여어, 라이덴. 오랜만이군." 브레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린 라이덴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브레드? 레디안? 너희들이 어떻게? 혹시 이제야 결심이 선거냐?" "결심? 무슨 허벅지 긁어대는 소리야? 이 둔탱아, 뻔하잖아. 전에 우리에게 길들에 들어올 생각없냐고 물었던 걸 말하는거야." "뭐야, 결심이 그 말이었어?" 레디안의 설명에 브레드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관심없다고 했잖아." "너희들이라면 최고 대우를 해 줄 수도 있어." "시끄러워! 같은 얘기 몇 번이나 하게 만들지 마. 날려 버린다." 브레드가 대검으로 바닥을 쾅 내려찍으며 소리쳤다. "다 필요없고,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지. 네가 전에 우리에게 말했던 놈 있지?" "전에 말했던 놈? 그 왜 있잖아. 네가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던 녀석. 그때 분명히 그 녀석이 검은 늑대로 변신한다고 했잖아. 혹시 그 녀석 지금 어디에 짱 박혀 있는지 알아?" '검은 늑대... 아크 말인가!' 잠시 기억을 더듬던 라이덴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실 쥬르가 스탄달에서 아크에게 당한 직후, 라이덴은 더 이상 쥬르나 듀크만으로 아크를 처리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친분이 있는 유저들 가운데 몇 명을 골라 아크 척살을 의뢰했다. 그때 가장 먼저 연락을 보냈던 사람이 바로 브레드와 레디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둘은 한창 아슈벨의 던전을 공략하느라 거절했던 것이다. 라이덴의 말에 레디안이 짚이는 부분이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 이름이 아크인가? 그러고 보니 하만 요새 NPC에게 간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해." "그런데 너희들이 왜 아크를 찾는거지?" "얘기하자면 좀 길어." 브레드와 레디안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한숨을 푹 불어 냈다. 몇 달이나 고생하던 아슈벨의 던전 공략이 엉뚱하게도 관광객 때문에 초기화된 이후로, 둘은 화풀이를 위해 스탄달을 떠올린 사람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스탄달에서 아무리 정보를 모아도 정작 스탄달을 떠올린 사람의 이름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아크가 스탄달의 NPC에게 자신의 정보를 누설하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을 시켜놨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새에 쳐들어가서 관광 사무소까지 박살내며 알아낸 정보는 고작 목표가 이미 스탄달을 떠났다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둘은 목표를 쫓아 대륙으로 나왔다. 그러나 스탄달에 비해 몇 배나 거대한 대륙에서 이름조차 모르는 유저를 찾아내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 TV 게임 특종에서 스탄달 관련 동영상을 봤지." 바로 북실이가 방송국에 팔아넘긴 동영상이었다. 스탄달을 떠올린 유저는 검은 늑대! 그 동영상을 본 레디안은 예전에 라이덴이 의뢰했던 일을 기억해 낸 것이다. 대강의 설명을 들은 라이덴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였군." "자, 이제 네 차례다.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몰라?"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알고 있지. 너희들은 놈을 쫓아 대륙으로 나왔다고 했지? 하지만 놈은 대략 보름 전에 다시 스탄달로 돌아갔다." "뭐, 뭐야? 그 정보 확실해? 그래. 놈의 얼굴을 알고 있는 정보원이 하만 요새에서 확인했어." "정보원? 여전히 시시하게 게임을 하는 녀석이군." "그게 내 스타일이니까." 라이덴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라이덴은 아직 스탄달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가란의 정세가 불안해서 잠시 물러나 있는 것일 뿐. 아직 나크족과의 동맹을 유지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상황이었다. 현재 대륙과 협약을 맺은 게 바란족이라고 해도 나크족이 하만 요새를 점령하면 정세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하이덴이 하만 요새에 정보원을 잠입시키거나, 나크족 영지에 무법항을 만들어 교역을 방해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비록 현재 스탄달은 바란족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크족의 세력도 건재하다. 하만 요새의 교역을 방해하며 무법항에서 세력을 키우면 역전할 기회는 있어. 문제는 아크. 그놈이 또다시 무슨 방해를 해올지 몰라." 라이덴이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아크의 존재였다. 물론 라이덴은 아직 아크 한 사람이 헤르메스 연합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악연인지 일단 아크가 얽히면 이상하게 일이 꼬이는 것이다. '어쨌든 헤르메스 연합을 위해 아크 놈은 반드시 배제시켜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당장 그럴 여유가 없었는데 이 둘이 아크 놈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다니... 좋은 기회다.' 생각을 정리한 라이덴이 다시 입을 열었다. "힘을 합치지 않겠나?" "뭐?" "현재 아크가 스탄달 어딘가에 있다는 말은 했지? 알다시피 우리도 아크에게 원한이 있다. 원한다면 스탄달에 잠입시켜 둔 정보원과 무법항의 세력을 빌려주지. 걱정하지 마. 다른 조건은 필요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한 번이라도 더 아크 놈을 죽인 것. 그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너도 참 어지간하다." "어때? 받아들이겠나?" "뭐, 네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기분은 나쁘지만 우리가 손해날 건 없으니까." "좋아. 그럼 무법항에 연락해 놓지." "아, 그래. 이만 가 보마. 너는 열심히 음침하게 살아라." 브레드와 레디안은 그 길로 다시 스탄달로 향했다. 쥬르는 성문 앞까지 따라 나와 멀어지는 둘을 바라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이제 아크 자식도 끝장이군." "하지만 쥬르 님과 듀크 님이 길드원을 데리고 가서도 아크를 처리하지 못했잖습니까? 고작 둘이서 아크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강합니까, 저 둘이? 옆에서 지켜보던 길드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자 쥬르가 피식 웃었다." "선구자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알지?" "네. 쥬르님처럼 베타 테스트에 참가했던 유저들 아닙니까? 덕분에 상용화 이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유저보다 빨리 키웠고 말입니다." "그래. 나도 선구자지. 하지만 저 둘은 차원이 달라. 최후의 선구자지." "최후의 선구자? 후후후, 선구자들 사이에는 전설 같은 얘기지." 쥬르는 마치 늙은 마법사가 학생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달 동안 진행되던 베타 테스트가 끝나기 직전에, 캐릭터가 초기화된다는 공지를 확인한 선구자들은 모두 브리스타니아 서부에 위치한 섬에 모인 적이 있었지. 그 동안은 레벨 업이나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찾느라 PVP 따위를 해 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며칠 있으면 캐릭터가 초기화 되니까 마지막은 그 동안 맞춘 장비와 스킬을 총동원해서 화끈하게 배틀 로얄이나 벌여 볼 셈으로 말야." "배틀 로얄이라면? 그래, 무한 살육전! 쥬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NPC든 유저든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죽였지." 그렇게 베타 테스트가 끝나기 하루 전에 배틀 로얄이 시작되었다. 유저에게 죽으면 24시간 동안 부활하지 못하니 한 번 죽으면 그걸로 끝. "정말 엄청난 격전이었어. 천여 명이 한 섬에 모여서 서로 죽고 죽이기 시작했으니까. 나와 듀크도 죽어라 싸웠지만 고작 2시간을 버티는 게 전부였지. 라이덴 형님은 7시간. 그리고 베타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딱 두 명이야. 바로 브레드와 레디안. 저 둘이 최후의 선구자라고 했던 것은? 그 때문이지. 더 놀라운 것은 당시 브레드와 레디안은 팀을 짜서 참가한 것도 아니었어. 둘이 남은 건 단순히 승부를 내지 못해서였지. 종료 직전에 마주쳤거든. 뭐, 그 덕에 친해져서 지금은 콤비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아크 자식을 끝장낼 수 있겠군요." "끝장? 아니, 이건 시작에 불과해." 쥬르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사실 게임 안에서 유저를 몇 번 죽였다고 끝장낸다고는 할 수 없었다. 특히 아크처럼 탄탄하게 지지 기반을 쌓아 가고 있는 유저라면 더욱 그렇다. "정말 끝장을 내려면 놈의 지지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 버려야 해." 그리고 그동안 쥬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크에게는 두 곳의 지지 기반이 있었다. 하나는 이번에 떠오른 스탄달의 바란족과 동방 민족,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아구스 산맥의 란셀 마을이었다. 스탄달에서 최종 결전을 할 때 차원 게이트에서 나타났던 란셀 마을의 주민들을 확인하고 조사한 결과 그곳에 번듯한 아크 상점까지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스탄달은 어차피 헤르메스 연합이 다시 빼앗을거다. 남은 건 란셀 마을. 나가란의 문제만 해결되면 이 몸이 직접 나서서 란셀 마을에 있는 네놈의 지지 기반을 송두리째 뽑아 주마." 쥬르가 걱정했던 것은 그 사이에 아크가 어떻게 나올까 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브레드와 레디안이 나섰다면 그때쯤 아크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리라. "바로 그때 내가 아크놈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거다. 우하하, 브레드와 레디안에게 수없이 당하고, 지지 기반까지 몽땅 잃은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구나. 겁대가리 없이 이 몸에게 덤빈 걸 평생 후회하게 해 주마, 우하하하!" 쥬르가 하늘을 향해 광소를 터트렸다. 딱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악랄한 마법사였다. ACT 3.[마더]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현우는 뿌듯한 얼굴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제대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집을 바라보다가 주저하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이 집을 네가 전세로 얻었다는 거니?" "몇 번이나 말해요? 그렇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집에 그만한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어머니, 아들이 그 정도 능력은 돼요." "하지만 병원 근처에서 이만한 집이라면 전세금이 적지 않을텐데... 나 때문에 괜한 무리를 한 게 아닌지 모르겠구나. 나는 굳이 이런 집이 아니라도..." "어머니는 그런 건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예요." 현우는 짐짓 으스대는 표정으로 말하며 집을 바라보았다. 작지만 정원까지 딸린 3층 주택. 가계약을 맺었던 바로 그 전셋집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될지 걱정스러웠는데, 하니까 어떻게든 되긴 되는구나. 잘난 척하며 말했지만 사실 지난 두 달간 현우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새로 얻은 전셋집의 보증금은 무려 8천만 원. 계약금을 제외해도 6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덕분에 현우는 지난 두 달 내내 항상 쫓기는 기분이었다. 만약 두 달 뒤에 잔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지? 도중에 예상치 못했던 문제라도 생기면? 갚아야 할 돈-빚은 아니지만-이 있다는 것은 현우를 극도의 불안감으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말이 쉬워서 6천만 원이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든 현우도 아직 그만한 돈을 만져본 일이 없었다. 죽어라 벌어도 생활비와 병원비로 지출하고 남는 돈은 고작 몇만 원. 그 흔한 적금 통장을 만들 여력도 없이 살아온 것이다. 물론 돈 문제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한 현우다. 만약 두 달 안에 나머지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가계약을 맺지도 않았겠지만 액수가 액수다보니 확신이 있어도 그동안 적잖이 불안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문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지금까지는 골드가 아닌 현물이 많아 현우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막상 모아 둔 현물을 골드로 환산해 보니 현우의 자산은 예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 현물을 골드로 바꾸고, 그 골드를 더욱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크 일족 덕분이었다. 여담이지만 아크 일족이란 현우를 중심으로 모여든 갱생단과 로코, 아기 돼지 삼 형제, 시드, 레리어트를 그들이 편의상 부르는 호칭이었다. 어쨌든 아크 일족에게는 시드와 아기 돼지 삼 형제, 상인만 4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현우가 투자한 각종 사업에서 봉사하고 있으니 자산 관리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들이 전셋집 잔금을 해결할 수 있었던 숨은 공로자들 덕분이었다. 현우의 통장에 입금된 순서대로 이들의 활약상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북실이. 북실이는 마가로프의 연구실에서 얻은 아이템을 10% 이상의 가격으로 팔아 치워 3,200 골드 가량 벌어들였다. 그 다음이 시드. 시드가 활약한 것은 스탄달에서 얻은 광석 16,000개의 판매에서였다. 사실 현우는 이 광석을 란셀 마을의 너구리족에게 몽땅 넘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너구리족이 광석을 좋아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16,000개나 되는 광석을 팔아넘길 수는 없었다. 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같은 대장간에 그만한 숫자의 광석을 팔아치우면 그만큼 가격은 내려가리라. 그때 소식을 듣고 바람처럼 등장한 것이 바로 시드였다. 시드는 대륙상회의 정보력을 이용해 슈덴베르크 각지의 광석 가격을 알아보고, 광석이 품귀 현상을 일으켜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지역을 삽질이와 울먹이에게 알려주었다. 덕분에 아크는 광석을 모두 급매 처분할 수 있었고, 수익도 예상보다 30%나 넘게 올렸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이 2,400골드 가량. 여기에 몇 달 동안 로코가 착실하게 상점을 운영해 번 돈이 대략 천골드. 그것만으로도 6,600골드. 목표 금액을 초과 달성한 것이다. 후후후, 그리고 아란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지. 현우는 씨익 웃으며 며칠 전에 통장에 입금된 9백만 원을 떠올렸다. 현 아게이론에 잠입했을 때 위그리마를 해치우고 얻은 절망과 증오의 강철 방패를 팔아치운 금액이다. 그때 아이템의 성능을 확인한 현우는 실망했다. 일반적으로 다른 방어구보다 가격이 떨어지는 방패. 그것도 보통 레벨 300대에서 보스를 잡으면 높은 확률로 레어가 떨어지는 반면, 위그리마가 떨군 아이템은 고작 마법 방패였다. 3백만 원이면 잘 받는 것이리라. 그러나 경매 사이트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즉시 구매 요청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요청자 아이디는 매력 남, 아란의 아이디였다. 아이디를 확인한 현우는 예전에 장갑을 팔아먹을 때 세웠던 가설이 맞아떠어졌음을 확신했다. 틀림없어. 이전에 아란이 비싸게 구입한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도 증오라는 스탯과 관련이 있는 스킬이 붙어 있었어. 절망과 증오의 강철 방패도 마찬가지. 그런 아이템을 일부러 비싸게 매입할 이유는 단 하나. 증오와 관련된 세트 아이템이다. "아란 녀석은 그 세트 아이템을 모으고 있는 거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원래 아이템의 적정 시세란 사고 싶은 사람이 얼마까지 낼 수 있느냐로 결정되는 법.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란은 부자다. 세트 아이템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좀 심하다 싶은 가격을 제시해도 돈이 없어서 포기하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한 현우는 배짱을 튕기며 가격을 올려 댔고, 결국 정가의 3배나 되는 9백만 원에 팔아치울 수 있었다. 아란은 의외로 좋은 녀석일지도 몰라. 이렇게 아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우와의 친밀도가 쭉쭉 상승하고 있었다. 물론 아란은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아크 일족과 아란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잔금을 치르고도 1,500만 원이나 남았다. 그러나 사실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현우의 지갑이 두꺼워졌다는 것은 분신인 아크의 지갑이 얇아졌음을 뜻하는 것. 다시 1쿠퍼에 벌벌 떠는 나날을 보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1쿠퍼에 목숨 걸고 살아온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딱히 걱정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목표를 초과 달성한 건 나만이 아니야.' 현우는 자랑스러운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지난 두 달간 현우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목표로 노력했듯이, 어머니 역시 현우와 함께 산다는 목표를 위해 노력했다. 물리치료와 재활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 병실에서도 틈만 나면 몸을 움직이며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게 뭐? 아픈 사람이 낫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잖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거나 혹은 그런 가족을 둔 사람이라면 그게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6년 가까이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지켜봐 온 현우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모두가 낫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 달이 가고 1년이 지나면 내가 정말 나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찾아들게 된다. 거기에 오랜 투병 생활에서 오는 무력감이 겹쳐 결국 환자는 아픈 자신에게 적응해 버리게 된다. 아픈게 당연하다, 이렇게 아픈데 완리될 리가 없다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이다. "이 시기가 환자가 완치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힘든 고비입니다." 어머니가 입원하고 1년 정도 됐을 무렵 담당 의사가 했던 말이다. 당연하다. 자신이 아픈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치료를 위해 노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사들이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겨냈다. 나을 수 있다는, 아니 나아야 한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고 중환자실에서 깨어나서 의사들을 놀라게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의사들의 예상보다 훨씬 좋아진 몸으로 퇴원한 것이다. "이건 뭐라고 말씀드릴 게 없군요.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박소미 환자는 정말 우등생입니다. 모든 수치가 두 달 전에 비해 몰라볼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통원 치료로 바꾸는게 환자의 의욕을 북돋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효과가 있을줄은... 어지간히 현우씨와 함께 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주신다면 완쾌도 결코 먼 얘기가 아닙니다." 담당 의사는 그동안 어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치료에 임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의 고생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게 지난 6년간 현우와 어머니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덕분에 이런 꿈같은 현실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통원 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어머니와, 정원까지 딸린 번듯한 집을 전세로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온 보상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우야, 괜히 나 때문에 나쁜 짓이라도 했다면 엄마는 못 산다."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들의 대사는 다똑같은 걸까?' 현우는 어린애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치, 어머니는 아들을 그렇게 못 믿으세요? 어머니 아들은 말이죠,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나쁜 짓이라는 게 뭔지도 잘 몰라요. 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세요. 그야말로 순진무구. 갓 태어난 아기처럼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이란 말예요."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지는 모르겠지만 뻔뻔스럽기는 하구나." "그건 유전이죠. 어쨌든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예요. 게다가 화랑 아저씨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어머니가 걱정할 만한 짓을 하면 저야말로 병원 신세를 져야 할걸요." "아, 그러고보니 요 며칠 권 형사님이 안 보이시는구나. 무슨 일 있으시니? 어머니가 문득 생각난 듯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현우의 입가에 능글맞은 웃음이 떠올랐다. "아하, 아까부터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게 화랑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후후후, 예전에는 내가 얘기를 꺼내도 금세 말을 돌리더니 이제 먼저 찾으시네요? 그렇게 좋아요? 대체 제가 모르는 사이에 진도가 얼마나 나가신 거예요?" "얘, 얘가 무슨..." "뭐 어때요? 저도 올해로 24살이라고요." "24살... 그렇구나. 18살이었는데... 벌써 24살이지... 6년이나..." 현우의 대꾸에 문득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 실수했다.' 현우는 뒤늦게 아차 싶었다. 사실 어머니는 현우의 나이 이야기가 나오면 가끔 이렇게 우울한 표정을 짓곤 했다.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왔는지를 절감하게 되는 모양이다. 괜한 얘기를 꺼냈던 싶은 현우는 얼른 분위기를 바꾸었다. "화랑 아저씨는 형들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서?" "네. 실은 저도 며칠 전에 이삿짐 옮겨 놓고 나서 집에 들어가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예요. 제가 요 며칠 바빴거든요. 그런데 화랑 아저씨와 형들이 대신 짐 정리해 주겠다고 먼저 집에 와 있었어요." 사실 현우가 잔금을 치른 것은 카라클과의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단 이삿짐만 옮겨 놓고 새집에 인터넷과 유니트가 설치될 때까지 게임방에서 살았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새집에 도착해 약간의 흥분과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자, 그럼 들어갑니다." 현우는 힘차게 휠체어를 밀며 드디어 새집으로 들어섰다. 그때였다. 막 현관문을 들어서자 요란한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서프라이즈!" "누님,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현관 앞에는 권화랑과 갱생단이 어울리지도 않는 고깔모자를 쓰고 모여 있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현우는 새집이 얼마나 쾌적한 공간인지 실감되었다. 예전의 단칸방은 거구의 갱생단이 모이면 제대로 움직이기는커녕, 산소 농도가 떨어져 호흡 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비좁았다. 그러나 새집은 거실에서 갱생단이 축구를 할 수 있을정도로- 기분이 그렇다는거다- 넓었다. "후헤헤, 누님, 저희 왔습니다." 갱생단이 악동같은 표정을 지으며 몰려들었다. "고마워요. 이렇게 와 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가 남입니까?" "현우는 우리의 동생입니다. 그러니까 누님은 저희 어머니나 다름없다는 말이죠." "오오, 그러고보니 촌수가 그렇게 되는건가? 어머니라고 해도 됩니까?" 그러자 권화랑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야, 인마! 징그러운 소리 하지 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박여사는 짐승 같은 네놈들하고 DNA부터가 달라. 게다가 어디 너희들 같은 자식이 있을 나이냐?" "쳇, 이래서 늙은이는 싫다니까. 하여간 농담도 못해요." "웬 DNA? 형님이 우리에게 그런말 할 처지입니까?" "솔직히 지금까지는 꾹 참고 말 안했지만, 형님이 누님하고 같이 앉아있으면 그저 빨간 망토 아가씨를 보며 군침을 흘리는 늑대로밖에 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너 말 잘했다. 누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저 인간은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라고요.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가세요. 저희가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돕겠습니다." "뭐, 뭐야, 인마?" "호호호. 고마워요. 하지만 저에게 권형사님은 늑대보다는 곰처럼 보이는걸요." 권화랑이 갱생단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자 어머니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덕분에 짝퉁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던 정의남이 무안해진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다. "아, 하하하. 네, 전 곰입니다. 늑대 아닙니다." "얼씨구, 곰이라고 편들어 주니까 좋단다. 쯧쯧, 이래서 노총각은... 저리 비켜요." 짝퉁과 타짜가 히죽거리는 권화랑을 툭 걷어차 구석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능숙한 몸놀림으로 고개를 숙이며 빙긋 웃었다. "자, 동물원을 탈출한 곰인지 늑대인지 모를 짐승은 신경쓰지 마시고. 어쨌든 저희 현우의 형님 일동이 누님의 퇴원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말이 끝나자 돌연 둘의 손에 꽃다발과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소녀처럼 깜짝 놀란 눈으로 손뼉을 치며 물었다. "어머, 놀라라. 두 분은 마술사였어요? 훗, 재능이 넘치다보니 못 하는게 없을 뿐입니다." 전직 사기꾼과 도박사니 간단한 마술쯤은 일도 아니리라. 어쨌든 정말 놀랄 일은 이제부터였다. "시끄러, 인마. 고작 꽃다발과 케이크로 무슨 폼을 그렇게 잡아? 맞아. 이제 우리 차례다." 불끈이들이 강력한 태클로 둘을 날려 버리며 어머니 앞에 늘어섰다. 그때부터 갱생단의 러브 하우스가 펼쳐졌다. "실은 저희들이 누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자, 일단 한번 여길 보십시오." "거실 창문을 우아하게 감싸고 있는 저 커튼. 제가 아는 업자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제작한 최고급 커튼입니다. 100% 실크라 촉감 최고! 세균과 곰팡이를 억제하는 항균 처리가 되어 있어 건강에도 좋아요." 얍삽이가 황홀한 표정으로 커튼에 볼을 비비적대며 설명했다. 그러자 부동산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흥, 멍청한 놈. 고작 커튼 따위가 건강에 도움이 되겠냐? 이래서 집을 모르는 놈하고는 말이 안되는거야. 누님, 잠시 아래를 봐 주십시오. 장판이 어딘지 범상치 않아 뵈지 않습니까? 음하하,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옥장판이라는 겁니다. 역시 건강하면 뭐니뭐니해도 옥장판 아이겠습니까?" 이번에는 해결사가 나섰다. "훗, 짧아. 짧다고. 키가 작은 놈은 생각하는 것도 짧구나. 바닥에 붙어사니 바닥밖에 안 보이냐? 실내화를 신고 침대에서 자는데 장판 따위 뭐가 깔려 있든 무슨 상관이야? 좀 더 높이 봐라. 역시 중요한 건 조명과 벽지지. 너희들은 TV도 안 보냐? 조명과 벽지에 따라서 심리 상태나 실내 공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누님, 생각이 깊은 저는 3파장 조명 시스템과 황토 벽지를 준비했습니다." "크하하, 어리석은 놈들." 그때 어디선가 거실을 뒤흔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불끈이와 떡대가 부담스러운 근육을 흔들어대며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커는? 장판? 조명? 벽지? 이래서 잔머리를 굴려대는 놈들은 안되는거야. 건강이 별거냐? 잘 먹고 잘 싸고 운동 열심히 하면 저절로 건강해지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 몸이 준비한 건 이거다. 최고급 주방 세트와 냉장고! 이 몸이 준비한 건 재활 전문 운동기구 세트! 남자가 말야, 한 번 쓰려면 이 정도는 돼야지. 네놈들과는 눈높이가 다르다고. 크하하!" 불끈이와 떡대가 번쩍번쩍 빛나는 주방과 운동기구들을 가리키며 으스댔다. 그러자 나머지 갱생단이 무릎을 털썩 꿇으며 침통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윽, 부, 분하다." '확실히 음식과 운동이 가장 중요하기는 해. 저런 단세포들에게 밀리다니. 진즉에 주방용품은 내가 맡는건데...'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왕따 당하던 권화랑이 슬쩍 끼어들면서 말했다. "박 여사님, 저도 준비했습니다. 제가 준비한 건 최고급 침대! 3중 스프링 구조로 되어 있어 척추 건강에 아주 좋답니다. 게다가 튼튼해서 한 10년은 거뜬하게 쓸 수 있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갱생단의 야유뿐이었다. "역시 늙은이는 어쩔 수 없군. 선물을 가장해 노골적으로 야한 물건을..." "게다가 10년? 이참에 혼수를 장만하자는 속셈이잖아? 야한데다 쪼잔하기까지 하다니..." "우우, 동물원으로 돌아가라. 파렴치한 늙은이!" "이, 이 자식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그저..." 권화랑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펄쩍펄쩍 뛰었다. 그때 놀란 눈으로 집을 둘러보던 현우가 권화랑과 갱생단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 형님들. 그럼 이것 때문에 열쇠를 달라고 했던 거예요? 아, 그게 마이다. 나는 미리 말하고 준비하자고 했는데 이 녀석들이..." "앗, 치사해. 혼자만 살겠다는 겁니까?" 권화랑과 갱생단이 현우의 눈치를 살피며 떠들어댔다. 현우는 다른 사람의 등은 쳐 먹어도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은 싫어한다. 그 때문에 권화랑과 갱생단은 현우에게 비밀로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사실 현우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친분 관계를 생각하면 선물 한두 개 정도는 준비해 오리라. 그러나 현우가 생각한 것은 주전자나 냄비 정도. 설마 이렇게까지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갱생단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현우는 지금 맹렬하게 감동하고 있었다. 현우가 감동한 것은 선물의 가치 때문이 아니었다. 선물 하나하나에서 진지하게 마음을 써준 흔적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다. 현우는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뭔가를 받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그 대상이 어머니라면... "고마워요, 아저씨 형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현우는 눈시울을 붉히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체 언제쯤이던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고마움을 느껴본 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던 것이? "에, 뭐야? 이 녀석 왜 이래? 그러니까... 뭐, 우리 사이에 고작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폼을 잡냐?" 예상치 못했던 현우의 반응에 갱생단은 무안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와 권화랑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어색해하는 현우와 갱생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미묘한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정혜선이 커다란 등짐을 짊어지고 낑낑대며 들어왔다. "헉헉, 저 왔어요. 어라? 왜 다들 그래요?" 뒤늦게 왠지 어색한 거실 분위기를 알아챈 정혜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나 솔직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싶은 건 현우였다. " 어? 혜선아, 너 오는 쉬는 날이냐? 아유, 무슨 말을 하는거예요? 어머니가 퇴원하시는 날은 국경일이라고요." "국경일? 오늘이 국경일이야? 평일 아니었어?" 현우가 되물었지만 정혜선은 가볍게 무시하고 쪼르르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저 왔어요." "와 줘서 고마워요."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와 봐야지요. 저한테 오늘은 광복절 이후로 가장 경사스러운 날인걸요. 게다가 어머니를 저런 덩치만 커다란 오빠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잖아요." "호호호, 여전히 밝아서 좋네요. 별일 없었죠?" 정혜선은 몇 번 병원을 찾아 이미 어머니와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그렇다. 정작 당사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정혜선의 시어머니 포섭 작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 허물없이 인사를 주고받는 모습에 현우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그런데 그 등짐은 뭐냐? 어디 장사하러 가냐? 아, 이거요? 오늘같은 날 그냥 지나갈 수 없잖아요. 이것저것 좀 만들어 왔어요." "그게 다 먹을거란 말야?" "현우 오빠가 갱생단 오빠들의 식성을 몰라서 그래요. 아마 이것도 부족할걸요." 정혜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갱생단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히죽거렸다. "후후후, 과연 우리들의 귀염둥이다. 잘 알고 있구나." "자, 이제부터 먹고 마시는거다." "어이, 집주인! 뭘 보고 있냐? 술과 안주를 대령해라." 그러자 주섬주섬 음식을 꺼내들던 정혜선이 바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뭐요? 술은 안돼요. 술은." "엑? 그게 무슨 말이야?" "술도 없이 어떻게 그 많은 음식을 다 먹으라는 거야?" "그래, 알잖아. 우리에게 술은 소화제 같은 거라고! 우우, 폭정이다! 금주법 결사반대!" 당장 거리로 뛰어나가 촛불 시위라도 할 기세였다. "시끄러워요!" 그러나 정혜선이 버럭 소리치자 곧바로 입을 다물고 꼬리를 내렸다. 오랜 경험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정혜선에게는 이빨도 안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뒷골목에서 칼침을 맞아가며 산전수전 다 겪은 갱생단이다. 갱생단은 용기를 잃지 않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술을 댓발이나 내밀고 징징거렸다. "힝, 술 없으면 나 밥 안 먹어." 아, 이들이 과연 진정 암흑가를 주름잡던 건달이란 말인가? 그러나 어쨌든 이들의 시위는 효과가 있었다.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정혜선을 바라보았다. "술도 조금은 괜찮지 않겠어요?" "하지만 어머니, 저 오빠들은 술만 들어가면 짐승처럼 변한다고요." "그럴 것 같네요. 하지만 남자들은 조금 시끄러운 편이 좋아요. 여자가 남자를 걱정해야 할 때는 오히려 지나치게 조용할 때랍니다. 현우야, 네가 좀 사 오너라." "오오, 과연 누님! 총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최고 명령권자의 결단에 갱생단이 열화와 같은 지지를 보내왔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집에서 조촐한... 아니, 마련된 음식만 보면 무지막지하게 엄청난 규모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갱생단은 게걸스럽게 술과 음식을 쑤셔 넣으며 떠들어 댔고, 어머니의 퇴원에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된 권화랑은 갱생단이 따라 주는 술을 몽땅 받아 마셔서 시작도 하기 전에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그러나 정작 현우를 당혹스럽게 만든 건 정혜선이었다. "밑의 층에 새로 이사 왔어요. 잘 부탁드려요." 그 사이 정혜선은 음식을 챙겨서 2층, 3층, 심지어 옆집까지 돌리며 인사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어머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쉬지 않고 조잘댔다. 오랜 경험으로 연애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현우를 직접 공략하는 것보다, 어머니나 주변 인물을 공략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작전은 제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 붙임성이 좋았나?' 현우의 눈에도 왠지 정혜선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 그런 정혜선의 행보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딩동, 딩동.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을 때 현관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누구지?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엇?" 별생각 없이 현관문을 연 현우는 입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이런 곳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안녕하세요? 밖에서는 오랜만이죠?" "미, 미수씨?" 놀랍게도 찾아온 사람은 레리어트 강미수였다. 뉴 월드에서는 근래 들어 자주 만났지만 현실에서는 1년만의 재회였다. "미수씨가 어떻게 여기를?" "미수씨? 아, 레리어트 님 말이지? 우리가 불렀다." 현우의 목소리에 불끈이가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형님이 불렀다고요?" "그래. 어찌됐든 레리어트 님도 우리와 함게 지낸 지 꽤 됐잖아. 너하고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마침 모처럼 모일 기회가 생겼으니 이참에 제대로 인사나 하면 좋겠다 싶어서 말해 봤는데 흔쾌히 오시겠다고 하잖아. 그나저나... 정말 미인이십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던 불끈이가 뒤늦게 강미수의 얼굴을 확인하고 씹던 오징어를 툭 떨어뜨렸다. 그 점은 현우 역시 동감이었다. 사실 아크와 현우의 얼굴이 닮은 것처럼 강미수와 레리어트도 닮아 있었다. 때문에 레리어트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던 현우는 그녀의 외모에 좀 무감각해진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서 다시 만나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가슴이 뛰었다. 아무리 실제같은 가상현실 캐릭터라도 역시 오리지널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째 예전보다 더 예뻐진 것 같네.' "드, 들어오시죠. 마침 모두 레리어트 님을 기다리고 있던 참입니다." "감사합니다." 강미수가 빙긋 웃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강미수가 들어오자 거실이 환해졌다...라고 느낀 사람은 불끈이와 현우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그렇게 떠들썩하던 자리가 일순 침묵에 잠겨버린 것이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갱생단은 레리어트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지만 실제 강미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불끈이는 물론, 막 술잔을 들이켜던 떡대나 해결사, 짝퉁과 타짜, 얍삽이 등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강미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강미수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현우와 어머니에게 꽃다발과 화장지 세트를 건네주었다. "오빠들에게 얘기는 들었어요. 퇴원 축하드려요. 이건 약소하지만 집들이 선물이고요." "고마워요. 그런데 현우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요? 그냥...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강미수가 슬쩍 현우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어쨌든 그녀가 나타나자 단숨에 모든 관심과 화제가 한곳에 집중되었다. 현우는 예전에 그녀에게 재벌 남자친구-아란이다-가 있다고 공언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갱생단도 그녀에게 흑심을 품지 않게 되었지만, 막상 이렇게 예쁜 여자를 앞에 두니 목석처럼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술까지 얼큰하게 취한 사내들이니 말할 것도 없다. "이제야 스탄달 자치대장들이 다 모였군요. 제가 불끈이입니다. 한 잔 받으시죠." "저리 비켜! 헤헤헤, 저는 얍삽이입니다. 현실에도 엘프가 있었군요." "혹시 연예인 닮았다는 소리 자주 듣지 않나요?" 갱생단은 열렬하게 강미수를 환영하며 노골적으로 옆자리 쟁탈전을 벌여댔다. 그러나 그들이 깜빡한 사람, 그녀의 출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이, 혜선아, 여기 잡채가 비었다. 조금만 더 갖다 줘!" "갖다 먹어욧!" 거침없이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바로 정혜선이었다. '흥, 뭐야? 저 여자는 대체 왜 부른거야?' 정혜선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강미수를 노려보았다. 그녀도 레리어트라는 이름을 알게 된 건 꽤 되었다. 현우가 스탄달을 떠올리기 위한 신성한 토양을 구하러 란셀 마을에 들렀을 때, 레리어트도 함께 있었다. 그때 그녀를 목격한 묘족 무녀 자나가 아크가 웬 계집을 달고 다니더라고 일러바친 것이다. 당연히 정혜선은 현우와 갱생단에게 강미수에 대해서 캐물었다. 이에 현우는 그냥 조금 아는 사이라고 못을 박았고, 갱생단도 레리어트님에게는 잘나가는 남자 친구가 있다더라고 들어서 그냥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여자의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 여우 같은 것은 적이라고! 아니, 단순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강미수가 나타난 뒤로 현우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진 것이다. 말수도 부쩍 줄고, 갱생단이 그녀에게 러시할 때마다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현우의 그런 사소한 행동이 정혜선을 불안하게 만들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혜선은 그런 불안함을 적당히 반죽해서 몽땅 강미수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꾸었다. '무슨 여자가 색기만 줄줄 흘러넘쳐서... 남자 친구가 있다고 들었지만 방심하면 안돼. 현우 오빠는 누가 봐도 멋지니까. 지금은 몰라도 계속 알고 지내다보면 저 여우가 딴 생각을 품을지도 몰라.'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아니, 정말 착각일까? 어쨌든 나름대로 위기의식을 느낀 정혜선은 방실거리며 현우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오빠, 뭐해요? 레리어트 님은 오빠들에게 맡겨 놓고 한 잔 받아요. 그나저나 언니는 보기보다 성격이 참 좋은 모양이네요." "네? 제가요?" "네. 고작 게임에서 몇 번 본 것만 가지고 이런 자리에까지 찾아오다니. 언니는 정말 털털한 성격인가봐요. 요즘 아무 남자한테나 눈웃음치는 털털한 여자가 트렌드잖아요. 게다가 그렇게 예쁘니 분명 나이트에서 부킹 같은 것도 많이 하겠죠? 아, 부럽다." 이어지는 말에 강미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혜선아, 무슨 말을 그렇게..." "오빠, 나는 미수언니하고 말하고 있는 거거든요?" 옆에서 불끈이가 끼어들려고 하자 정혜선이 번뜩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때 물끄러며 정혜선을 바라보던 강미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칭찬 고마워요. 그런데 털털한 걸로 따지면 혜선씨도 만만치 않네요.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현우씨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니. 보통 여자들은 하기 힘든 일이죠. 솔직히 털털한 건지, 무감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뭐, 뭐라고요?" "어머, 기분 나쁘셨어요?" 정혜선이 발끈하자 강미수는 짐짓 미안하다는 듯이 입을 가렸다. 사실 정혜선은 강미수를 보고 부잣집 외동딸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한번 쿡, 하고 찔러주면 어머, 뜨거라 하고 알아서 길 거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실히 강미수는 평소에 조신한 성격이었다. 그러나 정혜선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성격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가 일하는 글로벌엑서스라는 대기업의 안내 데스크지만 각종 홍보관의 안내도 맡다 보니 때로는 질 나쁜 손님의 짖궂은 농담이나 심지어 취객을 상대해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만만한 성격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직장인 것이다. 게임 속이라지만 거친 갱생단과 함께 스탄달의 자치대 부대장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낯선 장소라지만 노골적인 공격을 받고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아닌 것이다. 어쨌든 의외의 반격을 받은 정혜선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화내면 지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호호호. 뭐,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현우 오빠와 저는 알고 지낸 지 굉장히 오래 됐거든요. 실은 란셀 마을이라는 곳에서 현우 오빠의 상점을 제가 맡고 있어요." "뭐, 그 정도로 친한 사이랄까? 그렇게 따지면 저도 현우 씨와 알게 된 건 1년 전이네요. 그리고 얼마 전까지 스탄달에서 함께 여행을 했었죠. 그때 현우씨가 전투 요령도 가르쳐 주고 직접 요리도 해 줬었어요." "그 정도면 뻔뻔스럽게 집들이에 찾아올 정도의 사이는 되지 않나요?" 그, 그런... 전투 요령? 요리? 정혜선이 와락 고개를 돌려 현우를 노려보았다. 현우는 영문 모를 눈총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이 두 여자가 자신을 들먹이며 신경전을 벌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솔직히 두 여자보다 난감한 건 갱생단이었다. 정혜선과 강미수가 현우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자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갱생단이 현우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흥, 흥, 나이 든 여자가 남자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건 문제 아닌가요?" 그런 험악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두 여자의 신경전은 점점 노골적인 인신공격으로 변질되어 갔다. 그러자 파직, 하며 강미수의 이마에 심줄이 튀어나왔다. "나이 든 여자? 어머, 몰랐어요. 혜선씨가 저보다 나이가 어리군요. 전 피부가 하도 삭아서 저보다 연상인 줄 알았어요. 혜선씨야말로 이런 자리에 참석할 시간에 피부 관리 좀 하는게 어때요? 제가 좋은 곳 소개시켜 드려요?" "뭐라고요? 정말 말 다했어요?" "제가 뭘요?" 강미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망울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정혜선이 이를 박박 갈아붙이다가 와락 현우에게 술잔을 내밀었다. "오빠, 제 술 한 잔 받아요." "응? 뭐? 왜? 현우씨, 간만에 만났으니 제 술 한 잔 받으시겠어요?" " 에? 하지만..." 현우는 양쪽에서 날아드는 술잔 공격에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현우 역시 바보는 아니라 분위기는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두 여자가 동시에 술잔을 내미는 것은 누구편을 들거냔 노골적인 질문이었다. 그러나 정혜선은 어머니까지 살뜰하게 챙겨주는 착한 여동생. 강미수는 한때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던 여자... 아니 그런 문제를 떠나서 대체 어떤 남자가 이런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들 수 있겠는가? 뒷감당을 어떻게 하라고? 대체 왜 싸우는 거야? 게다가 왜 하필이면 나냐고? 현우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갱생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우 덕분에 두 여자에게 버림받은 갱생단은 꼴좋단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긴 상황이 이쯤 되면 갱생단이 아니라 갱생단 할아버지가 와도 이 무시무시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으리라. "못 써요." 그렇게 현우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였다. 그저 웃으며 지켜보기만 하던 어머니가 휠체어를 밀고 다가와 정혜선과 강미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치며 꾸짖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두 여자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자는 남자를 곤란하게 만들면 안되는 거랍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마법사였다. 그저 그 말뿐이었다. 그렇게 간단한 어머니의 말 한 마디에 혼란, 광기, 분노 등등의 상태 이상에 빠져 있던 두 여자가 정신을 차린 것이다. 대체 어떤 마력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던 정혜선은 머리를 긁적이며 혀를 빼물었고 얼음처럼 냉담하던 강미수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러나 앉았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그만..." "아니예요. 제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 귀엽던걸요." 어머니가 빙긋 웃으며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발톱을 드러내며 아옹다옹하던 두 여자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해졌다. 정혜선은 물론 강미수조차 처음 보는 어머니의 손길에 별다른 저항감이 생기지 않는 듯했다. 강력한 마법에 이런 친화력까지. 어머니야말로 진정한 먼치킨이었다. 여자로서 살아온 경륜,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우의 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제, 젠장. 부럽다! 저런 훌륭한 어머니까지 있으면서... 부러운 놈, 용서할 수 없다." 갱생단이 와락 현우에게 달려들어 무시무시한 술 먹이기 스킬을 난사했다. 위기를 모면한 것도 잠시, 단숨에 빈사 상태에 몰린 현우는 또다시 어머니에게 구조 요청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이미 어머니와 정혜선, 강미수는 여자들만의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 뒤였다. 결국 현우는 소주와 맥주의 연쇄 스킬, 폭탄주에 치명타를 받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질투와 시기,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현우는 문득 머리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갱생단의 공격을 받고 장렬히 산화했던 모양이다.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정혜선과 강미수는 보이지 않았다. 거실에는 치열했던 전투를 마친 갱생단의 사체만이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이었따. "하아, 아주 작정을 하고 마셔댔나 보군. 어라? 그런데..." 현우는 한숨을 불어내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볼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느낌, 익숙한 체취, 그제야 현우는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옆에서 권화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주십시오. 제가 방에 데려다 눕히겠습니다. " "아니, 조금만 더 이러고 있게 해 주세요." 어머니가 현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 집, 권형사님이 도와주신 건가요? 현우가 그런 얘기를 통 안해서..." "아닙니다. 솔직히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현우가 거절하더군요. 어머니에 대한 일 만큼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요. 이 집 전세금은 모두 현우가 구한 겁니다. 정말 대견하지 않습니까? 저 나이에 이만큼 어른스러운 녀석은 흔치 않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네?" "현우 나이에 이만큼 어른스러운 사람이 흔치 않다고요? 네, 맞아요. 하지만 말이죠. 현우는 원래 조금도 어른스럽지 않았어요. 6년 전만 해도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였죠. 저는 그때가 좋았고, 적어도 내 앞에서는 언제까지나 철부지로 남아주기를 바랐어요. 알고 있나요? 제가 현우에게 처음으로 어머니라는 말을 들은 건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예요...." "그때 알았어요. 현우가 어른이 돼 버렸구나. 아직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나이인데... 나 때문에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걸 가슴이 아팠어요. 지금도 가슴이 아파요." "현우는 조금도 어른스럽지 않아요. 죽을힘을 다해 어른스러워지려는 것뿐이랍니다." 문득 현우의 머리에 뭔가가 떨어졌다.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현우의 손을 꼭 잡았다. "얼마나...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잦아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든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진다. 밀물이 차오르듯 가슴속에서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러나 두 눈을 꽉 감고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꾹 눌러 삼켰다. 맹세했다. 그날.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맹세했다. 두 번 다시 어머니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웃는 얼굴만 보여 드리겠다고. ACT 4.[사자의 대지] 바바바, 바바바! 라둔이 투실한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들판을 가로질렀다. 날씨도 좋고 딱히 귀찮게 발목을 잡는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라둔의 등에 올라탄 아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으...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네.' 아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흔들어댔다. 어젯밤,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갱생단이 날린 폭탄주의 악몽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아크는 그렇게 술이 약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무식하게 마셔 본 건 처음이라 새벽에는 좀 힘들었지만 아침에 가볍게 조깅을 하며 땀을 흘리자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덕분에 아크는 의욕적으로 새로운 모험을 출발하려고 했으나... 망할 돌고래 녀석들! 어둠의 대지에서 불렀던 돌고래가 문제였다. 이미 어둠의 대지로 향할 때 경험해 봤지만 돌고래의 승차감은 최악이었다. 출렁대는 파도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때때로 묘기를 부리듯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그때마다 간신히 달래 놓은 아크의 위장도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덕분에 뱃멀미도 아닌 돌고래 멀미를 참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던 것이다. 욱신거리는 허리 통증은 덤이다. '아무리 공짜라지만 돌고래 이용은 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크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4시간이나 참아냈다. 물론 일단 어둠의 대지는 벗어났으니 도중에 내려서 육로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산맥에 둘러싸인 스탄달에서 육로를 통해 이동하려면 그 몇 배나 되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라리 멀미에 시달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쨌든 술은 역시 마실 게 못돼. 몸에도 안 좋은 주제에 비싸기만 한 걸 왜들 그렇게 마셔대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게다가... 로코와 레리어트의 신경전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아크도 바보는 아니다. 당시는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지만 술이 깬 뒤에 생각해 보니 대강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로코의 착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리라. '로코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레리어트에게는 아란이라는 남자친구-물론 아크의 착각이다-가 있다. 사실 아크의 입장에서 보자면 열 받는 놈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만한 조건을 가진 남자도 없다. 아니, 솔직히 요즘은 아크도 현실의 아란은 의외로 괜찮은 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란이 이해해 주지 않았다면 여자 친구인 레리어트가-다시 말하지만 아크의 착각이다-이렇게 아크와 편하게 어울리지 못했으리라. 어쨌든 레리어트는 그렇게 돈도 많고 잘 생기고 성격까지 좋을지도 모르는 남자친구가 있다. 뭐가 아쉬워서 아크에게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데 상황도 모르는 로코가 대놓고 질투심을 드러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나 아크가 정말 당혹스러운 것은 그 일로 한때 그녀에게 흑심을 품었던 일이 들통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쨌든 당분간은 로코든 레리어트 님이든 얼굴 볼 일은 피해야겠어.' 차마 얼굴을 볼 용기가 안 난다는 게 정답이다. "으음, 마음에 안 들어." 그때 아크의 어깨에서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가?" "저 돼지가 좋아하는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돼지 주제에!" 라카드가 뒤따라오는 북실이를 노려보며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라카드의 말대로 북실이는 연방 히죽거리고 있었다. 북실이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는 바로 새로 생긴 애완견 백구 때문이었다. '참 의외의 조합이란 말이야.' 사실 처음 백구를 애완견으로 삼을 때 북실이는 질색했다. 자기 몸의 2배나 되는 애완견이라니? 폭력으로 길을 들여 놨다지만 그건 아크에게나 해당되는 일. 또한 북실이에게 복종의 맹세를 했지만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크가 없을 때 북실이의 말을 잘 들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아니, 늑대와 돼지다. 잡아먹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굳이 백구의 주인을 북실이로 삼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원하는 대로 부하를 만들어 줬으니 앞으로 딴소리는 못하겠지. 그리고 이제 백구 핑계를 대고 북실이에게 나가는 돈을 50% 정도는 삭감할 수 있어. 사실 다시 동행하게 됐지만 아크와 북실이의 관계는 예전과는 달랐다. 예전에는 아크가 싫다는데도 북실이가 따라왔지만 이번에는 아크가 필요에 의해 북실이를 고용한 입장인 것이다. 말하자면 북실이는 노예에서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자유인으로 승격됐다고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북실이는 전속 카메라맨 계약을 맺을 때 이런 요구를 했었다. "대가 없는 노동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월급 준다고 했잖아." "네. 월급을 받으니 당연히 촬영은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외의 노동은 단호히 거부합니다. 다른 일을 시키려면 그만한 대가를 주세요." 북실이의 요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공짜로 부려 먹던 아크의 입장에서는 화가 치밀었지만 딱히 다른 핑계거리가 없었다. 초상권 운운하며 겁을 줬지만 그게 언제까지 통할지도 알 수 없다. 결국 아크는 북실이와 노사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앞으로 북실이가 구해오는 식재료를 적당한 가격으로 매입해 주기로 약속했다. 뭐, 식재료는 상점에서 취급하지 않아 아크가 임의대로 가격을 먹여 개당 1~5실버였지만, 여행 도중이라도 하루에 30개는 가져온다. 덕분에 아크는 하루 평균 1골드의 예산 외 지출이 생겨버린 것이다. 따지고 보면 당연히 지불해야 할 노동의 대가지만, 지금까지 공짜로 얻던 식재료에 돈이 나간다고 생각하니 살을 깎아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크에게 북실이가 모아오는 식재료는 꼭 필요했다. 아크는 물론 북실이나 라카드, 그리고 한 번 변신할 때마다 엄청난 음식을 필요로 하는 라둔. 이런 대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보니 항상 식재료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걸 아크 혼자 감당하려면 여행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들 게 뻔했다. '어떻게 그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아크가 백구를 굳이 북실이의 애완견으로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너는 고용인이니 그렇다 쳐도, 내가 왜 네 애완견 밥까지 공짜로 먹여줘야 하냐?" 아크는 그런 이유로 백구의 식사비를 몽땅 북실이에게 덮어씌웠다. 그렇게 되자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크가 백구의 식사비로 청구하는 돈은 하루 세끼 50실버. 다시 말해 북실이는 하루 종일 식재료를 모아도 50실버밖에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식재료가 적은 곳에서는 되려 아크에게 식사비를 줘야 할 때도 있었다. '또 속았어. 젠장, 이건 애완견이 아니라 혹이잖아!' 북실이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사 문제로 아크가 나가 있는 사이 북실이의 생각은 180도로 바뀌었다. 사실 북실이가 가장 걱정하던 건 과연 백구가 자신의 말을 듣겠냐는 점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복종의 맹세를 한 백구는 정말 북실이를 주인처럼 따랐다. 다짜고짜 두들겨 패는 아크보다는 그래도 북실이가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백구는 생각보다 쓸데가 많았다. 2비록 월랑족 중에서 약한 편이라고는 하나 어느 정도 전투 능력이 있어 북실이의 보디가드로 활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갯과의 수인족이라 후각이 예민해 식재료 찾기에도 한몫했다. 덕분에 백구의 식사비를 해결하고도 1골드의 수입을 올릴 만한 식재료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실이가 좋아했던 것은 바로 탑승기능이었다. 백구는 라둔처럼 탈것으로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팟, 파파팟! 지금도 백구는 북실이를 태우고 라둔을 따라오고 있었다. 백구를 탈것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아크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라둔의 등에 아크와 북실이가 타고 있을 때보다 이동속도가 30% 이상 빨라진 것이다. '뭐, 결과적으로 북실이에게 백구를 맡긴 건 좋은 일인데...' '이상하다? 북실이는 좋은 놈인데? 왜 실실거리는 얼굴을 보니 화가 치밀지?' 라카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갸웃거렸다. 동감이다. 사실 아크 역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북실이가 행복하면 마치 자신이 굉장히 북이익을 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디 한 번 꼬투리만 잡혀 봐라.' '그런데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거야?' 찜찜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크가 약간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그러자 한창 뭔가를 주물럭대던 북실이가 히죽 웃으며 메모리 크리스털을 들어 올렸다. "후후후, 한 번 볼래요?" "메모리 크리스털? 뭐, 다른 신기한 거라도 찍었냐?" "그런 건 아니고요. 일단 한 번 보세요." 북실이가 메모리 크리스털을 작동시키자 희미한 빛이 일어나더니 저장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방금 전에 찍은 것인지 돌고래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었다. "이게 뭐?"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아, 지금부터예요." 북실이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려 봤지만 역시 특별히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대체 뭘 보라는 걸까?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크는 뒤늦게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동영상은 북실이의 마법 영사기로 촬영한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영상은 아크의 뒤에서 찍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영상은 달랐다. 상황에 따라 전후좌우, 심지어 고공 촬영을 한 것처럼 머리 위에서 찍힌 장면도 있었다. "어때요? 이렇게 바꿔 놓으니 느낌이 전혀 다르죠?" "이게 어떻게 된거야? 돌고래 타고 이동할 때 너 계속 뒤에만 있었잖아." "뱀파이어 아이를 응용한 거예요." "뱀파이어 아이? 카라클에게 피를 빨려서 배우게 된 스킬요." 물론 아크 역시 알고 있었다. 눈알을 뽑아 주변을 정찰할 수 있는 괴상망측한 스킬이다. 그걸 모른다는 말이 아니고 그거하고 동영상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어차피 생긴 스킬이니 제대로 사용해야겠다 싶어서 아크님이 안 계시는 사이에 이것저것 시험해 봤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새로운 응용법을 찾아냈어요. 새로운 응용법? 이거예요. 북실이가 씨익 웃으며 뒤통수를 탁 치자 눈알 하나가 툭 빠져나왔다. 몇 번을 봐도 적응되지 않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미 북실이는 익숙해졌는지 눈알을 뽑으면서도 별다른 느낌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가방에서 손가락 하나 크기의 메모리 크리스털을 꺼내 들더니 눈알의 뒤쪽에 푹 하고 끼워 넣는 게 아닌가? "윽, 이때가 좀 아프더라고요. 어쨌든 이렇게 눈알에 메모리 크리스털을 끼워 넣으면 마법 영사기처럼 눈알이 보는 영상을 저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어요. 후후후, 굉장하죠?" 굉장하다. 어떻게 자기 눈알에 크리스털을 박아 볼 생각을 했는지 정말 대단하다. 어쨌든 놀랍게도 뱀파이어 아이에는 동영상 촬영 기능까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북실이는 나머지 눈알까지 뽑아 크리스털을 박아 넣었다. 그러자 크리스털이 박힌 두 개의 눈알이 아크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기분 나쁜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눈알을 회수해 동영상을 재생해 보자 마치 헬리콥터를 타고 촬영한 듯한 영상이 펼쳐졌다. "이렇게 촬영한 동영상을 편집한 게 아까 그 장면이예요. 그것뿐이 아니예요. 눈알을 잘만 이용하면 같은 시간, 서로 다른 장소를 촬영해 전투 장면이 더욱 긴박감을 줄 수도 있죠." "그런데 눈알을 다 빼 버리면 너는 어떻게 보냐?" "마법 영사기가 있잖아요." 북실이가 씨익 웃으며 마법 영사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뒤쪽의 플러그를 뽑아내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뒤통수에 푹 꽂는게 아닌가? "이렇게 하면 마법 영사기로 촬영하는 영상을 제가 볼 수 있더라고요." 마법 영사기와 합체한 북실이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양옆에 떠 있는 눈알들도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솔직히 아크는 같이 웃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슨 사이보그도 아니고... 어째 점점 괴상한 몬스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그렇지? 그렇지? 역시 피도 빨리고 볼 일이라니까." 백구의 감탄사에 북실이가 콧바람을 뿜어내며 으스댔다. "후후후, 이건 게임 동영상의 혁명이라고요. 방송국에서도 군침을 흘릴걸요." 북실이가 신바람이 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북실이는 이미 한 번 게임 동영상을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린 적이 있었다. 결국 아크에게 들켜서 강탈당하다시피 했지만 앞으로 찍은 동영상 수입의 50%를 받기로 계약한 것이다. "잘만 하면 방송국 전속 계약도 꿈이 아니예요. 아크님, 좋은 장면 부탁해요." 북실이가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반강제적으로 전속 카메라맨이 되고, 어둠의 대지에서는 아크에게 버림까지 받았던 북실이는 정말 진지하게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했다. 아크에게 이렇게까지 당하면서 굳이 뉴 월드를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북실이가 아크와 함께 하는 것이 그리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북실이는 아크가 얻는 아이템의 판매 대행을 하면서 레벨도 괘나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노사 협상으로 식재료 대금을 받게 되었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펫까지 얻었다. "게다가..." 사실 북실이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게임 안이 아닌 실제로 방송국의 카메라맨이 되는. 북실이가 비싼 마법 영사기를 사 들고 다녔던 것도, 아크의 동영상을 촬영하며 보여 주었던 프로 근성도, 그 영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이 얼마 전에 TV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다시 그 꿈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서 아크 님의 동영상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정식 카메라맨까지는 아니라도 다시 내가 촬영한 동영상이 TV로 방송될지도 몰라. 게다가 판권료의 50%도 받을 수 있다. 꿈을 이루는 데다 돈까지 벌 수 있는 기회! 가끔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북실이도 아크 덕분에 적지 않은 것을 얻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예 게임을 접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북실이는 마음을 다잡고 성실하게 자신의 책무를 다했다. 그러나 사정이 어쨌든 눈알이 빠진 돼지가 히죽거리고 있으니 공포 영화가 따로 없었따. '하지만 뭐, 본인이 만족하고 있는 것 같고...'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셨다. 동영상이 잘 팔려 준다면 아크도 짭짤하게 벌 수 있으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왜일까? 뽑아낸 눈알에는 크리스털, 머리에는 마법 영사기를 장착한 미래형 돼지 사이보그를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라카드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주인. 나 역시 저 녀석한테 잘해 줄래." "그래." 사자의 대지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모험가의 지식: 숨겨진 지역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10) 특수한 지역에 진입해 환경 효과가 적용됩니다. 자연 회복력-50%, 피로도 증가가 20% 빨라집니다. 피로가 70% 이상 쌓이면 의욕 상실에 걸려 공격력과 방어력, 이동 속도가 50%로 내려갑니다. 피로를 해소하면 해제됩니다. (패러독스 왈 : 제길 힘들어! 힘들다고!) '여기부터가 언데드의 영역인건가?'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늪지를 바라보았다. 사자의 대지라면 언데드가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뜻. 하만 요새에서 얻은 죽은 자들의 도시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아마도 죽은 자들의 도시는 따로 뚝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니라 언데드 출몰 지역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다. "뭐, 특수 지역 환경 효과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군."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는 지역에 따라 특수한 환경 효과가 적용되는 곳이 있었다. 스탄달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설산처럼 추운 곳에서는 한파 효과가 적용된다. 사막이나 이전의 용암 동굴에서 적용된 환경 효과는 폭염. 그러나 이건 단순히 페널티라고 할 수만은 없었다. 어둠의 대지에 걸려 있던 블러디 다크도 일반 캐릭터에게는 엄청난 페널티로 작용하지만 오히려 아크에게는 보너스였던 것처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깊게 설명하자면 이런 환경 효과가 영향을 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익히고 있는 특성이나 스킬. 예를 들면 얼음 속성의 특성이나 마법을 익힌 유저라면 한파가 적용되는 지역에서 오히려 공격력과 마력이 강해진다. 반면 폭염이 적용되는 지역에서는 스킬이나 마법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종족. 울창한 숲은 일반 캐릭터에게도 자연회복력+20%의 보너스가 적용되지만 특히 숲의 종족인 엘프는 정신력과 마력 따위가 30%나 증가하는 강력한 효과가 적용된다. 반면 던전 같은 곳에서는 드워프가 가장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된다. 예전에 갱생단이 지하 미궁에 몇 달이나 처박힌 탓에 자폐증, 우울증 따위의 상태 이상에 걸린 적이 있지만 나중에 북실이-북실이는 원래 드워프족이다-에게 들은 바로는 드워프의 경우, 오히려 던전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능력치 보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같은 유저라도 지역에 따라 전투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처음 시작할 때 인간을 선택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그런 환경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은 지역에 따라 크게 보너스를 받을 일도, 크게 페널티가 적용되는 일도 없다. 특별히 저항력이 강한 상태 이상도 없지만 특별히 취약한 상태 이상도 없다. 때문에 안정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사자의 대지처럼 종족이나 특성과는 무관한 환경 효과가 적용되는 지역도 있다. 뭐, 걱정할 수준이 아니기는 하지만... 자연 회복력은 회복 마법이나 포션을 이용하지 않아도 생명력이 회복되는 속도를 말한다. 그게 50%나 감소하면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전투가 끝날 때마다 음식으로 회복하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피로도 역시 마찬가지. 오히려 신경쓰이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백구, 너 똥 밟았다." "에엑? 어, 어디요? 으악!" 아크가 불쑥 말하자 백구가 기겁하며 옆으로 물러나다가 돌연 비명을 터트렸다. 바로 옆에 있던 늪에 발이 빠지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더니 생명력이 쭉쭉 빠져나갔다. "역시 짐작대로군."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크는 이와 비슷하게 생긴 지역을 가 본 적이 있었다. 시꺼멓게 죽은 나무들이 얽혀 있고, 고약한 냄새를 풍겨내는 시커먼 늪. 이런 곳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몬스터가 아니라 늪이었다. 이렇게 썩은 늪에 빠지면 곧바로 치명적인 독에 중독되는 것이다. "아, 미안해. 똥인 줄 알았는데 진흙이었네." "아, 아크님! 헉, 배, 백구야... 뭐해요? 빨리 해독해 주세요!" "알지? 한방 해독제 하나에 70실버인 거." 아크가 해독제를 흔들어 대며 씨익 웃었다. "젠장, 달아둬요!" 북실이가 와락 해독제를 잡아채 백구에게 쏟아부었다. 덕분에 간신히 중독에서 벗어난 백구는 이를 갈며 아크를 노려보다가 서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거렸다. 헉헉, 사, 살았다. 흐윽, 주이님. 그래그래. 안다, 알아. 역시 제가 믿을 사람은 주인님밖에 없어요. 돼지와 늑대의 우정은 아크 덕분에 이렇게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백구 덕분에 잔돈도 벌고 늪지가 독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늪지라고 해도 지역 전체가 늪으로 뒤덮여 있는 건 아니었다. 마치 논밭처럼 늪지 사이사이에 서너 명이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하지만 늪지의 길은 복잡해. 역시 몬스터가 없을 때는 라둔을 타고 이동해야겠다. 당연하지만 독을 만들어 내는 라둔은 독에 대한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백구를 타고 있는 북실이에게도 늪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백구는 독에 대한 내성은 없었지만 몇 미터 정도는 단숨에 뛰어넘을 도약력을 가지고 있었다. 중간 중간 늪지 때문에 길이 끊겨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라둔보다 빨랐다. 그렇게 늪지에 들어서고 얼마나 지났을까? 약간 앞서 가던 백구가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렸다. "백구야, 왜 그래?" "아니, 갑자기 이 주변에서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가 풍깁니다." "시체가 썩는 냄새?" 아크가 약간 경계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사자의 대지. 시체가 썩는 냄새라면 주변에 언데드 몬스터가 있다는 말인가? 하긴 이미 늪지 깊숙이 들어왔다. 슬슬 이 지역의 터주대감들이 나탈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뒤이어 정찰을 내보냈던 라카드가 돌아와 고개를 저었다. "저기까지 돌아봤는데도 별거 없는데?" "흠. 막상 몬스터가 안 보이니 찜찜하네. 백구의 반응도 마음에 걸리고..."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쌕? 쌕쌕쌕! 갑자기 라둔이 비명을 지르며 늪으로 미끄러졌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라둔의 등을 차고 뛰어올라 평지에 착지했다. 뒤이어 고개를 돌리고 나서야 아크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늪지에서 썩어 들어가는 팔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라둔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가 늪지 속에 있었던 건가? 라둔, 변신 해제!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바닥을 구르며 검을 날리자 부위 절단이 발동하며 팔이 댕강 잘려 나갔다. 그 사이에 다시 뱀으로 돌아온 라둔이 늪지에서 빠져나와 허리에 감겼다. 그러나 라둔이 채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기도 전에 라카드의 비명이 들려왔다. 주, 주인. 저기 봐, 늪이...!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부글부글. 팔이 나왔던 곳만이 아니었다. 전후좌우 사방의 늪지에서 끓어오르듯 거품이 뿜어져 올라오더니 시커먼 형체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악취를 뿜어내며 덜렁거리는 썩은 살점 사이로 시커먼 뼈가 들어나 있었고, 벌어진 피부 속으로 거머리와 구더기들이 기어 다녔다. 보는 것만으로도 3년 전에 먹은 밥알이 곤두설 정도로 역겨운 생김새! 그러나 아크가 놀란 것은 몬스터들의 호러틱한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맙소사, 이게 대체! 늪에서 솟아 올라온 몬스터들의 숫자는 거의 100여 마리! 고양이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몬스터의 이름은 몰드좀비, 레벨 300대였다. 젠장, 지형도 불편한 곳에서 100마리와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그러나 불평을 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리가 없었다. 좋든 싫든 적이 나타났으니 싸워 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싸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크아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연출로 등장한 몰드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아크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다크 블레이드로 반격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전투를 시작하니 몰드좀비는 생각만큼 강하지 않았다. 레벨 300이나 되는 몬스터가 검으로 내려칠 때마다 생명력이 10%나 깎여 나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녀석들이 레벨에 비해서 약한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아크는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렇구나. 지금 적용되는 어둠 속성 보너스는 50%지! 그렇다. 달의 조각을 찾아 얻은 어둠의 선물3. 그 효과는 무려 능력치+50%. 현재 아크의 레벨은 카라클을 해치우고 월랑족의 복수 퀘스트까지 해결해 325다. 여기에 50%의 보너스가 적용돼 무려 487에 달하는 능력치가 되었다. 당연히 레벨 300대의 몰드좀비 정도는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좋아. 이 정도면 숫자가 좀 많아도 문제가 안 되지! 상황을 깨닫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게다가 원래 좀비 계열의 적은 다른 몬스터에 비해 상대하기가 쉬웠다. 두개골 사이로 질질 흘러나오는 뇌로 생각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일정 숫자 이상이 되면 전략을 사용하는 다른 몬스터와 달리 그냥 무턱대고 달려드는 게 전부였다. 또한 움직임도 느려서 방심하지만 않으면 공격을 당할 일도 많지 않았다. 크하하, 둔한 놈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라! 라카드 역시 처음에는 당혹해 했지만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기고만장해졌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라카드에게 가장 만만한 상대는 움직임이 느린 몬스터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이 좀비를 기피하는 이유는 하나. 꿈에 볼까 무서운 생김새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전기톱 살인 사건 같은 영화를 보면서 육회를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신경 줄의 소유자였다. 좀비 따위는 문제도 아닌 것이다. "좋아. 이대로 쓸어버리자.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스킬을 난사하며 좀비들을 물리쳤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늪지에서 나타난 좀비들은 그냥 좀비가 아니라 몰드좀비라는 것을... 아크가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은 한 마리를 쓰러뜨렸을 때였다. 돌연 몰드좀비의 아랫배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 버렸다. 썩은 살점과 몰드좀비의 몸에 붙어 있던 구더기와 거머리가 아크의 몸에 엉겨 붙었다. "쳇, 기분 더럽게... 고양이의 기백!"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치자 머리 위로 거대한 고양이의 형체가 떠올랐다. 이어 날카로운 울음을 터트리자 엉겨 붙었던 구더기와 거머리가 툭툭 떨어졌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상급 스킬을 발동시키자 주변에 몰려들던 모든 좀비의 몸에서도 거머리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아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고작 생명력을 1~2씩 빨아대는 거머리가 아니었다. 구더기와 거머리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 바로 몰드좀비가 폭발할 때 사방으로 흩어진 회색 분말이었다. 몰드좀비의 흰색 곰팡이가 체내에 잠식했습니다. 몰드좀비의 곰팡이에 잠식당하면 10분간 해당되는 상태 이상에 걸리게 됩니다. '헉, 이게 뭐야?'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몰드좀비에게 맞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상태이상이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스킬 간파!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스킬 간파를 발동시켰다. 얼마 전 최상급으로 올라간 고양이의 눈에 추가된 효과였다. 고양이의 눈(최상급, 패시브): 당신은 그 눈으로 수많은 적과 그들이 사용한 기술을 지켜보았습니다. 그 경험이 축적되어 당신은 상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대의 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직감력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최상급 보너스로 적이 사용하는 스킬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0분간 +나이트 비전, +생명 탐지, +허점 발견, +더블 크리티컬 기회 포착. 마나소모 100 +스킬 간파: 적이 사용하는 스킬의 상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발동시켜 놓을 경우 적이 스킬을 사용하는 타이밍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동시켜 놓을 시 10초당 5의 마나를 소비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효과가 없어도 별문제가 없었다. 저레벨 지역에서 만나는 몬스터나 카오틱의 스킬이라 봐야 뻔한 수준. 정보창을 보지 않아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레벨 몬스터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괴상한 효과의 스킬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경우 빨리 정보를 확인하고 대처법을 찾을 수 있는 스킬 간파는 유용한 스킬이었다. 역시나 스킬 간파를 발동시키자 곰팡이에 대한 정보가 표시되었다. 몰드좀비의 종족 스킬: 곰팡이 포자 뿌리기. 몰드좀비의 체내에는 각종 곰팡이가 기생하고 있습니다. 체내에서 기생하던 곰팡이는 일정한 양으로 증식하면 상처나, 입을 통해 포자를 날려 번식합니다. 물론 숙주인 몰드좀비가 죽을 때도 밖으로 터져 나와 포자를 날립니다. 그렇게 체외로 배출된 곰팡이 포자는 색깔에 따라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모두 치명적인 독소를 품고 있습니다. 만약 살아 있는 생명체가 흡입할 경우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흰색 곰팡이: 가장 약한 곰팡이. 10분간 환각 증세에 시달립니다. 녹색 곰팡이: 주의해야 할 곰팡이. 10분간 저림 증세에 시달립니다. 보라색 곰팡이: 치명적인 곰팡이. 좀비 증세에 걸리게 됩니다. 흡입하는 순간부터 살이 썩어 들어가 종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곰팡이는 일반적인 포션으로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이게 뭐야? 곰팡이 포자? 젠장, 몰드좀비가 무슨 동충하초냐? 체내에 곰팡이를 키우게? 그보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상태 이상에 걸린다고? 그럼 어떻게 피하란 말야? 게다가 일단 흡입하면 100% 죽는 곰팡이까지? 가, 가만? 내가 아까 들이마신 곰팡이는 분명히 회색이었지? 회색이면 환각?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주인, 뭐하는 거야? 뒤, 뒤! 그때 뒤에서 라카드가 버럭 소리쳤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날리려다가 황급히 멈췄다. "어라? 레, 레리어트 님이 어떻게?" 놀랍게도 아크의 뒤에서 레리어트가 방실방실 웃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말이야 주인? 눈 뜨고 자냐? 정신 차려! 뭐?" 크아아아!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을 때였다. 레리어트가 상큼하게 윙크를 하며 달려들어 아크의 목을 물어뜯었다. 치명타가 터지며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아크는 화들짝 놀라서 레리어트를 밀쳐 내며 물러났다. 이, 이게 무슨! 헉,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샴바라까지! 그들만이 아니었다. 주변에는 아크가 게임을 하며 알게 된 유저나 NPC들이 득실거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아크는 자신이 상태 이상에 걸렸음을 깨달았다. '이게 환각이란 말야?'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째 좀 싱겁다 싶더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술을 사용할 줄이야. 물론 지금 걸린 환각은 아크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 파티를 맺은 상황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전투를 하는 건 아크 혼자. 어차피 주변에 있는 존재는 다 적이니 닥치는 대로 죽이면 그만이다. 그러나 곰팡이는 세 종류. 그 중에는 일단 흡입하면 죽을 때까지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도 있다. 일단 회복제로 치료할 수 없으니 걸리면 100%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독인 것이다. 그때 방금 전에 밀려난 레리어트의 몸이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 버렸다. 아크가 황급히 입을 가렸지만 약간 늦었던 모양이다. 몰드좀비의 녹색 곰팡이가 체내에 잠식했습니다. 몰드좀비의 곰팡이에 잠식당하면 10분간 해당되는 상태 이상에 걸리게 됩니다. 이번에 적용된 상태 이상은 굳이 정보를 검색할 필요도 없었다. 몸이 저릿저릿하며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젠장, 틀렸어. 죽을 때마다 이런 공격을 하는 놈들을 100마리나 무슨 수로 이겨?" 일단 물러나서 대처법을 찾은 뒤에 들어와야겠다. "북실이, 백구, 후퇴다! 늪지 밖으로 도망쳐!" "히익, 아, 알았어요. 백구, 튀어!" 북실이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황급히 소리쳤다. 백구는 단숨에 수 미터씩 점프하며 빠르게 늪지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미 100여 마리의 몰드좀비에게 포위된 상태. 탈출이라고 쉬울 리가 없었다. 몰드 좀비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던 백구를 후려치자 등에 타고 있던 북실이가 튕겨져 날아갔다. "크윽, 주, 주인!" "으아악, 백구, 아크 님, 살려 줘!" 늪지에 떨어진 북실이는 곧바로 중독 상태에 빠져 시퍼렇게 변했다. 그러나 북실이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웬 떡이냐는 듯이 달려드는 수십 마리의 몰드좀비였다. 뱀파이어 영지에서 간덩이가 부풀어 오른 북실이였지만 막상 반쯤 썩은 시체들이 몰려들자 단숨에 정신이 외출해 버린 것이다. 북실이는 늪지를 나갈 생각도 못하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 대며 마구잡이로 뛰어다녔다. 백구가 북실이를 뒤쫓으며 답답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 주인. 좀 가만히 있어야...!" "으아아악, 몰라, 몰라! 살려 줘!" "이런 젠장, 북실이는 그렇다 쳐도 백구가 죽으면 안 되는데..."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백구는 애완견이 돼 버렸지만 소환수는 아니다. 일반 NPC처럼 한 번 죽으면 끝인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아직 환각이 풀리지 않아 대체 누가 북실이고 누가 몰드좀비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환각에 걸리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제대로 발 디딜 곳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100여 마리의 몰드좀비를 뿌리치고 탈출할 수 있을지 아크도 자신이 없었다. 헉, 붉은 곰팡이다! 그때 아크가 튕겨 낸 몰드좀비 하나가 쓰러지며 붉은 포자를 뿌려 댔다. 일단 걸리면 끝장! 아크가 기겁하며 물러나자 눈앞에 붉은 빛이 번뜩이며 연속적인 데미지가 들어왔다. 붉은 포자에 놀라 늪지에 발을 들여놨고 그것도 모자라 사방에서 몰려든 몰드좀비들이 소나기처럼 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아크는 황급히 늪을 빠져나와 해독제를 마셨지만 이미 그 사이에 70%의 생명력이 40%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별수 없어. 북실이는 백구에게 맡겨 놓고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화격! 아크는 몰려드는 몰드좀비를 화격으로 밀어내며 내달렸다. 죽을 때마다 곰팡이 포자를 날리니 일단 화격으로 밀어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저림 증세에 걸린 아크에게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들며 동작이 중간 중간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심할 때는 스킬까지 중간에 캔슬되기도 했다. 덕분에 불과 100미터도 이동하기 전에 아크는 다시 몰드좀비에게 포위당해 버렸다. '젠장, 안 되겠다. 어떻게든 좀비의 숫자를 줄여야 해!' "라카드, 내 쪽으로 돌아와서 브러드 레인을 사용해라!" "아, 그렇지. 간닷, 블러드 레인!" 순간 라카드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물들더니 돌연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졌다. 한껏 치솟아 올랐던 피는 이내 직경 10미터를 뒤덮으며 소나기처럼 내렸다. 수많은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저주의 피! "됐어. 이제 놈들도... 어라?"쾌재를 부르던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고양이의 눈으로 상태를 확인해 보니 모든 몰드좀비들에게 면역 메시지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아크는 그 정보를 확인한 뒤에야 자신이 삽질을 했음을 알아챘다. '아, 젠장..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다.' 블레드 레인의 상태 이상은 모두 정신 계열. 그러나 상대는 좀비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놈들에게 정신 계열 공격이 먹힐 리가 없었던 것이다. 블러드 레인 때문에 심각한 상황에 처한 것은 오히려 아크 쪽이었다. "우우우, 정신이 아득해진다. 피, 피... 피가 부족해." 블러드 레인의 페널티.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에 빠지고 피를 회복할 때까지 능력치가 50%나 빠져 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라카드는 핼쑥한 얼굴로 날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때 몰드좀비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라카드를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자 라카드가 침을 질질 흘려 대며 되려 손을 물어 버렸다. "오오오, 피다, 피!" 그러나 기뻐하는 것도 잠시, 라카드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대며 헛구역질을 했다. "에엑? 우욱, 왝! 제, 젠장, 이 피, 유통기한이 지났잖아!" 언데드의 피가 신선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뭘 따져? 그냥 처먹어. 이 쓸모없는 박쥐야!" "그렇게 말하기냐? 블러드 레인을 쓰라고 한 건 주인이잖아. 아욱!" 라카드가 좀비에게 밟혀 짜부라졌다. 얼마 전에 진화를 했다지만 라카드와 몰드좀비의 레벨은 50 이상이다. 게다가 능력치가 50%나 깎이고 날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몰드좀비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몰드좀비가 꾹꾹 밟아 대자 라카드는 단숨에 빈사 상태까지 몰려 버렸다. "넌 어째 진화를 해도 변한 게 없냐? 화격!" 아크는 화격으로 좀비들을 쳐 내며 라카드의 머리통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라카드는 구출했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젠장, 이제 어쩌나? 여기서 늪지 밖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고작 100미터도 도망가지 못하고 고립당했으니... 늪지라 전력 질주를 사용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몰드좀비와 본격적으로 붙을 수도 없고... 흰색 곰팡이는 그렇다 쳐도 다시 녹색 곰팡이의 저림에 걸리면 위험하다. 그리고 아차 하는 순간에 붉은 곰팡이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사망 100%. 그때 돌연 어디선가 북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님, 이쪽이예요! 고개를 돌리자 북실이와 백구가 한 묘지에서 깡충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사실 늪지에는 간간이 묘비들이 있었다. 늪이 아닌 평지는 대부분 이런 묘비들이 모여 있었다. 북실이가 피신한 곳도 그런 묘비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북실이 옆에 서 있는 묘비는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다른 묘비에 비해 서너 배는 더 크고 옅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북실이와 백구를 쫓던 몰드좀비들은 그 묘비에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요. 도망치다가 우연히 찾았는데 좀비들이 여기에는 못 오더라고요." '늪지 안에 안전지대가 있는 건가?'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실이가 그런 곳을 찾은 것은 행운이었다. 이미 남은 생명력은 고작 200. 이 상황에서 몰드좀비를 따돌리고 늪지를 탈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면 묘비는 100여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문제는 저기까지 어떻게 가느냐는 건데...' 그러나 묘비까지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크와 묘비 사이는 독기가 넘실거리는 늪이 가로막고 있었다. 다행히 중간 중간에 징검다리가 있어서 넘어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늪에서 수십 마리의 몰드좀비들이 겹겹이 벽을 만든 상태였다. 생명력이 200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늪에 들어가 중독되면 더욱 위험해진다. 게다가 몰드좀비들의 공격을 받아 낼 수도 없어. 하지만 돌아갈 여유는 없다. 화격으로 좀비들을 밀어내며 고민하던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좋아. 이렇게 되면 모험이다. 문 라이트 섀도우!" 스킬을 발동시키자 푸른빛의 고리가 아크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다음 순간, 빛의 고리가 밀가루 반죽처럼 일그러지더니 아크와 똑같이 생긴 사람으로 변했다. 아크의 몸을 스캔해서 복제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자 무작정 아크에게만 몰려들던 몰드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오오, 효과 좋은데?" 아크는 곧바로 더미를 두 개 더 만들어 놓고 징검다리로 뛰어갔다. 대부분의 몰드좀비들이 더미에게 몰려가고 아크를 막는 건 고작 몇 마리였다. 아크는 화격으로 몰드좀비들을 몰아내며 한 칸, 한 칸 건너뛰었다. 그렇게 절반 정도 왔을 때 분신드이 몰드좀비의 공격을 버텨 내지 못하고 빛과 함께 사라졌다. "크르르? 크르르!"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아챈 몰드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아크에게 몰려들었다. '젠장, 예상보다 빠르다!' 다급해진 아크는 마치 달리듯이 징검다리를 뛰어넘었다. "아크님, 빨리, 빨리요!" "알고 있어. 정신 사납게 떠들지 마! 됐어, 이제 다왔... 헉!" 아크가 고작 몇 개의 징검다리만 남겨 두고 있을 때였다. 돌연 앞의 늪지가 부글거리더니 10여 마리의 몰드좀비가 솟아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뒤에서 몰려오는 몰드좀비들도 거의 손만 뻗어도 닿을 듯한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이런 망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 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 아크는 와락 몸을 움츠렸다가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도약!" 늑대의 발에 딸린 아이템 스킬 도약! 사실 아크는 도약을 사용해 몰드좀비를 뛰어넘어 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도약을 발동시키는 순간에 체중을 잘못 이동시킨 탓일까? 스킬이 발동하자 순간적으로 허벅지 근육이 몇 배로 팽창하더니 대포처럼 정면으로 아크를 날려 보냈다. 동시에 10여 마리의 몰드좀비가 확 밀려왔다. 아크는 기겁하며 반사적으로 귀살검을 내뻗었다. 퍼퍼펑!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엄청난 속도 에너지가 더해진 아크의 공격에 서너 마리의 몰드 좀비가 튕겨져 날아간 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그대로 늪지를 가로질러 묘비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와! 대, 대단해요!" 북실이가 입을 쩍 벌리며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러나 북실이보다 더 놀란 사람은 아크였다. "뭐, 뭐야? 장난이 아니잖아! 도약이라기에 그냥 점프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는 거였나? 아니, 이럴 때가 이니지." 아크는 몸을 돌려 뒤따라오던 몰드좀비들을 확인했다. '정말 이쪽으로는 오지 못하는구나. 빛이 닿는 거리니까 대략 반경 10미터쯤 되는 건가?' 그런데 대체 왜 이 묘비만 다른 거지? 안전을 확인한 아크는 그제야 묘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 묘비도 크기가 좀 크다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묘비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묘비에 적혀 있는 글귀를 읽어 본 아크는 대강의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성자 베텔기우스 여기에 잠들다. 성자? 그렇다면 여기에 묻힌 성자의 힘 때문에 언데드가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성자의 묘비가 있는 걸까?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사실 그런 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위기는 모면했지만 상황이 나아진 건 하나도 없어. 일단 묘비의 힘 덕분에 휴식을 취하며 회복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크와 북실이 들은 여전히 100여 마리의 몰드좀비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이전에는 그나마 조금 흩어져 있었지만 아크와 북실이 들이 한 자리에 멈춰져 있으니 꾸역꾸역 몰려든 몰드좀비들은 완전히 묘비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생명력을 완전히 회복하고 기회를 봐서 어떻게든 뚫고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도망이나 치려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다. 아크의 목적지는 이 늪지 너머에 있는 죽은 자들의 도시인 것이다. '결국 이 늪지를 넘을 때까지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한다는 말인데...' 상대가 그냥 평범한 좀비라면 불리한 지형에서도 어떻게든 상대할 방법이 있다. 그러나 몰드좀비의 곰팡이 공격만큼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일단 환각은 시각과 관련된 상태 이상이니까 아예 눈을 감고 심안을 사용하면 문제가 안 돼. 저림도 완전히 행동 불능이 되는 게 아니니까 묘비 근처에서 놈들을 하나씩 상대한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문제는 붉은 곰팡이였다. 방금 전에 도망치면서 쓰러뜨린 몰드좀비 가운데 한 마리도 붉은 곰팡이 포자를 뿌렸다. 다행히 화격으로 멀리 날린 놈이었기에 망정이지 바로 앞에서 죽었다면 중독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는 100% 죽음이다. '일단 묘비 근처의 몰드좀비들은 어떻게든 되겠지만 전진하려면 곰팡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놓아야 해. 하지만 일반 치료제로도 회복할 수 없다니...' 묘비에 걸터앉아 한숨을 불어 내던 아크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가만? 일반 치료제로는 회복할 수 없다고? 분명 정보창에 그렇게 나왔었지?" 일반 치료제로는 회복할 수 없다. 돌려 말하면 일반적이지 않은 특수 치료제로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수 치료제라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일어났다. "아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ACT 5.[별의 길을 따라.] "플레이, 플레이!" "아오오, 아오오!" 북실이와 백구가 깡충거리며 소리를 질러 댔다. "시끄러.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다크 블레이드!"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고 심심하잖아요." "심심해? 지금 내 앞에서 그딴 말이 나오냐? 화격!" 아크가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날리자 10여 마리의 몰드좀비들이 튕겨 나갔다. "아크님, 옆쪽에 몰드좀비가 터지려고 해요." 눈알을 날려 전투 장면을 촬영하던 북실이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생명력이 간당간당하던 몰드좀비가 풀썩 쓰러지며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몰드좀비 최후 최악의 공격 포자 뿌리기가 발동하려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몰드좀비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은 이 곰팡이 때문이었다. 사실 움직임이 느린 몰드좀비 자체는 아크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곰팡이 공격을 피할 때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곳은 독이 가득한 늪지. 도망갈 수 있는 장소도 한정적이었다. 곰팡이에 정신이 팔려 피하다 보면 몰드좀비들에게 몰매를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곰팡이에 중독되는 것보다는 생명력이 깎이는 게 훨씬 나으니까.' 곰팡이의 상태 이상에 걸리면 몰매를 맞는 것 이상으로 상황이 악화된다. 게다가 이번에 부풀어 오르는 몰드좀비에게선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붉은 곰팡이라는 뜻이다. 일단 흡입하면 좀비 증상을 일으켜 100%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예전이었다면 늪에 뛰어들어서라도 피했겠지.' 퍼퍼펑! 기어코 한껏 부풀어 올랐던 몰드좀비가 폭발하며 붉은 분말이 확 퍼져 나갔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위기를 아리는 붉은색이 아닌 파란색이었다. -몰드좀비의 붉은 곰팡이가 체내에 잠식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면역 성분에 의해 독소를 퍼트리기 전에 사멸했습니다. "우하하, 어떠냐, 이 망할 좀비들아! 이게 바로 의학의 힘이다!" 아크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몰드좀비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지난 며칠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연구한 성과! 처음 성자의 묘비로 피신했을 때, 아크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도저히 몰드좀비들을 상대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이곳에는 성자의 묘비라는 안전지대가 있으니 치고 빠지기를 하면 이곳의 몰드좀비는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늪지를 지나 죽은 자들의 도시에 가야 하는 것이다. '안전지대도 없는 곳에서 또다시 그런 상황에 몰리면 방법이 없어.' 아니, 안전지대가 있다고는 하나 위험하기는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곰팡이에 중독되면 풀릴 때까지 성자의 묘비로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만의 하나, 붉은 곰팡이에 중독되면 그걸로 상황은 끝인 것이다. '이건 레벨이나 능력치의 문제가 아니야. 체력이나 정신력이 높으면 상태 이상의 저항력도 높아지지만 절대적인 건 아냐. 특히 붉은 곰팡이는 열 번을 막아내도 한 번만 걸리면 끝장이다. 결국 이곳에서 도망쳐 다른 곳에서 레벨 노가다를 해도, 곰팡이를 100% 막아낼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여기를 통과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곰팡이는 일반적인 질병이나 독이 아니라 치료제로도 해독할 수 없다니...' 그렇게 고민하던 아크는 문득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료제는 물론 신성 마법조차 통하지 않던 질병! 그렇다. 생명의 숲에서 집단 식중독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바퀴벌레들, 바로 갈킨족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바로 아크가 아닌가. '어쩌면 그때처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독이라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는 법. 오죽하면 개똥도 약에 쓸 수 있다고 했겠는가. 아, 그건 좀 다른가?' 어쨌든 아크는 갈킨족의 식중독을 치료하며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당당히 식의가 되어 각종 재료의 숨은 효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아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곰팡이 연구에 착수했다. 실험 재료는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아크는 묘비 가까이 있는 몰드좀비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폭발하기 전의 몰드좀비가 어떤 곰팡이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색, 갈색, 검정은 중독돼도 잠시 피신해 있으면 되지만, 붉은 곰팡이에 걸리면 끝장. 때문에 아크는 몰드좀비의 생명력을 90%까지 깎은 뒤에 화살로 마무리를 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물론 몰드좀비가 접근하지 못하는 성자의 묘비에서 화살만 날리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궁술은 아직 초급. 레벨 300대의 몬스터에게 제대로 박힐 리가 없었다. 또한 화살은 어디까지나 비상용이라 가지고 다니는 화살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10여 마리의 몰드좀비를 사냥할 끝에 드디어 원하던 아이템을 얻어 냈다. 갈색 곰팡이 포자 주머니(독초) 시독이 있는 장소에서만 번식할 수 있는 곰팡이입니다. 보통 죽은 동물이나 언데드의 몸에 기생하며, 기생하는 단계에서는 얇은 주머니에 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언데드가 사망하거나 충격을 주면 주머니가 터져 포자를 뿌리게 됩니다. 곰팡이 포자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는 굉장히 위험하지만, 이 종류의 곰팡이는 시독이 없는 장소에서는 금세 사멸합니다. 상급 식재료 감별 추가 정보: 처리 방법에 따라 곰팡이 면역 성분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상급 식재료 감별 덕분에 이 포자를 이용해 곰팡이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일단 방법을 찾아낸 아크는 장장 하루에 걸쳐서 곰팡이 포자 주머니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예전에 갈킨족의 치료제를 구할 때 했던 것처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약 성분 추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의학의 길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었다. "일단 한번 말려 볼까... 억, 으악!" 포자 주머니는 엄청나게 예민한 세균 병기나 다름없었다. 조금 세게 만지거나, 바닥에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폭발! 몰드좀비를 피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크와 북실이 들은 수없이 상태 이상에 걸려야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며 아크는 점점 포자 주머니를 다루는 방법을 익혀 나갔다. "흠, 역시 곰팡이 포자라 한 번 물에 적셔 놓으면 잘 터지지 않는구나. 위험한 물건이니 일단 모두 물에 적셔서 보관해야겠다." 아크는 각종 방법으로 포자 주머니를 실험하며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해 나갔다. 그러나 곰팡이 연구는 이틀 만에 벽에 부딪쳤다. 쪄 보고, 끓여 보고, 말려 보고, 적셔서 으깨 보고, 아는 방법을 몽땅 동원해 봤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필요한 약 성분은 추출되지 않았다. 결국 아크는 연구에 실패한 과학자와 같은 좌절감에 휩싸여 버렸다. "정녕 곰팡이로 의약품을 만들 방법은 없단 말인가?" 실의에 빠진 아크가 절망적인 탄식을 터트릴 때였다. 과학이나 의학에서 놀라운 발견은 우연에 기인한 것이 많다고 한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우연히 니트로글리세린이 안정되어 만들어지게 된 다이너마이트가 그렇고, 연구원의 실수로 섞인 화학물질에서 의외의 의약품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기적과도 같은 우연이 이곳에서도 일어났다. "아함, 정말 치료제를 만들 수 있기는 한 거예요? 해 볼 방법은... 엇?" 함께 밤을 새우며 조수 노릇을 하던 북실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잠결에 액체 상태로 만들어 놓은 각기 다른 실험 재료를 섞어 버린 것이다. "뭐 하는 거야? 이제 몇 개 남지도 않았는데?" "죄, 죄송해요. 저는..." "어? 가만. 그거 이리 가져와 봐." 허둥대는 북실이의 손에 들린 약병을 확인한 아크는 정신이 번쩍 나는 기분이었다. 북실이가 섞은 액체는 흰색과 보라색 곰팡이를 용해시킨 액체였다. 그런데 두 가지 색의 액체가 섞이자 보라색이 옅어지며 남색이 되었다. 뭐, 일반적인 색 조합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색깔과 함께 독 성분도 변했다는 것이다. "곰팡이끼리 섞어서 성질을 변화시키는 방법도 있었구나!" 그 우연은 아크의 연구에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때부터 아크는 액체화시킨 곰팡이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알고 나니까 이렇게 간단한 걸.." 한참을 헤맸지만 막상 답을 찾고 보니 허탈할 정도였다. 사실 답은 처음 곰팡이에 대한 정보창을 봤을 때부터 나와 있었다. 보라색과 녹색 그리고 흰색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만들 수 있는 색. 보라색과 흰색을 섞어 남색, 녹색과 흰색을 섞어 청록색 그리고 남색과 청록색을 섞어 만들어지는 색은... 상태 이상에 면역이 됐다는 메시지의 글자 색과 같은 파란색이다. 그렇다. 정답은 파란색이었던 것이다. 아크가 남색과 청록색 액체를 섞자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정보창이 떠올랐다. -파랗게 빛나는 곰팡이 소독약을 만들었습니다. 곰팡이에서 추출한 성분을 역으로 조합해 곰팡이를 사멸시킬 수 있는 성분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소독약을 뿌리면 곰팡이의 번식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복용했을 경우에는 일정 시간 체내에 곰팡이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단, 중화되지 않은 독성이 있어서 단기간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1시간 동안 곰팡이에 대한 면역력+100%, 하루 세 번 이상 복용 금지. 곰팡이 소독약이 만들어지자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식의의 전용 스킬 이독제독의 비법을 익혔습니다. 이독제독의 비법(초급, 패시브): 고대로부터 독을 치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독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또한 현대에서도 독사의 독을 해독하는 혈청은 같은 독사의 독을 사용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곰팡이 포자를 연구해 소독약을 만들어 낸 당신은 그 이치를 깨닫고 독에서 해독 성분을 추출하는 지식이 생겼습니다.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에게서 독액 주머니를 습득할 확률이 올라갔습니다. 또한 독액 주머니를 정제해 해당되는 독의 해독제, 면역 약품 따위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성공률은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며, 정제에 실패할 경우에는 30% 확률로 중독될 수 있습니다. "식의의 새로운 스킬이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사실 아크처럼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유저들에게 가장 귀찮은 게 바로 중독이었다. 뉴 월드에서 중독은 단순히 한 가지 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상점에서 파는 해독제는 간단한 초급 독을 해독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의 등급이 중급, 상급이 되면 상대하는 몬스터나 지역에 따라 수백 종류에 이르고, 각기 다른 해독제를 사용해 주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새로운 지역에 가면 먼저 그 지역에서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있는지, 그 독이 어떤 해독제로 치료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순서였다. 그리고 독을 품은 몬스터가 많으면 아예 그 지역의 탐험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해독제는 비교적 싼 편이지만, 전투할 때마다 물처럼 마셔댄다면 버는 것보다 약값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그 문제를 돈 안 들이고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도적. 독을 사용하는 직업이라 아예 해독약 제조 스킬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파티를 구성할 때 가장 인기 없는 도적은 독을 사용하는 몬스터가 많은 지역에서는 최우선적으로 영입하려는 대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아크도 이독제독 덕분에 각종 해독제를 현지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독제독은 단순히 해독제가 아니라 면역 약품까지 만들 수 있어.' 독에 걸린 다음에야 효과를 발휘하는 해독제보다 일정 시간 면역력을 높여 주는 약이 더 가치가 높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약을 만들려면 몬스터로부터 독액 주머니를 채취해야 하니 대량 생산은 쉽지 않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짭짤한 돈벌이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쨌든 일단 곰팡이 소독약 제조에 성공하자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몰드좀비들은 레벨에 비해 전투력이 낮은 편이다. 곰팡이만 아니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많이 나와 주면 고맙다. "아크님, 뒤쪽에서 또 네 마리가 추가됐어요!" 고개를 돌려 보니 시커먼 늪에서 몰드좀비들이 기어 나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의 몰드좀비들은 일단 전투 상태로 돌입하면 일정 시간마다 계속 숙자가 불어났다. 제한 시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싸울수록 몰드좀비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끊임없이 기어 나오는 좀비. 마치 좀비 영화처럼 공포스러운 장면이었지만 아크에게는 그 좀비들이 모두 경험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흠, 하지만 아무리 상대하기 쉬워도 숫자가 너무 불어나면 곤란하지. 북실이, 지금 좀비들이 모두 몇 마리지?" "이번에 나온 놈들까지 합해서 50마리 정도 돼요." 북실이가 둥둥 뜬 눈알로 좀비들을 세며 대답했다. "숫자가 너무 불어났군. 한 번 정리해 줄까?" 아크는 몰드좀비들을 피해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라카드, 뒤쪽으로 유인했던 놈들을 한 곳으로 모아라." "예써, 워~ 워~ 멍청한 시체들아, 이쪽이다!" 라카드가 양 떼를 모는 개처럼 몰드좀비들을 한 곳으로 모아왔다. 좀비들이 한 곳에 모이자 아크가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귀기개방, 엘리멘탈 소드 화 속성!" 귀살검이 파르르 진동하며 강렬한 귀기와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아크는 강렬한 힘을 뿜어내는 검을 사선으로 비껴들며 상체를 살짝 숙이고 소리쳤다. "좋아. 간닷, 도약! 다크 블레이드!" 순간 아크의 허벅지 근육이 몇 배로 팽창하더니 폭발하듯 아크의 몸을 날려 보냈다. 거기에 다크 블레이드를 중첩시키자 아크는 문자 그대로 한 자루의 검이 되어 좀비들을 꿰뚫었다. 아크가 몰드좀비들을 상대하며 익힌 새로운 전투법이었다. 사실 한곳에 모인 적에게는 섬아를 사용하는 게 좋지만 이곳은 늪지. 일단 발동시키면 적을 찾아 20미터 공간을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게 되는 섬아를 사용할 만한 지형이 아니었다. 해독제를 만들면 되니 독은 그렇다 쳐도, 도중에 늪에 빠져 버리면 스킬이 도중에 캔슬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처 스킬로 생각해 낸 게 바로 도약과 다크 블레이드를 결합한 아돌이었다. 처음 늑대의 발에 붙어 있는 도약을 사용할 때는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몇 번 써 보니 요령이 생겼다. 도약은 스킬이 발동되는 것과 동시에 무조건 아크를 10미터 밖으로 날려 보낸다. 이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스킬 발동시의 자세였다. 상체를 약간 앞으로 숙이면 전방으로, 위로 향하면 수직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아크는 그 요령을 터득하고 이전처럼 도약을 하며 공격을 펼쳐 보았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 에너지가 가산되어서 그런지 데미지가 상당히 올라갔다. 게다가 귀살검의 일도양단이 발동하는 확률도 높아졌다. 역시나 아크가 좀비들을 꿰뚫자 생명력이 많이 깎여 있던 몰드좀비들은 단숨에 몸이 갈라졋고 엄청난 경험치가 쏟아져 들어왔다. "후후후, 어떠냐? 이게 바로 이 몸이 만든 기술 아돌이다!" 엄청난 공격력과 함께 일도양단의 발동 확률을 높여 경험치와 아이템까지 획득할 수 있는 엄청난 기술! 아쉽게도 도약이 아이템에 붙어 있는 스킬이라 그런지 따로 연쇄 스킬로 등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워낙 효과가 대단해 아크는 아예 아돌이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다. 섬아와 함께 두 번째 범위 공격 스킬의 탄생이었다. 아크는 이전과는 달리 거의 일방적으로 몰드좀비들을 쓸어댔다. 그러나 울트라맨이 그렇듯이, 메칸더V가 그렇듯이, 아쉽게도 아크의 골든 타임에도 제한 시간이 붙어 있었다. -곰팡이 소독약의 지속 효과가 59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쳇, 이번에는 여기까지인가? 라카드, 슬슬 정리해야겠다. 다시 한 번 모아." "오케이. 어이, 뭘 멍청하게 있는 거야? 이리로 와!" 라카드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멍한 표정으로 따르는 몰드좀비들을 모아왔다. 아크는 남아 있는 마나를 몽땅 긁어 아돌을 난사해 남은 몰드좀비들을 조각조각 썰어 버렸다. 사방에서 시체가 폭발하며 색색의 곰팡이 포자가 뿜어져 올라왔지만 이제 그건 몰살 달성의 축하 꽃가루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다른 몰드좀비가 출현하기 전에 완전히 몰살시키면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1시간 동안 거의 100여 마리의 몰드좀비를 썰어 대자 레벨이 올랐다. 묘비로 돌아온 아크는 흐뭇한 얼굴로 전투 성과를 확인해 보았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 인간 성향: 선+450 명성: 11,725(+500) 레벨: 334 직업: 다크워커 칭호: 캣 나이트, 세계수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5,255(+150) 마나: 5,295 영력: 200 힘 652(+28) 민첩 812(+55) 체력1,002(+20) 지혜 118(+10) 지능 1,031 운112(+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153 유연성: 136 화술: 66 애정: 62(+10) 탄력도: 421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페널치 무효 고양이 손(장갑):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 가능 수왕 세트 효과: 힘+20, 민첩+20, 체력+20, 방어력+40 전사의 견장(견갑): 힘+3 갈가쉬의 모피(망토):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 50% 미만 마력보호 자동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부활하는 영혼(반지): 힘+5, 마나 회복 속도+5% 아크의 반지: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4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15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사냥터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아쉬운 얼굴로 한숨을 불어 냈다. 소독약을 개발한 뒤로 성자의 묘비에 터를 잡고 사냥한 지 열흘째. 레벨 325에 늪지에 진입했으니 열흘 만에 9레벨밖에 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만약 소독약을 계속 먹을 수 있었다면..." 아크가 아쉬워하는 게 이 때문이었다. 독성이 있는 소독약을 먹을 수 있는 건 하루에 3번. 약효가 1시간 동안 지속되니 게임의 하루에 해당하는 8시간에 3시간 사냥, 나머지는 놀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따지면 열흘에 9레벨도 엄청난 수치였다. 일단 사냥을 시작하면 몰살시키기 전에는 몰드좀비들이 계속 나와 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만약 소독약 없이 사냥할 수 있었다면 20, 아니 30레벨 이상 올렸으리라. '역시 곰팡이가 있는 한 이곳에서 레벨 노가다를 하는 건 무리인가?' 시간당 벌어들일 수 있는 경험치만 생각하면 이만한 사냥터도 없다. 그러나 소독약을 먹어야 하는 한 다른 사냥터보다 오히려 메리트가 떨어졌다. 또한 상대가 썩은 좀비들이라 떨구는 아이템도 영 아니었다. 한마디로 경험치나 아이템이나 볼 것 없는 수준이라는 뜻. 그럼에도 아크가 열흘이나 이곳에서 버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북실이, 너는 라둔과 함께 아이템을 수거하고, 백구는 좀비들의 시체를 모아 와." "네." 쌕쌕, 쌕쌕! 시간제한으로 사냥을 하는 아크에게 아이템이나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때문에 아이템 수거 작업은 북실이와 라둔에게 전담시켰다. 북실이는 평지 그리고 라둔은 늪지에 가라앉아 버린 아이템을 찾아 수거해 왔다. 그 사이 아크는 백구가 떠메고 오는 몰드좀비들의 시신 옆에 자리 잡고 앉아 해체용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백구는 오한이 느껴지는 듯 몸을 떨며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 다음에 벌어질 섬뜩한 장면 때문이었다. 슥삭슥삭, 아크가 칼을 놀리자 좀비의 몸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왔다. 가죽 채취로 죽은 자의 가죽 채취에 성공했습니다. 도축으로 죽은 자의 심장 채취에 성공했습니다. 아크가 아예 성자의 묘비 앞에서 살림을 차리게 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언데드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는 수집 아이템! 나무라드를 해치우고 얻은 네크로멘서의 정수로 내단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대륙이든 스탈달이든 언데드가 나오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크족의 침공이다, 전직이다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가 네크로맨서의 내단에 필요한 재료를 얻을 최적의 장소다. 아크는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몰드좀비들을 봤을 때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좀비가 많다고 해도 재료를 모으는 일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크는 아직 가죽 채취나 도축 스킬이 낮아 얻을 수 있는 것은 평균 3~4마리에 하나. 가죽과 심장, 각각 2천개씩 합이 4천개나 되는 재료를 모아야 하니 최소 12,000마리를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막상 숫자로 계산해 보니 장난이 아니구나. 하지만 A급 내단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도 꼭 만들어 먹어야 해.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이렇게 많은 언데드를 만날 수 있을지 몰라." 아크는 오직 그 일념 하나만으로 열흘을 이 암울한 늪지에서 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였다. "아크님, 벌써 열흘째예요. 대체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해요?" 북실이가 한숨을 불어 내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백구와 라카드도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짜증을 부려 댔다. "사방에 늪지에 보이는 건 곰팡이와 좀비들뿐이잖아요." 게다가 이 악취. 코가 마비되다 못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입니다. "나도 죽겠다, 주인. 이 눅눅한 습기는 정말 참기 힘들다고." 쌕쌕? 쌕쌕? 습지를 좋아하는 라둔은 그런 북실이 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따. 그러나 답답한 심정은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사 던전에 짱 박힌다 해도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는 있다. 그러나 지난 열흘 동안 아크는 성자의 묘비 앞에서만 사냥을 한 것이다. 덕분에 안전한 휴식처는 확보할 수 있었지만 며칠 동안 계속 같은 곳만 보니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동안 모은 가죽이 1,200개, 심장이 1,300개라... 이제 겨우 반 정도 모았군. 하지만 여기는 늪지의 입구야. 어차피 늪지를 통과할 때까지 계속 좀비를 사냥해야 하겠지? 게다가 돌아 나올 때도 들러야 하고.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없지. 해독제와 소독약도 많이 비축해 놨으니 이제 출발해도 되겠다." 가방을 점검해 본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좋아. 소독약의 재사용 시간도 끝났으니 그만 출발하자." "네? 이제 가는 겁니까?" 북실이 들이 반색하며 얼른 일어났다. 그렇게 아크 일행은 열흘 동안 보금자리가 되어 준 성자의 묘비를 떠나 늪지를 가로질렀다. "발맞추어 나가자 앞으로 가자~" 열흘 만에 늪지를 나갈 수 있게 된 북실이 들은 콧노래까지 불러 댔다. 물론 간간이 늪지에서 몰드좀비들이 나타나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아크는 그동안 익힌 전투 기술을 마음껏 뽐내며 출현하기가 무섭게 다시 늪지에 가라앉아 버렸다. 그렇게 몰드좀비를 죽일 때 늪지에 가라앉히면 포자가 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사실 아크가 성자의 묘비를 나오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것을 알아낸 이유도 있었다. 소독약의 지속 시간은 1시간. 연속으로 먹어도 3시간이 한계였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5시간은 무방비 상태! 그러나 늪지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는 데는 3시간 이상 걸릴 것 같았다. 때문에 뭔가 다른 대책을 세워 놔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러 가지 실험 끝에 몰드좀비를 죽여도 포자가 퍼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도 몰드좀비의 숫자가 많아지면 100% 적용할 자신이 없었다. 때문에 몰드좀비의 숫자가 늘어나기 전에 늪지에 침몰시키며 전진했다. 그러나 항상 계획대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끔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져 부득불 소독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젠장,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잖아. 벌써 소독약을 두 개나 먹었다. 아침이 될 때까지 3시간이 남았으니 하나를 더 먹으면 2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거야." 3시간 동안 먹을 수 있는 소독약은 이제 하나! 아크는 슬슬 불안해졌다. 늪지를 5시간이나 헤맸는데도 아직 죽은 자들의 도시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니 들떠 있던 북실이 들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 아크님. 만약 또다시 소독약을 썼는데도 목적지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죠?" "할 수 없지. 일단 게임을 종료하고 시간 맞춰 다시 들어오는 수밖에." 그게 아크가 생각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소독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 그럼 백구는요?" 라카드는 소환 취소를 하면 되지만 백구는 혼자 늪지에 남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야. 그 전에 어떻게든 찾아봐야지."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그러자 백구가 핏기 없는 얼굴로 북실이를 바라보며 울먹였다. "주, 주인님! 저는 동충하초가 되기 싫어요." "거, 걱정 마. 설사 길을 못 찾아도 너 혼자 남겨 두지는 않을 거야! 우오오, 가라, 눈알! 너도 후각을 최대한 동원해서 찾아봐!" 북실이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치며 눈알을 날려 댔다. 아크는 그런 북실이와 백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기는 한데 지도상으로 확인한 늪지는 이렇게까지 큰 것 같지 않았는데? 묘비가 있던 곳에서 일직선으로 이동했으니 죽은 자들의 도시는 아니라도 이미 반대편으로 나왔어야 정상이잖아.' "엇, 아, 아크님! 저 앞에 또 빛나는 묘비가 있어요!" 그때 눈알로 주변을 정찰하던 북실이가 소리쳤다. 북실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하자 곧 수풀에 가려진 성자의 묘비가 나타났다. 또 성자의 묘비가? 그럼 늪지에는 일정한 거리마다 성자의 묘비가 있는 건가? 어쨌든 다행이다. 일단 저곳에서 재정비하고 좀 쉬었다가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동하자. "다행이다, 백구야." "네, 주인님. 흑, 방금 전까지는 정말 어찌 되나 싶었어요." 백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재빨리 성자의 묘비로 뛰어갔다. 그러나 막상 묘비에 도착한 백구는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여기는?" 어? 이게 뭐지? 불쏘시개와 망가진 잡템이잖아? 누가 여기서 야영한 건가? 그럼 우리 말고도 누군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는 말인가? 북실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백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여기에 남겨진 냄새는 저희들 건데요? 뭐? 헉, 그, 그러고 보니..." 북실이가 화들짝 놀라며 묘비에 바짝 달라붙었다. 묘비 중간에 적혀 있는 북실이 왔다 갔노라는 낙서가 적혀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묘비인데 낙서질이라니. 하여간 이런 개념 없는 놈들이 문제다. 어쨌든 북실이의 낙서 덕분에 상황은 보다 명확해졌다. "비켜 봐!" 한 걸음 늦게 묘비에 도착한 아크는 북실이를 밀어 내며 묘비를 살펴보았다. -성자 베텔기우스 여기에 잠들다. '베텔기우스... 틀림없이 이전의 묘비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지도를 펼쳐 보았다. 아크 일행은 묘비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직진했다. 계속 지도로 방향을 확인해 봤으니 더듬이가 떨어진 곤충처럼 같은 자리를 맴돌았을 리는 없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검은 부분으로 가려진 미확인 부분이 일직선으로 밝혀져 있었다. 그런데 딱히 방향을 튼 것도 아닌데, 어느 부분에서 밝혀지는 게 멈추었고 일행은 한참 뒤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는 게 아닌가? 마치 그 부분에서 뒤로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아크님, 대체 어떻게 된 거죠?" "글쎄, 젠장. 나도 묻고 싶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일단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라카드, 너는 최대한 높이 올라가서 우리를 주시해. 뭔가 변화가 생기면 바로 전하고." 혹시나 싶었던 아크는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늪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대략 4시간. 정신없이 달리는 일행 앞에 다시 묘비가 나타났다. "또다! 또 성자 베텔기우스의 묘비야, 라카드!" "몰라. 별 변화 없었어. 방향이 바뀌는 것 같지도 않았고." 라카드의 대답에 아크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졌다.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도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이 늪에 갇힌 거다. '맙소사. 열흘이나 지난 뒤에야 알아채다니...' 사자의 대지에 자리 잡은 늪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몰드좀비가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다 할 표식이나 단서조차 없는 미궁에 갇혀 버린 것이다. 이제 이곳을 탈출할 방법은 단 하나. 죽어서 부활 장소로 이동하는 것뿐이다. '가만? 표식이나 단서가 없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움찔하며 묘비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늪지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묘비. 게다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바로 이 묘비가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단서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아닌가? 아니 틀림없다. 사실 아크는 처음 묘비를 봤을 때부터 의아했다. 왜 이런 늪지에 생뚱맞게 묘비가 있는지. 하지만 만약 이 묘비가 누군가 늪을 탈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표식이라면? '틀림없어. 그렇지 않으면 이런 곳에 이런 묘비가 있는 건 설명이 안 돼. ' 분명 이 묘비는 어떤 기준점이야. 문제는 이 기준점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인데. 아크는 새삼스럽게 묘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이렇다 할 부분은 없었다. 하긴 처음 발견했을 때도 이상하게 생각한 아크는 묘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혹시나 쓸 만한 아이템이라도 나올까 싶어서 바닥까지 파 보았지만 이렇다 할 물건도 찾지 못했다. 젠장, 묘비에 얽힌 비밀을 풀지 못하면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아낼 수 없다는 건가? 하긴 죽은 자들의 도시에 들어가는 열쇠가 묘비라...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무슨 힌트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난데없이 이런 말도 안되는 함정이라니. 어라? 가만. 힌트라고?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하늘과 땅, 삶과 죽음이 뒤바뀐 대지에서 오래된 영웅의 별을 따라 길을 찾아라. 전직 퀘스트를 받을 때 떠올랐던 문구였다. 그리고 전직 퀘스트를 해결하는 곳이 바로 죽은 자들의 도시. 그렇다면 그 문구는 죽은 자들의 도시를 찾아갈 수 잇는 단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풀리른 대목도 있었따. 하늘과 땅이 뒤바뀌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삶과 죽음이 뒤바뀌었다는 말은 바로 언데드. '그렇다면 이곳에서 탈출할 방법은 영웅의 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영웅의 별이라니? 별자리라도 따라가라는 말인가? 하지만 시커먼 나무넝쿨에 둘러싸인 늪지에서는 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아크에게는 낮 시간임에도 던전처럼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뒤바뀐 영웅의 별... 대체 무슨 뜻일까? 헉, 가만? 서, 설마?' 한참을 고민하던 아크가 갑자기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북실이, 너 혹시 별 자리에 대해서 좀 알아?" "네? 아, 아뇨." "쳇, 공부 좀 해." 아크는 툭 쏘아붙이고 유니트에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숨쉴 틈도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에 접속했다. '틀림없어. 성자 베텔기우스. 어렸을 때 들었던 적이 있어. 내 기억이 맞다면....' 아크는 베텔기우스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뒤이어 나오는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베텔기우스(오리온자리)로 변광성, 황적색 별로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 베텔기우스는 오리온자리를 이루고 있는 별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한 아크는 머릿속에서 모든 의문이 풀려 나갔다. 역시 그랬어. 성자의 묘비는 오리온자리를 이루고 있는 별 이름. 그렇다면 문구의 나머지 의미는 자동적으로 풀린다. 전직 퀘스트에서 나왔던 문구의 오래된 영웅은 바로 포세이돈의 아들로 태어나 키오스 섬의 몬스터를 몰아낸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리온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오리온자리를 이루고 있는 별이 성자의 묘비라면 하늘에 있어야 하는 별이 지상에 있는 셈이니 하늘과 땅이 바뀐 대지라는 수수께끼도 풀리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영웅의 별을 따라가는 방법. 그러나 그것도 베텔기우스에 대한 정보를 읽어 보니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아크가 늪지에서 가장 먼저 찾은 묘비가 베텔기우스. 그렇다면 그게 시작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베텔기우스는 오리온자리 가운데 가장 밝은 별. 그렇다면 다음에 아크가 찾아내야 하는 성자의 묘비는... 오리온자리에서 두 번째로 밝은 베타별, 리겔이다. 아크는 곧바로 리겔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리겔은 오리온자리의 다리 부분에 위치한 별. 베텔기우스를 기준으로 늪지에 오리온자리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자연스럽게 가야 할 방향이 잡히는 것이다. "됐어, 찾아냈다! 마반 영웅의 수수께끼가 풀렸어!"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막상 수수께끼를 풀어내자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일부러 뇌가 뽀개지는 듯한 퍼즐 게임을 즐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리라. "현우야, 이제 오늘은 끝난 거니?" 아크가 방에서 펄쩍펄쩍 뛰자 문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니 더 이상 게임으로 돈을 번다는 것을 속일수는 없었다. 뭐, 어머니는 그전부터 권화랑에게 들어서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어쨌든 다행히 어머니는 크게 반대하시지 않았다. 단지 지나치게 오랫동안 게임을 하는 걸 걱정스러워하실 뿐이었다. 아크는 슬쩍 문을 열고 어머니에게 방긋 웃어 주었다. "아직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다시 들어가 봐야 해요. 하지만 얼마 안 걸릴 거예요." "적당히 해라." "네, 걱정 마세요. 아침마다 운동하는 거 봤잖아요." 아크는 얼렁뚱땅 대답하고 다시 유니트에 뛰어들어 갔다. '후후후, 마반 영웅. 그 정도 수수께끼로는 이 몸의 발목을 잡지 못해. 나머지 수수께끼도 몽땅 풀어 버리고 네 유산을 가로채 주마!' 아크는 탐욕스러운 눈동자를 빛내며 뉴 월드로 날아갔다. 유니트에 올라탄 사람은 아직 현우가 아닌 아크인 것이다. ACT 6. 죽은 자들의 도시 "마을이다!" 아크가 늪을 빠져나온 건 꼬박 이틀이 지나서였다. 적당히 소독약을 먹어 가며 늪지에 번식한 곰팡이 좀비를 쓸어 대던 아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크의 예상은 정답이었다. 늪지에 오리온자리를 적용시켜 이동하자 베텔기우스, 리겔, 벨라트릭스... 밝기에 따른 별 이름을 가진 성자의 묘비가 차례대로 나타났다. 묘비와 묘비 사이의 이동 시간은 평균 2시간. 덕분에 몰드좀비들의 위협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아크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오리온자리의 검에 해당하는 부분. 오리온자리를 보면 수백 개의 불규칙 변광성을 포함하고 있는 방출성운이 있는데, 이 성운에 포함된 어두운 영역이 바로 최종 목적지, 죽은 자들의 도시였다. '늪을 나올 때까지 필요한 재료 아이템을 다 모으지 못한 게 좀 아쉽지만...' 이제 내단보다 더 급한 일이 생겼다. 라자크를 되찾고 마반 영웅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 전직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 늪지로 돌아가면 몰드좀비는 얼마든지 있으니 전직 퀘스트를 해결하고 천천히 모으면 그만이었다. 어쨌든 마을을 찾아내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죽은 자들의 도시 당신은 어둠과 죽음이 만연한 대지에서 수상한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늪지 속에서 당신이 발견한 곳은 수백 년도 더 지난 고대의 비밀을 간직한 폐허였습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스탄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망자나 언데드와는 달리, 미약하지만 이성을 간직한 듯합니다. 대체 이곳이 어디이며 어떻게 언데드들이 모여 살게 됐는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모험가의 지식: 숨겨진 마을 발견 보너스 스킬 포인트 20 힘들게 찾아낸 만큼 스킬 포인트가 20이나 주어졌다. 어쨌든 정보창의 설명대로 죽은 자들의 도시는 마을이라기보다는 폐허에 가까웠다. 여기저기 부서진 성벽의 잔해 따위가 널려 있었다. 주민? 몬스터? 하여간 그곳의 NPC들은 대부분이 망자였는데 가끔 스켈레톤이나 좀비처럼 생긴 주민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망자와도 스켈레톤이나 좀비와도 조금 달랐다. 문자 그대로 그냥 죽은 자들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나저나 저기를 어떻게 들어간다? 아크는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기고 북실이의 뱀파이어 아이를 통해 마을을 살펴보았다. 마을 주민들의 정보창은 적대적 관계를 뜻하는 붉은 색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호의적인 관계를 뜻하는 파란색도 아니다. 회색. 경우에 따라서는 적도 아군도 될 수 있는 NPC다. 회색이니까 무턱대고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어둠의 대지에서 생각 없이 행동하다가 개고생한 경험이 있다. 이런 미지의 마을에서 그때와 같은 꼴을 당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물론 은신을 사용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단순한 잠입이 아니다. 라자크를 찾아 등록을 갱신하고 마반 영웅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도 찾아야 한다. 숨어들어 가는 것. 잠입 이외의 일을 할 수 없는 은신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역시 주민들에게 의심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 아, 그렇지.' 잠시 방법을 궁리하던 아크가 북실이에게 물었다. "북실아, 너 혹시 재봉 스킬 배웠냐?" "아크님은 대체 지금까지 저를 뭐로 생각했던 겁니까?" "응?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재봉은 상인의 기본 스킬이라고요. 상인이 돼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옷감 끊어다가 옷 만들어 팔아서 장사 밑천을 모으는 거예요." "잡소리 빼고, 할 줄 안다는 거지?" "상급입니다, 상급!" 북실이가 투실한 아랫배를 내밀며 거만을 떨어 댔다. "좋아, 그럼 일단 이걸로 옷을 만들어." "아크님, 옷감도 가지고 있었어요? 헉, 이게 뭐예요?" 북실이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크가 가방에서 꺼내 든 것은 가죽이었다. 일반 동물에게서 채취한 가죽이 아닌 바로 늪지에서 때려잡은 몰드좀비의 가죽. 그렇다. 죽은 자들의 도시 주민과 아크 일행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외모다. 너덜너덜하고 썩은 몸을 가진 주민들에 비해 아크 일행은 지나치게 혈색이 좋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몰드좀비의 가죽도 어찌됐든 가죽.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비슷하게 보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북실이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 이런 걸로 어떻게 옷을 만들란 말예요?" "만들어 본 적은 있어?" "아니, 만들어 본 적은 없지만..." "그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아크가 으르렁거리자 북실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가죽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북실이가 못 하겠다고 죽는소리를 해댔지만 죽은 자의 피부도 가죽은 가죽. 어쨌든 재봉 스킬을 사용하니 옷이 만들어졌다. "크흑, 상급 재봉 스키을 가지고 이런 허접스러운 옷을 만들게 될 줄이야. 이건 굴욕이야." 죽은 자의 가죽옷 방어구 타입: 일반 가죽 방어력: - 내구력: 10/10 무게: 2 사용제한: - 언데드의 가죽을 이어 붙여 만든 악취미적인 의상. 너덜거리는 살점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런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언데드로 오인받아 칼 맞아 죽기 딱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런 옷을 입는 것부터가 제정신이 아닙니다. 확실히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 입을 만한 옷은 아니었다. 시체에서 뜯어낸 가죽을 되는 대로 이어 붙인 탓에 손이나 발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가죽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게다가 독성은 사라졌지만 여기저기 곰팡이까지 끼어 있었다. 그런 끔찍한 가죽이 옷의 형태로 바꾸니 더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이건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다." 그러나 죽은 자의 가죽을 30장이나 써서 만든 옷이다. 아크는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꾹 참으며 갑옷 위에 옷을 걸쳤다. 곧 그럴듯한 언데드 한 마리가 탄생했다. "우욱, 살에 닿는 느낌이 완전 안습인데? 어쨌든 기분은 더럽지만 이 정도면 망자들을 속일 수도 있겠군." "좋아. 똑같은 옷을 세 장 더 만들어." "힉, 세, 세 장이면 저도 입어야 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약 먹었다고 아까운 가죽으로 세 벌이나 더 만들겠냐?" "너는 카메라맨이잖아." "저는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마을이 멀지 않으니까 눈알을 붙여 놓으면 촬영하는 데도 문제없고, 이 주변에는 좀비들도 없잖아요. 또 만약의 사태에는 백구도 있고." 북실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떠듬거렸다. 듣고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예전에 카라클이 영지 끝의 해안까지 눈알을 날려 정찰했듯이 북실이의 눈알 역시 본체와 멀리 떨어져도 기능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북실이가 따라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져 도망쳐야 할 때 거치적거리고, 또 힘들게 모은 죽은 자의 가죽도 쓰레기 옷 한 벌 만드는 데 30장이나 들어간다. 북실이와 백구의 옷을 만들지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60장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좋아, 눈알이 붙어 있으면 문제가 생겨도 바로 연락할 수 있으니까." 웃기지도 않지만 촬영 덕분에 뱀파이어 아이가 중급이 되자 눈알에 통신 기능까지 붙어 버렸다. 뭐, 동영상 촬영 기능이 붙어 버린 시점에서 이미 정상이 아니다. 거기에 통신 기능 하나 추가됐다고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북실이는 점점 인간과 멀어지고 있었지만 기능이 늘어나니 편리하기는 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눈치를 살피던 라카드가 얼른 입을 열었다. "주, 주인, 나도 안 가면 안 될까?" "까불래?" ... 턱도 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아크는 라카드와 시체 옷을 입고 마을로 다가갔다. 이제 들어가 볼까? 속아 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모르니 일단 분위기를 살펴보자. 아크는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마을 입구를 어슬렁거렸다. 대부분의 마을이 그렇듯이 이 마을의 입구-폐허라 어디가 입구인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지만-에도 경비병처럼 보이는 망자들이 서 있었다. 혹시라도 경비병들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면 재빨리 도망칠 생각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참을 얼쩡거렸는데도 경비병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둘에게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경비병들은 입을 헤벌리고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뭐야, 이거? 혹시 이런 징그러운 옷 같은 거 없어도 상관없는 거 아냐?" 일부러 옷까지 만들어 입고 왔는데 막상 무시당하니 기분이 좀 그렇다. 그러나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경비병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옷의 효과라는 증거도 없지만 옷의 효과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옷을 벗으면 어떻게 반응할지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일단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한 셈이군.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마을로 들어섰다. 경비병들처럼 마을 주민들도 딱히 아크나 라카드에게 관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그것대로 숨 막히는 듯한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당연하지만 마을에서는 아무런 생동감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부서진 건물 잔해나 거리에 많은 망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움직이고 있지만 종이나 나무로 만든 인형들처럼 보이는 존재들. 이곳이 새삼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사실이 실감됐다. 그러나 그 숨 막히는 침묵과 어울리지 않게 망자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떤 망자는 건물 잔해에 기대앉아 바닥에 계속해서 뭔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어떤 망자는 나무토막을 쌓아 올리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또 어떤 망자는 계속해서 벽에 머리를 찧어 대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정신 병동 환자들 같았다. '뭐야, 이 녀석들? 어째 묘하게 겁나네.' 어린아이 아니, 어린 언데드의 모습을 한 라카드가 아크의 옷자락을 꼭 말아 쥐며 중얼거렸다. 뱀파이어 주제에 무서운 것도 많다. 그나저나 여기서 라자크와 마반 영웅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를 어떻게 찾는다? 아크는 부서진 건물 잔해를 샅샅이 뒤져 가며 마을을 돌아 다녔다. 도중에 중립적인 성향을 가진 스켈레톤도 몇 마리 발견했지만 정작 라자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거의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아크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중심에 있는 부서진 건물에 도착했다.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군. 소환수로 계약한 존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이 사는 곳에서 이동할 수 없어. 라자크가 사는 곳이 정말 이 마을이라면 틀림없이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말인데... 할 수 없지.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마반 영웅의 유산이 숨겨진 장소부터 찾아볼까?' -잊힌 전장 최고의 자리에서 흩어진 달을 찾아 평등한 휴기처로 인도받아라. 이게 전직 퀘스트와 관련된 두 번째 단서였다.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잊힌 전장이라는 것은 아마도 이 폐허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최고의 자리라면 당연히 가장 높은 곳, 이 폐허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달과 관련된 어떤 표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은 이 탑의 꼭대기겠지?' 그렇게 생각한 아크가 찾아간 곳은 마을에 들어섰을 때부터 보이던 탑 앞이었다. 이 탑 정상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부서진 상태로 수백 년이나 방치된 성에서 길을 찾아 올라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제단이 부서져 한참을 돌아가야 했고, 어떤 곳은 아예 올라가는 길이 없어서 암벽등반을 하듯이 성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그렇게 대략 1시간. 아크는 드디어 탑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자, 힌트는 흩어진 달을 찾아라였지?' 탑에 올라가니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러나 도시를 아무리 둘러봐도 달과 관련된 듯한 표식은 찾을 수 없었다. '뭐야? 여기서 찾는 게 아니었어?'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던 아크는 슬슬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죽을 고생을 하며 죽은 자들의 도시까지 왔는데 뭐하나 시원하게 풀리는 게 없다. 라자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직 퀘스트의 단서도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다. 라자크도, 전직 퀘스트도 이곳에서 해결하는 게 틀림없는데, 몇 시간 동안 헤매도 필요한 단서는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찾을 때까지 마을을 돌아다녀 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탑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터덜터덜 마을 중심가를 걷고 있는데 문득 길 양옆으로 뭔가를 늘어놓고 있는 망자들이 보였다. '어라? 뭐지? 저 망자들은?' 호기심이 동한 아크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망자들의 앞에는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은 듯한 잡동사니가 널려 있었다. 화석화된 뼈다귀 형태로 보아 아마도 고대 몬스터의 유체에서 발굴된 뼈 같습니다. 용도 불명. 낡고 녹슨 방패 방어구 타입: 강철 방패 방어력: 30 내구력: 7/10 무게: 30 사용 제한: 레벨 150 전사 계열 대체 언제 만들어진 방패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형태와 표면에 양각된 문양을 보면 고급품으로 제작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대장장이의 제품이라도 세월의 힘은 뛰어넘지 못합니다. 너무나 오래 방치되어 철은 내부까지 산화해 버렸고, 이음새는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이런 방패에 목숨을 맡길 전사는 없을 것입니다. 늪지의 좀비들이 떨구던 아이템하고 비슷하네. 이런 아이템은 몰드좀비를 잡으며 70개 정도 모았다. 그러나 솔직히 상점에서 사 줄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 고철로 계산해서 킬로그램당 1실버나 받으면 다행이었다. 그래도 가방 공간이 없으면 모를까 1실버라도 어디냐 싶어 챙겨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망자들은 왜 이런 걸 늘어놓고 있는 걸까?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살 건가... 말 건가...?" 멍하니 있던 망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엑? 뭐야, 이게 장사하는 거였어? 아니, 그 전에 망자가 말을 할 수 있었던 건가?'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뭐부터 놀라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아크가 잠시 허둥대자 망자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살 건지... 말 건지... 묻고 있지... 않은가?" "아, 아니, 그게... 말을 할 줄 아시네요?" "뭐야, 지금... 시비 거는 거냐?" "아닙니다." 아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마을이 너무나 조용해서 망자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또한 스탄달에서 봤던 망자들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다. 어쨌든 망자가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라면 상황이 다르다. 잘만 하면 라자크나 전직 퀘스트에 대한 단서를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망자의 호감을 살 필요가 있었다. "살 거 아니라면... 꺼져라." 망자가 파리 쫓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팔고 계신 물건들을 보니 하나같이 대단하네요. 너무 갖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넋 놓고 지켜봤던 겁니다." "흐흐... 물건 보는 눈은 있는... 녀석이군." "이 정도 품질이라면 당연히 고가품이겠죠? 하지만 제가 지금 가진 게 없어서..." "흥... 가난뱅이에게는... 볼 일 없다." 가진 게 없다고 말하자 망자의 태도가 180도로 변했다. "역시 죽으나 사나 가난뱅이는 무시당하는 게 세상의 이치란 말인가? 그건 그렇다 쳐도 주변에 망자들밖에 없는 곳에서 이런 잡동사니를 늘어놓고 팔려고 하다니. 망자들에게 이런 물건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죽어서까지 장사를 하는 건가?" 어쩌면 이 도시에서 가장 제 정신이 아닌 망자들은 이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이리라. 아크가 중얼거리자 갑자기 뒤에 떠 있는 눈알에서 북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죽어서까지 장사를 하는 것 그거야말로 불타는 상인혼인 겁니다. 우오오, 저와 아크님은 지금 궁극의 상인을 보고 있는 거라고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 아욱!" "뭐야, 이 시끄러운... 눈알은?" 망자가 귀찮은 듯이 탁 치자 눈알은 파리처럼 바닥에 툭 떨어졌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설칠 때부터 알아봤다. 아크는 눈알을 발로 툭 걷어차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쨌든 이 마을 어딘가에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굉장히 가진 게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를 만나면 이 물건 몇 개 정도는 사 줄 텐데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군요. 혹시 주변에서 라자크라는 이름을 들어 보신 적 없습니까?" "라자크라... 그런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그럼 혹시 주변에서 달과 관련된 표식 같은 걸 보신 적 없습니까? 근처에 산다던데?" "기억에... 없군." 아크가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망자는 너덜너덜한 머리 가죽을 긁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한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문득 발밑에서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러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망자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또 시작이군... 망할 놈... 틀림없이 나를 말려 죽이려는 거야!" 이미 죽어서 망자가 된 주제에 별 걱정을 다 한다 싶었지만 망자는 나름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크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 소음...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이 소음... 때문에 미쳐 버릴 지경이네!"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건데요?" "나도 모르네... 밑에서 들려오는 걸 보면 아마도 이 성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놈인가 본데... 잠잠하더니 몇 달 전부터인가... 갑자기 시도 때도 없이 괴성을 지르며 소음을 내고 있네... 덕분에 나는 미쳐 버릴 지경이야!" 이를 갈아붙이며 머리를 쥐어뜯던 망자가 퍼뜩 시선을 돌려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 그렇지... 자네... 내 상품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 그럼 이러면 어떤가... 자네가 저 시끄러운 소음을... 좀 그만두도록 해 줄 수 없겠나? 그렇게만 해 주면... 내 소장품 중에서 가장 좋은 걸... 주도록 하지... 저놈의 소음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야... 분명 저 소음 때문에... 손님도 오지 않는 걸 거야!" "네?"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을 때였다. 두두둥, 소리가 울리며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폐성의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음 죽은 자들의 도시 성채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은 몇 달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소음의 원인을 제거해 준다면 상인은 무엇이든 요구하는 상품을 건네준다고 약속했습니다. 난이도: ?? '뭐야, 망자한테 퀘스트도 받을 수 있는 거야?' 아크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솔직히 이런 잡동사니나 취급하는 망자가 주는 보상은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그래도 모처럼 받은 퀘스트니 해결해 볼까?' 바로 여기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고, 퀘스트를 하다 보면 의외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또 소장품 중에서 가장 좋은 걸 준다고 했으니 운이 따라 주면 소환수용 아이템을 받을지도 몰라. 어차피 마을을 수색하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던 아크는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오오, 고맙네... 이건 예전에 성안에서 주웠던 열쇠네...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지하 감옥으로 가는 문의 열쇠일거야... 빨리 가서 놈을 박살내 주게." 망자가 녹슨 열쇠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크는 열쇠를 받아 들고 망자가 알려 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성도 그렇지만 지하도 완전히 붕괴되어 때로는 바닥을 박박 기어야 통과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지하 통로를 더듬어 내려가기를 잠시, 이내 다시 통로가 넓어지더니 철창이 나타났다. 철창을 열쇠를 열고 들어가자 다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 감옥 전체를 울려 대는 육중한 울림. 바로 앞에서 굉음이 들려오자 아크도 약간 긴장이 되었다. 몇 달 동안 이런 소음을 내고 있는 놈이라니... 대체 어떤 언데드지? 아크는 검을 뽑아 들고 감옥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전진했다. 그렇게 얼마나 진행했을까? 아크가 또다시 감옥 하나를 지나쳤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뭔가가 확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철커덩,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가 철창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흔들어 대는 게 아닌가? "헉, 뭐야? 놀랐잖아! 소음의 원인이 바로 이놈이구나!" 식겁한 아크가 뒤로 물러났다가 검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갑자기 라둔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기어올라 아크의 팔을 휘어 감고는 소리쳤다. 쌕쌕? 쌕쌕쌕! "뭐야, 라둔, 왜 그래?" 쌕쌕? 쌕쌕? 딱딱딱, 따닥, 딱딱딱! 라둔이 뭔가 확인하듯 쌕쌕대자 감옥 안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 소리는 설마..." 아크가 움찔하며 시선을 집중해 감옥 안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철창을 흔들어 대는 스켈레톤은... 라자크였다. 딱딱, 딱딱딱! 라자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이를 부딪쳐 댔다. 그러나 불성실한 통역을 거치자 모처럼의 감동도 반감되었다. 주인이라면 찾아와 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나 뭐라나. 전속 통역인 라카드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에 있었으니 마을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아크는 라자크를 만나 대략적인 사정을 들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망자 상인을 괴롭힌 소음의 정체는 바로 라자크였다. 소환수가 된 존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처음 계약을 맺었던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라자크가 처음 소환된 장소는 바로 이곳, 폐성의 지하 감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탄달이 떠오를 때 죽음의 맹약 스킬을 사용해 아크를 부활시키고 라자크는 강제송환 되었다. 그때부터 라자크는 이 어둡고 외로운 공간에서 아크의 재소환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그렇다. 라자크와 헤어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그리고 현실의 한 달은 뉴 월드의 세 달에 해당하는 시간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라자크는 불안해졌다. 이대로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아크가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숭 있을까? 그런 불안감에 휩싸인 라자크는 도저히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이 들 때마다 자신을 막고 있는 공간을 온 몸으로 부딪쳐 왔다고 한다. 그때 울린 소음이 망자 상인을 히스테리로 몰아넣은 것이다. '기특한 녀석...' 소환수는 아크와 달리 물리 법칙이 100% 적용된 고통을 느낀다. 그럼에도 벽에 몸을 부딪친다는 것은 그만큼 아크에게 돌아오고 싶었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라자크가 강제송환된 것은 죽었던 아크에게 생명력을 몽땅 뽑아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찾아오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리다니. 막상 라자크를 보니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라카드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헹, 너 변태냐? 벽은 왜 들이받아? 그리고 주인이 안 부르니 편하기만 하더라. 하긴 이런 곳에서 살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암울한 녀석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이런 곳일 줄이야." "그러고 보니 소환수의 영역은 처음 계약할 때의 장소라고 했지? 그런데 왜 감옥인 거야?" "뭐, 뻔하잖아. 감옥에서 죽은 거지. 틀림없이 엄청나게 나쁜 놈이었을 거야." 딱딱딱, 딱딱! 라자크가 잡아먹을 듯이 라카드를 노려보며 이를 마주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불어 냈다. 라카드가 통역한 말에 의하면 사실 라자크도 자신이 왜 이런 곳에서 언데드가 됐는지 모른다고 한다. 본래 언데드로 부활한 존재는 생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대신 몇 가지 단편적인 기억만을 가지고 있는데, 그조차 오래전에 꿨던 꿈처럼 애매모호한 것이었다. "역시 나쁜 놈이었던 거라니까. 오죽하면 감옥에서 죽었겠어? 전직 기사니 뭐니 하는 것도 어쩌면 뻥이었을지도 몰라." 딱딱, 딱딱딱! "기사였던 기억은 확실하다고? 웃기시네. 뭘로 믿냐?" 딱딱, 따다닥? "시끄러.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주제에 뭘 잘났다고 떠들어? 그보다 앞으로는 나한테 존댓말 해. 후후후, 이 몸은 감옥에서 사는 너와는 질적으로 다른 몸이야. 네 말을 믿는다고 해도 고작 기사잖아. 이 몸은 이제 백작이라고, 라카드 백작. 음하하! 존경해라, 이 몸은... 아욱, 뭐야? 머리는 때리지 말란 말이야, 머리는!" "그럼 맞을 짓을 하지 마. 정신 사납게 자꾸 까불래?" "젠장, 나만 미워해." "미운 짓만 골라 하니까 그렇지. 몇 달 만에 만난 동료엑 꼭 그렇게 유난을 떨고 싶냐?" "사실이 그러니까 그렇지." "꼭 그렇게 한마디 더 해서 매를 벌지." "아욱, 알았어. 알았으니까 머리는 때리지 마." 아크가 라카드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라자크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이제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자, 일단 등록부터 해 놓자." 망자에게 받은 열쇠를 이용해 감옥 문을 열었지만 라자크는 감옥에 매인 몸이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아크는 할 수 없이 감옥 안에 소환 포트를 설치하고 재등록시켰다. "일단 한 가지 일은 끝냈군." 이제 남은 것은 전직 퀘스트의 단서를 찾는 일뿐이다. 그러나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비록 간단한 일이지만 퀘스트는 퀘스트. 말끔하게 해결해 줬으니 보상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크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폐성을 나가 망자 상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부탁한 일이라니?" 망자 상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에? 아니, 그러니까 방금 전에 내게 부탁했잖아요. 폐성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미쳐 버릴 지경이라고. 그 소음을 해결해 주면 좋은 소장품을 주겠다면서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장사에 방해되니... 꺼져라." "뭐, 뭐야? 설마 보상을 떼어 먹겠다는 거냐?" "아, 정말 시끄러운 녀석이군.... 소음은 네가 내고 있잖아...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냐... 그런 기억은 없다니까... 장사도 안 되는데 별 거지 같은 게..." "거, 거지 같은 게? 말 다 했냐?" 아크가 와락 망자 상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아크는 NPC에게 친절하다. 설사 상대가 언데드 NPC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크가 NPC에게 친절한 이유는 그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주고도 보상을 떼어 먹으려는 NPC라면 해맑게 웃으며 칼침을 놓아 주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크의 살벌한 태도에 상인이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뭐, 뭐야! 무슨 짓이야... 아, 알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자릿세라도 내놓으라는 거냐... 조, 좋아... 나도 장사하는 입장이라 시끄러워지는 건 싫으니... 이거라도 먹고 떨어져라... 더 이상 귀찮게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망자 상인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동전 하나를 집어 던졌다. 데드 코인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구리 동전입니다. 그러나 이 동전은 실제로 쓰이던 화폐는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에게 바치는 동전. 다시 말해 죽은 사람을 기리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기념주화입니다. 현대에서도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어 보입니다. 폐성의 지하에서 들려오는 소음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망자 상인이 동전을 집어 던지자 퀘스트가 완료되어 버렸다. 모처럼 받은 퀘스트가 경험치도 없고 보상이 고작 구리 동전 하나? "이, 이 자식이 지금 누굴 거지 취급하는 거야?" "아크님, 뒤요, 뒤!" 그때 둥둥 떠서 주변을 둘러보던 북실이의 눈알이 당혹성을 터트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곳의 소란 때문인지 몇 명의 경비병이 다가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아크는 이를 빠드득 갈아붙이며 망자 상인을 밀쳐 내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물론 바닥에 떨어진 언데드 코인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아무리 허접스러운 보상이라도 일단은 보상. 열 받는 건 열 받는 거고 챙길 수 있는 건 일단 챙겨 둬야 하지 않겠는가? "두고 보자, 망할 놈!" 경비병 때문에 일단 자리를 피했지만 역시 좀처럼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퀘스트 보상을 떼어 먹는 NPC라니?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때 의아한 얼굴로 라카드와 얘기를 주고받던 라자크가 돌연 한숨을 불어 내며 다가왔다. 딱딱? 딱딱딱. 뒤이어 라카드의 통역을 들은 아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주인, 라자크가 그러는데, 상인이 주인을 속인 건 아니라는데? "속인 게 아니라니? 너 못 봤어? 나한테 일을 의뢰한 적이 없다고 하잖아." "그게... 상인은 정말 기억을 못 하는 거래." 불과 몇십 분 전의 일을 기억 못 해? 아크의 목소리에 라자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설명했다. 본래 사람이 죽으면 천계로 가게 된다. 뭐 실제로 천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뉴 월드의 설정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만약 죽을 때 강한 미련 같은 게 남아 있다면 천계로 가지 못하고 언데드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도시에 살고 있는 망자들에게는 그 미련이 존재의 의의였다. 상인의 경우 언데드가 돼도 주변의 잡템을 긁어모아 팔릴 리가 없는 장사를 수백 년이나 반복하고, 경비병은 그냥 마을을 지킨다. 라자크의 경우 그 미련이라는 건 충성의 대상을 잃어버린 것이었다고 한다. 해골 상태로 소환됐던 라자크가 라카드와 달리 처음부터 아크에게 충성을 다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크가 소환하지 않았다면 라자크는 아직도 지하 감옥에서 미련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지냈으리라. "결국 이곳의 망자들은 현재에 존재하지만 수백 년 전의 삶을 되풀이하며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망자들은 과거의 존재들. 아크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망자들은 시간을 공유하는 같은 망자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는 아크와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아크와 계약이라는 관계를 맺은 라자크뿐이었다. 설명을 들은 아크는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결국 이곳에서는 퀘스트를 받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잖아?" 그나마 구리 동전 하나라도 받은 게 다행이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버텨 봐야 좋을 일 없다는 뜻이다. "쳇, 라자크도 찾았으니 빨리 전직 퀘스트나 완료하고 나가야겠다." 아크가 투덜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사실 망자 상인의 퀘스트는 의외로 아크에게 많은 이득을 주었다. 첫째는 당연히 그 덕분에 지하 감옥에 있는 라자크를 찾아냈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덕분에 전직 퀘스트의 단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최고의 자리는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던 거야.' 아크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단순한 폐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망자 상인의 말을 듣고 이곳이 고대의 왕도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지하 감옥이 있던 마을 중심의 폐성은 왕성. 그렇다. 이 도시에서 최고의 자리는 탑 정상이 아닌 국왕의 왕좌를 상징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알아낸 아크는 곧바로 다시 폐성으로 향했다. 지하 감옥과 달리 폐성의 상층부에는 많은 망자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경비병과 달리 병사들은 외부인의 침입을 막고 있었다. 라자크에게 이 도시의 비밀을 들은 아크는 이들이 경비병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비병에게는 마을을 출입하는 자를 막는다라는 미련이 없었지만 왕성의 병사들에게는 외부인이 왕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라는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일단 내가 추리한 게 맞는지 확인만 해 보면 되니까. 아크는 은신을 사용해 상층부에 잠입했다. 최상층에 도착하자 곧 왕좌가 놓여 있는 왕의 홀이 나타났다. 왕좌에는 이곳의 국왕이었던 존재인지, 왕관을 쓴 망자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국왕까지도 뭔가 미련이 남아 있었던 건가? 계속 한 곳만 바라보고 있네? 그곳이 국왕의 미련과 관련이 있는 장소인 건가? 대체 국왕의 미련은 뭐지? 엇, 저건? 호기심에 국왕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눈동자가 확대되었다. 국왕이 하염없이 바라보는 곳은 정면의 발코니였다. 그곳에서는 탑 정상과는 다른 각도로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잔해들이 뒤엉켜 어떤 형태를 만들고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보이는 건물들이 부서지지 않은 상태였다면? 달이다. 여기저기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것처럼 보이던 건물이 왕의 홀에서 바라보니 한데 뭉쳐져 마치 초승달처럼 보였던 것이다. 아마도 건물들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완벽한 달의 형태로 보였으리라. 그리고 그 중심,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문처럼 보이는 형태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서 흩어진 달을 찾으라는 게 이런 뜻이었구나! 아크는 지도를 펼쳐 그 건물의 위치를 체크해 놓고 폐성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하며 찾아가 보니 발코니에서 문처럼 보였던 것은 신전이었다.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는데 묘하게도 신전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신상이 아닌 관이었다. 검을 든 전사의 주검이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석관. "석관이라... 이건 좀 쌩뚱맞은데? 분명 단서에는 흩어진 달을 찾아 평등한 휴식처로 인도받으라고 적혀 있었지? 그렇다면 여기서 다른 곳에 대한 단서를 찾아야 한다는 말인데... 이건 어딜 봐도 그냥 석관이잖아?" "우헤헤, 아크님, 이거 봐요." 다시 벽에 부딪힌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북실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석관에 누워 있는 자세로 조각된 전사상은 특이하게도 양 눈과 입 부분에 세 개의 홈이 파여 있었다. 북실이는 두 눈알을 전사의 눈에 끼워 놓고 빙글빙글 돌리며 놀고 있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전사의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이 꽤나 코믹했다. "적당히 해 둬. 그래도 명색이 관이잖아." 키득거리며 중얼거리던 아크는 문득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가만? 정말 이건 관이잖아. 어째서 이런 신전에 석관을 만들어 놨는지는 둘째 치고, 대체 왜 조각상의 눈과 입 부분에 홈을 만들어 놓은 거지? 혹시?'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예전에 봤던 중세 시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리스나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같았다. 그 영화에서는 전사가 죽으면 화장하거나 관에 넣기 전에 전사자의 눈과 입에 세 개의 동전을 올려놓았다. 당시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신의 배를 타고 저승으로 간다고 믿었고 세 개의 동전은 저승행 배표를 구입하는 일종의 노자였다. 아핫, 이래서 사람은 배우고 봐야 한다니까. "어이, 북실이, 나와!" "우악, 세게 잡지 말아요! 눈알이란 말예요!" 아크는 석관에서 북실이의 눈알을 뽑아내고 동전을 꺼내 끼워 보았다. 그러나 막상 끼워 넣어 보자 동전은 구멍에 비해 너무 작았다. "어라? 뭐야, 지금 가지고 있는 동전은 안 되는 건가? 그럼...?" 아크는 혹시나 싶어서 아까 망자 상인에게 받은 동전을 끼워 보았다. 그러자 딱 들어맞는 게 아닌가? 그제야 아크는 데드 코인을 받았을 때 확인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데드 코인은 문자 그대로 죽은 자를 위한 기념 주화! 문제는 석관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필요한 데드 코인이 세 개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 문제도 간단하게 해결했다. "후후후, 그 망할 놈의 상인에게 복수할 기회다!" 쿵, 쿵, 쿵! 으악! "또... 시작이다... 저 망할 놈의 소음...!" 지면이 쿵쿵 울려 대자 망자 상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짜증을 부려 댔다. 그때 아크가 슬쩍 다가가서 물었다.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릴까요?" "응?" "자네는... 누구인가 역시 망자 상인은 방금 전에 아크와 드잡이질을 했던 사실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건 자세히 알 필요 없고요,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 정말인가...! 그렇다면 꼭 좀 부탁하겠네.. 자네가 저 소음만 없애 준다면... 내 소장품 중에서 가장 좋은 걸 주지... 아, 그곳에 가려면 이 열쇠가 필요할 거네... 어라? 분명 근처에서 주운 열쇠를 여기에 넣어 뒀는데..." "열쇠는 필요 없습니다." 아크는 퀘스트가 등록된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지하 감옥으로 뛰어갔다. 그렇다. 아크가 생각한 방법은 이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망자 상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아크가 소음 문제를 해결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다시 라자크를 지하 감옥에 보내 놓고 소음을 일으키자 망자 상인이 다시 퀘스트를 주었다. 물론 망자 상인은 퀘스트를 준 사실도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망자 상인의 멱살을 잡고 협박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다짜고짜 망자 상인을 협박해 보았다. 그러나 협박 스킬을 사용해도 퀘스트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협박하니 아무것도 내놓지 않았다. 그제야 아크는 망자 상인의 반응도 시스템의 일부임을 알아챘다. 즉, 아크는 퀘스트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원래 이 퀘스트의 보상은 그런 식으로 받게끔 만들어져 있었다는 말이다. 역시 다시 라자크를 데리고 나와 말을 거니 망자 상인이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협박하니 퀘스트를 안 받았을 때와 달리 뭔가를 내던졌다. "에이... 별 거지 같은 놈을 다 보겠군... 불쌍해서 준다... 먹고 떨어져." 이번에 망자 상인이 내던진 건 그냥 뼈다귀였다. 그 뒤로 몇 번을 반복했지만 망자 상인은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망가진 주전자, 부서진 방패, 어떨 때는 죽은 자의 가죽을 던질 때도 있었다. 결국 아크는 그런 더러운 꼴을 10여 차례나 반복한 뒤에야 데드 코인을 세 개 모을 수 있었다. "휴, 이 퀘스트만 반복하다 보면 백화점 같은 곳에서 물건 환불받는 기술 하나는 끝내주겠군. 어쨌든 이제 세 개 다 모았다. 그나저나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동전을 투입해야만 단서를 찾을 수 있다니..." 철컹, 쿠쿠쿠쿠! 어쨌든 전사상에 동전 세 개를 투입하자 기계음이 울리더니 석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끄러지듯이 옆으로 이동하더니 이내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지하 납골당 당신은 죽은 자들의 도시에 숨겨진 지하 납골당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의 주민들은 고대부터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했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질서와 선악,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들은 도시 중심에 신전을 만들고 그곳을 최후의 안식처로 삼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죽은 자의 안식을 위한 장소입니다. 헛된 욕심으로 발을 들여놓는 자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모험가의 지식: 숨겨진 던전 발견 보너스 스킬 포인트 10 흩어진 달을 찾아 평등한 안식처로 인도받아라. 전직 퀘스트의 두 번째 단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ACT 7.[멜로디안 랩소디] "이번 물건은 이게 전부예요." "수고했어요." 로코가 땀을 뻘뻘 흘리는 시드에게 물 잔을 건네주며 빙긋 웃었다. 그러자 시원스럽게 들이켠 시드가 상점 앞의 좌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1골드 하우스라니 아크님 답네요." "이게 의외로 인기가 많아요." 아크는 다른 곳에 가 있을 때도 항상 아크 상점의 운영에 대해 고심했다. 그리고 상점을 더욱 알리기 위해 매달 기획전을 했는데 이번에는 1골드 하우스였다. 말 그대로 좌판에 깔린 상품을 모두 1골드에 파는 것이다. "내구력이 얼마 안 남은 아이템을 이렇게 처리하다니..." 시드가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크의 1골드 하우스에서 취급하는 물건들은 의외로 굉장한 것들이었다. 원래 가격이 1골드 미만인 아이템도 많았지만 때때로 레벨 50대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아이템도 있었다. 이런 아이템을 고작 1골드에 팔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내구력 때문이었다. 처음 수리 스킬을 배운 사람들은 가끔 수리를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때 장비품의 최대 내구력이 떨어진다. 또한 대장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등급이 올라가면 장비품을 강화시킬 수도 있는데 이때 강화에 실패해도 최대 내구력이 떨어진다. 아크가 노린 상품은 그런 아이템들이었다. 수리나 강화에 실패하거나 연습용으로 사용하다가 최대 내구려깅 고작 1~5밖에 남지 않은 장비품. 아크는 시드를 통해 나가란에서 그런 장비품을 고철 가격에 사 와서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시드는 솔직히 이런 쓰지도 못할 장비품이 팔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드는 한 가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물론 이런 장비품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내구력이 얼마가 남았든 겉보기에는 멀쩡한 마법 아이템. 입으면 뽀대가 나는 것이다. 때문에 고급 의상처럼 저레벨 유저들이 뽀대용으로 1골드 하우스의 상품을 선호했다. "자기야, 나 멋진 마법 갑옷 하나 사 주면 안돼? 친구들한테 자랑하게." "하지만 나 지금 별로 돈 없는데?" "후후후, 아크 상점의 1골드 하우스가 있잖아." "아하, 마법 갑옷을 1골드에 살 수 있다는 아크 상점!" 연일 대성황, 아크 상점의 1골드 하우스를 이용해 주세요! 마을 입구에는 자나가 이런 광고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상점은 연일 성황. 마을에 대한 기여도도 쭉쭉 올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움직여 주는 아크 일족 덕분에 정작 아크가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헤매고 있을 떄도 자산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크님은 뭐든 시작하면 아주 끝장을 본다니까. 상인이 됐으면 정말 대성했을 거야." 시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자를 세어 본 로코가 고개를 댜웃거리며 물었다. "이번 교역 물량은 지난번보다 물량이 좀 적네요." 요즘 나가란의 상황이 좀 어수선해서 그래요. 각 길드에서 무기나 소모품을 대량 발주하는 바람에 가격이 폭등하고 있거든요. 그런 시기에 물건을 구입해 놓으면 스탄달로 가져가 팔아도 운임비다 뭐다 빼면 손해일 거예요. "나가란이 그렇게 분위기가 안 좋아요?" "설명하자면 좀 긴데..." "괜찮아요. 나가란 일이라면 저도 알아둬야 하니까요." "네, 로코님도 아시겠지만 그동안 나가란이 조용했던 이유는 시르바나를 차지하고 있는 헤르메스 연합을 포함한 5대 연합의 힘이 워낙 강해서였어요. 어설프게 움직이면 다른 대영주에게 뒤통수를 맞을까 봐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흐음, 그런데요?" 로코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사실 상점에서 이것저것 기획전을 열고 있지만 현재 아크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대륙상회와 연계해서 스탄달과 교역하는 사업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전담하는 게 바로 시드다. 대륙상회가 자리 잡은 곳은 나가란. 항상 고레벨 유저들이 모이는 전장이다. 고레벨 유저들의 특징은 초심을 잃는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는 1쿠퍼라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몇 실버를 더 받을 수 있다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옆 마을까지 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레벨이 되면 몇 실버는커녕, 몇 골드조차 무시하는 경향이 생긴다. 가방 공간이 남아 있음에도 몇 실버 못 받을 것 같으면 귀찮아서 잡템을 안 챙길 때도 있었고, 챙긴 물건도 시세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대충 가까운 상점에 팔아 버린다. 물론 아크가 보기에는 길바닥에 돈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특히 이런 경향은 나가란의 유저들이 심했다. 때문에 아크의 특명을 받은 시드는 이런 아이템을 저렴하게 구입, 일정량이 쌓이면 아크 상점에 넘기는 일을 해 왔다. 그리고 그 상품은 다시 스탄달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나가란과 란셀, 스탄달을 잇는 무역 루트! 아크가 구상한 삼각무역은 이미 현실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삼각무역이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쉬지 않고 기획전 따위를 하는 것은 그때를 대비해 자본금을 마련해 놓으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제 나가란의 정세도 아크 상점과는 뗄 수 없는 사이다. 지점장으로서 로코가 나가란의 정세에 신경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 스탄달을 집어 삼키려고 용병까지 고용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헤르메스 연합이 흔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지금까지의 균형이 깨진거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각 연합에서는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군비를 확장하는 거예요. "하지만 헤르메스 연합은 굉장히 크다면서요? 이번에 손해는 3천 골드 안팎이라던데, 그렇게 큰 연합이 3천 골드 때문에 그렇게까지 힘들어지나요?" "그게 좀 복잡해요." 시드가 짐짓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했다. "사실 그동안 헤르메스 길드가 시르바나에서 얻은 수익은 상당해요. 3천 골드가 큰돈이기는 하지만 연합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죠. 하지만 문제는 쥬르와 듀크예요." 사실 따지고 보면 헤르메스의 스탄달 정복이 좌절된 건 쥬르와 듀크의 독단 탓이다. 만약 쥬르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진즉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으리라.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연합 소속 길드들은 이 책임을 물어 둘의 탈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팔은 안으로 굽고, 가제는 게 편인 법이다. 같은 선구자 출신인 라이덴은 연합원들의 요청을 묵살했다. 헤르메스는 이미 길드가 아닌 연합이었다. 현재 헤르메스 연합에 속한 길드는 무려 여덟 개. 그런데 연합장이 소속 길드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쥬르와 듀크를 싸고도니 불만이 축적되었다. 결국 몇몇 길드는 불만을 품고 연합에서 탈퇴해 다른 세력과 접촉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상황이었다. 규모가 커지는 만큼 관리가 힘들어진 것이다. "대륙상회가 시르바나에 있어서 헤르메스 연합의 단골이 많아요. 이런 정보를 알아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죠. 하긴 쉬쉬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보죠." 시드가 후후 웃으며 으스댔다. "어쨌든 그래서 나가란의 5대 세력은 시르바나를 주시하며 은밀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어요. 잘은 모르겠지만 영주 자리를 놓고 공성전을 하는 것과, 영주와 영주가 세력전을 펼치는 방식은 많이 다르대요. 조건만 갖춰지면 상대 영주의 허락 없이 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나가란에서 장비품과 소모품 가격이 폭등하게 된 배경이었다. 그러나 시드는 별로 신경 쓸 것 없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어요. 대신 귀금속류의 가격은 많이 내려갔어요. 각 연합에서 전쟁 물자를 모으기 위해서 보유하고 있던 귀금속을 팔아 대고 있거든요. 이번에 가져온 물량은 대부분 그런 귀금속들이예요. 보석 세공이나 마법 부여 같은 스킬을 배우는 유저에게 팔아도 좋지만 스탄달에 가져가도 제법 수익이 날 거예요." "언제나 고생이 많네요." "에이, 새삼스럽게..." 시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과거를 회상하듯 말했다. "사실 처음에 강제로 대륙상회에 취직당했을 때는 좀 억울한 생각도 있었어요. 하지만 막상 대륙상회가 자리를 잡으니 꽤나 괜찮더라고요. 대륙상회에서 공금 처리를 해 주니 비싼 안전 여행 주문서를 펑펑 써 대며 교역할 수 있고, 카오틱 유저도 덤비지 않거든요." 실제로는 어쨌든 표면적으로 대륙상회에 세금을 받는 곳은 헤르메스 연합이었다. 당연히 헤르메스 연합은 대륙상회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덕분에 시드가 대륙상회와 헤르메스 연합의 깃발을 휘날리며 교역을 하면 카오틱 유저들도 함부로 습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시드가 교역을 다니는 일 중 절반 이상은 아크의 지시에 의한 것. 결국 헤르메스 연합은 아크의 장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라이덴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졸도하리라.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시드는 원하던 대로 요 몇 달간 장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후후후, 덕분에 얼마 전에 레벨 300이 됐어요." "레벨 300요?" 시드는 나날이 커져 가는 대륙 상회의 대외사업부장.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한 번에 레벨이 2~3 올라가는 큰 거래를 도맡아 처리해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시드는 뿌듯한 표정으로 당나귀와 수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마차까지 샀고요." "대륙상회에서 내준 마차 아니었어요?" "얼마 전에 가진 돈을 몽땅 털어서 질렀어요. 역시 상인의 로망은 뭐니뭐니해도 마차잖아요. 게다가 자기 마차를 사용하면 대륙상회에서 따로 유지비가 나오거든요. 나중에 독립해서 상점을 차리려면 한 푼이라도 더 절약해야죠." 시드가 도토리만 한 주먹을 올리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자, 그럼 이만 가 볼께요. 돌아가기 전에 몇 군데 들러 볼 곳이 있어서요. 아!" 마차로 오르던 시드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가방을 뒤적거렸다.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낡은 하프였다. "얼마 전에 거래하다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악기인데요. 로코 님, 음유시인이라고 하셨죠? 혹시 필요할지도 몰라서 가져와 봤어요. 어때요? 저는 악기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고풍스러운 하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듯 찌든 때로 뒤덮여 있고 현 도 몇 개 끊어져 이 상태로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하프의 가치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기품마저 엿보이는 우아한 조각이 새겨진 유선형의 몸체와 아름다운 선율을 내기 위한 최적의 배치. 명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악기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명품이라고 불러도 좋을 하프가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의 관리 소홀로 인해 폐품이 돼 버렸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설명처럼 하프는 상당히 낡아 있었다. 그러나 로코는 한눈에 하프가 마음에 들었다. 하프는 음유시인으로 전직할 때 퀘스트 보상으로 받아 잠깐 다뤄봤다. 그러나 다른 악기에 비해 무겁고 가격도 비싸 곧 다른 악기로 바꿨지만 장비품이 아닌 그냥 악기로서는 하프라는 악기에 꽤나 끌렸다. 게다가 고풍스러운 하프는 이름처럼 꽤나 고풍스러운 멋이 있었다. 특히 손잡이 부분에 조각되어 있는 여인상이 마음에 들었다. "저 이거 마음에 들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시드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5골드에 산 거라 원래는 6골드는 받아야 하지만 로코 님이니까 그냥 5골드에 드릴께요." "네에? 너무 비싸요. 이렇게 낡고 망가진 하프가 5골드라니요. 2골드에 주세요." "3골드면 원가의 반도 안 되잖아요." "이거 왜 이래요? 5골드에 샀다고 했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부족한 물건값 대신 받은 거잖아요. 사실 그 정도는 그냥 깎아 줘도 된다고 생각하고 받은 거 아니예요?" 새삼스러지만 아크 일족에게 공짜 선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일족의 수장인 아크를 본받아 길 가다 주운 돌멩이라도 팔아먹자가 일족의 좌우명! 덕분에 시드와 로코는 매우 얼굴을 보는 사이면서도 흥정을 하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휴, 알았어요. 제가 졌어요. 로코 님도 이제 만만치 않네요. 2골드 40실버. 더는 안돼요." "좋아요." 결국 하프는 2골드 40실버에 낙찰됐다. "삽질이, 울먹이, 이 물건들 창고로 옮겨 놓고 가격 파악해 놔요." "넵, 점장님!" 로크는 점원에게 지시해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흠, 요즘 할 일도 없어서 심심했는데 잘됐다." 사실 근래 들어 로코는 꽤나 한가한 편이었다. 아크가 전셋집 잔금을 마련할 때만 해도 정시없이 바빴다. 그러나 이제 급하게 물건을 처분할 필요도 없었고 점원인 삽질이와 울먹이도 갱생단에게 공포와 전율의 교육을 받은 뒤로 빠릿하게 가게 일을 처리했다. 문제가 있을 때는 누구보다 바쁘지만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점장만큼 한가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로코는 이런 한가함이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나 스트레스가 쌓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 "상점을 맡으면 오빠를 자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 보잖아. 나는 여기에 처박혀 있는데 레리어트 같은 여우하고 어울리기나 하고... 아유, 짜증 나." 다행히 갱생단에게 알아보니 요즘은 레리어트도 아크를 못 만나는 것 같지만... 어쨌든 로코의 스트레스 원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신용 불량 호비트였던 시드도 벌써 레벨 300이다. 게다가 점원인 삽질이와 울먹이도 착실하게 장사를 한 덕분에 제법 레벨이 올랐다. 이들이 상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로코는 음유시인. 아무리 장사가 잘돼도 경험치와는 무관했다. 물론 로코도 그동안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가끔 시간이 나면 묘족이나 전직 산적들과 함께 마을 주변에서 사냥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갱생단과 함께 있을 때만큼 효과가 좋지 않아서 아직 레벨 200도 되지 않았다. '나도 이제 갱생단 오빠들하고 같이 스탄달에서 놀고 싶은데..' 하지만 아직 아크 상점을 삽질이와 울먹이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 역시 오빠의 재산은 조강지처인 내가 지켜야 해." 이런 생각으로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로코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새로운 취미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차피 로코가 게임에 본격적인 흥미를 갖게 된 것은 현실에서 접하기 힘든 여러 악기를 직접 다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아무래도 상점을 운영하다 보니 이런저런 잡템이 많이 몰려들었다. 로크는 그중에 악기를 따로 모아 컬렉션을 꾸미고 있었다. 바이올린, 비올라, 트럼펫... 2층에는 이미 로코가 모아 둔 악기가 제법 되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연주한 덕분에 레벨은 낮았지만 스킬 숙련되는 꽤 높은 편이었다. "마침 하프는 없었는데 잘됐어. 장비품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잘 수리하면 소리 정도는 나겠지? 게다가 예쁘게 생겼으니 장식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당분간은 하프나 수리하면서 시간을 때워야겠다" 로코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걸레를 집어 들었다. 현실에서도 게임에서도 가사가 특기인 로코. 그동안 틈만 나면 상점을 쓸고 닦고 한 덕분에 각종 가사 스킬이 상급에 올라 있었다. 찌든 때가 두껍게 끼어 있던 하프도 로코가 걸레로 박박 문질러 대자 서서히 본래의 광채를 되찾아 갔다. 하프가 제 모습을 찾아 갈 때마다 로코는 뿌듯한 성취감을 느꼈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본래의 색을 되찾으니 이렇게 예쁘잖아. 대체 이 하프는 어떤 음색을 낼까? 좋아. 다음은 현이다. 빨리 수리해서 연주해 봐야지." 로코는 작센 성의 악기 상점으로 달려가 현을 구해 왔다. 그렇게 모든 수리를 끝낸 로코는 기대에 찬 얼굴로 하프를 뜯어 보았다. 띠 뚜루룽 띠룽 땅! 에엑? 이, 이게 무슨 소리야? 하프에서 벽돌을 갈아 대는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그제야 로코는 악기 수리에 가장 중요한 작업을 빼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현악기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바로 각 현의 음계를 조정하는 조율이다. "하지만 아직 하프 조율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사실 로코는 뉴 월드에서 조율을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상점에서 파는 악기는 모두 조율이 된 상태로 출시되기 때문이다. 물론 로코도 조율을 해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로코가 다뤄 본 현악기는 기껐해야 통기타. 반면 하프는 무려 47개나 되는 현을 가진 악기였다. 로코는 할 수 없이 다음 날 다시 작센 성의 악기 상점을 찾아갔다. 그러나 하프를 살펴 본 NPC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하프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게다가 이 하프는 아무래도 악기로서의 생명이 끝난 것 같아. 힘들게 조율해 봐야 제대로 된 음색이 나올 리가 없어. 그보다 이 기회에 새 하프를 장만해 보는 건 어떤가? 유명한 장인이 만들어서 음색이 실로 아름답다네. 게다가 기능성도 끝내주지. 자, 여길 보게. 모서리에 날카로운 쇠붙이가 붙어 있지? 이걸로 몬스터의 대가리를 후려치면..." 상점 주인은 추가 공격력까지 붙어 있는 무지막지한 강철하프를 권해 주었다. '이렇게 되면 오기다!' 그때부터 로코는 각종 하프 교본을 뒤적이며 직접 현을 조율해 나갔다. 다행히 로코는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절대 음감까지는 아니라도 청음이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장장 열흘, 노력한 보람이 있어 하프의 조율을 끝낼 수 있었다. "됐어. 이제 제대로 하프의 음색을 들을 수 있겠어." 로코는 긴장된 표정으로 현을 주르륵 훑어보았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47개의 현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부드럽고 맑은 소리. "이거야. 이게 진짜 하프 소리야. 호호호, 왠지 고생해서 수리해 놓으니 다른 하프보다 더 좋은 음색을 내는 것 같아. 이참에 재대로 하프를 배워 볼까? 어디, 이전에 배웠던 곡이..." 의욕이 넘치는 로코가 악보를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무슨 폴터가이스트 현상도 아니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하프가 벌떡 일어나더니 저절로 현이 움직이며 연주되는 게 아닌가? 놀라운 장면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연주에 맞춰 하프의 손잡이 부분에 달려 있는 여인상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로코는 깜짝 놀라 하프를 집어 들려다가 멈칫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는 신비로운 하프와 노랫소리... 왠지 하프에 손을 대면 그 아름다운 선율이 끊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처음 들어 보는 낯선 선율이었지만 로코는 단숨에 그 선율의 포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아,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는 처음이야. 가슴이 아리도록 슬프게 느껴지면서도 마치 신비롭고 아름다운 숲 속에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은 청량감. 맞아, 이게 진정한 힐링계 음악이야.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아." 로코는 몽롱한 얼굴로 탁자 앞에 앉아 하프 소리에 빠져들었다. 그때 정신이 확 들 정도로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신비로운 음악의 유혹 당신은 우연히 낡은 하프를 손에 넣었습니다. 도저히 쓸 수 없을 듯한 하프였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은 최선을 다해 하프를 수리해 새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하프는 당신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신비로운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한 천재 음악가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노래를 끝낸 하프의 여인상은 아련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했습니다. 그곳은 노래 속에서 천재 음악가가 청년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멜로디안 언덕입니다. 하프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전 주인에게 새 주인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난이도: B 퀘스트 제한: 음유시인 "어라? 퀘스트? 그럼 이 하프가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었던 거야?" 로코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퀘스트 정보창을 읽어보았다. "멜로디안 언덕이라면 그렇게 멀지도 않잖아?" 지도를 확인해 본 로코는 별생각 없이 퀘스트를 수락했다. 힘들게 수리한 하프에게서 받은 퀘스트에 호기심도 생겼고 미완성이었던 방금 전의 선율도 마저 듣고 싶었다. 하프를 들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나머지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유니콘을 이용하면 1시간도 걸리지 않을 거리였다. "좋아, 유니콘!" "히히힝~ 히히힝!" 간만의 호출에 신이 난 유니콘은 콧김을 뿜어내며 단숨에 멜로디안 언덕에 도착했다. 하르콘이라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유니콘을 타고 주변을 돌아보니 언덕 위 꽃밭에 소박한 묘비 하나가 서 있었다. 로코가 묘비 근처로 다가가자 하프의 현이 흔들리며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뭐지? 혹시 나보고 직접 연주해 달라는 건가?" 그러자 하프가 그렇다고 대답하듯이 현을 튕겼다. 나머지 노래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로코는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퀘스트는 완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떤 곡을 연주해야 하는 거지?"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로코가 알고 있는 하프 연주곡은 하나밖에 없었다. 음유시인으로 전직할 때 하프와 함께 받았던 악보. 마법사가 마법서를 통해 마법을 배우는 것처럼 음유시인은 해당 악기에 관련된 악보를 입수해서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 그리고 마법이 숙련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듯이 악기 역시 숙련도나 완성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음유시인은 마법사와 달리 숙련도가 올라가면 음악도 더욱 아름다워지고 자작곡을 연주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로코의 하프 연주 숙련도는 아직 하급이었다. 덕분에 여기저기 튀는 음이 있었지만 정신을 집중하고 연주하니 그럭저럭 들어 줄만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로코가 나름대로 진지하게 연주에 심취해 있을 때였다. "으악, 그만, 그만해! 도저히 못 들어 주겠군." 갑자기 하프에 붙어 있는 조각상이 버럭 소리쳤다. 로코가 화들짝 놀라 연주를 멈추고 하프를 바라보았다. "하프가 아니야. 나다. 어이, 뭐야? 고개를 들어. 이쪽이라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보자 묘비 위에 한 장발 중년이 둥둥 떠 있었다. "다, 당신은?" "나? 나는 멜로디안이다. 네가 들고 있는 하프의 주인이지. 아니, 전 주인인가?" "네? 하지만 당신은 죽었다고 하던데요?"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젠장, 그러니까 직접 말도 못하고 하프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거잖아. 하아, 평생 음악만을 위해 살아온 내가 하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말조차 못 하는 신세가 되다니... 게다가 내가 얼마나 분하고 원통하게 죽었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다. 울걸. 울 거야. 슬프니까." 멜로디안은 한숨을 푹 불어 내며 로코를 힐끔거렸다. 제발 좀 왜 분하고 억울하다는 건지 물어봐 달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솔직히 로코는 유령의 하소연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의 하소연을 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래도 물어보지 않으면 퀘스트가 진행되지 않을 모양이다. "무슨 사정이 있으셨어요?" "너무나 슬프고 억울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물어본다면 대답해 주지." 멜로디안이 뻔뻔스럽게 대꾸하며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대대로 유명한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형제들과 달리 그에게는 그리 대단한 재능이 없었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갖은 구박에 시달리다가 어느날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산에 올라갔다. 악기 하나만 죽어라 연습해서 형제들이 놀라 자빠질 만한 기량을 닦을 때까지 하산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나는 그 하프를 품에 안고 산에 올라 장장 15년을 보냈다.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 나는 드디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하고야 말았지. 후후후, 어쩌면 나야말로 진짜 천재였을지도 몰라.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천재 음악가로 변신해 세상을 향해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그래서 구박하던 형제들을 놀라게 해 줬나요?" 멜로디안이 움찔하더니 이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 절벽이었어." "네? 절벽이라니요? 뭐가요?" "젠장, 절벽이었다고. 내가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곳은 절벽이었던 거야!" 로코는 몇 번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말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멜로디안은 15년 동안 복수를 다짐하며 죽어라 연습해서 득음의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좋아라고 산을 뛰어내려 가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이건 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업는 스토리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나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내 하프로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해 준다면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거야."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멜로디안이 돌연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으윽, 그런데 수십 년 만에 하프를 들고 나타난 사람이 이따위 계집이라니. 이건 뭐, 도저히 들어 줄 수가 없더군. 정말 음유시인 맞아? 대체 어떻게 하면 하프에서 오우거 트림하는 소리가 나오는 거냐? 혹시 음유시인이 아니라 마법사 아냐? 뭐, 뭐예요? 남은 기껏 찾아와 연주해 줬더니! 연주? 너는 그걸 연주라고 부르냐? 그건 그냥 잡음이야! 덕분에 잠까지 확 깨 버렸잖아. 이제 어쩔 거야? 앙? 너 때문에 나는 오히려 잠에서 깨 버렸다고!" "알게 뭐예요. 멍청하게 절벽에서 다이빙해 죽은 유령의 사정 따위!" 로코가 볼을 부풀리며 팩 고개를 돌려 버렸다. "뭐라고? 말 다했냐? 뭐, 다이빙? 게다가 내 하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따위 잡음이나 내고 다닌다니 그건 이 멜로디안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그 하프는 우리 가문의 가보였던 악기란 말야. 그딴 연주나 할 거면 차라리 하프 내 놔!" "싫어요. 이건 내가 비싸게 사서 수리한 거라고요. 그런 말이나 할 거면 저 갈래요." 로코가 팩 토라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멜로디안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만 기다려.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그 하프가 없으면 나는 다시 잠들 수 없단 말야. 그 하프로 제대로 된 연주를 들어야 편히 잠들 수 있다고. 나더러 이대로 이곳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으란 말이냐?" "잠들고 싶으면 양이라도 세 봐요. 어차피 난 연주도 제대로 못하는 음유시인이니까. 어쨌든 이 하프의 주인은 저예요. 억울하면 뺏어 봐요. 못하죠?" "조,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잠시 고민하던 멜로디안이 결국 중재 안을 내놓았다. "솔직히 영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할 수 없지. 오늘부터 내가 너에게 하프 연주를 가르쳐 주마. 처재 음악가인 이 몸의 가르침을 받으면 네가 음악가로 대성하는 건 시간문제야. 후후후, 어때? 이런 걸 기연이라고 하는 거다. 나처럼 대단한 음악가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 기회는 결코 흔치 않아. 내 하프를 수리해 줬다고 하기에 선심 쓰는 거다." "흥, 저를 계집이라고 부르는 성희롱 음악 선생님 따위는 관심 없어요. 가자, 유니콘." 로코는 콧방귀를 뀌며 유니콘을 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멜로디안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야? 너는 아직 신출내기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 몸의 가르침을 받는 건 정말 엄청난 행운이라고. 어이, 이봐, 기다려! 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제발 좀 봐 달라고! 알았어, 알았어. 이제 계집이라고 하지 않을게. 그러니 제발 돌아와. 컴백, 컴백! 갔냐? 정말 갔어? 흑흑흑, 나는 이제 어쩌라고..." "...로코예요." 그때 숲에서 로코가 걸어 나오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멜로디안이 얼른 눈물을 닦으며 떠듬거렸다. "어? 아, 안 갔냐?" "할 수 없잖아요. 나 때문에 잠까지 깨 버렸다고 하는데. 제대로 이름을 불러 주면 아저씨 제자가 돼 줄께요. 하프 연주도 마저 듣고 싶고. 아저씨 제자가 되면 하프에서 나왔던 연주곡도 배울 수 있는 거죠?" "무, 물론이지. 그거 내가 작곡한 거야. 아흑, 너 사실은 좋은 여자였구나. 고맙다. 작곡이든 뭐든 원하는 건 뭐든지 가르쳐 줄게. 대신 하루라도 빨리 나를 좀 재워 다오. 내 소원은 그것뿐이야. 소박하지??" "알았어요. 노력해 볼게요." 로코는 유령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인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고막을 지나 뇌까지 울려 대는 요란한 굉음, 눈을 찌르는 형행색색의 현란한 조명! 평범한 일상을 거부하듯 마치 다른 차원으로 뚝 떨어져 나온 듯한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낮에는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밤만 되면 화려한 조명과 함께 나타나 거리를 헤매는 인간들을 끌어들이는 비밀의 공간. 이곳에 발을 들여놓는 자는 알 수 없는 마력에 의해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한 마리 짐승이 되어 버린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자들뿐. 정확한 자료 근거는 없으나 이 공간 앞에 펼쳐진 결계는 나이 혹은 복장도에 의해 들어올 사람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한다. 일명 물 관리라고 불리는 그 무시무시한 심사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신개념 인종차별에 절망해 그저 흐느끼고 통곡할 뿐. 이 현대판 복마전의 명칭은 나, 이, 트, 클, 럽... 통칭 클럽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우하하, 이봐, 여기 양주 세 병하고 안주 추가! 빨리 가져와!" 메인 스테이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룸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양옆에 앉은 여자들이 교태 어린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오빠, 멋지다. 마음에 들어." "그런데 좀 무리하는 거 아냐?" "무리? 장난하냐? 내가 누군지 알아? 고작 양주 몇 병으로 앓는 소리 할 거면 집 밖에 나오지도 않는다. 먹고 싶은거 있으면 뭐든지 시켜. 오늘은 이 오라버니가 화끈하게 한 방 쏠 테니까. 아니, 기분도 그런데 오랜만에 아예 골든벨이나 울려 볼까?"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히죽거리는 청년의 이름은 이명반. 한때 뉴 월드에서 안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아크에게 밟히고 친구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녀석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 속에서의 일. 현실의 안델은 여전히 잘 나가는 상류층 외동아들이었다. 안델이 보석 박힌 명품 시계를 흔들어 대며 말하자 여자들이 호들갑을 떨어 댔다. "나, 골든벨 울리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같이 있는 오빠가 골든 벨 울려 주면 왠지 멋질 거 같아." "훗, 찌질이들하고만 놀았나 보군. 좋아. 너희들이 오늘 화끈하게 놀아 주면 골든 벨 울려 주지. 후후후, 그런 의미에거 우리 왕 게임 할까?" "어머, 무슨 짓을 시키려고? 오빠, 너무 노골적으로 야한 거 아냐?" "크하하, 남자는 다 늑대라고. 아직 그것도 몰랐냐?" 안델이 능글맞은 얼굴로 은근슬쩍 여자들의 몸을 더듬을 때였다. 룸의 문이 열리더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나." "뭐야? 어떤 자식이 멋대로 들어와서..."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리던 청년이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고 움찔했다. "아, 아란? 네가 어떻게..." "네가 갈 만한 곳이라야 뻔하지." 새로 등장한 사내는 안델의 십년지기 친구 아란이었다. 아란이 맞은편에 앉자 여자들의 시선이 단숨에 집중되었다. 아란의 복장은 평범했다. 청바지에 하얀 티셔츠, 그러나 명품 셔츠와 장신구로 치장한 안델보다 더 있어 보였다. 뭐랄까... 안델이 벼락출세한 평민처럼 보인다면 새로 나타난 아란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다는 느낌이랄까... 격이 다르다는 말은 이런 것이리라. "와, 이 오빠 멋지다." "맞아, 딱 내 이상형이야." 여자들의 반응이 못마땅한지 안델이 불만스럽게 아란을 쏘아보았다. 안델이 아란과 알고 지낸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요즘은 관계가 소원해진 상태였다.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아크. 안델이 아크에게 속아 넘어가는 바람에 아란이 차지하고 있던 시르바나 성을 빼앗기게 된 게 원인이었다. 물론 안델도 아란이 얼마나 시르바나 성에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한동안 아란을 피해 다녀야 했지만 막상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란에게 섭섭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봐야 고작 게임에서의 성 하나잖아. 그거 하나 빼앗겼다고 십년지기 친구를 대놓고 무시하다니. 좀 심한 거 아냐?' "아란, 네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야?" 당연히 입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다정다감할 리가 없었다. 아란은 말없이 안델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너 요즘 뉴 월드 접속 안 한지 꽤 됐지?" "뭐야? 너 아직도 그거 붙잡고 있냐? 난 이제 관심 없어. 어차피 글로벌엑서스의 시험에 응시한 것도 우리 꼰대가 하도 일하라고 성화를 부려서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하려고 시작한 거야. 하지만 어차피 이제 시험도 가망 없잖아. 솔직히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정말 뉴 월드에 관심이 없어진 거냐?" 아란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묻자 안델이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처음에는 아란보다 더 적극적으로 게임을 하던 안델이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 안델은 처음부터 입사 시험 따위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밤을 새우며 게임에 열중했던 이유는 하나, 단순하게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한동안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이유는... 그때 아란이 MP를 꺼내 들었다. 뭔가 하고 지켜보던 안델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MP에 나오는 동영상은 바로 얼마 전에 TV로 방연됐던 게임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은 검은 늑대의 모습이었지만 안델은 그게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 아크 자식!" 그렇다. 바로 이놈이다. 안델이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 이유.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아크에게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아크에게 몇 번이나 박살 나 조직이 와해됐다. 게다가 아란에게까지 버림받아 게임에 접속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안델이 이를 갈아붙이자 아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냐? 뭐가? 아크 녀석 마이야. 그놈은 우리가 만들어 놓았던 모든 걸 부숴 버렸어. 게다가 이렇게 승승장구하고 있지. 그런데도 이대로 놈을 두고 볼 참이냐? 용서할 수 있다는 거냐? 네가 그렇게 성격 좋은 녀석이었냐? 나는 못 해. 우리를 무시한 놈을 그냥 놔두고 싶은 생각은 없어." "젠장, 나도 열 받아. 하지만 말이야." "얘기 들었어. 너 그 녀석 손 좀 ㅗ바 주려다가 골 때리는 일을 겪었다며?" "그래. 그것 때문에 꼰대에게 얼마나 깨졌는지 알아?" "그러니까 더욱 그냥 놔둘 수 없다는 거야." "알아. 안다고. 나도 할 수만 있으면 그놈을 밟아 주고 싶다고. 솔직히 그 동영상, 벌써 봤어. 내가 얼마나 열 받았는지 알아? 하지만 이제 놈은 예전의 아크가 아니라고. 레벨도 레벨이지만 세력도 상당히 커졌잖아. 그렇다고 다시 사람을 시켜 손봐 주기도 힘들고." "아니, 게임에서 당한 건 게임으로 갚아 줘야지. 그게 내 방식이다." 아란이 싸늘한 어조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도 이제 입사 시험 따위는 관심 없어. 하지만 우리를 무시한 놈은 절대 그냥 둘 수 없어.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상관없이." 아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란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시당해 본 적이 없었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시당하고 참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았다. 새삼스럽지만 아란은 부자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 누군가 자신을 무시한다면 아란은 그 무기를 총동원해서 상대를 밟아 대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 무패 신화에 유일한 오점이 바로 아크. 객관적으로 보면 무엇 하나 아란보다 잘난 것이 없는 아크에게 당했던 일은 그의 일생일대의 수치였다. 철옹성 같았던 그의 자존심에 구멍이 나 버렸다. 작은 구멍이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 작은 구멍은 참을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구멍을 다시 메울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이 당했던 뉴 월드라는 세상에서 아크라는 이름을 지워 버리는 방법뿐이다. 그렇다. 아크에 대한 징그러울 정도의 증오심은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란의 말에 안델도 주먹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야.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놈에게 당한 수모는 결코 너 못지 않단 말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 적어도 게임에서는." "그래. 이제 인정해야겠지. 그놈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별 볼일 없는 놈이 아니야. 그렇기에 더 참을 수 없는 거다. 이제 뉴 월드는 이전처럼 장난삼아 하는 게임이 아니야. 내 모든 것을 걸고 놈을 뉴 월드에서 지워 버리겠어. 그러기 위해선 네 도움이 필요하다." "뭐? 내 도움?" "그래. 실은 난 그동안 아크 자식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며 힘을 키워 왔다. 그리고 그만한 힘을 키웠다고 자부할 수 있어.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놈은 이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내가 놈 앞에 나타나는 것은 좀 더 뒤다. 그때를 위해 네가 필요한 준비를 해 줬으면 한다." "필요한 도움이라면?" "사람을 모아야지. 아크 녀석은 물론 아크와 관련된 놈들까지 모조리 밟아 버리려면 그만한 세력이 필요하다. 여명의 칼날처럼 그저 그런 놈들은 필요 없어. 카오틱이라도 좋아. 우리 명령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 나는 그럴 형편이 못좨. 그 일을 네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난 아직 레벨이 고작 200이야. 그런 놈들이 내 밑에 모이겠어?" 안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아란이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놈에게 없는 무기가 있잖아." "무기? 무기라면..." 안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아란이 뭔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통장이었다. 이게 뭔가 하고 기웃거리던 여자들이 통장 내역을 확인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꺄악! 이, 이게 0이 몇 개야? 이 정도면 클럽을 몇 달은 전세 내겠어." "대체 뉴 월드가 어딘데? 새로 생긴 클럽이야?" 안델 역시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정도면 너라도 쉽지 않은 금액인데... 설마 이걸 몽땅 쓰겠다는 거야?" "놈만 밟을 수 있다면 상관없어. 아니, 솔직히 내가 생각한 규모의 조직을 만들려면 이 정도도 부족해. 하지만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어때? 도와주겠나?" 안델은 복잡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와락 아란의 손을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와 내가 작정하고 나서면 그따위 자식 밟는 건 일도 아니야. 네가 그 정도 각오라면 나도 이번 일에 모든걸 걸겠어. 돈을 구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꼰대의 목을 졸라서라도 이 정도는 마련하지. 투자라고 말하면 될 거야. 놈을 밟아 버리고 뉴 월드를 차지하면 원금 회수는 문제도 아니니까." "너도 그럴 생각으로 돈을 마련한 거겠지?" "역시 말이 통하는구나." "훗,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그 정도는 기본이지." "그럼 하기로 한 거지? 나만 믿어. 우리가 가진 무기가 얼마나 굉장한 건지 놈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좋아. 믿고 맡기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해. 아까도 말했지만 놈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내가 모든 준비를 끝마칠 때까지 절대 움직여서는 안돼." "내가 놈에게 당한 게 몇 번인지 알아? 놈에 대해서는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어. 절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후후후, 놈을 밟을 수만 있다면 몇 개월, 아니 1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어." "단 한 번이야. 놈과의 단 한 번 승부에 모든 걸 걸겠다." "좋아, 알았어. 나도 걸지. 그 한 번의 승부, 기왕 하는 거 화끈하게 가 보자고." 안델은 남아 있는 술을 단숨에 비우며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좋아, 뉴 월드로 간다." "오빠, 골든 벨은?" "시끄러. 이제 그럴 돈 없어.! 명품시계도 팔아야 할 판이란 말이야!" 안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룸을 뛰쳐 나갔다. 그렇게 아란과 밀실 회담이 이루어졌던 그날, 안델은 다시 뉴 월드의 메인 스테이지로 복귀했다. 안델의 장비품은 현찰이라는 최강의 무기였다. ACT 8.[지하 납골당] 아크님, 오른쪽, 오른쪽! 허공에 떠 있는 눈알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의 눈 앞으로 거대한 도끼날이 밀려들었다. "헉, 도약!" 아크가 늑대의 발을 사용해 단숨에 십미터 밖으로 몸을 날렸다. 목표를 잃고 벽을 후려친 도끼날이 수 미터나 쑤셔 박혔다. 제대로 박혔다면 방어력이고 뭐고 그대로 몸이 반으로 갈라졌으리라.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틈도 없이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철커덩, 슈슈슈슈! 뭔가가 작동하는 듯한 기계음! 동시에 바로 옆의 벽에서 수백 개의 구멍이 열리며 화살이 소나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다크 댄싱!" 아크는 쉴 틈도 없이 춤을 추듯 몸을 회전시키며 화살을 피해 냈다. 그러나 아무리 다크 댄싱이라도 바로 옆에서 날아오는 수백 개의 화살을 모조리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어깨나 가슴, 다리에 십여 발의 화살이 꽂히며 생명력이 주르륵 빠져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빠져나간 생명력이 아니었다. 블런트 화살에 적중했습니다. 데미지 40. 화살의 특수 효과 밀어내기가 적용됩니다. 아크가 맞은 화살은 둔기 속성을 가지고 있는 블런트 화살이었다. 탄력도 스탯 덕분에 한 발당 데미지는 고작 40. 그러나 밀어내기에 대한 저항력은 없어서 십여 발을 연속적으로 얻어맞자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아크가 튕겨져 날아가자 라자크가 비명을 터트렸다. 딱딱딱, 딱딱딱! 아크가 날아가고 있는 곳은 고슴도치처럼 칼날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함정이었다. 화살과 함정, 치밀한 계산에 의해 설계된 함정이었다. "라카드, 암흑돌진!" "이미 가고 있어. 우오오오!" 단숨에 공간을 가로지른 라카드가 아크의 몸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암흑돌진에 얻어맞자 눈앞이 깜깜해지며 수미터 튕겨져 나갔다. 아크는 곧바로 심안을 발동시켜 아래를 보았지만 아직 함정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때 라자크가 화살 함정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방패로 화살을 받아 내며 뛰어올라 아크에게 날아왔다. 아크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라자크를 보고 곧바로 의도를 알아챘다. "잘했어. 라자크, 검화!" 아크가 머리를 잡으며 소리치자 라자크가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채찍으로 변환시켜 근처의 기둥을 휘감았다. 다시 검으로 되돌리자 아크는 고무줄에 매달린 돌처럼 기둥 앞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칼날 함정은 피했지만 이 근처에 안전한 곳은 없었다. 발이 땅에 닿기가 무섭게 또다시 소름끼치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아크를 쥐포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양옆의 벽이 밀려 나왔다. "좌우에 함정, 피할 곳이 없다. 그렇다면...!"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아크는 마치 영화 속의 닌자처럼 양 옆에서 돌진해 오는 벽을 번갈아 밟으며 위로 뛰어올랐다. 덕분에 쥐포가 되는 상황은 면했지만 어딜 가든 쉬지 않고 함정이 작동하며 아크를 위협했다. "젠장, 어디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제 남은 생명력도 별로 없는데..." 아크는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며 초조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때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날아드는 칼날을 피하며 시선을 집중해 보니 벽에 뚫린 구멍 속에 유리구슬 같은 게 박혀 있었다. 그걸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이제 숨기다 못해 저런 곳에 처박아 둬? 그나저나 저기까지는 너무 멀어. 게다가 구멍 속에 깊이 박혀 있어서 손을 넣어도 닿을 거리도 아니고. 어쩌지? 이대로 머뭇거리면 함정이 갈수록 심해질텐데... 잠시 고민하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북실이, 이리 와 봐!" "네? 왜, 왜요?" "으랏차차, 이번에는 눈알 미사일이다!" 눈알이 둥둥 떠서 다가오자 아크는 몸을 회전시키며 오버 헤드킥을 날렸다. "쿠에엑!" 눈알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결과는 정확히 목표한 구멍에 홀인원. 북실이의 눈알을 후려치자 유리구슬이 뚝 떨어져 나왔다. 동시에 아크를 향해 날아오던 수많은 칼날과 바위, 화살 따위가 뚝 끊어졌다. 학수고대하던 메시지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스위치가 작동해 주변의 트랩이 모두 해제됐습니다. 아크는 그제야 한숨을 불어 내며 털썩 자리에 앉았다. "휴, 이번에는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잠시도 쉬지 않고 십분 넘게 뛰어다닌 탓에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아크는 땀을 닦아 내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무슨 던전이 이따위야?" 아크가 헤매고 있는 곳은 어제 들어온 지하 납골당이었다. 던전에 들어설 때 아크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장비를 점검하고 식재료의 잔량을 확인, 치열한 전투를 예상하고 던전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지하 납골당은 상상하던 던전과는 전혀 달랐다. 죽은 자들이 도시 내부에 위치한 비밀 던전. 아크는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시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공격해 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곳에 안치된 시체들은 편안히 저 세상으로 가셨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크를 덮쳐온 건, 인디아나 존스 영화처럼 빼곡히 깔려 있는 함정이었다. 일단 한 번 작동하면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함정, 함정, 함정... 뭣도 모르고 납골당에 들어섰던 아크는 몇 번이나 사경을 헤매야 했다. "처음에는 화살이나 독침이 전부였는데..." 당연하겠지만 납골당에 깊이 들어올수록 함정의 난이도도 위력도 올라갔다. 방금 전에 날아왔던 도끼날은 한 방만 맞아도 생명력이 50%나 날아갔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애교다. 밀려 나오는 벽의 틈에 끼이면 즉사! 다시 말해 이곳에서는 방어력이나 공격력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운동으로 단련된 반사 신경과 순발력 덕분이었다. "해제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그러나 다행히 함정을 해제할 방법이 있었다. 함정이 발동하는 지역 어딘가에는 꼭 스위치 역할을 하는 유리구슬이 박혀 있었다. 이 유리구슬을 뽑아내면 그 일대의 함정이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쉴 새 없이 계속되는 함정을 피하며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유리구슬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리구슬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된 건 북실이의 눈알이었다. 뱀파이어 아이 덕분에 어둠의 영향도 받지 않을뿐더러 라카드보다 작아서 작은 구멍이나 홈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며 유리구슬을 찾아냈던 것이다. 뭐 이번에는 약간 이용 방법이 달랐지만... "아크님!" 유리구슬에 처박혀 시뻘겋게 충혈된 눈알이 버럭 화를 내며 날아왔다. 아크는 시치미를 떼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북실이, 수고했다. 네 덕분에 살았어."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대체 이게 뭐라고 생각해요? 눈알이라고, 눈알!" "그러니까 네가 유리구슬을 빨리 찾아냈으면 좋았잖아. 네가 늦게 찾아내는 바람에 함정도 더 심해져서 어쩔 수 없었어. 게다가 멋지지 않냐? 눈알 미사일. 돼지 미사일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된 느낌이 팍팍 들지 않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온몸을 무기화시켜 보는 건 어때? 북실이, 그는 살아 있는 무기였다, 멋지잖아?" "어? 그건 조금 멋질지도... 핫, 아, 아니 됐거든요?" 눈알이 팩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두 개의 눈알이 서로 몸을 비벼 대며 먼지를 털어 냈다. 뭐랄까... 보고 있자니 참 심란해지는 장면이다. "자, 어쨌든 여기도 일단 함정을 해제했으니 이제 전리품을 챙겨 볼까? 아크가 툭툭 털고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납골당에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함정을 해제하면 나름대로 전리품이라고 할 만한 아이템을 챙길 기회가 있었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좀 쓸 만한 게 있을라나? 아크가 기대에 찬 얼굴로 벽에 다가갔다." 중세 시대 영화에서 봤듯이 납골당의 벽면은 벌집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속에 미라처럼 변한 시체들이 안치되어 있었다. 아크가 전리품이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시체와 함께 놓인 매장품들이었다. 낡은 검 무기 타입: 한손 검 공격력: 7~10 내구력: 17/200 무게: 45 사용제한: 레벨 250 지하 납골당에 매장된 고대 전사들이 사용하던 검. 과거에는 굉장한 위력을 자랑하던 검이었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버려져 있어 이미 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습니다. 철 자체가 산화되어 재활용품으로도 다시 용광로에 녹여도 사용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젠장, 또 이딴 건가?" 잔뜩 먼지가 쌓여 있던 검의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한숨을 불어 냈다. 납골당에 매장된 무기나 방어구는 제법 많았다. 그러나 성능은 망자 자신이 팔던 쓰레기 더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해야 고철 가격이나 받을라나? 그래도 아주 드물게 그럭저럭 쓸 만한 아이템도 나오고 또 이런 검이라도 몇 쿠퍼는 받을 수 있으리라. 아니, 아크는 설사 돈이 안 된다고 해도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못 본척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물끄러미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라카드가 찜찜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인, 그런데 이건 아무리 봐도 말이지..." "말하지 마, 말하면 지는 거야." 라카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고 있었다. 지하 납골당에 침입해서 함정을 해제하며 매장품을 긁어 모은다. 이건 그냥 도굴꾼 아닌가? 북실이가 이런 장면까지 촬영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고작 그 정도 이유로 아이템을 포기할 아크가 아니었다. 또한 그렇게 따지고 들자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고고학자 인디아니 존스 교수도 도굴꾼이다. 뭐... 시야를 폭넓게 갖자는 얘기다. "그래, 어차피 시체가 쓰지도 못하는 물건을 재활용하겠다는 게 뭐가 나빠? 때는 바야흐로 원자재 부족의 시대. 재활용은 인류에 공헌하는 훌륭한 일이야." 정신 무장 하나만큼은 확실한 아크였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소득은 정말 눈물 날 지경이군. 몬스터가 없으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레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건지는 아이템이라고는 고작 고철 더미뿐이라니. 전직 퀘스트만 아니면 이따위 던전은 쳐다보지도 않았을 텐데..." 그러나 급한 마음에 서둘러서는 안 된다. 비록 개뿔도 없는 던전이지만 난이도는 그야말로 극악! 까딱 실수하면 한 방에 먼 길 보내 버리는 악의에 찬 함정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함정을 해제하며 들어 왔지만 이런 종류의 던전은 만약 죽은 뒤에 다시 들어오면 리셋되는 게 보통이다. 만약 다시 처음부터 그 무지막지한 함정을 돌파해야 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도를 보면 여기가 마지막 지역이었던 모양이군." 매장품을 모두 챙겨 넣은 아크는 지도를 펼쳐 보았다. 복잡한 지하 납골당의 지형도 이제 거의 밝혀져 있었다. 지도 제작 스킬로 조사해 보니 지도 완성율은 95%.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은 5%밖에 되지 앟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미 아크는 그 나머지 5%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었다. 사실 아크는 납골당을 100% 탐험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다 할 소득이 없음을 알아채고 목적지까지 최단 루트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몇 번 길을 잘못 들었지만 아크는 완성률 60% 정도 됐을 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얼굴 조각이 새겨진 문! 척 보기에도 그곳이 던전의 최종 목적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있었으니... 그 문이 굳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열라는 거지?" 아크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둥둥 떠서 여기저기 기웃대던 눈알이 문득 맞은편 벽 상단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아크님, 여기 뭔가 적혀 있어요." -이곳의 주인을 만나고 싶다면 용기와 지혜의 증표를 헌상하라. "용기와 지혜의 증표?"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문을 살펴보았다.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어 제대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꼼꼼히 살펴보니 벽에 기이한 얼굴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작은 구멍이 원형으로 파여 있었다. 그 구멍의 크기를 확인한 아크는 곧바로 글귀의 의미를 알아챘다. "그렇군. 용기와 지혜의 증표. 젠장, 결국 던전을 몽땅 돌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몬스터도 나오지 않는 납골당에서 용기와 지혜를 증명할 방법. 그렇다. 도처에 깔려 있는 함정을 통과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함정을 통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유리구슬. 그 구슬이 바로 철문을 여는 열쇠였던 것이다. 게다가 조각 주변에 파여 있는 구멍의 개수는 서른 개. 다시 말해 최소 서른 개의 구슬을 구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아크는 필요한 구슬을 얻기 위해 이 지긋지긋한 납골당을 95%까지 탐험하게 된 것이다. 뭐, 덕분에 정말 인디아나 존스가 울고 갈 정도의 도굴 전문가가 됐지만... "자, 어쨌든 고지가 눈앞이다. 가자!" 간단하게 정비를 끝낸 아크는 일행을 이끌고 철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죽을 고생을 하며 모아 온 유리구슬을 하나하나 박아 넣었다. 쿠쿠쿠쿠...! 역시나 철문이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구슬을 끼워 넣자 좌우로 갈라지며 숨겨진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래쪽을 향해 쭉 뻗어 있는 일자형 통로였다. "드디어 전직 퀘스트도 마지막 단계로군." 아크는 기대감에 들뜬 표정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일자로 이어진 길을 쭉 따라 내려가는데 문득 안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그 자식... 대체 언제까지... 버틸 생각이지?" "어라? 목소리?" 아크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켰다. 통로 끝에 펼쳐진 넓은공간. 그곳에 웬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망자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 페인트를 뒤집어쓴 듯 시꺼맸다. 심지어 눈까지 검은색이라 고양이의 눈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주제에... 이번에야말로 죽여 버리겠어. 그것만 차지하면... 나도 완전한 존재가... 중얼대며 돌아다니던 시꺼먼 놈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와락 고개를 돌렸다. 순간 아크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네, 네놈은 뭐냐?"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놈이 퍼뜩 생각난 듯 소리쳤다. "그렇구나... 네놈들도 그걸 탐내고 있는 건가... 멍청한 놈들...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헛된 욕심을 부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돌연 검은 형체의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손에서는 칼날 같은 손톱이 솟아 나왔다. 놈이 전투태세에 들어가자 눈 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타락한 영혼 카르마가 나타났습니다. 보스 몬스터? 납골당에도 보스가 있는 거냐? 설마 몬스터 한 마리도 없는 이곳에 보스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아크는 허둥지둥 검을 뽑아 달려드는 카르마를 후려쳤다. 솔직히 효과를 기대하지 않았던 어설픈 공격이었다. 그런데 카르마는 그런 공격을 받고도 벌러덩 자빠지더니 생명력이 3%나 빠져나갔다. "뭐야, 이 녀석은? 아크는 어이없는 눈길로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카르마를 바라보았다. 보스 몬스터라고 하기에 엄청나게 강한 줄 알았는데 이게 뭔가? 맞아, 그러고 보니 여기 오는 내내 몬스터가 없어서 이 던전의 난이도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함정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기는 하지만 그건 레벨하고는 상관없는 난이도. 혹시 이 던전의 적정 레벨은 내 예상보다 낮은 건가?" 고양이의 눈으로 카르마의 정보를 확인해 보니 그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아크의 레벨이 높기는 하다. 늪지를 통과하며 좀비를 학살한 덕에 현재 아크의 레벨은 339. 어둠 속성 보너스 50%를 가산하면 무려 508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카르마의 레벨은 450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상대가 보스 몬스터라도 이미 능력치에서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보스 몬스터라고 다 힘들게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레벨 300쯤 되는 유저가 적정 레벨 450정도 되는 던전 보스와 싸우면서 고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뉴 월드의 보스는 제각각 특수한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 단순히 레벨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아무래도 방어력과 공격력이 월등하면 그만큼 쉬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뭐지? 이 찜찜함은?" 지금까지 보스와 편하게 싸워 본 적이 없는 아크는 오히려 찜찜했다. 게다가 보스가 약하다면 보스전의 가장 큰 메리트, 전리품도 그만큼 별로라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아크는 이내 찜찜한 기분을 털어버렸다. 어차피 전리품을 바라고 이 던전에 들어온 게 아니다. 아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전직 퀘스트! "얼른 처리하고 전직 퀘스트 단서나 찾아보자!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거침없이 카르마에게 달려들어 검을 찔렀다. 그러자 카르마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저었다. "히익, 시간 가속!" 귀살검의 내구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집니다. 내구력 -10 귀살검의 내구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집니다. 내구력 -10 귀살검의 내구력이 빠른 속도로 떨어집니다. 내구력 -10 카르마의 손에서 뭔가 수상한 기체가 뿜어져 올라왔다. 순간 메시지창이 정신없이 올라가며 귀살검의 내구력이 빨려 나가는 게 아닌가? 헉, 이, 이게 뭐야? 아크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귀살검의 정보창을 살펴보니 200으로 맞춰놨던 내력이 80밖에 남지 않았다. 아크는 이어지는 카르마의 공격을 피하며 마법 복원을 난사해 겨우 귀살검의 내구력을 복구시켰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검은 놈에게 닿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짓을?" 아크는 스킬 간파를 발동시켰다. 일단 카르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보는 게 우선이었다. 카르마의 특수 스킬: 시간의 조율사 정신체에 가까운 성질을 가진 카르마는 시간을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공간의 시간을 1초에 몇 십 년이 지나게 하거나 과거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단 이 기술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는 통하지 않습니다. 시간 가속: 일정 공간의 시간 흐름을 빠르게 합니다. 최대 속도로 가속할 경우 범위 안의 모든 오브젝트에 적용되는 시간이 수백 배로 빨라지며 시간에 따라 오브젝트(검, 방어구 등)는 해당 시간만큼 내구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시간 되감기: 일정 공간의 시간 흐름을 과거로 되돌립니다. 최대 속도로 되돌릴 경우 범위 안의 모든 오브젝트는 이전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단 이 스킬이 적용되는 시간 범위는 해당 오브젝트가 만들어진 시점을 기준으로 합니다(장비품에 적용시킬 경우 처음 만들어진 상태가 한계. 광석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뭐야, 시간의 조율사? 시간의 흐름을 조종하는 기술이 있단 말인가?" 뭐 생명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니 아크가 시간 되감기 스킬에 맞아도 레벨이 떨어질 일은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버렸다. 말할 필요 없이 뉴월드의 장비품에는 현실의 물리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검의 경우 사용하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내구력이 약간씩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한 달에 1 정도 떨어질 뿐이고 수리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그러나 만약 내구력이 얼마 남지 않은 장비품을 놔두고 몇 년 정도 접속을 안 하면 다 망가져 버리리라. 카르마의 스킬이 그런 것이었다. 검이 닿아 있는 공간의 시간을 수백 배로 가속시킨다. 결국 아크가 검을 몇 년이나 방치시키는 듯한 효과가 적용된다는 뜻이다. 내구력이 엄청난 속도로 깎여 나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천만 원짜리 검이 박살날 뻔한 것이다. 검만이 아니다. 몸에 맞으면 그 효과가 갑옷에 적용된다는 말이 아닌가? 이, 이런 놈과 싸워야 한단 말야? 차라리 한 방에 생명력이 천씩 깎이는 편이 낫다. 죽으면 부활해서 깎인 스탯을 벌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내구력이 0이 돼서 박살 난 아이템은 무슨 짓을 해도 되찾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입고 있는 장비품은 70% 이상이 레어, 최소 수백 만 원에서 천여 만 원까지 하는 고가품이었다. 만약 하나라도 박살 난다면 아크는 게거품을 물고 앓아 누워야 할지도 모른다. '접근전은 위험하다. 소환수들도 장비품을 착용하고 있으니 위험해.' "모두 후퇴, 라자크, 라카드 물러나!" 기겁한 아크는 전력질주를 사용해 물러났다. "크흐흐흐, 처음의 기세는 어디 간 거냐... 겁쟁이 자식!" 아크가 물러나자 카르마가 빈정거리며 도발해 왔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 도발에 욱해서 몇백, 몇천만 원을 두고 도박을 할 만큼 간이 크지 않았다. '놈이 도발하는 걸 보니 시간의 조율사가 장거리 마법은 아닌 모양이군.' 아크는 쫓아오는 카르마를 따돌리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카르마가 마법을 걸 수 있는 공간은 주변의 몇 미터 반경. 일단 접근만 하지 않으면 갑자기 장비품이 깨질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일단 마법사에 가까워 처음 아크가 어이없어 했을 정도로 카르마의 방어력과 생명력은 굉장히 낮았다. 거리를 유지하면서 강력한 데미지를 주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지도 몰라. "라둔, 좋은 검! 블레이드 스톰!" 아크는 출혈을 각오하고 쓸 만한 검을 받아 폭발시켰다. 강렬한 섬광과 함께 무수한 파편으로 쪼개진 검이 뒤따라 오던 카르마를 덮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간 되감기!" 카르마가 시간 마법을 발동시키자 산산이 부서졌던 검이 다시 결합되더니 맥없이 바닥에 툭 떨어진 것이다. 시간을 되감아 검을 폭발하기 이전 상태로 돌려보낸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방어법. 화살을 쏴도 마찬가지였다. 카르마가 시간을 되돌리자 화살은 가속을 잃고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카르마가 광소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크하하! 탐욕스러운 놈. 벌거숭이로 만들어 주마. 시간 가속! 젠장,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싸울 방법이 없잖아! 아크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 다니며 이를 갈아붙였다. 물론 정면으로 붙으면 몇 분 만에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근접전을 펼치면 모든 장비품에 시간 가속이 적용될 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법 복원을 난사하면서 싸워도 장비품 한두 개는 박살 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건 절대 안 돼! 내가 어떻게 구한 장비품인데...'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그것만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놈의 스킬을 봉쇄할 방법이 없을까?" 잠시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카르마의 기술은 시간 가속과 시간 되감기다. 즉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마법! 만약 시간 가속이 적용된 지역에 시간 되감기를 사용한다면 중화되지 않을까? "그래, 그거야! 그 방법밖에 없어." "라카드, 벗어!" "에엑?"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라카드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주, 주인, 언제부터 그런 취미가... 내가 미소년이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너도 레어 장비품 입고 있잖아. 박살 나면 안 되니까 벗으라고." "아, 그런 거였어? 그런데 왜? 헉, 설마 또 나 혼자 저놈하고 싸우라고?" "걱정 마, 그런 기대은 하지 않으니까." "아크가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라카드가 혼자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적이었다면 이미 아크가 장비품 다 벗어 놓고 맨주먹으로 쓰러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허접스러워도 명색이 보스. 카르마가 약하다고는 해도 장비품도 없이 싸워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아크가 라카드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흡혈. 카르마의 스킬을 중화시키기 위해 상반되는 스킬을 흡수하는 것이다. "알았지? 내가 놈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스킬을 빠는 거야. 명심해. 내가 원하는 스킬은 놈의 시간 가속이다. 슬롯 두 개에 시간 가속을 꽉꽉 채우는 거야." 아크가 시간 가속을 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카르마는 아직 라카드가 스킬을 흡수한다는 것을 모른다. 아마도 그 사실을 안다면 쉽게 피를 빨리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제대로 흡혈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 두 개의 스킬만으로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진 스킬 가운데 놈에게 최대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은 블레이드 스톰이다. 게다가 블레이드 스톰은 사용하는 검에 따라 공격력이 달라지는 스킬. 아까 반격으로 생명력이 3%나 빠졌을 정도니까 마법검을 사용한 블레이드 스톰을 제대로 맞는다면 두 방 만에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만약 버틴다고 해도 빈사 상태이리라. 그리고 생명력이 10% 이하라면 마법 복원을 난사하며 근접전을 벌여 장비품이 박살 나기 전에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마법검이 좀 아깝기는 하지만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리고 아까부터 놈은 날아가는 공격은 시간 되감기로 막고 있다. 시간 가속을 사용해도 날아오는 공격이 그 공간을 통과하는 시간은 불과 영 점 몇 초. 데미지를 입기 전에 내구력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 때문에 아크는 시간 되감기의 반대 속성인 시간 가속을 주문한 것이다. "알았어. 마음대로 빨려 줄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게." 일단 전투 지역을 벗어나 턱시도를 벗은 라카드가 살금살금 카르마에게 접근했다. 그 사이 아크는 화살을 쏘아 대며 카르마의 시선을 끌었다. "이쪽이다. 망할 괴물아!" "이따위 공격은 소용없다! 앗, 따거!" 카르마가 움찔하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발목을 깨물고 쭉쭉 빨아 대던 라카드가 재빨리 도망치며 투덜거렸다. "젠장, 맛 더럽군. 이건 피도 아니고... 무슨 썩은 국물 같은 게..." 라카드가 카르마에게 흡혈을 사용했습니다. 흡혈 슬롯에 새로운 스킬이 저장되었습니다. 현재 흡수한 스킬: 시간 가속 일정 공간의 시간을 가속시킵니다. '좋아, 하나는 됐어!' 라카드는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스킬 하나를 챙겼다. "뭐냐, 이 모기 같은 놈은...!" 카르마가 버럭 화를 내며 라카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라카드는 정말 모기처럼 날렵하게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뒤에서 아크가 화살을 날려 대자 카르마는 다시 아크에게 돌아섰다. 카르마는 아직 라카드가 스킬을 빨아 먹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다. 게다가 라카드에게 물린다고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 신경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금이다 라카드! 시간 가속이야!" "오케이!" 아크의 명령에 라카드가 모기처럼 카르마의 목에 달라붙어 쭉쭉 빨아 댔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던 라카드는 또다시 스킬 하나를 흡수했다. 그러나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와 라카드는 동시에 한숨을 불어 냈다. 힘들게 빨아 낸 스킬은 원하던 시간 가속이 아니라 시간 되감기였던 것이다. 젠장, 취소시키고 다시 빨아! 아, 알았어. 어? 근데 주인.. 소, 속이 좀 이상해. 다시 카르마에게 날아가던 라카드가 갑자기 오만상을 찌푸리며 비실댔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주인, 배, 배 아파! 역시 못 먹을 거였나 봐! 라, 라카드, 정신 차려! 라자크, 라카드를 보호해라! 따닥, 딱딱딱! 아크의 명령에 뒤로 물러나 있던 라자크가 뛰어나가 라카드를 들고 도망쳤다. 그때 돌연 비명 소리 같은 효과음이 들리더니 아크의 정보창이 올라왔다. 소화수 라카드가 새로운 능력에 각성했습니다. 카라클을 물리치고 백작으로 지위가 올라간 라카드는 배파이어의 능력을 더욱 빠르게 각성해 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두 개로 늘어난 슬롯에 같은 성질의 스킬을 담아 라카드는 뱀파이어의 새로운 능력, 스킬 합성을 익혔습니다. 스킬 합성은 몇몇 특정한 스킬을 담으면 체내에서 융화시켜 하나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합성된 스킬은 두 가지 스킬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거나 한 단계 높은 능력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스킬 합성: 저장된 두 가지 스킬을 하나로 합성합니다. 현재 체내에서 합성된 스킬: 절대 시간. 주변의 모든 시간 마법의 효과를 10분간 무효화시키는 절대 시간이 등록됐습니다. '스킬 합성?'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가 입을 쩍 벌렸다. 말하자면 고기와 양념을 따로 먹었는데 배 속에서 섞여 양념 갈비가 됐다는 게 아닌가? 시간 가속과 시간 되감기의 효과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스킬은 절대 시간! 두 가지 효과가 짬뽕되어 아예 시간 마법 자체를 소멸시키는 스킬이었다. 만약 시간 가속만 두 번 빨았다면 각성하지 못했을 뱀파이어의 능력! 절대 시간으로 시간 마법을 소멸시킬 수 있다면 이제 카르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 잘했다! 이제 됐어, 이 예쁜 녀석 같으니!" "우욱,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안 좋아. 빨리 써 줘, 우욱!" 갓 능력을 각성한 라카드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지 헛구역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래, 곧바로..." 아크가 곧바로 반격을 준비하다가 멈칫했다. 이제 언제든지 카르마를 해치울 수 있다. 그런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방금 전 도망칠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가만? 놈은 날아오는 공격은 모두 시간 되감기로 막아 낸다. 그리고 시간 되감기는 한순간에 수백 년의 시간을 되돌리는 시간 마법. 그렇다면 혹시?' "라둔, 낡은 검!" 쌕쌕쌕! 아크는 라둔이 뱉어 낸 검을 받아 들자마자 달려드는 카르마를 향해 집어 던졌다. 흥, 어림없다. 시간 되감기! 그걸 공격이라고 판단한 카르마가 시간을 되돌려 버렸다. 역시나 검은 속도 에너지를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검 상태가 이전과는 달랐다. 낡은 검은 납골당에서 주운 문자 그대로 낡은 검. 그러나 한 번 시간 되감기를 얻어맞자 낡은 흔적은 사라지고 번쩍번쩍 광이 아는 게 아닌가? 예상대로다! 아크는 재빨리 검을 회수하고 정보창을 살펴보았다. 고대의 검 무기 타입: 한 손 검 공격력: 20~22 내구력: 200/200 무게: 45 사용제한: 레벨 250 지하 납골당에 매장된 고대 전사들이 사용하던 검. 일반 보병의 기본장비로 가볍고 튼튼하게 제작된 검입니다. 일체의 장식을 없앤 실전용 검이라 다루기가 쉽고 평균적인 공격력이 나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종류의 검은 기본적으로 민첩성을 향상시켜 줍니다. 옵션: 민첩+5 아크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시간을 되돌려도 그 물건이 만들어지기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고 했으니 멀쩡한 검은 수백 년 전으로 돌려 봐야 멀쩡한 검이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땅속에 묻혀 못 쓰게 된 검의 시간을 돌려 놓는다면 처음 만들어졌을 때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닌가! 납골당에서 얻은 매장품을 제대로 된 장비품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챙겨 둔 매장품은 거의 30개. '그걸 다 쓸 만한 아이템으로 바꾸면... 이건 대박이야!' 그러나 아크는 속내를 감추고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크윽, 또 실패인가?" "크하하하, 멍청한 놈. 몇 번을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기는 아직도 많아. 너도 다 막지는 못할 거다. 받아랏!" "멍청한 놈, 소용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시간 되돌리기! 시간 되돌리기!" 알고 보니 카르마는 자연보호에 앞장서는 착한 녀석이었다. 폐품으로도 쓰지 못할 매장품을 모두 새것처럼 바꿔 주지 않는가? 아크의 유일한 걱정은 카르마가 눈치채고 반대로 시간 가속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멀쩡한 장비품이라면 모를까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매장품에 시간 가속이 걸리면 먼지로 변해 버리리라. 그러나 아크의 연기에 속아 넘어간 카르마는 폐품 던지기를 공격이라고 믿고 안전하게 시간 되감기로 속도 에너지를 없애는 방어법을 고집했다. '우하하하, 돈을 쓸어 담는구나!' 아크는 더욱 신바람이 나서 정신없이 폐품을 집어 던졌다. "받아랏, 받아랏, 어라? 이게 단가?" "헉헉헉, 이제야... 다 떨어진 모양이군. 헉헉." 아크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자 카르마가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네, 다 떨어졌어. 아쉽지만." "크흐흐흐! 헉헉헉, 그럼 이제 네놈 차례다. 헉헉헉, 네놈이 입고 있는 것들을... 헉헉헉, 몽땅 먼지로 만들어 주마... 헉헉헉, 받아랏, 시간 가속!" 카르마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크가 빙긋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라카드." "오오오, 기다리고 있었어. 우에엑! 절대 시간!" 속이 울렁거리던 라카드가 오바이트를 하듯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동시에 시간 마법을 일으키던 카르마의 손에서 굉음이 일어나며 모든 효과가 소멸해 버렸다. "헉, 뭐, 뭐야... 어, 어째서?" 카르마가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아크의 갑옷에 몇 번이나 손을 가져다댔지만 갑옷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제야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카르마가 아크를 바라보며 떠듬거렸다. "자, 잠깐만 기다려....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좀 지쳐서 컨디션이..." "아, 그러셔?" 아크는 정말 해맑기 짝이 없는 얼굴로 방실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아크의 검에서 연속적인 다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역시나 시간 마법이 없는 카르마는 허접스럽기 짝이 없었다. 라자크와 라카드까지 가세하자 카르마는 불과 2분 만에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커헉... 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는 안 돼!" 생명력이 5%도 남지 않은 카르마가 비틀비틀 물러나며 소리쳤다. 순간 카르마의 몸에 기이한 검은 기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는 빈사 상태에 빠지면 필살기를 발동시킨다. 카르마에게도 시간 마법 이외의 필살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뒤늦게 그 부분에 생각이 미친 아크가 도약을 사용해 달려들었다. "어림없다, 다크 블레이드!" 콰아아아, 콰아아아! 그때였다. 카르마의 몸이 쩍쩍 갈라지더니 마치 연기처럼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젠장, 스킬이 완성된 건가?" 아크가 당혹성을 터트리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뒤이어 의외의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뭐야? 카르마의 스킬이 완성된 게 아니었나? 공격에 맞는 느낌이 없었는데... 어쨌든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은 카르마가 쓰러졌다는 뜻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 카르마가 쓰러졌다면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카르마를 쓰러뜨리자 레벨이 5나 올라갔다. 게다가 무려 30개나 되는 폐품을 멀쩡한 아이템으로 바꾸었다. "후후후, 끝까지 괴사한 녀석이었지만 이 정도면 짭짤한데?" 아크는 히죽거리며 바닥에 널린 아이템을 몽땅 챙기고 카르마가 떨군 아이템을 살펴보았다. ACT 9.[업, 업 2차 전직!] 몽환의 모래시계(특수) 타락한 영혼 카르마가 시간을 다루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아티펙트가 마력의 근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래시계는 기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아티펙트로, 이 안에 담긴 몽환의 모래는 시간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전해집니다. 몽환의 모래시계를 사용하면 시간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일정 공간을 과거로, 혹은 미래로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단, 그 효과는 생명체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용횟수: 5 "이게 뭐야?" 아크는 심드렁한 눈길로 모래시계를 바라보았다. 모처럼의 보스 몬스터. 당연히 장비품을 바랐지만 막상 떨어진 건 소모품이었다. 몽환의 모래시계. 시간을 조종하는 힘을 가진 아티펙트란다. 물론 처음에는 그 능력 때문에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카르마와 싸우면서 확인했듯이 허점도 많은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크의 상대는 몬스터. 모래시계를 사용해 몬스터의 갑옷이나 무기를 망가뜨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번처럼 폐품을 재활용할 때나 써먹을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용 횟수도 다섯 번밖에 되지 않잖아." 폐품 다섯 개를 수리할 수 있는 게 보스 몬스터를 해치운 보상이라니. 아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어째 좀 허접스러운 보스다 싶더니..." 보상도 허접스럽기 짝이 없다. "뭐, 그래도 독특한 능력을 가진 아티펙트니까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지도 몰라. 엄청 강한 보스를 만났을 때 무기나 갑옷을 부술 수도 있고. 그래, 써 보지도 않고 실망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이곳에 들어온 건 전리품 때문이 아니잖아." 아크는 몽환의 모래시계를 챙겨 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납골당을 다 돌아다니고 보스까지 쓰러뜨렸다. 남은 건 전직 퀘스트의 단서를 찾는 것 뿐. 그때 보스전을 벌일 때는 보이지도 않던 북실이의 눈알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크님, 저쪽에 길이 이어져 있어요." 시선을 돌려 보니 처음 카르마를 확인했던 장소 뒤쪽으로 작은 통로가 보였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는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약 50미터 정도 들어갔을 때였다. 웬 스켈레톤이 통로를 막고 있는 게 아닌가? 보스를 처치했는데 아직 적이 남아 있는 건가? 스켈레톤을 발견한 아크는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스켈레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이거 그냥 조각상인데요?" 슬금슬금 날아가 살펴보던 눈알이 중얼거렸다. 눈알의 말대로 스켈레톤은 조각상이었다. 표면에 수많은 상처가 가득한 동상은 양다리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방패를 앞으로 세운 자세였다. 마치 밖에서 들어오는 자를 막듯이... 아니 실제로 스켈레톤 동상은 통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이어진 길이 보이지만 동상 때문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뭐지, 이건? 어쩌라는 거야?" 밀어도 당겨도 동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금속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검으로 두들겨 보자 깡깡 하는 쇳소리가 울려 나왔다. "이런 곳에 왜 동상이 있는 거지? 혹시 이게 전직 퀘스트의 단서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곳에 동상이 있을 리가 없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크는 동상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나 표면에 수많은 상처 자국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이 동상이 전직 퀘스트의 단서인가? 아니면 동상이 막고 있는 저 안쪽에 있는 건가? 동상 때문에 안으로 진입할 수 없으니 알 수가 있나. 아, 그렇지. 북실이, 네가 안에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확인해 봐라." 동상이 좁은 통로를 막고 있어서 박쥐로 변한 라카드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따. 그러나 눈알 하나쯤은 통과할 만한 공간이 있는 것이다. 아크의 명령에 눈알이 용맹하게 빈틈을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동상의 눈두덩에서 붉은 불길이 확 번져 나오더니 눈알과 아크를 공격했다. "헉, 뭐, 뭐야? 이 녀석... 살아 있는 거였어?"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아크는 치명타를 맞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동시에 동상의 표면에서 쇳가루 같은 것들이 부스스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완전한 형태의 스켈레톤이었다. 뼈다귀만으로 이루어진 몸임에도 다른 언데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포스를 뿜어내는 스켈레톤. 스켈레톤은 붉은 안광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아크를 노려보다가 와락 달려들었다. 딱딱, 딱딱딱! 라자크가 재빨리 방패를 들고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가각, 쇠와 쇠가 마주치며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스켈레톤이 한 걸음 내디디며 다시 한 번 후려치자 충격파가 터지며 라자크는 방패를 든 상태로 튕겨져 날아갔다. "라자크! 젠장, 라카드, 놈의 시선을 분산시켜라!" "아, 알았어. 이쪽이다. 멍청한 뼈다귀야!" 라카드가 스켈레톤의 주위를 돌며 소리쳤다. 그러자 라자크에게 달려들던 스켈레톤이 움찔하며 멈춰섰다. 그리고 멍하니 라자크와 라카드를 번갈아 보더니 뒤이어 달려드는 아크를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딱딱, 딱딱딱? 딱딱딱! "엥? 뭐야, 주인, 자, 잠깐 기다려!" 갸웃거리던 라카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뭐야? 정신없어 죽겠는데." 이 녀석이 지금 주인보고 구도자냐고 묻고 있어. 그렇다면 자신은 적이 아니래. 자기는 마반 영웅의 소환수였다고 말하고 있어. "뭐, 뭐라고?" 마반 영웅의 소환수 스켈레톤에게 달려가던 아크가 급브레이크를 걸며 당황을 터트렸다. 딱딱딱, 딱딱딱! :선배를 몰라보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딱딱딱딱! 딱딱? 딱딱, 따다다닥! :핫핫핫, 무례라니? 소환수가 주인을 위해 싸우는 것은 명예로운 일, 사과할 필요 없다. 라카드가 심드렁한 눈으로 두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통역을 해 주었다. 뭐 외국어에 능통한 라카드 덕분에 내용을 아니까 그나마 낫지만 스켈레톤 두 마리가 이를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그 스켈레톤을 바라보며 전직 퀘스트의 마지막 단서를 떠올렸다. -진정한 어둠 속에서 세월을 잊은 자가 그대를 반길 것이다. 진정한 어둠이란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지하 납골당. 세월을 잊은 자는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아크 앞에 나타난 마반 영웅의 소환수인 것이다. 이로써 전직 퀘스트의 단서가 모두 풀렸다. 남은 건 전직 뿐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저 스켈레톤이 전직 퀘스트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말이겠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라자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스켈레톤이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딱딱딱? 딱딱딱? "그런데 혹시 자기를 만나기 전에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냐고 묻는데?" "만나? 혹시 카르마를 말하는 건가?" "맞대, 카르마. 그 녀석을 어떻게 했냐고 묻는데?" "그 녀석이라면 해치웠는데... 어, 뭐야? 해치우면 안 되는 거였어?" 아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묻자 스켈레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 않은 듯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털어 버리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마반 영웅의 후예라면 자격을 증명할 물건을 보여 달라고 하고 있어." "이거 말인가?" 아크는 가방에서 삼신기가 결합해 만들어진 원판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스켈레톤은 한동안 아련한 추억에 잠긴 눈으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무거운 분위기로 이를 마주치는 소리를 라카드가 통역해 주었다. "따라오래. 마반 영웅의 주인을 이곳으로 불러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겠대." 스켈레톤은 자신이 막고 있던 통로로 아크를 안내했다. 스켈레톤을 따라 얼마나 들어갔을까? 그곳에서 다시 대략 50미터 가량 들어가자 작은 거실만 한 크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구석에는 너무나 오래되어 손만 대도 먼지로 변해 버릴 듯한 식재료들이 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샘물이 솟아나는 작은 우물도 있었다. 언데드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 같은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방의 중심, 누군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살다가 죽은 사람인 듯 그는 앉은 자세 그대로 미라처럼 변해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살다가 죽은 걸까? 게다가 마치 수도승처럼 가부좌를 튼 상태로 죽어 있다니?' 아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자 스켈레톤이 천천히 미라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라카드가 비명을 터트렸다. "에헥! 주, 주인! 뭐야? 뭔데? 뭐라고 했는데?" "이 미라가... 마반 영웅이래." "뭐? 마, 마반 영웅? 이 미라가?"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미라를 바라보았다. 게임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 왔던 이름, 마반 영웅. 7인의 영웅 중 하나이자 아크의 직업 다크워커의 시조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수인족도, 심지어 그의 연인이었던 아드리안조차 그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변경의 지하 납골당에서 미라가 되어 있었다니... '대체 어째서? 설마 마반 영웅쯤 되는 사람이 갇혀서 죽었을 리는 없고...' 딱딱딱, 딱딱딱! :물론 이건 마반 영웅의 의지였대. 라카드가 통역하자 스켈레톤은 한숨을 불어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크에게도 앉으라는 듯 앞자리를 탁탁 쳤다. 딱딱딱, 딱딱딱 :나는 앙그라돈. 진정한 영웅을 수호하는 명예로운 언데드다. 라카드가 아크의 어깨에 앉아 앙그라돈의 말을 동시통역해 주었다. 앙그라돈은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납골당 위에 있는 도시를 둘러봤는가? "그야 뭐... 전직 퀘스트의 단서를 찾아야 했으니까." :그러면 설명하기가 쉽지. 마반 영웅이 이곳에서 임종을 맞아야만 했던 이유, 그리고 구도자를 이곳으로 불러야 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다. "이 위에 있는 도시가?"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앙그라돈이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뒤이은 앙그라돈의 설명은 놀라웠따. 본래 죽은 자들의 도시의 정식 명칭은 오벨리움. 암흑 세기 이전, 고대의 스탄달을 다스리던 용맹한 전사의 왕국이었다고 한다. 대륙과 교류하던 것도 오벨리움이었고 당시 나크족이나 바란족은 변경에서 풀뿌리나 뜯어 먹던 한낱 야만인에 불과했다. 바란족의 역사에 대륙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었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암흑 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왕국으로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것도 오벨리움이었다. 어둠의 세력에 침략당해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대륙에 비해 따로 떨어져 있던 오벨리움은 큰 피해를 받지 않았던 덕분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그것이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둠의 제왕의 무서운 힘의 일부다.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앙그라돈이 방 안을 뒤적여 메모리 크리스털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아크가 메모리 크리스털을 받아 들자 곧 눈앞에 파노라마 같은 영상이 펼쳐졌다. "여기는...?" 눈앞에 나타난 풍경이 낯익었다. 그렇다. 왕성에서 내려다봤던 죽은 자들의 도시, 오벨리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오벨리움이 폐허가 되기 전의 모습이었다. 오벨리움은 슈덴베르크의 왕도, 셀리브리드만큼이나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였다. 그리고 광장에는 번쩍이는 갑옷과 검, 창으로 무장한 수천에 달하는 오벨리움의 전사들이 모여 있었다. 때는 암흑 세기 말기. 아마도 7인의 영웅을 도와 어둠의 제왕과 싸우기 위해 모인 전사들이리라. 그들은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출정했다. 그리고 대륙으로 넘어가기 직전, 문득 그들의 머리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 올린 전사들의 얼굴에 당혹감과 두려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크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번졌다. "저, 저건 뤼겐베르크!" 그렇다. 하늘을 가르며 전사들의 머리 위로 나타난 것은 거대한 하늘 가오리! 얼마 전에 붉은 남자가 탈취해 사라진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였다. 전사들은 마법과 화살, 대형 마법 병기를 동원해서 뤼겐베르크와 전투를 벌였다. 그때 돌연 뤼겐베르크의 입이 커다랗게 열리더니 검은 기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검은 기류에 휩싸인 전사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그리고... 전사들의 몸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망자? 저 모습은 망자잖아? 그럼 스탄달에 돌아다니던 망자들이..!" :그렇다. 망자의 정체는 과거 스탄달을 지배하던 오벨리움의 주민들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영상을 재생하던 크리스털이 잘게 부서졌다. 현재 마법 영사기에 사용하는 크리스털과 달리 고대의 크리스털은 한 번 재생하면 부서져 버리는 것이다. 크리스털이 부서지자 앙그라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본 것이 바로 어둠의 제왕이 암흑 세기 말기에 완성하려고 했던 궁극의 저주 마법. 어둠의 제왕은 당시 가장 위협적인 세력이었던 오벨리움을 대상으로 그 마법의 실험을 했던 것이지. 만약 이 저주 마법이 완성됐다면 궁극 파괴 마법을 쓰기도 전에 세상은 멸망했을 것이다. 아크는 이전에 들었던 월랑족 장로의 말을 떠올렸다. 암흑 세기 말기, 어둠의 제왕은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뤼겐베르크를 스탄달로 보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아크는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작 문명이 떨어지는 나크족이나 바란족을 상대하기 위해 7인의 영웅이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에 가장 강력한 병기를 보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털의 내용을 확인하자 이해되었다. 어둠의 제왕이 뤼겐베르크로 견제하려던 것은 오벨리움의 지원군이었다. 그 결과 스탄달을 지배하던 오벨리움은 완전히 파괴되고 그곳의 주민들은 모두 망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망자들이 일반 언데드와 달랐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오벨리움의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뤼겐베르크가 어둠의 제왕과 떨어진 덕분에 7인의 영웅은 목적을 이룰 수 있었지. 그러나 그것은 암흑 세기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7인의 영웅은... 아니 적어도 마반 영웅은 알고 있었지. 앙그라돈이 우울한 눈빛으로 마반 영웅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을 때 마반 영웅은 훗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언젠가 어둠의 제왕이 부활할 그때를. 그리고 만약 다시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다면 세상에 가장 위협이 될 것은 바로 궁극 저주 마법. 어둠의 제왕이 그 마법을 완성한 것은 암흑 세기 말기, 단 한 번 사용한 것도 스탄달에서였다. 직접 겪어 보지 못한 대륙인은 그 마법의 무서움을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마반 영웅은 다시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면 그 마법이 세상에 가장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영웅들이 되찾은 대륙을 나눠 가지며 즐거워하고 있을 때 마반 영웅은 홀로 차원의 문을 찾아 이곳을 찾아왔다. 그리고 어둠의 세력과 싸우며 얻은 지식을 동원해 저주 마법에 대해 연구했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오벨리움과 후세를 위해서... 그러나 마반 영웅은 끝내 그 마법의 비밀을 풀지 못했다. 결국 마반 영웅은 마지막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패러독스 왈:힘드네.) 앙그라돈이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마반 영웅을 바라보았다. 스켈레톤... 뼈밖에 남지 않은 앙그라돈의 눈에서 흐를 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저주 마법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 그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는 방법이었다. 앙그라돈의 말을 듣는 순간 아크는 모든 의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 마반 영웅이 임종을 앞두고 나서야 깨달은 방법,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저주 마법을 받아들여 그 힘의 비밀을 푸는 것이었다. 구도자인 아크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신이 목숨을 바쳐 풀고 있는 저주 마법의 비밀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아마도 훗날을 약속했던 인어 여왕 아드리안을 찾아가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아크가 그런 생각을 떠올려서일까? 가슴 어름에서 아드리안의 목걸이가 가늘게 떨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아크는 목걸이를 움켜 쥐고 미라가 되어 버린 마반 영웅의 유해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뭐야? 대체 왜 그렇게까지?" 수백 년 뒤,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세상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다니? 그것도 기다리는 애인과 7인의 영웅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물리치고?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못 할 일이다. 솔직히 아크는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진실된 마음만큼은 절절할 정도로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마반 영웅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수백 년 동안 그의 옆을 지킨 앙그라돈의 충성심도. "흑흑, 영웅이예요. 이 사람이야말로 영웅이예요. 저는 지금 맹렬히 감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영웅의 후예가 하필이면..." 눈알이 눈물을 뚝뚝 떨구며 아크를 힐끔거렸다. 확실히 미래를 꿰뚫어 보던 마반 영웅조차 이런 후예가 찾아올 줄은 몰랐으리라. 그러나 아크가 어떤 인간인지 알 리 없는 앙그라돈은 격앙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마반 영웅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를 내 눈으로 확인하는 이 순간을. 그의 예언대로 구도자가 찾아왔고, 나는 그대가 마반 영웅이 못다 이룬 유지를 이어 저주 마법을 이길 힘의 비밀을 풀어 줄 거라고 믿는다. 앙그라돈이 벌떡 일어나 마반 영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슬픈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미라처럼 변한 마반 영웅의 유해가 먼지처럼 부서지며 두 개의 보옥이 떨어졌다. 하나는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듯한 빛나는 보옥이었고, 다른 하나는 시커먼 기운을 질질 흘려 대는 기분 나쁜 보옥이었다. 앙그라돈은 먼저 빛나는 보옥을 아크에게 내밀었다. :저주 마법을 체내에 받아들였던 것은 어둠의 힘을 가진 마반 영웅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연구하던 저주 마법의 지식을 얻으려면 그가 남긴 경험과 힘의 일부를 전수받아야 한다. 구도자여, 그의 유산을 받아라. 그의 일부였던 삼신기가 그대에게 마반 영웅의 힘을 전해 줄 것이다. '드, 드디어 전직이다!' 아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보옥을 받아들였다.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설명을 많이 들었지만 부활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어둠의 제왕보다 아크에게 중요한 건 전직이었다. 아크가 떨리는 손으로 보옥을 꽂아 넣자 돌연 삼신기 원판에서 엄청난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마반 영웅의 소울스톤이 삼신기와 결합했씁니다. 당신은 다크워커로서 구도자의 첫발을 들여놓고, 마반 영웅의 발자취를 쫓아 드디어 삼신기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 여정은 결코 물질적인 삼신기를 얻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수백 년 전의 마반 영웅이 깨달았던 것처럼 별과 달과 어둠... 고독만이 존재하는 어둠이 아닌, 어둡기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별과 달이 존재하는 진정한 밤의 의미를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습니다. 당신은 실감할 수 없겠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당신의 가슴속에 깊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어둠을 사랑하던 마반 영웅의 지식의 일부가 담긴 소울스톤을 얻어 다크워커의 상위 직업인 다크소울로 전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전직! 전직!" 동시에 원판에서 뿜어진 빛이 아크의 몸에 흡수되었다.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 인간 성향: 선+450 명성: 11,725(+500) 레벨: 344 직업: 다크소울 칭호: 캣 나이트, 세계수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5,405(+150)<+1,000> 마나: 5,445<+1,000> 영력: 200<+200> 힘 672(+28)<+40> 민첩 832(+55)<+50> 체력 1,032(+20)<+40> 지혜 118(+10)<+40> 지능 1,061<+50> 운 112(+60)<+4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153 유연성: 146 화술: 66 애정: 67(+10) 탄력도: 428 추가된 직업 효과 직업 제한이 풀려 직업 전용 스킬이 상위 스킬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상위 직업의 특수 스킬 영역 선포: 영광의 밤을 습득했습니다. 직업 제한이 풀려 최상위 스킬 신격 스킬을 익힐 수 있게 됐습니다. 습득한 직업 전용 스킬이 상위 스킬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업그레이드된 스킬은 이전 스킬의 등급과 숙련도를 전승합니다.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블레이드의 상위 버전 기본적으로 다크 블레이드의 효과를 그대로 계승합니다. 단 다크 스트라이크는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검에 어둠의 힘을 축적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등급에 따라 두 번에서 최대 다섯 번까지 축적된 힘을 일시에 개방해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차지된 횟수*50%의 공격력이 추가됩니다. 마나소모: 200 블레이드 템페스트: 블레이드 스톰의 상위 버전 기본적으로는 블레이드 스톰의 효과를 그대로 계승합니다. 단 블레이드 템페스트는 사용하는 검에 옵션이 있는 마법검일 경우 그 마법 효과까지 개방시켜 적에게 더욱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거나 아군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폭발하는 검의 특수 효과를 개방합니다. 마나소모: 800 다크 스케일: 다크 댄싱의 상위 버전 다크 댄싱의 완성도를 70% 이상 달성하면 자동으로 발동하는 스킬입니다. 육체를 완전히 어둠에 동화시켜 어둠의 갑옷을 두른 효과를 발휘합니다. 어둠의 갑옷은 회피율이 20% 떨어지지만 방어력을 30% 증가시키고, 10% 확률로 적의 공격을 반사시킵니다. 또한 어둠 속성 마법과 데미지가 100 이하일 경우 무효화시킵니다. 다크 스케일을 소환해 방어력을 올립니다. 마나소모: 500 문 라이트 일루젼: 문 라이트 섀도우의 상위 버전 문 라이트 섀도우로 만들어지는 분신의 생명력이 시전자 최대 생명력의 30%에서 40%로 상승합니다. 또한 분신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려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등급에 따라 분시의 숫자와 선택할 수 있는 명령의 종류가 많아집니다. 현재 분신 숫자 3, 명령 숫자 3. 다 덤벼: 생명력이 사라질 때까지 적과 싸우는 동작을 취합니다. 적당히 하자: 생명력이 사라질 때까지 적당한 공방을 펼치게 됩니다. 목숨을 소중히: 생명력이 사라질 때까지 도망치게 됩니다. 상위 직업 특수 스킬인 영광의 밤을 배웠습니다. 영광의 밤 영역선포(초급, 액티브): 영역 선포는 상위 직업의 특수 기술로 일정 공간에 특수한 힘의 결계를 펼쳐 시전자에게 초인적인 힘을 부여, 절대적인 우위의 공간을 창조하는 스킬의 통칭입니다. 영광의 밤은 다크 소울의 영역 선포 스킬로 대지에서 어둠의 대정령 다크 석상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다크가 소환되면 직경 100미터 공간에 어둠의 힘이 집약되어 다크 소울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모든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합니다. 또한 상위 직업만 익힐 수 있는 신격 스킬은 영역 선포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다크 소울의 영역 선포는 밤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다크 석상이 파괴되면 해제됩니다. 지속시간 10분, 마나 소모: 2,000 영력 소모: 400 "드, 드디어 전직했다!" 아크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채 읽을 새도 없이 앙그라돈이 이번에는 검은 보옥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제 마반 영웅이 목숨과 맞바꿔 알아낸 지식을 얻을 준비가 되었따. 자아, 이걸 받아라. 마반 영웅의 마지막 염원을 이뤄 다오. "그것은... 내 것이다!" 그때였다. 돌연 통로를 따라 휘몰아쳐 들어온 어두운 기운이 보옥으로 날아갔다.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아크와 소환수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앙그라돈은 이미 예상했따는 듯이 몸을 회전시키며 방패로 어두운 기운을 후려쳤다. "크아악... 어, 어떻게?" 딱딱, 딱딱딱. :훗, 내가 네놈의 속셈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가? 네놈이 완전히 소멸했다면 나 역시 소멸했을 터. 내가 살아 있는 게 네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 그렇다면...?" 딱딱, 따다다닥. :그렇다. 알고도 모른 척한 거다. 구도자에게 마반 영웅의 유지를 전해 주기 위해서.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으니 이제 더 이상 볼일은 없다.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너는 모를 거다. 도망가 봐야 소용없다. 너와 나는 한 몸. 이제 의무를 다한 나는 이 세상에 남은 미련이 없다. 앙그라돈이 검을 휘두르며 바닥에 떨어진 어둠의 기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돌연 어둠의 기운이 확 퍼지더니 다시 엄청난 속도로 밖으로 달아났다. "크아악! 안돼.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혼자 죽을 수는 없지... 봉인이 풀렸으니.. 이곳을 영원한 파멸로 몰고 가겠다!" 딱, 딱딱딱! :젠장, 놓쳐 버린 건가?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놈은 누구입니까?" 딱딱딱. :그 놈은 카르마다. "카르마? 하지만 놈은 이미 내가 죽였는데..." 딱딱딱, 딱딱딱 :아니, 놈은 죽지 않았다. 죽은 척했을 뿐이지. 내가 살아 있는 게 그 증거다. 놈과 나는 한 몸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앙그라돈이 밑도 끝도 없이 새로운 비밀을 밝혔다. 카르마는 앙그라돈의 분신이었다. 저주 마법의 마기를 흡수한 마반 영웅을 앙그라돈은 수백 년이나 옆에서 지켜 왔다. 비록 앙그라돈은 이미 언데드가 된 몸이지만 그런 강력한 마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앙그라돈은 점차 자신이 미쳐 가는 것을 깨달았고 마기의 본체가 담긴 마반 영웅의 보옥을 탐내기 시작했다. 결국 앙그라돈은 그 마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뜯어내고 납골당의 뼈다귀로 재조립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앙그라돈에게서 떨어져 나온 뼈다귀들은 또 다른 생명체가 되었다. 마기가 담긴 보옥만을 원하는 욕망의 덩어리가 되어서... 카르마. 그렇다. 카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업을 의미하는 단어. 전생의 죄악이나 타락한 또 다른 육체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앙그라돈에서 떨어져 나온 욕망은 카르마 그 자체! 앙그라돈이 입구에서 석상처럼 변해 있었던 것은 보옥을 탐내는 카르마를 막기 위해서였다. 카르마 역시 본체가 죽으면 자신도 소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수백 년 동안 앙그라돈을 괴롭히기만 했던 것이다. 딱딱딱, 딱딱딱, 따닥! :서둘러야 한다. 이제 놈은 보옥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미쳐 버렸다. 수백 년간 마기를 축적한 놈은 이제 마기 그 자체. 그 상태로 밖에 나가면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크윽!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던 앙그라돈이 신음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뒤이어 그의 양다리가 맥없이 떨어져 나가더니 가루처럼 변해 흩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딱딱...딱딱...딱딱딱! :놈이.. 소멸하고 있다. 놈도 그걸 알고 있어. 때문에 밖에서 모든 마기를 폭발시키려고 하는 거야. 막아야 한다! 앙그라돈이 마의 보옥을 건네주며 말했다. 딱딱, 딱딱딱! :분하지만 나는 여기까지다. 마반 영웅의 옆이 내 자리지. 더 늦기 전에 어서 이것을... 그리고 밖으로 나가 놈을 막아라! 아크는 아직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아크가 보옥을 받아들었다. 그러자 보옥이 녹아내리듯 액체로 변하더니 몸을 따라 구불구불 기어갔다. 뒤이어 양팔의 손목에서 어깨까지 기하학적인 문양의 문신으로 변해버렸다. 보옥의 힘이 체내에 흡수됐습니다. 진정으로 이 세계를 사랑한 마반 영웅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훗날 세상을 위협할 어둠에 맞설 힘을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힘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또한 이제 막 다크소울로 전직한 후계자는 그 방대한 깨달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미숙합니다. 다행히 마반 영웅은 이런 일까지 예견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깨달음을 후계자에게 문신의 형태로 각인시키도록 안배해 놓았습니다. 소울 스톤에 담긴 마반 영웅의 지식을 얻은 당신이 충분한 경험을 쌓으면 문신에 각인된 힘이 하나씩 개방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힘이 개방되면 진정한 어둠과 맞서 싸울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터널 소울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앞으로 다크소울과 관련된 깨달음이나 특별한 단서를 얻게 되면 문신에 각인된 소울의 능력을 흡수하게 됩니다. 소울은 문신의 숫자처럼 모두 10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소울을 흡수하면 마반 영웅이 목숨과 맞바꾼 마지막 비기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 소울을 모두 흡수하는 것이 다크소울의 최대 목표입니다. '이터널 소울? 그럼 다크소울의 또 다른 능력은 이터널 소울로 배우란 건가?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2차 전직을 마친 아크는 간신히 정상에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반 영웅의 진정한 힘은 바로 이터널 소울에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것도 특별한 깨달음이나 단서를 찾아내야 풀리는 10단계의 봉인.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느낌이 팍팍 풍기지 않는가? 사실 어둠의 제왕이 사용하는 저주 마법을 막는 힘 따위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마반 영웅의 비기까지 문신으로 봉인되어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어쨌든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거지?' 아크는 일단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은 전직을 해서 얻은 능력이나 스킬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맛이 가 버린 카르마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딱딱, 딱딱딱! :서둘러라. 내 몸이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놈을 막아야 한다! "좋아, 가자!" '아크는 전력질주를 난사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라자크가 뒤따라 나가려 할 때였다. 딱딱...딱딱... :구도자의 소환수여... 잠깐 기다려라 라자크가 움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앙그라돈은 흐려지는 안광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가슴 부분에서 갈비뼈 하나를 뜯어냈다. 딱딱딱, 딱딱딱딱, 딱딱딱, 딱딱. :이것은 내가 마반 영웅과 처음 계약할 때 받았떤 우정의 증표. 내 생명의 모든 것이다. 내 몸은 마기가 침식해 카르마 같은 존재와 생명을 공유하게 되었지만 이것만큼은 수백 년 전, 그때와 같은 나의 일부이다. 마반 영웅이 그대의 주인에게 모든 것을 물려줬듯, 나 역시 언젠가 이것을 물려주고 싶었다 앙그라돈이 갈비뼈를 건네주며 한숨을 불어 냈다. 딱딱딱, 딱딱딱, 따다닥. :그대의 눈에는 번민이 보인다. 과거를 잃은 자신이 과연 새로운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올바른 일인지. 나 역시 언데드로서 몇 번이나 진화하며 같은 의문을 품었으니까. 앙그라돈의 말에 라자크의 안광이 살짝 흔들렸다. 사실 라자크는 오래전부터 번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자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기억은 충성. 그러나 언데드로서의 생을 부여받을 때 깨어난 곳은 지하 감옥이었다. 해골 시절에는 그런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지만 진화하며 지능이 올라갈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수백 년 전의 언데드인 앙그라돈은 그런 라자크의 번민을 꿰뚫어 본 것이다. 딱딱딱, 딱딱딱! :하지만 설사 과거를 알게 된다고 해도 망설일 필요 없다. 그대는 이미 과거의 존재가 아니다. 현재에 존재하며 섬겨야 할 주인에게 새로운 이름을 받은 새로운 존재다. 그대의 믿음만이 유일한 진실이다. 가라, 그대가 섬겨야 할 주인에게! 말을 마친 앙그라돈이 바닥을 기었다. 이미 소멸이 진행되어 움직일 때마다 뼈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앙그라돈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부서지는 몸을 움직였다. 그가 다가가는 곳은 마반 영웅의 유해가 흩어져 있는 곳이었다. 앙그라돈은 양팔을 허우적거리며 이미 가루가 되어 버린 주인의 유해를 긁어모으고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따다다닥, 따다닥, 딱딱딱... :오오, 주인.. 이제야... 이제야 당신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됐씁니다. 수백 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당신에게 잘했다는 말을 듣게 될 이 순간을... 이 순간을... 서서히 흐려지던 앙그라돈의 안광이 사라졌다. 그리고 몸이 가루처럼 변하며 마반 영웅의 유해 위에 쌓여갔다. 라자크는 말없이 바라보다가 유해를 한곳에 모아 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어 와락 자신의 갈비뼈를 뜯어내고 앙그라돈에게 받은 갈비뼈를 끼워 넣었다. [라자크가 뼈 수집 스킬로 갈비뼈를 재조립했습니다. 충성도+200] [특수한 뼈다귀를 수집해 소환수 라자크가 새로운 스킬을 배웠습니다.] [강철같은 충성심(상위 종족 특성, 액티브): 앙그라돈이 익히고 있던 스켈레톤의 궁극 방어 스킬. 스킬을 발동시키면 골격이 강철로 변해 충성도(현재 충성도 894)만큼 물리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단, 이 스킬은 소환주와 10미터 범위 안에서 소환주를 보호하는 용도로만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재사용 시간: 8시간. 마나소모: 300] 콰아아, 콰아아아! "뭐, 뭐야? 이게 카르마가 한 짓이야?" 납골당을 빠져나온 아크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죽은 자들의 도시, 아니 오벨리움은 폭풍에 휘말려 있었다. 시꺼먼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내는 엄청난 폭풍. 그러나 정작 길가의 풀포기나 작은 돌 따위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폭풍이 영향을 주는 것은 오벨레움의 망자들이었다. "크아아악!" 검은 기운에 휩싸인 망자 하나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기를 잠시, 망자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더니 터져 버렸다. 터져 나간 망자의 몸에서 뭔가 하얀 기체가 솟아올랐다. 마치 사람처럼 생긴 투명한 기체. 그렇다. 그것은 수백 년 동안 망자의 육체에 갇혀 있던 오벨리움의 영혼이었다. 그 영혼이 나올 때는 회색이었는데 검은 폭풍에 휘감겨 순식간에 검게 변해 폭풍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영혼마저 삼켜서 완전한 어둠의 기운으로 돌려 버리는건가?" "아아아악, 사, 살려 줘!" 자신의 미련 이외에는 관심도 없던 망자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이리라. "대,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뭔가 하기는 해야 한다. 이게 정말 카르마가 소멸하며 발동시킨 저주라면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직 구체의 정체를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벨리움의 중심에 떠서 폭풍을 일으키는 거대한 검은 구체는 망자들의 영혼을 삼키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게 한계에 이르면 아크에게도 상상하지 못했던 피해가 올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대체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저 검은 구체를 공격해 봐야 하나?"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따다다닥! 돌연 뒤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앙그라돈과 대화를 나누느라 뒤늦게 납골당을 빠져나온 라자크였다. 그런데 라자크가 밖으로 나오자 오벨리움의 망자들처럼 검은 기류에 휘감겨 괴로운 비명을 터트리며 바닥을 굴러 댔다. 아크는 그제야 상황이 생각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런!" 정신이 없어서 깜빡 잊고 있었다. 라자크도 어찌 됐든 오벨리움에 속한 언데드. 오벨리움의 망자들이 영향을 받는다면 라자크 역시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 아닌가? 그리고 검은 기류에 휩싸인 망자들의 최후는 검은 구체에 영혼이 삼켜지는 것. 만약 라자크에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젠장, 말도 안 돼!"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TO BE CONTINEW... by.라크 ⑴네이버 블로그 -라크의 블로그-에 오시면 아크 15권 텍본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②네이버 블로그 -라크의 블로그-에 오시면 달빛조각사 1권~ 22권 텍본을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오타, 말 줄임표 수정 -라크- 아크 15권 써낸이:넥가카이 자료있는곳:http://blog.naver.com/wltnqmdl123 1.이터널소울 2.금단의 식재료를 찾아서‥‥‥ 3.지옥훈련 4.몽환의 모래시계 5.눈알은 알고 있다 6.바다 위의 추격전 7.비스트 마스터 8.경찰청 퀘스트 9.마법 왕구 브리스타니아 두쿵, 두쿵, 두쿵! 묵직한 울림이 대기를 진동시키며 울려 퍼졌다. 그 정체는 오벨리움 광장에 떠 있는 검은 구체였다. 검은 구체는 마치 심장처럼, 수축과 확대를 번복하며 저음의 울림을 토해냈다 그때마다 구체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기운이 더욱 강렬 해졌다. 구체가 뿜어내는 기운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어둠보다 깊은 어둠! 사악함과 불길함이라느 주재료에 탐욕과 광기라느 양념을 첨가해 진하게 우려낸 듯한 어둠! 그 안쪽에서 질척질척, 눅눅, 텁텁, 듣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의성어를 한데 모아 놓은 듯한 형체가 꿈틀거렸다. "대체 뭐지, 저건?" 아크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촤아아아악! 돌연 검은 구체에서 폭풍이 일어나더니 사방으로 어둠의 기운을 뿜어냈다. 어둠의 기운은 마치 먹잇감을 찾는 뱀처럼 폐허를 날아다니다가 망자들을 휘어 감았다. "허억. 사, 살려 줘!" "시, 싫어 아, 안 돼!"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백년 전, 저주 마법에 의해 망자로 변했던 때의 기억이 떠오른 걸까? 생전의 미련 이외에는 어떤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망자들도 어둠의 기운에 휘감기자 공포에 질려 버렸다. 바닥을 굴러 대며 벗어나기 위해 기를 써 댔지만 의미없는 저항에 불과했다. '크아아아악!' 뒤이어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망자가 시커멓게 물들더니 터져 버렸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진 잔해에서 망자와 똑같이 생긴 반투명한 회색 기체가 솟아 나왔다. 망자들의 영혼이다. 영혼은 나오기가 무섭게 자석에 이끌리듯 검은 구체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포식 동물의 아가리처럼 검은 구체의 중심이 쩍 갈라지며 빨려 오는 망자들의 영혼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영혼을‥‥‥ 먹는 거야?" 아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압도적인 공포! 그 섬뜩한 장면에 망자들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비명을 질러 대며 사방으로 도망쳤지만, 어떤 망자도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어둠의 기운을 따돌릴 수 없었다. 일단 포착되면 그걸로 끝. 어둠의 기운에 휩싸여 영혼이 빨려 나오고, 빨려 나온 영혼은 더욱 거대화되어 갔고 사방으로 뿜어지는 어둠의 기운도 더욱 많아졌다. 마치 수백 년 전 오벨리움이 저주 마법으로 멸망하던 악몽이 다시 재혀되고 있는 것 같은 장면! "젠장, 저놈은 대체 뭐야?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크는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때 영혼을 집어삼키는 아가리 위로 뭔가 괴이한 형상이 떠올랐다. 마치 거대한 사람의 얼굴처럼 생긴 형상! "카르마" 그 얼굴을 확인한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놀랍게도 그 형상은 납골당에서 박살 냈던 카르마의 얼굴! 그렇다. 검은구체는 마반 영웅의 소환수였던 앙그라돈이 마기의 침습을 뿌리치기 위해 버린 뼈다귀에서 탄생한 생명체. 카르마가 아크에게 당해서 형체를 잃고 다시 마기로 환원된 모습이다. 다시 말해 수백 년 전 오벨리움을 멸망으로 물고 갔던 저주 마법 그 자체? 자질구레한 설명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만큼 역시나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주제 파악도 못 하는 놈이군" 아크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재활용품에서 태어난 보스 주제에 2차 변신을해?" 그렇다.RPG에서 용사 일행에게 두들겨 맞고 코피를 좔좔흘리면쓰러진 놈이 다시 주섬주섬 일어사서 '후후후, 사실은 이게 내 진짜모습이다.' 라는 짜증나는 대사를 지껄이는 게 허락되는 것은 그래도 최종 보스 정도는 돼야한다. 그런데 고작 레벨 450에, 시간 마법을 빼면 허접하기 짝이 없는 보스주제에 2차 변신이라니?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이대로는 안 돼! 아크가 짜증 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망자의 영혼을 우적우적 씹어 삼켜 대던 카르마가 헛소리를 지껄여 대다가 아크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네놈‥‥‥! 촤아아아악! 방심의 틈을 노리고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헛, 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러나 어둠의 기운은 검을 그대로 관통하며 아크르 휘감아 버렸다. "악? 뭐,뭐야? 공격이 먹히지 않잖아?"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둠의 기운은 검을 통과한 것처럼 아크 역시 그냥 통과해 버린 것이다. "대체 뭐야?" 뒤늦게 '스킬 간파'를 발동 시키자 곧 정보창이 떠올랐다. 「진·카르마의 특성 스킬: 영혼 포식 아기로 환원된 진·카르마는 '영혼 포식'으로 언데드의 영혼을 탈취할수 있습니다. 진·카르마는 탈취한 영혼에 남아 있는 마기를 흡수해 자신의 '혼돈의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혼돈의 에너지'는 일종의 마나로 진·카르마는 이 에너지를 사용햐 특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영혼 포식'은 언데드의 영혼만 탈취할 수 있습니다.」 망자들의 영혼을 탈취하는 '영혼 흡수'는 언데드에게만 적용되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아크만이 아니라, 북실이의 눈알, 라카드도 어둠의 기운에 휩싸였지만, 역시 언데드가 아니라 곧 떨어져 나갔다. 현재 카르마는 마기의 덩어리 같은 존재라 일반 검으로는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카르마 역시 아크에게 직접적인 데미지를 줄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괜히 식겁했네.' 그러난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아.' 당장은 카르마에게 공격당하지 않겠지만, 분의기를 보니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정보창에서 나왔던 '혼돈의 에너지'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카르마는 수백 년 동안 노려오던 '마옥' 을 아크에게 빼앗기고 완전히 맛이 가 버렸다. 그건 놈이 심심해서 망자들의 영혼에서 마기를 빨아 '혼돈의 에어지'를 모을 리가 없지 않은가? '혼돈의 에너지'가 꽉 차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것 이다. "일단 물러나서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낮겠다." "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망자들은‥‥‥" "어쩔 수 없잖아 공격도 안 통하는데." 아크가 북실이의 눈알을 바라보며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물론 아크 역시 망자들을 구해 주고 싶었다. 세상을 위해 싸우다가 저주에 걸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을 겪게 됐음에도, 세상에서 잊혀 버린 존재들. 앙그라돈에게 오벨리움의 비극을 듣고 나니 아무리 게임의 설정이라도, NPG라도, 동점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공격도 통하지 않는 상대가 뭔가 수상한 에너지를 모으고 있다. 동점심 때문에 엄물짝거리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냄새가 풍겼다. 게다가 대피 명령을 내린다고 따라 줄 망자들도 아니지 않은가? '좀 찔리는 기분이 들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러나 아크는 도망칠 수 없었다. 따닥, 따다다다닥! 채 걸을을 옮기기도 전에 뒤에서 라자크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영혼 흡수' 가 자신이나 라카드에게 영향을 주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정보창을 보고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게 있었다. 라자크 역시 망자들처럼 오벨리움에 묶여 있는 언데드라는 사실있었다. 그렇다. 앙그라돈과 헤어져 납골당을 나오던 라자크가 어둠의 기운에 휩싸여 버린 것이다. 「소환수 라자크가 '영혼 흡수'에 걸렸습니다. '영혼 흡수' 에 걸린 언데드는 지속적으로 생명력이 소모됩니다. 생명력이 사라진 언데드의 영혼은 카르마의 체내에 갇히게 됩니다. 카르마의 체내에 영혼이 갇힌 언데드는 해방되기 전에는 다시 부활하지 못합니다.」 "이런 망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원래 언데드에게는 '죽음' 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언데드라는 말 자체가 이미 죽은 생명체를 뜻하는 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유저들이 언데드를 때려 잡으면 즐거워하고 있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건 죽인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단지 언데드를 일정 시간 동안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에 불과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유저가 몬스터를 죽일 경우, 시간이 지나면 다시 리젠된다. 그이유는 몬스터가 번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데드가 리젠되는 것은 새로운 언데드가 탄생하는 게 아니라, 한 번 죽은 언데드가 일정 시간이 지나서 다시 부활한다는 개념이다. 때문에 언데드가 다른 몬스터에 비해 리젠 속도가 빠른 편이다. 어쟀든 언데드가 부활할 수 있는 이유는 죽어도 영혼이 육체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영혼을 흡수 당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영혼이 갇힌 망자들은 두 번 다시 부활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그건 라자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카르마의 체내에 영혼이 갇혀 버리면 두 번 다시 소환할 수 없게 되리라. '위험해, 이건 정말 위험해!'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머릿속에 붉은 경고등이 켜졌다. "말도 안돼!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다크 블레이드!" 그러나 현제 카르마는 육체가 없는 순수한 마기의 집합체. 방금 전에도 확인했다시피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았다. 아크가 날린 공격은 어둠의 기운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되려 어둠의 기운에 휩싸인 라자크가 데미지를 입고 바닥을 나 뒹굴었다. 따닥, 따다다다닥! "이,이럴수가‥‥‥!"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망자들 처럼 라자크도 '영혼 흡수'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소환 취소를 하면 그만이지만‥‥‥.' 어차피 소환 취소를 해도 라자크는 오렙리움의 지하 감옥에서 부활한다. 그곳에서 사방으로 퍼져 있는 어둠의 기운에 잡히게 되면 오도 가도 못 하고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게 아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아니, 미처 방법을 찾을 짬도 없이 라자크의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빨려나가 30%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29%,28%,27‥‥‥22%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아, 안 돼-!"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치자 돌연 라자크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방패로 바닥을 내리쳤다. 순간 아크의 마나가 300이나 빨려 나가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자크'가 소환수주의 마나를 사용해 '강처 같은 충성심'을 발동시켰습니다.」 <몸이 강철화되어 물리 방어력이 894만큼 증가합니다> "이, 이건 앙그라돈이 사용했던 스킬이잖아?"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로 강철 조각상처럼 변해 버린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라둔이 '스토킹' 을 익혔을때 처럼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배운 스킬이라 아크는 정보창을 미처 확인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라자크가 '강철 같은 충성심'을 발동시키자 더 이상 생명력이 빨려 나가지 않았다. 물리 방어력 때문이라기보다는, 몸이 강철로 변해서 '영혼 흡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모양이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위기는 넘겼다." 그러나 아직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상황은 아니었다. 앙그라돈이 그랬듯이, 강철로 변한 라자크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어둠의 기운은 여전히 라자크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남은 생명력은 고작22%, '강철 같은 충성심'이 풀리자마자 생명력이 바닥나 영혼을 흡수당하고 말리라. '결국 리자크를 구하려면 저놈을 해치울 수 밖에 없어. 뭔가 저놈을 처치할 방법이 있을 거야. 아니, 있어야해. 놈을 처치하지 못하면 리자크가 먹혀 버린다.. 하지만 물리 공격을 몽땅 무효화시키는 놈을 무슨 수로‥‥‥, 어라? 가만? 물리공격을 1000% 무효화? 그럼 '슬라임의 시간'을 발동시켰을때의 나와 같다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혹시‥‥‥?' '슬라임의 시간'을 사용했을 때 가장 피하고 싶은 공격,바로 마법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스킬을 발동시켰다. "좋아, 그럼 이건 어떠냐? 엘리멘탈 소드, 화 속성!" 퍼퍼퍼펑! -진·카르마에게 화염 속성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데메지50. "효과가 있다!" 불길이 뿜어져 나오는 검으로 내리치자 어둠의 기운이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카르마는 물리 공격을 100% 무효화시킨다. 즉, 실제 데미지를 주는 것은 검에 적용된 마법 효과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엘리멘탈 소드의 추가 효과느 기본 공격력의 10%의 공격력밖에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일격의 데미지는 고작 30~50. '하지만 적은 데미지라도 데미지는 데미지다!' 카르마는 아크를 공격할 수단이 없으니 쉬지 않고 공격하면 언젠가는 쓰러뜨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으니‥‥‥. -진·카르마가 '영혼 흡수'로 100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진·카르마가 '영혼 흡수'로 100의 생명력을 회복했습니다‥‥‥. 카르마가 망자의 영혼을 삼킬 때마다 생명력이 100이나 회복되었다. 오벨리움에 널리고 널린 망자들을 먹어 대고 있으니 생명력이 빠지는 속도보다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결국 망자들이 있는 한 엘리멘탈 소드로는 몇 날 며칠을 때려 봐야 소용 없다는 말이 아니가? '그렇다고 망자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물론 카르마가 망자들을 몽땅 삼켜 버리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 그러나 카르마가 망자를 삼켜 '혼돈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절대 지금보다 상황이 좋아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튀는 수밖에 없어. 그래, 일단 라자크의 몸에 엉겨붙은 어둠의 기운을 떼어내고 최대한 빨리 도망가야 해.' 물론 라자크의 몸에 붙어 있는 어둠의 기운을 공격하면 라자크 역시 데미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라자크는 '강철 같은 충성심'으로 방어력이 뻥튀기된 상태. 어둠의 기운을 털어 낼 때까지 버텨 주리라.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방향을 바꿔 라자크에게 붙어있는 어둠의 기운을 공격했다. 엘리멘탈 소드로 내려치자 불길이 번지며 어둠의 기운이 녹아내렸다. 라자크 역시 데미지를 입었지만 방어력이 894나증가한 상태라 아크의 연속 공격에 생명력이 10%밖에 줄지 않았다. 일단 그렇게 어둠의 기운을 털어낸 아크가 라카드에게 명령했다. "라카드 카르마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오케이! 이쪽이다, 멍청아!" 라카드가 '도발'을 난사하며 알짱거리자 카르마의 눈동자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됐어, 지금이다. '강철 같은 충섬심' 해제! 달려!" 아크는 곧바로 라자크의 스킬을 해제하면 내달렸다. 아니, 내달리려 할 때였다. 아크는 검은 구체로 변한 카르마를 보고 완전히 맛이갔다고 판단했다. 라카드로 주의만 살짝 돌려놓으면 충분히 사정거리는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라자크가 '강철 같은 충성심'을 해제하자 라카드를 쫓던 눈동자가 핑그르르 제자리로 되돌아오더니 도망치는 둘을 주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변에서 어둠의 기운이 몰려나와 라자크를 덮어 눌렀다. -크크크크‥‥‥멍청한 녀석‥‥‥ 놓칠 것 같으냐? '헉, 뭐야?저,저 녀석, 설마 스킬을 해제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 오벨리움에 떠도는 마기를 한줌도 남김없이 흡수하면‥‥‥ 이곳의 모든 존제를 파면시키겠다‥‥‥. 네놈도 결코 벗어나지 못할 거다‥‥‥. 내가 갖지 못한 마옥과 함께 어둠으로 떨어지게 되리라! 검은 구체에 떠오른 얼굴이 재수 없게 히죽거리며 떠들어 댔다. 그러나 아크는 카르마의 목소리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따닥,따다다닥! 어둠의 기운에 휩싸인 라자크의 생명력이 10% 아래까지 곤두박질쳐 버린 것이다. 3,000대에 달하는 생명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다른 망자들 처럼 카르마의 간식거리가 되었으리라. '‥‥‥설마 놈에게 아직 이성이 남아 있을 줄이야!' 일생일대의 실수! 이제 라자크의 영혼을 흡수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마법 공격은 먹힌다. 마법사라면 카르마의 회복속도르 상회하는 데미지를 줄 수 있으리라. 그러나 고작 검에 마법 효과를 부여하는 정도로는 회복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럴 때 레리어트 님이 있었다면‥‥‥'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면 중얼거렸다. 카르마의 속성은 '마', 이노센스 나이트의 '성' 속성과는 천적이다. 예전에는 마 속성으로 변신했던 타무라드를 해치웠을 때처럼 레리어트가 성 속성 마법으로 보조해 준다면 카르마 따위는 한 주먹감도 되지 않으리라. 그러나 아크가 작전 타임을 외치고 레리어트를 데리고 올때까지 카르마가 얌전히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일단 라자크가 놈에게 먹히더라도 레리어트 님과 함께 와서 놈을 해치우면 해방시킬 수는 있을거야. 하지만 만역 놈이 라자크의 영혼을 삼키고 숨어 버린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숨지 않더라고 '혼돈의 에너지'라는 걸로 뭔가 다른짓을 할지도 몰라.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어라? 가만? 타무라드?'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맞아, 타무라드도 망자로 회복했었지? 그때 놈의 회복을 막았던 건‥‥‥' 그렇다, 레리어트가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할 때 싸웠던 네크로멘서 타무라드, 놈은 궁지에 몰리자 '전사의 파편'이 라는 것을 흡수해 자신을 마 속성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망자들을 잡아먹으며 회복을 했었다. 아무레도 마 속성의 몬스터는 원래 영혼을 삼켜 회복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타무라드의 회복 능력을 막았던 것은 성 속성의 이노센스 나이트가 아닌 아크였다. '그때 놈의 회복을 막았떤 방법은‥‥‥!' 순간 벼락이 두개골을 강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아크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겨 내야 합니다. 당신들은 오래전 스탄달을 지배했던 위대한 오벨리움의 전사들. 그 영광스럽던 기억을 되찾으십시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마기에 대항해야 합니다. 당신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들, 자신뿐입니다!" 퍼퍼퍼펑-! 돌연 망자를 삼키던 카르마에게서 폭음이 울려 나왔다. -크아아아악‥‥‥ 뭐‥‥‥뭐냐‥‥‥이‥‥‥이건? 카르마의 몸에서 피처럼 검은 기운이 흘러내렸다. 검은 구체로 변한 카르마는 생명력이 표시되지 않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적지 않은 데미지르 받았음이 확실했다. 거침없이 망자들을 집어삼키던 카르마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모습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역시 저놈도 타무라드와 같아. '간병'효과가 적용된 망자들로는 저놈도 회복을 못 해. 이제야 찾았다, 놈의 약접! 잘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놈을 박살 낼 수 있을거야.' 그렇다, 이게 당시 타무라드의 회복을 막았던 방법이다. '간병'을 사용하면 부가 효과인 '축복'이 함께 적용된다. 그리고 '축복'은 신성 속성 마 속성인 카르마가 신성 속성을 띠게 된 망자를 흡수했으니 회복은 커녕 오히려 데미지를 받아 버린 것이다. 이미 어둠의 기운에 당해 영혼이 되어 버린 망자들에게 몽땅 '간병'을 걸어 버리니 카르마는 영혼을 삼킬 때마다 타격을 받으며 흔들렸다. 결국 카르마가 '영혼 흡수'를 멈추고 아크를 노려보았다. -크으으으‥‥‥. 네, 네놈‥‥‥! 마옥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감히 이따위 짓을 하다니‥‥‥, 결코‥‥‥결코용서하지 않겠다! "용서하지 않아? 어쩔건데?" 이제 아크의 얼굴에 방금 전까지의 당혹감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어떻게든 도망갈 생각뿐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다르다. '영혼 흡수'가 해제되어 라자크도 아슬아슬하게 풀려났다. 게다가 카르마는 아크에게 직접 공격을 할 수 없다. 그야말고 여유만만! "잘도 건방지게 굴었겠다? 이제 내 차례다!" -고작 방금 전의 공격 따위로 나를 어쩔 수 있으리라고‥‥‥. "방금 전의 공격? 뭐하러 그렇게 피곤한 지슬 하겠냐? 무기라면 네 배속에 잔뜩있는데." -뭣이? 카르마가 움찍했을 때였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다시 '간병'을 발동시켰다. "자, 보십시오. 당신들의 의지력이 이뤄 낸 성과를! 의지를 가지고 대항하면 아무리 거대한 악이라도 당신드르이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의 영혼을 오직 당신들의 것, 지금이야말고 그것을 보여 줄 때입니다! 깨어나십시오, 어둠과 맞서 싸웠던 용맹한 오벨리움의 영혼들이여! 퍼퍼퍼펑‥‥‥! 동시에 카르마의 내부에서 엄청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카르마가 더 이상 영혼을 삼키지 않아도 놈의 배속에는 이미 먹어 치운 영혼들이 가득하다. 망자의 영혼은 소멸 한 게 하니라, 갇혀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간병'을 사용한 것은 그 배 속에 갇혀있는 망자의 영혼들을 향해서였다. 즉, 카르마의 배 속에 담긴 영혼들은 몽땅 폭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크가 '간병'으로 배 속의 영혼들에게 몽땅 '축복'을 걸어 버리자 카르마는 수류탄을 삼킨 것처럼 쉬지않고 폭음이 터져 나오며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버렸다. 그리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축되더니 뻥 뚫린 구멍에서 망자의 영혼들이 툭툭 떨어져 나왔다. 폭발을 일으키는 영혼을 배속에 담아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간병의 무기화! 순간 아크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병자를 생각하는 당신의 진심은 공간과 종족의 한계마저 뛰어넘었습니다. 과거의 찬란한 영광의 길을 걸었던 오벨리움의 주민들은 저주 마법에 걸려 비참한 언데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육체적인 변화보다 그들의 영혼을 병들게 했던 것은 절망!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은 바로 절망입니다. 명예롭게 죽을 기회조차 빼앗겼다는 그리고 자신들이 지키려고 했던 자들로 부터 잊혔다는 절망은 그들의 영혼마저 타락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아무런 의지조차 없는 망자로 만들어 버린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의 제왕이 창조한 저주 마법의 가장 무서운점이 바로 희망을 빼앗고 절망을 심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진실한 마음으로 어둠의 절망을 딛고 일어날 용기를 심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모두에게 잊힌 영혼조차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그들에게 희망을 말하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야말로 간병인이 거쳐야 할 진정한 자격인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간병인이 거쳐야 할 진정한 자격인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간병인의 귀감이 될 만한 업적으로 인해 간병인으로서 한 차원 높은 수주느이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텟이 1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50 증가합니다. +모든 망자의 영혼에게 '정화'효과가 적용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에 칭호가 '오벨리움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망자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 상승합니다 '기적의 간병! 스탯 보너스다!' 역시 끝장을 보기로 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적의 간병이 발동하자 카르마는 배 속의 영혼을 몽땅 토해냈다. 형체조차 유지시키기 힘들어진 듯, 마치 걸레처럼 축 늘어져 시커먼 기운을 뚝뚝 흘려대고 있었다. '영혼을 몽땅 토해냈으니 간병으로 데미지를 주지도 못하겠지만, 어차피 놈은 회복도 못 하고 나를 공격할 방법도 없다. 느슥하게 엘리멘탈 소드로 썰어 버리면 끝이야.' "자, 끝내 볼까? 엘리멘탈 소드, 회 속성!" -크하하하‥‥‥ 멍청한 놈! 그때, 돌연 카르마가 변해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수백 개의 촉수를 뻗어 영혼들괴 라자크의 몸을 휘감았다. "흥, 자살이라도 하려는 거냐?" 어차피 라자크를 포함해서 이곳의 영혼들은 '기적의 간병'효과로 '정화'가 적용된 상태다. 마기의 결정체인 카르마가 영혼을 삼켜봐야 다시 데미지를 받고 토해 낼 뿐이다. 영혼을 삼킨다는 것은 자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카르마는 영혼을 다시 삼키지 않았다. 영혼들을 포박한 카르마가 갑자기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헉, 어,어째서> 영혼을 몽땅 토해냈는데?" 당혹성을 터뜨리자 카르마가 흐릿한 웃음을 지었다. -크흐흐흐‥‥‥ 멍청한 놈‥‥‥ 아직도 모르겠는가‥‥‥, 이곳의 영혼들은 적든 많든 모두 마기에 침습 당해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영혼에서 마기만 흡수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 했겠지‥‥‥. 하지만 영혼들이 정화되는 바람에 마기가 영혼에서 떨어져나왔다‥‥‥, 그마기가 모두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느냐? "서,설마‥‥‥?" -그렇다‥‥‥. 네놈 덕분에 내 배 속에 담겨 있던 영혼들의 마기가 완전히 분리되어 내게 흡수되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 수백 년에 걸친 나의 원념으로 진정한 파멸이 뭔지 보여주마! 뒤이어 떠오른 메시지가 아크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진·카르마가 '혼돈의 에너지'를 100% 충전해 '연쇄 소멸' 스킬을 발동시켰습니다」 '연쇄 소멸'이 발동되면 카르마와 연결된 모든 언데드가 함께 소멸합니다. 또한 영혼이 소멸하여 연쇄 반응으로 오벨리움 전 지역에 마기의 폭풍이 작렬하여 모든 생명체에게 소멸한 영혼×100에 데미지를 입힙니다. 《연쇄 소멸 발동까지 남은 시간 : 3분》 '연쇄 소멸‥‥‥!' 아크는 그제야 납골당에서 카르마가 떠들어 댔던 말을 떠올렸다. '마의 보옥'을 아크에게 빼앗긴 카르마는 절망에 빠져 완전히 정신을 놔 버렸다. 그리고 카르마가 마지막에 원하던 것은 이곳의 파멸! 카르마가 '혼돈의 에너지'를 긁어모았던 것은 아크는 물론, 오벨리움을 완전히 파멸시키시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지만 '기적의 간병'이 오히려 그런 카르마를 도와준 꼴이 돼 버렸다. 놈이 '혼돈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저주마법으로 생겨난 마기, 카르마는 아크가 '기적의 간병'으롤영혼에서 분리해낸 마기를 흡수해 '혼돈의 에너지'를 완전히 충전시켜 버린 것이다. 그 실수의 대가는 파멸‥‥‥! "아, 아크님!" 둥둥 떠 있던 눈알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사실은 지금까지 복실이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전투를 지켜봤다. 그러나 '연쇄 소멸'은 오벨리움 전 지역에 소멸한 영혼×100의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다. 오밸리움에 있는 영혼의 숫자는 대강 세어봐도 수백, 일격에 몇만의 데미지를 주는 핵폭탄이었다. 아크는 물론,외곽의 북실이와 백구도 일격에 가루가 되어 버리리라. "젠장,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다급해진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서걱‥‥! 검을 휘두르자 부풀어 오른 카르마의 동체가 맥없이 잘려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잘려 나갔던 검은 조각은 마치 살아있는 것 처럼 바닥을 기어와 다시 본체와 합체하는 게 아닌가?촉수도 마찬가지였다. 라자크에게 휘감겨 있는 촉수를 잘라 냈지만, 촉수들은 몇번 꿈툴거리다가 다시 이어졌다. '망했다, 역시 진작에 도망쳤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이미 늦었다. 스킬이 발동한 이상, 아크는 물론, 마을 밖에 있는 북실이도 3분안에 오벨리움 지역을 탈출할 수는 없었다. "라카드, 뭘 멍하니 보고 있는거야?놈을 막아!" "하,하지만 내공격은 하나도 안 먹힌단 말이야. "젠장, 누가 너보고 촉수를 잘라 내래? 촉수는 내가 잘라낼 테니 너는 잘린 놈들이 다시 결합히자 못하도롣 뭐라도 해 보란 말이야! "아, 알았어!" 라카드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아크가 잘라 낸 검은 덩어리를 탁탁 내려쳤다. 그러나 아크가 그냥 검을 휘두를 때처럼 돌맹이는 검은 덩어리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카르마가 완전히 맛이 간 눈으로 아크와 레카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어림없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 뿐이다‥‥‥, 모두 죽는 거다! 결국 돌맹이를 집어 던지고 뭔가 다른 물건이 없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라카드가 문득 구석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고 아크에게 날아왔다. "어라? 주인, 저것 좀 봐!" '지금 바쁜 거 안 보여? 으랏차차차!' "그럴 때가 아니야, 저길 보라니까!" "젠장, 뭔데? 어? 뭐,뭐야,저건?" 와락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돌리던 아크도 곧 라카드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아크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잘라내는 검은 덩어리들, 그러나 검은 덩어리는 잘리기 무섭게 다시 본체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덩어리도 있었다. 아크가 카르마를 난도질해 대는 장소는 망자 상인들이 장사를 하던 오벨리움의 중심 지역이었다. 아크가 잘라내는 검은 덩어리 중 몇 개는 그 망자 상인들의 좌판 위에 떨어졌는데, 잡템에 닿은 검은 덩어리가 그대로 잡템에 흡수되는게 아닌가? '저게 어떻게 된 거지? 검은 덩어리는 순수한 마기인데, 어떻게 마기가 흡수가 되는거야?' 잠시 어이없는 눈길로 바라보던 아크는 뒤늦게 뭔가를 떠올렸다. '가만‥‥‥,이 검은 덩어리들은 원래 카르마에게 담겨 있던 마기잖아,그리고 카르마는 앙그라돈이 육체를 재조립하느라 버린 뼈다귀였어. 그런데 마반 영웅이 마기를 연구하느라 납골당에 마기를 집중시키는 바람에 그 뼈다귀가 오랫동안 마기를 흡수해서 카르마가 생겨나게 된 거야. 아하, 그렇구나!' 그제야 너무나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앙그라돈의 몸이었지만, 일단 떨어져 나온 뼈다귀는 그냥 잡템에 불과하다. 그 잡템에 마기가 모여들어 카르마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의지를 갖게 된 카르마는 주변의 마기를 빨아들여서‥‥그래서 납골당의 다른 잡템에는 마기가 없었으리라‥‥앙그라돈을 위협할 만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카르마의 탄생 배경을 생각하면 답은 간단하다. 조건에 따랄 마기를 잡템에 흡수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카르마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면 그저 마기 덩어리, 그렇다면 처음 앙그라돈의 뼈다귀에 마기가 담겼을 때처럼 잡템에 마기를 주입할 수 있지 않을까? 몰론 한 곳에 모든 마기를 집중시키면 의지가 생겨 카르마처럼 또 다른 괴물이 될지도 몰라, 하지만 잘게 썰어서 분산시켜 버린다면‥‥‥. 좋아, 해볼만 하다!' 해볼만 하다기보다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라카드, 위성모드, 주변에 널려있는 잡템을 표시해라!" "오오오, 알았어!" 아크의 명령에 라카드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아크의 우측상단에 작은 미니 맵이 떠오르며 잡템들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좋아, 화격!" 아크는 잡템들이 모여있는곳을 향해 화격을 날렸다. 마치 푸딩처럼 물렁거리는 카르마의 육체가 폭팔하며 잔해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 중 일부는 희귀본능에 따랄 바닥을 기어 다시 본체에 흡수됐지만, 잡템 위에 떨어진 마기는 그대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마기가 흡수된 잡템은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마기가 흡수되어 아이템의 성질이 변해 버린 것이리라. 그러나 어차피 잡템. 게다가 아크 것도 아니다. 잡템이 어떻게 변하든 신경 쓸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효과가 있다, 놈의 몸이 줄어들고 있어!" -크으으윽‥‥‥이,이자식‥‥‥ 무슨 짓이냐‥‥‥. 그만둬! "멍청아,너라면 그만두겠냐?화격,화격,화격!" 아크는 검을 바닥에 마찰시키며 그 반탈력을 이용해 연속적인 화격을 뿜어냈다. 상대를 밀어내는 속성을 지닌 연쇄 스킬,화격! 스킬이 발동할 때마다 카르마의 육체가 펑펑 파여 나가며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마다 주변의 잡템들이 시커멓게 변하고, 그 숫자만큼 마기의 덩어리가 작아졌다. 크기가 작아져 가잦 촉수도 하나씩 끊어졌다. 그렇게 직경 수십미터에 달하던 마기 덩어리가 10미터, 5미터, 3미터‥‥‥. 결국 10여 센티미터까지 작아졌을 때는 영혼을 옭아매고 있던 촉수도 몽땅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조차 둘로 쪼개져 잡템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손가락만 한 크기로 변한 카르마가 이를 갈아붙이면 저주를 퍼부어 댔다. -네‥‥‥네놈‥‥‥, 감히‥‥‥이 몸을 ‥‥‥용서할 수 없‥‥‥. -'연쇄 소멸' 스킬이 완성했습니다! 그때 제한시간이 종료되며 카르마의 몸이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퐁! 카르마는 마치 콩알탄 처럼 터져 버렸다. '연쇄 소멸'은 함께 소멸하는 영혼의 숫자만큼 데메지를 주는 자폭 스킬. 그러나 영혼들을 옭아맸던 촉수가 모두 끊어지고, 육체마저 콩알처럼 변한 카르마읭 자폭스킬은 콩알탄만큼 위력도 없었다. 뭐랄까, 허망하기 짝이없는 최후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냈다!" 레벨업을 알리는 메세지창에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라자크와 망자들을 구해내고 레벨까지 2나 올렸다. 재탕한 보스를 잡아 올린 경험치치고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기적의 간병까지 성공시켜 스탯 보너스까지 받았다. 카르마를 물리쳐서 얻은 보너스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크는 혹시 뭔가 전리품이라도 떨구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카르마의 잔해를 뒤져 보았다. 그때 카르마가 폭발한 근처에서 반짝이는 검은 돌 같은 것을 발견했다. 혹시나 싶어 손을 가져가자 돌연 돌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더니 손바닥에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양쪽 손목이 시큰 거리기 시작했다. "아야, 뭐야?" 움찔하며 손목을 내려다보던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시큰거리는 손목 부분은 손목에 새겨진 문신이었다. 바로 '이터널 소울'의 각인. 그 부분이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욱신거리더니 돌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양 손목의 문신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쩡, 소리를 내며 동시에 갈라지는 게 아닌가? 뒤이어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해제되어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기감용] : 이터널 소울 1단계(초급, 패시브) '마기감용'은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으로 마반 영웅의 소울 스톤에 담긴 비가를 배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의 스킬입니다. 마기감용을 습득하면 마 속성의 몬스터와 싸울 경우의 5%의 추가 공격력이 보너스로 주어지며, 마 속성의 상태 이상에 저항할 확률이 10% 상승합니다. 또한 몬스터의 체내에 숨겨진 마가를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기 감지, 마 속성에 대해 공격력+5%, 속성저항력+10%>> [마기 봉인] : 이터널 소울 2단계(초급, 액티브) '마기 봉인'을 익힌 플레이어는 생명력이 3% 이하로 떨어진 마 속성의 몬스터에게 마기를 추출해 영혼을 해방시켜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추출한 마기를 특정 아이템에 봉인할 수 있습니다. 마기가 봉인된 아이템은 파괴되거나 랜덤으로 성질이 변하게 됩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마기를 정제할 수 있는 힘이 강해져 파괴 확률이 낮아집니다. <<마기를 추출, 아이템에 봉인할 수 있습니다. 효과는 랜덤. 영력 소모 : 50>> "어라? 이터널 소울?"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실 '이터널 소울'의 특성을 습득하고도 방금전까지 그걸 어떻게 해방시켜야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다크 소울과 관련된 깨달음이나 특별한 단서? 특성을 습득할 때 표시됐던 정보창의 설명이 애매모호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 뒷발질로 쥐 잡는 식으로 얻어 걸리다니‥‥‥. 어쨌든 일단 한 번 해방해 보니 대강의 방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터널 소울은 마반 영웅이 어둠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만든 스킬, 당연히 스킬 해방 조건도 어둠의 세력이 갖고 있는 마 속성과 관련된 것이리라. 즉, 마속성의 몬스터와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며 싸우다 보면 다음 레벨에 대한 실마리도 잡힌다는 말이다. "그나저다 마기 감응은 그렇다 쳐도 마기 봉인이라니‥‥‥." 마 속성 몬스터를 감지하고 공격력을 올려 주는 마기 감응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아크는 지금까지 여행하며 마 속성의 몬스터를 몇 번 만나 보았다. 절망의 심연에서 만났던 네크로맨서 타무라드나, 시르바나의 비밀 던전에 있던 에이션트 이블 고트도 마 속성이었다. 그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마 속성 몬스터는 다른 속성에 비해 월등히 강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몬스터를 상대할 때 추가 공격력이 주어진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2레벨 스킬인 마기 봉인은 영 마 음에 들지 않았다. 때려잡은 마 속성의 몬스터에게서 마기를 추출해 아이템에 담는다? 카르마를 조각내서 잡템에 쑤셔 넣었으니 방식은 대강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아이템의 성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마기를 담아 아이템의 성질이 변해도 일단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문제는 아이템이 파괴될 확률도 있다는 것이다. '멀쩡한 아이템에 마기를 담아서 머해? 게다가 파괴될 확률도 있다니‥‥‥. 결국 몬스터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는 것 외에는 좋은점이 없잖아. 이터널 소울, 명칭이 거창해서 은근히 기다해고 있었는데 1,2단계 스킬을 영 슬모가 없군. 그래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건가?' 아크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실 때였다. -오오오, 나는‥‥‥나는‥‥‥. 상황이 정리되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망자의 영혼들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리던 아크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카르마에게 사로잡혔다가 뱉어진 망자의 영혼들은 이전과는 달랐따. 그저 회색의 흐릿한 형체에 불과했는데, 카르마가 사라지자 형체가 보다 분명해지고‥‥‥ 무엇보다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마약 환자처럼 멍하던 눈동자가 마치 10대에 야구소년처럼 똘망똘망하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반짝이는 눈동자로 엉망이 되어 버린 주변을 훑어보았다. -웃, 이, 이게 대체‥‥‥? -마치 악몽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 -아아, 그래 기억이 난다. 이제 기억이 나. -그래, 우리는 패했던 거야. 어둠의 제왕에게‥‥‥. -그 이후로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난거지? 영혼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들의 영혼을 잠식하던 마기가 카르마에게 흡수되어 잡템에 봉인되어 버리고, 기적의 간병으로 '축복'과 '정화'효과까지 받아 드디어 순수한 영혼상태가 되어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것이다. 수백년 만에 깨어난 그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었다.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 그래, 우리는 방금 전에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에 삼켜져서 영원한 암흑으로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어. 하지만 누군가의 외침에 정신이 들었어. 절망에 빠져 닫혀 있떤 마음을 열고 빛을 들여보내 준 사람이‥‥‥! 누군가의 목소리에 영혼들의 시선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그때 뒤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왕 폐하께서 남시신다. 모두 경의를 표하라! -구, 국왕폐하! 영혼들이 화들짝 놀라며 좌우로 갈라져 몸을 조아렸다. 뭔가 정신없이 상황이 연결되어 아크는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 일단의 행렬이 망자들 사이로 걸어 나왔다. 달의 문을 찾기 위해 왕성에 들어갔을 때, 왕의 홀에서 봤던 국왕과 호위병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기적의 간병'효과 덕분에 순수한 영혼이 되었는지, 이전의 멍한 표정과 달리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마치 꼬마 유령 캐스퍼를 떼거지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군." 뭐, 유령모습에 눈동자만 똘망똘망 하니 그게 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나저나 이제 뭘 어째야 하는 거지?' 아크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잇을 때였다. 유령들을 가로지르며 다가온 국왕이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대로군, 그대였어! "네? 그게 무슨‥‥‥?" -오오오, 틀림없다. 우리를 어둠 속에서 이끌어 준 목소리의 주인, 그대였어! ACT 2 금단의 식재료를 찾아서‥‥‥ -오벨리움의 구세주다, 모두 예를 갖추라! -영웅을 찬양하라! 페허가 된 왕성 앞에 늘어선 병사 유령들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에 모여든 주민 유령들이 환호성을 질러대며 소리쳤다. -아크 님, 만세! -마반 영웅의 후예 만세! 나중에야 알게 됬지만, 사실 망자의 허물은 영혼을 가둬 두는 족세에 불과했다고 한다. 카르마가 마기를 몽땅 빨아들인 상태로 소멸하자 오벨리움의 주민들을 모두 저주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덕분에 모두 망자의 허물을 벗고 순수한 영혼의 상태가 되었다. 또한 과거의 거억도 되찾아 정신병자처럼 미련에만 집착하지 않게되었다.'하지만 저 눈망울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아크는 부담스럽게 짝이 없는 눈길로 자신을 향한 유령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주에서 벗어난 유령들은 애어른 할 것 없이 마치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눈망울을 하고 있었다. 유령 주제에 눈만 반짝반짝, 똘망똘망,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아크가 카르마를 무찔러 준 덕분이다. '기적의 간병;을 사용할 때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국왕은 곧바로 아크 일행을 영웅으로 공표하고 왕성으로 맞아들였다. 그렇게 말끔하게 정리되자 마을 밖에서 노닥거리던 북실이와 백구까지 냉큼 달려와 당연하다는 듯이 영웅 대접을 받았다. 북실이가 환호하는 유령을 바라보며 해벌쭉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헤헤헤, 봤어요? 나보고 영웅이래요." "넌 염치도 없냐?" "네? 뭐가요?" 네가 뭘 했다고 쪼르르 달려와서 영웅대접을 받아?" "뭐, 그렇게 섭섭한 말을 하십니까? 제가 한 일이 왜 없어요?" 아크가 못마땅한 목소리로 툭 쏘아 붙이자 북실이가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아크 님이 납골당을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것도 내가 눈알로 서포트를 했기 때문이잖아요. 게다가 눈알로 따라다니면서 촬영한는 건 뭐, 쉬운 줄 알아요?" 백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객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은 정말 눈알이 빠질 정도로 고생하셨다고요." 윽, 그렇게 말하니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다른건 몰라도 눈알이 빠지게 고생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크윽, 역시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다. 백구야" 북실이가 눈물을 글써이며 부둥켜안자 백구가 꼬리를 흔들어 대며 헥헥거렸다. 정말 놀고들 앉았다. 북실이와 백구의 같잖은 형태를 보고 있자니 뭐라고 한 마디 딴지를 걸어 주고 싶은 생각이 불끈불끈 치밀어 올랐지만, 그런 자잘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이로써 이곳의 일도 다 정리가 된 셈이군. 이제 남은 건....' 아크는 유령들보다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국왕 유령을 바라보았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크는 카르마를 해치우고 오벨리움을 수백 년의 저주에서 구해 냈다. 그야말로 영웅적인 행적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 영웅에게 걸맞은 보상을 받아야 할 때인 것이다. 아크의 눈길을 의식한 듯 국왕 유령이 다가왔다. -정말 큰일을 해 주었네. "과찬이십니다." 아크는 짐짓 점잖을 빼며 대답했다. 이미 영웅 대접을 받고 있는데 싼 티 나게 대놓고 잘난 척할 필요는 없었다. 이럴 때는 적당히 겸손을 떨어 주는 편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일수록 NPC들의 호감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지사. 역시나 국왕 유령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아니야. 절대 과찬이 아니네. 본래 다른 사람들의 위에 선 자는 칭찬을 아껴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자네가 한 일은 칭찬을 아낄수 있는 일이 아니야 "뭘 그렇게까지..." -아직 자네가 우리에게 어떤 일을 베풀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자네는 아마 상상도 못 할 거네. 수백 년간 이성조차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말이야. 끝없이 절망의 순간을 곱씹으며 수백 년을 지내야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국왕 유령은 고통스러운 눈길로 부서진 발코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밑에 펼쳐진 것은 왕좌에 않아 수백 년간 지켜봤던, 페허가 돼 버린 오벨리움의 전경이다. 오벨리움이 뤼겐베르크가 내뿜은 저주 마법에 의해 멸망 할 때, 국왕 유령은 바로 그 왕좌에 않아 피눈물을 흘리며 왕국의 종말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국왕 유려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와 절망, 자책감이 미련이 되어 국왕 유령은 어둠의 기운에 사로잡혔고, 망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왕좌에 않아 수백 년 동안 똑같은 영상을 수천,수만 번 반복해 보며 고통을 당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저주 마법의 진정한 무서움이었다. 그런 설명을 하는 국왕 유령의 목소리는 아크조차 숙연하게 만들었다. -자네 덕에 저주는 풀렸지만 아직 당시의 고통은 가슴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네. 아니, 모든 것을 기억해 내서 오히려 자책감은 더운 깊어졌지. "그럼 제가 한 일은..." 아크가 불안한 표정을 짓자 국왕 유려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는 없네. 내가 느끼는 고통은 왕국을 파멸로 몰아넣은 국왕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네. 단지 내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나를 따르던 국민들까지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지. 하지만 이제 저주가 풀렸네. 우리를 속박하던 어둠의 기운이 사라졌으니. 이제 무언가로 자네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하는게 오벨리움을 침략한 어둠의 세력이 왕성창고를 털어버려서 무엇을 주어야할지.. 아크는 진심으로 오벨리움을 침략한 어둠의 세력에게 분노를 느꼈다. 결국 어둠의 세력이 왕성 창고를 털어 버려서 땡전 한 푼 못받게 됐다는 말이 아닌가? 그동안 수없이 어둠의 세력에 대한 얘기를 들었지만, 진심으로 분노를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분노를 터뜨려 봐도 약탈당한 보물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때 눈치 없는 국왕 유령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보물들만 남아 있다면 자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뭐야? 지금 염장 지르는 거냐? 그런 거냐?'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국왕 유령을 쏘아보았다. 결국 국왕 유령은 땡전 한 푼 줄 수 없는 개털 국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던 아크는 맥이 쭉 풀리는 기분이 드렁ㅆ다. '젠장, 어쩐지 말이 길어질 때부터 뭔가 찜찜하다 싶더니...뭐, 할 수 없지. 어차피 구하려고 마음먹고 구한 것도 아니고.....이번에는 그냥 착한 일 좀 했다는 기분만으로 만족 해야 하는 건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정이 어떻든 딴에는 고생했는데 보상이 없다. 보통 때라면 한 마다라도 쏘아붙였겠지만, 똘망똘망한 눈깅을 보내는 유령들을 바라보니 화낼 기분도 들지 않아싿. -아, 그렇군. 그 방법이 있었지! 그때, 뭔가가 생각난 듯한 국왕의 말에 반쯤 포기하고 있던 아크의 눈동자가 다시 반짜였다. '오옷, 뭐야? 이 반응은? 역시 뭔가 있는 건가? 그럼 그렇지, 아무리 폐허가 된 곳이라도 뭔가 하나쯤은 있어야지!' 아크는 다시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망울로 국왕유령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국왕 유령의 말에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사실 오벨리움에서는 전사가 죽으면 그가 사용하던 장비품과 함께 납골당에 안치하는 관습이 있었네. 그리고 납골당의 위치는 외부에는 비밀이라 어둠의 세력도 미처 납골당까지는 손을 대지 못했지. 비로 수백 년이 흘렀지만 아직 찾아 보면 쓸 만한 게 나올지도 몰라. 부장품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오벨리움을 구원한 영웅을 위해서라면 선조들도 이해해 줄 거네, 지금 당장 납골당의 봉인을 풀고... "자, 잠깐만요!" 아크가 불에 덴 사람처럼 펄쩍 뛰며 소리쳤다. 납골당의 부자품이라니? 그건 이미 아크가 몽땅 도굴해 가방에 챙겨 놓았지 않은가? 현재 납골당에는 부장품 대신 아크가 남겨 놓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물론 무식한 북실이처럼 묘지에서 '아크 다녀가다' 따위의 낙서를 해 놓지는 않았지만 최근에 사람이 들어온 흔적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오벨리움을 찾아온 사람은 아크뿐. 만약 국왕 유령이 납골당에서 그런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이라도 들어오면 피곤해지는 것이다. 만의 하나 들키기라도 하면 아크는 영웅에서 도굴꾼으로 추락! 최악의 경우, 오벨리움의 유령들이 몽땅 적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장품은 카르마의 시간 마법으로 다 새것처럼 만들어 놨단 말이야! 압수라도 당하면......으악, 안 돼!" 아크가 펄쩍 뛰자 막 병시들을 불러 명령하려던 국왕 유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나? "그,그게.." 잠시 떠듬거리던 아크가 재빨리 혓바닥을 놀려 댔다. "뭔가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오해라나? 뭘 말인가? "제가 오벨리움을 구원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건 마반 영웅의 유지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 결코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저 역시 사람이라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거절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미 고인이 된 분들의 부장품까지 탐낼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부탁이니 그 말씀은 거둬 주십시오" "네, 아크 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의 부장품을 받다니요? 그런 물건을 받거나, 훔치는 사람은 그야말로 인간쓰레기입니다. 그렇죠, 아크 님?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북실이가 실실 웃으며 아크를 흘겨보았다. 덕분에 혈압이 급상승했지만 아크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렇지. 어쨌든 저는 결코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크의 뻔뻔한 말에 라카드와 북실이, 백구가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명색이 기사 출신 언데드인 라자크는 그저 구석에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 리 없는 국왕 유령은 감동받은 얼굴로 끄덕였다. -과연 마반 영웅의 후예! 그래, 마반 영웅도 자네와 같았지. 국왕 유령은 기억을 되살리는 듯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망자였을 때의 기억이 일부 남아 있네. 나는 비록 멸망한 왕국의 군주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네. 후세를 위해 명예롭게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웠다는 그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우리가 멸망한 뒤에 마기가 흘러넘치는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내 기대와 달리 우리는 역사에조차 남지 못하고 잊혀 버린 것이네. "....." -하지만 단 한 명. 우리를 기억해 준 사람이 있었네. 마반 영웅... 그만은 우리를 잊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우리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일생을 바쳤지. 결국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국왕 유령의 목소리에 아크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버려진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던 마반영웅! '현찰이 힘이다'를 부르짖는 아크조차 국왕 유령에게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그런 마반 영웅의 직업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부심이 느껴졌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마반 영웅은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었습니다" 아크가 얼른 덧붙이자 국왕 유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을 거네. 그리고 자네가 우리를 구원해 준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지만, 자네 이전에 우리는 이미 마반 영웅에게 한 번 구원을 받았네. 모든 것을 거고 어둠의 세력과 맞섰지만 우리는 역사에조차 남지 못했다. 틀림없이 우리의 영혼은 후회와 분노로 타락했겠지. 저주 마법이 풀리고 모든 기억을 되찾았을 때, 우리의 영혼이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반 영웅 덕분이었네. 진정한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의 기억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멸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네. "그렇게 존경받는 마반 영웅의 후예는 납골다을 털었다는 겁니다" 옆에서 북실이가 한심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속닥거렸다. 막상 그렇게 연결해서 들으니 좀 쪽팔리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거기까지 말한 국왕은 고개를 돌려 주위에 늘어선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자부심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국왕 유령이 뭔가 결심한 듯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이제야 생각났네. 마반 영웅의 후예에게 어울릴 만한 보상이 뭔지 "네? 보상이라니요? 그 문제는...." 제 발 저린 도둑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국왕 유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물질적인 보상을 말하는 게 아니네. 마반 영웅의 유자를 이어 우리를 구해 준 자네를 위해서라면 설사 또다시 그 같은 고통을 받게 된다고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자네를 돕겠네.그리고 자네는 언젠가 어둠의 세력과 맞설 운명을 가진 영웅. 우리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영광을 자네와 함께 이루고 싶네. 돌연 국왕의 손에서 화끈한 열기 같은 것이 아크의 손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두두둥, 소리가 울리더니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진실의 추구' 특성으로 인해 '전승자'에게 새로운 스킬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비전 스킬:비술, 유령 기사단 강습> *스킬을 습득하시려면 6000의 명성이 필요합니다 '전승자 스킬!'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실의 추구'는 얼마 전 이사벨에게 받은 '스탄달의 영웅'칭호를 받아 생긴 부가 효과! 뉴 월드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전승자에게 비기를 전수받을 수 있는 특성이다. 칭호를 받고도 잊어 머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단서를 찾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본래 죽음을 숭배하던 오벨리움의 왕족은 선조들의 영혼을 불러내 사자의 계약을 맺는 비법을 전수받고 있었네. 어둠의 제왕이 우리를 두려워하던 것도 그 때문이지. 비록 지금은 유령이라 선조의 영혼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지만, 산 자와 계약을 맺을 수는 있지. 유령이 돼 버린 우리가 자네를 도울 방법은 이것뿐이네. 물론 유령과 계약을 맺으면 자네의 명성에 누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부디 우리의 성의를 받아주게. 스킬을 배우면 명성에 누가 된다. 스킬을 배우기 위해 명성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인 모양이다. '하지만 스킬 하나에 명성이 6,000이나 소모될 줄이야' 현재 아크의 명성은 11,825. 지금까지 모은 명성을 절반이상이나 투자해야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약간 망설여졌지만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어차피 아크에세 명성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필요 없는 명성을 깎는 대신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름이나 국왕의 설명만으로는 아직 어떤 스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명성 6,000을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그만큼 강력한 스킬일 가능성이 높다.' "저는 세상의 이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영광입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영광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의 평화는 여러분처럼 그늘에서 목숨을 바친 명예로운 전사들의 희생으로 일구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되어서까지 세계를 지키고 싶다는 열의를 가진 여러분은 세상 누가 뭐라고 하든 진정한 영웅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여러분의 열의를 거절할수 있겠습니까?" 이득이 된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안면에 철판을 쫙 깔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여 댔다. 아크의 속내가 어떻근, 내용만큼은 유령드르이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오오, 그대 덕에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노라! -우리의 생명을 아크 님에게 맡깁니다! 병사 유령들이 검을 바닥에 세우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뒤이어 국왕 유령이 맞잡은 손을 떼자 손등에 번쩍이는 문양이 새겨졌다. 방패에 X자 모양으로 검이 가로지르고 있는 문장. 병사 유령들의 가슴에 새겨진 문장이었다. 잠시 빛을 발하던 문장이 스미듯 사라지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전승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비술, 유령 기사단 강습(특수, 초급, 액티브) : 오벨리움에 전승되는 사자死者의 계약에 ㅡ이해 왕성에 남아 있는 유령 기사단을 30명까지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된 유령 병사는 영격 게이트가 유지되는 5초간 주변의 적을 무작위로 공격하고 사라집니다. 유령 기사단은 물리 공격에 데미지를 입지 않으며, 설사 죽어도 다음 소환에 응할때는 다시 부활합니다. 등급이 올라가면 소화되는 유령 병사들의 공격력이 더욱 강해집니다. 단, '유령 기사단 강습'은 소황 계열 스킬이라 영력을 소모합니다. <30명의 오벨리움 유령 군대를 5초간 소환합니다. 대기 시간: 24시간, 영력소모 : 300> 유령 기사단 소환! 5초 동안 30명의 유령 기사단을 소환해 일정 범위의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스킬! 소환 계열의 스킬이지만 일종의 광역 마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환 계열이라 영력을 300이나 소모한다는 게 좀 그렇지만, 어차피 소환수를 불러 놓은 상태라면 따로 영력을 사용할 데가 없어. 어떻게 보면 마나보다 영력을 소모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게다가 범위 공격이라지만 다른 광역 스킬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아크가 익힌 대표적인 광역 스킬인 '섬아' 의 경우, 기본 데미지가 100이라면 적이 100명일 때 모든 적에게 100의 데미지를 주지만, 한명일 때도 100의 데미지 밖에 주지 못한다. 결국 한명일 때는 차라리 '다크 블레이드' 를 한번 사용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령 기사단 강습' 은 유령 기사단을 소환하는 스킬. 물론 상댁 많으면 닥치는 대로 공격하겠지만, 적이 하나뿐이면 30명의 기사단이 그 한명에게 모든 공격을 집중하리라. 즉, 다른 광역 스킬과 달리 1대 다수는 물론, 1대1 상황에서도...... 아니, 1대1에서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아크가 와락 국왕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보상품을 챙기지 못해 찜찜했던 기분이 단숨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니, 이 스킬 자체가 기대 이상의 보상이었다. -미력한 우리의 도움에 그토록 기뻐해 주니 짐도 흡족하네. 국왕 유령도 기쁜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곧 국왕과 함께 왕성을 나왔다. 그리고 작별 인사를 하고 오벨리움을 나서려는데, 몇 명의 병사 유령들이 난처한 얼굴로 다가왔다. -국왕 페하,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곤란한 일? -네, 실은........ 병사 유령들이 주변에 몰려 있는 유령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왕성 앞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 망자가 변한 상인유령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거무튀튀한 잠템들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국왕 유령과 아크가 왕성에서 나오지 몰려들어 떠들어 댔다. -국왕 폐하, 저 물건들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저 물건들은 뭔가? -우리가 저주에 걸려 있을 때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잡동사니들입니다. 하지만 아크 님이 카르마와 싸울 때 마기를 봉인해 놓은탓에 우리가 저주에 걸렸을 때 느꼈던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근처에도 갈 수가 없습니다. 상인 유령의 말에 아크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카르마의 마기를 몽땅 잠템에 쑤셔 박아 넣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유령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아이템을 만지지도 못하게 된 모양이다 '설마 물어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아크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국왕 유령이 약간 노기를 품은 목소리로 상인 유령들에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뭔가? 설마 은인에게 그 책임을 묻자고 하는 것인가? 역시 높은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상인 유령들은 움찔하며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런 끔찍한 물건이 사방에 널려 있으니 무서워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네, 제발 저 끔찍한 물건들을 치워 주십시오. -흠, 확실히 영혼 상태인 우리들에게 마기가 봉인된 물건은 너무 위험하지. 어딘가로 치워 버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칫 마기가 풀릴 수도 있고.....그렇게 되면 저주 마법이 부활할 우려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오벨리움에 묶인 영혼이니.... 사정을 들은 국왕 유령 역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인 것은 그때였다. "제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자네가? "네,저는 마기가 봉인된 물건이라도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저 물건들을 모아다가 안전한 곳에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오오, 그렇군, 마기를 봉인한 자네라면 문제없겠지.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 끔찍한 물건들을 치워 주십시오. '후후후, 잡템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군' 상인 유령들의 대답에 아크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기가 스며들어 유령에게는 치명적인 성향을 갖게 된 장비품! 그러나 아크에게는....아니, 일반 유저나 NPC에게 마기는 그렇게까지 위험한 기운은 아니었다. 물론 마기가 스며 그렇지 않아도 잡템인 물건들이 더욱 심각한 상태로 변했겠지만, 혹시 아는가? 어딘가에서 고철로 팔아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뭐, 찜찜하다고 상점에서 사 주지 않으면 그냥 버리면 그만이다. '어쨌든 유령 기사단을 소환하는 스킬을 배웠으니 나름대로 친밀도를 관리 해야 해.' 아크는 그렇게 생색이나 내려고 잠템 처리를 떠맡았다. 그러나 막상 근터의 검을 집어 든 아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오벨리움의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재활용 불가 쓰레기 더미야말로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었던 것이다 저주받은 낡은 검 무기타입: 한 손 검 공격력:7~10(+50) 내구력:8 무게:45 사용제한 :레벨 250 오벨리움의 전사들이 사용하던 고대의 검. 그러나 검에 마기가 흡수되어 성질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마기가 깃든 검날에는 일격에 상대를 괴멸시킬 위협적인 기운을 품게 됐습니다. 동시에 검이 마기, 그 자체가 되어 버려 내구력은 극도록 약해졌습니다. 또한 저주 효과로 인해 사용자가 일단 검을 착용하면 부서지기 전에 해제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수리 불가, 강화 불가, 마법 부여 불가, 장비 시 헤제 불가 *저주 효과로 인해 착용자에게 10초당 50의 데미지 저주받은 낡은 방패(마법) 방어구 타입: 강철 방패 방어력:30(+250) 내구력:7 무게:30 사용제한: 레벨 150 전사 계열 너무 오래되어 제 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고대의 방패. 그러나 방패에 마기가 흡수되어 성질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방패에 깃든 마기가 불안정해 공격을 받을 때마다 강력한 마기가 방출되어 공격자에게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동시에 방패가 마기, 그 자체가 되어 버려 내구력은 극도록 약해졌습니다. 또한 저주 효과로 인해 사용자가 일단 방패를 착용하면 부서지기 전에 해제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수리 불가, 강화 불가, 마법 부여 불가, 장비 시 헤제 불가 *저주 효과로 인해 착용자에게 10초당 50의 데미지 '헉, 고, 공격력에 +50? 그럼 공격력이 57~60이라는 말이잖아?' 아크는 북실이처럼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현재 아크가 사용하는 레어 양손 검. 귀살검의 공격력이 40~50이다. 그런데 평범한 한 손 검의 공격력이 그보다 높은 것이다. 물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저주가 깃들어 내구력이 고착8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수리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뿐인가? 한 번 착용하먄 벗지 못하여, 10초에 50의 데미지를 받는다. 1분이면 300. 10분이면 3000! 생명력이 3000 전후의 유저는 그냥 차고만 있어도 10분이 지나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 저주받은 검! '하지만 개똥도 쓰기 나름이다' 내구력이 8밖에 남지 않았다면 몇 번만 휘둘러 대면 파괴된다. 다시 말해 생명력이 바닥나기 전에 부숴 버리면 된다. 물론 그동안 적지 않은 데미지를 받아야 하겠지만, 적어도 사용 할 때만큼은 동렙 최상급 검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전투 중에도 검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다수의 적과 싸울 때 일단 이 검을 사용해 적에게 최대한의 데미지를 주고, 검이 부서진 뒤에 일반 것으로 바꿔 싸우는 방식이라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복잡하게 사용할 필요도 없어' 아크는 검을 폭팔시키는 '블레이드 스톰' 스킬을 가지고 있다. '블레이드 스톰'은 검의 공격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공격력이 높은 검은 그만큼 비싸서 제대로 활용할수 없어싿. 하지만 아차피 다른 곳에 팔 수 없는 검이라면 부담이 없다. 게다가 공격력은 어지간한 레어 검보다 높다. 또한 개둥에는 '저주받은 검'으로 변하며 마법 속성을 띈검도 있었다. 만약 그런 검을 마법검 전문 폭팔 스킬인 '블레이드 템페스트'를 사용해 폭팔시키면 얼마나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그런 저주받은 검이 무려 30여 자루! 이로써 아크는 30발의 미사일을 장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검처럼 저주가 깃들어 방어력이 뻥튀기된 방어구가 40여개! '이런 엄청난 아이템을 다 버린다고?' 물론 이렇게 저주가 걸린 아이템을 상점에서 살 가능성은 없다. 착용하는 것만으로 생명력이 깎이고, 수리 불가에 장비 해제도 되지 않으니 일반 유저에게 팔아먹기도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아크에게는 고작 몇십 실버밖에 받을 수 없는 평범한 잡템보다는 백배 더 쓸모가 많은 아이템이었다. '이건 대박이다!' 아크는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갈 지경이었다. 그때 정신없이 저주받은 아이템을 챙기던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아이템들의 성질이 변한 건 마기가 봉인돼서잖아?' 그리고 아크에게는 아이템이 마기를 봉인시키는 스킬이 있었다. 바로 이터널 소울 2단계. '마기 봉인'! '그럼 마 속성의 몬스터만 있으면 이런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잖아?' 상점에더 팔기도 뭐한 잡템을 저주받은 무기로 만들어 '블레이드 스톰'용으로 사용하면 효과는 200%! 잡템과 마 속성의 몬스터만 있으면 이런 미사일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말이다. 뭐, 마 속성의 몬스터가 그리 흔한 게 아니지만..... 어쨌든 아크는 그렇게 '마기봉인'의 새로운 사용법을 궁리하는 동안에도 잡템을 챙기는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오벨리움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 모든 저주템을 책긴 뒤에야 아크가 허리를 펴고 국왕 유령에게 다가갔다. "저주받은 물건들은 몽땅 챙겼습니다" -수괬네. 이제야 오벨리움에서 저주의 흔적이지겠군.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건강히 잘 계십시오." -건강히.....유령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아, 그런가요?" 아크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자 국왕 유령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고맙네. 자네의 여정에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겠네. 그렇게 아크가 유령들의 환송을 받으며 오벨리움을 나오려 할 때였다. 문득 라자크가 아크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이를 마주쳤다. 딱딱, 딱딱딱딱... "뭐야? 왜 그래?" "이 녀석이 국왕 유령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는데?" "물어보고 싶은 거?" 라카드의 통역에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라자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뭐라고 중얼거렸다. 라자크가 물어보고 싶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과거였다. 새삼스럽지만 라자크는 자신이 기사였다는 것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카르마가 소멸해 오벨리움이 정화됐지만 라자크는 다른 유령처럼 과거의 기억을 되찾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어째서 기사였던 자신이 왕성의 지하 감옥에서 언데드로 부활하게 됐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반 영웅의 언데드 소환수였던 앙그라돈에게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기억을 되찾은 다른 오벨리움의 유령들을 보니 알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모양이다. 막상 라자크가 얘기를 꺼내니 어크 역시 궁금해 졌다. "그러고 보니....혹시 뭔가 아시는 게 없습니까?" 그러나 국왕 유령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당시 왕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을 테니까. 국왕 유령의 대답에 라자크가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자 국왕 유령이 뭐나를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네. 예로부터 오벨리운에서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몸에 특수한 표식을 남겨 두는 형벌이 있었네. 그 표식은 설사 죽어 뼈만 남는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것이지. 자네 몸에 그런 표식이 없다는 것은, 자네가 그런 흉악범은 아니라는 뜻이네, 당시는 전쟁 중이라 군율을 어긴 기사나 귀족도 감옥에 갇힐 때가 있었으니 자네 역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하네. "아니, 아직 몰라. 혹시 뼈다귀를 몽땅 갈아치운 건 그 때문에 그런 거 아냐?" 딱딱? 딱딱딱딱! 라카드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라자크를 흝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라자크가 방방 뛰며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국왕 유령이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군. 그러나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라자크의 과거가 뭐든 지금은 제 소환수일 뿐입니다." 순간 라카드를 쫓아다니던 라자크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마치 오벨리움의 유령들처럼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활짝 폈다. 그러자 북실이가 백구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아크 흉내를 냈다. "백구야, 너도 과거가 어떻든 지금은 내 애완견이야" "네, 주인님. 백구는 행복합니다" "쳇, 재미없어" 라카드가 돌부리를 걷어차며 입술을 삐쭉거렸다. "다크 블레이드!" 날카로운 검광이 공간을 갈랐다. 시커먼 피가 튀어 오르고 몰드좀비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동시에 넘날에 뿜어져 올라오는 검은 불꽃 같은 기운이 확대되듯 한 단계 더 커졌다. "아직 멀었어!" 아크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했다. 그때마다 검날에 모여드는 검은 기운이 점차 커지다가, 곧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종국에는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 속에서 번쩍번쩍 스파크가 일어났다. 스파크가 일어날 떄마다 검날이 짜르르 울리는 느낌이 고스란히 손에 전해져 왔다. "좋아, 지금이다.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가 몸을 날리며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쿠아아아아! 콰광! 그러자 검날에 집약되어 있던 검은 기운이 당숨에 폭사되며 달려드는 몰드좀비를 후려쳤다. 강렬한 스파크에 휩싸인 검은 기운! 생명력이 30% 이상 남아 있던 몰드좀비가 일격에 산산이 부서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몬스터의 남은 생명력보다 훨씬 높은 데미지를 줬을 경우 '오버 크리티컬'이 적용되며 펼쳐지는 연출이었다. "이거야, 이거. 이 짜릿한 손맛!" 아크는 사벙으로 흩어지는 몰드좀비의 시신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방금 전, 아크가 사용한 기술은 전직하며 새로 배운 '다크 스트라이크'였다. '다크 블레이드'를 사용할 때마다 어둠의 기운을 차지시켜 단숨에 방출하는 일격필살의 기술! 현재 '다크 블레이드'의 등급이 상급이라 최대 네 번까지 차지할 수 있었다. 한 번 차지될 때마다 50%의 공격력이 추가되니 네 번이면 +200%의 공격력! 게다가 '다크 스트라이크'는 일종의 검기처럼 멀리 날릴 수도 있었고, 치명타 확률도 '다크 블레이드' 보다 높았다. 제대로만 맞으면 레벨 300대의 몰드좀비도 생명력이 30%이상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크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타격감, 일명 손맛이었다. '이거 중독성이 장난 아니잖아?' 검에 어둠의 기운이 차지될 때마다 진동하는 검날! 그리고 차지된 기운을 단숨에 폭팔시킬 때의 충실한 느낌! 적당히 생명력을 깎아 놓은 몬스터가 일격에 '오버 크리티컬'이 발동되어 박살 나는 통쾌함! 아크가 귀살검을 유난히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도 역시 그런 손맛이었지만, '다크 스트라이크' 하나만으로 전투가 몇 배는 재미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직을 하면서 네 가지의 직업 전용 스킬에 모두 추가 스킬이 따라붙었다. '다크 스트라이크' 와 '블레이드 템페스트', '다크 스케일', '문라이트 일루전'! 한꺼번에 네 가지의 추가 스킬이 생긴 덕분에 아크는 하나하나 시험해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주인, 뒤쪽이야!" 그때 맞은편에서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어어어! 몸을 회전시키자 뒤쪽에서 몰드좀비 다섯 마리가 팔을 휘둘러 대며 달려들었다. 순간 라자크가 아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패를 휘둘렀다. 따다다당, 중금 '방패 치가'로 동시에 세 마리를 후려치자 몰드좀비들이 튕겨져 날아갔다. "잘했어, 라자크" 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아크의 전투 방식은 라카드와 라자크, 두 마리의 소환수가 함께 있어야 100% 효율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라카드가 주변의 적을 분석하며 적당히 분산시켜 놓는다. 그리고 라자크는 아크의 배후에서 불의의 기습을 막고 역습을 가한다. 이게 본래 아크의 전투 방식. 든 자리는 몰라도 빈자리는 안다는 말이 있다. 사실 아크는 항상 함께 있다 보니 소환수들이 얼마나 큰 역활을 담당했는지 잊고 있었다. 그러나 스탄달이 떠오른 뒤에 한 달 이상 떨어져 있어 보니 새삼 소환수들의 존재가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실감되었다. 그리고 '다크 워커'로 전직했을 때 처럼 거저 되찾은 게 아니라, 고생을 한 만큼 소환수들에 대한 애정도도 달랐다. 그런 심경의 변화는 곧바로 시스템에 적용되었다. -소환주의 진심 어린 칭찬에 '라자크'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애정도+2> '후후후, 한 번 일이 풀리기 시작하니 뭘 해도 되는구나' 예전 같았으면 애정도 따위는 관심도 없었겠지만, 이제 애정도로 소환수의 스킬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힘이나 체력 이상으로 중요해진 스탯이다. 라자크만 칭찬하자 라카드가 입술을 내밀며 툴툴거렸다. "나는?나는? 내가 재빨리 알려 줘서 막은 거잖아?" "너도 잘했어. 역시 넘버 2다!" "우헤헤헤, 그렇지? 그렇지? 역시 주인은 나 없으면 안된다니까" 라카드가 금세 헤벌쭉한 얼굴로 지껄여 댔다. 소환수가 두 마리 있어야 하는이유가 그 때문이기도 했다. 한 마리만 불러냈을 때는 별로 그런 내색이 없지만, 두 마리를 동시에 불러내면 소환수들은 경쟁의식을 불태웠다. 진화를 하며 머리가 돟아질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때문에 한 마리밖에 없을 떄보다 두 마리일 때, 소환수의 전투 의욕도 더욱 강해졌다. "덤벼라, 라자크의 사촌들아. 이 몸이 넘버 2다!" 지금도 의욕이 넘치는 라카드는 쉬지 않고 도발을 날려 대며 30마리나 되는 몰드좀비들을 몰고 다녔고, 라자카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방패를 휘둘러 댔다. 덕분에 전투가 한결 쉬워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까지 140마리 정도 잡았나?' 아크는 쉬지 않고 검을휘둘러 대며 계산해 보았다. 몰드좀비를 상대할 때의 필수품인 '곰팡이 소독약'. 오벨리움을 찾아갈 때는 그 소독약이 효과를 발휘하는 1시간 동안 몰드좀비 100마리 잡은 게 최고 기록이었다. 그러자 라자크까지 가세한 지금은 평균 160마리를 잡았다. 60% 이상의 효율 향상! 전직을 하여 받은 각종 능력치 보너스와 새로운 스킬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며칠 전보다 더욱 수월하게 더 많은 몬스터를 잡을 수 있게 된 건 라카드와 라자크, 두 마리의 소환수를 모두 찾아 예전의 완벽한 전투 체채가 갖춰졌기 때문이었다. '역시 다크 소울은 소환수가 있어야 100%라고 할 수 있어, 좋아,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슬슬 정리하고 야영지로 돌아갈까?' "라카드, 좀비들을 이쪽으로 몰고 와!" "오케이!" 쉬지 않고 도발을 날려 몰드 좀비 들에게 철천지원수가 된 라카드가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요리조리 움직이며 30여 마리의 몰드좀비가 일렬로 늘어서도록 만들어 놓았다. 아크가 무슨 기술을 사용할지 알고 있는 것이다. "잘했어, 제대로 모아 놨어, '도약'!" 아크가 '늑대의 발' 스킬을 발동시키자 허벅지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뒤이어 상체를 몰드좀비 쪽으로 향하자 엄청난 힘으로 아크를 탄환처럼 발사했다. 날아가는 아크의 검에 '다크 블레이드'의 힘이 응축되었다. '도약'과 '다크 블레이드'의 합체 기술, '아돌' 이었다. 신검합일, 문자 그대로 검과 하나가 된 아크가 몰드좀비 떼를 관통했다. 촤촤촤촤촤촤-! 날카로운 검날이 살과 뼈를 가르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30마리의 몰드 좀비가 동시에 데미지를 받으며 사방으로 튕겨저 날아갔다. "섬아!" 아크는 착치하자마자 스킬을 '섬아'로 전환시켰다. 순간 아크의 몸이 한줄기 섬광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 몰드좀비 떼를 누볐다 예전에는 중독을 일으키는 늪때문에 일단 발동되면 통제할 수 없는 '섬아'의 사용은 자제했다. 그러나 '이독제독'으로 늪지에서 독성분을 추출해 면역약을 만들어 먹은 뒤로는 그조차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돌'과 '섬아'를 몇번 반복하자 몰드좀비들의 생명력이 절반 이상 날아갔다. "좋아, 라카드, 라자크! 이젠 난타전이다. 각자 위치로!" "우헤헤헤, 기다렸다!" 딱딱딱딱, 따다다다닥! 라자크와 라카드가 아크를 중심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꾸준하게 음식을 먹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라자크와 라카드의 능력치는 레벨 280대 밖에 되지않았다. 그동안 아크에게 전투 기술을 배워 왔다고는 하지만 몰드 좀비 두 마리도 상대하지 못하는 수준. 그러나 아크를 중심으로 전투 진형을 갖추면 상황이 다르다. '1+1+1=3'이 아니라, 5, 10도 될 수 있는 게 바로 전투의 묘미! 아크와 소환수는 일점사로 몰드좀비를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크아아악! 퍼퍼퍼펑! 결국 마지막 몰드 좀비가 '다크 스트라이크'로 박살 나며 길었던 전투가 끝났다. 전투를 시작할 때 60%였던 경험치가 100%까지 상승하며 반가운 메세지가 떠올랐다. -레빌이 올랐습니다. "아싸, 레벨업이다!" 아크는 환호성을 터뜨리며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선+500 명성:5825(+500) 레벨:349 직업:다크소울 칭호:캣나이트, 오벨리움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6555(+225) 마나:6495(+25) 영력:400 힘 725(+38) 민첩 885(+110) 체력 1105(+35) 지혜 161(+15) 지능 1123(+5) 운 155(+60) 특수 스탯 고대유물의 지식: 153 유연성:158 화술: 66 애정: 89(+10) 탄력도: 436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늑대의 발(신발):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가능 *<수왕> 세트 효과 : 힘+20,민첩+20,방어력+4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갈가쉬의 모피(망토):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이 50%미만, '마력보호'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민첩,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현혹,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스킬 포인트: 70 '흠, 역시 멋지단 말이야." 아크는 정보창을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다크 소울로 전직하며 올라간 각종 능력치가 번쩍번쩍 광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도 잠시, 아크는 이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문제는 레벨업 속ㄷ야. 이게 꼬박 하루 반나절 만의 레벨업인가?' 정보창을 살펴본 아크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오벨리움에서 진*카르마를 해치우고 346이었던 레벨이 349까지 올랐다. 3레벨이나 오른 셈이다. 그러나 오벨리움을 나온 지 벌써 일주일째. 이전처럼 '곰팡이 소독약' 의 지속 시간밖에 싸울 수 없었지만, 라자크가 가세해서 한 번 전투할 때마다 60%나 더 잡는데도 이전보다 레벨업 속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레벨 때문이다. 뉴 월드에서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을 때는 레벨 5당 10%의 보너스 경험치가 가산된다. 당연히 반대로 레벨이 낮은 몬스터는 레벨 5당 10%씩 경험치가 감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50레벨 이상 차이가 나면 경험치는 물론, 아이템조차 떨구지 않는다. 고레벨 유저가 저레벨 지역에서 뭉개며 사냐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349. 몰드좀비는 개체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평균 300이다. 결국 아크가 먹는 경험치는 고작 10%밖에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도 지금이니까 10%지. 또 레벨이 올라가면 경험치는 커녕 아이템도 안 나와'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레벨업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레벨이 높아서 걱정인 경우는 또 처음이다. "어떻게든 그 전에 필요한 재료를 다 구해야 할 텐데..." 아크가 '해체용 칼'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아크가 '곰팡이 소독약'을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경험치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몰드좀비를 일주일이나 죽자고 잡아 댄 이유는 바로 '죽은 자의 심장' 과 '죽은 자의 가죽' 때믄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좀비가 넘치는 곳에서 재료 아이템을 모두 구해 놓을 생각이었다. 물론 대륙에도 언데드가 나오는 지역은 몇 군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지나온 곳은 언데드의 레벨이 몰드 좀비보다 낮았다. 패널티가 작용해 경험치는 물론, 재료 아이템도 수집하지 못하리라. 몰드좀비보다 높은 레베의 언데드가 나오는 곳도 소문을 들어 몇 군데 알고는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고, 또 지나치게 레벨이 높았다 한두 마리를 상대하기도 벅찰 정도. '아무리 강한 언데드를 잡아도 채취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은 하나야. 게다가 몬스터 레벨이 높으면 이제 중급이 된 채취 스킬이 실패할 확률도 높아 그런 식으로 구하면 몇 달이 걸려도 4000개나 되는 재료 아이템을 다 구할 수는 없을 거야' 때문에 아크는 현재 레벨에서 만만한 몰드좀비를 사냥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나 전직을 하고 일주일째 3레벨밖에 못올리자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350이 되기 전에 재료 아이템을 다 모으는 수밖에...'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헤체용 칼'을 움직였다. 그러나 조급함과 달리 160마리를 모두 해체했지만 재료아이템은 30개 밖에 모이지 않았다. 레벨 차이가 많이 나는 몬스터를 쓰려뜨려 아이템이 나올 확률도 줄어든 것이다. '휴, 아직 300개 정도 더 모아야 하는데....그럼 이렇게 열 번은 더 싸워야 한다는 건가? 게다가 그 전에 레벨이 올라 버리면 그조차 중단해야 하잖아' 아크가 가방에 쌓인 재료 아이템을 확인하며 한숨을 불어냈다. 그때 야영지에서 기다리던 라카드와 라자크가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주인, 밥은 언제 먹어? 배고파 죽겠다" 딱딱딱, 딱딱딱딱. "밥? 아, 그러고 보니.." 아크는 우측 상다에 떠 있는 게이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곰팡이 소독약'이 지속 시간이 있어서 일단 전투를 시작하면 잠시도 쉬지 않고 싸워야 했다. 그렇게 두 번, 2시간을 쉬지 않고 싸운 탓에 아크 역시 만복도가 40%까지 떨어져있었다. 만복도가 50%이하로 떨어지면 스탯에패널티가 부여되지만, 약한 적과 싸우다 보니 그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은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야, 북실이!" 아크가 야영지 위에 둥둥 떠 있는 눈알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눈알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가 다시 떠오르며 대답했다. "앗, 네? 네? 저 불렀어요?" "뭐야, 남은 죽어라 싸우고 있는 동안 자고 있었냐?" "아, 아니에요. 지금 열심히 식재료를 찾아다니고 있다고요." 아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눈알이 무슨 말이냐는 듯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크가 몰드좀바를 사냥하는 곳은 늪지 외곽이었다. 일부러 외곽까지 나와서 몰드좀비를 사냥하는 이유는 몇가지 있었다. 아차피 사냥에 시간제한이 있으니 굳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 사냥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 하나. 그리고 또다른 이유는 식재료 조달을 위해서였다. 물론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늪지에서도 식재료를 구할수는 있었다. 그러나 늪지의 식재료는 효과도 그리 좋지 않았고, 숫자도 적었다. 현재 아크의 식구는 소환수까지 여섯. 다섯 명이 먹어대는 양을 늪지의 식재료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또한 아크는 백구 덕분에 식재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자 식재료 조달을 몽땅 북실이에게 일임해 버렸다. 식재료를 구하는 시간에 차라리 사냥을 하는 편이 훤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곽 야영지를 세우고 아크가 늪지에서 사냥하는 동안, 북실이는 눈알 하나만 떼어 놓고 비교적 안전한 주변을 돌아다니며 식재료를 모으고 있었다. 사실 예전이라면 300대 몬스터가 설치는 곳에서 북실이 혼자 식대료를 모은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나 월랑족 전사 출신 애완견 백구가 탈것+보디가드 역활을 해 주어 확실한 업무 분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효율이 좋아지긴 했는데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야' 아크가 찜찜한 눈으로 눈알을 노려보았다. 일단 아크의 눈에 안 보이는 곳에 가 있으니 북실이도 슬슬 꾀를 부리는 것 같다. "정말 아니라니까요! 그냥 식재료를 캐느라 정신이 없었던 거예요. 아크 님도 생각해 봐요. 내 앞에 떠 있는 영상창이 세 개예요. 눈알 하나로 아크 님 촬영하랴, 다른 눈으로 주위에 몬ㅅ그터 없는지 정찰하랴,마법 영사기로 확인하며 식재료 캐랴, 얼마나 정신이 없는 줄 알아요? 아마 뉴타입이 조종하는 건담도 이 정도로 복잡하지는 않을걸요." 눈알이 침 대신 눈물을 튀겨 가며 떠들어 댔다. 뭐, 건담은 직접 조종해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정신이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긴 북실이가 가져오는 식재료는 몽땅 사 주기로 했으니 너무 열심히 일해도 곤란하기는 하지. 딱 필요한 정도먼 챙겨 오는 게 좋아' "알았어. 그러저나 대체 지금 어디야? 식재료가 떨어졌단 말이야" "에엑? 벌써요? 아까 전에 30개 드리고 나왔잖아요" "벌써 다 먹었지. 한 번에 160마리씩 잡아 대니 전투가 끝날 때마다 먹어야 한단 말이야. 사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식재료로 부족한 걸 보충해 왔던 거야. 하지만 이제 남은 식재료도 거덜 났다고" "흠, 어쩌죠?" 눈알이 좌우로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아크 님이 식재료가 부족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이번에는 멀리까지 나왔어요. 아마 지금 바로 돌아가도 1시간은 걸릴 거예요" "정말이야? 혹시 지금까지 농땡이 피우느라 하나도 못 구한 건 아니고?"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알잖아요. 이 주변에는 식재료가 귀하다고요" "우아아아, 배고파! 배고파! 1시간 못 기다려! 배고프단 말이야!" "시끄러워, 네가 얘냐?" "얘야, 애라고. 그런 주인은 내가 어른으로 보이냐?" 바닥을 굴러 대던 박쥐가 소년 뱀파이어로 변신하며 말했다. 음, 영악한 녀석, 저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다. "알았어. 대충 뭐라도 구해 볼 테니 얌전히 있어. 어이, 북실이, 일단 이번에는 내가 주변에서 적당히 구해서 해결할테니 너도 빨리 돌아와" 아크는 그렇게 말하고 툴툴대며 주변을 동아다니기 시작했다. 뭐가 어떻게 됐든 소환수를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주인인 아크의 몫이었다. '쳇, 북실이 덕분에 이제 채취는 졸업하나 했더니..' 그러나 역시 언데드가 서식하는 늪지에서 식재료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간간이 나오는 식재료는 말라비틀어진 열매나 수상해 보이는 버섯뿐이어싸. 당연히 독지에 자생하는 식물들이라 독성이 있는 식재료였다. 물론 '식의'의 기술을 이용해서 독성을 제거하고 먹을 수는 있지만, 손이 많이 가고 만복도도 약간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이 끔찍한 수준이었다. 북실이가 멀리까지 나가서 식재료를 구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크는 그렇다 쳐도, 소환수들의 입맛은 의외로 까다로운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일단 이걸로 허기나 달래고 북실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아크가 허접스러운 식재료를 채취하고 있을 때였다. 말라비틀어진 열매 하나를 따고 돌아서자 늪지에서 뭔가 둥둥 떠내려오고 있었다. 튼실하다 못해 뚱뚱하게까지 보이는 버섯이었다. '뭐지, 저 버섯은? 늪지에 저런 버섯도 있었나?' 아직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일단 겉보기에는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마치 귀족들만 즐긴다는 송이버섯처럼 생긴 녀석이 크기는 어름 주먹만 했다. '오호, 휭재다. 어쩌면 진짜 송이버섯일지도 몰라' 아크는 곧바로 늪지로 달려가 버섯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식재료 감별'로 정보창을 확인해 보고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아귀버섯 특수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희귀버섯, 텁텁한 맛이 납니다. *상급 추가 정보: 아귀버섯은 소화시키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성분을 가지고 있는 버섯입니다. 심지어 아귀버섯 하나를 소화시키기 위해 그 몇 배나 되는 음식에 해당하는 칼로리가 필요할 정도 입니다. 때문에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고파지게 됩니다. 아귀버섯을 먹은 사람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아귀처럼 음식을 먹어 댔기 때문에 아귀버섯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고대의 귀족들은 더 많은 음식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아귀버섯으로 배를 고프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먹을수록 만보도가 줄어든다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식재료였다. '하긴 현실의 셀러리도 셀러리에 들어 있는 칼로리보다 소화시키는 데 필요한 칼로리가 더 많이 들어서 최고의 다이어트 음식이라고 했었지?' 아크는 참으로 상식이 풍부했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 다이어트를 할 이유가 없다. 괜히 만복도가 떨어지면 쓸데없이 음식값만 더 들어간다. 맛이라도 좋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맛도 별로란다. "결국 겉보기만 그럴듯한 버섯이었잖아." 아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버섯을 버리려다가 움찔했다. '가만?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고파진다고?' 군간 아크의 뇌세포가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어쩌면 이건 엄청난 식재료일지도 몰라' 아크는 혹시나 싶어서 곧바로 냄비를 꺼내 들고 아귀버섯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식수를 넣고 적당한 향신료를 추가한 뒤에 서바이벌 요리를 시전하자 곧 수프가 완성되었다. 서바이벌 요리로 '아귀버섯 수프'가 완성됐스니다! 희귀한 버섯으로 알려진 아귀버섯으로 만든 수프입니다. 그러나 아귀버섯은 식재료로 적합하지 않아 만족할 만한 수준의 요리로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귀버섯의 특수 효과로 인해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고파집니다. 수프를 먹다가 굶어 죽을지도.... <만복도 -40%> "예상대로다. 이건 엄청난 식대료였어!" 요리 효과를 확인한 아크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음식을 먹으면 오히려 만복도가 떨어지는 괴상한 버섯. 배고픈 사람에게 이건 거의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사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었다. 사실 지금은 낮은 레벨의 몰드 좀비를 사냥하는 중이라 신경 쓰지 않고 있지만, 고레벨 지역에서는 서바이벌 요리가 중요한 전력 가운데 하나였다. 음식을 몇 개 먹는 것만으로 능력치를 상승키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바이벌 요리에는 딱 하나, 단점이 있었다. 바로 만복도가 100%가 되면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서바이벌 요리가 최상급이 되면서 요리의 효과도 업청나게 좋아졌지만, 동시에 만복도 까지 올라간 것이다.배는 덜부르고 영양가가 높은 음식만 골라먹어도 5~6개가 한계였다. 그런데 만복도를 자유자재로 떨어뜨릴 수 있다면? 마음만 먹으면 최대 음식 한계인 10개까지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당연한 말이지만 대가의 경우, 효과가 좋을수록 만복도도 많이 올라간다. 예를 들면 아크가 배운 레시피 가운데 힘을 가장 많이 올려 주는 '그레이트 버팔로 스테이크' 같은 경우 힘+25나 되지만 스테이크 하나만으로 만복도가 80%나 차버린다. 배고플 때는 더없이 좋지만, 능력치를 올리는 용도로는 꽝인 것이다. "하지만 만복도를 마음대로 낮출 수 있다면 그런 음식을 10개나 먹을 수 있어" '그레이트 버팔로 스테이크'와 동급의 요리가 10개! 추가되는 능력치는 백 단위를 훌쩍 넘어가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귀버섯이 어지간한 잡템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돼따. "좀비나 사냥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건 기회다. 아까 정보창에 아귀버섯은 특수한 지역에서만 자란다고 했어. 다시 말해 이 주변 어딘가에 아귀버섯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있다는 말이야. 운이 좋으면 버섯 밭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어디지?" 오벨리움에 들어갈 때 그리고 지금까지 늪지에서 지낸 시간만 따져도 보름이 넘는다. 그러나 그동안 아귀버섯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귀버섯이 제 발로 걸어왔을 리는 없을 터, 아크는 아귀버섯을 건져 낸 늪을 살펴보았다. "역시 이 부근의 늪은 한쪽으로 흐리고 있어" 늪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상류와 하류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귀버섯이 하류에서 상류로 헤엄쳐 왔을 리는 없으니 상류 어딘가에 아귀버섯들이 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파악해 낸 아크는 서둘러 식재료를 구하고 야영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단한 요리로 소환수들의 배를 채워주고 자리에서 이어났다. "좋아, 따라와!" "에? 이제 막 밥 먹었는데 소화도 안 시키고어딜 가?" 두툼해진 뱃살을 두드리며 늘어져 있던 라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 북실이, 너도 따라와라" "대체 어딜 가는데요?" 눈알의 질문에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금단의 식재료를 찾으러 간다." 먹으면 먹을숡 배가 고파지는 식재료. 식재료라는 의미에서 봤을 때 이건 외도다. 그러나 외도도 외도 나름.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최상급 식재료와도 맞바꿀 수 없는 위력을 발휘하리다! act3 지옥훈련 수상한 동굴 당시은 어둡고 축축한 늪지에서 수상한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두텁게 쌓인 이끼와 곰팡이가 악취를 풀기는 기분 나쁜 동굴 속에서 신경을 자극하는 마찰음과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늪지에서 수없이 많이 겪어 왔던 죽은 자들의 목소리입니다. 이곳은 타락의 근원이며 사악한 영혼의 요함입니다. 가능하면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를 권합니다. <모함기의 지식:숨겨진 지역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10)> "이런 곳에 던전이 있다니.." 아크는 멍한 시선으로 뻥 뚫린 동굴을 바라모았다. 마치 썩은 나무와 이끼만으로 이루어진 듯한 작은 동산 아래, 어두운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늪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와 보니 놀랍게도 던전이 나타난 것이다 '어쨌든 아귀버섯은 이 안쪽에서 흘러나온 게 확실해.' 동굴에서 점액질처럼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동굴에서 자라던 아귀버섯이 어찌어찌 떨어져 이 액체를 타고 늪지로 흘러 들었던 것이리라. 다시 말해 동굴안 어딘가에 아귀버섯이 대량으로 자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 오랜만의 던전이군" 아크가 동굴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자 눈알이 아크의 뒷덜미를 파고들며 중얼거렸다. "아크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멍청아, 그러나까 더 좋은 거야." 정보창에는 이런저런 경고문이 붙어 있어지만 그런 경고문을 신경 쓰는 유저는 없으리라. 던전이야말로 RPG 게임의 백미. 같은 몬스터를 잡아도 던전에 사는 놈이 더 많은 경험치와 더 좋은 아이템을 떨군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또한 당연히 위험도가 높아질수록 보상도 짭짤한 것이다. 그런 곳을 반견하고 분위기가 섬뜩하다고 피해 간다면 그날로 게임을 접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닥 무작정 뛰어갈 수는 없었다. '자, 이 던전에서 어떤 놈들이 살고 있는지 한번 볼까?'아크는 일단 동굴 입구에서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서 안쪽을 살펴보았다. 곧 눈동자가 녹색으로 물들며 동굴 내부가 드러났다. 썩은 나무와 돌로 이루워진 동굴 내부는 입구처럼 이르 모를 괴상한 이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가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이 서성대고 있었다. "몰드좀비, 레벨400짜리 몰드좀비다!" 던전에 사는 몬스터를 확인한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늪지의 몰드좀비와 레벨 차이가 너무 나서 곤란하던 참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레벨 100이나 높은 몰드 좀비를 발견하다니! 갑자기 레벨이 100이나 차이가 나는 몬스터를 만났지만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어둠 속성 보너스까지 계산하면 523레벨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는 아크의 능력치가 123이나 높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레벨은 349라 400레벨 몬스터를 잡으면 5레벨에 10%씩, 100%의 추가 경험치를 받는다. '게다가 이제 레벨이 올라도 재료 아이템이 안 나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래저래 아크에게는 행운이었다. '입구에 있는 몰드좀비는 20여 마리. 그 정도면 400레벨이라도 문제없어' 이미 몰드좀비와 지긋지긋하게 싸워 본 아크에게느 그저 경험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은신'으로 정탐할 가치도, 작전을 구상할 필요조차 없었다. 설마 몰드좀비가 트랩을 설치해 놨을 리도 없었고, 머리속에 텅텅 비어 무작정 달려드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놈들이다. "볼 것 없어. 그리 큰 던저도 아닌 것 같으니 얼른 해치워 버리자!" "우히히히, 몰드좀비쯤이야 껌이지" 딱딱, 딱딱딱딱딱! 아크와 라자크는 검을, 라카드는 강철 틀니를 번뜩이며 동굴로 몰려 들어갔다. 그러나 공굴에 들어서는 순간, 아크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경고 메세지가 떠올랐다.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뉴 월드에는 때때로 특이한 성질을 지닌 지역이 있습니다. 용암이나 설원처럼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주는 특정한 매개체입니다. 그리고 이 동굴 안에는 주변의 마나를 빨아 당기는 '마나 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영향 범위 안에 들어갈 경우, 지속적으로 1초당 50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뭐, 뭐야? 마나가 빨려 나간다고?'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입을 쩍 벌렸다. 1초당 50의 마나! 1분이면 자그마치 3000의 마나가빨린다는 말이 아닌가? 현재 아크의 마나는 6495.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만 있어도 2분 남짓이면 마나가 바닥난다는 말이다. '젠장, 마나 홀인지 뭔지, 뭐 이런 게 다 있어?' 동굴에 진입하면 특수한 효과가 적용되는 경우는 그리드물지 않다. 그러나 이번 효과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그렇게 빨리 마나가 빨려 나간다면 결국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나 똑같지 않은가? "주인, 어쩌지?" 몰드좀비를 향해 날아가던 라카드가 주춤하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신경 쓸 거 없어. 스킬을 안 쓰면 그만이야" 확실히 마나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한 패널티였다. 그러나 아크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마나에만 의존하는 마법사라면 감히 들어갈 엄도도 내지 못하리라. 그러나 마법사보다는 전사에 가까운 다크 소울이다. 또한 마나가 없어도 패시브 스킬은 적용되니 크게 걱정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흥, 어차피 빨릴 마나라면 없어지기 전에 써 버리는 편이 낫지. 섬아!" 아크는 전속력으로 달려 들어가며 '섬아'를 난사했다. 종으로 횡으로 번뜩이는 검날이 어둠을 가로지르자 20여 마리의 몰드좀비가 휘청거리며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뒤이어 라자크와 라카드가 가장 많은 생명력이 빨려 나간 몰드좀비를 일점사하자 순식간에 두세 마리가 쓰러졌다. "좋아, 그렇게 가는 거야. 섬아!" 생각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자 아크가 흥이 난 표정으로 계속 스킬을 난사했다 그러나 네 번째 '섬아'를 발동시킬 때 눈앞에 메세지가 떠올랐다. -마나가 부족해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 번에 마나를 500이나 소모하는 '섬아'를 세 번, 게다가 1초에 50의 마나가 지속적으로 뻘려 나가니 6000에 달하는 마나라도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쳇, 벌써 마나가 바닥난 건가? 할 수 없지." 마나가 바닥났지만 아크는 여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늪지에서 수천 마리의 몰드좀비를 잡아 왔다. 스킬이 봉쇄됐다고 고작 20여 마리의 몰드좀비를 상대로 겁을 먹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 정도면 여유롭게 떄려잡을 수 있다고 생가개싿.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크아아아! '섬아'를 난사하던 아크의 움직임이 멈추자 몰드좀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크는 빠리게 검을 휘둘러 두세 마리를 쳐냈지만, 상대는 무려 20마리의 좀비 떼다. 다시 말해 일격에 휘둘어 대는 팔이 40개라는 말이다. 아크가 아무리 검을 빨리 휘둘러도 단숨에 40개나 되는 팔을 쳐 낼수는 없었다. 투투투퉁, 등과 어깨로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며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젠장, 동굴 안이라 놈들을 피하기가 힘들어. 라카드, 놈들을 최대한 많이 유인해라!" "알았어. 어이, 지저분한 시체들아. 네놈들의 상대는 나다!" 라카드가 버럭 소리치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라카드를 쫓아가는 몰드좀비는 한 마리에 불과했다. '아차!' 그제야 아크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을 깨달았다. 그렇다, 지금까지 라카드가 한 번에 10~20마리나 되는 몰드좀비를 유인할 수 있었던 것은 '도발' 스킬 덕분이 었다. 그리고 고작 30이지만 '도발'도 엄연히 마나를 소모하는 스킬인 것이다. 소환수가 액티브 스킬을 사용할 때는 소환주인 아크의 마나를 사용한다. 때문에 아크의 마나가 바닥나자 라카드 역시 '암흑 돌진' 이나 '도발'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맙소사, 그럼 무조건 이놈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던 작전이 봉쇄당하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게다가 장소는 좁은 동굴 안, 20여 마리의 몰드좀비의 공격을 피할 공간도 없었다. 다행이 라자크의 '방패 치기'와 아크의 '쳐 내기' 따위는 패시브 스킬이라 마나가 없어도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20여 마리의 몰드 좀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앞을 마긍면 뒤에서, 오른쪽을 막으면 왼쪽에서 몰드좀비의 공격이 퍼부어졌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공격을 당하자 제대로 반격타이밍을 잡기도 힘들었다.사실 1대 다스로 전투를 벌일 때 힘든 점이 그것이다. 뉴 월드는 현실의 물리법칙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건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상대의 공격을 받으면 그만큼의 물리법칙이 작용해 적게는 잠깐의 경직이나, 심하게는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아크가 검을 휘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초라도, 연속적으로 공격을 받으며 경직 상태가 이어지면 제대로 검을 휘두르지 못해게 된다. 또한 불안한 자세로 검을 휘둘러도 100%의 위력이 나오지 않아다. 이런 식으로 둘러싸여 다구리를 당하면 제대로 반격도 할수 없는 것이다. 물론 뉴 월드는 현실과 달리 그런 상황에 대비한 각종 스킬이 존재한다. 마법사의 '워프'나 도적의 회피 기술 '스쳐 지나기' 따위가 대표적인 싈이었다. 그리고 아크에게도 '다크 댄싱'이라는 회피기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한 마나가 없으면.... 퍼펑, 퍼펑, 퍼펑, 퍼펑! 아크의 눈앞에 정신없이 붉은빛이 번쩍였다. 초보 시절을 제외하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적은 처음이었다 "다, 다크댄싱! 섬아!" 제대로 반격도 못 하는 상황에서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가자 아크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스킬이 봉쇄됐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슼닐이 발동될 리 없었고, 괜히 몰드좀비들만 자극해 더 심하게 몰매를 맞아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 눈앞에 노래지며 메시지창에 떠올랐다. -심각한 타격으로 '아찔함'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30초 동안 시야기 80% 제한됩니다. 치명타에 맞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연속적으로 일정 횟수 이상을 맞았을 때 걸리는 '아찔함'! 그 역시 초보 시절 이후로는 걸려 본 적이 없는 상태 이상이었다. 잘 풀리 때 한없이 잘 풀리지만,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꼬이는 법. '아찔한'에 걸리자 아크는 담숨에 시력이 마이너스인 사람처럼 눈앞이 뿌옇게 변해 버렸다. 그런 시력으로 몰드 좀비의 공격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크가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헤매자 여기저기에서 치명타가 터져 나왔다. "주, 주인, 우왁!" 따닥, 따다다다닥! 아크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바닥까지 곤두박질차자 라잠크와 라카드가 달려왔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었다. 소환수들이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와 대등하게 싸울수 있는 것ㅇㄴ 아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작 아크가 손도 못 쓰고 다구리를 당하고 있으니 소환수가 레벨 400의 몰드좀비를 당해 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히익, 아, 안 되겠어!" 몰드좀비에게 한 방 얻어맞은 라카다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라자크 역시 네 마리의 몰드좀비에게 둘러싸여 방패로 공격을 막는 게 전부였다. '아, 안 돼. 이대로는 당한다! 어떻게든 도망쳐야 해!' "화격, 화격, 화격!" 거의 빈사 상태까지 몰린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화격은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을 연결해야 발동하는 연쇄 스킬. 정신을 집중해도 가끔 실패할 때가 있는 스킬이다. '아찔함'에 걸린 채 다구리를 당하는 상태에서 마구잡아로 사용해 성동시킬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뭔가....뭔가 방법이...' 아크는 간당거리는 생명력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갔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맞아, 이제 믿을 건 그것밖에 없다. '유령 기사단 강습'!" 그렇다, 아크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각해 낸 스킬은 바로 오벨리움에서 배운 유령 기사단의 강습! 액티브지만, 소환 계열이라 마나가 아닌 영력을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아크가 스킬을 사용하자 돌연 공간이 흔들리더니 쩍 갈라졌다. 그 갈라진 공간에서 오벨리움에서 봤던 유령 병사들이 중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오벨리움의 기사단, 부름을 받고 찾아왔다! 번뜩이는 분빛으로 상황을 살펴본 기사단자이 몰드좀비들에게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저기다, 은인을 위협하는 적을 무찔러라! -위대한 오벨리움의 이름으로! 우오오오! 30명의 유령 병사들이 폭풍을 일으키며 몰드좀비들에게 몰려 들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해변의 작은 모래성을 함락시키듯, 방패와 검, 철퇴, 창이 번뜩이는 광채를 발라며 몰드좀비에게 쏟아졌다. 아쉽게도 초급 스킬이라 그런지, 화려한 시각 효과에 비해 몰드좀비들에게 입히는 상처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유령 병사들의 돌격이다. 몰드좀비들은 유령 병사들의 압력에 밀려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그러자 유령 병사들은 더욱 기세가 살아 사자후를 떠뜨리며 몰드좀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와아아아, 악을 처단하라! 앗? 뾰롱, 뾰롱 어디선가 알람이 울리자 기사단장이 울분을 토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하다, 우리는 오벨리움에 묶인 몸이라 더 도울 수가 없다. 뒤이어 유령 병사들의 몸이 흐려지더니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유령 기사단 강습'의 제한 시간 5초가 끝난 것이다. 영력을 300이나 소모한 것치고는 허망하기 짝이 없었지만, 어쨌든 유령 병사들의 반격으로 아크는 몰드좀비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동굴을 탈출할 마지막 기회! '일단 동굴을 탈출한다!' 아크는 와락 몸을 돌리고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콰광, 면상으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며 별들이 번짝거렸다. "으악, 내 머리통!" 아크는 아직 '아찔함'이 풀리지 않아 눈동자에 서리가 낀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재대로 보이지도 않는데 무작정 달리다가 벽을 들이 받은 것이다. 몰드좀비에게 몰매를 맞은 것도 모자라 도망치다가 벽을 들이받다니, 쪽팔리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쪽팔린 건 쪽팔린 거고,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카드, 뭐하는 거냐? 내가 안 보이면 알아서 방향을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쳇, 왜 나한테 신경질이야? 말할 틈도 안 줬으면서" "시끄러, 빨리 방향이나 알려 줘!" "알았어, 따라와!" 라카드가 툴툴거리며 아크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울컥하느 기분이 들었지만 눈뜬장님이 돼 버린 아크에게는 말로 방향을 지시하는 것보다 그편이 나았다. 아크가 라카드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 나가는 사이, 라자크는 몰려드는 몰드좀비를 방패로 쳐 내며 뒤따랐다. "아직 멀었냐?" "응, 아직멀었어" 아크가 헐떡거리며 묻자 라카드의 대답이 들려왔다. '한 100미터는 걸은 것 같은데, 내가 이렇게 까지 깊이 들어왔었나?' 아크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눈앞이 안 보이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드디어 '아찔함'이 풀리며 점차 시야가 밝아졌다. 동시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정상이 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동굴 밖이었다. 동굴 근처에 있는 '성자 베텔기우스의 묘비'까지 물러나자 몰드 좀비들은 근처로 서서이다 동굴로 돌아갔다. 그러나 라카드는 여전히 아크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직 멀었냐?" "아직 멀었다니까. 헉, 위험해. 빨리 와!" 아크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라카드가 히죽거리며 세차게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위험한 건 네놈의 머리통이다!" 아크가 와락 라카드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그러자 라카드가 기겁하며 바라보다가 떠듬거렸다. "어? 주, 주인 이제 잘 보여?" "뒈질래?" "에잉,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그냥 장난한 거야" "장난? 그럼 나도 장난 좀 해 볼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었던 참이다. "거봐요, 내가 뭔가 심상치 않다고 했잖아요" 눈알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크가 슬쩍 고개를 돌리며 한쪽을 가리켰다. "너도 나하고 장난 좀 칠래?"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한 마다에 눈알이 바로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아크가 가리킨 구석, 방금 전까지 아크와 오붓하게 장난(?)을 즐긴 라카드가 눈두덩이 탱탱 부은 얼굴로 찌그러져있었다. 위급한 상황을 이용해 하극상을 범한 소환수의 말로였다. 어쨌든 라카드 덕분에 스트레스는 풀었지만 아크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지만....' 숱하게 잡아 왔던 몰드좀비에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깨지다니? 2차 전직을 하고 1시간에 160마리의 몰드좀비를 사냥하며 한꼿 부풀어 올랐던 자신감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러나 아크가 참담한 기분을 느끼는 이유는 단지 몰드좀비에게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했어. 이렇게까지 무뎌져 있었을 줄은' 아크가 방금 전의 전투에서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사실 아크가 좁은 공간에서 많은 적과 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싿. 과거 놀의 동굴을 정리할 때도 그랬고, 도적들을 소탕할 때도 이런 상황은 몇 번 겪어 봤다. 게다가 그때는 어둠 속성 보너스를 적용해도 적의 레벨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스킬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유는 명확해.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인지 스킬에만 의존 하고 있던 거야' 그렇다, 아크가 깨달은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초보 시절에 아크는 스킬이나 능력치보다 실제 자신의 전투력에 더 중점을 두었다. 마치 현실의 격투가 시합처럼 적의 전투 패턴을 꼼꼼히 살피고 대처 방법을 찾아 격파해 나갔다. 마땅한 스킬도 없었고, 스킬을 난사할 정도로 마나가 많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는 각종 공격, 방어, 회피 스킬은 물론, 광역 스킬까지 두루 갖췄다. 게다가 꾸준한 노력으로 마나도 6000이 넘는다. 생명력과 맞먹는 마나 덕분에 근래에는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스킬을 난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아크의 전투는 언제부터인지 격투 기술보다 스킬을 난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스킬을 쓰는 편이 재미도 있고, 사냥 속도도 더 빨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발차기를 사용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정도였다. '이번에 깨진 이유는 그 때문이다!' 아크는 2차 전직을 하고 각종 스킬을 배우며 확실히 강해졌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전투 능력은 퇴보한 것이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제대로 전투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럴 수가... 그러면 내가 상대해 왔던 허접스러운 전사들하고 다를 바가 없잖아' 예전에 때려잡았던 할로겐이나 안델처럼 방어력이나 스킬만 믿고 덤벼들던 전사들, 그때 아크는 그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온라인 게임이라면 모를까, 현실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가상현실 게임에서는 캐릭터의 레벨이나 스킬만으로 승부가 나는 게 아니다. 스킬의 활용은 물론, 전투에 대한 이해력도 그만큼 중요하게 작용한다. 샴바라나 정의남이 1대1에서는 거의 무적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아크가 그 점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였다. '나는 나대로 제대로 수련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아니었어' 아크가 방심하게 된 첫째 이유는 어둠 속성 보너스가 50%나 올라간 덕분에 항강 자신보다 약한 적들과 싸우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스킬이 만하져 정작 위급한 상황이 오면 시체 능력보다는 스킬에 의존하게 됐다는 점이다. 동굴에 무턱대고 뛰어 들어간 것도 그런 자만심 때문이었다. 오히려 초보 시절이었다면 그렇게 무식한 행동은 하지 않았으리라. '지금 상태로 샴바라와 싸우면 100전 100패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실로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아크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 였다. '그래,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나마 다행이야. 이제라도 실수를 깨달았으니 더 늦기 전에 초심으로 돌아가자.스킬을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할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 죽도 밥도 안 돼. 그걸 이번 일로 확실하게 깨달았다. 좋아!' "자, 충분히 쉬었으면 다시 시작하자!" "뭐? 다시 들어가는 거야?"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말하자 라카드가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하지. 내가 던전을 찾고 힘들어서 포기한 적 있었어?" "그건 아니지만........" "걱정하지마. 이번에는 그렇게 무식하게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까." 생명려고가 마나를 회복한 아크는 일행을 데리고 다시 수상한 동굴 입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직 붓기도 빠지지 않은 라카드에게 명령했다. "라카드, 일단 서너 마리만 입구 까지 끌고 나와." "아하, 그러니까 얍삽하게 조금씩 유인해서 처리하겠다는 거지?" "그런 거지만........어째 표현이 좀 거슬린다?" "갔다 올게." 아크가 슬쩍 노려보자 라카드가 얼른 동궁 안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아크에게 폭행당한 울분을 터뜨리듯 갖은 욕설을 퍼부어 대자 몰드좀비 세 마리가 팔을 휘둘러 대며 달려 나왔다. 보통 동굴에서 한 곳에 모여있는 몬스터는 '링크'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링크'란 일종의 동료 개념으로, 한 몬스터가 적을 발견하면 모두 함께 움직이도록 설정되어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몰드좀비는 이성이 없는 언데드라 '링크'가 걸려 있지 않았다. 그 역기 아크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쿠어어어어! "주인, 왔어!" 라카드가 낚시로 몰드좀비 세 마리를 매달고 동굴 입구까지 날아왔다. '자, 이제 시작이다. 당분간 소환수나 스킬은 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라카드,라자크, 너희들은 움직일 필요 없다. 내가 위험해져도 절대 도와주면 안돼!" "어? 그래도 돼? 그거야 어렵지 않지." 딱딱딱, 딱딱딱딱! 아크는 소환수들에게 다짐을 받아 놓고 몰드좀비에게 달려들었다. 아크가 앞을 가로막자 몰드좀비가 목표를 바꾸며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며 떨어져 내리는 날카로운 손톱! 아크는 태권도를 하듯이 양다리를 교차시키며 손톱을 흘려 냈다. 그러자 옆에서 두 마리의 몰드좀비가 가세하며 팔을 휘둘렀다. 하나는 검을 휘둘러 쳐 냈지만, 측면에서 날아드는 손톱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윽, 역시 반응이 좀 느려졌어. 예전에는 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피했는데..... 한동안'다크댄싱'에만 의지해서 둔해진거야.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또 당한다.' 아크는 데미지를 입는 것도 동시에 몸을 회전시벼 이어지는 공격을 피해 냈다. 그 상황에서 바로 '쳐 내기' 와 '카운터 어택' 을 연결시켜 '화격' 을 날리면 전투하기가 한결 편해지리라. 그리고 뒤이어 한 마리에게 '다크 블레이드'를 먹여 어둠의 기운을 차지시키고, 뒤에서따라 들어오는 놈에게 '다크 스트라이크' 를 먹이면 전황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진다.... 잠깐 사이에 아크의 머릿속에 그런 그림이 그려졌다. 그만큼 스킬을 사용하는 전투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수련이 되지 않아!' 아크는 움찔움찔 스킬을 사용하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모든 스킬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검투술'만 사용한 전투가 아니면 수련이 되지 않는다. '화격은 사용할 수 없지만, 그와 비슷한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아크는 상체를 숙이며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손톱을 흘려냈다. 그리고 상체를 바닥에 붙이듯이하고 다리를 뻗어 몰드좀비의 다리를 걷어찼다. 몰드 좀비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린다. 그때 아크가 솟아오르듯 몸을 날리며 이단 앞차기로 몰드좀비의 턱을 올려 찼다. 크아아아악!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몰드 좀비가 핑그르르 회전하며 수 미터나 나뒹굴었다. "어떠냐?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국기, 태권도하는 거다!" 아크가 콧바람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물론 체급이 몇 단계나 차이가 난다고 해도 발차기에 사람이 수 미터나 날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과 같은 물리 법칙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곳은 게임 속. 모든 공격에 적용되는 것은 현실의 힘이 아니라 캐릭토의 능력치, 힘 725다. 물론 몰드좀비에게도 능력치가 적용되어 있겠지만, 타이밍만 잘 맞추면 발차기로 황소만 한 몬스터를 날려 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까지 계산해서 싸우는 게 바로 뉴 월드에 필요한 전투 방식이었다. 사실 아크는 경찰청 체육관에 나가지 않게 된 이후로도 새벽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단순히 태권도 실력만을 생각한다면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 게임에서는 게임에 맞는 전투 방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뉴 월드식 태권도! "좀 전처럼 정신이 없는 상황이 아니니 그럭저럭 자세가 잡히는군" 아크는 몰드좀비를 쓰러뜨리기보다는 각종 기술을 연습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몰드좀비의 공격을 피하며 돌려차기! 돌려차기에 이어 검으로 급소 공격하기! 포위당했을 때 스텝으로 빠져나오며 나래차기! 갖가지 태권도 기술이 소나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조금 불안한 감도 있었지만 점차 몸에 익어 가자 검투술만으로도 몰드좀비 세 마리를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다른 스킬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검투술에는 기본저그로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몰드좀비처럼 중형 몬스터일 경우, 상급 검투술의 발차기로 상태 이상이 발동할 확률은 5%! 나래차기로 연속 발차기를 쑤셔 넣으면 높은 확률로 상태 이상이 발동되었다. "간닷!" 쿠궁, 크아아아! 마지막 몰드좀비가 레슬링 기술 백드롭에 걸려 머리가 밗갈 나며 전투가 끝났다. 아크가 스킬 한 번 쓰지 않고 몰드좀비 세 마리를 처리하자 채집을 끝내고 돌아온 북실이가 홀린듯이 중얼거렸다. "괴, 굉장해. 굉장해요. 그냥 성질 더러운 사람이 아니었군요!" "뭐? 성질 더러운?" "아, 아니, 난폭한.....아니, 화끈한......네, 화끈한 성격이라고요." "화끈하기는 하지. 장난 좀 쳤다고 내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 정도로" 라카드가 팅팅 부어오른 눈두덩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북실이는 아직 아크가 본격적으로 태권도나 레슬링 기술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초보 시절부터 지긋지긋하게 봐 왔던 라카드나 라자크에게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어쨌든 아크는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라카드, 이번에는 다섯 마리다" "어? 갑자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시끄러, 빨리 데려오기나 해." 아크는 그렇게 숫자를 늘려 가며 몰드좀비를 상대로 수련했다. 그렇게 꼬박 하루, 아크는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열마리를 상대할 수 있게 되어싸. 물론 불과 하루 만에 갑자기 실력이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믿을 거라고는 태권도밖에 없었던 예전의 전투 방식을 되살린 것에 불과했다.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은 덕분에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사실 처음부터 아크가 스킬에 연연하지 않고 전투에 집중했다면 20마리를 상대로도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감각이 돌아온 것 같군' 아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환수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들 차례다" "에? 뭐가?" "너희들도 다를 거 없어. 일단 라카드 너, 너도 예전에는 '도발' 스킬도 없이 몬스터를 잘 유인했잖아. 그런데 이전에 그건 뭐야? 라자크도 마찬가지야. 라자크는 큰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딱히 잘한 것도 없어. 그게 다 군기가 빠졌다는 증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다." 한동안 쓰지 않았지만 예전의 작전을 부활시켜 훈련한다." "그거야 아무것도 모르던 옛날 얘기지. 이 짬밥에 새삼스럽게 작전이라니?" "짬밥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남은 눈도 밤탱이 되고싶냐?" "젠장, 어째 아까부터 기분이 싸~하다라.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고" 라카드가 자포자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아크가 구석에 않아 있는 북실이와 백구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네? 저, 저희는 또 왜요?" "지금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앞으로 더 고레벨 지역에 가면 지금 백구로는 네 보디가드를 맡길 수 없어. 백구도 훈련 좀 빡세게 시켜서 레벨을 올려놔야겠어. 그리고 북실이 너도. 눈앞에 영상창이 세 개나 나와서 적응하기 힘들다며? 내가 이참에 진짜 건담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주지, 눈알 이리 내놔!" "어어? 어어어? 자, 잠깐만요. 히엑!" 아크는 북실이의 눈알을 뽑아내 빙글빙글 돌려 댔다. 그렇게 한찬을 돌리다가 홱 집어 던지고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자, 이게 몇 개지?" "그, 그걸 어떻게.....우웩!" 북실이가 비틀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러나 아크는 콧방귀를 쏘아붙였다. "흥, 그런 정신 상태로 제대로 된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겠어? 동영상을 촬영하며, 주변을 정찰하고, 식재료를 채취하려면 이 정도는 적응해야 돼" "그, 그런 억지가....!" "거역하는 놈은 밤탱이다!" 아크가 주먹을 치켜세우며 으름장을 놓아다. 쌕쌕쌕쌕,쌕쌕쌕쌕? 그라자 라둔이 눈을 깜짝거리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빠, 나는 뭐하면 돼요?'라고 묻고 있는 듯한 눈빛이다. "넌 괞찮아, 잘하고 있으니까. 아유, 귀여운 것." "우, 이건 종족 차별이야!" "시끄러워, 바로 훈련 시작이다!" 그렇게 아크 일행은 본의 아니게 지옥 훈련을 시작힌지 사흘 뒤.... "C플랜, 라카드, 내가 지정한 몰드좀비 세 마리를 '도발'없이 유인해라!" "옛설! 야, 이 아 삐- 한 녀석들아! 덤벼라, 컴 온, 컴 온!" 라자크가 시뻘건 눈으로 바라보며 차마 말로 표현 못 할 욕설을 퍼부어 댔다. 아처피 말도 못 알아듣는 좀비들이었지만, 손짓 발짓을 동원한 욕설에 본능적으로 분노를 느끼고 괴성을 지르며 잡아 먹을 듯이 쫓아갔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기하고 있는 라자크와 백구에게 시선을 옯겼다. "라자크, 너는 나머지 두 마리 몰드좀비의 공격을 방패로 막기만 한다. 그리고 백구, 너는 라자크가 방패로 막는 사이 뒤로 접근해 몰드좀비를 공격한다. 실시!" 딱딱딱! "네, 대장님!" 라자크와 백구가 차렷 자세로 대답하며 명령대로 움직였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둘은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80%이상의 작전 수행을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지난 사흘간의 지옥 훈련 성과였다. 그동안 아크는 지금처럼 과제를 내주고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곧바로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었다. 힘들게 소환수들은 다시 예전처럼 군기가 바짝 들었다. 그리고 엉겁결에 지옥 훈련에 참가하게 된 백구도 레벨이 4나 올랐다. 변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라자크와 백구가 몰드좀비 두 마리를 해치우고, 라카드가 유인했던 몰드좀비는 직접 정리한 아크의 시선이 북실이에게 향했다. "북실이, 메로리 크리스털 가져와 봐!" "넵!" 북실이가 재빨리 두 눈알에서 메모리 크리스털을 뽑아 내주었다. 크리스털을 재생하자 곧 박진감 넘치는 영상이 펼쳐졌다. 그동안 북실이에게 주어진 과제는 쉬지 않고 눈알을 움직여 아무리 밍밍한 전투라도 긴박감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담는 것. 약시 폭력을 동원한 훈련의 성과가 있어서 방금 전, 라자크가 방패로 마기만 하는 장면조차 수십 가지의 각도로 촬영되어 꽤나 그럴듯한 것처럼 보였다. "좋아, 합격이다." "가, 감사합니다!" 눈두덩에 든 멍이 빠지지도 않은 북실이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아크는 소환수와 북실이들을 모아 놓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일단 수련은 이것으로 끝이다. 먼저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훈련에 따라와 준 것을 대견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을 말해 두고 싶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뭐, 불만 있어?" "아닙니다!" "어쨌든 저 동굴의 좀비들에게 수련의 성과를 보여 줄 때가 온 것이다! 라자크, 라카드, 지금부터 던전을 공략한다. 그리고 북실이와 백구는 공략에 필요한 군량을 모아 놓도록. 저 던전을 성공리에 공략한다면 앞으로 군량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좀 불안했지만 훈련을 마친 너희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북실이는 식재료를 모으면서도 좋은 영상을 찍을 수 있을 거고, 백구는 어렵지 않게 몰드좀비를 피해 다닐 수 있겠지. 할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습니다!" 모두 눈가에 멍 하나씩은 달고 있는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이 효과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군기는 잡고 본 일이다. 어쨌든 북실이와 백구는 그렇게 다시 식재료를 수집하러 떠났고, 아크는 라자크와 라카드를 데리고 본격적인 던전 탐험을 시작했다. 던전을 바라보는 소환수들의 눈동자에 독기가 서려있었다. act4 몽환의 모래시계 쿠어어어! 몰드좀비의 손톱이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커멓게 썩어 악취를 풀풀 풍기는 비위생적인 손톱! 몰드좀비가 달려들자 아크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고개를 들어 손톱을 피해 내고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뒤차기가 뿜어져 나왔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튕겨져 나간 몰드좀비가 벽을 들이받고 휘청거렸다. 검술은 고난이도 발차기를 성공시킬 때 상태 이상 발동 스킬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뒤차기에 얻어맞은 몰드좀비는 곧바로 '스턴'에 걸려 굳어 버렸다. 마나를 소모하는 모든 스킬이 봉쇄되어 '고양이의 눈' 조차 사용할 수 없었지만, 굳이 '고양이의 눈'이 아니라도 '스턴'에 걸려 멍청하게 서 있는 몰드좀비의 약점을 찾아 내는건 일도 아니었다. 콰콰콰콰콱! 속사포처럼 뿜어져 나간 검이 몰드좀비의 전신을 꿰뚫었다. 여기저기 뚫린 구멍으로 검은 피를 질질 흘려대던 몰드 좀비가 맥업이 늘어졌다. "주인, 다음 놈들 간다!" 그때 뒤쪽에서 라카드의 목소리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섯 마리의 몰드좀비가 달려들었따. "라자크!" 아크가 소리치자 반대쪽에서 몰드좀비를 상대하던 라자크가 달려왔다. 그리고 방패를 휘둘러 두 마리의 몰드좀비를 밀어냈다. 그사이, 아크는 나머지 세 마리를 향해 달려들며 이단 옆차기를 날렸다. 발차기에 얻어맞은 몰드좀비는 수 미터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러나 착지하기가 무섭게 양쪽의 몰드좀비들이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타액이다!' 던전의 몰드좀비들은 레벨만 높은 게 아니었다. 늪지 몰드좀비와 달리 때떄로 입에서 맹독의 타액을 토해 내기도 했다. 몰드좀비들이 타액을 토해내기일보직전, 아크는 왼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360도 돌려차기를 날렸다. 몰드좀비들의 턱이 돌아가며 시커먼 타액이 뒤로 뿜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몰드좀비들은 돌려차기에 목이 반대로 돌아갔다. 갑자기 앞과 뒤가 뒤바뀌어 버린 탓에 제대로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벽을 들이받고 넘어졌다. '확실히 몸을 움직이기가 훨씬 편해졌어.' 아크는 목이 돌아간 채로 헤매는 몰드좀비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확실히 아크의 몸놀림은 며칠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검격과 발차기의 전환, 스탭, 반응속도‥‥. 모든 신체 능력이 한 단계 상승했음을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성장은 단순히 수련의 성과만은 아니었따. 지난 며칠, 아크는 스킬을 봉쇄하고 오직 신체 능력만으로 전투를 벌이며 훈련했다. 마나를 빨아들이는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본래의 의도와 달리 이런 훈련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스킬 위주의 전투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스킬 위주의 전투는 시원시원하고 편하다. 그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몰드좀비 한 마리를 처리하는 데 1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 공격만으로는 2분, 그나마 치명타조차 잘 터져 주지 않으면 3분까지 걸릴 때도 있었다. 전투가 길어지니 당연히 생명력도 더 많이 닳았고, 전투중간중간의 회복시간도 많이 걸렸다. 아크가 스킬 위주의 전투를 하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킬 댸문에 사향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 바로 아크의 기본 공격 스킬인 '검투술' 이다. 스킬만으로 전투를 하니 정작 중요한 '검투술'의 숙련도는 오르지않았던것이다.게다가 아크의 '검투술'은 상급.중급이상의 등급으로 올릴떄는 관련스킬에 나름의 깨달음이 있어야하는것이다.'스킬만 써대고있었으니'검투술'이 올라갈리가없지.'그러나'검투술'만으로 전투를하자 상황이 달라졌다.처음 3~4마리는 어렵지않게 상대할수있었지만,6~7마리로 넘어가자 슬슬 힘에 부쳤다.그리고 열마리 이상을 상대해보니 정말 목숨이 오락가락했다.그러나 아크는 빈사상태까지 몰리는 한이 있어도 절대 스킬을 사용하지않았다.'설사 죽는한이있어도 스킬을 사용하면 안돼.도망갈 곳이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빈틈이생긴다.마음에 빈틈을가지고는 제대로된 수련이 될리가없어.' 격투기에서는 백번의수련보다 한번의 실전이낫다.그말은 상대방이 친절하게 기술을가르쳐준다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기술이란 실전속에서,위기 속에서 갈고 다듬어진다는 의미다.여담이지만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의실력도 현대 검도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3단수준이라고 한다.그러나 현대검도에서 9단자격을 딴사람도 막상 진검을 들고 그와마주선다면 일격도 버텨내지 못하리라.그이유는 명확하다.안전이 보장된곳에서 몸에익힌 수백가지의 기술은,생과 사를 넘나들며 갈고닦인 한가지 기술을 이겨내지 못하는것이다.좀얘기가 장황해졌지만,어쨋든아크는 일단 마음먹고 시작하면 철저했다.할때 확실하게 하지못하면 아무것도못한다!그게 아크의 행동철학이었다.떄문에 아크는 몇번이나 죽을 고비에 직면하면서 오직 검격과 발차기만을 고집했다.그러자 거의 멈춰있다시피 하던 '검투술'의 숙련도가 예전에 악실리온에서 시합을 할때처럼 쭉쭉오르더니,얼마전 드디어 500을 돌파했다.[많은경험으로 검투술의 등급이 올랐습니다.검투술(최상급,패시브 503/1,000):당신은 이제 검투술의 달인이 되었습니다. 검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성능을 100%이끌어 낼수 있게 되었습니다.모든종류의 검과 너클계열에 추가공격력을 부여하고,회피율과 치명타확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킵니다.또한 검의속성을 완벽하게 이해해20%확률로 이연격(二連擊)을 할수있습니다] 《종합 전투력 50% 산승. 방패 착용 시 검투술의 효과가 사리짐. 발차 기를 적중시켰을 때 소형 몬스터 10%, 중형 몬스터 8%, 대형 몬스터 5% 확률로 랜덤의 상태 이상을 일으킴. 고난이도의 기술을 성공시킬 수록 발동 확률이 높아집니다.》 +최상급 추가 효과(이연격) : 20% 확률로 한 번의 공격으로 두 번의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데미지는 기본 공격력의 50%만 적 용됩니다. '최상급 검투술!'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종합 전투력 50% 상승! 이건 단순히 데미지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었다. 공격력은 물론, 방어력, 공격 속도와 반응속도를 포함한 모든 전투 능력이 상승됬다는 의미!(본문에선 상승됐다는) 아크가 예저본다 몸을 움직이기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발차기로 인한 상태 이상 발동 확률 증 가. 그러나 '검투술' 등급이 올랐음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 는 것은 새로 추가된 '이연격' 효과였다. 검의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해서 일격에 두 번의 데미지를 주는 효과! 사실 정보창의 내용만 읽어 봤을 때는 그다지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두 번의 공격이라지만 실제 적용되는 추가 데미지는 50%. '다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보다 못하다. 그러나 막상 발동되는 걸 보니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발동 확률 20%. 확률적으로 따지면 다섯 번에 한 번 발동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확률. 주사위를 던져 6 이 나올 확률이 1/6이라고 꼭 여섯 번 던져 한 번만 나오는 게 아니다. 전부 6이 나올 수도, 전혀 안 나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만약 요령을 깨달은 사람이 던지면 6이 나올 확률을 30%, 40% 이상 올릴 수도 있으리라. '이연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다!" 아크가 목이 돌아간 좀비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투둥, 투둥, 연달아 두 번의 타격음이 울리며 몰드좀비의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20%의 확률이지만 지금처럼 상황만 맞추면 '이연격'의 발 동 확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갔다. 거기에 치명타가 터질 경우 첫 번째 공격으로 150%, 두번째 공격으로 75%의 데미지가 들어간다. 일격에 225%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목이 돌아가서 방향조차 잡지 못하는 놈들에게 치명타를 먹이는 건 일도 아니지!" 아크는 몰드좀비에게 바짝 붙어서 속사포처럼 검격을 날 려 댔다. 연속적으로 터지는 '이연격'과 치명타의 향연! 몰드좀비들은 순식간에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 쓰러졌다. 그사이 지옥 훈련을 이겨 낸 라카드와 라자크도 몰드좀비 한 마리를 처리하고 남은 한 마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지금이다, 방패로 후려쳐!" 딱딱딱딱! 라카드와 라자크는 보조를 맞추며 몰드좀비를 공략했다. 이 역시 지옥 훈련의 성과였다. 아크를 보조만 하던 소환수들이 스킬도 쓰지 않고 레벨 400대의 몰드좀비와의 팽팽한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소환수들의 능력치가 레벨 280 수준이니 혼자서는 무리라도 2 대 1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소 환수들이 독자적으로 전투를 치르는 상황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아크로서는 꽤나 대견스럽게 생각되었다. '여유가 있어 보이니 참견하지 않는 편이 좋겠군.' 주변의 몰드좀비를 정리한 아크는 느긋하게 소환수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우하하하핫, 이겼다, 이겼어!" 대략 4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몰드좀비를 해치운 라카드 가 광소를 터뜨렸다. "아직 멀었어. 한마리 정도는 2분 안에 해치워야지." "쳇, 칭찬 좀 해 주면 입이 불어 터지냐?" "2분 안에 해치우면 칭찬해 주지." 아크는 툴툴거리는 라카드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어쨋든 처음의 걱정과 달리 동굴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되 고 있었다. 몰드좀비가 너무 많아 진행이 빠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아크의 목적은 던전을 공략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네크로맨서의 내단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는 게 첫 번째, '이제 재료 아이템도 거의 다 모았어.' 게다가 동굴 몰드좀비의 레벨은 400. 경험치를 200%씩 먹으며 진행하자 경험치도 쭉쭉 올라 불과 며칠 만에 8이나 더 올라 357이 되었다. 늪지보다 네 배는 빠른 속도였다. 덕분에 동굴 몰드좀비의 리젠 속도가 늪지보다 느린 게 아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몰드좀비들의 리젠 속도가 빠르면 던전 공략이 힘 들어지겠다.'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몰드좀비 10여마리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곰팜이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곰팜 이 소독약'을 먹어야 한다. 때문에 그동안 '곰팡이 소독약' 의 지속 시간 동안 동굴을 공략하다가 후퇴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만약몰드좀비들의 리젠 속도가 빨랐다면 공략 시간이 지금의 서너 배나 걸렸으리라. "어쨋든 이제 그것도 곧 끝나겠군." 아크가 지도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현재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들어진 던전 지도의 완성율은 95%. 아직 '곰팡이 소독약'을 한 번 더 먹을 수 있으니 서두 르면 이번에 던전을 완전히 공략할 수 있으리라. "자, 이제 그만 출발하자." 음식으로 생명력을 회복한 아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에서 어정대는 몰드좀비들을 썰어 대며 동굴 을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20여 분, 소독약의 효과가 끝나 새로운 소독약을 복용했을 때였다. 외길로 쭉 이어지는 통로 를 따라들어 가던 아크의 눈앞에 막다를 장소가 나타났다. "어라? 뭐야?" 아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막다른 통로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갈림길도 없엇는데 갑자기 막다른 곳이라니? 뭐, 원래 이런 던전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아크 가 이곳을 찾아온 것은 '아귀버섯'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 던전에서 '아귀버섯'을 찾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벽면을 살펴봤지만 숨겨진 장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구석에 시커먼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발견했다. '가만, 만약 이 동굴에 '아귀버섯'이 있다면 당연히 물에 쓸려 늪지로 흘러들었겠지?' 그리고 동굴을 들어오는 내내 바닥에는 시커먼 물이 흐르 고 있었다. 그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바로 그 웅덩이였다. '그냥 가만히 고여 잇는 물이 넘쳐흐를 리는 없으니 어디 선사 계속 물이 공급되고 있다는 말이야. 어쩌면 웅덩이가 다른 곳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너희들은 내 뒤를 따라와." 아크는 망설임 없이 웅덩이로 뛰어들었다. 시커먼 물속에 들어가니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아크는 손으로 웅덩이 안을 더듬어 가면 살펴보았다. 그러 기를 잠시, 웅덩이 바닥까지 내려가자 물살이 느껴졌다. 물살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뜻! '이쪽이다!' 아크는 돌부리를 짚어 가며 물살의 역방향으로 기어갔다. 튜브처럼 이어진 수로를 따라 들어가기를 한참, 점점 숨이 막혀 온다 싶을 무렵, 수로가 수직으로 꺽어졌다.(본문에선 꺾어졌다.) '위로 올라간다. 반대편으로 나가는 곳이 분명해!' "푸하ㅡ!" 위로 솟구쳐 올라가자 수면으로 올라왔다. 아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크가 올라온 곳은 한쪽 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작은 지하 폭포가 만들어 낸 웅덩이였다. 그곳에서 넘쳐 난 물이 반대편 웅덩이를 경유, 동굴을 거쳐 늪지로 흘러들고 있는 모양이다. "틀림없어. 여기 어딘가에 아귀버섯이 있을 거야." 아크는 물을 나와 어두운 지하 공간을 살펴보았다. 마나가 없어 야간 투시 기능이 있는 '고양이의 눈'도 사용 할 수 없어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동굴에서 어느 정도 눈이 적응되어 대략적인 형태는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광산 같은 곳이었던 건가?' 지하 공각의 벽면은 모두 검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손으로 문지르면 검은 그을음 같은 게 묻어나는 걸로 봐아 석탄인 모양이다. 동굴을 지날때도 석탄 같은 바위가 종종 보였다. 웅덩이나 동굴 안에 흐르던 물이 시꺼맸던 것은 암 석에서 떨어진 석탄가루 때문인 모양이다. 그때 앞서 가던 라카드가 소리쳤다. "주인, 버섯이다, 버섯!" "엇, 저, 저게 다 '아귀버섯'이란 말이야?" 황급히 라카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달려간 아크는 환호성 을 터뜨렸다. 거대한 석탄 덩어리의 틈새, 큼직한 버섯이 빼 곡히 들어차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아크가 찾던 '아귀버섯'! 석탄 틈새에 깔려 있는 게 모두 '아귀버섯'이었다. "우하하하, 대박이다!" 아크는 곧바로 팔을 걷어붙이고 버섯을 채취하기 시작했 다. 쉬지 않고 버섯을 채취했지만 폭포 근처에 널린 '아귀버 섯'은 줄어드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아귀버섯' 이 아예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북실이나 백구의 가방을 몽땅 동원해도 다 챙길 수 없을 양이었다. "이렇게 많다면 펑펑 써 대도 되겠어." 버섯이 충분하면 항상 음식 효과를 열 가지나 받을 수 있 다는 말이다. 그만큼 더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빨리 잡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크는 쾌적한 사냥을 상상하며 숨도 쉬지않고 버섯을 닥 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그렇게 가방에 버섯이 쌓여 갈 무렵, -감히 어떤 놈이 나의 안식처를 더럽히는가! 돌연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리더니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불사의 리치 '가라드'가 나타났습니다! '에엑? 보스 몬스터?' 아크가 움찔하고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어두운 공간에서 검은 기운에 휩싸인 뭔가가 걸어 나왔다. 가라드는 좀비도 아니고 스켈레톤도 아닌, 여기저기가 떨 어져 나가 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몰골을 한 언데드 몬스터 였다. 턱까지 내려오는 후드가 달린 망토를 휘날리며 긴 지 팡이를 들고 있었다. 마치 마법사와 같은 복장이다. 하긴 판타지에서 리치란 타락한 마법사가 불사의 마법을 사용해 전생輾生한 존재였다. 분명 가라드 역시 언데드가 되기 전에는 마법사였으리라. '보스 몬스터라........ 나야 감사하지.' 황급히 일어나 자세를 잡은 아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보스 몬스터를 확인한 아크의 머릿속에 '보스 몬스 터=푸짐한 보상'이라는 공식이 떠올랐다. '지천에 널린 '아귀버섯'도 모자라 보스 몬스터까지 준비 해 놓고 있다니!' 던전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물론 무작정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현재 아크는 동 굴의 특수 효과 탓에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다. 공격 스킬은 물론, 심지어 '고양이의 눈'을 사용할 마나조차 없어 가라드 의 레벨이나 남은 생명력 따위의 정보를 확인한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질리도록 상대해 봤어.' 악실리온에서 그리고 스탄달에서 쥬르와 지겹도록 싸워 보았다. 덕분에 아크는 마법사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는 방어력이 낮고 반응속도가 느리다. 대신 기본 공격인 마법의 공격력이 엄청나게 강하지만, 그 역시 주문을 완성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약점 이 있었다. 일단 달라붙어서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이 두들 겨 주면 마법사만큼 약한 상대도 없는 것이다. '물론 그런 담점을 보완하기 위해 '워프'를 사용할 수 있 지만.......' 다행히 지하 공간은 넓은 편이 아니다. 구석 자리만 아니라면 '워프'로 이동한다고 해도 사방 10 여 미처가 한계. 그 정도면 강력한 마법 주문을 완성하기 전 에 따라붙어서 발차기로 주문을 캔슬시킬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내게는 소환수가 있다. 소환수를 사방에 배치하 고 놈이 주문을 외울 때 방해하도록 한다면 캐스팅 시간이 많이 걸리는 강력한 마법은 막을 수 있어. 마법 저항력이 잇 으니 빨리 외울 수 있는 저급 마법 정도는 무시하고 근접전 으로 몰고 가면 돼.' 아크가 그렇게 대략적인 작전 구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침입자에게는 죽음을......! 가라드가 손을 뻗으며 주문을 외자 검은 마법화살이 소나 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숫자다. 모두 피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아크는 양팔로 목과 얼굴을 가리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자세를 취한다고 딱히 데미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 었다. 그러나 목이나 얼굴을 가리면 최소한 치명타는 피할 수 잇는 것이다. 아크가 앞으로 달려 나가자 마법화살이 전신을 두드리며 생명력이 빠르게 내려갔다. 그러나 맞는 횟수에 비해 큰 피 해는 아니었다. 직업 특성과 몽구스의 내단으로 각종 마법 저항력을 올려놓은 덕분이었다. "라카드, 라자크, 양쪽 구석으로 산개라하!" 아크가 가라드에게 접근하며 소리쳤다. 아크가 도착하기 전에 가라드가 '워프'로 이동할 때를 대 비해서였다. 역시나 아크가 달려들자 가라드는 재빨리 주문 을 외워 '워프'했다. 그러나 '워프'는 '텔레포트'와 달리 즉시 발동되는 스킬이지만, 이동 위치를 지정할 수 없다. 가라드는 우측 구석에서 나타나 다시 마법화살 주문을 외 웠지만 마침 그곳에서 대기하던 라자크가 방패로 후려치자 주문이 캔슬되었다. "잘햇어, 그대로 방패로 공격하며 시간을 끌어!" 딱딱딱, 딱딱딱딱! 라자크가 연속적으로 방패로 후려치며 가라드를 몰아세웠 다. 그러나 역시 라자크 혼자 보스를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건방진 놈, 감히 스켈레톤 따위가! 가라드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라자크가 수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가라드는 끝장을 보려는 듯 라자크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채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아크가 가라드에게 달려들 었다. 퍼퍼퍼펑! 콰직! 전신을 관통하는 듯한 소나기 같은 검격! 뒤이어 화려한 돌려차기가 펼쳐졌다. 돌려차기로 관자놀이를 얻어맞은 가라드가 휘청거리며 물 러났다. 아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으로 나가며 연속적으 로 나래차기를 날렸다. 마법사의 주문을 방해하기에는 검격보다 '경직'이나 '스 턴'의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발차기가 더 효과적이었다. 예상 대로 가라드는 제대로 주문조차 외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크윽, 이, 이놈이......! 정신없이 밀려나던 가라드가 잠깐의 틈을 이용해 다시 '워프'를 사용해 사라졌다. "모두 경계 태세!" 아크의 명령에 라자크와 라카드가 바짝 긴장한 눈으로 주 변을 훑었다. 잠시 후, 다시 가라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러나 이번에는 운이 좋았는지 뒤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아크나 소환수들이 대기하고 있던 위치와 정반대였다. "쳇, 데드릭, 놈을 막아!" "아, 알았어!" 데드릭이 바람을 가르며 가라드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라드가 약간 더 빨랐다. -받아랏, 더러운 침입자들아. '어둠의 화살'! "우아아악!" 가라드의 손에서 검은 마법화살이 빗발쳤다. 마법화살에 두들겨 맞은 라카드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 다. 그사이 아크는 옴힘을 다해 달려갓지만 가라드는 다시 한 차례 마법화살을 쏟아붓고 잽싸게 '워프'로 이동해 버렸다. 만약 아크 혼자라면 절대 '워프'로 날아다니며 마법을 퍼 부어 대는 가라드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스킬 까지 사용할 수 없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아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크하하하, 내게 덤빈 어리석음을 지옥에서 후회하거라! 마법 의...... 땡강! -아욱! 반대편에 나타나서 히죽거리며 주문을 외우던 가라드가 방패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휘청거렸다. 이번에 가라드가 나 타난 곳은 라자크의 바로 앞이었던 것이다. ......가라드와의 전투는 제비뽑기나 마찬가지였다. 아크나 소환수 근처에서 가라드가 나타나면 아크의 우세. 반대로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타나면 가라드의 우세였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가라드는 마법을 난사하고 바로 '워 프'로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그런 전투가 20분이나 지속되었다. "헉헉헉, 라둔의 '스토킹'만 사용할 수 있다면 저런 놈은 문제도 아닌데......" 아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투덜거렸다. 마법사가 '워프'로 도망가는 즉시 이동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라둔의 '스토킹'! 바로 마법사인 쥬르를 절망으로 몰아 넣었던 스킬이었다. 그러나 라둔의 '스토킹' 역시 아크의 마 나를 사용해야 한다. 지금으로써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결국 아크는 뭐 빠지게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분이나 쉬지않고 뛰어다닌 덕에 아크와 소환수 들은 완전히 파김치처럼 늘어졌다. 게다가 가라드에게 달려 들 때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어서 생명력도 30% 밖에 남지 않았다. 마법 방어력이 낮은 라카드와 라자크의 상태는 더욱 심각 해서 빈사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가라드의 생명력도 얼마 남지않았다.' 아크가 또다시 '워프'로 사라지는 가라드를 바라보았다. 가라드에게 접근할 때 한두 방의 마법을 감수해야 하지만, 일단 붙으면 아크는 발차기의 상태 이상 효과를 이용해 타이 밍만 잘 맞추면 수십 번을 공격할 수 잇었다. 보스 몬스터라도 일단은 마법사 아크의 공격을 그렇게 받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엇다. 가라드는 여기저기 부서진 뼈가 덜렁거리고 살점이 뜯겨 져 나간 상태였다. 꼭 '간파'나 '고양이의 눈'을 사용하지 않아도 몬스터의 상태를 보면 대강 남은 생명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현재 가라드의 상태라면 남은 생명력 은 고작 20% 정도. '이대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어!' 아크는 그렇게 확신햇다. 그때 반대편에서 다시 가라드가 나타났다. 거리는 대략 50여 미터! '젠장, 또 한 방 맞아야겠군.' 아크는 양팔로 급소를 보호하며 가라드를 향해 달려갔다. 가라드가 사용하는 어둠의 마법화살의 주문 시간은 대략 4초. 아크의 속도로 계산하면 30여 미터 정도 달려갔을 때 주문이 완성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앞까지 도착했 을 때까지 나법이 날아오지 않았다. 아크가 팔을 내리고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을 때였다. -.......부활의 힘! 뭔가 긴 주문을 외우던 가라드가 양팔을 활짝 펼치며 소리 쳤다. 그러자 부서진 뼈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너덜거리던 살점이 다시 달라붙었다. 방금 전까지 너덜너덜했던 가라드(본문에선 레이몬드) 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뭐, 뭐......?" 아크가 경악성을 터뜨리며 멈춰 서자 가라드가 섬뜩한 미 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크크크크크, 뭐냐, 그 표정은? 설마 이 정도로 이 몸을 죽일수있 다고 착각하고 있었던건가? (본문에선 몰아넣었다고인데 말이 이상하네요ㅋ) 이 몸은 불사의 리치. 네놈들이 무슨짓을 해도 이 몸을 쓰러트릴 수는 없다! 받아랏, 어둠의 마법화살! 마법화살이 빗발쳐 아크의 몸을 난타했다. 수십 발의 마법화살을 얻어맞은 아크는 주르륵 밀려나다 가 중심을 잃고 나뒹굴었다. 방심한 와중에 치명타를 맞아 생명력이 단숨에 8%나 빠져나갓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20분 동안을 싸워 겨우 가라드를 빈사 상태까지 몰고 갔 다. 그 대가로 아크의 생명력 70%가 빨렷고 소환수들은 빈 사 상태였다. 육참골단肉斬骨斷! 문자 그대로 살을 내주고 뼈를 깍는 각오로 이뤄 낸 성과였다. 그런데 회복이라니? 기껏 살을 잘라 냈더니 뼈가 부서진 놈은 깁스를 하고 나타난 게 아 닌가? 가라드의 상태를 살펴보니 놈의 마법은 회복처럼 즉효성 이 아니라 재생처럼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마법이었다. 그러나 회복되는 속도가 일반 성직자의 재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빨랐다. 잠깐 사이에 벌써 50% 이상 회복된 것처 럼 보였다. '워프'를 사용하면서 그런 무지막지한 회복 마 법까지 사용하는 놈을 대체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젠당, 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답답할 줄이야. 대체 어떤 마법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거 아냐? 어쨋든 현 상태에서 놈을 쓰러뜨릴 방법은 회복 마법을 쓸 시간을 주지 않고 따라붙거나, 놈의 재생력을 웃도는 공격력 으로 공격하는 방법뿐이야.'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아크에게는 둘 다 불가능한 방법이 었다. 게다가 남은 생명력도 고작 20% 정도, 설사 마나가 남 아 있어도 지금의 상태로는 승산이 없었다. 모든 상황이 최악,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후후후, 소용없다는 걸 모르겟는가? 그러나 가라드는 '워프'를 사용해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해 버렸다. 아크의 검은 허망하게 벽을 후려쳤다. 칼날이 벽을 긁어 대자 궤적을 따라 마치 라이터돌이 마찰 할 때처럼 불똥이 튀었다. 검으로 석탄 덩어리를 후려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소매가 불똥에 닿자 불길이 확 번지즛 아크의 손목을 따라 목까지 기어올라온 것이다. "헉, 뭐, 뭐야?" 아크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자 불길은 금세 사라져 버렸다.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불길이 일었던 팔을 살펴보고 나서 야 방금 전의 상황을 이해했다. 가라드에게는 공격받고 바닥을 나뒹굴었을 때 팔에 석탄가 루가 잔뜩 묻엇다. 그 가루에 불똥이 닿자 한순간에 연소해 버리며 불길이 일어난 듯이 보였던 것이다. "젠장, 별게 다 놀라게 하는군." 아크가 짜증스럽게 중엉거리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가라드와 싸우면서 석탄가루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서 그런가? 팔에 붙었던 불길이 파고들었는지 어쨋는지, 머릿속에서 한 순간 불똥이 튀어 오르며 뭔가가 떠올랏다. '가만? 석탄가루? 어쩌면...... 아니, 이 정도 공간이라면 가능하다!' "라자크, 라카드, 석탄이다!" 아크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가라드의 위치를 찾던 라카드가 괴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드디어 머릿속까지 석탄가루 가 꽉 차 버린 거야?" "바로 그거야!" "정말 머릿속까지 석탄가루가 꽉 찼다고?" "멍청이, 그게 아니야, 여기다. 여기에 석탄가루를 꽉 채 우는 거야!" "뭐? 주인. 제정신이야? 지금도 풀풀 날리는 석탄가루 때 문에 숨 막혀 죽겠는데, 석탄가루를 채우라니? 정말 정신이 나가 주신 겁니까? 저 녀석하고 라자크는 언데드라 숨을 안 쉬어도 상관없지만 나는 연약한 뱀파이어라고! 폐가 시꺼멓 게 돼서 죽는건 싫어!"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라자크도!" 아크가 벽에 대고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검으로 후려치고, 발로 바닥에 쌓여 있는 석탄가루를 닥치 는 대로 걷어차자 금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라자크도 곧 방패로 벽을 후려치며 석탄가루를 뿌려 댔다. "에라 모르겟다, 이래 죽으니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지." 그러자 라카드도 한숨을 불어 내며 저공비행으로 바람을 일으켜 석탄가루를 날려 댔다. -웃, 뭐, 뭐냐? 석탄가루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가라드가 당혹성을 터뜨 렸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가라드라도 석탄가루 속에서 아크 들을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건방진 놈들, 이따위 눈속임으로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가라드가 무차별적으로 마법화살을 날려 대며 고함을 내 질렀다. "쿨럭, 쿨럭, 처, 천만에. 쿨럭,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시꺼멓게 피어오른 석탄가루 속에서 아크가 뛰어나왔다. 망토로 입과 코를 막았는데도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석탄 덩 어리가 폐에 박히는 듯했다. 게다가 눈은 석탄가루 때문에 깜빡일 때마다 자갈이 굴러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져 있었다. "라카드, 라자크, 물웅덩이로 뛰어들어!" 아크는 검 끝을 바닥에 붙이고 웅덩이를 향해 달려가며 소 리쳤다. 카라라라랑! 칼날이 거친 돌바닥과 마주치며 불똥을 튀겨 냈다. 그렇게 잠시, 어느 순간 튀어 오르는 불똥이 확 번진다 싶 더니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다. "지금이다!" 아크가 전력을 다해 뛰어올라 폭포 아래의 웅덩이로 뛰어 들었다. 번쩍! 콰콰콰콰콰쾅! 동시에 한순간 눈을 멀게 할 듯한 섬광이 터지더니 지하 공간이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엄청난 열기를 품은 폭풍이 지하 공간을 휩쓸었다. 쿠콰콰콰쾅, 하며 열기를 견디지 못한 바위가 갈라져 떨어 지는 굉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물속에 잇는데도 동궁이 뒤흔들리는 진동이 전해질 정도였다. "푸하, 성공이다!" 잠시 후, 아크가 웅덩이에서 솟아나오며 소리쳤다. "푸하, 뭐, 뭐야? 방금 그건?" 뒤따라 고개를 내민 라카드가 솥뚜껑처럼 커진 눈으로 주 변을 둘러보았다. 불과 몇 초 만에 지하 공간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방금 전까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던 석탄가루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폭발력을 견디지 못하고 천장에서 떨어진 암석 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고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불길이 여기 저기에서 일렁겨렀다. 마치 융단폭격을 받은 듯한 광경! "주, 주인, 대체 무슨 마법을 쓴거야?" "마법이 아니야. 과학이지. 아니, 기초 물리학이나 광물 학에 속하는 건가? 어쨌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바로 분진폭발! 분진폭발을 사전에 나온 대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공기 속을 떠다니는 아주 작은 고체 알갱이가 적당한 농 도 범위에 있을 때 불꽃이나 섬광 따위로 인하여 불이 붙어 폭발하는 일. 대표적인 예가 석탄의 분진에 의한 탄진폭발 이다. 요즘에는 그런 일이 없지만 70년대만 해도 탄광에서 분진 폭발이 일어나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았다고 한다. 석탄가루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예전에 학교에 서 배웠던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역시 사람은 배우고 볼 일이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잘될 줄은 몰랐어.'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해! 후후후, 이제 그 말 뼈 다귀 같은 놈도.....헉!" 라카드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숨 막히는 비명을 터뜨렸다. 라카드의 시선을 쫓던 아크의 얼굴도 굳어 버렸다. -크으으으으....이,이자식......거, 건방진 짓을.....! 작은 불길이 일렁거리는 광장의 중심에 가라드가 서 있었 다. 폭발에 휩쓸려 온몸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아직 버티고 있 었다. "이, 이럴수가..... 그 폭발을 견뎌 냈단 말이야?" 아크는 믿어지지 않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크 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가라드는 마법사 계열의 몬스터라 화염 저항력이 엄청나게 높았던 것이다. 그때 아크의 귓가로 가라드의 주문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건 아까 전에 사용했던 재생 마법! 아, 안돼!" 아크가 깜짝 놀라 웅덩이 밖으로 뛰어나왔다. 놈이 재생 마법을 사용하면 아크가 일반 공격으로 주는 데 미지보다 회복속도가 더 빠르다. 결국 분진폭발을 일으킨 보람도 없이 좀 전과 같은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아니, 더 나쁘다. 놈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같은 수법이 다시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유령 기사단 강습!"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며 오벨리움의 기사단이 나타났다. 그러나 유령 기사단이 돌격하기도 전에 가라드가 히죽 웃 으며 중얼거렸다. -늦었다. 부활의 힘! 동시에 가라드의 몸이 빠른 속도로 복구되어 갔다. -악을 처단하라! 유령 기사단이 아크의 명령에 따라 가라드에게 달려들었 다. 30명의 기사단이 휘덜러 대는 검, 창. 철퇴! 공격이 가해 질 때마다 가라드의 몸이 퍽퍽 파여 나갔다. 그러나 이미 '부활의 힘'이 발동된 상태라 살점이나 뼈는 떨어지기가 무섭게 복구 되었다. 30명의 기사단이라고는 하나, 하급 스킬이라 아직 개개인 의 공격력은 라자크에게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30 명이 공격하니 회복 속도보다 데미지가 더 컸지만. 5초 안에 재생하는 가라드를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쳇,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유령 기사단이 아쉬운 눈으로 가라드를 바라보며 사라졌 다. 정말 아크가 하고 싶은 말이다. -크흐흐흐흐. 그게 다냐? 이제 밑천이 남아 있지 않은 거냐? 유령 기사단이 사라지자 가라드가 히죽 웃으며 아크를 바 라보았다. 사실 가라드도 잘난 척할 만큼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유령 기사단에게 짓밟혀 자동차에 깔린 두부처럼 전신이 으깨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 유령 기사단의 말처럼 남은 생 명력도 1~2%밖에 되지 않으리나. 그러나 어쨌든 아직 가라 드는 '부활의 힘'이 적용되고 있는 상태였다. 아크가 멍하니 있는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생명력이 회복 되고 있는 것이다. '틀렸다./ 이제 끝났어. 일반 공격으로는 놈의 회복 속도 를 따라가지 못해!' 아크가 털썩 주저앉아 절망적인 탄식을 불어내고 있을 때 였다. 문득 뜯겨져 나간 가라드의 가슴 부분에서 검은 형체 가 어른거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가라드의 생명력이 3% 이하로 떨어져 마기를 추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뭐? 마기? 그럼 저 녀석도 마 속성의 몬스터 였던 거야?' 아크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유령 기사단의 공격으로 가라드의 생명력이 3% 이하로 떨 어져 '마기 봉인' 스킬이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마기 봉 인'을 성공하면 마 속성 몬스터의 남은 생명력을 무시하고 성불시킬 수 있다. 그러나 놈이 '부활의 힘'으로 3%이상 회복하면 '마기 봉인'이 발동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마기 봉인!" 콰지지지지직~! 순간 아크의 손에서 빛줄기가 뿜어져 가라드의 가슴을 관 통했다. 그러자 가슴속에서 일렁거리던 검은 형체가 등 뒤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빛줄기에 이끌려 공중으로 떠오르더 니 진·카르마가 소멸할 때처럼 젤리 상태처럼 굳어지기 시 작했다. -크어어어억, 네 네놈..... 무슨짓을.....! -마기 추출에 성공했습니다. 봉인할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됏다, 라둔, 고대의 검!" 쎅쎅, 쎅쎽쎅쎽! 라둔이 납골당에서 챙겨 둔 '고대의 검'을 툭 내뱉었다. 이어 아크가 빛줄기를 움직여 마기덩어리를 '고대의 검' 에끌어오자 마치 스펀지에 흡수되는 물처럼 마기 덩어리가 검에 빨려 들어갔다. -마기 봉인에 성공했습니다. 마기가 봉인된 아이템의 속성이 변했습니다. -크아아아악! 순간 가라드가 비명을 터뜨리며 발광하다가 갑자기 실 끊 어진 연처럼 풀썩 쓰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썩은 고깃덩어 리처럼 변한 가라드의 시체에서 흐릿한 형체가 떠올랐다. 리치로 변한 가라드의 육체에 갇혀 있던 영혼이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 머리를 잡고 잠시 괴로워하다가 천천 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똘망똘망, 오벨리움의 유령들처럼 부담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백발의 노마법사였다. "오벨리움의 마법사였다고요?" -그렇다네. 가라드의 몸에 갇혀 있던 마법사 유령이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아크 덕분에 저주에서 벗어난 마법사 유령은 오벨 리움의 유령들처럼 친밀도가 100%인 상태였다. 때문에 아 크는 마법사 유령을 통해 그간의 많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아크의 예상대로 본래 이 동굴은 탄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탄광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이곳 까지 들어온 광부들이 모든 기력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이 벌 어진 것이다. 이 수상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이 지역의 영주가ㅡ이 지역이 저주 마법에 걸리기 전에는 오벨리움에 속 한 영지였단다ㅡ 조사를 위해 마법사를 파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곳이 바로 전설로 내려오는 마나 홀임을 알게 되었지. "마나 홀요?" -그래, 마나 홀이란 생명의 근원이 되는 마나를 조종하는 일종 의 지맥이네, 마나 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무한의 마나를 방출하는 마나홀과 주변의 마나를 흡수하는 마나 홀이 존재하지, 이 대지의 지하 깊은 곳에 존재하는 마나 홀은 두번째에 해당하는 곳이었어. 분래 마나 홀의 힘은 외부로 방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 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곳의 대지에 마나 홀의 힘이 깃들 게 된 모양이네. 마법사는 이 조사 결과를 바로 영주에게 알렸다. 당시 오벨리움은 어둠의 세력과 전쟁을 준비하던 중이었 다. 이 소식을 들은 영주는 마법사에게 마나 홀의 힘을 활용 할 방법을 알아낼 것을 명령했다. 마나를 끌어들이는 힘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어 둠의 세력과 싸울 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명령을 받은 마법사는 곧바로 광산을 폐쇄하고 연구를 시 작했다. "방법을 찾았습니까?" 아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 내 지식으로는 위대한 자연의 힘을 다룰 방법을 찾을 수 없었 네. 심지어 광부들을 동원해 이곳의 흙을 파 보았지만 광산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금세 힘을 잃더군. 이 힘에는 뭔가 제약이 있었던 모양이다. - 그런데 이곳을 몽땅 뒤집어 놓았을 무렵, 뜻밖의 물건을 발견 하게 되었네. 다른 곳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마력을 흡수하는 돌, 그 돌이 이 광산에도 하나 있었돈 모양이네. 그리고 그 돌이 주변 대지 의 힘을 빨아드려 마석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네. '마석!' 아크의 눈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마법 학회를 통해 우연히 입수하게 된 소켓 아이템. 그러나 아직 아크가 찾아낸 마석은 뱀파이어 영지에서 얻 은 뱀파릭 스톤밖에 없었다. 나머지 세 개의 마석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한 참에 마석에 대한 정보를 얻었으니 눈에서 불이 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아크가 캐물기도 전에 마법사가 고개를 흔들며 한 숨을 불어냈다. -하지만..... 마법사가 마석을 손에 넣는 순간 오벨리움에 강력한 저주 마법이 발동했다. 저주 마법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풍요롭던 대지는 악취를 풍기는 늪지로 변하고. 살아 있는 존재들은 모두 망자가 되어 영원히 세상을 떠도는 저주에 걸 려 버렸다. 거기까지 듣던 아크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그럼 늪지의 언데드들도 모두 오벨리움의 주민들이었던 겁니까?" 그렇다면 오벨리움의 주민이나 마법사처럼 몰드좀비도 '마기 봉인'이 발동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마법사는 간단하게 아크의 의문을 풀어 주었다. -그건 아니네. 이 지역의 언데드들은 저주받은 대지의 영향으 로 그 후에 생겨난 존재네. 어쨌든 이곳에서 저주 마법에 당한 마법사는 다른 주민들 처럼 망자가 되지 않았다. 마나를 흡수하는 마나 홀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광산 안에 있었기 때문일까? 마법사에게 스며든 저주 마법은 불완전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저주 마법보 다 더욱 끔찍한 형태의 저주였다. 살아 있는 자도 아니고, 죽어 있는 자도 아닌.....마법사는 살아 있는 채로 몸이 썩 어 들어가는 고통을 생생하게 겪어야 했던 것이다. -어둠의 제왕이 뿌린 저주 마법은 자살조차 허락하지 않았네. 그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억조차 썩어 가는 몸을 이끌고 저 주 마법을 물리칠 방법을 연구하는 것뿐이었지.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마나 홀의 힘이 단긴 마석을 이용하는 것이었지. 마나 홀에서 찾은 마석! 저주 마법이 불완전하게 발동한 것은 마나 홀이 저주 마법 의 마나를 빨아들였기 때문 그렇다면 마나를 흡수하는 힘을 지닌 마석을 이용하면 체내에 잠식한 저주 마법의 마력도 흡 수해 주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기대와 달리 마석은 저주 마 법의 힘과 충돌해 폭주했고, 결국 마나의 힘을 제어하지 못 한 마법사는 리치로 변해 버렸다. 가라드가 마나 홀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은 마석을 통해 마나 홀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됐기 때문이다. -자네 덕에 이제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게 되었네. 마법사가 거기까기 말했을 때였다. 문득 마법사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서서히 흐려 졌다. 마법사는 점차 투명해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감격 에 겨운 눈으로 말했다. -이제 갈 때가 된 모양이군. 고맙네, 자네에게 신의 응총이 함 께하기를 기도하겠네. 마법사는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오벨리움의 망자들과 달리 마법사를 잠식했던 마기는 그 리 강하지 않았다. 그가 리치가 된 것은 마석과 마기가 충돌해 폭주를 일으 켰기 때문이지, 특별히 마기가 강해서는 아니었다. 때문에 오벨리움의 주민들과 달리 마기를 뽑아내고 얼마 지나지 않 아 바로 성불하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마법사에게 뽑 아낸 마기 역시 미약한 수준이라 속성이 변해 버린 '고대의 검'도 오벨리움에서 만든 저주템만큼 성능이 올라가지 않 았다. 그러나 마법사를 저주에서 풀어 준 선행에 대한 대가는 따 로 있었다. 마법사가 사라진 뒤에야 가라드를 해치운 경험치 가 들어왔다. -'마기 봉인'을 사용해 30%의 추가 경험치가 적용 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기 봉인' 을 사용해 몬스터를 해방시키면 그냥 해치웠 을 때보다 30%의 경험치가 더 들어오는 것이다. 덕분에 아 크는 담숨에 7레벨이 올라갔다. '이거 괜찮은데?' 아크는 히죽거리며 가라드의 시체를 뒤적였다. 기이한 힘이 깃든 망토(레어) 방어구 타입 : 망토 내구력 : 25/60 방어력 : 25 무게 :20 사용 제한 : 레벨 250 이상 고대 왕국 오벨리움에서 지위가 높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고급 망토 입니다. 이 망토는 전설의 영물인 라크리사의 털로 만들어 착용자의 정신력을 높여 주고 활력을 샘솟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망토에는 리치 가라드의 기이한 힘이 깃들어 마나를 태워 생명력을 회복하는 특별한 성능이 추가됐습니다. 마석의 힘으로 끝없 이 마나를 흡수하는 가라드는 이 맡오의 힘으로 불사의 능력을 얻게 됐습니다. <옵션 : 생명력+200, 마나+200> <특수 옵션(부활의 힘) : 마나를 2,000 소모해 착용자의 생명력을 1,000 회복합니다> 힘을 잃은 마석 뉴 월드의 땅에는 흔치 않게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신비한 돌이 있습니다. 이런 돌은 묻혀 있는 장소에 따라 성질이 변합니다. 이 마석에는 마나 흡수 속성을 가진 마나 홀의 힘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저주 마법의 힘까지 추가되어 폭발적인 성능을 가지게 됐지만 마기가 빨려 나가면서 동시에 힘을 잃어 평범한 돌이 돼 버렸습니다. "오호, 레어 망토다!" 아크가 눈을 반짝이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막상 정보창을 읽어보니 그리 좋은 아이템이라고 는 할 수 없었다. 생명력과 마나를 200씩 올려 주는것은 그 렇다 쳐도, 특수 옵션은 좀 뭐하다. 마나를 2,000이나 소모해서 생명력을 1,000 회복한다니? 가라드처럼 무한대의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써먹을 수 있겠는가? "이 마석도 아쉬운데." 아크가 '힘을 잃은 마석' 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셧다. 마나를 흡수하는 마나 홀에서 만들어진 마석이라면 분명 같은 성능을 가지고 있으리라. 가라드가 마나 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무한대의 마력을 뿜 어낼 수 있었던 것도 마석의 영향이었으리라. 물론 몬스터에게 그 정도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유저에게 도 같은 효과를 발휘하라는 보장은 없었다. '기이한 힘이 깃 든망토' 역시 가라드가 사용할 때는 엄청난 재생 능력을 보 였지만, 아이템으로 떨굴때는 효과가 뚝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성능이 많이 감소한다고 해도,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은 그 자체가 굉장히 희귀하다. 물론 뉴월드에는 마나를 회복하는 포션도 있지만, 마나 포션은 회복 포션보다 열 배 이상 비싼것이다. 반면 레벨이 높아질수록 스킬의 양이 늘어나니 마나는 항 상 부족하기 마련이다. 만약 마나 습수 마석이 존재한다면 모든 유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리라. "마나를 빠르게 보충할 수 있다면 이 망토도 제대로 위력 을 발휘할 텐데...." 이래저래 아쉬운 일이다. "마법사는 마나 홀의 힘을 흡수함 이 대지를 이용해 마석 을 만들었다고 했어. 그럼에도 광산에 마나를 흡수하는 특 수 효과가 적용되고 있으니 아직 대지가 흡수한 마나 홀의 힘이 남아있다는 말이야. 다시말해 여기에 이 마석을 다시 묻어 놓으면 마나 홀의 힘을 흡수한 마석이 만들어진다는 말이겠지?" 그러나 뱀파이어의 노예로 일할 때, 들은 바로는 마석이 대지의 마력을 흡수할때까지는 몇백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다시 마석을 묻어 놔도 몇백 년 뒤에나 제대로 된 마석이 된다는 말이다. 몇백 년 뒤의 일을 기대하고 마석을 묻어 놓는 건 또라이 나 할 짓이었다. "뭐, 할 수 없지." 아크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몸을 돌릴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오른 아크가 우뚝 멈춰 서며 중 얼걸ㅆ다. "가만? 몇백 년이 필요하다고?" 시간.... 분명 아크는 시간에 관련되 아이템이 있었다. 바로 카르마를 해치고 얻은 '몽환의 모래시계' 일정 공간 의 시간을 수백 년 단위로 조종할 수 있는 신비한 아티펙트 사실 아크는 ;몽환의 모래시계'를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고철을 원래의 아이템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횟수가 정해져 있는 아이템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생 각이 들었다. '만약 이 마석을 묻어 놓고 모래시계로 시간을 가속시킨 다면?' 마석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에 아크는 바닥을 파고 마석을 묻었다. 그리고 '몽환의 모래시계'를 그 위에 올려놓고 작동시키 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몽환의 모래시계'를 사용했습니다. <<100년 단위로 최대 500년까지 시간을 역행하거나 가속시킬 수 있 습니다.>> "최대치 가속!" 순간 위쪽에 담겨있던 모래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위쪽의 모래가 모두 아래로 내려 오자 다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던전에 적용되던 특수 효과가 소멸했습니다. <<1초당 50의 마나가 소모되던 패널티가 사라졌습니다.>> '특수 효과가 사라졋다!' 대지가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마석이 제대로 힘을 빨 아들였다는 뜻! 아크는 기대에 찬 얼굴로 허겁지겁 마석을 꺼내 보았다. 마나 스틸 스톤(유니크 마석) 수백 년간 마나 홀(흡수)의 마력을 흡수한 마석입니다. 마나의 균형을 유지하는 초월적인 힘, 마나 홀은 수천 미터 지하에 흐 르는 지역이라 일반적으로 외부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그러 나 아주 드물게 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지의 성질이 변하는 경우도 있 습니다. 이 마석은 그런 대지의 힘을 빨아들여 마나 홀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 게 됐습니다. 당연히 굉장히 귀한 마석으로 각종 고급 마법 재료에 사 용되며, 소켓 아이템에 꽂아 넣을 경우 희귀한 특성을 발휘할 수 있습 니다. <<소켓에 사용 시(무기 전용) :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 경우 10%확률 로 상대의 마나를 1~5%흡수해 사용자의 마나를 전환합니다.>> 쥐어 팰 때마다 10% 확률로 마나를 강탈하는 마석! ...... 대박이 터졌다. ACT 5 눈알은 알고 있다 킁킁, 킁킁, "주인님, 여기에 하나 발견 했어요!" 사냥개처럼 바닥에 바짝 붙어 코를 벌름거리던 백구가 소리쳤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북실이가 뒤뚱뒤뚱 달려와 수풀을 뒤적이자 당근처럼 생긴 야채가 있었다. 그러나 줄기를 잡고 잡아당기자 뿌리가중간에서 똑 부러져 나갔다. -식재료 채취에 실패했습니다. <<식재료가 손상되어 요리 재료로서의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젠장, 또야!" 북실이가 짜증을 부리며 부러진 당근을 집어 던졌다.그리고 온몸에서 비어져 나오는 육수를 닦아 내며 털썩 주저않았다. "더워서 짜증만 나네, 백구야, 좀 쉬었다 하자." "하지만 아직 오늘 할당량의 반도 못 채웠잖아요." "에이, 몰라, 더워 죽겠단 말이야. 정신이 없어서 겨우 찾은 식재료도 못 쓰게 되잖아." "그렇기는 하지만 할당량을 못 채우면....." 백구가 상상만 해도 겁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어 댔다.그러자 북실이도 잠시 움찔하더니 이내 위축된 목소리로중얼거렸다. "5분만 쉬자." "......네" 백구가 터덜터덜 나무 그늘로 다가가 엎드렸다.북실이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아 가방에 쌓여 있는 식재료를세어 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식재료 채취는 의외로 빡센 작업이었다. 직접 야외로 나가 식재료를 채취해 본 적이 있는가? 지천에 널린 게 나물이며, 열매며, 약초라고 생각하면 큰오산이다. 게다가 대부분 수풀 속에 숨겨져 있어 찾아내기가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누가 늪지 주변은 다른 곳에 비하면 식재료의 숫자가 절반도 되지 않았다. 때문에 식재료 채취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식재료를 찾는 과정이었다. '백구의 후각 덕분에 식재료를 찾는 문제는 해결했지만'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현실에서는 식재료를 캐다가 좀 손상돼도 먹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뉴 월드의 시스템에 그런 융통성은 없었다.채취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식재료를 아예 못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때는 바야흐로 푹푹 쩌 대는여름! 푸짐한 뱃살을 자랑하는 북실이에게 식재료 채취는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이제 채취한 식재료를 팔 수 있으니 착취당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여행을 하는 도중에 짬을 내서 캤던 식재료는 대략 하루에 30개 전후, 그냥 이동만 할 때는 만복도가 크게 줄어들지 않아 아크도 그 정도로 만족했다. 그러나 한 곳에 터를 잡고 사냥에 집중하면 만복도가 빨리줄어들어 하루에 50개는 소모했다. 물론 그럴 때는 북실이역시 작업할 시간이 많아져 수량을 대는 데 별문제가 없었다.그러나 아크가 '수상한 동굴'을 발견한 뒤로 상황이 달라졌다. '아귀버섯'덕분에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요리 제한이없어져서인지, 아크는 하루에 100개의 식재료를 요구했다. '하루에 100개라니? 아무리 식재료값을 쳐준다고 해도이건 착취야!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하라는 말이잖아.' 식재료 100개면 평균 3~5골드를 벌 수 있다.그게 하루 수입이니 식재료 채취만 해서 버는 수입으로는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솔직히 그 돈을 벌기 위해 뙤약볕을해매며 식재료를 찾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북실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얼마 전에 지옥 훈련까지 받은 뒤로는 더욱 그랬다. 아크라는 놈은 오래전의 일도 꼬박꼬박 가슴속에 쌓아 뒀다가 기필코 갚아 주는 성격이다.흠 잡힐 일은 아예 하지 않는 게 좋다. 그게 아크와 함께 다니며 깨달은 생존 비법이었다. '휴, 그나저나 나머지 식재료를 어떻게 모은다? 분명 모자라면 또 농땡이 피웠다고 난리 칠텐데... 젠장, 신데렐라가 따로 없다니까.' 계모(아크)와 새 언니(새 소환수)에게 구박을 받으며 중노동을 하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나마 백구마저 없었으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왜 애완견을 키우는지 알겠어' 북실이는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꼬리를 흔들어 대는 백구를 바라보았다. '이제 백구 없는 뉴 월드는 상상도 할수 없어. 그래, 아크가 백구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는수밖에 없지. 그리고 돈을 벌어야 백구에게 조금이라도 좋은요리를 먹일 수 있으니까. 에유, 내팔자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아크가 70실버를 받고 만들어 주는 개밥(?)은 남은 재료를 대충 섞어 만든 것이었다. 백구에게 고기 냄새라도 맡게 해 주려면 하루 1골드 이상.그 때문이라도 돈을 벌기는 해야 했다. 어쨌든 아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구를 위해서라고 생각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덕분에 조금 기운이 생긴 북실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어두워지면 몬스터가 많아져 더 힘들어지니 지금 하나라도 더 찾아보자." "네, 주인님." "그럼 이번에는 저쪽 숲으로 가 볼까? 어디보자..... 어? 어라? 어라라?"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욱, 욱, 젠장, 걸렸잖아." "걸리다니요?" "내 눈알 말이야. 아무래도 어딘가에 걸린 것 같아. 움직 이지를 않아." "아크 님한테 붙여 놓은 거요?" "아니, 그건 오른쪽 눈알이고, 걸린 건 왼쪽 눈알이야." 북실이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북실이가 식재룔 채취를 한다고 해도, 동영상은 계속 촬영해야 했다. 때문에 북실이는 항상 오른쪽 눈알을 아크에게붙여 놓고 있었다. 두 눈을 몽땅 붙여 놓지 않는 것은, 하나는 정찰용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백구의 레벨은 310정도.이 주변의 어지간한 몬스터보다 강하다. 덕분에 상인인 북실이가 아크와 떨어져 식재료 채취를 할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아크가 없는 곳에서 몬스터와맞딱뜨리면 곤란하다. 라자크나 라카드는 몇 번을 죽어도 부활시킬 수 있는 소환수지만, 백구는 일반 NPC.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때문에 이동하기 전에 항상 눈알로 몬스터가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눈알 두개를 모두 날려 보내고, 머리에 장착한 마법 영사기 까지 사용하면 북실이는 항상 동시에 세 개의 영상을 확인하며 움직여야 한다. 눈알과 마법 영상기가 한 지역을 촬영하고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북실이가 조종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 사람이 동시에 세 개의 화면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눈알을 조종까지 해야 하니 잠시만 방심하면 눈알이 어딘가에 걸려 버리는 골 때리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아크에게 지옥 훈련을 받고 좀 나아졌지만 인간에게는 한계라는 게 있는 것이다. "젠장, 일단 눈알부터 되찾아야겠다." 북실이는 툴툴거리며 숲으로 달려갔다.수풀이 우거진 울창한 숲이었지만. 눈알을 찾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눈알을 날려 보내면 북실이의 영상창에 항상 눈알이 있는 방위가 표시된다. "아, 저기 있다. 내 눈알!" 역시나 화살표를 따라가니 곧 덤불에 쑤셔 박혀 있는 눈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북실이가 덤불 속에서 눈알을 꺼내 소매로 쓱쓱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날려 보내려 할 때였다. 문득 덤불 안쪽에서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들여왔다. "......확실한 건가?" "......필요한 만큼 준비 ..... 그보다 그건....." "......걱정 마...... 하루 이틀 거래한 게 아니잖아....." '덤불 안쪽에서 사람 목소리가?' 이곳에서 열흘이 넘도록 돌아다녔지만 사람 목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이곳은 아직 유저들이 거의 황래하지 않는 미개척지. 사람처럼 말하는 몬스터도 있으니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이런 곳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몬스터보다 유저였다. '이런 곳에서 카오틱 유저라도 만나면 낭패다.' 북실이는 움찔하며 긴장한 표정으로 숨을 죽였다. 방금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덤불로 막혀있는 바위 틈세에 공간이 있었다. 동굴을 숨기기 위해 덤불로 막아 놓은 모양이다.거기까지 확인한 북실이는 잠시 고민했다. 유저든 몬스터든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당분간 이 주변에서 식재료를 모아야 하는 입장이니, 언제 마주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은 해 놔야겠지? 여기 숨어있으면 들키지는 않을 거야.' 북실이는 조심스럽게 덤불 안쪽으로 눈알을 밀어 넣었다.그리고 눈알을 조종해 안쪽으로 들어가자 곧 넓은 공터가나타났다. '유저잖아?' 공터에는 대략 15명 정도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잠입에 성공한 북실이는 눈알을 벽을 따라 이동시키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그때 한 사내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용케도 이런 장소를 찾아냈군." "조심하는 편이 좋으니까. 밝은 곳에서 시시덕거리며 할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맞는 말이야." 사내가 피식 웃자 얼굴을 X자로 가로지른 상처가 실룩거렸다. 그러자 맞은 편에서 지켜보던 꽃미남 얼굴의 유저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모처럼 게임까지 들어와서 그렇게 살벌한 얼굴을 달고다니고 싶냐?" "이게 어때서? 강해 보이고 좋잖아. 너야말로 그 얼굴이가당키냐 하냐? 남대문의 개복치가 꽃미남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뭐야, 인마?" 개복치라고 불린 사내가 발끈하며 흉터 사내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뒤쪽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기사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끄럽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죄송합니다, 제페트 형님." 사내의 말 한 마디에 두 사내가 바로 꼬리를 내버리고 뒤로물러났다. 제페트라고 불린 사내는 흉터 사내의 뒤쪽에 앉아있는 호비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굴의 사내들은 두 패로나뉘어 있는데, 각각 제페트와 호비트가 리더인 모양이다. "그래 봐야 고급 승용차 한대 값아야. 돈도 잘 벌면서 왜그래? 게다가 스탄달은 오가는 상선을 털면 그 정도는 금방복구할 수 있을거야. 뭣보다 이곳에서 해적질을 하는 건 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지. 요즘에는 아예 조직을 이곳으로옮겨 오고 싶을 정도라니까." "내 아래에 있는 놈들도 그런 얘기를 하더군. 도적단 하나만들어서 운영하면 밑의 애들 생활비 정도는 빠진다고. 하지만 우리쪽 애들은 아직 레벨이 얼마 안 돼서 말이야." "빡세게 군기 잡아서 시켜 봐." '위험하다!' 눈알을 통해 지켜보던 북실이는 바짝 긴장했다.사내들의 대화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헤 섞어 나왔던 '카오틱'이라는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들었다.『간파』주문서가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대화를 들어보니 사내들 가운데 카오틱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변경에서 상인에게 가장 위험이 되는 것은바로 카오틱! '큰일 날 뻔했다. 이런 곳까지 카오틱이 돌아다니다니..... 어쨌든 이런 곳까지 온 걸 보면 레벨이 낮은 놈들은 아니야.식재료고 뭐고 일단 야영지로 돌아가야겠다. 그들을 먼저 발견한 게 천만 다행이었다.다행히 놈들은 아직 북실이를 못 봤으니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으리라. 북실이는 눈알로 사내들의 동태를 살피며 천천히 물러났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뒤꿈치에 뭔가가 걸리는가 싶더니 철컥하는 소리가 울렸다. "주인님, 위험합니다! 크윽!" 순간 와락 북실이를 껴안은 백구가 신음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백구의 허벅지에 시퍼런 빛을발하는 화살이 꽃혀있었다. "헉, 트, 트랩? 백구야!" "무슨 소리지?" "밖이다. 누군가가 트랩을 작동시켰어!" 동시에 동굴 안에서 소란이 일더니 사내들이 뛰어나왔다. '큰일 났다!' 북실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확 뿜어져 나왔다.인적도 없는 곳에서 상인이 15명의 유저에게 들켜 버렸다.그중 한 명이라도 카오틱이 섞여 있다면 북실이의 운명은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해적질을 한다고 할 정도니『강탈』이나『약탈』따위의 주문서는 기본 장비로 갖추고 있으리라. 게다가 숫자가 무려 15명. 잡히는 순간 알거지가 될 게뻔하다. "백구야, 뛰어!" 북실이가 재빨리 백구의 등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그러나 허벅지에 독화살을 얻어맞은 백구는 쩔룩대며 제대로 뛰지 못했다. 그사이에 동굴에서 몰려나온 사내들이 다짜고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안 돼, 이대로 있으면 당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북실이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이스쳐 지나갔다. '맞아, 놈들의 발을 묶을 방법이 있다!' "멍청한 놈들, 우리는 스탄달의 자치대다. 네놈들은 모두포위됐다!" 순간 사내들의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북실이에게 달려들던 사내들이 움찔하며 몸을 둘러세웠다. 그러나 사내들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방금 전에 소리친 것은 사내들의 뒤를 따라 나온눈알! 북실이는 눈알의 통신 기능으로 사내들을 협박하고 재빨리 숨겨 버렸다 사내들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백구는 빠르게 숲을 가로질렀다. "뭐,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저놈이다! 저놈이 뭔가 이상한 기술을 사용한 게 분명해!" 사내들이 뒤늦게 속았음을 깨닫고 방방 뛰었다.그때 한 궁사가 '독수리의눈'을 사용해 북실이를 훑어보다가 움찔하며 소리쳤다. "저, 저건..... 마법영사기! 저놈의 머리에 붙어 있는 건마법 영사기입니다!" 그러지 가렛과 제페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뭐? 그럼 우리가 만나는걸 모두 녹화했다는 말이야?"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녹화한 거지? 설마 처음부터?" "젠장, 알 게 뭐야. 어쩄든 놈을 잡아 마법영사기를 빼앗아야해!" "말이다, 말을 끌고와!" 가렛의 호통소리에 개북차가 동굴로 달려 들어가 말을 끌고 나왔다. 재빨리 말에 올라탄 가렛이 인상을 구기며 제페트를 노려보았다. "이곳은 안전할 거라면서? 저게 문제가 되면 어쩔 거야?" ".....걱정하지 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는다. 어이, 너는 애들에게 상황 알리고 뒤쫓아 와라. 나머지는 나를 따라 놈을 추격한다! 궁사들이 앞장서라." "알겠습니다. '추적'!" 추적을 사용한 궁사가 붉게 물든 눈으로 북실이의 자취를쫓아 달렸다. 그 뒤를 15명의 사내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뒤쫓았다. '젠장.....' 이슈람의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자잘한 문제....아크에게 죽은 일...도 있었지만 일단 예정대로 이슈람은 수배자 조직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슈람은 임무를 절반은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뒤로 한 달 남짓, 이슈람이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수배자, 뉴월드에서의 수배자가 아닌, 진짜 수배 자다. 경찰에게 꼬리를 밟히면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10년이상 교도소 생활을 해야 한다. 부모 형제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신분 확인도 안 된 이슈람을 믿어 줄 리가 없었다. '이들 무리에 끼어 있는 것만도 다행이기는 하지만....'기란 감옥 동기(?)인 가람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곳에 있지도 못했으리라. 처음 이들과 합류했을 때 이들의 보스인 제페트는 이슈람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히 이 조직에서 가람은 의외로 지위가 높았다. 넘버 2까지는 아니라도 70명이나 되는 조직원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는 포함되는 모양이다. 그런 가람의 적극적인 변호 덕분에 그나마 이들 틈에끼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심성이 많은 건 가람도 마찬가지였다. "내 전화번호? 그건 좀...." "왜? 그냥 가끔 늦게 들어올 때 연락하려고 그래." "그래도 그건 좀 곤란한데? 실은 내가 좀 말 못 할 사정이있거든." "무슨 사정인데?" "차차 얘기해 줄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캐 보려 하면 가람은 항상 이런 식으로얼버무렸다. 가람이 이런식이니 다른 조직원들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는 항상 이슈람을 따돌렸고, 심지어 단 한 번도 서로 본명을 부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캐물을 수도 없고.....' 오랜 수배 생활로 사람을 의심하는 게 습관이 된 녀석들이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면 이슈람은 그날로 쥐도새도 모르게 숙청되리라. 뭐, 그건 아무래도 좋지만. 이슈람의 실수로 경찰청이 개입됐다는 정보가 누설되기라도 한다면 뉴 월드에서 놈들의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영영 사라지고 만다. '그래도 소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야.' 이슈람이 처음 가상현실 세계로 들어올 때, 특수범죄대책과 과장은 수배자들이 은둔 생활에 지쳐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슈람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틀림없어. 놈들은 뉴 월드라는 가상공간을 이용해 '사업'을 하고 있는 거야.' 이ㅅ슈람은 뉴 월드를 해 보고 게임에 대한 인식이 180도로바뀌었다. 그리고 가장 놀랐던게 바로 뉴 월드의 사이버 머니......골드에 대한 인식이었다. 사실 이슈람은 처음 게임을 할 때 골드를 2000년대 게임에서 사용하던'도토리'같은 거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귀하겠지만.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는. 물론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골드라고 해 봐야 어차피 뉴월드를 안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이슈람이 몰랐던 것은 바로 골드의 현실 시세! '설마 게임머니가 현찰과 동등한 가치가 있을 줄이야' 1골드에 1만 원이나 하는 시세, 이쯤 되면 이미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게다가 뉴 월드는 수백만이 즐기는 게임. 골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다시 말해 마치 진짜 금 처럼 뉴 월드의 골드도 언제든지현찰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마치 주식 투자를 하는 것처럼 시세 차익을 노리고골드를 사고파는 전문직이 있을 정도였따. 그렇게 움직이는게임 머니가 1년에 수천 억에 달하는 수준! 이미 뉴 월드의화폐는 현실에서도 하나의 경제를 이루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은 경찰청 수사의 맹점이야!' 1년에 수천억이라는 돈이 움직이는 온라인 게임.무서운 점은 그 엄청난 자금이 모두 익명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몇 년 전에 발효된 개인 정보 보호 정책으로 유저의 정보를 강제적으로 알아낼 방법이 없다. 게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 대해서도 알아낼 방법이없다는 말이다. 그건 다시 말해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법적인 돈 거래나, 돈 세탁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폭의 불법 자금 세탁이나 정치인의 재산 은닉, 불법 도박, 이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마치 스위스 은행처럼 개인 정보가 보호되니 마음만 먹으면 수십 억의 재산을 은닉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에서는 아직 그 일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사이버 수사 팀을 만드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가상현실 게임에 대한 대책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었다. 범죄자들이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해 각종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경찰청은 가상현실 게임이 얼마나 방대한 세계인지, 그곳에서 거래되는 돈이 얼마나되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젠장, 범죄자들이 경찰 머리 위에서 논다는 말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쨋든 내 짐작이 틀림없다면 가끔 제페트와 몇몇 수배자가 사라지는 건 다른 조직과의 접촉을 위해서가 분명해. 놈들이 누구와 접촉하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내면 이놈들을 몽땅 잡아넣을 방법이 생길 것도 같은데.....' 70여 명이나 되는 놈들의 눈을 피해 접선 장소에 숨어들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이슈람의 집업은 상인, 초인적인 격투 기술 덕분에 상인임에도 솔로잉이 가능할 정도지만, 이곳의 수배자들은 이슈람보다 레벨도 높고 모두 전사 계열이다.한 명을 상대로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봐, 왜 그렇게 꿀꿀한 표정을 짓고 있어? 심심하면 포커나 한 게임 할래?" 이슈람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자 동료들과 둘러앉은 가람이 말했다.가람 앞에는 골드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한 판에 수십 골드가 왔다 갔다 하는 포커 판, 1골드가 1만원임을 생각할 때 그것만으로도 이미 불법 도박이다. '은팔찌를 채워 주고 싶어서 근질근질하군.' "아니, 됐어" 이슈람이 고개를 저었을 때였다.돌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가 헐레벌떡 야영지로 뛰어 들어왔다. "이봐, 큰일 났어!" "응? 뭐가?" "방금 전에 형님이 거래하는 장면을 어떤 놈이 마법 영사기로 찍고 도망갔더!" "머? 그게 정말이야?" 조직원들이 카드를 집어 던지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일단 제페트 형님과 가렛 형님이 뒤쫓고 있어, 혹시 모르니 서두르자!" "젠장, 귀찮게 됐군. 가자!" 조직원들이 사내를 쫓아 우르르 몰려갔다. '마법 영사기라고? 동영상을 저장한다는 아이템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건 기회다! 저 녀석이 저렇게 흥분해서 떠들어 대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게 찍힌 게 틀림없어, 운이 따라 준다면 마법 영사기를 가로챌 수 있을지도 몰라!' 이슈람이 수배자들과 함께 달려 나갔다. * '젠장,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아크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수상한 동굴' 탐험은 성공적이었다. 경험치도 기대 이상으로 올랐고, 레어 망토까지 챙겼다. 그러나 뭣보다 큰 수확은 바로 마석이었다. 상대를 쥐어 팰 때마다 마나를 갈취하는 '마나 스틸 스톤'. 마나를 6,000이상 올려놔서 그동안 부족함이 없었지만, 전직하며 새로 익힌 스킬들은 모두 마나를 엄청나게 잡아먹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나를 회복할 수 있는 마석은 횡재나 다름 없었다. 회복 포션보다 몇 배나 비싼 마나 포션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생명력을 흡수하는 '뱀피릭 스톤'과 '마나 스틸 스톤'을 같이 장착하면 생명력과 마나를 동시에 빼앗아 올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이미 '약속의 검'은 '귀살검'보다 좋아.' 아크는 당장이라도 마석의 효과를 확인해 보고 싶어 근질근질했다. 그러나 '몽환의 모래시계'를 이용해 마석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 특수한 효과가 적용되는 지역만 찾으면 원하는 마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네 개의 마석을 모두 갖춰서 사용해 보고 싶었다. '다 좋아, 다 좋다고, 하지만 정작 이건.....' 아크는 숯이 돼 버린 '아귀버섯'을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절체절명의 순간, 분진폭발을 이용해 가라드를 해치운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아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탄광에 널려 있는 엄청난 숫자의 '아귀버섯'. 그 버섯들까지 폭발에 휘말려 완전히 숯이 돼 버렸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몇 개 캐 봤지만, 역시나 '아귀버섯'의 효능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결국 '아귀버섯'은 처음에 챙겨 뒀던 60개 정도가 전부잫아.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죽더라도 폭발 따위를 일으키는 게 아니었어.'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그래도 다행이랄까? 비록 '아귀버섯'으로 대박을 노리던 아크의 꿈은 좌절됐지만, '수상한 동굴'에서 또 다른 대박에 필요한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던전을 공략하며 드리어 '죽은 자의 심장'과 '죽은 자의 가죽'을 모두 모은 것이다. '후후후, 드디어 미지의A급 내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아크가 북실이의 식재료 상납을 두 배로 늘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내단은 일단 한 번 만들기 시작하면 완성될 때까지 냄비를 사용할 수 없다. B급이었던 '슬라임 내단'을 만들 때 걸렸던 시간은 48시간, A급 내단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때문에 내단 연성을 시작하기 전에 음식을 최대한 많이 비축해 놓으려는 것이다. '복실이 덕분에 이미 이틀 치 분량의 음식은 비축했어, 이번에 북실이가 챙겨 오는 식재료까지 모두 음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바로 내단 연성에 들어갈 수있다.' 아크는 기대에 찬 얼굴로 눈이 빠져라 북실이를 기다렸다. "이 자식,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야, 너 뭐 하고 있어?" 아크가 답답한 표정으로 뒤통수에 붙어 있는 눈알에 대고 소리쳤을 때였다. 갑자기 눈알에서 빙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아크 님, 살려 주세요!" "흥, 죽을죄를 지은 줄은 아는 모양이군. 3분 내로 뛰어 오지 않으면...." "그게 아니라...카오틱, 카오틱이에요! 쫓기고 있다고요!" "카오틱? 어디? 어디인데?"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야영지까지 거의 다 왔어요, 하지만....으악! 놈들 중에 궁수가 있어서...아욱! 어쨋든 급해요.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저는 아직 괜찮지만 백구가....힉, 백구야!" "주인, 저쪽이야!" 그때, 라카드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먼지구름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은 백구를 탄 북실이, 그리고 그 뒤로 15명의 유저들이 말을 타고 뒤쫓고 있었다.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 확인해 보니 북실이와 백구의 생명력이 20% 아래까지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저렇게 많은 숫자가....' 아크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북실이가 아크를 향해 소리쳤다. "사, 살려 주세요!" "뭐야, 저 녀석은?" "쳇, 동료가 있었던 건가?" "신경 쓰지 마, 그래 봐야 한 놈뿐이다. 같이 죽여 버려!" "영웅의 일격!" 문답무용! 뒤따라 나타난 도적단들이 그래도 말을 달리며 검을 휘둘러 댔다. "이, 이런...., 너는 계속 달려서 뒤로 물러나!" 이미 놈들에게 포착된 이상 아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라둔마를 타고 도망친다고 해도 말을 타고 있는 놈들을 따돌리기는 어려웠다. 하물며 이렇게 지척에서 궁수까지 포함된 파티에게 등을 보이는 것은 자살행위. 결국 아크는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한 채 도적단들과 검을 마주 대야 했다. "뭐가 뭔지는 뭐르겠지만 얌전히 당해 줄 수는 없지. 라자크,라카드,준비해라!" 아크는 소환수들과 하마께 '전력질주'를 사용해 북실이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번뜩이는 검날이 사방에서 날아든다. 아크는 몸을 휘날리며 자라크의 머리를 잡고 소리쳤다. "라자크, 검화!" 따다다다닥, 따다다다닥! 뼛소리가 울리며 라자크가 순식간에 본 블레이드로 변신했다. 아크는 착지와 동시에 바닥을 구르며 본 블레이드로 한 전사를 휘감아 당겼다. 그러자 채찍으로 변한 본 블레이드가 팽팽해지며 휘감긴 전사가 말에서 굴거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스턴'에 걸려 버렸다. 1대 다수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확실하게 한 놈씩 처리해 가는 방법뿐이다. 이놈, 저놈 번갈아 가며 공격하면 그사이에 포션이나 마법으로 회복해 버리기 때문이다. "네가 처음이다!" 콰콰콰콰쾅! 아크가 검격과 발차기를 소나기처럼 뿜어내며 전사를 몰아붙였다. "엇, 저, 저 녀석이....정지. 전사 선회, 궁수는 놈을 요격하라!" 아크가 놀라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전사를 빈사 상태로 몰아넣자 도적단들이 긴장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진형을 갖춰 아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사들이 방패를 추켜올리고 돌격해 들어왔다. '쳇, 조금만 더 공격하면 해치울 수 있었는데....' 아크가 전사를 밀어내고 바닥을 굴러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채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데 궁수들이 날린 화살이 소나기처럼 빗발쳤다. 데미지 상승이나 상태 이상의 스킬을 사용해 날리는 화살 공격! 어깨와 가슴, 허벅지와 화살이 박히며 붉은빛이 번쩍였다. -화살에 치명타를 맞았습니다! 데미지 250. 화살이 박혀 30초간 행동이 느려집니다. "젠장, 라카드!" "우오오오, 암흑 돌진!" 아크가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내며 소리치자 라카드가 궁수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궁수 옆에 있던 마법사가 '파이어 볼'을 난사하자 라카드는 날개에 불이 붙은 채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아크는 화살을 두 발이나 더 맞았고, 길게 선회해 배후에서 돌격해 들어오는 전사들의 공격까지 맞아 버렸다. 게다가 아크가 빈사 상태까지 몰아넣었던 전사도 마법으로 회복한 상태였다. '역시 15명을 상대로 싸우는 건 아직 무리인가?' 순식간에 적지 않은 생명력이 깎여 나간 아크가 어금니를 깨물었다. 놈들의 레벨은 250~300사이. 현재 아크는 가라드를 해치우고 재료 아이템을 모으기 위해 리젠되는 동굴 몰드좀비를 좀 더 사냥해 레벨 366이었다. 어둠 속성 보너스를 추가하면 549수준. 200이상의 레벨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러나 상대가 15명이나 된다. 물론 몬스터라면 15마리든 20마리든 상관이없지만 상대는 각종 스킬로 무장한 유저. 게다가 도적단이라면PVP가 전문이다. 전투 수준이 몬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스탄달 전쟁 때 쥬르를 포함해 수많은 유저를 쓰러뜨린 전력이 있지만, 그때는 도작해야 1대 2~3이었다. 게다가 적만큼 아군도 많아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크뿐. 북실이는 물론 생명력이 바닥난 백구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북실이와 백구를 보하하며 싸워햐 하니 그저 혹에 불과했다. '아니, 라카드도 도움이 안 돼.' 도적단에는 궁수가 다섯에 마법사가 둘이다. 몬스터라면 '도발'로 적당히 흩어 놓을 수 있겠지만, 유저에게 '도발'따위가 통할 리가 없었다. 라카드가 다시 접근하면 일곱 명의 원거리 공격수가 일점사로 다구리를 때려대리라. '젠장, 북실이 녀석, 어디서 이런 놈들을 데려와서....' 다구리에는 장사 없다. 한 놈씩 상대하면 이런 놈들은 15명이 아니라 20~30명이라도 문제없지만 직업 조합까지 갖춘15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아무리 아크라도 무리였다. '하다못해 지형지물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해 볼 텐데.' 아크는 쉴 틈도 없어 쏟아지는 화살과 검격을 피하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뜨ㅐ 아크의 머릿속에 근처의 늪지대가 떠올랐다. 중독을 일으키는 늪과 썩어 가는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찬 곳. 적어도 그곳이라면 놈들도 말을 타지는 못하리라. '문제는 놈들의 포위망을 어떻게 벗어나느냐.' 도적단은 아크와 북실이를 포위하고 돌아가며 공격하는 차륜 전법을 구사했다. 아크가 포위를 뚫기 위해 이동하면 포위를 유지한 채 같은 거리를 따라 이동해 틈을 주지 않았다. 집단전에 능숙한 놈들이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 "라카드, 블러드 레인!" 궁수와 마법사의 견제에 멀리 떨어져서 눈치만 살피던 라카드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물들더니 돌연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뿜어졌다. 한껏 치속아 올랐던 피는 이내 직경 10미터를 뒤덮으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많은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저주의 피! 그러나 도적단은 넓게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라 절반에게밖에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엇? 이, 이게 뭐야?"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혼란'이야!" "젠장, 저주 마법이다. 커스 큐어!" 시뻘건 피를 뒤집어쓴 여덟 명의 도적 가운데 다섯 명이 혼란과 현혹 상태에 빠져 버렸다. 성직자가 재빨리 주문을 외워 저주를 해제했지만, 이미 진형이 흐트러진 뒤였다. "우우우우, 피....피가 부족해...피...." "집에 가서 먹어. 라카드 소환 해제!북실이, 백구, 뛰어!" 아크는 피를 토하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라카드를 돌려 보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두 명의 전사가 황급히 앞을 가로막았지만, 진형이 무너진 상태로 아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돌!" 아크는 '도약'과 '다크 블레이드'를 연결시키며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가, 돌진해 오는 전사를 후려쳤다. 엄청난 충격에 전사들이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사이 백구는 북실이를 태우고 포위를 뚫어 늪지로 들어섰다. 백구가 높지에서만 생활한 게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도약'을 사양하며 늪지를 평지처럼 뛰어 순식간에 도적단을 떨궈 냈다. "쫓아라, 놈이 도망간다!" "웃, 이거 뭐야? 늪지잖아?" 늪지에 뒤따라 들어온 도적단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도약'을 사용하는 백구와 달리 말은 발이 풀푹 빠지는 늪지대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좋아. 북실리, 너는 일단 그대로 늪을 가로질러 도망쳐." "네? 아크 님은요?" "할 일이 남았다." 아크가 몸을 빙글 돌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도적단들이 말에서 내려 전열을 재정비하고 늪을 피해 돌아오는 사이, 본 블레이드로 주변에 돌아다니는 몰드좀비를 한 마리씩 끌어당겨 빈사 상태로 만들었다. "....가만두지 않겠다!" "놈이 좀비들에게 발목이 잡혀 있을 때 박살 내라!" "저놈을 잡아서 방금 전의 그 돼지 같은 놈이 숨은 곳을 불게 만들어!" "젠장, 이놈의 늪만 아니면....." "화살이다. 화살로 고슴도치를 만들어 버려!" 도적단이 몰려들어 화살을 날려 댔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다크 댄싱'을 펼치며 몰드좀비들의 생명력을 줄여 놓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아크가 정신을 집중해 보법을 펼치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70%이상이 되어 '다크 스케일'이 발동했습니다. <회피율이 20% 떨어지지만 방어력을 30% 증가시키고, 10%확률로 적의 공격을 반사시킵니다. 또한 어둠 속성 마법과 데미지가 100이하일 경우 무효화시킵니다.> '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70% 이상 되면 자동 발동하는 '다크 스케일'! 마나가 500이나 소모되지만 그 효과를 보면 마나가 아깝지 않았다. 한 발에 200~300씩 들어오던 데미지가 120~180정도로 떨어진 것이다. 방어력 상승은 30%이지만, 실제 데미지 경감은 40%나 적용되었다. 방어력에 비해 적의 공격력이 월등히 낮을 때는 추가 보너스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격 반사 효과로 인해 몇 발의 화살은 다시 궁수에게 돌아가기도 했다. 덕분에 궁수 둘이 자신이 쏜 화살에 맞아 공격 속도가 뚝 떨어졌다. '역시 2차 전직 스킬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렇게 아크가 엄청난 속도로 네 마리의 몰드좀비를 빈사상태로 만들었을 무렵, 도적단이 늪을 돌아 달려들고 있었다. "오, 마침 준비가 끝났는데 잘 왔다. 화격!" 아크는 '화격'으로 생명력이 2%도 남지 않은 몰드좀비를 후려쳤다. 그러자 몰드좀비가 도적단에게 날아가 폭발하여 밀가루처럼 하얀 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바로 몰드좀비가 죽을 때 발동하는 스킬, '곰팡이 포자 뿌리기'다. 선두에서 곰팡이 포자를 뒤집어쓴 전사들이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그, 그놈이 어디 갔지?" "엇?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받아랏!" 전사들이 두리번거리더니 갑자기 자기들끼지 치고받기 시작했다. 하얀 곰팡이의 상태 이상인 '환각' 때문에 동료가 아크로 보였던 것이다. "또 저주 마법인가? 커스 큐어!" 성직자가 주문을 외웠지만 곰팡이는 마법이나 물약으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 이상! "무슨 짓이야? 정신 차려, 멍청한 놈들아!" 결국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은 뒤에야 전사들은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그러 여전히 '환각'에 빠져 아크와 동료들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전사들은 서로 목소리로 동료를 확인하느라 공격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흠, 가장 효과가 약한 흰색 곰팡인가? 운이 좋은데? 하지만 그 운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자, 계속 간다. 화격, 화격, 화격!" 아크는 씨익 웃으며 모아 놨던 몰드좀비를 날려 대면서 소리쳤다. 이른바 몰드좀비 폭탄! 융단폭격이 가해지자 몰드좀비들의 몸의 연쇄적으로 터져나가며 색색의 포자가 뿌려졌다. '환각'을 일으키는 흰색, '저림'을 일으키는 녹색 그리고 결국 당첨이 걸렸다. 바로 최악의 곰팡이. '좀비' 상태를 일으키는 검은색!검은색의 포자를 뒤집어쓴 서너 명의 도적들 몸이 빠르게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제, 젠장, 대체 이게 뭐야? 물러나, 물러나라!" 결국 몰드좀비 폭탄을 견디다 못한 도적단이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그때 아크가 눈을 반짝이며 재빨리 본 블레이드를 날려 한 놈을 휘어 감았다. 아크가 굳이 도적단과 싸우려고 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몰드좀비를 이용한다고 해도 어차피 놈들을 전멸시키는 건 무리다. 그럼에도 놈들과 대치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 '카오틱이다!' 놈들 가운데 이름이 잘 익은 사과 색깔은 녀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15명이나 되는 도적단 가운데 카오틱이 하나뿐이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카오틱 도적단이라고 해도 전부가 카오틱인 경우는 없었다. 어차피 유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해 죽이는 사람만 카오틱이 된다. 그러니 굳이 전체가 카오틱이 될 필요 없이, 한 사람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역할을 맡는 게 요즘 PK 그룹의 상식이었다. 때문에 도적단이 열 명이든100명이든 카오틱은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도적단은 좀 이상했다. 카오틱은 레벨이 높을수록 페널티가 심하다. 때문에 파티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 사람이 카오틱 역할을 맡는 게 보통인데, 이 도적단의 카오틱은 가장 레벨이 높은 제페트라는 녀석이 맡고 있었다. '어쨌든 나야 고맙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카오틱을 사냥하면 100%확률로 장비품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두 마리의 카오틱은 두 개의 전리품이라는 말이다. 고레벨 지역에서 고가의 말까지 타고 돌아다니며 PK를 하는 녀석들 중에서도 가장 레벨이 높은 녀석! 최소 마법 아이템, 잘하면 레어 아이템을 건질 수도 있으리라! 아크가 본 블레이드로 한 놈을 낚아 올리자 나머지 놈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헉, 제, 제페트 형님!" "제페트 군, 미안하지만 죽어 줘야겠다." "뭐, 뭐야? 이 자식이....!" 제페트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동료와 떨어진 제페트는 그저 평범한 레벨 300의 유저. 동료들과 집단 전투를 할 때는 제법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막상 1대1로 붙으니 레벨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제페트는 몰드좀비 폭탄에 녹색 곰팡이를 뒤집어써서 '저림'상태 이상에 걸린 상황. 아크가 연속적으로 검격과 발차기를 쏟아붓자 채 1분도 되지 않아 썩은 늪에 얼굴을 처박았다. 둥시에 투구가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다. '우후후후, 한 건 낙찰이다!' 아크가 히죽 웃으며 투구를 집어 들 때였다. 돌연 늪지 바깥쪽에서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이다!" '헉, 뭐, 뭐야? 저 숫자는?'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얼굴이 딱딱해졋다. 지평선 너머에서 엄청난 숫자의 유저들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아크가 쓰러뜨린 제페트의 부하들이었다. 그 숫자는 무려 수십 명! '이 자식들, 파티가 아니라 공격대였잖아? 이렇게 사람도 없는 곳에서 뭐 볼 게 있다고 수십 명씩이나 몰려다니면서 PK를 하는 거야? 어쨌든 놈들이 늪지로 들어오면 귀찮아진다. 챙길 것도 다 챙겼으니 이제 볼 일도 없어.' "라둔, 라둔마로 변신해라!"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펄쩍 뛰어내려 거대한 도마뱀으로 변신했다. 평지에서 달리면 말과 같은 속도의 라둔. 그러나 이곳은 늪지다. 게다가 중독 증세까지 일으키는 늪지. 말을 타고는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곳이다. 그러나 말과 달리 원래 뱀인 라둔은 그런 늪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아크가 여유 만만하게 도적단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도, 늪지에서라면 언제든지 놈들을 따돌릴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가자, 라둔!" 바바바바, 바바바바! 라둔이 짤막한 다리를 움직이며 늪지를 가로질렀다. act 6 바다위의 추격전 "휴, 끈질긴 놈들." 머리를 흔들자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늪지 근처에서 만난 도적단은 징그러울 정도로 끈질겼다. 보통 아무리 끈질긴 카오틱이라도 1시간가량 도망치면 포기하기 마련인대, 이놈들은 거머리만 먹고살았는지 좀체 떨어져 나가지 않았따. 거기에 인원수가 70명이나 되어 부대를 나눠 수색해 오니 따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마치 정의남 아저씨나 갱생단 형들처럼 추격해 오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어." 아무런 연고도 없이 7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 있을 리가 없다. 뉴 월드가 사용화된 지 1년이 넘어갈 무렵부터 대부분의 유저들은 집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길드는 많이 만들어졌지만, 초기에는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 대강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근래에는 현실의 동아리나 모임이 그대로 뉴월드의 길드나 단체로 이동해 오는 방식이 대세였다. 그런 길드나 단체의 경우, 이미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있어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길드와는 비교도 안되는 조직력을 갖게 된다. '놈들은 서바이벌 게임 동화회나 무술 동아리가 분명해' 특히 강력한 조직력을 보이는 게그런 모임이었다. 산에서 모의 야전 전투를 즐기는 서바이벌 게임이나, 무술동아리는 다른 모임에 비해 상하 관계가 확실하게 잡혀있다. 또한 신체를 단렿ㄴ하니 레벨에 비해 전투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다. 특징이 아크를 뒤쫓던 도적단과 딱 맞아떨어진다. "다 아크님 때문이에요." 북실이도 모래를 떨어내며 투덜거렸다. "그냥 도망쳤으면 놈들도 그렇게 쫓아오지는 않았을 거아니에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까지 놈들의 대장을 박살내고 아이템을 챙기고 날랐으니 눈에 불을 켜고 쫓아오죠." "그놈들, 네가 데리고 온거거든?" 어쨋든 좀 귀찮기는 했지만 예상외의 수익이야." 브리간드의 전투헬멧(레어) 방어구 타입:갑각 투구 방어력:80 내구력90/90 무게:60 사용제한 : 레벨 200이상 일개 용병으로 시작해 기사대장까지 올라갔던 브리간드의 투구. 브리간드는 그가 용병 시절에 참가했던 몬스터 토벌전에서 전설의 마수를 쓰러트리고 그 갑각으로 투구를 만들었습니다. 투구에는 마수적 속성이 담겨서 마법에 대한 내성이 있으며, 손상을 입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내구력을 회복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옵션 : 마법 저항력+10%, 힘+20 체력+10 특수옵션:내구력에 손상을 입어도 자동으로 복구됩니다. 이게 제페트가 떨군 투구였다. 사실 아크는 투구를 주울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카오틱이 사망하면 100% 장비풀을 떨군다. 때문에 카오틱은 허접스러운 장비품을 착용하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위험을 감수하고 제페트를 해치운 이유는, 그래도 도적단의 대장이니 마법 아이템 정도는 착용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설마 레어 아이템으 장비하고 잇을 줄이야!' 엄청나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단 레어 아이템이다. 목숨을 걸었던 보상을 충분히 받은 셈이다. 그리고 이런저른 일이 있었지만, 어지간한 말보다 빠른 라둔과 백구 덕분에 놈들으 ㄹ따돌리고 하만 요새에 도착했다. '후후후, 이제 놈들과는 굿바이다.' 물론 제페트를 제외한 놈들은 대부분 노멀 유저다. 도시 출입에 제약이 없으니 곧 하만 요새까지 따라 들어올지도 모른다. 설마 마을 안에서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70명이나 되니 되니 각 입구를 감시하며 기회를 노리리라. '하지만 나는 이제 스탄달에 볼일이 없어.' 그렇다. 이제 아크가 스탄달에서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소환수도 찾았고 전직도 끝냈다. 이제 남은 일은 스탄달을 떠나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는 일뿐. 70명의 도적들이 요새 주변에서 무슨 짓을 하든 알 바 아니다. "자, 놈들이 귀찮게 하기 전에 바로 대륙으로 넘어가자." "슈텐벨크 왕국으로 가는 거예요?" "아니, 이번 목적지는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야." 북실이의 질문에 아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크가 다음 행선지로 브리스타니아를 선택한 이유는발데라스를 무찌르고 얻은 퀘스트 아이템.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휘장'으로 얻은 -화룡족의 고향-퀘스트 때문이다. 그동안 항상 3~4씩 걸려 있던 퀘스트를 모두 해결하고 이제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레벨 120제한 퀘스트이니 지금 해봣자 그리 큰 보상은 얻지 못할지도 모르겟지만...." 일단 받은 퀘스트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따. 저레벨 퀘스트라도 이벤트 퀘스트 보사가 준 퀘스트 시작 아이템이다. 생각지도 못햇던 보상이나 새로운 연계 퀘스트로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어차피 이제 스탄달이나 슈덴베르크는 대강 다 돌아봤어. 퀘스트가 아니라도 슬슬 다을 지역을 돌아볼 때가 됐지. 같은 지역에서 퀘스트를 받아도 다른 왕국 출신 유저에게는 더 어려운 퀘스트가 주어진다고 했으니 이참에 브리스타니아에 들려 시르바나까지 이동하면 퀘스트를 받아 볼까?' 아크는 벌써부터 새로운 왕국과 퀘스트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떳다. 그때 복술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돌고래를 타고 가려는 건 아니죠?" "왜?" "왜라니요? 슈덴베르크에서 스탄ㄴ달까지는 4시간 거리지만, 브라스타니아까지는 7시간이나 걸린다고요. 돌고래를 타고 가다가는 허리가 뽀개져 버릴꺼에요! 돌고래를 타고 가려면 아크 님이나 타고 가세요. 저하고 백구는 정기선을 타고 갈거예요/" "누구 돌고래 탄데? 나도 정기선 탈 거야." "네? 왜요?" 아크의 말에 북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ㅎ다. 브라스타니아로 가는 정기선은 슈텐베르크행보다 운임비가 비싸다 운임비만 무려 18골드! 그럼에도 1골드에도 벌벌 떠는 아크가 정기선을 타고 간다니 의외였다. 그러나 아크도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스탄달에서 대륙까지 가는 바닷길은 험하기 짝이 없엇다. 얼마 전, 뱀파이어 영지를 찾아갈 때처럼 근해를 따라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올라왔따. 돌고래를 타고 파고(한자가 흐림)가 수 미터나 되는 외해로 진입하려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아직 아크는 브리스타니아에 가 본적이 없었다. 그렇다 할 지리 정보도 없이 무작정 브리스타니아로 들어가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될 가능성도 잇었다. '뭐,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도 정기선으로 갈 거야. 아직 정기선이 들어올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 그 전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항구로 가. 나도 몇군데 들려 보고 시간 맞춰 갈 테니까." "네. 가지, 백구야." 북실이가 백구와 함께 상점가로 향했다. 형재 북실이와 백구의 가방은 그야말로 터지기 일보 직전 이었다. 뱀파이어 영지와 오벨리움을 다 돌 때까지 한번도 하만 요새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라카드의 성에서 챙긴 장식품과, 오벨리움에서 챙긴 저주받은 장비품, 거게에 아크가 몰드좀비를 사냥하며 얻은 잡동사니, 각종 식재료와 비축용 음식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상점에 팔 수 없는 저주템이나 식재료, 음식을 제외한 아이템을 처분해 미리 가방 공간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엇다. 북실이가 거래를 하는 동안 아크는 하만 요새를 돌아보앗다. 마지막으로 하만 요새에 들렀던 것이 어의 한 달 보름. 한창 성장 중인 하만 요새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여ㅓㅆ다. 아크가 노리고 잇는 교역소도 머지않아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눈부신 발전과 달리 요새 분위기는 좀 어수선한 감이 있었다. "해적들이 상선을 공격하는 일이 잦아져서 분위기가 많이 흉흉하다네. 얼마 전에도 상선이 습격당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찌." 베르튜라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스탄달의 NPC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해적이었다. 사실 스탄달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성장했어야 하지만, 각종 건설 자재를 실은 화물선까지 해적에게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 더뎌지고 잇다고 한다. 얼마 전 집에 찾아왔던 정의남도 한숨을 불어 내며 하소ㅕㄴ 했었다. "무법항을 찾아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유저들이 그렇게 많이 드나드는데도요?" 사실 아크는 무법항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크족과 헤르메스 연합만이 아니라, 일반 유저들도 무법항을 이용하고 있다면 어디선가 정보가 새기 마련이다. 입이 싼 녀석들이 게시판 같은 곳에 글을 올릴 수도 잇지 않은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무법항을 관리하는 녀석들..... 아마도 헤르메스 같지만, 어쨋든 놈들이 무법항에 들어오는 유저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야. 애초에 비밀 보장이 안될 것 같으면 밀항선을 태워 주지도 않ㅇ는다는 거야. 뭐, 카오틱도 기댈 곳이라고는 거기밖에 없으니 같은 카오틱끼리라도 감시하며 조심하고 있는 것 같고." "헤르메스 녀석들, 아주 작정하고 나섯군요." "그래, 그래서 우리도 작정하고 나섰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사벨은 막대한 자금ㅇ르 투자해 전투선을 건조 중이라고 한다. 스탄달이 전투함을 보유하게 되면 해적도 마음대로 설치지는 못하리라. 그때문에 자치대장인 정의남과 갱생단, 레리어트는 바란족과 동방 민종의 해전 훈련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는 말을 들었다. 베스튜라는 갯앵단이 지금도 근해에 나가 훈련 중이라고 말햇다. "그나저나 자네가 대륙으로 돌아간다니 좀 섭섭하군, 언제 다시 오는 건가?" "글쎄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겁니다." "기다리고 있겟네." 베스튜라가 푸근한 마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내소를 나온 아크는 훈련 장소에 가 볼가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정의남 아저씨와 갱생단 형들은 요즘 자주 보니 굳이 만나 볼 필요는 없지. 게다가 일전에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아직 레리어트 님을 만나기에는 좀 부담돼. 또 전투함이 만들어 지면 해적 문제도 정리될 테니 굳이 내가 나설 이유도 없어." 아크는 베르튜라를 만나기 전에 찾아갔던 이사벨-혹시 또 뭔가 얻을 게 없나 기우거렸지만 더 이상의 보상은 없었다.-에게 샴바라에 대한 근황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샴바라는 동방 민족 규합 미션을 끝내고 귀환 중이라고 한다. 동방 민족 규합 미션은 세인트 어쌔신의 전직 쿠스트였으니 돌아오는 즉시 샴바라 역시 2차 전직을 하게 되리라. '어째 그 녀석은 나보다 엄청 쉽게 전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게다가...." 샴바라에 대한 예기가 나올 때마다 이사벨의 얼굴에는 홍조가 보였따 샴바라의 작업이 통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축하해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군." 솔직히 아크는 아직 NPC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샴바라를 이해할 수 없었따. 아무리 실제같아도 어차피 NPC. 게다가 뉴 월다가 무슨 미연시(미소녀 연예 시뮬레이션 게임)도 아니고.... 게임에서 NPC를 꼬시다니? 꼬셔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뭐, 지인생이니 지가 알아서 하겠지.' 아크는 남의 연애까지 참결할 정도로 오지랖이 널지 않았다. 로코와 레리어트 문제조차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피해 다니는 주제에 무슨... 어쨌든 하만 요새에서 볼일을 끝내고 뒤통수에 붙어있던 눈알에 소리쳤다. "아크 님, 빨리요. 배가 들어왔어요!" 부둣가로 달려가자 브리스타니아행 정기선이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예정보다 약간 빠른 시간, 다행이 눈알 덕분에 아크는 간신히 시간에 맞춰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와, 저것 좀 봐!" 아크 일행이 배에 오르자 대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크는 혹시나 자신을 알아보는 유저가 있나 싶었지만, 유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의외로 백구였다. "저 털의 윤기 좀 봐." "크기도 상당한데? 분명 혐ㄹ통 좋은 개일 거야." "저 상인이 주인인가? 어디서 저런 펫을 구했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늑대족이나, 다른 월랑족과 달리 백구는 겉으로만 보면 은빛 갈기를 가진 꽤나 멋진 개였다. 게다가 주인까지 태우고 다는 모습에 유저들은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왔다.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 유저들의 말을 들은 백구는 복실이를 태우고 절도 있는 걸음으로 배에 올랐다. 복실이 역시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뻐겨 댔다. '월랑족 장로가 보면 통곡을 하겠군." 명예에 죽고 사는 다른 월랑족이라면 완전히 펫으로 오인한 유저들의 반응을 모욕으로 생각했겠지만, 이미 백구는 애완견으로 정응해 버린 상태였다. '뭐, 지들이 좋으면 됐지.' 어쨋든 아크가 배에 오르자 선교에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선장이 말했다. "모두들 저희 정기선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정기선은 스탄달-브리스타니아행 배입니다. 다른 왕국에 비해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리지만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하게 모실 테니 승객 여러분은 느긋하게 쉬시면 됩니다. 자 출발합니다. 모든 선원은 각자 위치로!" 뒤이어 돛이 활짝 펴지며 정기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따. "드디어 스탄달을 떠나는 구나. 다시 보자 스탄달!" 아크는 점차 멀어지는 스탄달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었다. '틀림없어. 방금 전에 배에 올라탄 그놈들이다!' 부둣가의 한 건물 모퉁이에서 그런 아크를 훔쳐보는 사람이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내는 바로 올굴에 X자의 흉터를 가진 개복치, 제페트의 조직원들 가운데 하나였다. 추적하던 도중, 아크의 이동 경로로 최종 행선지가 하만 요새임을 알아낸 체페트가 미리 개복치를 부둣가에 잠입시켜 놨던 것이다. '놈들이 탄 배는 브리스타니아행 정기선이다. 후후후, 정기선만 타면 우리의 추적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건가? 멍청한 놈들, 어림없다. 우링게 찍힌 이상 네놈들은 결코 스탄달을 벗어날 수 없어.' 개복치가 후드를 꾹 눌러쓰고'속삭임의 기털'을 꺼내 들었다. 그때 개복치와 반대편에서 비슷한 행동을 하는 수상한 사내가 또 있었다. '찾았다! 역시 스탄달에 있었구나. 하지만 네놈도 이제 끝장이다!" 사내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 정기선이 시원스럽게 물살응ㄹ 가르며 전진했다. 이미 계절은 완영한 여름, 포말을 이르키는 파닷물이 더없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정기선이 항해를 시작하자 유저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낚싯대를 ㄲ내 들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아크는 입맛을 다시며 낚시꾼들을 바라보았다. 슈덴베르크에서 스탄달로 갈 때는 낚시꾼들을 상대로 요리 대행을 해서 짭짭한 수입을 올린 적도 있었다. 낚시꾼들을 보니 이번에도 그런 장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스탄달로 들어가는 정기선은 전사 계열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는 정기선에는 상인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전사들은 사냥을 하기 위해 스탄달을 찾았지만, 상인들의 목적은 교역이다. 대륙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스탄달에서 팔고, 스탄달에서 구입한 물건을 대륙에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들어갈 때와 달리 나올 때는 상인의 비율이 70%나 되었다. 그리고 상인ㅇ들은 요리를 배운 사람들이 많다. 물론 아크의 서바이벌 요리가 효능도, 맛도 더 훌륭하지만, 상인들 역시 그럭저럭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굳이 아크에게 수고비를 내면서 요리를 부탁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푼돈이나 벌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크는 히죽 웃으며 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냄비와 재료 아이템을 꺼내 늘어놓았다. 20개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 재료 아이템이 무려 200개! '죽은 자의 심장'과 '죽은 자의 가죽'이다. 그렇다. 아크가 굳이 정기선을 이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브라스타니아까지 7시간이나 걸리는데 마냥 놀고만 있을 수는 없지.' 바닷길로 이동하는 시간이 무려 7시간. 예전의 4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때문에 유저들은 유니트를 켜 놓은 채 다른 볼일을 보는 경우가 많았따. 그러나 아크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라 '네크로맨서의 내단'이었다. '내단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려. 숙성 과정에 들어가면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되지만, 혼합 과정과 결정화 과정은 내ㅐ가 일일이 지켜봐야 해. 어차피 정기선에서는 할 일도 없으니 내단을 숙성 과정까지 만드어 놓자. 그리고 브리스타니아에 도착해서 마법 학회의 개인 금고에 넣어 숙성시키면 끝나는 거야.'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만큼 빨리 완성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드디어 A급 내단을 만들 수 있다!' 아크는 마른침을 삼키며 냄비에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먼처 '네크로맨서의 정수'를 넣자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검은 아교처럼 진득한 액체로 변해 버렸다. 이어 '죽은 자의 심장'과 '죽은 자의 가죽'을 한 묶음 넣자 액체가 더욱 짙은 색으로 변하더니 돌연 시커먼 그을음 같은 게 뚬어져 나오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네크로맨서의 내단'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내단 연성에 들어갑니다. 내단 연성은 혼합=결정화=숙성, 3단계를 모두 거쳐야 완성됩니다. 예상 소요 시간은 84시간입니다. 1단계 혼합 과정에 들어갑니다. 내단의 재료들은 각각 독자적인 마법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의하나, 자칫 잘못 섞으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될것입니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모든 재료가 잘 섞일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냄비에서 뿌어지는 광채가 조금이라도 혼탁해지면 냄비를 흔들어 재료를 섞어 줘야 합니다. 얼마나 잘 섞이는가에 따리 내단의 능력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혼합 과정 남은 시간 : 3시간 '96시간....!' (왜 96시간이져... 84시간이 아니라.... ㅁ.ㅁ) 정보창으 읽어 본 아크가 입을 쫙 벌렸다. 무려 나흘이나 소요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도 혼합 과정과 결정화 과정만 마치면 나머지는 기다리기만 하면 돼. 슬라임의 내단을 만들 때 숙성 과정까지 걸린 시간이 8시간. A급 내단이니 시간이 좀더 걸리겠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면 도착하 때쯤이면 결정화 과정도 그럭저럭 마무리 단게에 접어들 수 잇을 거야. 역시 정기선에서 만들기 시작한 건 잘한 일 같아.' 무지막지한 시간이 걸린다는 정보창에도 아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 재료 아이템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4일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게다가 A급 내단으로 얻을 수 있는 보너스를 생각하면 조금 지루한 게 대수인가? "자, 시작해 보자." 아크는 가볍게 관절을 풀고 냄비를 꽉 움켜쥐엇다. "기필코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내단을 만들고 말리라, 우오오오!" (말리라... 마리라도 아니고.. 내가 잘못안건가?" 아크가 엄청난 속도로 냄비를 흔들어 댈 때였다. 콰콰콰쾅, 콰콰코쾅! 돌연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더니 선체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졌따. "우왁, 뭐, 뭐야? 흐, 흘릴 뻔했잖아!" 아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냄비를 바라보았다. 내단이라고 다 같은 내단이 아니다. 내단 연성의 과정을 얼마나 잘 소화해 냈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고, 완성도에 다라 추가 보너스가 달라지는 것이다.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들기 우해 '두촉'과 '자죽 채취'를 배우고 몰드좀비 20,000마리나 때려잡았다. 만약 흘리기라도 해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스트레스성위궤양에 걸려 버리리라!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 집처럼 편안하게 모신다며?" 아크가 짜증스럽게 중얼거리고 잇을 때였다.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더니 북실이가 문을 열며 소리쳤다. "아, 아크 님, 큰일 났어요!" "나도 알아. 흘릴 뻔했단 말이야!" "그, 그게 아니라.... 해적이에요, 해적!" * 콰콰콰쾅! 콰콰콰쾅! 갑판 위로 뛰어 올라오자 또다시 방금 전의 굉음이 들려왔다. 굉음이 울리는 해상, 해골 깃발을 휘날리는 검은 선체의 배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비상, 비상! 측면에서 해적선이 접근해 온다!" 해적선이 나타나자 선원들이 갑판을 뛰어다니며 소리쳣따. "마, 맙소사! 어째서 여객선에 해적이?" 선교에서 선장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일반적으로 해적들이 노리는 배는 상선잉엇다. 해상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포격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고 여객선을 가라앉혀 봐야 별다른 이득이 없엇다. 물론 접현으로 난입해서 직접 유저를 공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단 접현하기가 쉽지 않고, 각종 주문서를 사용해서 챙길 수 잇는 아이템에는 한게가 잇었다. 게다가 현재 스탄달은 아직 교역품을 많이 생산하지 못해 대륙으로 돌아가는 배를 타고 있는 상인들의 가방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상선은 경제력이 풍부한 상인들이 이용하는 배다. 가방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교역품을 창고에 쌓아 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선을 침몰시킬 경우, 창고 물건의 20~50%는 바다에 떠다니게 된다. 때문에 해적들은 확실하게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잇는, '스탄달로 들어가는 상선'이 주 약탈 대상이었다. '젠장, 해적이라니? 말도 안 돼!' 아크가 냄비를 흔들어 대며 인상을 구겼다. 재수가 없으려니 정말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다시 말하지만 해적이 정기선을, 그것도 대륙으로 올아가는 정기선을 공격할 확률은 1~2%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 그 1~2%에 걸려 버린 것이다. 게다가 죽어라 고생해서 모은 재료로 내단을 만들고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만약 해적 때문에 내단 완성도가 떨어지가나 실패하면 미쳐 버릴 거야!" 콰콰콰쾅, 콰콰콰쾅! 그때 다시 해적선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그러나 아직 닿을 만한 거리가 아니라 포탄은 바다에 직격하며 포말을 일으킬 뿐이었다.(포말인가... 폭발인가...) "키를 최대한 좌현으로! 놈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선장의 명령에 정기선이 크게 기울어지며 회전했다. 그러나 승객을 실어 나르는 평볌한 범선과, 전투를 우해 만들어진 해적선, 속도와 선회 능력이 어느 쪽이 월등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엇따. 해적선이 사선으로 이동하며 또다시 위협사격을 해 대자 정기선이 크게 흔들렸다. '힉, 냄비, 냄비!' 아크는 한 손으로 난간을 꽉 부여잡고 냄비를 흔들어 댔다. 그때 문득 귀에 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왓다. "크하하하. 어설픈 저항 따위는 그만두는 게 좋다!" '어라? 이, 이 목소리는....?'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해적선의 선수에 소리치는 사내를 바라보였다.(바라보았다 아닌가? ㅋㄷㅋㄷ) 놀랍게도 해적선의 선장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늪지에서 아크에게 박살 났던 도적단의 두목, 제페트! 제페트가 부하 마법사의 '확성 마법'을 이용해서 소리쳤다. "침몰당하고 싶지 않으면 순순히 항복하라. 우리가 원하는 놈은 단 한놈이다. 얌전히 투항하고 우리가 놈을 찾도록 협조한다면 다른 놈들은 바주겠다!" '뭐, 뭐야? 설마 나 때문에 이곳까지 쫓아온 거야?' 아크는 화들짝 놀라 난간 아래로 몸을 숨겼다. 그러자 북실이가 울컥한 표정으로 아크에게 쏘아붙였다 "거봐요, 투구까지 빼앗으니까 여기까지 쫓아왔잖아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돼지처럼 생긴 드워프 상인이다!" "에엑? 나? 나? 어, 어째서?" 이어지는 제페트의 말에 북실이가 비명을 지르며 난간 아래로 숨었다. 아크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크는 지금까지 도적단이 추적해 온 이유가 제페트를 죽이고 레어 투구까지 국꺽한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제페트가 찾는 것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도망만 다녔던 북실이? 대체 왜? "너 대체 저놈들ㅇ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몰라요. 나는 그냥 도망치기만 했단 말이에요!" 북실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위협사격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승객들이 제페트의 말을 듣고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누군가를 쫒아왔다고?" "그 사람만 찾도록 놔두면 우리는 안 건드린다는 건가?" 승객들이 일말의 희망이 생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이대로 있으면 승객들에게 잡혀서 놈들에게 끌려가 판이잖아?' 다급해진 아크는 여전히 난간 아래에 숨어 냄비를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속지 마십시오! 그게 저놈들의 수법입니다!" "뭐? 수법?" "정기선을 사격으로 침몰시키면 놈들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때문에 일단 안심시키고 정기선에 난입해서 여러분의 가방을 털려는 수작입니다. 분명 저렇게 떠들어 대면서도 뒤로는 -강탈-따위의 주문서를 잔뜩 들고 있을겁니다." "그렇구나. 맞아, 저사람 말이 맞아!" "저 간약한 해적 놈!" 아크의 말에 승객들이 이를 갈아붙이며 제페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선장도 고개를 그덕이며 선교에 달린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이 바다의 쓰레기 같은 해적 놈들, 우리가 그따위 수작에 넘어갈 겉 같은가? 설사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도 이 배는 브리스타니아의 국왕 폐하 소유의 정기선이다. 국왕 폐하의 승객을 해적 따위에게 넘겨줄 수 없다! 나는 브리스타니아의 명예를 걸고 끝까지 항전하겠다!" "흥, 말이 안통하는 놈들이군,. 할 수 없지. 전속 접근!" 제페트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들어 올리자 해적선의 모든 돛이 펼쳐졌다. 그러자 해적선은 기어를 올린 자동차처름 가속하며 정기선으로 다가왔다. "좌현으로! 우현으로!" 선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지만 정기선으로 날렵한 선체의 해적선을 따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기를 잠시, 결국 해적선은 정기선과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다. 해적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대포. 그리고 대포는 해적선의 측면에 장착되어 있다. 해적선이 사선으로 이동해 정기선의 옆으로 접근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측면이야말로 해적선의 최적의 공격 범위! 즉 해적선과 나란히 붙게 됐다는 말은 수십 발의 대포를 고스란히 맞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여객선에게 지근거리에서 발사되는 수십 발의 대포는 곧 침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 막아라. 놈들이 포격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 선장이 발작하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궁수나 마법사들이 접근한 해적선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포격의 사정거리라고는 하나, 거리는 수십 미터. 대부분의 화살이나 마법은 바다로 떨어졌고, 간신히 닿은 공격도 선체에 피해를 주지 못했다. "크하하하, 어리석은 놈들! 이 몸의 전투함에 그따위 허접스러운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 "젠장, 좌현으로! 좌현으로! 놈들의 사정 범위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림없다. 그따위 느려 터진 배로 나를 따돌리겠다고?" 정기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든 해적선ㄴ은 더 빠르게 이동하며 따라붙었다. 그사이에 해적선의 측면에 달려있는 수십개의 포문으로 재장전을 끝낸 대포가 솟아 나왔다. '빌어먹을, 어쩌지?' 아크는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만약 정기선이 포격으로 침몰하면 타고 있던 승객들에게도 엄청난 데미지가 적용된다. 그러나 문제는 데미지가 아니었다. 만약 아크가 지금 죽는다면 당연히 내단 연성도 취소된다. 그리고 냄비에 쑤셔 넣은 재료 아이템이 몽땅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크로서는 달리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도망가는 것뿐이야. 그래, 다행히 해적선은 한 척이다. 포격이 시작되기 전에 기회를 봐서 반대쪽 바다로 뛰어들면 제페트에게 들키지 않을지도 몰라.' 물론 정기선과 함께 침몰하지 않아도, 일반 유저가 이런 망망대해에 떨어지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돌고래를 부를 수 있는 '인어족의 피리'가 있다.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돌고래를 부르면 제페트에게 들키기 전에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로 지금 아크가 전력을 기울여 흔들어 대고 있는 냄비! '돌고래를 타고 가며 내단을 완성시키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아크가 그런 궁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돛대 위에서 한 선원이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서, 선장님!" "뭐야?" "해, 해적선입니다!" "장난하냐? 그럼 지금까지 저게 해적선이 아니면 뭘로 보였던 거냐?" "그, 그게 아니라...... 좌측에서 또 다른 해적선이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세 대...... 해적선단입니다!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선장이 솥뚜껑처럼 커진 눈으로 좌측 갑판에 달라붙었다. 선원의 말대로 좌측에서 세 척의 해적선이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우측에 붙은 해적선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반대편에서 해적선단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세 척 모두 제페트의 해적선보다 큰 규모의 해적선이었다. "여객선이잖아! 이건 여객선이잖아! 대체 왜 해적선이 네 대나 달라붙는 건데?" 선장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때 접근해 오던 해적선단에서 '확성 마법'에 실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호호호, 드디어 잡았다!" "죽기 싫으면 잘 들어라, 약해 빠진 놈들아! 이 몸께서 원하는 것은 그 배에 타고 있는 아크라는 놈이다! 그놈만 얌전하게 내놓는다면 우리는 물러가겠다!" 갑자기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깜짝 놀라 시선을 집중했다. 해적선단의 기함에서 소리친 사람은 은빛 사슬 갑옷을 걸친 여자와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우람한 체구의 남자였다. 머릿속을 거꾸로 뒤집어 탁탁 털어봐도 기억에 없는 얼굴이다. 북실이가 아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아크 님을 찾는 건데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젠장, 몰라. 모르는 얼굴이라고!" "모르는 사람이 해적선단까지 끌고 와서 협박해요?" "저놈들 머릿속을 내가 알 게 뭐야?" 아크와 북실이가 수군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법사 복장의 여자가 사내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멍청아, 그런다고 순순히 내놓겠어? 일단 침몰시키라고!" "뭐? 하지만......" "어쨋든 저기에 그놈이 타고 있는 건 확실하잖아. 그냥 침몰시키면 놈이 부활할 곳은 하만 요새야. 거기서 기다리면 될 걸 뭐하러 그렇게 떠들어 대?" "아, 그렇군. 그런 이유로...... 전 함대, 모든 포를 저 허접한 정기선에 조준하라!" 사내의 목소리에 세 척의 해적선이 정기선의 좌측으로 따라붙었다. 덕분에 정기선은 해적선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버렸다. '이게 뭐야? 이렇게 되면 돌고래로도 도망갈 수가 없잖아?" 해적선이 좌우에 늘어서서 사각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제페트는 물론이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크를 찾는 해적들이 아크가 돌고래를 타고 도망가는 걸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설프게 도망치면 네 척의 해적선에 걸려 있는 대포가 모두 아크를 향하게 되리라. 냄비를 흔들며 돌고래를 타는 것만도 모험인데, 대포까지 날아오면 끝장이다. '대, 대, 대, 대체 뭐야?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인데?' 뭐, 돌이켜 생각하면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어쨋든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하지만 양쪽이 다 막혀버렸으니 대체 무슨수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네 척의 해적선에서 달아날 방법이 없었다. 그 때 선교에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진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안 돼. 이대로는 끝장이야. 차라리 놈들의 요구를 덜어 줘야하나? 어쩌면 놈들은 정말 아크라는 사람과 드워프 상인만 노리고 있는 걸지도 몰라." '뭐? 저 빌어먹을 영감이......!" "선장님,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안 됩니다. 선장님이 했던 말처럼 저희는 브리스타니아의 국왕 폐하를 대신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노려보자 한 선원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원 중에도 제법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선원의 말에 선장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렇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잠치 책무를 잊을 뻔했다. 진정한 바다 사나이란 위기의 순간일수록 담대하게 대처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내가 노래를 한 곡 부르지." "네, 선장님. 저희들도 따라 부르겠습니다." 잠시 정상인 줄 알았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집단으로 맛이 가 버린 모양이다. 덕분에 아크도 맛이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글렀어, 저놈들은 글렀어. 완전히 맛이 갔어.' 아크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갑자기 선미에서 누군가가 고함을 내질렀다. "어엇, 저것 봐. 저쪽에 또 다른 배가 나타났다!" "뭐? 해적선이 또 나타났어?" "아니야. 저 깃발은 스탄달이다! 스탄달의 전투함이야!" '스탄달의 전투함?'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선미로 달려갔다. 사람들의 말처럼 뒤쪽에서 두 척의 전투함이 빠른 속도로 진격해오고 있었다. 돛대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깃발에는 이제 스탄달의 국기가 되어 버린 동방 민족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크하하하, 해적 놈들. 드디어 꼬리를 잡았구나!" 스탄달의 전투함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해전에서는 선장이 '확성 마법'으로 떠들어 대는게 유행인 모양이다. '이 목소리를 정의남 아저씨?' 그렇다. 전투함의 선수에 올라서 소리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정의남이었다. 그 옆에는 갱생단과 레리어트의 모습도 보였다. 아크의 얼굴에 일순 안도의 기색이 비쳤지만. 불과 몇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암울하게 변해 버렸다. '스탄달의 전투함...... 완성되어 있던 건가? 하지만 너무 늦었어. 이미 정기선ㅇ은 좌우의 해적선에 포위된 상태야. 전투함이 도와주러 오기 전에 당하고 만다. 뭔가, 뭔가 젅투함이 도착할 때까지라도 시간을 끌 방법이 없을까?' 아크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양쪽의 해적선을 바라보았다. 50미터 거리까지 접근해 포격을 준비하는 제페트의 해적선! 다닥다닥 붙은 포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대포가 무려 30문! 일격에 정기선을 침몰시킬 수 있는 화력이다. 그러나 더 위협적인 건 반대편으로 접근해 오는 세 척의 해적선이었다. 세 척의 해적선이 정기선을 겨누고 있는 대포는 무려 90문! 이 대포들이 일제히 발사된다면 정기선은 문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리리라. 아무리 아크라도 그런 폭발 속에서 살아날 방법은 없었다. '결국 이대로 당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아니, 가만? 그런데 방금 전에 접근한 세 척의 해적선은 그렇다 치고, 제페트의 해적선은 이미 한참 전에 포격준비를 마쳤을 텐데 왜 아직 공격하지 않는 거지? 혹시......아니, 맞아. 그렇다면 살아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갑자기 뭔가를 떠올린 아크는 선교로 뛰어 올라갔다. "자네들과 함께했던 항해는 내 인생 최고의 영광이었다." "흐윽, 선장님!" 선교에 올라가 보니 선장과 선원들이 부둥켜안고 질질 짜고 있었다. 네 척의 해적선에 포위되자 완전히 자포자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이들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선장님, 포위를 뚫을 방법이 있습니다!" "뭐라고?" 선장이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돌아보았다. 아크는 선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해 주었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던 선장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방법이...... 어쩌면...... 아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알겠네. 선원, 승객 중에 마법사를 한자리에 모아라! 자네는 놈들의 반응을 살피며 명령을 내려 주게." "알겠습니다." 선장이 마법사를 모아 놓고 작전을 설명하는 사이, 아크는 선교의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여전히 한 손으로는 냄비를 흔들어 대며 '협박'으로 목소리를 증폭시켜 소리쳤다. "네놈들 대체 뭐야!" ACT7 비스트 마스터 "후후후, 우리에게 해적선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제퍼트가 뿌듯한 눈길로 자신의 해적선을 바라보았다. 제퍼트가 끌고 온 전투함은 그가 직접 엄청난 돈을 투자해 개조한 해적선이었다. '피노키오'로 명명한 이 해적선은 화염탄을 장착한 최신식 장거리 대포 30문. 게다가 무법항에서 고용한 나크족 전투원을 200명까지 태울 수 있는 쾌적한 선실! 속도를 30%상승시키는 고급 돛에, 외벽에는 원거리 공격 저항력을 올려주는 코팅까지 한 최신식 전함이었다. 개조 비용만 무려 8,000골드! 조직이 가상현실 세계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하기 위한 투자였다. 그런 최신식 전투함으로 고작 여객선이 따돌리려고 하다니, 가소로워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미 해적으로 짭짤하게 벌어들인 경력을 가진 제퍼트는 능숙하게 해적선을 조종해 정기선의 옆에 바짝 따라붙었다. 그리고 일격에 침몰시키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정체불명의 해적선단이 나타난 것이다. "대체 저놈들은 뭐야? 상도덕도 모르나?" 제페트가 짜증 나는 눈길로 해적선단을 바라보았다. "어이, 개복치. 신호를 보내라." 명령을 받은 개복치가 돛대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어 댔다. 【이 배는 이미 우리가 접수했다. 물러나기 바란다.】 무법항을 이용하는 해적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신호였다. 해적들이 모이는 무법항이라도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다. 무법항을 만든 헤르메스 연합의 목적은 스탄달 탈환. 기껏 모은 해적들이 저들끼리 치고받으면 무법항을 만든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규칙 가운데 하나가 목표물은 먼저 공격한 해적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편 해적선단은 그런 규칙을 무시했다. 【시끄러, 이 배는 우리 거다. 물러나지 않으면 맞는다.】 '저, 저 자식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답신을 받은 제퍼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퍼트, 그가 누구인가? 비록 수배자가 되어 숨어 있는 형편이지만, 300명의 조직원을 휘하에 거느린 남대문 조직의 중간 보스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 박살을 내 놓고 싶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곳은 게임 속, 게다가 저쪽은 세 척이나 된다. 물론 '피노키오'처럼 최신식으로 개조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선체 자체는 더 크고 세 척을 합하면 대포 수도 세 배나 많았다. 해상에서 붙으면 100전 100패. 장전까지 끝낸 제페트가 공격을 못 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에는 뒤쪽에서 스탄달의 전투함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제페터는 순순히 물러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저놈들에게 정기선을 넘겨줄 수는 없어. 만약 저 해적들이 접현을 해서 그 돼지 같은 놈에게 마법 영사기를 빼앗는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스탄달 전투함에 밀려서 그 돼지가 살아서 도망가도 마찬가지.' 그렇게 제페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떄였다. 정기선으 ㅣ선교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 대체 뭐야!" '저, 저 녀석은 늪지에서 나를 죽였던……!' "어디 보자, 핫. 웬 날파리 같은 놈들이 설치나 했더니 네놈은 늪에서 나한테 박살 났던 놈 아니야? 뭐야? 징징거리면서 투구라도 돌려 달라고 쫓아온 거냐? 그따위 허접스러운 해적선 하나 끌고? 정말 놀고 자빠졌네. 정말 허접스럽게 노는구나. 너, 현실에서도 찌질이지? 아니, 도적질이나 해적질을 하는 거 보면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하는 동네 양아치 인가?" "뭐, 뭐야? 찌질이? 양아치?" 제페트는 눈에서 불똥이 튈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네놈들은 또 뭐냐? 조각배 세 개 끌고 와서 뭐 잘났다고 떠들어 대? 이놈이나 저놈이나 정말 짜증 나서 돌아버리곘군. 네놈들이 아무리 그래 봤자 이 몸은 눈 하나 깜빡안 하거든? 네놈들의 허접스러운 대포 따위는 다 막는 방법이 있어. 찌, 질, 이, 들, 아." 아크의 마지막 말에 제페트의 뒷골에서 투투툭, 소리가 울려 나왔다. 너무 열 받은 나머지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저, 저 건방진 애새끼가 감히 남대문의 쌍칼에게……. 더, 더 볼 것 없어……. 쏴라! 당장 저놈을 잿가루로 만들어 버려!" "자, 잠깐만요!" 그때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오며 소리쳤다. 당황한 얼굴로 제페트에게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슈람이었다. "저 녀석, 그 돼지 같은 놈하고 같이 있던 놈이잖아?" 방금 전, 갑판에서 조직원들의 말을 들은 이슈람은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이슈람은 아크가 도망간 뒤에야 늪지에 도착한 조직원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때문에 설마 제페트의 거래 장면을 촬영하고 도망갔다는 돼지가 아크와 연관이 있을 거리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선교에 나타난 아크를 확인하고 나서야 돼지를 구하고 제페트를 밞아 댄 유저가 아크임을 알게 되었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책에선 일이지는) 모르겠지만, 아크가 돼지와 아는 사이라면 메모리 크리스털을 찾는 건 일도 아니야. 하지만 아크와 돼지가 여기서 당해 버린다면 곤란하다! 어떻게든 여기서 탈출시켜야 해!' 그런 생각으로 제페트의 공격 명령을 막고 나선 아슈람이 황급히 말했다. "우리 목적은 놈들에게서 뭔가를 빼앗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이대로 놈들을 수몰시키면 저놈들을 죽이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단 좀 더 상황을 지켜보다가……." "훗, 상관없어. 아까 전에 반대편에 있던 놈들이 하는 말못 들었냐? 놈들이 이곳에서 죽으면 결국 부활할 곳은 하만요새다. 놈을 수몰시키고 부활 장소에서 기다리면 돼. 그리고 놈들이 부활하자마자 주문서를 사용해 놈을 홀라당 벗기는 거야. 주문서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놈만 붙잡아 놓으면 언젠가는 마법 영사기를 빼앗을 수 있다." "하, 하지만 반대편의 해적도……." '저 정기선을 먼저 포착한 건 우리야. 무법항의 규칙은 저놈들이 어긴 거다. 게다가 스탄달 전투함이 저놈들 쪽으로 가고 있잖아. 우리가 정기선을 박살 내도 놈들은 전투함 떄문에 우리에게는 아무 짓도 못 해." "하, 하지만……." "시끄러워. 공격, 공격하라!"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결국 '피노키오'의 대포가 30발의 화염탄을 뿜어냈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크의 도발에 살짝 맛이 간 반대쪽의 해적선단도 90발의 포탄을 뿜어냈다. 바짝 붙어서 쏘아댄 합이 120발의 포탄! 정기선이 가루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계속 쏴라, 저 건방진 애새끼가 가루가 될 떄까지 쏟아 부어!" '젠장, 큰일이다!" 이슈람이 내심 비명을 지르며 포탄을 따라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지금입니다!" 그때 바다 위에서 쩌렁쩌렁한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기선 갑판 위에 모여 있던 10여 명의 마법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마법을 시전했다. 한쪽에서는 화염 마법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얼음 마법! 두 가지 마법이 하늘로 날아올라 충돌하며 강렬한 폭팔을 일으켰다. 불과 얼음, 열과 한기 반대되는 두 속성이 충돌하자 엄청난 돌풍이 일어났다. 갑판에 있는 선원들이 주르륵 밀려날 정도로 강력한 돌풍이었다. 동시에 뒤에서 강렬한 돌풍을 얻어맞은 돛대가 터질듯 부풀어 오르며 정기선이 터보를 단 자동차처럼 순식간에 수십 미터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저, 저게 뭐야?" 제페트가 눈을 찢어질 듯이 치켜뜨고 떠듬거렸다.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범선, 설마 그 범선이 급가속을 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제페트가 바라보는 것은 정기선이 아니었다. 정기선이 사라진 빈 공간, 그곳에서 마치 콩자반처럼 까만 원형 물체가 우수수 쏟아져 날아오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반대편의 해적선단이 뿜어낸 90발의 포탄이었다. "회, 회피! 회피하라!"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채 제페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90발의 포탄이'피노키오'를 직격했다. "형님, 돛대가 모두 부러져 버렸습니다!" "방향타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선창에 수십 개의 구멍이 뚫려 누수가 생겼습니다!" "이, 이럴 수가……. 내 피노키오가…… 개조 비용만 8,000골드를 쏟아부은 내 배가……!" 정신없이 쏟아지는 부하들의 보고에 제페트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여객선이라면 모를까. 전함이 일격에 전투 불능 사애테 빠지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그건 일반 해전처럼 서로 견제 하며 포격을 할 때 얘기다. 제페트와 해적선단은 정기선을 일격에 침몰시킬 생각으로 옆에 바짝 붙인 상태였다. 대포도 안 달려 있으니 안심한 것이다. 그런데 정기선이 쏙 빠져 버리자 '피노키오'와 해적선단은 지근거리에서 서로를 포격한 셈이 되었다. 벙어력이 높은 전함이라도 이 정도의 거리에서 포격을 받으면 위험하다. 게다가 상대는 세 척, '피노키오'의 포격도 해적선단에 맞았지만, 그리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 척의 집중 포화에 두들겨 맞은 '피노키오'는 일격에 박살 나 버렸다.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진 '피노키오'는 제페트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으드득, 이 자식들 감히 내 피노키오를! 쏴라, 쏴! 저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줘라!" 그러나 이미 대파된 '피노키오'에게서 뿜어진 대포는 고작 10여 발이었다. 해적선단도 뜻밖의 상황에 잠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피노키오'가 다시 포격을 가하자 반응하듯 90발의 포탄을 뿜어냈다. 동시에 개조 비용 8,000골드라는 무지막지한 투자비가 들어간 '피노키오'는 제페트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 앉아 버렸다. "으아아아악, 안 돼, 내 피노키오 ∼ !" '뭐, 일단 크리스털이 제페트의 손에 들어가는 건 막았지만…….' 이슈람은 발광하는 제페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갑판에서 아크를 바라보았다. '또 저 녀석에게 죽은 건가? 뉴 월드에서 나는 완전히 아크의 밥이구나.' 아슈람의 눈이 시큰해졌다. 눈으로 스며드는 바닷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굉장해, 천재야. 자네는 천재야!" 선장이 아크를 향해 침을 튀겨 가며 소리쳤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화염과 얼음 마법의 충돌로 생긴 돌풍으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벙이었다. 아크가 그냥 바람 마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바람 마법도 일단은 공격용이라 실제 마법을 사용하면 칼날처럼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마법을 돛에 직접 사용하면 가속은커녕 돛이 걸레짝처럼 변해 버리리라, 때문에 불과 얼음 마법을 충돌시켜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돌풍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릅니다. 검은 해적선은 침몰했지만, 해적선단은 별다른 피해가 없습니다. 스탄달의 전투함이 도착할 때까지 저 해적선단을 따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그렇지. 이제 어쩌면 좋겠나?" "다행히 저 해적선단의 선원들은 대부분이 나크족입니다. 나크족은 마법사가 없으니 지금처럼 마법으로 일으킨 돌풍을 이용하면 포격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아크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갑자기 눈앞에 메세지창이 올라왔다. -정의남 님이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귓속말을 요청했습니다. 아크가 선교에서 고함을 지른 덕에 정의남이 아크를 알아보고 귓속말을 보내온 것이다. 아크가 요청을 받아들이자 곧 정의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 아크냐? -정의남 아저씨! -네가 왜 거기 타고 있는 거냐? -사정을 말하자면 길어요. 어쨌든 일단 위험은 피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요. -음, 나도 보고 있다. 그나저나 용케도 그런 생각을 해냈구나. -뭐, 이정도는 보통이죠, 꼭 살아야할 이유가 있거든요 아크는 그런 상황에서도 냄비를 흔드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정기선 구출까지는 포기했었는데, 어쨋든 잘됐다. 내가 전투함을 이끌고 3시 방향으로 이동할 테니 너도 일단 그쪽으로 이동해라. 이미 놈들보다 약간 앞어 있으니 우측으로 돌아 놈들의 선수를 지나면 큰 피해 없이 합류할 수 있을 거야. 정의남의 말처럼 가속을 붙여 앞으로 튕겨 나간 정기선은 해적선보다 약간 앞서서 향해 중이었다. 정의남이 생각한 방법은 정기선을 그대로 우회해서 해적선의 앞을 가로질러 전투함과 합류하는 방법 해적선 같은 전함에는 선수에도 대포가 달려 있다. 그러나 양쪽에 30문이나 달려 있는 측면 대포에 비하면 고작 3∼5개 정도. 물론 그 정도도 정기선에는 위협적이지만 마법으로 가속하며 빠져나간다면 큰 무리가 없었다. -일단 합류하면 우리가 엄호할 테니 다시 스탄달로 귀항해라. 우리도 곧 뒤따르마. -네? 왜요? 해적선단도 약간이지만 피해를 받았잖아요. 전투함 두 척으로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스탄달 근해니 지원 병력도 부를 수 있잖아요. 설마 이번에 건조 중이라던 전투함이 달랑 그거예요? -아니, 이번 출동의 목적은 해적소탕이 아니야. -해적 소탕이 아니라면? -나는 이번 기회에 놈들의 본거지인 무법항을 알아낼 생각이다. 정의남이 대강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 무법항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정의남은 얼마 전에 의외의 사실을 알아냈다. 애초에 무법항은 육로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배를 이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해상 요새. 이사벨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전투 함대를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낌새를 눈치챈 무법항의 해적들이 교묘하게 숨어 다녀서 무법항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해상을 감시하던 정의남에게 해적선단의 이동이 포착된 것이다. -실은 근방에 우리 함대가 대기 중이다. 일단 이곳에서 적당히 싸우다가 물러나면 해적선은 수리를 위해 곧바로 무법항으로 갈 거다. 그때 쾌속정으로 뒤를 밞아 무법항을 알아내고 괴멸시킬 생각이야. 그러니 일단 너희가 먼저 도망쳐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크는 무선을 끊고 바로 선장에게 지시했다. "우측입니다. 우측으로 선회해서 해적선단을 지나 전투함과 합류합니다." "하, 하지만 우측으로 선회하면 놈들의 선수포 사정 범위를 지나야 하네." "그래도 그게 가장 빨리 전투함과 합류할 수 있는 방법 입니다. 마법으로 가속하면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일단 거리만 좁혀지면 전투함에서 엄호해 줄 겁니다." "엄호? 그럼 방금 전에 전투함과 통신한 건가?" "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장이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전의 지략도 그렇고, 전투함의 선장과도 아는 사이라니?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승객입니다." 아크가 열심히 냄비를 흔들어 대며 대답했다. 어쨋든 정기선은 아크의 지시대로 우측으로 선회하며 해적선단의 전방으로 진입했다. "아직입니다. 이제 마법사들의 마나도 거의 없습니다. 고작 열 명으로 배를 움직일 정도의 돌풍을 일으키는 마법은 잘해야 앞으로 두 번, 놈들의 포격하는 타이밍에 맞춰 가속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아크가 해적선단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때, 갑자기 선두의 해적선 후미에서 엄청난 폭팔이 일어났다. 불과 얼음 마법이 격돌하며 일으키는 폭팔! 동시에 해적선이 정기선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뭐, 뭐야? 저건 우리가 사용한 마법이잖아? 하지만 저 배의 선원은 거의 나크족이었는데…… 헉, 서, 설마 저여자 혼자서……?' 자리를 옮겨 돌진해 오는 해적선의 후미를 확인한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까 봤던 하얀 사슬 갑옷의 여자 마법사, 그녀가 양손에서 불과 얼음 마법을 일으켜 하늘을 향해 X자로 휘두르자 두개의 마법이 충돌하며 엄청난 돌풍이 일어났다. 정기선에서 열 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했던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일어나는 돌풍은 열 명의 마법사들이 일으키는 것보다 더 강력했다. "대체 뭐야, 저 여자는? 어떻게…… 아니, 그보다 왜 앞으로 돌진하는 거지? 저런 식으로 돌진하면…… 헉! 서, 설마…… 가속, 선장님, 가속하세요!" 화들짝 놀란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그러나 채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해적선이 정기선의 측면을 들이받았다. 콰콰콰콰쾅! 정기선이 크게 흔들리며 갑판의 승객과 아크가 한쪽으로 우르르 밀려났다. "아악, 냄비, 냄비, 냄비!" '사, 살았다!' 아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냄비 속의 검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배가 통째로 뒤집히는 듯한 충격, 그 와중에도 아크는 냄비를 흔들어 대며, '다크 댄싱'을 펼쳐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오직 A급 내단을 향한 집념! '그나저나 뭐 이런 무지막지한 놈들이 다 있어?' 아크는 어이없는 눈길로 정기선의 옆구리에 쑤셔 박힌 해적선을 바라보았다. 옆구리를 들이받았다지만 해적선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선수가 왕창 주저앉으며 박살 난 것이다. 어찌어찌 인양한다고 해도 엄청난 수리비가 들어가리라. 그럼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배를 충돌시켰다. 제정신 박힌 놈이 할 짓이 아니다. '대체 아까 선수에 있었던 전사와 마법사는 뭐지? 왜 이런 짓까지 하면서……' "크헤헤헤, 모두 죽여라!" 그때 나크조 ㄱ해적들이 괴성을 질러 대며 난입했다. 해적이 난입하자 정기선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난입한 해적들의 레벨은 예전에 상대하던 나크족보다 조금 높아서 대략 250∼300 전후. 물론 정기선의 승객들도 그정도 레벨은 되었다. 그러나 승객들은 70%가 상인. 전사나 마법사들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지만 상인들은 걸리는 족족 저항조차 못 하고 쓰러졌다. '어쨌든 이거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받아랏!" 아크에게도 두 명의 해적이 달려들었다. 아크는 재빨리 몸을 피하며 '란셀의 검'을 뽑아 들었다. 한 손으로 냄비를 흔들어야 해서 양손 검인 '귀살검'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선상에서, 냄비의 내용물을 열심히 흔들어 대며 치러야 하는 전투! 그러나 아크는 놀라운 몸놀림으로 균형을 잡으며 달려드는 나크족을 썰어 댔다. 몰드좀비를 상대로 다시 태권도 수련을 해서 전체적인 균형 감각이 월등히 향상된 덕분이었다. '나크족이야 큰 문제가 아니지만…….' 아크는 '화격'으로 나크족을 쳐 내며 멀리 떨어진 해상을 바라보았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방금 전부터 스탄달 전투함과 두 척의 해적선이 굉음을 토해 내며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바다 위에 복잡한 괘선을 그리며 쉬지 않고 포격을 해 대는 함대 전투! 설핏 보기에는 정의남이 이끄는 전투함이 해적선에 약간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정의남의 철저한 계산하에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자세히 보면 정의남은 함선에서 가장 견고환 부분으로 적의 공격을 받으며, 공격할 때는 해적선의 후미를 노려 기동력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해적선이 무법항으로 돌아갈 때 추적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약점을 노려서 공격할 정도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 그러나 아무리 여유가 있어도 함선으로 2대 2의 해전을 펼치고 있으니 정기선을 도와주러 오기는 힘들었다. 또한 할 수 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해적에게 도망가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데, 갑자기 해적선을 밀어내고 달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되면 정의남 아저씨의 도움을 기대할 수도 없어.' 안타깝게도 정기선의 승객들을 구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실 아크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두 척의 해적선은 전투함에 발목이 잡혀 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척도 정기선과 충돌하는 바람에 당장은 향해할 수 없어. 이제 내가 도망가는 걸 막을 해적선이 없는 거야!' 아크가 탈출하지 못했던 이유는 돌고래를 타고 이동할 때 포격을 받는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해적선의 발이 묶여 버렸다. 어차피 정기선의 선원과 승객으로 해적을 막아 낼 수 없다면, 이때 탈출해야 한다. 재빨리 행동 방침을 정한 아크가 소리쳤다. "북실이, 어디있어?" "여, 여기요!" 머리 위에서 복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언제 저기까지 올라간 건가? 북실이는 돛대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하여간 도망치는 거 하나는 경지에 올랐다. "이 멍청아, 거기서 뭐해?" "하, 하지만 해적들이…… 힉!" "쿠헤헤헤, 죽어라!" 해적이 밧둘을 타고 올라오자 북실이가 비명을 터뜨렸다. 그때 백구가 돛대로 뛰어올라 나크족의 목을 물어뜯어 떨어뜨렸다. '백구가 있으니 북실이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북실이, 백구, 일단 그곳에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바다로 뛰어들어!" 아크는 그렇게 말해 놓고 얼른 '인어족의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세차게 부르려고 하는 찰나, 돌연 앞쪽에서 엄청난 기운이 밀려들었다. 섬뜩한 느낌을 받은 아크는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콰콰콰콰쾅! 뒤이어 코앞으로 거대한 대검이 떨어지며 갑판 바닥이 폭팔하듯 터져 나갔다. 마치 폭탄이 떨어져 내린 듯한 파괴력! 허공으로 솟아올랐던 나무 파편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갑판에서 우람한 체격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선수에서 아크의 이름을 입에 담았던 사내. 그때도 보통 사람보다 크다고는 생각했지만 코앞에서 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보통 사람의 두 배가 넘을 듯한 근육질의 몸에 짐승 가죽을 이어 붙여서 만든 듯한 가죽 갑옷을 걸친…… 짐승 같은 사냐였다. "이제야 만나게 됐군, 아크." 사내가 짐승 같은 웃음을 지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의 공격을 피하다니, 제법 반사 신경이 좋은데?" "너는 뭐야?" "나? 아, 내 소개를 안 했군. 나는 브레드라고 한다." 그렇다, 이 우람한 체구의 전사가 바로 브레드였다. 마법사인 레디안과 함께 밑도 끝도 없는 이유로 아크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 대고 있는 유저였다. 브레드는 얼마 전 시르바나의 라이덴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고 다시 스탄달로 돌아왔다. 라이덴이 지원해 주겠다고 한 것은 바로 하만 요새에 잠임시켜 놓은 정보원과, 헤르메스 길드가 무법항에 숨겨놓은 해적선단이었다. 항구에서 아크를 훔쳐보던 두 명의 사내 중 하나가 바로이 헤르메스의 정보원이었다. 이 소식은 곧바로 무법항에 대기하고 있던 브레드와 레디안의 귀에 들어갔고, 둘은 해적선단을 동원해 정기선을 뒤쫓아 오게 된 것이다. "네 이름 따위는 관심 없어. 대체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너는 날 몰라도 나는 너에게 좀 맺힌 게 있거든." "맺힌 거라니?" "설명하자면 좀 복잡한데……." 브레드가 볼을 긁적이다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냥 이 몸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얌전히 죽어 주면 안될까?" "장난하냐?" "역시 그냥 죽어 주는 건 좀 그렇지? 솔직히 나도 그런 건 재미없어. 네가 사탄달을 떠올린 녀석 맞지? 라이덴 말처럼 원래는 검은 늑대 모습이 아니군." "라이덴? 뭐야? 너도 헤르메스 길드원이냐?" "아니. 뭐, 널 찾으려고 좀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헤르메스와는 상관없어,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그냥 너에게 좀 맺힌게 있어서 찾아왔을 뿐이야. 어쨋든 네가 스탄달을 떠올렸던 그 검은 늑대라면 그만한 실력이 있겠지? 너도 그냥 죽기는 싫을 테니 어디 한번 화끈하게 붙어 보자고." 브레드가 씨익 웃으면서 말하다가 문득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계속 신경이 쓰여서 그러는데, 왜 냄비를 흔들어 대고 있는 거야?" "신경 꺼. 남이야 냄비를 흔들든, 냄비를 잡고 춤을 추든." "……뭐하는 짓인지는 모르곘지만 집어넣는 게 좋을 텐데? 안그러면 후회할걸." "글쎼? 내가 후회할지. 네가 후회할지는 두고 봐야겠지." 아크가 냄비를 흔들어 대며 야멸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자 브레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신만만하시군. 어디 실력 한번 볼까?" 브레드가 튕기듯 앞으로 쏘아져 날라오며 대검을 휘둘렀다. 아크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리자 대검이 바닥애 내리꽂혔다. 그러자 방금 전처럼 폭발이 일어나며 갑판이 움푹파여 들어갔다. 무지막지한 힘! '뭐 이런 녀석이……!' 한 방만 맞아도 위험할 듯한 느낌이 팍팍 드는 공격이었다. 아크는 일단 거리를 벌이고 '고양이의 눈'으로 브레드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브레드의 직업은 비스트 마스터. 처음 들어 보는 직업이었다. 뭐, 뉴 월드에는 직업이 수백가지나 되니 그거야 그렇다 치고……. 아크를 경악하게 만든 건 브레드의 레벨이었다. '헉, 뭐, 뭐야? 레벨이 402?' 정말이지 밤잠을 아껴 가며 게임에 몰두한 아크조차 아직 레벨이 366이다. 그런데 벌써 400을 넘기다니? 이 녀석은 잠도 안 자고 게임을 한다는 말인가? '……완전히 폐인 아냐?' 400대의 레벨에 잠시 주춤했지만 아크를 절망시킬 정도의 레벨은 아니었다. 사실 아크가 걱정하는 것은 브레드보다 정기선에 득실대는 해적들이었다. 해적들이 정기선을 장악해 버리면 탈출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놈을 빨리 처리하고 빠져나가야 한다!' "라둔, 어둠의 램프를 켜라!"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빠르게 허리를 타고 이동해 램프를 얻고 마법 재료를 토해 넣었다. 부우우우웅. 램프가 가늘게 진동하더니 주변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아크에게 50%의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 되며 각종 능력치가 레벨548 수준까지 뻥튀기되었다. 아무리 레벨 400대라고 해도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은 아크의 능력치는 따라올 수 없는 것이다. "좋아, 그렇게 원한다면 싸워 주지.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브레드를 향해 달려가며 '다크 블레이드'를 날렸다. 브레드가 황급히 대검을 치켜들고 방어했지만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러나 브레드의 얼굴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웃음이 맺혀 있었다. "흠, 날 밀어낼 정도니 레벨이 꽤 되는 것 같군, 아니. 램프를 사용해서 능력치를 올린 건가? 상황을 보아하니 어둠속성 보너스 같은 건가 보지? 하긴 동영상을 봤을 때도 낮과 밤의 전투 장면이 조금 달라 보이기는 하더군." 레벨만큼이나 경험이 풍부한 브레드는 단숨에 아크의 속성과 어둠의 램프를 파악했다. "어쨌든 좀 실망인데,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아서 기왕이면 노멀하게 붙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기는 하지. 게임이니까. 좋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주지. '수혼 빙의'! 곰같은 힘이여 솟아라!"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네가 우주 보안관이냐?' 엉뚱한 제스처에 아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브레드의 등 뒤로 거대한 곰의 형상이 떠오르며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뒤이어 형상이 브레드의 몸에 흡수되자 얼굴이 정말 곰 같은 갈색 털에 뒤덮이는 게 아닌가? '어라? 뭐, 뭐야? 변신?' 브레드가 앞으로 뛰어나오며 엄청난 기세로 대검을 휘둘렀다. 순간 아크는 본능의 경고에 따라 황급히 몸을 피했다. 뒤이어 엄청난 기세의 대검이 공간을 갈라 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돛대가 일격에 잘려 나갔다. "억, 이, 이게 무슨……!" "어이, 이제 시작이잖아.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하다고." 브레드가 씨익 웃으며 다시 대검을 휘둘러 댔다. "다크 댄싱!" 아크는 복잡한 나선을 그리며 대검을 흘려 냈다. 돛대를 일격에 잘려 버렸다. 상상을 초월한다는 힘이다. 그러나 레벨업을 할 떄 주어지는 스탯 포인트에는 한계가있다. 힘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올려놨다면 그만큼 다른 능력치는 떨어진다는 뜻. 전사니 체력은 꽤나 올려놨겠지만 민첩 같은 스탯까지 올릴 수는 없었으리라, 때문에 아크는 '다크 댄싱'을 펼쳐 장기인 속도전으로 몰고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브레드는 그런 아크의 속내를 줄줄 꿰고 있었다. "어라? 이번에는 속도전이냐? 좋지, '수혼 빙의', 치타의 힘이여 솟아라!" 브레드의 등 뒤에서 이번에는 치타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곰의 형상처럼 브레드에게 흡수되자 아크가 '도약'을 사용할 때처럼 허벅지가 두 배로 굵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으며 대검을 휘둘렀다. 서걱, 콰쾅! "으악!" 격렬한 충격과 함꼐 아크가 10여미터나 밀려났다. '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70%를 넘어 자동적으로 방어력을 30%나 올려 주는 '다크 스케일'이 발동했지만, 그럼에도 생명력이 단숨에 800이나 빠져나갔다. 만약 '다크 스케일'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데미지가 1,000을 가뿐히 넘어갔으리라. 그러나 아크가 비명을 터뜨린 건 데미지 떄문이 아니었다. '젠장,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어. 흘릴 뻔했잖아. 지금은 혼합 과정이라 흔들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다행이지 안정시켜야 하는 결정화 과정이나 숙성 과정이었으면 실패했을 거야.'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자세를 잡고 냄비를 흔들어 댔다. 그렇게 몇 번 흔들어 대자 혼탁해졌던 검은 액체에 윤기가 돌아왔다. '그나저나 뭐,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이 다 있어? 대체 저 괴상한 스킬은 뭐야?' 아크는 '전력질주'로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며 '스킬 간파'를 발동시켰다. 브레드의 직업 스킬: 수혼 빙의獸混憑倚 '수혼 빙의'는 드루이드 계열의 특수 직업인 비스트 마스터의 직업 전용 스킬입니다. '빙의'를 사용하면 계약을 맺은 동물의 영혼을 체내에 받아들여 특정 능력치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비스트 마스터는 최대 세 개의 영혼을 동시에 빙의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확인된 수혼 빙의 스킬 【곰】곰의 영혼을 빙의하면 힘을 50%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치타】치타의 영혼을 빙의하면 민첩과 반응속도를 50%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빙의? 뭐, 이런 사기적인 스킬이 다 있어? 게다가 세 개까지 중첩이 가능하다고? 그렇다면 저 녀석 능력이 더 뻥튀기될 수 있다는 말 아니야?' 사실 아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었다. 브레드의 경우, 세 마리의 영혼을 동시에 받아들여도 결국 세 개의 스텟을 50% 올려 주는 게 한계였다. 그러나 아크의 경우,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모든 스탯이 50% 상승된다. 사기적인 특성이라면 아크가 한 수 위였다. 그러나 아크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보너스를 받는 유저를 그리 많이 겪어 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버프를 세 개까지 중첩시키는 아란이나, 아크와 버금가는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는 샴바라가 전부였다. '가만? 그렇다면 저 녀석도 숨겨진 직업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브레드는 아크보다 레벨이 높은 데다, 스킬까지 장난이 아니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강자! 반면 아크는 쉬지 않고 냄비를 흔들어 대며 싸워야 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한 손뿐이라 주 무기인 '귀살검' 대신 착용 레벨 50짜리 란셀의 검. 그뿐이면 말도 안 한다. 주변에는 난입한 해적들이 설쳐 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놈을 쓰러뜨리는 건 힘들다. 그리고 놈만 쓰러뜨린다고 해결될 상황도 아니야. 일단 어떻게든 저 녀석을 밀어내고 탈출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놈을 밀어내려면 먼저 능력치에서 앞서야 해. ……그걸 쓸 때가 온건가?' "영광의 밤!" 위기에 몰린 아크는 결국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2차 전직을 하고 익힌 영역 선포 스킬! '영광의 밤'은 마나가 2,000. 영력이 400이나 소모되는 무지막지한 스킬이다. 일단 한 번 발동시키면 소환수를 불러내는 것조차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10분 동안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마법 저항력이 20%나 상승하는 엄청난 보너스가 주어진다. 사실 아크도 전직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됐지만, 예전에 붉은 남자가 사용했던 '시바의 영역 선포'도 영역선포 스킬이었다. 말도 안 되는 스킬이라고 생각했지만 2차 전직을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어쨋든 '영광의 밤'은 '시바의 영역 선포'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아크가 '영광의 밤'을 사용하자 돌연 공간이 벌어지며 검은 형체가 떠올랐다. 밤의 정령 다크!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보너스가 적용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광의 밤'이 발동되었습니다. 《직경 100미터 내에서 시전자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했습니다.》 어둠 속성 보너스로 50%나 올라간 공격력에 다시 60%가 추가! 기본 공격력에 100%가 추가된 것이다! "자, 어디 이번에도 웃을 수 있는지 보자!"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브레드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브레드가 뒤로 물러나더니 약간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라? 이 녀석도 2차 전직을 한 건가?" '뭐? 이 녀석도? 그럼……?' 아크가 움찔하자 브레드가 대검을 수직으로 세워 바닥을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야수의 대지!" 순간 브레드의 앞에서 휜색 토템이 솟아올랐다. 뒤이어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토템을 중심으로 갑판위에 푸른 잔디가 쫙 퍼져 나갔다. 틀림없는 영역 선포 스킬!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갑판을 뒤덮은 잔디가 다크가 만들어 낸 어둠의 공간과 충돌했을 때였다. 접점에서 격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다크와 토템이 동시에 부서져 버렸다. -영역 선포 스킬이 중첩되어 소멸했습니다! "뭐, 뭐야?"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자 브레드가 피식 웃었다. "너 전직한 지 얼마 안 됐냐? 원래 영역 선포 스킬은 이렇게 막는 거라고." "영역 선포? 역시 너도……" "뭘 그렇게 놀라냐? 2차 전직을 한 사람이 너뿐이라고 생각헀던 거냐?" 그러나 혼자뿐이었으면 좋겠다고는 생각했다. 그나저나 마나 2,000에 영력 400을 투자해 발동시킨 영역선포 스킬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지다니……. 어째 너무 좋은 스킬이다 싶더니 이런 약점이 있었을 줄이야. 결국 2차 전직을 한 유저끼리 싸울 때는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라는 말이 아닌가? '젠장, 나는 붉은 남자와 싸울 떄 영역 선포 때문에 죽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뭐, 일반 몬스터와 싸울 때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겠지만 말이다. "자, 이제 보여 줄 거 다 보여 줬으니 제대로 붙어 보자고. '수혼 빙의' 매의 힘이여, 솟아라!" 브레드는 정말 우주 보안관이었다. 곰의 영혼으로 힘을, 치타의 영혼으로 민첩과 반응속도를, 이어 매의 영혼을 빙의시켜 명중률과 치명타 확률까지 극대화시킨 브레드가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반면 영역 선포 스킬을 실패한 아크는 소환수조차 불러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도 냄비를 안 집어넣는 건가? 빈정대는 거냐?" 아크가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냄비를 흔들어 대자 브레드가 불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젠장, 나도 할 수만 있으면 이딴 냄비 집어 던지고 싶어!' "제 실력을 발휘할 생각이 없다면 나도 더 이상 네놈에게 볼일이 없다!" 아크가 간신히 치명타를 피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을 떄였다. 뒤통수에 붙어 있던 눈알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아크 님! 뒤, 뒤, 뒤!" 아크가 크게 검을 휘두르며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엄청난 크기의 화염구가 코앞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이글거리며 날아드는 화염구 뒤로 보이는 사람은 하얀사슬 갑옷을 걸친 여마법사, 레디안이었다. '맞아, 이 녀석에게는 저 마법사도 있었지? 그런데 방금전에 무지막지한 마법으로 혼자서 해적선을 움직이고 벌써 마나를 회복했단 말이야? 망했다. 당장은 브레드를 따돌릴 방법이 없는데 저런 무지막지한 마법사까지 버티고 있으면 도망갈 방법이 없잖아! 아니, 도망은커녕 브레드의 공격을 막으며 화염 마법을 피할 방법도 없어!' 아크가 신음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아크에게 향하던 브레드의 대검이 돌연 궤도를 바꿔 화염구를 후려쳤다. '어라? 뭐야, 이 자식?' "무슨 짓이야!" 화염구를 반으로 갈라 버린 브레드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레디안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레디안이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무슨 짓이라니? 보면 몰라? 저놈을 구워 버리려는 거잖아." "그만둬!" "뭐?" "모르겠냐? 간만에 상대할 만한 녀석을 찾아냈단 말이야. 냄비를 흔들어 대는 웃기는 짓을 하고 있지만 이 녀석의 실력은 진짜야." "웃기지 마, 나도 저놈에게 원한이 있다고." 레디안이 콧방귀를 뀌며 다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브레드가 정색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정말로 화낸다." 그러자 레디안이 움찔하며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레디안이 화가 난 듯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쳇, 미련한 곰탱이. 알았어, 대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해. 그리고 다음에는 나야. 알지?" "훗, 알았어. 역시 너는 매력적이라니까." 레디안이 얼굴을 붉히며 팩 고개를 돌려 버렸다. 브레드는 예뻐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세웠다. "미안하게 됐다. 어쨋든 이제 저 녀석도 방해하지 않을 거야. 물론 해적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해적이든 뭐든 승부를 방해하는 녀석이 있다면 저 녀석이 막아 줄 거야. 그러니 너도 그만 냄비나 흔들어 대는 웃기는 짓은 그만두고 진지하게 싸워 줬으면 좋겠다." 아크는 멍하니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일로 원한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레드는 지금까지 상대해 온 녀석들과는 뭔가가 달랐다. 아크의 실력을 인정하고 순수하게 전사와 전사로서 승부를 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동료의 도움조차 거절하고 우직하게 자신이 믿는 전사의 길을 가는 사내! 이런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바보다, 이놈은 바보다!' 그렇다, 브레드는 바보였다. 그리고 아크는 브레드와 나란히 손잡고 '헤헤헤, 전사의 승부다.' 라고 지껄여 대는 바보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헹, 웃기지 말라고 해. 배를 들이받으면서까지 달려드는 놈의 말을 미쳤다고 밑냐? 막상 상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나올지 누가 알아? 게다가 브레드를 해치워도 저 마법사와 싸워야 된다는 말이잖아? 또 해적들은? 해적들은 어쩌라고? 결국 나는 이겨도 달라질 게 없는 거잖아. 미쳤냐? 내가 그런 짓을 하게? 게다가 냄비를 흔드는 게 웃기는 짓이라고? 젠장, 나는 목숨을 걸고 흔들어 대고 있는 거란 말이야!' 그러나 아크는 짐짓 감동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 진짜 전사구나!" "아니, 뭐, 그렇게까지……." 브레드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지금까지 뉴 월드를 하면서 너처럼 진정한 전사를 못 만나 봤어. 좋아, 네가 그 정도의 각오라면 나도 전사로서 대응해 주는 게 의무겠지. 먼저 사과하마. 너 같은 전사를 상대하면서 냄비나 흔들며 장난하고 있던 내가 부끄럽다. 알았다. 이제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전력을 다해 상대하겠다." "오오오, 정말이냐?" "물론이지, 아, 그런데 미안하지만 잠시 시간을 줄 수 있을까? 사나이와 사나이의 승부다. 나도 각오할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냄비를 다시 챙겨 넣으려면 시간이 걸리거든, 어차피 이곳은 바다 한복판. 도망갈 곳도 없으니 끝장을 보자고, 자, 서부 영화처럼 등을 돌리고 열 걸음 걸어간 다음에 돌아서자마자 전력으로 붙는 거다." "아? 그, 그래? 뭐, 그렇다면……."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크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크게 어깨를 들썩였다. 그 모습에 브레드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사나이 대 사나이의 싸움을 하기로 했다지만. 적 앞에서 태연하게 등을 보이다니……. 이 녀석도 진심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몸을 돌린 아크의 입가에는 사악하기 짝이없는 미소가 그러져 있었다. '바보다, 역시 저 녀석은 바보였어!' 사실 아크는 몸을 돌리자마자 '인어족의 피리'를 꺼내 들고 미친 듯이 불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브레드가 여덞 걸음정도 걸어갔을 떄, 몸을 회전시키며 검을 폭발시켰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마법 속성이 붙은 저주템을 폭팔시켜 발동시킨 '블레이드 템페스트'! 폭풍처럼 몰아치는 검 파편 사이로 검은 기운이 뿜어지며 브레드를 휘감았다. "어흠…… 엇? 뭐, 뭐야? 매의 힘 취소, '수혼 빙의' 거북이의 방패!" 브레드가 움찔하며 '수혼 빙의'를 펼치자 피부가 거북이 의 등껍질처럼 변했다. 아마도 방어력을 올리는 '수혼 빙의'이리라. 그러나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한 피부로도 저주템을 사용한 '블레이드 템페스트'의 공격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검 파편의 폭풍에 휘말린 브레드는 연쇄적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입으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폭풍이 사그라진 뒤에야 브레다그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네, 네놈! 무슨 짓이냐!" "우하하하, 누가 너처럼 무식한 놈하고 싸우겠냐? 굿비이다!" 아크의 목소리가 돌려온 곳은 배 아래쪽이었다. 브레드가 난간으로 달려가자 어느새 배 아래에는 엄청난 숫자의 돌고래 때가 모여 있었다. 돌고래에 올라탄 아크가 갑판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입니다! 승객 여려분, 모두 돌고래에 올라타십시오!" "엇? 저 돌고래들은 뭐지?" "아까 정기선을 지휘하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불러낸 모양이야!" "오오, 기회다, 도망치자!" 해적들에게 구석까지 몰려 있던 유저와 선원들이 일시에 바다뤼 뛰어내렸다. 유저와 선원들이 올라타자 돌고래들이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크가 위급한 와중에도 돌고래를 떼로 불러 모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실 아크도 처음에는 혼자 도망칠 궁리를 했다. 그러나 해적선단이 나타나는 통에 본의 아니게 다른 승객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젝게 생긴 마당에 혼자만 도망치기가 뭐했던 것이다. 예전에 이벤트 퀘스트에서 정의남을 따르던 유저들을 챙길 떄처럼, 혹은 공성전에서 활약했던 NPC에게 그만한 대가를 주었던 것처럼, 유저를 썩 좋아하지는 않는 아크라도, 한번 같은 편이 되었던 사람들만큼은 나 모랄라 하지 않았다. '혼자밖에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다 함께 탈출할 방법이 있어. 그리고 다 함께 탈출하는 게 나에게도 이익이다!' "저, 저렇게 비겁한 놈이 있다니……!" "흥,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어, 이 멍청아! 헬 파이어!" 레디안이 욕설을 퍼부으며 도망치는 아크의 등에 마법을 쏟아부었다. 엄청난 마력의 마법이 이미 생명력이 바닥난 아크의 등을 꿰뚫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법에 적중된 아크가 연기처럼 흩어지더니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설마…… 환영?" "저쪽이다! 놈이 반대쪽으로 달아나고 있어!" 승객들 틈에 끼어 도망가는 아크를 발견한 브레드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거북이의 방패 취소, '수혼 빙의' 돌고래의 힘이여, 솟아라!" 돌고래의 영혼을 빙의한 브레드는 단숨에 아크에게 따라붙어 검을 휘덜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크는 연기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뭐야? 도 환영? 그렇다면……?" "저기다! 저기로 도망가고 있어!" 그때 배 위에서 레디안이 멀어지는 아크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려다가 취소하며 이를 갈아붙였다. "틀렸어,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났어." "이, 이럴 수가……! 세상에 저렇게 비겁한 놈이 있을 줄이야! 으드득, 감히 사나이의 결투를 모욕하다니…… 용서 못 해 이제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레디안. 놈을 쫓자. 뛰어 내려!" 브레드는 레디안을 등에 태우고 엄청난 속도로 아크를 뒤쫓았다. '후후후, 바보 같은 놈들.' 그러나 정작 아크는 바다 밑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히죽거리고 웃었다. 그렇다. 연기처럼 사라진 아크는 바로 '문 라이트 일루전'으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레디안이 공격한 환영, 브레드가 공격한 환영 그리고 마지막에 둘이 쫓아간 것은 아크가 마지막까지 숨겨 두고 있었던 세 번쨰 환영이었다. '이게 바로 다른 유저와 함꼐 탈출했을 때의 이득이지.' 아크가 돌고래를 때로 불러들인 이유는, 첫째가 자신을 도왔던 다른 유저를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다른 유저를 이용해 환영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만약 망망대해에 아크의 환영 세 개만 둥둥 떠 있었다면 곧바로 간파당했으리라. 때문에 아크는 돌고래를 떼로 불러 수십 명의 생존자들 속에 환영을 섞어 놓은 것이다. 브레드와 레디안의 반응이 늦어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아크는 '인어족의 비늘'을 입에 물고 바다 속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후후후, 서바이벌 냄비가 물속에서도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정신이 없어서 북실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네.' 아크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상황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처 북실이에게 말해 두지 못했던 것이다. 덕분에 북실이와 백구도 돌고래를 타고 아크의 환여을 따라가 버렸다. 브레드를 속이기 위해 아크가 돌고래들에게 내린 명령은 '최대한 뿔뿔이 흩어져서 브리스타니아로 도망가라.'였다. 덕분에 아크 역시 돌고래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아크의 뒤통수에 붙어 있던 눈알에게 말을 걸어 봤지만 본체와 너무 멀어져서인지 통신이 되지 않았다. '뭐, 복실이는 나중에 연락해서 합류하면 되겠지." 아크는 수중에서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계획대로 정의남은 밀리는 척하다가 후퇴했다. 그렇게 전투가 끝나자 해적들도 정기선에 박혀 버린 해적선을 견인해 돌아갔다. 아크가 있는 곳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갱생단이 이끄는 쾌속선이 어딘가에서 해적선을 미행하고 있으리라. "상황이 정리됐군. 자, 그럼 나도 가 볼까?" 아크는 다시 돌고래를 불러 타고 바다를 가로질렀다. 그 와중에도 왼손으로는 여전히 검은 액체가 담긴 냄비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ACT 8 경찰청 퀘스트 -경매가 진행 중입니다. 바람정령의 장화 : 620만 원 -경매가 진행 중입니다. 브리간드의 전투 헬멧 : 670만 원 "하아?" 현우는 모니터에 떠오른 메시지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 다. 그야말로길 가다 돈 주운 격으로 얻은 '브리간드의 전 투 헷멧'은 기대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갔다. '브리간드의 전투 헬멧'은 200레벨대의 레어 장비지만 옵 션은 그리 좋은 수준이 아니었다. 레어 장비품의 가치를 높 여 주는 스킬도 붙어 있지 않고, 방어력도 특별히 높지 않다. 전사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추가 방어력이 붙어 있는 마법 아이템을 선호하리라. 경매에 올린 지 나흘 만에 670만 원이 라도 올라간 건 그래도 명색이 레어 아이템이기 때문이었다. 현우를 실망시킨 것은 바로 '바람정령의 장화'였다. 사실 현우가 '늑대의 발'로 갈아 시는 지도 꽤 오래되었다 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으로는 '바람정령의 장화'를 계속 사용하고 싶었다. '늑대의 발' 쪽이 방어력도 약간 더 높고 '도약'도 나쁘 지는 않지만 역시 아크의 전투 스타일에는 '슬라이드'가 더 활용성이 높은것이다. 문제는 '늑대의 발'이 《수왕》세트 아이템이라는 것. '늑대의 발'을 포기하면 단순히 장비품의 방어력만 깍이는 게 아니라, 세트 아이템 효과까지 감소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도 언제까지 한 장비품만 사용할 수는 없지. 아쉽지만 이제 '바람정령의 장화'는 포기할 수밖에 없어. 사용하지도 않을 신발을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잖아." 결국 현우는 '바람정령의 장화'를 팔아 치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경매가 진행되는 상황은 아크의 기대치를 훨씬 밑 돌았다. 장비를 바꾸고도 아까워서 한 달이 넘도록 망설이던 레어 아이템! 그런데 같은 시기에 올려놓은 '브리간드의 전 투 헬멧'보다도 50만 원이나 떨어지는 가격으로 경매가 진 행 중인 것이다. 게다가 입찰한 사람들도 사흘 동안 고작 일 곱 명밖에 되지 않았다. "입찰 수가 적다는 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적다는 뜻.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경매가 종료될 때까지 기 다려 봤자 가격이 크게 올라갈 확률이 적다는 말이야. 이 추 세라면 최종낙찰가는 잘해야 800만 원." 현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경매 사이트에 아이템을 올려놓고 하루 이틀의 반응만 보 면 대강의 낙찰가가 나온다. '바람정령의 장화'는 라이덴에게 영지를 팔아먹으며 모 자란 2,000골드 대신 받은 아이템이다. 물론 억지스럽게 가격을 부풀린 부분이 있었으니 실제 아 크가 계산한 가격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래 도 최소한 1,500골드 이상의 가치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800만 원이라니? 그건 예상 가격의 반 정도 수준밖에 안 되지 않는가? 물론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긴 내가 '바람정령의 장화'를 탐냇던 이유는 악실리온 에서 듀크가 사용하는 걸 봤기 때문이야. 만약 듀크가 사용 하는 장면을 못 보고 정보창만 확인했다면 절대 2,000골드 대신 받으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그게 문제였다. '바람정령의 장화'의 가치를 올려 주는 옵션 스킬 '슬라 이드'! '슬라이드'를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한꺼 번에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가 달라질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템 정도창에 나오는 설명만으로는 그런 위력 을 실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특수옵션 : 스킬 '슬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슬라이드'를 사용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플레이어를 원하는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므로 이동할 때 공격 속도, 공격력, 방어력에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단, 1회의 이동속도는 동일하며, 이동거리는 최대 30미터를 넘을 수 없습니다. 마나소모 :10》 이게 '바람정령의 장화'에 붙어 있는 옵션 스킬 설명. 이런 정보창만 보고 아크나 듀크가 전투에 활용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때문에 사람들은 '바 람정령의 장화'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문제야. '슬라이드'가 전투에 얼마나 요긴한지 알게 되면 도적이나 궁수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들 텐데. 그런 아이템 을 고작 800만 원에 팔아야 하다니....... 우욱, 위, 위가......" 현우가 배를 움켜쥐며 식은땀을 흘렸다. 천 원짜리 한 장에도 목숨을 거는 현우다. 그런데 1~2만 원도 아닌 700~800만 원을 앉아서 손해 본다고 생각하자 위가 쓰려 왔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정말 위가 찢어질 듯이 쑤셔 오고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우우, 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1,500만 원이 넘는 가 치가 있는 아이템을 고작 800만 원에 팔아넘기다니....... 하 지만 이미 경매가 진행 중이니 취소할 수도 없고....... 우욱. 위, 위가 아프다. 이러다가는 정말 화병으로 죽을지도......." 현우는 눌물까지 글썽이며 덤핑 취급당하는 '바람정령의 장화'를 바라보았다. "뭔가...... 뭔가 방법이 없을까? 제값은 아니라도 1,000 만 원은 받아야......." 현우는 배를 움켜쥐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예전처럼 갱생단의 아이디를 빌려서 시세 조작을 해 볼까? 문든 그런 치졸한 생각도 해 봤지만, 그 역시 꼭 그 아이템 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때나 통하는 방법이다. 괜히 인기도 없는 아이템에 장난을 쳤다가 정말 갱생단의 아이디로 낙찰받으면 수수료만 왕창 깨지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 그리고 장화의 가치를 알게 해 주는 방법이다. "하지만 무슨 수로......" 현우의 머릿속에 스파크가 일어난 건 그때였다. "가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내가 '바람정령의 장 화'를 탐내기 시작한 건 듀크가 사용하는 걸 봤기 때문이잖 아? 그럼 다른 사람들이게도 내가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주 면 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현우가 자판과 마우스를 두들겨 대 기 시작했다. "찾았다 이거야!" 현우가 찾아낸 것은 바로 얼마 전 '사악한 늑대의 유계탐 험'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동영상이었다. 현우는 일단 동영상을 다운로드받은 뒤에 간단한 프로그 램을 이용해 편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5분 분량의 편 집한 동영상을 '바람정령의 장화'의 경매가 진행되는 장소 에 첨부 파일로 등록시켰다. "후후후, 어디 한번 볼까?" 작업을 끝낸 현우가 씨익 웃으며 첨부 파일을 클릭해 보았 다. 그러자 곧 자체 편집한 아크의 활약상이 화면에 펼쳐지 기 시작했다. 동영상은 검은 늑대로 변한 아크가 나크족과 접전을 벌이 는 장면이었다. "죽어라, 침입자!" 서너 마리의 나크족이 검을 휘두르며 아크에게 달려들었 다. 그러자 돌연 아크가 빙판처럼 바닥에 미끄러지며 이동해 반격을 가했다. 뒤이어 다른 나크족이 옆에서 달려들었지만 아크가 또다 시 바닥에 미끄러지며 피해 냈다. 바로 '슬라이드'를 사용 한 회피 동작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슬라이드'를 사용 해 이동하며 날리는 발차기. 심지어 돌려차기를 사용하며 '슬라이드'를 펼치자 마치 스트리트 파이터의 질풍각 같은 기술이 펼쳐졌다. '음, 보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아까운 생각이 든다.' '사악한 늑대의 유계 탐험'에서 '슬라이드'를 사용해 활 약하는 장면만 모은 동영상! 동영상의 주인공인 형우조차 보고 있자니 갖고 싶은 생각 이 들 정도다. 그렇게 5분간의 영상이 끝나자 현우가 편집해 넣은 자막이 떠올랏다. 이 동영상의 검은 늑대가 사용했던 이동 기술이 바로 '바 람정령의 장화'의 옵션 스킬이었습니다. 화제의 주인공과 같 은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절대 놓치지 마세요. 사실 현우는 이 동영상이 그렇게까지 유명해졌을 줄은 상 상도 못 했다. TV에서 방송되기 전에 MC가 최단기간 최고 조회 수 어쩌 고저쩌고를 떠들어 대던 말을 듣고 나서야 겨우 유명세를 실감 했을 정도였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방송국에서 검은 늑대에 대한 문의가 쇄도한다고. 잠시 게스트로 참석해 줄 수 없냐 는 전화까지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얼굴 팔리기를 꺼리는 현우는 생각해 보 겠다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어쨋든 이제 뉴 월드에서 검은 늑대라는 존재는 일약 유명인었다. 그렇가면 그 유명 세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활용법도 확실하게 보여 줬으니 이제 좀 나아지기를 바 라는 수밖에......." 확인 작업까지 끝낸 현우는 컴퓨터를 끄고 트레이닝복으 로 갈아입엇다. 경찰청 체육관에 나가지 않게 된 뒤로도 현우는 새벽 운동 은 거르지 않았다. 운동을 하면 단순히 체력이 강해지는 것 만이 아니라, 집중력, 순발력 따위도 좋아진다. 그런 집중력 이나 순발력은 뉴 월드를 할 때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평상시에는 크게 느끼지 못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반응하 는 속도가 다른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적-얼마 전에 브레 드의 공격을 피햇던 것 같은-의 공격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충실하게 감각을 발달시켜 온 덕분이다. '만약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 했다면 몰드좀비들을 상대로 수련을 할 때도 몇 배나 많은 시간이 걸렷을 거야.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몸을 단련하는 걸 게을리 하면 안 돼.' 레벨이 올라가면 캐릭터가 강해진다. 그러나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이 게임이 쉬워진다는 의미 는 아니었다. 레벨이 올라가면 그만큼 위험한 곳에서 사냥을 해야 한다. 그곳에서 출몰하는, 저레벨 지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엄청난 마력을 가진 괴물들! 오히려 레벨이 높 아지면 게임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레벨이 높아지면 만나는 유저들도 그만큼 강한 사람들이 된다. 붉은 남자도 그렇고, 얼마 전에 만났던 브레 드나 레디안도 마찬가지야. 비록 냄비를 흔들며 한 손 검만 으로 싸워야 해서 제대로 실력을 겨뤄 보지는 못했지만...... 제대로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어. 레디안까지 가세하면 말할 것도 없고. 레벨이나 스킬은 하고 싶다고 마 음대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니 기본 수련만이라도 착실하게 해 놔야 해.' 상시전장常詩戰場! 옛 무사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전창처럼 항상 수련하 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시 게임常詩 Game! 현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항상 게임을 하는 마음을 잊 지 않았다. '그리고 뉴 월드에서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인다고는 하지 만, 실제 몸은 유니트 안에 앉아 잇는 거잖아. 체력 관리를 위해서도 운동을 거르면 안 돼. 몸이 아파 버리면 게임이든 뭐든 다 소용없어지는 거니까.'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현우처럼 집에서 틀어박혀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나태한 게이머는 단순히 게임 폐인에 불과할 뿐이다. 현우는 항상 그랬듯이 조깅을 ㅗ몸을 풀고 적당한 공터에 서 태권도 기술을 연습했다. 그렇게 대략 1시간 반, 스트레 칭으로 훈련을 마무리한 현우는 집으로 돌아와 먼저 컴퓨터 부터 켰다. 경매가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엇던 것이다. "어라? 잘못 들어왓나?" 현우는 모니터에 떠오르는 화면에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 을 지엇다. -이거 정말 대박입니다! -슬라이드라는 스킬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햇어요. -저도 얼마 전에 이 동영상을 볼 때 어떻게 저런 식으로 움직일 수 있나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신발의 옵션 스킬이었군요. 대박. 대박.대박! -그 유명한 검은 늑대와 같은 신발을 신는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가 있습니다. -이거 내가 찍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물러가십시오. -어허,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저도 돈 있거든요? -그나저나 이렇게 엄청난 신발을 매물로 내놨다면 올리신 분은 더 좋은 신발이 있다는 말이겟죠? 부럽습니다. 그런 신발 어디서 얻 었는지 저에게만 살짝 귀띔을........ 지난 나흘 동안 '바람정령의 장화'의 경매 조회 수는 고작 20여 건. 경매 참가자는 일곱 명에 불과 했다. 그런데 불과 1시간 반 만에 경매 조회 수가 무려 1,300건. 경매 참가자가 84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경매장에 붙어 있는 코멘트는 무려 400건. 마우스 휠을 아무리 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해서 불어난 경매가가....... "헉, 1,300만 원? 1시간 반 만에 680만 원이 올라간 거야?" 현우의 입이 찢어질 듯이 벌어졌다. 장비품을 실제 활용하는 장면을 첨부해 광고하는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거기에 검은 늑대의 유명세까지 더해져 '바 람정령의 장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아직 경매 기간은 사흘이나 남았다. 지금 이 추세라면......" 가격이 얼마나 더 올라갈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아무리 욕심나도 아이템 하나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 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관심이 증폭된 상황이니 현우가 생각하는 권장 소비자 가격 1,500만 원보다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현우가 놀란 것은 단순이 가격이 올라갔기 때문만 은 아니었다. 몇몇 사람들은 신발의 성능보다 '유명한 검은 늑대가 사 용하는 신발'이라는 데 더 관심을 보였다. 물론 현우도 검은 늑대가 유명해졌다는 것은 실감하고 있 었다. 하지만 무슨 연예인의 애장품처럼 검은 늑대가 사용한 다는 것만으로 프리미엄이 붙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쨋든 이건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효과다." 척척 올라가는 경매가를 바라보는 현우의 눈동자가 눈부 신 빛을 발했다. 경매품에 실제 활용하는 동영상을 첨부해서 광고하는 전 략! 그 기발한 판매 전략이 대박을 터뜨렸다. 앞으로 판매하는 경매품에도 그런 광고를 덧붙인다면 낙 찰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으리라. 기대만큼의 경매 가가 나오지 않은 덕분에 뜻하지 않게 새로운 광고 전략을 개발해 낸 현우였다. '이제 아이템을 구하면 확실하게 제값을 받을 수 있다.!' 현우는 의욕이 샘솟는 표정으로 유니트에 올라탔다. 그리 고 가동시키려고 할 때,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우야, 전화 왔다." '응? 전화? 이 새벽에 누구지?' 현우가 고개를 내밀자 어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전화기 를 건네주며 말했다. "경찰이라고 하는구나." "경찰요?" 전화기를 받아 들자 툭 던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다." "네? 나라니요? 가만....... 어? 혹시 사범님?" * * * "괜찮으냐?" 이명룡이 히죽거리며 물었다. 현우는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관절을 문질러 대며 입을 댓 발이나 내밀었다. "이게 괜찮은 것처럼 보이세요?" "후후후, 그러니까 말했잖아. 평소에 단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게을리 하지 않았거든요? 오늘도 방금 전까지 운동하고 있었거든요?" "어쨋든 내가 보기에는 아직 멀었어. 더 정진하도록 해라." "실컷 두들겨 패고 나서 잘도 그런 말이 나오시네요." 현우는 이명룡을 노려보며 툴툴거렸다. 방금 전, 현우는 다짜고짜 체육관으로 불러낸 이명룡과 대 련을 마치고 근처 카페에 들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련이 라는 이름의 폭행이나 다름없었다. 간만에 만난 이명룡은 정말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댔고, 현 우는 정말 오랜만에 지옥을 몇 번이나 왕복해야 했다. 그러나 사실 툴툴거리는 것처럼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 다. 아니, 오히려 상쾌한 기분까지 들었다. 맞는 데 쾌감을 느끼는 괴팍한 취향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명룡과의 대련으로 그동안 혼자 운동하며 답답해하던 부분이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만에 이명룡을 만난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이었다. 어쨋든 현우가 툴툴대자 이명룡은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냐?" "네, 저야 뭐......." "문자 받았다. 이사햇다고? 한 번 가 본다 했는데 요즘 정 신이 없어서 깜빡했다." 사실 현우가 이명룡을 만난 것은 거의 세 달 만이다. 체육관에 나가지 않게 된 이후로 딱 한 번, 밖에서 잠깐 만 난 게 전부였다. 이번에 이사할 때도 이명룡에게 문자를 보 냈지만 축하한다는 답장밖에 오지 않았다. "괜찮아요.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바쁜 일은 끝나신 거에요?" "급하게 알아볼 게 있어서 찾아왔다." "저한테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되나......." 이명룡이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볼을 긁적거렸다. 그렇게 잠시, 이명룡은 쑥스럽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입 을 열었다. "실은...... 나도 몇 달 전부터 뉴 월드라는 게임을 하고 있 는데 말이야." "뉴 월드? 사범님이요? 정말요?" 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이명룡이 헛기침을 하며 변명하든 중얼거렷다. "아, 그게 말이다. 그냥 취미가 아니라 수사상 필요해서 시작한 거야." "수사상 필요하다니요?" 현우의 물음에 이명룡이 한숨을 불어 내며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 특수범죄대책과에 배속되어 본의 아니게 뉴 월드 를 시작하게 됐다는 사정. 그리고 고생 끝에 현재는 몇몇 수 배자 조직에 잠입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았다. 물론 특수범죄대책과에 배속된 이유가 현우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적당한 구실을 붙여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행이랄까? 그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 나서인지, 아니면 이명룡이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 인 사건이라서 그런지, 현우는 이명룡이 뉴 월드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특별히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게임 속에서 수배자를 탖는다니, 생각도 못 햇어요." "나도 임무를 받기 전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뭐, 과정이야 어쨋든 뉴 월드를 시작하셨으면 귀띔이라 도 주지 그러셨어요?" "......이건 수배자를 찾기 위한 잠입 수사야. 보안이 생명 이다." 이건 사실이었다. 경찰청 수사관이 뉴 월드에서 수배자를 추적한다. 혹시라도 이런 말이 새 나가면 수배자들은 경계심을 갖게 되어 정보 수집이 더욱 어려워지게 되리라.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의 대부분은 현우가 이명룡의 '좌천'사실을 알게 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덧붙여 처음에 는 제1기동대장이었던 자신이 밀폐된 사무실에서 뉴 월드 따 위나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쪽팔린다는 이유도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일부러 찾아와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뭐 에요?" "아까도 말했듯이 알아볼 게 있어서 찾아온 거다. 너 혹시 게임 하면서 돼지 같은 드워프 상인하고 같이 다닌 적 있지 않냐? "돼지 같은 드워프 상인? 혹시 북실이 말하는 거예요?" "북실이? 그 녀석 이름이 북실이냐?" "네. 저와 함께 다녔던 돼지라면 북실이밖에 없어요." "혹시 그 녀석 연락처 아냐?" "어라? 그러고 보니 그 녀석 연락처는 아직 모르네요." 현우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북실이와 함께 다닌 지 몇 달이 지났다. 그러나 항상 뉴 월드에 접속하면서 볼 수 있었기에 딱히 연락처를 주고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럼 혹시 연락할 방법이 있냐?" "네. 그 녀석하고는 항상 같이 다녀요. 어제 좀 문제가 생 겨서 잠시 헤어졌지만." 현재 북실이는 아크가 브레드와 레디안을 따돌리고 도망 칠 때,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돌고래에 실려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다. 당시 아크가 돌고래에게 내린 명령은 브리스타니아 로 가라는 것뿐, 위치까지는 지정해 주지 않았기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헤어졌다고?" "하지만 우편으로 연락하면 금세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 요. 그런데 사범님이 왜 북실이를.......? 핫, 서, 설마 북실이 가 수배자인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니야." 이명룡이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면 좀 긴데, 실은 얼마 전부터 나는 수배자 조직에 들어가 잠입 수사를 하고 잇는 중이다. 하지 만 놈들이 워낙 의심이 많아서 아직 이렇다 할 정보를 찾지 못하는 있는 상황이야. 그런데 얼마 전, 놈들이 스탄달에서 뭔가 수상한 짓을 하는 장면을 그 북실이라는 녀석이 촬영한 모양이다." "수상한 짓을 하던 장면요?" "의심 가는 건 몇 가지 있지만 아직 정확한 부분까지는 몰 라. 어쨋든 놈들이 길길이 날뛰며 쫒아다니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내용이 촬영된 모양이야." "놈들이 북실이를 쫒아다녔다고요?" 순간 현우의 머릿속이 번뜩거리며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북실이를 쫒아온 놈들이면...... 혹시 스탄달에 서 쫒아오던 놈들이......?" "그래, 그놈들이 수배자다. 경찰청이 보증하는 훌륭한 흉 악범들이지." 이명룡의 대답에 현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을 쫒던 도적단이 이명룡이 잠입 수사를 벌이고 있는 조직이었다니...... 어쩐지, 제페트라는 녀석이 현우에게 당했는데도 먼저 북 실이를 찾던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런 배경이 있을 줄이야. 결국 북실이가 우연히 촬영하게 된 뭔가가 수사의 증거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때 이명룡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북실이라는 녀석에서 뭐 들은 것 없냐?" "아니요, 북실이는 자기가 왜 쫒기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 그렇다면 자기가 촬영한 게 뭔지도 모르거나, 마법 영사기를 들고 있었지만 촬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군. 일단 그걸 알아보는 게 급선무야. 어쨋든 확실하게 녀석을 만날 수는 있다는 거지?" "네, 접속하자마자 편지를 보낼게요. 늦어도 며칠이면 만 날 수 있을 거에요." 사실 북실이를 빨리 찾지 못하면 현우가 더 큰 일이다. 북실이의 가방에 들어 잇는 아이템도 그렇고, 동영상 촬영 문제도 그렇다. 물론 북실이가 가지고 잇는 아이템은 모두 계약에 걸려 있어 아크의 허락 없이는 팔거나 버리지 못하기 는 하지만, 역시 아이템을 가지고 잇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찜찜한 일이었다. 어쨋든 현우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이명룡은 한숨 돌린 표 정을 지었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북실이와 연락이 된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안 심할 수는 없어." "네?" "북실이가 촬영한 영상이 빈껍데기라도, 놈들 입장에서는 무슨수를 써서라도 없애 버려야 하는 위험한 물건이다. 바 다에서 정기선을 공격하려던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 뒤로 놈 들은 밀항선을 타고 브리스타니아까지 찾아간 상황이다. 너 희가 브리스타니아로 가는 배를 타고 있었으니까." "......그렇겠죠." "지금 네가 잇는 곳은 어디냐?" "사정이 있어서 저는 브리스타니아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 어요. 지금은 브리스타니아의 남동부 해안인데, 아직 마을 을 찾지 못해서 정확한 위치를 몰라요. 아마 북실이도 제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을 것 같은데......" "차라리 잘됬다."(본문에선 잘됐다.) 이명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놈들은 너희가 브리스타니아 항구 근처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너희가 항구로 갔으면 꼬리가 밟혓을지도 몰 라. 하지만 항구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면 한동안 놈들의 추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사이에 너는 일단 북실이에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합류해서 동영상 파일을 넘겨받아. 나 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놈들을 다른 지역으로 유인해 볼 테 니까. 너와 중간 중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놈들은 유인하면 절대 못 찾을 거다." "알았어요. 그런데......." 현우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렷다. 수배자와 연관된 일이다. 게임에서 유저나 죽이는 그런 범 죄자가 아니라, 현실에서 갖은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과 연관 된 일인 것이다. 경찰철 제1기동대장 이명룡의 제자로서, 또 대한민국의 국 민으로서 수사에 협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나 혼자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어.' 하지만 지금 현우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만약 문제가 생겨 불편한 어머니가 해코지라도 당한다면 현우는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걱정 마라, 증거 영상만 받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든 결코 너나 북실이라는 녀석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신경 쓰마. 게 다가 놈들은 수배자라 마음 놓고 나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 니야. 그래도 만약, 만약의 만약이지만...... 놈들이 너에게 손톱만큼의 상처라도 내려고 한다면...... 경찰을 때려치우는 한이 있어도 내가 모두 막아 주마." 이명룡은 한눈에 현우의 불안을 꿰뚫어 보았다. 경찰청에 서 수없이 보아 왓던 많은 피해자들, 그들이 보복을 두려워 하는 표정과 지금 현우의 표정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네." 현우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의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명룡의 말은 믿을 수 있었다. 현우가 빙긋 웃어 보이자 이명룡은 대견하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 봐야겠다. 9시쯤에 놈들과 만나서 항구 주 변을 수색하기로 했으니까. 아, 그런데 네 아이디가 뭐냐? 전에 배에서 만았을때 물어본다는 걸 깜빡해서......" "네? 전에 만나다니요?" '......아차!' 뒤늦게 이명룡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이다. "저는 배에 탄 적이 두 번밖에 없는데 전에 배에서 만났다 면...... 맞아, 그러고 보니 날 쫒아오던 녀석들 중에 전에 정 기선에서 만났던 녀석도 보였는데....... 앗, 그럼 그때 갑판 에서 만났던 상인이?" "....... 그게 나야." 이명룡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현우 가 수상한 눈빛으로 이명룡을 위아래로 훑으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오늘 대련이 평소와 다르다 싶더니...... 혹시?" "혹시라니? 무, 무슨 말이냐?" "어쩐지 오늘 대련이 무지하게 빡세다 싶더니, 분명 그때 의 복수를 했던 거죠?" 현우는 이명룡이 그때의 그 상인이라는 말을 듣자 느낌이 팍 왔다. 그때 그 상인은 현우에게 덤비다가 아크의 환영단에게 밟 혀 죽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수배자들과 함께 정기선을 공격하던 해적선에 타 고 있었다면 이번에도 역시 현우에게 죽은 셈이다. 뜬금없는 빡센 대련은 그에 대한 복수이리라. 음모가 들통 나자 이명룡이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복수라니? 따지고 보면 네가 먼저 나를 죽인 거 아냐?" "그건 사범님이 쓸데없이 정체를 숨기고 뒤치기를 하니까 그렇죠. 게다가 죽인 건 내가 아니거든요. 바란족이 죽인 거 거든요?" 할 말이 없어진 이명룡이 머리를 벅벅 긁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파르페 먹을래?" "스페셜 세트 먹을래요." ".....잔인한 놈. 경찰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저는 지금 스승님에 대한 불신과 억울함에 사무쳐 있다 고요." 그렇게 사제간의 깊은 원한은 스페셜 세트 하나로 청산되 었다. 카페를 나와 이명룡과 헤어지는 현우의 눈앞에 정보창 이 올라왔다. -범죄 조직의 비밀이 담긴 동영상을 확보하라. 《보상 : 파르페 스페셜 세트 3인분》 ACT9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 3단계 숙성 과정이 진행 중입니다. '네크로맨서의 내단' 연성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남은 것 은 각각의 재료들이 가진 효능을 100% 이끌어 내기 위해 충분한 시간 을 들여 숙성시키는 것 뿐입니다. 냄비를 완전히 밀봉시키고 직사광선 을 피해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십시오. <취급 주의! 흔들거나 충격을 가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 못함.> *숙성 과정 남은 시간 : 81시간 37분 "휴, 다행이 별문제는 생기지 않았구나." 아크는 정보창을 확인하며 안도의 함숨을 불어 낸다. '괜한 욕심을 부려서...... 한때는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정기선에서 내단 연성을 시작한 게 화근이었다. 물론 정기선이 계획대로 항구에 도착했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도중에 해적의 습격을 받아 버렸다. 그뿐이면 말도 안 한다. 브레드라는 놈이 나타나 다짜고짜 원한을 갚겠다고 하질 않나. 정말 내단을 만들 때마다 무슨 액운이라도 꼈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수많은 어려움 속에 서도 아크는 꿋꿋이 냄비를 지켜 냈다. 해적선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브레드와 대결할 때도, 돌 고래를 타고 이동할 때도 죽어라 냄비를 흔들어 댄 덕에1단 계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브리스타니아의 해변에 도착해 2단계 결정화 과정까지 끝냈다. 그렇게 2단 계까지 끝마치자 숙성 과정이 진행되었다. 숙성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81시간. 때문에 아크는 일단 주변의 모래밭에 냄비를 묻어 놨던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81시간, 숙성 과정이 가장 중요해, 어 쩔 수 없이 일단 모래사장에 묻어 놓기는 했지만 81`시간 동 안 이런 곳에 방치해 둘수는 없지. 만의 하나라도 다른 유저 나 몬스터에게 발각되면 어떻게 될지 몰라.' "주인, 찾았어!" 그때 해안가 주변에 펼쳐진 숲에서 라카드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주변을 경계하던 아크가 움찔하자 냄비가 살짝 흔들렸다. 동시에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숙성 과정 중에 냄비를 흔들면 위험합니다! <완성도가 떨어지면 완성물의 등급이 하락합니다.> "헉, 뭐, 뭐야, 인마? 너 때문에 완성도가 내려갈 뻔했잖아!" 아크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버럭 소리쳤다. 내단이 완성되기 전에는 완성품의 등급을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내단 연성 과정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 등급이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러워진 아크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그러자 라카드가 야단맞은 아이처럼 임술을 실룩거렸다. "내, 내가 뭘? 괜히 소리치고 난리야." "어쨌든 조심하란 말이야. 얼마나 힘들게 모은 재료인지 알잖아." "........알았어." "그보다 마을을 발견했다고?" "......이숲 너머로 1시간 정도 가면 돼." "잘했어. 일단 네가 앞장서. 지금 몬스터라도 만나면 큰 일이니까." 아크는 얀손으로 조심스럽게 냄비를 잡고 일어났다. 내단이 숙성 과정에 들어가 버린탓에 약간만 움직여도 완 성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었다. 혹시라도 마을로 가다가 몬스터라도 만나면 문제가 심각하 다. 때문에 아크는 라카드를 '감시 위성 모드'로 전환시켜 놓 고 마을을 찾아갔다. 다행히 이 주면의 몬스터는 레벨이 그리 높지 않아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 먼저 덤비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아크에게는 레벨 10짜리 늑대조차도 두려운 존재다. 라카드는 1시간 거리라고 했지만, 주변의 몬스터를 피해 이리저리 돌아가야 하는 탓에 30분이나 소모되었다. '해적을 만났을 때, 그나마 혼합 과정이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숙성 과정이었다면......' 생각하기도 겁난다. 어쨌든 1시간 반 정도 숲을 가로지르자 곧 마을이 나타났 다. 라카드가 발견한 곳은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운 곳이었다. '여기가 브리스타니아의 도시인가?' 마을을 발견하자 아크는 새삼 다른 왕국에 들어왔다는 게 실감났다. 현재 아크가 도착한 왕국은 브리스타니아. 슈덴베르크의 북부에 위치한 왕궁이었다. 지리적으로 북부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평지가 많은 슈덴 베르크와 달리 브리스타니아에는 산악 지대가 많았다. 또한 산도 대부분이 거친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뭐, 덕분에 경치는 좋았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 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으리라. 때문에 브리스타니아는 자 연스럽게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마법학이 발달했다. 그게 마법 왕국이라고 불리는 이유였다. 당연히 이곳에서 시작하는 유저들은 전사보다 마법사를 많이 선택했다. 마법 학이 발달해 마법사를 키우기 수월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역사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만큼, 브리스타 니아의 도시들은 다른 왕국에 비해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주요 건물들은 마법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고, 외관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많았다. 마을의 상점 대부분이 마법 도구를 취급하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었다. 심지어 무기 상점에서도 마법서나 주문서를 팔 정도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마을 입구의 경비병도 마법사였다. "됐어, 이제 너는 성으로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어." 마을을 확인한 아크는 일단 라카드를 뱀파이어 영지로 돌 려 보냈다. 친밀도가 높지 않은 도시에서는 간혹 소환수를 적대시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외국에 나왔으니 뭐든 조심하는 편이 좋지.' 아크가 냄비를 들고 도시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문득 옆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크가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도시 입구에서 약간 떨어져 기묘한 빛에 휩싸여 있는 석상이었다. 슈덴베르크였다면 병참이 있어야 할 장소. 아마도 브리스 타니아에서는 그 석상이 병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모양 이다. 어쨌든 방금 전의 목소리는 그 석상 주변에 모여 있는 유저들의 것이었다. 일단 유저들을 확인한 아크는 약간 당혹 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솰라솰라?" "솰라솰라, 솰라솰라!" 한 사람많이 아니었다. 그들이 떠든 소리가 모두 이상하게 들려오는것이다. "대체 뭐라고 떠드는거야? 솰라솰라? 무슨 유행어인가?" 그러나 지금은 그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아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에게 다 가가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이 도시 이름이 뭡니까?" "솰라솰라? 솰라솰라?" 경비병도 유저들처럼 외계어로 대답하는 게 아닌가? '뭐야? NPC까지 이상한 말을 하잖아? 어떻게 된 거지?' 아크가 잠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리고 있을 때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경비병들이 이내 뭔가를 알았 다는 듯 마릉 안쪽을 가리켰다. 경비병이 가리킨 곳은 마을 중심에 서 있는 마법 학회의 탑이었다. '뭐지? 저기로 가 보라는 건가?' 아크가 손짓으로 마법학회으 탑으로 가는 제스처를 취하 자 경비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마법 학회의 탑으로 향했다. 도시를 빽빽이 채우고 있는 기하학적인 형상의 건물들. 슈 덴베르크의 도시에서는 중세 시대에 들어왔다는 느낌이라 면, 이곳은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라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들도 괴상했지만 마법사가 남아도는 곳이라 간판들도 각종 마법 효과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그러나 간판에 쓰인 글자마저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어 읽 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NPC들도 외계 어로 떠들어 대니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슨 저주 같은 건가? 내가 저주에 걸린거야. 저사람들 이 걸린거야?' 아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시를 걷고 있을 때였 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맞은편에서 뛰어나오는 소년과 부딪 쳐 버렸다. 냄비를 들고 조심조심 걷고 있던 아크가 기겁하 며 뒤로 물러났다. '헉, 뭐, 뭐야? 냄비, 냄비!"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냄비를 확인했다. 다행히 소년의 체 구가 너무 왜소해서 아크가 받은 충격은 거의 없었다. '휴, 다행이다. 대체뭐야, 이 녀석은?' 잠깐 사이에 수명이 10년은 단축되어 버린 아크가 발끈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소년의 모습을 확인한 아크는 목까지 튀어 올라오던 욕설을 삼켰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소년이 고개를 숙이며 뭐라고 떠들어 댔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표정을 보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 는 것 같았다. 문제는 소년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였 다.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은 주변사람들과 달리 남루 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옷 사이로 드러난 몸은 왜소하기 짝이 없었다. 소년은 연방 고개를 조아리고는 황급히 바닥에 떨어져 있 는 물건들을 주워 담았다. 싸구려 주문서 따위의 물건들이다. '어째 소년 가장 냄새가 팍팍 풍기는데?' 소년의 모습을 확인한 아크는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 적였다. 잘못한 건 갑자기 튀어나온 소년이다. 그러나 막상 어렵게 사는 듯한 소년의 모습을 확인하니 왠지 자책감이 느 껴졌다. "괜찮으냐?" 무안해진 아크가 함께 물건을 주워 주며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눈빛 을 빛내며 너덜너덜안 책을 집어들고 말했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솰라솰라!" '뭐야? 무슨 말이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켜본 뒤에야 아크는 소년이 무 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있었다. '나보고 이 책을 사라는 건가?' 아크는 소년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았다. 무슨 용도에 사용하는지도 알 수 없는 너덜너덜한 책. '뭐, 좀 미안하기도 하니까 하나 사 줄까?' 아크는 딱 보기에도 힘들게 사는 듯한 소년이 안돼 보여 책 하나 정도는 사 줄 생각으로 가격을 물었다. 그러자 소년 이 활짝 웃으며 양손을 두 번 펼쳐 보였다. '20? 그럼 20실버라는 건가? 뭐, 그 정도면.....' 1쿠퍼라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아크지만, 소년 가장처럼 보이는 아이를 위해 그정도 돈을 쓸 정도는 되었다. 한때 아 크 역시 불우한 소년 가장이었지 않은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처럼 보이지만.....' 아크는 빙긋 웃으며 20실버를 내밀었다. 그러자 소년이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20실버가 아니라 20쿠퍼였던 것ㄴ가? 하긴 저런 너덜 너덜한 책이 20실버라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어.' 아크는 혹시나 가격을 잘못 생각했나 싶어 20쿠퍼를 내밀 었다. 그러자 소년이 한숨을 불어내며 주머니에서 골드를 꺼내 보여주는 게 아닌가? '뭐야? 골드? 헉, 그럼 20골드를 말하는 거였어?' 아크는 어이없는 눈으로 소년을 발보았다. 너덜너덜한 책 한 권에20골드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 리인가? 아무리 아크가 소년에게 동정심을 느낀다지만, 그 런 이유로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책 한 권에20 골드나 주고 살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 녀석, 나를 호구로 아는 거야? 그따위 책에 20골드라니? 장난하냐? 불쌍해 보여서 좀 도와주려고 했더니 아예 사기를 치려고들어?' "필요 없어!" 발끈한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소년은 풀 죽은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 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터덜터덜 골목으로 사라졌다. "쳇, 뭐야? 저렇게 나오니까 괜히 찔리잖아."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런 녀석은 좀 혼나 봐야 정신 차려. 친절하게 대 해 줬더니 만만하게 보고 그따위 책을 20골드나 받으려고 하 다니. 칼만 안 들었지 강도야, 강도, 그보다 빨리 마법 학회 나 가자." 아크는 찜찜함을 털어 내고 마법 학회으 탑에 들어갔다. 그러자 한 마법삭 빙긋 웃으며 다가왔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저......그러니까......." 아크가 떠듬거리며 말하자 마법사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슈덴베르크에서 오신 모험자이시군요!" "어? 말을 할 줄 아십니까?" "당연하지요. 어떻게 말도 못 하고 마법삭 됐겠습니까?" 하지만 방금 전에는 괴상한....." 마법사는 대강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외국 여행이 처음이시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처음 외국 여행을 하는 이방인들은 종종 손님처럼 당혹 스러워하기도 하죠. 자국에서는 외국어를 들어 볼 기회가 없 었을 테니까요." "외국어요?" "네, 방금 전에 제가 말한 언어는 브리스타니어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아크가 다른왕국으로 나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 다. 그러나 슈덴베르크에서도 브리스타니아나, 시르바나 출 신의 유저나 NPC를 만나 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때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슈덴베르크에서 브리스타니아 출신을 만났을 때 는 말이 통했는데......" "그야 브리스타니아 출신이라도 슈덴베르크에서는 슈덴 베르크어를 쓰니까요." 마법사가 빙긋 웃으며 설명했다. 그제야 아크는 대륙의 삼국이 원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다른 왕국으로 갈 때는 먼저 관련 외국어를 습득해야 한다. 슈덴베르크로 넘어온 유저나 NPC들은 모두 슈덴베르크어 를 습득했으니, 자동적으로 그 지역에서는 통역이 되어 상대 에게 전달된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지 못하고 넘어가면 아크가 경험한 것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들리게된다. 사실 이런 시스템은 뉴 월드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옛날 게임으로 예를 든다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WOW나 아이온의 경우, 종족이 나뉘어 있는데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단지 뉴 월드는 상대방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뿐이었다. 여담이지만 뉴 월드는 외국인들도 많이 접속한다. 그러나 유저들이 언어 소통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각 지역에 맞춰 번역되기 때문이었다. 즉,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슈덴베르크어만 익히면 모든 언어가 그에 맞춰 필터링된다. "그리고 손님은 잘 모르시는 모양이지만. 슈덴베르크에서 언어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면 외국어 몇 가지 정도는 습득 하고 있을 겁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반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외국어를 익히는 경우가 있더군 요. 특히 상인들은 배우지 않아도 대륙 삼국의 언어를 유창 하게 구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혹시 그게......" 아크는 그제야 캐릭터 정보창 한쪽에 보이던 '언어'창을 기억해 냈다. 언어정보창 *국가 [슈덴베르크] : 이해도 100% *이종족 [수인족] : 이해도 100% [엘프] : 이해도 100% [드워프] : 이해도 100% [호비트] : 이해도 100% [오크] : 이해도 100% *기타 [고대어] : 이해도 100% [영혼] : 이해도 100% [마족] : 이해도 100% *국가 언어는 해당 지역의 모든 NPC에게 적용 됩니다. *특성이 분류되어 있지 않은 NPC와의 의사소통은 이해도 100%로 적 용됩니다. 또한 정신 교감으로 소통하는 경우, 언어와는 무관합니다. *몬스터 언어는 해당 국가의 관련되어 이해도가 결정됩니다(별도의 언 어를 익혀야 알아들을 수 있는 몬스터 언어도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습득되는 언어도 있습니다. '아아 이게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표시하는 정보 창이었구나.' 본래 이런 시스템은 국경 관문이나, 항구를 통해 외국에 들어오면 관련 NPC를 통해 자연히 알게 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돌고래를 타고 들어온 바람에 그런 지식을 배우지 못 했다. "하지만 스탄달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 "저도 들었습니다. 스탄달에서도 슈덴베르크어를 사용한 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다른 왕국보다는 슈덴 베르크에 가까워서 그런 모양입니다." ........잘도 갖다 붙인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희가 각국의 언어 사전을 팔고 있습 니다." 마법사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서고로 안내했다. 서고로 안내받은 아크는 입을 쩍 벌렸다. 서고에서는 엄청난 양의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 가 운데 외국어에 관련된 책만 해도 수백 권이 넘었다. 대륙 삼 국의 언어 사전은 물론, 고대어와.... 심지어 각 몬스터 종 족의 언어 사전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마법사가 파란빛에 휩싸여 있는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브리스타니아 언어 사전의 종류가 많지만 역시 최고를 뽑는다면 이 사전만 한 게 없죠. 이건 마법 학회가 정신 계열 마법을 응용해 만든 사전입니다. 이 사전을 사용하시면 정신 계열 마법이 작용해서 사용 즉시 수십 년 동안 브리스타니아 어를 공부한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해 마스터하게 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하다, 기능이 아니라 가격이 정말 대단했다. 마법을 사용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고작 책 한 권에 120골드나 했다. 물론 현실에서 학원을 다니며 외국어 하나를 마스터하려 면 120만 원으로는 턱도없다. 그러나 슈덴베르크에서는 아 무 짝에도 쓸모없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120골드나 내야 한 다니? 아크가 가벼운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며 물었다. "조, 조금 싼 사전은 없습니까?" "싼 사전 말입니까?" 외판원처럼 열심히 설명하던 마법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책꽂이를 뒤적이더니 보기에도 허접스러운 낡은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럼 이 사전은 어떠십니까? 평번함 사전이라 초급 과정 에서부터 차근차근 익혀 가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이 사전 으로 공부해서 브리스타니아어를 마스터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겠지만. 뭐, 열심히 공부하면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겠죠." 마법사가 꽤나 성의 없이 설명했지만 아크는 안도의 한숨 을 불어 냈다. 다행이 그냥 평범한 사전은 20골드밖에 하지 않았다. 솔직히 20골드도 아깝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당분간 브리스타니아에 있으려면 언어를 배워야 한다. NPC와 말도 통하지 않고서야 제대로 게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20골드입니다." "깎아 주십시오." "네?" 아크가 천역덕스럽게 말하자 마법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크가 '마법 학회으 정회원 자격증'을 내 밀자 화들짝 놀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 이건 마법 학회 정회원 자격증? 게다가 이름이 아 크? 당신이 아크 님이십니까?" "네? 저를 아십니까?" "물론이죠. 마법 학회 소속이라면 아크 님을 모르는 사람 이 없습니다. 요즘 마법학회가 내놓은 신상품은 모두 아크 님이 되찾아 주신 마가로프 선배의 연구 자료 덕분입니다." "신상품이라니요?" "어라? 모르십니까? 요즘 난리도 아닌데?" 마법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벽에 붙은 전단 지를 가리켰다. 마법 학회의 신상품 안내 <<무기강화제>> 그동안 무기가 약해서 우울하셨습니까? 실력은 나날이 좋아지는데 마땅한 무기가 없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셨습니까?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법 학회의 오랜 연구 끝에 야심차게 내놓은 특수 무기 강화제 저렴한 가격으로 당신의 무기를 더욱 강하 게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성능과 가격은 직원에게 문의바랍니다. <<영자 이동 서비스>> 먼 길, 힘들게 걸어다니느라 힘드셨죠? 멀리 있는 친구가 몸이 아픈데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으신다고요? 다른 곳으로 가다가 몬스터에게 당하셨다고요? 이제 걱정하실 필요 없 습니다. 마법탑과 마법탑 사이를 단숨에 오갈 수 있는 영자 이동 서비 스가 상용화 됐습니다. *아직은 일부 대도시 지역에만 한정됩니다. 마가로프 퀘스트를 완료했을 때, 샤넨이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를 마법학회가 발전하게 될 거라는 게 이것이었던 모양 이다. 마법 학회에서는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를 제대로 우려 먹은 듯 전단지에는 <<무기강화제>>와<<영자 이동 서비서>> 이외에도 신상품 정보가 빼곡했다. 그러나 가격을 물어본 아 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그나마 저렴하다는 <<영자 이동 서비스>>만 해도 이용 가 격이 무려 50 골드. <<무기 강화제>> 같은 경우는 무기의 종 류나 성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00골드 이상이었다. 도시 간에 이동을 많이 하는 상인이 <<영자 이동 서비스>> 를 사용하면 이득이 남지 않고, <<무기 강화제>>도 그냥 달 인급 대장장이에게 강화를 맡기는 편이 적게 들 것 같았다. "우아아아악!"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갑자기 탑 상층부로 빛이 몰려들더니 한 유저가 바닥에 처 박혔다. "크악, 솰라솰라, 솰라솰라, 솰라솰라......우웨에에엑!" 유저는 창백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다가 바닥에 오바이트 를 해 댔다.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아크도 예전에 영자 이동을 해 봐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영자 이동을 할 때의 그 끔찍한 느낌. 아마 저 유저도 그때 아크와 같은 상태이리라. 상용화가 됐다고 하지만 영자 이동은 아직 '안락한 여행'을 보장해 주 는 이동 수단은 아닌 모양이다. "뭐, 아직 개선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만....." 마법사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혹시 다른 용무는 없으십니까?" "개인 창고와 전이 우편함을 이용하고 싶습니다." "다른 필요한 건?" "아, 이 도시의 이름이 뭡니까?" "시엘입니다. 브리스타니아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죠." "감사합니다." 마법학회으 정회원에게는 마법탑의 창고를 무료로 임대 할 자격이 생긴다. 아크는 먼저 개인 창고로 들어가 냄비를 잘 챙겨 두었다. 아크가 마을을 찾으려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 다. 조금만 흔들려도 완성도에 영향을 주는 냄비를 들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겠는가? "휴,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이어 아크는 북실이에게 시엘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편지 를 적었다. 우편을 많이 사용하는 상인인 북실이도 당연히 전이 우편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이 우편함은 일반 우편함과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다. 북실이가 브리스타니아의 마을에 도착했다면 마법 학회 를 통해 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단, 이번 일에 수배자가 얽혀 있다는 얘기는 적지 않았따. 심장이 콩알만 한 북실이에게 수배자 운운하면 겁을 집어먹 고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자, 일단 할 일은 모두 끝났군." 아크는 편지를 전이 우편함으로 보내고 마법 학회를 나왔 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유저나 NPC들은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럼 이제 어디 사용해 볼까?" 아크는 마법사에게 구입한 사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막 사용하려다가 뭔가를 발견하고 우뚝 멈췄다. '어라? 가만? 이 사전은.....?' 잠시 사전을 바라보던 아크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 았다. 방금 전 골목에서 만난 소년이 팔던 너덜너덜한 책. 사전을 보니 그 책에 적혀 있던 글자와 똑같은 게 아닌가? '그럼 그 소년이 팔던 것도 이 사전이었던 거야?' 결국 소년이 불렀던 20골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라 정가였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소년을 사기꾼처럼 몰아붙 였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호아급히 몸을 돌려 마법 학회 로 뛰어 들어갔다. "잠깐만요. 죄송하지만 이 사전 환불할 수 있을까여?" "네? 뭐, 마법 학회 정회원이시니 그 정도는 해 드릴 수 있지만......언어를 모르면 곤란하시지 않겠습니까?" "부탁드리겠습니다." 아크는 다짜고짜 사전을 환불하고 골목으로 뛰어갔다. '저기 있다!" 그렇게 몇 개의 골목을 들어가자 아까 그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년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골목에 좌판을 펼쳐 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치고 있었다. "저기....." 아크가 다가가자 소년이 움찔하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고 개를 숙여 댔다. 아크가 방금 전의 일로 앙심을 품고 찾아왔 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더욱 무안해진 아크는 머리 를 긁적이면 중얼거렸다. "아니, 그게아니라....아까는 형이 좀 오해한 것 같아서 사과하려고 왔어. 그 대신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좀 전의 그 사전, 내가 사면 안 될까?" "솰라솰라? 솰라솰라?"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새삼스럽지만 말이 안 통한다는 건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결국 아크는 20골드를 건네주고 좌판에 놓인 사전을 집어 든 뒤에야 소년은 제대로 상황을 이해한 듯 활짝 웃었다. 사실 좀 다른 상황이었지만, 아크에게도 억울하게 의심받 았던 기억이 있었다. 예전에 한창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게 의 매상이 몇만 원 빈다는 이유로 아크가 의심을 받았던 것 이다. 다행히 며칠 뒤에 사장이 잘못 계산한 것으로 밝혀져 혐의는 풀렸지만, 당시의 억울함은 아직도 상처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때의 사장과 같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제대로 사정도 모르면서 어렵게 사는 소년을 사기꾼 취급했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게 느 껴졌다. 때문에 정회원 자격으로 15%나 싸게 구입한 사전을 환불하고 소년에게 사전을 구입한 것이다. 다행히 소년은 아크가 사기꾼 취급한 일은 마음에 두지 않 는 태도였다. 오히려 일부러 찾아와 사전을 사 주는 아크에 게 고맙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귀 엽기도 하고, 또 어른스릅게도 느껴졌다. '이 녀석 의외로 귀여운데?' 아크는 빙긋 웃으며 좌판에 놓인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딱히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만, 사 두면 쓸모가 있 을 듯한 주문서를 몇 장 구입해 주었다. 비록 아크가 틈만 나면 북실이나 시드를 갈취하지만, 그것 도 상대를 봐 가며 갈취하는 것이다. 물론 같은 상황이라도 예전 같으면 모른 척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내 코가 석 자 인데 다른 사람의 사정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전셋집도 구하고, 근래 들어 경매 사이트에 올려놓 았던 물건도 기대 이상의 가격을 받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 기니 마음의 여유도 함께 생겼다. '역시 돈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거야.' 내침김에 아크는 소년이 부르는 가격보다 10% 정도 붙여 서 계산해 주었다. 주문서 몇 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비 싼 주문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정가대로만 받았다. 덕분에 아크는 조금 무안해졌지만 그런 소년의 정직한 태도가 싫지 않았다. "솰라솰라, 솰라솰라!" "음, 열심히 살아라." 연방 고개를 숙이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골목을 빠져나오는 아크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돈을 주고 물건을 샀을 뿐이니 딱히 선행을 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소년과 오해를 풀고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자, 찜찜한 기분도 없어졌으니 이제 언어를 배워 볼까?" 골목을 빠져나온 아크가 사전을 펼쳐 들자 정보창이 떠올 랐다. 브리스나티아 언어 사전으로 새로운 언어를 배웠습니다. [브리스타니아] 이해도 30% : 브리스나티아 언어에 대한 지식이 생겼 습니다. 그러나 이해도가 100%가 되기 전에는 상대방의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방법은 무조건 대화를 많이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해당 국가 출신의 플레이어나 NPC와 대화를 많이 할수록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언어를 배우자 잡음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어 느 정도 파악되었다. "자아, 쌉니다. 솰라솰라, 싸요! 각종 마법 솰라솰라 저렴 하게 솰라솰라." "저희 상점에는 솰라솰라 새로운 상품 솰라솰라 입하했습 니다!" 그러나 마치 테이프가 씹힌 것 처럼 중간 중간 외계어가 섞 여 나왔다. "숙련도가 낮으면 의사소통이 불편하다는 게 이런 뜻이었 나 보구나." 아마도 아크가 말하는 내용 역시 NPC들에게는 그처럼 들 리리라. 역시 싼게 비지떡이다. "그래도 차라리 이게 낫지." 아무리 불편해도 언어하나 배우는 데 120골드나 내고 싶 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아예 의사소통이 안 되면 모를까, 듣다 보면 무슨말인지는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여기서 내단 완성과 북실이의 연락을 기다려야 해. 그동안 마을 NPC들과 대화를 하며 지내다 보면 브리스 타니아 언어는 어느 정도 익숙해지겠지. 그나저나 그동안 뭘 하면서 지내야 하나? 이 주변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레벨이 낮던데......." 아크가 중얼거리며 거리를 걷자 NPC들이 몰려들었다. "이보게, 솰라솰라. 자네 꽤나 경험이 많은 여행자. 솰라 솰라. 내 고민, 솰라솰라. 들어 주지 않겠나?" "아아, 미치겠군, 솰라솰라, 어떻게하지, 솰라솰라, 누 군가 해결해 줄 사람이 없나?" "자네 혹시, 솰라솰라, 일자리가 필요하지 않나?" 모두 퀘스트를 주는 NPC들이었다. 아크가 도시에 들어올 때는 언어를 배우지 않아 퀘스트가 발동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쟀든 아크가 도시로 오면서 확인한 몬스터들은 대략 레 벨 150~200대였다. 그렇다면 이 도시는 레벨 100~150대 의 유저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말이다. 슈덴베르크와 비교하면 나가란 외곽의 도시 수준. 그런 곳 에 레벨 366인 아크가 어슬렁대니 각종 퀘스트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게다가 브리스타니아는 처음 와 본 곳이니 한 번도 안 해 본 퀘스트가 사방에 넘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모든 퀘스트를 거절했다. 레벨 366에 레벨 200 아래의 마을 퀘스트를 해 봐야 돈도 경험치도 안 된다. 물론 저레벨 마을에서도 가끔 쓸 만한 퀘스트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퀘스트는 고작 짐을 옮기거나. 근처의 몬스터를 잡는 반복 퀘스트뿐이었다. 하긴 원래 그럴듯한 퀘 스트는 NPC가 이렇게 달려들며 의뢰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사흘 정도는 지내야 하는데 놀고만 있 을 수는 없어. 일단 밖에 나가서 식재료를 모으면서 경험치 가 들어올 만한 몬스터 서싲기를 알아봐야겠다.' 아크가 그런 생각으로 도시를 나가려고 할 때였다. 문득 상점가 안쪽에 허름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크가 그 건물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람자의 격투기 수 련장'이라는 간판 때문이었다. '격투기 수련장? 격투기를 가르쳐 준다는 건가?' 처음 보는 격투기 도장이라는 곳에 흥미가 생긴 아크는 걸 음을 돌렸다. 슈덴베르크에서도 전사가 돈을 내고 전투 기술 을 배우는 용병 교육소라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수련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는 곳은 없 었다. 게다가 이곳은 마법 왕국, 검술보다는 마법이 발전한 곳에 수련장이라니 흥미가 일었다. "어서 오십시오!" 아크가 도장에 들어서자 웬 호비트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이곳은 격투기를 가르쳐 주는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솰라솰라, 누구라도 이곳에서, 솰라솰라, 훌륭한 전사가 될 수, 솰라솰라. 게다가 저희 도장은 전사뿐 만, 솰라솰라, 마법사도 수련할 수 있습니다." "마법사도요? 정확히 어떤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겁니까?" "후후후, 솰라솰라, 보면 놀라실겁니다. 솰라솰라." 호비트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도장 안으로 안내했다. 강당에 들어서자 우람한 체구의 호비트 동상이 보였다. "이분이 저희 도장의 창립자인 람자이십니다. 솰라솰라, 저는 증손자지요, 솰라솰라, 저희 도장에서는 창시자가 수 련했던 방법 그대로, 솰라솰라, 하기위해, 솰라솰라, 최신 식 설비를 갖춰 놨습니다." 호비트가 수련장의 목각 인형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목각 인형은, 솰라솰라, 마법 자잋가 되어 있어, 솰라 솰라,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솰라솰라, 이 목각 인혀을 상대 로 연습하면, 솰라솰라, 자연스럽게 전투 능력이 상승하는 거죠!" 아직 언어 이해도가 얼마 되지 않는 아크는 대체 무슨 말 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호비트의 말과, 목각인형에 적여있는 설명서를 비교해 가며ㅡ언어 이해도가 낮으면 글지도 부분 부분이 솰 라솰라로 보였다ㅡ해석해 나가자 대강의 수련 방식이 이해 되었다. 수련의 목각 인형 작동시키면 목각 인형이 움직이며 플레이어를 상대로 전투가 벌어집 니다. 플레이어는 맨손으로 목각 인형의 공격을 피하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타격 지점을 공격하면 점수를 획득하게 됩니다. 제한 시간 내에 300점을 돌파하면 해당 수련을 마스터한 것으로 간주 됩니다. 수련을 마스터하면 사용 빈도가 높았던 스탯에 +1의 보너스가 적용되고 다음 단계로 도전할 수 잇는 자격이 생깁니다. 목각 인형의 난이도는 10단계까지입니다. 단, 마스터한 단계에 다시 도전해도 보너스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공짜로 스탯을 올려 준다고?' 대강의 방식을 파악한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각 인형의 난이도는 총 10단계! 마스터한 단계에 다시 도전할 수 없다고 해도 모든 단계를 마스터하면 10의 스탯보너스가 들어온다는 말이 아닌가? 스탯 10이라면 레벨이 1 올라가는 효과였다. 현재 아크의 레발은 366. 레벨 하나 올리는데 평균 7~15시간까지 걸리 는 상황에서 레벨 1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하, 브리스타니아에서 시작하는 전사에게는 이런 보너스 가 있는 건가? 좋아, 스탯을 올릴 후 잇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단숨에 10단계를 돌파해야겠다!"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여기에, 솰라솰라, 동전을 넣으면 되네, 솰라솰라." 호비트가 목각 인형의 옆에 달린 동전 투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련은 공짜가 아니었다! "목각 인형에 도전한 사람들은, 솰라솰라, 없네, 솰라솰 라, 100골드를 투자한, 솰라솰라" 아크는 그제야 수련 도장이 생각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라 는 것을 알았다. 한 번 이용료는 10 실버, 스탯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비하 면 그야말로 껌값이었다. 그러나 도장에 실패하면 다시 10 실버를 내야한다. 그렇게 한단계에 열 번씩만 실패를하면 10 골드, 100번씩 실패하면 100골드가 나가는 것이다. 호비트가 100골드를 날린 사람도 있다고 했으니 난이도가 만만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크는 지금까지 격투기 하나로 먹고살아 온 사람이다. '그동안 수련해 온 실력이 얼마나 통할지 알아볼 좋은 기 회로군.' 아크는 목각 인형 앞에 서서 투입구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짠짠짠짠, 경쾌한 음악 소리가 나오며 목각 인형이 움직이 기 시작했다. -목각 인형 대련 9단계를 마스터했습니다. 체력이 1 상승했습니다. -목각 인형 대련 10단계를 마스터했습니다. 힘이 1 상승했습니다. -목각 인형 대련을 모두 마스터했습니다! <<수련도장마스터보너스 : 힘+5,민첩+5,체력+5>> 파파파팡~! 마지막 10단계를 마스터하자 목각인형의 머리에서 축포 가 터젼 나왔다. "괴, 굉장하군, 솰라솰라!" 아크가 순식간에 목각 인형을 완전 정복하자 호비트가 입 을 쩍 벌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솰라솰라, 클리어 했던 사람은, 솰라솰라, 없었네, 솰라솰라, 도중에 수많은 전사가 포기했 던 시련을, 솰라솰라, 고작 서너 번 밖에 실패하지 않고 마스 터해 버리다니, 솰라솰라!" '확실히 생각보다 어려웠어.' 아크가 숨을 고르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목각 인형을 바라 보았다. 목각인형의 시렴은 5단계까지 정말 실망스러울 정 도로 쉬웠다. 그냥 직선으로 날아오는 목각인형의 주먹을 피하며 가슴이나 얼굴에 반격하면 금세 300점을 채울 수 있 었다. 그러나 6단계로 넘어가자 상황이 일변했다. 목각인형의 팔이 6개로 늘어나며 동시에 서너 개의 팔이 공격을 가해왔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아크는 당황한 나머지 6~8단계에서 네 번이나 실패했던 것이다. '나도 몰드좀비를 상대로 다시 수련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빨리 10단계까지 마스터하지는 못했을 거야. 태권도를 배운 내가 그 정도였으니 일반 유저들은 더 힘들겠지.' 100골드를 날린 사람이 있다는 말도 이해가 되었다. 어쨌든 아크는 네 번의 실패 이후에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도전해 덕분에 단숨에 10단계까지 돌파했다. 들어간 돈은 1골드 40실버, 고작 1골드 40실버를 투자해 서 힘 4에 민첩3, 체력3을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올 마스 터 보너스로 다시 힘, 민첩, 체력 +5의 보너스까지! '시간도 30분밖에 안 걸렸어," 길 가다가 스탯을 거저주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거 저레벨 동네라고 무시할 수 없잖아. 하긴 이곳은 슈 덴베르크가 아닌 브리스타니아야. 이곳은 모든 것이 다르니 뭐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 앞으로는 들르는 마을마다 꼼꼼 히 살펴봐야겠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결국 자네가, 솰라솰라, 처음이자 마지막, 솰라솰라, 졸 업생이 되겠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크가 갸웃거리자 호비트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수 련장을 가리켰다. 자네도 보면 알거네. 솰라솰라, 그래도 예전에는 이 도 장에도 제법 수련생들이 찾아왔다네. 솰라솰라, 하지만 이 곳의 사람들에게는 수련이 너무 빡셌던지, 솰라솰라, 이렇 게 파리만 날리고 있지 않은가, 솰라솰라, 근성 없는 것들! 역시 마법 왕국에 도장을 세우는 게 아니었어, 솰라솰라, 덕 분에 나는 거의 파산할 지경이야, 솰라솰라." 호비트가 한숨을 불어 내며 호비트 동상을 바라 보았다. " 뭐, 할수없는 일이지만, 솰라솰라, 창시자의 비기를 전 수할 만한 인재를 찾지 못했다는 게 , 솰라솰라 안타까울 뿐 이네, 솰라솰라, 아, 그렇군, 솰라솰라, 혹시 자네, 솰라솰 라, 여기에 손을 올려놔 보지 않겠나?" 호비트가 문득 생각난 듯 석상 아래의 손바닥 모양을 가리 키며 말했다. 아크가 별생각 없이 손바닥을 갖다 댔을 때였다. 갑자기 철커덕하는 기계음이 울리더니 석상이 서서히 회전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호비트가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이럴수가, 솰라솰라, 정말, 솰라솰라, 봉인이 풀리 다니, 솰라솰라!" "봉인이라니요?" 아크의 질문에 호비트가 흥분한 표정으로 떠들어 댔다. "실은 이 도장의 창시자는, 솰라솰라, 전설, 솰라솰라, 권 법의 달인이 될, 솰라솰라! 만약 그때 그것만, 솰라솰라! 마 왕이라도, 솰라솰라! 분이셨네, 솰라솰라 그리고 그분은, 솰 라솰라, 후인을 위해, 솰라솰라, 자신의 비기를 이 계단에 봉 인해, 솰라솰라. 그만한 자격과 실력을 갖춘 자만이 이 봉인 을 풀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솰라솰라!" 흥분해서 떠들어 대는 통에 아직 외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크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간 중간 끊 기는 와중에도 중요한 단어는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크가 그 단어들을 이어 붙여 추론한 내용은 이랬다. 이 수련도장을 세운 동상의 주인은 전설적인 권법의 달인 이었다. 일격에 마왕이라도 무찌를 정도로! 그리고 그비기 를 두루마리로 만들어 이곳에 봉인해 놨다는 내용이었다. 그 만한 자격과 실력을 갖춘 자만이 봉인을 풀고 비기를 배울 수 있도록 말이도. 그런데 어째서 그 봉인을 아크가 풀수 있었을까? 해답은 간단했다. 아크가 두루마리에 손을 가져가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진실의 추구' 특성으로 인해 '전승자'에게 새로운 스킬 정보를 습득했 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비전 기술 : 신탁의 권>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7,000의 명성이 필요합니다. '숨겨진 비기!'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그렇다, 이도장의 창시자는 '전승자'였던 엇이다. "오오오, 내 눈으로, 솰라솰라. 어서 두루마리를, 솰라 솰라!" 그러나 아크가 두루마리를 집어 들려고 하자 스파크가 일 어나며 손이 튕겨 나왔다. -스킬 습득에 필요한 명성이 부족합니다! '헉, 그러고 보니 명성이 7,000?' 다시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숨막히는 비명을 터뜨렸다. 오벨리움에서 배운 '유령 기사단 강습' 스킬도 명성이 6.000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7.000이라니? 대체 얼 마나 대단한 스킬이기에7.000이나 되는 명성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전설적인 권법이라더니 정말 굉장한 스킬이긴 한 모양이 구나!' 명성이 7.000이나 필요하다는 말에 아크는 더욱 스킬이 탐났다. 신탁의권, 이름도 뭔가 있어보이는 티가 팍팍 나 지 않는가? '예전에 하던 RPG 중에서도 초보 마을에 의외로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도 그런 건가 보 구나, 우연히 엄청난 보물을 찾아낸 거야. 틀리없어 이건 대 박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의 명성은 5.840. '유령 기사단 강습'을 배운 뒤로 카오틱인 제페트를 잡아 약간의 명성을 더 올렸지 만, 스킬을 배우기에는 아직 1,160이나 부족했다. "아아, 솰라솰라, 맞아 창시자께서는, 솰라솰라, 이 비기 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솰라솰라,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어야 하고, 솰라솰라, 또 그에 걸맞는 명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었어, 솰라솰라." 아크가 두루마리를 잡지 못하자 호비트가 실망스러운 표 정으로 말했다. 그러다가 와라가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솰라솰라, 봉인을 푼 사람은 자네가, 솰라솰라 처음이네, 솰라솰라 아마도 이건 신의 뜻, 솰라솰라 자네가 그만한 명성을 쌓고 돌아올 때까지 도장 문을 닫지 안호 기 다릴 테니, 솰라솰라, 부디 창시자의 비기를 자네가 이어 주 게, 솰라솰라." "알겠습니다!" 아크가 와락 호비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이런 곳에서 우연히 비기를 발견했다. 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이 비기를 전수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돌 아오겠습니다!" 아크는 곧바로 수련도장을 뛰어나갔다. '일단 대답은 했지만 그나저나 명성을 어떻게 올린다...." 뉴 월드에서 명성을 올리는 방법은 많았다. 퀘스트를 해결하는 것, 그리고 도시에서 큰 공적을 세우는 것, 칭호를 받는 것, 보통 이 세 가지가 일반적이었다. 거기에 아크의 경우에는 '기적의 간병'으로도 명성을 많이 올렸다. '하지만 기적의 간병이나 칭호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 니야, 또 처음 온 마을이니 마을에 공적을 세우는 것도 쉽지 않아,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다." 바로 퀘스트를 하는 것. 그리고 이 마을에는 퀘스트를 의뢰하고 싶어 안달하는 NPC가 넘쳐 났다. 물론 돈도 경험치도 되지 않겠지만 지금 아크에게 필요한 것은 명성. 아크는 마을 광장으로 달려가 좀 전까지 퀘스트를 의뢰하던 NPC를 찾아갔다. "자네는 아까, 솰라솰라, 거절하지 않았던가?" "아니, 제가 이곳이 초행길이라 정신이 없어서 그랬습니 다. 게다가 아직 이곳 언어에 익숙하지도 않아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도 몰랐고요, 하지만 저는 곤란한 사정이 있는 분들을 도우며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곤란한 사정 이 있다면 뭐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솰라솰라. 내 짐을 찾아 주지 않겠나?" "짐이라고요?" "나는 원래, 솰라솰라. 짐꾼이네, 솰라솰라, 그런데 얼마 전 다른 마을에서 물건을 싣고 오는 도중에 코볼트 때에게 습격당해서 급하게, 솰라솰라, 도망치느라 짐을 제대로 챙 겨 오지 못했네, 솰라솰라, 코볼트들은 그 짐을 가지고 군락 으로 돌아가 버렸지, 솰라솰라, 당장 내일까지 물건을, 솰라 솰라, 짐은 놈들이 쌓아 놓은 잡동사니를, 솰라솰ㄹ, 위험한 일이지만 자네가 좀 찾아다 줄 수 있겠냐?" 노인의 말이 끝나자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아직 브리스타니아 언어의 이해도는 30%, 솰라솰라가 너 무 많이 섞여 노인의 말만으로는 뭘 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 었지만, 다행히 퀘스트창은 정상적으료 포시되었다. 시엘 도시 짐꾼의 고민 당신은 누란 마을에서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 노인은 코볼트 서식지에서 잃어버린 짐을 되찾아 줄 것을 부탁했습 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코볼트 들은 약탈한 물건을 군락 한 곳에 쌓 아 둔다고 합니다. 코볼트의 군락에 잠입해 '잃어버린 짐'을 10개 되 찾아 와야 합니다. <난이도 : D> "다녀오겠습니다!" 아크는 퀘스트를 수락하고 바람처럼 밖으로 뛰어나갔다. Fro. 아크 나는 지금 시엘에 도착했다. 급한 용무가 있으니 편지를 받는 대로 답장을 보내고 시엘 로 찾아와라. "췌ㅡ!" 북실이가 편지에 코를 풀어 훽 집어 던졌다. "급한 용무라고? 어차피 또 부려먹으려는 거겠지." "안 가시게요?" 북실이의 태도에 백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러자 북실이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가긴 가야지. 사실 아크한테 괴롭힘을 당하기는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얻는 게 있거든. 하지만 당장은 아니야. 급한 용무라는 거 보니까 틀림없이 또 뭔가 부려 먹을 건수가 잡 힌 게 분명해 모처럼 떨어져 나왔는데 휴가 받은 셈치고 좀 놀다 찾아가자." 북실이가 한창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는 마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북실이도 처음에는 아크에게 연락이 오면 바로 합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북실이가 찾아낸 마을은 아크가 찾아 간 시엘에서 북쪽으로 이틀 정도 떨어진 보사카 마을이라는 곳이었다. 그리고 마침 이 마을은 축제 기간이었던 것이다. "모처럼 축제 중인 마을에 왔는데 아크가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갈 수는 없지. 우연히 도착한 해안에서 이런 마을을 찾아 낸 건 그동안 고생했으니 놀다 가라는 신의 계시가 분명해." "하지만 나중에 아크 님이 아시면......" "아크에게는 편지를 못 봤다고 하면 돼." 백구가 불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북실이가 히죽 웃으 며 대답했다. "후후후. 그리고 아크 자식도 똥줄 좀 타 봐야 내가 얼마 나 소중한 존재인지 깨닫게 될 거야. 앞으로의 안락한 여행 을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 해 줘야 해. 그러 니 너는 나만 믿고 따라와." "네, 주인님." "그럼 가자. 첫번째 목표는 솜사탕이다. 우오오오오!" "우오오오, 저도 단 거 좋아요!" 북실이와 백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노점상을 향해 돌짆ㅆ 다. 그때 보사카 마을의 북문으로 30여 명의 사내들이 들어 서고 있었다. "정말이야?" "그래, 내가 인터넷을 뒤지다가 누군가 올려놓은 동영상 에서 우연히 봤어. 축제가 한창인 보사카 마을을 찍은 동영 상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사람들 사이에 그 돼지 같은 놈이 끼어 있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슈람이었다. 이슈람은 아크가 남서부 해안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그런데 항구를 수색하던 수배자들이 두 패로 나뉘어 해안을 따라 북서부와 남서부로 이동하려고 했다. 남서부로 이동하게 되면 자칫 아크가 있는 곳을 들킬지도 모른다. 다급해진 이슈람은 항구에서 본 축제 광고 전단지를 기억해 내고 수배자들을 보사카 마을로 유인한 것이다. 이슈람의 말에 가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쨌든 네가도움이 돼서 정말 다행이다. 만약 네 덕에 놈들을 찾을 수 있게 되면 제페트 형님도 너를 100% 신뢰하 게 될 거야. 자, 열심히 찾아보자." "으응, 그래." 이슈람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보사카 마을의 남문에서도 한 쌍 남녀가 들어서고 있었다. "아, 정말..... 나는 이렇게 시끌벅적한 곳은 좀 그런 데...... 게다가 우리는 아크라는 놈을 찾아야 하잖아.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시끄러, 아무리바빠도 축제를 못 본 척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그리고 보사카 마을 축제는 주변 도시에서도 많은 인파가 몰려오는 큰 행사잖아. 그놈이 이 근처의 해안에 도 착했다면 여기 왔을 가능성이 많아." "하긴 그러네." "후후후,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까 일단 바비큐부터 먹 으러 가자." ".....역시 그냥 놀고 싶은거 아냐?" "탐문 수사라고, 탐문수사" 자글자글 익어 가는 통돼지 바비큐를 향해 홀린 듯한 표정 으로 다가가는 사람은 바로 하얀 사슬 갑옷을 걸친 여자 마 법사였다. 그녀의 이름은 레디안. 그리고 뒤통수를 긁어 대 며 따라가는 짐승 가죽 갑옷을 걸친 우람한 체격의 사내는 바로 브레드, 그들 역시 아크를 쫓아 브리스타니아의 해안으 로 왔다가 보사카 마을에 들어오게 된것이다. to be continued 오타수정자:2262382 -배포하는것은 괜찮지만 수정자 이름 바꾸는것은 못참습니다- Ark 16권 아크 16권-유성 게임판타지 장편소설 ACT1 빈민가 ACT2 탐문 수사 ACT3 민중의 간병인 ACT4 기나긴 축제의 시작 ACT5 The carnival(1) ACT6 The carnival(2) ACT7 The carnival(3) ACT8 해적 소탕! ACT9 화룡산 ACT1 빈민가 "헉헉헉, 다녀왔습니다." "벌써 말인가?" 노인이 놀란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여기서 포에른 교각까지는 그냥 왕복하는 데만 네 시간은 걸리는 거리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만에 몬스터가 설치는 그 위험한 곳에서 짐까지 찾아 돌아왔다는 건가?" "사정이 급하다고 하셔서 최대한 서둘렀습니다." "분명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 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기대 하 지 않았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운송 일을 하다 보면 항상 크 고 작은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라네. 특히 도중에 도적이나 몬 스터의 습격을 받는 일은 비일비재하지. 물론 대부분은 경비 대에 의뢰해서 찾지만 사건을 의뢰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린 다네. 때문에 납품 일정이 빠듯한 경우에는 급한 대로 돈이 좀 들더라도 이방인에게 의뢰할 수밖에 없지." 넋두리처럼 늘어놓던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이 근방의 이방인들은 자네와 달리 게으르기 짝이 없 다네. 의뢰를 받고도 몇 시간이나 마을에서 뭉개는 건 아무것 도 아니야. 심지어 급한 의뢰를 받고서도 어영부영 시간을 보 내다가 못 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네." "저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아크는 최대한 호감 가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지, 알아. 가렌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서 반신반의 하 며 급한 일을 맡겼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짐을 찾아 줄줄은 몰 랐네. 자네처럼 성실한 이방인은 처음이야. 자, 이건 약속했던 보수네." "감사합니다." 땡그랑, 땡그랑. 아크는 고맙다고는 말했지만 손에 쥐이는 동전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시간 반 동안 죽어라 달려서 짐을 되찾아준 대가는 고작 10실 버짜리 동전 다섯 개 50실버였다. 레벨에 맞는 장소에서 사냥하 다가 잡템 한두 개만 주워도 벌 수 있는 돈이다. 어쨌든 그렇게 보상을 받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포에른 교각에서 잃어버린 짐 찾기'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보상 : 50실버, 경험치+1000, 명성+7 '고작 이런 보상을 받자고 한 시간 동안 마라톤을 했다니......' 노인은 유저들에게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사실 아크는 유저들 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이동거리만 장장 두 시간이나 걸리는 퀘스 트다. 아무리 저레벨 동네라도 평균 레벨 150대의 유저들이 그런 보상을 받자고 죽자 살자 매달릴 리가 없었다. 어쩌다가 퀘스트를 받는 것도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다른 퀘 스트를 받아 놓은 경우였다. 그렇게 곁다리로 받은 퀘스트니 유저 들의 입장에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때문에 NPC가 계속 독촉하며 귀찮게 굴면 아예 취소해 버리기도 하 는 것이다. 그런 허접한 퀘스트를 레벨 366의 아크가 칼같이 처리해주니 NPC가 호감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NPC의 호감도는 좀 더 현실 적인 이득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건 자네가 성실하게 내 부탁을 들어준 데 대한 고마움 의 표시네. 또한 자네가 얼마나 예의 바르고 성실한 이방인인지 동업자들이 알 수 있도록 추천장을 써 주도록 하지. 내가 이래 봬 도 이 바닥에서는 제법 발이 넓다네. 동업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내 추천장을 보여주면 일을 의뢰받기도 쉽고 보수도 더 넉넉하게 챙겨 줄 거네." 노인이 단숨에 추천장을 써서 건네주었다. -의뢰인의 만족도가 100%를 초과해 추가 보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의뢰한 노인은 시엘에서 오랫동안 운송업에 종사해 온 NPC 입니다. 교각에서 잃어버린 짐 탓에 납품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면 운송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신용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입니다. 그러 나 당신이 성실하게 일해준 덕분에 노인은 거래처에 신용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의뢰인은 약속했던 보상 이외의 보너스를 지급해 주었습니다. 또한 영향력 있는 운송업자를 만족시킨 대가로 '추천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곤란한 사정이 생긴 운송업자에게 '추천 장'을 보여주면 더 좋은 조건으로 일을 받고 추가 보상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추가 보상 : 10실버, 명성+3 *특수 아이템 '운송업자의 추천장'을 획득했습니다. -운송업자의 추천장 : 운송업자에게 보여주면 보다 높은 등급의 퀘스 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퀘스트 완료시 추가 보상과 명성을 얻을 확률이 증가합니다. '휴, 성공이다!' 아크는 '추천장'을 받아 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아크가 부리나케 달려와 퀘스트 보고를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 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NPC가 주는 퀘스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그 중 NPC가 특별히 시간이 촉박하다고 말하는 퀘스트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그런 경우에는 퀘스트를 빨리 끝내 줄수록 NPC의 만족도가 상승한다. 그리고 이번처럼 철저한 서비스 정신으로 기대 이상의 결과 를 얻어 내 만족도가 100%를 초과하면 추가 보상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 었다. 물론 추가 보상이라고 해 봐야 그리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또한 만족도 를 100% 이상 올리려면 주어진 시간보다 최소한 한 시간은 빨리 끝내야 하기에 간단한 퀘스트라도 만족도까지 충족시키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 했다. 때문에 다른 유저들은 만족도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괜히 욕심을 부려 '고객 만족' 따위를 생각하다가는 당치 않은 실수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레벨 지역에서 퀘스트를 하니 이런 점은 편하군.' 그러나 아크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칙칙, 저놈은 왠지 위험한 냄새가 난다!" 시엘 주변의 몬스터들은 아크와 최소 레벨 150 이상 차이가 난다. 일부러 마음먹고 접근하지 않으면 되려 몬스터 쪽에서 겁을 집어먹고 슬슬 피했 다. 게다가 간간이 나타나는 카오틱 유저도 검 몇 번 휘두르면 간단하게 해결된 다. 때문에 라둔마를 타고 좀 서두르면 어렵지 않게 고객 만족을 실현할 수 있었다. "다른 곤란한 일은 없으십니까?" "자네 덕에 급한 문제는 모두 해결했네." "......그렇습니까?" 아크가 아쉬운 기색을 보이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일거리라면 걱정할 필요 없네. 이곳은 운송업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 이라 일거리는 항상 넘친다네.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주점에서 쿠라드 라는 친구가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며 술을 마시고 있는 걸 봤네. 서부 관 문 옆에 있는 '황혼의 언덕'이라는 술집이네 예전에 몇 번 당해서 이방인이 라면 이를 갈지만, 내 '추천장'을 보여주면 일을 줄 거네." "정보 감사합니다. 바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아크는 꾸벅 인사를 하고 서부 관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부지런히 움직 인 덕분에 이번 퀘스트에서도 추가 보상을 얻어 냈다. 거기에 다음 퀘스트에 대한 정보까지 얻어 냈지만, 아크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올린거지? 캐릭터 정보창 !"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6025(+500) 레벨 : 366 직업 : 다크 소울 칭호 : 캣나이트, 오벨리움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6805(+225) 마나 : 6745(+25) 영력 : 400 힘 745(+38) 민첩 : 925(+110) 체력 : 1155(+35) 지혜 : 161(+10) 지능 : 1173(+5) 운 : 155(+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53 유연성 : 158 화술 : 66 애정 : 89(+10) 탄력도 : 436 "하아......" 정보창을 확인하자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시작할 때와 달리 이제 주요 스탯 정보만 표시했는데도 눈앞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정보가 표시되는 캐릭터 정보창. 그러나 지금 아크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명성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그렇다 레벨이 366이나 되는 아크가 적정 레벨이 150 전후, 심지어 추가 보 상을 받아도 60실버밖에 되지 않는 허접한 퀘스트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명성 때문 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명성 7000짜리 숨겨진 비기, '신탁의 권'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아크가 '신탁의 권을 알아낸 지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 그동안 아크는 문 자 그대로 식음을 전폐하며 명성 노가다에 매달렸다. "이제 짐 찾기 퀘스트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야." 아크는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엘에서 받을 수 있는 반복 퀘스트의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나중에야 알 게 된 사실이지만 시엘은 슈덴베르크의 상업도시 기란처럼 상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때문에 운송 일을 하는 NPC가 많았다. 도시에 운송업자 조합이 따로 있을 정도. 마을 주변에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퀘스트는 대부분 그런 운송업자들 의 의뢰였다. 내용은 하나같이 몬스터에게 습격 받아 잃어버린 짐을 되찾아 달라는 것. "실은 얼마 전에 이곳으로 짐을 수송해 오다가......" "몬스터가 습격해서 잃어버렸죠? 장소만 얘기하면 찾아다 드리겠습니다!" 수십 번이나 하다 보니 이제 NPC가 입만 열어도 어떤 퀘스트인지 줄줄 꿸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퀘스트를 받자마자 라둔을 타고 바람처럼 몬스터 서 식지로 달려갔다. 처음 퀘스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장소에 도착하면 몬스터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덕분에 몬스터를 잡아서 아이템을 되찾아야 하는 퀘스트는 숨어 있는 놈들을 찾느라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칙칙, 또 너냐? 아예 우리 씨를 말릴 생각이냐?" 몬스터들이 죽어 가며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나도 좋아서 오는게 아니라고!' 정말이지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퀘스트를 완료해도 보상은 고작 30~60실버 가량……. 게다가 레벨 366에 200 전후의 몬스터 코볼트를 수백 마리 때려잡아도 경험치 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전리품도 나오지 않는다.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건 퀘스트 아이템뿐이었다. 고레벨 유저가 초보 지역에 와서 설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 때문이었 다. 덕분에 아크는 꼬박 하루 동안 실제로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 사냥을 반복 해야 했다. "빌어먹을, 설마 내가 명성 때문에 이런 노가다를 하게 될 줄이야." 퀘스트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러웠다. 만약 아크가 진즉에 명성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보다 최소한 5000은 더 모았 으리라. 지금까지 아크가 해결한 몇몇 퀘스트는 보상으로 '돈'이나 '명성'중 하나를 선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까지 아크가 선택한건 당연히 현찰! 아마 '전승자'에게 비기를 배울 수 없었다면 아직도 명성 100 대신 1실버를 선 택했으리라. "그런 내가 설마 명성 때문에 뛰어다니게 될 줄이야!"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정말 미치겠군. 어차피 명성 노가다 중이니 경험치나 잡템은 포기한다고 쳐도.. ...." 어차피 저레벨 마을이라 경험치와 아이템은 포기했다. 문제는 명성, 퀘스트를 주는 NPC는 다르지만 내용은 똑같은 반복 퀘스트니 들어오는 명성도 뻔한 수준 이었다. 추가 보상까지 받아도 퀘스트 한 번에 들어오는 명성은 고작 10 물론 저레벨 마 을 퀘스트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퀘스트를 하나 해결하려면, 퀘스트를 받기 위해 돌아다니는 시간, 퀘스트를 수 행하기 위한 지역까지 왕복하는 시간까지 대략 한 시간 반이나 소요된다. "지금 까지 꼬박 30시간을 죽어라 뛰어다녀서 해결한 퀘스트가 대략 20번 명성 150이야. 그동안 운송업자 관련 퀘스트만 집중 공략한 덕분에 '운송업자들 사이 의 입소문'이 발동해 50정도 더 올라가서 200. 현재 명성은 6025다." 그러나 비기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명성은 7000 앞으로 필요한 명성이 975니, 하루에 150 정도를 모은다고 해도 앞으로도 닷새 나 더 지긋지긋한 반복 퀘스트를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럴 때는 '작센의 영웅'이라는 칭호도 짜증나는군." NPC와의 친밀도를 30% 올려주는 대신 퀘스트 완료 시에 명성을 30% 경감시키는 '작센의 영웅' 칭호, 덕분에 아크는 현재 같은 퀘스트를 해도 명성이 30% 적게 들어왔다. "뭐, 운송업자들과의 친밀도 덕분에 '운송업자들 사이의 입소문'이 자주 발동해 부족한 명성을 벌충해 주기는 하지만 말이야. 거기에 이제 방금 전의 노인이 주는 연계 퀘스트까지 끝내서 '운송업자의 추천장'까지 받아 냈으니 명성을 모 으기가 좀 더 수월하겠지." 그렇다고는 해도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아직도 나흘은 빡세게 노가다를 해야 한 다는 말이 아닌가? 앞으로 나흘이나 이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눈앞이 깜깜해졌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를 해결하면 주어지는 명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그런 퀘스트는 아예 다른 지역 까지 갔다 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칫 내용을 잘못 파악하고 퀘스트를 받게 되면 며칠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며칠을 소모해서 200의 명성을 받느니 차라리 반복 퀘스트를 한 번이라도 더 하는 편이 나았다. '차라리 카오틱을 잡아서 명성을 올릴까?' 아크는 그런 식으로 방법을 바꿔 볼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레벨 100~180 유저들이 드나드는 도시에서 자리를 잡은 카오틱이라 봐야 레벨 200 수준. 워낙 레벨 차이가 많이 나다 보니 힘들게 찾아내도 고작 명성이 1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레벨이 150 이상 차이나는 마을에서는 뭘 해도 만족스럽지가 않은 것이다. 결국 현 상황에서 가장 빨리 명성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반복퀘스트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목표량의 반의반도 못 채웠는데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린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비기를 찾아냈는데 포기할 수는 없어." 아크는 단호한 목소리로 지쳐가는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격투기 수련장의 호비트가 '전설'이라는 말까지 들먹였던 '신탁의 권'! 명성이 7000이나 필요하다는 게 짜증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한 명성이 필요할 정도의 스 킬이니 틀림없이 상당히 귀한 스킬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좋은 스킬은 웬만한 레어 아이템보다 더 도움이 돼. 게다가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명성 노가다에 하루 반나절을 투자하고 나서 포기할 수는 없 어. 지금 뿐이야. 돈이나 경험치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지만 스킬은 기회를 놓치면 배울 기회가 없어." 아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운송업자의 퀘스트를 하면서 가장 짜증 나는게 바로 '이동'이었다. 레벨이 높 으니 일단 해당 지역까지 이동하기만 하면 주변의 몬스터나 카오틱 유저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크는 라카드나 라자크조차 불러내지 않았다. 라카드와 라자크를 불러낼 필요도 느끼지 못했고, 쓸데없이 음식만 들어가기 때문 이다. 그러나 이동에 걸리는 시간만큼은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현재 아크가 이용하는 소환수는 라둔뿐이었다. 이동속도 +500%의 라둔을 타고 이동하면 퀘스트를 해결하는 데 소모 되는 시간을 30% 이상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이 달아 있는 아크에게는 그조차 숨 막힐 정도로 느리게만 느껴졌다. 때문에 아크는 시간 절약을 위해 비전투시에 30분 동안 이동속도를 20%까지 올려주 는 '신속' 주문서를 사용하고 있었다. '신속'은 저레벨 유저들도 사용하는 비교적 저렴한 주문서다. 게다가 이곳은 마법 왕국이라 각종 주문서를 슈덴베르크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장에 50실버나 하는 아이템! 평소의 아크라면 절대 돈 주고 사지 않았을 아이템! 그러나 명성 노가다에 지쳐있는 지금의 아크에게는 더 이상 푼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퀘스트를 해결하면 건당 60실버 정도는 들어와. 왕복에 두 장을 사용해야 하니 1골드. 퀘스트 하나를 해결할 때마다 40실버씩 손해 보는 셈이지만, 이런 곳 에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돈을 들여서라도 빨리 해결하고 고레벨 지역으로 이동해서 그 시간 동안 노가다를 하는 편이 100배 나아.' 아크는 그런 생각으로 이동할 때마다 '신속' 주문서를 펑펑 써대고 있었다. 소모품을 그렇게 펑펑 써 대는 건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어제도 퀘스트 보상을 모아 여덟 장을 사 놨는데 벌써 한 장 밖에 남지 않았잖아? 앞 으로 최소한 나흘은 더 노가다를 해야 하니 이참에 한 30~40장은 사 놔야겠다.' 그러나 아크가 주문서를 구입하기 위해 향한 곳은 상점가가 아니었다. '기왕 사야 할 아이템이라면 그 녀석을 도와주는 편이 좋지.' 아크의 머릿속에 궁색한 복장의 소년이 떠올랐다. 소년의 이름은 로니, 아크가 로니를 알게 된 건 시엘에 처음 도착 했을 때였다. 당시 브리스타니아 언어를 몰랐던 아크는 너덜너덜한 책을 20골드나 되는 가격에 팔려 던 로니를 사기꾼으로 오해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마법학회의 마법사에게 그게 사전의 정가임을 알게 된 뒤로 마법 학회 정회원의 할인 혜택을 포기하고 로니에게 사 전을 구입해 주었다. 그 인연으로 아크는 로니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반복 퀘스트로 돈이 좀 모이면 로니에게 이것저것 구입해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게 희한하단 말이야' 아크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지금까지 게임을 하며 불쌍한 NPC는 많이 보았다. 그러나 현실이든 게임이든 불쌍해 보인다고 모두 도와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아크 는 대놓고 '그래, 이 몸이 도와주마!'라는 식으로 누군가를 돕는 취미는 없었다. 그럼에도 유독 로니만큼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쓰였다. 멋도 모르고 오해한 게 미안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힘들게 살던 시절의 자신과 비슷 한 처지의 로니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앗, 아크 형!" 골목으로 들어서자 로니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비록 꾀죄죄한 옷차림이었지만 방실거리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처음과 달리 브리스타 니아 언어의 이해도를 75%이상 올린 아크가 능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잘 있었니?" "저야 항상 그렇죠.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이 녀석, 그게 장사하는 사람이 할 질문이냐? 당연히 물건 사러 왔지." "물건요?" "그래. '신속'주문서 있지? "네? '신속 주문서는 어제도 여덟 장이나 사 갔잖아요. 벌써 다 쓴 거예요?" "그만큼 이 형님이 열심히 산다는 거지. 이번에는 아예 30장, 아니 50장 줘봐." "5, 50장이나요?" '신속' 50장이면 무려 25골드나 되는 거금이다. 번듯한 상점이라면 모를까, 좌판에 늘어놓은 주문서를 모두 합해야 50장이 될까 말까 하 는 물건을 취급하는 로니가 한 번에 50장이나 되는 주문서를 판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 리라. 보따리 장사꾼 로니는 기대 이상의 큰 거래에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없어?" "아, 아니…… 있기는 한데요. 어제 아크 형이 여덟 장을 사 간 뒤로 아직 물건을 챙겨 놓지 못해서 지금은 두 장밖에 남지 않았어요." 로니가 부끄러운 듯이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아크 역시 예전에 이런 좌판을 해 봐서 속사정을 알고 있었다. 그날그날 버는 돈으로 소 량의 물건을 떼어 오는 로니가 특정 물량을 50개씩이나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물건을 구해 올 수는 있지? 기다릴 테니까 가져와." "하지만 50장이나 되면……." "내가 물건 주문해놓고 도망갈까 봐 그래? 하, 요 녀석 어설퍼도 역시 장사꾼이네. 알았어. '신속' 주문서가 장당 50실버지? 50장이면 25골드. 선금으로 줄 테니 얼른 가져와." "네? 선금으로요?" 아크는 선뜻 25골드를 건네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크는 로니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날그날 벌리는 수입으로 잡템을 구해 파는 로니에게 25골드나 되는 돈이 있을 리가 없 다. 구해 오는 즉시 팔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게다가 아마도 로니가 물건을 구해 오는 곳은 근처의 상점가. 깐깐한 상점 주인이 딱 보기에도 없어 보이는 로니에게 25골드나 외상으로 물건을 대 줄 리도 없지 않은가? '그 기분은 내가 잘 알지.' 아크는 빙긋 웃으며 로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선금을 받아든 로니는 되려 곤란한 얼굴 로 머뭇거렸다. "왜 그래? 물건 구해오라니까?" "저...... 그게……." 로니가 잠시 망설이다가 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형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실은 상점에서 구입하면 열 장당 5%는 싸게 구할 수 있어요. 저는 그런 물건을 구해서 한 장씩 정가에 파는 거거든요. 어제 '신속' 이 열 장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에요. 형이 몇 장씩만 살 때는 괜찮지만, 50장이나 산다면 그냥 상점에서……." '맙소사' 로니의 말에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아크가 그걸 몰라서 로니에게 선금까지 줘 가며 주문서를 사려는 게 아니지 않는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크다. 상점의 할인 혜택 같은 것은 줄줄 꿰고 있는 것이다. 아니, 아크가 아니라도 상점마다 붙어있는 전단지를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럼에도 아크는 일부러 로 니를 찾아와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크가 '내가 생각해도 그게 희한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때문 이었다. 25골드에서 5%를 절약할 수 있다면 1골드 25실버 1쿠퍼에도 벌벌 떠는 아크가 1골드가 넘는 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아크의 행동 패턴을 생가가하면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변 화였다. '어쩌면 이런 점 때문인지도 모르지' 아크는 로니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의 아크와 비슷한 상황이지만, 로니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아크와 달랐다. 이득이 된다면 사기도 마다 않는 아크와 달리 로니는 지나치게 정직했다. 정당하게 이 득을 취할 수 있음에도 친해진 아크에게 손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순수한 소년인 것이다. 살기 위해 일찌감치 정직함을 포기한 아크는 힘든 삶을 살아가 면서도 정직함을 잃지 않는 로니에게 어떤 환상 같은 것을 품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러나 아크는 차마 낯간지럽게 '너 도와주려고 그래.'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뭐, 나하고는 안 어울리지만…….' "어? 그래? 지금까지 서너 장씩만 사 봐서 전혀 몰랐어." 아크는 짐짓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 이거 좋은 정보를 들었는걸. 5%면 50장사면 1골드 25실버. 200장사면 5골드 아 니야? 어휴, 지금까지 주문서를 다 그렇게 샀으면 몇 백 골드를 절약할 수 있었던 거잖 아?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아크가 씨익 웃으며 로니의 코를 잡고 흔들어 댔다. "요 녀석, 바보 아냐?" "아, 아야! 아크 형, 아파요." "너는 아주 기본이 안 돼 있어." "네? 기본이라니요?" "장사꾼은 말이야, 설사 내일 하늘이 무너져도 이득을 남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 야. 손님이 잘 모르면 이때다 생각하고 왕창 팔아먹어야 한다고 그런데 고작 몇 번 물 건 좀 사 줬다고 장사 밑천을 까발리는 놈이 어디 있냐? 그래서 돈을 벌겠어?" "하, 하지만……." "시끄러, 듣기 싫으니까 얼른 물건이나 가져와." "네? 그럼?" "뭐, 실상을 알았으니 나도 가능하면 상점을 이용하고 싶지만 이미 선금을 줘버렸잖아. 그리고 너 덕분에 앞으로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됐으니 이번에는 그냥 사 줄게." "혀, 형......!" 로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약간 무안해진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버럭 소리쳤다. "착각하지 마. 네가 예뻐서가 아니야. 그냥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서 그런 거지 자꾸 뭉 그적 거리면 두 번 다시 너한테 물건 안 산다?" "아, 알았어요. 갔다 올게요." 로니가 소맷자락으로 눈가를 쓱쓱 문지르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갑자기 반대쪽에서 한 사내가 뛰어 오며 소리쳤다. "로니, 로니! 큰일 났다!" "어? 타른 아저씨? 큰일이라니? 무슨 일이에요?" "네 어머니가 또 발작을 일으켰다!" "어, 어머니가요?" 로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 '여기가 로니의 집인가?' 아크는 찜찜한 눈길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 타른이라는 사내의 말을 들은 로니는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황급히 좌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크는 그때 로니의 얼굴이 너무나 당혹스러워 보여 차마 선금을 돌려 달라는 말을 하 지 못했다. 물론 로니의 성격을 생각하면 나중이라도 찾아와 돌려주겠지만, 다시 반복 퀘스트를 시 작하면 마을에 붙어 있을 시간이 없으니 일단 로니의 집까지 따라오게 되었다. 본시 빈부貧富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법. 하루 용돈을 몇 백만 원씩 써 대는 사람들이 사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한 동네라는 강남.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10만 원 짜리 월세방이 모여 있다. 그리고 그런 법칙은 뉴 월드에도 적용 되었다. 남아도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서 성벽까지 마법 코팅을 해놓은 화려한 브리스타니아의 상업도시 시엘. 그러나 시엘도 강남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벗어나면 매일매일 한 끼 식 사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 있었다. 로니의 집 역시 시엘에서 약 10분가량 떨어진 빈민촌의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 저기에서 주워 모은 판자를 대충 이어 붙인 듯 한 판잣집이었다. "어머니!" 집으로 들어선 로니는 짐을 내던지고 침상으로 뛰어갔다. 살림살이라고는 낡은 냄비 하나가 전부. 궁색하다 못해 폐가처럼 보이는 판잣집 구석에 놓인 목재 침대에 한 중년 여인이 누워 있었다. 중년 여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검붉은 반점들이 가득했고, 하얗게 질린 얼굴에서 쉴 새 없이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헉헉헉, 로, 로니...... 로니야......" "어머니, 저 여기 있어요! 저예요! 로니예요!" "아아, 로니...... 로니야...... 내아들……." 중년 여인이 손을 허우적거리자 로니가 얼른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 그렁한 눈으로 안절부절못하다가 소리쳤다. "진통제, 진통제를!" "진통제는 이미 먹여드렸다. 하지만……." "아아, 어머니, 어머니!" 타른의 대답에 로니는 결국 눈물을 쏟아 내며 울부짖었다. 동시에 중년 여인의 몸이 활처 럼 휘며 폐부에서 쥐어짜 내는 듯한 신음을 터뜨렸다. 그때, 아크는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중년 여인, 그리고 그 손을 잡고 어쩔줄 몰라하는 소년! 똑같은 장면 을 본 적이 있다. 아니, 겪은 적이 있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은 바로 아크가 예전에 중환자 실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었던 그때와 똑같았다. 당시 아크가 느꼈던 절망과 풀 길 없는 분노는 말로 설명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여전히 섬뜩한 공포로 남아 비슷한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일었다. '빌어먹을, 역시......" 몇번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다. 눈을 감고 도망가고 싶어질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그러나 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보고도 모른 척할 수 없는 장면이다.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 뉴 월드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봐 온 아크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알아챘다. 이곳이 현실이 었다면 단지 그 뿐이었겠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현우는 그저 게이머에 불과하지만 아크는 훌륭한 전사이자(도적아님?ㄷ), 요리사이며, 동시에 간병인이었다! 아크는 로니를 밀쳐 내며 중년 여인의 손을 잡았다. "용기를 내십시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습니다. 다른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세상 어느 누가 병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닌 당신을 사랑하는, 무력하게 당신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의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아아, 로니...... 로니......" "네, 그렇습니다. 로니를 위해서라도 부디 힘을 내십시오!" 아크는 중년 여인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마주잡은 손에서 희미하게 빛이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촛불처럼 미약하던 빛은 점차 방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확대 되더니 이내 중년 여인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순간 고통으로 얼룩졌던 중년 여인이 극적으로 변하더니 호흡도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리 고 잠시 후, 편안한 숨결을 내뱉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상급 '간병'의 효과가 발휘되어 위기를 넘긴 것이다. 타른과 로니가 놀란 눈으로 아크와 중년 여인을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오오오, 이럴수가! 진통제조차 듣지 않았는데!" "혀, 형. 고마워요!" "......아직 치료된 게 아니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한번 발작을 일으키면 며칠을 괴로워하기도 하 셨어요. 이렇게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게 얼마 만인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로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때마다 아크의 가슴이 시큰 거렸다. 그 모습 역시 오래전 아크가 진통제 한 방 놓아준 의사에게 했던 말과 행동 그대로였다. 고 개를 조아리던 로니는 뒤늦게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적이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여기 아까 주셨던 선금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됐어. 주문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어머니나 잘 돌봐드려." 로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상에 붙어 앉아 젖은 수건으로 중년 여인의 땀을 닦아 주었다. 아크는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서 집 밖으로 나왔다. ACT2 탐문수사 "휴......" 밖으로 나온 아크는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진정시켰다. 한순간이었지만 중년 여인이 중환자실에서 신음하던 어머니와 겹쳐 보여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자리를 옮겨 불쾌한 기분을 떨쳐 내고 싶었다. 하지만 '간병' 한 번 써주고 할 일 다했다는 듯이 얼른 자리를 뜨는 것도 뭐해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였다. 뒤따라 나온 타른이 아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정말 고맙네. 사실 근래 들어 진통제까지 듣지 않고 증세만 더욱 심해져 이번에야말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네 덕에 위기를 넘겼어. 만약 마가렛이...... 아,로니의 어머니 이름이네. 어쨌든 마가렛에게 큰일이라도 생겼다면 로니 녀석, 미쳐 버렸을지도 몰라." "……마가렛은 대체 무슨 병에 걸린 겁니까?" "모르겠네." 타른이 한숨을 불어내며 대답했다. "사실 나는 약제사네. 뭐, 정식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시엘의 약제사 밑에 서 일하며 귀동냥으로 들은 지식으로 이곳 주민들에게 약을 지어 주는 일을 하고 있지." 타른이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대기 시작했다. "보면 알겠지만 이곳 주민들은 시엘의 비싼 약을 살 형편이 못 되니까. 다행히 지금까지 어 지간한 병은 대부분 치료할 수 있었지. 그런데 1년 전인가? 갑자기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 마가렛처럼 괴질에 걸리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괴질은 무슨 약을 먹여도 차 도가 보이지 않더군." "저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 또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이상하게도 시엘 주민들은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곳 주민들에게만 저런 괴질이 발병했다네. 더 이상한 건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멀쩡한데 어른들에게만 말이네. 마가렛 은 특히 증세가 심한 환자라네. 덕분에 로니 녀석은……." 타른은 안쓰러운 눈길로 판잣집을 바라보며 설명했다. 로니는 오래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둘이서 생활해 왔다. 당연히 풍족하지 않 은 생활이었다. 하긴 풍족했다면 빈민촌에서 생활하지 않으리라. 그래도 어머니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로니는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로니의 힘든 하루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부터 로니는 마가렛을 치료할 돈을 벌기 위해 시엘을 들락거리기 시작한 거네. 하지만 빈민촌 주민이 시엘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내 경우는 정말 운이 좋아서 약 제사 밑에서 잡일을 거들게 되었지만 말이야." 그러나 당시 열 살밖에 되지 않았던 로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짐 나르는 일도 시켜 주지 않았고, 어떨 때는 악랄한 상인에게 걸려 녹초가 될 때 까지 일하고도 보수를 못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힘든 것은 시엘 주민들의 태도였다. 빈민촌 출신의 소년이 마을에서 기웃거리면 마을 이미지가 손상된다고 툭하면 욕하고 때로 는 또래 소년들이 몰매를 때리기도 했다. "그뿐이면 그래도 괜찮네. 시엘 주민들이 빈민촌 주민을 괄시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 니까. 정말 슬픈 일은 이웃이라고 생각했던 빈민촌 주민들까지 그랬다는 거야." "네? 어째서요?" "아까도 말했지만 마가렛의 병은 1년 전에 시작된 거네. 그리고 그 이후로 다른 빈민촌 주 민들도 같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지. 때문에 주민들은 마가렛이 정체불명의 병을 퍼뜨렸다 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아무리 전염병이 아니라고 해도 도통 들어 먹어야 말이지." 그제야 아크는 로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로니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막상 타른의 말을 듣고 나니 대강의 그림이 그 려졌다. 그때 로니의 몸에 새겨져 있던 상처는 시엘에서는 빈민촌의 주민이라고, 그리고 빈민촌에서 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던 흔적이었으리라. "확실히 전염병은 아닌 겁니까?" "확실하네. 당시 빈민촌에 병이 퍼졌던 방식도 그렇고, 마가렛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나나 로 니가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타른이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는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런데도 로니는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고 욕이나 구타를 묵묵히 견뎌 냈네. 자칫 반항이라 도 하면 이곳에서도 쫓겨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겠지. 저 어린 녀석이 말이야." 로니는 그렇게 주변의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시엘을 드나들며 돈을 벌었다. 그리고 조금이라 도 돈이 모이면 각종 약초를 사 들고 타른을 찾아왔다고 한다. 비싼 약을 살 돈은 없으니 타른에게 부탁해 약을 만들어 달라고 말이다. 그러나 어떤 약초 를 사용해도 마가렛의 병세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타른이 할 수 있는 일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진통제로 고통을 줄여 주는 일뿐. 그러나 근래에는 그조차 듣지 않았다. "진통제도 약이야. 많이 쓰면 내성이 생길 수밖에 없지. 일단 이번에는 자네 덕에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가 큰일이군. 내가 보기에 이제 마가렛은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어. 아마 도 한 번이나 두 번,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면......" 타른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으로 대신했다. '그런 건가?' 그제야 아크는 그동안 로니를 만나며 이상하게 생각되던 의문이 풀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게 있다. 그동안 로니에게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던 이유는 단순히 자신처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 내고 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로니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아크 역시 깨닫 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보다 근본적으로 로니가 비슷한 처지였음을 직감했으리라.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병든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사람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냉담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그런 만큼 아크는 로니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상 전부를 저주하고 싶은 무력감...... 왜 모르겠는가? 안다, 알고 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돕고 싶다.' 돌연의 아크의 가슴속에서 그런 욕망이 꿈틀거렸다. 뭔가를 얻기 위해서 돕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돕고 싶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새삼스럽지만 '간병은 치료가 아니다.' 방금 전처럼 병자의 고통을 줄여 줄 수는 있지만 치료와는 거리가 먼 스킬이다. 설사 아크 의 진심이 통해 '기적의 간병'이 발동한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 '기적의 간병'이 발동한 상황을 돌이켜 봐도 '기적의 간병'은 병을 치료할 계기를 만 들어 줄 뿐, 그것만으로 질병을 완치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적의 간병'이 발동해 준다면 상황이 많이 나아질 거야. 방금 전의 발작을 봤을 때 이대로 두면 마가렛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판잣집으로 돌아 들어가 아예 자리를 잡고 마가렛을 '간병' 하 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상황에서 펑펑 터져 나오던 '기적의 간병'이 막 상 마음먹고 시도하자 발동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 진심으로 이 여자를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다른 때보다도 더욱 절실하 게. 빌어먹을 그런 상황이면 한 번쯤 발동해 줘도 좋잖아. 대체 왜 안 되는 거야?' 아크는 '기적의 간병'을 발동시키지 않는 시스템을 향해 욕설을 쏟아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마가렛이 병에 걸린 뒤로 로니는 돈이 모일 때마다 성직자나 의사를 찾 아 다니고 각종 약초를 다 써봤다고 했지? 그런 상황을 이전에 한 번 겪어 본 적이 있다!' 바로 생명의 숲에서 식중독으로 고생하던 갈킨족을 만났을 때였다. 그때도 '기적의 간병'이 발동하지 않았고, 심지어 레리어트가 사용하는 각종 치료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갈킨족이 질병과 무관한 식중독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갈킨족이 식중독을 일으킨 원인은 오염된 식재료를 먹은 탓이다. '만약 마가렛 역시 비슷한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기적의 간병'이 발동하지 않는 이유도 설 명된다. '기적의 간병'은 병자를 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을 때 발동하는 스킬. 그 때문에 식중독에 걸렸던 갈킨족에게 사용할 때는 '기적의 간병'이 발동하지 않았던 거야. 그 건 치료가 아니라 해독이 필요한 상황이니까.' 그러고 보니 마가렛의 몸에 번져 있는 검붉은 반점들 역시 갈킨족과 비슷하다. '정말 내가 생각한 게 맞다면 여기서 간병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돼.' "로니, 어머니를 잘 보살펴라. 난 좀 알아볼 게 있어." 아크는 로니를 위로해 주고 판잣집을 나왔다. 아크는 이미 예전에 갈킨족의 식중독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크가 사용한 방법은 주 변을 조사해서 중독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 해독제를 만들어 내는 방법이었다. '설마 평범한 NPC가 갈킨족처럼 아무거나 집어먹었을 리는 없지만, 살림이 궁핍하면 좀 이상 하다 싶어도 주변에서 채취한 식재료를 먹었을 가능성도 있어. 그렇다면 빈민촌 주민들만 병 에 걸렸던 이유도 해명된다. 부유한 시엘 주민이 수상한 식재료를 먹었을 리가 없으니까. 일 단 그걸 조사해야 한다.' 일단 아크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빈민촌 근처에 흐르는 강가였다. 주변이 뭔가의 이유로 오염되어 있다면 강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나 '식재료 감별'로 강물을 조사하자 의심스러운 정보가 발견 되었다. 불결한 강물 시엘 빈민촌 근처를 흐르는 평범한 강물. 음식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상급 추가 정보 :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의 마을에서 흘러 나온 생활 오폐수로 꽤나 불결해 보입니다. 생활 오폐수는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수량이 풍부한 강이라 아직 심각한 오염의 징후가 보이지는 않지 만 후손을 생각한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연을 훼손하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지만 회복 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는 법입니다. '틀림없어, 이게 원인이야!' 강물의 정보를 확인한 아크는 곧바로 주변의 식재료를 종류별로 채취했다. 생활 오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은 현실에서만이 아니라 뉴 월드에서도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오염의 데미지를 가장 먼저 받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정보창에는 아직 심각한 수준의 오염은 아니라고 했지만, 생활 오폐수에 무슨 성분이 녹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성분으로 인해 식재료가 독성을 품게 됐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도 대기나 강이 오염된 지역에서 자란 식재료에서 발암 물질 따위가 검출되는 사례 가 종종 있지 않은가? '오염으로 인해 이 식재료들 중에 특수한 성분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그 식재료를 찾아 서 '식의'의 기술로 약 성분을 추출하면 간단하게 해독제를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식의' 의 기술을 사용하려면 일단 서바이벌 냄비가 필요한데…….' 아크가 난감한 표정으로 식재료들을 바라보았다. 현재 아크의 냄비는 내단 연성을 위해 마법 학회에 맡겨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빈민촌의 주 민을 치료하고 싶다고 해도 이제 40시간이면 완성될 내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현실의 40시간이면 NPC에게는 120시간. 무려 닷새다. 그 전에 마가렛이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아, 그렇지!'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곧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빈민촌의 약제사인 타른. 비록 강물이 오염됐다는 것조차 알아내지 못할 수준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약제사다. 나름대로 약초를 다룰 수 있는 기구 정도는 갖춰 두고 있으리라. 아크가 빈민촌으로 돌아가 양해를 구하자 타른이 흔쾌히 허락했다. 실력은 없어도 성격은 시원시원했다. "주민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뭐든 돕겠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타른의 집에 약초를 늘어놓은 아크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전자동 시스템이 붙어 있는 서바이벌 냄비와 달리 100% 수동인 타른의 도구는 번거로웠지만 그럭저럭 식재료를 시험해볼 수 있었다. -성분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젠장!" 그러나 작업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가지고 온 식재료에서 각종 성분을 추출해 봤지만 강물의 성분과 일치하는 식재료는 없었 다. "혹시 이 주변에 다른 식재료가 있습니까?" "글쎄? 웬만한 건 다 있는 것 같네만……." 타른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물론 어딘가에 타른이 모르는 식재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빈민촌 주민들 대부분이 식재료에 의해 중독됐다면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식 재료에 원인이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식재료가 원인이 아니라면 대체……. '가만 그러고 보니 빈민촌에서 가장 먼저 발병한 마가렛이 1년 전이라고 했어. 만약 주변의 식재료에 원인이 있다면 그런 괴질은 예전부터 있었어야 하는 거잖아? 1년 사이에 갑자기 주변의 생태계가 변했을 리는 없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아크가 타른에게 물었다. "혹시 이 주변에 1년 전후로 뭔가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달라진 점이라? 딱히 이렇다 할 부분은 없었네." "뭐든 좋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시엘에 '세이룬 공방'이 들어선 게 그때쯤이겠군." "세이룬 공방요?" "그래. 세이룬 공방은 시엘에서 가장 큰 연금술 공방이지. 브리스타니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포션은 시엘만이 아니라 이 지방 전체에 공급 되고 있지." 타른의 말에 아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직장...... 그러고 보니 로니의 어머니도 병에 걸리기 저네는 일하고 있었다고 했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만약 정말 빈민촌 주변의 식재료에 문제가 없다면 그녀들이 다녔던 직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연금술 공방이라면 각종 약초를 다루는 곳! 그렇게 타른의 제보로 아크의 수사는 뜻밖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세이룬의 상급 회복 포션 10여 가지 약초를 특수한 기법으로 배합, 고밀도로 정제해 만든 세이룬 공방의 특상품. 전 투에서 입은 부상을 즉시 치료할 수 있는 전사의 필수 아이템 입니다. -사용 즉시 생명력+650. 단, 질병이나 독과 같은 상태 이상에는 효과가 없음. "흠……." 아크는 빨간 액체가 들어 있는 병을 흔들어 보았다. 타른에게 정보를 얻은 아크는 곧바로 세이룬 공방을 찾아가 포션을 하나 구입했다. 뉴 월드에는 특정 지역에서만 취급하는 특산품. 이른바 브랜드 아이템이라는 게 존재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드워프들이 밀집한 지역ㅇ게서는 다른 상품보다 철을 이용한 상품이 더 활발하게 거래된다. 그런 경우, 자연히 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많아져 다른 지역보다 성능이 우수한 각종 무기 와 방어구들을 생산해 내게 된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특수한 기법을 익힌 NPC가 생산해 내 는 상품이 바로 브랜드 아이템이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브랜드 상품은 대체적으로 좀 비싼 편이지만, 대신 동급의 다른 아이 템에 비해 성능이 좋았다. 그리고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의 상업 도시 시엘의 대표적인 벗 랜드는 바로 각종 물약을 생산하는 세이룬이었다. 세이룬의 포션은 다른 포션과 비슷한 가격임에도 회복 량이 평균 100~150 정도 더 높은 것으로 브리스타니아의 남부 지역에서는 상당히 유명했다. 아마도 빈민촌의 주민을 고용해 인건비를 대폭 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공방에 다녔던 사람들이 병에 걸렸다?'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포션에 들어가는 약초 가운데 몇 가지가 문제가 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약초 자 체에는 문제가 없어도 안심할 수 없다. 약초란 상당히 독특한 재료라, 약 성분만 있는 약초 라도 배합에 따라서는 독성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실제로 도적들이 사용하는 '맹독 제조'도 독초와 약초를 혼합해서 독성을 증강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미 액체 혼합물이 되어 있는 포션으로는 성분을 알아볼 수 없었다. '역시 포션을 조사해 성분을 추출하는 건 무리인가?' 때문에 아크는 포션을 살 때 은근슬쩍 약초 배합법을 물어봤다. 사실 굳이 포션을 구입한 이 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랜드 포션을 만드는 연금술 공방에서 약초 배합법은 일급 비밀 이었다. 물어본다고 순순히 가르쳐 줄 리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괜히 산업스파이로 오해받아 된서리만 맞고 쫓겨났다. '그래도 빈민촌 주변의 강물이나 약초가 아니라면 역시 의심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야. 여기 에 들어가는 재료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포션을 흔들어 대며 생각에 잠긴 아크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이상할 정도로 운송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리고 시엘의 중심 산업은 세이룬 공방의 포션 판매. 세이룬은 대륙적으로 물건을 파는 공방이니 운송 일 을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세이룬 공방과 관련이 있을 거야.'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운송업자들이 자주 모인다는 '황혼의 언덕' 주점을 찾아갔다. "맞네. 우리는 대부분 세이룬 공방에 물건을 납품하거나 각지에 완제품을 배달하고 있지." 얼마 전에 아크가 도와줬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크가 반색하며 물었다. "혹시 세이룬에 들어가는 재료의 품목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좀……." 노인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세이룬 공방은 브리스타니아 남부 전역에 각종 포션을 공급하는 업체다. 그만한 시장을 유지하려면 포션 제조법을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운송업자들에게도 단골에게도 입막음 을 해놨을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아크 역시 이제 믿을 건 그들밖에 없었다. "제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절대 나쁜 의도로 알아보는 건 아닙니다." "자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 하지만 우리 사정도 좀 봐주게 게다가 우리가 하는 일은 운송이네. 직접 구매해서 납품하는 게 아니라, 각지의 세이룬 지점에서 본점으로 물건 을 옮기는 일 뿐이야. 대게 밀봉된 상자만 옮기기 때문에 당연히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없지. 게다가 혹시라도 내가 그런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일자리를 잃게 되네. 나도 처자식이 있는 몸이란 말이네." "그야 그렇지만……."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미련이 남은 눈길로 노인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인이 결국 한숨을 불어 내며 지나가는 투로 중얼거렸다. "휴, 정말 곤란하게 하는구먼, 뭐랄까……. 자네라면 굳이 내게 묻지 않아도 알아낼 방법이 있을 텐데……." "네? 그게 무슨?" "흠흠, 뭐,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런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냐는 거네. 그보다 내 부탁 을 좀 들어주지 않겠나? 부끄럽게도 내 밑에서 일하는 녀석들이 어제 또 물건을 운송 해 오다 가 코볼트의 습격을 받아 짐을 몇 개 잃어버렸네. 그걸 찾아다 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세이룬 공방에서 급하게 부탁한 재료라 납품 일정이 촉박 하거든." "죄송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하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노인이 빙긋 웃으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제야 아크는 노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이 잃어버렸다는 짐은 바로 세이룬 공방에 납품하기로 되어 있는 짐. 다시 말해 아크가 알고 싶어 하는 재료가 들어 있는 짐이다. 물론 퀘스트에 관련된 물건은 아크가 마음대로 취급할 수 없다. 퀘스트를 받을 때 일종의 계 약이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되어 관련 아이템이 아무리 비싼 물건이라도 상점에 팔아먹거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돌려 말하면 팔아먹지만 않으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그럴 마음만 있다면 상자 를 뜯어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몬스터에게 약탈당했으니 상자가 뜯겨 있어도 자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 "감사합니다!" "부탁은 내가 하는데 감사는 무슨……." 아크가 와락 손을 잡으며 말하자 노인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크는 처음으로 '작센의 영웅' 칭호가 고맙게 느껴졌다. 시엘에 들어온 지 이제 만 이틀 그동안 짐 찾기 퀘스트를 20여 번이나 했지만, 반복 퀘스트라 NPC와의 친밀도가 급상승하기 는 어려웠다. 게다가 세이룬 공방의 짐은 NPC에게 생활이 걸려 있는 문제. 어지간한 친밀도 로는 그런 힌트를 주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작센의 영웅' 칭호를 받으며 생긴 '드러나지 않는 선행'의 특성 덕분에 명 성에 페널티가 적용되는 대신 모든 NPC에게 30%의 친밀도 보너스를 받는다. 고작 이틀밖에 보지 않은 아크에게 노인이 힌트까지 주는 것은 그런 특성이 작용한 덕분이 리라. 어쨌든 새로운 활로를 찾아낸 아크는 퀘스트를 수락하고 몬스터 서식지로 향했다. 그리고 되찾은 짐을 몽땅 뜯어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내 짐작이 틀렸던 건가?' 그러나 막상 내용물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번졌다. 상자 안에 있던 약초들은 평범한 것들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약초는 배합법에 따라 성분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으니까.' 시엘에서 내용물과 가튼 약초를 구입해 타른의 집에서 각종 배합법을 시험해봤지만, 예상 과 달리 괴질을 유발할 만한 독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의심 가는 부분은 그것뿐이다. 그 뒤로도 아크는 노인의 소개를 받아 다른 운송업자의 퀘스트를 몇 번 해보았다. 다른 지역에서 배달되는 약초도 조사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역시 별다를 게 없었다. '마가렛의 괴질과 세이룬 공방은 관계가 없었던 건가? 결국 다시 원점이군.' 또다시 미궁에 빠져 버린 아크가 터덜터덜 빈민촌으로 향할 때였다. 문득 한쪽에서 화려한 복장의 중년인이 다가왔다. "이보게. 자네가 아크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자 중년인이 반색하며 다가왔다. "아아, 역시 맞군. 자네 소문은 들었네." "제 소문이라니요?" "우리 공방에 납품하는 운송업자들 사이에서 자네의 소문이 파다하더군." "우리 공방이라면...... 혹시 세이룬 공방?" "알고 있나?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사실 나는 시엘 세이룬 공방의 주인 아가트라고 하네. 그동안 이 주변의 몬스터들 때문에 자주 납품 일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곤 란하던 참이네. 그런데 요 며칠 동안은 그런 일이 없어서 알아봤더니 자네가 운송업자들 이 잃어버림 짐을 모두 찾아 주었다는 말을 들었네. 게다가 다른 이방인과 달리 일을 의 뢰하고 불과 한 시간 만에 말이야." 아가트가 호의적인 표정을 지으며 바짝 다가왔다. "운송업자들이 칭송하는 자네의 실적을 봐서 특별한 부탁을 하려고 자네를 찾고 있었네. 실은 좀 난감한 문제가 생겨서 말이야. 방금 전에 지점에서 도착한 일꾼들이 돌산 부근 의 에틴에게 습격당해 옮기던 짐을 절반이나 분실했다고 하네. 한심한 놈들 그 짐 하나면 그따위 놈들의 목숨보다 비싼데……." 아가트가 구시렁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 미안하네. 내가 좀 짜증이 나서. 어쨌든 그 짐에는 당장 필요한 재료가 들어 있다네. 그걸 자네가 좀 찾아다 주면 안 되겠나? 오늘 저녁까지만 되찾아 준다면 운송업자들에게 받던 보수의 두 배, 아니 세 배를 약속하지." 아가트의 말에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점에서 직접 운송해 오던 짐……. 맙소사, 왜 그 방법을 생각 못 했을까?' 세이룬 공방에 비전의 제조 비법이 있다면, 믿을 수 없는 운송업자에게 중요한 약초의 운 반을 맡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만약 아크가 공방의 주인이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재료는 운송업자에게 맡겨도, 비장의 재료만큼은 확실하게 비밀 보장이 되는 사람에 게 맡겼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아가트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그 짐은 절대 열어 봐서는 안되네. 요즘 세이룬 공방의 비전 기법을 훔치고 싶어 하는 놈들이 적지 않단 말이지. 방금 전에도 어떤 놈이 공방에서 이 것저것 캐물었다고 하더군. 짐을 약탈당한 것은 고작 두 시간 전, 아무리 에틴이라도 철 제로 밀봉된 상자를 벌써 뜯어보지는 못했을 거야. 만약 상자가 뜯긴 흔적이 발견된다면 자네를 정식으로 고소하겠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놈이 공방 주인이라고 했지? 말에서 뭔가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아크는 바짝 다가온 아가트의 불쾌한 낯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쨌든 아가트의 협박성 멘트가 끝나자 눈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세이룬 공방 주인 아가트의 의뢰 시엘에서 유명한 포션 브랜드 세이룬 공방 주인 아가트가 당신에게 중요한 의뢰를 해왔습 니다. 세이룬 공방은 브랜드 포션을 제조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를 지점에서 운송해 오 다가 몬스터의 습격으로 일부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에 다급해진 아가트는 근래 들어 운송업자들 사이에서 명성이 자자한 당신에게 탈환을 의 뢰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물건을 되찾아준다면 평범한 운송업자들에게 받던 보수의 세 배를 약속했습니다. 단, 만약 짐이 파손된 흔적이 남아 있다면 퀘스트는 실패하고 세이룬 공방과 적대적인 관 계가 됩니다. 난이도 : C 퀘스트 조건 : '운송업자의 짐 찾기' 관련 퀘스트 25회 이상 완료 '기회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지점에서 보내온 세이룬 공방의 비장의 약초! 만약 빈민촌 주민들 사이에서 만연한 괴질이 세이룬 공방과 관련이 있다면 90% 이상 그 약초에 관련이 있으리라. 그런 확신은 몇 번이나 비밀 보장을 다짐받는 아가트의 태도에 더욱 굳어졌다. "맡겨만 주십시오!" 아가트의 손을 굳게 잡은 아크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 크아아아악! 칼날이 번뜩이자 에틴 한 마리가 맥없이 쓰러졌다. 시엘 근처의 돌산 동굴에 서식하는, 거구의 흰색 원숭이처럼 생긴 에틴! 에틴은 지금까지 상대하던 몬스터와 달리 레벨이 무려 250대에 육박했다. 시엘을 드나드는 레벨 200 전후의 유저들에게는 한 마리도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이미 레벨 366인 아크는 몰려드는 에틴을 무처럼 썰어버리며 동굴을 뒤졌다. 그렇게 또다시 한 무리의 에틴을 정리하자 근처에 작은 상자가 보였다. 천사처럼 생긴 세이룬 공방의 상표가 찍혀 있는 철제 상자 였다. -퀘스트 아이템 '세이룬 공방의 잃어버린 짐'을 습득하셨습니다. *퀘스트 완료 : 10/10 "좋아 이걸로 모두 끝났다." 아크는 철제 상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퀘스트를 끝낸 아크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내 짐작이 맞다면 상자의 내용물이 마가렛과 다른 빈민촌 주민들의 병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내 짐작이 틀렸다면…….' 세이룬 공방의 사내는 짐을 뜯어보면 의뢰를 실패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했다. 뭐, 사실 의뢰 실패라도 아크는 그다지 아쉬울 게 없었다. 아가트는 마치 엄청난 보상이라도 해 주는 것처럼 세 배의 보수를 약속했지만 그래 봤 자 60실버의 세 배면 1골드 80실버, 추가로 명성 30가량이다.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크가 주눅 들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세이룬 공방과 적대적인 관계가 된다는 거야.' 아가트는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그야 에틴의 짓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다. 그리고 이미 짐을 약탈한 에틴은 잘게 다져 놓았다. 유일한 증인(?)이 고깃덩어리가 된 마당에 무슨 수로 아크의 범죄를 증명하겠는가? 그 러나 세이룬 공방은 브리스타니아 남부 지역 일대에 영향력을 가진 공방이다. 설사 무죄 방면된다고 해도 앙심을 품은 세이룬 공방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과연 마가렛과 빈민촌 주민들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막상 짐을 되찾고 보니 그런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던 아크는 결 국 고개를 저었다. '가치를 논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걱정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로니가 너무 눈에 밟혔다. '그래. 이미 시작한 일이야. 하자, 해 버리는 거야!' 나쁜 결과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만약 세이룬 공방에서 사용하는 비장의 약초가 조합 방식에 따라 병을 일으킬 수 있다면, 그리고 세이룬 공방에서 그 사실을 모르고 사용해 왔다면, 의외로 이번 사건의 해결은 세 이룬 공방과의 관계에 되려 좋게 작용할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세이룬 공방에서 감사를 표하며 엄청난 추가보상을 줄지? '그래, 뉴 월드의 퀘스트는 꼭 하나의 결말만 있는게 아니야. 상자를 부수면 일단 받은 퀘 스트는 실패로 끝나겠지만, 대신 분기가 발생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콰쾅-! 아크는 전력을 다해 검으로 상자를 후려쳤다. 단단한 철제 상자라도 귀살검으로 후려치자 일격에 부서지며 내용물이 우수수 쏟아졌다. 역시 짐작대로 내용물은 대부분이 약초였다. 아크는 일단 약초의 품목을 확인했다. 퀘스트 아이템은 '식재료 감별'을 사용해도 이름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일단 품목을 확인 하고 시엘에서 같은 재료를 구입해 조사해 봐야한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시엘의 약초 상점에서 품목별로 구입해 조사하던 아크는 드디어 괴질의 원인이 될 만한 재 료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정보를 훑어본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어라, 가만? 분명 이게 원인이 된 건 확실해. 하지만 이건......?' @ "엇, 아, 아크 형!" 빈민촌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맞은편에서 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로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로니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물범벅이 되어 아크에게 매달렸다. "아크 형, 어머니가...... 어머니가......" "무슨 일이야? 어머니가 왜?" "또 발작을 일으켰어요. 어제부터 심하게요. 타른 아저씨 말로는 이제 가망이 없다고......" "이런, 하필이면 내가 나가 있는 사이에......!" 아크는 로니의 손을 잡고 서둘러 판잣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방 안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로니에게 들었던 것처럼 마가렛이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 도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근육이 제멋대로 뒤틀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걱정하는 것은 발작이 아니라 그녀의 온몸으로 퍼져 있는 검붉은 반점이었다. '역시 짐작대로 어제 사용한 '간병'은 마가렛의 고통을 줄이는 것밖에 효과가 없었어. 괴질 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재료 감별로 알아낸 그 '재료'의 정보에 의하면 반 점이 완전히 붉은색으로 변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이 상태에서 발작을 일으키면 몇 십 분 도 버티지 못하고 숨이 끊어진다!' "용기를 내십시오! 조금만, 조금만 참아 내면 당신은 틀림없이 병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이겨 내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로니와 함께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도 록,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크가 '간병'을 난사했지만 그녀의 발작은 멈추지 않았다. 괴질이 치사 단계까지 진행되어 '간병'조차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아, 로니야...... 로니야......!" "엄마, 엄마!" '이미 간병으로 어떻게 될 상황이 아니다!' 아크는 귓가에 메아리치는 로니의 비명을 들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간병'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녀가 완전히 기력을 잃기 전에 치료제를 만드는 것.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몸을 돌려 탁자로 뛰어갔다. 그리고 거친 동작으로 탁자의 잡동사니를 쓸어내리며 타른에게 소리쳤 다. "연금 도구를 모두 가져다주십시오!" "뭐라고? 설마 지금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건가?"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시키는 대로 해 주세요!" 아크가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며 타른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타른이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가 와락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로니,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마법 재료 상점에 찾아가서 내가 적어 주는 약초를 사 와!" "하, 하지만 어머니가……." "빌어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아크는 세이룬 공방의 상자에 들어 있던 재료의 목록을 적어 건네주며 소리쳤다. 물론 지금 아크의 가방에는 세이룬 공방의 재료가 잔뜩 들어 있는 상자가 열 개나 있었다. 그러나 퀘 스트 아이템이라 사용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같은 재료를 따로 구입하려는 것이다. 호통 소리에 로니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뛰어나갔다. '이 병을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건 의외로 단순해. 내 생각과 달리 이건 식중독도 아니었어. 단순한 중독이다. 물론 장기간 방치되어 단순한 중독 이상의 병으로 발전했지만, 필요한 재 료와 도구만 있으면 '식의'의 스킬인 '한약 달이기'와 '이독제독'을 동원해 치료제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그때까지 마가렛이 버틸 수 있느냐다.' 아크는 마가렛의 옆에 붙어 쉬지 않고 '간병'을 난사했다. 이미 최종단계로 들어선 마가렛에게는 '간병'을 사용해도 10분의 1 효과도 없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간병'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독이 너무 많이 진 행된 탓도 있지만, 그보다 그녀는 너무나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려 지친 나머지 살고 싶다는 의지조차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는 알고 있었다. 설사 고통에 지쳤다고 해도, 설사 NPC에 불과한 존재라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마법의 언어를! "당신이 여기서 포기한다면 로니는 고아가 되어 버립니다. 아십니까? 고아가 된 아이가 어 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지금까지 로니가 당신을 보살펴 왔습니다. 그러니 혼자가 되도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착각입니다. 로니가 모진 따돌림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지그시 어금니를 깨물던 아크가 버럭 소리쳤다. "비록 병마에 시달려도! 로니를 위해 따뜻한 수프 한번 끓여 주지 못해도! 로니가 돈을 벌 어 사 오는 진통제로 간신히 살아가고 있어도! 그래도, 그래도, 어머니라는 존재가 있었 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말해 드릴까요? 당신이 죽으면 로니도 죽습니다. 차라리 놓아 버 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당신의 생명은 곧 로니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아크가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의 병상에서 몇 번이나 부르짖었던 말이다. 쩌렁쩌렁 울리는 아크의 목소리에 마가렛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아랫입술이 찢어지 도록 깨물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순간 아크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거다, 그게 아크가 기억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힘이다. 혼자라면 미련 없이 끊어 버렸을 모진 목숨 그러나 그녀는 한 인간이기 이전에 어머니라는 존재다. 육체가 너덜너덜해지고 영혼마저 희미해져도 본능적으로 자식을 지켜야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어머니라는 존재다. 신은 결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나를 낳고, 기르고, 목숨마저 바치는 어머니라는 존재야말로 신,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아크는 눈물을 삼키며 그녀를 안아 주었다. "잘하셨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겠지요.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겁니다. 하지만 참아야 합니다. 조금만, 조금만 참으십시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로니를 위해서. 당신의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서! 내가 꼭 낫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마가렛이 거친 숨결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크 형!" 그때 로니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아크는 튕기듯 일어나 로니에게 그녀를 맡기고 탁자로 뛰어갔다. 그리고 타른이 늘어놓은 도구를 사용해 머릿속에 생각해 놓은 공식에 따라 각종 재료를 배합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마가렛은 거친 숨을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아크는 귀를 틀어막 고 오직 재료를 배합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시간이 없어.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끝장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실험관 안에서 따로 놀던 재료들이 점차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옅은 빛을 내뿜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옅은 빛을 내뿜는 해독제'를 만들었습니다. 맹독을 품은 독초에서 추출한 성분에 각종 약초를 더해 강력한 해독 성분의 약물 배합에 성공했습니다. 이 해독제를 사용하면 해당 독성분을 빠르게 해독할 수 있습니다. *단, 해독제 제도에 사용한 독초의 독만 해독할 수 있습니다. "됐다!" 아크는 해독제를 그릇에 담아 그녀에게 먹였다. 그러자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년 넘게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녀가 놀라울 정도로 편한 표정을 짓더니 서서히 검붉은 반점들이 사라졌다. 그러기를 잠시, 방금 전까지 신음을 흘리던 그녀가 악몽에서 깨어 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상체를 일으켰다. "어, 엄마. 반점이……." "로, 로니야,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구나." "어, 엄마!" 로니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그제야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이제 몸 안의 독성은 모두 해독됐을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무리하 지 마십시오. 그동안 몸이 많이 약해졌을 테니 당분간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죽어가던 병자를 치료했습니다. '식의'의 특성에 따라 특수한 병 치료에 따른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경험치+1000, 명성+70 '하아…….' 아크는 멍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퀘스트, 칭호, 그리고 카오틱 사냥. 그 외에도 명성을 얻을 수 있는 방법. 바로 '식의'의 기술로 병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다. 예전에 갈킨족을 치료했을 때 역시 상당한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자, 자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대체 어떻게......?" 타른이 입을 쩍 벌리며 떠듬거렸다. 아크는 고개를 돌려 멍청한 얼굴로 타른을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괴질에 걸린 사람들에게 안내해 주십시오." 그 뒤로 아크는 타른의 안내를 받으며 빈민촌의 주민들을 치료했다. 일단 방법을 알아내자 치료는 간단했다. '이독제독'으로 만들어 낸 치료제를 먹이고 '간병'으로 기력을 회복시켜 주면 끝이다. 그렇게 약 한 시간여, 아크는 지난 1년 동안 고통을 당하던 빈민촌의 병자 30여 명을 모두 치료해 주었다. 그렇게 30명의 병자에게 받은 경험치가 무려 30000, 명성이 2100이다. 아크가 지난 이틀 동안 토 나오게 반복 퀘스트를 한 것보다 열 배나 나았다. 덕분에 아 크는 레벨이 1 오르고, 비기 습득에 필요한 명성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바로 격투기 수련장으로 가지 않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ACT 3 민중의 간병인 “준비됐니?” “네!” 로니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로니를 데라고 시엘로 향했다. 상점가를 가로질러 세이룬 공방에 다다르자 문 앞에서 서성이던 아가트가 달려왔다. “자, 자네, 이제야 오면 어쩌란 말인가?” “어쩌다보니 좀 늦었습니다.” “어쩌다보니?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아가트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내가 급한 물건이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젠장, 세이룬 공방이 하루를 쉬면 대체 얼마가 손해나는지 알기나 하나? 자네 같은 평민은 상상도 못할 금액이란 말이야! 젠장, 역시 이방인 따위를 믿는 게 아니었어. 어쨌든 됐네. 물건을 찾아왔겠지?” “찾아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빨리 내놓게.” “싫은데요?” 아크가 뒷덜미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가트는 잠시 명한 표정을 짓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싫다고? 없는 게 아니라 싫다고? 그렇게 말했나?” “들은 그대로입니다. 싫습니다.” “뭐하자는 짓거리인가? 약속 기한까지 어긴 주제에 혹시 보수를 더 받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건가? 하, 그렇군. 젠장, 역시 근본 없는 이방인이 생각할 법한 일이군. 너무 바빠서 아무나 고용했더니 주제를 모르고 설치다니 하지만 상대를 잘못 봤다.” “과연 그럴까요?” 아크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리자 아가트가 오랑우탄처럼 콧등에 주름을 만들며 말했다. “네놈이 찾은 상자에 세이룬 공방의 상표가 찍혀 있는 걸 잊은 모양이군. 네놈이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브리스타니아에 있는 이상, 멋대로 설칠 수는 없어! 당장 내놓지 않으면 경비대에 연락해 네놈을 잡아 처넣겠다!” “경비대라.... 나쁘지 않군요. 부디 그렇게 해 주시죠.” “뭐, 뭐야?” 아크가 태연하게 대꾸하자 아가트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아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경비대를 불러도 좋다니까.” “네. 네놈이 대체 뭘 믿고……” “왜? 맘대로 하라니까 불러! 불러 보라고 왜 못 부르는 거지? 혹시 경비대를 부르면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경비대가 상자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면 곤란하다든가 ……." “네, 네놈 설마!” “이크, 정곡을 찔렀나?” 아크가 염장을 지르는 얼굴로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가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돌변해서 이를 갈아붙였다. “네, 네놈, 상자를 열어 본 거냐?” “그렇다면?” “이건 명백한 계약위반이야!” “그래, 인정하지. 아아, 나는 심각한 죄를 저지르고 말았어. 의뢰주와 한 약속을 어기다니 벌을 받아야겠지……. 그러니까 경비대를 부르라니까. 불러서 제대로 시시비비를 가려 보자고.” “이 자식이 정말 네놈이 상자의 내용물을 보고 뭔가 약점이라도 잡은 것처럼 생각 하는 모양인데, 웃기는 소리. 그 내용물은 공방에서 100% 안전하게 처리해 상품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실제로 우리 공방에서 생산하는 포션은 브리스타니아 남부 지역만이 아니라 왕실에까지 납품하는 특상품으로 인정받아…….” “닥쳐, 이 새끼야.” 아크의 특기, 안연 180도 갈아엎기가 발동되었다. 장난치듯 익살스러운 표정에서 단숨에 귀신같은 얼굴로 갈아엎은 아크가 섬뜩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은 것이다. 레벨 366의 유저가 살기를 풀풀 풍기며 ‘협박’ 을 사용하자 아가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해 벼렸다. 아크는 한 걸음 다가서며 으르렁거렸다. “좋아, 인정하지. 나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으니까. 네놈의 공방에서 만들어 내는 포션이 100% 안전하다는 건 내가 보증 하겠어. 그러나 네놈이 말하는 안전은 포션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이지, 포션을 만드는 사람들의 안전이 아니잖아!” 아크의 말에 아가트가 입을 팍 다물었다. 그렇다, 아크가 알아낸 세이룬 공방의 비밀이 그것이었다. 카라다라스의 발톱 ‘카라다라스 계곡의 그늘진 바위틈에서 지라는 맹독성의 독초로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생겨 카라다라스의 발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독초의 독성이 지나치게 강해 함부로 섭취하면 트롤이라도 하루 만에 죽어버릴 정도입니다. 상급 추가 정보 카라다라스의 발톱은 맹독성 독초지만 적절한 정제 과정을 거치면 여러 약초의 배합을 돕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성이 많이 닿거나 카라다라스의 발톱에서 나오는 향을 흡입하는 것만으로도 체내에 독이 쌓여 치명적인 증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약 장시간 그런 환경에 노출되면 심각힌 중독 증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증세는 고열을 동반한 통증과 검붉은 반점입니다.' 그리고 만약 반점이 완전히 붉은색이 되면 격통이 이어지다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상자의 내용물에서 확인한 정보였다. 브리스타니아 남부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던 ‘세이룬 포션’ 의 비법 재료는 바로 이 맹독성 독초 ‘카라다라스의 발톱’이었다. 물론 ‘식의’ 인 아크는 독초도 쓰기에 따라서는 약이 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시판되는 ‘세이룬의 포션’ 역시 완벽하게 정제된 카라다라스의 발톱을 이용해 안전하고, 다른 제품보다 성능도 좋았다. 현실에서도 각종 통조림을 생산할 때 염산 따위의 맹독성 화학 약품을 시용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그러나 상품의 안전은 직접 ‘카라다라스의 발톱’ 을 취급하는 인부들과는 상관 없는 얘기였다. 아크가 그 독초를 확인하고 당혹스러워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사실 괴질의 원인을 조사할 때만 해도 뭔가 제조 과정에 예상 못한 오류가 있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내용물을 확인하니 괴질은 단순한 실수에서 나온 문제가 아니었다. 카라다라스의 발톱은 닿거나 냄새를 흡입하는 것만으로 천천히 중독되는 맹독! 세이룬 공방의 주인 아가트가 그런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약초의 배합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모를 수도 있지만 ‘카라다라스의 발톱’ 은 명백한 독! 그게 위험한 독초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이 ‘카라다라스의 발톱’ 에 중독됐다. 적절한 안전조치만 있었어도, 하다 못해 중독된 뒤에 해독제만 주었어도 빈민촌 주민들이 고통 받는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아가트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빈민촌의 주민 따위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런 놈은 용서할 수 없다! “자, 자네, 뭔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아가트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눈치를 보다가 다가왔다. “대, 대체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역시 돈이겠지? 좋아, 이렇게 하지. 자네가 입만 다물어 준다면 500골드, 아니, 지금 당장 1,000골드를 주겠네. 어떤가? 응? 자네 같은 평민은 평생 구경도 못할 어마어마한 금액이야. 어차피 자네가 당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입만 다물면 자네는 그냥 앉아서 1,000골드가 생기는거야." “닥치라고 했지, 이 새끼야.” 아크가 으르렁거리자 아가트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때려죽이고 싶지만 아크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빈민촌 주민들은 정말 이곳으로 몰려와 아가트를 때려죽일 기세였다. 그걸 말린 사람이 바로 아크였다. 아가트를 때려죽이는 것은 아크를 위해서나, 빈민들을 위해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민들을 설득해 이번 사건의 전권을 위임받고 아가트를 찾아 온 것이다. “좋아 경비대에는 알리지 않겠다.” “그, 그게 정말인가?” “대신 세 가지조건이 있다.” “조건이라니?” “그동안 고통 받은 빈민가의 주민들에게 위자료로 한 명당 1,000골드를 지급해라 그리고 부당한 해고를 당한 주민들을 이전 급료의 세 배로 재고용해야 한다. 물론 완벽한 안전조치를 취한 뒤에 말이지, 이게 첫 번째 조건이다.” 이게 아크가 흥분한 빈민들을 말린 이유였다. 빈민촌의 주민들은 아크 덕분에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그 동안 약값을 대느라 궁핍한 살림이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건강을 되찾았다고 해도 아가트가 이들을 다시 고용할 리도 없었다. 때문에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뭐,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당장 그런 위자료를 지불하면 공방은 당장 망할 거야!” “그거야 네.사정이지. 너도 빈민촌의 주민들이 죽어 갈 때 그렇게 생각했잖아” “그 그건…….” 아가트가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공방이 망하는 꼴을 볼 수는 없어!” “뭐, 브리스타니아의 남부 지역을 장악한 공방이 그 정도로 망한다는 말은 믿기 힘들지만,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차라리 그편이 나을 텐데?” “뭐?” “세이룬 공방이 시엘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니 경비대에 얄려도 적당한 수준에서 무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말이야 만약 네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경비대는 물론이고, 브리스타니아 국왕 폐하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릴 생각이거든? 그렇게 되면 과연 세이룬 공방이 무사할 수있을까?” “하, 건방진 놈. 한낱 이방인 따위가 브리스타니아 국왕 폐하를 들먹이다니, 국왕 폐하께서 너 따위 근본도 모르는 이방인의 말을 믿어 줄 것 같은가? 아니, 네가 국왕 폐하께 이번 일을 알릴 수나 있을 것 같으냐?” 아가트가 갑자기 세게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약 이 문제가 확대되어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아무리 세이룬 공방이라도 무사할 수 없다. 아가트는 당장 형벌을 받고 공방은 그날로 폐쇄되리라. 그러나 나쁜 놈들이 항상 그렇듯, 아가트는 시엘의 영주만이 아니라 왕성의 고관들에게도 뇌물을 먹여 왔다. 그 인맥을 이용하면 빈민이나 이방인의 말 따위는 국왕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묵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크 님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아가트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뭐야? 어떤 놈이, 헉, 다, 당신은?” “네. 마법 학회 시엘 지부장 라벤트입니다” 그렇게 소개한 사내는 바로 아크가 시엘에 와서 처음 만났던 일영 아크의 팬이라고 주장하는 마법 학회의 마법사였다. 라벤트는 아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아크 님은 마법 학회의 정회원입니다” “마, 마법 학회의 정회원? 운송업자의 짐이나 찾아 주던 놈이?” “그건 워낙 남의 어려움을 보고 모른 척하지 못하는 아크님의 성격 때문이죠.” 라벤트는 새삼 존경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이번 빈민촌의 일에 끼어든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이겠죠. 이미 아크님이 이곳에 오기 전에 마법 학회에 들러 대강의 사정을 들었습니다. 좀 심한 짓을 하셨더군요. 만약 아가트님이 요청을 거절한다면 아마도 아크 님은 정회원 자격으로 이번 사건을 마스터에게 상의할 겁니다. 아가트님이라면 굳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제가 말하는 마스터가 어. 떤. 분. 인지, 브리스타니아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입니다.” 마법사의 말에 아가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솔직히 마법 학회와 거래하던 세이룬 공방의 비리를 전해 듣고 저는 수치심마저 느꼈습니다. 한낱 지부장인 제가 그 정도라면 마스터께서 느낄 분노는 가히 짐작도 할 수 없죠.” 그런 분노는 비단 마스터만이 아닌 듯, 아가트를 바라보는 라벤트의 눈에는 노골적인 경멸의 빛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빈민들의 처지를 걱정한 아크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가트님이 조건만 수락한다면 저는 이 사실을 묻어 둘 생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아가트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빈민을 생각하는 아크님의 넓은 아량에 대한 존경심 때문입니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마법 학회의 정회원’이라는 칭호를 가진 유저는 불과 20여 명, NPC를 포함해도 500명밖에 되지 않았다. 당연히 마법 학회의 마스터는 정회원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마법 왕국 대륙의 그 어떤 곳보다 마법 학회 마스터의 영향력이 강한 곳이었다. ‘역시 높은 사람과는 알아두고 볼일이라니까.’ 아크는 새삼스럽게 인맥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그리고 마스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아크가 마법 학회 정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아가트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알겠소. 조건을 받아들이면 되는 거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은 아가트는 말투마저 공손해졌다. 아크는 라벤트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이고 말을 이었다. “말했을 텐데? 그건 첫 번째 조건이라고” “그럼 두 번째 조건은 뭐요?” “나에게 2,000골드를 지급할 것.” “뭐 뭐요?” “이번에 빈민가의 주민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든 재료비와 수고비다. 미리 말해 두지만 괜한 트집을 잡을 생각은 하지 마. 솔직히 생각 같아서는 10,000골드쯤 뜯어내고 싶었어. 하지만 정말 세이룬 공방이 망해 버려도 곤란하니 라벤트와 상의해서 결정한 금액이다. 무슨 말인지 알지? 공방에서 그 만한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말이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 사정이 어찌 됐든 아크 역시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아가트가 입막음으로 제시한 1,000골드를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일단 확실하게 숨통을 틀어쥐면 빈민들의 위자료는 물론, 아크 역시 적당한 구실을 붙여 2,000골드쯤은 받아 낼 수 있다. 고작 1,000골드에 합의를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말한 것처럼 세이룬 공방이 정말 망해 버리기라도 하면 본전도 못 찾게 되리라 때문에 아크는 사전에 라벤트를 만나 세이룬 공방의 자산규모를 파악했다. 아크가 제시한 빈민들에게 1,000골드와 아크에게 2,000 골드는 딱 공방이 망하지 않는 수준에서 받아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이었다. 자산 규모까지 파악했다는 말에 아가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결국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조, 좋소. 당신 말대로 위자료를 지불하겠소. 하지만 당장은 안 돼 당장 그 돈을 지불하면 공방이 망한다는 말은 정말이오. 자산 규모를 파악했다면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당신이 말한 위자료는 세 번에 나눠서 두 달에 한 번씩, 여섯 달에 걸쳐 지급하겠소.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도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소.” 아가트의 제안에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당연히 계약서는 써 주겠지? 물론 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마법 학회에서 공방의 장소를 모두 압류해서 빈민촌 주민과 나에게 나눠 준다는 조건으로 말이야.” “자, 잔인한!” “너에게 그런 말을 듣기는 싫은데.” 아크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아크는 아가트를 협박해서 빈민들 것과 아크 것, 두 장의 계약서를 받아 냈다. “자, 그럼 부지런히 일하라고, 빚을 갚으려면 말이야” 아크가 계약서를 흔들며 히죽거리자 아가트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때 몸을 돌리려던 아크가 멈칫하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세 번째 조건을 말하지 않았네!” “뭐, 뭐요? 이제 없어 더 이상 주고 싶어도 없단 말이오!” “뭘 그렇게 놀라? 걱정마. 마지막은 돈 달라는 게 아니야. 그냥 얼굴만 빌려주면 돼.” “얼굴을 빌려?” 아가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크는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아가트의 얼굴을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적당한 높이가 되자 옆에서 있던 로니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로니 네 차례다.” 빠악-! “으악!” 순간 로니가 미사일처럼 튕겨 나가 면상을 들이받았다. 아가트가 코피를 철철 흘리며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아크는 코를 부여잡고 뒹구는 아가트를 걷어차 구석으로 보내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로니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 이걸로 된 거냐?” 로니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래, 네가 만족했다면 됐어.” 아크는 기특하다는 눈빛으로 로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 어머니를 제외한 나머지 빈민촌 주민들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어. 유일하게 네 어머니만 그렇게 심한 상태였던 거지. 그 말은 발병하기 한참 전부터 ‘카라다라스의 발톱’에 중독되어 고통스러웠는데도 쭉 참으며 일을 하셨다는 뜻이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일하신 거야.” 아크는 로니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한 마디 한 마디 힘주어 말했다. “너를 위해서다. 자랑스러운 어머니야. 자랑스러워해도 돼.” “아크형.” 로니는 아크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크는 로니를 토닥이며 빈민촌으로 돌아왔다. 빈민촌 주민들 앞으로 되어 있는 계약서를 건네주자 타른이 입을 쩍 벌렸다. “어, 어떻게 이런…….” “별거 아닙니다. 제가 공방을 찾아가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이 그동안 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말하니 아가트가 뭐라도 해주고 싶다면서 이런 계약서를 써 주더군요. 아크는 빈민촌 주민들에게는 아까 전의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어쨌든 빈민들은 앞으로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다시 공방에서 일해야 한다, 그때 아가트가 사정을 알면서도 완강하게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사건이 밝혀지고 원만하게 해결되자 빈민촌 주민들이 로니에게 몰려들었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우리가 제대로 사정도 모르고 너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용서해 달라는 말조차 할 수가 없구나.” “괜찮아요. 어머니도 건강해지셨으니 그걸로 충분해요.” 로니가 코를 훌쩍거리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이걸로 됐죠?’ 하는 눈빛으로 아크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 됐다, 이 녀석아.’ 아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아크는 로니를 아가트에게 데려갈 때도 뒤를 봐줄 테니 마음 내키는 대로 쥐어 패도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아크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면 정말 반쯤 죽여 놨을 것이다. 그러나 로니는 아크와 달랐다. 역시 어린애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지나치게 어른스럽다고 해야 할지, 아가트에게는 분노의 박치기 한 방, 그리고 그동안 괴롭혔던 빈민촌의 주민들은 대범하게 용서해 주었다. 아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나 달라서 더욱 로니가 미음에 들었다. ‘뭐 덕분에 나도 한몫 챙겼으니 이걸로 됐어’ 아크는 빈민촌의 주민들을 바라보다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이번 일은 정말 순수한 선의에서 시작한 일이다. 마지막에 아가트에게 2,000골드를 긁어내기는 했지만, 빈민들에게는 딱히 대가를 받아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크가 그런 생각으로 적당한 시기에 빈민촌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타른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아크에게 달려와 와락 손을 잡았다. “이 사람, 어딜 가는가?” “이제 제가 할 일은 끝났습니다. 또 할 일도 있으니 이제…….” “그런 섭섭한 말이 어디 있나? 우리를 정말 인간 말종으로 만들 셈인가? 자네는 우리를 구했네. 병자들만 아니라, 이곳 주민들을 가난이라는 병마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어. 나 역시 자네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알량한 의학 지식이 아니라 더 깊게 병자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말이네. 자네야말로 진정한 간병인이야!” 순간 경쾌한 음향효과와 함께 아크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했습니다. 영자를 돌보는 것만이 간병은 아닙니다. 진정한 간병인은 병자만이 아니라, 병자와 고통을 나누는 사람들까지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말 고통 받는 사람은 병자가 아닌 주변 사람들. 그들은 병자와 함께 고통 받으며 또한 경제적인 고통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병자를 생각하는 당신의 미음은 병자를 넘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까지 생각하는 경지에 들어섰습니다. 당신의 선행은 병자만 구한 것만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까지 구했습니다. 그로써 빈민가의 사람들은 더 이상 굶주림에 고통 받지 않고 병자의 약을 사느라 힘들어졌던 가정을 일으켜 세울 희망까지 얻었습니다. 비록 가진 게 없어 그 고마움의 표시를 마음으로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죽을 때까지 당신의 깊은 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야말로 간병인에게 무엇보다. 값진 보상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병든 마음에서 구해 내고 희망을 심어 주는 일 이것이야 말로 당신의 힘으로 일궈 낸 진정한 기적의 간병입니다. 당신은 진정 간병인의 귀감이 될 만한 업적으로 인해 간병인으로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적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4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200 증가합니다. +성향이 선으로 100 증가합니다. 기적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 '민중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많은 병자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2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200 증가합니다. ‘하, 이것도 간병이란 말인가?’ 아크는 황당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정작 나와 달라고 애원할 때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다가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야 발동하다니……. 정말 짜증나는 시스템이군.’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만약 ‘기적의 간병’이 처음부터 발동했다면 마가렛은 좀 더 빨리 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병자들은 구하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빈민촌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로니는 그들에게 더 심한 따돌림을 받아야 했으리라. 물론 아크 역시 2,000골드라는 부수입을 챙기지 못했겠지. “아크 형, 마을 아저씨들이 형에게 식사 대접이라도 하고 싶다고 난리예요.” 그때 로니가 쪼르르 달려와 말했다. 덕분에 아크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멋지게 사라질 기회를 놓쳐 버렸다. 은인에 대한 대접이라고는 하나,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어도 1골드도 나오지 않을 듯한 빈민촌이다. 그들이 준비해온 음식은 고작 말라비틀어진 육포와 싸구려 술 한 병이 전부였다. 게다가 주위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한 빈민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아니, 정말 간만에 느껴보는 아주 좋은 기분이다. "에이, 기적이 별거냐? 이런 싸구려 육포와 술이 맛있으면 그게 기적이지" 아크가 질긴 육포를 우물거리며 중얼거리자 빈민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후후후, 이제 시엘에서 할 일도 대강 끝나가는군’ 아크는 시엘 중심가를 걸으며 히죽거렸다. 로니 모자를 도운 일은 여러모로 아크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실질적으로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아가트에게 받아 내기로 한 2,000골드는 일단 제쳐 두고, 그 일을 하기 직전 이틀 가까이 반복 퀘스트를 해서 얻은 명성은 고작 300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빈민촌 주민들을 돕자 단 하루 만에 물론 반복 퀘스트를 할 때보다 몇 배는 힘들었지만 얻은 명성은 무려 2100! 거기에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반복 퀘스트를 몇 번 더해 40의 명성. 그뿐인가? 좀 생뚱맞기는 했지만 일이 모두 정리된 뒤에 ‘기적의 간병’이 발동되어 400의 명성을 추가로 얻었다. 불과 하루 만에 합계 2,540의 명성을 얻은 것이다! 덕분에 현재 아크의 명성 총합은 8,565! 명성 7,000짜리 비기를 배우고도 1,565가 남는다! 게다가 ‘기적의 간병’으로 모든 스탯이 4씩 올라갔어. 이런 저레벨 마을에서 이 정도 수확이면 대박이다!’ 간병으로 얻는 칭호는 상황에 따라 최소 모든 스탯에 2~5 까지의 보너스가 적용된다. 이번에 얻은 보너스는 4. ‘민중 의 간병인’은 그만큼 얻기 힘든 칭호라는 말이다. ‘어쨌든 시엘에서 지낸 지도 그럭저럭 사흘이 넘었다. 마법 학회에 맡겨 놓은 내단이 완성될 때까지 남은 시간은 일곱 시간 정도. 격투기 수련장에서 비기를 배우고 근처에서 성능 실험을 하다가 돌아와서 찾으면 되겠지. 자, 스킬을 배우러가볼까?’ 아크는 포부도 당당하게 격투기 수련장을 찾아갔다. ‘어라? 그런데 왜들 저러는 거야?’ 아크는 시엘 거리를 걸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였다. 새벽에 접속을 끊을 때와 지금의 시엘은 뭔가 미묘하게 분위기가 달랐다. 특히 마을주민들이 힐끔거리며 자기들끼리 뭔가 속닥거리는 장면이 많이 눈에 띄었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새로운 비기로 머릿속이 꽉 찬 아크는 일단 무시하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아크가 뭔가 있어 보이는 포스를 풍기며 들어서자 호비트가 달려왔다. “오오, 왔군. 그렇지 않아도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네.” “소식을 듣다니요?” “모르나? 지금 시엘에서 자네는 유명인이야. 자네가 불쌍한 빈민촌의 병자들을 도와주었다면서? 게다가 모두들 쉬쉬 하며 모르는 척하지만 빈민촌의 병자들이 세이룬 공방과 연관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것도 자네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면서?” 호비트가 바짝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사실 세이룬 공방의 아가트는 예전부터 재력을 과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네. 그래서 이번에 자네가 아가트를 혼내줬다는 소식에 모두들 속으로 고소해하고 있어.” ‘아아, 그래서 주민들이……’ 아크는 그제야 시엘 주민들이 힐끔거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긴 아크가 접속을 끊었던 시간은 네 시간 NPC들에게는 열두 시간에 달하는 시간이다. 시엘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빈민촌에서 있었던 일이니 소문이 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리라 어쨌든 호비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내가보는 눈이 정확했어. 선량한 사람을 돕고 불의를 용서하지 않는 자네라면, 창시자의 비기를 배울 자격은 자네밖에 없네. 이제야말로 창시자의 비기가 진정한 전수자를 만날 수 있게 됐어!” 호비트가 연방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아크를 띄웠다. 대놓고 칭찬을 해 대니 좀 낯 뜨거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드디어 ‘전설 어쩌고...’라는 비기를 배울 수 있게 된 아크는 자잘한 문제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야 드디어’ 아크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동상에 다가갔다. 그리고 이전처럼 동상 아래에 설치된 기관을 작동시키자 두루마리가 올라왔다. 두루마리를 집어 올리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진실의 추구’특성으로 인해 ‘전승자’에게 새로운 스킬 정보를 습득 했습니다. 《습득할 수 있는 비전 기술 - 신탁의 권》 스킬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7,000의 명성이 필요합니다. 배우겠냐고?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이걸 배우려고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경쾌한 목소리로 수락하자 돌면 두루마리가 천처럼 촤라락 펼쳐지며 아크를 휘감았다. 동시에 눈앞에 입체 영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은 한 작은 호비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치 테이프를 4배속으로 돌리는 것처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뭔가를 중얼거렸다. '신탁의 권'에 얽힌 초식 같은 것을 전해 주는 이벤트인 모양이다. 간단한 이벤트가 끝난 뒤에야 스킬 정보창이 떠올랐다. '진실의 추구'특성으로 인해, 전승자에게 새로운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비권, 신탁의 권(특수, 액티브): 이 비기는 오래전 호비트족의 한 권투가가 다년간의 수련 끝에 수행한 비장의 권법입니다. 이 놀라운 비술은 자신의 생명력을 권에 집약하여 일순간에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제사를 올려 운영의 신에게 신탁을 받습니다. 신탁의 결과는 크게 《성향》,《속성》,《환경》의 세 요소가 랜덤으로 결정하며 그에 따라 시전자는 각종 특수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붙여진 별칭이 비전 복불복. 창시자였던 호비트는 절체절영의 순간 신탁의 결과가 뜻대로 나와 주지 않아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모든 것을 운에 맡기는 호비트족의 특성이 잘 살아 있는 기술입니다. <추첨식 공격 대기 시간 : 5분, 생명력 소모 : 500> - 어떤 무기를 장비하고 있어도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에? 이 이게 뭐야?’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아크는 호비트가 전설 운운하기에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스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막상 스킬 정보를 보니 에매하기 짝이 없었다. 특정 데미지를 입하는 게 아니라, 도박을 하듯이 운에 따라 결정되는 공격이라니? 게다가 창시자가 죽은 게 신탁의 권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라고? 대체 이렇게 불길한 권법을 어디에 사용하란 말인가? 아니,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권법조차 아니었다. 아크는 이곳이 격투기 수련장이라 '권'이라는 단어만 보고 권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킬 정보창에 쓰인 '권' 은 권법의 '권'이 아닌, 문서 따위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권'자였다. ‘나는 고작 이따위 기술을 배우려고 그렇게 죽어라 명성노가다를 한거야?’ 너무 어이없어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영웅이 쓰던 권법이야?" “영웅? 무슨 소리냐?” 호비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하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니?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습니까. 관장님이 그랬잖아요. 이 도장의 창시자는 전설의 권법 달인 이었다면서요? 이 권법으로 마왕을 무찔렀다면서요?” “무슨 말이냐?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 창시자는 전설의 권법 달인이 될 뻔했다고 말했잖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신탁의 권'이 재수 좋게 좋은 효과만 발동됐어도 마왕을 무찔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뭐, 뭐요? 이제 와서 오리발을……."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치려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크는 그제야 자신이 뭔가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크는 이제는 브리스타니아 언어에 익숙해졌지만, 처음 호비트를 만났을 때는 숙련도가 10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정작 중요한 부분을 알아듣지 못하고 대강 앞뒤 상황 때려맞춰 상상해버렸다. '맙소사, 그럼…….' 그렇다. 언어 소통의 문제로 그 동안 삽질을 한 것이다. 역시 돈을 써야 할 때는 썼어야 했다. 그때 '마법의 언어 사전'으로 단숨에 브리스타니아 언어를 100%로 만들어 놨다면 이런 삽질 따위는 하지 않았으리라. 몇 푼 아껴보자고 싸구려 사전을 산 탓에 지난 사흘동안 죽어라 노가다해서 얻은 명성을 황당한 비기를 배우는데 몽땅 날려버리고 말았다. ‘우으으으, 내 명성7,000!’ 이게 그동안 죽어라 노가다를 한 대가란 말인가? 잠시 망연자실해 있던 아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 실망하기는 이르다. 정보창만 읽어 보고 스킬을 판단하는 건 시기상조야 어쨌든 명성을 7,000이나 소모해서 얻은 스킬이잖아. 의외로 쓸 만한 스킬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일단 마을 밖으로 뛰어나갔다. 췌에에엑, 췌에엑! 잠시 주변 숲을 돌아다니자 코볼트들이 몰려나왔다. 레벨200의 코볼트. ‘신탁의 권’을 시험해 보기에 적당한 상대였다. “좋아, 어디 한번 시작해 볼까? ‘신탁의 권’! 아크가 코볼트들에게 달려들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아크의 주먹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눈앞에 슬롯머신 같은 게 나타났다. 세 개로 분할된 화변에 각종 아이콘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는 슬롯머신이었다. 뒤이어 분할 화면에서 아이콘이 뱅글 뱅글 돌아가다가 탁, 탁, 탁, 멈춰 섰다. 동시에 팡파르 같은 효과음이 울리며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신탁의 권’올 발동시켰습니다. *신탁결과 【속성】 : 《평화주의자》 【성향】:《전사》【환경】: 《숲》 신탁으로 선택된 공격 방식은 ‘뿅망치’입니다. 《3분 동안 무기에 ‘뿅 망치’ 효과가 적용됩니다.》 ‘뿅 망치? 이게 뭐야?’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뭔가 화끈한 공격이 나오기를 바랐더니 뜬금없이 무슨 지속 효과란 말인가? 게다가 '뿅 망치'라는 이름만으로는 무슨 효과가 적용된다는 건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곧 적용되는 효과를 알 수 있었다. 스킬이 발동하자 펑 소리와 함께 귀살검이 거대한 뿅 망치로 변해 버린 것이다. “헉, 이, 이게 뭐야!” 변한 건 외형만이 아니었다. 뿅 뿅 뿅 뿅! 뿅 망치로 코볼트를 공격하자 이런 맥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맥 빠지는 타격음처럼 데미지도 고작 1 그렇다, 문자 그대로 뿅 망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뭐, 이런 황당한 스킬이.... 대체 이따위 스킬을 어디다가 쓰란 말이야?’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뿅 망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몬스터는 검이나 쇠뭉치를 휘둘러 대는데 뿅 망치로 뭘 어쩌라는 말인가? 그나마 레벨 200의 코볼트들이니 망정이지, 고레벨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 검이 뿅 망치로 변해버리면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리라. ‘아니, 아직은 몰라 ‘신탁의 권’ 은 사용할 때마다. 다른 종류의 특수효과가 발동된다고 했어, 그래, 별칭이 ‘비권, 복불복’ 이니 좋은 효과가 적용될 때도 있고, 나쁜 효과가 적용될 때도 있을 거야. 아마 ‘뿅망치’는 최악의 효과 였을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면이어 ’신탁의 권’ 을 사용한 아크는 완전히 절망 했다. ‘뿅 망치’ 효과가 사라지고 다시 사용한 ‘신탁의 권’ 으로 발동한 특수 효과는 ‘허풍쟁이’ ‘허풍쟁이’ 효과가 발동했을 때 아크는 드디어 제대로 된 효과가 적용됐다고 생각했다. 서걱, 콰콰콰콰쾅!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섬광과 굉음이 울려 나왔던 것 이다, 마치 일격에 산이라도 허물 듯한 엄청난 특수 효과! ’오오오, 뭔지는 몰라도 공격력이 엄청나게 올라간 것 같다! 역시 ‘신탁의 권’ 은 굉장한 스킬이었던 거야! 딱 보기에도 공격력이 몇 배는 올라간 것 같잖아!’ 휘두를 때마다. 섬광과 굉음을 토해 내는 검! 아크는 섬광을 뿜어내는 검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막상 코볼트를 공격해 본 아크는 맥이 쭉 풀려버렸다. 화려한 특수 효과가 무색하게도 실제 코볼트가 받는 데미지는 1도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 허풍쟁이 는 특수 효과의 이름처럼 겉모양만 그럴싸하게 바뀌어 공갈을 치는 스킬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발동된 스킬들도 '뿅 망치' 나 '허풍쟁이' 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전투에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 특수 효과! 물론 가끔 쓸 만한 특수 효과가 발동하는 경우도 있었다. 3분간 모든 공격에 50% 확률로 ‘밀어냄’ 과 ‘스턴’ 효과 가 적용되는 ‘고블린 펀치’, 5분간 적을 공격할 때마다. 1쿠퍼씩 떨구게 만드는 ‘야비한 도적’ 등의 특수 효과였다. 그러나 ‘비권 복불복’ 이라는 별칭처럼 어떤 효과가 발동 될지는 100% 운. 이런 쓸 만한 효과가 발동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았고, 운 좋게 발동된다고 해도 효과가 미미했다. ‘고블린 펀치’ 의 경우 밀어내는 거리는 불과 1~2미터에 불과했고 ‘스턴’ 도 1~2초에 불과했다. 또한 몬스터에게 돈을 갈취하는 ‘야비한도적’도 돈을 소지한 몬스터에게만 적용되는 스킬이었다. 게다가 일격에 1쿠퍼 100번을 때려야 고작 1실버를 벌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신탁의 권’ 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아닌 생명력을 소모해야한다. 한 번에 무려 생명력 500! 서너 번만 사용해도 무려 1500~2000의 생명력이 깎인 다는 말이다. 실제로 시험 삼아 몇 번 사용하자 생명력이 1000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처럼 코볼트나 상대하며 그냥 재미 삼아 사용한다면 모를까, 강력한 고레벨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어떤 효과가 나올지도 모를 스킬을 위해 생명력을 500이나 소모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맙소사! 이건 이벤트용 스킬이었어!" 이게 바로 ‘신탁의 권’을 사용해 본 아크의 결론이었다. 직업처럼 스킬에도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투나 생산 등에 도움이 되는 일반적인 스킬, 그리고 또 하나는 재미를 위해 이벤트 성으로 만들어진, 실속 없이 그냥 특이하기만 한 스킬. 아무래도 아크가 찾아낸 ‘신탁의 권’ 은 두 번째 것인 모양이다. 확실히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신탁의 권’ 은 꽤나 흥미로운 스킬이었다. 그러나 그뿐이다. 흥미롭기는 하지만 전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이다. 물론 ‘고블린 펀치’ 처럼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스킬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다른 스킬도 많은데 굳이 생명력 을 소모하면서까지 사용할 만한 메리트가 없었다. “대제 난 뭘 위해서 명성 노가다를…….” ‘신탁의 권’ 에 실망한 아크는 허탈하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이때까지 아크는 한 가지 단순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허접해 보이는'신탁의 권' 이 '유령 기사단 강습’ 보다. 1000이나 많은 명성을 소모해야 배울 수 있는지 그렇게 많은 명성을 투자해 배우는 스킬이 단순한 이벤트 스킬일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신탁의 권' 에는 아직 아크가 알아내지 못한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아크는 울화통이 터질 뿐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렇게 아크가 좌절 모드를 발동시키고 있을 때, 문득 어디선가 익숙한 음향이 들려왔다. 게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다. 현실의 전화 벨소리 “뭐야, 아침부터?” 대체 어떤 놈이 아침부터 남의 집에 전화질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짜증 100% 상태인 아크가 와락 인상을 쓰며 유니트에서 내려왔다. “여보세요" 아크가 버럭 소리치듯이 말했을 때였다, 수화기에서 다급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현우야, 큰일 났다.” 여기까진 보라미르님 님께서 오타수정해주셧어요ㅎ ACT 4 기나긴 축제의 시작 “돌격 부대는 측면으로 돌아 공격하라!" “우와아아아!" 명령이 떨어지자 수백 명의 나크족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번뜩이는 검과 창 소나기 같은 화살이 날아가는 곳에는 황금빛 털에 휩싸인 거대한 사자처럼 생긴 존재가 있었다. 수백 명의 나크족이 모여든 공간에서도 수십 미터에 달하 는 거체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황금 사자! 크아아아앙! 콰콰콰광! 황금 사자가 포효를 터뜨리며 앞발을 휘두르자 대기가 찢기고 지축이 흔들렸다. 앞발에 짓눌린 10여 명의 나크족이 단숨에 띠 먹처럼 뭉개졌다 강렬한 존재감만큼이나 압도적인파워! 그러나 압도적인 힘도 절대적인 숫자 앞에서는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깔리고 밟히며 뭉개지는 와중에도 나크족은 쉬지 않고 달라붙어 공격을 퍼부어 댔다- 몇몇 용강한 나크족은 아예 황 금 사자의 몸을 기어 올라가 대검으로 난도질해 댔다‘ 황금 사자의 전신을 뒤덮은 강철보다 단단한 황금빛 털은 그 자체가 갑옷이었다. 보기만 해도 질려 벼릴 듯 한 무지막지한 대검으로 후려쳐도 떠오르는 데미지는 고작 20~30 그러나 둘러싼 나크족의 숫자는 무려 수백이다 고작 20~30이라도 머릿수가 있으니 한 번씩만 공격해도 일격에 5000~8000의 데미지가 들어갔다 덕분에 황금 사지는 이미 여기저기가 뜯겨져 나간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전의를 상실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정말 무지막지한 놈이군. 벌써 전투를 시작한 지 30분째 다 그동안 적어도 30만 이상의 데미지가 들어갔을 댄데 아직도 버티고 있다니……." 섬뜩한 문양이 양각된 검은 판금 갑옷을 걸친 사내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후드를 눌러쓰고 있던 노인이 야멸치게 입끝을 추켜올렸다. “한때 어둠의 세력을 괴멸까지 몰고 갔던 놈들 가운데 하 나네 그 정도는 당연하지 ” “어둠의 세력을?' “그렇다네. 오히려 지금은 그때에 비해 힘이 많이 약해진 상태야 아마도 이계로 떨어져 나온 탓이겠지 자네도 이미 느끼고 있을 거네. 이곳에서는 중간계보다 마나가 몇 배나 느리게 회복된다는 것을 ” “그러고 보니‘ 사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마니를확인해 보았다 한참 전에 마나를 50% 정도 사용했다 평소라면 길어야 15~20분이면 회복될 수준 그러나 실제로는 아직 75%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마나 회복이 중간계보다 두 배는 느린 것이다. “이곳이 다른 이계보다 마나의 근원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네. 그리고 저 괴물은 마나에서 태어나 마나로 숨을 쉬는 존재 마나의 농도가 두 배나 적으니 그만큼 힘이 약해 진 것이지. 만약 이곳이 마나의 농도가 중간계와 같은 곳이었다면 설사 나크족의 숫자가 지금의 몇 배가 됐더라도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거네 우리에게는 행운이지 ” 노인이 깊이 눌러쓴 후드를 들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수백 년 된 고목처럼 자글자글한 주름에 뒤덮인 백발의 노인! 뼈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은 바로 아셔스 교단의 대주교,마스튜아라였다 그리고 검은 갑옷의 사내는 파멸의 기사, 아란이었다. “중간계에서는 지금보다 몇 배나 강하다고?" 아란은 마스튜아라의 설명을 들으며 새삼 놀라는 눈으로 황금사자를 바라보았다 현재 아란이 들어와 있는 곳은 ’음계’ 라는 이계였다 아란이 음계로 들어온 것은 대략 두 달 전, 당시 아란은 마스튜아라를 만나 파멸의 기사로 전직하고 아크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시해 왔던 아크를 강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멸의 기사 특수 스킬을 배우고 어느 정도 실력을 갖췄다고 자신할 무렵 아란의 앞에 붉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때 아란은 붉은 남자에게 뉴 월드에 얽힌 놀라운 비밀을 전해 듣게 되었다 붉은 남자는 그 비밀을 밝히기 위해 아란 의 협조를 구했고, 잠시 고민하던 아란은 결국 붉은 남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붉은 남자의 최종 목적은 알 수 없었지민 그에게 협조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숙적 아크를 처단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붉은 남자가 아란에게 지시한 첫 번째 과제는 음계를 중간계로 떠올리는 것! 아란은 그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붉은 남자가 알려 준 ‘시공 터널’ 을 이용해 음계로 들어오게 되었다 잠시 설명하자면, 원래 음계는 중간계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어둠의 제왕이 발동시킨 궁극 파괴 마법에 의 해 스탄달처럼 음계를 관장하던 세계수와 함께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스탄달처럼 음계 역시 세계수를 부활시키면 중간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아란이 해야 할 일은 음계 세계수의 부활! 그러나 음계로 찾아온 아란은 생각지도 못했던 벽에 부딪쳤다 ‘이계를 떠올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사실 아란도 마스튜아라에게 듣고 나서 알게 됐지만 현재 까지 밝혀진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유즈리아는 세계수 중 가장 힘이 약한 존재였다 때문에 어둠의 제왕이 발동시킨 궁극 파괴 마법을 막을 때도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고, 덕분에 되려 타격을 입어 멀지 않은 차원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계수는 그야말로 태초의 존 재 창조신과 함께 세계를 만들어 세계의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건 게임 설정상의 얘기였고, 실제로는 밝혀진 두 개의 세계수보다 한참 뒤에 발동된 에피소드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훗날 발통될 에피소드인 만큼 음 계의 난이도 레벨은 현재 중간계나 스탄달보다 까마득히 높았다 음계에서 출몰하는 일반 몬스터조차 평균 레벨이 400 대 드물지만 레벨 500짜리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몬스터가 아니었다. 아란의 음계 부활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세계수의 수호자’ 라는 존재들이었다. ‘그 수호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저 레벨 950의 정예 몬스터,비스트 드래곤 바라스!’ 비스트 드래곤 바라스 바로 황금 사자의 이름이었다. 그조차 최상급 '간파' 주문서를 50장이나 사용해서야 간신히 알아낸 정보였다 그러나 원래 이 비스트 드래곤 바라 스는 몬스터가 아니라 상위 NPC다 다시 말해 유저가 싸워야 하는 상대가 아니라 교류하며 음계 부활에 관련된 각종 퀘스트를 받아야 하는 존재였던 것이 다 그러나 NPC도 유저의 성향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특히 파멸의 기사라는 이름부터 불길하기 짝이 없는 아란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방인이여, 네 몸에서 어둠의 냄새가 난다 그대는 세계를 위한다고 말했지만 내면에서 이글거리는 것은 끝없는 증오! 틀림없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왔을 터, 맹약을 맺은 수호자로서 그대가 위대한 아버지 세계수에게 접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비스트 드래곤 바라스는 아란을 보자마자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세계의 비밀' 을 알고 있는 붉은 남자나 마스튜아라는 이미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아란이 음계로 들어올 ‘시공 터널’을 찾는 사이, 마스튜아라는 붉은 남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나크족을 동원해 군단 을 조직했다 그리고 비스트 드래곤이 아란의 정체를 꿰뚫어 보자 주저 없이 공격을 시작했다. -이놈들!― 콰아아아아-! 아란이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 비스트 드래곤이 거대한 날개를 멸치며 날아올랐다. 나크족이 너무 많아 지상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야말로 아란이 기다리던 때였다 “지금이다! 강습 부대, 놈의 움직임이 멈춰 있는 지금이 기회다!" 아란이 소리치자 산비탈에 숨어 있던 마족들이 몰려나왔다 악마처럼 생긴 수십 마리의 날개 달린 마족이 비스트 드래곤의 머리 위로 날아오며 검은 그물을 투척했다 폭풍을 일으키며 상승하던 비스트 드래곤은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순식간에 검은 그물에 휘감겨 바닥에 곤두 박질쳤다 -비스트 드래곤 바라스가 ‘타락의 그물’ 에 걸렸습니다! <<10분 동안 10초당 100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이동속도 공격 속도가 30%감소합니다.>> -크윽, 뭐, 뭐냐, 힘을 빨아들이는 이 그물은- 비스트 드래곤이 버둥거리며 신음을 흘리자 마스튜아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후 벌써 잊어버린 건가? 잘 기억해 봐라 수백 년 전에 네놈들을 잡을 때 사용하던 ‘타락의 그물’ 이다 네놈을 위해 100년 동안 어둠에서 잉태한 저주 마법을 엮은 것이지 ” 저주 마법을 엮어 만들어 낸 그물! 그렇다면 네놈들은 역시!" “여전히 느리군. 그렇다, 위대한 어둠의 후예들이다!" <<이럴 수가…….역시 저주의 예언은>> 비스트 드래곤은 충격을 받은 듯 휘청거리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비스트 드래곤은 거칠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허나, 그따위 예언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설사 그것이 운명의 신이 결정한 일이라고 해도 이 비스트 드래곤 전사 바라스가 그렇게 놔두지 않겠다! 네놈들이 어둠의 존재라면 몽땅 녹여 버리면 그만! 네놈들이 있어야 할 곳은 끝없는 어둠 속이다, 가아아아아! 비스트 드래곤이 거대한 엽을 벌리자 주변의 공기가 폭풍을 일으키며 빨려 들어갔다. 1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는 아란과 마스튜아라의 몸이 끌려갈 정도의 강력한흠인력! 드래곤이라는 존재의 최대,최악의 무기 브레스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숲과 대지의 속성을 지닌 비스트 드래곤의 브레스는 숨결에 닿는 공간을 녹여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레벨 950의 정예 NPC이니 일단 발동되면 고작 레벨 300 대의 나크족은 방어 불가! 게다가 직경 수백 미터에 적용되는 광역 효과이니 아무리 많은 나크족이라도 한순간에 초토화되리라 그러나 마스튜아라의 눈에는 오히려 희열의 빛이 번졌다 “지금이네 아란 경! 그것을!" 순간 아란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가며 검은 구슬을 날렸다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검은 구슬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폭풍처럼 빨려 들어가는 공기를 따라 비스트 드래곤의 입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비스트 드래곤이 움찔하며 한두 걸음 물러나더니 갑자기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을 굴러 댔다 <<커헉, 이,이건 설마..크,크아악!>> “크하하하, 멍청한 놈! 그렇다,네놈이 멋도 모르고 삼켜 벼린 그것은 바로 위대한 어둠의 힘으로 창조된 ‘마의 보석’ 이다.‘마의 보석’이 어떤 아티펙트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네놈의 힘은 이제 위대한 어둠의 과업을 위해 쓰인다는 말이다!" 마스튜아라가 광기 어린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마의 보석’ 이 수상한 보석은 바로 아란이 은신처에서 힘을 키울 때 사용하던 아티펙트다. 특정 몬스터의 체내에 박아 두면 힘을 흡수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파멸의 기사는 체내에 보석이 박힌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마의 보석’ 을 통해 몬스터의 능력 일부를 얻을 수 있는 특수 기술이 존재했다 “아란 경, 이제 놈의 숨통을 끊어 놓게!" 마스튜아라의 말에 아란이 검을 뽑아 들고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아란이 나서자 어둠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파멸의 기사 특수 효과인 ‘파멸의 기운’ ! ’파멸의 기운’ 을 뒤집어쓴 나크족과 마족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파멸의 기운’ 은 휘하 부대를 오직 죽음과 파괴만을 바라는 ‘광전사’ 로 만들었다 방어력이 내려가는 대신 공격력과 공격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스킬! 살의와 광기에 취해 살짝 맛이 간 나크족과 마족이 미친 듯이 비스트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네놈! 인류 평화를 위해 네놈만은>> 생명력이 2%도 남지 않게 된 비스트 드래곤이 아란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아란은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세기의 악당이 되어버렸다 "광분’ 발동! ‘생존의 욕구’ 발동! ‘절대적인 분노’ 발동!" 증오를 증폭시켜 20분간 공격력을 5% 상승시키는 ‘광분' 거기에 20분간 방어력을 50%나 상승시키는 ‘생존의 욕구’ ! 이 두 가지 스킬은 파멸의 기사 스킬이 아니었다. 바로 아크가 팔아먹은 ‘타락한 증오의 판금 장갑’ 과 ‘절망과 증오의 강철 방패’ 에 붙어 었던 옵션 스킬이었다. 거기에 아란이 직접 구한 ‘증오의 투구’ 에 붙어 있는 ‘절대적인 분노’ 는 모든 공격의 30%를 반사하는 무지막지한 옵션 스킬이었다. 세 가지 옵션 스킬을 몽땅 발동시키자 검붉은 특수 효과에 가려 아란의 몸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거기에 증오템을 세 개 갖춰서 주어지는 세트 효과까지! '동시에 세 개를 발동시키니 장난이 아니군.' 아란이 만족스러운 눈으로 중첩되는 스킬 효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상대는 레벨 950의 상위 정예 NPC! 비스트 드래곤이 휘둘러 대는 발톱에 스치기만 해도 생명력이 40%씩 빨려 나갔다 그러나 수십 마리의 마족들이 암흑계 회복 마법인 ‘어둠의 손길’ 을 집중시키자 금세 생명력이 회복되었다. 데미지와 회복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룬다고 판단한 아란은 거침없이 비스트 드래곤에게 접근하며 각종 스킬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레서데몬 스킬, ‘파쇄’ ,갈리돈 스킬 ‘광란의 검무’!" ‘마의 보석’ 을 통해 배운, 파멸의 기사 전용 스킬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수백 명의 나크족과 마족들이 합세하자 30분이 넘는 전투 로 생명력이 2%밖에 남지 않은 비스트 드래곤도 힘을 다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옹몸이 갈기갈기 찢긴 비스트 드래곤은아란의 검에 마지막숨결을 토하며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비스트 드래곤이 쓰러지자 아란의 레벨이 단숨에 최대치인 9까지 올라갔다 아란만이 아니라 주변의 나크족과 마족 들의 머리 위에도 십자 문양이 떠오르며 9씩 올라갔다 레벨 950 정예 NPC 비스트 드래곤의 경험치는 전투에 참 가한 모든 나크족과 마족의 레벨을 9까지 올릴 만큼 어마어마했다 “후 이래저래 정말 무지막지한 놈이군. ” 아란이 불과 몇 분 만에 너덜너덜해진 방어구를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나 고생한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대가가 있었다. 경험치와 함께 비스트 드래곤이 쓰러지자 서 너 개의 레어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러나 마스튜아라가 가장 먼저 접어 든 것은 비스트 드래곤의 힘을 일부 흡수한 ‘마의 보석’ 이었다 “벌써부터 약한 소리를 하면 곤란하네. 음계의 세계수를 부활시키려면 이런 수호자를 앞으로 몇 놈이나 더 처리해야 하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네 놈들이 강한 만큼 자네 도 강해질 거야 비록 흡수할 수 있는 힘은 한계가 있지만 ’마의 보석’ 에 수호자의 정수를 모두 담으면 자네는 지금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그분께서 자네에게 이번 일을 맡긴 것 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네. ” “그런데 다른 쪽은 정말 괜찮은 겁니까?" 아란이 ‘마의보석’을 받아들이며 물었다.” 그러자 마스튜아라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되물었다 “다른 쪽이라니?" “전에 만났던 붉은 남자 말입니다 저야 나크족과 함께 들어와서 그럭저럭 수호자와 싸우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다른 이계로 혼자 가지 않았습니까? 그곳의 세계수는 세상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존재, 그 세계수도 수호자 같은 존재가 지키고 있는 게 아닙니까?" 아란의 질문에 마스튜아라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훗, 그분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네 좀 전에 비스트 드래곤이 말했던 예언을 기억하나? 그 예언이라는 것은 바로 위대한 어둠의 제왕이 간악한 흉계에 당해 쓰러지실 때 남겼던 저주의 각인이네 그리고 ‘이행자’ 야말로 그 예언을 실현시킬 존재! 물론 아직 불완전한 몸이기는 하지만, 그분에게는 이미 위대한 어둠의 유산인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가 있네. 아니 뤼겐베르크가 없다고 해도 그분이라면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실 거야 ” 그분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마스튜아라의 눈에는 은은한 존경의 빛마저 보였다 어둠의 NPC에게 이렇게까지 신뢰받는 붉은 남자, 대체 진정한 정체가 뭘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아란이 다시 물었다 “그런 사람이 왜 아직 세계수를 모두 부활시키지 못한 겁니까.?" “지금까지는 아직 그분이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각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러나 또 다른 이유도 있네. 음계와 지금 그분이 가 있는 이계의 세계수는 수호자의 정을 모으면 부활시킬 수 있네 하지만 단 하나, 얼마 전에 떠오른 유계의 세계수 유즈리아는 부활을 위해 ‘신성한 나뭇가지’ 라는 아티펙트가 필요했네 그리고 그 아티펙트는 이그드라실이라는 세계수가 가지고 있었지 때문에 가장 까다로운 유즈리아를 먼저 부활시키려고 하셨던 거야 ” “하지만 유즈리아는 아크라는 놈이 부활시켰지 않습니까?" "그분께서 그렇게 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네" 마스튜아라의 대답에 아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렇다면 잘난 척하며 동영상을 공개한 아크 역시 붉은 남자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아란의 가슴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아크는 아란의 숙적이다. 언젠가 비참하게 밟아 버려야 할 적! 아크의 불행은 곧 아란의 행복이다. 그러나 막상 아크가 붉은 남자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 묘하게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나에게 그랬듯이, 아크를 절망으로 몰아넣을 사람역시 나다 그 외에는 용납할 수 없어!’ “걱정 말게 그분께서도 자네의 목적은 알고계시니 그분을 따르는 한 자네의 목적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거네 " 마스튜아라가 아란의 속내를 짐작한 듯 말했다 "대체 붉은 남자의 목적이 정확히 뭡니까?" 아란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 누구도 알지 못하는 뉴월드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의문의 사내! 아란 역시 처음에는 아크처럼 그가 글로벌엑서스의 시험감독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그런 생각에 의구심이 생겨났다 레벨 700의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음계 반면 스탄달의 몬스터 레벨은 300에 불과했다 그리고 현재 뉴 월드 유저의 평균 레벨은 250~300대 그런 점을 고려 하면 음계가 떠오르는 건 한참 뒤라야 정상이다 음계가 떠올라도 정작 유저들이 들어올 수 없다면 게임 시스템 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스탄달이 떠올라 뉴 월드가 《에피소드 Ⅲ}>의 시대에 접어들었으니, 모르긴 몰라도 음계는 《에피소드 V~Ⅵ}>에 서나 출현해야 밸런스가 맞는다. 그럼에도 붉은 남자는 편법 까지 동원해 세계수의 부활을 서두르고 있었다. 글로벌엑서스의 직원이라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시스템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NPC가 그런 사내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점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스튜아라는 항상 ‘목적’ 이라는 질문이 나오자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다. “자네는 그저 그분을 따르기만 하면 되네. 내 장담하지, 지금처럼 그분에게 충성한다면 자네는 이 세계의 누구도 상상 못하는 무한한 영광의 자리에 오르게 될 걸세 ” ‘하긴 그의 정체가 뭔지는 상관없지. ' 아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멸의 기사로 전직한 순간부터 어차피 아란은 평범한 유저로 돌아갈 생각을 접었다 아니, 설사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란은 이미 붉은 남자의 지식과 능력의 편린을 엿보았다 때문에 그를 따르면 뉴 월드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마스튜아라의 말도 결코 허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란의 목적은 평범한 게임 플레이 따위가 아니다 오직 아크에 대한 복수! 과업이 완성되는 순간, 아란은 현실에서 그랬듯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 지그시 아크를 말려 죽일 수 있으리라 ‘붉은 남자에게는 그만한 힘과 세력이 있다!’ “아, 그런데 자네가 준비한다는 일은 잘되고 있는 건가?" 그때 마스튜아라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네, 그 일은 중간계에서 잘 아는 친구가 준비 중입니다” “자네의 일이니 참견하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도움이 될수 있는 전력이야 하네. 어설픈 전력보다 차라리 없는 게 나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아란이 준비하는 일이란 바로 근래에 안델이 조직하고 있는 ‘어벤저’ 라는 길드였다 안텔은 이미 현재 뉴 월드의 톱클래스인 레벨 300 이상의 유저를 500명 가까이 포섭한 상태였다 아직 레벨 200도 되지 않는 안델이 단기간에 그렇게 많은 유저를 포섭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돈’ 이다 동서고금, 심지어 게임 세계에서도 현찰은 위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안델이지만, 적어도 현찰을 어떻게 사용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 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란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자 마스튜아라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믿어보지 하지만 그런 큰일을 하려면 자금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할 거야 비스트 드래곤에게서 얻은 아티펙트들은 자네에게 줄테니 보태도록하게" “감사합니다. “자 그럼 슬슬 출발하지 세계수를 부활시키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네. 혼자이신 그분보다 늦어서야 되겠는가?" “알겠습니다. 아란과 마스튜아라는 병력을 이동시켜 다음 수호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란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적은 곧 만나게 될 수호자가 아니었다. ‘기다려라, 아크! 너의 파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음계가 떠오르고 모든 준비가 갖춰지는 순간, 나를 무시했던 놈들과 네놈을 위한 축제를 열어 주마, 피의 축제를!’ 팡, 팡, 팡, 팡!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 해변과 인접한 관광도시 보사카는 축제의 열기에 들떠 있었다. 보사카는 브리스타니아의 서부 항구와 인접한 도시로 주변에 특별한 몬스터가 없었다. 대신 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만 되 면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보사카의 영주는 이런 관광객을 위해 시즌에 맞춰 축제를 열었다. 축제가 한창인 보사카 마을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다 꽃가루가 휘날리는 거리마다 펄럭이는 형형색색의 만국기가 두 행진 행렬에는 곡예사와 악사들이 마음껏 실력을 뽐내며 흥을 돋구었다 또한 중심 광장에는 연초부터 준비해 온 각종 놀이 기구가 개장하여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놀이 기구와 거리 공연, 화려한 퍼레이드 덕분에 보사카는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을 지경이었다, 쇄애애애액! 축제가 한창인 보사카 마을의 상공 쉴 새 없이 터지는 불꽃 사이로 유성처럼 한 줄기 섬광이 가로질렀다 뒤이어 섬광은 마을 한쪽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마법 학 회의 탑 상층부를 후려쳤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기며 섬광이 탑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탑 내부의 송신부에 붙어 있는 기기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며 빛의 입자가 모여들었다 빛의 입자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유리관을 따라 이동하더니 마법진 위에 뿌려졌다 그리고 모래시계에서 떨어지는 모래처럼 쌓여 가던 빛의 입자가 뭉치더니 점차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갔다 특이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유저는 다름 아닌 아크였다. “보사카 축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영자로 분해됐던 아크의 몸이 완전히 복원되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꽃다발을 들고 몰려들었다 영자 이동을 이용하는 관광객을 환영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환영 인파를 밀어내고는 구석으로 달려갔다 “비, 비켜! 우욱, 우에엑!” 벽을 잡고 헛구역질을 하자 내장이 다 쏟아져 나올 것처럼 속이 뒤틀렸다 ‘젠장, 임시 이동망을 설치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 아크는 헛구역질을 하며 황급히 보사카 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시엘 마법학회를 찾았을 때, 지점장 라벤트가 한 말을 떠올렸다 원래 서부 항구에 영자 이동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인근 지역인 보사카 마을은 영자 이동 시스템을 구축해 놓지 않았다 그러나 축제 시즌이 도래하자 영주의 간곡한 부탁으로 임시로 영자 이동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한다. 어째 느낌이 싸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건 예전에 작센에서 영자 이동을 할 때 느꼈던 끔찍함의 열배야! 우우욱!" 역시 ‘임시’ 라는 단어가 붙은 이동 수단은 이용할 게 못 된다 사용자의 안락함과 안전성 따위는 100% 무시해 주시 는 센스! 덕분에 아크는 불과 5분 만에 몇 번이나 지옥을 왕 복해야했다 -현기증에 걸렸습니다. ≪30분 동안 어지러움과 구토 증상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휴식을 권장합니다.≫ 오죽하면 이런 웃기지도 않는 상태 이상까지 발동하겠는가? ‘내가 또다시 영자이동을 하면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서둘러 보사카 마을에 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방법이야 어쨌든 영자 이동 덕분에 불과 5분 만에 보사카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적당히 위액을 토해 놓은 아크가 라둔에게 소리쳤다 “라둔, 북실이의 눈알!" 쌕쌕, 쌕쌕쌕! 아크는 라둔이 토해 낸 눈알을 탁탁 두드리며 소리쳤다 “북실이,들리냐? 북실이,대답해!" “아얏,엇? 아,아크 님!" 손바닥으로 몇 번 후려치자 그동안 멍하게만 보였던 눈알 이 초점을 찾았다 이어 눈알이 둥실 떠올라 멍청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다급하게 떠들어 댔다 “아크님이 어떻게 여기에, 아앗! 그, 그보다 지금 저...... 우앗!!" “상황은 알고 있어! 길게 말할 시간 없으니 그냥 대답해! 지금어디야!" “모, 모르겠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멍청아, 주변을 둘러봐 뭔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있을거아냐?" 아크가 북실이의 말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그렇다, 아크가 영자 이동이라는 극악한 이동 수단까지 이 용하며 보사카 마을로 날아온 이유는 현재 북실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아크가 보사카 마을의 상황을 알게 된 것은 10여 분 전에 걸려 온 전화 덕분이었다.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 온 사람은 바로 이명룡이었다. “나다, 현우야 지금 상황이 급하게 됐어! 뉴 월드에 접속한 상태로 잠깐 유니트에서 빠져나와 전화하는 거라 길게 통화하지 못하니 일단 듣기 만해!" 이명룡...이슈람은 쫓기는 사람처럼 헐떡이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먼저 이전 상황을 정리하자면, 도적단에 잠입 수사 중인 이슈람은 현실에서 아크가 남서부 해안 도시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크가 곧 북실이에게 연락을 취할 거라고 말했으니 북실이도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도적단을 다른 곳으로 따돌려야 한다! ’ 그렇게 생각한 이슈람은 항구에서 본 전단지를 기억해 내고 도적단에게 대충 둘러댔다 “요즘 이 근처 마을에서 축제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동영상을 검색해 봤는데, 우연히 관광객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그 돼지 같은 놈을 봤어!" “뭐? 그게 정말이야?" “틀림없어. 그 돼지 같은 놈을 옷 알아볼 리가 없잖아"이슈람의 말에 남서부로 이동하려던 30여 명의 도적단은 보사카 마을로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일단 도적단의 남서부 지역 진입을 막은 이슈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적단의 발목을 잡고 시간을 끌어댔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보사카 마을에서 북실이와 딱 마주쳐 버린 것이다 “오오오 정말 있었구나! 역시 내 마음의 친구다!” 가람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칭찬했지만 이슈람으로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북실이는 수십 명의 도적단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게 아크가 멀미를 감수하면서까지 영자 이동을 이용한 이유였다. ‘사범님은 잠입 수사 중이라 어찌 됐든 외관상으로는 수배자들을 도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다행히 백구가 있으니 북실이가 쉽게 잡히지는 않겠지만 둘이서 수십 명의 도적단 을 따돌릴 수는 없어 결국 북실이를 탈출시켜 메모리크리스털을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어 ’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다시 눈알의 비명이 들려왔다 ”헉헉헉 저 저 지금 대관람차 옆에 있어요! 히익!' “대관람차? 어쨌든 알았어. 일단 그 근처로 이동할 테니 버텨봐!" “아, 알았어요. 으악,백구야!" 눈알이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 대는 것으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크는 지제 없이 마법 학회를 뛰어나왔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혁 이, 이게 뭐야!" 마법 학회 앞이 온통 시커멓게 보였다 현실은 아침이지만 뉴월드는 밤! 그러나 단순히 어두워서 시커멓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꽉 메우고 있는 것들은 바로 축제 에 몰려든 엄청난 인파였다. 시엘에서 출발할 때 보사카 마을이 한창 축제 중이라는 말 은 들었지만, 이건 정말 상상 초월이었다. 각종 놀이 기구가 자리 잡은 중앙 광장은 물론, 골목 곳곳 에도 노상 주점이나 작은 공연장들이 들어서 있어 변두리까지도 관광객으로 득실거렸다 “벌어먹을, 걸려도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걸리는 거야?" "아 저게 대관람차인가?" 아크는 중앙 광장에서 돌아기는 수레바퀴처럼 생긴 놀이 기구를 발견했다 “여기서 버벅대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크 댄싱’ !' 아크는 ‘다크 댄싱’ 을 펼쳐 유령처럼 인파를 헤치며 중앙 광장으로 달려갔다 보사카 마을은 어지간한 도시보다 거대했다 그러나 다행히 마법 학회의 탑은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 에 있어 10분 동안 ‘다크 댄싱’ 을 난사하며 달리자 곧 대관람차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도착한 뒤였다 대관람차 근처에는 변두리보다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무슨 ‘웰리를 찾아라’ 도 아니고 혼자서 그 속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마령 소환, 라카드" “왜 불렀냐, 주인? 옷? 축제다" 라카드가 현란한 불꽃을 보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놀려고 부른 게 아니야! 정찰 위성 모드로 북실이를 찾아라!" “쳇, 그러면 그렇지,알았어. ” 라카드가 툴툴거리며 박쥐로 변해 날아가려 할 때였다. 주변의 꼬마들이 라카드를 발견하고 우르르 몰려들어 다리를 잡아당겼다 “앗, 박쥐다r" “말하는 박쥐다!" “까하하하, 신기하다. 박쥐야,이리 와 봐!" “노,놓지 못하겠느냐, 무례한 것들! 이 몸은 박쥐가 아니라 위대한 뱀파이어.. 우욱! 간지러워, 간지럽단 말이야! 우욱,우욱! 이 망할 꼬맹이들이 우욱" “까하하하, 이거 봐! 배를 누르면 말을 한다 ” “재밌다, 재밌다! 이거 가지고 놀자!" 꼬마들이 날개를 잡고 버둥거리는 라카드의 배를 팍팍 눌러대며 깔깔거렸다 보다 못한 아크가 꼬마들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아, 아크님!" 북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알이 아닌 근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라이브 목소리였다 아크는 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북실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놀이 기구 사이를 네 발로 뛰어넘으며 달려오는 커다 란 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서 웬 애드벌룬처럼 둥그런 물체가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짤막한 손을 흔들어 댔다 “여기예요, 여기!" ‘뭐야? 저 녀석 ....... ?’ 둥그런 물체를 확인한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애드벌룬의 정제는 북실이였다 그런데 그 투실투실한 몽에 땡땡이 옷을 걸치고, 갖가지 색의 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게다가 얼룩덜룩한 화장에 머리에는 고깔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서커스에서 나오는 뚱뚱한 광대와 같은 복장이었다 백구 역시 북실이와 커플 룩을 맞춘 것처럼 광대 옷을 입고있었다 ‘아주 살판 났군.’ 아크가 시엘에서 죽어라 고생하는 동안, 북실이와 백구는 죽어라 축제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을 구하러 비싼 요금에 속이 뒤집히는 고통까지 당하며 영자 이동으로 달려왔다고 생각하니 울걱 화가 치밀었다 ‘젠장,메모리 크리스털만 아니면' 그때 북실이와 백구의 뒤로 검을 든 사내들이 몰려오는 장면이보였다 “아, 아크 님, 히익!" ‘도적단이다! 마을 안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검을 들고 설치다니!" 보통 마을에서 검을 뽑아 들연 그것만으로 경비대의 제재를 받는다. 경비대가 아니라도 유저나 NPC들의 시선이 집중되리라 그러나 지금은 축제 기간, 주변에는 가면을 쓰고 장난감 칼 따위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때문에 도적단이 진짜 검을 들고 설쳐도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도적단은 용의주도하게 가면까지 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설사 전투가 벌어져도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경비대는 움직이지 않으리라 ’빌어먹을, 이래저래 상황이 개떡 같군 ’ 아크가 인피를 헤치며 북실이를 향해 달려갔다 “주, 주인, 그냥 가면 어떻게 해? 아욱, 이 망할 녀석들 ... 욱!" 뒤에서 꼬마들에게 잡힌 라카드가 비명을 질렀지만 그런데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렇게 몇 분, ‘다크 댄싱’ 을 남발한 아크는 곧 인파를 뚫고 북실이 근처까지 다다랐다 그사이. 북실이와 백구도 땀 을 질질 흘려 대며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달려왔다 그 뒤를 수십 명의 도적단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놈들에게 잡히기 전에 합류할 수 있다 마령소환 라자크!" 딱딱딱, 딱딱딱딱! “방어 태세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아크는 안전망이 쳐진 곳에 자리를 잡고 라자크와 방어진형을 만들었다 지금은 북실이를 탈출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다 북실이와 합류해도 수십 명의 도적단에게 포위되면 탈출하기 어렵다 하물며 주변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 있으니 말 할 것도 없다 분명 아크와 달리 도적단은 NPC나 다른 유저 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공격해 대리라 때문에 이런 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아크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크가 두세 사람밖에 통과할 수 없는 안전망 근처에 자리를 잡은 이유였다 북실이와 백구가 도착하면 안전망 밖으로 도망치게 한 다 음에, 아크가 입구를 막는다. 적이 30명이나 되지만 좁은 입구로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번에 두세 영 그런 지형 조건을 이용하면 북실이가 안전한 곳으로 도망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그리고 싸움이 본격화되면 경비대도 움직일 테니 도적단 도 제대로 추격해 오기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 아크는 빠르게 작전을 구상하며 소리쳤다 “북실이,이쪽이다! 일단 이곳까지만 오면 돼!" “네 아, 알았어요. 백구야!" 북실이의 명령에 백구가 껑충 뛰어 장애물을 넘으며 일직 선으로 아크를 향해 달려왔다 ‘됐어!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북실이를 뒤로 보내면’ 아크가 검을 빼 들며 근처까지 다가온 북실이와 백구를 바라보고있을때였다 “아크 님 이제 살았다...어엇? 어어어어? 우아아악!" “헉,주,주인님,정말!"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오던 북실이가 갑자기 덜컥하며 뭔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뒤따라오던 도적단에게 잡혀 버린 건가? 덜컥 겁을 집어먹은 북실이가 팔을 흔들어 대며 버둥거렸다 뒤늦게 등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백구가 급브레이크를 걸며 황급히 북실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북실이를 잡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한쪽으로 끌려가 버리는 게 아닌가? “뭐,뭐야?" 아크와 뒤를 쫓던 도적단들이 통시에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은 보사카 마을을 관통하는 레일이 깔려 있고 작은 마차 같은 것들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훌어보던 아크의 눈에 커다란 간판이보였다 【쾌속질주!】 보사카 축제 위원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놀이 기구입니다. 마법 엔진을 장착해 시속 300킬로미터로 보사카 마을을 일주할 수 있는 최첨단 마법 마차 레이싱 시스템! 100%의 안전 장비로 안전하게! 짜릿한 속도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용요금 1골드》 *차량이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해 위험하니 레일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안전망 옆에 세워진 간판에는 이런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북실이는 다급한 나머지 주변 상황은 보지도 않고 레일을 가로지르다가 막 출발하는 마법 마차에 너풀거리는 옷이 끼어 버리고 만 것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북실이가 걸린 곳은 자동 주행을 하는 시 범용 마법 마차의 뒤 범퍼였다 덕분에 북실이와 백구는 놀이 기구와 한 덩이가 되어 시속 300킬로미터로 레일을 따라 질질 끌려갔다. “우아아아, 사,살려 줘어어어어!" “주인니이이이임!" “이런 빌어먹을, 거의 다 따라잡았는데“이대로 놓칠 수는 없다,비켜!" 코앞에서 북실이를 놓친 도적단이 마법 마차에 오르려던 유저들을 밀쳐 내고 올라탔다 그리고 투입구에 동전을 왕창 쏟아 넣자 마법 마차가 굉음을 뿜어내며 엄청난 속도로 북실 이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라자크, 일단 검화" 당연히 아크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크 역시 본 블레이드로 변한 라자크를 들고 사람들을 밀쳐 내며 비어 있는 마법 마차에 올랐다 덕분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지만 공중도덕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아크가 1골드를 투입하자 마법 마차가 굉음을 뿜어내며 쏘아져 나갔다 퍼퍼퍼펑, 퍼퍼퍼펑! 어두운 하늘에서는 여전히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ACT 5 The carnival(Ⅰ) 콰아아아아--! 시속300킬로미터! 미친 듯한 속도로 레일을 달리자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져 보일정도였다 〔쾌속질주]는 보사카 마을을 관통하는 8자형태의 고가 레일을 달리게 만들어 놓은 놀이 기구였다 외곽에는 가드레일이 쳐져 있지만 레일 안에서의 주행은 레이싱 게임처럼 운전자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도록 만들 어 놓은 시스템이었다. 또한 마차끼리 충돌해도 안전하도록 충격 흡수 마법 코팅이 된 범퍼가 둘러쳐져 있었다. 제대로 즐긴다면 꽤나 재미있을 놀이 기구였다 그러나 놀이 기구 따위나 즐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부아아아앙,끼이이익! 부아아앙, 끼이이익! 아크는 평소TV 게임으로 단련된 운전 솜씨를 120% 발휘 하며 연속 드리프트로 코너를 공략했다 그렇게 잠시 동굴처럼 생긴 코스에 들어서자 앞쪽에 약 간 뒤처진 도적단의 마법 마차가 서너 대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이상 북실이를 따라잡으며 도적단의 숫자를 줄여나간다!’ 아크는 한 손으로 핸들링을 하며 적의 차에 접근,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본 블레이드가 채찍처럼 뻗어 나가며 바로 앞의 도적단을 휘어 감았다 “엇, 뭐, 뭐야? 우아아아아악!" 당황한 도적단이 목에 휘감긴 본 블레이드를 풀기 위해 허둥댔다 그러나 시속300미터다 최신식 기술로 만들어진 자가용조차 조약돌 하나만 잘못 밟아도 전복될 만한속도인 것이다 놀란 도적단이 핸들을 놓아 버리자 방향을 잃은 마법 마차가 벽에 처박히며 박살났다 역시100%의 안전을 보장하는 놀이 기구라 마법 마차가 박살나자 마법으로 만들어진 에어백 같은 풍선이 전신을 보호해서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법 마차가 박살 나 레일 중간에 버려진 도적단은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져 갔다 ‘좋아 일단 한 놈씩 떨궈가는 거야!’ 아크는 씨익 웃으며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엇, 저, 저 녀석은... ?" “그때 방해하던 놈이다 또 방해하려는 거야" “5호,6호, 놈을 저지하라'" 그제야 아크를 발견한 도적단의 마법 마차 두 대가 속력을 늦추며 접근했다 그리고 좌우에서 아크를 포위하고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며 펼쳐지는 데스 레이싱! 그때 이슈람도 북실이를 쫓는 도적단의 선두 그룹에 섞여 있었다. 어찌 됐든 도적단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들과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코너를 돌다가 뒤늦게 두 대의 차에 포위된 아크를 발견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물론 아크가 고작 도적단 둘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마법 마차를 타고 있는 상태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래도 그런 상황이라면 레벨이나 전투 능력보다 운전 실력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큰일이다 아크 녀석 운전면허도 없는데.." 이대로 아크가 당해 버리면 십중팔구 북실이는 도적단에게 잡혀 버린다. 일단 북실이가 잡혀 버리면 메모리 크리스털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키이이익, 콰쾅, 카이이익, 콰콰콰쾅! 그러나 그건 이슈람의 기우에 불과했다 아크가 엄청난 속도의 핸들링과 페달 기법으로 드리프트를 반복하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마법을 피했다 그리고 묘기를 부리듯 마법 마차를 회전시키며 본 블레이드로 반격하는 게 아닌가? 이슈람의 걱정처럼 아크는 먹고 살기 바빠서 아직 운전면허가 없었다. 반면 도적단은 운전면허를 기본 장착, 평소 운전을 많이 해 왔던 사람들이다‘ 이슈람의 걱정대로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크가 밀려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슈람이 미처 올랐던 게 있었다. 아크는 분명 운전을 해본 적이 없지만, 어려서부터 ‘그란 투리스모’라든지, ‘릿지레이서’ 같은 게임은 질리도록 해 봤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이 상식을 초월하는 스피드로 내달리며 곡예 같은 운전을 하도록 만들어진 게임 현실에서 하는 운전이라면 몰라도, 게임 속에서 시속 300 킬로미터로 내달리며 멸치는 레이싱이라면 오히려 아크가 한수 위였다 아크의 마차가 레일 위를 미끄러지며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몽땅 피했다. 그러나 시속 300킬로미터라 본 블레이드로 반격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쳇, 쥐새끼 같은 놈! 어이, 앞을 가로막아!" 마법이 먹히지 않자 마법사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앞서 가던 마법 마차가 급가속하며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차가 속도를 늦추고, 뒤차가 급가속을 하며 중 간의 아크를 샌드위치처럼 눌러 버리려는 속셈이다 “지금이다! 놈을 찌부러뜨려 버려!" 부아아아앙! 마법 엔진이 열기를 뿜어내며 앞뒤의 마법 마차가 간격을 좁혀 왔다. 순간 아크는 브레이크를 꽉 밟은 뒤에 운전석 위로 뛰어올랐다 “어엇? 뭐, 뭐야? 우아악!" 콰콰콰쾅! 아크의 마법 마차가 급정지하자 뒤에서 돌진하던 마법사 의 마법 마차와 충돌하며 폭음을 일으켰다 순간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휘둘러 앞의 마법 마차 뒤 범퍼를 휘어 감았다 “라둔, 방패!" 쌕쌕쌕,쌕쌕쌕쌕! 아크의 발이 땅에 닿기 일보 직전! 라둔이 방패를 토해냈다 아크는 허공에서 방패의 손잡이에 발을 끼고 바닥에 착지 했다 본 블레이드로 휘어감은 마법 마차는 여전히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고 있었다. 본 블레이드로 앞차의 범퍼를 휘감고, 방패를 타고 달리자 마치 수상스키를 타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방패의 표면 에서 불똥이 튀어 오르며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는 것이다. “엇 저 저 녀석이I" 아크가 범퍼에 매달려 쫓아오자 도적단이 핸들을 핵 꺾어 버렸다 그대로 옆의 가드레일을 긁으며 질주해 아크를 떨궈내려는 속셈이다 마법 마차가 급격히 방향을 틀어 버리자 관성에 의해 아크가 먼저 가드레일로 돌진했다 그렇게 시속 300킬로미터로 가드레일에 충돌하려는 순간 아크는 본 블레이드의 스위치를 조작해 다시 검으로 바꿔 버렸다 “라자크, 다시 검으로!" 그러자 채찍이 검으로 돌아오며 아크의 몸이 고무줄처럼 앞으로 당겨졌다 “맞아랏!" 아크는 그대로 날아오르며 운전석에 앉아 있던 놈의 뒤통수를 방패 모서리로 찍어 버렸다 도적단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방패로 뒤통수를 찍혀 둔기에 맞은 것처럼 ‘스턴’ 에 걸려 버린 것이다 운전자가 정신을 잃자 마법 마차가 제멋대로 회전했다 아크는 재빨리 핸들을 잡고 도적단의 안전띠를 벗겨낸 뒤 걷어 차 버렸다 “너, 너 이 새끼이이이이이 -!" 마법 마차에서 떨어진 도적단이 레일을 따라 구르며 비명 인지 욕설인지 모를 고함을 내질렀다 그렇게 운전석을 점거 한 아크는 액셀을 꽉 밟으며 다시 도적단을 쫓기 시작했다 아크가 순식간에 세 놈을 처리하고 바짝 뒤쫓아 오자 도적 단들이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저 괴물 같은 놈!" “저 자식 혼자 영화 찍나?" “대체 저 자식 정체가 뭐야!" “이대로 두면 귀찮아진다 7,8,9호,놈을 막아라!" 그때 선두 그룹에서 북실이를 쫓던 도적단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엇, 저,저기봐" 도적단이 가리킨 곳은 레일의 최대 난코스! 동굴 코스가 끝나자마자 90도로 꺾어지는 코너였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목각 인형이 시험 주행 중인 마법 마차 가 정해진 명령에 따라 급격히 회전하자, 버티다 못한 북실이의 옷자락이 결국 찢겨져 나갔다 동시에 관성과 원심력, 기타 등등의 물리법칙에 의해서 뒤 범퍼에 대롱대롱 매달려 꿀려가던 북실이와 백구는 가드레일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꽤에에에에에엑 -!" 돼지 멱따는 소리가 도플러효과를 일으키며 레일 아래로 이어졌다 동굴 밖으로 이어지는 레일은 지상30미터! 이대로 떨어지면 북실이와 백구는 그대로 으깨진 돼지고기와 개고기 선물 세트가 되어 버리리라. 그러나 북실이라는 놈은 묘하게 악운에 강했다 풍덩풍덩! 북실이가 떨어진 레일 아래는 보사카 마을 중앙 광장에 위치한 호수였다. 덕분에 북실이와 백구는 간신히 포장육이 되는 신세를 면 할 수 있었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잠수했던 북실이와 백구가 한참 뒤에 수면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여유는 없었다. “저 자식, 호수로 떨어졌다" “놓치면 안돼! 모두 그대로 돌진해서 호수로 뛰어내려!" 이미 정신을 놔버린 도적단은 코너를 직진해서 가드레일을 부수고 호수로 돌진했다 수십 대의 마법 마차가 호수로 낙하하자 한가롭게 오리 배를 타던 유저들이 비명이 터뜨렸다 북실이와 백구도 사이좋게 비명을 터뜨렸다 “히익,대,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서 나를 죽이려는 거야?" “주인님, 타십시오!" 백구가 북실이를 태우고 개헤엄을 치며 도망쳤다 “푸핫, 젠장, 저 자식들이 저리 비켜!" 그러자 도적단들이 마법 마차를 버리고 수면으로 올라와 오리 배를 탈취해 뒤쫓았다 덕분에 오리 배가 떠다니던 평화로운 호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비켜, 비켜! 방해하는 놈은 모두죽여 버리겠다." 끼릭,끼릭,꽥꽥꽥! 끼릭, 끼릭,꽥꽥꽥! 도적단이 살기등등하게 페달을 밟아 대자 오리 배가 꽥꽥 소리를 내며 돌진했다 그렇게 호수 위에서 수십 척의 오리 떼가 개에 올라탄 돼 지를 쫓는 상황이 벌어졌다 잡느냐, 잡히느냐, 굉장히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림만을 보자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젠장 정말가지가지 하는군. ’정말이지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아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크는 그대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도적단이 부숴 놓은 가드레일 사이로 돌진했다 30여 미터의 고가 레일에서 떨어 진 마법 마차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에 쑤셔 박혔다 아크는 재빨리 안전띠를 풀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호수 주변에는 텅 빈 오리 배 수십 척이 한가롭게 퉁퉁 떠 있을 뿐이었다 백구를 타고 도망 친 북실이는 물론, 도적단들도 호수 밖으로 이동한 뒤였다 “북실이, 너 지금 어디냐" "모, 모르겠어요. 석상처럼 생긴 게 지나가는 곳, 히익!" ‘석상처럼 생긴 게 지나가는 곳?’ 아크는 빠르게 호수를 가로지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곧 화려한 불빛이 모여 있는 곳에 웬 거대한 동상 이 천천히 움직이는 장연이 보였다 축제 때 상징적인 구조물이나, 이동식 연극 무대 따위를 수십 대의 마차에 싣고 이동하는 일종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는 장소였다 그러나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이 라 인파가 몰려 정작 북실이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무슨 술래잡기도 아니고 ... 라카드, 너는 대제 뭐하고 있는 거야?" 아크 버럭 소리치자 리카드가 원격 통신으로 찌증을 부려댔다 “젠장, 왜 나한테 성질이야! 주인이 구해 주지도 않고 가 버려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어쨌든 나도 꼬마들을 따돌리고 북실이를 찾는 중이야! 주인은 어디 있어?" “마을 중심의 호수다 아니, 너 있는 곳에서도 동상 같은 거 보이냐?" “동상? 저 이상한 마차들 말이야?" “그래 북실이가 그곳에 있다니까 너도 일단 그곳으로 이동하면서 탐색해” 아크는 호수에서 뛰어나오며 마을 어딘가에 있는 라카드에게 명령했다 그리고 또다시 ‘다크 댄싱’ 을 난사해 인파를 해치며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크아! 좋다!" 거구의 사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옆에서 바비큐를 우물거리던 엘프 여자가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 축제는 별로라며? 어째 네가 더 즐기는 거 같다?" “누가 축제가 좋다고 했냐? 술이 좋다고 했지 어이, 여기 한잔 더!" 사내가 3000cc는 족히 될 듯 한 술잔을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엘프 여자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 마시는 거 아냐?" “뭐가? 이제 겨우 다섯 잔째 인데 ” “그 술잔으로 다섯 잔이면 술 한 통인 거 알지? 배에 술 귀신이 들어 있냐?" “그러는 너야말로 그 바비큐가 몇 번째인 줄 알아? 벌써 돼지 한 마리는 먹었겠다. ” “바보야, 네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자의 고층을 알기 나 해? 이건 음식이 아니라, 약이야, 약 이 누님은 매일매일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뉴 월드에서라도 양껏 먹지 못하면 미쳐 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까 이건 스트레스 해소제같은거라고” “그래도 돼지 한 마리는 좀 아니지 않냐? 난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먹는 여자와는 사귀고 싶지 않은데 너도 알다시피 나는 채식 주의자잖아" “누, 누가 너 따위와 사귀기나 한데?" 엘프 여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발로 사내의 두툼한 아랫배를 걷어찼다 “아욱 뭐야? 우리 사귀고 있는 거 아니었어?" “네가 살기 싫어졌구나. 유서는 써놓고 지껄이는 거겠지?" “키키키, 부끄러워하기는 아욱, 알았,알았다니까. 어라? 저 저건?" 사내가 장난스럽게 히죽거리다가 갑자기 움찔하며 벌떡 일어났다 “뭔데? 뭐야?" 엘프 여자가 화들짝 놀라 뒤따라 일어났다. 그러나 곧 사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내가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인피를 헤치며 달리는 커다란 은빛 털의 개였다. 사내는 흘린 듯 개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중얼거렸다 “이, 이런 곳에서 저렇게 훌륭한 개를 보게 되다니! 바람 에 휘날리는 저 은빛 털의 윤기, 적당한 근육이 균형감 넙치 게 발달한 저 늠름한 자태 대체 주인이 누구지? 모르긴 몰라도 분명 혈통 좋은 개일 거야! 혹시 등에 올라탄 저 돼지 같은 녀석이 주인인가? 우우우, 부럽다. 그야말로 꿈의 개야 게다가 애완견의 등에 타고 다닐 수 있다니! 젠장 나도 저런 개 한마리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아, 뭔가 했더니 또 병이 도졌군. 꿈의 개? 눈 뜨고 개 꿈 꾸냐? 하여간 너는 다 좋은데 그게 문제야 대체 저런 지저분한 동물이 뭐가 좋다는 거야? 이 개 오타쿠 같으니! 게 다가 뭐가 한 마리만 있으면 좋겠다아? 너는 이미 집에서 열 마리나 키우잖아! 엘프 여자가 한심한 눈길로 사내를 흘기며 쏘아붙였다 그러자 사내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게 뭐? 그러는 너도 집에서 고양이 키우잖아?" “그래, 키운다. 고양이 한 마리 아주 정상적인 수준이지 나도 네가 한두 마리 정도 키우면 오타쿠니 뭐니 하는 말은 안 해 하지만 네가 키우는 개는 열 마리잖아 그게 정상이냐, 정상이야?" “하! 정말 이해를 못 하는군 개는 말이야 그만큼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애완동물이라고, 고양이 따위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돼 너는 그 유명한 걸작, ‘집 없는 천사’ 도 못 봤냐? 하얗게 커다란 개를 껴안고 숨을 거두는 아 이의 그 애처로운 모습을 우우우, 네로야 ‘ 아니, 그건 플란다스의 개였나?" 사내가 덩치에 안 어울리게 훌쩍이다가 버럭 소리쳤다 “어쨌든 ‘집 없는 천사’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다 개가 나온다고 이게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존재라는 증거가 아니면 뭐냐? 반면 고양이는 기껏해야 마녀의 옆에서 음침한 눈알이나 굴려 대는 녀석 아니야? 도대체 그런 음침한 동물을 집 안에서 키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마, 마녀? 그럼 내가 마녀란 말이야?" ·아니라고는 말 못 하지 너 마법사잖아 여자 마법사면 마녀아냐?" “이 개 오타쿠가 말이면 단 줄 알아? 그래서 너하고 나는 안 되는 거야!" “아, 미치겠네. 개는 괜찮다고, 개는! 엇, 뭐, 뭐야? 이런 쌍!" 아웅다웅하던 사내가 갑자기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자 분노의 펀치를 날려 대던 엘프 여자가 움찔하며 사내의 눈치를 살폈다 "뭐, 뭐야? 저, 정말 화난 거야?" “어? 아, 미안 그게 아니라 엇? 저, 저 녀석들이 정말!" 사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변명하다가 다시 이를 갈아붙이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엘프 여자는 뒤늦게 사내가 회를 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사내가 멋지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던 은빛 갈기의 개 그런데 웬 웃기는 가연을 뒤집어쓴 놈들이 개를 둘러싸고 몰매를 때리고 있었다. 개는 뒤에 숨어 있는 돼지 같은 주인을 보호하려는 듯 물러서지 않고 대항했지만 역부족으로 이미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저 자식들이 감히 저렇게 멋진 개를!" 사내가 이를 갈아붙이며 대뜸 대검을 뽑아 들었다 엘프 여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잠깐 기다려. 무슨 사정인지도 모르잖아 ” “모르긴 왜 몰라? 개가 저렇게까지 충성을 다하는 주인이잖아. 저 사람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야‘ 개를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그리고 개를 공격하는 놈들은 다 악당이야! 원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 이 무슨 면견으로 똘똘 and친 주장이란 말인가? 그러나 사내는 믿어 의심치 않는 표정으로 대검을 휘두르며 악당들을 향해 달려갔다 “아아, 저 녀석들, 이제 끝났군. ” 엘프 여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동정심 기득한 눈으로 악당들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사내는 정말중증 개 마니아였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개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아무리 화가 나도 개만 보면 헤실헤실, 심지어 개가 물어도 실실 웃으며 쓰다듬어 줄 정도였다 게다가 요즘에는 키우는 개와 파티를 하고 싶다며 유니트를 하나 더 살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의 바보였다 오죽하면 동물 병원을 차려 놓고 개와 놀기만 하다가 망했겠는가? 어쨌든 사내의 그런 개 오타쿠 성향은 게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아니, 게임에서는 그런 성향이 더욱 확대되어 동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 죽는다. 얼마나 심하냐 하면 앞에 레어 아이템이 떨어져 있어도 근처를 지나기는 토끼나 다람쥐를 쫓아가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저런 바보가 브리스타니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전사라니" ” 엘프 여자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하긴, 사내가 그런 능력을 갖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중증 동물 사랑 덕분이었다. 사내가 미치도록 동물을 따라다니다가 드루이드 계열인 ‘비스트마스터’ 로 전직했기 때문이다 비스트 마스터! 그렇다, 더 이상 무엇을 숨기랴? 개에 환장한 사내의 이름은 바로 브레드 그리고 고양이에 환장한 엘프 여자의 이름은 레디안이었다. “개에 환장한 것만 아니면 저 녀석도 꽤 괜찮은 남자인데 말이야” 레디안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녀가 브레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뉴 월드 배타 테스트 의 마지막 날 한 서버에서 벌어졌던 선구자들의 무한 살육전, 배틀로얄을 할 때였다 브레드는 베타 테스트 종료 직전에 마주쳐 유일하게 승부를 내지 못했던 상대다 그리고 그때의 일이 계기가 되어 상용화가 된 뒤로도 자주 연락하고, 몇 번인가 사냥까지 함께 할 기회가 있어서 친해지게 되었다 사실 브레드는 선구자들에게 상당히 존경받는 유저였다 평소에는 좀 바보스러운 면을 보일 때도 적지 않지만, 전투를 할 때는 180도로 달라진다. 특히 파티 사냥을 할 때는 항상 선두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으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지휘 능력으로 파티를 이끌었다 또한 동료가 위험해지면 자신의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 도와주었다 때문에 선구자들 사이에서는 ‘브레드가 리더를 맡으면 공략하지 못할 던전이 없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항상 옆에서 그런 모습을 봐오던 레디안이 브레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당연했다. 또한 브레드 역시 그녀가 싫지 않은 눈치였다 덕분에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됐는데 그 무렵이었다. 브레드가 개 오타쿠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물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의 기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 역시 개를 싫어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브레드의 개 사랑은상식의 범위를 한참 넘어선, 거의 정신병 수준이었다. “나도 정말 지지리 복도 없다니까 모처럼 찾아낸 괜찮은 남자가 개에 환장한 사람이라니" 그게 그녀가 개를 싫어하게 된 계기였다 브레드가 개에 환장한 사람만 아니었다면 둘의 관계는 지금보다는 확실하게 발전해 있었을 태니까 그리고 갑자기 고 양이를 키우게 된 것도 그런 브레드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심각한(?) 동물 애호가인 브레드가 유일하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동물이 바로 고양이였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내 앞에서 개를 정말 개 패듯(?) 해 댔으니 결과는 보지 않아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귀찮아 그냥 바비큐나 마저 먹자 ” 잠시 따라갈까 망설이던 레디안은 다시 자리에 앉아 바비큐를 우물거렸다 탁자에는 이미 빈 접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아앗 백구야!" “크윽 주 주인님!" 백구가 또다시 검에 베이며 휘청거렸다 그러나 백구는 주인을 구해야 한다는 사영감에 다시 자세를 잡으며 어금니를 드러냈다 “크르르르, 주인님은 내가 지킨다!" “젠장, 이 귀찮은 똥개 자식이 !" 백구를 둘러싸고 몰매를 때리는 도적단이 짜증스러운 눈길로 백구를 바라보았다 호수에서 나와 조별로 흩어져 수색하던 도적단은 아크보다 한 발 앞서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거리에서 북실이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뒷골목에 몰아넣기는 했지만 예상외로 백구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아직 북실이를 생포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놈도 이제 빈사 상태다 아까 그놈이 오기 전에 처리하자!" 도적단이 다시 검을 휘두르며 백구에게 달려들었다 도적단의 평균 레벨은 250~300 반면 백구는 310 수준 이다. 게다가 백구는 전투 부족인 월랑족 출신 10여 명의 도적단에게 둘러싸이고도 버틸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 해도 도적단과 많게는 60, 적게는 1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탐색을 위해 조 별로 나눠졌다고 하지만 현재 백구를 둘러싼 도적단의 숫자는 일곱명. 일단쪽수에서 밀리니 아무리 백구라도 불과 몇 분 만에 빈사 상태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제 다시 도적단이 밀고 들어오면 버티지 못하리라 “흑흑흑 백구야 누가 좀 도와주세요!" 북실이는 피투성이가 된 백구를 바라보며 애처롭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골목 밖은 광란의 퍼레이드가 한창! 북실이의 목소리는 그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음에 묻혀 버렸다 또한 잘 보이지도 않는 뒷골목을 관심 있게 살펴보는 사람도 없었다 하긴 잠깐 살펴본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으리라 요술 공주 밍키, 울트라맨, 태권 v 등 축제 도시 보사카에는 주문대로 가면을 만들어 주는 가게가 많았다-옛 날에 이미 한물 간 영웅들의 가연을 뒤집어쓰고 있는 도적단 을 보고 누가 골목의 상황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비록 검을 들고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놀고 있는 것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으리라 “잠깐만 기다려 이게 거의 다와가!" 북실이의 귓가에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아크가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크에게 붙여 놓은 눈알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불과했다 “안 돼요 벌써 백구는 빈사상태라고요!" 북실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을 때였다 위기에 몰린 백구가 최후의 수단으로 도적단의 발목을 물고 늘어지며 소리쳤다 “주인님,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도망가세요. 크아아아앙!" ‘아, 안 돼 백구야! 설사 내가 죽는다고 해도 너를 두고 도망갈 수는 없어! 아악!" 북실이는 백구를 향해 떨어지는 감을 바라보며 비명을 터뜨렸다 휘이이잉,콰콰콰광! 그때 갑자기 옆에서 엄청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백구를 공격하던 도적단이 와르르 넘어졌다 당황한 도적단과 북실이가 동시에 시선을 돌리며 골목 입구를 바라보았다 “아크 님? 엇? 누,누구?" “후후후후, 그냥 지나가던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일격에 도적단을 밀어낸 사람은 아크가 아니었다. 짐승 기죽 갑옷을 걸치고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벤 거구의 사내. 게다가 그렇게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여 대는 사내, 그는 바로 브레드였다 그렇다, 방금 전 브레드가 멋지다는 창사를 아끼지 않았던 개는 다름 아닌 백구였다 월랑족이니 전사 종족이니 해도 겉보기에 백구는 훌륭한 개였던 것이다 ‘헉! 이, 이 사람은전에 해적 선단을 끌고 왔던!’ 멀뚱멀뚱 브레드를 바라보던 북실이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얼마 전에 정기선이 해적의 습격을 받았을 때 북실이는 브레드가 아크와 싸우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브레드는 북실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북실이와 백구는 돛대 위에 대롱대롱 매 달려 있었다. 그리고 행여나 브레드나 레디안이 자신을 공격 할까 싶어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다짜고짜 난입한 브레드는 슬쩍 시선을 돌려 피투성이가 된 백구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짐승처럼 어금니를 드러내고는 위협하듯이 대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말했다 “이놈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들은 물러나있어 ” “네? 어, 어째서?" “개니까” “네?" “사람들끼리 죽이든 말든 관심 없어 하지만 개는 안 된다고 개는!" 브레드가 도적단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듯이 대답했다 순간 도적단, 심지어 도움을 받는 북실이의 머릿속에서도 같은 단어가 떠올랐다. ‘뭐야? 이 살짝 맛이 간 듯 한 녀석은? 또라이 아니야?’ 그러나 그런 생각은 불과 몇 분 만에 사라져 버렸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도적단이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해한다면 네놈도 용서하지 않겠다" “방해하는 놈은 용서 안 해? 과연 악당들이나 내뱉을 대사로군 그렇게 나온다면 나야 설명할 필요도 없어서 좋지 이건 너희들 같은 놈들에게 쓰기에는 지나치게 황송한 스킬 이지만 개의 위대함을 보여 주기 위해 한번 써 주지 ‘수흔 빙의’! 개 같은(?) 힘이여 솟아라!" 크아아앙! 돌연 브레드의 등에서 거대한 개의 형상의 나타나며 지진을 일으킬 듯한 포효를 터뜨렸다 뒤이어 개의 영혼을 빙의한 브레드가 문자 그대로 개가 되어(?) 검을 휘두르자 돌풍이 일어났다 심상치 않은 기세! 도적단들이 움찔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브레드의 검격이 작렬하자 도적단은 검을 세운 자세 그대로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공격력을 50"10나 상승시키며 특수 상태 이상까지 발동시키는 개의 ‘수혼 빙의’ ! 개 마니아인 브레드가 가장 자신 있게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게다가 브레드는 레벨 400대에 생긴 것처럼 힘에 엄청난 스탯을 투자한 캐릭터였다 정기선의 돛대를 일격에 잘라버려 아크마저 기겁하게 만들었던 무지막지한 검격을 고작 레벨 250-300대의 도적단이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허억,이,이 괴물 같은 녀석!" “우하하하, 이게 바로 네놈들이 무시하던 개의 힘이다!" 브레드가 광소를 터뜨리며 도적단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으핫차차차, 동물보호! 이압, 개를 사랑하자!" 쾅,쾅,쾅,쾅! .... 기합 소리 중간 중간에 섞여 나오는 벤트는 엉뚱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쨌든 한때 레벨 400대의 브레드에게 도적 단 나부랭이 일곱 명 따위는 상대가 되지 없t다 물론 쪽수에는 장사없다 만약 도적단이 힐러와 전사, 궁수 등 제대로 직업 조합을 갖췄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실이를 쫓기 위해 허둥지둥 조를 나눈 도적단에게 직업 조합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북실이를 찾아낸 도적들은 전사 다섯 명에 마법사 1, 궁수 1 그렇게 대충 만들어진 파티는 브레드에게 제대로 대항조차 못하고 박살이 나버렸다. “후후후, 어떠냐? 이제 동물을 사랑할 마음이 생기냐?" 브레드가 대검을 어깨에 걸쳐 놓고 히죽 웃을 때였다 “헉헉헉, 내가 왔다!" 돌연 퍼레이드 마차 사이로 누군가가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그러자 도적단의 시체를 걷어차던 브레드가 움찔하며 경악을 터뜨렸다 . “엇? 네, 네놈은!" “에엑? 너 너는 그때 그 바보? 네가 어째서 여기 있는 거야?" 아크가 당혹스러운 눈길로 브레드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호수를 나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눈알의 sos를 들으며 뛰어온 아크!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걱정하던 도적단은 결레처럼 구겨져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리고 엉뚱하게 브레드가 북실이와 백구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크가 슬금슬금 눈동자를 움직여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왜 이 바보가 여기 있는 거야?’ ‘난들 압니까? 어쨌든 알은체하지 말아요. ’ 눈으로 묻자 북실이가 눈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현재 위치는 좁은 골목에서 아크, 브레드, 북실이와 백구 순서로 늘어서 있었다 게다가 북실이와 백구는 도적단에게 쫓기며 두들겨 맞은 탓에 건들기만 해도 팩 쓰러질 정도의 생명력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이제라도 북실이가 아크와 한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브레드가 둘을 공격한다면 일격에 게임 오버가 되어 버리리라.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하나? 아크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브레드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착한 일은 하고 볼 일이군 설마 정말 이런 곳에서 네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아, 저기 있잖아, 내가 좀 바쁘거든? 다음에 다시 보면 안 될까?" “어,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뒤로 물러나다가 와락 몸을 돌리며 대검을 휘둘렀다 물론 아크가 그런 속임수에 걸릴 리가 없었다. 아크가 뒤로 물러나며 대검을 피하자 브레드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드러냈다 ·그렇게 말해 줄 줄 알았냐? 이 자식, 그때는 잘도 바보 취급하고 도망쳤겠다. ” “젠장, 좀 못 본 척해 주면 안 되냐? 정말 바쁘단 말이야!" “하, 그렇게 바쁘시면 어디 날 쓰러뜨려 보든가. 물론 그냥 쉽게 쓰러져 줄 이 몸이 아니지만 말이야 이번에야말로 결판을 내자! ‘수혼 빙의’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브레드가 또다시 우주 보안관 같은 대사를 지껄이며 대검 을 휘둘렀다 아크는 뒤로 물러나 브레드의 대검을 피해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빌어먹을, 다른 도적단이 오기 전에 북실이를 탈출시켜야 하는데, 하필이면 이런 무지막지한 놈에게 걸려 버리다 나 정말 뭔가 저주라도 받은 거 아냐?’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사실 브레드가 레벨 400대에 사기적인 스킬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정식으로 붙으면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아크가 누구인가? 본의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숱하게 자신보다 고레벨의 유저와 PVP를 해서 쓰러뜨린 실전파 강자가 아닌가? 물론 브레드의 실력을 생각하면 100% 승리를 확신할 상대는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꼬인다면 이기든 지든 한번 제대로 붙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저주라도 받은 건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브레드를 만날 때마다 상황이 정말 뭐 같았다. 정기선에서는 내단을 만드느라 냄비를 흔들어야 해서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북실이를 탈출시켜야 한다는 미션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북실이를 공격하던 도적단은 브레드가 처리해 주었다 그러나 이슈람에게 얻은 정보에 의하면 보사카에 들어온 도적단은 30명, 일곱 명을 처리했다고 해도 아직 23명이나 남아 있었다 브레드와 싸우느라 북실이와 백구를 방치해 뒀다가 도적단에게 잡히기라도 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달리 방법이 없어 지금은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이놈부터 따돌려야한다!’ 아크는 북실이와 백구를 힐끔거리며 맹렬하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북실이와 백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안 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적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남아 있는 눈알을 날려도 사람들이 워낙 많아 도적단만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멍청이, 어디를 보고 있는 거냐!" 콰콰콰쾅! 그때 브레드가 빈틈을 노리고 대검을 내리쳤다 잠시 한눈을 팔던 아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검으로 받아 냈다 순간 엄청난 압력에 아크의 몸이 튕기듯 날아가 바닥 을 굴렀다 낙법으로 간신히 중심을 잡았지만 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또다시 대검이 떨어졌다 아크는 다시 한 번 폼을 굴려 대검을 피해 내고 스프링처럼 튕겨 일어나 근처의 단상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제야 제대로 자세를 잡은 아크가 거친 숨을 흘리며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헉헉헉, 역시 아 녀석은 쉬운 상대가 아니야!’ “크하하하, 역시 실력은 있다니까 이번에는 절대 안 놓친 다 결판을 내자고" 브레드가 뒤따라 단상에 뛰어오르며 이를 드러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방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상황, 무슨 일인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던 아크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아크가 공격을 피하느라 제대로 확인도 못 하고 뛰어 올라 온 단상, 뒤늦게 확인해 보니 그곳은 퍼레이드에 참가한 마 차였다 게다가 하필이면 가두 행진을 하며 연극을 보여 주는 극장용 마차였다. 그 무대 위에 갑자기 검을 든 아크와 브레드가 뛰어오르자 관렴하던 유저와 NPC들은 연출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보낸 것이다 ‘정말 돌아 버리겠군. 뭐, 이런 경우가" 아크는 이제 축제라는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정말 돌아 벼릴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칸막이로 가려진 무대 뒤쪽, 막 모형 검을 들고 나오려던 배우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배우들 사이에서 튀어나온 빵모자를 눌러 쓴 노인이 박박 인상을 써 대며 아크의 뒤통수에 대고 억눌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젠장, 네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 "내가 이 무대를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했는지 알고 깽판을 놓는 거냐? 망할 놈들, 배우가 되고 싶으면 오디션을 보러 왔으면 됐잖 아 아, 안 되겠다 어쨌든 고작 이따위 녀석들 때문에 내 연극을 망칠 수는 없어 다행히 다음이 싸우는 장면이니까" "어이, 네놈들, 무대까지 올라갔으니 뭐라고 좀 해 봐!" 그러자 브레드가 아크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 좋은데? 무대까지 갖춰졌으니 이제 제대로 붙어 보 는 수밖에 없겠지? 저 노인네의 부탁도 있고 하니 어디 화려 하게가볼까? ‘수혼빙의’ 치타의 힘이여 솟아라!" 브레드가 치타의 영혼을 빙의하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치타의 영혼으로 민첩과 이동속도를 극대화시켜 번개처럼 떨어지는 대검! 거기에 곰의 영혼이 빙의되어 일격이 떨어질 때마다 무대가 쩍쩍 갈라지며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휘청거렸다 한 방만 잘못 맞아도 치명적인 공격! 아크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관객들 은 그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리며 박수를 보내왔다 “오오 연출이 굉장한데?" “마치 정말 싸우고 있는 것 같잖아?" “정말이야 무대까지 부수는 과격한 연출이라니? 상상도 못했어!" 관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자 연출가 선생도 흥분했다 “오오오, 좋아, 좋다고! 그렇게 히는 거야! 이거 생각보다 좋은데? 좋아, 이걸로 간다 그런데 왜 공격은 저 덩치만 하 는 거야? 그래서야 박진감이 살아나지 않잖아 어이, 작은 놈! 다람쥐처럼 도망만 다니지 말고 너도 뭔가 좀 해봐!" ‘젠장, 나도 뭔가 했으면 좋겠다고!’ 아크가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며 인상을 써 댔다 사실 아크가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이유는 북실이 이외에 도 다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크는 북실이, 도적단과 계속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 거리를 꽉 메운 사람들 때문에 ‘다크 댄싱’ 을 난사했다 다른 스킬에 비해서는 마나를 많이 안 잡아먹는다고 하지 만 그래도 한 번 시용할 때마다 소모되는 마나가 300이다 아무리 6,000대의 마나가 었다 해도 그런 스킬을 쉬지 않고 써 댔으니 남아날 리가 없지 않은가? ‘섬아’ 같은 스킬은 물론 고작 마나를 100 먹는 ‘다크 블레이드’ 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다크 댄싱’ 을 난사한 이유는 일단 북실이를 구출하는 게 급선무였고 설사 마나가 없어도 도적들 몇 놈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이런 괴물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쓸모없는 소환수도 불러 내는 게 아니었는데 아크는 잠시 ‘유령 기사단 강습’ 스킬을 사용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브레드의 레벨이나 스킬을 생각하면 ‘유령 기사단 강습’ 으로도 제대로 피해를 주지는 못하겠지 만,30마리나 되는 유령이 달려들면 5초 동안은 브레드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리라 아크라면 단 5초라도 브레드를 따돌리고 도망갈 시간으로 는 충분했다 그러나 마령 소환을 두 번이나 사용해서 남은 영력도 200 영력이 300이나 필요한 ‘유령 기사단 강습’ 도 사용할 수 없었다. ‘뭐, 일반 공격은 할 수 있지만, 다시 말하지만 브레드는 레벨 400에 거북이의 ‘수흔빙의’ 로 방어력까지 무지막지하게 올려놓은 전사다 일반 공격으로 줄 수 있는 데미지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공격력도 무지막지해서 아크가 깔짝깔짝 열 번을 공격해도 제대로 한 방 먹으면 단숨에 상황이 역전되리라 '왜 항상 이 자식과 만날 때마다 제대로 싸울 상황이 안 되는 거야' 그나마 좀비 던전에서 피나는 지옥훈련을 한 덕에 아슬아슬하게 브레드의 대검을 피해 내고 있지만, 아무리 잘 피한다고 해도 정작 공격을 못 하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다 아크가 분통을 터뜨리며 미꾸라지처럼 도망 다니고 있을 때였다 “혁, 저, 저놈들! 아, 아크 님, 도적단이에요! 힉 들켰어요. 도적단이 쫓아와요!" 뒤통수에 붙어 있던 눈알이 숨 막히는 비명을 터뜨렸다 당황한 아크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인파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가는 북실이와 백구가 보였다 그리고 불과 20여 미터 차이로 도적단들이 떼를 지어 뒤쫓았다 “잡아라!" 도적단들이 외치는 소리가 연극 무대까지 들려왔다 ‘이런 망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한눈팔지 말라고 했잖아!" 그때 브레드가 화살처럼 쏘아지며 대검을 휘둘렸다 북실이를 바라보던 아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피가 뿜어져 나오며 단숨에 1,000의 생명력이 빠져나가 버렸다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몽롱함’ 의 상태 이상에 걸려 버렸다 ‘실수다!’ 아크의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려 퍼졌다 레벨이 일정 수준 이상 되는 유저들은 일단 장비가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각종 스킬로 능력치가 뺑튀기 되고 각종 효과 가 적용되어 일격에 상태 이상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방어구가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 뺑튀기 되는 공격력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때문에 저레벨 때의 PVP는 길게는 10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지만 레벨이 올라갈 수 록 전투는 속전속결로 결판난다. 고레벨 유저의 PVP는 단 한 변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전투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집중할 수도 없는 상황 거기에 치명타를 허용해 엄청난 데미지에 상태 이상까지 걸리자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빌어먹을, 역시 마나도 없이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 야 이 상태로는 제대로 붙는다고 해도 절대 이길 수 없어 게다가 북실이도 그냥 둘 수 없어 하지만 스킬조차 시용할 수 없으니 빠져나갈 기회도 만들 수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마나도 없고 영력도 없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황! 그러나 아크에게는 마나나 영력을 사용하지 않는 스킬도 있지 않은가? 불과 몇십 분 전에 시엘에서 익힌 비전 스킬, ‘신탁의 권’ ! 일영 ‘비권 복불복’ 이다 그렇다,'비권 복불복’은 마나나 영력이 아닌 생명력을 사용해 발동시키는 스킬이 아닌가? 물론 어떤 효과가 나올 지 장담할 수 없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상태라면 어차피 더 나빠질 것도 없어 이렇게 되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 ‘뽕 망치’ 따위가 걸린다면 끝장이지 만 운 좋게 ‘고블린 펀치’ 같은 거라도 발동해 준다면 잠시라도 놈의 움직임을 막고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몰라 ’ “좋아,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신탁의 권’ !" 아크가 브레드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섬광이 터지며 눈앞에 시엘 외곽에서 지긋지긋하게 봐 왔던 슬롯머신이 나타났다 뒤이어 분할 화면에서 아이콘이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탁, 탁, 탁, 멈춰 섰다 동시에 팡파르 같은 효과음이 울리며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신탁의 권을 발동시켰습니다 ·신탁결과 【속성】:《스마일》 【성향】:《마술사》【환경】:《연극 무대》 신탁으로 선택된 공격 방식은 ‘코믹 매지션’ 입니다. 《3분 동안 모든 공격에 ’코믹 매지션’ 효과가 적용됩니다.》 ‘3분 동안 모든 공격에 ‘코믹 매지션’ 효과? 그게 뭐야?’ ‘신탁의 권’은 또다시 엉뚱한 특수효과를 적용시켰다 대제 이건 어떤 효과를 적용시키는 스킬일까? 아크가 ‘코믹 매지션’ 의 효과를 파악하지 못해 공격을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오호, 뭔지는 모르지만 스킬이군. 이제야 제대로 붙어 볼 마음이 생긴거냐?" 처음 시도한 아크의 반격에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던 브레드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대검을 추켜올렸다 그때 아크는 ‘신탁의 권’ 을 사용하기 위해 대 검을 흘려 내며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스킬을 사용한 직후에 반격을 받는다면 피할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검으로 막으면 좀 전처럼 힘에 밀려 중심을 잃게 되리라 짧은 순간, 그렇게 판단한 아크가 공격을 흘려 내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비스듬히 검을 치켜들 때였다. 뾰롱-! 생뚱맞게 아크의 검에서 꽃다발이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상황에 아크와 브레드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관객들과 배우, 연출가도 멍청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모두가 굳어 버린 채 엄청나게 길게만 느껴지는 몇 초 가 지난 뒤, 갑자기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이거 히트다! 설마 그 상황에서 꽃다발이 나올줄이야!" “적에게 프러포즈라도 하려는 건가?" “죽음을 불사한 프러포즈라! 이게 죽이는데!" “이봐 제발 받아주라고 불쌍하잖아 ”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관객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관객들의 반응을 바라보던 연출가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오오오! 좋아 좋다고! 이제 코믹인가? 마음에 들어! 너 희들 당장 배우로 취직해라!" 그러나 이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도 정작 아크와 브레드 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브레드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이를 갈아붙였다 “이, 이 자식 언제까지 나를 조롱하려는 거냐?" “아, 아니 이건..." “닥쳐!" 브레드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점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번 에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비둘기며 토끼가 튀어나왔다 그렇다, 이게 바로 ‘신탁의 권’ 으로 발동시킨 ‘코믹 매지션’ 의 효과였다 ‘코믹 매지션’ 문자 그대로 코믹한 마술사 효과인 것이다 ‘맙소사!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효과가 있어?’ 절체절명의 순간에 생명력을 500이나 소모해서 발동시킨 ‘신탁의 권’ 효과가 개그라니? 잠깐이나마 ‘신탁의 권’ 에 기대를 걸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코믹 매지션’ 은 상상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엇, 이, 이 자식,또 나를 조롱하는.... 웃, 귀여운 토끼...... 핫, 아니야 저 자식을 당장요절...헉, 가, 강아지다! 어이쿠! 이 녀석들 위험하니까 저리 가! 욱, 다, 달라 붙지 마! 너무 행복하잖아, 아니, 그게 아니지 이, 이 자식, 악랄한 자식, 어떻게 내 약점을 알았지? 힘으로 안 된다고 순진한 동물을 꼬드겨 앞세우다니....비겁하다!" 새삼스럽지만 브레드는 오타쿠라고 할 정도의 동물 애호가다. 귀신처럼 달려들다가도 아크의 검에서 토끼나 강아지 들이 껑충껑충 뛰어나오자 금세 헤벌쭉한 얼굴이 되었다 브레드는 동물들이 다칠까 봐 공격은커녕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정을 알 리 없는 아크에게는 브레드가 살짝 맛이 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래? 혹시 ‘코믹 매지션’에 내가 모르는 ‘환각’ 같은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특수 효과도 붙어 있는 건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갑자기 관객들 사이에서 하얀 사슬 갑옷을 걸친 엘프 여자 가 뛰어나오며 버럭 소리쳤다 “저런 멍청한 자식, 정말 봐줄 수가 없잖아 파이어볼!" 그녀는 디를 아닌 레디안이었다 브레드라면 도적단쯤은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fp디안은 브레드가 도적단을 처리히든 말 든 신경도 안 쓰고 바비큐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연극 관람 마차 근처에서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와서 호기심에 다가갔다가 아크와 브레드가 놀고(?) 있는 장변을 목격한 것이다 ‘젠장, 망했다! 저 계집애도 근처에 있었을 줄이야!’ 뒤늦게 등 뒤에서 그녀의 엄청난 화염 마법이 날아오는 것 을 확인한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때, 갑자기 브레드 가 아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대검으로 화염 마법을 쳐 냈다 브레드가 마법을 쳐 내자 레디안이 방방 뛰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아직도 사나이의 결투니 뭐니 떠들 생각 이야?" “너야말로 다짜고짜 마법을 날리면 어떻게 해? 동물들이 다치잖아!" “이런 상황에서 그딴 말이 나오냐!" “이런 상황이니까 그런 말을 히는 거잖아!" ‘뭐야 이것들?’ 아크는 멍한 눈으로 아옹다옹하는 브레드와 레디안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하자는 건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지금 가장 알 수 없는 짓을 하는 건 ‘코믹 매지션’을 사용하는 아크였다. 둘은 말싸움하느라 정작 아크는 뒷전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다!’ 아크는 둘이 다투는 사이에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무대 뒤쪽으로 도망쳤다 뒤늦게 아크의 행동을 눈치 챈 레디안 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멍청아 저 자식이 도망가잖아!" “엇? 이, 이 자식이 또 비겁하게 도망갈 생각이냐?" 브레드가 대검을 휘둘러 대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믿을 건 ‘코믹 매지션’ 밖에 없다 토끼 든 환각이든 뭐든 나와라!’ 아크가 검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 반짝이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신탁의 권’으로 발동된 ‘코믹 매지션’의 지속 효과가 끝나갑니다! 〈마술사의 무대는 항상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술사의 마무리는 항상 최고의 마술과 항께 사라지 는 게 정석 '코믹 매지션’의 지속 효과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매지션 피니시' 가 발동됩니다.》 ‘매지션 피니시? 엇?’ 퍼퍼퍼펑 !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돌연 검 끝에서 엄청난 양의 꽃가루가 쏟아져 나오더니 자욱한 연기를 내뿜으며 폭발했다. 아크가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자 연극 무대의 뒤였다. 그렇다. '매지션 피니쉬’는 공연을 끝낸 마술사가 연막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지는 효과를 발동시키는 효과였다. 마지막까지 어처구니없는 기술이지만 지금 아크에게는 바라마지 없던 결과였다 ‘오호 이거 완전 히트잖아?’ 브레드의 시선에서 벗어난 아크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때 브레드가 대검을 풍차처럼 회전시켜 연 막을 몰아내며 뛰어나왔다 “뭐 뭐야? 이 자식 어디 갔어?" 브레드는 그제야 무대에서 아크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레디안이 방방 뛰며 소리쳤다 “이 바보야, 무대 뒤잖아" “엇? 저 녀석 어떻게 벌써 저기까지? ‘워프’ 라도 한 건가?" 브레드가 멀리서 도망가는 아크를 뒤쫓기 위해 무대에서 뛰어내렸을때였다 무대 아래에서 돌연 한 사내가 뛰어나오며 와락 브레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손님, 계산은 해주셔야죠!" “어!?" “저 맥주 3000cc 다섯 잔에 여자 분이 드신 바비큐 18인분까지 36골드입니다 함께 계시던 여자 분이 손님께서 계산하기로 했다던데요? 먹고 튀시려고 하면 곤란하죠. ” 사내는 다름 아닌 브레드와 레디안이 먹고 마시던 노상 주점의 주인이었다 브레드가 발끈한 표정으로 돌아보자 레디안이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이렇게 엉뚱한 상황으로 연극이 막을 내리자 관객들이 배를 움켜쥐고 폭소를 터뜨렸다 “우하하하, 끝내준다! 마지막은 외상값을 갚는 장면인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고다!" “이번 축제에서 최고의 연극은 이 무대야!" “우우우, 내 인생에 이렇게 환호를 많이 받는 무대는 처음 이야!" 연출가는 감동의 눈물을 훔치며 막을 내렸다나 뭐라나 어쨌든 브레드와 레디안이 노상 주점 주인에게 잡혀 계산 하는 사이 아크는 북실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려갔다 ‘설마 ‘신탁의 권’ 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맞아, 아직 내가알고 있는건 얼마 되지 않아 ‘신탁의 권’을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물론 대부분은 쓸모없는 효과가 적용될 때도 있지만 엉뚱한 스킬이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아직 연구할 가치는 충분해 ’ 아크는 의외의 상황 덕분에 ‘신탁의 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건 ‘신탁의 권’에 얽힌 비밀보다 북실이를 탈출시키는 일이었다. 아크가 브레드를 따돌렸을 때는 이미 북실이가 도망가고 몇 분이 지난 뒤였다 주변을 아무리 뒤져 봐도 북실이는 물론 도적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북실이 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설마 벌써 잡힌 건 아니겠지?" “모 몰라요 도적단에게 쫓기다가 차라리 숨으려고 방금 전에 어딘가에 들어왔는데 힉,여,여기 뭔가 이상해요 모, 몬스터들이 히익!" 눈알이 움찔움찔하며 더듬거렸다. “몬스터? 마을에 무슨 몬스터가 있단 말이야! “주인!" 아크가 고개를 기웃거렸을 때였다 그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랴카드가 파닥파닥 날아오며 소리쳤다 “이쪽으로 날아오다가 내가 봤어 북실이 녀석 방금 전에 저기로 들어갔어!" “저기?" 아크는 라카드가 가리키는 성처럼 생긴 건물을 바라보았다 으스스한 느낌이 풍기는 건물 앞에는 커다란 뱃말이 붙어있었다 【공포의 성】 공포의 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한여름의 더위를 날려 내는 공포의 성을 어서오십쇼! 제한 시간 내에 미로를 탈출하연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입장료 50실버> ACT 6 The carnival(Ⅱ) “이번에는 유령의 집이냐?" 아크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눈알을 노려보았다 북실이가 들어갔다는 공포의 성은 놀이 공원이라면 하나쯤은 있다는 유령의 집’ 이었다 허접한 가건물에서 알 만한 어른들이 유치찬란한 분장을 하고 어린애를 놀래며 즐기는 장소 솔직히 아크는 그런 곳에 돈을 내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뭐, 현실의 유령의 집과는 달리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 만. 어쨌든 눈앞에 있는 공포의 성은 아크가 기억하는 유령의 집과는 차원이 달랐다 공포의 성은 어딘가의 유령의 집처럼 허접한 가건물로 세워진 게 아니었다. 진짜 저택을 개조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게다가 뉴 월드는 마법이 일상인 세계 시속300킬로미터의 황당한 속도를 즐겼던 마법 마차처럼 공포의 성도 틀림없이 기대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바로그게문제다 ‘지금 놀자는 게 아니잖아!’ 도대체 이 돼지 녀석은 탈출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가? 시속 300킬로미터의 마법 마차에, 오리 배가 떠다니는 호수에, 연극 무대가 설치된 퍼레이드 마차에 그것도 모자라 이제 미로가 깔린 유령의 집? 어째 도망치는 곳마다 이런 곳이란 말인가? 혹시 돼지 녀석은 그냥 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그냥 아크를 개고생 시키고 싶은 건가? ‘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숨을 곳이 여기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가만, 이 수상한 스위치는 뭐지? 만지지 마시오? 아하, 어쩌면 이게 문을 여는 장치일지도 몰라 에잇, 으악!" 눈알이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다가 비명을 터뜨렸다 아크가 움찔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가, 갑자기 굴러 떨어져서 어라, 뭐지? 이 물컹한건? 힉! 도, 도적단이다!" “도적단? 도적단에게 들켰어?" “히익,히익,떠, 떨어진 곳이 도적단 머리 위였어요," “이 멍청한 자식아! 지금이 놀 때냐? 대체 수상한 스위치는 왜 만지는데?" “하지만, 하지만 " “빌어먹을, 어쨌든 도망쳐! 내가 바로 들어갈 테니까 어떻게든 도망치면서 시간을 끌어! 항상 통신 상태를 유지하면서 근처에 특징적인 지형이 있으면 보고하고 알았어?" “아, 알았어요! 히익! 백구야 튀어'" ‘말로만 상황을 전해 들으니 답답해 미치겠군. ’ 비명을 질러 대는 눈알을 바라보고 있자니 짜증수치가 급상승했다. 눈알을 통해 현재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는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작 북실이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답답했다. “어쨌든 상황이 급한 것만은 분명해 서둘러서 구시렁거리며 걸음을 옮기던 아크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공포의 성 앞, 한 쌍의 남녀가 입구 앞에 서서 아크를 바라 보고 있었다. 아크가 잠시 헤매는 사이, 외상값을 갚고 따라 붙은 브레드와 레디안 이었다 “후후후 아예 못 봤다면 모를까, 일단 걸린 이상 도망갈 생각은 안하는 게 좋을걸. 좀 전에 네 냄새를 확실하게 기억 했으니까” 개의 ‘수혼 빙의’ 로 개 같은(?) 얼굴로 변한 브레드가 코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자, 아까는 잘도 까불어댔겠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 레디안도 표독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맞아 젠장, 이 녀석들도 있었지?’ 정말이지 아크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레벨 400대의 비스트 마스터 브레드! 제대로 전투준비를 갖추고 붙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하물며 아크는 좀 전의 전투에서 빠진 생명력도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마나도 이제 겨우 300 정도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이 상태로 붙으면 100전 100패,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역시 이번에도 따돌리는 방법밖에 없어.’ 아크는 시선을 움직여 옆에 서 있는 레디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양손에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마력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마법사를 많이 상대해 본 아크는 그게 어떤 스킬인지 알고 있었다. 보조마법 ‘퀵 스펠’ 미리 주문을 외워 마법을 스탠바이 상태로 만들어 놓고 필요할 때 즉각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보통 마법사가 스탠바이 시킬 수 있는 마법은 하나, 그러나 레디안은 양손에 하나씩 두개의 마법을 스탠바이하고 있는 상태였다 ‘저 '퀵 스펠’ 공격 마법이라면 차라리 낫다 하지만 ....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브레드는 아크와 1대1로 결판을 내고 싶어 한다. 만약 브레드의 목적이 단순히 아크를 밟고 싶은 것뿐이라면 방금 전에도 먼저 근처에 있는 레디안을 불렀을 것이다 그리고 레디안은 항상 툴툴대면서도 브레드의 뜻에 따르는 태도를 보였다. ‘상황을 종합해 봤을 때 레디안이 준비 중인 ‘퀵 스펠’ 은 이동제한 마법일 가능성이 높아 ’ 레디안은 아크의 발을 묶고 브레드가 끝장내는 방식이다 혼자서 해적선을 움직일 정도의 능력을 가진 마법사가 ‘퀵 스펠’ 로 이동제한 마법을 준비 중이다 그것도 양손에 하나씩 두 발 일단 발동되면 마법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리고 마법이 아니라도 도망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 공교롭게도 둘은 공포의 성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아크는 북실이를 놓아두고 도망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물론 브레드와 레디안에게 당해 버려도 결괴는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아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브레드가 대검을 뽑아들고 다가왔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주지" ‘좋아, 다 좋다고 끝장을 내든 말든 하지만 지금은 좀 봐주면 안 되겠냐? 정말 엄청나게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부탁이다! 일단 이번 일만 해결하면 나중에 몇 번이든 싸워 줄 테니까 이번에는 좀 봐줘라, 응?" 아크가 애원조로 말했다 지금까지 뉴 월드를 하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해 보지 않았다 그게 아크에게는 나름대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존심 따위를 챙길 때가 아니었다. 이슈람이 지명수배 중인 흉악범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의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정기선에서 한 번 바보 취급을 당 한 브레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 자식, 내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냐? 두 번이나 속아 줄 것 같아?" 새삼스럽지만 이래서 명소 행실이 중요하다는 거다‘ “아니 이번에는 정말 급한 일이야 너도 사정을 들어 보면..." "문답무용!" 브레드가 양손으로 대검을 움켜쥐고 아크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문득 뒤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수십 명 의 경비대원이 달려왔다 “저쪽이다, 저 사람이 분명해!" “뭐, 뭐야?" 경비대원이 달려오자 브레드가 머뭇거리다가 한 걸음을 물러났다 아무리 막가는 브레드라도 수십 명의 경비대원 앞에 서 대검을 휘둘러 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 다가온 경비대원들이 아크를 둘러싸고 말했다. “인상착의가 확실하군. 자네,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네 ” “무, 무슨 일인데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크도 당황한 표정으로 경비대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전 경비대에 축제 운영 위원회의 신고가 들어왔네. 난동꾼들이 몇몇 시설에 난입해 영업 방해를 했다고 말이야 자네도 그중에 껴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네.” 북실이와 도적단, 아크가 쫓고 쫓기는 동안 분탕질을 쳐 댄 ’쾌속 질주’ 와 ‘오리 배’ 의 운영자들이 경비대에 신고한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정신없는 축제라고 해도 그 정도로 난리를 피워 댔으니 경비대가 출동한 것은 당연했다 “하 하지만 가드레일을 부수거나 오리 배를 탈취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됐네, 사정은 일단 경비 본부에 가서 듣도록 하지 연행해라!” 정말이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브레드와 레디안 만으로도 골치가 지끈지끈하는데 마을 경비대까지 나서다니? 물론 이대로 경비대원에게 연행되면 브레드와 레디안을 따돌릴 수 있다 또한 아크가 여기저기 난장판을 벌이기는 했지 만 도적단처럼 실질적으로 기물 파손을 한 것도 아니었다. 사정 청취를 위해 연행은 되겠지만. 가벼운 벌금이나 훈계 정도로 방면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동안 북실이가 도적단에게 잡히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미치겠군. 정말.’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가만? 그런데 경비대가 왜 나에게만 뭐라고 하는 거지?’ 아크는 약간 떨어져서 분위기를 살피는 브레드와 레디안 을 바라보았다 브레드 역시 아크와 함께 퍼레이드에 난입했지만 관객들이나 연출가가 만족했으니 신고는 하지 않으리라 확실히 축제의 일만 생각하면 경비대가 브레드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축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브레드와 레디안은 불과 며칠 전에 만났을 때 카오틱이었어!’ 그렇다, 브레드와 레디안은 해적 선단을 꿀고 나타났던 카오틱 해적이었다 게다가 그저 그런 수준의 카오틱이 아니었다. 뉴 월드에서는 범죄를 많이 저지를수록 카오틱 수치가 올 라가고 그건 아이다가 점점 더 붉게 변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바다에서 아크가 처음 만났을 때 둘의 아이다는 붉다 못해 검게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아직 아크는 올랐지만 브레드와 레디안의 카오틱 수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쌓인 이유는, 예전에 하만 요새에 침입해서 관광 안내소의 NPC를 실패했기 때문이다 NPC를 죽이면 유저를 죽일 때보다 몇 배나 많은 카오틱 수치가 적용되는 것이다‘ ‘게다가 브레드는 방금 전에 도적단까지 처리했어. 놈이 처리한 도적단은 카오틱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놈의 아이디는?’ ‘고양이의 눈’ 으로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경비대원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으니 노멀상태라는 뜻이다. 잠깐 전에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마을을 돌아다닌다? 아크가 아는 한, 그런 방법은 두 가지 삼바라가 사용하는 ‘사신의 대리자’ 를 사용하는 방법 그러나 그 스킬은 세인트 어To신의 직업 스킬이다. 자, 그렇다면 일반 유저가 사용할 만한 방법은? '그렇군, 그거였어!’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저들입니다 사실 저자들에게 쫓기느라 본의 아니게 소란을 피운 겁니다!" “뭐?" “저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살해한 흉악범입니다!" 아크가 브레드와 레디안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경비대원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저들은 신고도 들어오지 않았고, 평범한...“거짓말입니다, 잘 보십시오!" 아크가 재빨리 두 장의 주문서를 꺼내 찢으며 소리쳤다 "*진실의 검* 발동! 타깃, 브레드, 레디안!" “혁 저 저자식이...!" 상황을 살피던 브레드와 레디안이 기겁하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주문서는 일단 타깃을 정하고 필요한 조건만 갖춰지면 100% 확률로 적중되는 아이템! 주문서가 발동되자 허공에서 거대한 검의 형상이 나타나더니 둘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다 '진실의 검'이 발동됐다는 것은 아크의 예상이 적중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카오틱인 브레드와 레디안이 버젓이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 바로 캐릭터 정보를 임의대로 바꿀 수 있는 -거짓말- 주문서의 효과였다 그리고 아크가 발동시킨 -진실의 검-은 오직 -거짓말-을 사용한 유저에게만 효력을 발휘하는 주문서! 강력한 데미지 와함께 -거짓말-의 효과를 해제하는 주문서였다 ‘후후후, 역시 착한 일은 하고 볼 일이야 ’ 아크는 -진실의 검-에 얻어맞고 개구리처럼 뻗어 버린 브레드와 레디안을 보며 히죽거렸다. 사실 아크는 일부러 주문서 따위를 챙기고 다니지 않았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그러나 시엘에서 로니를 돕느라 반복 퀘스트를 하며 좀 돈이 모이면 틈틈이 적당한 가격의 주문서를 구입해 주였다 -진실의 검-도 그중 하나였다 어쨌든 -진실의 검-에 얻어맞고 쓰러진 둘의 머리 위로 선명한 붉은 아이디가 떠올랐다 그러자 경비대원들이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앗! 저,저자들은...!" “기억납니다 얼마 전 정기선을 침몰시켰다는 해적 일당의 두목들입니다!" “으드득! 감히 해적 따위가 축제에서 선량한 사람을 공격하다니,잡아라!" 분개한 경비대원들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이,이런 젠장, ‘퀵 스펠’ 발동, ‘회오리의 덫'!" 역시 레디안이 준비하고 있던 ‘퀵 스펠’은 이동 제한 마법이었다. 레디안이 마법을 시전하자 엄청난 돌풍이 일어나며 달려들던 경비대원들을 후려쳤다 ‘넘어짐’으로 2초간 경직 상태로 만들고 30초 동안 이동 속도가 50% 줄어드는‘ 회오리의 덫’! 그러나 축제 중인 보사카에 배치된 경비대원들은 제법 레벨이 높았다 마법에 적중된 것은 여섯 명뿐, 레디안의 마법은 오히려 나머지 경비대원들을 더욱 분개하게 만들었다 “크윽, 저, 저놈들 !" “놈들이 반항한다. 신호를 보내 경비대원을 집합시켜!" 경비대원이 호루라기를 붙어 대자 사방에서 경비대원들이 몰려들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브레드가 이를 갈이붙이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저 자식!" “멍청아, 그럴 때가 아니야! 튀어!" 그러나 레디안이 버럭 소리치며 잡아끌자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했다 아무리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경비대원들과 상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레디안은 또다시 준비해 놓은 ‘퀵 스펠’ 로 ‘회오리의 덫’을 발통시키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아크는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는 둘을 보며 히죽거렸다. “쿠쿠쿠쿠, 그러니까 평소에 착하게 살아야지 ” “하아? 주인이 그런 말을?" “시끄러! 난 저렇게 흉악한 짓은 안 한다고 ” 아크가 라카드를 흘기며 쏘아붙였다 어쨌든 덕분에 경비대원은 물론, 귀찮게 달리붙는 브레드 와 례디안까지 처리했다 둘의 시빨건 아이디를 보니 일단 잡히면 적어도 한 달은 콩밥을 먹어야 하리라 ”제발 좀 그렇게 돼 줬으면 좋겠지만‘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면 쉽게 잡히지는 않겠지?" 그러나 일단 보사카 마을에서는 더 이상 아크를 괴롭힐 여 유가 없을 것이다 “자,이제 둘은 처리했다 서둘러 북실이를 찾자" 아크는 라카드를 앞세우고 공포의 성으로 달려갔다 “후후후후, 또 어리석은 인간들이 찾아왔군. 과연 너희들 에게 이 공포의 성에 발을 들여놓을 용기가 있을까? 정말 그럴 용기가 있다면 50실버를...." 공포의 성 앞에 도착하자 사신 분장을 한 NPC가 손을 내밀었다 상대하기도 귀찮은 아크는 동전을 집어 던지고 공포의성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우우우, 카카카카, 크흐흐흐! 공포의 성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굉음이 울려 왔다 짐승의 울음, 유령의 신음, 괴물의 위협적인 포효1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 듯한 음향효과가 총동원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소음이 아니었다. “젠장 이게 뭐야?" 아까 눈알과 통신할 때 북실이는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원래 유령의 집은 좀 복잡하게 만들어 놓는 게 정석이니까 안내 문구에도 미로라는 말이 적혀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들어와 보니 이건 ‘좀 복잡한’ 정도가 아니었다. 입구에서부터 수십 개의 갈림길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미로였다 사실 이곳이 던전이라면 지형이 아무리 복잡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던전은 대강의 지형지물을 기억해 두면 방향은 짐작할 수 있었고 ‘지도 제작’ 스킬을 사용하면 한 번 지났 던 길을 다시 헤매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은 던전을 빙자한 놀이 기구에 불과했다 ‘지도 제작’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예 작정하고 헤매게 만들어 놓은 곳이라 특정 지형지물을 표식으로 삼기도 힘들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수로 북실이를 찾아?" “우아아앙! 아크 님, 뭐해요? 빨리 와 주세요 여기는 주변에 관들이 엄청 많은 곳이에요!" 눈알이 대충 주변의 모습을 설명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체 어디로가야 관이 있는곳을 찾을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포의 성은 단단한 돌바닥이라 라둔의 ‘스토킹’ 을 시용해도 족적을 추적할 수 없었다. 결국 일일이 돌아다니며 북실이가 말한 장소를 찾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검화’ 를 풀고 말했다 “할 수 없지 같이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일단 둘로 갈라져서 찾는게 나아” “하지만 주인, 나는 그렇다 쳐도 이 녀석은 해골이잖아 ” 라카드가 라자크의 해골을 탁탁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라카드의 말처럼 이곳은 마을 스켈레톤이 혼자 돌아다니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이곳은 유령의 집이야 일부러 괴물 분장을 한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으니 스켈레톤이 나타났다고 난리를 피우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라자크 혼자 떨어져 있으면 북실이를 발 견해도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네가 함께 움직여라 굳이 말 할 필요도 없지만 절대 북실이가 놈들에게 잡혀서는 안 돼 일단 발견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갈 때까지 지켜라 ” “오케이 어이, 해골! 따라와 ” 딱딱딱딱, 딱딱딱딱! 아크는 소환수들과 나뉘어 북실이 수색을 시작했다 “저쪽이다!" “방금 전에 저쪽으로 도망가는 걸 봤어!’ 낡은 관과 흉물스러운 고문 도구들이 널려 있는 섬뜩한 분위기의 지하공간! 지금 그곳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뛰어다니며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북실이가 도적단을 피해 공포의 성에 뛰어 들어온 지 대략 10분, 당시 20여 명의 도적단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지만 복 잡한 미로 때문에 코앞에서 놓쳐 벼리고 말았다 이에 도적단은 아크처럼 인원을 나눠 북실이를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원을 나눠도 미로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공포의 성에는 도처에 함정이 깔려 있었다, 놀이 기구이니 생명에 위협을 줄 만한 함정은 아니었지만 잠시 못 움직이게 하는 ‘끈끈이’ 나 갑자기 아래층으로 떨어뜨리는 ‘미끄럼’ 따위의 함정이 숨겨져 있어 어떨 때는 북실이를 발견하고도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함정 때문에 정신없는 건 북실이 역시 마찬가지 였다 몇 번의 ‘미끄럼’ 을 타고 ‘스프링’ 으로 튕겨져 올라오는 사이 이런 곳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괴물 분장을 한 NPC에게까지 쫓기는 바람에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헤매게 되었다 그 와중에 도적단이 북실이를 따라잡고 점점 포위망이 좁혀 오고 있었다. “틀림없이 이 근처에 있다 너희들은 이쪽, 너희들은 저 쪽으로 이동해서 찾아봐" 북실이는 도적단의 고함이 들릴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발을 동동 굴러댔다 “헉! 사방이 몽땅 도적단들이야! 포위당했어!" “주인님, 저쪽 구석에 구멍이 있습니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백구가 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섬뜩한 고문 기구들 사이에 작은 개구멍이 뚫려 있었다 공포의 성에서는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는 이런 비밀 통로를 찾아내는 것도 재미라기보다 북실이에게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다. 북실이는 볼 것도 없이 개구멍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푸짐한 몸을 구겨 넣으려는데, 갑자기 개구멍에서 여기저기 살점이 떨어져 나간 좀비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으아아악!" 북실이가 비명을 지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나 좀비는 그냥 히죽 웃으며 어기적어기적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히히히,또 성공이다 자, 다음은 어떤 놈을 놀려 볼까나?" 북실이가 덜덜 떨며 바라보자 백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정말 주인님, 여기서 나오는 몬스터는 다 가짜라니까요 ” “알아 안다고 하지만..." 북실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울먹였다 물론 북실이도 이곳에서 나오는 괴물이 모두 NPC가 분장 하거나 소환사가 불러낸 안전보증 몬스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아크와 다나며 별의별 몬스터를 다 보았다‘ 새삼 몬스터를 본다고 겁먹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겁먹지 않는 것과 놀라지 않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이 공포 영화를 보며 놀라는 이유가 단순히 겁을 먹어서는 아니지 않은가? 그냥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허를 찔려 놀라는 것이다 덕분에 북실이는 매번 당할 때마다 육수를 질질 흘려 대며 경기를 일으켰다 “앗, 저쪽이다!" 그때 반대쪽 모퉁이에서 서너 명의 도적단이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힉, 배 백구야!" “주인님, 서두르세요!" 백구가 북실이를 물고 질질 꿀며 개구멍으로 도망쳤다 “젠장, 저 자식들!" 도적단이 욕설을 퍼부으며 따라 들어오려 할 때였다 돌연 사방에서 10여 개의 시커먼 손이 튀어나와 도적단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 이 역시 공포의 성에서 일어나는 이벤트 중 하나였다 바로 이런 이벤트들 때문에 도적단은 몇 번이나 북실이를 코앞까지 쫓아갔다가 놓치고는 했다 이번에도 도적단이 손길 을 뿌리치고 개구멍을 빠져 나가자 북실이는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또 놓쳤어!" “방금 전의 NPC들만 없었어도.... 정말 짜증나는 곳이야!" “하지만 이 주변은 거의 다 포위했어. 이대로 좁혀 가면 놈들을 잡는 건 시간문제야 " “그래, 이제 시간문제다 게다가 이 통로는 아까 전에 한 번 지나갔던 길이야 반대쪽을 뒤지던 녀석들이 곧 이쪽으로 올 테니까 우리는 이쪽으로 이동하자 놈들이 어디로 튀었든 양쪽 모두 수색하고 있으니 곧 잡을 수 있을 거야 ” 도적단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근처의 관을 걷어차고 통 로를 따라 뛰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도적단이 걷어갔던 관 이 스르르 열리더니 돼지와 개가 기어 나왔다 “헉헉헉, 사, 살았다" 북실이가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뒤늦게 알게 됐지만 사실 백구가 발견한 개구멍은 함정이었다. 개구멍을 통과하자마자 함정이 작동해 둘을 커다란 관에 가둬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관에 갇혀 버린 북실이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덕분에 도적단을 따돌릴 수 있었다 북실이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대다가 문득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대체 저 사람들은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러는 거야?" 북실이는 아직도 도적단이 왜 자신을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지 모르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앙심을 품어야 할 사람은 스탄달에서 먼저 공격을 받았던 북실이다. 그러나 북실이는 넓은 아량(?) 으로 그들을 용서(?)해 주었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먼저 나쁜 짓을 했던 놈들이 앙심을 품고 쫓아다닌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바깥세상에는 아크님보다 악랄한 인간도 있군요. " 백구도 도적단의 끈질김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갑자기 백구가 코끝을 실룩거리더니 경계 심 가득한 눈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동시에 반대쪽에서 두리번거리며 다가오던 사내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눈을 깜빡이며 북실이와 백구를 바라보던 사내가 뭔가를 확인하듯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가 왔다 그러다가 백구가 으르렁거리자 다시 걸음을 멈추고 손을 저었다 “잠깐, 나는 적이 아니야" "?" “거기 너, 이름이 북실이지?" 사내는 마치 첩보 영화의 주인공처럼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나는 아크와 잘 아는 사람이야 ” “아, 아크님요?" “그래 지금은 상황이 이래서 자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지 만. 나는 너희들 편이야 너희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곳에 들어왔단 말이야 일단 근처에 너희를 쫓는 녀석들이 있으니 자리를 피하자 놈들은 이미 이곳의 지리를 파악하고 팀을 나눠 조직적으로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어 여기에도 곧 몇 놈이 올 거다 하지만 내가 놈들의 이동 루트를 대강 파악하고 있으니 나만 따라오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거야 자세 한 얘기는 탈출한 뒤에 하자- 따라와" “우‘ 우아, 고마워요!" 아크라는 말에 북실이가 경계를 풀고 사내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백구가 등 갈기를 바짝 곤두세우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르, 주인님! 속지 마세요 함정입니다!" “뭐, 뭐라고?" “이 인간의 몸에서 아크 님의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습니다. 되려 우리를 쫓던 놈들의 냄새가 풀풀 난다고요 이놈은 그놈들과 한패입니다 혼자서는 처리하기 힘들 것 같으니까 놈들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려는 게 틀림없어요I" ”혁 그런 거였어? 이 나쁜 놈!" 화들짝 놀란 북실이가 욕설을 퍼부으며 뒤로 울러났다 그러자 사내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분명 이곳에서 아크를 만난 적은 없지만" “거봐요, 만난 적도 없다고 하잖아요!" “벌어먹을 진정하고 내 얘기 먼저 들어 봐! 아니, 설명할 시간이 없어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면 다 설명해 줄 테니까 지금은.." “웃기지 마! 내가 그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수룩해 보이냐?" 북실이가 콧방귀를 뿜어내며 소리쳤다. 홀라당 속아 넘어갔다 백구가 말하기 전까지는 어쨌든 북실이가 펄펄 뛰자 사내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소리치며 다가갔다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일단 나가면 다 설명해 준다니까!" “주인님, 물러나세요!" 그때 백구가 뛰어오르며 사내의 목덜미를 물었다 사내가 움찔하며 재빨리 상체를 흔들어 피했지만 목이 긁히며 피가 튀어올랐다 “이 이런!" 사내가 목을 움켜쥐고 뒤로 물러나 백구를 노려보았다 사내 이미 짐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이름은 이슈람, 바로 이명룡이었다. 이슈람은 백구와 북실이의 반응에 답답해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대체 왜 이 녀석이 여기 있는 거냐고!’ 아크와 함께 남서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북실이가 보사카 마을에서 어정거렸을 때부터 이슈람은 일이 더럽게 꼬여 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급한 마음에 호출한 아크는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혀있고, 북실이는 공포의 성에서 도적단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놈들이 북실이를 잡는 것만큼은 막아야해!’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잠입 수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도적단과 함께 있으면 북실이를 만나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이슈람은 적당한 구실을 대고 도적단과 떨어졌다 그리고 경찰의 지식을 동원해 ‘도망치는 사람의 심리’ 를 추측, 도적단의 수색 루트를 역추적해 먼저 북실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됐어!’ 북실이를 발견한 이슈람은 내심 환호성을 터뜨렸다 도적단의 수색 루트는 대강 파악하고 있으니 이대로 북실이를 탈출시키면 된다 이슈람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있었다, 일단 찾아낸 것까지는 좋은데, 자신이 아크와 한편 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잠입 수사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또한 그런 설명을 한다고 순순히 믿어 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만약 이때 이슈람이 북실이가 눈알로 아크와 통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름을 대고 확인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이슈람이 그런 괴상한 스킬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이 근처에는 이미 놈들이 확 깔려 있어. 이 통로에도 이제 곧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여기서 머뭇거리다가 놈들에게 발각되면 모든 게 끝장이다! 북실이를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이슈람이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백구를 노려보았다. 이슈람에게 중요한 것은 북실이뿐이다. 만약 이곳에서 북실이가 당한다면, 놈들은 분명 부활 장소 에서 진을 치고 기다릴 게 뻔하다. 부활 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도적단까지 몰려와 합류한다면 아무리 아크가 있어 도 메모리 크리스털을 회수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결국 이슈람은 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북실이는 상인이라 전투 능력이 전무하다 문제는 백구 라고 하는 이 멍멍이 일단 이 멍멍이를 처리하고 북실이를 강제로라도 끌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안전한 곳에서 아크와 삼자대면으로 오해를 풀면 메모리 크리스털을 넘겨받을 수 있을 거야’ 이슈람은 뒤이은 백구의 공격을 피하며 날카로운 발차기 로 반격했다 그러자 북실이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이제 본색을 드러냈구나, 악당!" 덕분에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이슈람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이 멍멍이를 처리해야 한다!’ 이슈람은 경이로운 몸놀림으로 스텝을 밟으며 백구에게 발차기를 날리기 시작... 덥석,콸콸콸콸! 하려던 찰나 백구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며 허벅지를 덥석 물어 버렸다 게임이나 할 줄 알았지, 아직도 시험용 유니트의 기능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던 이슈람은 여전히 페인 수치(시험 기종에 안 붙어 있는 고통을 조절하는 기능)가100%다 백구에게, 그것도 민감한 허벅지를 엽석 물려 버리자 띠가 콸콸 쏟아지며 정말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동시에 당혹스러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늑대 계열의 NPC에게 물렸습니다 데미지 650! 〈허벅지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어 10분 동안 이동속도와 반응속도가 30% 경감합니다!> ‘뭐, 뭐야, 이놈!" 이슈람이 당혹성을 터뜨리며 휘청거렸다 이슈람은 상대의 레벨을 확인하는 스킬이나 주문서가 없었다. 또한 백구가 다른 도적들과 싸우는 장면을 본 적도 없었다. 그냥 개라기에 예전에 상대했던 놀하고 비슷한 수준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붙어 보니 놀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북실이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흥! 백구가 저래 뵈도 레벨 310이라고! 너 하나쯤은 상대할 수 있어!" “레 레벨310?" 이슈람이 뜨악한 눈으로 백구를 바라보았다 이슈람은 북실이가 상인이라 전투 능력이 전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슈람 역시 상인이다 그나마 예전에 놀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레벨이 놀보다 한참 높았고 현실에서 갈고닦은 전투 기술 덕분이다 그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곳은 게임 속이다 현실의 전투능력이 적용되는 것은 전투지식과 동체 시력 따위다 힘이나 체력 같은 것은 스탯 수치로밖에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슈람이 몸에 익힌 기술은 태권도가 기본이지만, 조폭을 진압하기 위한 특수 무술이다 단순한 태권도라면 모를까, 조폭들이 경찰청의 특수 무술 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때문에 도적단과 함께 있으며 혹시나 정체가 발각될까 싶었던 이슈람은 가급적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피해왔다 덕분에 이슈람의 레벨은 가람을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해 서 아직 230 수준 아무리 현실에서 초인적인 전투 능력을 가진 이슈람이라도 레벨 230으로 레벨 310의, 그것도 전투 종족인 월랑족 출신의 백구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자,잠깐 기다려! 타임, 타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이슈람이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흥! 동료라도 부르시게? 백구, 먹어 버려!" “네, 주인님! 크아아앙!" 이슈람이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눈치 챈 백구가 본격적인 공격을 펼쳐 왔다 이슈람은 태권도 실력을 120% 발휘하며 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게임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레벨 설사 장비품이 똑같아도 fp벨이 많이 차이 나면 공격력과 방어력, 힘, 민첩, 체력 등등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진다 게다가 직업도 이슈람은 상인, 백구는 수인족 전사다 이슈람이 100%도 빗나가지 않게 급소를 공격해도 백구 에게 줄 수 있는 데미지는 고작 50~80에 불과했다. 반면 백구의 공격을 받으면 스치기만 해도 300~400의 생 명력이 빠져나갔다 게다가 레벨 차이가 많이 나서 툭하면 상태 이상까지 걸려 버렸다 이슈람은 불과 몇 분 만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맙소사 이제 곧 복날인데.. 멍멍이를 먹지는 못할망정 멍멍이에게 먹히다니' 그뿐이면 말도 안한다 “에잇, 에잇! 나쁜놈, 나쁜놈!" 아크에게 설설 긴다는 돼지가 이슈람의 시체를 걷어차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 새삼 처량한 자신의 신세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 “주인님, 다른 놈들의 발소리가 들립니다!" 백구의 목소리에 북실이가 그제야 발길질을 멈추고 물러났다. 그리고 백구의 등에 올라타고 재빨리 반대쪽으로 도망 쳐버렸다 “이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어. 엇? 저건?" 북실이와 백구가 사라지고 잠시 후 모퉁이 뒤쪽에서 너덧 명의 도적단이 뛰어나왔다. 뒤늦게 이슈람의 시체를 발견한 한 사내가 달려들었다. “이, 이슈람!" 이슈람의 시체를 부둥켜안으며 비명을 터뜨린 것은 다름 아닌 가람이었다! "크윽. 대, 대체 어쩌다가! 가만 이 개에게 물린 듯한 상처는 으드득 그놈이구나, 그 돼지와 함께 있던 개새끼.....빌어먹을 그래서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괜히 우리 일에 말려들어서..." 이를 갈아붙이던 가람이 와락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어떤 녀석이 이슈람을 믿지 못하겠다고 지껄였냐? 말해 봐 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그따위 말이 나와? 내가 몇 번이 나 말했지? 이 녀석은 절대 누구를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이 녀석은, 이 녀석은 말이야 너희들이 항상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었다고 게다가 이번에는 우리를 위해서 놈들을 쫓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가람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러자 도적단들도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설마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이야 ” 개밥(?)이 된 덕분에 도적단에게 신뢰도가 약간 올라간 이슈람이었다 . 어쨌든 이슈람의 죽음을 목격한 가람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피어올랐다 “으드득 감히 잡종 개와 돼지 새끼 주제에 내 마음의 친구를 죽였다 이거지? 절대 놓치지 않겠다! 아직 시체가 따뜻하니 놈들도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거다 기필코 잡아서 대가를 치르도록 해 주마! 산 채로 갈가리 찢어 주마!" "........제발 참아 줘. 나를 위해서 제발 놓쳐 다오" 이슈람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강제 종료되었다. “어이 뭐하는 거야? 빨리 와.” “네? 아니, 그러니까...." 라카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소년으로 변신한 라카드는 앞에서 손짓하는 네 마리의 좀비를 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히아 이거 어쩌지?’ 라카드는 라자크와 함께 공포의 성 입구에서 아크와 떨어져 북실이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북실이에게 들었던 것과 비슷한 장소를 찾아냈다 ‘후후후, 이거 왠지 마음에 드는 곳인데?’ 라카드가 찾아낸 곳은 공포의 성 최하층, 관과 고문 도구 같은 소도구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장소였다 그런데 라카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뜻하지 않았던 난관에 부 딪치고 말았다 갑자기 눈앞에 좀비들이 나타난 것이다 “크아아아! 다 잡아먹겠....어라?" 누군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나오던 좀비들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멀뚱멀뚱 라카드와 라자크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야? 동업자냐? 너희들도 이 지역에 배속받은거냐?" ‘배속?’ 잠시 고개를 기웃거리던 라카드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좀비들은 NPC가 분장한 것이다 그 리고 스켈레톤인 라자크를 보고 그 역시 자신들처럼 공포의 성에서 일하게 된 주민이라고 오해한 모양이다 이런저런 해명을 하기 귀찮았던 라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이곳에서 적당히 돌아다니라고 하던데요?" 그러자 좀비들이 라자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건 정말 실감 나게 잘 만들었는데?" 딱딱딱, 딱딱딱딱! 좀비들이 더듬어 대자 라자크가 울컥한 목소리(?)로 중얼대며 밀어냈다 라자크의 반응에 좀비들이 당황한 얼굴로 물러났다 “헉, 뭐야? 이거 정말 스켈레톤이잖아?" 그때 라카드가 재빨리 끼어들어 설명했다 “아, 이건 진짜에요 제가 불러낸 소환수거든요” 딱딱딱 딱딱딱딱? 라카드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바라보는 라자크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보야, 주인이 괜히 쓸데없이 소동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잖아!" “소환수? 그럼 네가 소환사란 말이야?" 어쨌든 라카드의 변명에 좀비들은 경계심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공포의 성에서 일하는 NPC들 중에는 소환사도 꽤 많았다 주민들이 괴물 분장을 하고 투입됐다고 하지만 역시 소환사가 불러내는 진짜 괴물의 리얼리티를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 이다. “그나저나 굉장한데?" “아직 열 살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데 벌써 스켈레톤을 불러내는 거야?" “아하 그래서 아직 어린 네가 이곳에 배속된 거구나 ” “하긴 복장을 보아하니 너도 뱀파이어로 분장한 것 같기는 한데 좀 아니다 싶었지. 왜 이런 어설픈 어린아이까지 배속했나 싶었는데, 스켈레톤을 불러낼 정도의 소환사라면......” ‘뭐야? 뱀파이어로 분장? 좀 아니야? 어설퍼?’ 진짜 뱀파이어에게 뱀파이어로 분장한 게 어설퍼 보인다니? 그게 할말인가? 라카드가 울걱한 표정으로 한마디 쏘아 주려고 할 때였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한쪽에서 비명 소리와 함께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그러자 좀비들이 재빨리 시선을 교환하며 히죽 웃었다 “오오, 손님이다!" “후후후, 여기까지 들리도록 비명을 질러 대는 걸 보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군” “저런 리액션을 보여 주면 고맙지 그런 성실한 손님을 놀려 줄 때가 가장 즐겁다니까 ” “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밥값 해야지 각자 위치로!" 직업 정신이 투철한 좀비들은 다람쥐처럼 여기저기에 흩어져 숨었다 그때까지 라카드와 라자크가 멀뚱멀뚱 서 있자, 관 뚜껑을 닫던 좀비가 당당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야! 너희들은 뭐하는 거야?” “네? 아니, 저희들은 ..." “너희들 자리는 그 옆이야. 거기 널찍한 관 보이지? 거기 숨어 있다가 손님이 우리에게 놀라면 뛰어나와- 후후후, 한 번 놀란 다음에 안심할 때 허를 찌르는 거지, 몇 번 해 보면 너희들도 재미있어질 거야. 잘해야 한다" 좀비가 다짜고짜 라카드와 라자크를 관에 우겨 넣으며 설명했다. “하아, 진짜 뱀파이어와 언데드가 유령의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다니..." 라자크와 함께 관에 강제로 우겨 넣어진 라카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라자크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흘겨보며 말했다 딱딱딱, 딱딱딱딱! “뭐야? 이게 왜 내 탓이냐? 주인이 귀찮은 일은 만들지 말라고 해서 둘러대다가 그런 거잖아 .게다가 만약 너 혼자 다니다가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벌써 경비대가 몰려왔을걸. ” 딱딱딱, 따다다닥! “누가 뭐래?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잖아 이렇게 됐으니 대충 좀비들의 기분이나 맞춰 주고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어 일단 좀 상황을 지켜보자고 ” “어이, 신참! 조용히 안 해? 잘리고 싶어?" 라카드와 라자크가 쑥덕거리자 반대면 관 속의 좀비가 쏘아붙였다 "네,열심히 할게요. 야! 네 친구가 조용히 하란다. ” 라카드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통로를 내달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누군가가 모퉁이를 뛰어나왔다. 작전 개시! 과연 베테랑답게 좀비들이 절묘한 타이밍에 관에서 뛰어나오며 앞을 가로막았다 “우하하하, 모두 잡아먹겠다!" 예상대로 좀비들이 앞을 가로막자 손님들이 움찔하며 멈 춰 섰다 그때였다 돌연 뒤쪽에서 화상이 날아오더니 한손님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손님이 비명을 터뜨렸다. 컹-! ‘컹? 뭐야 이 개 소리는? 가만? 이 익숙한 개 소리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라카드가 재빨리 관 뚜껑의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동시에 라카드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놀랍게도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가 화살에 맞고 쓰러진 것은 백구였다 백구가 쓰러지자 등에 타고 있던 돼지가 굴러 떨어져 데굴데굴 구석까지 굴러갔다 북실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열 영 남짓의 도적단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제야 잡았다, 이 개돼지 새끼들!" "어엇? 지금 뭐 하는?" 갑자기 무기를 빼 든 사내들이 뛰어나오자 좀비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도적단이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 대며 소리쳤다 “죽기 싫으면 당장 꺼져!" “헉! 사, 살인이다! 공포의 성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가람, 놈들을 그냥 보내면 안 돼 경비대에 신고하면 귀찮아진다. 몽땅 죽여 버려!" “아, 그렇군. 잡아라!" 가람과 도적단이 도망치는 좀비에게 화살과 검을 쏟아 부었다 도적단이 스킬을 난사하자 일반 NPC에 불과한 좀비 들은 순식간에 진짜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뒤이어 좀비들을 처리한 도적단이 구석에 올린 백구와 북실이를 포위했다 “후후후후, 이제 도망갈 곳은 없다!" ‘주, 주인, 큰일 났어!’ 관속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라카드가 소리 없는 비명을 터뜨렸다 ACT 7 The carnival(Ⅲ) “으흐흐흐, 네놈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빨아먹겠다!" 갑자기 철커덩하는 소리와 함께 벽이 돌아가며 괴물이 튀 어나왔다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연출 효과! 그러나 정작 손님은 멀뚱멀뚱 괴물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불어대며 지나쳤다. ‘정말 미치겠군. 짜증 가득한 얼굴로 머리를 벅벅 끌어 대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다 아크는 소환수와 떨어져 혼자 공포의 성을 수색하다가 2층으로 올라왔다. 그곳은 일명 ‘거울의 방’이라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 똑같이 미로로 되어 있지만, 벽이 모두 거울로 되어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운 벽이 모두 거울이라 주변의 모든 것을 반사시키니 대체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벽인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바로 되돌아 나갔어야 했는데, 젠장!’ 혹시나 하는 생각에 발을 들여놨다가 지금까지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으하하하 피를 빨아 먹겠다! 피를! 무섭지?" 방금 전에 무시당한 괴물이 다시 아크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이렇게 간간이 나오는 괴물 분장의 NPC들이 아크의 혈압을 더욱 상승시켰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응?" "아, 네, 죄, 죄송합니다. ” 아크가 살기를 풀풀 풍기며 ‘협박’ 을 사용하자 오히려 괴물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났다 그렇게 아크가 짜증나는 눈길로 괴물을 노려보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주, 주인, 큰일 났어!" 돌연 당혹스러운 라카드의 목소리가 고막을 흔들어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여 여기 북실이와 백구를 찾았어, 그런데 이미 도적단에게 둘러싸여 있어!" “뭐, 뭐라고? 어디야? 지금 어디야?" “나도 좀비들에게 끌려온 곳이라 정확한 위치는 몰라 어쨌든 가장 아래층인 건 확실해 “주변이 어떻게 생겼어? 자세히 말해 봐!" “주변에 관하고 고문 도구 같은 장식들이 있어 ” “알았어, 잠깐 기다려! 아니, 어떻게든 막아!" “하, 하지만 놈들은 열 명이나 된단 말이야 ” “빌어먹을, 내가 갈 때까지 몸으로라도 막아봐!" 아크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거울의 방’ 을 뛰어갔다 그러나 몇 걸음 정도 옮겨 놓다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거울의 방’. 사방이 온통 거울로 막혀 있어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미로였다 당연히 아크는 이곳에서 헤매고 싶어서 헤맨 게 아닌 것이 다 그런데 급한 일이 생겼다고 지금까지 못 찾던 출구를 바로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은 비상사태야 이런 곳에서 헤매고 있을 시간이 없다. 뭔가 미로를 탈출할.....’ 머리를 쥐어짜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뒤쪽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미로를 탈출하는 가장 빠른 방법! 공포의 성은 손님을 헤매게 만들 목적으로 제작된 인공 미로. 그렇다면 손님이 아니면 미로를 헤맬 이유가 없지 않은 가? 아크는 와락 몸을 돌려 괴물의 역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어이, 너!" “컥! 이 이거 왜 이러십니까, 손님?" “긴말할 시간 없어 너 이곳의 지도 가지고 있지?" “지, 지도요? 가,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자 괴물이 사색이 되어 더듬거렸다 “닥쳐! 손님이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사람 목숨이 걸려있단 말이야. 당장 지도를 내놔!” “하, 하지만 손님, 그건 규칙이.." "사람목숨이 걸려 있다고 했잖아! "아예 이참에 네 목숨도 걸고 싶냐?" 아크가 상급 ‘협박’ 을 난사하며 소리치자 괴물이 얼른 지도를 꺼내주었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공포의 성은 일부러 헤매게 만들 목적으로 제작된 미로.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손님’ 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괴물 분장을 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NPC 까지 헤맨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NPC들은 숨겨져 있는 직원용 통로를 이용하고 세밀한 지도도 가지고 있으리라 아크는 ‘협박’ 으로 강탈한 지도를 펼쳐 확인해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야!’ 지도에는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일하는NPC들이 작전 지역(?)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이용하는 직원용 통로가 분명하다 당연히 직원용 통로를 이용하면 헤매지 않고 바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리라. ‘아마도 라카드가 말한 곳은 여기일 거야 ’ 아크의 눈이 ‘지하 고문실’ 이라고 적혀 있는 지역으로 향 했다 라카드가 주변에서 고문 도구를 봤다고 했으니 아마도 현재 북실이가 있는 곳은 그 지역 어딘가 아크는 최단거리로 루트를 설정하고 직원용 통로를 찾아 지하 고문실로 달려갔다 ‘문제는 북실이가 놈들에게 잡혀 있는 장소가 여기 어디냐는 건데" 아크가 주변에 널려 있는 자잘한 소도구와 복잡한 통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하 고문실’ 은 공포의 성 분위기와 잘 맞아 가장 넓은 지역이 할당된 장소였다 게다가 라카드가 말했던 관이나 고문 도구들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었다. 그 단서만으로 위치를 특정하기란 불가능했다 덕분 에 ‘지하 고문실’ 에 도착하고도 아크는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500 정도 회복되어 있던 마나가 쭉 빨려 나가며 정보창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소환수 ‘라자크’ 가 소환주의 마나를 사용해 ‘강철 같은 충성심’을 발동시켰습니다. <<몸이 강철화되어 물리 방어력이 926만큼 증가합니다.> ‘강철 같은 충성심!’ 순간 아크의 눈동자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라자크가 발동시킨 ‘강철 같은 충성심’ 은 아크가 10미터 범위 안에 있어야만 발동시킬 수 있는 스킬이다 다시 말해 이 반경 10미터 어딘가에 라자크가 있다는 뜻. 그리고 라자크는 라카드에게 딸려 보냈으니 그 장소에 북실이도 있다는 말이다! “됐어! 라둔, '스토킹'! 잠깐 전에 빨려 나간 마나의 흐름을 추적해라"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번쩍 머리를 들며 한쪽을 가리켰다 방향을 확인한 아크는 남은 마나를 박박 긁어 ‘전력질주’ 를 펼쳤다 그렇게 모퉁이 몇 개를 돌아서자 곧바로 앞에서 도적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이놈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이놈은 그 방해꾼의 소환수다 놈이 오기 전에 해치워 버려!" “어라? 검이 제대로 박히지도 않잖아?" 검으로 라자크를 후려치던 도적단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도적단이 북실이를 구석에 몰아넣고 공격하려는 찰나, 아크가 스킬 유효 범위에 들어가자 라자크가 관에서 뛰어나와 앞을 가로막고 ‘강철 같은 충성심’ 을 발동시킨 것이다 강철로 변한 라자크가 앞을 가로막자 도적단의 공격이 모두 튕겨져 나갔다 물론 강철로 변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방어력이 올라갔을 뿐이지만, 라자크의 충성도는 무려 926 ‘강철 같은 충성심’ 으로 추가된 방어력도 926이다 레벨 250-300 정도의 도적단으로는 강철로 변한 라자크 에게 이렇다 할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잘했어 라자크!" 아크가 나타나자 도적단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혔다 “엇, 저, 저놈은....?" “라카드, ‘블러드 레인’!" “오오오오, 피의 저주를!" 놈들이 당황하는 지금이 북실이를 구해 낼 기회다! 아크는 ‘전력질주’ 로 달려가며 곧바로 라카드의 ‘블러드 레인’ 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관 속에서 라카드가 튀어나오며 입으로 엄청난 양의 피를 뿜어냈다 박쥐일 때는 그리 이상하지 않았는데 소년이 입에서 피를 뿜어 올리자 괴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박쥐든 소년이든 ‘블러드 레인’ 의 효과는 굉장했다 한껏 치솟아 올랐던 피는 이내 직경 10미터를 뒤덮으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수많은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저주의 피! 게다가 이번에 스킬이 발동한 장소는 이전처럼 넓은 늪지가 아니었다. 좁은 통로에 모여 있던 도적단들은 몽땅 피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블러드 레인’ 의 상태 이상 발동확률은 50010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이 ‘무기력’ 이나 ‘절망’ 에 걸렸다 그중 두 명은 ’현혹’ 에 걸려 동료를 공격하기도 했다 ‘블러드 레인이 마나를 잡아먹는 스킬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군. 어쨌든 상태 이상에 걸린 놈은 여섯. 나머지 넷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겠지만 아크는 열나게 뛰면서도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분명 네 명의 도적단은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그건 평소의 얘기 현재 아크는 그나마 약간 회복된 마나까지 탈탈 털어먹었다 게다가 북실이를 따라 공포의 성에 들어온 도적단은 대략 20명 눈앞의 놈들을 제외해도 아직 열 명이 남아 있다 만약의 경우, 놈들이 합류한다면 아크도 감당할수 없었다 ‘일단 보사카 마을을 탈출하는 게 급선무다!’ “라자크, 스킬 해제! ‘검화’ !" 행동 방침을 결정한 아크가 라자크의 머리를 잡으며 소리 쳤다 우두둑거리며 라자크가 뼈다귀를 재구성해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채찍처럼 휘둘러 주변에 올린 도적단에게 연쇄적으로 데미지를 주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북실이,백구,튀어!" “우헤헤헤, 나는 왕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그러나 북실이는 히죽거리며 헛소리를 지껄여 대고 있었다. ‘블러드 레인’ 의 유효 범위는 10미터, 좁은 통로에서 발동한 스킬 탓에 북실이 역시 피를 뒤집어쓰고 살짝 맛이 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백구는 저항력이 강해서인지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았다 “저런 멍청한 놈! 백구, 북실이를 물고 반대쪽으로 뛰어!" “네 아크님!" 백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발작하는 백구의 뒷덜미를 물고는 재빨리 도망쳤다 그러자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은 도적단이 황급히 활을 들어 올렸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휘둘러 놈들의 공격을 방해한 뒤에 다시 ‘전력질주’를 사용해 북실이를 뒤쫓았다 그때 ‘블러드 레인’ 의 부작용으로 바닥을 벅벅 긁어 대던 라카드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아우우우, 피가 , 피가, 주인, 다 쓰고 버리는 거냐. 나도, 살려줘" “넌 집에 가 있어. 소환 해제!" 아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치자 라카드가 사라졌다 “서라!" 네 명의 도적단이 뒤따르며 화살을 쏘아 댔다 그러나 빠른 상황 판단 덕분에 이미 거리를 상당히 벌려 놓은 상황이다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 따위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로 화살을 쳐 내며 쉬지 않고 출구로 달려 나갔다 “거기서 오른쪽, 이번에는 왼쪽" 아크가 직원용 지도를 확인하며 달린 지 몇 분, 곧 눈앞에 출구가 나타났다 희미하지만 밖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의 빛을 확인한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때였다 출구를 코앞에 두고 앞서 달리던 백구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뭐하는 거야?” “아, 아크 님,저기....!"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백구가 떠듬거리며 앞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아크의 얼굴도 백구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간신히 북실이를 찾아 출구까지 나왔다 그런데 공포의 성에 들어온 20명의 도적들과 떨어져 마을을 수색하던 도적단 열 명이 출구를 막고 있었다. 아마도 뒤쫓던 도적단이 ‘속삭임의 깃털’ 따위를 이용해 마을에 흩어져 있던 동료들을 출구에 집결시킨 것이리라 '벌어먹을 여기까지 와서 ........................... !'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마나도 없다. 라카드는 뱀파이어 영지로 돌려보냈다 그런 상황에서 열 명의 도적단과 맞닥뜨려 버렸다. 뒤에는 네 명의 도적단이 버티고 있어 다시 공포의 성으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보다 나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곳이 마을 안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현재 아크가 있는 공포의 성 출구는 마을 중심 광장과 멀지 않다 이곳에서 10여 명이 난투를 벌이면 경비대 원들이 몰려오리라, 일단 경비대원들이 몰려오면 아무리 도적단이라도 더 이상 아크를 공격하지는 못한다. 또한 뒤의 네 명은 공포의 성에서 NPC를 죽여 카오틱이 된 상태 일이 커지기 전에 도망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문제는 그때까지 맛까지 가 버린 북실이를 보호하며 버틸 수 있느냐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버텨야해!’ 각오를 굳힌 아크가 검을 꽉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역시 한물 간 소녀 영웅 ‘세일러문’ 가면을 쓴 도적단이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훗, 경비대원이 올 때까지 시간을 끌어 보려는 건가?" “네놈들을 몽땅 때려잡기는 힘들겠지만 그 정도 능력은 되지. 확인시켜줄까?"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이미 네놈의 실력은 늪지에서 확인했다. 꽤나 설쳐 댔었지. 게다가 그 와중에 제페트 형님까지 처리한 솜씨에는 감탄했다. 뭐랄까..." 세일러문의 목소리가 돌연 싸늘해졌다. “솔직히 생각 같아서는 네놈도 밟아 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 우리 목적은 너 따위가 아니야. 네놈의 처리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그 돼지 놈을 잡아가고 싶은데?" “경비대원들이 오기 전에 날 죽일 수 있다면 말이지 ” “아, 아크님, 그렇게까지....!" 아크가 죽음을 각오했다는 말을 하자 백구가 감동에 겨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똥개는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하긴 주인인 북실이도 모르니 당연한 일이지만 어쨌든 백구가 무슨 당치 않은 오해를 하든 지금 아크는 설사 죽더라도 북실이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그때 세일러문이 가방에서 이상하게 생긴 주문서를 꺼내 들었다 양피지에 복잡한 황금 문자가 새겨진 주문서 분명 익숙한 주문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어디선가 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묘한 눈길로 주문서를 바라보던 아크는 뒤늦게 주문서의 정체를 알아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건 설마...아니, 틀림없어! 예전에 북실이가 사용했던 「추방」이다!’ 그렇다 주문서는 바로 예전에 스탄달에서 북실이가 붉은 남자에게 사용했던 레어 주문서 「추방」이었다. 효과는 지목한 상대를 10킬로미터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 그리고 세일러문이 「추방」을 사용하려는 상대는 다름 아닌 아크!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주문서의 효과는 절대적이다 당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던 붉은 남자 역시 「추방」에 걸려 날아가지 않았던가? 아크가 아무리 용가리 통뼈라도 주문서만큼은 막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아크가 10킬로미터 밖으로 날아가 버리면 상황은 그걸로 종결이다. 유일한 방해문인 아크를 날려 버린 도적단은 느긋하게 북실이와 백구를 잡아 메모리 크리스털을 강탈하리라! ‘맙소사,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아크가 절망의 한숨을 불어 내는 사이, 세일러문이 먼저 「간파」를 사용했다. 「추방」을 사용하기 위해 이름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다급해진 아크가 스텝을 밟으며 회피 동작을 펼쳤지만 결국 절대적인 주문서의 힘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크 의 이름을 알아낸 세일러문이 승리를 확신하며 「추방」 주문 서를 들어올렸다. “이름이 아크인가? 기억해 두지 하지만 오늘은 그만 꺼져 줘야겠다. 타깃 아크「추방」!” 주문서에서 흘러나온 붉은빛이 아크에게 날아들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공격! 붉은빛이 아크의 몸에 닿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추방」 주문서가 발동했습니다. <<발동 즉시 대상은 10킬로미터 밖으로 추방됩니다.> ‘아,안돼-!’ 동시에 뭔가에 빨리는 듯 엄청난 흡인력이 일어나며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이제 눈 깜빡할 사이에 아크는 10킬로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리라 ‘이제 끝났다. 메모리 크리스털은...' 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기적처럼 뭔가가 떠올랐다. 상대가 시용한 건 레어 주문서다 레어 주문서의 효력에 과연 그런 방법이 통할까? 그런 걱정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허공으로 빨려 올라가는 순간 아크는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주문서를 맞고 불과 영 점 몇 초 만의 일이었지 만, 벌써 아크는 20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라둔「자력」 주문서!" 쌕쌕쌕? 쌕쌕쌕쌕! 아크는 라둔이 뱉어 내는 주문서를 받아 발동시켰다 “타깃, 북실이! 「자력」!” “우헤헤헤, 나는 왕이다.... 어엇? 우아아아악!" 그때였다. 여전히 맛이 가서 히죽거리던 북실이가 아크를 따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렇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은 주문서 의 효과를 주문서로 대항하는 방법! 그러나 「추방」은 엄청난 고가의 레어 주문서다. 아마 그 주문서를 막기 위해서는 그와 비슷한 레어 주문서로나 가능하리라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정확하게 말해 주문서를 막는 게 아니라, 북실이와 함께 도망가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자력」! 지목한 대상을 사용자 앞으로 끌어당기는 효과를 가진 주 문서였다 로니에게 이런 주문서를 사 두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사실 「자력」은 「추방」에 비하면 그야말로 똥값에 불과했다. 그러나 저렴한 주문서도 사용하기에 따라 레어 주문서를 무력하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게 바로 뉴 월드에서 주문서를 사용하는 묘미! 어쨌든 「자력」을 발동시키자 북실이는 아크를 따라 날아가 버렸다 세일러문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까마득히 멀어 지는 아크와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뭐 뭐야? 저건?" 자기가사용한 「추방」 주문서 때문에 되려 아크와 북실이가 탈출해버렸다.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에 도적단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젠장!’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북실이를 노려보았다 평소라면 그런 눈빛을 보내면 바로 얼어붙었을 북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크가 노려보든 이를 갈아붙이든 신경도 쓰지 않고 눈물을 펑펑 쏟아 내고 있었다. “흑흑흑, 백구야! 백구야!" 몇 시간째 눈물을 펑펑 흘리는 이유는 백구 때문이었다. 아크가 「추방」을 얻어맞고 날아갈 때,「자력」으로 구한 건 북실이 뿐이었다. 사실 「자력」 주문서가 몇 장 더 있기는 했다 그리고 아크 역시 백구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할 수만 있었다면 백구도 구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력」을 떠올렸을 때는 이미 「추방」을 얻어맞은 뒤였다. 「자력」의 유효 범위에서 멀어지기 전에 북실이를 구한 것만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백구는 도적단에게 둘러싸인 채 버려졌다. 백구의 운명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때는 바야흐로 복날, 안타깝지만 충견 백구는 주인을 대신해 어딘가의 냄비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으리라 덕분에 보사카 마을을 탈출한 뒤로 한참이 지났지만 북실이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크는 죽을 고생을 하며 구해 준 북실이에게 되려 욕을 먹어야 히는 처지가 되었다 “왜 저를 구했어요? 저는 죽어도 부활하면 그만이지만 백구는 아니라고요!" “젠장 내가 일부러 그랬냐? 내가 고생한 거 못 봤어!" “몰라요! 아크님이에요. 아크님이 백구를 죽인 거라고 요! 우아아앙, 백구 살려 내요! 불쌍한 우리 백구. 흑 흑흑! 백구야! 이 주인이 못나서 네가 멍멍탕이 되겠구나!" 북실이는 바닥에 드러누워 눈물을 흘려 대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아크가 찌증을 내는 건 그 때문이 아니었다 충견 백구의 죽음-아마도-은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북실이를, 아니 메모리 크리스털을 사수한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게다가 고맙게도 놈들이 「추방」을 써 준 덕분에 10킬로미터나 떨어져 나왔다 「추방」으로 날아가는 장소는 랜덤 게다가 10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 지 않으니 도적단도 한동안 아크를 추적해 오지 못하리라 덕분에 아크는 안심하고 일단 근처 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북실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한 뒤에 본론을 꺼냈다. “사실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백구의 죽음은 너의 잘못이 커. ” “우앙, 그건 무슨 소리예요?" “도적단이 너를 죽자 살자 쫓아온 이유는 메모리 크리스털 때문이거든.” “메모리 크리스털요? 그게 뭐요? 그런 건 상점에 가면 얼마든지" “그런 뜻이 아니야. 놈들이 원하는 게 메모리 크리스털에 저장된 동영상이란 말이야." “도, 동영상!" “네가 그 녀석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 녀석들이 뭔가 거래를 하고 있었지? 놈들은 네가 그 장면을 마법 영사기로 찍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머리에 마법 영사기를 달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때문에 그 동영상이 저장된 메모리 크리스털을 되찾으려고 난리를 부려 댄 거야. 어때? 일단 확인부터 하자. 놈들 생각대로 그때 동영상을 찍었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찍히기는 했을 거예요. 그때 눈알에 크리스털을 박아 놓고 동영상 촬영 기능을 켜 놓고 있었으니까” 북실이의 대답에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이렇게까지 난리를 쳤는데 정작 그때 동영상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삽질이 아닌가? 그때 북실이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데 그게 왜요? 동영상 같은 건 누구나 다 찍는 거잖아요!" “그건 ..." 아크는 그제야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도적단의 정체는 현실에서 수배 중인 폭력단이었다. 그리고 북실이가 우연히 촬영한 영상이 바로 폭력단들 사이의 검은 거래 현장이었다. 때문에 경찰 관계자가 그 동영상을 보게 되면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폭력단의 거래 방식은 물론, 수배자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놈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쫓아올 수밖에 없었지"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강의 내용을 전해들은 북실이의 얼굴은 예상대로 사색이 되었다 아크가 모두 털어놓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북실이는 백구를 잃어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북실이에게 다짜고짜 메모리 크리스털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폭력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면 겁을 집어먹고, 두말없이 메모리 크리스털을 내놓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사정을 털어놓은 건 아크의 실수였다 “이제 알았지? 그건 위험한 물건이야. 다행히 내가 잘 아는 형사님이 계시니까 일단 그 메모리 크리스털을 넘겨줘. 나머지는 그분이 알아서 할 거야 ” “싫어요. 북실이가 팩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의외의 반응에 아크는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물었다 “뭐? 싫다고? 지금 그렇게 말했냐?" “네 그러니까 뭐예요? 결국 그 메모리 크리스털 때문에 백구가 죽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백구가 목숨을 걸고 지 킨 메모리 크리스털을 그냥 달라고요?" “무슨 소리야? 폭력단이 노리고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고 했잖아" “쳇! 웃기지 말라고 해요 폭력단이면 다예요? 그런 놈들 하나도 안 무서워요 어차피 그놈들이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뉴 월드의 아이디뿐이잖아요. 경찰에서도 아이디만으로는 사람을 찾지 못하는데 폭력단이 무슨 수로 저를 찾아요? 게다가 수배자라면서요?" 북실이는 의외로 똑똑했다 그러나 아직 북실이를 설득할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 수배자! 그러니까 정보가 있으면 경찰에 협조하는 게 국민의 의무잖아!" “협조하든 안 히든 내 자유죠.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고요!" .......비장의 무기도 통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아크는 몇 번이나 어르고 달래 봤지만 북실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가 계약한 동영상은 아크님의 활약 장면뿐이에요 그 외 의 동영상에 관해서는 아크님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난 메모리 크리스털도 내 돈으로 산 거잖아요 ”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크에게 수없이 당한 경험 탓인지 북실이도 예전의 어리바리한 북실이가 아니었다. 하긴 그동안 그렇게 당했으니 그 정도 머리를 굴리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아크로서는 정말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평소에는 어리바리하기 짝이 없는 놈이 왜 이렬 때만 머리가 잘 굴러가는 건가? 게다가 영자 이동에, 보사카 마을에서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구출해 놨더니 정작 메모리 크리스털을 못 주겠다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그러나 북실이가 협조하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 물론 뉴 월드에서는 상대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는 방법도 있었다. 카오틱이 흔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강탈」이나 「탈취」 주문서를 걸어 놓고 때려잡는 것! 아마도 도적단이 북실이에게 사용하려는 방법도 이것이리라. 그러나 현재 아크에게는 그런 주문서가 없었다 로니에게 잡다한 주문서를 많이 구입했지만 「강탈」이나 「탈취」는 카오틱 성향의 NPC가 판매하는 주문서였다 로니가 그런 주문서를 취급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주문서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아크라도 동료에게 주문서를 걸어 놓고 죽이는 짓 은 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어설프게 주문서를 사용하려다가 북실이가 접속을 끊고 잠수라도 타 버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메모리 크리스털은 커녕 북실이에게 맡겨 놓은 잡템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게임을 하는 녀석이니,그 정도 일로 게임을 접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지금 북실이는 백구가 죽어서 제정신이 아니다 여기서 더 맛이 가버리면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어! 상황을 따져 보던 아크는 결국 백기를 들어 올렸다. 사실 아크는 알고 있었다. 북실이가 죽어도 못 주겠다고 벼티고 있었지만, 그건 ‘못 주겠다 는 게 아니다. ‘이대로는 못 주겠다’ 는 의미일 뿐이 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려 먹기만 해 오던 북실이에게 진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아크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모리 크리스털에 얽힌 일은 개인감정을 내세울 정도로가벼운사안이 아니었다 ‘뭐, 북실이의 요구라 봐야 처우개선 정도겠지 ’ “좋아. 그럼 대체 어떻게 하면 메모리 크리스털 줄래?" 아크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묻자 북실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800골드예요 ” “뭐?" “못 들었어요? 800골드라고요" “도, 돈을 달라는 거냐? 아까 전에는 백구의 죽음이 뭐라고 떠들더니?" “백구가 이 메모리 크리스털을 지키다가 죽었으니까 달라는 거예요” 북실이는 백구라는 말만으로도 슬픈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메모리 크리스털을 건네주면 수배 중인 폭력단을 잡을 단서가 될 수도 있다면서요? 아크 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백 구는 현실의 경찰을 도운 명견이라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명견이 목숨을 바쳤는데 아무런 보답이 없다면 너무하잖아요!" "그래서?" “아크 님에게 받은 돈으로 슈덴베르크 수도 셀리브리드의 광장에 백구의 동상을 세울 거예요 백구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적어서 말이에요. 전에 셀리브리드에서 지낼 때 알아보니 그런 통상을 세우는 데 800골드 정도 든다고 하더라고요 ” “나한테 돈을 뜯어내서 개 동상을 세우겠다고?' 아크가 기가 막힌다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북실이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개가 아니라 백구예요! 명견백구! 백구가 얼마나..백구야.." 북실이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다시 대성통곡하기 시 작했다 그러자 라카드가 감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으으으,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야 자신의 애완견을 기리기 위해 동상까지 세우려고 하다니 어디의 누구는 절대 그런 생각 안 할걸. 죽도록 부려 먹다가 늙고 병들 면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거야 흑, 나도 기왕이면 저런 주인을 만났어야 하는데. 그동안 무시해서 미안하다, 북실아 넌 정말 훌륭한 주인이야 ” “닥쳐라, 응?" 아크는 스파크가 일어날 듯한 눈빛으로 라카드를 노려보았다. 아니, 눈만이 아니라 머리통속의 좌뇌와 우뇌 사이에서도 스파크가 일어났다. 800골드라니? 800골드가 누구 집 개 이름인가? 아니, 금액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고작 800골드나 뜯어내서 한다는 짓이 개 동상을 세워? 정말 머리에 총알이 박힌 놈이나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총알이 안 박혔는데도 저딴 소리를 하는 거라면, 직접 저 돼지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줘 서 제정신을 차리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총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북실이였다. 북실이의 말처럼 폭력단이 아무리 날고뛰어도 현실의 북실이를 찾아낼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건 아크나 이슈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애초에 캐릭터만 가지고 현실의 유저를 찾아낼 방법이 있었다면 굳이 북실이가 찍은 메모리 크리스털 아직 단서가 될지 알 될지조차 모르는 일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으리라 ‘하지만 고작 메모리 크리스털 하나에 800골드라니' 생각 같아서는 수사고 뭐고 집어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게 이슈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만약 이슈람에게 사정을 전하면 북실이가 원하는 800골드 까지는 아니라도 정보 제공의 대가로 약간의 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슈람은 아크에게 단순한 태권도 사범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또한 아크는 이슈람에게 빚이 있었다. 만약 거리에서 안델이 보낸 폭력배를 만났던 그날,이슈람 이 아니었다면 아크는 팔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으리라 게다가 안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뒤로도 몇 번이나 폭력배를 보내 아크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범님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안델의 아버지를 알고 있었어. 만약의 경우에는 사범님이 불이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하지만 사범님은 망설이지 않았다 ’ 돈으로 받은 은혜는 돈으로 갚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아크가 이슈람에게 받은 건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성질의 도움이 아니었다 아크가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심지어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에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받은 게 원한이든 은혜든 기필코 갚는다. 그게 아크의 철칙이었다 게다가 이미 ‘북실이는 내 말 한마디면 끝이다 ’ 라고 이슈람에게 호언장담해 놓았다 이제 와서 이슈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아니, 그 이전에 뉴 월드에 개 동상을 세우기 위해 돈 이 필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래, 내가 그동안 사범님에게 받은 건 800골드 정도가 아니야 개 동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범님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면800골드 쿨럭, 아, 아깝지 않아!’ 아크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다행히 근래 아크는 글로벌엑서스의 월급도 올라가고,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각종 아이템을 시세보다 비싸게 처분해서 제법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건네주려니 마치 기름칠이 덜 된 기계처럼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중재 안을 내놓았다 “좋아 개 동상이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800 골드주지 ” “어? 저, 정말이에요?" 아크가 순순히 허락하자 북실이가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 보았다 물론 아크가 순순히 허락할 리가 없었다. “대신조건이 있어 ” “조건이라니요? 또 뭔가 속이려는 거죠?" “아니야, 인마. 너 빙땀 전에 셀리브리드 광장에 백구 동상을 세우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요?" “그럼 셀리브리드로 돌아갈 때까지는 돈이 필요 없다는 말이잖아? 나도 지금 당장은 800골드나 되는 돈이 없어. 그러니까 일단 돈은 주는 걸로 하는 대신 지불 기한을 셀리브 라드에 도착할 때까지로 하자 어때?" 북실이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다가 톡 던지듯 물었다 “계약서는 확실히 써 주는 거죠?’ “알았다니까! 내가 떼어먹겠냐?" “떼어먹지는 않겠지만 그동안 무슨 핑계를 대면서 깎을지 누가알아요?" 정답이다 예리한놈! 돼지 주제에 날이 갈수록 잔머리만 늘어난다 아크가 찔리는 표정을 짓자 북실이가 단호한 목소리로 덧 붙였다 “계약서를 써 주기 전에는 절대 메모리 크리스털을 넘기지 않겠어요. 돈 몇 푼 덜 받고 더 받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다시 말하지만 이건 백구가 목숨을 바쳐서 지킨 거라고요. 이번만은 나도 절대 물러서지 않아요. 금액 800골드, 어떤 일이 있어도 지불 금액 변동 사항은 없음 그리고 지불 기한 은 셀리브리드에 돌아갈 때까지고 최대 한 달이 넘으면 안 돼요 한 달이 되면 어디에 있든 즉시 지불해 주는 거예요. 백구의 동상 설립자금." “알았어, 알았다고 써 주면 되잖아1 그놈의 백구 타령은 그만 좀 해!" 아크는 진저리를 치며 계약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의 계악서 《계약서 아크--북실이〉 아크는 북실이가 셀리브리드에 도착하는 즉시, 메모리 크리스털에 대한 대금으로 800골드를 지급해야 합니다. 최대 기한은 한 달이며, 그 전에 셀리브리드에 도칙하지 못할 시에는 기한게 따라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만약 약속한 대금이 지급되지 않을 시, 상인 길드에서 란셀 마을의 아크 상점에 위약금을 포함해 2,400골드에 해당하는 물품을 압류 조치합니다. 그리고 북실이는 그중 80%에 해당하는 1,920골드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굴욕의 계약서였다. ‘설마 내 돈으로 개 동상을 세우게 될 줄이야...'계약서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아크는 계약서를 쓰기로 했을 때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북실이가 돈이 필요한 시점은 셀리브리드에 도착한 이 후 그러나 현재 브리스타니아에 넘어온 아크는 언제 셀리브리드로 돌아갈지 아직 기약이 없었다. 때문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셀리브리드에 돌아가지 않으면 지불을 무한대로 늦출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한결 똘똘해진 북실이는 미리 지불 기한을 한 달로 못박아버렸다. 최후의 계획까지 원전 봉쇄돼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어떻게든 한 달 안에 800골드 정도 구할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 다행히 아크는 얼마 전 아가트를 협박해서 2,000골드를 받기로 했다 여섯 달에 걸쳐 두 달에 약 670골드씩 게임 시간으로 두 달은 약 20일이니 일단 그때까지만 시간을 끌면 670골드는 확보된 셈이다 거기에 그동안 사냥하며 잡템을 좀 모으면 일단 주머니의 돈을 꺼내지 않고도 그럭저럭 해결될 것 같았다 물론 20일을 더 끌면 대금을 치르고도 남는다. 뭐,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자기 돈이 나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차마 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꺼내 줄 수는 없어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계약서를 건네주고 메모리 크리스털을 넘겨받았다. 동영상 파일을 추출하자 용도가 다 된 메모리 크리스털은 곧 파괴되어 버렸다 무려 800골드짜리 동영상 파일! 아크는 호기심에 직접 동영상을 검색해 봤지만 딱히 단서 가 될만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거 괜히 돈만 날린 거 아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아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동영상 파일을 넘겨주는 데까지다 그 외의 일은 경찰이 알아 서 할 일이고, 아크 역시 더 이상은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로써 한 건 해결이다!" 동영상 파일을 이슈람의 이메일로 보낸 뒤에야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앞으로 갚아야 할 800골드와, 아직도 질질 짜며 백구를 부르짖는 북실이가 꽤나 거슬리지만, 아크는 금세 불쾌감을 털어 냈다. 평소 도움을 받아 오기만 했던 이슈람에게 자신도 뭔가 해 줄 게 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또한 이제 잠시 후면 그런 암울한 기분을 단숨에 날려 버릴 아이템이 손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제 드디어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먹을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아크가 시엘의 마법 학회에 맡겨 놓았던 네크로맨서의 내단! 81시간이 남았을 때 맡겨 놓고 나흘이 지났으니 이제 완성 됐으리라. 아크가 일단 마법 학회가 있는 마을로 달려온 이 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시 영자 이동을 이용해 시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동할 때의 불쾌감도 참기 힘들지만, 무엇보다 영자 이동 은 너무 비싸다. 한 번 이용할 때의 가격이 무려 50골드! 정회원 할인을 받아도 무려 42골드 50실버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메모리 크리스털을 얻기 위해 542골드 50실버가 들어간 셈이다. 어쨌든 아크가 내단을 되찾기 위해 굳이 시엘로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마법 학회에 개인 창고를 가진 정회원은 어디 서든 맡겨 놓은 물건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시엘의 마법 학회에 맡겨 놓았던 개인 창고의 물건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성함이?" “아크입니다” “아, 아크 님이군요. 바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마법 학회의 마법사들은 모두 아크를 알아보았다 마법사는 시옐 마법 학회의 지점장 라벤트처럼 호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바로 물건을 전송시켜 주었다. 덕분에 아크는 나흘 만에야 겨우 서바이벌 요리 전용 냄비를 되찾았다 . 냄비를 확인해 보니 작은 검은색 환약이 들어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내단이다!’ 아크가 환약을 집어 들자 곧바로 정보창이 떠올랐다. [숙성 과정이 종료되어 ‘네크로맨서의 내단이 완성됐습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비업으로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완성했습니다. 내단 연성은 뉴 월드에 숨겨진 비업 가운데 하나로, 몬스터의 정수에 당긴 힘을 극대화시켜 플레이어에게 적용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런 내단을 만드는 것은 서바이벌 요리사에게 가장 큰 영광이며, 연금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명성이 800 상승했습니다. +지능이 30 상승했습니다. +서바이벌 요리의 숙련도가 40 상승했습니다. +‘몬스터의 내단 정보’가 갱신됐습니다. <<현재 완성시킨 내단 7>>] “드디어 완성했다." 아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단을 들어 올렸다. 재료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시간까지 계산하면 소요시간만 무려 두어 달! 거기에 장장 96시간의 연성을 통해 만들어낸 내단이다. 연성은 쉬웠나? 내단의 완성도 때문에 정기선에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정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러나 내단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만큼 확실한 보답을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단지 먹어보기 전에는 효과를 확인할 수 없어 팔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하긴 설사 팔아먹을 수 있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고생해 서 얻은 아이템이면 팔 엄두가 나지 않지 게다가 요즘 이상 하게 주변이 시끄러워 도적단이야 그렇다 쳐도 다시 브레드 와 레디안을 만나면 골치 아프게 될 거야,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능력치를 올려 놔야해’ 아크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내단을 꿀꺽 삼켜 버렸다. 그러자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정보창이 떠올랐다 ‘ [네크로맨서의 내단(내단 등급A, 완성도A) 강력한 네크로맨서 타무라드의 힘이 깃든 내단. 복용자에게 네크로맨서의 특수 능력을 부여합니다. · 완성도에 따른 추가 보너스 <모든 스탯+8, 지능+20, 마법 저항+20%, 모든 질병 저항+20%>] [‘어둠의 안개’ 스탯이 생성되었습니다. +어둠의 안개(+20) ’어둠의 안개는 어둠 계열 물리, 마법 공격의 저항력을 상승시킵니다. 또한 어둠 계열의 물리 마법의 공격력에 추가 보너스를 적용시킵니다. ‘어둠의 안개는 스탯 포인트 1당 어둠 계열의 물리, 마법 저항력을 0.1%, 공격력을 0.1% 상승시킵니다. 스탯 분배는 불가능하고 어둠 계열의 공격을 맞거나 사용할 때마다 소폭 상승합니다.] [종족 스킬 ‘영혼 갈취’를 배웠습니다. 영혼 갈취(초급, 액티브) 어둠의 생명에 대한 지식이 있는 네크로맨서의 주특기는 다른 차원의 생명체를 소환해 사역하는 것입니다. 그런 소환에 필요한 힘이 영적 지배력, 바로 영력입니다 ‘영혼 갈취’는 몬스터의 영혼을 갈취해 시전자의 영력을 올리는 어둠의 기술입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영혼 갈취를 시용하면 50에 해당하는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 갈취를 사용하는 횟수가 많아지면 시전자의 영력이 높아져 영력의 최대치가 올라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강한 몬스터의 영혼을 갈취할수록 영력이 빨리 상승합니다) ·만약 유저를 상대로 영혼 갈취를 성공해 70% 이상의 데미지를 주었을 경, 그 유저가 죽으면 영혼에 심각한 피해를 입어 부활까지 걸리 는 시간이 최대 72까지 늘어나게 됩니다.] “오오오오, 역시 A급 내단!" 정보창을 살펴본 아크는 비명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 기본 추가 보너스가 모든 스탯+8, 지능+20, 마법 저항 +20%, 모든 질병 저항+20%! 지능까지 포합하면 단숨에 7레벨이 올라간 효과였다 거기에 추가로 마법 저항과 질병 저항까지! 고레벨 몬스터 일수록 마법이나 질병을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부쩍 절실하게 생각하던 스탯이었다 그뿐인가? 새로운 스탯과 스킬까지 생겼다 “다른 건 볼 필요도 없어. ‘어둠의 안개’ 만으로도 대박이다!" 어둠의 안개’ 는 슬라임의 내단으로 얻은 ‘탄력도’ 처럼 특정 공격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주는 스탯이었다 그러나 ‘탄력도’ 와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다. 스탯을 올리면 어둠 속성의 방어력과 함께 공격력까지 올려 준다는 점이었다. 일반 공격에는 적용되지 않지만 아크가 사용하는 직업 전용 스킬은 대부분 어둠 속성이다 다시 말해 스탯이 올라갈수록 직업 전용 스킬이 강해진다는 뜻이 아닌가?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게 ’영혼 갈취’ 인데 아크는 애매한 표정으로 ‘영혼 갈취’ 의 정보를 바라보았다 사실 근래 들어 아크는 영력의 부족을 통감하고 있었다. 전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300이나 되는 영력을 쓸데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크 소울로 전직하며 새로 생긴 영역 선포 ‘영광의 밤’ 은 마나2,000에 영력을400이나 잡아먹었다 전직하며 영력이 400이 되었지만 영역 선포 한 번하면 바닥. 유난히 회복속도가 느린 영력이 다시 찰 때까지 소환수 조차 불러내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래저래 요긴한 ‘유령 기사단 강습’ 스킬도 영력을 300이나 잡아먹는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영력의 최대치를 올릴 수 있는 ‘영혼 갈취’도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창에는 ‘영혼 갈취’를 얼마나 성공해야 영력 최대치를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았다. 수백 번 사용해야 겨우 1씩 올라가는 스킬이라면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유저를 상대할 때 발휘되는 효과도 좀 그렇다. 70% 이상의 생명력을 ‘영혼 갈취’로 빼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다니? 고작 50의 데미지로 대제 몇 번을 공격해야 70%의 데미지를 줄 수 있단 말인가? ‘뭐, 그래도 마나를 잡아먹는 스킬은 아니니까 아크는 일단 ‘잘만 하면 영력을 올릴 수 있는’ 스킬이 생긴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영혼 갈취’ 가 없었다 해도 스탯 보너스와 ‘어둠의 안개’ 가 새로 생긴 것만으로도 고생한 보람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 월드의 어떤 유저가 한 번에 이만한 스탯 을 보너스로 얻을 수 있겠는가? “이제 할 일은 다 끝났다. 남은 건 《화룡족의 고향〉 퀘스트!" 아크의 다음 목적지는 브리스타니아의 북부에 위치한 화룡산! 내단을 먹어 치운 아크는 의욕이 넙치는 표정으로 힘차게 브리스타니아를 가로질렀다 “백구야~ ”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된 돼지가 뒤를 따랐다. ACT 8 해적 소탕! "많이 기다렸냐?" "아니요, 저도 방금왔어요." "그래? 일단 뭐 좀 시켜라." 이명룡이 손짓으로 점원을 부르며 자리에 앉았다. "뭐 드시겠어요?" "일단 파르페 스페셜 세트,3인분! 그리고 나는......." 이명룡은 점원이 가져다주는 메뉴는 볼것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누구 더 올 사람 있어요?" "아니. 전에 얘기했잖아. 동영상 파일을 구해 주면 파르페 스페셜 세트 3인분을 내겠다고." "......굳이 한 번에 사 주시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래? 그럼 파르페 스페셜 세트 2인분." 점원이 메뉴를 받아 적고 카운터로 돌아가자 근처의 손님 들이 둘을 힐끔거리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리도 아니었다. 현재 시각은 오전 10시30분. 그 시간에 시커면 사내 둘이 카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찜찜하기 짝 이없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파르페를 시키니 역 시 그리 달갑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현우는 키가 180이 넘는다. 그렇다고 딱히 페구가 남들보다 월등히 크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다. 또한 이명룡은 키는 작지만 인상은 어지간한 폭력배가 울고 갈 정도로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현우 역시 이명룡을 처음 봤을 때 경찰이라기보다는 동네 양아치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 사내 둘이 마주 앉아서 파르페라니? 가당키나 한 일 인가? 그러나 현우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파르페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본문에는 좋아하시는) 현우는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속도 좋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저렴한 곳도 8,000~9,000원. 자판기를 이용하면 1,000이면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무 려 여덟 배나 더 내고 마시는데도 웃을 수 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현우가 카페에 올 때마다 파르페를 시키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딱히 파르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파르페는 자판기로 사 먹을 수도 없고 그 만한 가격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즉, 바가지를 썻다는 느낌이 덜하다는 말이다. 게임에서 나 현실에서나 돈에 관련된 일이라면 철저한 현우였다. "그런데 사범님도 파르페 같은 걸 드세요? 전에는 어린애 들 먹는 거 같아서 싫다면서요?" "이틀 동안 한숨도 못 잤다. 내 몸은 지금 당분을 원하고 있다고." 이명룡이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수염만이 아니었다. 이명룡은 평소에도 그리 말쑥한 차림새는 아니엇지만 오 늘은 상태가 더 심했다. 몰라볼 정도로 핼쑥한 얼굴에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피로를 형상화시켜 놓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게 다 니 덕분이지." "저 때문이라니요?" "네가 보내 준 동영상 파일 말이다." "아, 그거! 그럼 동영상 때문에 잠을 못잤다는 말 은.....?" "일단은 세이프다." 이명룡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몇 시간만 늦었어도 동영상 파일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우가 물었을 때 점원이 파르페를 내려놓았다. 쥬스와 아이스크림, 그 위에 과자로 장식된 파르페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도 나왔다. '이게 542골드 50실버짜리 파르페구나.......' 이 파르페를 얻어먹기 위해 나간 돈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이명룡은 파르페에 꽃혀있던 장식용 우산을 입에물고 빙 글빙글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원래 아직 종료되지 않은 수사 내용은 관계자 외에는 알려지면 안 되지만, 따지고 보면 너도 관계자니까 상관없겠 지. 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너에게 얘기해 줘도 알아듣지 못 할 거야. 그러니 대략적인 상황만 얘기해 주마." 수배된 폭력간과 관련된 내용이다. 영화나 드라며였다면 잔뜩 목소리를 깔고 심각하게 얘기 해야 하는 부분이리라. 그러나 이명룡은 우산으로 아이스크림을 쿡쿡 찔러대며 그냥 옆집 아저씨가 얘기하는 투로 입을 열었다. 하긴 일반인에게 폭력단에 관련된 사건은 다른 세계의 일 처럼 느껴지지만, 특수 기동대를 지휘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폭력단과 혈전을 벌이던 이명룡에게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 리라. 새삼 진지할 이유도, 무게를 잡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너도 동영상을 봤다고 햇지?" "네. 하지만 딱히 별 내용은 없던데요?" "네가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 건 당연해. 동영상의 대화 에서 나온 말은 거의 전부가 놈들만 사용하는 은어였으니까. 아니,은어라기보다는 암호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암호요?" "요즘은 조폭들도 머리가 나쁘면 못 해 먹는 세상이야. 놈 들이 지껄이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특정 사물을 빗대는 경 우가 많지 게다가 때때로 의미가 바뀌기 때문에 현직 경찰 들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하지만 그때 놈들은 딱 한 번 실수를 했다." 그게 바로 동영상에 찍힌 'H-56'이라는 단어였다. 'H-56'은 현우 역시 동영상을 볼 때 좀 수상하다고 생각 했던 단어였다. "그 단어는 놈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거래 방식 가운데 하나를 지칭하는 말이야." 이명룡의 말에 따르면 폭력단이 불법적인 거래를 하는 방 식은 한 가지만 있는게 아니었다. 미리 여러 가지 루트를 만들어놓고 상황에 맞춰 바꿔 가 며 사용하는 것이다. 'H-56'은 그렇게 폭력단이 미리 준비 해놓은 거래 루트의 한 가지로, 그 방식이 상당히 교묘해서 경찰청에서도 아직 그 실체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동영상에서 'H-56'이라는 단어를 듣고 놈 들의 대화에서 사용한 암호를 끼워 맞춰보니 대강의 윤곽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명룡이 이틀이나 잠을 자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동영상에서 대강의 거래 방식을 추측해 낸 이명룡은 곧바 로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서 놈들의 최종 거래 장소 를 알아냈다. 놀랍게도 이명룡이 알아낸 최종 거래 장소는 전철역에 마련된 동전 보관함이었다. " 'H-56'이라는 거래 방식은 놈들이 거래하는 물건을, 폭력단과는 정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통해 몇 번이나 전국 일 주는 시켜 추척을 따돌리고 최종적으로 동전 보관함에 도착 하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야. 때로는 택배나 우체국을 통 해, 때로는 일반인과 일반인의 손을 통해, 경찰의 감시가 떨 어져 나갈 때 까지 계속 뺑뺑이를 돌리는 거지." 그런 식으로 돌리면서 정작 폭력단은 한 걸음 떨어져서 '물건'을 주시하고 있으면 경찰이 감시하고 잇는지를 파악 하기 쉽다. 또한 일이 잘못되서 중간에 경찰이 덮쳐 봤자 폭 력단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니 수사가 더 진행될 리가 없는것이다. (본문에선 잘못돼서) "게다가 그 '물건'의 대금은 뉴 월드를 통해서 이루어지 니 자금 추적도 쉽지 않아. 도중에 덮쳐서 '물건'을 압류해 도 놈들이 '물건'을 구입했다는 증가가 없으니 그건 단순히 유실물에 불과한 거지." '굉장하구나!' 현우는 새삼 이명룡이 경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홍콩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경찰과 폭력단의 두뇌 싸 움을 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룡이 설멸한 내용은 사실 전체 내용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실제 폭력단의 거래 방식은 그보다 몇 배나 더 용의주도한 계산이 깔려 있었고, 대한민국의 경찰 역시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을 동원해 그런 범죄자들과 맞거소 있는 것이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범죄율이 낮은 이유는 결코 국민들이 선량해 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낮은 범죄율은, 모두 경찰이라고 까지는 말할수 없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목숨을 걸고 범죄 자들과 싸우는 경찰들 덕분에 유지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요."(본문에선 모든 경찰이라고) 문든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렷다. "놈들이 동영상에 찍힌 건 며칠 전이잖아요. 위험한 내용 이 찍혔다고 생각했으면 동영상을 되찾기보다는 차라리 이 동 중인 물건을 회수하는 편이 빠르지 않았을끼요?" "하지 않은게 아니라 못 한 거다." "못 해요?" "분명 놈들은 물건의 이동 루트를 감시하고 있지. 몇 먹이 나 하나는 물건이니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놈들에게도 치명적 인 타격이니까. 하지만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다 정보가 새 나 가면 똘마니들이 딴생각을 품을 수도 있잖아. 때문에 정확한 거래 루트를 파악하고 감시하는 건 조직을 보스뿐이야. 동영 상에 나왓던 가렛이나 제페트는 중간 보스에 불과하지." 때문에 가렛과 제페느틑 위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거래를 중단시키지 못햇다. 일단 그런 권한이 없었고, 게임 속에서 거래하다가 동영상 에 찍혀서 불안하다는 말을 차마 보스에게 할 수 없엇던 것 이다. 또한 우연히 북실이가 찍은 동영상이 설마 경찰에 넘 어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죽자 살자 동영상을 되찾으려고 한 이유는 만의 하나라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말한 이명룡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쨋든 그 물건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 어젯밤이었어. 다시 말해 만약 네가 이틀만 늦게 찾았 어도 동영상은 놈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아무런 가치가 없었 을 거라는 말이지. 그래서 세이프라고 말했던거야." 정황을 파악한 이명룡은 서둘러 특수범죄대책과의 형사들 을 정원해서 보관함 근처에서 잠복근무를 했다. 그리고 자정 무렵, 드디어 물건을 회수해 가는 조직원을 체포할 수 있었다. "가능하면 놈을 추적해서 수배자 놈들이 숨어 있는 곳까 지 알아냈으면 좋겠지만, 이번에 잡은 조직원은 제페트의 똘 마니에 불과해. 아마 제페트는 마지막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거야. 물건은 똘마니의 손에서 처분되서 뉴 월드를 통 해 다시 제페트에게 전해지겠지. 때문에 일단 놈을 잡아들인 거야."(본문에선 처분돼서) 물론 아직 경찰청에서 뉴 월드에 잠입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다. 때문에 이명룡은 제페트가 낌새를 채지 못하 도록 똘마니를 체포하는 부분에도 신경 써야 했다. 똘마니의 이동 루트를 파악해 교통경찰을 배치, 다른 사건 을 조사하기 위해 불심검문을 하는 것처럼 꾸며 차량을 수색 해 똘마니를 잡아넣었다. "사실 오늘은 그 말을 해 주려고 부른 거다. 우리가 놈을 덮칠 때 마침 근처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똘마니가 불심 검문을 받았다고. 제페트도 동영상과 연관되어 수색당한 거 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야. 운이 없엇다고 생각하겠지. 그 리고 물건이 회수된 시점에서 동영상의 위험도도 사라졌으 니 놈들도 더 이상은 너를 추적하지 않을 거다." 또한 동영상과 상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물건을 운반하던 똘마니가 경찰에게 잡혓다. 수배당해 숨어 사는 제페트와 조직원들로서는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현실에서는 물론, 게임 속에서 도 한동안은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리라. 덕분에 아크 역시 이제야 도적단과의 질긴 악연을 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수배자들을 못 잡으면 마찬가지 아닌가요?" "내가 왜 밤을 새웠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명룡이 남아 있는 파르페를 입에 탈탈 털어 넣으며 히죽 거렸다 “자정 무렵에 똘마니를 체포한 뒤로 방금 전까지 놈을 취조하다가 오는길이야 이런 일은 시간싸움이거든. 아마 놈들이 똘마니가 잡혀 들어갔다는 걸 안 건 불과 한두 시간 전 일 거야 하지만 경찰은 이미 다섯 시간 전에 놈에게 필요한 정보는 다 뽑아냈지.” “사범님이 직접요? 그 사람이 어떻게 됐을지 안 봐도 알 겠예요” 현우는 며칠 전에 당했던 이명룡과의 ‘대련을 맹자한 폭력’을떠올리며중얼거렸다 그러자 이명룡이 펄쩍 뛰며 당치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야,야! 무슨 생각을 히는 거냐? 지금이 쌍팔 연도냐? 나는 민주경찰이라고" “민주적으로 패는 경찰요?" “내가 무슨 깡패냐? 누가 들을까 봐 겁난다 뭐, 앞으로 착 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약간 쓰다듬어 주기는 했지만. 그리고 요즘은 팔 아프게 팰 필요도 없어. 너 사법 거래라고 아냐?" "사법 거래요? 외국 영화에서 지주 나오는?" "그래,그거. 우리나라도 요즘에는 그런 거 하거든. 일단 수상쩍은 놈이 들어오연 있는 죄,없는 죄 다 걸어 놓고 반쯤 깎아 줄 테니 불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줄줄 불게 되어 있어. 허드렛일이나 하던 똘마니는 말할 필요도 없지, 사법 거래를 해 주겠다고 했더니 줄줄 불어 대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더 알려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더라고.”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네가 무슨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 야. 형님을 위해 죽어? 아우를 위해 희생해? 흥! 웃기지 말라 고 해. 옛날이나 지금이나 깡패들은 근성도 의리도 없어.” 조폭 얘기가 나오자 이명룡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이 됐다. “그놈들이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연장질뿐이야. 뭐, 권 형 님이 데리고 다니는 별종 녀석들도 있지만 말이야. 사실 녀 석들이 새 삶을살수 있었던 건 권 형님의 노력도 있었지만, 어차피 그렇게 의리니 도리니 따지는 녀석들은 그런 세계에 서 오래 못 버텨. 하긴 권 형님도 그 녀석들의 천성을 아니까 그렇게 끼고 도는 거겠지.” 어쨌든 이명룡의 말처럼 똘마니는 '약간'의 협박과 폭력, 그리고 사법 거래에 승복해 정보를 줄줄 털어놓았다. 물론 고작 똘마니에 불과한 조직원이라 만족할 만한 정보 는 얻지 못했다. 그러나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똘마니는 수배자 중 한 명과 막역한 사이라 조직의 은신처 가운데 하나를 알아낼 수 있었다. “놈들에게 똘마니가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전에 그 주변에 형사들을 확 깔아 놨다. 놈들도 우리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형사들이 수배자들의 은신처 주변에 잠복한 것은 그들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명룡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배자들의 일망타진! 그리고 큰 고기를 낚으려면 작은 물고기는 풀어 놔야 하는 법이다. 조직원들은 똘마니가 잡혀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 면 뭔가 리액션을 취할 것이다. 형사들은 그런 조직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적당한 시기에 중간 보스인 제페트와 수배자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이틀을 꼬박 새워 초췌해 보였지만 이명룡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다. 예전에 폭력단과 혈투를 벌이던 시절의 혈기가 되살아나 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명룡은 처음 뉴 월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게 임에서 실적을 올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몇만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도 수배자 한 명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뉴 월드는 수백만이 접속하는 머메드급 온라인 게임! 시스템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명룡이 무슨 재주로 수배 자들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명룡의 노력과 아크의 도움 그리고 약간의 행운 이 따라준 결과 드디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다. 물론 수배자 소탕까지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그러나 일단 눈에 보이는 성과를 올린 이명룡은 자신감이 넘쳤다. "어쨌든 놈들이 어디에 숨든 그동안 만들어 놓은 기반이 몽땅 뉴 월드에 집중되어 있으니 계속 접속할 거야. 그리고 나는 이미 놈들에게 상당히 신뢰받고 있지." 이명룡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잘난 척하며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 다. 이명룡이 도적단 내에서 신용 등급이 상승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 공포의 성에서 백구에게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도적단은 이명룡이 자신들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해 주었다고 오해해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이명룡을 싸고도는 가람의 주장에 더욱 힘을 받아 도적단의 정식 멤버로 인정받게 되었다. 물론 아직 현실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일단 기회는 잡은 셈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잠복 수사 중인 형사들이, 게임 속에서 잠입 수사 중인 이명룡이, 보조를 맞춰 감시하다 보면 언젠 가는 수배지를 일망타진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덕분에 한동안 좀 바빠질 거야." 이명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아 그리고 특수범죄대책과 과장에게 너에 대해서 얘기 해 놨다. 아직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동영상으로 시작한 수사로 수배자를 일망타진하게 된다면 너와 북실이에게 경찰청장 표창이 수여될지도 몰라." “그건 제발좀 참아주세요.” 현우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우가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것은 게임에서만 이 아니었다. 그러자 이명룡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결정적인 제보에 대한 표창에는 포상금도 나오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오냐,좋은 소식 기다려라." 이명룡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경찰청으로 돌아갔다. 이명룡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현우는 간만에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뉴 월드를 시작한 덕분에 현우는 끼니를 걱정하던 생활에 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명룡,나 아가 사회 정의 실현에도 도움이 됐다. 뭐,사회 정의 실현에 앞장설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현우 는 아니었지만,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현우는 이때까지만 해도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수배자를 잡기 위해 시작한 이번 일이 뉴 월드에 미칠 영 향을...... * * * "어머니, 저 왔어요!" "아아,왔냐?" 현우가 집으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마지 제집인 양 거실 소따에 앉아서 대답하는 사내는 다름 아닌 권화랑이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어머니가 통원 치료를 시작한 뒤 로, 권화랑은 화장실 드나들듯 틈만 나면 현우의 집에 찾아 왔다. 왜? 뭐, 이유는 뻔하지 않겠는가? "또 어머니 꼬시러 왔어요?" "얘가 점점 못 하는 말이 없네." 어머니가 눈을 흘겼지만, 권화랑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끄덕였다. "뭐, 그렇지. 다른 놈이 채 가면 안 되니까 열심히 꼬시는 중이다." 권화랑이 뉴 월드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변한 게 이런 부 분이었다. 현우는 마주 웃으며 이 곰 같은 아저씨를 처음 만났을 때 를 떠올려 보았다. 당시의 권화랑은 정말 돌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로 무뚝뚝했다. 수십 년을 경찰, 그것도 평범한 경찰이 아닌 특수 교관으로 지낸 영향이리라. 그러다가 부상을 입고 본의 아니게 은퇴한 뒤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다. 경찰이라는 조직과 사회에 대한 실망과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한통안 외출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권화랑의 성격이 바뀐 것은 뉴 월드를 시작하고 나서 부터였다. 비록 게임 속이지만, 예전의 자신이 꿈꾸던 것처 럼 정의를 실현했고 NPC들은 그런 권화랑에게 열렬한 호응 으로 보답해 주었다. 굳이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도 노력하면 대가를 받는다. 그렇게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던 현실에 좌 절하던 권화랑에게 뉴 월드는 이상향이나 다름없었다. '저것도 성격이 변한 이유 중 하나겠지.' 현우는 주방으로 향하는 권화랑의 걸음걸이를 보며 생각 했다. 아마도 속앓이만 하던 권화랑이 어머니에게 적극적이 된 건 그 때문이리라. 예전 권화랑은 부상 탓에 생긴 장애로 심하게 절룩거렸다.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던 권화랑이었기에 그런 장애는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리라. 때문에 권화랑은 모든 일에 소극적이 되었고, 그건 어머니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권화랑이 만취되어 넋두리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네 엄마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은 동정심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야. 나는 진심이야. 다른 사람이 뭐 라고 하든 상관없어.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너나 네 엄마 가 내가 몸이 불편해서 같은 처지에 있는 네 엄마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건 겁난다. 그리고 내가 이런 몸으로 네 엄마를 보살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책임감이 강한 권화랑이기에 더욱 부담이 됐으리라. 그러나 근래 들어 권화랑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 로 절룩거림이 많이 사라졌다. 사실 권화랑은 이미 오래전에 신체적인 장애는 사라졌다 는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장애라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정 신까지 장애인으로 만드는 법이다. 오랫동안 절룩거리다 보니 몸과 마음이 그걸 정상으로 받 아들여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뉴 월드에서 옛날처럼 정신없이 뛰고 구르는 사이 에 그런 ‘정신적 장애’가 많이 완화되었다. 막상 그런 결과를 보니 현우는 기상현실 게임이 그런 '정 신적 장애' 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말을 듣고 권하기 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권화랑은 거의 정상인에 가까워졌다. 덕분에 자신감이 붙은 권화랑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숨 기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말할 펼요도 없지만 현우는 그런 권화랑이 예전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가 빨리 더 좋아지셔서 두 분이 결혼했으면 좋겠 는데.......' 이제 현우가 권화랑에게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그럼 더 열심히 꼬셔 보세요. 방해꾼은 작업실에 처박혀 있을 테니까." "오오, 그럼 나야 고맙지. 너 눈치가 너무 빠른 거 아냐?" 권화랑이 음흉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현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작업실에 들어가려다 가 문득 떠올라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일전에 시작한다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응? 일전에 시작한다던 일이라니? 내가 뭘?" "그 왜 있잖아요,무법항을 소탕한다던." "아,그거말이냐?" 권화랑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한숨을 붙어 냈다. "그게 좀 귀찮게 됐어." "귀찮게 되다니요? 그때 해적선 추적에 실패한 거예요?" "아니야. 추적은 성공했다. 그런데 말이야......" 권화랑이 답답한 듯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그간의 사 정을 설명했다. 현우가 해적에게 습격받았던 날,권화랑은 작진대로 귀항 하는 해적션을 미행해 무법항의 위치를 알아냈다. 무법항은 바로 스탄달의 동부 해안 근처에 있는 작은 섬이 었다. 일단 위치를 알아낸 정의남은 계획대로 전투 함대를 출동시켜 무법항에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전투함 두 척만 잃고 후퇴했다." "무법항의 해적들이 그렇게 강해요?" "뭐,만만한 놈들은 아니지. 하지만 문제는 해적이 아니었 어. 이번에 이사벨의 투자로 조직한 전투 합대는 수송선과 전투함을 합쳐서 40척이다. 반면 무법항에 모여 있는 해적 선은 작은 쾌속정까지 다 합해도 30척이 채 안되지. 만약 제 대로 붙었다면 한두 시간 만에 박살 낼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요?" "......결정적으로 무법항에 진입할 수가 없었다." 권화랑이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무법항 근처에는 권화랑이나 현우가 생각지도 못했던 복 병이 있었던 것이다. 그 복병이란 바로 무법항 근처에 지뢰처럼 깔려 있는 암초 였다. 그렇다,애초에 헤르메스 연합이 간덩이 크게 스탄달 에 무법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나크족에게 그 섬의 존재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섬이라 무법항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은 해상뿐. 그러나 무법항 주변의 해상은 마의 해역이었다. 바다 밑에 깔려 있는 암초가 무법항에 진입하는 배를 노리 고 호시탐탐 어금니를 갈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암초 의 영향으로 단숨에 배를 삼켜 버리는 돌발적인 소용돌이가 일어날 때도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바다였지만, 그 안 은 도처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미로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무법항의 해적들은 암초나 소용돌이의 위 치를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암초와 소용돌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싸우는 해적들 과, 아무것도 모르는 전투 함대. 해전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잠수부를 동원해 해저 지형을 파악하려고도 해 봤지만 쉽지 않아. 해저 지형이 워낙 복잡하기도 하고, 해적들도 그 런 움직임을 뻔히 보면서서 놔둘 리가 없으니까. 일단 지금은 전투 함대로 무법항 주변을 감시하는 게 전부다. 덕분에 해 적들도 멋대로 돌아다니며 노략질하지는 못하지만......" 전투 함대를 언제까지나 무법항에 묶어 둘 수는 없었다. 뉴 월드에 해적은 무법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예전부터 대륙에서도 상선을 노리고 해적들이 활동해 왔 던 것이다. 그리고 스탄달이 떠올라 해상무역이 더욱 활발해 지면서 대륙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해적들도 스탄달 주변까 지 출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투 함대가 몽땅 무법항에 묶여 있으면 그런 해적들을 막 을 방법이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전투 함대를 돌릴 수도 없었다. 전투 함대는 40척,무법항 해적은 30척.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는 아니다. 만약 무법항 근처의 전투함 숫자를 줄이면 호시탐탐 기회 를 노리는 해적들에게 역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암초 지대에서 숫자마저 열세라면 전 투 함대는 승산이 없는 것이다. "사실 문제는 그보다 더 심각해. 우리가 무법항을 봉쇄하 자 해적들이 대륙의 다른 해적들과 손을 잡으려고 한다는 정 보가 있어. 만약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대륙 해적과 무법항 해적이 앞뒤에서 전투 함대를 공격할지도 몰라. 가장 걱정스 러운 건 그거다. 만의 하나 해적들과의 전투에서 우리 함대 가 패한다면......" 그 다음 말은 굳이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현재 스탄달이 바란족과 동방 민족의 지배하에 있을 수 있 는 이유는,대륙과 교류하며 많은 유저와 자본이 영입됐기 때 문이다. 해적이 해상을 장악하면 그 이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원래 스탄탈은 대륙과 교류하지 않고 살아가던 독립적인 세상이었다. 대륙과 교류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것 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전의 얘기. 역사가 증명하듯, 아예 처음부터 교류하지 않았다면 모를까,일단 교류를 시작하고 급속도로 발전하던 곳에 갑자기 교류가 중단되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하다. 단순한 예로 만약 현대의 대한민국이 갑자기 다른 나라와 무역을 못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스탄달은 급격히 힘을 잃고 세력이 약화 되리라. 그런 시기에 헤르메스 연합과 나크족, 해적들이 연 합군을 결성해 침략해 온다면 막아 낼 방법이 없다. 최악의 경우, 하만 요새를 나크족에게 빼앗기고 스탄달은 헤르메스 연합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야 알겠어. 그게 헤르메스 연합이 계획하던 시나리 오였던 거야!' 사실 현우는 무법항이 헤르메스 연합과 관련이 있음을 알 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귀찮기는 하지만 해적 때문에 이미 자리를 잡은 스탄달이 흔들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륙에서 활동하던 다른 해적과 손을 잡는다면 상황이 다르다. '해적에게도 안전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륙의 삼 국은 이미 해적들이 파고들 여지가 전혀 없어. 하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스탄달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만약 정말 해적 동맹이 성사된다면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거야. 그 힘을 동원해 스탄달을 해적 왕국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틀림없어. 헤르메스 연합이 무리하게 무법항을 건설했던 이 유는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야.' 거기까지 생각하자 현우는 덜컥 겁이 났다. 만약 계획대로 헤르메스 연합이 스탄달을 손에 넣으면 엄 청난 권력을 얻게 된다. 동시에 궁극적으로 란셀-시르바나-스탄달을 잇는 삼 각무역을 통해 제2의 게임 재벌을 꿈꾸는 아크의 계획은 물 거품이 되고 만다. 아니,헤르메스 연합이 그만한 권력을 얻으면 아크는 뉴 월드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불투명해진다. '하지만 무법항이 그런 천험의 요새라면 달리 방법 이......' 현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권화랑은 전술 전문가다. 과거 스탄달의 정복 전쟁에 참가했을 때 눈에 띄는 활약은 현우의 몫이었지만 전쟁에 관련된 전반적인 전략전술은 모 두 권화랑의 머리에서 나왔다. 아마도 권화량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스탄달은 그때 이 미 나크족과 헤르메스 연합의 손에 떨어졌으리라. 그런 권화랑조차 무법항을 소탕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 다. 현우가 당장 스탄달로 뛰어간다고 해도 나아질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뭔가 무법항의 암초 지역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 을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현우의 머릿속에 돌연 뭔가가 떠 올랐다. 바로 방금 전에 만났던 이명룡과의 대화였다. 이명룡이 잡아들인 조직의 똘마니,다른 조직원과 달리 밖 에 나다닐 수 있는 똘마니는 수배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친 한 친구를 제외한 다른 수배자들의 은신처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똘마니는 ‘물건’ 을 처분해 뉴 월드에서 제페트에 게 넘기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똘마니라고 하나, 자금을 움직이는 조직원을 멀리 두지는 않았을 터. 어차피 현실의 정보가 보장되는 게임 속 이니 제페트는 그 똘마니를 옆에 두고 있을 확률이 많다. 그리고 제페트는 무법항을 드나들던 해적! '다시 말해 사범님이 잡은 똘마니도 제페트와 함께 무법 항을 자주 드나들었을 거야. 그렇다면 당연히 암초 지대를 통과할 방법도 알고 있겠지. 그거다. 지금까지 무법항의 정 보를 얻지 못한 것은 현실에서 해적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 다. 하지만 그 해적 중 하나가 사범님에게 잡혀 있어. 게다 가 사법 거래를 했다고 해도 어차피 징역을 받어야 하는 마 당에 고작 게임 속의 무법항 정보 따위를 숨기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암초 지대의 길을 알아낼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뭐? 그,그게 정말이냐? 어떻게?" "일단 잠깐 기다려 보세요." 현우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가 이명룡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말인지 알았다. 사실 나도 무법항에는 한 번 가 본 적이 있어. 제페트가 바다에서 널 습격하기 직전에. 하지만 네가 무법항하고 연관이 있는 줄은 올랐고,딱 한 번뿐이라 그곳에 암초 지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똘마니가 제 페트와 함께 행동했다면 알고 있을 확률이 많아. 일단 끊자. 내가 알아보고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께." 그러고 보니 현재 이명룡도 도적단의 일원이었다. 만약 현우가 진즉에 무법항에 대해 언급해 놨다면 이명룡 에게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동안 현우는 이명룡이 뉴 월드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10분 정도 기다리자 이명룡에게 답신이 왔다. "현우야 알아냈다!" "네? 정말요?" "네 예상대로 놈은 제페트의 도적단 일원이었어. 얘기를 들어 보니 나도 뉴 월드에서 계속 만나던 놈이더라고. 바로 항상 제페트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개복치라는 놈이었어. 뉴 월드에서 성형을 너무 많이 해 놔서 잡아 두고도 상상도 못 했어." 이명룡이 새삼 놀랍다는 목소리로 설명하고는 음흉하게 웃었다. "후후후,어차피 조직에 대한 것까지 털어놓은 놈이 더 이 상 뭘 숨기겠냐? 지장면 한 그릇 사 주면서 슬슬 얼렀더니 바로 암초 지대를 지날 수 있는 무법항 해도(海圖)를 그려 주더 라고. 오토바이 택배로 네 집으로 보내 놨다 그런데......" 이명룡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해도가 필요하다고 한 사람이 화랑 형님이지?" "네,그런데요?" "아직 화랑 형님에게 해도를 내가 구해 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 "해야 하나요?" "아니,그러니까....... 흠흠,개복치에게 들어 보니까 말이 야. 무법항에는 해적들이 약탈한 물건을 쌓아 두는 창고가 몇 개 있다고 하더라고. 뭐,생색을 내자는 건 아니지만 무 법항을 점령하면 그게 다 내 덕이잖아? 내가 요즘 좀 힘들어 서 그러는데,화랑 형님에게 말해서 그거 되찾으면 좀 나눠 달라고 하면 안 될까? 물론 내 얘기는 하지 말고 분명 내가 관련됐다고 하면 씨도 안 먹힐 거야 아,물론 내가 받는 몫 에서 절반은 네게 떼어 주마. 어떠냐?" "......!" 현우는 이명룡의 말을 듣고 나서야 중요한 뭔가를 빼먹었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무법항은 해적들의 본거지! 당연히 해적들이 노략질한 물건을 처리해 주는 곳도 있을 것이다. 무법항이 점령되면 그곳에 쌓여 있는 약탈품들은 몽땅 스 탄달 전투 함대에게 회수되리라. 물론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그 약탈품은 스탄달,정확히 말하자면 이사벨에게 돌아가 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만약 전투 함대가 무법항을 붕괴시 키면 제1공로자는 현우와 이명룡이다. 정당하게 약탈품의 지분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사범님이 먼저 그런 말을 꺼낼 줄 은......' 이명룡도 점점 게임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이명룡이 약탈품을 탐내는 이유는 단지 돈에 욕심 이 생겨서만은 아니었다. 이명룡은 이번에 백구에게 당한 뒤에 새삼 레벨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설사 상인이라도 그때 이명룡의 레벨이 300만 됐어도 백 구에게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역시 레벨을 올려야 한다. 이명룡은 게임을 하며 처음으로 레벨에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상인이 가장 빨리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역시 장 사! 장사를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길수록 경험치를 많이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인들에게 가장 좋은 물건이 바로 도적들의 약탈품, 일명 장물이다. 당연히 장물은 구입히는 물건이 아니다. 때문에 실제 판매할 때는구입 가격이 '0' 으로 처리된다. 다시 말해 판매 가격 전부가 이윤으로 계산된다는 말이다. 1,000골드 치 물건을 거래해서 10%의 이윤을 남겼을 때 받는 경험치를,장물은 100골드를 거래하는 것만으로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이명룡은 기란에서 고생할 때 그런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뉴 월드에도 나름대로 법이 존재해서 장물을 거래 하다가 들통 나면 되려 경험치가 깎인다. 심지어 카오틱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스탄탈 전투 함대가 해적들에게 합법적으로 되찾은 장물이라면? 스탄달 대표인 이사벨의 보증이 붙어 있는 장물은 상인에 게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안전한 장물' 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해적들의 본거지이니만큼 쌓여 있는 장물은 어마 어마하리라. 그 장물의 일부라도 일개 유저에게는 엄청난 수량! 그 장물을 처리하면 이명룡의 레벨은 단숨에 몇십 단계나 올라가리라! 말하자면 상인의 폭렙이다! "알았어요 얘기해 볼게요." 현우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권화랑과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딱히 협상이랄 것도 없었다. 권화랑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으읍,정보제공료를 달라면 줘야지. 이대로 무법항을 방 치하면 스탄달의 존립이 위협받을 상황이니까. 우리의 1차 적인 목적은 해적 소탕. 게다가 중개인이 너라면 이사벨도 수긍할 거야. 좋아,입수하는 장물 중에 20% 정도라면 이사 벨을 설득할 수 있을 거다. 무법항을 점령하면 이사벨에게 얘기해서 약속한 장물을 아크 상점으로 보내 주마." "감사합니다." 현우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무법항에서 노획하는 물건의 20%! 해적들의 본거지임을 감안하면 입수할 수 있는 장물은 최 소한 수만 골드. 대강 30,000~40,000골드로 추정했을 때 20%면 6,000~8,000골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물처리는 모두 이명룡이 한다는 조건 으로 아크가 그중 50%를 받기로 합의했다. 즉,그냥 앉아서 3,000~4,000골드의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우하하하,그렇지 않아도 메모리 크리스털을 찾느라 이 것저것 손해를 봐서 속이 쓰리던 참인데 이런 식으로 수천 골드가 생기다니? 장물만 손에 들어오면 북실이에게 주기로 한 500골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거야말로 넘어졌다 고 돈 줍고 일어난다는 건가?' 이렇게 경찰청의 수사는 뭇하지 않게 해적 소탕으로 이어 졌다. ......덕분에 아크는 돈벼락을 맞을 것 같다. ACT 9 화룡산 스탄탈의 통부 해안에 자리 잡은 작은 섬.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바위섬이었다. 그러나 섬 중심에 뚫려 있는 동굴 내부에는 수십 척의 함 선이 정박해 있었다. 마치 폭주족의 오토바이처럼 갖가지 화 려한 문양으로 도배를 해 놓은 함선들의 돛대에는 선명한 핏 빛 해골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다, 바로 이곳이 근래 스탄달 해상에 들끓는 해적들의 본거지, 무법항이었다. 얼마 전부터 무법항 주변은 40여 척의 스탄달 전투 함대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다. 그러나 해적선이 정박해 있는 무법항의 분위기는 한가롭 다 못해 나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무법항 주변에 지뢰처럼 깔린 암초와 소용돌이 탓에 전투 함대가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 놈들, 여전히 느긋하군." 어둠에 잠겨 있는 해상에서 망원경으로 무법항을 살피던 정의남의 입술이 슬쩍 올라갔다. "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오늘로 끝이다!" 정의남이 망원경을 접어 넣고 두루마리를 펼쳐 들었다. 마치 낙서를 하듯 복잡한 선이 얽혀 있는 두루마리. 바로 '익명의 제보자' 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만든 무법 항 주변의 해도였다. 그 해도를 손에 넣은 정의남은 스탄달에 잠입해 있는 해적 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상에서 전투준비를 하며 부대를 편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스탄달의 운명을 놓고 해적과 결전 을 벌이는 'D-day' 를 맞게 된 것이다. "해도에 의하면 무법항에 진입할 수 있는 해로는 모두 네 곳! 자,모두 돛을 펼쳐라! 함대를 네 부대로 나누어 무법항 에 진입한다! 스탄달에서 무법자들을 몰아낼 때가 왔다!" 정의남의 명령이 떨어지자 갑판 위에서 선원들이 분주하 게 움직였다. 힘차게 밧줄을 잡아당겨 닻을 끌어올리고, 묶여 있던 밧줄 을 풀어 돛을 활짝 폈다. 그러자 정박해 있던 40여 척의 전투 함대가 미끄러지듯이 무법항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투함이 움직이자 선상에 모여 있딘 바란족이 긴장감 어 린 표정으로 무기를 빼 들었다. 그 가운데는 스탄달의 자치 대장인 갱생단과 레리어트는 물론,퀘스트를 마치고 귀환해 전설의 암살자,'갓 킬러' 일명 '신살자神殺者' 라는 직업을 얻은 샴바라도 끼어 있었다. "감히 저놈들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이사벨을 귀찮게 했단 말이지?" 샴바라는 일찌감치 쌍수 단검을 빼 들고 살기를 풀풀 날려 댔다. 그 외에 선상에는 바란족과 동방 민족 이외에 유저들 도 적지 않았다. 사실 무법항의 해적은 나크족과 헤르메스 연합을 제외하고 도 제페트처럼 상당수의 카오틱 유저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적을 상대로 바란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정 의남은 이사벨을 설득해 방금 전 스탄달의 모든 유저를 대상 으로 한 미션 퀘스트를 발동시켰다. 해적 소탕!(스탄달 미션 퀘스트) 스탄달이 떠오르고 몇 달,그동안 스탄달은 많은 영웅들의 도움으로 나 크족의 위협으로부터 평화를 지켜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래 들 어 해적들의 출현으로 또다시 스탄달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다 행히 뛰어난 사령관의 노력으로 무법항의 위치를 알아냈지만,해적의 규모를 생각하면 의용군의 도움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에 스탄달의 대 표 이사벨은 스탄달을 찾은 대를의 영웅들에게 도움을 요정했습니다. 스탄달의 사령관을 도와 해적을 무찌른 영웅에게는 공적에 따라 포상 이 주어질 것입니다. 《난이도 +B 퀘스트 제한 레벨 280 이상〉 *기본 보상 : 작전에 참가하는 모든 유저에게 '황금 티켓'이 지급됩니다. 미션 퀘스트가 발동되자 유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작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나크족 부대장을 사냥해야 얻 을수있는 ‘황금 티켓’을 받을 수 있다. 근래 들어 하만 요새 주변에 출몰하는 나크족이 부쩍 줄어 답답해하던 유저들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그러나 미션 퀘스트와 상관없이 참전한 유저들도 적지 않았다. "으드득. 예전에 저놈들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그때 나는 갑옷을 빼앗겼다고!"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갚아 주겠어!" 이번 작전에 참가한 유저들은 대부분 한 번쯤은 해적에게 당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저들은 그때의 원한을 갚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이다. 그렇게 40척의 전투 함대에 나눠 탄 전투 병력은 무려 4,000여 명! 모두 레벨 300대의 강자들이었다. 거기에 바란 족과 동방 민족이 3,000여 명 합계 7,000의 병력을 실은 함 대가 무법항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무법항의 망루에서 정찰하는 해적들은 여전히 분 위기 파악을 못 했다. "어라? 저 녀석들 또 들어오려고 하네?" "훗, 그냥 놔둬. 그러다가 또 암초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허둥대겠지." "하긴 이곳은 선택받은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니까. 우리처럼 말이야." "크크크크. 맞아. 그러니 저놈들이 허둥대는 꼴을 느긋하 게 구경이나 하자고." 해적들은 전투 함대가 접근하자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히 죽거렸다. 그러나 해적들의 기대와 달리 한참이 더 지나도 전투 함대는 암초에 걸리지 않았다. 전투 함대가 지척까지 접근해 오자 해적들의 얼굴에도 당 혹감이 번졌다. "뭐,뭐야? 어떻게 된 거지?" "뭔가 이상해. 암초가 있는데 함대 전체가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이미 암초 지대에 들어오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가만? 서,설마 정보가 샌 건가?" "뭐라고? 그럼 이러고 있을때가아니잖아?" "비상이다! 본진에 알려야 해!" 해적들이 뒤 할때였다. "사정거리에 진입했다! 각 편대의 선두에 있는 전투함은 각자 맡은 망루를 포격하라!" "징표!" 레리어트가 신성 마법을 사용해 무법항 주변의 망루에 각 각 다른 색의 징표를 찍었다. 그러자 선두에서 진입하던 함 선들의 포문이 열리며 일제히 불길을 뿜어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어두운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선명한 불기둥 이 망루를 향해 날아갔다. 네 방향으로 진입하던 함선들의 일제 공격! 무법항 외곽에 세워져 있던 10여 개의 망루가 일제히 화염 에 휩싸이며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망루를 무력화시킨 전투 함대는 그대로 무법항 의 동굴에 진입했다. 동굴에 들어서자 항구에 기항해 있는 30여 척의 해적선이 보였다. 폭음으로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해적들이 정신없이 해적선에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정의남의 시선이 향한 곳은 무법항 내부에 세워진 포탑이었다. "서두를 필요 없다. 기항하고 있던 해적선은 어차피 제대 로 전투준비를 갖추려면 5분 이상 소요된다. 해적선은 후발 대에게 맡기고 선발대의 포문은 모두 포탑에 집중시킨다. 공 격하라!" 콰콰콰광, 콰콰콰쾅! 항구 앞에 일렬로 늘어선 전투 함대가 쉬지 않고 불기둥을 뿜어냈다. 엄청난 숫자의 포탄 세례를 받은 무법항은 순식간 에 불길에 휩싸였다. 곧 무법항의 포탑도 불길을 내뿜으며 응사했지만,코앞까 지 전투 함대의 침입을 허용한 상태였다 당황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쏴 대는 대포가 제 역할을 할 리가 없었다. "징표, 징표, 징표, 1조는 붉은색, 2조는 파란색, 3조는 노란색이에요!" 반면 전투 함대의 공격은 일사불란하기 짝이 없었다. 레리어트가 징표를 찍으며 소리치자 10척의 전투 함대가 각각 맡은 징표를 향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덕분에 20여(본문에선 대) 기의 포탑은 고작 전투함 서너 척에만 피해를 입히고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이어 후발대와 합류한 전투 함대는 본격적으로 해적 소탕을 시작했다. "모든 전투함은 무법항에 병력을 상륙시켜라. 전투 병력 이 상륙하면 함대원은 이대로 항구를 봉쇄하고 해적선을 제 압한다. 공격!" "우와아아아아!" 동시에 전투함에서 7,000여 명의 유저와 바란족 동방 민 족이 쏟아져 나왔다. 전투 병력이 상륙하자 해적들이 비명을 터뜨혔다. "헉, 뭐, 뭐냐?" 원래 무법항에는 나크족과 유저 해적을 합해 6,000명가량 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현재 무법항에는 유저 해적이 그리 많지 않았다. 유저 해적들은 전투 합대가 처음 무법항을 포위했을 때만 해도 긴장감이 넘쳤다. 그러나 전투 함대가 암초 때문에 진 입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완전히 긴장을 풀어 버렸다. 게다가 어차피 해적질도 못 하니 아예 접속을 끊고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NPC인 나크족 해적들도 모여서 포커 따위나 하면서 놀고 있었으니 유저들은 말할것도 없었다. "이,이놈들은 스탄달의...... 어떻게 들어온 거지?" "모두 도, 도망쳐......! 으아아악!" 그렇게 텅텅 비어 있는 무법항에 7,000여 명의 전투 병력 이 들이닥쳤다. 게다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정의남과 레리어트, 갱생단! "전사의기력,고결한생명력,순결한빛!" 최대 생명력을 올려 주는 전사의 기력,그리고 3분 동안 일정량의 생명력을 꾸준히 회복시켜 주는 고결한 생명력,마 나 회복 속도를 향상시키는 순결한 빛! 레리어트가 버프를 중첩시키자 전투원의 능력치가 비약적 으로 상승했다. "정의의 철퇴로 해적들의 썩어 빠진 골통을 박살 내라!" 게다가 가디언 제너럴 정의남의 특성에 따라 휘하 병력에 게 각종 능력치까지 중첩되었다. 병력은 엄청난 능력치 보너스에 사기가 한껏 치솟았다. "우하하하,간만에 전투다!" "그동안 바란족을 훈련시키느라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자!" 그뿐인가? 각각 부대장을 맡은 갱생단도 가디언의 직업 특성을 발통시켜 부대원에게 각종 보너스를 추가시켰다. 이들의 보너스에 스탄달 전투 병력은 평소의 두 배에 달하 는 능력을 발휘했다. "우오오오,힘이 솟는다!" "그때 약탈당한 이후로 오직 복수할 날만을 기다려 왔다!" "단숨에 박살 내자!" 그때 우르르 몰려가는 7,000의 병력을 가르며 한 줄기 폭 풍이 몰아쳤다.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듯한 섬뜩한 기운에 휘감긴 복면의 사내,샴바라였다. 샴바라는 전투 병력을 가르며 폭 탄처럼 날아가 해적들 사이에 떨어졌다. 콰콰콰쾅, 번쩍-! 동시에 샴바라의 몸에서 마치 빛으로 엮은 듯한 그물이 확 퍼져 나갔다. 빛의 그물이 멋도 모르고 샴바라에게 달려들던 해적들을 관통하자 엄청난 데미지가 적용되며 피 분수가 뿜 어져 올라왔다. "뭐,뭐야,저게?" "검이다,단검을 너무 빨리 휘둘러서 빛의 그물처럼 보인 거야!" 압도적인 강함! 해적은 물론,스탄달의 전투 병력조차 잠시 넋을 잃고 바 라볼 정도였다. 그때 해적들의 배후에서 갑자기 1,000여 명의 복면인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은신' 으로 해적들의 배후에 접근한 동방 민족이었다. 동방 민족이 일제히 백스텝을 날리자 해적들이 비명을 질 러 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샴바라와 동방 민족의 활약에 유저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괴, 굉장하다. 스탄달에서 봤을 때는 평범한 NPC처럼 보였는데......" "스탄달 정복 전쟁 때 활약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번 미션 퀘스트는 공적에 따 라 포상을 받는 거잖아. 저 복면을 쓴 NPC들에게 공적을 뺏 기기 전에 한놈이라도 더 처리하자!" "좋아. 서너 명씩 짝을 지어서 한 놈씩 일점사로 처리하는 게 빠를 거야!" 전황이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돌아가자 유저들도 더욱 활 발하게 진투에 참가했다. 그리하여 스탄달 함락을 꾀하던(본문에선 꽤하던) 무 법항의 해적 무리는 불과 두 시간 만에 소탕되었다. 이 소탕 작전에서 파괴된 해적선이 15척, 나포된 해적선 이 17척. 그리고 정의남은 무법항의 창고에 쌓여 있던 27,000골드 상당의 장물을 압수할 수 있었다. 해적선의 가치까지 골드로 환산하면 무려 120,000골드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 수익금은 1차적으로 이번 소탕 작전에 사용된 자금과 작전에 참가한 유저와 NPC의 공적에 맞춰 포상으로 지급되 었다. 그러고도 약 50,000골드가량의 장물이 남았다. 며칠 뒤 그중 20%, 10,000골드가량의 장물이 란셀 마을 의 아크 상점으로 운반되었다. * * * 끼아아아아! 광풍이 몰아치는 산비탈에서 섬뜩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름 끼치는 비명'이 발동했습니다! 《공포에 휩싸여 3분간 이동속도와 공격 속도가 10% 감소합니다 이 효과는 최대 다섯 번까지 중첩될 수 있습니다. 현재 중첩 3회 : 이동속 도와 공격 속도가 30% 감소했습니다.》 "우욱!"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난 아크는 짜증 섞인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거친 모래를 50 대 50으로 잘 반죽해 직구로 날려 대는 듯한 모래 폭풍이 쉴 새 없이 전신을 난타하는 바위산! 고개를 들어 올리고 모래가 파고들어 버석버석 소리가 날 듯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니 마치 사막에서 모래 폭풍 너머로 보이는 신기루처럼,흐릿한 실루엣이 떠올랐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여인의 몸매에 날개가달린 형태였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저런 괴상한......" ” 파바바바,파바바바! 아크가 푸념을 늘어놓을 때 바람 속에서 뭔가가 쏘아져 날 아왔다. 마치 화살처럼 날카로운 촉이 달린 깃털! "젠장,또 시작이군." 바닥을 구르며 바위 뒤에 몸을 숭긴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도적단을 따돌리고 보사카 마을에서 탈출하고 '네크로맨 서의 내단'까지 먹어 치운 아크는 의욕에 차 있었다. 이런저런 자잘한 문제가 많았지만 어쨌든 계획대로 모든 일을 정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회룡족의 고향》 퀘스트뿐!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퀘스트 목적지인 북부 산맥을 향해 본 격적으로 마법 왕국 브라스타니아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아크는 약간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화룡족의 고향》은 레벨 제한 120에 확인할 수 있는 아 이템으로 받은 퀘스트다. 물론 아이템을 얻을 때만 해도 아이탱조차 확인할 수 없었 다. 그러나 퀘스트를 미뤄 두고 그사이 여기저기 돌아다닌 덕 에 현재 아크의 레벨은 370을 넘어섰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와 새삼 레벨 120 수준의 퀘스트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일단 받아 놓은 퀘스트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혹 시 시간만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던 것이다. '아니지, 혹시 몰라.'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화룡족의 고향》은 평범한 퀘스트 아이템으로 시작한 퀘스트가 아니다. 수천 명이 참가한 이벤트 퀘스트에서 단 하나만 나온 퀘스트 아이템이다. 말하자면 뉴 월드에서 오 직 한 사람만이 시작할 수 있는 '유니크(유일) 퀘스트' 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보상도 유니크 아이템이리라. 그리고 레벨이 좀 낮더라도 유니크 아이댐이라면 레벨 300대의 마법 아이댐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이다. 유니크 아이템의 가치는 단순히 방어력이나 공격력이 아 닌 아이템에 붙어 있는 특수 효과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퀘스트의 배경을 생각하면 고난이도의 연계 퀘스 트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 그런 점들을 고려하면 저레벨 퀘스트라고 무시할 수는 없 었다. 그렇게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시작한 퀘스트였지 만 과정은 나름대로 즐거웠다. 당연하게도 마법 왕국 브리스타니아는 지금까지 아크가 살았던(?) 슈댄베르크나 스탄달과는 환경이나 건물, NPC, 심지어 퀘스트까지 모든 것이 색달랐다. 마치 정말 현실에서 외국여행을 나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 였다. 덕분에 아크는 간만에 정말 '온라인 게임' 을 하는 기 분을 만끽하며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아크가 짜증을 내기 시작한 건 목적지인 북부 산백 에 도착한 뒤였다. "빌어먹을,왜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가 고르고 골라 하 필이면 저런 거냐고?" 아크는 공중에서 쉴 새 없이 깃털을 날려 대는 실루엣을 노려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일주일 동안 브리스타니아를 횡단해 도착한 북부 산맥의 화룡산에서 아크를 맞이한 몬스터는 바로 그 실루엣,하피라 는 레벨 350의 몬스터 였다. '덕분에 경험치는 챙길 수 있지만......' ’ 퀘스트의 시작 레벨이 120이니 화룡산에서 출몰하는 몬스 터도 레벨이 낮을 것이다. 그리고 레벨이 200대 수준이변 경 험치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 하피의 레벨이 350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막상 하피와 싸워 보니 차라리 레벨이 낮은 몬스터 가 나타나는 편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피는 여자의 몸에 날개가 달린 몬스터였다. 그러나 여자라고 귀여운 외모를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여자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시퍼런 몸뚱이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해 어지간한 몬스터조차 식겁할 정도의 외모였다. 그러나 문제는 하피의 외모가 아니었다. 어차피 때려잡아야 할 몬스터라면 솔직히 '쭉쭉빵빵'한 여자보다는 괴물 같은 외모가 차라리 속 편하지 않겠는가? 아크가 하피에게 짜증을 내는 이유는 하피의 외모가 아니 라,바로 팔 대신 달려 있는 날개 때문이었다. 날개...... 그렇다,하피는 아크가 가장 귀찮게 생각하는 비행 몬스터였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브리스타니아는 평야가 거 의 없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비행 몬스터가 유난히 많았 다. 그러나 브리스타니아의 유저들에게는 딱히 문제도 되지 않았다. 브리스타니아는 마법 왕국,다른 곳에 비해 마법사 의 비율이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장거리 공격 전문인 마법 사에게 비행 몬스터는 지상형 몬스터보다 쉬운 상대였다 그러나 전사인 아크에게는 이만저만 귀찮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비행 몬스터가 서식하는 지역은 기능한 피해 왔 는데......' 화룡산은 퀘스트 목적지이니 피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었 다. 특히 아크를 미치게 만드는 게 방금 전처럼 위기에 몰리 면 발동되는 '소름 끼치는 비명'. 마치 손톱으로 칠판을 긁어 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 은 정말 이름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덕분에 아크는 상태 이 상과 함께 전투 의욕까지 뚝뚝 떨어졌다. 더구나 '음향효과' 로 분류된 기술이라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도 아니었다. 어쨌든 날아다니며 상태 이상까지 걸어 대니 한 마리를 사 냥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소름 끼치는 비명'이 고막을 흔들어 대자 한결 몸이 둔해진 느낌이 들었다. 아크가 바위 뒤에 숨어서 움직이지 않자 하피가 발톱을 세 우고 모래 폭풍을 가르며 돌진해 왔다. 10여 미터 상공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공격! 높은 확률로 치명타를 터뜨리는 위험한 공격이었지만,오 히려 아크에게는 하피를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아크는 바위 뒤에서 굴러 나오며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촤라라락, 따다다당! 채찍처럼 늘어난 본 블레이드가 바람을 가르며 연속적인 데미지를 주었다. 충격을 받은 하피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었다. 아크가 튕겨져 일어나며 또다시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하피가 크게 날개를 펄럭 이자 빠르게 몸이 떠올랐다. 아크가 곧바로 방향을 바꿔 본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하 피는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바위산에 몰아치는 바람을 이용한 하피의 비행 속도는 상 상을 초월했다. 반면 아크는 바위산에 몰아치는 바람이 거친 모래를 휘날 려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하피가 빠르 게 움직이자 위치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환경적 요소가 아크에게는 페널티를,하피에게는 상당한 어드밴티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하피가 그렇게 날아오르면 채찍으로 변한 본 블레이 드도 닿지 않았다. 키키키키,키키키키! 사정거리를 벗어난 하피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놀리듯 히죽거렸다. "좋아. 그렇게 나오신다 이거지?"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하피를 노려보다가 주먹을 꽉 움 켜쥐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록온lock-on' 했다. 멍청한 늙은 까마귀야. '영혼 갈취'!" 순간 아크의 주먹에서 투명한 손이 쭉 뻗어 나갔다. 괴상한 손이 날아들자 하피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날개 를 퍼덕이며 도망쳤다. 그러나 아크가 주먹을 움직이자 반투명한 손이 하피의 궤 도에 따라 움직이더니 결국 몸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고 무줄처럼 다시 아크에게 돌아왔는데,투명한 손에는 하피의 몸에서 딸려 나온 정체불명의 흐릿한 형체가 쥐여 있었다. -영혼 갈취로 하피의 영혼 일부를 빼앗았습니다! 《하피의 영혼을 갈취해 50의 타격을 주고 시전자의 영력을 약간 상 승시켰습니다.》 "후후후,이게 의외로 쓸 만하단 말이야." 아크가 메시지창을 확인하며 히죽 웃었다. 아크가 시용한 기술은 바로 '네크로맨서의 내단'으로 새 로 익힌 '영혼 갈취'였다. 사실 처음에 '영혼 갈취'스킬의 정보창을 확인했을 때는 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몇 번 사용해 보니 스 킬 정보창의 설명이 좀 부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실전에서 활용해 보니 꽤나 쏠쏠했던 것이다. 보너스 스탯으로 올릴 수 없는 '영력'을 올릴 수 있는 스킬 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뭣보다 아크의 마음에 드는 건 '영혼 갈취' 의 사정거리가 무려 30~40미터나 된다는 점이었다. 상급 '궁술'을 익힌 궁수의 사정거리와 맞먹는 거리! 아크가 그나마 하피를 상대할 수 있는 것도 '영혼 갈취' 덕분이었다. 데미지가 50이라지만, 제대로 맞지도 않는 초 급 '궁술' 로 화살을 날리는 것보다 100배 나은 효과를 발휘 하는 것이다. 게다가 '영혼 갈취'는 마나 소모와 대기 시간 이 없는 스킬! 단 하나 '영혼 갈취' 의 애로 사항은 스킬을 시용하기 전 에 먼저 상대를 '록온'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록온' 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상대를 '주시注視' 해 야 하는데,모래 폭풍 속에서 빠르게 날아다니는 하피를 ‘록 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도중에 공격을 받으면 그때까지 '주시' 한 시간이 초기화돼 버렸다. 그러나 일단 '록온' 에 성공하면 특수한 경우가 아닌 한 전 투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잘도 설쳐 댔겠다? 넌 이제 뒈졌어. '영혼 갈취'! '영 혼 갈취'! '영혼 갈취'...... 아니,이건 아니지. '영혼 갈취'!" 아크는 휘청휘청 도망치는 하피를 뒤쫓으며 '영혼 갈취' 를 난사했다. 그때마다 투명한 손이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가 하피의 영 혼을 뚝뚝 잡아떼 가져왔다. 저렇게 기분 나쁘게 생긴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하고 있다 고 생각하면 기분이 더럽지만, 그런 결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하피는 생명력이 10% 이하까지 내려가면 아예 바위산 위 로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생명력을 다시 100%로 만들어 기 습해 오는 비겁한 몬스터였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생명력 을 깎아 놓아야 한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역시나 생명력이 7%까지 떨어지자 하피가 허둥지둥 바위 산 위로 날아갔다. "지금이다,라카드 '암흑돌진'!" "오케이 ㅡ !" 아크의 명령에 바위틈에 숨어 있던 라카드가 화상처럼 쏘 아져 하피의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불의의 기습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하피가 불쌍하게 중심 을 잃고 흔들렸다. 그러나 라카드는 인정사정없는 박쥐였다. 라카드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아래를 향해 떨어지며 박치기를 날려 댔다. 그때마다 하피는 망치에 두들겨 맞는 못처럼 수 미터씩 아래로 내려왔다. "거기서 얼쩡거리지 말고내려와서 결판을내자고!" 하피가 사정거리까지 내려오자 아크가 본 블레이드를 휘둘 러 하피의 발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본 블레이드를 어깨에 걸 치고 마치 업어치기를 하듯이 하피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게 도망치는 하피를 잡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처음 바위산에 도착했을 때,아크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비행 몬스터를 상대할 때처럼 라카드로 유인해 채찍처럼 늘 어나는 본 블레이드로 하피와 싸우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피는 본능적으로 비행 물체를 먼저 공격하는 습 성을 지닌 몬스터였다. 라카드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으면 아크가 무슨 짓을 하든 죽자 살자 라카드만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수십 미터 상공에서 공중전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아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현재 라카드의 능력치는 레벨 270 수준. 아무리 훈련을 받은 소환수라고 해도 공중에서 레벨 350 의 하피와 1대1로 붙으면 승산이 없었다. 때문에 라카드는 화룡산에서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 뒤로 아크는 전투 중에는 라카드를 활용하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매복시켜 놨다가 좀 전처럼 하피가 도망갈 때 기습을 가해 발목을 잡는 용도로만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라카드는 충실해 제 역할을 해 주었다. 라카드가 날린 분노의 박치기와 본 블레이드에 걸려 바닥 에 내동댕이쳐진 하피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다. 아무리 비행 몬스터라도 그리 쉽게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한 두고 볼 아크도 아니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아크는 '전력질주' 로 몸을 날리며 본 블레이드로 하피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쩍 소리가 나며 검이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 전해졌다. 결국 엿가락처럼 질기던 하피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몇 번 날개를 퍼덕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하피가 쓰러지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휴, 이제야 레벨이 1 올랐군. 사냥 시간은 몇 배나 걸리 지만,이 정도면 그럭저럭 여기까지 오면서 사냥할 때와 경 험치가 오르는 속도는 비슷한가?" 아크는 캐릭터 정보창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피는 아크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였지만,비행 몬스터 는 일반몬스터에 비해 경험치를 20% 더 주었다. 덕분에 한 마리,한 마리 잡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도 같은 레벨의 다른 몬스터를 사냥할 때와 경험치가 오르는 속도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아크 종족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2,365(+500) 레벨 371 직업 : 다크 소울 칭호 : 캣 나이트, 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6,965(+225) 마나 : 7,155(+25) 영력 : 407 힘 : 757(+36) 민첩 : 947(+110) 체력 : 1,187(+35) 지혜 : 173(+10) 지능 : 1,255(+5) 운 : 167(+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153 유연성 : 168 화술 : 69 애정 : 134(+10) 탄력도 : 439 어둠의 안개 : 24 *장비 아이템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징갑):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도약' 사용 가능 *《수왕》세트 효과 : 힘+20, 민첩+20, 체력+20, 방어력+4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갈가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 50% 미만 '마력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 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10%, 치영티율+8% '어둠 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접,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 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세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스킬 포인트 : 80 "나쁘지 않군." 아크는 흐뭇한 얼굴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아크는 화룡산으로 올 때도 일부러 레벨이 높은 몬스터가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덕분에 일주일 사이에 레벨을 5나 더 올려 371까지 올릴 수 있었다. 물론 좋은 사냥터에서 자리를 잡고 사냥했다면 이보다 2~3레벨은 더 올렸겠지만, 경험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퀘스트를 진행하며 이 정도 수준이면 나쁘지 않았다. 화룡산에는 비록 상대할 때마다 짜증이 솟구쳤지만 하피 가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대강 정리된 것 같은데......" 처음 화룡산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몇 걸음만 걸으면 하피 가 습격해 왔다. 때로는 한 번에 서너 마리가 몰려나와 아크 조차 도망쳐야 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화룡산 중턱을 이틀 정도 돌아다니자 이제 하피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방금 전에 처리한 하피도 20분 만에 만난 녀석이었다. "어쨌든 주변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정상으로 올라가야 할 텐데......." 사실 아크가 화룡산 중턱에서 하피의 씨를 말린 건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경험치를20% 더 준다고는 하지만 하피 사냥은시간도많 이 걸리고 꽤나 번거로운 일이다. 게다가 나오는 잡템도 그리 좋지 않았다. 지형도 불편하 고 시야도 제한되는 화룡산의 모래 폭풍 속에서 하피를 사 냥하느니 차라리 산 아래에서 잡몹을 사냥하는 편이 효율적 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하피를 사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중 턱을 이틀이나 헤매고도 목적지인 화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 을 찾지 못해서였다. 산 중턱까지는 비교적 원만한 경사 길이 있었다. 그러나 중턱부터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막고 있어 더 이 상 올라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퀘스트를 받을 때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는 화룡산의 중심 에 찍혀 있어. 다시 말해 화룡산의 정상이라는 말인데...... 중 턱을 몇 번이나 돌아봐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단 한곳, 올라갈 수 있을 만한 길이 있는곳은 저기뿐인데......'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해 본 아크는 멀리 떨어진 맞은편 언덕을 바라보았다. 어제 저녁 무렵 모래 폭풍이 멈췄을 때, 맞은편 언덕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원만한 경사 길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아크가 있는 위치에서 반대편 언덕까지는 수 십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것은 바닥조 차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때문에 아크는 일단 반대편 언덕은 포기하고 이틀 동안 샅 샅이 주변을 뒤져 봤지만 현재 헤매고 있는 산 중턱에서는 정상은 물론, 반대편 언덕으로 이어진 길도 없었다. 그렇다 면 남은 방법은 하나, 계곡을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이다.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나?"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아크는 처음 반대편 언덕을 발견했을 때부터 낭떠 러지를 넘어갈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바로 뱀파이어 영지에서 직접 제작한 행글라이더를 이용하는 방법! "행글라이더는 원하는 곳까지 마음대로 날아갈 수 있는 비 행기가 아니야. 하지만 다행히 이곳은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지역이다. 타이밍을 잘 맞춰 바람을 타면 맞은편 언덕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이제 남은 방법은 그것뿐이야" 물론 행글라이더를 타고 계곡을 넘어가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화룡산에서 헤맬 수는 없으니 죽이 되 든 밥이 되든 해 보는 수밖에 없다. 또한 생각대로 안 된다고 해도 '슬라임의 시간' 을 사용하 면 낙하 데미지를 받지 않는다. 물론 계곡 아래로 떨어지면 또다시 꽤 헤매야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결정을 내린 아크가 등 뒤의 바위 더미를 향해 소리쳤다. "북실이!" 그러자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북실이가 어슬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백구를 잃은 뒤로 북실이는 계속 그렇게 축 늘어진 환자와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북실이에게 백구의 빈자리가 예상보다 큰 모양이다 "왜요?" "아무래도 저 언덕까지 행글라이더를 이용해 이동해야 할 것 같아. 행글라이더에 두 명이나 타면 아무리 바람을 잘 받 아도 언덕까지 날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일단 눈알 하나만 내게 붙여 놓고 너는 산 아래에서 야영지를 만들어 놓고 기 다려." "맘대로 하세요." "나 없다고 놀지 말고 식재료나 모아 놔. 식재료도 몇 개 안 남았잖아."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북실이는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대답했 다. 그런 북실이의 태도에 짜증이 일었지만 아크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두들겨 패서라도 정신이 바짝들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북실이는 게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쥐어 패면 정말 게임을 접을지도 모른다. 만의 하나라도 북실이가 정말 게임을 접어 버리면 아크에 게도 상당한 문제가 생긴다. 때문에 아크는 일단 적당히 기 분을 맞춰주기로 했다. 그러나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날씨는 덥지, 모래바람은 불어오지, 이틀이나 돌아다녀 도 길은 안 보이지, 거기에 북실이까지 젖은 걸레처럼 축 늘 어져 있지...... 이래저래 정말 짜증 나는군' 아크는 북실이를 노려보다가 팩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라둔, 행글라이더." 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입을 쩍 벌리며 자기 몸의수백 배는 될 듯한 행글 라이더를 토해 냈다. 행글라이더를 꺼내 든 아크는 바람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 렸다. 그렇게 잠시, 바람이 계곡을 향해 불어오자 '전력질 주'로 절벽을 향해 달리다가 힘차게 몸을 띄웠다. 잠시 휘청거리던 행글라이더는 아크가 몸을 움직여 중심 을 잡자 곧 바람을 타고 안정적으로 비행했다. "됐어 이 정도면 무리 없이 반대편 언덕에 닿을 거야! 어라?"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반 정도 날이왔을 때 갑자기 측면에서 돌풍이 휘몰아쳤다. 순풍을 받으며 날아가던 행글라이더는 대번에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아크는 황급히 체중을 이동시키며 다시 중심을 잡 았지만, 돌풍에 휘말리는 사이 예상보다 고도高度가 수 미터 나 낮아져 버렸다. "이, 이런 제기랄, 망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 반대편 언덕을 확인한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아크가 걱정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행글라이더의 비행은 정확히 말하면 활강이다. 동력을 가진 비행기라면 상승과 하강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겠지만, 오직 풍력에 의존하는 행글라이더는 상승기류 를 타지 않는 한 아래를 향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계산대로라면 제대로 바람을 타도 아슬아슬한 거리였는 데......" 계곡 중간에서 이미 수 미터나 고도가 낮아졌다면 말할 필 요도 없었다. 이대로 돌진하면 목적지인 언덕 위가 아니라 절벽에 처박 히고 말리라. '빌어먹을, 실수다. 출발하기 전에 내가 있던 언덕의 바람 만이 아니라, 계곡 중심부의 풍향을 확인했어야 히는데, 북 실이 때문에 찌증이 나서 대충 출발한 게 문제였어.' 아크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어쨌든 이 속도로 절벽에 처박히면 어떻게 될지 몰라. 만 의 하나라도 상태 이상 같은 게 발동된 상태로 추락하면 꼼 짝없이 죽는다. 차라리 지금 뛰어내려서 '슬라임의 시간' 을 발동시키는 편이 나으려나?' 그러나 그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아크가 뛰어내리면 주인을 잃은 행글라이더는 절벽 에 처박힐 수밖에 없다 대충 만들어서 내구력이 20밖에 되 지 않는 행글라이더는 단숨에 박살 나리라. "그건 안 돼! 내가 이걸 만드는 데 얼마나 고생했는 데...... 뭔가,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그때 반대편 언덕 위에서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하피가 눈 에 들어왔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라카드, 저놈이다! 저놈을 도발해서 이리로 끌고 와!" "응? 왜?" "시끄러워! 닥치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 "아, 알았어!"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라카드가 허둥지퉁 반대면 언덕으 로 날아갔다. "어이, 쭈글쭈글한 까마귀 할망구야! 한번 붙어 볼까?" 라카드가 '도발' 을 사용하자 하피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 들었다. 라카드는 하피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아크가 있 는 계곡 아래로 날아왔다. 그때 아크가 본 블레이드를 휘둘러 하피의 발목을 휘감으 며 소리쳤다. "됐어.이제 다시 반대편 언덕으로 유인해!"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이, 할망구! 어딜 보는 거 냐? 이쪽이다! 나잡아봐라~." 라카드가 혀를 날름거리며 '도발' 을 난사했다. 다시 말하지만 하피는 원래 비행 물체를 먼저 공격하는 습 성을 가진 몬스터. 게다가 저레벨 소환수 주제에 중급 '도 발'까지 써 대자 완전히 꼭지가 돌아버렸다. 하피는 아크가 본 블레이드로 다리를 휘감은 것조차 잊어 버리고 전력을 다해 라카드를 쫓아갔다. 아크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쥐똥만 한 라카드로는 어림도 없지만, 크기가 2미터에 달 하는 하피가 분노의 날갯짓을 해 대자 하피의 발목을 잡고 있던 아크의 행글라이더도 덩달아 점차 고도가 높아졌다. 그리고 잠시 후, 아크는 아슬아슬하게 반대편 언덕에 착지 할 수 있었다. "고맙다, 하피! 이건 상이다. '다크 블레이드'!" 재빨리 행글라이더를 집어넣은 아크가 하피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끼이이익? 끼이이익? 그제야 하피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결국 죽어라 날갯짓을 해서 아크를 살린 하피는 그 자리에 서 다져진 닭고기가 되어 버렸다. "휴, 됐어. 일단 길은 찾았다" 하피를 처리한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반대편 언덕에서 확인한 것처럼 근처 바위 사이에 정상 까지 연결된 경사 길이 보였다. 아크는 그 뒤로 간간이 나타나는 하피를 사냥하며 화룡산 을 오르기 시작했다. 반대편보다는 완만하다고는 하나, 바 위산을 오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로 위쪽의 바위를 휘감고 암벽등반을 하듯이 기어오르거나, 적당한 높이는 ‘도약’ 을 사용해 뛰어 오르며 조금씩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5~6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바위를 ‘도약’ 으로 뛰어올랐 을 때였다. 모래 폭풍이 점차 잦아지더니 눈앞에 넓은 고원高 原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정상인가?" 아크는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막상 정상에 올라와 보니 마치 신세계와 같았다. 고원은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었고, 그 경계는 정말 문자 그대로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보였다. 발아래에는 모래 폭풍이 휘몰아쳐 제대로 지형조차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그곳만 뚝 떨어져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이 보였 다. 그런 곳에 홀로 서 있으니 마지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 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기분 때문에 사람들이 등산을 하는 거겠지?" 그러나 아크는 등산이 목적이 아니다. 죽자 살자 화룡산을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 퀘스트를 해 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크는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퀘 스트를 해결할 만한 장소를 찾아냈다. 아니, 찾아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고원에 오르자마자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직경이 수십 킬로미터는 될 듯한 검은 돔(Dome : 반구형으로 된 지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여기가 퀘스트의 목적지인 모양인데......" 아크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돔에 다가가려 할 때였다. "웬놈이냐!" 쿵, 쿵, 쿵, 쿵! 뒤쪽에서 지축이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합께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아크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존재를 확인 하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헉, 뭐, 뭐야? 저 녀석은 설마......?" 아크에게 다가오는 것은 크기가 20여 미터나 되는 거대한 몬스터였다. 전신에 검은 불길을 휘감은 20여 미터 크기의 몬스터! 하반신은 드래곤, 상체는 붉은갑옷을 걸친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었다. 아크는 오래전에 작센 영지에서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어둠의 군단을 지휘하다가 아크의 검에 숨을 거둔 어둠의 마군장! 그 이름은....... "......에엑? 서, 설마....... 발데라스?" * * * "흑, 백구야......" 북실이가 산비탈을 내려오며 훌쩍거렸다. 눈알을 붙여 놨지만 북실이는 아크가 뭘 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아크만이 아니었다. 백구를 잃은 뒤로 북실이는 게임 자체에 관심이 없어졌다. 백구는 뉴 월드의 수많은 NPC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백 구가 보여 준 모든 행동은 뉴 월드의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북실이도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이해되는 것은 별 개의 문제였다. .......백구를 쓰다듬을 때의 감촉과 체취,게임에 접속하면 백구와 함께 놀던 추억이 떠올라 가슴이 저려 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기대와 달리 증세는 더 욱 심각해져 근래에는 게임에 접속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동영상이고 뭐고,이제 아무것도 관심이 생기지 않아 내 가...... 내가 그런 동영상을 찍지만 않았어도 백구는......." 흑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내가 이대로 게임을 접어 버리면 백구의 죽음은 그냥 개죽음이 되겠지? 게임을 접을 때 접더 라도 셀리브리드에 백구의 통상을 세워야 해. 그래. 그때까 지는 절대 게임을 접을 수 없어 하지만..... 하지만...... 흑, 아직도 눈을 감으면 백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북실이가 훌쩍거리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주인님 ㅡ !" 자나 깨나 북실이 생각만 해서일까? 아크와 떨어져 흔자 되니 바람을 타고 백구의 생생한 목소 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더욱 감정이 북받친 북실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 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혹흑흑, 백구야. 아직 네 목소리는 이렇게 생생한 데......" “주인님 ㅡ !" 그때 또다시 귓가로 백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게 아니었다.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백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 북실이가 사방을 둘러보며 정신 나 간 사람처럼 소리쳤다. "헉! 뭐,뭐야? 백구? 설마 정말 백구의? 어디냐? 어디 야? 정말 백구냐?" "주인님,여기예요 ㅡ !" 그때 모래 폭풍 반대편에서 흐릿한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북실이는 얼어붙듯 걸음을 멈추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알이 으깨질 정도로 비벼 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부릅뜨자 방금 전의 영상이 좀 더 선명 하게 떠올랐다.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산비탈 아래에서 뭔가 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실루엣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북실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꿈에서조차 잊지 못했던 자신의 애완견 백구! 죽었다고 생각한 백구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달려오 고 있는게 아닌가? “배,백구야!" “주인님!" 북실이는 데굴데굴 구르듯 산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그러자 마주 달려오던 백구가 펄쩍 뛰어 북실이를 얼싸안 고 꼬리를 흔들며 핥아 댔다. 개 침이 얼굴에 덕지덕지 묻었지만 지금 북실이에게 그런 것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애완견이 살아 돌아왔다! 보사카 마을에서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화룡산까지! 이게 꿈이든 환상이든 제발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우오오오, 배,백구야 내가잘못했다. 내가 못나서......" “흑흑흑,아니에요,주인님 제가 주인님을 제대로 지켜 드리지 못해서......." 북실이와 백구는 부둥켜안고 눈물을 철철 흘렸다. “오오,정말 백구구나. 정말 백구가 살아 돌아왔어. 흑,고 맙다,살아 줘서.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그 나 쁜놈들에게서 빠져나온 거야? 다친 데도 없어 보이고......" “네? 그,그게 저......" 백구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머뭇거릴 때였다. 백구의 등 뒤에서 한 사내가 모래 폭풍을 뚫고 걸어 나오 며 중얼거렸다. “흠, 좋은 장면이야,역시 개와 주인은 이래야지. 괜히 내 코끝도 찡해지는걸." 그러자 뒤따라 걸어오던 엘프 여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 로 쏘아붙였다. “흥,개 한 마리 때문에 질질 짜는 게 뭐가 좋은 장면이라 는 거야?" “헉,다,당신들은......?" 뒤늦게 사내와 엘프 여자를 확인한 북실이의 얼굴이 하얗 게 질려 버렸다. * * * '저 녀석들은......?' 아크와 북실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들을 만나 당혹성 을 터뜨리고 있던 시각. 그곳에서 남쪽으로 1,0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똑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었다. '은신' 을 사용해 어둠 속 에 몸을 숨기고 있는 복면의 사내는 바로 샴바라였다. 샴바라는 얼마 전, 스탄달에서 해적을 소탕하고 란셀 마을 에 도착해 있었다. 이사벨의 약속대로 노획물의 20%를 아크 상점으로 옮기 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일부러 샴바라가 운송의 책임자로 나선 것은 다른목적이 있어서였다. 정의남을통해 이번에 전직한 '갓킬러' 직업 퀘스트의 마 무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을 영뚱하게 란셀 마을에서 놀고(?) 있는 로코에게서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 문이다. 그런데 기분 전환 삼아서 찾아온 란셀 마을에서 샴 바라는 뜻밖의 사건을 접하고 말았다.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뜻밖의 인물과 접했다고 해야 맞으 리라. '저 녀석들이 어떻게 이곳에? 만약 저 녀석들이 근래 란셀 마을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원흉이라면....... 이건 내 예상 보다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라.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샴바라는 각인시키듯 눈앞의 사내들을 바라보다가 동굴을 빠져나왔다. --------------- 오타수정자:2262382 -배포하는것은 괜찮지만 수정자 이름 바꾸는것은 못참습니다- To Be continued. 아크 17권 T.Y.P.I.N.G.B.Y.P.R.O.J.E.C.T.E.A.S.T.E.A.R.N HTTP://cafe.naver.com/sosur1204 인터넷 소설닷컴 카페.-타이핑 출처 지우셔도 됩니다 무한배포 해주세요. ACT 1 받지 말았어야 할 퀘스트 ACT 2 위기를 기회로! ACT 3 재활 치료 ACT 4 드라고 니안 ACT 5 악마의 정체 ACT 6 다크소울 VS 비스트 마스터 ACT 7 신격 스킬 발동 ACT 8 잃어버린 대박의 꿈을 찾아서! ACT 9 란셀 마을의 위기 ACT 1.받지 말았어야 할 퀘스트 카각, 카각, 카각, 카각! 전후좌우, 사방에서 말초신경을 긁어 내는 듯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도시의 가로등이 일시에 켜지듯 어둠 속에서 수십개의 붉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눈동자 아랫부분이 갈라지며 붉은 공간이 나타났다. 아크 정도는 한입에 삼켜 버릴 거대한 놈들의 아가리! 아가리 속에서 날카로운 송곳니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바늘처럼 작고 날카로운 돌기가 빼곡하게 돋아난 혓바닥이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며 아가리 밖으로 밀려 나왔다. 처음에 놈들이 나타날 때도 같은 연출을 봤지만, 그때는 코웃음도 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놈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아크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아크는 주춤주춤 물러나며 생명력과 마나를 확인해 보았다. 방금 전 전투를 치르던 장소에서 놈들을 몽땅 해치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 생명력과 마나를 모두 회복했으리라. 그러나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아 무작정 눈에 보이는 대로 도망친 것이 실수였다. 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다시 놈들에게 둘러싸여 버린 것이다. 덕분에 현재 남은 생명력과 마나는 50%도 되지 않았다. 상태가 심각한 건 아크만이 아니었다. “젠장, 뭐야? 대체 어쩌라고?” 딱딱, 딱딱딱딱! 연이은 전투로 소환수 역시 생명력이 간당간당했다. ‘지금 상태로 놈들과 싸우는 건 무리다. 하지만......’ 아크는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 상황을 점검해 보았다.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전 전장에서 탈출하는 것만 생각한 나머지 전체적인 지형을 고려하지 못했다.무턱대고 이동한 탓에 진행 루트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또한 이제는 되돌아가는 길마저 사라졌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장기로 따지면 외통수! 진행 루트와 함께 퇴로마저 사라진 것은 이 지역의 특수한 지형 때문이었다. 그것은..... 크캬캬캬캬, 크캬캬캬캬! 그때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 오던 검은 형체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나 되는 몬스터에게 파묻혀 아크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응ㄹ 정도였다. “어쨌든 불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크가 양손으로 귀살검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잠깐의 휴식도 없이 다시 수십 마리의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최악의 상황! ‘이딴 곳에서 순순히 저런 놈들의 밥이 될 것 같으냐?’ “라카드, 도발로 후미의 놈들을 반대쪽으로 유인해라!” “아, 알았어. 받아랏, 이틀 동안 양치도 안 한 가래침 공격! 카악, 퉤! 퉤! 퉤! 퉤!” 라카드가 더럽기 짝이 없는 가래침을 사방으로 난사하며 소리쳤다. 아크에게 몰려들던 검은 형체들이 홱 몸을 돌렸다. 뒤이어 날카로운 혓바닥이 빗발치자 라카드가 기겁하며 도망쳤다. 그러자 5마리의 검은 형체가 바퀴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라카드를 뒤쫓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라자크!” 딱딱딱딱, 따당-! 아크의 명령에 라자크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어 세차게 방패를 휘두르자 얻어맞은 세 놈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다크 블레이드!” (다크 스트라이크 아닌가??) 아크는 라자크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돌진하다가 튀어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순간 검날이 어둠과 동화되어 사라졌다가 수 미터 떨어진 곳에서 불쑥 솟아 나오며 치명타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몇 배나 되는 놈들이 몰려들었다. “헉!” 아크가 황급히 뒤로 물러나자 라자크가 방패를 들고 앞을 가로막았다. 뒤이어 격렬한 충돌음이 울리며 라자크는 수 미터나 밀려나다가 풀썩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황급히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한 놈이 뛰어올라 라자크를 몸으로 내리찍었다. 당황한 라자크가 방패를 휘둘러 놈을 쳐 냈다. 그러나 뒤이어 뛰어오른 놈들이 연속적으로 내리찍자 그렇지 않아도 자세가 불안했던 라자크는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놈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었다. 콰콰쾅, 콰콰쾅, 콰콰쾅! 라자크가 바닥을 긁어 대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써 댔지만 놈들의 혓바닥에 칭칭 감겨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혓바닥에 둘둘 말린 라자크의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이, 이런 젠장.....라자크, 소환 해제! 재소환!” 다급해진 아크가 소리치자 라자크가 사라졌다가 다시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위기를 넘겼다고 하기에는 상태가 심각했다. 둘둘 말려서 집중 공격을 받은 탓에 라자크는 그야말로 넝마가 되어 있었다. 남아 있는 생명력도 고작 15% 남짓.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1분도 버티지 못하리라. '하지만 아직은 라자크를 사용할 방법은 있어!' "강철 같은 충성심!" 라자크의 몸이 딱딱하게 굳으며 강철로 변했다. '강철 같은 충성심'을 발동시키면 충성도가 방어력으로 전환되어 기본 방어력에 가산된다. 물론 방어력이 높아져도 생명력이 닳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라자크의 충성심은 952. 기본 방어력이 탄탄한 라자크에게 952의 방어력이 가산되면 15% 남짓의 생명력으로도 상당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강철 같은 충성심'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스킬이 적용되는 동안 적을 공격하기는커녕 아예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놈들 사이에 장애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아크가 라자크를 다시 불러내서 '강철 같은 충성심'을 사용한 이유는 그 때문이였다. 지금 아크가 놈들과 싸우는 장소에는 이렇다 할 지형지물이 없었다. 그러나 라자크를 강철화시켜서 세위 두면 일종의 벽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즉, 적의 공격을 4면에서 3면으로 줄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당장 급한 불을 끈 것에 불과했다. 여전히 수십 마리에게 포위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뭣보다 지금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야!' 아크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보았다. 갑옷과 장갑, 신발, 망토.... 한눈에 보기에도 모든 장비품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장비 점검할 시간이 없어서 내구력이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인 것이다. 이대로 무리한 전투를 계속하면 장비품 몇 개는 박살 라리라. 그게 아크가 적극적으로 전투를 펼치지 못하는 이유였다. 마음 같아서는 차라리 위험한 장비품을 벗고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럴 새도 없이 전투가 시작됐다. 그리고 뉴 월드에서는 전투 중에 교체할 수 있는 장비품은 검과 방패뿐, 방어구는 교체할 수 없는 것이다. '틀림없이 탈출 기회는 온다. 일단 버티다가 기회를 봐서 탈출하는 수밖에 없어.' "다크 블레이드! 다크.....커헉!" 그떄, 라자크를 벽으로 이용하며 싸우던 아크의 옆구리에 날카로운 충격이 전해졌다. 날카로운 돌기가 돋아난 혓바닥이 스키고 지나자 목 언저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따. 동시에 시야가 거칠게 흔들리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회심의 일격'을 당했습니다. 데미지 300! ≪'출혈'에 걸려 전투가 끝날 때까지 10초당 4의 데미지를 받습니다.≫ '크, 큰일이다!' 아크는 내심 비명을 터뜨렸다. 데미지 300. 생명력이 50%도 남지 않은 아크에게는 무시 할 수 없는 데미지였다. 그러나 아크가 비명을 터뜨린 것은 데미지 때문이 아니었다. 또한 10초에 4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출혈'도 아니었다. 문제는 '출혈' 그 자체였다. 번뜩-! 피가 나오자 놈들의 시선이 동시에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지금까지의 놈들은 아크 주변에 몰려 있다고 해도 무작정 아크만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20~30마리나 되는 놈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했다면 아무리 아크라도 진즉에 걸레가 되어 버렸으리라. 그러나 놈들은 역시 몬스터라 그렇게 조직적이지 않았다. 강철화한 라자크를 공격하는 놈들도 있었고, 거리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놈들은 딴청을 피우기도 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아크는 황급히 식의 스킬로 만들어 놓은 '고약'을 붙여 '출혈'을 막았다. 그러나 이미 따끈따끈한 신선한 먹이의 냄새에 맛이 간 놈들이 아크에게 몰려든 뒤였다. 그대로 우르르 몰려와 깔아뭉갤 기세였다. '이대로 밀리면 끝장이다!' 이대로 놈들에게 짓눌려 다구리(다굴)를 당하면 생명력은 물론 장비품도 버티지 못하리라. "안 돼, 절대 안 돼! 화격!" 아크는 얼굴로 날아드는 혓바닥을 쳐 내며 화격으로 연결시켰다. 일단 놈들을 밀어내고 움직일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스르르르. 문득 혓바닥을 날렸던 놈의 몸이 안개처럼 흐려졌다. 일시적으로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공격을 피하는 특수 능력 '투명화'! 덕분에 검은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고, 뒤따라오던 놈이 날린 혓바닥에 가슴을 두들겨 맞았다. - '카운터 어택'에 적중당했습니다. 데미지 400! ≪화격에 대한 카운터 어택 패널티가 적용되었습니다.≫ 적을 10미터 밖으로 튕겨 내는 '화격'! 그 '화격'에 대한 카운터 어택이 적용되자 오히려 아크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아크는 황급히 검을 세위 바닥에 내리꽂았다. 다행이 빠른 반응속도 덕분에 점차 밀려나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채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기도 전에, 뭔가 덜컥하는 느낌이 들더니 몸이 아래로 쑥 빠져 버렸다. 아크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돌출된 돌부리를 움켜쥐었다. '맙소사!' 간신히 추락을 면한 아크가 망연자실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낭떠러지 아래...... 그곳은 시뻘건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용암의 강 상공에는, 작게는 몇 미터에서 크게는 100미터나 되는 크기의 땅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크가 매달려 있는 곳 역시 그런 원반형 땅덩어리 가운데 하나였다. 아크가 위기에 처했음에도 바로 그 지역을 탈출하지 못한 이유가 그 때문이였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먼저 불규칙하게 날아다니는 땅덩어리가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접근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만약 실수라도 해서 용암에 빠진다면..... 차라리 그냥 죽으면 그나마 낫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생명력이 바닥나기 전에 먼저 내구력이 바닥인 장비품에 화염 데미지가 적용되어 박살이 날 게 분명했다.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어쨌든 아크는 간신히 돌부리를 잡아 용암으로 다이빙하는 것만은 모면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아크가 돌부리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자 가장자리까지 몰려온 놈들이 혓바닥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주, 주인!"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라카드가 비명을 터뜨렸다. "아, 그렇지. 라카드, 지금 유인하는 놈들을 내버려 두고 일단 여기 몰려 있는 놈들을 도발해서 반대쪽으로 유인해!" "어? 아, 알았어!" 아크의 명령에 라카드가 전속력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그게 치명적인 실수였다. 라카드는 쉬지 않고 '도발'을 사용해서 5마ㅇ리의 몬스터를 몰고 다니는 중이였다, 그런 라카드가 무턱대고 아크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자 몬스터들도 덩달아 몰려왔다. 그리고 아크를 공격하느라 가장자리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과 충돌해 버린 것이다. 결과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주인, 내가 왔어! 어라? 어어어....힉!" "자, 잠깐. 이 멍청아! 달고 다니던 놈들은.....우왁!" 아크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비명을 터뜨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와르르르. 가장자리에 모여 있던 놈들이 등을 떠밀려 도미노처럼 용암으로 떨어져 내렸다. 당연히 아크의 머리 위로도 몇 마리가 떨어져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아크는 돌부리를 놓치고 말았다. "나, 난 몰라. 나는 주인이 시켜서 했을 뿐이야!" 라카드가 지레 겁을 집어먹고 변명을 해 댔다. '비, 빌어먹을! 마, 망했다!' 아크는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곳에 들어오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곳인 줄 알았으면 연계 퀘스트 따위 받는 게 아니였어!' "웬 놈이냐?"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린 아크는 얼빠진 표정으로 눈앞의 거대한 괴물을 바라보았다. "물러가라! 이곳은 화룡족의 영역. 인간이 올 곳이 아니다!" 아크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체구의 거인. 그러나 그건 상반신 뿐, 하반신은 전혀 이질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돋아난 네 개의 다리, 당장이라도 불길을 일으킬 듯한 열기를 뿜어내는 비늘에 뒤덮인 동체, 그 뒤로 길게 늘어져 있는 꼬리, 그것은 틀림없이 드래곤의 몸이였다. 그리고 아크는 그런 형태의 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아크보다 먼저 반응한 것은 라카드였다. "히익, 바, 발데라스다!" 라카드가 비명을 터트리며 얼른 아크의 등 뒤에 숨었다. 그렇다. 이벤트 퀘스트에서 등장한 최종 보스,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 그러나 작센에 나타난 발데라스를 발라 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다. 이미 오래전에 먼 길 가신 몬스터가 이유도 없이 되살아나 이런 곳에서 등장할 리가 없었다. 과연 자세히 살펴보니 아크가 기억하는 발데라스와는 약간 달랐다. 발데라스는 판금 갑옷에 철퇴를 든 전사였지만, 화룡산 정상에서 나타난 괴물은 붉은 가죽 갑옷에 석장을 들고 있었다. 또한 크기도 발데라스에 비하면 약간 작게 느껴졌다. '방금 전에 화룡족이라고 했지?' 아크가 이곳을 찾아온 목적은 ≪화룡족의 고향≫ 퀘스트 때문이다. 다시 말해 퀘스트의 목적지가 곧 발데라스의 고향. 발데라스와 닮은 존재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다른 화룡족이 보이지 않으니 눈앞에 있는 화룡족이 퀘스트 관련 NPC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퀘스트를 받고 찾아왔다고 해도 화룡족이 우호적일 거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뭐, 다짜고짜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적대 세력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아크는 발데라스를 발라 버린 장본인이다. 동족을 해치운 사람에게 화룡족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일단 슬쩍 돌려서 물어보면서 분위기를 살펴봐야 하나?' 아크가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화룡족의 미간이 움찔하더니 상체를 숙이며 물었다. "발데라스? 지금 발데라스라고 했는가?" "네? 그게....." '젠장, 방금 전에 라카드가 한 말을 들었나? 덩치는 커다란 주제에 귀는 무지하게 밝군.' 아크는 어깨에 앉아 장신구인 척하는 라카드를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쨌든 놈이 발데라스라는 이름을 들은 이상 발뺌하기는 힘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정면 돌파다. 뭐, 저 녀석이 공격하면 발데라스처럼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지.' 아크는 이미 화룡족인 발데라스를 처리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천여 명의 유저와 함께였고, 물에 약한 발데라스를 수중전으로 끌어들이지 못했다면 절대 이길 수 없었겠지만, 그건 당시 아크가 레벨 75였기 때문이다. 현재 아크의 레벨은 371. 다시 발데라스와 붙는다면 수중전이 아니라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지레 겁먹고 눈치를 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당당한 태도로 물었다. "발데라스를 알고 계십니까?" "그 이름을 꺼내는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크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우연히 발데라스를 만나게 되었고, 피치 못하게 발데라스의 생명을 제 손으로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그대인가? 되살아난 발데라스를 무찌를 자가?" 화룡족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깊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남부를 거쳐 온 바람의 정령에게 들었네. 안타깝게도 오래전에 영면에 들었어야 할 발데라스가 부활해 과거의 악몽을 재현하고 있다고 말이야. 바람의 정령은 다행히 한 용감한 인간 덕분에 그 불쌍한 발데라스가 이제야 겨우 저주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말해 주었지." 화룡족은 다시 아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화룡족의 오라클, 루미네스. 화룡족을 대신에 그대에게 감사를 표할 의무가 있네." "감사라고요?" "그대는 발데라스의 생명을 거뒀다고 말했지. 그러나 그것은 틀린 말이네. 화룡족의 위대한 전사 발데라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네. 아니, 사라졌어야 했지.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끔찍한 저주의 속박. 그대가 발데라스를 쓰러뜨린 행위는 그 저주위 속박을 끊 어 발데라스의 생명을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 준 것이네." 발데라스 역시 죽기 직전에 그렇게 말했다. 루미네스는 아득한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눈길로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발데라스......발데라스...... 나에게 있어 그는 증오스러운 일족의 불명예이자, 동정의 대상 이기도 하네. 그대는 발데라스를 쓰러뜨림으로써 화룡족의 명예를 지켜 주었고, 그를 사악한 저주의 속박에서 풀어 주었지. 명예로운 화룡족의 대변자로서 그대의 위대한 업적에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바이네." ......아무래도 얘기가 잘 풀릴 것 같다. 대화가 생각보다 잘 풀린다고 생각한 아크는 짐짓 겸손을 떨며 대답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겸손은 인간의 가장 훌륭한 덕목이지. 하지만 안타깝군." "네?" "그대는 자각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대의 행동은 화룡족에게 발데라스의 영혼을 풀어 줬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네. 그리고 영웅적인 선행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화룡족으로서 그대에게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네." "뭘 그렇게까지......" 아크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루미네스가 발데라스의 죽음에 대해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는 했지만, 아크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선행에 대한 대가' 라는 대목이었다. 선행에 대한 대가! 말하자면 퀘스트 보상을 주겠다는 말이 아닌가? 화룡족은 비록 인간과 짬뽕이 되기는 했지만 일단은 용족이다. 그리고 판타지 세계에서 용족이란 부와 명예의 상징! '대체 어떤 보상을 줄라나.....' 그러나 이어지는 루미네스의 말은 모처럼 기대에 부푼 아크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내가 안타깝다고 말하는 건 그 때문이야. 그대가 화룡족에게 베푼 은혜는 실로 크다.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성을 내준다 해도 아깝지 않은 일. 그러나 이미 화룡족의 영광은 과거의 기억에 불과하다. 내가 걸치고 있는 낡은 갑옷과 석장이 화룡족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네." '뭐야? 잔뜩 기대하게 해 놓고 보상을 못 주겠다는 거야?' 아크가 황당한 눈으로 바라볼 때였다. 루미네스는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화룡족 오라클에게 허락된 '불의 축복'을 내려 주는 것뿐이네. 자, 이쪽으로 오게." '불의 축복?'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루미네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루미네스가 아크의 주위를 돌며 석장으로 바닥에 마법진을 새겼다. 원형과 오망성을 중심으로 한 복잡한 마법진이 완성되자 루미네스가 석장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나 화룡족의 오라클 루미네스. 태초부터 존재하는 위대하고 신성한 불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자격이 없는 자는 불에 타 한 줌의 재로 사라질 것이고, 자격이 있는 자는 불위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니, 강림하라. 불의 정이여!" 쿠쿠쿠쿠. 쿠쿠쿠쿠! 그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발밑이 쩍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크가 화들짝 놀라 물러났다. 아니, 물러나려 했지만 몸이 밧줄에 묶인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앗 하는 사이 갈라진 대지에서 수십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오르는 하얀 불꽃이 아크를 삼켜 버렸다. '헉, 뭐, 뭐야? 저, 저 자식 설마.....!' 아크는 경악에 물든 눈으로 루미네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곧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갈라진 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백열된 불꽃, 시작적으로는 마치 바위라도 단숨에 녹여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불길 속에 있는 아크에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뜨거움을 느낄 수도 없었고, 생명력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몸을 휘감은 불길을 바라보며 중얼 거릴 때였다. 돌연 아크의 몸을 휘감고 있는 불길이 춤을 추듯 흔들리더니 입속으로 확 밀려 들어왔다. 순간 아랫배가 뜨끈해지며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화룡족의 오라클에서 '신성한 불의 축복' 을 받았습니다. 화룡족은 용족으로 분류되지만 속성은 불위 정령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들은 불에서 태어나고 불을 먹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오래전에는 불의 수호자로 불렸습니다. 오라클은 그런 화룡족 가운데서도 가장 불에 가까운 존재로, 선택받은 자에게 '불의 축복' 을 내리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룡족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불의 축복을 받기 위해 수많은 용사들이 화룡산을 찾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불의 축복 효과로 영구적으로 화염 저항+20%, 화상에 대한 저항력+50%≫ '오오오, 이, 이게 뭐야?' 정보창을 읽은 아크의 눈이 솥뚜껑처럼 커졌다. 영구적으로 화염 저항과 화상 저항력 상승! 화염 마법은 모든 마법 가운데 가장 파괴력이 강하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법 역시 화염 마법.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전사들이 마법사와 싸울 떄 가장 중요 시 여기는 것이 화염 저항력이었다. 비슷한 수준의 아이템이 라도 옵션으로 화염 저항력이 붙은 이아이템은 평균 1.5배 비 싼 가격으로 거래될 정도! '그런데 아예 능력치가 올라가다니‥‥‥!' 물론 화염 저항력을 아이템으로 받으면 나중에 팔아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아이템을 벗으면 능력치도 사라진다. 예전에 아크가 사용하던 '화염의 베일' 망토도 착용하고 있을 떄는 화염 저항+50%나 됐지만, 결국 망토를 바꾸면 말 짱 도루묵.당연히 능력치가 올라간다면 어중간한 마법 아이 템을 받는 것보다 백배 더 나은 것이다. '제대로 된 보상을 못 해 준다고 엄살을 떨어 대더니,이 건 대박이잖아?' 루미네스의 푸념에 퀘스트 보상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 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뒤통수라면 수백 번이라도 좋다! "감사합니다." "그대가 해 준 일에 비하면 작은 일이네." 루미네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보상을 받은 아크는 가벼운 걸음으로 몸을 돌리려 할 떄였다. '가만? 정말 《화룡족의 고향》퀘스트가 이걸로 끝일까?' 아크의 머릿속에 그런 의문이 생긴 건 당연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RPG 게임에서 퀘스트란 단순 한 의뢰 이상의 의미가 있다. 퀘스트란 곧 스토리. 유저는 퀘스트를 통해 그 게임의 세 계관과 거기에 관련된 각종 스토리를 체험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퀘스트를 해결하고 보상까지 받았는데도 정 작 관련 애요은 뭐하나 정리된 게 없었다. 그렇다면‥‥‥. '《화룡족의 고향》 퀘스트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닐 지도 몰라!' 쿵 하면 짝, 이제 아크가 뉴 월드를 시작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아직 풀리지 않은 내용이 남아 있다는 말은 바로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는 뜻이 분명하다. 사실 그런 기미는 좀 전에 루미네스와 대화를 할 때부터 눈치챘다. 루미네스의 대화 중간 중간에 미묘한 복선이 깔려 있다는 게 느껴졌었다. '연계 퀘스트라면 성행 퀘스트인《화룡족의 고향》보다 좋은 보상을 줄 가능성이 높아 아니, 더 좋은 보상도 필요 없어. '불의 축복' 같은 보상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 면‥‥‥.' 화염 저항력+40%에 화상 저항력은 100%다. 그야말로 대 박 중의 대박!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얼른 몸을 돌려세웠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 틀림없이 연계 퀘스트가 있어.' 그리고 연계 퀘스트는 두 가지가 있다. '받는 것' 과 '받아 내는 것' '받는 것'은 NPC가 알아서 의뢰를 하게 만드는 경우다. 그리고 NPC에게 정보를 얻어 내기 위해 필요한 것 이 바로 대화의 실마리가 되는 '키워드'다. '아마도 지금 필요한 키워드는‥‥‥.' 《화룡족의 고향》퀘스트가 시작된 원인,발데라스! 만약 예상대로 연계 퀘스트가 존재한다면 발동 시킬 키워 드는 '발데라스' 이외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결론에 도 달한 아크가 루미네스를 향해 슬쩍 운을 떼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무엇인가?" "저는 예전에 발데라스가 훌륭한 영주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래,그랬지. 그는 훌륭한 영주였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발데라스가 어둠의 제왕의 부하가 된 겁니까?" "그,그건‥‥‥." 루미네스가 눈에 띄게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대라면‥‥‥그의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지." 입을 다물고 뭔가를 생각하던 루미네스는 한참 뒤에애 힌 숨을 불어 내며 말을 이었다. "본래‥‥‥발데라스는 화룡족의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이 었네.아니,가디언이 됐어야 할 자였지. 그러나 그에게 닥 친 모든 불행은 가디언이 되기 위해 화룡족의 규율에 따라 순례를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네." 루미네스는 언제 주저햇냐는 듯이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나불나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크는 화룡족의 역사나 발데라스의 과거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뉴 월드에서 NPC 와의 대화에는 스킵(Skip: 대화 건너뛰기) 기능이 없었으므로 주 절주절 떠들어 대는 얘기를 들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루미네스의 말에 의하면 화룡족에서 가디언으로 선발된 자는 대륙 곳곳에 세워진 불의 신전을 돌며 신탁을 받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그때 선대 오라클께서는 순례를 미루자고 했엇지." "어째서요?" "당시 대륙 각지에서 기형의 존재들이 나타나 분란을 일 으킨다는 소문이 화룡족의 성지 드라고니안까지 들려왔으니 까. 하지만 그게 암흑 세기의 전조였음을 알아챈 자는 없었 네. 그리고 그떄는 이미 선대 가디언이 노쇠해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였네.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가디언이 필요한 때였지." 때문에 오라클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가디언 후보로 뽑힌 화룡족 청년들은 순례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례단의 리더로 선출된 화룡족이 바로 발데라스였다. 우려와 달리 순례단의 여행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순례단이 출발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대륙의 남 부 변경에 도착했을 떄였다. 순례단은 그곳에서 차마 눈 뜨 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황폐해진 대지와 그 위에서 평화롭게 살앗을 수많은 생명 들의 죽음! 북부에서 넘어온 악마들의 짓이었다. 정의감에 넘치던 발데라스는 그들을 못 본 척할 수 없었다. 발데라스는 순례단과 함께 기형의 존재와 맞서 싸우기를 결의했고,마침내 악의 근원 마수摩嗽 마그라를 물리칠 수 있 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오랜 전투의 여파로 주변은 폐허 나 다름없이 변해 버린 뒤였다. "발데라스는 선택해야 했지. 그대로 순례단을 이끌고 드 라고니안으로 돌아올 것인지,아니면 남아서 그 영지의 주민 들을 보살펴 주어야 할지." "‥‥‥남기로 했군요."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쯤 들으면 이제 나머지 얘기는 대강 짐작이 간다. 루미네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발데라스는 영지에 남는 길을 선택했네. 자신이 아 니라도 가디언 후보는 있었지만, 그들을 돌봐 줄 자는 자신 뿐이라고 생각했겠지. 그 뒤로 발데라스는 자신과 함께 남은 화룡족과 함께 전력을 다해 영지를 복원시켰네. 그곳이 현재 의 작센 영지라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발데라스가 어둠의 제왕에게?"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루미네스는 한숨을 불어 내며 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데라스는‥‥‥아니,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네. 마수 마 그라의 출현. 그리고 마그라의 죽음까지. 그 모든 것이 어둠 의 제왕이 꾸민 계략이었다는 것을‥‥‥." "계략?" "그래,계략이지. 무섭도록 치밀한‥‥‥!" 발데라스가 작센 영주가 된 뒤로 다시 수년. 영지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뒤에야 발데라스는 드 라고니안을 찾아왔다. 가디언 후보생의 입장을 저버리고 순 례를 포기한 데 대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던 화룡족은 그를 따뜻하 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작센의 영주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발데라스는 새삼 자신의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드라고니안에서 행복한 기분으 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발데라스는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한 화룡족이 광기에 휩싸여 불의 신전에 난입해 가디언을 죽이고,결계를 열어 이형의 존재들을 불러들여 함께 동족을 처참하게 학살하는 꿈이었다. 발데라스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깨닫 고 말았다. 자신이 본 장면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꿈이 아니었다면‥‥‥?" "그가 꿈에서 본 모든 것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네. 그 것도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발데라스 자신이 저지른 일 이었지. 아니,정확히 말하자면 마수 마그라의 짓이라고 해 야 맞겠지." "마수 마그라?하지만 마그라는 발데라스가‥‥‥." "‥‥‥쓰러뜨렸다고 생각했지. 모두가 그렇게 믿었네.그 러나 모든 것은 어둠의 제왕을 이 세상에 강림시키기 위한 마그라의 계략이었지." 당시 화룡족의 신전에는 '불멸의 서'라는 책이 봉인되 어 있었다고 한다. 불멸의 서는 고대신 이 태초의 불을 이용해 불멸의 생명을 손에 넣기까지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 고 전해지는 고대의 아티펙트. 마그라는 어둠의 제왕을 이 세상에 강림시키기 위해 불멸의 서가 필요했다. "때문에 마그라는 죽는 척하며 발데라스의 몸에 숨어들어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발데라스는 감당할 수 없는 분노 와 광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분노와 광기야말로 어둠의 세력 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 "게다가 발데라스는 이미 10년 동안 자신도 모르게 마그 라의 마기에 영항을 받은 상태였네. 발데라스가 이성을 잃은 순간 마그라는 그의 영혼을 완벽하게 손에 넣었고,그대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어둠의 선봉장이 되어 살육과 파괴를 자행 했네.용사들의 손에 쓰러지는 그 순간까지." "그럼 당신이 화룡족의 마지막 생존자입니까?"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아니라고도 할 수 있네." "네?" 아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루미네스가 어금니를 질끈 꺠 물며 말을 이었다. "그 끔찍한 악마 마그라는 불쌍한 발데라스를 이용해 화룡 족을 멸망으로 이끈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네. 놈은 이곳을 폐허로 만든 것만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권속을 심어 화룡족 의 영혼을 이곳에 가둬 두고 수백 년 동안 농락하고 있네." 아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루미네스를 바라보았다. '화룡족의 영혼이 갇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왜 보고 만 있는가?'라는 의미였다. 루미네스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본래 드라고니안은 신성한 불의 결계로 보호받는 성지였 네.마그라가 드라고니안에 침입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여 발데라스를 이용한 게 바로 그 떄문이네. 그리고 그날 밤, 마그라는 권속을 불러들이기 위해 결계를 더럽혔지." 그것이 바로 화룡산 정산에 자리잡은 검은 돔의 정체였 다. 그리고 마그라에 의해 더럽혀진 결계는 그 속성이 완전 히 정반대로 변해 버렸다. 성 에서 마 속성으로. 아크는 루미네스에게 들은 얘기를 정리해 보았다. '결국 화룡족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라는 말이군.' 하나는 타락의 근원이 되는 마수 마그라를 해치워 결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 그러나 마그라는 그떄의 사건 이후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고 한다. '일단 첫 번째 방법은 실현 불가능' 두 번째 방법은 직접 결계 안에 들어가서 화룡족의 영혼을 잡고 있는 악마를 해치우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도 현 상 태에서는 실현 불가능 이었다. 타락한 결계 떄문에 악마 의외 에는 아예 드라고니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떄문이다. '들어갈 수 없으면 마찬가지니 이것도 불가능이네.하지 만‥‥‥.' 그러나 아크느 이 부분에서 약간 의아함을 느꼈다. 루미네스가 나타나기 직전, 아크는 검은 돔을 만져 본 적 이 있었다. 그러나 루미네스의 말과는 달리 못 들어가기는 커 녕,오히려 쑥 빨려 들어가는 감각까지 느꼈다. "제가 만져 봤을 떄는 그냥 손이 쑥 들어가던데요?" "그,그럴 리가?이 결계는‥‥‥." "정말인데요? 이거봐요." 아크가 다시 검은 돔에 손을 집어넣어 보며 말했다. 그러자 루미네스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짓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혹시‥‥‥아니,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야!" "네?" "그대,아까 발데라스의 휘장에 이끌려 이곳을 찾아왔다 고 했지?보여 줄 수 있겠는가?" 아크는 별생각 없이 발데라스의 휘장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런데 루미네스가 휘장에 손을 가져가자 파직 하며 스파크 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루미네스의 눈빛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그떄였다. "그렇군.바로 이거였어!" "에?뭐가요?" "이 휘장은 발데라스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그리고 발데라스는 마그라의 마력에 의해 타락한자. 떄문에 이 휘 장에는 마그라의 마력이 깃들어 있네." "‥‥‥그래서 마그라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결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같은 종류의 힘에 반발이 일어날 이유가 없지." '발데라스녀석‥‥‥.' 아크는 그제야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단편적인 정보가 하 나로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은 휘장에 발데라스의 염원이 남아 고향으로 돌아가 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게임속의 일이니 아크는 그냥 그 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거기에는 나름대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발데라스는 죽기 직전에 어둠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동시 에 그때까지의 모든 기억을 되살려 냈으리라. 그리고 자신을 쓰러뜨린 용사에게 결계로 들어갈 유일한 열쇠와 함께 화룡 족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어찌 보면 가장 불쌍한 화룡족은 발데라스일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고 보니 루미네스도 발데라스에 대해 나쁘게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어쨌든 이로써 아크가 해야할 일은 명확해졌다. 결께 내에서 드라고니안을 찾아 화룡족의 영혼을 구출하는 것. 그게 《화룡족의 고향》퀘스트의 연계 퀘스트 이리라. "발데라스가 제게 이것을 맡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겁 니다. 틀림없이 그의 유언이자 절실한 바람. 그 바람대로 제 가 드라고니안으로 들어가 마그라의 부하라는 놈을 박살 내 고 화룡족의 영혼을 구원하겠습니다." "저,정말 그래 줄 수 잇겠는가?" 루미네스가 기대에 찬 얼굴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드디어 퀘스트 정보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가 갱신됐습니다. 화룡족의 고통 받는 영혼(특수 퀘스트) 당신은 발데라스의 휘장의 안내를 받아 화룡산의 정상에 도착했습니 다. 그리고 화룡족의 유일한 생존자인 루미네스에게 비극적인 역사의 일부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둠의 결계 속에서 수백 년 전에 죽은 화룡족의 영혼이 지금까지도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 화룡족을 구속하고 있는 존재는모든 사 건의 원흉인 마그라의 심복. 당신은 드라고니안에서 마그라의 심복을 찾아 물리치고 화룡족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줘야 합니다. 《난이도:??? 퀘스트제한:선행 퀘스트 '화룡족의 고향' 완료,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휘장'소지. 레벨 300이상.》 "왜 일부러 귀찮은 일을 찾아서 하려는지 알 수 없다니까." 옆에서 뚱한 눈으로 바라보던 라카드가 툴툴거렸다. 하긴NPC의 입장에서는 일부러 어렵고 힘든 일을 찾아 헤 매는 유저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 "시끄러워.곤란한 사정이 있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 은 게 당연하잖아." "하아?주인이 그런 캐릭터였어?" 당연히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아크가 퀘스트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단 하나,이득이 되 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연계 퀘스트로 불의 축복만 한 번 더 받아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연계 퀘스트로 불의 축복만 한 번 더 받아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퀘스트 내 용을 파악하고 보니 이건 휘장이나 운반하는 퀘스트와는 질 적으로 달랐다. 수백 년이나 고통 받아 온 화룡족의 영혼을 해방 시켜주는 퀘스트! '당연히 보상도 몇 배는 더 엄청날 거야!' 어쨌든 아크가 퀘스트를 수락하자 루미네스는'대지의 기 억'으로 알아낸 정보를 알아 주었다. 갑지기 속성이 변하는 충격 떄문에 결계 내부에는 '혼돈의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는 것. 그리고 결계가 뿜어내는 어둠의 힘에 이끌려 혼돈의 공간에는 사악한 영혼들이 몰려 들어 있다는것. "하지만 대지의 기억으로도 마그라가 심어 둔 권속의 정 체는 알아내지 못했네.놈이 상상이상으로 거대하고,드라 고니안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걱정 마십시오,드라고니안에 도착하면 알아낼 방법이 있겠죠." 아크는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느 이번 퀘스트를 보너스 게임 정도 로 생각하고 있었다. 레벨 120제한의 퀘스트에서 연계된 퀘스트이니 난이도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크는 적당한 준비를 마치고 결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약간 반발력이 느껴졌지만 휘장을 꺼내 들자 곧 결계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어둠의 마군장 발데라스의 휘장으로 진입 불가 지역에 입장 자격이생 겼습니다. 그 뒤로 한동안은 시꺼먼 진흙 속을 걷고 잇는 듯한 감각 이 느껴졌다. 그렇게 몇 미터쯤 걸었을까? 갑자기 라카드의 고함이 고막을 울려 댔다. "히익,주인.밑에,밑에!스톱!" "뭐?왜‥‥‥헉!" 아크가 움찔하며 멈춰 서고 시선을 내리다가 기겁하며 물 러났다. 검은 진흙 같은 공간을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그 앞 은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였다. "이,이게 루미네스가 말한 혼돈의 공간이라는 곳인가?"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우며 흐르고 있는 용암의 강. 그 상공을 운석처럼 둥둥 떠다니는 수백, 수천 개의 땅덩 어리들'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스러운 풍경이었지만, 그냥 풍경만을 본다면 신비롭고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크 의 얼굴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짜증이었다. "저 땅덩어리를 이용해 드라고니안이라는 곳까지 가야 한 다는 뜻이겠지?" 아크는 곧바로 이 공간에서 요구하는 게임 방식이 뭔지 알 아챘다. 아크가 혼돈의 공간을 통과하는 방법은 점프 액션 게임을 할 때처럼 불규칙하게 날아다니는 땅덩어리의 속도 와 방향을 계산하며 하나하나 건너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크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크캬캬캬캬,크캬캬캬캬! 아크가 첫 번째 당덩어리에 발을 들여놨을 떄였다. 돌연 지면에서 뭔가 검은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원숭이를 닮은 실루엣에 붉은 눈동자,쫙 찢어진 입에서는 날카로운 돌기가 돋아난 혀가 수 미터나 밀려나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몬스터였다. 레벨 300~350대의 윈디고라는 몬스터였다. 루미네스가 말했던 '혼돈의 공간'에 기생하는 몬스터! "귀찮게 됬는데?" 윈디고는 아크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인 영체 몬스터였 다. 영체 몬스터란 고스타 스펙터 처럼 실체가 없는 영혼이 라는 뜻이다. 이런 영체 몬스터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 통 50~80%까지 물리 공격을 무효화 시킨다. 물론 '엘리멘탈 소드'로 검을 마법으로 코팅하면 좀 낫지 만 일반 몬스터에 비해 사냥하기가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그만한 보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윈디고의 레벨은 300~350. 반면 아킈의 레벨은 370이 넘는다. 레벨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사냥이 편하 다는 의미였지만, 동시에 사냥으로 얻을 수 있는 경험치나 전리품이 적어진다는 의미도 된다. 50레벨 이상 차이가 나면 아예 경험치와 전리품을 얻을 수 없으니 죽어라 사냥해도 50%는 그야말로 삽질이라는 뜻. '그런 주제에 숫자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어지간한 크기 이상의 땅덩어리로 이동하면 어김없이 윈 디고가 등장했다. 게다가 놈들의 숫자는 땅덩어리의 크기에 비례했다. 땅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많은 수가 나타났다. 떄문에 땅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많은 수가 나타났다. 때문에땅덩어리를 하나 이동할 때마다 놈드을 해치우고 장비를 점검하니 고작 서너 개의 땅덩어리를 이동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크아아아아아! "휴,이제야 정리가 끝났네. 젠장!" 또다시 한 무리의 윈디고를 처리한 아크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크의 목적지는 당연히 화룡족의 도시 드라고 니안이다. '아마도 드라고니안은 혼돈의 공간 끝에 있겠지. 내가 들 어온 부분이 동쪽이니까 서쪽 끝에 있을 거야, 그럼 방금 전 에 접근했던 땅덩어리로 옮겨 탔어야 하는데‥‥‥." 바로 이게 문제였다. 혼돈의 공간의 고정된 장소가 아니다. 떄문에 원하는 지역으로 가려면 그떄그떄 접근하는 땅덩 어리를 놓치지 않고 옮겨 타야 한다. 만약 잘못 타기라도 하 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전투에 집중하다 보면 근처로 다른 땅덩어리가 이 동해 와도 타이밍을 놓쳐 옮겨 타지 못하는 경우가많았다. 그렇게 한 번 타이밍을 놓치면 땅덩어리가 접근해 올 떄까 지 기다리느라 또 몇십 분을 소모해야 했다. 뭐,사냥으로 얻는게 많다면 해매도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러나 윈디고는 경홈치도 전리품도 제대로 주지 않는 몬스 터. 아크로서는 그저 시간 낭비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젠장,이대로는 안 돼. 이런 식이면 드라고니안까지 며 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어.' 결국 이것저것 다 귀찮아진 아크는 윈디고를 무시하기로 했다. 몬스터를 무시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것, 온라인 게임 에서 고레밸 유저가 저레벨 지역에서 흔히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 판단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혼든의 공간 초입 지역에는 날아다니는 땅덩어리도 많고 윈디고가 나타나지 않는 작은 바위. 일명 부유석 도 많아 별 문제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심처로 들어갈수록 땅덩어리의 숫자는 적지는 반면 크기는 커졌다. 덕분에 출몰하는 윈디고의 숫자는 보통 30~40마리! 게다가 땅덩어리의 숫자가 적어서 접근해 오는 시간은 몇 배나 걸렸다. 덕분에 아크는 이동 루트가 끊어져 버리고 윈디고들에게 둘러싸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다구리를 당하다가 막판 까지 몰려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 라카드가 몰고 온 윈디고들이우르르 떨어지는 바 람에 돌부리까지 놓쳐 버린 것이다. '이대로 떨어지면 끝장이다. 무작정 땅덩어리를 옮겨 타 느라 몇 시간 동안 정비를 안 해서 직므 장비의 내주력은 고 작 10 남짓. 이대로 용암에 떨어져 데미지가 적용되면 못해 도 서너 개는 박살 날 거야!' 장비품 서너 개면 적오도 2,000만 원 이상의 손실! 《화룡족의 영혼》퀘스트로 어떤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100%적자! "빌어먹을,이딴 퀘스트는 받는 게 아니었어ㅡ!" ‥‥‥떄늦은 후회였다. ACT 2 위기를 기회로! '끝장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는 표현을 이럴 떄 사용하는 것이리라. 돌부리를 놓치는 순간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눈앞 이 깜깜해졌다. 용암에 닿는 순간 잿가루로 변해 버리리라. 그러나 목숨에는 미련이 없다. 하지만 방어구가 깨져 나간다면‥‥‥. '그건 절대 안 돼. 무슨,무슨 방법이라도 찾아야 해! 뭔 가,뭔가 발판이라도 있다면‥‥‥.' 그러나 근처에는 그 흔한 부유석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머리 위에서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난 잘못 없어! 그렇지? 그렇지?" '저 망할 놈! 네가 무슨 공무원이냐? 정치인이야?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 주인이 용암으로 다이빙을 하는 판국에 책임 문제나 운운 하다니? 국가 비상사태가 터져도 서로 책임 을 물으며 떠들어 대는 공무원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가끔 예쁘다가도 이럴 때면 정말 저놈의 주둥아리를 잘근잘근 밟아 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들 때였다. 순간 아크의 머릿에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가만?밟아?라카드를?'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드디어 상황을 모면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황당한 방법이기는 했 지만, 그런 걸 따질 떄가 아니었다. 방법이 떠오르자 마자 아 크가 고개를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라카드, 소환해제!라카드,재소환!" "헉!뭐,뭐야?" 동시에 멀리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라카드가 훅 사라 졌다. 아크는 재소환으로 라카드를 다시 옆으로 불러내 와락 움켜쥐었다. "힉!왜,왜 그래? 설마 같이 죽자는 거야? 싫어,나는 싫 다고!" "누가 너 따위하고 같이 죽어? 닥치고 가만히 있어!"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라카드를 자신의 발밑으로 가져갔 다. 그리고 발로 라카드의 머리통을 밟으며 전력을 다해 몸 을 날렸다. "도약!" '늑대의 발' 에 붙어 있는 옵션 스킬 '도약'! 도약을 사용하자 아크의 허벅지가 순간적으로 몇 배나 두 꺼워졌다가 폭발하듯 라카드의 머리통을 차며 날아올랐다. 발판이 부실해서 도약을 사용해도 고작 몇 미터밖에 뛰어 오르지 못했지만, 빠른 대처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다시 돌부 리를 움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발판이 된 라카드는 작용 반작용의 원리에 의해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나마 머리통을 밟히는 순간 아크의 꿍꿍이를 알아채고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한 덕분에 용암에 다이빙하는 것만은 모면했지만, 살짝 닿은 꽁지에 불이 붙어 버렸다. "으악, 내 머리통! 으악, 내 엉덩이! 나 죽어!" "시끄러, 살았으면 딴짓하지 말고 이 위의 윈디고들이나 어떻게 좀 해 봐!" "뭐?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 엉덩이에 불붙은 거 안 보여?" "정말 용암에 튀겨지고 싶냐?" 콰콰쾅! 그떄 윈디고 1마리가 혓바닥으로 돌부리를 후려쳤다. 아크는 재빨리 다른 돌부리로 옮겨 잡으며 라카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번에 또다시 떨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잡고 죽는 다. 기필코!" "알았어! 알았다고! 젠장! 야, 이 망할 혓바닥 귀신들아!" 라카드가 질겁하며 엉덩이의 불을 비벼 끄고 윈디고들에 게 도발을 날려 댔다. 라카드가 근처의 윈디고를 유인해 낸 뒤에야 아크는 다시 땅덩어리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일단 용암에 떨어져 장비품과 함꼐 녹아내리는 상황은 면 한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여전히 앞에는 수십 마리의 윈 디고가 혓바닥을 휘둘러 대고 있었고, 아크는 생명력, 장비 의 내구력이 바닥을 기었다. '용암에 떨어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대로 윈디고들과 싸우면 장비품 한두 개는 틀림없이 부서진다. 지금은 일단 회피에 집중하며 탈출 방법을 찾아야해!' 지금 중요한 것은 윈디고를 얼마나 죽일 수 있느냐가 아니 라, 이동할 만한 땅덩어리가 접근해 올 떄까지 버틸 수 있느 냐다.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아예 검을 집어넣었다. 검 역시 다른 장비처럼 내구력이 얼마 남지 않았고, 검을 들고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회피율을 상당히 끌어올릴 수 있 기 때문이었다. 또한 뭣보다 검을 들고 있지 않으면 회피에 만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다크 댄싱!" 휘리릭, 콰콰쾅! 휘리릭, 콰콰쾅! 바늘 같은 돌기가 돋아 있는 살벌한 혓바닥이 아슬아슬하 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회피율을 극한까지 올렸다 고 해도 모든 공격을 100%회피할 수는 없었다. '스치딧 맞는 공격으로는 장비품의 내구력이 잘 떨어지지 않지만.' 그것도 틀림없이 한계가 있었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법. 자잘한 데미지라도 계속 쌓이다 보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대략 3~4분 지났을 무렵,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세지가 떠올랐다. 『인어족의 수호 갑옷』,『고양이 손』, 『너구리 투구,』『전사의 견갑』의 내구력이 2% 이하까지 떨어졌습니다. 조속한 수리가 필요합니다! '맙소사!'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비품은 내구력이 낮을 때일수록 더 쉽게 내구력이 깎인 다. 나사가 헐거워졌을 떄 더 잘 빠지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2%면 치명차 한 방에 장비풍이 하나씩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주인,왔어ㅡ!" 그때 반대쪽에서 윈디고들을 몰고 다니던 라카드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멀리서 부유석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 오고 있었다. 직경 1 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부유석이었지만, 아크는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10분 만에 근처를 지나는 부유석이다! 저걸 놓치면 끝장 이야!' 아크는 재빨리 날아오는 부유석의 궤도를 계산해 보았다. 지금의 궤도를 유지한다면 몇 초 사이에 지금 있는 땅덩어 리의 상공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아크가 그 부유석으로 이 동하는 것을 주변의 윈디고들이 구경만 하고 있지 않을 터! '일단 그 전에 이놈들을 따돌려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는 일단 다크 댄싱을 펼쳐 윈디고들 사 이를 가로질렀다. 그러자 윈디고들이 마치 똥파리처럼 우르 르 아크를 뒤따라 이동했다. 그때 아크는 직각으로 방향을 틀 며 '전력질주' 로 강철화 되어 있던 라자크를 향해 달려갔다. '됏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라자크, 강철같은 충성심 해제! 검화!" 딱딱딱딱,따다다다닥! 아크가 머리를 잡는 것과 동시에 라자크가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아크는 그대로 가장자리를 향해 달려가 전력을 다해 뛰어올랐다. 뒤따르듯이 윈디고들의 혓바닥이 날아들었지 만, 아크가 본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게 약간 더 빨랐다. 촤라라락! 채찍처럼 펼쳐진 본 블레이드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던부 유석을 휘감았다. 그리고 아크는 부유석에 매달린 채 엄청난 속도로 윈디고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붙잡은 부유석이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악 의 상황은 모면한 것이다. '사,살았다!' 아크는 멀어지는 윈디고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불 어 냈다. 아니,한숨을 불어 내려 할 떄였다/ 크캬캬캬캬! 돌연 머리 위에서 섬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 개를 들어 올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작은 부유석이라 안심했는데 그 지면에서 윈디고가 스물스물 기어 나온 것이다. 윈디고는 나타나자마자 혓바닥을 휘둘러 아크를 공격했 다. 다급해진 아크가 좌우로 움직이며 혓바닥의 공격을 피하 자 윈디고의 시선이 부유석을 휘감은 본 블레이드로 향했다. '이, 이런 젠장‥‥‥!'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본 블레이드는 부유석의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 려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놈이 혓바닥으로 모서리를 부숴 버린다면 아크는 또다시 용암에 풍덩‥‥‥ 디 엔드다. 무턱대고 본 블레이드를 고무줄처럼 당겨 올라갈 수도 없 었다. 놈이 가장자리에 서 있으니 이대로 튀어 올라가면 100% 충돌, 아크는 또다시 용암에 풍덩‥‥‥ 역시 디 엔드다. '유일한 방법은‥‥‥!' "라카드, 위다! 저놈을 막아!" "어?아, 알았어! 암흑 돌진!" 뒤따라 날아오던 라카드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갔다. 그러나 부유석은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라카드가 '암흑 돌진' 을 사용했지만 고작 부유석의 속도 보다 조금 빠른 정도. 부유석에 올라탄 윈디고의 입장에서는 하품이 나도록 느리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윈디고는 조롱하 듯이 가볍게 피해 내고 다시 혓바닥으로 모서리를 내리쳤다. "제, 젠장, 안 돼! '영혼 갈취'!" 궁지에 몰린 아크는 급한 대로 유일한 장거리 공격 마법을 발동 시켰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선택한 방법! 그러나 영혼 갈취는 뜻하지 않았던 효과를 발휘했다. 퍼퍼퍼펑! 투명한 손이 윈디고를 움켜잡는 순간, 격렬한 폭음이 울리 며 윈디고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투명한 손에 잡혔던 부분이 통째로 잡아 뜯기는 게 아닌가? 게다가 윈디고의 생명력도 일격에 15%나 깎여 있었다. "이, 이게뭐야? 어떻게 된 거지?" 아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다급한 마음에 사용하기는 했지만 영혼 갈취는 공격 마법 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영혼을 갈취하기 위한 마법. 물론 데미지가 적용되기는 하지만 고작 50밖에 되지 않았다. 그 런데 윈디고의 몸을 잡아 뜯으며 생명력을 15%나 날려 버리 다니?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쩄든 기회다! 혓바닥을 후두 르기 전에 '영혼 갈취, 영혼 갈취, 영혼 갈취!" 퍼퍼퍼펑, 크아악! 퍼퍼퍼펑, 크아악! 아크는 혓바닥에 집중적으로 '영혼 갈취' 를 날려 댔다. 그때마다 윈디고가 비명을 터뜨리며 몸 여기저기가 뜯겨 져 나갔다. 그러나 윈디고도 보통 독종이 아니었다. 대여섯 번이나 두들겨 맞으면서도 혓바닥을 몇 번이나 재생해 모서 리를 후려 친 것이다. 그러나‥‥‥. 틱. "‥‥‥?" 틱, 틱, 틱, 틱! 윈디고가 혓바닥으로 모서리를 탁탁 후려치다가 당혹스러 운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아크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크크크크, 이렇게 되고 보니 윈디고도 꽤 귀여운데?" 부유석 위에서 혓바닥을 휘둘러 대는 윈디고. 그러나 그 윈디고는 이미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 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영혼 갈취' 는 윈디고 의 몸을 잡아 뜯어 버린다. 그러나 윈디고는 영체 몬스터라 금세 뜯겨진 몸을 복구했다. 그런데 아무리 영체 몬스터라도 뜯겨진 부분을 아무런 페 널티도 없이 복구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영체에도 정해진 양이 있으니 뜯겨진 부분을 보국하면 그 만큼 부피가 줄어드는 것이다. 덕분에 영혼 갈취로 많은 양 의 영체를 잃어버린 윈디고는 지금 주먹만 한 크기로 줄어 있었다. 그리고 주먹만 한 윈디고가 휘둘러 대는 혓바닥에 돌을 부술 위력이 있을 리가 없었다. 키이이익, 키이이익! 뒤늦게 자신의 상황을 알아챈 윈디고가 땀을 삐질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잘도 까불었겠다? '영혼 갈취' !" 결국 꼬마 윈디고는 투명한 손에 통채로 삼켜져 버렸다. -영혼 갈취로 인해 시전자의 영격이 상승했습니다! 『영력+1』 ● "푸하아아아, 이제야 좀 살겠다!" 아크가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온천으로 심신의 피로를 털어 내고 있습니다. 《상처가 빠르게 치유되며 생명력과 마나의 회복 속도가 200%빨라 졌습니다.》 혼돈의 공간이 모두 위험천만한 곳은 아니었다. 용암의 강을 떠다니는 땅덩어리들 중에는 온천이 있는 곳 도 있었다. 혼돈의 공간이 만들어질 떄 온천 지역이 통째로 떨어져 나와 떠다니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온천을 이용하면, 야영지를 만드는 것 보다 몇 배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곳은 위디고 들도 나타나지 않는 이른바 안전지대였다. "그나마 온천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뜨끈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자 정말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았다. 게다가 온천이 있는 장소는 혼돈의 공간을 떠다니는 땅덩어리. 아래에는 펄펄 끓는 용암의 강이 흐르고 주변에는 땅덩어리나 부유석이 날아다니는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 곳에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뉴 월드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딱딱딱딱‥‥‥. 쌕썍썍쌕‥‥‥. 아크를 따라 온천에 뛰어든 라자크와 라둔도 황홀한 표정 으로 히죽거렸다. "쳇, 쳇! 퍽이나 좋겠다." 그러나 라카드는 인상을 박박 써 대며 아크를 쏘아보았다. "뭐야, 아까부터? 너는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몰라서 물어? 내가 무슨 돌멩이야? 머리통은 왜 밟아?" "어쩔 수 없었잖아." "하, 어쩔수 없어? 주인만 살면 다라 이거야? 나는 주인 이 밟아 댄 덕분에 용암에 튀겨질 뻔했다고. 이거 보여? 꽁 지에 불이 붙어서 털이 몽땅 벗겨졌잖아! 이걸 보고도 양심 의 가책을 안 받는단 말이야?" "그래서 온천에 데려왔잖아. 온천에 들어와 있으면 금방 나을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 엉덩이에 물집이 잡히고 화끈거리는 데 뜨거운 물에 들어가라고?" "거참, 말 많네. 들어오기 싫으면 정찰이나 하든가." "내가 저런 걸 주인이라고‥‥‥." "뭐야? 저런 걸?" 아크가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라카드는 입술을 댓 발이나 내밀고 팩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슬쩍 짜증이 일었 지만 사실 아크는 다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부유석을 타고 온천까지 온 건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한 데‥‥‥.' 사실 지금 아크가 쉬고 있는 온천은 이번에 처음 발견한 곳이 아니었다. 혼돈의 공간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찾 아냈던 온천이었다. 그렇다, 아크는 그동안의 고생이 허무하게도 부유석을 타 고 다시 처음 진입했던 지역으로 되돌아 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대체 뭐였지? 방금 전의 그건?" 아크가 의아해하는 것은 방금 전, 부유석에서 벌어졌던 상 황이다. 그동안 영혼 갈취 스킬을 배운 뒤로 아크는 여러가 지 몬스터에게 수없이 시험해 보았다. 그리고 그 결론이 '영 아니올시다.' 였다. 영력을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평균 수백 번을 사용해야 1이 오를까 말까. 실제로 아크가 화룡산에 오기까 지 일주일이 넘도록 미친 듯이 사용했지만 오른 영력은 고작 7밖에 돼지 않았다. 떄문에 아크는 영혼 갈취는 반쯤 없는 셈 치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사용했을 때는 완전히 달랐어.' 영혼 갈취 일격에 윈디고의 생명력이 15% 이상 날아갔다. 결코 윈디고의 생명력이 낮아서는 아니었다. 윈디고의 생 명력이 낮다면 지금까지 고생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그게 우연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 있는 답은 하나다!' 아크는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내 생각이 정답이라면‥‥‥.' 그 결론에 도달하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자, 그만 일어나자!" "에? 벌써? 하지만 난 엉덩이의 붓기도 안 빠졌다고!" 라카드가 팅팅 부은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말했다. "엉덩이 치워. 인마. 멀리 가지 않을 거니까 일단 따라와." "멀리 가지 않는다니? 어딜 가는데?" "시험해 볼 게 있어서 그래. 라카드, 일단 당장 이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당한 크기의 땅덩어리를 찾아봐라. 크기 는‥‥‥한 직경 5~7미터 정도가 적당하겠다. 그 정도 크기 면 윈디고도 잘해야 4~5마리밖에 나오지 않을 테니까." "쳇, 알았어." 라카드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사방으로 파닥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몇 개의 부유석을 밟고 넘어갈 수 있는 땅 덩어리를 발견 했다. 크캬캬캬캬, 크캬캬캬캬! 땅덩어리가 도착하자 예상대로 지면에서 아지랑이 처럼 검 은 기운이 올라와 윈디고로 변했다. '숫자는 5마리, 적당하군.' "라자크, 방어 태세. 라카다, 3마리를 도발해서 유인해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렇게 좁은 곳에서 유인할 데가 어디 있어?" 라카드가 툴툴거리면서도 도발을 사용해서 3마리를 구석 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라자크는 아크의 옆에 바짝 붙어서 방패를 치켜쉐웠다. 아크와 소환수들의 기본 포메이션이었다. 사실 4마리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준비를 할 필요는 없었 지만, 지금 아크의 목적은 윈디고를 해치우는 게 아니었다. 아크는 라자크를 방패 삼아 혓바닥을 피하며 근처의 윈디 고를 주시했다. 그렇게 잠시, 곧 윈디고의 머리 위에 화살표 문양이 떠올랐다. "록온 완료. '영혼 갈취'!" 퍼퍼퍼펑, 크아아아악! 역시나 좀 전처럼 투명한 손이 뻗어 나가 윈디고의 몸을 잡아 뜯어 버렸다. 뜯겨진 부분은 곧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솟아 올라 복구됐 지만, 전체적인 크기는 뜯겨진 만큼 작아졌다. 아크는 시험 삼아 윈디고의 크기가 작아질 떄마다 공격을 받아 보았다. 그리고 크기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공격력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단 한 가지 예상은 맞아떨어졌군. 다음은‥‥‥'영혼 갈취', '영혼 갈취' !" 아크는 본격적으로 스킬을 난사하며 윈디고를 몰아쳤다. 영혼 갈취 한 방에 방어력이 15% 이상 깎여 나간다. 게다 가 영혼 갈취는 대기 시간이 거의 없는 스킬이다. 작정하고 스킬을 퍼부으면 1마리를 처리하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5마리의 윈디고를 몽땅뜯어 먹었을 떄였다. -'영혼 갈취'로 인해 시전자의 영격이 상승했습니다! 《영력+1》 "역시 예상대로다!" 아크는 그 메시지로 자신의 가설이 모두 맞아 떨어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RPG 게임에서 데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단 순히 공격력과 방어력만이 아니다. 정보창에 표시되는 공격 력과 방어력은 평균치. 실제로 적용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중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게 바로 속성. 영체 몬스터인 윈디고가 물리 공격을 50~80%까지 무효 화시키는 것도 그 떄문이다. 문제는 그걸 알고 있는 아크조차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혼 갈취'는 문자 그대로 영혼을 갈취하는 마법이다. 그리고 지금 상대하는 몬스터는 영체 몬스터. 당연히 일반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공격력과 영혼 흡 수 효과가 발동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영혼 갈취'는 영체 몬스터를 사냥해야 제대로 효 과를 발휘하는 스킬이었던 거야!' 실험으로 그 사실을 확인하자 아크의 태도가 180도로 바 뀌어 버렸다. 아크는 방금 전까지 무작정 드라고니안으로 향 하는 것만 생각했다. 어차피 경험치도 안 되는 윈디고 따위 를 잡아 봐야 시간 낭비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영혼 갈취를 사용하면 윈디고에게 다른 곳보다 몇십 배 이상의 영력을 뽑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아크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이제 더 이상 퀘스트는 문제가 아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력은 아크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영력은 스탯 포인트로도 올릴 수 없고, 영 력을 올려주는 아이템도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결국 현재 상태에서 영력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혼 갈취'를 사용하는 방법뿐. 떄문에 비효율적이라고 생 각하면서도 영혼 갈취를 죽자 살자 사용해 온 것이다. "전직을 한 뒤로 영력을 필요로 하는 스킬이 점점 늘어나 고 있다. '영혼 갈취'로 얻을 수 있는 영력이 수백 번에 1이 라도 언젠가는 며칠 날 잡아서 영력 노가다를 해야겠다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영혼 갈취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게다가 혼돈의 공간에는 밥(?)이 되는 윈디고가 지 긋지긋할 정도로 많다. 만약 이곳의 윈디고를 몽땅 영혼 갈취로 뜯어 먹으면 대체 영력이 얼마나 늘어날까? "다른 곳에서 죽자 살자 영력 노가다를 할 필요가 없어. 대박‥‥‥이건 대박이야!" 아크는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영력 노가다를 하려면 아직 한 가지 문제 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처럼 3~4마리를 상대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만‥‥‥." 문제는 넓은 장소에서 출현하는 수십 마리의 윈디고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 번에 30~40마리가 우글거리면 '블 레이드 템페스트'를 사용해도 상대하기가 힘들다. 하물며 1마리씩 록온해 가며 사용하는 영혼 갈취만으로는 도저히 무리,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력 노가다를 한답 시고 몇 번이나 죽으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일단 전력을 동원해 숫자를 줄여 놓고 나머지를 흡수해 야 하나?" 그러나 아큰느 곧 고개들 저었다 바퀴벌레를 방불케 하는 윈디고라도 틀림없이 개체 수에 는 한계가 있으리라. 당연히 윈디고가 무한대가 아닌 만큼 1마리랄도 그냥 죽 일 수는 없다. 5마리만 그냥 죽인다고 해도 영력을 1이나 손 해 보는 것이다. "그건 절대 안 돼. 놈들이 무지막지한 보너스 몬스터라는 걸 안 이상 그냥 죽일 수는 없어. 마지막 1마리까지 '영혼 갈 취' 로 우려먹어야 해.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30~40마리 의 윈디고를 상대하는 건‥‥‥." 아크는 멀뚱히 서 있는 소환수들을 바라보았다. 라카드가 중급 도발로 확실하게 유인할 수 있는 몬스터는 최대 5마리. 25~35마리가 남는다. 결국 아크가 록온 떄문에 1마리씩밖에 상대할 수 없다면 라자크가 나머지 윈디고를 몽땅 상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 온다. 무리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라카드가 절반 정도만 유인해 줘도 어떻게든 해 보겠는 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아크의 머릿속에 백열구가 반짝거 렸다. 그리고 잠시 라카드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었다. "아하, 내가 왜 그 방법을 잊어 먹고 있었지?" "뭐야? 왜? 또 뭘 시키려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데?" 아크가 음흉한 눈길을 보내자 라카드가 불안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글나 아크의 이어지는 말에 목이 부러질 정도로 세차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라카드, 내 피를 빨아라!" "어? 정말? 먹어도 돼? 정말이지? 농담 아니지?" "잔말 말고 빨기나 해!" "우오오오, 아, 알았어.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다?" 텁! 쭉, 쭉, 쭉, 쭉 싸가지 없는 라카드가 한마디 사양도 않고 냉큼 날아와 목 을 덥석 물었다. '윽, 더러운 기분‥‥‥. 하지만‥‥‥후후후, 오늘의 고통 은 곧 내일의 행복이다. 이게 계획대로만 되면 윈디고의 대 량 학살도 문제없어. 기다려라, 망할 원숭이 귀신들. 얼마가 걸리든 네놈들을 몽땅 잡아먹어 주마!' 아크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는 만큼 독기가 꽉꽉 들어 찼다. ● "으, 어지러워‥‥‥." 아찔한 현기증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방금 전에도 라카드에게 열세 번이나 피를 빨려 빈혈이 생 긴 탓이었다. "그래도 열세 번 만에 성공했으니 망정이지‥‥‥." 어쨌든 아크는 열세 번 만에 원하던 목적을 이룰 수 있었 다. 사전 준비를 끝낸 아크는 부유석에 몸을 싣고 본격적인 윈디고 사냥에 나섰다. "자, 다시 시작해 볼까?" 아크가 히죽 웃으며 눈앞으로 다가오는 땅덩어리를 바라 보았다. 직경 50여 미터는 될 듯한 땅덩어리/ 역시나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검은 기운이 아지 랑이 처럼 뿜어져 올라왔다.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시커먼 형체는 이제 새삼스러 울 것도 없는 윈디고! 순식간에 공간을 가득 채운 윈디고는 대강 세어도 30마리는 족히 넘갈 듯 싶었다/ 몸들 숨길만한 장소도 없는 곳에서 놈들이 몰려들면 속수 무책! 다른 때라면 아무리 아크라도 잔뜩 긴장했겠지만 아크 의 얼굴에는 여우가 넘쳐흘렀다. 아니, 여우가 이나라 입가에서 군침이 질질 흘러넘쳤다. "우후후후, 영력 덩어리들!" 윈디고들이 나타나자 아크가 번뜩이는 어금니를 드러냈다. "몽땅 잡아먹어 주마!" 크캬캬캬캬,크캬캬캬캬!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30여 마리의 소울이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제야 아크는 침을 슥슥 문질러 닦으며 씨익 웃었다. "라카드, 시작이다! 흡혈 스킬 발동!" "오오오오, 흡혈 스킬!" 아크의 등 뒤에서 라카드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올랐다. 뒤이어 스킬을 발동 시키자 라카드가 돌연 푸른 섬광에 휩 싸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난 빛의 고리가 라카드의 몸을 훑는가 싶더니 밀가루 반죽처럼 일그러지며 똑같은 모양의 박쥐로 변해 버렸다. 걿게 라크드로 변한 빛의 고리가 세개. 본체까지4마리 의 박쥐가 몰려드는 윈디고들을 항해 동시에 엉덩이를 팡팡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 허접한 검둥이들아, 배고프면 내 똥이나 처먹어라!" "이 허접한 검둥이들아, 배고프면 내 똥이나 처먹어라!" 땅덩어리를 뒤흔들며 몰려들던 윈디고들이 일시에 움찔하 며 멈춰 섰다. 뒤이어 살기 어린 눈동자가 핑그르르르 돌아가 더니 괴성을 지르며 라카드를 쫓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카드가 히죽 웃으며 저공비행으로 놈들 사이을 날아다니며 소리쳤다. "목숨을 소중히, 적당히 알아서 도망다녀!" 라카드의 명령에 3마리의 박쥐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떤 박쥐는 아예 멀리 도망치기도 했고, 어떤 박쥐는라 카드처럼 혀를 날름거리거나,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소울이 터의 약을 올리며 도망쳤다. 그러자 윈디고 역시 뿔뿔이 흩 어져 혓바득을 휘둘러 대며 박쥐들을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후후후, 이렇게 쉬운 방법을 못 찾고 있었다니‥‥‥." 아크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대 윈디고 유인 작전! 바로 '흡혈' 스킬을 사용해 라카드에게 '문 라이트 일루 전'을 발동시키는 방법이다. '숨을 곳이 없는 공간에서다수의 윈디고를 상대하려면 라카드의 '도발'에 의지하는 수밖에없어. 하지만 라카드의 중급 도발로 유인할 수 있는 몬스터는 최대 5마리가 한계다. 라카드가 몇마리나 되지 않는 한 20마리 이상의 윈디고를 유인할 수는 없어.' 그때 아크의 머리를 휴려치고 간 스킬이 바로 '문 라이트 일루전' 이었다. 라카드가 더 필요하다면 늘리면 그만 아닌가? 물론 단순히 윈디고를 유인하는 것이라면 아크가 직접 '문 라이트 일루전' 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문제는 윈디고를 상대해야 하는 장소가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게 문제 였다. '문 라이트 일루전' 으로 만들어진 분신은 전투 능력이 전 무하다. 그런 허접한 분신이 이런 좁은 공간에서 돌아다닌다 면 금세 윈디고에게 잡혀 박살 나리라. 그러나 비행 문스텅니 라카드의 분신이라면 얘기가 다르 다. 한정된 공간이나 지형지물의 영향을 받지 않고 윈디고의 공격을 피해 다닐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라카드의 '흡혈' 스킬을 사용하면 대기 시간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본래 '문 라이트 일루전'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슬라임의 시간' 처럼 '흡 혈'을 사용하면 그런 제약도 적용되지 않았다. "쩝, 진작 이런 방법을 썼다면 처음에 그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라카드와 분신을 쫓아다니는 멍청한 윈디고를 보니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아크가 그런 작전을 생각해 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무작정 목저직지인 드라고니안에 갈 생각뿐 이었으니 이런 작전을 세울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목적의 차이가 발상의 전환을 가져오 는 법이다. 어쩄든 라카드와 분신이 사방으로 날아다니자 20 여 마리의 윈디고가 흩어져 10마리밖에 남지 않았다. 숫자가 3분의 1로 줄었다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 있는 숫자 는 아니었다. 특히 10마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돌진해 오면 이전처럼 낭떠러지로 밀려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 놓았다. "놈들이 몰려온다! 라자크, 방어 태세! 충격에 대비해라!" 딱딱딱,딱딱딱딱! 아크의 명령에 라자크가 방패를 세우고 자세를 잡았다. 한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고 뒷발을 적당한 돌부리에 고정 시켜 모을 정삼각형 상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자세를 잡자 쿠쿠쿠쿠, 동시에 10마리의 윈디고가 몰려들자 육중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라자크는 잠시 움찔했을 뿐, 10마리의 육탄 돌격에도 뒤로 밀려나지 않았 다. 완벽한 삼각형을 유지해 충격을 받아 낸 것이다. 딱딱, 딱딱딱딱! 그렇게 한차례 돌격을 막아 낸라자크가 기합(?) 을 터뜨리 며 방패를 휘둘렀다. 그러자 따다다당, 연속적인 쇳소리가 울리며 5마리의 소울이터가 튕겨져 휘청거렸다. 소울이터에 대한 대비책으로 아크는 그동안 모아 온 '애 정' 스탯을 쏟아부어 라자크의 '방패 치기'를 상급으로 올 려놓은 덕분이었다. 소환수'라자크'의 '방패치기' 스클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방패치기 (상급,패시브): 방패를 다루는 기술이 더욱 정밀해져 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밀어낼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동시에 다섯 개체의 적에게 방패 치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한 개체에게 다섯 번의 공격 을 모두 성공시킬 경우, 밀어내는 거리가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방패의 방어력30%상승. 방패 치기로 적 공격 시 공격력+45% 적 용, 밀어낼 확률 증가, 20% 확률로 경직 발동, 상급이 되어 일격에 다 섯 번의 방패 치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역시 라자크의 스킬을 올려놓기를 잘했어.' 사실 아크는 애정으로 라카드의 '도발'을 올릴지, 라자크 의 '방패 치기'를 올릴지 한참을 고민했다. 가지고 있던 애 정은 134였지만 초급에서 중급으로 올릴 때와 달리 중급에 서 상급으로 올리려면 애정이 100이나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아크가 선택한 스킬은 라자크의 '방패 치기' 였다. '도발'을 올리면 라카드가 유인할 수 있 는 몬스터의 최대 숫자가 올라가겠지만, 어차피 지금은 분신 으로 부족한 유인 숫자를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라자카의 스킬을 올려 아크의 백업을 더 욱 든든하게 만들어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라자크가 방패로 한 번에 5마리를 후려칠 수 있다는 것은, 5마리의 발을 묶어 둘 수 있다는 뜻. 그렇게 라카드와 라자 크가 몬스터들을 떠맡자 아크의 상대는 고작 5~6마리 밖에 되지 않았다. "좋아. 잘했다, 라자크!" 딱딱딱,딱딱딱딱! 아크의 칭찬에 더욱 기세가 오른 라자크는 더욱 활발하게 방패를 휘둘러 댔다. 그사이, 1마리를 록온한아크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영혼 갈취!" 손끝에서 투명하고 거대한 손아귀가 뿜어져 나왔다. 거란 그 손의 형태가 이전과는 좀 달랐다. 전채적으로 거무튀튀해지고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나 마치 악마의 손을 연상시켰다. 변한 건 외형만이 아니었다. 타깃으로 날아가는 속도도 몇 배나빨라졌고 한 번에 뜯어 내는 영혼의 양도 많아졌다. 와드드득! 악마의 손이 타깃이 된 윈디고에게 달라붙어 어깨를 통째 로 잡아 뜯었다. 단숨에 윈디고의 생명력이 20%가까이 빠 져나가며 그만큼 아크의 영격이 높아졌다. '역시 올려놓기를 잘했어!' 아크는 너덜너덜해진 윈디고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아크가 윈디고 사냥을 위해 준비한 건 소환수들의 능력치 업만은 아니다. 사실 '영혼 갈취'는 숙련도가 엄청 느리게 올라가는 스킬 이었다. 화룡산까지 오면서 수백 번을 사용했는데도 숙련도 는 고작30정도밖에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뭐, 그때는 크게 쓸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별로 신경 쓰였다. ''영혼 갈취'의 등급이 올라가면 당연히 영력 흡수 효율 이 올라가겠지?' 투자란 기회가 생겼을 때 팍팍 해 줘야 제 가치를 보이는 법이다. 때문에 아크는 지금까지 애지중지 모아 왔던 스킬 포인트 80을 몽땅 영혼 갈취에 투자해 등급을 올려놓았다. 영혼 갈취(중급, 액티브 117/300):등급이 올라 보다 사악하고 강력 한 저주로 타깃의 영혼을 갈취합니다. 타깃에게 가해지는 육체적 데미 지는 증가하지 않지만 갈취하는 영혼의 양은 더 높아집니다. 또한 시 전자는 뽑아낸 영혼을 더 온잔한 상태로 흡수할 수 있게 되어 같은 양 의 영혼을 갈취해도 영격의 상승이 빨라지게 됩니다. 《중급 보너스:영혼을 갈취한 대상을 2% 확률로 10초간 하급 저주 상태로 만듭니다.》 *만약 유저를 상대로 영혼 갈취를 성공해 70%이상의 데미지를 주었 을 경우, 그 유저가 죽으면 영혼에 심각한 피해를 입어 부활까지 96시 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스킬 포인트를 투자한 보람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윈디고를 5~7마리를 잡아야 영력이 1올라갔 다. 그러나 중급으로 올려놓자4~6마리마다 영력이 올라갔 다. 소화 흡수율이 더 좋아진 것이다. '비록 1마리 정도 차이지만 수십 마릴르 사냥할 때 이 차 이는 크다!' 그리고 윈디고를 상대할 때는 의미가 없지만 새로 붙은 '저 주' 의 상태 이상도 쓸 만했다. '저주'는 모든 스탯을 깍아 버 리는 상태 이상. 하급이라도 깎이는 스탯이 10%나 된다. '의외로 마음먹고 성장시켜 볼 만한 스킬이야!' "영혼 갈취! 영혼갈취!" 아크는 의욕이 샘솟는 표정으로 쉬지 않고 윈디고의 영혼 을 갉아먹었다. 영체인 윈디고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며 황급히 물러 났지만, '영혼 갈취' 는 일단 록온 상태만 유지하면 적중률 70%이상! 게다가 이곳은 직경이 50미터 밖에 되지 않는 공 간이다. 처음에는 그때문에 아크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사정거 리가 30~40미터나 되는 영혼 갈취를 사용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투명한 손아귀는 도망치는 윈디고의 목덜 미를 잡고 와드득 뜯었다. 키이이익,키이이익! 그렇게 몇 번 잡아 뜯자 주먹만 한 크기까지 줄어든 윈디 고가 땅콩만 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바들바들 떨어 댔다. 그런 모습을 보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모습을 보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아크는 인정사정없었다. "귀여운 척하지 마! 영혼 갈취!" 아크는 또다시 손아귀를 날려 윈디고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성이 안찬다는 듯 침을 질질 흘리며 다른 먹잇감 을 찾아 눈알을 번들거렸다. 그떄 나머지 4마리도 사방에서몰려들었다. 불과 4마리라도 1마리만 록온한 상태로 싸워야 하는아크 에게는부담스러운 숫자였다. 그러나 아크는 그 문제의 대책 도 이미 세워 두었다. "흥, 어림없다. 다크댄싱!" 아크가 빠르게 발을 놀리며 유령처럼 훅 하고 사라졌다. -다크 댄싱의 완성도:60%! 작정하고 다크 댄싱을 발동시키자마자 단숨에 완성도가 60%를 넘어섰다. 덕분에 회피율도 급상승했지만 아크는 오 히려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크,아니지. 완성도가 너무 높아져도 곤란해!' 다크 댄싱의 완성도가 70%를 넘어가면 좋든 싫든 '다크 스케일'이 발동된다. 그리고 '다크 스케일'이 발동하면 회 피율이 약간 떨어지는 대신 방어력이 30%나 상승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다크 스케일' 이 발동하면 높은 확률은 아니지만 데미지 반사 효과가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그 역시 윈디고의 영혼을 100% 뽑아 먹으려는 아크에게 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일부러 실 수를 하며 완성도 65%를 유지했다. 한번 마음먹고 시작하면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아크였다. "라자크의 '방패치기'는 어쩔수 없지만 그 외에는 단 1의 생명력도 낭비할 수 없어!" 이미 아크의 눈에 윈디고는 더 이상 몬스터로 보이지 않았 다. 아크의 영력을 팍팍 올려주는 보약처럼 보였다. "우후후후, 네놈들의 영혼은마지막 한 방우띾지 내 피가 되고 살이 돼야 해! 엄한 짓으로 이놈들의 생명력이 줄어들 기 전에 잡아먹어야겠다! 영혼 갈취, 영혼 갈취!" 아크는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쉬지 않고 윈디고의 영혼을 뜯어 삼켰다. 그리고 주먹만 하게 변해 도망치는 윈디고도 끝까지 추격해서 먹어 치웠다. 뭐랄까‥‥‥어느 쪽이 몬스터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5분 만에 아크는 주변의 윈디고를 몽땅 잡아먹어 버렸다, 그러나 아크 역시 적지 않은 데미지를 받아 생명력 이 30%나 줄어 있었다. 또한 그동안 윈디고를 막아 낸 라자크 역시 60%에 가까운 데미지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사실 윈디고를 상대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지금까지였다. 라카드와 분신이 윈디고를 최대치 까지 유인하고 남은 놈 들을 상대할 떄. 그러나 일단 그놈들을 처리하면 그 뒤부터 는 간단하다. "라카드, 이쪽은 다 처리했다!" "옷, 알았어. 분신1호, '다 덤벼'로 명령 수정!" '문 라이트 일루전'의 명령 '다 덤벼'는 생명력이 다할 때까지 적과 싸우는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라카드가 명령하자 분신 1호가 방향을 틀어 뒤쫓아 오는 윈디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달려들기가 무섭게 윈디고 의 혓바닥에 빰을 얻어맞고 사라졌다. "우, 분신이지만 왠지 나까지 기분이 찜찜한데?" 라카드가 뺨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어쩄든 그렇게 뒤쫓던 분신이 사라지자 윈디고들이 번뜩 이는 눈으로 아크와 라자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분신 1마리가달고 다니는 윈디고가 5마리, 다시 말해 분신을 1마리씩 없애면 그 뒤부터는 5마리씩 순서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자, 또 온다. 준비해라 ,라자크!" 딱딱딱딱!딱딱딱딱! 5마리가 10마리를 상대할 때보다 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라자크가 방패로 몇 놈을 막아서는 사이, 아크는 느긋 하게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5마리를 잡아먹고 또 분신 1마리를 없애 5마 리‥‥‥. 불쌍한 윈디고들은 하나둘씩 아크의 배 속으로 사라 져 30분 만에 전멸했다. "후후후, 제법 짭짤한데?" 아크가 입맛을 다시며 히죽 웃었다. 윈디고를 30마리나 처리했는데도 경험치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과 30분만에 영력이 4나 올라가 있었다. 처음 스킬을 배우고 화룡산으로 오기까지 일주일 정도. 정 말 토 나올 정도로 '영혼 갈취'를 사용해서 올린 게 고작 7이 었다. 그떄에 비하면 정말 무지막지한 성장 속도 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대가 없는 보상이란 없는 법. "저기 주인, 이제 '문 라이트 일루전'을 다 썼는데‥‥‥."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온 라카드가 뭔가 바라는 눈빛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순간 흐뭇해하던 아크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흡혈'로 빨아들인 스킬을 다 써 버렸다. 다시 말해 새로 스킬을 흡수하기 위해 피를 빨겠다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다, 영력이 펑펑 올라가는 행복한 사냥을 하는 아크가 유일하게 두려워 하는 시간이 바로 지금부터였다. 윈디고 사냥에 '흡혈'을 이용한 라카드의 '문 라이트 일루 전'은 필수였다. 그리고 라카드에게 '문 라이트 일루전'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아크가 피를 빨려야 한다. 여 기서 문제는 '흡혈' 로 흡수되는 스킬이 랜덤이라는 점이다. 빨아 보기 전에는 어떤 스킬이 흡수될지 알 수 없는 것이 다. 그 때문에 이전에 라카드의 흡혈 슬롯을 채울 때도 열세 번이나 피를 빨려애 했다. 윈디고 사냥을 시작하고 그런 짓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덕분에 아크는 카라클에게 잡혀 있을 때처럼 완전히 미라 가 되어 있었다. 아크는 퀭한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다가 오는 라카드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스킬이 없다니? 좀 전에 슬롯 두 개에 꽉 꽉 채워 놨잖아?" "어? 몰랐어? 실은 주인이 처음 그 똥강아지들과 싸울 때 분신 1마리가 죽었어. 그래서 내가 주인을 위해서 잽싸게 스킬을 갱신시켰지. 나 잘했지?" '이 망할 놈‥‥‥.'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아크는 한 번이라도 '문 라이트 일 루전'을 아끼려고 아등바등 했다. 그러나 주인의 피에 맛들인 라카드는 전투가 시작되면 어 떻게든 두 개의 슬롯에 차 있는 '문 라이트 일루전'을 몽땅 사용해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피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짓이다. 아마도 그 전에 죽었다는 분신도 일부러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증거가 없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너‥‥‥후환이 두렵지 않냐?" "내가 뭘? 위험해 보여서 썼을 뿐이야. 난 충성스러운 소 환수라고" 라카드가 '나는 착한 소환수'라는 듯이 눈망울을 반짝거 리며 대꾸했다. 그 눈망울 저편에는 피를 빨아 배도 채우고 평소의 울분을 복수하려는 의도가 선명하게 또올라 있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다고 '흡혈'을 시키지 않을 수도 없다. "빌어먹을, 알았어. 빨릴 떄 빨리더라도 몸보신이라도 하 면서 빨리자."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음식을 만들었다. 그나마 '한약 달이기'로 보혈에 좋은 한약을 만들어 먹었 으니 이 정도지, 그조차 없었다면 한참 전에 빈혈로 쓰러져 버렸으리라. 그렇게 아크가 한약을 잔뜩 먹고 목을 내밀자 라카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이, 보약을 먹은 다음에는 한약 냄새가 나서 찜찜한 데‥‥‥." "‥‥‥뒈질래?" "아,알았어. 알았다고. 그냥 먹으면 되잖아. 잘 먹겠습니 다! 아앙!" 덥석, 쭉, 쭉, 쭉, 쭉, 쭉! 아크는 밀려오는 현기증에 한숨을 푹푹 불어냈다. 이번에는 '문 라이트 일루전' 이 흡수될 때까지 스무 번이 나 피를 빨려야 했다. 아크가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하자 라자크와 라둔이 안타 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 며 몸을 일으켰다. "으윽, 쉬고 있을 틈이 없어. 영력이다. 빨린 피는 영력을 채워 넣어야 해!" "히히히, 좋아. 빨리 사냥하자, 주인. 나 사냥하고 싶어!" 라카드가 날갯죽지로 입가의 흥건한 피를 쓱쓱 닦으며 히 죽거렸다. 소름이 돋았다. 소환수가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건 처음이었다. act3 재활치료 "휴, 어제도 정말 처절했어." 아직도 반은 감겨 있는 눈, 여기저기 까치들이 둥지를 튼머리. 해가 중천에 떠서야 현우는 그런 폐인 같은 몰골로 거실에 기어 나왔다. 뉴 월드에서 혼돈의 공간에 들어선 이후로는 항상 이런 상태였다. 20시간 이상 게임을 하다가 아침이 돼서야 잠깐 눈을 붙이는 생활의 연속! 그야말로 지옥의 릴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육체는 물론 정신적인 데미지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 종일 용암 위를 뛰어다니다 보니 이제 붉은 색만 봐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 "...... 하지만 아직 멀었어." 이게 바로 현우가 다른 유저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이었다. 노가다는 온라인 게임을 하는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하지만, 현우가 생각하는 노가다라는 개념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몇 시간? 며칠? 그런 그냥 즐기는 수준이다. 현우가 생각하는 노가다는 애초에 시간개념이 없다. 일단 한번 시작하면 그 지역에서 더 이상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그야말로 뽕을 뽑고 남을 걸로 기름까지 쪽쪽 짜낸 다음에야 '노가다를 했다.' 고 할수 있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니까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뉴 월드를 직업으로 삼은 이상 남들보다 앞서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남들보다 강해야 하고,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그래,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운동하고 와서 들어가 봐야겠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권화랑이 어머니의 휠체어를 밀며 들어오고 있었다. "아, 다녀오셨어요?" "이제 일어났냐?" "정신을 차려 보니까 새벽 5시더라고요." "적당히 해라......라고 말은 못 하겠다." 권화랑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근래 들어 권화랑은 이틀에 한번씩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현우와 번갈아 가며 어머니의 통원치료를 돕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권화랑이 찾아와도 매일 현우가 동행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권화랑의 '너 인마, 그렇ㄱ 방해하고 싶냐?' 라는 원한 서린 눈빛을 읽어 내고 이틀에 한번은 그냥 맡기기로 한 것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도 과히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권화랑은 그런 어머니의 태도에 꽤나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무슨 일 있으셧어요?" "무슨 일은....... 그보다 모처럼 얼굴 봤으니 커피라도 한잔하자." 권화랑의 제안으로 세 사람은 거실에 둘러앉았다. 현우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병원 애기를 하다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아, 전에 애기한 건 찾아보셨어요?" "전에 애기한 거라니?" "화랑 아저씨에게 물어본 거예요." "또 그 뉴 월드인가 뭔가 하는 애기구나." 어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때 눈치챘어야 한다. 그러나 현우는 권화랑을 보느라 미처 어머니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어쨌든 권화랑은 왠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달리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대답했다. "전에 얘기한 거라면 전에 마랬던 증거 말이지?" 헤르메스 연합이 무법항과 관련이 있다는 증거를 말하는 것이다. '해르메스 연합이 무법항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어. 그리고 뉴 월드에서 그만한 일을 벌였다면 뭔가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헤르메스 연합과 나크족과의 협정서라든지, 해적들의 장물을 맡으며 내준 연합의 인장이 찍힌 보관증이라든지.......' 뭐든 하나만 나오면 레르메스 연합과 무법항의 연관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 현우는 예전에 아란과 앙크 교단의 비밀 계약을 밝혀내 몰락시켰던 전력이 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뉴 월드에도 엄연히 법률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뉴 월드는 '모든 게 가능한다.'라는 카피 문구처럼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를 제공하는 게임이다. 그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일반 마을은 물론 쿠데타를 일으켜 국왕 NPC를 해치우고 왕도 될 수 있는 게임이다. 물론 수만이다 되는 병사를 해치울 수 있을 때의 애기지만...... 그러나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게 뭐든지 권장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뉴월드에도 질서를 지키기 위한 법률이 존재하고, 법률을 어기면 그만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불이익은 당연히 죄의 크기에 비례한다. 당시 정상 가도를 달리던 아란이 한 방에 침몰할 것이 바로 그 떄문인 것이다. '만약 헤르메스 연합이 무법항을 세웠다는 증거만 찾아내면 아란처럼 한 방에 보내 버릴 수도 있다. 범죄자 그룹으로 낙인찍히면 당연히 시르바나의 영주권도 상실하겠지.' 때문에 현우는 무법항을 소탕하기 전에 권화랑에게 증거를 찾아보라고 귀띔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권화랑은 고개를 저었다. "못 찾았다. 사안이 사안이니 놈들도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겠지." "흠. 하긴 일이 그렇게 잘 풀릴 리가 없죠. 그 뒤로 다른 일은 없어요?" "다른 일?" "무법항의 규모가 있으니 헤르메스 연합이 그곳에 투자한 금액도 상당할 거예요. 해적들의 장물을 처리하며 수익을 낼 생각이었겠지만 무법항이 무너져 버렸으니 투자금을 몽땅 날렸잖아요. 놈들이 그만한 피해를 입고 이대로 얀전히 물러 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딱히......." "흠, 다행이긴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찜찜하네요./" "걱정할 필요 없어. 이번 무법항 소탕 작전이 성공해서 스탄달에 군사 거점이 생겼으니까. 놈들이 또다시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이전 처럼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거야." "군사 거점?" 현우가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스탄달의 변화는 현우에게도 중요했다. 스탄달은 현우가 계획하고 있는 삼각무역의 한 축이자, 자신의 교역소-아직은 아니지만-가 건설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윈디고 사냥 때문에 밤을 새울 때가 많아서 스탄달이 어떻게 변해 가고 있는지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너는 아직 모르겠구나. 사실 처음에는 무법항을 바로 폐쇄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둘러보니 지형 조건이 굉장히 좋아. 섬 내부의 동굴은 전투함 50척은 거뜬히 수납할 수 있고 헤르메스 연합 놈들이 세운 건물이나 포대도 쓸 만해. 그래서 아예 이참에 그곳을 스탄달 해군 본부로 개조할 생각이다." "해군 본부요?" "어차피 스탄달은 섬이라 해군을 계속 육성해야 해. 무법항이 사라진 이후로 더 자주 영해를 넘어오는 대륙 해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리고 해군을 더 늘리면 현재의 항구말으로는 감달할 수 없어. 르럼 아예 본부를 따로 분리시키고 항구 주변에 지부를 설치해 놓은 편이 관리하기 편하지." 과연 전직 전술 전물가라 현우와는 발상부터가 달랐다. "무법항은 천연 요새나 다름없어. 뭐, 헤르메스 연합과 나크족, 해적들이 주변의 지형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좀 걸리기는 하지만, 경계만 철저히 하면 지형을 알고 있다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적어도 현재 스탄달의 항구보다는 백배 낫지. 무법항을 소탕해 얻은 수익 덕분에 예산도 빵빵하니까 문제없어." 처음에는 좀 머뭇거렸지만 일단 물꼬가 트이자 권화랑이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어머니가 휠체어를 뒤로 뺐다. "......병원에 다녀와서 피곤하구나. 나는 들어가서 좀 쉬마." 그러자 권화랑이 놀란 개구리처럼 움찔하더니 펄쩍 뛰어 일어났다. "제, 제가......!" "아니에요. 그냥 애기 나누세요. 저는 전혀 못 알아듣겠지만 현우나 권형사님에게는 중요한 일이잖아요. 저는 혼자도 괜찮아요." 어머니는 혼자 휠체어를 움직여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라? 뭐지? 방금전에 어머니 말속에 뭔가 쿡쿡 찌르는 듯한 부분이 있었던 거 같은데?' 현우가 갸웃거리며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아우, 아우, 아우, 내, 내가 무슨 짓을......!" 권화랑이 사색이 되어 머리를 쥐어 뜯고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그게 말이다. 사실은......." 권화랑이 와들와들 떨며 사정을 털오놓았다. 사건은 권화랑과 어머니가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벌여졌다. 어머니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권화랑이 얘기했듯이 현재 스탄달은 무법항을 해군 본부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당연히 전술 전문가인 권화랑의 주도하에 진행되엇다. 때문에 작업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갱생단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뭐? 포대 설비가 부족해? 이사벨에게는 상의해 봤어? 음, 음, 그럼 일단 필요한 자재를 입구의 관문에 돌려, 일단 지금은 포대의 완공이 가장 중요해." 그리고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다시 벨이 울렸다. 일이 안 되려는 건지, 집에서 병원까지 가는 길에만 전화가 여섯 통이나 넘게 걸려 왔다고 한다. 떄문에 권화랑과 어머니의 대화를 끊겼다. 그러나 결정타는 그다음이었다. "이사벨? 해군본부? 무슨 일인데요?" "아, 소미 씨는 말해 드려도 잘 모르실 거예요." 권화랑은 무의식중에 그렇게 말해 버리고 만 것이다. 말해 놓고 나서야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아니, 그러나까 제 말은....... 그게 워낙 복잡한 일이라서요....... 그러니까......" "됐어요. 운전하세요." 어머니는 어지간한 일에는 인상 한번 찡그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사람. 무신경한 권화랑의 한마디에 완전히 빈정이 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집에 들어올 때 권화랑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은 그 떄문이었다. 또한 현우가 뉴 월드 얘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주저했던 것도 그 떄문이었다. "우아아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권화랑이 굳게 닫힌 안방 문을 바라보며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우우우. 나는 그냥...... 해군 본부다 뭐다 복잡한 얘기를 하면 소미 씨가 불편할까 봐 그런 거라고....... 정말이야. 그런데........ 아, 아니, 이건 내 잘못이야. 멍청하게 얼마나 됐다고 집에 와서 또 해군 본부 얘기나 해 댔으니...... 화를 낼 만도 해." '화가 나신 건가?'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금 전의 상활을 떠올려 보았다. 솔직히 현우가 보기에 어머니는 전혀 화나지 않았다. 만약 어머니가 정말 화가 났다면 일부러 권화랑이 알아채게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둔감한 권화랑이라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쿡쿡 짚어 얘기했다. 그건 다시 말해 일부러 화났다는 쉬위를 해서 권화랑의 실수를 지적하려는 게 분명했다. 사실 현우도 어렸을 때는 그런 어머니의 '교육적 지도'를 숱하게 받아 보았다. '하여간 어머니도 이럴 때 보면 짓궂다니까. 혹시 벌써 남편 교육 들어간 건가?' 그러나 그런 걸 알 리 없는 권화랑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대강의 사정을 알고 그런 모습을 보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좀 안돼 보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냥 놔두는 편이 좋겠지? 화랑 아저씨가 요즘 뉴 월드 때문에 어머니에게 소홀한 건 사실이니까. 가끔 이런 중격 요법도.......' 그렇게 생각하던 현우는 문득 남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나도 요즘에는.......' 어머니가 퇴워하고 현우는 어머니와 24시간 함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은 오히려 병원에 있을 때보다 적어진 것 같았다. 항상 집에 같이 있다 보니 새삼 시간을 내서 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해진 것이다. 게다가 권화랑은 물론, 가끔씩 찾아오는 정혜선이나 갱생단도 일단 모이면 항상 대화 주제는 뉴 월드였다. 뉴 월드에 대해서 모르는 어머니는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지금은 어머니가 진심으로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 시위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나름대로 불만이 쌓였다는 뜻이다. '나도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구나.' "어, 어쩌면 좋으냐? 현우야?" "저한테 물으신들......" "모른 척하기냐? 네가 스탄달 얘기만 꺼내지 않았어도....." "저야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잖안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알아서 커트해야죠. 다 큰 어른이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좋아라 떠들어 대는 것부터가 문제잖아요." "그, 그건......" 권화랑이 움찔하더니 한숨을 불어 내며 중알거렸다. ".......반성하자." ".......반성하죠." 현우도 정말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전에도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뉴 월드는 현우에게 생활이자 일이었다. 생활비와 어머니 병원비, 대출금 상환, 기타 등등......한달에 들어가는 돈은 500만 원이 넘어간다. 그리고 그 돈은 모두 현우가 뉴 월드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번다. 돈을 벌려니 가족과 보낼 시간이 없다. 이 세상 모든 가장이 느끼는 딜레마를 현우 역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권화랑이나 현우나 뉴 월드 때문에 어머니의 마을을 상하게 만든 건 사실이다. 두 사내는 식어 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조용히 잠회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울리지도 않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손가락을 꼬물거리던 권화랑이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거다!" "그거? 밑도 끝도 없이 무슨 말이에요?" "해결 방법이 의외로 간단해. 소미 씨도 뉴 월드를 하게 꼬시는 거야!" "네에?" 현우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심이에요? 어디 아픈건 아니고요?" "진심이다마다! 아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권화랑이 열띤 눈빛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봐라. 네가 처음에 왜 나한테 뉴 월드를 하자고 했냐?" "그야 재활 치료에......" 별생각 없이 대답하던 현우는 갑자기 짱돌로 뒤통수를 찍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권화랑이 눈동자를 반짝반짝 뱇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머리가 좀 돌아가냐? 바로 그거야. 너도 담당 의사가 하는 말 들었지? 지금 소미 씨는 신체적으로는 90% 정도 회복됐어, 남은 건 정신적인 장애지. 그래서 요즘은 정신과 재활 치료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잖아. 바로 예전의 나처럼 말이야." 권화랑의 말대로였다. 지금 어머니는 신체적으로는 거의 회복되었다. 물론 근력 회복이나 여러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수년 동안 병상에 누워 지낸 탓에 '자율신경'이 굳어버렸다는 게 담당 의사의 설명이었다. 그걸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뇌가 '보통 사람처럼 몸을 움직인다'라는 감각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근력이나 체력이 회복되지 않은 어머니는 재활 치료를 받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뉴 월드라면......' 뇌에 '보텅 사람처럼 몸을 움직인다'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실제 체력은 소모하지 않는다! 무리하게 훈련을 하다가 다칠 위험 따위도 없다! 그러나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소미 씨가 뉴 월드에 들어오면 24시간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잖아!"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권화랑의 야심(?) 때문에 좋다는 말은 아니다. 현우도, 권화랑도, 갱생단도, 정혜선도 요즘은 대부분의 시간을 뉴 월드에서 보낸다. 다시 말해 어머니가 뉴 월드에 들어오면 항상 함께 지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가끔씩 모이는 자리에서 지금처럼 대화에 끼지 못하는 일도 없어진다. 치료와 공감대 조성. 그렇게 좋은 일뿐인데 왜 아직 어머니와 뉴 월드를 연관 지어서 생각하지 못했을까? "우오오오! 게임 속에서 데이트! 좋아, 쇠뿔도 단김에 빼야지. 당장 유니트부터......!" 권화랑이 흥분한 멧돼지처럼 콧김을 뿜어내며 일어났다. "잠깐 기다리세요!" "어? 왜?" "좋긴 하지만 일단 알아볼 건 활실하게 알아봐야죠." 어머니의 건강 문제가 걸린 일이다. 기분만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권화랑은 가상현실 게임으로 큰 효과를 봤지만, 어머니와는 상황이 다르다. 수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어머니는 뇌 수술을 받았던 병력도 있었다. 뇌와 직접 연결되는 뉴 월드의 시스템이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현우는 일단 흥분환 권화랑을 진정시키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담당 의사는 희쾌히 허락했다. "가상현실 게임요? 아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권장할 만합니다. 아직 박소미 환자 같은 케이스에 얼마나 치료 효과가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부작용이 생겼다는 말은 아직 들은 적이 없습니다. 오리혀 뇌를 활성화시켜서 오전됐다는 환자는 본 적이 있죠. 몇몇 의사들은 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제 소견으로는 스트레스 해소 효과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우는 그 위에 인터넷에 접속해 비슷한 사례를 수백 건이나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부작용이 생겼다는 내용은 없었다. '......어쨌든 도움이 된다는 말이지?' 그제야 현우는 안심학고 계획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을 먹었다고 쉽게 살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치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유니트의 가격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그 문제 만큼은 권화랑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일은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 싶어. 그리고 이제 할 수 있다.' 솔직히 권화랑에게는 큰소리 뻥뻥 쳐 놨지만 막상 수천만원의 현찰을 만들려고 하니 쉬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성실하게 저금한 돈과, 시드나 아크상점에 흩어져 있던 골드를 긁어모아 현찰화시키니 그럭저럭 유니트를 구입할 자금이 만들어졌다. ' 내가 그동안 돈을 많이 벌어 놓기는 한 무양이구나. 유니트를 척척 살 정도니.....' 계획을 진행시키고 불과 한나절 만에 통장에 유니트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왔다. 어머니에게 뭔가가 필요할 때 거리 낌 없이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 그럼 당장 소미씨에게 말하고 유니트를 사러 가자!" "아니, 그건 안 돼요." "어? 왜?" "아직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어요." "가장 큰 문제?" "어머니요." 현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사실 이번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은 돈이 아닌 어머니였다. 새삼스럽지만 현우는 어머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현우가 태어난 뒤로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다. 10년도 넘은 옷을 직접 수선해 가며 생활해 오신 분이다. 그런데 게임-치료효과도 불분명한-을 위해 수천만원짜리 유니트를 산다는 걸 찬성할 리가 없었다. 억지로 밀어 붙여도 기회가 생기면 현우 몰래 환불을 받으리라. "그, 그럼 어쩌지? 우리가 아무리 권해도 정작 소미 씨가 싫다면 소용없는 거잖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현우가 만면에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는 모른 척하세요. 이 건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 @ @ "혀, 현우야, 이게 다 뭐니?" 어머니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니를 당혹스러게 만드는 것은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박스 였다. 글로벌엑서스의 상표가 선명하게 찍힌 박스, 바로 뉴 월드의 유니트였다. "아, 이제 도착했군요, 뉴 월드의 유니트예요." "그러니까 저게 왜 우리 집에 배달된 거냐고." "어? 제가 말 안 했나요? 그게 말이죠." 현우가 의뭉을 떨며 말하려던 떄였다. 유니트 설치 기사가 박스를 뜯으려 하자 어머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뭔지도 모르는 박스를 뜯으시면........" "괜찮아요. 저건 글로벌엑서스의 이벤트 당선 상품이니까." "이벤트 당선 상품?" 어머니의 반응에 설치 기사가 끼어들어 설명했다. "네, 얼마 전 글로벌엑서스에서 유저들을 대상으로 2주년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아크 님, 아니 현우님도 그때 응모를 하셨는데 1등에 당첨되셨습니다. 이 유니트가 바로 1등 상품이고요.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저희 집에는 이미 유니트라는 게 있는데......." 어머니가 난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 저도 그 떄문에 이벤트에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좀 난감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걱정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이건 어머니가 사용하시면 되잖아요." "내, 내가?" 어머니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무슨 게임이니? 엄마는 그런 거 할 줄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 뭣보다 이런 꼴을 해서 무슨 게임을 하겠니?" "상관없어요. 어차피 뉴 월드는 유니트 안에 편하게 누워서 생각만으로 하는 게임이거든요, 그리고 이벤트에 당선된 뒤에 혹시나 해서 의사 선생님에게 먼저 물어봤는데, 무리만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던데요? 잘됐잖아요. 모처럼 공짜로 유니트까지 생겼는데 치료에도 오움이 된다니." "하지만 유니트가 있어도 게임을 하려면 매달 돈 내야 하는 거 아니니?" "뭐, 약간요." "그럼 나는 됐다. 혹시 이거 돈으로 받으면 안 되나요?" 역시 어머니의 반응은 현우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현우는 이때를 위해 이미 비장의 수단을 생각해 두었다. 현우가 슬쩍 눈짓을 보내자 설치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미리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말씀하신 그 건에 대해서 말인데요. 이미 현우 님은 응모하실 때 약관을 읽어봐서 아시겠지만, 이번 이벤트 상품은 당연히 당첨자나 가족이외에는 양도나 매매가 불가능합니다. 만약 필요 없으시면 그냥 반품하시면 됩니다." "네? 주는 게 아닌 거예요?" "일단은 조건부 임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벤트를 신규 고객을 유치한다면 취지에서 시작한 겁니다. 만약 1년간 최소 800시간 이상 유니트를 사용하신 내역이 확인되면 유니트의 권리를 넘겨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휴대폰이나 인터넷의 약정 거래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치 기사가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 "아시겠지만 뉴 월드 유니트는 상당히 고가의 제품입니다. 제 입장에서는 1년 동안 이용하시고 유니트를 받으시는 쪽을 권장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네요." 현우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 말씀처럼 유니트는 수천만 원짜리 기계예요. 중고로 팔아도 2,3천만 원은 받을걸요. 1년만 사용하면 수천만원짜리 유니트가 공짜로 생기는데 반품시킬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어머니 치료에도 오움이 된다니 이런 기획가 어디 흔해요?" "그건 그렇지만......" 어머니는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왠지 상황이 너무 잘 맞아 들어간다. 수 천만 원짜리 유니트가 갑자기 생겨난 것도 그렇고, 1년간 800시간 이상 사용해야 준다는 조건도 뭔가 이상하다. 어째 전반적인 얘기가 자신에게 게임을 시키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수상한 것이다. 그러자 눈치 빠른 설치 기사가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제가 말씀드린 약정은 정식 절차를 거쳐 작성된 겁니다. 혹시 약정에 대해 의문 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를 주십시오. 직접 핸드폰으로 전화 주셔도 외도, 글로벌엑서스의 데스크로 전화를 걸어 연결해 달라고 하셔도 됩니다. 저는 기회부에서 일하는 호명환이로고 합니다." 설치 기사가 모자를 치겨 올리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반짝, 고른 치열을 자랑하듯 드러낸 사람은 바로 글로벌엑서스의 호명환이었다. 그렇다, 새상스럽게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게 바로 아크가 말했던 작전이다. 수천만 원짜리 유니트! 게다가 유니트를 사용하려면 매달 수십만 원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10만 원의 행복' 같은 프로그램에 나가면 100% 우승할 어머니가 그런 유니트를 선뜻 받을 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현우는 약정을 들먹여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활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기에 호명환을 끌어들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글로벌엑서스 직원을 통해서 유니트를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쓰는 돈을 수천만 원이라도 아깝지 않았지만 같은 제품을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현우의 숨은 팬을 자처하는 호명환은 직영 지점에 진열되어 있던 유니트를 30% 저렴하게 구해 주었다. 둘째는 진짜 글로벌엑서스 직원을 이용해서 혹시 모를 반품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현우가 아는 어머니라면 나중에라도 회사에 전화해서 반품에 대한 내용을 물어볼 활률이 높았다. 그러나 이벤트 ㅅ따위는 애초에 없었으니 연극이 들통 나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유니트는 100% 환불될 게 분명하다. 때문에 그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호명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미 호명환과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꽤 친해진 상태였다. 게다가 취지도 나쁘지 않으니 호명환도 흔쾌히 연극에 동참해 주었다. 덕분에 유니트를 당당하게 안방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번 동영상도 기대하겠습니다." 설치를 끝낸 호명환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돌아갔다/ "오오, 왔구나! 왔어!" 연락을 받고 달려온 권화랑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번졌다 그리고 다짜고짜 어머니 손을 와락 잡으며 주책을 떨어댔다. "이제 소미 씨도 뉴 월드를 하게 됐군요. 잘 생각하신 겁니다. 처음에는 좀 낯설겠지만 하다 보면 잘 시작했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아니, 제가 좋아하게 말들어 드리죠. 앞으로 제가 그런 곳을 다 안내해 드릴게요. 뭐, 몬스터라는 놈들이 있지만 걱장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꽤 잘 나가는 몸이거든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음핫핫핫핫!" "하지만 저는 아직......" "하아, 어머니, 아까 설치 기사가 말했잖아요. 이 유니트는 1년 동안 최소 800시간은 사용해야 우리 것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이미 사용중인 유니트에 등록해 놔서 다른 유니트로 접속하면 안 돼요-이건 뻥이다-. 어머니가 사용하지 않으시면 반품해야 되는데 그래도 괜찮으세요? 할 수 없죠. 정 못하시겠다면 반품 요청을......." "아, 아서라!" 현우가 전화기를 들자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순도 100% 대한민국 아줌마가 수천만 원짜리 유니트를 그냥 포기할 리가 없었다. "우후후후. 그렇죠. 그렇죠. 그냥 쓰기만 해도 자기 것이 되는 유니트를 그냥 반품한다는 건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짓이나 다름없습니다. 게임을 한다고 돈을 쓰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해 보면 아시겠지만 게임으로 돈을 벌 수도 있다고 요. 뭐, 어쨌든 그런 건 게임을 해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예요. 일단 한번 시작해 보세요. 자아, 자아." "화랑 아저씨 말이 맞아요. 자아, 자아!" 두 사내가 히죽히죽하며 어머니를 유니트로 몰아붙였다. 두 사내의 협박(?)에 결국 어머니는 배기를 들어 올렸다. "아, 알았어요. 한번 해 볼게요. 하면 되잖아요. 일단 모두 나가요!" "예? 하지만 처음하시면 이것저것 가르쳐 드리는게......." 권화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어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내밀었다. ".......차이하단 말이에요." @ @ @ "하아......."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한숨을 불어 냈다. 그녀의 이름은 소미, 얼마 전 새로 뉴 월드에 접속한 아크의 어머니였다. 사실 싫다고는 했지만 그녀 역시 이전부터 뉴 월드라는 게임에 관심이 있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얘기하는 게임에 관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막상 게임에 접속해 보니 상상 이상이렀다. 실제와 똑같은 하늘과 땅 그리고 주위 풍경들! 그러나 그녀를 가앚ㅇ 놀라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주위는 현시과 아무런 차이도 없는데......" 오히려 가장 현실과 동떨어지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휠체어도, 부축해 주는 사람도, 지지대도 없이 두 발로 서 잇는 자신! 소미는 홀린 듯한 시선으로 자신의 다리를 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떼어 보았다. 대체 이렇게 혼자 힘으로 서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 그 때문일까? 흔들흔들, 휘청휘청 소미는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물론 그건 신체적인 장애 때문이 아니었다. 캐릭터를 움직이는 건 신체의 근육이 아니다. 걷겠다는 생각. 그러나 오랫동안 병상 생활을 한 소미는 무의식주에 걷는다는 생각 자체에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걷는다는 행동에 소극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움직이는 것보다 게임속에서 움직이는 게 훨씬 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아크가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례 중에는 식물인간에 가까운 사람이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있었다. 가상현실은 신체와 상관없이 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소미에게도 의지를 북돋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든 1년 안에 800시간을 채워서 유니트를 받아야 해!' 물론 게임 안에 들어와 있기만 하면 어떻게든 800시간은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뉴 월드는 한 달에 수심만 원이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게임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매달 수십만 원의 이용료를 그냥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돈을 내야 한다면 뭔가 얻지 못하면 손해. 하다못해 재활 치료에 도움이라도 왜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아크나 정의남에게 듣기로는 잘하면 돈도 벌 수 있다고 한다. 소미는 가능하면 매달 나가는 이용료 정도는 자신의 손으로 벌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소미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혼자 힘으로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걸음에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뭐든 해야겠다 싶어서 지가했지만 막상 그 경지까지 이르자 소미의 얼굴에는 감격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아, 정말.......정말 내가 걷고 있어." '걷는다'라는, 남들에게는 나무나 당연한 게 이토록 고맙게 느껴지다니..... 물론 이곳은 아무리 현실처럼 보여도 게임이다. 그러나 수년 만에 '혼자 힘으로 걷는다.'라는 기분이 들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아니야. 게임이니 걷는 건 당연해. 이 정도에 만족하면 안돼. 그나저나 이제 뭘 해야 하는 거지?" 당연한 말이지만 소미는 뉴 월드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잠시 고민하던 소미는 일단 마을 밖으로 나가 보았다. 아크와 정의남들이 모이면 매일 같이 해 대는 얘기가 뉴 월드다. 덕분에 소미도 귀동냥으로 간단한 정보는 알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뉴 월드에서 뭔가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레벨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레벨을 올리려면 몬스터라는 것을 잡아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밖에 나가 본 소미는 빛의 속도로 레벨업을 포기했다. 크아아앙! "웃, 놈들이 온다. 피해!" "너는 뒤로 물러나. 양쪽에서 놈을 포위해서 박살내자!" 마을 밖에는 초보 유저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늑대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리고, 뜯기고, 도망치고, 두들겨 패고....... 유저들은 격전에 격전을 거듭한 뒤에야 겨우 늑대를 쓰러뜨렸다. 이제 막 걷는 데 익숙해진 소미가 그들처럼 늑대와 사투를 벌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용케도 저런 것들을 잡아 대네." 소미는 한숨을 불어 내며 다시 마을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냥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힘들어져 근처에 벤치에 앉았다. '이곳에서는 사냥이 가장 중요하다던데...... 현실보다는 움직이기가 좀 더 쉬지만 역시 이 상태로 저런 사람들처럼 사냥할 수는 없겠지? 몸이 불편하니 게임도 제대로 못 하는구나. 역시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야. 하물며 돈을 벌겠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 소미가 의기소침해 있을 때였다. "하잉, 또 실패야!" 옆에 앉아 뭔가를 주물럭대던 소녀가 울상을 지으며 칭얼 댔다. 뭔가 하고 돌아보니 소녀의 손에는 엉망으로 구겨진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흥미가 생긴 소미는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그 천으로 뭐 만들려는 거니?" 소녀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이거하고 똑같이 생긴 장갑을 만들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소녀가 내민 장갑은 천을 몇겹 덧대서 만들어진 주방 장갑이었다. 문제는 주방 장갑이 반쯤 타 있다는 거였다. "실은 이 장갑은 엄마가 제일 아끼는 건데요. 제가 오늘 아침에 실수해서 태워 먹었어요.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서 똑같은 걸로 만들어 드리려고 하는데......." 소녀가 옆에 놓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천 조각들을 가리키며 훌쩍거렸다. 어지간히 손재주가 없는지 소녀의 손가락도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심통 난 얼굴로 입술을 삐죽거리며 상처투서이의 손가락을 오물거리는 소녀가 귀엽고 또 안돼 보이기도 해서 소미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줌마가 대신 만들어 줘도 될까?" "네? 정말요? 만들줄 아세요?" "이정도는 장난이지." 소녀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저기...... 그럼 언니가 대신 만들어 줬다는 건 엄마에게 말하면 안 돼요." "물론이지." 소미가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대답했을 때였다. 개구쟁이 소녀 로라의 부탁 개척민 마을 하룬에 사는 로라는 장난치다가 엄마의 소중한 주방 정갑을 태워 벅고 말았습니다. 로라는 엄마에게 똑같은 장갑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손재주가 잼병이라 난처해하고 있습니다. 로라에게 주방 장갑을 만들어 주면 좋아할 것입니다. 단, 대신 주방 장갑을 만들어 줬다는 사실을 로라의 엄마에게 비밀로 해야 합니다. '이게 뭐지?' 소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리 줘 보렴. 금세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나 신경 쓰지 않고 소녀에게 재료를 받아 장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가 소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옆에서 천을 주물럭거리는 것을 보니 손이 근질거렸기 때문이다. 소미는 다른 건 몰라도 바느질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었다. 지금은 기억조차 까마득하지만 고등학생 시절부터 십자수나, 뜨개질이 취미였다. 아크가 어렸을 때는 집접 옷을 만들어 입혔을 정도였다. 뭐, 아크가 중학생이 되면서 친구들한테 창피하다고 해서 그만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뒤로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다시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녀의 바느질 솜씨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주방장갑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자, 다 됐다. 어때? 비슷하니?" "우와. 똑같아요!" 주방 장갑을 만들어 주자 소녀가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정말 고마워요, 언니. 아까도 말했지만 엄마에게는 언니가 만들었다고 말하면 안 돼요. 알았죠? 대신 잊-ㅔ 이건 저 한테 필요없으니까 드릴게요." "자, 잠깐만, 나는......." "안녕히 계세요." 로라가 벤치에 쌓여 있는 자투리 천과 들고 있던 실, 바늘을 건네주며 휑하니 달려갔다. -<개구쟁이 소녀 로라의 부탁>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옷감 : 무명천(10등급 일반 재봉 재료)를 습득했스빈다 -실과 바늘(10등급 일반 재료)를 습득했습니다. 소미는 엉겁결에 천과 바늘, 실을 얻게 되었다. 소미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늘과 실을 집어 들었다. "흠, 마침 할 일도 없었는데 잘 됐다. 그나저나 게임에서도 결국 바느질이라니......." 어차피 좋으나 싫으나 1년 동안 800시간의 사용 시간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사냥을 할 만한 상환도 아니고, 모처럼 생긴 천을 썩히기도 뭐했다. 마침 가방을 뒤져 보자 칼-기본 장비-이 보여 소미는 자투리 천을 적당히 재단해 장갑을 만들었다. 익숙한 솜씨로 재단하고 몇 번 바느질을 슥슥하자 다시 방금 전처럼 정보창이 떠올랐다. 흔한 천 장갑(A급 제작 아이템) 방어구 타입 : 천 장갑 방어력 : - 내구력5/5 무게 : 1 사용제한 : 레벨 1 이상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무명천으로 만든 장갑입니다. 그러나 숙력된 솜씨로 정성 들여 만들어져 쉬게 볼수 없는 상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아하, 직접 사용할 물건을 만들 수도 있나 보구나.' 뉴 월드에서 뭔가를 만드는 건 현실보다 더 간단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만들다 보니 점점 더 흥미가 생긴 소미는 자투리 천으로 만들 수 있는 건 모두 만들어 보았다. 장갑은 물론 모자나 스카프. 남은 천을 몽땅 사용해서 이것저것 만들어 댔다. 그런데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뭔가 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좀 밋밋하네........ 아, 그렇지, 실도 충분하니까.' 흥이 난 소미는 내친김에 장갑의 손등 부분에 자수를 넣어 보았다. 어려서부터 익혀 온 바느질 솜씨를 발휘하자 옷이 순식간에 화려한 꽃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장갑과 모자, 스카프에 세트로 문양을 새겨 넣었을 때였다. 문득 바로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기, 언니. 그거 파는 건가요?" "네?" 고개를 들어 올린 소미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바느질에 정신이 팔려 신경 쓰지 않았는데 어느새 주변에 십수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닌가? 소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방금 전에 말을 붙였던 여자가 와락 달려들었다. "이거 파는 거 맞죠? 아니, 꼭 저에게 파세요!" "파, 팔라고요?" "네, 부탁이에요.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장갑은 처음이에요!" "에? 파는 거야?" "그, 그럼 저한테 파세요! 모자, 저는 모자!" "아니, 그 모자는 제가 살게요! 얼마예요? 50실버? 1골드?" 주변의 여자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몰려들었다./ 새삼스럽니만 뉴 월드에서 천으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은 로부 같은 천 계열 바어구와 의류로 분류된다. 그리고 로브 같은 방어구는 상급 이상의 재봉 스킬이 있어야만 들들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소미가 만들 장갑 따위는 일반 의류라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다. 물론 남자라면 멋들어진 갑옷에 매력을 느끼겠지만 여자는 예쁜 옷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 여자들에게 단순한 장식품이라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솔직히 여자가 보석을 좋아하는 게 먹을 수 있어서는 아니지 않은가? 여자가 이해 득실을 떠나 예쁜 물건을 좋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었다. 게다가 뉴월드에서 일반 의류는 방어구 위에 겹쳐 입을 수 있었다. 즉, 전장에서도 화려한 옷차림을 뽐낼 수 있다는 뜻! 때문에 의류는 여성 유저들에게 관신 대상 1위의 아이템이었다. 그런 여성 유저들이 뉴 월드에서 처음 보는 '자수가 들어간 유니크한 의류'를 놓칠 리가 없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소미는 멍청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소미는 처음 여자가 말을 건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제멋대로 경매를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장갑과 모자, 스카프를 사 들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소미의 손에는 3골드라는 돈이 들려 있었다. 참으로 엉뚱하게 돈을 벌게 된 것이다. "이게 얼마나 되는 돈이지?" 잡화점을 찾아가 보니 방금 전에 사용했던 무명천을 30필이나 살 수 있었다. 잠깐 사이에 몇장 되지도 않던 자투리 천이 무명 30필로 부뀐 것이다. "이, 이렇게 돈을 벌 수도 있구나!" 소미는 가방에 수북히 쌓인 옷감을 보자 잠시 잃었던 의욕이 샘솟았다. 3골드가 현실에서 얼마나 되는 돈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뉴 월드에서 늑대 같은 몬스터를 잡지 않고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이다. 병원에만 있던 자신에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의욕이 생겼다. 그렇게 자수까지 들어간 화려한 옷을 몇벌 만들었을 때였다. 재봉(초급, 패시브) : 재봉은 천이나 가죽을 이용해 각종 의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 입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보다 섬세한 디자인과 높은 등급의 옷감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의류를 만들 때 '매력' 따위의 옵션이 붙는 명품이 만들어질 활률이 높아집니다. 재봉술이 상급으로 올라가면 특수한 천과 가죽을 이용해 로브나 가죽갑옷 따위의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단, 방어구를 마들 때는 관련 레시피 정보를 습득해야 합니다. <7등급 - 9등급 사이의 옷감과 가죽을 사용해 의류나 방어구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자수(특수, 초급, 패시브) : 의류에 자수를 넣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은 천부적인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특수한 스킬입니다. 의류에 자수를 넣으면 높은 확률로 특수 옵션이 추가됩니다. 추가되는 옵션은 자수를 넣는 실의 종류와 자수의 완성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등급이 높은 실을 사용하거나, 자수의 수준이 높을수록 더 좋은 옵션이 적용됩니다. 단, 실패할 경우 의류의 내구력이 깎일 수도 있습니다. <7등급 - 9등급 사이의 실을 이용해 의류에 자수를 넣습니다.> 스킬이 생기자 숙련도 보너스가 적용되어 옷이 더욱 멋지게 완성되었다. 그리고 '자수' 스킬을 사용하자 '용기+1'이나 '회복속도+5%' 따위의 옵션이 생겼다. 비록 초급 스킬을 사용해 높은 수치가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초보 마을에서는 옵션이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자수가 들어간 멋들어진 옷을 지금까지 뉴 월드에 없었던, 그야말로 레어 아이템이었다. 덕분에 소미가 말들어 내는 옷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고, 급기야 새로운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일주일, 초보 마을 하룬에서 소미는 거리의 의상 디자이너로 유명해졌다. 소미는 병원에 입원한 이후 처음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아니,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해 준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 그리고 자신의 옷에 열광하는 유저들을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옷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소미가 뉴 월드에 접속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ACT 4 드라고니안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2065(+500) 레벨 : 374 직업 : 다크소울 칭호 : 캣나이트, 오벨리움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7015(+425) 마나:7205(+225) 영력:786 힘 757(+38) 민첩 957(+110) 체력 1197(+35) 지혜 173(+10) 지능 1265(+5) 운 167(+60) 특수 스탯 고대유물의 지식: 153 유연성:181 화술: 69 애정: 49(+10) 탄력도: 439 어둠의 안개 : 36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늑대의 발(신발):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가능 *<수왕> 세트 효과 : 힘+20,민첩+20,방어력+4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갈가쉬의 모피(망토):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이 50%미만, '마력보호'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민첩,체력+10,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 +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현혹,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정보창의 확인한 아크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혼돈의 공간에 들어온 지 일주일. 하루 수면 시간을 3-4시간 이하로 줄이며 닥치는 대로 윈디고를 잡아먹었다. 위디고의 레벨은 300-350. 현재 아크의 레벨이 370대라 레벨 320 전의 윈디고는 잡아 봐야 경험치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레벨이 높은 350대의 윈디고를 잡아도 폐널티가 정용되어 들어오는 경험치는 60% 정도. 덕분에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사냥했는데도 정작 레벨은 3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크의 이번 노가다 목표는 영력!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곳에서만 영력을 무려 380이나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새삼 정보창으로 노력의 결실을 확인하니 피식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후후후후, 영력이 786....... 봤냐? 이몸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이제 영역 선포 스킬이든 '유령기사단 강습'이든 펑펑 내지를 수 있다 이거야!후후후후, 후하하.....윽!" 광소를 터뜨리던 아크는 돌연 아득한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딱? 딱딱딱딱! 옆에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라자크가 얼른 다가와 부축해 주었다. 그리고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지금 아크는 그렇게 잘난 척할 입장이 아니었다. 썩은 동태처럼 퀭한 눈자위. 광대뼈가 돌출된 얼굴. 탈수기로 돌려도 물 한 방울 안 나올 듯이 바짝 말라 버린 피부! 일주일 사이에 아크는 완벽한 미라가 되어 있었다. 아크가 그런 몰골이 된 이유는........ "아, 주인.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뭐, 기쁜 마음은 이해 하겠지만." 라카드가 몇 겹으로 접힌 투실투실한 뱃가죽을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현재 라카드의 모습은 아크와는 완전 정반대였다. 얼굴에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고, 겹겹이 접힌 뱃살과 턱살은 넘쳐 나는 지방을 주체 못 하고 움직일 때마다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그렇다, 이놈이다. 이놈이 아크를 미라로 만들어 버린 주범이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아크는 라카드에게 '문 라이트 일루전'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피를 빨려야 했다. 아크는 그 체력 소모를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보약을 먹어 댔지만 소용 없었다. 오히려 약 기운이 팽팽 돌아가는 피를 빨아 댄 라카드만 뒤룩뒤룩 살찌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아크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영양실조와 빈혈이 시달리는 한편, 라카드는 영양 과다와 고도비만 상태가 되어 버렸다. '흡혈'스킬 남용이 초래한 결과였다. '어쩔 수 없었어. 부유석 위에서 위디고를 사냥하려면 '문 라이트 일루전'이 꼭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계획대로 영력을 380이나 올렸다. 하지만, 하지만......' "이제 위디고도 씨가 말랐나 보네. 아쉽다! 그치, 주인?" 입맛을 다시며 지껄여 대는 라카드를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거무죽죽한 기운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라카드도 이제 아크의 성격을 100%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피를 빨기 전에 '절대 보복 없음' 이라는 약속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무리 아크라도 그런 약속까지 한 뒤에 바로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빌어먹을, 소환수도 갈수록 영악해져서 예전처럼 막 쥐어 패기도 힘들군.' 처음에는 그냥 대충 아무 이유나 붙여서 두둘겨 팼지만, 이제 소환수들도 대가리가 굵어졌다고 무턱대고 패면 반발이 심해졌다. 때문에 군기를 잡으려면 그때마다 항상 새로운 핑갯거리를 찾아야 했고, 그것도 은근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뭐, 어쨌든 라카드야 그렇다고 치고......' 아크는 둥둥 떠다니는 부유석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말에 스님이 고기 맛을 알아 버리면 절간에 벼룩도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미친 듯이 올라가 주는 영력에 맛들인 아크는 지난 일주일 동안 혼돈의 공간에 떠다니는 모든 땅덩어리를 샅샅이 뒤지며 윈디고를 사냥했다. 덕분에 방금 전에 라카드가 말한 것처럼 위디고의 씨가 말라버렸다. "이제 퀘스트를 하는 수밖에 없나?" 지난 일주일 동안 아크는 퀘스트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화룡족의 영혼을 가둬 두고 있는 마그라의 부하를 해치우면 혼돈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마기에 이끌려 몰려든 윈디고들도 사라지리라. 때문에 아크는 퀘스트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혼돈의 공간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확인해 본 결과, 윈디고는 한 번 죽으면 다시 리젠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퀘스트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윈디고가 없으면 여기서 더 얻을 건 없어. 후딱 해치우고 나가야지." 음식으로 기력을 회복한 아크는 부유석을 뛰어넘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혼돈의 공간을 샅샅이 돌아다닌 아크에게 더 이상 이동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둥둥 떠다니는 땅덩어리가 부유석이 불규칙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살펴보니 그 움직임에도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 마치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이곳의 부유석도 어떤 지점을 중심으로 커다란 흐름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 지점이 바로 혼돈의 공간 중심부! "저기다!" 아크는 부유석 아래에 자리 잡은 거대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화룡산 정상에서 봤던 거대한 돔. 그 안에 펼쳐진 혼돈의 공간 중심에도 그 동과 비슷한 형태의 반원형 바위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밖의 돔과 다른 점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뿐이다. 크기는 대략 직경 4-5킬로미터 가량. 반쯤 용암에 가라앉아 있었다. "드라고니안이 있는 곳은 저곳이 틀림없어!" 아크는 부유석을 옮겨 타며 바위산 위에 도착했다. 전체적으로 돔 형태였지만 표면은 거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미끄러질 염려는 없었다. "내 짐작이 맞다면 여기 어딘가에 입구가 있을 텐데......" 아크는 바위산 표면을 기어 다니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혼돈의 공간을 샅샅이 뒤져 본 바로는 이 바위산 이외에는 이렇다 할 장소가 없었다. 만약 이곳에 드라고니안이 있다면 이 거대한 바위산 내부. 그렇다면 이 바위산 어딘가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있으리라. 그러나 라카드와 함께 3시간에 걸쳐 바위산을 한 바퀴 돌아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라고니안이 있을 만한 장소는 여기밖에 없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막혀 버린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쿠쿠쿠쿠. 푸쉬이이이이-! "뭐, 뭐야?" 갑자기 바위산이 거칠게 진동하더니 아크가 앉아 있던 지면이 쩍 갈라지는 게 아닌가? 뒤이어 강력한 흡인력이 돌풍처럼 아크의 몸을 휘감고 안으로 빨아들였다. "우아아아앗!" 비명과 함께 아크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슈우우우욱, 쿵! -냇 나이트의 능력으로 낙하 데미지가 50% 경감했습니다. 낙법에 의한 유연성의 효과로 낙하 데미지가 40% 경감했습니다. 욱신 거리는 충격과 함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바닥에 처박혔던 아크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헉, 뭐, 뭐야? 여기는?" 아크가 떨어진 곳을 폐허였다. 거친 흙과 자갈로 뒤덮인 넓은 황무지에 부서진 성채와 건물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성채와 건물 잔해는 평범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흩어진 벽돌은 집채만 했고, 부서진 문짝 하나가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다. "찾았다. 여기가 화룡족의 도시 드라고니안!" 아크는 드디어 원하던 장소를 찾았음을 직감했다. 화룡족은 크기가 20미터에 달하는 종족이었다. 당연히 그에 맞춰 성이든 집이든 거대해질 수 밖에 없으리라. 수십 미터에 달하는 문짝이 바로 화룡족이 살았던 곳이라는 증거였다. "네놈이구나!" 그때, 돌연 뒤에서 공강능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나왔다. 뒤에서 거대한 귀물이 어금니를 드러내며 아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발데라스나 루미네스처럼 인간과 도마뱀을 짬뽕시켜 놓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괴물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몸 여기저기.......심지어 얼굴까지 반 이상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시커멓게 썩어 가는 뼈가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벌어진 상처 위로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이놈은 뭐야?" "이제야 찾았다, 악마 놈!" 괴물이 한껏 숨을 들이켰다가 단숨에 뿜어냈다. 순간 놈의 입에서 시뻘건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아크는 기겁해서 바닥에 몸을 굴리며 피해 냈다. 그러자 괴물이 뒤 따라오며 수십 미터나 되는 창을 연속적으로 내리찍었다. 쾅, 쾅, 쾅, 쾅! 창이 내리찍힐 때마다 지면이 움푹움푹 파여 들어갔다. 한 방이라도 얻어맞으면 치명사으로 직결될 만큼 무지막지한 위력! ' 하지만 느리다!' 아크는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며 괴물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갔다. 가랑이 사이는 덩치 큰 몬스터의 가장 큰 사각지대인 것이다. 역시나 아크가 밑으로 바고들자 괴물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에 아크는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나며 '다크 댄싱'을 펼쳤다. 괴물이 곧바로 창을 내리찍었지만 느린 공격으로 '다크 댄싱'을 펼치는 아크를 잡을 수 없었다. 아크는 일단 거리를 벌이고 놈을 노려보았다. '저 흉악한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저 녀석이 마수 마그라의 부하인 모양이군. 좀 당혹수럽기는 하지만 놈이 먼저 나타나주면 나야 편하지. 놈의 공격이 위력적이기는 하지만 느려 터져서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야. 다행히 낙하 데미지도 얼마 받지 않았으니 이대로 보스전에 돌입해도 문제없어.' "라자크, 라카드, 전투태세!" 아크는 '검화'시켜 놓았던 라자크와 라카드를 불러내며 명령했다. "라카드, 상대는 느려 토진 놈이다. 뒤통수에 붙어서 놈의 신경을 분산시켜라! 라카드, 놈의 공격력은 엄청나다. 방패를 사용해도 공격을 막는 건 무리니 절대 놈의 정면에 서지 마라. 측면에서 다리를 공격해 놈의 움직임을 봉쇄해라!" "훗, 간만에 싸움다운 싸움을 해 보겠군. 어디 소화 좀 시켜 볼까? 꺼억-." 딱딱딱, 딱딱딱딱딱! 라카드가 투실투실한 뱃살을 흔들어 대며 날아갔고, 라자크도 빠르게 뛰어갔다. 아크 역시 귀살검을 양손으로 꽉 움켜쥐고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 이동했다. 괴물을 중심으로 전방에 아크, 측면에 라자크, 배후에 라카드. 삼각형의 포메이션이 갖추어졌다. "자, 어디 한번 붙어 볼까?" 자세를 잡은 아크가 본격적인 공격을 펼치려 할 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돌연 지진이 일어난 듯 따이 흔들렸다. 괴물의 등 뒤로 이동했던 라카드의 비명이 들려왔다. "주, 주인, 저기 봐!" "뭐.....뭐야. 저것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크가 괴물과 대치하고 있는 언덕 너머, 흙먼지가 뿌옇게 올라오더니 뒤이어 10여 마리의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앞에 있는 놈처럼 썩어 가는 거대한 몸체에 창과 철퇴따위를 들고 달려드는 괴물들! 아무리 느려 터진 괴물이라도 르헉게 거대한 놈들이 10여 마리나 몰려온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러나 아크가 당황한 건 단지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하, 한 놈이 아니었던 거야? 하지만.......헉, 서, 설마?' "고양이의 눈!"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크가 '고양이의 눈'으로 몰려드는 괴물들을 살펴보았다. '이, 이런.......! 설마 했는데....... 그럼 이 녀석들은.......?' "젠장, 아니야!" 아크가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라카드, 아직 '문 라이트 일루전' 하나 남아 있지? 발동 시켜라! 놈들을 반대쪽으로 유인해!" "오오오오, 흡혈 스킬 발동!" 스킬을 발동시킨 라카드가 빛과 함께 분열되어 괴물들 사이를 날아갔다. "지금이다! 라자크, 다시 검으로 돌아와! 일단 튀어!" 아크는 '전력질주'를 펼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다행히 괴물들은 날파리처럼 날아다니는 라카드의 분신을 쫒아다니느라 아크를 추격하지 못했다. 그사이 아크는 입에 거품이 일 정도로 달려 도망쳤다. 그리고 전투 상태가 풀리는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헉헉헉, 빌, 빌어먹을.....이거 상황이 깨게 돌아가잖아?" 아크는 거친 숨을 불어 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크가 도망친 이유는 그런 괴물을 10여 마리나 상대할 수 없다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바로 '저주받은 화룡족의 영혼'이라는 괴물들의 정보창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크의 예상과 달리 공격해 온 괴물들은 마르라의 부하가 아니었다. 마르라의 부하에게 잡혀 있다는 화룡족의 영환이었다. "갇혀 있다는 영혼들이 왜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아크는 루미네스에게 화룡족의 영혼이 고통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연히 악마에게 갖은 고문이나, 의미 없는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했다. 이렇게 멋대로 돌아나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저 녀석들이 화룡족의 영혼이라면 왜 나를 공격 한 거지? 루미네스를 보면 화룡족이 인간과 적대적인 종족은 아닌 것 같았는데? 혹시 영혼을 가둬 두고 있다는 악마에게 조종당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야.' 아크는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화룡족의 영혼은 아크를 공격하기 직전에 '악마를 찾았다'라는 말을 했다. 악마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는 말은.......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너희들은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아크는 적당한 은신처를 찾아 소환수들을 대기시켜 놓고 '은신'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드라고니안 내부를 돌아다녀 보았다. 드라고니안은 돌산 내부에 자리 잡은 곳이라 직경이4-5Km밖에 되지 않았다. 아크는 그곳을 샅샅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화룡족의 영혼이 모여 있는 폐성에 잠입했다. 방금 전 안크를 공격했던 화룡족의 영혼은 폐성의 중심에 모여 있었다. 가까이 접근하자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방금 전의 그놈이 정말 그 악마인가?" "하지만 그 악마가 그렇게 작았던가?" "음...... 모르겠군. 기억이 나지 않아. 끔찍한 마기가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억도 함께....... 이제 악마는 커녕 내 이름조차.......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악마에 대한 복수심뿐이다." "악마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갇혀 있는 곳은 악마가 아닌 존재는 들어오지 못하는 장소. 우리 이외에 다른 존재가 있다면 그자가 바로 악마다." "그래. 놈이 악마가 틀림없어. 그놈에 대한 복수심마저 희미해지기 전에 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흩어져서 찾는 건 위험해. 놈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악마라면 절대 혼자서 당해 낼 수 없다. 모두 함께 놈을 찾아내자." 화룡족의 영혼이 웅성거리며 폐성 밖으로 몰려 나갔다. '역시 짐작대로다.' 그제야 아크는 자신의 추리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고니안은 그리 큰 지역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구름도 있고 계곡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리 복잡한 구조는 아니었다. 누군가가 숨어 지낼 만한 장소가 없다는 뜻이다. 드라고니안을 샅샅이 뒤져 봐도 움직이는 존재는 화룡족의 영혼밖에 없었다. '화룡족의 영혼은 분명 악마라는 존재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봤을 때 '찾았다'라고 했어. 그 말은 나를 악마로 오인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지금까지 악마의 존재를 찾지 못했다는 의미야. 하지만 드라고니안은 돌산 내부의 한정된 공간이야. 드라고니안이 이런 상황이 된 건 수백년 전. 그동안 화룡족의 영혼이 악마를 찾지 못했다는 말은...... 그렇구나, 루미네스가 말했던 건 바로 그거였어.' 아크는 그제야 루미네스가 했던 말의 의미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루미네스는 마르라의 부하가 이곳에 숨어서 화룡족을 기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화룡족의 영혼은 틀림없이 악마에게 속박당하고 있음에도 악마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루미네스의 말에 의하면 마그라의 부하는 거대한 몸을 갖지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답은 하나, 악마는 화룡족의 영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크가 몸을 숨기고 드라고니안을 뒤져 본 이유가 그 추리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럼 저 화룡족의 영혼들 가운데서 악마를 찾아내야 한다는 건가?' 아크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폐성을 나서는 화룡족의 영혼들을 바라보았다.숫자는 30여 마리, 게다가 몸 여기저기가 떨어저 나가 제대로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겉모습만으로 그중에 1마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말이라도 해 보면 혹시 모르겠지만.......' 이미 화룡족의 영혼들은 아크를 악마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따. 화룡족의 말처럼 이곳은 악마 이외의 존재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어전에 악마 역시 그들 속에 섞여 있으니 오해를 풀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크가 모습을 드러내면 문답무용(問答無用)으로 공격해 오리라.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사악한 힘에 의해 당신의 능력 일부가 미지의 존재에게 흡수당했습니다. <소실된 능력치 : 힘 -3, 체력 -3, 지능 -8, 영력 -6> *능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능력을 흡수당한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 합니다. *만약 능력을 되찾기 전에 사망하면 흡수당한 능력은 영원히 소실됩니다. "헉, 이, 이게 뭐야?" 기겁한 아크는 황급히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자 정보창에 마치 사망 폐널티처럼 깎인 능력치가 표시되는 게 아닌가? 아크는 그제야 상황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곳에 숨어 있는 악마는 영혼을 갉아먹는 힘이 있다. 화룡족의 영혼이 기억을 잃어 가며 저런 끔찍한 형사으로 변한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아크의 능력을 빼앗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크는 '은신'상태다. 악마에게 들키지 않았는데 어째서.....? 어쨌든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떄가 아니었다. "늦기 전에 이곳을 탈출하거나 악마를 찾아 박살 내야 해!" 그러나 아크는 이곳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악마를 부찌르는 방법뿐이다. "이대로 몇 번 능력치를 빼앗기고 만의 하나 죽기라도 하면 능력치가 그대로 날아간다! 이렇게 되면 악마고 뭐고 저 놈들을 몽땅 처리해 버리면......." 놈들 중에 악마가 숨어 있다면 몽땅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화룡족의 영혼까지 몽땅 죽이면 당연히 퀘스트는 실패. 그러나 더 이상 퀘스트가 문제가 아니었다. 능력치를 왕창 날리고 궤스트 보상을 받아 봐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역시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화룡족의 영혼은 이미 악마에게 많은 힘을 빼앗겨서 예전에 상대했던 발데라스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했다. 그러나 숫자가 30마리다. 게다가 그중에 1마리는 악마. 다시 말해 보스 몬스터와 29마리의 화룡족 영혼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게 문제야. 이렇게 되면 윈디고를 상대할 때와 같은 작전을 사용해도 최소 10마리를 상대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놈들은 느리지만 한꺼번에 몰려와서 좀 전처럼 화염이라도 뿜어 대면 옴짝달싹 못하게 될 거야. 방법이 있다면 화룡족의 영혼들에게 악마의 정처를 폭로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화룡족에게 약점이 있었지?' 아크는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잠시 상황을 맞춰 보던 아크는 이내 눈동자를 번뜩였다. "어쩌면...... 아니, 이대로 무턱대고 화룡족의 영혼들과 싸워서 이길 확률보다는 이편이 훨씬 높다. 좋아, 이거다. 이거밖에 없어. 이거에 습ㅇ부를 걸어 보자!" @ @ @ "음? 또 이런곳이.......?" 화룡족의 영혼이 발치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바닥에는 마치 쥐가 파먹은 것처럼 여기저기에 구덩이 뚫려 있었다. 여기만이 아니었다. 악마-아크-를 찾아 드라고니안을 뒤지기 시작한 지 한참, 그동안 이곳처럼 흙은 파해친 장소를 벌써 10여 군데나 발견했다. "그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놈이군 이따위 구멍이 우리가 빠지기를 바라는 건가?" "설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뭔가 꾸미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놈은 수백 년이나 우리 눈을 속이고 숨어 있던 놈이다 시간을 주면 무슨 짓을 할지 알수 없어 한시바삐 찾아야 한다. 서두르자!" "그런데 왠지 좀 서늘해진 것 같지 않아?" "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은데?" "혹시 그게 놈이 땅을 파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땅을 판다고 기온이 낮아진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가자!" 화룡족의 영혼들은 대충 파헤쳐진 곳을 흙으로 덮고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 까마득한 상공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쌍을 눈알이 있었다. 파닥파닥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그들을 뒤따르는 눈알은 바로 라카드였다. 라카드는 화룡족의 영혼들이 이동하는 방향을 가늠해 보고 곧바로 무전을 때렸다. '주인, 놈들이 D 포인트에서 주인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어!' "젠장!" 무전은 곧바로 아크에게 전해졌다. 아크는 인상을 와락 구기며 라자크에게 소리쳤다. "놈들이 온단다. 이동한다, 빨리 구덩이에서 나가!" 딱딱딱딱, 딱딱딱딱!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패로 흙을 퍼 나르던 라자크가 황급히 구덩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크 역시 삽을 챙겨 넣고 구덩이를 기어 올랐다. 밖으로 나오자 구릉 너머에서 먼지구름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라카드가 말했던 화룡족의 영혼들이다. "젠장. 여기는 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놈들 점점 빨라지잖아?" 아크는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며 툴툴거렸다. 그렇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드라고니안을 돌아다니며 땅을 파헤치고 있는 것은 바로 아크였다. 땅속에서 악마의 정체를 폭로할 비장의 무기를 발굴하기 위해서! '그것만 찾아내면 100% 악마의 정체를 폭로할 수 있어. 그리고 악마의 정체를 폭로하면 화룡족의 영혼들과 싸울 이유가 없다. 아니, 화룡족의 영혼은 악마라면 이를 가니까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 때문에 아크는 라카드에게 화룡족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삽을 들고 닥치는 댈 땅을 파해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 방법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 없었다. 드라고니안에 '그것'이 있다는 보장도 없었고, 설사 있다고 해도 찾아낸다는 보장 역시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꼬박 이틀을 작업했는데 아직 '그것'의 흔적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뭐, 죽어라 삽질한 덕에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아크는 주머니에서 루비처럼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아크가 이 마석을 발견한 건 공사(?)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한참 땅을 파고 있는데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뒤져 보니 작은 돌이 나왔다. "어라? 이, 이건!" 화염석(마석) 땅속에서 오랫동안 불의 기운을 흡수해 마력을 띠게 된 마석. 뉴월드의 따에는 흔치 않게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여 성장하는 신비한 돌이 있습니다. 이런 돌은 묻혀 있는 장소에 따라 성질이 변합니다. 화산 근처에 묻혀 있는 돌은 불의 속성ㅇ르 띠게 되고, 설산 근처에 묻혀있는 돌은 얼음의 속성을 띠게 됩니다. 이렇게 속성을 띠게 된 돌을 마석이라고 부릅니다. 불의 기운을 흡수한 마석. 불의 기운이 불완전하게 흡수되어 충격을 줄 경우 폭발을 일으킵니다. 주로 연소 작용을 하는 마법 재료로 사용되며, 플레이어가 사용할 경우 폭탄처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소켓 아이템과 결합해 아이템에 신비한 힘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직접 사용 시 : 투척 시 직경 5미터 법위에 1-100의 화염 데미지> <소켓 사용시(방어구 전용) : 화염 저항+2> "마석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발굴품에 아크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물론 화염석 그 자체는 그리 대단한 능력치를 가진 마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가 환호하는 이유는 마석이 발굴됐다는 그 자체였다. 사실 아크는 지금까지 여행하는 동안 처음 진입한 지역이나, 옛 유적지 같은 장소에서 야영할 때면 땅을 파 보는 게 이롸 중에 하나였다. 카라클에게 잡혀 강제 노역을 당하던 시절 '발굴'스킬을 이용해 땅을 파면 일정 활률로 잡템을 발굴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잡템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허접한 잡템이라면 그냥 사냥을 해서 구하는 편이 빠르다. 아크가 죽어라 삽질을 해 온 이유는 몬스터에게 구할 수 없는 보물! 오직 '발굴'로만 얻을 수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바로 마석! 그러나 아크의 끈덕진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지만....... 일반 마석이 발굴된다는 말은 이곳이 마석을 만들 전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장소, 말하자면 파워 스폿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곳은 수백년간 봉인되어 있던 장소! 다시 말해 수백 년 동안 화염의 힘이 방출되지 못하고 계속 축적되기만 햇다는 말이 아닌가? '맛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곳은 대륙에서 불의 힘이 가장 강력하다고 전해지는 화룡산, 당연히 이곳이라면 마석이 만들어질 조건을 갖췄다. 그렇다면.......!' 아크는 가방에서 작은 돌을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에서 문자 그대로 삽질을 하며 얻은 빈 마석이다. 아크가 이런 깡통 마석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하나, 비록 당장은 깡통 마석이라도 힘이 깃든 장소만 찾아내면 얼마든지 진짜 마석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아크는 화염석이 나왔던 곳에 깡통 마석을 몽땅 털어 넣었다. 그리고 '몽환의 모래시계'를 꺼내 그 위에 올려놓고 작동시켰다. "최대치 가속!" 순간 위쪽에 담겨 있던 모래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크는 이쪽의 모래가 모두 아래로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땅을 파헤쳤다. 대략 250개 넣었는데 그중 70여 개 정도는 부서져 있었다. 불의 힘을 담기에는 부족한 마석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화염석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단 하나, 화염석 사이에 당장이라도 불길을 뿜어낼 듯한 붉은빛을 띠고 있는 마석이 발견되었다. "서, 성공이다!" 아크는 마석을 들어 올려 정보창을 조사해 보았다. 익스플로전 스톤(레어 마석) 수백 년간 화룡산의 열기를 흡수한 진귀한 마석이다. 화룡산은 태초의 불의 기운을 품은 성스러운 곳입니다. 이 마석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불의 기운을 품은 화룡산의 강력한 힘을 흡수했습니다. 이 정도의 힘을 흡수한 마석이 발굴될 활률은 수백 년에 한 번밖에 되지 않습니다. 각종 고급 마법 채료에 사용되며, 소켓 아이템에 꽂아 넣을 경우 희귀한 특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소켓에 사용 시(무기 전용) : 마석이 장착된 무기에 충격을 줄 경우 33%확률로 폭발을 일으켜 50-100의 추가 화염 데미지를 입힘니다. 또한 스플래시 데미지가 적용되어 전방 2미터 안의 모든 적에게 10-5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레어 마석! 몇백 년에 하나밖에 만들 수 없다는 레어 마석이 만들어졌다! 능력치는 무려 33%확률로 50-100의 화염 데미지! 게다가 일단 효과가 발동되면 폭발이 일어나며 전방 5미터 내의 모든 적에게 10-50의 화염 데미지가 적용된다. 그야말로 익스플로전 스톤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무지막지한 효과였다. 레어 마석이 불의 기운을 흡수하자 주변의 온도가 한결 낮아진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레어 마석에 화염석 한 보따리! 그동안 죽어라 깡통 마석을 마아 댄 보람이 있군." 레어 마석은 당연히 '약속의 검'에 끼워 넣을 생각이다. 그리고 화염석은 소모품으로 도 사용할 수 있고 일단은 소켓 아이템이니 경매장에 내다 팔면 쏠쏠한 돈벌이가 되이리라. 가방에 쌓인 마석을 보니 새삼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는 그야말로 노다지를 찾은 기분이었지.' 그러나 뒤이어 떠오른 메시지가 모처럼의 행복한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악한 힘에 의해 당신의 능력일부가 미치의 존재에게 흡수당했습니다. <소실된 능력치: 힘 -4, 지혜 -7, 행운 -5, 생명력-200> "젠장, 또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던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틀 동안 아크는 수십 번이나 능력치를 흡수당했다, 그동안 날아간 능력치를 레벨로 환산하면 무려 50정도! 그리고 아크가 능력치를 빨릴 때는 소환수들도 같은 양의 능력치를 약탈당했다. "이제 정말 더 이상 시간이 없어. 역기서 능력치를 더 빨리면 악마를 찾아내도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안에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레어 마석이고 뭐고 그냥 쫄딱 망하는 거야!" 궁지에 몰린 아크는 황급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 삽질을 시작했다. 여행을 하며 시간이 날 때만다 삽질을 해 댄 덕에 현재 '발굴' 스킬은 상급! 삽을 한 번 휘둘러 댈 때마다 흙이 푹푹 파여 나갔다. 라자크도 방패를 삽처럼 사용하며 거들었고, 심지어 라둔도 주변의 흙을 삼켰다가 버리고 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아크와 소환수가 일심동체가 되어 공사를 진행하자 순식간에 커다란 웅덩이가 파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크가 찾는 '그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죽어라 삽질을 하던 아크는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이곳에는 '그것'이 없는 건가?' '그것'이 100% 있다고 해도 역시 문제였다. 드라고니안이 한정된 공간이라도 직경 4-5Km나 되는 넓이다. 그곳을 삽 한자루로 모두 파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능력치는 더 많이 흡수되어 악마를 찾아내도 이길 확률이 낮아진다. '실수했어. 처음부터 이런 낮은 활률의 도박 따위는 하는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처음 능력치를 흡수당했을 때 되든 안 되든 화룡족의 영혼과 싸워 봤어야 한다. 어차피 퀘스트는 포기해도, 그때 죽으면 능력치를 약간만 깎이고 드라고니안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레벨 50에 달하는 능력치가 흡수된 상태다. 만약 이대로 죽는다면 레벨 50이 깎여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올린 능력치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버린단 말인가? '여기까지 와서 그냥 포기하느니 게임을 접는 게 나아!'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헉헉헉, 주, 주인!" 뒤쪽에서 라카드가 혀를 길게 빼고 날아 왔다. "뭐야? 화룡족의 영혼이 이곳으로 오는 거야?" "아니, 그 녀석들은 반대 방향을 이동했어. 그보다 물 좀 줘. 더워 죽겠어." "그런 말이 나오냐?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알기나 해?" "젠장, 나도 알아. 알지만 이제 날개를 파닥거릴 힘도 없단 말이야. 밥은 그렇다고 쳐도 물이라도 좀 줘야 할 거 아냐? 에이, 몰라! 난 더 못 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 라카드가 바닥에 자빠져서 어린애처럼 땡깡을 부려 댔다. "주인이 게임을 접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소환수라는 놈이......." 그러나 라카드만 탓할 문제는 아니었다. 레어 마석으로 불의 기운을 흡수해 조금 서늘해졌다고는 해도 이곳은 여전히 용암지대다. 저런 곳에서 이틀동안 쉬지 않고 삽질을 해 댄 아크나 라자크, 라둔도 이미 지칠 대로지쳐 있었다. 계속 날아다니며 화룡족 영혼들의 동태를 감시한 라카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라카드는 아크의 피로 살을 피둥피둥 찌워서 에너지 소비가 평소의 두 배는 되었다. "할 수 없지. 어차피 시간이 있을 때 아니면 물을 구할 수 없으니까."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검을 꺼내 들었다. 당연히 드라고니안에서는 물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엄청난 기갈에 시달렸지만 아크는 비상한 머릴를 굴려 곧 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검에 '엘리멘탈 소디'로 마법 속성을 부여하는 방법! 냉기 속성을 부여해 검날에 맺히는 얼음을 녹이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물을 구하는 것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 속성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강가에서 검에 냉기 속성을 부여하면 팥빙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얼음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주변에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라고니안에서 사용하자 검날이 차가워지며 이슬이 맺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크는 검을 냄비에 세워 놓고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았다. 그러자 갈증에 시달리던 소환수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몰려들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물방울을 노려보는 소환수들을 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래저래 정말 한심하군. 주변에 물이 있으면 물을 만드는 정도는 일도 아닌데...... 아니, 물이 있으면 굳이 '엘리멘탈 소드'를 사용해 물을 만들 필요도 없지, 그나마 엘리멘탈 소드로 주변에서 수분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한심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아크의 뇌에 갑자기 천만볼트의 충격이 가해졌다. "핫? 뭐, 뭐야? 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아크는 벌떡 일어나 멍청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벌써 10미터가 넘는 구덩이가 서너 개나 파여 있었다. '맙소사.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정말 바보가 된 건가? 어째서 꼬박 이틀이 지날 때까지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지? 그 방법을 사용하면 이렇게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땅을 팔 이유가 없잖아?' 아크는 황급히 삽과 검을 채겨 들며 소리쳤다. "라카드, 라자크 이럴 때가 아니다 따라와!" "뭐? 무, 물은?" "시끄러. 그럴 때가 아니야!" ACT5 악마의 정체 "찾았다, 저기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화룡족의 시선이 일시에 언덕에 집중되었다. 그러자 바위 뒤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오며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그래, 나다. 어쩔래? 이 멍청한 도마뱀 자식들아! 아무리 정신이 오락가락해도 어떻게 너희들을 죽인 악마와 나를 헷갈릴 수가 있냐? 앙? 나는 인간이라고! 루미네스라는 녀석이 너희를 구 해 달라고 하도 징징거려서 들어온 거란 말이야!" "헛소리!" "이곳에 들어왔다는 게 바로 네가 악마라는 증거다!" "죽여라, 화룡족의 복수를 해라!" 화룡족이 곧바로 무기를 꺼내 들고 언덕을 따라 뛰어올라왔다. 20미터나 되는 거구의 화룡족이 떼를 지어 몰려오자 지진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아크는 곧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며 머리를 굴렸다. '놈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거의가 둔기다. 탄력도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견디겠지만 만약 스턴이나 경직에 걸려 놈들에게 포위되면 그 순간 바로 게임 오버다! 가능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유인해야 해!' 그렇다고 거리를 너무 벌려도 곤란하다. 거리가 너무 떨어져 전투 상태가 풀리기라도 하면 몇 마리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아크의 목적은 화룡족을 1마리도 남김없이 목적지까지 유인하는 것. 또한 1마리도 뒤처지거나 너무 앞질러 와도 곤란하다. 아크의 계획이 100%성공하려면 모두가 똑같은 위치에서 아크를 쫓아와야 하는 것이다. "라카드, 멀리서 지켜보면서 혹시 뒤처지는 놈이 있으면 도발 때려!" "오케이!" 라카드가 아크의 명령을 받고 측면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걸음이 느려지는 화룡족에게 그 동안의 울분을 담아 갖은 쌍욕을 해 댔다. 그러자 화가 치민 화룡족은 이를 갈아붙이며 전력을 다해 따라붙었다. 그러나 30여 마리나 되는 상대를 그런 식으로 유인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크 역시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화룡족을 한 덩어리로 뭉치도록 유도하며 도망쳤다. 그렇게 대략 10분. 언덕을 넘어선 아크는 목적지 근처까지 화룡족을 유인할 수 있었다. "라카드, 남아 있는 화룡족은 없겠지?" "오케이, 다 확인했어!" "하나 둘...모두 30마리...확실하군." 마지막 인원 체크를 마친 아크는 지척까지 유인한 뒤에 제법 높은 산봉우리를 끼고 회전했다. 동시에 눈앞에 희뿌연 수증기에 뒤덮인 장소가 나타났다. "됐다, 도착했어! 야, 이 멍청한 도마뱀 새끼들아! 욕기가 있다면 어디 덤벼 봐라!" 아크는 전력을 다해 안개 속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뒤쫓아 오는 화룡족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화룡족 1마리가 철봉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죽어라, 망할 악마 놈!" 아크는 재빨리 바닥을 굴러 철봉을 피해 내며 손으로 놈을 가리켰다. "이제야 정체를 드러냈구나, 악마 자식!" "뭐, 뭐라고? 악마? 나에게 하는 말이냐? 악마는..." "너지." 아크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하자 화룡족이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아크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악마. 드라고니안을 파멸로 몰아넣고, 화룡족의 영혼들 속에 숨어 들어가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살아온 기생충 같은 비열한 악마 자식, 그게 바로 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헛소리? 훗, 그런 말을 주변을 둘러보고 난 뒤에 해 보시지?" "....?"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던 화룡족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아크를 뒤쫓던 화룡족. 그러나 지금 아크의 앞에 있는 화룡족을 제외한 나머지 29마리는 그곳에 없었다. 수증기가 자욱한 구덩이 외곽에 빙 둘러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이해 못 하고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뭐, 뭣들 하고 있는 건가? 당장 이놈을..." "떠들어 봐야 소용없어. 저들은 안 들어온 게 아니라 못 들어온 거니까." "뭐라고?" "아직도 모르겠냐? 네가 지금 밝고 있는 게 뭔지?" 아크가 발로 바닥을 탁탁 치자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이건...?" "그래, 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드라고니안 지하에 있던 온천이지." 아크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아크가 죽어라 삽질을 한 것은 바로 온천을 찾기 위해서였다. 처음 아크가 온천을 떠올린 건 발데라스와 싸웠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 수백 명이 달라붙어서도 이기지 못했던 발데라스를 아크 혼자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화룡족에게 치명적인 약점이었던 물속으로 끌어들인 덕분이었다. 불의 정령이나 다름없는 화룡족은 물속에서 제 힘의 반의 반도 발휘하지 못했고, 심지어 물에 닿는 것만으로도 지속적으로 엄청난 데미지를 받았다. 다시 말해 화룡족에게 물은 곧 독! 물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영혼이라도 화룡족이라면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악마라면? 물론 수백 년이나 화룡족 속에 숨어 산 악마라면 당연히 화룡족의 약점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흥분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출 수준은 아니리라. 때문에 아크는 온천만 찾아내면 악마를 가려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혼돈의 공간을 떠도는 땅덩어리 가운데도 온천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그 땅덩어리들은 모두 드라고니안에서 떨어져 나온 것. 그렇다면 당연히 드라고니안의 어딘가에도 온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4~5킬로미터나 되는 곳에서 어떻게 땅속의 온천을 찾아내느냐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바로 '엘리멘탈 소드'! '엘리멘탈 소드'로 냉기 속성을 발동시킬 때 근처에 물이 있다면 약간이나마 효과가 상승한다. 그렇다면 땅속에 묻힌 온천의 영향도 받을 게 당연하다. 물을 만들다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드라고니안을 돌아다니며 '엘리멘탈 소드'를 난사했다. 그리고 가장 효과가 강력하게 발휘되는 장소를 파 내려가자....빙고! 드디어 기다리던 온천이 터져 나온 것이다. "네놈이 온천까지 따라 들어오고, 또 온천 속에서도 데미지를 받지 않는 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자, 어때? 이래도 아직 할 말이 남았나?" "크윽!" 화룡족이 당혹성을 터뜨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문득 뒤에 모여서 흉흉한 살기를 보내는 화룡족들을 발견하고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러기를 잠시, 문득 목을 긁어 대며 섬뜩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크크크, 제법이군!" "아앗!" 주변에 몰려 있던 화룡족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온천에 들어왔던 화룡족의 몸이 흐물흐물 녹아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허물을 벗듯 검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번들번들, 마치 검은색의 슬라임? 구더기? 하여간 그런 종류와 비슷하게 생긴 징그러운 몸뚱이에 붉은 눈동자 하나만 박혀 있는 괴물이었다. 이름은 셀. 의외로 레벨은 300밖에 되지 않는 몬스터였다. '레벨이 고작 300? 윈디고와 비슷해? 좀 이상한데?' 예상했던 악마와 너무 다른 모습과 레벨에 아크는 미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으며 셀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보스 몬스터이니 방심할 수 없다.' "크크크크, 장난은 여기까지다. 건방진 놈! 이대로 영원히 이곳을 헤매며 천천히 녹아 가는 편이 나았을 텐데.... 하지만 내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렇게 도니 이상,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서 소화시켜 주마!" 셀이 괴성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피부가 날카로운 돌기처럼 솟아 나왔다. 아크가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하자 온천수가 하늘로 튀어 오르며 지면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생긴 것과 다릴 엄청난 속도와 공격력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여유가 넘쳐흘렀다. 아크는 낙법으로 바닥을 구르다가 몸을 일으키며 툭 던지듯 물었다. "어이, 푸딩." "뭐? 푸, 푸딩?" "이미 네놈의 정체는 발각됐다. 화룡족도 모두 알고 있지." "화룡족의 도움이라도 기대하는 거냐? 물이 무서워서 들어오지도 못하는 놈들의?" "호오, 너는 물이 무섭지 않은가 보지?" "크크크크, 물이 무서워? 내 모습이 무서워서 미친 건가? 바보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는군." 셀이 온몸을 흔들어 대며 비웃었다. 아크도 셀처럼 온몸을 흔들어 대며 비웃음을 날려 주었다. "크크크크, 말귀를 못 알아듣는 푸딩이군. 네 말대로 나는 화룡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왜 더 깊은 웅덩이로 들어 왔을까? 물이 무섭지 않다고 했지? 어디 잠시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라자크, 지금이다!" 아크가 우렁차게 소리쳤을 때였다. 돌연 바로 옆의 산봉우리에서 쾅, 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뭔가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왔다. 쿠콰콰콰콰! 굉음을 일으키며 밀려 내려오는 것은 바로 엄청난 양의 온천수였다. "헉, 무, 물이다!" 화룡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언덕을 따라 쏟아진 온천수는 아크가 파 놓은 웅덩이를 가득 채워 버렸다. 아크가 '발굴'...일명 노가다 스킬을 발휘해서 파 놓은 웅덩이의 중심 부분은 수심이 무려 30여 미터나 되었다. 그곳이 온천수로 가득 차자 아크는 물론 셀까지 잠기고 말았다. "이, 이게 무슨..." 번들번들한 푸딩이나 구더기처럼 생긴 셀이 헤엄을 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푸딩은 온천수에 둥둥 뜬 채로 꿈틀거리며 당혹성을 터뜨렸다. "자, 이제 슬슬 그간의 울분을 풀어 볼까?" 아크가 '인어족의 비늘'을 입에 물고 히죽 웃었다. 바로 그 순간, 아크의 검이 한 줄기 화살이 되어 셀을 꿰뚫었다. 특별한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다. 앞으로 달려 나가며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셀이 기겁하며 피하려고 했지만 이곳은 물속, 아무리 발버둥 쳐도 꼼지락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첨벙거리다가 검에 옆구리(?)가 길게 베였다. "크악, 네, 네놈 대체..." "후후후, 내가 수중전에는 좀 강한 편이거든." 사실 아크가 온천을 발견한 곳은 이곳이 아닌, 옆의 산봉우리 위였다. 그러나 막상 온천을 발견한 아크는 잠시 고민했다. 분명 온천이 있으면 악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악마를 100% 해치울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바로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였다. 모처럼 물이 생겼으니 제대로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일단 온천이 나온 산 아래에 수십 미터 깊이의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물길을 만들어 일단 그곳에 약간의 물만 채워 놓고 둑을 쌓아 막아 놓았다. 악마를 웅덩이로 유인한 뒤에 둑을 터뜨려 단숨에 물을 채워 넣고 수중전으로 몰고 가기 위해서였다. '수중전이라면 어떤 상대라도 자신 있다!' 수중전은 이미 해저에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아크였다. 거기에 '인어족의 갑옷'으로 수중 페널티를 100% 무효화 시켰다. 수중 몬스터가 아닌 한 수중전으로 아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상대는 없는 것이다. 역시나 수중전이 시작되자 허우적거리는 푸딩은 공격은 커녕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넌 이제 뒈졌어!"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아크는 셀의 주위를 돌며 소나기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공격을 퍼붓자 셀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뭐지? 아무리 수중이라도 이건 그냥 레벨 300짜리 몬스터와 별로 다를 게 없잖아? 정말 이놈이 수백 년이나 화룡족의 영혼을 가둬 뒀던 악마인가? 아니, 뭔가가 이상한데?' 너무 쉽게 진행되는 전투에 아크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연이어 날린 '다크 블레이드'에 적중된 셀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뭐, 뭐야?" 아크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슈슉, 슈슉, 슈슉! 아크가 있는 온천수 아래, 화룡족들이 몰려 있는 곳. 여기저기에서 셀과 똑같이 생긴 몬스터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나왔다. 그리고 시뻘건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한 목소리로 괴기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크크크크, 당해 주는 척하니까 기가 살아서 설치는 꼴이라니. 멍청한 놈, 네가 이곳에 들어온 이상 결코 이 몸을 이길 수 없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영원히 이곳을 헤매며 내게 영혼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빨리느냐, 아니면 당장 죽느냐다. 하긴 당장 죽는다고 해도 결국은 내게 영혼을 빨리는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저 멍청한 화룡족들처럼 말이다." "이, 이럴 수가...!" 아크는 그제야 미묘한 이질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뉴 월드에서는 보스 몬스터가 나타날 때는 항상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셀이 나타날 때는 그런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셀은 드라고니안을 집어삼킨 진짜 악마가 아니라는 뜻이다. "크아아악, 이, 이 악마 놈!" 콰콰쾅, 콰콰콰콰쾅!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셀들이 사방으로 기어 다니며 화룡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크는 그저 넋 나간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셀의 본체를 찾고 있었다. 셀이 악마 자신이 아니라면 분명 어딘가에 본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체를 해치우지 않는 한 아크는 드라고니안을 벗어나지 못한다. '셀이 악마의 분신이라면 틀림없이 놈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 대체 어디에...?' 달려드는 셀의 공격을 피하며 상황을 살피던 아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시에 미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던 문제들이 일시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먼저 지금까지 아크는 악마는 물론 화룡족득에게조차 들키지 않고 피해 다녔다. 그런데 어떻게 악마가 아크의 능력치를 약탈해 갈 수 있었을까? 그건 곧 아크의 능력치를 약탈한 상대는 화룡족 속에 숨어 있던 셀이 아닌 이 공간 자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이 공간 전체에 악마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셀은 아크가 제 발로 나타날 때까지 찾지 못했다. 능력치를 빨아먹을 수 있으면서도 정작 아크가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는 말이다. 어딘가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드라고안으로 들어올 때도 뭔가 이상했어. 내가 떨어진 뒤에 갑자기 입구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그때 입구에 빨려들 때의 느낌은 마치...헉, 서, 설마? 맙소사,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화룡족처럼 지금까지 악마에게 속아서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생각의 사슬을 진행시키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결론으로 나온 것은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 속, 사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말이 안 되는 세계다. 게다가 아크는 예전에 지금 자신이 상상한 그런 존재를 이미 본 적이 있었다! 만약 아크의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까지 생각하던 방향을 180도로 바꿔야 한다. 그렇다, 이곳에서 셀과 싸워서 절대 악마를 무찌를 수 없다. 애초에 악마를 무찔러야 드라고니안을 탈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대로 이곳을 탈출해야 악마를 무찌를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해 낸 아크의 머리가 시속 700킬로미터로 회전했다. "그렇다면 이곳을 나갈 방법은...?" 이크는 몰려드는 셀을 화격으로 밀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크가 이곳으로 들어올 때 낙하 데미지가 적용되었다. 그렇다면 입구는 까마득히 높은 천장의 어딘가에 있다는 뜻. 평소라면 그곳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 하겠지만, 만약 이곳이 아크가 짐작한 대로의 공간이라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화룡족 여러분!" 아크가 온천에서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이제 내가 악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겁니다. 저는 루미네스라는, 당신들은 그 이름조차 잊어버렸겠지만 화룡족의 유일한 생존자에게 악마를 물리치고 당신들의 영혼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찾아온 사람입니다! 하지만 제가 목적을 이루려면 여러분이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크윽, 무, 무엇인가?" 화룡족이 셀의 공격을 막아 내며 물었다. "불입니다. 모두 전력을 다해 화염을 저 온천에 쏟아 부어 주십시오!" "온천에?"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믿고 따라 주십시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화룡족이 아크의 절박한 목소리에 온천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리고 가슴이 터질 듯이 숨을 들이켰다가 일시에 뿜어냈다. 29마리의 화룡족들이 뿜어내는 어마어마한 화염이 직격하자 온천수가 폭발하듯이 끓어오르며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치솟아 올라왔다. 그렇게 잠시, 일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게 피어 오른 수증기에 휩싸였다. 그러자 갑자기 지면이 출렁거리며 흔들렸다. 아크는 수증기 밖으로 뛰어나오며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을 쳐다보았다. '열렸다!' 쿠쿠쿠쿠, 크어어어어어-! 마치 거대한 문이 열리듯 천장이 쩍 갈라졌다. 뒤이어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주변의 수증기가 단숨에 입구로 밀려 올라갔다. "지금이다, 라둔. 행글라이더!" 쌕쌕쌕쌕, 쌕쌕쌕쌕쌕! "라자크 검화, 라카드, 기류를 타고 나를 따라와라!" 아크는 본 블레이드로 변한 라자크를 잡고 내달리다가 온 힘을 다해 뛰어올랐다. 그러자 행글라이더가 밀려 올라가는 기류를 타고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밀려 나가는 수증기와 함께 내동댕이쳐지듯 입구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아크는 그대로 기류에 몸을 싣고 근처의 부유석에 착지해 몸을 돌려세웠다.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영혼의 포식자 '소울이터'가 출현했습니다! "역시...!" 쿠콰콰콰쾅, 쿠콰콰콰콰쾅! 아크의 눈앞에서 드라고니안이 있던 거대한 돌산이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져 나가며 드러난 것은 놀랍게도 거대한 메기의 형상을 한 악마였다. 이름은 소울이터, 마치 젤라틴으로 만들어진 듯 반투명한 소울이터의 몸속에는 엄청난 크기의 땅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부서진 성채와 산봉우리, 그 옆의 온천까지.... 놀랍게도 그것은 방금 전까지 아크가 있었던 드라고니안이었다. 그렇다, 아크가 들어갔던 드라고니안은 바로 이 거대한 소울이터의 배 속이었다. 드라고니안이 소울이터의 배 속이었다면 아크가 느꼈던 이질감도 모두 해명이 된다. 드라고니안의 입구로 빨려 들어갈 때 느꼈던 흡인력은 바로 예전에 백경 갈릭에게 삼켜질 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그리고 배 속에 있었으니 셀이라는 몬스터에게 발견되지 않아도 능력치를 흡수당했던 것이다. '셀은 저놈에게 붙어사는 기생충에 불과했던 거야!' 그렇다, 셀은 예전의 갈릭의 배 속에 살던 웜처럼 기생충에 불과한 존재였다 셀이 웜과 다른 점은 메기에게 정신 지배를 당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소울이터는 셀을 이용해 직접 볼 수 없는 화룡족과 배 속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벨 650의 보스 몬스터, 그게 드라고니안을 삼킨 악마의 진짜 정체다!' 아크가 온천수를 수증기로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배 속에서 갑자기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생겼다. 당연히 배 속이 거북해진 소울이터는 팽창된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야 했으리라. 말하자면 아크는 소울이터가 트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행글라이더로 소울이터가 트림을 할 때 뿜어져 나오는 기류를 타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훗, 악마도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나 보지?" -크아아악, 이놈-! 외피를 모두 벗은 소울이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크는 소울이터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단숨에 압도되었다. 직경이 4~5킬로미터짜리 도시를 통째로 삼키고 있는 몬스터! 소울이터에 비하면 예전에 아크를 삼켰던 갈릭도 어린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얼마나 큰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는데도 소울이터의 전장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레벨은 무려 500! 현재 아크는 소울이터에게 능력치를 약탈당해 레벨 300 수준이었다. 레벨 차이가 무려 200이나 나는 것이다. "주, 주인..." 엄청난 레벨과 몸집 차이에 겁을 집어먹은 라카드가 덜덜 떨며 떠듬거렸다. 그러나 소울이터를 바라보는 아크의 눈망울은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났다. "밥이다!" "엥?" 아크의 외침에 라카드가 멍청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이, 이럴 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안에서 너무 고생해서 살짝 간 거야?" "멍청아, 똑바로 봐. 저놈 생긴 걸!" "생긴 거? 메기잖아. 냄비에 들어가지도 않을 큰 메기. 메기 매운탕은 아무래도..." "그게 아니야! 저 반투명한 젤라틴 같은 피부, 저건 윈디고와 똑같잖아!" "그게 뭐 어쨌다고....힉! 주, 주인 설마?" "잡아먹어 버리겠어!" 아크가 이를 드려내며 히죽 웃었다. 그렇다, 모습을 드러낸 소울이터의 정체는 거대한 영체 몬스터! 그리고 영체 몬스터는 곧 아크의 영력을 팍팍 올려 주는 보약이었다. 레벨이 어쨌든 크기가 어쨌든 다 필요없다. 아크에게 소울이터는 그저 거대한 영력 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거대한 몸....영력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나 될까?" 아크가 군침을 질질 흘리며 소울이터의 몸을 훑어보았다. 그때 소울이터의 몸에서 수십 개의 촉수가 뻗어 나왔다. 쉬이이이익, 콰콰콰쾅! 수백 미터를 뻗어 온 촉수가 후려치자 부유석이 일격에 가루로 변해 버렸다. 아크는 곧바로 몸을 날리며 근처의 부유석을 본 블레이드로 휘감았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솟아오르다가 다시 본 블레이드를 휘둘러 다른 부유석을 휘감으며 이동했다. 예전에도 몇 번 사용해 봤던 인디아나 존스의 채찍 액션이다. 아크는 그렇게 채찍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소울이터를 주시했다. 그러기를 잠시, 곧 소울이터의 머리 위에 화살표가 생겼다. "록온 완료! 받아랏, 영혼 갈취!" 동시에 아크의 손에서 일명 악마의 손이 뻗어 나와 소울이터의 피부를 꽉 틀어쥐었다. 보통 레벨이 200 이상 차이 나면 검을 휘둘러도 제대로 박히지 않는다. 그러나 영혼을 잡아 뜯어 버리는 '영혼 갈취'는 레벨과는 관련이 없었다. 악마의 손이 피부를 틀어쥐고 그대로 잡아 뜯어 버리자 폭음이 울리며 피부가 쫙 찢어졌다. 그러자 소울이터가 괴로운 비명을 터뜨리며 발광했다. "어라? 뭐야?" 아크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뜯겨진 소울이터의 피부를 바라보았다. 단 일격에 수백 미터에 달하는 소울이터의 피부가 통째로 뜯겨져 나온 것이다. 아무리 영체 몬스터가 영혼 갈취에 약하다고 해도 좀 심하다 싶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뜯겨진 피부의 단면이 불과 몇 밀리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얇았던 것이다. "저 녀석, 완전히 공갈빵이었잖아?" 그렇다, 소울이터는 원래 거대한 몬스터이기는 하지만 4~5킬로미터까지는 아니었다. 본래 크기는 고작 해야 몇백 미터. 그러나 영체라 자유롭게 확대와 축소가 가능한 몬스터였다. 때문에 드라고니안을 통째로 삼키기 위해 몸을 풍선처럼 부풀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넓어진 대신 두께는 몇 밀리미터까지 얇아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영혼 갈취'는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일정 양의 영혼을 뜯어 오는 스킬! 때문에 얇아진 만큼 넓은 면적을 뜯어 온 것이다. -크아아악, 이, 이 인간 놈이 감히! 피부를 왕창 뜯어내 버리자 소울이터가 더욱 흉포하게 촉수를 휘둘러 댔다. 아크는 그때마다 채찍 액션을 펼치며 도망쳤지만, 촉수가 근처의 부유석을 부숴 대자 점점 도망갈 곳이 없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이동할 곳이 없어 일단 직경 몇십 미터에 달하는 땅덩어리로 피신했지만, 그 역시 연속적인 촉수의 공격에 부서져 버렸다. "쳇, 공갈빵이라도 명색이 레벨 600의 몬스터라 이건가?" 아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소울이터를 노려보았다. 엄청난 크기라 화살 따위를 사용하면 눈을 감고 쏴도 맞을 정도였다. 그러나 영혼 갈취의 사정거리는 20~30미터다. 사정거리를 벗어나면 록온도 풀려 영혼 갈취를 아예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부유석을 타고 이동하며 싸우다 보니 항상 사정거리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발판으로 삼을 부유석이나 땅덩어리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러다가 촉수에 얻어맞기라도 하면 용암에 떨어져 버릴 거야. 뭔가 방법이...."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아크가 다시 소울이터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아하, 그러고 보니 발판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잖아?" 그때 또다시 촉수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콰쾅, 촉수가 일격에 부유석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아크는 부유석에 없었다. 소울이터가 시뻘건 눈알을 뒤룩뒤룩 굴려 대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촉수에 본 블레이드를 휘감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크를 발견했다. 촉수가 부유석을 후려치는 순간 아크는 몸을 날리며 본 블레이드로 촉수를 휘감은 것이다. 소울이터가 성난 포효를 터뜨리며 촉수로 용암을 후려쳤다. 시뻘건 용암이 튀어 오르며 촉수의 끝 부분이 용암에 쑤셔 박혔다. 그때 아크는 탄력을 이용해 튀어 오르며 촉수 위에 올라탔다. 소울이터의 몸집에 비하면 실오라기 같은 크기지만 두께가 10여 미터에 달하는 촉수다. 아크는 촉수를 발판 삼아 '전력질주'를 펼치며 소울이터에게 달려갔다. 아크가 달려들자 수십 가닥의 촉수가 날아들었다. "야, 이 멍청아! 뭘 멍하지 보고 있는 거야? 놈의 시선을 교란시켜!" "하, 하지만 저렇게 큰 놈을 내가 어떻게..." "저놈한테 죽는 게 나을 거 같으냐? 아니면 나한테 맞는 게 나을 거 같으냐?" "윽, 제, 젠자아아앙!" 아크의 협박에 라카드가 눈을 질끈 감고 '암흑 돌진'을 사용해 날아갔다. 그리고... 푹! -끄아아아아아아! 소울이터가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터뜨리며 발광했다. '암흑 돌진'을 사용해 날아간 라카드가 그대로 소울이터의 눈알에 박혀 버린 것이다.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소울이터는 눈알 크기만 수백 미터에 달했다. 그에 비하면 라카드는 그야말로 먼지만한 존재. 그러나 먼지만한 존재라도 눈알에 박히면 얘기가 다르다. "어라? 뭐야? 이거 완전 맹물이잖아?" -이 날파리 같은 녀석이...다, 당장 나오지 못.... "날파리? 풍선 귀신 주제에 감히 유계의 귀족님에게 날파리? 요놈, 요놈!" -끄아아아악, 나, 나오지 못하겠느냐! 자신의 공격에 수 킬로미터의 소울이터가 휘청거리자 라카드의 간덩이가 커졌다. 라카드는 마치 헤엄치듯 소울이터의 눈알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주먹질을 해 댔다. 소울이터는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촉수로 후려쳤지만, 영악한 라카드가 요리조리 피하자 자신의 눈알만 후려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좋아, 잘하고 있어!" 그사이 아크는 촉수를 타고 소울이터의 등에 올라탔다. "후후후, 여기라면 록온이 풀릴 이유가 없지." 록온을 끝낸 아크가 등판을 뛰어다니며 쉴 새 없이 '영혼갈취'를 날려 댔다. 그렇게 라카드는 눈알을 돌아다니며 쑤셔 대고, 아크는 등판을 뛰어다니며 닥치는 대로 살점을 잡아 뜯었다. 그때마다 소울이터는 괴성을 질러 대며 발버둥 쳤다. 수 킬로미터의 거체가 발광하자 사방에서 용암이 튀어 오르며 공간이 흔들렸다. 그러나 소울이터의 몸에 올라탄 아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오오오!" "드라고니안을 삼킨 악마를...." "먹고 있다! 인간이 악마를 먹고 있어!" 배 속에서 셀과 싸우던 화룡족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소울이터를 둘러싸고 있던 바위산이 부서지고, 화룡족은 투명한 피부를 통해 아크와 소울이터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인간이 수 킬로미터의 소울이터와 팽팽하게, 아니 압도하며 싸우는 장면에 넋을 잃었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그렇게 아크가 피부를 등판의 절반 가까이 뜯어 먹자 소울이터의 등에서 또다시 수십 개의 촉수가 솟아 나왔다. 그러나 등판에 올라타고 있으니 촉수를 피하기가 더 쉬웠다. 조금 전처럼 불안하게 부유석을 뛰어다닐 필요도 없었고, 뭣보다 소울이터가 등판에 붙어 있는 아크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을 부풀린 게 네놈의 실수다, 멍청한 메기 자식아. 영혼 갈취!" 아크는 마구잡이로 날아오는 촉수를 피하며 미친 듯이 영혼을 뜯어 먹었다. -'영혼 갈취'로 인해 시전자의 영격이 상승했습니다! <<영력+1>> -'영혼 갈취'로 인해 시전자의 영격이 상승했습니다! <<영력+1>> 소울이터의 몸이 사라지는 만큼 영력이 쭉쭉 올라갔다. 아크가 연이어 영혼 갈취로 영혼을 뜯어내자 소울이터의 한 면이 대머리처럼 뻥 뚫려 버렸다. 그 상태에서 소울이터가 발버둥 치자 배 속에서 거칠게 흔들리던 드라고니안의 일부가 튀어나왔다. 마치 똥을 매달고 헤엄치는 금붕어 같았다. 아크가 주변을 뛰어가며 영혼 갈취로 피부를 쭉 잡아 뜯어 버리자 걸려 있던 드라고니안이 용암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용암이 수백 미터까지 솟아올랐다. "엇?" 그때였다. 갑자기 소울이터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쭈글해지더니 급격히 수축했다. 그리고 이내 불과(?) 100여 미터 정도의 크기로 줄어 들어 툭, 드라고니안 위로 떨어져 버렸다. 덕분에 놈의 등에 타고 있던 아크도 그 위에서 떨어졌다. "저놈이다!" "저놈이 수백 년간 우리를 기만하던 악마의 정체!" 드라고니안이 놈의 배 속에서 나오자 셀도 모두 사라졌다. 셀과 싸우던 화룡족이 무기를 휘두르며 일제히 소울이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아크가 바람처럼 달려가 그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손대지 마! 내 거야!" "무슨 소리인가? 저놈은 수백 년간..." "내 거라고!" "웃!" 소울이터의 몸은 마지막 한 점까지 영력으로 환산해야 한다! 그걸 막는다면 화룡족이라도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무시무시한 아크의 기백에 화룡족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 화룡족을 뒤로 물린 아크가 섬뜩한 눈으로 바닥을 기는 소울이터를 훑어보았다. 수 킬로미터까지 부풀었다가 단숨에 100여 미터 크기로 줄어든 소울이터는 완전히 젖은 걸레처럼 늘어졌다. 아크가 다가오자 촉수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촉수 역시 젖은 걸레처럼 축 늘어져 흐느적거릴 뿐이었다. -끄으으으으....오지 마....그만둬....! 아크는 흐느적거리는 촉수를 귀찮은 듯이 검으로 툭툭 쳐내며 소울이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머리 부분에 손을 올려 놓으며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드라고니안을 삼켰던 소울이터는 아크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생명력이 3% 남짓밖에 남지 않자 마치 점액질 같은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오며 '마기 봉인'관련 정보창이 떠올랐다. 아크는 잠시 공격을 멈추고 품평하듯이 소울이터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마기 봉인이라...해 봐야 겨우 저주템밖에 못 만들 텐데 그냥 먹어 버릴까? 아니야, 어차피 남은거 먹어 봐야 영력이 그리 많이 오르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저주템이라도 의외로 쓸 데가 많을 것 같으니 일단 만들어 볼까? 마기 봉인!" 아크는 음식 찌꺼기를 처리하듯이 남은 영혼을 오벨리움에서 주운 검에 봉인시켰다. 동시에 마치 봇물 터지듯 메시지창이 주루룩 떠올랐다. -'마기 봉인'을 사용해 30%의 추가 경험치가 적용되었습니다. -사악한 힘의 원천이 사라져 흡수당했던 능력치가 되돌아 왔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 500짜리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자-잡아먹었지만-레벨이 단숨에 9나 올라갔다. 게다가 소울이터 1마리를 통째로 잡아먹은 덕분에 영력이 무려 170이나 올라갔다. 젤라틴처럼 생긴 소울이터는 그야말로 영양 덩어리 몬스터였던 것이다! "자, 이제 전리품을 확인해 볼까?" 바닥에는 소울이터가 떨군 아이템이 널려 있었다. 나이트메어가 봉인된 낡은 검 무기타입: 한 손 검 공격력 : 7~10(+60) 내구력 : 2 무게 : 45 사용제한 : 레벨 250 오벨리움의 전사들이 사용하던 고대의 검 그러나 검에 마기가 흡수되어 성질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마기가 깃든 검날에는 일격p에 상대를 괴멸시킬 위협적인 기운을 품게 됐습니다. 동시에 검이 마기, 그 자체가 되어 버려 내구력은 극도로 약해졌습니다. 또한 저주 효과로 인해 사용자가 일단 검을 착용하면 부서지기 전에 해제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수리 불가, 강화 불가, 마법 부여 불가, 장비 시 해체 불가 *상급 악마[소울이터]봉인 효과. <<소울이터 : 공격 시 소울이터의 마력이 적을 휘감아 강력한 정신적인 데미지를 줍니다. 공격받은 상대는 정신적인 데미지로 마나가 1~3,000 소멸하며, 공격자는 50% 확률로 상대의 스탯 포인트를 랜덤으로 1~2 흡수할 수 있습니다.>> 상급 악마의 표피(레어, 재로_ <<상급 이상의 가죽 세공 스킬이 있어야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수 : 5장) "오오오, 이게 뭐야?" 검을 확인하던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보스 몬스터라 혹시 좋은 효과가 붙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과는 완전 빙고! 먹다 남은 소울이터를 봉인하자 생각지도 못했던 옵션이 붙어 버렸다. 마나를 소멸시키는 것은 그렇다 쳐도 공격할 때 50% 확률로 상대의 스탯 포인트를 흡수할 수 있다니? 소울이터의 능력치 흡수 능력을 생각하면 납득이 가긴 하지만 완전히 사기적인 옵션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구력이 2밖에 안 되니 많이 사용해 봐야 열 번 이면 박살 나겠군. 50% 확률이니 검이 깨질 때까지 스탯 포인트를 5~10 정도밖에 얻을 수 없다는 말이잖아? 그렇게 따지면 그리 대단한 옵션도 아니네. 젠장, 내구력만 빵빵하면 엄청난 검이 됐을텐데." 아크는 아쉬운 얼굴로 검을 챙겨 넣었다. "그나저나 이게 뭐야? 보스 몬스터를 잡았는데 고작..." 검이야 그렇다 쳐도 소울이터에게서 떨어진 아이템은 하나. 그것도 레어라고는 하나, 재료 아이템이었다. 레벨 500의 보스 몬스터라 잔뜩 기대했던 아크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만? 방금 전에 놈이 죽을 때 뭔가 반짝이는 게 굴러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표피는 반짝이는 게 아니잖아? 그럼 아직 뭔가 남아 있다는 건가?" 아크는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샅샅이 뒤져 봐도 특별한 아이템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가 잘못 봤나?"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쌕쌕쌕쌕! 아크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라둔이 갑자기 펄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작은 바위틈으로 기어 들어가고 잠시 후,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습득했습니다. "아, 저런 곳에 굴러 들어갔구나! 잘했어, 라둔!" 쌕쌕? 쌕쌕썍! 아크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라둔이 꼬리를 흔들었다. "자, 이제 뱉어 봐. 정보는 확인해 봐야 하니까." 아크에 명령에 라둔이 입을 크게 벌리고 아이템을 탁 뱉어...쌕! 탁 뱉어...쌕! 탁 뱉...지 못했다. 몇 번이나 시도해 보려는 듯 헛구역질을 해 댔지만 정작 '불타는 심장'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아크가 라둔을 거꾸로 잡고 흔들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돌연 라둔이 각질에 뒤덮이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불타는 화룡족 심장'이 라둔에게 흡수됐습니다. 소환수 '라둔'이 특수한 아이템을 섭취하여 체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라모네 종족은 아직 성장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은 종족입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불타는 화룡족 심장'이 체내에 흡수되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재 라둔의 능력으로는 아직 '불타는 화u룡족 심장'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없습니다.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소화할 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재 소화율 : 1%>> "어라? 이게 뭐야?"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한동인 잊고 있었다. 라둔이 특정한 아이템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은 예전에 라둔이 먹었던 '바슘의 열매'같은 거라는 말인가? 쌕쌕쌕, 쌕쌕쌕. 아크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라둔이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아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했어." 어차피 '불타는 화룡족 심장'이 라둔의 성장 아이템이라면 그 외의 용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크가 예전에 '바슘의 열매'를 먹었던 라둔을 탓했던 이유는, 그 때문에 라둔의 '아이템 보관'기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제약이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전처럼 딱히 다른 뭔가를 찾지 않아도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소화시킬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 라둔, 이왕 먹은 건 어쩔 수 없으니 팍팍 소화시켜야 한다?" 쌕쌕? 쌕쌕쌕쌕! 라둔은 감동받은 눈으로 몸을 비비적대며 애교를 떨었다. "후후후, 귀여운 녀석. 역시 소환수라면 이 정도 애교는 있어야지. 자, 그럼 이제 볼일은 다 끝...아얏, 뭐야?" 그때였다. 갑자기 양쪽 손목이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손목을 내려다보던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어라? 이, 이건...?"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은 손목에 새겨진 문신이었다. 바로 '이터널 소울'의 각인. 그 문신이 있는 자리가 불에 지진 것처럼 욱신거리더니 돌연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신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쩡,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동시에 갈라진 문신이 피부에 스며들듯이 사라지며 눈앞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해제되어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기 감응 II] : 이터널 소울 3단계(패시브) 마기 감응은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으로 마반 영웅의 소울스톤에 담긴 비기를 배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의 스킬입니다. 마기 감응을 습득하면 마 속성의 몬스터와 싸울 경우 20%의 추가 공격력이 보너스로 주어지며, 마 속성의 상태 이상에 저항할 확률이 30% 상승합니다. 또한 몬스터의 체내p에 숨겨진 마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기 감지, 마 속성에 대해 공격력 +20%, 속성 저항력+30%>> [마기 탐지] : 이터널 소울 4단계(액티브) 마기 탐지는 대기에서 마기의 흐름을 읽어 내는 기술입니다. 주변 100미터 공간 내에 마기의 흐름을 읽어 악마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또한 악마의 체내에 흐르는 마기의 흐름도 단숨에 파악해 마혈(魔穴)을 끊어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마혈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악마는 100~1,000의 피해를 입고, 일시적으로 방어력이 감소합니다. <<악마에 대한 통찰력+50 마혈 절단 시 100~1,000 데미지와 방어력 감소, 영력 소모 : 50>> "어라? 이터널 소울?" 생각지도 못했던 '이터널 소울'각성이었다. 그러나 이번 각성을 통해 아크는 '이터널 소울'의 각성 방식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이터널 소울' 이 마 속성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마다 각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터널 소울'은 본래 양쪽 손목에 하나씩 각성할 때마다 쌍으로 봉인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원래 '이터널 소울'이 각성할 때는 양팔에 하나씩 두 개의 봉인이 동시에 해제되는 모양이구나. 하나는 '어둠의 선물'처럼 마 속성에 대한 능력치와 저항력을 향상 시켜 주는 패시브 스킬. 또 다른 하나는 '마기 봉인'이나 이번에 생긴 '마기 탐지'처럼 그때마다 싸우는 상대에 따라 특정한 스킬을 부여해 주는 액티브 스킬. 하지만 이제 와서 '마기 탐지'라니... 정보창을 읽던 아크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마기의 흐름을 탐지해 악마를 찾아내는 스킬. 진즉에 이런 스킬이 생겼다면 굳이 배 속까지 들어가지 않고도 소울이터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으리라. 그런데 이건 뭐, 뒷북치는 것도 아니고 다 끝나고 나서야 이런 스킬을 주면 어쩌자는 건가? 하긴 이전에 카르마를 상대할 때도 뒷북치듯 나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풀리는 건 단순히 스킬을 배운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뉴 월드의 전직은 3차까지다. 다시 말해 다크소울 이후의 상위 직업이 남아 있다는 뜻. 그리고 '이터널 소울'은 틀림없이 다크소울의 다음 직업으로 가는 과정이리라. 어떤 스킬이 나오든 봉인이 빨리 풀려 주면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제 정말 여기서 볼일은 다 끝난 거지?" 아크가 상쾌한 표정으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년이나 화룡산을 덮고 있던 불길한 어둠의 결계가 사라진 것이다. 저주의 매개체인 소울이터를 해치우자 드라고니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백 년 동안 화룡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던 검은 돔이 사라지자 혼돈의 공간에서 떠다니던 운석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용암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드라고니안 둘레에만 해자처럼 용암이 둘러쳐져 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소울이터가 아크와 싸울 때 주변의 부유석과 땅덩어리들을 몽땅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드라고니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루미네스가 들어왔다. "불 속에서 태어난 존재여, 태초의 불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취하라!" 루미네스가 정화의 권능을 펼치자 화룡족의 영혼들은 불길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영혼을 성불시킨 루미네스가 아크에게 다가왔다. "정말 고맙네." 루미네스는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참으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동족의 영혼이 해방됐다는 기쁨과, 수백 년 만에 풀려난 동족을 자신의 손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슬픔이리라. "도움이 돼서 다행입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마지막이겠군." "네?" 아크가 갸웃거리자 루미네스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이곳을 지킨 지가 벌써 수백 년이네. 내가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영면에 들어갔어야 했지. 하지만 악마에게 영혼이 사로잡힌 동족을 두고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어서 오라클의 모든 신성력을 쥐어짜 목숨을 부여잡고 있었을 뿐이네. 그러니 화룡족의 영혼이 해방된 지금, 나 역시 가야 할 곳으로 가야겠지." "그럼 화룡족은...?" "아마도 두 번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네." 루미네스가 쓸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백 년이나 기다린 그가 마지막으로 겪어야 하는 것이 일족의 멸종이라니, 어떻게 보면 저주를 받아 기억을 읽은 화룡족의 영혼보다 그가 더 불쌍한 존재이리라. 그러나 루미네스는 고개를 저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나를 끝으로 화룡족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네. 하지만 나는 그게 화룡족의 종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화룡족의 의지는 자네를 통해 전해질 테니까." "네? 그게 무슨...?" "그때 결계에 있는 동안 참으로 긴 시간을 고민했네. 자신의 적이었던 발데라스의 유지조차 거부하지 않고 그의 유품을 가지고 이곳까지 찾아온 마음. 그리고 거대한 악에 맞서 화룡족의 영혼을 해방시켜 준 용기와 힘. 그대는 진정한 용사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내게 보여줬네. 나는 화룡족의 마지막 오라클로서 그에 대한 보상을 해 줘야 할 의무가 있네." '퀘스트 보상인가?' 아크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사실 아크는 루미네스가 멸종하든 뭘 하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아크가 안타까워해 봐야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단지 루미네스가 가야 할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운운할 때 잠시 당혹했던 것은, 힘들게 퀘스트를 완료하고 돌아왔는데 보상조차 주지 않고 날라 버릴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갈 때 가더라도 뭔가 주고 갈 모양이다. "따라오게." 루미네스가 몸을 돌려 드라고니안의 폐성으로 향했다. '대체 뭘 줄라나? 화룡족의 의지니 뭐니 했으니 상당히 좋은 거겠지? 당연히 좋은 걸 줘야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게다가 어차피 이제 끝이라며? 다 털어 줘도 상관없잖아.' 아크는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쫄래쫄래 따라갔다. 루미네스가 아크를 안내한 곳은 폐성의 중심, 화룡족의 형상을 닮은 석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곳이었다. 루미네스는 석상의 중심에 자리 잡은 제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제단 위에 올라서게." '엥? 뭐야? 아이템을 주는 거 아니었어? 혹시 이번에도 '불의 축복'같은 거야?' 어째 흘러가는 분위기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불의 축복'을 받으면 화염 저항이 10%나 늘어나고 행운이 20이나 추가된다. 그리고 결계로 들어갈 때만 해도 불의 축복을 한 번 더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퀘스트를 해결하기까지 거의 열흘이나 걸렸다. 뭐, 그중 일주일은 윈디고를 잡아먹느라 소모된 시간이지만. 어쨌든 드라고니안에서도 능력치가 깎일 뻔한 위기를 겪지 않았던가? 그런 죽을 고생을 하고 나니 어쩐지 '불의 축복'만으로는 밑지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루미네스가 석장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태초의 불이여, 선택받은 용사에게 신성한 불의 힘을!" 쿠쿠쿠쿠, 쿠쿠쿠쿠! 그때였다. 제단 주변에 늘어서 있던 화룡족 신상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석상이 제단으로 향하지 돌연 입을 쩍 벌리며 엄청난 화염을 뿜어내는 게 아닌가? 수십 개의 석상에서 뿜어내는 화염! 그렇게 아크가 화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돌연 눈앞에서 하얀 빛이 터져 나오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신성한 불의 제단'에서 '화룡강림'스킬을 습득했습니다! [화룡강림] : 신격 스킬p 화룡강림은 신성한 불의 제단에서 축복을 받은 선택된 용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화룡족 궁극 스킬입니다. 화룡강림은 화룡족의 신으로 추앙받는, 전설의 화룡 엘더화이어의 힘을 받아들여 일시에 폭발시키는 스킬입니다. 본래 이 스킬은 오직 한 사람만이 익힐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대로 태초의 불을 보관하는 화룡족의 신전을 지키는 가디언에게만 전수되어 왔습니다. 화룡강림을 사용하면 체내의 받아들인 신성한 불의 기운이 폭발하며 10분간 '불멸의 화룡'효과가 적용됩니다. <<불멸의 화룡>> +스킬 발동 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스킬 발동 시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50% 증가합니다. +스킬 발동 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적에게 10~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 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 500%, 파티원의 화염 저항력을 100% 상승시킵니다. +스킬 발동 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대 생명력의 50%가 회복됩니다. <<영력 소모: 400>> 최초의 신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신격 스킬은 본래 현재는 잊혀진 고대신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최상위 스킬입니다. 이 스킬을 인간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고대의 비술을 이용하는 방법뿐입니다. 또한 이 스킬은 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인간의 몸으로 신격 스킬을 발동시키는 것은 특별한 공간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용자의 능력을 최대한 증폭시킬 수 있는 '영역 선포' 스킬입니다. *신격 스킬은 각 직업의 '영역 선포' 스킬 유효 범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격스킬을 발동시킨 후라도 '영역 선포'범위를 벗어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시, 신격 스킬!'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스킬 하나에 발동되는 효과가 무려 다섯 가지. 게다가 효과 하나하나가 상급 스킬과 맞먹을 정도로 강력하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주며 생명력을 50%나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사기이다. 그런데 거기에 모든 속도가 50% 상승! 공격에 화염 데미지 추가! 사용자는 물론 파티원 전체에 화염 저항력 증가! 심지어 공격을 받을 때도 적에게 화염 데미지를 입힌다! 일단 스킬이 발동하면 10분간은 거의 무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긴 그러니 신격 스킬이라고 불리는 거겠지만!' 아크가 유일하게 겪어 본 신격 스킬은 예전에 붉은 남자기 사용했던 '인드라의 뇌전'이다. 바로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를 일격에 눕혔던 무지막지한 전격 마법! 꼭 '불멸의 화룡'이 아니라도 신격 스킬은 일단 발동되면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신격 스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영역 선포'가 적용되는 공간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적을 '영역 선포' 공간 내에 붙잡아 둘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스킬. 개 줄에 매인 투견이나 다름 없었다. 만약 붉은 남자와 싸울 때 미리 그런 정보를 알았다면 그처럼 허망하게 눕지는 않았으리라. '그 약점을 알고 있는 유저와의 전투에서는 사용할 수 없겠지만, 몬스터와 싸울 때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장소라면 나보다 몇 배는 강한 몬스터와 싸워도 널널하게 이길 수 있을 정도야.' "이제 그대는 화룡족의 일원이나 다름없네." "화룡족의 명예에 걸맞는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아크의 대답에 루미네스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나 해도 되겠는가?" '부탁?' 뭔가 줬다고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건가? 그러나 NPC의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NPC의 부탁은 곧 퀘스트. 게다가 비록 땡전 한 푼 없는 거지지만, 대신 능력치가 팍팍 올라가는 화룡족의 퀘스트라면 말할 것도 없다. "뭐든 말씀하십시오. 저는 이미 명예로운 화룡족의 일원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맙군. 그대는 이미 화룡족을 구해 자신의 용기와 실력을 증명했네. 그 용기와 실력을 믿고 부탁하네. 일전에도 말했지만 마수 마그라가 화룡족의 신전에 보관되어 있던 '불멸의 서'라는 고대의 아티펙트를 탈취해 갔네. '불멸의 서'는 고대의 비술이 담긴 화룡족의 보물, 그 보물이 마그라의 손에 있는 한 나는 결코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가 없네. 부디 그대가 불멸의 서를 찾아 주게." "마수 마그라....알겠습니다. 놈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크가 의욕이 넘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루미네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불어 냈다. "그건 나도 자세히 알지 못하네. 유일한 단서는 당시 발데라스가 드라고니안으로 돌아왔을 때 마그라를 해치우고 얻었다고 전해 준 이 석판뿐이지. 나 역시 이 석판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아직 알아내지 못했네." 루미네스가 품에서 작은 석판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치 표면에 피가 흐르는 것처럼 섬뜩한 기운이 풍겨져 나오는 석판이었다. 루미네스는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일단 단서는 있는 셈이다. "알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퀘스트 정보창이 올라왔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화룡족의 영혼=마수 마그라! 마수 마그라는 과거 어둠의 제왕의 첨병으로 사악한 악마 가운데 하나입니다. 수백 년 전 마그라는 그 사악한 힘으로 발e데라스를 타락시켰고, 화룡족을 멸망으로 이끈 장본인입니다. 당신은 마수 마그라를 찾아내 화룡족의 보물 불멸의 서를 되찾아야 합니다. 마수 마그라를 찾아내면 어둠의 제왕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 퀘스트 조건 : 화룡족의 고향 III 퀘스트 완료>> 핏빛 석판(퀘스트 아이템) 악마의 피로 쓰인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는 석판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이 200 이상 되어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승 퀘스트다!' 난이도가 별로 표시되는 퀘스트! 뉴 월드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는 퀘스트에 붙는 난이도 였다. 예전에 전승 퀘스트를 해결했을 때, 별을 열 개 이상 모으면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했다. 현재 아크가 모은 별은 일곱 개. 마그라 퀘스트를 해결하면 딱 열 개가 맞춰지는 것이다. '어떤 보상이 주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해결해 본 전승 퀘스트의 난이도를 생각하면 허접한 보상은 아니리라. '이래저래 해결해야겠군. 어쨌든 퀘스트 아이템을 주는 걸 보면 석판을 해독하면 마그라가 있는 곳을 알 수 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고대 유물의 지식이 200 이상 필요하니 한참 더 기다려야 겠군.' "알겠습니다. 화룡족의 숙원은 제가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대를 믿네..." 아크가 다부진 표정으로 대답하자 루미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걸음 물러나 눈을 감았을 때였다. 다른 화룡족처럼 그의 몸도 마치 돌처럼 변해 균열이 번지더니 곧 불길과 함께 가루로 변해 버렸다. 그의 말처럼 갈 곳으로 떠나 버린 것이다. 그렇게 모든 임무를 해결했지만 결국 화룡족은 멸망해 버리고 말았다. 아크는 바람에 타고 날리는 가루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왠지 뒷맛이 씁쓸한 퀘스트였어." 아크가 찜찜한 표정으로 중얼대며 돌아서려 할 때였다. 다른 화룡족은 가루가 되어 모두 흩어졌는데, 루미네스의 몸이 부서져 내린 가루는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죽어서도 이 자리를 못 떠나는 건가? 어쩌면 마그라의 저주는 화룡족의 영혼보다 루미네스가 더 강하게 받았을지도 모르겠군. 엘리멘탈 소드, 풍 속성!" 뭐랄까...좀 안쓰럽게 생각된 아크는 '엘리멘탈 소드'로 검에 풍 속성을 담았다. 그리고 검으로 바람을 일으켜 루미네스의 유해를 화룡산의 계곡으로 날려주었다. "이제 자유로워졌겠지. 음? 뭐야, 이건?" 가루를 모두 날린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미네스는 다른 화룡족처럼 100% 가루가 된 것은 아니었다 유해를 날려 보내자 그 속에서 커다란 두개골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찌꺼기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화끈거리는 열기를 발산하는 게 뭔가 심상치 않았다. 혹시나 해서 조사해 보니 정보창이 떠올랐다. -화룡족의 두개골(레어, 재료) <<화룡족의 두개골, 정보 확인 불가t>> '뭐야? 재료 아이템?' 만약 아크가 루미네스의 유해를 그냥 두고 떠났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아이템이었다. 어쨌든 뼈다귀가 발견되자 라자크가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루미네스의 두개골은 크기가 3미터가 넘었다. 만약 라자크가 이 두개골을 달면 대가리가 무거워 움직이지도 못하리라. 라자크 역시 잠시 두개골을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는 동작을 취해 보더니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훗, 라자크가 사용할 수 있는 뼈는 아닌 모양이군. 하지만 이것도 레어 재료 아이템이니 언젠가 쓸 일이 있겠지.' 아크는 두개골을 챙겨 넣고 드라고니안을 빠져 나왔다. 그러자 갑자기 드라고니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면에 균열이 번지며 사방에서 용암이 치솟아 올라왔다. 그리고 점차 용암 속으로 가라앉았다. ACT6 다크소울VS비스트 마스터 "이러니저러니 해도 꽤나 짭짤한데." 아크가 흐뭇한 표정으로 두둑해진 가방을 흔덜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해결될 거라고 예상했떤 일이 열흘이나 걸렸다. 그러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따.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알차게 보낸 열흘이었다. 그리고 역시 자난 열흘의 최대 수확이라면 당연히 영력, 윈디고와 소울이터를 몽땅 잡아먹어 올라간 영력이 무려 549! 현재 아크의 영력은 956. 기대도 하지 않았고, 가능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치였다. 거기에 연이은 퀘스트 완료로 '불의 축복'을 받아 저항력이 향상에 신격 스킬 '화룡강림'까지 배웠다. 그뿐인가? 드라고나안에서는 화염석 한 자루에 레어 마석'익스플로전 스톤'까지 챙겼다. 레벨 300~350밖에 되지 않는 윈디고를 사냥할 때는 투자 시간에 비해 별로 재미를 못 봤지만, 소울이터를 잡아 단숨에 9를 올려 부족햇던 경험치도 벌충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대대대대박이라고 해도 좋을 성과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실수했다 싶었지마.' 처음에 혼돈의 공간에 들어갔을 때는 윈디고를 사냥하는게 너무 빡세고 수확도 적어 아니다 싶었다. 그 물고를 터 준 스킬이 바로 '영혼 갈취', '영혼 갈취'가 없엇다면 윈디고는 물론, 소울이터는 아예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역시 버릴 스킬은 하나도 없어. '영혼 갈취'도 처음에는 그냥 봉인해 버릴까 생각했을 정도였는데 말이야. '발굴'같은 스킬도 그렇고, 하지만 일단 배워 두면 어떻게든 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잖아. 게다가...' 아크가 혼돈의 공간에서 사냥한 윈디고의 숫자는 수청 마리, 그중 절반은 경험치와 아이템도 주지 않았지만 나머지 절반이라도 천 마리 가까이 된다. 덕분에 가바은 각종 잡템으로 미어질 정도였다. '소울이터에게 재료 아이템이 나온 것 좀 아쉽지만 어쨋든 레어 재료니 싸구려 아이템은 아닐 거야. 잡템 중에서도 마법 아이템이 두 개나 되니까 다 정리하면 100골드는 가뿐하게 넘어갈 거야. 그나저나 잡템을 정리한 다음에는 뭘 해야하지?' -화룡족의 영혼-을 마지막으로 일단 받아 놨던 퀘스트는 다 정리됐다. -마수 마그라-는 고대 유물의 지식을 더 올려야 하니 당장 수행할 수 없는 퀘스트. "일단 마을에서 좀더 쉬면서 새로운 퀘스트나 던전 정보를 모아 봐야겠군. 모처럼 브리스타니아까지 왔으니 해 볼 수 있는 건 다 해보야지." 아크는 앞으로 계획을 구상하며 화룡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산 아래, 암벽 적대에 숨겨진 작은 동굴을 찾아갓따. 이 동굴은 아크가 화룡신을 헤맬 때 찾아낸 안전지대였다. 뉴 월드에는 아무리 몬스터가 바글거리는 곳이라도 이렇게 주변에 몬스터가 리젠되지 않아 아영지를 세이기 좋은 장소, 말하자면 숨겨진 안전지대가 존재한다. 아크가 화룡산 정산으로 햘할 때 북실이에게 대기하고 있으라고 말한던 곳이 바로 이 동굴이었다. '그사이에 열흘이나 지났으니 북실이도 이제 좀 괜찮아졌을라나?" 옆에 있는 사람이 의욕이 없으면 본인도 의욕이 없어지는게 인지상정. 백구가 죽은 뒤로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북실이 때문에 아크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엿따. 아크는 북실이가 좀 정신을 차렸기를 바라며 동굴에 들어섰다. 그대 뭔가가 발에 툭 거리며 넘어졌다. 툭, 데굴데굴. '응? 이게 뭐야?' 시선을 내려 보니 빈 술병이었다. '뭐야? 이 술병은? 북실이 자식. 내가 없는 동안 술을 퍼마시고 잇었던 거야?' 아크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빈 병을 바라보앗다. 한 병이 아니었다. 동굴 입구에서 안쪽까지, 바닥을 굴러다니는 술병은 빈 병만 모아다 팔아도 술 한 박스는 족히 살 수 있을 절도의 양이엇다. 최소 수백 병! 마치 동굴이 술 창고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 망할 자식. 내가 딴짓하지 말고 시재료나 모아 두라고 그렇게 말햇는데.... 내가 정상에서 뻥이치고 잇는 동안 지는 술판을 벌여? 하도 우울해하기에 좀 풀어 줫떠니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 대체 이 많은 술은 어디서...' 이를 갈아붙이던 아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따. '가만? 그 녀석. 대체 무슨 돈으로 이 많은 술을 산거지?' 허접 상인 북실이가 어떻게 마을까지 가서 술을 사 왔는지는 둘째 치고, 뉴 월드의 술값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제일 싼 술도 한병에 2~3골드. 바싼 술은 10골드를 넘어가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수백 병이면 싼술이라도 수백 골드에 달하는 것이다. 아크에게 박봉에 착취당하는 북실이에게 수백 골드라는 용돈이 있을 리가 없었따. 그럼 대체 이 술병은? '이, 이 자식이 설마......?' "아, 안 돼! 설마, 설마 그럴 리가 없어! 북실이 이자식!" 최악의 상황을 떠올린 아크가 괴성을 지르며 동굴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단숨에 돌굴 안쪽의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였다. '......?' 아크는 눈앞에 펼쳐진 황당한 장면에 눈일이 약 10센티미터 튀어나왔다. "크아. 좋다! 쿠헬헬헬!" 북실이는 두툼한 뱃살을 드러내 놓고 병나발을 불고 있었따. 거기까지는 좋다. 당연히 예상했던 일이니까. 아크의 눈알을 돌출시킨 건 그 쥐위에 둘러앉은 나머지 사람들이엇다. "우왕, 우와, 우와, 술은 좋군요, 술은 좋아요!" 속직히 아크는 자신의 눈이 잠시 맛이 갔나 싶엇다. 뷱실이의 옆에서 미친 듯이 꼬리르 흔들어 대며 술을 퍼마시는 놈은, 보사카 마을에서 도적단에게 잡혀 보신탕이 됐을 거라고 생각하던 백구였다.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하하하, 맛있냐? 맛잇어?" "우왕,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이에요." "오오, 이 녀석 술맛을 아네. 정말 미치도록 마음에 든다니까!" 백구의 등을 팡팡 치며 술 한 병을 원샷 하는 거구의 사내는 다름 아닌 브레드 였다. "야, 가민있어. 좁아서 환기도 안 되는데 개털 날리잖아!" 옆에서 술병을 집어 던지는 여자는 브레드의 짝꿍 레디안. 동굴 안에는 전혀 예상도 못 햇던 사람들이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잇었다. 그때 아크가 고함을 질러 대며 뛰어 들어오자 일제히 시선을 집중햇다. "....." 동굴 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크는 대체 누구에게 먼저 반응을 보여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엇따. 그러나 주위를 죽 흝어본 아크가 가장 먼저 달려든 상대는 백구도, 브레드도 레나안도 아닌 북실였다. 아크는 곧바로 북실이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고 흔들었다. "너, 너 이 자식.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엑> 뭐, 뭐야?" "이 술! 대체 무슨 돈으로 술을 산 서야? 판 거냐? 판 거야? 내 잡템 팔아서 산 거냐?" 그렇다, 아크가 황급히 뛰어 들어온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북실이는 아크의 전속 카메라맨이자 짐꾸닝다. 당연히 그동안 아크가 모은 잡템은 북실이의 가방에 들어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북실이와 떨어지면서 혹시나 싶어서 가방을 비워 놓느라 대부분의 잡템을 넘겨주엇다. 개털인 북실이가 수백 골드의 돈을 마련할 수 잇는 방법이라면 그 잡템을 처분하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평소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크도 아크지만 계약서에 묶인 물건을 멋대로 처분하면 엄청난 페널티가 적용된다. 그러나 백구의 죽음-살아 있는 것 같지만-으로 살짝 맛이 간 북실이라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지금 아크는 백구도, 브레드도, 레디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돈! 북실이가 정말 공금을 횡령했는지의 여부였다. "잡템? 팔아? 훗!" 북실이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아크의 손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일어낫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뉴 월드는 게임 속에서 술을 마셔도 취한다. 물론 게임 속이라 조금 만 쉬면 금세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마실 때는 정말 현실에서 술에 취했을 때와 똑같았다. 말하자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것이다. 북실이의 상태가 그랫다. 북실이는 혈중 알코올 농다가 10%는 가뿐히 넘어갈 듯한 냄새를 풍겨 대며 소리쳤다. "언제나 이런 식이지. 돈, 돈, 돈! 네 눈에는 돈박에 안보이네?" "....뭐, 뭐야?" "백구가 살아 돌아왔는데도 제일 먼저 하는 말이 고작 돈이야? 돈이라면 항상 눈이 벌게져서.... 이제 나도 지긋지긋하다고! 망할! 그래, 내가 네 잡템 좀 팔아서 술 좀 사 마셨다. 왜? 그러면 안 되냐? 매일매일 너한테 죽어라 착취당하는데 술 좀 사 먹으면 안 돼? 몽땅 팔아서 다 술 사 마셨다. 어쩔래?" '잡템을 몽땅 팔아서 술을 마셨다고?'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한참. 차크의 입에서 얼음장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기 싫구나?" 북실이가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나지만 그것도 잠시. "그, 그런 눈알로 째려보면 어쩔 건데? 빌어먹을, 나도 성질 잇는 사람이야! 내가 지금까지 무서워서 네 말을 들었는지 알아? 그냥 참아 준 거야. 하지만 이제 못참아. 아니, 안참아. 어디 해 보자 이거야! 덤벼, 덤벼!" 술에 맛이 간 북시리는 눈에 뵈는 게 없엇따. 그리고 아크는 잡템을 몽땅 술로 바꿨다는 말을 듣고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아크는 바락바락 대드는 북실이를 바라보다가 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죽여주지." "죽여? 그래, 어디 죽여봐라!" "짬깐 기다려!" 그때 브레드가 흥분한 돼지의 뒷덜미를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말했따.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반응은 좀 문제가 잇는 거 아냐? 나 몰라? 나야 나, 당현히 나한테 먼저 반응을 보여야 하는 거 아냐?" "......돼지부터 잡고." "아니, 아니, 그건 아니지. 아니, 그 이전에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이 술은 다 내가 사 온 거거든? 저 녀석은 땡전 한 푼 안썻거든?" "뭐?" 완전히 맛이 갔던 아크의 눈동자가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따. 그러자 브레드가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한숨을 불어냇다. "하아. 내가 왜 너에게 이런 설명까지 해 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뭐.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될 것 같으니 할 수 없지. 맞아, 술은 다 내가 사온 거야. 이 녀석은 괜히 술 먹고 땡깡 부리는 것뿐이야. 그나저나 너 평소에 꽤나 미움 받는 거 같다? 술 먹는 내낸 네 욕만 하던데?" "정말이야?" "뭐? 욕했다는 거?" "아니, 잡템이 무사하다는 거." 북실이가 불평불만이 많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물론 뒷담화를 햇다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일단 잡템의 무사 여부가 더 중요햇다. "내가 뭐하러 거짓말을 해? 영수증이라도 보여 줘?" 아크는 재차 확이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그, 그런데 너희들이 왜 여기 잇는 거야?" "젠장, 빨리도 물어본다." "이 자식들, 대체 원하는 게 뭐야? 하다 하다 이제 인질까지 잡고 시비를 걸어?" "인질?" "인질이 아니면? 왜 이런 곳에서 북실이와 함게 잇는건데?" 그때 브레드의 등 뒤에서 북실ㅇ가 버럭 소리쳤다 "너 인마, 함부로 말하지 마. 브레드 님은 백구를 구해 주신 은인이라고!" "뭐?" "아무래도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잇겠군. 일단 앉아 봐. 내가 설명하지." 브레드가 술병을 치우고 앉으며 앞자리를 가리켰다. 아크는 잠시 브레드를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방금 전까지는 북실이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막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황이 꽤나 심각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브레드와 레디안은 적이다. 게다가 이곳은 좁은 동굴 안, 이런 곳에서 둘이 덤빈다면 아무리 아크라도 당해 내지 못한다. 1대1로 붙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데. 2대1이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도망갈 수도 없다. 일단 도망갈 수 잇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고, 이미 브레드는 북실이와 아크가 어떤 관계인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곳에서 아크를 기다리지 않았으리라. 당연히 아크가 도망치면 브레드는 북실이를 인질로 잡을게 분명했다. '그런데 브레드의 태도가 이전과는 좀 다르다. 예전이라면 다짜곶짜 시비부터 걸었을 텐데 오늘은 그런 기마가 보이지 않아' 아크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자리에 앉자 브레드가 사정을 설명했다. 일단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설명하자면 보시카 마을때의 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아크에게 당한 브레드와 레디안은 경비대원들에게 쫓겨 보사카 마을을 탈출해따. 그리고 경비대원을 따돌리고 마을주변에 잠복하고 잇었다. 아크가 마을 밖으로 나올 때 결판을 내려는 속셈이었다. 그런데 브레드의 눈에 띈 게 도적단이었다. 아크를 놓친 도적단은 백구를 생포해 마을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아크의 행선지를 알아내기 위해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개 패듯(?) 고문하는 중이엇다. "그때 이 모이 등장한 거지." 브레다가 우쭐거리며 말했다. 당시 도적단은 10여 명이나 됐지만 동물 학대에 분노한 브레드와 레디안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게 백구를 구출한 브레드는 오지랖 넓게도 이 불쌍한 개를 위해 주인까지 찾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백구에 대해 물어보다가 아크의 일행임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네가 불엇냐? 이 잡종 개 같으니!' 아크가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구석에서 병나발을 ㄹ불어 대는 백구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사실 백구가 아크의 행선지를 ㄹ분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백구는 도적단에게 고문당하면서도 아크의 행선지를 불지 않았따. 도적단의 목표가 북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드의 목표는 아크였다. 북실이의 애완견으로서는 솔직히 아크 따위는 어덯게 되든 상관없엇던 것이다. 그러나 북실이가 읿러 아크의 행선지를 나불나불 떠들어 댄 데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잇었다. "크윽, 아크 인마.... 너 실망이야." 백구마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반말로 지껄였다. "브레드 님에게 다 들었어, 인마." '브레드는 님이고 나는 인마냐?' 돼지에 이어 개까지 기어오르자 아크가 인상을 찌푸리며 쏘아보았다. 그라나 백구는 술이 떡이 되어 간덩이가 탱탱부어 신경도 쓰지 않았따. "뭘 꼴아 봐? 큼, 큼, 브레드 님은 예전에 바다에서 전사로서 너를 인정하고 제대로 대결을 청했다면서? 그런데 너는 갖은 거짓말로 속이고 도망쳤지? 그래도 명색이 마반 영우의 후예라는 사람이 그게 할 짓이냐? 쪽팔리지 않아? 실망이야, 실망! 아아. 장로님도 저런 걸 믿고 삼신기를 주셨으니....." "뭐? 쪽팔려? 실망?"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노려보았다. 그러나 백구는 콧방귀를 뀌며 벌컥벌컥 병나발을 불어 댔다. 그렇다. 백구가 아크의 행선지를 나불나불 떠들어 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비록 배신자로 낙인 찍혔지만 백구 역시 명예라면 죽고 못사는 월랑족 출신이다. 게다가 브레드는 도적단에서 구해 준 생명의 은인.설명을 들은 백구는 오히려 브레드보다 더 분개하며 '정의를 위해' 앞장서서 브레드 일행을 이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맞아. 네가 잘못한 거야!" 아쉬운 눈으로 빈 병을 흔들던 북실이까지 끼어들어 소리쳤다. 덕분에 아크의 혈압이 수직선을 그리며 급상승햇따. '이 자식들이 정말 쌍으로.....!' 북실이와 백구는 아크를 기다리는 동안 완전히 브레드엑게 포섭되었따. 그리고 처음에는 하루였던 게 이틀, 사흘, 나르..... 아크를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지루해진 브레드는 술판을 벌였고, 덕분에 개와 돼지는 완전히 맛이 가 버린 것이다. 백구와 북실이가 합창하듯이 소리쳤다. "치사해! 비겁해! 정정당당히 대결을 받아들여라!" '저것들이 간덩이가 배 박으로 나오다 못해 춤을 추는군.' 생각 같아서는 당장 개돼지 볶음 탕을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아니, 조만간 기필코 그럴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주정뱅이가 문제가 안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내가 너희들한테 무슨 짓을 햇따고!" 버럭 소리치자 브레드가 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뭐, 그야.... 어쩔수 없는 이유가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말햇듯이 나는 그냥 한번 제대로 붙어 보고 싶다 이거야. 이쯤 되면 이제 사나의 오기지." "사나이의 오기?" "이렇게가지 따라다니고 이제 와서 그냥 포기하기도 뭐하잖아. 안 그래?" "그건 네 사장이지! 나에게능 정말 민폐라고!" 브레드가 손을 저으며 진지한 표정을 말을 이었다. "나도 조금은 반성하고 잇어." "반성?" "그래,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 도망가는 너를 보고 치사하고 비겁한 놈이라고 생각햇어. 하지만 백구에게 다 들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말이야. 내단인지 뭔지 만들어야 했다면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확실히 방법이 좀 잘못됐던거 같아. 하긴 그때는 그냥 널 박살 내는 게 목적이었으니 방법을 따질 상황도 아니었지만 말이야. 어쨋든 사정을 알게 됐으니 과거는 그냥 없던 일로 치고.... 받아 일부러 길드까지 찾아가서 준비해 온 거야." 브레드가 가방에서 두루마리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전사의 도전장 -브레드 = 아크- 최상위 전사 길드 소드&액스의 정회원마이 상용할 수 잇는 도전장. 도전장을 받은 상대가 승낙하는 즉시 결투가 진행됩니다. 결투가 시작되면 당사자 이외에 어떤 유저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일반 PVP와 달리 전투에 대한 어떤 페널티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대를 죽여도 카오틱이 되지 않으며, 사망 시에도 능력치나 아이템으 ㄹ떨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즉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단, 명예를 걸고 벌이는 결투에서 패할 경우, 명성 500을 승자에게 빼앗깁니다. - 승자:명성 +500 패자:명성 -500 - "승패에 상관없이 이걸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자." 브레드는 레디안을 바라보며 확인하듯이 물엇다. "이걸로 괜찮지?" "몰라, 나도 이제 슬슬 지겨우니까 네 마음대로 해." "역시 내 기분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너박에 없어. 사랑해." "닥쳐, 멍청아." 레디안이 팩 고개를 돌리며 신경질 적으로 육포를 우물거렸다. 브레드는 그런 반응이 귀여워 죽겟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때? 나쁜 조건은 아니지?" "......" 브레드의 제안은 아크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지난 한 달 가까이 아크는 도적단과 브레드에게 시달려 왔다. 그중 일단 도적단은 더 이상 신경 슬 필요가 없어졌다. 남은 건 브레드와 레디안. 그런데 브레드가 갑자기 1대1 대결을 청해 왔다. 그것도 사망 패널티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도전장까지 준비해서 말이다. '강요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지만 확실히 나쁜 제안은 아니야. 이기면 좋고, 져도 명성 500이면 저 지긋지긋한 녀석들을 떨궈 낼 수 있다는 말이잖아? 하긴 어차피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여기서 아크가 도전을 거절한다는 것은 그 둘과 계속 적대관계가 되겠다는 의미다. 그러면 당장 브레드와 레디안, 둘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승률은 0% 그렇다면 차라리 브레드와 확실하게 결판을 내 버리는 편이 나은 건 당연햇따. "좋아, 도전을 받아들이지." "잘 생각햇다." "대신 준비할 시간을 줘, 결투를 하려면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하니까. 난 여기서 쉴 생각이라 아직 장비 수리도 못했어. 너도 취기가 좀 가셔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거 아냐." "......전처럼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정식 도전까지 받고 도망갈 정도로 치사하지는 않아." "호오, 치사하지 '는'? 치사한 짓을 하기는 했었다는 말이군." "말꼬리 잡지 말고." "알았어. 그럼 30분 정도 뒤에 시작하자." 브레드가 뒤로 물러나 대검과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아크는 브레드를 바라보다가 구석을 물러 나왔다. '불가피하게 받아들인 도전이지만.....' 아크 역시 나름대로 PVP에 자신이 잇는 유저다. 사실 브레드는 아크의 성격을 상당 부분 오해하고 잇었다. 지금까지 아크가 브레드와으 ㅣ전투를 피한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레디안이 함께 잇어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항상 저주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 좋은 상황에서만 맞닥뜨렸기 때무니다. 그라나 원래 아크는 일부러 싸움을 걸지는 않지만,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만약 1대1으 ㅣ조건에서 제대로 붙어 볼 기회가 생긴다면 굳이 피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브레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실력자다. 사망 페널티에 대한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면 오히려 아크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따. 그러나 져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도전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싸운다면 기필코 이긴다!' 사망 페널티가 없다지만 지면 명성이 500이나 깍인다. 명성 노가다를 해 봐서 알지만 명성 500이면 결코 적은 페널티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승산은 그리 높지 않아. 마지막으로 브레드의 레벨을 확인햇을 때까 410대였어. 당연히 지금은 더 높아졌겠지? 다른 녀석이라면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면 레벨 차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브레드에게는 '수혼빙의'가 있어." 아크는 그동안 브레드에 대해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특히 아크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브레드의 특수 스킬인 수혼빙의다. 사실 처음 아크는 수혼빙의보다 어둠 속성 보너스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니 그렇게 단언할 수 잇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둠 속성 보너스는 모든 능력치를 50% 올려 주지만 그 능력치에는 지혜나 행운 처럼 쓸모없느 ㄴ스텟이 포함된다. 그러나 수혼빙의는 그때그때 필요한 능력치를 선택해서 올리는 스킬이었다. 게다가 동물 영혼을 세 번이나 중첩해서 빙의할 수 잇는 스킬. 그 말은 만약 힘만 필요하면 힘과 관련되 동물 영혼을 세 번 중첩시켜 최대 150%까지 올릴 수 잇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일전에 겪어 본 바로는 동물 영혼을 빙의하면 관련 능력치만 오르는 게 아니라, 빙의된 동물의 특성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엇다. 돌고래를 빙의시키면 '수상 이동'이 가능해지고, 개를 빙의시키면 '광견병'같은 질병 상태 이상이 발동하기도 한다. '일단 어둠 속성 보너스로 인해 능력치 상승은 없다고 생각하고 대치해야 해. 지금 내 레벨은 383. 브레드는 41이상, 결국 레벨이 27이상 차이 나는 상대하고 싸우는 거야. 게다가 브레드의 실력은 감안하면 승률은 잘해야 4대6정도.....' 그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결론이엇다. 때문에 이기기 위한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했따. 아크는 바쁘게 손을 움직여 할 수 잇는 모든 준비를 시작했따. 역시 이런 상황에서 아크가 가장 믿을 만한 스킬은 '서바이벌 요리'! 아크는 엄청난 스피드로 각종 요리를 만들어 꾸역꾸역 먹어 치웠다. 적용된 보조 효과 정보창 *음식 효과 -툰투 통구이- -단단한 가슴살 샐러드- -약초 스프- -새우튀김- -살짝 구운 포코 다리- -슬라임 냉채 무침- -라터스 스테이크- -아귀버섯 수프- +요리 효과의 토털 상승 능력치 : 힘 +65, 체력+36, 민첩+40, 지능+15 *현재 복용 중인 보약 효과 -십이전대보탕(힘+2, 체력+2) 복용기간 : 16일째- '장관이군.' 아크는 흐뭇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앗다. 예전에는 만복도가 많이 올라가지 않는 요리만 골라 먹어도 다섯 개가 한계였다.. 그러나 '아귀 버섯 스프'로 한차례 만복도를 떨어뜨리자 여덟 개까지 먹을 수 잇었다. 덕분에 올라가 능력치가 무려 156! 레벨 15가 올라간 효과였다. '후후후, 어떠냐? 이제 레벨 차이가 더 좁혀졌다!' 아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대편에서 준비중인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낯빛이 흑색을 ㅗ변해 버렸다. 브레드도 다가올 전투에 앞서 한창 버프 작업 중이엇따. 비스트 마스터는 드루이드 계열이라 버프 종류가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낯빛을 흑색으로 바꿔놓은 것은 바로 레디안 이엇다. 레디안의 직업은 마법사, 그리고 마법사는 성직자 다음으로 강력한 버프가 많은 직업이었다. "쳇, 귀찮아. '브레이드 포스', '이모탈 아머', '엘리맨탈 디펜스'. 에..... 또 뭐가 잇엇지?" 검 공격력을 올려주는 '블레이드 포스' 방어구의 내구력과 방어력을 올려주는 '이모탈 아머' 각종 속성 마법 저항력을 올려 주는 '엘리멘탈 디펜스'. 기타 등등...... 레디안은 툴툴거리면서도 출근하는 남편의 옷매무새를 다듬는 새댁처럼 꼼꼼하게 버프 작업을 해 주엇다. 이미 전투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뭐야? 이렇게 되면 음식을 먹어 봐야 제자리걸음이잖아?' 그러나 아직 아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었따. '역시 이걸 쓸 수 밖에 없어!' 오랫동안 가방 구성에 고이 모셔 놨던 '약속의 검'이었다. 약속의 검은 귀살검보다 높은 레벨의 검이지만, 추가되는 능력치나 옵션 스킬이 떨어진다. 그러나 약속의 검은 소켓이 네 개나 뚫려 잇는 소켓 아이템! 마석을 박아 넣기에 따라 귀살검보다 몇 배나 강력해질 가능성을 품은 검이다. 그리고 현재 아크는 강력한 힘이 담김 레어 마석을 세 개나 가지고 잇었다. '젠장, 가능하면 레어 마석을 네개 구해서 완벽한 상태로 사용하고 싶엇는데.... 상황이 이러니 할 수 없지. 어쨋든레어 마석을 세 개만 끼워도 귀살검보다 강해질 거야.' 아크는 번쩍번쩍 빛이는 레어 마석 세트르 꺼내 들엇다. 당장이라도 피를 흘릴 듯한 붉은 보석은 뱀파이어 영지에서 얻은 '뱀피릭 스톤'. 파랑 광채가 쏟아져 나오는 보석은 폐광에서 얻은 '마나 스틸 스톤'. 안쪽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듯한 보석은 '익스플로전 스톤'이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가?; 아크는 기대감 어린 표정을 ㅗ마석을 기워 넣었다. 처음으로 '뱀퍼릭 스톤'을 끼워 넣자 검이 파르르 진동하며 섬뜩한 기운이 휩사옇다. 그리고 조금 낡은 듯이 보이던 검날이 예리하게 변하며 검면의 중심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이어 '마나 스틸 스톤'을 끼우자 넘날을 따라 파란색ㅊ빛이 번져 나갓다. 마지막으로 '익스플로전 스톤'을 끼우자 검이 화염에 휩싸이며 정보창이 떠올랐다. 약속의 검(레어) 무기 타임 : 양손 검 공격력 : 40~50 내구력 200/200 무개 : 45 사용제한 : 레벨 250, 검술 관련 스킬 상급 이상 검날에 복잡한 마법 문자가 새겨진 고대의 검, 윤기가 감도는 검날에 새겨진 마법 문자는 현재의 자식으로는 해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검날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가능해 보면 뭔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숨겨진 것처럼 생각됩니다. 검날과 검 자루의 연결 부분에 뭔가를 기워 넣을 수 잇는 공간이 있습니다. 검의 비밀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나. -옵션 : 힘+20, 체력+10- -소켓1 : (뱀피릭 스톤) 공격 시 상대에게 입히는 데미지의 5%만큼 생명력 흡수- -소켓2 : (마나 스틸 스톤) 공격 시 상대방에게 입히는 데미지의 5%만큼 마나 흡수- -소켓3 : (익스플로전 스톤) 타격 시 33% 확률도 10~100 화염 대미지, 2미터 범위에 5~50 스플래시 데미지- -소켓4 : (empty)- 레어 마석 3종 세트가 검에 적용된 정보창을 보니 그동안의 고생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실제 검의 공격력은 변하지 않았지만, 때릴 때마다 상대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한다. 추가로 스플래시 화염 데미지! 그야말로 사기적인 옵션! 귀살검 따위와는 애초에 차원이 다른 검이 완성되었다. 뭣보다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치장된 검날에 화염이 밀렁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약속의 검은 능력치는 물론 시각적인 만족감까지 선사해 주었다. '이 정도 옵션에, 이정도 뽀대를 가진 검을 경매장에 내다 놓으면 얼마나 받을까?' 아마도 가장 비싸게 판 아이템의 두 배는 받으리라. '됐어, 이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세팅이다! 이제 남은 건 '칼날 정비'로 검 공격력을 올리고 '세탁'으로 방어구 성능을.....' 그렇게 아크가 분주하게 전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옆에서 북실이와 백구가 슬금슬금 다가왔따. "저..... 아크 님." 뉴 월드에서 먹은 술은 금방 깬다. 만취가 된 상태에서도 휴식을 취하면 몇싶 분에서 1시간 이면 말짱해진다. 북실이와 백구도 잠시 낯빛을 보니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어느 정도 술이 깬 모양이었다. 북실이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변명하듯이 말햇따 "그게 저.... 아까 전에는 제가 살짝 가서...." "괜찮아" 아크는 빙긋 웃으며 두 가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도 이번 일로 깨달은 게 많으니까. 너희들은 평소에 그렇게 불만이 많았는지 정말 몰랏어. 그건 모두 내 잘못이야. 통감하고 잇어." "네? 그, 그럼..." 북실이와 백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아크으 ㅣ말에 얼어붙어 버렸따. "불만 따위가 나온다는 게 군기가 덜 잡혔다는 증거야." 아크는 둘의 귓가에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여 주엇다 "......니들은 뒈졌어." 아 끝낫다.... 중간에 누나에게 걸려주 죽을뻔 햇지만... 겨우겨우 완성 2시간동안 밥도 안먹고 타이핑 했습니다. 즐겁게 읽으셨기를... 바나나(freebanana)가썻어염 freebanana@naver.com 아크나오면 보내주세여 ㅋㅋㅋㅋㅋ ACT 7 신격 스킬 발동 콰앙, 콰앙, 콰앙! 조용하던 산등성이에 폭음이 일어났다. 대지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며 자욱한 먼지가 뿜 어져 올라왔다. 그리고 갑자기 정지한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했다. 대기를 흔들던 굉음도 사라지고, 흙먼지를 말아 올리던 폭풍도 가라앉았다. 허공에 뜬 채 꿈틀거리는 먼지만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다크 블레이드'!" 돌연 먼지가 반으로 확 갈라지며 불길에 휩싸인 검날이 공간을 가로 질렀다. 그러자 반대 방향의 먼지가 폭발하듯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대검이 솟아 나왔다. "'대지폭풍'!" 검과 대검이 충돌하자 또다시 한차례 폭풍이 일어났다. 그 폭풍을 뚫고 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불길에 휘감긴 검을 든 다부진 체격의 사내, 바로 아크였다. 아크가 뛰어나오자 맞은편에서도 대검을 든 거구의 사내가 뛰어나왔다. 짐승 가죽으로 된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당연히 브레드였다. "받아랏!" 브레드가 마치 몸통 박치기를 하듯이 달려들며 대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우웅! 수평으로 휘두르는데도 지면의 흙먼지가 확 빨려 올라올 정도로 엄청난 속도였다. 아크는 전방 회전 낙법으로 대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굴려 브레드으의 사각지대로 이동해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검을 내리쳤다. 그러나 브레드의 반사 신경도 아크 못지 않았다. 브레드는 대검을 사선으로 비껴 세워 공격을 흘려내고 한걸음 크게 내디디며 수직으로 검을 내리쳤다. "헛?" 설마 사각을 찌른 공격을 흘려내리라고 예쌍하지 못했다. 아크가 숨을 들이키며 재빨리 물러났지만 대검이 어깨를 스치며데미지가 들어왔다. 스치듯 맞은 공격에 단숨에 400의 생명력이 증발해버렸다. 문자그대로 스쳐도 중상! 그러나 주춤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아크의 움직임이 잠시 멈추자 브레드는 그대로 황소처럼 밀고 들어오며 연속적으로 대검을 휘둘러댔다.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뒬로 물러나자 대검이 돌풍을 일으키며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대검이 빈 공간을 가르자 브레드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젠장, 이번에는 확실하게 벴는 줄 알았는데." "흑,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지만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그걸 막아 내고 역습을 해? 제대로 맞았으면 치명상을 입을 뻔 했어. 역시 시비를 걸면서 돌아다닐 만한 실력 이야. 스킬도 굉장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야, 싸움에 굉장히 익숙한 몸놀림이다. 아니, 이건 싸움이라기보다는......' 아크는 다크 댄싱을 펼쳐 공격을 피하며 브레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처음 전투를 시작했을 때 아크는 브레드의 검속에 경악했다. 일단 브레드의 검은 양손으로 사용하는 대검이다. 아크가 사용하는 약속의 검도 양송 검이지만 바스타드 소드같은 형태의, 말하자면 장검보다 약간 큰 정도의 검이다. 그러나 대검은 투 핸디드 소드나 참마도처럼, 검 계열의 무기 가운데 가장 큰 검이다. 당연히 공격력이나 내구력도 모든 검 가운데 최강! 동 레벨의 장검과 비교하면 평균 1.8배 이상의 공격력을 자랑한다. 덧붙여 기본적으로 대형 몬스터와 건물 계열의 대상에게 1.5배의 추가 데미지까지 적용된다. 그러나 막강한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뉴 월드에서 대검을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 무지막지한 크기와 무게 때문에 공격 속도 페널티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근접전으로 붙어도 공격 횟수가 아크와 큰 차이가 없었다. '대검을 들고 뭐 이렇게 빨리 공격해? 공격력이 빵빵하니 다른 장비품을 몽땅 공격 속도 상승으로 도배했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몇 차례 검격을 주고 받는 아크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알아챘다.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다, 브레드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고 공격한다. 매우 단순한 동작이지만 이 두가지 동작을 연결시키려면굉장히 많은 중간 동작이 들어가야한다. 그리고 검을 휘두르는 데 익숙한 사람일수록 중간 동작을 많이 생략할 수 있다. 완전히 몸에 익혀 중간 동작을 생략하고도 무난하게 공수를 전환하는것. 그렇다, 브레드의 공격 속도 비결은 거기에 있었다. 브레드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기계처럼 정확했다. 어디를 찌르든 당황하는 법이 없다. 어떤 상황이든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자로 잰듯 움직여 방어와 동시에 반격을 해 왔다. 딱 떨어지는 엣지 있는 움직임! 때문에 대검을 들고도 아크와 비등한 공격 속도를 보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직업의 스킬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아.' 브레드의 직업은 비스트마스터. 그리고 비스트마스터의 특징은 수혼빙의 스킬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동물 영혼을 세 개까지 중첩시킬수 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전투를 시작하자마자 세 개의 동물 영혼을 몽땅 빙의하고 덤빌 줄 알았다. 그러나 브레드는 힘을 50%올려 주는 곰과 민첩성과 반응 속도를 50%올려 주는 치타의 영혼. 두 가지만 빙의 시켰다. 그건 예전에 정기선에서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보사카 마을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아크도 정확한 이유를 몰랐지만..... "수혼빙의, 황소의 힘이야! '돌진'!" 아크가 '다크 댄싱' 을 펼치며 물러나자 브레드가 앞으로 달려 나오며 소리쳤다. 그러자 브레드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 나며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왔다. 아크의 눈앞에 스킬 간파에 의한 정보창이 떠올랐다. 브레드의 직업 스킬 : 수혼빙의 *새로 추가 확인된 '수혼빙의' 스킬. [황소]황소의 영혼을 빙의하면 돌파력이 50% 증폭합니다. 돌파력이 올라가면 '돌진' 스킬로 상대를 공격할 때 이동속도가 100%, 공격력이 50%만큼 상승합니다. 또한 돌진 공격이 성공해 뿔로 상대를 가격하면 방어력을 30% 감소시키고, 일시적으로 '넘어짐' 상태에 빠트립니다. "헉, 또 괴상한 스킬을......화격!" 아크는 기겁하며 검으로 뿔을 쳐내며 화격으로 연결시켰다. 성공하면 10미터 밖으로 튕겨 내는 화격. 그러나 황소의 영혼을 빙의해 돌파력이 상승한 브레드는 고작 움찔하는 정도였다. 오히려 확격을 날린 아크가 돌파력에 밀려 수미터나 뒤로밀렸다. "대체 동물 영혼을 몇가지나 가지고 있는거야?" "한 타스는 되지." 브레드가 자랑스럽게 뿔을 어루만지며 씨익 웃었다. 브레드가 동물 영혼을 두 개만 빙의해 놓는 이유가 바로이 때문이었다. 두 가지는 필요한 능력치를 올리기 휘한 버프. 나머지 하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재빨리 공격과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비워 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전은 PVP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특히 방금 전처럼 다른스킬과 연계해서 사용할 때의 위력은 발군이었다. 원래 '돌진' 은 전사 계열이 익히는 기본기술로 사용하면 이동속도가 50%상승하고 공격력이 25%상승한다. 그러나 황소를 빙의시켜 돌파력이라는 스탯을 올려놓으면 '돌진'효과가 두 배나 강력해지고 방어력 감소나'넘어짐'같은 상태이상까지 일으킨다. 브레드는 이런 식으로 수혼빙의와 다른 스킬을 연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스킬을 미리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미쳐 손쓸 새도 없이 당하는 것이다. '나도 미리'스킬 간파'를 켜놓지않았으면 당했을 거야.' 아크 역시 처음에는 그런 스킬 연계에 한방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아예 스킬 간파를 켜 놓았다. 브레드가 빙의시큰 동물영혼이 어떤 특수효과가 있는지 알면 조금이라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이 때문이다. '브레드자식, 확실히 강해, 강하지만.....' 일단브레드의 연속공격을 막아내고 거리를 벌린 아크가 양손으로 검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지? 받아랏.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는 충전해 놨던 기운을 단숨에 해방시켰다. 그러자 검에서 검은 기운이 화살처럼 일직선으로 쏘아져날아갔다. 브레드가 대검을 휘둘러 튕겨 내고 뒤따라 들어오는 아크를 향해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방어와 공격이 매끄럽게 이어지며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떨어져 내리는 대검! 그러나 아크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서자 대검이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역시 대검은 약점이 많은 무기야.' 아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대검을 일반 양손 검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건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대검은 공격속도 이외에도 치명적인 단점이있었다. 바로 검이 지나치게 커서 공격방향을 한눈에 파악할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빠르게 움직이는 대검의 궤도를 파악해 순간적으로 반응하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카으처럼 다년간 수련을 한 사람이라면 완벽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다. '확실히 브레드는 쉬운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승산이 있어!' 그게 10분 정도 브레드와 싸워 본 아크의 판단이었다. 실력만 놓고 보자면 둘은 거의 호각이었다. 무기 역시 대검을 휘두르는 브레드는 적중률은 좀 떨어지지만 한 방이 있었다. 일단 한 방 걸리면 500~700의 생명력이 날아가는 것이다. 반면 아크는 강력한 한 방은 없었지만 타격 횟수에서 약간 앞서고 있었다. 때문에 소모되는 생명력은 비슷했다. 그렇다면 남은것은 능력치와 레벨! 그리고 계산대로라면 레발과 능력치에서 앞서는 브레드가 우세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재 남아 있는 생명력을 비교하면 아크가 60%, 브레드가 57% 수준이었다. 오히료 아크가 약간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잇찌!" 허점을 잡은 아크가 검을 휘둘렀다. "헛, 황소의 힘 취소! 수혼빙의 거북이의 방패!" 브레드가 움찔하며 수혼빙의를 펼치자 피부가 거북이의 등껍칠처럼 변했다. 이어 굉음이 울리더니 브레드가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상대가 주춤거릴 때야말로 공격의 기회! 아크는 그대로 밀어붙이며 연속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브레드는 역시 실전 경험이 많은 유저답게 그 상황에서도 용케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퍼퍼퍼펑!화르르르륵! 돌연 검과 검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화염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브레드의 피부를 할퀴고 지나갔다. "바로 이거야, 이거!" 아크의 입가에 희열의 미소가 번졌다. 이 폭발은 바로 레어 마석'익스플로전 스톤'의 효과였다. 33% 확률로 50~100의 화염 데미지, 그리고 폭발을 일으켜 2미터의 범위에 10~50의 스플래시 데미지! 여기서 33%확률이란 적에게 데미지를 입혔을 때를 말하 는게 아니었다. 검에 충격을 줄 경우, 즉 검과 검이 마주쳤을 때도 33%의 발동 확률이 적용되었다. 물론 이럴 경우 직접 타격이 아니라 50~100의 화염 데미지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폭발의 영향권인 2미터 범위에 적용되는 스플래시 데미지는 피할 수 없었다. 비록 데미지는 10~50, 그것도 레디안의 '엘리멘탈 디펜스'로 화염 저항력이 올라간 상태라 절반 정도밖에 적용되지 않지만 틀림없이 데미지는 데미지! 캉, 캉, 캉, 퍼퍼퍼펑! 캉, 캉, 퍼퍼퍼펑! 아크가 쉬지 않고 밀어붙이며 검을 휘두르자 연속적으로 화염이 치솟았다. 브레드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생명력이 야금야금 깎여 나갔다. 게다가 화염이 폭발하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검에 전해진다. 무거운 대검을 들고 있는 브레드는 그만큼 동작이 굼떠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렇게 아크가 '무조건 공격'식으로 소나기처럼 공격을 퍼부으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었다. "젠장!" 화염에 밀려서너 걸음 밀려나던 브레드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앞으로 튕겨 나왔다. 그리고 아크의 검을 옆구리로 받아내며 대검을 휘둘렀다. 이대로 수세에 몰리느니 차라리 한방 맞더라고 역습의 기회를 만들려는 것이다. 정신없이 공격에 몰두하던 아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대검에 어깨를 얻어맞았다. 어깨에 격렬한 충격이 전해지며 단숨에 생명력이 700이나 날아갔다. "크윽, 이 무식한 자식....!" 아크가 휘청거리며 뒤로물러났다. 그러나 아크고 맞고만 있지는 않았다. 브레드가 어깨를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옆구리를 공격했다. 그러자 검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검날에 새겨진 붉은색과 파란색의 문양이 빛을발했다. -'익스플로전'효과로 적에게 73의 추가 화염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뱀파릭' 횩과로 적에게 입힌 523 데미지의 5%, 26의 생명력을 흡수했습니다. -'마나 스틸' 효과로 적에게 입힌 523의 데미지의 5% 26의 마나를 흡수했습니다. "크으, 정말 미치겠군." 아크는 메시장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게 바로 '약속의 검' 의 진정한 위력이다.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 때마다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하는 능력! '아쉽게도 1대1의 전투에서는 생각만큼 효과가 크지 않지만......' 사실 생명력과 마나 흡수가 100% 효과를 발휘할 때는 다수의 몬스터를 상대할 때다. 몬스터와 싸울 때는 데게 10여마리를 상대하는 게 보통이다. 다시말해 모든몬스터의 생명력의 5%를 흡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망약 10마리의 몬스터 생명력의 합계까 10,000이라면 몬스터를 모두 해치우면 그 생명력의 5% 즉, 500의 생명력을 흡수한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500이하의 생명력만 소모돼싸뎜 회복할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1대1의 PVP라면, 그것도 브레드처럼 강한 상대라면 아무래도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브레드는 레벨과 직업 특성상 생명력이 상당히 높다. 아마도 최대 생명력은 10,000대를 훌쩍 넘어갈 거야. 결국 이번 결투에서 나느 생명력을 500 이상 회복하면서 싸울 수 있다는 뜻이야.' 물론 지금 아크와 브레드의 싸움에서 생명력 500은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날아간다. 그러나 팽팽한 접전에서는 생명력 500도 결코 무시할 수치가 아니었다. 그렇다, 아크의 우세는 바로 레어 마석을 세 개나 장착한 약속의 검 덕분이었다. '이대로만 진행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아크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아크의 승리에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공격력이 앞서는 브레드와 거리를 벌리고 스킬로 치고받는 전투를 하면 당연히 공격력과 방어력이 달리는 아크가 불리하다. 그러나 스킬을 발동시키려면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하다. 발동 시간이 전혀 없는 전사 계열의 스킬도 예비 동작이 필요한 것이다. 아크는 브레드에게 바짝 붙어서 그런예비 종작을 취할 짬도 주지 않고 무차별 적으로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 공격은 브레드의 생명력을 깎기보다는 브레드의 공격을 막기 위한것이었다. 브레드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것은 검격이 아닌 폭발에의한 스플래시 데미지! "크윽, 이 자식....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브레드 역시 아크의 작전을 눈치채고 있었다. 때문에 좀 전처럼 무리를 해서라도 일단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아크는 끈덕지게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대검을 후려쳐 브레드의 공격을 방해했다. 그러면 나머지는 33%확률로 터지는 폭발 데미지가 알아서 브레드의 생명력을 갉아 댔다. 물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브레드가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려면 무리한 공격을 펼쳐야 할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방 맞으면 단숨에 데미지가 500~600이 들어왔다. 아크는 스플래시 데미지로 3~4분 동안 깎은 생명력을 브레드는 한방에 따라잡는 것이다. 바늘과 도끼의 싸움이랄까? 그러나 그런 상황이 30분이나 지속되자 다시 아크와 브레드의 생명력 차이가 벌어졌다. 아크가 55%, 브레드가 48%! 정신을 집중해서 그 상태만 유지하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 브레드의 생명력을 깎아 놓은 것이다. 그때였다. 아크의 소나기 같은 공격에 밀려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브레드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돌연 기합을 내지르며 다짜고짜 앞으로 뛰어나왔다. '훗, 결국 제 성질을 못이기고 뛰쳐나오는군. 그렇게 나오면 나야 편하지.' 아크는 코웃음을 치며 검을 휘둘러 브레드의 대검을 흘려 냈다. 그러자 브레드가 제풀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자포자기 해서인가? 지금까지 보여 주던 실력을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다. 확실하게 승기를 꽂을 수 있는 기회! "인내심의 승리다!" 순간 아크의 발이 바람처럼 움지경ㅆ다. 눈으로 확인조차 못할 속도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나래차기. 공중 뒤차기! 고난이도 발차기를 적중시키면 높은 확률로 경직이 발공된다. 불과 1~2초에 불과하지만 지금처럼고레벨 유저들의 PVP에서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크는 이번 공격으로 결투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래차기에서 공중뒤차기로 연결될떄 아크는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어떻게....?' 타이밍으로 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더구나 아크는 지금까지 브레드를 상대하며 발차기를 한적이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타이밍과 방식의 공격! 그런데 브레드는 마치 처음부터 아크가 어떤 공격을 할 지, 어떤 궤도에서 어떤 타이밍에 들어올지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몽을 회전시키며 공중 뒤차기를 흘려냈다. 동시에 브레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인내심의 승리라고?" "......!" "슬이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대지폭풍'!" 브레드가 골프 스윙을 하듯이 대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며 아크의 몸을 휘감아 공주엥 띄워 버렸다. "자, 이제 그동안의 은혜를 갚아줘야지? '칼날폭풍'!" 브레드의 대검이 수십개로 분열되며 허공에 떠 있는 아크의 몸을 난타했다. '대지폭풍'으로 공중에 띄우고 '칼날 폭풍'으로 무장비 상태의 적을 난타하는 공중 콤보! 아크의 생명력이 빨대로 빨리는 것처럼 쫙 빠져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브레드는 황소 영혼을 빙의시켜'돌진'으로 등을 들이받았다. 아크는 그대로 투이겨져 날아가 바닥에 몇 번이나 부딪친 뒤에야 겨우 멈춰서따. 불과 몇 초 사이에 생명력이 30%나 날아가 버린 뒤였다. 그러나 더욱 당혹스러운 건 방금 전의 상황이었다. 대체 브레드가 어떻게 발차기의 타이밍을 완벽하게 알아냈단 말인가? "크으윽,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아크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자 브레드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말했잖아. 승리는 준비되 자의 거라고. 내가 열흘 동안 뭘 하면서 보냈다고 생각하냐?" "뭐?" '지난 열흘간 무슨 일을 하면서 보냈냐고?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이....' 미간을 좁히고 생각하던 아크가 갑자기 이를 갈아붙였다. "부, 북실이 이 망할 자식이...!' 아크는 그제야 방금 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브레드가 어떻게 본 적도 없는 아크의 발차기타이밍을 완벽하게 계산할 수 있었는지, 그건바로 북실이 때문이었다. 브레드는 지난 열흘 동안 북실이와 함께 아크를 기다렸다. 그때 브레드는 북실이가 가지고 있던 메모리 크리스털을 본 게 분명하다. 아크의 모든 전투 장면이 담긴 메모리 크리스털! 그렇다, 지난 열흘 동안 브레드는 그 메모리 크리스털을 몇번이나 재생시키며 아크의 공격 기법이나 발차기, 스킬, 버릇 따위를 파악했다. 그러나 약속의 검은 전혀 예상 밖의 아이템. 때문에 초반에 일방적으로 아크를 밀어붙이다가 아크가 약속의 검을 이용하자 좀처럼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크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래차기와 공중 뒤차기 콤보를 사용하는 버릇을 기억해 내고 일부러 공격을 유도, 카운터를 먹인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아크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브레드와의 결투는 생명력 5%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방심으로 생명력이 30%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생명력은 아크가 25%, 브레드가 48%! 게다가 걱정했던 것처럼 거리가 벌어져 버렸다. 근접전을 허락해서 한 번 쓴맛을 본 브레드는 중거리전을 펼치리라. 아니, 이런 생명력으로는 조금 전처럼 근접전으로 끌고 가도 승신아 없었다. '망했다. 정말 콤보 한 번에 승패가 결정 날 줄이야!' 아크는 패배를 직감했다. '결국 이대로 깨지는건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렇게까지 죽을 둥 살 둥 싸울 이유는 없었다. 진다고 해서 경험치나 능력치가 깎이는 것도 아니고, 아이템을 떨구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브레드를 떨궈 내기 위해 시작한 결투니 이쯤에서 포기하는 편이 나을지도모른다. '차라리 브레드가 실력이 없는 유저라면 그랬을지도 몰라.' 팽팽하게 싸우다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방식으로 지는 것은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다. 오히려 허접한 유저에게 당할 때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이미 생명력 차이가 4,000 이상 벌어졌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절망했다. 남은 생명력은 1,700가량. 반면 생명력이 10,000이 넘는 브레드는 48%가 남았으니 최소한 5,000은 남았다는 말이다. 스킬을 난사하는 중거리전이든, 평타위주의 근접전이늗 브레드가 얌전히 맞아주지 않는 한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만약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나....' 공격력과 벙어력을 50%나 뻥튀기시켜 주는 다크소울의 영역 선포 '영광의밤'! 지금상황에서는 '영광의 밤' 정도는 사용해야 그럭저럭 균형이 맞는 싸움이 되리라. 그러나 브레드는 영역 선포 스킬을 막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바로 브레드의 영역 선포를 사용해 공간을 중첩시켜 상쇄시켜 버리는 방법! 결국 영역선포는 2차전직을 마친 유저끼리 붙을 때는 애초에 없는 스킬이나 다름없었다. '.....끈난건가?' 아크가 완전이 전의를 상실했을 때였다.(오옹 힘내라!!) 갑자기 머릿속에 기발한 작전이 떠올랐다. '가만? 영역 선포 스킬은 서로 상쇄되어 없어진다. 그약점을 오히려 이용하면? 맞아, 그러고보니 예쩐에 엉뚱한 스킬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찌? 만약 그걸 사용하면..... 이건 통한다! 그 스킬이 발동만 되면 100% 통할 거야! 문제는 그 스킬이 제때 발동해 주느냐인데.... 어차피 이대로는 가망이없어. 죽을 때 죽더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어.' "왜 그래? 벌써 포기냐?" 그때 브레드가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아크는 가방에서 화염석을 꺼내 집어 던졌다. 갑자기 불길이 치솟아 오르자 브레드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그사이에 아크는 벌떡 일어나 '전력질즈'로 도망쳤다. "크윽, 뭐야? 또 도망치는 거냐?" "멍청이. 작전상 후퇴다!" "작전상 후퇴 좋아하네. '수혼빙의 치타의 힘이여!" 브레드가 치타 영혼을 뒤집어쓰고 뛰쫓아 왔다. 그러나 아크를 따라잡기 직전에 바닥에서 넝쿨이 솟아올라 다리를 휘감았다. "크윽, 이, 이건 또 뭐야?" "후후후, '나딩카의 열매'다 스탄달의 특산품이지!" 1분간 이동속도를 50%나 감소시키는 나딩카의 열매'! 아크는 일단 그렇게 시간을 벌고 도망치며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절체명의순간, 아크가 선택한 스킬은 바로 '신탁의 권'이었다. '신탁의 권' 을 발동시키자 슬롯머신이 나타나며 새로운 효과를 발동시켰다. '신탁의 권'을 발동시켰습니다. 신탁 결과 : [속성]:<<실력 용감?>>[성향]:<<전사> [환경]:<<산>> 신탁으로 선택된 공격 방식은 '약간 용감한 전사' 입니다. <<3분 동안 공격력 +5% 효과가 적용됩니다.>> 황당한 일이 많이 생기는 '신탁의 권' 중에서는 그나마 좋은 편에 속하는 효과였다. 그러나 아크는 와락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받아랏!" 그때 브레드가 따라붙으며 대검을 휘둘렀다. 아크는 다시 '나딩카의 열매'로 브레드의 발을 묶고 도망쳤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바위 틈 같은 곳에 몸을 숨기고 '신탁의 권' 대기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발동시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신탁의 권' 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었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생명력이 500이나 소모되는 것이다. '벌써 두 번 실패해서 남은 생명력은 700 일단 마나는 꽤 많이 남았으니 '기이한 힘이 깃든 망토'로 '부활의 힘'을 사용하면 1700이다. '신탁의 권' 을 사용할수있는 횟수는 최대 세 번, 그안에 그 효과가 발동해 주지 않으면 끝이야!' 아크는 일단 '부활의힘'을 사용해서 생명력을 회복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가만? 그러고보니 '신탁의 권' 으로 발동하는 효과는 100%랜덤이 아니야. 그대그때 상황에따라 나올 효과가 결정된다. 전에 그 효과가 방동됐을 때는 생명력이 10% 아래 일 때였어. 그때'신탁의 권'을 발동시키니 속시ㅓㅇ이' 없으면서 있는 척'치 걸렸었지? 그럼?' 거기짜기 생각한 아크는 생명력 700상태에서 다시 '신탁의 권'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자 곧 정보창이 떠올랐다. '신탁의 권'을발동시켰습니다. 신탁 결과:[속성]<<없으면서 있는 척>> [성향]:<<사기꾼>> [환경]:<<바위 숲>> 신탁으로 선택된 공격방식은 허풍쟁이 사기꾼 입니다. <<3분동안 모든 스킬공격에 '사기꾼'효과가 적용됩니다.>> "돼, 됐다. 나왔어.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신탁의 권'은 100%랜덤이 아니야. 미리 발동 조건만 파악해 두면 50%정도는 나올효과를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어!" 아크는 '신탁의 권'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연구하고 있으 떄가 아니었다. 그때 바로 뒤에서 브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자식, 잘 나가다가 이런 식으로 실망시키다니.....!" 아크가 계속 도망만 다니자 브레드는 상당히 열이 받음 오양이었다. 순간 아크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영역 선포 발동. 영광의 밤!" "뭐야? 고작 생각해 낸 게 영역 선포냐? 멍청한 놈, 이런 건 전직을 한 유저에게는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스킬이라고 말했을텐데? 영역선포 발동, 야수의 대지!" 아크가 발동시킨 영광의밤이 적용되기도전에 같은공간에서 야수의대지가 발동했다. 정상이라면 당연히 두개의 영역이 충돌을 일으켜 사라졌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두개의 영역이 겹쳐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닌가? "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브레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크의 입가에는 희열의 빚이 번졌다. '됐다, 성공이야 브레드는 야수의 대지 효과를 받겠지만 어차피 도망치면 그만!' 그러나 아직 계획은 50% 박예 진행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아크는 '나딩카의 열매' 로 브레드의 발을 묶어 놓고 바위 사이로 도망치며 라카드를 불렀따. '라카드, 위성 정찰 모드로 주변에 구덩이처럼 빠지면 쉽게 나올 수 없는 장소를 찾아!' '뭐?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해!' 사실 이번 결투는 레디안이 빠지는 대신 아크 역시 소환수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브레드는 아크가 소환수와 원격 통신을 할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게다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않고 정찰만하면 틀릴 이유가 없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의심하면 라카드가 결투를 구경하고 있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이 자식, 영역 선포까지 쓰고도 이따위로 찌질하게 굴기냐?" 브레드가 바위사이를 뒤지며 성질을 부려 댔다. 그러나 고장 그런 도발에 넘어갈 아크가 아니었다. '웃기지 마, 이건 찌질한게 아니라최선을 다 하는 거라고!' 아크는 솔리드 스네이크처럼 수풀에 숨거나, 바위 틈새를 기어 다니며, 위험할 때는 '나딩카의 열매' 도 종종 써쭈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잠시. '허풍쟁이 사기꾼' 효과가 사라지고 몇분 되지않아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찾았어. 그곳에서 반대편 언덕 위에 올라가면 그아래로 구덩이가있어. 깊이는 대략 10미터고 바닥의 넓이는 20미터 정도 돼. 이제 됐지?' '오케이, 됐어!' 아크는 곧바로 라카드가 말한 언덕으로 올라갔다. 라카드가 설명한 대로 아래에는 꽤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여기서 승부를 건다!' "작작 좀 해라!" 그때 언덕을 올라가는 아크를 발견하고 브레드가 달려 올라왔다. 아크는 도망가는 척 바로 몸을 돌렸다가 확 돌아서며 스킬을 발동 시켰다. "유령 기사단 강습!" 아크가 스킬을 사용하자 공간이 갈리지며 유령 병사들이 뛰어나왔다. -오벨리움의 기사단. 은인의 부름을 받고 찾아왔다. 적은 어디냐? "대상은 브레드!" 아크가 브레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기사단장이 검으로 브레드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다, 은인을 위협하는 적을 무찔러라! -위대한 오벨리움의 이름으로! 우오오오오! 30명의 유령 병사들이 폭풍을 일으키며 브레드에게 몰려들었다. "헛, 이건 또 뭐야? '수혼빙의' 거북의 등껍질!" 언덕위에서 갑자기 유령 병사들이 몰려들자 브레드가 재빨리 거북의 등껍질로 방어막을 만들었다. 역시 레벨 400을 넘는 유저를 상대로 초급 '유령기사단강습'을 사용하니 거의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아크가 노린것은 데미지가 아니라 브레드를 구덩이 방향으로 몰아넣는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목적대로 브레드가 가장자리까지 몰렸을 때! "도약!" 아크가 브레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헉! 뭐, 뭐야? 크억!" 미처 대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아크가 브레드의 몸을 껴안고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따. "....같이 죽자는 거냐? 어림없다. 고양이의 힘!" 브레드가 고양이의 영혼을 빙의시켜 날렵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아크역시 낙법으로 낙하 데미지를 없애고 바닥에 착지했다. 브레드는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구덩이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놈, 고작 생각해 낸 게 이거냐? 날 구덩이에 떨어 뜨리는거? 하지만 너도 떨어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어쨌든 잘됐군. 이곳이라면 너도 더이상 도망다니지 못할 테니까. 이제 마지막이다. 그냥 포기하고 용감하게 죽으라고!" 브레드가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들 때였다. "영역 선포 스킬, 영광의 밤!" 아크가 영광의 밤을 사용하자 공간이 찢어지며 검은 형체가 떠올랐다. 어둠의 정령 다크! 다크가 나타나자 주위가 칠흑같은 어둠에 빠져들었다. 키키키키키키. 다크가 불긍ㄴ 눈동자를 번뜩이며 기음을 발하자 아크에게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검은 기운은 마치 안개처럼 아크의 몸과 검에 휘감겼다. 영역 선포 영광의 밤이 발동되었습니다. +직경 100미터 내에서 시전자의 공격력 +50% +직경 100미터 내에서 시전자의 방어력 +50% +직경 100미터 내에서 시전자의 마법 저항력+20% 그 모습에 브레드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무슨... 영역 선포 스킬의 재사용 시간은 24시간...."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영역 선포 스킬을 쓴 적이 없거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크가 '신탁의 권' 으로 '허풍쟁이 사기꾼' 효과를 발동 시킨 것은 이 때문이었다. '허풍쟁이 사기꾼' 은 모든 스킬 에 '사기꾼' 효과를 부여하는 스킬. 그게 무슨뜻이냐 하면.... 이 효과가 적용되는 동안에는 어떤 스킬을 사용하던 시각 효과만 요란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즉, 그냥 스킬이 발동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아크는 영광의 밤을 쓰는 것처럼 허풍을 떨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브레드는 지레놀라 진짜 '야수의 대지' 를 사용한 것이다. 그게 두 개의 영역 선포 스킬이 중첩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영역 선포 스킬의 두번째 약점!' 적이 영역 밖으로 도망가버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때문에 아크가 브레드를 껴안고 구덩이로 밀어 넣은 것이다. 구덩이의 넓이는 고작 20여 미터. 영광의 밤 유효 범위가 100미터니 도망갈 수 없다! 또한 브레드가 구종이를 기어 올라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을 아크도 아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연히 이런 내용을 알 리 없는 브레드는 당혹한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대검을 들어 올리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영역 선포라고 무적은 아니야! 능력치가 좀올라가는 것 뿐이지. 하지만 이미 생명력이 4,000넘게 차이난다! 영역 선포라도 대세를 뒤엎지는 못해!" 현재 아크는' 신탁의 권을 사용한 덕분에 남은 생명력은 고작 200밖에 되지않았다. 반면 브레드는 여전히 5,000이 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히 아무리 강력한 버프가 적용된다 해도 이대로 붙어 서는 승산이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여유 만만했다. "과연 그럴까? 화룡강림!" 콰콰콰쾅, 화르르르륵! 아크가 스킬을 발동시켯을 떄였다. 돌연 땅이 쩎 갈라지며 시뻘건 불덩어리가 솟아올라싿. 이글거리는 화염 비늘을 번들거리며 승천하듯 날아오른 수십미터의 화룡! 화룡은 까마득한 높이까지 솟아올랐다가 아크를 향해 벼락처러 ㅁ떨어졌다. 그러자 구덩이 안이 불다가 되어버렸다. 마나2,000에 영력 400을 소모해서 발동시킨 영역 선포! 마나1,000에 영력 400을 소모해서 발동시킨 신격 스킬! 윈디고와 소울이터를 잡아먹으며 영력 노가다를 하지 않았다면 이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을 절대 불가능했으리라! 그러나 일단 발동시키면 그 효과는 절대적! 신격 스킬 [화룡강림]이 발동됐습니다! 10분간 <<불멸의 화룡>>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발동 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스킬 발동 시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50% 증가합니다. +스킬 발동 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적에게 10~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 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 500% 파티원의 화염저항력을 100% 상승시킵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의 최대 생명력의 50%가 회복됩니다. 크롸롸롸롸! 생명력이 50%나 회복하고 각종능력치가 뻥튀기! 정보창과 함께 아크의 몸에 불길을 뿜어내는 화룡의비늘이 휘감겼다. 화염의 갑옷을 두르자 몸속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활력이 솟아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신격 스킬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신이라도 된 듯한 감각이었다. "그, 그게 뭐야? 서, 설마....?" 스킬 발동과 동시에 적용되는 1,000의 광범위 화염 데미지에 꼬질꼬질 그을린 브레드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크가 화염에 뒤덮인 손가락을 움직여 보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말을 할때마다 불길이 뿜어져 나왔따. "신격 스킬이라고 들어 봤을라나 모르겠네?" "시, 신격 스킬!" 브레드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황급히 몸을 돌리며 근처 바위위로 뛰어올랐다. 자신의 '영역'에서 신격 스킬까지 발동시킨 상대. 설사 생명력이 100%인 상태라도 상대가 될리가 없다. 순간적으로 그렇게 판단한 브레드는 뒤도 돌아보지않고 치타의 힘을 이용해 돌을 밟으며 구덩이 탈출을 시도했다. "현명한 선택이지만.... 늦었어! 콰앙 ~ ! 아크가 바닥을 치가 굉음이 울리며 단숨에 10여미터를 뛰어올랐다. 그리고 뒤늦게 뛰어올라오는 브레드의 멱살을 감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찍었다. 화염이 수십미터나 뿜어져 올라오며 구덩이가 통쨰로 흔들렸다. "크아아아아악!" 바닥에 쳐박힌 브레드의 생명력이 단숨에 1,2000이나 날아갔다.실로 무지막지한 신격 스킬의 위력! "자, 받아라. 이게 내가 할수 있는 최강의 공격이다!" 아크는 다시 뛰어올랐다가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벼락처럼 쏘아져 내려갔다. 검이 바닥에 쓰러진 브레드의 가슴을 관통하자 화염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콰콰콰콰콰콰콰! 구덩이 속에서 회오리치던 화염이 탈출구를 찾아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승천하는 화룡이었다. 불길 속에서 메시지 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명예로은 결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 명성+500 >> "크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가 화욜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레디안이 한심스러운 눈으로 까맣게 그을린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박살 난 주제에 뭐 잘났다고 실실 쪼개고 난리야?" 레디안은 결투 결과가 꽤나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러나 브레드는 그런 레디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래서 여자들은 안 돼. 사나이의 승보에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너 또라이야? 이기는 게 좋은 건 당연하잖아." "아아,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만족했으니까." "그럼 나는? 내 원한은?" "뭐, 이렇게 됐으니 할 수 없잖아." 브레드가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치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대자 딴청을 피우는 남편같은 태도였다.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아크는 묘한 눈길로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방금 전까지만해도 브레드가 어떻게 아놀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따. 결투할 때의 브레드는 뭐랄까...... 끈덕지다고 해야할지, 집념이 강하다고 해야할지, 죽어도 이기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다. 아크가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발견하고 무슨짓을 해서라도 손에 넣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거소가 대등할 정도의 의지였다. 하긴 결투에서 이겨보겠다고 열흘 동안 메모리 크리스털을 보면서 아크를 연구할 정도니....... '일단 목표가 생기면 며칠이 걸리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끝을 봐야 만족하는 타입이야.' 그런 셩격 덕분에 레벨을 410넘게 키울 수 있었으리라. 어쨌든 브레드의 그런 지독한 일면을 엿본 아크는 결투를 이기고 나서도 불안했다. 브레드는 결투 한번 하겠다고 화룡산까지 쫓아와서 열을이나ㅡ대체 왜 그렇게 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마느 기다렸다. 그런데 노력이 허망하게도 패배했다. 당연히 핑계를 잡고 재도전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 레디안과 함께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레드는 방금 전짜기 죽을 둥 살 둥 싸웠던 게 거짓말처러 멱롹가 나오자 정말 탁 털어 버렸다. 결과가 나왔으니 그 외의 자잘한 문제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다. '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다행이다.' 아크는 브레드의 반응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굳이 말하자면 아크 역시 브레드와의 결투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다시 싸워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또한 다시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크는 그 문제를 확실하게 못 받가 두었다. "그럼 이제 지난 일을 없던 걸로 하는 거지?" "음, 더 이상 귀찮게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지?" 브레드가 고개를 돌리자 레디안이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도 이제 지겨워." "그렇단다." 브레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그런데 그거나 좀 알자. 대체 그동안 나를 쫓아 다녔던 이유가 뭐야? 나는 그 전까지 너희들을 본 기억이 없는데?" "음, 그건 말이야." 브레드가 무안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어지는 브레드의 설명에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크는 그렇게 끈질기게 쫓아오기에 뭔가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듣고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스탄달이 떠오르는 바람에 브레드와 레디안이 공략하고 있던 던전에 관광객이 몰려왔다. 그리고 관광객이 뭔가 잘못 만지는 바람에 던전이 닫혀버렸다. 그러니 스탄달을 떠올린 아크에게 복수를 해야한다니? "그, 그게ㅁ 뭐야? 완전히 생사람을 잡는 거잖아?" "그런 감이 없지는 않지만..... 뭐, 게임이라는 게 다 그런거잖아. 하하하하하! 뭐,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원만하게 합의를 봤는데 그런 사소한 문제는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난 상관 무지 많거든?' 아크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따. 그러나 브레드의 말처럼 이미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브레드는 그렇다 쳐도, 새삼 지난 문제를 꺼내 레디안의 감정을 자극해서 득 될 건 없었다. '왠지 무지하게 억울하지만 뭐, 스트레스 해소용 샌드백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아크가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는 북실이와 백구를 노려보았다.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가 원만한게 마무리됐지만, 덤으로 명성을 500이나 챙겼지만, 그건 그거고 아크는 북실이와 백구에게 갚아 줘야 할 빚이 있었다. 북실이는 멀쩡이 살아 잇는 백구가 죽었다고 사기 쳐서 800골드를 횡령하려 한 죄. 화룡산까지 오는 길에 계속 징징거려서 아크의 기분을 꿀꿀하게 만든 죄. 그리고 메모리크리스털을 함부로 유출시켜 아크를 궁지에 몰아넣은 죄. .....플러스 술주정. 사형 확정! 백구는 브레드와 레디안을 화룡산으로 안내한 죄. 그리고 거짓 사시르아크가 브레드의 명예로운 도전을 거절했다고 지껄여 댄 것ㅡ을 유포한 죄. ....플러스 술주정. 사형 확정! 얼맞 전까지는 북실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쉽게 손을 댈수 없었다. 백구를 잃고 맛이 간 북실이에게 함부로 손을 댔다가 게임을 접을까 봐 걱정됐다. 그러나 백구가 돌아왔다. 이제 아크가 무슨 짓을 해도 북실이가 게임을 접을 걱정은 없었다. 북실이가 게임을 접어 버리면 아크가 정말 백구를 보신탕으로 만들어 버릴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은 북실이와 백구를 교육(?)시킬 수 없었다. 결투가 끝난 뒤에야 알게 됐지만, 사실 브레드가 아크와 이렇게 산뜻한 방법으로 결판을 내려고 마음먹은 이유는 백구의 영향이 컸다. 브레드는 백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화룡산으로 오는 동안 아크가 월랑족을 구해 준 얘끼를 들었다. 그리고 '개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더구나 떼거지로 구해 줄 정도면 좋은 사람이다'라는, 편견으로 똘똘뭉친 결론에 이르렀다. '이거 바보 아냐?' 아크는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브레드가 개라면 죽고 못사는 사람이라는 것만은 확힐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브레드 앞에서 백구의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브레드와 헤어지면 니들은 다 뒈졌어.' 아크는 브레드와 헤어지는 즉시 두 놈을 둬들기며 놀(?)생각이었다. 쿵 하면 짝, 진즉에 아크의 계획을 눈치챈 두 가축은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어 댔다. 그때 브레드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왠지 이대로 헤어지기는 좀 서운하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난 네가 마음에든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자, 그런의미에서 내가 한턱 쏠 테니 같이 가자. 결투에서 있었던 일도 다시 얘기해 보고 싶고 말이야. 마침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내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도시가 있거든." "아니, 나는....." 아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브레드와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었다. 그러나 막 거절하려는 찰나, 갑자기 구석에서 번쩍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움찔해서 돌아보니 구석에서 사형 집행만 기다리던 북실이었다. 북실이는 눈동자를 빛내며 재빨리 브레드에게 달려와 손을 꽉 움켜쥐었다. "네, 형님. 저도 형님과 헤어지기 아쉽던 참입니다! 사나이끼리 시원하게 한판 떴으면 당연히 술 한잔정도는 해야죠 그렇지않습니까. 아크 님?" '저 자식이...!" 아크는 가늘게 뜬 눈매로 북실이를 쏘아보았다. 북실이는 브레드와 레디안에게 붙어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이다. 아크는 그런 북실이가 심히 괘씸했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 보니 북실이와 백구를 괴롭히기에는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후후후, 멍청한 놈, 너는 지금 네 무덤을 판 거야. 어디 한번 바짝바짝 말라 봐라.' 아크는 내심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더경ㅆ다. "알았어. 마을에서 한잔하자." "좋았어. 역시 말이 통한다니까. 크하하하하, 가자!" 브레드가 호탕하게 웃으며 앞장섰다. ACt 8 잃어버린 대박의 꿈을 찾아서! "파티원 구합니다!" "밤에만 열리는 '공포의 밀실' 공략 10인 팟, 결원 보충합니다!" "'살육의 정원' 공략하실 성직자, 전사 분 오세요!" "주말 24간 무한 사냥 같이하실 전우를 찾습니다!" "'네크로맨서의 탑' 최 상층까지 진입할 공격대 모집합니다. 수익분배 철저하고요. 속공 팟이라 레벨 270이상, 포션30개, 레어 장비 세 개 이상 필수입니다." 괌누 앞에는 유저들이 바퀴벌레 떼처럼 우글거렸다. 브레드가 안내한 곳은 화룡산에서 3~4시간 거리에 있는 파라돈이라는 도시였다. 아크가 관문 앞에 모인 인파에 입을 쩍 벌리자 브레드가 설명해 주었다. "이 도시는 '왕의 묘'와 가장 가까운 곳이야." "왕의묘?" "어? 몰라? 거기 굉장히 유명한 사냥터야." '왕의 묘'는 화룡산과 멀지 않은 장소에 있는 고대 유적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었다. 실제로는 꽤 넓은 지역에 걸쳐퍼져있는데, 지역에 따라 레벨200~300까지의 유저들에게 적당한 사냥터가 준비되어 있었다. 때문에 파라돈은 언제나 파티를 구해 '왕의 묘'로 진입하려는 유저들과,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장비 점검, 휴식, 수익분배를 하기 위해 귀환하는 유저들로 득실거렸다. "나도 한 때는 이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지." 브레드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앗, 브레드 형님이다!" "레디안 누님도 함께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수백 쌍의 눈동자가 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정말 앗, 하는 사이에 아크와 브레드 일행은 바퀴벌레 떼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형님, 저 기억하시죠 ? 예전에 같이 사냥했던 마법사 '일단 튀어'에요." "형님 덕분에 밥값 하게 된 전사 '맨주먹'입니다. 그때는 방패질도 제대로 못 하는 햇병아리였지만 요즘은 ' 살육의 정원'정도는 제가 운전(리더가 되어 파티를 이끄는것. 그 지역에 대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합니다." "공격대 안 만듭니까? 부르시면 언제든지 콜입니다." 사방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에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사실 파라돈에서 브레드는 거의 전설적인 유저였다. 처음으로 '왕의 묘' 본관에 진입해 보름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보스 '절망을 뿌리는 자'를 처치한 공격대의 리더! 그리고 솔로잉으로 '왕의묘'전 지역을 최단시간 클리어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었다. 그리고 유명세로 따지면 레디안도 브레드 못지않앗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브리스타니아 최강 페어라는 말을 할정도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용케도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런 둘에게 쫓겨 다녔으니…… 그나마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다.' 그때 낙동각 오리알처럼 옆으로 밀려나 있던 북실이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와, 형님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었군요." "후후후. 뭐, 보통이지. 사실 여기 있는 녀석들 가운데 반은 내가 키운거야." 브레드가 우쭐대자 레디안이 콧웃음을 치며 중얼거렷다. "놀고 있네. 방금 전에 아크에게 개박살이 난 주제에……" "개박살이라니? 몇 번을 말했지만 그건 사나이의……" 브레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뭐라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뭐? 브레드 형님이 결투에서 졌다고?" "대체 어떤 사람이 브레드 형님과 1대1로 싸워서 이겼다는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아, 졌지,졌어. 화끈하게 졌어. 이 녀석에게 말이야."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아크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수백 쌍의 눈동자가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동시에 브레드에게 쏟아지던 엄청난 양의 질문도 함께 집중되었다. "저, 저 사람이 브레드 형님을?" "레벨이 ㅇ러마나 되십니까?" "장비는 어떤 걸 쓰시죠 ? 직업이 뭡니까?" "혹시 길드 가입하셧나요? 저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요? VIP로 모실게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질문 공세에 아크는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유저들의 관심은 달갑지도 않을뿐더러,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야, 이것들아, 적당히 안 할래? 이제 그만하고 꺼져!" 그때 인파에 떠밀리던 레디안이 와락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짜고짜 양손에서 화염을 일으키며 살벌하게 유저들을 쏘아보았다. "이것들이 감히 누굴 밀칠고 지랄이야 ? 나 지금 기분 별로거든? 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그냥 하던 일이나 해라, 응?" 레디안의 협박에 유저들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지 브레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서서 유저들을 돌려보냈다. "자, 자! 그만. 지금은 따로 볼일이 있으니 나중에 보자." '휴, 이제야 좀 살겠군,' 아크는 막가는 레디안의 태도가 황당했지만, 덕분에 유저들의 포위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단 유저들을 돌려보내고 파라돈에 들어선 브레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야, 너 그 성질머리 좀 어떻게 안되냐?" "흥, 내가 뭐 ? 그리고 나 기분 안 좋은 거 맞거든?" 레디안은 브레드가 깨진 이후로 계속 저기압 상태였다.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 어 ? ……그날이냐?" "뒈질래?" ……라고 말하면서 레디안의 주먹은 이미 브레드의 턱을 강타하고 있었다. 브레드는 비틀거리며 한 걸음 물러나더니 갑자기 아크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너도 한창 사냥하다 와서 정리할 게 많지 ?" "에? 아니…… 그야뭐 ……." 대체 뭐야 ? 무슨 화제 전환이 이렇게 빨라? 맞은데 대한 리액션은? 그냥 넘어가는 거냐? 그러나 브레드는 괴상하게 바라보는 아크의 눈빛을 가볍게 묵살하고 시계탑을 가리켰다. "나와 레디안도 간만에 마을에 와서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 일단 각자 볼일 보고 5시쯤 됐을 때 모이자. 장소는 '낙타와 오아시스'. 중앙 광장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가르쳐줄거야. '낙타와 오아시스'는 술맛이 정말 끝내주거든. 너도 한 번 맛보면 아예 이곳에 눌러 살고 싶어질걸. 그럼 이따 보자고!" 브레드가 몸을 돌리자 북실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헉, 혀,형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해요 ?" "응? 뭐가? 이따 보자니까." "그, 그게……가, 같이 가요!" "에? 왜?" 눈치 없는 브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내 잡템을 가지고 있잖아. 정리하려면 당연히 나하고 같이 가야지. 안그래?" 그때 아크는 살벌한 눈으로 북실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브레드는 미묘한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쩄든 지금은 안 돼. 나는 레디안과 '어른의 시간'을 보내야 하거든." "도 맞을래?" "후후후, 좋으면서……. 어쨌든 5시에 보자. '낙타와 오아시스'야" 브레드는 구시렁 거리는 레디안을 끌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사라지자 북실이는 불안한 눈으로 슬금슬금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크의 살벌한 눈빛에 사악 하며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저…… 그게 …… 아크 님?" "응? 뭐?" 아크가 입술 끝 부분을 살짝 치켜 올리며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너하고는 할 얘기가 아~주 많았지? 하지만 여기서는 좀 그렇잖아. 일단 '너희와 나 사이에 해결할문제'는 시간이 많을때, 그리고 주변에 18세 미만의 청소년ㄴ이 없을 때 아주 길~게 하자고. 그러니 일단 그런 문제는 잊어버려. 볼일 보고 즐겁게 술도 한잔하면서. 뭐, 언젠가는 꼭, 기필고, 절대, 해결해야 될 문제지만 말이야. 자, 가자." 아크는 핥듯이 북실이와 백구를 훑어보고는 몸을 돌렸다. 이제 아크가 생각해 낸 '보다 확실하게 북실이와 백구'를 괴롭히는 방법이었다. 바로 스트레스를 팍팍 주면서 말려 죽이는 것이다. '감이 브레드를 이용해 잔꾀를 부려? 어디 얼마나 버티나 두고보자. 네 입으로 제발 죽여 달라고 말하게 만들어 주마. 덤으로 그 게약서도 파기하게 만들어 주지.' 사실 아크의 목적은 말려 죽이는 것보다 그쪽이었다. 북실이가 메모르 크리스털을 빌미로 아크에게 받아 낸 800골드짜리 어음! 그때는 사정이 급해서 일단 주기로 했지만, 일단 문제는 해결됐다. 그리고 뭣보다 북실이가 800골드를 요구한 이유, 백구가 살아 돌아왔다. 800골드를 줘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북실이가 모처럼 받은 계약서를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었다. 또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것처럼, 이제 와서 한 번 써 준 게약서를 내놓으라고 하기에는 너무 찌질해 보이지 ㅇ낳는가? 때문에 아크는 이렇게 북실이와 백구의 피를 말리며 계약서를 토해 낼 수 밖에 없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크는 상점으로 향하면서도 중간 중간 멈춰 서서 음흉한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놈은 발 뻗고 못잔다. 그러나 앞으로 맞아야 하는 놈은 아예 잠을 못 자는 법이다. 북실이와 백구는 아크가 돌아볼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불과 몇 분만에 핼쑥해졌다. '후후후, 이게 재미있는데?' 새로 개발한 고문 방식은 또 다른 효과도 있었다. "흠, 꽤 많이 모았군, 모두 해서 180골드 어떤가?" 상점을 찾아가자 주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잡템을 바라보며 제안했다. 보사카 마을을 나온 이후로 보름, 그동안 사냥하며 모은 잡템이었다. 물론 같은 잡템이라도 마법 아이템 이상이나 좀 애매한 설명이 붙어 있는 아이템은 제외해 놓았다. 상점에 파는 물건은 정말 문자 그대로 잡템들뿐. 보름 동안 모았다고는 해도 180골드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북실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를 보세요! 이게 보기에는 이래도 개당 30실버는 되잖아요. 그리고 이것도요. 제가 초행이라고 너무 후려치시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한 번에 이 정도의 물건을 거래하면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하잖아요. 185골드!" "어허, 하지만 이건 요즘 시세가 하락세야. 사 놓고 시세가 폭락하면 어쩌라고?" "상점을 운영하려면 그 정도 리스크는 부담해야죠. 184골드!" 본래 상인들의 '흥정' 스킬은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NPC를 설득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그러나 평소 북실이는 그렇게까지 가격에 신경 쓰지 않앗다. 어차피 '픙정'을 하지 않아도 '거래'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NPC가 알아서 가격을 올려 준다. 게다가 죽자 살자 '흥정'을 써서 가격을 올려 받아 봐야 자신에게는 땡전 한 푼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버에는 1실버라도 더 받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흥정'을 난사했다. 운명의 그때(?)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점수를 따 두려는 속셈이다. '하아, 이거 참…….' 북실이가 그야말로 육탄 공세를 하듯이 '흥정'을 벌이자 상점 주인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북실이에게 흥정을 맡기고 진열대를 둘러보는 아크를 발견하고 말했다. "아, 혹시 자네, 그 인형이 마음에 드나?" "네?" "그럼 이렇게 하지. 180골드에 그 인형을 끼워 주겠네." 상점 주인의 말에 아크는 진열대에 놓인 인형을 바라보았다. 토끼처럼 생긴 인형이었다. 포코포코 인형(일반) 북부 산악 지대의 명물인 포코포코를 닮은 고급 인형입니다. 포코포코의 털을 사용해 감촉이 매우 훌륭합니다. 또한 안에는 마법장치가 되어 있어서 태엽을 갑으면 '포코포코라는 소리를 내며 이동합니다. 배에 들어 있는 음성 녹음 크리스털을 이용해 다른 음성을 녹음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선물로는 최고입니다. <가격 : 3골드> "흠……." 아크는 잠시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좋아, 거래 성립이네." 그렇게 아크는 포코포코 인형을 받아 들고 상점을 나왔다. '마침 잘 됐어. 그렇지 않아도 내심 찜찜했는데……." 사실 아크가 포코포코 인형을 보고 있었던 건 로코 때문이었다. 아크는 로코가 얼마 전에 생일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물론 삽질이나 울먹이처럼 로코에게도 약간의 수당을 주기는 했지만- 로코는 한사코 거절했지만-아크상점까지 떠맡기고 있으면서 생일 선물 하나 챙겨 주지 못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마침 적당한 인형을 발견해 살까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덤으로 얻은 거라 좀 그렇지만 뭐, 어차피 살 생각이었으니까.' "인형은 마음에 드세요? 헤헤헤." 상점 밖으로 나오자 북실이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다가왔다. 생색을 내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아크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가방을 뒤적거렸다. "자, 이제 다음에 처리할 물건은……." 바로 소울이터를 처리하고 얻은 '상급 악마의 표피'였다. 일단 보스 몬스터에게서 얻은 레어 재료다. "흠,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나도 처음 보는군. 심상치 않은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전문 장인에게 물어보기 전에는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어쨌든 굉장히 보기 드문 물건인 것 같으니 팔 생각이 있다면 장당 20골드씩 쳐주겠네." 방금 전의 상점 주인에게 보여주니 이런 반응을 보엿다. 장당 20골드. 다섯장이니 100골드. 일단 재료 아이템치고는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거래를 거절했다. 상점 주인이 '잘 모르겟다'고 말하는 아이템은 그가 전문 적으로 취급하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대게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전문 지식을 가진 NPC를 찾아가면 더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특정 레어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NPC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정말 독특한 아이템이라면 도시 몇 개를 뒤져도 전문NPC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고장 재료 아이템 다섯장을 팔자고 그런 NPC를 찾아다니는 건 시간 낭비. '그럼 남은 방법은 하나……' 바로 유저에게 직접 팔아넘기는 방법이다.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뉴 월드에서는 NPC와 거래하는 가격은 참고 사항에 불과했다. 실제로는 현재 유저들이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느냐에 따라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이 천차만별로 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흑수정'이라는 아이템이었다. 예전에'흑수정'을 MPC에게 팔면 10실버밖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연금술사들이 부쩍 늘어나며 '흑수정'이 부족해진 탓에 요즘 유저들 사이에서는 1골드까지도 거래되었다. '원래 희귀한 재료 아이템은 NPC에게 팔면손해야.' 일단 유저에서 '상급 악마의 표피'에 대한 정보를 모아 시세를 따져보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시세 정보를 가장 빨리 알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매장이었다. 잡템에서 유니크 아이템까지, 팔 수 있는 아이템이란 아이템은 모두 몰려드는 경매장을 통하면 정확한 시세와 재료 아이템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때문에 아크도 도시에 들르면 경매장을 찾아 시세를 조사했다. 그리고 '왕의 묘'로 향하는 유저들이 몰려드는 파라돈에도 경매장이 있었다. "생각보다 큰걸?" 파라돈 경매장은 거대한 5층 건물이었다. '왕의 묘'에서 몰려드는 아이템이 워낙 많아 경매장도 커진 모양이다. 5층으로 되어있는 경매장은 경매품을 종류에 따라 분류해 각 구역에 분산시켜놓았다. 아크는 경매장에 들어가 관리 NPC에게 물었다. "특수 재료를 취급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4층D구역으로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즈럭운 쇼핑 되십시오." 아크는 4층으로 올라가 진열장을 주욱 훑어보았다. "어디 보자……. 상급 악마의 표피. 상급 악마의 표피……." 달 가루, 크로마뇽의 눈알, 오색 무라니아의 발톱. 진열장 안에는 특수 재료를 취급하는 곳답게 별의별 괴상한 재료들이 널려 있었다. 이 지역은 제법 고레벨 유저들이 모이는 도시라 '달인'의 경지에 오른 생산직 유저들이 사용하는 재료 아이템도 러러 눈에 띄었다. 그런 최상급 재료 아이템은 보통 몇백 골드. 심지어 광석 하나가 수십 골드를 호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달인'이 만들어 내는 제작 아이템은 레어나 유니크 장비품도 적지 않아 재료도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다. 일단 상점에서 구할 수 없는 재료 아이템이라면, NPC에게 팔 때보다 경매장에서 팔 떄 서너 배의 프리미엄이 붙어 팔리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다. 마침 다른 사람이 올려놓은 경매품이 있구나. 헉!" 진열장에 놓인 경매품의 안내문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상급 악마의 표피 *등록자 : 무적검왕 *현재 경매가 : 108골드 *즉시 구매가 120골드 <등록자 상품 설명 : 레어 천 방어구 '어두운 영혼' 시리즈의 주재료 입니다. 사 주세요.> '뭐, 뭐야? 한 장에 120골드?' 아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점 주인이 제시한 금액보다 100골드나 높은 가격이다. 그러나 상품 설명을 보니 그 무지막한 가격도 수긍이 되었다. 레어 천 방어구 '어두운 영혼의 로브'나 '어두운 영혼의 신발'같은 것은 경매장에서 종종 본 적이 있었다. 하나에 800~900골드나 하는, 현재 제작할 수 있는 천 방어구 가운데 유일하게 마법사들이 환장하는 캐스팅 속도 증가 옵션이 붙어 있는 방어구였다. '이번에 얻은 '상급악마의 표피'가 다섯장이니 다 팔면 600골드!' 어지간한 레어 장비품을 얻은 것과 진배없었다. '하지만 당장 경매장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지.' 아크는 일단 가격을 알아본 것으로 만족했다. 경매장에서 물건을 팔면 판매 가격의 2%에 해당되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600골드의 2%면 12골드,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곳에 있는 동안 '상급 악마의 표피'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직거래를 하는편이 낫다. 5골드 정도 깎아 준다고 해도 7골드 이득인 것이다. 브리스타니아에는 천 방어구를 사용하는 마법사가 넘치도록 많으니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리라. '다른 곳에 갈 때까지 사는 사람이 없으면 그때 맡겨도 늦지 않아.' 아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 나왔다. 그리고 '화룡족의 두개골'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꽤나 익숙한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어 ? 무야? 저건 설마……?" 아크는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진열장을 바라보았다.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은 시꺼먼 덩어리였다. "서, 설마 정말로……?" 아크는 황급히 경매품 아래에 적힌 안내문을 읽어 보았다. 네크로맨서의 정수 C등급 *등록자 : 에리어 *현재 경매가 : 10골드(경매 참가자 없음) *즉시 구매가 : 15골드 <등록자 상품 설명 : 몰라요, 모릅니다. 사든가 말든가> '네, 네크로맨서의 정수!' 순간 아크는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네크로맨서의 정수! 그렇다. 바로 얼마 전 아크가 스탄달에서 구해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들어 먹었던 핵심 재료! 그런데 그 엄청난 재료가 경매장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격은 즉시 구매가 고작15골드!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다. 진열장에 굴러다니는 정수가 무려 20여 개!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아크는 황급히 근처의 안내NPC를 불러 세워 물어보았다. "저, 저기……이 재료 아이템에 대해서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NPC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실은 저희도 이 물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파라돈의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의 묘'라는 지역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아직 잘 모르지만……" "아, 새로 오신 분인 모양이군요. 실은 그 '왕의 묘'는 오래전에 언데드 킹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지역입니다. 한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를 봉쇄해 놨었는데, 수년전부터 언데드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영주님이 경험 많은 이방인들에게 개방했습니다. 이 경매품은 그 지역에 위치한 '네크로맨서의 탑'에서 출몰하는 사악한 네크로맨서에게서 간혹 나오는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격은……?" "아, 좀 비싸죠?" 안내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워낙 나오는 숫자가 적으니까요. 경매장에는 20개나 되지만 이게 자주 나와서 숫자가 많은 게 아닙니다. 며칠에 하나씩 등록되는데 전혀 팔리지 않아서죠. 처음 발견된 이후로 지금까지 여러 마법사나 연금술사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용도도 못 찾고 있거든요. 때문에 처음에는 뭔가 기대하고 100골드씩 올려놓기도 했지만 점차 가격이 내려가서 지금은 보다시피 10골드에 경매를 시작해도 입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이런 물건이 며칠에 하나씩 등록된다고요?"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어쨌든 아크는 안내원의 설명으로 대강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네크로맨서의 탑에서는 며칠에 한 번 씩 각 층마다 1마리씩의 네크로맨서가 리젠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종의 스페셜 몬스터라는 말이다. 그리고 네크로맨서는 굉장히 드물지만 레어 아이템을 떨궈 아예 네크로맨서의 탑에서 살다시피 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네크로맨서의 정수'는 그 네크로맨서를 잡으면 가끔 나온다고 한다. 물론 레어 아이템을 노리고 네크로맨서를 사냥한 유저들입장에서는 '꽝'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네크로 맨서의 정수의 가치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네크로맨서의 정수는 서바이벌 요리로 내단을 만드는 재료아이템! 그러나 아크가 유일하지는 않겠지만 '서바이벌 요리'를 익힌 사람은 뉴 월드를 통틀어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때문에 네크로맨서의 정수를 어디에 사용하는지 알 리가 없었다. 사실 아크 역시 우연히 정수의 사용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비록 등급은 C지만……." 경매장에 올라와 있는 '네크로맨서의 정수'는 C급. 아크가 내단으로 만들어 먹은 '네크로맨서의 정수'는 A급이다. 같은 종류의 정수라도 몬스터의 레벨이나 능력에 따라 여러 가지 등급이 있는 모양. 그러나 C급이라도 일단은 정수다. A급만큼은 아니겠지만 확실하게 능력치가 올라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템을 고장 10~15골드에 판다는 거야?' 순간 아크의 머리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가 출몰하는 사냥터! 게다가 파라돈 입구에서 봤듯이 그곳으로 향하는 유저들은 넘치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네크로맨서의 정수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저들이 가치를 알아내지 못하는 한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가지는 않으리라. '이 정수를 몽땅 긁어모아 내단을 만든다면?' 같은 '네크로맨서의 내단'이라도 C급 재료로 만들면 같은 C급이었던 '몽구스의 내단' 하나 정도의 능력치밖에 올라가지 않으리라. 그러나 효과가 비록 1이라도 영구적으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은 모두가 탐내는 물건이다. 현재 그런 종류의 아이템은 '달인' 연금술사가 제작하는 '엘릭서'가 유일하다. 한 종류의 능력치+10의 '엘릭서'가 무려300골드! 그것도 '엘릭서'는 한 유저당 다섯 번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몽구스의 내단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C급 내단이라도 능력치가 15~20은 올라간다. 거기에 속성 저항력이 붙었고, 완성도에 따라 또다시 능력치가 10올라갔어. '일릭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돼. 게다가 잘하면 소환사들이 환장할 '영력 갈취'가 붙을지도 몰라. 마법사 계열의 유저가 많은 브리스타니아라면 구매자는 얼마든지 있어. 일단 만들면 최소한 800……아니 1,000골드는 넉넉히 받을 수 있어!' 문제는 내단 연성에 필요한 나머지 재료의 가격이었다.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죽은 자의 가죽과 심장은 개당 4,000개. 그러나 아크는 이미 레벨 380을 넘어서 레벨 200~300의 '왕의 묘'에서는 재료 아이템을 구할 수 없었다. 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작 정수가 싸도 나머지 재료가 생각보다 비싸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오오옷. 죽은 자의 가죽과 심장이 개당 10실버?' 파라돈의 유저들이 가장 많이 가는 '왕의 묘'는 언데드 출몰 지역이다. 때문에 언데드에게서 얻을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은 넘쳤다. 물론 죽은 자의 가죽이나 심장은 연금술 재료로도 많이 사용되지만,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낮은 편이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아크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진, 진정하고 일단 계산 좀 해보자.' 아크는 머릿속에서 재빨리 계산기를 눌러 보았다. 죽은 자의 가죽과 심장이 개당 10실버. 내단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가 4,000장이니 금액으로 환산하면 400골드. 거기에 네크로맨서의 정수 가격을 후하게 쳐줘 15골드에 구입한다고 해도 총재료비는 410골드. '마, 만약 완성품을 1,000골드에 팔면……?' 개당 590골드가 남는 것이다! '문제는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다는 데 걸리는 시간이야. C급이라도 이틀은 걸린다.' 하지만 그 문제 역시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동방 민족이 파는 '비전의 주문서!' '비전의 주문서'에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만드는 레시피를 복사해 놓으면 누구라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전에 포기햇던 내단 공장을 다시 가동시킬 수 있다!' 아크는 예전에 '슬라임의 내단'을 양산화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갱생단이 카이로트의 지하 미궁에서 한 달이 넘도록 노가다를 해서 얻은 정수는 고작 여섯 개. 게다가 주요 재료인 '유니콘의 뿔'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 포기. 잔뜩 기대했던 아크는 결국 본전치기만 하고 공장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왕의 묘가 존재하는 한, 그곳으로 몰려가는 유저들이 존재하는 한, 필요한 재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된다. '노다지다. 여기는 노다지였어! 앉아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잖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크가 이곳에 주저앉아 돈벌이만 할 수는 없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북실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진.' "북실이, 오늘 부로 노를 아크상점의 파라돈 지부장으로 임명한다!" "네? 지부장?" 북실이가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렷다. 아크는 간단하게 사업 개요를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당분간 너는 이곳에서 네크로맨서의 정수와 죽은 자의 가죽, 심장을 닥치는 대로 사들여. 하지만 너무 매점매석하는 인상을 풍겨서는 안 돼. 물건이 올라오는 대로 몽땅 팔리면 유저들이 수상하게 여기고 가격을 올릴지도 몰라. 무슨 말인지 알지?" 사실 아크의 유일한 걱정은 이것이었다.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원리는 수요와 공급니다. 누군가 경매장에 있는 재료 아이템을 몽땅 사들이면, 유저들은 그 물건의 정확한 용도를 몰라도 가격을 올릴 게 뻔했다. 그렇게 1실버, 1실버 올라가다 보면 나중에는 그 가격이 정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재료비 상승은 곧 이윤의 감소로 이어진다. 때문에 매점매석을 하더라도 조용히.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아크는 '네크로맨서의 내단' 장사를 단기간에 끝낼 생각이 없엇다. 저렴한 가격에 재료가 공급되는 한, 뉴 월드의 모든 유저가 1유저 1내단을 실현시키는 그날까지 팔고 또 팔아 대박을 터뜨릴 생각이었다. 그런 장대한 야망을 품고 있으니 더욱 재료비의 안정화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아예 이곳에서 주도면밀하게 시장 상황을 조사하고 매입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크는 그 역할을 북실이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설명을 들은 북실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 할게요! 맡겨만 주세요!" 비록 아크의 밥이지만 북실이도 나름대로 계산 빠른 상인이다. 이건 무조건 되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 파라돈 지부장을 맡으면 아크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크 역시 이제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잘만 하면 돈벼락을 맞게 생겼는데 그런 일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단 하나, 네가 남으면 동영상을 찍는 데 문제가 생기는건데……." "그,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북실이가 얼른 끼어들어서 설명했다. "실은 아크 님이 화룡산에 잇을 때 '뱀파이어 아이'가 중급이 됐거든요. 아크 님하고 멀리 떨어져도 스킬을 켜 놓은 상태에서는 계속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어요. 아직 통신은 안 되지만 그것도 상급이 되면 될지도 몰라요." "오오오, 그럼 문제가 없군. 너도 가끔은 쓸 만하잖아?" 아크의 새로운 사업 계획은 급류를 타고 진행되었다. 처음에 얘기된 대로 일단 북실이는 당분간 이곳에서 재료아이템을 모으기로 햇다. 그리고 아크가 '비전의 주문서를'를 대량 구입해 보내 주면 모아 놓았던 재료 아이템을 털어 본격적인 '네크로맨서 내단' 양산화에 돌입!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자는 내용이었다. 북실이는 수익금중 10%를 받기로 계약했다. 내단 하나의 예상 수익이 490골드니 10%면 개당 49골드. 좀 많다 싶었지만 이번 사업에 아크가 하는 일은 '비전의 주문서'에 스킬을 담아 주는 것뿐이다. 나머지 재료 구입과 내단 연성은 북실이가 도 맡아 해야하니 10% 정도의 급료를 줘도 아깝지는 않았다. '이 일만 잘되면…….' 그야말로 돈방석! 수천골드,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수만골드를 벌 수도 있다. 그리고 수만 골드면 북실이 역시 수천 골드의 돈을 앉아서 벌 수 있다는 말이다. "우헤헤헤. 감사합니다. 회장님, 평생 아크 님을 따르겠습니다." "음. 열심히 하게. 파라돈 지부장. 브리스타니아의 골드를 몽땅 벌어들이는 그날까지." "기대해라. 백구야, 잘되면 매일 고기반찬을 먹여줄게." "우왕, 저, 정말요?" 아크와 북실이에 이어 백구까지 가세해서 배가 터질때까지 김칫국을 들이켰다. 그렇게 계약서가 작성하자 약속한 5시가 되었다. "뭐야? 표정들이 왜 그래?" '낙타와 오아시스'에 도착하자 브레드가 괴상한 눈빛으로 물었다. 헤어질 때와 달리 아크와 북실이의 표정이 완전히 헤벌쭉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매우 정상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급비밀, 아크는 금세 정색하며 헛기침을 했다. "우리가 뭘? 그러는 너희도 좀 전과 표정이 전혀 다른데?" 아크가 레디안을 바라보며 물어싿. 레디안은 헤어지기 전까지는 '잔뜩 흐림, 오후 늦게 태풍조짐' 상태였는데 , 지금은 언제 그랫냐는 듯이 '맑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밝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 레디안도 꽤나 미인이었다. 그때 브레드가 레디안의 어깨에 떡하니 손을 올려놓으며 히죽거렸다. "말했잖아. 어른의 시간을 보낼 거라고. 애들은 모르는 그런 게 있어." "……또 까분다." 레디안이 바로쏘아붙였지만 좀 전처럼 다짜고짜 어퍼컷을 날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약간 샐쭉한 웃음을 지으며 투정을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아아아..... 이거 상상되는데?? 넘 야한거 아냐? 퍽! 죄송합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기는 했던 모양인데…….' 아크는 수상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아크의 관심사는 오직 내단 공장에 쏠려 있었다. "됐어, 그보다 여기 술맛이 좋다며?" "아아, 그야 당연히 최고지. 주인장, 여기 술과 안주!" 브레드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술을 주문해 들이붓기 시작했다. 모처럼 기분이 좋아진 아크와 북실이, 심지어 백구도 닥치는 대로 술을 퍼마셧다. 그렇게 네 명과 1마리가 얼큰하게 취기가 돌았을 무렵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문득 귓가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아, 잠깐만." 아크는 브레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니트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을 때였다. "오, 오빠. 큰일 났어요! 위기예요! 란셀 마을의 대위기예요!" 로코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막을 후려쳤다. (후..... 처음으로 텍본써본건데 힘드네요.. ㅋㅋㅋㅋ 그런데 이뿌듯함은 뭐지?? 무튼 재미있게들 보셨나요? 담에 시간남을때 또 뵙죠 ㅋㅋ 수정은 가능하지만 작성자 이름은 바꾸지 말아주세요) By-yakiprince ACT9 란셀마을의 위기 "여기인가?" 샴바라가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을 바라보았다. "네, 여기가 맞습니다." 옆의 마차를 타고 있는 358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샴바라는 바다를 건너 란셀 마을 앞에 도착해 있었다. 샴바라가 란셀 마을로 오게 된 이유는 바로 얼마 전에 해적을 소탕하고 얻은 장물 때문이었다. 아크는 이번 해적 소탕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익명의 제보자에게 주어지는 사례20%를 란셀 마을의 아크상점으로 보내 달라고 말했다. 해적 소탕으로 동방 민족이 거둬들인 장물이 무려 50,000골드 20%만 해도 10,000골드였다. 게다가 현물이라 마차를 동원해야 겨우 운반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만약 도중에 도적 떼에게 털리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샴바라가 직접 나서서 장물 운반을 란셀 마을까지 운반해 온 것이다. 그러나 샴바라가 란셀 마을을 찾아온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란셀 마을이 이런 곳이었나?" "처음 와 보신 겁니까?" "아니, 예전에 한번 잠깐 들어가 본 적이 있어. 하지만……." 샴바라는 란셀 마을에 처음 와 본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스탄달을 떠올릴 때. '신성한 토양'을 옮기기 위해 차원 게이트로 잠깐 들어와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마을 구경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마을에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마을은 그때 봤던 마을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꽤나 독특한 마을이죠?" 358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독특한? 아니, 이건 오히려……." 괴상한 마을이라는 표현을 써야 맞았다. 어느 쪽의 표현을 쓰든 현재 란셀은 샴바라가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일단 예전과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샴바라가 찾아왔을 때는 마치 전원 마을처럼 마을 외곽으로 나무 울타리가 빙 둘러쳐져 있었고, 내부에 100여 채의 가옥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무 울타리가 돌벽으로 변해 있었다. 성벽까지는 아니라도 바위를 적당하게 다듬어서 쌓아 올린 돌병의 높이가 1미터는 되었다. 그리고 돌벽이 감싸고 있는 마을의 크기도 예전에 비하면 50% 정도는 커진 것 같았다. 마을 안에 자리 잡은 가옥도 200여 채는 되어 보였다. 규모가 커진 만큼 괴상함도 더욱 심해졌다. 마을에 200여 채의 건물이 있는데도 똑같은 형태의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생김새나 색깔은 모두 제각각, 멀리서 보면 그냥 울극불극한 꽃밭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 건물들은 거미줄처럼 얽힌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었고, 또 이상하게도 마을 여지거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건 샴바라가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저 구름다리와 구멍은 뭐야? 마을에 왜 저런 게 있어?" "아, 구름다리와 구멍요?" 358호가 샴바라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구름다리는 묘족을 위해 만들어 놓은 놀티어 같은 거랍니다. 저기 묘족들이 올라가서 낮잠 자고 있는 거 보이시죠? 묘족은 높은 곳을 좋아한답니다." "그럼 구멍은?" "그건 너구리족이 파 놓은 겁니다. 건물들이 많아져서 자제 옮길 떄 귀찮다고 저렇게 마을 지하에 이동 통로를 만들어 놓은 모양입니다. 너구리족은 땅속이 더 편하답니다." 란셀 마을에는 스탄달의 주재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스탄달과 슈덴베르크의 모든 정치적, 상업정 교류는 란셀 마을을 거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샴바라와 함꼐 온 358호는 예전에 아크를 도와 동방 민족을 구한 공을 인정받아 주재소의 중간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때문에 항상 스탄달과 란셀을 왕복한 덕분에 마을의 변화를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럼 혹시 저 기둥 같은 것도 뭔가 의미가 있는 거야?" 샴바라가 마을 중간 중간에 세워져 있는 기둥을 가리키며 물었다. 마을에 그냥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도 이상한데, 그둘레로 천막 같은게 쳐져 있었다. 기둥에 대해 묻자 358호가 실소를 하며 대답했다. "아, 그 기둥은 영역 표시용이랍니다." "뭐? 영역 표시?" "네, 얼마 전에 란셀 마을로 이주해 온 월랑족이라는 수인족이 있는데, 그들은 원래 기둥 같은 곳에 영역 표시를 해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처음에는 마을 주변의 나무 같은 곳에 했는데 보기에 안 좋다고 촌장이 마을 안에 저렇게 기둥을 세워 놓은 겁니다." 말하자면 월랑족 전용 화장실이라는 말이다. 358호의 설명에 샴바라는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아크 녀석 같은 마을이군." "좋은 부분요? 나쁜 부분요?" "당연히 나쁜 부분이지, 아크 녀석에게 좋은 부분이 어디있어?" 그러자 358호가 움찔하더니 입술 앞에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곳 주민들 앞에서는 아크 님의 험담은 하지 마세요." "응? 내가 내 입 가지고 말하겠다는데 왜?" "저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이곳 주민들은 모두 아크 님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아크 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곤란해진다고요, 특히 아크상점의 지점장 아시죠? 그분 앞에서는 절대! 절대 안 됩니다." "아크 녀석의 홈그라운드라 이건가? 하긴 전에 왔을 떄도 그런 분위기이기는 했어." 샴바라는 스탄달에서 벌어졌던 마지막 전쟁을 떠올렸다. 붉은 남자의 역습으로 하만 요새가 전멸의 위기에 몰렸을때, 차원 게이트로 따라 들어온 란셀 주민들이 도와주었다. 만약 그때 란셀 주민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스탄달을 떠올리는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방 민족은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였으리라, 때문에 이사벨이나 동방 민족은 란셀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주재소를 란셀에 세운 것도 그런 이유. "뭐, 처음 왔을 때는 저도 정말 적응이 안 됐는데 자주 오다 보니 꽤나 정감 가는 마을이더군요, 게다가 발전 속도도 굉장하죠. 제가 처음 이곳에 파견됐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정도니까요, 아직 도시라고 부르기는 부족하지만 특산품이 많아 마을 수입도 상당할 겁니다. 란셀의 특산품은 스탄달에게도 좋은 수입원이고 말입니다." 358호는 마치 자기 마을을 자랑하듯이 말했다. 그가 말하는 특산품은 바로 너구리족이 만들어 내는 검과 방어구였다. 타고난 장인 종족인 너구리족이 만들어 내는 장비품은 이미 란셀 마을의 특산품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었다. 또한 란셀은 풍부한 자원을 가진 아구스 산맥에 자리 잡은마을, 후각이 예민한 묘족과 월랑족이 주변에서 구해오는 각종 마법 재료도 주요 특산품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란셀의 특산품은 30%가 스탄달에서 소비되었다. 물론 중간에서 아크상점이 끼여서 거래를 독점했음을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래저래 아크 녀석만 좋은 일을 시키는군." 샴바라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이곳 주변의 절반가량이 예전에 도적단이었답니다. 지금은 완전히 손을 씻고 너구리족이나 묘족에게 일을 배우고 있지만, 예전에 스탄달 전쟁에서 고아가 된 바란족 몇 명은 그들의 양자로 들어갔죠. 아, 그리고 이 마을에는 굉장히 예쁘게 생긴 자나라는 묘족 무녀가 있었는데요, 고양이 춤이라는 공연이 유명해져서 슈덴베르크 순회공연을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월랑족과 묘족은 사이가 별로 안 좋아서……" 그 뒤로도 358호는 란셀에 대한 얘기를 줄줄 늘어놓았다. "젠장, 이제 이 녀석의 수다도 짜증 나는군, 여기까지 오느라 벌써 며칠째 이사벨을 못 본 거야? 진즉에 영자 이동 마법탑을 세웠으면 좋았잖아." 샴바라는 358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마을 중심의 공사 현장을 바라보았다. 눈에 익은 형태를 갖춰 가는 그 건물은 바로 마법 학회에서 제작 중인 영자 이동 마법탑이었다. 스탄달의 주재소가 산기슭에 있어서 여러모로 불편함을 느낀 슈덴베르크 왕가에서 진행시킨 공사였다. 그러나 아직 완성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마차가 란셀 마을에 도착했다. 358호는 꽤나 친숙한지 경비병에게 손 인사를 하며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안에는 마차가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제 란셀은 스탄달의 주재소가 생겨 슈덴베르크에서 스탄달의 특산품을 가장 먼저 구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 수인족들이 만들어 내는 각종 특산품과 아크상점의 기획 상품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이제 레벨 100 전후의 유저들이 필수적으로 들렀다 갔다. 그들을 헤치며 주택가로 들어서자 '아크 종합상점'이라는 간판이 달린 건물이 나타났다. "흠, 이게 아크상점인가?" "네. 굉장하죠? 생긴지 1년도 안 돼서 주변에서 가장 유명한 상점이 됐으니까요. 너무 물건이 많이 오가서 임대 창고만 두 채를 쓰고 있답니다." "그런 설명은 이제 됐어." 358호는 그냥 스탄달 관광 사업부나 맡길 걸 그랬다. 샴바라가 쉬지 않고 나불대는 358호에게 쏘아붙였을 떄였다. 웬 돼지 같은 녀석이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손님?" "점장 어딨어?" 지긋지긋한 수다에 잔뜩 짜증이 나 있던 샴바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돼지가 움찔, 주춤주춤 물러나며 떠듬거렸다. "저, 점장님은 왜 찾으시는데요?" "내가 왜 너에게 그런 것까지 말해 줘야 돼는데?" "호, 혹시 뭔가 반품이라도 시키려고 오신 건가요?" "뭐? 반품?" "마, 맞군요! 헉. 제, 제발 참아 주세요! 분명 그때 그 검때문에 오신 건가요? 내가 손질하다가 실수해서 좀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아니면 기획 상품으로 팔았던 한약 세트? 부, 분명 그게 좀 오래돼서 변질의 위험성이……아, 아니, 그게 아니고…… 어쨋든 제발 반품만은 참아 주세요!" "뭐, 뭐야. 이놈은? 나는 점장에게 볼일이 있다고 했잖아!" "흑흑흑, 그러니까 제발 좀 참아 주세요. 실은 원래 그건 파는 물건이 아닌데 제가 실수로……. 그런 일을 점장님에게 들키면 제가 죽어요, 흑흑흑. 이렇게 빌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저는 가난해서 환불해 드릴 돈도 없어요." 돼지가 샴바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샴바라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머, 샴바라 오빠?" 문득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로코가 하프를 품에 안고 다가오고 있었다. 로코는 오늘도 씩씩하게 유령에게 하프를 배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로코가 알은척을 하자 돼지가 눈물을 쓱쓱 닦으며 물었다. "훌쩍, 점장님. 아시는 분이세요?" "응. 아크 오빠 친구야. 그러니까 들어가 봐." "쳇, 괜히 울었잖아." 돼지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상점으로 들어갔다. 샴바라는 멍청한 눈으로 돼지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체 뭐야. 저놈은?" "아, 오빠는 처음 봤죠? 저희 상점의 고객 상담 요원이에요." "고객 상담 요원?" "네, 가끔 물건을 사 놓고 이 핑계, 저 핑계 잡으면서 환불하려는 놈들이 있거든요. 저 녀석은 '울먹이'라고 우는게 특기인 녀석이에요. 저 녀석이 울면서 매달리면 어지간한 손님들도 반품 애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돌아가죠. 호호호호!" 그렇다. 이게 반품, 환불 0%. 고객 만족도 100%를 자랑하는 아크상점의 비밀이었다. 뭐랄까……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대체 아크 녀석은……. 샴바라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였다. 로코가 마차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아, 이게 해적 소굴에서 되찾은 장물이죠?" "애기 들었어?" "며칠 전에 오빠 집에 갔을 떄 들었어요, 그런데 샴바라 오빠가 올 줄은 몰랐네요." "뭐, 아무래도 물건의 규모가 규모니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말이야. 도중에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아크 녀석이 당장 쫓아와서 난리를 피울걸? 한동한 해적들 때문에 고생했는데 혹시라도 물건까지 배상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 이사벨이 힘들잖아." 샴바라의 말에 로코가 베시시 웃었다. 그러자 샴바라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호호호, 여전히 따끈따끈하네요. 이사벨, 이사벨, 오빠는 여전히 일편단심인 모양이네요?" 로코가 히죽거리며 옆구리를 찔러 대자 샴바라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복면 사이로 드러난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보니 역시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샴바라는 헛기침을 하며 잠시 난감한 기색을 보이다가 말을 돌렸다. "실은 내가 직접 온 건 너한테 볼일도 있어서야." "네? 저요? 뭐요? 연애 상담?" "장난하지 말고. 너 유니콘 키우지?" "키우는 건 아니지만…… 유니콘이 왜요?" "내가 이번에 새로 구한 단검이 있는데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아서 사용할 수가 없어. 봉인을 풀기 위해 몇 가지 마법 재료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유니콘의 갈기'야. 그런데 유니콘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그러하. 샴바라가 사랑하는 이사벨을 떠나 일부러 란셀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샴바라는 얼마 전에 2차 전직을 마치고 살린이 남긴 세 가지 보물도 모두 모았다. '어둠의 베일'과 '피의 갑옷' 그리고 마지막 '천인혈'이라는 단검이었다. 이 중 '천인혈'은 너무 강력한 사기를 품고 있어서 오래전에 살린이 봉인시켜 놓은 단검이었다. 그리고 그 봉인을 풀려면 특수한 마법 재료를 구해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니콘의 갈기'. 다른 마법 재료는 얼추 구했지만 '유니콘의 갈기'를 못 구하고 있던 샴바라는 정의남에게 로코가 유니콘을 키운다는 마을 듣고 달려온 것이다. 설명을 들은 로코가 놀라며 물었다. "'유니콘의 갈기 털'요? 설마 갈기 털을 몽땅 뜯어 달라는 거예요?" "아니, 아마 한 줌 정도면 될 거야." "뭐, 그 정도라면……" 로코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끄덕였다. 사실 요새 유니콘은 자신의 몸에 대해 꽤나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크에게 두 번이나 뿔이 잘려나간 경험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다시 반쯤 자랐지만, 그때의 기억은 유니콘 에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눈빛을 보내면 잽싸게 환계로 도망가곤 했다. '유니콘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아크 오빠 친구니까 내가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누가 뭐래도 나는 아크 오빠의 하나뿐인 여친이니까. 호호호!' "잠깐만 기다려요. 유니콘을 불러서 알아볼게요." 로코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을 떄였다. 샴바라가 마차에 쌓여 있는 장물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아크 녀석은 정말 질리지도 않는군, 흥. 말로는 정보 제공자에게 장물을 전부 넘겨준다고 했다지만, 분명 중간에서 사앙한 커미션을 받을걸. 그 녀석이 아무런 이득도 없이 남 좋은 일을 할 놈이 아니지. 망할 녀석, 하여간 돈독이 올라서……" 정답이다. 역시 샴바라다! 그러나 이 순간, 샴바라는 358호의 경고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란셀 마을에서는 아크의 험담을 하지 마라. 특히 아크의 상점의 점장 앞에서는 절대! 중얼거리던 샴바라가 자신을 바라보는 로코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왜? 유니콘을 안 불러?" 로코가 볼을 실룩실룩하며 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 "그래도 유니콘은 제 소환수라고요. 아무나 와서 달란다고 막 갈기를 뜯어 줄 수는 없잖아요. 나도 뭔가 대가가 있어야지." "대, 대가라니?" "음. 그러니까…… 음…… 아. 수레가 이렇게 가게 앞을 막고 있으면 장사를 할 수 없잖아요, 울먹이와 삽질이만으로는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샴바라 오빠도 짐을 창고로 옮기는일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하는김에 창고 정리도 좀 해 주시고요. 요즘 바빠서 통 창고 정리를 못 했거든요. '유니콘의 갈기'는 그거 하는 거 봐서 생각해 볼게요." "짐을 여기까지 운반해 온 것도 모자라 창고 정리까지 하라고?" "싫으면 관둬요, 나도 아쉬울 거 없으니까." 로코는 잔뜩 볼을 부풀리며 팩 고개를 돌렸다. 샴바라는 갑자기 쌀쌀맞게 변한 로코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차에 앉아 있던 358호는 대강 눈치를 챈듯 한숨을 불어 냈다. "인도자님…… 그 눈치로 용케도 이사벨 님을 꼬셨습니다……." 샴바라는 띠꺼운 눈으로 로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좀 전의 돼지도 그렇고, 어째 사람 부려 먹는 게 점점 아크를 닮아 가는 것 같다?" "어머, 고마워요." 로코가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욕이었는데……. 그렇게 샴바라가 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을 떄였다. 문득 건물 윗부분이 소란스러워지더니 묘족 몇 마리가 구름다리를 뛰어가며 소리쳤다. "젠장, 또 당했어!" "그 자식들,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쥐새끼들 같으니, 잡히기만 하면 갈기갈기 찢어서 삼켜버리겠어!" 그러자 로코가 깜짝 놀라, 달려가는 묘족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혹시 또……?" "엇, 로코, 아아, 그래. 이번에는 묘족 3마리가 나갔다가 당했어!" '묘족이 당해?'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한 샴바라가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돌아봤지만 358호가 고개를 저었다. 샴바라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로코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그게……" 로코가 잠시 주저하다가 털어놓았다. 사실 며칠 전부터 란셀 마을에서는 흉흉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공 ㅣㅆ었다. 순찰을 다니던 전직 도적―지금은 경비대원이다―이나, 마법 재료를 찾아 돌아다니는 월랑족이나 묘족이 살해되는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 그러나 며칠 사이에 빈도가더 많아지고 한 번에 네다섯 명까지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촌장 가렌은 일단 사건을 덮어 두었다. 어쩌다가 한 번 생긴 일일지도 모르고, 주민이나 유저들이 알게 되면 모처럼 활기를 찾은 마을이 혼란스러워질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경비대를 풀어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했다. 그러나 아직 살인범의 윤곽조차 잡아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도적은 아닌 것 같은데……." 로코가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해된 수인족이나 경비대원은 마을 주변에서 습격당했다. 도적NPC는 보통 그렇게 마을 근처까지는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유저라고 생각하기도 힘들었다. 보통 유저가 PK를 하는 이유는 하나, 금품을 갈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살해된 란셀 주민은 NPC. 주민 같은 노멀 NPC는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엄청나게 낮았다. 게다가 경비대원이라면 그나마 기본 장비는 입고 있지만 묘족은 그런 장비품이 아예 없었다. 또한 그런 NPC를 살해하면 유저를 죽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카오틱 수치가 상승한다. 즉, 유저가 NPC를 살해해 득 될 게 없다는 말이다. "내가 한번 알아볼까?" 잠시 생각하던 샴바라가 물었다. "네? 샴바라 오빠가요?" "짐을 옮기는 것보다는 그편이 낮겠지. 그게 전문이기도 하고." "아, 그렇지. 흉악한 암살자인 샴바라 오빠라면 흉악한암살자에 대해 잘 알겠네요!" "곡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냐? 어쨌든 이번 일은 내가 해결해 주지, 대신 알지?" "'유니콘의 갈기'말이죠? 알았어요. 란셀 마을 치안이 불안해지면 장사도 안 될 테니까." "좋아, 358호. 창고 정리는 네게 맡긴다!" "네? 네? 네?" 샴바라는 358호에게 일을 떠넘기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샴바라가 선뜻 일을 떠맡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는 창고에서 짐이나 나르는 것보다 차라리 미지의 적을 찾아 싸우는 게 훨씬 속 편하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대강 짐작 가는 데가 있기 때문이다. '후딱 찾고 얼른 스탄달로 돌아가야지' 샴바라는 전직하며 배운 스킬을 동원해서 마을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샴바라는 자주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수인족의 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수인족은 이름처럼 짐승의 능력을 가진 NPC. 땅굴이나 파는 너구리족은 그렇다 쳐도, 월랑족이나 묘족은 후각이 예민했다. 그런 수인족이 며칠이 지나도록 놈들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뭔가 흔적을 숨기는 스킬을 사용 했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놈들은 마을 근처에 숨어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 있다가 일부러 근처까지 와서 살해하고 도망가는 방법은 오히려 더 위험부담이 많아. 만약 그런 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다면 다른 주민들의 눈에 띄었을 거야. 게다가 경비대원이나 수인족이 동원되면 바로 숨는다는 건 마을을 감시할 수 있는 위치라는 뜻이야.' 마을을 감시할 수 있으면서 수인족의 예리한 후각이나 청각에 걸리지 않는 장소, 샴바라는 란셀에 오는 길에 이미 그런 장소를 본 적이 있었다. 쿠콰콰콰콰콰! 샴바라가 추리 끝에 도달한 장소는 란셀과 멀리 떨어지지않은 폭포였다. 수인족이 놈들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놈들이 물길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있는 곳 가운데 놈들이 숨을 만한 장소는 바위가 많은 폭포 근처. '후후후, 역시……!' 폭포 근처를 뒤져 보니 예상대로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놈들이 살해하는 NPC의 숫자는 고작 서너 명, 그렇다면 놈들의 숫자는 많아도 10명을 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으니 일단 내부 상황을 살펴봐야겠다.' 샴바라는 '은신'을 사용해 동굴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입구는 작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꽤 깊고 넓았다. 그렇게 10여 미터 들어갔을 무렵, 문득 안쪽에서 두런두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지금쯤 마을 안에서는 난리가 났겠군."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아." "음, 마을 안에 잠입한 녀석의 귓속말로는 경비대원이나 수인족이 죽어도 일단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래. 하지만 수인족과 경비대원이 움직였으니 한동안은 잠자코 분위기를 살피는 게 좋겠어." '유저? 도적NPC가 아니란 말이야?' 샴바라는 입구 근처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내부를 둘러 보았다. 꽤 넓은 공간에는 8명의 사내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간파'로 확인해 보니 머리 위에 빨갛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이름이 떠올랐다. 엄청난 카오틱을 쌓은 유저, 대화 내용을 들어 봐도 분명 란셀 주민을 살해하는 놈들이 틀림없었다. '대체 유저가 왜 란셀 주민을 살해하는 거지?' 그때 카오틱 하나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야, 그런데 우리 좀 한심하지 않냐?" "뭐가?" "죽기 위한 스킬을 배우기 위해 일부러 카오틱 수치를 올리는 거 말이야. 감방에 안 가고 이 정도 카오틱 수치를 풀려면 빨라도 두 달은 걸릴걸." "하긴 좀 뭐하지. 하지만 길드에서 받은 게 있는데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잖아." '죽기 위한 스킬? 길드?' 보통 '간파'를 사용하면 유저 이름과 가입된 길드명이 함께 뜬다. 그러나 눈앞의 카오틱들은 길드명이 뜨지 않았다. 살인을 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길드를 탈퇴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NPC를 살해하는 이유가 죽기 위한 스킬을 배우기 위해서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그런 생각을 할 떄 놈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불평할 필요 없어. 자살특공대가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자살특공대로 선발된 사람이 우리라도 어차피 이번 작전에 참가하는 모든 길드원들이 우리만큼 카오틱 수치를 쌓을거야. 좀 뭐하기는 하지만 이번 작전만 잘되면 길드에서 팍팍 밀어준다고 약속했잖아." '자살특공대? 가만…… 설마 이 녀석들……!' 샴바라는 자살특공대라는 말에 오래전에 겪어 봤던 괴상한 스킬을 떠올랐다. '자폭'. 문자 그대로 자폭해서 주위에 엄청난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자폭'은 원래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스킬이었다. '자폭'은 한계치까지 카오틱 수치를 쌓고 악마를 숭배하는 비밀결사의 NPC를 찾아가 배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군. 저놈들이 주민을 죽인 건 그 때문이야. 유저를 죽이는 것보다 NPC를 죽이는 편이 카오틱 수치를 몇 배나 빨리 올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폭'을 배우려는 거지? 게다가 길드라느니 이번 작전이라느니……' 그러나 카오틱들의 대화는 거기에서 끊어졌다. '어쨋든 계속 주민을 살해할 생각인 모양이니 이대로 놔둘 수는 없겠군.' 샴바라는 일단 동굴을 빠져나와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촌장 가렌을 만나 진상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던 수인족들이 당장 떄려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샴바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놈들을 죽여 봐야 24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 해서 같은 짓을 하리라. 그걸 막는 방법은 하나, 경비대원이 놈들을 죽이는 방법뿐이다. 란셀도 일단 작센 영지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때문에 란셀의 경비대원이 카오틱 유저를 죽이면 자동적으로 작센 영지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놈들은 NPC를 여러번 죽여 카오틱 수치가 엄청나게 쌓였으니 일단 들어가면 한달은 썩어야 하리라. 그리고 카오틱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갈테니 '자폭' 스킬도 익히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놈들의 은신처를 직접 치지는 않는 게 좋겠어.' 그 뒤로 샴바라는 '은신'을 사용해 폭포 동굴을 감시했다. 그리고 다음 날, 놈들이 다시 NPC 사냥을 나올 때 매복시켜 둔 경비대원을 이용해 공격했다. "지금이다, 놈들을 포위해서 섬멸하라!" "이 자식들, 동료의 원수를 갚겠다!" 경비대원들이 검을 휘둘러 대며 달려들었다. "헉! 겨, 경비대원이 어떻게……?" 카오틱들은 레벨이 250이상 되는 유저였다. 그러나 고작 8명이서 흥분한 30명의 경비대원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 샴바라가, 죽어도 복수를 하고 싶다는 묘족과 월랑족을 이끌고 배후를 공격했다. 물론 놈들을 한 달 넘게 감방에 쳐넣으려면 경비대원이 놈들을 죽여야 한다. "명심해, 죽이면 안 돼!" "크르르르, 노력해 보지!" "가라, 동족의 원수를 갚아라!" 샴바라의 명령에 수인족은 놈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만 두들긴 뒤에 경비대원들에게 던져 주었다. 그렇게 포위 공격하니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놈들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제 놈들은 작센 영지의 감방에서 죽어라 올린 카오틱이 풀릴 때까지 푹푹 썩으리라. 그러나 샴바라는 여전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일단 놈들은 처리했다. 하지만 놈들이 '자폭'을 배우려는 이유나, 길드라는 것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 내 기우라면 좋겠지만 놈들이 말한 작전이라는 게 만약 란셀 마을과 관련이 있다면……." 란셀은 이제 스탄달에게도 중요한 마을이다. 란셀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파가 스탄달까지 미치게 된다. '어차피 지금 출발해도 스탄달로 돌아갈 때까지 며칠이 걸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란셀의 영자 이동 마법탑이 완성된 뒤에 돌아가는 편이 나아. 그래. 그때까지라도 여기 남아서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뭔가 불길한 낌새를 느낀 샴바라는 일단 란셀에 남아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틈틈이 사냥을 하며 가끔 폭포 동굴을 찾아가 보았다. 샴바라가 놈들을 폭포 동굴에서 처리하지 않은 이유는, 그곳에서 놈들을 처리하면 다른 동료―샴바라의 예상대로 놈들의 목표가 란셀이라면―가 폭포 동굴로 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 샴바라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아니, 현실은 샴바라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멍청한 녀석들, 거사를 앞두고 감방 따위에 갇히다니! 혹시나 싶어서 자살특공대를 여러 지역에서 조작하기를 잘했군, 놈들이 갇혀서 숫자가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에는 충분한 숫자다." 폭포 동굴에는 무려 300여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란셀 마을 주변에서 NPC를 살해하던 놈들보다 높은 카오틱 수치. 대화 내용을 보며 이미 '자폭'을 익힌 게 틀림없었다. 그런 놈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말은, 놈들의 목표가 바로 란셀이라는 뜻! '게다가 저놈들은……!' 샴바라가 앞에 나와서 떠들어 대는 두 놈을 바라보았다. 샴바라는 '간파'를 사용하지 않고도 놈들의 이름과 길드―탈퇴 상태지만―를 알수 있었다. '쥬르…… 그렇다면 놈들의 배후는……." 헤르메스 연합! "이미 알고 있곘지만 우리는 무법항을 잃고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길드가 그런 상황이 된 것은 바로 아크라는 놈 때문이다. 란셀 마을은 놈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 란셀 마을을 섬멸해서 놈에게 헤르메스 연합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 줘야 한다. 최우선 목표는 아크상점 그리고 스탄달과 완공을 앞두고 있는 영자 이동 마법탑이다." 쥬르가 열변을 토하며 연합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우리의 임무는 란셀이 끝이 아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스탄달의 탈환. 앞으로 우리는 헤르메스 연합이 숨겨진 세력으로 활동하며 스탄달을 탈환할 떄까지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투쟁한다. 그러기 위해 헤르메스 연합이 막대한 자금과 시간을 들여 지금까지 우리를 지원한 것이고, 또 스탄달을 탈환했을 떄의 보상을 약속한 것이다!" "우오오오오!" 연합원들이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지금 듀크가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도착 예정 시간까지는 사흘 남짓. 지원 병력이 도착하는 대로 란셀 섬멸 작전을 개시한다." 샴바라는 예상보다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아크 녀석, 헤르메스 놈들에게 란셀 마을에 대한 걸 들킨 건가? 아, 그렇군. 그때 열렸던 차원 게이트……. 어쨌든 헤르메스 놈들이 작정하고 란셀 마을을 노린다면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놈들의 최종 목표는 스탄달! 하지만 지금 란셀 병력으로는 놈들을 막을 수 없어. 당장 병력을 끌어올 데도 없고 일단 아크에게 연락해서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겠어.' 샴바라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일단 샴바라는 '은신'상태를 유지하며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이 소식은 곧바로 로코를 통해 아크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이틀 뒤……. "헤르메스 연합 자식들!" 파라돈에서 국경 지역으로, 거기에서 다시 기란으로 영자 이동을 하며 날아온 아크가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란셀 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크와 함께 란셀 마을로 들어서는 두 남녀는 브리스타니아 최강 콤비, 브레드와 레디안이었다. 란셀 마을을 둘러싸고 헤르메스 연합과의 3차 대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By 샤이니 씀 아크 18권 act 1,2,3 by 꾸윳 act1.왕의귀환 "휴우."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한숨으로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주민들의 표정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란셀의 임시 촌장인 가렌을 필두로, 묘족, 월랑족, 너구리족의 대표와 삼청교육대를 졸업한 전직 도적의 대표들이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숨을 주고받는 이유는 바로 얼마 전 샴바라가 입수한 정보 때문이었다. 정체불명의 도적 떼가 란셀 약탈을 획책하고 있다! 현재 파악된 도적 떼의 인원만 300여 명, 거기에 수백명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충격적인 정보를 전해 들은 가렌은 곧바로 각 종족의 대표를 소집시켰다. 그리고 대책 마련을 위해 수없이 회의를 반복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렇다 할 해답을 내놓지 못했고 이틀이 지난 지금은 제풀에 지쳐 한숨만 불어 내고 있엇다,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 .이제야 겨우 이주민들이 늘어나 마을이 안정되기 시작했늗네.,. 놈들에게 습격당한다면 란셀은 또다시 예전처럼,, 아아, 왜 항항상 란셀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거지..." 가렌이 괴로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보다 못한 샴바라가 답답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평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나? 이러고 잇을 때가 아니지 않소. 말했듯이 남은 시간이 얼마 없소." "알고 있네. 알고 있지만..." 가렌이 초췌한 안색으로 또다시 한숨을 불어 냈다. "정말 답답하군! 대체 문제가 뭐란 말인가?"그때 한쪽에서 누군가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은빛 갈기를 휘날리는 거구의 늑대는 월랑족 장로였다. "애체오 이런 회의 따위가 무슨 소용이오?적이 쳐들어온 다는 것을 알고 있소. 게다가 놈들은 이미 동족을 몇 명이나 살해한 놈들과 한패! 그렇다면 답은 처음부터 하나뿐이지 않소? 맞서 싸우는 것! 피로써 놈들에게 복수하는 것뿐이오!" "그렇습니다!" "놈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나가서 본때를 보여 줘야 합니다!" 월랑족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이제 뱀파이어 영지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월랑족이 아니었다. 뱀파이어 영지에서 나와 란셀로 오기까지, 대륙을 여행하며 잃어버렸던 야성의 본능을 깨운 것이다. 덕분에 월랑족은 진정한 전사 부족 월랑족으로 돌아와 있었다. 월랑족이 야수성을 드러내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가렌이 난ㄴ감한 표정으로 떠듬거릴 때였다, "흥, 멍ㅁ어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군." 반대쪽에서 빵빵한 몸을의자에 싣고 손톱을 갈아 대던 묘족 장로 핫산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잔뜩 흥분해서 멍멍대던 월랑족의 시선이 일제히 핫산에게 집중되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털난 풍선?" "못 알아들엇나, 개다가리? 하긴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개대가리라는 말을 듣지." "뭐라고? 개대가리?" "대체 지금까지 뭘 들엇나? 적은 최소한 300. 게다가 모두가 상당한 실력을 갖춘 이방인이라고 말하지 않앗나? 그런 상대 에게 대책도 없이 들이대겟다니, 똥인지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짖어 대고 보는 개다운 반응이기는 하지만." "감히 들고양이 따위가... 한번 해보자는 건가?" "한번 해보자고? 나쁘지 않지." 핫산이 손질을 끝낸 손톱을 훅 불며 씨익 웃었다. 핫산의 도발에 회의실에 모인 월랑족과 묘족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두 종족 장로의 눈치를 살피던 너구리족 대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현재 란셀의 힘으로는 적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주민들을 모두 대패시키고 놈들이 지나가긱를 기다리는 게 어떻습니까? 마을이 습격당하면 작센 영지의 정규병도 움직여 줄 테니 놈들도 란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주민들만 지키면 마을은 얼마든지 재건할 수 있습니다." "뭐라?" 순간 두 장로가 동시에 고개를 팩 돌리며 소리쳤다. "적이 두려워 도망간다니? 월랑족에게 그따위 불명예스러운 짓을 하란 말인가?" "흥, 과연 땅굴이나 파 대는 너구리족다운 발상이군! 개와 다를 바가 없어!" 이럴 때는 또 죽이 척척 맞는다. 핫산과 월랑족 장로가 쏘아붙이자 너구리족 대표도 불쾌한 표정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땅굴이나 파 대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당신들이 살고 있는 집이나 구름다리를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바로 우립니다! 이마을은 울타리에 박혀 잇는 못 하나까지 우리가 만든 거란 말입니다! 누군 좋아서 피난 가자고 하는 줄아십니까?" "젠장, 도 시작이군." 샴바라는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호의가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란셀 마을에서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란셀 마을에서 병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뉘었다,. 전직 도적들과 묘족, 월랑족, 너구리족,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한 종족이 바로 천성적인 전사 부족 출신인 묘족과 월랑족이었다, 그런데 이 두 부족은 문자 그대로 개와 고양이처럼 사이가 좋지 않았다, 평소에는 주거지역이 나뉘어져 있고, 가렌의 중재로 그럭저럭 큰 충돌 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막상 이런 문제가 생기자 사사건건 시비가 붙었다, 방금 전처럼 월랑족 장로가 의견을 내놓으면 핫산이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리고, 핫산이 의견을 내놓으면 월랑족 장로가 무시한다. 거기에 간혹 이렇게 너구리족 대표까지 끼어 들어서 감정사움을 벌여 대니 대첵 회의가 제대로 진행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임시라고는 해도 촌장이 이 모양이니."샴바라가 혀를 차며 가렌을 바라보았다, 가렌은 틀림없이 좋은 촌장이었다. 작은 마을에 묘족과 월랑족. 너구리족, 심지어 전직 도적과 바란족까지 받아들여 큰 문제 없이 운영해 온 것은 모두 가렌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이도 가렌에게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재능은 없었다, 아니, 야전사령관으로서의 재능은 커녕 수인족들이 이렇게 다투기 시작하면 기가 눌려 입도 뻥긋하지 못 했다, 그리고 야전사령관의 재능이 없기는 샴바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말 미치겠군. 동방 민족과 달리 성향이 다른 주민을 모아 놓으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거 아냐? 그렇다고 이놈들을 몽땅 두들겨 패 말을 듣게 할 수도 없고 ..." 샴바라는 순식간에 시장판처럼 변해 버린 회의실을 둘러 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전투라면 상대가 누구라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샴바라다. 그러나 자신이 주도해서 회의를 이끌거나, 병력을 지휘하는 것은 샴바라의 성격과는 맞지 않앗다. 굳이 스탄달의 자치대를 정의남에게 맡기고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엇다, 또 한 그런 깜냥(?해석불가)이 된다고 해도 이곳은 스탄달이 아니다, 란셀의 npc에게 샴바라의 말이 먹혀들 리가 없었다, "생각할 것도 없어. 놈들의 은신처를 찾아가 박살 내면 그만이야!" "멍청한 개 대가리! 놈들에게는 지원군이 있다고 했잖아!" "역시 일단 피난해서 화를 피해야 합니다!" "촌장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아옹다옹하던 수인족들의 시선이 가렌에게 집중되었다. "나, 나는..." 가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듬거리고 있을 때였다. "모두 기각!" 돌연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주민들의 시선이 문 앞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쳤다, "아크!" "아크, 와 줬군. 고맙네. 고마워." 가렌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사람처럼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렌만이 아니었다. 전직 도적과 수인족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아크에게 몰려들었다. "아크 형님!" "오오오, 마반 영웅의 후예!" 아크는거친 숨을 몰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헉헉헉, 다행히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충분히 늦었어, 멍청아." 그때 옆에서 샴바라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락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어슬렁어슬렁 기어온 거야?" "어슬렁? 내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우욱!" 아크가 와락 인상을 쓰며 쏘아붙이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역질을 해 댔다. ........고작 이틀 만에 대륙을 횡단한 부작용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으크가 로코를 통해 란ㄴ셀의 일을 전해 들은 곳은 파라돈의 주점에서 술을 퍼마시고 있을 때였다.그리고 파라돈은 브리스타니아의 북부에 자리 잡은 도시, 슈덴베르크의 남부에 자리한 란셀ㄹ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도시였다. 물론 영자 이동이 활성화되어 도시 간의 이동이 편해졌다지만, 차세대 이동 수단도 만능은 아니었다. 한 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제약이 있는 것이다. 또한 마법탑이 세워진 도시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영자 이동이 제한된 장소도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기란에 도착하기 까지 여덟 번이나 영자 이동을 해야 했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다시 라둔마를 타고 달려왔다. 쉬지 않고 청룡열차와 승마를 번갈아 탄 것과 맞먹는 수준의 강행군! 덕분에 아크는 아침에 먹은 라면 면발이 한 올, 한올 살아나 목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바이트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꿀걱, 아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면발을 되삼켜 버렸다. "......삼킨 거냐? 넘어오는 걸?" 샴바라가 더러워서 못 봐 주겠다는 듯한 눈빛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아크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천천히 장내를 가로질렀다, 란셀이 위기에 처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아크! 가렌은 물론, 전직 도적과 방금 전까지 아옹다옹하던 수인족들도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아크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했다, 과거에 그랬듯이 아크가 또다시 자신들이 갈 길을 정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아크가 잔뜩 무게를 잡고 회의석상에서 첫 공식 발언을 하려 할 때였다. "우핫!" 갑자기 문 앞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주민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단숨에 바위라도 쪼갤 듯한 거대한 대검을 둘러맨 근육질의 사내! 그러나 주민들이 움찔한 것은 그의 육체미 때문이 아니었다, 사내는 수인족들을 둘러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개,개와 너구리, 고양이가 모여서 회의를 한다.....서,성지다! 이곳은 성지야!" "뭐,뭐야,저 인간은?"엉뚱한 사내의 출현에 수인족들이 웅성거렸다, "꺄아아악!" 그때 사내의 등 뒤에서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이 울리며 한 여자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그야말로 앗, 하는 사이에 핫산의 두툼한 뱃살에 푹 박혀 버렸다. "웃,뭐, 뭐냐? 습격?" 핫산이 당혹성을 터뜨리며 물러나다가 벌러덩 넘어졌다. "으헉! 허헉, 무,무슨 짓을...! 그, 그만! 가, 간지럽다!" "이, 이건 거짓말이야! 이렇게 푹신푹신, 귀여운 생물이 잇을 리가 없어! 그래,이건 솜이다!솜이지? 인형이 아니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지퍼가, 틀림없이 여기 어딘가에 지퍼가 숨겨져 있을 거야!"여자는 바둥거리는 핫산을 굴려 대며 소리쳤다. 갑자기 나타난 둘을 주민들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샴바라 역시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아크에게 물었다. "뭐야, 저녀석들은?" "일단 도우미로 불러오기는 햇는데...." "도우미?" "설명하자면 길어." 모처럼 분위기를 잡으려던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와 함게 나타난 두 남녀는 바로 브레드와 레디안 이었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란셀에 오게 된 이유는 아크의 작전이 먹혔기 때문이다. 둘과 함께 술을 마시던 아크가 로코의 연락을 받고 란셀로 출발 하려고 했을 때였다, '가만?로코가 나에게 연락할 정도면 상황이 꽤나 심각하다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당연히 조금이라도 전력이 될 만한 사람이 많으면 좋다.그리고 브레드와 레디안은 브리스타니아 최강 페어로 알려진 실력자! 둘을 끌어들이면 틀림없이 도움이 되리라. 물론 오해가 풀리고 둘과 편해졌지만 둘이 대륙을 횡단하면ㄴ서까지 아크를 도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 둘에게는 약점이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일단 밑밥을 던져 보았다. "젠장, 미안하?지만 난 바로 가 봐야겠다." "뭐야? 왜?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 "내가 아는 마을에 좀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마을? 심각하다니?뭐가?" "나도 아직 잘은 몰라, 어쨌든 어떤 놈들이 마을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 같아." "마을을 공격해? 하, 한 2년쯤 되니 별놈들이 다 생기는군. 그런데 마을 일에 왜 네가 가야 한다는 거야?" "그 마을은 나에게 특별한 곳이거든. 백구에게 얘기 들었다고 했지? 내가 월랑족을 구출해서 새로운 마을에 이주시켰다고. 지금 습격받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마을이 바로 그곳이야. 만약 그 마을이 습격을 받아 월랑족이 멸족이라도 당한다면 내 책임이야." 브레드가 밑밥을 덥석 물었다. "개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을 유저가 습격한다고!" 브레드는 개라면 환장하는 개 마니아! 단지 개-사실은 늑대지만- 라는 이유만으로 백구를 도적단과 싸워 구출해 내고 주머니를 털어 술과 고기를 대접하는 사이코인 것이다.그런 브레드가 개가 모여 사는 마을이 위험하다는 말을 그냥 흘려들을 리가 없었다. 아크는 밑밥을 덥석 문 브레드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놈들은 틀림없ㅇ 동물을 학대하며 즐기는 놈들일 거야." "이런 망할...! 어디야? 당장 안내해!" 예상대로 브레드가 술잔을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잠깐 기다려, 이 멍청아!" 그때 레디안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거기가 어딘데 무작정 가겠다는 거야?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할 일이 있잖아, 이제 아크와의 일도 결판이 났고, 우리가 공략하던 던전도 봉인도 풀렸을 테니 그곳으로 돌아가서 던전이나 마저 깨자고 한 사람은 너 아니었어?" "하지만 개잖아. 개라고. 개가 떼거리졸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잖아!" "몰라, 만약 따라가면 방금 전에 했던 얘기는 없던 걸로 하겠어!" 레디안이 잔뜩 인상을 쓰며 팩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브레드는 사색이 되어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대레디안용의 밑밥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월랑족만이 아니야. 이대로라면 묘족도 얼마나 희생될지....""묘족?""고양이족이야. 란셀 마을에는 묘족도 많이 살고 있거든." 브레드가 개에 약한 것처럼 그녀는 고양이라면 뻑이 갔다. 파라돈으로 오면서도 틈만 나면 브레드와 '개와 고양이 중에 누가 더 예쁜가?'를 놓고 설전을 벌일 정도였다.역시나 고양이라는 말이 나오자 레디안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아크는 짐짓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아, 월랑족과 묘족이 처참하게 살해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디안이 닭다리를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크 와 브레드에게 성질을 부렸다. "뭐해? 급하다며?"그렇게 아크는 품질 보증서까지 붙어 있는 브리스타니아 최강 페어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뭐, 거기까지는 좋은데 역시나 둘은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월랑족과 묘족을 보고 뻑이 가 버렸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월랑족과 묘족에게 달라붙어 버리자 회의고 뭐고 진행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어이, 누가 저 녀석들 마을 구경이나 좀 시켜 줘라." 아크는 월랑족과 묘족 안내원을 붙여 일단 둘을회의실 밖으로 몰아냈다. "흠흠, 그럼 다시 회의를 시작해 보죠." 아크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환기시켰다. 멍청한 눈길로 둘이 사라진 문을 바라보던 주민들이 그제 야 다시 시선을 집중했다. "저 둘이야 어쨌든...자네가 와 주어서 다행이네. 먼저 현재 마을 상황은..." "됐습니다. 상황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들었습니다."아크는 손을 들어 가렌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짐짓 살벌한 눈빛으로 주민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뭐,뭐라니? 그야 당연히 대책 회의를..." "대첵 회의?" 아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내가 알기로 샴바라가 정보를 가져온 게 엿새 -게임 시간으로-전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3일.그런데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단 말입니까?" "그건 저 망할 고양이들 때문이네!내가 의견을 말할 때마다 사사건건,,," 월랑족 장로가 벌떡 일어나 핫산을 가리켰다. 그러자 핫산이 수염을 바짝 세우며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여 대니까 그렇지!" "헛소리? 헛소리는 네놈과 저 너구리가 하지 않았나?" "아니,또 왜 저를 걸고넘어지는 겁니까?" 너구리족 대표까지 끼어들자 회의실은 또다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장로들이 말싸움을 벌이자 수인족들도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틀 동안 계속 반복돼 왔던 상황. 가렌은 이제 말릴 기력도 없는 듯 한숨만 푹푹 불어 냈다. "그만!" 그때 마치 폭탄과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아크의 입에서 폭발한 고함은 폭풍을 일으키며 회의실을 휩쓸었다. 목소리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나 당장 주먹다짐이라도 할 것처럼 흥분했던 수인족들이 화들짝 놀라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상급 '협박'에 보조 효과 '카리스마'가 믹스되어 아크의 목소리에 좌중을 압도하는 박력과 경륜을 실어 준것이다. 사실 평소라면 아무리 답답해도 란셀 주민에게 '협박'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협박'을 사용하면 대화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지마느 실패할 경우 친밀도가 50%나 깎여 나간다.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란셀 주민과의 친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상당한 손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협박'을 사용한 것은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우려하던일이 터졌어' 사실 아크는 내내 마음이에 걸리던 일이 있었다. 스탄달이 떠오르기 직전,'차원게이트'로 란셀과 하만 요새를 연결했던 일 때문이다. 당시 스탄달로 들어와 아크를 도운 것은 대부분이 란셀 주민들이었지만, 엉겹결에 따라 들어온 유저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계시판에 경험담을 올려놓았다. 당연히 헤르메스 연합 역시 그 게시물로 란셀 마을의 존재를 알게 됐으리라. '한 번이라도 란셀 마을에 와 봤다면 이곳이 내 홈그라운드라는 걸 알수 있었겠지. 놈들이 뭔가 액션을 취해 올 거라는건 짐작하고 있었어.' 그러나 설마 이번처럼 npc 마을을 대놓고 습격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물론 헤르메스 연합은 npc도시인 스탄달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다. 새삼 npc마을을 노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란셀은 스탄달과는 달랐다. 대륙과 떨어진 스탄달은 일단 점령만 하면 나크족을 내세워 새로운 세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란셀은 슈덴베르크의 영역. 약탄은 할 수 있어도 점령할 수는 없는 마을이다. '란셀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마을에 비하면 병력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면 놈들의 목표는 역시 나다. 삼바라도 놈들이 아크 상점과 마법탑을 1차 공격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햇으니 목적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문제는 왜 하필이면 지금이냐는 점이었다. 현재 헤르메스 연합은 무법항의 괴멸로 상당한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물론 그간 해 온 짓을 생각하면 그대로 물러날 놈들이 아니다. 그러나 보복을 한다면 그 상대는 란셀이 아닌 스탄달이 돼야 한다. 때문에 아크도 정의남을 통해 스탄달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 온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놈들이 란셀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대체 왜 무법항이 박살 난 직후에 갑자기 란셀을...?' 이건 그야말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와서 화풀이하는 격이지 않은가? 게다가 큰 손실은 입은 직후에 수백 명의 길드원을 탈퇴까지 시키면서 란셀을 공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크는 곧 그 이유를 알아냈다. '스탄달에서 운반된 장물!' 스탄달에서 노획한 장물의 20%가 아크 상점으로 운반됐다는 정보가 샌 게 틀림없다. 물론 무법항의 괴멸로 헤르메스 연합이 상당한 손실을 입었지만 그건 무법항의 설비 투자비용, 압수당한 장물과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장물이 쌓여 있던 창고는 무법항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다른 해적들에게 임대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장물은 모두 다른 해적의 것, 게다가 창고를 임대해 줬을 뿐이니 압수당한 물건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었다. '일단 압수당한 장물을 회수하면 그건 고스란히 헤르메스 연합의 재산이 된다! 만약 장물을 100%회수할 수 있다면 무법항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거야.'라이덴은 거기에 생각이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물을 되찾고 싶다고 스탄달을 공격할 수는 없는 상황. 그때 10.000골드 상당의 장물이 란셀로 운반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갖은 위험부담을 안고라도 란셀을 공격할 만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만약 놈들이 정말 란셀 공격에 성공한다면... 아크 상점 창고에 보관된 각종 상품과 10.000골드 상당의 장물을 놈들에게 약탈당하고 만다! 위협은 그뿐이 아니다. 아크는 란셀의 부동산에도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100% 이윤이 생길 거라고 확신했기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아크는 상점에서 이윤이 생길 때마다 필요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몽땅 마을에 투자해 왔다. 덕분에 현재는 4%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아크의 투자 전략이 주효해 -.1%에 200골드 하던 지분이 그사이에 성장을 거듭해 250골드대까지 올라갔다. 서너 달 사이에 무려 25%나 올라간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아크의 부동산 보유액은 무려 10,000골드! '물론 놈들이 란셀을 지배하지 못하는 한 부동산을 빼앗을 방법은 없어. 하지만 놈들에게 빼앗기는 것만의 손실은 아니야. 만약 이번에 마을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면...' 부동산 시세는 단숨에 바닥까지 몰락! 천묵학적인 손실! 란셀이 약탈당하는 순간 아크는 그야말로 개털이 돼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 상점의 성장과 부동산 시세 폭등. 무법항의 장물 커미션 등등. ㅇ칫따른 호재에 게임 재벌의 꿈을 무럭무럭 키워 가던 아크에게 란셀의 위기는 그야말로 생사의 문제나 다름없었다. 아니, 실제로 수만 골드라면 사람 목숨을 좌우할 수 잇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수인족들끼리 감정쌍무이나 하고 있다니! npc와의 친밀도 따위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지켜야 해!' "정말 한심해서 못 봐 주겠군!" 아크가 수인족들을 노려보며 거칠게 소리쳤다. 현재 아크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상황.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폭발시킨 '협박'의 위력은 엄청났다. 마치 회의실에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폭풍이 일어나자 수인족들은 꼬리를 말아 감고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이게 어디를 봐서 대책 회의라는 겁니까? 무조건 싸우자는 월랑족이나, 덮어 놓고 반대만 하는 묘족의 말은 거론할 가치도 없고, 일단 피신 해서 위기를 모면하자는 너구리족의 의견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협박'한 방으로 단숨에 회의실을 장악한 아크가 수인족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하지만..." "물론 너구리족의 의견도 일리는 있습니다." 아크는 반론을 재기하려는 가렌을 제지하며 말했다. 샴바라가 동굴에서 확인한 쥬르일당. 놈들은 모두가 헤르메스 연합에서 중상위권에 속하는 유저들이다. 레벨 250~300의 유저들이 무려 300명! 물론 란셀도 산골 마을치고는 전투 병력이 적지 않았다.300명의 전직 도적과 월랑족, 묘족, 너구리족을 합하면 500가까이 된다. 그러나 전직 도적은 삼청교육대를 졸업하고 장인으로 전직한 사람이 많았다. 실제 전투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경비대원으로 전직한 100여 명. 그조차 레벨은 200대 초반밖에 되지 않았고 장인으로 전직한 도적들은 전투 관련 능력의 성장이 150대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지만레벨이 달리는 것은 묘족과 너구리족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월랑족만이 레벨 300이엇다. '결국 전투에 동원할 수 잇는 숫자는 300가량. 현재 쥬르 일당과 란셀의 병력을 비교하면 전력은 거의 대등하다!' 문제는 바로 곧 합류한다는 듀크 일당이었다. '놈들은 이미 란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을 세운거야. 게다가 놈들이 길드를 탈퇴한 상태라고 하지만 헤르메스 연합으로서는 적지 않은 위험부담을 안고 결행한 작전이다. 100%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전력을 구성하는 게 당연해. 당연히 지원군의 숫자는 수십 명 단위가 아니라 수백 명 단위. 결국 놈들은 전력은 대략 500~600!' 레벨이 달리면 숫자라도 많든가. 숫자가 적으면 레벨이라도 높든가 해야 싸움이 된다. 그러나 레벨도 달리고 숫자도 달린다. 이대로 붙으면 100전 100패! 너구리족이 일단 피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그 때문이었다. 어차피 승산이 없다면 일단 위기를 모면하고 작센 영지에 도움을 요청하자는 것이다. 장인 종족답게 수인족 중에서는 그나마 생각을 하고 의견ㅇ르 낸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샴바라가 정보를 가져왔을 때 이미 가렌이 작센이 서신을 보냈지만, 여지 관할도 아닌 자유 마을 란셀에서 '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라는 서신을 한장 보냈다고 정규병이 움직일 리가 없었다. 물론 영주와의 친밀도가 120%인 아크가 직접 영주를 찾아가 설득하면 움지경 줄지도 모르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시간이 없었다. 어쨌든 습격을 받은 뒤라면 작센의 정규병도 움직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규병이 움직이면 쥬르 일당도 란셀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크가 너구리족 대표의 생각을 대략 풀어서 설명하자 가렌이 한숨을 불어 내며 끄덕였다. "아무래도 란셀을 지킬 수 있는 밥법은 그것뿐인 것 같네." "....정말그런 식으로 마을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아크가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작센 영지의 정규병이 언제까지나 란셀을 지켜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언젠가는 작센 영지로 돌아가야겠죠. 하지만 마을을 약탈해서 단맛을 본 놈들은 결코 란셀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전례가 있으니 놈들만이 아니라 다른 도적단도 호시탐탐 란셀을 노리겠죠.과연 그런 마을에 이전처럼 다시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까?" 일단 란셀이 놈들에게 점령당하면 다시 되찾는다고 해도 아크는 끝장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하류, 그 전에 아크 상점의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크 상점의 재산을 빼돌린다고 해도 부동산을 빼돌릴 수는 없다. 마을이 점령당하면 그동안 투자했던 부동산이 폭락해 10,000골드 상당의 골드가 날아가리라. 그렇다. 아크에게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일치단결해서 놈들과 맞서 싸우는 일뿐입니다!" "...!" 아크의 말에 회의실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아크의 눈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박력 때문이었다. 당연하다. 수만 골드가 걸린 전투! 아니,목숨이 걸린 전투인 것이다! "...우,우리데게 승산이 있겠는가?" 아크의 박력에 눌려 얼어붙어 있던 가렌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가렌의 질문에 전직 도적과 수인족들도 긴장된 표정으로 아크에게 시선을 모았다. 아크는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주민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아크가 이내 씨익 우승며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그거야! 그 대답을 기다렷네!" 그러자 갑자기 월랑족 장로가 탁자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핫산 역시 배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들이켜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우호호호훗. 그래야 마반 영웅의 후예지!" "아크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희도 반론은 없습니다!"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너구리족과 전직 도적도 주먹을 꽉 움켜쥐며 말했다. 그렇다.이들이 지난 이틀 동안 수없이 대책 회의를 하면서도 아옹다옹했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ㅡ러나 친밀도, 신뢰도가 120%인 아크가 나타나 '싸우자,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하자 란셀 주민의 분분한 의견은 단숨에 한 점으로 집중되었다. 가렌은 그것만으로도 한결 부담을 덜어 낸 표정으로 다가와 아크의 손을 잡았다. "역시 믿을 건 자네밖에 없네. 모든 것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부디 란셀을 지켜 주게." 동시에 두두둥,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서브 퀘스트:란셀 마을 방어전 당신의 노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는 란셀 마을. 그러나 상당한 숫자의 무법자들이 란셀 마을을 습격하려 한다는 정보르가 입수됐습니다. 만약 란셀 마을이 무법자들에게 점령당한다면 그 피해는 예츠갛기 힘듭니다.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게 될 것이고, 평판이 하락한 마을을 찾아오는 살마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를 막을 밥ㅇ법은 무법자들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임시 촌장 가렌은 란셀의 주민들에게 신뢰받는 당신에게 마을 방어전의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가렌을 대신해 마을의 피해를 최소화하여 이번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서브 퀘스트에 실패하면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퀘스트도 실패로 간주합니다). <<난이도:???>> <<추가 사항:마을이 30%이상 파괴되거나, 주민의 30%가 사망하면 퀘스트가 실패합니다.>> '이런 젠장'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인상이 와라가 구겨졌다. 사실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퀘스트는 얼마 전 월랑족이 란셀에 도착하면서 완료되었다. 퀘스트를 받고 1년 반 만에 끝난 것이다, 그러나 보상을 받기 위해 일부러 브리스타니아에서 돌아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보고를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란셀을 지키지 못하면 1년 반이나 걸린 퀘스트까지 말짱 황... '하긴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 란셀 마을이 박살 나는데 이주민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어차피 퀘스트가 아니라도 란셀이 점령당하면 아크는 끝장이다. '그래, 차라리 잘됏어, 총알을 맞고 죽나, 미사일을 맞고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지. 어차피 물러날 곳은 없어!' "걱정 마십시오, 저 역시 란셀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겁니다!" 아크는 가렌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크가 돌아왔다. 드디어 란셀의 진정한 지도자가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act2.범죄파일 "알겠습니다. 바로 파악해서 보고하겠습니다." 란셀의 경비대장이 경례를 붙이고 뛰어나갔다. 사령관이 된 아크는 일단 란셀 병력을 파악하고 편성하는 일에 전념햇다. 새삼스럽지만 노멀npc의 레벨은 유저가 파악할 수 없었다. 월랑족이 레벨 300정도 된다느니 하는 것은 아크가 그들과 함께 움질일 때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보여 준 능력을 유저의 레벨로 대략 환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그런 주먹구구식은 곤란하다. 그 뒤로 수인족이나 전직 도적들도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배웟으리라. 그리고 지피지기, 적은 말할 것도 없고, 아군의 전력도 확실하게 파악해 놔야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때문에 먼저 아군의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물론 npc들은 레벨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정확한 수치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속한 무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면 대강의 레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자세한 작전은 아군의 숫자와 능력을 파악한 뒤에 세워야 하고...' 아크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너구리족의 공방이었다. "아크 님. 오셧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공방에 들어서자 공방을 맡고 있는 너구리족이 다가왔다. "혹시 제가 이전에 부탁했던 물건을 이번에 사용할 있을 까요? 아크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헤르메스 연합이 항상 아크를 염두에 두고 있었듯이, 아크 역시 항상 헤르메스 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엇따. 꼭 이번 같은 일이 아니라도 헤르메스 연합이 시르바나를 차지하고 잇는 한 언젠가는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크는 예전부터 조금씩 사재를 털어 너구리족과 비밀리에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공개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하지만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만약 '그걸'사용할 수 있다면 전투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그러나 공방장은 고개를 저었다. "거의 마무리 단계이기는 하지만 아직 완성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군요, 안 된다면 할 수 없지만 일단 최대한 서둘러 주십시오." "담당자들이 총동원되서 밤샘 작업하고 잇습니다." "그리고 부탁드릴 일이 또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장 너구리족의 인원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습니까?" "아크 님이 부탁했던 프로젝트를 제외한 모든 작업은 현재 중단된 상태입니다. 필요하면 모두 동원할 수 있습니다." "글머 지금부터 제 지시에 따라 작업 준비를 해 주십시오." 아크는 란셀의 지도를 펼쳐 놓고 공방에게 설명했다. 중점 내용은 역시 주요 건물에 대한 방어 대비책이었다. 파악된 정보로는 쥬르 일당의 최우선 목표는 주민 학살이 아니라, 마법탑이나 마을 회관, 아크 상점 같은 주요 건물의 파괴와 약탈이다. 그리고 수백 명이 얽혀 난전이 시작되면 놈들을 100% 막을 수 없었다. 대문에 아크에게는 그에 대한 대비책이 최우선 과제였다. "목재에 강철판을 덧대는 방식으로 조립형 성벽을 만들어 주요 건물 주변에 장벽을 만드는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음, 좋은 생각입니다. 공방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면 건물 하나 분량의 방벽을 만드는데 2~3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설계만 확실하면 실제 조립 시간은 거의 필요없죠." "그럼 바로 시작해 주십시오. 먼저 놈들의 최우선 목표가될 아크 상점과 창고, 마법탑, 마을 회관을 우선해서 작업해 주십시오. 작업이 끝나면 저를 찾아오십시오. 가능하면 마을 외곽의 요소요소에도 장벽을 세워 둬야 합니다." 아크가 지도를 짚어 가며 설명했다. 물론 아무리 방벽을 세워도 마을이 합락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미리 주요 건물 주변에 방벽을 세워 두면 개릴라 공격은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당연히 이렇게 전쟁 준비에 사용되는 돈은 마을 공금에서 지급된다. 가렌이 아크를 임시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마을 공금을 군자금으로 사용할 권한까지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령관이라도 함부로 착복할 수 없더록 아크가 지불할 때는 란셀 명의로 된 어음으로 결제해야 했다. 결제를 마치고 공방으로 나오던 아크가 문득 생각나 물었다. "아,그리고 혹시 이걸 어디에 쓸 수 있을지 봐 주시겠습니까?" "네?이건..?" -화룡족의 두개골(레어,재로) <<화룡족의 두개골, 정보확인 불가>> 아크가 꺼낸 물건은 바로 루미네스가 남긴 두개골이었다. '화룡족의 두개골'은 파라돈의 경매장에서도 시세나 정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장인 종족인 너구리족이라면 용도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구리족은 예전에도 지저 세계에서 정체불명의 특수 재료를 사용해 장비품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잠시 바라보던 공방장이 관심을 보였다. "매우 특이한 소재로군요. 어지간한 재료를 다 다뤄 본 저도 처음 보는 재료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 대강 감은 잡힙니다. 손을 대 보기 전에는 작업하는데 얼마나 들지 , 어떤물건이 나올지 장담할 수 없지만, 다른 데 쓸일이 없다면 한번 맡겨 보시겠습니까?" 장인 npc가 이런 반응을 보이면 작업이 가능한 재료라는 뜻이다. "작업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까?" "맡겨 주시면 오늘 저녁 안에 작업을 마쳐 놓겠습니다." "글머 맡기겠습니다."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용도나 가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는 팔아 치우기 힘들다. 손을 대 보기 전에는 뭐가 만들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공방장의 말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팔 때 팔더라도 뭐가 만들어지는지 확인하고 파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또한 가공비가 200골드나 들어간다는 부분도 결과물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가공비가 비쌀수록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높은 건 당연하다. 그렇게 아크는 '화룡족의 두개골'까지 맡기고 공방을 나왔다. 일단 너구리족을 이용해 방벽을 쌓으면 주요 건물의 방어력은 상당히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마을이 점령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리고 현재 상태에서는 그런 최악의 상황이 닥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자, 이제 남은 문제는...' 아크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크 상점이었다. 주민들으 동원해야 하는 전투라고는 하지만, 역시 전투의 주축이 되는 것은 아크와 샴바라 그리고 도우미로 참가한 브레드와 레디안이엇다. 아크가 불리한 전투에서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들 때문이었다. 뉴 월드에서 상위 1%에 속하는 유저들! 쥬르 일당이 예상하지 못한 전력이라는 점도 유리하다. '역시 란셀 병력은 이들을 중심으로 부대를 편성해야 해." 때문에 아크는 볼일을 마치고 아크 상점에서 합류해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뚝딱,뚝딱,뚝딱! 상점에 다가가자 요란한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아, 오빠!" 그때 상점 박을기웃거리던 로코가 조르르 달려와 달라붙었다. 그리고 방실거리며 설명했다. "저희도 준비하고 잇었어요. 그런 얘기를 듣고 가만있을 수는 없잖아요." 샴바라에게 곧 전쟁이 벌어진다는 말을 들은 로코는 상점문을 닫아걸고 창문이나 문을 두꺼운 판자로 막아 놓는 작업을 하고 있엇던 것이다. "이렇게 해 두면 좀 낫겠죠."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걱정 말아요, 오빠. 상점은 제가 어떻게든 지킬게요.!" "네, 점장님과 저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울먹이와 삽질이는 냄비 따위를 뒤집어 쓰고 허리에는 몽둥이까지 차고 있었다. 나름대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그다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나몰라라 하고 도망치는 것보다는 100배 낫다.아무래도 로코가 사원 교육을 제대로 해 놓은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복실이가 목독을 만질 수 있는 사업을 시작해서 동생들의 충성도까지 올라간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좋아, 상점과 창고 안에 있는 짐들도 최대한 깊이 숨겨 두고, 특히 비싼 물건이나 많이 겹쳐지는 물건은 가방에 담아둬. 마을ㅇ르 습격하는 놈들이니 카오틱 주문서도 가지고 왔겠지만 그래도 창고에 놔두는 것보단 그편이 안전할 거야." "알겠습니다,회장님" 삽질이, 울먹이가 창고로 달렸갔다. "그런데 샴바라나 나를 찾는 남녀 한 쌍이 오지 않았어?" "네?아직 오빠를 찾는 사람은 없었는데요?" "이 녀석들은 지금까지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아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로코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좀 늦으려나 보죠. 그동안 저하고 차나 한잔해요." "아니, 그보다..." 아크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헛기침을 하며 로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태도로 머뭇거리며 가방을 뒤적거렸다. 로코를 만나니 파라돈에서 구입한 -덤이었다-'포코포코 인형'이 생각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인형을 건네주려니 묘하게 긴장되었다. 방금 전가지 그렇게 잘 돌아가던 혓바닥이 뻣뻣해졋다. "이거..그냥.." 아크가 쭈뼛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크는 지금까지 여자 -그래 봐야 로코와 레리어트가 전부였지만- 에게 전리품을 나눠 준 적은 있어도 일부러 선물을 챙겨 준 적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포코포코인형'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었다. '포코포코 인형'에 내장된 음성 메모리에는..뭐,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며 망성리다가 큰 맘 먹고 녹음시킨 내용이지만, 막상 주려고 마음먹으니 또 다시 망설여졌다. "아무것도 아니야. 전투가 벌어지면 나는 마을 전체를 감독해야 하니까 여유가 없을 거야 .그래도 최대한 신경 쓰겠지만 혹시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부탁해." 잠시 머뭇거리던 아크는 결국 머리를 긁적이며 얼버무려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선물이나 주고받는 것도 좀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그러나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로코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아요. 이 상점은 오빠와 저의..음,음,아니. 그러니까 저에게도 중요한 곳이에요. 그리고 전에 말했죠? 저도 요즘에는 멜로디안이라는 유령에게 빡세게 훈련받고 잇는 중이에요.엉뚱한 기술만 가르쳐 줘서 솔직히 처음에는 괜히 배운다고 했나 싶었는데, 배워 두길 잘한 것 같아요.그 녀설들이 마을에 들어와도 상점을 찾으려면 고생 좀 해야 할걸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멜로디안에게 배운 스킬 중에 놈들을 골탕 먹일 만한 게 있어요." 로코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얼마 전에 배운 스킬에 대해 떠들어 댔다. 설명을 듣던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에엑? 정말 그런 스킬이 있다고?" "네, 전에 장난삼아 한 번 써봤는데 제대로 속던데요?" "가,가만! 그럼 혹시 그 스킬, 마을 전체에 효과를 부여 할 수 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을에 효과를 부여하는 건 아니에요. 음악이니가. 그리고 음악은 원래 소리가 닿는 지역까지가 범위니까 최대한 출력을 올리면 꽤 넓은 지역까지 효과를 적용시킬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건 버프나 공격 마법 같은게 아니라서.." 로코의 대답에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엄청난 무기를 찾았다.' 로코는 자신의 스킬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저 장난삼아 사용하기에 좋은 스킬이라고 생각하는 모양. 그러나 쓰기에 따라서는 어지간한 공격 마법 이상의 ,아니 공격 마법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아크는 곧바로 로코의 스킬을 100% 활용할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강의 전략이 마련됬을 무렵, 샴바라와 브레드,레디안이 도착했다. "마을 구경은 다 끝났냐?" "아아, 봤지. 지키고 싶다는 의욕이 팍팍 생기던데?" "동감이야" 브레드와 레디안이 헤벌쭉한 얼굴로 대답했다. 개와 고양이가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라는 게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리고 뒤늦게 로코를 발견한 브레드가 아크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아,처음보지? 이쪽은.." 아크가 소개해 주려고 하자 브레드가 손을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잠깐 내가 맞혀 보지. 으음,흐음,알았다. 아크의 여자친구!" "무, 무슨말을하는거야?" "어라? 아니야? 하지만 확실히 그런 포스가 풍기는데? 후후후, 아직 어리군. 숨길 필요 없어, 나도 레디안과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거든, 우리는 서로 끈적한 관계...아욱!" 능글맞게 웃으며 지껄여 대던 브레드가 괴성을 지르며 픽 쓰러졌다, 브레드에게 옆차기를 날린 레디안이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초면에 미안해요. 저는 레디안 그리고 저 바보는 브레드에요." "괜찮아요." 로코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레디안은 그런 로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바보가 가끔은 맞을 때도 잇나 보네요." "네?" "아니에요." 레디안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일행은 상점 2층으로 자리를 옮겨 회의에 들어갔다. 아크는 일단 브레드와 레디안에게 현재 란셀의 상황을 간략하게 추려서 설명해 주었다. 대강의 설명이 끝나자 브레드가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라이덴이 얽혀 있다고 들엇을 때 짐작했지만... 하필이면 걸려도 그런 녀석에게 걸렸냐? 그놈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놈이지만, 한 번 찍으면 뱀처럼 끈질겨. 그리고 같잖게 영악한 구석도 있지. 절대 질 만한 쌍무은 시작하지 않아. 이미 사전에 란셀의 병력 현황을 완벽하게 조사했을 거야. 그리고 100%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덤비는 거겠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 몸이 있으니까." 브레드가 히죽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자 레디안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아니, 확실히 브레드와 레디안의 참전은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너희와 샴바라의 참전은 라이덴도 예상하지 못했을테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전황을 바꿀 만한 힘이 될 거야." "칭찬은 고맙지만 우리도 한 명의 유저야. 상대할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어." "괜찮다니까. 100명이든 1000명이든 나에게 맡겨." "너는 좀 조용히 하고 있어!" 레디안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브레드에게 쏘아붙였다. 아크는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나도 몇 명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에게도 유리한 점은 있어. 놈들은 아직 우리가 이번 습격 계획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점을 잘 이용하면 놈들이 란셀에 도착하기 전에 전력을 상당 부분 깎아 놓을 수 있어." "싸우기도 전에 전력을 깎다니? 어떻게?" 샴바라의 질문에 아크는 로코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밤금 전 로코와 얘기하던 음유시인의 스킬을 이용한 작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들은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로코를 바라보았다. "호오, 음유시인? 흔치 않은 직업인데? 아니, 그보다 음유시인은 원래 그런 스킬도 쓸 수 있는 건가?" "역시 뉴월드는 넓어. 나도 웬만한 스킬은 다 경험해 봤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런 스킬은 들어 본 적도 없어, 확실히 네 말대로 된다면 놈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입힐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어. 놈들이 타격을 입는다고 해도 전력의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아." 레디안은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병력의 차이야. 네 말대로라면 란셀에서 모을 수 있는 병력은 고작 300 전후, 반면 놈들은 현재 파악된 숫자만 300이야. 여기에 지원군이 가세한다면 그 숫자만큼 병력 차이가 벌어지는 거야. 상대보다 적은 병력으로 성벽도 없는 마을을 지키면서 싸울 수 없어." 레디안은 마법사답게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물론 아크도 부족한 병력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레벨도 레벨이지만 역시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숫자였다. 게다가 아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마을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쥬르 일당과 달리 란셀의 병력은 90%가 npc이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것도 이번 전투의 과제였다. 그러나 열세인 상황에서 npc의 희생을 최소화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물며 마을까지 지키기는 역부족! "그건 내게 방법이 있어." 그때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란셀 공격 정보를 입수한 뒤로 가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단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있었다. 바로 곧 마을이 습격 당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비밀로 한 점이었다. 만약 전투가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퍼졌다면 상당수의 유저들이 마을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비밀로 하고 있기에 란셀에는 아직도 유저들이 바글거렸다. 그 숫자가 대략 300~400! 그렇다, 아크는 처음부터 이 유저들을 전투에 끌어들일 속셈이었다. 물론 란셀에 모여드는 유저들은 70%이상이 레벨 100~150. 평균 레벨 250 정도인 쥬르 일당과 비교하면 최소 100레벨이나 차이가 난다. 서너 명이 한 명에게 달라붙어도 상대하기 힘들리라. 그러나 그런 유저라도 300~400명이나 되면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아크의 입장에서 유저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병력이다. 때문에 아크의 입장에서 유저들은 죽어도 상관없는 병력이다. 때문에 아크는 유저들을 고용해 란셀 병력의 방패막이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레벨이 낮은 유저들은 전투에서 제대로 활약하기 어렵겠지만, 그만큼 고용 비용이 싸다는 장점도 있다. 레벨 100~150 수준이니 두당 10~15골드만 집어 줘도 전투에 참전해 줄 거야. 상인을 제외하고 70% 정도만 고용해도 200~300명. 란셀 병력을 추가하면 해 볼 만하다!' 물론 200~300명만 고용해도 3,000~4,000골드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란셀 마을의 공금 사용 권한을 얻은 아크에게 비용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아크는 이미 가렌에게 미션을 받고 이번 방어전의 전권을 위임받았다. 그런 경우, 예전에 정의남이 해적 소탕을 할 때처럼 유저들에게 용병 비용을 보상으로 하는 미션을 부여할 수도 있었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말해 주자 레디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앞서 말한 작전이 성공하고, 비록 저레벨이라도 300명 정도 추가해서 숫자에서 압도할 수 있다면 해 볼 만해. 아니, 지금으로써는다른 방법이 없겠지." "좋아, 그럼 나는 바로 병력을 모아 볼게." 그렇게 회의를 끝낸 아크는 상점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유저들이 많이 모여 잇는 광장으로 걸어가려 할 때였다 "봐,역시 내 말이 맞지? 아크 상점도 문을 닫았잖아.." "음, 아무래도 정말인 모양이네. 은근히 마을 분위기도 어수선한 것 같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너도 동영상 봤지? 그놈들은 유저고 뭐고 인정사정없어. 괜히 불똥 튀기 전에 다른 데로 가자." "쳇, 이 마을은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유저 몇 명이 웅성웅성 떠들고 잇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영상? 이게 무슨 소리야?' 걸음을 멈춘 아크가 황급히 유저들에게 달려가 물었다. "잠시만요.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동영상이라니요?" "어? 아직 못 보셧어요? 그게 말이죠..." 유저의 말을 듣던 아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버렸다. "이,이건..!" 현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니터에서는 뉴 월드에서 벌어지는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뉴 월드의 전투 동영상이라면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오지만, 지금 현우가 보고 있는 동영상은 그런 평범한 동영상이 아니었다. 올라온 지 불과 1~2시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조회 수 7,000을 돌파하며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동영상! 그 이유는 바로 이 동영상이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아니 ㄴ범죄 현장을 몰래 찍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으아아악" 그때 또다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유저가 아닌 npc 그렇다. '범죄 파일'에 담긴 내용은 바로 슈덴베르크의 남부 산악 지역에 위치한 ;하루나의 야영지'라는 작은 부락을 유저들이 공격하는 장면. 뉴 월드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유저의 npc 마을 습격 동영상이었다. 유저들은 부락에 난입해 닥치는 대로 npc를 살해하고 있었다. 복멱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아크는 동영상을 보자마자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을 지휘하는 유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소나기처럼 화살을 뿌려 대는 궁수! '듀크...!' 궁수는 바로 듀크였다. 그리고 듀크가 이끄는 유저라면 바로 쥬르 일당의 지원군!(좀 답답한거 같아서 띄엄띄엄쓸께염^^") 그런데 란셀 침공을 앞두고 있는 듀크가 왜 하루나의 야영지 같은 작은 부락을 습격하고 잇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나의 야영지는 npc가 10여 명밖에 없는 작은 부락이지만, 소모품을 판매하는 행상인과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퀘스트를 부여해 주는 사냥꾼도 있었다. 때문에 많지는 않지만 항상 20~30명의 유저들이 휴식을 취하며 장비 점검을 하는 부락이었다. 듀크 일당이 갑자기 하루나의 야영지를 습격하자 대부분의 유저들은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몇몇 정의감이 투철한 유저들은 npc를 도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력 차에 npc들이 모두 쓰러지고 유저들은 듀크 일당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이 자식들, npc 마을을 습격하다니 제정신이냐? 대체 무슨 생각이야?" 빈사 상태에 몰린 유저들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때 듀크 -복멱능ㄹ 하고 있지만 아크는 딱 보면 알 수 있었다.-가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훗, 그거야 네놈들이 알 바 아니다. 그보다 다른 놈들은 다 도망갔는데도 남아서 npc를 돕다니... 정의감이 투철한 녀석들이군. 저레벨이라 죽어 봐야 경험치를 많이 떨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대든 녀석을 얌전히 죽여 줄 만큼 성격이 좋지 않아." 듀크가 손을 들어 올리자 일당이 일제히 가방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헉! 무, 무슨짓을.,,!" 두루마리를 확인한 유저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듀크 일당의 손에 들린 두루마리는 바로 [엿보기][강탈][탈취][불운]...각종 카오틱 주문서 세트였다.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듀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자 일당이 일제히 주문서를 찢어 버렸다. 동시에 붉은 섬광이 터져 나오며 유저의 몸에 몇 장의 주문서 효과가 중첩되었다. 이대로 살해당하면 장비품 절바은 떨어지고 말리라! 공포에 질린 유저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듀크는 비웃음을 던지며 사냥하듯이 유저들을 하나하나 살해했다. "으아아악" 유저들이 쓰러지자 주문서에 걸린 아이템과 장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리에게 대항하는 놈들은 누구든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모든 유저를 살해한 듀크는 전리품을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일당을 소집해 놓고 반대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자,그럼 이제 란셀이라는 곳으로 가 볼까?" '듀크 자식..!'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일당을 이끌고 사라지는 듀크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제가 목숨을 걸고 숨어서 촬영한 동영상입니다. npc마을을 습격하는 것도 모자라 유저까지 저렇게 처참하게 살해하다니, 뉴 월드도 요즘에는 무섭군요, 마지막에 란셀 마을로 간다고 하던데.. 혹시 그 근처에 계시다면 일찌감치 피하는게 좋겠습니다. 동영상 아래에는 촬영한 '제보24시'라는 유저의 코멘트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그 코멘트를 믿지 않았다. 이 동영상을 촬영한 유저는 '제보 24시'가 아니다. 아니, 그가 촬영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숨어서 촬영한 것은 아니었다. 숨어서 촬영했다고 하기에는 전투 상황이나 음성이 너무 선명한 것이다. '아마도... 아니ㅡ 틀림없이 이 동영상을 촬여하고 게시판에 올리도록 사주한 놈은 듀크!' 듀크가 이런 동영상을 올린 이유는 간단하다. 쥬르나 듀크도 란셀 마을을 공격할 때, 유저들이 변수로 작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레벨일수록 사망 페널티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이런 저런 일에 겁 없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듀크가 일너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한 것은 바로 그런 유저들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유저를 살해해 장비품을 강탈하는 장면을 보여 줘서 공포를 느끼게 만든 것이다. 노멀 유저가 용병으로 참가해 전투를 하다가 장비품을 떨굴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npc에게 고용되 마을 방어전에 참가함녀 카오틱이 될 걱정도 없다. 대문에 현우는 유저들이 부담 없이 용병이 되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유저의 장비품까지 몽땅 약탈하는 장면을 보여주면 상황이 달라진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놈들이라도 수백 명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에서 이런 짓을 할 여유가 있을 리 없지만, '할 수도 있다'는 걸 보여 준 것만으로도 효과는 충분하다. 고작 10~15골드를 받고 장비품을 잃을지도 모르는 전투에 참가하려는 유저는 없으리라. 그리고 이미 란셀에서 이 동영상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었다. 듀크가 '다음 목표는 란셀' 이라고 공언한 덕에 겁을 집어 먹은 유저들이 속속 마을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아크의 용병 권유를 받아들일 유저가 있을 리가 없었다. 동영상을 이용한 참으로 교묘한 술책! '...쥬르와 듀크 녀석도 이제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군.' 무턱대고 레벨만 믿고 덤빌 때와는 달라졌다. 그러나 속 편하게 박수를 쳐 주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이 이미 7.000명이다, 놈들의 습격까지 남은 시간은 하루 남짓, 그전에 란셀에 있거나 올 계획이 있던 유저들도 모두 보거나, 혹은 친구에게라도 연락을 받을거야. 이제 란셀에서 용병을 고용한다는 계획은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동영상에 나온 듀크 일당의 숫자는 대략 200명. 대기하고 잇는 쥬르 일당과 합하면 500이다. 용병의 도움이 없다면 절대 막아 낼 수 잇는 숫자가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 유저를 용병으로 고용하려면 장비품을 잃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나 저레벨이라 비싼 장비품이 없다지만 최소한 200골드는 줘야 하리라. 레벨 100~150의 유저에게 용병 비용 200골드?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란셀을 탁탁 털어도 그만한 돈이 없을뿐더러, 그런 식으로 300명의 용병을 고용한다면 쥬르 일당에게 공격받기 전에 란셀은 망해 버리고 말리라, '이렇게 끝나는 건가? 정말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건가?' 현우는 절망했다. 동영상 하나로 현우의 계획이 원천 봉쇄된 것이다. 설마 현실의 매체를 게임 속의 전략으로 이용할 줄이야! 그때 문득 모니터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잇는 명함이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물끄러미 명함을 바라보던 현우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명함은,...가만, 어쩌면 ...그래,놈들이 사용한 방법을 나라고 사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시간이 될까? 아니, 다행히 아직 놈들이 공격하기 전까지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어떻게든 될 거야! 나머지는 이 사람을 설득해서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뿐이다' 동시에 현우의 머릿속에서 스파크의 폭풍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돌파구를 찾아낸 현우는 전화기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명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참을 통화하던 현우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현오의 제안이 먹혀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문제! "전투는 내일 중에 벌어질 겁니다, 그 전에 오실 수 있겠습니까?" "마침 저희 요원이 기린에 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면 3~4시간 안에 도착할 겁니다." '됐다! 듀크자식, 같잖게 동영상을 가지고 장난쳤겠다? 그렇다면 나도 같은 방법으로 네놈들의 같잖은 수작을 뭉개주마!' 전화를 끊은 아크의 눈동자에서 꺼져 가던 불길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란셀 방어전까지는 앞으로 18시간! "아크.." 쥬르가 씹어냅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난 몇 달, 쥬르는 그야말로 암울하기 작이 없는 나날을 보냈다. 스탄달 정복 전쟁의 실패 때문이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마느 스탄달 정복 전쟁은 쥬르에게 있어서 하늘이 내려 준 기회나 다름없었다. 만약 계획대로 스탄달을 헤르메스 연합의 식민지로 만들었다면 거기서 얻어지는 수익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리고 뉴 월드의 골드는 현실의 현찰이었다. 현장 책임자였던 쥬르는 단숨에 모든 게이머의 꿈인 게임 재벌이 됬으리라. 그런데 그 꿈이 코앞에서 좌절되었다. 바로 아크라는 놈 때문에! 아직도 쥬르는 스탄달 정복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했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첨된 로또 복권이 눈앞에서 찢겨 나간 일을 어떻게 잊겠는가? 그때부터 쥬르의 목적은 오직 하나, 아크에게 복수하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쥬르는 고개를 들어 동굴 안에 모여 있는 유저들들 바라보았다. 헤르메스 연합에서 아크의 본거지로 밝혀진 란셀 마을을 괴멸시키기 위해 선발한 비밀결사대원들이었다. 그 숫자는 대기하고 있던 병력과 듀크의 지원군을 합한 500의 병력! 경비대원이 1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산골 마을을 괴멸시키기에 차고도 넘치는 숫자였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해' 사실 란셀이 아크의 본거지임을 알아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스탄달 정복 전쟁 당시, 차원게이트를 통해 나타난 정체불명의 npc를 확인하고 정보를 추적한 결과 란셀 마을을 찾아낸 것이다. 스탄달 정복 계획을 망친 npc들이 살고 있는 마을! 게다가 마을에는 버젓이 아크라는 이름을 걸어 놓은 상점까지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쥬르는 울화통이 터졌다. 시르바나 공성전, 스탄달 정복 계획 등등, 아크는 헤르메스 연합이 추진하는 모든 일에 툭툭 끼어들어 고춧가루를 뿌려 댔다. 그로 인해 헤르메스 연합이 받은 피해는 수천, 아니 수만 골드에 달했다. 그리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아크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렇다, 아크 상점은 바로 그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실을 확인한 쥬르는 당장 란셀을 밟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이덴은 쥬르의 요청을 거절했다. "물론 나 역시 아크 자식에게는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다. 하지만 당장은 무법항에 집중해서 스탄달 탈활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다. 게다가 아크 놈은 아직도 스탄달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타초경사라고했어. 괜히 란셀을 건드리면 문제가 복잡해질지도 몰라." 라이덴은 꼴 같지 않게 문자까지 써 가며 말했다. 이게 란셀의 실체를 알면서도 지금까지 손을 쓰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이 공을 들이던 무법항이 스탄달 해군에 의해 괴멸당했다. 덕분에 헤르메스 연합은 단숨에 빚더미에 파묻혀 버렸다. 무법항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충분한 수익금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빚을 내면서까지 무리하게 설비 투자를 한 탓이었다. "망했다. 이제 망했어!" 라이덴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오히려 쥬르는 무법항 괴멸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해결할 방법?"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만한 손실을 매울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병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아 도는 병력을 이용해 따로 돈벌이를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쥬르가 제안한 방법은 연합의 일부를 떼어 비밀결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저나 규모가 작은 만만한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해 손실을 벌충하는 것! "하지만 노멀 npc는 죽어도 아이탬을 떨굴 확률이..." "거의 없죠. 그래서 마을을 약탈하자는 겁니다, 전에 스탄달에서 계곡 마을을 점령해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npc에게는 이렇다 할 아이템을 얻지 못했지만, 상점 따위에 있던 물건은 약탈할 수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대륙은 작은 마을이라도 스탄달의 계곡 마을보다는 상점이 많으니 약탈에 성공하면 상당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짓을 하다가 만약 문제라도 생기면..." "비밀결사대원을 미리 연합에서 탈퇴시켜 놓으면 문제 될건 없습니다." "연합원들이 비밀결사대에 들어가겠어?" npc마을을 습격하는 일은 pk와는 범죄 수준이 다르다. pk는 직접 죽인 사람에게만 카오틱 수치가 적용되지만, 마을을 습격하는 것은 명실상부한 도적단. 특수 범죄로 분류되어 공격대가 마을을 습격하자마자 모든 도적단에게는 엄청난 카오틱 수치가 적용된다. 그리고 대장인 쥬르는 공격대장이 대원들이 받는 경험치의 일부를 보너스로 받듯이, 도적단에게 적용되는 모든 카오틱 수치의 일정량이 추가로 가산되어 정상적인 게임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돼 버린다. 만약 경비애둰에게 죽기라도 하면 최소 반년은 게임을 접고 감방에서 푹푹 썩어야 하리라. 그러나 쥬르에게 그런 페널티는 이미 문제가 되지 않았다. 란셀과 아크 상점을 괴멸시켜 아크를 정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어떤 페널티라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이미 각오가 됐습니다. 그리고 충분한 보상만 약속해 준다면 다른 지원자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을을 약탈해서 얻어지는 수익금을 분배해 주고, 연합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될 만큼 손실을 복구하면 비밀결사대원의 장비를 맞춰주고 레벨업을 도와주면 됩니다." 말하자면 조폭들이 '큰 건'하나 해결하고 감방에 갔다 온 똘마니를 키워 주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연합이 손실만 복구하면 결사대원을 밀어주는 정도는 문제가 아니다. 카오틱 수치 역시 선 성향이 올라가는 퀘스트를 몰아주면 감방에 갇히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라이덴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정상적인 방법보다 나쁜 짓이 더 돈이 된다는 것은 진리였다. 비록 계획이 실패해 빚더미에 앉게 됬지만, 무법항을 운영할 때도 해적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여 장물을 처리해 주며 벌어들인 돈은 적은 양이 아니었다. 결국 라이덴은 쥬르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500의 연합원으로 비밀결사를 만들었다. 그렇다, 사실 다지고 보면 비밀결사의 원래 목적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연합을 구하기 위한 구사대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설립 목적이 어쨌든 쥬르의 목적은 오직 하나, 연합의 힘을 빌려 란센 마을. 나아가 아크를 척살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비밀결사의 첫 번째 목표는 란셀마을. 그점에 대해서는 라이덴 역시 쥬르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크, 이제는 네놈이 당할 차례다. 네놈이 쌓아 놓은 모든 것을 내가 직접 부숴 주마,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비밀결사가 존재하는 한 네놈은 결코 도망가지 못한다. 네놈이 동료를 만들면 동료를 죽이고, 네놈이 퀘스트를 받으면 퀘스트를 준npc를 죽여 주지. 헤르메스, 아니 이 몸을 적으로 삼은 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닫게 해 주지. 으하하하!" "으하하하하!" 갑자기 쥬르가 맛이 간 목소리로 괴소를 터뜨리자 결사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머릿속으로만 웃는다는 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온 모양이다. 쥬르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흠흠, 결사대원은 모두 집합했나?" "네, 부대원 528명 모두 접속 완료했습니다." 결사대원의 보고에 쥬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크게 숨을 딜이켰다가 단숨에 내뱉으며 말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리의 목표는 헤르메스 연합의 부활이다. 그러나 대업에 앞서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 연합이 총제적인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 아크와 놈을 따르는 무리를 척결하는 것이다. 놈을 처단하지 않고는 헤르메스 연합의 미래도 없다. 여기에 의문이 있는자가 있는가? "없습니다!" "헤르메스 연합의 영광을 위해!" 오직 이날을 위해 사흘 동안 뉴월드에 접속도 않고 기다려 왔다. 결사대원들은 욕구불만을 분출하듯 무기를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다. "좋아, 출전이다!" 쥬르는 500의 결사대원을 이끌고 란셀을 향해 진군했다. ACT3.환상 소나타 "하늘도 우리를 돕는군" 밖으로 나온 쥬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초저녁부터 먹구름이 깔리기 시작한 밤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덕분에 숲 속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당연히 숲 속을 돌아다니기에는 그다지 좋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야습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시작부터 왠지 느낌이 좋다. "저곳이 란셀인가?" 어두운 숲을 가로지르자 곧 수풀 사이로 빛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창문이나 문틈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 일대에 단 하나밖에 없는 란셀 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다. 목표가 가시거리 안에 들어오자 쥬르의 입가에 음산한 웃음이 맺혔다. "후후후,듣던 대로 쥐똥만 한 마을이군. 1~2시간이면 충분하겠어." "가만,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하지?" 그때 잠시 마을 분위기를 살피던 듀크가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내가 뿌린 동영상으로 어지간한 유저들은 우리가 란셀을 습격할 걸 알고 있을 텐데?" "그래, 그래서 계획대로 마을에 유저들이 없으니까 조용한 거잖아." 쥬르의 말처럼 동영상의 효과 덕분에 마을에 유저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듀크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유저들이 도망갔는데도 NPC들이 왜 저렇게 조용하냐는 거야." "그야 당연히 놈들은 모르니까 그렇겠지. 생각해 봐. 유저들이 마을을 떠나며 굳이 NPC에게 말해 줄 이유가 없잖아. NPC가 직접 인터넷을 뒤져 동영상을 검색할 리도 없고. 유저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만으로 NPC가 뭔가 대책을 세워 놨을 가능성은 없어." "그렇기는 하지만..." 쥬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사 NPC가 뭔가 낌새를 챘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어. 동영상을 푼 건 어젯밤이야. 그사이에 다른 곳에서 지원군을 불러올 수는 없어. 게다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을 놈들을 봐. 저 얼굴 어디에 위기감이 보이냐?" 쥬르는 마을 외곽에서 어슬렁거리는 란셀 주민들을 가리켰다. 마을 벤치에 한가롭게 앉아 있는 주민들의 어디에도 위기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중한 건 좋지만 너무 걱정이 앞설 피룡는 없어. 상대는 NPC야." 쥬르는 가볍게 말하고 마을을 살피며 지시했다. "듀크, 4,5,6 대를 이끌고 좌측으로 이동해라. 나는 돌격대와 1,2대를 이끌고 반대편으로 이동하지. 그렇게 마을을 포위하고 동시에 덮치는 거야." 쥬르의 눈빛에 잔인함이 묻어났다. "일단 전투가 시작되면 마을 놈들을 한 마리도 살려 두면 안돼.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자살특공대로 영자 이동 마법탑을 날려 버리고, 약탈 부대는 아크 상점을 비롯해 마을의 모든 상점을 턴다. 저레벨 마을이지만 한창 성장하는 마을이니 벌이가 꽤나 쏠쏠할 거야." 작전에 따라 부대원들이 둘러 갈라져서 이동했다. 란셀 마을 NPC까지 몽땅 처리하는 게 목표니 마을을 포위할 때까지 들켜서는 안 된다. 때문에 결사대원들은 일단 포복으로 수풀을 헤치며 작전 지점가지 이동했다. '후후후, 아크 녀석, 이곳에 와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쥬르는 땅바닥을 박박 기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더나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1시간, 쥬르 일당은 란셀의 좌측 돌벽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자 반대편으로 이동한 듀크의 귓속말이 들려왔다. -쥬르, 준비됬다. 동시에 쥬르의 입가에 짐승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이다, 모두 총공격! 불길의 벽이여, 파이어 월-!" 쥬르가 벌떡 일어나 손을 휘둘러 대자 마을 외곽에 수십개의 화염의 벽이 만들어졌다. 주민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미리 화염의 장벽을 만들어 둔 것이다. 쥬르가 선제공격을 하자 곧 돌벽 뒤에서 수백 명의 부대원들이 일어나 마을로 난입했다. 듀크 역시 반대편에서 화살을 퍼부으며 부대원을 이끌고 마을로 뛰어 들어갔다. "이대로 단숨에 해치운다! 전원돌격!" "우와아아아아아아!" 500의 결사대원들이 일시에 몰려들자 마을은 먼지와 화염에 휩싸였다. 그러나 쥬르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기가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앗다. "뭐,뭐야? 이게 대체..?" 선두에서 돌진하던 쥬르가 당혹성을 터드리며 멈춰 섰다. 쥬르가 마을로 난입하며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했다. 쥬르만이 아니라 500명의 부대원이 마을로 난입하며 각종 마법과 화살, 스킬을 뿌려 댔다. 쉬지 않고 터지는 폭발과 흙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 그런데 정작 공격을 받는 주민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데미지를 입기는 커녕 마을에 난입한 결사대원들이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 심저어 바로 앞에서 휘두르는 검도 주민의 몸을 그냥 관통해 버렸다. "대장님, 저기를 보십시오!" 그때 옆에 있던 결사대원이 마을 광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쥬르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광장에는 수십 명의 주민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쥬르는 시선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부대원이 누구를 가리켰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을 중심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 가죽 갑옷을 걸친 그는 바로.... "....아크!" 그렇다, 사내는 바로 쥬르의 원수, 아크였다. 아크를 발견한 쥬르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란셀을 공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아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당혹감도 잠시, 쥬르는 이를 갈아붙이며 불길을 일으켰다. "불타오르는 지옥의 화염이여! 받아랏, 헬파이어-!" 엄청난 화염이 지면을 새까맣게 태우며 폭사되었다. 화염은 단숨에 아크를 집어삼켜 버렸다. 아니, 삼켜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화염은 그대로 아크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 화염을 관통한 아크가 쥬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동시에 듀크의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속았다, 쥬르, 함정이다! '함정?' 쥬르가 흠칫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을 때였다. 철컥,풍! 돌연 발치에서 기계음이 울리더니 눈앞으로 뭔가가 뛰어 올라왔다. 무의식적으로 철구에 적힌 글자를 읽던 쥬르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일그러졌다. 뻑-큐! '아,아크 이자식!' 콰콰콰콰쾅! 뒤이어 철구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엄청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화염의 보호막!" 쥬르는 재빨리 ㅣ화염 속성 보호막을 펼쳐 불길을 막아 냈다. 그 짧은 순간에 '화염의 보호막'을 발동시켰다는 점이 과연 선구자다웠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철커그 퐁! 철컥, 퐁! 철컥, 퐁! 쥬르가 공격을 받은 것과 거의 동시에 마을 여기저기에서 100여개의 철구가 튀어 올라왔다. 철구를 확인한 쥬르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확 뿜어져 나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튀어 올라온 철구는 모 트랩! 그것도 친절하게도 하나한마다 빙신,쪼다,등신 등등 의 욕구가 적혀 있는 트랩이었다. 사람 염장 지르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아크의 솜씨였다. "피해라-! 함정이다-!" 콰콰쾅,콰콰쾅,콰콰쾅,콰콰쾅! 동시에 100여 개의 철구가 일시에 폭발하며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이미 결사대원들은 모두 마을에 난입한 상황! 쥬르의 목소리에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폭발에 휘말려 버렸다. 단숨에 결사대원들의 생명력이 10~20%나 빠져나갔다.게다가 마을이 화염에 휩싸여 지속적으로 화염 데미지가 들어왔다. "크윽,위,위험하다! 빨리 탈출해라!" "일단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 우와아아앗!" 불길에 휩싸여 뛰어나가던 결사대원이 돌연 훅 사라졌다. 발을 내디뎠던 땅이 푹 꺼지며 떨어져 버린 것이다. 함정! 바닥은 날카롭게 날이 선 칼날이 세워져 있는, 원시적이지만 살벌한 함정이었다. 함정에 떨어진 결사대원은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쳐 즉사하고 말았다. "이,이럴수가...!" 쥬르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혼란에 빠진 결사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덫과 함정! 그러나 쥬르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은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었따. '대체 이게 무슨..!' 아직도 마을에서는 화염이 수십 미터 높이로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마을의 건물은 멀쩡했다. 아니, 건물만이 아니라 NPC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쥬르가 알기로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직업은 하나뿐이다. '환상...이게 환상이라고? 환영술사라도 있었던 건가? 하지만.......' 환상 마법을 사용하는 환영술사! 그러나 환영술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환상은 고작 몇 미터 크기의 물체뿐이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주민들의 환영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크...!' 아크가 란셀 마을로 돌아와 있다. 이제 전투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쿠헤헤헤헤!" 엄청난 화염과 비명이 끊이지 않는 마을 상공. 밤하늘을 향해 치솟는 불길에 닿을락 말락 한 곳에서 박쥐 한 마리가 키득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아크의 정찰병, 라카드였다. "주인, 걸렸다,걸렸어. 바보들이 제대로 걸렸어!" "불길은 여기서도 보여. 지금 놈들 상황은 어때?" "나도 화염 때문에 안은 잘 안 보여. 하지만 고기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겨 오는 걸보니 꽤 많은 놈이 익어 가는 모양인데?" "좋아, 계속 상황을 살피며 연락해." 라카드의 실황중계를 들은 아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너구리족 공방장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만들어 주신 트랩이 제대로 작동한 모양입니다." "아크 님이 가져오신 재료 덕분이죠. 저도 놀랍습니다. 이런 작은 보석 하나에 그만한 힘이 있다니, 저희는 이 보석에 그저 간단한 장치만 추가 했을 뿐입니다." 공방장이 붉은 보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그 보석은 바로 아크가 화룡산에서 발굴한 '화염석'이었다. 당시 아크가 '몽환의 모래시계'를 사용해 만든 '화염석'은 무려 180개. 아크는 그중 절반 이상을 이번 작전에 투자했다. '화염석'을 철구에 넣은 것은 공방장의 생각이었다. '화염석'은 그냥 사용하기에는 공격력이 그다지 위력력이지 못했다. 그러나 화약을 가득 채운 철구에 넣으니 상황이 달려졌다. 화약으로 폭발력이 몇 배나 증폭되는 것은 물론, 철구가 폭발하며 생성된 파편이 추가 데미지까지 주었다. 말하자면 '화염석'이 폭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번 작전의 제1공로자는 로코 님이시죠." 공방장이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하긴,로코가 아니었다면 이번 작전은 성립되지 않았겠지.' 아크 역시 새삼스러운 눈으로 로코를 바라보았다. 지금 로코는 완전히 몰입되어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굉장합니다,점장님!" "그동안 그냥 땡땡이치면서 놀러만 다닌게 아니었군요!" 냄비를 뒤집어쓴 삽질이와 울먹이가 연방 엄지를 들어 올렸다. 삽잘이와 ㅇ루먹이가 극찬하는 그 음악이 바로 그동안 로코가 멜로디안이라는 유령에게 배운 '멜로디안 렙소디'였다. '멜로디안 렙소디'는 전체 5악장까지 나뉘어 있었는데, 각 악장마다 독특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로코가 연주하는 것은 서곡에 해당하는 '환상 소나타'라는 곡이었다. 멜로디안 렙소디 서곡"[<환상 소나타>중급,액티브] 비극적인 운명을 살다 간 천재 음악가 멜로디안이 작곡한 멜로디안 렙소디의 서곡 '환상 소나타'입니다. 훌륭한 음악은 듣는 사람을 환상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행진곡을 들으면 정말 전장을 뛰어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고, 슬픈 음악을 들으면 정말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이 아파집니다. '환상 소나타'는 그런 마력을 이용해 음악이 닿는 범위 내의 대상에게 시전자가 상상하는 풍경을 환상으로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단,환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음악의 완성도에 따라 환상의 실재감과 숫자가 달라집니다. <마나소모:10초당 5.대기시간:12시간> 그렇다. 쥬르 일당이 뛰어 들어간 란셀은 바로 이 '환상 소나타'로 만들어진 신기루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정도까지 완벽한 신기루를 만들어 낼 줄이야.' 아크는 얼마 전에 봤던 란셀 마을의 환상을 떠올렸다. 로코에게 '환상소나타'에 대한 얘기를 들은 아크는 이번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직접 환상의 완성도를 체크해 보았다.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아크조차 미리 환상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100%속아 넘어갔을 완벽한 환상이었다. 게다가 로코가 만들어 내는 환상은 크기 따위의 제한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환상이라고 표현했지만, 로코가 만들어 내는 허상은 환영술사가 만들어 내는 마법적인 환상과는 전혀 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환상이 아닌 환각, '환상 소나타'는 쥬르 일당을 음악의 세계로 끌어들여 환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스킬이었다. 때문에 마을을 통째로 복사하는 말도 안 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허접함의 표본처럼 취급되는 음유시인이지만, 배우는 음악에 따라 이렇게 엄청난 환상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직업은 뭘 선택하느냐보다 어떻게 키워 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단 하나, 단점은 대상이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러나 그 문제는 레디안이 로코의 하프에 확성 마법을 거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현재 로코가 연주하는 '환상 소나타'의 적용 범위는 반경 수백 미터! 때문에 쥬르 일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음악을 듣고 환각에 걸려 버렸다. 그리고 미리 아크가 트랩을 촘촘히 깔아 둔 곳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문자 그대로 뜨거운 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 고생한 보람이 있는 놈들이군" 아크가 히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굳이 라카드의 실황중계를 들을 필요도 없다. 놈들이 뜨거운 맛을 보고 있는 환상은 진짜 란셀에서 고작 2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덕분에 아크가 있는 곳에서도 치솟아 오르는 불길과 쥬르 일당의 비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점차 비명이 줄어드는가 싶더니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놈들이 모두 함정을 빠져나온 것 같아." "피해는?" "음,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리 많이 굽지는 못한 거 같아. 30~40마리 정도?" '역시 만만한 놈들은 아니야' 라카드의 보고에 아크는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실 아크 역시 이 정도로 놈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폭탄이 '화염석'의 위력을 극대화시킨 무기라고는 해도 결국 트랩이다. 초반에는 당황해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겠지만, 상황만 파악하면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도 함정에 당한 놈들은 대부분 생명력이 낮은 마법사나 성직자일 거야. 전쟁에서 고레벨 성직자나 마법사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그런 마법사나 성직자의 숫자를 줄여 놓은 것만으로도 일단 원하던 목적은 달성한 셈이야. 게다가 아직 환각은 깨지지 않았어.' "로코 ,이제부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 출력이다." "알았어요." 로코의 손가락이 더욱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0개의 손가락이 47개의 현 위를 바람처럼 질주했다. 퉁기고,흔들리고,당겨지며 동시에 수십 개의 음색이 흘러나와 어울리며 고혹적인 멜로디를 자아냈다. 그러자 란셀 마을 둘레로 3~4개의 빛 무리가 떠올랐다. '환상 소나타'의 완성도를 높여 환영의 숫자를 늘려 놓은 것이다. "우히히히히,놈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어!" 위성 감시 모드로 놈들을 감시하는 라카드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낄낄거렸다. 예상대로 쥬르 일당은 사방에서 나타난 란셀 마을에 혼란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퇴각할 수는 없는 노릇. 쥬르 일당은 닥치는 대로 불빛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아크가 노리던 것이었다. 철컥,콰쾅!철컥,슈수수수숙! 어두운 숲 여기저기에서 기계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처음 환영을 만들어 낸 지역에는 촘촘히 함정을 깔아 두었다. 환영의 존재를 모르는 놈들이 틀림없이 무턱대고 돌진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같은 마을을 몇 개나 만들어 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좀 전처럼 무턱대고 마을에 난입할 리가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환영과 환영 사이에 무작위적으로 함정을 매설해 두었다. 결과는 빙고, 늘어난 환영에게 정신이 팔린 놈들이 연방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이걸로 놈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는 힘들겠지만, 데미지는 틀림없이 누적된다. 누적된 데미지는 전면전이 시작됬을 때 상당한 페널티로 작용할 수밖에 없어.' 첫 번째 함정은 마법사나 성직자를 처리하기 위한 방책. 그러나 숲에 숨겨 둔 함정은 데미지를 주기 위한 함정이 아니었다. 성직자와 머법사의 마나를 소모시키기 위한 함정이었다. 누군가가 함정을 밟아 데미지나 상태 이상에 걸리면 성직자나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대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마나를 사용하게 만들어 놓으면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 '이미 성직자와 마법사를 수십 명이나 잃고 남은 사람도 마나가 얼마 남지 않으면 놈들의 전력은 최소 20~30%가량 다운된다. 그저 정도면 전면전으로 붙어도 승산이 있어! 물론 놈들이 정찰병을 이용해 숲을 뒤지며 신중하게 이동하기 시작하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좋다' 그렇다. 아크가 이런 작전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시간은 란셀 마을의 방어 준비를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란셀 마을의 방어를 위한 설비는 이미 너구리족을 동원해 끝마쳐 놓았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방어 준비 때문이 아니라.............. 철컥.슈슈슈숙! -독화살 트랩이 작동했습니다. 데미지 300. <상급 마독에 중독되어 3분간 10초당 20의 마나가 감소합니다> "젠장, 또 마독이다!" "마나가 빨리기 전에 서둘러 해독해라!" "빌어먹을..." 라카드의 실황중계대로 현재 쥬르 일당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론 함정은 레인저나 사냥꾼 계열의 직업 스킬로 미리 간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란셀 마을의 환영은 숲 전체에 걸쳐 퍼져 있다. 다시 말해 함정도 숲 전체에 퍼져 있다는 말이다. 일일이 함정을 수색하며 숲을 모두 뒤져 보려면 며칠이 걸려도 부족하리라. 때문에 일단 쥬르는 생명력과 벙어력이 높은 전사를 선두에 세웠다. 일일이 찾아낼 수 없다면 아예 무시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란셀을 찾아내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숲에 깔려 있는 함정은 환영 속에서 당했던 함정과는 달랐다. 환영 속에서 발동된 함정은 데미지 위주의 함정. 그런 함정이 동시에 100여 개나 발동해 버리는 바람에 생명력이 낮은 마법사와 성직자가 적지 않게 희생되었다. 그러나 숲에 설치된 함정은 마나를 깎는 효과를 가진 함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마나가 깎이는 게 생명력을 깎이는 것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생명력은 회복 마법을 사용해서 회복하면 그만이지만, 마나는 단시간 내에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전사라도 마나가 없으면 당연히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전투에서 스킬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아무리 레벨이 많이 차이 나도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면 승산을 장담할 수 없다. 그렌데 아직 싸워 보기도 전에 전사들의 마나가 펑펑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무턱대고 돌아다니다가는 싸워 보기도 전에 전사들의 마나가 깡통이 되 버릴 상황이었다. "쥬르, 뭔가 잡히는 거 없어?" 듀크가 답답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르겠어. 계속 '마나 추적'을 발동시키고 있는데도 감도 잡히지 않아." 그러나 답답하기는 쥬르도 마찬가지였다. 쥬르의 원래 직업은 '포스 스토커'. 그리고 '포스 스토커'의 주특기는 마나의 흔적을 추적하는 기술이었다. 게다가 이번 작전을 앞두고 연합에서 지원해 준 덕분에 2차 직업인 '포스 오피서'로 전직해 마나 추적 기술이 더욱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쥬르는 아직 숲에서 어떤 마나의 흔적도 찾아내질 못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마을만 3~4개. 이 정도 규모의 환영 마법이 펼쳐졌는데 마나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되? "나도 미치겠어" 쥬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곳에 있던 놈들이 감방에만 가지 않았어도...' 쥬르는 미리 란셀 마을 주변에 잠복싴켜 놨던 결사대원을 떠올렸다. 사실 쥬르가 그들을 미리 잠복시켜 놨던 이유는, 란셀 마을의 동향을 살펴보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놈들은 샴바라에게 덜미를 잡혀 지금은 감방에서 푹푹 썩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에 쥬르 역시 거사를 앞두고 문제가 생길까 싶어 이곳에 온 뒤로 주변을 정찰하지 않았다.놈들은 감방에 갇혔지만 어차피 기본적인 정보는 모두 보고받았으니 새삼 살펴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방심이 이런 상황을 불러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니, 사실 미리 주변을 정찰해 봤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사대원들이 보고 있는 환상은 마을만이 아니었다. 숲도 환상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곳은 나무가 몇개나 겹쳐져 보이기까지 했다. 더구나 지금은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밤. 그런 괴상한 숲에 들어와 있으니 방금 전에 그들이 지나온 길이 어디인지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젠장,아무래도 아크 자식이 뭔가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때 잠시 생각하던 듀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쥬르, 이대로 계획을 진행시켜도 될까?" "고작 이따위 함정에 물러나자는 말이야?" "그게 아니야. 너도 봐서 알겠지만, 마을에 아크 녀석이 있었어. 아마 동영상을 보고 마을로 돌아왔겠지." "네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것도 동영상을 푼 목적중에 하나였어." 쥬르가 싸늘한 목소시로 중얼거렸다. 사실 쥬르가 듀크에게 동영상을 만들어 풀게 한 것은 단순히 란셀의 유저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미 쥬르는 아크가 란셀에 며칠 머물 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쥬르가 동영상을 마든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동영상을 보게 된다면 어디에 있든란셀 마을로 도라오리라.물론 란셀과 아크 상점을 날려 버리는 것만으로 아크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지만 역시 직접아크를 때려잡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않았다. 그리고 일단 그 작전은 먹혀든 셈이다. "하지만 다른 유저가 동영상을 본 것과 아크 자식이 본 건 차원이 다른 문제야. 유저들의 소문만으로는 NPC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겠지만, 아크 녀석이 움직이면 란셀의 주민들도 움직일 거야. 놈에게는 협조하는 NPC가 많잖아. 어쩌면 다른 영지에서 병력을 끌고 왔을지도 몰라."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동영상을 18시간 전에 푼 이유는 그 때문이야. 아크 혼자라면 모를까 여기서 가장 가까운 도시라도 병력을 이끌고 이동하려면 18시간 이상 걸려. 놈은 지원군을 데리고 올 시간적인 여유가 없엇어. 이런 환영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는게 그 때문이지." "그렇기는 하지." "게다가 동영상에 나온 병력은 네가 지휘하던 200명. 설사 아크가 지원군을 불렀다고 해도 200명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병력일 거야. 하지만 실제로는 500명이지, 만약 아크 놈이 우리를 보고 있다면 지금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를걸." 그렇다, 쥬르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이유는 첫째, 유저들의 개입을 원천 봉쇄시키기 위해. 둘째, 아크를 란셀로 불러들이기 위해. 마지막 세번째 이유가 바로 방금 말한 것처럼 동영상으로 란셀을 습격하려는 결사대원의 병력이 200명밖에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동영상 하나로 세 가지의 효과를 노린 고도의 심리전! 그러나 그런 고도의 심리전이 이미 샴바라의 엿듣기에 모두 탄로 났음은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환영에 속아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쥬르는 여전히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가 첫 번째 마을에서 탈출하자 바로 환영을 늘렸지? 그건 뒤늦게 우리 병력을 파악하고 이대로 우리가 포기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일 거야. 그만큼 놈이 겁먹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없어, 일단 마을을 찾아내기만 하면 란셀과 아크를 처단하는 건 일도 아니야." "...찾아내기만 하면 말이지." 듀크가 방금 전에 작동했던 함정의 잔해를 걷엋며 짜증을 부렸다. "젠장, 그나저나 그렇지 않아도 짜증 나 죽겠는데 이 달짝지근한 음악은 뭐야?" "달짝지근한 음악?" "뭐야? 안들려? 아까부터 배경음악이 묘하게 달짝지근 해졌잖아." 듀크의 대답에 쥬르가 미간을 좁히며 갸웃거렸다. 사실 쥬르는 게임을 할 때는 항상 방에 음악을 틀어 놓는 습관이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전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웅장한 행진곡을 틀어 놔서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때문에 듀크가 말한 작은 음악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음악 소리라고? 설마...?'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쥬르는 혹시나 싶어 음악을 끄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러자 곧 쥬르의 귓가에도 부드러운 하프 소리가 들려왔다. 뉴월드도 상황에 따라 배경음악이 깔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들리는 음악은 아무래도 뭔가가 이상했다. 그때 갑자기 뭔가를 깨닳은 쥬르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그렇군, 이제야 알겠다!" "뭐가?" "어째서 환영이 보이는데도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지. 젠장,속았어. 처음부터 우리가 보고 있는 건 환영이 아니었어. 환각이야! 멍청하게! 마나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을 때 알아챘어야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환각이라니?" "음유시인이야. 음유시인의 음악에 취해서 우리 모두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거였어. 젠장, 란셀에 아크 놈을 따라다니던 음유시인이 있었어. 틀림없이 그년의 짓이야" 과연 선구자, 실마리를 찾은 쥬르는 단숨에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리고 일단 상대가 어떤 스킬을 사용하는지 알면 대처하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청각마비!" 세이렌처럼 음향 공격을 하는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때 사용하는 '청각 마비'! 눈에 보이는 마을이 환각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되니 한 명에게만 '청각 마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음악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마법을 사용해 음악 소리를 차단하자 숲에서 일렁이던 불빛들이 점차 흐려지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역시나 숲에 보이던 모든 마을이 환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환각이 사라졌는데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면 진짜 란셀은 조명을 모두 끄고 숨어 있다는 말이다. 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좀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상황이지만 쥬르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놈이 어떤 장난을 치고 있었는지 안 이상 위치를 알아내는 건 문제가 아니다.' 환각을 일으킨 것은 음유시인의 스킬이다. 그리고 음유시인의 스킬 범위는 음악이 들리는 곳가지. '우리는 숲에 들어온 직후부터 환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 전가지 사방에 보이던 마을의 환영. 그 정도의 범위에 효과를 적용시켰다면 분명 확성 마법을 사용했을 거야. 확성 마법의 적용 범위는 반경 500미터 남짓. 다시 말해 직경 1킬로미터다.' 거기까지 파악하면 이제 진짜 란셀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하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마을의 환영 가운데 가장 멀리 떨여져 있는 마을 두곳! 음악의 발원지는 그 두 마을의 중심 부분에 있을 것이다. "저기다.저기가 틀림없어!" 쥬르는 곧 란셀 마을의 위치를 찾아냈다 확실한 장소를 알아냈으니 굳이 함정에 걸리면서까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이제 란셀에서도 습격을 알고 대비하고 있음을 말할 필요도 없다. 반면 결사대원은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받앗으니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전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정찰대는 함정을 수색하며 이동로를 확보한다. 그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회복하고 장비를 점검해라. 정찰대가 이동로를 확보하는 즉시 란셀로를 확보하는 즉시 란셀로 진격한다." 실수라면 이미 충분히 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청각 마비' 덕분에 졸지에 장애인이 되 버린 쥬르를 위해 결사대원이 수신호로 대답했다. 어쨌든 쥬르는 신중하게 전열을 재정비한 후 정찰대를 앞세우고 숲을 가로질럿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울창한 숲을 지나자 곧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평지의 위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 보였다. 칠흙 같은 어둠에 잠겨 있는 마을...그렇다 란셀이다! 숲에 들어오고 장장 2시간 만에야 겨우 란셀 마을을 찾아 낸 것이다. "이제야 찾았다." 쥬르와 듀크가 살기가 흉흉한 눈빛으로 란셀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마을 앞으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아직 마을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쥬르는 곧바로 상대를 알아보았다. 검은 갈기를 휘날리는 늑대 인간, 아크의 또 다른 얼굴 다크울프였다. 그런데 아크의 머리 위에는 뭔가가 V자 모양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곤충의 더듬이처럼 보였다. 그때 더듬이를 단아크가 쥬르를 향해 히죽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흠, 생각보다 빨리 찾아냈네." 마을을 찾아냈으니 이제 귀머거리로 있을 이유가 없다. 쥬르는 곧바로 '청각 마비'를 해제하며 이를 갈아 붙였다. "너 이자식, 잘도 설쳐 댔겠다!" "설쳐 대고 있는 건 네놈들인 것 같은데?" "닥쳐,네놈이 어떻게 알고 란셀로 돌아와 그따위 장난질을 쳤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네놈과의 악연도 여기서 끝이다. 네놈과 란셀을 몽땅 짓밟아 주마!" 쥬르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아크는 그런 쥬르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구는 거야?" "뭐,뭐,뭐라고? 네, 네놈이 그걸 몰라서 그따위 말을 하는거냐? 4.000골드와 레어 아이탬을 챙기면서 땡전 한 푼 안 남은 영지를 팔아먹고, 스탄달 정복 계획을 방해해서 엄청난 손실을 입힌 주제에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냐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이군." 아크가 한심하다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매운맛을 봤으면 이제 네놈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알았을 거 아냐. 그런데 왜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덤비는데? 아직도 나한테 더 줄게 남았냐? 그렇게 주고도 아직 뭔가 남았어?마음은 고맙지만 솔직히 이제 좀 귀찮다. 이번에는 그냥 봐줄 테니 그냥 얌전히 돌아가지 않을래?" "뭐,뭐라고? 너 이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크의 염장질에 혈압이 상승한 쥬르는 뒷목을 잡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이를 갈아붙이며 고함을 터뜨렸다. "공격!죽여,죽여라! 저놈을 갈가리 찢어 놔라!" "우와아아아아!" 쥬르의 명령에 500명의 결사대원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순간 아크가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스텐바이-!" 아크의 목소리가 울리자 란셀 마을의 조명이 일시에 켜졌다.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던 조명이 동시에 켜지자 란셀 마을 주변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러자 눈이 어둠에 적응되어 있던 쥬르 일당은 갑작스러운 빛에 움찔하며 멈춰 섰다. 촤,촤,촤,촤,촤,촤! 돌연 아크의 눈앞에 작은 화면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마을 내부와 마을을 둘러싼 돌벽 그리고 쥬르 일당이 돌진해 오는 마을 앞 공터까지. 수십 군대의 장소를 각각의 방향에서 촬영하는 듯한 15개의 분할 영상창! 아크는 분할 영상창을 훑어보고는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시스템 올 그린.액션!" "우와아아아앙(ㅋㅋ)!" 그때였다. 갑자기 우레와 같은 함성이 울리며 돌벽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전사들이 몸을 일으켰다. 생각지도 못했던 숫자의 병력에 쥬르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돌벽 뒤에서 나타난 전사들은 란셀의 주민이 아니었다. 수백의 전사 모두가 유저! "헉!이,이게 어떻게..." 쥬르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비밀결사에게 덤빈 유저를 그야말로 알거지로 만들어 버리는 동영상을 만들어 뿌린 게 18시간 전이다. 그리고 다음 목표로 란셀을 지명했으니 당연히 유저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갔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대체 이 유저들은 뭐란 말인가? "그런 동영상을 만들어 뿌린 건 제법 좋은 생각이었어." 그때 아크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동영상 따위는 공중파에 게임이 안 되지." "고,공중파?" 15개의 분할 영상창에 각기 다른 각도에서 잡은 멍청한 쥬르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기서부터는 인소다카페의 성게군이 타이핑했습니다---- 이름은 지우지 말아주세요. ACT 4 매스컴 파워! "지금쯤 시작했겠군." 사내가 벽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파자마 차람에 덥수룩한 수염, 두툼한 똥배를 출렁이는 30대 후반 남자. 영락없는 옆집 순돌이 아버지 같은 인상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의 일. 마법의 문을 통해 뉴월드라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는 수천 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머메드 연합 헤르메스의 리더 라이덴이 된다. 그렇다, 이 아저씨가 바로 헤르메스 연합장 라이덴이었다! 현재 시각은 아침 8시. 게임 폐인이 활동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라이덴 역시 보통 12시는 되어야 일어나는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잘돼야 할 텐데‥‥‥." 라이덴은 초조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가 불면의 밤을 보내고 이렇게 초조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바로 오늘이 '그날' 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 연합이 비밀리에 조직한 결사대의 시험 무대이자 공식 데뷔전이 치러지는 결행일! "비밀결사대가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지는 오늘 안에 판가름 난다." 라이덴이 결사대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상당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제 믿을 수 있는 건 결사대밖에 없었다. 무법항이 괴멸돼서 헤르메스 연합이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은 이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당시의 라이덴은 무법항 건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연합원을 상대로 투자금을 모았다. 투자금의 액수만큼 지분을 배당하고, 무법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나눠 준다. 그리고 계획 대로 무법항을 이용해 스탄달을 탈환하면 또다시 그에 대한 배당을 나눠 준다는 조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무법항 계획은 성공률100%의 사업처럼 보였다. 게다가 계획대로 스탄달까지 탈환하면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일확 천금의 꿈에 젖은 연합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투자했고, 그게 짧은 시간에 무법항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무법항이 수익을 내기도 전에 박살이 나 버렸다. 동시에 연합원들이 가지고 있던 지분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작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골드의 투자금을 날린 연합원들의 원망은 당연히 라이덴에게 향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무법항 계획의 성공을 믿었던 사람은 누구보다 라이덴 자신! 무법항의 지분을 블루칩(성장성, 수익성, 안정성이 보장된 주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라이덴은 연합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인맥을 총동원해 돈을 마련해 투자 한 것이다. 덕분에 라이덴은 뉴 월드야 현실, 양쪽에서 완전히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결사대가 오늘 작전만 성공시켜 준다면‥‥‥.' 일단 급한 대로 10,000골드(무법항의 장물)상당의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턱도 없이 부족했지만, 당장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오늘 중요한 건 당장 돈이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아니야. 비밀결사가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느냐를 증명하는거다. 만약 쥬르의 말대로 비밀결사가 제 역할만 해 준다면 10,000골드는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입은 손실을 모두 복구하고 연합에 상당한 비자금을 비축해 둘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스탄달을‥‥‥. 후후후, 흐하하하!" 장밋빛 미래에 젖은 라이덴은 히죽거리다가 이내 광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아침부터 빚 독촉 전화가 걸려 오는 판에 뭐가 좋다고 웃고 지랄이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소리치는 여자는 바로 라이덴의 와이ㅡ였다. 라이덴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고 떠듬거렸다. "아, 아니, 이건 그러니까‥‥‥." "정말 내가 못 살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한테 상의 한마디 안 하고 겁도 없이 그렇게 돈을 빌린 거야? 새벽부터 몇 군데의 대부 업체에서 전화가 왔는지 알아? 일주일 안에 갚지 않으면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단 말이야!" "아, 알았어. 오늘 일만 잘되면 해결할 수 있다고 했잖아." "흥, 어련하겠어? 미리 말해두지만 빚쟁이가 들락거리면 난 못살아. 며칠사이에 해결해 놓지 않으면 애들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와이프 버럭 소리치며 팩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젠장, 돈이 들어오면 빌린 돈부터 갚아야겠다' 라이덴이 줄담배를 피우며 한숨을 푹푹 불어냈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줄담배를 피워 대자 속이 쓰려 왔다. 그러나 역시 쥬르의 승전보를 듣기 전에는 밥이 먹힐 것 같지 않았다. 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와이프가 밥상을 차려 줄 것 같지도 않지만‥‥‥. 할 수 없이 라이덴은 터덜터덜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우유로 쓰린 속을 달래고 있는데 문득 아들이 켜 놓은 TV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의 게임 특종 핫 이슈는 특별 생방송으로 진행 되겠습니다!" '게임 특종 핫 이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라이덴은 우유를 홀짝이며 TV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 게임 특종은 일주일에 한 번 저녁 시간대에 방송 되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한 번으로는 정보가 너무 늦다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얼마 전부터는 아침 시간에 뉴스처럼 간단한 정보를 전해 주는 게임 특종 핫 이슈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특별 생방송이라니? 뉴 월드에서 무슨 이벤트라도 시작했나?' "특별 생방송이라니 궁금하네요. 예정에도 없던 일이라 당혹스럽네요." 기특하게도 여자 리포터가 라이덴의 궁금증을 대신 물어주었다.. 그러자 진행자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저 역시 몇 시간 전에야 얘기를 들었을 정도로 급하게 결정된 일이니까요. 하지만 틀림없이 모든 분들이 관심을 가질 거 라고 확신합니다. 저역시 결과가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궁금하네요. 시청자 분들도 궁금하실 테니 빨리 가르쳐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혹시 어제 오후에 인터넷에 올라와 '범죄 파일'이라는 이름으로 삽시간에 퍼진 동영상을 알고 계십니까?" "네, 저도 친구의 연락을 받고 한 번 봤어요. 하루나의 야영지라면 슈덴베르크에서 시작한 초보 유저들이 가끔 들르는 곳이잖아요. 저도 예전에 취재를 위해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는데 탐사대장 하루나는 정말 친절하고 아름답게 생긴 NPC였죠. 그런 착한 NPC가 살해당하다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에요. 뭐, 게임속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NPC가 생겼지만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더라고요." 여성 리포터가 짐짓 화난 표정으로 볼을 부풀렸다. 그러자 진행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잘 알고 계시는군요. 지금까지 유저가 NPC를 살해하는 일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무리를 지어 NPC 부락을 초토화시키는 일은 처음이라 충격을 던져 줬던 사건이죠.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내용은 바로 동영상에 찍힌 습격 예고입니다." "란셀이라는 마을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란셀은 슈덴베르크의 아구스 산맥에 자리한 산골 마을인데요. 부지런한 개척민들이 마을을 개간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특한 상품이나 다양한 이종족들이 사이좋게 모여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근래 들어 유명해진 마을이죠." "그런 마을의 주민들까지 하루나의 야영지처럼 살해당하고 마는 건가요?" "네,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악이 있으면 정의도 있는 법입니다." 진행자가 손가락을 흔들어 대며 말했다. "동영상에 나왔던 도적 무리는 강하고 잔인했습니다. 그들이 란셀을 공격하겠다고 말했을 때, 저는 당연히 모든 유저들이 도망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의는 살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유저들이 당당하게 도적단과 맞서기로 결정한 겁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을 규합해서 도적단과 정면으로 맞선 용사는 다름 아닌, 다크울프!" "어머, 다크울프라면 예전에 스탄달을 떠올려 화제가 됐던 유저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게임 특종에서 방송했던 스탄달 등장의 주인공! 소식을 들은 그가 란셀로 뛰어가 유저들을 규합, 도적단과 맞서 싸우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핫 이슈는 그가 도적단과 맞서 싸우는 전투 장면을 독점 생중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 갑자기 진행자의 앞에 놓인 램프가 반짝였다. 뒤이어 이어폰으로 뭔가 지시를 받는 듯하던 진행자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지금 현장의 영상이 전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NPC마을을 습격한 도적단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크울프가 그들을 막아 내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함꼐 보시겠습니다. 시청자 분들도 다크울프를 응원해 주십시오." 푸확─! 멍하니 지켜보던 라이덴의 입에서 우유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거금을 들여 구입한 54인치 LED TV 화면을 가득 채운 얼굴은 바로 라이덴의 심복, 쥬르였다. 쥬르의 얼굴이 등장하자 TV를 보던 여섯 살 난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저 사람은 전에 아빠가 보여 준 동영상에 나왔던 사람이잖아? 저 아저씨 아빠 부하라면서? 그럼 아빠도 나쁜 놈이야?" "아, 아냐! 아빠는 모르는 사람이야!" 라이덴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Typing by 성게군**** '후후후, 쥬르 녀석은 아직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아크는 어벙한 표정을 짓는 쥬르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렇다, 18시간 전에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다. 인터넷에 유포된 '범죄 파일'에 대항하기 위해 공중파 방송국의 힘을 빌리는 방법! 사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아크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범죄 파일'에 겁을 먹은 유저들이 몽땅 빠져나가면 란셀에는 경비대원과 수인족, 약 300명의 전력밖에 남지 않는다. 반면 쥬르 일당의 숫자는 500. 게다가 레벨까지 높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크가 받은 미션을 성공하려면 주민 NPC와 마을피해를 30% 이하로 줄여야 한다. 그러나 주민의 피해를 줄이려면 어느 정도 마을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마을의 피해를 줄이려면 주민의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받은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을이 심각한 타격을 받으면 부동산 시세도 폭락! 결국 이 상태로는 도적단을 막나 낸다고 해도 아크는 상당한 피해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1년 6개월이나 걸려서 완료한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도 날아간다.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저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는데‥‥‥.' 비록 레벨 100~150밖에 되지 않는 저레벨이라도, 일단 쪽수에서 앞선다면 일말의 희망을 걸 수 있다. 게다가 아크의 입장에서 유저는 죽어도 딱히 손해날 게 없었다. 부담 없이 위험한 전략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저들이 '범죄 파일'에 겁을 집어먹었으니 이제 용병으로 고용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때 아크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게임 특종의 기자가 건네줬던 명함이었다. 사실 '사아학 늑대의 유계 탐험'이라는 동영상이 히트를 친 이후로 몇 번이나 게임 특종의 기자가 아크에게 연락을 해 왔었다. 검은 늑대의 정체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폭주하고 있으니 방송에 한 번 출연해 달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아크는 번번이 제안을 거절했다. 뭐, 방송에 나가면 출연료를 받겠지만 연예인도 아니니 고작 약간의 사례금 정도에 불과했다. 현재 한창 잘나가는 아크에게는 그리 큰돈도 아닌 것이다. 아크는 그보다 오히려 얼굴이 알려져셔 받을 불이익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아니, 돈을 떠나서 감정적으로 얼굴이 팔린다는 것 자체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동영상이라면 문제없다. 게다가 만약 TV에 방송된다는게 알려지면‥‥‥?' 맹렬한 속도로 머리를 굴린 아크는 곧바로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다크울프 님, 혹시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아니, 오늘은 다른 용건입니다." 아크는 담당 기자에게 곧바로 머릿속에 정리한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얼마 전 유포된 '범죄 파일' 아시죠? 그 도적단이 내일 오전에 란셀 마을을 습격할 겁니다. 혹시 그 전투를 방송하고 싶은 생각 없으십니까?" "란셀 마을의 전투? 자세히 말씀해 보십시오." 이미 인터넷을 통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범죄 파일'은 게임 특종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유저가 조직적으로 NPC 마을을 , 그것도 예고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뉴 월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게임 특종은 현장 리포터를 급파해서 진상을 조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혹시 그 전투에 다크울프 님이 참전하시는 겁니까?" "저뿐만이 아닙니다. 게임 특종에서 생방송으로 다뤄 준다면 예전에 악실리온에서 저와 함께 페어를 짰던 푸른검 샴바라, 유저들 사이에서 브리스타니아 최강 페어로 알려진 브레드와 레디안도 란셀 방어전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아크의 제안에 게임 특종은 발칵 뒤집혔다. 뉴 월드의 정보에 빠삭한 게임 특종은 당연히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크울프가 현재 유저들이 예의 주시하는 '범죄 파일' 의 도적단과 맞서 싸운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집중될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푸른검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까지! 뉴 월드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만한 동영상! 일단 방송만 되면 시청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팀장님, 사건입니다!" "뭐야? 란셀 마을에 다크울프와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같은 거물 유저가 떴다고? 이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어. 당장 편성 국장님에게 방송 시간 잡아 달라고 해! 마침 예정 시간이 핫 이슈와 겹치니 오프닝은 핫 이슈로 시작하고, 그 뒤는 전투 상황을 봐 가면서 조종한다!" 빛과 같은 속도로 OK 사인이 떨어졌다. "란셀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자가 누구야?" "특종남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도적단이 란셀을 습격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기란에서 이동 중이었습니다." "잘됐군. 서둘러서 다크울프와 접촉하라고 해!" "그런데 다크울프가 현장에서 직접 편집해서 보내겠다고 합니다." "뭐야? 왜?" "자기가 활약하는 장면을 멋지게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아닐까요?" 기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아니, 아크가 카메라의 감독권을 달라고 말한 이유를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하는 짓' 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투에서 NPC와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유저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놓고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지만 때로 무리한 명령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생방송으로 전국에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아크의 속내를 알 리 없는 팀장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일 부분은 다크울프가 참전한다는 거야. 다크울프가 많이 나와서 나쁠 건 없어. 기자에게 연락해서 뭐든지 다크울프가 하자는대로 하라고 전달해. 이번 전투는 무조건 핫 이슈에서 생방송으로 방송한다!" 그리고 대략 10시간 전, 특종남이라는 기자 유저가 란셀에 도착했다. 특종남은 이번 전투를 촬영하기 위해 란셀 마을에 간이 기지국을 설치했다. 주변에 설치해 놓은 15대의 카메라와 방송국을 연결해 생방송을 내보내기 위한 장치였다. 그리고 그 영상을 통제하는 사람은 바로 아크! 아크의 머리 위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는 더듬이는 바로 15대의 카메라와 기지국을 중계하기 위한 안테나였던 것이다. '후후후, 내가 생각해도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였어!' 아크가 분할 영상창에 떠올라 있는 수백 명의 유저들을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자, 이쯤 되면 아크가 왜 방송국을 끌어들였는지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아크가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에 옮긴 것은 특종남이 란셀 마을에 도착한 직후였다. 아크는 일단 다크울프로 변신해 특종남과 함께 마을 광장에서 유저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잠시만 집중해 주십시오!" "뭐야? 바빠 죽겠는데‥‥‥. 엇? 저 사람은?" "다크울프다! 스탄달을 떠올렸던 다크울프다!" '범죄 파일' 을 보고 짐을 정리해 도망가려던 유저들이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했다. 뉴 월드의 유저들은 직접 동영상을 보든 소문을 듣든 다크울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단숨에 시선을 집중시킨 아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내일 아침, '범죄 파일'에 나왔던 도적단이 란셀을 습격할 예정입니다. 시간 관계상 다른 지역의 정규병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란셀은 놈들의 계획대로 약탈당하고 말 것입니다." 아크는 유저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그런 일을 보고만 있을 생각이십니까? 이곳은 비록 NPC 마을이지만, 아구스 산맥에서 생활하는 여러분의 쉼터입니다. 그런 곳을 자기들 마음대로 짓밟는다니! 그건 곧 이곳을 쉼터로 삼는 그리고 앞으로 쉼터로 삼아야 하는 유저들을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마을에서 받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퀘스트도 있고‥‥‥." "하지만‥‥‥ 놈들은 NPC도 약탈하는 놈들이라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유저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수군거렸다. 사실 란셀 마을이 위협받는 것은 유저들에게도 결코 발마직하지 않았다. 아구스 산맥에서 사냥하는 유저들에게는 란셀만 한 휴식처가 없는 것이다. 란셀에서 받은 퀘스트를 진행하던 유저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만으로 이번 전투에 참가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저는 결코 놈들의 만행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저 혼자라도 놈들과 맞서 란셀을 지켜 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전에 게임 특종 핫 이슈에서 란셀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라이브로 방송하기로 결정됐습니다." "뭐? 게임 특종 핫 이슈의 촬영?"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분이 바로 게임 특종 핫 이슈의 유저 기자입니다." 아크가 특종남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유저들이 놀란 목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맞아, 전에 게임 특종에서 저 기자를 본 적이 있어." "그럼 정말 란셀에서 일어나는 전투가 TV로 방송된단 말이야?" "전투에 참전하면 우리도 TV에 나간다는 말이잖아?" 유저들은 점차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힘들게 키운 자신의 분신, 뉴 월드의 캐릭터가 공중파를 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아크는 흔들리는 유저들에게 쐐기를 박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범죄 파일'을 본 유저라면 누구나 내일 란셀이 공격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여러분이 직접 막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여러분은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인 유저는 더욱 많은 관심을 받게 되겠죠. 그런 유저들에게는 인터뷰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 네, 그야 뭐‥‥‥." 특종남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 답에 유저들의 눈동자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TV, 어느 집에나 한 대씩은 있는 가전제품이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일반인에게 먼 나라의 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먼 나라의 일이 지금 이곳에서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치면 정말 현실에서 인터뷰를 받을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TV를 동격하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기회! 잠시 웅성거리던 유저들 사이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나서서 소리쳤다. "맞아, 우리가 쉬는 마을이 도적단에게 습격당하도록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게다가 이곳에는 스탄달의 영웅 다크울프가 있다!" "모두 힘을 합쳐 싸우자!" TV라는 말 한마디에 유저들의 태도가 180도로 돌변했다. 이게 바로 인터넷 동영상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방금 전 까지 죽을 둥 살 둥 부부싸움을 하던 사람도 단숨에 잉꼬부부로 만들어 버린다는 공중파 방송의 위력이었다. 덕분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짐을 싸 들고 도망치려는 유저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어 참가 신청을 해 댔다. "오오오, 유명인!" "내 캐릭터가 TV에 출연한다니, 여자 친구에게 자랑할 수 있겠다!" "어이, 뭐해? 지금 여기는 난리 났어! 게임 특종에서 란셀전투를 생방송으로 내보낸대. 응? 당연하지. 어디라고? 웃기지 말고 빨리 돌아와! 유명인이 될 기회라고! 장비품이 터릴까 봐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심지어 몇명 유저는 이미 도망간 친구에게 귓속말을 날려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후후후, 어리석은 군중!" 아크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게임 특종 기자를 끌어들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TV에 출연한다. 솔직히 아크는 돈을 준다고 해도 내키지 않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웬만한 손해는 감수하면서라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법은 유저를 모으는 것 이외에 또 다른 효과도 있었다. TV로 모든 상황을 촬영하고 있다고 공언했으니 상황이 어렵게 됐다고 비겁하게 도망가거나,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굴지도 못하리라. TV에 나가는 이상 죽을 떄 죽더라도 명예롭고 정의로운 유저라야 하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내 꼭두각시다. 마음껏 부려 먹어 주지!' 이렇게 해서 아크는 공짜로 400명에 가까운 유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비록 레벨은 달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꼭두각시들이었다. '게다가 쥬르 일당은 이제 완벽하게 악당으로 낙인찍혔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쥬르를 바라 보았따. 이번 생방송에 내보내는 영상은 모두 아크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방송국으로 송신하는 영상은 바로 쥬르의 얼굴! 란셀 마을을 공격하는 악당 두목이라는 주제로 최대한 클로즈업해서 땀구멍이 보일 정도로 커다랗게 전국을 대상으로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TV 방송이 뉴 월드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적어도 뉴 월드의 유저들에게는 쥬르의 얼굴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설사 훗날 카오틱을 푼다고 해도 이런 전과를 가지고 다른 유저들과 어울리기는 쉽지 않으이라.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쥬르는 이미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쥬르만이 아니라 듀크와 나머지 일당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쥬르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어째서 이놈들이 마을에 남아 있는 거지?" 쥬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유저들을 훑어보았다. 물론 가끔 겁대가리 없는 놈들이 있으니 '범죄 파일'을 본 모든 유저가 도망쳤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70~80%는 도망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유저의 숫자는 무려 400.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숫자가 늘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유저들의 눈에는 정체불명의 전의마저 불타올랐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이, 확인해 봤어?" "응, 방금 확인해 봤는데 정말 TV에 나오고 있어." "방금 전에 잠깐이지만 너하고 내 얼굴도 나왔어." "저, 정말이야?" "예약 녹화해 놓기를 잘했다!" "이제 여기서 활약하면 나도 단숨에 다크울프처럼 유명인이 될 거야!" "하악, 하악, 우, 우리가 새로운 전설을 만드는 건가?"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TV는 유저들의 사기를 더욱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쥬르는 이들의 기묘한 전의에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쥬르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으드득, 틀림없이 아크 자식이 뭔가 계략을 꾸민 게 틀림 없어!" "대, 대장님?" "에잇, 신경 쓸 것 없다! 그래봐야 상대는 고작 레벨 100~150밖에 되지 않는 놈들이야! 조금 귀찮아졌을 뿐, 우리의 승리는 변함이 없다! 마침 잘됐어. 우리에게 덤비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줄 기회다! 닥치는 대로 밟아 버려!" "돌격대 앞으로!" 철컥, 철컥, 촤촤촤촤촤! 거친 쇳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결사대원이 앞으로 나왔다. 가장 두꺼운 판금 갑옷과 타워 실드, 장창으로 무장한 중장갑 돌격병! 뉴 월드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 가운데 최강의 돌파력을 자랑하는 전사들이었다. "그대로 란셀까지 돌파한다! 돌진!" "우와아아아아!" 중장갑 돌격병이 방패와 창을 앞세우고 밀려들었다. "헛, 중장갑 돌격병이다!" "막아! 놈들과 충돌하면 한 방에 나가떨어진다!" 유저들이 당혹성을 터뜨리며 마법과 화살을 난사했다. 그러나‥‥‥ 팅, 팅, 팅, 팅! 마법과 화살은 모두 타워 실드에 맞고 튕겨 나왔다. 모든 직업 가운데 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중장갑 돌격병의 돌진! 중장갑 돌격병은 맡은 역할이 역할이라 결사대원 가운데 가장 레벨이 높은 유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레벨 300대! '돌진'의 스폐셜리스트인 중장갑 돌격병은 스킬이 발동되는 동안 이동속도 50%, 방어력과 공격력이 30% 이상 상승했다. 그런 중장갑 돌격병의 돌진을 고작 레벨 100~150밖에 되지 않는 유저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돌격대가 밀고 들어오면 란셀 앞의 방어 진형은 단숨에 박살이 나리라!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여유 만만했다. 쥬르 일당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란셀의 괴멸.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돌격대를 이용해 방어막을 뚫고 마을로 난입할 거라는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다. 그리고 그렇게 뻔한 공격에 대비해 두지 않을 아크가 아니었다. "우하하하! 어리석은 놈들, 겁도 없이 덤빈 걸 후회하게 만들어‥‥‥." 돌진하던 중장갑 돌격병 한 명이 갑자기 훅 하고 사라졌다.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걸 시작으로 돌진하던 놈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뭐, 뭐야? 대체 왜‥‥‥?" 쥬르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제야 돌격대원이 사라진 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알아챘다. 쥬르 일당과 유저들 사이의 공간에 여기저기 구멍을 파 놓고 나뭇가지 따위로 위장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함정인가? 놈, 끝까지 같잖은 수작을‥‥‥. 하지만 중장갑 돌격병이다. 그따위 함정 따위로는 중장갑 돌격병에게 치명상을 줄 수 없어. 곧 함정에서 나와서‥‥‥." "나올 수 있을까?" 아크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투투투투퉁, 퍼퍼퍼퍼펑! 갑자기 구멍 속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리며 자욱한 연기가 확 뿜어져 올라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쥬르가 멍하니 바라보는 가운데 구멍 밖으로 새까맣게 그을린 돌격대원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기어 나왔다. 그러나 채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시꺼먼 손이 돌격대원의 팔과 다리를 잡고 와락 구멍 속으로 잡아당겼다. 뒤이어 또 다시 격렬한 폭음과 함께 돌격대원의 단말마가 울려 나왔다. "우아아아악!" '대체 저 구멍에서 무슨 일이‥‥‥.' 경약한 눈으로 바라보는 쥬르의 시야에 문득 구멍 입구에서 쫑긋거리는 귀가 들어왔다. 예전에 그런 귀를 달고 있는 NPC를 본 적이 있었다. '저놈들은 예전에 아크를 따라다니던‥‥‥!' 그렇다, 구멍 속에서 돌격대원을 잡아당긴 손은 바로 너구리족이었다. 그리고 이 구멍과 너구리족이 아크가 생각해 낸 중장갑 돌격병의 대처법이었다. 중장갑 돌격병이 빠진 구멍은 정확히 말해서 함정이 아니었다. 바로 너구리족의 종족 특성인 '땅굴 파기'로 란셀앞의 광장에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지하 통로였다. 아크가 한 일은 그 지하 통로의 입구를 나뭇가지로 덮어 위장한 것 뿐이었다. 중장갑 돌격병은 무거운 갑옷을 입는 만큼 낙하 데미지에 취약하다. 구멍으로 떨어진 충격에 한동안 '스턴'에 걸릴것은 당연지사! 그때 지하 통로에서 대기 중인 너구리족이 몰려들어 소형 대포로 집중사격을 펼친 것이다. 아무리 방어력이 높은 중장갑 돌격병이라도 '스턴' 상태에서 수십 발의 대포 공격을 버텨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단 구멍에 떨어지면 100% 즉사! "이, 이런 말도 안되는‥‥‥!" 쥬르의 입에서 게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쥬르 역시 이곳에 함정이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중장갑 돌격병의 방어력을 생각하면 어지간한 함정 따위는 무시할 수 있따고 판단했던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짐작도 못 했다. 그러나 이미 '돌진'을 시작했다. 중장갑 돌격병의 '돌진'은 압도적인 돌파력을 자랑하지만, 일단 발동시키면 스킬이 끝날 때 까지 멈출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니, 쥬르는 멈출 수 있다고 해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너구리족의 구멍은 예상 밖이지만 구멍에 떨어진 돌격대는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30명이 남았어. 30명이면 허접한 놈들의 방어를 박살 내기에 충분해! 일단 돌격대가 방어 진형을 무너뜨리면 단숨에 난입해서 박살을 내놓는 거야!' 쥬르의 생각대로 아직 30명의 중장갑 돌격병이 지축을 우리며 유저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일단 돌격대가 충돌만 하면 단숨에 유저 수십 명을 박살 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 주면 멋도 모르고 참전한 유저들의 사기도 단숨에 꺾일 게 분명했다. 그 뒤에 결사대가 난입하면, 일어날 상황은 보지 않아도 훤하다. 유저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게 뻔했다. 그리고 쥬르의 계획대로 중장갑 돌격병의 창이 막 유저들에게 닿으려는 찰나! 아크가 유저들의 어깨를 타고 뛰어나오며 본 블레이드를 집어 던졌다. "라자크, 검화 해제! 철벽 화염 발동!" 딱딱딱, 딱딱딱딱! 바닥에 수직으로 꽂힌 본 블레이드가 라자크로 변신했다. 그런데 라자크의 외형이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너덜너덜한 방패 대신 불길이 일렁거리는 타워 실드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마치 거인의 두개골처럼 기이하게 생긴 불꽃 방패! 딱딱딱딱딱! 라자크가 기합(?)을 터뜨리며 방패를 머리 위로 키쳐 올렸다가 세차게 내리찍었다. 콰콰콰콰쾅, 퍼퍼퍼퍼펑, 화르르르륵! 동시에 방패의 양옆으로 화염의 날개가 펼쳐지며 중장갑 돌격병을 후려쳤다. 단 일격에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던 중장갑 돌격병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이것이 바로 라자크가 새로 얻은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의 위력! 이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는 아크가 너구리족에게 맡겼던 '화룡족의 두개골'로 만들어진 방패였다. 솔직히 아크 역시 설마 이런 방패가 만들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냥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서 뭔가 특이한 아이템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역시 재료가 두개골이어서일까? 엉뚱하게도 라자크의 전용방패가 만들어진 것이다.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레어) 방어구타입 : 강철 방패 방어력 : 250 내구력 : 150/150 무게 : 70 사용제한 : 스켈레톤 전사 계열 전용 화룡족의 오라클 루미네스의 두개골을 가공해 만든 방패. 본래 화룡족의 오라클은 종족을 보호하는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 어려서부터 강력한 보호 마법을 배우게 됩니다. 루미네스 역시 수백 년에 걸쳐 화룡족 비전의 보호 마법을 익혀 와 마력의 근원이 되는 두개골에 모든 마력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마력을 띈 두개골은 강력한 아티팩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개골이 담겨 있는 마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뼈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진 종족만이 가능합니다. <<옵션 : 힘 +10, 체력 +10>> <<특수 옵션 : '철벽 화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철벽 화염'은 방패의 마력을 폭발시켜 전방 10미터 범위에 적의 '돌진'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스킬이 발동되면 적은 10~100의 화염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또한 '돌진'이 캔슬되며 5초간 '스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단, 이 스킬은 '방패 치기'를 익히고 있는 전사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나 소모: 100 재사용 시간 : 5분>> '이 정도면 제작비 200골드가 아깝지 않지.' 아크는 흐뭇한 눈으로 활활 화염을 뿜어내는 방패를 바라보았다. 레어 방패라고는 하나, 방어력이나 옵션은 일반 마법 방패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특수 옵션으로 라자크에게 또 다른 방어 스킬이 생겼다. 10미터 범위 내 적의 돌진을 일격에 막아 내는 '철벽 화염'! 그 스킬 하나만으로도 200골드 이상의 가치는 충분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소환수 전용이라 팔기는 힘들다는 점. 그러나 그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솔직히 팔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소환수 한 마리가 30명의 중장갑 돌격병의 '돌진'을 저지한 것이다. 거기에 화염 데미지와 '스턴' 효과까지! "크아아아악!" 중장갑 돌격병은 불길에 휩싸였지만 '스턴'에 걸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됐어. '철벽 화염'의 대기 시간은 5분. 전사 계열의 '돌진' 대기 시간과 비슷하다. 이제 놈들의 '돌진'은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어.' 라자크는 그동안 꾸준히 음식을 복용시켜 현재 능력치의 총합이 레벨 290 수준을 넘었다. 능력치로만 따지면 쥬르 일당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 게다가 아크에게 빡센 훈련을 받아 와 전투 용령은 웬만한 유저 못지않았다.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를 이용해 적의 돌진을 막는 정도 역할은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으리라. 딱딱딱, 딱딱딱딱! 역시 라자크는 별도의 명령이 없어도 알아서 유저 방패 부대와 합류, 방어 진형의 주축이 되었다. 새삼 라자크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됐어, 일단 놈들의 기세는 꺾었다. 이제‥‥‥!' 아크가 주먹을 치며 올리며 사자후를 터뜨렸다. "지금이다. 뉴 월드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을 섬멸하라!" "우와아아아, 뉴 월드를 지켜라!" 동시에 400명의 유저가 무기를 휘드르며 파도처럼 쥬르 일당을 향해 돌진했다. 유저들‥‥‥ 란셀 방어군의 첫 번째 제물(본문에서는 재물)은 코앞에서 '스턴'에 걸려 있는 중장갑 돌격병들이었다. 무지막지한 방어력으로 집단 전투에서는 마의 철벽이라고까지 불리는 중장갑 돌격병! 그러나 다 필요 없다. 비록 레벨100~150밖에 되지 않는 유저들이지만 숫자가 400명이다. 콰콰콰쾅! 유저들이 개미 떼처럼 달려들자 중장갑 돌격병들의 생명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스턴' 에 걸린 중장갑 돌격병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SOS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사, 살려줘!" "이, 이런 개같은‥‥‥. 막아라! 놈들을 막아!" "빌어먹을, 하루살이 같은 놈들이‥‥‥. 모두 박살 내라!" 돌진으로 단숨에 유저를 제압하려는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쥬르 일당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곧바로 전력을 동원해서 유저들과 충돌했다. '환상 소나타'로 가짜 란셀 마을을 만들어 쥬르 일당을 함정에 끌어넣어 적지 않은 사상자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40여 명의 중장갑 돌격병도 피해 없이 막아 냈다. 그러나 아직 쥬르 일당은 400이상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 유저들과 같은 숫자지만 실제로는 레벨차이가 평균 100이상 나는 전력! 때문에 쥬르 일당은 일단 붙으면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유저들은 의외로 잘 버텼다. "달콤한 속삭임의 파도에 지친 몸을 맡기고 즐거운 노래를 불러 봐요." 쇳소리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 한 줄기를 바람처럼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울렸다. 후방에서 음유시인 로코가 부르는 노랫소리였다. 음유시인의 노랫소리는 버프! 물론 쥬르 일당 가운데도 버프를 하는 성직자나 마법사가 있었지만, 음유시인의 버프는 차원이 달랐다. 버프 전문이지만 혼자서도 사냥을 할 수 있는 성직자나 마법사와 달리 음유시인은 공격 능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유저들이 음유시인을 기피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버프에 전문화되어 있는 직업이라는 뜻이다. 로코가 본격적으로 후방 지원에 나서자 유저들의 눈앞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상급 '생명의 노래' 효과가 적용됐습니다. <<3분에 걸쳐 600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상급 '질풍의 노래' 효과가 적용됐습니다. <<10분 동안 공격 속도가 15% 상승합니다.>> -상급 '용맹의 노래' 효과가 적용됐습니다. <<10분 동안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상승합니다.?? 로코는 멜로디안의 빡센 수련 덕분에 대부분의 스킬이 상급에 올랐다. 게다가 패시브 스킬 '잔잔한 여운' 덕분에 한 번에 세 가지의 효과를 중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음유시인의 최대 장점은 따로 있었다, 성직자나 마법사는 고작 한 번에 5~10 명에게 버프를 주는 게 한계였다. 더구나 버프에 소모되는 마나도 무시할 수 없어서 마구잡이로 난사할 수 없었다. 반면 음유시인의 버프는 노래를 듣는 모든 아군에게 효과를 적용시킬 수 있었다! 단 한 번의 시전으로 400명에게 버프를 날린다. 버프의 효율이 천지 차이인 것이다. "젠장, 또 저 망할 계집이‥‥‥!" 쥬르가 잡아먹을 듯한 눈길로 로코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로코가 아니었다. "대체 이놈들은 뭘 믿고 겁도 없이 덤벼드는 거야?" 쥬르는 화염을 뿜어내며 몰려드는 유저들을 태워 버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리 로코가 버프를 날려 준다고 해도 레벨 차이는 압도적이다. 서너 명이 덤벼도 결사대원 하나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 그런데 유저들은 그런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무턱대고 덤벼들고 있었다. 게다가‥‥‥ "크아아아악! 부, 분하다. 하지만 내가 죽어도 뉴 월드의 정의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 "헉! 제, 젠장, 여기까지인가? 영숙아, 사랑해!" 픽픽 쓰러지면서도 이따위 헛소리를 찌걸여 대고 있는 것이다. 방송을 의식해서 조금이라도 튀어 보려고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쥬르는 유저들이 단체로 살짝 맛이 갔나 싶을 정도였다. "짜증 나는군. '범죄 파일' 만으로는 효과가 약했던 건가? 그렇다면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해 주지. 1대대, 우측으로 돌아 돌출되어 있는 적을 포위해라!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줘라!" "네. 1대대, 측면으로 돌아 목표물을 포위해라!" 곧 수십 명의 결사대원이 겁도 없이 쥬르 일당의 진영까지 들어와 설치는 유저 몇 명을 포위했다. 그리고 일제히 주문서를 꺼내 들고 난사했다. 유저를 순식간에 알거지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카오틱 주문서! 이 주문서를 사용해 정말 몇 명을 알거지로 만들어 버리면 유저들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앗, 카오틱 주문서다!" "주문서를 맞고 당하면 장비품을 떨구게 될지도 몰라!" 역시나 주문서를 사용하자 유저들이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명백한 협박, 장난삼아 참전한 피라미들은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지‥‥‥ 않았다. "네놈들의 상대는 나다! 나에게 주문서를 사용해라!" "그따위 주문서에 겁먹을 내가 아니다!" 주문서를 난사하자 오히려 유저들이 눈을 번뜩이며 몰려드는 게 아닌가? "이, 이게 대체 무슨‥‥‥?" 쥬르는 유저들의 반응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아크의 입가에는 희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후후후, 혹시나 싶어서 생각한 방법인데 효과 100점이군.' 유저들이 주문서를 겁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 때문이었다. 일단 방송을 빌미로 돈 한 푼 안들이고 유저들을 끌어들인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역시 쥬르 일당이 정말 카오틱 주문서를 사용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수 없었다. 물론 방송을 하고 있으니 비겁하게 도망가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선두에 나서서 전투에 임하기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으리라. '유저들이 주문서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아크는 곧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게 바로 유저들의 가방 속에 하나씩은 들어 있는 계약서였다. 그 계약서의 약관을 보자면 이렇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 아크 상점=보험 가입 유저>> 보험게 가입하는 유저는 자신이 소지한 아이템 가운데 하나를 지정해서 가격의 5%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불하면 계약이 발효됩니다. 그리고 란셀 전투에서 도적단에게 당해 대상 아이템을 떨굴 경우, 아크 상점은 가격의 200%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습니다. "이건‥‥‥ 보험?" "네, 사실 저는 이 마을에서 유명한 아크 상점의 오랜 단골입니다. 점장과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하고 취급하는 물건도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기로‥‥‥. 흠흠, 어쨋든 이번에 여러분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아크 상점의 점장과 잠시 의논해 봤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여러분에게 보험 서비스를 지공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아크는 보험 영업 사원처럼 계약서를 보여 주며 말했다. "약관에 나와 있듯이 가지고 계신 아이템 중에서 귀중품이 있따면 미리 목록을 신고하고 시세의 5%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내면, 전투 시 혹시 아이템을 떨굴 경우, 시세의 200% 가격으로 보상해 드립니다." "저, 정말입니까?" 아크의 말에 유저들의 눈이 솥뚜껑만 해졌다. 이번 전투에서 유저들이 가장 걱정하는게 바로 장비품을 떨구지도 모른다는 점! 그런데 미리 5%의 보험금만 내면 장비품을 떨궈도 200% 가격을 돌려받을 수 있다니? 오히려 장비품을 떨구면 이득이라는 말이 아닌가?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겨 본 유저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아크 피해 보상 보험'에 가입했다. 어쨌든 덕분에 쥬르 일당의 주문서는 더 이상 유저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주문서를 얻어맞기 위해 쫓아다닐 정도! "뭐, 이런 놈들이‥‥‥." 쥬르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크의 또 다른 꼼수가 숨어 있었다. 애지중지하는 장비품이지만 레벨 100~150의 유저들이다. 그들이 착용한 장비품의 가격은 가장 좋은 거라도 수십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쥬르 일당이 '범죄 파일'에서 사용한 주문서의 가격은 한 장에 수 골드에서 수십 골드! 솔직히 말하자면 주문서를 사용해 장비품을 빼앗아 봐야 그리 남는 장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범죄 파일' 에서 처럼 몇 명을 둘러싸고 있다면 모를까, 전투 상황에서 주문서질이나 하고 있을 여유도 없다. '주문서를 사용한다 해도 처음에 겁을 주기 위해 몇 번. 만약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면 계속 주문서를 사용할 이유가 없어.' 결국 실제로 장비품을 떨굴 유저는 처음 한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 그렇다면 나머지 유저들이 낸 보험금은 고스란이 아크의 주머니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게다가 주문서를 맞은 유저라도 보험에 들어 있지 않은 장비품을 떨구면 100%아크의 수입. 그러나 '범죄 파일'로 잔뜩 겁을 집어먹은 유저들은 3~4개의 장비품을 보험에 들어 놨다. 한 명당 적게는 3~4골드에서 많게는 20골드 이상 보험금을 낸 사람도 있었다. 그 수익만 무려 3,800골드! 몇명에게 보험금을 지급해도 2,500골드 이상의 수익이 보장되어 있었다. 역시 불안 심리를 이용해 하는 장사는 언제나 대박이었다. "후후후, 보험만큼 남는 장사도 없다더니‥‥‥." 유저를 전투에 동원하며 용병 비용을 지불하기는커녕 되려 보험금을 뜯어내는 아크! "정말 살다 살다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 질리다 못해 이제는 아예 무섭다." 샴바라가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안면에 철판을 쫙 깔고 무시했다. "그보다 언제까지 히죽거리고 있을 거야? 너한테 속은 바보들이 기대 이상으로 싸워 주고 있기는 하지만 전력이 달린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어." "알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지. 준비됐지?" "나야 항상 준비 상태지. 어디부터 시작할까?" "그야 당연히 가장 돈이 될 만한 곳이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댑했다. "못 말릴 놈이군." 샴바라는 어쩔수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크와 샴바라는 번뜩이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Typing by 성게군. 작성자:vodd11(협력) 오타 있을시 vodd11@naver.com으로 남겨주세요 Act_5 그들의 발밑에선.. 콰콰콰쾅. 번쩍-! 한 줄기 섬광이 어둠을 찢어발기며 내리꽂혓다. 초저녁부터 잔득 흐리던 하늘에서 급기야 천둥번개를 둥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도 전투의 열기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였다. "우와와아아!" "겁대가리 없는 녀석들, 죽어라!" "닥쳐, 악당들아! 뉴 월드의평화는 내가 지킨다!" 쥬르 일당과 유저들은 쉬지 않고 고함을 질러 대며 검을 휘둘러 댔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수백 명이 얽혀 스킬을 난사해 대니 형형색색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섬광이 흩어지는 빗방울에 반사되어 마치 불꽃놀이를 하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었다. 그 빛의 홍수 속으로 두 명의 사내가 성난 사자처럼 뛰어들었다. "이 자식들, 허접한 주제에.... 아예 몰살시켜 주마! 위대한 바람의 정령이여...." 그때 한 정령술사가 유저들을 노려보며 주문을 외웟다. 광역 마법! 새삼스럽지만 전투에서 가장 위협적인 공격은 바로 마법사의 광역마법이엇다. 자칫 잘못 사용하면 아군까지 말려들어 위험하지만 잘만 사용하면 단숨에 전황을 바꿀수도 있는게 바로 광역마법이였다. 특히 지금 레벨차이가 많이 나는 결사대원과 유저들의 전투였다. 레벨만큼이나 마법 저항력이 낮은 유저는 광역 마법 한 방에 치명상을 입게 되리라. "헉 정령술사다!" 뒤늦게 주문을 외우는 정령술사를 발견한 유저들이 당혹성을 터뜨렷다. "후후후, 이미 늦엇다. 바람의...." 정령술사의 광역마법이 막 발동하려 할때엿다. "어딜!" 어둠속에서 한 사내가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왓다. 그리고 정령술사의 머리를 움켜쥐며 날아올라 무릎으로 턱을 올려쳣다. 따닥, 한창 주문을 외우던 정령술사의 입이 닫히며 주문이 캔슬되었다. 단숨에 정령술사의 주문을 막아 낸 사내가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바닥에 착지하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마음대로 위험한 장난을 하려면 곤란하지." "우욱, 내 이빨..... 헉, 네놈은 아크!" "알아봐 주니 고맙기는 한데 바쁘니까 그만 죽어줘." 아크가 히죽 웃으면 날렵하게 정령술사의 등 뒤로 돌아갔다. 이어 '다크 블레이드'를 날리자 백스텝 데미지를 받은 정령술사의 생명력이 단숨에 30%나 날아갓다. 정령술사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물러났지만, 한 번 포착한 목표물을 쉽게 놔줄 아크가 아니엇다. 아크는 '다크댄싱' 을 펼치며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속사포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크윽, 여기다! 여기 아크놈이있다!" 순식간에 빈사상태에 몰린정령술사가 비명을 질러대며 도망쳤다. 그러자 정령술사의 경호원 역활을 하던 결사대원 서너명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다른 결사대원들의 공격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신경 쓸이유가 없었다. "이자식, 겁도 없이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죽어라!" 결사대원들의 검이 일시에 아크의 등을 향해 쏟아졋다. 그때 돌연 아크의 등 뒤에서 뚝 떨어지듯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들어올 만하니까 들어온 거다, 멍청이들아. 순 개 열 섬! 검은 그림자, 샴바라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확분열되었다. 어둠속에서 푸른 단검이 춤을 추자 네자루의 검이 튕겨져 날아갔다. 뒤이어 샴바라의 신형이 가로지르자 결사대원의 몸에 수십자루의 단검이 쑤셔박혓다. 마나로 만든 단검을 소환해 일격에 열번의 데미지를 가하는 일발십격! '갓 킬러'로 전직한 샴바라의 새로운 스킬이었다. 일발십격에 적중된 결사대원은 중독과 출혈에 걸려 생명력이쫙쫙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샴바라는 '일발십격'에 최상급에 달한 '십자화결'을 연결시키며 결사대원들을 몰아쳤다. 그리고 잠시후, 쥐새끼처럼 도망다니던 정령술사를 토막 낸 아크가 가세했다. "혼자 힘들엇냐?" "까불지마, 이정도는 여흥이야." "그래도 기왕왓으니 도와주지. '다크불레이드!" "쳇, 넘겨줄것 같으냐? 십자화결!" 한때 악실리온을 평정했던 아크와 샴바라의 폐어! 샴바라 하나만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결사대원들은 불과 몇분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휴, 이제 성직자와 마법사는 어느정도 정리된것 같군.' 아크는 거친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번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크는 이런저런 계략을 사용해 쥬르 일당의 전력을 깍앗지만, 역시 전투가 시작되자 전황은 순식간에 쥬르일당의 우세로 기울어졌다. 몇 가지 작전성공만으로는 평균 레벨100이라는 차이를 극복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불리함 속에서도 아직 유저들의 방어 진형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 첫번째 이유는 역시 방송의힘 덕분이였다. 전투 상황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있다, 때문에 유저들은 조금이라도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전투에 임하고있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버티기위해 포션을 물처럼 마셔 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바로 적진에 난입해 활개치는 아크와 샴바라 덕분이였다. 사실직접검과검을맞대는 사람은 선두의 전사지만 실제로 전황을 주도하는 전력은 후위의 마법사와 성직자였다. 마법사의 광역바법과 원거리지원사격과 성직자의 회복마법! 뉴 월드에서 이 두가지를 제외시켜 놓고는 집단전투를 생각할수도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만사를 제쳐두고 적진에 난입해서 마법사와 성직자를 암살했다. 물론 레벨383 어둠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574의 아크라도 수백명의 적이 우글거리는 적진에 뛰어든다는건 모험이였다. 그리고 혼자였다면 레벨이400을 넘었다 해도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지금 아크는 혼자가 아니엇다. '역시 이 녀석과 싸울때는 느낌부터가 달라.' 단숨에 주변의 결사대원을 몰살시킨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아크는 수천명이 엉켜 싸우는 전쟁도 경험해봤고,여러직업을 가진 유저들과 함께 사냥도 해 봤다. 그러나 샴바라와 함께 싸울때만큼 편한 느낌을 받아본적은 없었다. 샴바라와 페어를 짜면 굳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저 부분을 공략해줬으면 좋겠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샴바라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 역시 샴바라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어디로 움직여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알수있엇다. 둘사이에는 작센 방어전과 악실리온의 페어전, 스탄달정복 전쟁을 함게 경험하며 쌓아 온 말로 표혛낳기 힘든 연대감이 존재하는것이였다. '샴바라와 함께라면....!' 그때 잠시 전황을 살피던 샴바라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크, 이번에는 저쪽이다!" 샴바라가 가리킨곳은 란셀방어군의 좌측 방어전형이엇다. 쥬르는 유저들의 저항이 생각보다 완강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레벨 결사대원을 한곳에 집중시켜 돌파를 시도하는중이었다. 고레벨 결사대원들이 집중되자 간신히 방어전형을 유지하던 유저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서둘러, 저 상태면 몇분도 버티지 못할거아!"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진흙바닥을 더듬었다. 그리고 이내 정령술사와 결사대원들이 쓰러진 장소에서 뭔가를 집어들었다. 정령술사의 장갑(마법) 방어구타임:천 장갑 방어력:26 내구력150/150 사용제한:레벨180이상 정령술사 전용 무게:30 사용제한 레벨180이상 정령술사 전용 요정계에서만 발견되는 클레오네의 비단으로 짠 고급마법장갑입니다. 요정의 마력이 담겨있어 정령과의 친화력을 상승시켜 줍니다. <<옵션:지능+20, 정령 마법의 공격력 +5%>> "후후후, 도 한건 했다!' 아크가 흐뭇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가 적진영에 난입한 또다른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서 유저가 NPC마을을 습격하면 '도당'으로 간주되어 직접 살인을 하지않아도 카오턱이 돼버린다. 그리고 카오턱은 사망시 무조건 장비품을 하나씩 떨구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짚고 넘어가야 할점이 있었다. '놈들도 카오턱이 되면 장비품을떨구게 된다는걸 알고 있어, 그리고 전투를 치르면서 한명도 죽지 않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겟지,' 때문에 쥬르일당은 대부분 싸구랴 장비품을 착용하고 있었다, 어짜피 레벨에서 원통하게 앞서나 싸구려 장비품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것이다. 반면 란셀방어군은 노멀이라 주문서를 맞지않는 한 장비품을 떨굴 확률이 낮았다. 또한 보험까지 들어놔 안심하고 마법장비품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그나마 란셀방어군이 쥬르일당의 공세를 버틸수 있엇던 또 다른 이유. '하지만 후방 지원을 하는 마법사나 성직자 그리고 개중레벨이 높은 놈들은 상대적으로 죽을위험이 낮으니 최상까지는 아니라도 마법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크가 위협을 무릎쓰고 적진에 뛰어들어 성직자나 마법사,명령을 내리는 부대장급의 결사대원을 처리하는것을 그런이유때문이었다. 다른놈들에 비해 좋은 장비품을 착용하고 있을 확률이 월등하게 높은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빙고, 역시나 그런 놈들은 70&이상 마법아이템을 떨궛다. 덕분에 아크의 가방에는 이미 30개가 넘는 마법아이템이 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걸 챙길 생각이 나냐?" 샴바라가 흐뭇해하는 아크를 바라보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크가 히죽웃으며 대답했다. "너라면 안하겠지, 그래서 너와 내가 궁합이 좋은거야." "망할놈,헛소리말고 챙길거 다 챙겼으면 서둘러!" "좋아, 가자!" 아크는 샴바라와 함께 놈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뛰어갔다. 그곳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쥬르와 듀크가 직접 고레벨 결사대원을 이끌고 몰아붙이자 선두에서 공격을 받는 유저들은 채 1분도 버티지 못했다. 아크가 미리 유저들에게 그곳의 방어라인의 두텁게하라고 지시해놨지만, 이미 그곳에서만40~50명의 전사자가 나오고남은 유저들도 거의 반사상태에 몰려 있었다. 딱딱딱,딱딱딱딱! 그나마 먼저 이동한 라자크가 '철벽 화염'을 사용해 간신히 방어전형을 유지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쥬르일당이 한번만 더 몰아치면 모래성처럼 허물어질듯이 보였다. "아크, 바로 시작한다! 폭우검!" 샴바라가 쥬르일당이 바글거리는곳으로 뛰어들어가며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수백자루의 단검이 솟아 나오며 수십명의 결사대원에게 전체데미지를 주었다. "이제 내 차례다. 섬아-!" 뒤이어 아크 역시 광역스킬을 사용해 섬광처럼 결사대원을 가로질렀다. 아크와 샴바라의 공역스킬 콤보! 방어 진형을 몰아붙이던 결사대원들이 엄청난 데미지를 받고 휘청거렸다. "다크울프와 푸른검이다!" 아크와 샴바라가 나타나자 유저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동시에 결사대원들의 입에서는 당혹성이 터저 나왔다. 그때 후열에서 지휘하던 쥬르가발작하듯 소리쳤다. "저, 저놈들 죽여라! 최우선 목표를 저놈들로 전환한다!" 쥬르는 방방뚜며 소리치면서도 정작자신은 물러나며 원거리 공격만 해댔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수없이깨져 본덕분에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설사 죽는다 해도 성질같아서는 붙어 보고 싶었지만, 결사대원을 지휘해야하는 입장이라 확실하게 결판이 날때까지는 아크와 접전을 피할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쥬르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전사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전사들의 뒤에서는 궁수들이 활을 당겼고, 마법사들도 일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샴바라가 아크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크!" "알고있어, 이근처에는 분명..... 아하 여기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발로 바닥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자 철컥, 하는 기계음이 울리더니 몇미터 떨어진 바닥에서 독화살이 쏘아져 올라와 막 주문을 완성하려던 마법사들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크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바닥을 내리칠때마다 여기저기에서 화살이며, 폭발이 일어나 궁수와 몰려오던 전사들을 공격했다. "이,이게 무슨..... 헉!" 주문을 외우던 쥬르역시 발밑에서 솟아 올라온 독화살에 데메지를 입고 휘청거렸다. 그 모습에 아크가 히죽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멍청한놈아, 아무리 나라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적진에뛰어들리가 없잖아. 게다가 적이 오는걸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워두지 않았을것 같아?" 공격을 하는 쪽보다 공격을 받는 입장이 유리한게 바로 이때문이다. 원하는 장소에서 충분히 준비를 해 놓고 전투를 시작할수 있다는 장점, 아크는 그런장점을 120% 활용하기 위해 방어전형의 전방에 미리 스위치로 작동하는 트랩을 빼곡하게 깔아두었다. 그러나 쥬르 일당은 중장갑 돌격병이 돌진할때 트랩이 작동하지 않아 구멍 이외의 함정은 없다고 속단해버렸다. 그리고 난전을 하는 와중에도 작동하지 않아 트랩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엇던것이다. "저,저놈이 정말..... 죽여! 죽여라!" "어립없다!" 아크가 또다시 근처에 숨겨 놓았던 스위치를 작동시키자 이번에는 바닥에서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연막 트랩! 갑자기 시야가 가로막히자 결사대원들이 멈칫했다. 동시에 아크와 샴바라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화려한 공격의 향연! "석화 점혈!" "다크 블레이드!" "퍼퍼퍼펑, 콰콰콰쾅!" 아크와 샴바라의 협동 기술이 펼쳐졌다. 샴바라가 '석화 점혈'로 전사 몇놈을 석상으로 만들어버렸다. 행동 불능에 빠지는 대신 방어력이 500%나 상승해 공격하기도 힘들어 지는 스킬, 그러나 곧바로 아크가 '다크 블레이드'로 방어력을 무시한 공격을 퍼부으면 얘기가 틀리다. 석상이 된 전사는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다가 석화가 풀리는것과 동시에 고인이 되었다. 이런 협동기술은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다. 샴바라가 적의 공격을 흘리면 빈틈을 만들어 내면 아크가 허점을 공략해 연속적인 치명타를 터드렸다, 그리고 아크가 발차기로 상대를 경직시키면 여지없이 샴바라의 단검이 급소를 관통한다! 바늘하나 들어갈틈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화! 그러나 아크의 무기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우측10미터 지점궁수, 일점사!" 아크가 멀리서 "정밀사격"을 준비하는 궁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에서 너구리족이튀어나오더니 일제히 대포를 날려댔다. 그렇다. 너구리족의 구멍은 단순히 중장갑 돌격병의 둘진을 막기 위한게 아니었다. 너구리족이 땅밑의 지하통로를 이동하며 전략사격을 하기위한 장치였다. "젠장, 또 저 망할너구리들이!" 결사대원들이 이를 갈아붙이며 너구리족을 향해 검을휘둘렀다. 그러나 너구리족은 마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잽싸게 구멍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대포를 날려댔다. 그렇다고 구멍으로 따라 들어갈수도 없었다. 평범한 유저가 땅굴속에서 지처세계의 주민인 너구리족과 상대할수가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괜히 분에 못 이겨 구멍으로 뛰어들면 중장갑 돌격병처럼 잿더미가 될뿐이었다. 스위치 방식의 트랩과 너구리족! 아크와 샴바라는 단둘이 40여명의 결사대원을상대로도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아크는 그많은 적을 상대하며 스킬을 난사하는데도 생명력과 마나가 거의 닳지 않았다. 바로 약속의 검에 끼워져 있는 '벰피릭 스톤'과 '마나 스틸 스톤'덕분이었다 브래드를 상대할때처럼 상대가 한명이라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마석. 그러나 상대가 많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수십명이나 되는적 모두에게 생명력과 마나를 갈취하는것이다! 거기에 '익스플로전 스톤'도 상대가 많을수록 위력을 더하는 마석이었다 효과가 발동하면 주변의 모든적에게 스플레시 데미지가 작렬하기 때문이다. "우우우우....." "저,저게 다크울프와 푸른검의 전투인가?" "저건.... 말도안돼,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어떻게 둘이서 저 많은숫자를....." 유저들은 전투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둘의전투를 지켜보았다. 만약 이장면을 방송으로 봤다면 상대가 약해서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방금전까지 결사대원들에게 빈사상태까지 두들겨 맞던중이었다. 결사대원들이 약하다고 생각할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아크와 샴바라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말이다! 아니 굳이 상대적으로 비교할 필요도없었다. 일반유저의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 아크와 샴바라가 보여주는 전투는 이미 단순한 비교로 가늠할 수준이 아니었다. "핫, 이, 이렇게 보고만 있을때가 아니야!" "우리도 다크울프와 푸른검님을 도와 악당을 무찌르자!" "우와아아아!" 한참뒤에야 유저들이 정신을 차리고 전장으로 밀려왔다. 아크와 샴바라가 활약을 펼쳣다고 하지만 아직전력은 쥬르일당이 우세했다. 그러나 둘의활약으로 사기가 오른 유저들은 전력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쥬르일당을 공격했다. 반면 수십명이 달라붙고도 단둘조차 처리하지 못한 쥬르일당은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 제대러 반격조차 못하고 주춤주춤뒤로 물러났다. '됐어, 일단 급한불은껏다.' 아크는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눈앞에 떠잇는 15개의 분활영상창을 살펴보았다. 사실 아크가 방송국에 직접영상을 보내겠다고 한 이유는, 단순히 자신에게 유리한 영상만 내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장에 설치된 15개의 카메라를 이용하면 한눈에 전황을 파악하고 대처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할 영상창을 살펴보니 전황은 여전히 란셀 방어군이 불리했다. 이곳은 아크와 샴바라가 서둘러 이동해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그사이에 반대쪽은 또다시 수십명의 유저가 쓰러지고 방어라인이 돌벽뒤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크와 샴바라가 이곳을 제쳐두고 당장지원을 나설수도없는 상황! '....할수없군.' "라카드 작전을 실시해라, 우측 A지점이다." "치익,치익 알았다. 라저." 아크가 원격통신을 보내자 위성모드로 떠있던 라카드가 폭우를 뚫으며 날아갔다. 그리고 목표상공에서 쥬르일당의 머리위로 활강을 시작했다. "작전 지역에 도착했다. 오버!" "좋아,작전을 개시해라!" "옛설!" 쌕쌕쌕,쌕쌕쌕쌕! 동시에 라카드의 발에 매달려 있던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라둔의 입에서 가짜란셀에서 봤던 폭탄 철구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아크가 가짜 란셀에 사용한 '화염석'이 절반밖에 되지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라카드의 발에 매달린 라둔이 폭탄을 떨구자 일대가 완전히 화염에 잠겨버렸다. 비행 몬스터와 가방몬스터를 이용한 융단폭격! 아크의 분할 영상창에도 난데없이 폭탄세례를 받은 결사대원들이 화염에 삼켜지는 장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가짜 란셀에서는 생명력이100%인 상대에서 폭발에 휩싸였지만, 이번에는 계속된 전투로 생명력이 소모된 상태에서 폭발에 휘말렸다. 결과는 치명적! 일대의 결사대원들은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오오오, 지금이다! 공격!" 공중 지원에 다시 전의를 되찾은 유져들이 결사대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라카드와 라둔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라둔 대원, 건투를 빈다. 임무를 완수하면 예정 지점에서 대기하라!" 저공비행을 하던 라카드가 라둔을 낙하시켜 척 경례를올려붙였다. 그렇게 전장에 투입된 라둔은 엄청난 속도로 기어다니며 쉬지않고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그러자 곧 전장에서 유저들의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어라? 카오틱을 죽였는데 왜 장비품이 안떨어지지? 그사이에 벌써 누가 챙겼나?" 그렇다. 전장에 투입된 라둔의 임무가 바로 이것이었다. 융단폭격과 유저들의 반격으로 속속 쓰러지는 결사대원, 당연히 바닥에는 사망한 숫자만큼의 장비품이 떨어졌다. 라둔은 바로 이 장비품 회수 작전을 위해 전장에 뛰어든것이다. 물론 이 작전은 위험이 따랏다. 아크가 1대 다수의 전트를 자주하게 되면서 라둔혼자전장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챙기는 일도 이제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적은 유저. 멍청한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수상한 뱀이 전장을 돌아다니면 공격 목표가 될 가능성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난전중에서는 들키지 않을거야.' 아크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얼마전 라둔에게 새로 생긴 스킬때문이었다. 소환수 '라둔'이 아라모네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아라모네는 유계에서 살아가는 신비한 뱀의 일족입니다. 그러나 잡템을 삼켜 보관하는 습성때문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냥군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포획되어 현재는 멸종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불운한 역사를 가지고있기에 아라모네는 오래전부터 사냥꾼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최후의 아라모네에게 '성장의 결정'을 흡수한 라둔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런 아라모네의 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보호색(초급,종족특성): 라둔의 피부색을 주변환경에 동화시켜적에게 발견될 확률을 낮춥니다. 초급 보호색은 주변 환경과 기본 60%의 동화율이 적용됩니다. 그러나 밤이나 악천후, 수풀등 적의 시야를 제한하는 각종 환경에 따라 동화율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주변환경과 60% 동화, 발동시 10초당 5마나 소모>> 혼자숨어 다니며 전리품을 챙기는 훈련을 시키다 보니 아라모네의 능력을 각성한 것이다. 덕분에 라둔이 '보호색'을 발동시키면 낮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찾아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현재 전장은 '밤'과 '폭우' 진흙이라는 악조건이 3개나 중첩된 상황! 동화율에 추가보너스가 적용되어 90%에 달했다. '야간투시'나 '인지(숨어있는적을 발견하는스킬)'따위를 사용해도 작정하고 나서지 않는 한 쉽게 찾을 수없는 상태인 것이다. 주위와 완전히 동화된 라둔이 전장을 가로지르며 쉴새없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라둔이 '강철 판금 방패'를 습득했습니다. -라둔이 '무명인의 활'을 습득했습니다. -라둔이 '실키안의 검'을 획득했습니다....... '우하하하! 좋아,좋아. 다 먹어 치워라!'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도 쉴새없이 정보창이 올라왔다. 비록대부분은 일반 장비품이었지만 이정도 숫자가 되면 이미 대박이다. 쌕쌕쌕, 쌕쌕쌕쌕! 순식간에 주변의 장비품을 싹쓸이한 라둔이 안전지대로 이동해 임무완료를 보고했다. 그러자 주변을 비행하던 라카드가 재빨리 라둔을 잡고 날아올랐다. "궁수부대 회수완료, 다움작전 지역의 지시를 바란다. 오버!" "다음작전 지역은 전방30미터 지점이다." "라저,폭격 준비!" 라카드가 밤하늘을 날아가자 곧 그지역에서도 화염이 일렁였다. '좋아 모든게작전대로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남은건......' 아크는 분할영상창을 주시하며 전황을 살펴보았다. 현재 전황만을 살펴본다면 그리 좋다고는 할수없었다. 아크와 샴바라, 소환수들의 노력덕분에 간신히 방어라인이 유지되고있엇지만, 이미 유저들은 250명이상이 죽었다. 그리고 남은 150명도 남은 생명력이 10~30% 사이를 맴돌고 있었다. 반면 쥬르일당은 아직 350명 이상 살아있었다. 압도적인열세! '하지만 이건 계획대로 진행된 결과야.' 사실 쥬르일당이 그렇게 많이 생존해 있는것은 아크가 의도한 바도 직지않게 작용했다. 보통 집단전투에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 가장많이 사용하는 전략이 바로 일점사다. 일단 한명에게 공격을 집중시켜 확실하게 적의 숫자를 줄여가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분산시켜 숫자를 줄이기보다는 적의 생명력을 깍아놓는데만 집중했다. 현재 결사대원의 평균 생명력은 30~40% 250명 유저들의 목숨을 희생한 대가였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다!' 승부수를던질때라고 판단한 아크는 품에서 폭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불을붙여 전력을 다해 하늘로 집어던지자 곧 밤하늘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그때였다. 돌연 전장 좌우의숲이 들썩이며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발톱을 세우고 엄청난 속도로 전장을 향해 돌진하는 자들은 바로 수인족! 바로 란셀의 진짜 병력, 월랑족과 묘족이었다. 그렇다. 아크는 몇 번이나 방어 라인이 무너지려는 위기상황에서도 월랑족과 묘족을 움직이지 않았다. 수인족의 레벨은 월랑족이 300 전후, 묘족이 200전후였다, 만약 그들이 처음부터 참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싸울수있었으리라.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단순히 란셀마을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었다. NPC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때문에 유저들을 동원해 결사대원의 생명력을 최대한 깍은뒤에야 수인족을 출전시킨것이다. 덕분에 수인족은 생명력도 마나도 100% 기력이 넘쳤다. 반면 결사대원은 30~40%에 오랜 전투로 마나가 바닥을 드러낸 상황! "크르르르, 이놈들, 감히 우리의 보금자리를 노리다니!" "냐아아아, 분노의 고양이 펀치다!" "멍멍멍멍!" "냥냥냥냥!" 좌우에서 수인족들이 모여들자 결사대원들의 생명력이 쫙쫙 빨려나갔다. 그러나 쥬르를 경악하게 만든것은 수인족이 아니었다. 바로 수인족의 선투에서 무지막지한 대검과 마법을 난사하는 두사람이었다. 바로 브레드와 레디안! 그렇다, 양쪽에서 수인족을 지휘하며 전장에 난입한 사람은 바로 브리스타니아 최강 폐에 브레드와 레디안이었다. "어, 어째서 형님과 누님이.....!" 쥬르가 믿어지지않는다는 얼빠진 포정으로 떠듬거렸다. 브레드와 레디안은 콧방퀴를 뀌며 쥬르를 노려보았다. "닥쳐, 개를못살게 구는놈들은 모두 내적이다!" "고양이를 못살게 구는놈은 내 적이다!" "개? 고양이? 그게무슨..... 아니 그보다 형님과 누님, 설마 헤르메스 연합과 적이되겠다는 겁니까?" "헤르메스 연합? 호오, 연합은 탈퇴한게아니었나?" "핫!" 쥬르가 움찔하며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브레드가 코웃음을 치더니 대검으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 "훗, 네놈들이 어디서 무슨짓을 하든 상관없어. 그리고 애초에 난 네놈들과 친구가 된 기억도없다. 나는 그저 네놈들이 동물을 학대하는걸 두고볼수 없었을 뿐이다! 불만이면 덤벼라. 두번다시 이런 못된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주마! "이, 이런 빌어먹을......! 막아라! 개와 고양이 떼를 박살내!" "우와아아아!" 결사대원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달려들었다.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개를 괴롭히지 못한다. "대지폭풍!" 그러나 '수흔 빙의'로 각종 동물 영혼을 빙의시켜 능력치를 뻥튀기한 브레드가 대검을 휘둘렀다. 레벨 410대에 달한 브레드가 50%의 보너스를 받으며 휘두른 대검! 순간 엄청난 돌풍이 일어나며 달려들던 결사대원들이 추풍낙엽처럼 튕겨 나갔다. 묘족에게 달려들던 결사대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흥, 사내가 되서 한다는것이 도적질이냐? 게다가 하필이면 고양이가 평화롭게 사는 마을이라니, 비록변태지만 너희 같은녀석들보다는 브레드가 100배 나아! 이몸이 그 썩어빠진 근성을 잿가루로 만들어 주지. 고속영장 발동. 최상위마법 봉인 해제! 지옥의 밑바닥에서 타오르는 꺼지지않는 불꽃이여! 엘리멘탈 마스터 레디안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땅에 강림하라. 볼케이노 오브 헬!" 레디안이 마법을 시전하자 주변에 거대한 마법진이 만들어 졌다. 뒤이어 마법진 주변이 지진을 일으키듯 흔들리더니 대지가 쩍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이 뿜어져 올라왓다. 그러나 레디안의 마법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레디안이 곧바로 '라바 레인'이라는 연쇄스킬을 발동시키자 하늘로 솟아올랐던 용암이 그대로 불덩어리 우박이 되어 일대에 용단폭격을 퍼부었다. 레벨400대의 엘리멘탈마법사가 구사하는 최상위 마법! 쥬르가 사용하는 화염 마법따위하는 비교도 할수없었다.'역시..... 수인족은 저둘에게 맡겨놓으면 안심할수 있어!' 아크가 브레드에게 월랑족, 레디안에게 묘족의지휘를 맞긴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개와 고양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둘이라면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온몸을 던져 월랑족과 묘족을 보호해주리라. 그리고 아크의 예상대로 들은 수인족이 위험해질것 같은 상황이닥치면 대신검을 맞으면서까지 막아 주었다. "어쭈? 감히내앞에서 개를 건드려? 살기싫지?" 월랑족대신 검을 받아낸 브레드가 어금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멋모르고 검을 휘둘렀던 결사대원은 대검에 으스러져 버렸다. '이제 놈들의 전황이 압도적으로 불리해졌다. 내 예상대로라면....." 아크는 약간 뒤로 물러나 분할 영상청을 바라보며 상황을 주시했다. 그때, 쥬르와 듀크 그리고 고레벨 몇명이 재빨리 수인족을 향해 이동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움직임에서 아크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샴바라 역시 상황을 파악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교환한 아크와 샴바라는 양쪽으로 갈라져 엄청난속도로 놈들의뒤를 따라붙엇다. 그리고 막 쥬르가 비장의 스킬을 발동시키려 할때였다. 아크가 쥬르의 옆으로 달라붙으며 멀리 떨어진곳에서 같은스킬을 발동시키려는 듀크를 향해 주문서를 발동시켰다. "『자력』!" 아크는 『자력』으로 듀크를 빨아당기며 "전력질주"를 사용한 쥬르를 향해 달려갔다. "헉! 뭐,뭐야?" 듀크가 강력한 자력에 끌려오며 당확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듀크보다 더 당황한 사람은 쥬르였다. "이,이런 아크? 아, 안돼!" 그렇게 듀크가 쥬르의 옆으로 끌려왔을 때였다. 돌연 진흙바닥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나오다가 격렬한 폭음과 함께 사라졌다. 그것은 바로 2차전직을 한 유저만이 사용할수있는 영역선포였다. 아크는 이미 '고양이의 눈'을 사용해 쥬르와 듀크 그리고 결사대원중에 두명이 2차전직을 한 상태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만약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놈들은 틀림없이 2차직업의 필살기 영역 선포를 사용하리라. 물론 놈들이 영역선포를 사용하면 아크나 샴바라같은 스킬로 없애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럴경우 아크와 샴바라 역시 영역선포가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게 놈들이 스킬을 발동시킬때 『자력』을 이용해 충돌시키는 방법! 그러나 『자력』의 유효범위는 수십미터, 반면영역선포를 사용하기 위해 놈들은 100여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상태였다. 때문에 ㅎ을발동시키며 '전력질주'를 사용해 최대한 듀크를 끌어당긴 것이다. 그리고 반대방향으로 뛰어간 샴바라 역시 2차직업을 가진두놈을 충돌시켜 영역 선포를 봉쇄시켜 버렸다. 놈들의 비장의무기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것이다. "너, 너이자식.....!" 쥬르가 아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렇게 이빨이나 갈고 있어도 될까?" "뭐?" "2차전직은 너희들만 할수 있는게 아니잖아?" "오, 이제야 마음놓고 사용할수 있겟군! "야수의 대지"!" 오른쪽에서 브레드가 대검으로 바닥을 내리찍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거대한 토텔이 대지를 가르며 솟아올랐다. 그러자 거대한 토텔이 대지를 가르며 솟아나오더니 주변에 푸른잔디가 좌악깔렸다. 동시에 브레드가 황금색털에 뒤덮이며 온몸의 근육이몇배나 커졌다. 그리고 브레드의 양옆에서 반투명한 늑대두마리가 나타났다. 비스트마스터의 영역 선포 스킬 '야수의 대지'가 발동한것이다. 공격력과 방어력 +50%! 거기에 물리데미지를 받지 않는 늑대의 영혼을 소환해 적을 공격하게 할수있는 효과를 가진영역 선포였다. "가라, 용맹한 늑대의 영혼이여!" 아오오오오-! 브레드의 명령에 늑대의 영혼이 화살처럼 날아가 주변의 결사대원을 물었다, 그렇게 늑대의 영혼에사로잡힌 결사대원은 뒤이어 날아온 대검에 피를 뿜어대며 쓰러졌다. "흥, 너혼자만 재미 보게 놔둘수는 없지. '불과 얼음의 대지'!" 이번에는 왼쪽에서 레디안이 영역 선포 스킬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직경 100미터 공간에 얼음덩어리와 화염이 솟아 올라왔다. 마법 공격력이 +50%에 화염과 얼음마법에 대한 추가데미지 500! 거기에 불과 얼음의 공간에 들어선 적은 지속적으로 화염과 얼음속성의 데미지를 받게 되는 영역 선포였다. 브레드와 레디안, 레벨 400대의 유저들이 영역 선포까지 사용했다. 고작 250~300의 결사대원들이 영역 선포공간안에서 둘의 상대가 될 리없었다. "피,피해!" "도망쳐라, 영역선포는 그 지역에서밖에 효과를 발휘라지 못한다!" 결사대원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후퇴했다. 그러나 뒤에는 아크와 샴바라가 있었다. "나는 만만해보인다 이거냐?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왠지 약한놈 취급받는거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군. 할수 없지. 영역선포 혈하血河"! 순간 샴바라 주변의 땅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발목까지 잠기는 피의 강으로 변해 버렸다. 공격력과 벙어력 +50%에 백스텝 성공시 200%의 추가데미지가 가산되는 효과를 가진것 킬러 샴바라의 영역선포 혈하! 영역 선포를 발동시킨 삼바라가 '순보瞬步'를 사용해 번특이는 속도로 결사대원의 등뒤로 돌아가 검을휘두르자 일격에 100%씩 생명력이 깍여 나갔다. "이제 결정났군." 아크와 전장에서 발동한 세명의 영역 선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결사대원들은 수인족과 유저들에게 둘러싸여 도망갈 방법도 없었다. 무리하게 포위망을 뚫으려고 해도 영역 선포중인 브레드와 레디안, 샴바라가 그냥 두고 볼리가 없는것이다. "자, 이제 내 차례인가?" 마지막으로 아크가 영역 선포를 사용해 승부에 쐐기를 박으려고 할 때였다. 식은땀은 뚝뚝 흘리던 쥬르가 갑자기 발작하듯 소리쳤다. "제,젠장, 이대로 실패할수는 없어! 자살특공대, 이렇게 되면 최후의 수단이다! 란셀로 돌격해서 마법탑과 아크상점을 폭파하라! 결사대의 영광을 위해서!" "뭐? 자살특공대?"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궁지에 몰려있던 결사대원 수십명의 눈빛이일변했다. 그리고 갑자기 가방에서 심지같은 물건을 꺼내 머리에 꽂았다. 심지에서 불길이 일어나며 맹렬한 속도로 타들어갔다. 그렇게 심지에 불을붙인 결사대원은 결연한 표정으로 동료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란셀 입구로 막고 있는방어라인을 향해 돌진했다. "먼저간다. 결사대의 영광을 위해서! 우아아아아!" 콰콰콰콰콰쾅! 결사대원이 충돌하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수십명의 유저들이 날아갔다. "화염석"을 이용해 만든 폭탄따위는 비교도 안되는 폭발력! 이게 바로 결사대의 비장의무기, '자폭'을 익힌 자살특공대의 위력이었다. 자살특공대 몇명이 폭발하자 방어라인이 단숨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미쳐 손쓸 새도없이 방어라인을 뚫은 자살특공대가 란셀마을에 난입했다. "막아, 놈들을 막아라!" 당황한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자 너구리족이 구멍속으로 자살특공대를 잡아넣었다. 그러나 판단 실수였다. 구멍속으로 떨어진 자살특공대가 폭바하자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란셀의 땅속에는 너구리족의 지하통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같은 자살특공대가 폭발하자 일대의 지반이 허물어지며 순식간에 간믈몇채가 주저앉았다.땅속에 숨어있던 너구리족은 말할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마을로 난입한 자살특공대가 근처 건물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아크의 눈앞에 경고 메세지가 떠올랐다. -란셀 마을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 '맙소사!' 아크의 등으로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모든작전에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생각해 너무 방심했다. 설마 란셀에서 잡힌 놈들이외에도 자살특공대가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어쨋든 자살특공대가 마을에 진입해 버렸으니 상황은 심각해졌다.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도 NPC와 마을의 피해가 30%를 넘어서면 미션은 실패! 게다가 놈들의 제1목표는 아크 상점이다. 아크상점이 폭발하면 아크의 전재산이 잿더미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이렇게 되면 같이 죽는거다!" 쥬르가 맛이간 눈으로 아크를 노려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사실 지금까지 쥬르가 자살특공대를 사용하지 않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엇다. '자폭'은 엄청난 위력만큼 사용하는 유저에게도 엄청난 패널티가 작용한다. 자살특공대가 익힌 '자폭'은 마법사가 마나를 이용해 자폭하는것과는 전혀 달랐다. 엄청난 카오틱수치를 이용해 배우는 '자폭'을 사용해 죽으면 정상적인 사망의 다섯배에 해당하는 패널티가 부과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모든 스탯 -5에 부활까지 5일이 걸린다는말이다. 또한 '자폭'을 사용할당시에 입고잇던 모든장비의 내구력이 80%이상 깍인다. 20%이상 내구력이 깍인상태라면 모든 장비가 날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결사대원들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죽느냐, 아니면 최소한의 목적을 달성하고 죽느냐만 선택할수 있을뿐. 그리고 결사대원들은 후지를 선택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그사이 또다시 폭음과함께 건물 몇채가 무너졌다. 그리고 한놈이 드디어 아크 상점을 향해 투신했다. 그때 갑자기 지면에서 철판을 두른 방벽이 솟아 올라오며 자살특공대를 막았다. 바로 너구리족에게 부탁해 설치해 놓은 방벽! 그러나 그런 방벽조차 '자폭'에 출돌하자 한방에 산산조각 났다. 이제 또다시 자살특공대가 돌진하면 아크 상점도 방벽처럼 박살이 나리라! '안돼. 그것만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궁제이 몰린 아크가 와락 시선을 돌려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그때아크의 머릿속에 번뜩이며 해결방법이 떠올랐다. 놈들이 자살특공대를 이용해 최후의 공격을 한다면 이쪽도 자살특공대를 이용하면 그만이다. 놈들이 심지를 부착하면 폭발까지 대략 10초남짓 유저들을 이용해 10초만 발목을 잡으면 되는것이다. 문제는 과연 유저들이 기꺼이 자살특공대와 함께 죽어주느냐는 점이었다. '자폭'에 의해 죽으면 공격을 받는사람도 모든 장비의 내구력에 50%에 가까운 피해를 입는다. 그리고 유저들은 이미긴 전투로 장비품의 내구력이 50%이상 깍여있는 상황! '자폭'에 휘말리면 장비품 대부분이 박살이 나리라! 그러나 아크는 유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내용을 일깨워 주었다. "놈들을 막아라! 계약은 약탈당한 것뿐이였지만, 이제 장비품이 날아가도 보험금을 지급해주겠다!" 그렇다, 이곳의 유저들은 대부분 '아크 피해 보상 보험'의 가입자! 본래 계약은 장비품은 약탈당했을때 보험금을 지급해 준다는 약정이었지만 아크는 자살특공대에 대해서는 장비품이 깨져도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200%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받을수 있는것이다! 물론 유저들의 장비품이 많이 날아갈수록 아크는 손해지만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었다. "또한 자살특공대를 막으면 결정적으로 란셀을 구한영웅이 될수있다! 단,보험금을 지급하는것은 처음 자살특공대를 붙잡은 사람에게만이다. 한놈에게 여러명 달라붙어도 보험금은 지급하지 않는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꼼꼼하게 계약 내용을 조종하는 아크였다. 어쨋든 아크의 발언에 유저들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뭐? 장비가 부셔져도 보험금이 나오는거야?" "게다가 몸을 던져 란셀을 구한 영웅이 될수도있다!" "오오오, 돈과 명예를 한번에 얻을수 있는 기회다!" "내가, 내가 막겠다!" "아니, 나는 150%만 줘도 하겠다!" 급기야 돈과 명예에 환장한 유저들은 자신의 몸을 덤핑으로 팔아넘기기까지 했다. 그리고 행여 선수를 빼앗길세라 구름처럼 몰려가 심지를 붙인 자살특공대의 몸에 달라붙었다. 자살특공대가 온몸을 흔들며 떨쳐 내리 했지만 이쪽도 죽음을 각오한...... 아니, 제발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자살특공대다. 결국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에 심지가 타들어 갔고, 양측의 자살특공대는 동반 폭사해 버렸다. -란셀 마을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막아 냈군.' 아크는 정보창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나 자살특공대를 막아낸 유저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한다. 그들이 보험에 든 장비품의 200%를 지급해야 하니 만만치 않은 금액이리라. '그게 다 이놈때문이다! 으드득!'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쥬르를 돌아보았다. 그때 쥬르는 하얗게 타 버린 몰골으로 넋을 놓고 있었다. 란셀 약탈 계획이 저지당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같이 망하자'라는 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결사대원들은 영역선포를 발동시킨 샴바라,브레드,레디안과 수인족에게 쥐어터져 절반이상이 빈사상태까지 몰려버린것이다. 그야 말로 목숨을 걸고 작전에 나섰던 쥬르는 정신이 나간채로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다. "이,이게 현실일리가 없어...... 그래, 이건 꿈이야..... 우후후후, 사실은 습격 직전에 잠깐 쫄면서 꿈을 꾸고있는걸 꺼야.... 꿈이야.... 꿈이라야해......" 그때 돌연 쥬르의 발밑으로 시커먼 형체가 몰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쥬르의 눈앞에 둥둥떠서 검은기운을 뿜어내는 물체가 나타났다. 어둠의 정령 다크, 아크가 다크소울의 영역 선포 '영광의 밥'을 발동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경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화룡강림!" 아크의 외침이 터지자 돌연 대지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길이 일렁이는 비늘을 휘감은 거대한 화룡! 화룡은 피 바람이 몰아치는 밤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벼락처럼 떨어지며 아크의 몸에 휘감겼다. 일대에 엄청난 화염 폭풍이 몰아쳤다. 화염이 일어나자 바닥에 고여 있던 물이 단숨에 수증기가 되어 주변을 뒤덮었다. "크아아아악!" 불길에 그을려 시커멓게 변한 쥬르가 멍한눈으로 수증기속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서있는 사람은 전신에 화룡을 휘감은 아크였다! 신격 스킬 [화룡강림]이 발동됐습니다! 10분간 <<불멸의 화룡>>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발동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스킬 발동시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50%증가합니다. +스킬 발동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적에게 10~100의 화염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500% 파티원의 화염저항력을 100%상승시킵니다. +스킬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적에게 1000의 화염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대 생명력의 50%가 회복됩니다. "자, 어떻게 죽여줄까?" 아크가 싸늘한 눈으로 쥬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뒤이어 한마리 화룡으로 변한 아크가 번뜩이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크가 움직일때마다 바닥을따라 화염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리고 연속적인 폭움이 울리며 결사대원들이 펑펑 날아갔다. 유저들은 그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2차 전직을 한 유저가 많지는 않지만 이제 더러 볼수 있엇다. 때문에 게임에서든 TV에서든 영역 선포 스킬은 종종봤지만 신격 스킬을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쨋든 신격 스킬의 위력은 발군! 쥬르일당은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쳤지만, 아크의 영역을 넘어가면 바로 샴바라나 브레드, 레디안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수인족과 유저들이 외곽을 포위하고 공세를 퍼부어 도망갈곳이 없었자. 그러나 아크와 샴바라,브레드,레디안은 물론 수인족도 결사대원의 생명력을 1~2%까지 깍으면서도 정작죽이지는 않았다. 그건 아크가 유저들을 지휘하면서도 결사대원들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와 같았다. 그건 바로...... "지금이다!" 아크의 목소리에 란셀마을안에서 100여명의 병력이 몰려나왔다. 전직 도적들로 구성된 란셀의 경비대원! 그렇다, 아크가 가능한 결사대원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놈들이 유저나 수인족에게 죽으면 24시간 뒤에는 부활한다. 그때 또다시 병력을 규합해 한셀을 공격해 올 가능성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경비대원에게 죽으면 감방에 갇히게 된다. NPC마을을 공격해 카오틱 만땅이니 한 달 이상은 푹푹 썩게 되리라. 때문에 아크는 마지막까지 경비대원을 따로 빼놓고 있었던 것이다. "헉, 겨,경비대원!" "주,죽여줘! 차라리 지금 죽여줘!" 경비대원이 출현하자 쥬르일당은 완전히 폐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심지어 어떤놈은 동료를 붙잡고 죽여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그러나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이미 늦었다. 놈들의 샌명력은 고작 1~2% 아무리 레벨이 200전후밖에 되지않는 경비대원이라도 검으로 툭치기만해도죽일수 있는 상황이다. 경비대원이 진격하자 쥬르일당은 우수수 바닥에 쓰러졌다. 그렇게 불과5분, 결사대원은 물론 쥬르조차 이렇다 할 손도 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동시에 샴바라,브레드,레디안의 영역 스킬도 해제되었다. 유일하게 늦게 영역 선포를 사용한 아크만이 아직 화룡을 휘감고 전장중심에 우뚝 서 있을뿐이었다. 아크는 잠시 쥬르와 결사대원들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주먹을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정의의 승리다!" 유저들은 넋 나간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이,이겼다!" "해냈다! 우리는 이제 영웅이다!" "500이나 되는 도적단을 우리가 물리쳤다!" "오오오, 란셀 방어군 만세! 다크울프 만세!" "다크울프야말로 진정한 전신이다! 무적이다!" 치열한 전투끝에 살아남은 유저들이 고함을 질러대며 날뛰었다. 그러나 승리의 열기에 들뜬 유저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것이 있었다. 왜 지금,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아크가 어울리지 않는 제스처까지 취하며 유저들을 선동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바로 유저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발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꺼억. 유저들의 발아래로 배가 빵빵해진 라둔이 슬그머니 기어나왔다. 쉬지않고 몰아치던 비바람이 점차 멈춰져 갔다. 길었던 밤이 끝나고 여명이 밝아 왔다. ------------------------------------------------------- 아하.../// 2009년 2월 7일 완료. 제가 쓴거 읽어보느라고 8일날 올렸습니다. ACT 6 "빌어먹을!" 하명우가 거칠게 문을 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대체 응시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하명우는 서류를 책상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그가 아침부터 이렇게 열을 내는 이유는 바로 어제 방송된 란셀 전투 동영상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동영상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동영상의 주인공이 아크, 바로 글로벌엑서스의 응시자, 그것도 특별 관리 대상이라는 게 문제였다. 새삼스럽지만 기획실에서 응시자를 관리하는 이유는 바로 뉴 월드의 모든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아티팩트 마스터 코드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획실에서도 마스터 코드가 어떤 형태로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현재까지의 정보에 의하면 마스터 코드는 뉴 월드의 시나리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카피 문구처럼 뉴 월드는 무한대의 자유도를 가진 게임이었다. 그러나 뉴 월드에도 나름대로의 시나리오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는 유저들의 성장에 맞춰 하나씩 진행되게 되어 있었다. 유저들의 성장이 빠르면 시나리오 진행도 빨리지고, 성장이 더디면 시나리오 진행도 느려지는 것이다. '마스터 코드를 숨긴 박우성은 잠적할 때 게이머들에게 도전한다는 말을 남겼다. 만약 마스터 코드를 우연히, 혹은 운으로 찾아낼 수 있는 곳에 숨겼다면 그런 말을 남겼을 리가 없어. 박우성이 만들어 놓은 몇 가지 관문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마스터 코드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가 분명하다.' 그리고 메인 디자이너였던 박우성이 준비한 관문이라면 당연히 시나리오. 때문에 기획실에서는 지난 2년동안 응시자로부터 레포트와 동영상을 검토해서 각종 퀘스트가 시나리오와 어떻게 연동되는지, 이후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진행 될지에 대해 조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를 관리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했다. 마스터 코드가 뉴 월드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유저라면 누구나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만약 마스터 코드에 대한 정보나, 응시자들의 게임 정보가 유출되어 다른 유저가 손에 넣기라도 한다면 글로벌엑서스의 입장은 난감하기 그지없어진다. "마스터 코드는 말 그대로 뉴 월드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프로그램 입니다. 만약 마스터 코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수만 명에 달하는 유저의 정보를 한 번에 삭제할 수도 있고, 일부러 시스템 오류를 일으켜 게임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게 게임 개발자 가운데 한 명이 말했던 내용이다.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글로벌엑서스는 수천억 원대의 피해를 입으리라. 그러나 그정도는 마스터 코드로 할 수 있는 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악의 상황은 따로 있었다. "게다가 뉴 월드는 뇌에 직접 연결되는 시스템입니다. 만약 뉴 월드 전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한다면 그 버그가 유저의 뇌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유저는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될 확률이 있습니다." 그렇다, 가장 우려하는 상황은 바로 그것이었다. 애초에 가상현실 게임이 뇌와 연결되는 시점에서 항상 이런 위험은 존재했다. 때문에 모든 가상현실 게임은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 뉴 월드 역시 마찬가지. 문제는 바로 이 안전장치마저도 마스터 코드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마스터 코드를 가진 사람이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시스템을 폭주시킨다면 수만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막대한 정보가 유저의 뇌에 역류된다. 뇌의 한계를 넘어서는 엄청난 정보량! 그 정보의 폭탄을 맞은 유저는 퓨즈가 날아가 뇌사상테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마스터 코드가 알지도 못하는 유저의 손에 들어간다면? 최악의 경우 조 단위의 돈을 투자해 뉴 월드의 기동을 중지시켜야 하는 상황을 초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마스터 코드는 글로벌엑서스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할 수만 있다면 수만 명의 요원을 풀어서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규모로 움직인다면 정보의 보안 유지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경쟁사에서 마스터 코드에 대한 정보를 알아챈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마스터 코드가 경쟁사에 넘어가는 건 둘째 문제다. 만약 경쟁사에서 마스터 코드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면 유저를 뇌사로 물고 갈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도 뉴 월드를 상용화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현재로써는 마스터 코드를 찾는 것보다 마스터 코드에 대한 정보를 숨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응시자라는 이름으로 정예요원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응시자가 게임 정보를 마음대로 흘리다니.' 소식을 들은 하명우는 밤새 방송을 몇 번이나 돌려 보며 모니터해야 했다. 그 결과 다행히 이번에는 산골마을에서 유저들 간의 전쟁이라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마스터 코드의 정보에 관련된 동영상이었다면 엄청난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관리자로서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 '그것도 하필이면 특별 관리 대상자의 동영상이……!" "호명환 어디 있어? 당장 불러와!" 하명우가 버럭 소리쳤을 때였다. 동시에 기획실 안으로 호명환이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티, 팀장님. 난리 났습니다!" "난리? 지금 이 문제보다 큰 난리가 어디 있어!" "네? 그게 무슨…… 아니, 그보다 이 데이터를 보십시오. 아침에 홍보실에서 불러서 가 봤는데 이걸 보여 주더라고요. 이건 그야말로 대박입니다!" 호명환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야, 이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스타가 돼 있더라. 설마 그 말이 자신에게 해당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란셀 마을에 도착하고 방어전을 끝마칠 때까지, 현우가 느껴야 했던 부담감과 위기감은 어마어마했다. 이번 전쟁은 다른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단 한 번의 전쟁 결과에 따라 2년 가까이 피땀 흘려 일궈 놓은 모든 게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룡이 맡겨 놓은 장물과 란셀에 투자한 부동산, 아크 상점에 쌓아 둔 각종 상품들. 대충 계산해 봐도 수만 골드에 달하는 금액이다. 수만 골드……. 현실의 가치로 환산해도 수억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 실제로도 사람 한두 명을 살리거나 죽일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그런 엄청난 금전이 단 한순간에 날아가느냐 마느냐가 걸린 전쟁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현우는 지난 이틀 동안 단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비록 게임 속이지만 현우에게는 진짜 목숨이 걸려 있는 전투였던 것이다. '만약 패배했다면 정말 심장마비로 죽었을지도…….' 그러나 다행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벌어진 각종 정보전과 수 싸움은 결국 현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목숨을 걸고 재산을 지켜 낸 것이다. 그 순간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이 툭 끊어졌고, 현우는 그야말로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컴퓨터를 켰다가 입을 퍽 벌렸다. -정말 감격했습니다! -스탄달이 떠오를 뒤로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이런 엄청난 일을 해냈군요. -역시 다크울프입니다. 다크울프야말로 뉴 월드 게이머의 영웅입니다! -다크울프, 다크울프, 다크울프! 현우가 매일 아침 시세를 알아보는 경매 사이트. 뉴 월드의 홈페이지. 그리고 각종 관련 정보 사이트까지. 게시판이란 게시파은 온통 다크울프라는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무슨 연예인도 아닌데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 순위 10위에 랭크되어 있었고, 다크울프라는 이름을 치면 팬클럽이 3~4개나 검색되었다. 심지어 해외에도 팬클럽이 생겼을 정도였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현우는 멍청난 눈으로 모니터를 가득 메운 다크울프라는 단어를 바라보았다. 물론 현우도 란셀 방어전을 방송에 내보내면서 꽤 많은 관심이 집중되리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면 직접 방송국과 교섭해 생방송을 내보내 달라는 요청을 할 생각도 못 했으리라. 그러나 실제 반응은 현우의 예상을 수십 배 이상 초월했다. 현우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모니터를 주시했다. 현우는 골방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에서 현우에 대한―정확히는 다크 울프지만―관심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실감도 나지않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띠리리리. 현우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 여보세요? "다크울프 님이신가요?" "네? 네, 그런데요?" "저는 일전에 통화했던 게임 특종 기자 이윤규라고 합니다." "아! 기자 님, 무슨 일로……?"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정신적인 충격까지 받은 현우가 얼빵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이윤규는 뭔가 설명하려다가 멈칫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 아무래도 전화로 말씀드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동영상에 대한 판권료 문제도 있으니 바로 방속국으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경비실에서 다크울프라고 말하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웬지 서두르는 이윤규의 목소리에 현우는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송국에 도착하자 한 사내가 뛰어나왔다. "아, 어서 오십시오. 다크울프 님이시죠? 제가 이윤규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아침부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요? 있죠, 아주 엄청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엄청난 문제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들어가시지요. 팀장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윤규는 호들갑을 떨어 대며 현우를 방송국 안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게임 특종 회의실에 도착하자 중년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특종 기획을 맡고 있는 팀장이었다. 현우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팀장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팀장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물었다. "혹시 오늘 인터넷에 접속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네? 아, 네……." "오늘 직접 뵙자고 한 건 그 때문입니다." "그 때문이라니요?"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팀장과 이윤규가 서로 마주 보며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현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마치 엄청난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말했다. "오늘 아침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제 내보낸 란셀 방어전의 시청률 말입니다. 그 시청률이 얼마나 됐는지 아십니까? 35%! 무려 35%입니다! 갑작스럽게 기획된 프로그램이라 시작할 때는 7%남짓이었는데 끝날 때는 35%까지 올라간 겁니다!" "……그런데요?" 현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물론 현우도 드라마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으니 시청률 35%가 상당한 수치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연예인도 아니고 시청률이라는 말을 해 봐야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시청률이 잘 나왔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건 게임 특종이 방송된 이래 최고의 시청률입니다. 게다가 처음에 7%에서 시작했다가 35%를 넘긴 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말씀하시는 요지를 잘 모르겠는데요?" 현우가 시큰둥하게 대답했을 때였다. 갑자기 팀장이 일어나 현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계약합시다!" "네?" "지금 전국의 뉴 월드 유저들은…… 아니, 뉴 월드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크울프 님에 대한 관심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다크울프가 누구냐는 문의 때문에 방송국의 홈페이지와 전화선이 마비될 지경입니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연예인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죠. 다크울프 님이 방송에 출연만 한다면 무조건 대박입니다!" '결국 이 말을 하려고 방송국으로 오라고 한 건가?' 현우는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일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방송에 출연할 생각이 없습니다." 얼굴이 팔리는 것도 싫고, 방송국을 오가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몇 번이나 방송국의 연락을 받으면서도 거절해 왔던 것이다. 하물며 지금은 이전보다 더욱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새삼 출연 제의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계약이라면서요?" "그게 그러니까…… 자네가 설명드리게." "네, 이전에는 다크울프 님이 직접 방송에 출연해 달라고 말씀드렸지만, 이번 방송의 시청률을 보고 저희가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윤규의 말에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생각하다니요?" "다크울프 님은 그냥 다크울프 님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실은 저희 팀은 방금 전까지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이번 동영상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됐는지. 물론 '범죄 파일'로 이미 란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또 다크울프 님이 전투를 화끈하게 한 건 다크울프 님이 정체불명의 용사라는 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체불명의 용사?" 네, 다크 울프 님이 유저들 앞에 나선 것은 지금까지 단 네 번. 악실리온과 시르바나 공성전, 스탄달 전쟁 그리고 이번의 란셀 방어전뿐입니다. 아직까지는 그 외의 장소에서 다크울프 님을 봤다는 유저가 없습니다." 당연하다. 그때만 변신하고 있었으니까. 이윤규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다크울프 님 외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유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관심이 시들해졌죠. 나타날 때마다 더욱 관심을 집중시키는 유저는 다크울프 님이 유일합니다. 그건 바로 다크울프 님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동영상을 공개할 때 이외에는 어디서 뭘 하는지, 대체 어떤 유저인지 알 수 없으니 궁금증이 더하고 앞으로 뭘 할지 더욱 기대하게 되는 거죠." 그렇다, 현우에 대한 관심 폭발은 일종의 복면 레슬러와 같은 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번 동영상의 엄청난 시청률의 원인을 파악하던 방송국은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만약 현우를 방송에 출현 시키면 오히려 들끓는 관심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나올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모처럼 시청자들의 관심이 폭주했는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아깝죠. 그래서 게임 특종 기획부에서는 특별 편성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다크울프 님이 게임 속에서 활약하는 동영상을 내보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직접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니 여전히 다크울프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도 있고 다크울프 님도 부담이 없지 않습니까?" 현우는 이윤규의 제안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확실히 그런 방식이라면 현우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사악한 늑대의 유계 탐험'처럼 동영상을 파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다. 방송국에서도 다크울프가 베일에 싸여 있어야 시청률이 높아지니 개인정보가 유출 될 걱정도 없었다. 게다가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따로 뭔가를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글로벌엑서스에 보내기 위해 모든 플레이를 촬영하는 중이다. 방송국은 일주일에 한 번. 10분 남짓의 영상만 필요하니 다크울프로 변한 영상중에서 괜찮은 부분만 골라 보내면 그만. 그것만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고정수입이 생기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기화! '하지만…….' 동영상을 팔아먹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미 현우는 글로벌엑서스와 모든 동영상을 보낸다는 계약을 했다. 그 계약에 의하면 아크가 찍는 동영상의 판권은 모구 글로벌엑서스가 가지고 있었다. 동영상을 TV에 방송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권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란셀 방어전을 치르기 직전에는 미처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방송국에 연락을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그 계약을 생각해 내고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글로벌엑서스가 계약 위반을 걸고넘어지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중 계약으로 고소당할지도 몰라.' 설마 고작 게임 동영상 하나 때문에 국제적 그룹에서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어쨋든 무턱대고 방송국과 계약할 수는 없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그 문제는 따로 상의해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하자 이윤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글로벌엑서스사 말이죠?" "네? 그걸 어떻게?" "실은 오늘 새벽에 글로벌엑서스 기획실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 동영상에 대한 판권 문제를 항의하더군요. 그래서 다크울프 님에게 연락이 늦어진 겁니다." 현우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기획실에서 새벽부터 전화를 해서 항의할 전도면 현우가 생각하는 것보다 문제가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이은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다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다크울프 님의 동영상을 방송해도 상관없다고 하더군요.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곧 사람을 보낸다고……." "아크 님!" 그때 한 사내가 회의실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놀랍게도 글로벌엑서스의 기획부 직원 호명환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댁에 전화를 했는데 이미 방송국으로 출발했다고 하시더군요." 호명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짐짓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나저나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전에 그렇게 계약에 대해 설명했는데 저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동영상을 방송국에 넘기다니요? 그 때문에 제가 팀장님에게 얼마나 깨졌는자 아십니까?" "그게……." "뭐, 됐습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죠." 호명환을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제가 글로벌엑서스의 기획부에서 나온 호명환입니다. 이미 새벽에 저희 팀장님의 전화를 받아 아시겠지만 아크님의 동영상 판권은 글로벌엑서스가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의 끝에 이번 방송에 대한 건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한 게임 특종에서 아크 님의 동영상을 방송한다는 문제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호명환이 목에 잔뜩 힘을 주며 말했다. 사실 게임 제작사는 방송국에서 어깨에 힘을 줄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방속국에서 게임을 다뤄 주면 당연히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건 곧 매출 상승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게임 제작사는 오히려 방송국 직원들에게 로비를 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수백만의 유저를 확보한 뉴 월드쯤 되면 상황이 다르다. 게다가 현우의 동영상까지 시청률 35%의 대박을 친 상황! 덕분에 현우의 전속 계약자인 호명환은 잘나가는 연예인의 매니저처럼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동영상은 먼저 글로벌엑서스에서 확인하고 방송국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먼저 기획실에서 현우의 동영상을 컴토하고 마스터 코드에 대한 단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방송에 내보내겠다는 의미였다. 방송국에서도 딱히 반대할 문제가 아니라 계약은 별문제 없이 이루어졌다. 계약서를 대강 읽어 본 이윤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동영상의 판권료는 10 기준으로 편당 150만원이면 되겠습니까?" '헉! 1, 150만 원?' 계약 따위는 잘 알지도 못하고 이미 글로벌엑서스와 전속 계약이 되어 있어 현우가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던 현우는 방송국에서 제시한 판권료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사악한 늑대의 유계 탐험'때는 200만 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건 2시간짜리 동영상이었다. 또한 특별 공모전에 당첨되어 상금으로 받으 금액이었다. 그런데 불과 10분짜리 동영상 하나에 150만 원! 게다가 일주일 마다 한 번씩 방송되니 한 달에 600만 원! 몇 편이나 방송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한 달에600만 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이다. '이, 이건 대박이야!' 현우는 가슴이 벌렁대는 심정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호명환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150만 원……. 생각보다 좀 적군요." "네?" "이번 방송의 시청률이 꽤 나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도 온통 그 방송에 대한 얘기뿐이죠, 비록 10분이라도 아크 님의 동영상이 연재되면 게임 특종의 시청률이 상당히 오를 텐데 150만 원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게임 동영상에 150만 원이면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그야 그렇지만 150만 원은 좀 기대 이하라……." "잠깐만요!" 그때 현우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잠깐 이분과 얘기 좀 하고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하지만……." "잠깐이면 됩니다." 현우는 다짜고짜 호명환을 데리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 와락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네? 왜 이러냐니요?" "게임 동영상 하나에 150만 원이나 준다고 하잖아요. 그냥 찍어 놓은 동영상을 적당히 편집해서 넘겨주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인데 왜 방해를 하고 그래요? 제가 무단으로 동영상을 넘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말해 놓고 왜 이러십니까? 팀장님에게 깨졌다더니, 저한테 복수하는 겁니까? 그건 내가 잘못하기는 했지만……." 현우는 떡하니 호명환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러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잘하면 패겠다. 아니, 정말 호명환 때문에 계약이 물 건너가면 현우도 뒷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한 달에 600만 원. 사람 하나 팰 만한 이유로는 충분했다. 현우가 살벌한 눈으로 노려보자 호명환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무슨 오해요? 방해하는 거 맞잖아요!" "제가 왜 방해를 합니까? 저는 정말 예상보다 적어서 기대 이하라고 한 겁니다." 호명환이 당치도 않다는 듯이 사정을 설명했다. "실은 동영상이 나간 직후에 다른 방송국에서도 기획실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동영상에 나온 유저의 연락처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말입니다." 그렇다, 대한민국에 게임 방송이 게임 특종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방송이 나간 직후, 시청자들이 엄청난 관심을 보이자 다른 방송국에서도 다크울프와 계약을 하기 위해 수소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쪽에서 제시한 금액은 편당 180만 원이었다고요." "1, 180만 원……!" 호명환의 대답에 현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솔직히 현우는 10분 짜리 동영상 한 편에 150만 원도 엄청난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80만 원이라니? 150만 원에 혹해서 덥석 계약을 했으면 편당 30만 원을 손해 봤을 거라고는 말이 아닌가? 현우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쨋든 다른 방송국에서 그런 금액을 제시했다면 동영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순간 현우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이건 기회다!' 잠시 머리를 굴린 현우는 다시 회의실로 들어가 말했다. "편당 300만 원이 어떻습니까?" 현우의 말에 팀장과 이윤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심지어 호명환도 황당한 표정을 이었다. 물론 이번 동영상이 시청률 35%를 기록했다. 그리고 다크 울프의 관심이 폭주하는 상황! 아마 다크울프 관련 동영상을 방송하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청률이 보장되리라. 그러나 아무리 그래 봐야 결국 게임 동영상이다. 보통 다른 유저의 동영상을 방송할 때는 몇만 원에서 몇십만 원의 수고비만 주는 게 관례였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동영상이 TV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무슨 A급 연예인도 아니고 고작 10분 방송 분량에 300만 원이라니?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저예산 프로그램인 게임 특종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껄.' 현우는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팀장과 이윤규를 바라보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현우는 방송국의 속사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불우한 어린 시절 덕분에 돈에 관련된 문제라면 천부적인 후각을 발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호명환에게 다른 방송국에 대한 말을 듣는 순간, 기대이상의 돈을 뜯어낼 수 있는 기회임을 직감했다. '방송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방송국과 시청률 싸움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있어. 그리고 게임 특종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게임 방송이 2개다. 호명환에게 연락한 방송국도 같은 시간대에 게임 방송을 하는 곳이야.' 현우가 배짱을 퉁기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미리 점수를 따려 그랬는지, 방금 전까지 팀장과 이윤규는 시청률 운운하며 현우를 한껏 추켜 세웠다. 그리고 현우의 동영상을 내보내면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될 거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현우의 동영상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래 놓고 다른 방송국보다 30만 원이나 낮게 계약하려고 했다 이거지? 그런식으로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속내를 들어내지 말았어야지. 어쟀든 다른 방송국과 계약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제 상황을 전혀 달라졌어. 그리고 방송국 관계자가 다른 방송국에서 내 동영상을 원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칼자루를 쥔 사람은 나다.' 현우의 동영상은 게임 특종의 시청률을 올릴 만한 힘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동영상이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다른 게임 방송으로 넘어간다면, 게임 특종의 시청률이 내려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현우는 호명환의 말을 듣고 상황을 전혀 반대 방향으로 생각해 본 것이다. 동영상이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기보다는 시청률을 내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시청률을 올릴 수 있을 만한 동영상은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청률이 내려갈지도 모른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어차피 여기와 계약하지 않아도 다른 곳에서 180만원은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되든 밑지는 장사는 아니야.' "300만 원이라니…… 그건 너무……." 팀장과 이윤규가 헛된 저항을 해 댔다. "그럼 S사의 게임 저널로 가 봐야겠군요." "자, 잠깐만요!" 현우가 ㅁ련 없이 몸을 돌려세우자 팀장이 펄쩍 뛰며 제지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250만 원. 그 이상은 정말 곤란합니다." "좋습니다 대신 이번에 방송된 판권료는 300만 원입니다." 현우가 씨익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해서 현우는 방송국과 8회분의 동영상 판권을 계약했다. 편당 가격은 250만 원. 합이 2,000만 원짜리 계약이었다. 그리고 계약금 500만 원과 이번에 방송된 동영상의 판권료 300만 원. 800만 원을 받아 들고 유유히 방송국을 나왔다. 그러나 아직 현우에게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일단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글로벌엑서스와의 계약 위반 동영상은 글로벌엑서스에 모든 권한이 있었다. 계약할 당시 동영상을TV 자료에 사용할 경우 현우에게도 지급한다고 했지만, 돌려말하면 글로벌엑서스에도 일정량의 지분이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판권료 일부를 글로벌엑서스에 줘야 하는 건가?' 일단 손에 들어온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자 뺏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호명환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원래 계약서대로 하면 30% 정도는 글로벌엑서스에소 받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하명우 팀장님과 의논해 본 결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대신 계약할 때도 말했지만 방송국에 넘기는 동영상은 먼저 저희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그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 차후 재계약을 하게 돼도 판권표를 모두 아크 님에게 지급될 겁니다." 말하자면 사전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돈만 벌 수 있다면 현우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아니,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죠." "네?" 현우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호명환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까 말씀드렸죠? 아크 님의 동영상 유출 사건 때문에 제가 팀장님에게 깨질 뻔했다고." "아, 그건 죄송합니다. 사정이……." "괜찮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아크 님에게도 뭐라고 할 수 없는 사건이 터졌으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실은 오늘 아침에 본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영상 덕분에 어제 오후부터 오늘 오전 사이에 새로 뉴 월드에 가입한 유저가 무려7만이라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렇다, 호명환이 아침부터 잔뜩 흥분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현우의 동영상에 대한 관심이 폭주한 덕에 뉴 월드의 신규 유저가 엄청나게 몰려든 것이다. 그런 유저의 숫자가 무려7만 명! 그리고 그중 4만 명이 유니트를 구입했다고 한다. 한 대에 수천만 원이나 하는 유니트니 돈으로 환산하면 단하루 사이에 글로벌엑서스의 매출이 수천억이나 늘어났다는 말이다. 상상도 되지 않는 천문학적인 금액! '뭐야? 결국 진짜 재미를 본 건 글로벌엑서스라는 말이잖아?' 사정을 듣고 나니 왠지 빈정이 상했다. 그러나 어차피 그런 수준의 얘기는 딴 세상의 일이었다. 남은 돈 수천억 원보다 자기 주머니의 수백만 원이 더 큰 돈인 것이다. '어쨌든 공돈 800만 원이 생겼다. 게다가 앞으로 두 달 동안 1,200만 원!' 주머니가 두둑해지자 마음도 한껏 풍요로워졌다. "저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는데 제가 한턱 쏠게요." "네? 아니, 그렇게 마음 써 주실 필요 없는데……." "괜찮아요. 예전에 이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어서 마침 잘 아는 곳이 있어요. 부담 갖지 마세요. 별로 비싼 곳은 아니니까." "허허,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성의니까……." 호명환은 짐짓 사양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현우를 따라 나섰다. 그리고 몇 개의 골목을 지났을 때였다. "서, 설마 여깁니까?" "음식 맛이 꽤 좋아요. 게다가 좋은 일도 할 수 있고요." 현우가 활짝 웃으며 가리킨 곳은 공터에 세워진 간이 천막이었다. 천막 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가장 청소년 돕기 캠페인(샌드위치:2,000원. 수익금은 공익사업에 쓰입니다.) '방금 전에 800만 원을 받은 사람이 한턱 쏜다는 게 2,000원짜리 샌드위치?' 그러나 현우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능숙하게 샌드위치를 사 들고 벤치에 앉았다. '외식으로 2,000원이면 고급이지. 그나저나 어머님 휠체어가 많이 낡아서 신경 쓰였는데 잘됐다. 마친 목돈이 생겼으니 이참에 전동 휠체어로 바꿔 드려야지.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최고급 전동 휠체어가 한 600만 원 정도 했던가? 뭐, 그정도면 싸네.'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는 현우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ACT 7 란셀 신도시 계획 "오빠, 다 끝났어요?" 창고를 나오자 로코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아크는 초췌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루마리 다발을 건네주며 말했다. "음, 다됐어. 이게 목록표야." "와, 막상 이렇게 정리해 놓으니 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아크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펼쳐 본 로코의 입이 쩍 벌어졌다. 10여 장의 두루마리에는 각종 장비품의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어.' 아크는 뿌듯한 눈길로 두루마리 다발을 바라보았다. 방송국에서 돌아온 아크가 몇 시간 동안 창고에 처박혀서 만든 두루마리였다. 덕분에 아크는 완전히 젖은 걸레처럼 늘어져 버렸지만 기분만은 날아갈 듯 상쾌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란셀 마을 방어전은 아크의 사활이 걸려 있는 전투였다. 만약 지면 그동안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한 푼 두 푼 모아 온 모든 게 한순간에 날아간다. 정말 한강대교에서 뛰어내릴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똑똑하고 잘난 아크는 뛰어난 전략 --솔직히 사기에 가까웠다--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위기를 넘기자 기회가 찾아왔다. 물론 위기 뒤의 기회도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단 한순간도 돈벌이에 대한 의욕을 잃지 않는 아크는 '이번 전투를 치르면서도 오히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했다. 그런 아크가 마을 공격과 동시에 카오틱이 돼 버릴 쥬르 일당의 장비품을 간과할 리가 없었다. 카오틱 유저가 사망하면 100% 확률로 장비품을 떨군다. 다시 말해 쥬르 일당을 전멸시키면 500개의 장비품이 쌓인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하나라도 더 챙기느냐다' 마을 NPC는 그렇다 쳐도, 이번 방어전에는 유저만 400명이 동원된다. 그런 유저들을 제치고 모든 장비품을 챙기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아크와 라둔이 동분서주하면 다른 유저들보다 많은 장비품을 회수할 수 있겠지만, 아크가 바라는 건 고작 '남들보다 많은' 양이 아니었다. 100%는 아니라도 '대부분'을 독식하지 않고는 분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바닥에 돈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다는 것은 아크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라둔을 공수부대로 만드는 것이었다. 아크는 분할 영상창으로 전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쥬르 일당이 많이 죽는지를 즉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수한 아크는 라카드를 이용해 라둔을 작전 지역으로 이동. 긴급 투하시켜 장비품이 떨어지는 족족 삼키게 하는 작전이었다. '잘만 하면 30~40%는 독식할 수 있다! 문제는 라둔이 유저들에게 발각되는 건데......' 그런데 막상 전투를 시작하자 뜻하지 않은 행운까지 따랐다. 일대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먹구름에 가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게다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로 일대는 완전히 진흙 구덩이가 돼 버렸다. 때문에 유저들은 '보호색'을 발동시킨 라둔은커녕 켜켜이 쌓이는 시체와 떨어진 장비품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도, 진흙도 라둔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라둔은 시체 사이를 기어 다니며 '스토킹'을 난사, 정확하게 장비품을 찾아 냉큼냉큼 삼켜 버렸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 몇 번이나 상점 창고에 뱉어 놓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라둔이 집어삼킨 장비품이 무려 213개! 또한 아크 역시 닥치는 대로 아이템을 챙겨 38개나 챙겼다. 합이 251개. 아크와 라둔이 전체 전리품의 50% 이상을 싹쓸이해 버린 것이다! '우우우, 내, 내가 이런 장관을 보게 되다니!' 아크는 전투가 끝난 뒤에 창고에 쌓여 있는 251개의 장비품을 확인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잡템의 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돈의 산이다! '이제 남은 일은 팔아 치우는 일뿐이다!' 장비품이 아무리 많아도 팔지 못하면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막상 팔려니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아이템은 가방에 넣어 두면 부피의 제한을 받지 않지만 밖으로 꺼내면 본래 부피로 돌아간다. 게다가 이번에 챙긴 아이템은 모두가 장비품. 판금 갑옷 따위는 하나만도 상당한 공간을 차지했다. 하물며 251개의 장비품을 몽땅 상점에 진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씩 진열하며 판매하면 되겠지만......' 이미 아크 상점의 진열장은 각종 상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로 공간을 만든다고 해도 한 번에 진열할 수 있는 장비품은 고작 10여 개. 200 종류가 넘는 장비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0개밖에 진열을 못하는 것이다. '내 계획을 위해서는 이것들을 빨리 정리해야 하는데......'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장비품의 목록표를 작성하는 방법이었다. 갑옷과 무기, 장갑, 신발, 가죽 계열, 판금 계열...... 장비품을 각 품목별로 구분해서 성능을 적어 두었다. 이렇게 상세한 목록표를 만들어 두면 굳이 진열을 하지 않아도 고객에게 상품을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크가 로코에게 건네준 두루마리는 상품 카탈로그! 뭐, 상품의 카탈로그를 만든 자체는 그리 기발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카탈로그 하나를 만들어도 뭔가가 달랐다. '물건은 최대한 저렴하게 구입하고, 최대한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리고 비싸게 팔려면 역시 고객의 구매 의욕을 자극해야 하는 법. 지금 고객의 구매 의욕을 자극할 방법은......' 새삼스럽지만 현재 아크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다크울프에 대한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아크로서는 그런 인기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방송국에서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돈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장사에 다크울프의 이름을 이용하기로 했다. 카탈로그에 적힌 장비품마다 다크울프의 친절한 설명을 넣은 것이다. 할벤의 잭나이프(마법) 무기 타입 : 천 장갑 공격력 : 20~22 내구력 : 90/90 무게 : 20 사용 제한 : 레벨 220 이상 도적 계열 날카로운 접이식 단검. 단검 계열의 무기는 가장 빠르고 데미지도 평균적으로 나오는 무기입니다. 특히 접이식 단검은 몸에 숨기기도 좋고 뽑아 들 때 폼도 나서 많은 도적들이 애용합니다. 이 잭나이프는 비열하고 잔인한 것으로 유명했던 할벤이 사용하던 물건으로 오랫동안 독을 발라 검날 자체가 독성을 띠게 됐습니다. ≪옵션 : 민첩 +18, 적 공격 시 20% 확률로 5분간 산성 독에 중독시킵니다.≫ +다크울프의 상품 설명 : 써 보면 아시겠지만 20% 확률 중독 기능은 상당히 좋습니다. 도적은 치고 빠지기를 위주로 싸우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뺄(책에는 '빨') 수 있는 상태 이상 효과가 붙어 있는 무기가 가장 적합합니다. 사냥과 PVP 모두 권장. 아직 레벨이 부족해도 미리 구입해 두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권장 가격 : 69골드 99실버 낡은 강철 투구 방어구 타입 : 철제 투구 방어력 : 48 내구력 : 120/120 무게 : 33 사용 제한 : 레벨 200 이상 전사 계열 평범한 철제 투구입니다. 그리 좋지 않은 철로 만들어 큰 방어 효과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크울프의 상품 설명 : 설명을 보시면 아시다시피 평범한 투구입니다. 그러나 같은 레벨대의 마법 투구가 50골드를 상회하는 반면 방어력은 10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또한 투구는 마법이라도 옵션으로 추가되는 능력치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가격 대 성능을 고려한다면 투구는 일반으로 사용하고 옵션으로 추가되는 능력치가 좋은 갑옷 따위를 마법 아이템으로 맞추는 편이 좋습니다. *권장 가격 : 19골드 99실버...... 경매 사이트에서 판매 물건에 다크울프의 동영상을 첨부했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유명해진 상황! 실제 다크울프가 활약했던 마을에서 다크울프가 권장하는 장비품을 판다! 장비품 완판까지 얼마 걸리지 않으리라. 게다가 아크는 카탈로그를 만들며 상급 '마법 복원'으로 내구력까지 100% 회복시켜 놓았따. 전투 중에 내구력이 깍인 상태 그대로 팔면 아무래도 제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일이 설명을 적어 놓으랴, 수리하랴, 접속한 이후로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지만 앞으로의 수입을 생각하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수거한 장비품은 대부분 일반 아이템이지만 저급품은 아니야.' 쥬르 일당도 장비품을 떨굴 각오를 했을 테니 비싼 장비를 걸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들 나름대로 연합의 사활을 걸고 시작한 전투다. 당연히 최소한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확보해 둬야 성공률이 올라가기에 일반 아이템치고는 고급품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방 지원을 하거나 주 전력이 되는 결사대원은 마법 아이템을 장비한 경우도 많았다. 카탈로그를 작성하며 파악한 장비품의 총판매 가격은 무려 8,750골드! 쥬르 일당 251명에게8,750만 원을 뜯어낸 것이다! '역시 전쟁만큼 돈이 되는 사업도 없어. 뭐, 지면 쪽박이지만......' 단 하루 만에 그만한 수입을 올렸으니 피로감 따위가 느껴질 리 없었다. 그러나 아크의 수입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거 받아." "뭐예요, 이게?" "보험금이야. 유저들이 찾아오면 계약서를 확인하고 나눠 줘." 아크가 커다란 돈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렇다, 아크의 또 다른 수입은 바로 '아크 피해 보상 보험' 이었다. 사실 보험은 장비품을 약탈당할 걱정 때문에 참전을 망설이는 유저를 설득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막상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보니 이게 꽤 돈벌이가 짭짤할 것 같았다. 상식적으로 사활을 건 전쟁 중에 주문서를 난사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된다. 분명 2,500골드 이상은 남아!' 그리고 전투가 마무리될 때쯤 아크의 예상대로 상당한 이윤이 남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작용했다. '망할 놈들, 죽으려면 그냥 죽을 것이지. 장난하냐? 지들이 무슨 2차 대전에 참전한 일본 놈이야? 자살하려면 넓고 좋은 한강이나 갈 것이지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바로 결사대 비장의 무기였던 자살특공대 때문이다. 이 가미가제식 공격에 란셀 마을은 생각지도 못했던 피해를 받았고, 다급해진 아크는 보험금 지급 대상을 '약탈당한 장비품'에서 '박살 난 장비품'까지 확대시켰다. 덕분에 간신히 란셀 마을의 피해를 30% 이하로 틀어막을 수 있었지만, 보험금이 왕창 깨져 버렸다. 그렇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무려 3,100골드! '뭐, 그래도 700골드는 남았지만......' 그나마 '자폭'을 막은 유저들의 장비가 몽땅 깨진 것이 아니라 그 정도다. 만약 몽땅 깨졌다면 되려 1,000골드가량 손해를 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했던 2,500골드에서 1,800골드나 깎여 나가자 속이 쓰렸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이득이 생긴 것으로 만족하자.' 아크는 자기 암시를 걸며 쓰린 속을 달랬다. 그리고 사실 이런 상황에서 속이 쓰리다고 하면 말도 되지 않는다. 장비품 수거로 얻은 수익이 8,750골드. 보험 사업으로 700골드. 이번 전투의 뒷정리만으로 9,450골드의 수익이 생겼다. 거기에 오프라인의 일이기는 하지만 방송국에서 받은 계약금과 동영상 판권료 800만 원도 이번 전투로 인해 얻은 부수입이었다. 그야말로 흔들고, 쓰리고, 오광까지...... 따따따블! 반면 아크에게 피박을 씌우려 했던 쥬르 일당은 되려 독박을 쓰고 한동안 감방 신세까지 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상황상 500마리 전부를 감방에 처넣을 수는 없었지만 절반 이상을 처넣으니 당분간 나쁜 짓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리라. 돈벌이와 해충 박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역시 사람은 공격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해.' 단순히 '지키겠다'는 소극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성과! 그러나 아크는 결코 이 정도에서 만족할 생각이 없어다. '이번 승리는 앞으로의 계획에 발판일 뿐이야.' 아크는 이번 전투를 치르며 오래전부터 진행해 오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직함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도 사실이야. 그 일을 진행하기에는 아직 필요한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역시 돈. 부동산이다 뭐다 다 따지면 이제 나도 제법되지만 아직 그 일을 진행하기에는 부족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 "오빠는 어디 가게요?" 그때 보험금을 받아 든 로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이것저것 볼일 좀 보고 돌아올게." "치, 계속 창고에 있다가 또 나가요? 오랜만에 왔는데도 놀아 주지도 않고." 로코가 어린애처럼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다. 그러자 상점 앞에서 짐을 나르던 삽질이와 울먹이가 오바이트가 쏠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로코가 팩 고개를 돌리자 먼 산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아크는 피식 웃고는 로코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알았어. 볼일 끝나면 둘이서 어디 사냥이라도 가자." "정말이죠? 약속했어요?" 로코가 배시시 웃으며 상점으로 돌아갔다. 상점을 나온 아크는 거리를 걸으며 마을을 둘러보았따. 여기저기 부서진 흉물스러운 건물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전투가 끝날 때 아크가 확인한 정보창에는 구조물 피해가 23%였다. 그건 결코 적은 피해가 아니었다. 건물 4개 가운데 하나는 피해를 입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피해를 받은 건물을 60개가 넘었고 그중 30개는 완전히 대파되어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을만 둘러봐도 이번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부동산 시세가 전투 전에 비해 30%나 하락해 있었다. 란셀의 지분을 4%나 갖고 있는 아크 역시 상당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번 전투는 란셀에게 있어서 오히려 성장의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많아.' TV에서 란셀 방어전이 방송되어 유명해진 건 다크울프나 푸른검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만이 아니었다. 전투의 무대가 되었던 란셀도 엄청나게 유명해졌다. 때문에 아직 전투가 끝난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음에도 근방에서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에 관광객이 몰리는 것과 같은 이유였다. "와, 정말 TV에서 봤던 것과 똑같아." "여기 봐. 도적단이 '자폭' 스킬로 충돌했던 건물이야." "오오! 봤어, 나도 봤어." "일단 사진부터 찍자!" 유저들은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기념 촬영 따위를 하며 돌아다녔다. 아크로서는 대체 뭐하는 짓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건 좋은 일이었따. NPC 마을의 발전도는 유저들이 얼마나 많이 모이는가로 결정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도 모이기 마련. 이 유명세가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추세라면 부동산 시세가 복구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으리라. '유저들과 얽히는 건 싫지만 유저들이 많이 모이는 건 싫지 않아.' 아크가 히죽거리며 주택가를 거의 빠져나왔을 때였다. 문득 광장 쪽으로 돌아나가려는데 한 건물 뒤편에서 브레드의 모습이 보였다. 브레드 역시 꼬박 24시간가량 게임을 하다가 나간 뒤라 좀 전에야 접속한 모양이었다. "어이, 브레드!" 브레드를 발견한 아크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그러자 브레드가 기겁한 표정으로 펄쩍 뛰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크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와락 팔을 잡고 건물 뒤로 잡아당겼다. "뭐야, 왜 그래?" "쉿, 쉿! 멍청아, 큰 소리 내지 마!" 브레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빚쟁이라도 만났냐?" "젠장......차라리 빚쟁이면 좋겠다." 브레드가 한숨을 푹푹 불어 내다가 울컥한 눈으로 아크를 쏘아보았다. "그렇지, 맞아. 네가 원흉이었어. 이게 너 때문이야, 인마!" "뜬금없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언제 보증이라도 서 달라고 했냐?" "그게 아니라 네가 TV에 내 얼굴을 내보내는 바람에......" "도망 다니던 빚쟁이에게 들킨 거야?" "그게 아니라니까! 자꾸 까불래?" 브레드는 잡아먹을 듯이 아크를 노려보며 짜증을 부렸다. 브레드가 그렇게 짜증 100% 상태가 된 건 바로 란셀에 몰려드는 유저들 때문이었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이번 TV 방송으로 브레드는 전국적으로 얼굴이 알려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명인이 된 것이다. 물론 이미 브레드와 레디안은 최강 페어로 브리스타니아에서는 유명인이었지만, 그때는 '아는 사람만 아는' 유명인이었다. 그러나 공중파를 타서 얻어진 유명세는 이전의 유명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마을에서 브레드와 레디안을 발견한 유저들은 지렁이를 발견한 참새 떼처럼 몰려들었다. "레벨이 몇이에요?" "그때 썼던 기술은 뭐예요? 어디에서 배울 수 있어요?" "장비는 뭘 사용하세요? 저도 가죽 장비를 입는데 어디가면 좋은 거 구할 수 있죠?" 쉴 새 없이 지저귀며 브레드와 레디안을 귀찮게 굴었다.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어. 파라돈 같은 곳에서도 종종 겪던 일이니까." 브레드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문제는 바로 초딩 유저들이었다. 물론 뉴 월드는 캐릭터를 만들 때 나이를 임의대로 설정할 수 있었다. 캐릭터의 외형만 봐서는 유저의 실제 나이를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을 해 본 사람이람면 안다. 누가 초딩 유저인지...... 물론 초딩 유저라도 일반 유저와 크게 다를바는 없었다. 문제는 그런 초딩 유저들 가운데 종종 개념을 밥 말아 먹은 녀석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브레드는 그런 개념 없는 초딩 유저들에게 그야말로 딱 걸려 버린 것이다. "어이, 네가 브레드냐?" "네가 그렇게 잘 싸워? 한번 붙어 볼래?" 초딩 유저들은 금붕어 똥처럼 브레드를 쫓아다니며 성질을 박박 긁어 댔다. 덕분에 브레드는 혈압이 팍팍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성질대로 쥐어 팰 수도 없었다. 아무리 마을을 구한 영웅이라도 살인을 해도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브레드는 이미 카오틱--현재는『거짓말』주문서를 사용하고 있었다--이라 새삼 살인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지만 월랑족이 사는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 점은레디안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상대는 딱 봐도 초딩이다. 성질 좀 난다고 쥐어 패기도 창피하지 않은가? 때문에 브레드와 함께 피해 다니던 레디안은 아예 접속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브레드는 레디안처럼 접속도 끊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젠장! 좀 있다가 월랑족하고 근처 동굴에 사냥하러 가기로 했는데, 저 망할 초딩들이 주변에서 서성대고 있으니 정말 미쳐 버리겠네. 월랑족이 기다릴 텐데." 브레드는 이번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월랑족과의 친밀도가 엄청나게 올라갔다. 덕분에 브레드는 꿈에 그리던 개--늑대지만--와의 수준 높은 교류를 할 수 있었다. 이게 이번 전투로 브레드가 얻은 최고의 보상! 그리고 전투가 끝나자마자 월랑족을 꼬드겨 오붓하게 사냥을 가자는 약속까지 받아 낸 것이다. 그런데 초딩들에게 쫓기느라 약속 장소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초딩이 사냥터까지 쫓아오면 난감해지는 것이다. 레벨 410대의 브레드를 숨어 다니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초딩 유저들의 위력! 뭐라고 해야 할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쯧쯧쯧, 정말 사서 고생하는군.' 어쨌든 사정을 들은 아크는 한심한 눈으로 브레드를 바라보았다. 아크처럼 변신을 하거나 하다못해 복면이라도 썻으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왜 모처럼 TV에 나가는데 얼굴을 숨기냐고 떠들어대더니...... "계속 수고해라. 나는 볼일이 있어서 그만. 무사히 탈출하기를 기도할게." "자, 잠깐, 이대로 못 본 척하기냐?" "그럼 어쩌라고?" "사실 나보다 네가 더 유명하잖아. 다크울프로 변신해서 놈들의 이목을 끌어 주면......" "됐거든?" 여기서 다크울프로 변신하면 아크는 그야말로 유저들에게 파묻혀 버리리라. 다크울프로 변신해서 전투를 치렀는데 일부러 그런 꼴을 당하란 말인가?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자 브레드가 울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 정말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올래? 내가 누구 때문에 전쟁에......" "앗, 저기 있다!" "찾았다. 잡아라!" 그때 브레드의 뒤쪽에서 호비트 몇 명이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브레드를 괴롭힌다는 초딩 유저들인 모양이다. 호비트들이 나타나자 브레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우왕좌왕하다가 뺑소니를 쳐 버렸다. 그러자 호비트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브레드를 뒤쫓기 시작했다. "젠장, 아크, 어떻게 좀 해 줘 봐!" '난들 어쩌라고? 나도 초딩들은 무섭단 말이야. 이럴 때는 그냥 모른 척하는 게......' 아크는 브레드의 SOS를 못 들은 척하며 돌아서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아크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러고 보니 초딩들을 저 녀석에게 붙여놓으면 어떻게될까?' "푸른검이다!" 아크가 고함을 지르자 호비트들이 우뚝 멈춰 서며 시선을 홱 돌렸다. 아크가 가리킨 곳은 반쯤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있는 곳이었다. 그 앞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복면을 쓴 검은 복장의 사내, 샴바라였다. 또다시 만만한 유명인을 발견한 호비트들이 샴바라에게 몰려들었다. "오오, 땡큐, 아크! 샴바라, 뒤는 맡기마!" 호비트들이 샴바라에게 관심을 보이자 브레드는 뒤도 안돌아보고 뺑소니를 쳐 버렸다. 그사이 호비트들이 새로운 장난감(?)을 포위하고 웃었다. "우하하하, 네가 푸른검이냐?" "뭐야, 이것들은?" 샴바라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호비트들을 바라보았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중이라 아크나 브레드가 근처에 있다는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뭘 딴청을 피우고 있어?" "네가 그렇게 잘났어? 한번 붙어 볼까?" "후후후, 때릴 수 있으면 때려 봐. 경비대원들에게 일러바칠 테다!" 호비트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샴바라를 갈궈 댔다. '자아, 샴바라 녀석, 이제 어떻게 나올라나?' 멀리 떨어진 아크는 히죽거리며 샴바라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때 샴바라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양손을 크게 벌려 네 마리의 호비트를 쓸어안고 으슥한 골목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골목 안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신의 대리자......" 퍽, 퍽, 퍽, 퍽, 퍽, 퍽! "힉, 뭐, 뭐야?" "뭐 이런 놈이 있어? 사, 살려 줘......헉!" 사람을 떡메로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고 잠시 후, 호비트 한 마리가 팅팅 부은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그러나 채 골목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덥석, 시커먼 손에 발목이 잡혀 다시 골목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터져 나오는 시원한 타격음! '초딩이고 뭐고 인정사정없구먼. 무서운 놈......' 역시 샴바라는 브레드와는 전혀 달랐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일단 패고 본다. 그게 샴바라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샴바라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초딩을 박살 낸 샴바라가 다시 부서진 건물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불어 냈다. "젠장! 망할 놈들, 하필 스탄달 지부 앞에서 '자폭'할 건뭐야? 아아, 지부가 박살 났다는 걸 알면 이사벨이 걱정할텐데...... 할 수 없지. 사비를 털어서라도 이사벨에게는 비밀로 하고 고쳐 놔야겠다. 358호, 이사벨에게는 지부가 피해를 입은 거 비밀이다. 알았어? 그나저나 대체 건물을 수리하려면 얼마나 필요한거지?" 샴바라는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다시 한숨을 불어 냈다. 그렇다, 아마도 이번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건물은 마을 공금으로 수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탄달 지부는 동방 민족의 자산. 건물 수리비도 동방 민족이 부담해야 했다. "브레드나 샴바라나 다들 고생이 많군." 아크는 혀를 차며 암울한 포스를 줄줄 풍기는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오히려 녀석들에게 약점이 있으니 이용하기 편하잖아." 아크가 사악한 미소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브레드나 레디안은 개와 고양이를 좋아해서. 샴바라는 이사벨을 좋아하는 게 약점이다. 그리고 아크가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한 이용해 먹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실제로 샴바라나 브레드, 레디안이 이번 전투에 참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크야 편해서 좋지만 솔직히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돈은 좋지. 심플하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리던 아크의 눈에 문득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내는 주민들이 보였다. 그들을 확인하자 아크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사실 아크도 이번 전투의 결과가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샴바라 들처럼 약점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크에게도 그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저 NPC는 나와도 잘 알고 지냈었는데......' 아크는 씁쓸한 눈으로 축 처진 NPC들을 바라보았다. 전투에서 친하게 지내던, 혹은 가족을 잃은 NPC들이었다. 그렇다, 예상보다 적은 피해로 막았다고는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주민이 13%나 희생되었다. 700명 정도 되는 전체 인구에서 13%. 90명 가까운 NPC가 희생됐다는 말이다. 물론 이번 전투는 란셀이 멸망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인 전투였다. 어느 정도 희생은 각오하고 있었고, 13%라면 예상보다 많은 희생은 아니었다. '이론적으로는 알아. 알고 있지만......' 다른 곳이라면 그저 승리의 기쁨에 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란셀의 주민은 아크가 직접 설득해 이주시킨 NPC들이었다. 한 명 한 명. 적든 많든 모두가 아크와 친분이 있었고, 불과 어제만 해도 함께 란셀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런 NPC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NPC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유저들처럼 되살아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막상 현실을 실감하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이미 죽은 NPC에게 아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가렌이 이미 희생자의 장례를 화려하게 치뤄 줬고, 유족에게 적지 않은 보상금을 나눠 줬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지금은 희생된 NPC 때문에 가슴 아파하기보다는, 더 많은 NPC를 지켜 냈다는 사실만 생각하자. 그리고 남은 NPC를 위해서라도 내 계획을 빨리 추진해야 해. 희생된 NPC를 위해서라도 난 여기서 멈춰 있어서는 안 돼.' 아크는 새삼스럽게 각오를 다지며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아크는 이번 전투를 마치고 이미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 두었다. 아니, 이번 전투를 치렀기에 앞으로의 계획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표현해야 맞으리라. 그러나 그런 계획을 추진하기 이전에 먼저 주변 정리를 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였다. 전투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먼저 보상을 받고 다음 계획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베베님이 작성하셨습니다. ACT 8 란셀 안보 대책 "다들 모였지?" "보면 모르냐? 몇 명이나 된다고 묻고 지랄이야?"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이 띠꺼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세 사람은 아직도 란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크와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란셀 방어전 이후 처음이었다. 이유는 셋 모두 나름대로 바빴기 때문이다. 일단 브레드는 평소 꿈이었던 개 떼-몇 번을 말하지만 사실은 늑대다-에 둘러싸여 돌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서 잠시도 한곳에 붙어 있지 않았다. 레디안 역시 묘족과 산을 돌아다니며 마법 재료 찾아다니느라 밖에 있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샴바라는…… 란셀에 상주하는 동방 민족 몇 명과 부서진 지부를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아크는 란셀 재건 사업을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때문에 같은 마을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못 보다가 아크의 소집으로 모인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데 사람을 오라 가라야?" "부탁?"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또 무슨 꿍꿍이에 끌어들일 작정이야?" "난 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다고? 에이, 일어나자." 아크가 부탁이라는 말을 꺼내면 100% 생기는 것도 없이 귀찮은 일이 생긴다. 샴바라는 물론,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는 브레드와 레디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세 명은 아크가 부탁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래서 평소 행실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때 아크가 고개를 숙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란셀 마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어서 그래." "……일단 한번 들어나 보지." 아크의 진지한 태도에 브레드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일단 일행을 다시 자리에 앉힌 아크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운을 뗐다. "너희들도 대강 짐작하고 있을 거야. 이번에 쥬르 일당의 습격은 막았지만 아직 란셀은 안전한 마을이라고 할 수 없어. 다른 문제는 다 떠나서 일단 쥬르 일당이 감방에서 나오면 다시 습격해 올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놈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 언젠가는 놈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지." "뭐, 그야……."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저는 죽어도 24시간이 지나면 부활한다. 말하자면 뉴 월드에서 유저는 불사신이나 다름없는 종족! 반명NPC의 생명은 하나뿐이다. 죽으면 그걸로 끝인 것이다. 때문에 뉴 월드는 애초부터 유저가 포기하지 않고 NPC와 소모전을 계속 이어 간다면 결국은 유저가 승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아크가 어떻게든 경비대원을 이용해 쥬르 일당을 처리해 감방에 처넣은 것도 일단 그런 소모전을 막기 위해서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감방에 처넎어도 쥬르 일당은 몇 달 사이에 나온다. 그리고 아크의 짐작으로는 99% 확률로 다시 란셀 침공 계획을 세울 게 분명했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야. 라이덴이나 쥬르 놈은 거머리 같은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여기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 "확실히……." 브레드와 레디안, 샴바라가 무거운 표정으로 수긍했다. "너희들을 보자고 한 건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야." 아크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쭉 생각해 봤는데, 역시 한두 번 임기응변으로 적을 막아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 문제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돼." "근본적인 부분?" "유저들에게 란셀을 공격할 수 없는, 아니 공격해서는 안되는 마을로 인식시키는 거지." "그야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잖아." "아니, 가능해. 너희들이 좀 도와주면." "우리가?" "그래, 너희들에게 부탁할 건 두 가지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생각해 놓았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아크가 부탁할 두 가지는 각기 목적이 달랐다. 첫 번째는 란셀을 다른 유저 도적단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위한 부탁이었고, 두 번재는 쥬르 일당을 란셀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탁이었다. 그리고 두 가지 다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의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얘기를 듣던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의 눈이 점점 커지다가 이내 황당한 표정을 지어싿. 그러나 한편으로는 수긍하는 부분도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어. 하지만……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야. 가능하더면 말이야." "어떻게든 가능하게 만들어 줘. 너희도 란셀이 놈들에게 함락되는 건 바라지 않잖아." "음……." 브레드가 팔짱을 끼고 크게 숨을 불어 냈다. 그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샴바라가 물었다. "아크, 알고 있겠지? 첫 번째 부탁은 힘들기는 하지만 잘 풀어 보면 어떻게든 될 거다. 하지만 두 번째는 간단하지만 성사될 경우 상당히 많은 자금이 필요해." "알고 있어. 어떻게든 확보해 놓을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내 쪽은 네가 원하는 정도의 숫자는 문제없이 준비할 수 있을 거야." 샴바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받은 부탁에는 협조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브레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까짓것 한번 해 보지. 알았어. 아직 확답은 못 하겠지만 이 몸이 힘 한번 써 보지." "좋아, 결정됐으면 바로 움직이자." 그렇게 아크와 샴바라 들은 모종의 계획을 진행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재건 사업을 하면서 완공시켜 놓은 마법탑을 이용해 각자의 목적지로 떠나갔다. 아크는 마법탑 송신부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는 세 줄기 빛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됐어, 레디안과 샴바라에게 부탁한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문제는 브레드에게 부탁한 건데……. 브레드가 작정하고 움직여 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이제 남은 건 내가 해결해야 하는 두 곳이야. 한 곳은 내가 직접 찾아가고, 한 곳은 시드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일단 시드에게 편지를 보내고 나도 움직여야겠군.' 아크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상점으로 돌아올 때였다. 상점 근처에 다다랐을 무렵, 가자기 우지끈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야, 이소리는?'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아크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상점에서 10여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뒤따르듯 뭔가가 튀어나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한참을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다가 멈춰 선 건 다름 아닌 울먹이였다. 그런데 울먹이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울긋불긋 찐빵 같은 얼굴이 총천연색으로 물들어 있는 게 아닌가? "뭐야? 무슨 일이야?" 아, 아크 님!" 울먹이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달려왔다. "아, 아크 님, 살려 주세요!" "살려 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흑흑흑,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 물건을 돌려 달라기에…… 그래서 아크 님이 시킨 대로 말했더니…… 사람을 이렇게 패고……. 흑흑흑, 삽질이 형님은 아직도 맞고 계세요." "뭐? 감히 어떤 놈이 내 가게에서 영업 방해를……!"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상점으로 달려 들어갔다. 감히 란셀 마을에서 아크 상점을 건드리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놈이 아닌가? "어떤 자식이야?" "나 불렀냐?" 그때 상점 안쪽에서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와락 고개를 돌렸다. 상점 안쪽, 카운터 앞에 한 사내가 얼굴이 떡이 된 삽질이를 깔고 앉은 채로 씨익 웃으며 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가 나타난 건 약 10분 전의 일이었다. "어서 옵셔." 그때까지만 해도 삽질이와 울먹이는 멀쩡한 얼굴로 보람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아크가 신도시 계획을 추진한 직후 엄청난 손님이 몰릴때보다는 덜했지만, 아직도 상점에는 항상 10여 명의 손님들이 상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문제의 손님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사내는 삽질이의 인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상점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아크 어디 있냐?" "네? 저희 회장님요?" "회장님?" 사내는 같잖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회장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지? 좀 나오라고 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내 물건 찾으러 왔다고 하면 알 거야" 사내의 대답에 삽질이의 표정이 180도로 변했다. 방금 전까지 싹싹한 태도를 보이던 삽질이는 갑자기 인상을 구기며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아, 젠장! 뭐야? 또 진상이야?" "뭐? 진상?" "정말 개념 없는 것들 때문에 미치겠네. 지가 떨궈 놓고 이제 와서 왜들 그러는 거야?" 삽질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다가 벽에 붙어 있는 전단을 탕탕 치며 말했다. "이제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다. 이거 봐!" 사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삽질이가 기리키는 전단을 바라보았다. 전단에는 붉은 글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알림 먼저 아크 상점을 찾아주신 고객분께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근래 들어 상점에서 연이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에 란셀 방어전에 참전하셨던 분들 가운데 전투 중에 떨군 장비품이 란셀 상점에 있다며 돌려 달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본래 전투 중에 떨군 방비품은 주운 사람에게 소유권이 있는 게 상식입니다. 또한 저희 상점에서도 장비품을 가져온 분에게 정상적인 가격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므로 정당한 소유권이 있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고 부디 말도 안 되는 진상은 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상을 피우며 영업 방해를 할 경우,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주인 백 사실 요즘 아크 상점에는 손님이 몇 번이나 진상을 피워대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아크가 작성한 장비품 카탈로그 때문이었다. 란셀 방어전을 치를 당시, 아크와 라둔이 수거한 장비품은 251개나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장비품이 100% 쥬르 일당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당시 전투에서는 일반 유저들도 상당수 참가했었고, 비록 낮은 확률이지만 이들에게서도 장비품이 떨어졌다. 아크는 그런 장비품까지 몽땅 챙겨 와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투에 참가했던 유저 몇 명이 카탈로그에서 잃어버린 장비품을 발견한 것이다. "어? 장갑을 잃어버려서 새로 사려고 왔는데 이거 내 거랑 똒같잖아?" "이것도 내가 잃어버렸던 갑옷하고 똑같아. 내 거는 셀리브리드의 명품 상점에서 구입한 거라서 살 때 이니셜까지 박아 놨단 말이야." 물론 전단에 적힌 것처럼 한 번 떨군 장비품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그러나 막상 카탈로그에서 자신의 장비품을 발견한 유저들은 아무래도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앗던 유저들은 새로 장비품을 구입할 여유도 없었다. 때문에 억지인 줄 알면서도 돌려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삽질이는 사내의 '내 물건을 돌려받으러 왔다'는 말에 그런 유저라고 판단했던 것. "이제 알겠지? 아무리 떼를 써도 소용없으니까 살 거 아니면 가." "아니,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내 물건을 받으러 왔다니까 그러네." "똑같은 말 하게 할래? 우리 개념 좀 챙기면서 살자, 응?" "아니, 그러니까……." "안 가? 경비대원 불러?" 참다못한 삽질이가 사내를 밀치며 짜증을 부려 댔다. 순간 툭, 하고 사내의 머릿속에서 굉장히위험한 뭔가가 끊어졌다. 사내의 입술이 한쪽으로 슬쩍 치ㅕ져 올라갔다. "뭐야? 이 녀석 왜 재수 없게 히죽거리고 지랄이야?" 삽질이가 사내의 면상을 노려보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다짜고짜 펀치! 난데없는 킥! 갑자기 사내의 주먹과 발이 번뜩이며 삽질이를 떡 주무르듯 두들겨 대기 시작했다. 이름처럼 그야말로 다짜고짜 펀치, 난데없는 킥이었다. 삽질이는 정말 눈 깜빡할 사이에 피 떡이 되어 버렸다. "야잇, 형님에게 무슨 짓이야!" 옆에 있던 울먹이가 화들짝 놀라며 곤봉을 꺼내 들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내의 몸에 손가락 하다 대기도 전에 박살이 나서 상점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상점으로 돌아오던 아크가 울먹이를 발견한 건 그때였다. 그리고 상점으로 뛰어 들어와 사내를 발견했다. 그때 아크의 등 뒤에 숨어 따라 들어온 울먹이가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저놈이에요! 저놈이 진상을 부리면서……." "이, 이 멍청아, 입 다물어!" 멍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던 아크가 황급히 울먹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떠듬거렸다. "……사범님?" 아크가 사범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 그렇다, 사내는 바로 이명룡…… 이슈람이었다. "흠, 역시 개를 두드리니 주인이 나오는군. 아니, 이 경우에는 돼지인가?" 이슈람이 깔고 앉은 삽질이의 두툼한 볼을 쭈욱쭈욱 잡아당기며 피식 웃었다. 훌쩍, 훌쩍, 훌쩍. "우리는 억울해요." "저희들은 그냥 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 무릎을 꿇고 앉은 삽질이와 울먹이가 질질 짜며 팅팅 부은입술로 항의했다. 울긋불긋 들쭉날쭉하게 변해 버린 얼굴로 징징 울어 대니 무슨 추상화를 보는 기분이다. 불과 몇 분 만에 멀쩡한 사람을 추상화로 만들어 버리다니 역시 이슈람이다. 그러나 감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아크 상점의 점원인데 기분이 좀 상했다고 저렇게 추상화로 만들어 버리다니? 아무래도 한마디 하지……. "그래서 뭐? 불만 있냐?" "없습니다. 손님에게 불친절한 점원은 좀 맞아야죠. 잘하셨습니다." ……못 하는 게 당였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슈람이다. 정의남이나 갱생단이라면 한 마디가 아니라 백 마디라도 하겠지만 이슈람만큼은 아크의 수비 범위 밖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크도 삽질이나 울먹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이슈람은 아크의 면상 역시 언제든지 추상화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괜히 나섰다가 삽질이와 울먹이 앞에서 추상화가 되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펀치와 킥이 예전보다 더 날카로워지셨네요, 역시 사부님입니다." "어? 그러냐?" '저, 저럴 수가……!' 삽질이와 울먹이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그때 유령에게 음악을 배우고 방금 전에야 돌아온 로코가 와락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오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아저씨, 오해가 있었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잖아요!" '오오오, 점장님!' 삽질이와 울먹이가 새로운 희망을 걸고 로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슈람이 멀뚱멀뚱 로코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아하, 그렇군. 네가 로코냐?" "그,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이야, 이거 반갑다. 아크에게 네 얘기는 많아 들었다." "네? 오빠에게요?" "그래, 아크 녀석이 만날 때마다 아주 여자 친구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 그런데 직접 만나 보니 기대 이상의 미인인걸. 부럽다, 인마!" "여자 친구? 미인?" 로코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고 잠시 삽질이와 울먹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이슈람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호호, 아니 뭐, 그렇게까지……. 점원들이 불친절하면 당연히 맞아야죠, 이슈람 오빠." "오오, 말이 통하는걸. 더 마음에 들어. 아크,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속 썩이면 안 된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둘의 웃음소리에 삽질이와 울먹이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아크 역시 죽을 맛이었다. 이슈람은 로코가 여자 친구니 뭐니 하는 말을 좋아하는 듯하자 아예 작정하고 없는 말까지 부풀려 가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어디까지 갔냐느니, 첫 키스는 어디서 했냐느니 하는, 그야말로 아저씨 같은 질문을 퍼부어 대기도 앻ㅆ다. 듣다 못한 아크가 주책없이 떠들어 대는 이슈람의 입을 막으며 말을 돌렸다. "사, 사범님, 일단 장물 처리 문제부터 상의하죠." 사실 이슈람을 란셀로 불러들인 건 다름 아닌 아크였다. 그동안 이슈람이 아크 상점에 장물을 맡겨 놓고도 들르지 못한 이유는 바로 수배범들 때문이었다. 뉴 월드에서 수배범들을 감시하는 게 일이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슈람이 똘마니를 잡아넣자 겁을 집어먹은 수배범들이 고민 끝에 은신처를 옮기기로 했다. 때문에 한두 달 정도 접속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들은 아크는 이슈람을 란셀로 불렀다. 마침 아크도 란셀에 머물고 있으니 이참에 이슈람의 장물을 몽땅 처분해 버릴 생각이었다. "그래, 일단 물건부터 보자." "네. 삽질이, 울먹이, 너희들도 따라와." 아크는 이슈람과 돼지들을 이끌고 임대 창고로 들어섰다. 한 달 가까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자 엄청난 양의 잡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가 10,000골드어치의 잡템! "후후, 이게 다 이 몸의 물건이란 말이다. 알았냐, 돼지들?" "네네, 알아 모시겠습니다." 이슈람이 힐긋 보자 삽질이와 울먹이가 움찔하며 굽실거렸다. 아크는 쓴 웃음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어쨌든 잘 오셨어요. 마침 저도 볼일이 있어서 기란에 가려던 참인데." "기란? 뭔 소리냐? 웬 기란?" "아, 말씀 안 들렸나요? 이 장물은 란셀에서 처분할 수 없어요." "어라? 그건 또 왜?" "아직 이곳에는 이 정도 물량을 한 번에 매입할 수 있는 대형 상점이 없거든요." 새삼스럽지만 이슈람이 장물을 굳이 현물로 받은 이유는 레벨업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상인이 거래로 올리는 경험치는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순이익을 냈느냐로 결정된다. 그러나 산골 마을인 란셀에 한 번에 이만한 물량을 매입할만한 상점은 없었다. 아마도 이만한 물건을 한 번에 처리하려면 기란에 있는 상점 정도는 돼야 하리라. "게다가 제가 알아보니까 이런 거래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상인 길드였어요." 그동안 아크는 무식한 상인 이슈람을 위해 장물로 가장 많은 레벨업을 할 방법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알아낸 방법이 바로 상인 길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상인이 상인 길드와 직거래를 하면 거래로 받는 경험치에 5%의 보너스가 적용되는 것이다. 게다가 상인 길드는 거래 가격에 제한이 없어서 10.000골드든 100,000골드든 모두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문제는 상인 길드는 일반 상점과 달리 모든 아이템을 평균 시세로 구매한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가격이 좀 올라간 아이템의 경우 약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경험치가 목적이라면 역시 상인 길드에서 거래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았다. 또한 상인 길드는 거래 실적에 따라 상인에게 각종 퀘스트나 칭호, 특수 스킬을 부여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호오, 그래?" 이슈람은 시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슈람은 레벨 200대의 상인이지만 장사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었다. 레벨 150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올린 80레벨도 장사가 아닌 사냥으로 올린 것이다. 아마도 이렇게 무식한 상인은 뉴 월드는 물론 다른 온라인게임에서도 유례가 없으리라. "그나저나 이 많은 양을 어떻게 기란까지 옮겨 가지?" 이슈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잡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샴바라가 이곳으로 옮겨 올 때도 큰 마차가 필요했던 무지막지한 양의 잡템! 그러나 잡템을 기란으로 운반하는 방법은 간다했다. "삽질이, 울먹이, 잡템을 챙겨.사범님도 일단 가방 비워놓고 챙기세요." 삽질이와 울먹이, 이슈람, 상인만 세 명이다. 상인 하나에 가방이 6개니 총 18개의 가방! 거기에 아크의 가방과 2배의 용량을 가진 라둔까지 합하면 가방이 21개나 있는 셈이다. 게다가 가방에 같은 종류의 아이템을 넣으면 소모품이나 교역품은 대부분 겹쳐진다. 실제 부피나 무게가 어쨌든 차지하는 공간은 1칸. 샴바라가 운반해 올 때도 이 때문에 마차 한 대에 이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산더미 같은 잡템도 네 명과 한 마리의 가방에 몽땅 챙겨 넣을 수 있었다. "잘 다녀오세요!" 아크 일행은로코의 전송을 받으며 장삿길에 나섰다. 그러나 장삿길이라고 해도 마법탑을 이용해 기란까지 가는 데 불과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물론 영자 이동 이용비가 제법 비싸지만 10.000골드나 되는 짐을 옮기며 몇심 골드에 연연하는 것도 우습다. 또한 아직 재건 사업 중인 아크는 란셀을 오래 비워 둘 수 없었고, 일단 로코에게 맡겨 놨지만 삽질이와 울먹이 역시 장시간 상점을 비울 수 없었다. 영자 이동을 통해 단숨에 기란으로 날아간 일행은 곧바로 상인 길드를 찾아갔다. 상인 길드는 역시 대륙에서 가장 돈이 많은 길드답게 기란의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번쩍이는 황금색으로 치장된 상인 길드에 들어서자 점원 NPC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떤 서비스를 받으려고 오셨습니까?" 점원이 10여 개로 나워져 있는 부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상인 길드에서는 각종 물건을 사고파는 것은 물론, 여러지역의 특산품 시세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전문 상인이신 경우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 수행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처분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럼 절 따라오십시오." 점원이 아크 일행을 한 부스로 안내했다. 그리고 커다란 바구니 같은 물건을 가리키며 말햇다. "일단 처분하기를 원하시는 물건을 저곳에 담아 주심시오. 그러면 제가 즉시 감정해 구매 가능한 가격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네? 하지만……." 아크가 바구니를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리자 점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물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거래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바구니에 다 들어갈 것 같지 않은데요?" "네? 아, 무슨 말인가 했더니……. 하하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물건을 넣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바구니는 특수 소형호 ㅏ마법이 걸려 있어 어지간한 물건은 티도 안 날 정도죠." "뭐, 그러시다면…….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아크의 말에 라둔이 배 속의 잡템을 바구니에 뱉어 냈다. 라둔이 꾸역꾸역 뱉어 내는 잡템! 거기에 아크의 가방에 담긴 잡템까지 꺼내 놓자 상당한 양이 되었다. 그러나 점원의 말처럼 잡템이 바구니에 들어가자 신기하게도 100분의 1크기로 줄어들어 상당한 양을 뱉어 냈는데도 조그만 상자 하나 크기도 되지 않았다. 그러자 점원이 피식 웃었다. 그 정도 양 가지고 바구니 크기를 운운한 게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슈람과 삽질이, 울먹이가 18개의 가방을 열고 쉬지 않고 잡템을 쏟아붓자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당혹성을 터뜨렸다. "설마 가지고 계신 가방에다 물건이 들어 있는 겁니까?" "네, 그런데요?" 이슈람이 아예 가방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 대며 대답했을 때였다. "자, 잠깐만요! 그, 그러면……." 움찔, 움찔, 움찔, 퍼퍼퍼펑! 돌연 바구니 속에서 100분의 1로 축소되어 쌓이던 잡템들이 진동을 일으키듯 흔들리더니 팝콘처럼 펑펑 소리를 내며 본래 크기로 돌아갔다. 임대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던 잡템이 일시에 본래 크기로 돌아가자 마치 화산이 분출하는 것처럼 바구니 밖으로 잡템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렇게 넘쳐흐른 잡템은 홍수처럼 주변의 부스를 몽땅 삼켜 버렸다. 잡템이 마법 바구니의 한도 용량을 넘어 폭발한 것이다. 잡템의 홍수! 갑작스러운 잡템의 습격에 주변의 NPC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아아, 그래서 안 될 거라고 했던 건데……." 아크가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잡템의 홍수에 파묻혔던 점원이 기어 나오며 떠듬거렸다. "이, 이걸 전부 한 번에 처분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네, 곤란합니까?" "아, 아닙니다. 지금 바로 지부장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잡템 받을 뛰어나온 점원이 허둥지둥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잠시 후, 반쯤 머리가 벗겨진 중년 사내가 두툼한 살집을 흔들며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 부스 안에 쌓여 있는 잡템의 산을 바라보고는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역시 상인답게 놀라는 와중에도 명함을 건네주며 영업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기란 상인 길드의 지점장 마볼입니다. 이걸 모두 저희 길드에서 매각하시겠다고요?" "네, 바로 계상해 주실 수 있죠?" "물론입니다. 어이, 뭣들 하나? 정리하고 감정 시작해!" 마볼의 고함에 멍청하게 바라보던 점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잠템에 몰려들었다. 점원들이 감정을 시작하자 마볼이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양이 양인지라 감정이 끝나려면 시간이 좀 걸릴겁니다. 제 방으로 가셔서 차라도 한잔하면서 기다리시죠." 역시 상인 길드랄까? 돈이 될 만하다고 판단되자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졌다. 사실 NPC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상인들은 거래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적용되는 건 유저만이 아니었다. 상인 NPC 역시 거래를 통해 경험치를 얻는 것이다. 때문에 큰 고객을 잡는 건 NPC에게도 성장의 기회였다. 덕분에 아크 일행은 지점장실에서 VIP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대략 10분쯤 지났을까? 상인 길드의 전 점원이 달라붙은 덕분에 감정이 완료되었다. 점원이 가져온 전표를 훑어본 마볼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 모두 해서 11.028골드 입니다. 이 가격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볼에 말에 이슈람이 슬쩍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 가격에 팔아도 되겠냐는 질문의 눈빛이다. '내가 예상했던 금액보다 오히려 높다. 아무래도 사범님의 직업이 '발주 상인'이라 큰 거래에서 약간 어드밴티지가 작용한 모양이군.' "네, 전부 매각하겠습니다."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슈람이 대답했다. 그때 점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볼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마볼은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 점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손님이 가져오신 물건들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는군요. 제 입으로 말하기 송구하지만 도난품 같은…… 이럴 경우는 먼저 확인 조치를 거치든지 보증금을 걸어 놔야 거래가……." 그러나 아크는 피식 웃으며 준비해 뒀던 서류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보증서 아래 적힌 품목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보증합니다. 비단 50필, 수정 120개, 산호초 300개…… 이하 생략. 스탄달 대표 이사벨 새삼스럽지만 스탄달에서 보내온 물건은 장물이다. 그리고 일반 상점이라면 대부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상인 길드는 장물의 감정이 엄격했다. 물론 그래도 80~90%는 팔 수 있었지만 심할 경우 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50%까지 가격을 깎일 수도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미리 이사벨에게 장물에 대한 보증서를 받아 뒀던 것이다. 스탄달 대표 이사벨의 보증서! 깐깐한 상인 길드라도 더 이상 왈가왈부할 건더기가 없었다. "퍼펙트! 완벽하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대금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마볼도 가격을 깎더라도 불안한 장물 거래보다는 맘 편하게 거래를 하는 편이 더 마음에 드는지 활짝 편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점원과 함께 금고로 들어갔다가 이내 엄청난 크기의 돈 자루를 짊어지고 돌아왔다. 2,000골드짜리 돈 자루 5개와 1,000골드짜리 돈 자루 하나 그리고 잔돈 28골드……. 잡템의 양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골드였다. 마볼이 대금을 결제하는 것과 동시에 이슈람의 눈일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거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번에 11,029골드짜리 거래! 게다가 11,029골드가 100% 순이익이다! 정상적인 물건을 거래했다면 100만 골드를 거래해야 올릴 수 있을까 말까 한 순이익을 단 한 번에 올려 버린 것이다! 그렇다, 이번 거래의 포인트는 바로 그거였다. 본래 상인이 거래로 얻는 경험치는 순이익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한 번에 얻는 순이익이 많으면 많을수록 추가 경험치가 적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골드의 이득을 볼 때 100의 경험치가 주어진다면 200골드의 이득을 보면 300의 경험치가 적용되는 식이다. 한 번에 많은 이득을 볼수록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1,028골드라면 경험치가 따따따따따블이 된다는 뜻! 이게 상인의 레벨이 가장 올리기 쉬우면서 ,또 어렵다고하는 이유였다. 게다가 상인 길드와 거래를 한 덕분에 5%의 경험치가 더 추가된다. 여기서 상인의 경험치가 전사와 다른 점은, 전사의 경우는 한 번에 많은 경험치를 받아 레벨이 몇 단계나 올라가면 1레벨당 10%씩 페널티가 작용한다. 때문에 전사가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레벨은 9가 최대. 그러나 상인의 경우에는 애초에 그런 페널티가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슈람의 레벨은 아예 10 단위로 올라갔다. "20, 30, 40, 50…… 헉, 64! 한 번에 레벨이 64……!" 미친 듯이 눈알을 굴리던 이슈람의 입이 찢어질 듯 벌어졌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역시 돈이 최고였다. 무려 레벨 64업! 믿어지지 않는 레벨업이었다. '대체 지금까지 내가 한 고생은…….' 이슈람이 메시지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ㅏ 일전에 이슈람이 카니발에서 얼쩡거릴 때 레벨이 2230이었다. 그리고 도적단과 떨어지고 지금까지 근 한 달 가까이 죽을 고생을 하며 올린 레벨이 고작 10. 그런데 거래 한 번에 그 6배에 달하는 레벨이 올라갔다. 우연히 스탄달의 장물을 손에 넣은 행운과, 장물을 레벨업에 이용하자는 아크의 적절한 조언 덕분이었다. "아, 아크야…… 이 몸은 감동했다……!" 이슈람이 밀려오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떠듬거렸다. "정말 좋은 거래였습니다." 마볼 역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마볼의 머리 위에도 레벨업을 뜻하는 십자 마크가 한참이나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이슈람만큼은 아니지만 큰 거래를 성사시킨 덕분에 마볼도 레벨이 올라간 모양이다. 그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일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마볼이 새로운 제안을 했다. "저렇게 많은 장물을 손에 넣은 것도 그렇고, 스탄달 대표의 보증서를 받아 온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보통 상인은 아닌 것 같군요. 보통 상인에게 전리품을 나눠 주는 경우는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을 때나 가능한데, 전장도 마다 않고 상인 혼을 불태웠다는 증거겠죠." 사실은 100% 운으로 얻은 장물이다. 그러나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슈람은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그야 뭐……." "상인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전사보다 더욱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직업. 그런데 요즘 상인들은 몸만 사릴줄 알았지 진정한 상인 혼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것들 투성입니다. 하지만 이슈람 님은 알게 모르게 전사 같은 포스가 느껴진다고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요즘 것들과는 뭔가 다릅니다." "뭐, 그렇게까지……." 이슈람이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마볼이 바짝 다가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아예 그쪽 방명으로 나가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쪽 방면?" "네. 실은 제가 아는 분 중에 10여 년 전에 은퇴하신 대상인이 한 분 있습니다. 크로닐이라고, 그리 많이 알려진 분은 아니지만 한창 삼국에 전쟁을 벌이던 시기에 전장을 무대로 활약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았던 분이시죠." 나가란이 유저들에게 공개되기 전, 나가란은 삼국의 전장이었다. 그리고 마볼이 말하는 크로닐이라는 상인은 당시 나가란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한다. 그 돈에 대한 집념과 물불 안 가리는 정신은, 병사가 포션을 주문하면 화살이 빗발치는 전장도 마다 않고 뛰어 들어가 배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크로닐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고 자신의 무대였던 나가란의 변방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전장을 뛰어다니며 익혀 온 경험과 지식을 썪히기 아깝다고 생각해 후계자를 찾는 중이라고 한다. "크로닐 님은 그 일을 상인 길드에 의뢰했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돈이 된다면 드래곤 입속이라도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상인을 찾아 달라고 말이죠." "그 말씀은 혹시……?" "네, 장물을 이만큼이나 거래할 수 있는 이슈람 님이라면 그분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 만나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생가이 있다면 제가 추천장을 써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 추천장을 가지고 간다고 다 그분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지금까지 몇 명의 상인이 찾아갔지만 다 탈락당했죠. 그래도 도전하신다면 기꺼이 추천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이슈람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은퇴한 대상인 크로닐 당신은 기란 상인 길드 지부장으로부터 은퇴한 대상인 크로닐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크로닐은 한때 혼란한 전장이었던 나가란을 무대로 활약하며 명성을 날렸던 상인입니다. 그는 상인의 몸으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기술을 익혔고, 나이가 들어 은퇴한 지금은 기술을 저수해 줄 후계자를 찾고 있습니다. 만약 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가 걸어온 전장의 상인으로서의 경험과 지식,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난이도 : ±A> <퀘스트 조건 : 레벨 300 이상 상인 전용, 1회 거래로 5,000골드 이상의 이윤을 남겼을 시 퀘스트 수행 가능. '상인 길드 지부장의 추천장' 필요> "어라?" 이슈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정보창을 확인할 수 없는 아크가 무슨 일이냐는 듯이 바라보자 이슈람이 정보창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아크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받으세요. 무조건 받으세요!" "어? 응? 아, 알았다. 네.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이슈람이 엉겁결에 퀘스트를 수락했다. 아크가 이슈람에게 퀘스트를 받으라고 말한 이유는, 바로 퀘스트 내용에서 '전직 퀘스트'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전대 상인의 지식을 전수한다면 당연히 전직밖에 더 있겠는가? "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 은퇴해서 나가란의 하몽 영지에 은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찾아가 제 추천장을 보여 드리면 될 겁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이슈람은 마볼의 추천장을 받아 들고 상인 길드를 나왔다. "흠, 뭔가 좀 정신이 없네. 어쨌든 당분간은 딱히 할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나가란의 하몽 영지라고 했지? 너, 거기가 어딘지 알아?" "거긴 전쟁 지역이에요." "전쟁 지역?" "네, 유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지역이죠. 유저 상인에게 그 곳으로 가라니……."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저도 가게 될지 모르는데 좀 있다가 같이 가실래요?" "너는 뭐 하러 가는데?" "……설명하자면 좀 길어요." "흠, 아니, 그냥 혼자 갈란다. 전쟁 지역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죽는 게 무서워서 너하고 같이 가는 것도 쪽팔리잖아. 그럼 그렇게 알고 일단 여기서 헤어지자. 로코 양에게 안부나 잘 전해줘라." 이슈람은 계약대로 11,029골드의 절반 5,514골드를 건네 주고 나머지 1골드를 손가락으로 튕겨 주며 씨익 웃었다. "이건 팁이다. 자투리 동전은 행운의 동전이라고 하니까 챙겨 둬." 이로써 한 달 가까이 상점 임대 창고에 처박혀 있던 장물이 해결되었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기란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아크는 짐꾼 삽질이와 울먹이를 먼저 돌려보내고 기란 마법 학회를 찾아 학회장 샤넨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아크, 어서 오게!" 잠시 후, 연락을 받은 샤넨이 반가운 표정으로 아크를 맞이했다. "마법탑 건설 건으로 란셀에 파견 나가 있던 마법사에게 자네의 활약을 들었네. 마을을 습격하려던 도적 무리를 막아냈다고 말이야. 새삼스럽지만 자네가 마법 학회의 정회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네. 그래, 오늘은 어쩐 일로 나를 찾았는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자네 부탁이라면 들어줘야지. 뭔가?" 아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샤넨을 마주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법 학회 그랜드 마스터와 만나고 싶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뚝딱, 뚝딱, 뚝딱! "아크 님, 광장 주변의 조경 작업이 완료 됐습니다." "지시하신 건물의 이전 신축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새로운 도로 확장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흐음……" 아크는 너구리족의 보고를 받으며 작업 현장을 주욱 둘러보았다. 재건 사업을 위임받고 일주일 돈안 주야 2교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빡세게 너구리족을 굴려 댄 덕분에 이제 현재 달성률은 98%. 건물의 수리와 신축, 새로운 도로 그리고 도로 양옆의 조경 사업까지 완료되었다. 남은 것은 신축 건물의 외벽 도장 정도였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보기 좋아졌군.' 아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일단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마을 어디에서든 아크 상점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처음 목적이 아크 상점을 돋보이게 하는 거라고 해도, 지도 제작자 한슨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청사진을 토대로 시작한 작업니다. 청사진대로 구획 정리를 개편해 놓으니 란셀 마을의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졌다. 그러나 세련된 도시의 느낌은 아니었다. 한슨이 목표로 한 이번 란셀 신도시 계획은 '버라이어티하면서도 심플한' 이었다. 그리고 한슨의 목적대로 새로운 란셀은 마치 건물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듯한 마을에서, 잘 꾸며 놓은 놀이 동산처럼 오밀조밀 하면서도 말끔하게 정돈된 마을로 새로 태어났다. 더불어 추모비 덕분에 마을 NPC들의 만족도도 상당히 올라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그 문제인데…….' 아크는 화단에 낮아서 잠시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어제 오후 기란 마법 학회를 찾은 아크는 샤넨에게 마스터와의 면담을 신청했다. 대륙 3대 길드의 하나인 마법 학회의 마스터 알현! 일반 유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마법 학회 정회원인 아크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신청한 지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아크는 영격 통신-장거리 통신 마법, 마법 학회에서만 가능하다-을 이용해 마스터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아크가 마스터 알현을 신청한 이유는 바로 브레드와 의논하던 예의 '란셀 보안 대책'때문이었다. 그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마법 학회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열성적이 웅변으로 마스터를 설득했다. "자네의 부탁은 가볍게 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네. 더구나 란셀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작은 산골 마을에 불과하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는 마법 학회에 이득이 되지 않는 곳이란 말이지." '역시 무리인가?' 아크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한 아크가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였다. "하지만 자네가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를 가져다준 덕분에 마법 학회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장을 할 수 있었네. 그런 은인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것은 마법 학회의 명예에 관련된 일. 전례가 없는 일이기는 하나 마스터의 권한으로 자네의 요청을 수학하겠네." '서, 성공이다!' 마스터의 말에 아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새삼스럽게 죽을 고생을 하며 마가로프 퀘스트를 완료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크는 원하는 대로 마법 학회의 약속을 받아 냈다. 그러나 이건 아크의 계획에 33%의 성공밖에 되지 않았다. 아크의 계획이 100% 완성되려면 마법 학회만이 아니라 전사 길드 소드&액스와 상인 길드 마이더스의 협력도 받아 내야 했다. 물론 그에 대해서는 따로 준비해 둔 방법이 있었지만 마스터가 호의적으로 나오자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혹시 전사 길드나 상인 길드의 마스터들에게도 한마디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리한 부탁을 하는군." 마스터가 어이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샤넨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아크에게 눈짓을 보내왔다.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는 마법 학회와 경쟁적인 관계. 마법 학회의 마스터에게 양대 길드에게 부탁해 달라는 말은 곧 경쟁자에게 고개를 숙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아크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미 내디딘 발이다. 아크는 뻔뻔스럽게 철판을 깔고 말을 이어싿. "이왕 도와주시는 거 화끈하게 도와 주시면 좋지 않습니까?" "……후, 무지한 건지 배짱이 두둑한 건지 모르겠군. 어쨋든 자네의 그 부탁은 못 들은 걸로 하겠네. 하지만 그 문제는 굳이 내게 부탁하지 않아도 될 거네." "네? 그게 무슨……?" "그 이유를 모른다면 무지한 거지." 마스터는 그 말을 끝으로 영격 통신을 끊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그 뒤르 아크는 계속 마스터의 말뜻을 생각해 봤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일단 마법 학회의 협조는 받아 냈으니 상관은 없지만…….' 아크가 화단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쇄에에에에에엑-! 돌연 산등성이 너머에서 엄청난 크기의 빛이 란셀을 향해 날아옸다. 마치 혜성처럼 거대한 크기의 빛. 그 빛이 마법탑의 상층부를 후려치가 일순 주변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저 빛은…… 왔다!" 아크가 벌떡 일어나 마법탑을 향해 뛰어갔다. 마법탑 앞에 도착해 보니 주변에는 이미 빛을 목격한 유저들이 모여 있어싿. 영자 이동은 한 번에 이동하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 빛의 크기가 달라진다. 방금 전의 빛 같은 크기라면 최소한 수심명. 대체 누가 요금 비싸기로 소문난 영자 이동을 한 번에 수십명이나 이용하며 란셀을 찾아온 것일까? 유저들이 마법탑으로 몰려든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때 마법탑의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을 확인한 유저들이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라, 저 사람들은……?" "마법 학회다! 마법 학회의 마법사들이다!" "화염술사, 얼음술사, 바람술사, 대지술사, 4대 속성 마법사가 다 모였어!" "왜 저 마법사들이 여기에 온 거지? 4대 속성 마법사는 마법 학회의 경비대원들인데?" 그렇다 , 탑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붉은색, 파란색, 푸른색 등 갖가지 색의 로브를 입은 4대 속성 마법사 들이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화려한 금실로 마법학회 소속의 마법사에게만 허락된 엠블렘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들은 웅성거리는 유저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선두에 있던 마법사가 아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크 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아크 님의 요청에 따라 신설된 란셀 마법 학회의 지부장을 맡게 될 그라나다입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에엑? 란셀 마법 학회?" "란셀에 마법 학회의 지부가 생긴다는 말이야?" 주변에서 지켜보던 유저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렇다. 아크가 마법 학회의 마스터를 직접 만나 부탁했던게 바로 이거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란셀의 방위력 향상 계획이었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3대 길드의 지부를 란셀에 유치한다. 당연히 지부가 생기면 길드의 경호 병력이 란셀에 상주할 것이고 란셀의 방위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법 학회의 지부를 유치해서 얻어지는 이익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법 학회는 최상위 길드! 소속된 NPC의 숫자는 전 대륙에 걸쳐 수만! 그리고 유저 길드 30%에 달하는 숫자가 마법 학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마법 학회가 들어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숫자의 NPC와 유저들이 란셀로 몰려들게 되리라. 엄청난 경제 파급효과를 가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NPC와 유저들이야말로 란셀을 지키는 무엇보다 든든한 방어막! 즉, 방위 병력이 될 것이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효과를 가진 3대 길드를 모두 란셀에 유치한다면?' 아크의 최종 목표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브레드는 유저 가운데 아직 네 명밖에 되지 않는 저사 길드의 정회원! 브레드에게 아크가 마법 학회의 마스터를 만난 것처럼 전사 길드의 마스터를 만나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또한 나머지 하나인 상인 길드에는 시드를 보냈다. 시드 역시 나가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얼마 전에 상인 길드의 정회원이 됐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3대 길드를 모두 유치하는 건 무리인가?' 브레드와 시드가 성공했다면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가 마법 학회보다 먼저 도착했어야 한다. 그러나 마법 학회가 도착할 때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실패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뭐, 마법 학회만으로도 경제 효과의 방위 효과는 충분하지만…….' 아크가 그렇게 생각하며 단념하려던 찰나! "저기 봐! 또 엄청난 빛 무리가 날아온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아크가 황급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에서 혜성 같은 빛줄기가 날아와 마법탑을 후려쳤다. 쇄애애애애액, 콰콰콰쾅! 쇄애애애애액, 콰콰콰쾅! 연이은 충격에 마법탑이 휘청거리며 흔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뒤이어 마법탑의 입구에서 장중한 북소리가 울리며 기마대가 나왔다. 둥, 둥, 둥, 둥, 둥! "헉, 저 기사들은 전사 길드의 근위사단, 챔피온이잖아?" "뒤에 철갑 보병도 따라 나오고 있어!" "그것만이 아니야. 뒤따라 나오는 마차는 상인 길드의 산단이다!" "서, 설마 대륙 3대 길드가 전부……!" 대륙 3개 길드의 연이은 행진! 그 엄청난 장면에 유저들은 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그때 전사 길드, 상인 길드와 함께 마법탑을 빠져나온 두 사내가 아크에게 다가왔다.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로 파견했던 브레드와 시드였다. "우하하하, 아크, 이 몸이 돌아왔다!" "아크 님, 저도 왔어요!" "성공했구나!" 아크는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3대 길드의 NPC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말이야. 나도 영문을 모르겠어. 어제까지만 해도 계속 거절당해서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오려고 했거든? 그런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결정됐다면서 란셀로 출발하더라고." "어라? 나도 그랬는데……?" 시드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브레드를 향해 '근데 당신은 누구?'라는 시선을 보냈다. 그때 아크의 옆에 서 있던 그라나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잊을 뻔했군요. 아크 님에게 마스터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는 마법 학회의 라이벌이다. 절대 밀릴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입니다." "네?" 아크는 그라나다의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제 마스터가 했던 말과 연결해 보니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3대 길드를 모두 유치하는 것은 굳이 내가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자네의 뜻대로 될 것이다.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는 마법 학회의 라이벌이다. 절대 밀릴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 마스터의 말을 연결하면 이런 문장이된다. 그렇다, 3대 길드는 라이벌 관계. 때문에 어느 한쪽이 조금이라도 앞질러 나가면 바로 뒤따라 움직인다. 처음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는 란셀에 지부를 설립할 필요성을 못 느꼈으리라. 그러나 마법 학회가 란셀에 지부를 설립하려 한다는 움직임을 알아채고 뭔가 있다고 판단, 서둘러 란셀에 지부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마도 마스터는 란셀 지부 설립의 움직임을 의도적으로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에게 드러냈으리라. '과연 마법 학회의 마스터 정도 되니 보통이 아니군.' "마스터에게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아크가 빙긋 웃으며 말했을 때였다. 두두둥, 소리가 울리며 눞앞에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란셀 마을에 대륙 3대 길드의 지부 설립이 결정됐습니다. 대륙 3대 길드는 뉴 월드를 대표하는 최상위 길드입니다. 3대 길드의 유치는 란셀 마을의 품격과 명성을 드높이고 대도시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3대 길드의 지부설립이 결정되어 란셀 마을의 능력치가 올라갔습니다. 마법 학회 : 문명도 +500, 발전 속도 +200 전사 길드 : 무장도 +500, 발전 속도 +200 상인 길드 : 상업도 +500, 발전 속도 +200 -서브 퀘스트 '란셀 마을 재건 사업' 퀘스트가 완료 되었습니다. 전쟁의 피해를 입은 란셀의 재건 사업이 완료됐습니다. *퀘스트 진행 결과 : 달성률 230% '달성률 230%' 3대 길드의 유치 성공으로 재건 사업의 달성률이 단숨에 130%나 상승한 것이다! "마을의 책임자를 만나고 싶소!" 전사 길드와 상인 길드의 지부장들이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임시 촌장은 가렌이지만 현재는 아크가 재건 사업의 책임자라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남쪽에서 다시 한 줄기 섬광이 날아와 마법탑을 후려쳤다. '뭐지? 아직도 올 사람이 남았나?' 아크가 걸음을 멈추고 마법탑을 바라보자 곧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선두에서 걸어 나오는 청년을 발견한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저, 저 사람은?' By-베베 베베님이 작성하셨습니다. ACT 9 진정한 전투의 시작 "누구지, 저 사람은?" "옷차림을 보니 귀족 같아 보이는데?" "수행하는 기사들은 어디서 본 것 같아." 마법탑 주위에 몰려 있던 유저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마법탑 앞에는 10여 명의 기사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의장 행렬처럼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행진하는 기사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아직 앳돼 보이는 청년이 백색 의복을 입고 아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의 출현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전사 길드 지부장이었다. 책임자를 찾던 지부장은 청년의 의복에 새겨져 있는 문장을 확인하고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꽉 움켜 쥔 주먹을 가슴으로 가져갔다가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모두 정렬, 작센 영주님에게 예를 표하라!" 뒤이어 상인 길드와 마법 학회의 NPC들도 예를 표하며 좌우로 물러났다. 그렇다, 마법탑에서 나온 청년은 다름 아닌 작센의 영주였다. "……여, 영주님?" "아크, 오랜만이군." 영주가 백색 망토를 휘날리며 달려와 손을 잡았다. "어찌 그리 연 락 한 통 없었는가?" "영주님이 어떻게 여기에……?" 아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영주와 기사들을 둘러보며 떠듬거렸다. 영주만이 아니라 호위 기사들도 모두 면식이 있는 NPC였다. 작센 수비대장 크로스를 위시해서 예전 시르바나 공성전에 참전했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아크의 시선이 닿자 부동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친근감 넘치는 미소를 보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이들이 란셀 마을을 찾아온 걸까? 어엿한 청년이 된 영주가 화려한 미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자네에게 볼일이 있어서 왔지." "저에게?" 아크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영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그 반응은? 설마 아무것도 모른다는 건가?" "모르다니요 ? 뭘 모른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요?" "허어. 가렌, 어떻게 된 건가?" '가렌?' 아크가 움찔하며 영주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기사들 사이에 숨어 있던 장년인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아크에게 재건 사업을 떠넘기고 잠적했던 임시 촌장 가렌이었다. "가렌이 어떻게 영주님하고……." 아크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시추에이션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엇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의 브레드나 시드, 3대 길드의 길드원들. 일손을 멈추고 몰려든 마을 주민들. 그리고 무엇보다 마법탑 주위에 새까맣게 몰려 있는 유저들도 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가렌이 약간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햇다. "죄송합니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말해 놓지 않았습니다." "흠,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이군." 영주가 짐짓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돌연 영주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크 경, 예를 취하고 국왕 폐하의 칙명을 받으라!" "아크 경? 국왕 폐하의 칙명?" "시키는 대로 하게." 가렌이 옆으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크는 잠시 영주와 가렌은 번갈아 보다가 엉거주춤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영주가 보석으로 치장된 검을 뽑아 아크의 어깨에 올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작센의 영주 하베스틴 2세는 존귀하신 슈덴베르크 국왕 폐하의 명에 따라 아크를 명예 기사에 봉한다. 또한 준남작의 작위를 내려 영지를 소유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명예로운 기사 아크 경의 영지는 란셀 마을. 이 결정에 반대하는 자나, 불만을 가진 자는 슈덴베르크 국왕 폐하의 결정에 항명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이는 당사자인 아크 경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명예 기사? 준남작? 영주? 그, 그럼 설마……?' 순간 아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명예 기사에 준남작, 게다가 란셀의 영주라니?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청년 영주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청년 영주는 곧 크로스가 건네주는 목함을 열고 비단으로 되어 있는 황금색 두루마리를 꺼내 내밀었다. "아크 경,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라." 아크는 멍청한 얼굴로 두루마리를 받아 들며 떠듬거렸다. "작위라니? 영주라니? 이게 전부 무슨 말입니까?" 일단 아크가 두루마리를 받아 들자 청년 영주는 다시 장난기 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가렌을 가리키며 웃었다. "저 친구에게 물어보게. 모두 저 친구가 꾸민 일이니까." "가렌이 꾸몄다고요?" "그래, 물론 나도 약간 돕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게 무슨……?" "가렌,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게 됐으니 얘기해 줘도 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가렌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아크에가 다가왔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흠, 그래, 굳이 길게 얘기할 것도 없으니 간단하게 얘기하지. 그동안 쭉 생각해 왔던 일이지만 나는 이번 마을 습격을 겪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 있네. 자네의 존재가 란셀의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말이야." 가렌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일이지. 애초에 망해 가던 이 마을을 구해 준 건 자네니까. 그리고 지금 란셀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한 번쯤은 자네에게 도움을 받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었네. 다시 말하자면 자네를 빼놓고는 란셀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뜻이지. 그리고 둗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습격 역시 마찬가지. 아마도 자네가 없엇다면 우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도적단에게 멸망해 버리고 말았을 거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아크는 뻔뻔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티 나지 않게……. 그런 주제에 겉으로는 같잖게 짐짓 겸손을 떨어 댔다. "과찬이십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란셀의 주민은 제가 모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쉴 자리를 주고 잘 보듬어 화합할 수 잇도록 해 준 사람은 가렌 아저씨가 아닙니까? 지금의 란셀이 있는 것은 가렌 아저씨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마음을 열어 준 덕분입니다." "그렇지 않네. 나는 그저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만약 그들의 중심에 자네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수인족도, 전직 도적도, 바란족도 결코 화합하지 못했을 거야. 이번 도적단의 습격을 받으며 그 점을 확실하게 깨달았지. 그래서 나는 이전부터 언젠가는 란셀의 모든 것을 자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해 왔네. 그리고 이번 전투가 끝났을 때 주민들을 모아 내 뜻을 전했지." 가렌이 품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내 펄쳐 보였다. 종이 뭉치에는 고양이 발바닥, 개 발바닥, 너구리 발바닥 그리고 사람 손바닥 따위가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대체 이게 뭔가? 만화? 암호? 장난?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가렌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게 바로 주민들의 대답이네. 자네에게 란셀을 맡기고 싶다는 말에 이렇게 기꺼이 서명해주었지." ……그 발바닥들이 서명이었단다. 진지하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소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짠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 주변에 모여 잇는 주민들은 처음부터 이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아크에게 란셀을 맡기고 싶다고 직접 지장(?)을 찍었단 말인가? 아크가 황망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월랑족과 묘족, 너구리족, 전직 도적, 기타 등등의 주민들이 ㅈ미짓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가렌이 한동안 자리를 비운 것은 그 때문이었다. 란셀 방어전이 끝나자 일단 가렌은 작센 영주를 찾아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마을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영주에게 소상히 설명했다. 놀의 위협에서 란셀을 구하고, 이주민을 불러들어 마을을 성장시키고, 신성한 토양을 찾아 식량 위기를 처리하고, 이번에 도적 무리로부터 란셀을 지켜 낸 일까지……. 그리고 마을 주민이ㅡ 서명을 보여 주며 아크를 란셀의 정식 영주로 추대하고 싶다고 청했다. "실로 즐거운 얘기다." 아크의 열혈 팬인 작센 영주는 일단 가렌의 요청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본래 란셀은 지역적으로 작센 영지에 속해 있지만 개척 마을이라 영주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작은 마을이라 영주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을 주민 모두가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유 마을에서 영주를 추대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가렌이 원하는 것은 그냥 영주가 아닌, 국왕의 인정을 받은 진짜 영주 자리였다. 그리고 공식적인 영주가 되기 위해서는 귀족의 작위가 필요했다. 때문에 가렌이 일부러서명을 들고 청년 영주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아크의 열혈 팬인 청년 영주는 발 벗고 나서서 국왕에게 직접 장문의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네. 예전에 자네가 아란과 앙크 교단과의 관계를 파헤쳐 큰 공적을 세웠던 것을 잊지 않으셨던 거지. 물론 이번에 도적 무리를 막아 내고 주민들의 서명을 받은 것도 크게 작용했고 말이네." 청년 영주가 아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자아, 이제 그만 튕기고 저들에게 대답을 해 줘야 하지 않겠나?" "네?" 아크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묻자 청년 영주가 주변에 모여 있는 주민들을 가리켰다. "자네는 아직 저들의 성원에 대답하지 않앗네. 자네에게 준남작의 작위를 수여한 건 국왕 폐하지만, 영주 자리를 수여한 사람은 저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청년 영주의 말에 아크는 뭔가 뜨거운 게 치밀어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란셀이라는 마을을 알게 된 뒤로 1년 6개월. 란셀에 모여 있는 주민들은 그동안 아크가 경험한 모험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돈에 환장한 아크가 내내 NPC가 마음에 쓰여 추모비를 세웠던 것도 그 때문. 그렇다, 이미 아크와 란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란셀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크의 마을이 되었다. 그것도 주민들의 갈망에 의해서! 아크는 마치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플레이를 NPC에게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영주직을 수락하겠습니다." 아크가 꾹 눌렀던 감정을 흘리듯이 대답했을 때였다. 두두둥, 장중한 울림과 함께 정보창이 올라왔다. -'작위 수여증'을 습득했습니다. '작위 수여증'으로 명예 기사(준남작)'의 작위를 습득하셨습니다. 뉴 월드에서 이방인은 평민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왕국에 큰 공적을 세우면 귀족으로 신분 상승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귀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칭호가 주어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분 상승은 곧 유저의 업적을 왕국에서 인정햇다는 의미이고, 앞으로 게임을 하며 겪어야 할 모든 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귀족이 되어 왕국 내의 관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이 생겼습니다. 또한 각 영지의 영주에게 알현 신청을 할 수 있으며, 명예 기사가 되어 왕국 관련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작위에 따라 근처 마을이나 도시의 경비대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작위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5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5,000만큼 증가합니다. +영주 이상 급의 직위를 가진 NPC에게 받은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직위(명예 기사 : 100명)에 따라 경비대원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개척 마을 란셀을 영지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슈덴베르크 국왕에게 란셀 마을의 정식 영주로 인정받았습니다. 영주가 되면 해당 영지의 예산 설정, 설비 투자, 운영 방침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또한 마을에 상점을 낼 때 필요한 상점 허가증을 발급할 권한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주에게는 열흘마다 영지에서 얻어지는 수익의 3%가 월급으로 지급되며, 마을 지분이 5%추가되고 투자 상한선이 25%까지 상승합니다. <영주 특별 권한 : 영지의 자산이 허용하는 한도라면 영주의 지분을 담보로 3%의 이자로 영지의 공금을 대출받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대출받은 공금을 45일 안에 갚지 못할 시, 담보는 압류되며 마을 지분이 5% 이하로 내려가면 영주의 권한을 잃게 됩니다.> +란셀 영지의 지분이 5% 올라갔습니다. +소유할 수 있는 지분의 상한선이 25%로 상승했습니다. *현재 소유한 란셀 영지 지분(소유/상한):9/25% 새로운 영주 스킬이 생겼습니다. 정식 영주는 영주 스킬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이런 영주 스킬은 영지를 다스리거나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입니다. 물론 아직 경험이 적어 현 상태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지만, 경험을 쌓을수록 보다 전문적이고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스킬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지도력(영주 스킬):지도자로서 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스킬입니다. 지도력이 높은 영주가 운영하는 영지는 각종 생산물의 수확량이 증가하고, 주민의 증가 속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영지가 몬스터나 도적의 침략을 받을 경우, 병력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지도력은 영주가 영지에 좋은 영향을 미칠 때마다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란셀 관련 퀘스트의 초과 달성과 주민들의 존경심에 의해 기본 지도력에 300이 추가되었습니다. <지도력 : 500(+300)> 현재 소유한 영지 정보창 [영지]:란셀 [등급]:C [분류]:소형 영지 [영지의 주민 수]:732명 [주민 유대감]:1,280(+640) [주민 충성도]:970(존경 상태) [영지의 총수입]:10일 기준 7,950골드 [현재 영지의 자산]:49,780골드 [현재 영지의 가치]:6,480(+2,730) [영지의 명성]:89,479 [발전도]:2,840 [발전 속도]:2,950(+2,075) [상업도]:1,892(+500) [문명도]:1,435(+500) [무장도]:1,676(+500) *현재 영지에게 적용되는 효과 [세계수]발전 속도 +50%, 영지 가치 +50%, 몬스터 습격 확률 -50%,'안식' 효과 [마법 학회]문명도 +500, 발전 속도 +200 [전사 길드]부장도 +500, 발전 속도 +200 [상인 길드]상업도 +500, 발전 속도 +200 [추모비]유대감 +50%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드디어 <새로운 이주민을 찾아라>가 완료되었다. 그렇다, 란셀의 영주 자리. 그게 바로 1년 6개월 만에 완료한 퀘스트의 보상이었다. "와아아아아!" "아크 영주님 만세!" 아크가 영주직을 수락하자 일대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왔다. 여기저기 뚫린 구멍에서는 너구리족이 고개를 내밀고 환호성을 터뜨렸고, 구름다리 위에서는 묘족이 펄쩍펄쩍뛰며 소리쳤다. 그리고 주변에 몰려 있는 월랑족은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 대며 열광했다. 전직 도적들도 일손을 팽개치고 몰려들어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렷다. 이들이…… 이제 아크의 영주민들이었다. "경사로구먼." 그때 그라나다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리며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수십 명의 마법 학회 마법사들이 하늘을 향해 불꽃을 쏘아 올렸다. 마법의 불꽃이 형형색색의 빛을 뿜어내며 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였다 .그러자 전사 길드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검과 창을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질렀고, 뒤이어 상인 길드도 상단기를 흔들어 대며 축하 행렬에 참가했다. 3대 길드의 입성식이 영주 취임식 축하연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부럽군. 내 영지에서도 이렇게까지 열광적인 환호는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옆에서 청년 영주가 빙그레 웃으며 중얼 거렸다. 이렇게 아크는 란셀 마을의 영주가 되었다. 유저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눅눅한 습기가 감도는 어둠 속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차가운 돌벽에 등을 기댄 채 분노의 포스를 뿜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쥬르였다. "아크 녀석……." 쥬르는 폐부에서 긁어 올리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재 쥬르는 란셀 경비대원에게 죽어 작센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죄목은 당연히 NPC마을 습격 죄. 게다가 쥬르는 공격대의 리더였다. 덕분에 도적단의 수괴로 지목되어 징역 4개월이라는 엄청난 페널티를 받게 되었다. 유저가 도적단을 조직해 NPC마을을 습격하는 것은 자칫 전체적인 게임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는 일이라, 그에 대한 처벌도 엄청난 것이다. 물론 쥬르는 처음부터 실패할 경우 그만한 페널티를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실패는 단순히 그런 페널티만으로 끝나지 않앗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TV를 통해 쥬르의 얼굴이 전국적으로 방송됐다는 점이다. 덕분에 쥬르는 이제 뉴 월드의 수백만 유저에게 '악당'으로 낙인찍혀 버렸다. 감옥을 나간 뒤로도 복면을 쓰지 않고는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리라. 때문에 쥬르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방송국에 항의 전화를 했었다. 그러나 방송국은 '게임 내에서 범죄-카오틱-를 저지를 유저는 캐릭터에 관련된 불이익을 받아도 보상하지 않습니다.'라는 뉴 월드의 약관을 들먹이며 무시했다. 그리고 사실 이미 동영상이 인터넷에 쫙 깔린 마당에 방송금지 처분을 받아 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쥬르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감옥에 갇히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라이덴으로부터 연합에서 쥬르와 듀크를 포함한 결사대원 모두를 영구 제명한다는 일방적인 통보까지 받은 것이다. 이유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나중이라도 쥬르를 연합에 다시 받아들이면 헤르메스 연합까지 유저들에게 '악당 무리'로 낙인찍히게 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그따위 연함, 이제 돌아와 달래도 싫어!" 쥬르가 벽을 후려치며 분노를 터뜨렸다.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시작한 일도 아닌데 영구 제명이라니? 아크에 대한 분노와 라이덴에 대한 배신감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어쨋든 그로 인해 쥬르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사실이었다. '아크 자식은 나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런 곳에서 4개월이나 있다가 나가면 차이는 더욱 벌어지겠지. 그런데 헤르메스 연합에서까지 제명당했으니…… 이제 아크 자식에게 복수할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몰라. 놈에게 복수할 희망도 없이 이렇게 치욕스럽게 감방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게임을 접어 버릴까?' 쥬르가 한숨을 불어 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5003호, 면회다!" 어두운 통로를 타고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면회? 혹시 라이덴인가?' 쥬르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창살로 다가온 사람은 라이덴이 아니었다. 판금 갑옷 위에 갈색 로브를 걸치고 후드를 푹 눌러쓴 전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유저였다. 그는 철컥철컥, 쇳소리를 울리며 다가와 후드 사이로 쥬르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TV에서 봐서 그런가? 낯이 익군." "……뭐야? 네놈은? 유명인의 얼굴을 보러 온 거냐?" "흠, 꽤나 신경이 날카로운 모양이군. 무리도 아니지." 사내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제안이 있어서 찾아왔다." "제안?" "이미 너에 대해서는 대강 알아봤다. 헤르메스 연합의 마법사 쥬르.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겠지?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헤르메스 연합에서도 더 이상 널 받아 주지 않을 거야. 내말이 틀렸나?"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너를……아니, 너희들을 스카우트하러 왔다." "뭐? 스카우트?" 쥬르가 멍청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 자식,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TV에 전국적으로 얼굴을 팔린 덕분에 있던 연합에서도 쫒겨난 쥬르에게 스카우트라니? 제정신인가? "대체 무슨 꿍꿍이냐?" "솔직히 너 정도 되는 동료는 지금도 많아. 하지만 NPC마을을 습격하면서까지 목적을 이루려던 너의 아크에 대한 집념이 마음에 든다. 나는 나처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아크에게 복수하고 싶어하는 동료가 필요해." "나처럼? 그렇다면……." "그래, 나 역시 너처럼 아크에게 온갖 수모를 겪은 사람이다. 지금 내가 뉴 월드를 하고 있는 목적은 단 하나, 놈에게 나와 같은 절망을 안겨 주기 위해서야. 너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미 아크 녀셕에게 복수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쳐 놨다. 장담하지. 나와 함께하면 틀림없이 네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거다. 어때? 나와 합께 복수를 해 볼 생각 없나?" 쥬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정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쥬르는 돌아갈 곳을 잃었다. 그리고 현재 쥬르가 게임을 접지 못하는 이유 역시 사내와 같다. 이대로 아크에게 당한 채 도망치듯 게임을 접어 버리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서다 .만약 아크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설사 사내가 악마라도 기꺼이 계약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4개월을 언도받았어. 4개월 뒤에 출감하면 저레벨이나 다름없다." "탈옥시켜 주지." "뭐?" 사내의 뒤이은 대답에 쥬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그러자 사내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나? NPC마을을 통째로 괴멸시키려고 했던 사람이" "하, 하지만 여기는 그런 사골 마을과는 달라. 영주의 성이야.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물론 네가 란셀을 공격했던 것 같은 방식은 무리지. 하지만 탈옥만이라면 가능하다.우리는 이미 그만한 조직과 힘을 가지고 있어. 탈옥에 실패하면 형량이 더 늘겠지만 어차피 너나 다른 녀석들도 더 이상 잃을 게 없잖아. 어때? 한번 걸어보겠나?" 사내의 목소리가 이제 확실하게 유혹의 빛을 띠고 있었다. 뭐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설사 살점이 뜯겨져 나가는 가시넝쿨이라도 잡을 수밖에 없다. "……좋다." 쥬르의 대답에 후드 아래로 드러난 사내의 입술이 치켜져 올라갔다. 사내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기다려라. 며칠 안으로 꺼내 주지." "잠깐, 네 이름은?" 감옥을 나가던 사내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슬쩍 고래를 돌려 후드를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델, 안델이다." "휴,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군." 아크가 허리를 쭉 펴며 긴 한숨을 불어 냈다. 어제 오후, 갑작스럽게 영주가 된 아크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3대 길드의 입성식이 영주 임명식장으로 바뀌어 아크는 청년 영주와 주민들에게 휩쓸려 마을을 돌아다니며 퍼레이드를 해야 했다. 그리고 곧바로 각 주민들의 대표와 마을 회관에서 장장 4시간에 걸쳐 축하연에 참가했다. 그러나 아크를 정말 피곤하게 만든 것은 NPC들이 아니라 유저였다. 아크에게도 갑자기 영주가 된 건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장면을 지켜보던 유저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유저가 작위를 받아 귀족이 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나가란 이외에 영주가 됐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것도 NPC들이 주도해서! 게다가 유저들이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크가 이번 란셀 방어전을 주도했다는 부분이다. 그 자리에도 란셀 방어전에 참전했던 유저들이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다크 울프로 변신하고 있었기 때문에-어쨌든 유저들에게 아크의 영주 취임은 일대 사건이었다. 때문에 퍼레이드 내내 유저들이 구름처럼 따라다니며 질문을 퍼붓고 동영상을 찍느라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도중에 퍼레이드를 중단하고 마을 회관으로 피신해야 할 정도였다. '젠장, 이제 다크울프가 유명한지 아크가 더 유명한지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군. 슬슬 다크울프 이외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서 돌아다닐 때가 된건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 가 된 모양이다. 어쨌든 축하연이 적당히 마무리 되자 청년 영주는 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만에 술자리에 미친 듯이 술을 퍼마시던 브레드와 시드도 새벽 무렵이 돼서야 접속을 끊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업무의 시작이었다. '젠장, 영주 업무가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어.' 아크가 툴툴거리며 서류 뭉치를 뒤적거렸다. 3대 길드의 입성으로 새로운 건물 증축 문제 그리고 전후처리에 대한 예산 보고 문제 그리고 주민들의 사소한 민원문제……. 주민 수가 732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임에도 막상 영주가 되니 할 일이 태산 같았다. 물론 아크가 영주를 처음 해 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전에 시르바나는 어차피 라이덴에게 팔아먹을 생각이어서 업무 따위는 관심도 없엇다. 또한 베라미라는 유능한 비서가 있어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물론 란셀에도 지금까지 업무를 해 오던 가렌이라는 NPC가 있었다. 그리고 아크가 자리를 비울 때는 여전히 가렌이 란셀의 업무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단 란셀은 아크의, 아크만의 영지다. 영주로서 일단 중대한 사안을 처리하고 정보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란셀은 나가란의 영지와는 달라. 이 영지는 오직 내 거다. 이제 란셀은 나와 한 몸이나 다름없어. 란셀이 망하면 나도 망하고, 란셀이 잘되면 나도 잘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란셀에 대한 애정이 100만 정도는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작위를 얻고 영주가 된 것, 그 자체만으로 얻은 수익이 업청났다. "캐릭터 정보창!" (이거좀 안하면 안되나 ㅡㅡ 무슨 정보를 수시로 확인해) 캐릭터 이름:아크 종족:인간 성향:선+500 명성:7,985(+500) 레벨:383 직업:다크소울 작위:준남작 칭호:캣 나이트,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7,190(+475) 마나:7,380(+225) 영력:786 힘 727(+58) 민첩 982(+90) 체력 1,222(+45) 지혜 178(+10) 지능 1,300(+5) 운 172(+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153 유연성:256 화술:78 애정:89(+10) 탄력도:468 어둠의 안개:52 *장비 아이템 효과 @언어족의 수호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 가능 *<수왕>세트 효과 : 힘+20, 민첩+20, 체력+20, 방어력+40 약속의 검(양손검):힘+20,체력+10 전사의 견장(견갑):힘+3 기이한 힘이 깃든 망토(망토):생명력, 마나+200, '부활의 힘'사용가능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힘, 민첩, 체력+10(이건 한번에 쓰면서 아크의 반지는 왜따로 쓴겨 ㅡㅡ), 명성+500,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캐릭터 정보창을 열어 보니 역시 가장 먼저 새로 생긴 작위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란셀을 지키느라 레벨은 1도 올리지 못했지만 준남작이라는 작위 하나가 못 올린 레벨과 능령치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또한 뉴 월드의 작위가 실속 없는 감투는 아니었다. 일단 준남작의 작위를 얻어 영주가 될 수 있었고, 덤으로 모든 스탯 +5와 명성 5,000을 보너스로 얻었다. 카오틱이 된 쥬르 일당을 처리해서 얻은 것 까지 포함하면 이번 전투 한 번으로 무려 5,920의 명성을 올린 것이다. 그리고 독특한 건 작위를 얻어 마을이나 도시에서 병력을 지원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영주 이상의 직위를 가진 NPC에게 받은 퀘스트를 해결할 때만 가능하지만, 정규 병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일반 유저는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일이었다. '게다가 준남작이 되어서 각 지방의 영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 다시 말해 각 지방의 영주들에게 퀘스트를 얻을 기회가 그 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높은 지위를 가진 NPC에게 받은 퀘스트가 그만큼 보상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 어쩌면 작위를 받아 얻은 이득 중에 가장 큰 것은 이 영주 알현 자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주가 된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지.' 영주가 되어서 생긴 이득. 일단 예상 책정이나 각종 설비 투가 권한 따위는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니권한이라기보다는 그냥 귀찬ㄶ은 일이 생긴 것뿐이다. 그러나 대신 에전의 시르바나처럼 영주에게는 월급이 나왔다. 영지 수익금의 3%. 현제 영지의 열흘 총수입이 7,950골드이니 열흘마다 238골드 50실버의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시르바나 영지의 월급에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이었지만 란셀은 공성전 따위를 하지 않고 소유할 수 있는 영지다. 다시 말해 딱히 나가는 돈도 없이 100% 순수익! 매달 700골드가 넘는 돈이 간단한 서류 몇 장 결제하는 것만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란셀이 성장하면 당연히 월급도 늘어나리라. 그야말로 유저라면 누구나 탐낼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게다가…….' 아크는 영지 관련 정보창을 열어 보며 씨익 웃었다. -<란셀 마을 투자 관련 정보창> 현제 란셀 영지 지분 시세 :0.1%당 265골드 현재 소유한 란셀 영지 지분(소유/상한):9%/25% '0.1%에 265골다느 하는 지분이 9%!' 정보창을 확인하는 아크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전투 직후, 0.1%에 200골드 이하로 떨어졌던 지분 가격이 신도시 계획과 3대 길드의 유치로 폭동하기 시작해 이제 265골드까지 치솟았다. 그렇게 폭동한 지분을 영주가 되면서 5%나 공짜로 받은 것이다. 골드로 환산하면 13,250골드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 그러나 이 보상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바로 보유 지분이 5% 이하로 내려가면 영주직을 박탈당한다는 점! 다시 말해 영주가되면서 받은 5%의 지분은 팔아먹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보유 지분을 팔아먹지 못하는 대신 영주로서 월급을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꾸준히 월급을 받을지, 아니면 지분을 팔아 한번에 목돈을 챙길지 선택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찌 됐는 지분은 내 돈이다. 당장은 팔 이유가 없지만 정말 돈이 급해지면 언제든지 현금화시킬 수 있어. 뭐, 그럴 리야 없겠지만…….'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망으로 매달 700골드가 손에 들어온다. 지분을 팔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영주의 직위를 이용하면 급할 때는 목돈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바로 영부만의 권한, 지분을 담보로 마을의 자산을 빌려 쓰는 방법이다. 물론 그 역시 15일마다 3%의 이자를 내야하고 45일 안에 갚지 못하면 영주직을 박탈당하니 막 빌려 쓸 수는 없지만 급할 때 돈을 끌어 쓸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메리트였다. '그리고 현재 내 지분이 9%이니 4%는 안전하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말이야.'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제 나는 뉴 월드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하지만…….' 현재 아크의 가방에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구경도 못 해봤던 돈이 들어 있었다. 이번에 전투 덕분에 얻은 장비품과 보험금에서 남은 돈 9,450골드. 신도시 계획을 성공해 상점의 재고품을 정리한 돈 3,470골드. 이슈람의 장물을 팔아서 얻은 5,515골드. ……18,435골드! "하지만…… 얼마가 더 필요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일단 안전하게 4%의 지분을 담보로 란셀에서 돈을 빌리면 10,240골드. 28,675골드. 현재로써는 이게 내가 동원할 수있는 전 재산이다. 이걸 몽땅 걸겠어!" 아크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어둠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아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현금화시킨 것은 모종의 계획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 새벽, 아크는 준비하던 계획이 실행 단계에 접어 들었다는 편지를 받았다. From. 샴바라 네가 부탁한 대로 병력을 소집해 봤다. 일단 동방 민족이나 바란족은 네 예상만큼은 동원할 수 없다. 무법항이 괴멸된 이후로 나크족의 침공이 더욱 잦아지고 있어 너무 많은 병력을 뺄 수는 없게 됐다. 그래도 이사벨은 동방 민족 800과 바란족 전사 500을 보내 주기로 했다. 대신 이곳에서 정의남과 갱생단 형님들, 레리어트를 따르던 유저들이 의외로 많이 자원했다. 스탄달 병력과 합해서 그럭저럭 2,000은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정의남, 갱생단 형님들, 레리어트와 함께 나가란으로 이동하마. 바로 얼마 전 스탄달로 떠났던 샴바라의 편지였다. 그렇다, 본래 아크가 란셀의 방어 대책으로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3대 길드를 유치해서 유저들이 감히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포기하지 않고 덤빌 쥬르 일당에 대한 대책. 바로 놈들의 모체인 헤르메스 연합을 괴멸시켜 버리는 것이다. 물론 아크가 헤르메스 연합을 괴멸시키려는 이유는 단순히 란셀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내 야망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시르바나를 다시 손에 넣어야 해!' 아크의 야망! 란셀과 시르바나의 영주를 겸임하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월급이 지급된다. 그러나 시르바나를 손에 넣어 란셀, 스탄달을 잇는 삼각 무역의 루트만 완전히 확립시키면 영주의 월급 따위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 한 달에 수천수만 골드의 수익이 창출되리라. 그렇게 되면 아크는 명실공히 게임 재벌이 되는 것이다! 아크는 전 재산을 그 도박에 걸 작정이었다. '현제 헤르메스 연합은 무법항이 괴멸되어 자금력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어. 그리고 이번에 란셀을 약탈하기 위해 500명이나 되는 연합원을 잃어싿. 그리고 쥬르와 듀크를 포함해서 절반 이상의 감옥에 갇힌 상태야. 헤르메스 연합을 친다면 지금이다!' 란셀 방어전이 끝난 직후에 아크는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의 힘이 가장 약해져 있을 때, 천재일우의 기회! 그러나 약해졌다고는 해도 헤르메스 연합은 여전히 나가란의 5대 세력이다. 현지에 심어 놓은 첩보원 시드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헤르메스 연합의 연합원은 5,000여 명! 게다가 자금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해도 막상 공성전을 시작하면 용병을 고용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면 상대는 5,000명 이상 된다는 뜻이다. 반명 아크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란셀의 벙력 300여 명이 전부였다. '일단 병력을 구하는 게 급선무다!' 때문에 아크는 브레드와 시드를 3대 길드를 설득하러 보낸 사이, 샴바라와 레디안을 스탄달과 브리스타니아로 보내 병력을 모으게 했다. 그리고 샴바라는 동방 민족과 스탄달의 유저들을 2,000명가량 모았고, 레디안도 대략 1,000명의 지원자를 모았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유저들을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건 이번 TV방송의 영향 덕분이었다. 샴바라와 레디안의 인지도가 예전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것이다. '현재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3,300명. 아직 헤르메스 연합의 전력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나머지는 내가 기란이나 셀리브리드에서 병력을 모으면 돼. 이번 전투에서도 확인했듯이 내가 다크울프로 변신해서 TV방송을 미끼로 던진다면 1,000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모일 거야.' 란셀 방어전을 치러 본 아크는 병력이 모여 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병력이 모여도 모든 병력을 동원할 수는 없었다. 물론 다크울프의 명성과 TV방송을 미끼로 던지면 참전하겠다는 유저들이 줄을 설 게 분명했다. 그러나 란셀 방어전은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공성전은 아크의 사적인 부분이 더 많다. 쥬르의 얼굴이 공개된 이상 헤르메스 연합을 악당으로 몰아붙일 방법은 많지만 최종적으로 시르바나를 차지하는 사람은 아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있다 해도 잃을 게 많지 않은 저레벨 유저들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의 고레벨 유저들은 장비나 사망페널티가 상당해서 그만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 '란셀 방어전은 기습에 대한 역습이 성공하고 행운이 따라서 저레벨 유저들로 막아 낼 수 있었어. 하지만 공성전은 란셀 방어전과 전혀 달라. 참전하는 유저들은 최소한의 레벨과 전투 실력을 자추고 있어야 도움이 된다.' 그게 바로 아크가 돈이 필요한 이유였다. 헤르메스와 달리 연합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니 병력을 운용하려면 몇 배의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현재 내 전 재산 28,675골드로 유지할 수 있는 병력은 4,000명 정도가 한계다. 그 4,000명으로 시르바나를 함락 시키지 못하면 다음에 당하는 건 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 버리면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헤르메스 연합이 약해진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시르바나를 탈환할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오랫동안 아크가 꿈꿔 왔던 삼각무역, 게임 재벌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크는 이번 공성전에 도박을 걸기로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도박이 그렇듯이 이번 도박 역시 이기면 대박, 지면……. '끝이다. 절대 질 수 없어!' 아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명이 밝아 오는 창가로 다가갔다. 창을 통해 아크가 바로보는 곳은 아직 어둠에 잠긴 북쪽 산등성이 너머에 있을 기회의 땅, 시르바나! 그곳이 이제 곧 아크가 가야 할 장소. 헤르메스 연합과 최후의 결전이 펼쳐질 무대였다. To be Continued........ By.베베 (하아.... 두번째 텍본입니다.. 오타있을수도 있어요.. 용서해주세요.... 원래 19권쓰다가 19권이 올라오는 바람에.... 삽질했네요... 18권 그냥 썼으면 ACT 2개는 썼을텐데.. 무튼 즐감하셨나요? 다음에 뵈요)-작성자바꿔서 배포하셔서 살림살이좀 나아 지셨습니까? 작성자좀 바꾸지 맙시다..... 힘들게 쓴사람 생각좀 해주세요 Trping By 하기나름 ~~ 2009년 11월 27일 초판 1쇄 인쇄 2009년 12월 1일 초판 1쇄 발행 ARK 19 차례 ACT 1 전쟁준비 ACT 2 나가란으로 집결 ACT 3 다크에덴 재림 ACT 4 공성전 개막 ACT 5 대전략 , 고등어 토막 내기 ACT 6 철옹성 ACT 7 대영주 ACT 8 Dream Comes True ACT 9 심연으로 ACT 1 전쟁준비 란셀 영지의 새로운 시설 "영주의 집무실" 이 아크님의 명의로 등록됐습니다. "영주의 집무실"은 영주가 영지의 대소사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이자, 귀족령리나는 긍지의 상징입니다. 영주는 '영주의 집무실' 에서 영지의 각종 세부 정보를 확인할수 있으며 특수 시설로 영주가 집무실에 체류하고 있을 경우, 영지의 각종 발전도와 주민의 충성도에 보너스가 적용 됩니다. 또한 이곳에서 결정된 모든 영지 관련 사업의 진행률은 1.5배 상승합니다. +집무실에서 결정된 영지 관련 사업의 진행률 x 1.5 +영주가 집무실에 체류하고 있을 경우 영지 발전도 상승률 x 1.2 +영주가 집무실에 체류하고 있을 경우 주민 유대감,충성도 상승률 x 1.2 "마음에 드십니까?" 가렌이 뿌듯한 표정으로 넓은 집무실을 가리켰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이곳이 영주님 전용 집무실입니다." 아크가 란셀의 영주가 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본래 마을 회관은 3층 건물로 1층은 민원실, 2층은 회의실 , 3층은 가렌의 집무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명색이 영주임에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개인 사무실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영주가 됐다고는 하지만 내가 란셀에 있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어짜피 영지에 관련된 일은 가렌이 도맡아서 처리할 텐데 일부러 내 집무실까지 만들 필요는 없어.' 예전이라면 마을 공금으로 개인 사무실을 만들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진했으리라.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란셀은 이제 단순히 부동산을 투자한 마을이 아니라 아크의 영지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주식회사 란셀의 주주였다면 이제 정식 사장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입장이 바뀌니 영지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앞으로 란셀이 얼마나 많이 발전하느냐는 오직 나 하기에 달려있어. 그리고 영지가 발전하면 그만큼 영주의 수입과 명성이 높아진다. 영지의 공금이라도 허투루 쓸 수는 없어.' 아크는 내일의 2골드를 위해 오늘의 1골드를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아는 유저였다. 때문에 어차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영지의 공금이라도 이제 남의 돈처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렌은 단호하게 주장했다. "영주님은 불편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주민들은 많이 불편합니다. 물론 영주님이 부재중일 때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주님의 집무실은 단순히 업무를 위한 장소만이 아닙니다. 란셀이 이전의 개척 마을에서 영지가 됐다는 상징과도 같은 겁니다, 또한 앞으로 중앙이나 다른 지방에서 귀빈이 찾아올 일도 생길텐데 영주님에게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다면 위신이 서지 않습니다." 가렌은 임시 촌장이었을 때보다 오히려 영주 직속 비서관으로 직함을 바꾼 이후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아크가 주주에서 사장으로 바뀐 것처럼. 가렌도 인심 넉넉한 마을 유지에서 대기업 중역으로 바뀐 느낌이랄까? 어쨌든 가렌이 이런 식으로 말하니 아크로서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그리고 가렌이 불도저처럼 공사를 밀어붙이고 나흘 뒤, 주민들의 열관적인 성원에 힘입어 마을 회관4층에 영주의 집무실이 들어서게 되었다. "집무실에 들어간 자재는 모두 최고급품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실내 장식에 들어간 소품들은 마을 주민들이 직접 준비한 겁니다. 탁자와 의자는 너구리족이, 벽걸이와 선반 따위는 장인 수업을 받는 전직 도적들이 손수 제작한 겁니다. 또한 벽을 장식한 가죽제품은 월랑족의 솜씨고, 실내 정원에는 묘족이 구해 온 묘목을 심었습니다. 가렌은 부동산 세일즈맨처럼 줄줄이 설명해 나갔다. '솔직히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짐짓 사양했지만 막상 완성되니 꽤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영주의 집무실이 영지의 특수 시설로 각종 발전도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아크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물론 아크가 집무실에 체류하고 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마음먹고 영지에 집중하면 성장률을 가속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런 보너스가 아니라 전면에 자리 잡은 발코니였다. 영주의 집무실은 마을 회관의 4층이라 발코니에 나가자 란셀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왠지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드는걸.' 신도시 계획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건물과 도로들. 영지를 둘러싼 울타리와 그 주변에 넓게 평쳐진 밭. 그런 란셀은 이제 아크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였다. '란셀은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해 가는 내 영지다.' "마을 우측 외곽의 평야를 개간해서 감자 밭을 만들면 어떨까?" 아크가 그런말을 하면 곧바로 주민들이 움직여 평야를 개간한다. 그리고 바로 변화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민들이 영지 공용 사업으로 평야를 개간해 밭을 확장했습니다. +성공적인 개간으로 주민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주민 유대감 +70) +평야가 성공적으로 개간되어 영지의 식량 사정이 좋아졌습니다.(4개월마다 식량 +1,200) <<식량은 영주의 판단으로 주민에게 배급되는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배급되는 식량의 양은 주민들의 유대감과 충성도, 각종 산업의 발전 속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잉여 식량은 다른 지방에 판매하여 마을의 수입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결산보고 : 평야를 개간하기 위해 2,750골드를 사용했습니다. 추가로 경작할 농부에게 영지 공금에서 1개월에 150골드의 유지비가 지출됩니다. 또한 병충해나 가뭄 따위의 재해가 생길 경우, 추가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예산 설정이 필요합니다. 물론 예전에 시르바나의 영주로 있을 때도 영지를 다스려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어차피 라이덴에게 팔아먹을 생각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자신만의 영지를 가지고 하나하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니 이게 보통 재미있는 게 아니였다. 영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기 위해 뭐가 필요한가? 영지를 운영하는 것은 가렌에게 맡긴다고 해도,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영주인 아크가 결정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발전시킬 수는 없었다. 새로운 밭을 개간하고 도로를 만드는 따위의 일은 모두 돈이 들어간다. 또한 한 번 완성하고 그만이 아니라 제대로 활용하려면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새로운 도로를 만들면 때때로 보수를 해야 하고 청결 유지를 위해 청소부도 고용해야 주민들의 불만이 쌓이지 않는다. 밭을 만들면 적당한 숫자의 농부를 고용해야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다. 때문에 그에 따른 예산 설정과 한정된 주민의 적성을 파악해서 적절하게 배치하는 문제까지 미리 고려해 두지 않으면 투자비만 날리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시스템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 사실 예전의 란셀은 보통 30~40%의 주민들이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3~4명만으로 충분한 밭에 10명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고, 10명이 필요한 작업에 5~6명밖에 투입되지 않아 같은 돈을 지출하면서도 작업 속도가 몇 배나 느리게 진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의 노력 덕분에 이제 란셀은 완전히 체계가 잡혀 있었다. '막상 관심을 가지고 해 보니 영주도 꽤나 재미있잖아?' 마치 유명한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나 '타이쿤' 시리즈를 하는 기분이랄까? 아니, 가상현실인 만큼 그런 고전 게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이 있었다. 덕분에 나흘 동안 제대로 잠도 못잤지만 자신의 결정으로 마을이 성장해 가고, 주민들의 유대감이나 충성도가 변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잠을 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물론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예산이나 작업 인원 등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아 머리가 지끈거릴 때도 많았지만 결과가 좋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에 비하면 그런 고생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뭐든지 내 마음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 아크는 문득 마을 구석에 자리 잡은 건물을 바라보았다. 사실 요 며칠 전, 란셀 마을에서 뉴 월드의 NPC도 현실의 사람처럼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준 일이 있었다. '어라? 저 건물은?' 며칠 전, 저녁 늦게까지 마을 회관3층 가렌의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 잠시 발코니로 나왔던 아크는 마을 구석에서 뭔가 이상한 움직임을 감지했다. 란셀 영지의 외곽 구석에는 한 채의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항상 잠겨 있었다. 때문에 처음 이 건물을 발견했을 때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외진곳에 있는 건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곧 잊어버렸다. 만약 란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발코니가 아니었다면 그런 건물이 다시 눈에 들어올 일도 없었으리라, 그런데 늦은 시간, 그 건물 주변에 수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건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 대체 저 건물에는 누가 사는 거지? 그리고 대체 이 시간에 왜 사람들이 건물 주변을 서성대는 걸까?' 란셀 영지에서 아크도 모르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크는 '은신'으로 몸을 숨기고 근처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숨을 죽이고 주변의 사람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상인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기억에 없는 얼굴들이었다. 다시 말해 외지에서 온 행상인이라는 뜻. "이제 슬슬 시간이 됐지?" 건물 앞에 모인 상인들이 시간을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시간? 무슨 시간이 됐다는 거야?'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철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항상 잠겨 있던 건물의 자물쇠가 풀리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나타난 사람은 ..... '어라? 저 녀석은 공방에서 일하는 너구리족이잖아?' 그렇다. 건물에서 고개를 내민 사람(?)은 너구리족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는 않았겠지?" 너구리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주변에 모인 상인들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장사 하루 이틀 하나? 걱정 마." "좋아, 들어와" '야심한 시각에 너구리족과 외지의 상인들이 모여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얘기하는 걸 들어 보니 처음 만난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 흠. 뭐,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아크는 '은신' 상태를 유지하며 상인들과 섞여 건물로 들어섰다. 건물 안은 주변의 창을 암막으로 막아 놓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그러나 너구리족이 몇 개의 램프에 불을 밝히자 곧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올 뻔했다. '엇? 뭐, 뭐야, 이건다 .....?' 놀랍게도 이 정체불명의 건물 안에는 상당한 숫자의 잡템이 쌓여 있었다. 불빛 속에서 잡템이 모습을 드러내자 상인들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몰려들었다. "흠, 이번에도 물건이 괜찮은데?" "후후후, 당연하지, 이건 모두 우리 종족의 공방에서 만든거라고. 인간들이 만든 허접한 물건과는 격이 달라." 너구리족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격은 이전과 같나?" "아니, 이번에는 여전보다 5%는 더 줘야겠어." "뭐?" "이봐, 상인이라니까 딱 보면 알 거 아니야. 이전에 샀던 물건보다 품질이 더 좋아졌다고. 다른 곳에 내다 팔면 이전에 사 갔던 물건보다 최소 5~6%는 더 받을 수 있으니 5%를 더 내고 사도 손해 보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만......" "공방에서 물건을 빼돌리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내가 고생하면서 너희들에게 이득을 남겨 주는데 그 정도는 해 줘도 되잖아." "하지만 너만 이득을 더 남기는 건 불공평해. 솔직히 우리처럼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상인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 서로 유대감을 돈독히 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득은 나눠야 하지 않겠어? 3%로 하자." "쳇, 역시 상인들이군. 알았다. 나도 이런 물건은 빨리 정리해야 하니까.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 둬. 나에게 구입한 물건은 절대 근방에서 처분하면 안 돼. 이 일은 비밀 유지가 생명이니까." "후후후, 거래 한두 번 해보나? 우리도 너와 오랫동안 거래하고 싶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어라? 이 녀석들 봐라?' 너구리족과 상인들의 대화를 듣던 아크는 그제야 대강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야심한 시각에 수상한 건물에 모인 그들이 하고 있는 짓은 바로 암거래 였던 것이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마을에서 상점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팔 때는 항상 일정량의 세금이 포함된다. 그게 결과적으로 마을이나 영지의 수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암거래를 하면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게다가 거래 물품이 일단 장물이니 제값을 주고 살 필요도 없다. 결과적으로 같은 상품을 상점에서 정상적인 거래로 구입할 때보다 30~40% 이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물건을 빼돌려서 암거래로 팔아 치운 너구리족의 이득은 말할것도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너무리족이 암거래를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일! 그야말로 아크나 할 만한 짓을 NPC가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몰랐으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공방에서 생산된 상품에 부과되는 세금은 란셀의 주된 수입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그 소중한 상품이 뒷거래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방 전체의 생산품에 비하면 별거 아닌 양이지만 영주로서 묵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아크가 당장이라도 '은신'을 풀고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정의의 심판을 내리려 할 때였다. '가만? 지금 덮치면 고작 현장의 물건을 압수하고 상인들을 감옥에 가두는 게 전부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던 아크는 그냥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스탄달 지부를 찾아가 358호에게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앞으로 밤마다 알려 준 건물을 감시해 주십시오. 그리고 혹시 상인들이 몰려들면 '은신'으로 건물에 잠입, 그곳에서 거래되는 상품 목록과 가격을 기록해 주세요. 물론 이 일은 누구에게도 비밀입니다." "네? 그게무슨 .......?"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말씀드리죠. 일이 잘만 되면 보상은 섭섭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크 님의 부탁이라면......" '후후후, 이제 그 암거래상의 돈은 몽땅 내 거다!' 358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크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아크가 굳이 바로 현장을 덮치지 않고 일단 감시하며 놔두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공방의 생산품을 정상적인 거래로 판매하면 란셀 영지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상품에 붙는 세금. 정가의 5%정도다. 그러나 암거래를 하도록 그냥 놔둔다면? 당연히 너구리족은 앞으로도 게속 물건을 빼돌려 암거래를 할 것이다. 그리고 너구리족은 암거래로 벌어들인 돈을 어딘가에 차곡차곡 모아 둘 게 분명했다. 만약 암거래로 움직이는 돈을 파악해 뒀다가 적당한 시기에 현장을 덮치면 너구리족이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몽땅 압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너구리족을 잘 협박하면 압수한 돈을 영지 금고가 아닌 내 주머니로 들어오게 할 방법도 얼마든지 있어. 다시 말해 너구리족 공방의 수입을 정당하게 착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후후후, 그렇다면 당연히 너구리족이 암거래를 많이 할수록 이득이지!' 그게 아크의 진짜 속내였다. 그리고 아크는 한술 더 떠 암거래가 이뤄지는 건물을 교묘하게 가릴 수 있는 벽을 만들어 주었다. 암거래를 더욱 안전하고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제 적당한 시기에 암거래상을 털어먹는 일만 남았다. '그나저나 영주가 되니 예전에는 몰랐던 부분까지 눈에 보이게 되는군. NPC들도 그냥 생각 없이 살아가는 건 아니야. 일자리가 없으면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 유저처럼 이득을 얻기 위해 불법적인 일도 하고.' 그런 일을 알게 되니 이전보다 영지 관리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다 때려치우고 그냥 영주로서 다사다난하게 란셀을 키우는 일에만 집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즐더움도 오늘까지다.' 회상에 잠겨 뿌듯한 눈길로 영지를 바라보던 아크가 눈을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아크의 눈은 이미 영주의 그것이 아니었다. "부탁했던 건 준비됐습니까?" "네, 말씀하신 대로 모두 현찰로 준비헀습니다." 가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개의 돈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2,000골드짜리 돈 자루 5개와 1,000골드짜리 돈자루 하나, 무려11,000골드! 아크가 소유한 란셀의 지분9%에서 4%를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었다. 아크가 영주가 될 당시의 시세라면 10.600골드였지만 불과 나흘 만에 시세가 400골드나 올라갔다. '불과 나흘 만에 0.1%에 265골드에서 275골드가 됐어. 게다가 새로 개간하는 밭이나 도로 공사도 진행 중이고 3대 길드의 건물도 곧 완성될 테니 이 추세라면 머지않아 시세가 300골드를 넘어갈지도 몰라.' 조금만 더 기다리면 같은 4%로 1,000골드는 더 빌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이 않았다. 또한 15일마다 3%의 이자를 내야하니 대출을 많이 받는게 무조건 상책은 아니었다. "이제 앞으로 란셀은 가렌 아저씨에게 맡기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지시하신 작업은 빈틈없이 완료시켜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문제가 생기면 우편으로 연락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가렌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문득 아크의 손을 잡으며 당부헀다. "영주님이 왜 돈을 빌려야 하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꼭 이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실패한다고 해도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영주님에게는 이미 란셀이라는 영지가 있습니다." 아크는 잠시 가렌을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크도 알고 있었다. 설사 이번 일을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란셀은 아크의, 아크만의 영지다. 그 때문에 대업을 앞둔 상태에서도 나흘 동안 모든 정열을 란셀에 쏟아부은 것이다. 그러나 그게 실패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이제부터 시르바나 탈환 작전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다!' 영주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마을 회관을 나서는 아크의 얼굴에는 비장함 마저 감돌았다. 그렇다. 아크가 란셀의 지분을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돈을 빌린 이유. 그것은 시르바나 탈환을 위한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가렌은 시르바나 탈환이 실패해도 란셀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니야 ! 실패해도 란셀이 남는 게 아니라, 란셀밖에 남지 않는 거야. 그리고 시르바나를 탈활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2년간의 꿈이 단 한번의 패배로 사라지는 거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헀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를 하며 정말 산전수전 다 겪었다. 아마도 평범하게 게임 하는 유저들의 3~4배 이상의 일을 겪었으리라. 때로는 엄청난 손해를 입을 뻔했던 일도 있었고, 때로는 게임을 접어야 할 위기를 넘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 위기를 넘기고 오히려 다른 유저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레벨업을 하며 돈을 모아 왔다. 돌려 말하면 그런 위기를 겪었기에 그만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 이제 이 말은 아크의 생활 철학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아무리 아크라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많은 없었다. "무겁다..... , 골드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야 ......" 아크가 바닥까지 박박 긁어 마련한 18,435골드! 특권을 이용해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은 11,000골드! 합이 29,435골드 ! 현금으로 계산해도 3억에 가까운 돈! 아크가 2년간 셀 수 없는 위기를 넘기며 실낱같은 기회를 잡아 모아 온 전 재산이다. 가방에 들어 있는 골드의 무게가 느껴질 리가 없지만, 돈의 부피를 떠나 2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가방끈이 어깨를 파고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나도 이렇게 위험한 도박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솔직히 막상 3만 골드에 가까운 돈이 생기자 더 많은 이득을 위해 모험을 하기보다는 지금 가진 돈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번 란셀 방어전으로 헤르메스 연합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대로 헤르메스 연합을 방치하는 일은 창고에 돈과 함께 불붙은 폭탄을 넣어 두는 것과 같다, 이미 아크에게 헤르메스 연합과의 결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할 수밖에 없어. 이제 물러설 자리는 없다!" 아크는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 거렸다. 불안을 용기로 바꾸는 주문이였다. 와글와글, 웅성웅성 란셀의 중심가에ㅡ원래는 변두리였지만 신도시 계획으로 중심가가 되었다ㅡ자리 잡은 아크 상점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특히 얼마 전에 새로 유치한 대륙 3대 길드도 아크 상점 근처의 가건물에서 영업을 시작해 유저들이 더욱 많이 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님이 문제가 아니라 팔 물건이 없어서 걱정인 상태였다. 아크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분의 재고품을 정리해 버렸기 떄문이다. 게다가 당장은 신상품을 사들일 돈도 없었다. 그러나 모처럼 손님이 몰렸는데 그냥 손 놓고 있을 아크가 아니었다. 아크는 상점의 재고품이 바닥나자 다른 상점의 물건을 빌려와 판매 대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다른 상점에서 빌려 온 물건이라 팔아도 고작 2~3% 의 이윤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윤이 얼마나 남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상점에 물건이 떨어져서 장사를 못 하면 나중에 물건을 채워 둬도 한 번 끊긴 손님은 다시 찾아오지않아. 일단 이윤이 남든 안 남든 계속 상점을 운영하는 게 중요해.' 덕분에 아크 상점은 재고품이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아니, 오히려 상품 종류는 더 다양해져 고객만족도는 올라갔다. 또한 아크 상점의 독점으로 불만이 쌓였던 다른 상점의 NPC들도 이참에 재고품을 정리할 수 있게 되어 좋아했다. '뭐, 덕분에 상품 운반하랴 장사하랴 삽질이와 울먹이만 죽어나게 됐지만...... 나도 땅 파서 월급 주는 건 아니잖아. 월급 쟁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삽질이와 울먹이를 바로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아크의 밑에서 공밥을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건 소환수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크가 란셀에 머무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는 라카드와 라자크, 라둔도 상점 일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의외였던 점은, 막상 시켜보니 소환수들은 의외로 장사에 재능이 있었다. "자, 자, 오세요. 오세요. 골라, 골라!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습니다!" 딱딱딱, 따다다닥! 쌕쌕쌕쌕, 쌕쌕쌕쌕! 라카드는 시킨 적도 없는데 아예 동대문 시장 상인처럼 고깔모자에 코주부 안경까지 쓰고 손뼉을 두들기며 행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라자크도 방패 위에서 해골을 굴리며 가세했고, 라둔은 저글링처럼 몇 개의 아이템을 뱉었다 삼키기를 반복하며 흥을 돋구었다. 소환수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장사를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투에서 부려 먹는 것도 모자라 장사까지 시키다니 너무하잖아? 우리도 좀 쉬고 싶을 때가 있단 말이야. 장사하는 소환수는 들어 본 적도 없어. 주인은 각성하라! 우우~." 란셀 방어전이 끝난 이후로 상점에 처박아 두자 불만이 쌓인 라카드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론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만들면 간단하지만, 그런 식으로 노동 의욕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이에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소환수들에게 제안했다. 따로 급료를 지불하지 않는 대신 실적을 올릴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 주기로 말이다. 포인트 사용방법 10~100포인트 : 군것질용 음식 1회 시식권(식재료 가격에 따라 필요 포인트가 달라짐). 100~200포인트 : 전투 시 실수할 경우 벌칙 면제권(잘못에 따라 필요 포인트가 달라짐). 100~400포인트 : 월동 장비 일체 지급(품질에 따라 필요 포인트가 달라짐). *상품 1개 판매 시 1포인트 적립.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음. "포, 포인트?" 아크가 포인트 적립 카드를 만들어 주자 라카드가 혹한 표정을 지었다. 성장을 위한 음식은 지겹도록 먹어야 하지만 소환수들도 생명체라 가끔 군것질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크가 힘들게 모은 식재료로 군것질거리를 만들어 줄 리가 없다. 때문에 소환수들은 은근히 욕구불만이 쌓여있었다. 게다가 소환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투 시에 실수 해서 벌칙을 받을 때. 그런데 포인트만 모아두면 언제든지 군것질을 하고 벌칙까지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환수들이 노리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100포인트만 모아도 얻을 수 있는 상품, 월동 장비! 작년 겨울에는 그 흔한 장갑 하나 없어서 개 떨듯이 떨어야 했던 소환수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 곧 겨울이 다가오겠지만 아크의 성격을 생각하면 장갑 하나 제대로 사 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데 포인트를 모으면 당당하게 월동 장비를 요구할 수 있다! 소환수들이 장사에 열을 올리는 건 이런 생존을 위한 눈물겨운 투쟁 때문이었다. '후후후, 그래 봐야 시르바나로 출반하기 전까지 고작 100포인트나 모을까? 대충 싸구려 장갑이나 하나 사주면 되겠지. 게다가 일단 이렇게 포인트로 못을 박아 두면 겨울 내내 옷 사달라고 불평도 못 할 거 아냐? 뭐, 점원이든 소환수든 활용하기 나름이라니까.' 아크는 히죽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영주 일은 이제 다 정리했어요?" 2층에 올라가자 로코가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듯 물었다. "음, 그럭저럭."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가?" 그때 아크의 등 뒤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브레드가 아크의 뒤를 잇듯이 계단을 따라 올라오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브레드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 먼지 구덩이 속을 뒹굴던 사람처럼 온 몸에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얼굴에는 채 가시지않은 피로감이 가득했다. 브레드가 그런상태가 된 것은 바로 아크 때문이었다. 사실 아크는 시르바나 탈환을 결심했을 때부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바로 수인족과 전직 도적으로 이루어진 란셀 병력을 참전시켜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현재 란셀에서 동원할수 있는 병력은 300명 전후. 란셀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들이 죽으면 그만큼 란셀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다. 때문에 솔직히 아크는 이들을 참전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수천 명의 병력을 모아야 하는 상황에서 300명은 그리 큰 숫자가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비록 300명밖에 되지 않지만 수인족과 경비대원으로 이루어진 이들의 특수 능력은 전략적으로 상당한 활용도가 있었다. 아크가 모든 것을 걸고 치러야 하는 전투. NPC의 희생을 두려워해 주요 병력을 동원하지 않을 수는 없는것이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패하면 헤르메스 연합의 보복 공격으로 란셀의 존망마저 위태로워질 게 뻔하지 않은가? 또한 NPC들 역시 란셀을 침략한 도적단의 배후인 헤르메스 연합에 복수하고 싶어 했다. 이에 아크는 란셀 병력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이번 원정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또 치열한 전투가 될 겁니다. 실패한다면 말할 것도 없지만 승리한다고 해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때문에 란셀의 주민인 여러분을 참전시키고 싶지 않은게 솔직한 제 심정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사실. 고민 끝에 저는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출병하기 전에 혹독한 훈련을 거쳐 충분한 전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된 병력만 참전시키겠습니다." 그때부터 란셀 병력은 아구스 산맥 주변의 각종 사냥터와 던전을 돌아다니며 전투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흘간 훈련 교관을 맡은 사람이 바로 브레드였다. "어때? 성과가 좀 있어?" "물론이지. 이 몸이 누구냐?" 브레드가 몸을 던지듯 의자에 앉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NPC라 직접 정보창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모두 평군 5레벨 이상 올라갔을 거야. 월랑족과 묘족이야 원래 전투 종족이라 단기간에 전투력이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경비대원 은 전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투 스킬이 많이 생겼어. 내가 장담하지. 동 렙의 유저와 붙어도 절대 밀리지는 않을 거야." 사실 아크 역시 수인족의 전투 능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월랑족이나 묘족은 일반 유저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민첩성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시르바나 공성전 당시, 묘족은 유저보다 50레벨 이상 차이가 났음에도 그 놀라운 민첩성을 활용해 1대1에서는 오히려 압도하는 전투능력을 선보였던 적이 있었다. 아크가 걱정했던 것은 수인족보다는 전직 도적들로 이루어진 경비대원들이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브레드가 자신만만하게 말할 정도면 최소한의 수준은 갖춰졌다고 생각되었다. '너구리족은 레벨과 상관없이 전략 부대로 이용할 수 있으니 됐고......' 역시 란셀 병력의 핵심은 너구리족이었다. 화살보다 사정거리가 멀고 건물 따위에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대포는 말할 것도 없고, 땅굴 파기나 건물 수리, 중장비를 다루는 특성은 전략적인 전투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이번 란셀 방어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이제 너구리족과 오랫동안 준비해 오던 비장의 무기도 사용할수있다! 화력 면에서도 절대 부족하지 않아!' 아크가 오랫동안 상당한 자금을 투자해 만들어 오던 비장의 무기! 사실 아크가 나흘 동안 란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유는 바로 란셀의 지하에서 비밀리에 개발해 왔던 그 무기의 완성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란셀의 지하에 깔려 있는 너구리굴의 정체는 비밀 지하연구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영주가 된 이후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 드디어 어제 비밀 병기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란셀에서 준비할 수 있는 건 모두 준비했다. 비장의 무기와 수인족, 란셀 경비대원을 합해 270명. 덕분에 란셀의 주둔 병력은 경비대원 30명밖에 남지 않겠지만......' 이미 3대 길드의 근위 사단이 자리를 잡았으니 마을 방위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일단 란셀 병력이 270명. 샴바라가 스탄달에서 모은 동방 민족과 바란족이 1,300명. 슨탄달에 체류하고 있던 유저들 가운데 지원자가 700명 남짓. 그리고 레디안이 브리스타니아에서 모은 병력이 대략 1,000여명." "현재 총병력 3,270명인가?"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헤르메스 연합의 예상 병력은 최소 5,000.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1,500명 이상 병력 차이가 나는군. 그 병력을 네가 나가란으로 이동하면서 모아 보겠다는 거지?" "일단은." "그래서? 얼마나 모을 생각인데?" "1,000명 이상은 모아야 뭔가 답이 나오겠지." 브레드가 잠시 생각하다가 무거운 한숨을 불어 냈다. 사실 아크가 갑자기 시르바나 탈환을 서두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이번 란셀 방어전에서 쥬르 일당의 얼굴이 TV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물론 쥬르 일당은 사전에 미리 연합을 탈퇴했고, 헤르메스 연합도 방송이 된 뒤에 각종 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공식적으로 쥬르 일당과의 관계를 부정했다. 그러나 1~2명도 아니고 쥬르 일당은 순도 100% 전 헤르메스 연합원이었다. NPC라면 몰라도 유저들이 순순히 헤르메스 연합의 주장을 믿어 줄 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란셀 방어전이 방송된 직후, 헤르메스 연합은 유저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반면 아크ㅡ정확히는 다크울프ㅡ는 영웅! 이런 분위기에서 아크가 헤르메스 연합을 치기 위해 유저를 모은다면? 현실이나 게임이나 사람들은 대의명분이 있는 사람에게 몰리는 법이다. 헤르메스 연합이 공적처럼 취급되는 분위기에 편승하면 고레벨 유저들도 영입할 수 있으리라. '반대로 헤르메스 연합원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지.' 게임에서도 병력의 사기는 중요하다. 아니, 게임이기 대문에 사기가 더욱 중요하다. 현실에서는 사기가 저하돼도 살기 위해 열심히 싸우지만, 게임에서는 죽어도 그만이다. 때문에 사기가 떨어지면 아예 전투에 대한 의욕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모처럼 조성된 그런 분위기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게바로 아크가 지금이 시르바나 탈환의 적기라고 생각하는 이유였다. 그리고 설명했듯이 병력을 모으는 건 이미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브레드가 쉽지 않겠다고 한 말은 병력을 모으는게 아니라 유지시키는 문제 때문이다. 아크에게는 대의명분이 있다. 아마도 많은 유저들이 아크를 지지하리라. 그러나 지지해 주는 것과 직접 전투에 참가해 주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전투에 참가하면 소모품이나 각종 장비 수리비 등등,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속 길드나 연합의 공성전이면 모를까, 이번 공성전은 승리해도 정작 참전한 유저들에게 이렇다 할 이득은 없었다. 때문에 최소한 손해 보지 않을 정도의 보조를 해 줘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비 수리비나 화살 따위의 각종 소모품, 식량 정도는 아크가 부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정도라면 한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 10골드까지 줄일 수 있었다. 레벨 250 수준의 유저를 고용하며 10골드라면 거의 무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현재 아크가 모은 유저만도 이미 1,700. 앞으로 1,000명을 더 모은다면 2,700. 1명당 10골드만 잡아도 27,000골드나 되는 군자금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숫자가 수천쯤 되면 공성전이든 뭐든 이미 장난이 아닌 것이다. '내가 마련한 군자금은 3만 골드!' 엄청난 금액이지만 수천의 병력을 거느리기에는 그리 많은 돈이 아니다. 그리고 길드나 연합이 없는 아크는 그 모든 부담을 혼자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야 해.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아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크가 그렇게 절박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공성전 규칙 때문이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예전에 아크가 까발렸던 '아란의 유령 길드' 사건 이후로 나가란의 공성전 규칙이 달라졌다. 아크 역시 얼마 전에 첩보원으로 시르바나에 잠입해 있던 시드를 통해서 바뀐 공성전 규칙에 대해 들었다. "예전에는 전쟁의 신전에서 신탁을 받은 길드에게 순차적으로 기회가 돌아가는 방식이죠. 공성전의 규모가 예전에 비해 몇 배나 커져서 2주에 한 번씩밖에 열리지 않으니 우선 순위가 4위라면 꼬박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나중에 등록한 길드는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는 않아요. 전쟁의 신전에서는 공성전과는 별도로 100대 100으로 진행되는 길드전을 신청할 수 있어요. 그 길드전에서 승리하면 공성전의 우선순위를 올릴 수 있죠." 이게 새로 바뀐 공성전 규칙이었다. 결국 아크가 병력을 모아 가도 우선권이 없으면 바로 공성전을 치를 수 없다. 물론 길드전에 펼치면 우선순위를 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공성전 전에 몇 번의 길드전을 펼치면 그 것만으로도 엄청난 군자금을 까먹게 된다. 자금이 빠듯한 상황에서는 길드전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굳ㅇ ㅣ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일단 규칙은 그런데...... 사실 요즘은 공성전이 거의 벌어지지 않아요. 성을 가진 연합의 규모가 커져서 수천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공격하는 연합도 그만한 병력을 모아야 하잖아요. 떄문에 공성전을 치를 때마다 군자금이 엄청나게 깨져서 예전처럼 일단 붙어 보자는 식으로 덤비는 연합이 없어요." 헤르메스 연합은 나가란의 5개 세력 가운데 한 축이다. 조직원만 5,0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연합, 어중간한 전력으로 공성전을 벌여 봐야 군자금만 날려 먹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시르바나는 근래 반년 동안 공성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실상 헤르메스 연합은 엄청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어. 만약 다른 유력 연합에서 이 정보를 알게 되면 공성전을 신청할 거야. 그리고 헤르메스 연합이 아무리 쉬쉬해도 언젠가는 정보가 새 나갈 수밖에 없다.' 나가란에서는 약점을 보이면 끝장이다. 만약 헤르메스 연합의 속사정이 밝혀진다면 그동안 시르바나를 노리던 연합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리라. '만약 헤르메스 연합이 다른 연합에게 시르바나를 빼앗긴다면 나는 새로운 연합과 싸워야 해. 게다가 헤르메스 연합을 처단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병력을 모을 수도 없다. 결국 내가 최소한의 군자금으로 공성전을 치를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다. 이게 바로 아크가 빚을 내서라도 지금 시르바나를 탈환해야만 하는 이유였다.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지? 좋아, 그렇게 결정했으면 뭉그적댈 것 없이 바로 출발하자고. 병력을 모으며 시르바나까지 가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거야." 브레드가 어깨를 들썩이며 중얼거렸다. 다가올 전투에 들떠 있는 사람은 브레드만이 아니었다. "저도 전력을 다해 도울게요. 두고봐요." 로코도 간만에 아크와 함께 전장에 나가는 게 사뭇 기대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2층을 드나들며 짐을 옮기던 삽질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에엑? 점장님도 가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내가 왜 멜로디안에게 빡센 수업을 받았는데?" "하지만 그러면 가게는 누가 봐요?" "그야 너희들이 봐야지." "네? 하지만......" 삽질이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군.' 아크는 그제야 미처 생각 못 했떤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로코가 없어도 아크 상점은 삽질이와 울먹이가 남아있다. 그러나 둘에게 상점을 모두 맡겨 놓기에는 아직 좀 불안한 면이 있었다. 지금은 많이 교육(?)받아 예전보다는 착실해졌지만 정작 로코가 자리를 비우면 어떻게 할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뭣보다 편의점처럼 24시간 영업하는 아크 상점을 단둘이 본다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 로코는 중요한 전력이야.' 아크는 란셀 방어전을 치르며 로코에 대한 인식이 180도로 바뀌었다. 이번에 제대로 써먹었던 '환상 소나타' 의 전략적인 가치는 둘째 치고, 한 번에 수천 명에게 적용시킬 수 있는 버프를 3개나 중첩시킬 수 있는 로코는 어지간한 전사 수십명에 필적하는 전력이었다. 로코와 레리어트가 힘을 합치면 단둘만으로 전 병력에게 여섯 가지의 버프 효과를 적용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공성전 기간 동안 시드를 상점에 박아 놓을까?' 그렇게 생각한 아크가 슬쩍 운을 띄워 보았따. 그러자 시드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펄쩍 뛰며 반발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뭐, 할 일이 없는 사람인 줄 알아요? 나도 엄청 바쁜 사람이라고요. 대륙상회의 대외사업부장인 제게 변두리 상점이나 보고 있으란 말입니까?" "벼,변두리 상점?" "솔직히 언젠가는 말씁드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상인 길드를 설득하는 일이야 '저 말고는 할 사람' 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쳐요.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툭하면 저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일은 이제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일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그렇다고 아크 님의 일일이 보수를 챙겨 주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뭐, 아크 님이 보수를 준다고 해도 뻔한 액수겠지만." 시드가 콧방귀를 픽픽 뀌어 대며 궁시렁거렸다. 아크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드의 반응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품만 해도 움찔거리며 눈치를 살피던 과거 시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디의 반항은 이미 예정되어 있떤 일이었따. 이제 시드도 나가란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대륙상회의 대외사업부장을 역임하며 큰 거래를 펑펑 해 댄 덕에 레벨로만 따지면 아크보다 높았고, 2차 전직도 마친 상황. 그리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도 제법 되었다. 이제 시드는 더 이상 아크에게 빌붙어 살던 시용 불량 호비트가 아닌것이다. '...... 그러니까 대가리가 좀 컸으니 맞먹겠다 이건가?' 아크는 이 건방진 도토리만 한 호비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시드는 처음부터 약점을 잡혀 폭력으로 길들여진 아기 돼지 삼형제와는 입장이 달랐다. 아기 돼지 삼 형제처럼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쥐어 팰 수 있는 유저는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시드는 아크와 헤르메스 연합의 내부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1명이었다. 만약 시드가 당장이라도 헤르메스 연합의 내부 사정을 다른 연합에 까발리기라도 한다면 아크는 단 숨에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크의 성격을 아는 시드가 그렇게까지 할 리는 없지만, 시드도 이제 자신이 아크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됐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아예 아크에게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미치겠군. 신용불량자를 데려다가 제 몫 하게 만들어 놨더니 겁도 없이 반항질을 해? 이 녀석도 조만간 뭔가 빌미를 잡아서 다시 교육 좀 시켜야겠어. 하지만 지금은 시드 따위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야. 괜히 자극했다가 딴 생각이라도 하면 곤란하니 지금은 일단 넘어갈 수밖에 없어. 그나저나 시드 녀석이 안 되면 상점은 누구에게 맡기지?' 아크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저...... 회장님,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울먹이가 계단 아래에서 삐죽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손님? 누군데?" "저도 처음 보는 분이라......" 울먹이는 약간 주눅 든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전에는 로코나 아크를 찾는 손님이 찾아오면 일달 자기선에서 처리하던 울먹이였다. 그러나 이슈람에게 걸려 박살이 난 뒤로는 찾는 족족 로코와 아크에게 보고했다. '이럴 때 누가 나를 찾는 거야?' 아크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 내려가니 로브를 입은 10대 소녀가 강정을 둘러보고 있었다. 소녀를 확인한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는 소녀다. 그런데도 '처음 본다' 라고 딱잘라 말할 수 없는, 어딘지 모르게 꽤나 낯익은 느낌을 풍기는 소녀였다. 처음보는 게 확실한데 낯이 익다니? 대체 뭐냐? 그때 시선을 느낀 듯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아크를 발견하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한눈에 알아보겠다. 현우구나. 아니, 여기서는 아크 라고 했었지?" 소녀의 말에 아크는 더욱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현우? 아크? 그럼 현실과 게임에서 모두 나를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뉴 월드의 캐릭터는 성별을 바꿀수가 없으니 일단 상대는 보는 바와 같이 여자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크가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여자라고는 로코와 레리어트가 전부였다. "저기..... 누구시죠?" 그런데 아크가 수상한 눈빛을 보내며 묻자 오히려 소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금세 뭔가를 깨달은 듯 배시시 웃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글쎄? 누굴까?" "별로 장난하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요?" "하여간 붙임성 없기는." 아크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소녀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오빠 누구예요?" 그때 뒤따라 내려온 로코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소녀를 쏘아보며 다가왔다. 그러자 소녀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아, 너는 혜선이지? 호호호, 현우나 너나 막상 게임 속에서 보니까 왠지 이상하네. 재미있기도 하고. 마침 잘됏다. 너한테도 줄 게 있었는데." "누, 누구...... 어멋?" 로코가 소녀를 바라보다가 움찔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혹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가 위 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폴짝폴짝 뛰며 소녀를 껴안았다. 로코의 반응에 아크의 머리속은 더욱더 심각한 혼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러자 소녀가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자식보다 며느릿감이 100배 낫구나." 순간 아크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크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 건 그 뒤였다. "에엑? 서, 설마 어머니?" "엄마면 엄마지 설마는 뭐니?" 10대 소녀가 볼을 부풀리며 쏘아 붙였다. (하기나름 : ㄷㄷ 이거 3일만에 다 쓸줄알았는데...; 텍본 쓰는거 의외로 노가다네요 ㅜㅜ) ACT 2 나가란으로 집결! "어머니, 대체 그 얼굴은 뭐예요?" 아크가 괴상한 눈길로 소미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그렇다. 상점을 찾아온 여자는 바로 소미, 아크의 하나뿐인 어머니였다. 그런데 자식이 어머니를 몰라보는 불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얼굴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뉴 월드의 성형 시스템을 이용해 10대의 팽팽한 외모로 변신(?)해 있었다. "젊고 예뻐질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손해잖니." ..... 그게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게임 같은 건 모른다면서 용케도 성형 시스템을 조작하셨네요." "어렵지 않던데? 그냥 안내 메시지에 따라 옛날 사진을 스캔? 스캐너? 하여간 거기에 넣으니 자동으로 프로그래밍 돼서 캐릭터가 만들어지더라. 가만? 그렇게 생각하니 좀 속상하네. 얼굴을 바꿨다고 해도 25년 전의 내 모습인데 아들이라는 녀석이 어떻게 몰라볼 수 있니? 엄마는 슬프구나. 로코의 반이라도 좀 닮아 봐라." "전에 어머니와 함께 앨범을 봤잖아요. 너무 예뻐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아유, 로코는 말하는 것도 예쁘지." 소미가 슬슬 머리를 쓰다듬자 로코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골골거렸다. 아크 역시 소미의 얼굴이 어딘지 낯익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그게 장롱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옛날 앨범 속의 사진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몰라요, 어머니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 같은 건. 그보다 그건 사기라고요." 아크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미는 가볍게 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보다 같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니? 친구?" "아, 아크 어머니십니까? 저는 브레드라고 합니다." 물러나 있던 브레드가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크 녀석 같은 괴물을 누가 키웠나 했는데 설마 이런 미인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바보야, 25년 전 사진이라고." "흠, 이 녀석 아직 멀었군. 쩨쩨한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화장을 했든 콘크리트를 발랐뜬 25년 전의 사진을 스캔했든 남자는 그냥 여자가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보면 되는거야." "좋은 친구를 뒀구나. 브레드라고 했죠? 앞으로도 아크와 친하게 지내 줘요. 쟤가 덩치만 커다랗지 저렇게 아직 뭐가 뭔지 모른답니다." "핫핫핫, 제게 맡기싶시오." 브레드가 호탕하게 웃으며 가슴을 탕탕 쳤다. 아크는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찌만 어쨌든 브레드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삽질이, 울먹이는 멀찍이 떨어져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삽질이와 울먹이가 경계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이들이 아크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만나서 좋았던 적은 없었다. 얼마 전 삽질이를 떡으로 만들어 놨던 이슈람은 말할 것도 없고, 정의남과 갱생단에게도 두들겨 맞았던 기억이 있었다. 로코 역시 겉보기와 달리 제법 강단이 있지 않은가? 때문에 이들의 머리속에는 자연스럽게 '아크의 지인 = 위험인물' 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심지어 이번에 나타난 사람은 아크의 엄마다. 여자라고 안심할 수 없어. 아크의 성격이 그냥 만들어졌겠어? 아직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일단 정체를 드러내면 아크보다 훨씬 무서울 거야. 괜히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어.' 둘은 숨소리 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구석에서 눈알만 뒤룩뒤룩 굴려 댔다. 그때 소미에게 찰싹 붙어 아양을 떨어 대던 로코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그런데 어머니, 아까 저에게 주실 거라는 게 뭐예요?" "아, 그렇지." 그제야 생각난 듯 소미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이제야 곧 겨울이잖니. 신기하게도 겨울이 되니까 게임 속 에서도 추위가 느껴지더라. 호호호, 처음에는 방이 추운가 싶어서 보일러 온도까지 확인해 봤다니까. 그런데 원래 그런거 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마침 너희들 생각이 나서 따로 준비해 뒀다. 실은 이걸 직접 전해 주고 싶어서 이곳까지 온 거야." 가방에서 나온 것은 북실북실한 털장갑과 목도리였다. 그런데 일반 상점에서 흔히 보던 장갑과 목도리와는 뭔가가 달랐다. 전체적인 모양새도 그렇지만 특히 눈길에 잡아끄는 건 장갑과 목도리에 수놓아져 있는 화려한 문양이었다. 아크가 받아 들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양털장갑(4등급 제작품, 명품) 방어구 타입 : 장갑(의류) 방어력 : - 내구력 : 40/40 무게 : 3 사용제한 : - 고품질의 양털을 이용해 만든 장갑입니다. 비교적 평범한 스타일의 장갑이지만 꼼꼼한 바느질, 깔끔한 마감에서 장인의 기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손등 부분에 수놓아진 자수입니다. 당장이라도 비상할 것처럼 정밀한 독수리의 문양은 착용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줄 것입니다. 《재봉 옵션(완성도 S) : 한파 저항력 + 30%, 품격 +10》 《자수 옵션(완성도 S) : 용기 + 20》 양털 목도리(4등급 제작품, 명품) 방어구 타입 : 목도리(의류) 방어력 : - 내구력 : 40/40 무게 : 4 사용제한 : - 목도리에 후드가 결합시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가능한 양털 목도리 입니다. 특히 목에 직접 닿는 부분을 솜털로 짜 넣는 세심한 배려가 장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해 줍니다. 또한 목도리 끝단에 수놓아진 세밀한 독수리 문양의 자수는 품격을 한층 높여 주고 있습니다. 예술에 가까운 완성도를 자랑하는 독수리 자수는 착용자에게 뿌듯한 자부심과 샘솟는 용기를 선사할 것입니다. 《재봉 옵션(완성도 S) : 한파 저항력 + 40%, 품격 + 15》 《자수 옵션(완성도 S) : 용기 + 30》 '헉! 이, 이게 뭐야?'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졋다. 아크가 받은 장갑과 목도리는 4등급 제작품. 중급 이상의 재봉술을 익히고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물거니었다. 그렇다면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미가 벌써 중급 재봉술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놀랄 일은 그 뿐이 아니었다. 장갑과 목도리는 한파 저항력이 붙는 건 당연하다. 쌀쌀한 겨울이 되면 유저들이 목도리나 장갑을 사 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니까. 또한 품격도 보통 의류에 기본으로 붙는 옵션이다. 그런데 막상 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본래 장갑이나 목도리의 한파 저항력은 잘해야 15% 남짓이었다. 그런데 하나에 30% ~ 40%라니? 그 엄청난 옵션의 원인은 바로 S라는 완성도 때문이다. 사실 재봉술은 범용 스킬이라 대장이나 연금술 같은 특수 생산 스킬보다 배우기도 쉽고 제작품을 만들 때도ㅗ 실패율이 적은 편이었다. 또한 대충 만들어도 완성도 B 정도는 나오는 편이었다. 그러나 정작 완성도 A 이상으로 만들어 내는 부분에서는 특수 생산 스킬보다 까다로웠다. 상급이나 최상급의 재봉술을 가진 유저도 완성도는 A는 100개 중 하나 나올까 말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A도 아닌, 제작품의 최고 등급 S! '이걸 게임을 시작한 지 세 달도 안 된 어머니가 만들었다고? 게다가 이 자수 옵션이라는 건 뭐야? 나도 이런 건 아직 본 적도 없어.' 더놀라운 것은 장갑과 목도리에 새겨져 있는 독수리 자수 였다. 염색한 옷감을 이용해 문양을 넣은 의류는 본 적이 있지만, 직접 실로 한 땀 한 땀 자수를 새겨 넣은 의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의류의 문양 때문에 추가 옵션이 붙은 것도 처음이었다. 아니, 의류에 그런 추가 옵션이 붙는다는 것은 방금 전까지 상상도 못 해 봤다. 게다가 추가 옵션이 무려 용기 20과 30! "마음에 드니? 이것저것 알아봤는데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자수 옵션이 그거더라." 소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문제가 아니었다. 우저들이 용기 옵션을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용기는 '공포'나 '전의 상실' 같은 각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 줄 뿐만 아니라 약간이지만 공격력과 공격속도도 상승시켜 주는, 말하자면 각종 스탯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조커 같은 능력치였다. 그러나 장비품에 용기가 붙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어 존재 자체가 레어! 그게 일반 의류에 부터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장갑과 목도리를 만든 소미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는지 자각이 없었다. "다른 건 괜찮은 편인데 이상하게 그 독수리 자수를 수놓을 때는 꼭 3개 중 하나는 실패하더라. 다른 때하고 똑같이 한 것 같은데 말이야." '맙소사, 이런 옵션을 60% 확률로 만들어 넣을 수 있단 말이야?" 소미는 다른 재봉사가 들었다면 심각한 우울증에 걸릴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댔다. 그러나 아크를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아직 남아 있었다. "어, 어머니, 이, 이건......!" 뜻밖의 선물을 받은 로코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떠듬거렸다. 로코에게 명품이나 S급이니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장갑과 목도리의 디자인! 아크가 받은 장갑과 목도리는 파란색에 붉은 실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로코가 받은 것은 붉은색에 파란 실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그렇다. 아크와 로코가 받은 것은 누가 봐도 커플 목도리, 장갑 세트였다. "둘이서 사이좋게 같은 걸 사용하면 좋잖니. 아, 요즘은 그런 거 안 하나? 싫으니?" "시, 시 ,시, 싫다니요? 우와, 고마워요, 어머니!" 로코는 소미의 품에 폭 안겨서 갖은 아양을 떨어 댔다. 아크는 내심 찜찜했지만 차마 그런 로코 앞에서 거플이라 창피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어머니가 힘들게 만들어 준 선물에 트집을 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목도리와 장갑을 받아 본 게 얼마 만이지?' 아크도 소미가 스웨터나 목도리 따위를 짜 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였을까? 어머니의 스웨터나 목도리보다 가격표가 붙은 스웨터나 목도리가 더 좋고 폼 나보이기 시작했던 게. 그리고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지 않고 백화점에서 사다 주기 시작했던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때 어머니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새삼 장갑과 목도리의 따스함이 묘하게 가슴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정상인처럼 행동하시는 걸 보니......' 소미가 란셀을 찾아왔다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사람이 말을 타고 왔을 리가 없으니 초보 마을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상점에 도착해서도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고 있었다. 비록 게임 속이지만 소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과 함께 걸으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보니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사실 그동안 어머니는 게임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아마도 이렇게 갑자기 찾아와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 그렇지!" 그때 소미가 문득 생각난 듯 다시 가방을 뒤적거렸다. "실은 다른 사람들 것도 챙겨 놨단다." "다른 사람 거요?" "그래, 이건 권 형사님과 갱생단 동생들 거다. 그리고 이건 네 소환수? 왜 자주 얘기하던 아이들 있잖니. 그 아이들 줘라. 로코에게 대강 듣고 만든 거니 맞을 거야." "소환수 거까지 만들었어요?"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양털 시리즈를 바라보았다. 정의남과 갱생단용의 목도리와 장갑 11세트. 거기에 라카드와 라자크, 라둔용의 목도리와 장갑도 있었다. 소미는 라둔이 뱀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모양이다. "어쨌든 잘됐다. 소환수 녀석들이 포인트를 모아 놓으면 이걸로 퉁 쳐야지 키키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크 주변 인물의 선물을 꼼꼼히 챙긴 소미는 브레드와 시드에게도 목도리와 장갑을 내밀었다. "둘의 얘기는 미처 못 들어서 따로 준비하지는 못했어요." "어? 저희 것도 있는 겁니까?" "앞으로도 아크와 친하게 지내 줘요." "감사합니다!" "우, 우왕, 감사합니다!" 브레드와 시드가 환호성을 터뜨리며 목도리와 장갑을 받아 들었다. 뒤이어 소미가 구석에서 부러운 눈길을 보내는 삽질이와 울먹이에게 손짓했다. "뭐해요? 아직 2개 정도는 남았어요." "네? 저, 저희도요?" "로코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상점에서 아크를 많이 도와 준자면서요? 삽질이와 울먹이라고 했던가? 둘 건 내가 따로 준비해서 가지고 왔어요." "어머니, 저 녀석들은 굳이 챙겨 줄 필요 없어요." 아크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비록 저가품으로 분류되는 의류지만 때는 바야흐로 늦가을. 한창 목도리나 장갑 따위가 잘 팔리는 계절이었다. 이 정도 옵션까지 붙어 있다면 5골드까지도 받을 수 있으리라. 정의남과 갱생단은 그렇다 쳐도 브레드나 시드에게 그런 고가품을 공짜로 준 것도 솔직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녀석들까지 챙겨 주려고 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소미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하니?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 있으면 나눌 줄도 알아야지. 게다가 저 둘은 네가 데리고 있는 사람들 아니냐? 본래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 살뜰하게 챙겨야 하는 법이다." 소미는 한숨을 불어 내며 삽질이와 울먹이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상하지 말아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 순간 삽질이와 울먹이의 눈알이 동그래졌다. 로코나 정의남, 이슈람, 갱생단, 심지어 브레드와 레디안까지...... 아크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성질 더러운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소미는 달랐다. 일단 인간 취급(?) 을 해 주는 것이다! 엄청 예쁜 여자가ㅡ비록 25년 전의 모습이라고 하지만ㅡ그동안 집 지키는 돼지 취급을 받아 왔던 둘을 위해 손수 만든 선물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목도리와 장갑을 받아 든 삽질이와 울먹이는 새삼 그간의 설움이 북받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우우우, 미천한 저희들에게 이런 고귀한 하사품을......!" "감사합니다.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니, 부르게 해 주십시오!" "쯧쯧, 그동안 맘이 많이 상했나 보군요, 걱정 말아요. 아크는 내가 따끔하게 혼내 줄게요." "어머니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삽질이와 울먹이는 급기야 소미를 페어 레이디로 삼겠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아크는 못마땅한 눈길로 두 마리 돼지를 노려보았다. "쳇! 저 자식들, 정말 놀고 있네. 돼지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어머니라 불러?" 그때 순간 번개처럼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마침 로코가 상점을 비우면 대타로 점장을 봐 줄 사람이 없어서 곤란하던 참이었다. 어차피 소미는 아크와 로코를 만나기 위해 란셀을 찾았을 뿐, 아직은 딱히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참에 당분간 상점을 맡아 달라고 하면 어떨까? 소미가 아직 게임 경험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현실에서는 아크의 옆방에서 게임을 한다. 언제든지 바로바로 의논할 수 있으니 경험 부족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소미가 지내기에도 아크가 영주로 있는 란셀이 초보 마을보다 100배 나으리라. 아크의 제안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건 소미가 아닌 삽질이와 울먹이였다. "우와, 어머니가 점장?" "좋아요! 좋아! 제발 맡아 주세요!" 소미는 잠시 생각하다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아. 어차피 나도 상점에 있으면 재봉으로 만든 물건을 팔 수 있을 테니까. 삽질이, 울먹이, 잘 부탁해요." "이야호오 ㅡ !" 돼지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렇게 해서 일단 아크 상점의 점장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 뒤로 아크는 소미에게 상점의 기본 운영에 관한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란셀의 영주가 된 일도 자랑스럽게 말해 주었다. 소미는 자세한 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란셀 주민이 아크에게 보이는 호감을 확인하고 대견스러워해 주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상점은 걱정 말고 내게 맡기렴." 아크는 병력을 이끌고 시르바나 탈환 작전을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게임이라도 어머니에게 전쟁하러 간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소미의 출현으로 점장 문제를 해결한 아크는 일행을 데리고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이미 브레드의 지옥 훈련을 마친 란셀 병력이 모여있었다. '좋아, 이제 신경 쓸 문제는 하나도 없어.'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란셀을 둘러보았다. 영주로서 해야할 일을 모두 처리해놨다. 아크 상점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겨 놨다. 물론 아직 가장 중요한 과제, 공성전에 필요한 병력을 모아야 한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그 역시 이미 나름대로 밑 작업을 마쳐 놓은 상태였다. "OK, 출발이다!" 라둔마에 올라탄 아크가 나가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같은 시각, 드디어 북부의 브리스타니아에서 레디안이 소집한 1,000의 병력, 동부의 스탄달에서 정의남과 샴바라가 지휘하는 2,000의 병력이 시르바나를 향해 출발했다. 아크의 시르바나 탈환 원정이 시작되었다! "......?" 노인이 황소처럼 둥그런 눈을 껌벅거렸다. "뭐, 뭐냐, 너는?" "뭐냐니요? 치매입니까? 어제 만나지 않습니까?" "그, 그게 아니라...... 어, 어떻게 불과 하루 만에...... 이, 이건 말도 안 돼!" 노인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사내와 그의 손에 들린 돼지 저급통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노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굴에 수많은 상처가 새겨진 우람한 체구의 노인. '후후후, 나도 예전에는 사람깨나 죽였지.' 라는 대사가 어울릴 듯한 외모지만 사실 노인은 은퇴 상인이었다. 물론 외모가 말해 주듯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상인은 아니었다. ㅡ주문만 하시면 드래곤 배 속이라도 배달합니다. 이게 노인, 크로닐의 현역 시절 슬로건이었다 그렇다. 장사를 위해서라면 몬스터가 날뛰는 던전이나 화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전장을 뚫고 돌진했던 전설적인 상인. 그게 바로 크로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한창 명성을 날릴 때는 '그만한 돈만 주면 드래곤도 잡을 사람이다' 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다 옛날 얘기. 어느새 노인이 된 크로닐은 은퇴해 한때 자신의 주 무대였던 나가란의 하몽 영지에서 은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은거라고는 해도 엄청나게 벌어 들였던 돈으로 대저택을 짓고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화려한 은거 생활을 보내는 크로닐에게도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젊은 시절 너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아직 이렇다 할 후계자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크로닐은 상인 길드를 통해 경험과 지식을 전수해 줄 후계자를 찾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제저녁 무렵, 한 사내가 상인 길드의 소개를 받고 찾아왔다. "쓸 만한 놈을 찾아 보내 달라고 했더니......" 사내를 본 크로닐은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역전의 상인 크로닐의 후계자를 찾는 중이다. 그런데 상인 길드의 소개장을 들고 찾아온 사람은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체구에,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조차 힘에 부쳐 보이는 사내였다. "대체 나를 뭐로 보고 이런 놈을 보낸 건가? 분명 상인 길드에 부탁할 때 최소한의 조건을 설명했을 텐데? 정말 이런 녀석이 조건을 클리어했단 말인가? 쳇, 분명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게 분명해. 하지만 소개장까지 들고 왔는데 그냥 보낼 수도 없고......" 크로닐은 구시렁거리다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길게 얘기할 것도 없다. 내 후계자가 되고 싶다는 거지?" "네." "쳇, 대답은 잘하는군. 좋다. 어쨌든 내 후계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 가지 시험만 통과하면 돼. 내 저택의 후원에 작은 동굴이 있다. 그 동굴의 가장 안쪽에 있는 물건을 찾아오면 된다." "어라? 그렇게 간단합니까?" "간단?" 사내의 반응에 크로닐이 피식 웃었다. '흥, 멍청한 놈. 그렇게 간단하면 내가 그동안 후계자를 찾지 못했을 리가 없잖아. 그 동굴은 내가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시련의 관문이다. 지금까지 수십 명이 도전했지만 절반까지 들어간 녀석도 없었어. 어떤 놈은 한 달 동안 입구에서 버벅대다가 울면서 돌아갔지. 네놈도 곧 울면서 돌아가게 될 거다.' "아아, 간단하지. 간단해. 그럼 가 봐라." 크로닐은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파리 쫓든 사내를 동굴로 들여 보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 사내를 삭제시켰다.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기억을 완전히 삭제하기도 전에 사내가 다시 찾아왔다. '뭐야, 이놈은? 벌써 포기한 건가? 하긴 안 될 것 같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도 재능이지.' "돌아가는 길은 저기다." 크로닐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시선도 주지 않고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네? 시험에 통과하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겁니까?" "시험에 통과? 하, 무슨 헛소리냐?" "가져오라는 물건을 가져왔는데요?" "뭐, 뭐?" 크로닐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사내가 번쩍이는 물건을 들어 올렸다. 그게 바로 방금 전의 돼지 저금통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크로닐이 동굴 속에 숨겨 뒀던 '용맹의 황금 돼지' 였다.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황금 돼지를 바라보던 크로닐이 와락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어, 어떻게 그걸 네가...... 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그냥 시험장에 들어가서 들고 나온 건데요?" "그냥 들어가서 들고 나와? 그럼 기관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가?" "기관? 혹시 팔이 3~4개씩 달려 있던 이상한 목각 인형들 말입니까? 뭐, 덤비기에 다 때려 부쉈습니다. 앗, 그러면 안 되는 거였나요? 난 별말이 없어서 그냥......" "때, 때려 부숴?" 크로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굴을 향해 뛰어갔다. 사내의 말은 사실이었다. 동굴 안에는 여기저기 부숴진 목각 인형의 잔해가 널려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목각 인형이 작동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꽤 재미있는 장난감이더라고요. 좀 짧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사내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크로닐은 멍하니 사내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따. "대, 대체 누구냐, 넌?" "저요? 이슈람이라고 합니다." 사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이 사내는 바로 이슈람이었다. 이슈람은 며칠 전, 숨겨 놓았던 장물을 팔아 폭렙을 한 덕분에 상인 길드에서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다. 바로 전설의 상인 크로닐을 만나 후계자로 인정받으라는 퀘스트였다. 일단 모처럼 받은 퀘스트니 해결하러 오기는 했지만 이슈람은 내심 걱정스러웠다. '아크의 말로는 이게 전직 퀘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던데, 전직 퀘스트는 굉장히 힘든 거 아닌가? 상인 전직 퀘스트면 당연히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벌라는 식일 텐데......' 레벨 300의 상인이지만 아직 이슈람은 제 손으로 장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 장물거래로 한 번에 11,028골드의 순이익을 남긴 건 100% 운이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그런 이슈람에게 장사로 이윤을 남겨 오라는 퀘스트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다행히 크로닐의 시험은 단순한 던전 클리어였다. '일단 장사가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전직 관련 시험이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어. 분명 동굴에는 몬스터 따위가 살고 있겠지? 쳇, 솔직히 그것도 달갑지는 않은데......' 전사용 퀘스트처럼 어딘가에서 보스 몬스터를 때려잡으라는 퀘스트 역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300이든 400이든 이슈람은 상인. 혼자서는 동 레벨의 일반 몬스터 한 마리도 상대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동굴에 들어선 이슈람의 앞에 뜻밖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련의 동굴에 진입했습니다. 시련의 동굴은 성장시켜 온 캐릭터가 아닌 유저의 능력을 시험하는 장소입니다. 도전자가 시련의 동굴에 들어서면 모든 스탯이 초기화되며 스킬이 봉쇄됩니다. 또한 착용하고 있던 무기와 방어구도 강제 해제됩니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오직 테크닉과 센스, 반사 능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한 시간은 없으며 몇 번이나 재도전이 가능하지만 도중에 사망하면 사망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도전을 포기하면 잃었던 능력이 모두 복구됩니다. *장비 해체, 스킬 봉쇄, 레벨 고정, 소모품 사용금지 *힘, 민첩, 체력, 지능, 지혜, 운이 100으로 고정됩니다. '어라? 이게 뭐야?' 아마도 다른 유저가 봤다면 뜨악했을 내용이리라. 그러나 정보창을 꼼꼼히 읽어 본 이슈람은 오히려 환호성을 터뜨렸다. 모든 스탯이 100으로 고정되고 장비와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이슈람이 아닌 누가ㅡ전사라도ㅡ 들어와도 같은 조건이라는 말이 아닌가? 같은 조건이라면 필요한 것은 오직 유저 본인의 전투 능력! 그리고 이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이슈람의 본업은 대한민국 경찰청 제1 특수 기동대장이었다. 전투력 하나만큼은 톱클래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시험이라면 얼마든지 자신 있다!' 이슈람은 망설임 없이 시련의 동굴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에 일어난 일은 구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시련의 동굴에 들어서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팔이 3~4개씩 달린 목각 인형이 소리 없이 움직이며 이슈람을 공격해 왔다. 만약 평범한 유저라면 동굴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넝마가 되어 버렸으리라. 그러나 상대는 다름아닌 이슈람이이다. 어둠 속에서 수십 명의 조폭들과 난투를 벌이는 일도 심심치 않게 경험했다. 물론 시련의 동굴에서 받는 공격이 그때보다 쉽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 같아도 뉴 월드는 게임. 검에 베이고 창에 찔려도 정말 죽지는 않는다. 난이도가 아무리 높아도 현실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치렀던 혈전에 비하면 장난에 불과했다. 아니, 상인의 몸으로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비교해도 장난이었다. '뭐야? 뭐가 이렇게 약해 빠졌어?' 상인인 이슈람은 아무리 약점을 찾아 몬스터를 공격해도 패널티가 적용되어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시련의 동굴은 누구든 똑같은 상태로 도전하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이슈람이라도 전사가 몬스터와 싸우는 것처럼 때리는 만큼 데미지를 줄 수 있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오히려 이슈람은 시련의 동굴이 밖에서 몬스터와 싸울 때보다 쉽게 느껴졌다. 사실 이슈람은 모르고 있었지만 크로닐의 시험에 도전했던 상인들은 수십 명에 달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1관문도 통과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솔직히 어둠 속에서 수십 대의 목각 인형이 달려드는 시험을 평범한 유저가 무슨 수로 통과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상인을 선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전투를 경험해 보지도 못한 유저들이었다. 때문에 상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크로닐의 시험을 불가능한 퀘스트로 단정 짓고 있었다. 그렇다. 애초에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로 표시됐던 ±A라는 등급은, 실제 전투 감각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호오, 이거 애들 훈련시키기 딱 좋은 곳인걸.' 그러나 이슈람에게는 훈련 기구 정도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당연하다. 아무리 난이도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고 해도 게임에서 특수기동대 대장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 놓을 리가 없지 않은가? 덕분에 이슈람은 단숨에 모든 관문을 통과, 최종 관문을 지키던 거대 돼지 로봇까지 격파하고 황금 돼지를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설마 정말 이 시험을 돌파하는 상인이 있을 줄이야!" 설명을 들은 크로닐이 감탄사를 발하며 이슈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작 ㅣ태도를 180도 바꿔 와락 이슈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 나는 요즘 상인들에게 절망하고 있었네. 요즘 상인들은 착각하고 있어. 상인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네. 아니, 약한존재여서는 안 돼.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전사보다 더욱 강해져야 하네. 그리고 예산ㄹ에는 전사보다 강한 상인이 얼마든지 있었지. 내게 진정한 상인의 길을 가르쳐 주신 스승님도......" 크로닐은 다짜고짜 열띤 강의를 시작했다. '진정한 상인의길', '상인 혼이란 무엇인가?', '위대한 선배 상인들의 발자취', '상인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 '상인의 미래' 등등 솔직히 시련의 동굴보다 크로닐의 수다를 듣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대략 30분이 지났을 때였다. "...... 자, 이제 알겠지?" 그렇게 크로닐의 강의가 끝나자 이슈람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은퇴 상인 크로닐로부터 '배틀머천트'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로써 당신은 듀얼리스트 직업 '배틀머천트'로 전직할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듀얼리스트는 마법 전사나 정령 궁사처럼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진 직업입니다.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능력은 반감하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키우기에 따라 만능도 무능도 될 수 있는 직업군입니다. '배틀머천트'는 파이터와 상인의 듀얼리스트입니다. 듀얼리스트의 특성에 따라 상인으로서의 재능은 무기와 방어구를 제외한 거래에는 특별한 보너스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대신 배틀머천트 특유의 전투 기술을 익힐 수 있습니다. 또한 사냥 시 적용되던 경힘치 패널티가 50% 감소합니다. 단, 상품 거래 시 얻을 수 있는 경험치에 50%의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전직하시겠습니까? "오오오!" 지루한 강의에 졸고 있던 이슈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시 아크의 말대로 이번 퀘스트는 전직 퀘스트였다. 그것도 평범한 직업이 아닌 두 가지 속성을 가진 희기 직업 듀얼리스트! 그러나 이슈람은 듀얼리스트나 배틀머천트라는 설명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슈람의 시선이 집중된 부분은 전투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부분!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슈람은 근래 들어 뉴월드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어째 레벨이 올라가는데도 전투는 더 힘들어지냐?' 레벨이 올라가면 강해진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이건 제작사의 농간에 불과하다.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레벨 1대 사냥할 대와 레벨 100대의 사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레벨 1대가 가장힘들고 레벨 100대가 레벨 1대에 비해 몇 배나 더 어렵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그 이뉴는 바로 레벨이 올라가는 이상으로 상대해야 하는 몬스터는 몇 배나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 유저들이 그런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이유는 하나, 각종 직업에 따른 스킬이나 추가 능력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슈람은 상인, 레벨이 올라도 전투 스킬이나 보너스 따위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레벨이 올라갈수록 약해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투 기술을 배울 수 있고 페널티도 50%가 사라진다면......!' 물론 동시에 상인으로서의 능력은 반감하지만 어차피 장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것이다. "전직! 전직!" 이슈람이 전직을 선택하자 눈앞에 새로운 스킬이 주르륵 떠올랐다. 듀얼리스트답게 거래스킬과 전투 스킬이 따로 등록 되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나서 근 1년이 다 되어서야 제대로 된 전투 스킬을 익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전직을 마친 이슈람은 당장이라도 시험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그때 불현듯 아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맞아! 아크 녀석도 나가란으로 올 거라고 했었지? 시르바나면 그리 멀지 않아. 마침 잘됐다. 역시 전투 스킬을 시험하기에는 유저가 최고지. 찾아가서 나도 공성전에 끼워달라고 해야겠다. 후후후, 기다려라!" 이슈람은 바람처럼 시르바나를 향해 달려갔다. (Trping By 하기나름 ) ACT 3 다크에덴 재림 쿵, 쿵, 쿵, 쿵! 이슈람이 번갯불에 콩 볶듯이 전직을 마쳤을 무렵. 나가란 외각에 1,000여 명의 병력이 대열을 맞춰 행군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깃발이나 휘장도 없었고 유저들의 복장도 각양각색, 별 특징 없는 병력이었다. 그러나 단 1명, 개성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 있었다. 선두에서 커다란 도마뱀을 타고 이동하는 검은 늑대! 그렇다. 바로 다크울프로 변신한 아크였다. "정말 사흘 만에 1,000명이나 되는 병력을 모으다니......" 브레드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아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정말 한번 찍으면 인정사정 없구나." "그걸 이제 알았냐?" 아크는 피식 웃으며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분들은 제가 왜 이곳에 왔는지 알고 계실 겁니다. 저는 뉴 월드가 좋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게임에 열중하는 여러분도 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넓은 대륙과 열심히 살아가는 NPC도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둠 속에서 저와 여러분이 좋아하는 뉴 월드의 질서를 어지럽히려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당하게 얻기보다 남의 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며칠 전, 아크는 다크울프로 변신해 셀리브리드 광장에 모여든 수백 명의 유저들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피해를 입은 곳은 미미하지만 이런 무리가 더 강한 세력을 가지게 된다면 힘없는 유저들은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제가 잘나서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게 아닙니다. 뉴 월드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유저로서, 뉴 월드가 망가지는 것을 용납할수 없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일은 여러분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절 도와주십시오!" "우와아아아아!" "드디어 다크울프가 일어났다!" "좋아, 나도 뉴 월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참전하겠다!" 아크의 연설이 끝나자 광장에 모인 유저들이 폭발하듯 환호성을 터뜨렸다. '후후후, 성공이다.' 아크는 몰려드는 지원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이 열화와 같은 반응은 다크울프의 유명세 덕분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동안 란셀에 머물면서 진행시켜 온 밑 작업의 결과였다. 아크는 처음부터 슈덴베르크에서 1,000명의 병력을 모아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사실 그건 마음먹었다고 해서 100% 된다는 보장은 없는 일이었다. 아크는 '유명해졌으니까 유저들이 무조건 지지해 주겠지' 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지 않았다. 물론 이미 브리스타니아에서 1,000명, 스탄달에서 700명의 유저를 확보했다. 그러나 이들은 정확히 말하면 아크를 보고 지원한 유저들이 아니었다. 물론 아크의 명성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브리스타니아에서 모은 병력은 브레드나 레디안을 추종하는 유저들이었고, 스탄달의 병력은 정의남과 갱생단을 추종하는 유저들이었다. '레디안이나 정의남 아저씨는 오랫동안 유저들과 친분을 쌓아 단기간에 유저를 1,700명이나 모을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나는 입장이 다르다. 착각하면 안 돼. 다크울프가 유명해졌지만 그게 인맥이 넓어졌다는 의미는 아니야.' 아크는 그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란셀 방어전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악당들에게 공격받는 게 아니라, 먼저 공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는 것. 유명해졌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아크가 갑자기 나타나서 같이 헤르메스 연합과 싸우자고 한다면 유저들이 우르르 몰려줄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예전의 아란처럼 '너무 설친다' 라는 인상을 주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눈꼴시어서 못 봐 주겠군." "TV에 몇 번 나왔다고 뭐든 제 맘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다. 실제로 아크가 유명해지자 심심치 않게 이런 얘기가 들려 오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우려하던 일. 유명해지면 추종자가 생기지만 동시에 질투와 질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창 잘나가던 아란이 단 한 번의 실수로 재기 불능 상태까지 몰렸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아직 그때의 아란만큼은 아니지만 슬슬 위험한 단계까지 왔어. 지금 상황에서 무턱대고 이름을 판다고 원하는 병력을 모을수 없을 거야.' 더구나 헤르메스 연합과 싸우려면 최소한 레벨 250은 돼야 한다. 이렇다 할 인맥도 없는 아크가 단기간에 그 정도 레벨의 유저를 1,000명이나 모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아크는 시르바나 탈환을 결심했을 때부터 모종의 작전을 진행해왔다. 시작은 TV에서부터였다. ㅡ(음성변조)란셀 마을 NPC : 흑, 나쁜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아버지가 죽었어요.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흑흑흑. ㅡ(음성변조) 란셀 방어전에 참전했던 유저 : 아, 정말 짜증 나죠, 사실 저는 하루나의 야영지에서 받은 퀘스트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도적단 때문에 80% 이상 완료해 놨던 퀘스트도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놈들은 장난삼아 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열 받아요. 혼자 하는 게임도 아닌데 좀 심하잖아요. 며칠 전에 게임 특종에서 방송된 다크울프의 코너는 다큐멘터리 방식이었다. 제목은 '란셀 방어전이 남긴 상처' . 아크는 이 방송을 위해 란셀을 돌아다니며 실제로 NPC와 유저들의 피해 사례를 취재했다. 특히 실제로 가족을 잃은 어린 소녀 NPC의 울먹이는 장면은 많은 유저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방송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크울프가 괴로운 표정으로 고민하며 중얼거리는 장면을 삽입했다. "전투는 승리했지만 그걸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주민들과 유저들의 상처는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용서할 수 없어. 마을을 공격한 놈들은 감옥에서 응분의 대가를 받겠지만, 진짜 원흉은 여전히 웃으면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겠지. 그리고 그런 놈들이 있는 한 같은 일은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다!" 방송이라 특정 연합ㅡ헤르메스ㅡ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TV로, 혹은 소문으로 들은 유저들은 아크가 말하는 '그런 놈들' 이 누구를 지칭하는 단어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란셀 방어전의 뒷얘기까지 나오자 유저들의 비난이 헤르메스 연합에게 쏠렸다. 아크가 되도 않는 연기까지 하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갑자기 유명인이 되면 질투와 시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크의 상대로서 보다 '명확하게 미워할 만한 이유가 있는 적' 을 내세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아크에게 질투를 보내던 유저들의 분노가 헤르메스 연합에게 집중되었다. '지금이 기회다!' 아크에 대한 질투의 감정이 일시에 헤르메스 연합에 대한 분노로 바뀐 시점! 그리고 란셀 영지의 NPC에 대한 동정표가 집중된 시점! 이시점에 아크는 란셀의 상인들을 기란과 셀리브리드로 파견, 방송에서 확실하게 밝히지 못했던 도적단의 원흉이 헤르메스 연합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유저들이 지지해 주면 아크가 직접 헤르메스 연합을 응징하기 위해 나서 줄지도 모른다고 떠들고 다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동원해 헤르메스 연합을 철저하게 악의 세력으로 몰아넣고, 아크는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악을 처단하기 위해 궐기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밑 작업의 목적이 그게 전부는 아니야.' 그렇다. 아크가 시간을 들여 밑 작업을 해 놓은 이유는 처음부터 두 가지였다. 첫째는 괜한 질시의 시선을 받지 않고 병력을 모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그리고 둘째는 바로 헤르메스 연합의 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해서였다. 기란이나 셀리브리드에서 대대적으로 병력을 모으면 당연히 헤르메스 연합도 곧 아크가 시르바나를 공격해 올 것을 알게 된다. 당연히 헤르메스 연합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리라. '헤르메스 연합은 궁지에 몰려 있다. 때문에 더더욱 이번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건재함을 과시하려 할 거야. 당연히 자금을 바닥까지 긁어서 세력을 불리겠지.'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물량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무리 자금난에 빠져 있다고 해도 헤르메스 연합이 파산을 각오하고 나서면 아크보다 많은 병력을 모을 수 있으리라. 현재 아크가 모은 병력은 유저와 NPC 포함해 4,300여. 그게 한계치였다. 반면 헤르메스 연합은 조직원이 5,000이 넘는다. 이미 열세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몇 천의 병력이 더 추가된다면 도저히 승산이 없다. '하지만 이번 공작으로 헤르메스 연합은 더욱더 유저들의 반감을 사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헤르메스 연합을 도와줄 길드나 유저는 없으리라. 이번 헤르메스 연합 측에 서는 것만으로도 싸잡아 악당 취급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나가란에는 떠돌이 용병이라는 NPC들도 있었다. 떠돌이 용병은 능력치나 스킬이 공성전에 활용하기 좋은 NPC지만 고용 비용이 유저들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헤르메스 연합은 이미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어. 유저라면 나중에 돈을 지불하기로 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하는 NPC에게 그런 약속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헤르메스 연합이 모든 자금을 탁탁 털어도 고작 수백 명을 고용하는 게 한계야.' 그게 아크가 이번 정보전을 시작한 진짜 목적이었다. 결국 아크는 사전 정보 조작으로 헤르메스 연합을 공적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자신에게 쏟아지는 질투 어린 시선을 차단하고, 저렴한 가격에 병력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을 제한시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다. 이미 공성전은 란셀을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브레드가 한 번 찍으면 인정사장없다고 혀를 내두른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정말 적으로 삼기 두려운 놈이야."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왜 그게 협박처럼 들리냐?" "기분 탓이야." 아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그때 아크의 어깨 위에서 라카드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쳇, 그나저나 여기도 꽤나 재미없는 곳으로 변했군. 예전에는 어딜 가나 향긋한 피 냄새가 풍기는 멋진 곳이었는데 이제는 퀴퀴한 흙냄새밖에 안 나잖아." "뭐, 옛날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변하기는 했어."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전에 나가란에 들어왔을 때는 전 지역에서 쉬지 않고 전투가 벌어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르바나의 경계를 넘을 때까지 그런 전투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가란 지역에서 활동하는 길드의 숫자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군소 길드가 모두 연합에 흡수되어 작은 세력은 버틸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소규모 전투가 줄어든 건 나가란의 세력 구도가 정착됐기 때문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매번 바뀌던 영주가 근래에 들어서는 거의 변동이 없었다. 12개나 되는 나가란의 영지에서 영주가 바뀌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나가란의 패권을 좌우하는 5대 세력은 1년이나 영지를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헤르메스 연합도 5대 세력 가운데 하나. 1년 이상 영지를 지켜 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연합이다. 많이 약화됐다고 하지만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겠지.' "정말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로코가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아크는 잠시 로코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겨야지. 아니, 이겨야 해." 그러자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코가 배시시 웃었다. "오빠는 현실에서도 멋지지만, 뉴 월드에서는 더 멋져요. 늑대 모습도 나쁘지 않고."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헤헤헤." 로코가 혀를 날름거리며 팔짱을 꼈다. "왜 이래? 옆에 다른 사람도 있는데." "뭐 어때요? 브레드 오빠, 부럽죠?" "그래, 젠장, 부럽다. 아, 마이 레이디 레디안이 보고 싶어." 브레드가 한숨을 불어 내며 푸념하듯이 중얼거렸다. "시르바나 영지다!" 그때 언덕 위에서 앞서 나가던 정찰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아크가 번쩍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라둔 !" 바바바바, 바바바바! 라둔이 흙먼지를 뿜어 올리며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뒤이어 언덕 위에 올라선 아크의 입술 사이로 감회에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르바나 !" 발아래로 넓게 펼쳐진 영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시르바나 영지!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시르바나는 아크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평야의 경작지는 몇 배나 넓어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에 세워진 건물도 더 다양하고 많아졌다. 헤르메스 연합의 장기 집권으로 안정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지 중심에 자리 잡은 회색 거성! 영주성도 아크가 영주로 있을 때보다 2배는 거대해져 있었다. 당연히 성벽도 훨씬 두꺼워져있었고, 성문과 각종 방어 시설도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영주성이라기보다는 요새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위용이었다. '역시 영지 등급이 C로 올라가니 영지나 성의 수준이 달라지는군.' 현재 나가란의 12개 영지 가운데 C등급으로 승격된 곳은 불과 5개. 나가란의 5대 세력이 장악한 영지뿐이었다. 다시 말해 최소 열 달 이상 한 연합이 장악하고 있어야 겨우 등급을 하나 올릴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는 뜻이다. 아마 라이젠 역시 그동안 영지 등급을 올리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으리라. "네가 키운 이 영지...... 곧 이 몸께서 먹어 주지 !" 다크울프로 변한 아크는 정말 사냥감을 앞에 둔 늑대처럼 격양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렇게 분위기나 잡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예상보다 병력을 빨리 모은 덕분에 아직 다음 공성전 예정일까지는 며칠 여유가 있었지만, 그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뒤이어 언덕에 올라온 브레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다른 병력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방금 전에 접경 근처까지 왔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곧 도착할 거야. 브레드, 일단 너는 여기서 대기하면서 지원군이 도착하는 대로 병력을 재편성해 줘. 그사이에 나는 시드와 대륙상회에 다녀올 테니까." "후후후, 이제 이 몸이 나설 때로군요. 따라오세요." 시드가 목에 힘을 팍 주며 앞으로 나섰다. 정말이지 하는 짓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게 없었다. 그러나 당장은 이런 건방진 호비트의 도움이라도 필요할 때라 참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공성전이 끝나고 두고 보자 !' "오, 아크, 어서 오게 !" 대륙 상회에 도착하자 월커스와 로렌조가 달려 나왔다. "연락받고 기다리고 있었네. 이제야 결심을 굳혔구먼." 월커스가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때는 카이로트의 작은 상점을 운영하던 NPC지만, 현재는 나가란에서 가장 큰 대륙상회의 사장이었다. 따지고 보면 시드 따위보다 몇 배나 출세한 셈이다. 그러나 월커스는 옆에서 콧구멍이나 후비적거리는 호비트와 달리 거만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NPC는 상황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유저와 달리 한번 은혜를 베풀고 친밀도를 올려놓으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유저보다 NPC를 신뢰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간만에 만난 월커스와 재회의 기쁨을 나눌 만한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부탁드렸던 물건은 준비됐습니까?" "물론, 대륙상회의 라인을 총동원해서 가장 품질이 좋은 것들만 엄선했네." 월커스가 창고로 아크 일행을 안내했다. 창고에는 출발 전에 부탁했던 각종 아이템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마법 화살이나 숫돌, 주문서, 인형(?) 등등 이번 공성전에 필요한 군수물자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아크는 목록표를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에 그게 무슨 말인가? 나와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건 오직 자네 덕분이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이 몇 배라도 공짜로 주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내 재량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고작 좋은 물건을 구해 주는 게 전부네." "그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크가 군수물자를 굳이 월커스를 통해 구입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미 예전에 설명한 적이 있지만, 뉴 월드의 아이템은 같은 가격의 물건이라도 생산자에 따라 성능이 천차만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시엘에서 생산되는 '세이룬 포션' 이었다. 같은 가격이라도 ' 세이룬 포션 '은 평균 100 ~ 150이나 회복량이 많았다. 마법 화살이나 숫돌 따위도 마찬가지. 때문에 대륙상회의 정보력을 총동원해 가격 대 효율비가 가장 좋은 상품들만 엄선해서 구입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아크는 대륙상회와 도매 거래를 하는 아크 상점의 주인. 때문에 상점과 상점이 거래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다른 곳보다 30%나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목록표 아래에 적힌 결제 금액을 확인해보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주문한 군수물자의 가격은 무려 23,000골드! 정말 최소한의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데만 군자금이 70%가 날아간 것이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천문학적인 돈을 지불하려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게다가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해.' 새삼스럽지만 이번 공성전은 '정의를 위한 전쟁' 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공성전에 성공하면 아크가 시르바나의 영주가 된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있는 전투라고 해도 결국 혼자만 이득을 챙긴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 공성전에 성공하면 참가 유저들에게 어느 정도 성공 보수를 챙겨 줘야 한다. '그거야 일단 영주가 된 뒤에 시간을 들여 처리하면 되는 문제지만, 어쨌든 모두 빚이야.' 영주가 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머리가 터져 죽더라도 일단 시르바나를 탈환해야 한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군수물자 대금을 결제했다. "여기 있습니다."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아크는 월커스의 격려를 받으며 대륙상회를 나왔다. 그리고 대여 마차에 군수 물자를 싣고 주둔지로 돌아오자 수명의 사람들이 뛰어 나왔다. "우하하하! 아크야, 형님들이 왔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도착한 정의남과 갱생단이었다. "오랜만...... 은 아닌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레디안도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의남과 갱생단, 샴바라, 레디안도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정의남과 갱생단,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등은 이미 인사를 마쳐 아크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는 그들의 면면을 둘러보다가 문득 움찔하며 시선을 뭠첬다. 갱생단들 사이에서 눈인사를 보내는 레리어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빠, 잘 다녀오셨어요?" 아크가 레리어트를 바라보자 뒤쪽에서 로코가 쪼르르 달려 나와 팔짱을 꼈다. 그러자 레리어트가 물끄러미 아크와 로코의 목에 감겨 있는 커플 목도리를 바라보다가 씁쓸한 미소를ㅡ아크에게는 그렇게 보였다ㅡ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레리어트의 반응에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려고 하자 로코가 팔짱을 낀 손에 꽉 힘을 주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로코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있구나 !' 순간 아크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분명 둘 사이에 뭔가가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체 뭘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크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사실 아크는 예전부터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을 확실하게 해 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가 된 상태였다. 물론 레리어트에 대해서는 아크가 일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니 새삼 정리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더욱 레리어트와 진지하게 대화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사람이 안 되니 저 사람, 이 사람과 잘됐으면 저 사람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비겁하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감정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든 간에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전하고 확실하게 매듭을 져야 다른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크는 조심스럽게 로코가 잡은 팔을 뺐다. 그러나 레리어트에게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언젠가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 아크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언덕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언덕 아래에는 이번 공성전에 참가하기 위해 스탄달과 브리스타니아에서 몰려온 3,000의 병력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아크가 소집한 유저와 란셀 병력 1,300 ! 합계 4,300의 병력! 그 앞에는 정의남을 비롯해 아크 일족이 한 자리에 집결해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감정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모든 힘을 쥐어짜 시르바나를 탈환해야 하는 것이다! "브레드, 병력 편성은 마쳤어?" "응? 아, 응, 병과에 따라 대대별로 구분해 놨어. 이제 묶어서 군단 등록만 하면 돼." 미묘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던 브레드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좋아, 그럼 군단 등록을 끝마치고 서둘러 공성전을 신청하러 가자." 길드나 연합이 없으니 4,300명이나 되는 인원을 한데 묶는 방법은 군단뿐이었다. 아크는 20여 개 부대로 나뉜 병력을 군단으로 등록 했다. 이제 남은 것은 헤르메스 연합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일뿐! 아크가 결연한 표정으로 전쟁의 신전으로 향하려 할 때였다. "저는 그럼 이만......" 시드가 쪼르르 다가와 분위기 깨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설마 여기까지 와서 빠지겠다는 거야?" "그게 말이죠. 아크 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이잖아요. 공성전에 참가했다가 헤르메스 연합원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앞으로 장사하기 힘들어진단 말이에요." "뭐야, 그 말은? 내가 진다는 거야?" "아, 물론, 절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저도 장사꾼이라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솔직히 아크 님도 제가 이곳에서 장사를 못 하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게다가 제가 괜히 나섰다가 대륙상회까지 눈 밖에 날 수도 있다고요." '이, 이자식이 정말......!' 시드의 말에 아크의 눈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시드는 '내가 뭐 틀린 말했나?' 라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정말 한 대 패 주고 싶은 면상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드의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공성전에는 군수물자를 관리하거나 각종 계약서 발급 등등 상인이 해야 할 일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아크는 이미 그 일을 시드에게 맡길 생각으로 굳이 상인을 추가 모집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군단의 유일한 상인이 빠지겠다면 대체 어쩌라는 건가? 아니, 그 이전에 모처럼 각오를 굳히고 공성전을 신청하려는데 이 따위 재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다니? '더 이상은 못 참아!' 시드의 건방짐에 내내 찜찜했던 아크의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처절한 정신교육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아크야ㅡ !" 고개를 돌려 보자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능선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점차 가까워지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아크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라? 사범님?" "헉헉헉, 아이고 죽겠다. 어쨌든 아직 늦지 않았구나." 바람과 함께 나타난 사람은 바로 이슈람이었다. 아크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하몽 영지로 가신다고 했잖아요. 혹시 실패한 거예요? 전직 퀘스트는 짧아도 일주일 이상 소모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이슈람은 아크보다 나흘이나 앞서 출발했지만 란셀에서 하몽 영지까지는 영자 이동을 이용해도 이틀은 걸린다. ㅡ나가란에는 아직 마법탑이 없어서 셀리브리드에서부터는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몽 영지에서 다시 시르바나까지, 이슈람의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전직 퀘스트를 포기하거나 실패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엇다. 그러나 이슈람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실패? 후후후, 이 몸의 사전에 실패란 말은 없다. 이미 끝났지." "벌써? 혹시 전직 퀘스트가 아니었던 거예요?" "전직 퀘스트 맞더라." "네? 그럼 전직 퀘스트를 며칠 만에 완료했단 말이에요?" "게임 시간으로 하루가 걸렸으니 정확히는 8시간 만이지." 이슈람이 목에 힘을 팍 주며 말했다. "솔직히 그 퀘스트가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게임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어." 이슈람이 자랑스럽게 퀘스트 내용을 설명하려 할 때였다. 옆에 있던 정의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왔다. "아크야, 누구냐? 사범님이라면......" "아, 처음 보시죠?" 아크가 설명하려 하자 이슈람이 펄쩍 뛰며 와락 아크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슬금슬금 정의남의 눈치를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 바보야. 내가 잠입 수사 중이라는 거 잊었어?" "네? 하지만......" "안 돼. 아직 잡입 수사가 종료된 것도 아니란 말이야. 나중이라도 놈들이 접속하면 다시 잠입 수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정체를 밝히면 어쩌라고? 권 형님에게는 나중에 내가 설명할 테니 일단 그냥 넘어가." 확실히 지금은 이슈람에 대해 설명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둘러댔다. "이분은 예전에 다니던 태권도장의 사범님이에요." "이슈람이라고 합니다." 이슈람이 천연덕스럽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왜 오신 거예요?" "아, 네가 전에 나가란에서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잖아. 나도 한번 참가해 보려고." "네? 하지만 사범님은 상인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상인이 아니다. 이번에......" 이슈람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리다가 눈매를 좁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뒤쪽에 서 있는 시드를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슈람이 관심을 보이자 시드 역시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기를 잠시, 잡자기 둘이 동시에 소리쳤다. "앗! 네놈은 기란에서 사기치고 도망쳤던 망할 호비트!" "앗! 다, 당신은 기란에서 사기 당한 멍청한..... 힉!" 시드가 비명처럼 소리치다가 기겁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다. 사실 이슈람과 시드는 이미 오래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놀이 서식하는 지역에서 이슈람이 시드를 구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드는 배은망덕하게도 이슈람에게 사기를 쳐 먹고 도망쳤다. 덕분에 이슈람은 분함에 며칠 동안 잠을 설쳐야 했었던 것이다. 그런 과거가 생각난 듯 이슈람의 얼굴에서 섬뜩한 살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후후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으드득, 내가 네놈에게 사기 당해서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무슨 말이에요? 시드하고 아는 사이예요?" "아냐고? 너야말로 저 망할 호비트와 아는 사이냐?" "네? 그게......" 아크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며 대답할 때였다.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던 시드가 돌연 와락 몸을 돌리며 도망쳤다. 아니,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이슈람이 아크의 어깨를 타 넘으며 튕겨 나가 도망치는 시드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내리찍었다. 그리고 쓰러진 시드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가며 말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내 볼일부터 봐야겠다." "히익! 아, 아크 님, 살려 주세요!" 시드가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크는 먼 산을 바라보며 딴청을 피웠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드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잘못한 게 있긴 한 모양이군.' 그렇지 않아도 아크도 참다못해 시드의 정신교육을 시키려던 참이다. 거들면 거들었지 말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이, 당신 대체 누군데......" "놔두세요. 사범님이 경우 없는 분은 아니거든요. 저 녀석이 뭔가 잘못했겠죠." 아크는 오히려 나서려는 갱생단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러자 시드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제가 잘못했어요! 다음부터 말 잘 들을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게다가 그때 이 사람에게 사기 친 돈은 1쿠퍼도 못 챙겼다고요! '일각수의 뿔' 기억나시죠? 오히려 아크 님이 원금만 지불해서 어음을 막느라 제 돈을 꼬라박았단 말이에요!" "글쎄?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아크는 귓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몸을 돌려 버렸다. 시드는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채 입을 열기 전에 으슥한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뒤이어 시드의 처절한 비명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악!" 정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섬득한 비명이였다. 그러나 시드에게 짜증이 폭발했던 아크에게는 음악처럼 들릴 뿐이었다. "아크야, 이대로 놔둘 거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잡겠다." 잠시 후 정의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네, 제가 한번 잘 말해 볼게요." 그제야 아크는 씨익 웃으며 폭력의 현장으로 걸어갔다. 수풀과 바위에 가려져 뒷골목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곳으로 들어가자 이슈람이 보였다. 그러나 시드는 보이지 않았다. 이슈람의 앞에는 '시드를 닮은 것 같은 생명체' 가 피범벅이 되어 움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크가 나타나자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시드가 벌떡 일어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흑흑흑. 아, 아크 님, 살려 주세요! 저 사람은 사람도 아니에요!" "뭐야? 저놈이......!" "힉. 사, 사, 사, 살려 주세요!" 아크는 시드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사범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 뭐, 죽어도 별로 아쉬울 건 없지만 이 녀석은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상인이라 없으면 좀 곤란해요. 그렇지?" 순간 시드는 아크가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대번에 알아챘다. 그리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 할게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개처럼 열심히 일할게요!" "젠장, 할 수 없지." 이슈람이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시드를 노려보았다. "아크에게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들었으니 이번에는 이 정도로 끝내 주마. 하지만 긴장해라.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는 짓을 하면 다음에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아. 네놈이 뭐 하는 놈인지 알았으니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아작 내 놓겠다! 알았어?"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시드가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떨며 대답했다. 솔직히 아크는 시드의 반응이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10분 넘도록 두들겨 맞았다고 해도 이곳은 게임 속이다. 뭐, 면상은 18금 호러물의 좀비처럼 구겨졌지만 시드가 실제로 느꼈을 통증은 정전기에 감전되는 정도. 고작 그 정도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 댈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그건 아크가 이슈람에게 맞아 보지 못해서 하는 생각이었다. 사실 근래 들어 이슈람도 다른 유저들은 자신과 좀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슈람은 팔이 부러지면 정말 팔이 부러지는 고통을 느끼지만 다른 유저들은 그런 실감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때문에 이슈람은 항상 유저를 상대할 때는 작은 충격으로도 큰 통증을 유발할 수 있는 급소만 골라 때리는 습관이 생겼다. 특수기동대에서 사람 괴롭히는 일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고 말하는 이슈람. 그런 인간이 작정하고 급소만 때려 대니 아무리 정전기 같은 통증이라도 맞는 사람은 고문을 당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어쨌든 이로써 시드 녀석의 정신교육을 따로 할 수고를 덜었군.' 아크는 히죽거리며 시드를 데리고 나왔다. "저렇게까지......!" 시드의 상태를 확인하자 정의남과 갱생단마저 질렸다는 눈으로 이슈람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이슈람은 단숨에 아크 일행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었다. "자, 이제 전쟁의 신전에 공성전을 신청하러 가죠." 아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힘차게 전쟁의 신전으로 향했다. "공성전 참가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 "먼저 세력 정보를 작성해 주십시오." ㅡ*군단 : 《다크에덴》 *공격 대장 : 《아크》 *부대장 : 《정의남》 편성 인원 : 《4,276》 신생 다크에덴의 탄생이었다. 사제의 지시에 따라 군단 정보를 기재하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전쟁의 신전에 공성전 참가 신청을 완료했습니다. 현재《다크에덴》의 공성전 순위는 1위입니다. 참가 신청을 한 세력은 공성전이 끝날 때까지 나가란 지역에 적 세력의 공격을 받지 않는 중립지대를 선포할 수 있습니다. *공성전까지 남은 시간은 47시간입니다. "음, 등록됐습니다." 사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현재 공성전을 신청한 세력은 다크에덴밖에 없습니다. 다음 공성전 일자까지 일주일의 여유도 없군요. 따로 신청한 세력이 없을 경우 공성전 날짜를 한 번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면 다음 예정일에 공성전을 시작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번 날짜에 치르겠습니다." 사실 가능하다면 공성전 일정을 미루고 싶었다. 일단 4,000이나 되는 병력을 모았지만 길드나 연합처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병력이 아니다. 전사나 궁수, 마법사, 성직자의 비율은 신중하게 맞췄지만, 또한 레벨도 평균 이상의 실력자 위주로 뽑았지만, 실제로 전투가 시작되면 얼마나 조직적으로 움직여 줄지 장담할 수 없는 병력이다. 그러나 아크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훈련으로 소모되는 4,000명의 만복도를 아크의 돈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지금 남은 돈은 고작 7,000골드. 일주일의 식비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빡세게 훈련시키면 고작 3 ~ 4일. 이틀 동안 하는 데 까지 해보는 수밖에.' 정말 병력이 수천이 되니 뭘 하든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식비 만으로 수천 골드가 날아가는 판이니 금전 감각 마저 희미해졌다. 등록을 마친 아크는 바로 주둔지로 돌아와 중립지대를 선포하고 군단병들에게 말했다. "이제 최후의 등록을 마쳤습니다. 악의 무리를 섬멸할 시기는 이틀 후 정오. 그때까지 여러분은 공성전에 필요한 훈련을 받아 주십시오. 아시다시피 남은 시간이 별로 없으니 좀 힘들어도 각 부대장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자, 뭘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 수고해 줘." 아크는 신생 다크에덴의 훈련을 각 부대장들에게 일임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파티나 공격대 경험이 많은 브레드나 레디안 그리고 스탄달에서 오랫동안 자치대를 운영해 왔던 정의남과 갱생단이라면 이 어중이떠중이 집단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올려놓을 수 있으리라. 아니,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나는 따로 할 일이 있어." 아크는 주둔지에 쌓여 있는 엄청난 식재료를 바라보았다. 전쟁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건 현실이나 게임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 배고픈 병사들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듯, 뉴 월드에서도 만복도가 떨어지면 각종 스탯과 전투이 반감한다. 그리고 만복도는 많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빨리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결국 훈련으로 이틀, 공성전에 하루, 사흘간 4,000명이 넘는 병력이 먹어 치울 식량은 수만에 달한다. '하지만 만복도만 회복하는 건 전쟁의 신전에서 파는 싸구려 군량으로도 충분해.' 단순히 만복도만이라면 이미 충분한 군량을 확보해 놓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크는 군량 이외에도 그대로 먹을 수 없는 식재료를 수만 개나 구입해 두었다. 아크에게 음식이라는 건 단순한 만복도 이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기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식재료를 몽땅 서바이벌 요리로 만든다!' 그렇다. 바로 능력치를 올려주는 서바이벌 요리! 이번 공성전은 시작 전부터 숫자도, 조직력도 열세다. 물론 서바이벌 요리가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기 눈물만큼이라도 승산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최상급 서바이벌 요리로 전 병력의 능력치를 올려놓으면 상당한 전투력 상승을 기대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실제로 서바이벌 요리를 만드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공성전이 진행되는 시간은 24시간.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고 해도 한 사람에게 2 ~ 3개는 지급해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 4,000명에게 2 ~3씩만 지급해도 8,000 ~ 12,000개의 요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불과 이틀 만에 8,000 ~ 12,000개의 요리! '이기기 위해서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고 말겠다!' 아크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냄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크의 처절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으드득, 아크 자식.....!"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이를 갈아붙였다. 눈 밑에 까맣게 다크서클이 낀 사내는 바로 헤르메스 연합장 라이덴이었다. 라이덴은 지난 일주일간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결사대의 란셀 습격 실패 때문이었다. 헤르메스 연합의 심각한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조직된 비밀결사대. 그러나 결사대가 조직되자마자 박살 나고 심지어 TV에 조직원들의 얼굴까지 공개되어 헤르메스 연합은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에 놓여 버리고 말았다. 라이덴이 아무리 결사대와의 관계를 부정해도 소용없었다. 헤르메스 연합과 친분이 있던 길드도 모두 등을 돌렸고, 연합원 관리 차원에서 운영하던 홈페이지는 하루에도 수천명이 들어와 게시판에 온갖 악담을 써 놓았다. 그뿐이 아니다. 사냥터에서도 헤르메스 연합원은 아예 파티에도 끼워 주지 않았다. 나가란 5대 세력으로 짱짱한 위세를 자랑하던 헤르메스 연합이 졸지에 악당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일반 유저들이 아니었다. 사실 결사대는 라이덴과 몇몇 유력 엽한원들만 알고 있던 조직이었다. 일반 연합원들은 결사대가 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싸잡아 악당 취급을 받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때문에 적지 않은 연합원들이 탈퇴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아직 까지는 어떻게든 설득해서 막고 있지만 슬슬 한계다. 그리고 한 번 탈퇴자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합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막아야 해!" 탈퇴자가 생기면 단순히 병력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헤르메스 연합이 비록 여론의 못매를 맞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으며 허덕이고 있지만, 아직 대외적으로는 강대한 세력이다. 그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세력의 도전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탈퇴자가 많아지면 더 이상 내부 사정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벌 떼처럼 덤비리라.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자금난에 허덕이는 헤르메스 연합은 말라 죽어 버리리라. 그렇다. 성을 가지고 잇는 영주들이 막대한 돈을 투자해 많은 병력을 보유하려는 이유는, 공성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성전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 말하자면 전쟁 억제력을 위해서다. 이기든 지든 공성전이 벌어지면 막대한 돈을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되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 절대 헤르메스 연합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하이에나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수입원인 시르바나 영지까지 빼앗긴다면......" 헤르메스 연합은 그대로 와해돼 버리고 말리라. 그리고 라이덴은 여기저기에서 끌어 쓴 2만 골드를 갚을 방법이 사라진다. 당연히 매일 대부업자가 집을 찾아올 것이고, 와이프는 애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 버리라. 잘나가는 연합장에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아니 악성 채무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미 라이덴에게 시르바나를 지키는 문제는 가정을 지키는 것과 같은 문제였다. "일단 오늘 저녁이라도 실버문과 노엘 길드장에게 술이라도 좀 먹이면서 길드원 관리에 신경 쓰라고 당부해 놔야겠다. 연합의 가장 큰 길드인 실버문과 노엘만 꽉 잡고 있으면 연합원의 동요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거야. 젠장, 빚쟁이가 매일 전화를 해 대는 상황에 쌈짓돈을 털어 길드장이나 접대하고 있어야 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영주님!"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연합원 1명이 뛰어 들어왔다. 연합원은 숨을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 뭐야? 무슨 일인데? 벌써 탈퇴자가 나온 거냐?" "탈퇴자요?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 전에 전쟁의 신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틀 후 오전, 공성전을 신청한 세력이 있다고 합니다!" "뭐야? 공성전?" 라이덴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젠장, 그렇지 않아도 헐떡이는 상황에서 공성전이라니? 벌써 우리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정보가 샌 건가? 망했다. 그게 사실이면 앞으로 계속 공성전을 치러야 할 텐데......' "어떤 놈들이야? 공성전을 신청한 연합이?" "연합이 아니라 다크에덴이라는 군단이라고 합니다." "다크에덴?" 다크에덴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라이덴의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다크에덴이라면 예전에 아크 놈이 조직했던 공격대 이름...... 결국 올 것이 왔구나!' 아크가 예상했듯이 라이덴은 이미 아크가 병력을 모은다는 것을 알고 있엇다. 그러나 그게 시르바나의 공성전을 위해서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기란이나 셀리브리드에서 모은 병력은 1,000명밖에 되지 않아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있었다. 라이덴으로서는 브리스타니아나 스탄달의 움직임까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크의 병력이 갑자기 4,000으로 불어 공성전을 신청한 것이다. 다크 에덴의 병력까지 전해 들은 라이덴의 머릿속에 수십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대체 나머지 3,000의 병력은 어디에서? 연합도 없는 놈이 어떻게 그만한 병력을 움직일 군자금을?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아크 자식, 나를 이렇게까지 궁지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는 건가? 내가 노숙자가 되는 꼴을 봐야겠다는 거냐?" 그러기를 잠시, 돌연 라이덴의 가슴속에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빌어먹을, 다른 놈들에게는 몰라도 네놈에게만큼은 절대 시르바나를 내줄 수 없어!" 라이덴이 거칠게 탁자를 후려치며 괴성을 질렀다. 그 순간, 라이덴은 뭔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만,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헤르메스 연합이 돌팔매를 당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아크ㅡ정확하게 말하면 다크울프ㅡ때문이다. 그리고 아크가 이제 헤르메스 연합의 숨통을 끊기 위해 병력을 모아 공성전을 신청했다. 틀림없이 헤르메스 연합의 위기! 그러나 만약 헤르메스 연합이 한창 주가를 올리는 아크의 공격을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막아 낸다면? 시르바나를 주시하는 수많은 유저들에게 헤르메스 연합의 건재함을 보여 줄 수 있다. 그리고 모처럼 분위기를 탄 아크의 명성은 추락할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상황이 어찌 됐든 현재 연합원들은 하나같이 아크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힘을 합쳐 아크를 물리쳐 낸다면 연합원들의 단결력을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어. 그래, 이건 틀림없이 기회다. 놈에게 성을 빼았긴다면 끝장이지만, 일단 지켜 내기만 하면 연합을 위기에서 구해 낼 수 있는 계기가 될거야!" 거기까지 생각한 라이덴이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모든 연합원에게 소집 명령을 내려라! 연합에 남은 자금도 박박 긁어모아!" 라이덴은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적은.....아크다!" (하기나름 : 하루에 2~3시간 이나 없는 시간내서 하는데도 3일째 ACT 3밖에 못했네요 ;;) 그사이에 결전의 때가 4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어둠에 잠겨 있는 나가란에 태양이 떠오르면 드디어 다크에덴과 헤르메스 연합, 아니 아크와 라이덴의 운명이 걸려 있는 공성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결전 전야! 이런 때 보통 당사자라면 어둠에 잠긴 성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지고 있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그렇게 폼 나는 분위기를 잡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우오오오오!" 아크는 이틀 전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냄비를 흔들어 대고 있었다. 고기는 너무 질기지 않게 레어로, 적당한 타이밍에 후추와 소금을 살짝, 이틀 동안 수천 번을 반복해 온 아크는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자글자글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를 맡는 것도 이제 고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잠시, 돌연 빛과 함께 정보창이 떠올랐다. 서바이벌요리로 '달콤한 무코 스테이크' 가 완성됐습니다! 고급 식재료인 무코의 안심으로 만든 스테이크입니다. 살코기와, 지방이 황금 비율을 이룬 안심을 뛰어난 솜씨로 요리해 부드러우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습니다. 《30분간 힘 +20, 최대 생명력 +300》 "헉헉헉, 끄, 끝났다!" 아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앞에 쌓여 있는 엄청난 양의 요리를 바라보았다. 이틀 동안 잠도 자지않고 미친듯이 만든 요리들이었다. '서바이벌 요리' 를 배운 뒤로 단기간에 이만한 음식을 만들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노가다라면 이제 신물 날 정도로 해 봤다는 아크조차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반복한 작업에 몇 번이나 의식이 안드로메다를 왕복해야 했다. 새삼 명절 때마다 일가친척의 음식을 몽땅 해야 하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어쨌든 아크는 해내고야 말았다. 스테이크, 산적, 부침개 등등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진 요리의 숫자는 무려 8,000개! 산처럼 쌓여 있는 음식을 보자니 새삼 인간 승리라는 말이 떠올랏다. "힘들었지만...... 보람은 있었어!" 이로써 군단병 전원에게 2개씩의 요리를 배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광란의 요리로 얻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이틀 동안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음식을 만들어 댄 덕분에 드디어 '서바이벌 요리'가 최고 등급인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식재료에 대한 깊은 고찰로 '서바이벌 요리'의 등급이 올랐습니다. 서바이벌 요리(마스터, 패시브) : 당신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드디어 달인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달인은 이미 그 분야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존재. 이제 모든 식재료와 요리법에 통달해 요리의 극의를 깨달은 당신에게 불가능한 요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달인은 지금까지 뉴 월드에 존재하지 않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달인의 경지에 올라 '창작 요리' 를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창작요리 : 요리의 달인이 됐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새로운 도전의 시작입니다. 창작 요리는 지금까지 조합이 불가능했던 식재료, 혹은 레시피로 존재하지 않았던 잘못된 조합으로도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입니다. 이런 창작 요리는 일반 요리의 상식을 뒤엎는 특수한 효과를 갖게 됩니다. 창작요리에 대한 설명은 '음식이 꼭 먹는 것만은 아니다' 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륙에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궁극의 요리' 는 오직 창작 요리로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기존에 없었던 신비한 효능을 가진 창작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뉴 월드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만든 마스터 스킬! 마스터가 되자 요리를 만드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이틀 만에 8,000개나 되는 요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직 시간이 없어서 많이 시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창작 요리' 도 기대 이상의 수확이야!" 아크가 시험해 본 바에 의하면 ' 창작 요리'는 일종의 특수 아이템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창작 요리' 로 만들어지는 요리는 하나같이 괴상한 효과가 있었는데, 크게 먹을 수 있는 것과 못 먹는 음식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크가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못 먹는 음식이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는 활용할 수 없었던 식재료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반 요리로는 상상도 못 했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못 먹는 음식을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지나치게 숙성돼서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통조림 따위를 섞으면 작은 충격에도 폭발을 일으키는 데인저러스한 음식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썩은 음식을 섞으면 각종 독 안개를 뿜어내는 바이오해저드 같은 음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공격용 마법 포션 같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법 포션은 스킬과 달리 대기 시간이 없어서 전투 시에 유용하지만 가격이 비싸 일반 유저들은 쉽게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창작 요리' 가 생긴 덕분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요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창작 요리' 는 명색이 요리와 마법 포션만 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만들 때도 일반 요리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일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수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괴상한 재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거의 마법 포션보다 70% 이상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현재 웬만한 유저들은 이미 마법 포션의 효과를 모두 알고 있어. 하지만 '창작 요리' 는 마법 포션과는 전혀 다른 계열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 마법 포션의 효과를 모두 파악한 유저라도 '창작 요리'의 공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어. 아직 '창작 요리'는 열 가지 정도밖에 알아내지 못했지만 앞으로 늘어날 레시피를 생각하면 활용법이 무궁무진해!" 노가다는 성장으로 이어진다. 온라인 게임의 절대불변의 법칙이었다. "됐어. 어쨌든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요리를 끝낸 아크가 냄비를 집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공성전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3시간. 접속을 끊고 쉬기에는 짧은 시간. 아크는 잠시 고민하다가 산더미 같은 요리 위에 누워 말없이 시르바나 성을 바라보았다. 손을 앞으로 뻗어 보니 불이 밝혀진 시르바나 성이 한 손에 들어왔다. "내일이 지나면 너는 내 것이 된다." 아크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주문을 외우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피로에 지쳐 몇 번이나 졸다 깨기를 반복하자 어느새 산등성이에서 여명이 밝아 왔다. 때를 같이해 사방에서 빛 무리가 번쩍이며 군단병들이 속속 접속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정의남과 갱생단, 로코, 레리어트, 브레다와 레디안 까지, 다크에덴의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그들을 보자 잠자고 있던 활력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크가 튕기듯 일어나며 소리쳤다. "가자!" ACT 4 공성전 개막 "가까이서 보니 더 엄청나군." 아크는 4,300의 병력을 이끌고 성 앞에 도착했다. 시르바나 성은 멀리서 볼 때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앞에서 마주 보니 그저 달라졌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높고 두꺼워진 성벽은 마치 암벽처럼 보였고, 강철을 몇 장이나 겹쳐 쌓아 올린 듯한 성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방패였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될 정도였다. '하지만 내 상대는 성이 아니다!' 아크는 성벽 위에 늘어서 있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아크가 싸우는 상대는 성이 아니다. 적은 성안에 있는 헤르메스 연합원들! "라카드." 아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자 까마득한 상공에서 뚝 떨어지듯 한 마리 박쥐가 아크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라카드였다.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 이동 상황은 모두 파악해 놨겠지?" "후후후, 이 몸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라카드가 거만한 표정으로 히죽거리며 설명했다. "어제 저녁에 성에 모여 있던 병력은 대략 5,600명이야. 오늘 새벽에 그중 1,400명이 700명씩 나눠서 좌우의 수호탑으로 이동했어. 그리고 1,000명은 내성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3,200명이 앞에 보이는 것처럼 외성에 주둔하고 있어." 원래 공성전이란 방어하는 측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높은 성벽이나 수호탑 등등 그 이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도전자와 영주 측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전술의 활용 범위' 였다. 공성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도전자 측은 현재 다크에덴처럼 성 앞에 집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성전이 시작한 뒤에야 병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때문에 헤르메스 연합은 성벽위에서 다크에덴의 병력 편셩이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한눈에 파악할수 있었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은 이미 병력 배치를 끝낸 뒤, 게다가 성벽에 가려서 정확한 병력 배치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말하자면 헤르메스 연합은 자신의 카드를 한 장도 보여 주지 않으면서 아크의 카드는 속속들이 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느 쪽이 유리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때문에 아크는 이틀 전부터 라카드를 '위성 감시 모드' 로 전환시켜 시르바나 성 상공에 띄워 놓았다. 헤르메스 연합의 움직임을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외성 병력을 지휘하는 사람은 확인해 봤어?" "음, 예전에 본 적 있어. 실버문 길드장인 그웬이라는 녀석이야." 라카드가 기억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아크는 예전에 헤르메스 연합과 함께 공성전을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때문에 라카드도 연합에 소속된 주요 길드의 리더정도는 기억하고 있었다. '외성의 지휘를 그웬이 맡고 있다면 역시 라이덴은 내성에 숨어 있는 건가?' 하긴 공성전은 결국 지배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전투. 연합장과 정예 병력이 지배의 왕좌가 있는 내성을 지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외성의 병력 배치는?" "다 확인해 봤지." 라카드가 씨익 웃으며 주섬주섬 메모지를 꺼내 들었다. 대충 찍찍 그어 놓은 선에 '마' 이나 '전 : 200' 이라는 식의 암호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라카드가 이틀 동안 위성 감시를 하며 파악한 적의 병력 배치. '마 : 50' 은 그 부분에 마법사가 50명 배치되어 있다는 뜻, 그리고 '전 : 200'은 전사가 200명 배치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이로써 아크도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 배치를 100% 파악하게 된 것이다. "헤헤헤, 잘했지? 이 정도면 200포인트 정도는 되겠지?" 라카드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는 150포인트면 충분해." "에에? 하지만..... ,"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적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바로바로 보고하면 150포인트를 주지." "오옷! 저, 정말이냐? 그럼 드디어......!" 라카드가 기대에 찬 눈으로 아크의 목도리와 장갑을 바라보았다. 라카드가 쌀쌀한 날씨에 이틀이나 위성 모드로 적을 감시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포인트를 적립하기 위해서였다. 소환수들은 얼마 전부터 월동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열심히 포인트를 적립해 왔지만, 란셀을 떠날 때 고작 100정도 밖에 적립하지 못했다. 그때 아크가 소미에게 받은 목도리와 장갑을 보여 주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너희들이 포인트 400을 마저 채우면 받게 될 월동 장비이다." "오오오!" 소환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소환수들은 포인트 400점 모아도 후줄근한 외투 하나 정도밖에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크가 보여 준 목도리와 장갑은 최고급 양털로 짠 명품! 게다가 박쥐나 해골, 뱀 같은 각각의 소환수에 맞춰 멋들어진 자수까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너희들의 포인트는 아직 100. 게다가 이제 란셀을 떠나야 하니 장사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점점 날씨도 추워지니 너희가 이번 공성전에서 불평불만 없이 명령을 100% 수행하면 나머지 300포인트를 적립, 이 최고급 월동 장비를 상품으로 주겠다." 라카드가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역시 소환수도 뭔가 목표가 생겨야 말을 잘 듣는다니까.' 아크는 라카드가 적어 온 메모지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때 뿔 나팔 소리와 함께 전쟁의 신전에서 나온 참전관 NPC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부터 이곳을 공성전 지역으로 선포합니다! 지금부터 공성전이 끝나는 사흘 동안 전쟁의 신전에서 허가한 병력 이외에 어떤 사람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쿠쿠쿠쿠, 덜컹! 탑처럼 거대한 모래시계가 육중한 울림을 토하며 회전했다. 공성전에 허락된 24시간 분량의 모래가 담긴 모래시계. 그 모래가 모두 내려오면 좋든 싫든 공성전은 끝나고 아크와 라이덴 둘 중 하나는 확실하게 개털이 되리라. '시작됐다!' 아크는 공성전 개시와 동시에 각 부대장을 소집했다. 정의남, 갱생단,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레리어트, 로코. 다크에덴의 핵심 전력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러나 아크가 이들을 소집한 건 부랴부랴 작전을 의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공성전의 전략은 시르바나 탈환을 결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수백, 수천 번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며 모두 짜 놨다. 이제 와서 새삼 의논하고 말고 할 게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의 병력 배치에 따라 좀 바꿀 필요가 있지.' "현재 확인된 바에 의하면 수호탑의 주둔 병력은 한곳에 700명입니다." 정의남이 턱수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그만큼 병력에 여유가 있다는 뜻인가?" "아니, 그보다도 놈들은 우리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다는 뜻이에요." 아크는 라카드가 적어 온 메모지를 펼쳐 놓으며 설명했다. "현재 놈들의 외성에 모여 있는 병력 구성을 보면 마법사와 궁수는 물론, 전사들까지 대부분 성벽 위에 배치되어 있어요. 성벽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얘기예요." 공성전의 기본적인 병력 배치는 원래 마법사와 궁수가 성벽에, 전사 계열의 병력은 성문 뒤에 포진시키는 게 일반적이었다. 상황에 따라 성을 나와 역습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성문을 뛰쳐나와 습격하고 뛰쳐나와 습격하고 다시 성문 뒤로 숨어 버리는 방식은 공성을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전술이었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은 전사들까지 대부분 성벽에 배치했다. 그리고 수호탑에도 적지 않은 병력을 배치시켰다. 성을 나와 전면전을 벌이기보다는 성벽을 지키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헤르메스 연합이 이런 방식을 선택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헤르메스 연합은 공성전이 소모전으로 치닫는 일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헤르메스 연합이 지키는 쪽에 집중하면 공성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헤르메스 연합이 거북이처럼 성벽 뒤에 숨어 움직이지 않으면 전술을 사용하고 말고 할 기회조차 없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직접 성문을 부수거나 성벽을 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병력이 열세인 우리가 그런 식으로 공격하면 피해만 가중될 뿐이야.' 일단 성문을 부수려면 그 전에 수호탑을 제거해야 한다. 수호탑은 성문과 성벽에 방어력을 올려 주고 내구력까지 자동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성전에서 수호탑은 승패를 가르는 열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수호탑을 제거하지 못하면 공성 병기를 동원해도 성문 조차 부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분명 수호탑 근처에는 상당한 방어 시설을 해 놨겠지?' 예전에 아란이 사용했던 방식처럼 수호탑 근처에 트랩을 매설해 두고 원거리 공격수가 보조하는 전술은 이제 일반적이 되었다. 헤르메스 연합도 같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으리라. '보통 공성전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18시간 안에 성에 진입해야 한다는 게 정석이야. 성문 공략 시간을 생각하면 최소 14시간 안에 수호탑을 제압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700명이나 되는 병력이 주둔한 수호탑을 14시간 안에 제압하려면 최소 1,000명의 병력을 보내야 한다. 좌우 양쪽 이면 2,000. 그렇게 되면 본대의 병력이 2,300명밖에 남지 않아.' 반면 외성에 주둔한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은 3,200. 외성의 병력은 내성과 달리 언제라도 성을 나와 본대를 공격할 수 있다. 현재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 배치를 보면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아크가 수호탑 공략에 2,000이나 되는 병력을 보내고 본대가 2,300명밖에 남지 않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성 병력까지 몰려나와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4,200대 2,300의 전투가 돼 버린다. '그건 곤란해. 본대에는 최소한 3,000명 이상의 병력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면 결국 수호탑에 보낼 병력은 500명가량. 그 숫자로는 절대 시간 내에 수호탑을 함락시킬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공성전은 시작부터 벽에 부딪친 듯했다. 그러나...... "상관없어요. 어차피 수호탑을 부술 필요가 없으니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었다. "그렇지." 아크가 이번 공성전을 위해 세운 전략에도 수호탑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건 수호탑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수호탑이 제거되면 곤란했다. 아크는 브레드와 레디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브레드, 레디안, 일단 너희들이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수호탑을 맡아 줘, 하지만 알지? 굳이 병력을 소모시키면서까지 수호탑 공격할 필요는 없어. 물론 공격하는 척해야겠지만 병력 보존을 최우선으로." "오케이." 그렇게 브레드와 레디안이 별동대를 이끌고 수호탑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자 아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이번 공성전의 대략적인 작전은 모두 알고 있을겁니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안. 만약 놈들이 알아채면 작전은 100% 실패로 돌아갑니다. 각 부대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계획대로 움직여 줘야 합니다. 그리고 작전을 실행할 때 부대원들이 의아 스럽게 생각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작전 내용을 알려 줘서는 안 됩니다." "오오오!" 아크의 부대장들이 손을 모으고 힘차게 소리쳤다. 뒤이어 아크가 빙글 몸을 돌리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자, 이제 공격을 시작한다! 1진 공성 병기 부대!"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동시에 육중한 울림을 토하며 10대의 투석기가 앞으로 나왔다. 이번 공성전을 위해 거금을 들여 너구리족에게 제작을 부탁한 투석기였다. "모든 공격을 성문에 집중시켜라!" "가소롭군." 시르바나 성의 외성 성벽 위. 외성 사령관을 맡은 그웬이 투석기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수호탑의 보호를 받는 C등급의 영주성을 공격하면서 고작 투석기 10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공성전에서 공성 병기가 차지하는 부분은 상당하다. 엄청난 방어력과 내구력을 가진 성문이나 성벽을 일반 무기로 부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론 전 병력이 달라붙어 공격한다면 언젠가는 부술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성문과 성벽 위에서 쏟아붓는 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성문을 부수었을대는 이미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공성 병기가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공성 병기는 기본 화력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보통 건축물에 200% 이상의 추가 데미지가 적용된다. 그러나 공성 병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육중한 무게 때문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점. 물론 대신 마법이나 화살보다 사정거리가 길지만, 성벽 위에서 날리는 마법이나 화살은 사정거리에 보너스가 적용되어 공성 병기를 요격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공성전에서는 투석기를 40대 이상 준비하는게 보통이었다. 그 정도는 돼야 피해를 입은 투석기를 후퇴시키고 수리하는 동안 다른 투석기를 투입시켜 공격하는 로테이션이 가능한것이다. 그런데 아크가 준비한 투석기는 고작 10대. 그 정도의 투석기로는 성벽에 큰 데미지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에서 요격하면 순식간에 폐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멍청한 놈, 공성전을 하면서 공성 병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다니. 돈이 부족했던 건가? 어쨌든 우리가 아크 놈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모양이군, 전군, 투석기를 요격해라!" 그웬을 명령에 성벽 위에 모여 있는 병력이 마법과 화살을 난사했다. 수백 발의 마법과 화살이 한 대의 투석기에 집중 되었다. 일점사! 그 정도 공격이면 아무리 내구력이 좋은 공성 병기라도 곧바로 폐품으로 변해 버리리라! 그러나....... "어엇? 뭐지?" "뭐야? 저 공성 병기, 보기보다 멀리 있는 건가?" 병사들이 웅성거리며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들이 날린 마법과 화살이 투석기에 한참 못 미쳐 떨어진 것이다. 혹시 투석기가 아직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지 않은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뒤이어 투석기가 날린 바위가 성문을 후려쳤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이게 뭐야? 분명 투석기의 사정거리는 성벽에서 날리는 화살이나 마법과 비슷한데? 저 투석기는 사정거리보다 10미터는 더 떨어져서 어떻게 성문을 공격할 수 있는 거지?" 그웬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투석기를 바라보았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아크의 투석기가 다른 투석기보다 사정거리가 길다는 뜻이다. "대체 어떻게 저런 투석기를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믿는 게 있어서 10대밖에 동원하지 않았다는 건가? 제법이군, 하지만......." 그웬이 씨익 웃으며 주먹을 추어올렸다. 그러자 몇몇 병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는 천막을 벗겼다. "후후후, 우리가 1년 가까이 영지를 지켜 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시르바나 성은 예전의 시르바나 성이 아니다. 군사 요새다!" 그웬이 천막 속에서 나타난 육중한 물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천막 안에서 나타난 것은 투석기! 아니, 성벽에 고정시켜 놓은 10여 대의 포탑이었다. 헤르메스 연합의 대對공성 병기용 방어 포탑! 아크의 투석기가 아무리 사정거리가 길다고 해도, 같은 투석기가 성벽 위에서 날리는 공격보다 길 리는 없었다. 게다가 이 투석기로 날리는 탄환은 쩨쩨한 바위 따위가 아니었다. 엄청난 위력을 자랑하는 폭뢰爆雷! '폭뢰의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수없지.' "발사! 놈들의 공성 병기를 요격해라!" 투투투퉁, 투투투퉁! 10여 개의 포탑에서 일제히 폭뢰가 발사되었다. 폭뢰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적진으로 향할 때였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콰콰콰쾅, 콰콰콰쾅! 돌연 투석기 뒤에서 엄청난 숫자의 불화살이 뿜어져 올라왔다. 수백 미터 높이로 치솟아 올라온 불화살의 탄막彈幕에 폭뢰가 허공에서 폭발했다. 그웬이 멍청한 눈으로 투석기가 몰려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투석기 옆으로 두 대의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의 상단부에는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기계가 시커먼 연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게?" 그웬이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마차가 방향을 틀어 그웬이 있는 곳을 향했다. 동시에 벌집처럼 뚫린 구멍에서 또다시 수십 발의 불화살이 뿜어 나왔다. 보통 화살의 10배 이상 되는 거대한 쇠뇌! "헉! 피, 피해라!" 그웬이 기겁하더니 성벽 뒤로 몸을 숨기며 소리쳤다. 콰콰콰쾅, 불화살이 소나기처럼 들이받자 성벽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그리고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 연합원들은 단숨에 40% 이상의 생명력이 날아갔다. 생명력이 낮은 마법사는 아예 불화살에 꿰어 일격에 죽어 나가기도 했다. "대, 대체 뭐야? 저런 공성 병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어!" BY 하기나름 "후후후, 어떠냐 나의 신병기가?" 아크가 공황 상태에 빠진 그웬을 바라 보며 히죽 웃었다. 라이덴에게 이번 공성전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겠지만, 아크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르바나 탈환 작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동안 꾸준히 너구리족에게 투자하며 란셀의 지하 기지에서 신병기를 개발해 오고 있었다. 그게바로 이 벌집형 마차! 정식 명칭 다연발 화염 쇠뇌였다. 다연발 화염 쇠뇌(특수 종족 제작품) 병기 타입 : 대형 병기 공격력 : 100 ~ 150 X24 사정거리 : 500미터 내구력 : 500/500 무게 : 800 사용 제한 : 특수 장인 전용 천성적인 장인 너구리족이 오랫동안 연구해 만들어 낸 특수 대형 병기, 마력 기관이 장착되어 자동 이동이 가능하며 상단의 벌집처럼 생긴 틈에서 한 번에 24발의 화염 쇠뇌를 발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력 기관으로 발사하는 방식이라 사정거리가 기곤의 쇠뇌보다 1.5배나 깁니다. 단, 재장전 시간이 다른 공성 병기보다 많이 걸립니다. 《옵션 : 화염공격력 +40》 *너구리족이 사용하면 연사 속도와 정확도가 20% 상승합니다. 이 다연발 화염 쇠뇌를 개발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 반년, 연구비와 제작비로 야금야금 들어간 돈이 4,000골드가 넘는다. 일반 투석기의 10배 이상의 돈이 들어간 것이다. '솔직히 결과물을 봤을 때는 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사실 아크가 바랐던 신병기는 공성 병기였다. 물론 다연발 화염 쇠뇌도 공성 병기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건축물에 추가 피해를 입히는 보너스가 적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공성전에 앞서 요즘 공성전의 동영상을 확인 해 보던 아크는 다연발 화염 쇠뇌를 꼭 성문 공격에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C등급의 영주성은 포탑을 설치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포탑에서 날리는 폭뢰는 사정거리와 파괴력이 엄청났다. 공성 병기는 물론, 병사들이 몰려 있는 곳에 떨어지면 피해가 장난이 아니었다. 사실 다른 연합들이 C등급 영지에 도전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었다. 10여 대의 포탑이 일제히 공격하면 공중에서 폭뢰를 요격하다가 공성전이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다. '다연발 화염 쇠뇌를 폭뢰 요격용으로 사용한다면?' 동영상을 보던 아크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확인한 것처럼 베리 굿이었다. 두 대의 다연발 화염 쇠뇌가 뿜어내는 48발의 불화살이 10여 개의 폭뢰를 모조리 요격 시킨 것이다. '하지만 다연발 화염 쇠뇌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법사,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연발 화염 쇠뇌를 냉각해라!" "네!" 아크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다연발 화염 쇠뇌에 달라 붙어 얼음 마법을 시전했다. 바로 이게 다연발 화염 쇠뇌의 유일한 단점이엇다. 한 번에 24발씩이나 불화살을 날려 대니 한 번만 일제히 발사하면 시뻘겋게 과열돼서 얼음 마법으로 포문을 식혀 줘야 했다. 다시 말해 한 번 사용하면 한동안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반면 영주성의 포탑은 투석기와 같은 방식의 병기다. 폭뢰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연속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놈들이 계속 폭뢰로 공격하면 다연발 화염 쇠뇌의 약점이 탄로 나겠지만......' 이미 모든 폭뢰가 요격되는 장면을 목격한 헤르메스 연합이 폭뢰를 사용할 리가 없었다. 폭뢰의 가격은 하나에 50골드 이상! 다른 때라면 요격을 당하든 말든 요행이라도 바라고 계속 공격을 했겠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는 헤르메스 연합에는 폭뢰를 마구잡이로 사용할 만한 돈이 없는 것이다. "후후후, 돈 없이 전쟁을 치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아크가 히죽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아크 역시 웃고만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아크가 사용하는 화염 쇠뇌도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아크가 사용하는 화염 쇠뇌도 만만한 가격이 아니었다.' 하나의 가격이 4골드. 두 대의 다연발 화염 쇠뇌가 동시에 48발을 발사하면 192골드가 날아가는 것이다. 방금 전에 폭뢰를 요격할 때도 얼굴은 웃었지만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뭐, 꼭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마구잡이로 사용할 무기는 아니야." 어쨌든 이로써 폭뢰의 공격은 봉쇄됐다. 이제 그웬이 아크의 투석기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자, 투석기는 돈이 안 든다. 팍팍 공격해!" 아크의 명령에 10대의 투석기가 쉴 새 없이 성문에 바위를 날려 댔다. 그러나 수호탑의 보호를 받는 두터운 철문은 이렇다 할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뭐, 고작 투석기 10대로는 이 정도가 한계겠지. 어차피 투석기로 성문을 뚫을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투석기로 성문을 뚫는 것처럼 보이는 거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성문을 뚫기 위해 아득바득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자, 그럼 폭뢰도 봉쇄했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 아크가 빙글 몸을 돌리자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먹에서 우드득 소리를 내며 소리쳤다. "흠, 이제 시작인가? 좋지, 좋아. 제1대대, 나를 따라 좌측 성벽을 공략한다!" "우와아아아!" 정의남을 선두로 500의 병사들이 성을 향해 돌진했다. "헉! 저, 저놈들....... 설마 이대로 성벽을 공략하려는 건가? 막아라!" 그웬이 소리치자 마법사와 궁수들이 돌격대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아니, 퍼부으려는 찰나, 수십 발의 불화살이 성벽 위로 쏟아졌다. 다연발 화염 쇠뇌의 지원사격이였다. 당황해서 부턱대고 공격하려던 연합원들이 불화살을 얻어 맞고 성벽에서 굴러떨어졌다. "지금이다! 일제히 성벽에 진입한다!" 정의남의 명령에 병사들이 성벽을 향해 갈고리를 던지고 사다리를 걸쳐 놓았다. 그리고 방패를 머리 위로 올린 병사 들이 하나둘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웬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법사와 궁수들도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한편, 성벽 위에 모아 두었던 돌과 통나무를 던져 기어 올라오는 병사를 공격했다. "궁수와 마법사는 성벽 위의 궁수와 마법사를 요격해라!" "전사들은 방패로 궁수와 마법사를 보호하라!" "젠장, 갈고리와 사다리를 부숴!" 본격적으로 다크에덴의 공세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사들은 갈고리와 사다리를 끊어라. 놈들의 진입을 허용하면 안 돼!" "그웬 님, 다시 적의 불화살 지원사격이 시작됐습니다." "모두 대피!" 그웬의 목소리에 연합원들이 일제히 성벽 뒤로 몸을 숨겼다. 이런 혼전 속에서 다연발 화염 쇠뇌의 지원사격은 여전히 위력적이었지만, 일단 다연발 화염 쇠뇌가 두 대밖에 없었고, 포문의 과열ㅡ그웬은 몰랐지만ㅡ연속 공격이 불가능해 어느 정도 타이밍을 읽자 처음처럼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좋아, 다시 적을 공격해라! 마법사와 궁수를 더 모아!" 다연발 화염 쇠뇌의 공세가 끝나자 연합원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며 반격했다. 쉬지 않고 터져 나오는 함성!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각종 마법과 화살! 사다리나 갈고리를 이용해 성벽을 기어오르다가 굴러떨어지는 병사! 치열하고 처절한...... 그야말로 중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공성전 장면이었다. '과연 정의남 아저씨야.' 아크가 와글거리는 전장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병사들이 몰려 있는 성벽은 살벌할 정도로 치열했다. 아니, 치열해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심지어 싸우고 있는 병사들도 모르겠지만 성벽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전투는 보는 것만큼 치열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화염이 치솟고 검과 창이 난무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록 실제로 사망하는 유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아니, 생명력이 50% 이하로 내려가는 유저조차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위기는 벌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처럼 보인다.' 분위기는 치열한데 실제로 사상자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전투를 벌이는 일반 병사들이 그 점을 알아채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정의남이 고도의 전술을 구사하며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 까닭, 그리고 또 하나는 병사들이 상대의 생명력을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문서나 도적 계열의 '간파' 스킬을 사용하면 적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000여 명이 엉켜 싸우는 전장에서 상대의 생명력을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주문서나 스킬을 사용하는 유저는 없었다. 그리고 사용해 봐야 확인할 수 있는 건 1명, 전체의 전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급조된 다크에덴의 병력으로 헤르메스 연합과 대등하게 싸우는 건 무리로군. 아직 조직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의남이 아무리 뛰어난 지휘관이라도 직접 싸우는 것은 병사들이다. 아직 생명력에 영유가 있었던 초반에는 훈련받은 대로 움직여 줬지만, 슬슬 생명력이 바닥나자 병력의 움직임이 산만해졌다. 성직자는 누구를 먼저 회복시켜야 할지 갈팡질팡했고, 전사들은 제대로 회복을 받지 못해 약간만 위험하다 싶으면 뒤로 물러나 방어 라인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헤르메스 연합원에게 약점이 노출될 지도 모른다. 일단 이번에는 이쯤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군.' "여기까지, 퇴각 신호를 보내라." 퍼퍼퍼펑! 전령이 하늘에 폭죽을 쏘아 올렸다. 신호를 확인한 정의남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모두 퇴각한다. 공수와 마법사는 엄호, 전사는 성직자를 보호하며 물러난다!" "제1공격대는 그대로 외곽으로 빠져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고 본대와 합류해라!" 아크의 명령에 공성을 펼쳤던 500의 병력이 영주성을 크게 우회해 전장에서 완전히 이탈했다. 전투 지역에서는 휴식을 취해도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1공격대가 전장에서 이탈하자 아크는 다시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제1공격대의 공격으로 적의 병력이 좌측 성벽에 집중되어 있다. 제2공격대는 우측 성벽을 공격하라. 다연발 화염 쇠뇌, 제2공격대를 엄호하라!" 슈슈슈슉, 슈슈슈슉! 불화살이 성벽 위로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뒤따르듯 500의 병사들이 우측 성벽을 향해 달려 들었다. 또다시 우측 성벽에서 방금 전과 같은 치열한...... 아니, 치열해 보이는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아크는 몇 명의 사상자가 나오면 다시 제2공격대도 전장을 이탈시켰고 다음 공격대를 투입시키기를 반복했다. 계속 이런 패턴의 공격이 반복되자 쉬지 않고 전투가 벌어 지는데도 실제 사상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적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병사의 보고를 받으며 그웬이 미간을 찡그렸다. "아크 녀석, 대체 무슨 꿍꿍이지?"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그웬도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을 깨달았다. 사실 그웬은 방금 전까지도 아크가 정석적인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군자금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공성전에서 포션을 물처럼 마셔 대며 싸울 수는 없다. 때문에 성직자의 마나가 바닥이 나면 일단 병력을 퇴각시켜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려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병력을 나눠서 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 초보자의 경우 한 번에 전 병력을 투입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성전은 평원에서 펼치는 전투와는 다르다. 성벽이 있는 한 아무리 많은 병력이 몰려든다고 해도 실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적과 직접 마주쳐서 전투하는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냥 화살받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또한 전 병력을 동원할 경우, 피해를 입고 후퇴할 때 그웬이 돌격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뛰쳐나와 요격하면 자칫 전멸당할 우려가 있었다. 떄문에 공성전에서는 항상 공격하는 병력, 회복하는 병력, 적이ㅡ 요격을 대비하는 병력을 나눠 놔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크 자식의 방법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성을 공격하는 병력의 숫자가 너무 적엇다. 현재 외성에 주둔한 헤르메스 연합원의 숫자는 3,200. 물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성벽 전체에 퍼져 있어 한 지역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쪽 성벽에 1,000명의 병력은 집중시킬 수 있었다. 아크가 정말 성벽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최소 1,000명은 투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크는 한 번 공격에 500 이상의 병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게다가 처음 공격을 빼고는 그렇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지도 않고 있어. 그건 아크의 본대를 보며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몇 차례나 공격을 했지만 실제로 병력은 많이 줄지 않았어. 우리 역시 마찬가지. 그렇다면 결국 놈은 정말 성벽을 제압하기 위해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야. 혹시 수호탑을 부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건가?" 그런 이유라면 아크의 소극적인 공격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수호탑이 파괴당하면 10대의 투석기와 저 괴상한 대형 병기ㅡ다연발 화염 쇠뇌ㅡ로 성문을 파괴할 수도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정말 그런 생각이라면 너는 이미 실패했다!" 그웬은 전투 중간 중간 수호탑의 병력과 연락을 취했다. ㅡ이곳을 공격하는 적 병력은 500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트랩 밭에 진입도 못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전에 헤르메스 연합이 공성전을 펼칠 때, 아란이 사용했던 수호탑 방어 작전. 헤르메스 연합은 성을 차지한 뒤에 그 방어 작전을 흉내내 수호탑 주변에 빼곡이 트랩을 매설해 놓고 벙커에서 마법사와 궁수로 진입을 저지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이 방법은 약점이 있었다. 방어 병력이 마법사와 궁수뿐이라 일단 지뢰밭이 돌파당하면 쉽게 무너진다는 점. 그러나 500명의 병력으로 700명의 궁수와 마법사의 공격을 받으며 지뢰밭을 통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유일한 방법은 과거 아크가 사용했던 땅굴 작전. 그러나 그 작전은 이미 헤르메스 연합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미 수호탑 주변의 바닥에 몽땅 강철을 깔아 버렸다. "아직 지뢰밭에서 버벅대고 있다면 놈들이 수호탑을 점령 할 가능성은 없어. 그리고 수호탑이 있는 한 10대의 투석기로는 성문을 부술 수 없다. 아크 자식이 이렇게 시간을 끌어 주면 오히려 고맙지." 그웬이 씨익 웃으며 벌판에 세워진 거대한 모래시계를 바라 보았다. 피해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무의미한 전투를 반복하는 사이에 벌써 공성전이 시작된지 16시간이 지났다. 일반적으로 도전자가 공성전에서 이기려면 18시간 안에 성안에 진입해야 한다. 그 타임 리미트 까지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크가 2시간 안에 성안에 진입할 방법은 없었다. "좋아, 지루하겠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앞으로 8시간이면 우리의 승리다!" 그웬은 지쳐 가는 연합원을 독려하며 계속 깔짝깔짝 허접한 공격을 해 대는 다크에덴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게 한참, 드디어 모래시계가 18시간이 지났음을 알려 주었다. "이제 4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 수호탑도 성문도 병력도 건재하다!" 그웬은 승리를 확신했다. trping by 하기나름 "됐다!" 아크가 거대한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 모래시계에 남아 있는 모래는 4분의 1밖에 남지 않았다. 공성전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6시간. 그러나 아직 수호탑과 성문은 건재하고, 헤르메스 연합원의 숫자도 거의 줄지 않았다. 반면 다크에덴의 병력 보존을 위주로 전투를 벌였다고는 하나 성벽을 공략하다가 800이나 사망했다. 절망적인 상황,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승리를 확신했다. 아크는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는 갱생단을 바라보았다. "형님들, 준비됐습니까?" "오냐, 언제든지 OK다." 불끈이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죠. 공병대, 투석기를 성으로 이동시킨다!" 아크의 명령에 수십 명의 공병대가 달라붙어 투석기를 이동시켰다. 사정거리 밖에 있던 투석기가 다가오자 기회다 싶었는지 성에서 마법과 화살이 빗발쳤다. 수백 발의 공격이 집중되자 투석기 한 대가 불길을 일으키며 주저앉았다. "쳇, 다연발 화염 쇠뇌, 투석기를 엄호하라!" "네, 목표 조준, 발사!" 슈슈슈슉, 슈슈슈슉! 두 대의 다연발 화염 쇠뇌가 회전하며 불화살을 뿜어냈다. 그러자 성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연속적으로 폭발이 일어 났다. 다연발 화염 쇠뇌의 엄호에 연합원들이 잠시 몸을 숨긴 사이, 공병대가 투석기를 목표 지점까지 이동시킬 수 있었다. "지금입니다!" 아크가 투석기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그러자 불끈이와 떡대, 해결사, 얍삽이, 짝퉁, 타짜가 결연한 푲어으로 '특공' 이라고 적힌 머리띠를 질끈 둘러댔다. 그리고 서로를 행햐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지옥에서 만나자!" 갱생단이 투석기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아크가 소리쳤다. "투석기 수직 조준, 발사!" 투투투퉁, 투투투퉁, 일곱 대의 투석기가 일제히 팔을 뻗어 올렸다. 동시에 아크와 갱생단은 엄청난 속도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성벽을 넘어 외성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 녀석, 미친 건가?" 그웬이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투석기로 몸을 날려 외성으로 뛰어들 생각을 하다니? 수십 미터나 날아올랐다가 떨어지고도 무사하리라고 생각 하는 건가? 아니, 낙하 데미지야 어떻게든 버텨 낸다고 해도 놈들이 떨어지는 곳은 3,200명을 상대로 한번 해보자는 건가? 지들이 무슨 GI조라고 생각하는 건가? 불과 몇 초 사이에 그웬이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크가 결국 공성전에 실패해서 미쳐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웬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슬라임의 시간 발동!" 바닥에 충돌하기 직전, 아크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아크의 몸이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노란 점액질에 뒤덮였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함께 떨어지는 갱생단 모두가 노란 점액질에 뒤덮였다. 그리고 아크와 갱생단이 외성 바닥에 충돌하는 순간! 띠용ㅡ 띠용ㅡ. 아크와 갱생단이고무공처럼 통통 뛰어 오르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저건?" 그웬은 물론 외성에 모여 있던 연합원들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여기저기 튀어 다니는 아크와 갱생단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웬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거냐? 아크 놈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다. 밟아 버려!" "우와아아아!" 그웬의 명령에 주변에 있던 100여 명의 연합원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아크의 몸으로 쏟아지는 수십 자루의 검과 수 개의 화살! 그러나........ 띠용ㅡ 띠용ㅡ. 검과 화살은 마치 고무를 때린 것처럼 허망하게 튀어나왔다. 그렇다. 아크가 사용한 스킬은 바로 '슬라임의 내단'으로 얻은 특수 스킬 '슬라임의 시간' ! 낙하 데미지와 물리 공격을 100% 무효화시키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함께 날아온 불끈이, 떡대, 해결사, 얍삽이, 짝퉁, 타짜, 역시 예전에 스탄달에서 '슬라임의 내단' 을 먹은 사람들이었다. 뭐, 정품이 아니라 통증이 50배나 증폭된다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크악!" "헉, 바닥에 충돌할 때 한순간 정신이 나갔어." 투석기로 날려져 바닥에 처박혔던 갱생단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어둠의 세계에서 폭력에 길들여진 갱생단이라 금세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놈들이 온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 "짝퉁, 타짜, 몸으로 뒤쪽에서 몰려오는 놈들을 막아라!" "오케이, 크악! 젠장, 더럽게 아프네!" 짝퉁과 타짜가 몰려드는 검과 화살을 몸으로 막아 내며 비틀거렸다. "비켜라!" 그사이에 불끈이와 떡대, 해결사가 앞에 몰려 있는 연합원들에게 달려들어 몸통 박치기를 날렸따. '슬라임의 시간' 은 잠시 동안 물리 공격에 대해 무적 상태로 만들지만, 동시에 자신의 무기까지 물컹물컹해져서 공격을 할 수없었다. 몸통 박치기 역시 실제로 데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몸에 고무처럼 탄력이 생겨 몸통 박치기에 맞은 연합원들이 수 미터나 날아갔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몸통 박치기!" 그렇게 아크와 갱생단은 몸통 박치기로 연합원을 밀어내며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대체 뭐지? 저놈들이 왜 성문으로.......?" "설마 성문을 열려는 건가?" 그러나 성문이 무슨 방문도 아니고, 성문에 문고리가 달려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히 성문과 성문을 조작하는 장치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아크 역시 한때 이 성의 영주엿으니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까지 하면서 성문으로 향하는 이유가 뭘까? 그웬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이 성문으로 간다면 결국 독 안에 든 쥐다. 다크에덴은 아크 자식 혼자 만든 군단. 놈만 처리하면 공성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놈들에게는 공격이 통하지 않습니다!" "흥! 아무리 게임이라도 완전히 무적이 되는 스킬 따위가 존재할 리 없어. 물리 공격이 안 통한다면 마법이다. 마법사들은 놈들을 집중 공격하라!" 그웬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웠다. "타오르는 불길의 분노여, 레이지 오브 파이어!" "대지를 가르는 바람의 칼날, 윈드 커터!" "차가운 북풍의 송곳, 아이스 스파이크!" "아크, 틀켰다!" 불끈이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렇다. '슬라임의 내단' 의 약점. 물리 공격을 100% 상승 시켜 주는 대신 마법 방어력을 100%나 깎는다는 점이었다. 전사를 상대로는 10분간 무적의 방어력을 보이지만 마법사에게는 취약한 스킬인 것이다. 수십 발의 마법에 적중되면 으깨진 두부가 되어 버리리라. 그때 아크의 귓가에 까마득한 상공에 떠 있던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마법사들이 있는 곳은 우측 3시 방향과 좌측 11시 방향이야!" "형님들, 이쪽입니다!" 아크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몇 명의 연합원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리고 몸을 숙였다. 그러자 아크와 갱생단을 노리며 날아오던 수십 발의 마법이 연합원들에게 적중했다. 아크가 연합원들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려 마법을 막는 방패로 활용한 것이다. "이런 멍청한! 어차피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으니 전사들은 퇴각해라!" 그웬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크와 갱생단에게 몰려 있던 수백 명의 연합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뒤이어 또다시 수십 발의 마법이 아크와 갱생단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더 이상 장애물로 삼을 연합원도 없는 상황! "젠장, 먼저 간다!" 그때 불끈이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아크의 앞으로 뛰어나왔다. 동시에 불끈이의 몸에서 엄청난 화염과 얼음, 바람이 폭발했다. "우와아아아아악!" 마법 방어력이 100% 나 깎인 상태에서 수십 발의 마법에 적중됐다. 게다가 정품 슬라임의 내단이 아니라 고통이 50배나 상승된 상태, 불에 구워지고, 얼음에 얼고, 바람에 난도질을 당한 불끈이는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터뜨리며 털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바닥에 얼굴을 처박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어올렸다. ".......가라!" "크윽, 불끈이, 너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마!" "또 마법이 날아온다!" "우오오오오, 다음은 내 차례다!" 이번에는 해결사가 아크의 앞을 막고 바비큐가 되었다. "혀, 형님들.......!" "돌아보지 마, 달려라! 성문이 코앞이야!" 얍삽이가 주춤거리는 아크의 어깨를 잡아채며 소리쳤다. 아크는 잠시 지글지글 이겅 가는 해결사를 바라보다가 와락 몸을 돌렸다. 그렇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이번 작전에 공성전의 성패가 걸려 있는 것이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서 쉬지 않고 마법이 날아왔지만 떡대와 얍삽이, 짝퉁, 타짜는 아크를 둘러싸고 몸으로 막아냈다. 그러나 성벽 위에 몰려 있는 수백 명의 마법사가 소나기처럼 쏟아붓는 마법을 마법 저항력이 100%나 떨어진 상태에서 막아 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갱생단은 몇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하나 둘 쓰러졌다. 그리고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마지막까지 버티던 짝퉁까지 쓰러졌다. '젠장, 이제 10미터도 남지 않았는데......!' 아크가 코앞까지 다가온 성문을 바라보며 신음을 삼켰다. 이미 성문과 성벽 위에 몰려 있는 마법사들은 다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드르이 주문이 완성되면 아크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리라. '......여기까지인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돌연 성벽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그사이에 냉각을 끝낸 다연발 화염 쇠뇌가 성벽을 향해 폭격을 시작한 것이다. 아크에게 집중하다가 뒤에서 불화살으 공격을 받은 마법사들이 성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나머지 마법사들도 부화살의 공격에 충격을 받아 주문이 캔슬되어 버렸다. '지금이다!' 아크는 우수수 떨어지는 마법사들 사이로 뛰어나갔다. 몇 발의 마법이 날아왔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당황해 제대로 조준도 안 되어 있었다. 아크는 몸을 굴려 마법을 피하며 드디어 성문 밑에 도착했다. "훗, 뭐냐? 혼자서 성문을 부수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그웬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성문에 몸을 기댄 아크의 손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가방에서 꺼내 든 것은 작은 모래시계. 아크가 성문 앞에 모래시계를 세워 놓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ㅡ '몽환의 모래시계' 를 사용했습니다. 《100년 단위로 최대 500년까지 시간을 역행하거나 가속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 아크가 꺼내 든 것은 바로 시간을 조종하는 '몽환의 모래시계' ! 목숨을 걸고 성문에 온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최대치 가속!" 순간 위쪽의 모래가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성문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0시간이 넘도록 투석기로 두드려도 내구력이 50%도 닳지 않던 강철 성문이 순식간에 시뻘건 색으로 물들었다. 심지어 여기저기 구멍까지 뚫리기 시작했다. '몽환의 모래시계' 로 500년의 시간을 가속시킨 덕분에 강철 성문이 부식되어 붕괴하기 사작한 것이다. "지금이다. 투석기로 성문을 공격하라!" 아크가 너덜너덜해진 성문 사이로 소리쳤다. 동시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투석기가 일제히 바위를 날려 보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이미 완전히 부식되어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던 성문이 폭발하듯 부숴지며 좌우로 활짝 열렸다. 수호탑이 건재한 상황에서 성문이 돌파당한 것이다. 폐가의 문짝처럼 덜렁거리는 성문을 확인한 그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 이럴 수가...... 서, 성문이.......!" 헤르메스 연합원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서, 성문을 수리하라!" 그웬이 소리쳤을 때, 다시 아크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전군, 시르바나 성으로 돌격하라!" 순간 그웬이 화들짝 놀라며 성 밖을 바라보았다. "그, 그럼 아크 녀석이 지금까지 어설픈 공격을 해 왔던 이유가.......!" 그제야 그웬은 아크가 노리는 것을 깨달았다. 공성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18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전투를 벌였지만 실제 사상자는 거의 나오지 않은 전투였다. 3,300명의 다크에덴 병력 가운데 사상자는 고작 800여명. 다시 말해 성문 앞에는 아직도 2,500명의 병력이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헤르메스 연합은 그보다 피해가 적어 300여 명밖에 줄지 않았다. 덕분에 아직 외성에는 2,900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원은 외성 전체에 분산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크에덴의 병력이 성에 난입해 난전 상태가 되면 성벽 위에 서 있는 마법사나 궁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 하는 상황이 된다. 게다가 엄청난 위력을 지닌 다연발 화염 쇠뇌를 앞세운다면....... "하지만 내성의 병력이 나오면 우리 병력이 1,000이나 많아진다." 그웬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였다. ㅡ그웬, 출격해서 놈들의 진입을 막아라! 라이덴의 귓속말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ㅡ하지만........ ㅡ멍청아, 이건 아크 놈의 계략이다. 혹시나 해서 방금 전에 수호탑에 연락해 봤어. 이미 30분 전에 수호탑을 공격하던 다크에덴의 병력이 후퇴했다는 보고가 있었단 말이야! ㅡ수호탑을 공격하던 병력이 후퇴? 그렇다면........! 그웬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수호탑을 공격하던 병력이 이미 30분 전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본대와 합류하면 3,500! 헤르메스 연합은 외성과 내성의 병력을 모두 합해야 3,900이 된다. 물론 헤르메스 연합에게도 수호탑에 1,400의 병력이 있었지만 그 병력은 당장 출발한다고 해도 30분 이상이 걸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버티려면 내성의 병력까지 동원해야 한다. 그러나 외성에서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 내성을 연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내성의 병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외성의 2,900 병력은 3,500의 다크에덴에게 일방적으로 짓밟히고 말리라! ㅡ게다가 상대는 다름 아닌 아크다. 놈이 이런 짓까지 하면서 성문을 부수었다면 틀림없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야. 절대 놈들을 성에 들여놓으면 안 돼! 분하지만 지금은 아크 놈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놈들의 진입을 막아야 해! 라이덴의 명령을 받은 그웬이 연합원들에게 소리쳤다. "제1, 2, 3, 4, 5 돌격대! 모두 출병한다! 그대로 적진으로 돌격해 투석기와 저 대형 병기를 처리한다. 그리고 성문앞에 진형을 만들어 놈들의 진입을 막는다! 나머지는 부숴진 성문을 최대한 복원하라. 아직 수호탑은 건재하다. 놈들의 대형 병기를 부수고 성문을 어느 정도만 보수해 놓으면 남은 시간 동안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렇게 그웬이 1,500의 병력을 이끌고 성문을 뛰어나갔다. 그러나 그웬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한 나머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있었다. 아크가 갱생단과 함께 성에 잠입해 성문에 다가가는 동안, 정작 다크에덴은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만약 다크에덴이 성을 공격해 줬다면 아크와 갱생단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마법사들의 공격을 받지는 않았으리라. 또한 성문이 부숴진 지금도 다크에덴의 병력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들의 사정을 생각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라이덴과 그웬은 미처 그 점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웬이 놓친 부분이 또 있었다. 아크가 왜 굳이 위험하게 투석기를 이용해 성 내부로 뛰어 들어 성문을 부식시켜야 했는가 하는 점이었다. 애초에 아크가 다크에덴의 병력과 함께 몰려왔다면 굳이 '슬라임의 시간' 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성문에 접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아크는 굳이 투석기까지 사용해 성안에서 성문을 부식시켰다. 그이유는 바로......... ACT 5 대전략, 고등어 토막 내기 "잡아라!" 성내에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웬이 1,500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뛰쳐나갈 무렵, 성문을 폐품으로 만들어 버린 아크는 연합원들이 얼이 빠져 있는 틈을 타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연합원들의 몸을 방패 삼아 마법을 피하며 성안으로 도망쳤다. 이때 외성에서 이미 헤르메스 연합원이 1,400명가량 남아 있었지만, 이들은 아크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외성 경계를 강화하고 성문을 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적의 사령관, 단 1명이라도 전황을 좌우할 중요한 인물이라 50명의 연합원이 아크를 뒤쫓았다. "어차피 놈이 도망갈 곳은 없다!" "물리 공격이 안 통하는 스킬도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연합원들이 화살과 마법을 날리며 소리쳤다. 아직 '슬라임의 시간' 효과가 적용되는 아크에게 화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험한 건 마법뿐. 그리고 일단 피해야 할 대상이 좁혀지면 그만큼 피하기도 쉽다. 아크는 화살 따위는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내며 오직 마법 공격에만 집중했다. '전력질주' 와 '다크 댄싱' 을 난사하며 쥐새끼처럼 벽과 벽 사이를 뛰어 다니자 마법은 번번이 벽을 맞고 튕겨 나왔다. '헉헉,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 골목만 통과하면!' 그렇게 아크가 또다시 건물을 이용해 마법을 피하며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여기까지다!" 앞에서 20여 명의 연합원이 나타났다. 아크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미리 앞질러 길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나타나기가 무섭게 3명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좌우에 건물이 있는 일자형 통로라 마법이 발동되면 피할 수 없는 상황! '이런 젠장, 이렇게 되면 정면 돌파밖에 없다!'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정면의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전력질주' 를 사용해 그대로 충돌하자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됐어, 이제 전사들을 방패 삼아 다른 마법사의 공격을 막으면......' 아크가 그런 생각으로 전사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엽구리가 시큰거리더니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헉, 뭐야?' 아크는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빼며 전사들을 바라보았다. 전사들의 검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법 부여, 마법사들이 외우던 주문은 공격 마법이 아니라 전사들의 무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마법이었던 것이다. "크크크, 우리가 언제까지나 당하고 있을 줄 알았냐?" "건방진 새끼, 받아라!" '슬라임의 시간의 약점을 눈치챘군. 망했다!' 불꽃에 휩싸인 검을 바라보는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그렇다. 사실 '슬라임의 시간' 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마법이 아니라 마법 부여였다. 물론 마법 속성을 부여했다고 해도 물리 공격을 무효화 시키니 아크가 받는 피해는 마법 부여로 올라간 공격력뿐. 그러나 마법 저항력이 100% 감소된 상태라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크는 '슬라임의 시간' 의 페널티가 적용되어 아예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 주문을 외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마법사의 공격은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만, 전사들이 공격까지 모두 피팔 수는 없는 것이다. "네놈은 이미 죽어 있다!" 전사들이 꼴 같지 않은 대사를 지껄이며 달려들었다. 그사이 마법사들은 나머지 전사에게도 마법 부여를 걸었다. 그렇게 마법검을 든 전사와 마법사들의 공격이 시작되니 아크는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다른 때 같으면 몸통 박치기로 도망갈 틈을 만들겠지만, 마법검을 든 전사에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건 자살행위. 게다가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뒤에는 나머지 30명의 연합원들이 쫓아오고 있는 것이다. 서걱, 콰콰콰쾅! 놈들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시작하자 생명력이 쭉죽 빨려 나갔다. 그러나 '슬라임의 시간' 을 사용하면 몸만이 아니라 가방 속의 물건까지 점액질로 뒤덮여 포션 같은 아이템조차 사용할 수가 없었다. 물론 라둔의 배 속에 담긴 아이템까지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온몸이 점액질로 뒤덮인 상태로는 어차피 포션을 마실 수 없었다. '일단 슬라임의 시간이 풀려야 뭐라도 해 볼 텐데.......' 아크는 눈앞에서 깜빡거리는 작은 아이콘을 노려보았다. '슬라임의 시간' 효과가 적용 중이라는 정보가 표시되는 아이콘. 이제 그 효과가 2분도 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아크는 쉬지않고 '다크 댄싱' 으로 피해를 줄이며 아이콘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불과 1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갑자기 뒤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하던 생명력이 쫙 빨려 나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저기 있다!" 뒤쫓아 오던 30명의 연합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놈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아크는 생명력이 5%도 남지 않은 상황. 그리고 등에 마법을 맞고 넘어져 앞을 막고 있던 놈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이대로 놈들의 마법검에 적중되면 얄짤없이 저승행! "죽어라!" 전사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주인 ㅡ !" 갑자기 하늘에서 라카드가 벼락처럼 떨어지며 전사의 면상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양 날개로 전사의 귀를 움켜 잡고 연속적으로 콧잔등에 박치기를 퍼부었다. 라카드의 소나기 같은 박치기 공격에 전사는 쌍코피를 뿜어내며 휘청휘청 물러났다. 그사이 아크가 몸을 굴리며 포위를 벗어났다. "저건 또 뭐야?" "신경 쓸 것 없어. 이대로 돌진해서 박살 내라!" 그러자 뒤쪽에서 수십 명의 전사들이 마법검을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아크는 구석의 벽에 등을 기대며 소리쳤다. "마령 소환, 라자크, 철벽 화염!" 딱딱딱딱, 딱딱딱딱!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서 뼈다귀 덩어리가 솟아 나오더니 라자크로 변신했다. 라자크는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아크의 앞을 가로막고 불길을 뿜어내는 방패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순간 방패의 양옆으로 화염의 날개가 펼쳐지며 달려드는 전사들을 삼켜 버렸다.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 특수 스킬, '철벽 화염' ! 10미터 범위 내의 '돌진' 스킬을 무효화 시키며 '스턴' 과 화염 데미지를 입히는 스킬! 라자크가 '철벽 화염' 을 발동 시키자 돌진해 오던 전사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그렇게 전사들의 돌진을 막아 낸 라자크가 방패를 세우며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남은 방법은 라자크의 뒤에서 '슬라임의 시간' 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뭐가 저렇게 거치적거리는 게 많아?" "상관없어. 어차피 놈은 이제 생명력이 없다. 마법으로 집중 공격해라! 마법 공격이 짖중되면 저 해골도 버티지 못할 거야!" 누군가의 목소리에 아크와 라자크를 둘러싼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몇 초만 버티면 되는데.......' 쌕쌕쌕, 쌕쌕쌕쌕! 아크가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중얼거렷을 때였다. 갑자기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허리에서 튕겨 나갔다. 그리고 아크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엄청난 속도로 바닥을 기어 마법사들의 발아래에 도착한 라둔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주문을 외우던 마법사들의 발아래에서 폭발과 함께 불길이 일었다. "웃! 뭐, 뭐야?" 예상치 못한 충격에 집중력이 깨진 마법사들의 주문이 캔슬되었다. '아하, 그렇지! 라둔에게 저런 스킬이 생겼지?' 라둔이 사용한 스킬은 바로 화염의 오라' 였다. 라둔이 이 스킬을 배운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아크가 시르바나 탈환을 위해 셀리브리드에서 벙력을 모을 때, 갑자기 허리에 감겨 있던 라둔의 몸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가 싶더니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 을 50% 소화시켰습니다. 소화된 '불타는 화룡족 심장' 의 영향으로 라둔의 체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라모네 종족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비슷한 부류에 속하는 타 종족의 힘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완전히 체내에 흡수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아라모네 종족의 성장의 비밀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아라모네가 타 종족의 영향을 받아 완전체로 성장하여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라둔은 '불타는 화룡족 심장' 을 흡수해 가며 아라모네와도 다른, 또한 화룡족과도 다른 존재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타는 화룡족 심장' 의 힘을 일정 수준 이상 흡수할 때마다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게 됩니다. 소환수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흡수해 새로운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화염오라(초급, 종족 특성) : 아라모네가 화룡족의 힘을 흡수해 만들어진 특수 스킬. '화염 오라'는 주변의 불의 정령의 힘을 활성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능력을 발동시키면 직경 20미터 공간의 적에게 지속적으로 화염 데미지를 입히게 됩니다. 《20미터 공간에 10 ~ 20의 화염데미지, 마나 소모 : 1초당 20》 '불타는 화룡족 심장'은 바로 라둔의 최종 진화를 위한 재료였던 것이다. 그리고 50%를 흡수하자 라둔에게 불의 정령을 다루는 힘이 생겼다. 그게바로 '화염 오라'. 마법사의 광역 마법처럼 주위에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스킬이었다. 물론 데미지는 고작 10 ~ 20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법사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에 당황해 주문을 실패하고 말았다. 아크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이다. "이, 이 뱀 새끼가.......!" 마법사들이 라둔을 바라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러나 아크가 곧바로 소환 해체시키자 라둔이 훅 하고 사라졌다. "잘했다, 라카드, 라자크, 라둔." 구석에서 숨어 있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야? 저 녀석 점액질이 사라졌잖아?" 다시 아크에게 시선을 돌린 연합원들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소환수들이 시간을 끌어 준 덕분에 드디어 '슬라임의 시간'이 끝났다. "잘됐군, 이제 그냥 검으로도 두들겨 팰 수 있다는 거지?" "어차피 놈은 포위됐다. 저 박지와 해골하고 같이 박살 내버려!" 연합원들이 검을 휘둘러 대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놈들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크가 무력하게 도망치기만 했던 이유가 바로 그 점액질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러나 이제 점액질은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본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순간 아크는 가방에서 시커먼 고깃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고깃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지자 아크에게 몰려들던 연합원들이 갑자기 비명을 터뜨렸다. "불타오르는 화염이여....... 헙! 이, 이냄새는 뭐, 뭐...... 콜록, 콜록!" "스나이퍼 샤...... 웃, 뭐야? 으악, 내 눈! 아, 앞이 안 보여.......!" "후후후, 어떠냐? 내 창작 요리 맛이?" 아크가 코를 부여잡으며 히죽거렸다. 그렇다. 아크가 던진 시커먼 고깃덩어리는 새로 생긴 '창작 요리' 스킬로 만든 음식이었다. '창작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은 아크가 직접 이름을 붙일 수 있었는데, 이 시커먼 고깃덩어리에 붙은 이름은 바로 '지옥 폭탄'! 지혹 폭탄 '창작 요리'로 만들어진 특수한 음식. 푹푹 썩은 고기를 후추, 식초, 와사비 등에 절여 발효시킨 변태적인 음식입니다. 이 음식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지옥의 밑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듯한 엄청난 악취가 뿜어져 나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리고 숨이 턱턱 막히게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꺼냈다가는 몰매를 맞기 십상입니다. 《5미터 범위에 '지옥의 악취' 발동 효과》 아크가 만든 몇 개 안 되는 창작 요리 중의 하나, '지옥 폭탄'! 그 냄새는 아크조차 만들다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뉴 월드에서는 설사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유저가 느끼는 고통은 정전기가 일어나는 정도지만, 냄새는 100% 리얼하게 전해진다. 그런데 '지옥 폭탄' 은 최루탄보다 몇 배나 강력한 가스를 뿜어내는 음식! 마치 수백 년 묵은 음식 쓰레기를 응축시켜 놓은 듯한 냄새에 연합원들은 눈을 비비고, 코를 막고,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는 등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크,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끔찍하군." '지옥 폭탄' 의 위력은 영향 범위 밖에 있는 아크조차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어쨌든 이건 냄새라 효과가 그리 길지 않아.' '지옥 폭탄'은 시스템적으로 확실하게 어떤 상태 이상을 일으키는 음식이 아니었다. 유저가 후각이 마비되거나 냄새에 적응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옥 폭탄'으로 놈들을 공황 상태에 빠트릴 수 있는 건 불과 1 ~ 2분! "라카드, 라자크, 길을 뚫는다!" 콰직! 아크는 몸을 날려 무릎으로 앞을 막고 있는 연합원의 면상을 차올렸다. 그리고 쓰러지는 놈의 등을 뛰어 넘었다. "이, 이 자식...... 콜록....... 노, 놓칠 것 같으냐!" 아크가 탈출을 시도하자 좌우에서 전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의 생화학 테러에 당해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는 상황, 라카드가 '암흑 돌진'을 사용해 한 놈의 면상을 들이받고, 반대쪽은 뒤따라오던 라자크가 '방패 치기'로 밀어내자 포위망이 뚫렸다. "자, 잡아라!" 그렇게 잠시, 연합원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도망치던 아크의 앞에 사방이 성벽으로 막혀 있는 곳이 나타났다. 아크가 걸음을 멈추자 뒤에서 연합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은 없다!" "하긴 어차피 성안에서 도망 다녀 봐야 벼룩이지." "이제 코도 막혀서 그따위 썩은 음식도 안 통한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연합원들의 눈에 살기가 어른거렸다. 그때 아크가 빙글 몸을 돌리며 웃었다. "이제 됐어." "훗, 이제야 포기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내 목적지가 여기라는 말이야." "목적지가 여기였다고? 그게 무슨........" "그러니까 이런 뜻이지." 아크가 회복 포션을 쭉쭉 빨아 먹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주변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진동하기 시작했다. BY 하기나름 "돌격!" 성 앞으로 먼지구름이 피어올랐다. 그웬이 지휘하는 헤르메스 연합의 정예 1,500명! '외성에는 공병이 많다. 10 ~ 20분만 끌어 줘도 성문의 뼈대 정도는 복구할 수 있을거야.' 물론 그런 응급조치로 수리한 성문을 강철 성문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간신히 성문으로서의 형태를 유지하는 정도가 고작이리라. 그러나 아직 수호탑이 건재하다. 일단 성문으로서의 형태만 유지시켜 놓으면 수호탑의 방어력 보너스와 자동 내구력 회복 효과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놈들의 투석기와 벌집 같은 대형 병기다!' 아무리 수호탑의 가호를 받아도 공성 병기의 공격이 집중 되면 응급조치로 복구한 성문 따위는 몇 분도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공성 병기의 공격만 막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웬이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성 밖으로 나온 이유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놈들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현재 남아 있는 다크에덴의 병력은 2,500. 그러나 아크가 외성으로 날아든 것은 성벽을 공격하던 500여 병력이 전장을 이탈한 직후였다. 다시 말해 실제로 성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다크에덴의 병력은 2,000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크에덴의 병력이 2,000밖에 되지 않는 상태는 그리 길지 않다. 곧 전장을 이탈했던 500의 병력이 회복을 마치고 돌아올 것이고, 이미 30분에 수호탑에서 퇴각했다는 1,000의 병력도 곧 도착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크에덴은 무려 3,500의 대군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그웬이 1,500의 돌격대로 공성 병기를 파괴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 '투석기와 다연발 화염 쇠뇌 옆에서 방어 진형을 만드는 건 그야말로 자살행위! 그러나 일단 투석기와 다연발 화염 쇠뇌만 처리하면 성문 앞에 방어 진형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외성에 남아 있는 1,400 병력이 성벽 위에서 지원 사격을 해 주면 다크에덴이 3,500의 대군으로 변한다고 해도 막아 낼 수 있으리라. '게다가 지금 아크 놈은 성안에 갇혀 있다. 놈들의 공격을 막으며 아크를 처리하면 공성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어. 아크 녀석, 시간 내에 성문을 부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편법을 사용한 것이겠지만, 네 맘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헤르메스 연합이 1년이나 시르바나 영지를 지켜 온 건 운이 좋아서가 아니야!' 투투투퉁, 투투투퉁! 그때 투석기가 일제히 바위를 쏘아 올렸다. "전 병력 산개散開 대형!" 그웬의 병령에 돌격대가 확 퍼지듯 흩어 졌다. 뒤이어 투석기에서 날린 바위가 돌격대의 병력은 고작 몇 명에 불과했다. 투석기도 움직이는 병력을 상대로는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다연발 화염 쇠뇌도 마찬가지였다. 그웬의 병력이 다가오자 별집형 포문에서 48발의 불화살을 날려 댔지만 대부분이 빗나갔다. "히익! 도, 도망쳐!" 돌격대가 포화를 뚫고 돌진해 오자 투석기와 다연발 화염 쇠뇌를 조작하던 10여 마리의 너구리족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팔을 움직이더니 땅속으로 사라졌다. '뭐야, 저놈들은?' 그웬은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너구리족이 사라진 구멍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너구리족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다크에덴의 병력이었다. 그웬이 성을 나와 공성 병기 앞까지 도착할 때까지 다크에덴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돌격대를 공격한 건 방금 전에 도망친 너구리족이 작동시키던 투석기와 다연발 화염 쇠뇌뿐. 정작 2,000여 다크에덴의 병력은 화살 한 발 날리지 않았다. '대체 왜....... 아하, 그렇군, 아크 녀석, 죽은 건가?' 다크에덴의 반응을 살피던 그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다크에덴은 체계가 갖춰진 길드나 연합이 아니다. 거의 아크 혼자서 용병을 모아 만든 군단. 그런데 명령을 내려야 할 아크가 죽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이리라. '멍청한 아크 녀석, 어쨌든 이미 아크가 죽었으면 일은 더욱 쉬워지겠군. 이제 놈들은 오합지졸이다. 상대가 이런 놈들이라면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 공성 병기만 파괴하고 물러나려던 그웬은 작전을 수정했다. 현재 병력은 2,000 대 1,500 수적으로는 그웬의 돌격대가 열세였지만 사령관을 잃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오합지졸이라면 500의 병력 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돌격대 10분 전투태세, 1, 2, 돌격대는 나를 따라 공성 병기를 공격한다! 3, 4, 5 돌격대는 쐐기 진형으로 전환, 적의 중심을 관통한다!" 그웬이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통 집단 전투를 하면 생명력은 물론 마나의 잔량에도 신경 써야 한다. 마나가 텅텅 비어 버리면 정작 필요할 때는 스킬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분 전투태세란 바로 그런 마나 관리를 생각하지 않고 10분 동안 스킬을 난사하라는 뜻이었다. 그웬은 10분 전투태세로 최대의 피해를 입히고, 이곳으로 오고 있는ㅡ아마도ㅡ다크에덴의 1,500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퇴각, 성문 앞에서 방어 진형을 펼칠 생각이었다. "우오오오, 전사의 용맹!" "트리플 샷!" 10분 전투태세를 발령하자 돌격대원들은 완전히 광전사가 되었다. 아껴 왔던 각종 스킬을 발동시키며 공성 병기로 몰려들었다. 철컥, 치치치치치....... 돌연 한데 모여 있던 공성 병기의 아랫부분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공성 병기만이 아니었다. 다크에덴의 병력들 발밑에서도 여기저기 불빛이 반짝이더니 빠르게 타들어 갔다. "뭐야, 이건? 설마.......?" 그웬이 움찔하며 한 걸음 물러나려 할 때였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 갑자기 눈앞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화염이 솟아올랐다. 공성 병기에 달라붙어 있던 돌격대원들이 수 미터나 튕겨져 올랐다가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그웬 역시 바로 앞에서 폭발에 휘말려 엄청난 데미지를 받고 튕겨 날아갔다. 그러나 생명력이나 확인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뭐, 뭐, 뭐......?" 그웬은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흙먼지와 폭연爆煙에 주변이 온통 회색으로 보였다. 회색 영상 속에서 사방에 흩어져 바닥을 뒹구는 돌격대원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웬은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방금 전의 그건 분명 트랩이었다. 그렇다면 놈들은 이미 우리가 공성 병기를 공격할 걸 알고 트랩을 설치해 놨다는 말인가? 공성전을 하면서 공성 병기를 트랩으로 이용했다고?' 공성 병기만이 아니었다. 폭발은 다크에덴의 주둔지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다크에덴의 본대로 진격하던 돌격대원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생명력이 낮은 성직자나 마법사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200명! 단 한 번의 실수로 입은 피해가 18시간 동안 성벽에서 전투를 하며 입은 피해와 맞먹었다. 그리고 나머지 1,300명도 생명력이 10%에서 많게는 40%이상 깎여 나갔다. 그러나 그웬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그게 아니었다. '폭발은 공성 병기와 다크에덴의 주둔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돌격대는 진입하다가 폭발에 휘말렸지만 놈들은 폭발의 중심에 있었어. 우리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결국 1,500의 돌격대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공성 병기와 2,000의 병력이 자폭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이 정도의 트랩을 설치해 놨다면 한참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무슨 이런 말도 안되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웬은 당연히 폭발이 일어났던 곳에는 이미 괴멸 상태에 이른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널브러져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흙먼지와 폭연이 가라앉자 그웬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폭발이 일어났던 장소에 2,000에 달하는 다크에덴의 병력이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던 것이다. "이, 이 무슨 바보 같은....... 그 폭발 속에서 어떻게........? 그웬이 황당항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문득 한 줄기 폭연이 다크에덴의 병사들을 스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폭연은 병사들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가는게 아닌가? 히히히히힝! 동시에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황금빛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가 눈에 들어왔다. 백마는 놀랍게도 이마에 뿔이 달린 유니콘이었다. 그리고 유니콘의 등에는 한 소녀가 타고 있었다.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상황에 갑자기 등장한 여자! 이미 생각지도 못햇던 일을 당한 그웬은 정체불명의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잡아라! 저 여자를 잡아!" 그웬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소리쳤다. 동시에 겨우 몸을 일으킨 수백 명의 병사들이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채 몇십 미터도 가기 전에 갑자기 땅이 푹 꺼지더니 병사들이 땅속으로 우르르 굴러떨어졌다. "으악! 하, 함정이다!" "헉, 이게 뭐야?" 함정에 빠진 병사들이 비명을 터뜨렸다. 동시에 병사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ㅡ'악취가 풍기는 오물'에 빠졌습니다! 찐득한 오물이 몸에 달라붙었습니다. 끈끈한 오물 탓에 이동속도가 30% 감소했습니다 또한 지독한 악취로 인해 사기가 저하됐습니다. 악취는 주변 동료들의 사기도 저하시킵니다. 이 효과는 목욕을 할 때 까지 지속됩니다. 그렇다 헤르메스 연합들이 빠진 곳은 아크가 창작 요리로 만든 역작, '악취가 풍기는 오물' 이 가득 채워진 함정이었다. '서바이벌 요리' 로 음식을 만들다가 실패한 찌꺼기를 모아 푹푹 썩힌 오물....... 아니, 거름! 함정에 빠져 그런 거름에 목욕을 한 병사들은 단숨에 사기가 바닥까지 내려가고, 질척한 똥(?)이 달라붙어 이동속도 까지 감소했다. 게다가 냄새가 너무 지독해 근처에 있는 동료들의 사기까지 뚝뚝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때 소녀가 똥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그리고 유니콘의 등을 탁 치며 말했다. "키키키, 가자, 유니콘!" 그러자 유니콘이 투실투실한 엉덩이로 방귀를 뿡뿡 뿜어 내며 채신머리없이 도망쳤다. 동화 속에서 나오는 유니콘이라고는 생각할수 없는 지저분한 놈이었다. 그러나 성격이 어떻든 일단 유니콘은 유니콘. 이동속도 + 1,000%의 능력을 발휘해 도망치자 유니콘과 소녀는 금세 점처럼 작어졌다. 그리고 유니콘과 소녀가 사라지자 그웬의 눈앞에 있던 2,000명의 다크에덴 병력이 점차 흐려지다가 훅 하고 사라졌다. "환상? 이게 모두 환상이었던 건가?" 그웬은 그제야 이 기괴한 현상의 정체를 알아챘다. 그웬은 얼마 전에 란셀 습격에 참가했던 결사대원에게 이상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TV에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란셀을 공격하려던 결사대가 환상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1 ~ 2명을 복제하는 환상이 아니라, 마을을 몇 개나 복제해 낼 수 있는 엄청난 환상!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게.......!" 그렇다. 유니콘과 함께 도망간 소녀는 바로 로코. 다크에덴의 본대라고 착각한 병사들은 바로 로코가 '환상 소나타'로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생각해낸 그웬은 더욱 심각한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아니야. 환상이라니? 말도 안 돼. 이곳에 있던 녀석들은 방금 전까지 성벽에서 싸웠잖아. 그럼 내가 지금까지 환상과 싸웠다는 말이야? 그럴 리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그웬의 머릿속게 돌연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성벽을 공격하던 놈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은 확인했지만......' 다시 돌아오는 장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아크 놈이 18시간 동안 소극적으로 성을 공격한 이유가...... 병력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그렇다. 아크가 18시간 동안 별 의미도 없는 공성전을 계속해 왔던 이유가 바로 이겄이었다. 한 번에 많은 병력을 빼돌리면 아무리 환상으로 병력을 채워 놓는다고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500명의 병력으로 성을 공격하다가 회복시키려는 것처럼 눈에 안 보이는 장소로 보내면 의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고작 500명이니 그웬도 그 뒤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뒤이어 공격하는 500의 병력과 싸우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고, 가끔 확인했던 본대의 병력은 2,000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냥 회복을 마치고 다시 합류했을 거라고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실제로 한 번 시야 밖으로 퇴각했던 500의 병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로코가 '환상 소나타'로 부족한 500의 병력을 채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정장 18시간에 걸친 속임수! 이게 바로 아크가 투석기로 성내에 잠입해서 성문을 부식시켜야 했던 이유였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웬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럼 대체 사라졌던 2,000의 병력은 어디에......?' 그웬은 와락 고개를 돌려 시르바나 성을 바라보았다. 2,000의 병력을 숨겨 놨다면 그웬이 1,500의 병력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있는 지금이 놈들이 성을 공격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그러나 다행히 주변에 다크에덴의 병력이 움직이는 기척은 없었다. 그리고 벌써 성문도 어느 정도 복구 되어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좋은 기회에 놈들이 성을 공격하지 않는 거지? 병력을 빼돌린 건 단순히 우리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였던 건가? 아니면 성문이 예상보다 빨리 복구돼서 타이밍을 놓친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최악의 상황은 피한 셈이군, 하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놈들이 다른 수작을 부리기 전에 성으로 귀환해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일어나라, 주변을 경계하며 성으로 귀환한다. 회복은 성에 돌아가서 한다!" 그웬이 다급하게 똥냄새(?)를 풀풀 풍기는 연합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콰콰콰쾅, 카캉, 퍼퍼퍼펑! 성안에서 격렬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함성과 검과 검이 마주치는 소리! 그 소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잠시 뒤에는 성벽 위에서까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웬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연합원과 싸우는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보였다. '뭐지? 어떻게 저놈들이 성안에 있는 거야?' ㅡ대체 무슨 일이야? 그웬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외성의 부대장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ㅡ그, 그웬 님 기습입니다, 적의 기습입니다! ㅡ습격? 그게 무슨 소리야? 적이 어디 있다는 거야? 성문은 막혀 있었잖아? ㅡ놈들은 성문이 아니라 후원 쪽에서 몰려나왔습니다. 숫자는 거의 2,500! ㅡ2.......2,500? 무슨 소리야? 그만한 병력이 어떻게 갑자기 성안에서 나타나? ㅡ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크윽! ㅡ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일단 성문을 열어! ㅡ서, 성문을 열 수 없습니다! ㅡ뭐야? 성문을 열 수 없다니? ㅡ지금 이 성문은........ 저희가 수리한 게 아닙니다! "뭐, 뭐야?" "대체 이 진동은.......?" 연합원들이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거대한 뭔가가 땅속에서 요동치는 듯한 울림, 그 울림은 점점 가까워지더니 점점 위로 밀려올라왔다. 점차 진동이 가까워지자 한 연합원이 소리쳤다. "이 진동이 울려 나오는 곳은 저기다!" 연합원이 가리킨 곳은 아크의 등 뒤, 시르바나 성 후원에 세워진 작은 신전이었다. 그렇다. 대지를 흔드는 진동이 울려 나오는 곳은 바로 그 신전 내부였다. 그러나 신전은 고작 크기가 1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그만한 신전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런 진동까지 일어난단 말인가? 아크를 포위한 50명의 연합원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쿠쿠쿠쿠........ 덜컹, 콰아아아아! "우오오오오!" "시르바나 성이다!" 진동이 점차 잦아진다 싶더니 갑자기 신전 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작은 신전에서 엄청난 숫자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합원들의 입이 찢어질 정도로 벌어졌다. "저, 저놈들은......?" "다크에덴이다! 다크에덴의 병력이다!" "빙고, 상품으로 죽여 주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목을 주욱 그었다. 그러자 신전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병사들이 그대로 연합원을 덮쳤다. 마치 해일이 작은 조각배를 덮치는 듯한 광경이었다. 신전에서 나온 인원은 이미 수백 명, 그 뒤로도 꼬리에 꼬리를 몰고 밀려 나오는 병사들이 한 방씩만 떄리고 지나쳐도 연합원들의 생명력이 쫙쫙 빠져나갔다. 그리고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아크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50명의 연합원들은 1,000여 명의 병력에 깔려 죽었다. "아크, 괜찮으냐?" 잠시 후, 신전 안에서 누군가가 뛰어나왔다. 정의남과 레리어트, 샴바라, 이슈람, 특공대에 참가했던 사람을 제외한 4명의 갱생단원이었다. 아크는 회복 포션을 빨아 대며 씨익 웃었다. "네, 딱 맞춰 오셨어요."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 시르바나 성을 공략하기 위해 세운 작전이었다. 로코의 '환상 소나타' 로 그웬을 속이며 빼돌린 2,500명의 병력. 이 병력이 성벽에서 퇴각해 일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 이동한 것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시르바나 성 주변에 숨겨 뒀던 비밀 장소에 집결시키기 위해서 였다. 이 상황에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사실 아크가 이번 공성전에서 승리를 확신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후원에 자리 잡은 아셔스 신전 지하의 비밀 던전. 아크는 라이덴에게 성을 넘기기 전에 비밀 던전의 입구를 숨겨 놓고, 너구리족을 동원해 성 박에서 던전까지 이어지는 땅굴을 파 놓았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몸의 땅굴 1호지! 땅굴 1호를 통해 병력을 여기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날린 돈이 만 골드다!' 그웬을 속이기 위해 사용했던 수백 골드짜리 투석기 10대와 투자비 4,000골드짜리 다연발 화염 쇠뇌 두 대, 그리고 장장 18시간 동안 '환상 소나타'를 발동시키기 위해 로코는 하나에 50골드나 하는 마나 포션을 60개나 먹어야 했다. 결국 2,500의 병력을 시르바나 성에 들여놓기 위해 만 골드가 넘는 돈을 투자한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작전은 대성공!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쉴 시간이 없어. 이제부터는 속도전이다. 바로 성문으로 진격!" "우와아아아!" 아크는 병력을 이끌고 성문으로 진격하며 명령했다. "라카드, 위성 감시 모드로 외성 병력의 상황을 수시로 체크해 보고해라!" "옛설!" 라카드가 경쾌하게 대답하며 성 상공으로 날아 올라갔다.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지금 상황에서 내성의 병력이 몰려나오면 상황이 어려워집니다. 800의 병력을 이끌고 내성의 병력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견제해 주세요!" "알았다."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800의 병력을 때어 내성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 아크는 나머지 1,700의 병력을 이끌고 성을 가로질러 성문 근처에 도착했다. "어엇, 뭐야?" "저놈들이 대체 어떻게.......?" 성문에 모여 있던 연합원들은 단숨에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방금 전까지 성 밖에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던 다크에덴이 엉뚱하게 성안에서 몰려오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영주성을 1년이나 지켜 냈던 베테랑 연합원들답게 빠르게 전열을 가다듬으며 소리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는다!" "겁먹을 필요 없다. 내성에는 1,000명의 동료가, 성문 앞에는 1,500명의 동료가 있다!" "잠시만 버티면 라이덴과 그웬이 도와주러 달려올 것이다!" "놈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아!" 성문을 지키던 연합원들은 빠르게 방어 진형을 만들었다. 이제 다크에덴의 1,700 병력과 헤르메스 연합의 1,400명의 간격은 불과 50여 미터! 아크는 전속력으로 달리며 소리쳤다. "모두 음식을 먹어라! 레리어트 님, 공격(책에는 방어라고 적힘) 3종 세트로 부탁합니다!" 아크의 목소리에 다크에덴의 병력이 일제히 요리를 꺼내 먹었다. 뒤이어 레리어트가 주문을 외우며 양팔을 활짝 펼치자 주변에 하얀 빛 무리가 퍼져 나왔다.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혼의 기상, 전사의 집중력, 질풍의 호흡!" 공격력을 10% 올려 주는 전사의 집중력! 치명타 확률을 20% 상승시켜 주는 전사의 집중력! 검 계열 무기의 공격 속도를 10% 증가시키는 질풍의 호흡! 음식과 공격형 버프 3종 세트로 무장하자 각종 능력치가 쭉쭉 올라갔다. "이대로 적을 관통한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아크가 마법검을 폭발시키며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거의 동시에 다크에덴과 헤르메스 연합원들이 충돌했다. 1,400과 1,700의 대격돌! 3,000명의 병력이 한데 뭉치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나왔따 동시에 양군의 중심에서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양손에 든 토마토를 힘차게 충돌시키는 것과 같은 장면이었다. 양쪽에서 밀어붙이는 압력에 선두의 전사들은 문자 그대로 으깨지며 뿜어내는 선혈이었다. 그렇게 한차례 충돌한 직후, 양군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꾸욱, 꾸구구구국! 격렬한 충돌 후, 양군의 전사들이 방패를 마주하고 힘겨루기를 시작한 것이다. 마치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 같은 분위기! 팽창한 용암이 약한 지반을 뚫고 분출하듯이, 경계의 어느 부분이라도 틈을 보이면 한순간에 무너지리라. 그리고 전사들이 이런 대치 상황에 놓였을 때 돌파구를 만드는 것은 역시 궁수와 마법사 같은 원거리 공격수였다. "라카드, 적진의 병력 배치를 보고하라!" 이런 대치 상황에서는 어느 쪽의 원거리 공격수가 먼저 적의 주요 병력에 타격을 주느냐로 승패를 갈리게 된다. 그리고 이 정도의 대병력이 충돌했을 경우, 평지에 있는 병력은 마법사나 궁수가 안쪽에 있으면 위치를 알아내지 못해 요격 하기 힘들어진다.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원은 이미 성벽 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다크에덴의 마법사나 궁수를 요격하기 좋은 위치. 아크가 라카드를 미리 성문 근처로 보낸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우측 성벽 위에 궁수가 50명, 마법사 20명. 대치하고 있는 병력의 3시 방향 50미터 후방에 궁수 80명, 마법사 30명, 좌측 성벽 위에 궁수 60명, 마법사 15명......." 아크의 명령에 라카드가 미터 단위로 적 병력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그 보고는 곧바로 아크의 입을 통해서 다크에덴의 장거리 공격수에게 전달되었다. "다크에덴의 궁수오 ㅏ마법사는 내가 지정하는 좌표로 모든 공격을 집중하라!" "불타는 화염의 분노....... 레이지 오브 파이어!" "선더볼트!" 마법사들이 일제히 아크가 지정한 좌표로 마법을 퍼부었다. 그리고 궁수들도 포물선을 그리며 날리는 화살공격으로 적진 깊숙한 곳에서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법사들을 일점사로 해치웠다. 라카드를 이용한 정확한 핀포인트Pinpoint 공격에 적진의 장거리 공격수가 40% 괴멸되었다. 덕분에 적의 장거리 공격수에게 요격당한 부담을 덜게 된 다크에덴의 궁수와 마법사가 본격적으로 적의 중심부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순간 팽팽했던 균형이 툭 끊어졌다. "지금이다. 밀어붙여! 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무너지기 시작한 적진으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아크의 저돌적인 돌진 명령을 따르다가 수십명의 아군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1,700 대 1,400의 전투, 이미 그들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사실 이렇게 무리하게 전투를 벌이지 않아도 성문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수적 우세는 아크가 만 골드를 투자해 만들어 낸 아주 짧은 '마법의 시간' 이었다. '그웬이 돌격대를 이끌고 돌아오면 1,700의 다크에덴 병력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렇다. 다크에덴의 수적 우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웬이 1,500의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랩에 걸려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해도 1,300명의 병력이 살아 있다. 이들이 다시 성으로 돌아오면 다크에덴은 감당할 수 없다. 때문에 지금은 설사 병력을 모두 잃는다고 해도 적진을 뚫어야 했다. '거기에 헤르메스 연합은 내성의 1,000 병력도 남아 있다!' 아크가 이 와중에도 800의 병력을 떼어 내성을 견제하게 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만약 지금 내성의 병력이 이곳으로 들이닥치면 다크에덴은 절대 이길 수 없다. 때문에 800의 병력을 본 ㅐ일단 내성 병력의 발을 묶어 놓은 것이다. 그리고...... "전 병력, 다시 한 번 힘을 모아 돌격한다! 이번 돌격에 승패가 걸려 있다! 돌진!" 아크는 다크에덴의 병력을 쐐기 진형으로 바꿨다. 쐐기 진형의 선두에 자리 잡은 것은 아크와 샴바라! "간다, 다크 블레이드!" "폭우 검!" 아크와 샴바라가 스킬을 난사하자 적군의 선두 진형이 휘청거렸다. 덕분에 탄력을 받은 다크에덴은 마치 창으로 찌르듯 흔들리는 적 진영을 향해 쏘아져 들어갔다. "우와아아아아!" 꾸우욱 눌리다가 어느 순간 단단한 껍질이 툭 터지며 들어 가는 느낌! 적군의 방패 부대가 무너지자 다크에덴은 단숨에 성문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됐다. 이제 좌우로 갈라져 방어 진형을 세운다. 길을 열어 공병을 진입시켜라!" 아크의 명령에 돌격대는 일시불란하게 움직였다. 돌진해 들어왔떤 전사들이 좌우로 갈라져 적을 몰아내며 성문까지의 길을 만들었다. 그러자 후열에서 대기하던 너구리족과 공병 부대가 뭔가 커다란 판자 같은 것을 들고 성문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너덜너덜한 성문에 판자를 척척 붙이고 엄청난 속도로 못질을 하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짓이지?" "저 녀석들 성문을 수리하고 있잖아?" 너구리족과 공병들의 행동에 적병들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한 연합원이 움찔하며 소리쳤다. "저건 수리하고 있는 게 아니야. 벽이다! 놈들은 성문을 막으려는 거야!" "그, 그럼 저놈들이 성문으로 돌격한 이유가.......?" "이제야 알겠냐?" 아크가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르며 씨익 웃었다. 그렇다. 아크가 무리하게 희생을 치르며 돌진한 이유. 그건 바로 그웬이 돌아오기 전에 성문을 장악하고 장벽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크는 예전에 란셀 방어전을 치를 때 공방에서 방벽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며 시간을 절약했던 것처럼, 미리 너구리족에게 방벽을 만들어 놓게 한 뒤에 성문을 운반, 즉석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렇게 조립형 방벽을 쌓아 올리자 성문이 단숨에 벽이 되었다. 그웬이 트랩에 박살 났다가 성으로 돌아와 본 성문이 바로 이 방벽이었다. "젠장, 부숴!" 성문 밖에서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그웬이 발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하지만 이 방벽은 예전에 란셀에서 사용했던 급조된 방벽과는 달라. 내가 4,000골드나 쏟아부어 주문한 특수 방벽이다. 검 따위로 이걸 부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야. 게다가 이 방벽은 너희들이 믿고 있던 수호탑의 가호까지 받고 있잖아.' 그렇다. 더이상 뭘 숨기겠는가? 브레드와 레디안이 수호탑을 제대로 공격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이제 너구리족이 만든 방벽은 시르바나 성의 건축물이 되었다. 때문에 수호탑은 방벽에도 성문처럼 방어력 보너스와 내구력 자동 회복 효과를 적용시키는 것이다. 수호탑의 가호를 받는 방벽을 공성 병기도 없는 그웬이 부수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성공했다! 고등어 토막 내기!" 방벽이 완성된 모습을 확인한 아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이번 공성전을 위해 생각해 낸 대전략, 일명 고등어 토막 내기였다. 사실 아크가 이번 공성전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하던 상황이 바로 전면전이었다. 병력의 숫자와 질, 모든 점에서 헤르메스 연합이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압도적이라고 말할 수는 아니지만 전면전을 펼칠 경우 승산은 30% ~ 40%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땅굴 1호를 이용해 기습을 성공한다고 해도 겨우 50%로 대등한 승부를 겨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정도 승산으로는 안 돼. 이건 내 목숨을 걸고 벌이는 전쟁이다. 최소 80% 이상의 승산이 없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나아!' 그래서 생각해 낸 작전이 바로 이 고등어 토막 내기! 먼저 아크와 갱생단 특공대가 성문을 파괴하고 브레드와 레디안의 위장 작전으로 불안감을 부채질해 외성 병력의 일부를 성 밖으로 불러낸다. 이게 첫 단계다. 그리고 아크는 땅굴 1호로 이동시킨 병력으로 성문을 장악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내성에서 대기 중인 라이덴과 1,000명의 병력. '하지만 라이덴은 움직이지 못한다!' 아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 시점에서 이미 성에 난입한 다크에덴의 병력은 2,500이다. 그리고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은 내성과 외성을 합해도 2,400 그런 상황에서 내성의 문을 열고 나오면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라이덴은 그웬이 다시 올아올 때를 기다렸으리라. 라이덴으로서는 아크가 성문을 막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라이덴이나 그웬이 아크의 작전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서 만들어진 아주 약간의 시간차! 아크는 그 시간차를 이용해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을 머리와 몸통, 꼬리로 3등분시켜 놓은 것이다. 이게 바로 고등어 토막 내기! 그리고 아크는 보기 좋게 작전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아직 작전이 100%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내성까지 완전히 함락시키기 전에 그웬의 병력이 성에 진입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그렇다. 대전략 고등어 토막 내기는 머리ㅡ라이덴과 1,000의 병력ㅡ와, 꼬리ㅡ외성에 남아있떤 1,400병력ㅡ를 합쳐도 큰 문제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몸통ㅡ그웬과 1,300의 병력ㅡ이다. 머리와 꼬리가 정리되기 전에 몸통과 합체하면 작전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라이덴도 몸통과 합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겠지?' 아크의 눈동자가 내성을 향했다. "이럴 수가........!" 아크가 내성을 바라보고 있는 그 시작. 라이덴은 내성 안에서 혼란에 빠져 있는 성문 앞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라이덴은 도무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성전이 시작할 때 양측의 병력은 4,300 대 5,600. 누가 봐도 헤르메스 연합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게다가 헤르메스 연합은 수호탑과 성벽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쯤 되면 지고 싶어도 지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덴은 마음을 놓지 않았다. '상대는 다름 아닌 아크다. 놈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패배가 확실했던 전투를 뒤집어 뒤통수를 때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기이할 정도로 운이 좋은 놈이야.' 그걸 실력이라고 말하지 않는 건 라이덴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아무튼 실력이든 운이든 아크는 '결정적인 승부' 에 강한 놈이었다. 그리고 놈에게 몇 번이나 물 먹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아무리 전력이 우세해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라이덴이 수성전을 고집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크가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성전을 시작했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 감정이 앞서서 섣불리 움직이면 놈의 계략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 그러나 거북이처럼 성안에서 방어를 단단하게 굳히고 있으면 아무리 아크라도 계략을 사용할 여지가 없으리라. 그리고 실제로 방금 전까지는 라이덴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저건 뭐냔 말이야!" 라이덴이 주먹으로 벽을 후려치며 소리쳤다. 성문을 꽉꽉 틀어막았는데 대체 어떻게 다크에덴이 성안에 있단 말인가? 땅굴 1호의 존재를 모르는 라이덴으로서는 도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방금 전까지는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성안에 난입한 다크에덴의 병력은 대략 2,500. 반면 라이덴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병력이 3,900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웬이 성으로 돌아오면 라이덴도 내성에서 나가 다크에덴의 병력을 포위해 단숨에 뭉개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판단이 라이덴 최악의 실수였다. 만약 그 시점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1,000의 병력을 움직였다면 아크도 성문을 막을 여유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설마 성문을 막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라이덴은 '보다 안전한 승리'를 선택했다. 때문에 결국 아크에게 성문을 장악할 시간을 허용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웬의 병력은 성문 밖에서 발이 묶여 이제 아예 내성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아크 자식........!' 또다시 아크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라이덴의 혈압이 급상승했다. 그러나 곧 심호흡을 하면 화를 가라앉혔다. "이런 때일수록 평상심을 유지해야 해. 괜히 열 받아 봐야 아크 놈에게 휘둘리기만 할 뿐이야. 그래, 냉정해지자. 아크 놈의 농간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불리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외성의 병력이 이대로 전멸해도 병력은 아직 우리가 더 많다." 라이덴은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외성 광장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아무리 봐도 헤르메스 연합이 불리하다. 그러나 명색이 나가란 5대 세력의 병력. 다크에덴의 병력도 사상자가 적지 않았다. 게다가 다크에덴의 내성의 출병을 견제하기 위해 병력을 분산시켜 실제로 외성의 병력과 충돌한 다크에덴의 병력은 1,700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외성의 병력은 1,400이었으니 전멸 당한다고 해도 다크에덴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 외성의 전투가 끝날 무렵이면 내성을 견제하는 병력과 합해도 2,000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수호탑에서 퇴각한 놈들까지 합해도 3,000 남짓." 그러나 헤르메스 연합은 내성의 1,000과 그웬의 1,400. 그리고 스호탑에 주둔시켰던 1,400까지 불러들이면 3,800이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수세에 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병력은 헤르메스 연합이 800 ~ 1,000 이상 많은 것이다. "문제는 성문이 막히는 바람에 그 병력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병력만 합하면 전면전을 펼쳐도 우리가 유리하다. 게다가 이제 공성전은 불과 3 ~ 4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벙력을 불러들여 그때까지 내성만 지켜 내도 우리의 승리다!" 그리고 라이덴은 병력을 집결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크가 성문을 막았다지만 그건 임시방편, 진짜 성문과는 차원이 다른 허접한 바람막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웬이 방벽을 뚫지 못하는 이유는 그 방벽이 수호탑의 가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지." 라이덴은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수호탑 방어 병력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ㅡ명령을 받는 즉시 수호탑을 파괴하고 성으로 복귀하라! ㅡ네? 그, 그게 무슨? ㅡ자세한 내용은 성문 앞에 도착하면 그웬이 설명해 줄 거다. 이게 라이덴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웬이 성문 앞에서 버벅대는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방벽에 수호탑의 가호가 적용된다는 점과 또 다른 하나는 그웬의 병력이 대부분 전사라는 점이었다. 병력이 1,300이나 있지만 직접 성문에 붙어서 공격할수 있는 인원은 100명 정도 밖ㅇ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수호탑에 배치시킨 병력은 90% 이상이 궁수와 마법사. 수호탑을 파괴하고 1,400의 궁수와 마법사가 공격을 퍼부으면 방벽 따위는 30분도 버티지 못하리라. "그렇게 되면 확실하게 우리의 승리다!" 사실 라이덴은 1,000의 병력만으로도 남은 3 ~ 4시간 정도는 버텨 낼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성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성의 방어 시설에 엄청난 투자를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아크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은 거북이처럼 지키는 데만 급급한 결과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아크 자식, 이번에는 확실하게 밟아 주지!" 냉정함을 되찾은 라이덴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BY 하기나름..... ACT 6 철옹성 "훗, 녀석들, 결국 근처도 못 와 보고 도망갔군." 궁수가 쪽창으로 밖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 그가 들어와 있는 곳은 수호탑 앞에 설치된 벙커였다. 헤르메스 연합은 시르바나 성을 차지한 직후 수호탑 방어 작전으로 과거 아란이 사용했던 방법을 선택했다. 즉, 수호탑을 중심으로 벙커를 만들어 놓고, 화살이나 마법의 사정거리 안에 지뢰 밭을 만들어 놓는 전략이었다. 아니, 이 전략은 헤르메스 연합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영주들이 사용하는 전략이었다. 그만큼 이 전략은 이제 수호탑 방어의 정석으로 취급받았다. 물론 그 전략은 이미 아크에 의해 12시간 만에 깨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크에게 땅굴을 파는 너구리족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 그 뒤로 1년이 지났지만 아직 15시간 전후로 수호탑 공략에 성공한 부대는 없었다. "솔직히 이번에는 좀 긴장했는데 말이야." "하긴 이번 공성전의 사령관은 같은 방어 진형을 갖추고 있던 수호탑을 12시간 만에 합락시킨 적이 있는 아크잖아. 게다가 부대를 지휘하는 유저는 최강의 선구자로 알려진 브레드와 레디안, 엄청 치열한 전투가 될 줄 알았어." 이곳을 공격한 부대는 브레드와 월랑족, 동방 민족으로 구성된 별동대였다. 익히 브레드의 저돌적인 성격과 엄청난 공격력에 대해 알고 있던 수비 병력은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브레드가 몇 번 지뢰밭 진입에 실패하자 주위를 돌며 눈치만 살피다가 얼마 전에 완전히 퇴각해 버렸다. "훗, 최후의 선구자니 뭐니 해 봤자 별수 있겠어? 저 엄청난 숫자의 트랩과 우리가 있는 한 1,000명이 덤벼도 20시간 안에 뚫는 건 불가능해. 그런데 고작 500명 가지고 수호탑을 점령하겠다니,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따고." "그야 그렇지. 그럼 브레드가 아니라 명령을 내린 아크 놈이 한심한 건가?" "그런 셈이지. 하긴 그놈도 공성전 경험은 1년 전에 한 번 뿐이잖아. 고작 2,000명 정도로 공성전을 하던 시절. 그것도 아크의 공격대는 83명밖에 안 됐다고 하더군." "애들 장난 수준이었군." 그렇게 연합원들이 벙커 안에서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수호탑 수비대장의 귓가로 라이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당장 수호탑을 파괴하고 성으로 복귀하라! "멀쩡한 수호탑을 부수고 성으로 돌아오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도 자세한 내용은 몰라, 하지만......." 어이없다는 듯이 묻는 부하들의 질문에 수비대장이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수비 병력이 되려 수호탑을 부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라이덴의 다급한 목소리에 수비대장은 성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놈들의 별동대가 퇴각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었는데....... 아무튼 성에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으니 일단 서둘러라!" "젠장, 우리가 수호탑을 부수게 될 줄이야." 수비 병력이 구시렁거리며 벙커에서 나와 수호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수호탑을 향해 화살과 마법을 날려 대고 있을 때였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돌연 수호탑 정면에서 수백 발의 폭음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저기는 지뢰밭이잖아? 트랩? 트랩이 폭발한 건가?" "설마 놈들의 별동대가 돌아온 건가?" 수비대장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수비대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뢰밭 앞에는 한참 전에 다크에덴의 본대로 귀환했다고 생각했던 브레드와 별동대가 엄청난 숫자의 트랩을 발동시키며 진군해 오고 있었다. 그 장면에 수비대장은 라이덴의 명령을 받았을 때보다 더 혼란스러워졌다. "저게 무슨 짓이지? 저런 식으로 트랩을 발동시키면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전멸될 게 뻔한데......, 혹시 병력이 늘어난건가? 아니, 숫자가 많아진 것 같지는 않아. 그럼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서 지기 전에 한번 미친 척하고 밀어 붙여 보려는 건가?" "대장님, 저기 보십시오! 놈들의 앞에........!" 그때 한 병사가 트랩이 폭발하는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트랩을 작동시키는 것은 적병이 아니었다. 토끼처럼 생긴 동물 떼 수백 마리가 별동대 앞에서 트랩을 발동시키며 몰려오고 있었다. "뭐, 뭐야? 대체 어디서 저런 동물들이?" 수비대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곳은 공성전이 펼쳐지는 전장이다. 일단 공성전이 시작되면 유저는 물론, 쥐새끼 한 마리도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저런 동물 떼가 나타났단 말인가? 게다가 동료가 트랩에 걸려 박살이 나는데도 계속 몰려오다니? 레밍스처럼 집단 자살이 취미인 동물인가? "후후후, 하여간 아크 녀석의 잔꾀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수비대장이 당혹성을 터트리고 있는 그때, 다크에덴의 별동대를 지휘하는 브레드는 토끼처럼 생긴 동물, 아니 인형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 지금 지뢰밭으로 돌진하는 수백 마리의 토끼들은 진짜 동물이 아닌 인형이었다. 포코포코 인형(일반) 북부 산악 지대의 명물인 포코포코르 닮은 고급 인형입니다. 포코포코의 털을 사용해 감촉이 매우 훌륭합니다. 또한 안에는 마법 장치가 되어 있어서 태엽을 감으면 '포코포코'라는 소리를 내며 이동합니다. 배에 들어 있는 음성 녹음 크리스털을 이용해 다른 음성을 녹음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선물로는 최고입니다. 바로 아크가 파라돈에서 샀던 포코포코 인형! 사실 아크 역시 이미 공성전을 시작하기 전에 헤르메스 연합이 예쩐의 아란과 같은 방법으로 수호탑에 지뢰밭과 벙커를 깔아 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알면서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수호탑에 500의 병력만 보냈을 리가 없었다. '트랩을 움직이는 물체에 반응한다. 돌려 말하면 움직이기만 하면 그게 유저든 NPC든, 심지어 인형이라도 상관없다는 뜻!' 이렇게 생각한 아크는 미리 대륙 상회에 2,000개의 포코포코 인형을 주문해 놨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수호탑을 파괴 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수호탑을 지키기 위한 준비. "이쪽은 오히려 수호탑이 부서지면 곤란하단 말이지." 브레드가 씨익 웃으며 포코포코 인형을 내려놓았다. "포코포코, 잘도 놀려 댔겠다?" "포코포코, 이제 니들은 다 뒈졌어." 포코포코 인형이 아장아장 지뢰밭으로 향하며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브레드는 공성전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스트레스가 팍팍 쌓여 가고 있었다. 이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브레드의 목적은 처음부터 수호탑 파괴가 아니었다. 때문에 모처럼 공성전에 참가하고도 지뢰밭 주변에서만 얼쩡대니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속내도 모르는 헤르메스 연합원들은 '이름값도 못하는 얼간이'라는 둥 '선구자 주제에 아크에게 붙어서 콩고물이나 얻어먹으려는 비겁자'라는 둥 떠들어 대며 도발했다. 덕분에 브레드와 월랑족은 분노 게이지가 120%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분노의 메시지를 포코포코 인형에게 담아 지뢰밭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수비대장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모두 벙커로 돌아가라! 놈들을 막아야 한다!" 수비대장의 명령에 궁수와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벙커로 달려갔다. "이미 늦었다. 멍청한 놈들아!" 크아아아앙! 동시에 브레드의 등 뒤에서 수백 개의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지난 20시간 동안 수비 병력에게 갖은 욕을 들으며 분노 게이지를 채운 월랑족과 동방 민족! 1,000마리의 포코포코 인형을 풀어 단숨에 지뢰밭을 무력화시킨 월랑족과 동방 민족이 엄청난 속도로 적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벙커로 도망치는 궁수와 마법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호탑의 수비 병력은 90% 이상이 마법사와 궁수. 트랩과 벙커 뒤에 숨어 있을 때는 몇 배의 적이라도 전멸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러나 이미 별동대는 지뢰밭을 넘어왔다. 그리고 수비 병력은 제발로 벙커에서 나온 상황. 별동대가 들이닥치자 보호막이 사라진 마법사와 궁수는 채 몇 분도 버티지 못했다. 이미 전투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살육에 가까웠다. "자, 이제 내가 왜 최후의 선구자라고 불리는지 몸으로 깨닫게 해 주마!" 브레드가 뼈마디를 우두둑우두둑 꺾으며 중얼거렸다 브레드와 레디안이 본격적으로 수호탑 공략을 시작했을 무렵. 성문을 둘러싼 다크에덴과 헤르메스 연합의 전투도 극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양군 모두에게 성문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너구리족은 계속 방벽을 수리하라. 방어 부대는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너구리족과 방벽을 보호한다. 나머지 병력은 성벽과 주요 거점을 점령하고 적을 전멸시킨다!" 아크의 명령에 수백 명의 전사들이 성문 앞에 모여 방패를 돔처럼 쌓아 올랐다 수십 발의 마법과 화살이 날아왔지만, 방패에 부딪쳐 방벽이나 너구리족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법과 화살 공격이 먹히지 않자 전사들이 '돌진'을 시도했다. 겹겹이 쌓인 방패도 단숨에 꿰뚫는 전사들의 '돌진'! 그러나 아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라자크, 겁 없이 덤비는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줘!" 딱딱딱딱, 딱딱딱딱! 퍼퍼퍼펑, 화르르르륵! 라자크가 '철벽 화염'을 발동시키자 돌진하던 전사들이 불길에 휩싸이며 튕겨졌다. 라카드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3시 방향 10여 명의 전사들이 돌진 중, 5시 방향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중, 8시 방향 궁수들이 우측 성벽을 올라가는 아군을 저격하려는 중. 우아아아, 눈 돌아간다!" 라카드는 적병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그리고 그 보고는 곧바로 다크에덴의 병력, 정확히 말하면 샴바라와 동방 민족에게 전달되어 적의 배후를 공격했다. 쌕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은 광역 스킬인 '화염 오라'를 발동시키고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좀 전처럼 십수 명이 몰린 곳이라면 바로 들통 났겠지만, 수천 명이 얽혀 있는 전장에서는 발밑을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보호색' 까지 적용되어 라둔은 그야말로 무인지경처럼 전장을 돌아다니며 적에게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전리품까지 챙겨 먹었다. '후후후, 잘 키운 소환수 세 마리가 유저 100명보다 낫구나!' 모처럼 활약하는 소환수들을 보자 새삼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러는 사이 방어 진형에 집중되는 적의 공격은 더욱 격렬해졌다. 지금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고지는 바로 방벽이 쳐진 성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고지는 바로 방벽이 쳐진 성문.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병력은 방벽을 수리하는 너구리족이었다. 때문에 헤르메스 연합원도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방벽과 너구리족에게 공격을 집중시켰다. 아무리 아크가 800의 병력으로 방어 진형을 만들었따고 해도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너구리족의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오히려 바라는 바다!' 아크는 '고양이의 눈'으로 너구리족의 생명력을 지켜보다가 소리쳤다. "위대한 희생!" 순간 가방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포션 50개가 하늘로 솟아 올랐다. 그리고 포션이 하나로 뭉쳐 항아리만 하게 변해 전장에 흩뿌려졌다. '아아아, 내 1,400골드......!' 아크는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포션을 폭포수처럼 눈물을 쏟아 내며 바라보았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성문을 수리하던 너구리족, 방패를 쌓아 올리고 몸빵을 하던 병사들, 아크 주변에 있던 모든 아군의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ㅡ중급 회복 포션 50개를 사용해 100미터 범위 내의 아군에게 중급 회복 효과가 적용됩니다. 《모든 아군이 600 ~ 800의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최상급 '간병' 의 특수 스킬 '위대한 희생' 의 위력이었다. 사실 아크는 군수몰자로 회복 포션을 구입했지만 병사들에게 나눠 주니는 않았다. 그냥 포션을 마시면 중급 회복 포션은 고작해야 500정도의 회복량이다. 그러나 '위대한 희생' 을 사용하면 50개의 포션으로도 100미터 범위 내의 모든 아군을 600 ~ 800이나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비상용으로 포션을 구입해 라둔의 배 속에 넣어 두고 필요할 때만 50개나 100개씩 떼어 가방에 넣고 '위대한 희생' 을 사용했다. 효율뿐만이 아니라 전사들의 회복 포션 남발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회복하자 헤르메스 연합원들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미 전투가 1시간 이상 지속되어 양군 모두 최우선 처리대상인 성직자들은 씨가 말랐다. 이제 회복은 기대하지 못하고 남은 생명력으로 버텨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그런데 공격을 집중시켰던 성문 앞의 방어 병력이 염치없이 회복을 해 대자 의욕이 사라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외성 전투도 이제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 아크가 히죽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실 아크는 외성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이번 공성전의 최대 난코스로 예상했다. 고등어 토막 내기 전략 덕분에 다크에덴이 300명 많은 숫자로 시작한 전투였지만, 아크에게는 우선적으로 방벽을 지켜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다. 때문에 너구리족과 방벽을 지키기 위해 500의 병력이 방어 진형을 유지시켜야 했다. 결국 실제 접전을 펼치는 병사 숫자로 보면 다크에덴이 200명 적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다크에덴은 전반적으로 헤르메스 연합원보다 집단 전투의 경험이 부족했다. 절대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 전투는 다크에덴이 일방적으로 헤르메스 연합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이유는 첫째, 아크가 방어 진형에 많은 병사를 투입한 것처럼, 헤르메스 연합도 방벽에 많은 병력이 집중되었다는점. 그리고 둘째는 헤르메스 연합원보다 다크에덴의 병력이 사용하는 무기와 방어구가 몇 배나 강했기 때문이다. "뭐야? 이놈들 레벨은 250밖에 안 되는데 왜 이렇게 강한거야?" 다크에덴의 공격대와 충돌한 헤르메스 연합원들은 열의 아홉은 이런 당혹성을 터뜨렸다. 당연하다. 다크에덴이 이번 외성 공략에 사용하는 무기와 방어구는 바로 아크가 스탄달에서 구한 저주템이었다. 마기를 흡수해 보통 무기나 방어구보다 2 ~ 3배가 강력한 저주템, 물론 페널티가 걸려 있고 내구력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단기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크는 외성 전투에 참가할 병사들에게 저주템을 대방출한 것이다. 덕분에 다크에덴은 전투 초반에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확실한 돌격대장이 둘이나 있으니까.' 1명은 동방 민족과 성벽을 공략하는 샴바라. 다른 1명은 바로 이슈람이었다. '솔직히 사범님이 이렇게까지 활약하는 건 좀 의외였어.'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샴바라와 함께 적을 몰아붙이는 이슈람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는 이슈람의 활약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이슈람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강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실. 게임 속에서는 허접한 상인에 불과했다. 2차 전직을 했다고 하지만 상인은 상인. 상인이 전투에 참가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오버였다. 그러나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이슈람은 아크나 삼바라와 대등, 아니 그 이상의 전투력을 선보였다. 그 이유는 2차 전직을 하며 생긴 스킬 때문이었다. 스탯? 돈으로 사겠어!(초급, 패시브, 직업 전용) : 크로닐이 상인의 몸으로 전사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창안한 비전의 스킬. 이 스킬을 가진 상인은 배틀머천트의 아티팩트인 '용맹의 황금 돼지'에 일정량의 돈을 지불하고 1시간 동안 각 스텟을 다른 스텟으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환되는 스탯은 지불하는 금액이 따라 달라집니다. 단, 전환 가능한 스탯은 최대 80%를 넘을 수 없습니다. 《10당 1골드의 가격으로 1시간 동안 스탯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상인으로 캐릭터를 키워 온 이슈람은 당연히 대부분의 스탯이 지능과 지혜, 운에 집중되어 있었다. 듀얼리스트로 전직해 파이터의 능력이 생겼다고 해도 스탯이 그 모양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스탯? 돈으로 사겠어!'는 그런 점을 보완하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이슈람은 전투가 시작되자 수백 골드를 사용해 지능과 지혜, 운 스탯을 몽땅 힘과 민첩, 체력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뭐,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의 스킬을 성향만 전환시킨 것이라 동 레벨의 전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한 번에 전환시킬 수 있는 스탯은 80%가 한계이니 수백 골드를 투자해도 능력치는 전사보다 낮았다. 그것이 두 가지 속성을 가진 듀얼리스트의 한계. 그러나 그 효과가 적용된 사람이 다름 아닌 이슈람이었다. 전투 능력만 놓고 보면 공성전에 참가한 누구보다 월등한 사람인 것이다. '스탯이 비슷한 수준이 돼도 사범님과 맞짱 뜰 수 있는 유저는 거의 없어.' 그러나 사실 이슈람의 활약에는 아크조차 눈치채지 못한 또 다른 스킬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밑지고는 못 살아!(초급, 패시브, 직업 전용) : 손해 보고는 못 사는 투철한 상인 정신으로 탄생한 스킬입니다. '밑지고는 못 살아'는 사용자가 적에게 공격받을 경우, 50% 확률로 받은 데미지를 흡수해 그중 10%를 사용자가 받은 충격과 똑같이 적에게 돌려줍니다. 《50% 확률로 10%의 데미지 돌려주기》 이 스킬은 '스탯? 돈으로 사겠어!'를 사용해도 전사보다 약할 수밖에 없는 배틀머천트를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킬이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유저에게 생겼다면 그리 큰 효과는 발휘하지 못했을 스킬이다. '50% 확률로 10%의 데미지 반사면 꽤 괜찮은 스킬이네.' 아크 역시 이 스킬 정보를 확인하고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나 이 스킬에는 아크조차 눈치채지 못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받아라! 크억,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악!" 이슈람을 공격한 유저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그 이유는 바로 '밑지고는 못 살아!' 스킬의 '사용자가 받은 충격과 똑같이' 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스킬 정보를 자세히 읽어 보면 알겠지만 '밑지고는 못 살아!'는 단순히 데미지를 반사하는 스킬이 아니었다. 데미지와 함께 이슈람이 적에게 공격받을 때 느꼈던 통증도 적에게 반사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이슈람의 패인 수치가 100%라는 것. 다시 말해 이슈람이 검에 베이면 공격자 역시 정말 검에 베인 듯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10%라 실제로는 이슈람이 느끼는 고통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지만, 게임 속에서 난생처음 그런 고통을 느껴 본 유저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겁에 질려 또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뭐야, 이 녀석?" 그러나 아크는 물론 정작 이슈람도 유저들의 반응을 이해 하지 못했다. 어쨌든 이슈람은 '스탯? 돈으로 사겠어!' 와 '밑지고는 못 살아!' 덕분에 거의 무인지경으로 적진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샴바라와 이슈람이 적진을 헤집고 다닐 때였다. ㅡ아크, 수호탑 점령했다. 나머지는 네 몫이야. 확실하게 처리해라. 문득 아크의 귓가로 브레드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됐다. 이것으로 수호탑 2개가 내 손에 들어왔다!" 비로소 아크는 공성전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모든 고비를 넘겼다. 수호탑이 건재하면 전사로만 구성된 그웬의 1,300 병력으로는 절대 남은 시간 동안 방벽을 부술 수 없어. 이제야 고등어 토막 내기가 완성된 거야.' 그렇다. 대전략 고등어 토막 내기가 미완성이었던 이유는 바로 수호탑이 헤르메스 연합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헤르메스 연합이 수호탑을 부수면 아무리 너구리족이 달라붙어 수리를 해도 방벽을 몇 시간이나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수호탑의 가호를 받아도 집중 공격을 받으면 방벽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전에 외성의 적병을 완전히 제압하고 성벽에서 그웬의 병력을 견제하면 앞으로 3시간은 충분한 시간이다.' 그렇다. 사실 땅굴 1호를 이용하는 작전은 18시간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무의미한 전투로 병력 피해를 받으면서까지 18시간 뒤에야 작전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어차피 공성전은 24시간이 지나야 끝난다. '지배의 왕자'를 손에 넣어도 그 뒤에 그웬이 방벽을 뚫고 들어와 거듭된 전투로 약해진 다크에덴과 충돌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반가량. 수호탑을 다크에덴이 장악한 이상 그웬의 병력은 공성전이 끝날 때까지 성에 진입할 수 없으리라. 이제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내성을 공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수호탑까지 우리 손에 들어왔다! 잔당을 섬멸하라!" "우와아아아아아!" 다크에덴이 열띤 함성을 터뜨리며 헤르메스 연합의 잔당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잠시, 다크에덴은 드디어 외성의 병력을 제압하고 성벽까지 점령했다. "적의 잔당을 완전히 섬멸시켰습니다!" "현재 전사자 770명!" 1,400명을 상대로 전사자 770명이면 꽤나 선전한 셈이다. 이로써 남은 병력은 930명. 내성을 견제하고 있는 병력과 합하면 1,730명이다. '너구리족은 방벽을 수리해야 하고, 성벽에서도 그웬의 병력을 견제해야 하니 400명은 외성에 남겨 둬야 한다. 남은 병력은 1,330. 그 정도만 돼도 2시간 안에 내성을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마지막 전투다. 내성으로 향한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아크는 530의 병력을 이끌고 다시 성을 가로질러 내성으로 향했다. 내성 앞에 도착하자 정의남과 갱생단이 달려왔다. "아크, 외성은 다 정리가 된 거냐?" "네, 브레드와 레디안이 수호탑까지 점령했습니다." "그럼 이제 이놈만 남았군." 정의남이 내성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 앞은 여전히 전투가 한창이었다. 정의남은 800의 병력으로 내성을 포위한 채 화살을 쏘아 대고 있었고, 헤르메스 연합원들도 내성의 창문으로 화살과 마법을 난사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싸우고 있었지만 아크가 외성을 제압할 때까지도 전사자는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내성의 구조 때문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공략하기는 외성보다 내성이 더 까다로웠다.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고 해도 위가 뻥 뚫린 외성과 달리 내성은 지붕이 있는 완전한 건물 형태였다. 내성과 밖이 연결된 곳은 여기저기 뚫려 있는 창문과 성문이 전부. 외성처럼 성벽에 병력을 배치시켜 집중 공격을 퍼 붓는 방식의 전투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성 역시 성문과 성문과 성벽은 외성처럼 두텁다. 때문에 방어하기에는 외성보다 내성이 좋은 것이다. 게다가 보통 공성전이라면 외성을 통과한 시점에서 수호탑이 파괴돼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호탑도 멀쩡하다. 그러나 다크에덴은 공성 병기도 없는 상황. '결국 성 밖에서 헤매는 그웬과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아크는 그웬과 달리 100% 상태의 성문과 성벽을 공략해야 한다. 그웬이 방벽을 부수는 데 2시간이 걸린다면 현재 다크에덴이 내성 문을 부수는 데는 3배. 적게 잡아도 6시간 이상이 걸리리라. '하지만.........' 아크는 씨익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뒤이어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외성 문을 단숨에 날려 버린 '몽환의 모래시계'! 내성 공략 시간을 2시간 내외로도 충분하다고 말한 이유는 바로 이 '몽환의 모래시계' 때문이었다. "자, 시작해 볼까? 방패 부대, 성문으로 진격한다!" 내성 정면에 뚫린 창문으로 화사라과 마법이 날아왔지만, 그 정도의 공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성은 창문을 통해서만 밖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라 1,000의 병력이 있어도 실제 한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50 ~ 60명이 한계였다. 아크는 방패 부대로 적의 공격을 막아 내며 성문에 도착했다. 뒤이어 '몽환의 모래시계'를 발동시키자 성문이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지금이다, 둔기로 썩은 문짝을 날려 버려라!" 동시에 방패 부대원들이 철퇴와 워해머 따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일제히 썩은 성문을 후려쳤다. 콰콰콰쾅, 카캉, 카캉, 카캉! 그런데 쇳소리가 울리며 철퇴가 튕겨 나오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이건? 어떻게......?" 달려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던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허물을 벗듯 썩은 부분이 떨어져 나간 뒤, 또 다른 거대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몽환의 모래시계'는 지정한 목표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나무속에 있던 성벽 역시 영향을 받았다는 말. 그런데 500년이나 시간을 가속시켰는데도 철문은 방금 전에 만들어진 것처럼 번쩍번쩍 광택이 흐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이, 이건..... 미, 미스릴이다. 성문이 통째로 미스릴로 되어있어!" 드워프 출신의 전사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순간 아크는 드워프가 들고 있는 워해머가 자신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기분이 들었다. 미스릴........ 판타지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이름이다. 진은眞銀이라고도 불리는 미스릴은 오직 드워프만이 제련할 수 있다고 알려진 마법 금속이었다. 강도는 강철의 수십 배에 달하고 마법 저항력이 높아 예로 부터 고급 무구의 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미스릴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녹이 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견고해진다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몽환의 모래시계'로 시간을 가속시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이럴 수가......!"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크가 공성 병기를 포기하고 18시간이 지난 뒤에야 본격적인 공성을 시작한 건 오직 '몽환의 모래시계'로 단숨에 내성 문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후의 최우에 '몽환의 모래시계'가 통하지 않는 미스릴로 성문을 만들어 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미스릴 주괴鑄壞 하나에 10골드나 할 정도로 비싼 대장재료였다. 이만한 성문을 만들 정도면 최소 2,000개는 사용해야 했으리라. 다시 말해 성문 하나에 20,000골드나 들었다는 말이다. 솔직히 미친 짓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미친 짓이 아크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 '물론 이것도 성문이니 공격하면 부서지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아크는 방벽이 버틸 시간을 계산해 일부로 18시간을 허비한 뒤에 성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외성을 점령하느라 3시간 반을 허비해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반. 게다가 '몽환의 모래시계'를 맹신해 공성 병기를 모조리 폭파시켜 버렸다. 공성 병기의 도움도 없이 미스릴로 만들어진 성문을 부수려면 몇 시간이 걸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성 문은 수호탑의 가호까지 받고 있었다. 만약 내성 문을 파괴하기 위해 수호탑을 폭파시킨다면 외성문의 방어력까지 약해져 그웬이 들이닥치리라. 그렇게 되면 다크에덴은 그웬 병력과 내성의 병력에게 포위되어 버리는 것이다. '시간을 지체한 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이야!' 아크는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리다가 퍼뜩 고래를 들고 정의남을 바라보았다. "성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창문으로라도......." "무리다." 정의남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오기 전에 창문 쪽으로 돌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어. 하지만 내성의 창문은 모두 안쪽에서 철 격자로 막아 놓았다. 놈들이 화살이나 마법 공격을 하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창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아마도 예쩐에 네가 창문을 이용했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 라이덴이 성을 차지한 뒤로 설치한 모든 방어 시설은, 과거 아란과의 공성전에서 경험한 지식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아크는 창문으로 뛰어내려서 아란을 죽였고, 또 창문을 통해 잠입해서 라이덴에게 '지배의 왕좌'를 가로챘다. 때문에 라이덴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내성의 모든 창문에 '방범 창'을 설치해 놓았다. 적의 공격을 받으며 벽을 타고 올라가 방범 창을 뜯어내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설사 뜯어낸다고 해도 창문 몇개로 성에 난입할 수 있는 인원은 고작 몇명. 들어가자마자 고슴도치가 되어 창문 밖으로 버려지리라. "성에도 공성 병기가 있잖아. 그웬이 사용하던 폭뢰 투석기. 그걸 사용하면........." 잠시 생각하던 샴바라가 외성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아크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내 시설이라도 공병이 진입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탈취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10여 대의 폭뢰로 폭격하면 제한 시간 내에 성문을 부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내성은 성벽에서 폭뢰가 닿지 않는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의남이 분하다는 듯이 이를 갈아붙였다. "여기까지 와서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야 한다는 건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하는 데까지라도 성문을 공격해 보죠." "아니, 소용없어요. 미스릴 성문을 공격하느리 차라리 성벽을 부수는 게 빨라요." 아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사실이다. 당연히 성문이 성벽보다 얇겠지만 강철의 수십배에 달하는 내구력을 가진 금속이다. 그런 성문을 공격하느니 차라리 방위로 만들어진 수 미터의 성벽을 뚫는 게 나았다. 뭐, 낫다고는 해도 한 10시간 정도 공격해야 간신히 구멍 하나 뚫겠지만 말이다. '가만? 성벽에 구멍을 뚫는다고?' 그때였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되는 대로 지껄였던 말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내성의 성벽은 바위로 만들어져 있잖아? 그리고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면?' 잠시 옛날 기억을 더듬던 아크의 머리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는 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방법이 있어요!" "방법이 있다고? 뭔데?" 정의남과 갱생단, 샴바라, 이슈람, 레리어트의 시선이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그러나 아크는 친절하게 그들에게 설명을 해 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알았다. 필요한 것만 말해."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정의남 아저씨는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방금전처럼 계속 내성을 공격해 주세요. 저는 500의 병력을 이끌고 비밀 던전에 다녀올게요. 라카드,라자크, 너희들도 날 따라와. 이제부터 이건 시간 싸움이다." 내성의 진입만 하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직 하나, 시간 내에 내성에 진입할 수 있느냐다. ".....알았다. 네게 맡기마!" 정의남이 곧바로 병력을 움직여 내성에 소나기처럼 화살을 퍼부었다. 고개를 내밀고 다크에덴의 동향을 살피던 연합원들이 재빨리 창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사이 아크는 500의 병력을 이끌고 후원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화실을 낭비하지 마라. 놈들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면 때를 기다렸다 요걱해!" "전사들은 나를 따라 겨속 성문을 공격한다!" 정의남과 갱생단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펴졌다. 아크가 500의 병력을 이끌고 후원으로 간 뒤, 정의남과 갱생단은 헤르메스 연합원이 병력이 사라진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롣 수시로 병력을 이동시키며 격력하게 공격을 퍼부어 됐다. 현재 내성 주변에 남은 다크에덴의 병력은 830여명. 물론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승리할 수 있는 헤르메스 연합이 굳이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지만, 만의 하나라도 밖으로 나온다면 다크에덴의 병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적에게 타격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기는 하지만.....' 정의남은 내성을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전력을 다해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내성에는 흠집 하나 생기지 않았다. 애초에 검이나 화살 따위로는 데미지를 줄수 없는 성벽은 물론, 미스릴 성문도 철퇴 따위로 내려쳐도 끄떡없었다. 물론 한점에 공격을 집중시키면 움푹움푹 파여 들어갈때도 있었지만 조금만 공격의 고삐를 늦추면 바로 복원되었다. 아크가 너구리족을 이용해 방벽을 수리하듯이, 내성 문의 안쪽에도 헤르메스 연합의 공병대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아크는 대체 무슨 수로 이런 성벽을 뚫겠다는 거지?' 솔찍히 정의남은 이미 90%는 포기한 상태였다. 이미 아크가 후원으로 향한지 1시간 반이 흘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설사 성벽을 뚫을 만한 뭔가를 가지고 돌아온다고 해도 1시간으로 뭘 할수 있겠는가? 성벽을 뚫어도 1,000의 병력과 싸우다가 끝나리라. "큰일이군. 아크 녀석, 이번 공성전에 전 재사을 끌어넣었는데...." 그렇게 정의남이 답답한 표정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정의남 아저씨!" 멀리서 아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크와 병사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병사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병사들은 1시간 반 만에 완전히 파김치기 되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온 거냐? 성벽을 뚫을 방법이라는 건?" "여기에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병사들이 몰려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아크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정의남의 눈이 솥뚜껑 처럼 커졋다. 병사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어서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바닥에서 뭔가가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저건.....?" "기억하시죠?"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다!" 그제야 정의남은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저게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설마 저놈들을 데리고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 공성전 종료까지 50분밖에 남지 않았다. 저놈들을 이용해 성벽을 뚫는다고 해도 50분 만에 1,000명의 적을 뚫고 '지배의 왕좌'를 빼앗기는....." "1,000명의 적과 싸울 필요는 없어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자신이 세운 작전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포기했던 정의남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오오오, 그렇구나. 성벽을 뚫는다고 꼭 벽을 뚫을 필요는 없지." "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옮기는 게 문제에요." "그건 내게 맡겨라!" 정의남이 가슴을 탕탕 두르리며 소리쳤다. "이제부터 공격 방식을 바꾼다. 부대장들은 5명을 기준으로 3조 1번으로 병력을 평성하라. 그리고 한 반이 하나의 창문을 맡아 쉬지 않고 공격한다. 1조가 공격하면 2조와 3조는 대기. 1조의 공격이 끝나면 2조가 공격, 3조는 대기. 이런식으로 로테이션 공격을 한다!" 바로 오래전 나폴레옹이 사용했던 시간차 공격이었다. 그렇게 한 조가 공격하면 나머지는 화살 정전이나 주문을 외우며 대기했다가 앞의 조가 물러나면 바로 다음조가 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게 15명씩 나뉘어서 창문 하나를 맡고 공격을 퍼붓자 헤르매스 연합원들은 고개조차 내밀지 못했다. "지금이다! 나를 따르라!" 그때 샴바라가 100여 명의 동방 민족과 함께 성벽에 달라 붙었다. 갓 킬러로 전직한 샴바라는 물론, 동방 민족 역시 전직 암살자. 그들은 마치 닌자처럼 살고리가 달린 건틀렛으로 성벽의 틈세를 찍어가며 빠르게 성벽을 기어 올랐다. 5층 높이의 원뿔형 지붕까지 올라가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지붕에 도착한 샴바라와 동망 민족이 수십 가닥의 밧줄을 늘어뜨렸다. "자, 이제 이놈을을 옴가자!" 아크는 밧줄로 꿈틀거리는 것들을 묶었다. 그리고 신호를 보내자 동방 민족이 밧줄을 답아당겨 그것들을 지붕으로 끌어 올렸다. 그렇게 여섯 마리의 그것(?)을 모두 지붕에 올려놓은 아크는 다시 은밀히 300의 정예 병력을 지붕위로 이동시켰다. 그렇게 지붕에는 아크와 샴바라, 정의남, 갱생단, 이슈람, 레리어트를 위시해 400명의 정예와 여섯 마리가 모였다. "그런데 400명으로 놈들을 칠 수 있을까? 이제 시간이 50분도 남지 않아서 놈들은 벌써 이겼다고 생각해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아. 좀 더 빼내도 놈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다." "어차피 이작전으로 성에 돌입할 수 있는 인원은 이게 한계에요. 병력을 더 이동시킬 시간도 없고요. 그리고 내성에 1,000의 병력이 있다지만 5층에 걸쳐 나누어져 있어서 실제로는 한 층에는 200명 정도 밖에 없어요. ' 지배의 왕좌'가 있는 곳이라도 300명 이상 병력을 두지는 않았을 거에요." "그렇구나. 그럼 시작하자." "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집중해 라카드에게 원격 통신을 보냈다. '라카드, 시작해라.' "옛설! 어이, 해골. 주인이 시작하란다." 치이이이, 치이이이. 동시에 갑자기 죽은 듯이 있던 그것.... 큰 개만 한 크기의 구더기(?)들이 꿈틀거리며 입에서 노란 채액을 질질 흘려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붕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애시드그러브!' 녹아 들어가는 지붕을 바라보는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 아크가 병사들을 이끌고 비밀 던전으로 달려갔던 이유는 바로 이 애시드그러브. 변역하자면 산성 독 구더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예전에 시르바나 영주로 지낼때 아크는 갱생단, 묘족 등과 함께 비밀 던전을 5층까지 공략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아크가 특히 고생했던 곳은 던전 3층, 바로 이 구더기 때문이였다. 이구더기들은 비밀 던전의 주력 몬스터, 에이션트 이블 고트가 한두 마리씩 데리고 다녔는데, 이 녀석들이 뿜어내는 강산성 채액에 닿으면 장비품의 내구도가 단숨에 10%씩 쭉쭉 빨려 나갔다. 심지에 바닥이나 벽도 채액이 닿으면 녹아내릴 정도였다. '그런 구더기의 채액이라면 성벽도 녹일 수 있다!' 성벽을 뚫는다는 말에 그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였다. 거기까지 생삿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500의 병력을 이끌고 비밀 던전으로 향했다. 1년이 지난 비밀 던전에는 예전에는 비밀 던전의 3층까지 가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지만, 지금은 그때와 레벨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게다가 함께 들어간 병사들도 레벨 250대의 500명! 아크는 그야말로 밀어붙이듯이 비밀 던전을 뚫고 들어가 3층에서 구더기를 사냥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라자크의 '죽음의 방정식'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그렇다. 아크가 구더기를 데리고 나온 것은 라자크의 '죽음의 방정식' 덕분이었다. '죽음의 방정식'은 라자크의 뼈다귀를 대가로 시체를 좀비로 부활시키는 마법! 라자크는 A급에 속하는 구더기를 여섯마리나 부활시키기 위해 18개나 되는 갈비뼈를 뽑아야 했다. 그리고 비밀 던전 3층에서 라카드의 지시를 받으며 구더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비밀 던진이 시르바나 영지에 속한 지역이라 가능했던 작전이다. 그러나 정의남의 말처럼 이제 40분도 남지 않은 상황. 구더기로 성벽에 구멍을 내도 1,000명의 적을 섬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최상층에 있는 '지배의 왕좌'. 그렇다면 굳이 1층부터 적과 싸우면서 올라갈 이유가 없어. 반대로 위에서 내려간다!' 그렇다. 어차피 구멍을 뚫는다면 벽이나 지붕이나 마찬가지. 지붕에 구멍을 내고 들어가면 바로 최상층, '지배의 왕좌'가 있는 방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40분 정도, 그사이에 지붕으로 난입해서 '지배의 왕좌'를 차지하고 계단을 봉쇄하면 성을 차지할 수 있다!' "됐다!" 아크가 그런 생갈을 하는 사이 지붕에 직경 2미터 정도의 구멍 6개가 뚫렸다. 소리없이 뚫린 구멍들 밖에서 화살과 마법을 난사하는 다크에덴에게 정신이 팔린 헤르메스 연합원들은 머리위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카운트 열에 돌입한다!" 아크가 구멍으로 벌집처럼 생신 물체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후추 벌통 속을비운 벌집에 자극적인 후추를 채운 창작 요리. 충격을 주면 벌집에서 후추가 터져 나와 주변에 퍼집니다. <후추 벌통이 터지면 직경 10미터 안의 사람에게 눈 따가움과 기침을 유발합니다.> 창작 요리로 만든 후추 벌통! 6개의 구멍에 2개씩 12개를 던져 넣자 아래층은 순식간에 후추 가루에 뒤덮였다. 뒤이어 구멍에서 헤르메스 연합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뭐, 뭐야? 이가루는?" "이 냄새.....후추? 어디서 갑자기 후추가.....콜록!" "으악, 눈에 들어갔다. 따가워!!" "지금이다. 강하!" 그때 아크와 다크에덴의 정예병력이 아래층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후추를 잔뜩 들이켠 헤르메스 연합원들은 400명의 특공대가 다 내려올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조차 제대로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한 연합원이 눈을 비비다가 경악성을 터뜨렸다. "헉! 네, 네놈들이 어떻게.....?" "반응이 느리다!"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연합원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빙글 몸을 회전 시키자 연합원은 커다랑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림 같은 환상의 업어치기! 돌바닥에 내팽개쳐진 연합원의 생명력이 단숨에 쭉 빨려 나갔다. 그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의남은 곧바로 쓰러진 연합원의 가슴에 올라탔다. MMA 격투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 마운트 포지션! "자, 피할 수 있으면 한번 피해 봐라!" 꽝, 꽝, 꽝, 꽝, 꽝! 정의남의 주먹이 미사일처럼 연합원의 얼굴에 박혀 들어갔다. 한 방 때릴때마다 생명력이 쭉쭉 빠지던 연합원은 결국 그 자세로 운명을 달리했다. '유술'을 최상급까지 올린 정의남에게는 한 번 걸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그사이 몇 명의 연합원들이 정의남에게 달려들자 부동산이 수십 개의 못을 던지며 소리쳤다. "성문 앞에서 분사한 불끈이들의 복수다!" '가디언=병'으로 전직한 부돈산의 특기 '못 던지기'였다. 그렇게 정의남과 갱생단에 샴바라와 떠오르는 먼치킨 이슈람이 가세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블레이드 템페스트!" 콰콰콰콰, 콰콰콰쾅! 아크는 마법검을 폭발시켜 연합원들을 몰아붙였다. 아크의 예측대로 최상층에는 200여 명의 연합원밖에 없었다. 그곳에 아크와 400의 특공대가 70여 명만의 피해만으로 20분 만에 200의 적을 전멸 시킬수 있었다. "됐다. 정의남 아저씨, 병력을 동원해서 계단을 막아....." 아크가 안쪽으로 뛰어들어가다 우뚝 멈춰섰다. '없다!' 최상층 안쪽 방에 당연히 있어야 할 '지배의 왕좌'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째서? 분명 지배의 왕좌는 내성의 최상층 영광의 홀에.....' 중얼거리던 아크의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가 떠올랏다. 그렇다. 분명 아크가 영주였을때 '지배의 왕좌'는 내성 최상층에 있었다. 그런데 아크는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어 먹고 있었다. 바로 아크가 영주였던 시절에는 내성이 4층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5층은 시르바나 영지가 D에서 C등급으로 올라가며 중축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배의 왕좌가 있는곳은 이 아래층? 맙소사, 망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낸 아크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정의남 아저씨, 당장 4층으로 내려가서 3층에서 올라오는 계단을 봉쇄하세요!" "알았다. 서둘러라!" 정의남이 병력을 이끌고 허둥지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크 역시 뒤따라 계단을 내려갔다.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먼저 내려온 정의남과 다크에덴의 병력은 계단 아래에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정의남의 어깨너머로 4층의 모습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녀석이군." 4층 깊숙한 곳에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크가 경험한 일 중 당연 최악이라고 할 만한 장면 이었다. '이상하다 싶었다!'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라이덴을 노려보았다. 5층에서 20분이나 전투를 치렀다. 그사이에 연합원들이 단 1명도 라이덴에게 귓속말을 보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전투가 끝날때까지 다른 연합원들이 5층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왜? 그 이유가 바로 지금 4층에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라이덴은 안쪽에 자리 잡은 '지배의 왕좌'에 앉아 아크를 바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영광의 홀에는 무려 800명에 달하는 연합원들이 완벽한 방어진을 펼쳐 놓았다. 그렇다. 연합원들이 5층으로 올라오지 않은 이유. 라이덴이 내성의 병력을 4층에 집결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공성전 마감 시간까지는 불과 20분도 남지 않았다. 때문에 라이덴은 궅이 내성에 잔입한 아크와 다크에덴의 병력과 싸울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섣불리 아크를 잡겠다고 병력을 분산시키면 뜻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 그냥 영광의 홀을 병력으로 모아 놓고 20분 동안 '지배의 왕좌'에서 절망에 빠진 아크를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라이덴이 오만한 표정으로 양팔을 활짝 펼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인정하지. 고작 급조된 4,000명의 병력으로 이곳까지 들어오다니, 너는 확실히 대단한 놈이다. 하지만 '지배의 왕좌'를 차지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자, 기회를주지. 20분안에 이자리를 빼앗아 봐라!" '저 자식.....!' 아크는 이를 갈아붙이며 라이덴을 노려 보았다 그러나 전투는 분노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은 800명 남아 있는 특공대의 2배가 넘는 숫자였다. 게다가 5층처럼 좁은 영광의 홀에서 물샐틈없는 방어 라인까지 갖춰 놓은 상황. 무슨 짓을 해도 20분 안에 이 방어 라인을 뚫고 '지배의 왕좌'까지 갈 수 없었다. 아차피 이제 숨길 것도 없으니 모든 병력을 내성 지붕으로 이동, 진입 시킨다고 해도 20분안에 병력을 모아 800의 적을 물리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영역 선포와 신격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다면 혹시.....' 그러나 영역 선포의 유효 범위는 직경 100미터 영광의 홀은 직경이 150~200미터 정도 되었다. 다시말해 방어라인의 앞에서 영역 선포를 해도 '지배의 왕좌'까지 가려면 유효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내성에 모여있는 병력은 그야말로 헤르메스의 최상위 연합원, 못해도 이 즁 4~5명은 2차 전직을 했을 것이다. 영역 선포를 발동시키자마자 상쇄되어 사라지리라. '하긴 '화룡강림'을 발동시킨다고 해도 당장 800이나 되는 적을 뚫고 라이덴에게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리고 설사 뚫는다 해도 '지배의 왕좌'에 앉기도 전에 박살 나겠지.' 최후에 순간에 또다시 막혀 버린 것이다. "왜 그러지? 항상 미친 듯이 날뛰던 녀석이 꽤나 조용하군. 우물거리는 사이에 벌써 5분이 지났다고, 남은 시간은 15분. 여기까지 오기에 좀 짧은 시간 아닌가?" 라이덴이 능글맞게 웃어 대며 중얼거렸다. '저자식의 면상을 그냥....., 아니, 가만? 지금 내가 가진 전력은 330명만이 아니잖아?' 그때 갑자기 아크의 머리속에 벼락처럼 뭔가 떠올랐다. 순간 아크는 빠르게 적의 방어 라인을 훑어보고는 입가에 섬뜩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군. 그런방법이 있었어!' 아크는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또다시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려면 몇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적 병력을 한곳에 모아 두는것. 하지만 그 문제는 우리쪽 병력의 피해를 감수하면 충분히 가능해. 문제는 그 작전을 성공시켜도 적을 100% 섬멸 시킬수 없다는 점이야. 때문에 작전 성공과 함께 우리 쪽의 병력이 이곳에 진입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킨 아크가 눈을 반짝이며 작은 목소리로 정의남에게 속삭였다. "정의남 아저씨, 성 밖에 있는 병력을 모두 내성의 지붕에 집결시키세요." 뭐?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15분 정도밖에 없어. 이제 와서 병력을 지붕으로 집결시킨다고 해도 제한 시간 전에 여기까지 진입할 수 있는 병력은 고작 수백명. 게다가 병력이 늘어난다 해도 800명의 적과 싸우는 시간을 생각하면....." "상관없어요." 아크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정의남은 잠시 아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을 보니 뭔가 생각이 있구나. 알았다" 정의남은 곧바로 성 밖의 병사들에게 귓속말을 보내 병력을 내성 지붕으로 이동 시켰다. 어차피 내성의 연합원이 모두 4층에 집결해 있으니 병력을 이동시키는데 문제가 없었다. '이제 남은것은 라카드에게 연락해서.....' 아크는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놓고 라카드와 연락해서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확실하게 시간 내에 ' 지배의 왕좌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 마음의 여유 때문일까? '가만..... 어차피 지금은 공성전 중이다. 게다가 헤르메스 연합의 병력은 모두 4층에 집결해있고, 다크에덴은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이동한 상황. 내성 문애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쩌면 이건..... 기회다!' 아크는 방금전 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부분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다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라카드에게 원격 통신을 보냈다. '라카드, 라자크에게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구더기를 움직이라고 전해라.' 아크는 라카드를 통해 라자크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소환해제, 재소환을 해서 라카드를 내성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라카드와 라둔에게 '특별지시'를 내렸다. 그 특별 지시는.... "키키키키. 역시 주인이라니까." 라카드가 히죽 웃으며 구더기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자, 멍청한 구더기야. 빨리 시작해!" 라카드가 기리키는 곳은 바로 내성 문이었다. 그러자 구더기가 꿈틀거리며 내성 문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성문과 벽의 연결 부분, 경첩에 체액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내성 문은 경첩까지 미스릴로 되어 있지만, 바위까지 녹이는 구더기의 체액이 닿자 순식간에 녹아들어 갔다. 그렇게 몇 번, 좌우에 붙어 있는 모든 경첩이 녹아내리자 성문이 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수백 명의 공격에도 끄떡없던 성문이지만 내성 안에서 경첩 부분만 녹이니 미스릴로 만들어진 성문도 그 냥 고철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라카드는 불과 몇 분 만에 성문을 떼어 냈다. 그러나 라카드가 성문을 때어 낸 것은 공성전의 승패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이미 다크에덴의 병력은 내서으이 뒤로 이동해 지붕으로 올라가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라카드가 이런 상황에 성문을 때어 낸걸까? "이제 네 차례다.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라카드가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성문에 다가섰다. 그리고 갑지가 입을 쩍 벌리더니 엄청난 크기의 성문을 통째로 배 속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 라카드와 라둔에게 내린 '특별지시'였다. 아크의 목적은 성문을 뚫는게 아니라, 성문 그자체였던 것이다. 방금 전, 아크는 확실하게 '지배의 왕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작전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작전을 지시 하고 있을때, 잠시 있고 있던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누구나 보고 있었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난 보물. 바로 시가 20,000골드 상당의 미스릴 성문이었다. '미스릴 성문은 20,000골드 상당의 가치가 있는 엄청난 보물이다. 아무리 성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이만한 보물을 내성에 달아 놓는건 낭비야! 물론 공성전이 끝나면 미스릴 성문도 내 것이 되겠지만, 아무리 영주라도 일단 성의 시설이 된 미스릴 성문을 마음대로 뜯어다가 팡아먹을수는 없어. 하지만 공성전 와중에 소실된다면.....!' 아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미스릴 성문을 팔아 치우면 당장이라도 라셀 영지에서 빌린 돈을 갚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어! 게다가 마침 지금 헤르메스 연합원도, 다크에덴의 병력도 성문을 주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미스릴 성문을 훔칠 기회는 지금뿐이다. 이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공성전이 끝나느냐 마느냐 하는 심각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조차 미스릴 성문을 때어 내 팔아먹을 생각을 하는 점이 과연 아크 다웠다. 어쨌든 이미 내성에 있던 헤르메스 연합원들은 모두 4층에 모여있는 상황, 라카드를 방해할 만한 적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라카드에게 구더기 한마리를 데리고 내성 1층으로 이동 시켰다. 그리고 구더기를 이용해 경첩을 녹여 미스릴 성문을 통째로 뜯어낸 것이다. 그렇게 성에서 떨어져 나온 성문은 이미 성문이 아니었다 그저 순도 100%의 미스릴 덩어리 아이템. 때문에 크기가 얼마나 되든 가방기능이 붙은 라둔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쌕쌕쌕, 쌕쌕쌕! 단숨에 성문을 삼켜 버린 라둔이 혀를 날름거렸다. 잠깐 사이에 아크의 재산이 20,000골드나 불어난 것이다. 게다가 이 돈은 누구도 모르는 아크만의 수입이었다. "주인, 먹어 치웠어!" '좋아, 너희 모두 포인트 400 달성이다!' 아크가 씨익 웃으면 기튿한 소환수들에게 포상을 내렸다. 소환수들은 은밀한 작업(?) 덥누에 한순간이지만 아크를 절망에 빠뜨렸던 미스릴 성문은 이제 아크의 전리품이 되었다. 무려20,000골드짜리 전리품이었다. '자아,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8분남짓. 챙길 것도 다 챙겼고 준비도 끝났으니 슬슬 지배의 왕좌를 손에 넣어볼까?' 아크는 한 걸음 내디디며 라이덴을 노려보았다. "흥, 마치 다 이긴 것처럼 지껄여 대는군." "아직도 뭔가 해 볼 만한게 남았냐?" "남았지. 내가 마음막 먹으면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해도 날 막을 수는 없어." ".....헛소리!" "헛소리처럼 들리냐?" 아크가 씨익 욱으며 활찍 펼친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앞으로 5분 안에 네놈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마!" 아크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하자 라이덴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크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라이덴을 물먹여 온 놈이다. 물론 지금은 절대,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아크가 이렇게 나오자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유령처름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어. 맞아, 이런 상황에서 놈이 사용할 방법은 하나. 공성전이 끝나기 직전에 그 기술을 사용해 방어라인을 뚫고 지배의 왕좌에 앉으려는 속셈이다.' "전 병려그 밀집대형! 바늘 하나도 빠져나갈 틈을 만들지 마라!" 라이덴의 명령에 영광의 홀을 패우고 있던 연합원들이 한 덩어리처럼 꽉 조여졌다. 순간 아크가 득의의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다크에덴, 돌진하라!" "우와아아아!" 동시에 특공대가 푹풍퍼럼 연합원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뒤이어 요란한 함성과 쇳소리가 영광의 홀을 가득 채웠다. 특공대의 돌격에 라이덴의 얼굴에 약간 긴장감이 어렸다. 그러나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긴장감은 득의양양한 미소로 바뀌었다. 궁지에 몰린 특공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격하고 있었지만, 연합원의 방어 진형은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3~4분, 설사 당장 다크에덴의 병력이 수천 명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몇 분 만에 800명의 방어 진형을 뚫을 방법은 없었다. "크크크, 결국 최후의 발악이었군." 라이덴은 창밖으로 모래시께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려 느긋하게 절망하는 아크의 면상을 구경하려 할 때였다. "뭐, 뭐야?" 라이덴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 상황에는 결코, 절대, 아크가 이길 가망성이 없었다. 그런데 아크는 절망은커녕 오히려 자신만만한 미소까지 머금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아킈의 얼굴을 확인하자 라이덴은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이다!" 연합원들과 싸우던 아크가 소리치며 돌진했다. 그러자 내성에 진입한 다크에덴의 특공대 가운데 NPC들은 재빨리 물러나고, 유저들은 아크의 양옆으로 늘어서 방패를 앞세워 연합원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런식으로 밀어붙여 봐야 피해만 가중될 뿐인데, 대체 왜 갑자기 저런 짓을 하는 걸까? 라이덴이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텅컹, 쿠쿠쿠쿠, 쿠쿠, 쿠쿠..... 콰콰콰콰콰콰쾅! 육중한 마찰음이 울리더니 갑자기 머리 위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내성이 통째로 흔들리는 듯한 엄청난 충격과 광음! 동시에 확 뿜어져 올라온 흙먼지에 영광의 홀은 한순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흙먼자기 가라앉은 뒤에야 눈앞의 상황을 파악한 라이덴은 입을 벌리다 못해 턱이 빠져 버렸다. 없었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싸우던 800명의 연합원과 200여 명의 다크에덴 병사들이 한ㅅ군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500여명의 다크에덴 병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 다치 이거이 어디게 단 이리(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 라이덴이 떠들거리자 정의남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늘은 가리켰다. 그제야 라이덴은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수 있었다.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지금 라이덴이 있는 곳은 4층. 그위로 5층과 지붕이 있어야 하는데도 뻥 뚫려 밤하늘이 올려다보였다. 그리고 위에 있어야 할 천장과 지붕은 영광의 홀에 있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작전이었다. 이미 천장에는 여섯 마리의 구더기가 대기하고 있었던 상태, 아크는 그구더기를 이용해 55층 바닥과 지붕을 딱 영광의 홀만큼 도려낸 것이다. 그결과 5층 바닥과 지붕은 영광의 홀라 낙하. 그 아래에서 떼로 뭉쳐 접전을 버리던 연합원과 특공대는 수백 톤에 달하는 바위에 파묻혀 버린 것이다. 물론 딱 맞춰 도려냈다고는 하지만 살아남은 연합원들이 70여 명 정도 되었다. 그러나 현재 영광의 홀에 다크에덴의 병력은 무려 500명 이상이 되었다. 아크가 미리 뒤로 피신시켜 놨던 특공대의 NPC들-NPC는 유저와 달리 한 번 죽으면 끝이라 미끼로 사용할 수 없었다ㅡ그리고 미리 지붕으로 이동시켰던 다크에덴의 병력이 무너지는 천장과 함께 4층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800 대 330이, 한순간에 70대 500으로 변한 것이다. "이, 이럴수가.....!" 라이덴은 얼빠진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모든 상황은 명확했다. 그러나 라이덴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천장을 떨어뜨려 영광의 홀에 몰려 있던 적과 아군을 한꺼번에 물살시키거나, 떨어지는 천장을 타고 수백 명의 다크에덴 병력이 영광의 홀에 왔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째서 아크 놈이?' 라이덴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천장에 깔린 시체들 가운데 아크도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라이덴도 특공대의 일부를 피신 시키면서 아크가 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만약 그떄 아크까지 물러났다면 라이덴은 틀림없이 뭔가를 알아챘으리라. 그러나 아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설마 이런 식의 황당한 공격을 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아크가 천장에 깔린 것은 마지막까지 라이덴을 속이기 위한 방법! 아니, 속이기 위해서인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해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아크이 계획대로 진행되어 라이덴은 730의 병력을 한 방에 잃어버렸다. 그리고 외곽에서 간신히 위기를 넘긴 70명의 병력도 500에 달하는 다크에덴의 병력 때문에 '지배의 왕좌'에는 다가오지도 못했다. 최악의 상황! 하지만.....! "후.....후, 후후후후!" 적에게 포위된 라이덴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우뚝 웃음을 멈추더니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멍청한 놈들, 이제 끝났다. 설사 네놈들이 나와 헤르메스 연합원을 몽땅 죽인다고 해도 네놈들의 패배다!" "뭐? 뭔 헛소리야?" 다크에덴 500 병력으로 지배의 왕좌를 포위하고, 라이덴의 앞으로 다가서던 정의남과 샴바라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자 라이덴이 우쭐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다크에덴은 모든 병력을 하나로 묶어 놨던 단일의 군단. 그 유일한 세력의 군단장이 죽었으니 대체 누가 지배의 왕좌를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아크가 죽는 장면을 본 순간 라이덴이 승리를 확신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미 알다시피 공성전에서 '지배의 왕좌'에 앉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한 길드나 세력의 리더뿐이다. 헤르메스 연합의경우, 라이덴이 죽으면 실버문 길드장인 그웬이 왕좌에 앉을권리가 생기는 식이다. 여기서 문제는 다크에덴이 여러 길드의 연합체가 아닌, 단일 그룹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다크에덴 측에서 '지배의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크가 유일했다. 그런데 아크가 죽었다. 다크에덴이 헤르메스 연합을 전멸시밀 수는 있을지언정, 시르바나 영지를 차지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라이덴을 죽여도 왕좌를 뺏지 못하는 한 공성전은 헤르메스 연합의 승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라이덴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훗, 안 됐군. 멍청한 군단장 때문에 지배의 왕좌까지 장악하고도 앉을 사람이 없어서 영지를 빼앗지 못하다니, 한심하다 못해 동정심이 생길 정도야". "고맙기는 하지만 동정해 줄 필요는 없거든?" 눈앞에 쌓여 있는 시체와 천장의 잔해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실실거리던 라이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잔해 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투둑, 투두둑. 그때 시체들 속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몸을 이르켰다. "헉! 네, 네놈..... 대체 어떻게?" 순간 라이덴은 감전된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좀비처럼 일어나는 사내의 정체는 바로 아크! 헤르메스 연합원들과 함께 천장에 깔려 피 떡이 되었던 아크였다. 아크의 얼굴을 확인한 라이덴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성을 질러 됐다. "마, 말도 안 돼! 네, 네, 네놈은 죽었잖아! 내가 분명히 봤다고! 넌 죽었어! 죽은 놈이 왜 일어나는 거야? 이건 사기야! 인정할 수 없어!" "네놈이 이전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아크가 머리의 흙먼지를 털어 내며 씨익 웃었다. "법칙을 깨는 것이 유저의 스킬이라며?" 그렇다. 죽은 사람이 그 자리에서 부활한다는 것은 뉴 월드에서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때때로 스킬은 법칙을 뛰어넘는다. 바로 아크가 리자크의 '죽음의 맹약' 스킬로 죽음을 뛰어넘은 것처럼 말이다. '죽음의 맹약'은 데스 마스터인 라자크의 생명을 대가로 아크를 즉시 부활시키는 마법. 덕분에 라자크가 죽어 구더기들도 모두 사라졌지만, 이제 구더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런 젠장!" 아크가 되살아나자 외곽으로 밀려난 헤르메스 연합원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70명의 병력으로 다크에덴 500명의 방어 라인을 뚫는 것은 무리! 아크는 헤르메스 연합원과 다크에덴, 무려 1,000여명의 시체 위를 가로지르며 느긋하게 '지배의 왕좌'로 다가갔다. "우아..... 우아..... 우아아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라이덴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크는 라이덴의 어깨에 떡하니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시간 없어. 그냥 내려올래? 맞고 내려올래?" "우아, 우아! 우아아아아....." 라이덴이 '지배의 왕좌'를 부둥켜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고 내려오겠다는 말이군." 아크가 씨익 웃으며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샴바르가 짜증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젠장, 나는 항상 이런 역활이냐? 말할 놈, 영역 선포 '혈하'!" "히이익, 어 엉엉설프 아라라느크(영역 선포 아바라스크)!" 샴바라가 영역 선포를 발동시키자 라이덴이 기겁하며 영영 선포를 사아용해 상쇄시켰다. 그러자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잘했다. 이제 내 차례지? 영역 선포 '영광의 밤'! 신격 스킬 '화룡강림'!" 콰콰콰콰콰콰쾅!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떨어진 화룡이 아크의 몸에 휘감겼다. * 신격스킬 [화룡강림]이 발동됐습니다! 10분간 <불멸의 화룡>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발동 시 모든 경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 됩니다. +스킬 발동 시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50% 증가됩니다. +스킬 방동 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적에게 10~ 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방동 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 500%, 파티원의 화염 저항력을 100% 상승시킵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대 생명력의 50%가 회복됩니다. ..... 라이덴은 바비큐가 되었다. 화룡을 휘감은 아크는 정의남과 갱생단, 샴바라, 이슈람, 레이어트 그리고 뻥 뚫린 천장으로 꾸역꾸역 밀려 내려오는 다크에덴에게 둘러싸여 천천히 '지배의 왕좌'에 앉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1분. 아크는 마치 여흥을 즐기듯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남은 시간을 세었다. '30, 20, 10.....3, 2, 1!' 아크가 번쩍 눈을 떴을 때였다.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눈앞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공성전의 제한 시간이 완요됐습니다. 지배의 왕좌를 차지한 사람은 다크에덴의 공격대장 아크 님입니다. 공성전 규칙에 따라 아크 님은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영주의 특수 스킬 '권위'를 사용해 성내의 남아 있는 모든 적을 추방 시킬 수 있습니다. <시르바나의 영주 작위를 획득했습니다. 명성+6,000> "이제 내 집에서 그만 나가 주시지, 추방!" 아크의 목소리가 시르바나 성을 뒤흔들었다. ======================= BDY타이핑 act 7 대영주 =============================== ACT 7 대영주 "어라?" 차트를 뒤적이던 담당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차트에 적혀 있는 이름을 다시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이거 놀라운걸."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현우는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담당 의사의 다음 말에 신경을 곤두 세웠다. 현우가 병원을 찾은 이유는 몇일 전에 받은 어머니의 종합 검진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두 달에 한 번, 어머니의 종합검진 결과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상황이 달랐다. 어머니가 뉴 월드를 시작하고 처음 받는 종합검진인 것이다. 유니트를 사 드리기 전에 담당 의사의 의견을 묻고, 각종 인터넷 정보를 검색해 봤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러나 한변으로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가 혼자 힘으로 라셀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 사실 현우는 라셀 문제가 정리되면 직접 초보 마을로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직접 라셀로 찾아왔다. 자신의 발로 걸어서 말이다. 굳이 어머니 앞에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때 현우는 놀라움을 넘어 감동까지 느꼈다. 물론 게임 속이니 설사 다리가 없는 사람이라도 의지만 있으면 걷고 뛰고 날라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도 6년동안 누워 지낸 어머니를 지켜봐 왔던 현우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했다. 어쨌든 현재 비록 게임 속이라도 어머니는 정상인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현우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때 담당 의사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빙긋 웃었다. "검사 결과가 좋습니다. 예상 범위를 훨씬 넘어서 말입니다. 특히 신경 반응 테스트의 결과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두달 전에 비해서 30%나 향상됐군요. 30%면 지난 2년 동안 회복된 수치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 그게 정발입니까?" 당당 의사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현우는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전과 별로 다를 것 없다고 하셨는데....." "보호자 분은 상처가 생겼을 때 생체 조직이 재생되는 것이 느껴집니까? 몸이 좋아지는지 나빠지는지 환자가 잘 알수 없으니까 정기점진을 하는 거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뉴 월드에서처럼 생명력이 몇 %나 깍였는지, 무슨 상태 이상에 걸려 있는지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비싼 돈을 들여 가며 종합검진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환자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없으니 의사를 찾는것이다. "어쨌든 이번 종합검진 결과를 보면 가상현실 게임이 박소미 환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박소미 환자의 경우는 무엇보다 '자유롭게 윰직인다' 혹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굳어있는 신경을 자극하는 가장 좋은 약인 셈이죠, 좀 기적 같은 일이지만 실제로 박소미 환자와 비슷한 증상의 어떤 분은 몇년 동안 다리를 전혀 못 사용하다가 뛰어다니는 꿈을 꾼 다음날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례도 있습니다." 현우도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 비슷한 글을 본적이 있었다. 당시에는어머니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했지만, 이제 그런 기적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실 어머니가 뉴 월드를 시작해서 좋아진 건 단순히 신경이니 뭐니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건 바로 분위기였다. 어머니는 지난 6년간 병원 생활을 하면서도 현우에게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게 진짜 미소가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현우는 그 웃음 뒤에 가려진 그늘을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뉴 월드를 시작하고 난 뒤로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늘이 옅얻져 갔다. 그리고 항항 그린 듯한 미소만 직고 있던 어머니가 소리 내서 웃을 때도 있었다. 자유럽게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얘기할 수 있게 되어 6년이나 계속됐던 스트레스가 풀린 덕분이리라. 현우에게는 그게 이미 기적이었다. "이 상태라면 이제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환자와 면담했을 때도 꽤나 좋아 보였고 말입니다. 단 지나치게 게임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상현실 게임이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신경 계통에만 해당되는 겁니다. 아무리 신경 계통이 100% 회복된다고 해도 근육이 약해지면 곤란하니까요. 현실에세도 꾸준히 걷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현우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오, 현우야. 의사 선생이 뭐라고 하더냐?" 병원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자 권화랑이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마침 어머니는 물리치료와 재활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좋다고 하네요" 현우는 빙긋 웃으며 담당 의사와 나눴던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권화랑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정말 무서울 정도로 좋은 소식만 이어지는걸" 좋은 소식만 이어지다니요?" "실은 현우가 어제저녁에 시르바나라는 영지의 영주가 됐습니다." "네? 하지만 현우는 라셀의 영주잖아요" "겸임하게 되는 거죠." 권화랑의 말에 어머니가 약간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 "가렌에게 들어보니 라셀의 영주 일도 상당히 많다던데 다른 영지의 영주까지 되면 일이 더 많아질 거 아니니? 괜히 욕심 부리지 말고 다른 사람 시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처음에만 좀 바쁘고 그 뒤에는 거의 비서에게 맡겨 놓으니까요." 현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죽을 고생을 하며 손에 넣은 영주도 어머니에게는 '다른 사람 줘도 좋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이제 게임에 적응했다고 하지만 아직 초보자인 어머니는 뉴 월드에서 영주라는 직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얼마나 큰 이득이 생기는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현우는 아직 어머니에게 이번 공성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번 공성전에 얽혀 있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공성정을 치르느라 들어간 돈이 3만 골드. 현찰로 3억에 가까운 돈이다. 그 엄청난 돈을 추자해 시르바나 영지를 탈환한 이유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이쯤 되면 이미 게임이 아닌 사업이다. 그리고 아들이 전 재산를 쏟아부어 사업을 하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건강을 회복해 가는 어머니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시킬 이유는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제 공성전도 잘 끝났으니....." 권화랑이 어머니를 힐끔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러세요? 그런 눈으로?" 혜선이에게 들었습니다. 소미 씨 캐릭터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 캐릭터요? 제 캐릭터가 왜......" 고개를 갸웃거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올랐다. 그러자 권화랑이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흐흐흐, 소미 씨 캐릭터는 옛날 사진을 스캔한 거라면서요? 이제야 소미 씨의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아니, 보는 것만이 아니라....." 권화랑은 정혜선에게 어머니가 만든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흥분 상태였다. 그동안 어머니는 부끄럽는 이유로 권화랑에게 옛날 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의 모습을 3D 입체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데이트까지 할 수 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정의남은 뜨거운 콧김을 풍풍 뿜어내며 어머니에게 징그러운 시선을 보냈다. "흥, 누가 냄새나는 아저씨를 상대해 주기나 한데요?" 그러자 어머니가 얼굴을 붉히며 팩 고개를 돌려 버렸다. "뉴 월드에서는 알은체하지 말아요. 란셀에도 찾아오지 말고요." "에엑? 왜, 왜요? 제가 뉴 월드에서 소미 씨와 만나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여고 시절의 나겠죠. 하여간 남자들은 그저 어린 여자라면....." "그, 그건 오해입니다. 오해라고요. 어린 여자의 모습이라 좋다는 게 아니라 소미 씨의 어린 시절이라서 기대된다는 말을 한 한니다." "방금 전의 눈빛은 딱 원조교제를 기대하는 아저씨였거든요?" "모함입니다. 현우야,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내가 그렇게 파렴치한 놈이냐?"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렇지? 절대 아니지? 역시 너는 뭘 좀 안다니까." ".....방금 전까지는, 하지만 방금 전의 징그러운 눈빛을 보니 잘못 생각했던 것 같네요." "혀, 현우 너마저.....!" 현우의 배신에 좌절한 권화랑이 고개를 떨궈 버렸다. 그모습에 현우가 어머니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불상한데 한번 마나 주지 그러세요?" 음, 글쎄다. 지금부터 하는 거 봐서. 그나저나 땀을 좀흘렸더니 목이 마르네." 어머니의 말에 현우가 권화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권화랑은 왜 쳐다보냐는 듯이 멀뚱멀뚱 마주 보고 있었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어머니가 괜히 권화랑의 말꼬리를 잡는 것은 일종의 투정이다. 그리고 남자에게 이런 때야말로 오히려 점수를 딸수 있는 기회! 여자의 투정을 적당히 받아 주면 애정도ㅘ 신뢰감이 급상승하는 것이다. 그런데 둔탱이 관화랑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현우는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눈짓을 보냈다. 그제야 상황을 눈치챈 권화랑이 잽싸게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제,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생수? 주스?" "뭐, 꼭 마시고 싶은 건 아니지만 굳이 사다 주신다면 생수로 부탁해요." 어머니가 짐짓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흠, 역시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어머니다. 모처럼 투정을 부리면서 자판기에서도 살 수 있는 생수라니. 이래서야 어디 눈치 없는 권화랑에게 제대로 교육이 되겠는가? 어머니를 돕는 건 자식의 도리! "아저씨, 저는 캐러맬 마키야또" "에? 캐..... 뭐? 그건 어느 별에서 파는 음식이냐?" "캐러멜 마키야또요. 뭐안드로메다 제7행성에서 판다는 소문이 들리기는 하지만, 다행이 길 건너 커피 전문점에서도 팔아요. 되게 가깝죠?" 현우가 히죽 웃자 권화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어? 인상 쓰시는 거에요? 제가 갔다 올까요?" "누, 누가 인상을 썻다고 그래? 갔다 올게 갔다 오면 될거 아냐!" 권화랑이 잡아먹을 듯이 현우를 노려보다가 홱 몸을 돌렸다. 그때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달리는 남자가 좋더라" 그러자 권화랑이 움찔하더니 '전력질주'를 남발하며 후다닥 달려 나갔다. 현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권화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다리는 완전히 나으신 것 같네요." "그래, 다행이지 않니?" "어머니도 곧 나으실 거에요. 어머니가 직접 걸어서 결혼 식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 더 바랄 게 없을 거에요. 뭐, 그 전에 아저씨의 정신교육을 더 시켜야겠지만." "얘, 얘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어머니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며 흘겨보았다. "하긴 하셔야 하잖아요." "그, 그야..... 가만? 이러고 있으니 꼭 네가 내 아빠 같잖아. 다 늙은 사람 같은 말이나 하고, 정말 큰일이다. 매일 그렇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그런 늙은이 같은 소리나 하게 되는거야. 어떠니? 요즘 자주 만나고 있기는 하니?" "만나다니요? 누구요?" "혜선이 말이다." "그거야....." 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진지한 눈으로 현우릐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혜선이가 싫으니?" "그런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니라면 더 말할 것 없다." 어머니가 현우의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혜선이의 마음은 너도 알고 있지? 사실 여자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쉽게 대답해서는 안 되지. 하지만 여자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사내가 할 일이 아니야. 너도 그 정도는 알고 있지?"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문제가 문제다 보니 어머니도 조심스러워져서 자세한 얘기는 피하려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현우는 어머니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우 역시 이렇게 어중간한 상태로는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정혜선이 싫지는 않다. 아니, 처음에는 그저 여동생처럼 생각됐지만 그동안 많은 일을 겪고 보아 오면서 그 이상의 감정이 생겼음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현우가 장혜선에게 뭐라고 말을 못하는 이유는 레리어트, 강미수 때문이었다. 근래 강미수를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가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현우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 감정의 정체를 확인하지 않고 정혜선과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명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감정을 숨기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은 비겁하게 생각되었다. 정혜선에게 아직 '포코포코 인형'을 건네주지 못한 건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공성전이 무사히 끝나면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공정전이 끝나니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때문에 또다시 정혜선과 강미수에 대한 문제는 뒷전이 되어 버렸다. "의논하고 싶다는 게 뭐냐?" 잠시후, 집에 도착한 현우는 관화랑과 따로 시간을 내 마주 앉았다. "시르바나 영지에 관한 일이에요: "무슨 문제라도 있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문제가 생기기 않게 해야 한다는게 문제죠" "나 머리 안 좋다. 간단하게 말해라." "시르바나 성의 방어 전력이요." 그렇다. 현우가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르바나는 란셀과는 달리 언제든지 다른 연합이게 빼앗길 수 있는 영지였다. '일단 앞으로 한 달은 안심할 수 있지만.....' 현우가 떠나 있는 동안 나가란 지역의 공성전 규칙은 몇번이나 개정되었다. 과거 1,000여 명이 벌이던 공성전 규모가 이제 평균 4,000~5,000명. 공성전에 참가하는 인원이 늘어나면서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게 바로 군자금이었다. 병력 숫자가 많아져 한 번 공성전을 치를 때마다 막대한 군자금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공성전을 신청하는 쪽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공성전을 신청하는 쪽은 오랫동안 준비할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을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도전하는 연합이 있으면 좋든 싫든 보름에 한 번씩 공성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영지에서 꾸준히 수입을 얻어온 연합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만, 문제는 현우처럼 새로 영주가 된 사람이다. 공성전을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영지에서 제대로 수입을 얻기도 전에 이번에는 수성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 때문에 몇 개월 전에 공성전 규칙이 '영주가 새로 바뀌었을 경우, 영주는 한 달간 다른 연합의 도전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내가 걱정할 문제는 단순히 군자금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시르바나를 지킬 병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영지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공성전에서 승리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현재 현우에게는 영지를 지킬 방어 병력이 없었다. 이번에 결성한 군단 다크에덴은 공성전을 치르기 위해 소집된 병력. 공성전이 끝난 시점에서 해산될 병력이었다. '지금까지는 병력 따위는 필요도 없었지만, 이제 영지를 가지게 됐으니 최소한의 방어 병력을 보유해야만 한다.' 당연하지만 현우는 예전처럼 잠깐 영주를 해 먹고 말 생각이 없었다. 이제 시르바나 영지에 꾹 눌러앉아 마르고 닳도록 영주를 해 먹을 생각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만약 또다시 시르바나를 빼앗기면 두 번 다시 기회는 돌아오지 않아. 그러니 한 달 안에 시르바나를 지켜 낼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러나 이부분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휘하 세력을 만들면 공성전을 하지 않아도 병력 숫자 만큼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영지 소속 길드원이 되면 언제든지 공성전에 참가해도 따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영주는 영지에서 얻어지는 이득을 길드원에게 나눠 줘야 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영지에서 얻는 이득을 몽땅 영주가 독차지한다면 길드원이 힘들게 영지를 지켜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영지 병력의 숫자는 모든 영주의 고민거리였다. 병력이 많으면 영지를 지키기 쉬워진다. 반면 병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돈이 많이 들어간다. 때문에 영지에는 항상 필요 최소한의 병력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이덴이 1년 동안 C급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엄청나게 돈을 번 것처럼 생각되지만 5,000명이나 되는 연합원을 거느리느라 실제 수입은 몇백 골드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우는 그 문제에 대해 이미 대강 생각을 정리해 두었다. '일단 시르바나 영지의 방어 병력은 4,000명이 가장 적당해.' 현우는 일당 휘하에 둘 병력을 4,000으로 한정시켰다. 현재 나가란에서 활동하는 세력의 대부분이 4,000~ 5,000명이기 때문이다. 그히고 휘하 세력의 첫 번째 전력으로 생각한 세 바로 라셀 병력과 동방 민족이었다. 사실 현우는 이벙 공성전에서 NPC의 희생을 최소화시키는 부분에도 신경 썼다. 월랑족과 묘족은 드레드와 레디안에게 맡겨 상대적으로 안정한 수호탑으로 보냈고, 함께 성을 공략한 라셀 경비대원, 동방 민족도 대부분 정의남에게 맡겨 후방 견제용으로 활용했다. 어쩔 수 없이 전방에 나서야 했던 너구리족도 현우가 직접 상태를 살피며 '위대한 희생'을 사용해 거의 피해를 받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공성전에 참가한 전체 NPC 1,600명 가운데 전사자는 100여 명에 불과했다. 현우는 나머지 1,500명을 그대로 시르바나에 주저앉힐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가렌이나 아사벨과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물론 NPC 병력도 시르바나에 상주시키려면 돈이 들어간다. NPC도 땅 파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동방 민족과 바란족의 경우는 스탄달에서 병력을 빌린다는 방식이라 매달 일정량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공성전에서 전사자가 나오면 보상금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유저보다는 싸게 먹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2,500명은 유저로 채우는 수밖에 없어.' 결국 좋든 싫든 길드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저는 아저씨가 그 길드장을 맡아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권화랑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네. 아저씨는 그동안 스탄달에서 수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계셨잖아요. 혼자 돌아다니기만 하는 저보다는 아저씨가 나을 것 같아요."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권화랑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여기서 현우가 굳이 권화랑에게 길드장을 맡기려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단순하게 귀찮아서. 현우도 예전에 다른 온라인 게임을 하면서 장난삼아 길드를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길드장이 돼 보니 귀찮은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길드원들은 어디에서 조금한 문제가 생겨도 길드장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런 문제는 좀 낫지만 특히 머리가 아픈 것은 길드원끼리 감정싸움이 일어났을 때였다. 그럴 때는 한쪽 편을 들어줄 수도 없어 난감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길드원이 고작 100명도 되지 않았을 때도 이런 문제 때문에 사냥 중에도 쉴 새 없이 귓속말이 날아왔다. 그런데 2,000명이 넘는 길드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라셀과 시르바나, 영지를 2개나 맡게 되어 영주의 업무만으로도 한동안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인데 길드장까지 맡게 되면 사냥은커녕 아예 꼼짝도 못하게 되리라. '하지만 화랑 아저씨는 원래 그런 일을 좋아해' 그렇다 전직 형사에 현재는 전과자의 재활 교육을 맡고 있는 권화랑은 민원을 해결하는 일에는 전문가다. 또한 그런 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쩌면 권화랑이야말로 길드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유저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오지랖 덕분에 권화랑이 이번 공성전에 참전할 때 스탄달에서 700명이나 되는 유저들이 따라와 주지 않았던가. '그리고 화랑 아저씨가 길드장이 되면 병력 유지비의 부담이 줄어들어' 이게 권화랑이 길드장이 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였다. 다시 말하지만 영지에 소속된 병력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건 영주 직속이 아닌, 연합 길드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영주 직속 길드와 연합 길드는 경우가 약간 다르다. 영주 직속 길드는 세력의 중심이라 그만큼 대우를 해 줘야한다. 그러나 연합 길드는 대부분 영주가 길드 유지비 명목으로 인원수에 따라 일정량의 돈을 지불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그 금액은 연합 길드의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전체 유지비가 직속 길드원에 비해 70% 밖에 들지 않았다. 다시 말해 길드장을 현우에서 권화랑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병력 유지비가 30%나 절감된다는 뜻이다. "음, 좋은 방법이다. 하긴 이번 공성전은 처음부터 네가 모든 군자금을 투자해서 시작했지. 예전부터 함께 고생하며 영지를 차지한 동료들이라면 몰라도, 공성에 성공한 지금에와서 길드를 만들면서 다른 영지의 직속 길드원처럼 대우해줄 필요는 없지. 그렇다고 다른 영지의 직속 길드보다 대우가 적으면 불만이 나올 테고 말이야." 설명을 들은 권화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며 웅얼거렸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게..... 소미 씨하고....." 권화랑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이제 공성전도 끝났겠다. 여고생으로 변신한 어머니와이 데이트 계획이 빼곡한 것이다. 그때 현우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제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어머니와 데이트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어? 야, 정말 치사하게 굴래?" "아니, 그건 농담이고요. 아차피 연합 길드장이 된다고 시르바나에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요. 공성전이 있을 때만 길드원을 소집해서 시르바나에 오면 돼요. 매번 공성전을 하게 된다고 해도 보름에 하루라고요. 게다가....." 현우가 슬쩍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행각해 보세요, 길드장이 되면 2,500명이나 되는 부하를 거느리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어머니 앞에서 부하를 주욱 세워 놓으면 폼 나지 않겠어요?" "오오오, 그러고 보니....." 권화랑은 현우의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갔다. "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외에는 그런 중대한 일을 맡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네 부탁대로 내가 연합 길드장을 맡으마, 어차피 이제 스탄달은 레리어트나 생생단 녀석들에게 맡겨 놔도 별문제는 없으니까." "잘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2,5000명의 길드원은 어디서 구할 생각이냐? 그 만한 인원이라면 쉽지 않을 텐데?" "뭘 새로 구해요? 이제 곧 영주성에서 부활할 텐데." 현우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현우가 생각한 2,500명의 연합 길드원은 바로 다크에덴의 유저들이었다. 새삼스럽지만 현우는 한 달 뒤 수성전을 치러야 한다. 나가란 5대 세력위 하나였던 헤르메스 연합이 차지하소 있었을 때는 몇달이나 송성전이 없었지만, 영주가 바꼈으니 이제 기회를 노리던 연합이 한 번쯤은 건드려 볼 만한 먹잇감이 된 것이다. 틀림없이 유예긱단이 끝나는 한 달 뒤에는 집적거리는 연합이 생겨나리라. '그런 점을 생각하면 역시 길드원은 공성전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해야 해.' 그러나 막상 '공성전 경험이 필'의 유저를 찾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성전은 길드나 연합 단위로 치르는 것이라, 이미 길드에 가입된 사람들만 공성전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용병으로 참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크에덴은 이번 공성전을 위해 특별 훈련을 시켰고, 송성전도 경험해 보았다. 그런 유저를 단숨에 2,500 이상 확보할 수 있는데 뭐하러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그 사람들도 싫어하지는 않을 거에요. 연합 길드라도 일단 영지 소속이니까." 일반 유저가 영지 소속 길드원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현재 시르바나 영지의 영주는 TV에도 출연하는 다크울프! 길드 가입을 제안하면 쌍수를 들고 반기리라. 결국 그들은 길드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 것이다. "좋아, 그럼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권화랑이 두꺼운 가삼을 팡팡 치며 대답했다. '자, 그럼 방어 새력에 대한 문제는 해결했고.....' 그러나 진짜 골치 아픈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역시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문제는 돈인가?' 사실 현우는 현재 굉장한 자금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번 공성전에 참전했던 유저들에게 약속했던 성공 보수였다. 다크에덴에 참가했던 유저의 숫자는 2,700명. 물론 그들전부에게 성공 보수를 지급할 수는 없지만, 공성에 성공하면 부대별로 300~500골드의 보수를 약속했었다. 100명 단위의 부대가 25개정도 있었으니, 7,500~12,500골드가 필요 하다는 말이다. 군자금에 그만한 성공 보수까지. 솔직히 무리한다 싶었지만, 당시에는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군단병의 사기를 위해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다. "뭐, 이번 공성전 군자금에서 5,000골드 정도 남았고, 얼마 전에 복실이가 파라돈에서 '네크로맨서'의 내단을 팔아 몇천 골드 벌어 놨으니 그 돈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스릴 성문을 처분하면 20,000골드 정도의 돈도 들어올 거고, 그정도면 성공 보수를 지급하고도 15,000골드 정도는 남을 거야. 하지만 앞으로 필요한 돈은 고작 그 정도가 아니야." 현우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새삼스럽지만 현우가 3만 골드나 투자해서 시르바나 영지를 탈환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였따. 스탄달과 라셀 시르바나를 잇는 삼각무역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시르바나를 탈환함으로써 가장 힘든 과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막상 시르바나를 탈환하고 보니 주머니에 돈이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알아본 교역소의 가격은 10만 골드! 필요한 돈은 그것만이 아니야. 삼각 무역을 제대로 시작하려면 상성과 상단을 꾸릴 마차도 필요해. 상선은 작은 거라도 3만골드, 마차까지 몇 대 구입하려면 1만 골드, 거기에 수익이 날 때까지 필요한 운영 자금이 1~2만 골드, 결국 삼각무역을 제대로 시작하려면 15만 골드는 필요하다." 이게 현재 현우의 최대 고민거리였다. 물론 교역소와 상선, 상단을 사지 않아도 삼각무역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삼각무역으로 만족할 생각이었다면 굳이 3만 골드나 써 가며+성공 부소까지 포함하면 대략 4만 골드-시르바나를 탈환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대박을 내기 위해서는 스탄달 교역소와 시르바나의 대륙상회를 손에 넣고 떡 주무르듯이 해야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한 달에 수만 골드, 아니 아크 상점과 스탄달 교역소 대륙상회의 연계 효과로 10만 돌드 이상의 고정 수입도 결코 꿈은 아니야. 일단 시작만 하면 100% 대박난다!" 이미 현우는 아크 상점을 중심으로 소규모 삼각무역을 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다시 말해 경험도 풍부한 것이다. 그러고 그 삼각무역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이사벨에게 교역소를 구입할 자격을 획득한 아크가 유일했다. 성공률 100%의 대박 사업!! 게다가 시르바나를 탈환해 모든 조건을 완수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업 자금이 없는 것이다. "젠장, 돈만 있으면 대박인데....." 사실 현우는 일당 시르바나만 탈환하면 나머지는 천천히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시르바나가 손에 들어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영주를 2개나 가지고 있지만 15만 골드를 마련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나 100골드도 200골드도 아닌 15만 골드다.. 병범한 유저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돈, 고민한다고 15만 골드가 뚝 떨어질 리가 없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돈을 모아서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나?" 그렇게 현우가 한숨을 푹푹 불어내고 있을 때였다. 문득 거실에 있는 TV에서 나오는 뉴스가 귓가에 들려왔다. 별생각없이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던 현우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지, 그방법이 있었잖아!" 현우는 사업 자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 act 8 DREAMS COME TRUE typing by 보라미르님 ===================================================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성전 기간 동안 보따리를 짊어지고 도망쳤던 영주 직속 비서관. 영지 관리, 법률 자문, 자금 운영, 기타 등등의 기능을 탑재한 베라미가 예를 취하며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르바나를 떠나기 전에 뿌렸던 돈이 아직도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돈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베라미만이 아니었다. "성으로 돌아오며 살펴보니 영지민들도 무척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공성전이 진행될 때 전쟁의 신전에서 아크 님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던 사람도 적지 않더군요. 모두들 과거 영주님의 선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죠." '선정이 아니라 골드를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어쨌든 영지민들이 좋아해 준다니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전임 영주의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나?"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았죠. 그냥 그런 영주였습니다." 베라미가 안경을 추어올리며 쌜쭉 웃었다. 묘하게 냉소적인 성격은 1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크에게만은 항상 예의를 갖췄다. 그게 바로 돈의 위력이었다. 어쨌든 베라미의 얼굴을 다시 보니 새삼 시르바나를 탈환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부디 오랫동안 영주로 남아 주십시오." "그럴 생각이야." 아크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내가 없는 사이에 영지가 얼마나 변했는지 좀 알고 싶은데?" "물론 준비했습니다." 유능한 비서관이 바로 서류철을 건네주었다. 서류철을 받아 들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현재 소유한 영지 정보창 <란셀, (시르바나)> [영지] : 시르바나 [현재 영주] : 아크 [등급] : C [분류] : 대형 영지(소속 마을 15개) [영지의 주민 수] : 13,040명 [주민 유대감] : 980(+98) [주민 충성도] : 530(+53) [영지의 총수입] : 10일 기준 387,000골드 [현재 영지의 자산] : 120,300골드 [현재 영지의 가치] : 615,250 [영지의 명성] : 499,400 [발전도] : 46,650 [발전 속도] : 45,950(▽하락 중) [상업도] : 67,570 [문명도] : 53,360 [무장도] : 31,500(+945) *현재 영지에 적용되는 효과 [전쟁의 신전] 무장도 +30%, '치안 유지'효과 [후원의 성당] 주민 충성도+10%, 주민 유대감+10% [용병 대기소] 영지에 모이는 떠돌이 용병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또한 용병 대기소의 등급에 따라 영주가 용병을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등급 : A) *현재 영지 상황 - 치안이 문제없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 상승 중) - 추수기라 영지의 수입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 상승 중) - 현재 경작지 확장, 홍수에 대비한 저수지 시설 확장, 각종 공방의 시설 확장, 실버 강의 다리 건설, 용병 대기소 시설 확장 등의 영지 공공사업이 대기 중입니다. '후후후후.' 정보창을 보고 있자니 실실 웃음이 새 나왔다. 처음 시르바나의 영주가 됐을 때는 영지를 관리한다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차피 일주일 뒤에 라이덴에게 팔아먹을 생각이라 아예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르고 닳도록 영주를 해 먹을 생각이라 아크는 영지 정보를 꼼꼼히 챙겨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 란셀의 영주가 되어 직접 영지 운영을 해 본 뒤라 정보창만으로도 시르바나의 상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시르바나는 란셀과는 수준이 달라.' 영지에 소속된 마을 15개, 주민 수 13,040명! 시르바나는 주민 수 732명의 란셀에 비하면 20뱌에 달하는 거대한 영지였다. 그러나 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영지의 수입이었다. 한 달-현실 시간으로 10일- 수입이 무려 387,000골드! 란셀 영지의 40배에 달하는 수입이었다. 이는 다른 나가란의 영지에 비해서도 상당히 많은 수입이었다. 시르바나가 그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입지 조건의 영향도 있었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대륙상회의 공이었다. 나가란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대륙상회의 매출은 시르바나 영지의 수입 가운데 30%를 차지하고 있었다. '영지 수입이 40만 골드나 되는데 자산이 12만 골드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돌려 말하면 그만큼 라이덴이 영지 운영을 열심히 해 왔다는 말이었다. 수입이 생기면 바로바로 영지의 각종 사업에 투자하며 영지를 키워 왔으리라. 때문에 영지의 가치가 60만을 넘어선 것이다. 그러나 라이덴의 수완은 딱 거기까지였다. 큰 문제 없이 영지를 꾸준히 성장시켰지만 아크가 대륙상회를 만들었던 것처럼 인상적인 일을 하지는 못한 것이다. 베라미가 '그저 그런 영주'라고 칭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단 각종 수치는 꽤 괜찮은 편이군. 하지만....." "발전 속도가 걸리시는 겁니까?" 베라미가 눈치 빠르게 질문했다. 그렇다. 현재 시르바나의 발전 속도는 45,590. 낮은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발전 속도가 하락 중이라는 점이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얼마 전부터 전임 영주가 기간산업의 성장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영지를 배울 때도 많고, 엉뚱하게 용병 대기소 따위를 세운다고 돈을 털어 넣기도 했죠." '아하, 그런 건가?' 베라미의 설명에 아크는 대강 상황을 파악했다. 스탄달 정복 전쟁과 무법항 소탕 문제 때문에 라이덴이 시르바나 영지 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영주가 없어도 한 번 정략을 설정해 놓으면 나머지는 베라미가 알아서 처리한다. 그러나 역시 영주가 꼼꼼히 관리할 때보다는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영지의 발전이나 생산과 무관한 용병 대기소를 만들었다는 점도 문제였다. 사실 아크는 공성전을 치르기 전에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나가란에는 떠돌이 용병이라는 NPC가 있었다. 공성전에 동원할 수 있는 용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 영지에 불과 200~300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공성전에 필요한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반면, 고용 비용이 상당히 비쌌다. 아크가 공성전을 신청하고 시작될 때까지 여유 시간은 불과 이틀. 게다가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는 라이덴이 그 사이에 600명이나 되는 용병을 고용했다는 게 수상쩍었다. '그게 용병 대기소 덕분이었군.' 용병 대기소를 만들어 놓으면 영지에 모이는 떠돌이 용병이 늘어난다. 게다가 등급이 올라가면 영주가 용병을 고용할 경우, 더 강한 용병이 모이고 충성도가 올라간다. 그리고 고용 비용까지 더 저렴했다. 떠돌이 용병을 위해 대기소까지 만들어 준 영주에 대한 감사의 표시 같은 것이란다. 라이덴이 용병 대기소를 만든 이유는 뻔했다. '아마도 스탄달이나 무법항에 보낼 용병을 저렴하게 고용하기 위해서였겠지.' 어차피 영지에 돈을 쌓아 둬 봐야 자신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용병을 고용할 때 드는 돈은 라이덴의 쌈짓돈. 다시 말해 영지의 돈으로 용병 대기소를 지어 자신이 용병을 고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는 속셈이었으리라. '덕분에 이번에도 시간도 돈도 부족한 상황에서 600명의 용병을 고용할 수 있었겠지.' 뭐, 결국 그게 다 삽질이 돼 버렸지만 말이다. 어쨌든 영지의 각종 정보는 아크를 꽤나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아크를 만족스럽게 해 주는 게 바로 영지의 등급 문제였다. "이미 아시겠지만 나가란의 영지는 한 달 총수입이 45만 골드. 영지의 가치와 명성이 60만을 넘으면 삼국의 국왕 폐하에게 등급 승격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게 베라미의 설명이엉ㅆ다. 현재 시르바나의 가치는 대륙상회 덕분에 이미 60만을 넘었다. 수입과 명성을 각각 5만과 10만만 더 올려놓으면 B급 영지로 승격할 수 잇다는 말이다. 그리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영지의 등급이 올라가면 엄청난 보너스가 주어진다. 영주성은 몇 배나 더 견고해지고, 보유할 수 있는 대형 병기도 늘어난다. 또한 수호탑의 효과도 더욱 상승해서 공성전을 할 때 상당한 보너스가 적용된다. '등급이 올라가 버렸으면 공성전에 실패했을지도 몰라.' 그러나 역시 영지의 등급이 올라가서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영주의 월급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본래 영주의 월급은 영지 수입의 2%다. 그러나 이 월급은 영지의 등급이 올라갈 때만 적용된다. 다시 말해 현재 영지 수입이 40만 골드라도 C급으로 승격될 때의 수입을 기준으로 영주의 월급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때문에 영지 수입의 2%라는 규칙이 있어도 실제 영주가 받는 월급은 D급은 3,000골드, C급은 6.000골드라는 식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B급 영지의 영주가 받는 월급은 9,000골드. 다시 말해 한 달에 18,000골드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1년 동안 죽어라 노력해서 이제 B급 영지 승격이 바로 코앞인데 성을 빼앗겼으니.....' 지금쯤 라이덴은 방바닥을 긁어 대며 통곡을 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간 라이덴이 한 짓을 생각하면 동정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좋아. 일단 이번 공성전으로 피해를 입은 성문과 내성의 천장을 수리한다. 예산은 신경 쓰지 말고 최상의 상태로 복구시켜 놓도록. 그리고 앞으로 한 달은 공성전이 없을 테니 대기 중인 사업을 모두 풀가동시켜라. 세 달 안에 영지를 B등급으로 승겨시키는 게 목표다." "네?" 아크의 명령에 베라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보셨다시피 현재 영지 보유 자산은 120,300골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벌써 잊으신 겁니까? 영지 총수입의 30%는 삼국의 국왕 폐하께 세금으로 바쳐야 한단 말입니다. 그게 116,100골드입니다. 실제로 영지의 보유 자산은 4,200골드밖에 안 된단 말입니다. 이 정도로는 영주성의 보수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 달에 수입이 들어와야 겨우 영주성이나 좀 보수할 수 있을까 말까 한데 대기 중인 사업까지 모두 진행시키라니요?" "걱정 마, 잠시 후면 돈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크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예전에 짝퉁의 스킬을 이용해 만든 '이중장부'! 아크는 월커스에게 '이중장부'를 건네주고 대륙상회의 수입 가운데 일부를 빼돌려 왔다. 공성전을 시작하기 전에 월커스를 만나서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그 액수가 무려 100만 골드에 달했다. 물론 이 돈은 아크가 직접 착복할 수는 없는 돈이다. 아크가 그런 돈을 '이중장부'까지 꾸며 빼돌린 이유는 지금처럼 다시 시르바나를 탈환했을 때 각종 사업에 팍팍 투자해서 단시간에 영지의 등급을 승격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지가 승격되면 영주의 월급이 올라간다. 결국 결론적으로는 아크를 위해 사용하는 셈이다. '100만 골드를 쏟아부으면 한 달 안에 확실하게 영지 등급을 올릴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기회란 항상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베라미는 여전히 불안한 눈치였다. "정말 그만한 돈을 구할 방법이 있는 겁니까? 아시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문제가 생겨 삼국에 세금을 바치지 못한다면 영주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원한다면 오늘 안에 돈다발을 안겨주지." "알겠습니다. 그럼 영주님을 믿고 당장 영주성 복구에 필요한 자재를 주문하고, 대기 중인 사업을 모두 재개하도록 지시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영주님 말대로 세 달-현실 시간으로 한달이다-안에 영지를 승격시키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아니, 가능합니다." "그리고 영지 발전을 위해 필요한 다른 사업이 잇으며 팍팍 가져와." "네, 그것도 지시해 놓겠습니다." 베라미가 약간 들뜬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 아크 님이 돌아오시니 영지에 활기가 도는군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일이 많다고 불평할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베라미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다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사절이 찾아왔습니다."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무슨 일로?" 아크의 질문에 베라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만나서 직접 물어보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불러올까요?" "음, 그럼 만나 보지." 잠시 후, 집무실로 3명의 사내가 들어섰다. 둘은 기사였고 1명은 궁중 예복을 입은 중년 귀족이었다. "먼저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슈덴베르크에서 저에게 무슨 일로.....?" "바로 어제 전쟁의 신전에서 슈덴베르크의 귀족인 아크 님이 사자와 같은 용맹과 현자와 같은 지혜를 발휘해 명예로운 전투에서 승리, 시르바나의 영주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에 국왕 폐하께서는 아크 님이 슈덴베르크의 명성을 드높였다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전과를 치하하며 아크 님에게 정식 기사와 남작 작위를 내리셨습니다." '남작 작위?' 아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중년 귀족이 자세하게 설명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는 얼마 전에 슈덴베르크 왕국의 귀족이 되었다. 그리고 일단 귀족이 된 유저는 대외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공적(유명한 도적단을 물리치거나, 왕국 내에서 오랫동안 NPC를 괴롭혀오던 강력한 몬스터를 해치워 명성을 쌓는 일)을 세우면 또다시 신분 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본래 나가란은 대륙 삼국의 공동 관리를 받는 지역이었다. 나가란의 영주가 되어 받는 작위도 삼국이 공동으로 수여하는 임시직. 그런데 아크가 시르바나를 탈환함으로써 나가란에 처음으로 슈덴베르크 왕국 귀족이 나가란의 영주가 되었다. 덕분에 슈덴베르크 왕국의 국왕은 브리스타니아나 시니어스 국왕 앞에서 잘난 척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운 작위는 그 보답인 셈이다. "받으시지요." 중년 귀족이 정중하게 국왕의 친서를 건네주었다. 두루마리를 받아 들자 웅장한 음향효과와 함께 정보창이 떠올랐다. - '작위 수여증'을 습득했습니다. '작위수여증'으로 '정 기사(남작)'의 작위를 습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귀족 신분으로 시르바나의 영주가 되었습니다. 슈덴베르크 왕국의 명성을 올리는 공적을 세워 더 높은 신분을 얻었습니다. 귀족이란 타인의 존경을 받는 존귀한 신분으로 항상 타의 모범이 돼야 합니다. 귀족이 된 당신의 행동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만한 일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슈덴베르크의 귀족과 국왕의 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행동이 올바르고 명예로운 것이라면 당신은 더욱 높은 신분의 귀족이 될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것이라면 작위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작위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0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7,500만큼 증가합니다. +영주 이상 급의 직위를 가진 NPC에게 받은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직위(정 기사 : 500명) 에 따라 경비대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2개의 영지를 소유해 '대영주'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영주 스킬이 생겼습니다. 대영주는 2개 이상의 영지를 소유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영지를 2개 이상 운영할 수 있는 대영주는 국왕 알현을 신청할 자격이 생깁니다. 또한 상류층에서의 발언권도 강해집니다. 이런 상류층의 사교계에서 많은 귀족을 만나 교류를 하면 새로운 영주 스킬을 배울 기회가 많아질 것입니다. +정치력(영주 스킬) : 대영주로서 왕국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귀족회의에 참석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정치력이 높을수록 귀족과 국왕에게 왕국과 관련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며 설득력도 강해집니다. 만약 일정 숫자 이상의 귀족과 국왕을 설득시킨다면 슈덴베르크 왕국의 국법을 바꾸는 일도 가능합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당신의 의견이 일반 유저에게 퀘스트로 부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력은 사교계에서 귀족들과의 친밀도를 높일수록 상승합니다. <정치력 +500> 생각지도 못했던 보너스였다. 남작에 대한 보너스는 전체 스탯 +7, 명성 +7,500! 지위가 높아진 만큼 스탯이나 명성 보너스도 준 남작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아크가 관심을 보인 것은 새로 생긴 영주 스킬 '정치력'이었다. '슈덴베르크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건 엄청난 특혜였다. 정치에 참여해 새로운 국책 사업이나 국법 개정을 제안할 수 있다. 말하자면 현실의 국회의원과 같은 권한이 생긴다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주특기, '자신에게 유리한 국책 사업과 국법 개정을 제안하는'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현재 아크가 시작하려는 삼각무역의 경우에도, 아크 상단이 이동하는 주요 관문의 통관비를 내린다든지, 이동로 주변에 정규 병력을 늘려 치안은 좋게 한다든지, 주력 품목의 세율을 내린다든지,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그런 제안을 가지고 국왕이나 귀족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시간이 남을 때 사교계에 진출해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후후후, 이거 한 번 뭔가가 풀리니 완전 고속도로네.' "작센 영주님의 전언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 중년 귀족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작센 영주님이? 뭡니까?" "얼마 전 아크 님의 도움으로 체포했던 도적단이 탈옥했다는 내용입니다." "타, 탈옥요?" "네, 작센 영주님의 말로는 성내 병력이 타 지역으로 나가 있을 떄 외부의 도움을 받아 탈옥했다고 합니다. 소식을 접하고 바로 추격 부대를 출동시켰지만 아직 잡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놈들은 아크님에게 원한을 품고 있을 테니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중년 귀족이 예를 표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모처럼 남작 작위를 받았지만 쥬르의 탈옥 소식에 기쁨이 반감되는 기분이 들었다. '흠, 뉴 월드에서는 탈옥도 할 수 있는 건가? 하긴 NPC마을도 습격하는데 탈옥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지. 그나저나 작센 성에서 탈옥을 했다면 제법 많은 숫자가 움직였을텐데..... 놈들을 탈옥시킨 사람은 라이덴 일당이었을 테고. 라이덴 녀석 제 코가 석 자인데도 그만한 의리는 있다는 건가? 하지만 이제 나하고는 별로 상관없지.' 아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라이덴이 시르바나를 빼앗긴 현재 쥬르의 탈옥은 크게 신경 씅 문제가 아니었다. 라이덴은 이미 '악당 무리'로 낙인찍힌 상태에서 시르바나를 잃었다. 말하자면 과거 아란과 같은 신세. 라이덴 역시 아란처럼 불만을 품은 연합원들에게 버림받게 되리라. 헤르메스 연합이 공중 분해되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이다. 그리고 배경 세력을 잃고 도망자 신세까지 된 라이덴이나 쥬르는 아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놈들에게 하나하나 신경써서는 게임 못 하지.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대박 사업을 위한 사업 자금을 구하는 일이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성내의 대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대회의실로 향하는 아크의 모습이 스르륵 검은 늑대로 변해 갔다. 웅성웅성, 와글와글 대회의실에는 벌써 수십 명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 공성저네 참가했던 다크에덴의 부대장 20명, 그리고 정의남과 갱생단, 이슈람, 레리어트, 로코,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이었다. 공성전이 끝나고 24시간 뒤 사망했던 유저들은 모두 영주성에서 부활했다. 그리고 아크의 소집에 대회의실에 집합해 있던 것이다. "자, 주목해 주십시오." 아크가 단상 위에 올라 말하자 대회의실이 일순 조용해졌다. 아크는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유저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저는 목적대로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시르바나를 되찾았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곳에 모인 여러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두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크가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러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신 것은 단순히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또한 성공 보수를 드리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무슨 말이야?" "설마 성공 보수 얘기를 없던 걸로 하자늠 라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크가 탁자를 탁탁 두드리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잠시 조용해 주십시오. 미리 말씀드리지만 성공 보수를 드리지 않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전에 여러분에게 제안을 하려는 겁니다." "제안?" "제안이라기 보다는 저를 도와주신 여러분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고 해야겠죠." 아크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첫째는 바로 여러분을 연합 길드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뭐? 우리를 연합 길드원에?" 아크의 선언에 부대장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뭐, 영지 소속의 길드니 다른 길드보다야 낫겠지만....." "영지 소속 연합원이 되면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힘들어지잖아." "맞아, 나는 좀 별로인데....." 분위기를 살펴보니 부대장들의 반응은 찬성과 반대가 50대 50 정도였다. 영지 소속의 연합원이 될 기회는 많지 않으니 이참에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의견이 반, 영지 소속의 연합원이 되면 이래저래 귀찮아지니 별로라는 의견이 반. 그렇게 잠시 웅성거리다가 한 부대장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아시다시피 영지 소속의 연합원이 된다는 건 일반 길드에 가입하는 것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전보다 뜸하다고는 하지만 매번 공성전을 할 때마다 영지로 돌아와야 하고, 공성전을 하면 피치 못하게 죽거나 장비품의 손실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영지 소속의 연합원이 되면 정규병처럼 영주가 수익금을 나눠 준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연합 길드에 가입하면 저희에게 수익금을 얼마나 떼어 줄지 알고 싶습니다." ".....영지 수익금의 배분은 없습니다." 아크가 딱 잘라 대답했다. 사실 처음 정의남과 새로운 길드 창설에 대해 의논할 때는 최소 영주 수입의 60%는 길드원들에게 분배시켜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이 바뀌었다. "뭐야? 돈 한 푼 안 주면서 부려 먹겠다는 거야?" "그게 무슨 감사의 표시라는 거야?" 부대장들이 어이없다는 듯이 떠들어 댔다. '후후후, 입질이 오기 시작하는군. 이제부터가 승부다!' "좀 더 제 말을 귀담아들어 주십시오!" 대회의실의 분위기를 살피던 아크가 음흉한 미소를 숨기며 소리쳤다. 그리고 안면을 180도로 갈아엎고 짐짓 자책하는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사실 저는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할 때 헤르메스 연합을 치는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제 목적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진짜 목적은 헤르메스 연합을 치는 것보다 시르바나 영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뭐, 그야 영지라면 누구라도 얻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듣고 있던 한 부대장이 새삼스럽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유저들도 오직 '정의 실현'을 위해 아크가 공성전을 벌였다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헤르메스 연합을 물리치면 누군가가 시르바나의 영주가 돼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군단장인 아크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어차피 영주가 되면 상당한 이득이 생기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당당하게 성공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 때 아크가 혼잣말을 한 부대장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럼 유저들이 왜 영지를 얻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그야 영주가 되면 그만큼 유명해지고, 뭣보다 고정 수입이 생기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다른 게 있단 말입니까?" "시드, 설명해 드려라." "네, 영주님." 시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장아장 탁자로 걸어갔다. 그리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커다란 두루마리를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전지 크기의 두루마리는 바로 뉴 월드의 전체 지도였다. 그런데 지도 위에 슈덴베르크와 나가란, 사탄달을 커다란 삼각형으로 연결시켜 놓은 굵은 선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다. 이 지도는 바로 아크가 오랫동안 꿈꿔 오던 삼각 무역의 청사진이었다. 시드가 지도에 그려진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설명했다. "모두 집중해 주십시오.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 보신 분이라면 이 삼각형의 꼭짓점이 어디에 해당되는지 대강 눈치채셨을 겁니다. 네, 이곳은 바로 현재 여러분이 계신 시르바나 영지. 그리고 이곳은 남부 아구스 산맥에 위치한 란셀 영지. 그리고 동쪽 섬은 얼마 전 떠오른 스탄달입니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이 바로 지금부터 설명드릴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말문을 연 시드가 드디어 장대한 아크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재 아크는 이미 란셀에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스탄달에서 독점 무역을 하고 있는 교역소를 소유할 자격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시르바나를 손에 넣음으로써 나가란의 상권을 장악한 대륙상회의 운영에 관여할 자격이 생겼다. 세 지역의 상권을 쥐고 흔드는 상점이 모두 아크의 손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다크울프 님의 최종 목적은 바로 이 세 지역의 무역을 독점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상상이 가십니까? 이 지역의 상권을 독점한 상태에서 삼각무역을 했을 때 얻어지는 수익이?" "맙소사!" "이, 이게 정말 가능한 얘기인가?" "하지만 정말 이게 가능하다면 수익은 수만..... 아니, 수십만에 육박할 수도 있어." "설마 세 지역의 상권을 한 사람이 독점할 줄은....." "과연 다크울프라고 해야 하나?" 부대장들은 엄청난 스케일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크가 계획대로 사업을 진행시킨다면 얻어지는 수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으 제2의 게임 재벌이 될지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부대장륻은 부러움과 질투 섞인 눈길을 보내왔다. 그때 아크가 탁자 앞으로 다가와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그 수익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헉! 뭐, 뭐라고요? "이 사업의 수익금을 저희에게 나눠 주겠단 말입니까?" 부대장들의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이미 시드의 설명을 들어 아시겠지만, 이 사업의 중심은 대륙상회. 안정된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대륙상회의 운영을 관리할 수 있는 시르바나의 영주 자리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의 도움으로 영주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에게 이 사업에 투자하실 기회를 드리고 싶습니다." "투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이 사업의 주주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업이 정상 가도되어 수익이 나면 열흘에 한 번씩 투자금에 따라 수익금을 배당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단, 형평성을 고려해 투자금은 1인당 50골드로 제한하겠습니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사업 자금 확보 작전이었다. 오늘 아침, 아크가 사업 자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TV 뉴스에서 나온 것은 바로 외국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이었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영주성에 모인 2,700명의 유저들이 떠올랐다. 이번 사업을 진행시키기 위해 필요한 사업 자금은 15만 골드. 겨우 전셋집에 사는 아크가 구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그러나 투자자가 많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2,700명에게 50골드씩만 받아 내도 135,000골드가 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지만 실제로 유저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50골드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유저들에게 투자를 받으면 아크의 수입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은 사업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다 먹겠다고 혼자 사업 자금을 구하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는 없어.' 아크는 어머니의 병원비에 허덕이던 시절에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적이 있었다. 연 70%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이자! 만약 그곳에서 10억을 빌리면 연간 이자만 7억이 나간다는 말이다. 게다가 이번 사업은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수만 골드의 수익을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업이 안정될 때까지 몇 달간 버틸 이자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허점을 보이면 단숨에 이자가 100%, 200%로 올라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위험한 짓을 할 수는 없어. 그리고 어차피 그만한 이자를 내야 한다면 안전하게 유저들의 투자를 받는 편이 낫다. 유저들의 투자를 받으면 혹시라도 사업이 어려울 때도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할 수 있어.' 유저드릐 투자를 받으면 수입을 배당해 줘야 한다. 그러나 아크는 이 사업에서 자신의 지분을 40%로 책정해놨다. 다시 말해 수익이 나면 무조건 아크가 40%를 가져가는 것이다. 아크가 없으면 애초에 불가능한 사업이니 이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더. 그리고 나머지 60^를 투자자에게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수만 골드의 이윤이 남는다고 해도 실제로 유저들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5만 골드의 수익을 예상했을 때 3만 골드. 그걸 2.700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10골드 내외였다. 그러나 배당금은 열흘에 한 번씩 꾸준히 지급된다. 한 달에 30골드, 1년이면 360골드. 50골드의 투자로 1년에 6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이만한 투자 종목이 있겠는가? 부대장들도 곧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모양이다. "이거 꽤 괜찮은 얘기잖아?" "확실히 50골드의 투자로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온다면....." "혹시 50골드 이상 투자할 수는 없는 겁니까?"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려 본 부대장이 기대 어린 눈으로 물었다. "아쉽지만 지분에 한계가 있으니 말씀드린 대로 1인당 50골드가 한도입니다. 대신 만약 부대원중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분이 계신다면 빠진 금액만큼 다른 분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아크는 마치 선심을 쓰듯 말했다. 그렇다. '마치 선심을 쓰듯.' 이게 이번 투자금 확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실 유저들에게 투자를 부탁하면서 실제로 1쿠퍼도 내지 않은 아크가 40%나 되는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불만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아크는 단 한 번도 돈이 없어서 투자를 받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도와준 유저들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성공률 100%의 사업에 동참할 기회를 주는 '선심'을 쓰는 것이다. 때문에 부대장들은 아크가 40%의 지분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투자자로 만들면 세 가지 이득이 생긴다.' 아크는 내심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첫째, 사전에 미리 이 사업은 연합 길드원이 돼야만 자격을 주겠다고 말해 두었다. 단순히 영지 소속 길드원이 되는 게 아니라 수입까지 약속했으니 대부분이 길드에 가입하리라. 둘째, 수익금을 배당해 주는 대신 길드원에게 따로 보수를 지급할 필요가 없어졌다. 보통 2,700명 정도의 길드원을 보유한 연합 길드라면 영주 수입의 60%는 떼어 줘야 한다. 그러나 사업 배당금은 그보다 많기 때문에 길드원은 배당금만으로 만족하리라. 한 달에 9,000골드의 영주 월급을 독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였다. 사업에 투자하면 모든 길드원이 주주가 된다. 사업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당연히 공성전이 벌어지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시르바나를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하리라. 결국 이들을 투자자로 끌어들임으로써 아크는 사업 자금을 구하고, 병력 유지비를 절감하고, 시르바나 영지의 안정성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60%의 수익금을 나눠 줄 생각은 없었다. '유저들에게 배당한 지분은 일단 사업이 정상 궤도로 돌아가면 웃돈을 주고 사들이면 그만이야. 적어도 나 혼자 사업 자금을 구해서 시작하는 것보다 그 편이 이득이다.' 이게 아크의 최종 목표였다. 혼자 15만 골드의 사업 자금을 구하려면 앞으로 1~2년은 뼈 빠지게 돈을 모아야 될까 말까다. 그러나 길드원을 이용하면 당장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1~2년 사이에 다시 지분을 회수하면 돈은 돈대로 더 벌고, 사업도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중 삼주으로 쳐 놓은 아크의 계획! 일단 돈이 걸리면 천재적인 솜씨를 발휘하는 아크였다. "바로 부대원들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부대장들이 서둘러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돈 보따리를 싸 들고 돌아왔다.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골드는 135,000골드! 실제로 아크의 제안을 받아들이 유저는 2,300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부족한 금액을 다른 유저가 채워 놓은 것이다. 유저들이 이렇게 아크를 신뢰하는 것은 다크울프의 명성이 작용한 덕분이리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드, 계약서를 작성해라." "넵!" 시드가 분주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 다크울프 = 시르바나 연합 길드원> 다크울프는 열흘에 한 번씩 자신이 운영하는 상단에서 나온 수익금의 60%를 투자자에게 배당금으로 지급합니다. 배당금은 50골드당 0.22%입니다. 그렇게 아크는 일단 사업 자금을 확보했다. 그리고 투자자들을 정의남의 신생 길드 '정의 사단'에 가입시키는 일까지 일사천라로 이루어졌다.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부대장들이 돌아가자 샴바라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게 뭐? 어차피 다른 사람도 이득이잖아. 그리고 너도 투자했으면서 딴소리는....." 아크는 쌜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정의남과 갱생단들이 아크의 어깨를 탁탁 치며 말했다. "우리는 자세한 내용은 잘 몰라. 어쨌든 더 하나 믿고 투자했으니 확실하게 해 달라고." "알지? 나는 적금 깼어." "만약 사업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형들이 뭐라고 하기 전에 제가 심장마비로 죽을걸요." 아크가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사실 아크는 길드원에게 사업 자금을 모으기 전에 이미 정의남과 갱생단들에게 설명하고 투자를 받았다. 성공률 100%의 사업을 하면서 그들을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인 돈이 10,000골드. 이에 아크는 그들에게 10%의 배당률을 약속했다. 길드원의 수십 배에 달하는 배당률. 아크의 지분은 30%로 줄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알았어요. 몇 달만 기다리면 몇 배로 불려 드리죠." '자, 사업 자금도 널널하게 모였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투자자에게 받은 135,000골드. 정의남 들에게 받은 10,000골드. 남은 군자금과 미스릴 성문을 처분해 번 돈 25,000골드. 무려 170,000골드를 확보한 아크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아크는 먼저 영자 이동을 난사하며 스탄달로 날아갔다. "샴바라 님에게 얘기는 들었어요. 영주가 된 것을 축하해요." 이사벨이 화려한 웃음을 지으며 반겼다. 오랜만의 재회였지만 아크에게는 잡담이나 주고받을 여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찾아온 건 약속대로 교역소를 인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크는 그 자리에서 현찰 박치기로 10만 골드를 지불하고 교역소를 인수했다. 스탄달 교역소 권리증 스탄달의 중심에 자리 잡은 유일한 무역 회사. 스탄달의 교역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후 교역소의 모든 거래를 직접 관리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아크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권리증을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건 상선과 상단이다.' 아크는 다시 슈덴베르크로 날아와 루벤트 항에서 거대한 범선을 한 척 구입했다. 처음에는 작은 상선으로 시작할 생각이었지만 사업 자금이 풍부한데 굳이 빈티 나는 상선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다. 아크는 아예 돛대가 6개나 달린 A급 상선을 구입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곳에서 8대의 짐마차까지 구입했다. 여기까지 들어간 돈이 15만 골드.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2만 골드의 운영 자금이 남은 것이다. "해냈다. 드디어 삼각무역을 시작할 준비를 끝냈어!" 모든 준비를 끝내자 새삼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앞에 있는 상선과 마차는 곧 골드를 가득 싣고 아크에게 돌아오리라. 아크는 일단 상선에 마차를 싣고 시르바나로 돌아왔다. 시르바나가 교역하기 좋은 입지 조건이라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시르바나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강은 수량이 풍부해 바다에서 직접 상선을 몰고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시드, 이제부터 아크 상단의 운영 책임자는 너다." 물론 아크 상단을 만들었다고 해도 아크가 직접 돌아다니며 장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상인이 아니라서 교역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드도 이슈람에게 제대로 정신교육을 받고 개심(?)했으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네? 저, 정말입니까?" 아크의 말에 시드가 입을 쩍 벌리며 떠듬거렸다. 이번 사업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상인인 시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도 대륙상회의 대외부장이었을 때보다 몇 배나 큰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큰 거래는 곧 상인의 경험치. 유례가 없는 대사업을 맡게 된 시드는 뉴 월드의 최고 상인이 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시드가 와락 아크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혔다. "감사합니다. 몸이 부서지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후후후, 그래야지. 이번 사업은 정의남이나 갱생단, 사범님들도 투자했으니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덕분에 시드의 얼굴이 한순간 창백해졌지만 어쨌든 운영 책임자직을 받아들였다. 시드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그럼 출항하겠습니다!" 시드가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경례를 붙이며 상선에 올라탔다. 골드드림. 아크의 세속적인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상선이 바로 루벤트에서 구입한 상선이었다. 한 번에 최대 10만 골드 상당의 교역품을 실어 나를 수 있었고, 스탄달 해군의 보호를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양옆에는 24문의 대포까지 장착된 A급 상선. 시드가 올라타자 골드드림은 6개의 돛을 활짝 펼치며 상선이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상선에 실려 있는 것은 교역품이 아니었다. 아크의 꿈, 그 자체였다. '이제 뉴 월드의 골드는 모두 내 거다!' 아크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Dream Comes True! 그렇다.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루어진 게 아니라 이뤄 낸 것이다. 그렇게 아크가 멀어지는 상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자, 할 일은 다 끝났고. 이제 뭘 하나....." 뒤에서 불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당연히 연합원들과 함께 지옥 훈련을 해야지요." 정의남과 갱생단 기타 등등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ACT 9 심연으로 typing by 보라미르님 "1, 2, 3, 4 부대, 후미로 돌아가 놈을 교란해라! 마법사와 궁수는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돌격 부대를 엄호하라. 성직자는 쉬지 말고 선두에 선 전사에게 회복 마법을 퍼부어라!" "우와아아아!" 아크의 명령에 길드원이 함성을 터뜨리며 이동했다. 그리고 선두의 전사가 방패를 쌓아 올리자 화살과 마법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쾅, 퍼퍼퍼펑! 수십종류의 마법이 폭발하자 어둠 속이 한순간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 빛 속에서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20미터나 되는 동체에 8개나 되는 팔이 달린 괴물. 어둠의 사냥꾼 볼드윈 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간 보스 몬스터였다. 볼드윈은 수백 명의 소나기 같은 공격에도 끄떡없었다. 오히려 쏟아지는 화살과 마법을 몸으로 받아 내며 달려와 8개의 팔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동사에 굉음이 울리며 단숨에 전사들의 방어진이 허물어져 버렸다. "5, 6, 7, 8 부대는 스킬을 난사해서 놈의 관심을 돌려라. 그 사이에 1, 2, 3, 4 부대는 퇴각. 놈의 사정거리 밖에서 회복에 전념한다." 뒤로 빠져 있던 부대가 놈에게 공격을 퍼부어 댔다. 볼드윈은 무시했지만, 뒤쪽에서 100여 명의 전사들이 쉬지 않고 '도발'을 때려 넣자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유저들의 피로 붉게 물든 두꺼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분노의 포효를 터뜨렸다. 공간을 통째로 들썩이게 만드는 엄청난 포효! 놈과 마주 선 전사들이 공포에 질릴 정도로 섬뜩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야, 이거!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라고!' 아크의 얼굴에는 희열의 빛마저 감돌았다. 아크가 볼드윈을 보며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우우, 수, 숨이 막혀!" 아크가 바닥을 긁어 대며 버둥거리기 시작한 건 며칠 전이었다. 시르바나 영지를 탈환하고 꿈에 그리던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족할 게 없어 보였지만 사실 아크는 예전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레, 레벨이..... 능력치가..... 전리품이.....!" 이게 바로 아크의 스트레스 정체였다. 란셀 방어전에 참전한 뒤로 지금까지 근 한 달. 다시 말해 아크는 한 달이나 사냥을 못 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한 거라고는 유저들뿐이라 레벨은 단 1도 못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심각한 금단현상까지 겪어야 할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급한 일은 모두 해결됐다. 일단 골드드림호가 처녀 출항을 무사히 마치고 귀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사냥을 하기 위해 굳이 다른 지역으로 나갈 필요는 없었다. 시르바나 영지에는 어느 던전보다 경험치가 짭짤한 비밀 던전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고대 악의 발상지'! 정예 몬스터가 득실대는 레어 던전이었다. "이 기회에 레벨을 팍팍 올려놓는 거야!" 일단은 레벨 업이 목적이었지만, 비밀 던전의 최하층까지 깨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전에 영주로 있을 때 정의남 아저씨들과 공략한 곳은 4층까지야. 하지만 비밀 던전에서 얻은 몇 가지 정보를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던전은 그보다 몇 배나 더 깊어. 그리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몬스터의 레벨이 높아지니 383레벨로도 경험치를 얻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야. 뭣보다 그곳은 정예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던전, 마지막 층에는 숨겨진 보스가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아크의 모험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리고 비밀 던전을 공략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헤르메스 연합이 시르바나에서 물러났으니 다음 공성전 기일이 다가오면 틀림없이 도전하는 연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르바나 성을 탈환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정의 사단'의 조직력은 나가란에서 활동하는 연합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아크는 이번 던전 공략을 통해 '정의 사단'의 레벨과 조직력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정예 몬스터라면 좋은 연습 상대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시르바나 주둔 병력을 이끌고 비밀 던전으로 들어왔다. 그렇다. 현재 아크가 있는 곳은 바로 '고대 악의 발상지'였다.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폭발시키며 미친 듯이 몬스터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아크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80명을 데리고도 일주일 동안 4충까지밖에 공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아크도 그때에 비해 레벨이 2배에 달했고, 던전을 공략하는 인원도 란셀 병력과 동방 민족, '정의 사단'을 합해 3,800명에 달했다. 덕분에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 불과 사흘 만에 24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볼드윈은 일정 층수마다 등장하는 정예 중간 보스 몬스터였다. '과연 중간 보스도 정예로 출현하니 만만하지 않군.' 볼드윈은 '정의 사단'의 공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레벨 600의 정예 중간 보스답게 상상을 초월하는 공격력과 방어력을 겸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의 사단'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 크윽, 건방진 인간들, 명부에서 피와 살을 탐하는 지옥의 파수꾼이여. 신성한 대지를 침범한 어리석은 무리의 살점을 뜯어 삼켜라! 양쪽에서 공격을 퍼붓자 볼드윈이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 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돌연 대지가 쩍 갈라지며 붉은 눈알을 굴리는 개 떼가 100여 마리나 기어 나왔다. 지옥의 파수꾼, 헬독이라는 이름의 몬스터들이었다. 비록 레벨은 300밖에 되지 않지만 놈들도 비밀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들처럼 정예몬스터. 한 마리에 4~5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쳇, 저 녀석,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군. 벌써 몇 번째야? 전 부대, 방원진을 형성해 헬독 무리를 한 곳으로 모아라!" "마법사, 파이어 월로 헬독 주변에 화염 벽을 만들어라." "궁수는 헬독의 주변에 견제사격을 한다." "전사들은 볼드윈을 외곽으로 유인한다!" 아크가 대략적인 지시를 내리자 부대장들이 곧바로 구체적인 움직임을 지시했다. 그러자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죽어라 뛰어다닌 보람이 있어.' 이게 비밀 던전에 들어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공성전을 할 때는 아크가 세세하게 지시를 내려도 부대장들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부대원들도 자신이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비밀 던전에서 며칠 동안 단체 사냥을 한 덕에 이제 뽕 하면 짝이다. '정의 사단' 모두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대원들이 그렇게 빨리 집단 전투의 요령을 습득한 건 80%가 아크의 공이었다. 사실 3,800명이 한데 모여 던전을 공략하면 그건 이미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아무리 정예 몬스터라지만 그만한 인원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지금처럼 중간 보스를 상대할 때가 아니면 병력을 500명 단위로 나누어 던전을 공략했다. 그리고 무턱대고 던전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몬스터란 몬스터는 몽땅 애드시켜 긁어모았다. 그렇게 최소 100명의 몬스터가 모였을 때에야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위험하지 않은 전투를 치러서야 훈련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대원들은 항상 간당간당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전투를 치를 때마다 적지 않은 사상자를 냈지만, 덕분에 집단 전투의 요령은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500명 단위로 나뉘어 돌아다닌 덕분에 던전을 공략하는 시간도 상당히 단축되었다. 사흘 만에 24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 "아크 님, 헬독을 한곳에 모았습니다!" "좋아. 라카드, 라둔, 이제 너희들 차례다." "오케이, 맡겨 두라고!" 라카드가 씨익 웃으며 라둔을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헬독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하자 라둔이 입을 쩍 벌렸다. 쌕쌕쌕쌕, 쌕쌕쌕쌕! 동시에 라둔의 입에서 엄청난 숫자의 벌집이 떨어졌다. 바로 아크가 '창작 요리'로 만든 '후추 벌통'! 사실 대부분의 아이템을 라둔에게 보관시키는 아크도 요리만은 넣지 않았다. 요리는 다른 아이템과 달리 라둔의 배속에 넣어 두면 소화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작 요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요리. 라둔의 배 속에서 소화라도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바로 뱉어 내면 소화될 걱정은 없었다. 크릉, 크릉, 깨갱! 어쨌든 수십 개의 '후추 벌통'이 쏟아지자 헬독들이 괴성을 질러 대며 바닥을 뒹굴었다. '후추 벌통'은 충격을 주면 후추를 뿜어내는 창작 요리. 후각이 예민한 헬독이 후추를 뒤집어썼으니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지금이다. 놈들을 섬멸하라!" "전사 부대 '돌진'으로 놈들을 밟아 버려라!" "놈들은 신성력에 약하다. 성직자들은 전사들의 무기에 신성력을 부여하라!" "마법사와 궁수는 둘레에 광역 스킬을 시전해 전사들을 보조한다!" 부대장들의 명령에 병사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헤독을 공격했다. 신성력으로 도배한 방패와 검으로 후려치자 헬독의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순식간에 빈사 상태에 몰려 도망치는 헬독은 마법사와 궁수가 정밀사격을 가하자 픽픽 쓰러져 나갔다. 그렇게 불과 10여 분, 모처럼 출현했단 헬독은 제대로 짖어 대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 크으으으, 이놈들이.....! 헬독이 전멸하자 볼드윈이 이를 갈아붙였다. 그리고 갑자기 턱관절이 빠질 듯이 입을 벌리자 입 주변에 화염이 일렁거렸다. 볼드윈의 필살기, 파이어 브레스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볼드윈의 파이어 브레스는 직경 20미터 공간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정도록 강력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훗, 이제 밑천이 바닥난 모양이군. 마법사, 집중하고 명령을 기다려라!" 모든 마법사가 주문을 위우며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볼드윈의 주둥아리를 노려보던 아크가 벼락처럼 소리친 것은 그 뒤였다. "지금이다. 모든 마법사는 냉기 마법을 놈의 아가리에 처넣어라!" "바다를 얼리는 북해의 바람이여..... 프리징 윈드!" 동시에 수백 명의 마법사 손에서 시퍼런 광선이 쏟아져 나왔다. 바닷물조차 얼려 버리는 극한의 냉기 마법! 콰콰콰쾅, 콰콰콰쾅! 냉기 마법이 볼드윈의 아가리로 쑤셔 박히자 불과 얼음의 기운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확 뿜어져 올라오는 수증기에 휩싸인 볼드윈이 비명을 터뜨리며 물러났다. 뒤이어 드러난 볼드윈의 얼굴은 폭발에 의해 눈알이 터져 나가고 안면 근육도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나가 있었다. 그리고 체내에서 마력이 폭주한 탓에 생명력도 단숨에 30%나 깎여 나갔다. 이제 남은 생명력은 고작 5% 남짓. "이제부터는 다구리다! 전 병력 총공격!" "와아아아아!" 부대원들이 벌 떼처럼 볼드윈에게 달려들었다. 볼드윈은 8개나 되는 팔을 미친 듯이 휘둘러 댔지만, 좀전 같은 위력은 없었다. 눈알이 몽땅 박살 나서 '실명'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몇 개의 팔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고, 가끔 제대로 날아오는 공격도 적중률이 형편없이 떨어져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수천의 병력이 다구리를 해 대기를 잠시. - 크아아아아! 부, 분하다..... 하지만..... 네놈들이 가는 곳은..... 지옥..... 결국 볼드윈은 피투성이가 되어 헛소리를 지껄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몇 번 거칠게 헐떡이다가 뭉개진 혓바닥을 쭉 내밀며 숨이 끊어졌다. 동시에 3~4개의 아이템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볼드윈이 죽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싸!" 아크는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캐릭터 정보창!"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21,485(+500) 레벨 : 391 직업 : 다크소울 작위 : 남작 칭호 : 캣 나이트, 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7,325(+475) 마나 : 7,515(+225) 영력 : 786 힘 754(+58) 민첩 1,009(+90) 체력 1249(+45) 지혜 185(+10) 지능 1,327(+5) 운 179(60) 특수 스텟 고대 유물의 지식 : 173 유연성 : 262 화술 : 79 애정 : 117(+10) 탄력도 : 479 어둠의 안개 : 68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 +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속도+10%, '도약' 사용 가능 *<수왕>세트 효과 : 힘+20, 민첩+20, 체력+20, 방어력+40 약속의 검(양손 검) : 힘+20, 체력+1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갈가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00%, 민첩+20, 생명력 50% 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10, 민첩+10,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오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이거야 뭐, 완전 땅 짚고 헤엄치기잖아?'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비밀 던전에 들어온 게 오늘로만 사흘. 그 사이에 레벨이 8이나 올라갔다. 비밀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모두 정예라 경함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물론 던전에 들어온 인원이 3,800명. 500명씩 나눠서 공략했다고는 해도 얻는 경험치는 500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3,800명의 군단장이었다. 그리고 뉴 월드에서 공격대나 군단장은 전체 병력이 얻는 경험치의 일부를 보너스로 지급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3,800명에게 경험치를 나눠 받는다는 말이다. 그걸 사흘이나 계속했으니 당연히 폭렙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병력이 많아 사냥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서 그만큼 빨리 던전을 개며 내려갔다. 병력이 많은 만큼 많은 몬스터를 사냥했으니 병력에 따른 경험치 페널티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다른 부대원들도 사흘만에 평균 5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병력이 많아서 꼭 좋은 건 아니지.' "아크 님, 전리품을 모두 챙겼습니다." 그때 보급 부대 부대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마법 방어구 2개, 레어 무기가 하나 떨어졌습니다." 유일하게 아크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바로 이것이었다. 비밀 던전에서 나오는 정예 몬스터들은 다른 곳에 비해 마법이나 레어 아이템을 떨굴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가끔 출몰하는 중간 보스는 마법 아이템을 3~4개 떨구는 게 기본. 평소라면 기뻐 날뛸 만한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던전을 공략하는 인원이 수천 명인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시르바나의 방어 병력이자 아크 상단의 주주들. 괜히 전리품에 욕심을 부려 모처럼 상승하는 유대감에 찬물을 부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긴 아크 상단이 제대로 운영되면 레어 아이템 1~2개는 장난이지. 이럴 때는 무심한 척 공평하게 나눠 주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게 좋아.' 하지만 딱 하나, 아크만이 챙기는 전리품이 있었다. 검은 돌 조각 '고대 악의 발상지'의 중간 보스들이 가지고 있던 정체불명의 돌 장식입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이 170 이상 되어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형태로 만들어진 기묘한 돌이었다. 아크가 이 석판을 처음 발견한 건 6층에 나왔던 중간 보스를 처리했을 때였다. 그리고 그 뒤로 6층마다 나오는 중간 보스를 처리할 때마다 다른 모양의 돌 조각이 하나씩 더 떨어졌다. 처음 발겨한 돌 조각은 '고대 유물의 지식' 150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12층의 중간보스가 떨군 석판은 160, 방금 전의 볼드윈이 떨군 석판은 170의 '고대 유물의 지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와 주면 나야 고맙지.' 사실 아크가 던전에 들어올 때 '고대 유물의 지식'은 153이었다. 그러나 돌 조각을 확인할 때마 10씩 올라 현재는 173이 되었다. 중간 보스가 떨구는 돌 조각의 필요조건이 올라간다고 해도 확인할 때마다 '고대 유물의 지식' 도 따라 올라가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고대 유물을 조사하면 약간이지만 운과 지식까지 올라가니 이런 전리품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리고 이 돌 조각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아크뿐이니 독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뭐, 혼자 챙길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대체 정체가 뭐야?' 아크가 석판을 움켜쥐자 진동이 일어나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검은 석판'을 확인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10, 지능 10, 운 5, 명성이 50 상승했습니다.> 심연의 비밀이 담긴 돌 조각(Level : 3) 이 돌 조각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어둠의 힘이 느껴집니다. 설핏 보면 제멋대로 생긴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표면에는 어떤 기이한 혀앙이 그려져 있지만 현재로는 그 형상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 석판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막상 정보를 확인해도 돌 조각의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나마 뭔가 단서가 될 만한 정보는 표면에 뭔가 그려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아크에게는 그저 울퉁불퉁한 표면에 검은 선이 몇 개 찍찍 그어져 있는 것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이 던전의 비밀을 푸는 어떤 단서가 되는 것만은 분명해." 지금까지 아크가 완전 공략에 성공한 던전이 수십 개다. 그 던전 중에는 수수께끼를 풀여야 도달할 수 있는 곳도 많았다. 그런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돌 조각은 던전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이게 이 던전의 비밀을 푸는 어떤 단서가 되는 것만은 분명해." 지금까지 아크가 완전 공략에 성공한 던전이 수십 개다. 그 던전 중에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도달할 수 있는 곳도 많았다. 그런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돌 조각은 던전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했다. "레벨 3이라는 건 세 번째 나온 돌 조각이라는 뜻이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몇 개의 돌 조각이 더 나온다는 뜻이야. 뭐, 돌 조각의 정체는 다 모으면 자동적으로 밝혀지겠지." 아크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돌 조각을 챙겨 넣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휴식을 취하는 부대원들을 훑어 보았다. "이제 슬슬 전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겠군." 많은 병력으로 그야말로 물밀듯 24층까지 공략했지만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레벨도 레벨이지만 일전의 구더기처럼 기상천외한 스킬을 사용하는 놈들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정의 사단'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물론 24시간 뒤에는 부활해서 합류했지만, 20층 이후로는 합류하는 병력보다 죽어 나가는 병력이 더 많았다. 아크는 부대장을 불러 모아 지시했다. "다음 층부터는 700명으로 한 조를 만들어 진행한다. 병력을 편성하도록." "네? 또 출발하는 겁니까?" "그럼? 여기까지 와서 그냥 나가게?" "그게 아니라..... 이번에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20시간째인데요?" "그래서?" "아니, 이제 벌써 새벽 4시입니다. 학생도 있고....." "방학했잖아." 아크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갱생단이 툭툭 털고 일어나며 한숨을 불어냈다. "소용없어." "전에 아크가 왜 저렇게 레벨이 높으냐고 물어봤자? 이제 말 안해도 알겠지?" "음, 저 녀석은 한 번 시작하면 살짝 맛이 가 버리거든." "그냥 군말 없이 따라가는 게 상책이야." 그렇다. 이게 아크가 던전 공략을 하자고 했을 때 갱생단이 죽을상을 지은 이유였다. 예전에 아크와 토 나올 때까지 던전을 공략해 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의남은 일찌감치 소미를 만난다는 핑계로 로코와 함께 란셀로 도망쳤다. 그리고 브레드와 레디안은 스탄달에서 공략하던 던전에 다시 도전한다는 핑계로 도망쳤고, 정의남과 갱생단이 빠져 스탄달 자치대를 지휘할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샴바라와 레리어트도 슬그머니 도망쳤다. 그러나 갱생단과 이슈람은 이렇다 할 핑계가 없어 이 죽음의 행진에 동행한 것이다. "자, 자! 대장이 그만 일어나란다. 발딱발딱 일어나!" "우우우우" "아직 10분도 못 쉬었는데....." "이게 군단장이 강한 이유인가?" "오늘이 벌써 사흘째야. 사흘 동안 햇빛도 보지 못했다고." "나는 요즘 꿈도 던전을 헤매는 꿈만 꿔." "차라리 일부러 죽어서 부활할 때까지라도 좀 쉴까?" "아서라. 저 인간은 죽은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잰다고. 괜히 죽었다가 다시 뛰어 들어오면 더 죽을 맛이야. 할 수 없지. 저 인간도 철인은 아니니 오늘은 몇 층만 더 내려가면 끝내 줄 거야. 그렇게 기도하자고." 갱생단들이 나서서 말하자 부대원들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아크의 지시대로 부대원을 700명씩 나눠서 다음 층으로 진입했다. "가자. 싸우는 자만이 경험치와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아크의 목소리가 어두운 공간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죽음의 행진은 던전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계속되리라. 쿠쿠쿠쿠, 쿠쿠쿠쿠! 시니어스 왕국의 해안에서 멀지 않은 대륙의 북동부. 한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감자기 격렬한 진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결이 출렁일 정도의 진동이었지만, 곧 마치 해일이 일어날 듯이 바다가 요동쳤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쩍 갈라지더나 바닷물을 밀어내며 뭔가 거대한 물체가 솟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크기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투명한 돔 형태의 물체였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2개였다. 그 거대한 물체가 바다 위로 떠오르자 격렬한 진동과 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완전히 바다 위로 부상했을 때였다. 돌연 투명한 돔 형태의 물질에 쩍쩍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깨져 버렸다. 안에서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대륙이었다. 산과 평야, 강, 심지어 대륙을 질주하는 짐승과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새 떼까지 보였다. 망망대해에 돌연 2개의 대륙이 출현한 것이다. 바다에서 나온 대륙은 그대로 시니어스 왕국의 해안과 맞닿아 하나의 대륙이 되었다.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콰지지직! 그때였다. 갑자기 대륙 위의 공간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대기가 찢어지듯 갈라지며 뭔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을 찢고 나오는 것은 전장이 수십 킬로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가오리! 더 놀라운 것은 가오리의 등이었다. 평원처럼 넓은 등에는 고색창연한 성이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뉴 월드가 아무리 넓다고 해도 이런 하늘 가오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전설의 공중 요새 뤼겐바르크! "어떤가? 찢겨진 대륙이 다시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본 소감이?" 뤼겐베르크의 등에 세워진 고성의 최상층. 붉은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는 사내가 부상한 대륙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검은 머리의 사내가 냉소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저 그렇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장면이야." 검은 머리 사내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오히려 저기서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지 않군." 뤼겐베르크의 등애서 대륙을 내려다보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와 검은 머리의 사내. 이들은 바로 붉은 남자와 아란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륙에서 모습을 감췄던 이유는 바로 눈앞의 대륙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대륙을 중간계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이들의 눈앞에서 떠오른 2개의 대륙. 그 대륙은 바로 음계와 명계! 암흑 세기 말기에 어둠의 제왕이 펼친 궁극 마법의 영향으로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차원의 틈새에 갇혀 있던 대지였다. 그러나 붉은 남자와 아란이 차원의 틈새로 들어가 강제로 세계수를 부활시켜 다시 중간계로 끌어올린 것이다. "자신의 성과를 즐길 줄도 알아야지. 너나 나나 저기서 고생한 건 사실이지만 덕분에 꽤나 보기 좋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나?" 붉은 남자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눈으로 두 대률을 내려다 보았다. 뉴 월드로 돌아온 두 차원은 그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음계와 명계가 아니었다. 이제 산과 평원을 뒤덮고 있던 푸른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밝은 대낮인데도 대륙 전체에 정체 불명의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 대지를 돌아다니는 것은 평범한 들짐승이나 새가 아니었다. 입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이형의 생명체였다. "이제부터 저곳이 우리의 본거지가 될 것이다." "흠, 저런 불쾌한 곳이 본거지라. 마치 우리가 악의 무리인 것처럼 생각되는군." "악의 무리?" 붉은 남자가 눈매를 좁히며 잠시 아란을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우리야말로 진정한 정의다." "그 말도 썩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는데?" "그래도 할 수 없다. 그게 진실이니까." 붉은 남자가 메마른 목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그럼 시작하지. 우리가 돌아왔다는 것을 이 세계의 우민들에게 알려 줘야 하지 않나?" "그래야지. 그러기 위해서 돌아왔으니까." "뤼겐베르크, 우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줘라!" 붉은 남자가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을 때였다. 고오오오오! 뤼겐베르크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자 폭풍이 일어나며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뤼겐베르크가 향하는 곳은 시니어스 공국. 순식간에 공간을 넘어 시니어스 공국의 상공에 도착하자 돌연 뤼겐베르크의 복부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마치 융단폭격을 퍼붓듯 검은 물체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쾅! 수직으로 떨어져 대지에 박혀 든 물체는 검은 기운을 뿜어내는 오벨리스크였다. 검은 오벨리스크가 박히자 뒤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대지가 검게 물들어 가더니 구더기가 끓듯이 수백, 수천의 기괴한 생명체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자! 게이머라는 이름의 악마들이여, 이제 죄의 대가를 받을 시간이 도래했다!" 붉은 남자의 눈동자에서 일그러진 분노가 일렁거렸다. 뉴 월드의 역사를 바꿀 파란의 시작이었다. "팀장님!" 같은 시각 글로벌엑서스의 기획실. 조용하던 사무실에 김권태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던 호명환이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힉! 기, 김 대리님? 팀장님은 방금 전에 홍보부에 가셨는데요?" "당장 불러와!" "네? 무슨 일로.....?" "설명할 시간 없어! 서둘러!" 김권태의 불호령에 호명환은 입가의 침을 닦으며 허둥지둥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불려온 하명우가 김권태에게 다가가다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뭐야, 이건?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몇 분 전부터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김권태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려 대며 대답했다. 그들의 눈앞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 뉴 월드의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하니 대부분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수준이 달랐다. 김권태의 모니터에서는 엄청난 명령어가 눈으로 쫓을 수도 없을 정도의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궈태와 하명우는 이런 현상을 몇 번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이벤트? 이벤트가 시작되는 건가?" "아니, 이건 이벤트가 아닙니다." 김권태가 트랜스 상태가 된 사람처럼 눈알을 움직여 데이터를 쫓으며 대답했다. 불과 몇 분 만에 뉴 월드의 보안 레벨이 A까지 해제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수십 개의 락이 해제되고 있습니다. 이건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이 미쳐 버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상태로 진행되면....." "진행되면? 대체 뭐야?" 하명우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김권태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머메드 시스템이라도 한꺼번에 이만한 연산을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대로 두면 메인 서버가 과열되어 폭파되고 말 겁니다." 뉴 월드 메인 서버의 연산 능력은 전 세계의 인구를 10분 내에 검색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괴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기계인 것이다. 그러나 김권태의 눈앞에서 스쳐 지나가는 데이터는 괴물조차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치 핵폭탄이 떨어진 듯한..... 아니 정말 시스템에 데이터의 폭탄이 떨어진 듯했다. "뭐, 뭐야? 폭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아니, 폭발이면 그나마 낫습니다. 만약 메인 서버의 자체 방어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켜 이 엄청난 데이터가 유니트로 역류한다면....." 김권태의 이어지는 말에 하명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흙먼지와 길가의 돌메이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놓은 뉴 월드의 엄청난 데이터. 만의 하나라도 그 엄청난 데이터가 유저들의 뇌에 역류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인간의 허용 한계를 넘어서는 데이터의 폭주는 유저들의 뇌를 두부처럼 으깨 버리고도 남는 파괴력을 가진 것이다. 하명우가 김권태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서버를 부숴서라도 그런 사태는 막아야 해!" "하,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벌써 데이터의 양은 허용 한계를 넘어서....." 김권태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을 때였다. 팍! 갑자기 정전이 일어난 것처럼 기획실의 모든 전원이 꺼졌다. 그리고 불과 0.1초도 되지 않아 다시 전원이 들어왔을 때였다. "어라? 이게 뭐야?" 기획실 곳곳에서 직원들의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기획실에 놓인 수십 대의 모니터에서 김권태의 모니터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기괴한 현상에 작원들은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단 1명만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 설마 그런 바보 같은.....!" 김권태는 황급히 노트북을 본체에 연결했다. 그러나 연결하자마자 노트북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권태의 얼굴이 공포에 질린 것은 그때였다. "이, 이럴 수가.....!" "뭐야? 대체 뭐냐고?"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해킹했습니다." "해킹?" "네.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데이터라고 판단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를 실시간으로 몽땅 해킹, 정보를 분산해서 연산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기획실만이 아니라 본사의 모든 컴퓨터가 똑같은 상황일 겁니다. 어쩌면 다른 게임의 서버까지. 이건..... 이건..... 괴물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이런 짓은 전 세계의 해커를 모아도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김권태는 방금 전보다 지금이 몇 배는 더 공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하명우는 오히려 김권태의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어쨌든 이제 데이터가 유니트로 역류하는 일은 막았다는 뜻이군. 하지만....." 하명우는 불안한 눈으로 데이터가 미쳐 날뛰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꾹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 불안감은 입으로 흘러나와 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루루루, 라라라~" 여기저기서 숨 가쁜 상황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 시드는 갑판에 나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콧노래를 불러 대고 있었다. "후후후,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로군." 상선의 창고에는 시르바나에서 실었던 교역품이 몽땅 스탄달의 교역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벌써 스탄달의 교역소에서 교역품을 바꿔 싣고 슈덴베르크의 루벤트 항으로 가는 중인 것이다. 시드가 이렇게 일 처리를 빨리할 수 있는 이유는 스탄달 교역소의 주인이 아크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흥정 따위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교역품을 내려놓으며 수입이 생기고 교역소에서 물간을 정리하면 또다시 수입이 생긴다. 일단 물건이 한 번만 움직여도 이중, 삼중의 수입이 생기는 것이다. "스탄달에서 교역품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6,000골드의 이윤이 생겼어." 그 이윤은 몽땅 경험치로 바뀌어 시드의 레벨도 팍팍 올라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경험치를 쓸어 담을 수 있으리라.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다! 가라, 골드드림호!" 시드가 벅찬 감정을 주체 못하고 뱃머리에 뛰어올라 소리쳤다. 그때였다. 문득 정면의 바다가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어라? 저게 뭐야?" 부글부글, 부글부글 시선을 집중해 보니 바다 밑에서 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체 뭐지? 누가 바다 밑에서 라면이라도 끓이나?" 시드가 그렇게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지껄이고 있을 때였다. 처음에는 1~2개의 공기 방울이 올라오는 정도였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거품이 점점 많아지더니 급기야 주변의 바다가 통째로 끓어오르듯이 엄청난 거품이 올라왔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바다 밑에서 거대한 뭔가가 솟아올랐다. 촤아아아악! "어어어? 어어어어? 어어어어?" 멍한 표정으로 솟아오르는 뭔가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던 시드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거의 누운 자세로 올려다보는데도 아직 그 뭔가는 계속 솟아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뭔가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시드 역시 고장난 시계처럼 완전히 멈춰 버렸다. 거대하다! 아니,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돛이 6개나 달린 거대한 범선은 그 뭔가에 비하면 장난감만한 크기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그때 문득 그 뭔가의 중심에서 번들거리는 원형 물체가 빙글 돌아갔다. 눈! 그렇다. 그 원형 물체는 눈이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솟아 나온 거대한 물체는 바로.....! 쿠오오오오! 순간 괴물의 눈 아랫부분이 쩍 벌어졌다. 동시에 수만 톤의 바닷물에 휩쓸려 상선까지 괴물의 아가리로 밀려들어 갔다. "우아아아아아!" 시드가 있는 힘껏 비명을 터뜨렸다. 그게 작은 호비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to be continued... TYPING BY RAYAN ARK 20 아크20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차례> ACT 1 어비스 ACT 2 눈먼 자들의 던전 ACT 3 지옥문 ACT 4 마그라 스톤 ACT 5 비상사태 ACT 6 바다 괴물 퇴치 ACT 7 바다의 패자覇者 ACT 8 먹은 만큼 토해라! ACT 9 로비스트 ACT 1 어비스 "그람, 그람, 마호그람!" 두두두두,두두두두! 늪지를 가로지르며 한 무리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마치 도마뱀처럼 생긴 놈들이었다.그러나 당연하게도 평범한 도마뱀은 아니었다 .사람의 2배 크기에,건방지게 갑옷과 무기로 무장까지 한 도마뱀들이었다. "돌진인가? 라자크!" 딱딱딱,딱딱딱딱! 아크의 명령에 라자크가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힘차게 방패를 들어올렸다가 바닥에 내리꽂자 방패의 양옆으로 화염이 뻗어나갔다. 좌우로 길게 뻗어나간 화염이 한순간에 치솟아 올라오더니 마치 날갯짓하듯이 돌진해 오는 도마뱀을 후려쳤다. 콰콰콰콰쾅,퍼퍼퍼퍼펑, 화르르르륵!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길에 휘말린 도마뱀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라카크의 아티팩트'불타는 화룡족 방패'로 발동시킨 특수스킬 '철벽 화염'의 위력이었다. '철벽 화염'에 얻어맞은 100여마리의 도마뱀은 불길에 휘말려 돌진이 취소되고 '스턴'에 걸려버렸다. 곧바로 반격한다면 놈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힐수 있는 기회! 그러나 아크는 감히 반격할 엄두를 낼수없었다. "카라크,마람!그람, 그람, 마호그람!" 도마뱀들의 뒤에서 또다시 거친 억양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그러자 화염에 휩싸인 도마뱀들을 밀어내며 또다시 100여마리의 도마뱀이 돌진해왔다. 무기를 휘둘러 대며 달려드는 도마뱀들의 공격에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소리쳤다. "젠장, 또 시작됐군.라자크,뒤로 빠져!다크에덴 방어태세!" "방어 태세!" 100여명의 전사들이 명령을 복창하며 만들기 시작했다. 진형의 전면으로 나서서 앉은 자세로 방패를 세운다. 그리고 창을 비스듬히 세워 방패 위에 걸쳐놓았다. 적의 돌격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한편 타격까지 주기위한 자세였다. 이런 방어 자세도,또 전사들의 발 빠른 작전 수행률도,비밀 던전에서 생고생을 하며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왔기에 가능한것이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도마뱀들와 방어진형이 충돌하자 굉음이 울려나왔다. 방어진형을 만든 병력은 고작 100여명.반면 돌진해 온 두마뱀은 수백마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어진형은 허물어지지않았다. 앉은 자세를 취한덕에 방패로 전해지는 충격의 대부분을 지면으로 분산시킨 덕분이었다. 오히려 무턱대고 돌진하던 도마뱀들이 사선으로 세워놓은 창에 꿰여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어진형은 ,돌진에 대한 방어력은 최상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있었다. 앉은 자세로 적의 돌진을 막아내다 보니 뒤이어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는 점이었다.게다가 상대는 2~3미터 크기의 몬스터. 놈들이 바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듯이 공격하면 방패 부대로는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역시나 돌진이 저지당하자 도마뱀들이 무기를 들어올렸다. 그대로 포크로 내리찍듯이 공격하면 채 일어나지도 못한 방패 부대는 괴멸적인 타격을입게 되리라. 물론 그런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아크가 아니다. "궁수와 마법사,놈들을 요격하라!" "수평 사격,정밀사격!" "어둠을 꿰뚫는 한 줄기 빛,레이Ray!" 뒤이어 엄청난 수의 화살과 마법이 일직선으로 날아가 도마뱀들을 후려쳤다. 사실 전사들이 앉아서 방어자세를 취한것은 단순히 돌진에 대한 방어력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방어력보다는 오히려 궁수와 마법사의 공격력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집단전에서 궁수와 마법사의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전사는 적과 마주선 상태에서만 공격할수 있다. 때문에 적을 공격한다는 말은 ,돌려말하면 적에게 공격을 받는다는 의미와 같다. 때문에 전사의 전투는 문자 그대로 소모전이다. 그러나 궁수와 마법사는 다르다. 멀리서 적을 요격할수 있어 전혀 피해를 받지않고 적을 공격할수 있는것이다. 게다가 붙어 싸울수밖에 없는 전사는 드래곤처럼 거대한 상대라면 모를까, 비슷한 크기의 적에게 수십명이 달라붙을수는 없다. 그러나 궁수와 마법사는 수백,수천명이 적 하나에게 공격을 집중시킬수있다. 거리 제한이 없다는 점. 일점사로 적의 숫자를 확실하게 줄여갈수있다는 점. 이 두가지 이유때문에 집단전에서 궁수와 마법사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였다. 그러나 실제로 궁수와 마법사들은 집단전에서 발휘할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적이 아닌 아군에게 있다. 궁수와 맙버사는 낮은 방어력과 생명력 때문에 전면에 나설수없다. 그들의 역활은 배후에서의 지원.다시 말해 그들과 적 사이에는 항상 아군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말이다. 때문에 궁수와 마법사가 적을 공격하려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격을 할수박에 없다. 아군의 뒤에서 수평 공격을 날리면 먼저 동료의 뒤통수에 박히는것이다. 집단전에서 궁수와 마법사는 곡선 공격. 이건 뉴 월드의 유저들에게는 상식이었다. 아크 역시 지금까지는 그런 전투 방식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비밀 던전을 공략하며 지금까지는 잘 몰랐던 궁수나 마법사에 대해 좀더 깊이 알게되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런 방식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게된 이유는 바로 궁수와 마법사의 스킬 적용 방식때문이었다. 궁수나 마법사에게는 수많은 스킬이 있지만,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면 수평 공격과 곡선 공격이있다. 쉽게 말하자면 자신과 적 사이에 장애물이 없을때 직접 공격할수 있는 방식과 장애물이 있을때 포물선을 그리며 적을 공격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두가지 공격방식중 수평 공격이 더 위력적인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짱돌을 집어던질때 포물선보다 직선에 가까울수록 위력이 센것과 마찬가지. 수평공격은 곡선공격보다 공격력과 정확도가 1,5배 이상!게다가 곡선 공격을 사용할수 있는 스킬은 몇가지로 한정되어 있었다. 솔로잉을 할때 궁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효과적인 스킬은'정밀사격'과 '속사','피어싱'등.마법사의 경우에는 영창 속도가 짧고 위력은 강한 '레이'따위의 스킬이다. 그러나 이런 스킬은 모두 수평 공격이라 집단전에서 제대로 활용할수가 없다. 물론 광역 스킬이라 집단전에서 더 위력을 발휘하지만 대기 시간이 2~3시간이나 되니 일단 제외.그런점까지 고려하면 집단전에서 궁수와 마법사는 실제 능력의 50%정도밖에 발휘할수 없었다. '궁수와 마법사가 집단전에서도 제 위력을 발휘할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비밀 던전에서 아크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막상 고민하기 싲가하자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찾아낼수 있었다. 그게 바로 방금전에 사용한 '앉아서 방어 태세'였다. 전방의 전사들이 앉아있으니 적이 고스란히 궁수와 마법사에게 노출된것이다. 말하자면 궁수,마법사와 적 사이를 막고있던 장애물이 사라진셈! 궁수와 마법사들은 곧바로 공격 방식을 수평으로 바꾸어 도마뱀들에게 기관총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빨랫줄처럼일직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화살과 마법!위력도 위력이지만 정확도가 곡선 사격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콰쾅,투투투퉁! 정밀사격에 의한 급소 공격! 공간을 가른 화살이 도마뱀들의 관절에 정확하게 꽂혔다. 무기를 휘두르는 팔의 어깨나 팔꿈치에 화살이 꽂히자 도마뱀들이 공격하지못하고 움찔댔다. 방패 부대가 앉은 자세에서도 적의 반격을 걱정하지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뒤이어 마법사의 광선 공격 '레이'가 놈들의 무릎을 요격하자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동료가 방해되면 잠깐 치워놓으면 그만! 그런 단순한 발상이 궁수와 마법사들의 실력을 100%발휘할수 있게 만든것이다. "지금이다. 방패부대,놈들을 밀어붙이며 전진하라!" "오오오오!" 전사들이 튕기듯 일어나며 일제히 방패를 휘둘렀다. 거친 쇳소리가 울리며 도마뱀들이 수미터나 밀려났다. 그리고 바로 앉은 자세를 취하자 뒤에서 기다렸다는듯이 또다시 화살과 마법의 수평 공격이 난사되었다. "좋아,좀 힘들기는 하지만 이대로 밀어붙이면..........." 아크가 그렇게 도마뱀들을밀어붙이고 있을때였다. "주인,뒤에서 도마뱀 놈들이 또다시 돌진 대형을 만들고 있어!" 정찰 위성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람, 그람, 마호그람!" 동시에 적진 깊은 곳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전면에 있던 도마뱀들이 좌우로 갈아지더니 100여마리의 도마뱀들이 쐐기 진형으로 쇄도해왔다. "흥, 어림없다!방어태세!" 또다시 전사들이 앉은 자세로 창과 방패를 세우고 방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돌진해 오는 도마뱀과 충돌하기 직전! "카라킨,바람 ,노라무다!" 도마뱀을 지휘하는 목소리가 울리자 돌진해 오던 놈들이 일제히 개구리처럼 뛰어올랐다. 동시에 앜의 심장도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랐다. 아크가 몇번이나 같은 전법을 사용하자 도마뱀들도 대응책을 찾은것이다. 바로 앉은 자세로 대기하는 전사들을뛰어넘어 난입하는 방법!설마 도마뱀 따위가 그런 식으로 머리를 쓸 거라고는 생각못했던 아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궁수와 마법사,놈들을 요격하라!" 뒤이어 화살과 마법이 뛰어 들어오는 도마뱀 무리에게 폭사되었다. 뛰어 들어오는 도마뱀들은 거의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허공에서 화살과 마법에 요격당한 놈들이 늪에 처박혔다. 그러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이라 대응이 늦어져 절반 가까운 숫자의 도마뱀이 진형 안으로 난입했다. "이,이런.......큰일이다!"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현재 다크에덴의 모든 전사들은 전방에서'수구리'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때문에 갑자기 도마뱀들이뛰어넘었다고 바로 대응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곧바로 전방에 몰려있던 도마뱀들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입한 도마뱀들을 공격하기 위해 몸을 돌리면 전방의 적에게 등을 보일수밖에 없는것이다. 그사이 난입한 수십마리의 도마뱀들이 궁수와 마법사에게 달려들었다. "헉!피,피해라!" "크아아아악!" 난입과 난전은 궁수와 마법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전사라는 보호막을 잃은 궁수와 마법사들은 제대로 대항조차 못했다. 게다가 도마뱀들이 아군과 뒤섞인 상황이라 무턱대고 화살과 마법을 날릴수도 없다. '빌어먹을,최악의 상황이다!'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에 아크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들었다.. 물론 진형 안으로 난입한 적은 고작 수십.궁수와 마법사만으로 처리할수는 있다. 그러나 전사가 전면의 적에게 발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궁수와 마법사만으로 놈들을 처리하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한다. '그렇다고 궁수와 마법사를 후퇴시킬수도 없어' 만약 이대로 궁수와 마법사를 퇴각시키면 전방의 전사들은 도마뱀들에게 고립된다. 지원도 없이 도마뱀들에게 포위되면 100여명의 전사들은 고작 몇분도 버티지못하리라.그리고 전사들이 전멸한뒤에 벌어질 상황 역시 굳이 생각할 필요도없다. 전멸! "빌어먹을, 병력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아크도 전방의 전사들이 앉은 자세로 방어진형을 만드는 일명'수구리 대형'의 약점은 알고있었다. 앉은 자세로 방어태세를 취해 공수 전환이 느리고,방금전처럼 적이 피해를 감수할 작정으로 나서면 난입을 허용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아크의 수구리 대형은 지금까지 단한번도 깨진적이 없었다. 수백마리의 몬스터는 물론,10미터가 덤는 대형 몬스터도 수구리 대형을 사용해 어렵지않게 물리쳐 왔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는 수구리 대형은 그때처럼' 완성형'이 아니다.아크가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수구리 대형은 원래 방어진형이 두겹이었다. 전방의 전사들은 적의 돌진에 대비하기위한 병력.그리고 `1미터 정도 뒤에 또 한겹은 전사부대를 배치,전방에서 쓰러진 전사의 자리를 즉시 메우거나 혹시라도 방금전처럼 방어진형을 뛰어넘어 들어오는 적을 대비했다. 그러나 현재 수구리 대형의 방어진형은 한겹. 위험을 알면서도 그렇게대형을 짠 이유는 바로 병력 부족때문이었다. 현재 다크에덴의 병력은 고작 300여명밖에 되지않는것이다. "역시 병력 보충을 못하는 상태로 이 던전을 끝까지 공략하는건 무리란 말인가?" 아크의 입에서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자 지난 며칠동안 겪었던 고난의 기억이 떠올랐다. BY RAYAN "크아아아아!" 거대한몬스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비명을 터트렸다. 어둠의 기운을 베일처럼 두르고 수많은 시체를 엮어만든듯한 지팡이를 들고 있는 놈은 어둠의 사령술사 '수르트'. 비밀 던전 50층에서 만난 레벨 650의 중간 보스였다. 어둠의 사령술사라는 별칭답게 사령 마법으로 각종 저주를 발동시키고,어둠속에서 수백 마리의 부하언데드를 불러내는 강력한 중간 보스! "하지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크가 비밀 던전을 공략한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그동안 다크에덴이 이곳에서 썰어버린 몬스터의 숫자는 만 단위.그리고 몬스터의 시체는 그대로 다크에덴의 경험치가 되었다. 단순히 레벨을올리는 수치를 말하는게 아니다. 물론 그동안 몬스터를 썰어상당한 레벨을 올렸지만,더 중요한것은 문자 그대로 경험치. 다시말해'전투 경험'이었다. .........지난 열흘동안 아크의 던전 공략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광기'였다. 평균 수면 4시간. 아크는 그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오직 던전 공략에 투자했다. 단순히 공략에 투자한것만이 아니라 '지독하게 '투자했다. 보통 아무리 지독하게 게임을 하는 사람이라도 치열한 전투를 몇시간정도 하면 잠시 휴식을 취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유니트안에서 누워서 생각만으로 게임을 한다고 해도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전투를 몇시간 이나 반복하면 지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에게 그런 일반 상식 따위는 통하지않았다. "적을모두 해치웠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네? 방금 전투가 끝났는데 말입니까?" "그래서 뭐? 생명력과 마나는 모두 회복했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럼 쉴 이유가 없잔아?" 아크는 쉬고 싶다는 유저들을 이해할수 없었다. 비밀 던전에는 경험치와 전리품이 빵빵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린다. 게다가 수천의 병력이 몰려다녀 전투를 치르면서도 생명력과 마나의 소모가 심하지않았다. 다시말해 쉬지않고 경험치와 전리품을긁어모을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솔직히 자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였다. "체력이 안되면근성이다. 잔말 말고 움직여!GO,GO!" "쩐다, 쩔어.우리가 무슨 헝그리 복서도 아니고 근성이라니........" 아크가 80년대 영화에서나 나올듯한 근성론을 들먹이자 다크에덴의 유저들이 황당하다는듯이 중얼거렸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자 갱생단이 넌지시 끼어들었다. "그래,쉬엄쉬엄한다고 몬스터가 도망가는것도 아니잖아?" "뭐,우리가 힘들다는뜻이 아니고" "저 녀석들이 걱정돼서 말이야" 갱생단이 슬슬 아크의 무지막지한 사냥 스타일을 경험해봐서 비밀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상태였다.그리고 명색이 전직 조폭인데 동생에게 앓는소리를 할수는 없어참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다크에덴의 유저들이 불만을 터트리자 기회다 싶어 얼른 유저들의 편에서 아크를설득하려했다 그러나 아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쉬고 저래서 쉬면 대체 언제 레벨을 올리겠어요? 쉬는건 언제든지 할수 있지만이렇게 레벨을 올릴수 있는 기회는 아무때나 오는게 아니에요!남들이 사냥할때 사냥하고,남들이 쉴때도 사냥한다. 이게 남들보다 고레벨이 될수 있는 비결이에요!피로 따위는 근성으로 날려버리면 돼요!안그래요?" "아니,그래도 말이야......" 갱생단이 한숨을 불어내며 다시 입을 열려할때였다. "맞는 말이다!하여간 요즘것들은 근성이없다니까.고작 며칠 사냥했다고 죽는소리는.......이런 근성으로 앞으로 영주성을 지킬수 있겠냐? 근성을 키우는데는 빡세게 돌리는것만 한게 없지.전진이다,전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이슈람이었다. 경찰인 이슈람은 현장 근무를 할때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잠복 수사를 하거나,비상 대기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크의 무지막지한 사냥방식도 이슈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않는것이다. 게다가 얼마전에야 겨우 남들처럼 사냥할수있게 되어 한창 사냥의 재미에 푹 빠져 오히려 쉴틈없이 사냥 방식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젠장, 대체 저 인간은 뭐하는 인간이야?" 그러나 정체를 모르는 갱생단에게는 이슈람도 아크처럼 괴물로밖에 보이지않았다. 어쨌든 아크는 이슈람의 열광적인 지지에 힘입어 계속해서 다크에덴을 빡세게 돌렸다. 그러나 아크가 다크에덴을 이렇게까지 빡세게 돌리는 이유는 단순히 사냥 속도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바다보다 깊은 생각이 있었으니......... '다크에덴과 함께 비밀 던전을 공략하는것은 단순히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만은 아니야.그보다는 다크에덴이 전투 경험을 쌓게 하는게 중요하다' 그렇다.사실 다크에덴의 병력은 얼마전까지만해도 혼자 놀던(?)유저들이었다. 때문에 이번 공성전에서도 확인했다시피 아직 조직력이 갖춰지지않았다.이번 공성전에서 승리한것은 아크의전략때문이지,병력의 조직력이나 작전 수행률은 헤르메스 연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앞으로 시르바나를 지키렴녀 일단 다크에덴 병력의 조직력을 키우는게 급선무였다. 그리고 조직력을 키우려면 먼저 동료애가 필요한것이다. '비밀 던전의 정예 몬스터라면 집단 전투는 얼마든지 할수 있어.하지만 단순히 전투요령을 익히는것과 조직력을 키우는건 다르다.조직력은 설사 내가 죽는다고해도 동료를 위해 움직일수 있는 마음가짐.헤르메스 연합과 다크에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헤르메스는 창단된지 2년이 넘은 연합이다. 그 시간으로 이루어진 연대감은 공성전 전까지만해도 얼굴도 모르던 신생 길드의 연합원이 결코 넘볼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진 연합이라면 바로 이 부분에서 승패가 결정되는것이다. 그리고 지휘관도 부대단위의 명령은 가능하지만 실제 전장에서 병사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지시할수는 없었다. 때문에 전장에서 병사 개개인이 연대감을 가지고 움직이는것이 중요한것이다. 연대감이 전투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아크와 소환수의 관계만 봐도 쉽게 알수있다. 소환수들이 아크와 연대감이 형성되지않았을때와 연대감이 형성된 지금은 같은 레벨이라도 작전 수행률이 전혀 다른것이다. 때문에 아크 역시 시간만 나면 소환수에게 올포원,원포 올 All for one,onf for all을 주입시켜 온것이다. '평범한 방법으로 불과 한달 만에 다크에덴이 몇년이나된 연합처럼 연대감을 갖게 만드는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없는것도 아니지' 바로 지금처럼 한곳에 모아놓고 빡세게 굴리는 방법! 사실 이 방법을 귀띔해준사람은 다름아닌 아크의 열렬한 지지자 이슈람이었다. 이슈람이 알려준 연대감 조성의 비결은 일종의 군대방식이었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사람은 보통 직장 생활을 1년 넘게 같이한 친구보다 군대 생활을 한달 같이한 친구에게 더 강한 연대감을 느낀다. 힘든 시간을 같이 이겨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아크가 다크에덴의 유저들을 극한 상태까지 몰아넣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힘들면 힘들수록 한층한층 깨나갈때의 성취감은 커질것이고,그 성취감은 동료들 사이의 연대감으로 바뀌게 되는것이다. 마치 진짜 전장을 함께 헤쳐나온 전우처럼 말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크의 게획은 좀 다른 방향으로 성공적이었다. '젠장, 두번 다시 연합장하고는 사냥안해!" "빨리 던전을 깨버리고 연합장의 손에서 벗어나자!" 다크에덴의 병사들은 똘똘 뭉쳤다. 문제는 아크의 손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똘똘 뭉쳤다는거지만......어쨌든 병사들이 하나의 생각으로 똘똘 뭉치자 바로 전투에서 변화를 확인할수 있었다. "헉!위,위험하다!" "피하세요,크윽!" 한마법사가 언데드가 휘두르는 검에 맞고 쓰러졌을때였다. 옆에 있던 다른 마법사가 언데드 앞으로 뛰어들어 대신 검을 받아냈다. 아무리 생명력이 100%인 상태라고는 하나,막 공격대를 조직했을때라면 마법사가 다른 사람의 공격을 대신 받는일은 없다. 그게 가능해졌다는것은 서로를 동료로 생각라디 시작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다크에덴은 하루가 다르게조직력이 단단해졌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던전을 공략,50층까지 단숨에 진격할수있었다. 50층에서 나타난 중간 보스 수르트는 당연히 이전에 만났던 중간 보스보다 강력했다. 그러나 연대감 상승으로 조직력과 작전 수행률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수없게 올라간 다크에덴에게는 오히려 이전의 중간 보스보다 쉬운 상대처럼 느껴졌다. 아니,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전의 중간 보스를 병력에 비해 너무 힘들게 잡았던 것이다. 그러나 연대감 상승으로 병력이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수 있게 되자 레벨 650의 중간 보스따위는 다크에덴의 상대가 아니었다. 수르트는 공간 이동을 남발하며 언데드를 소환하고 각종 저주마법을 난사하면서 버텼지만 불과 20여분만에 다크에덴에게 둘러싸여 생명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크아아아아!" 생명력이 바닥나자 수르트의 몸에서 살점이 후둑후둑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몰골로 무너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수르트가 쓰러지자 눈앞에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크만이 아니라 다크에덴의 절반 이상의 머리위로 십자 문양이 떠올랐다. '후후후,이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정말 경험치 덩어리들이군' 아크는 히죽웃으며 정보창을열어보았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500 명성 : 21,785(+500) 레벨 : 403 직업 : 다크소울 작위 : 남작 칭호 : 캣나이트 ,민중의 간병인,작센의 영웅,위대한 모험가,마법 학회 정회원,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7,625(+475) 마나 : 7,815(+225) 영력 : 786 힘 784(+58) 지능 1,417(+5) 운 209(+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233 유연성 : 268 화술 79 애정 : 129(+10) 탄력도 : 483 어둠의 안개 : 74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물속성 저항력+100,수중패널티 무효 @고양이 손 (장갑) : 공격 속도+10%,민첩+15,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이동속도+40%,공격 속도+10%,'도약'사용가능 *<수왕>세트 효과 : 힘+20,민첩+20,체력+20,방어력+40 약속의 검(양손 검) : 힘+20,체력+10 전사의 견장(견갑) : 힘 +3 갈가쉬의 모피(망포) : 한파 저항력+!00%,민첩+20,생명력 50%미만 '마력보호'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애정+10,'바다의 가호'사용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공격속도+10%,치명타율+8%,'어둠의 보호'사용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민첩+5,체력+5,지혜+5,지능+5,'능력의 폭주'사용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생명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체력+10,명성 +500,검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독 저항이 20%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증가했습니다.] '하루에 2레벨이 기본이군' 아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처음 비밀던전에 들어올때의 레벨이 383. 현재 403이니 열흘만에 딱 20이 올랐다. 다른 사냥터에선 상상도 할수 없는 레벨업 속도였다. 아크만이 아니었다. 개별적으로 차이는 안나지만 다크에덴의 병사들도 평균 10~15의 레벨이 올랐다. '이렇게 레벨이 팍팍 올라가는데 대체 뭐가 불만인지 알수가 없단 말이야' 새삼 비밀 던전을 공략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던전이라면 열흘이 아니라 몇달이라도 좋아!' 심지어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들으면 경기를일으킬 생각마저 서슴지않았다. 그러나 아크가 행복한 기분에 젖어있을수 있던 것은 딱 50층까지였다. 수르트를 썰어버리고 51층으로 내려가자 아크조차 상상도 못했던 장면이 펼쳐졌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원래 비밀 던전은 고대의 지하 신전 같은 형태의 던전이었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일반 던전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그러나 50층을 기준으로 주변이완전히 달라졌다. 아니,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공략하던 '고대 악의 발상지'라는 던전은 50에서 끝났다. 그 아래는 전혀 다른 던전이었다. 끝도없이 지하로 이어져 있는 듯한 동굴. 51층 동굴에 들어서자 눈앞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어비스(특수) 당신은 미궁의 밑바닥에서 기이한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이 동굴은 수백년동안 단 한번도 빛이 들어오지않은 듯한 곳입니다. 마치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듯한 이곳에 존재하는것은 깊고 깊은 태초의 어둠과 위험뿐입니다. 당신은 그 입구에서 인간의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거대한 악의 존재를 직감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이야말로 지하미궁을 세운 사교도들이 섬기는 사악한 존재가 잠들어 있는 요람임을 알아챘습니다. 이제 당신이 선택할수 있는 길은 두가지입니다. 당장 발길을 돌려도망치는것과,만용을 부려 더 깊은 곳을 향해 태초의 거대한 악마에게 산 제물로 바쳐지는것.선택의 기회는 지금뿐이라는것을 명심하십시오. <모험가의 지식 : 새로운 던전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 : 20)>] '어비스? 심연이라는 뜻인가? 하긴 이미 지하로 몇백 미터는 들어왔을테니 심연이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지.하지만 던전의 끝이 다른 던전과 연결되어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게다가 던전에 대한 정보창이 범상치 않았다. 보통 새로운 던전에 진입할때 나오는 정보창을 보면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대강 던전의 난이도를 예상할수있다. 그리고 이렇게 산제무이니 뭐니 운운하며 대놓고 협박하는듯한 느낌이 풍기는 설명이라면 상당한 난이도의 던전임을 미루어 짐작하수 있다. 그러나 아크에게 이런 협박이 통할리가없다. 아니,노골적인 협박에 오히려 더욱 흥미 진진해졌다. '지금까지 단한번도 본적없는 경고문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지하신전보다 더 강하다는뜻.다시말해 더 많은 경험치와 전리품을 챙길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그만큼 힘들겠지만 다크에덴도 처음 던전에 들어왔을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오히려 지하 신전이 너무 쉽다고 생각될 정도. 더 난이도가 높은 던전이라면 환영이다. "신경쓸것 없어.진군이다!" 아크는 협박을 가볍게 무시하고 동굴로 들어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아크는 정보창의 협박성 문구가 뭘 의미하는것인지 알게되었다. 동굴을 따라 진군한 지 잠시,돌연 다크에덴의 병사들 눈앞에 경고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족'의 영향권안에 진입했습니다. 뉴 월드에는 일반적인 종족이나몬스터와는 차별된 정체불명의 생명체 마족이 존재합니다. 마족은 현실이 아닌 지옥에 속하는 종족으로 그존재 자체가 공간의 일그러짐을 일으킵니다. 강력한 상위 마족이 존재하는곳에는 그런 공간의 일그러짐이 가속화되어 주변에 강력한 '마기'가 몰여듭니다. 이런'마기'를 쐰 몬스터는 지금까지와 다른 기형의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또한 공기와 대기에도 '마기'가 침투해 그 지역이 마족의 영향권,다시 말해 지옥으로 변하게됩니다. <마족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능력치가 10%감소합니다. 반면 영향권안에서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는 능력치가 10%상승합니다>] '마족 ? 마기? 설마............'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움찔했다. 마족과 마기라는 명칭은 그동안 심상치않게 들어왔다. 마족은 오래전 뉴 월드를 침략했던 어둠의 제왕의 권속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마기는 당시 대륙을 뒤덮었던 어둠의 정체.어둠의 제왕의패퇴와 더불어 대륙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마기가 이런 동굴속에 몰려있는 것이다. '즉,이동굴 어딘가에 어둠의 제왕의 권속이 숨어있다는건가?" 의외의 일이었지만 막상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일은 아니다. 비밀 던전의 정식 명칭은 '고대 악의 발상지'.뉴 월드에서 고대악이라고 부를수 있는 존재라면 역시 어둠의 제왕과 관련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마기의 영향으로 몬스터가 변이를 일으킨다는건 혹시..........'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때였다. "크르르르!" 갑자기 어둠 저편에서 수백개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선명한 적의를 띠고 불타오르는 강렬한 눈동자! "적이다!전군 방어태세!" 아크의 목소리와 함께 어둠속에서 수백마리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동시에 다크에덴의 병사들 사이에서 숨막힌 비명이 터져나왔다. "헉!뭐,뭐야? 저놈들은?" "우욱!쏘,쏠린다............" 어둠속에서 나타난 괴물들은실로 끔찍한 형상이었다. 기본적인 형태는 지하 신전에서 만났던 에이션트 이블 고트나 레서데몬과 비슷했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들은 마치 그놈들을 반쯤 으깨다가 만것처럼 일그러져있었다. 어떤 놈은 마치 온몸이 내장으로 뒤덮인듯한 형태를 하고있었고,어떤 놈들은 피부에 아기손처럼 보이는것들이 뺴곡하게 돋아나 있었다.무섭다기보다는 징그러운........아니,혐오스럽고 그로테스크한 생김새. 웬만큼 징그러운 몬스터도 적지않게 봐왔다고 자부하는 아크조차 오바이트가 쏠릴정도였다. 아니,실제로 몇몇 유저들은 헛구역질을 해댔다. '마기에 의해 변이한다는게 이건가?' "크와아아아아!" 그때 놈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정신 차려!불쾌해하고있을때가 아니다!" 이렇게 다크에덴과 마족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놈들은 생긴것처럼 공격법도 괴상했다. 몸이 종기에 뒤덮인 징그러운 몬스터는 사방으로 고름 같은채액을 뿜어냈다. 그 고름을 뒤집어쓰면 지속적으로 생명력이 깎여 나가는 '역병'에 걸리고'혼란'까지 덤으로 붙어 아군을 공격하기도했다. 그리고 온몸에 아기손이 돋아난 몬스터는 그 손으로 병사를 껴안고 땀처럼 산성독을뿜어냈다. 그러면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변태적인 생김새와 변태적인 공격 방식! 놈들의 기습에 당황한 다크에덴.순식간에 100여명의 병사가 쓰러졌다. "젠장!일단 놈들을 밀어내고 거리를 둔다. 짝퉁형,놈들의 성향과 특기를 파악해 주세요!" "아,알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짝퉁이 스킬을 발동시키자 눈에서 광선이 뿜어져 나와 몬스터의 몸을 훑었다. 동시에 짝퉁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름 : 타락한 아그리온 레벨 : 400(정예) 생명력: 7,000 설명 :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 아그리온(마속성).능력이 10%증가. 특성 : 둔기에 대한 저항력+50%,칼날에 의한 저항력-20% 특기 : <포획>돌진해 몸에 돋아있는 수백개의 작은 손으로 적을 포획한 뒤에 산성 독으로 지속적인 데미지를 가한다.<호러>입에서 기이한 음향을 뿜어내 저항력이 약한 적을 '공포'상태로 몰아넣는다. <광란>생명력이 50%이하로 떨어지면 광기에 휩싸여 공격력을 50%증가시킨다. 단,'광란'이 발동하면 방어력이 50%내려간다.]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짝퉁의 특수 스킬'지피지기'! 짝퉁이 '지피지기'를 사용하자 몸에 수백개의 아기손이 달려있는 괴물의 정보가 떠올랐다. 아크의 '스킬간파'는 적이 사용한 스킬의 정보만 확인할수 있지만, '가디언=전략가'의 '지피지기'는 몬스터가 보유한 모든 스킬과 추가 정보까지 확인할수 있다. 짝퉁은 연달아'지피지기'를 사용해 각 몬스터의 레벨과 스킬정보를 아크에게 알려주었다. 스킬 명대로'지피지기'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하면 처음 보는 몬스터라도 대강의 대처법을 세울수 있었다. 예를들어 타락한 아그리온처럼 '포획'이나 주변에 음파를 내보내 '공포'를 일으키는 놈은 궁수나 마법사로 거리를 두고 상대한다. 그리고 체모를 날리며 원거리 공격을 하는놈은 전사들로 포획해서 공격한다. 아크는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갱생단을 이용해 몬스터의 머리위에 종류별로 증표를 찍었다. 검형상의 증표가 찍힌 몬스터는 전사들이 상대할 몬스터.화살 형상의 증표가 찍힌 몬스터는 궁수나 마법사가 상대할 몬스터.지팡이 모양은 마법에 취약한 성향을 가진 몬스터고,해골 마크는 접근하면 위험한 몬스터....... 이런 식으로 몬스터를 분류하는것은 지하신전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분류해 놓으면 난전 상황이 되어도 병사들은 자신이 어떤놈을 공격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수있었다. 역시나 종류별로 구분해서 취급 설명서(?)를 찍어놓자 변태적인 몬스터들의 공격에 혼란에 빠졌던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금세 전의를 회복했다. "겉모습에 현혹되지마라!" "아무리 괴상하게 생겨도 결국 몬스터다!" "제 1부대,해골 징표가 찍힌 놈들과 거리를 둬라.놈들은 광역 스킬을 사용한다!" "애벌레처럼 생긴놈에게는 둔기에 저항력이 있다 .검으로 공격해라!" 지하 신전에서 별의 별 상황을 다 겪어 본 다크에덴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긴다해도 새삼 놀랄 이유가 없다. 일단 상황이 정리되자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몬스터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마리의 몬스터를 빈사상태에 몰아넣자 돌연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타락한 아그리온의 생명력이 3%이하로 떨어져 마기를 추출할수 있게 됐습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마기의 영향을 받아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 상대가 마속성의 몬스터라는것은 아크에게 꽤나 반가운 일이었다. 이터널 소울의'마기감응'덕분에 마 속성의 몬스터를 상대할때는 공격력이 20%,속성 저항력이 30%나 상승하는것이다. 게다가 마속성의 몬스터라면 방금전에 떠오른 메시지처럼 '마기봉인'을 사용해 마기를 추출,저주템을 만들어낼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물론 저주템은 '이런상황이라도 꼭 만들어야 할 정도'로 필요한 아이템은 아니다. 현재 저주템의 용도는 고작 '블레이드 템페스트'를 발동시킬때 사용하는 소모품 수준. "하지만 중요한건 저주템의 사용방법이 아니라 저주템을 만드는 과정이지" 그렇다.'마기봉인'으로 몬스터에게 마기를 추출해 내면 경험치에 20~30%의 보너스가 적용된다. 마침 던전에서 열흘이나 돌아다닌 덕분에 잡템이 쌓여있는상황.설사 저주템이 쓸데가 없다해도 남아도는 잡템 하나 투자해서 20~30%나 되는 보너스경험치를 얻을수 있다면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다. "좋아,생명력이 3%이하가 된놈들은 그냥 죽이지 말고 내 쪽으로 모아!마지막 한방울의 경험치까지 쪽쪽 빨아먹어주지!마기봉인!마기봉인!마기봉인!" 1%의 경험치라도 더 먹을수 있다면 가죽과 고기는 물론,뼈까지 사골 국물을 내서 우려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크스타일.아크는 메시지가 떠오를 때마다 미친듯이 '마기봉인'을 난사했다. 그렇게 대략 20분이 지나자 몬스터들은 모두 저주템이 되었다. "후후후,이거 괜찮은데?" 아크는 올라간 경험치를 확인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던전입구에서 협박성 정보창을 보고 솔직히 좀 걱정스럽기도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와보니 경험치가 쏠쏠하지않은가.? 물론 마기의 영향으로 능력치가 10%나 깎여 나갔지만, 방금전의 전투를 보니 어비스의 몬스터도 충분히 상대할만하단 자신이 생겼다.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이 이정도 수준이라면 별 로 어렵지는 않겠어" 게다가 20~30%의 경험치를 추가로 더 얻을수 있다! 덕분에 이제 아크에게 어비스는 마치 거대한 경험치 밭으로 보일정도였다. "좋아,가자!경험치를 몽땅 털어먹자!"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앞으로 벌어질 일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애초에 아크는 착각하고 있었다. 어비스에 들어설때 나왔던 경고문이 마 속성으로 변한 몬스터들에 대한것이라고.그러나 경고문이 가리키는 위험이란 몬스터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크가 그 위험의 실체를 확인하기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않았다. 투둑,투둑 ,투두두둑. 첫 전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교각처럼 새긴 돌다리로 진군하고 있을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마른 장작이 쪼개지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먼저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선두에 있던 전사였다. "어라? 방금전에 무슨 소리 들리지않았어?" "무슨 소리?" "글쎄? 뭔가 금이 가는듯한 소리였던거 같은데?" "난 못들었는데? 기분 나쁜 동굴이라 괜히 신경이 예민해진거 아냐?" "그런건가?" 전사가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일때였다. 콰콰쾅,푸화아아악! 돌연 엄청난굉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던 전사가 눈앞에서 훅하고 사라졌다. 전사와 애기하던 유저도 한순간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직후,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핏물을 뒤집어쓴뒤에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나,나,낙석이다!" 그렇다. 전사가 한순간에 사라진것은 바로 천장에서 떨어진 거대한 돌기둥에 직격당해 으깨져 버렸기 때문이다.그게 시작이었다. 방금전까지 대화를 나누던 동료가 쥐포가 되는 장면을 목격해 패닉상태에 빠진 유저가 비명을 질러댄 탓일까? 뒤이어 천장에서 쩍쩍 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거대한 돌기둥이 우박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돌기둥이 떨어진다!" "피,피해라!" 동굴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떄는 늦었다. 우박처럼 쏟아진 돌기둥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병사들을 무참하게 뭉갰다. 그뿐이 아니다. 천장에서 돌기둥이 쏟아지자 돌연 바닥이 흔들이며 쩍쩍 금이 가기시작했다. 고가高架처럼 만들어진 길이 충격ㅇ르 견디지못하고 붕괴되기 시작한것이다. "다리가 무너진다!" "뛰어!이대로 떨어지면 끝장이다!" 쏟아지는 돌기둥,쩍쩍 떨어져 나가며 무너지는 돌다리! 이런 상황에서 레벨이니 조직력이니 하는것들은 조금도 도움이 되지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무턱대고 도망치다가 돌기둥에 깔리고,우물대다가 바닥이 꺼져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지고.....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그 지역을 벗어났을 때는 이미 400여명의 병사가 허망하게 사라진 뒤였다. "뭐,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돌다리가 사라진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휴,이번에는 정말 죽는줄 알았어" 한 병사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듯 바위에 기대앉으며 한숨을 불어냈다. 그떄 갑자기 등을 기댄 바위에서 우둑우둑 하는 기음이 들려왔다. 이상한 느낌이 든 병사가 움찔하며 몸을 일으키려 할떄였다. 돌연 뒤에서 엄청난 흡인력이 병사를 끌어당겼다. "뭐야? 바,바위? 바위가.......사,살려줘!우와아아아악!" 병사를 끌어당긴것은 등을 기대고 있던 바위였다. 놀랍게도 병사는 살점이 뭉개지고 뼈가 으스러지며 진흙처럼 꿈틀대는 바위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래로는 마치 기름을 짜듯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바위! "모두 바위에서 떨어져라!" 뒤늦게 그 장면을 확인한 아크가황급히 소리쳤다. 그러나 그때 이미 100여명의 병사들은 바위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이 팔을 잡아당겼지만 소용없었다. 전사들이 몰려들어 철퇴로 잘게 바위를 부수고나서야 겨우 몇명의 병사만 구출될 수 있었다. 400여명의 병사를 잃고 불과 몇분도 되지않아서 다시 100명 가까운 병사가 허망하게 죽어 버린것이다. 석주가 우박처럼 쏟아지는곳,사람을 잡아먹는 바위.그러나 시작에 불과했다. 좁은 길에서 뜬금없이 용암이 밀물처럼 밀려오는곳도 있었고,간헐천처럼 바닥에서 갑자기 시커먼 독액이 분사되는 지역도 있었다. 게다가 이건 인위적인 함정이 아닌 자연현상이다. 때문에 정찰병을 보내도 실제로 일이 터지기 전에는 무엇하나 예측할수 없었다. "던전 정보창에서 경고했던 위험의 정체가............" 그 경고가 가리키던 위험은 마기로 변한 몬스터도,마기에 의한 능력치 감소도아니었다.그렇다 .마치 적의를 품고 달려드는 듯한 던전 그 자체!몬스터들이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켰듯이,던전도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켰다. 평범한 던전에서 지옥으로.그리고 지옥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않은 장소인것이다. 덕분에 다음층으로 내려가는 길을 발견했을때는 700명이 검 한번 제대로 휘둘러보지못하고 허망하게 죽은 뒤였다. 결국 아크는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때임을 꺠달았다. '이곳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장담할수없는 던전이다. 몬스터와 싸우는것과는 달라.일이 벌어진 뒤에는 아무리 빨리 대처해도 피해를 받을수밖에 없어.뭐,유저야 그렇다고쳐도 문제는 NPC들이다' 그렇다.아무리 참혹하게 죽는다고해도 유저는 24시간이 지나고 부활하면 쌩쌩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NPC는 불사신이 아니다.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때문에 아크는 이곳까지 오면서도 항상 NPC부대를 가장 안전한 곳에 배치시켰다. 덕분에 51층까지 내려오면서도 NPC부대의 피해는 고작 2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비스의 위험도는 지하 신전에 비할바가아니다.단한번의 실수로 수백명이 전멸할수도 있는 장소인것이다. '이 던전의 공략을 시작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크에덴의 레벨을 올려 영지의 방위력을 올려놓는것.그런데 NPC부대를 잃기라도 하면 주객이 전도되는것이나 다름없어.그런 위험한곳에 NPC부대를 데리고 갈수는 없다. NPC들은 여기까지야.어비스는 몬스터가 아닌 던전 그 자체가 위험하다. 더 내려가 버리면 돌려보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아크는 결국 더 늦기 전에 란셀과 스탄달의 NPC들로 구성된 부대를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더 이상 밖에서 부활한 부대원들도 다시 던전에 진입시키지않았다. 던전공략을 시작한지 벌써 열흘.이제 위층은 벌써 몬스터들이 리젠되고 있었다.때문에 몇명이 모여 무턱대고 던전에 진입하다가 연사(연달아 죽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어느정도 병력을 모은뒤에 진입하면 그런일은 피할수 있지만, 몬스터와 싸우며 다시 어비스까지 내려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어비스는 자연적인 함정이 도처에 널려있다. 본대가 몬스터를 모두 정리하며 내려가도 후속 부대의 위험도는 똑같아.아니,우리는 일단 어비스가 어떤곳인지 체험했지만 후속 부대는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아무리 많은숫자가 모여 진입한다고 해도 합류하기전에 전멸할 가능성이 높아' 유저들은 NPC와 달리 죽어도 부활할수 있지만, 레벨을 올리기위해 공략하기 시작한 던전에서 몇번이나 죽어서 기껏 올려놓은 경험치가 펑펑 깎인다면 그야말로 삽질이다. "더이상 병력과 물자 보급은 없다.남은 병력이 전멸하면 던전 공략을 실패다!" 그때부터 던전 공략 방식이 180도로 바뀌었다. 지하 신전을 공략할때는 무한대로 보급되는 병력만 믿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제 병력도,물자 보급도 기대할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이제부터는 빠르게 던전을 공략하는것보다 병력 보존이 최우선 사항이었다. 아크는 각종 전문 스킬을 가진 병사들로 정찰 부대를 조직해 자갈 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며 병력을 이동시켰다. 그리고 몬스터 무리를 발견해도 이전처럼 무턱대고 공격하지않고 ,100%안전이 확인된 장소로 유인해 전투를 벌였다. 또한 굳이 싸우지않아도 될 몬스터와의 전투는 최대한 피하몀 진군했다. 던전 탐험대의 목적이 레벨업에서,가능한 많은 병력을 살려서 마지막층까지 도착하는 서바이벌,즉,생존으로 바뀐것이다. 덕분에 한층을 통과하는데 3~4시간밖에 걸리지않았던 던전공략이 6~7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직면해 병력은 계속 줄어갔다. 그리고 어비스에 들어오고 나흘이 지났을 무렵에는 불과 300여명밖에 남지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살아남은 300명은 의심할여지없이 다크에덴의 최정예다. 전투력이나 위기 관리 능력은 최상급.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며 그냥 머릿수만 많은것보다 정예 병력으로 움직이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아크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뒤로 동굴은 더욱위험해졌지만 오히려 사상자는 거의 나오징낳았다.지금까지 살아남은 병사들은 나름대로 생존에 필요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병력이 줄어든 만큼 통솔이 쉬워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좋아,이 병력만 유지하면 던전의 최종 보스까지 공략할수 있을거야!" 병력 보급을 포기한 시점에서 아크는던전의 완전 공략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최정예 300명만으로 완전공략을 할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그 희망은 다음날,60층에 도착하자마자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갖은 고 생끝에 도착한 60층은 전체가 계곡과 늪지로 이루어진 지하공동이었다. 다크에덴이 조심스럽게 계곡을 지나 늪지로 들어섰을때였다. 돌연 앞에서 갑옷을 입은 2~3미터 크기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비스의 중간 몬스터 악마 군단장 '베가'가 나타났습니다! "중간 보스 몬스터!" 아크가 움찔하며 곧바로 '고양이의 눈'으로 놈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중간 보스 몬스터는 레벨이 500~650대였다. 그런데 60층에서 출현한 중간보스 베가는 레벨이 450밖에 되지않았던 것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중간 보스가 더 레벨이 낮아? 뭔가 특수한 스킬이라도 있는건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크락, 크락, 하라드라 크락!"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 베가가 다크에덴을 발견하고 괴상한 언어로 소리쳤을때였다.돌연 늪지가 통쨰로 진동하더니 베가의 뒤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가 몰려나왔다. 마치 도마뱀을 닮은 몬스터는 레벨 400대에 무려 1,000여마리!레벨 400대의 정예 몬스터 1,00여 마리라면 2,000의 병력이 있어야 겨우 상대할수 있다. 그러나 현재 다크에덴의 병력은 고작 300. "끝장이다!" 아크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BY RAYAN ACT 2 눈먼자들의 던전 "적이 1,000마리라도 중간 보스는 한놈뿐이다!" 아크가 수백미터 떨어진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베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크가 생각할수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도마뱀이 베가의 소환수가 아닌이상 놈을 쓰러트린다 해도 여전히 1,000여마리의 도마뱀이 남아있다. 300명으로는 도마뱀들을 모두 상대할수 없으니 전멸은 피할수 없다. "하지만 죽어도 그냥 죽지는 않는다!" 어쨌든 현재 60층의 중간 보스는 베가. 놈을 쓰러트리면 중간 보스의 엄청난 경험치와 전리품을 챙길수 있지않겠는가? 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 베가를 처리하고 도망갈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크는 거기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도마뱀들과 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끔찍한 어비스에서도 살아남은 300명은 아크의 기대이상으로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10여분이나 도마뱀들의 맹공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버텨내며 베가를 향해 진군했다. 그러나 역시 병력의 부족은 치명적이었다. 전사가 앉은 자세로 방패와 창을 세워 적의 돌진을 막고,뒤이어 궁수와 마법사가 요격한다. 그리고 적이 타격을 입었을때 전사가 놈들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수구리 대형은 원래 전사가 두겹의 방벽을 만들어야 완전해지는 전법이다. 앉은 자세라 방어력은 최대로 끌어올릴수 있지만 방벽의 높이가 낮아져 적이방벽을 넘어 난입할 가능성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력 부족으로 전사를 한줄로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걱정했던 대로 몇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도마뱀들도 전법의 약점을 눈치채고 뛰어들어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버린것이다. "우와아아아악!" 수십마리의 도마뱀이 진영 안으로 난입하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장거리 공격수가 레벨 400 대의 정예 몬스터와 근접전에서 상대가될리없었다. 궁수아 마법사들은 한방에 생명력이 20~30%씩 빨려 나갔다. 게다가 도마뱀들이마구잡이로 진영을 헤집고 다니니 제대로 공격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전방의 전사를 안으로 불러들일수도 ㅇ벗다. 도마뱀들이 난입하는것과 동시에 전방에 있던 도마뱀들의 공격도 거세졌다. 그런 상황에서 전사들이 아군 진영을 돕기 위해 몸을돌리면 공격이 집중되어 순식간에 누워 버리리라. 물론 현재 난입한 도마뱀의 숫자는 수십마리.아무리 궁수와 마법사뿐이라도 어느정도 피해를 감수하면 처리할수 잇었다. 그러나 문제는 약점을 들킨 이상 이제 수구리 대형을 사용할수 없다는 점이다. 베가에게 접근할 방법이 사라진것이다. ".........여기까지인가?" 암담한 상황에 아크가 신음을 흘릴때였다. 창을 휘둘러 마법사의 머리를 부숴버린 도마뱀 한마리가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던 아크는 미처 대처를못하고 움찔하며 물러났다. "이 멍청아,어디에 정신을 팔고 잇는거야?"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이슈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이슈람이 아크의 어깨를뛰어넘으며 달려드는도마뱀에게 이단 옆차기를날렸다. 턱을 얻어맞은 도마뱀이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중심을 잡았을때,이미 이슈람은 도마뱀의 코앞에 바짝 다가선 상태였다. "커다란 도마뱀이라........어디 맷집이 얼마나 좋은지 한번 볼까?" 이슈람이 씨익 웃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퍼퍼퍼펑! 뒤이어 연속적인폭음이 터져나왔다. 동시에 도마뱀의 몸 중심선을 따라 갑옷이 움푹움푹 파여 들어가며 선명한 주먹 자국이 새겨졌다 .뛰어오르며 낭심,단전, 명치,울대,턱 ,인중,미간.......폭격을 가하듯 사대의 치명적인 급소를 공격하는 이슈람의 공중 살법이었다. 사람이 맞았다면 그대로 병원.......아니,영안실에 실려갈 정도로 우력적인 공격!도마뱀역시 연속적인 치명타에 엄청난 데미지를 입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꺼져라,망할 도마뱀!" 동시에 이슈람의 무릎이 스프링처럼 튕겨 올라가 도마뱀의 턱을 올려쳤다. 이어 머리가 퉁겨 올라가 드러난 목에 또다시 이슈람의 옆차기가 작렬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구의 도마뱀이 수미터나 날아가 늪에 처박혔다. 무지막지한 전투력! 새삼스럽지만 과연 아크의 사부다운 솜씨였다. "아크,내가 가르친걸 벌써 잊어버린거냐? 다시가르쳐줄까?" 도마뱀을 날려버린 이슈람이 아크에게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경찰청 체육관에서 이슈람에게 쥐어터지며 수도없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잘 알고 있군"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이슈람이피식 웃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만도 못하다.멍청한 제자야" "그것도 알고 있어요" 아크가 손바닥으로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을 후려치며 대답했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그냥포기하는건 아크의 스타일이 아니다.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이고 얌전히 죽어주는 매너따위는 필요없다. 얻어맞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지저분하게 끝까지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것이야말로 아크 스타일! "자, 어디끝까지 해보자고!밧아랏,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도마뱀들에게 마주 달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어둠과 동화된 검날이 공간을 뛰어넘어 도마뱀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격렬한 타격음이 울리며 도마뱀이 한걸음 물러났다. 아크는 그대로 도마뱀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이슈라처럼 몸을 날리며 도마뱀의 급소에 연속적인 발차기를 꽂아넣었다. 그때 옆에서 또 다른 도마뱀이 창을 휘둘렀다. "어림없다. 다크댄싱!" 아크는 '다크댄싱'을 발동시켜 유령처럼 창을 흘려냈다. 그리고 하단 차기로 놈의 발목을 걷어차 쓰러트린뒤 검으로 내리찍었다. "흠, 제법이군.하지만 이 몸을 따라오려면 아직 멀엇어!아다다다다!" 뒤이어 이슈람도 도마뱀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있다!" "도마뱀놈들을 한곳으로 모아!" 거기에 갱생단도 뛰어들었다. 그렇게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이 반격을 시작하자 무인지경처럼 진영을 헤집어놓던 도마뱀들이 하나둘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도마뱀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치던 궁수와 마법사들은 그제야 여유르르 되찾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역시 연합장과 부대장들이다" "정말 언제봐도 장난이 아니군" "대체 얼마나 연습해야 저정도로 싸울수 있는거야?" "이럴떄가 아니야.아무리 연합장과 부대장들이라도 놈들을 전부 상대할순없어!" 그렇다. 아크와 이슈람은 말할것도 없고,갱생단 역시 싸움에 이골이 난사람들이다. 때문에 전투력에 있어서는 다크에덴의 어떤 유저도 따라올수없다. 그러나 이곳은 게임속이다. 게임에는 게임의 규칙이있는것이다. 아무리 현실적인 전투력이 높다고해도 레벨 400의그것도 정예 몬스터 수십마리를 상대로는 한계가 있다. 피해 확산을 막기위해 일단 도마뱀을 한곳에 몰아넣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일단 한곳에 몰아넣으니 도마뱀들의 숫자는 수십마리가 되었다. 반면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은 12명. 도마뱀들을 한곳에 몰아넣은 덕분에 오히려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된것이다. "연합장과 부대장을 도와라!" 다행히 곧바로 전열을 재정비한 궁수와 마법사들이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렇게 공격이 집중되자 도마뱀들도 더이상 버티지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됐어.일단 급한 불은 껐다!' 아크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고 있을때였다. 갑자기 귓가로 라카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3시,3시!" 고개를 돌리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수십마리의 도마뱀이 난입한탓에 궁수와 마법사의 엄호를 받지못하던 전사 몇명이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몇명의 전사라 쓰러지자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듯이 방어 진형의 한축이 완전히 괴멸되어 버리고 만것이다. "크라, 크라, 베기노혼!" 베가의 명령에 도마뱀들이 전사들의 시쳬를 밟으며 진영으로 난입해 들어왔다. 그 숫자는 무려 200여 마리! 수십마리가 난입했을때도 진영이 난장판이 됐는데,200여마리가 쏟아져 들어오면 다크에덴은 순식간에 괴멸되고 말리라!아크는 곧바로 우글거리며 기어 들어오는 도마뱀을 향해 뛰어가며 검을 폭발시켰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쩌쩡,콰콰콰콰콰콰쾅! 어비스에서 마 속성의 몬스터를 때려잡으며 만든 저주받은 검!저주 덕분에 공격력이 몇배나 강화된 검을 포발시키자 마치 폭탄이 터지는듯한 굉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수백 ,수천개로 부서진 검의 파편이 폭풍우처럼 도마뱀들을 휘감았다. 도마뱀의 피부는 물론 갑옷맘저도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블레이드 템페스트,검의 폭풍이었다. "사범님,형님들!" "오냐,오늘 한번 죽어보자!" 뒤이어 이슈람과 갱생단이 휘청거리는 도마뱀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문자 그대로 혈전이 벌어졌다. 지금 놈들의 난입을 허용하면 다크에덴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괴멸한다. 아크와 이슈람 ,갱생단은 각종 스킬을 쉬지않고 난사하며 도마뱀들의 진입을 막았다. 그리고 궁수와 마법사들도 모든 화력을 집중해 도마뱀들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나 일단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걷잡을수 없었다. 도마뱀들은 공격력이나 민첩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중갑을 입고 있는 만큼 방어력과 체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한마리를 처리하는데도 적지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때문에 놈들의 진입을 막으려던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은 오히려 10여마리에게 발목이 붙잡히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수삽마리의 도마뱀이 진영으로 난입했다. 일단 도마뱀들의 난입을 허용하자 전황은 걷잡을수 업어졌다. 도마뱀들은 간신히 방벽을 유지하던 전사들을 뒤에서 공격했다. 그러자 또다시 몇군데의 방벽이 허물어졌고,사방에서 도마뱀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다른 전사들도 더이상 방벽을 유지할수 없게 되었다. 최악의상황인난전이 돼 버린것이다. "빌어먹을!" 아크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나왔다. 300명의 아군과 1,000마리의 도마뱀이 완전히 뒤섞여 버렸다. 이렇게 되면 병사 1명이 3마리 이상의 도마뱀과 싸울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크의 주변에도다섯 마리의 도마뱀이 몰려들어 창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렇게 사방에서 에워싸고 공격을 퍼부으면 아무리 아크라도 당할 도리가없다. "젠장,다크 블레이.............크윽!" 막 검을 휘두르려던 아크는가슴에 창을얻어맞고 비틀거렸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도마뱀이 휘두른 꼬리를옆구리에 얻어맞고 수미터나 날아갔다. 재빨리 낙법을 펼쳐 늪에 얼굴을 처박는 꼴은 면했지만, 하필 날아간게 수십마리의 도마뱀들이 몰려있는 곳이었다. 아크가 옆으로 떨어지자 도마뱀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아크의 눈동자에서 절망의 빛이 번졌다. '이대로 포위되면끝장이다!' 그때 불과 몇미터 거리에 안쪽으로 움푹 파여 들어간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일단 바위의 틈으로 들어가면 도마뱀의 포위는 피할수 있다. 그리고 따라 들어오는 놈을 상대하면 1대1로 싸울수 있다.좁은장소를 이용해 적의 숫자를 한정시키는,아크가 방황하던 시절 뒷골목 싸움에서도 통용되던 전법이었다. "다크 댄싱!" 아크는 '다크댄싱'을 펼쳐 유령처럼 바위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뒤따라오는 도마뱀을 상대하려 할때였다. 아크는 이해할수 없는 상황을 목격했다. 예상대로 한마리의 도마뱀이 바위틈으로 따라들어왔다 .그리고 창을 휘둘렀지만........엉뚱하게도 아크와는 수미터나 떨어진곳을 후려친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실수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다음 공격도,그 다음 공격도,엉뚱한 바위나 바닥을 후려쳤다.그러기를 잠시,엉뚱한 삽질을반복하던 도마뱀은 바로 앞에 아크가 있음에도 그냥 몸을 돌려 다시 전장으로 뛰어가는게 아닌가? 그 이상한 행동에 아크느 반격하는것마저 잊어버리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아무런 이유도없이 일너 이상한 행동을 할리가 없다. 도마뱀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뒤늦게 뭔가 알수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 전장에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있었다. 어디르 어떻게 봐도 여느 전장과 다를바가 없어보였다. 그러나........... '뭔가가 다르다.도마뱀들의 행동에는 뭔가 알수없는 위화감이 있어.그게 뭐지?' 그렇게 잠시 지켜보던 아크의 눈에 어떤 장면 이 들어왔다. 다크에덴의 누구도 눈치채지못한듯하지만, 도마뱀들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고 지켜보던 아크에게는 그 장면이 확실히 이상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도마뱀의 행동으로 아크는어느정도 자신의 판단에 확신이 들었다. '설마.......설마.......그런건가? 아니,내가 겪은 상황이나 방금 전에 본 장면은 그것으로밖에 설명할수없어.그리고 만약 내 짐작이 확실하다면............' 아크는 곧바로 바위틈에서 뛰어나갔다. 그리고 늪지를 돌아다니며 도마뱀들의시체를 찾기 시작헀다 그러게 잠시,아크는 생각한 조건에 맞아떨어지는 도마뱀의 시체를 발견할수 있었다. 그리고 놈의 시체를 통해 아크는 자신의 예상이 100%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순간 아크의 뇌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도마뱀들의 수상한 행동,전장의 지형,베가의 반응........순식간에 모든 상황을 하나하나 점검해 나가던 아크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전투,이길수 있다!' "다크에덴의 모든 병력은 즉시 계곡 뒤쪽으로 퇴각하라!" 동시에 아크의 입에서 폭탄처럼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병사들은 즉각적으로 움직이지않았다. "뭐? 계곡 뒤쪽으로?" "하지만 그곳은......?" 병사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계곡 뒤쪽은 이곳보다 훨씬 깊은 늪지였다. 끈적끈적한 늪이 허리까지 잠기는곳이라 전투는 커녕 제대로움직이기도 힘든것이다. 반면 상대는 도마뱀 .실제로 어떤지는 몰라도 늪지에서 살아가는 종족이니 다크에덴의 병사들보다는움직임이 자유로우리리. 물론 이곳에서 싸워도 이길 가능성은 1%도 되지않지만 일부러 더 불리한 지형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은 이해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곳이야말로 전세를 역전할수 있는 장소라고 확신했다.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없다!아직 체력이 남아있을때 움직여야한다!" "대체 왜 그러는지는모르겠지만........" "연합장이라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 "좋아.연합장의 말대로 퇴각하자!" 비록 잠도 재우지않고 던전을 공략해 욕을 얻어먹는 아크였지만, 지휘관으로서의 아크는 연합원들에게 신뢰받는 존재였다.시르바나 공성전에서 사용한 전략도 그렇고,비밀 던전에서도 아크 덕분에 몇번이나 위기를 넘겨온 경험이 있는것이다 .아마도 지휘관이 아크가 아니었다면 다크에덴은 이미 오래전에 전멸했으리라. 아크의 명령에 병사들이 전장을 이탈해 계곡 안쪽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쳐 합류한 병사를 보니 새삼 암담한 기분이들었다.도마뱀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목표 지점에 도착한 병사는 고작 120여명. 잠간 사이에 180여명의 병사를 잃은것이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되면 120명으로도 승산은 잇다!' "대체 뭐냐? 왜 움직이기도 힘든 이런 곳으로 퇴각하라는거야?" 허리까지 늪에 잠긴 이슈람과 갱생단이 물었다. ".........베가를 유인하기 위해서에요" "베가? 베가라면 도마뱀드의 대장말이냐?" 아크의 대답에 모두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이엇다. 베가는 방금전 계곡 앞에서 전투를 펼칠때도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 명령만 내렸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런곳까지 따라 들어올리가없지않은가? 그러나 아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놈은 틀림없이 이곳으로 올거에요.하짐나 곧 도마뱀놈들이 몰려올테니 자세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지금은 일단 저를 믿고 제 말에 따라주세요" "뭐냐?" "지금부터 모든 대원들은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기세요" "여기 숨을테가 어디있냐?" "적당한 곳이면돼요.그리고.........." 아크는 다크에덴의 병사들에게 앞으로 해야할일을 설명해주었다. 병사들은 아크의 지시를 이해할수 없었지만 일단 지시대로 적당히 흩어져 몸을 숨겼다. 뭐, 숨엇다고 해도 이 지역은 딱히 몸을 숨길만한 장소가 없어서 절반이상은 금세 찾을수 있을정도였다. 그러나 아크에게는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아크가 눈빛을 보내자 짝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음,알았다.별로 효과는 없겠지만........풍수지리!" [공격대에 '풍수지리'스킬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풍수지리는 '가디언=전략가'의 고유 스킬입니다. '풍수지리'를 사용하면 모든 환영 효과,지형 효과에 대한 상성치가 상승합니다. 적보다 높은 곳에 잇을때는 공격력이 가산되고,낮은 곳에 있을 경우에는 패널티가 반감합니다.또한 어둠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해 몸을 숨길 경우적에게 발각될 확률이 감소합니다. <적에게 의심받을 확률을 30%감소시킵니다>]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짝퉁의 직업스킬'풍수지리'! '풍수지리'효과가 적용되자 병사들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주변 환경과 동화되어 움직이지만 않으면 적에게 들킬 확률을 감소시키는것이 '풍수지리'의 효과였다. 물론 '은신'과 달리 보조 효과가 자세히 보면금세 발각될 수준이었지만 현재로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이제 우리는 어쩌냐?" "저와 함께 이 근처에서 숨어 있으면 돼요" 아크가 이슈람과 갱생단에게 대답했을때였다. "주인,도마뱀 놈들이 그곳으로 몰려가고 이어" 정찰 위성 라카드의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아크는 재빨리 이슈람,갱생단과 함께 늪속에잠소했다. 직후,첨벙대는 소리와 함께 수백마리의 도마뱀들이 계곡 뒤쪽으로 몰려들어왔다. 그리고 다크에덴의 병사들을 찾는듯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도마뱀들의 행동에 병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몸을 숨겼다고는 하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금세 발가될 허접한 은신인것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상황에서 발각되면 도망갈새도 없이 난도질당하게 되리라. 그러나 곧 병사들도 도마뱀들이 뭔가 이상하다는것을 눈치챘다. 그런 허접한 은신조차 간파하지못하고 해메기 시작한것이다. 심지어 숨어있는 병사의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도 고갤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병사들을 찾지못하자 이번에는 마구잡이로 창을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휘둘러지는 창이 병사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경우도 적지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살떨리는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숨소리 하나내지않았다. 아크가 은신하기전에 몇번이나 강조한 주의사항은 '어떤 상황이라도 절대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지말라!'였기 떄문이다. 그렇게 잠시,아무리 창을 휘둘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도마뱀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주인,놈이다!도마뱀 대빵이 계곡 안쪽으로 가고있어!"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카드의 보고를 받은 아크는 늪위로 살짝 고개를 내밀고 계곡의 모퉁이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전투 내내 뒤에서 소리만 질러대던 베가가 30여마리 도마뱀의 호위를 받으며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현재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이 숨어있는 곳은 계곡 안쪽으로 들어오는 입구 부근의 늪속.당연히 베가는 아크 일행이 숨어있는 장소를 향해 일직전으로 이동해 오고있었다. 모퉁이르 돌아서는 베가를 확인한 아크는 재빨리 다시 늪속에 잠수하고 머릿속으로 거리르 가늠해보았다. '놈의 이동속도와 거리를 생각하몀ㄴ 바로 앞에 도착할때까지 1분 남짓. 자,카운트 다운이다.60,59,58,57.....' 아크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숫자를 헤아렸다. 그리고 마침내 1분이 지났을때,와락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자 불과 3~4미터 앞에 거구의 도마뱀 대빵, 베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크 블레이드!" 순간 어둠과 동화된 칼날이 공간을 넘어 베가의 가슴에 적중되었다. 이슈람과 갱생단도 일제히 몸을 일으키며 베가를 향해 공격을 퍼부어댔다. "크라? 바라투라,아베라.........." 갑자기 아크와이슈람,갱생단이 나타나 공격을 퍼부어대자 베가가 당황한듯 허둥대며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댓다. 아니,지껄여대려는 찰나였다. "어림없다.사범님!" "오냐!" 아크의 목소리에 이슈람이 양손을 깍지껴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아크는 그 발판을 밟고 단숨에 뛰어올라 베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가방에서 음식 하나를 꺼내들고 떠들어대는 베가의 아가리에 쑤셔넣었다. 뒤이어 무릎으로 턱을올려차자 덜컥 입이 닫히더니 놈의 목 부분에서 격렬한 폭음이울려퍼졌다. "크아아아아!" 베가가 괴로운 비명을 터트리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후후후,어떠냐,이몸께서 특수 제조한 창작 요리의 맛이? 화끈하지?" 그렇다.아크가 베가의 입에 쑤셔넣은 것은 바로'창작 요리'로 만든 음식이었다. [불타오르는 소시지 '창작 요리'로 만들어진 특수한 음식. 돼지 창자에 고추와 후추,겨자,와사비 등등 각종 매운 재료를 30가지이상 넣어 만든 소시지.각종 매운 재료의 상승 효과로 인해 일단 입에 들어가며 격렬한 화학 반응을 일으켜 폭발합니다. 불타오르는 소시지를 먹은 사람은 한계를넘어서는 엄청난 매운맛에 이성을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엄청난고통에 한동안 말을 할수 없게 됩니다. <10분간 '광분 '사태 발동.'침묵'효과>] 무지막지한 매운맛을자랑하는'불타오른느 소시지'! 너무나 매운 나머지 10분간 '혼란'과 비슷한 '광분'상태에 빠져버리는 무시무시한 음식이다. 그러나 아크가 놈에게 '불타오르는 소시지'를 먹인 이유는 따로있었다. "크아..........크아.........크아............." 괴로운 신음을 흘리는 베가의 입술과 혓바닥이 풍선처럼 팅팅 부어있었다. 각종 매운 재료가 입속에서 폭발한 탓에 말도 할수없는 상황에 처한것이다. 아크가'불타오르는 소시지'로 얻으려는 효과가 바로이것이었다. "지금이다.플랜A!" 베가에게 폭탄을 먹인 아크가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동시에 계곡 여기저기에서 120명의 병사들이 ㅇ리제히 몸을 일으키며 함성을질러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벌어졌다. 바로 앞에서 놈들의 대장이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받는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함성을 질러대자 아크들에게 달려들던 도마뱀들이소리가 난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지는게 아닌가? 그 장면에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이게 바로 아크가 찾아낸 도마뱀들의 약점이었다. 방금전, 바위틈에 숨어있는 아크를 앞에 두고도 엄한곳에 삽질을 해대던 도마뱀의 이상한 행동.그 기묘한 행동을 지켜보던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해답은 하나였다. '혹시 놈들은 눈이 안보이는건가?' 도마뱀의 이상한 행동을 해명할수 있는것은 그것밖에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도마뱀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전투를 치를수있었을까? 그리고 방금전까지 어떻게 아크와 싸울수있었을까? 그런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아크는 그 해답도 어렵지않게 찾아낼수있었다. 바로 도마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베가. 그렇다.베가는 바로도마뱀들의 눈이엇던것이다. 대장인 베가가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않았던 이유는 그때문이었다. 뒤에서 전화을 파악해야 눈이없는 도마뱀들을 지휘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래 맹인은 다른 감각이 발달하기 마련,도마뱀들은 베가에게지휘를 받으며 전투는 청각에 의지해서 벌였던 것이다.아크가 전투 내내 기묘한 위화감을느꼈던 것은 그때문이었다. 도마뱀들은 바로 앞에 부상을 입은 병사가 있음에도 무시하고 엉뚱한 곳으로 달려나가는 일일 종종 있었던 것이다. 전투에 참가해서 정신없이 싸울때는 미처 신경 쓰지못했는데,막상 바위틈에서 전황을 지켜보니 그런 움직임이 너무나 이상하게 보였다. '그건 바로 놈들의 눈이 안보였기 때문이야.놈들은 베가의 명령을 받지만 전투는청각에의지해 본능적으로 한다. 그러니 바로 앞에 적이 있어도 소리가 들리지않으면 잘알아차리지못한다. 그리고 근처에서 보다 큰소리가 들려오면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던 거야!' 아크가 도마뱀의 시체를 뒤지며 돌아다닌 이유도 그때문이었다. 그리고 투구가 벗겨진 도마뱀의 시체를 통해 놈들에게는 애초에 눈과 입이 없음을 확인할수 있었다. 거기까지 알아내자 도마뱀들이 방어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부분까지 이해가 되었다. 청각으로 적의 위치는 알아도 적이 어떻게 공격하는지는 모른다. 다시말해 방어를 하지않았던게 아니라 그냥 적이 있는곳에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을수밖에 없었던 것! 계곡 안쪽으로 병력을 퇴각시켰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베가가 있는 곳에서는계곡 안쪽을확인할수없다. 그리고 병사들이 소리르 내지않고 숨어있으면 도마뱀으로서는 찾아낼수 없다. 결국 계곡 안쪽의 상황을 파악하기위해서는 베가가 직접 계곡 안쪽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는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입구에 숨어있다가 베가에게 '불타오르는 소시지'를 먹인것이다. 이로써 베가는 당분간 마을 할수 없게 되었다. 그말은 도마뱀들의 유일한 눈이 사라졌다는 의미! '1,000대 120이라도 상대가 맹인이라면 얘기는 다르지!' 아크가 도마뱀들을 상대하기위해 세운 계획은 두가지였다. 일단 플랜 A는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이 베가를 공격할때 방해하지못하도록 사방에서 소음을 내 도마뱀들을 뿔뿔이 흩어놓는 작전 .그리고 플랜 B는...... "이쪽이다. 망할 도마뱀들아!" "잡을수 있으면 잡아봐라!" 갑자기 소음이 뚝 끊기는가 싶더니 한쪽에서 병사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자 사방으로 뛰어가던 도마뱀들이 우르르 몰려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때 소리치던 병사들이 입을 다물고,이번에는 반대편에 숨어잇던 병사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느려터져서 잡을수나 있겠냐?" "어이,도마뱀!아니,도룡뇽인가? 여기라닊!" 그러자 도마뱀들이 우왕자왕하더니 다시 고함을질러대는 병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도마뱀들의 아이큐는 한자리 숫자였던것이다. '그건 다시말해 이녀석이 놈들의 눈이자 머리였다느뜻이겠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베가를 바라보았다. 베가는 도마뱀들이 빤히 보이는 적을 눈앞에 두고도 우왕자왕하자 몇번이나 명령을 내리려고했다. 그러나 창작 요리'불타오르는 소시지'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카시..........쿠.............카............." 몇배나 부풀어오른 입술과 혓바닥으로는 고작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게 전부였다. "자,이제 너도 다른 중간 보스처럼 직접 싸워 보시지.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베가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이슈람과 갱생단도 베가에게 각종 스킬 종합 선물을 선사해주었다. 그렇게 한차례공격을 퍼붓자 단숨에 베가의 생명력이 20%나 빠져버렸다. 이게 바로 베가가 전투에 참가하지않은 마지막 이유였다. 베가는 도마뱀들의 눈이자 머리.말하자면 참모 같은 존재.혼자서는 아무것도 할수없는,쓸데없이 레벨만 부풀려놓은 허접한 중간 보스였던 것이다. 심지어 베가는 무기조차 들고있지 않았다. "크..........크...........크............" 베가가 팅팅 부은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르 내며 양손을 허우적거렸다. 딴에는 공격이라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따위 공격에 맞을정도로 어수룩한 사람은 없었다.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은 마치 샌드백을 두들기듯이 베가의 공격을피하며 속사포 같은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렇게불과 10여분. "크........!" 베가는 중간 보스라는 명함이 무색하게도 맥없이 배를 까 뒤집으며 쓰러졌다. "좋아,일단 중간 보스는 처리했다!" 아크가 지체없이 몸을 돌려 도마뱀들을 바라보았다. 대장이 늪지한복판에서 맞아죽는동안에도 도마뱀들은 여전히 병사들의 함서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뭐랄까...... 막상 그런 모습을 보니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그러나 불쌍해 봐야 도마뱀. "이제 슬슬 정리해볼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허둥대는 도마뱀들을 바라보았다. 베가를 처리하니 도마뱀들을 정리하는건 일도 아니었다.아크는 70여명의 병사를 따로 뗴어 요격부대를 조직.함성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도마뱀을 20여마맀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인했다. 근처에서 그만한숫자가 전투를 벌이면 병사들의 함성보다 큰 소음에 도마뱀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쩄든 그렇게으슥한 곳으로 유인해서 슥삭.그리고 다시 유인해서 슥삭.그런 작업을 수십차례 반복하자 도마뱀들이 모두 정리되었다. "해,해냈다!" "정말 그 많던 도마뱀을 모두 죽였다!"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스스로도 믿기지않는다는듯이 중얼거렸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불과 120명의 병력으로 중간 보스를 포함한 1,000여 마리의정예 몬스터를 상대로 이길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디가서 그런 얘기를 해도 믿어줄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어쨌든 아크와 다크에덴은 해냈다. 그리고믿어지지않은 일을 해낸덕분에 엄청난양의 경험치를 얻을수 있었다. 아크의 레벨은 6이나 올라갔다. 그리고 다른 병사들도 평균 4~5나 레벨이 올라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도마뱀들에게서 얻은 전리품은 일반 아이템이 178개와 마법 아이템 42개입니다" "베가에게서 마법 아이템 3개를 획득했습니다" 도마뱀들의 숫자만큼이나 전리품의 숫자도 엄청났다. 어비스에 들어선 뒤로 살아남는게 최우선 과제라 가능하면 전투를 회피했다. 때문에 제대로 전리품을 얻지못했는데 이번 전투 한번으로 단숨에 부족한전리품을 보충한 기분이었다. 단하나,아쉬운건 베가에게서 마법아이템이 3개밖에 나오지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중간 보스임에도 능력치는 다른 도마뱀보다도 뒤덜어져 그런모양이다. '직접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됐어.알아서 잘 챙겨놔" 아크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저었다. 비밀 던전에 들어와지금까지 사냥한 몬스터의 숫자는 수만.거기서 얻은 전리품의 숫자도 천단위에 이르렀다. 그중 30%가량은 마법 아이템이었고,레어 아이템도 10여개나 되었다. 가치로 따지면 수만골드에 이르리라.그러나 어차피 연합원들이 쪼개 가지며 한사람당 수입은 고작 수십골드 밖에 되지않는다. 때문에 아크는 아예 전리품 따위는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않았다. '연합원들과 던전을 공략하는건 다좋은데 그게 문제란 말이야.하긴,혼자엿다면 2~3층도 내려오지못했겠지만............'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고있을때였다. 갑자기 양쪽 팔목에서 시큰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어? 이통증은?" 익숙한 통증에 아크는 얼른소매를 걷어올려 손목을 확인해보았다. 역시나 양쪽 팔목에 새겨진 문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떤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봉인이 해제되는 이터널 소울!빛에 휩싸인 이터널 소울의 문신에 돌연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쩡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그리고 깨진 문신이 피부에 스며들듯 사라지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해제되어 새로운 직업전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기 감응 III] : 이터널 소울 5단계(패시브) '마기 감응'은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으로 마반 영웅의 소울 스톤에 담긴 비기르 배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의 스킬입니다. '마기감응'을 습득하면 마 속성의 몬스터와 싸울경우 30%의 추가 공격력이 보너스로 주어지며,마속성의 상태이상에 저항할 확률이 40%상승합니다. 또한 몬스터의 체내에 숨겨진 마기를 감지할수 잇게 됩니다. <마기 감지,마 속성에 대해 공격력 +30%,속성 저항력+40%>] [[마기 발현] : 이터널 소울 6단계(액티브) '마기 발현'은 '이터널 소울'의 중급 과정에 해당하는 스킬입니다. 초급 과정인 '마비봉인'과 '마기탐지'가 혼자서 마족을 상대할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이었다면 중급은 본격적인 마족 군단과의 전쟁에 대비한 스킬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마기 발현'은 그런 의도처럼 각종 장비품에 봉인해 놓은 마기를 발현시켜 동료들에게 마족과 싸울수 있는 특별한 힘을 부여하는기술입니다. '마기발현'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마기가 봉인된 장비품 5개를 제물로 바쳐야합니다. 이떄 제물로 바쳐진 장비품의 종류에 따라 발현되는 효과가 달라집니다. 또한 서로 다른 종류의 장비품을 제물로 바칠경우,그 조합 방식에 따라서도 효과가 달라집니다. 그 조합에 따른 발동 효과는 사용해 봐야만 알수있습니다. 단,사용한 제물 아이템은 효과 발동과 함께 소멸합니다. <마기가 봉인된 아이템을 제물로 바쳐 특수 효과 발동. 영력 소모 : 100>] 생각지도 못했던 '이터널 소울'의 각성이었다. 그러나 어비스의 몬스터들이 마 속성이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대체 왜 이제야 봉인이 풀렸냐는 점이다. '어비스에서 마 속성 중간 보스를 만난건 베가가 처음이 아니었는데? 53층인가? 거기에서도 마 속성의 중간 보스가 있었잖아? 그때는 안풀리다가 왜 지금에서야 봉인이 풀린거지?' 전에는 그저 마 속성의 보스와 싸우면 하나씩 열리는 줄알았다. 그러나 이번 경우를 보니 꼭 그런것 같지느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 처음에 이터널 소울에 대한설명이 나왔을때,이터널 소울은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봉인이 풀린다고했지? 그렇다면 이전에 만난 중간 보스와 싸울때는 충족시키지 못했던 조건이 베가와 싸울때는 충족됐다는 말인데...........' 잠시 정보창을 읽어보던 아크는곧 의문에 대한해답을찾을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생긴 스킬은 이터널 소울 중급 단계에 해당된다고 나와있었다. 그리고 중급 과정은 마반 영웅이 하나의 마족이 아닌 마족 군단과 맞서기 위해 고안해 낸 기술. '그럼 이번 봉인을풀기위한 열쇠는 일정 숫자 이상의 '마족군단'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왜 이번에야 봉인이 풀렸는지 해명할수있었다. 53층에서 나왔던 중간 보스도 부하를 소환하기는 했지만,숫자는 고작 50여마리에 불과했다. 그거솓 마족이 아닌 소환수. 그러나 베가는 1,000마리나 되는 마족 도마뱀을이끌고 나타났다. 확실히 군단이라고 할만한 숫자인것이다. '중급 과정은 마족 군단과 맞서 싸우기 위한 기술.그렇다면 나머지 봉인을 푸는것도 결국 군단이라고 할만한 숫자의 마족과 싸워야 된다는 말이잖아? 이거 갈수록 봉인을 풀기가 까다로워지는걸' 하긴 마반 영웅의 유산을 습득하는일이그렇게 간단할리가 없었다.그러나 솔로잉을 선호하는 아크에게 마족 군단과 싸워야만 한다는것은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솔직히 비밀 던전의 공략만 완료되면 다시 공격대를만들어 사냥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뭐,그보다 마족 군단을만나기가 더 어렵겠지만. 하긴 정말 또다시 마족 군단을 만나면 좋든 싫든 공격대든 군단이든 조직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까다로운 조건도 아니군.어쨌든 그거야 나중 문제고..........'마기 발현'이라............마기가 봉인된 장비품을 제물로 바쳐서 파티나 공격대에 특수효과를 부여한다고?' '마기봉인'을 사용해 저주템을 만들수있지만, 활용도는 높지않았고,'마기탐지'로 주변 마기의 흐름을 파악할수 있지만 ,그역시 아직 제대로 사용해 본적은 없다. 그런데 정보창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배운 이터널 소울은 초급과정으로 중급과정을 보조하기위해 만들어진 스킬이라고 나와있다. 다시말해 이번에생긴'마기발현'이 장비품에 마기를 봉인할수 있는 '마기봉인'과 연계해서 사용해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중급 과정인 '마기발현'은 꽤나 쓸만한 스킬이라는 얘기인데............장비품을 5개나소모해야한다는게 좀 걸리네.대체 어떤 효과가 발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스킬처럼 내키는대로 사용하기는 힘들겠군.뭐,언젠가는 시험해 볼때가 있겠지' 아크는일단 이터널 소울에 대한 생각은잠시 접어두었다. 지금은 비밀 던전을 공략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베가와의 전투로 이제 남은 병력은 120명. 솔직히 이정도의 병력으로는 앞으로몇층이나 더 내려갈수 있을지 장담할수 없엇다. 그러나 여기까지 왓는데 그냥 돌아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갈수 있는데까지 가보는거야!' BY RAYAN ACT 3 지옥문 "자,일단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놓고 휴식을취한다!" 아크의명령에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져 공동을 수색하기시작했다. 비밀 던전의 상층부에 해당하는 지하 신전과 달리 어비스는 자연동굴이었다. 때문에 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는것도 쉬운일이 아니었다. 어떨때는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길을찾지못해 10시간이 넘도록 헤매고 다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 60층은늪지와 계곡으로 되어있지만, 동굴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곳은 아니었다. 길을 찾는건 그리 어렵지않으리라. 그러나................... "이쪽에는 길이 없습니다!" "이쪽에도 없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병사들이 고개를저으며 보고했다. "뭐?무슨말이야?길이 없다니?" "여기가 비밀 던전의 마지막 층이 아닐까요?" 병사들이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빔리 던전에 들어온지도 벌써 보름.보름동안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던전에서 헤매고돌아다녔으니 이제 질리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그럴리가 없어.방금 전에 해치운 베가는 중간 보스였어.중간 보스가 있다는건 이 던전 어딘가에 진짜 보스가 따로 있다는 말이야.틀림없이 어딘가에 찾지못한 통로가 있을거야" 그렇다.아크가 60층이 최하층일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때문이었다. 또한 중간 보스를 해치울때마다 나오는석팜에 대한 비밀도 아직 풀지못했다. 이번 베가에게서 얻은 것까지 합하면 석판은 모두 열장. 중간 보스에게서 나온 수수께끼의 석팜이니만큼 틀림없이 던전 어딘가에서 사용하게 되어있으리라. "분명 이 던전에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비밀이 있어.만약 여기에 내려가는 길이 없다면 다른곳이라도 길이 있을거야.어비스로 내려온뒤로는 미궁처럼 샅샅이 두지면서 내려오지못했으니 놓친 부분이 있겠지.만약 여기에 길이 없다면 어비스를 샅샅이이 뒤져서라도 찾아내야해" "히익,이,있을겁니다.분명 여기에 길이.......이봐,좀더 샅샅이 뒤져봐!" 아크의 말에 병사들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어비스는 몬스터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던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함정과도같앗다. 그런 복잡하고 위험한 어비스를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탐색하려면 며칠이 더 걸릴지 누가 알겠는가? 그럴바에는 차라리 죽든 살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편이 100배는 나은것이다. 아크의 협박(?)에 식겁한 병사들은 조명 마법을이용해 60층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후,도마뱀들이 몰려있던 장소의 맞은편 벽을조사하던 병사가 달려왔다. "아크님,여기 수상한 부분이 발견됐습니다!" 병사가 발견한곳은 안쪽으로 이어진작은동굴이었다. 밖에서 보면그저 벽이 약간 갈라진것처럼 보였는데,막상 안으로 들어가보니 제법 넓은 동굴이었다. 그러나 그리 깊은 동굴은 아니엇다. 마치 방처럼 넓은 공간이 덩그러니 있을뿐이었다. 그런데 동굴의 맞은편에 뭔가 묘한 부분이있었다. "뭐지,이건?" 아크가 벽을 더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벽은다른곳과는 달리 안쪽으로 10센티미터가량 평평하게 깎여 있었다. 형태는 높이 1미터에 넓인 3미터가량 되는 사각형이었다. 혹시나 주변에 뭔가 장치가 있나 싶어 꼼꼼히 살펴봤지만이렇다 할부분은 눈에 띄지않았다. 그냥 벽에 파인 사각형틀.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도없이 이런곳에 이런게 있을리는 없어.자연적으로 이런 형태가 만들어졌을리 없으니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놧다는 뜻이다. 분명 여기에 뭔가 비밀이 숨겨져있을거야.어? 이게 뭐지?" 그때 벽을 더듬던 손끝에 뭔가 색다른 감각이 느껴졌다.얼른 주변의 흙을털어내보니 중심에 손바닥만한 철판이 박혀있었다.철판에는 깨알처럼 작은 글자가 새겨져있었다. 괴상한 형태로 얽혀있는이해할수 없는 문자.그러나 아크는이런형태의 문자를 해독하는 방법을 알고있었다. 바로 고대 유물의 지식!역시나 문자에 손을 가져가자 옅은 빛이 퍼져 나오며 해독된 내용이 떠올랐다. 짐승,어둠 속에서 태어나 사악함을 먹고 살아온 짐승. 그러나 그 존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는 그를 볼수없다. 만약 그대가 그 존재에 대한확신이 있다면 그의 형상을 이곳에넣어라. 그러나 명심하라.그 존재는 그대들을 끝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으리라. '짐승? 그 짐승의 형상을 벽에 새겨넣으라고?' 철판의 내용 때문에 아크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뜬금없이 짐승은 뭐고,대체 그놈이 어떻게 생겻는지 알고 벽에 새겨넣으라는건가? '벽에 새겨넣어라? 이 사각형 틀안에 그림이라고 그리라는 말인가? 하지만 짐승이라는 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그리라는거야? 혹시 이 던전 어딘가에 내가 찾지못한 단서가 숨어있는 건가? 어딘가에 벽화 같은 거라도 그려져 있다든지............' 만약 그렇다면 문 제는 심각해진다. 현재 아크가 있는 곳은 비밀 던전의 60층. 그동안 이동한 거리만도 수십킬로미터는 될것이다. 그던전 어딘가에 찾지못한 단서가 있다면 결국 60층을 다시 되짚어가며 뒤져봐야 한단 뜻이 아닌가? 아무리아크라도 그건 무리라고밖에 생각되지않았다. 또한 아크가 할 마음이 있다고 해도 다크에덴의 병사들이 순순히 따라와 줄리가 없다. '잠깐...........벽화? 벽화라고? 그러고 보니 이거.........'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벽면을 바라보았다. 처음봤을때 문득 뭔가 생각이 나려다가 말았는데,벽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그때 뭘 떠올리려고 햇는지 꺠달았다. 안쪽으로 파인 사각형틀.그렇다,그것은 마치 이곳에 그려져있던 벽화를 누군가가 통째로 뜯어낸듯한 형태였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을 바꿔보자.원래 이곳에는 벼고하가 잇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벽화르 통쨰로 뜯어갔다면 ? 맞아,그러고 보니철판에도 그 형상을 그리라는 말은없었어.넣으라는 말을 그리라는말로 착각했을뿐이야.하지만 그 단어를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이곳에서 뜯겨져 나간 벽화를 다시 채워넣어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크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바로이곳까지 오면서 수집한 열장의 석판! 그러고 보니 석판을 조사했을때 표면에 뭔가 기이한 형상이 새겨져있었지만 명확하게 확인할수 없다고 나와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아크는 얼른 석팜을 꺼내 사각형 틀에 넣어보았다. 그러자 석판이 딱 떨어지게 사각형 틀에 들어가는게 아닌가? 그렇다. 석판은 바로 이 벽면에서 떨어져 나온 벽화의 일부분이었다. 일단 거기까지 알아내자 그 뒤는 간단했다. 아크는 마치 직소 퍼즐을 맞추듯 석판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하나하나 끼워넣었다. 그러자 점차 벽면에 하나의 커다란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10개쨰의 석판을 끼워넣었을때,아크의 ㅇ러굴에는 당혹감이 번졌다. "뭐,뭐야? 석판이 모자라잖아?" 열장을 모두 끼워넣었는데도 중심부에 빈공간이 남아있는것이다. "뭐지? 필요한 석판이 더있나? 하지만 다른 몬스터는 몰라도 중간 보스는 모두 잡았잖아? 아니,중간 보스를 쓰러트리지못하면 아예 다음층으로 내려갈수 없는 구조잖아? 그런데도 석판이 부족하다는건.......설마 숨어있는 중간 보스라도 있다는건가?" 거의 완성된 벽화를 보며 머리를 벅벅 긁어대고 있을때였다. 문득 벽화에 모자란 부분의 생김새가 왠지 낯설지않다는 기분이들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삼각형 모양을 이룬 빈공간. 분명 비슷한 크기에 비슷한 형상을 지닌 물건을어딘가에서 본기억이 있다. 하지만 대체 어디서? 벽화를 뚫을듯이 노려보며 기억을 더듬어 갈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 한동안잊고 있었던 석판이 떠올랐다. "가만? 이 형태는 .......맞아,확실해!라둔,핏빛 석판!" 쌕쌕쌕,쌕쌕쌕쌕! 라둔이 석판 하나를툭 뱉어냈다. 당장이라도 피를 뚝뚝 떨굴듯한 시뻘건 색의 석판! 아크가 이 석판을 손에 넣은 것은 비밀 던전이 아니었다. 예전에 드라고니안에 들렀을때 루미네스가 마수 마그라의 행적과 관련이 있ㅇ르거라며 건네줬던 석판이다. 그러나 이 석판을 조사하려면 고대 유물의 지식이 200이 필요해서 일단 챙겨두고 한동안 잊어먹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석판의 형태가벽화의 모자란 부분과딱 떨어지게 생겼던 것이다. "형태만 보면 거의 확실하다!" 석판을 움켜쥐자 진동이 일어나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대 유물의 지식'으로 '핏빛 석판'을 확인햇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 +10,지능10,운5,명성이 50상승했습니다.> [심연의 비밀이 담긴 핏빛 석판(Level : 0 이 돌조각에서는 정제되지않은 어둠의 힘이 느껴집니다. 설핏 보면 제멋대로 생긴것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밀하게 다듬어져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표면에는 어떤 기이한 형상이 그려져 있지만 현재로써는 그 형상을 명확하게 확인할수 없습니다. 이 석판이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는 아직 알수 없습니다. ] '역시!'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내심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름만 다르지 석판에 대한 설명은 비밀 던전에서 얻은 열장의석판과 똑같았다. 다시말해 핏빛 석판 역시 이 벽화의 일부라는 뜻이었다. '루미네스가 준 석판이 이 벽화의 일부라는 말은.......' 이 던전의 보스가 수백년 전에 사라진 마수 마그라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정말 엉뚱하게 숨겨진 전승 퀘스트에 대한 정보를얻은셈이다. 아니,어쩌면 어비스 최하층에 숨어있는 악의 존재야말로 마그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루미네스의 말에 의하면 마그라는 어둠이제왕 이전에 존재했던 마수. 이 던전의 명칭이'고대 악의 발상지'라는 점을 생각하면충분히 연광성을 생각해 볼수 있다. "뭐가 됐든 일단 마지막 열쇠를 찾았다!" 아크는 핏빛 석판을 빈공간에 끼워보았다. 그러자 벽면에 드디어 철판에서 언급했던 '짐승'의 형상이 완성되었다. 검은 털에 휩싸인 거대한 들개의 머리와 같은형상이었다.마치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나올듯한 불길함을 뿜어내는 검은들개.핏빛 석판은 바로 검은 들개의 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짐승의 형상이 완성됐을때였다. 쿠쿠쿠쿠,쿠쿠쿠쿠! 돌연 동굴이 통쨰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천장이 쩍쩍 갈라지며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뭐,뭐야?" "동굴이 무너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크와 병사들이 동굴 밖으로 뛰어나가싿. 거의 동시에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대체 이게 뭐야? 생기라는길은 안생기고 아예 무너져내리면........"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폭삭 무너져 내린 동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릴때였다. 무너진 동굴을시작으로 거대한 벽면에 쩍쩍 균열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나가더니 그안에서 뭔가 기이한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문이었다. 크기가 수십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문! 그러나 평범한 문이 아니엇다. 그문을 이루고 있는것은 인간이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수백,수천명의 인간을 주물럭거려서 만들어놓은 듯한 그로테스크한 현상의 문! 그 섬뜩한 형상에 병사들은 모두 말을 잃어버렸다. "지옥문............!' 그떄 누군가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 그로테스크한 문은 바로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됐던 지옥문이었다. 입도적인 크기를 가진 끔찍한 형상의 문에 다크에덴의 병사들은 단숨에 압도되었다. 심지어 아크조차 할말을 잃었을정도다. 그러나 이슈람과 갱생단은 예외였다. "어비스(심연)의 끝에서 지옥문이라......꽤 재미잇잖아?" 이슈람이 히죽웃으며 성큼성큼 지옥문으로 다가갔다. 짝퉁도 키득거리며 고개를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뒤에는 지옥이 있다 이건가? 좋군.한번즘 보고싶었는데" 그러자 불끈이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뭘 새삼스럽게........어차피 조만간 보게될텐데" "뭐야? 아주 악담을 해라.악담을" "그럼 설마 네가 천당에 갈줄 알았냐?" "당연하지 .내가 교회에 얼마나 기부했는지 알아?" "그게 기부냐? 돈세탁이었지?" "쓰,쓸데없는 소리하지마.인마.남들이 들으면 진짜 인줄 알겠다" 짝퉁이 기겁하며 얼른 불끈이의 입을 틀어막았다.뭐,짝퉁이 정말 기부금을 이용해 돈세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슈람과 갱생단이 가소롭다는듯한 태도를 보이자 바짝 얼어 있던 병사들의 간장도 좀 풀리는듯했다. 그러나 그건 불과 몇분도 가지않았다. 거대한 지옥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크 일동은 더욱 엄청난 장면을목격했다. 지옥문 너머엔 시로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잇었다. 문턱 너머엔 어둠에 잠긴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가마득히 수평선이 보일저도로 넓은 대해!이런 지하에 바다가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식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더욱 경악할 부분은 그 바다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었다. 고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 인간과 짐승,괴물............갖가지 형상을 한 투명한 존재들이 뒤엉켜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었던 것이다. 파도가 칠때마다 그 형상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며 기이한 울음을자아냈다. 문자 그대로 지옥,그 외에 다른 단어는 떠오르지않았다. "여기를지나가야 한다는 말인가?" 아크가 황당한 눈으로 바다를 향해 손을 뻗어보앗다. 그러자 시커먼 형체들이 불숙 튀어올라오며 팔을 휘감았다. 동시에 경고 메시지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생명력이 빨려나갔다. -지옥의 강과 접촉했습니다. <지옥의 강은 강렬한 원념과 저주를품은 기운의 집합체입니다. 접촉하면 1초당 100의 생명력을 흡수당합니다> 아크가 기겁하며 팔을 잡아뺐다. 덕분에 생명력은 그다지 줄지않았지만........ "이런곳을 어떻게 통과하라는 말이지?" "아크야!" 그때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슈람이소리쳤다. "아무래도 이걸 타고 가라는말 같은데?" 고개를 돌려보니 이슈람이 지옥문 옆에 달려있는 작은 조각배를 가리키며 히죽웃었다. 굉장히 낡은 듯한 조각배였는데,지옥의 강위에 둥둥 떠있었다. 이슈람의 말처럼 지옥의 강을 넘어가려면 그 조각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조각배의 크기가 고작 열댓 명밖에 못탈 정도로 작다는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곳에 진입할수 있는 사람은 열댓명이 한계라는 뜻이다. '이앞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고작 열댓 명만 가야한다고?' 이곳까지 몇백명이 몰려다녀도 매번 생사가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딱 보기에도 심상치않은 곳으로 열댓명만 가야한다니? 만약 이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말도안된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속이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이곳은게임속이었다. 게임을 하다보면 간혹 잊을떄가 있지만 ,아무리 난이도 높은 던전도,엄청나게 강력한 몬스터도,최종적으로 유저들에게 공략당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에 불과한것것이다. 당연히 지옥의 강과 조각배 역시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놓은 '설정'에 불과하리라.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 목적은 바로 인원수의 제한이었다. '내 짐작이 맞으면차라리 잘된건지도 몰라.현재 남은 병력은 고작 120명.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처럼 1,000여명이 달라붙어야 상대할수 있는 적이 나온다면 승산이 없다. 그러나 인원 제한이 걸려있다면 그런부분은 걱정할 필요없어.누가 얼마나 많은 병력을 이끌고 와도이곳을 넘어갈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면 결국 이너머에 있는 적은 제한인원만으로도 상대할수있다는뜻이니까.게다가..............' 어찌됐든 이너머에는 비밀던전의 최종보스가 있을 가증성이 많았다. 다시말해 이던전에서 가장 좋은 전리품을 얻을수 있는 기회란말이다. 그런 보스를 연합원들과 함께 잡으면 다른 전리품처럼 3,800등분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전리품을얻어도 결국 아크에게 떨어지는 돈은 고작 몇 골드.그러나 열댓명만 들어간다면? 당연히 연합원들은 어떤 전리품이나왔는지도모르니 들어간 사람들끼리 나눠먹을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같이 들어갈 사람이 이슈람과 갱생단이라며...... 몽땅 독식할수는 없겠지만 노른자를 챙길수는 있으리라! '후후후,이건 기회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의 입가에 탐욕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아크가 원하는 파티를 짜기위해 구이 입 아프게 떠들 필요도 없었다. "지옥 갈 사람?" 아크의 질문에 병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대놓고 지옥에 가자는데 좋다고 따라나설 인간이 있을리 없었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보통사람의 3~4배에 달하는 간덩이를 달고있던 이슈람과 갱생단은 예외였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각배를탈 사람은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으로 정해졋다. "자,어디 지옥 구경좀 찐하게 해볼까?" 이슈람이 뱃전에 떡하니 발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조각배가 저절로 스르르 미끄러져 나가기시작했다. "뭐,뭐야,저건?" 조각배를 타고 둥둥 떠내려가기를 대략5분. 끔찍하게 일그러진 형상이 뒤엉켜 꿈틀대는 풍경에 멀미가 생길 무렵.드디어 아크 일행의 눈앞에 목적지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 목적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못했던 곳이었다. "검은........크리스털 신전?" 지옥의 강위에 떠있는 기묘한 섬. 그 중심에는 거대한신전이 자리잡고 있었다. 흔히 볼수 있는 신전이 아니었다.벽과 지붕, 바닥까지 번들번들 운기가 흐르는 검은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신전이었다. 그 신전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보고있으면 혼까지 빨려들어갈듯한 기분이들었다. 잠시후,신전에 상륙한 이슈람이 크리스털 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쁘기는 하지만왠지 불쾌한 기분이드는 신전인걸" "지옥이니까요?" "하긴 지옥에서 상쾌한기분이 들면 오히려 이상하겠군" 이슈람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키득거렸다. 지옥도,기괴한 분위기의 신전도 이슈람을 긴장시키기에는 부족한모양이다. "방심하지마세요.여기가 목적지라면 보스가 있을확률이 높아요" "걱정마라.필요할떄는 바로 전투 모드로 들어가니까" 이슈람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며 신전으로 들어섰다. 안에 들어서니 밖에서 볼때보다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신전은 마치 고대 로마의 건축물 같은 구조였다. 좌우로 두꺼운 기둥이 주욱 늘어서 있었고,엄청난 중량감이 느껴지는 삼각형 지붕이올려져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잡티하나 보이지않는 칠흑같은 검은 크리스털로 이루어져있었다. 그곳에 발을 들여놓자 마치어두운 공간 속에 둥둥 떠있는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이거 기분이 묘한........." 이슈람이 발로 바닥을 탁탁 차며 중얼거리다가 움찔하며 이을 다물었다. 그리고 신전 안쪽 ,어둠에 잠겨있는 깊은 곳을 응시하며 가볍게 숨을 불어냈다. "........아크야,알겠냐?" "..............이정도되면 모르는게 이상한거 아니에요?" 아크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이슈람이그런 반응을 보이는것은 당연했다.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둠속,그곳에서는 뭔가 기묘한 냄새가흘러나오고 있었다. 피와 살점이 뭉개져 썩어가는듯한 불쾌한 체취.그리고 그 이상으로 신경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섬뜩한 기운!위기 감지 능력이 뛰어난 이슈람이나 아크가 아니라도 느낄수 있을정도로 노골적인 적의와 살기를품은 기운이었다. 그 기운을 감지한 아크와 이슈람 ,갱생단은 곧바로 전투 모드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뒤로 거의 1분을 기다렸는데도 안쪽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아쉬운 사람이 오란건가?" "딱히 아쉬울건 없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죽이되든 밥이되든 들어가 보기는해야겠지?" "제가 앞장설게요" 아크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갱생단이나 이슈람이 상당한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해도 아직 뉴 월드에서는 아크가 최강의 전사였다. 레벨이나 방어력 따위를 고려할떄 선두엥 설 사람은 아크밖에 없었다. 아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얼마나 들어갔을까? 회라을 지나 넓은 홀에 도착한 일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을 목격했다. 홀의 안쪽에는 크기가 20미터는 족히 될만한 거대한 짐승이 누워있었다. 검은 들개처럼 생긴 괴물 .바로 지옥문을 열때 벽화에서 봤던 검은 들개였다. 그런데 그 검은 들개는 몸이 반이상 찢겨져있었다. 찢겨져 나간 하체는 어디에 갔는지보이지도 않았고,찢겨진 몸아래로는 엄청난 양의 내장이 수미터나 흘러나와있었다. 신전을 떠도는 끔찍한 피냄새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것이었다. 검은 들개의 시체를 확인한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이게어떻게 된거지?" 벽화와 똑같은 생김새를보니 놈이 어비스의 최종 보스인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싸워보기도 전에 이렇게 처참한 시체가 되어 있다니? '혹시 우리가 오기전에 다른유저가 와서처리한건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던전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런 일을 종종 경험하기도 했다. 보스는 일반 몬스터보다 리젠 시간이 몇배나 많이 걸린다. 때문에 던전에서 일반 몬스터를 확인하고 힘들게 보스가 있는 곳까지 갔는데,정작 보스는다른 유저들이 처리한뒤에 아직 리젠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비밀 던전은 1년도 전에 내가 직접봉인해놨다. 게다가 이곳까지 오려면 지옥문을열어야해.다른 조각은 몰라도'핏빛 석판'이 내손에 있는한 다른 유저가 지옥문을 열었을리 없어.그렇다면 대체........' "뭐야? 설마,여기까지 왔는데 허탕이라는 거야?" "돌아버리겠군" 갱생단도 허탈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지었다. "젠장!이건 뭐,싱싱하면 먹기라도 하지" 개고기 마니아인 이슈라이 개대가리에 떡하니 팔을 걸치며 투덜거릴떄였다. -크으..........크크크크 돌연 짐승의 입가가 길게 찢어지며 신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뭐야? 이 자식 아직 살아있는거야?" 이슈람이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뛰어 물러났다. 이슈람만이 아니었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크와 갱생단도 소스라치게 놀라 짐승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러자 스르르 짐승의 눈꺼풀이 올라가며 붉은 눈동자가 드러났다. -........인간이군! 희열에 들뜬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붉은 눈동자를움직여 일행을 훑어보며 말했다. -묻겠다.........내 권속들이 가지고 있는......열쇠만으로는.....이곳에 들어오지못했을텐데...........나머지 하나의 열쇠를 ..............어디서 찾았느냐? '마지막 하나의 열쇠? 핏빛 석판을 말하는건가?' "화룡산의 드라고니안에서 구했다" 아크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힘들게 이곳까지 찾아왔는데 보스가 죽어있는 상태다. 뭐,지금보니 제대로 죽은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대체 비밀던전의 보스가 왜 이런 상태가 되어 있는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뭔가 다른 이벤트가 보스가 조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짐승은싸울수 있는 상태가 아닌것 같으니 알아낼수 있는건 모두 알아내고 처리해도 상관없지않겠는가? 아크의 대답에 짐승이 눈매를가늘게 좁히며 웅얼거렸다. -그런가..........역시 그곳에 있었군. "그 석판에 대해 안다면 역시 네가 마그라냐?" -나를.....알고있군...........화룡족의 생존자가 남아있었던 건가? "그렇다.그에게 네가 무슨짓을했는지도 들었지.대체 왜 이런꼴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쌍한 척한다고 살려줄거란 생각은 하지마라" 아크가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물론 아크가 그렇게 말하는것은 화룡족의 복수따위를 하기위해서는 아니었다. 비록 이런꼴이라도 일단 마그라는 살아있다. 그러니 숨통을 끊어놓으면 전리품을얻을수 있지않겠는가? 최악의 경우 전리품이 안나오더라도 퀘스트는 완료할수 있을리라. 그떄 마그라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잠시후 갑자기 상체-거의 목만 남은-밖에 남지않은 몸을 흔들어 대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살려준다고........? 네놈이..........나를? "하긴 상태를 보니 굳이 내가 손대지않아도 죽겠지만" -그말은........혹시 이 몸이 죽어간다고.......생각하는것이냐? "아니라도 말할 생각이냐? 뭐,심정은 이해하지만그런 꼴을 하고 기운이 넘치네.어쩌네 하는게 더 웃긴다고 생각하지않아? -네놈은.......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군. "내가 처한 상황?" -나는 수백년이나.........너희들을 ......기다려왔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수백년이나 아크 일행을 기다려왔다니? 아크가 어이없는 표정을짓자 마그라가 아가리르 길게 찢으며 중얼거렸다. -이해할수 없겠지......당연하다........하지만 곧 알게 도리거다.......내가 너희들을 수백년이나 기다려 왔다고 말한 이유를...........! 촤촤촤촤촤! 그때였다. 갑자기 마그라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펄떡거리더니 바닥에 들어져잇던 내장이 사방으로날아갔다. 그리고 신전의 기둥을 뱀처럼 휘어감자 상체만 남은 마그라의 몸이 둥실떠올랐다. 마치 마그라의 상체를 중심으로 거미줄이 처진듯한 모습이었다. 아크의 눈앞에 붉은경고 메시지가 떠오른것은 그때였다. -보스 몬스터 지옥의 마수'마그라'가 나타났습니다! "이,이게 대체...........!" "힉!주,주인!위쪽이야!" 그때 뒤에서 라카드의 비명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올린 아크의 얼굴에 경악이 번졋다. 내장......엄청난 크기의 내장이 뱀처럼 꿈틀대며 떨어져 내렸다. "다크 댄싱!" 아크가 재빨리 발을 움직여 수십미터 물러났다. 동시에 격렬한 굉음과 함께 아크가 있던 자리를 수십줄기의 내장이 후려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지않았다면 황당하게 내장에 깔려죽었으리라.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낼 여유도 없었다. 슈슈슈슉,아크가 몸을 피하자 수십줄기의 내장이 촉수처럼 곧추서더니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날아왔다. "크윽!뭐 이런......." 아크는 정신없이 '다크댄싱'을 난사하며 내장? 촉수? 어쨋든달려드는 놈들을 피했다. 그러나 눈앞으로 달려드는 촉수만 신경쓰느라 미처 발아래까지 살피지못했다. 돌연 덜컥하는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려보니 촉수하나가 다리를 칭칭 감고있었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자 사방에서 촉수가 날아와 전신을 난타했다. 퍼퍼퍼펑!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단숨에 생명력이 10%나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허둥대고 있을떄가 아니었다. "다크 블레이드!" 아크는 전력을 다해 다리를 휘감은 촉수를후려쳤다. 그리고 전방낙법을하듯이 바닥을 굴러 날아오는 촉수를 피해냈다. 그렇게 한차례 공격을 막아낸 뒤에야 아크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이럴 수가...........!' 촉수의 공격을 받은 것은 아크만이아니엇다. 마그라는 잘려나간 몸아래로 엄청난 숫자의 촉수를 뿜어내 기둥이며 천장, 바닥까지 홀 전체가 놈의 촉수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이슈람과갱생단에게 수백개의 촉수를 날려대고 잇었다. 다행히 날렵한 이슈람은 엄청난 속도로 스텝을 밟으며 부지불식간에 시작된 촉수공격을 모두 흘려내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아크나 이슈람보다 둔한 갱생단은 벌써 수십번이나 공격을 허용해 생명력이 20%~30%나깍여 나가있었다. "힉,힉!창자다,창자!창자가 날아온다!" 라카드 역시 기둥을 타고 올라 공격하는 촉수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이런 젠장!" "크윽!사방에서 달려드니 이거........" 불과 1분도 안되는시간에벌어진 일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순식간에 전멸한다!' 그때 불끈이와 타짜가 촉수에 휘감겨 벌러덩 넘어졌다.그러자 수십줄기의 촉수가 화살처럼 둘에게 집중되었다. 다급해진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마령 소환 라카즈,검화 해제!철벽 화염!" 딱딱딱,딱딱딱딱! 본블레이드가 순식간에 라자크로 변해 둘의 앞을 가로막고 방패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화염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지며 쏟아지는 촉수르 밀어냈다. 그사이 아크는 '전력질주'로 뛰어가 불끈이와 타짜의몸을 휘감은 촉수를 잘라내며 소리쳤다. "사범님,형님들!가운데 모이세요!" "크윽,알았다!" 이슈람과 갱생단이 아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등을 마주대고 원형진을만들었다. 촉수공격을 정면으로 한정시키기 위해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역시나 서로 배후를 지켜주자 수십줄기의 촉수가 날아와도 방금전처럼 휘감기거나 집중공격을 받는 상황은 피할수 있었다. "대체 뭐야,저놈은? 다 죽어가던 놈 아니었어?" 이슈람이 쉬지않고 날아드는 촉수를 쳐내며 중얼거렸다. "다 죽어가는 놈 맞아요" "뭐?" "저 녀석.......생명력이 15%밖에 없어요" 아크가 황금색으로 물든 눈동자로 마그라를 바라보앗다. 방금전, 마그라의 공격이 시작된 직후,아크는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켜 마그라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그대 확인한 마그라의 레벨은 무려 500.그것도 정예 보스 몬스터엿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면 절대 12명만으로 싸울수 없는 상대!그러나 마그라의 생명력을 확인해본 아크는 왜 크리스털 신전에 들어올수 있는 인원이 열댓명으로 제한되어 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렇게 됐는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몸이 절반 이상이나 찢겨져 나간 마그라는 생명력이 15%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놈은 신체의 절반 이상을 잃은 상태라 능력치도 15%밖에 발휘할수없다' 방금전 아크는 촉수에 얻어맞아 10%나 생명력이 날아갔다. 그때는 마그라가 엄청나게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새악ㄱ해 보니 그건 착각이었다. 물론 한방에 10%의 생명력이 날아갔다면 엄청난 공격력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실제로 아크가 얻어맞은 것은 수십방이다. 레벨 500대의 정예 보스에게 수십방이나 얻어맞고 생명력이 10%밖에 깎이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건 다시 말해서 15%밖에 남지않은 생명력처럼 능력치도 그정도 수준밖에 되지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은 크리스털 신전으로 오기전에 성직자와 마법사에게 각종 버프를받고,무기와방어구를 점검해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마그라가 결코 만만 한 상대가 아닌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마그라는 머리와 앞발 하나밖에 남지않은 상태라 제대로 움직이지도못해.고작해야 이렇게 내장(?)을 이용한 공격밖에 할수없겠지' 그리고 촉수 공격은 사방에서 날아오는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막아낼수있다. 아크가 원형진을 펼친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촉수를 막아낼수있다고해도 마그라에게 데미지를 주지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범님,형님,진형을 유지하며 놈에게 접근해요!" 아크는 원형진을 유지한채로 촉수를 쳐내며 마그라에게 다가갔다. 문제는 거미줄처럼 촉수를 뻗어 마그라의 몸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는점! "라자크,검화!" 마그라의 바로 밑까지 접근한 아크는 방패로촉수를 쳐내는 라자크의 해골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본 블레이드로 변신한 라자크를 잡고 촉수를 향해 휘둘렀다. 채찍처럼 길게 늘어난 검날이 쓸고 지나가자 단숨에 촉수 수십가닥이 끊어졌다. 동시에 공중에 매달려있던 마그라의 몸이 휘청거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기회다,마기 탐지!" 마반 영웅이 창안한 대 마족 스킬! 이터널 소울의4단계 스킬이 발동되었다.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하더니 주변의 풍경이 적외선 고글을 낀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마그라의 몸주변에 검은 피숮ㄹ같은 것이 그려졌다. 마기 탐지로 파악해 낸 마그라의 마혈!아크는 검을 채찍처럼 날려 그중 가장 두꺼운 마혈을 끈어버렸다. "다크 블레이드!" 서걱,콰콰콰콰쾅! 마혈이 끊어지자 마그라의 몸에서 연쇄적인폭발이일어나싿. 공격한 마혈이 속해있던 혈맥이 몽땅 퍼져나간것이다. 그리고 '마기탐지'로 찾아낸 마혈을 공격할경우,혈맥의 길이나 두께에 따라 100~1,000의 추가 데미지가 적용된다.또한 혈맥이 끊어져 일시적으로 방어력까지 감소하는 효과도 발동되었다. 그야말로 마족을 상대하기 위한 스킬! -크으으으.......가,감히.............인간따위가............! 일격에 적지않은 데미지를 입은 마그라가 이를 갈아붙엿다. 동시에 찟겨진 피부사이로 수십줄기의 촉수가 화살처럼 뿜어져나왔다. "흥,우리는 호구냐?" 그러나 이슈람과 갱생단이 방벽을 쌓듯 아크의 양옆에 늘어서며 날아드는 촉수를 몽땅 쳐냈다. '좋아,이대로만 공방을 유지하면 이길수 있다!' 그러나 절대 서둘러서는 안된다. 마그라는 수백줄기의 촉수를 사용하는 보스몬스터다. 자칫 빨리 처리하려는 욕심때문에 허점을 보이면 언제 어떻게 전황이 뒤바뀔지 장담할수 없는것이다. '천천히 ,깔짝깔짝 놈의 생명력을갉아먹는거야!' 아크는 원형진을 유지하며촉수의 공격을 막아 내다가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촉수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마그라의 마혈을 공략했다. 연속적이 공격을 퍼붓지못해 눈에 띄는 데미지는 줄수는 없었지만 방어를 우선시한 덕분에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은 큰 피해없이 야금야금 마그라의 생명력을 깎아나갈수있었다. 반면 마그라는 가랑비에 옷젖듯이 수차례 마혈이 끊겨 생명력이 5%나 깎여나갔다. -건방진 놈들! 그때 마그라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흔들어댔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날아다니던 촉수가 한데 뭉치더니 거대한 망치처럼 변해버린것이다. 그 거대한 촉수가 그대로 원형진을 만들고있던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헉!피,피해라!" 콰콰콰콰콰쾅! 엄청난굉음과함께 아크와 이슈람,갱생단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러자 촉수가 다시 수백줄기로 분산되며 일행을 덮쳤다. 처음 공격당할때와 같은 상황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리고 미처 대응하지못한 불끈이와 해결사는 사지가 수십줄기의 촉수에 휘감겼다. "형님들-!" 아크가본 블레이드를 휘둘러 불끈이의 양팔에 휘감긴 촉수를 끊어냈다. 그리고 다시 해결사를 휘감은 촉수로 검을 휘두르려 할때였다. 돌연 마그라의 목 부분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하더니 쩍 벌어진 입에서 뭔가 커다란 물체가 튀어나왔다. 마치 젤리처럼 생긴 거대한 물체가 혓바닥처럼 늘어나 순식간에 해결사의 몸을 뒤덮었다. 그리고 어떻게 손쓸새도 없이 마그라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리는게 아닌가? "뭐,뭐야,저 녀석!서,설마.......?" 우드득,우드득,우드득! 마그라의 턱 근육이 꿈틀거릴때마다 섬뜩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언뜻언뜻 드러나는 송곳니사이로 시뻘건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씹고 있었다. 마그라가 해결사를 씹어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두려우 장면은 그뒤에 펼쳐졌다. "이,이럴수가.......!" 마그라를 바라보던 아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해결사를 삼킨 마그라가 희열에 찬 표정을 지을떄였다. 가슴 부위가 꿈틀꿈틀하더니 시뻘건 살정이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부위로 검은 털이 솟아나더니 이내 없어졌던 왼쪽 앞발로 변해버렸다. 동시에 마그라의 생명력이 단숨에 8%가량 회복되었다. 사라진신체와 함께 생명력까지 재생된 것이다. -크크크크......수백년만에.......되찾앗군. "되,되찾아?" 그때 아크의 눈앞에 '고양이의 눈'추가효과인 '스킬 간파'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마그라의 특성 스킬 : 육괴 지옥의 마수 마그라는 불멸의 존재로 알려져있습니다. 마그라는설사 몸이 완전히 파괴되어도 다시 육체를부활시킬수 있습니다.그러나 마그라가 스스로의 힘으로 재생할수 있는 육체는 얼마되지않습니다.마그라가 '육괴'로 완벽하게 재생하기위해서는 살아있는 육체를 흡수해야 합니다. '육괴'로 육체를 재생한 마그라는 잃어버렸던 신체와 능력을 다시 되찾을수있습니다.] -크크크크........이제야 알겠는가? 마그라가 재생된 앞발을 흔들어대며 히죽 웃었다. -네놈이 찾은 석판은 열쇠 따위가 아니다.......바로 이몸의 산제물이라는 낙인이지. '산제물? 낙인?'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어비스로 들어올때 나왔덛ㄴ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비스로 들어서는 것은 고대의 악마에게 산 제물로 바쳐 진다는 뜻이라는 경고 메시지!몸이 뜯긴채 쓰러져 있던 마그라.'스킬 간파'로 확인한 '육괴'라는스킬정보.그리고 어비스로 들어섰을때 봤던 산 제물이라는 단어! 마그라에게 산 제물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런 정보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서,설마........네놈은 이미 수백년 전에.........?" -이제야 눈치챈 .......모양이군. 마그라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네말대로........나는 수백년전,암흑 세기말기에 한번 죽었던 몸이다.......그러나 나는 어둠에서 태어난 어둠 그 자체........불멸의 존재지........육체를 잃은 내 영혼은 이 지옥의 밑바닥에서 다시육체를 재생시키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불멸의 존재라도.......혼자만의 힘으로 육체를 완벽하게 재생시킬수는 없었다................때문에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두었지. "심연의 비밀이 담긴 핏빛석판!" -그렇지........크크크크.인간들은 참으로 단순해....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듯한 미끼를 던져두면 뭣도 모르고 기어 들어오거든.........덕분에 나는 그저 이곳에 가만히 앉아만있어도 산 제물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지.........그것도 강력한 힘을 가진 전사들이 말이야........하지만 이번에는 좀 시간이 많이걸렸어.......이곳에 오기직전에야 인간들에게던져줄 미끼가 사라졌다는것을 알앗지........그리고 수백년........솔직히 이제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내 먹이가 되기 위해 찾아와주다니....... 아크는 그제야 핏빛 석판에 얽힌 비밀을 알수 있었다. -이제 알겠느가..........내가 수백년이나 너희를 기다렸다는 말의 의미를......? 간단하다.먹기 위해서. 그리고 애초에 크리스털 신전으로올수있는 인원에 제한이 잇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재생하지 못한 마그라로서는 그보다 많은 숫자의 유저를 당할수 없는것이다. 다시말해 열댓명이라는 숫자는 마그라가 충분히 잡아먹을수 있는숫자라는말이다. 그렇다.이던전,석판,지옥문.......모든것이 함정이어었다! BY RAYAN ACT 4 마그라 스톤 고오오오오. 크리스털 신전은 기괴한 침묵에 잠겼다. 아크와 갱생단은 전투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비밀던전과 석판에얽힌 비밀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아니,사실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문제는 마그라가 생명력과 능력치를 회복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마그라의 생명력을 5%깎아내기 위해아크일행은 평균 30%가량의 생명력을 잃었다. 레벨 600대의 정예 보스를고작 12명으로 상대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마그라의 생명력이 15%밖에 없었으니 그대로 전투를 진행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마그라가 해결사를잡아먹고 생명력을 회복해 버렸다. 드래곤볼에서 간신히 대등하게 싸우게 됐는데'후후후,사실 나는 변신을할수있지'라고 지껄이며 염치없이 공격력이 쭉쭉 올라가는 프라자를 바라보는 손오공의 심정이랄까? "젠장, 개새끼 주제에 감히 누굴 먹는다 만다 하는거야?" 이슈람이 이를갈아붙이며 마그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범님!자,잠깐만..........!" -멍청한 놈.......이미 늦었다...........크아아아앙! 돌연 마그라가입을 쩍 벌리며 굉음을 뿜어냈다. 그러자 신정 안에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며 이슈람이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이슈람이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 .사방에서 수백줄기의 촉수가 쏘아져 사지를휘감았다. "사범님!다크 블레이드!" 아크가 검을휘두르며 이슈람을 휘감은 촉수를공격했다. 그러나 또다시 마그라의 몸에서 수백주기의 촉수가 쏟아져나와 장벽을 만들었다. 다크 블레이드가 장벽에 가로막힌 사이 이슈람은촉수에 휘감겨 마그라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뒤이어 살과 뼈가 씹히는 섬뜩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이번엔 마그라의 옆구리 부분이 재생되어 생명력이 10%가까이 회복되었다. 처음 마그라의 생명력은 15%.놈의 능력치도 정상의 15%에 불과했다. 그러나'육괴'로 해결사와 이슈람을 먹어 생명력을 18%나 회복했다. 그말은능력치가 이제 정산의 33%까지 회복됐다는 뜻이다. 쾅,쾅,쾅,쾅,쾅! 그 효과는 바로나타났다. 수백줄기의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가로질렀다. 속도도,위력도 방금 전과는 비교할수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슈람에게 사용했던 '하울링'으로 폭풍을 일으키면 아크와 갱생단은 제대로 중심을 잡지도 못한채 휘청거렸다. 그럴때면 여지없이 촉수가 날아와 데미지를 입혔다. "크윽!" 또다시 '하울링'과 촉수의 연속 공격에 아크의 생명력이 20%나 빨려 나갔다. 갱생단 역시 순식간에 생명력이 30%이상 빨려 몇명은 빈사 상태까지 몰렸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이게 마그라의 33%능력이라면 100%를 회복하면.......!' 아크는 그제야 잠시 잊고있던 마그라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그렇다,마그라는 작센 영지와 최강의 부족인 화룡족을 멸망으로 몰고갔던전설의 악마인것이다. 그런 놈이 만약 100%회복하면 그 힘은 상상 초월! 아니,100%까지도 필요없다. 33%의 힘을 회복한것만으로도 아크와 갱생단은 마그라를 상대할방법이 없었다. '결국 며칠 밤을 세우며 여기까지 온게 저따위 놈의 밥이 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뭔가가 울컥 치밀어올랐다. 그러나 당장 중요한건 여기서 죽느냐 마느냐가 아니다.마그라가 이곳에 숨어있던 이유는 육체를 재생하지못해서였다. 다시말해 육체를 완벽하게 재생하면 더이상이곳에 잇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리고 수백년전에 사라졌던 전설의 마수가 다시 세상에 나가게 되리라. 그런 놈이 활보하면 세상이 불바다가 될것은 자명했다. '물론 세상이 불바다가 되든 말든 나와는 별로 상관없지만........' 문제는 비밀 던전의 입구가 바로 시르바나 영주성에 잇단 점이었다. 마그라가 밖으로 나가면 먼저 잿더미롤 변하는곳은 시르바나 영지인것이다. 죽을 고생 끝에겨우 손에 넣고 이제 B등급향해 쾌속 전진중인 시르바나.게다가 삼각무역의 핵심인 대륙상회 역시 시르바나 영지에 있다. 만약 그곳이불바다로 변해버리면 아크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는것이다.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마그라를 부활시켜서 말이다. "아크 뭘하고 있는거냐!" 그떄 뒤에서불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퍼뜩 고갤 들어올리자 눈앞으로 수십개의 촉수가 확밀려왔다. 얼이 빠져있던 아크가 기겁하며 검을치켜세웠다. 동시에 검에 엄청난 압력이 전해지며 아크의 몸이 튕겨져 날아가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33%까지 능력을 회복한 마그라의 촉수를 마치 해머로 내리치는듯한 위력이었다. '맙소사!이런놈을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거야?' 이대로 싸워도 승상은 1%도 되지않는다. 그리고 누군가가 더 잡아먹힘녀 승산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리라. '빌어먹을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수는없다!' 아크가 피섞인 침을 탁뱉으며 몸을일으켰다. 이제 마그라와의 전투는 더이상 죽고 사는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아크 일행이 전멸하면 시르바나 영지까지도 위험해진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수 없는것이다. 그렇게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일어났을때였다. 치잉-! 돌연뒤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나왔다. 움질하며 고개를돌려보니 아크의 검이 닿았던 크리스털벽에 균열이 번지더니 작은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뭐지? 크리스털이 왜..............?'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균열이 번진 벽을 바라보았다. 신전의 크리스털 강도는 거의 강철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마그라가 수백줄기의 촉수를 한데 뭉쳐 내려쳐도 흠집하나 생기지 않을정도.그런데 검이 잠깐 닿은 정도로 표면에 균열이 생기며 파편이 떨어져 나오다니?대체 왜? '가만 ? 그러고 보니 크리스털은............?' 잠시 방금전의 상황을 되짚어보던 아크의 머릿속에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났다. 그리고 번쩍고개를 들어 신전의 구조를 살펴보던 아크는 곧바로 타짜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타짜형,부탁할게 있어요! -뭐? 지금말이냐? -네,지금 당장!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방금전에 떠오른 작전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타짜가 묘한 표정을짓더니 씨익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오,그거기발한데? -가능해요? -가능하지,아니,가능하도록 만들어야지.하지만 벌써 둘이나 놈에게 먹혀서 상황이 힘들어.여기서 나까지 뒤로 빠지면 버티지 힘들텐데........ -준비가 끝날때까지 어떻게든 버틸게요. -알았다. 뒤를 부탁한다! 타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다을 굴러 촉수를 피해낸뒤에 냅다 도망쳤다. 타짜가 도망치자 수십줄기의 촉수가 뒤따랐다. 그러나 이미 마그라의 행동을 예상하고 있던 아크가 본블레이드를 풍차처럼 회전시켜 촉수를 끊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모두 저를 중심으로 모이세요!" 갱생단이 모이자 아크가 작전을 지시했다. "지금부터 절대 포션을 먹지마세요.지금은 오히려 생명력이 적은편이나아요.촉수에 휘감기지만 않으면촉수의 공격을 그냥 맞아도 돼요" "뭐?그게 먼 소리야?" "설명할 시간없어요.일단 제 말대로 해 보면 알거에요" "젠장!대체 뭐가 뭔지........." 그때 아크와 갱생단이 모여있는 곳으로 촉수가 날아왔다. 아크와 개생단은 곧바로 뿔뿔이흩어져 사방으로 도망 다녔다. 그리고 아크의 말대로 몸을 휘감는 촉수만 피하며 데미지를 주기위해 날아오는 촉수는 무시해버렸다. 그러자 갱생단의 생명력은 순식간에 깎여나가 단숨에 빈사상태에 몰려버렸다. "에라,모르겠다.죽일테면 죽여라!" -음? 마그라의 움직임이 돌변한건 그때였다. 생명력이 2%도 남지않은 얍삽이가 되대로 되라는 식으로 촉수의 공격을 받으려던 찰나,갑자기 얍삽이에게 날아가던 촉수가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후후후,역시.......수백년 만에 겨우 찾아온먹이를 그냥 죽일수는없겠지' 그렇다,아크가 오히려 생명력을 줄이라고 말한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사실 마그라가 촉수로 공격하는것은 일종의 위장이었다. 마그라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아크나갱생단을 잡아먹는것.그리고 육괴는'살아있는' 인간을 먹어야만 육체를 재생시킬수있는 스킬이었다. 당연히 촉수 공격은 어디까지 아크나 갱생단의 움직임을제한시켜 사지를 휘감거나 위장으로 감싸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데 아크나 갱생단이 아예 공격하는 촉수르 무시해 버리자 휘감을타이밍을 잡지못했다. -이,이놈들이.............!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마그라도 아크와 갱생단의 의도를 알아챘다. -감히 산 제물주제에...........잔머릴 굴리다니........ 촤촤촤촤촤! 순간 수백 줄기의 촉수가 교차하며 거대한 그물처럼 변했다. 그리고 마치 투망처럼 얍삽이와 떡대를 덮쳐버렸다. "이,이런젠장!" 얍삽이와 떡대가 당혹성을 터트리며 발버둥쳤다.그러나 한번 그물에 걸리자 발버둥 칠수록 촉수는 더욱 얽혀들었다. 아크와 나머지 갱생단이 달려들어 촉수를 잡아뜯었지만, 뜯어내는것보다 새로얽히는 촉수가 더 많았다. 결국 얍삽이와 떡대는 그대로 그물에 걸린 생선처럼 질질 끌려가 마그라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마그라의 생명력이 단숨에 14%나 회복되며 왼쪽 옆구리와 뒷다리까지 재생되었다. 이로써 마그라는 50%에 가까운 능력을 회복한것이다. -크크크크.이제 네놈들이......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마그라가 또다시 촉수로 그물을 만들었다. 뒤쪽에서 타짜의 목소리가 들려온것은 그때였다. "아크야 ,다됐다!" 순간 아크ㅡ는 번쩍눈을 뜨며 소리쳤다. "모두 신전 밖으로 도망치세요!" "오케이!" -멍청한 놈들......도망갈수 있을것 같으냐! 마그라가 철봉에 매달려 이동하는것처럼 수백줄기의 촉수로 기둥을 휘감으며 뒤쫓아왔다. 시체처럼 들어진 마그라의 몸이 촉수를 뻗으며 뒤쫓아오자마치 공포영화의 한장면처럼 보였다. 그때 회랑까지 도망쳐 나온 아크가 빙글 몸을 놀렸다. "타짜 형,지금이에요!" 동시에 타짜가 가방에서 커다란 망치와 방패를 꺼내들었다.그리고 마치 꽹과리를 치듯 두들겨 대자 쇳소리가 신전 내부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신전 전체가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털이라는 재질이 원래 음파를 잘 반사시키는 성질이 있는것이다. 그러나 신전 전체에 진동이 일어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타짜가 설치한 '어떤 '기구의 효과 때문이었다. 그것은.......... 파직,파지지직,쩌쩌쩌쩡! 크리스털 신전이 꽹과리 소리에 공명하며 웅웅거리던 어느순간, 돌연 마그라가 촉수로 휘감은 크리스털 기둥에 쩍하며 균열이 번져나갔다. 처음에는 실처럼 작은 균열이었지만 마치 가지를 뻗듯 점차 커지더니,갑자기 가속이 붙듯 엄청난 속도로 번져 순식간에 기둥 전체가 거미줄 같은 균열에 뒤덮였다. -이,이게 무슨.......어째서 마수정이...........? 마그라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균열이 번지는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회랑까지 도망쳐 온 아크가 빙글 몸을 돌리며 씨익 웃었다. "크리스털도 결국은 유리라는 말이지" -유리? "그래,유리.그리고 너는 개라서 잘 모르겠지만 유리는 원래 진동에 약한 물질이거든" -지,진동? 마그라는 아크가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균열이 번지는 기둥 아랫부분에 뭔가 작은 물체가 박혀있음을 알아챘다. 순잡이 부분이 U자 형태로 굽어있는 쇠붙이였다. 그렇다. 아크가 타짜와 함께 준비한 작전의 핵심은 바로 이 쇠붙이였다. 방금전 ,아크는 검에 부딪쳤던 크리스털 벽에 작지만 균열이 번졌던 이유를 생각하다가,유리 재질의 물체가 진동에 약하다는사실을 떠올렸다. 당시 아크는 느끼지못했지만 마그라의 공격을 받아낸 검날이 진동하는상태로 벽에 부딪쳐 크리스털에 균열이 생긴것이다. 그단순한 물리법칙을 생각해낸 아크의 머릿속에 돌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신전의 기둥에 더욱 강한 진동을 전달할수 있다면?' 기둥전체에 균열을 일으킬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문제는 어떻게 그 정도로 강력하고 지속적인 진동을 기둥에 집중시키느냐.그때 떠오른 도구가 바로 기둥에 박혀있는 U자 형 쇠붙이.바로 음파에 공명해 지속적으로 진동을 일으키는소리굽쇠였다. 이 소리굽쇠는 '가디언=공병'을 전직한 타짜가 장검의 손잡이를 떼어내고 개조해 만든것이다. 아크와갱생단이 시간을 끄는사이 회랑의 기둥에 소리굽쇠를 박아넣은 것이다. 그리고 꽹과리를 두들겨 신전에 강렬한 음파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기둥에 박혀있던 소리굽쇠가 음파를 진동으로 바꿔 크리스털 기둥에 전달한것이다. 결과는 보는대로였다. 진동에 약한 유리제질의 크리스털 기둥에 균열이 번지기 시작한것이다. 한번 균열이 번지자 걷잡을수 없었다. 균열은 기둥 전체를 뒤덮었고,이내 무거운 천장의 하중을 버티지못하고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기시작했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콰콰콰쾅! 당혹스러운 눈으로 굉음을 울리며 요동치는 신전을 바라보던 마그라가 와락 시선을 돌렸다. -크윽!이 ,이자식........! 마그라가 수백줄기의 촉수를 날려 아크의 옆에 있는 기둥을 휘감았다. 그상태로 뒷부분의 촉수를 풀고 기둥을 감은촉수를 당기자,마그라의 몸이 마치 밧줄을 타는 타잔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눈앞으로 날아드는 거대한 괴수! 그러나 아크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피식 웃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검면으로 촉수가 휘감긴 크리스털 기둥을 가볍게 두드렸다. 검과 크리스털이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러자 기둥 아랫부분에 박힌 소리굽쇠가 더욱 세차게 진동했다. 동시에 기둥에 번져 가던 균열이 더욱 가속화되더니 촉수에 휘감긴 부분이 으깨지듯 부서져버렸다. 덕분에 마그라는 밧줄 끊긴 타잔처럼 촉수를 허우적대며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크아아악! "자,이제 마수정인지 뭔지와 함꼐 떡이 되라고" 캉,캉,캉,캉! 아크는 몸을 돌려 신전 밖으로 뛰어가며 검으로 기둥을 두드려댔다. 그러자 기둥에 균열이 점점 커지더니 결국 천장의 하중을 견디지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몇개의 기둥이 무너지자 크리스털 신전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기둥이 연쇄적으로 넘어지고,그것은 곧 신전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크리스털 신전은 견고한 만큼 한번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그리고 조각조각 부서진 수만톤의 크리스털은 수백만개의 칼날이 되어 쏟아지리라. 아무리 마그라라도 그속에서 살아날수 있을리가없다. '기둥을 모두 부숴버렸으니 마그라가 촉수로 감아 이동 할 방법도 없다. 갱생단 형님들도 모두 신전 밖으로 대피했으니 이제 나만 탈출하면 돼!' 아크는 '전력질주'를 난사하며 회랑을 가로질렀다. 이때 이미 신전의 붕괴가 시작되어 천장에서 ㅈ비채만한 크리스털 덩어리가 떨어져내렸다.작은 파편이 스치는것만으로도 생명력이 200~300씩 빠져나간다. 그만한 크기의 크리스털 덩어리에 깔리면즉사! 물론 작은 파편까지는 몰라도 집채만한 크리스털 덩어리는 천장을 확인하면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일이 천장을 확인하면서 도망쳐서는 시간내게 신전 밖으로 탈출할수 없다. "라카드 ,밥값할시간이다!" "알았어.나는 주인과 생사를 같이하는 멋진 소환수라고!" 마그라와 싸우는내내 촉수를 피해 도망다니기 바빴던 라카드가 아크의 어깨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벌러덩 누워서 천장에서 떨어져 나오는 크리스털을 살펴보았다. "읏!3시방향,위쪽 천장에 큰 균열 발견!4미터 앞으로 엄청 큰 크리스털이 떨어질거야!" 라카드의 말에 아크는 급격히 방향을 틀어크리스털을피했다. 그렇게 라카드와 한몸이 된 아크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크리스털을피하며 회랑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잠시후,신전의 문앞에 도착하자 먼저 탈출한 갱생단이 보였다. '됐어!이제 신전이 무너지기만 기다리면 우리의 승리다!' 아크가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때였다. "아크야,뒤,뒤!" 타짜들이 경악성을 터트리며 아크의 등뒤를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피투성이가 된 마그라가 엄청난 기세로 아크를 향해 다가오고있었다. 마그라는 아직 50%정도밖에 재생하지못해 하반신이 없는상태였다.게다가 아크와 달리 크리스털 덩어리에 찍혀 여기저기 벌어진 살가죽에서 피를 철철 흘려대고 있었다. 그런 상태라 촉수로 기둥을 감아 이동할수 없게되자,앞발을이용해 엄청난 양의 내장을 질질 끌며 달려오고 있는것이다. 정말 꿈에나올까 겁나는 장면이었다. '젠장!저 속도면........' 비록 상당한 부상을 입었지만 이대로 달려온다면 신전이 완전히 붕괴되기전에 마그라역시 탈출할수있을것이다. 그리고 아크와 갱생단은 현재 생명력이 5%도 남지않은 상황. 마그라가 살아서 신전을 탈출한다면 감당할수없다. '놈을이곳에서 막아야한다!' 아크가 몸을 빙글 돌려 달려드는 마그라와 마주섰다. "라카드,본블레이드를 가지고 신전 밖으로 도망쳐라!" "알았어!" 본 블레이드를 건네주자 라카드는 날름 집어들고 뭐 빠지게 신전 밖으로 날아갔다. 예의상으로도 '안돼,주인만 남겨두고 갈수는 없어!'라는 말따위는 하지않았다. 뭐랄까.....참으로 쿨한 녀석이다. -크아아아아아,꺼져라! 아크가 앞을 가로막자 마그라가 촉수를 다발로 묶어 후려쳤다. 신전이 붕괴되는 마당에 아크 따위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것이다. 그리고 마치 기둥처럼 거대한 촉수 다발이 아크의 몸을 후려치기 일보직전.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영역 선포 영광의 밤!신격 스킬 화룡 강림!" 그렇다 아크가 마그라의 돌진을 막을 유일한 방법! 스킬을 발동시키자 바닥이 갈라지며 어둠의 정령 다크가 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주변이 아득해질 정도의 어둠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일순 어둠을 가르며 한줄기 화염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솟구쳐올랐다. 불길이 일렁이는 비늘을 가진 전설의 화룡!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던 화룡이 아크의 정수리를 향해 벼락처럼 떨어져내렸다. 동시에 아크는 화염의 비늘에 휩싸였다. 숨을 불어내자 불길이 10여센티미터나 뿜어져나왔다. [신격 스킬[화룡강림]이 발동됐습니다! 10분간<불멸의 화룡> 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발동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스킬 발동시 공격속도와 이동속도,반응속도가 50%증가합니다. +스킬 발동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적에게 10~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시 사용자의 화염저항력을 500%,파티원의 화염 저항력을 100%상승시킵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대 생명력의 50%가 회복됩니다.] -요,용전사! 아크가 화룡을 휘감자 마그라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그라는 수백년전에 화룡족을 멸망시켰던 존재.당연히 화룡족 최강 전사가 사용하던 기술을 알고있다. "이게 바로 화룡족의 복수다!밧아랏!'도약'!" 아크가 바닥을 차며 탄환처럼 마그라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아크의 등선을 따라 길게이어지는 불길은 정말 한마리의 화룡이 날악는듯했다. 마그라는 황급히 수백줄기의 촉수로 방어막을만들었다. "어림없다. '다크블레이드'!'아돌'!" '도약'과 '다크블레이드'의 연쇄 공격'아돌'! 아크가 가진 기술가운데 최강의 돌파력을 자랑하는 기술이었다. 순간 마그라의 촉수 다발이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 동시에 불길에 휩싸인 '아돌',아니 화룡강림까지 곁들인 '아돌-개改'가 마그라의 가슴에 쑤셔박혔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그라가 휘청거리며 10여미터나 밀려났다. -용전사 따위가 나를 상대할수 있을것 같으냐! "물론 화룡강림만으로는 네놈을 상대할수 없겠지.하지만 발목정도는 얼마든지 잡을수 있어.이 죽다 만 개새끼야" 아크가 불길을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사실 아크가 처음부터 '화룡강림'을 발동시켰다면 마그라와의 전투는 좀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화룡강림'이라도 레벨 600대의 정예 보스를 상대로는결정적인 데미지를 줄수없다. 때문에 마그라의 생명력을 5%미만까지 떨어트려놓고'화룡강림'을 발동시켜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생각이었다. 그런데 마그라가 '육괴'로 생명력과 능력치를재생시켜 발동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크아아아아아!비,비켜라! "안된다고 했을텐데?" 쾅, 쾅, 쾅, 쾅, 쾅! 마그라가 미친듯이 촉수를 휘둘러대며 공격했다. 역시나 아무리'화룡강림'이라도 1대1로 마그라와 맞붙자 아크는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아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마그라의 탈출을 봉쇄하는것. 아크는 50%나 상승한 이동속도와 반응속도를 십분 발휘해 촉수를 피하며 마그라의 발목에 공격을 집중시켰다. 그렇게 잠시,돌연 신전이 크게 요동치더니 거대한 크리스털 덩어리가 떨어져 입구를 막아버렸다. "자,이제 끝났군"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회랑의 천장이 쩍 갈라지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크리스털 덩어리가 우박처럼 떨어지기 시작하자 아크는 재빨리 달려가 깔려죽었다. 아크가그렇게 황당한 짓을 한 이유는............... "........." 신전을 빠져나온7명의 갱생단은 망연한 눈으로신전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신전이 고작 수십개의 소리굽쇠 때문에 폐허로 변해버린것이다. ".............이제 끝난건가?" 타짜가 참았던 숨을 불어냈다. "솔직히 이제 끝이다 싶었는데 어쨌든 살아나기는 햇군" "아크까지 같이 묻혀 버렸지만" "음 ,멋진 희생정신이었어" 갱생단이 짐짓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끄덕였다. 그러자 라카드가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괜찮아,박살이 나도 며칠 지나면 아무일도없단 듯이실실거리며 나타날걸" "뭐야!네가 그러고도 아크의 소환수냐?" "쳇, 맞는말이잖아.그보다 할일을 잊은건 아니지" 라카드가 날개죽지로 신전의 폐허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망할 들개가 떨군 전리품을 챙겨야할거아니야.솔직히 주인은 너희들이 죽음을 애도해주는것보다 전리품을 챙겨주는걸 더 고마워할걸" 정답이다. 아크의 소환수로 밥먹고 산 시간이 헛되지않은 모양이다. "뭐,틀린말은 아니군.전리품도 그렇지만 아크가 떨군 장비품이 있을지도 몰라" "그나저나 이 폐허를 뒤지는것도 보통일이아니겠는걸" "그래도 해야지 별수있어?" 갱생단이 한숨을 불어내며 신전의 폐허로 다가갔다. 이때 갱생단들은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엇다. 마그라와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7명. 다시 말해 7명이 레벨 600의 정예 보스를 쓰러트렸다는 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갱생단은 폭포수같은 경험치 세례를 받고 미친듯이 레벨업을 하고있으리라. 그럼에도 아직 경험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것은....... 투둑,투둑,쿠쿠쿠쿠! 그때였다. 문득 폐허에서 크리스털 덩어리 몇개가 굴러 떨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진동이 일어나며 뭔가 거대한 존재가 솟아나왔다. 갱생단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헉!뭐,뭐야 ,저놈은?" 크리스털 더미에서 솟아나온것은 거대한핏덩어리였다. 여기저기 찢기고 뭉개져서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수없는 핏덩어리! "서,설마........마그라?" 그렇다,그 뭉개진 핏덩어리같은 괴물은 바로 신전에 파묻혔던 마그라였다. 놀랍게도 그 엄청난 크리스털 더미속에 파묻히고도 아직 살아있었던 것이다. 마그라는 튀어나와 축 늘어져 있는 눈동자로 갱생단을 바라보며 희열의 웃음을 지었다. -크크크크,하등한 인간들........이몸은 불사신이다..........이정도로는......... 크리스털에 파묻혔던 마그라는 생명력이 고작 2%정도밖에 남아있지않았다. 그러나 갱생단의 생명력은 고작 1~3%남짓이었다. 마그라의 공격을 한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생명력을 간당간당할때까지 빼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겉보기만 멀쩡하지실제로는 갱생단이 마그라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것이다. "이,이런 괴물같은 놈!" -네놈들 정도는...........피와살을 바쳐라......그게 네놈들의 운명이다. 마그라가 내장을 질질 끌며 갱생단에게다가왔다. 여기저기 뜯겨져 나간 살점 사이로 징그러운 촉수가 기어나와 꿈틀거렸다. 그렇게 마그라가 촉수를 휘두르며 갱생단을 공격하려 할때였다. "그건 아니지.네 운명은 나한테 뒈지는거야" 돌연 마그라의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들려왔다. 갱생단과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마그라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아크!" "후후후,설마 내가 너따위와 동반 자살이라도 할거라고 생각했냐?" 그렇다,마그라의 뒤에서 나타난사람은 바로 아크였다. 신전이 무너지자마자 크리스털에 깔려죽었던 아크가 어떻게 살아있는걸까? 해답은 간단하다.바로 라자크의'죽음의 맹약' 아크가 마그라와 결전을 벌이기전에 라카드에게 본블레이드를 맡겨놨던 이유는그 떄문이었다. '죽음의 맹약'을 발동시키려면 라자크가'데스마스터'인 상태라야하다. 그러나 무너지는 신전안에서 검화를 해제하면 '죽음의 맹약'을 발동시키기도 전에 라자크도 박살이 나버린다. 때문에 먼저 본 블레이드 상태로 라카드에게 맡겨 신전 밖으로 보낸뒤에 '검화'를 해제시켜 놓앗다. 아크가 그렇게 미리 부활을 준비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찌됐든 마그라는 레벨 600의 정예보스다.7`~8명이서 쓰러트리면 경험치를 최대치까지 받을수 있을거야.하지만 죽어버리면 아무런소용이 없어.경험치를 받으려면 빠리 죽고 마그라가 죽기전에 '죽음의 맹약'을 발동시켜 놔야해!' 아크가 황당하게 일부러 크리스컬 덩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가 빨리 죽어버린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어쨌든 마그라가 죽는순간에 살아있어야 경험치를 받을수 있는것이다. 때문에 일찌감치 크리스털 덩어리 속에 파묻힌 뒤에 부활한것이다. '경험치가 안들어와서 타이밍이 늦엇나 싶었는데 설마 마그라가 살아있을줄이야!그 전에 이미 능력치를 50%가까이 회복한 상태라 내 생각보다 방어력이 높았던 건가?' 어쨌든 정말지긋지긋할 정도로 끈질긴 녀석이다. 뭐,똑같이 살아난 아크가 할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이자식! 마그라가 이를 갈아붙이며 촉수를 휘둘렀다. 그러나 아크는 피식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그라는 확실히 강력한 몬스터였다. 현재 아크나 갱생단으로서는 생명력이 2%밖에 남지않은 마그라라도 상대하기가 쉽지않으리라.만약 싸운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제 마그라와 싸울필요없지' "마기봉인!" 순간 아크의 손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와 마그라의 몸을 휘감았다. 그렇다,생명력이 3%미만인 마 속성 몬스터에게 사용할수 있는 '마기봉인'!실제로 마그라에게 남은 생명력이 1,000이든 10,000이든 상관없다. 3%미만이라는게 중요한것이다. -크악!뭐,뭐냐.이건! 빛의 사슬에 휘감긴 마그라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흔들어대다. 그러나 그럴수록 빛의 사슬은 더욱 옥죄었다.그리고 잠시후,마그라의 입에서 시커먼 젤리덩어리 같은 물체가 빛에 휘감겨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그라가 품고잇던 마기다. -마기 추출에 성공했습니다. 봉인할 대상을선택하십시오. "형들, 뭐라도 좋으니 장비품을 꺼내세요!" 아크가 목소리에 타짜가 얼른 갑옷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자,이제 끝장이다!마기봉인!" 아크는 빛의 사슬을 움직여 마기를 갑옷쪽으로 이동시켰다.그러자 젤리덩어리로 변한 마기의 결정체가 날뛰며 비명을질러댔다. -크으으윽!뭐,뭐냐.이 힘은......저항할수가.......! "당연하지.이건 마반 영웅이 너같은 망할 놈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가며 만든 기술이니까.한번 걸린이상결코 빠져나가지 못한다!" -마,마반영웅?그,그렇다면 네놈은.......! "호오,마반 여웅을 알고있는건가? 뭐,보통 이럴때면 마반 영웅과 얽힌 과거사를 시시콜콜 떠들어대는 회상 모드로 접어들겠지만........나는 시간없거든.닥치고 들어가!" 아크가 와락 손을 휘두르자 마기덩어리가 갑옷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됐다.해치웠다!" 아크가 불끈 주먹을 쥐며 소리쳤을때였다. 마그라의 마기를 흡수해 시꺼멓게 변해 가던 갑옷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기시작했다. 그리고 표면이 쩍쩍 갈라지더니 굉음과 함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뒤이어 부서진 갑옷의 파편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허공에서 다시 한덩이로 뭉쳤다. "뭐,뭐야?" -크크크크.........이몸의 힘을 그따위 물건에.......가둬둘수잇으리라고 생각하느냐? 그제야 아크는 뭐가 잘못됐는지를 깨달았다. '마기봉인'은 어떤마족이라도 생명력이 3%이하면 아이템에 봉인할수있다. 그러나'마기봉인'에도 나름대로 규칙이잇었다. 바로아이템과 집어넣는 마족의 마기가 어느정도 수준이맞아야한단것이다. 말하자면 허접한 아이템에 고위 마족의 영혼을 억지로 쑤셔넣으려고하면 아이템이 버티지못하는것이다. 마기를 봉인한 아이템의 내구력이 극도로 약해지는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아이템의 착용제한 레벨과 마족의 레벨이 비슷하면 성공률은 거의 80~90%에 달했다. 그러나 아이템의 레벨이 마족보다 떨어지면 차이가 나는만큼 실패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 한계치는 대략 100전후였다. 마족보다 100정도 레벨이 떨어지는 아이템을 사용하면거의 100%확률로 실패하는것이다.즉 ,마그라의 레벨이 600이니 최소 레벨 500대의 장비품을 사용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나 갱생단에게 레벨 500대의 장비품은 없었다. '마기봉인'을 사용할수 없다는 뜻! '이런 젠장!다 잡아놓고.......하지만아직 늦지않았어.어차피 놈의 영혼이 다시 본체로 돌아가봐야 생명력이 2%밖에남지않은 방송장이다. 죽었다가 부활한 상태니 다시 '화룡강림'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이길수 있어!' 아크가 마그라의 본체를 노려보며 '화룡강림'스킬을 준비할때였다. 마그라의 영혼이 갑자기 폭발하며 소나기처럼 변해 섬으로 빨려들어가는게 아닌가? "무,무슨?" -크크크크......말했을텐데......이몸은 불사신이다..........그리고 이곳은 내가 부활하는 장소........이대지에 있는 한 그따위 육체는 몇번이라도 재생할수있다........내가 힘을 모아 육체를 재생하기까지 다시 수백년이 걸리겠지만..........그렇게 이 몸과 싸우고 싶담녀 수백년뒤에 다시 와라. "기,기다려!도망가는거냐?" -크크크크.........크하하하하........!수백년 뒤에 보자.......애송이! 섬이 통째로 흔들리며 마그라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미 마그라의 영혼이 섬과 일체화 되어 버린것이다. 아크는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들었다. 수천명의 병사를 잃어가며 최하층까지 내려와,이슈람과 해결사,얍삽이,떡대를 먹혀 가면서까지 마그라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런데 고작 쓸만한 아이템하나가 없어서 다 잡아놓은 마그라를 놓쳐버린것이다. 그리고 마그라가 섬과 일체화되어 버린이상 놈을 잡을 방법은 없었다. 마기로 변해 땅속에 스며든 몸을 무슨 수로 끄집어낸단 말인가? 결국 경험치도.전리품도 없이 그저 목숨만 붙여 돌아가야할상황에 처한것이다. 시합에서는 이기도 승부에서는 진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그때였다. 짜증스럽게 바닥을 바라보던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가만? 마그라가 자신은 이 섬 자체라고 말했지? 그렇다면 결국 마그라의 정체는 지옥의 대지의 힘이 결정화되어 만들어진 마족.그런데 궁지에 몰린 놈이 다시 대지의 힘으로 환원되었다. 그렇다면 혹시?' 생각을 진행시키던 아크는 곧바로 가방에서 작은 돌 뭉치를 꺼내들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발굴'스킬을 난사해 구한 빈 마석이었다. 그렇다.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게 바로 이 마석이었다.마그라가 염장을 지르며 지껄여댄말에 의하면 놈은 다시 마기로 변해 대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석은 주변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능력을 가진돌.그렇다면 마기로 변한 마그라의 영혼을 빨아들일수있지않을까? 게다가 마석은 레벨 제한이 없다. 같은 마석으로 레어든 유니크든 만들수 잇는것이다.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황당하지만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어.해보는 수밖에!' 아크는 땅을 파고마석을 쏟아넣은 뒤에 '몽환의 모래시계'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최대 시간 가속을 선택한 뒤에 작동시키자 모래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래가 반쯤 없어졌을때였다. -읏!뭐,뭐냐.........어째서 내 힘이 이따위 돌에 빨려들어가는........ 갑자기 섬이 부르르 진동하며 당혹성이 터져나왔다. 마그라의 목소리였다. 마그라의 목소리를 듣는순간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마그라가 당혹성을 터트린다는 것은 아크의 예상이 들어맞았다는뜻이 아니겠는가? "후후후,마수든 마왕이든 내 손에 걸린 이상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뭐,뭐라고.......!이 자식,대체 네놈이 무슨 짓을.......... "자,군말 말고 돌멩이 안으로 들어가시지!" -아,안돼......이럴수는 없어........나는 불멸의............우아아아아! 마그라의 비명과 함께 '몽환의 모래시계'가 쩍 소리르 내며 갈려졌다. 사용 횟수가 다 되어 부서진 것이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역시나 마그라를 처리하자 엄청난 경험치가 부여되었다. 아크를포함해서 7명의 갱생단도 단숨에 최대치인 9레벨이 상승했다. 그러나 경험치는 당연한 결과고..........아크는 재빨리 땅을 파헤쳐 마석을 확인해 보았다. 가지고 있던 마석 70여개를 몽땅 털어넣었다. 그중 30여개는 박살나있었고,나머지 40개는 검게 변해있었다. 확인해 보니'지옥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있었다. 방어구 전용마석이었는데,갑옷이나 방패에 박아넣으면 마 속성 저항력을 10%상승시켜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단하나,다른 마석과는 비교도 안된느 기운을 뿜어내는 마석이 눈에 들어왔다.마석을 집어들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마그라 스톤(레전드 마석) 지옥의 기운에서 탄생한 고대의 악마 마그라의 영혼이 봉인된 마석입니다. 마그라는 까마득한 고대부터 몇번이나 전생을 거듭하며 수많은 고대 종족을 멸망으로 이끈 존재입니다. 고대의 역사서에서 마그라는 지옥의 파수꾼으로 불리며,그 힘과 사악함은 최상위 악마나 드래곤과도 견줄만하다고 서술되어있습니다. 마그라가 대부분의 힘을 잃은 상태로 봉인되어 있지만 , 그 강력함은 다른 마석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단,마그라 스톤에서는 마그라의 저주가 함께 깃들어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없는사람은 사용할수 없습니다. <소캣에 사용 시 (무기전용) : 마석 이 장착된 무기에 충격을 줄경우,20%확률로 마석에서 마그라의 힘이 발현되어 전방의 적에게 1~1,000의 추가데미지를 입힙니다.> *추가 스킬(마그라 소환) : 마기가 있는 공간에서 5분간 마그라의 영혼을 불러낼수 있습니다. 소환된 마그라가 품고있는 강렬한 분노는 주변의 적을 끌어들이는 지속적인 '도발'효과를 가지고있으며 ,마그라 역시 분노에 사로잡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않고 주변의 모든적을 공격합니다. 단,마그라는 힘을 잃은 상태로 영혼을 제압당해 레벨 300대의 정예몬스터와 같은능력밖에 발휘할수없습니다. 그리고 마그라의 영혼을 불러낸 상태에서는 마그라 스톤의 특수 효과가 발동되지않습니다. <영력 소모 : 500,대기 시간 : 24시간>] '레전드 마석!'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솥뚜껑처럼 커졌다. 지금까지 단한번도 본적이 없는 레전드 아이템을마석으로 구하게 된것이다. 하긴 과거 화룡족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전설의 마수를 봉인한 마석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효과는 20%확률로 1~1,000의 추가데미지! 최소 데미지가 1이라는 부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최대 데미지가 1,000이라면경우에 따라 전황을 바꿀수도 있는 공격력이었다. 게다가 마그라 스톤은 마석임에도 추가 스킬까지 붙어있었다. 봉인된 마그라를풀러놓는 '마그라소환'! 레벨 300대의 정예몬스터를 수하로 부릴수 있게 된것이다. 뭐,마기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만 불러낼수있고,적과 아군도구분 못한다고 하지만,그 역시 사용하기 따라서는 꽤나 쓸만할거 같았다. "아크,저기봐라!" 그때 짝퉁이 마그라의 껍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그라의 영혼이 봉인되자 육체가 빠르게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녹아 거무죽죽한 액체로 변하자 그위에 몇가지 물건이 나타났다. 마그라가 떨군 전리품이었다. 마그라에게서 얻은 전리품은 무려 5개였다. 유니크와 레어가 하나씩,나머지 3개는 마법 아이템이었다. [지옥의 견갑(유니크) 방어구 타입 : 가죽 견갑 방어력 : 45(+10) 내구력 : 35/70 무게 : 60 사용제한 : 레벨 450이상 마그라의 체내에서 지옥의 기운이 굳어 만들어진 강갑.지옥의 기운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운 가운데 가장 절망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그 지옥의 기운이 담긴 장비품은 설사 방어구라도 적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될수있습니다. 지옥의 견갑은 강철보다 단단한 재질이라 방어력이 상당할 뿐만아니라 유사시에는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수 있습니다. <옵션 : 방어력+10,힘+10,체력+20> <특수 옵션 : 돌격이나 몸통 박치기 등을 사용할때 어꺠로 적을 공격하면 견갑에서 뿔이 솟아나와 100의 추가데미지를 입히고 30%확률로 '저주'상태를 일으킵니다.>] [혼돈의 눈동자(레어) 아이템 타입 : 지팡이 공격력 : 45~50 내구력 : 56/100 무게 : 45 사용제한 : 레벨 400이상흑마법사전용 오래전 마그라가 잡아먹은 강력한 암흑 마법사가 사용하던 마법 지팡이입니다. 혼돈의 눈동자는 지옥의 심처에서 서식하는 '발마라돈'이라는 괴수의 눈동자를 고대의 비술로 강회시켜 지팡이에 박아넣은 아이팩트입니다. 이 눈동자가 응시하는 상대는 끝없는 공포와 환각을 일으킨다고 전해집니다. <옵션 : 지능 +30,마나 +500,암흑 마법 공격력+20%> <특수 옵션 : 혼돈의 눈동자로 공격받은 적은 10%확률로 '공포'와 '환각'상태에 빠집니다>] "굉장한데?" 굵직한 전리품의 정보를 확인한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시꺼먼 털에 뒤덮인 견갑과 커다란 눈알이 박혀있는 징그러운 지팡이. '지옥의 견갑'과 '혼돈의 눈동자'라는 아이템이었다. 일단 유니크인 '지옥의 견갑'은 방어력이 45.수치만 보면 낮다고 생각할수있겠지만,동 레벨의 견갑 방어력이 30대를 밑도는 점을 생각하면 50%이상높은 셈이다. 게다가 옵션으로 방어력이 10이 더 붙어있으니 왠만한 가죽 갑옷 부럽지않은 방어력이었다. 또 어깨로 적을 공격할경우 추가데미지와 상태이상을 일으키는 옵션까지 붙어있었다. 근접전을 선호하는 아크에게 꽤나 요긴한 견갑이었다. '어중간한 발동 스킬이 붙는 것보다는 이런 특수 옵션이 100배 낫지' 그러나 솔직히 성능만 보면 유니크인'지옥의 견갑'보다 레어인'혼돈의 눈동자'가 더 좋아보였다. 기본 공격력도 상당한 편이고,무엇보다 암흑 마법 공격력 +20%의 옵션은 그야말로 레어.아마도 경매장에 내놓으면 흑마법사들이 개떼처럼 달려들리라. "일단 이건 가죽 견갑이니 제가 쓰면 안될까요?" 아크가 슬쩍 '지옥의 견갑'을 챙기며 물었다. "네 맘대로해" 갱생단은 별로 생각할것도 없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아크라도 갱생단과 사냥하면서 전사 아이템을 챙기겠다고 설칠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죽 계열의 아이템이 나오면 갱생단은 대부분 알아서 양보해 주었다. 아크가 정의남이나 갱생단과 함께 사냥하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아이템을 아크 혼자 독식할수는없었다. "'혼돈의 눈동자'와 나머지 마법 아이템은 경매장에서 처리한 뒤에 나눌게요" 일단 전리품의 대한 분배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아크가 전리품을 챙겨넣고 있을때였다. 쌕쌕쌕,쌕쌕쌕썍! 발치에서 라둔이 꼬리로 아크를 툭툭 건드렸다. 고개를 숙여보니 책 한권이 크리스털 더미속에 끼어있었다. 아이템을 발견하고 집어먹으려다가 잘 빠지지않자 아크에게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다. "책? 가만? 그러고 보니..........." 아크는 뭔가 짚이는 부분이 있어서 얼른 책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다시정보창이열렸다. [불멸의 서(특수) 드라고니안의 화룡족 신전에 보관되어있던 고대의 비술서입니다. 마그라는 이 비술서에 담겨진 힘을 얻어 보다 강력한 불사신이되고 싶어 드라고니안을 습격해 비술서를 강탈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멸의 서에 담긴 비밀을 밝혀낸 자는 없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불멸의 서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있어 마음을 허락한 자가 아니면 비술서를 열어볼수없다고 전해집니다] "이게 루미네스가 말하던 불멸의 서로군" 아크는 영생의 비밀이 담겨있다는 책의 내용이 궁금했다. 그러나 정보창의 설명대로 가죽으로 밀봉된 책은 열리지않앗다. "흠,대체 이건 뭐에 쓰는거지? 이미 퀘스트를 줬던 루미네스는 죽었으니 이 책말고는 다른 보상을 받을수 있을거 같지도않고.뭐,그래도 중요한 퀘스트를 통해 얻은 책이니 일단 가지고 잇다 보면 어딘가 쓸데가 잇겠지" 아크가 책을 넣었을때였다. 두두둥 소리가 울리며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전승 퀘스트 <마수 마그라>를 완료했습니다. 전승 퀘스트에 걸려있던 ☆ 3개가 캐릭터 정보창에 축적되었습니다. ☆은 뉴월드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칠만한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 플레이어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훈장입니다. ☆을 얻은 플레이어는 그 지역에 또 다른 전설이 되어 전승될것입니다. 또한 ☆이 일정숫자 이상 쌓이면 매우 특별한 보상을 받을 기회가 제공됩니다. 현재 소유한 ☆(10)] 정보창이 떠올랐을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머리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그리고 폭발하듯이 분산되더니 10개의 별로 변해버렸다. 전승 퀘스트로 몽은 별이었다. 별은 아크의 머리위에서 팽이처럼 회전하더니 돌연 훅하고 사라졌다. 퀘스트 정보창이 갱신된것은 그뒤였다. [전설의 증인 당신은 전승 퀘스트를통해 역사를 움직인 용사에게만 수여되는 ☆을 10개 획득했습니다. 당신이 밝혀낸 고대 역사는 결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알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할겁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이세계의 역사를 기록해 온 위대한 예언자 일족은 별을 헤아려 누구도 알지못하는 당신의 업적을알고있을겁니다. 그리고 고대의 예언에 따라 선택받은 용사에세 숨겨진 역사와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울 힘을 전수해 줄것입니다. <난이도 : - 퀘스트 제한 : ☆ 10개 획득> *이 퀘스트는 단 한번밖에 수행할수 없습니다.] "엇? 퀘스트?"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아크는 지금까지 전승 퀘스트를 하면서도 별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쓰지않았다. 단순히 공로에 대한 훈장 같은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설마 별ㅇ르 모아 퀘스트를 받게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내용을 읽어보니 뭔가 엄청난 보상을 해줄것 같은 포스를 팍팍 풍기지않은가? 퀘스트를 받은 아크는 얼른 전체 지도를 펼쳐보았다. 그러자 시니어스 공국의 국경 근처에서 붉은 점이 반짝 거렸다. '이런 퀘스트라면 미룰수 없지' 이로써 아크가 다음으로 갈곳이정해졌다. 전승 퀘스트로 모은 별딱지로 보상과맞바꾸려 가는것! 어쨌든 이로써 장장 보름만에 비밀 던전을 100%공략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부터 60층을 거슬러 나갈일이 걱정이었다. BY RAYAN ACT 5 비상사태 "하아,정말 파란만장한 모험이었어" 현우가 버스 좌석에 길게 늘어진 자세로 중얼거렸다. 다시 생각해봐도 비밀 던전 공략을 장난이 아니었다. 보름동안 치열한 전투를 반복하며 마그라를 무리쳤지만, 비밀 던전 공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시 60층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일이 남아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어비스의 몬스터를 정리한지 얼마안되었기에 망정이지,어비스까지 지하 신전처럼 몬스터들이 리젠되었다면 차라리 죽은뒤에 영주서에서 부활하는 편이 나았으리라. 어쨌든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화은 아니엇기에 현우는 비밀 던전을 되짚어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흘이 걸려 다시 영주성까지 돌아온뒤에야 비밀 던전 공략을 마칠수있었다. 그렇게 공략이 정리되자 연합원들은 도망치듯 몽땅접속을 종료해버렸다. 앞으로 이틀은 뉴 월드에 접속할 엄두가 안난다는 메시지와 함께......... 하긴 무리도 아니었다. 쉬지않고 게임하기,잠안자고 게임하기,밥안먹고 게임하기.현우는 뉴 월드를 시작할때부터 이 세가지스킬을 마스터 등급까지올려놓고 시작한 용사였다. 그럼에도 영주성으로 돌아오자마자 파김치처럼 늘어질정도로 이번 비밀 던전의 공략은 장난이 아니었다. 적당한 훈련과 레벨업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중간부터 치열한 생존 게임으로 변질된 덕분이었다. 연합원들처럼 게임에 접속 못할정도는 아닌었지만, 당분간 던전은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참으려고 해도 저절로 입가가 실룩거렸다. 이번 던전은 아크조차 토가 나올정도로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고생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득을 얻은것이다. 군단장으로 수천에서수백의 병력을 이끈 덕분에 연합원들보다 20~30%의 경험치을 더 먹었다. 덕분에 하루에 평균 2레벨이나 올린것이다. 60층에 도착했을때 32레벨을 올렸고,소수 정예로 마그라를 잡아 단숨에 9레벨 플러스.보름만에 불과 41레벨을 올렸다. 게다가 영주성으로 돌아오면서도 적당히 사냥을 해서 2레벨을 더 올렸다. 최종적으로 영주성에 도착했을때의 레벨의 무려 426! 그뿐인가? 레전드 마석과 유니크 견갑까지 챙겼다. 18일동안 제대로 자지도 못했지만 고생의 대가로는 차고넘쳤다. 그리고 던전 공략을 완수하자 의외의 부가효과도 생겨났다. 사실 현우는 그동안 시르바나를 운영하며 한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시르바나는 호수와 강,비옥한 토지를 갖춘,그야말로 이상적인 영지였다. 상업은 물론 공업을 발전시키기에도 최적의 장소인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약간만 투자하면상업과 공업은 타 영지보다 빨리 발전했다. 그런데 유독 농업만은 투자에 비해 발전이 더뎠다. 충분한 수량을 갖춘 저수지가 잇음에도 수확되는 농작물은 타 영지의 60%정도밖에 되지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비밀 던전을 클리어하고 돌아오자 농작물 수확 효율이 빠르게 상승한다는 정보를 확인할수있었다. "사실 시르바나 영지의 토질은 좋은편이 아니었습니다. 전문가의 말로는 토질이 좋기 위해서는 흙속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같은 게 많아야 한다는데,시르바나의 농지에는 미생물의 숫자가 적고,그나마 있는 미생물도 기이한 돌연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전에 농지에 사는 미생물이 완전히 180도 바뀌었다고 합니다.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다음번 수확은 기대할만할겁니다" 현우의질문에 베라미가 설명해주었다. 현우는 베라미의 말을 들은뒤에야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동안 농경지가 제 힘을발휘하지 못한것은 바로 시르바나 영지 아래에 비밀 던전이 있었기 때문........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그라 떄문이었다. 마그라는 어비스를 통쨰로 마기에 잠기게 할정도로 강력한 악마.때문에 시르바나의 농경지도 마기의 영향을 받아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수없는 곳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마그라를 처치하고,다시 석판을 뗴어 지옥문을 봉인하자 마기의 영향이 사라졌다. 덕분에 피폐했던 시르바나의 농경지도 다시 대지의 힘을 회복한거야!' 그리고 현재 상태만 유지한다면 시르바나 농업 수입이 30%이상 상승.영지 재정이 한결 나아지리라. 그러나 농경지의 변화는 단순한 수입의 문제가 아니었다. '역시 뉴 월드는 중세를배경으로 한게임이라,NPC드은 무엇보다 노업을 중요시한다. 그런데 농경지가 비옥해진다면...........' 영지의 총수입만이 아니라 가치와 명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였다. '지금처럼 꾸준히 가치가 올라가면 영지의 등급을 B로 승격시키는것도 이제 시간문제다!현재 상태만 유지하면 승격에 걸리는 시간을 반으로 줄일수 있을거야!' 비밀던전 공략의,뜻하지않았던 수확이다. 게다가 완벽하게 공략했지만 비밀 던전은 문자 그대로 던전.시간이 지나자 정예몬스터들이 다시 리렌되었다. 다시 말해 다크에덴은 계속 던전을 공략하며 연합원을 훈련시킬수도,전리품도 꾸준히얻을수 있다는 말이었다. 현우가 그런 던전을 놀릴리가 없었다. '이제 힘들게 던전을 공략할 필요는 없어.레벨만 올릴거라면 지하 미궁에서 느긋하게 사냥하면 그만이지.만약을 위해 100~200명의 유저 연합원을 함께 보내면 NPC들도 안전하게 레벨을 올릴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현우는 비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온뒤에 지친 유저들이 쉬는동안,다크에덴의 NPC연합원들을 비밀던전으로 들여보내 그곳을 훈련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어비스에 들어갔을떄 NPC들의 희생을 우려해 일찍 퇴각시킨탓에 유저 연합원들만큼 레벨업을 못했기 때문이다. 비밀 던전 하나를 갖은 방법으로우려먹는 것이다. 그러나 현우에겐 다른일이 있었다. '자 ,이제 남은 일은............<마수 마그라>퀘스트를 완료하고 별을 모아<전설의 증인>퀘스트를 받았다. 다음 공성전 일시까지 남은 시간은 12일 정도.그 정도면 시니어스 공국에 다녀와도 충분한 시간이야' <전설의 증인>은 보상 퀘스트다. 그냥 다녀오기만 하면 되는 퀘스트니 미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또한 용사에게만 준다는 보상이 대체 뭔지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었다. 때문에 현우는 오늘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시니어스를 공격하러 날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 유니트에 들어서려는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으니 본사로 찾아와 주십시오" 수화기를 들자마자 호명환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왜 아침부터 글로벌엑서스로 나오라는거지?" 모처럼 마음을 다잡고 게임을 시작하려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불러내니 기분이 좋지않았다. 그러나 좋든 싫든 현우는 글로벌엑서스에서 매달 4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입장. 일단은 고용된 몸이니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지 별수있겠는가? 그렇게 현우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사이,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본사 건물은 면접때 이후로 처음이니 2년만의 방문이었다. 그때 반문했을때는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촌닭처럼 두리번거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쟁쟁한 학벌의 응시자들을 제치고 당당히'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 입사 0순위의 응시자가 된것이다. 그러나 현우는 입구에서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망설였다. '얼굴을 보면 뭐라고 해야하지?' 현우가 쭈뼛거리는 이유는 레리어트,강미수 때문이다. 강미수는 글로벌엑서스의 안내 데스크 직원.빌딩에 들어서면 어쩔수없이 얼굴을 마주칠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요즘 현우와 강미수 사이의 관계다. '그러고 보니 요보름동안은 한번도 연락을 못해봤네' 사실 현우는 그동안 일주일에 한두번은 강미수와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나 요 보름 동안은 연락한적도 없었고,연락을 받은적도 없었다. 비밀 던전을 공략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공성전 직전에 있었던 일-로코와 레리어트가 뭔가 대화를 나눴던-때문에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 혜선이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겠지.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떄 미수씨 표정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좋은 애기는 아니었을거야.그 일때문이라도 미수씨를 만나서 한번 얘기해 보기는해야하는데........ 그일이 아니라도 현우는 요즘들어 정혜선이나 강미수 사이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된것은 역시 정혜선 때문이었다. 정혜선의 마음은 현우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다. 그런데 어떤 확답도 해주지않으면서 계속 그런 마음을 받기만 하는건 역시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것이다.그리고 현우가 정혜선에게 확답을 해주지못하는 이유는 미묘한 관계로 지내는 강미수때문. 그러니 서로 대화해 볼 필요를 못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불쑥 얼굴을 내민다는것도 좀 그런데............' 현우는 한숨을푹푹 불어내며 머리르 긁적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괜히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뭐 어떄? 어차피 지금 미수씨와나는 그냥 친구잖아.그냥 간만에 만나서 인사나 하고 기회가 되면 애기하고,아니면 말지뭐.맞아,혼자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없어' 현우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와락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돌리자 안내 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고민한게 허망하게도 데스크에 강미수의 모습은 보이지않았다. 그제야 현우는 강미수가오후부터 일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뭐야? 나혼자 생쇼를 하고 있었던 거잖아?" 현우는 안도반,아쉬움 반의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빌딩 안으로 들어서서 잡아먹을듯이 데스크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불어내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묘한 눈길을 보내며 다가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 아,기획실의 호명환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방문자 성함은요?" "저는 김현우라고 합니다" 안내원이 기획실에 연락해보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5층 휴게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시네요.엘리베이터는 저쪽입니다" "감사합니다" 현우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5층으로 향했다. 5층에 도착하니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복도를 따라 늘어서 있는 홍보실과 기획실 사무실에서는 쉬징낳고 전화벨이 율려대고,직원들이 서류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대기업 사무실은 항상 이렇게 정신이 없는건가?' 뭐,공장에서밖에 일해 보지않은 현우로서는 그게 정산인지 아닌지조차알수없었다. 어쨌든 직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혼자 휴게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니 괜히 불편해졌다. 그나마 남자라면 그래도 낫지만 여직원들이 힐끔거리면 민망하기 짞이 없었다. '뭐야? 급하게 와 달라고 하더니 정작 부른 사람은 어디있는거야?' 현우가 불편한 표정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을때였다. "아크님,많이 기다리셨죠?" 복도에서 호명환이 잰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해싿. 심기가 불편했던 현우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많이 기다렸습니다" "네? 아,네........죄송합니다.좀 정신이 없어서" "버스 두번 갈아타고 오는것보다 정신이 없었나 보죠?" "아하하하,그게 그러니까........" 호명환이 민망한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됐어요.그보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음,자세한 얘기는 회의실에서 하시죠" 호명환이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현우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로 들어가며 둘러보니 기획실은 밖에서 볼때보다 몇배나 번잡스러웠다. "다들 굉장히 바빠 보이네요.항상 그런건가요?" "그게............." 호명환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벅벅 긁어대며 한숨을 불어냈다.그러고보니 호명환은 마치 며칠동안 잠도 제대로 못잔사람처럼 눈밑에 다크서클이 잔뜩 끼어있었다. 호명환은 답답하다는듯이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지난 며칠 기획실..........아니,글로벌엑서스는 비상사태입니다" "비상사태요? 왜요?" 현우가 되묻자 호명환이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왜라니요? 아크님은 인터넷도 안하십니까?" "인터넷요? 뭐가 떳나요?" "하,며칠동안 어디 은거라도 했다가 오신겁니까?" 보름넘게 은거를 하기는 했다. 단,호젓한 산속이 아니라 몬스터가 날뛰는던전에서 . 새삼스럽지만 현우는 18일도안 비밀던전에 처박혀 있다가 오늘 새벽에야 기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던전을 공략할때는 먹고,자고,싸는 시간 외에는 항상 껌껌한 동굴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다. 때문에 인터넷은커녕 TV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런 설명에 호명환이 질렸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그래도 며칠전에 뉴 월드에서 전체 시스템 메시지가 뜬건 보셨죠?" "전체 시스템 메시지? 혹시 에피소드 갱신 말입니까?" 현우는 며칠전에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햇빛 본지가 오래돼서 시간 개념이 사라진탓에 며칠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비밀던전의 57층정도를 공략할떄였으니 한 나흘전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한창 몬스터들을 털고있는게 갑자기 눈앞에 <에피소드V :숨겨진 전설>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채 10분도 지나지않아서 또다시 <에피소드 VII: 완전한 대륙 >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 메시지에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우가 기억하기로 그떄까지 진행되던 뉴 월드의 에피소드는 스탄달이등장하며 시작된 <에피소드 III : 신대륙의 출현>이었다. 그런데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에피소드V:숨겨진 전설>이 시작됐다가 10분도 되지안아 다시 워프해서 <에피소드 VII : 완전한 대륙> 이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현우는 그 메시지를 뭔가 시스템 오류로 인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무시해버렸다. "그건 알고 계시는군요.지금 기획실이나 홍보실이 정신이 없는건 그때문입니다.사방에서 문의와 항의가 빗발치는 바람에 홈페이지나 전화선이 마비될 지경입니다" "대체 왜 시스템이 그럼 문제를 일으킨겁니까?" "저도 제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호명환이 한숨을 불어내며 고개를 저었다. "실은 아크님을 부른것도 그 문제 때문입니다" "네?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죠?" 뉴 월드의 시스템 문제를 왜 현우와 상담한단 말인가? 설마 현우가 무슨 천재 프로그래머라도 된다고 생각한건가? 현우가 이해할수 없다는듯한 눈으로 바라보자 호명환이 담배를 꺼내물었다. "어디부터 얘기를 드려야할지........." "일단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이제부터 저와 나누는 대화는 모두 비밀입니다. 결코 다른곳에서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네,그야 뭐........"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메시지는 시스템 오류가 아닙니다" "오류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기다리세요.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고있습니다. 당연히 에피소드를 중간에 건너뛰거나,동시에 2개가 진행되거나 하는건 정상이 아니죠.네,그겁니다. 현재 뉴 월드의 시스템은 정상이 아닙니다." "오류는 아닌데 정상이 아니라고요?" 아침 댓바람부터 수수꼐끼나 풀자고 불러댄건가? 울컥 짜증이 일었지마 호명환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장난삼아 하는 애끼는 아닌듯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는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 표현이 맞습니다. 오류는 아니짐나 정상도 아닌거죠.좀 구분하기 어려운말인데,일단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그날 실제로 에피소드의 발동조건인 숨겨진 대륙 2개가 동시에 떠올랐스니다. 때문에 한참 뒤에 시작됐어야 할 에피소드가 발동돼 버린겁니다" "그럴수도 있는겁니까?" 에피소드라는게 그렇게 마구잡이로 시작되는건가? 그럴리가없다. 물론 에피소드 발동 조건이충족되면 시작되는게 당연하지만,상식적으로 그럴떄가 되지않으면 발동조건을 충족시킬 상황-예를 들면 해당 지역에 들어갈수 없다든지-에 제약이 걸려있어야 하지않는가? "그럴수 없죠.그러니까 오류는 아니지만 정상도 아니라는겁니다" 현우의 의문을 호명환이 간단하게 정리해주엇다. "하지만 그건 이번 비상사태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작에 불과하다면?" "그부분은 자세히 설명할수 없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시작된 에피소드의 폭주가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대로 진행되면 언제 또다시 에피소드가 발동될지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죠.그리고 그 모든 에피소드 관련 데이터가 집중되고 있는곳은 바로 대륙의 북동부에 위치한 시니어스 공국입니다" 그렇게 말한 호명환은 밑도끝도없이 회상모드로 접어들었다. 글로벌엑서스가 발칵 뒤집힌것은 나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뉴 월드의 시스템이 본사의컴퓨터를 몽땅 해킹하면서 연산하던 데이터는 바로 호명환이 설명했던 < 에피소드 V : 숨겨진 전설> 과 <에피소드 VII : 완전한 대륙> 이 시작될 전조였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발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메인 시스템이 풀가동돼야 하는데,한꺼번에 2개나 발동되니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해킹 소동을 일으킨것이다. 그러나 그 소동은 다음에 벌어질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에피소드가 그런식으로 폭주한다는것은 상식적으로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프로그래머 김권태가 말했던 최악의 상황-시스템의 무지막지한 데이터가 게이머들에게 역류하는-은 모면한 셈이라 기획실에서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그러나 불과 몇분도 지나지않아 김권태의 얼굴에 다시 당혹감이 번졌다. "자,잠깐만요.뭔가 잘못됐습니다. 본사 컴퓨터에 대한 해킹은 멈췄지만 아직 시스템의 연산이 멈추지않았습니다. A랭크 락까지 풀린상태로 계속 연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서 더 연산할게 뭐가 있다고?" "저도 잘 모릅니다.다만........" "다만?" "이번 데이터 연산의 정보가 집중되는곳은 시니어스 공국입니다" 김권태가 10여분동안 컴퓨터와 씨름해서 알아낸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김권태의 노력이 허망하게도 기획실 직원들은 같은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수 있었다. 기획실의 모니터 요원들이 에피소드 발동 직후,시니어스 공국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어둠의 기운이 각지로 뻗어나가고,정체불명의 몬스터 대군이 출몰해 NPC마을을 습격하고있다는 정보를 알려온것이다. 또한 시니어스 공국만큼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브리스나타니아나 슈덴베르크 왕국에서도 밸런스를 무시하는 정체불명의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다는 내용도 보고되었다. 사실 글로벌엑서스의 홈페이지와 전화선을 마비시킨 문의와 항의는 에피소드의 폭주 때문이 아니라,바로 이 정체 불명의 몬스터 떄문에 게임진행을 못한느 게이머들이 보내오는것이었다. "대체 저것들이 뭐야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거냐고?" 하명우가 발작이라도 일으킬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기획실에서 하명우의 질문에 답할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도 이번 사태는 전혀 짐작도,이해도 할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현재로써는 모든일이 불투명합니다. 다만 제 예상으로는........." 김권태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 모든 사태가 우리가 찾는것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겁니다" "우리가 찾는것?설마........?" "네,마스터 코드" 김권태의 말에 하명우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설마 마스터 코드가 벌써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이 황당한 사건이 마스터 코드를 가진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아니,그건 아닐겁니다" 김권태가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만약 누군가가 이미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었다면 먼저 본사와 접촉을 시도했을겁니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줄 아는사람이라면 마스터 코드의 가치를 모를리가없으니까요" "하지만 마스터 코드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의 손에 들어갔다면?" "마스터 코드를 찾는게 그렇게 쉬운일은 아닐테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만약 모르는 사람이 마스터코드를 마구잡이로 조작했다면 고작 이정도로 끝났을리가없습니다. 뭣보다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설핏 무작위적으로 벌어진 일처럼 보이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습니다. 숨겨진 대륙이 떠오른것만 봐도 그렇죠" "그렇다면 뭐야?" "박우성 같은 천재 게임 디자이너가 마스터 코드를 숨겼다면 틀림없이 상당한 수준의 보호장치를 몇겹이나 만들어뒀을겁니다 .제 생각에.......이건 가설이지만, 누군가가 마스터 코드의 보호막을 강제적으로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에대한 보호장치가 발동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파악한 데이터에도 이번 사태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파악됐습니다.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장악할수 있는 마스터 코드가 발동했다면 그런 움직임이 있을리가 없죠" "누군가가 마스터 코드에 강제적으로 접근하려 한다 이말인가?" 김권태의 설명에 하명우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우리는 아지까지 마스터 코드가 어떤 존재인지조차 정의하지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마스터 코드에 접근하려 한다면, 적어도 그는 우리보다 마스터 코드를 잘 알고있다는뜻이 되겠군" "............그렇겠죠" "그리고 강제적으로 보호막을 뚫어서까지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으려고 한다. 상당한 정보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겠지.그렇다면 결코 개인의 짓이 아니군.그말을하고싶은게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폭주도 데이터로 인한 조작따위가 아닙니다.그렇다고 마스터 코드의 개입도 아니죠.데이터상으로는 확실하게 누군가가 실제로 에피소드의 발동조건을 충족시킨것입니다. 게다가 한꺼번에 2개가 발동된 점을 미루어볼때 적어도 둘 이상의 유저가 개입됐다고 봐야겠죠.같은 목적을 가지고" "그럼 묻지.만의 하나라도 우연의 일치로 그렇게 됐을가능성은 없나?" "그럴 확률은 1,000만분의 1도 안될겁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군" 하명우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중얼거렸다. 그만한 정보력과 조직력을 갖췄다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집단이 개입됐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생각할수 있는 결론은 하나,바로 글로벌엑서스의 경쟁사에서 마스터 코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가로채기 위해 공작을 펼치고 잇는것이다. '만약 마스터 코드가 놈들의 손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글로벌엑서스는 그날로 공중분해된다. 새삼스럽지만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으면 그 사람은 뉴 월드의신이된다. 모든 시스템에 직접적으로 접속할수 있는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유저들의 정보를 몽땅 삭제해 버릴수도있고,아예 시스템을 꺼버릴수도 있는것이다. 물론 본래 마스터 코드에 대한 권리는 당연히 제작사인 글로벌엑서스에 있다. 만약 경쟁사가 마스터 코드를 찾으면 법적권리를 주장할수 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만약 경쟁사가 마스터 코드로 데이터를 역류시켜 유저들을 뇌사상태로 만들수있다는 문제를 걸고넘어진다면? 단순히 뉴 월드의 서비스 중지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하명우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결코 마스터 코드가 다른곳에 넘어가게 해서는 안된다!" 하명우는 곧바로 지구언을 모아 회의를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마스터 코드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지느 않았다. 게다가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기획실은 마스터 코드가 있는 장소를 짐작할수 있게 되었다. 놈들이-아마도 경쟁사-가 시니어스 공국을 기점으로 뭔가 일을 꾸민다면 그곳에 마스터 코드가 있을 가능성이 많은것이다. 남은 문제는 어떻게 그곳에서 마스터 코드를 찾느냐. '빌어먹을 ,상황이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뉴 월드에 군대라도 조직해 놓는건데........' 설마 상항이 이런식으로 진행될줄은 예상하지못했다.그러나 하명우도 지금까지 그저 손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비록 군대까지는 아니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비밀 조직이 있는것이다. 바로 뉴 월드에서 톱클래스를 유지하고있는 2,000명의 응시자들이다. 하명우는 응시자들을 동원해 시니어스에서 벌어지는 일을 조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배후세력을 방해,마스터 코드를 지키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응시자를 불러들여!모든 응시자를 시니어스에 집중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현우가 글로벌엑서스로 소환된것이다. 물론 상황이이렇게 됐다고 마스터 코드나 경쟁사와의 암투 따위를 응시자들에게 털어놓을 수는없었다. 내부 정보는 최대한 숨기면서 응시자들을 원하는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기획실의 기본 방침이었다. 잠시 회의 내용을 떠올리던 호명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일어난이련의 사태를 오류라고는 할수 없지만, 처음게임 시스템을 만들떄 미처 생각하지못했던 일종의 버그라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그리고 몇몇 유저들이 이 버그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것 같습니다." "그럼 그 유저들의 계정 정보를 조사해서 조치를 취하면 되지않습니까?" 현우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수가 없었다. 실제로 예전에 한창 온라인 게임의 보안이 허접하던 시절,버그를 이용해 이득을 보는 유저나,오토-불법 자동 사냥 프로그램-를 이용하는 유저들은 계정을 추적해 계정을 압류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이건 뉴 월드의 약관에도 분명히 명시되어 있는 내뇽이었다. 그런 부분을 파고들자 호명환이 얼른 말을 돌렸다. "그,그건........자세히 설명드릴수는 없지만 내부적으로 여러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아크님을 보자고 한건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라는 겁니다" "그런 문제를 어쨰서 저와 상의한다는 거죠?" "유저만이 해결할수 있으니까요" "네?" "좀전에도 말했지만 이번사태가 발생한건 게임내의 어떤 '버그'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버그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결점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드 블랙 아이템'을 말하는겁니다" "코드 블랙 아이템? 뭡니까,그게?" "잘아시겠지만 게임을 디자인하고 만드는일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뉴 월드의 경우 각 방면의 전문가 수천명이 몇년에 걸쳐 수만은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게임이죠.그리고 앞전에 수십종류의 베타 버전이 존재했습니다. 그 베타 버전을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템이 밸런스 문제로 폐기되기도 했죠.'코드블랙아이템'이란 그런것처럼 테스트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어 폐기됐어야 할 아이템을 말하는겁니다" 이게 하명우가 생각해낸핑계거리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도 응시자들에게 마스터 코드에 대한 정보를 말해줄순 없다. 그러나 어떤 정보도 말해주지않으면 응시자들을 움직일 명분이없다. 또한 그냥 '이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라'라는설명만으로는 응시자들일 뭘해야할지 갈피를 잡지못하고 헤맬 가능성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게 코드블랙 아이템이다. "현재 프로그래머들이 데이터를 검색해 어떤 코드 블랙아이텡이 미처 삭제되지않았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십종류나 되는 베타 버전에서 시험됐던 아이템을 모두 검색하려면 몇달이 걸릴기 장담할수 없습니다" "하긴 지금 뉴 월드의 아이템만해도 수만종류는 넘으니까............." "그렇죠,하지만 이번 사건이 정확히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진행된것인지를 알면 검색 조건을 한정시킬수 잇겠죠.그래서 기획부에서는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몇몇 응시자를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시니어스 공국에 파견해 정보를 수집하게 하자는 결정을 내린겁니다. 그리고 현재 모든 응시자들에게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세한 정보는 오직 아크님처럼 특별 관리 대상자에게만 알려주는겁니다" "코드 블랙 아이템의 정보만 확인하면 됩니까?" "아니,최종적으로는 그 아이템을 회수해야 모두 끝난다고 할수 있겠죠" "확인되면 그냥 폐기처분해 버리면 된거 아닙니까?" "그건 안됩니다. 상황이 어쨌든 유저가 그 아이템을 해킹같은 방식이 아니라,정상적인 플레이로 손에 넣은 거라면 이미 사유재산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가 일어나든 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에넣은 아이템을 사용한 결과라면 불법이 아니죠.아무리 제작사라도 마음대로 삭제 시킬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게임내에서 유저가 빼앗거나파괴한다면........." 문제될게 아무것도 없다. 호명환은 음험한 눈빛으로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뭐,제입장에서 그이상을 말하기는 힘들군요.어쨋든 상황은 잘 이해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이번 사건이예상치못했던 일이라고는 하나,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사건을 해결한 응시자는 무조건 합격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응시자들이 만사를 제쳐놓고 매달리게만들기 위한 방법이었다. 호명환은 '어떠냐? 의욕이 팍팍 생기지? '하는 표정으로 현우를 바라보았다.그러나 현우의 반응은 '아,그래?'하는 정도밖에 되지않았다. 사실 새삼스런 일도 아니었다. 현우가 뉴 월드를 시작한 계기는 틀림없이 글로벌 엑서스에 취직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춥고 배고프던 시절의 얘기였다. 물론 지금도 그리 부유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얼마전에 15만골드나 투자해본격적으로 삼각무역을 시작했다. 한달에 수만골드 이상 벌어들일수 잇는 사업의 회장이 된것이다. 만약 사업이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 게임 재벌도 더이상 꿈이 아니었다.그런데 연봉 1억짜리 직장에 목을 멜 이유가 없지않은가? 아니,오히려 한창 사업에 신경써야할게 많은 시기에 덜컥 취직이 돼버려도 곤란하다. '나에게 가장 좋은건 400만원씩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냥 게임만 하면 되는 응시자로 계속 남아있는거야.하지만 호명환이 항상 동영상으로 감시하니 하는척은 해야겠지' 어쨌든 현우는 이번 사태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일이유가 없었다.그러나 이어지는 호명환의말에는 움찔하지않을수 없었다. "만약 이번사태가 지금보다 더 악화되는 조짐이 보인다면 ,최악의 경우 코드 블랙아이템의 정보가 확인될때까지 뉴 월드의 서비스가잠정 중단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네?뭐,뭐라고요?" "물론 그건 최악의 경우입니다. 그리고 그런 최악의 상항을 피하기 위해 응시자들에게 이렇게 특별히 부탁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건 현우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꺠워주기 위한 허풍이었다. 유저가 수백만에 달하는 머메드 게임을 몇달이나 서비스 중단할수 있을리가없지않은가?만의 하나라도 그런일이 발생한다면 각종 피해보상이다뭐다 해서 글로벌엑서스는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을수밖에없다. 그뿐이 아니다.대외적인 신뢰도가 떨어져 주가는 폭락할것이고,심지어 대형기업이 휘청거리면 국내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도 심각하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그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것은 알수있으리라. 그러나 현우는 그렇게 침착하게 따질 경황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사업 자금을 구해 삼각무역을 시작했다. 현우가 가지고 있던 돈도 몽땅 털어넣은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비스가 몇달이나 중단된다면 현우는그동안 땡전 한푼없는 빈털터리가된다. 게임을 못하면 당장 생활비를댈 방법도 없는것이다. 그제야 현우도 이번 사태가 남의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상황이 이해됐을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우의 얼굴이 굳자 허풍이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한 호명환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절대 그런 사태가 발생하지않도록 글로벌엑서스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해결에는 아크님이나 여러 응시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필요한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겠으니 아크님도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회의실을 나온 현우는 머리가 복잡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호명환이 한얘기는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해했다고 다 수긍이 되는것은 아니다. 글로벌엑서스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거대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고작 게임내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제대로 수습하지못해 응시자에게 부탁한다는게 말이되는가?게다가 최악의 상황에는 서비스까지 잠정중단할수 있다니? 서비스 중단으로 인해 글로벌엑서스가 받을 엄청난 물적피해를 생각하면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말이었다. 호명환은 '정상적인 플레이로 손에 넣은 아이템이라면 제작사는 관여할수 없다.'라는 말로 모든 의문을 봉쇄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천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런 원리원칙을 따진다는것 자체가 이미 난센스 아닌가? 적어도 글로벌엑서스가 준법정신이 강해서만은 아니리라. '뭔가 밖에 알리지못하는 사정이 있는게 분명해'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건 당연했다. 그러나 사실 현우에게 중요한 문제는그게아니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건 최악의 경우 뉴 월드의 서비스가 잠정 중단될지도 모른다는사실! '몇달이면 수십만 골드를 벌수있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 몇달만 서비스가 중단돼도 현우는 수십만 골드의 손해를 입는다는 말이다. 게다가 현우는 통장의 잔고까지 탁탁 털어 몽땅 사업 자금으로 투자했다. 삼각무역이 진행되면 금세 수익금이 돌아올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비스가 중단되면 투자한돈이 몽땅 뉴 월드에 묶여 당장 생활비조차 댈수없는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몇달이나 지속된다면....... '꽤나 곤란해지겠지.하지만............' 처음 호명환에게 들었을때는 현우도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의실을 나와 침착하게 생각해보니 역시 사태가 그렇게까지 심각해지리라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아무리 이것저것 걸리는게많다고 해도 설마 글로벌엑서스가 그 정도 문제는 해결하지못해서 서비스까지 중단한다는건 말이 안된다. '그래도 역시 시니어스 공국으로 가보기는 해야겠어' 사실 현우는 그렇지않아도<전설의 증인>퀘스트 때문에 시니어스 공국 근방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명환의 말을 듣고 현우는 또 다른목적이 생겼다. '사태가 해결되든 해결되지않든 지금 코드 블랙아이템이라는것 때문에 글로벌엑서스가 전전긍긍하고있다는건 사실이다 .다시말해 코드블랙 아이템은 뉴 월드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그게 어떤건지,어떤 능력을 가진 아이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건 터트릴수 있을만한 정보를 얻게 될지도 몰라!' 이게 시니어스공국으로 날아가려는 진짜 이유였다. 현우보다 잘난 응시자들이 얼마든지 있을테니,시니어스공국으로 가봐야 현우가 글로벌엑서스에서 부여한 미션을 해결할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않는다. 그러나 코드블랙 아이템이 시니어스 공국을 중심으로 대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한발 앞서 그 변화를 조사하는것만으로도 돈벌이에 써먹을 정보를 얻을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잘 풀려서 코드 블랙 아이템을 손에 넣으면 더좋고 말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에 대한 제작사의 대응을 보면 내가 코드블랙 아이템을 손에 넣어도 강제적으로 빼앗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잘하면 제작사와 흥정을 할수도있어.어차피 이제 입사 시험에는 큰 미련이 없으니 취직 대신 목돈을 뜯어낼수 있을지도몰라' 날이갈수록 간덩이만 커져가는 현우였다. 어쟀든 현우는 그런망상에 젖어 1층으로 내려왔다. 빌딩에 처음 도착했을때는 강미수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엇다. 그리고 면담을 마치고 돌아가기전에 한번 만나 볼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시 내려왔을때는 오직 이번사태를 어떻게 돈벌이로 이용할수 없을까 하는 생각만 가득해 강미수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현우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로비를 가로지를 때였다. 데스크 앞을 지나가는게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부탁이에요!" "아니.......그러니까.........곤란하다고.........." '응? 이 목소리는 강미수?'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현우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데스크에 있는 사람은 강미수였다. 그리고 처음에 큰 소리를 낸 사람은 20대 초반에 투실투실한 외모의 사내였다. 사내는 데스크 앞에서머리를 쥐어뜯어대며 답답한 한숨을 푹푹 불어내고 있엇다. '대체 무슨 일이지?' 함부로 끼어들수없는 일이라 현우는 잠시 멈춰서서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그때 다시 사내가 울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강미수에게 사정했다. "부탁입니다. 그냥 전화번호만 알려주시면됩니다. 사례는 할게요" "안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다시 말씀 드려야 하나요? 특정 유저의 정보는 제가 알아낼수도 없을뿐더러,설사 알수있다고 해도 절대 타인에게 유출할수없게 되어 있어요" "제가 그걸 몰라서 부탁드리는게 아니잖아요.압니다.안다고요.하지만 정말 긴급 상황입니다. 까딱하면 수천만원,아니 수억원이 날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죄송합니다. 도와드릴수가 없네요" 강미수가 한숨을 불어내며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우는 잠깐 동안 들은 얘기로도 대강의 상황을짐작할수 있었다. '뭐야? 게임 안에서 문제가 생겨서 다른 유저의 정보를알려달라고 뗴를 쓰는건가?' 제작사에서 유저의 정보를 알려주지않는건 당연하다. 게임내에서의 원한은 오히려 현실에서의 원한보다 더 사람을 열받게 하는경우가 있다. 만약 제작사에서 유저의 정보를 되는대로 유출한다면 여기저기에서 피 튀기는 활극이 벌어지리라.이건 짐작이 아니다.실제로 현우 역시 안델에게 현피를 당했던 경험이 잇는 것이다. '안되는걸 뻔히 알면서도 진상을 부리는걸 보니 보통 문제는 아닌모양이군.뭐,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나저나 미수씨에게 말을 걸 분위기가 아니네' 현우가 잠깐 기다릴까,아니면 다음 기회로 미룰까 고민하고 있을떄였다. 사내가 나잇값도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대로 손놓고 있으면 전 죽을지도 몰라요.흑,제발 사람 하나 살리는셈 치고 좀 알아봐 주세요.그 사람 전화번호를 알아보려고 방송국까지 갔다가 쫓겨났단 말이에요.이제 믿을곳은 여기밖에 없어......어? 가,가만?" 훌쩍이던 사내가 소매로 눈가를 쓱쓱 문지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만, 아까부터 왠지 낯익다는생각이 들었는데......혹시 레리어트님?" "네? 저를 아세요?" "마,맞는거죠? 아니,틀림없어!맞죠?" 사내가 와락 강미수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접니다. 시드라고요.얼마전에 시르바나에서 봤잖아요" "시,시드? 호비트 상인 시드말이에요?" "내,그 작고 귀여운 호비트 시드가 바로 접니다!" 순간 강미수와 현우의 눈동자가 동시에 솥뚜껑처럼 커졌다.설마 이런곳에서 시드유저를 보게 될줄 누가 알았겟는가? '시드? 저 남자가 시드라고?' 현우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시드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을때였다. 시드가 다급한 어조로 말했다. "아아,설마 이런곳에서 레리어트님을 만나게 될줄이야.하느님 감사합니다!사실 제가 알려달라는 유저의 전화번호가 바로 레리어트님과 친한 아크님겁니다" "아크님요?" "네,레리어트님도 아시죠? 얼마전에 아크님이 시작한 삼각무역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몰고나갔던 골드드림호가 지금 통째로 날아가게 생겼어요!빨리 아크님에게 알려야한단 말이에요!제발 아크님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아크님에게 제 연락처만 주고 아크님의 연락처는 받아놓지못했어요" "골드드림호가 날아가게 생겼다니요? 그게 무슨......?" 강미수가 당혹감을 감추지못하고 되물었을떄였다. '방금 한말,자세하게 설명해봐!" 뒤에서 로비가 쩌렁쩌렁 울리는듯한 고함이터져나왔다. 화들짝 고개를 돌린 강미수가그제야 현우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크님?" "헉!아,아크님이라고요?" 시드가 경기를 일으키듯 움찔하며 몸을 돌렸다. 현우는 강미수에게 살짝 눈인사를 한뒤에 시드에게 다가가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그래,내가 아크다.대체 무슨말이야? 골드드림호가 어떻게 됬다고?" 시드는 멍청한 눈으로 아크와 똑같이 생긴 아크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갑자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크님.........살려주세요!" BY RAYAN ACT 6 바다 괴물 퇴치 "정말 돌아버리겟네" 내장 밑바닥에서부터 푹푹 썩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크에게 스트레스의 융단폭격을 퍼부은것은 바로 시드의 SOS였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하냐?" 몇시간전 ,아크의 목소리가 글로벌엑서스의 로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순간 자기도 모르게 고함이 터져나왔다. "히,히익!레,레리어트님!" 슬슬 눈치를 살피며 떠듬떠듬 웅얼대던 시드가 기겁하며 레리어트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로비에모여있던 사람들이 무슨일인가 싶어 눈길을 보내왔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그런사람들의 시선따위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시드가 가져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내용은 바로 아크의 꿈,골드드림호의 실종이었다. 이틀전 스탄달에서 역사적인 첫거래를 성공리에 마치고 루벤트 항으로 돌아오던 도중,황당하게도 정체불명의 바다괴물에게 먹혀버렸다는것이다. 새삼스럽지만 골드드림호는 아크의 꿈과 희망의 결정체. 당연히 최그급 선박을 구입했고,보다 빠르고 안전한 교역을 위해 돛대와 내부시설의 개조는 물론,선체에도 수십종류의 마법 코팅을 해놓았다. 배값과튜닝 비용을 합하면 그것만도 무려 4만골드가 넘는다. 거기에 스탄달에서 싣고 오던 수천만 골드의 교역품! 그게 몽땅 정체도 모르는 괴물의 한끼 식사가 되었단다. 밑도 끝도없이 그런 소식을 듣게 된 아크가 정상일리가없었다. 시드는 등뒤에 숨어 바들바들 떨어대고,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레리어트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그게 시드님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아크는 울컥한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불어내며 끄덕였다. 그렇다. 레리어트의 말처럼 시드의 잘못이라고는 할수 없다. 문제없이 항해를 하는데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서 배를 집어삼켰다. 뭐,괴물이 나타나는 지역이라는걸 알고 들어갔다면 시드의 잘못이겠지만, 지금까지 그 항로에서 그런 괴물이나타났다는말은 들은적이 없다. 그러니 결코 시드를 탓할수있느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지금은 잘잘못이나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랄까? 다행히 골드드림호가 먹힌 시점에서 모든게 끝난것은 아니었다. 시드의 말에 의하면 바다괴물은 골드드림호를 한입에 삼킬정도로 거대하단다. 당시 그 거대한 괴물은 바닷물과 함께 골드드림호를 통쨰로 삼켰고,덕분에 거의 온전한 상태로 놈의 위장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투자해 각종 마법 코팅을 도배해 놓은 덕에 위장속에서 떠있는 상황이란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직 골드드림호를 되찾을기회는있다!' 물론 마법 코팅으로 도배해 놨다고는 하지만 괴물의 위장에서 버틸수 있는건 한계가 있었다. 이대로 가면 언제 골드드림호가 소화되어 4만골드짜리똥이 되어버릴자 누구도 장담할수 없었다. 때문에 당시 선장실의 금고에 숨어 살아남은 시드가 아크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 글로벌엑서스까지 찾아와 진상을 부려댔던 것이다. "내꿈이 괴물의 똥이 돼 버리기 전에 되찾아야해!" 더이상 시드나 레리어트를 신경 쓸떄가 아니었다. 아크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유니트에 올라탔다. 아직 정확한 정체는 알수없었지만,바다 괴물은 골드드림호를 통쨰로 삼킬 정도로 거대한 놈이다. 그것도 장소는 바다 한복판.아무리 급해도 혼자 헤엄쳐 가서 상대할수 있을리가없지 않은가? 놈을 상대하려면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바다 괴물이라는 말을 듣는순간 곧바로 스탄달의 해군이 떠올랐다. 스탄달 해군은 그동안 해적들을 상대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또 정의남과 갱생단이 자치대장을 맡고 있어 도움을 요청하기도 쉬웠다. 때문에 아크는 일단 갱생단을 스탄달로 급파해서 이사벨에게 해군의출병을 부탁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바도 바다 괴물이 출현했던 지점이 슈덴베르크의 해역이라는점이었다. 다시말해 스탄달의 해군이 해역을 넘어오면 심각한 외교 문제가 발전할수도 있는것이다. 때문에 아크느 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곧바로 루벤트항으로 날아와 영주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역시나 작위로 들이밀자 곧바로 영주와 면담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아크경의 명성은 나도 익히 들어 왔소.어쨌든 내가 관리하는 해역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오.나 역시 어떻게든 돕소 싶소.하지만 경이 부탁한일은 내가 판단 할수있는 일이 아니오.타국의 병력이 슈덴베르크의 영해로 들어오도록 허락할수 있는 권한을가진 사람은 국왕 폐하뿐이오" "그럼 국왕 폐하꼐 청을 넣어 주시겠습니까?" "물론 그럴 생각이오.하지만 솔직히 그다지 기대하지않는 편이 좋을거요.요즘 국내외에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져서 정국이 뒤숭숭하오.그런 상황에서 함부로 타국의 병력을 영해에 들여놓은수는 없겠지.또한 수락한다고 해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귀족 회의를 거쳐야하니 결정될떄까지 일주일 이상 소요될거고 말이오" 루벤트 영주의 대답에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리 마법 코팅을 해놨다지만 골드드림호가 괴물의 위장에서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수 없다. 이미 이틀-현실시간으로-이나 지났는데 앞으로 또 며칠을 마냥 기다릴수는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결과가 긍정적일거라는보장도 없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럼 루벤트항의 병력은 어떻습니까? 영주님은 근처 해역을 관리하시니 해군이 있을것 아닙니까? 바다괴물은 여기서 수십해리(1해리는 약 1,852미터)떨어진곳에서 출몰했지만 분명히 루벤트 항의 해역이고,방치하면 항구를 공격하지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나서서 퇴치해야 맞겠지.하지만.........." 루벤트 영주가 피곤한듯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경도 소식을 들었으리라 생각하오.현재 문제가 생긴곳은 바다만이 아니오.얼마전 대륙곳곳에서 수상한 검은 오벨리스크가 발견된 직후,슈덴베르크의 전지역에서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소.그리고 이미 놈들에게 적지않은 숫자의 마을과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지.바다 괴물은 일단 피해를 막을수 잇지만,육지의 상황은 그렇지않소.때문에 루벤트항의 모든 병력은 대부분 정체불명의 몬스터에게 공격당하는 마을로 파견나가있소" 루벤트 영주가 말하는 검은 오벨리스크과 정체불명의 몬스터는 바로 호명환이 말했던 '버그'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막상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버그가 뉴 월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새삼 심각하게 생각되었다. 어쨌든 지금 아크에게는 대륙이 발칵 뒤집히든 말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건 얼마후면 아크의 꿈과 희망이 괴물의 똥이 되어버린다는것과,현재로써는 그걸 막을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정말 이대로 손놓고 있을수밖에 없는건가? 영주성을 나온 아크가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있을떄였다. -아크,어떠냐?잘해결됐냐? 함께 루벤트항까지 와서 상인길드로 향헀던 이슈람-이미 비밀던전에서수확한 전리품의 처리는이슈람이 맡기도했다-에게서 귓속말이 들어왔다. -아니요.그게 좀 골치아픈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 그러지않을까 싶었다. 나도 상인길드에 ㅗ아서야 요즘 대륙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단 말을 들었다. 그런 상항에서 스탄달 해군의 영해진이이나,항구 병력을 빌리는일은 쉽지않을거라고 생각했어.하지만이제 그럴 필요가 없겠다. -네? 그럴 필요가 없다니요? -말로 설명하기는 좀 그렇고,일단 상인길드로 와봐. 이슈람의 말에 아크는 항구 근처의 상인길드로 찾아갔다.스탄달이 떠오른뒤로,루벤트 항은 자연스럽게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 대륙 삼대 길드 가운데 특히 상인길드의 성장이 두드러졌다. 상인길드의 건물은 바로 옆에 있는 전사 길드나 마법학회의 건물보다 몇배나 크고 화려한 정도였다. 그런데 상인 길드 앞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상인보다 전사나 마법사들이 건물앞에 구름처럼 모여있었다. "아크 ,왔냐?" 이슈람이 인파를 비집고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네,그런데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은 뭐에요?게다가 해군출동을 요청할 필요가 없다니요?" "너도 저걸 보면 이해가 갈거야" 이슈람이 상인길드앞의 게시판을 가리켰다. 상인 길드앞에 세워진 게시판은 본래 인근 지역의 교역품 시세따위를 고시하는 용도로 사용되는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게시물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울튼 산맥에서 사라진 상단 조사 의뢰 이틀 전 루벤트항에서 베르딘으로 향하던 사인 길드의 스캇상단이 도중에 갑자기 실종됐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급파된 조사원의 보고에 의하면 요 며칠 사이에 각지에서 출몰한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받은것 같습니다. 이에 상인 길드 마이더스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고 상단의 요인과 수송물을 되찾을 용병을 모집합니다. *추적과 탐지가 가능한 헌터,도적 우대 난이도 : ??? 모집 인원 : 60명(현재 지원자 52명) 보수 : 30골드(성공 보스 +10골드) 사라진 수송 선단 조사 의뢰 어제 새벽 브리스타니아로 출발했던 마이더스의 수송 선단이 북위 85도경에서 갑자기 실조됐습니다. 현재 이수송 선단의 실종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확인 되지않았습니다. 상인길드는 해적단에게 나포되었을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잇습니다. 이에 상인길드 본부에서는 무장 선단을 조직해 사라진 수송 선단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필요하다면 해적단을 섬멸할 예정입니다. 상인 길드를 도울 전사를 모집합니다. *항해술이나 조타술 기술 보유자 우대 난이도 : ??? 모집 인원 : 800명(현재 지원자 785명) 보수 : 40골드(성공 보수 +15골드) '그렇구나!' 용병 모집 공고를 확인한 아크는눈이 번쩍 뜨였다. 아크는 그 모집공고를 보고나서야 자신이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음을 꺠달았다 루벤트 영주가 말했듯이 현재 슈덴베르크,아니 대륙 각지에서는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출몰해 혼란에 빠져있다. 그리고 그런 상항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곳이 바로 대륙 각지에서 수백개의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길드였다. 난데없이 몬스터들의 습격을받게된 마을들엔 그래도 최소한의 방어시설이 갖춰져있다. 그러나 상단은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것이다. 게다가 괴물들의 출현이 너무나 갑작스러워 대륙 곳곳에서 상인 길드 소속의 상단이 실종됐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만약 평상시라면 관련 영지의 영주에게 청원을 넣어 처리했을것이다. 그러나 현재 대륙 각지의 영주들은 영지의 마을을 습격하는 몬스터를 토벌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때문에 상인 길드는 자구책을 마련해야했고,있는게 돈밖에 없어 막대한 자금을 투입,조속한 사건 해결을 위한 용병을 모집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게시판에서<사라진 수송 선단의 조사 의뢰>를 발견했다. '북위 85도경이라면 시드가 괴물에게 먹혔다는곳 근방이다!' 사라진 수송 선단과 연락이 두절되어 상인 길드에서는 해적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듯하다. 그러나 시드를 통해 자세한 지점을 들은 아크는수송선단의 실종 역시 바다 괴물과 관련이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뭐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쨌든 이 무장 선단에 용병으로 참가하면 일단바다 괴물과 붙어 볼수는 있다는 말이 아닌가? '게다가 벌써 지원자가 785명이나 모여있다. 앞으로 몇십분 사이에 출발할수있어!' 아크는 곧바로 담당 NPC를 찾아가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제출한 신청서를 확인해보던 NPC가 놀란 눈으로 아크를바라보았다. "귀,귀족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귀족뿐꼐서 어째서 이런 험한 용병일을........?" NPC가 이해할수 없단 눈으로 물었다. 하긴 게임이니 그나마 이해할수 있지만, 만약 현실이라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리라. '뭐야? 혹시 귀족이 되면 용병일같은걸 신청할때 뭔가 패널티라도 부여되는건가?' 내심 걱정이 된 아크는 대강의 사정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실은 제가 소유한 선박 하나도 그 근방에서 실종되었습니다. 때문에 루벤트 항의 해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현재로써는 언제 움직여줄지 장담할수가 없군요.그떄 마침 상인 길드의 모집 광고를 보고 신청하게 됐습니다" "아,그러시군요.음........일단 저를 좀 따라와 주십시오" 잠시 뭔가를생각하던 NPC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저는 가 볼게요" "그래,꼭 찾아라" 여기서 아크는 일단 이슈람과 헤어졌다. 이슈람도 가능하다면 아크와 함께 가고싶어했지만, 예전에 함께 다니던 조폭들과 재회하기로 약속했던 날이 얼마 남지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슈람과도 헤어져 간만에 혼자가 된 아크는 곧 NPC를 따라 상인 길드 전용 도크(선거船渠)로 안내되었다. '굉장하다!' 도크로 안내된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도크에는 이번 임무에 출항 준비를 서두르는 전함 여덟척이 정박해있었다. 그런데 이 여덟척의 전함은 아크가 지금 까지 봐오던 전함과는 수준이 달랐다. "이게 상인 길드가 새롭게 건조중인 무장 선단입니다.보시는 바와 같이 보통 전함보다 1,5배이상 크고,포문도 30%이상 더 많죠.또한 외벽에는 강철판을 덧대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않습니다. 그리고 일반 항해를 할때 사용하는 흠집조차 나지않습니다. 그리고 일반 항해를 사용하는 돛대와는 별도로 유사시에 사용할수 있는 마력엔진을 탑재한,바다의 역사를 새로쓸만한 전함입니다" NPC가 자부심 가득한 눈으로 전함들을 바라보며 수다를 떨어댔다.그때 NPC 뒤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들려왔다. "어이,어이 .근사기밀을 그렇게 떠들어 대면 곤란하지" 고개를 들어보니 화려한 금장 갑옷을 걸친 청년이 다가왔다. 그러자 NPC가 헛기침을 하며 소개했다. "아 ,이분이 이번 무장선단의 제독을 맡게되신 바그너 자작님입니다" 그리고 바그너에게 다가가 아크를 가리키며 귓속말로 뭔가를 설명했다. 그러자 바그너는 의뢰라는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며 금세 친근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하,슈덴베르크의 귀족이었군.뭐,그렇다면 문제없지그릐고 어차피 무장선단을 출항하면 지금까지 기밀이었던 무장선단의 정보도 더는 숨길수 없고 말이야" "기밀이라니요?"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할수 없었던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바그너가 씨익웃으며 설명했다. "실은 이 전함들은 슈덴베르크 해군과 상인길드가 합작해서 오랫동안 추진해오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네.이 전함 들을 개발하고 만들기까지 수년이 걸렸지" 그렇다. 사실 도크의 전함들은 슈덴베르크가 비밀리에 제작하던 차세대 전함이었다. 사실 아무리 전 대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인 길드라도 정규군보다 강력한 전함을 보유한다는것은 간단한일이 아닌것이다. 어쨌든 상인 길드의 도크에서 건조중이던 전함들은 얼마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제 전함의 성능 테스트만 남아있는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수송선단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것이다. 이에 떡 본김에 제사 지낸다고,슈덴베르크 해군본부에서는 이번 수송 선단 수색 작업에 전함을 투입해서 성능테스트를 하기로 결정한것이다. 슈덴베르크의 귀족이 제독을 맡은것은 그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부분에서 몇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새로 건조된지 얼마되지않아 선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일단 부족한 선원은 용병을 모집해서 해결했지만 문제는 전함을 책임질 선장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아무나 선장을 시킬수는 없지 않겠는가? "일단 급한대로 몇척의 상선을 몰려 제법 경력을 쌓은 상인 길드의 늙은이들에게 맡겨났는데 말이야.역시 상인 나부랭이에게 전함을 맡기려니 좀 불안하단말이야. 뭐,당장 적임자를 찾을 시간이 없는 상항이니 할수없지" 바그너가 오만한 표저으로 NPC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아크에게 시선을 옮겼는데,역시 오만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상인길드의 NPC를 볼때보다는꽤나 부드러운 눈빛이었다. "역시 이런 중요한일은 명예로운 슈덴베르크의 귀족이 맡아야하지않겠는가? 자네는 무공을 세워 귀족이 된 사람이고,마침 자리도 남아있으니 자네가 전함 한척을 맡아주게" "네? 제가요?" "귀족에겐 그만한 명예를 지켜야 할 의무가있지.아무리 벼락출세한 귀족이라고하지만 명색이 슈덴베르크 귀족인데 다른 용병들처럼 갑판이나 닦게 할수는 없지않은가?" 아무래도 바그너는 출신과 지위가 세사의 전부라고 믿는 인간 같았다. 솔직히 아크는 체질적으로 그런 인간을-물론 NPC지만 -싫어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걸 따질떄가 아니다. 아크가 이번 의뢰에 참가한 목적은 정확하게 괴물퇴치가 아니다.괴물의 배속에 골드드림호를 구출하는게 목적이다.그리고 루벤트 항으로 날아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정도 생각해 둔 작전이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용병으로 참가하면 작전을 펼칠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 이게아크가 걱정하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비록 한척이라도 전함을 지휘할수 있는 선장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믿고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바그너 자작님!" 아크가 와락 바그너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두두둥, 소리와 함께 정보 창이 떠올랐다. [무장 선단의 제독 바그너의 요청을 받아들여 '임시 선장'이 되엇습니다. 선장이 되면 해당 전함에 대한 모든결정권을 가지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전함에 소속된 병사들은 아크님의 공격대에 포함됩니다. 또한 전함 역시 공격대의 일부로 적용되어 선장이나 부선장이 사용하는 각종 스킬의 영향을 받습니다. <선장이 되어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료하면 성공 보수가 200%가산되어 지급됩니다>] '좋아,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고 있어!' 작위 덕분에 뜻하지않게 선장이 되어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때였다. "하하하하!갑자기 선장을 맡기니 쫄기라도 했나? 하짐나 걱정할 필요없네.자네는 그냥 내 명령만 잘 따라오면돼.한떄 바다의 패자라고 불렸던 이몸이 나선다면 해적따위는 잠자리에서 여자 속옷을 벗기는것만큼이나 간단하니까 말이야" 바그너가 정보창을 읽고잇는 아크의 어깨를 탁탁 치며 껄껄 웃어댔다. ...........이유없이 패주고 싶은 놈이었다. "정말 돌아버리겠군' 아크의 입에서 부둣가에서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던 대사와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아크의 예상대로 나머지 용병도 금세 모였다. 그렇게 필요인언이 모이자 무장선단의 출항 준비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각 전함에 용병을 나눠 배치하고 필요한 물자를 보급,드디어 해적 소탕-사실은 바다 괴물 퇴지-를 위해 출항한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문제는 바로 아크의 어깨에 앉아 떠들어 대는 박쥐였다. "........하하하하,그떄는 대단한 이몸도 정말 죽는구나 싶을정도였지.하지만 이몸은 슈덴베르크의 귀족.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절망하지않고 명예를 위해싸워야 하는 임무를 가진사람이네.귀족의 명예에 비하면 목숨 따위는 하찮은 것이지.나는 귀족의 명예를 더럽히지않기위해 온몸에 상처를 입어가면서도 검을 휘둘렀고,그 무시무시한 집념에 결국 해적들도 두려움을느끼지않을수 없었던 거야.그래서.......이봐,듣고있나?" "아,네네,경청하고있습니다" '젠장!이건 완전히 고문이야.이럴줄알았으면 깃발이 100배 나아!' 아크는 신경질적으로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그러나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실수로 비롯된것인데....... 지금 아크의 어깨에 앉아 떠들어 대는 박쥐는 다름아닌라카드의 가솔(?)이었다. 아크가이 박쥐의 존재를 처음알게 된건 바로 비밀 던전을 공략하고 있을때였다.당시 아크는 비밀던전에서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신기한 식재료를 꽤 많이 찾아냈다. 그리고 그때는 라자크나 라둔보다 정찰과 수색기능이 달린 라카드의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아크는 라카드에게 음식을 집중시켜 광렙을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라카드의 능력치를 레벨 380이상까지 올려놨을때였다. [소환수 '라카드'가 새로운 뱀파이어의 능력을 각성했습니다. 라카드는 카라클의 힘과 능력을 일부 흡수해 상위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능력이 부족한 라카드는 카라클에게서 빼앗은 혈정을 제대로 흡수하지못하고 있습니다. 이 혈정을 완전히 흡수해 카라클의 힘과 지식을자신의 것으로하기위해서는 그만한 경험과 능력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가져야합니다. 라카드의능력치가 일정 수준을 넘어 카라클의 능력 일부를 각성할수 있었습니다. +종마 소환 : 뱀파이어와 계약한혈족을 소환합니다. <상위 뱀파이어는 자신보다 격이 떨어지는 하등 혈족과 종마 계약을 할수있습니다. 종마 계약을 한 혈족은 뱀파이어의 부름에 응답해 어디서든 소환될수 있습니다. 또한 소환된 종마는 자신의 능력을 100%발휘할수 있습니다.영력 소모 : 종마 한마리당 50>] 새삼스럽지만 카라클의 혈정을흡수한 라카드는능력치가 일정 수준이상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새로운 스킬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스킬은 그때 라카드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어느정도 랜덤으로 정해졌다. 라카드에게 '종마 소환'스킬이 생긴것은 그때문이었다. 사실 이제와서 말이지만 비밀 던전을 공략할당시,가장 바쁜 사람(?)은 라카드였다. 정찰과 수색 그리고 흩어진 다른 부대와의 연락까지 모두 라카드에게 맡겨놨던 것이디. 때문에 라카드는 던전 공략내내 정말 뭐 빠지게 날아다녀야 했다. 당연히 라카드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그 때문에 이번각성에서'종마계약'이 생겨난것이다. '종마 계약'은 상위 뱀파이어가 자신의 영지에 소소고딘 하등 혈족과 계약해 필요할떄 소환하는 능력.그리고 라카드가 자신의 영지에서 계약을 맺을수 있는 하등 혈족은 과거 라카드와 같은 동굴에서 사던 박쥐들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고작 레벨 20도 안되는 박쥐를 어디에 쓰라고? 게다가 한마리 소환할때영력이 50? 영력을 박박 긁어도 15마리정도밖에 소환 못하잖아? 장난하냐?' 처음 스킬이 생겼을때 아크는 너무 한심해서 웃음도 안나올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박쥐를 몇마리 소환해보니 의외로 쓸모가 있었다. "번호!" "하나,둘,셋,넷......열다섯 번호 끝!" "좋아,모두 각자 설명한곳으로 이동해서 각자의 역활에 충실한다. 실시!" "네 ,영주님!" 라카드의 명령에 박쥐들이 비밀던전 곳곳으로 흩어졌다.사실 아크는 박쥐들의 레벨만 보고 전혀 써먹을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그래도 명색이 뱀파이어혈족의박쥐들이라그런지 이녀석들에게도 한가지 특기 정도는 잇었다. 그게 바로 일종의 원격 통신 기능이었다. 박쥐들은 멀리 떨어져도 초음파 같은 것을 뿜어내 자신의 생각을 동족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박쥐들을각 부대장들에게 붙여놓으면 굳이'속삭임의깃털'따위를 사용하지않아도 대화가 가능했다. 부대장의 말을 박쥐들이 초음파로 바꿔서 전송하면아크의 옆에 있는 박쥐가 수신,바로 옆에서 말하는것처럼 전달해주는것이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휴대폰! 사실 아크는 무장선단이출항할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었다. 현재 바다위에서 선박간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깃발 신호나 확성마법을 이용해 소리치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깃발 신호는 몇가지 종류가 정해져있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전달할수 없다. 또한 확성 마법은 대포를 발사하거나 일정 거리를 벗어나면 잘 들리지않는다는 단점이있었다. 함대의 움직임이 느려질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상대가 평범한 해적단이라면 그래도 큰 문제는 없다.그러나 바다 괴물이라면 그런 느린 반응으로는 상대하기 어렵지않겠는가? "뭐,'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하면 그런 문제가 없지만,'속삭임의 깃털'은 한사람에게밖에 귓속말을 전할수 없어.게다가 NPC에게는 아예 사용할수도 없다" 선장중에서 유저는 아크밖에 없으니 '속삭임의 깃털'은 통신 수단으로 사용할수 없다. 그때 생각난게 바로 라카드의'종마 소환'이었다. 비밀 던전에서 사용했던 것처럼 각 전함의선장에게 박쥐를 한마리씩 붙여놓는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제독 바그너의의견을 타진했다. 사실 이 부분 에서 딱 보기에도 남의말을 안들을것 같은 바그너가 쉽게 아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바그너는 적극적으로 아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그때만해도 아크는 바그너가 제법 남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단단한 착각이었다. 바그너가 아크의 제안을받아들인데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것이다. "결국 나는 난입했던 해적들의 목을 몽땅 날려버리고 당당하게 귀환했지.믿어지나? 불과 100명만으로 500이 넘는 해적을 남김없이소탕한거야.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그뒤로 국왕페하께서는 나에게 '바다의 패자'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하사하시고 상인길드와 함께 차세대 전함을 건조하는 중임을 내리셨지.아,그런 얘기를 하다보니열다섯떄의 일이 떠오르는군.당시 기사 후보생이었던 나는.........." 바그너가 아크의 의견을 받아들인 이유는 오직하나,수다를떨고 싶었을뿐이다. 정말이지 바그너의 자기자랑은 끝이없었다. 루벤트항을 나온지 벌써 사흘-현실로 24시간-동안 바그너는 먹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단한번도 입을 쉰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말만 들으면 바그너는 혼자서 수백명을 쓰러트릴정도로 엄청난 검술을 가지고 있었고,드래곤을 수하로 부리며,슈덴베르크를 몇번이나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중의 영중이었다. '세상일은 너 혼자 다했냐?' 몇번이나 그런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어찌됐든 바그너는 무장 선단의 제독.전투가 벌어지면 모든 결정권은 바그너에게 있다. 괜히 바그너에게 밉보여서 좋을게 업는것이다. 게다가 아크가 바그너의 헛소리를 들어줄수밖에 없는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나저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이렇다 할 정보가 없군.이제 그만 다른 곳으로............" 한참 신나게 떠들어 대던 바그너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얼른 박쥐에 대고 말했다. "아,그런데 카란 해협의 해적을 소탕했다는 무용담 말입니다.아까 얘기를들을때 좀 궁금했던 점이 있었는데 몇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음? 아아,그 무용담.하하하하,좋지.후진 양성도 귀족의 중요한 임무니까.특히 나처럼 많은업적을세운 귀족은 항상모든 귀족에게 모범이 되어야하지.뭐든 물어봐도 좋아" 바그너가 금세 잘난척하며떠들어댔다. 아크가 이런놈에게 쩔쩔매는 이유는 아직 바다괴물을 찾지못해서 였다. 시드가 이주변에서 바다괴물에게 먹혔다니 분명 바다 괴물은 이해역에서 활동하는 몬스터일것이다. 그러나 아직 바그너는 수송 선단이 사라진 이유가 해적단의 소행일거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주변에서 이렇다 할 흔적이 나오지않자 다른 해역으로 이동하며 수색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아크가 이곳까지 온 의미가 없어지는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지긋지긋한 무용담을 들어주며 바그너의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중이었다. 그러는 한편 라카드를 정찰 위성 모드로 전환시켜 상공에 띄워 놓고 바다 괴물의 흔적을찾고 있었다. '젠장!대체 언제까지 이놈의 수다를 듣고잇어야 하는거야? 라카드!' "아직 안보여" 그러나 아직도 바다 괴물의 흔적은 발견되지않았다. '정말 미치겠군.수다를 들어주는것도 힘들지만, 바그너를 언제까지나 잡고 있을수는 없어.앞으로 고작 10`~15분이면 다른곳으로 이동하려 할텐데.........'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출발할때만 해도 일단 근처에 도착하면 당연히 바다괴물이 나타나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다 괴물이 먼저 나타나지않으니 달리 방법이 없는것이다. '차라리 내가 바닷속으로 들어가 찾아볼까?' 참다못한 아크는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인어족의 비늘'로 수중 호흡이가능한 아크라면 밖에서 바그너의 수다나 듣고있는것보다 바닥속에서 바다괴물을 찾는편이100배 낫다.그러나 일이안될때는 정말 뭘해도 꼬이는법.이상하게도 이 해역의 바다는 다른곳과는달리 시커멓게 변해있었다. 바다 괴물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눈앞도 제대로 분간할수 없는 바닷속에서 무슨 수로 찾겟느가? 현재로써는 그저 바다괴물이 먼저 움지여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바그너가 함대를 이동시키기 전에 찾아내야 하는데..........' 아크가 초조함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갈떄였다. "어라? 저건뭐야?" 상공에서 주변을 훑어보던 라카드가 고개를갸웃거렸다. 마치 유조선이 침몰해 기름에 뒤덮인것처럼 시커먼 바다위에서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한것이다. 혹시 이근처에서 사라진 수송 선단의 잔해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라카드는 퍼덕이며날아가 물체를 살펴보았다. "뭐야? 생선이잖아?" 물체를 확인한 라카드의 알굴의 실망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물체는 마치 죽은듯이 바다위에 떠 있는커다란 생선의 비늘이었다. "윤기를 보니 죽은지 얼마 되지않은것 같은데......묘하게 맛있어 보이는 녀석이네" 생선을 바라보던 라카드가 히죽웃으며 중얼거렸다. 바다위에 떠있는 생선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하게 식욕이 당겼다. 마침 몇시간이나 쉬지않고'정찰위성모드'로 주변을탐색한 덕에 출출했던 라카드는 생선에게 달라붙었다. "한입만 먹어볼까? 잘먹겠습니다!" 덥석! 라카드가 생선에 어금니를 박아넣었을때였다. 갑자기 일대의 바다가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파장이었는데,점차 파장이 커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폭풍이 일어나듯이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뭐,뭐야? 갑자기 왜 이래?" 라카드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파도를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때 물고기가 있던 바다가 갑자기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직경이 수십미터는 될듯한 거대한 물기둥이쭉쭉 솟아 올라왔다. 그러기를 잠시,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이솟아올랐던 물이 다시 바다로 떨어졌다.그리고 물기둥은 그냥 기둥이 되었다. "주,주인!" 바다에서 솟아 나온물체를 확인한 라카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떄 이미 아크와 무장 선단의 선원들 역시 그 물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저게 뭐야?" "거대한........바다뱀?" 그렇다.바닷속에서 솟아 올라온 물기둥은 바로 거대한 뱀이었다. 어림잡아도 두께가 20여미터는 될듯한 바다뱀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것이다. 시꺼먼 바다에서 거대한 뱀이 고개를 내밀고 노려보니 기묘하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촤,촤,촤,촤! 그때 바다뱀의 주변에서 또다시 4개의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허물을 벗듯 물이 아래로 쏟아지자 그 속에서 똑같이 생긴 바다뱀 네 마리가 나타났다. 검은 바닷속에서 튀어 올라온 거대한 바다뱀 다섯마리!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것은 그때였다. -필드 보스 몬스터 바다의 악마'레비아탄'이 나타났습니다! BY RAYAN ACT 7 바다의 패자覇者 '나타났다!' 아크가 번뜩이는 눈으로 바다뱀을 바라보았다. 일단 바다 괴물이 나타났다! 이로써 주변에 흩어져있는 무장선단을 뺴도 박도 못하고 바다 괴물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것이다. "주인 ,움직인다!" 촤촤촤촤,촤촤촤촤! 라카드의 목소리와 동시에 다섯마리의 바다뱀이 길게 몸을 일으켰다. 뒤이어 아가리가 찢어질정도로 크게 벌리자 안에서 뭔가 시커먼 기운이 부글거렸다. '공격한다!' 눈으로 확인하는것보다 빨리 본능의 경고가 전해졌다. 아크는 튕기듯 고개를 돌려 기함에 타고있는 바그너를 바라보았다. 레비아탄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상,좋든 싫든 무장선단은 전투 상황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현재 무장선단의 제독은 바그너.바그너의 지시가 떨어져야 공황상태에 빠져있는 선원들과 다른 전함의 선장들도 그에 맞는 대응을 시작해야하는것이다. 그러나 바그너를 바라본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으와아아아아............." 뒤이어 어꺠 위에 있는 박쥐 휴대폰(?)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함의 갑판위에 주저앉아 있는 바그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이었다.그 모습에 아크는어이가 없었다. 불과 몇십초저까지만 해도 같은 주둥아리에서 해적 수만명을 소탕하고,왕국을 몇번이나 절망적인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헛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지않았던가? 그게 헛소리라는것쯤은 아크는 물론,함께 고문을 당해야했던 다른 선장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실 상인 길드 출신의 선장이나 선원들은 바그너가 차세대 전함의 테스트 임무를 맡게 된것은 100%뒷 배경덕분이란것을 알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놈이라도 일단 제독은제독.무장 선단의 총사령관을 맡고있는 바그너가 겁을 집어먹을 버벅거리자 놈이 탄 기함은 물론 다른 전함의 선원들까지 동요했다. '저런 병신 같은 놈이!'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욕설이 입밖으로 나오기전에 먼저 레비아탄의 입에서 뭔가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슈슉,슈슉,슈슉,슈슉,슈슉! 강렬한 폭음이나폭발은 없엇다. 그저 입에서 뭔가 검은 선같은게 쯕 뻗어나왔을뿐이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시할수 없었다. 검은선이 닿자 전함의 외벽이 마치 두부처럼 쩍 갈라지는게 아닌가 ? 선워이든 선체든 뭐가 됐든 일단검은 선에 닿으면 소리도 없이 잘려나갔다 .심지어 선체에 덧댄 강철판조차 단숨에 반으로 갈라져 덜렁거릴정도였다. "저,저게 대체 뭐야?" 선원들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아크의 눈앞에'스킬간파'로 파악된 정보가 떠올랐다. [레비아탄의 스킬 :수압포 레비아탄은 단숨에엄청난 양의 바닷물을 들이마신후에.긴 몸을 이용해 고압으로 분사할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압력으로 분사되는 물은 날카로운 검과 같습니다. <수압포에 닿는 사람이나물체의 방어력에 따라 1~2,000데미지가 적용됩니다. 또한 내구력이 500이하의 목표에는 '절단'효과가 발동.100%확률로 '절단'됩니다>] '수압포!' 아크는 그제야 레비아탄이 날린 검은 선의정체를 알아냈다. 그 선은 화살도 ,폭발물도 아니었다. 단순한 바닷물이었다. 문제는 레비아탄이 그 바닷물을 엄청난 압력으로 응축시킨뒤에 실처럼 가늘게 뿜어낸다는점이었다. 그렇게 수천톤에 달하는 압력으로 분사된 물은 레이저와 같은 압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고압의 물을 강철 따위를 절단할떄 사용하기도 하는것이다. 어쨌든 레비아탄의 '수압포'의 위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 뉴월드의 장비품은 내구력이 500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전사들의 판금 갑옷조차 내구력은 200~300정도.그런데 '수압포'는 내구력이 500이하의 목표를 100%절단하는위력을 가지고있다. 그러니 NPC든 유저든 일단 '수압포'에 적중되면 팔이며 다리가 뚝뚝 잘려나갔다. 신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철판으로 덧댄 내구력을 올려놓은 부분은 그나마피해가 적었지만 수압포가 가로지르자 돛이나 돗대가 그대로 잘려나갔다. 단 일격에 수십명의 선원과 전함 다섯척의 돛대가 몽땅 잘려나간것이다. "뭐,이런 말도 안되는 공격이.........!" 그러나 몬스터에게 불평해 봐야 무슨의미가 있겠는가? -그르르르! 그때 레비아탄이 목을 긁어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어댔다. 그러자 아랫부분이 풍선처럼 부풀더니 위로 밀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압포'를 사용하기위해 몸속에서 엄청난양의 바닷물을 입으로 끌어올리는것이다. 이미 타격을 입은전함이 무방비 상태로'수압포'에 직격당하면 단숨에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리라. "전함 마력 기관 전개!전력으로 회피하라!" 다급해진 아크가 박쥐의 귀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들었나? 마력 기관 전개!" 무장 선단의 선장들이 복창하며 선원들에게 명령했다. 사실 무단선단의 선장과선원들은 바그너처럼 완전히 맛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독인 바그너가 공황상태에 빠져버리는바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레비아탄의 공격을 고스란히 받은것이다. 그리고 그 한번의 공격으로 무장 선단의 선장과 선원들은 바그너가제독의 임무를 수행할수 없는 상태라고판단했다. 그때 아크가 명령을 내리자 순식간에 각 전함의 선장들은 아크를 제 2의 사령관으로 인정했다. 제독의 명령이 떨어져야만 사용할수 있는 마력기관을 전개한게 그 증거였다. 어쨌든 거의 동시에 레비아탄들의 입에서 다섯 줄기의 '수압포'가 뿜어져 날아왔다. 엄청난 고압으로 뿜어지는 '수압포'가 가로지르자 바다가 쩍 갈라졌다. 레이저처럼 레비아탄이 머리를 전함으로 돌리자 물줄기가 바다를찢으며 전함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대 출격으로 회피 운동을 전개하라!" 그때였다. 돌연 전함에서 기계음이 울리며 돛대가 자동으로 접혀 갑판 아래로 사라졌다.뒤이어 선체의 양 옆부분에서 뭔가 긴 관 같은것이 튀어나왓다. 동시에 바다를 뒤흔들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전함이 쾌속정처럼 바다를질주하기 시작했다. "우왓!이,이게 뭐야?" 갑판위의 유저들이 중심을잃고 넘어질정도의 가속도! 그렇다. 이게 바로 차세대 전함의 마력 기관이었다. 전함이 마력 기관을 발동시키자 바람을 받으며 움직일 떄와는 비교도 안될정도의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위를 질주하는듯한 속도! "수압포가 다가온다!전함 우현으로,선원들은 충격에 대비하라!" 아크의 명령에 전함이 급격히 회전하며 방향을 틀었다.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거대한전함이 급격히 방향을 틀자 전면에서 엄청난 양의 물보라가 일어났다. 그리고 원심력에 의해선원들이 튕겨져 날아가 몇명은 바다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회피운동으로도 '수압포'의 추격을 완전히 떨굴수는 없었다. 레비아탄은 머릴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수압포'를 조종할수 있는것이다. 콰콰콰콰콰! 급기야 바짝 쫓아온 '수압포'가 선미를훑고 지나쳤다. 동시에 수압포가 훑고 지나간 갑판이 거짓말처럼 쫘악 가라지며 선미의 일부가 떨어져나갔다. 그러나'수압포'의 공격은 거기서끝이 아니었다. 아크의 전함을 공격하는 레비아탄은 다시 '수압포'의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배 중심을 향해 이동시켰다. "걸리면 끝장이다!" 아크의 얼굴에 다급함이 번졌다. 선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정도는 상관없다. 그러나'수압포'가 배중심을 가로 지른다면얘기가 다르다. 물론전함의 외벽은 철판으로 덧대놔서 단숨에 배가 반으로쪼개지거나 하진않는다. 그러나 그냥 목재로 되어 있는 갑판은'수압포'에 의해 절단될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갑판 아래의 마력기관까지 피해를 입게 될 가능성이높았다. "하지만 지금 방향을 틀어도 저 공격을피할수는 없어.그렇다면............!" 아크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소리쳤다. "그대로 놈의'수압포'를향해 최대 속도로 전진!" "네? 하지만 이대로는 배 중심부가........" "선장이 일일이 이유까지 대며 명령르 내려야 하나?" "아,아닙니다.전속력으로 전진!" 갑판장의 명령에 마력 기관이 굉음을 뿜어내며 속도를 올렸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수압포'!불과몇초만 지나면 '수압포'가 전함의 중심을 가로지르면 갑판과그 아래의 마력기관까지 모두 사과처럼 쪼개져 버리리라!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수압포'가 선수상을 반으로 갈라버릴때였다. 아크가 가방을 열며소리쳤다. "마기 방출!" 스킬을 발동시키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마기방출'을 발동시켰습니다. 마기를 추출할 제물을 선택해 주십시오. "방패.방패.방패.방패.방패!" 아크가 외칠떄마다 가방에서 방패가 솟아 나왓다. 그렇게 하늘로 솟아올라온 방패는 5개 .뒤이어 방패들 사이에서 검은 스파크 같은 기운이 일어나며 허공에 선명한 오망성을 그려냈다. 그리고 마치 폭발을 일으키듯 방패가 터져나가더니 전함의 위에 거대한 방패 문양이 떠올랐다. [마기를 추출할 제물은 (방패,방패,방패,방패,방패)입니다. 이 조합으로 발동된 효과는 '피지컬 실드'입니다. [피지컬 실드] : 피지컬 실드가 발동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직경 100미터의 공간에 방어력 500.내구력 1,000에 해당하는 방어막이 형성됩니다. 방어막의 효과는 10분동안 지속되며 그 사이에 내구력 1,000이 모두 소모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단,시전자가 움직여도 방어막은 따라 움직이지않습니다. 또한 같은 효과를 중첩시킬수 없습니다] 비밀 던전에서 익힌 새로운 이터널 소울,'마기방출'! 아크는 '마기방출'을 배운뒤에 비밀던전을 빠져나오며 미처 정리하지못했던 어비스의몬스터들을 잡아 각종 잡템에 마기를봉인했다. 바로 새로 배운 스킬 '마기방출'을 시험해보기위해서였다. 그 결과'마기방출'은 지금까지 배웠던 이터널 소울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단'마기 방출'은 제물로 바치는 장비품의 종류에 따라 수많은 효과를 발동시켰다. 아크가 가장 먼저 사용해 봤던 조합은 '검,검,검,검,검'이었다. 그러자 아군전원에게 공격력 +20%의 효과를 적용시키는 '브레이드 블레이드'라는 효과가 발동되었다. 그리고 모든 제물을 신발로 조합하면 이동속도 증가 효과가 적용되고,장갑을 제물로 바치면 공격속도 증가효과가 적용되었다. .............이런 조합은 가장 간단한 예에 불과했다. '검,방패,갑옷,신발,장갑 '이런 식으로 각기 다른 아이템을 제물로 조합하면 때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가 적용되기도 했다. '마기방출'이 좋은점은 그런 효과가 아군전체에 적용된다는점이다. 대신 제물로 바친 장비품이 몽땅 날아간다는게 좀 그렇기는 하지만,아군전체에 강력한 특수 효과를 적용시킨다면 그리 비싼 대가는 아니었다. 어쨌든 피지컬 실드를 발동시키자 전함 주변에 투명한 방패가만들어졌다. "모두 충격에 대비하라!"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거의 동시에'수압포'가 전함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아니,정확히 말하면 투명한 방패의 표면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방패에 엄청난 충격이 전달되며 내구력이 순식간에 빨려나갔다. -'피지컬 실드'의 내구력이 900으로 떨어졌습니다. -'피지컬 실드'의 내구력이 800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순간,'피지컬 실드'의 내구력이500이하로 떨어지자'수압포'가 투명한 방패를 관통하며 쏘아져 내려왔다. 이대로라면 '수압포는 곧 전함을 꿰뚫어버리리라. 그러나 아크의 명령에 따라 전함이 '수압포'를 향해 전력질주를 한덕분에 간신히 방패가 뚫렸을떄는 이미'수압포'의 공격 범위를 벗어난 뒤였다. '그렇다고 해도 피지컬 실드가 불과 30초를 버티지 못하다니..............'. 정말 반칙이라고 할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두번 정도 회피에 성공하자 레비아탄의 공격이 멈췄다. 레비아탄이 한번에 담을수 있는 물의 양에 한계가있어 실제로'수압포'의 공격을 받은 시간은 불과 2~3분에 불과한것이다. 그러나 불과 2~3분만에 무장 선단은 실로 처참한사태에 빠져있었다. 마력 기관을 전개한 덕분에 직격은피해전함이 반으로 갈라지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스치는 바람에 난간이나 선미,선수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마치 폐선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격에 무장 선단이 괴멸 직전까지 몰린것이다. '하지만 공략법이 없는건 아니다!' 아크가 눈을 빛내며 바다위에 떠있는 레비아탄들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을 하는 레비아탄.그러나 아크는 레비아탄의 공격을 피해다니며 몇가지 약점을발견했다.일단 레비아탄의 '수압포'는 한번 사용하면다시 바닷물을 빨아들여 고압으로 응축할때까지 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듯했다. 그리고 한번 '수압포'를 발사하면 모든바닷물을 사용할떄까지 도중에 끊을수가 없다. '그리고 또하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레비아탄은 처음 나타난 지점에서 움직이지않는다. 방금전에도 만약 레비아탄이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면서 '수압포'를 날렸다면두번이 아니라 세번,네번이라도 내 전함을 공격할 기회가 있었어.하지만 놈들은 움직이지않았다. 뭔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못하는 사정이 있는거야' 움직이지않는 적. 다시말해 공격하기 좋은 표적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놈의 수압포는 입에서 지속적을 발사해 목표를 추적해오는 공격이다. 놈들이 고개만 살짝 꺾어도 실제로 전함을 쫓아오는 수압포는 수십미터를 움직인다. 전함이 아무리빨리 움직이다고 해도 그 속도를 넘는건 불가능해.결국 도망만 가서는 100% 놈들의 공격을 회피할수없다는뜻이야.그렇다면.............' "전함대는 마력 기관을 끄고 선체를 안정시켜 주십시오!" "뭐?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크의 말에 각 전함의 선장들이 황당한 목소리로 되물었다.'수압포'의 위력을 보고도 유일하게 도망칠수 있는 마력 기관을끄라니? 그렇다면 다음 '수압포'에 그냥 조각조각 나서 침몰하라는 말이 아닌가? 그때 아크가 휴대폰 박쥐의 귀에대고 대답했다. "마력 기관을 전개하면 선체가 너무 흔들려 제대로 놈에게 반격할수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하지만 아무리 반격해도 놈의 공격을 피할수 없다면........." "놈의 공격을피하기 위해서 반격하자는 겁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자신이 생각해낸 레비아탄의 공략법을 설명했다. 그때 레비아탄이 몸체를 부풀려 바닷물을 끌어 모으고 다시 고압으로 응축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그것뿐입니다. 저를 믿고 제 지휘에따라 주십시오" ".......알겠네.제독도 얼이 나가버리고 우리에게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전함,마력 기관을 끄고 선체를 안정시켜라!" "포수들은 대포를 고정하고 정밀 사격을 준비하라!" 결국 무장 선단이아크의 지시대로 마력 기관을 끄고 레비아탄을 포격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사이 레비아탄도 바닷물을 응축해서 수압포의 준비를 끝내고 입을 열었다. "지금입니다. 점 사격 실시!"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아크의 명령과 동시에 무장선단이 일제히 포격을날렸다. 보통 해전이 벌어지면 ,아니 해전만이 아니라대부분의 전투에서 기본 공격 방식은 '일점사'와 '일제사격'이다. 상대가 여러명이 있을떄 먼저 1명을 집중공격해서 숫자를 줄이면 적의 공격력을떨어트리는 효과가 있는것이다. 때문에 모든 공격을 한점에 집중하고,또 단시간에 최대한의 공격을 쏟아붓는 전법은 기본중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아크가 지시한 공격 방식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여덟척의 전함이 다섯 마리의 레비아탄을 나눠서 공격한것이다. 게다가 전함의 모든 대포를 동원해 일제사격을 가한것도 아니었다. 두세발씩 나눠서 공격했다. 그 이유는 바로............ -키아아아악! -쿠에에에에! 공간을 가로지른 포탄이 면상을 후려치자 레비아탄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르며 날아오던 '수압포'역시 홱 돌아가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허공으로 쏘아진 수압포는 수 킬로미터나 뻗어나가다가 결국 힘을 잃고 포물선을 그리며 바다에 떨어졌다. 그렇다.아크가 점사격을 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레비아탄이 뿜어내는 '수압포'는 놈의 입에서 레이저처럼 뻗어나오는공격이었다. 다시말해 놈의 얼굴이 향한곳이 목표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도망갈게 아니라 ,놈의 얼굴이 전함을 향하지못하도록 만들면 되지않겠는가? '놈이 2~3분동안 계속 '수압포'를 사용할수 있다면 우리는 2~3분동안 계속 놈의 면상을 두들겨서 아예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만들면 되는거야!' 그게 아크의 생각이었다. 놈이 아무리 거대해도 결국 뱀.게다가바다 위로 길게 몸을 뻗고 있었다. 그런 놈의 면상을 살짝 돌려놓기만 하는 일이라면 굳이 수십발의 포탄을 적중시킬 필요도없다. 한발만제대로 명중해도 놈의 턱을돌려놓기에는 충분한것이다. 그러니 2~3발씩 -빗나갈경우를 대비해서-나눠 대포로 계속놈의 면상을 두들기면 '수압포'가 전함으로 향할 걱정을 하지않아도 된다! 아크는 그때문에전함의 마력 기관을 끄고 선체를 안정시켜 포격의 정확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것이다. "성공이다.이제 놈의 공격은 봉쇄됐어!"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크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전함을 둘러싸고 쉬지않고 2~3발씩 포격을 날려 두들겨 대자 레비아탄은 고개가 팩팩 돌아가 전함으로 '수압포'를 집중시킬수 없었다. 그리고 비록 2~3발이지만, 연속된 공격에 레비아탄들의 생명력이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전투가 이대로만 진행되면 놈들을 쓰러트리는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아크는 레비아탄을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이 해역은 골드드림호가 바다괴물에게 먹힌 장소였다. 그리고 한 해역에 필드 보스 몬스터가 몇마리나 잇을리가 없으니,저 바다뱀 무리가 유일한 보스들이리라.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레비아탄이 골드드림호를 집어삼킨 놈들이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레비아탄이 거대하다곤 하지만 직경이 20미터밖에 되지않는다. 그런 놈들이 골드드림호를 통째로 삼키고,심지어 배속에 담아두고 있다는게 이해할수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그런 의문은 몇분 지나지않아 해결되었다. "계속 공격을 퍼부어라!" "한번이라도 빗나가면 놈들에게 당한다!" "쉴시간이 없어.발사한뒤에는 최대한 빨리 재장전을 마쳐라!" 쾅, 쾅, 쾅, 쾅, 쾅, 쾅! -크아아아아아! 쉬지않고 대포를 날려대자 결국 레비아탄 한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침몰했다. "해냈다!" "우리가 바다 괴물을 물리쳤다!" "좋아,이대로 나머지 네마리에게 공격을 집중해라!" 레비아탄 한마리가 쓰러지자 선원들의 사기가 더욱 올라갔다. 그리고 다시 정밀 사격으로 네마리의 레비아탄을 공격할때였다. "우하하하!역시 나의 전략에 거대한 바다뱀따위가 상대가 될리 없지.좋아,'내가'명령한대로 계속공격을 퍼부어라!승리는 우리것이다!" 아크의 어깨위 박쥐의 입에서 바그너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레비아탄이 처음 모습을 나타냈을때는 공황상태에 빠져 선장실에 뛰어 들어가 숨어있다가 상황이 좀 좋아진다 싶으니 뛰어나와 개폼을 잡고 있는것이다. 뻔뻔함도 그정도쯤 되면 재능이다. 덕분에 선원들은 한순간 대포를 돌려 놈에게 집중 공격을 해주고 싶다는 기분에 사로잡혔지만, 그건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고...........일단 지금은 레비아탄을 쓰러트리는게 먼저였다. "신경쓰지말고 계속 공격해!"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놈들에게 여유를 주지마라!" 각전함의 선장들으 바그너를 무시하고 계속 공격을퍼부었다. 그렇게 대략 10여분.쉬지않고 쏟아진 포격에 레비아탄도 더이상 버티지못하고 한마리,두마리 생명력이 바닥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네마리째까지 바다에 가라앉고 이제 한마리밖에 남지않았을때였다. "자,이제 마무리다.함대의 모든 공격을 집중하라!" 콰아아아아아! 돌연 레비아탄의 아래에서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 일어나듯 바닷물이 출렁거리기를 잠시,돌연 바다가 쩍 갈라지며 뭔가 거대한 물체가 수면 뒤로 모습을 드러냈다. "헉!뭐,뭐야 ,저건?" "가만 ? 저거........저 거대한 바다뱀과.........." "이,이럴수가!바다뱀이 다섯마리가 아니라............" 포격을 준비하던 선원들이 입을 쩍 벌린채 굳어버렸다. 레비아탄의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낸것은 크기가 수 킬로미터는 족히 넘을듯한 거대한 괴물이었다. 마치 아귀를 닮은 듯한 거대한 거대한 물고기 괴물! 그리고 아크는 그 거대한 물고기를 보는순간 방금전까지 이해되지않던 의문이 단숨에풀려버렸다. 아크는 물론 무장선단의 모든 선원들은 지금까지 레비아탄이 다섯마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바다위로 모습을 드러낸 레비아탄이 움직이지않았던 이유.그것은 바로 그 바다뱀들이 모두 그 아래에 있던 거대한 아귀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무장선단이 싸웠던 바다뱀은 레비아탄이 아니라,레비아탄의 몸에 붙어있는 일종의 촉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레비아탄의 진짜 정체는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크기를 가진 거대한 아귀처럼 생긴 괴물! 바다가 검게 변해서 지금까지 놈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 결국 지금까지 무장선단의 공격은 진짜 레비아탄에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고기다!내가 먹으려던 물고기다!" 레비아탄의 본체가 나타나자라카드가 놈의 이마 부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레비아탄의 이마에는 마치 머리카락처럼 뭔가가 뺴곡히 돋아나 있었다. 그리고 털끝에는 갖가지 것들이 매달려있었다. 라카드가 처음 발견했던 생선같은 것부터 작은 상자,인어,심지어 인간의 시체까지.아크는 한눈에 그게 뭔지 알아챘다. 미끼.........그렇다! 레비아탄은 이마에 달린 미끼로 먹잇감을 유인해 먹어치우는 진짜 아귀처럼 만약 목표가 배라면 상자나 사람 모양의 미끼를 흔들어 근처로 유인한뒤에 한입에 삼켜버리는 괴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미끼 아래에는 전함이라도 통쨰로 삼킬수 있는 거대한 아가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놈이 입을 벌리자 주변의 바닷물이 몽땅 놈에게 빨려들어가는것 같았다. "노,놈이 전함을 삼키려고한다!" "마력 기관을 전개해라!" 바닷물과 함께 마력 기관을 꺼 놓았던 전함이 휩쓸려 들어가자 선언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레비아탄은 전함을 삼킬 생각이 아니었던 듯 다시 바닷물을 뿜어냈다. 덕분에 통째로 삼켜지는 꼴은 면한 선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지만, 불과 1초도 안되어 다시 공포에 물들었다. "저,저게뭐야?" "놈의 입에서뭔가 시커먼게 밀려나오잖아?" "헉!저,저건 그냥 시커먼게 아니야!" "모,몬스터다!파도와 함꼐 수천마리의 몬스터뗴가 몰려온다!"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확인하던 선원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 잠시후,다른 선원들도 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의 정체를 확인할수 있었다. -크룩,크룩,크룩! 레비아탄의 입에서 나온것은 마치 시커먼갯지렁이처럼 생긴놈들이었다. 크기는 대략2~3미터.레벨 300의 '페러사이트'라는 이름의 몬스터였다. 무장 선단ㅇ 참가한 선원이나 유저들의 레벨이 평균 300대인점을감안하면 그리 어려운상대는 아니다. 문제는 바로놈들의 숫자!레비아탄의 배속에서 몰려나온 페러사이트는 수천수만! 몇킬로미터나 되는 바다위를 새까맣게 덮을 정도였다. "이럴수가............!" 아크 역시 그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에게 압도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아크에게 선택의 여지따위는 없다. "전함대,수평 진형을 펼쳐 놈들에게 일제 사격!" "모두 정신차려!" 아크의 고함에 간신히 정신을차린 선장들이 전함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령대로 열덟척의 전함이 일자로 늘어선 뒤에 포문에서 일제히 불길을 뿜어냈다.밀려오는 몬스터 대군을 향해 날아가는 수백발의 포탄!동시에 수백개의 물기둥이 치솟아오르며 단숨에 수백 마리의 페러사이트가 배를 까 뒤집었다. 그러나 페러사이트는 6.25떄의 중공군처럼 인해전술을 펼치며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함을 둘러싸고 갑판으로 기어 올라왔다. 아크가 탄 8호 전함의 갑판에도 수십마리의 페러사이트가 기어올라왔다. "크윽, 이런 젠장!다크블레이드!" 아크는 돛에 걸린 밧줄을 잡고 난간을 뛰어다니며 쉬지않고 검을 휘둘렀다. 페러사이트는 바다 몬스터라 헤엄은 빠르지만 일단전함에붙은뒤로는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느려졌다.그러나 방어력은 상당했다. 레벨 300대의 몬스터주제에 아크의 연속 공격을 받으면서도 생명력이 20%도 줄지않을 정도였다. "놈들을 죽이는것보단 다시바다에 떨어트려라!" 도저히 기어올라오는 숫자를감당할수 없었던 아크는 작전을바꿨다. 그러자 전함의 선원과 용병들이 아크의 지시에 따라 놈들을 외곽으로 몰아붙여 바다에 떨어트렸다. "됐어,지금이다!폭뢰를 투하하라!" 콰콰콰쾅,콰콰콰쾅,콰콰콰쾅! 그 위로 폭뢰를 쏟아붓자 전함의 주변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화염이 가라앉자 전함의 주변에는 엄청난 숫자의 페러사이트가 배를 까뒤집고 전함의 주변에는 엄청난 숫자의 페러사이트가 배를 까뒤집고 둥둥 떠 다녔다. 엄청난 위력이 담긴 폭뢰가 바로 옆에서 폭발하자 외벽을 강철로 덧댄 전함 역시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함의 데미지를 걱정할때가 아니다. 수천수만 마리의 페러사이트에게 한번 모려버리면 무장선단은순식간에 괴몰돼 버리는것이다. 아크가 폭뢰를 이용해 페러사이트의 접근을 막자 다른 전함도 같은 전법으로 페러사이트를 공격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펼치자 불과3~4분만에 무장 선단의 주변은 페러사이트의 시체로 새까맣게 뒤덮였다. 그때, 갑자기 한줄기 검은선이 바다를 가로질렀다. 바로 한마리 남아있던 바다뱀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수압포'였다. '수압포'는 바다에 떠 있는 페러사이트의 시체를 절단하며 뻗어나와 단숨에 5호 전함과 7호 전함을 관통해버렸다. 이미 폭뢰로 적지않은 데미지가 축적됐던 두척의 전함이 두부처럼 갈라지며 선원들이 우수수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자 무장 선단 주변에서 바퀴벌레 때처럼 우글거리던 페러사이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들었다. "페,페러사이트다!" "으악!살려줘!" 갑자기 바다에 떨어진 선원과 용병들이비명을 터트려다. 그러나 선상이라면 모를까 ,바다에서 레벨 300대의 페러사이트와 제대로 전투를 펼칠수 있을리가 없다.(책에는 400대로 표기되있음) 바다에 떨어진 선원들은 수백마리의 패러사이트에게 둘러싸여 순식간에 잡아먹혀 버렸다. 무장선단의 선원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방금전까지 소란스럽던 무장 선단의 갑판이 일순 침묵에 휩싸였다. 상상하던 공포가 실체화되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히이이익,이제 끝장이야!크흑,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먹히고 말거야.저 거대한 아귀에게 한입에 먹히지않으면 저 갯지렁이에게 뜯어먹히겠지.크흐흐흑!" 그떄 어꺠위 박쥐의 입에서 바그너의 목소리가흘러나왔다. 아크가 지휘해 바다뱀을 몰아붙일때는 슬그머니 물러나있다가 이제야 나타나서 한다는짓이 질질 짜며 선원들의 사기까지 뚝뚝 떨어트리는건가? "젠장!라카드,그녀석좀 조용히 시켜!" "라저,받아랏!" 아크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소리치자 라카드가 하늘에서 놈의 뒤통수를 향해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뒤이어 휴대용 박쥐를 통해 빠각 ,하며 돌이 꺠지는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바그너는 뒤통수에 축구공만한 혹이 생겼지만 불행히도(?)기절하지 않았다. "으윽!벼,별 보인다.......이 녀석 완전 돌이잖아?" 라카드가 비틀거리며 물러나자 바그너가 와락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빛을 번뜩이며 라카드에게 달려들었다 "뭐,뭐야? 이 ,이녀석.한번 해보자는거야?" "그래,그 방법이 있었어!차라리 기절시켜줘!" 바그너가 라카드의 날갯죽지를 잡으며 소리쳤다. '제발 부탁이다!저런놈들에게 맨정신으로 잡아먹히느니 차라리 기절하는 편이 나아!". "자,잠깐만 기다려!우왁!" 빠각,빠각,빠각,빠각 라카드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바그너가 연속적으로 이마를 들이받았다. 그리고 잠시후,바그너와 라카드의 머리는 그야말로 선인장 같은혹에 뒤덮였다. 그러나 기절한 사람은 바그너가 아니라 라카드였다. 라카드가 기절하자 바그너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러대다가 이번에는 돛대를 들이받기 시작해다. 공포에 질리다 못해 완전히 정신을 놔버린 모양이다. 어쨌든 나름대로 노력한 성과(?)가 있어 돛대에 금이 갈무렵,바그너는 소원대로 쌍코피를 뿜어내며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미 바그너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윽,젠장!저 망할 놈의 뱀이.......!"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바다뱀을노려보았다. "놈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포격을 가해라!" "안됩니다. 이 지렁이 같은 놈들이 포문 앞에 달라붙어서 포격을 할수 없습니다!" "뭐라고?" 아크가 난간으로 뛰어가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선원의 말처럼 전함에 달라붙은 페러사이트들이 몸으로 포문을 막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대포를 발사하면 되려 전함만 데미지를 입고 말리라. "선장님,'수압포'가 우리 전함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크가 와락 고개를돌렸다. 그사이에 3호전함을 반 토막으로 만들어버린 레비아탄의'수압포'가 이번에는 8호전함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주변에 새까맣게 몰려있는 페러사이트들 때문에 마력 기관조차 전개할수 없는상황! "아,안돼.........마기방........" 아크가 서둘러'마기방출'로 '피지컬실드'를 펼치려 할때였다.(책에는 마기봉인으로 표기되어있음). 그보다 빨리'수압포'가 전함의 중심을 가로질렀다. 동시에 갑판이 칼로 벤것처럼 매끈하게 갈라졌다. '수압포'는 완벽하게 선체를 둘로 갈라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3분의 2이상이나 갈라지자 전함 자체의 밸런스가 꺠지며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결국반으로 갈라져 바닷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침몰에 휘말리면 위험하다.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결국 아크 역시 전함을 버리고 탈출할수밖에 없었다. ['마족'의 영향권 안에 진입했습니다! <마족의 영향권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능력치가 10%감소합니다. 반면 영향권안에서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는능력치가 10%상승합니다>] 바다에 떨어지자 이런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렇다. 이 해역의 바다가 검게 변해 있었던것은,사우이 악마 레비아탄이 뿜어내는 마기의 영향이었던 것이다. 지금 까지 몰랐던 것은 레비아탄이 바다괴물이라 그 영향 범위가 바다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크는 마지막까지 전투를 포기하지않았다. 만약 이대로 포기하면 4만골드에 달하는 골드드림호는 결국 저 망할 아귀녀석의 똥이 되어 버리는것이다. '레비아탄의 공격 수단은촉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압포'밖에 없다. 어떻게든 페러사이트만 처리하고 하나밖에 남지않은 바다뱀을 처리하면 레비아탄을 무찌를수 있을거야!' 물론 페러사이트가 아직도 수천마리나 남아있다는게 문제였지만......... "하지마 해보는데까지 해볼수밖에 없어!" 어쩄든 아크가바다로뛰어들며'인어족의 피리'를 미친듯이불어대자 금세 수십마리의 돌고래들이 몰려들었다. 아크는 선원과 옹병들을 돌고래의 등에 태우고 몰려드는 페러사이트의 공격을 막아내며 기함과 2,4,7호 전함을 향해 이동했다. "좋아,이대로 바다에서 기함과 나머지 전함을 페러사이트로부터 엄호한다! 일단 남아 있는 바다뱀 한마리만 마저 처리할수 있다면아직 희망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돌고래를 타고 있다지만 수천마리의 페러사이트를 뚫는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페러사이트의 공격에 살아남은 몇몇 선원들도 하나둘 쓰러지고,아크 일행은 결국 열댓명만 남은채 수백마리의 페러사이트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옴짝달싹 할수 없는 상항까지 몰렸다. 쿠콰콰콰콰콰콰! 그사이에 또다시 두척의 전함이'수압포'에 적중되어 반으로 갈라졌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그 모습에 결국 아크의 눈동자에도 절망의 빛이 번졌다. 이제 남은 함선은 두척 .설사 페러사이트를 전멸시킨다해도 레비아탄을 상대할수없는전력이다. 남은 촉수를 쓰러트린다고해도 거대한몸집만큼이나 생명력이 엄청난 레비아탄을 고작 두척의 전함으로 상대한다는것은 어불성설! 제독은 안드로메다로 도망간기함은 그렇다고 쳐도,유일하게 남은 2번 전함의 성자도 이제 더이상은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크윽!이렇게 되면 이판사판이다!놈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줘라!"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이 남아있던 폭뢰를몽땅 선채에 충돌시켰다. 그러자 선체의 외벽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며까맣게 붙어있던 페러사이트들이 불길에 휘감겼다. 동시에 전함도 회복불가능의 데미지를 입엇지만, 다행히 몇개의 포문은 살아남았다. 2호전함의 선장은 전함을 버리더라도 놈들에게 포탄 몇발이라도 먹여주는 방법을 선택한것이다. "전 포문 조준, 발사!" 콰콰콰쾅,콰콰콰쾅! 오랜만에 바다를뒤흔드는 폭음이 울려퍼졌다. "엥?" "어라?" 그러나 2호선장과 그 장면을 바라보던아크의 얼굴에는당혹감이번졌다. 방금전의폭음은기함의 대포에서 울려나온게 아니었다. 아직 2호 전함의 대포는 발사되지않았다. 방금전 바다를 뒤흔든 폭음은 바다밑,해저에서 울려나온것이다. 그리고 잠시후,갑자기 아크의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수면위로 수백줄기의 물기둥이 솟아올라왔다. 동시에 아크에게 몰려들던 페러사이트들이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다. "이,이게 대체 무슨일이지?" "주,주인 .저기를봐!" 그때 하늘위에서 라카드가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촤촤촤촤!촤촤촤촤!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위로 한줄기 물보라가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물살이 갈라지는 정도의 작은 물보라여지만, 가까워질수록 점차 커지더니 다른 선원이나 용병들도 확인할수 있는거리까지 다가오자 거의 바다가 갈라지는듯한 크기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후 근처까지 다다르자갑자기 바닷속에서 뭔가 거대한 ,레비아탄의 본체에 비견될만한크기의바다괴물이 솟아나왔다. "괴,괴물.......이런 상항에서 또다른 괴물이.......!" "하하하!이쯤되면 더이상무섭다는생각도 들지않는군" "젠장, 평생 하나도 보기힘든 괴물을 둘이나........" 기함과 2호 전함에서 지켜보던 선원과 용병들이 허탈한 목소리로중얼거렸다. 그러나 단 한사람,아크만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새로운 바다 괴물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건.......아니 틀림없어!저건 틀림없이 갈릭이다!" 그렇다.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바다괴물. 그 괴물은 아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어족의 수호신.백경 갈릭이었다. 콰콰콰콰쾅! 그사이바다를 가로질러온 갈릭이 그대로 레비아탄의옆구리르 들이 받았다. 그러자 막 기함과 2호전함으로 '수압포'를 뿜어내려던 레비아탄이 휘청거리며 수백미터나 밀려났다. 두거체가 충돌하자 해일이 일듯 해면이 요동쳤다. "갈릭이 어떻게 여기에 ?아니,그보다 갈릭이 여기에 나타났다면?" 퍼퍼퍼펑,퍼퍼퍼펑 그때 주변에서 또다시 폭음과 함께 수십줄기의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또다시 아크에게 몰려들던 페러사이트들이 허옇게 배를 까 뒤집었다. "아까도 그렇고,지금도.........해저에서 뭔가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거야!" 아크는 재빨리 돌고래에게 명령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주변의 바다가 시커매 바닷속을 제대로볼수없었다. 그러나 한참동안 들여다보자 멀리서 어렴풋이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몇개의 그림자가 보이는정도였다. 그러나 점점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곧 엄청난 숫자의 그림자가 아크의 눈앞으로 몰려들었다.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처럼 확대된건 그때였다. "역시저건.......인어족!" 그렇다. 바닷속에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그림자는바로 반인반어의 수인족, 인어족이었다. 수천명의 인어족이 바닷속에서 진형을 갖추고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단숨에 아크가 있는곳까지 헤엄쳐 온 인어족이일제히 수면위로 솟아올라왔다. 수천명의 인어족 전사! 그리고 그 선두에는 화려한 갑주를 걸친 인어여왕의 모습도 보였다. "바다의 용사들이여,바다를 더럽히는 기생충무리를 섬멸하라!" 인어여왕이 보석이 박힌 지휘봉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인어족이일제히 삼지창처럼생긴 무기를휘둘렀다. 그러자 삼지창의 끝에서 충격파가 뿜어져 나와 몰려드는 페러사이트들을 후려쳤다. 방금전 아크의 주변에서 폭발을 일으킨것은 바로 이공격이었다. 그렇게 1,000여명의 인어족이 공격을 퍼부어 페러사이트를 밀어내며 아크에게 다가왔다. "여,여왕님?" 생각지도 못했던 지원군에 아크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인어여왕이 살짝 눈인사를 하며 빙긋 웃었다. "다행히 늦진 않았군요" "어,어떻게 인어족이 여기에? 다른 바다로 떠났던게 아닌가요?"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죠" 인어여왕이 시선을돌려 레비아탄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쨌든 지금 아크님과 제가 상대할적은 저 바다의 악마들이에요" -크룩,크룩,크룩! 그떄 밀려났던 페러사이트들이 다시 주변으로 몰려드기 시작했다. 인어 여왕이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며 지휘봉을 휘둘렀다. "흥,더러운 기생충들!위대한 바다의 여신이여..........웨이브!" 그러자 돌연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허공에 거대한 여신의 형상이 떠올랐다. 빛나는 베일로 몸을 감싼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그러나 온화한 여신의 얼굴이성난 표정으로바귀자 갑자기 바다가 통쨰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음순간,돌연 바다위에 수십줄기의토네이도가 일어나며 몰려드는 페러사이트 수십마리를 휘감아 올렸다. "일족의 원수,레비아탄의 졸개를무찔러라!" "우와아아아!" 인어족도 삼지창을 휘두르며 더욱 맹렬하게 페러사이트를 몰아붙였다. "좋아.기회다.우리도 인어족과 함께 놈들에게 복수하자!" 아크 역시 돌고래 부대를 이끌고 페러사이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천명의 인어족과 아크가 맹공을 펼치자 페러사이트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간간이 펼쳐지는 인어 여왕의 광역 마법은 일격에 페러사이트 수십마리를 빈사상태로 몰아넣었다. 인어족이 가세하자 전황은 단숨에 무장선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사이 수백미터 떨어진 해상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콰콰콰쾅!쿠쿠쿠쿠!콰콰콰콰! 레비아탄과 갈릭의 싸움! 몇킬로미터나 되는 두바다 괴물이충돌하자 바다는마치 해일이 일어난것처럼 요동쳤다. 움직일때마다집채만한 파도가 일어나고,여기저기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러나 둘의 싸움에선갈릭이 약간밀리는상황이었다. 레비아탄은 본래 전투적인 괴수였지만 ,갈릭은 전투와는거리가 먼 NPC다.게다가 날카로운 이빨이나 '수압포'를쏘는 촉수를 가진 레비아탄과 달리 갈릭은이렇다 할 무기가 없다. 때문에 전투가 길어지자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피를흘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진행되면어쨌든 레비아탄을 쓰러트릴수는 있다!' 페러사이트를 공격하던 아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비록 갈릭은 레비아탄에게 밀리는 상황이지만,페러사이트와의 전투는인어족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앞으로 20~30분사이에 페러사이트를전멸시키고 갈릭과 함께 레비아탄을 몰아붙일수 있으리라.아직 전함도 두척이나 남았으니 레비아탄을 때려잡는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레비아탄을 때려잡는게 내 목적이 아니야' 그렇다. 아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레비아탄이 삼켜버린 골드드림호를 구출하는것! '문제는 이대로 레비아탄을 쓰러트려도 배속에서 골드드림호를구해낼수 있느냐는거야.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몬스터를 쓰러트리면 시체는 그냥 거대한 살덩어리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떨구는 전리품을 제외하고는 설사 눈앞에서 입고 있는 장비품이라도 벗길수가 없는것이다. 그런점을 생각했을떄,놈이 죽어버리면 배속의 골드드림호도 그대로 파괴될 가능성이 많았다. 때문에 아크는 레비아탄을쓰러트리는것과는 별도로 골드드림호를 구출해 내기 위한 '모종의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그 계획도 최종적으로 레비아탄을 쓰러트리지 못하면 아무런의미가 없어 아직까지 시도조차 못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 그 계획을 실행할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앞으로 20~30분 내에 레비아탄이 스러진다. 다시 말해 골드드림호를 구출할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20~30분! "인어 여왕님,부탁이있습니다!" 잠시 상황을 짚어보던 아크가 결심을 굳히고 여왕에게 말했다. 그리고 골드드림호를 구출하기위해 필요한 작업을 부탁했다.아크의의도를알리없는 인어여왕은 아크의 부탁에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엇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크님의 부탁이라면.........." 인어여왕이 고개를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정신 교류를 통해 갈릭과 의사소통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잠시후,갈릭이 레비아탄의 공격을피하며 꼬리지느러미를 휘둘렀다. 막 물어뜯기를 시도하려던 레비아탄이 괴성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그리고 아가리가 벌어진채로 물보라를일으키며 바닷속에 몸이 반정도 잠겼다. 아크가 노리던 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됐어,가자!" 기회를 보던 아크가 소리친것은 그때였다. 그러자 아크를 태운돌고래가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렀다. "어엇!무,무슨짓을........!" 인어족과 인어여왕,무장 선단의 선원들이 아크의 행동에 당혹성을터트렸다. 아크가 돌진하는곳은 바로 쩍 벌어진 레비아탄의 아가리속이었던 것이다. 아가리 앞까지 돌진하자 마치 거대한 동굴 같은 입에서 끔찍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아크는 그대로 기둥처럼 솟아있는 송곳니를 피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대한혓바닥 앞에 도착했을무렵,레비아탄의 아가리가 닫히기 시작했다. 순간 아크는 돌고래의 등을밟고 몸을 날려 혓바닥 위로 뛰어내렸다. 콰콰콰쾅!촤촤촤촤촤! 굉음을 내며 거대한 아가리가 닫혔다. 동시에 아크는 밀려들어 오는 바닷물과 함께 레비아탄의 식도로 빨려들어갔다. BY RAYAN ACT 8 먹은 만큼 토해라! "푸핫!" 웅덩이에서 튀어나온아크는 바닷물을 뱉어냈다. 아크가 바닷물과 함께 밀려들어온곳은 당연히 레비아탄의 배속이었다. "기분나쁘게 생긴놈은 배속도 지저분하군" 주변을 둘러본 아크가 찜찜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크는 이전에도 한번 거대한 바다생물-갈릭-의 배속에 들어가 본적이 있었다. 솔직히 그때도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레비아탄의 배속은 더 심하게 불쾌했다.검붉은 동굴-식도-의 벽면에는 종기처럼 보이는 돌기가 우툴두툴 솟아 있었고,엄청난 두께의 혈관 속에서는 마치 폐수처럼 시커먼 액체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크의 기분을 더럽게 만든것은 냄새였다. 마치한여름 음식물 쓰레기통 속에서 흘러나오는듯한,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였다. 그러나 느긋하게 불쾌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크가 웅덩이에서 나올때 쿵쿵 소리가 나며 공간이 진동했다. 갈릭이나 인어족이 공격할떄마다 충격이 배속까지 전해지는것이다. 그진동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걸 보면 밖에서는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모양이다. 그리고 아크의 입장에서는 갈릭이나 인어족이 당해도 곤란하지만 골드드림호를 찾아나가기전에 레비아탄이 죽어버리면 곤란했다. "젠장!가능하면 이대로 위장까지 들어가고 싶었는데.........." 아크기 식도로 들어왔을때,상당한 양의 바닷물도 함께 밀려들어왔다. 그떄 아크는 바닷물에 휩쓸려 그대로 위장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크와 함께 삼킨바닷물이얼마 되지않아서인지 도중에웅덩이에 처박힌 것이다. "하지만 바닷물을 타고 꽤 많이 왔어.위장까지도 얼마 남지않았을거야" 아크는 웅덩이에서 나와동굴로 뒤어들어갔다.아니,뛰어들어가려 할때였다. 웅덩이를나와 바닥에발을 올려놓자 갑자기 공간이 흔들렸다. 그리고 사방에서 거미줄처럼 얽혀잇는 혈관이고동치듯 움찔거리더니 시커먼 혈액속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지네처럼 많은 발과 날카로운 이빨을가진 긴 몸체의 몬스터 ,페러사이트였다. 혈관 속에서 아크를 발견한 페러사이트는 이빨로 혈관 벽을 찢고 튀어나왔다. 그것도 한마리가 아니다. 사방의 혈관에서 튀어나온 페러사이트는 10여마리! "그냥 보내줄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어" 레비아탄의 배속까지 들어오면서 이정도 상황을 예상못했을 아크가 아니다. "마령소환 라자크,마령 소환 라카드!" 아크의 부름에 응해 소환수들이 좌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쪽에 라카드,왼쪽에 라자크 ,허리에는 라둔. '왠지 오랜만인데?' 아크는빙긋 웃으며 좌우의 소환수를 돌아보았다. 소환수야 대부분불러낸 상태로 지내니 딱히 새삼스러운 일은아니다. 그러나 요 한달 남짓, 항상 수많은유저나 NPC를 지휘하며 전투를 치르다보니 정작 소환수와 함께 전투를 한다는느낌은 들지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라자크는다른 부대로 지원을 보내고,라카드는 위성 정찰 모드로만 사용해서 이렇게 옆에 늘어놓을 기회는 없었다. 라카드와 라자크도 비슷한 생각이 든 모양이다. "흠, 왠지 옛날 생각 나는데?" 딱딱딱,딱딱딱딱! 라자크도 동감이라는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엿다. "그럼 간만에 제대로 한번 해볼까 ? A-1플랜!" 아크가 검을 뽑아들고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그러자 라카드와 라자크가 좌우로 갈라지며 페러사이트에게 달려들었다. 적을 전후 좌우에서 공격하는 A-1플랜! 과거와 다를바 없는전술이지만, 전술을 실행하는 소환수들의 능력은 그때와 비할바가아니다. 라카드는 얼마전 레벨 380수준까지 능력치를 올렸고,비교적 좀 떨어지는 라자크도 350레벨이 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때때로 아크의 훈련을 받아 전투 요령도 왠만한 유저 못지않았다. 아크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고니안이나 비밀던전에서 고생한 덕분에 레벨이 426이나 되었다. 그러나 근래 계속병력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라 아크 본인은 마음껏 활개치며 전투를 할수 없었다. 그러다가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검을 휘두르자 활기가 샘솟는 기분이들었다. 게다가 이곳은 50%의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는 던전!주변바다를 몽땅 오염시킬만큼 마기 덩어리인 레비아탄의 배속 역시 마족 영역의 패널티가 적용됐지만 고작 능력치를 10%제한하 는 패널티 따위는 문제가 되지않았다. "다크 댄싱, 다크블레이드!" 퍼퍼퍼펑,퍼퍼퍼펑! 아크는 유령처럼 페러사이트 사이를 누비며 검을 휘둘렀다.소환수와 함께있으면 검을 휘두르는것,극 외의 것은 생각할필요가 없었다. -치이이익! 뒤쪽에서 페러사이트가 독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딱딱?딱딱딱딱!땡강! 그러나 놈의독니는아크의 등에 닿기도 전에 라자크가 휘두른 방패에 얻어맞고 튕겨 나갔다. 그리고 양측에서몰려들던 서너마리의 페러사이트는 굳이 아크가 신경 스기도 전에 놈들의 머리위를 날아다니며 한결 수준 높아진 욕을쏟아내는 라카드가 유인했다. 아크는 공격,라자크는방어,라카드는견제. 이게 바로 진정한 아크스타일인것이다. 그때 라둔이 갑자기 허리에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몸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빠르게 페러사이트 사이를 기어다녔다.그러자 주변에 있던 페러사이트들의 발치에서 불길이 터지며 생명력이 쭉쭊 빨려나갔다.'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50%이상 소화시켜 각성한 '화염 오라'였다. 빈사상태로 도망치던 페러사이트들은 '화염 오라'에 걸려 생명력이 바닥나 배를 까뒤집으며 쓰러졌다. 몇마리의 페러사이트를 처리한 라둔이 반짝이는 눈망울로 아크를바라보며 날름거려다. 자기도 아크에게 도움이 되지않느냐고 묻는듯한 눈빛이었다. "그래,너도있었지.아크 편대의 마스코트 라둔!" 쌕쌕쌕,썍쌕썍쌕! 아크의 말에 라둔이 고갤 뻣뻣이 들고 으스댓다. 그렇게 아크가 소환수들과 몰아붙이자 10여마리의 페러사이트 정도는 3분도 안되어 정리되었다. 그러나 페러사이트들의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처음 나타난 페러사이트를 거의 정리했을 무렵,다시 혈관을 타고 수십마리의 페러사이트가 몰려들었다. 그리고 처리하면 또 더 많은숫자의 페러사이트가 기어나왔다. 게다가 레비아탄의 배속에 있는 페러사이트는 밖과 다른 특수 기술도 있었다. 빈사상태에 빠지면 바닥이나벽에 이빨을 박아넣고 회복하는것이다. 이름 그대로 정말 기생충 같은 놈들이었다. 때문에 몰아붙이다가도 조금만 짬을주면 곧 멀쩡해져서 반격해 오기도 헀다. '그래봤자 레벨 300대의 몬스터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안돼. 하지만 놈들이 혈관을 타고 몰려든다면 여기서 아무리 페러사이트를 죽여봐야별 도움이 안된다. 뭣보다 레비아탄의 기새충이나 잡아주려고 들엉노게 아니란 말이야' 그렇다, 아크가 기생충이 바글거리는 레비아탄의 배속에 들어온 이유는 바로 골드드림호를 되찾기 위해서였다.현재 레비아탄의 상황을 생각하면 골드드림호를 구출할 수 있는 시간은 약 25분. 벌써 3분을 소모했으니 이제 23분정도 밖에 남지않았다. '놀고 있을때가아니지' "라둔 ,돌아와.라자크,라카드,이제부터 위장까지 직선으로 돌파다!" 아크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가방을열고 소리쳤다. "'마기방출',창,창,창,철퇴,철퇴!" '마기방출'을 발동시키자 제물로 선택한 장비물이 가방에서튀어올랐다. 그리고 마기를 뿜어내 오망성을 만들자 끝 부분에 철퇴 같은 것이 달린 기병창의 형상이 떠올랐다. 뒤이어 기병창이 산산이 부서지며 아크와 소환수들에게 흡수되었다. [마기를 추출할 제물은 (창,창,창,철퇴,철퇴) 입니다. 이 조합으로 발동되는 효과는 <파워차지>입니다. 파워 차지: 사용자와 주변의 아군에게 10분동안 '파워차지'효과를 부여합니다.'파워차지'는 돌격 속도가 50%상승하며,돌격하며 공격하는모든적은 5미터 밖으로 튕겨 냅니다.단, 효과는 정면의 적에게만 적용됩니다.] 이것저것 조합해 보다가 우연히 찾아낸'파워 차지'! 돌격 속도 50%상승과 돌격 상태로 적을 공격하면 5미터 밖으로 튕겨 내는효과,설명을 읽어보면 그냥 평이한 수준의 효과처럼 보이지만,실제로 이 효과가 병사들에게 적용되면 실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사실아크가 비밀 던전공략을 끝낸뒤에60층을 나흘만에 다시 거슬러 올라와 나올수 잇었던것은 이스킬 떄문이었다. "자,가자!" 아크가 위장을 향해 달려가자 사방에서 페러사이트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크가 달려가는 자세로 검을 휘두르자 몰려들던 서너마리의 페러사이트가 폭발에 휘말린것처럼 날아가 바닥에처박혔다. 라카드와 라자크도 마찬가지였다. 몇마리의 페러사이트가둘을 막았지만 '방패치기'나 '암흑 돌진'을 사용하자 놈들은 마치 덤프트럭에 차인것처럼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많은 숫자가 앞에 진을 치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돌진 상태로 휘두르는 검에맞으면 무조건 날아가 버리니 막을 도리가 없는것이다. 그러나 '파워차지'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치이이이! -치이이익! 이동할때마다 수십마리씩 몰려나온 페러사이트.그런데 아크가 처리하지않고 '파워차지'를 이용해 이동만 한탓에계속 쌓이고쌓여 이제 아크의 뒤에 따라붙은 페러사이트의 숫자는거의 150마리는족히 되 보였다. 게다가 이곳은 레비아탄의 배속이라 위장까지 외길이어서 놈들을 따돌리고 도망갈곳도 마땅치않다. 물론 아크의 현재 레벨은 426.어둠 속성의 보너스를 받으면 무려 639에 달한다. 숫자가 150이라도 레벨 300대의 몬스터라면 싸워볼만한 숫자였다. 그러나 아무리 레벨 639라도 그만한숫자를 처리하려면 수십분의 시간이 소요되리라. 제한시간이 20분 남짓인 아크에게 부담스러운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잠시,위장 근처까지 돌진해 왔을때였다. 앞에 더이상 페러사이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아크가 몸을 돌려세웠다. 그사이에 페러사이트의 숫자는 더 불어나 200마리를 넘어선상황이었다. 갯지렁이처럼 생긴 놈들이 200마리나 뭉쳐 우글대며 몰려오니 소름이 바짝 돋을정도였다. "이제 네 차례다 .마그라 소환!" 아크가 검을들어올리며 소리쳤을때였다. 돌연 검날에 붙어있는 4개의 마석 가운데 하나에서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마치 동화속에서 램프의 거인이 나오는것처럼 ,마석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는 뭉실뭉실 뭉치더니 이내 거대한 검은 들개의 형상으로변했다. 마그라스톤으로 소환해낸 전설의 마수 마그라! 사실 마그라를 소환시키는데는 조건이 필요하다. 지옥의 괴수라 마기가 충만한곳에서만 소환할수 있다는것이다.그러나 레비아탄 역시 마 속성의 괴물, 마속성의 괴물 배속이니 당연히 마기가 충만해 마그라를 소환할수 잇었다. -아우우우우! 마석에서 벗어난 마그라가 허공에 대고 긴 울음을 흘렸다. 마그라의 광역 스킬 '하울링'!동시에우글거리며 몰려오던 페러사이트들이 움찌랗며 물러섰다. "자,이제 우리는 물러날까?" 그사이에 아크는소환수들을 데리고 슬금슬금 물러나다. 마석에 갇힌 마그라는 능력과 기억의 일부가 봉인당했다. 일단 소환되면 아크든몬스터든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것이다. 때문에 아크는괜히 불똥이 튀기전에잽싸게 도망쳤다. '어차피 페러사이트들은 레벨이 300밖에 안돼서 죽어라 잡아봐야 경험치나 전리품을 얻을수 없다. 그럼 차라리 마그라에게 맡겨놓고 볼일이나 보는 편이 낫지' 아크가 페러사이트를 몽땅 붙인채 위장까지 돌진한것은 그때문이었다. 마그라는 일단 소환하면 5분동안 주변의 모든것을공격한다. 직접 조종하지는 못하니 전술적으로 이용하지는못하지만,지금처럼 길목을 막는 용도로는 충분히사용할수 있다. 그리고 마그라는 끝없이 분노를 내뿜어 주변의 모든 적에게 '도발'을 거는 효과를내는 마수.그 기운을 받은 페러사이트는 본능적으로 마그라에게 몰려들었고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크아아앙! 마그라가 포효를 터트리며 페러사이트들에게 달려들었다.마그라도 레벨 300.페러사이트도 레벨 300.그러나 같은 레벨 300인라도 마그라는 정에 보스 몬스터 출신이엇다. 페러사이트의 숫자가 200에 달했지만 마그라는 조금도 밀리지않을 정도였다. 뭐,아크에겐 페러사이트를 따돌린 시점에서 이미 마그라가 이기든 페러사이트들이 이기든 관심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아크는 페러사이트를 마그라에게 맡겨놓고 식도를 내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골드 드림호다!" 아크가 걸음을 멈추며 소리쳤다. 길게 이어지던 동굴이 끝나고 눈앞에 거대한 지하호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호수 외곽에 골드드림호가 암초에걸린 배처럼 기울어져있었다. ".........젠장 ,레비아탄녀석!" 골드드림호를 보자 새삼 울컥 화가 치밀었다. 새삼 설명할 피룡도 없이 이곳은 레비아탄의위장이다. 그리고 지하 호수처럼 보이는것은 아마도 레비아탄의 위액이 바닷물과 짬뽕되어 만들어진 장소.골드드림호는 그 위액의 호수위에서 현실시간으로 사흘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리 거금을 들여 마법코팅을 해놨다지만멀쩡할리가 없는것이다. 돛은 구멍이 숭숭 뚫리고 칠이 벗겨져 마치 패션 직전의 상선처럼 보일지경이었다. '수리비가 만만치 않겠군'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새로 산 상선으로 수익을내기전에 수리비부터 나가야 한다니.........뭐,그래도 배를새로 사는것보단100배 낫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저 배들은?' 아크는 지하호수에 떠 잇는 달느 배들을 바라보았다. 레비아탄의 배속에들어있는 배는 골드드림호만이 아니엇다. 그 외에도 다섯척의 상선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푹푹 썩어가고 있었다. 그배에 짝혀있는 문장은 바로 상인길드마이더스. 그렇다. 이근처 해역에서 사라졌다는 상인 길드의 수송선다. 그 수송선단 역시 레비아탄이 집어 삼켰던 것이다. '아하,그렇군. 그래서 무장선단이 이해역에 들어왔는데도 처음에 레비아탄이 나타나지않았던 건가?' 수상선단을 확인한 아크가 주먹으로 손바닥을내리치며 중얼거렸다. 무장선단이 이해역에 들어왔는데도 레비아탄이 나타나지않았던 이유.그리고 나타난뒤에도 굳이 전함을 삼키려하지않았던 이유.그것은 바로 지하호수에 떠 있는 골드드림호와 수송선단 때문이었다. 레비아탄은 아직 소화도 되지않은 여섯척의 배를 담아둔채 또 다른 배를 삼키기가 부담됐던 것이다. '어쨌든 일단 골드드림호부터 살펴보자' 지하호수에는 상선 외에도 작은 판자나 술통 따위가 떠다녔다. 아크는 그런 판자나 술통을 밟으며 골드드림호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갑판에 올라서자밖에서 볼때보다 더 유령선처럼 느껴졌다. 갑판은 여기저기 부식되어 판자가 떨어져 나간곳도 만항ㅆ고,돛이나 밧줄따위는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또한골드드림호를 운영하기위해 고용한 NPC선원들의 모습도 찾을수 없었다. 그저 갑판위에서 드문드문 발견되는 핏자국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아마도 통째로삼켜진뒤,이곳에서 페러사이트의 공격을 받아 전멸한것이리라.상인 길드의 상선역시 배는 건재함에도 선원이 보이지않는걸 보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대체 이곳에서 시드는 어떻게 살아남은거지?' 막상 눈으로 참상을확인하자 새삼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간단하게 풀렸다. "시드!" 아크가 시드를찾아 선장실로 뛰어들어갔을때였다. 문득 탁자 뒤에서 뭔가 움찔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시드였다. 그러나 시드의 모습을확인한 아크는 움찔하며 한걸음 물러났다. 시드는 마치 히말라야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비쩍 말라비틀어진모습이었다. 아크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그저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세장의 두루마리를 꽉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 두루마리가 바로 시드가 아직살아있을수 있는 주문서였다. "[안전여행]주문서..........." 그렇다.시드가 이런곳에서 버틸수 있었던 것은 이줌누서 덕분이었다. [안전여행]은 2시간동안 몬스터에게 공격당하지않도록 해 주는 주문서. 시드는 배속에서 페러사이트들이 몰려들자 잽싸게 선자실에 처박혀 2시간마다[안전여행]을난사하며 버티고 있엇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남아있는 주문서는세장.앞으로 6시간후면(책에는 3시간으로 표기되있음) 페러사이트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는 공포에 떨다보니 살짝 정신을 놓은 모양이다. "어이,시드!정신차려!" 아크가 볼을 탁탁 치며 말하자 시드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아크님!" 한참 동안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리고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물었다. "으흑!여,역시 와 주셨군요.그렇다면 벌써 나온건가요 ?여기는 밖인가요?" 그러나 뒤늦게 아직 위장속임을 확인하고 얼굴이 굳어버렷다. 그리고 맥없이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크흑 ,틀렸어.이제 망했어!" "망하긴 뭐가 망해?" "먹힌 거잖아요? 아크님도 바다 괴물에게 잡아먹힌 거잖아요? 사흘동안 아크님이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며 무서워도 참고또 참았는데 ,아크님까지 잡아먹히다니........우으으,이제 끝이야.이제 갯지렁이들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어!" "뭔 헛소릴 하는거야? 이몸이 괴물따위에게 잡아먹힐리가 있냐?"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시드가 울상을지으며 웅얼거렸다. "근데 잡아먹혔잔아요.여긴 괴물의 배속이잖아요" "잡아먹힌게 아니야.내 발로 들어온거지" "제 발로 들어와요?" "그래,그래야 골드드림호를 구해낼수 있으니까" "골드드림호를구출? 나갈수 있는 방법이 있단 말이에요?" "당연하지.설마 똥이 되려고 들어왔겠냐?" "어,어떻게요?" "그건............" 아크가 씨익 웃으며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문득 선장실의 창문너머로 상인 길드의 수송 선단이 보였다. 그 수송선단을 보는순간 ,아크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 기분은? 굉장히 중요한 뭔가를 잊어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잠시 미간을 찡그리고 생각에 잠겨있던 아크가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렇구나!깜빡햇으면 큰일날뻔했다!' "너는여기서 잠깐 기다려!" "아,아크님!" 아크는 기겁하는 시드를 뒤로하고 상인길드의 수송선으로뛰어갔다. '상인길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이 해역에서 사라진 상선은 브리스타니아에서 수입품을 싣고 오던 수송선단이라고 했어.그렇다면...........' 갑판을 지나 선창으로 뛰어내려간 아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향료와 비단,산호,각종 도자기 등등.......선창에 산처럼 쌓여있는 막대한 양의 교역품! 아크가 마음에 걸린다고 생각했던게 바로 그것이었다. '이걸 돈으로 환산하면 최소한 15,000골드는될거야!' 그런 교역품을 실은 수송선이 무려 다섯척이다.가치로 환산하면 75,000골드.그야말로 보물선이나다름없었다. 아크는레비아탄의 배속에 들어오기전에 이미 골드드림호를밖으로 구출해 낼 계획을 세우고 만반의 준비가지 갖춰놓았다. 그러나 그때는 레비아탄의 배속에 수송선단까지 잇는 줄은 몰랐다. 물론 수송선단이 있다고 해서 아크의 계획이실패한다는뜻은 아니다. 뭔가 찜찜한생각이 들었던 이유는그 수송선 자체에 있었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송선에 실려있는 75,000골드 상당의 교역품이다. '이대로 내 계획이 성공하면 수송선단도 함꼐 레비아탄의 배속에서 구출할수있다' 말하자면 아크는 상인길드에게 75,000골드에 달하는 재산을 되찾아 주는셈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해도 아크에게는딱히 아무런 이득이 없다. 물론 잃어버렸던 수송선단을 되찾는게 결정적인 공적을 세웠으니 친밀도가 급상승하고,성공 보수도 받을수 있으리라.그러나 성공보수라고 해봐야 고작 15골드. 선장이라 200%를추가로 받아도 45골드밖에 되지않는다. '75,000골드를 찾아주는데도 고작 45골드?' 대체 뭐란 말인가? 굉장히 불쾌한 이 기분은? 물론 수송 선단의 교역품은 어차피아크것도 아니고,처음부터 기대도 하지않았다. 아니,레비아탄의 배속에 수송선단이 있는줄도 몰랐다. 그러나 견물생심이다. 막상 엄청난 금액의 교역품이 임자없이 굴러다니는것을 목격하자 그걸 얌전히 상인길드에게 돌려줘야 한다는게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더구나 현재 이수송선에는 살아남은 선원도 없어' 만약 이런 상선을 다른 곳에서 발견헀다면 아크가 권리를 주장할수도 있다. 실제로 해적에게 빼앗겼던 장물을 다른 사람이 해적을 소탕하고 되찾거나,바다에서 난파당한 배를 발견해 인양하거나하면 배안의 교역품은 찾는 사람에게 소유권이 돌아갔다.무법항에서 노획한 장물을 스탄달이 가져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다르다. 현재밖에는 이 수송선단을 되찾기 위해 파견된 무장상선이 있다. 그리고 아크역시 그 무장 상선의 일원.말하자면 현재 아크는 수송선단의 재산을 상인길드에게 되찾아 주기로 계약을맺은 상태인것이다. 만약 아크가 수송선단의 교역품을 손에 넣는다고해도 그 소유권은 자동적으로 상인 길드에 넘어가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교역품을 착복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이 엄청난 교역품은 그림의 떡이라는건가?" 아크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릴떄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벼락이 떨어지는듯한 충격이느껴졌다. "가만? 이 수송선단도 해적에 대비해 무장을 한 배잖아? 그렇다면 혹시...........?" 뭔가 떠올린 아크는 수송선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창고에서 에상했던 물건을 찾아낸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역시 하늘은 내편이군" "놈의 옆구리를 공격하라!" "우와아아아아!" 아크가 레비아탄의 배속에서 모종의 음모를 진행시키는 그때,밖에서는 인어조과 갈릭, 무장선단의 기함과 2번전함이 힘을 합쳐 레비아탄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갈릭은 쉬지않고 레비아탄을 들이받으며 움직임을 봉쇄했고,인어족은 주변의 페러사이트를 정리하고 합세했다. 그리고 기함과 2번전함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지원사격을 했다. 그렇게 총력전을 펼치자 레비아타도 슬슬 밑천을 드러냈다. 셀수없는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려대는 레비아탄은 이제 생명력이 4%도 남지않았다. 앞으로 몇분 정도만 몰아치면 몇시간이나 진행되면 전투도 끝이나리라. "그런데 대체 아크님은........?" 인어여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아직 아크는 레비아탄의 배속에서 나오지않은것이다. 만약 이대로 레비아탄이 죽는다면 배속에 있는 아크도 위험해질수밖에 없다. 아크가 배속에 있다면 분명 식도나 위장, 대장같은 내장 기관어딘가에 있을것이다.그런데 레비아탄이 죽어버리면 그런 내장기관이오그라든다. 그렇게 되면 아크는 오그라든 내장에 눌려 갇힌 채로 죽어버릴수밖에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아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공격을 늦출수도없다. 만의 하나라도 위기에 몰린 레비아탄이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인어여왕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쿠아아아아!크아.......크아아악! 몸싸움을 벌이던 레비아탄이 움찔했다. 그리고 갑자기 미친듯이 발버둥 치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러기를잠시,갑자기 캑캑 거리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촤아아아아아,콰르르르르륵! 레비아탄의 입에서 엄청난 양의 토사물이쏟아져 나왔다. 크기가 수킬로미터나 되는 레비아탄이 오바이트를 하자 바다가 토사물로뒤덮였다. "이,이런 망할 악마놈이........." 근처에 있다가 토사물을 뒤집어슨 인어여왕이 부들부들 떨며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그때 한차례 오바이트를 하고 헐떡대던 레비아탄이 몇번인가 헛구역질을 하다가또다시 엄청난 양의 토사물으 쏟아냈다. 이번에는 정말 배속에 있는걸 몽땅 토하듯 마치 폭포수처럼 위액을 쏟아냈다. 그러기를잠시,그 시커먼 위액의 폭포위에서 뭔가 거대한 물체가 바다로 떨어졌다. "저,저게 뭐야?" "배다!상선이야!" 멀리서 지켜보던 무장 선단의 선원들이 놀란 목소리로웅성거렸다. 그것도 한두척이 아니라 여섯척이나 되는 상선이 쏟아져 나온것이다. 그때 가장 먼저 튀어나온 상선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하하하,나왔다!성공이다!" "저,저사람은..........!" "8번 전함의선장인 아크님입니다!"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확인한 선원이소리쳤다. 그렇다.레비아탄의 토사물로범벅이 된 상선 위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다른아닌 아크였다. "후후후,이거효과가 장난이 아닌데?" 아크는 히죽히죽 웃으며 아직도 헛구역질을 해대는 레비아탄을 바라보았다. 밑도 끝도없는 레비아탄의 오바이트! 사실 이게 바로 아크가 놈의 배속에서 골드드림호를 구출하기 위해 세운 작전이었다. 새삼스럽지만 골드드림호가 배속에 있는 상태에서 레비아탄을 죽여봐야 함께 수장될 뿐이다. 수축하는 위장속에서 으스러지거나,시체와 함께 사라지리라. '그렇다면 살아있을떄 꺼내야 한다는 말인데.........놈이 순순히 뱉어줄리가 없지.그럼 역시 방법은 하나뿐이다.놈이 알아서 토해내게 하는방법!' 거기까지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한가지 음식이 떠올랐다. [구역질 시럽 대륙에서 가장 악취가 심하다고 알려진 코네열매와 사라미열매의 즙을 짜 숙성시킨 시럽입니다. 이 시럽을 먹으면 아무리 비위가 좋은 사람이라도 배 속이 텅텅 빌떄까지 오바이트를 멈출수 없습니다.독극물을 먹었을때 사용합시다. <'구토'를 유발합니다.'구토'를하면 적용되던 지속효과는 지닌 모든 음식물과 포션의 효과가 사라지게 됩니다>] 아크가 '창작 요리'로 만든 음식이다. 이'창작 요리'의 효과로 영감을 얻은 아크는항해하면서도 쉬지않고'구역질시럽'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요리가 무려 200여개.그리고 아크는그 음식을 짊어지고 직접 레비아탄의 배속으로 잠입.위장에 몽땅 투척시킨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부분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레비아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해.게다가 한꺼번에 여섯척이나 된느 배를 삼켜서 소환기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다!' 사실 위장 속에서 골드드림호나 수송선단이 며칠이나 버틴것은 그때문이다.레비아탄이 무식하게 과식해 버린탓에 소화불량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골드드림호와 수송선단이 아직 무사할수 있었지만,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니 소화불량이 문제가 되었다. 이대로라면 구역질 시럽이 제 위력을 발휘할수 없는것이다. '어떻게 잠깐이라도 놈의 위장을 활발하게 움직이게만들 방법이 없을까?'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갈릭의 배속에서 경험했던 일이 떠올랐다. 보스 아드리안과 싸울때 위장으로 끌어들여 위액으로 녹여버렸던 전법! 당시 아크는 위액을 최대한 많이 쏟아지게 만들기 위해 위장에 충격을 주는 방법을 사용했었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당시처럼 위장을 자극하면 자칫 엄청난 위액에 골드드림호와 수송선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위장속에 갇힌채 레비아탄과 함꼐 죽는것보다는 낫지않겠는가? "그래 ,대포다!대포로 놈의 위장을흔들어 놓는거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소환수들과 돌아다니며 골드드림호의 대포를 모두 장전했다. 그리고 일시에 발사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위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화들짝 놀란 위장이 미친듯이 꿈틀대기 시작햇고,위벽에서 엄청난 양의 위액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위장에 고여있던 바닷물에 위액의 농도가 높아지자 둥둥 떠다니던 판자나 술통 따위가 연기를 뿜어내며 녹기 시작했다. 골드드림호도 마찬가지였다. 위장 속에서 사흘이나 방치되어 이미 페선에 가까울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골드드림호,그런상태에서 위액의 농도가 높아지자 외벽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아,아크님!" 시드가 요동치는 위벽을바라보며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상태에서 아크가 할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골드드림호가 더 녹기전에'구역질 시럽'이 효과를발휘하길 바랄수밖에........' 쿨렁,쿨렁,쿨렁 그때였다. 갑자기 위장 전체가 뒤틀리기 시작하더니 위액에 파도가일었다.오바이트를 하기직전의 위장상태! "왔다!시드,라자크,라카드,꽉잡아!" 아크가 소리치는것과 동시에 위액의 호수가 식도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구역질 시럽'의 효과가 발동해 레비아탄이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한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위액이 마치 급류처럼 식도를따라 솟구쳤다. 까딱실수하면 식도와 충돌해 이미 너덜너덜한 골드드림호가 부서질지도모른다. "좋아,마기발현!" 아크는'마기발현'으로 '피지컬 실드'를발동시켜 배를 보호하고,키를조정하며 골드드림호를 급류에싣고 식도를 거슬러 올라갔다. "보인다!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그렇게 잠시,눈앞으로 쩍벌어진 아가리사이로 검은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우웨에에에엑!콰콰콰콰콰콰콰콰! 토사물에 뒤덮인 골드드림호가 사흘만에 레비아탄의 배속에서 탈출했다.그리고 뒤따르듯 다섯척의 상인길드수송선도 쏟아져나왔다. "엇!저,저건.......!" "사라졌던 수송 선단이다!" "다섯척의 수송선단이 모두놈의 배속에서 나왔다!" 뒤늦게 수송선단을 발견한 상인 길드 소속NPC들이 환호성을터트렸다. 그러나 다음순간,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떠올랐다. 간신히 되찾았다고 생각했던 수송선단이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더니 중심을잃고 침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안돼!" "저 수송선에 적재된 교역품이 얼마인데........" NPC들이 갑판위에서 발을동동 굴렀다. 그러나 침몰하는 배를 무슨수로 막겠는가? 그리고 지금은 침몰하는 배를 아까워할때가 아니다. "어엇, 놈이 8번 전함 선장이 탄 배를 공격한다!" 레비아탄이 괴성을 지르며 골드드림호로 달려들고 있었다. 죽어라 오바이트한 덕분에 배속이 텅텅비어 뭐든 집어삼킬 기세다.반면 이제 막 배속을 빠져나온 골드드림호는 레비아탄의 코앞.게다가 돛대가 몽땅 부서져서 제대로 항해도 할수 없는 상태다. 하물며 레비아탄을 따돌리는것은 상상도 할수없다. "감히 내 상선을 두번이나 먹을수 있을것 같으냐?" 그러나 아크는여유가 넘치는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보다가 신호를 내리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게 끝이다. 멍청한 생선아!" 콰콰콰쾅,콰콰콰쾅! 동시에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던 레비아탄.그 레비아탄의 몸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살가죽이 쩍쩍 갈라졌다. 아가미,등지느러미,꼬리,뱃가죽........폭발이 일어날때마다 그런 부위가 펑펑터져나가자 레비아탄이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버렸다. -크르..........크르...........크르르르! 레비아탄이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렸다. 그리고 마치 기듯이 골드드림호 가까이 다가왔을때였다. 갑자기 레비아탄의 머리부분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려나왔다. 그러자 레비아탄이 경련을 일으키듯 바르르 떨어대더니 이내 눈알이 홱 돌아가며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효과가 끝내주는데!"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굳이 말할 필요도없지만 이것역시 아크의 작품이었다. 모처럼 레비아탄의 배속까지 들어왔는데 얌전히 나올아크가 아니다. 아크는'구역질 시럽'을 투하하기 직전에 레비아탄에게 확실하게 데미지를 입힐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그때 떠오른게 바로 페러사이트가 수미터나 되는 혈관을 타고 이동하던 장면이었다. 그장면을 떠올린 아크는 곧바로 수송선단에 쌓여있는폭뢰를 들고 나와 혈관속에 쑤서넣었다.그 결과는 지금 눈으로 보는대로였다. 골드드림호가 탈출할수 있을만한 시간에 맞춰도화선 길이를 조절한 폭뢰. 이 폭뢰가 레비아탄의 혈관을 타고심장, 폐,뇌,기타등등.......몸 곳곳으로 퍼져나각 폭발을 일으킨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도 버틸수 있는공격이 아니다. 화약이 심장이나 뇌에서 폭발해 버리는데 무슨수로 버틸수 있겠는가? 덕분에 엄청난 데미지를받은 레미아탄은 결국 즉사. 부글부글,부글부글 레비아탄은 쩍벌어진입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눈앞에 반가운 메시지창이 연속적으로 올라왔다. "우헤헤헤,이거 정말 짭짤한데" 아크가 두툼한 돈주머니를 흔들어대며 히죽거렸다. 레비아탄이 쓰러진 직후,상황을 정리한 아크는 무장선단과 함께루벤트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뢰의 보수 40골드와 성공 보수 45골드.합이 85골드의 수입을 올릴수 있었다. 5~6시간을 투자한 용병일치고는 상당한 수입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크가 들고 있는 돈주머니에는 300골드가 더 들어있었다. 그돈은 바로 제독이었던 바그너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잠깐 얘기좀 할수 있을까?" 레비아탄을 쓰러트리고 기함으로 돌아가자 바그너가 다가왔다. "흠흠,자네가 레비아탄을 쓰러트린거 말인데......돌아가면 그게 내 지시에 의한거라고 말해줄수 없을까?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 사례는 섭섭하지않게 해주겠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이렇게 제안하는게 아닌가? 바그너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번에 바그너가 끌고온전함은 왕국과 상인길드가 합작으로 제작한 신형전함이었다. 그런 전함을 여덟척이나 끌고 와서 여섯척을 잃어버린것이다. 물론 레비아탄이 상대였으니 그정도 손실만으로 해결할수 있었던건 다행이라고 할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비록 수송선단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교역품의 일부라도 회수할수 있었따. 놈의 배속에서 나온 수송선단이 몽땅 침몰했지만,원래 뉴 월드에서 상선이 침몰하면 창고 물건의 20~50%는 바다에 떠다니게 되어있다. 덕분에 40%정도는회수한것이다. 레비아탄을 상대로는 그리 나쁜성과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투내내 바그너가 보였던 추태에 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라 추태를 보였지만, 막상상황이 정리되니 그 추태가 떠올라 바그너는 어쩔줄 몰라했다. 만약 그런 추태가 윗사람에게 보고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그래서 바그너가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공적'을 사는것이다. 사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무장 선단이 레비아탄을 쓰러트릴수 있는 전력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만한 전과를 올릴수 있었던 것은 아크덕분이었다. 인어족도 아크와 관련이 있었고, 수송 선단의 짐을 일부라도 되찾은것도 아크가 놈의 배속까지 들어간 덕분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아크의 행동이 모두 바그너의 지시에 의한 거라면? 바그너는 비난을 모면하는것은 물론,명성까지 얻을수 있지않겠는가? '이녀석,그런쪽으로는 머리가 잘돌아가네.혹시 지금까지 이런식으로 공적을 사서 여기까지 올라온거 아냐?' 아크는 한심하다는듯이 바그너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막상생각해보니 나쁜 제안은 아니다. 어차피 이번건은 단순한 용병 의뢰였다. 아크가 아무리 공적을 많이 세워도 달리 추가보상을 기대하기 힘든것이다. 그리고 딱히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렇다면차라리 이참에 조금이라도 실익을 챙겨두는편이 좋다는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머리를 굴리던 아크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크의 공적은 300골드에 팔린것이다.덕분에 이번에 아크가 얻은 골드는 모두 385골드.게다가 레비아탄을 쓰러트려 레벨도 6이나올랐다. 본래 무장 선단의 인원수는 1,500명이나됐지만 레비아탄이 쓰러질때는 불과 400여명밖에 남아 있지않았기 때문이다. "레벨 6에 385골드,6시간 정도의 투자로 얻은 수익치고는 장난이 아니군" 그러나 이번 전투로 아크가 얻은 진짜 수입에비하면 그정도는 장난에 불과했다. 상인 길드에서 보상을받고 용병을 탈퇴한 아크는 곧바로 항구로 향했다. 그리고 정박해 있는 선박들을 둘러보며 조금걷자 곧 익숙한 상선하나가 나타났다. 바로 아크 소유의 상선,골드드림호였다. "오셨습니까?" 아크가 갑판에 오르자 시드가 다가왔다. 아크는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가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음,가격은 알아봤어?" "네,그렇지않아도 방금전에 시세파악이 끝났어요" "얼마야?" "42,800골드에요" 시드의 대답에 아크의 얼굴에서 행복한 미소가번졌다. 이번 의뢰에서 아크가 얻은 진짜 수입은 바로 시드가 말한 42,800골드였다. 대체 아크가 어제 ,어디서 그만한 수입을 얻었던 말인가?그해답은 간단하다.바로 바닷속으로 침몰해 버린 상인길드의 수송 선단, 거기에 실려있던 교역품이었다. 알다시피 수송선단은 레비아탄의 배속에서 나오자마자 침몰했다. 덕분에 상인길드는 40%의 짐밖에 회수하지못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정도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후후후,작전 성공이다!' 사실 아크가 레비아탄의 위장에 도착했을떄,수송 선단의 상태는 오히려 골드드림호보다 양호한 상태엿다. 배의 성능은 비슷하지만 수송선단이 더늦게 삼켜졌기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송선단만 침몰한 이유는........아니,정확히 말하면 수송선단은 침몰한게 아니라 침몰당한것이다. 바로 아크의 계략에 의해서. 레비아탄을 골로보낸폭뢰. 아크는 수송선단을 밖으로 꺼내기 전에 그 폭뢰를이용해 수송선의 바닥에 구멍을내 놨던 것이다. 그런 천인공로할 짓을한이유는 당연히 교역품을 가로채기 위해서였다. '수송선단이 멀쩡하게 인수되면 나에게 떨어지는건 10원하나없다' 아크에게 그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힘들게 배속까지 들어가서 수송선단을 구출했는데-물론 골드드림호를 구출하려다 보니 덤으로 딸려 나온거지만-그에 대한 보상은 10원도 받을수 없다니? 길가다 돈을 주워도 10%는 받는법인데 그건 너무 심하지않은가? 그러나 수송선단이 침몰해버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단수송선단이 바닷속에 가라앉으면 상인 길드로서는 당장 교역품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 잠수함이 있는 현대에도 수백미터 해저에서 물건을찾는건 보통일이 아니다. 하물며 중세 시대인 뉴 월드에서 무슨 수로 해저에서 교역품을 회수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크는 간단하게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바로 인어족!' 그렇다. 바다종족인 인어족이라면 수백미터 해저도 아무리 문제가 되지않는다. 때문에 일단 침몰시켜 놓고 인어족을 동원해서 나머지 60%의 교역품을 골드드림호에 옮겨실은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상인 길드의 의뢰와는 상관이 없는 시드의 명의로 옮겨놨으니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다. '때마침 인어족이 나타나지않았다면 수익은 커녕 골드드림호까지 잃었을거야' 사실 인어족이 그때 나타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크는 루벤트항으로 돌아오기전에 교역품의 인양을부탁하기 위해 잠시 인어여왕을 만났다. 그때 인어여왕은 인어족이 그곳에 나타났던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바다 괴수 레비아탄은 암흑 세기에 사해를 돌아다니며 바다를 타락시키던 악마에요.당시 인어족은 그 악마를 물리치기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죠.그런데 얼마전에 바다의 해류를 타고 그 악마가 다시 부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그래서 저희는 여행을 중단하고 돌아왔죠.그런데 마침 그해역에 들어왔을때 아크님에게 건네주엇던 '인어족의 피리'소리가 들려왔어요.그래서 직감적으로 아크님이 렙리아탄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찾아왔던 거에요" 여기저기에 친밀도가 높은 NPC를 만들어 두면 이래서 좋다. 설마 바다 한복판에서 이런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했겠는가? 뭐 이번의 경우는 운이 많이 작용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크는 인어여왕에게 수송선단의 짐 인양을 부탁했고,이어 여왕은 흔쾌히 허락했다. '물론 많은 인원을 동원해 작업해야 하는일이라 인어족에게도 적지않은 수고비를줘야 했지만.........' 그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레비아탄은 수천년전부터 수많은 바다의 수호자를 잡아먹으며 자신의 능력을 키워왔죠.사실 놈의 이마에 붙어있던 바다뱀도 예전에는 서해의 수호자였어요" 아크의 제안을 받았을떄 인어여왕이 말했다. 레비아탄은 원래 다른 존재의 힘을 몸으로 흡수하는능력을가진 악마였다. 그리고 흡수한 힘의 종류에 따라 육체도 변화해 거대한 거북이나 상어,해룡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레비아타의 육체에는 희생된 바다 수호자들의 능력이 녹아 있어요.물론 다른 종족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인어족이라면 레비아탄의 육체를 가공해 훌륭한 장비품을 만들수 있죠.아크님이 쓰러트린 레비아탄의 시신을저희에게 양도해준다면 부탁대로 교역품 인양을 도와드리겠어요" "알겠습니다" 아크는 생각할것도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레비아탄의 육체 그 자체가 훌륭한 재료 아이템이라는 말을듣고 나니 아깝다는생각도 들엇지만, 어차피 아크가 소유권을 주장해봐야 레비아탄의 시신을 수킬로미터나되는 바닷속에서 가지고 나갈수도없다. 또한 수백미터 해저에서 레비아탄의 육체를가공할수 있는것도 인어족뿐이다. 뭣보다 아무리 레비아탄의 시신이 가치가 있다해도 수송선단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교역품만큼의 가치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아크는 레비아탄의 시신을 대가로 인어족에게 교역품의 인양을 부탁할수 있었다. 그러나 들어간 돈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었다. 교역품을 인양하는도안 인어족에게 폐선상태였던 골드드림호의 수리도 부탁해 16,000골드가 지출되었다. '결국 최종 수익은 42,800골드에서 16,000골드를제외한 26,800골드' 지출이 좀아깝기는 하지만 불과 몇시간 만에 26,800이라는 엄청난 돈을 챙긴것이다.게다가 레비아탄의 시체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덕분에 무장 선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음에도 아크가 전리품을 몽땅 독식할수 있었다. [레비아탄의 방패(유니크) 아이템 타입 : 가죽 방패 방어력 : 400 내구력 : 256/400 무게 : 45 사용제한 : 레벨 500이상 전설의 바다 괴수 레비아탄의 등껍지입니다. 흔히 옛 선원들이 레비아탄에 대해 말할때는 바다팸을 연상하지만, 바다뱀은 레비아탄의 등껍질에 달려있는 일종의 촉수에 불과합니다. 이 등겁질은 촉수가붙어있는 부분이 떨어져 나온것입니다. 때문에 비록 강력한 힘은 없지만 촉수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 힘이 담겨져있습니다. <옵션 : 힘 +50,체력 30,수중 패널티 50%감소> <특수 옵션 (수압포) : 방패의 포면에 나있는 작은 구멍으로 고압의 수탄을 발사해 1~500의 데미지를 입히고 일렬로 늘어선사람들에게 최대 10명까지 1~200의 관통데미지를 입힙니다. 단,'수압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시간 방패를물에담가 충전해 줘야 합니다. 1시간의 충전으로 5발의 '수압포'를 사용할수 있으면 최대 15발까지 충전할수 있습니다>] 레비아탄의 딱딱한 등겁질을 닮은 유니크 방패! 가죽 방패라 레벨 제한이 500임에도 바어력ㅇ느 400밖에 되지않지만 ,옵션은 장난이 아니다. 힘 50에 체력 30상승,거기에 수중 패널티 50%감소까지! 그러나 이 방패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특수 옵션에 있었다.무장선단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레비아탄의 특수스킬 '수압포'를 사용할수 있는것이다. 물론 같은 '수압포'라고 해도 레비아탄이 사용했던 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레비아탄은 '수압포'를 레이저처럼 사용했지만'레비아탄의 방패'에는 비축할수 있는 수량이 얼마되지않아 화살처럼 한발씩밖에 사용할수없다. 게다가 데미지도 1~500. 그러나 레비아탄이 '수압표'로 전함을 절단했던 것처럼 방패의 '수압포'도 적을 관통한느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적이 일렬로 늘어서 있으면 10명에게 1~200의 데미지를 줄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레비아탄의 방패'로 사용하는 '수압포'는 대기시간도 없고,마나도 소모하지않는다. 원거리 공격스킬이 적은 전사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방패인 것이다. 레비아탄도 정예 필드 몬스터라 그 외에도 마법 아이템이 2개 떨어졌다. 그러나 나머지는 그저그런 수준이라 팔아봐야 50골드도 받기 힘든것들이었다. '문제는 이건데...........' 아크가 주먹만한크기의 검은 구슬을 바라보앗다. [페러사이트의 알주머니 레비아탄의 체내에서 기생하던 페러사이트의 알주머니. 바닷속에 넣어두면 부화합니다] '대체 이걸 뭐에 쓰라는거지?' 아크가 머릴 긁적이며 주먹만한 크기의 검은 구슬을 바라보았다. 아크가 전리품을 수색할떄 레비아탄의 몸에 붙어있던 페러사이트의 알주머있었다. 이 알주머니안에는 수천개의 작은 알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아마도 하나로 수천마리의 페러사이트가 부화하리라. 그런데 막상 다 챙기고 보니 이걸 대체 뭐에 써야 할지 알수 없었다. 솔직히 기생충을 부화시켜서 뭐에 쓰겠는가? '하지만 일단 가지고 있다보면 어딘가에 쓸데가 있을지도모르지.개똥도 경우에 따라서는 약이 되는법이니까' 아크는 별생각없이 알주머니를 챙겨넣었다. '자,이제어디로 가나?' 시드는 당장 골드드림호를 움직일 선원이 없어 당분간은 루벤트항에서 머물러야했다. 그러나 굳이 아크까지 붙어있을 이유가없어 일단 항구를 나왔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을때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문득 뒤쪽에서 예복을 입은 사내 몇명이 다가왔다. 아크가 고개를 돌리자 사내들이 예를 표하며 물었다. "아크 남작님이십니까?" "누구시죠?" "저희는 왕성에서 파견된 전령입니다. 시르바나 영지에 먼저 찾아갔는데 이곳으로 가셨다고 해서 서둘러 찾아왔습니다. 받으십시오" 전령이 말랍으로 봉인된 편지 한장을 내밀었다. 슈덴베르크 귀족 소집령 근래에 닥친 왕국 전체의 위기에 대응하기 이해 귀족들을 소집한다. 소지령을 받은 귀족은 필히 참석하도록 하라.<구체적인 회의 주제에 대한 설명은 첨부한 서류에 적혀있음> "슈덴베르크의 모든 귀족을 소집한다고? 대체 무슨일이지?"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편지에 첨부된 서류를 훑어보았다.그렇게 잠시,점점 얼굴이 굳어가던 아크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BY RAYAN ACT 9 로비스트 "현재까지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확인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숫자는 273개입니다.아직까지 그 오벨리스크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 주변에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이 몰려든다는것만은 확실합니다. 그 몬스터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것들보다 강하고 공격적이라 주변 마을이 적지않은 피해를 받고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각 영지에 영지민들의 보호와 오벨리스크의 파괴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으라는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각영지에 추가적인 피해는 미미한 수준이고,보고된 오벨리스크의 숫자도 3분의 1가량 줄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오벨리스크에 대한 소식이 속속 들어오는 상황이라 전체적인 상황은 아직 큰 성과 없이..........." 셀리브리드의 왕성.정무 대신이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하고 있었다.그 내용은 듣는바와 같이 대륙에서 출몰한 검은오벨리스트에 대한것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왕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검은오벨리스크.문제는 그 검은 오벨리스크가 아니라,그 오벨리스크에 몰려드는 정체불명의 몬스터들이었다. 더욱 혼란스러운것은 그몬스터들이 해당 지역의 민간 설화따위로 전해져 내려오던 괴물들과 놀라울정도로 닮아있다는점이었다. 레비아탄도 같은 경우였다. 본래 레비아탄은 뱃사람들 사이에'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괴수'로 알려진 고대몬스터.그리고 아크는 레비아탄을 처치할때까지만 해도 몰랐지만 교역품을 인양할때 바닷속에서 검은 오벨리스크를 발견했다. 인어여왕은 아마도 그 오벨리스크가 오래전 사라졌던 레비아탄을 부활시켰을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인어여왕에게 바닷속에서도 대륙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말도 전해주었다.어쨌든 일련의 사건들은 슈덴베르크 왕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물론 왕궁에는 이전에도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벨리스크에 몰려드는 몬스터들은 기존의 종과는 전혀 달랐다. 게다가 기존에 살던 몬스터들보다 레벨이 100이상 높고 적대감도 강해서 뗴를 지어 몰려다니며 마을이나 영지를 습격했다. 게임적으로 말하자면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것이다. 이에 각 영지에서는 병력을 파견해 영지민의 마을을 지키는한편,보고된 오벨리스크를파괴해 추가 피해르 막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새로운 오벨리스크가 생겨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때문에 민심의혼란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왕성에서 긴급회의가 여린것은 그 혼란을진정시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굳이 말할필요도 없지만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고있습니다. 그런 두려움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라도 왕성의 단호한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있다고 생각됩니다. 국왕 폐하의 이름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왕국전체를 임전태세로 전환하고,정규 병력을 풀어 만약의 사태에도 대응할수 있게 모든 마을과 도로를 완벽하게 장악해야합니다" "비상계엄령이라..........." 국왕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불어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왕국 전체가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다시말해 전투 이외의 부분은 완전히 마비되는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물론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오벨리스크에 대한 피해는 줄어들겠지만 ,그 반동 역시 무시할수 없으리라. "꼭 비상계엄이필요한 상황인 겁니까?" 귀족들도 그런 부분에 생각이 미쳤는지 수군거리다가 물었다. 그러자 정무 대신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현재 슈덴베르크 왕국의 서부지역 피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그중에서도 특히 도플갱어라는,사람을 잡아먹고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괴물에 의한 피해가 엄청납니다.이런 피해를 막기위해서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해 각 관문의 문을 걸어잠그고 각마을을 묶어 관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비상계엄령을 내리면경제가..........." "지금은내일의 피해를 걱정하기보다 오늘의 피해를줄이는데 전념해야 합니다" "그도그렇군.알았네.경에게 권한을 위임하지"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무 대신에게 말했다. 동시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망했다!' 얼마전 전령의 연락을받은 아크는영자 이동을 이용해 단숨에 셀리브리드로 날아왔다. 물론 아크가 이렇게까지 부리나케 날아온것은 국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은 아니었다. 이번 회의의 중심 주제가 바로 비상계엄에 대한 것이었기때문이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가 되는것은 비상계엄이 발동했을때 적용되는 긴급 법령의 ,딱 요 조항이었다. 긴급 법령 제 5항 : 비상계엄 시의 국경 봉쇄,각 영지의 경계를 기점으로 관문 폐쇄,여행과 상단의 영지간 이동 금지(예외 사항 참조)에 대한 법령. 국경 봉쇄와 영지 관문 폐쇄,영지간 이동 금지! 즉 ,슈덴베르크 왕국 내에서 모든 종류의 교역을 금지시키겠다는 말이었다. 각지에서 출몰하는 기형의 몬스터 떼를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였지만....... '간신히 골드드림호를 되찾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현재 아크는 홀몸(?)이 아니었다. 수백명의 직원(골드드림호의 선원,스탄달 교역소의 직원등)을 거느린 사업체의 회장인것이다. 그리고 사업체를 거느린다는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사업체를 거느린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엄청난 손실을 입을수밖에 없다. 사업체를 놀려도 선원이나 직원들의 월급이나 창고 임대료는 꼬박꼬박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만의 하나 미리 선점해 놓은 교역품의 매각 시기를 놓치기라도 하면 수천수만 골드의 손실을 입을수도 있다. 때문에 흑자를 내든 적자를 내든 일단굴려야 하는게 사업체다. 그런데 슈덴베르크왕국에서의 교역이 원천 봉쇄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뗴기 시작한 아크상단에게는 죽으라는말이나 다름없다. '아직 사업체를 굴려 1골드의 수익을 얻지못했는데 골드드림호가 괴물에게 먹혀 수리비만 잔뜩 뜯기지를 않나,이번에는 아예 교역이 금지돼?' 무슨 저주라도 받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글로벌엑서스에서 대륙의 상황을 들었을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느데.........' 이제 더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니,아크의 목숨이 달려있는 얘기가 되버렸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 비상계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누구도 장담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오벨리스크를 찾아 부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이유는......... "대체 그 오벨리스크의 정체가 뭡니까?" 그때 누군가가 질문하자 궁정 마법사가 나서서 대답했다. "아직 오벨리스크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단지 일종의 저주의 결정체라고 짐작할뿐입니다" "저주의 결정체?" "그렇습니다. 저주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는 먼저 주변의 대기와 대지를 오염시키며더욱 저주를 증폭시켜 가며 '환상'과 '기억'의 악마들을 이세계에 불러들이는겁니다" "환상곽 기억의 악마라니?그건 또 무슨 소리요?" "실재하지않는 악마.사람들이 공포라는 감정을 통해 만들어낸 허상과도 같은 존재라는말입니다. 이 저주가 까다로운점은 바로 그부분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사람들이 공포심을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강하고 많은 악마들이 현실로 기어나올테니까요.그리고 이런 환상과 기억을 다루는 저주는 단순히 매개체를 부수는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벨리스크를 부수면 악마들도 더이상 나타나지않던데?" "그건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오벨리스크는 단지 저주의 매개체일뿐입니다. 근원이 해결되지않는 이상 오벨리스크는 머지않아 타락한 대지에서 다시 만들어질것입니다. 뭐,신의 권능이 담긴 강력한 아티팩트를 이용하면 오벨리스크를 완전히 파괴할수 있지만,그 역시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니죠"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귀족들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궁정 마법사가 대륙 지도의 북부를 가리켰다. "미리 보고받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러 루트를 통해 아랑본 결과 이번사태의 발원지는 아무래도 시니어스 공국인것 같습니다. 검은 오벨리스크도 슈덴베르크는 273개.브리스타니아도 비슷한 숫자지만 시니어스 공국은 수도 근방에만 무려 70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공국전체에서 발생한 오벨리스크의 숫자는 확인할수조차 없는 상황이죠.그리고..........." 궁정마법사가 축구공만한 메모리 크리스털을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크리스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입체 영상이 펼쳐졌다. 국왕 이하 귀족들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허공에서 나타난 영상은 어둠에 잠긴 도시였다. 밤은아니다. 그러나 도시 전체가 검은 안개 같은 것에 휘감겨 있는것이다. 그 검은 안개에 잠긴 도시는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에게 공격받고있었다. 경비병들이 병기를 휘둘러대며 막고 있었지만 중과부적. 결국 괴물들의 침입을 허락한 도시에서는 쉬지않고 불길이 치솟고 사방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있었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이게 시니어스 공국의 현재 상황입니다. 지금까지불과 며칠 사이에 시니어스 공국의 국토 가운데 약 60%이상이 기형의 몬스터들에게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몬스터들에게 함락된 국토는 어김없이 검은 안개에 뒤덮여 대기와 대지가 썩어들어갑니다. 저희들의 연구에 의하면 그 검은 안개가 바로 검은 오벨리스크를 만들어낸 저주의 근원인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검은 안개가 계속 세력을 확장하며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의 국경 근처까지 밀려왔다는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60평생을 살았지만 이런일은 듣도 보도 못했어!" 한 노귀족이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궁정 마법사가 뭔가 묻는듯한 눈길로 국왕을 바라보았다. 국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궁정 마법사가 한차례 숨을 들이켜며 입을 열었다. "아니,이번일은 처음 생긴 일이 아닙니다. 오래전이지만 이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수백년전........어둠의 제왕이 강림했을때입니다" "뭐,뭐라고?" 귀족들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한 귀족이 확인이라도 하려는듯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어둠의 제왕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궁정 마법사는 얄미울정도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러니까,지금 어둠의 제왕이 부활했다고 말하는거요?" "그건 아닙니다. 만약 어둠의 제왕이 부활했다면 사태가 이정도에서 끝나지않을겁니다. 이미 대륙 전체에 어둠이 퍼졌겠죠.과거 전 대륙이 어둠에 장악됐을때처럼 말입니다.그러나 현재 확인된 어둠은기록에 나온것만큼 강하징낳습니다. 이점을 미루어 현재의 상황은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는 전조라고 생각됩니다. 다시말해 누군가가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려고 한다는 뜻이죠" 그 말에 귀족들의 눈동자가 공포에 물들었다. 이곳에 모인 귀족중 실제로 어둠의 제왕이 존재했던 암흑세기를 겪어 본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륙의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귀에못이 박히도록 암흑 세기에 대해 들으면 자랐다. 그런 그들에게 잇어서 어둠의 제왕이란 모든 공포의 근원같은 존재나 다름없다. 그말을 끝으로 궁정 마법사는 할말을다했다는듯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국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경들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생각하오.더불러 국내에 당면한 문제만을 해결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것도 .만약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다면........" 국왕은 차마 말하기도 싫다는듯 뒷말은 한숨으로 대신했다. "........현재 국내의 문제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해야 할만큼 심각하오.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다면 사태는 이보다 몇배나 심각해질것이오.따라서 짐은 브리스타니아의 국왕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고,이 문제가 이제 어느 한왕국이 아닌 대륙 전체의 사활이 달려있다는 생각에 합의를 보고 조속한 사태 해결을 위해 시니어스 공국에 대대적인 원정군을 출정시키기로 결정했소" "원정군?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두왕국 모두 말입니까?" "그렇소.1차목적은 양국으로 밀려오는 어둠을 막는것. 그리고 2차 목적은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격해 사건의 배후를 밝히고 해결하기 위한 양국의 연합 원정군이오.이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하오" 국왕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의 사활이 걸려있다는데 무슨 반대 의견이 있을수 있겠는가? '그렇군. 이게 호명환이 말했던 시스템의 대응 시나리오인가?' 아크가 글로벌엑서스에서 처음 이런상황을 전해들었을때,호명환은 원래 뉴 월드에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몇단계의 대응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NPC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연합 원정군을 파견하는것도 그런 시나리오의 일부이리라. '하지만 만약 원정군이 실패하면?' 사실 아크는 '최악의 경우 서비스가 잠정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업다'는 호명환의 말을 오버라고 생각했다. 고작 버그 몇개와 유저 몇명 때문에 수백만이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의 서비스를중단한다는게 말이나 되는소리인가? 그러나 귀족 회의에 참가해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그냥오버가 아니었다. 원정군이 패배하면 대륙은 시니어스 공국처럼 어둠에 뒤덮인다 .그리고 많은 도시나 마을이 몬스터에게 점령당하리라. 그렇게 되면 유저들 역시 정상적인 게임을 할수 없게 되는것이다. 퀘스트를 받지못하고 마을에서 휴식도 추할수 없다. 게다가 레벨 100의 몬스터 출몰 지역에서 200~300대의 몬스터가 설치면 사냥조차 제대로 할수 없다.당연히 뉴월드 서비스를중단할수밖에 없지않겠는가? '그러면 내가 투자한 아크 상단은?' NPC마을이 몽땅 사라지는게 교역이고 뭐고 할수 있을리가 없다. 결국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면 아크가 15만골드를 투자한 사업은 날아간다는뜻이다. '어둠의 제왕인지 마왕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놔둘것 같으냐!' 그동안 죽을 고생을 해서 겨우 사업 기반을 닦아 놨는데 갑자기 마왕인지 뭔지 때문에 날려먹게 생겼다니? 절대 용납할수 없는일이다. 대륙을 구하기 위해서? 그런건 유명해지고 싶어서 환장한 용사들에게 맡겨놓으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은 자신이지켜야 하지않겠는가? 사업체를 지키기 위해,돈을 벌기위해 어둠의 제왕인지 뭔지의 부활은 기필코 저지해야만 하는것이다.그순간아크의 머릿속에 어둠의 제왕은 최대 최악의 적으로 인식되었다. 그떄 국왕이 다시입을 열었다. "귀족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두가지요.하나는비상계엄령에 대해경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함이고,또 하나는 대륙의 운명을 건 원정대의 사령관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국왕의 말에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논의를 거듭한 끝에 사령관 후보는 3명의 귀족으로 좁혀졌다. 1며은 크라운이라는 귀족으로 오래전 나가란에서 사앋ㅇ한 무공을 쌓았던 노장이다. 다른 1명은 왕실 근위대장을 맡고 있는 바이렌 백작.그리고 마지막 후보는 놀랍게도 아크 역시 잘알고 있는 작센 영주 하베스틴 백작이었다. "작센의 선대 영주는 오래전 대륙 전쟁에서 혁혁한 무공을 세웠던 전쟁 영웅입니다. 그리고 그의 외아들인 하베스틴 백작 역시 선대의 피를이어받아 아직 어이지만, 영지의 수많은 몬스터를 소탕하고,오랫동안 골치를 썩이던 노보크 도적단을 토벌하는등 결코 적지않은 무훈을 세웠습니다. 어차피 이번 사태는 저희 세대에서는 유례가 없는일.그렇다면 차라리 고정관념에 얽매이지않은 젊은 사령관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왕성에 제법세력을 가지고 있는 할벤 후작이 능란한 말솜씨로 설명햇다. '작센 영주도 상당히 인정받는 귀족이었구나' 할벤 후작의말에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하베스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정작 하베스틴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을뿐이었다. "흠,크라운과 바이렌 그리고 하베스틴 경이라.........모두 훌륭한 기사임에는 짐도 믿어 의심치않소.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사라도 사령관을 3명이나 둘수는 없는일.다행히 원정군이 준비를갖출때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으니 그 문제는 이틀뒤에 다시논의해 보도록 하겠소.여러 귀족들도 잘 논의해서 다음 회의까지 마음이 결정을 내려 주시오" 그말을 끝으로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귀족들은 곧바로 몇무리로 나뉘어 회의내용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하베스틴 역시 회의가 끝나자마자 10명의 귀족들에게 둘러싸였다. "영주님" "아,아크.자네도 와있었군. 모험을 떠났다고 들어서 못오는가 싶었는데........." "직전에 연락받고 서둘러왔습니다. 왕국에큰일이 생겼는데 모른척할수 는 없죠" 정확히 말하자면 교역을 금지시키는 비상계엄을 마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비상계엄은 아크가 막을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앞으로 생길 엄청난 손실을 생각하며 낙담하고 있을때,원정군에 대한 문제가 거론된것이다. 그떄 아크는 어렴풋이 원정군이 상단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크가 다가가자 하베스틴이 다른 귀족들의 양해를 구하고 빠져나왔다. "작센 영지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다행히 잘 막아서 다른 영지만큼 피해가 심각하지는 않네" 발빠른 대응. 역시 원정군 사령관 후보로 거론될 자격이 있었다. "그나저나 설마 영주님이 원정군 사령관 후보로 거론될줄은 몰랐습니다" "그런가?" 하베스틴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가볍게 대답했다.그 모습이 아크에게는 꽤나 새삼스럽게 보였다. '나에게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데 말이야' 아크가 처음왔을때의 하베스틴은 불과 열댓살이었다. 그뒤로 2년.NPC는 유저보다 3배나 빠른시간속에서살아가니 6년이 지난셈이다. 당연히 이제 하베스틴은 20세가 넘는 청년을 변해있었다. 그만큼 체구도 건장해져서 아크보다도 덩치가 커졌다. 그러나 어린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는 아크에게 하베스틴은 아직도 어린애처럼 생각도리떄가 더 많았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이런 중대한 원정의 사령관 후보에 올랐다는것은, 왕국에서 그만큼 영주님을 인정하고 있다는말이아닙니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해야 한다는게 슬프군" 하베스틴은 처음 후보로 지명될때처럼 씁쓸한 미소를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후보로 지명된것은 할벤 후작님의 파벌에 문관이 많기 때문이네.나 이외에는이렇다 할 전장 경험이 없으니 좀 불만스러워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 "네? 할벤 후작님의 파벌?" "흠 ,그러고보니 자네는 아직 잘 모르겠군" 하베스틴이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이말했다. "이참에 알아두는것도 좋을거네.사실 슈덴베르크 왕국의 귀족들은 3개의 파벌로 갈라져 있다네.파벌의 수장은 크라운 경을 추천한 사르킨 공작과 바이렌 경을 추천한 달틴후작. 그리고 나를 후보로 추천했던 할벤 후작님이지" 파벌이나 현대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정당이라고 할수 있다. 현대와 다른점은 소속 국회의원이 탈퇴와 가입을 반복하는 정당과 달리,파벌은 한번 들어가면 거의 종신이었다. 아니,대를 이어가며 결속력을 키우는게 보통이다. 귀족들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명예와 신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슈덴베르크 왕국에서는 그런 파벌에 속하지 않은 귀족들은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한다. "세 파벌은 항상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왕궁에 위험이 생기면 파벌을 떠나 단결하는 면도 있네.이번 비상계엄령이나 원정군에 대한 일을 어떤 파벌에서도 반대하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네.하지만 사령관 후보에 관한 문제는 별개지" 새삼스럽지만 이번원정군에는 슈덴베르크 왕국,나아가 대륙의 운명이 걸려있다. 만약 원정군이 실패한다면 모든것이끝장이다. 그러나 만약 원정군이 목적을 달성하고 왕국과 대륙을 구해낸다면 원정군 사령관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영웅이 된다.각 파벌이 서로 다른 후보자를 지명한 이유가 그때문이다.그런 영웅이 자신의 파벌에 속해 있으면 그만큼 정치적 우위를 점할수 있는것이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정치가가 하는짓은 별반 다르지않군' 아크는 한심하다는눈으로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대륙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파벌 싸움이나 하고 있다니? 한때 대한민국이 IMF다 뭐다 해서 힘든 시기에도 지들 밥그릇 챙기겠다고 정당 싸움이나 하던 정치인과 다를바가 없지않은가?뭐,대륙의 위기보다 상단의 위기가 더 걱정인 아크가 할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장식에 불과하네" 후보로 지명됐을때 하베스틴이 쓴웃음을 지은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영주님이 어렸을때부터 보아와서누구보다 잘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크라운이나 바이렌경이 어떤분인지는 모르지만 저 역시 이번일에 영주님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단연코 영주님을 지지하겠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하베스틴이 진심이 담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솔직히 자괴감이 들기는하지만 나 역시 사령관 자리가 탐나네.무엇보다 가문을 빛낼수 있는 기회이니 말이야.물론 쉬운일은 아니겠지.하지만 자네가 내옆에서 도와준다면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네.자네가 나를 잘안다고말했던것처럼,나 역시 자네가 얼마나 훌륭한 전사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물론 영주님이 사령관이 된다면 저 역시 옆에서 목숨을 걸고 도와드리겠습니다" 아크가 기다렸다는듯이 대답했다. 그럴수만 있다면 아크역시 더 바랄게 없을정도다. 이번 원정군은 슈덴베르크 왕국이 총력을 기울여 조직하는 병력이다. 국왕이 직접 명령한 임무이니만큼 이번 원정에는 그에 관련된 각종 퀘스트와 보상이 뒤따르게 되리라. 그런데 친밀도가 최상인 NPC가 그 원정군의 사령관을 맡는다면 ? 당연히 아크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않겠는가?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이대로 손놓고 있으면 아크 상단은 그대로 파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하베스틴이 원정군의 사령관이 되면 이 문제는 타개할 돌파구를 찾을수 있다. 아크는 원정군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크 상단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하베스틴이 사령관이 되어야해!당장 응원단이라도 만들어서.........'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자네의 마음은 고맙지만 원정군 사령관은 크라운경이 될걸세" "네? 왜 그런?" "눈치 못챈건가? 자네는 묘하게 순진한구석이 있군. 사실 오늘 귀족 회의는 일종의 연극이었네.후보자가 3명이나 추천됐지만 이미 모든 귀족들은 크라운 경이 사령관이 될거라는것을 알고있네.이유는 간단하지.크라운경을 지지하는 사르킨 공작님의 세력이 가장 크니까.물론 크라운 경의 경력도 흠잡을데 없고 말이네" 하베스틴의 말에 아크는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세 파벌이 3명의 후보자를 내세운 시점에서 이미 내정자는 결정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국왕이 좀더 논의해서 결정하라고 말하며 회의를 끝낸것은,어차피 결정된 일이니 의견을 하나로 모으라고 달틴 후작이나 할벤 후작에게 강요하는것이다. '젠장!뭐야? 그런거였어?' 아크가 입술을잘근잘근 씹어댔다. 이렇게 되면 상단이고 뭐고 이제 끝장이 아닌가? 그러나 참으로 좁디좁은 속내를 가진 아크와 달리 하베스틴은 보다 넓은 시각으로 크라운 백작이 사령관으로 지목되는 것을 걱정스러워했다. "하지만 좀 걱정스럽군.사르킨 공작은.........음,자네에게 할말은 아니지만.........이미 왕국의 권력을 대부분 장악하고 독주하는 면이 있는데 이번에 휘화의 귀족에게 원정군 사령관자리까지 돌아간다면........." 하베스틴은 떨어진 곳에서 귀족들과 대화를나누는 할벤 후작을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솔직힌 나는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고 할벤 후작님이 달틴 후작님과 함께 힙을 함해 바이렌 경을 밀어줬으면 좋겠네.사르킨 공작님의 독주를제재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바이렌경 역시 사령관을 맡길만한 경력과 실력을 가진기사니까.하지만 쉽지는 않겠지"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사실 아크는 왕성에와본적이 처음이라 파벌이 어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각 파벌이 왕성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대강 짐작할수 있었다. '할벤과 달틴이 한 후보를 밀면 사르킨 공작의 독주를 막을수 있다. 그말에서 유추하면 현재 왕성에서 활동하는 파벌의 세력은 할벤이 30%,달틴이 30%그리고 사르킨 공작이 40%정도를차지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영주님은 할벤이 포기하고 달틴을 밀어줘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반대로 달틴이 후보지명을포기하고 할벤을 밀어도 결과는 마찬가지.하베스틴이 사령관이 될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하베스틴이 말했듯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아니다. 정치 파벌은 눈에 보이는것보다 눈에 보이지않는 이해관계가 더 깊고 복잡하다.각자 다른 후보를 내세운 시점에서 이미 두 파벌은 화합을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제 막 귀족이 된 아크가 수백년이나 지속되어 온 파벌간의 암투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는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알수 없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대로 뭔가 내가 시도해볼만한 방법이 있을거야!' 이제 원정군 사령관이 누가 되느냐에 상단의 운명이 걸렸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크 남작이라고?" 달틴이 거만한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귀족 회의가 있었던 다음 날저녁,아크가 달틴 후작의 저택을 방문한것이다. "자네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가있지.그런데 어쩐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아시겠지만 저는 작위를 받은지 얼마되지않은 신출내기 귀족입니다. 그동안 기회가 없어서 미루고 있었는데,모처럼 셀리브리드에 왔으니 망명높은 귀족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중입니다. 바쁘지않다면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흠...........인사라고?" 달틴이 묘한 눈길로 아크를 요목조목 살펴보았다. 그리고 문득 옆에 서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네.그런데 옆에 계신숙녀분은?" "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 "지나치게 젊어보이지만 속은 적지않은 나이의 아줌마.......아얏!" 아크가 장난스럽게 소개하자 소미가 입술을삐죽이며 옆구리를 꼬집었다. 외모가 어린 소녀로 변하니 행동도 그에맞춰 점점 어리게 변해가는것 같다. 어쨌든 모자가 장난치는 모습에 달틴의 경계심이 야간 풀어지는듯했다. "이방이들이 나이를 먹지않는다는말은 들었지만 자네의 어머니를 보니 새삼 놀랍군.자네처럼 장성한 아들을 뒀는데 고작 열대여섯으로밖에 보이지않으니 말이야.뭔가 숨겨진 비법같은게 존재한다면 전재산을 바치고서라도 배우고 싶을 정도야" "젊어지고 싶으십니까?" "내가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말이네" "부인을 매우 사랑하시나보네요" "부끄러워하지않고 당당하게 나의 전부라고 말할수 있네" 달틴이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소미가 감탄했다는듯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제 보니 후작님은 상당한 로맨티스트였군요.정말 멋져요.대체 어떤분이기에 그렇게까지 후작님의 사랑을 받는지 궁금하네요.언제 한번 뵐 기회가 있을까요?" "그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저는 팔불출이라 손님에게 아내를 자랑하는게 유일한 낙이랍니다" 달틴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하인에게 후작 부인을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잠시후............ '이,이런 날도둑놈 같으니!' 아크는 목구멍끝까지 이런말이 치솟아 올랐다. 달틴은 딱보기에도 대강 50~60.10단위로 나이를 세어야 하는 늙은이였다. 그런데 하인과 함께 나타난 후작 부인은 이제 겨우 17~18정도로밖에 보이지않았다. 어림잡아도 서른에서 마흔살 가까운 나이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하긴 이러니 부인이라면 죽고 못사는거겠지' "그럼 말씀 나누세요.저는 후작부인께 남편에게 사랑받는법을 배우고 있을게요" "먼저 제가 힌트를 드리자면 일단 좋은 남편을 만나는겁니다" 달틴이 소미를 향해 가볍게 윙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틴은 왠지 카사노바 기질이 다분한 늙은이였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문제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는 꽤나 인상이좋은사람이었다. 제법 유머감각도 있고,소미를대하는 태도를 보면 성격도 딱히 모나 보이지않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모습이었다. 달틴은 슈덴베르크 왕국을 주무르는 귀족 파벌의 수장가운데 한사람이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것이다. "할말이 있어서 찾아왔겠지?" 역시나 응접실로 자리를 옮기자 달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이웃집 할아버지에서 정치가로. "좀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이미 자네의 이름을 몇번 들어봤네.뭐,슈덴베르크 왕국에 이방인이 귀족이 된 사례는 처음이니까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인물이지.그리고 자네가 귀족이 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활을했던사람 역시 알고 있지.하베스틴 백작" 달틴은 한손으로 턱을 괴며 혼잣말하듯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도 하베스틴 후작이 나와는 다른 파벌에 속해있다는것 정도는 알고있을텐데?" "하지만 저는아직 파벌이 없습니다" 아크가 가볍게 대답하자 돌연 달틴의 눈빛이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나는 은혜를모르는인간을 가장 혐오하네" 하베스틴에게 그만한 은헤를 입고귀족이 됐으면 당연히 같은 파벌에 가입해야한다. 그런데 다른 파벌의 수장을 찾아와서 파벌이 없다고 말하는 행동이 못마땅하다는뜻이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갤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은헤를 모르는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번 은혜를 입으면 몇배로 갚아줘야 직성이 풀리는성격이죠.후작님을 찾아온건 그 떄문입니다" "대강 알겠군" 달틴이 입끝을 추켜올리며 웃었다. 그 대답으로 아크가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이해했다는 의미였다. "자네의 대답은 솔직히 달갑지않네.하지만 내 파벌에 들어오겠다는 소리를 지껄였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쾌했겠지.음,그래.나쁘지는 않아.얘기정도는 나눠도 되겠지" 달틴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찻잔을 들어올렸다.그리고 차의 향기를 음미하듯 눈을 감으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그래 ,내게 뭘 줄수 있는가?" 파벌의 귀족을 움직여 하베스틴을 밀어주면 어떤 대가를줄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아크는 그런 내용을 말하지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타이밍을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달틴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핵심을 찔렀다.과연이랄까? 어쨌든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아크 역시 말을 빙빙 돌릴 이유가 없었다. "뭘 원하십니까?" "10만골드,지금 당장" 이어지는 달틴의 말에 아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에 하베스틴이 사령관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상단의 운명이 걸려있는 일이었다. 아니,상단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만이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보다 많은 이득을얻을수도 있다. '지난번에 투자받은 사업자금 가운데 남은 20,000골드,그리고 이번에 수송 선단의 교역품을 인양해서 얻은 수익 25,000골드.합이 45,000골드를 다 털어넣어서라도 성사 시켜야한다!' 아크는 그정도의 각오를 하고 달틴을 찾았다. 그런데 달틴은 그 2배가 넘는 돈을 당장 요구한 것이다.당장 아크 상단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 그만한 돈을 구할수 있을리가없다. ".........달라는말이 아니네" 아크가 대답을 못하자 달틴이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자네가 찾아오기전 ,사르킨 공작의 하인이 찾아와 건네준 편지에 그렇게 적혀있다는 말이네.'10만골드,지금당장'돈을 줄테니 자신이 추천한 크라운경에게 힘을 실어주라는뜻이지.어차피 이대로 가면 크라운 경이 원정군 사령관이 될걸세.사르킨 공작이 내게 교섭 해온것은 과반수가 넘는 지지를얻어 세력을 과시하고 싶은거지.다시말해 자네의 상대는고작 그정도의 일로 10만골드를 제시했단 말이네" "..............수락하셨다는말입니까?" "거절했네" 그말에 아크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달틴이 사르킨에게 넘어가면 더 이상 방법이고 뭐고 없는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체 왜 거절했는지 궁금해졌다. "어째서 입니까?" "국정이라는건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네.당장 무엇을 얻고 무엇을 얻지못하느냐는 중요한게 아니지.가볍게 움직여서는 더 많은 것을 얻을기회를잃고,더많은 것을뺴앗길 불운이 찾아오기도 하지.자네처럼 스스로 작위를 손에 넣은 사람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이해할수 있겠지?" 아크는 달틴이 하는 말을 100%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알수 있었다. "........제 부탁을 들어줄수 업다는 말이군요" "그런거지" 달틴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싫지않네.하베스틴 백작은 비록 하벤 후작의 파벌에속한 귀족이지만 귀족의 모범같은청년이지.은혜는 어떻게든 갚지만 자신이 베풀어준 은혜의 보답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니거든.다시말해 자네를 이곳에 보낸 사람은 그가 아니라는 말이야.아마도 그 친구에게 말하지도 않고 혼자만의 생각으로 결정한일이겠지?" "정확하십니다" "은혜를입은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점은 높이사네.자네도,하베스틴도 정말 탐나는 사람들이야.자네와 친분을 쌓아두는것도 나쁘지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이런 문제만 아니라면 필요할때 힘이 돼 주겠네" "할말이 없게 만드는군요" 아크가 씁쓸한 얼굴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설핏 들으면 하베스틴이나 아크를 칭찬하는말처럼 들리지만 ,속뜻은 이제 사령관 후보문제는 거론하지 말라는 단호한 표현이었다. 아크는 할수 없다는듯 한숨을 불어내다가 문득 생각난듯 달틴에게 물었다. "달틴 후작님과 만나고 많이 배웠습니다. 한가지만 더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그렇다면 완고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설득해야 합니까?" "하하하,그걸 나에게 묻는건가? 자네도 정말 보통이 아니군.좋아,말해주지.그런 사람을 설득하려면 말이네.먼저 상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긁어모아야하네.그리고 상대가 절대 거절할수 없는 약점을 공략하는거지.그러고 나서 조건을 제시해야 비로소 '교섭'이라고 할수 있는거네" "상대의 약점을.......?좀 비겁하지않을까요?" 아크가 좀찝찝하다는 표정을 짓자 달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저었다. "전장과 달리 교섭에는 비겁이라는 표현이 없네.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상대를 설득한다. 이게 교섭의 정의라는 말이네" "그럼 만약 누군가가 후작님의 약점을파고들어 설득당할수밖에 업는 상황으로 몰아넣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적어도 비겁하다고 화를내지는 않겠다는 말이군요" 아크의 질문에 달틴은 절대 그럴일이 없다는듯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화? 정말 나를 그 정도까지 궁지에 모는 사람이 있다면 칭찬하겠네" 순간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크가 달틴에게 듣고싶었던 대답이 바로 그거였다. "그럼 차를한잔 더 마시죠" 아크가 빙긋 웃으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달틴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잠시 고개를갸웃거렸다.그러나 잠시후 달틴은 그제야 자신이 피할수 없는 함정에 빠져버렸음을 꺠달았다. 새로운 차가 들어오고 10여분이 지났을무렵이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후작 부인이 뛰어 들어왔다. "여보,부탁이 있어요!" 부인이 다가오자 방금전까지 근엄했던 달틴의 얼굴이 영락없는 팔불출로 변했다. 달틴은 아크가 쳐다보고 있는것도 잊은듯 입을 헤벌쭉하게 벌리며 끄덕였다. "오오오,무엇이오? 당신의 부탁이라면 달이라도 따다 주리다" "하베스틴 백작을 원정군의사령관으로 추천해 주세요!" "허허허,알앗소.추천정도야........읏!뭐,뭐라고?" "하베스틴 백작을 추천해 달라고요.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그,그건........" 달틴이 당혹스럽게 떠듬대다가 움찔하며 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눈동자에는'대체 무슨 짓을한거냐?'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후작 부인은 아직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또한실제로 달틴앞에서 단 한번도 정치에 관련된 얘기를 꺼낸적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그것도 하필이면 아크가 달틴을 방문해서 하베스틴을 사령관으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할때 이런말을 꺼냈다. 이게 우연일리가 없지않은가? '후후후,공격을 꼭 상대에게 하라는 법은없지' 그러나 아크는 달틴의 눈빛을무시하고 먼산을 바라보았다. 그렇다. 후작부인이 갑자기 달틴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이유는 바로 아크,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미때문이었다. 이번 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해 나선 로비스트는 처으부터 아크가 아닌 소미였던것이다. 아크가 응접실에서 달틴을 설득하는듯한 행동은 말하자면 위장.소미에게 후작 부인을 구워삶을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작전이었다. 어떻게 소미가 그 짧은 시간에 후작 부인을구워삶았는가? '달틴 후작, 당신은 나를 너무 물로봣어' 하베스틴을 사령관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사르킨공작이나 달틴후작 ,둘중 한사람을 설득하지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아크가 선택한 대상은 달틴.그러나 아크가 달틴을 설득한 이유는 ,단순히 사르킨 공작이 현상태만 유지해도 추천한 후보를 사령관으로 만들수 있는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사르킨 공작과 달리 달틴 후작에게는 감추지 못하는 약점이있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달틴의 볼을 꼬집어대며 앙탈을 부리는 후작 부인이다.아크가 조사한 정보에 의하면 달틴은 사리가 분명한 존경받는 귀족이었다. 그러나 단한사람,아내와 관련된 일에는 이성을 잃어버리는 팔불출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달틴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작 부인을 공략하는게 100배 더 쉽지않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조사방향을 달틴에서 후작부인으로 급선회시켰다. 그리고 오늘 아침,후작부인이 공주병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하는 행동도 그렇지만 특히 옷이나 장신구,자신의 방을 꾸미는 각종 소품은 일단 한번 꽂히면 수만 골드를 펑펑 뿌려대서라도 기필코 손에 넣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옷과 방을 꾸미는 소품...........'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 소미가 떠올랐다. 소미는그동안 아크상점에 머물며 꾸준히 의상을 만들어팔고 있었다. 그리고 소미가 만들어내는 상품은 뉴 월드에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자수'까지 들어가서 날개 돋친듯이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심지어 몇달 후까지 주문이 밀려있을정도! '공략할건 그거다!' 후작 부인쯤 되면 보석이나 귀금속따위는 얼마든지있을것이다.그러나 그런 후작부인도 소미가 제작하는 옷이나 각종 '자수'는 아직 보지못했으리라. 후작 부인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소재는 없었다. "어머,이방은정말 예쁘네요" "그렇죠 ?이방을 꾸미기 위해 1년이나 걸렸답니다" 소미가 한껏 치장된 방에 관심을 보이자 후작부인이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소미는 이미 아크와 게획했던 대로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좀 아쉽네요" "네? 뭐가요?"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나 탁자,가구,침대는 정말 더할수 없이 훌륭하고 기품이 넘쳐요" "그렇죠.이방을 꾸미는데만 10만골드가 들었는걸요" "하지만............커튼이나 탁자보같은건 좀........" "다 최고급품인데요?" "그건 알고 있어요.하지만 후작 부인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뭐든 가격이 비싸다고 좋은건 아니죠.필요한곳에 딱 맞는 디자인과 색상이 들어가야 진정한 기품이 우러나오잖아요.저도 이런쪽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아,한번 보시겠어요?" 소미는 정말 우연히 생각났다는듯 가방에서 몇종류의 원단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창이나 침대 ,탁자에 종류별로 천을 대보며 말했다. "어때요? 여기에는 이런원단을 사용하는게 훨씬 나아보이지요?" 소미가 보여주는 견본품을 확인한 후작부인은 단숨에 마음을빼앗겼다. 당연한 결과였다. 소미는우연히 견본품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이 견본품은 아크가 수천골드를 들여 구입한 특수소재였다. 그리고 그 위에 놓은 자수의 재료 역시 로코에게 부탁해서 구한 '유니콘의 갈기'나 아크가 직접 각종 던전을 공략하며 모은'황금 거미의 거미줄'처럼 돈을 주고도 구할수 없는 레어 재료를 사용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어디서도 볼수 없는 희귀한 장식품이 탄생한것이다. 그뿐인가? 그걸 소미가 반잠을 아껴가며 재봉하고 각종디자인 관련 서적을 뒤져 화려한 자수까지 새겨넣었다. 현재 후작 부인의 방을 장식한 천제품을 중에시대의 디자인.그러나 소미가'자수'로 새긴 천 제품의 형태와 자수는 현대의 심플하면서도 멋진 디자인! 예쁘고 희귀한 장식품이라면 사족을못쓰는 후작 부인이 넋이나가는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이런건 처음봐요.말해봐요.어디가면 이런걸 살수있죠?" "이건 파는게 아니랍니다" "파는게 아니라니요?" "이건 제가 소일거리 삼아 만든거에요" "정말요? 그럼 제 방에 어울리는 커튼과 베일 같은걸 직접 만들어주실수 없을까요?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요.물론 귀족 부인께 무례인줄은 알지만 부탁할게요" "무례라고 생각하지않아요.게다가 저도 후작부인처럼 방을 꾸미는게 취미가 그 기분을 이해할수 있고요.마침 이렇게 잘 꾸며진 방을 보니 최선을다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천 제품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하지만............" 소미가 난감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냈다. "방을 꾸미는일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다름없으니 아실거에요.정말 그 방에 딱 맞는 디자인의 장식물을 만들려면 그곳에 머물며 작업하는게 최선이죠.그렇게 작업해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면 의미도 없고요.하지만 저는 곧 다른 지방으로 떠나야 하거든요" "그,그럴수가......" 후작 부인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실망했으면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였다. "그냥 저하고 함께 있으면서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언니 동생하면서 즐겁게 지내면 되잖아요.시간 나면 저에게도 자수 놓는 법을 가르쳐 주시고요" "정말 저도 그러고 싶어요.하지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들이 하베스틴 백작님에게 은혜를 입은적이 있어서,그분이 원정군을 맡게되면 참가하기 위해서에요.그런데 오늘 아무래도 힘들것 같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실망해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원정군 사령관요?" 순간 후작 부인의 눈망울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부채를 짝 소리가 나게 펼쳐 입을 가리고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호,뭐에요? 겨우 그런 문제였어요?그런거라면 저에게 맡기세요.제가 우리 여보야에게 말해줄게요.우리 여보야가 마음먹으면 그런건 문제도 아니라고요!대신하베스틴 백작님이 원정군 사령관이 되면 언니도 내 부탁을 들어주는거에요?" 그래서.........후작 부인은 달틴에게 엉겨붙고 있는것이다. "힝,제가 이미 약속했단 말이에요.여보야는 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생각이에요?" "아,아니 그건 그러니까..........국정이고........지금은 손님도 있고........" "몰라요!대답안해 주시면 꽉 죽어버릴 거에요!" "노,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오,알았소.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리다" "또 어려운 말로 얼렁뚱땅 넘기려고!" "알았다고 하지않소.나는 손님과 아직 남은 얘기가 있으니 잠시 나가있으시오" "꼭이에요? 약속했어요?" 후작부인은 달틴의 볼에 키스세례를 퍼붓고는 응접실을나갔다. 볼에 선명한 키스 마크를 새긴 달틴이 식은땀을 닦아내며 아크를 노려보았다. "이놈........감히 내 아내에게 무슨 짓을 한거냐?" "화를 내시려는건 아니겠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되물었다. 달틴이 스스로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음건 그때였다. 처음부터 모든게 다 계획적이었다. 소미를 데리고 와 후작부인과 함께 방으로 들여보낸것도,어차피 안될걸 알면서도 시간을끌면서 버텼던 것도,그리고 이 모든것이 아크의 계략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넘어갈수밖에 없다는것도...... 그럼에도 달틴은 화를 낼수 없었다. 아크의 계략에 속아 넘어간 달틴은 스스로 '교섭은 상대를 옭아맨 뒤에 시작하는것이다. 나를 그렇게 궁지에 몰수 있는 사람이 잇다면 화를 내기는 커녕 칭찬해주겠다'라고 말해버렸기 떄문이다. 만약 여기서 화를 내면 스스로 졸자부라고 인정하는 꼴이 된다. 달틴이 이를 갈아붙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순진한 놈인줄 알았더니 배속에 구렁이가 수십마리는 들어있었군" "그런 말은 종종 듣습니다" "좋다.다시 묻지.내가 얻을수 있는게 뭐냐?" 그 뻔뻔함에 달틴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트리며 물었다. 같은 질문이지만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이전에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니 제대로 협상해 보자는 말이었다. "저의 감사와 존경.그리고 제게 상당한 빚을 만들어 놓는겁니다" "뭐야?" 달틴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돌연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크하하하,자네의 감사와 존경이 10만골드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건가?" "있을겁니다. 틀림없이" "뭐랄까........미워할수 없는녀석이군" 그때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술이 20상승했습니다. [영주 스킬 : 정치력의 숙련도가 100상승했습니다. <정치력은 정치적 힘을 가진 귀족을설득할때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했을떄 상승합니다. 정치력이 상승하면 귀족들 사이에서 보다 강한 발언권을 갖게됩니다. 또한 귀족들을 설득할때 성공 확률을 높여줍니다>] 달틴이 백기를 들어 올렸음을알리는 메시지였다. 웅성웅성. 다음날 ,왕성 회의실에서 혼란이 일어났다. 다시 원정군의 후보를 거론하는자리에서 달틴이 하베스틴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저와 롬벨 백작 이하 20명의 귀족들은 원정군 사령관으로 하베스틴 백작을 추천합니다!" 동시에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귀족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국왕조차 얼떨떨한 감정을감추지 못할정도였다. 어쨌든 왕성의 지분(?)가운데 30%를 쥐고 있는 달틴이 하베스틴에게 기울어지자 결론은 명확해졌다. 이로써 하베스틴은 귀족의 60%의 지지를 받는후보가 된것이다. "국왕 폐하 ,무슨 다른 말씀이라도?" 달틴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국왕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저었다. "아,아니오.좋소.그렇다면 왕성의 오랜 규울에 따라 이번 원정군사령관은 귀족의 과반수 이상의 추천을 받은 하베스틴 경에게 맡기겠소.경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시오" "네?아,네!" 임명하는 국왕도,임명받는 하베스틴도 얼떨떨한 가운데 임명식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로써 하베스틴은 원정군 사령관이 되었다. 동시에 원정군 소집과 지휘를 포함,이번 사태에 관련된 모든일을 결정할 막강한 권한을 위임받았다. 약식 임명식이 끝난직후 아크가 하베스틴을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축하드립니다" "그,글쎼 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간단합니다. 달틴 후작님도 이제야 영주님이야말로 적임자라고 인정한거죠" 아크가 그렇게 말했을때였다. 달틴이 하베스틴의 후견인인 할벤후작과 함께 둘에게 다가왔다. 하베스틴이 곧바로 달틴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달틴 후작님,이번 추천건은........" "됐네.그 문제는 이미 할벤 후작과 상의가 끝났으니까" "네? 그게 무슨.........?" 하베스틴이 시선을 보내자 할벤후작이 쉬쉬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 큰일은 아니네.달틴경은 이번 원정군에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업체에 대한 추천을 받았을뿐이야.나는 허락했고,달틴경은 고마워하며 자네를 추천했다. 그런거지" 할벤 후작의 대답에 하베스틴의 미간이 살짝 찡그러졌다. 말하자면 이번 추천은 뒷거래 결과,강직한 하베스틴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것이다. "할벤 후작님" 하베스틴이 무거운 표정으로 불렀을때였다. 할벤이 손을 흔들며 말을이었다. "더 들어보게.달틴경이 이번에 추천한 담당 업체의 대표는 바로 아크경이라네" "네? 아크? 아크경?" 하베스틴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아크가 하베스틴을원정군 사령관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가 그때문이었다. 현재 슈덴베르크 왕국은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 원칙적으로 교역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교역을할수 없는 아크 상단은 파산 지경에 몰리게 되는것이다. 그러나 단하나,교역을 할수 잇는방법이 있다. 바로 군사물자를 보급하는 군상이 되는방법이다. 슈덴베르크 왕국이 총력을 기울이는원정군이라면 엄청난규모임은 말할것도 없다. 그런 엄청난 규모의 원정군이 사용하는 각종 소모품과 장비품을 독점거래할수 있다면? 엄청난 수입을 손에 넣을수 잇음은 굳이 말할필요도 없다. 그리고 군상을 지목하는 권한은 원정군 사령관에게 있다. 때문에 아크는 일단 하베스틴을 사령관으로 만들어놓고 독점 계약권을따내려고 한것이다. 그러나 막 달틴 후작을 설득해 하베스틴을 사령관으로 확정지엇을때,아크는 한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하베스틴의 성격이다. '하베스틴은 강직한 사람이다. 만약 혼자만의 일이라면 당연히 나에게 독점계약권을 줄거야.하지만 왕국의 존망과 관련된 일이라면 상항이다르다. 설사 내가 다른 군상 후보보다 더낮은 가격을 제시해도 나와 개인적인 관계가 마음에 걸려 쉽게 승낙하지 못할거야' 사실 아크는 다른 군상 후보와 가격 경쟁을해도 이길자신이있었다.아크에게는 스탄달의 바란족,지저세계의 너구리족이라는 장인들이 있는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공짜로 물건을만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아크라도 정가의 20~30%의 가격을 깎을수 잇을뿐이었다. 그러나 군수물자의 독점거래권을 따낸뒤에 '장기적으로 엄청난 물량'을 주문하면 30~40%정도로 가격을깎을수있다. 다른 군상보다 싸게 군수물자를 공급할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비싸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강직한 하베스틴은 오히려 아크와의 개인적 친분때문에 허락하지 않을가능성이 많다. 물론 확정됐다고 생각했던 사르킨 공작 측 역시 이미 상인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과 모종의 협약을 맺은 상황이라 크라운경이 사령관이 되면 바늘하나 들어간 틈이없다. '하지만 하베스틴이 사령관이 돼도 군상이 되지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달틴을 이용하기로결심했다.방금전에 들었듯이 달틴이 아크 상단을 추천하게 만드는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 하베스틴은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때문에 아크상단을 꺼릴 이유가 없어진다. 어찌됐든 형식상으로는 달틴의 추천을받은 업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양심에 거리낄게 없어지면 하베스틴은 당연히 아크 상단을 군상으로 지정해 주리라. 이쯤되니 하베스틴도 대강의 상황을 눈치챘다. 자신이 사령관이 된것은 아크가 뒤에서 움직인 결과라는것을 말이다.하베스틴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크경,내일까지 절차에 필요한 상단 자료를 작성해서 보고해주게" "여기있습니다" 허락이 떨어지자 아크가 잽싸게 두툼한 서류를 건네주었다. 지저세계의 너구리족 마을 수십군데.스탄달의 바란족 부락 수십군데에서 각종 군수물자를 생산하다. 그리고 시르바나의 대륙상회와 스탄달 교역소,아크 상점 등의 결합체 아크상단을 이용해 군수물자를 유통,보급한다는 계획서였다. 거기에 필수군자물자의 가격표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류를 건네주자 하베스틴이 할수 없다는 듯이 웃어 버렸다. "자네는 정말 당해 낼수가없군" "이런 용의주도함을 십분 발휘해 원정군을 물심양면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천군만마를 얻은기분이군.여러가지 의미에서" 잠시후 하베스틴은 정식으로 아크에게 군수물자 독점 거래권을 발급해주었다. 슈덴베르트 왕실의 계약서 <계약서 :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 백작=아크 상단 대표아크> 시니어스 공국으로 떠나는 원정군에 필요한 모든 군수물자의 보급을 아크에게 위임한다. "됐다,해냈다!" 황금빛 계약서를움켜쥔 아크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아크는 당당하게 원정군의 군수물자를 독점공급하는복합 사업체의 사장이 된것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불과 며칠전까지만해도 계엄령에 의해 교역이 금지되어 아크 상단은 창단과 동시에 파산의 위기에몰렸다. 그러나 아크는 각종 권모술수를 십분 발휘해 오히려 이 위기를 아크상단을 한단계 성장시킬 기회로 만든것이다.이대로 원정군이 목표를 달성하면 슈덴베르크 왕국내에서 아크 상단을 독보적인 존재가 되리라. "이제 어둠의 제왕인지 뭔지만 박살내면 나는 벼락부자가 되는거야!" 그리고 다음날, 슈덴베르크 왕국,아니 대륙 가지에 공고가 붙기 시작했다. 성전聖戰을 위한 원정군! 현재 대륙은 시니어스 공국을습격한 정체불명의 악마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악마들이 더 힘을 얻으면 대륙은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할것입니다. 이에 국왕 폐하는 슈덴베르크 왕국의 모든 힘을 동원해 악마와 싸울것을 천명하고,브리스타니아의 동료들과 함께 시니어스 해방을 위한 원정군을 일으켰습니다. ........정의를 숭상하는 용사들이여! 위대한 성전에 참가해 정의를 수호하는 용사가 되십시오! 원정에 참가하는 용사들은 공적에 따라 특별한 보상이 지급될것입니다. '지원자 수시 모집' 그렇게 뉴 월드의 운명이 걸려있는 성전이 선포되었다. TO BE CONTINUED [∥텍스트∥]_소설_자료실。 http://cafe.daum.net/JustABC BY RAYAN 수고해주신분들 : 조사바람 이삭이 향기 오징어 잡텝은위대하다 ohyeah critic 이노센트 ARK 21 아크21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 소설 <차례> ACT 1 성전과 금전 ACT 2 파비온 요새 ACT 3 스머글 패스 ACT 4 아란 부활하다 ACT 5 발명가 워머 ACT 6 아란을 잡아라! ACT 7 협곡 탈출 작전 ACT 8 데스 로드 ACT 9 샹그리아 ACT1 성전과 금전 웅성웅성, 와글와글, 온 거리와 광장, 거리가 들썩였다. 대륙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유저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장소를 불문하고 대륙 전체가 들쑤셔 놓은 것처럼 들썩였다. "빌어먹을, 정말 욕 나오게 하네. 지금 장난해?" "맞아, 이건 정말 말도 안 돼.마을 주변에서 레벨 200짜리 몬스터 사냥하는데 갑자기 레벨 300대 정예 몬스터가 난입하면 어쩌라는 거야? 한 방에 피가 50%나 빠져 버렸다고!" "그나마 너는 사냥이라도 하다가 죽었지. 나는 마을을 나가자마자 죽었거든?" "나도 마을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몬스터 떼에게 벌써 세번이나 죽었어.덕분에 스탯 18에 수리비가 50골드나 날아갔어. 사흘 동안 딱 20분밖에 게임을 못 했는데도 말이야." "차라리 몇 번 죽는게 낫지. 난 3일 동안 죽어라 노가다 해서 퀘스트를 마쳤는데도 NPC가 죽어서 보고할 수도 없어. 젠장, 좋은 방어구를 주는 퀘스트라고 듣고 일주일 동안 밤을 새웠는데 완전 삽질이잖아. 무슨 이런 뭐 같은 경우가 다 있냐고!" 거리에 모인 유저들이 입에 거품을 무고 떠들어 댔다. 새삼스럽지만 이들을 이렇게 흥분하게 만드는 사태의 원인은 '검은 오벨리스크'의 출현이었다. 이 정체불명의 물체는 뉴 월드의 NPC들에게 불아노가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오벨리스크가 영향을 미친 것은 NPC들만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NPC보다 유저들이 더욱 난감한 상황에 처해 버렸다. 아무리 가상현실이고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도, 일단 게임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상 유저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적을 상대하며 순차적으로 레벨을 올려 갈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초보 유저가 막 게임을 시작해서 옆구리에 녹슨 단검 한 자루 탁 차고 마을을 나왔는데, 레벨 999 보스 몬스터가 '후후후, 애송이로군. 하지만 언젠가 강해져서 날 죽이려 하겠지? 이 몸은 새싹 따위는 미리 밟아 두자는 주의다!"라며 달려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벨리스크의 출현으로 뉴 월드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초보 마을 근처에서 레벨 100대의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지를 않나, 유저나 NPC는 물론 같은 몬스터들까지 공격하며 마을이나 사냥터를 닥치는 대로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몇몇 마을은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해 폐허가 돼버리기도 했다. 사태가 어느정도 진정된 것은 각 지역의 영주들이 정규병을 움직인 뒤였다. 각지로 흩어진 정규병들은 마을을 지키는 한편, 근접한 곳에서 발생한 오벨리스크를 파괴했다. 덕분에 위급한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유저들의 문제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마을 근처의 오벨리스크를 파괴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대지 깊숙이 침투한 저주의 힘을 오벨리스크를 부활시켰고, 이형의 몬스터들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NPC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지의 수호. NPC들의 생활공간이다. 다시 말해 유저들의 생활공간인 사녕터가 아닌 것이다. 오벨리스크로 인해 나타나는 이형의 몬스터들은 본래 그 지역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들보다 몇 배나 강했다. 덕분에 유저들은 정말 마을을 나가자마자 레벨 999 보스 몬스터를 만나는 듯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저들의 불만 폭주는 당연한 겨로가였다. 그리고 유저들의 불만은 자연스럭베 관리자, 글로벌엑서스에게 향했다. "대체 영자(운영자)는 뭐하는 거야?" "죽어라 아르바이트해서 정액 끊고 들어왔는데 며칠 동안 죽기만 했잖아!" "아예 작정하고 우리를 엿 먹이려 한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어!" "대체 게임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항의 메일을 보내도 답장조차 없잖아." "이건 영자의 횡포다!" "이따위로 운영할 거면 다 때려치워라!" "이럴 게 아니라 차라리 글로벌엑서스를 고발해 버리자!" 고객 상담실이나 뉴 월드 홈페이지가 마비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항의할 수 있는 라인이 막혀 버리자 유저들의 불만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리고 급기야 불만이 폭발한 유저들이 성난 폭도(?)로 돌변하기 직전이었다. 유저들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창이 떠올랐다. 『성전을 위한 원정군!(이벤트 퀘스트) 갑자기 대륙 전역에서 발생한 수수께끼의 검은 오벨리스크, 아직 정체 가 해명되지 않은 이형의 몬스터 출현. 시니어스 공국을 뒤덮은 검은 안개와 어둠의 존재 등...... 현재 대륙에서는 불길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미 많은 선지자들은 일 련의 사건들이 시작에 불과할 뿐이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미래가 대륙을 뒤덮을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각계각층의 존경 받는 지도자는 진리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구격ㅇ과 종족을 초월한, 대륙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구원의 메 시지입니다. 강철의 혼을 담은 용사들이여, 진리를 깨달은 현자들이여, 신의 뜻을 전하는 성자들이여! 대륙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성전에 참가하십시오! <난이도:++S 퀘스터 제한 : 레벨 250 이상> 』 "성전을 위한 원정군?" 일순 대륙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유저들이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이었다. "어이, TV 좀 켜봐!" "글로벌엑서스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공식 발표를 한대!"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글로벌엑서스의 기자회견에 유저들의 눈과 기가 쏠렸다. 그렇게 사태 발발 닷새 만에 기획실장 하명우가 TV에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많은 유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명우가 능훅한 말솜씨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짜인 시나리오를 진행시키듯 진행자가 질문했다. "뉴 월드를 즐기시는 유저들은 이번 사태가 일어나고 닷새가 지나도록 이렇다 할 해명이 없었던 점을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우선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 점 역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희가 해명해 드리지 못한 것은 결코 유저들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유저들에게 더욱 흥미진진한 게임을 제공해 드리기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흥미진진한 게임을 위한 배려라면.....?" "사실 이번 사태는 본사가 오랫동안 계획해 오던 극비 프로젝트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뉴 월드를 서비스한 지도 거의 2년, 그동안 뉴 월드를 사랑해 주신 유저들에게 뭔가 새로운 이벤트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 취지에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이번 이벤트, 유저들이 NPC와 힘을 합쳐 대륙을 구한다는 퀘스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이벤트가 유저들이 더욱 뉴 월드를 사랑하게 될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단순히 NPC의 고민을 듣고 해결하는 퀘스트에서, 유저들이 직접 고난을 겪고 NPC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의 퀘스트로 진화한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하명우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는 없지만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유저들은 이미 대강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이번 사태는 대륙 전체의 사활이 걸려 있는 만큼 보상도 다른 퀘스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이벤트는 성원해 주신 유저들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계획된 것인 만큼, 게임 내의 보상과는 별도로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전례가 없는 상품을 준비해 뒀습니다." "그거 흥미가 도는데요? 대체 어떤 상품입니까?" "먼저 이번 퀘스트는 크게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두 왕국에서 소집한 원정군이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군하는 방식으로 진해오디는데요. 두 원정군에서 공적 순위 1위를 차지한 두 분의 유저에게는 각각 상금 5억을 지급해 드릴 생각입니다." "5, 5억요?" "네, 그리고 2위의 두 분에게는 각각 3억씩, 3위는 1억의 상금이 지급됩니다. 또한 4위부터 100위의 유저들에게는 2,000만원의 상금이 지급되며, 101위부터 200위까지의 유저들에게는 뉴 월드 1년 무료 이용권을 지급해 드립니다. 1,000위 내의 유저들에게도 저희가 줁비한 소정의 기념품을 보내 드릴 예정입니다. 총상금 100억 규모의 이벤트죠."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이벤트로군요. 게임 내에서도 공적 순위로 퀘스트 보상을 받으니 공적 1위가 되면 상상 이상의 보상을 받게 되겠군요. 하지만 그런 방식이라면 지금까지 더 많은 레벨을 올린 유저가 너무 유리해지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레벨이 높은 유저가 더 많은 공적을 얻을 기회가 생길 테니 말입니다." "물론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번 이벤트의 대상은 공적 순위와 상관없이 선발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적 순위와 상관없이....?" "실은 뉴 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어떤' 것의 영향입니다. 그 '어떤' 것이야말로 이번 이벤트의 핵심이죠. 이번 이벤트의 대상은 그 '어떤' 것을 손에 넣는 유저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대상에게는 상금 10억과 차후 글로벌엑서스 명예 고문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될 겁니다. 그것을 어떤 몬스터가 가지고 있을지, 혹은 적대 세력으로 가장한 유저가 가지고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100% 운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굉장하군요. 하지만 이번 이벤트는 레벨 250 이상의 유저들만 참가할 수 있지 않습니까? 뉴 월드가 서비스를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지만 레벨 250을 넘은 유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직 250레벨이 안 된 유저들은 그동안 게임도 제대로 못하고, 이벤트에도 참가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요?" "다른 온라인 게임에서는 신규 유저 확보를 위한 이벤트를 많이 열지만, 저희 생각은 좀 다릅니다. 신규 유저도 중요하지만 그 분들을 위해 지금까지 뉴 월드를 아껴주신 분들을 도외시 하는 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요즘 온라인 게임의 마케팅과는 좀 다르군요."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신규 유저를 생각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레벨 250 이하의 유저들은 게임에 많은 지장이 있을 겁니다. 때문에 이번 이벤트가 종료되면 레벨 250 이하 유저들을 위한 새로운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게 글로벌엑서스가 생각해 낸 대응책이었다. 사실 글로벌엑서스는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번 사태에 전전긍긍했다. 사태 해결을 위한 수많은 프로그래머나 응시자를 동원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부적인 문제. 외부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문제였다. 때문에 유저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왔음에도 이렇다할 해명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때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동시에 하명우는 맹렬하게 머리를 굴려 이번에 일어난 모든 상황을 이벤트 퀘스트에 끼워 맞췄다. 이번 사태는 모두 유저를 위한 프로젝트의 과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덧붙여 자연스럽게 배후에 숨겨져 있을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을 기회로 만들었다. 어쨌든 하명우의 계획은 성공했다. 속사정을 아 수 없는 유저들은 하명우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린 것이다. "그렇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처음부터 이벤트를 시작하기 위해 분위기를 만든 거였어." "공적 1위면 퀘스트 보상과 별도로 상금 5억!" "공적을 못먹어도 숨겨진 뭔가만 찾아내면 10억이다!" 그렇게 게임에서 현실에서 장비품과 현찰이 걸린 이벤트가 동시에 발동하자 유저들은 눈이 뒤집혀 원정군으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퀘스트가 발동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슈덴베르크 왕국에서만 4만의 유저가 원정군에 지원했다. 거기에 슈덴베르크 왕국 기사단과 정예병 2만! 순식간에 도합 6만의 원정군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눈동자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히죽대는 사내는 바로 다름 아닌 아크였다. 아크는 이벤트 퀘스트가 발동하기 전부터 원정군에 대해 알고 있었다. 또한 100%는 아니지만 귀족 회의에 참가한 덕에 이벤트 퀘스트의 보상 내역도 대강은 알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S급 퀘스트라 보상이 장난이 아니었다. 공적 순위로 중상위권에 안에만 들어가도 레어 장비품에 칭호, 상위권에 진입하면 유니크 장비품에 작위까지 주어지는 최상위 퀘스트인 것이다. 그뿐인가? 잘만 하면 게임 내에서 받는 보상과 별도로 현실에서 상금을 받을 기되도 있었다. 평소 아크라면 다른 유저드로가 마찬가지, 아니 더 심하게 뒤집혀 뛰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지금 아크에게는 이벤트 퀘스트의 보상이나, 글로벌엑서스에서 내건 상금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이미 아크는 이번 원정에서 얻어 낼 수 있는 가장 큰 이권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제 원정군은 유저든 NPC든 모두 내 고객이다!' 그렇다.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확보한 덕분에 아크는 원정군 병사 모두를 단골(?) 손님으로 확보한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6만! '두당 5골드씩만 남길 수 있어도 30만 골드다!' 30만 골드! 현찰로 계산하면 무려 30억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그것도 수만 명 가운데 1등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불분명한 보상 따위가 아니라,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이용해서 얻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이득이었다. 그러니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퀘스트 보상이나 이벤트 상금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지 않은가? '드디어 내 인생에도 진정한 대박이 터지겠구나! 30억...... 아니, 딱 잘라 15억이라도 상관없다. 정말 그만한 돈이 수중에 들어온다면...... 당장이라도 집을 사고, 차도 사고, 남는 돈을 정기 예금에 넣어 두면 이자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을 거야!' 아크는 마치 로또에 맞은 사람처럼 황홀한 장밋빛 미래에 빠져들었다. '우하하하, 역시 전쟁은 돈이 된다! 전쟁 만세!'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 살짝 맛이 간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도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아크가 군수물자 독점권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베스틴 백작의 덕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두 파벌의 수장인 할벤 후작과 달틴 후작의 담합 때문이었다. 덕분에 황성의 60%에 달하는 귀족들은 아크를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40%에 달하는 사르킨 공작 파벌은 달랐다. 어차피 사령관 자리는 이미 국왕이 하베스틴을 선택했다. 때문에 사르킨 공작도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군수물자 독점거래권까지 하베스틴의 수하-사르킨 공작이 생각하기에-인 아크에게 돌아가자 파벌 귀족들을 동원해서 자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상인도 아닌 아크에게 군수물자 독점거래 같은 큰일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뭐, 그래도 전권을 위임받은 원정군 사령관이 결정한 일이고, 할벤이나 달틴 후작이 뒤를 받쳐 주고 있으니 별문제는 생기지 않겠지만......' 사르킨 공작의 세력을 생각하면 역시 신경이 쓰이지 않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독점거래권은 한두 푼이 걸린 일이 아니다. 잘만 하면 몇 달 안에 수십만 골드를 벌어들일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 만의 하나라도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 때문에 아크는 사르킨 공작 파벌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우려했던 문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아크 경." 원정군의 병력 편성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고 있을 무렵, 하베스틴 백작이 아크를 찾아왔다. "갑자기 지원자가 몰려들어 제대로 얘기할 기회가 없었군. 자네 쪽 일은 잘되고 있나? 뭐, 자네라면 알아서 잘 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내 일? 내가 뭔가 할 일이 있나? 그냥 이런저런 준비를 잘하고 있느냐고 묻는 건가?' 지레짐작한 아크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별 문제 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원정에 나갈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하베스틴이 역시 믿음직스럽다는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 역시 군수물자 보급을 맡는 게 처음이니 내가 챙겨야 했는데...... 좀 창피한 말이지만 나 역시 이렇게 큰 규모의 병력을 지휘해 보는 건 처음이라 모병이나 병력 편성 이 외의 일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그래도 자네가 잘 준비하고 있었다니 마음이 놓이는군." 거기까지 말한 하베스틴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끼리 말이지만 원정군의 군수물자 관리와 보급을 맡은 나딘 자작은 깐깐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네. 또 사르킨 공작의 입김이 닿아 있는 인물이기도 하고 말이야." "사르킨 공작요?" 아크의 눈동자에 살짝 경계심이 어렸다. 그러자 하베스틴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덧붙였다. "하지만 나딘 경은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네. 자네가 주어진 일만 문제없이 처리한다면 그리 나쁘게 대하지는 않을거야. 마침 군수물자 보급 문제로 나딘 경이 자네를 찾고 있다니 찾아가 앞으로의 일을 상의해 보게." "......알겠습니다." 아크는 하베스틴과 헤어지며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하베스틴의 말에서 뭔가 놓친 듯한 기분과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이상하게도 불길한 예감은 높은 확률로 들어맞았다. "자네가 이번 원정군의 군수물자를 독점거래하기로 했다는 아크 경인가?" 집무실로 들어서자 꼬장꼬장한 노인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어 왔다. 딱 보기에도 깐깐하기 짝이 없을 듯한 노인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은 앞으로 거래를, 그것도 수십만 골드가 걸려 있는 거래를 해야 할 노인이다. 아크는 영업용 미소를 100% 전개하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네, 제가 아크입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 "인사는 됐고, 이거나 받게." 나딘이 쌀쌀맞게 말을 끊으며 두루마리를 던져 주었다. '뭐야? 이 두루마리는...... 헉!' 두루마리를 펼치던 아크의 입이 저절로 쩍 벌어졌다. 『원정군 군수물자 발주서(발주자 : 나딘 자작) 피혁 : 4,000장 군량 : 100톤 강철주괴 : 200톤 연철주괴 : 200톤 목재 : 200톤...... 』 두루마리는 군수물자의 발주서였다. 아크가 군수물자를 독점 계약하기로 했으니 발주서를 받는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수량! 원정군의 규모가 6만 명이나 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발주서에 적혀 있는 수량은 아크의 예상을 가뿐히 넘어 버렸다. "드었는지 모르겠지만 원정군이 예상보다 빨리 결성되어 출정 일자가 사흘 뒤로 앞당겨졌네. 그때끼자 발주서에 적힌 물자를 차질없이 납품해 주게." 나딘은 이제 나가 보라는 듯이 손짓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뭔가?" "이 정도 물량을 사흘 안에 공급하라는 건 좀......"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그러자 나딘이 신경질적으로 서류를 덮고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못 하겠다는 건가?" "아니, 못 하겠다기보다는......" "좋아, 까놓고 얘기하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네. 자네가 어떻게 하베스틴 백작을 구워삶아 낙하산을 타고 독점거래권을 손에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그런 인간들이 싫어. 하지만 내가 싫은 거소가 자네의 능력은 별개의 문제지. 자네가 그만한 일을 맡을 능력이 있다면 나 역시 자네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나딘이 눈매를 좁히며 쏘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가지. 그렇다면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능력은 뭔가? 간단하지. 언제 어느 때라도 부대에서 필요로 하는 군수물자를 보급한다. 단지 그 뿐이네. 단지 그것만으로 자네는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거야. 다시 말해 자네가 이득을 얻으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준비해 둬야 한다는 뜻이네. 내 입장에서는 그조차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득을 얻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네만?" 나딘의 말은 정론이다. 물론 그 정론의 뒤에는 약간(?)의 음해 공작도 숨어 있었다. 애초에 원정군의 규모를 6만가량 예상했다면 이미 다딘은 원정군에 대한 안건이 나왔을 때부터 출정 시기에 필요한 군수 물자의 양을 예상했으리라. 그럼에도 나딘은 출정이 사흘 후로 결정된 지금에 와서야 발주했다. 이것은 하베스틴의 연줄을 이용해 낙하신을 타고 독점거래권을 따낸 아크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만약 아크가 발주서에 적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스스로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다. 나딘은 작정하고 아크를 엿 먹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나딘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딘의 의도가 어쨌든 이번 일은 명백하게 아크의 실수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크도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얻은 뒤로 나름대로 물량 확보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뒤로 로또의 꿈에 젖어 버리는 바람에 두 가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첫째는 설마 6만이나 되는 원정군이 이렇게 빨리 모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둘째는 원래 존재하던 부대와 이제 막 결정된 원정군의 초기 필요 물자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말하자면 군수물자 보급을 쌀독에 쌀이 떨어져 가면 빈 만큼만 더 보충하는 것으로 생각했지, 처음부터 빈 쌀독에 쌀을 채우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순차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계획만 세웠을 뿐, 막 결성된 원정군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군수물자 확보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워 두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뭐라고 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경험 부족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경험 부족을 인정하면 그 날로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은 끝장이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 물량을 확보하겠습니다." 결국 아크는 그렇게 말하고 나딘의 집무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첫 발주부터 물량을 대지 못하면 군상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되면 군상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다른 상단과 함께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아. 아마 나딘의 목적도 그런 거겠지. 하지만 이런 억지스러운 요구를 받아 내면 더 이상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에 대해서는 앞으로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그래, 이건 위기리기보다는 기회일지도 몰라!' 아크는 일단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아크는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손에 넣었을 당시 앞으로 필요한 군수물자를 공급할 하청 업자들과의 계약을 체결해 두었다. 무기와 방어구, 각종 구조물에 필요한 자재와 공구 일체는 장님 부족인 지저 세계의 너구리족에게, 그리고 군량이나 각종 소모품 따위는 낙농업 부족인 스탄달의 바란족에게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아크가 이 두 곳에과 계약한 이유는 다른 곳보다 싼 가격에 물건을 구입해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과, 두 곳 모두 세계수가 있는 곳이라 '신성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항상 생산지의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두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뮬량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한다!' 아크는 곧바로 '신성한 나뭇가지'를 이용해 지저 세계와 스탄달에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연재 비축되어 있는 물량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양쪽에 비축된 모든 물량을 끌어모아도 발주서에 적힌 물량의 60% 수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사흘 동안 생산 라인을 풀가동 시켜도 간신히 70%를 채울 수 있을 뿐이었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정말 미치겠군, 앞으로 열흘 정도만 시간이 있었어도 어떻게든 필요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군수물자 보급을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아크는 결국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역시 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나?" 사실 아크는 처음부터 이 문제으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현재 아크는 아크 상단의 사업 자금 가운데 남은 20,000골드, 상인 길드의 수송 선단의 교역품을 슬쩍해서 착복한 돈 25,000골드, 45,000골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는 턱도 없지만, 또다시 연합원들에게 모금하면 그럭저럭 각지의 상점에서 부족한 물량을 사들여 나머지 30%를 채워 넣을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아크는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독점거래권을 따내기 위해 모든 품목을 정가의 70%로 공급하기로 계약했는데......" ......바로 이게 문제였다. 당시 아크는 뭣보다 독점거래권을 손에 넣는게 최우선 과제였다. 그 외의 문제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노리던 것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원정군에 대한 의논이 한창일 때 몇몇 귀족이 운영하는 상단이 독점거래권을 노리고 사르킨이나 달틴, 할벤에게 달라붙어 로비를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아크 역시 적어도 그들과 비슷한 가격대로 공급하지 않고서는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산출한 가격이 정가의 70%였다. "내가 너구리족이나 바란족의 생산품을 전량 구매한다면 품목별로 30%~40%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니 원정군에게 일률적으로 30% 저렴하게 물자를 공급한다고 햇도 전체적으로는 5%의 이윤이 남는다. 거래량이 상당한 만큼 5%의 이윤이라도 상당한 수준일 거야." 아크는 그런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100%의 가격으로 구입해서 70%의 가격으로 납품해야 한다. 전체 납품 물랴의 30%에 대해서는 30%의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70%의 물량에서 평군 5%의 이윤을 얻고 30%의 물량에서 30%의 손실을 본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는 전체 판매 가격의 5.5%가량은 적자라는 뜻이다. "이번에 나딘이 발주한 군수물자의 총 가격은 70만 골드, 거기서 5.5%를 손해 본다면 결국 38,500골드가 그냥 날아간다는 뜻이잖아?" 계산기를 두들겨 본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38,500골드! 제대로 장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엄청난 돈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앞으로 군수물자를 독점거래해도 그만한 손실을 벌충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전쟁이 길어져서 군수물자가 많이 필요해진다면 다행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전쟁이 예상보다 빨리 끝나 버리면 손실액을 벌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차피 스탄달과 지저 세계에서 물량을 끌어모았으니 대금을 지급해야 해. 결국 이대로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잃어도 수만 골드가 날아간다. 이래 거덜나나 저래 거덜나나 마찬가지. 그럴 바에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 보는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냥 앉은 자리에서 40,000골드에 가까운 돈을 날려야 한다니......!"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아크 님!" 갑자기 문이 열리며 시드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뭐야? 지금 바쁜거 안 보여?"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날카로웠던 아크가 버럭 짜증을 부렸다. 그러자 시드가 기가 죽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급한 문제라서......" "뭔데?" "저희가 이전에 바다에서 인양했던 상인 길드의 교역품 있잖아요. 그걸 다 처분하기 전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어서 루벤트항의 임대 창고에 맡겨 놨던 건 알고 계시죠?" "그게 뭐?" "그 임대 창고의 주인에게서 방금 전에 연락이 왔어요. 창고 임대료를 50% 올려 달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40,000골드나 손해를 보게 돼서 열이 뻗쳐 죽을 지경인데 엉뚱한 곳에서 또 돈 예기가 나오자 화가 치밀었다. 시드가 기겁하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아시다시피 요즘 비상계엄이라 교역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언제 계엄이 풀릴지 몰라 상점에서도 물건을 매입하지 않아요. 밖에서 사냥도 편하게 못하니 유저들에게도 팔리지 않고. 그래서 물건을 창고에 맡기려는 상인이 부쩍 늘어서 임대료를 올려야 한다고......" "이런 망할! 창고를 이용해 줘서 고맙다고 절까지 하던 놈이 이제 배짱 장사라는 거야? 하여간 이놈이든 저놈이든 할 것 없이 정말......" 버럭버럭 소리치던 아크가 돌연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 교역이 금지돼서 창고에 물건이 넘쳐 난다고?' 갑자기 그 말이 머릿속에 팍 꽂혀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잘했더, 시드! 따라와!" "네? 네?" 시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크에게 끌려 나갔다. '후후후, 역시 예상대로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주점 안을 둘러보았다. 아크가 왕성에서 날아온 곳은 상인들의 도시 기란의 '골드 마운틴'이라는 주점이었다. 골드 마운틴은 음식이 싸고 맛있다고 소문난 곳이라 평소에도 손님이 많았다. 그러나 요 며칠 동안은 그저 손님이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좌석이라는 좌석은 꽉 들어차서 아예 서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주점에서 떠드는 손님들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상업 활동을 금지시키면 대체 상인들은 뭘 하라는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법이 어디 있어?" 삼삼오오 모인 상인들이 술잔을 들이키며 분개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분개하는 이유는 바로 얼마 전 발표된 비상계엄령 때문이었다. 『 슈덴베르크 국왕의 비상계엄령!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슈덴베르크 국왕과 귀족들은 왕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 니다. 이후 이번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법을 찾아낼 때 까지 슈덴베르크 왕국의 무기한 비상계엄 상황에 돌입합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모든 관문이 잠정적으로 폐쇄됩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모든 퀘스트와 미션, 의뢰의 진행이 중지됩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모든 상업 활동 역시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나가란 지역의 전투 행위도 금지됩니다.』 내용은 귀족 회의에서 결정된 바와 같이 NPC와 유저들의 모든 대외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이었다. 뭐, 목숨이 하나뿐인 NPC들은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지만, 목숨이 무한대에 가까운 유저들의 불만은 상당했다. 비상계엄령과 함께 발효된 조항들 덕분에 게임에 접속해도 딱히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비상계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상인이었다. 관문을 폐쇄한다기는 했지만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사냥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레벨이 좀 된다 싶으면 원정군에 참가해도 그많이다. 그러나 상업 활동이 금지된 상황에서 상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시 말해 비상계엄과 함께 수십 만 뉴 월드의 상인들은 단숨에 백수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적지 않은 여비를 써 가며 생산지까지 가서 물건을 구해 왔는데 팔 수가 없다니......" "거리에서도 하루 종일 장사해 봐야 겨우 포션 하나 팔기도 힘들어." "나도 오늘 주문서 한 장 팔아서 겨울 술값 벌었어." 상인들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웅얼거렸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산지에서 물건을 사다가 상인 길드나 일반 상점에 팔아 이득을 남긴다. 그런데 비상계엄으로 상점에서 물건을 매입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경우, 보통은 같은 유저에게 물건을 파는 방법이 있지만, 검은 오벨리스크의 영향으로 전사들조차 제대로 사냥을 나가지 못하니 장비품이나 소모품 따위가 팔릴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제법 레벨이 높은 전사들은 몽땅 원정군에 들어가 버렸으니 굳이 제 돈으로 소모품 따위를 살 이유도 없었다. 이래저래 상인들에게는 악재가 겹친 것이다. 그러나 주점에 모인 상인들은 단순히 백수가 된 데 불만을 터뜨리는 게 아니었다. "으으으, 이대로 이틀만 더 있으면 나는 끝장이야!" 한 상인이 괴로운 듯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 몫 잡아보려고 그 동안 모은 신용도를 몽땅 걸고 상인 길드에서 1,000골드짜리 어음을 받아 광산까지 찾아가 철광석을 몽땅 긁어 모았단 말이야.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무기류의 가격이 오를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비상계엄에 상업 활동 금지라니? 모레 어음 만기일까지 1,000골드를 구하지 못하면 난 파산이야!" "나도 비슷해. 요즘 몬스터들이 이상해져서 어음을 받아 포션을 잔뜩 사 모았다고." ......바로 이게 문제였다. 비상계엄으로 상업 활동이 금지되면 NPC상점에서는 상품 매수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가장 많은 피해를 받게 되는 것은 바로 주점에 모인 사람들과 같은 보따리 상인들이었다. 이런 소자본 상인들은 장거리 교역을 할 때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상인 길드를 통해 어음을 발급받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 온 물건을 처분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금융업자들의 채권 추심은 무서운 법! 아무리 비상계엄이라도 어음을 제때 갚지 못하면 상당한 제재가 가해지는 것이다. 상인이라면 신용도와 각종 스탯에 막대한 페널티를 당하고, 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벌금까지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상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게 바로 채권 추심이었다. 그리고 비상 계엄 때문에 상점에서 물건을 사 주지 않는 통에 상인들은 물건을 쌓아 두고도 채권 추심에 당할 상황에 직면해 버린 것이다. "아아, 누군가 내 물건 좀 사 줄 사람 없나?" 궁지에 몰린 상인들이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고 있을 때였다. 마치 한 줄기 빛처럼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으니...... "제가 이것저것 물건이 좀 필요한데요? 품목과 가격만 맞으면 전량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일어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다. 그러자 주점 안에 모여 있던 상인들의 시선이 일시에 아크에게 집중되었다. "네? 물건을 사겠다고요?" "어, 어떤 품목을 구입하시는데요?" "뭐, 일번적인 겁니다. 강철 주괴와 연철 주괴, 판금, 목재, 제련된 칼날, 숫돌 등...... 이런 물건이 있다면 수량이 얼마나 되든 전량 구입할 의사가 있습니다." 아크의 말에 상인들의 낯빛이 환해졌다. 그러나 뒤이은 말에 모처럼 환해지던 상인들의 낯밫이 다시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단, 구입 가격은 평균 시세의 60% 입니다." "6, 60%?" "제정신으로 하는 말입니까?" "우리가 여비까지 써 가며 산지에 가서 각종 스킬을 난사해도 겨우 시세의 75% 가격에 사는데, 그냥 주점에서 사면서 더 얹어 주지는 못할망정 15%를 손해보면서 팔라고?" 상인들이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탁자 위에 묵직한 돈주머니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러라고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억지로 팔아 달라고 조를 생각도 없습니다. 시세의 60%, 그것도 제가 구하는 품목 안에 있는 상품만 구입할 겁니다. 그 외에는 설사 시세의 50%라도 살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이 있는 분들은 말씀하십니오." 아크는 상인들의 반응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자 상인들이 입을 다물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후후후, 안 팔고는 못 버틸걸.' 그런 분위기에 아크는 내심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들이 여규가 많은 상인이라면 아크처럼 교역품을 창고에 짱 박아 두고 비상계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리라. 그러나 이곳에 모여 있는 상인들은 자본이 부족해 상인 길드에서 대출을 받아 물건을 사 온 상인들. 상품에 전 재산을 들이부었으니 창고를 임대할 돈도 없고, 어음을 갚아야 하니 비상계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여우도 없었다. 그리고 제때 어음을 갚지 못하면 그저 손해보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엄청난 페널티를 부과받고 파산당할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상인들에게 필요한 건 이윤이 아니라 어음을 막을 톤이다. 예전에 시드처럼 상인이 한 번 어음을 막지 못해 파산하면 재기하기는 수천 골드를 버는 것보다 힘들어. 그건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심하다. 설사 수천 골드를 손해 보더라도 어음을 막으려 할 거야. 하지만 당장 상당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물건을 팔기는 쉽지 않겠지. 어디, 살짝 등을 밀어 줘 볼까?' 시간을 끌던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거래하실 분이 없는 모양이군요. 그럼......" 역시나, 상인들이 움찔하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요!" "네? 왜요?" "무슨 거래 방식이 그래요? 거래라는 건 뭐랄까...... 서로의 의견을 좀......"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많이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만나 봐야 해서...... 뭐, 다른 상인들에게 물건을 구입하게 되면 저도 더 이상은 물건이 필요 없어지겠지요." 아크는 아쉬울 게 없다는 투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심은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슈덴베르크 왕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진 것은 <성전을 위한 원정군>퀘스트와 같은 시기였다. 다시 말해 아직 채 이 틀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때문에 아직 대부분의 유저들은 너무 갑작스러워 제대로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며칠만 더 지속되면 유저들도 슬슬 대처 방법을 찾아낼 게 분명했다. '아마도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일 사람들은 대상이겠지.' 그렇다. 주점에 모여서 불평이나 늘어놓고 있는 상인들은 보따리 장사꾼. 소자본으로 매번 어음을 빌려 가며 장사를 해야 하는 상인들이라 당장 물건을 처분할 수 없는 것만으로도 궁지에 몰려있다. 그러나 자금력을 가진 대상들은 상황이 다르다. 그들 역시 곧 아크처럼 보따리 상인들의 약점을 이용해 시세보다 싸게 물건을 구입해 쳥겨 좋으면 훗날 비상계엄이 풀렸을 때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아니, 셀리브리드 쪽에서는 이미 그런 식의 장사를 시작한 대상들이 있었다. '내가 목적을 달성하려면 무조건 시세보다는 30%는 저렴하게 물건을 구입해야 한다. 그러나 대상들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좋든 싫든 가격 경쟁을 해야해. 차익을 노리는 장사라 시세보다 가격이 높아질 리는 없지만 70% 이하 가격을 살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때문에 아크는 어떻게든 지금 상인들과 담판을 지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조급해하는 돗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가의 60%면 저희으 손해가...... 최소한 70%는 받아야......" 다행히 상인들은 점점 아크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었다. '됐다!' 상인들의 목소리에 아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70%면 아크가 원정군에 납품하기로 계약한 가격. 그 정도면 일단 손해는 보지 않는다. 시세를 원하는 곳까지 끌어내린 아크가 곧바로 매수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쳇, 나는 그만 두겠어. 저 녀석의 목적은 뻔하잖아. 우리한테 물건을 샀다가 나중에 비상계엄이 풀리면 비싸게 팔 생각이야. 힘들게 발품까지 팔아 가며 남 좋은 일이나 시킬 바에는 그냥 채권 추심 당하고 만다!" 한 상인이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저, 저 자식이 다 된 밥에......!' 상인의 말에 아크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식의 장사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때문에 아크도 조급함을 숨기고 상인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런데 모처럼 조성해 놓은 분위기가 그 상인 때문에 깨져 버리고 말았다. 역시나 70%면 당장이라도 팔 듯이 굴던 상인들이 다시 슬슬 눈치를 살피며 물러났다. '젠장, 어떻하지? 손해를 보더라도 75% 정도로 타협해야 하나?' 분위가 깨지자 아크는 더욱 조바심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거래는 한 번 약점을 보이면 끝장이다. 비록 보따리 상인이라도 상인은 상인. 약한 모습을 보이면 뭔가 눈치채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가격을 올려 대리라. '그럼 일단 이 주점에서는 포기하고 다른 주점에서 시작해 볼까?'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잠깐, 기다리세요!" 주점 구석에서 후드를 눌러쓴 작은 체구의 상인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내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아까 60%라고 하셨죠?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건 좀 힘들지만 65% 정도라면 제가 가진 물건을 팔겠습니다." "어?" 그의 말에 망설이던 상인들이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작은 체구의 상인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젠장, 자존심이 밥 먹여 줍니까? 저는 당장 내일이면 3,000골드짜리 어음을 막아야 한다고요. 그 사이 비상계엄이 풀릴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고,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채권 추심 들어오면 압류당할 물건. 손해를 보더라도 파 수 있을 때 팔아야 1골드라도 건지죠. 몇 배의 벌금을 물고 페널티까지 ㅁ받는 것보다야 100배는 나으니까." 상인은 울컥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까 강철 주괴도 산다고 하셨죠? 저한테 10톤 정도 있어요." 상인의 말에 아크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10톤요? 꽤 많군요. 그 정도면 일단 강철 구괴는 더 구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시세의 65%로 달라고 하셨죠? 한 번에 그만한 물량을 팔아 주셨으니 특별히 67% 쳐주겠습니다." "신경 써 주신 건 알지만 솔직히 67%도 감사하다고는 못하겠네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조금 늦게 결심했으면 그나마 팔지 못했을 테니까." 작은 상인은 돈을 받으면서도 한숨을 푹푹 불어 냈다. 그러나 그 상인보다 더 절망적인 함숨을 불어 내는 상인이 있었다. 바로 작은 상인처럼 강철 주괴를 가지고 있던 상인들이었다. 작은 상인이 먼저 선수를 치는 바람에 그들은 이제 65%에 팔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는 다른 상인들도 민감하게 느꼈다. 아크가 전량 구입한다고 해서 마음을 놓고 있던 상인들도 이제 구매 수량에 한계가 있음을 아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정말 어음을 막지 못해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신용 불량으로 엄청난 패널티까지 받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게다가 작은 상인이 스타트를 끊어 자기만 손해 본다다는 느낌도 엷어졌다. 한번 그렇게 감정의 둑이 무너지자 상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아까 연철 주괴도 필요하사도 하셨죠? 저한테 1톤정도 있습니다!" "저는 피혁이 70장 있습니다!" "저희는 판금인데 10톤 정도를 한꺼번에 거래하면 저희도 67% 주는 겁니까?" 덕분에 아크는 순식간에 주점 상인들의 물건을 65%의 가격으로 몽땅 사들일 수 있었다. "후후후, 상인이라는 것들이 이렇게 단순해서야......" 잠시 후, 아크는 주점을 나서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주점에서 몇 개의 모퉁이를 돌아 골목에 들어서자 옆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주점에서 처음으로 물건을 판 작은 상인이었다. "아크 님, 저 잘했죠?" 작은 체구의 상인이 후드를 벗자 곧 동글동글한 얼굴이 드러났다. 호비트 상인...... 작은 체구의 상인은 바로 아크가 미리 잠입시켜 놓은 시드였던 것이다. "후후후, 잘했어.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사실 주점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모두 아크의 작전이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고생하며 사 온 물건을 손해 보면서 팔라는데 망설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누군가가 먼저 손해를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들도 그러는데 나라고 별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게 인지상정. 때문에 아크는 사전에 미리 시드를 바람잡이 역할로 잠입시켜 놓고 연극을 벌인 것이다. "좋아. 이제 대강 물량의 80%를 채웠다. 소문이 퍼지기 전에 기란의 주점을 몽땅 돌자!" "약속대로 이번에 구입한 물건에서 수수료로 1%는 저에게 떼 주는 거에요?" "알았으니까 100% 채울 때까지 안 들키게 잘해."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그렇게 두 사기꾼은 또 다른 호구를 찾아 새로운 주점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부로가 하루 만에 다섯 곳의 주점을 돌아 필요한 군수물자를 전량 구매할 수 있었다. 게다가 구입 가격은 정가의 65%. 원정군에 70%의 가격으로 넘겨도 5%의 이득까지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기란에 모여 있던 상인들은 피눈물을 쏟았지만...... "흐음, 제법이군. 불과 사흘 만에 그만한 물량을 공ㄱ븝하다니. 솔직히 하베스틴 백작이 신용도가 높은 상단을 제치고 자네를 군상으로 임명했을 때는 좀 불만스러웠는데...... 그만한 능력은 있는 모양이군. 좋아, 앞으로 잘해보세." 예상외로 아크가 임무를 완수하자 나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딘은 굉장히 티꺼운 표정을 지었지만 할 수 없이 군수물자 대금을 결제해 주었다. 이번에 납품한 군수물자의 대금은 무려 70만 골드! 그 중 평균 5%가 아크의 수익이니 한 번의 거래로 35,000골드를 번 셈이다. 그러나 군수물자의 결제 대금은 현찰이 아니었다. 군표...... 말하자면 일종의 전쟁 채권으로 긴급 상황에서 국가가 발행하는 임시 통화였다. 때문에 바로 현찰로 바꿀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아크 역시 지저 세계의 너구리족이나 스탄달의 바란족에게 군표로 결제해 주기로 합의한 상태라 큰 문제는 없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좀 고생했지만 덕분에 배운 점도 적지 않아.' 아크는 이번 나딘의 음해 공작 덕분에 새삼 깨달은 점이 있었다.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일은 지금처럼 대충 물건을 구해 팔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물자 보급은 물론, 군상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해내려면 항상 물자를 넉넉하게 확보해야 하고, 이동과 판매에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군수물자는 최소 수만 골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만약 도중에 몬스터에게 습격당해 짐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단순히 금전적인 손실만 생기는 게 아니야. 자칫하면 아크 상단이 통째로 날아가게 될지도 몰라." 그렇다. 군수물자의 독점거래는 슈덴베르크 왕국과 아크 상단 사이의 계약. 만약 납기일을 지키지 못해 원정군이 피해라도 입게 된다면 계약 위반으로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게다가 보급 장교가 사르킨 공작의 입김을 받고 있다면 단순한 벌금 이상의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니, 심지어 시르킨 공장의 방해 공작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사르킨 공작이 아니라도 현재는 도처에 검은 오벨리스크의 영향으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앞으로 군수물자를 담당하려면 먼저 보급로의 안전을 확보해야해!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오히려 비상계엄령이 내려져서 다행이다." 아크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상계엄의 조항 중에 '나가란 지역의 공성전도 잠정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성전이 중단됐으니 시르바나 성에 연합원을 상주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다크 에덴 연합원 가운데 2,000명을 동원해 정의남과 갱생단에게 각각 지저 세계와 스탄달에서 운반되는 군수물자의 경호를 전담시켰다. 3,800명 중에 2,000명만 경호 임무에 동원한 것은 로테이션을 위해서였다. "이번 원정군에 참가한 여러 연합들은 몬스터와 전쟁을 하며 레벨을 올릴 기회가 많다. 다크에덴의 병력을 모두 경호 임무에 동원하면 전쟁이 끝났을 때 다른 연합과 레벨 차이가 많이 벌어질지도 몰라. 일단 반씩 나눠서 1군은 경호 임무를, 그리고 아직 레벨이 낮은 2군은 계속 비밀 던전을 돌며 레벨을 올리도록 해야 해." 지킬 게 많아진 아크는 이제 뭐 하나를 결정할 때도 보다 많은 걸 생각해야 했다. 이번 전쟁에서 이득을 얻는 것과 별도로 전쟁 이후에 시르바나를 지킬 문제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경호 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1,800의 병력은 영주성에 상주시켰다. 이들은 이전의 비밀 던전 공략에서 일찌감치 물러났던 NPC와 비교적 레벨이 낮은 연합원이었다. 아크는 이들에게 몬스터가 리젠된 비밀 던전을 공략하며 레벨을 올리도록 지시해 놓았다. 일단 NPC 연합원의 레벨업이 중요했고, 유저 연합원들은 NPC를 보호하며 함께 레벨을 올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제야 대략적인 상황이 정리됐군." 대강의 편성이 정리되자 꼬박 하루가 지나갔다. 그러나 그 외에도 지저 세계의 너구리족과 스탄달의 바란족, 두 생산지에서 각종 물품에 대햔 계약과 확보된 물품의 이동 문제, 그리고 경호 부대로 삼은 연합원의 보수 문제, 수익 분배 등등...... 주도면밀하게 손익을 따져 협상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어느 정도 형태를 잡아놓자 자잘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크가 군상으로서 체계를 잡아 갈 무렵, 드디어 슈덴베르크에서 모인 6만의 원정군이 시니어스 공국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걸어라! 우리는 대륙을 구하기 위한 성전의 전사들이다!" "우오오오!" 하베스틴의 말에 6만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아크에게 그들은 성전의 전사가 아닌 돈 덩어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후후후, 돈 덩어리들! 그래 팍팍 싸워서 군수물자를 펑펑 써 대 줘라!' 아크에게 이번 전쟁은 성전이 아닌 금전이었다. 아크가 한참 각종 업무 정리로 정신이 없을 무렵. 기란의 뒷골목에는 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바로 얼마 전 주점에서 아크에게 손해를 보며 물건을 팔아야 했던 상인들이었다. 그러나 상당한 손해를 입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어야 할 상인들은 오히려 히죽거리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 앞에 서 있는 작은 상인 때문이었다. "자, 자! 수금이다, 수금" 시드의 말에 상인들이 돈주머니를 들고 몰려들었다. "2,000골드입니다." "흠, 수고비는 3%니까 60골드로군. 수고했어." "헤헤헤. 감사합니다, 시드 님. 이렇게 짭짤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 주십시오." 금화를 받아 챙긴 상인이 굽실거리며 물러났다. 시드...... 그렇다. 상인들 앞에서 묵지한 돈주머니를 받아 챙기는 사람은 바로 시드였다. 그런데 어째서 시드가 이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며칠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며칠 전 귀족 회의에 참석한 아크는 곧 슈덴베르크에 비상 계엄령이 선포될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그 정보를 유저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알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루벤트항에서부터 행동을 함께 했던 시드 역시 아크를 통해 그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아크가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일 때, 시드는 다른 꿍꿍이를 품고 있었다. '상업 활동을 막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돼 상점에서 물건을 구매해 주지 않으면 당장 숨통이 막히는 상인들이 넘쳐나게 될 거다. 그런 상인들을 잘만 구슬리면 시세의 절반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어. 그렇게 물건을 사들여서 창고에 쌓아 두면 훗날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 아크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생각해 낸 겻을 시드는 이미 한참 전에 생각해 냈던 것이다. 그 동안 대륙상회의 대외 사업부장을 역임하며 쌓은 경륜 덕분이었다. '후후후. 이래뵈도 이 몸은 상인이라고. 같은 시가에 같은 정보를 입수하면 아크보다는 100배 더 빨라.' 그리고 시드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그 동안 모아온 재산을 탁탁 털어서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린 상인들에게 50%의 가격으로 물건을 사들였다. 아크가 얻은 정보, 셀리브리드에서 이미 상인들의 물건을 사들이고 있다는 대상은 바로 시드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젠장, 머야? 이거 상황이 내 예상보다 심각하잖아?' 일단 물건을 사들인 건 좋았다. 그런데 그 뒤로 왕성에서 오가는 말을 들어 보니 이번 전쟁은 며칠 사이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드가 남길 이윤이 줄어들고, 최악의 경우 상당한 손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유는 바로 상인들에게서 구입한 물건을 쌓아 둔 창고의 임대료 때문이었다. 전쟁이 길어지면 그만큼 창고에 보관하는 일수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임대료가 물건을 팔아 남기는 차익보다 많아지리라. '게다가 얼마 전에는 창고 임대료가 50%나 올라갔다.' 시드가 창고 임대료 상승에 그토록 당황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아크가 창고 임대료를 더 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지만 정작 자신이 손해를 입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대로 한 달만 지나면 난 파산이야!' 시드가 창고 임대료 청구서에 비명을 질러 댈 때였다. 마치 구원의 손길을 내밀듯 아크가 상인들에게 부족한 군수물자를 구해야 겠다는 계획을 시드에게 의논해 온 것이다. 그 순간 시드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이거다! 내 물건을 몽땅 이 녀석에게 넘겨 버리는 거야!' 그러나 모든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으면 아크는 틀림없이 눈퉁이를 후려쳐 50%도 안 되는 가격에 사려 들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시드는 상인들을 고용, 주점에 배치시켜놓고 창고에 쌓여 있던 재고품을 아크에게 팔아넘긴 것이다. 그렇다. 아크는 시드를 이용해 연극을 해서 상인들을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시드가 상인들을 이용해 아크를 속인 것이다. '덕분에 50~60%의 가격으로 구입한 물건을 아크에게 65% 가격으로 넘겼다. 고용한 상인들에게 5,000골드의 수고비를 주고도 10,000골드 정도 이윤을 남겼어! 게다가 아크에게 따로 이번에 구입한 물건의 1%를 수고비로 받기로 했으니......' 계산기를 두둘기던 시드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전쟁은 돈이 된단 말이야."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점점 아크 못지않게 사악해져가는 시드였다. ACT2 파비온 요새 공략 "강철 기사단, 우측 계곡을 돌아 공격하라!" "블랙버드 기사단, 좌측 계곡을 돌아 공격하라!" "제2, 3, 4군단은 협곡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우와아아아아!" 만여 명의 병사들이 함성을 울리며 검과 창을 앞세우고 돌진했다. 거친 호흡을 뿜어내며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가로지르기를 잠시, 거대한 협곡 사이로 접어들자 지옥 밑바닥에서부터 건져 올린 듯한 짙은 어둠이 이들을 덮쳤다. 『'진·마족'의 영향권 안에 진입했습니다! 지옥의 지배자인 마족은 중간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일그러짐을 일으킵니다. 그런 공간의 왜곡은 차원 틈새에서 '마기'를 불러들여 대지와 대기를 오염, 중간계의 법칙을 무시하고 지옥과 같은 환경 으로 변질시킵니다. 당연히 보다 강한 마족일수로 중간계의 법칙을 더 많이 무시하며 보다 강력한 '마기'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진·마족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능력치가 20% 감소 합니다. 반면 영향권 안에서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는 능 력치가 20% 상승합니다.》 』 이게 시니어스 공국을 뒤덮은 검은 안개의 정체였다. 병사들이 검은 안개 속에 진입하자 어둠 속에서 수천, 아니 수만에 달하는 붉은빛이 떠올랐다. 탐욕과 살의로 충만한 붉은 눈동자! 어둠과 함께 불려 나온 지옥의 악마들이었다. 마치 귀뚜라미처럼 생긴 몬스터 탈론, 수소의 머리에 인간의 상체, 사자의 하반신을 달고 있는 헤메라드. 머리가 5개나 달리고 8개의 팔을 가진 수탄 등등‥‥‥. 마치 몬스터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것도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라 마기에 오염되어 뒤틀리고 비틀어져 기형적으로 변한 몬스터들. 병사들이 가시거리 안에 진입하자 놈들의 섬뜩한 송곳니 사이로 타액이 젖어 번들거리는 붉은 혓바닥이 탐욕스럽게 입술을 훑어 내렸다. - 크라카, 크라카, 노혼! 아크라다 모자함! 순간 탁한 외침과 함께 수만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몰려나왔다. 대지를 진동시키며 몰려오는 끔직한 숫자의, 끔찍한 형상의 몬스터들! 놈들이 몰려나오자 각 부대의 지휘관들이 검을 들어 올리며 명령했다. "선두 부태, 돌진을 전개하라!" "우와아아앗!" 그러자 선두에서 돌진하던 전사들이 일제히 방패를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격렬한 쇳소리와 함께 앞으로 달려 나오던 탈론들이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뒤따라오던 거대 몬스터 헤메라드와 수탄은 휘청거리는 탈론과 방패를 휘둘렀던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짓밟으며 밀려들었다. "성직자, 선두 부대에게 신성력을 집중시켜라!" "위대한 신 아레스여, 빛의 힘으로 당신의 뜻을 강힘하소서! 홀리 소드!" "은혜로운 대지의 여신이시여, 당신의 자식들에게 생명의 숨결을‥‥‥ 재생!" 후열에서 대기하던 수천 명의 성직자들이 일제히 신성 마법을 발동시켰다. 수천에 달하는 신성 마법이 집중되자 일대에 조명탄을 터뜨린 것처럼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을 멀게 할 정도로 강렬한 빛에 어둠의 존재들은 신음을 흘리며 주춤거렸다. "지금이다, 놈들을 어둠으로 돌려보내라!" 생명력을 회복한 전사들이 신성력으로 빛나는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에게 맹공을 퍼부어 댔대. 그러자 몬스터들도 이내 괴성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쇠와 쇠, 살과 살이 부딪치며 터져 나가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10미터가 넘는 크기의 몬스터에 수십 명의 전사들이 달려들어 쓰러뜨린다. 그러나 채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기도 전에 다른 거대 몬스터의 발에 밟혀 피 떡이 되었다. 끊임없이 살육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은 마치 하얀 도화지에 붉은 페인트를 쏟아붓는 것처럼, 순백의 설원이 섬뜩한 붉은색으로 점차 물들어 갔다. "아아아아‥‥‥!" 그 참혹한 전장 한복판에서 한 전사가 피에 젖은 얼굴로 신음을 흘렸다. 1군단 소속 제3돌격대장 제임스. 그는 전투의 시작과 함께 부대원들과 용맹하게 적진에 뛰어들어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얼마 전부터 본대와 떨어져 고립되고 말았다. 그리고 장시간의 전투 끝에 장비품들은 너덜너덜해지고 포션 따위도 바닥나고 말았다. 본대와 떨어져 성직자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여기까지인가?" 제임스는 허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주변에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10여 명밖에 남지 않은 돌격대를 포위하고 있었다. "최소한 보급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하지만 역시 이런 상황에서는 무리겠지. 젠장, 이렇게 되면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 제3돌격대, 필사의 각오로‥‥‥!" "자암까안!" 그때였다. 돌연 뒤에서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제임슥사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뒤에서 한 사내가 폭풍 같은 기세로 다가왔다. 두툼한 모피로 온몸을 감싼 사내였다. "자, 자네는?" "보급병입니다!" "보급병? 보급 부대도 아니고 보급병이라니? 설마 혼자서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건가?" "네, 바쁘니까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아까 보급 요청 신호를 보내셨죠? 필요한 물품이 뭡니까? 제가 보기에 대강 수리용 공구 상자와 회복 포션, 군량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네." "남은 인원수를 보니 각각 50개 정도면 되겠군요.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사내가 말하자 돌연 허리에 감겨 있던 뱀이 입을 쩍 벌리더니 공구 상자와 회복 포션, 군량이 각각 50개씩 튀어 나왔다. 제임스가 멍청한 눈으로 바라자보자 사내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 들고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 여기에 제게 보급품을 받았다는 사인을 해 주시면 됩니다." "사인? 이런 상황에서 말인가?" "서두르세요. 몬스터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 재정비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아, 알았네." 사인을 해 주자 사내는 서류를 챙겨 넣고는 제임스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티세요. 현재 전황은 원정군이 협곡 안으로 진입하고 있는 중입니다. 방금 전에 제임스 경이 보낸 신호탄은 본대에서도 확인했으니 곧 지원 부대가 올 겁니다. 대략 10분 정도 걸릴 테니 그때까지만 버티고 계세요." -쿠오오오오! 그때 갑자기 사내가 나타나 잠시 머뭇거리던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사내가 빙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섬아-!" 순간 사내는 마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벼락처럼 한 줄기 빛이 되어 지그재그로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빛줄기가 휩쓸고 지나가자 수십 마리의 몬스터들이 엄청난 피 분수를 뿜으며 생명력이 단숨에 15%나 빨려 나갔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선보인 사내가 손가락으로 머플러를 슬쩍 내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문 라이트 일루전!" 동시에 사내의 몸이 빛에 휩싸이더니 양옆으로 3개의 분신이 만들어졌다. 3개의 분신이 사방으로 도망치자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갔다. 그사이에 사내는 '전력질주'를 사용해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다른 전장으로 도망쳐 버렸다. "저, 저 사내는 대체‥‥‥." 보급품을 받아 든 제임스가 멍청한 눈으로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똑같이 멍청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던 부대원 하나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대장님, 혹시 저 사람이 소문으로 돌던 '그 사람' 이 아닐까요?" "그 사람?" "왜, 있지 않습니까? 보급 요청을 하면 설사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곳이라도 어느 누구보다 빨리 나타나서 보급품을 전해 주고 사라진다는 사람. 움직이는 상점으로 불리는‥‥‥." "그럼 그게 그냥 소문이 아니었단 거야?" 제임스의 표정은 더욱 황당하게 변해 버렸다. '우히히히, 또 한 건 올렸다!' 그때 제임스에게 보급품을 전달한 사내는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건 보급 요청을 하면 바람처럼 나타나서 보급품을 전해 준다는 일명 '움직이는 상점' 이라고 불리는 사내! 그렇다. 이 사내는 바로 아크였다. 아크가 이렇게 전장을 누비며 보급품을 전달하게 된 이유는 바로 가격 때문이었다. 사실 아크는 군상으로 원정군에 참가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군수물자의 생산은 지저 세계의 너구리족과 스탄달의 바란족이 알아서 처리한다. 또한 이동은 정의남과 갱생단 그리고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이 맡고 있었고, 서류 관련 문제는 역시 경험 많은 상인 시드가 처리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사원들에게 일을 분담시키다 보니 정작 사장이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럼 이참에 나도 전장에서 공적치나 좀 긁어모아 볼까?' 군수물자 독점거래 문제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지만, 어쨌든 아크 역시 《성전을 위한 원정군》 퀘스트를 받아 놓았다. 어차피 군수물자 문제는 아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가도록 만들어 놓았으니 이참에 퀘스트 보상까지 노려보는 게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적당히 돌격대에 끼어 전투에 참가했을 때였다. 전투가 벌어지면 몇몇 부대는 고립되어 위기에 처하기 마련. 그리고 이런 부대는 본대의 지원을 받지 못해 뭣보다 보급품이 절실했다. 그러나 몇 개 되지 않는 보급 부대로 이런 부대원들을 모두 지원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그때 문득 아크의 귓가에 한 지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서쪽 능선에 수색 부대가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주변에 몬스터가 너무 많이 밀집되어 있어 보급 부대가 접근할 수는 없어. 누구라도 좋다. 수색 부대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 줄 병사는 없나?" "제가 가겠습니다!" 마침 적당한 일거리를 찾던 아크는 곧바로 지원했고, 몬스터의 숲을 뚫고 수색 부대에게 보급품을 전달해 주었다. 그때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고립된 부대에게 보급품을 전달하는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위험을 뚫고 임무를 완수해 아군의 생존율을 높였습니다. 공적 +300》 』 '공적치가 300!'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해졌다. 전장에서 몬스터를 한 마리 죽여서 얻는 공적치는 레벨에 따라 고작 5~15 수준. 그조차 수많은 병사들이 뒤엉켜 여기저기서 칼질을 해 대는 통에 공적치도 쪼개져서 1~5 밖에 못 건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고립된 부대에게 보급품을 전해 주는 것만으로 공적치가 300이나 적용된 것이다. 전장에서 보급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보상이었지만 미처 생각하지마 못했던 아크에게는 엄청난 횡재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단숨에 300의 공적치를 얻은 아크는 곧바로 머리를 굴렸다. '가만? 이렇게 쉽게 공적치를 얻을 수 있는데 뭐하러 전장에서 굴러다녀? 게다가 고립된 부대에게 전해 주는 보급품은 내가 원정군에게 판 물건이잖아. 그렇다면‥‥‥?' 머리를 굴리던 아크는 보급 장교 나딘을 찾아가 말했다. "지금 전장에서 제때 보급을 받지 못해 수많은 병사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하지만 보급 부대만으로는 역부족이야. 또한 보급 부대는 전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없어. 고립된 부대에게 보급을 하기 위해 이동하던 보급 부대가 몬스터들에게 고립되면 피해가 가중될 뿐이니까. 나도 미치겠다고!" 나딘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제안했다. "제가 고립된 부대를 찾아다니며 보급을 하겠습니다. 전장에서 부대 단위로 움직이면 이동할 수 있는 곳이 한계가 있겠지만 혼자라면 그런 제약이 사라집니다. 뭐, 그만큼 더 위험해지겠지만‥‥‥ 원정군을 위해서라면 감수하죠." "자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물론입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저 역시 원정군에 참전한 몸이니 따로 보수를 달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병사이기 이전에 군상. 제가 직접 부대를 찾아가 보급 할 경우, 그 보급품에 대해서는 시세의 120%로 계산해 주셔야 합니다." "뭐라고? 그럼 납품 품목의 가격보다 50%나 더 받겠다는 건가?" "저 역시 목숨은 소중합니다. 일종의 위험수당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장의 보급품은 병사들의 생명입니다. 돈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전장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목숨보다 소중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하며 병사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뻔뻔한 아크였다. 그러나 사실 나딘으로서는 딱히 손해나는 장사도 아니었다. 물건이 필요에 의해 가치가 정해진다는 것은 정장에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전장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어차피 보급품이란 제때 전달되지 않으면 1쿠퍼의 가치도 없는 법. 보급품이 제때 전달되어 제대로 쓰여 주기만 한다면 120%의 가격도 결코 비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좋아. 대신 부대장에게 확인 사인을 받지 않은 보급품은 1쿠퍼도 줄 수 없네." "물론이죠. 오고가는 서류 속에 쌓이는 신뢰, 장사의 기본 아닙니까?" 이렇게 아크는 병사에서 보급병으로 전직하게 된 것이다. 아크가 보급병이 되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상당히 많았다. 일단 남들보다 빠르게 공적치를 올릴 수 있었고, 비록 많은 양은 아니지만 일부 군수물자를 전장의 병사들에게 직거래로 팔아넘겨 50%의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쌕쌕쌕, 쌕쌕쌕쌕! 그때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주변을 훑던 라둔이 갑자기 소리(?)쳤다. 그리고 튕기듯 날아가 눈밭 속으로 들어가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라둔이 '칼킨의 장창'을 습득했습니다! 이게 보급병이 되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득이었다. 현재 원정군과 몬스터들이 뒤엉켜 싸우는 곳은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는 설원. 이런 곳에서 난전이 벌어지다 보니 병사들도 미처 수거하지 못한 전리품이 눈밭에 묻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크가 병사일 때는 한 곳에서 싸우다 보니 이런 전리품을 수거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보급병이 되어 전장을 누비며 돌아다니자 상황이 달라졌다. 라둔의 '스토킹'을 이용해 눈밭에 묻혀 있는 전리품을 찾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일거삼득! "좋아. 잘했어, 라둔!" 아크가 또 한 건 올리고 돌아온 라둔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였다. "주인, 3시 방향 500미터 앞에서 또다시 보급 요청 신호가 올라왔어! 그리고 8시 방향에서도 보급 요청이 있어." 까마득한 상공에서 라카드의 통신이 들려왔다. "어느 쪽이 더 급해 보여?" "신호는 늦게 올라왔지만 8시 방향이 더 심각해. 생존한 병사들은 많지만 무기가 너덜너덜해져서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아. 몇 명은 이미 무기도 없어 방패만 들고 있고." "알았어. 8시 방향으로 이동한다. 내비게이션!" "우측 능선은 양쪽의 지원군이 합류해 한창 치열하게 전투 중이라 매우 혼잡. 그곳에서 약 200미터 벗어난 곳에 바위 틈 샛길이 있어. 마침 주변의 몬스터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뒤라 샛길로 가면 3~4분 내에 보급을 요청한 부대와 합류할 수 있을 거야." "오케이, 변동 사항이 있으면 수시로 보고해!" 아크는 라카드의 '실시간 교통 상황' 을 보고 받으며 전장을 가로질렀다. 혼자서 보급 부대보다 더 많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상공에서 '위성 감시 모드' 로 전장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라카드는 누구보다 보급 요청을 빨리 캐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부대가 더 위급한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해야 가장 안전하고 빨리 도착할 수 있는지를 파악, 전달해 준 덕분에 아크는 보급 부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동성을 발휘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떨 때는 바로 옆에 있는 보급 부대보다 빨리 찾아가 보급품을 떠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가 먼저 도착해야 120% 가격으로 팔아 치울 수 있다!' 그게 기동성을 중시하는 첫 번째 이유였지만 전부라고는 할 수 없었다. '병사들의 생존도 중요한 문제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어!' 때문에 아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서라면 위험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전쟁 영화의 단골 메뉴인 따끈따끈한 전우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정군의 병사들은 아크에게는 고객이다. 고객이 줄면 당연히 수입도 줄어들지 않겠는가? 아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은 많은 병사들이 군수물자를 펑펑 써 대며 오랫동안 싸워 주는 것이다. 물론 그곳은 최종적으로 원정군이 대륙을 구한다는 전제하의 일이었다. 원정군이 전멸해 슈덴베르크 왕국까지 위험해지면 기껏 챙진 군표가 휴지 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병사들의 생존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야!' "감사합니다. 제4군단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잠시만 버티면 됩니다." 아크는 다시 보급품을 전달하고 사인을 받은 뒤에 간략하게 전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런 전황 설명도 병사들의 생존율을 올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보급 요청 부대를 찾아가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그립퍼다! 그립퍼 부대가 나타났다!" 아군 진영에서 당혹감에 물든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리자 협곡 사이로 거대한 그림자들이 떠올랐다. 철커덩, 철커덩, 철커덩‥‥‥. 쇠사슬을 질질 끌어 대는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나타난 그림자들은 크기가 20미터가 넘는 거인들이었다. 눈과 입이 꿰매져 있는 섬뜩한 형상에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거대한 돌기둥 같은 것을 등에 짊어지고 나타난 거인들, 놈들이 바로 그립퍼라는 몬스터였다. 놈들이 나타나자 아군 진영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막아라! 놈들이 이곳까지 접근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모든 대형 병기를 그립퍼에게 집중시켜라!" "다연발 화염 쇠니 전기를 동원해 그립퍼를 저지하라!" 위이이이잉, 투투투둥, 투투투둥! 동시에 아군 진영에 있던 벌집처럼 생긴 마차에서 수백 발의 화염이 쏘아져 날아갔다. 너구리족이 개발한 다연발 화염 쇠니! 당연히 아크가 원정군에게 팔아먹은 차세대 대형 병기였다. 다연발 화염 쇠뇌와 함께 수십 발의 투석과 쇠뇌도 쏘아졌다. 대형 병기에서 뿜어진 투석과 쇠뇌는 수백 미터의 공간을 가로질러 그립퍼들을 난타했다. -쿠어어어어어! 투석에 얻어맞고 수십 발의 쇠뇌에 꿰인 그립퍼가 괴성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바크람, 바크람, 포라이바타, 바크람! 그립퍼가 쓰러지자 몬스터들이 괴성을 질러 대며 기갑 부대 -- 대형 병기를 다루는 부대 -- 에 몰려들었다. 당연히 원정군도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진군하던 모든 부대를 퇴각시켜 기갑 부대 앞에 몇 겹의 방벽을 만들고 몬스터들의 맹공을 막아 냈다. "기갑 부대는 쉬지 말고 공격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을 막아야 한다!" 지휘관들이 외침에 또다시 대형 병기가 일제히 탄환을 날려 보냈다. 엄청난 화력에 그립퍼들은 하나 둘 쓰러져 갔다. 그러나 그사이에 몬스터들의 맹공에 몇 개의 기갑 부대가 전멸해 버렸다. 그리고 연속 공격이 주춤한 사이에 그립퍼 세 마리가 접전이 벌어지는 곳까지 도착해 버리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아! 그립퍼가 괴성을 지르며 짊어지고 온 돌기둥을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대지에 돌기둥이 10여 미터나 쑤셔 박혔다. 그렇게 바닥에 돌기둥을 심은 그립퍼는 뒤이어 손톱으로 자신의 가슴을 뜯어 심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듯 하늘응 향해 울부짖자 그립퍼의 몸이 폭탄처럼 터지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병사들과 함께 몬스터들의 맹공을 저지하던 아크마저 그 충격파에 휘말려 수 미터나 나뒹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그립퍼의 '지맥 폭파' 가 발동했습니다! 그립퍼는 저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돌기둥과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 대 지의 생명인 지맥에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지맥 은 한동안 힘을 잃고 사악한 기운에 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지맥이 힘 을 회복될 때까지는 24시간이 필요하며, 그동안 주위 2킬로미터 내의 공간은 저주와 사기, 마기 등의 사악한 기운이 더욱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마기에 의해 NPC, 유저들의 능력치 감소가 50%로 증가합니다. 마 기에 의한 마 속성 몬스터들의 능력치 상승이 50%로 상승합니다. 지 속시간 : 24시간》 』 "크윽, 또 이런 식으로‥‥‥!" " 분하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지맥 폭파' 가 발동하자 지휘관들은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흘렸다. 아군의 능력치가 50% 감소하고, 몬스터의 능력치가 50% 증가한다. 다시 말해 같은 레벨이라도 이제 100%나 능력치가 차이 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자살 행위. 이제 원정군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퇴각! 전 병력은 주둔지로 퇴각하라!"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또다시 분루를 삼키며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퇴각하는 협곡 깊은 곳에는 거대한 요새가 어둠에 잠겨 있을 뿐이었다. * "빌어먹을!" 하베스틴이 거칠게 탁자를 후려쳤다. 그립퍼의 '지맥 폭파' 이후, 원정군은 곧바로 협곡에서 퇴각했다. 그러나 전장에서 퇴각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맥 폭파'로 원정군과 몬스터 사이의 능력치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 직후. 원정군은 몇 번이나 몬스터들의 맹공을 받아 1,000여 명에 가까운 전사자를 낸 뒤에야 겨우 '마족의 영향권' 밖에 세워진 주둔지까지 퇴각할 수 있었다. "대체 얼마나 더 많은 병사들이 희생돼야 한단 말인가?" 하베스틴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막사에 모인 지휘관들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하베스틴을 열 받게 하는 상황을 설명하자면 그 전의 상황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대략 열흘 전, 모든 준비를 마친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문제의 시니어스 공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슈덴베르크 북부를 관통하며 각지의 검은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며 국경 지대에 도착한 게 일주일 전이었다. 당초의 예정보다 빠른 진군이었지만, 대륙을 잠식하는 어둠은 그보다 한 발 빨랐다. 원정군이 세리브리드를 출발할 때 들었던 정보는 어둠이 국경 지역 근처까지 밀려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어둠은 이미 궁격을 넘어 슈덴베르크의 북부지방까지 잠식한 상태였다. 무턱대고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하베스틴은 원정군을 몇 개의 군단으로 나누어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이대로 원정군이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하면 슈덴베르크를 지킬 병력이 없어진다. 일단 이곳을 기점으로 3만의 병력을 따로 편성해 북동부와 북서부에 발생한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며 어둠이 퍼지는 것을 막는다. 나머지 3만의 병력은 이곳에서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 곧 출발할 브리스타니아 원정군과 약속한 합류 지점까지 이동한다." 그렇게 해서 원정군과 어둠의 군단과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한 가지 넘어야 할 난관이 있었다. 슈덴베르크와 시니어스 공국의 국경 지대는 알바라 산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험하기로 유명한 알바라 산맥은 수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넘을 수 없었다. 병력을 이끌고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유일한 통호는 파비온 협곡뿐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슈덴베르크와 적대 관계였던 시니어스 공국은 당연히 파비온 협곡에 거대한 난공불락의 요새를 세워 뒀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하베스틴을 괴롭히는 파비온 요새였다. "설마 한낱 몬스터들이 파비온 요새를 점거하고 이용할 줄이야‥‥‥!" 사실 하베스틴은 그때까지만 해도 몬스터와 요새는 사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파비온 협곡에 들어섰을 때, 하베스틴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엄청난 몬스터 대군이 파비온 요새에서 몰려나왔던 것이다. 물론 몬스터들이 요새를 이용한 전략적인 전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새에 그만한 몬스터가 주둔하고 있다는 말은, 돌려 말하자면 이곳이야말로 슈덴베르크 원정군을 상대할 최적의 장소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 놈들은 누군가의 통제를 받고 있는게 확실합니다." "네, 이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실제 전장에서도 일견 무질서해 보이지만 중요한 시점에서는 묘하기 질서 정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군가 전황을 지시하는 존재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대장의 말에 누군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둠에서 기어 나온 무리들이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다니? 그렇게 많은 종류의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라면‥‥‥ 설마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어둠의 제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부대장들이 안색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뉴 월드의 NPC들에게 어둠의 제왕은 그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는 단어였다. 물론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은 NPC도 있지만 말이다. "정말 어둠의 제왕이 부활했다면 사태가 이 정도로 머물러 있을 리가 없소. 또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어둠의 제왕이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이곳,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켜야 한다는 것이오, 이곳에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들도." 하베스틴이 지도에 그려진 파비온 요새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지점에는 삼각형 모양이 수십 개나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바로 파비온 요새 공략의 초대 난관인 일명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이라고 명명된 곳이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아크였다. 원정군이 일주일 동안 파비온 협곡에서 죽인 몬스터의 숫자는 거의 2만여‥‥‥ 처음 요새에서 확인한 숫자와 비슷했다. 그럼에도 다시 전투가 벌어지면 이전과 다름없는 숫자의 몬스터들이 몰려나왔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하베스틴은 여러 번 정찰병을 잠입시켜 요새를 살폈지만 이렇다 할 정보를 얻어 내지 못했다. 그런데 라카드를 이용해 요새 주변의 지형을 파악하던 아크 덕분에 우연히 그 이유가 밝혀졌다. 요새 너머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발견한 것이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그렇다. 요새 너머에는 50개나 되는 오벨리스크가 모여 있었다. 그러고 검은 오벨리스크는 마치 유저들이 사용하는 병참처럼 마 속성의 몬스터를 부활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몬스터를 죽여도 숫자가 줄어들 리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파비온 요새를 넘어가려면 검은 오벨리스크를 몽땅 부숴여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검은 오벨리스크가 모여 있는 곳에 가려면 파비온 요새를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놈들이 다시 부활하기 전에 전멸시키는 방법뿐이었다. 이에 하베스틴은 일주일 동안 갖은 전략을 구사하며 요새를 공략해 봣지만 소용없었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그립퍼가 나타나 '지맥 폭파'로 전세를 뒤바꿨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맥 폭파'의 지속 시간은 24시간. 그동안 원정군이 퇴각해 있는 사이 몬스터들은 다시 부활해 왔다. 그러니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싸워도 제자리걸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보낸 3만의 병력을 불러들여 일거에 몰아 붙이는게 어떨가요?"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부대장도 있었지만 하베스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새까지 이어진 파비온 협곡은 좁고 긴 지형이오. 여기서 병력이 더 늘어난다고 해도 어차피 적과 교전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소. 또한 어둠에 잠식된 다른 지역을 비워두면 오히려 번식한 몬스터들에게 본대의 배후를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소. 어둠에 잠식된 이상 어디에서 검은 오벨리스크가 출현할지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오." 하베스틴의 대답에 부대장들은 다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나야 별로 상관없지만‥‥‥.' 그러나 아크만은 예외였다. 아니, 사실 현재 원정군의 상황이야말로 아크가 바라던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파비온 요새가 함락되지 않는 한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이곳에서 계속 끝나지 않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쟁은 소모전. 전쟁의 횟수만큼 아크가 구해 오는 군수물자 역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리라. '게다가 파비온 요새전은 전초전에 불과해. 원정군 입장에서는 애가 타겠지만, 전초전부터 무리한 작전을 감행하기는 힘들어.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각종 장비품이나 회복 포션에 투자할 수 밖에 없지.' 그뿐이 아니다. 이곳은 전장이지만 지형적으로는 슈덴베르크 왕국 안이었다. 원정군이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하면 아크 상단의 보급로도 그만큼 길어져 위험이 증가하지만,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된 슈덴베르크 왕국 안에서는 그런 걱정도 줄어든다. 다시 말해 안전하게 많은 물량의 군수물자를 운반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동로가 짧아지면 그만큼 필요 경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상대로 몇 달만 유지돼도 재벌 소리를 들을 수 있겠어!' 사실 처음에는 아크 역시 이번 사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랐다. 그래야 비상계엄이 풀리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삼각무역을 재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상황을 지켜본 뒤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파비온 협곡에서 원정군과 몬스터들이 한번 전투를 벌일 때마다 아크에게 2,000골드의 순수익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삼각무역이 완전히 정착됐을 때의 예상 이익보다 많았다. '뭐, 전쟁이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아크는 이참에 슈덴베르크 왕국의 국고를 탈탈 털어먹을 작정이었다. '그래도 설마 명색이 왕국인데 지불할 돈이 부족해서 파산하지는 않겠지.' 아크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령관님, 방금 전 들어온 급보입니다!" 다급한 표정의 전령이 막사로 뛰어들어 왔다. "무슨 일인가?" "어제저녁,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시니어스 공국의 남서부 국경에 도착. 몬스터들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기습 작전을 성공시켜 스미레 산맥의 몬스터 대군을 격파하고 저희와합류하기로 했던 실리나드 지방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 "그게 사실인가?" 전령의 보고에 부대장들이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은 우리보다 많은 8만 명이 참전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출발이 늦어진 건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특히 이번 기습 작전을 진두지휘한 이방인,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는 검사와 마법사의 활약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곤란하게 됐군." 보고를 받은 하베스틴과 아크가 동시에 중얼거렸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하베스틴과 아크가 곤란하다고 말한 것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먼저 하베스틴이 곤란하다고 말한 이유는, 양국 원정군 사이의 주도권 문제 때문이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그들보다 먼저 출발했지만 아직도 국경조차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은 참전하자마자 국경을 넘고 실리나드 지방으로 진군하고 있다. 물론 이 자체는 슈덴베르크 원정군에게 나쁜 소식이 아니었다. 애초에 양국이 실리나드 지방에서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곳이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실리나드 지방을 점령하면 파비온 요새의 배후에서 공격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해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아무런 피해 없이 파비온 요새를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원정 초기부터 도움을 받아 버리면 원정 내내 슈덴베르크는 브리스터니아에게 주돈권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을 때 시니어스 공국에게 받아야 할 보상금 - 사실 이 때문에 원정군이 조직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의 지분도 상당 부분 브리스타니아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이번 원정의 가장 큰 목표는 어둠의 세력을 격퇴하는 것이지만, 엄청난 군자금을 쏟아붓는 만큼 그 뒤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령관인 하베스틴 역시 그 부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곤란하다고 말한 의미는 하베스틴과 다르면서도 같았다. '브레드와 레디안 녀석들, 한동안 연락이 안 된다 했더니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에 들어가 있었구나. 젠자! 들어갔으면 들어간 거지 왜 괜환 짓을‥‥‥.'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내심 중얼거렸다. 다시 말하자만 아크는 현재 상황이 가능한 오래 지속되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런데 브리스타니아의 참전으로 균형이 깨져 버렸다. 달가울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아크만의 욕심이었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하베스틴과 생각이 같았다. '하짐나 언제까지나 국경에서 버벅대고 있을 수는 없어. 나도 언젠가는 전쟁이 끝나야 군표를 현찰로 바꿀 테니까. 하지만 전쟁이 지속 되는 동안은 어떻게든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이번 전쟁의 주도권을 잡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하베스틴과 마찬가지로 아크에게도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주도권을 잡느냐 마느냐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건 바로 두 원정군이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와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주도권을 잡아 버리면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앞으로 나설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최악의 경우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후방 지원이나 보급 부대정도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아크가 걱정하는 게 바로 이부분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양국은 이번 원정으로 시니어스 공국에서 상당한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다. 당연히 더 많은 공적을 쌓은 원정군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되리라. 그러니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주도권을 잡으면 슈덴베르크 원정군에게는 공적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할 게 분명하다. 중요한 전투에서 빼 버린다는 뜻이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최대한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싸워 줘야 군수물자가 펑펑 소모될 거 아냐? 그런데 제대로 싸울 기회가 줄어들면‥‥‥.' 그만큼 군수물자의 소모가 적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수입이 적어진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실 아크는 초반에 군수물자 확보에 고생한 덕분에 그 뒤로 지저 세계와 스탄달의 생산 라인을 2교대 24시간 운영 체재로 가동, 상당한 양의 군수물자를 확보해 놓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산 소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며 착실하게 아크의 재산을 불려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비가 급감하면 재고품이 쌓이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재고품을 처리하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버리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아크가 수만 골드에 달하는 재고품을 끌어안게 돼 버리는 것이다. '그,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자금이 몽땅 재고품에 묶여 버리면 전쟁이 끝나면 한동안은 삼각무역을 재개할 수 없단 말이야!'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저기‥‥‥그리고 왕성에서 보내온 명령도 있습니다." 전령이 쭈뼛거리며 하베스틴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만약 이번에 브리스타니아 원정군보다 실리나드 지방에 늦게 도착해 주도권을 빼앗길 경우, 귀족 회의 는 그 책임을 사령관님에게 물어 경질시키겠다고 합니다." 전령의 말에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사령관 교체라니? 이건 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귀족 회의에서 그런 얘기를 꺼낼 사람은 사르킨 공작밖에 없다. 직접 하베스틴을 추천한 할벤 후작이나 달틴 후작이 그런 얘기를 꺼낼 리가 없어. 그렇다면 하베스틴이 경질 된 뒤에 사령관으로 올 사람은 사르킨 공작의 휘하 귀족이겠지. 그렇다면‥‥‥.' 현재 아크가 군상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베스틴이 사령관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베스틴이 경질된다면 당연히 아크 역시 군상의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많았다. 사르킨 공작은 원정군이 출발하기 전에도 아크를 군상에서 밀어내려고 했던 귀족. 그런 사르킨 공작의 휘하 귀족이 아크를 그대로 군상 자리에 둘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단순히 팔고 남은 재고품을 끌어안는 것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아크가 비축해 두고 있는 군수물자는 수십만 골드, 그걸 하나도 팔지 못하고 재고품으로 끌어안게 되면 아크상단의 운영 자금 문제가 아니라 단숨에 파산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사색이 되어 있을 때였다. "남은 의욕마저 빼앗는 듯한 말이로군." 하베스틴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부대장 1명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답답하군요. 왕성에서는 전장의 상황을 알고서나 하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브리스타니아와 맞닿아 있는 국경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곳은 산맥이라고는 하지만 이곳과 달리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대군을 움직이기에 편한 지형입니다. 또한 검은 오벨리스크를 발견하고 파괴하기도 이곳보다 쉽습니다. 그럼에도 결과만 보고 사령관을 경질시켜야 한다는 소리나 하다니‥‥‥." "그건 우리가 얘기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지." 하베스틴은 거칠어진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으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할 문제는 귀족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오. 경들고 알다시피 이번 전투의 가장 큰 목적은 어둠의 세력을 격퇴하는 것이오. 하지만 단순히 격퇴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의 50%밖에 하지 못한 것이오. 국왕 폐하께서도 말했지만 이번 전투는 대륙에 슈덴베르크 왕국의 위명을 대륙에 떨칠 기회. 브리스타니아와 협력해야겠찌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등, 혹은 그 이상의 주도권 잡아야만 하오." "그야 그렇지만‥‥‥."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국경을 넘었다고 하지만 실리나드 지방까지의 거리는 우리보다 머오. 며칠 사이에 파비온 요새를 넘을 수 있다면 아직 희망은 있소. 그러니 경들도 다른 문제보다 파비온 요새를 공략할 방법만을 생각해 주시오." 그러나 발등에 불을 떨어졌다고 없던 방법이 생길 리가 없었다. 결국 그 날의 회의는 부대장들끼리 한숨만 주고받가가 끝이 났다. 그리고 '지맥 파괴'로 협곡에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원정군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망할 자식아, 왜 그렇게 꿀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냐?" 모처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샴바라가 찝찝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어? 샴바라? 네가 어떻게 여기에?" " '어?' 는 뭐가 '어? 야? 네놈이 불러 놓고?" "내가? 아, 그렇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크가 뒤늦게 머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사태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샴바라를 불렀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아크가 샴바를 부른 것은 얼마 전이었다. 병사에서 보급병으로 전직한 아크는 군수물자를 전장에서 파는 편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먹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아크처럼 움직이며 보급품을 팔아먹는 방식은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전투를 회피한다고 하지만 몬스터가 수천 마리나 설치는 전장을 누벼야 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레벨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객사하기 딱 좋은 것이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샴바라였다. 샴바라라면 아크 못지않은 레벨과 실력을 가진 유저. 그라면 아크처럼 전장을 누비며 보급품을 팔아먹을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샴바라에게 연락했다. 그러나 샴바라는 순순히 아크에게 이용당할 만큼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다. "너나 많이 해 처먹어라." 예상대로 샴바라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샴바라를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흠, 그렇게 말해도 될까? 네기 발급한 '샴바라 1회 사용권' 쿠폰. 그걸 사용하지. 설마 이사벨 앞에서 한 맹세를 저버리지는 않겠지?" "‥‥‥ 망할 자식!" 샴바라는 새삼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아크가 말한 '샴바라 1회 사용권' 쿠폰은 다름 아닌 자신이 발급한 것이기 때문이다. 샴바라가 아크에게 쿠폰을 발급하게 된 원인은 바로 스탄달 때문이었다. 대륙에서 검은 오벨리스크가 나타나기 시작 했을 무렵, 스탄달은 대륩과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 검은 오벨리스크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검은 오벨리스크의 위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검은 오벨리스크가 근해의 바다에 박혀 각종 바다 몬스터들이 스탄달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크에게도 심각한 문제였다. "아크 님의 요청대로 저희 역시 군수물자를 생산해서 산업을 활성화 시키고 싶어요. 하지만 바다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침공해 그럴 여유가 없어요." 아크가 군수물자 계약 건으로 찾아갔을 때 이사벨이 말했다. 그러나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획득한 아크에게 바란족의 생산 능력은 필수 불가결이었다. 그렇다고 바다 몬스터들에게 죽어 나가면서 군수물자를 생산하라고 할 수도 없는일. '뭔가 바다 몬스터들을 막을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아이템이 떠올랐다. 『페러사이트의 알 주머니 레비아틴의 체내에서 기생하던 페러사이트의 알 주머니. 바닷속에 넣어 두면 부화합니다.』 대체 어디에 사용해햐 할지 알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부화시켜 봐야 몬스터. 잔쯕 부화시킨 뒤에 때려잡아 레벨이라도 올리라는 건가? 그런데 이 아이템을 바란족의 특수 능력과 결합해 보니 의외의 쓸모가 떠오른 것이다. 바로 바란족의 '몬스터 조련' 능력! 그렇다. 페러사이트를 부화시킨 뒤에 바란족을 이용해 조련시키면 아군으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막 알 주머니에서 나온 페러사이트라면 그만큼 조련하기 쉬울터. 잘만 하면 스탄달에 수천 마리의 해군이 생기는 것이다. 아니, 하나에 수천 개의 알이 담긴 알 주머니가 몇 개나 있으니 만 마리 이상의 해군 부대를 창설할 수도 있었다. '갓 태어난 페러사이트라도 그 정도 숫자라면 바다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따위는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는다. 그러면 바란족은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계획을 세운 아크는 곧바로 이사벨과 흥정했다. 어차피 쓸데없는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뿐이지만 아크 사전에 공짜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크는 바다 몬스터를 막을 방법을 제공하는 대신, 스탄달에서 생산하는 모든 군수물자를 시세의 65% 가격으로 제공한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때 그런 아크의 치사한 행각을 지켜보던 샴바라가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상종하기 싫은 놈. 뭐 하나 그냥 해주는 법이 없다니까." 그러나 그 말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그 말에 살짝 빈정이 상한 아크가 곧바로 추가 항목을 집어 넣은 것이다. "시세의 65% 가격에 군수물자를 제공하고 ‥‥‥ 거기에 '샴바라 1회 사용권' 쿠폰을 주시면 페러사이트의 알 주머니를 몽땅 드리겠습니다." "뭐야? 내가 물건이냐?" 샴바라는 펄쩍 뛰었지만 곤란해하는 이사벨의 눈빛에 할 수 없이 허락하고 말았다. "키키키, 앞으로 조심해라. 확 굴려 버리는 수가 있다." 아크가 퉁퉁 부어 있는 샴바라를 홀겨보며 히죽거렸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제대로 굴려 대기 위해 깜빡했다고 지껄여 대자 샴바라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아, 그렇지? 너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하냐?" "시끄러,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잠깐 잊고 있었을 뿐이야. 그리고 지금은 너와 아옹다옹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젠장, 자칫하면 군수물자고 뭐고‥‥‥." "무슨문제라도 있나요?" 그때 샴바라의 뒤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며 물었다. "문제? 있지. 그것도 아주 큰‥‥‥ 엇? 레, 레리어트 님?"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샴바라의 뒤에서 나타난 여자는 다름 아닌 레리어트였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아크가 와락 고개를 돌려 노려보자 샴바라가 샐쭉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내가 말 안 했나? 네 연락 받고 출발하려는데 같이 오겠다고 하더라고. 와, 누구는 좋겠어. 사방에 도와주겠다는 여자가 널려 있으니 말이야. 어때? 고맙지?" '이 망할 녀석이 정말‥‥‥!' 아크는 느물거리는 샴바라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사실 요즘 아크는 레리어트를 만나는 상황을 꽤나 부담스러워했다. 몇 번이나 만나서 진지하게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햇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되면 아무런 말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레리어트 역시 그런 아크의 생각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때문에 아크는 더더둑 그녀와 대면하기가 어색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녀를 데리고 온 것도 모자라 저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 틀림없이 아크를 엿 먹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혹시 제가 와서 부담이 되나요?" 샴바라를 노려보자 레리어트가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음, 부담된다. 정말 많이 부담된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 - 심지어 마음이있는 - 입이 찢어져도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너무 오랜 만이라 반가워서 그러죠." 아크는 누가 봐도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더욱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샴바라는 억지로 웃음을 참는 듯한 얼굴로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 레리어트도 꽤나 불편했는지 결국 화제를 돌려 버렸다. "그런데 아까 전에 하려던 말은 뭐죠?" "아까 전에? 아, 그렇지. 실은 말이죠‥‥‥." 그제야 겨우 화제를 전환할 말이 생각난 아크는 얼른 현재 원정군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샴바라 역시 장난기를 지우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 생각보다 일이 잘 안풀리는 모양이군." "잘 안 풀리는 정도가 아니야. 이대로 며칠만 더 지나면 하베스틴의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그러면 나도 이 장사 다 해먹는 거야. 그리고 너도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상황이 아니야. 내가 파산하면 스탄달에 비축된 군수물자는 몽땅 이사벨이 떠안아야 하잖아." "그렇게 되면 항상 내 검이 네 뒤통수를 노리게 될거다." 샴바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벌한 소리를 지껄여댔다. "너 정말 그렇게 삐딱하게 나올래? 친구가 파산할지도 모른다는데?" "그런 말은 친구가 된 다음에 해주면 안 될까요?" 아크와 샴바라가 그렇게 발전 없는 말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레리어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저‥‥‥ 요새 때문에 정면 공격이 힘들면 뒤로 돌아가서 배후를 치면 어떨까요?" 레리어트의 발언에 아크가 샴바라의 말을 멈췄다. 그리고 둘이 동시에 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서 여자란‥‥‥. 그럴 수 있다면 이런 고민도 안하지." "보면 알잖아요. 슈덴베르크와 시니어스 공국의 국경은 알바라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요. 유일한 통로는 파비온 협곡뿐이라 요새를 통과하지 않고는 그곳에 갈 수 없었어." "파비온 협곡 말고도 북부 국경을 넘을 수 잇는 길이 있는데요?" 레리어트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문했다. 그리고 잠시 기억을 더듬듯이 생각에 골몰하다가 설명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예전에 게임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였을 거에요. 음‥‥‥ 그때 저는 게임에서 알게 된 응시자들하고 같이 다니고 있었는데, 시니어스 공국에 숨겨진 던전을 찾아가야 하는 퀘스트를 받은 적이 있어요." 레리어트는 언급을 피했지만 당시는 그녀가 아란과 함께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유저가 국경 관문을 넘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방법을 찾던 아란은 국경 지대의 한 주점에서 음유시인에게 상당한 돈을 주고 정보를 구입했다. 그게 바로 파비온 요새를 통과하지 않고 알바라 산맥을 넘는 비밀 통로에 대한 정보였다고 한다. "덕분에 동료들과 알바라 산맥을 넘어 시니어스 공국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 얘기, 자세히 좀 해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크가 벌떡 일어나 와락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곧바로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고 물러 났다. "앗, 죄,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생각지도 못했던 아크의 반응에 레리어트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둘의 분위기가 묘하게 변하자 옆에서 샴바라가 히죽히죽 웃으며 휘파람을 불어 댔다. "일부러 레리어트를 꼬여 온 보람이 있군." ACT3 스머글 패스(Smuggle Path) 휘이이이잉-!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계곡을 따라 휘몰아쳤다. 한참 내리던 눈은 그쳤지만 쌓인 눈이 바람에 날려 눈 폭풍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그런 눈 폭풍 속에서 검은 늑대 한마리가 하얀 힙김을 뿜어 올렸다. "휴‥‥‥." 참았던 숨을 털어놓듯 한숨을 불어 내는 검은 늑대는 바로 아크였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장난이 아니군." 아크는 새삼스럽운 눈길로 자신이 지나온 곳을 돌아보았다. 현재 아크가 있는 곳은 현기증이 일어날 듯이 깊은 계곡의 중턱이었다. 그리고 아크는 마치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처럼 절벽 중각에 여기저기 튀어나온 돌부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절벽에 붙어 있는 사람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아크의 뒤에는 두터운 모피로 중무장한 샴바라와 레리어트 그리고 원정군에서 뽑아 온 200명의 유저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들 모두가 여기까지 돌부리를 잡으며 절벽을 기어 이동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눈앞에는 그런 돌부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는 아무래도 더 이상 이동할 수 없겠어." 한참 동안 지도와 주변 지형을 대조해 보던 아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수십 미터 떨어진 반대편 절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라카드, 반대쪽 절벽을 살펴보고 와라." "오케이." 그러자 다크울프로 변해 불슥불슥해진 아크의 갈기 속에서 라카드가 튀어나왔다. 바쁘게 날갯짓을 하며 반대편 절벽으로 사라진 라카드가 잠시 후 돌아오며 말했다. "확인했어. 반대쪽 절벽에서 아래쪽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한 길이 있어." "다행이군. 또 돌아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샴바라." 아크가 고개를 돌리자 샴바라가 가방에서 로프 다발을 꺼내 던저 주었다. 아크가 로프를 받아 근처의 돌부리에 단단히 묶은 뒤 반대편을 라카드에게 건내 주었다. "반대편 절벽에서 적당한 돌부리를 찾아 단단히 묶어." "알았어." 라카드가 로프의 끝자락을 들고 반대편 절벽으로 사라졌다. 눈보라가 심해서 자세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금세 두 절벽 사이에 걸쳐진 밧줄이 팽팽해졌다. 그리고 바로 라카드가 날아와 보고왔다. "됐어. 단단히 묶었으니 풀리지는 않을 거야." 아크는 몇 번 밧줄을 당겨 안전을 확인하고 밧줄에 체중을 실어 보았다. 수십 미터 거리로 늘어진 밧중이 한차례 크게 출렁거렸다. 거기에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거친 바람까지 합세하자 밧줏은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흔들렸다. 아니, 아마도 다른 밧줄이었다면 벌써 귾어졌으리라. 그러나 샴바라가 가지고 다니는 밧줄은 내구력 보너스가 붙은 마법 아이템이라 검으로 내리쳐도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이 강해서 혹시 모르니 일단 1명만 이동하는 편이 좋겠어요. 내가 먼저 반대편으로 이동하며 확인해 보고 말해 줄게요." "네, 조심하세요." 레리어트가 하얀 입김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아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고 밧줄에 몸을 의지해 반대편 절벽으로 향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그렇게 대략 3분의 2가량 넘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산 전체가 요동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왔다! 모두 절벽에 바짝 달라붙어!" 샴바라가 절벽에 몸을 바짝 붙이며 소리쳤다. 사실 이 설산에서 이 정도의 가벼운 지진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벼운 지진이라도 암벽을 타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었다.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작을 돌이라도 맞으면 엄청난 데미지와 함께 절벽 아래로 번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 수십 명이 머리에 혹을 만든 채 밧줄 없는 번지를 하고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행히 불행한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휴, 이번에는 그럭저럭 넘긴 모양이군." 진동이 가라앉아 출렁이는 밧줄을 꽉 부여잡고 있던 아크가 절벽에 붙어 있는 샴바라와 레리어트, 200여 명의 유저들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이 몰고 온 문제는 애초에 절벽 쪽이 아니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뭐지? 진동이 없는데 어디서 이런 소리가?"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절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샴바라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고함을 터드렸다. "아크, 계곡이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던 아크의 얼굴 역시 샴바라처럼 밀가루 색으로 변해 버렸다. 아크가 건너고 있는 계곡의 샹류에서 거대한 해일이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눈과 바위, 나무토막 따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해일! 그렇다. 지즌으로 계곡 상류에 쌓여 있던 눈이 단숨에 붕괴되어 계곡을 따라 눈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밀려오는 눈사태를 확인한 아크가 황급히 계곡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계곡까지 돌아가는 데는 적어도 3~4분은 걸릴 것 같았다. 그 정도 시간이면 눈사태가 아크를 삼키고 분쇄기의 고기처럼 잘게 다져 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젠장, 이미 늦었어! 모두들 눈사태가 닥치기 전에 조금이라도 많이 올라가라!" 샴바라의 외침에 병사들이 발발거리며 절벽을 기어 올라갔다. 그러나 밧줄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아크는 그저 멍하니 밀려오는 눈사태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맙소사, 이제 목적지가 코앞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아크의 입에서 허탈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크가 이런 황당한 곳에서 이렇게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 이유는 바로 어제저녁 레리어트를 통해 전해 들은 정보 때문이었다. * "그 얘기, 좀 자세히 해 주십시오!" 상황은 다시 어제저녁, 아크가 레리어트의 손을 덥석 잡아 버린 시점으로 돌아간다. 그 뒤로 아크가 얼른 손을 떼고 둘이 얼굴을 붉혔다나 어쨌다나 하는 얘기는 접어 두고‥‥‥. 어쨌든 아크의 부탁에 레리어트가 비밀 통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음유시인은 그 길을 스머글 패스라고 불렀어요." "스머글 패스?" "원래 그 길은 슈덴베르크와 시니어스 공국 사이를 왕래하며 거래하는 밀수꾼들이 이용하던 거래요. 그래서 스머글 패스. 밀수끈의 통로라고 부르나 봐요." "어쨌든 파비온 요새를 통하지 않고도 알바라 산맥을 넘어 갈 수는 있다는 거죠?" "네. 그렇기는 하지만‥‥‥." 기억을 더듬던 레리어트가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얘기를 꺼내 놓고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 역시 안되겠네요." "안 되다니요? 뭐가요?" "일단 저는 2년 전쯤에 딱 한 번 가 본 곳이라 자세한 길을 몰라요. 게다가 제가 왔을 때는 여름이라 눈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도중에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함께 출발했던 동료들 가운데 20명이 낙오될 정도로 험한 길이었죠. 음유시인은 스머글 패스를 자주 이용하는 밀수꾼들도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안 곳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눈이 쌓여 있는 겨울에 길조차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기에는‥‥‥."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크가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말했다. 이대로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면 하베스틴은 사령관직에서 경질당하고만다. 그리고 아크 역시 간신히 얻은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이 날아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게 되면 아크는 엄청난 양의 재고품을 떠안고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단순히 게임에서 파산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 파비온 요새를 통과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상황! 고작 게임 속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레리어트 님은 일단 기억 나는 대로 설명해 주세요." 아크는 레리어트의 설명을 들으며 알바나 산맥의 지도에 세세하게 위치를 표시했다. 그렇게 한참, 아크는 대략 스머글 패스라고 불리는 루트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레리어트 님이 말처럼 무턱대고 달려들 일은 아니야. 뭔가를 계획해도 일단 할 수 잇는 한 주변의 지형 정보를 최대한 모은 뒤에 시작해야 한다.' "마령 소환, 라카드!" 아크는 곧바로 라카드를 불러내 지도를 안겨 주며 말했다. "너는 이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꼼ㄲ모하게 살펴보고 정말 이동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라." "뭐? 이 엄돌설한에 저런 설산을 날아다니라고?" "이번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언제든 네가 원하는 대로 휴가를 주마." "정말이야?" "그만큼 중요한 일이야." "알았어!" 휴가라는 말에 라카드가 의욕이 넘치는 표정으로 알바나 산맥으로 날아갔다. 아크가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 움직이려는 것은 결코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아크는 몇 번을 죽어도 되살아나서 스탯을 복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재고품을 떠안고 파산해 수만 골드의 빚이 생기면 복구해서 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이렇게 꼼꼼하게 확인한 뒤에 움직이려는 이유는 오직 하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였다. 시간이 없는데 몇 번이나 확인을 하면서 움직이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원래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재고품을 안고 파산하는 것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먽 ㅓ실리나드 지방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6~7일.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통과해 실리나드까지 이동해도 2~3일은 걸리니,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나흘 안에 파비온 요새를 넘지 못하면 우려하던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현재로써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킬 방법은 스머글 패스를 이용하는 방법뿐이다. 문제는 남은 시간이 나흘밖에 없나는 점이야. 만의 하나라도 스머글 패스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기회는 단 한 번. 당장 급한 마음이 들더라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성공 확률을 높여 놔야 한다.' 이게 아크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조바심을 억지로 누르며라카드의 보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대략 12시간이 지났을 무렵, 라카드가 추위에 벌겋게 익은 얼굴로 콧물을 질질 흘리며 돌아왔다. "으‥‥‥ 추, 추워 보, 볼이 얼어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아." "확인해 봤어?" "대, 대강 확인은 해 봤어. 그런데 막상 둘러보니 눈이 쌓여서 그런지 지도에 표시된 내용과는 많이 다ㄹ더라고 하지만 주인이 말한 대로 어떻게든 반대편 산기슭까지 이동할 수 는 있을 것 같아. 뭐, 그건 내 기준이고 직접 가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보기에 좀 괜찮아 보이는 길은 따로 표시해 뒀어." 라카드가 지도를 돌려주며 대답했다. 지도를 펼쳐 보니 라카드가 말한 대로 여기저기 새로운 루트가 그려져 있었다. 레리어트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공백으로 남겨 뒀던 부분도 이어져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일단 필요한 정보는 확보한 셈이다!' 아크는 지도를 받아 들고 곧바로 하베스틴을 찾아갔다. "백작님,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갑자기 무슨 말인가?" 하베스틴이 푸석푸석해진 얼굴로 되물었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실리나드 진군 소식을 들은 이후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킬 방법 말입니다." "파비온 요새 함락? 뭔가?" 하베스틴이 잠이 확 깨는 표정으로 황급히 물었다. 아크는 씨익 웃으며 레리어트와 라카드의 정보를 종합해 놓은 지도를 탁자에 펼쳐 놓았다. 그러자 미간을 좁히며 지도를 바라보던 하베스틴이 고개를 들어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건 설마‥‥‥ 스머글? 스머글 패스?" "알고 계셨습니까?" 아크가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하베스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들어 보기만 했네. 오래전부터 슈덴베르크와 시니어스 공국을 왕래하는 밀수꾼들이 이용하는 비밀 루트가 알바나 산맥 어딘가에 있다고 말이야. 때문에 국경수비대에서 몇 년 동안 추적해도 알아내지 못해서 그저 소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존재했단 말인가? 대체 자네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은 건가?" 그냥 국경 근처 주점에서 음유시인에게 돈을 주면 가르쳐 준다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면 하베스틴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졌지만, 지금은 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연히 손에 넣게 됐습니다." "이 지도에 적힌 루트가 정말 스머글 패스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얻은 정보고, 또 소환수를 이용해 대강 확인해 봤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만‥‥‥." 하베스틴이 뚫어질 듯 지도를 바라보다가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이미 말했지만 그동안 국경수비대가 스머글 패스에 대해 오랫동안 조사하고도 결국 헛소문으로 치부해 버린 것은 그 만한 이유가 있어서네. 알바나 산맥에서 파비온 협곡을 제외한 다른 곳은 도저히 이동 루트로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하기 때문이야. 더구나 지금은 알바나 산맥이 가장 무서워진다고 하는 겨울이네. 아무리 스머글 패스를 알아냈다고 해도 3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그런 험난한 산맥을 넘을 수는 없네." "3만의 대군이 모두 알바나 산맥을 넘어갈 필요 없습니다." 아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파비온 요새에 주둔해 있는 몬스터는 수만이네. 알바나 산맥을 넘어간다고 해도 놈들과 싸우려면‥‥‥." 하베스틴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크는 그런 하베스틴의 반응에 '참 잘했어요.'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자네가 말한 방법이란‥‥‥." "네. 현재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뚫지 못하는 건 그곳에 주둔하고 있는 수만의 몬스터들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몬스터들 때문이 아니죠. 문제는 '그' 몬스터들을 처리해도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서 계속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사실 원정군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고 맹공을 퍼부으면 아무리 파비온 요새가 버티고 있다 해도 몬스터를 전멸시키는건 가능하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 몬스터가 죽어 나가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활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바로 24시간이나 지속되는 그립퍼의 '지맥 폭마'. 물론 '지맥 폭파'를 사용하면 그립퍼도 죽어 버리지만, 그립퍼 역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하니 같은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어 왔다. 허술한 듯 보이지만 교모하게 짜 맞춰진 방어 전술이었다. 몬스터들을 머리가 좋은 어떤 존재가 통제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검은 오벨리스크를 일부러 요새와 멀리 떨어진 후방에 배치시킨 방식이나, 그립퍼를 이용해 몬스터들의 부활 시간을 버는 작전이나, 몬스터들이 생각해 낼 방법이 아니야. 파비온 요새의 배후에는 유저가 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완벽하게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정도로 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예전에 글로벌엑서스에서 이번 사건의 배후에 유저들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파비온 요새의 몬스터들을 유저가 조종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 유저도 설마 스머글 패스까지는 몰랐겠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지도에 그려진 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알바나 산맥을 넘어가 다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이동시켰다. "하지만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시키 버린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죠." 그게 스머글 패스의 정보를 얻는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그려진 작전이었다. 물론 검은 오벨리스크도 재생한다. 그러나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몬스터가 부활하는 시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현재 궁정 마법사가 조사한 방레 의하면 검은 오벨리스카가 파괴됐다가 재생하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에서 열흘. 그 안에 몬스터를 전멸시키면 일단 파비온 요새를 완전히 함락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점령한 파비온 요새 주변에서 재생되는 오벨리스크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도 적지 않은 몬스터들이 모여 있을 텐데‥‥‥." "끌어내야지요." 아크가 지도에 그려진 파비온 요새를 탁탁 치며 말했다. "어제 전투에서 죽은 놈들이 지금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서 부활하고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검은 오벨리스크라고 해도 불러낼 수 있는 몬스터의 숫자는 정해져 있씁ㄴ디ㅏ. 다시 말해 놈들이 다시 죽지 않는 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서 더 이상 그 주변에서 나타날 몬스터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모든 몬스터가 부활했을 때 원정군이 전 병력을 동원해서 파비온 요새를 몰아붙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 있던 몬스터들까지 파비온 요새로 몰려온다 이건가?" "네. 그리고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은 파비온 요새와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만의 하나라도 공성 병기에 의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멀리 배치시켜 놓은 거겠지만, 만약 몬스터가 빠져나간 뒤에 우리가 그곳을 급습하면 놈들은 그 거리 때문에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확실히‥‥‥!" 하베스틴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파비온 요새의 공략법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말한 작전을 성공시키는 데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결국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왔군. 적은 병력이라면 부담이 덜하기는 하겠지만, 과연 이 겨울에 스머글 패스를 넘을 수 있느냐는 거야. 게다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해도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려면 최소한 하루는 걸리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보다 먼저 실리나드 지역에 진입하려면 나흘 안에 승부를 봐야 하니 늦어도 사흘 안에는 스머글 패스를 넘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 "가능합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제가 직접." "자네가 가겠다는 건가?" "원정군에 저보다 믿음직스러운 전사가 있다면 양보하겠지만요."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베스틴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아크 님이 제안한 새로운 작전을 원정군 사령관이 수락했습니다. *화술이 30만큼 상승했습니다. *정치력이 20만큼 상승했습니다. *공적치가 500만큼 상승했습니다.』 『성전을 위한 원정군!(이벤트 퀘스트) +서브 퀘스트 :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몬스터 대군에게 막혀 아직 시니어스 공국의 국 경조차 넘지 못하고 있씁니다. 이에 아크 님은 새로운 작전을 제안했 고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이 수락했습니다. 【작전 개요】슈덴베르크와 시니어스 공국을 넘나드는 밀수꾼의 비밀 루트, 스머글 패스를 이용해 파비온 요새의 몬스터들을 부활시키는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해야 합니다. 특공대가 '검은 오벨리스 크의 숲'에 접근하면 원정군은 파비온 요새를 공격해 몬스터들의 이목 을 끌 것입니다. 《난이도 : +A》 』 하베스틴이 작전을 수락하자 아크의 제안은 곧바로 서브 퀘스트로 등록되었다. 물론 이번 작전은 아크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하베스틴은 부대장들을 소집해 작전을 설명하고 아크를 지휘관으로 특수 임무를 맡을 부대원을 모집했다. 그러나 하베스틴의 결정은 곧바로 부대장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그런 중요한 임무를 군상에게 맡긴다니?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이번 작전을 생각해 낸 사람이 그라도 이건 지나친 처사입니다!" "네, 임무를 맡을 전사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작전을 설명하고 특수부대의 지휘관으로 아크를 지목하자 부대장들이 소란을 떨어 댔다. 부대장들 가운데서도 특히 유저들의 반대가 심했다. 이번 임무는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느냐가 걸려 있는 중요한 임무였따. 당연히 지휘관이 되어 작전을 성공시키면 엄청난 공적치를 얻을 수 있으리라. 그런 기회를 유저들이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하베스틴은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경들은 정말 아크 경에게 그런 임무를 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나?" "물론입니다!" 부대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자, 다시 잘 보고 대답하게. 정말 자네들이 아크 경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같은 질문에 부대장들이 대체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아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경악성이 터져 나왔따. "그야 당연히 상인보다야‥‥‥ 헉, 뭐, 뭐야?" "부, 분명 방금 전까지 저기에는 아크 경이‥‥‥ 그, 그럼 설마 아크 경은‥‥‥." 부대장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그들이 돌아본 곳에는 방금 전까지 아크가 서 있었다. 그러나 다시 돌아보자 아크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검은 갈기에 뒤덮인 늑대가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슈덴베르크, 아니 뉴 월드에서 스탄달을 떠올리고, 소수의 병력으로 도적단으로부터 란셀 마을을 지켜 내 최강의 전사로 인정 받고 있는 검은 늑대의 이름을 모르는 유저는 없었다. "그가 바로 다크울프네." 하베스틴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숱한 의혹을 낳았던 다크울프의 진정한 정체가 유저들에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브리스타니에서는 브레드와 레디안이라는 걸출한 검사와 마법사가 활약해 이번 성과를 일궈 냈음을 경들도 알 거요. 하지만 다행히 슈덴베르크에도 그와 비견될 만한 전사는 있지. 나는 다크울프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경들의 생각은 어떻소? 그보다 나은 적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오?" 부대장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 특수 임무를 수행할 특수부대의 창설이 본격적으로 이루어 졌다. 상당한 공적치가 예상되는 만큼 이번 임무를 맡고 싶어 하는 지원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전의 시간제한을 생각할 때 많은 병력을 데리고 갈 수는 없다. 인원은 300명 정도가 적당해. 단시간 스머글 패스를 지나야 하니 레벨도 레벨이지만 운동신경이 발달한 유저 300명으로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한다.' 아크는 그동안 전장을 뛰어다니며 눈여겨 봐 뒀던 유저 300명을 부대원으로 삼고 퀘스트를 공유시켜 주었다. 속도를 가장 중시해야 하는 상황이라 보급품도 많이 가져 갈 수 없었다. 산행에 필요한 장비품과 군량 며칠 분이 전부였다. 그러나 딱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보급품이 있었다. 『성광 폭뢰(특수) 마법 학회가 개발한 폭뢰에 고위 성직자들이 신성 주문을 새겨 만들어진 대마용 폭뢰. 특히 마 속성의 적에게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직 개발이 완전하지 않아 작동과 폭발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신성주문과 화약의 반발 작용 대문에 폭파 범위도 크지 않아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힘듭니다. 대신 검은 오벨리스크에 대해서는 강력한 폭발력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현재는 각지에서 출현한 검은 오벨리스크 파괴용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동시키면 10분 뒤에 폭발해 주위 1미터 이내의 검은 오벨리스크에 게 5,000에 달하는 데미지를 입힙니다. 마족에게 사용할 경우, 200의 데미지 밖에 입힐수 없습니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의 운명이 자네에게 달려 있네." 성광 폭뢰를 받아 들자 하베스틴이 아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나 아크의 머릿속에 슈덴베르크 원정군의 운명 따위는 애초에 들어 있지도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내가 지켜야 할 돈뿐이야! 몬스터 따위가 멋대로 내 장사를 방해하는 건 절대 용서 못해! 그런 놈들이 있다면 몽땅 날려 버리겠어!' 아크의 눈에는 의욕이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 그 뒤로 아크는 정말 인간 승리의 다큐멘터리를 찍어야 했다. 그리고 모처럼 불타오른 아크의 의욕은 설산의 찬 바람에 단숨에 꺼져 버렸다. 밀수꾼들조차 피한다는 한겨울의 알바나 산맥. 그곳은 아크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위험한 곳이었다. 산 위를 걸으면 눈이 쌓이고 쌓여 지면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설계와 빙벽이 갈라져 한 번 떨어지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다는 크레바스가 도처에서 특공대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산 아래를 걸으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지진이 지나가면 낙석이 발생해 특공대의 머리를 두부처럼 으깨 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사고였다. 덕분에 스머글 패스에 들어선 지 10시간 만에 300명이었던 특공대는 200여 명으로 줄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레리어트의 기억과 라카드의 정찰이 없었다면 이미 남은 200명도 어딘가에 처박혀 동태가 되어 버렸으리라. '하지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 아크는 이를 악물고 강행군을 거듭했다. 그리고 갖은 고생 끝에 이제야 겨우 스머클 패스의 마지막 관문에 도착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황당하게 죽어야 한단 말인가?' 쿠쿠쿠쿠, 쿠콰콰콰콰! 아크는 멍청한 눈으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거대한 회색 괴물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죽는 게 아니다. 여기서 아크가 죽으면 이번 작전 자체가 실패로 돌아간다는 게 문제였다. 원래 이 계곡은 여름 때면 아래의 길을 따라 넘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겨울이라 엄청나게 쌓인 눈 속에 길이 묻혀 어쩔 수 없이 절벽과 절벽 사이에 밧줄을 걸어 놓고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크가 죽고 밧줄마저 끊긴다면 반대편 절벽으로 이동할 방법도 사라진다. 아크가 죽으면 그만한 거리를 넘어 밧줄에 묶어 줄 라카드까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작전은 중지. 결국 아크만 믿고 있던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하베스틴은 사령관 직에서 잘리게 된다. 그리고 아크 역시 덩달아 군수물자 독점거래권을 박탈당하고 재고품과 함께 파산하게 돼 버리리라.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돈이 없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 돼. 그건 절때 안 돼! 절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거기까지 생각하자 자포자기에 빠져 있던 아크의 눈에서 다시 의욕이 솟구쳤다. '뭔가‥‥‥ 언제나 그랬듯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아크는 머리를 풀가동시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최대한 빨리 절벽으로 되돌아가 눈사태를 피한다? ‥‥‥그전에 눈사태에 휩쓸려 아웃. 라둔의 배 속에 넣어 둔 행글라이더를 타고 도망간다? ‥‥‥도망가다가 눈사태에 휩쓸려 아웃. 그냥 밧줄을 꽉 움켜ㅟ고 귾어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밧줄 채로 눈사태에 휩쓸려 아웃. 수많은 가정을 생각해 봐도 결말은 눈사태에 파묻혀 시체가 된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정말 이대로 방법이 없는 건가?' 아크가 미친 듯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꽉 움켜쥔 밧줄에 시선이 닿는 것과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가만? 그래, 그 방법이라면 혹시‥‥‥!' 그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아크는 검을 뽑아 들고 힘차게 밧줄을 후려쳤다. 내구력 보너스가 붙은 밧줄이라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같은 곳을 내리치자 밧줄이 투둑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렸다. 동시에 아크는 끊어진 밧줄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절벽으로 돌진했다. 그대로 절벽에 충돌하면 아크의 머리통은 작 익은 토마토처럼 으깨지리라! "지금이다. 화격!" 거친 암벽이 눈앞으로 확 밀려드는 순간, 아크는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적을 10미터 밖으로 밀어내는 화격! 암벽을 상대로 화격을 나리자 아크의 몸이 뒤로 튕겨졌다. 그러나 포물선을 그리며 절벽을 향해 돌진하던 힘과 상쇄되어 아크의 몸은 그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그때 계곡을 따라 밀려온 눈사태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아크는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상황! "그냥 죽을쏘냐! '전력질주'!"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소리쳤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돌려 발로 절벽을 밣으며 '전력질주'를 발동시켰다. 밧줄에 매달린 채로 절벽을 내달리자 아크의 몸이 포물선을 그리며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암벽등반을 할 때 측면으로 이동하기 위해 밧줄에 매달린채로 절벽을 달려 이동하는 기술! "젠장, 아직도 부족해!" '전력질주'를 난사하며 절벽을 내달렸지만 눈사태의 속도는 아크보다 빨랐다. 눈사태는 굉음을 일으키며 아크의 바로 뒤까지 따라 붙었다. 게다가 눈사태의 규모는 아크가 상상했던 것보다 컸다. 아크가 '전력질주' 와 밧줄을 이용해 올라 올 수 잇는 최대 높이 - 밧줄이 묶인 곳과 수평이 되는 위치 -까지 올라왓지만 눈사태는 그보다 몇 미터는 더 높았다. 그렇게 아크가 눈사태에 휩쓸리기 직전,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스킬이 떠올랐다. "그렇지, '도약'!" 아크는 근처의 돌부리를 세게 밟으며 소리쳤다. 순간 허벅지가 몇 배나 부풀어 오르더니 단숨에 10여 미터 높이로 솟구쳤다. 아크가 허둥지둥 눈앞에 있는 돌부리를 움켜쥐자 바로 아래에서 엄청난 양의 눈과 바위, 나무토막 따위로 이루어진 괴물이 괴성을 질러 대며 스쳐 지나갔다. 새삼 등줄기로 식은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사, 살았다‥‥‥." "젠장, 징글징글하게 명줄이 긴 놈이란 말이야."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자 반대편 절벽에서 샴바라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샴바라의 말처럼 명줄이 긴 건지,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게 아크는 눈사태를 피해 살아났다. 일단 위기를 넘긴 아크는 곧바로 다시 밧줄을 연결했고, 샴뱌라와 레리어트, 나머지 특공대원들도 계곡을 넘어올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위기가 없었다. 아크가 도착한 절벽을 타고 이동하자 비교적 -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 비하면 - 완만한 경사가 나타났다. 그 경사를 따라 조금 더 걷자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 알바나 산맥 지역을 벗어났습니다. 파비온 협곡(외곽)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드, 드디어‥‥‥!" "스머글 패스를 넘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특공대원들이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환호성을 터뜨렸다. 샴바라 역시 그제야 굳어 있던 어깨를 풀며 중얼거렸다. "이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을 찾는 일만 남았군." "아직 아니야." "뭐? 아니라니?" "그 전에 한 군데 더 들를 데가 있거든." 아크가 씨익 웃으며 앞서 나갔다. 샴바라와 레리어트, 특공대원들이 사라진 뒤였다. 문득 바닥에 쌓인 눈이 움찔움찔하더니 갑자기 눈알 하나가 툭 튀어 나왓따. 아크에게 붙어 있는 불실이의 눈알과 비슷하게 생긱 녀셕이었다. 눈알은 지그시 멀어지는 특공대를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ACT4 아란 부활하다 "역시......" 아크는 눈앞에 펼쳐진 폐허를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그 모습에 샴바라와 레리어트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대체 뭔데? 여기가 뭐 하는 곳인데?" "혹시 예전에 와 본 적 있는 마을이에요?" "......누란마을." 아크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아크는 이번 임무를 시작할 때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당연히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해서 슈덴 베르크 원정군을 돕기 위해. 다른 하나는 <<전설의증인>> 퀘스트를 위해 알바나 산맥너머에서 파비온 협곡으로 진입 하는 지역에 위치한 이 마을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이 마을이 바로 시니어스 공국의 국경지대에 있다는 <<전서의 증인>> 퀘스트의 목적지였다. 10개의 ☆을 모아 받은 전승 퀘스트! 일단 완료만 하면 푸짐한 경품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런데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NPC는커녕 마을까지 통째로 사라진 뒤였다. 그러나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는 아크의 얼굴에는 절망의 빛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이곳이 어둠에 먹힌 지도 열흘이 넘었으니......" 사실 아크 역시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대강 이렇지 않 을까 짐작했다. 어둠에 잠긴 시니어스 공국은 현재 마을이나 도시나 몽땅 몬스터 들에게 습격당한 상태였다. 몇몇 요새 도시만이 간신히 몬스터의 습격을 막아 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고려할 때 이런 작은 산골 마을이 어둠에 잠긴 뒤로도 버젓이 남아 있을리가 없었다. 누란 마을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는일. 그럼에도 아크가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여기가 퀘스트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설의 증인>> 퀘스트를 완료하기 위해 만나야 하는 예언자 일족은 외부와의 교류를 하지 않는 NPC들. 숨겨진 마을에 있다는 뜻이야.' 그러나 누란 마을은 시니어스 공국 지도에 버젓이 올라 있고, 상세 정보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다시말해 '누란마을= 예언자 일족' 이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누란마을은 예언자 일족에 대한 정 보를 얻는 중간 과정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어차피 누란 마을에서 필요한 건 정보뿐이라면, 마을이 몬스터들에게 폐허가 되어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근처에 습격을 피해 살아남은 NPC가 있을지도 모르고, 마을에서 뭔가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크가 바쁜일정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이유가 그 때 문이었다. 어차피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넘어서면 아크 역시 원정군과 한께 이동해야 한다. 다시말해 누란 마을을 탐색해 볼 기회는 지금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마침 아크의 휘하에는 그런 방면에 전문가인 유저 200명이 있다. 임무가 임무라 수색이나 탐색 따위에 조예가 있는 유저만 뽑아 온 것이다. 짐작대로 여기에 뭔가 단서가 남아 있다면 찾아내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다행히 마을이 습격당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여.' "모두 집중! 지금부터 각자 흩어져서 폐허를 수색한다. 이번 임무에 매우 중요한 단서니까 샅샅이 뒤져서 생존자든 뭔가 수상한 물건이든 발견되는 즉시 나에게 알리도록." 아크의 명령에 특공대원들이 흩어져 건물 잔해를 살피며 돌아다녔다. 그때 샴바라가 뭔가 낌새를 챈 듯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임무에 매우 중요한 단서? 정말이야?" "대장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지 뭘 그렇게 캐물어?" "주인ㅡ!" 아크가 티꺼운(띠꺼운 아닌가..?티꺼운 인건가?)목소리로 샴바라에게 쏘아붙였다. 그때 주변 정찰을 나갔던 라카드가 허겁지겁 날아오며 소리쳤다. "뭐야? 몬스터냐?" "아,아니, 몬스터는 몬스터인데...... 그놈이야! 그놈이라고!" "그놈이라니? 무슨 말이야?" "아,아,아........." 라카드가 당황한 표정으로 떠듬거릴 때였다. 샴바라가 움찔하더니 갑자기 와락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터뜨렸다. "음? 이런 젠장! 아크, 포위됐다!" "포위라니? 무슨......." 주위를 둘러보던 아크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느새 특공대가 흩어져 있는 폐허 주변을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포위하고 있는게 아닌가? 귀뚜라미를 닮은 탈론, 황소처럼 생긴 베히모스, 염소 머리에 인간의 몸을 가진 이블고든........, 갖가지 형태의 800여 마리 마 속성 몬스터들! '젠장! 대체 왜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에게 포위될 때까지 몰랐던거지?'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제발로 찾아와 줘 고맙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아크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뚜걱,뚜걱...... 병사들사이에서 누군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뼈만 앙상한 해골마를 타고 기이한 기운을 뿜 어내는 검은 갑옷을 걸친 기사였다. 그기사가 면갑을 들 어 올렸을때, 아크와 샴바라, 레이어트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란!" "내 이름을 잊지 않고 있어 준 것도 고맙군." 검은 갑옷의 사내, 아란이 입술을 비틀며 중얼거렸다. '대체 뭐지? 어떻게 이 녀석이 이런 곳에서 나타난 거야? 게임을 접은 게 아니었나? 아니, 그전에 저 몬스터 들은 뭐야? 어떻게 아란이 몬스터들과 함께 돌아ㄴ다니는 거지? 게다 가 아란이 저 몬스터들을 지휘하는 것처럼 보이잖아. 유저가 저만한 숫자의 몬스터를 조종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하지만......' 잠시 아란을 바라보며 생각하던 아크는 이내 뭔가 떠올렸다. '그렇군, 그런 거였나?' 아크가 눈매를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오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처음 게임 시스템을 만들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종의 버그 라는 게 저희 판단입니다. 몇몇 유저들이 그 버그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글로벌엑서스를 찾아갔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버그를 악용해 배후에서 이번 사태를 조장하는 유저! '만약 아란이 그 유저 가운데 하나라면?' 잠적했던 아란이 몬스터에게 점령당한 시니어스 공국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도, 그리고 파비온 요새의 몬스터들 이 몬스터답지 않은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것도, 만약 그 배후에 아란이 있었다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 아란이 몬스터 부대를 이끌고 이곳에 나타났다면 ........ "내게 무슨 볼일이지?" "무슨 볼일일 것 같은가?" 해골마 위에서 아란이 깔아 보는 듯한 자세로 되물었다. 목소리는 평이했지만 그 속에는 노골적인 적의와 분노가 곱빼기로 담겨 있었다. 당연하다. 새삼스럽지만 과거 잘나 가던 아란을 밟아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인 것이다. 아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 로 인해 아란이 받은 데미지는 장난이 아니었다. 시르바나 영지를 빼앗기고, 길드는 공중분해 되었다.(지가 잘못한걸 누구보고 따져 찌질이아란..) 또한 유저들에게 갖은 욕을 들어 먹고, 현상 수배자가 되기도 했다. 뉴 월드에서 매장되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 정도의 원 한이 1년 정도로 잊힐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정도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나라도 참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아크는 아란이 원한을 품은 가장 큰 부분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아란님?" 그때 둘의 분위기를 살피던 레이어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거의 동시에 아란이 얼굴을 휴지 조각처럼 일그러뜨 리며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닥쳐!"(아놔 샹노마...레리어트 님아한테까지 ㅡㅡ) 아란의 고함에 레리어트가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놀란 것은 레[리어트만이 아니었다. 아크 역시 아란의 격렬한 반응에 당황했다. 아크는 아직도 ㅔ리어트와 아란은 애인까지는 아니라도 만나는 사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무의식중에 아란에 대한 언급을 피해 왔기에 생긴 오해였다. 그리고 사실 따지고 보면 아크가 몇 번이나 레리어트와 진 지한 대화-감정에 대한-를 하려고 마음먹고도 못한 이유 역시 아란이 마음에 걸려서 였다. 둔한 아크도 이제 레리어트가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란과 만나는 그녀 에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한다는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란의 반응은 그동안 아크가 품고 있던 생각 을 단숨에 깨뜨려 버렸다. '뭐야, 이 반응은? 뭐, 여자 친구가 원수처럼 생각하는 나 와 함께 있으니 열 받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심한 반응 이잖아? 저 녀석 혹시 성격파탄자 같은 건가? 아니면.......' 지금까지 자신이 레리어트와 아란의 관계를 오해했던 건 가? 아크는 1년 만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크의 생각은 거기서 더 진행되지 못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크, 레리어트, 그리고 샴바라! 네 놈들에게 나를 적으로 돌린 게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깨닫게 만들어 주마. 백번이든 천번이든 철저하게!" 레리어트를 바라보며 이를 갈아붙이던 아란이 검을 추켜 세우며 소리쳤다. "밟아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크아아아아! 아오오오오! 동시에 수백의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덕분에 아크도 더이상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졌다. 현재 특공대는 800여 말의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어 버렸다. 그리고 특공대에게는 죽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든 없든 일단 싸워 보는수밖에 없지 않은가? '생각 따위는 상황을 벗어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젠장, 방어 진형을 만들어라!" 특공대원은 무려 3만의 원정군에서 뽑아 온 유저들이다. 레벨과 실력,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전사들인 것이다. 과연 아크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특공대원들은 일 사불란하게 방어 진형을 만들었다. 커다란 타워 실드를 든 중장갑병이 아군을 둘러쌋고, 바로 뒤에 경갑검사 그리고 중심에 궁사와 마법사. 구체적인 지 시가 없었음에도 순식간에 완벽한 원형진이 만들어져싿. "레리어트 님, 버프를!" "전사의 휘광, 빛나는 검, 활력의 빛!" -이노센스 나이트의 전사의 휘광이 발동했습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반경 100미터 이내의 파티원은 힘과 체력이 30만큼 증가합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빛나는 검이 발동했습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반경 100미터 이내의 파티원은 검 공격력이 20%만큼 상승합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활력의 빛이 발동했습니다. <이노센스 나이트의 반경 100미터 이내의 파티원은 생명력이 10초당 5씩 회복됩니다.>> 철웅성처럼 세워진 원형진 위로 버프 3종 세트가 흩뿌려 졌다. 그런 강력한 버프가 세 가지나 중첩되자 특공대의 전 투력은 단숨에 20% 이상 올라갔다. 그리고 몬스터와 특공대가 충돌하기 직전, 아크가 본 블레 이드를 집어던지며 소리쳤다. "마령 소환 라자크, 검화 해제. 철벽 화염!" 따닥, 따다다닥, 따다닥! 본 블레이드가 공중을 날아가며 복잡하게 재조립되어 라자크로 변신했다. 그리고 완전히 변신한 상태로 바닥에 내려 선 라자크가 등에 이고 있던 방패를 들어 올렸다., 불길이 일렁이는 거대한 두개골,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 딱딱딱닥, 딱딱딱딱! 콰콰쾅, 화르르륵! 라자크가 포효(?)를 터뜨리며 온 힘을 다해 방패로 바닥을 내리쳤다. 순간 방패의 양옆으로 마치 거대한 불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듯 화염이 솟구쳤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온 100여 마리 의몬스터를 쓸어 담듯 날개를 펄럭였다. 동시에 불새의 날개에 갇힌 몬스터들의 몸에서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타오르는 화룡족 방패' 의 특수 스킬 '철벽 화염;! 무턱대고 돌진하던 100여 마리의 몬스터가 불길에 휩싸인 채 '스턴'에 빠져 버렸다. 절호의 기회! 아크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궁수와 마법사, 광역 스킬을 몽땅 쏟아부어!" 광역 스킬은 일반 공격보다 공격력은 좀 떨어지지만 범위 안의 적에게 모두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광역스킬은 목표 지정이 아닌 지역 지정이다. 일 정 공간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넓은 지역이나, 적과 아군이 뒤섞여 난전이 되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크가 먼저 '철벽 화염' 으로 돌진하는 몬스터들을 '스 턴' 상태에 빠뜨린 건 그 때문이었다. "사해를 질주하는 폭풍의 정이여 현신하라....... 토네이도!" "애로우 샤워!" 스턴에 빠진 몬스터들을 향해 각종 광역 스킬이 집중되었 다. 대기를 찢으며 몰아치는 토네이도, 송곳처럼 날카로운 우 박이 쏟아져 내리는 블리자드, 지면을 뚫고 송곳이 솟구치는 스크류 필드, 소나기처럼 화살의 비를 퍼붓는 애로우 샤워! 한 지역에 수십 발의 광역 스킬이 집중되자 그 공간 자체 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죽음의 공간! 그 공간에 갇힌 몬스터들은 생명력이 단숨에 50%나 빨려 나갔다. "진형을 이동시키며 생명력이 깎인 몬스터들부터 처리 한다!" "우오오오오!" 아크의 명령에 특공대원들은 원형진을 유지한 채 몬스터 들을 향해 돌진했다. 현재 특공대는 800여 마리의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위해 진형을 무너뜨리면 한순간에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숫자가 압도적으 로 부족한 상황에서 한번 수세에 몰리면 그대로 패배로 이어 지는 것이다. '방어와 공격을 7대 3으로 유지하며 하나하나 확실하게 적의 숫자를 줄이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그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특공대 병력은 200, 몬스터 부대는 800 무려 4배나 되는 병력차이. 물론 특공대는 3만의 원정군 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레벨 350 이상의 정예병으로 구성된 부대였지만, 아란이 데리고 온 몬스터들은 평균 레벨이 400 이나 되었다. 게다가 '마족의 영향권' 효과 덕분에 특공대는 능력치가 20%나 깎이고 몬스터들은 20%나 높아졌다. '이상태로는 절대이길수없어. 설사 이길 수 있다고 해도 특공대 역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거야. 하지만 성 광 폭뢰를 한 사람당 하나씩 받았으니 50여 개의 검은 오벨 리스크를 폭파하는 임무를 성공시키려면 최소한 50명은 생 존해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 도착해야 한다.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일단 몬스터들을 적당히 상대하다가 기회 를 봐서 도망가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문제는......' 특공대가 성공적으로 몬스터를 따돌리려면 먼저 전제 조 건이 필요했다. 그것은....... "아크, 뒤쪽이다!" 그때 반대편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눈앞으로 한 자루의 검이 확 밀려들었다. 아란이 해골마를 타고 돌진하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올리자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엄 청난 압력이 전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 중심을 잃은 아크가 눈밭을 나뒹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퍼런 검날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크는 바닥을 차며 몸을 날리려고 했지만, 발이 빙판에 미끄러지며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렇게 아크가 허둥대는 사이 검이 정수리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아니, 반으로 갈리려는 순간이었다. 슈슈슈슉, 카카카칵, 채앵-! 서너 발의 비도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검날을 후려 쳤다. 비도의 공격에 궤도가 바뀐 검이 아크의 관자놀이를 스치며 지나갔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아란이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했 지만 뒤이어 또다시 서너발의 비도가 날아들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혀를차며 뒤로 물러났다. 아크는 그제야 겨우 일어나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비도를 날린 샴바라가 아크의 옆으로 다가오며 이 죽거렸다. "좋겠어, 잊지 않고 찾아 주는 친구가 있어서 ." "저런친구라도 좋다면 얼마든지 가져가." "정중하게 사양하지, 재수 없거든." "너도 그러냐?" 아크가 씨익 웃으며 약간 떨어진 곳의 아란을 바라보았다. '이건 기회다!' 현재 아크의 목적은 특공대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하며 도 망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목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몬스터가 아닌 아란이었다. 현재 아크가 있는 곳은 복잡한 파비온 협곡. 몬스터의 숫 자가 아무리 많아도 지형을 이용해 몬스터를 따돌리거나 각 개격파 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가 유저라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유저는 그리 간단하게 속을 만큼 바보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몬스터를 지휘하는 사람은 제법 머리 좀 굴려 봤다 는 아란. 어설프게 도망쳤다가는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가능 성이 많았다. 때문에 아크가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먼저 아 란을 처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아란이 후방에 숨어서 지휘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놈을 처리할 기회를 잡기가 힘 들어. 그런데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나 주다니 .....' 아마도 아크에 대한 원한과 자존심 때문이리라. '그 원한과 자존심이 네 치명적인 실수가 될 거다!' 아크는 슬쩍시선을 돌려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샴바라가 입 끝을 추어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아란을 협공한다. 눈빛으로 그런 합의를 본 것이다. 정정당당? 그딴 거 필요 없다. 게임이든 현실이든 무조건 이기는게 장땡인 것이다.하물 며 아크의 파산이 걸려 있는 임무를 수행 중인데 똥이고 된 장이고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아란을 처리하고 이곳에서 탈출하는 게 무엇 보다 중요했다. "너는 우측, 나는 좌측!" 짧은 기합과 함께 아크와 샴바라가 좌우에서 아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란은 망설임 없이 아크를 향해 몸을 돌려 세웠다. "쳇, 나보다 아크가 무섭다 이거냐? 어디 뜨거운 맛을 보 여주지. 살!" 아란의 반응에 살짝 빈정이 상한 샴바라가 단검을 휘두르려 할 때였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돌연 아란의 뒤에서 수십발의 화살이 샴바라에게 쏘아졌다. 샴바라는 ㅅ황급히 단검을 휘둘렀지만 화살 한 대가 어깨 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샴바라가 뒤로 물러나며 화살이 뿜 어져 나온 공간을 노려보았다. "은신?" 그때 샴바라가 노려보는 공간이 흔들리더니 웬 여자가 툭 튀어나왔다. 단궁을 들고 있는 여자는 뾰족한 귀에 검은 피부를 가진 다크엘프였다. 샴바라가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냐, 네년은?" "알아서 뭐하게? 데이트라도 신청하게?" "내가 다짜고짜 화살부터 날리는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하 는 변태처럼 보이냐?" "다행이야, 나도 약한 놈에게는 관심 없거든." "내가 약하다고?" 샴바라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다크엘프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본다 싶은 순간 마치 탄환처럼 다크엘프에게 날 아갔다. 샴바라의 고속이동 기술 순보! 샴바라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해 단검을 휘두르자 엄청난 파동이 주위를 휩쓸며 두텁게 쌓여 있던 눈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일격에 하늘이라도 가를 듯한 기세! 그러나 이미 다크엘프는 그 자리에 없었다. "깔깔깔, 멧돼지처럼 들이대면 여자는 도망간다고!" "이런 젠장, 폭우검!" 뒤에서 다크엘프의 목소리가 들리자 샴바라가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순간 어두운 공간에서 수백 자루의 단검이 솟아 나와 공간 전체를 뒤덮었다. 그러자 다크엘프가 불길이 일렁이는 화살 을 날리며 코웃음 쳤다. "질이 안 되니 양으로 밀어 보겠다는 거야? 익스플로전 애로우!" 그녀가 날린 화살이 폭발하자 사방에서 날아들던 단검이 충격파에 휩쓸려 바닥에 떨어졌다. 샴바라 역시 폭발에 휘말려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때 허공에서 일렁거리는 화염의 위쪽으로 다크엘프가 솟아나오며 화살을 날렸다.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번뜩 -! 피하고 뭐고 할 속도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광속! 샴바라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화살을 가슴에 맞 고말았다. 아니, 맞았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돌연 샴바라의 몸이 점점 흐려지더니 훅 하고 사라졌다. "뭐,뭐야? 분신?" "장난은 끝났다. 멍청한 계집!"(아..이래서 샴바라가 좋단말야) 샴바라가 당혹성을 터뜨리는 다크엘프의 뒤에서 나타났다. 다크엘프가 화들짝놀라 바닥을 구르며 연속적으로 화살 을 날렸다. 구르며 날린 화살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가자 샴바 라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역시 계집은 어쩔수 없군, 이런 걸 상대로 진지하게 싸울 생각을 했다니......"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지 한번 볼까? 마탄의사수 2장, 악마 쫒는 화살!" 데굴데굴 굴러 거리를 벌린 다크엘프가 발딱 일어나며 소 리쳤다. 그러자 사방으로 날아갔던 화살이 갑자기 궤도를 꺾 어 마치 유도탄처럼 일제히 샴바라에게 날아오는 게 아닌가? "뭐?뭐야?"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에 샴바라가 황급히 몸을 날렸지만, 수십 발의 화살은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계속 샴바라를 따라 붙었다. "순, 개, 열, 섬!" 결국 샴바라는 암살 보법을 100% 전개시킨 뒤에야 화살 을 따돌릴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샴바라와 다크엘프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둘의 전투는 일반적인 전사들의 싸움과는 전혀 달랐다. 전사들의 전투가 힘과 체력의 승부라면, 둘의 전투 는 속임수와 민첩의 승부, 서로 몇 번이나 뒤를 잡고 반격에 반격을 거듭했다. 때문에 둘의 전투는 누가 이길지 전혀 예 상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샴바라와 저 정도까지 맞승부를 펼칠수 있다니, 저다크 엘프는 대체 누구지?' 아크는 입을 헤벌리고 샴바라와 대등하게 싸우는 다크엘 프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럽지만 뉴월드의 전투는 60이 레벨, 40이실력이다. 레벨이나 능력치도 중요하지만 실제 운동 능력도 못지않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샴바라는 아크도 인정하는 쿵 푸의 고수. 그런데 다크엘프는 운동 능력에서 그런 샴바라에 게도 밀리는 느낌이 없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 거냐?" 그때 뒤쪽에서 아란이 해골마를 타고 돌진해 들어왔다.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듯이날아드는 검! 아크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방어했다. 그러자 엄청난 충격 과 함께 몸이 통째로 들리며 수 미터나 밀려났다. 동시에 양 어깨에 마치 덤프 트럭에 치인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대체 뭐야, 이 충격은?' 아크는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신음을 흘렸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 아란을 얕잡아 보고 있었다. 아크가 처음 아란을 만났을 때는 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졌 었다. 그러나 그 뒤로 많은 일을 겪으며 어느 때부터인가 아 란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직후 아란은 모 든 것을 잃고 한동안 뉴월드에서 잠적해 버린 것이다. 그 시점에서 아크는 이미 아란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다시 아란과 맞붙게 된 방금 전까 지도 마음만 먹으면 아란 정도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붙어 보니 아란은 아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몸으로 느껴지는 충격을 생각하면 거의 대등했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 힘이 대등하다는 것은 능력치에서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의 레벨은 432, 어둠속성 보너 스를 받으면 무려 648에 달한다. 지난 1년 동안 아란이 24시간 동안 사냥을 했다고 해도 648레벨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 '그렇다면 대체 이 힘의 차이는 뭐지? 젠장, 놈의 정보창 이라도 확인할 수 있어도......' 아크는 다시 '고양이의 눈' 으로 아란의 정보를 검색해 보 았다. 그러나 아란의 정보창은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뿌 옇게 보일 뿐이었다. 스킬이나 주문서로 상대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는 두 가지, 샴바라처럼 특수한 주문을 발동시키고 있을 때와 레벨이 100이상 차이가 나는 상대일 때였다. 그러나 레벨이 100이나 차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 으니 특수 스킬을 사용하고 있으리라. '결국 놈과 나는 레벨이 100이상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 에도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는 나와 대등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면 놈도 뭔가 능력치 보너스가(본문에서는 보너스자..?) 적용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아란이 아크와 대등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보너스 때문이었다. 아란에게 적용되는 보너스는 다름 아닌 증오. -증오(+10) : 인간이 품고있는 감정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증오입 니다.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상대를 파멸시키고야 말겠다는 증오. 복수를 위한 가장 적절한 힘입니다. <<증오는 오직 카오틱성향을 가진플레이어에게만이 생성됩니다.증오 를품은 유저는 카오틱 성향 1당 증오 스텟의 0.1%에 해당하는 스텟 보 너스를 얻게 됩니다. 또한 모든 스킬에 0.1%에 해당하는 증폭 효과가 적용됩니다. 단, 성향이 선으로 바뀌면 증오 스텟도 함께 소멸합니다.>> 이게 바로 아란이 파멸의기사로 전직하며 얻은 능력이었 다. 카오틱 수치 1당 증오 스탯의 0.1%에 해당하는 스탯 보 너스를 얻는 스탯. 간단하게 설명하면 카오틱 수치가 100이 고 증오 스텟이 100이라면, 10의 스텟 보너스를 얻는다는 말이다. 사실 처음 이 스텟이 생겼을 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 았다. 그러나 현재 아란은 몬스터 군단을 지휘하며 시니어스 공국의 NPC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돌아다녀 카오틱 수 치가 만 단위를 넘었을 정도. 덕분에 아란은 기본 능력치에 수천 스텟 보너스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쳇!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저 해골마는 성가시군." 아크가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중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능력치는 비슷하다. 그렇다면 아크는 너끈히 아란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예전부터 아크는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전사들을 적지 않게 침몰시킨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해골마 때문이었다. 기마병의 공격 방식은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가 돌진하며 공격하는 것이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상대하는 보병의 입장에서 는 꽤나 대응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게다가 아란은 겉멋만 잔뜩 들어서 초보 시절부터 말을 타고 다니던 놈이다. 말을 타고 전투를 하는 데 익숙한 것이다. '일단 놈을 끌어내리고 시작해야겠군.' "고작 이 정도인가?" 그때 아란이 비웃음을 던지며 다시 돌진해 왔다. 순간 아크는 마치 야구 선수가 배트를 잡듯 검을 크게 뒤 로 돌리며 소리쳤다. "소환 해제, 라카드. 재소환, 라카드!" "우왓, 뭐, 뭐야?" '위성 감시 모드' 로몬스터들의 움직임을 레리어트에게 수 시로 보고하던 라카드가 아크의 눈앞에 소환 되었다. 동시에 아크는 전력을 다해 검 면으로 라카드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가라, 박쥐 미사일!" "크아아아악! 뭐, 뭐냐, 망할 주인 녀석아!" 라카드가 비명을 지르며 총알처럼 날아갔다. 아크가 노린 곳은 아란의 얼굴! 그러나 아란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팔을 휘둘러 날아오 는 라카드를 후려쳤다. '젠장, 실패인가? 쓸모없는 박쥐 같으니!' 아크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갑자기 소환되어 검 으로 엉덩이를 얻어맞고 뒤이어 아란에게 얻어맞고 저멀리 날아가는 라카드의 얼굴에 범벅이 되어있던 눈물과 콧물이 아란의 눈가로 튀었다. 아란이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 것은 그때였다. "기회다!" 그런 기회를 놓칠 아크가 아니었다. 아란의 눈이 감기는 순간 아크는 전력을 다해 해골마를 향 해 뛰었다. 그리고 해골마의 가슴 부분을 밟고 몸을 날리며 무릎으로 아란의 턱을 올려쳤다. "커헉 -!" 아란의 턱이 한껏 치켜져 올라가며 해골마에서 굴러떨어 졌다. 아크는 그대로 아란의 가슴 위로 떨어지며 검을 수직 으로 내리꽂으려 할 때였다. 아란이 돌연 눈을 번쩍 치켜뜨며 소리쳤다. "크윽, 이 자식이 ...... 사악의 안광!" 순간 아란의 눈에서 시뻘건 광선이 쏘아졌다. 상상도 못 했던 공격에 아크는 채 반응도 하기 전에 어깨 를 관통당했다. 순간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눈앞의 풍경이 뒤죽박죽으로 변해 버렸다. 바로 아펭 있던 아란의 얼굴이 수십 개로 늘어나기도 하 고,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일그러지기도 했다. '뭐,뭐야? 대체 무슨일이 일어난 거야?' 아크가 휘청거리며 물러나자 눈앞에 '스킬 간파' 정보창 이 떠올랐다. -고어나이트의스킬:사악한 안광 고어나이트는 오래된 건물의 지하에 숨어 사는 악마입니다.놈들은 어 둠속에 숨어 있다가 여행자가 들어오면 사악한 안광을 이용해 환각의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여행자가 환각을 일으켜 어둠 속을 헤메 다가 지치면 잡아먹습니다. <<1분간 '환각' 상태를 일으킵니다.>> '고어나이트의 스킬?'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고어나이트라면 아크 역시 던전에서 몇번인가 상대한적이 있는 몬스터였다. '사악한 안광' 의 효과도 딱히 낯설지는 않았다. 문제는 대체 어떻게 그 '사악한 안광'이 아란의 눈에서 튀어나왔냐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말에서 떨어뜨리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냐?" 아란이 코웃음을 치며 아크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악한 안광' 에 당한 아크에게는 마치 수백장의 거울로 만들어진 방에 들어온 것처럼 수백명의 아란이 사방에서 달려드는것 처럼 보였다. 당황한 아크는 이리저리 몸을 돌리며 미친듯이 검을 휘둘러 댔다. 그러나 그런 눈먼 검에 맞을 아란이 아니었다. 가볍게 아크의 검을 피한 아란이 바짝 달라붙으며 소리쳤다. "악마의 호흡!" 그러자 이번에는 아란의 입에서 시커면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연기에 휩싸이자 아크의 피부도 금세 시커멓게 죽어가며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악마의 호흡에 중독됐습니다. <<10초당 50의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중급 이상 해독제를 먹기 전에는 풀리지 않습니다.>> '맙소사! 이번에는 '악마의 호흡'?' 아크는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황을 파악할수 없었다. '악마의 호흡' 은 고대 던젠에서 자주 출몰하는 라미아가 사용하는 중독스킬이었다. 다른 독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자동으로 풀리징낳아 유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맹독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악마의 호흡'이 아니었다. 아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건 대체 어떻게 아란이 고어나이트나 라미아의 스킬을 사용하느냐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아란 녀석이 몬스터들의 능력을 사용하는 거야?' " 후후후, 이제야 파멸의 기사로 전직한 보람을 느끼겟군." 아크가 중독되어 시커멓게 변한 채 주춤주춤 물러나자 아란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몬스터의 능력을 사용하는 건 뉴 월드의 유일무이 한 직업, 파멸의 기사가 가진 진정한 힘이었다. 명칭은 '악마의 포식자'. 파멸의 기사만이 다룰수있는 ' 마의 보석' 이라는 아티팩트에 특수 스킬을 가진 몬스터의 영혼을 담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아란은 아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60종에 달하는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위기를 직감한 아크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 상대가 언제 어떤 스킬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싸울 수는 없었다. " 흥, 어림없다. 인퍼노infemo!" 아란이 입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아크를 쫒았따. '이번에는 화염? 역시 이상해. 이녀석 뭔가 이상해졌어!" 그러나 아크는 '다크 댄싱' 을 전력으로 펼쳐 아란의 추격을 뿌리쳤다. 아란은 어쩃든 기본 속성이 기사. 판금 갑옷을 입고 있어 아크보다 움직임이 느렸다. 게다가 아크가 아예공격을 포기하고 '다크 댄싱을' 을 난사하자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너무 한심해서 짜증이 솟구치는군.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없지." 아크가 계속 도망만 다니자 아란이 미간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그리고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세차게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증오의 오라! 순간 주먹으로 내리친 흉갑이 활짝 열리면서 시커면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검은 기운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아란의 몸을 기어 다녔다. 그리고 마치 뱀처럼 팔이나 다리, 몸을 휘감더니 단단한 갑옷처럼 굳어 버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스킬 간파' 정보창이 떠올랐다. 세트 장비품 옵션 스킬: [ 증오 세트 ] 증오의 오라 증오 세트는 원념을 품고 죽어 간 전사들의 영혼이 깃든 저주받은 장비품입니다. 이 저주받은 장비품은 각 세트마다 원령의 강렬한 원한이 잠들어있습니다. 그러나 증오, 세트의 두려운 점은 세트가 모였을 떄입니다. 모든 세트를 한곳으로 모으면 사용자는 원령의 힘을 증폭하여 그들의 원한과 증오를 현실 세계에서 구현시킬 수 있습니다. 단, 한 번 원한과 증오를 불러내면 24시간 동안 갑옷의 방어력50% 감소합니다. * '증오의 오라'는 '증오' 나 '원한' 스탯을 가진 사람만이 발동시킬수 있습니다. <<30분간 공격력과 이동력을 30% 증폭시킵니다.>> '세트 장비품 효과!' 아크가 놀란 눈으로 아란을 바라보았다. 아란은 이미 방금 전까지 봤던 아란이 아니었다. 장비품에 깃들었던 원한과 증오의 기운을 구현시켜 몸에 휘감은 아란은 덩치가 몇배나 커진것처럼 느껴졋다. 그리고 알수없는 불길함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 마음에 드는군." 아란이 씨익 웃으며 붉게 물든 시선을 아크에게 향했다. 동시에 아란 발치의 눈이 폭발하듯 솟아오르며 엄청난 속도로 아크에게 다가왔다. 아크가 황급히 '다크 댄싱' 을 펼치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다크 댄싱'을 펼치면 이 정도 거리에서 돌진하는 것 정도는 어렵게 않게 피해 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란이 어렵지 않게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헉! 뭐, 뭐야. 이 속도는? 정말 30% 맞아?" 아란이 '증오의 오라'를 발동시켜 올라간 이동력은 30%, 수치상으로보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않았다. 그러나 막상 비슷한 속도에서 한쪽이 30%만큼 속도가 오르자 아크는 마치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젠장, 이제 도망 다니는 것도 글렀다는 건가?' "좋아, 어디 한번 죽어 보자!" 아크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검을 휘둘렀다. 아크가 본격적으로 싸울 자세를 취하자 바짝 따라붙던 아란도 약간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그렇게 잠시, 서로를 마주보던 아크와 아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진했다. "다크 블레이드!" "악마의 송곳니!" 콰콰콰쾅, 콰콰콰쾅! 두자루의 검이 충돌하자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나왔다. 아크와 아란의 간격은 불과 50센티미터 남짓.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마주 본 채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고 검을 휘둘러 댔다. 격력한 쇳소리가 쉬지 않고 터져 나오고, 검풍劍風에 의해 일어난 눈보라가 둘을 휘감아 밖에서는 전투를 볼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분‥‥‥. 카카카칵, 채챙, 콰콰콰쾅! 돌연 눈보라 속에서 누군가가 밀려 나왔다. " 이런 젠장‥‥‥!" 입술을 일그러뜨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다. "아무래도 내가 너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눈보라가 가라 앉자 아란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그 오만한 표정에 아크는 복장이 터져 죽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아크는 그동안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게임을 했고 이제 누구와 싸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미 과거의 인물이 되어 버린 아란에게 밀려 버린 것이다. ' 그럼 대체 지금까지 내가 한 고생들은‥‥‥.' 그렇게 생각하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레벨이나 실력은 아직 내가 위다. 내가 저녀석에게 밀린 건 괴상한 몬스터 스킬과 저 세트 아이템 효과 때문이야.' 그렇다. 아크가 밀렸다고는 하지만 실력으로 밀린건 아니었다. 만약 아란이 괴상한 스킬이나 '증오의 오라'를 사용 하지 않았다면 6대 4정도로 아크가 우세했으리라. 그러나 아란이 괴상한 스킬과 ' 증오의 오라'로 공격력을 올려놓은 덕분에 지금은 4대 6으로 아크가 밀리고 있었다. '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파는 게 아니었는데‥‥‥.' 아크가 분통 터진다는 눈빛으로 아란의 판금 장갑을 노려 보았다. 아란이 사용하고 있는 장갑은 일전에 아크가 경매장에서 팔아먹은 ' 타란한 증오의 판금 장갑' 이었다. 그리고 ' 증오의 오라'는 증오 관련 세트 장비품이 모두 모였을 때 사용할수 있는 스킬. 결국 아크가 장갑만 팔지 않았어도 아란이 이따위로 변신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정말 욕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통이나 터뜨리고 있을 떄가 아니었다. '이 상태로 다시 붙어 봤자 승산이 없다.' 아크가 아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역 선포와 ' 화룡강림' 을 동원하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아란의 능력을 보면 아직 2차 전직을 한 유저들끼리 싸울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 더 이상 방법이 없는건가?' 아크는 주춤주춤 일어나 자세를 잡으며 시선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아크만이 아니었다.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인 특공대 역시 이미 5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아직 버티고 있는건 2차 전직을 마친 대원들이 돌아가며 영역 선포를-아군이 라도 같은 지역에서이 라도 같은 지역에서 2개의 영역 선포를 중첩시킬 수 없었다- 발동시키며 보조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공대원들의 남은 생명력을 보니 그것도 거의 한계에 달해 있었다. 이제 몇십명만 더 쓰러져도 나머지 대원들은 도미노처럼 단숨에 전멸하게 되리라. '샴바라라도 도와주면 좋겟지만‥‥‥.' 샴바라는 아직도 다크엘프와 술래잡기와 같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젠장! 판단 착오야.' 처음 아크의 계획은 아란을 처리하고 협곡으로 도망쳐 몬스터들을 따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아크가 아란을 가뿐히 사냥(?)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전제조건이 실패하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동안 특공대도 몬스터를 300여 마리 정도 처리햇지만 그 대가로 50여 명의 대원이 죽고 남은 대원들은 생명력과 마나가 너덜너덜, 그리고 아크 역시 생명력과 마나가 20%도 남지 않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도망친 것만도 못한 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이대로 갈 때까지 가야 하나? 아니면 이제라도 도망쳐야 하나?' 그질문에 대한 해답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이대로 싸우면 특공대는 100% 전멸한다. 그러나 도망치면 1% 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순간 아크의 목적은 ' 아란을 죽이고 도망친다' 에서 아란을 따돌리고 도망친다' 로 변했다. 그러나 이제 그 조차 쉬운일이 아니였다. '아란은 나보다 이동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나는 생명력이 20%밖에 남지 않은 상황. 아란을 잠시라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지않으면‥‥‥.' 그때 문득 아크의 눈에 폐허에 쌓여있는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여전에 악실리온에서 경험했던 상황이 떠올랐다. '어쩌면‥‥‥.!' 아크는 곧바로 '속삭임의 깃털' 을 사용해 샴바라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샴바라, 바꿔치기다! - 뭐? - 길게 설명할 시간 없어. 일단 앞으로 셋을 센뒤에 내가 지정한곳으로 달려. -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야, 야!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샴바라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크는 바로 귓속말을 끊어 버렸다. 아란이 다시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 뭘 그렇게 속닥거리고 있는 거냐?" " 알면 다쳐!" 아크는 재빨리 바닥을 굴러 검을 피해 내고 방금전에 봐뒀던 건물 잔해로 내달렸다. 아크가 움직이자 샴바라가 역시 폭우검을 난사해 다크엘프를 떨궈 놓고 달려왔다. 그렇게 10여초, 아슬아슬하게 부서진 건물 잔해 뒤로 돌아 들어가자 마치 시소처럼 중간 부분이 돌부리에 걸쳐진 판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크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그 판자였다. " 샴바라, 판자에 올라가!" 순간 샴바라는 아크의 의도를 알아챘다. 샴바라는 씨익 웃으며 순보를 이용해 단숨에 판자위에 올라탔다. 아크는 '전력질주'로 달려가며 반대편 판자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시소처럼 되어 있는 판자위에 올라탔던 샴바라가 포물선을 그리며 아크의 뒤를 쫒던 아른을 향해 날아갔다. " 뭐, 뭐야?" 아크의 등만 보고 쫒아오던 아란이 위에서 샴바라가 날아오자 당혹성을 떠트렸따. 그리고 뒤늦게 검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 "석화 점혈!" 샴바라가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상대의 방어력을 500%올리는 대신 20초동안 행동불능 상태에 빠뜨리는 '석화 점혈'! 부지불식간에 석화점혈에 적중된 아란은 검을 들어 올린 자세로 돌처럼 굳어 버렸다. "아란!" 아란이 굳어 버리자 다크엘프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네 상대는 나다. '도약!' '다크 블레이드'!" 그때 아크가 '도약' 을 사용해 단숨에 다크엘프에게 날아 가며 검을 휘둘렀다. '도약'과 '다크 블레이드' 의 연쇄 공격' 아돌'! 그동안 엄청난 민첩성으로 샴바라와 대등한 전투를 펼쳤던 다크엘프도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에서 날아온 '아돌' 옆구리를 맞고 쓰러졌다. " 알면 다친다고 했지? 이게 바로 팀플레이라는 거다!" 아크는 굳어있는 아란을 향해 콧방귀를 뀌어주고 재빨리 특공대와 합류했다. 마음같아서는 굳어 있는 아란을 마음껏 밟아 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방어력이 500%나 올라간 아란을 20초 동안 두들겨 봐야 생명력이 줄어드는 티도 나지 않으리라. "아크 님, 샴바라 님!" 아크와 샴바라가 합류하자 레리어트가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따. 둘이 빠진 사이에 특공대를 지휘하며 몬스터와 싸우느라 상당히 지쳐 보였다. " 아란과 다크엘프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에 포위를 뚥고 협곡으로 돌진합니다!" 도망이 아닌 돌진이라고 말하는 건 아크의 알량한 자존심때문이었다. 어쨌든 아크는 곧바로 가방에서 잡히는 대로 '창작 요리'를 몽땅꺼대 몬스터들에게 집어 던졌다. '지옥 폭탄', '후추 벌통 ' 등등‥‥‥짬나는 대로 만들어 놓았던 '창작요리' 가 머리위에서 폭발하자 몬스터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 쐐기 진형으로 돌진한다!" "우와아아아아!" 아크의 명령에 궁지에 몰려 있던 특공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돌진했다. 먼저 마법사와 궁수들이 전방의 몬스터들에게 사력을 가하고, 뒤에서 돌진한 전사들이 방패로 문스터를 후려치며 길을 만들었다. 그러나 생명력이 바닥을 기는 특공대원으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로 만들어진 벽을 뚫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몇 전사들은 되레 역습을 당해 쓰러졌고, 후방의 궁수와 마법사도 뒤에서 몰려온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에게 물린 채 질질 끌려갔다. "사. 살려줘!" 빈사 상태의 특공대원이 몬스터에게 끌려가며 신음처름 중얼거렸다. 그러나 여기서 지체하면 순식간에 특공대 전원이 전멸해 버리고 말리라. ' 젠장, 마기가 봉인된 철퇴만 한자루 있어도 포위를 뚫는건 일도 아닌데‥‥‥.' 아크는 뒤에서 들려오는 대원들의 비명을 들으며 답답한 한숨을 불어냈다. 만약 아크가 ' 마기 발현' 으로 돌격속도 50% 상승에 돌격하며 공격하는 모든적을 5미터 밖으로 날려버리는 '파워 차지'를 발동할수 있다면 이런 포위를 뚫는건 일도 아니였다. 그러나 '파워 차지'를 발동시키려면 마기가 봉인된 창 세자루와 철퇴 두자루가 필요했다. 그리고 창은 꽤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철퇴는 한자루밖에없어 '파워 차지'를 발동 시키지 못햇다. 비밀 던전에서 저주템을 꽤 모았지만 이것저것 시험하느라 막 사용한 탓이다. ' 젠장, 저주템에 여유가 있을 때 너무 막 사용했어.' 뭐 이제 와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겟는가? 그저 특공대원들이 버텨 주기를 바랄수밖에 없었다. "돌아보지 마! 낙오자는 포기한다! 무조건 앞만보고 돌진한다!" 그렇게 잠시, 30여 명의 낙오자가 생겼을 무렵, 드디어 특공대는 몬스터들의 포위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마기 발현, 신발, 신발,신발,신발,신발!" 마기를 추출할 제물은 (신발,신발,신발,신발,신발) 입니다. 이조합으로 발동되는 효과는 '질풍의 질주'입니다. [질풍의 질주] 주위 100미터 내의 모든 아군의 움직임이 5분 동안 50%만큼 증가합니다. 단, 같은 효과는 중첩되지 않습니다. 마기 발현으로 '질풍의 질주' 를 발동시키자 아군의 발이 엄청나게 빨리 움직였다. 덕분에 특공대는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무사히 협곡으로 접어들수 있었다. ACT5 발명가 워머 아크가 협곡으로 도망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크가 스머글 패스로 출발하기 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파비온 협곡의 외각은 수십 개의 통로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었다. 일단 이곳에 들어서서 지형을 잘만 이용하면 어떻게든 몬스터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역시 아란이야.' 보통 몬스터들은 전투 상태가 풀릴 정도로 거리를 벌려 놓고 일정 시간 도안 피해 다니면 포기하고 돌아간다. 그러나 몬스터를 아란이 통제하고 있다면 포기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마도 끝까지 따라붙으리라. '그리고 아란이 계속 추격해 오면 목적대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하러 갈 수가 없어. 젠장, 그래서 어떻게든 아란만은 처리하고 도망치려고 했던 건데.....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대로 협곡의 지형을 이용해 어떻게든 아란을 떨궈 놓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갔다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으로 가는 수밖에.......'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슈우우우우, 퍼퍼퍼펑! 갑자기 뒤쪽에서 한 줄기 섬광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섬광이 뿜어져 올라온 곳은 방금 전까지 특공대가 있던 누런 마을의 폐허였다. '뭐지, 저 섬광은? 아란이 쏘아 올린 건가? 그렇다면 신호탄? 설마.....?'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낀 아크가 불안한 눈으로 섬광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주인, 큰일 났어! 여기저기에서 몬스터 떼가......!" 머리위에서 라카드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의 불안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라카드의 말처럼 협곡의 구석구석에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특수부대를 향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맙소사, 협곡 안에 이렇게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몰려 있었다니!' "아, 아크 님, 어떡하죠?" 레리어트가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그러나 간신히 도망친 아크에게 별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라카드의 보고에 의하면 협곡을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에서 몬스터 떼가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특수부대가 죽기 살기로 전투를 벌이면 한 무리의 몬스터들은 처리하고 탈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뒤에서는 아란과 수백의 몬스터들이 뒤쫓고 있는 상황. 몬스터들과 접전을 벌일 때 아란의 몬스터 부대가 난입하면 끝장이다. '여기까지인가?' 아크가 허탈한 심정으로 한숨을 불어 낼 때였다. 갑자기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워머 님께서「보안 통신」을 사용해 귓속말을 신청하셨습니다. '궛속말? 워머? 대체 뭐지?' 아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수락했다. 그러자 곧바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이것저것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듣기만 해. 너희들, 먹을거 있냐? -먹을 거? -있어, 없어? -며칠 분이라면 있지만..... -그럼 됐어. 너희들 지금 위험하지? 내가 도와주마. 3시 방향에 좁은 협곡 보이지? 당장 그곳으로 달려와. 미리 말해 두지만 뒤에 몬스터 떼를 달고 오면 나도 도와줄 수 없어. 그러니 몬스터들의 눈에 띄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워머라는 유저는 그 말을 끝으로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 버렸다. 덕분에 아크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워머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슨 목적으로 귓속말을 신청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음식이 있냐는 말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나 아크는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워머라는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는 상황이다. "모드 3시 방향에 보이는 협곡으로 이동한다!" 아크는 특공대를 이끌고 워머가 말한 협곡으로 달렸다. 그러나 협곡에 들어서고 불과 3분 만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뭐야? 막다른 곳이잖아?" 협곡 안쪽은 까마득한 벼랑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갑자기 일대의 지면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바닥이 회전판처럼 빙글 돌아갔다. 마치 냄비 뚜껑을 뒤집은 듯이 바닥이 돌아가자 아크와 특공대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바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원래로 돌아갔다. "에에, 놓친 거야?" 다크엘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푸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협곡의 모든 통로는 진즉에 막아 놨어.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아란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크와 특공대원들이 막다른 협곡 지하로 사라진 직후, 아란과 다크엘프가 몬스터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그러나 밑으로 꺼졌던 바닥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와 어디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란이나 다크엘프의 입장에서는 특공대원들이 갑자기 증발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 데도 없잖아.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100명 이 넘는 인원이 숨어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그렇다고 갑자기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갔을 리도 없고." "예전에도 한 번 이런 일이 있었지. 그때도 이 근처였어." 사실 아란이 이 협곡에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아크가 짐작한 대로 몬스터들을 조종해 슈덴베르크 원정군의 진입을 막는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붉은 남자가 계획을 앞당기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 '뭔ㄱ'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뭔가'와 관련된 자들을 추격하다가 이 협곡 근처에서 행방을 놓쳐 버린 일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도망치던 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것이다. '같은 일이 우연히 두 번이나 반복될 리가 없다.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아란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후벼 팠다. 그 모습에 다크엘프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우웩, 그거 정말 기분 나쁜 거 알아?" 아란은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눈알을 잡아 빼 버렸다. 그러자 눈알이 둥둥 떠다니며 흝기 시작했다. 복실이의 전매특허 기술이였던 '뱀파이어 아이'! 아란은 '악마 포식자' 능력을 이용해 '뱀파이어 아이' 스킬까지 손에 넣은 것이다. 그렇다. 특수부대가 스머글 패스를 통과했을 때 눈 속에서 튀어나왔던 눈알은 바로 아란이었다. 아크의 짐작대로 원래 스머글 패스는 아란이 알아낸 정보였다. 그리고 혹시나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그 정보를 알아내고 스머글 패스를 이용할까 싶어 미리 눈알 하나를 그곳에 숨겨 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크를 발견하고 급히 몬스터들을 긁어모아 아크의 뒤를 쫓아 누란 마을까지 가게 된 것이다. '놈을 파멸시키는 방법은 따로 계획해 뒀지만, 일단 눈에 들어온 이상 절대 놓치지 않는다. 네놈과 레리어트가 내게 입힌상처. 죽을때까지 잊을 수 없지. 그때 내가 어떤 기분 이었는지 천천히 맛보게 해 주마.' 아란은 소득 없이 돌아온 눈알을 끼우며 몸을 돌렸다. "놈들은 분명히 여기 어딘가에 숨어 있다. 놈들이 나타날 때까지 며칠이라도 협곡의 모든 통로를 봉쇄한다. 이건 최우선 상황이다. 이곳의 모든 동료들에게 전하도록." 주변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이 조아리듯 일제히 아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다크엘프가 미간을 찡그렸다. "파비온 요새야 그냥 몬스터들에게 맡겨 놔도 상관없지만, '그쪽' 일은 우리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진전이 되지 않잖아. 그 머리가 빨간 녀석은 '그쪽'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했는대...." "이미 '그쪽'이 방어 체제로 전환된 이상 이곳의 마족으로 공략하는 건 무리야. 안델도 그 때문에 고전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이미 뤼겐베르크에게 응원 요청을 해 놨다. 아니, 그런 문제를 떠나서 적어도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놈들을 잡는 일이다." 아란이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좋아. 어차피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서 합류한 거니까." 다크엘프는 뾰족한 귀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냉큼 아란의 팔짱을 끼며 혀를 날름거렸다. "대신 나 말고 딴 여자한태 관심 가지면 안 돼. 알았지?" "지금 내가 장난하고 있는 걸로 보이나?" "나도 장난 아니다, 뭐." 다크엘프가 턱을 치켜올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란은 그런 다크엘프를 바라보다가 불편한 표정으로 팔짱을 풀었다. "뭐, 뭐야?" "으윽,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구야? 내 머리를 밝고 있는 사람이?" "앗, 미안. 난 돌인 줄 알았어." 어둠속에서 와글와글 떠드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닥이 뒤집어진 덕에 떼로 뭉쳐 떨어진 특공대는 완전히 쌓아 놓은 쓰레기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다행이 데미지를 입을 정도의 높이는 아니었지만, 밑에 깔려 버린 특공대원들은 동료의 체중에 눌려 죽을 판이었다. 선두에 있던 아크 역시 밑에 깔려 생명의 무거움(?)을 몸소 체험해야 했다. '젠장, 내장이 몽땅 입으로 쏟아져 나오는 줄 알았네.' 아크가 욱신거리는 갈비뼈를 부여잡고 인간 피라미드에서 기어 나올 때였다. 갑자기 양쪽 팔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어?뭐야? 왜...?'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팔목을 걷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스스로 봉인을 해제시키는 '이터널 소울', 팔목에 새겨진 문신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빛이 균열처럼 번져 나가더니 이내 쩡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해제되어 새로운 직업전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기 감응Ⅵ] : 이터널 소울 7단계(페시브) '마기 감응'은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으로 마반 영웅의 소울스톤에 담긴 비기를 배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의 스킬입니다. '마기 감응'을 습득하면 마 속성의 몬스터와 싸울 경우 40%의 추가 공격력이 보너스로 주어지며, 마 속성의 상태 이상에 저항할 확률이 50% 상승합니다. 또한 몬스터의 체내에 숨겨진 마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기 감지, 마 속성에 대해 공격력+40%, 속성 저항력 +50%>> [마기 왜곡] : 이터널 소울 8단계(액티브) '마기 왜곡'은 각종 장비품에 봉인해 놓은 마기를 방출시켜 공간을 왜곡시키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공간을 왜곡시키는 마기의 흐름을 조종해 500미터 이내의 적과 아군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마기의 양은 마기가 봉인된 장비품의 레벨에 따라 달라집니다. 보다 높은 레벨의 장비품은 보다 강력한 마기를 방출시킬 수 있어 적은 숫자로도 더 많은 적을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장비품 하나에 최소 10명에서 30명까지의 적에게 '마기 왜곡' 효과를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포위된 상태에서 아군을 탈출시키거나, 전략적으로 적의 진영을 강습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위치를 교환할 때 아군은 적보다 많은 숫자가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교환하려는 적과 아군 사이에 일정 크기 이상의 장애물이 있어도 이동할 수 없습니다. <<장비품의 봉인은 마기를 방출시켜 공간을 왜곡,적과 아군의 위치를 바꿉니다. 영력 소모:200>> 생각지도 못했던 '이터널 소울'의 각성이었다. 대체 왜? 어째서 갑자기 '이터널 소울' 이 각성한 걸까? 그런 아크의 의문은 새로 생긴 '마기 왜곡'의 정보창을 읽고 풀렸다. '적에게 포위된 아군을 탈출시키거나.....' '이터널 소울'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해결할 열쇠로서 스킬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각성한다. 다시 말해 그런 상황을 겪지 못하면 '이터널 소울'도 각성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번에'이터널 소울'이 각성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해서 죽을 고생을 한 덕분에 각성했다는 건가?' 뭐랄까, 그리 기분 좋은 각성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각성한 '마기 왜곡'은 꽤 슬 만해 보이잖아?' 정보창을 읽어 본 아크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아군과 적의 위치를 한순간에 교환시켜 버리는 '마기 왜곡'. 적에게 아무런 데미지도 주지 않고, 아군에게 특수효과가 발동하는 것도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 꽤 쓸모가 많을것 같았다. 방금 전처럼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외곽의 적과 아군의 위치를 바꿀 수도 있었다. 공수攻守에 걸쳐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는 스킬! '문제는 '마기 왜곡' 에도 마기를 봉인한 장비품이 들어간 다는 건데....' 처음 '마기 봉인'을 배웠을 때는 마기를 봉인한 장비품을 쓸데가 없어서 고민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기 발현'을 사용할 때마다 5개의 장비품이 날아가기 시작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번에 생긴 '마기 왜곡'도 마기가 봉인된 장비품을 잡아먹는 스킬이었다. 장비품의 레벨에 따라 10~30명. 다시말해 100명만 이동시켜도 4~10개의 장비품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장비품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는 그렇다 치고, 항상 마기를 봉인한 장비품을 충분히 준비해 놔야 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나마 '마기 발현'이 생긴 귀에 혹시 몰라서 비밀 던전에서 빡세게 작업을 해 놔서 다행이지, 그마저 없었으면 '마기 발현' 이고 '마기 왜곡'이고 그림의 떡이었을 거야. 하지만 이제 그조차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젠장, 앞으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물 노가다를 해 놔야겠군. 제물로 바칠장비품이 몇 개 남지 않으면 겁나서 스킬도 제대로 못 쓸 거아냐?'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노가다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사이 인간 피라미드를 빠져나오자 옆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하다 이제 기어 나와?" "저 밑에 깔려서. 놀다 나온 것처럼 보이냐?" "....아크 님." 그때 레리어트가 불안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한쪽을 가리켰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린 아크의 눈매가 좁혀졌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특공대가 인간 피라미드를 쌓았던 곳 앞에는 지하 광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 광장 여기저기에 대략 60~70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모여 불안한 눈길로 특공대를 힐끔 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가족옷을 입은 평범한 NPC는 절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하얀 털에 뒤덮인 몸 여기저기에 검은 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엉덩이에는 꼬리가 달려 있었고 얼군은 호랑이처럼 생긴 NPC들이었다. '수인족!' 그렇다. 틀림없이 수인족이었다. '왜 이런 곳에 일반 NPC와 수인족이 모여 있는 거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후후후, 아무리 뒤져 봐라. 이 몸의 비밀 기지를 찾아낼수 있나."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도라오자 웬 커다란 공이 보였다. 아크는 한참을 들여다본 뒤에야 그게 사람의 엉덩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특공대가 떨어진 곳 바로 옆, 정말 풍선처럼 빵빵한 몸을 가진 사내가 묘하게 생긴 기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목소리는 귓속말을 했던 워머라는 사람이다!' "저기..." 아크가 다가가자 사내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을 저었다. "기다려. 아직 놈들이 위에 있단 말이야." '아직도 위에 있다고?'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슬쩍 사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기계를 훔쳐보았다. 기계는 마치 잠수함 같은 곳에 달려 있는 레이더처럼 둥근 원판 안에서 시계 바늘 같은 곳에 달려 있는 레이더처럼 둥근 원판 안에서 시계 바늘 같은 것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계 바늘이 지나간 자리에는 작은 점들이 무수히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점들이 떠오를 때 그 옆으로 깨알처럼 작은 글자들이 떠오른다는 점이었다. 아란,티모시,탈론A,탈론B,탈론C......... '아란?그럼 이 기계에서 나타나는 점들은 밖의 사람들이 라는 건가?' 아크가 놀란 눈으로 기계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아크가 있던 협곡의 지하다. 그런데 지하에서 밖의 상황을 알아낼수 있단 말인가?그것도 정확한 숫자와 움직임,심지어 이름까지? "좋아.갔다!" 그때 기계를 들여다보던 사내가 히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아크는 사내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갑옷이 아닌 작업복처럼 생긴 옷을 입고 있는 사내는 얼굴이 빳빳한 수염으로 뒤덮인 드워프였다. 대체 왜 드워프가 이런 곳에 있는지 그리고 지하 광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과 수인족은 뭔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은 눈앞의 기계가 더 궁금했다. "그건 밖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기계입니까?" "오,알아보는가? 맞아, 내가 발명한 생몇에 탐지 레이더지. 이 주변 반경 200미터 안의 생명체는 숫자는 물론 이름까지 탐색해서 표시해 주는 기계야. 이곳에서 너에게 귓속말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레이더로 이름을 알아낼 수 있어서야." "발명품?" "그래, 나 워머가 발명한 발명품. 그리고 이곳은 바로 내지가 기지지." 워머가 손바닥으로 튀어나온 배를 팡팡 치며 껄껄거렸다. "그럼 저 사람들은....?" "아아, 저 사람들?" 워머가 아크의 시선을 따라 지하 광장 안에 모여 있는 NPC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이 근처 누란이라는 마을 주민들이야." '누란 마을?' 워머에 말에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란 마을이라면 아크가 방금 전에 뒤지던 폐허의 명칭이었다. 그리고 누란 마을의 주민은 바로 <<전설의 증인>> 퀘스트의 주요 정보를 쥐고 있는NPC! '아란 때문에 폐허를 제대로 뒤지지도 못하고 쫓기게 되어 난감했는데, 설마 이런 곳에서 누란 마을의 생존자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그렇다면 아직<<전설의 증인>>퀘스트는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잖아?'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지만 일단 뭐라도 하나 건진 셈이다. "그런데 누란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여기에?" "그게 말이야." 워머가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워머는 시니어스 공국 출신의 드워프로 '인벤션'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인벤션은 이름처럼 뭔가를 발명해 내며 성장시키는 직업이었다. 때문에 워머는 조용하게 발명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돌아다녔고, 이 지하 광장을 발견해 개조해서 지하 기지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란 마을을 통해 각종 자재를 구입하며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열흘 전, 워머가 필요한 자재를 사러 누란 마을에 들렀는데, 갑자기 하늘이 검은 안개에 뒤덮이며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직감한 워머는 급한 대로 주민들고 ㅏ함께 지하 기지로 대피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근처에 파비온 요새도 있으니까 금세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몬스터들은 사라질 기미도 보이지 않더군.아니, 더 늘어가기만 했어. 그리고 며칠 전에야 인터넷으로 뉴 월드에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됐지." "그럼 저 수인족들도 누란 마을에서 살던NPC입니까?" "수인족? 아아, 저 호랑이처럼 생긴 녀석들? 아니야. 저녀석들은 며칠 전에 너희들처럼 몬스터에게 쫓기기에 숨겨 준 거야. 그런데 대체 왜인지 통 말을 안 해서 왜 이런 곳에 온 건지 알 수가 없어. 누란 마을 주민들과는 대강 안면이 있는 것 같은데 그들도 저 수인족에 대해서는 통 말을 안 하더군." '말은 안 한다고?' 아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인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때 워머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긁어 대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곤란해. 저 사람들 때문에 지금 나는 엄청 곤란한상황에 처했다고." "곤란한 상황이라니요?" "홀쭉해진 내 배를 보면 모르겠어?" 워머가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 동시에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특공대원 일동이 황당한 눈으로 워머의 배를 바라보았다. 네쌍둥이를 임신한 것 같은 배가 홀쭉해진 거라면 대체 빵빵할 때는 어떻다는 말인가? 그러나 워머는 그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밥이야,밥! 나는 배고픈 건 모 참는다고!" 워머가 지하 기지에는 당연히 상당한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 돼지가 부러워할 만한 몸집을 보면 알겠지만 그 양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워머 혼자 생활할 때에 맞춰 챙겨놓은 식량.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70명가량의 군식구가 생겨 열흘 만에 식량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기고 협곡이 온통 몬스터 천지가 되어 식량을 구하러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크 일행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귓속말을 하자마자 식량이 있냐고 물었던 거구나. 뭐 그렇다고 해도 70명가량이 열흘이나 버텼다면 대체 혼자 살면서 식량을 얼마나 비축해 놓은 거야?' "으윽, 잠깐 잊고 있었는데 배고프다는 걸 생각해 버렸다.우우, 배고파!배고프다고! 배고 고프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밥을 만드는 기계는 만들 수 없단 말이야! 밥, 밥을줘. 아까 식량이 있다고 했지?" "아,예. 여기 있습니다." "오오오, 밥! 밥이다!" 아크가 일단 며칠 분의 군량을 꺼내 주자 워머가 괴성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뺴앗듯 군량을 가로채 미친듯이 아가리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면 현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유저가 왜 그렇게까지 게걸스럽게 음식을 찾는가? 그이유는 바로 현실과 게임 속의 공복감은 별개이기 때문이었다. 게임에서 아무리 만복도가 100%라도 현실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유저가 배고프듯이, 현실에서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어도 게임에 들어오면 공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공복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게임 속의 음식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워머가 요란스럽게 음식을 먹어 대자 지금까지 불안한 눈으로만 지켜보던 누란 마을 주민들과 수인족들이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식량이 떨어져 쫄쫄 굶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최소한 식량만 남기고 나머지를 차출한다. 차출한 군량은 주둔지로 돌아가면 원정군에게 배급되는 군량과 별도로 내가 지급해 주겠다." 아크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샴바라가 해도 너무한다는 듯이 인산을 찌푸렸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사람들에게까지 장사를 해야겠냐?" "장사? 뭔 소리야?" "장사가 아니면? 네 돈으로 군량을 지급하면서까지 저들에게 음식을 줄 리가 있냐?" "뭐야? 사람 이상하게 만드네. 대체 지금까리 날 뭐로 본거야?" "수전노, 사기꾼, 날강도, 인간 쒜레기. 더 말해 줘?" 음, 마지막 단어가 좀 걸리지만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다. 아무리 도움을 받았다고 하지만 명색이 아크다. 자기 돈으로 군량을 지급한다는 약속까지 하면서 굳이 70명이나 되는 피난민에게 밥을 먹여 줄 사람이 아니었다. 아크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바로 피난민이 누란 마을 주민과 수인족이기 때문이었다. 수인족은 마반 영웅과 관련된 NPC들이니 어떤 도움을 받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누란 마을 사람들은 <<전설의 증인>>퀘스트의 정보를 얻어야 한다. 때문에 친밀도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굶주림에 허덕일 때 식량을 베풀어 주는 것만큼 친밀도를 쉽게 올리는 방법도 없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데는 항상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물론 현재 아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임무였다. 그러나 그 임무는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다행이 아직 제한 시간이 이틀 가량 남아 있으니 협곡의 지형과 아란, 몬스터들의 동향을 좀 더 지켜보고 대첵을 세워야 했다. 그러니 뭔가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얻어둘 필요가 있었다. 역시나 차출한 군량을 전해 주자 피난민들의 눈빛이 대번에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아크는 그들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가 촌장쯤 돼보이는(본문에는 그냥 돼 라고만 있었음)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뭔기?" "이 근방에 혹시 예언자 일족이 살지 않습니까?" "예언자 일족?" 촌장이 움찔하며 금세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 일단 뭔가 있니는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경계 어린 눈빛을 보냈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게 말해 줄 수 없다는 뜻. 하지만 아크는 이미 자격을 인증받고 <<전설의 증인>> 퀘스트를 받은 유저다. 사정을 알게 되면 당연히 예언자 일족에 대한 정보를 주리라. '문제는 어떻게 별 같은 걸 NPC에게 설명하느냐인데....' 그런 고민을 하던 아크는 다음 순간, 이상한 부분을 눈치 챘다. 아크의 질문을 받은 촌장이 아주 잠깐이지만 근처 수인족의 눈치를 살폈던 것이다. '뭐지, 이반응은?혹시 예언자 일족이 수인족들과도 관련이 있는 건가?' 아크가 시선을 돌리자 촌장이 움찔 놀라며 난처한 눈으로 수인족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인족이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아크를 향해 말했다. "예언자 일족을 찾는 이유가 뭔가?" "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아크가 간략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인족과 누란 마을 주민들이 움찔하며 놀란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와 대화하던 수인족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별의 계시? 자네의 이름이 뭔가?" "아크라고 합니다." 순간 열 마리의 수인족들이 벌떡 이러나며 소리쳤다.190 "아크! 자네가 정말 마반 영웅에게 선택된 용사, 아크란말인가?" "저를 아십니까?" 이번에는 아크가 놀랄 차례였다. 아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자 수인족이 와락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다마다! 우리는 얼마 전에 도착한 용사의 별을 통해서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어떤 일을 해 왔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네." "용사의 별?" "자네에게 계시를 내렸다는 별. 우리들은 그것을 용사의 별이라고 부른다네." 수인족의 대답에 아크는 혼라네 휩싸였다. <<전설의 증인>> 퀘스트를 받기 직전, 아크의 몸에서 10개의 별이 솟아 나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수인조기 말하는 용사의 별이란 아마도 그때의 별일 것이다. 그런데수인족은 그 별을 통해 아크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별에 아크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는말. 그리고 그 정보를 수인족이 알고 있다면....? "혹시 당신들이 예언자 일족입니까?" 아크가 기대감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지만 수인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예언자 일족의 수호자 백호족이네." "예언자 일족의 수호자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죠?" "그건...." 백호족이 한숨을 불어 내자 누란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백호족은 그들을 힐끗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누란 마을 주민들은 옛날부터 예언의 힘을 지닌 아이들이 태어나는 혈통을 가지고 있네.예언자 일족은 그런 아이들을 모아 일족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지. 다시 말해 예언자 일족과 누란 마을 주민들은 혈연관계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런데 얼마 전, 예언자 일족은 시니어스 공국이 곧 두려운 어둠의 세력에게 공격받게 될 것을 알았네." 때문에 예언자 일족은 어둠이 닥쳐오기 전에 누란 마을 주민을 예언자의 땅, 샹그리아로 피난시키기 위해 몇몇 백호족을 파견한 것이다. 그러나 어둠의 공격은 예상보다 빨라 백호족이 도착했을 때 이미 누란 마을은 폐허가 돼 버린 뒤였다. 그리고 백호족은 누란 마을 폐허에서 몬스터들에게 습격당해 쫓기다가 아크처럼 워머에게 구조된 것이다. "샹그리아!" 그렇게 백호족의 사정을 듣고 있을 때였다. 예언자 일족이 사는 곳이 샹그리아라고 말하자 레리어트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그러세요? 아는 곳이에요?"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이곳에 오기 전에 대신전에서 받은...." 레리어트는 뭔가 말하려다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나중에 얘기할게요." 아크는 레리어트의 반응이 신경 쓰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캐물을 때가 아니었다. 아크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누란 마을 주민을 그곳으로 대피시키려 했다면 샹그리아는 아직 무사하다는 말이군요. 그리고 앞으로도 마족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있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일단 누란 마을 주민들과 샹그리아로 가는 게 급선무겠군요. 하지만 협곡이 몬스터들에 의해 봉쇄되어 움직이지 모하고 있었던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지만....이제는 늦었네." "늦다니요?" "예언자 일족의 땅이 방어 체제로 변환됬기 때문이네." "방어 체제?" "샹그리아는 항상 어둠의 세력에 대비해 몇 가지 보호 장치를 준비해 놓고 있네.그리고 일단 방어 체제로 돌입하면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네." "차단? 하지만 아직 당신들이 돌아가지 않았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가 샹그리아를 나온 지 열흘이 넘었네. 그리고 이 일대는 모두 악마들에게 점령당해 버렸지. 예언자 일족은 우리가 임무에 실패했다고 판단했을 거야." "예언자 일족이라면서요? 당신들이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예언자 일족이라고 모든 미래를 꿰뚫어 보는 게 아니네.대륙의 역사에 영향을 줄만한 사건을 미리 예측하는 것뿐이지. 그리고 사실 이번 어둠의 출현은 예언자 일족조차 미리 예견하지 못했던 사건이네. 이미 대륙의 역사가 비틀어져 버렸다는 뜻이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게 된 거지. 그리고 설사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안다고 해도 마찬가지네. 시니어스 공국이 어둠에 잠겼을 때 악마들이 가장 먼저 이곳을 공격한 이유는 바로 예언자 일족 때문이네. 놈들의 최우선 목표이니 만큼 방어 체제 전환을 한시라도 늦출 수는 없는 거네." '어라? 뭔가 이상한데?' 백호족의 말에서 아크는 뭔가 어폐가 있음을 알아챘다. 예언자 일족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예견하는 일족이다. 뭐, 그건 어디까지나 설정이고 실제로는 앞으로 출연할 에피소드 따위를 말해 주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확실히 그런 힘을 가진 일족이 있다면 어둠의 세력도 어떻게든 손에 넣거나 멸족시키려 할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 어둠의 부활은 예언자 일족조차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 그리고 한번 운명이 어그러져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도 예견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당연하다. 이번 사건은 버그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NPC가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면 어둠의 세력이 굳이 힘을 잃은 예언자 일족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의문을 던지자 백호족이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놈들이 샹그리아를 최우선 목표로 삼은 이유는 바로 성궤聖(궤 한자 못찾겠내요;)때문이네." "성궤?" (앞으로 한자는 넘어갑니다) "그래, 성궤는 오래전 신림지 에서 찾아낸 신체를 넣어 둔 아티팩트네. 이 성궤가 선한 자의 손에 들어가면 강력한 파마의 힘을 발휘한다고 전해지지. 어둠의 세력이 샹그리아를 공격하는 이유는 그 성궤가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하지만 놈들의 목적은 단순히 성궤를 파괴하려는 게 아닐 거야." "무슨 말이죠?" "성궤에 담긴 신체는 어둠도, 빛도 아니네. 때문에 사악한 자의 손에 들어가면 속성이 어둠으로 바뀌지. 그로 인해 어둠은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는 말이네." 백호족은 아득한 옛일을 생각하듯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오래전 그 사실을 알게 된 7인의 영웅은 예언자 일족에게 성궤를 맡기고 자신들의 힘을 모아 유사시에 발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보호 결계를 설치했네. 그리고 마반 영웅은 우리 일족에게 샹그리아를 지켜 달라고 부탁했지." 아크는 그제야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니만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넘은 국경응 파비온 요새보다 공략하기 쉬운 지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족들은 그곳보다 오히려 파비온 요새 주변에 더 많이 몰려 있었다. 모자라서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지금까지 보아 온 마족들의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족들에게 이곳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게 바로 예언자 일족이다. 대륙이 어둠에 잠식당하는 와중에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이곳을 점령하면 당연히 예언자 일족이 접촉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성궤의 힘을 슈덴베르크 원정군에게 넘겨주면 마족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아란이 이곳에 있었던 이유도...'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아란이 이번 사건의 배후 세력과 연관이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 아란이 굳이 이런 곳에 와 있다면 틀림없이 아란의 목적도 성궤 탈취에 있으리라. '결국 내가 할 일이 하나 더 는 셈이군. 하나는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파괴 작전>>을 성공시켜 원정군이나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도록 하는 일. 또 하나는 예언자 일족을 찾아가 <<전설의 증인>> 퀘스트를 완료하는일. 그리고 마지막은 성궤가 아란 녀석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일.' 갈수록 태산이다. 그러나 아크로서는 이번 전쟁이 마족의 승리로 끝나면 그야말로 알거지가 되어 버린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뭐,슈덴베르크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고 주변에서 마족들을 몰아내면 나머지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아란 녀석이 협곡을 봉쇄하고 있는 이상 현재로써는 그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샹그리아에 결계가 쳐졌으니 그곳에 있는 예언자 일족과 백호족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어.' 파비온 요새 함락이나, 예언자 일족을 만나는일. 둘 중 하나만 풀려 주면 나머지도 풀릴 것 같았지만 현재로는 둘 모두 꽉 막힌 상태였다. 그렇게 아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워머가 더욱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샹그리아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있어." "뭐?" "우히히히, 실은 이 근처에 내가 몇 달 전부터 만들고 있었던 굉장한 발명품을 숨겨 뒀어. 장담하지. 그 발명품을 이용하면 샹그리아까지 갈 수 있을 거야." "그게 정말입니까?" "정말이지. 하지만 문제가 있어. 내가 발명한 발명품은 대부분 강력한 마력석이 필요하거든. 특히 근처에 숨겨 둔 발명품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해." "마력석?" 아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워머가 작은 수정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마력석이야. 건전지처럼 이곳에 에너지를 담아 사용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숨겨 둔 비밀 병기는 최소한 5,000MG이상의 에너지가 담긴 마력석을 사용해야 작동시킬 수 있어. 그런데 마력석에 그만한 에너지를 충전시키려면 앞으로 한달은 걸릴 거야." 워머가 두툼한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적거리며 말했다. '이게 지금 누굴 놀리나?' 워머에 말에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한 달이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다른 문제는 그렇다고 쳐도 이제 특공대도 식량이 2~3일분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 동안 이곳에 있다가는 모두 굶어 죽어 버리리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워머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뭐, 단시간에 마력석을 충전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단시간 안에?" "마법 아이템에서 마력을 추출하는 거야. 그러면 마법 아이템은 못 쓰게 돼 버리지만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마법 아이템 몇 개 정도는 문제가 아니잖아?뭐, 다른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지금은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야.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필요한 MG만 모이면 샹그리아로 가는 건 문제도 아니야." 워머의 말에 백호족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한번 해 볼 만하군. 우리도 부탁하네. 누란 마을 주민들은 예언자 일족의 혈육. 우리는 이들을 보호해 샹그리아까지 대려갈 의무가 있네. MG를 충전하는데 소모될 마법 장비품이 문제라면 샹그리아로 돌아가서 우리 일족이 보관하던 마법 장비품을 나눠 줄 요량도 있네. 자네가 워머와 함께 우리를 도와줄 수 없겠는가?" 얘기를 듣던 백호족이 아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아크 역시 샹그리아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아란이다. '아란이 그렇게 쉽게 포기할 리가 없어. 게다가 우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사라졌으니 분명 이 근처를 뒤지고 다닐 거야. 필요한 MG는 그렇다 쳐도, 워머의 발명품을 이용한다고 해도 그런 놈의 감시를 피하며 샹그리아로 가는 건 힘들거야. 어떻게든 아란 녀석을 처리하거나, 하다못해 샹그리아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따돌려야 하는데....' 아크가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머릿속에서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아란 녀석은 지금 버그를 악용하는 일당들과 한패이거나 주동자일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맞아, 그 방법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아란 자식을 다시 매장시켜 버릴 수도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샹그리아로 여러분을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백호족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눈앞에 두두둥, 하며 퀘스트 정보창이 떠올랐다. 샹그리아로! 당신은 파비온 협곡 외곽에서 우연히 백호족과 누란 마을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어둠의 세력의 공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고립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이들이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소는 샹그리아뿐입니다. 당신은 이들을 데리고 몬스터들이 봉쇄한 협곡을 탈출해 샹그리아로 인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난이도 : +A 퀘스트 제한 : 없음>> ACT6 아란을 잡아라! '아란 녀석, 그따위로 나왔다 이거지? 좋아. 이제 전쟁이다!' 워머의 지하 기지에서 고민하던 현우는 이를 갈아붙이며 현실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호명환을 만나 방금 전까지 겪었던 상황을 상세하게 일러바쳤다. 호명환은 눈알을 10센티미터 정도 돌출시키며 되물었다. "아란요? 혹시 홀리 나이트 아란 말입니까?" "네, 그 아란요." 현우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눈으로 틀림없이 확인했습니다. 시니어스 공국에서 활동하는 몬스터들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란이었습니다.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걸로 봐서 전에 말씀하셨던 코드 블랙 아이템을 사용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란 본인이거나, 최소한 아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 아란이....!" 호명환은 튀어나온 눈알을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고 한참 동안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겁니다. 사실 글로벌엑서스에서 이번 사건 조사를 의뢰한 다른 특별 관리대상자들도 아크 님처럼 몬스터 무리에서 유저를 봤다는 보고를 해 온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유저의 아이디는 물론, 외모조차 확인하지 못한 상태라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글로벌엑서스가 답답해하던 것이 그 부분이었다. 이미 호명환이 말했듯이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응시자를 본사로 불러들여 사건 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응시자들은 슈덴베르크나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에 참가해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진상을 조사하며 수시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그 보고에 이미 몬스터들과 함께 움직이는 유저를 봤다는 내용도 몇 번이나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낸 건 딱 거기까지였다. 유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몬스터들과 다닌다..... 그 이유는 바로 현우가 '고양이의 눈'으로도 아란의 정보창을 검색하지 못한 이유와 같았다. '고양이의 눈'으로도 상대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없다는건, 도적의'간파'스킬이나 주문서 따위를 사용해도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때 아란의 정보창을 가리던 노이즈는 샴바라가 사용하던 '위장' 스킬과는 느낌이 달랐어. 오히려 붉은 남자의 정보창을 가리던 노이즈 쪽에 가까워. 처음 붉은 남자를 만났을 때는 레벨이 100 이상 차이 나서 정보창을 확인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란이나 다크엘프가 현우보다 레벨이 100이나 높았다고 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용하는 스킬이나 직업이 전혀 다른 3명이 똑같은 상태라면, 스킬이라기보다는 뭔가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았다. 현우는 그 밝혀지지 않은 아이템을 호명환이 말했던 코드블랙 아이템의 효과 중 하나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아란이나 다크엘프가 그렇게까지 정체를 숨기려는 이유는 간단하지.' 스스로도 정체를 숨겨야 할 만큼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아란은 일부러 얼굴을 알고 있는 현우 앞에서 투구를 벗었다. 현우가 알고 있던 아란-홀리 타이트였을때-과 스킬이나 능력이 판이하게 달라져 얼굴을 들어내지 않았으면 정체를 들킬 이유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현우에 대한 복수심과 자신감의 표현이었으리라. '멍청한놈. 그게 네 실수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현재 글로벌엑서스는 총력을 기울여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었다. 엄청난 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 그런 상황에서 아란이라는 단서를 얻은 것이다. 게다가 아란은 아직 글로벌엑서스의 응시자. 아란의 신상 명세는 버튼 하나만으로도 간단하게 알아낼수 있는 것이다. "이제 아란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제로써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그가 이번 사태의 주범인지 아니면 공모자인지, 혹은 단순 가담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순서겠죠. 하지만 주범이든 공모자든 그냥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재를 받게 되겠죠." "구체적으로 어떤....?" 현우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호명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글쎼요. 저도 거기까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전에도 얘기 드렸다시피 게임 운영에 장애를 일으켰다고 해도 유저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사용해 일으킨 문제라면 법적 제재를 가하기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본사에서도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만약 공범자 이상이라면 최소한 계정 압류 정도는 당하게 될 겁니다." "그렇군요." 현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현우가 지하 기지에서 나와 곧바로 글로벌 엑서스를 찾아와 일러바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이 말하던 사실 현우는 아란이 법적 제재를 받든 말든 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글로벌엑서스에서 아란이 이번 사건에 가담한 걸 아는 것, 그 자체였다. 다시 말하지만 글로벌엑서스는 이번 사태를 1분이라도 빨리 해결하는 게 최대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정보조차 없는 상황. 그럴 때 아란이라는 정보가 생겼다. 당연히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어떻게든 아란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독방에 가둬 두고 심문하든, 두들겨 패든 말이다.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당분간 아란이 게임을 못 하게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현우가 노린 건 바로 그거였다. 아란이 게임을 못 하게 된다는 건, 게임 속에서 아란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란이 없어지면 파비온 협곡의 마족들은 그냥 몬스터. 필드나 던전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몬스터들와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 병력이 120명밖에 없어도 그런 몬스터들을 유인, 포획, 전멸시키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 게임 속의 아란을 잡기 위해 현실의 아란을 잡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작전은 대성공! 사태 해결에 목을 매던 글로벌엑서스는 광속으로 아란 생포 작전을 펼치리라. 그 뒤에 글로벌엑서스가 아란을 구워먹든 삶아 먹든 현우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우는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란은 저와 꽤나 안면이 있는 유저입니다. 아란도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가담했을 텐데 계정 압류까지 당할지도 모른다니 마치 제가 밀고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불편하네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호명환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이번 사태 떄문에 수십만의 유저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벤트라는 핑계를 댔지만 그래도 글로벌엑서스를 고발하겠다고 나서는 유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건 이미 단순한 게임의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도 제 마음이 편치 않네요. 혹시 아란에 대해 어떤 조치가 취해지든 결정이 나면 저에게도 연락을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현우는 그 말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유니트 앞에 전화기를 가져다 놓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란이 잡혔다는 연락을 받는 즉시 게임에 접속하기 위해서였다. '아란의 후속 조치에 대해 호면환은 꽤나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글로벌엑서스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또 입고 있는 중이었다. 설사 게임 속의 일이라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해도 거대 기업이 그만한 피해를 입고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글로벌엑서스 같은 거대 기업이 작정하고 나서면 아란 1명 정도 밟아 대는 것쯤은 일도 아니리라. 아니 글로벌엑서스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만약 이번 사태가 모두 아란의 짓이라면-현우는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그리고 그 정보를 유저들이 알게 된다면 유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말 한번 잘못하면 테러를 당하는 세상이다. 하물며 뉴 월드에서 수백만 명에게 피해를 입힌 주범으로 공개된다면 아란은 그날로 현실에서도 매장당하리라.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그렇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솔직히 좀 심하다 싶지만.... 어차피 네가 주범이라면 내가 아니라도 곧 그렇게 될 거다. 그리고 네 녀석이 아예 작정하고 나오면 나도 달리 방법이 없어. 후후후, 아란. 미안하지만 너와 칼싸움으로는 결판을 못 내겠다. 이제 잠시 후면 뉴 월드에서는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될 테니까.' 현우는 어두운 방 안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1시간, 2시간....5시간이 지나자 슬슬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번 사태 이후 글로벌엑서스는 하루에 몇 억씩 손실이 생기고 있다고 들었는데? 사건의 실마리를 잡으면 당장 움직이는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왜 아직 연락이 없지?' 이상한 기분이 점점 불안감으로 바뀌어 갈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벨 소리에 현우는 화들짝 놀라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호명환입니다."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됐죠?" "아, 그게...." 수화기 너머로 호명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와싿. 이제 이상한 기분이 불안감으로, 불안감이 점점 현실로 바뀌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뭐가 잘못됐습니까?" "실은 아크 님이 돌아가신 직후에 그 내용을 바로 보안과에 전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보안과 직원들이 본사에 등록된 아란의 주소를 찾아내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아란은 집에 없었다고 하더군요." "지금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인가요?" "아란은 이미 한 달 전에 해외로 출국했다고 합니다." "해,해외요? 그럼 지금 게임 속에 있는 아란은...?" "해외에서 접속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호명환의 대답에 현우는 멍청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지하 기지에 피신해 있던 백호족이 아란에게 공격을 받았던 것이 열흘 전. 아란은 열흘 전부터 계속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아란은 단순히 관광을 즐기기 위해 해외로 나간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시작된 게 보름 전이다. 그런데 이미 한 달 전에 해외로 나갔다면 이런 상황까지 예상하고 이번 일에 가담했다는 말이 아닌가? "아무래도 저희 생각처럼 아란이 단순 가담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호명환 역시 현우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아란이 정말 보안 요원을 피해 출국했다면 이번 사건의 계획 단계부터 가담했다는 뜻! '하지만 대체 왜?' 현우는 도무지 아란의 속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현우도 아란이 이번 사건의 주범이기를 바랐다. 그래야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란은 머리가 좋은 녀석이다.이번 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지 모를 리가 없어.아니, 알기 때문에 해외로 도망가서 게임을 하고 있는 거겠지. 물론 그러면 당장 게임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다음은?그다음은 어쩔 생각인 거지?' 현우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었다. 이미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게 되었다. 벌써 수백억 대의 피해를 입은 글로벌엑서스가 가만있을리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 제재를 떠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스캔들이 될 확률이 많았다. 똘똘한 아란이 이번 사건에 한 달 전부터 개입되어 있었다면 그 정도를 예측 못 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란은 해외로 도피해서까지 게임을 하고 있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돼도 배후에서 계속 이번 사건을 진행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돼도 게임을 하겠다니? 문제를 더 크게 만들겠다는 거잖아? 대체뭐야? 그 자식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글로벌엑서스와 한번 붙어 보겠다는 건가?' 이건 아무래도 아니다 싶었다. 현우는 설산에서 아란을 봤을 때만 해도 아란이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런 무리에 가담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아란에게 현우에 대한 복수가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벌이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머리에 총알이라도 박히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아.' 아란의 목적이 단순한 복수라면 이번 사건이 시작됐을 때 이미 현우에게 접근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란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 현우를 만난 것도 샹그리아를 공략하는 와중에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뿐이었다. '아란에게는 복수와 다른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큰 문제에 휘말리는 걸 각오하면서까지 진행시켜야 할 뭔가가 뉴 월드에 있는 거야. 이번 사건은 내가 아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을지도 몰라. 뭐지? 아란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으려는 원가가?' 현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현우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 버리고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어쨌든 아란의 해외 도피는 스스로 이번 사건의 주모자라는 걸 인정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뉴 월드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거죠. 저희 입장에서는 해외로 출국했다고 해서 방관할 수 없어 계속 아란의 행적을 쫓고 있습니다." "당장은 아란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말이군요." 현우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호명환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쪽에서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으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호명환이 뭔가 말하려다 만 것은 자칫 너무 깊게 들어갈 우려가 있어서였다. 사실 현재 글로벌엑서스의 상황은 호명환이 말한 것보다 몇 배는 복잡하게 흘러갔다. 호명환은 '방문' 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 보안 요원이 아란의 집에 찾아간 건 '급습' 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였다.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이번 사건을 누군가가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터 코드는 뉴 월드만이 아니라 글로벌엑서스마저도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는데 얌전히 노크를 하고 방문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미 아란은 해외로 도망쳐 버렸다. 덕분에 글로벌엑서스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아란이 마스터 코드를 노리고 있는 게 확실해졌다. 우리에게 잡히기 전에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으면 얼마든지 교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피신한 게 분명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이제 암살자를 동원해서라도 아란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모든 수사력을 집중해 아란의 위치를 추적했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그쯤 되자 글로벌엑서스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메인 시스템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정상적인 온라인 게임이라면 아이디만으로도 유저가 어디에서 접속하는지, 게임 속에서는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내는건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개인 정보 보호 정책 때문에 실제로 알아보는 건 불법이었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제작사라도 그따위 법은 싱격쓰지 않으리라. 그러나 현재 글로벌엑서스는 그렇게 간단한 방법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임의 설계자인 박우성이 메인 시스템에 락을 걸어 놨기 때문이다. 그 락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마스터 코드! 물리고 물리는 상황의 중심에는 언제나 마스터 코드라는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떻게 아란의 행방을 알아낼 방법이 없을까?" 본사의 보안 요원들이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였다. "아란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릅니까?" 뭔가를 생각하던 기획실의 심권태가 물었다. "홍콩으로 출국했다는 것만 알고 있네." "홍콩이라.... 좀 더 정확한 위치는요?" "현재로써는......" "흠, 그럼 쉽지 않겠군요." "뭐가 말인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 여기 있군." 한참 동안 자판을 두들겨 대던 김권태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략 3만, 그게 홍콩에서 팔린 뉴 월드 유니트의 숫자 입니다.여기서 아란의 성격을 고려해서 게임방에 납품된 유니트를 제외하면 2만 개가 되는군요." "설마 그 2만 개를 판매한 집마다 돌아다니며 확인이라도 해 보자는 건가?" "설마요." 김권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우리는 박우성의 락 때문에 메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메인 시스템과 접속하고 있는 중간 회선이라면 락과는 상관없죠." "중간 회선?" "네, 간단하게 말하면 전화기와 전화선입니다." 김권태가 기획실 구석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을 전화기라고 해 보죠. 그 전화기가 철통 속에 들어 있어서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전화기를 통해 무슨 얘기가 오가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전화기가 아닌 전화선을 해킹해 버리면 그 내용을 알 수 있겠죠." "그,그게 가능한가?" "자세한 내용은 기술적인 부분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일단 가능은 합니다. 물론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과 연결된 회선은 전화선처럼 간단하지 않으니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솔직히 아란이 50만이 넘는 유저가 접속하는 한국에 있다면 시도조차 못 해 볼 일이죠. 하지만 홍콩에서 개인 유니트로 접속하는 유저는 2만. 게임방까지 포함해도 3만입니다. 홍콩 쪽의 접속 서버를 뒤지면 아란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권태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온라인 게임은 게임을 하며 움직이거나 말하는 모든 내용이 화선을 통해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과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 말은 일단 아란이 접속하고 있는 회선만 알아내면 아란이 어디서 게임을 하고 있는지는 물론, 게임 속에서 누구와 접촉하는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까지 손금들여다보듯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단숨에 파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필요한 걸 말해." 하명우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김권태가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유능한 해커 100명, 테라바이트급 컴퓨터 100대 그리고 시간입니다." "바로 시작해." 그때부터 기획실은 비상 체재로 홍콩의 접속 서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호명환의 연락이 늦어진 건 그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명환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이런 사정을 현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첫째는 홍콩의 접속 서버 역시 글로벌엑서스의 서버였지만 그래도 해킹은 불법이라는 점. 그리고 둘째는 글로벌엑서스가 자사의 서버를 해킹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뉴 월드 메인 시스템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음을 자인하는 행동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아크 님도 계속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진전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현우는 한숨을 불어 내며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현우가 정보로 글로벌엑서스는 나름대로 사태 해결에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현우는 문제는 눈곱만큼도 해결되지 않았다. 사실 현재 현우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해결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우가 일부러 본사까지 달려가 아란의 존재를 알린 이유는 오직 하나, 며칠이라도 아란이 게임을 못 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결국 헛물만 켠 꼴이 아닌가? '이제 어쩌지......?' 이대로라면 현우는 지하 기지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다. 이제 타임 리미트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하루 정도. '<<전설의증인>>이나 <<샹그리아로>> 퀘스트는 언제라도 상관없지만......'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의 유효 기간은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하루 안에 임무를 성공 시키지 못하면 퀘스트는 성공해도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먼저 실리나드 지역에 입성. 하베스틴은 모가지가 날아가고 현우는 군수물자 독점계약권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란 녀석이 버티고 있는 이상 파비온 협곡을 빠져나가기 힘들다. 분명 몬스터들에게 공격받가가 아란에게 전멸당하겠지. 젠장! 이렇게 되면 지하 기지에 숨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갇혀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 현우가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푹 내쉴 때였다. '가만? 갇혀? 우리가 갇혀 있다고? 그렇다면..... 맞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갑자기 번뜩하며 뭔가가 떠올랐다. "어차피 이제 시간이 없다. 잘될지 모르겠지만 해 보는 수밖에 없어!" ACT7 협곡 탈출 작전 파비온 협곡 외곽 역시 알바나 산맥의 기후와 비슷했다. 바람 한 점 없다가도 갑자기 눈 폭풍이 휘몰아치고, 시도때도 없이 간헐적인 지진이 일어나 빙벽에서 얼음 덩어리가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 "정말 끔찍하군." "이곳의 환경이 결코 안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네.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어둠이 시니어스 공국을 뒤덮은 이후부터야. 어둠에 뒤덮인 뒤로 정체불명의 몬스터들도 그렇고, 기후도 그렇고, 세상 전체가 미쳐 가는 것 같아.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누란 마을 촌장이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얀 입김을 뿜어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을과 삶의 터전을 빼앗겨 버린 한 노인의 하소연이었다. 아크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기에 촌장의 기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세상이 미치기 전에 내가 먼저 미쳐 버리겠다!" 숙연해진 아크의 고막을 라카드의 목소리가 뒤흔들었다. 기겁한 아크가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뭐, 뭐야? 누구 고막 찢어지는 꼴 보고 싶어?" "젠장, 차라리 고막이 찢어지는 편이 낫지. 나는 이제 아예 감각도 없다고……. 히이이익, 으아아아, 언다 얼어. 우우우, 대체 왜 내가 이런 고생을……." 라카드가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불만을 터뜨렸다. 라카드가 이렇게 불만을 터뜨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재 파비온 협곡 외곽은 기온이 뚝 떨어져 살짝 바람만 불어도 마치 칼에 베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라카드는 수십 미터 상공에서 홀로 시퍼런 기운이 뚝뚝 떨어질 듯한 눈폭풍을 맞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소미가 만들어 준 목도리와 장갑을 장비하고 있다지만 이런 추위 앞에서는 실오라기 하나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다. '라카드만이 아니야.' 아크는 힘겨운 표정으로 행군하는 특공대를 돌아보았다. 그 때, 바짝 여민 옷깃 사이로 얼음장 같은 바람이 스며들었다. -한파로 인해 체온이 10% 떨어졌습니다! <<체온이 50% 이하로 떨어져 각종 능력치가 급속도로 떨어집니다.>> 기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발동되는 한파 페널티! 이곳에서 살아가는 백호족이나 누란 마을 주민들은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특공대들은 눈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자 점차 체온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알바나 산맥을 통과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등정대원 수준의 방한 장비를 갖췄고, 아크가 중간 중간 얼음을 녹여 '정제수'를 만들어 먹인 덕분에 간신히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방한 장비와 정제수만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크가 이런 악천후 속에서 지하 기지를 나온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알바나 산맥을 넘어 아란의 기습을 받고 워머의 지하기지에 숨어 있던 기간을 모두 합하면 이틀이 넘는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의 타임 리미트는 사흘. 다시 말해 이제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타임 리미트가 지나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수십 개를 파괴한들 아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 따위는 없어. 이번 작전이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이다. 어떻게든 아란에게 들키지…….' 아크가 초조한 심정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하고 있을 때엿다. "앗! 주인, 발견했어!" "어디야?" "3시 방향으로 돌아 들어가는 길 끝에서 찾았어." "주변에 몬스터는?" "조금밖에 없어. 대략 150마리 정도?" "그 정도면 10분 안에 처리할 수 있겠군. 우측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되나?" "응, 그곳까지 가는데 다른 몬스터들은 없어. 그런데 주인, 나 추워……." "알앗다. 계속 주시하다가 다른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무전 때려." 아크는 라카드의 말을 가볍게 씹으며 특공대와 백호족, 누란 주민들을 돌아보았다.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를 포함한 특공대 120명과 백호족 열 마리, 누란 주민 60명. 그리고 자칭 천재 발명가 워머. 이들이 현재 아크를 따르는 유저와 NPC들이었다. "주민과 워머는 뒤로 빠지고 특공대와 백호족이 앞장선다." 아크는 대형을 정비하여 라카드가 알려준 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렇게 잠시, 내비게이션(라카드) 덕분에 수십 갈래로 나뉜 복잡한 협곡을 헤매지 않고 진입한 아크의 눈앞에 축구장만한 크기의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공터의 중심에는 작은 돌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마치 갓 삶아 낸 감자에서 피어오르는 수중기처럼, 검은 기운을 뭉클뭉클 뿜어 올리는 검을 돌기둥! 바로 현 대륙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였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검은 오벨리스크는 크기에 따라 저주의 힘도 차이가 났다. 당연히 크기가 클수록 강력한 저주의 힘을 발휘해 더 강력하고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불러냈다. 그러나 라카드가 찾아낸 검은 오벨리스크는 고작 5미터 정도의 크기. 보통 검은 오벨리스크의 크기가 수십미터에 달하니 꽤나 작은 편에 속하는 오벨리스크였다. 때문에 오벨리스크 주변에 모여 있는 몬스터들 역시 그리 대단한 수준이 아니었다. 레벨 250~270 수준의 탈론 150여마리가 멀뚱멀뚱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크가 '고양이의 눈'으로 놈들을 살피며 중얼거렷다. "최대한 빨리 전멸시키고 퇴각한다." 특공대와 백호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현재 파비온 협곡 외각 지대에는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흩어져 있었다. 적게는 눈앞의 탈론들처럼 100마리 수준이지만, 보다 레벨이 높고 숫자도 비교할 수 없는 몬스터들이 수십 부대로 나뉘어져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란. 만약 아란이나 이런 몬스터들에게 걸리면 특공대는 전멸을 면치 못하게 되리라. "레리어트 님, 공격형 3종 버프를 부탁합니다!"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웅의 기상, 전사의 집중력, 질풍의 호흡!" 공격력을 10% 올려주는 전사의 집중력! 치명타 확률을 20% 상승시켜 주는 전사의 집중력! 검 계열 무기의 공격 속도를 10% 증가시키는 질풍의 호흡! 레리어트가 버프를 발동시키자 지면을 따라 성스러운 빛이 퍼져 나가며 부대원들의 능력치가 솟구쳐 올라갔다. 그제야 특공대의 기척을 눈치챈 오벨리스크 주위를 배회하던 탈론 무리가 일제히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키카오, 키카오, 마리무드! "속전속결도 좋지만 병력 피해를 더 입어서는 안 된다. 먼저 방어 진형으로 놈들의 공격을 한차례 막은 뒤에……." 아크가 선두의 전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였다. 방패로 방벽을 쌓아 올리는 전사들의 머리 위로 10여 개의 하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단숨에 전사들을 뛰어넘어 두텁게 쌓인 눈을 튀어 올리며 달려가는 하얀 그림자는 다름 아닌 백호족이었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앙! 백호족은 지하 기지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비록 호랑이를 닮았지만 하얀 털에 뒤덮인 백호족은 둥그란 눈에 북슬북슬한 발바닥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적을 만나자 분위기가 180도로 변했다. 마치 먹이를 앞에 둔 짐승처럼 눈매가 쭉 찢어지고 입술 사이로 장정의 손가락보다 굵은 어금니가 드러났다. 그리고 푹신푹신해 보였던 발바닥에서는 마치 갈고리 같은 발톱이 10여 센티미터나 솟아났다. 마치 전투형으로 변신이라도 한 것처럼 보일 정도엿다. 콰콰콰쾅! 단숨에 거리를 좁힌 백호족이 몰려드는 탈론들과 충돌했다. 전투형으로 변신한 백호족의 전투력은 아크의 상상을 초월했다. 백호족의 몸통 박치기에 얻어맞은 탈론들은 마치 볼링공에 맞은 핀처럼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채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10여 마리가 백호족의 송곳니와 발톱에 걸레처럼 찢겨졌다. "뭐야, 저건?" 아크와 특공대원들이 입을 쩍 벌리고 백호족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 역시 백호족이 제법 강할 거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묘족이나 인어족, 너구리족, 늑대족을 보면서 아크는 수인족의 레벨이 항상 그 주변에 서식하는 일반 몬스터들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백호족의 전투를 보니 이건 상상 이상이었다. '저 정도면 레벨 400대의 유저와 맞먹는 공격력이다. 게다가 저 움직임은 묘족이나 늑대족보다도 빨라. 마반 영웅이 왜 백호족에게 예언자 일족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는지 알 만하군.' 당연히 수인족들 가운데 백호족이 가장 강해서였으리라. 하긴 호랑이야 월래 백수의 왕이니 고양이나 늑대보다 강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백호족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니 아크도 굳이 조심스럽게 병력을 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크는 곧바로 검을 뽑아들고 탈론무리를 향해 돌진하며 소리쳤다. "좋아. 놈들의 대열이 흩어졌다. 총공격으로 놈들을 섬멸하라!" "우와아아아!" "백호족의 뒤를 따라라!" 특공대가 함성을 지르며 탈론에게 달려들었다. 강한 전사의 활약은 아군에게 무엇보다 힘이 되는 법. 방금 전까지 추위에 떨며 몬스터 대군의 감시를 피해 숨어 다니느라 떨어졌던 특공대의 사기가 단숨에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치솟은 사기는 그대로 전투력으로 전환되었다. "간다. 영웅의 일격!" "적을 꿰뚫는 단 하나의 화살, 피어싱 애로우!" "불꽃이여, 화염이여, 열화와 같은 진노로 적을 삼켜라! 파이어 스톰!" 콰콰콰콰, 콰콰콰콰! 검과 화살, 그리고 마법의 화염이 해일처럼 탈론 무리를 덮쳤다. 여기저기에 굉음과 섬광이 터져 나오며 탈론들의 생며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그 사이 아크는 '다크 댄싱'을 난사해 공터 중심에 솟아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에 접근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축구공만한 크기의 쇳덩이를 꺼내 들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 퀘스트와 함께 받았던 '성광 폭뢰'였다. '탈론을 전멸시켜도 검은 오벨리스크를 부수는 데는 20~30분이 걸린다.' 아크가 오벨리스크에 다가가자 정보창이 떠올랐다. 검은 오벨리스크(특수) 어둠의 사악한 저주 마법으로 창조된 마법 구조물. 대지에 박히면 자동으로 강력한 저주 마법을 발동시켜 고대의 악마를 이 세계로 불러들이는 게이트 역할을 합니다. 또한 대지를 오염시켜 오벨리스크가 파괴돼도 그 오염된 대지에서 다시 형태를 복원시켜 현재로써는 오벨리스크를 완벽하게 없앨 방법이 없습니다. 검은 오벨리스크는 검과 마법의 공격을 90% 무효화시킵니다. <<내구력:2,000>> 새삼스럽지만 검은 오벨리스크는 내구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저주의 힘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수백 명이 둘러싸고 검이나 마법을 날려도 파괴시키려면 최소한 20~30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되면 탈론 무리를 10분 안에 처리한다고 해도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30~40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다른 몬스터 군단이나 아란이 협곡을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곳에 30~40분이나 머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리 '성광 폭뢰'를 설치해 두면 탈론을 정리할 때쯤 오벨리스크를 파괴할 수 있다!' '성광 폭뢰'는 검은 오벨리스크에 5,000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원정군의 비밀 병기. 작동시키고 폭발하기까지 10분이나 걸리지만. 어차피 탈론과의 전투 역시 아무리 빨라도 10분은 걸린다. 때문에 아크는 전투 개시와 함께 오벨리스크에 '성광 폭뢰'를 설치했다. -'성광 폭뢰'를 작동시켰습니다. <<폭발까지 앞으로 9분 59초가 남았습니다.>> 아크가 '성광 폭뢰'를 설치하자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아크가 검은 오벨리스크에 접근하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탈론들이 몰려들었다. "훗, 도망만 다닌다고 네놈들에게까지 당할 것 같아 보이냐? 섬아!" 아크는 콧방귀를 뀌며 한 줄기 섬고아으로 변해 탈론 무리를 꿰뚫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리꽂히는 벼락처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관통하자 탈론들의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갔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야 좀 전투하는 맛이 나는군. 폭우검 개改 회오리!" 아크가 '섬아'로 탈론들을 한 곳에 모아 놓자 샴바라가 뛰어들었다. 그러자 수백 자루의 단검이 샴바라를 중심으로 회오리를 일으켰다. 동시에 주변에 몰려 있던 탈론들이 걸레짝처럼 갈라지며 설원을 붉게 물들였다. 그렇게 아크와 샴바라가 아란과 다크엘프에게 당하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팍팍 풀어 대자 탈론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거기에 백호족이 날뛰고, 레리어트가 각종 버프와 보조 마법을 날려 대자 특공대는 일방적으로 탈론 무리를 밟아 댔다. 그러나 특공대는 탈론의 숨통을 끊어 놓지는 않았다. "생명력이 3% 이하의 탈론은 손대지 마라. 마기 봉인! 마기봉인! 마기 봉인!" 전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아크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마기봉인'을 난사했다. 현재 아크는 비밀 던전에서 노가다해서 챙겨 놓은 저주탬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아란에게 기습당했을 때 '마기 발현'을 난사할 저주템만 충분했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졌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저주템의 보충은 필수 불가결. 때문에 아크는 지하 기지에서 나오기 전에 특공대들이 가지고 있던 잡템을 몽땅 차출해 탈론의 마기를 쑤셔 넣어 저주템을 보충해 놓기로 작정했다. -마기 봉인에 성공했습니다. <<마기가 봉인된 아이템의 속성이 변했습니다.>> 그렇게 불과 10분. 상황이 불리해지자 도망치던 마지막 탈론이 장비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상자는?" "전사 3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생명력 관리에 신경 쓰라고 말했는데……." 아크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남은 특공대원은 120명. 수많은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협곡을 빠져나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하는 임무를 성공시키려면 앞으로 단 1명의 병사도 쉽게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실 사상자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아크가 주둔지에서 출발할 때는 직업의 비율을 세심하게 조율해 병력을 편성했지만, 알바나 산맥을 넘어오면서 성직자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때문에 현재 특공대 가운데 남은 성직자는 고작 15명 정도. 그 숫자로 120명이나 되는 특공대원을 모두 커버하기는 무리였다. "할 수 없지.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일단 생명력과 마나 회복에 집중하도록." "알겠습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특공대원이 대답했을 때였다. 돌연 공터 중심에서 폭음과 함께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아크가 심어놓은 '성광 폭뢰'가 폭발한 것이다. '성광 폭뢰'가 빛이 다발로 뿜어져 나오며 검은 오벨리스크를 휘감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오벨리스크의 표면에 두꺼운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유리가 깨지는 것처럼 쨍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마치 모래처럼 작은 입자로 변해 바당게 수북이 쌓였다. "우오오옷! 연료다, 연료!" 워머가 거대한 몸집을 흔들며 뛰어나온 것은 그때였다. 워머는 반짝이는 눈망울로 검은 모래 더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커다른 주전자처럼 생긴 기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기계의 아랫부분에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마력석을 장착하고 뚜껑을 열어 검은 모래를 푹푹 퍼 담기 시작했다. 철컹, 철컹, 철컹, 뚜루루루! 주전자처럼 생긴 기계가 연기를 뿜어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주전자가 바로 워머가 말했던 검은 오벨리스크의 마력을 MG로 바꿔 마력석을 충전시킬 수 있다는 기계였다. 그러나 사실 이기계는 검은 오벨리스크 전용은 아니었다. 본래 용도는 마력이 담긴 아이템을 해체, 그곳에서 순수한 마력만을 추출한 뒤에 정제해서 MG로 전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마범검이나 장비품 따위로도 충분히 작동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사용할 경우, 멀쩡한 마법검을 분해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게다가 마법검 하나를 분해해 봐야 추출할 수 있는 MG는 고작 5~10. 워머가 말했던 굉장한 발명품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MG가 5,000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려 500~1,000개의 마법 장비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무슨 이런 실용성 없는 발명품이 다 있어?" 막상 결과를 지켜본 아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워머가 무슨 말이냐는 듯이 대꾸했다. "말도 안 되는 발명품이라니? 이미 장비품에 주입된 마력을 다시 추출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원래 마력이란 한번 고착되면 추출할 때의 손실 마력은 엔트로피 법칙과……." "됐어. 그만해!" 아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소리쳤다. 새삼 이 살짝 간 듯한 드워프를 잠시라도 철석같이 믿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대체 어떤 발명품이기에 마법 장비품을 500개 이상 소모해야 움직인다는 말이야?' 대충 계산기를 눌러 본 아크는 황당함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러나 워머는 그 발명품에 대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라고 밖에 말해주지 않았다. 어쨋든 아무리 그 발명품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아크는 마법 장비품을 500개 이상 때려 박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마음이 있어도 그만한 마법 장비품은 구할 수 없었다. '그만한 마법 장비품을 구하려면 특공대원들의 장비를 몽땅 벗겨야 하잖아?' 고작 퀘스트 한두 개 때문에 대원들이 장비품을 몽땅 벗어줄 리가 없는 것이다. 아니, 사실 아크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파산 문제가 걸려 있는 퀘스트라도 지금까지 고생하며 모은 장비품을 몽땅 털어서까지 완료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이번 퀘스트에 실패할 때 받을 손해에 비하면 장비품을 몽땅 털어 버리는 쪽이 싸게 먹힐지도 모르지만, 필요한 MG를 모두 구한다고 100% 퀘스트에 성공할 거라는 보상도 없지 않은가? '가만? 마법 아이템이라고? 그럼 혹시……?' 그 때 아크의 머릿속에 얼마 전 궁정 마법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궁정 마법사가 검은 오벨리스크를 저주의 결정체라고 했잖아? 그리고 저주는 마력. 만약 워머의 발명품이 어떤 형태의 아이템에서든 마력을 추출할 수 있다면?'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공식이 만들어졌다. 바로 '금은 오벨리스크=마력=장치의 연료'라는 공식이었다. 순간적으로 그 부분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워머에게 말했다. 그러자 워머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지. 맞아. 몬스터들을 불러들이는 힘을 지닌 오벨리스크는 마력의 결정체와 다를 바 없어. 그렇다면 오벨리스크에게서 마력을 빨아들이지 못하란 법은 없지." 그때부터 워머는 미친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지금 워머가 들고 있는 주전자, 마력 변환기였다. 아크가 위험을 무릅쓰고 협곡으로 나온 건 그 때문이었다. '제발 이걸로라도 MG가 모여 줘야 하는데…….' 만약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MG를 추출하지 못하면 모든게 끝장인 것이다. 그때 연기를 뿜어내던 주전자가 삑, 소리를 내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력변환기의 작업이 완료됐습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잔해에서 마력을 추출해 MG로 변환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추출한 MG는 장착되어 있는 마력석에 축적됩니다. <<현재 장착한 마력석의 충전 양:200MG>> "성공이다! 과연 나다. 천재야!" 메시지창을 확인한 워머가 펄쩍 뛰며 잘난 척했다. 아크 역시 안도의 한숨을 불어 냈지만 그리 표정이 밝지는 못했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생각보다는 별로 안 모이는데…….' 아크는 주위를 돌아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파비온 협곡 안에도 여기저기에 꽤 많은 숫자의 검은 오벨리스크가 박혀 있었다. 그검은 오벨리스크를 부수며 돌아다니면 어떻게든 필요한 MG를 모을 수는 있으리라. 5미터 미만의 작은 오벨리스크에서 200MG를 모았으니 더 큰 오벨리스크라면 더 빨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의 병력은 백호족을 포함해서 130명밖에 되지 않았다. 큰 오벨리스크 주변의 몬스터들과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작은 오벨리스크만 공략해도 하루 안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만…….' 역시 문제는 항상 아란이었다. 아란은 아직 협곡을 돌아다니며 아크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다. 사실 아크가 그나마 협곡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아란은 아직 아크가 협곡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대부분의 몬스터들을 동원해 외부로 이동할수 있는 5개의 출구를 몽땅 봉쇄한 상태였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협곡내부의 몬스터들이 줄어 큰 위험없이 작은 오벨리스크를 찾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란은 여전히 몬스터 군단을 데리고 협곡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 아란에게 들키지 않고 협곡 안의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라고 아란에게 들키는 순간 온 협곡 안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어 박살 나리라. '다행히 지하 기지를 나오기 전에 정찰했을 때는 아란이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은 시도해 볼 방법이라도 생긴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릴 때였다. "주인, 만만한 검은 오벨리스크를 또 하나 발견했다." 눈 폭풍이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라카드의 원격 통신이 들어왔다. '어찌 됐든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이라도 해 볼 수 있을 때까지 해 보는 수밖에 없어. MG가 다 모일 때까지 아란 녀석이 졸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바로 출반한다. 도적과 마법사들은 최대한 빨리 전투 흔적을 지워라." 그렇게 아크는 또다른 검은 오벨리스크를 찾아 협곡을 이동했다. ★★★★★★★★★★★★★★★★★★★★★★★★★★★★★★★★★★★★★★★★★★★★★★★★★ typing by "찾았다!" 어둠 속에서 아란이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제대로 걸려들었군." 아란의 눈앞에는 2개의 영상창이 떠 있었다. 하나는 지금 그의 앞에 모여 있는 다크엘프, 티모시와 몬스터들의 모습이 보이는 영상창. 그리고 다른 하나에는 눈 폭풍이 몰아치는 협곡을 행군하는 200여명의 사람들이 비쳐지고 있었다. 그렇다. 또 하나의 영상창에 보이는 사람들은 바로 아크와 특공대, 백호족, 누란 주민들이었다. 아란이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뱀파이어 아이' 덕분이었다. 자신의 눈을 뽑아 자유자재로 이동시킬 수 있는 뱀파이어의 특수 능력 '뱀파이어 아이'! '틀림없이 협곡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크의 짐작대로 아란은 아직 아크가 협곡 어딘가에 숨어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꼬박 하루 동안 협곡을 샅샅이 뒤져도 아크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때문에 고민하던 아란은 곧 한 가지 계획을 생각해 냈다. '놈을 찾을 수 없다면 직접 나오도록 만들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란은 협곡 수색을 중단하고 몸을 숨겼다. 그리고 협곡 안 몬스터들도 적당히 분산시켜 놓았다. 아크가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분명 탈출할 기회를 노릴 터. 아란이 보이지 않으면 틀림없이 탈출을 시도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아란의 계획대로 몸을 숨기자 얼마 지나지 않아 아크가 '뱀파이어 아이'의 감시에 포착됐다. '바로 출구로 도망치지 않고 협곡을 돌아다니며 검은 오벨리스크를 부수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쨋든 놈이 다시 나타난 이상 게임은 끝났다!' "놈이 나타났어? 그럼 빨리 가서 때려잡아야지!" 그때 옆에서 티모시가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러나 아란은 느긋한 태도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몰아붙이면 놈이 도망갈 곳은 어차히 한곳밖에 없다." 아란이 몸을 일으키며 씨익 웃었다. "자, 슬슬 몰이사냥을 시작해 볼까?" 동시에 아란의 손에서 한 줄기 불꽃이 하늘을 향해 쏘아져 올라갔다. ★★★★★★★★★★★★★★★★★★★★★★★★★★★★★★★★★★★★★★★★★★★★★★★★★★ "주인, 저기 좀 봐!" 라카드의 목소리에 아크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슈우우욱, 퍼퍼퍼펑! 동시에 어둠 속에서 강렬한 빛을 뿜어내느 조명탄이 터졌다. 한 발이 아니었다. 처음의 조명탄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자 뒤이어 사방에서 몇 개의 조명탄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순간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란이다!' 몬스터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조명탄을 쏘아 올릴 리가 없다.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유저나 NPC뿐. 그런데 몬스터들이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 아란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직감적으로 현재 상황을 이해했다. '방금 전까지 계속 협곡을 돌아다니던 아란의 몬스터 부대가 갑자기 사라진 게 영 찜찜했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아란 녀석은 날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숨어 있던 거였군.' 사실 아크도 그 정도의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임무의 타임 리미트가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아니,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해도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의 몬스터를 전멸시키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실제로는 이미 불과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고 해야 할 터였다. ……아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이대로 지하 기지에 다시 숨어도 상황은 마찬가지겠지.' 설사 아크가 이번에도 지하 기지에 숨는다고 해도 이미 다시 아크를 발견한 이상, 아란은 더욱더 협곡을 철통같이 감시할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이제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임무는 100% 실패. 그렇다고 이대로 탈출을 감행하는 것도 무리였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고 있을 때였다. "주, 주인,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어! 3시, 4시, 6시, 9시, 11시……. 다 꽉 막혔어!" 주변을 돌아본 라카드가 당혹감에 물든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동안 출구를 봉쇄하고 있떤 몬스터 군단들이 특공대를 향해 포위를 좁혀 오고 있었다. 그 말은 이미 아란이나 몬스터들은 아크와 특공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아크가 다급하게 물었다. "지하 기지가 있는 쪽은?" "그쪽은…… 아직 몬스터들이 길목을 막지는 않았어." '이것 역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건가?'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행히 지하 기지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남아 있었지만 지금 지하 기지로 돌아가면 임무는 실패. 그러나 아크는 이 부분에서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여기서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이면 개죽음밖에 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설사 임무를 포기하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전설의 증인>>과 <<샹그리아로>> 퀘스트라도 완료할 기회를 엿보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도 아란 따위의 계략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 "모두 지하 기지로 돌아간다! 라카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하라!" 결국 아크는 살아남는 길을 선택했다. "오케이, 3시 방향에서 접근하는 몬스터들이 4시 방향으로 전화, 옆으로 꺽어!" "이쪽이다!" 아크는 라카드의 실시간 교통 정보를 들으며 복잡하게 얽힌 협곡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잠시, 다행히 아크는 단 한번도 몬스터들과 충돌하지 않고 지하 기지가 있는 막다른 협곡까지 도주할 수 있었다. "서둘러! 놈들에게 지하 기지의 위치를 들키면 숨을 수도 없어!" "아, 알았어. 잠깐 기다려!" 아크의 닦달에 워머가 지하 기지 개폐 장치를 꺼내려 할 때 였다. "여기까지다. 생쥐 같은 놈!" 돌연 뒤쪽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린 아크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아란……!" 대체 언제인가? 아크의 바로 뒤에는 아란과 티모시를 비롯한 500여마리의 몬스터들이 출구를 막고 있었다. 그렇다. 아란이 말했던 '아크가 도망갈 곳은 하나뿐이다'라고 말했던 곳은 바로 이곳이었다. 예전에 아크가 사라졌던 곳. 아란은 아직 지하 기지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만약 그때처럼 궁지에 몰리면 아크가 도망갈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몬스터들을 움직여 포위를 좁히는 한편, 아란은 근처에서 잠복해서 아크를 기다렸던 것이다. "네놈의 처분을 몬스터 따위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아란이 날카로운 눈매로 아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크는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지하 기지에도 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만약 아란의 눈앞에서 지하 기지로 숨는다면 당연히 위치가 발곡된다. 아란은 만사를 제쳐 두고 지하 기지 입구를 공략하리라. 그렇게 되면 아크와 특공대, 백호족, 누란 주민들은 지하 기지에 갇힌 채 꼼짝도 못하다가 입구가 파괴되면 난도질을 당해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아란에게 완벽하게 덜미가 잡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 승부는 내가 이긴 모양이군. 앞으로 그러테지만." 아란이 오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을 때였다. "이번 승부는 네가 이겼다고? 설마 내가 네놈이 쳐 놓은 함정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크가 같잖다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천만에. 함정에 빠진 건 네놈이야."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마기 왜곡'! 제물 40개!" 철컥, 퉁, 퉁, 퉁, 퉁! 동시에 아크의 가방이 저절로 열리며 각종 장비품이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장갑, 검, 창, 갑옷……모두가 시커먼 색으로 물든 수십개의 저주템이었다. 가방에서 날아오른 저주템은 특공대와 몬스터들 사이의 상공에서 오망성을 만들었다. 저주템으로 만들어진 오망성! 뒤늦게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따는 것을 깨달은 아란이 황급히 소리쳤다. "이, 이 자식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돌진! 놈들을 밟아라!" "늦었어. 이미 함정에 빠졌다고 했잖아."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을 때였다. 순간 공중에서 거대한 오망성으로 늘어서 있떤 저주템이 일제히 폭발했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마기가 터져 나오며 일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기 왜곡'이 발동했습니다. 장비품에 갇혀 있던 마기를 단숨에 방출해 공간을 왜곡시켜 적과 아군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이동시키는 적보다 많은 숫자의 아군이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위치 바꾸기를 실행할 적 부대를 지목해 주십시오. "대상 100미터 전방의 직경 200미터 범위의 유저와 몬스터! 발동하라!" 아크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해 오는 아란과 티모시, 500여몬스터들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마기의 폭발로 일그러져 있던 공간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기는 순식간에 거대한 회오리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맹렬히 회전하며 2개로 갈라져 눈 깜짝할 사이에 특공대와 몬스터들을 삼켜 버렸다. "우와아아아아!" "뭐야? 대장이 발동시킨 스킬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특공대원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일단 회오리에 말려들자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회오리에 말려 엄청난 속도로 회전할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불과 몇십 초 사이에 수백 바퀴를 회전해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회오리에 휘말렸던 특공대원들이 눈밭에 내동댕이쳐졌다. "우왁!" "뭐, 뭐야? 여기가 어디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생명력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라?" "여기는……방금 전에 있던 곳이잖아?" 특공대원들이 어처구니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수십 개의 저주템이 폭발하며 출현한 엄청난 마기! 그 마기의 소용돌이에 한참을 휘말렸는데도 막상 상황이 끝난 뒤에 확인해 보니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생명력도 마나도 그대로. 변한 거라고는 회오리에 휘말리기 전에 서 있던 곳에서 고작 300~4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동한 장소였다. "어라? 어떻게 저 녀석들이 저기에……?" 특수부대원들이 황당한 시선으로 아란과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 특수부대는 협곡의 막다른 곳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아란과 몬스터들은 그들에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러나 회오리바람에 휘말렸다가 떨어지자 둘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아란과 몬스터들이 막다른 절벽 아래 모여 있었고, 특수부대는 출구에 떨어진 것이다. 특수부대가 있던 곳에 몬스터가, 몬스터가 있던 곳에 특수부대가……. 그렇다. 이게 바로 '마기 왜곡'의 효과 위치 바꾸기! 장비품에 봉인된 마기를 폭발시켜 양쪽의 공간을 뒤바꿔 버리는 '이터널 소울'인 것이다! '마기 왜곡'으로 위치를 바꾼 아크가 씨익 웃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자, 말했지? 함정에 빠진 사람은 네 쪽이라고." "자리를 바꾸면 상황도 바뀐다고 생각하는 거냐? 멍청한 놈, 어차피 네놈이 여기서 도망쳐도 밖에는 몬스터 군단이 협곡의 모든 통로를 봉쇄하고 포위를 좁혀 오고 있다. 네놈은 절대 도망치지 못해!" 아란의 말대로였다. 아크가 40개의 장비품을 제물로 바쳐 얻은 성과는 고작 위치를 바꾼 것뿐이었다. 뭐, 정신없는 상황에 몬스터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 역시 그 뿐이다. 생명력이 깎인 것도 아니고, 전투력이 내려간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몬스터들과 전투가 벌어지면 특수부대는 전멸한 뿐이었다. 물론 위치를 바꾼 덕에 아크는 이제 막다른 협곡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기는 했다. 그러나 아란의 몬스트 군단과의 거리는 불과 300~400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누란 주민들까지 데리고 아란의 몬스터 군단을 따돌리기에는 그리 넉넉한 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여전히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내가 40개나 되는 장비품을 날리면서 스킬을 쓸 것 같으냐?" 그렇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해도 아크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40개나 되는 장비품을 날려 버릴 리가 없었다. 아크가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마기 왜곡'을 사용한 이유는……. "워머." "젠장, 내가 얼마나 어렵게 만든 지하 기지인데……." 아크가 슬쩍 시선을 주자 워머가 한숨을 푹푹 불어냈다. 그리고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아크와 몬스터들을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리모컨을 꾹 눌렀다. 쿠쿠쿠쿠, 철커덩! 그때였다. 돌연 아란과 몬스터들이 서 있던 지면이 진동하며 기계음이 울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바닥이 뒤집히며 단숨에 아란과 몬스터들을 삼켜 버렸다. "뭐, 뭐야?" "후후후, 잠시 그곳에서 머리나 식히고 있으라고." 아크는 빙긋 웃으며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아란에 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다. 아크가 아란의 발을 묶어 놓기 위해 생각해 낸 작전은 바로 이것이었다. 현재 아크는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 <<전설의 증인>>, <<샹그리아로>>, 이 3개의 퀘스트를 모두 완료하기 위해 아란의 발목을 잡는 게 필수였다. 그러나 아란의 몬스터 부대와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었다. 때문에 아크가 생각해 낸 것이 '아란을 가둔다'는 방법이었다. '네놈의 계략 따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아크는 처음부터 아란이 숨어서 자신을 유인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날 완전히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는 먼저 숨을 수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었겠지. 내가 노린 건 그거였다, 멍청아.' 그렇다. 아란이 아크를 완벽하게 잡기 위해 준 시간. 아크가 함정인 줄 알면서도 그 시간을 이용해 밖으로 나온 이유는, 정확히 말하자면 MG를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마기 왜곡'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저주템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란을 이곳으로 유인. 저주템을 이용해 위치를 바꾸고 지하 기지에 처넣는 게 아크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보다시피 계획은 대성공! "워머, 내부의 개폐 장치는 확실하게 부숴 놨지?" "뭐, 일단은." 워머가 아쉬운 표정으로 지하 기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당연히 아크는 사전에 미리 지하 기지 내부에서 입구를 열 수 있는 장치를 모두 부숴 놨다. 그리고 워머가 들고 있는 리모컨으로만 입구를 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후후후, 지하 기지의 입구는 꽤나 단단하다고, 500의 몬스터가 있어도 공성 병기가 없는 이상 적어도 1시간 동안은 나오지 못할걸. 그 정도 시간이면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협곡을 탈출해 볼일을 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야.' "자, 서둘러라! 협곡을 탈출한다!" 아크가 몸을 돌리며 라카드에게 명령했다. "라카드, 이 협곡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최단 코스를 검색해라!" "검색 중…… 검색중…… 완료. 그곳에서 5시 방향으로 돌아 우측 길을 따라 쭉 가면 협곡을 탈출할 수 있어. 하지만 600마리 정도 되는 몬스터가 중간 부분을 막고 있어." "좋아. 그곳으로 이동한다!" 아크는 지체 없이 라카드가 설명해 주는 대로 협곡을 가로 질렀다. 그렇게 잠시, 대략 10분 정도 이동하자 눈앞에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갖가지 형태의 레벨 350대의 몬스터 600여 마리! 200명에 달하지만 실제 전투원은 불과 130명밖에 되지 않는 특공대의 전력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힘든 적이었다. 그러나……. "'마기 왜곡' ! 목표는 눈앞의 몬스터 군단!" 콰콰콰쾅, 휘뤼뤼뤼뤼! 아크는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마기 왜곡'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이번에도 40여 개의 저주템이 폭발하며 특공대와 몬스터 들의 위치를 바꿔 놓았다. 갑자기 회오리에 말려 위치가 바뀌자 몬스터들이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한 번 '마기 왜곡'을 경험해 본 특공대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그렇게 일정 거리를 벌려 놓자 몬스터들은 금세 복잡한 협곡에서 특공대의 위치를 놓쳐 버렸다. 아란이 직접 아크의 위치를 파악하고 명령을 내리지 않으니 마족들도 그냥 평범한 몬스터와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거의 협곡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샴바라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가만? 이렇게 협곡을 나가 버리면 필요한 MG를 모을 수 가 없잖아?" "……너 바보냐?" 아크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야, 애초에 우리가 왜 이곳에 오게 된 거냐?" "왜 오다니? 그야……." 샴바라가 대답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파비온 협곡 외곽을 거의 벗어날 무렵, 긴 협곡 사이로 엄청난 숫자의 검은 오벨리스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 그 검은 오벨리스크들이야말로 아크와 특공대가 이런 곳에서 헤매게 된 원인. 바로 1킬로미터 떨어진 파비온 요새에 병력을 제공하는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었던 것이다. "협곡이 아니라도 MG 따위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고." 아크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 빼곡히 서 있는 오벨리스크의 숫자는 무려 50여 개! 그것도 크기가 10미터가 넘는 오벨리스크들이었다. '성광 폭뢰'로 그곳을 날려 버리면 MG따위는 5,000이든 10,000이든 마음대로 충전시킬 수 있으리라. '역시 조사한 대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에는 몬스터가 없다!' 이곳의 모든 몬스터들은 파비온 요새로 이동해 있는 것이다. 파비온 요새만 완벽하게 봉쇄하면 이곳을 공격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였으리라. 게다가 파비온 협곽 외곽 지역에 있는 몬스터들은 아란이 사라져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아크와 특공대의 앞을 가로막는 적은 하나도 남지 않은 것이다. '이대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하고 MG를 모아 샹그리아로 가서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함락할 때까지 기다리면 만사 오케이다!' "자, 협곡을 나가는 즉시 오벨리스크에 성광 폭뢰를 설치한다!" 아크가 협곡을 빠져나가며 소리쳤을 때였다. 크롸롸롸롸롸롸! 돌연 그늘이 진다 싶더니, 고막을 뒤흔드는 괴성과 함께 하늘에서 거대한 뭔가가 뚝 떨어져 협곡 출구를 막아 버렸다. 협곡 입구를 몸 하나로 막아서고 괴성을 질러 대는 존재는……. "저, 저게 뭐야?" "드, 드래곤? 뼈만 남은 드래곤이잖아?" 걸음을 멈춘 특수대원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거대한 몸으로 출구를 막아선 것은 놀랍게도 뼈만 남은 본드래곤이었다. 아크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몬스터의 출현에 잠시 공황상태에 빠져 있을 때였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군." 길게 늘어진 본 드래곤의 목 부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아크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더니…… 이번에는 네놈이냐, 안델?" 그렇다. 본 드래곤의 목에 올라탄 사내는 아란과 함께 뉴월드에서 사라졌던 안델이었다. 사실 아크 역시 아란을 다시 봤을때, 아란의 붕어 똥 같은 안델 녀석이 어째서 안 보이는지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 말이다. "망둥이? 어디 내가 망둥이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시지." 안델이 같잖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예 보스 몬스터, 본 드래곤 '크로마틴'이 나타났습니다! Act8 데스 로드 '혹시.....?' 안델을 확인한 아크는 황급히 주위들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변에 본 드래곤을 제외한 다른 몬스터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한도의 한숩을 불어 냈다. '안델이 아란터럼 이 주변의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끝장이다.' 이게 아크가 안델을 보고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없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모든 문제를 제쳐 두고 아란을 지하기지에 가둔이유는 바로 놈이 이 일대의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몬스터에세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다른 유저가 나타나면 지금까지의 고생이 말짱황이 퇘버린는 것이다. '상황을 보면 안델도 이번 사건의 배후 세력에 가탐한 모양이지만, 다행히 아란 같은 권한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스런 권한을 누구나 가지고있다면 명령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겠지. 그렇다면 안델이 통제할 수 있는 몬스터는 저 본드래곤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아란이 지하 기지에 갇힌 이후에 급하게 연락을 해서 불러들인 것이리라. 그렇다고 해도 그리 좋게만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면 '마기 왜곡'도 사용할 수가 없잖아.' 아크가 '마기 왜곡'으로 협곡의 몬스터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아란이 없어서였다. 만약 아란이 아크의 움직임을 알고,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없다면 아무리 '마기 왜곡'을 사용해도 몬스터들을 따돌릴 수는 없었으리라. 그런데 기껏 아란 녀석을 지하 기지에 가둬 뒀더니 안젤 녀석이 몬스터와함께 나다났다. '아직 만들어 둔 저주템이 좀 남았으니 '마기 왜곡'으로 본 드래곤과 위칠를 바꾸는 건 문제가 아니야.하지만 안델이 본 드래곤을 움직잏 수 있는 한 따돌릴 수는 없다. 아니. 여기서는 우리의 목적지인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니 안델녀석이 없다 해도 본드래곤을 따돌릴수 는 없어.' 결국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하려면 본 드래곤과 안델의 해치우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안델과 함케 나타난 본 드래곤은 레벨500의 정예보스몬스터! '백호족을 포함해도 130명밖에 되지 않는 병역으로 쉅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앞으로 35분 정도의 시간빡에 없다.' 아란을 가뒀지만 무제한 가둬 둘 수 있는 게 아니다. 워머가 1시간은 충분히 가뒤 둘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1시간을 잡고, 이미 협곡을 빠져나오면 15분을 소모했다. 그리고'성광 폭뢰'의 가동 시간인 10분을 제회하면 앞으로 35분 안에 크로마틴과 안델을 처리하지 않으면 아란에게 뒤를 잡힐 가능서이 있다는 뜻이다. 아마 아란도 그럴 작정으로 안델을 불러들였으리라. '젠장, 고작 130명으로 레벨500짜리 정예 보스를 35분안에 잡아야 한다는건가?' 정말이지 뭐하나 쉅게 풀리는 법이 없다. 그러나 어차피 고민한다고 좋아질 사황이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ㄴ해 보는 수밖에! 주민들은 방해되지 안게 뒤로 물러나 전투 범위를 벗어나라. 나머지는 전원.....!' 아크가 검을 들어 올리면 돌진 명령을 내릴려 할 때였다. 안델이 고웃음을 치며 크로마틴의 목뼈를 탁탁 두드리며 소리쳤다. "하찮은 놈들, 크로마틴!" 우두둑, 우두둑, 우두두둑! 크로마틴의 몸의 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자크가 스켈레톤에서 본 블레이드로 변신하듯, 수천 개의 뼈다귀가 분해와 조립을 반복하더니 무슨 전갈 같은 형태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전갈의 꼬리처럼 뒤로 솟아 나온 뼈다귀들이었다. 끕이 날카로운 갈로리로 되어 있는 뼈 줄기가 수백 개로 분열되며 부채처럼 펼쳐진 것이다. "뭐, 뭐야? 저 엄청난 수자의 뼈 줄기는?" "후후후, 내 애완 몬스터 크로마틴의 공격을 받아 봐라!" "헉,모, 모두 방어 태세!"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리며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크로마틴의 꼬리에 분열된 수백 개의 뼈 줄기가 특공대를 향해 일제히 폭사되었다. 슈슈슉, 슈슈슉, 슈슈슈슉! 콰콰콰콰쾅! 아치 융단폭격을 맞은 듯 일대의 눈이 폭발하며 솟아 올랐다. 그리고 잠시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가라않았을 때, 아크는 경악했다. 뼈 줄기의 유단폭격이 가해진 곳의 특공대원들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뼈 줄기의 공격에는 방패도 소용없었던 모양이다. 전사들은 수십 미터나 날아가 눈밭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고,방쳬조차 없었던 마법사나 궁수 들은 엄청난 제미지를 잆업고 피를 뚝뚝 흘려 댔다. 아크나 삼바라,레이어트 역시 단숨에 생명력이 15%나 날아갈 정도 였다. 크로마틴의 무지막지한 전체 공격이었다. "크윽!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공역이......" "크하하하, 10년 묵은 테증이 확 풀리느구나!" 아크가 휘청거리자 크로마틴의 목뼈에 올라탄 안델이 오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어디 또 한 번 잘난 척해 보시지." "저 망할 자식....!" "훗, 그래야지. 그렇게 팔팔해야 괴롭히는 맛도 있으니까." 크롸롸롸롸롸라! 크로마틴이 본격적으로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수백 개의 뼈 줄기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꺾어여 특공대원들을 공격했다. 앞에서 날아오는 뼈 줄기를 막았다 싶으면 옆에서 날아왔고, 옆에서 날아오는 뼈 줄기를 피했다 싶으면, 뒤에서 날아들었다. 자유자재로 길어지고, 살아 있는 뱀처럼 움직이는 수백 개의 빼 줄기! "크하하하, 어떠냐? 크로마틴의 위력이?" '젠장, 특공대가 접근 조차 못 하다니....!'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안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특공대만이 아니었다. 좁은 협곡 안이라 날랜 백호족도 크로마틴을 공격하기는 커녕 술틈 없이 날아드는 뼈 줄기를 막거나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아크는 몸을 돌려 날아오는 뼈 줄기를 흘려 내며 샴바라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샴바라 역시 같은 생각인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공대원들은 뼈 줄기를 피하느라고 숨 쉴 여유도 없는 상황이다. 뭔가 역습을 가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뼈 줄기의 기세를 주춤하게 만들 걔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크와 호흡을 맞춰 크로마틴을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샴바라뿐이없다. "먼저 가지. 순,개,열,섬!" 샴바라가 순보 십자화결을 펼치자 일순 몸이 수십개로 분열되는 것처럼 보였다. 삼뱌라를 향해 날아가전 뼈줄기가 모두 허공을 가로질렀다. "월섬" 잔상을 만즐여 접근한 샴바라가 비기를 발동시켰다. 달빛이라도 갈라 버릴 듯이 여리한 이격! 격렬한 폭응이 울리며 크로마틴이 휘청거렸다. 그러자 특공대를 융단 폭격 하던 뼈줄기의 움직임도 흐트러졌다. '좋아.효과가 있다!' '다크 댄싱!' 뒤이어 아크가 '다크 댄싱'을 펼치며 출격했다. 아크가 접근하자 10개의 벼 줄기가 사방에서 날아들였다. 그라나 아크가 '다크 댄싱'의 완성도를80%이상 유지하자 뼈 줄기가 아슬아슬하게 옆을 스쳐 지나갔다. "좋아. 따끔한 맛을 보여 주지! 라둔, 마기가 봉인된 검!"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입을 쩍 벌리며 시커멓게 물든검을 탁 뱉어 냈다. "블레이드 템퍼...." 아크가 크로마틴의 턱 아래까지 돌진하며 '블레이드 템페스트'를 발동시티려 할 때였다. 크로마틴의 목뼈에 않아서 상황을 지겨보던 안델이 코웃음을 치며 소리혔다. "크크크크, 용을 쓰는군. 크로마틴, 지뢰진이다!" 크롸롸롸롸롸, 콰콰콰쾅! 순간 크로마틴이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앞발로 바작을 내려첬다. 동시에 바닥을 타고 검은 빛의 스파크가 협곡 전체로 좌악 퍼텨 나갔다. 발에 검은 스파크가 닿자 저릿저릿한 감각과 함께 몸이 나무토막처럼 궅어 버렸다. "헉, 뭐, 뭐야?" -''지뢰진에 당했습니다. <3초간 '마비'상태에 빠졌습니다.> 크로마틴의 턱 밑에서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 기회를 잡은 크로마틴은 곧바로 뼈 줄기를 목사했고, 아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10여 개의 뼈 줄기에 맞고 말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막은 공격이라 10여 개 가운데 서너 개의 공격이 치명타가 터졌다. 덕분에 아크는 잔숨에 생명력이 30%나 날아가고 덤으로 '출혈'까지 발생해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슈슈슈슉,슈슈슈슉! 협곡 전체로 펴져나간 '지뢰진'에 특공대원이나 백호족도 '마비'상태에 빠진 채 뼈 줄기의 융단폭격을 받아야 했다. 아크처럼 집중 공격을 받지는 않았디만 전체 병력이 적지 않은 테미지를 입고 말았다. '이건 말도 안돼!' 아크가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눈앞에서 있는 거대한 크로마틴을 올려다보았다. 수백 개의 뼈 줄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공격하는 능력, 그것 하나만으로 아크와 특공대원은 제대로 공격조차 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상화이다. 그런데 기기에 '지뢰진'처럼 수백 명을 단숨에 '마비'로 빠뜨리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아무리 정얘보스몬스터라도 좀 심하지 않은가? ''지뢰진'은 그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워협이 되지 않아.' 크로마틴이 '지뢰진'과 수백 개의 뼈 줄기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아크는 이미'지로진'을 피항 방법을 알고 있었다. '지뢰진'은 문자 그래로 대지에서 충격파를 일으키는 기술. 그렇다면 '지뢰진'이 발동하며 스파크가 퍼져 나올 깨 타이밍을 맞춰 점프만 하면 간단하게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하는 '다크 댄싱''이나 샴바라의 '순보'나 스킬을 발동시키려면 발이 땅에 불어 있어야 한다는 접이야. '지뢰진'을 피하기 위해 점프를 뛰면스킬이 캔슬된다. 그러면 뼈 줄기의 공격을 피할 수 없어.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해야.....' "멍청아, 어디다가 정신을 팔고 있는거야?" 그때 바로 옆에서 샴바라의 고함이 들렸왔다. "뭐?" "주인! 위야, 위!" 뒤이어 들려오는 리카드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던 아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해 버렸다. 아크의 머리위, 수십 새의 뼈 줄기가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채 떨어져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아크가 기겁하며 '다크 댄싱'을 펼치려 할 대였다. "지뢰진" 안델의 명령에 크로마틴이 또다시 앞발로 바닥을 후려쳤다. 정신없이 '다크 댄싱'을 발동시키려던 아크는 반사적으로 점프로 뛰어 '지뢰진'을 피했다. 그러나 이때 아크는 한 사지 실수를 했다. 경황이 없어 급한 대로 제자리 점프로 뛰어 '지뢰진'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머리 위에서는 수십 줄기의 뼈 줄기가 쏟아지는 상황. 이대로라면 바닥에 착지하기가 무섭게 아크는 고슴도치가 되어 버리리라! "순결한 방패!" 뒤에서 페리어트가 재빨리 방어 마법을 발동시켰지만 소용없었다. 허공에 나타난 순백의 방패는 뼈 줄기가 한 번들이받자 일격에 부서져 나갔다. '맙소사, 지금 상황에서 저렇게 많은 뼈 줄기에게 적중당하면....!' 이미 생명력이50% 가까이 빠져 있는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 줄기의 뼈 줄기에 적중되면 최악의 겨우 즉사! 뼈줄기의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안델이 창백해진 아크를 바라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뒈져라, 아크!" 저 망할 자식이....! 젠장. 이 몸께서 이대로 얌전히 죽을 것 같으냐! 생쥐도 죽을 때 찍 소리는 내는 법. 아크가 이를 갈아붚이며 손에 즐고 있전 저주받은 검을 휘둘렀다. 이런 상황에서 아크가 할 수 있는 공격은 하나밖에 없었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잠시 멈췄던 스킬을 다시 발동시키는 방법뿐! 순간 폭음과 함께 저주받은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검 파편의 폭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솔직히 아크조차 이번 공격으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냥 죽을 때 죽더라도 재수 없는 안델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 주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그런 아크의 발버둥은 뜻자리 않았던 상황을 만들었다. 촤촤촤촤, 촤촤촤촤! 검의 파편이 날아가자 갑자기 아크에게 쏟아지전 뼈 줄기가 훅하고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게 아니었다. 엄청난 속도로 회수죄어 마치 꽃봉오리처럼 안델을 휘감아 버린 것이다. 덕분에 '블레이드 템페스트'의 공격 범위 안에 있었던 안델은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 역시 어뚱하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아크에게 잔순히 목숨을 건진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뭐지? 방금 크로마틴의 그 반응은?' 아크는 일단 뒤로 물러난 뒤에 황당한 눈으로 크로마틴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는 안델이 명령하고 말고 할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크로마틴의 반응 역시 반사적이 아니면 불가능한 움직임을 보였다. '블레이드 템페스트'응 몸으로 막았으니 안델을 지키는게 잔신의 몸보자 우선이라는뜻! 그렇군, 지금까지 공격할 대상의 잘 못 생각하고 있었던거야! 아크는 눈앞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아크는 탁각하고 있었다. 보통 몬스터의 경우 공방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할 수 있었다.그러나 유저헤게는 그런 패던을 찾기가 힘들다. 웟보다 유저가 몬스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공격하는 '예측 공격'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방금 전까지 크로마틴은 '예측 공격'으로 아크와 샴바라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크는 크로마틴과 싸우는 것보다 안델+크로마틴이 볓 배는 더 어려운 상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로마틴이 무조건적으로 안델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애기는 달라진다. 안델은 크로마틴의 능력을 올려 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야점에 불과해지는 거야! 그렇다. 그사정을 알게 된이상 이제 공격 목표는 크로마틴이 아닌 안델이었다. 안델을 잘만 이용하면 크로마틴의 공격을 봉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안델을 공략하느냐..... 아크는 뼈 줄기를 피하며 잠시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았다. 그렇게 잠시, 아크는 가늘게 뜬 눈매로 안델을 바라보며 입술을 추어올렸다. 좋아, 그 방법이라면 한번 해 볼 만하다! -샴바라,뭐든 좋으니 크로마틴의 주의를 끌어 줘. 작전을 세운 아크는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샴바라에게 말했다. -뭔가 공략방법을 찾은 거냐? -꽤나 즐거운 방법을 찾았디 -흠, 너의 잔꾀를 믿어 보지. 월섬, 폭우검, 살! 샴바라가 크로마틴의 옆구리로 돌진하며 맹공을 펼쳤다. 그러자 크로마틴의 괴성을 터뜨리며 뼈 줄기를 폭포수처럼 날려 댔다. 그렇게 근처의 뼈 줄기가 몽땅 샴바라에게 집중되어 있는 사이. 마령 소환, 라자크, 검화! 공간을 열고 나타난 라자크가 곧바로 분해, 조립 광정을 거쳐 본 블레이드로 변했다.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잡고 그대로 안델을 향해 집어 던졌다. 됐어, 라자크, 검화해제! '방패치기'다! 딱딱딱, 딱딱딱딱! 아크의 명령에 공중에서 다시 스켈레톤으로 돌아간 라자크가 이빨을 마주치며 방패를 들었다. 이게 아크의 계획이었다. 걈바라가 크로마틴과 안델에게 날린 뒤에 다시 라자크로 변신시켜 '방패치기'로 공격해 안델을 크로마틴의 몸에서 떨어뜨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 훗 얄팍한 수작! 라자크가 허공을 날아 막 방패를 치켜들었을 찰나! 돌연 안델리 고개를 홱 돌리며 야멸친 웃음을 지엇다. 동시에 안델이 앉아 있는 목뼈 아랫부분에서 3개의 뼈 줄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라자크가 황급히 방패로 막았지만 육중한 울림이 터지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크따위 속임수는 이 몸에게 통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아크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때......! 우오오오, 백어택 스파이크! '암흑 돌진'! 갑자기 하늘에서 라카드가 뚝 떨어지듯 나타나 온몸으로 라자크의 등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라자크는 정말 스파이크로 날린 배구공처럼 빠르게 안델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안델이 채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방패를 휘둘러 놈의 면상을 후려쳤다. 딱딱딱딱, 땡강!쿠왁! 뭐, 뭐...... 크, 크로마틴.......! 방패에 얻어맞은 안델은 목뼈에서 떨어져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자 샴바라를 공격하던 크로마틴이 움찔하며 아크에게 뼈줄기를 날려왔다. 본능적으로 안델을 지키려면 먼저 아크를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아크에게 날아오는 뼈 줄기는 무려 30여 개! 그러나 아크는 뼈 줄기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놓치지 않는다! 소환해제, 라카즈! 재소환, 라자크! 검화! 날아라, 본 블레이드! 아크의 입이 마치 고속 영창으로 주문을 외우듯 빠르게 움직였다. 크로마틴의 목뼈에 올라타고 있던 라자크가 혹 하고 사라지더니 본 블레이드로 변해 아크의 손에 쥐어졌다. 아크는 곧바로 본 블레이드를 채찍으로 전환시켜 안델의 다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자시 검으로 전환하자 안델이 눈밭에 주르륵 미끄러지며 끌려왔다. 아크가 끌려운 안델의 멱살을 잡았을 때였다. 동시에 날아오던 모든 뼈 줄기가 허공에서 우쭉 멈춰 섰다. 아크는 불과 1 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떠 있는 뼈 줄기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군. 너, 너, 이 자식.......! 넌 닥쳐! 퍼퍽, 퍼퍼퍽! 주먹세례를 받은 안델이 코피를 질질 흘리며 축 늘어졌다. 안델 역시 아란처럼 '고양이 눈'으로 이름이나 능력치를 알아낼 수 없지만, 한번 패 보니 과거 아크에게 박살나고 잠적했을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능력치를 올려서 나타난 아란과 달리 안델은 예전 그래도 레벨 150 전후라는 말이다. 레벨 432,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으면 648레벨인 아크에게 안델은 어린애나 다름없었다. '그 때문에 크로마틴에게 자신의 보호를 최우선시 하도록 설정해 놓은 거겠지.' 대체 어떤 종류의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했는지 아란처럼 안델로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모양이다. 비록 한 마리지만 레벨 500대 정예 보스 몬스터를 말이다. 그러나 안델은 이 부분에서 결졍적인 실수를 했다. 바로 크로마틴이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도록 만들어 놓은 부분이다. 꽤나 말을 잘 듣는 뼈다귀구먼. 아크에게 날아오던 뼈 줄기가 멈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아크를 공격하는 게 안델을 공격하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 되어 본능적으로 멈춘 것이다. 크롸롸롸롸롸롸! 그때 크로마틴이 포효를 터뜨리며 사방으로 뼈 줄기를 뿜어냈다.덕분에 특수대원들이 비명을 터뜨리며 바닥을 굴러 댔다. 후후후, 주인을 돌려 달라고 난동을 부리는 건가? 좋아,그렇다면 돌려주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본 블레이드를 다시 채찍으로 변환시켰다. 그리고 양손으로 손잡이를 움켜 쥔 자세로 몸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본 블레이드에 다리가 묶인 안델이 눕밭에 질질 끌리다가 이내 원심력에 의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레슬링의 자이언트 스윙을 보는 듯한 광격이었다. 자, 어디 공격할 테면 공격해 봐라! 아크는 팽이처럼 안델을 회전시키며 특수대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뼈 줄기 하나가 안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쉴 틈 없이 융단폭격을 퍼붓던 크로마틴이 움찔하며 황급히 뼈 줄기를 거둬들엿다. 쿠쿠쿠쿠, 이제 네놈의 공격은 몽땅 봉쇄됐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자 크로마틴이 앞발로 세차게 바닥을 후려쳤다. 마비 상태를 일으키는 '지뢰진'! 그러나 '지뢰진' 역시 뼈 줄기와 함께 사용하지 않으면 별 위력이 없었다. 아크는 회전하는 자세 그대로 점프를 뛰어 '지뢰진'을 피해 냈다. 그리고 본 블레이드를 어깨에 짊어진 채 그대로 업어치기를 하듯 안델을 바닥에 팽개쳤다. 히익, 그, 그만둬. 키아아아아아! 겨우 정신을 차리던 안델이 바닥에 거꾸로 박혀 이번에는 '마비'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크는 다시 안델을 자이언트 스윙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자, 이제 크로마틴의 공격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오직 공격에만 집중한다! 방금 전까지는 수백 개의 뼈줄기 때문에 공격은 커녕 도망다니기도 힘들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아크가 채찍에 안델을 휘감아 돌리자 직경 20미터의 거대한 방패가 되었다, 아크가 그 거대한 방패를 들고 돌아다니자 수백개의 뼈 줄기가 완벽하게 봉쇄된 것이다. 뼈 줄기를 날리지 못하는 크로마틴은 그저 뼈다귀 더미에 불과했다, 우와아아아아! 파쇄격! 연환격! 영웅의 일격! 천둥이여, 벼락이여, 적을 멸하라! 선더 브레이크! 뼈를 부수는 화살! 특공대원들이 각종 필살기를 난사하며 크로마틴에게 몰려들었다. 검과 철퇴, 화살과 각종 마법의 빛이 난무하자 크로마틴의 생명력이 뚝뚝 떨어졌다. 90%, 80%, 70%..... 생명력이 둑뚝 떨어지는데도 크로마틴은 제대로 대항조차 못 했다. '하지만 이대로 크로마틴을 쓰러뜨릴 수는 없어.' 아크는 그사이에 너덜너덜해진 안델을 바라보았다. 안델리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이유는, 크로마틴의 반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아크가 일부러 뼈 줄기 쪽으로 안델을 날려 대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반격을 준비하던 크로마틴은 황급히 뼈 줄기를 회수했지만, 간혹 스쳐서 안델이 데미지를 입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크윽, 이....... 이 자식.....고...고만둬.......! 그때 안델리 욕설을 퍼부으며 다리에 감긴 본 블레이드를 잡아당겼다. 시끄러! 아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며 다시 업어치기를 하듯 본 블레이드를 수직으로 올렸다가 바닥에 팽개쳤다. 그러자 안델의 머리 위에 별 무리가 떠오르며 다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팜금 갑옷릏 입은 전사가 낙하 데미지를 입어 '스턴'에 걸린 것이다. 그렇다. 안델이 너덜너덜해진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본 블레이드로 단단하게 옭아맸다고 하지만 안델은 유저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본 블레이드를 풀어낼 수도 있으리라,때문에 아크는 안델이 정신을 차릴 때마다 개구리처럼 바닥에 팽개쳐서 '스턴' 상태에 빠뜨렸던 것이다. 물론 그 역시 안델이 레벨 150수준밖에 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너........너....... 이.........자식..........! 어쨌든 그렇게 수차례, 결국 안델은 갑옷이 휴지 조각처럼 구겨졌고, 울긋불긋하게 염색 된 얼굴에 이빨은 오래전에 뭉텅 빠져 발음이 픽픽 새 나왔다. '뭐, 안델 놈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니 통쾌하기는 하지만........' '고양이의 눈'으로도 안델의 생명력을 확인할 수 없어 정확히는 앐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상태를 생각하면 이제 빈사 상태에 빠져 있으리라. 그리고 만약 안델이 사망하면 크로마틴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려면 어쩔수 없이 바닥에 패대기를 쳐 줘야 한다. '미안하지만 아파도 크로마틴을 쓰러뜨릴 때까지는 살아 있어 줘야겠어' 성직자들은 타킷을 잡아 회복 마법을 시전하라! 위대한 신의 능력이여, 그레이트 힐! 성직자들이 안델에게 폭포수처럼 회족 마법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안델은 옴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단숨에 회복되었다. 앞으로 더 많이 더 화끈하게 패대기쳐질 수 있게된 것이다. 자, 계속 공격하라! 아크는 계속해서 안델을 휘둘러 대며 소리쳤다. 그렇게 잠시, 저항조차 못 하고 공격을 받은 크로마틴의 생명력이 20%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밀가루 반죽처럼 뭉개진 안델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아크가 다시 패대기를 치려는 찰나, 품속에서 작은 구슬같은 것을 꺼대 들고 부수며 소리쳤다. 제,제기.....이러케...........끄나 수는 엄서.......이러 바에는 차라리........여흥 소바 해제(제,제길 이렇게 끝날 수는 없어. 이럴 바에는 차라리 영혼 속박 해제!) 구슬이 깨지자 크로마틴이 돌연 휘정거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검은 안광이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니애 포효를 터뜨리며 뼈 줄기를 날려 왔다. 저 자식이? 아크가 황금히 뼈 줄기를 행해 안ㄴ델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뭔가가 달랐다. 안델이 날아오는데도 크로마틴은 뼈 줄기를 회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뼈 줄기를 날려 안델의 몸을 꿰뚫었다. -레벨이 150의 카오틱 플레이어를 쓰러뜨리셨습니다. 명성+3 레벨150의 안델은 일격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뭐야? 크로마틴이 안델을 공격하다니............ 그럼 방금 전에 안델 녀석이 부순 구슬이 크로마틴을 조종하고 있던 아이템이었던 건가? 전젱, 그 아이템이 글로벌엑서스에서 말했던 코드 블랙 아이템의 하나일지도 모르는데.....' 이전 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코드 블랙 아이템. 안델이 가지고 있던 게 정말 코드 블랙아이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만약 맞으면 글로벌렉서스에서 걸어 놓은 10억의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아란도 몬스터들을 조종하니 그런 아이템이 여러 개 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10억을 받을 수 있는 진짜코드 블랙 아이템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잇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미 깨져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그보다 지금 당장 문제는,...........' 크롸롸롸롸롸롸! 영혼 속박에서 벗어난 크로마틴의 처리였다. 아델 방패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건 좀 그렇지만, 어째든 이미 크로마틴의 생명력은 20%밖에 없다. 게다가 크로마틴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아크가 크로마틴의 움직임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크로마틴의 움직임은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안델이 살아 있을 때는 나름 두뇌 플레이를 흉내 내는 뼈 줄기를 선보였지만, 안델이 죽자 미친 것처럼 마구잡이로 뼈 줄기를 발려 대고 있었다. 영혼 속박이 풀린 충격 때문에 살짝 맛이 간 건지, 아니면 조종받지 않을때는 원래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 2차전직을 마친 대원들은 크로마틴을 둘러싸라! 아크의 명령에 샴바라와 5명의 대원이 뛰어나와 크로마틴을 포위했다, 그리고 일제히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 영역 선포, 혈하! 영역 선포, 신성한 전사의 뜰! 영역 선포, 마법 구상 공간! 크로마틴의 주위에서 갖가지 영역 선포가 발동되었다. 샴바라의 주위 대지는 갓 킬러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50%나 올려 주는 피의 강으로 변했고, 전사들이 발동시킨 영역선포 공간에는 근육질의 천사가 나타나 뿔 나팔을 불어 각종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영역 선포 공간에서는 주변의 마나가 집중되어 자신의 레벨보다 두 단계나 농은 고위 마법을 난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영역 선포의 결정판은 따로 있었다. 영역 선포, 신격 스킬 화룡강림! 콰콰콰콰쾅! 화르르르륵! 아크는 본 블레이드를 바닥에 꽂아 넣고 약속의 검으로 바꾼 뒤레 크로마틴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뼈 줄기를 ㅍ피해 크로마틴의 아랫배 부분빠지 슬라이딩하며 들어가서 스킬을 발동시키자 바닥이 갈라지며 어둠의 정령 다크가 둥실 떠올랐다. 동시에 주변이 아득해질 정도의 어둠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일순 어둠을 가르며 한 줄기 화염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솟구쳐 올랐다. 불길리 일렁이는 비늘을 가진 전설의 화룡!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전 화룡이 아크의 정수리를 향해 벼락처럼 쩔어져 내렸다. 순가 아크가 화염의 비늘에 휩싸였다. 숨을 불어 내자 불길이 10여 센티미터나 뿜어져 나왔다. -신격 스킬[화룡강림]이 발동됏습니다! -10분간《불멸의 화룡》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발동 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 됩니다. +스킬 발동 시 공격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50% 증가합니다. +스킬 발동 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적에게 10!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 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 500%,파티원의 화염 저항력을 100% 상승합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는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댜 생명력의50%가 회복됩니다. "놈은 빈사 상태다. 모두 총공격을 펼쳐라!" 아크가 화염을 뿜어내며 소리치자 모든 특공대원들이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로마틴은 괴성을 질러 대며 '지뢰진'과 뼈 줄기를 난사하며 대항했다. 그러나 그런 공격은 크로마틴을 둘러싸고 영역 선포를 발동시킨 대원들이50% 이상 차단했다. "받아랏! 다크 블레이드!" 쾅,쾅,쾅,쾅,콰! 화룡을 취감은 아크가 크로마틴의 몸을 관총하며 공격을 퍼부어 댔다. 그러나 역시 속박에서 벗어난 크로마틴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공격을 받으면서도 반격을 가해 적지 않은 특수대원이 쓰러졋다. 덕분에 특수대원들의 공격이 주춤해 불과20%의 생명력에 남지 않은 크로마틴을 영역 선포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쓰러뜨릴 수 없었다. "젠장! 안델 녀석이 괜한 직을 해서..... 어쨌든 놈은 공격을 막아 주고 있는 대원들의 영역 선포가 끝나기 전에 이놈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라둔, 가장 좋은 마법검! 블레이드 템페스트!" 아크가 라둔이 뱉어 낸 검을 잡고 폭발시켰다. 그러자 '화룡강림'의 효과가 적용된'블레이드 템페스트'가 화염의 폭풍처럼 변해 크로마틴을 후려쳤다. 순간 크로마틴의 뼈다귀들이 쩍쩍 갈라지며 생명력이 쫘악 빠져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크로마틴의 생명력이 3% 이하로 쩔어져 마기를 추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됐다!'마기 봉인'!" 아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손을 뻗어 '마기 봉인'을 발동시켰다. 콰지지지지직~! 아크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빛줄기가 크로마틴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러자 마치 영혼이 흘러나오듯 검은 형체가 빛에 휘감겨 밖으로 끌려 나왔다. "좋아. 라둔, 장비품!"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입을 쩍 벌리자 갑옷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아크는 곧바로 갑옷에 크로마틴의 영혼을 쑤셔 박았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려는 찰나, 갑자기 갑옷이 산산이 부서지며 서커먼 영혼이 밖으로 튀어ㅓ나왔다. 그리고 너울너울 거리며 다시 크로마틴의 육체로 돌아갈려는 게 아닌가? "뭐, 뭐야? 마, 마기 봉인!" 아크는 황급히 '마기 봉인'을 발동시켜 크로마틴의 영혼을 포획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젠장....!' 아크가 잊고 있던 부분은 '마기 봉인'의 성공확률이었다. '마기 봉인'을 80~90%확률로 성공시키려면 대상 몬스터와 장비품의 착용 제한 레벨이 같아야한다. 다시 말해 크로마틴이 레벨 500이니 착용 제한 레벨500의 장비품을 사용해야 제대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아크가 가지고 있는 장비품들은 대략 레벨300~400대였다. 성공 확률이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내가 가진 장비품 중에 가장 레벨이 높은건'지옥의 견갑'인데....' 마그라를 쓰러뜨리고 얻은 '지옥의 견갑'! 착용 제한이 450이라 아크도 아직 착용하지 못하고 있는 장비품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크로마틴과 레벨이 50이나 차이 나서 성공 확률이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지옥의 견갑'은 유니크 아이템. 유니크 아이템에 마족의 영혼을 봉인해 수리불가 아이템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나마 봉인이라도 성공하면 몰라도 만약 실패하면.....' 결과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러다고 이제 와서 다시 영혼을 본체로 돌려보낸 뒤에 잡을 수도 없어.' 한번 '마기 봉인'으로 끌어낸던 영혼이 본체로 돌아가면 몬스터는 생명력30~50%이상 회복되어 부활한다. 안델을 이용해 20%대까지 생명력을 떨어뜨려 놓고 각종 영역 선포를 사용해 공격하고도 쉽지 않았던 상대다. 이제 영역 선포도 다 써먹은 상황에서30~50%의 생명력을 회복하며 부활하면 제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전투를 시작한 지30분이나 지났다. 만약 크로마틴과 싸우는 돈중에 아란이 지하 기지에서 나와 이곳에 들어닥치기라도 하면 끝장이야!' 아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때였다. -'마기 봉인'의 스킬 유효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크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젠장, 어쨌든 이대로 놈을 돌려보낼 수는 없어. 성공률이 1%도 안되다고 해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는 수 밖에...' "라둔, 일단 착용 제한 400의 장비품을 모두 뱉어 봐!" 아크의 명령에 라둔이 입을 쩍 벌리며 각종 장비품을 우르르 뱉어 냈다. 아크는 그 장비품에 다치는 대로 크로마틴의 영혼을 쑤셔 넣었다. 그러나.... 펑, 펑, 펑, 펑! 착용 제한 250~350 수준의 잠비품은 크로마틴의 영혼이 닻기가 무섭게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그때마다 아크는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그러나 이대로 영혼을 놔주면 결과는 모든 작적의 실패! 선택의 여지가 없는 아크는 아예 눈을 질끈 감고 크로마틴의 영혼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며 작치는 대로 쑤셔 박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개속 반발하며 튕겨져 나오던 크로마틴의 영혼이 어딘가로 쑥 발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기 봉인'을 펼치던 아크가 번쩍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렸다. 대체 크로마틴의 영혼을 삼긴 기특한 장비품이 어떤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장비품을 확인하는 순간 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헉! 뭐,뭐야? 섬마 놈의 영혼이 저기에.....?" 지가 막히게도 크로마틴의 영혼이 들어가 버린 것은 본 블레이드였다. 안델이 죽은 뒤에 급한 대로 근처에 꽂아 두었던 본블래이드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마, 만약 본 블레이드가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본 블레이드와 한몸인 라자크는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마기가 봉인이 돼도 걱정이다. 원래 마기가 봉인된 장비품은 능력치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대신 내구력이 극도로 저하되고 수리 불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먄약 그런 효과가 라자크에게도 적용된다면 회복을 시킬 수 없는 상태가 될지 누가 알겠는다? '.....맙소사! 내, 내가 대체 무슨 직을 한거야?' 아크는 하얗게 질린 눈으로 본 블레이드를 바라오았다. 그러나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본 블레이드에서 다시 크로마틴의 영혼을 뽑아낼 수 없으니 아크가 할 우 있는 일은 그저 상황을 지겨보는 것밖에 없다. 쩌쩡~~~! 쩌쩌쩌쩡~~! 그때였다. 잡시 조용하던 본 블레이드의 표면이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폭음과 함게 검이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게 아닌가? "아, 안돼~~! 이, 이럴 수가....정말....!" 아크가 산산이 흩어지는 검 파편을 바라보며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본 블레이드가 껴져 버렸다. 다시 발해 최악의 상황, 크로마틴의 영혼을 봉인하는 데도 실패하고, 그 대가로 라자크마저 소멸 됐다는 뜻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크의 눈앞에서 믿이지지 않는 관격이 펼쳐졌다.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 사방으로 날아가던 파편이 다시 하나로 결합되더니 검으로 변하는게 아닌가? 방급 전까지의 본 블레이드가 아니었다. 지급까지의 본 블레이드는 한 손검이었지만, 새로 결합된 본 블레이드는 길이가 150센티미터에 폭이 30선티미터가 넘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뭐, 뭐야? 이검은 뮈지? 어떻게 된거야?" 아크가 멍한 눈으로 본 블레이드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였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눈앞으로 메시지창이 주르륵 올라갔다. 올라간 레벨은 7....... 그렇게 레벨이 정산되자 영혼이 빠져나간 상때로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크로마틴의 모이 붕괴되며 척추 부분에서 창 한 자루가 떨어져 눈밭에 꽂혔다. 『크로마틴의 장창(유니트) 무기 타입: 양손 장창 공격력:45~55 내구력: 53/120 무게:60 사용 제한: 450 이상 본 드래곤 크로마틴의 척추 뼈에서 갈라져 나온 장창. 최상급 재료인 드래곤 본으로 이루어져 보통 장창보다 몇 배나 가벼우면서도 견고합니다. 또한 자유자재로 뼈를 늘려 적을 공격하는 크로마틴의 능력이 깃들어 뼈 줄기로 적을 공격하는 '가시 공격'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기사에게는 최상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옵션:돌라력+20%, 힘+20, 민첩+10>> <<특수 옵션(가시 공격): 창에서 10~20개의 뼈 줄기를 발사해 적을 공격합니다. 뼈 줄기의 움직이은 창을 통해 조종할 수 있습니다. 마나소모: 100 대기시간: 1시간>>』 유니크 장창! 딱 보기에도 엄청난 능역치를 가진 장창이었다. 크러나 아크는 '크로마틴의 장창'의 능력치나 살피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라둔, 장창을 삼켜라!" 아크는 라둔에게 명령해 놓고 황급히 본 블레이드로 뛰어갔다.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진 알아보기 위해 본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였다. 돌연 음험한 웃음소리와 함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리자크의 영혼 흡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소환수 라자크의 영혼 상태로 변해 약해진 본 드래곤 크로마틴을 흡수해 육체의 재구성에 성공했습니다. 데스 마스터보다 몇 단계나 높은 본 드래곤의 영혼을 흡수한 라자크는 상위 직업인 '데스 로드'로 진화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로써 라자크는 영적 각성을 통해 본래의 '퓨리탈'이라는 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화? 진화라고?'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잡시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오자 아크는 대강의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크로마틴은 본 드래곤, 언데드 계열 최강의 몬스터다. 라자크가 그런 언데드 최강 몬스터가 영혼 상채로 변해 약해져 흡수해 새롭게 진화한건가?' 돌이켜 생각하면 라자크가 데스 마스터로 진화할 때도 네크로맨서의 해골을 얻은 적분이었다. 그리고 라카드 역시 카라클의 혈정을 흡수해 상급 뱀파이어로 진화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소환수의 진화는 같은 계열의 몬스터를 흡수하며 이뤄져 왔다는 의미였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크의 눈동자에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실수라고 생각했던 '마기 봉인' 덕분에 뜻하지 않았던 소환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때 진화 과정을 마친 라자크, 아니 프리탈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본 블레이드가 변한 것처럼 검화가 풀린 퓨리탈도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뼈 표면에 마치 드래곤 피부처럼 비늘무늬가 새겨져 있었고, 팔이나 어깨, 무릅 같은 관절 부위에 날카로운 뿔 같은 것이 돋아나 있었다. 퓨리탈이 변신하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퓨리탈 본 드래곤의 영혼을 흡수해 언데드 계열 최상위 집업 '데스 로드'로 진화한 스켈레톤. '데스 로드'는 기사답게 스스로의 무공을 뽐내기보다 주인의 검과 방패가 되는 것을 가장 큰 명예로 여깁니다. 때문에 '데스 로드'의 스킬은 주인의 능력을 올리는 부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종족: 마족 성향:어둠 등급:중급 생명력:5,720(+500) 충성도:1,589(+100) 힘 712(50) 민첩 256(+30) 체력 753(+500) 지혜74(+20) 지능 78(+30) 운 89(+20) +본 블레이드의 공격력이 15, 내구력이 100, 체찍의 공격 범위가 5미터만큼 증가했습니다. +'갑주화' 스킬을 배웠습니다. +'갈고리 폭사' 스킬을 배웠습니다.』 『갑주화(초급, 종족 특성): 퓨리탈이 자신의 몸을 분해해 주인의 갑옷이 되는 스킬입니다. 갑주화로 만들어진 갑옷을 걸치면 츄리탈의 공격력과 방어력, 생명력의 30%가 사용자에게 적용됩니다. 단, 갑주화로 증가한 생명력이 소모되면 스킬이 자동 해제되며 24시간 동안 류리탈을 재소환할 수 없습니다. <<프리탈이 갑옷이 되어 사용자의 공격력과 방어력, 생명력이 퓨리탈 능력치 30%만급 증가합니다. 영력 소모: 200 대기시간: 24시간>>』 『갈고리 폭사<<갑주화 보조 효과>>(초급, 종족 특성): 사용자가 갑주화로 퓨리탈의 갑옷을 걸쳤을 때, 퓨리탈의 각 관절 부위에 있는 갈고리 뿔을 적에게 폭사할 수 있습니다. 폭사된 갈고리 뿔은 적에게 50~100의 데미지를 주며 사용자 앞으로 끌고 오게 됩니다. <<갈고리로 적에게 50~100의 데미지와 함께 포획 효과. 마나소모: 100>>』 '갑주화?' 아크는 동그란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검으로 변할 수 있는 퓨리탈이 이제 갑옷으로도 변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주화는 검화와는 차원이 다른 스킬이었다. 전투 중이라도 퓨리탈을 갑옷으로 만들어 입을 우 있었다. 그러면 퓨리탈이 가진 공격력과 방어력, 생명력의 30%가 아크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현재 퓨리탈의 능력치 수준은 레벨300대 수준이니 공격력과 방어력, 생명력이 레벨 90정도 올라간 것처럼 상승한다는 말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싶지만......' 소환수의 스킬 정보 따위는 언제라도 살펴볼 수 이싿. 일단 소환수가 무사하고 진화까지 했으니 자세한 건 나중에 살펴와도 늦지 않는다. 지급은 크로마틴이 쓰러졌으니 서둘러 '검은 보벨리슼의 숲'을 폭파해야 한다. '벌써 크로마틴과 전투를 시작한지 40분 가까이 지났다. 협곡에서 소모한 시간을 합하면 55분. 아란 녀석이 이미 지하 기지를 나와 이곳으로 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크로마틴의 전투로 생명력과 마나가 바닥인 상태에서 놈들이 오면 순식간에 전멸된다. 서둘러 '검은 소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하고 샹그리아로 도망쳐야 해!' 시간을 가늠해 본 아크가 특공대원들에게 소리쳤다. "빠리 성광 폭뢰를 설치하라!" 그리고 10분후...... 콰콰콰쾅, 콰콰콰쾅! 오벨리스크에 설치된 성광 폭뢰가 빛다발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그러자 성스러운 빛에 휘감긴 검은 오벨리스크에 균열이 번지며 모래처럼 잘게 부서져 내렸다. 그 숫자가 무려 50여 개! 이로써 파비온 요새를 지키는 몬스터들은 이제 부활할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을 완수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는 일! "라카드, 최대한 빠리 주둔지로 날아가 작전이 성공했다.고 알려라!" "예써!" 라카드가 경례를 붚이며 주둔지를 행해 최단 거리로 날아갔다. 그러나 아직 모든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워머, 서둘러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워머가 주전자(마력 변환 장치)를 들고 오벨리스크의 숲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사방이 널려 있는 검은 오벨리스크의 가루들 닥치는 대로 주전자에 쓸어 담자 밑에 박혀 있는 마력석의 광채가 점차 강해졌다. 그렇게 워머가 MG를 긁어모으고 있을 때였다. "아크, 놈들이다!" 샴바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협곡 출구에서 수천에 달하는 몬스트 떼가 특공대를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선두에서 이를 갈아붙이며 달려오고 있는 겁은 갑옷의 기사는.... ACT9 샹그리아 "‥‥‥아란!" 아크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지하 기지에 가둬 놨던 아란이 협곡의 몬스터를 몽땅 데리고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워머, 아직 멀었습니까?" "이제 곧 ‥‥‥오케이. 일단 MG는 다 모았어!" "일단? 일단이라니요?" "내 발명품은 지하 기지 근처에 있어." "네?" 워머의 말에 아크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저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를 뚫고 다시 협곡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 노가다로 만든 저주템도 불과 20여 개 밖에 남지 않았다. '마기 왜곡'도 사용할 수 없나는 말이다. 저 정도 몬스터들을 통째로 이동시키려면 적어도 200~300개의 저주템을 박살 내야 하리라. "아까는 그런 말이 없었잖아요!" "그런 걸 말로 해야 알아? 그렇게 굉장한 발명품을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을 리 없잖아?" 워머가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들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렇지.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장치를 개발한 적이 있었지?" 워머는 가방에 머리를 통째로 집어놓고 한참을 뒤적이다가 뭔가를 꺼내 들었다. 마치 라디오처럼 생긴 기계였는데, 상단부에는 접시 같은 안테나가 달려 있었다. 『마력 에너지 원격 송신기. 마력석에 담긴 MG를 파장으로 변환시켜 원거리에 떨어진 기계에 에 너지를 전송하는 기계입니다. 에너지가 떨어져 작동이 멈춘 기계를 원 거리에서 충전시킬 수 있지만, 무선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약간의 에너 지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하하하, 나는 역시 천재야!" 워머가 원격 송신기를 들고 낄껄 웃어댔다. 워머에게 원격 송신기의 설명을 들은 아크가 물었다. "그럼 그 괴앚ㅇ한 발명품에 에너지를 충전시키면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습니까?" "음, 그 발명품의 리모컨을 가지고 있으니 문제 없어." "하지만 발명품이 이곳으로 이동하려면 협곡을 통과해야 하지 않습니까?" "걱정 말라니까. 에너지만 정송하면 틀림없이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어." "믿어 보죠. 에너지를 전송하고 발명품이 이곳에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넉넉잡고 5~10분이면 될 거네." "5~10분‥‥‥!" 아크가 몬스터 떼를 바라보며 한숨처럼 중얼거렸다. 말이 5~10분이지, 상대는 아란과 티모시, 그리고 협곡을 돌아디니던 수천의 몬스터들이다. 반면 아크의 병력은 특공대원과 백호족을 합해 100여명 - 크로마틴과의 전투에서 특공대원 30명가량이 사망했다- 수십 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크가 고개를 돌려 반대편 협곡을 바라보았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은 파비온 협곡의 중심을 관통하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말해 좌우에 협곡이 있었고, 아란과 몬스터들은 그중 한 곳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또 다른 협곡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가 있었다. "일단 저 협곡으로 이동한다!" 아크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크의 명령에 특수대원들은 눈밭을 가로질러 협곡 입구로 들어섰다. "전사들은 입구 뒤쪽에서 방어 진형을 만든다!" 아크가 협곡으로 이동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현재 워머가 발명품을 불러오려면 좌표를 지정해야 해서 무작정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싸우면서 5~10분을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적이 수십 배는 많으니 제대로 붙는다면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당하리라. 그러나 협곡 입구는 전사 10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로 좁았따. 즉 협곡 안쪽에 방어 진형을 설치하면 몬스터들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진입할 수 있는 숫자가 제한되어 적은 병력으로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다. 지형을 이용한 기본 전략이었다. "아크-!" 그렇게 방어진을 만들었을 때, 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란은 마치 악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아크에게 속아 지하 기지에 같혔다가 이제야 나왔으니 정신 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란이 분노의 오라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아란이 이곳으로 오면서 붉은 남자에게 받은 임무는 파비온 요새를 지키는 것과 ,샹그리아에서 아티팩트를 강탈하는 일. 두 가지였다. 그러나 아크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해 버렸다. 이로써 아란은 슈덴베르크 원정군으로부터 파비온 요새를 지키기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파비온 요새를 빼앗기면 자동적으로 샹그리아도 슈덴베르크 원정군 손에 넘어가는 것이다. "아크, 아크, 아크! 네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 버리겠다!" 아란이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며 명령햇다. "놈들을 몽땅 죽여 버려라!" 쿠와아아아, 쿠와아아아!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눈알을 번들거리며 협곡으로 달려들었다. 그때 가만히 놈들을 주시하던 아크가 팔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마법사 부대, 슬라이드!" "내게 오는 길은 결코 편하지 않으리니‥‥‥슬라이드!" 10여 명의 마법사가 일제히 주문을 영창했다. 슬라이드는 마찰 계수를 0으로 만들어 거친 돌바닥이라도 얼음판처럼 미끄럽게 변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그런 마법을 눈밭 위에 뿌려 대자 협곡으로 몰려들던 몬스터들이 허우적 거리다가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지금이다! 궁수들은 블런트 화살로 넘어지지 않은 몬스터들을 요격하라!" 뒤이어 궁수들이 긑이 뭉뚝하게 생긴 화살을 몬스터들에게 쏟아 부었다. 데미지는 강하지 않지만 둔기처럼 '밀어내기' 효과를 가진 화살이었따. 미끄러운 바닥 위에서 블런트 화살을 맞은 몬스터들은 수십 미터나 밀려나다가 넘어졌다. 아크는 그런 방법으로 협곡 안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막아 내며 시간을 끌었다. 만약 놈들이 보통 몬스터라면 그 정도만으로 5~10분은 너끈히 벌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눈앞에 상대는 유저가 직접 지휘하는 몬스터들이었다. "흥,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잔머리르 쓰는군. 몬스터 부대, 몸으로 발판을 만들어라!" 우우우우, 우우우우! 아란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을 밟고 돌진한 몬스터들이 그 앞에서 또 드러누웟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특공대와 몬스터 들 사이에 몬스터로 이루어진 길이 만들어졌다. 바닥에 깔린 동료를 밟고 돌진하는 몬스터들은 슬라이드 효고가가 적용되지 않아 블런트 화살을 맞아도 잠시 움찔 거릴 뿐이었다. "젠장! 전사, 방어 태세!" 콰콰콰쾅, 콰콰콰쾅! 결국 몬스터들이 협곡을 들어와 특공대원들과 충돌했다. 동시에 격렬한 쇳소리가 울려 나왔다. 만약 이곳이 사방으로 트인 곳이었다면 단숨에 방어 진형이 허물어 졌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슬라이드를 넘어왔다고 해도 몬스터들이 한 번 에진입할 수 있는 숫자는 수십 마리에 불과했다. 그 정도라면 원정군에서도 상위급에 속하는 특공대원들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비켜라, 멍청한 것들! '증오의 오라'!" "나도 간다!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아란과 티모시가 몬스터들을 뚫고 뛰쳐나오자 상황이 돌변했다. 검은 기체에 휩싸여 공격력과 방어력이 50%나 상승한 아란이 공격하자 전사들은 방패로 막고서도 휘청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티모시가 날리는 광속의 화살은 방패를 뚫고 수명의 특공대뭔들을 관통하며 데미지를 입혔다. "젠장, 역시 항상 문제는 저 녀석들이군." "아크, 저 계집은 내가 맡는다! 폭우검!" 그때 샴바라가 전사들의 방벽을 뛰어넘어 티모시에게 달려들었다. 티모시는 재빨리 재주를 넘어 쏟아지는 단검을 피하고 입매를 치켜올렸다. "흐흥, 또 자기야? 정말 나한테 반한 모양이네?" "반했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탄검" "애정 표현이 너무 과격한걸. 마탄의 사수 2장, 악마를 쫓는 화살!" 번뜩 - ! 슈슈슈슉! 샴바라와 티모시가 좋은 협곡 사이를 뛰어다니며 격렬하게 뒤엉켰다. "그렇다면 내 상대는 저 녀석이겠지?" 아크가 전사들을 몰아치는 아란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누란 마을 폐허에서 아크는 아란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란이 몬스터들의 스킬을 사용하는 줄 몰랐다가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각종 상태 이상에 걸렸기 때문이다. 뭐, 그 외에도 아란이 '증오의 오라'를 두르면 능력치도 아크가 상당히 떨어지지만, 그건 방금 전까지의 일이었다. "역시 새로 생긴 스킬은 실전에서 사용해 봐야지. 퓨리탈, 갑주화!" 딱딱딱, 딱딱딱딱! 그때였다. 전사들과 함께 전방의 방어 진형에 참가했던 퓨리탈의 몸이 폭발하듯 조각조각 분해되었다. 그리고 허공을 날아 아크의 몸에 철컥, 철컥, 달리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아크의 몸 여기저기에 뼈 갑옷이 장착되었다. 『갑주화를 사용했습니다. *공격력이 17~22만큼 상승했습니다. *방어력이 98만큼 상승했습니다. *생명력이 1,866만큼 상승했습니다. 《상승한 1,866의 생명력이 소모되면 갑주화는 자동 해체됩니다.》』 생명력 게이지를 확인해 보니 1,866만큼은 노란색으로 표시되었다. 노란색 게이지가 없어지면 갑주화가 풀린다는 뜻이리라. '그건 그렇다 쳐도 기대만큼 공격력과 방어력이 많이 올라가지는 않는군.' 방금 전 갑주화 정보를 확인할 때는 자신의 능력을 기준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생각해 보니 갑주화로 상승되는 보너스는 어디까지나 퓨리탈 능력치의 30%. 그리고 퓨리탈은 아직 이렇다 할 장비품이 없어서 능력치에 비해 실제 공격력과 방어력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아란 녀석은 그럭저럭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갈고리 폭사!" 아크가 아란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소리쳤다. 그러자 어깨와 무릎에 솟아 있던 갈고리 뿔이 쏘아져 나가 아란의 갑옷에 걸렸따. 그리고 고무줄처럼 잡아당기자 막 한 전사를 몰아 붙이던 아란이 아크의 코앞까지 확 당겨져 왓따. "뭐, 뭐야?" "뭐긴 뭐야? 복수전이지! 다크 블레이드!" "건방진 자식! 악마의 송곳니!" 콰콰콰쾅, 콰콰콰쾅! 둘의 검이 충돌하자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누란 마을 폐허에서 그런 식으로 충돌하면 6 대 4정도로 아크가 밀렷다. 적용되는 공격력이 달라서 였다. 그러나 갑주화로 퓨리탈의 능력치 30%가 보너스로 적용되자 5대 5로 팽팽해졌다. 충격파와 함께 아크와 아란이 동시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크윽, 이 자식이 왜 갑자기 이렇게 강해진 거지?" "비밀이다, 멍청아!" 아크가 연속 공격을 펼치며 들어가자 아란이 황급히 물러나며 입을 쩍 벌렸다. "악마의 호흡!" 해독제를 먹기 전에는 풀 수 없는 맹독의 안개! 아크는 '다크 댄싱'을 펄쳐 측면으로 회전하며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아란도 본격적으로 '악마 포식자' 능력을 발휘하며 각종 괴상한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아크와 아란의 전투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 일단 아크가 '갑주화'를 사용해 능력치는 거의 비슷해졌다. 그러나 실제 전투 능력은 태권도를 응용하는 아크가 아란보다 한 수 위였다.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아크가 당연히 아란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아란이 '악마의 포식자'의 능력으로 손에 넣은 60여 종의 기괴한 스킬을 사용하자 아크도 쉡게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젠장! 대체 이 자식이 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전투를 하면 할수록 둘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인 상황을 보면 압도적으로 아란이 우세했다. 몬스터들이 본격적으로 공세를 시작하자 제대로 회복을 받지 못하는 - 성직자들이 크로마틴과 싸운ㄷ 뒤로 마나를 회복할 시간이 없어서 였다. - 전사들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 한 것이다. 때문에 후열이 있는 궁수와 마법사들까지 피해가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백호족이 전사들의 자리를 대신해 분투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는 못할 것처럼 보였다. '이제 백호족까지 무너지면 나머지는 한순간이다!' 아란과 맞붙으며 전황을 살핀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낼 때였다. 협곡 안쪽에서 계속 리모컨을 들고 두들겨 대던 워머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됐다. 도착했다!" 워머의 발명품을 기다리던 특수부대원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접전을 벌이던 특수부대원들이 시선을 돌리자 반사적으로 아린이나 몬스터들도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협곡에 모여 있던 유저와 NPC, 몬스터들은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 고오오오오 -! 워머의 지화 기지가 있던 곳에서 전장으로. 거대한 뭔가가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크기는 대략 40미터 정도에 미치는 사람처럼 생긴 거대한 물체였다. 그러나 그 거대한 물체는 팔다리가 달려 전체 형상만 사람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철판을 이어 붙여 만든 깡통 같았아. 다시 말해 강철로 만든 거인‥‥‥. 그렇다. 워머가 말한 굉장한 방명품이란 것은 바로 만화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대 깡통 로봇이었던 것이다. "우하하하, 거대 비행 로봇! 저거야 말로 남자의 로망이지!" 워머가 리모컨을 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광소를 터뜨렸다. 설마 게임 속에서 로봇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유저들은 그저 넋 나간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경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깡통로봇은 협곡을 지나 특수부대원들의 뒤쪽에 내려섰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만화영화의 깡통로봇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워머가 활짝 벌어진 로봇의 발가락 사이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자, 여기가 입구다. 모두 로봇에 올라타라!" "가만? 저 정도의 로봇이 있으면 굳이 도망갈 필요도 없는 거 아냐?" "빔이든, 로켓이든 뭔가 있을 거아냐?" "멍청아, 이만한 부피의 로봇이 무기 따위를 싣고 날 수 있을 거 같으냐?" 워마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생긴 것과 달리 무기는 없는 모양이다. "먼저 주민들이 탑승하고 특수대원들은 몬스터들을 막으며 들어간다!" "놓칠 것 같으냐!" 특수부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도중 아란이 고함을 지르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갑자기 로봇이 아크와 아란 사이의 땅에 거대한 주먹을 내리꽂았다. 엄청난 굉음이 울리며 쌓여잇떤 눈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 순간, 아크는 '다크 댄싱' 과 '전력 질주'를 연계해서 재빨리 물러나 거대 로봇의 발가락 사이 - 기분이 더러웠다 - 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샴바라와 레리어트가 엘리베이터 처럼 생긴 기계 안에서 손짓했다. 아크가 몸을 굴려 뒤에서 날아오는 아란의 '사악한 안광'을 피하고 올라타자 벌어졌던 발가락이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닫혀 버렸다. "이런 ‥‥‥ 공격하라! 저 쇳덩이를 박살 내 버려라!" 아란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칠 때였다. 쿠쿠쿠쿠, 쿠콰콰콰콰, 콰콰콰콰쾅!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로봇의 발아래에서 엄청난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마치 우주 비행선이 발진하는 것처럼 발바닥에서 화염을 뿜어내며 로봇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딴따라라라라 딴따따 딴따라라라라 딴따따." 워머의 입에서 스무 살 미만의 유저들은 알지도 못할 태권V의 주제가가 흘러 나왔다. * 현재 태권V인지 뭔지를 모를 깡통로봇에 탑승한 아크와 특수부대, 백호족, 누란 주민들은 모두 합해 110명. 협곡에서의 전투로 특수부대원은 70명으로 줄고, 백호족과 누란 주민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와 40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로봇 덕분에 무사히 아란과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그대로 하늘을 날아 협곡을 벗어났다. 그리고 백호족의 안내를 받으며 산맥을 따라 날아가고 있을 때였다. "샹그리아다!" 모니터를 통해 밖을 내다보던 백호족이 소리쳤다. "저곳이 예언자 일족이 살고 있는 샹그리아‥‥‥!" 백호족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크의 눈에도 샹그리아가 보였다. 그리고 샹그리아를 보는 순간, 왜 백호족이 샹그리아로 돌아기지 못한다고 말햇는지 알 수 있었다. 샹그리아는 원래 산 깊은 곳에 펄쳐진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전 7인의 영웅이 펄쳐 놓은 방어 결계를 작동시키면 그 숲이 통째로 공중에 떠올라 부유 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늘을 날지 않는 한 샹그리아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샴바라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런데 저기서 몰려오는 것들은 뭐야?" 샴바라가 가리킨 곳에는 마치 먹구름처럼 시커먼 그림자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재빨리 줌 기능으로 화면을 확대시켜 본 워머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마족이다! 비행 몬스터 떼야!" 확대된 화면으로 확인한 시커먼 먹구름은 바로 수백 마리의 가고일 떼였다. 고대 던전 같은 곳에서 석상처럼 변신해 있다가 여행자를 덮치는 비행 몬스터들이었다. 아마도 샹그리아를 공략하기 위해 어둠의 세력이 보낸 몬스터들이리라. 가고일들은 샹그리아에 접근하는 정체불명의 로봇을 공격하기 위해 몰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봇은 겉보기와 달리 무기라고는 주먹질을 해 대는 것 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놈들의 공격을 받으며 순식간에 너덜너덜한 재활용품이 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워머, 속도를 올리세요!" "이미 최고 속도로 날아가는 중이라고!" 워머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그때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조종실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거기를 좁혀 온 가고일 떼가 입에서 광선을 뿜어내며 로봇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조정실 천장에 달려있는 경광등이 붉은 빛을 뿜어내며 비상벨을 울려 댔다. 워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으, 으악! 파, 팔이 부서졌다. 헉, 다리에 불이 붙었다! 빌어먹을, 저 자식들이 몇 달이나 걸려 만든 내 태권 VD게ㅔ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젠장, 그렇게 소중한 로봇이면 대포라도 몇 개 붙여 놓든지!' 정말이지 그렇게 ㅅ와붙여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한들 무슨 소용이 이겠는가? 아크는 계기판을 잡고 거칠게 흔들리는 조종실을 가로질러 워머에게 물었다. "크윽, 이렇게 공격받으면서 샹그리아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야. 태권V는 만약의 사태에 대배해 보조 엔진을‥‥‥으악!" 또다시 한차례 폭음이 울리자 대답하던 워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방금 전에 보조 엔진이 나갔어." "그럼 이제‥‥‥?" "‥‥‥추락하는 거지." 워머가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게 얼마짜리인데‥‥‥ 이거 만들려고 내가 그동안 ‥‥‥우우우우!" "이따위 로봇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이제 샹그리아까지 고작 100여 미터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추락할 수는 없어요. 뭔가, 뭔가 방법이 없어요?" 아크가 와락 멱살을 잡고 흔들어 대자 워머가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빌어먹을, 젠장, 망할, 이것만은 쓸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할 수 없지. 모두 우측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 "위에 뭐가 있는데요?" "설명할 시간이 이없어. 바닥에 처박혀 죽고 싶어?" 이따위 깡통로봇과 함께 동반 자살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 만큼도 없었따. 아크는 곧바로 특수부대원과 백호족, 누란 주민들에게 사다리를 타고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머와 함께 올라와 보니 밑에 있던 조종석과 비슷한 형태의 공각이 나타났다. 워머는 재빨리 조정석에 앉아 각종 스위치를 켜고 빨간 버튼을 꽉 눌렀따. "긴급 탈출!" 동시에 엄청난 진동과 함께 로봇의 머리 부분이 로켓처럼 발사되었다. 아크 일행이 올라온 곳은 긴급 탈출용 포트가 설치된 로봇의 거대한 - 태권 v는 대두였다. - 머리 부분이었다. 워머는 눈물을 글썽이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로봇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각오한 듯 이번에는 조종석 옆에 붙어 있는 해골 모양의 버튼을 꽉 눌렀다. "잘 가라, 태권 V1호!" 콰콰콰쾅, 콰콰콰콰콰쾅! 순간 로봇의 각 부위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전장 40미터에 달하는 로봇이 폭발하자 근처에 몰려 있던 가고일 떼가 폭발에 휘말려 순식간에 시커먼 잿가루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로봇의 자폭으로도 가고일 떼를 전멸 시킬 수는 없었다. 로봇에서 분리된 머리가 샹그리아로 향하자 다시 백여 마리의 가고일 떼가 따라 붙었다. 그리고 광선을 내뿜자 머리의 상단부에 붙어 있던 장식품들이 부서져 나가며 순식간에 대머리가 되어 버렸다. 『-공격을 받아 탈출 포트의 내구력이 80%로 급감했습니다. 엔진에 불이 붙어 탈출 포트의 온도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붉은 경고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떠올랐다. "히이익, 탈출 포트가 과열되고 있다. 이대로 놈들의 공격을 계속 받으면 탈출 포트도 샹그리아에 도착하기 전에 폭발하고 말 거야!" 워머가 푸슉, 푸슉 연기를 뿜어내느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말했따. 아닌게 아니라, 이미 탈출 포트의 이음새가 벌어지며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흔들렸다. 그러나 아크나 특수부대원들이 할 수 잇는 일이라고는 고작 몸으로 벌어진 이음새를 막아 탈출 포트의 균형이 깨지지 않게 버티는 게 전부였다. '젠장, 이제 샹그리아가 바로 눈앞인데‥‥‥!' 아크가 불과 몇십 미터 밖에 남지 않은 샹그리아를 바라보며 신음을 삼킬 때였다. 콰지지지지! 콰지지지지! 콰지지지지! 샹그리아의 외곽에 설치된 탑 위에 세워진 거대한 수정 구슬에서 갑자기 방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수정 구슬 내부에서 시퍼런 스파크가 일어나기를 잠시, 갑자기 스파크가 한 점에 모였다. 순간 수정 구슬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뿜어져 나와 탈출 포트를 뒤쫓던 가고일을 후려쳤다. 동시에 가고일들은 단숨에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 장면에 백호족이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이제 됐어!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 꽉 잡아. 불시착한다!" 그다음 순간, 간신히 가고일의 공격을 벗어난 탈출 포트가 샹그리아에 떨어졌다. 쿠콰콰콰콰, 탈출 포트가 샹그리아의 지면을 긁어 대며 수십 미터나 밀려 나갓다. 동시에 충격을 받은 탈출 포트의 모든 계기판에서 불길이 뿜어져 올라왔다. 그러자 워머가 조종석에서 벌떡 일어나 출구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서둘러! 탈출 포느는 이제 곧 폭발한다!" "뭐, 뭐야?"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특수부대원과 백호족, 누란 주민 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출구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아우성치며 우르르 탈출 포트를 빠져 나왔을 때였다. 콰콰콰콰쾅! 검은 여기를 뿜어 올리던 탈출 포트가 기어코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군. 그래도 어쨌든 샹그리아에 도착했다." 아크는 불길에 휩싸인 탈출 포트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천천히 샹그리아를 둘러보았다. 샹그리아 안에 들어와서 보니 그냥 폄범한 숲처럼 보였다. 그때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백호족이 일행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예언자 일족이 있는 진리의 탑은 이쪽이네." 아크와 특수부대원들은 백호족을 따라 숲 속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수풀 사이로 거대한 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눈처럼 하얀 색의 거탑 이었다. 거탑 앞에 수백 명의 NPC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샹그리아를 수호하는 백호족 이어었지만, 그중 20여 명은 후드를 턱까지 눌러쓴 사람들이었다. 아크 일행이을 빠져 나오자 그들이 양손을 가슴에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아크 님." "제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네, 방금 전에 진리의 수정에서 당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진리의 수정?" "위대한 창조신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는 신성한 수정입니다. 조금 전에 그 수정 속에서 당신이 샹그리아를 위협하던 저주받은 본 드래곤 크로마틴을 무찌른 뒤에 거인을 타고 이곳으로 날오오는 장면이 잠시 비췄습니다." "샹그리아를 위협하던 본 드래곤 크로마틴?" 아크는 그제야 협곡 출구에서 갑자기 안델이 나타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본래 아란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샹그리아를 공략해 아티팩트를 강탈하는 것. 그러나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작동해 부유 섬으로 변해 버리자 평범한 몬스터들로는 공략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아란은 비행형 몬스터를 동원해 샹그리아 공략에 나선 것이다. 파비온 요새나 협곡에서 비행형 몬스터를 볼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리라. 그리고 최강의 언데드이자 비행 몬스터인 본 드래곤을 조종할 수 있는 안델에게 샹그리아 공략의 선봉자을 맡겼겠지. 그러나 아크의 계략이 넘어가 지하 기지에 갇히게 되자 일단 안델을 불러 출구를 막고 시간을 벌려던 계획이었으리라. '결국 안델과 크로마틴을 박살 낸 덕에 샹그리아까지 구하게 됐다는 건가?' 그러나 현재 아크의 관심사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로써 그동안 별러 오던 《전설의 증언》 퀘스트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것이다. "제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별의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알고 있습니다. 따라오십시오." 역시 예언자 일족이라 이것저것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아크 일행은 예언자 일족을 따라 거탑으로 들어섰다. 거탑 안에는 길목 길목마다 마치 문짝만 한 크기의 크리스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예언자들은 그것들이 하나에 10년에 해당하는 대륙의 역사가 담겨 있는 메모리 크리스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런 크리스털이 수백 개에 달하니 수천 년에 걸친 뉴 월드에 역사가 이 거탑 안에 기록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메모리 크리스털의 통로 끝에 도착하자 예언자들이 특수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아크만을 데리고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홀이 나타났다. 마치 굴뚝처럼 원통형으로 되어 있는 홀은 벽 전체가 메모리 크리스털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책만 한 크기의 작은 메모리 크리스털이 벽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었다. 직경과 높이가 수백 미터나 되는 거대한 원통형 방에 붙어 있는 메모리 크리스털의 숫자는 족히 수백만 개는 될 듯했다. "이 방의 메모리 크리스털은 이 세계에 들어온 모든 이방인들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암흑 세기가 끝나 갈 무렵‥‥‥ 위대한 창조신의 의지를 전해 주는 진리의 수정은 우리에게 무서운 예언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어둠의 제와응 사라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부활해서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언자는 밑도 끝도 없이 역사 강의를 시작했다. 당시 진리의 수정의 예언에 따라 모여 어둠의 제왕을 무찌른 7인의 영웅들은 이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어둠이 모이는 곳에는 빛도 존재하는 법. 진리의 수정은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 주었다. 이 세계에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이계의 주민들이 찾아올 거라고. 그리고 또다시 부활하게 될 어둠의 세력은 그들의 힘으로만이 막아 낼 수 있다는 예언이었다. 이에 7인의 영운은 닥쳐올 파멸을 막기 위해 이방인들에게 자신의 힘을 전해 줄 안배를 해 놓기로 결심했다. 그게 바로 유저만이 7인의 영웅의 후예가 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리고 100 용사는 세상을 구할 예언의 이방인들을 위해 또 다른 안배를 해 놓았습니다. "100 용사?" "네, 100 용사는 7인의 영웅과 함께 어둠의 세력과 싸웟던 전사들입니다. 이들역시 예언들 듣고 먼 미래에 이 세계에 찾아와 암흑의 세력과 싸워야 할 이방인들을 위해 자신들이 사용하던 장비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던 장비품은 지나치게 강력해 만의 하나 어둠의 세력에게 넘어가면 큰 해악을 끼치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고대의 비술을 사용해 그 장비품을 용사의 별로 만들었습니다." "용사의 별이라면‥‥‥?" 아크가 전승 퀘스트로 모았던 별을 백호족이 용사의 별이라고 불렀었다. 그런데 그 용사의 별이 100 용사가 자신의 장비품을 이용해 만든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7인의 영웅 가운데 1명이었던 위대한 마법사 노라드는 그 용사의 별에 시공을 초월하는 강력한 주술을 걸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어둠의 힘이 움직이면 스스로 그곳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한 용사의 체내에 축적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체내에 축적된 용사의 별이 온전한 형태를 이룰 만큼 쌓이면 용사를 샹그리아로 인도해 100용사가 남긴 유산을 물려 받게 안배해 놓은 것입니다. 전승 퀘스트를 할 때마다 축적됐던 별에는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그런 비하인트 스토리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이 별을 필요한 만큼 모으면 100 용사가 사용하던 강력한 장비품을 받을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아크는 용사의 별의 인도를 받아 샹그리아로 찾아온 몸! "그렇다면‥‥‥?" "아크." 아크가 입을 열려 할 때 예언자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엄청난 넓이의 벽면 어디가에서 크리스털 석판 하나가 떨어져 나와 예언자의 앞으로 이동해 왔다. 그 크리스털 석판은 다른 것과 딜리 상부에 빛을 뿜어내는 보석 10개가 박혀 있었다. 예언자는 크리스털 석판을 들고 아크에게 다가오며 말했따. "이것이 당신의 기록이 적힌 메모리 크리스털입니다." 예언자가 들고 있는 크리스털 석판에는 정말 아크의 정보가 떠올라 있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 +500 명성 : 21,788(+500) 레벨 : 439 직업 : 다크소울 직위 : 남작 칭호 : 캣 나이트, 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8,125(+475) 마나: 8,315(+225) 영력 : 786 힘 844 민첩 1,139(+90) 체력 1,379(+45) 지혜 185(+10) 지능 1,517(+5) 운 209(+60) 특수 스텟 고대 유물의 지식 : 233 유연성 : 268 화술 : 79 애정 : 129(+10) 탄력도 : 483 어둠의 안개 : 74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 +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 +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 민첩 +10, 지혜 +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 약' 사용 가능 *《수왕》세트효과 : 힘 +20, 민첩 +20, 체력 +20, 방어력 +40 약속의 검(양손 검) : 힘 +20, 체력+1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갈기쉬의 모피(망토) : 한파 저항력+100% 민첩+20 생명력 50% 미만 '마력 보호' 자동 발동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 +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 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 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 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치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음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용사의 별】 ☆☆☆ : 지저 세계의 지옥문 봉인 ☆☆☆☆ : 스탄달의 세계수 유즈리아 부활 ☆☆☆ : 지옥의 마수 마그라 퇴치 』 예언자는 크리스털 석판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부에 박혀 있는 보석은 당신의 업적을 증멸할 용사의 별. 이 별로 100용사의 유산을 받을 자격을 증명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원한다면, 용사의 별은 당신의 능력에 걸맞는 100용사의 유산을 줄 겁입니다. 단,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100용사의 유산은 당연히 100가지가 존재합니다. 모두 하나 같이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100용사가 그랬듯이 각각 능력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용사의 별은 현재 당신의 능력에 가장 적합한 유산만을 줄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 되십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자 예언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따. 100 용사의 장비품은 착용 제한 레벨이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샹그리아에서 장비품을 찾을 당시, 유저의 레벨에 딱 맞는 레벨의 장비품이 보상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즉 현재 아크의 레벨이 100이면 100에 맞는 장비품이 나오고, 200이면 200에 맞는 장비품이 나온다. 다시 말해 앞으로 더 레벨을 올린 뒤에 찾으면 더 높은 레벨의 장비품을 받을 수도 있다는 뜻! 그러나 아크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따. '더 기다리면 더 좋은 장비품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크는 고개를 들어 홀 벽에 박혀 잇는 엄청난 양의 크리스털 석판을 훑어보았다. 그 석판들 중에는 10개까지는 아니라도 7~8개의 보석이 박혀 잇는 것들은 꽤 되었다. 별을 모으는 유저가 아크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100 용사의 장비품이라고 했으니 유산은 100개 밖에 없다는 말이야. 그리고 현재로써는 내가 몇 번째 보상을 받을 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욕심을 부려 더 기다리다가 저 유저들이 별을 모두 채우고 장비품을 받아 간다면 자칫 내 몫이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 아니, 뭣보다 당장 받을 수 있는 보상을 훗날을 기약하며 미루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용사의 유산을 받겠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예언자는 아무런 반론도 없이 아크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석판에 박혀 있던 10개의 보석이 떨어져 나와 제단 위에 모였다. 일순 눈을 멀게 만들 듯한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보석들이 하나로 합쳐졋따. 그리고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간 쇠붙이가 점차 형태를 만들어 가듯 모양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이내 거짓말처럼 빛이 사라지자 제단 위에는 검 한자루가 놓여있었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레전드) 무기 타임 : 양손 검 공격력 : 55~65 내구력 : 200/200 무게 : 80 사용 제한 : 레벨 430이상 암흑 세기에 마반 영웅과 함께 싸우던 용사 로토가 사용하던 전설의 검입니다. 로토는 본래 마족의 전사였지만, 훗날 마반 영웅과 사흘 밤낮을 싸운 뒤에 그의 용맹에 감화되어 영웅들의 편으로 돌아선 용사입니다. 그가 사용하던 검은 정신 감응 금속으로 알려진 오리하르콘을 지옥을 불길 로 100여 년 동안 제련하여 만든 마족의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로토 가 정의의 편으로 돌아서자 이 검 역시 어둠을 꿰뚫는 빛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라는 검명은 로토가 어둠의 세력과 싸울 때 사용하던 필살기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옵션 : 마 속성에 추가 데미지+10%, 민첩 +20, 체력 +20, 지능 +20》 《특수 옵션(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 어둠의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 빛을 추구했던 로토가 사용하던 필살기 입니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일정량 이상의 마기가 필요합니다. 이 스킬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마기 봉인'을 사용해 검에 마족의 영혼을 충전시켜 놔야 합니다. 그리고 폭발시켜 어둠으로 어둠을 제압 하는 기술입니다. 충전되어 있는 마기의 양에 따라 공격력이 변합니다. 마나소모 : 1,000 대기 시간 1시간》 』 '전설의 검!'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해졌다. 암흑 세기에 활약했던 100 용사의 장비품이라는 말에 기대를 품기는 했지만 설마 전서의 검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무지막지한 능력치!' 공격력이 무려 55~65! 약속의 검이 40~50이었으니 기본 공격력만 15가 높았따. 거기에 마 속성의 적에 대해 10%의 추가 데메지를 줄 수 있고, 다크소울에게 가장 중요한 스탯인 민첩과 체력, 지능이 20이나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전선의 검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검! 게다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라는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다. '스킬 정보만으로는 얼마나 강한지 알 수없지만 명색이 100 용사가 사용하던 기술이야. 게다가 마족에게 특화되어 있는 기술이라니 앞으로의 전투에서 쓸데가 많을 거야.' 아크는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의 위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모처럼 좋은 아이템을 얻었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약속의 검이었다. 약속의 검에는 아크가 그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얻은 마석이 4개나 박혀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각종 보너스 능력이 추가되어 단순히 공격력만으로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와 비교 한드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일단 약속의 검과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를 번갈아 쓰며 어느 쪽이 더 활용도가 높은지 테스트해 봐야겠다. 그리고 하나를 선택한 뒤에 나머지는 팔아 버려야지.' 하나는 전설의 검이고, 다른 하나는 레어 마석 3개, 유니크 마석 1개가 박혀 있는 레어 검이다. 어느 쪽을 팔든 수천 만 원, 아니 그 이상의 가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 그렇게 아크는 전설의 검을 챙겨 넣고 홀을 나왔다. 그때 밖에서 기다리던 레리어트가 예언자에게 물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창세의 퀘를 보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언자들이 처음으로 움찔하며 놀란 눈으로 레리어트를 바라보았다. "그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습니까?" "얼마 전 셀리브리드에 있는 아레스 대신전의 주교에게 들었습니다. 오래전 암흑 세기에 7인의 영웅이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이용했던 신성한 힘이 담긴 성물에 대해서. 그리고 암흑 세기가 끝나자 그 성물은 샹그리아라는 성역에 안치 됐다고 합니다. 그 성물의 이름은 창세의 궤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암흑 세기의 도래가 우려되자 대신전에서는 제게 샹그리아를 찾아 창세의 궤를 되찾아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백호족에게 이곳이 샹그리아고 성궤라는 성물을 보관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그들이 말한 성궤가 대신전에서 말햇던 성물, 창세의 궤가 아닙니까?" "대신전에서 부탁했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혹시 당신은? 홀리 나이트 로니안의‥‥‥?" "로니안의 축복을 받아 이노센트 나이트가 된 레리어트라고 합니다." "이노센트 나이트!" 레리어트의 대답에 예언자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수군거리다가 곧 한 예언자가 다가왓다. "네, 샹그리아에 있는 셍궤는 창세의 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 7인의 영웅 가운데 하나였던 홀리나이트 로니안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방인이라면, 당신이야말로 창세의 궤의 주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세의 궤는 신의 축복을 받은 홀리나이트와 신의 저주를 바은 파멸의 기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물이기 때문입ㄴ디ㅏ. 당신이 파멸의 기사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것이야말로 신의 뜻이 정의에 있다는 증거. 따라오십시오." 예언자들이 경외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장섰다. 그리고 이 만남은 대륙과 어둠의 전쟁에 엄청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 그렇게 아크가 샹크리아에 도착한 지 며칠 뒤‥‥‥. "아, 젠장, 대체 언제까지 성만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게. 정작 영주라는 녀석은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말이야." 시르바나 성벽에서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대륙 전체가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출현한 마족에게 공격당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직 나가란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비상계엄령 때문에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공선전조차 금지되어 현재 나가란은 텅텅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르바나 성에는 다크에덴 연합원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아크가 일부를 보급 부대로 차출하고 아직 레벨이 낮은 일부 연합원들에게는 비밀 던전에서 레벨업을 하도록 지시해 놓은 까닭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 레벨업이지 성에 남은 연합원들은 비밀 던전에서 레벨업을 하는 묘족과 너구리족, 늑대족, 동방 민족 등, NPC들의 호위병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보급 부대에 지원 할 걸 그랬나?" 명색이 돈 내고 게임하는 유저가 NPC들의 호위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게 생각됐는지 연합원들이 한숨을 불어 내며 구시렁거릴 때였다. 가아아아아아아-! 돌연 하늘에서 대기를 진동시키는 굉음이 울려 나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린 연합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 것은 그때였다. 푸흔 하늘 저편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가오리를 닮은 듯한 형태의 비행 물체. 고성을 등에 짊어지고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는 거대한 가오리는 놀랍게도 바로 마족의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였다. "뭐, 뭐야, 저게?" "저기 좀 봐, 놈의 배가 열리고 있어!" 연합원의 말처럼 시르바나의 상공에 도착한 뤼겐베르크의 복부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융단 폭격을 퍼붓듯 검은 물체를 쏟아 부엇다. 쾅, 쾅, 쾅, 쾅, 쾅! 수직으로 떨어져 영지에 박히는 수백 개의 물체는 바로 검은 오벨리스크 였다. 그렇게 검은 오벨리스크가 박히자 대지가 순식간에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며 엄청난 숫자의 마족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를 같이해 뤼겐베르크의 갈라진 복부에서 등에 사람을 태운 수천 마리의 가고일이 쏟아져 나와 시르바나 성을 향해 날아왔다. 그 선두에 가고일 떼를 이끄는 것은 검은 갑옷을 걸친 기사였다. "아크, 네놈이 아무리 도망가 봐야 결국 내 손안이다. 얼마 전에는 부지불식간에 만나 준비가 소홀햇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상대해 주지. 일단 네님이 아끼는 시르바나 성부터 짓밟아 놓은 다음에 말이야." 섬뜩한 눈빛을 뿜어내는 검은 기사는 다름 아닌 아란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날아가는 유저들은 바로 그동안 안델이 모은 유저들로 구성된 '어벤저'의 길드원들이었다. "아크, 와라! 이곳이 2차전의 전장이다!" 콰콰콰콰콰콰쾅! 아란의 목소리와 함께 수천 마리의 가고일 떼가 광선을 내뿜으며 시르바나 성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륙이 어둠에 뒤덮이는 지금, 드디어 오랫동안 칼을 갈아 온 아란의 본격적인 복수전이 시작 된 것이다. To be continued ACT 1 여신강림! ACT 2 성혈 확보 전쟁 ACT 3 더블 에이전트 ACT 4 비하인드 히스토리 ACT 5 나가란 연합군 ACT 6 성동격서 ACT 7 던전 키퍼 ACT 8 라카드 소멸? ACT 9 하이퓨어 뱀파이어 ACT 1 여신강림 kianms10310@naver.com "와아아아아!" 콰콰콰쾅, 콰콰콰쾅! 까마득한 높이의 절벽 사이에 자리 잡은 두터운 성벽. 지금 그 성벽 앞에는 엄청난 숫자의 인간과 괴물이 뒤엉킨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갑옷과 방패, 검, 강철로 무장한 전사와 두터운 가죽과 송곳니, 발톱으로 무장한 괴물이 충돌하면서 톤 단위의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왔다. 마법사와 마족의 마력이 충돌하면서 공간이 통째로 뒤흔들리며 일대가 죽음의 대지로 변해 버렸다. 혼돈‥‥‥ 수만의 숫자가 뒤엉켜 싸우는 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혼돈은 후열에 위치한 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측에서 돌격하던 헤븐 기사단이 적에게 고립됐습니다!" "헤븐 기사단을 지원하던 장창 부대가 탈론들에게 발목이 붙잡혔습니다!" "중앙의 제3 방어 대대가 자이언트들에게 전멸당했습니다!" "제7 사단장이 광역 마법 지원을 요청했습니!" 피투성이의 전령들이 헐떡이는 목소리로 전황을 보고했다. "본대의 기갑 부대를 우측으로 이동시켜 헤븐 기사단을 지원하라. 중앙에는 제11 예비 대대를 투입시켜 방어선을 구축하고 생존자를 구출한다. 그리고 제7 사단장의 요청대로 지원하기는 무리다. 현재 지원가능한 지역까지 마법사 부대를 움직일 수 없다. 일단 작전 지역에서 후퇴하여 좌측 언덕에서 마법사 부대와 합류해 다시 진격하라고 전달하라." "하지만 제7 사단은 마법사 부대의 지원 없이는 후퇴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지금 힘들지 않은 부대는 단 하나도 없다!"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전령이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전장으로 뛰어갔다. 그런 전령을 바라보는 하베스틴의 입에서도 답답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족들의 저항이 이렇게 완강할 줄이야." 하베스틴은 암담한 눈길로 검은 안개 속에서 떠올라 있는 성벽을 바라보았다. 지금 하베스틴이 슈덴베르크 원정군을 지휘하며 공략하는 성벽은 바로 파비온 요새였다. 새삼스럽지만 파비온 요새는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할수 잇는 유일한 통로 파비온 협곡을 막고 있는 국경 요새로, 지난 100여 년 동안 수차례에 걸쳐 슈덴베르크 왕국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함락되지 않았다. 그건 몬스터들이 파비온 요새를 점령한 뒤로도 마찬가지였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3만의 병력을 동원해 열흘이 넘도록 총공세를 퍼붓고도 아직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미 말한 바대로 파비온 요새가 천해를 입은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때문이었다.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나타난 마족은 죽은 뒤에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다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죽은 마족이 보충되니 전투는 계속 제자리걸음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며칠 전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먼저 국경을 넘어 실리나드 지역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브리스타니아가 슈덴베르크보다 먼저 실리나드 지역에 진입하면 이번 원정의 주도권을 독차지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이 소식을 접한 본국에서는 실제로 브리스타니아에 주도권을 빼앗기게 될 경우, 하베스틴에게 그 문제의 책임을 물어 사령관직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럼에도 하베스틴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치 못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 존재하는 이상 전투를 하면 할수록 원정국의 피해만 가중시킬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하베스틴에게 낭보가 전해진 것은 몇 시간 전이었다. "헥헥헥! 자, 작전‥‥‥ 성공‥‥‥." 아크의 명령을 받고 협곡을 넘어온 라카드가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스머글 패스를 이용해 요새의 배후로 침투한 아크와 특공대원들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로써 가장 난감했던 문제가 사라졌다! 곧바로 하베스틴의 목소리가 진영에 울려 퍼졌다. "이제 우리 앞을 가로막던 문제는 사라졋다! 믿었던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 폭파되어 마족들이 혼란에 빠져 잇는 지금이야말로 요새를 공략할 절호의 기회다!" 하베스틴은 곧바로 전국을 동원해 파비온 요새 공략에 나섰다. 역시나 하베스틴의 판단대로 마족들은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 폭파되자 우왕좌왕했다. 그런 상황에서 원정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제대로 대응조차 못 하고 밀려낫다. 덕분에 원정군은 불과 몇 시간 만에 협곡을 뚫고 파비온 요새 앞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이대로 밀어붙이면 오늘 안에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다!" 처음으로 요새 앞까지 진격한 원정군은 승리를 확신하며 들떠 있었다. 물론 협곡을 관총했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인 요새의 성벽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성전은 숫자보다는 조직력이 필요한 전투! 마족이 보통 몬스터보다는 조직적이라고는 하나 수성전을 펼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동안 마족들이 굳이 요새를 나와 협곡에서 전투를 치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반면 원정군은 고성전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성문이나 성벽을 공략할 대형 병기도 충분했다. 자‥‥‥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시켜 마족의 증원을 원천 봉쇄했다. 마족의 혼란을 틈타 협곡을 뚫고 파비온 요새까지 진군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원정군의 승리는 절반이상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사령관님, 놈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아군 진영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왓따. 하베스틴이 고개를 돌리자 파비온 요새의 성문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나타났다. 온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거대한 돌기둥을 어깨에 짊어진 20미터 크기의 몬스터! 하베스틴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어렸다. "‥‥‥그립퍼!" 그렇다. 그립퍼!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 공략전의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은 다름 아닌 그립퍼였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립퍼의 '지맥 폭파' 스킬! 그립퍼의 '지맥 폭파' 스킬이 발동하면 주위 2킬로미터 내의 마족은 능력치가 50%나 올라가고, 반대로 원정군은 능력치가 50%나 감소한다. 예를 들어 레벨 100의 원정군과 마족이 있다면, 마족은 50%의 보너스를 받아 레벨 150 수준의 능력치를 갖게 된다. 반면 원정군은 50%의 페널티가 적용되어 능력치가 레벨 50수준으로 감소한다. 결과적으로 능력치의 차이는 3배나 난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적과의 능력치가 3배나 차이가 나 버리는데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일단 발동돼 버리면 단숨에 전황은 뒤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원정군은 몇 번이나 그립퍼의 '지맥 폭파' 때문에 파비온 요새 공략에 실패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기갑 부대, 모든 대형 병기를 성문 앞으로 조준하라!" 하베스틴의 명령에 다연발 화염 쇠뇌와 투석기, 쇠뇌 따위가 성문을 향해 집중됐다. 하베스틴은 그동안 파비온 요새를 공략하며 그립퍼의 '지맥 폭파' 스킬에 한 가지 약점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건 바로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된 곳에서만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지를 흔들어 지맥에 충격을 주는 원리의 스킬이라 주변에 구조물이 있으면 제대로 발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 범위는 대략 100미터. 다시 말해 그립퍼는 요새에서 100미터 이상 떨어져야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립퍼가 요새에서 떨어지려면 일단 성문을 나와야 한다. 하베스틴이 라카드의 연락을 받자마자 무리를 하면서까지 파비온 요새까지 진군을 서두른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그립퍼들이 요새 밖으로 몰려나와 흩어지면 놈들이 '지맥 폭파'를 발동시키기 전에 모두 처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놈들이 요새에서 나오기 전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성문을 나올 때마다 1마리씩 요격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하베스틴은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일단 요새 앞까지 진격했다. 그리고 대형 병기를 방사형으로 배치시켜 포문을 성문에 집중시켜 놓았다. 목적은 단 하나, 그립퍼를 요격하기 위해서였다. "‥‥‥발사!" 위이이이잉, 투투투퉁, 투투투퉁! 전장을 가로질러 날아간 수백 발의 쇠뇌와 투석이 그립퍼를 난타했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그립퍼는 성문에서 채 몇 걸음 떼어 놓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쿠어어어어어! 놈이 쓰러지기가 무섭게 또 다른 그립퍼가 시체를 밣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러나 이미 원정군의 대형 병기는 성문을 향해 포문을 고정시켜 놓은 상황! "‥‥‥발사! " 위이이이이잉, 투투투퉁, 투투투퉁! 하베스틴의 명령에 또다시 방사형으로 늘어선 수백 대의 대형 병기가 불을 뿜었고, 그립퍼들은 성문을 나서는 족족 걸레처럼 찢겨져 쓰러졌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자 성문 앞에는 그립퍼의 시체 수십 구가 산처럼 쌓여 버렸다. 그리고 다시 그립퍼가 성문 앞에 나타났을 때였다. "영주, 영주, 그놈이 마지막이야!" 라카드가 하베스틴의 머리 위를 파닥파닥 날아다니며 소리쳤다. 라카드는 아크가 소환 해제를 해 주지 않아‥‥‥ 이때는 아크가 샹그리아로 이동한 뒤라 지역이 달라 원격 통신도 할 수 없었다‥‥‥ 놀기도 뭐해서 위성 감시 모드로 하베스틴을 돕고 있었다. 어쨌든 이제 1마리만 처리하면 더 이상 '지맥 폭파'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 마지막 그립퍼 역시 라카드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쇠뇌와 투석에 파묻혀 버렸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됐다! 이제 우리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은 모두 사라졌다!" 성문 앞에서 일어난 폭발을 지켜보는 하베스틴의 눈동자에 승리의 확신이 떠올랐다. 그 정도의 공격이라면 아무리 '지맥 폭파' 영향권 안의 그립퍼라도 박살 났으리라! 그러나 폭연이 가라않는 순간 승리에 대한 확신은 경악으로 바뀌었따. "이, 이럴 수가‥‥‥!" -크르르르르르. 흩어지는 폭연 속에서 그립퍼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따. 그립퍼는 수백 발의 쇠뇌와 투석에 직격당하고도 쓰러지지 않았던 것이다. "대, 대체 어떻게‥‥‥?" 하베스틴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따. 투둑, 투둑, 우수수수‥‥‥. 문득 그립퍼의 몸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뒤에야 하베스틴은 그립퍼가 그 엄청난 공격 속에서 살아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립퍼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마족들이었다. 쇠뇌에 꿰뚫리거나 투석에 으깨져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마족들! 그렇다. 그립퍼가 쇠뇌와 투석에 난타당하기 직전, 주변의 마족들이 그립퍼의 거구에 기어올라 마치 갑옷처럼 자신들의 몸으로 공격을 대신 받아 낸 것이다. 덕분에 그립퍼는 수백 발의 쇠뇌와 투석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대형 병기를 재장전하려면 1분 이상 걸립니다." "그때까지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화살이든 마법이든 뭐든 좋다. 놈을 막아라!" 하베스틴의 당혹성에 원정군이 화살과 마법을 난사했다. 그러나 마족들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마족들 역시 쉬지않고 그립퍼의 몸에 기어올라 공격을 대신 받아 냈고, 그립퍼가 요새에서 100미터 이상 떨이지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립퍼가 들고 있던 돌기둥이 바닥에 쑤셔 박히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아! 그립퍼가 심장을 뜯어내 치켜올리며 거칠게 움켜쥐었다. 순간 그립퍼의 몸이 폭탄처럼 폭발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원정군의 눈앞에 절망적인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그립퍼의 '지맥 폭파' 가 발동했습니다! 그립퍼는 저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돌기둥과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 대 지의 생명인 지맥에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충격을 받은 지맥 은 한동안 힘을 잃고 사악한 기운에 대항할 수 없게 됩니다. 지맥이 힘 을 회복될 때까지는 24시간이 필요하며, 그동안 주위 2킬로미터 내의 공간은 저주와 사기, 마기 등의 사악한 기운이 더욱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마기에 의해 NPC, 유저들의 능력치 감소가 50%로 증가합니다. 마 기에 의한 마 속성 몬스터들의 능력치 상승이 50%로 상승합니다. 지 속시간 : 24시간》 』 "겨, 결국‥‥‥!"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강렬한 마기는 하베스틴의 얼굴까지 새까맣게 물들였다. 물론 '지맥 폭파'가 발동해도 대처법은 있었다.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이 폭파되어 이제 더 이상 그립퍼는 보충되지 않는다. 방금 전에 자폭한 그립퍼가 발동한 게 최후의 '지맥 폭파'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지맥 폭파'의 적용 범위인 2킬로미터 밖으로 퇴각해 지속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공격을 재기하면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현재 하베스틴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따. 이미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은 3~4일 안에 실리나드 지역에 입성할 수 잇는 곳까지 진격해 있었다. 그리고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고 진군해도 실리나드까지 걸리는 시간은 2~3일. 다시 말해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하루 안에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후퇴해서 24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아니, 후퇴한다는 것도 말처럼 간단하지 않앗따. 애초에 하베스틴은 요새 앞까지만 진군하면 '지맥 폭파'를 100% 막아 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때문에 퇴각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전력으로 요새 공략을 하기 위해 병력을 전진 배치해 놓았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후퇴 명령을 내리면 진형이 완전히 무너져 자칫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많았다. -크라카, 크라카, 노혼! 아크라다 모자함! 하베스틴이 잠시 망설이는 사이에 요새에서 마족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쏟아져 나온 것은 크기가 10미터나 되는 헤비워커라는 거대 마족이었다. 마치 중장갑 보병처럼 두꺼운 갑옷을 입은 헤비워커가 철퇴를 휘둘렀다. "헉! 놈들을 막아라!" 선두에 있던 전사들이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리며 방어 진형을 갖추었다. 헤비워커는 덩치가 덩치이니만큼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사가 방어 태세로 대응하면 그럭저럭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맥 폭파' 의 효과가 적용되자 상황은 108도로 달라졌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헤비워커가 철퇴를 휘둘러 대자 전사들은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수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동시에 전사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방어력을 상회하는 공격을 받아 '가드 브레이크' 효과가 발동했습니다. 《'가드 브레이크'로 인해 방어력에 페널티가 적용되어 최대 1.5배의 추가 데미지가 적용됩니다. 또한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을 경우, 자동 해제되며 3초간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 방어력을 상회하는 공격이 가해졌을 때 발동하는 '가드 브레이크' 효과! 사실 '지맥 폭파' 가 발동했을 때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이 '가드 브레이크'였따. 보통 판금 갑옷을 입은 전사는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방어력이 적의 공격력보다 낮은 경우는 거의 없었따. 갑옷과 투구, 견갑, 장갑, 장화 등등 장착할 수 잇는 장비품의 종류에는 공격력보다 방어력을 올릴 수 잇는 게 몇 배나 많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사가 방어 태세를 취하면 공격력이나 사용할 수 잇는 스킬에 페널티가 적용되는 대신 방패의 방어력을 100% 적용‥‥‥ 원래 방패는 방패 방어에 성공했을 때만 방어력이 적용된다‥‥‥시킬 수 있었다. 방패는 모든 장비품 가운데 최고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장비품! 방패의 방어력이 100% 적용되면 전사는 문자 그대로 탱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치가 3배나 차이 나게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헤비워커는 그렇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갖춘 거대 마족. 거기에 '지맥 폭파'가 적용되자 헤비워커의 공격력은 전사의 방어력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그렇게 원정군의 방어라인이 허망하게 허물어지자 전황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바크람, 바크람, 코라이바타, 바크람! 헤비워커의 뒤를 따라 귀뚜라미를 닮은 탈론, 수소의 머리에 인간의 상체, 사자의 하반신을 달고 있는 헤메라드, 머리가 5개나 달리고 8개의 팔을 가진 수탄 등등‥‥‥ 요새 안의 모든 마족이 괴성을 질러 대며 뛰쳐 나왔다. 그리고 무너진 방어 진형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날뛰자 원정군 진영은 순식간에 쑥대밭처럼 변해 버렸다. 사방에서 구조 요청이 빗발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퇴각한다." 결국 하베스틴의 입에서 한숨처럼 퇴각 명령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부대장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무슨 말입니까? 퇴각이라니요?" "여기서 퇴각하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들보다 늦으면 이번 원정 내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뒤치다꺼리만 하게 될 겁니다!" "게다가‥‥‥잊으셨습니까? 브리스타니아보다 늦으면 사령관님은‥‥‥." "내가 경질되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네." 하베스틴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대답했따. "분명 이번에 퇴각하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을 따라잡을 수 없겠지. 하지만 실리나드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무리하게 전투를 계속하다가 전멸당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야 그렇지만‥‥‥." "자네들과 말다툼을 할 시간 따위는 없네. 보다시피 이미 전황은 완전히 기울었다. 이대로 버텨 봐야 희생만 커질 거네. 이미 작전은 실패. 그렇다면 지휘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서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네." 부대장들은 뭔가 할 말이 남은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이미 기울어진 전황을 뒤집을 수 없음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베스틴의 말처럼 더 피해가 가중되기 전에 퇴각하는게 최선책이었다. 이미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파괴했고 그립퍼도 방금 전에 자폭한 놈이 마지막이니 후임 사령관은 어렵지 않게 파비온 요새를 공략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때는 이미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실리나드 지역에 입성한 뒤가 되겠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사령관님부터 주둔지로 퇴각하십시오." "‥‥‥나는 마지막까지 이곳에 남겠네." "네?" "경들의 말처럼 여기서 퇴각하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에게 이번 원정의 주도권을 내주고 나는 사령관직에서 경질되겠지. 기사로서 왕국과 가문에 누를 끼치고 어찌 내 목숨을 챙기기에 급급하겠는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목숨을 보존하는게 아니라 슈덴베르크 왕국을 위해 한 사람이라도 많은 병사를 살리는 일이네." "사, 사령관님!" 그야말로 기사의 표본과 같은 하베스틴의 대답에 부대장들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다. 모처럼의 감동 모드였지만 뒤이은 라카드의 목소리에 박살 나 버렸다. "멍청이들아, 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콰콰콰쾅, 콰콰콰쾅! 라카드의 고함과 함께 우측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따.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던 하베스틴과 부대장들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헤비워커와 탈론으로 이루어진 마족 부대가 본진의 방어선을 부수며 밀려들고 있었다. 이번 전투로 파비온 요새 공략전을 마무리 지을 작정이었는데, 본진까지 너무 앞쪽에 배치시켜 놓았던 게 실수였다. 원정군이 밀리자 마족 부대가 순식간에 본진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헉, 놈들을 막아라!" "인접한 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라!" 부대장들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명령했다. 그러나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헤비워커의 철퇴에 방어선이 괴멸되어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탈론들이 진영으로 쏟아져 들어와 날뚜지ㅏ 병사들은 혼란에 휩싸여 버렸다. "크윽, 근위대! 사령관님을 보호하라!" 부대장들이 몰려드는 마족들을 막아 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근위대가 하베스틴을 겹겹이 에워싸고 물러났다. 그러나 본진을 벗어나기도 전에 한 무리의 탈론에게 따라 잡혀 버렸고, 공격을 주고받는 사이에 헤비워커가 가세했다. 헤비워커가 철퇴를 휘둘러 대자 '가드 브레이크'가 발동되어 근위대가 만든 방벽을 단숨에 허물어졌다. 근위대가 사방으로 날아가자 하베스틴이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검을 휘둘렀다. "마족이여 - !" 하베스틴의 장검이 여러 개로 갈라지며 탈론들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유저가 레벨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NPC 역시 지위나 배셩에 따라 능력치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리고 원정군 사령관인 하베스틴은 최상위 NPC.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정예 NPC에 버금가는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하베스틴의 검격이 적중하자 '지맥 폭파'의 영향으로 슈퍼 탈론이 돼 버린 놈들조차 치명상을 입고 휘청거렸다. 하베스틴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근위대와 함께 연속 공격을 펄쳐 수십 마리의 탈론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탈론 수십마리를 처리한 것으로는 전황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잠깐 사이에 근위대 십수 명이 쓰러지고, 하베스틴도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채 마족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하베스틴의 얼굴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비치지 않았다. "어차피 살아서 사령관직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 하베스틴은 근위대와 함께 필사의 각오로 검을 휘두르며 마족들에게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전사의 귀감과도 같은 근성!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휘둘러 대는 장검에게는 주인 같은 근성이 없었다. 치열한 접전을 펼친 지 10여 분‥‥‥. 카카카칵, 챙 -! 헤비워커의 철퇴와 마주친 장검이 부러져 나간 것이다. "이런 젠장, 암흑 돌진 - !" 어쩔 줄 몰라 하던 라카드가 눈을 질끈 감고 헤비워커에게 '암흑 돌진'을 날렸다. 아크에게 하베스틴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는 라카드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뭔가 '하는 척' 이라도 헤야 나중에 욕을 얻어먹지 않을 것 아닌가? "우왁!" 그러나 헤비워커와 충돌한 라카드는 되려 주먹만 한 혹을 달고 뒤로 튕겨졌다. '지맥 폭파' 탓에 유저들의 공격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데 라카드의 공격이 먹힐 리가 없는 것이다. 하베스틴이 휘청거리며 쓰러지자 기회를 노리던 탈론들이 개미 떼처럼 달려들었다. "크윽! 여기까지인가?" 하베스틴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다. "‥‥‥ 오오오! 와, 왔다!" 머리에 주먹만 한 혹을 매달고 비실대던 라카드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어디선가 전장을 뒤흐드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기 왜곡!" 동시에 하베스틴의 눈앞에서 놀라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전장 뒤쪽에서 검은 안개에 뒤덮인 하늘로 뭔가가 솟아올랏다. 검이나 창, 갑옷 따위의 장비품이었다. 그 장비품들은 허공에서 서로 얽히며 오망성을 만들었다. 그렇게 잠시, 허공에 떠 있던 장비품이 갑자기 일시에 폭발해 버렷다. 그러자 그 주변의 공간이 기괴하게 일그러지 시작했다. 그리고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하베스틴 주변에 있는 마족들을 몽땅 휘감아 하늘로 빨아 올려 버리는 게 아닌가? "이, 이게 무슨‥‥‥?"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하베스틴이 뒤로 물러났다. 그때 마족을 빨아들인 회오리 속에서 200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을 확인한 하베스틴의 얼굴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번졌다. "자, 자네들은?" "뒤로 물러나십시오. 도약, 다크 스트라이크!" 회오리 속에서 한 사내가 섬광처럼 튀어나왔다. 동시에 육중한 울림이 터지며 하베스틴의 뒤로 접근하던 헤비워커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사이에 사내가 헤비워커의 품으로 뛰어들며 검을 휘둘렀다. 마치 유성우가 쏟아지듯 수십 줄기의 검격이 헤비워커의 몸으로 난타했다. 그때마다 헤비워커는 휘청휘청 물러나더니 결국 제대로 반격조차 못 해 보고 무릎을 꿇고 말았따. "‥‥‥다행이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단숨에 헤비워커를 처리한 사내가 씨익 웃으며 몸을 돌렸다. 멍하니 바라보던 하베스틴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크!" 그렇다. 검은 기운에 휘감긴 검을 들고 있는 사내는 바로 아크였다. "살아 돌아왔군. 그런데 방금 전의 회오리는 뭔가? 대체 어떻게‥‥‥." "설명은 천천히 하죠." 아크가 하베스틴을 제지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보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지 않군요."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자네가 목숨을 걸고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했지만 결국 그립퍼의 '지맥 폭파'를 막지 못해 이렇게 되고 말았네. 현재로써는 브리스타니아 원정군보다 실리나드 지역에 먼저 입성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서 무사히 퇴각하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네." "퇴각요? 농담이시겠죠?" 아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하베스틴의 눈앞에 손바닥을 쫙 펼치며 말했다. "5분. 5분입니다. 장담하죠. 정확히 앞으로 5분만 버티면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을 겁니다." "5분? 그게 무슨 말인가? '지맥 폭파'의 효력이 사라지려면 아직‥‥‥."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믿고 5분만 퇴각을 늦춰 주십시오." 아크가 하베스틴의 말을 끊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베스틴은 그런 아크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근처의 부대장들에게 소리쳤다. "전장의 모든 부대에 긴급 신호를 보내라. 내용은 퇴각 명령의 취소. 현재 위치를 고수. 방어에 전념하며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해 드리죠." 하늘로 솟아오르는 신호탄을 확인한 아크가 씨익 웃으며 빙글 몸을 돌렸다. "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황은 알겠지?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러자 아크와 함께 회오리를 타고 나타난 사람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들은 바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에서 살아남은 70여 명의 특공대원들이었다. 그러나 회오리 속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이제애 마족들과 제대로 붙어 볼 수 있겠군." "신성한 대지를 더립힌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특공대원과 함께 나타난 130여 명의 사내들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마족들을 노려보았다. 이들은 하얀색 털에 검은 줄무늬가 새겨져 있는 수인족, 샹그리아의 수호자 백호족이었다. 아크는 주변을 둘러보고 특공대원과 백호족에게 지시했다. "특공대원은 본대 병력을 도와 무너진 방어선을 복구한다. 백호족은 특공대원과 2인 1조로 짝을 지어 움직여 주십시오." 이미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대강 맞춰 놨던 대로 특공대원과 백호족은 빠르게 2명씩 짝을 지어 2인 1조를 만들었다. 아크가 이런 식으로 조를 편성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파비온 협곡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백호족의 전튜력은 수인족 가운데 최강! 레벨 350에 달하는 특공대원들보다 강한 NPC들이었다. '하지만 집단 전투의 경험이 없어.' 백호족의 유일한 단점이 이것이었다. 호랑이의 힘을 타고 태어난 백호족은 의심할 바 없는 최강의 수인족 전사였다. 그러나 샹그리아에서 태어나 살아온 탓에 정작 전투 경험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파비온 협곡에서 적지 않은 백호족이 전사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따. 전황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적진에 뛰어들어 날뛰니 마족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백호족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집단 전투의 요령을 가르쳐야 한다.' 이게 아크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집단 전투의 요령은 유저에게 가르칠 때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NPC, 그것도 인간보다 이해력이 부족한 수인족에게 가르치려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식이 바로 특공대원과 2인 1조로 짝을 지어 놓는 것이다. 특공대원들은 수만의 원정군 중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가진 유저들, 굳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스스로 전황을 ㅎ파악하고 움직일 수 잇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특공대원과 짝지어 놓으면 굳이 전술을 가르치치 않아도 백호족의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잇으리라. 아크가 생각한 전술의 효과는 곧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쿠어어어어어! 콰콰콰쾅! 헤비워커가 철퇴를 휘두르자 '가르 브레이크'가 발동해 특공대원의 방어 태세가 붕괴되며 '스턴' 상태에 빠져 버렸다. 뒤이은 헤비워커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 "크아아아앙!" 그때 백호족 1마리가 특공대원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헤비워커에게 달려들었다. 헤비워커는 화들짝 놀라며 철퇴를 휘둘럿지만 백호족은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며 놈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헤비워커가 괴성을 질러 대며 몸을 흔들어 댔지만 한 번 박힌 송곳니는 빠지지 않았다. 그사이 '스턴'에서 벗어난 특공대원이 가세해 헤비워커를 쓰러뜨린 뒤에야 백호족이 놈의 목덜미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피에 젖은 입술을 핥아 대며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눈동자를 번들거렸다. 그때 특공대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가면 위험합니다. 지금은 일단 저곳의 방어진을 도와야 합니다." 특공대원의 말에 백호족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났다. 백호족은 특공대원의 부족한 공격력을, 특공대원은 백호족의 부족한 집단 전투 요령을 보조해 주는 것이다.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군.' 아크가 만족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크가 도착하기 전에 본진은 마족 부대에 포위되어 당장이라도 전멸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크가 '마기 왜곡'으로 이동하며 200여 마리의 마족과 위치를 바꿔버렸다. 전장을 뚫고 본진과 합류하는 동시에 마족의 숫자를 줄인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특공대원과 백호족을 2인 1조로 묶어 본진 병력에 가세시키자 혼란에 빠져 있던 본진의 방어선이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자, 어디 이제 시작해 볼까?' 아크가 고개를 돌려 뒤에 모여 있는 백호족을 바라보았다. 70여 마리의 백호족이 70여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전투에 가세했지만, 나머지 60여 마리의 백호족은 뒤에 남아 있었다. 중심에 모여 있는 10명의 예언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였다. 그렇다. 아크의 부대에는 예언자들이 동행하고 있었다. 전투 능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예언자들이 아크와 함께 전장까지 온 이유. 그것은 예언자들이 가마처럼 짊어지고 있는 커다란 상자 때문이었다. 그 낡은 목재 상자가 바로 수백 년 동안 샹그리아에 보관 되어 있던 창세의 궤! "레리어트 님!" 아크의 목소리에 레리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예언자들이 어깨에 짊어졌던 창세의 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창세의 궤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무릎을 꿇고 앉아 읊조리기 시작했다. "타샤, 나브란 헤이라드 나라드‥‥‥." "시나르도 마그란 하레나 보라드 바람‥‥‥." 예언자들이 주문을 외우자 창세의 궤에서 흐릿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빛은 검정과 흰색이 뒤섞인 듯한 탁한 빛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레리어트가 다가가 창세의 궤에 손을 올려놓자 돌연 탁했던 빛이 티 한 점 섞이지 않은 밝은 색으로 변하며 어두운 하늘 위로 빛기둥을 뿜어 올렸다. - 크락, 바그람, 바그람! 마족들 사이에서 괴성이 터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그때까지 마족들은 수십에서 수백 마리로 나뉘어 마구잡이로 원정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사실 마족 부대가 본진을 공격한 것도 처음부터 목표로 삼아서가 아니라, 마구잡이로 원정군을 공격하다가 충돌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창세의 궤에서 뿜어져 나온 빛기둥이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자 마족들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일대의 마족들이 모두 괴성을 질러 대며 빛기둥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강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 아크가 주변을 정리하고 창세의 궤를 가동시킨 것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금 부터 방어 체제로 전환한다! 특공대와 백호족은 방어에 전념하며 현재 위치를 사수하라!" 아크의 명령에 주변을 정히란 특공대원과 백호족이 목책 뒤로 물러나 방어 진형을 만들었다. 그러자 아크가 샴바라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뭐하냐? 자! 일할 시간이다, 샴바라." "뭐? 까불래? 내가 네 소환수냐? 좀 도와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부탁해도 들어줄까 말까인데‥‥‥." "너야말로 까불지 마. 이 몸은 '샴바라 1회 사용권'을 사용했다고. 좀 더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지." "무슨 말이야? 그건 이미‥‥‥." "난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을 도와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어."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아크가 '샴바라 1회 사용권'을 사용할 때 걸엇던 조건은 명확하게 뭘 해 달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두루뭉술하게 이번 전쟁을 도와 달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샴바라는 그 말을 스머글 패스로 잠입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하는 일을 도와 달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원래 두루뭉술한 한국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법! "난 분명히 이번 전쟁을 도와달라고 말했을 텐데?" "뭐? 그럼 너 설마?" "그래, 이번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내 말을 들어야 '샴바라 1회 사용권'이 소멸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넌 이미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대답했어." "너, 너 이 자식!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크의 뻔뻔한 대답에 샴바라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크는 안면에 철판을 쫙 깔고 음흉스럽게 중얼거렸다. "너와 나는 친구잖아. 이사벨에게 네가 친구와 한 약속도 안 지키는 놈이라는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 "‥‥‥망할 자식!" 샴바라는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다가 결국 단검을 빼 들고 전장으로 향했다. 분통이 터져도 이사벨에게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케케케, 순진한 녀셕. 이참에 아예 내 소환수로 만들어 주마.' 아크가 화풀이를 하듯 마족들을 두둘겨 대는 샴바라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샴바라는 어디까지나 보너스. 역시 아크의 정식 소환수는 따로 있었다. "라카드!" "예써, 주인!" "위성 감시 모드로 본진에 몰려드는 마족 부대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하라!" "알았다, 오버!" 아크의 명령에 라카드가 총알처럼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위성 모드로 전환해 전장의 상황을 수시로 업데이트시켜 주었다. "우측에서 탈론과 헤메라드, 헤비워커로 구성된 200마리의 마족 부대가 접근 중!" "좋아! 샴바라, 우측 방어선으로 이동해라. 마령 소환 퓨리탈, 갑주화!" 아크가 곧바로 목표 지점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딱딱딱, 딱딱딱딱! 아크의 뒤쪽 공간이 쩍 갈리지며 퓨리탈이 소환되었다. 갑주화 스킬과 함께 소환된 퓨리탈은 나타나자마자 뼈다귀가 분해되며 아크의 몸을 뒤덮었다. 먼저 갈비뼈가 좌우로 갈라지며 상체를 덮었고, 해골은 투구처럼 머리에 씌워졌다. 팔과 다리의 뼈는 기괴하게 비틀어지며 아크의 장갑이나 장화에 달라붙었다. 『갑주화를 사용했습니다. *공격력이 17~22만큼 상승했습니다. *방어력이 98만큼 상승했습니다. *생명력이 1,866만큼 상승했습니다. 《상승한 1,866의 생명력이 소모되면 갑주화는 자동 해체됩니다.》』 "섬아 -!" 변신(?)을 끝낸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아크가 한 줄기 벼락이 되어 지그재그로 탈론 무리를 휩쓸었다. 아크가 관통한 탈론 무리의 머리 위로 시커먼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왓다. '지맥 폭파'로 능력치가 50%나 올라갔음에도 탈론들의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장난이 아니군." 아크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검은 기운이 뭉클뭉클 흘러나오는 검을 바라보았다. 샹그리아에서 《전설의 증인》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였다. 공격력 55 ~ 65! 기본 공격력이 '약속의 검' 보다 15나 높은 전설의검. 마족에게 추가로 10%의 데미지를 주니 실제 적용되는 공격력은 20 이상 높았다. 거기에 퓨리탈과 합체해 또다시 공격력이 17 ~ 22나 상승했다. 결국 아크가 샹그리아에 가기 전보다 순수한 무기 공격력만 37 ~ 42 이상 올라간 것이다. 이 수치는 원래 아크의 공격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공격력이 2배 이상 올라갔다는 뜻! 그러나 그건 사작에 불과했다. 거기에 다시 마족에 대한 공격력을 상승시켜 주는 '마기 감응' 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마기 감응'의 레벨은 Ⅳ. 마족을 상대할 때 40%의 공격력 보너스가 적용된다. '게다가 나에게 '마족의 영향권'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아크가 '다크 블레이드'를 난사해 탈론들을 걸레로 만들어 놓으며 씨익 웃었다. 그렇다. 어둠 속성을 가진 아크에게 '마족의 영향권' 따위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건 '지맥 폭파'로 '마족의 영향권' 이 증폭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안개로 뒤덮이는 '마족의 영향권'의 특성 때문에 아크는 오히려 낮에도 50%의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는 것이다. 뭐, 그거야 '지맥 폭파' 로 마족들 역시 능려기가 50%가 올라가니 일단 쌤쌤. 퉁 친다고 치자. 그러나 아크는 어둠 속성 보너스 외에도 '마기 감응 Ⅳ'로 마족에 대한 공격력이 40%.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로 다시 10%의 공격력이 적용되니 결과적으로 마족보다 50%의 능력치가 보너스를 더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크소울은 그야말로 대對 마족 전투에 특화된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크 스트라이크!" 퍼퍼퍼펑, 퍼퍼퍼펑! 아크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탈론들이 펑펑 날아갔다. 탈론들이 방패나 무기로 막아도 소용없었다. '지맥 폭파'이후에 마족들이 원정군을 공격할 때 발동했던 '가드 브레이크'가 이번에는 아크에 의해 발동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크의 옆에는 아르바이트 소환수로 취직한 샴바라까지 딸려 있었다. "샴바라, 우측을 맡아라!"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폭우검!" 샴바라가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키자 수십 개의 칼날이 공간을 뒤덮었다. 그러자 아크에게 달려들던 헤비워커가 순식간에 고슴도치처럼 변해 휘청거렸다. 암살자인 샴바라 역시 어둠 속성을 가지고 있어 '마족의 영향권'에 페널티가 적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크처럼 어둠 속성 보너스가 적용되어 '지팩 폭파'로 능력치가 올라간 마족과 비슷한 수준의 보너스가 적용되었다. 비슷한 레벨의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와 다름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대라면 이미 샴바라의 적수가 아니었다. "순 ,개開, 열列, 섬剡!" 샴바라는 번뜩이는 몸놀림으로 전장을 가로지르며 단검을 휘둘렀다. 샴바라는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만날 때마다 아옹다옹해도 역시 전투에서 아크와의 조합은 환상 그 자체였다. 아크가 오른쪽으로 검을 휘두르면 샴바라는 자동적으로 왼쪽으로 회전하며 공격을 펼쳤다. 반대로 샴바라가 적에게 돌진하면 자동적으로 아크는 배후로 돌아 들어가 몰려드는 마족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그렇게 둘이 한 몸처럼 움직이자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원정군을 몰아붙이던 마족들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쓰러졌다. '지맥 폭파'의 영향으로 평범한 유저들은 1마리의 마족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단둘이서 수십 마리의 마족을 일방적으로 살육하는 모습에 유저들은 넋을 잃어버렸다. "저, 저건 말도 안 돼‥‥‥!" "겨우 2명이 한 부대보다 강하잖아?" "저게 소문으로만 듣던 다크울프와 푸른검‥‥‥." "끄래, 다크울프와 푸른검!" "불리한 전쟁에서 엄청난 대군을 막아 내고 스탄달을 떠올린 사람들이다! 다크울프와 푸른검이 있다면 이번 전투도 이길 수 있어! 스탄달과 같은 전설을 만드는 거야!" "우와아아아아!" 아크와 샴바라의 활약에 사기를 되찾은 원정군들이 함성을 지르며 마족을 몰아붙였다. 그러나 의욕만으로 전황을 뒤바꾸기에는 '지맥 폭파' 의 영향이 너무 강했다. 게다가 창세의 궤에서 뿜어져 올라온 빛기둥을 보고 주변의 마족이 몽땅 몰려드는 상황! 뭐, 덕분에 궁지에 몰려 있던 다른 부대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본진은 수천 마리의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집중 공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아크와 샴바라가 아무리 활약해도, 병사들의 사기가 아무리 올라가도 그런 마족을 모두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그렇게 몇 분. 결국 본진의 방어 라인 일부가 마족 부대에 의해 붕괴되어버렸다. 아크와 샴바라가 활약하는 장소의 반대편이었다. "젠장, 방어선이 무너지면 본진 전체가 위험해진다! 특공대와 백호족은 무너진 방어선으로 집결하라. 샴바라, 시간이 없다. 놈들을 한 곳으로 몰아서 빨리 해치워 버리자." "일일이 명헝하지 말라니까! 폭우검!" 샴바라가 툴툴대면서도 아크와 보조를 맞춰 마족을 한곳에 몰아넣었다. 그렇게 마족이 한 덩어리로 뭉쳤을 때였다. 아크가 눈동자를 빛내며 소리쳤다. "백호의 외침!" 크아아아앙! 동시에 아크의 머리 위로 거대한 호랑이가 떠오르며 포효를 터뜨렸다. 그러자 주위로 엄청난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마족들이 휘청거렸다. 이게 아크의 등에서 펄럭이는 호피 무늬의 망토, '백호족의 망토'에 달려 있는 특수 옵션 '백호의 외침' 효과였다. 『백호족의 망토(레어) 방어구 타입 : 망토 방어력: 35 내구력 : 60/60 무게 : 35 사용 제한 : 레벨 400 대륙 북부의 설산에서 살아가는 용맹한 수인족, 백호족의 가죽으로 만 들어진 망토입니다. 백호족은 수인족 가운데 그 용맹함을 인정 받아 오 래전 마반 영웅에게 예언자 일족을 수호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샹그리 아에서 살고 있는 종족입니다. 이 백호족의 망토에는 그런 백호족의 용맹함이 깃들어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는 힘을 복돋아 줄 것입니다. 《옵션 : 무력함, 사기 저하에 대한 면역. 용기+30%, 민첨+30》 《특수 옵션(백호의 외침) :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는 짐승입 니다. 그리고 백호는 그런 호랑이들의 왕으로 군림하는 존재로 태어날 때부터 상대를 제압하는 위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호의 외침'은 그 런 백호의 포효를 뿜어내 직경 100미터 이내의 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습니다. 대기 시간 : 1시간 마나 소모 : 200》 』 이 망토가 바로 《샹그리아로》퀘스트의 보상이었다. 누란 주민을 샹그리아까지 데려가자 백호족 장로가 건네 준 것이다. 사실 아크의 경우, 어차피 파비온 협곡을 빠져나와 샹그리아로 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때문에 《샹그리아로》퀘스트가 덤으로 해결된 셈이지만, 임무 자체는 상당히 난이도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 퀘스트의 난이도는 +A. 덕분에 퀘스트의 보상 역시 상당했다. 용기를 30%, 민첩을 30이나 상승시켜 주는 유니크 망토! 거기에 적을 공포 상태로 만드는 '백호의 외침' 스킬까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백호족의 망토'는 단순한 레어 망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때 아크가 백호족 장로에게 망토를 받아 들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세트 아이템 효과가 추가되었습니다. 현재 장착하고 있는 세트 아이템의 새로운 파츠를 입수했습니다. 세트 아이템은 특별한 장인들이 만든 명품이나, 고대의 영웅이 착용하던 한 벌의 장비품을 말합니다. 당연히 한 벌로 제작되었기에 장착한 아이템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만약 한 벌을 모두 갖추면 모든 봉인이 풀 려 다른 장비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장착한 세트 아이템 : 《수왕》 「너구리 투구」,「고양이 손」, 「인어족의 갑옷」,「늑대의 발」, 「백호족의 망토」 5종 세트를 갖춰 《수왕》세트에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야생의 능력 : 힘+20(+15), 민첩+20(+15), 체력+20(+15), 방어력 +40(+30)》 《수왕 세트 아이템 완성 보너스 스킬 【야생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 그렇다. 바로 세트 장비품의 완성! 그동안 아크는 수인족을 만나 퀘스트를 해결할 때마다 수왕 세트의 장비품을 보상으로 받았다. 그렇게 모은 수왕 세트 장비품이 4개. 수왕 세트의 완성까지 하나만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백호족의 망토'를 얻음으로써 드디어 수왕 세트가 완성된 것이다. 일단 세트 장비품이 완성되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보너스가 주어졌다. 최종적으로 올라간 능력치를 합산하면 힘 35, 민첩 35, 체력 35, 방어력 70 상승! 세트 장비품의 추가 보너스만으로 레벨 16 ~ 17이 올라간 것과 같은 효과가 적용된 것이다. '그동안 장비품을 바꾸지 않기를 잘했다!' 사실 그동안 아크는 몇 번이나 수왕 세트보다 좋은 성능의 장비품을 얻은 적이 있었지만 세트 효과가 아까워 빈번이 장비 교체를 포기했다. 그러나 점점 레벨이 올라가며 그것도 슬슬 한계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왕 세트를 완성시켜 추가되는 보너스를 확인해 보니 그동안의 고민이 단숨에 해결되었다. 그러나 수왕 세트 완성의 보너스는 단순히 추가 능력치만이 아니였다. "야생의 힘!" '백호의 외침'으로 마족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 아크가 다시 소리쳤다. 동시에 아크의 몸,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장비품에서 엄청난 광채가 뿜어져 나왓다. 다음 순간 갑옷과 투구, 장갑과 장화‥‥‥. 아크가 입고 있는 장비품에서 차례차례 수인족의 형상이 떠오리기 시작했다. 갑옷에서는 바다를 질주하는 인어족, 투구에서는 땅굴을 파는 너구리족, 장갑에서는 숲 속을 날아다니는 묘족, 장화에서는 평원을 가르지르는 늑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토가 펄럭이더니 설산의 정상에서 포효하는 백호족의 형상이 떠올랐다. 순간 설산을 뒤흔드는 강렬한 포효와 함께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세트 장비품 【수왕】의 옵션 스킬 '야생의 힘'이 발동했습니다. 수황 세트는 뉴 월드에 살아가는 수인족의 힘이 깃들어 잇는 장비품입 니다. 수왕은 각 장비품마다 수인족의 특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종족은 다르 지만 한 자연에서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수인족은 서로 불가분의 공생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 장비품을 여러 개 장비하면 서로의 힘에 감응해 보다 강한 힘을 얻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 비품이 갖춰지면 착용자는 잠재 능력을 폭발시키는 야생의 힘을 발휘 할 수 있습니다. 《야생의 힘 : 인간은 짐승과 달리 자신의 능력을 60%도 발휘 할 수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인간이 100%의 힘을 발휘할 수 잇는 것은 위기의 순간! '야생의 힘'은 착용자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그런 힘을 100% 각성시켜 10분 동안 사용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를 50% 상승시 킵니다. 단, 스킬사용 시 소모되는 마나는 100% 증가합니다. 대기 시 간 : 12시간》 *패시브 스킬은 제외. 』 수왕 세트를 모두 모아서 생긴 옵션 스킬 '야생의 힘'! 10분간 아크가 사용하는 모든 스킬의 효과를 50%나 상승 시키는 스킬이엇다. 공격용 스킬일 경우, 데미지가 50%나 추가된다는 뜻이다. 대신 마나는 2배나 소모되지만 단기간에 승부를 낼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리라. "라둔, 마기를 봉인한 검!" 쌕쌕, 쌕쌕쌕쌕! "블레이드 템프스트!" 아크는 라둔이 뱉어 낸 검을 쥐고 단숨에 폭발시켰다. 순간 마기가 봉인된 저주받은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폭풍을 일으켰다. 각종 보너스를 받아 전투력이 상승한 아크. 마기를 봉인해 공격이 올라간 저주받은 검. 그리고 '야생의 힘'으로 스킬 효과를 50% 상승시켜 발동시킨 '블레이드 템페스트'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공격력도 공격력이지만 일단 검 파편의 숫자가 달라졌다. 보통 '블레이드 템페스트'를 발동시키면 검이 수백 조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야생의 힘'은 모든 스킬 효과를 50%나 상승시켜 주는 스킬. '야상의 힘'이 적용되지 검 한 자루가 1,000여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검 파편은 서로 격력하게 몸을 충돌해 스파크를 일으키며 공간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그 폭풍에 휘말린 마족들의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빨려 나갔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마족들은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각종 상태 이상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래도 그런 마족들은 그나마 나았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마족은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지금이다. 놈들을 단숨에 정리하고 반대편 방어선에 집중한다!" "우와아아아아!" 넋 놓고 지켜 보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달려들었다. 이미 '블레이드 템페스트'의 엄청난 위력에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마족들은 뒤이은 병사들의 돌격에 제대로 대항조차 못 하고 전멸되었다. 그렇게 마족을 정리한 아크는 샴바라와 함께 곧바로 무너진 방어선을 복구하기 위해 뛰어갔다. 그러나 아크와 샴바라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다. 창세의 궤에서 뻗어 나온 빛기둘을 보고 몰려드는 마족은 이미 본진의 4 ~ 5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모든 부대를 본진으로 집결시켜 방어선을 구축하라!" 하베스틴이 원정군을 본진으로 불러 모았지만, 본진은 이미 마족에게 포위된 상태. 뒤늦게 각 부대가 집결해도 포위한 마족의 외곽을 공격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오히려 원정군이 외각에서 공격하자 마족들은 등이 떠밀리는 형국이 되어 더욱 격렬하게 본진을 공격했다. 아크와 샴바라도 계속 불어나는 마족을 상대하기 벅차질 때였다. 번쩍, 콰콰콰콰, 콰콰콰콰! 돌연 본진의 중심에서 엄청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됐다!" 마족의 피로 샤워를 하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서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이 땅에 강림하소서, 만물의 위대한 어머니시여!" 창세의 궤를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던 예언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순간 창세의 궤가 덜컥 열리더니 순백의 빛 무리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회오리처럼 회전하더니 레리어트의 몸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레리어트의 몸이 빛에 휘감겨 둥실 떠오르더니 수백, 수천 배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더오른 영상은 레이어트가 아니었다. 흑요석을 녹여 실로 엮은 듯한 검은 머리칼, 맑고 투명한 눈동자, 설원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아니, 여신의 모습이었다. "저, 저건‥‥‥?" 여선이 나타나자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올려다보았다. 심지어 마족들조차 홇린 듯이 시선을 못 박아 둘 정도였다. 고오오오오 - ! 수만의 눈동자에 맺힌 여신의 등 뒤로 서서히 하햘게 빛나는 은빛 날개가 펄쳐졌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날개‥‥‥. 끝도 없이 펼져지던 날개가 문득 펄럭이는 것처럼 흔들리며 검은 안개에 뒤덮인 대지를 쓸어안았다. 그러자 날개에 뒤덮인 공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고 부드러운 빛이엇지만, 점차 범위를 넓혀 가더니 어느 순간, 마치 빅뱅이 일어나느 것처럼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며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갔다. 쿠콰콰콰콰, 쿠콰콰콰콰! 빛이 닿자 검은 안개가 격렬한 폭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헉! 포 , 폭발? 피해라!"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자 원정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공간 전체가 폭발한다. 도망가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결국 원정군은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버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원정군들은 모두 당혹성을 터뜨려야 했다. 폭발에 휘말렸음에도 어떤 충격도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 오히려 폭발에 휘말리자 각종 상태이상이 회복되며 기력이 상승했다. "그동안 몸이 짓누르고 잇던 무거운 기운이 사라진다." "그뿐이 아니야.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이 기운은‥‥‥." "뭐가 뭔지 모르겟지만 용기가 솟구친다!" 빛에 휩싸인 원정군은 웅성거렸다. - 크아아아악! 그러나 같은 폭발에 휘말려도 마족들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마족이 폭발에 휘말리자 살점이 타들어 가며 생명력이 뭉텅뭉텅 빨려 나갔다.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다음이었다. 『창세의 궤가 발동됐습니다! 창세의 궤에는 태초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의 신체神體 의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빛도 어둠도 창조주에게는 창조물의 일부, 이 창조주의 힘은 빛과 어둠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 조주의 신체에 담긴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의 축볼을 받은 세인트 나이트와 신의 저주를 받은 파멸의 기사뿐입니다. 세인트 나이트가 불러내면 창조주의 힘은 빛(생츄어리 : 성)이, 파멸의 기사 가 불러내면 어둠(생츄어리 : 마)이 되는 것입니다. *세인트 나이트의 특수 능력으로 '생츄어리 : 성' 이 발동 됐습니다. 《주위 10킬로미터 이내의 '마족의 영향권'에 관련된 모든 효과가 완 벽하게 소멸합니다. 창세의 궤로 축복받은 대지에서는 '마족의 영향 권'과 '검은 오벨리스크'는 향후 1년간 재생하지 못합니다. 또한 빛이 '마족의 영향권'을 연소시키며 생겨난 빛에 닿은 마족은 1~2,000의 데미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군의 경우, 생명력이 1~1,000 회복 되며 모든 상태 이상이 해제되고 사기가 50%상승합니다.》 』 '이게 창세의 궤의 효과인가'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해졌다. 사실 아크 역시 창세의 궤가 발동했을 때의 효과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창세의 궤를 보관하고 있던 예언자 일족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창세의 궤가 빛의 군대에 넘어가면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강대한 힘을 얻게 될 거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창세의 궤가 전황을 바꾸리라고 기대는 했지만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하베스틴에게 자신만만하게 이길 수 있다고 말한 이유는, 설사 가망이 없다고 해도 원정군을 후퇴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원정군이 물러나면 하베스틴은 확실하게 모가지가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하베스틴 덕분에 낙하산을 탔던 아크 역시 군사의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고, 지저 세계와 스탄달에 쌓아 둔 재고품과 함께 파산하는 것이다.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걸어 보는 수밖에 없어!' 이게 아크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창세의 궤 효과는 아크의 상상을 초월했다. 주위 10킬로미터 내의 검은 안개를 몽땅 날려 버린것이다. '마족의 영향권'을 만들어 내던 검은 안개가 사라지자 마기를 증폭시키는 '지맥 폭파' 효과도 자동적으로 사라졌다. 마족에게 주어지던 모든 보너스가 사라져 버렸다! 마족에게 적용되던 50%의 능력치가 소멸하고 아군은 잃었던 50%의 능력치를 회복한 것이다. 게다가 폭발에 휘말린 마족은 데미지를 입고, 아군은 되려 생명력 회복에 상태 이상 해제, 덤으로 공격력이나 방어력에 두루 영향을 미치는 사기까지 50%나 올라갔다. 단숨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저, 저게 대체‥‥‥." 하베스틴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 반격해야 할 때라는 겁니다." 아크의 말에 하베스틴이 퍼뜩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너덜너덜한 몰골로 각종 상태이상까지 걸려 다 죽어 가던 원정군이 사기충천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반면 '마족의 영향권' 과 '지맥 폭파' 라는 어금니를 잃은 마족들은 겁을 집어 목고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이제 승기가 어디로 기울었는지는‥‥‥. "보았는가? 신의 뜻이 우리에게 있다. 이제 우리가 신의 의지를 받아 정의의 힘을 보여 줄 때다. 마족을 무찔러라!" "와아아아아!" 원정군이 함성을 터뜨리며 노도처럼 마족들을 몰아쳤다. 마족들이 창세의 궤에서 뿜어진 빛기둥을 보고 본진으로만 몰려들어 그동안 주변에 흩러져 있던 원정군은 거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하베스틴의 명령에 본진에 몰려있는 마족들을 외곽에서 포위하고 있던 상황. 뭐든 상대적인 법이다. 방금 전까지 적용되던 마족의 보너스와 원정군의 페널티가 사라지자, 원정군은 마족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적이 약하게 느껴지면 사기는 더욱 오르는 법. 반대로 마족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덕분에 원정군이 함성을 지르며 밀어붙이자 마족들은 단숨에 허물어졌다. 열흘이 넘도록 고전하던 파비온 요새를 함락한 것은 불과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ACT 성혈 확보 전쟁 kianms10310@naver.com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자네와 특공대원들의 공이네."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고 전후 처리를 마친 직후. 하베스틴이 와락 아크를 껴안으며 말했다. 그러자 두두둥, 소리와 함께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서브퀘스트<검은 오벨리스크의 솦 폭파 작전>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오랫동안 파비온 요새에 막혀 시니어스 공국으로 진입을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특공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해 파비온 요새를 함락,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시니어스 공국으로의 진입로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보상: 공적+3000> +지휘관 추가 보상: 공적+1000 "오오오 공적 3000!" 퀘스트가 완료되자 특공대원들이 눈을 반짝였다. 전장에서 마족을 쓰러뜨리고 받을 수 있는 공적이 불과 5~15수준 그런데 아크와 특공대원들은 퀘스트 하나만으로 그 몇백 배에 달하는 공적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이게 세상의 이치다. 보병이 수십 명의 적군을 죽여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적진에 침투한 특공대가 적의 사령부를 폭파시키면 전쟁의 판도는 단숨에 바뀌는 법. 똑같이 목숨을 걸어도 특공대원의 공적이 수백 배나 높은 게 당연했다. 새삼스럽지만 그들이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을 폭파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창세의 궤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파비온 요새를 함락 시키지는 못했으리라. 물론 아크가<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창세의 궤를 찾는 것조차 불가능 했겠지만. 어쨌든 죽자 살자 굴러 대며 마조과 싸운 유저들고 현재 공적치는 2500~3000수준. 특공대원은 단숨에 그들보다 많은 공적치를 모은 것이다. 그리고 특공대를 이끌었던 아크는 지휘관 추가 보상으로 1000의 공적을 더 받았다. 일인 보급 부대로 활약하며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공적까지 합하면 6000대게 달하는 공적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공적을 확인하자 저절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공적을 많이 쌓으면 당연히 <성전을 위한 원정군>퀘스트의 보상이 달라진다. 그러나 이번 전투의 보상은 단순히 게임 속에서의 보상만이 아니었다. 글로벌엑서스가 이번 마족 전쟁- 하명우가 TV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이번 전쟁의 명칭-을 이벤트화시켜 막대한 상금을 걸어 놓은 것이다. 그 상금 총액이 무려 100억 규모! 구중 슈덴베르크나 브리스티아 원정군에서 공적 1위가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상금이 3억이었다. 그러나 원정군에 참가한 유저는 3만, 다시 말해 1위가 되려면 3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의 복권에 당첨괼 확률이라 아크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 단계라고는 하나 막상 1위가- 아직은 짐작이지만 -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잘만 하면....'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이벤트에는 공적 1위보다 더 높은 상금이 걸린 미션도 있었다. 공저치와 상관없이 뉴 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을 찾는 일. 그것에 걸려 있는 상금이 무려 10억이다. 그리고 사실 아크의 목표는 그쪽이었다. '다른 평범함 유저들은 그게 뭔지 아직 짐작도 못 하고 있다. 뭐 잘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그들보다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그렇다면 한번 노려 볼 만해.' 그렇다.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어떤 것! 아크는 이미 글로벌액서스에서 그것이 뭘 지칭하는 단어인지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호명환이 말했던 '코드 블랙 아이템'이다. 그리고 아크와 얽혀 있는 아란이나 안델 역시 이번 사건의 배후 가운데 하나이니 놈들을 조사하다 보면 '코드 블랙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을 기회도 다른 유저보다는 많으리라. 때문에 아크는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공적 순위는 포기하고 그쪽으로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렇게 되면 애기가 달라지지. 공적 1위 상금과 '코드 블랙 아이템'을 찾아 받는 상금은 별개다. 그렇다면 중복 수령도 가능하단 뜻이겠지? 결국 공적 순위 상금 3억과 대상 상금 10억. 이번 이벤트에서 13억을 벌 수 있다는 말이야!' 13억! 일개 시민에 불과한 아크에게는 그야말로 상상하기도 힘든 돈이었다. 그런데 그 상상하기 힘든 돈이 현실감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가슴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물론 현재 아크의 상황이라면 공적 1위도, 이벤트 대상도 한 번쯤은 노려 볼 만 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노려 볼' 만한 수준이었다. 실현 가능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마족 전쟁은 이제 시작 단계.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허파에 바람이 들어 날뛰다가는 어디서 객사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지금 아크는 뜬구름 잡는 듯한 이벤트보다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을 진행 중이지 않은가? '복권이 맞기를 기대하면서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지' 13억의 망상에서 탈출한 아크는 잠시 주변의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일단 <검은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 퀘스트를 진행하며<전설의 증인>과 <상그리아로> 퀘스트를 모두 해결했다. 덕분에 4000에 달하는 공적치와 레전드 검 '샤이어닝 오브 다크니스' 그리고 마지막 세트 장비품인 '백호족의 망토'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일타 삼피! 그러나 무엇보다 큰 수확은 바로........ "이게 제대로 설명 좀 해 주게. 대채 나제와 함께 나타난 수인족들과 후드를 눌러쓴 사람들은 누군가? 아니. 그보다 그들이 가져온 상자와 레리어트 경이 일으킨 기적 같은 힘은?" 그때 하베스틴이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원정군은 위협하던 검은 안개를 단숨에 날려 버려 전황을 바꿔 놓은 기적의 힘! 원정군의 사령관으로서 하베스틴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게 당연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라 아크는 거침없이 설명했다. "그 상자는 창조주라고 불리던 고대신의 신체가 봉인되어 창세의 궤라고 불립니다. 그 궤는 오랜전에 7인의 영웅이 보관하고 있었지만, 암흑 세기 말기에 예언자 일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맡겨졌죠, 사실 브리스티니아 국경보다 이곳에 더 많은 마족이 몰려 있던 것은 놈들이 창세의 궤를 강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창세의 궤에 담겨 있는 파마의 힘을 봉인하기 위해서인가?" "그 이유도 있지만......" 아크는 잠시 말을 끊고 샹그리아에서 들었던 예언자일족의 설명을 떠올렸다. 창세의 궤로 발동시킨 "생츄어리'의 위력은 분명히 마족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리라. 그러나 마족들이 창세의 궤를 강탈하려던 이유는 단순히 위협이 돼서만은 아니었다. "창조주에게는 빛도 어둠도 자신이 만들어 낸 피조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선과 악 역시 마찬가지. 유일한 존재인 창조우에게 인간들이 생각해 낸 개념은 아무러 의미가 없죠, 축복을 받은 세인트 나이트와 저주를 받은 파멸의 기사, 양쪽이 창세의 궤를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리고 창세의 궤가 세인트 나이트의 손에 들어가면 어둠을 멸하는 힘을 발휘하지만, 파멸의 기사의 손에 들어가면 반대로 빛을 말살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창세의 궤의 힘은 이미 확인한 대로였다. "만약 창세의 궤가 마족의 손에 들어갔다면..." 하베스틴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창세의 궤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레리어트 경뿐이라는 말인가?" "네, 적어도 우리 쪽에서는 레리어트 님뿐입니다." 아크가 레리어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사실 많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레리어트는 샹기르아에 가기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몸 주변으로 은은한 휘광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레리어트의 직업과 관련이 있었다. 아크가 샹그리아에 도착했을 당시 레리어트는 대신전에서 창세의 궤를 찾는 퀘스트를 받은 상태였다, 그 퀘스트가 바로 이노센스 나이트의 전직 퀘스트였던 것이다. 그리고 창세의 궤를 찾은 레리어트는 곧바로 '세인트 나이트'로 전직하게 되었다, 레리어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휘광은 바로 그 '세인트 나이트'의 패시브 스킬 마족의 공격에 대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40% 올려주는 '파마의 광휘'였다. 새삽스럽지만 7인의 영웅의 직업은 최종적으로 마족을 상대하는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이미 샹그리아에서 밝혀진 것처럼 애초에 영웅 직업이란 7인의 영웅이 미래에 부활한 어둠의 제왕에게 맞설 힘을 이방인에게 전해 주기 위해 안배해 둔 것이기 때문이리라.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눈부시군." 새삼 빛을 뿜어내는 레리어트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크의 대답처럼 창세의 궤에서 창조주의 힘을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은 세인트 나이트로 전직한 레리어트와 파멸의 기사-아크 아직 아란이 파멸의 기사라는 사실을 몰랐다-뿐이었다. 그리고 창세의 궤가 원정군의 손에 들어온 이상 레리어트가 유일한 소유주나 다름없었다. .........아크가 아쉬워하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사실 아크가 창세의 궤에 대해 들었을 때는 나름대로 꽤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아크가 이번 임무를 죽을 둥 살 둥 수행한 이유는, 바로 슈덴베르크 원정군을 브리스티니아 원정군보다 먼저 실리나드 지역에 입성시키기 위해서였다. 만약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브리스타니아보다 늦게 도착하면 하베스틴은 사령관직에서 경질, 덤으로 아크까지 군상의 직위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세의 궤를 손에 넣은 덕분에 그런 걱정이 일거 해소되었다. 르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실리나드 지역에 도착할 예상 시간은 대략 3~4일 반면 이미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킨 슈덴베르크는 앞으로2~3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현재 시니어스 공국은 도처에 검은 오벨리스크가 박혀 마족이 들끓었다. 어디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으니 파비온 요새를 넘어섰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같은 조건이라면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늦을 이유가 없었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은 8만이나 되지만 슈덴베르크 원정군에게는 부족한 병력을 메우고도 남을 신기가 있는 것이다. 바로 아크가 찾아온 창세의 궤! 아니, 사실 이제 누가 먼저 실리나드 지역에 도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원정군의 최종 목표는 마족을 대륙에서 몰아내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마족의 영향권'과 '검은 오벨리스크'를 완벽하게 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족을 전멸시켜도 '마족의 영향권'과 '검은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다면 마족이 언제 부활할지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브리스티니와 슈덴벨트 왕국의 마법사, 성직자들이 수많은 자료를 조사해도 '마족의 영향권'과 '검은 오벨리스크'를 완벽하게 정화시킬 수 있는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창세의 궤는 이제 마족 전쟁을 해결한 유일무이한 열쇠가 된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크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아왔다. '만약 저걸 내가 다룰 수 있다면.....' 원정군을 보낸 브리스타니와 슈덴베르크는 물론, 당사자인 시니어스 공국의 국와과 교섭하기에 따라서 상당한 돈을 긁어낼 수 있으리라. 그뿐인가? 창세의 궤를 발동시키면 불리할 전황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느니 공적을 얻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 머리를 잘마 굴리면 이벤트 상금 13억도 손에 쥘 수 있으리라! '하지만 창세의 궤는 레리어트 님나 발동시킬 수 있으니.....' 창세의 궤를 가지고 장사를 해 먹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아크가 누구인가? 앉은자리에서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악덕 상인의 표상! 모처럼 손에 넣은 보물로 돈벌이를 할 기회를 순순히 포기할 아크가 아니었다. 그리고 뜻밖에 방향에서 창세의 궤로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크에게 그 힌트를 제공한 사라은 바로 창세의 궤를 보관하던 예언자 일족이었다. '후후후 이런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지' 아크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하고 있을 때 다시 하베스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어쩃든 실로 큰일을 해 주었네 자네가 창세의 궤를 구해 온 덕분에 이제 대륙에 퍼져 나가는 검은 안개와 검은 오벨리스크를 완전히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생겼네. 이는 대륙을 구할 방법을 찾아낸다는 뜻이야." 하베스틴이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거듭 아크의 공적을 칭찬했다. 그러나 아크는 모처럼 들뜬 하베스틴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어야 했다. "죄송하지만 당장은 창세의 궤를 사용할 수없습니다. ",,,,,,,,,,,사용할 수 없다니? 무슨 말인가?" "실은 창세의 궤로 '생츄리어'를 발동시키려면 상당한 양의 성혈이 필요합니다. "성혈?" "이겁니다." 아크가 가방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작은 돌을 꺼내 보여 주었다. 성혈(특수) 깊은 던전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신비한 돌입니다. 이 돌이 성혈이라고 불리던 이유는 고대 신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 신화에 의하면 태초에 창조주는 자신의 육체를 떼어 세계를 만들었ㄷ고 전해집니다. 창조주의 살점은 대지가 되었고, 뼈는 각종 광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피와 눈물로 바다와 호수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육체를 분리할 때몇몇 피방울은 살점에 섞여 땅속에 묻혔고,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굳어져 결정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성혈은 창조주의 순수한 핏방울을 굳어진 결정이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신체와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고, 실제로는어떤 마력이나 용해제에도 반응하지 않는 평범한 돌에 불과합니다. "창세의 궤를 발동시키는 데 이돌이 필요하다고?" 하베스틴이 유심히 성혈을 살펴보며 물었다. "네 들어 보신 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성혈은 창조주의 핏방울이 굳어져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런 전설이라면 들어 본 적이 있네."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보급 장교인 나딘이었다. 역시 갖가지 보급품을 취급하다 보니 물건에 얽힌 전설에 해박했다. "하지만 그건 몇몇 장사치들이 성혈을 팔아먹기 휘애 만들어 낸 소문 아닌가?" "그저 단순한 소문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성혈이 정말 창조주의 핏방울이라는 말인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지만....이미 말씁드렸다시피 창세의 궤는 창조주의 신체 일부가 담겨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 창조주의 힘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이 성혈이 필요합니다. 성혈이 창조주의 핏방울이라는 전ㅅㄹ이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겠죠." "성혈에 얽힌 전설이 사실인지 아니지 중요하지 않네." 그때 하베스틴이 아크를 발아보며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창세의 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성혈이 필요하다는 점이겠지." " 네 그런데 문제는 이 성혈이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겁니다." 아크가 짐짓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창세의 궤를 한 번 발동시키는 데 소모되는 성혈은 100개!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면 성혈이 얼마나 필요하게 될지 장잠할 수 없다. 그러나 아크의 말처럼 성혈을 확보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템 정보창에서 나왔듯이 성혈은 그럴싸한 전설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평범한 돌에 불과했다. 마법 재료로도 사용할 수 없고, 보석으로도 쓸 수 없는 평범한 돌, 당영히 상점의 npc들이 취급하는 품목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성혈을 구입할 유일한 방법은 유저들에게 사들이는 것뿐이라는 말이다. 아크가 성혈을 구하기 힘들다고 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현재 시니어스 공국을 뒤덮은 검은 안개를 완벽하게 정화하려면 창세의 궤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성혈의 안정적인 보급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에게서밖에 구입할 수 없다면 안정적인 보급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해결 방법이 없겠는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문제는 돈입니다." "돈?" "네, 말씀드렸다시피 성혈은 꽤나 드믈게 발련되는 돌입니다. 아직 성혈의 쓰임새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호기심이 많은 이방인들이 헐값에 팔아 주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가격만 잘 쳐준다면 팔지 않을 수 없겠죠. 또한 이런 돌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각지로 사을 보내 사들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필요한 인건비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렇군 무슨말인지 알겠네." 하베스틴이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창세의 궤는 마족 전쟁을 해결할 열쇠난 다름없네. 돈니 얼마가 들든 성혈을 확보해야먄 해네, 그 문제는 자네에게 일임할 테니 모든 노력을 기울여 주게." '성공이다!' 하베스틴의 말에 아크가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창세의 궤를 이용한 돈을 벌 방법을 궁리하던 아크가 찾아낸 게 이것이었다. 성혈을 구하기 힘들다는 아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쨋든 성혈도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 드물게 나온다고 해도 뉴 월드를 즐기는 유저가 수백만이다. 작정하고 나서면 어떻게든 구할 수있으리라. 그럼에도 아크가 엄살을 떨어 댄 이유는 바로 성혈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현재 아크가 원정군에 남품하는 물건은 모두 평균 시세의 70% 가격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크가 생산까지 관여한 물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방인을 통해 매입한 물건을 70%로 남품한다면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처음 아크가 군수물자 남품 계약을 맺을 때 이런 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사령관과 보급 장교가 인정한 예외 품목은 구입 가격에 10수수료를 붙여 매입한다. 다시말해 예외 품목으로 인정되면 얼마의 매입하든 아크는 10%에 해당하는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성혈은 예외 품목에 해당하는 아이템이었다. 결국 얼마에 구입하든 아크는 10%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아크가 엄살으 떨어 댄 이유는 바로 그 이상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즉, 유저들을 상대로 성혈을 안정적으로 보급하려면 그만한 인력을 동원해야 하니 그만큼의 인건비를 추가로 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창세의 궤르 사용할 수밖에 없는 슈덴베르크는 얼마가 들든 성혈을 구입할 수밖에 없으리라. '잘만 하면 인건비로 매입 가격에서 20%이상의 수수료를 받아 낼 수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 성혈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소모품이다. 일단 그렇게 가격을 부풀려 놓으면 떨어질 이윤은 수천수만 골드가 될 거야.'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더욱 엄살을 떨어 댔다. "글쎄요 사실 성혈을 구하는 문제는 돈만이 아니라...." 하지만 창세의 궤의 중요성은 저도 알고 있으니 제 길드를 모두 동원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확보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원정군에서 성혈의 가격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까도 말씀그렸다시피 그만한 인원을 동원하면 계약서대로 10%의 수수료만으로는 단가가 맞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수지 타산을 맞추려면 제가 따로 이윤을 챙기지 않아도 20% 이상의 수수료를 받아야......." 아크가 본격적으로 흥정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잠깐 기다리게." 그때 유심히 아크를 바라보던 니딘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크 경 정말 성혈을 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오?" "무슨 말씀이신지?" "나 역시 성혈이 굉장히 드문 광석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소, 하지만 자네의 말처럼 그렇게 까지 구하기 힘든 물건이지는 잘 모르겠군, 하물며 구해 보지도 않고 미리 구하기 힘들다며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수수료를 올리려는 것은 보급장교로서 납득할 수 없소. 아니, 그 이전에 원정군의 전속 군상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군." '저 자식이 왜 다돼가는 밥에 콧물을 뿌려 대고 난리야?' 나딘의 태클에 아크는 울컥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나 나딘은 아크의 반응 따위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사령관님 굳이 제가 말하지 않아도 현재 원정군에게 창세의 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분명 창세의 궤를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성혈이 들어가는 돈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성혈의 보급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부분에는 아무런 이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이오?" "문제는 군상의 자질입니다." "군상의 자잘?" "네 군상은 전쟁을 치르는 병사들의 보급품을 지원하는 직책입니다. 전쟁이 필요한 보급품이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아무리 구하기 힘든 물건이라도 구해야만 비로소 군장으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방금 점에 아크경은 스스로 성혈을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군상의 자질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건.........." 애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은 아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딘이 먼저 선수를 쳤다. "성혈 보급은 원정군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만의 하나라도 필요한 때 성혈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원정군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중대한 문제를 보급에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군상에게 무턱대고 일임해 놓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흠.........." 하베스틴이 신중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확실히 나딘의 말은 일리가있었다. 앞으로 하베스틴은 창세의 궤를 중심으로 원정을 이끌어 갈 생각이었다. 당연한 전략이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성혈의 공급에 차질이 생긴면 자칫 원정군 전체가 위험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원정군의 군상은 아크 경이네.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성혈은 단순한 보급품이 아닙니다. 이번 원저으이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러니 이 문제만큼은 보다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상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상인?" "네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입니다." '저 자식........' 아크는 그제야 나딘이 딴지를 걸어 대는 이유를 알아챘다. 원정군 보급 장교인 나딘은 사르킨 공장이 파벌에 속해 있는 귀족이었다. 그리고 사르킨 공작은 원정군이 조직될 때부터 이미 상인 길드 셀리브리드의 지점 상인에게 군상의 권리를 넘겨주기로 모종의 협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하베스틴이 원정군 사령관이 돼 버린 탓게 닭 쫓던 개 꼴이 돼 버린 것이다. 나딘이 처음부터 아크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건 그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침 아크가 성혈 구입 문제로 앓는 소리를 해대자 기회다 싶어 걸고 넘어진 것이다. 그리고 성혈 남품 건이라도 상인 길드 셀리브리드 지점에 넘겨주고 사르킨 공작의 면목을 세우려는 위도이리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상인 길드는 전 대륙에 조직망을 가지고 있는 상단 입니다. 그리고 셀리브리드 지점은 상인길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선다면 아크 경이 힘들어한느 성혈도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남품해 줄 수 있을 겁니다. 나딘은 처음부터 아크를 물 먹일 작정을 한 듯이 거침없이 말했다. 그러자 하베스틴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창세의 궤를 찾아온 건 다름 아닌 아크 경이오." "물론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검음 오벨리스크의 숲 폭파 작전>까지 훌륭하게 해결한느 업적을 세웠습니다, 이는 틀림 없이 칭송할 만한 공적, 저 역시 그 점은 인정하고 짐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나딘이 잠시 한숨을 가다듬은 후 아크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사로서의 공적, 군상으로서의 역략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현재 원정군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성혈을 보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군상으로서의 역량 부족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지 않습니까?" "성혈을 공급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렵다고 했었지." 나딘이 입 끝을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이었다면 그런 말도 하지 않았을 거네." ........할 말이 없다." 나딘이 이렇게 나오자 하베스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다른 문제라면 어떻게든 아크의 편을 들었지만 나딘의 말처럼 성혈 공급은 이번 원정의 성패를 결정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슈덴베르크 원정둔의 사령관으로서 사사로이 감정에 치우쳐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더라도 나딘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 이었다. "자네는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이라면 성혈 공급을 안정적으로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확인된 사실은 아니네, 또한 아크경이 힘들겠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확인 된 사실은 아니지. 양측 모두 해 보지도 않은 가지고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딘의 눈동자가 번뜩인 건 그때였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제안했다. "그럼 공정하게 경합을 치러 보면 어떻겠습니까?" "경합? 무슨 경합을 말이오?" "현재 관건은 어느 쪽이 성혈을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 역량을 알하보기 가장 쉬운 방법은 직접 해보는 거겠죠." 나딘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원정군이 실리나드 지역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사흘입니다. 그때 까지 아크 경은 아크 경대로, 셀리브리드 지점대로 성혈을 구하는 겁니다. 목표는 1000개 원정군이 사흘 뒤 실리나드에 도착했을 때 1000개에 더 근접한 성혈을 구해오는 족에게 성혈 보급을 위임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니 아예 군산의 권리를 몽땅 위임하는 게 좋겠군요." "무슴 그런.........!" 아크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버러떡 일어났다. 그러자 니딘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비아냥거렸다. "왜 그러나? 자네에게 불리한 조건은 아닐 텐데? 자네는 자네가 부리는 상당원들에게 바로 지시를 하면 되지만 셀리브리드 지점은 내 연락을 받은 뒤에야 움직이겠지 그런데도 자신이 없다는 건가?" "나딘 경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오 전쟁 중에 군상의 권리를 두고 경합이라니?" "전쟁 중이기 때문입니다. 사령관님." 나딘이 송곳처럼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만 병사의 목숨 나아가 대륙의 운명이 걸려 있는 전쟁이기 때문에 작은 일이라도 보다 역량이 있는 사람에게 맡겨져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일단 일을 맡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완수해 내야 하는 게 군에 속한 자의 의무입니다, 솔직히 성혈 공급에 자신이 없다는 따위의 말을 한 시점에서 이미 아크경은 군상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ㅏ아크경이 그도안 세운 공적을 생각해 기회를 주자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나딘이 아크의 말꼬리 하베스틴의 말꼬리를 잡고 교묘하게 파고들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비록 말꼬리를 잡았지만 내용상을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완강히 버티던 하베스틴도 백기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좋소 경의 말대로 성혈 공급에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니 경합을 벌여 승자에게 성혈 공급의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니 경합을 벌여 승자에게 보급을 위임하겟소, 하지만 군상의 권리는 지금까지 아크 경이 단 한번의 실책 없이 처리해왔으니 이 건과 묶어서 거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 하베스틴이 아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니딘은 단단히 작정한 듯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전체 군수물자에 비하면 성혈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성혈만을 보급하기 위해 셀리브리드 지점 까지 상단을 보낸다면 이윤을 볼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를 보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셀리브리드 지점이 뭐가 아쉬워서 이번 경합에 참가하겠습니까? 또한 원정군이 2개의 상단과 거래하는 것 자체가 전례가 없는일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 이번 경합으로 두 상단의 역량을 비교해 보다 뛰어난 쪽에 군상의 지위를 줘야 합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하베스틴이 난색을 표할 때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크가 발끈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분위기를 보니 아무래도 하베스틴 역시 더 이상 나딘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경합을 받아 들이고 서둘러 대책을 생각해 두는 편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크가 경합을 받아들이자 계속 같은 자리에서 맴돌던 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만약 양쪽 모두 1000개를 구해온다면 어떻게 승패를 결정할 생각이오?" "그때는 가격으로 승부해야 겠지요." "가격?" "네 비록 성혈 공급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틈 중요한 문제지만 원정군의 재정을 맡고 있는 제 입장에는 역시 군자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더 싸게 구입 총가격이 더 낮은 쪽이 승자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 뒤로 원정군이 남품받을 때는 이번 경합에서 두 상단이 구해 온 성혈의 단가를 평균 내서 가격을 책정할 것입니다." "그거 또 무슨 소리요?" 하베스틴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자 나딘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치며 대답했다. "경합에서 이기겠다고 비싸게 물건을 구입하고 싸게 구입했다고 보고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혈 공급 자격을 격은 두 상단의 구입 단가의 평균치. 즉, 55골드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크는 성혈 하나를 공급할 때마다 개당 45골 드의 손해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높은 가격으로 성혈을 매입할 수도 없었다. 구입 단가가 높으면 성혈을 매입하기도 쉽고 권리를 차지 했을 때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셀리브리드 지 점이 더 낮은 가격으로 1,000개를 구해 오면 경합에서 지기 때문이다. 경합을 공정하게 치르면서, 앞으로 성혈 구매에 대한 원정 군의 금전적 부담을 줄이는 2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 그야말로 기가 막힌 방법이었다. "알겠소, 경의 의견대로 경합을 치르겠소." 하베스틴의 말을 끝으로 일단 성혈 확보 경합이 시작되었 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아크가 복잡한 표정으로 막사를 나오자 샴바라가 피식 웃었다. "엿 됐군." "불난 집에 휘발유 뿌리냐?" "그러게 누가 욕심을 부리래? 다 자업자득이지." "너 정말......!" 아크가 발끈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려다가 이내 한숨을 불 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젠장, 괜한 욕심을 부려서.....' 샴바라의 말대로 이건 모두 아크의 욕심이 불어온 문제였 다. 그냥 가만히만 있었어도 아크는 아무런 문제 없이 성혈공급으로 수수료10%를 받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더 받아 내려고 죽는 소리를 했다가 나딘에게 말꼬리를 잡려 결국 상인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이라는 거대한 상단과 경합을 하게 된 것이다. '골치 아프게 됐군.' 원정군이 실리나드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사흘, 그러나 그게 성혈을 매입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매입한 성혈ㅇ르 실리나드까지 운반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송 시간을 제외하면 실제 성혈을 매입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2시간에서 하루 가량, 반면 성혈은 상점에서도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라서 직접유저들에게 매입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계산해도 불과 하루만에 성혈을 1000개나 매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성혈은 이미 확보해 놓은게 있느니 어떻게는 수량을 맞출 수 있어' 그렇다 아크는 샹그리아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창세의궤에 성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성혈은 사 두면 확실하게 이윤을 남길 물건 때문에 아크는 샹그리아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성혈 화보를 위해 손을 써 두었던 것이다. 아크가 결국 경합을 받아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경합에서 내기 질 확률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합 에서 이겨 봐야 좋을 게 없어.' 아크가 짜증을 내는 것은 바로 성혈 납품 단가를 두 상단의 구매 가격의 평균치로 못 박아 놓은 나딘의 조건 때문이었다. 아크가 성혈 1000개를 구해 와도 결국 가격이 높으면 경합에서 지게 된다. 그러하고 가격을 낮추면 경합에서 이겨 남품해도 제대로 이윤을 남기기 어려웠다. 아니,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차라리 경합을 포기하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군산의 자리가 걸려 버렸으니 손해를 보더라도 경합에서 이겨야 한다. "차라리 그냥 수수료10%나 챙기는 편이 나았을 텐대...." 아크가 입술을 질겅질겅 씹어 대며 중얼거렸다, 그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가만? 이거 너무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잖아?' 그러고 보니 나딘은 마치 이런 상황르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아크의 말꼬리와 하벤스틴의 말꼬리르 잡고 늘어졌던 것도 그렇고, 경합 애기를 꺼낸 것도 그랬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성혈의 납품 단가에 대한 조건으 제시한 점도 수상했다. 갑자기 생각해 낸 것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치밀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야. 나딘이 내 상대로 지목한 셀리브리다 지 점은 오래전부터 샤르킨 공작과 모종의 협약이 되어 있던 상 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와 경합하는 일을 나딘이 독단적 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일까?' 그럴 리가 없다. 이번 경합은 셀리브리드 지점이 유리하지만 100%승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만약 진다면 적지 않은 손 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을 당사자도 아닌 나딘이 독자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에도 나딘은 '경합을 해 볼 의 사가 있는지 셀리브리드 지접에 알아보겠습니다.' 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처음 부터 끝까지 이미 셀리브리드 지점은 경합에 참가할 것으로 확정 짓고 얘기를 진행시켰다. '그렇다면 나딘은 이미 사전에 셀리브리드 지점과 이번 문제를 상의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방 금 전까지 창세의 궤를 발동시키는 데 성혈이 필요하다는 건 나와 레리어트, 샴바라밖에 모르던 사실인데?' 나딘이 사전에 성혈에 대해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아니,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 있었다. 아크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가전에 성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던 것은 아크와 레리어드. 샴바라만이 아니었다. 바로 시드! 그렇다 아크는 미리 성혈을 확보해 두기 위해 시드에게 매입하도록 지시해 뒀었다. 그런데 시드 녀석이 나딘에게 정보를 흘린 것이다. "네놈이 감히 어떻게,...?" "흥 나라고언제까지나 네 밑에서 빌빌거릴 거라고 생각했냐?" "너 이 자식!" 아크가 이를 가라붙이며 다가가려 할 때 였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 상인은 나의 손님이네." "손님?" "그래 볼일이 있다면 내게 먼저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구하게." 나딘은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시드를 데리고 자신의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샴바라가 옆에서 휘바람을 불며 중얼거렸다. "어때? 꽤나 재미있지?" "시끄러!"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이를 갈아 붙였다. 요즘 시드가 점점 건방져진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나딘과 내통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문제는 시드의 배신이 아니었다. 그딴 호비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문데는 내가 확보했다고 생각했던 성혈은 모두 시드가 매입해 놨다는 물건이라는 점이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얼마 전까지 샹그리아에 있던 아크가 성혈을 매입할 시간이 있을 턱이없었다. 때문에 일단 급한 대로 시드에게 연락을 보내 성혈을 매입하도록 지시해 놨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상인으로서 제법 인맥을 닦아 놓은 시드는 각지의 상인 상인들에게 연락해 상당한 성혈을 확보해 놨다고 했었다. 아크가 이번 경합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드가 나딘에게 붙어 버렸다. 시드가 구매해 놓은 성혈도 몽땅 나딘에게 넘어갔다는 뜻이다. 이는 시드가 나딘에게 군상의 권리를 넘겨줬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아마도 아크를 배신하고 군상의 직위를 나딘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성혈 전매권의 권리 정도는 받기로 약속했으리라. '감히 네가 날 팔아먹어?' 으드득 으드득 아크의 입에서 아빨을 가라붙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빨은 마르고 닳도록 갈아 대 봤자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시드가 작정하고 나딘에게 붙은 이상 아크에게는 달리 해결 방법이없었다. 엄청난 이득이 걸려있는 군상 권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버린것이다. ACT 3 더블 에이전트 kianms10310@naver.com "실리나드다!" 선두에서 행군하던 병사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베스틴은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킨 뒤에 국경 지대에 배치시켰던 3만의 병력을 1만만 남기고 본대에 합류시켰다. '생츄어리' 덕분에 파비온 협곡 주변의 대지가 정화되어 국경 지대의 위험이 감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45,000의 병력 - 열흘 동안 파비온 요새 공략에서 수만의 병력이 죽었지만 유저들은 되살아나서 실제 병력 손실은 NPC 5,000명이었다. - 을 이끌고 진군을 시작한 지 사흘, 드디어 실리나드 지역에 진입할 수 있었다. "왠지 슈덴베르크의 기란과 비슷한 느낌인데?" 주변을 둘러본 샴바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넓은 평야 지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 도로, 도시까지 이어진 수량이 풍부한 강. 샴바라의 말처럼 실리나드의 주변 지형은 기란과 비슷했다. "바보냐? 그러니까 여기가 원정군의 기착지로 선정된 거 아냐." 아크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샴바라를 꼬나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실리나드가 이번 원정의 첫 번째 기착지로 결정된 것은 이곳이 기란처럼 시니어스 공국의 최대 상업 도시였기 때문이다. 상업이 발전한 도시는 교통오 함께 발달하는 법. 원정군이 실리나드에 입성하면 시니어스 공국의 어디라도 최단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진군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실리나드에서 합류할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의 원정군 숫자는 약 13만! 대도시 명 개 분의 병사가 한 곳에 집결하는 것이다. 한 끼에 들어가는 군량이 13만 개, 한 번 검날을 정비하는 데 들어가는 숫돌이 13만 개. 심지어 코를 한 번 풀어도 필요한 휴지가 13만 장이다. 그냥 앉혀 놓고 숨만 쉬게 하는 데도 막대한 양의 보급품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마족과 전쟁을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런 막대한 양의 보급품을 육로로 운반하느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더 진군할수록 악화될 문제였다. 때문에 양국의 원정군은 시니어스 공국을 관통하는 수상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실리나드를 첫 번째 기착지로 결정하는 데 합의한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그것도 몰랐냐? 생각 좀 하면서 살자, 응?" "뭐야? 왜 이렇게 까칠해?" "몰라서 물어? 그럼 어떡할까? 춤이라도 출까?" 아크가 발끈한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를 갈아붙이며 뭔가 말하려 할 때,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한 발 앞서 실리나드에 입성해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선발대였다. 선발대장이 다가오자 하베스틴이 서둘러 물었다. "현재 실리나드의 상황은 어떤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주변 마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고, 주민들은 죽거나 피난을 갔는지 1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소식은?" "오는 길에 브리스타니아의 선발대와 마주쳤습니다. 저희를 보고 꽤나 놀라더군요. 대강 얘기를 들어 보니 그들은 오늘 밤에야 실리나드에 진입할 것 같습니다." 선발 대장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부대장들이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오오, 이제 마음을 놔도 되겠군." 예정보다 빨리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키고 서두른다고 서둘렀지만,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상황을 알 수 없어 내심 걱정했던 것이다. 물론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창세의 궤를 확보했으니 설사 브리스타니아 보다 늦더라도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길 염려는 없었다. 그러나 주도권 문제를 뒷말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역시 모든 면에서 앞서는 편이 좋은 것이다. 하베스틴도 한시름 놨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이었다. "마족들은?" "이곳으로 원정군이 집결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입니다. 실리나드 전역에 퍼져 있던 마족들이 성 주변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모여들고 있어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모인 마족은 대략 7만 내외로 보입니다." "계속 모여들고 있다면 8만 이상이라고 봐야겠군." 하베스틴은 까칠해진 턱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다가 명령했다. "성에 그만한 숫자가 모여 있다면 더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단 이곳에서 서부 지역으로 이동해 주둔지를 건설한다. 그리고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도착하는 대로 창세의 궤로 검은 안개를 정화하고 본격적인 실리나드 성 공략을 시작한다!" "우오오오오!" 병사들은 사기충천한 함성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행군을 재개하며 기대에 찬 얼굴로 웅성거렸다. "내일이면 그때 봤던 여신님을 다시 볼 수 있는 건가?" "후후후, 브리스타니아 녀석들의 얼빠진 얼굴이 눈에 선하군." "그 모습을 보고 얼이 빠지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지." "여신님을 보면 브리스타니아 녀석들도 군소리 없이 주도권을 내줄 수 밖에 없을거야." 여신님이란 바로 레리어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파비온 요새 공략전에서 '생츄어리'를 발동시킨 이후, 레리어트는 원정군에게 정말 여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생츄어리'의 효과도 효과지만, 발동할 때의 연출이 NPC는 물론 유저들마저 절로 무릎을 꿇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레리어트는 여신으로 추앙받아 이제 아크가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하베스틴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과 합류한 뒤에 공성전을 시작하려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무리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먼저 도착했다지만 역시 브리스타니아가 순순히 주도권을 양보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브리스타니아 국경이 더 멀다거나, 슈덴베르크의 병력이 더 적다거나 하는 찌질한 이유를 들어 어떻게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칠 게 뻔하다. 그러나 '생츄어리'가 발동되는 장면을 본다면 상황이 달라지리라. 그만큼 '생츄어리'의 연출 효과는 압도적이었다. '빌어먹을!' 그러나 병사들과 달리 아크의 얼굴은 휴지처럼 구겨졌다. 하베스틴이 공성전과 동시에 창세의 궤를 사용하겠다고 말한 대목 때문이었다. 창세의 궤를 사용하려면 성혈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과 합류하기 전..... 즉, 오늘 밤이 되기 전에 성혈 보급 경합의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 시드의 배신은 아크에게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시드의 배신으로 아크가 확보해 놨다고 생각했던 성혈이 몽땅 나딘에게 넘어간 것이다.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크는 곧바로 정의남과 갱생단이 움직이는 보급 부대에 최우선적으로 성혈 확보를 지시해 놨다. 그러나 아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사흘. 이동 시간으로도 빠듯한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구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현재로써는 수량을 맞추기는 커녕 제 시간에 도착한다는 보장조차 없다.' 실제로 원정군이 실나드에 진입한 지금까지도 정의남에게서는 연락조차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차라리 슈덴베르크 원정군에게 다른 문제라도 생겨 실리나드 입성이 늦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는 법. 원정군이 파비온 요새를 넘어서자 지긋지긋하게 들끓던 마족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크의 심사가 뒤틀려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젠장, 정말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군!" 아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짜증을 부렸다. 그러나 아크가 아무리 짜증을 부려도 45,000 원정군의 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불과 2시간 뒤, 원정군은 서부 평야에 도착해 주둔지를 건설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운명의 시간이 마침내 찾아오고야 말았다. "누가 먼저 보고하겠소?" 진영 중심에 펼쳐진 막사. 부대장들이 늘어선 가운데 하베스틴이 아크와 나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크는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물건이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보고란 말인가? 그러자 아크의 반응으로 대강의 속사정을 파악한 나딘이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아니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가 먼저 하겠습니다." 동시에 막사 안으로 10여 명의 상인들이 커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섰다. 아크의 경합 상대,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의 상인들이었다. 상인들은 하베스틴의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마치 무도회장에서 인사를 하듯 화려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셀리브리드 지점의 지점장 티토라고 합니다. 먼저 저희 지점에 슈덴베르크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신 사령관 각하께 감사의 뜻을 표하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의에 당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각하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저와 저희 지점 일동은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냥 두면 아예 장편 소설을 써 나갈 기세였다. 아크는 티토의 나불대는 주둥이를 보고 있자니 울컥 화가 치밀었다. '갑작스러운 제의에 당황해? 성혈을 구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이번 경합은 애초에 아크를 배신한 시드 때문에 시작된 일이다. 그리고 시드와 나딘, 티토는 모두 한통속! 당연히 티토는 아크가 시드에게 구매시켰던 성혈을 전량 매입해서 들고 왔으리라. 그런 주제에 저따위 되도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뻔뻔함은 상인의 기본 스킬이라지만 이놈은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나는 우선 물건을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소만?" 티토의 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하베스틴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티토가 능숙한 솜씨로 말을 끝마치며 상자를 열었다. "..... 각하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오오오!" 상자가 열리자 부대장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상자에는 엄청난 숫자의 성혈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다. 사실 부대장들에게 성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길가의 돌멩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제 성혈은 수만의 병사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 돌. 덕분에 길가의 돌멩이에 불과했던 성혈이 지금은 보석보다 빛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모두 몇 개요?" "주문하신 대로 1,000개입니다." 티토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1,000개.....' 아크는 그 대답이 묵직한 돌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크는 시드가 성혈을 1,000개나 구해 놓지는 못했으리라고 생각했다. 마족 전쟁이 시작된 뒤로 비상계엄령이 발동되어 유저들은 사냥도 장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접속률이 저조해서 마을에도 유저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희귀 아이템인 성혈을 1,000개나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아크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드를 너무 얕잡아 봤던 모양이다. "이제 자네 차례로군." 그때 나딘이 아크에게 웃음기 섞인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나 아크는 아직 물건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 아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다가 결국 긴 한숨을 불어나며 패배를 인정했다. "저는 아직....." "아크 님!" 아니, 인정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막사 안으로 수명의 유저가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순간 아크의 머리가 스프링처럼 튕겨져 올라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막사로 뛰어 들어온 유저들은 바로 다크 에덴의 연합원. 정의남의 보급 부대원이었다. 그들은 쉬지 않고 달려온 듯 거친 숨을 불어 내며 상자를 내려놓았다. "성혈을 가지고 왔습니다!" "개수는?" "1,000개입니다!" 연합원들이 상자를 열며 대답했다. 그곳에는 셀리브리드 지점의 상자처럼 엄청난 숫자의 성혈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정의남과 갱생단에 연락한 게 사흘 전,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성혈을 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건 아크 역시 1,000개의 성혈을 구해 왔다는 것! 그럼에도 아크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비긴 것에 불과하다.' 그때 약간 놀란 눈으로 성혈을 발보던 나딘이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크 경의 역량도 제법이군. 솔직히 놀랐네. 하지만 잊지 않았겠지? 양측이 1,000개의 성혈을 확보하면 승부는 구매 단가로 결정하기로 한 약속을?" 그렇다. 아무리 성혈을 많이 구해 와도 구매 단가가 높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오히려 경합에서 졌을 때 그만큼 많은 손실을 입을 뿐이었다. "그렇군. 거래 명세서를 가져와 보게." 하베스틴의 말에 티토가 먼저 거래 명세서를 전달했다. 거래 명세서는 상인이 특정 물품을 구입할 때 발급받을 수 있는 일종의 영수증이었다. "저희가 구매한 성혈의 단가는 10골드, 구매 총 액 10,000골드입니다." 뒤이어 하베스틴은 아크가 건네준 거래 명세서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슬쩍 눈으로 훑어보다가 갑자기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순간 나딘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번졌다. 아크가 짧은 시간에 급하게 성혈을 모으느라 시세보다 비싸게 사들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하베스틴의 말에 나딘의 얼굴은 대번에 흙빛이 되어 버렸다. "아크 경이 구매한 성혈의 단가는 1골드, 구매 총액 1,000골드네." "네? 그, 그게 무슨.....?" "직접 보게." 하베스틴이 건네준 거래 명세서를 훑어본 나딘은 완전히 돌이 되어 버렸다. 놀랍게도 아크의 거래 명세서는 하베스틴이 말한 것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거래 품목 : 성혈 거래 단가 : 1골드 구매총액 : 1,000골드 "이, 이럴 수가.....!" 나딘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떠듬거리다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이, 이건..... 말도 안됩니다. 지금 성혈의 시세는 10골드입니다. 몇 실버 싼 것도 1-분의 1이나 싸게 구입하다니요?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말이 심하시군요." 아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쏘아붙였다. "저는 나딘 경의 따라 경합에 참가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이번 결과를 얻어 낸 것입니다. 그런 결과를 두고 속임수 운운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뭔가 증거라도 있는 겁니까?" "즈, 증거?" 나딘이 움찔하며 물러나다가 문득 손에 든 거래 명세서로 시선을 돌렸따. "그, 그렇지. 이 거래 명세서다. 이 거래 명세서에 뭔가 조작을 한 게 분명해!"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제가 1골드로 구매하고 셀리브리드 지점이 10골드로 구매했으니 앞으로 성혈의 납품 가격은 5골드 50실버 입니다. 제가 10골드 이상의 돈을 주고 성혈을 구하고 1골드로 구매한 것처럼 거래 명세서를 위조했다면 납품할 때마다 개당 4골드 50실버 이상 손해를 본다는 뜻 아닙니까?" "그 정도 손해는 군수물자를 거래하면서 벌충할 수 있다고 계산한 거겠지!" "하아,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군요. 정 그렇다면 제대로 감정해 보십시오. 수십 년간 보급 장교를 지내오셨으니 거래 명세서가 진품인지 아닌지 정도는 감정할 수 있겠죠?" "흥! 좋아, 제대로 감정해 주지!" 나딘이 콧방귀를 뀌며 거래 명세서를 감정하기 시작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뉴 월드에는 '위조' 따위의 스킬이 존재한다. 그러나 '위조'로 만든 서류는 '감정'이나 '회계' 스킬이 높은 유저나 NPC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리고 보급 장교인 나딘은 아마도 '회계' 스킬의 마스터 정도는 되리라. 그러나 그렇게 잠시, 잡아먹을 듯이 거래 명세서를 살피던 나딘은 식은땀을 뚝뚝 흘려 댔다. 아크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나딘을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이, 이럴 리가 없는데....." "나딘 경, 경의 태도는 지나치다!" 그때 하베스틴이 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크 경은 군상이기 이전에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많은 공적을 세운 명예로운 기사다. 경합을 벌였으니 확인 절차는 필요하겠지만, 자네의 태도는 누가 봐도 아크 경을 질시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자중하라." 나딘은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불어 내며 물러났다. 나딘이 물러나 버리자 티토 역시 고개를 푹 숙이고 막사에서 나가 버렸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하베스틴이 아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경합에서 이긴 게 축하할 일인지 모르겠군. 자네가 어떻게 1골드에 성혈을 구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티토는 지금 성혈의 시세가 10골드라고 했네.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장의 말이니 그만한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자네 말대로 앞으로 성혈을 납품할 때마다 4골드 50실버를 손해 본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 경합에서 이겼지만 솔직히 그리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괜히 돈 좀 벌어 보려고 장난을 쳤다가 되려 엄청난 손해가 예상되는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든 군상의 자리는 지켰지만 이제 거기서 생가는 이윤을, 성혈 납품으로 생기는 적자를 메우는 데 들이부어야 하리라. 그러나 그건 이미 경합 전부터 결정된 일이었다. 왈가왈부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정도는 군수물자 납품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뭣보다 제가 군상을 맡은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슈덴베르크 왕국에 도움이 되고 싶은 충정에서 시작한 일이니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하겠습니다." 내용은 티토가 떠들어 대던 장편 소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아크가 말하니 무게가 달랐다. "과연 아크 경.....!" 하베스틴과 부대장들은 새삼 감동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하베스틴은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성혈 납품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슈덴베르크 왕실의 계약서 <계약자 :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 백작 = 아크 상단 대표 아크> 슈덴베르크 원정군에서 사용하는 성혈의 보급을 아크에게 위임한다. 단, 성혈의 납품 가격은 5골드 50실버로 고정한다. * * * "빌어먹을!" 막사를 나온 나딘이 거친 욕설을 뱉어 냈다. 사실 나딘이 그렇게까지 아크를 군상에서 밀어내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르킨 공작과 셀리브리드 지점장 티토는 오랫동안 한통속이 되어 손발을 맞춰 온 사이다. 그리고 티토는 이번 원정군의 군상 자리를 얻어 내기 위해 사르킨 공작과 나딘에게 상당한 뇌물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하베스틴이 사령관이 되면서 군상을 아크가 꿰차 버린 것이다. 덕분에 나딘은 받았던 뇌물을 토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때문에 나딘은 어떻게든 아크를 밀어내고 티토를 군상에 앉히려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이번에도 실패! 오히려 하베스틴과 부대장들에게 미운털만 박혀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나딘 경,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막사를 나오자 티토가 씩씩거리며 다가왔다. "이번 일로 저희 지점에서 손해 본 금액이 얼마인지 알기나 하십니까? 그런데 결과가 이게 뭡니까? 아크 경은 틀림없이 성혈을 구하지 못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성혈을 못 구하기는 커녕 1골드라는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구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 그게....." "됐습니다." 티토가 듣기도 싫다는 듯이 나딘의 말을 잘라 버렸다. "만약 실패하면 이번 경합에 들어간 경비를 모두 부담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치셨죠? 성혈 구매 대금이야 되팔면 그만이니 그렇다 치고 운송비 2,000골드는 나딘 경께서 부담해 줘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린 사례금 5,000골드도 돌려주십시오." 바로 이게 문제였다. 나딘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번 경합에서 100%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나딘이 그렇게 확신한 이유는 바로 시드 때문이었다. 시드는 아크의 성혈 구매 대행자다. 경합이 시작되기 전에 그런 시드가 아크를 배신하고 나딘에게 붙은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사전에 구매해 놓은 성혈이 몽땅 나딘의 손에 들어왔다. 이 시점에서 이미 아크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나딘은 티토에게 실패할 확률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큰소리를 떵떵 쳐 대며 만약 실패할 경우, 경합에 들어간 경비를 몽땅 부담하겠다고 호기를 부렸던 것이다.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게." "더 들을 것도 없습니다. 당장 운송비와 사례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군상 지위를 청부한 대가로 나딘 경에게 뇌물을 건넨 사실을 폭로하겠습니다." "자네 정말 이렇게 나오긴가?" "긴말 필요 없습니다. 주실 겁니까, 안 주실 겁니까?" 티토는 마치 사채업자처럼 위협적인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결국 나딘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운송비와 사례금 7,000골드를 곧 보내 주겠네." "그럼 그렇게 알고 물러가겠습니다." 티토가 콧방귀를 뀌며 팩 몸을 돌려세웠다. 그 모습에 나딘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례금이야 티토에게 받았던 뇌물을 돌려주는 것 뿐이니 그렇다 쳐도 운송비는 그야말로 생돈이다. 괜한 일에 끼어들었다가 생돈 2,000골드만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빌어먹을! 당장 그 돈을 어디서 구하란 말이야? 기일이 늦어지면 티토 녀석 성격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데....." 나딘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고 있을 때였다. 문득 막사 뒤에서 호비트 1마리가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딘 경, 어떻게 됐습니까? 당연히 잘됐겠죠?" 기대에 찬 눈알을 반짝거리며 묻는 호비트는 다름 아닌 시드였다. 순간 나딘은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놈이다. 나딘이 개망신을 당하고 2,000골드나 날려 먹게 만든 건 바로 이 망할 놈의 호비트였다. 이놈이 바람만 집어 넣지 않았어도 이런 엿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도 않았으리라. 나딘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시드의 멱살을 와락 움켜쥐었다. "잘됐냐고? 지금 잘됐냐고 물었냐?" "힉! 왜, 왜그러십니까?" "대체 뭐가 잘됐냐고 물어보는 거냐? 내가 사령관과 부대장들에게 개망신을 당한 거? 한낱 상인에 불과한 티토에게 협박을 당한 거? 아니면 아크놈이 성혈을 구해 온 거?" "아, 아크가 성혈을 구해 왔다고요?" "그래. 그것도 1골드에 구해 왔단 말이다!" "그, 그럼 경합은?"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냐!" 나딘이 고함을 지르며 주먹으로 시드의 면상을 후려쳤다. 시드는 쌍코피를 쫙 뿜어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나 시드는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곧바로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 그럼 제게 약속했던 셀리브리드 상점 허가권은?" 그렇다. 시드가 아크를 배신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시드가 아크를 배신하고 받기로 한 대가! 그동안 시드는 대륙상회에서 근무하며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그렇게 수중에 돈이 생기니 시드는 슬슬 독립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드가 상점을 차리려고 마음먹은 곳이 바로 셀리브리다. 그러나 셀리브리드는 슈덴베르크 왕국의 수도. 그곳의 상점 권리는 이미 오래전에 다른 유저들이 몽땅 쓸어 가 버린 뒤였다. 그러던 차에 아크가 시드에게 성혈 구매를 지시한 것이다. 그때 시드의 머릿속에서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딘은 어떻게든 아크의 군상 자리를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런 나딘에게 성혈에 대한 정보를 흘려 목적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상점 허가권을 받아 내는 것이다. 물론 원정군 보급 작요인 나딘에게는 그만한 재량이 없겠지만, 셀리브리드 지점이 군상이 되면 사르킨 공작을 통해서라도 상점 허가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끝까지 아크를 속일 수는 없겠지만, 셀리브리드에 상점의 허가권이 나오지 않으면 아크라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게 시드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시드 역시 나딘처럼 승리를 확신하고 방금 전까지 상점을 운영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라니요? 실패라니요? 그럼 제 상점 허가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예?" 시드는 눈물과 코피를 펑펑 흘려 대며 나딘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네놈이 정말 죽고 싶으냐?" 나딘이 서슬 퍼런 얼굴로 검 자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목숨 따위는 아크를 배신하는 순간에 이미 포기한 시드였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대신 제발 상점 허가권을 주세요. 솔직히 경합에서 졌지만 저는 할 만큼 하지 않았습니까?" "이놈이 아직도 그따위 소리를.....!" 그렇지 않아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딘이 이를 갈아붙이며 시드를 밟아 대기 시작했다. 쿵쿵쿵, 쩍쩍쩍! 마치 절구를 찧는 듯한 소리가 몇 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드는 완전히 밀가루 반죽을 밟아 놓은 것처럼 뭉개진 채 정신을 잃어버렸다. "퉤, 재수 없는 호비트 자식!" 나딘은 침을 탁 뱉으며 시드를 버려두고 떠나갔다. 한참 뒤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시드가 주섬주섬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딘이 보이지 않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절뚝절뚝 걸어갔다. "흑! 상점 허가권 때문에 아크에게 맞아 죽을 각오까지 하고 시작한 일인데." 경합에서 나딘이 패해 버렸다. 이제 상점 허가권은 날아가고 맞아 죽을 일만 남았다. 그때 누군가가 시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암담한 현실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걸어가던 시드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대번에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리고 말았다. "아, 아크 님.....!" 시드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샴바라와 아크였다. 아크는 피 떡처럼 뭉개진 시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빙글 몸을 돌렸다. "따라와." * * * 데굴데굴, 데굴데굴. 시드의 눈알이 불안하게 굴러다녔다. 방금 전, 아크에게 포획된 시드가 끌려온 곳은 아크의 막사였다. 그리고 이제부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비록 경합은 아크의 승리로 끝났지만 자칫 군상의 자리를 잃을 뻔했다. 게다가 가만히만 있었어도 성혈 가격의 10%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었는데, 경합을 하는 바람에 매번 납품할 때마다 개당 4골드 50실버의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 모든 게 시드의 배신으로 빚어진 일! 그런 짓을 하고 아크에게 사로잡혀 버렸으니 이제 시드의 운명은 보지 않아도 8차선 고속도로였다. 18금에 해당하는, 임산부와 노약자는 볼 수 없는, 이런 삐ㅡ한 짓과 저런 삐ㅡ 한 짓을 당하게 되리라. "자, 어디 들어나 볼까? 날 팔아넘긴 대가로 뭘 받기로 했는지?" 아크가 가늘게 뜬 눈매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눈알을 굴려 대던 시드가 움찔하더니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려 댔다. "흑, 죽여 주십시오." "호오? 죽여 달라고?" "흑흑흑,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봐주지 않을 거잖아요. 엉엉엉, 알아요, 안다고요, 제가 잘못했죠. 흑흑흑, 그러니까 삶든 튀기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도 각오는 하고 있었어요." "좋아, 각오는 됐다니 긴말하지 않겠다." 아크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시드에게 다가갔다. 호랑이를 찜 쪄 먹을 담력의 소유자인 샴바라조차 차마 다음 장면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듯 시선을 돌려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질 비명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흑흑흑, 흑, 흐..... 흐흐흐, 우하하하!" 시드의 울음소리가 점차 이상해진다 싶더니 갑자기 광소를 터뜨리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이 녀석 송포에 질려 살짝 가 버린 건가?" 시드의 돌발 행동에 샴바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아크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드만이 아니었다. 검 자루를 움켜지고 당장이라도 시드를 회 쳐 먹을 기세였던 아크 역시 피식피식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우하하하, 더 이사은 못 하겠다!" "우하하하, 저도 이제 더는 못 하겠어요!" "너 마지막까지 연기 죽이던데?" "아크 님만 하겠어요? 나딘은 물론, 하베스틴이나 샴바라 님까지 홀라당 넘어가던데요." "우후후,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을 속여야 하는 법이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시드가 양손을 비비적거리며 아양을 떨어 댔다. 샴바라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뭐야? 둘 다 미친 거야?" "크하하하하!" "우히히히히!" 샴바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크와 시드는 아예 바닥을 굴러 대며 폭소를 터뜨렸다. "뭐야? 뭔가 있는 거지? 대체 뭐냐고! 정말 열 받게 할래?" 마치 놀림을 받는 기분이 든 샴바라가 와락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그제야 아크와 시드는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앉았다. "아직도 모르겠냐?" 지금까지 쓸데도 없었던 성혈을 1골드에 매입한다! 소문을 들은 유저들이 미친 듯이 경매장으로 몰려들어 성혈을 팔아 댔다. 그렇게 아크가 매입한 성혈은 무려 2만 골드어치 20,000개! 뉴 월드에 돌아다니는 성혈을 거의 싹쓸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성혈을 매입해 놓고 보니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2만 골드의 성혈에 대해 10%의 수수료를 받으면 이윤은 2,000골드.' 2,000골드가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좀 부족하다 싶었던 것이다. '모처럼 창세의 궤라는 장사 밑천이 생겼는데 이걸 이용해서 더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기발한 작전이 떠올랐다. '나딘은 어떻게든 나를 군상에서 밀어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만약 나딘에게 미리 창세의 궤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성혈을 건네준다면? 그리고 내가 성혈을 구하기 힘들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 나딘은 틀림없이 그걸 빌미로 나를 밀어낼 계략을 꾸밀 거야. 그리고 나딘이 세울 계략을 내가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성혈의 가격을 뻥튀기시킬 수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시드에게 특별 임무를 맡겼다. 시드가 맡은 임무는 나딘에게 접근해 창세의 궤에 대한 정보를 흘리며 나딘이 이번 경합을 주도하도록 부추기는 일이었다. 그렇다. 나딘이 경합을 제안한 것이나, 성혈의 납품 가격을 두 상단의 평균치로 고정시키겠다고 못 박은 것은, 아크의 머릿속에서 나온 방법이었다. 그리고 아크는 시드로 나딘을 부추기는 한편, 다시 다크에덴 연합원들을 이용해 경매장에 엄청나게 많은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성혈' 개당 10골드(10만원)에 대량, 소량 판매합니다. 아크가 그런 글을 올린 것은 실제로 성혈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멩이를 10골드에 매입할 유저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유저들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쓸모없는 돌멩이를 누군가 1골드에 몽땅 쓸어 갔다. 그리고 이제 10골드에 팔겠다는 유저들이 엄청 많아진 것이다. 이런 현상에 유저들은 성혈을 어딘가에 쓸데가 있다고 믿어 버렸다. 예를 들면 어떤 레어 갑옷을 만드는 데 성혈이 필요하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경합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상인 길드의 셀리브리드 지점 상인들이 성혈을 매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믿음은 확신으로 변했다. 때문에 유저들은 셀리브리드 지점 상인들이 접촉하면 무조건 10골드 이상의 가격을 불렀다. 나딘이나 티토가 성혈의 시세를 10골드 이상으로 알고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셀리브리드 지점은 그조차 몇 개 구할 수 없었지. 나딘이나 티토가 이번 경합에서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던 게 그 때문이야. 불과 몇 시간 전에 내가 경매 사이트를 통해 성혈을 몽땅 쓸어 갔으니 유저들은 웃돈을 준다고 해도 당장 가진 성혈이 없어서 못 팔고 있었거든. 경매 사이트를 모르는 나딘이나 티토는 그런 상황에서, 그것도 시드에게 배신당한 내가 성혈을 10골드에 1,000개나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럼 티토는 어떻게 120골드에 성혈을 1,000개나 구했는데?" 샴바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아크가 손가락을 흔들어 대며 혀를 찼다. "쯧쯧쯧, 그걸 꼭 말해야 아냐? 당연히 그 성혈을 판 건 시드지." 그렇다 티토는 뉴 월드에서 성혈이 자취를 감춘 것을 확인하고 어떻게든 1,000개만 구하면 경합에서 이겨 군상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드에게 아크를 대신해 구매해 놨다던 성혈 - 실제로는 아크가 구입해 놓았던 성혈이다 - 을 시세에 맞춰 10골드에 몽땅 사들였다. "10골드에 1,000개, 1골드에 매입한 성혈이니 거기서만 9,000골드가 남았지." 아크의 말에 샴바라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단 한 번에 얻은 엄청난 수익! 그러나 이번 작전을 통해 아크가 얻으려던 수익은 고작 9,000골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성혈 19,000개도 5골드 50실버에 납품할 수 있게 됐어. 1골드에 사서 5골드 50실버에 팔았으니 개당 4골드 50실버가 남는 셈이지. 결국 19,000개를 몽땅 납품하면 85,500골드. 티토에게 성혈을 팔아넘겨 얻은 9,000골드와 합하면 최종적으로 94,500골드의 이윤이 남는거지. 알겠냐?" 94,500골드! .....이게 바로 아크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사, 사기잖아!" "사기지. 하지만 성공한 사기는 사업이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번 성혈 확보 경합은 아크가 감독과 연출, 주연을 맡은 한 편의 사기극이었다! "덕분에 제 얼굴은 떡이 됐지만....." 시드가 팅팅 부은 얼굴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마약 이번 사기극에 사을 준다면 남우주연상은 역시 더블 에이전트. 이중간첩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나딘과 티토를 속여 넘긴 시드의 몫이었다. 게다가 시드는 마지막까지 나딘에게 엉겨 붙어 혹시 나중에라도 의심을 사지 않도록 몰매를 맞아 주는 용의주도함까지 선보였다. 그러나 시드의 팅팅 부은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져 있었다. 시드가 이번 사기극이 흥행 성공했을 때 받기로 한 출연료는 이윤의 20%! 성혈을 다 납품하면 18,900골드가 들어온다. 그 정도 보수를 받는데 얼굴 좀 떡이 되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런데 확보한 성혈을 다 판 뒤에는? 그때도 원정군이 필요하면 성혈을 납품하기로 계약했잖아. 하지만 이미 성혈의 시세는 10골드가 됐고. 그때는 계속 손해를 보면서 납품해야 하는 거 아냐?" "아직 성혈은 창세의 궤 외에는 사용할 데가 없는 아이템이야. 가격이 10골드로 치솟아 있지만 실제로 거래하는 유저는 없지. 그리고 나는 이미 19,000개의 성혈을 확보해 놨으니 아무리 빨리 사용해도 앞으로 한 달은 다시 구매할 필요가 없어. 한 달이나 거래가 되지 않으면 가격은 떨어질 수 밖에 없잖아." 그뿐이 아니었다. 아크는 방금 전부터 연합원들을 동원해 경매 사이트에서 성혈을 99실버에 매입하겠다는 글을 잔뜩 올려놨다. 현재 시세가 10골드인 성혈이지만 한 달이나 거래가 되지 않으면 유저들은 다시 99실버를 성혈의 시세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성혈을 매입할 사람은 나밖에 없어." 그조차 팔리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때문에 가격은 계속 떨어지겠지. 물론 당장은 반감을 사겠지만 그렇게 1실버씩 가격을 떨어뜨려 최종적으로 1실버까지 만드는 게 목표다. 그렇게 되면 성혈을 납품할 때의 이윤이 9골드 99실버가 되는거지. 우하하하!" (납품가가 5골드 50실버이니 이윤은 4골드 49실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질렸다." 샴바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샴바라가 뭐라고 하든 아크와 시드는 당장 춤이라도 출 듯이 덩실거렸다. 그렇게 아크가 모처럼 행복의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를 즐기고 있을 때였다. "아크 님!" 갑자기 막사 밖에서 전령의 고함이 들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나가란이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대군에게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요?" .....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ACT 4 비하인드 스토리 kianms10310@naver.com "빌어먹을!" 본부 막사를 나오며 아크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자 근처에서 서성이던 샴바라와 시드가 달려왔다. "아크 님!" "아크, 어떻게 됐냐?" "상황이 엿같이 돌아가고 있어." 아크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의 돌을 걷어차며 중얼거렸다. "슈덴베르크, 브리스타니아 왕국은 움직이지 않을 거란다." "어, 어째서요?" 시드가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크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이 암담한 상황은 전령의 보고로 시작되었다.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당했다! 밑도 끝도 없이 상상도 못 했던 보고를 받은 아크는 눈썹이 휘날리게 본부 막사로 뛰어갔다. "사령관님!" "왔는가? 자리에 앉게." 본부 막사에는 이미 연락을 받은 부대장들이 소집되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아크는 그곳에서 현재 나가란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본국에서 보내온 급전에 의하면 현재 나가란에 박힌 검은 오벨리스크는 수백 개. 그곳에서 몰려나온 마족은 10여 만에 이르렀다. 그리고 영지 3개가 순식간에 함락당했다고 한다. 대강의 상황을 전해 들은 아크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벌써 3개의 영지가 마족에게 점령당했다고요?" "비상계엄령의 공성전 금지 조항 때문에 나가란의 영지들이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네." "어, 어떤 영지가 점령당한 겁니가?" "본국에서 보내온 소식은 그게 다네. 어떤 영지인지는 아직 연락받지 못했어." 하베스틴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자네도 여러모로 걱정되는 부분이 많겠지만 일단 좀 기다려 보게. 본국에서 이번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귀족 회의가 진행 중이니 결과가 나오는 대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네." 하베스틴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족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영지가 설마 시르바나는 아니겠지?' 아크가 눈썹이 휘날리게 본부 막사로 뛰어온 이유는 그걸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하베스틴도 나가란의 어떤 영지가 마족에게 점령당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덕분에 더욱 불안해진 아크는 다크에덴 연합원들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시르바나가 무사한지 알아보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마족이 나가란은 침공했다면 지금 중요한 건 슈덴베르크나 원정군이 어떻게 대응할지다.' 그렇다. 이미 10만이 넘는 마족이 나가란을 침공했다면 현재 점령당한 세 영지에 시르바나가 속해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무사하다고 해도 시르바나가 점령당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시르바나가 점령당해도 아크 혼자 어떻게 할 문제가 아니었다. 시르바나의 운명은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왕국의 결정을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본부 막사였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놈들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대체 지금 상황에서 시르바나 영지를 점령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부대장들이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불평하듯이 말했다. 부대장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현재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실리나드에 진입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이면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합류해 본격적인 실리나드 탈환전이 시작된다. '마족 세력이 만만치는 않지만, 창세의 궤로 '마족의 영향권'을 날려 버리면 실리나드를 탈환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일단 원정군이 실리나드를 탈환하면 마족 전쟁의 판도는 180도 달라진다.' 그렇다. 사실 시니어스 공국이 한순간에 마족들에게 괴멸된 것은 공국 출신의 유저들이 봉쇄됐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의 전쟁에서 유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NPC들은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만, 유저들은 24시간 뒤에 부활하는 불사신들인 것이다. 그것은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부활하는 마족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검은 오벨리스크는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불사신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마족이 일반적인 전쟁처럼 밀고 들어왔다면. 그리고 시니어스 공국 출신의 유저들이 제대로 힘을 모아 대응했다면 이렇게 간단히 마족에게 점령당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시니어스 공국의 주요 도시와 마을에 수백, 수천에 달하는 검은 오벨리스크가 동시에 박혔고, NPC나 유저들이 미처 대응도 못 하는 사이에 도시와 마을이 점령되어 버렸다. 결국 해당 도시와 마을에 부활 장소를 등록해 놓은 유저들은 부활을 못 하게 돼 버린 것이다. 이게 시니어스 공국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점령당한 이유였다. '하지만 원정군이 실리나드를 탈환하면......' 시니어스 공국의 상업과 교통의 중심지 실리나드! 부활 장소를 등록해 놓은 유저도 상당한 숫자이리라. 그 유저들이 모두 부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리나드를 중심으로 주변의 도시와 마을을 탈환해 부활 장소를 확보하면 시니어스 출신 유저들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분명햇다. 유저들만이 아니었다. 비록 한순간에 폭삭 망했지만 시니어스 공국의 정규 병력이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마족의 공격을 피해 숨어 있던 병사들도 원정군이 실리나드를 점령하면 속속 모여들리라. 또한 실리나드의 마법탑을 복구하면 브리스타니아나 슈덴베르크 왕국과 영자 이동을 연결해 병력 이동도 손쉬워진다. '앞으로의 전황을 생각하면 현재 마족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리나드를 지키는 일이다. 그게 안 되면 실리나드 주변을 봉쇄해 원정군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도록 견제해야 해. 그런데 난데없이 수만에 달하는 마족을 동원해 전략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나가란을 공격하다니......' 이 부분이 아크와 부대장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놈들의 목적은 나가란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부대장이 입을 열었다. "나가란은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양국의 국경과 인접해 있는 지역입니다. 때문에 놈들은 나가란을 점령해 양국을 위협, 원정군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그사이에 실리나드 지역으로 마족을 집결시키려는 의도가 아닐까요?" "몸을 위협해서 팔의 움직임을 봉쇄한다는 전략인가?" 하베스틴이 눈매를 좁히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이번 마족들의 움직임도 이해할 수 있었다. 나가란은 원래 삼국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다시 말해 마족이 나가란은 점령하면 삼국 어디로든 진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슈덴베르크나 브리스타니아의 귀족들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니어스 공국의 해방보다 자국의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 원정군을 불러들여 혹시 모를 침공에 대비하려 할 것이다. 원정군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베스틴의 말처럼 몸을 위협해서 팔을 봉쇄하는 전략! 그러나 다른 부대장이 회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마족들이 그렇게까지 전략적으로 움직일까요?" "파비온 요새에서도 마족들이 예상외로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여 고전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 뒤의 움직임은 이렇게 할 것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곳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 사흘입니다. 만약 마족이 실리나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그 전에 진즉 대응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손 놓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그런 고도의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딘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럼 경은 놈들의 의도가 뭐라고 생각하오?" "그건......" 반론은 제기한 부대장이 입을 다물었다. 결국 조금 진전을 보이는 듯했지만 회의는 다시 제자리를 맴돌았다. "됐소. 나가란의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 것 같소. 또한 어차피 본국과 연계해서 대처해야 할 일이니 일단 경들의 의견을 모아서 국왕 폐하께 전하겠소. 이 문제에 대한 대응 방법은 국왕 폐하께서 결정하실 거요." 결국 하베스틴은 골치 아픈 문제를 국왕에게 떠넘겨 버렸다. 그리고 본국과의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사가 수정 구슬을 이용해 왕성과 통신을 연결했다. 왕성에서는 이미 귀족 회의를 열어 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논의를 마친 상태였다. 통신을 연결하자 수정 구슬에 귀족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 떠올랐다. 만약 이게 원정군의 발목을 잡으려는 마족들의 전략이라면 알면서도 속아 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마족들이 이렇다 할 전략을 생각하지 않고 벌인 일이라면 굳이 과민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귀족 회의의 의견이다. 또한 현재 마족들은 시르바나와 그라돈, 베이크 영지를 점령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때문에 설사 놈들이 본국을 위협하려는 의도가 있다 해도 국경에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은 충분하다. 원정군은 예정대로 실리나드 성 탈환에 주력하라. "시, 시르바나가 점령당했다고요?" 설명을 듣던 시드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두 번 얘기하게 하지 마!"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아크 역시 그 연락을 받았을 때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샴바라가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어쩌냐? 죽을 고생을 해서 얻은 영지가 허망하게 날아가 버렸으니?" "영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야." 아크가 샴바라를 째리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쏘아붙였다. 그렇다. 마족이 나가란을 점령했다고 해서 시르바나의 소유권을 빼앗긴 것은 아니었다. 나가란의 영지는 삼국의 국왕이 정해 놓은 공성전 규칙에 따라 점령해야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정당한 시르바나의 영주. 언제든 마족을 몰아내면 시르바나는 아크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만약 마족에게 점령당해 소유권 자체가 소멸했다면 아크는 진즉에 돌아 버렸으리라. '게다가 다행히 마족에게 점령당한 것치고는 피해가 크지 않아.' 왕성의 연락을 받은 직후, 가장 먼저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대륙상회였다. 시르바나는 언젠가 되찾을 수 있다고 해도, 현재 원정군에게 보급하는 군수물자를 관리하는 곳은 대륙상회였다. 대륙상회의 창고에는 지저 세계와 스탄달에서 모은 군수물자가 쌓여 있는 것이다. 만약 대륙상회가 마족에게 공격받아 군수물자까지 몽땅 파괴된다면 아크는 순식간에 파산의 위기에 몰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마족은 시르바나를 외부에서부터 공격한게 아니었다. 영주성 주변에 검은 오벨리스크를 박아 대며 공격했다. 덕분에 마족이 영주성에 집중된 사이 대륙상회는 창고의 군수물자를 빼돌려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지에 남아 있던 NPC 연합원들도 무사하다.' 마족의 공격으로 당연히 성을 지키던 유저 연합원들은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유저들이야 부활하면 그만. 문제는 묘족과 너구리족, 늑대족, 동방 민족 같은 NPC 연합원들이었다. 이들은 한 번 죽으면 끝장이라 다크에덴의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들은 아크의 지시에 따라 연합원들과 함께 비밀 던전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크가 연락할 때까지 영주성이 함락됐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하지만......"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아크가 입은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영지가 마족에게 점령당했으니 매달 들어오던 영주 월급이 없어진다. 그 돈이 한 달에 무려 18,000골드였다. 물론 영주 월급은 나갈 데가 많아서 몽땅 아크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에 수천 골드는 챙길 수 있는 돈이었다. 그뿐인가? 그동안 죽어라 투자해서 B급 영지 승격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마족에게 점령당했으니 영지가 피폐해질 것은 16차선 고속도로처럼 뻔한 일. 각종 부대시설과 농경지가 파괴되면 영지의 등급은 뚝 떨어지리라. 게다가 영지를 되찾아도 피폐해진 영지를 일으켜 세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시드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누군 이러고 있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아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피해를 줄이려면 1분 1초라도 빨리 영지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움직여 주지 않는 한 시르바나를 되찾을 방법이 없었다. 아크의 병력이라 봐야 다크에덴의 3,800. 그조차 NPC 연합원 1,500명과 호위 부대 300명, 1,800명은 비밀 던전에 숨어ㅡ사실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ㅡ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군수물자 납품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아니, 영지에서 들어오던 수입이 없어졌으니 더욱 악착같이 납품을 해야 하니 정의남과 갱생단이 운영하는 2,000명의 보급 부대를 동원할 수도 없었다. 결국 시르바나를 되찾으려면 아크 혼자 10여 만 마족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다. 10만 대 1...... 마족들이 성벽 위에서 오줌만 싸도 아크는 홍수에 휩쓸려 죽으리라. '방법이 없는 일에 매달려 봐야 스트레스만 쌓인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일단 시르바나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어차피 마족 전쟁에서 승리하면 시르바나를 되찾을 수 있으니 영지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준 만큼 군수물자 보급에 집중하자.' 아크는 가능성이 있는 일에는 죽자 살자 매달리지만, 일단 아니다 싶으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성격이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아크가 도달한 결론은 결국 그거였다. 그런데 정작 시드가 더 난리를 피워 댔다. "이게 그냥 포기할 일이에요?" "젠장,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니에요?" "나는 아무 생각도 안 해 봤는지 알아? 아니, 그보다 왜 네가 난리인데?" "그, 그건......" 시드가 움찔하며 떠듬거리다가 한숨을 푹푹 불어 냈다. 시드가 그렇게 난리를 피워 대는 이유는 바로 시르바나의 부동산 때문이었다. 이미 말한 적이 있지만 시드는 그동안 대륙상회에서 일하며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러나 나딘을 속이기 위해 말했던 것처럼 시드가 그 돈으로 하려던 사업은 셀리브리드의 상점이 아니었다. 바로 부동산 투기! '후후후, 역시 예나 지금이나 돈을 불리는 데는 부동산 투기만 한 게 없어. 아크 님도 란셀의 부동산에 투자해서 몇 배나 뻥튀기시켰잖아. 그렇다면 나라고 못 할 것 없지.' 그렇게 아크를 롤모델로 삼은 시드는 꼬깃꼬깃 모아 놓은 돈으로 시르바나의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시드가 시르바나에 부동산 투기를 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부동산을 소유하려면 그 지역에 공헌도가 필요하다. 시드는 시르바나의 재정 경제를 단숨에 올려놓은 대륙상회에서 장기간 근무한 덕분에 부동산을 소유할 만한 공헌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드는 아크가 대륙상회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몽땅 쏟아부어 영지를 발전시킬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100% 땅값이 올라갈 시기라는 뜻이다. '영지 등급이 올라가면 부동산 가격은 배로 뛸 거야!' 그렇게 판단한 시드는 모은 돈을 몽땅 쏟아부은 것이다. 그런데 마족에 의해 영지가 피폐해지면서 부동산 시세는 폭락. 아크가 아무리 기를 쓰고 복구시킨다 해도 제값까지 오르는 데만도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밥에 그 나물이군." 샴바라가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냥 포기해라. 그리고 마족이 땅을 떼 가는 것도 아니잖아. 마족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든 복구될 거야." "그게 그렇지가 않다니까요." 시드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마족들이 대체 왜 하필이면 시르바나를 공격했는지?" "네 부동산 시세를 폭락시키려고?" 아크가 빈정거리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시드가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바로 그거예요!" "뭐? 너 마족하고 무슨 원수진 일 있냐?" "원수진 사람은 아크 님이죠!" "내가?" "......아란!" 뒤이은 시드의 대답에 장난스럽던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란이 마족들을 조종하고 있다면서요? 그런 마족이 나가란, 그것도 하필이면 시르바나를 공격했는데 대체 왜겠어요? 작정하고 시르바나를 부숴 놓으려는 게 뻔하잖아요!" '밥소사, 왜 지금까지 그 녀석을 생각 못 하고 있었지?' 아란이라는 단어 하나에 지금까지 풀리지 않던 의문이 몽땅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가장 큰 의문은 왜 마족이 이런 상황에서 나가란을 공격했냐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게 나가란이 아닌 시르바나가 목적이었다면? 그리고 그 마족을 아란이 조종한 거라면? ......해답은 간단하다. '아란이 나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시르바나를 점령했다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하다. 마족을 동원해서 시르바나를 불모지로 만들어 버릴 거야.' 대지를 오염시키는 마족의 각종 스킬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크가 시르바나를 되찾았을 때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되리라. '아란 자식, 정말 끝까지 해보자는 건가!'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이를 갈아붙였다.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 기묘한 위화감이 생겨났다. '가만? 정말 아란의 목적이 단지 그것뿐일까?' 분명 시르바나가 불모지로 변해 버리면 아크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되리라. 그러나 그 타격은 어디까지나 '적지 않은' 수준이었다. 그 이유는 시르바나의 가치가 농경지 따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르바나의 가치는 삼국의 국경으로 이동하기 편한 지형과 수량이 풍부한 강 덕에 해상 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륙상회가 나가란 지역에서 독보적인 상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지리적인 장점 덕분인 것이다. 영지가 불모지가 된다고 해도 그런 지리적인 장점이 사라질 리가 없었다. '아란이 시르바나에 대해 잘 모른다면 모를까, 놈은 뉴 월드의 어떤 유저들보다 먼저 시르바나에 눈독을 들이고 영주까지 지냈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시르바나의 특성을 모를리가 없어. 그런데 고작 영지를 불모지로 만들기 위해 10여 만의 마족을 동원해?' 더구나 지금은 원정군의 실리나드 성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아란은 해외로 도피하면서까지 이번 사건의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막나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 분명 이번 전쟁은 아란에게도 나름대로 굉장히 중요한 뭔가를 얻어 내기 위한 과정이야.'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아크에게 손해를 입히기 위해, 그것도 마족 전쟁에서 패하면 어차피 반환될 영지에 피해를 주기 위해 10여 만이나 되는 마족을 동원했을까? '마족을 움직인 게 아란이라면 이번 사건은 근본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 놈이 마족을 움직인 게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원정군의 발목을 잡기 위한 제스처인가? 아니면 나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르바나 그 자체인가? '자, 자! 생각을 정리해 보자.'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 아크는 일단 소거법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첫째, 원정군의 발목을 잡기 위해 시르바나를 점령했다면? 시르바나와 주변의 영지 2개만 점령하고 움직임을 멈췄을 리가 없다. ......확률 10% 미만. 둘째, 아란이 아크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시르바나를 점령했다면? 가능성은 있지만 어차피 마족 전쟁이 끝나면 시르바나는 아크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시르바나의 가치는 지리적인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라 실제 타격은 크지 않다. ......확률 40$ 미만. '아란이 실리나드를 포기하면서까지 마족을 동원한 이유가 제스처도 아니고, 나에 대한 복수라면 답은 하나. 시르바나를 점령함으로써 마족 전쟁에서 승리할 만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족이 시르바나를 중심으로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만을 점령하고 움직임을 멈춘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 만약 마족의 목적이 시르바나뿐이었다면 굳이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까지 점령할 이유가 없다. 반대로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왕국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더 많은 영지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족은 딱 시르바나 영지의 옆에 붙어 있는 두 영지만을 점령했다.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를 점령해 시르바나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시 영주성을 지키던 연합원의 말에 의하면 상공에 뤼겐베르크까지 출현했었다고 했다. 뤼겐베르크는 붉은 남자의 공중 요새. 시르바나를 공격한 배후에는 아란만이 아니라 붉은 남자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분명 뭔가가 있다. 시르바나에는 삼국의 국왕도 몰랐던 비밀 던전 같은 게 숨겨져 있었던 곳이니 내가 모르는 뭔가가 남아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아크의 짐작은 곧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이번 사태를 해결할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마족이 시르바나를 공격한 게 이번 전쟁의 향방을 바꿔 놓을 만큼 중요한 거라면? 뭐가 됐든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상황이 180도로 달라진다. 그리고 마족이 시르바나를 점령하고 아직 퇴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찾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야. 만약 그 사실을 증명만 할 수 있다면......'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왕국이 이번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이유는 마족 전쟁의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마족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양국은 모든 힘을 동원해서 시르바나를 탈환하리라! '일단 그게 뭔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다!' "라둔, 라둔마로 변신해라!" 쌕쌕쌕? 쌕쌕쌕쌕! 생각에 잠겨 있던 아크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라둔이 재빨리 허리에서 튕겨져 나와 거대한 도마뱀, 라둔마로 변신했다. 그러자 라둔마의 덩치에 밀려 뒤로 밀려난 시드가 황망한 눈길로 물었다. "엑! 뭐, 뭐예요. 갑자기?" "당장 가 봐야 할 곳이 생겼어." "가 봐야 하다니? 어디를요? 시르바나는 어쩌고요?"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어. 가자, 라둔!" 동시에 라둔마가 바닥에 쌓인 눈을 튀기며 맹렬하게 달려 나갔다. 바바바바, 바바바바! 라둔마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설원을 가로질렀다. 지금 아크가 라둔마를 타고 달려가는 곳은 바로 알바나 산맥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그리아였다. 그렇다. 시르바나에 관련된 뭔가를 알아낼 방법을 고민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바로 샹그리아였다. 현재 아크는 아란이 시르바나에서 뭘 하려는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르바나에 뭔가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그 기록이 남아 있을 터. 그렇다면 뉴 월드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샹그리아에서 시르바나에 대한 역사를 조사하다 보면 뭔가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란 놈의 계획을 막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그게 뭔지 알아내야 한다!' 그렇게 잠시, 드디어 눈앞에 순백의 눈에 뒤덮인 알바나 산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정군이 알바나 산맥을 지나 실리나드까지 이동하는 데는 사흘이 걸렸지만, 아크가 다시 알바나 산맥으로 되돌아오기까지는 불과 1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동속도+500%의 라둔마를 타고 쉬지 않고 달려온 덕분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힘내라, 라둔!" 쌕쌕쌕, 쌕쌕쌕쌕! 바바바바. 바바바바! 라둔마는 헐떡이면서도 간만에 아크와 즐기는 드라이브(?)가 꽤나 즐거운지 기운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기대에 보답하듯 짧은 다리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아크는 그런 라둔마에게 쉬지 않고 '간병'을 써 주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됐어, 이제 저 계곡만 넘어가면 샹그리아다.' 방어 결계가 작동해 공중에 떠 있던 샹그리아는 현재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아크가 샹그리아에 도착하자 마족들이 곧 퇴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족들은 이미 아크의 손에 창세의 궤가 넘어갔다고 판단하고 포기한 것이리라. 그리고 어차피 아크 일행이 원정군과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비온 요새가 함락됐다. 동시에 마족들도 알바나 산맥에서 철수해 샹그리아가 굳이 방어 결계를 다시 작동시킬 이유가 없었다. 역시나 계곡을 넘어서자 샹그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그러나 샹그리아를 확인한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눈앞에 보이는 샹그리아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 달랐다. 숲은 반쯤 불타 잿가루를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고, 섬광을 뿜어내던 방어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의 흰색 거탑도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라둔, 멈춰라. 마령 소환, 라카드와 퓨리탈!" 아크는 샹그리아 앞에 멈춰 서서 소환수를 불러냈다. "라카드, 샹그리아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 봐라. 퓨리탈, 주변을 경계하라!" "예써ㅡ!" 딱딱딱, 딱딱딱딱! 라카드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갓따. 그리고 아크는 방패를 치켜세운 퓨리탈의 호위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샹그리아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오니 상황은 더욱 명확해졌다. 흰색 거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는 발톱에 뜯겨 나가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고, 눈 덮인 바닥에는 여기저기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틀림없는 전투의 흔적! '샹그리아가 습격받았다면 범인은 마족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왜?' 마족들이 노리던 물건은 창세의 궤. 그러나 이미 창세의 궤는 아크의 손에 의해 원정군에게 넘어갓다. 알바나 산맥도 원정군에게 점령당한 시점에서 굳이 샹그리아를 공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주인, 주변에 마족은 없어. 탑 주변에 백호족 몇 마리와 예언자 일족밖에 안 보여. 그런데 다 죽었는데?" 그때 정찰을 나섰던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는 곧바로 라둔마를 달려 흰색 거탑으로 향했다. 거탑 주변에는 라카드의 말처럼 백호족과 예연자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백호족 20마리와 예언자 10명...... 전멸인가?" 시신의 숫자를 헤아린 아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본래 샹그리아에는 백호족 150마리와 예언자 20명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창세의 궤는 예언자 외에는 손을 댈 수 없는 성물. 레리어트와 함께 10명의 예언자가 동행해 창세의 궤를 운반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장에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백호족 130마리가 동행했다. 때문에 샹그리아에는 백호족 20마리와 예언자 10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쌕쌕쌕? 쌕쌕쌕쌕! 그때 혀를 날름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라둔마가 퍼뜩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예언자 하나가 움찔움찔하며 신음을 흘려 냈다. "으...... 으......" '생존자!' 아크는 황급히 라둔마의 등에서 뛰어내려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억지로 입을 벌려 포션을 3~4개나 쏟아붓자 예연자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초점을 맞추려는 듯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다, 당신은......" "접니다. 아크입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크...... 마반 영웅의 후예..... 쿨럭쿨럭!" 예언자가 기침을 해 대자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이미 살리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NPC의 경우 죽음에 임박한 상태가 되면 성직자의 '영혼 치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생명력이 계속 줄어든다. 포션을 먹여도 마찬가지. 생명력이 거의 늘어나지 않고 그조차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것이다. "기운을 내십시오. 당신은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크가 손을 움켜쥐고 '간병'을 난사하자 예언자가 약간의 기력을 되찾았다. "당신이 창세의 궤를 가지고 떠난 직후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마족들을 이끌고...... 샹그리아를 습격했습니다." "검은 갑옷의 기사?" 순간 아크는 머릿속에 아란이 떠올랐다. 사실 아크는 파비온 요새를 공격할 때 한 가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파비온 협곡의 마족들은 아란의 조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파비온 요새가 함락될 때까지 아란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파비온 요새를 함락시킨 뒤 실리나드로 진격할 때도 아란은 커녕 그렇게 많던 파비온 협곡의 마족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샹그리아를 습격하기 위해서였던 건가?' "하지만 놈들의 목적은 창세의 궤가 아닙니까? 놈들도 내가 이곳에서 창세의 궤를 가지고 나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놈들의 목적은...... 처음부터 창세의 궤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의 궤가 아니라고요?" "네. 검은 갑옷의 기사는...... 샹그리아의 지하에 보관되어 있던 지옥석을......" "지옥석? 그게 뭡니까?" "그게 뭔지...... 그자가 왜 그 물건을 가져갔는지......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리고 몇몇 강력한 마족과 함께......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들어갔다가...... 서둘러 떠났습니다." '히스토리 크리스털!'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거탑 안에는 길목마다 문짝만 한 크기의 크리스털이 수백 개나 늘어서 있었다. 그것은 하나에 10년 분량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크리스털이었다. 그리고 이 크리스털의 정보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집약시키는 크리스털이 바로 히스토리 크리스털이었다. '아란이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들어갔다가 서둘러 떠났다고?' 아크가 샹그리아를 떠나고 나서 바로 아란이 공격했다면 대략 사흘 전. 그리고 마족이 나가란을 침공한 시각이 바로 어제였다. 이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단순한 얘기야. 만약 마족이 진즉에 시르바나에 놈들이 찾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지금까지 손 놓고 있었을 리가 없어. 그건 다시 말해 놈들도 지금까지는 '뭔가'가 시르바나에 있다는 걸 몰랐다는 말이다. 놈들이 샹그리아를 공격했던 목적이 창세의 궤만이 아니라면 다른 목적은 바로 그 '뭔가'의 정보다!' 그리고 시간상으로 보면 시르바나를 공격한 마족은 아란이 직접 지휘했을 가능성이 많았다. 실제로 영주성에서 죽은 연합원들은 마족과 상당한 유저들이 섞여 있었다고 증언했었다. '틀림없어. 아란 녀석은 여기서 정보를 얻고 시르바나를 점령한 거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곳에서 놈의 목적이 뭔지 알아낼 수 있다는 말이야!' "잠시 쉬고 계십시오. 퓨리탈, 라카드, 너희들은 여기서 이분을 지키고 있어라." 그런 결론에 도달한 아크는 예언자를 적당한 자리로 옮겨 놓고 거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탑 내부 역시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지만 크리스털들은 흠집 하나 없었다. 이전에 들었던 예언자들의 토막 정보에 의하면 뉴 월드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샹그리아의 크리스털은 신의 가호를 받아 어떤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잠시 거탑을 뒤지던 아크는 이내 거대한 크리스털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거탑의 모든 크리스털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히스토리 크리스털! 크리스털을 발견한 아크는 뒤늦게 뭔가 잊고 왔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젠장, 예언자에게 묻고 왔어야 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예언자가 아란이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들어갔었다고 말했지? 그럼 여기 어디에 크리스털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는 건가?" 아크가 그런 생각으로 크리스털에 손을 가져갔을 때였다. 돌연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접속했습니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의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뭐야? 들어간다 어쩐다 하더니 그냥 손만 대면 되잖아?" 메시지를 읽어 본 아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유식하게 대답했다. "Yes!" 화아아아아아악! 그때였다. 갑자기 크리스털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어떻게 손을 써 볼 새도 없이 몸이 쭉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치 태풍에 휩쓸려 날아가는 것처럼 정신없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싶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확 밝아졌다. "헉! 대, 대체 이게 무슨......" 강렬한 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리던 아크의 입이 꾿 닫혔다. 방금 전까지 크리스털 앞에 서 있던 아크는 어느새 끝도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이동해 있었다. 바닥도, 하늘도 모두 하얀색으로 뒤덮인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수천수만, 수십 만...... 아니,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크리스털 석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서, 설마 이게 전부......"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담겨 있는 정보입니다. 돌연 머릿속에서 여자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헉! 누, 누구야?" -저는 사용자가 히스토리 크리스털의 정보를 편하게 검색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입니다. 편하게 내비 양이라는 애칭으로 불러 주시면 됩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니? 비밀의 성소에 숨겨져 있던 크리스털치고는 지나치게 사용자를 배려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내비 양은 또 뭐란 말인가? 장난하냐? 지금 진지한 분위기인 거 몰라? 아크는 태클을 걸고 싶은 욕망이 불끈불끈 솟구쳤지만 꾹 눌러 참았다. 태클이나 걸고 있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좋다, 내비 양. 여기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검색할 정보의 키워드를 외치시면 됩니다. "키워드? 인터넷을 검색할 때와 비슷한 건가? 그렇다면...... 시르바나!" 슈우우우우, 쾅, 쾅, 쾅, 쾅, 쾅! 동시에 돌연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석판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굉음을 울리며 아크의 코앞에 탑처럼 쌓여 올라갔다. 그 높이가 무려 수십 미터! 아크가 입을 쩍 벌리며 중얼거렸다. "이, 이게 전부 시르바나에 관련된 정보라는 거야?" -그렇습니다. 맨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내비의 대답과 함께 가장 윗부분에 있던 석판 1장이 눈앞으로 날아왔다. [나가란]은 [암흑 세기] 때 [마족]과 인간의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암흑 세기가 끝난 뒤로는 [슈덴베르크], [브리스타니아], [시니어스] 공국의 세력 전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현재는 [이방인]들이 영지의 권리를 두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 [시르바나] 영지는 그 나가란의 서북부에 위치한 영지로 현재 [아크]가 영주를 맡고 있다. 시르바나의 면적은 126,785평방미터이고, 강수량은 연간...... 맨 처음은 역시 가장 기본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석판에 쓰여진 단어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로 표시되어 있는 단어들이었다. "뭐지? 이 표시는?" -상세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손으로 누르면 해당 정보가 표시됩니다. 네비의 대답에 아크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아크]라는 단어를 눌러 보았다. 그러자 또다시 어디선가 석판 1장이 날아왔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23,535(+500) 레벨 : 433 직업 : 다크소울 작위 : 남작 칭호 : 캣 나이트, 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8,175(+575) 마나 : 8,365(+325) 영력 : 786 힘 844(+38) 민첩 1,159(+170) 체력 1,389(+65) 지혜 185(+10) 지능 1,527(+25) 운 209(+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233 유연성 : 268 화술 : 79 애정 : 129(+10) 탄력도 : 483 어둠의 안개 : 74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 가능 @백호족의 망토(망토) : 무력, 사기 저하에 먼역, 용기+30%, 민첩+30, '백호의 외침' 사용 가능 *<<수왕>> 세트 효과 : 힘+35, 민첩+35, 체력+35, 방어력+70, [야생의 힘] 사용 가능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양손 검) : 마족 추가 데미지+10%, 민첩+20, 체력+20, 지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그렇군. 이제 대충 정보 찾는 방법을 알겠어.' 그때부터 아크는 엄청난 속도로 시르바나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의 1시간 동안 수백 장의 석판을 검색하고, 혹시나 싶은 단어는 상세 정보까지 몽땅 뒤져 봤지만 어디에서도 이렇다 할 정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한참을 뒤적이던 아크는 뭔가 기묘한 위화감을 깨달았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의 정보는 엄청나게 상세하다. 심지어 지난 수백 년간 시르바나의 날씨 정보까지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로 표시되어 있는 상세 정보를 이용하면 정말 별의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검색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시르바나나 나가란에 대한 기록은 모두 수백 년 전까지다. 그 전의 기록은 검색이 되지 않고, 어떤 상세 정보를 통해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 바로 그게 문제였다. 다른 지역에 대해서는 암흑 세기는 물론, 그 이전의 기록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시르바나나 나가란의 정보 역시 암흑 세기 이전의 기록은 있었다. 그런데 정확하게 암흑 세기 동안의 기록이 빠져 잇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빠져 있는 정보는 시르바나나 암흑 세기 같은 일반적인 키워드로도 검색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기록을 숨겨 놓은 듯한...... '그렇다면 좀 더 직접적인 키워드로 검색해야 한다는 말인데......' 아란이 이곳에서 뭔가를 찾았다면 마족 전쟁과 관련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마족 전쟁은 과거 암흑 세기의 재현. 그렇다면 아란이 찾았던 정보는 당연히 암흑 세기의 기록에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대체 그게 물건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대체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야 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무턱대고 정보를 검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아란이 서둘러 떠났다는 것은 이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서일 거다. 그렇다면 아란은 뭔가 그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키워드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야.'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아란이 샹그리아에서 정보만 검색한 게 아니잖아. 예언자는 아란이 '지옥석'이라는 물건을 약탈했다고 했어. 혹시 그 '지옥석'이라는 게 아란이 시르바나에서 하려는 짓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검색, 지옥석!" 거기까지 생각해 낸 아크가 소리쳤을 때였다. 지금까지는 키워드를 외치면 관련 석판이 날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배경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일그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돌연 주위가 시커멓게 변하는가 싶더니 눈앞에 엄청난 화염의 장벽이 나타났다. "헉! 이, 이게 뭐야?" -방화벽입니다. 방금 검색하신 키워드의 정보는 보안이 설정된 지역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구역으로 들어가서 정보를 열람하려면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내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화벽? 패스워드? 정말 가지가지 한다. 누가 만들어 놨는지도 모르는 방화벽의 패스워드 따위를 아크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비의 설명과 달리 방화벽을 뚫는 데는 패스워드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저건......!" 주위를 둘러보던 아크의 눈에 작은 구멍이 보였다. 마치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진 것처럼 화염의 벽 아랫부분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그 구멍을 발견하는 순간, 아크는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그렇군. 예언자는 아란이 고위 마족과 함께 히스토리 크리스털로 들어왔다 나갔다고 했어.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지만, 만약 아란이 미리 방화벽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아란이 고위 마족과 함께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들어온 이유는 바로 고위 마족의 능력을 이용해 방화벽을 뚫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아란이 찾던 정보는 이 방화벽 너머에 있다는 뜻. 그리고 이미 아란이 방화벽을 뚫어 놨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아크는 재빨리 구멍을 통해 방화벽 너머로 기어 들어갔다. 방화벽 뒤에 커다란 방에는 누군가 정보를 검색한 듯 10여 장의 석판이 쌓여 있었다. 역시 보안이 설정된 정보가 담긴 석판이라서 그런지 다른 석판과 달리 검은색이었다. '아란 녀석, 급하긴 급했나 보군. 이런 흔적을 남겨 놓다니......' 아크는 곧바로 가장 위에 놓여 있던 석판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아크가 석판을 들어 올리자 갑자기 표면에 노이즈가 일어나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능력이 부족하여 해당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고대 유물의 지식 300 이상. 혹은 비밀 문자 해독 300 이상. 진실의 추구 300 이상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뭐, 뭐야? 정보를 확인하려면 고대 유물의 지식이 300이나 필요하다고?" 아크는 황급히 다른 석판들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다른 석판들도 모두 정보를 확인하려면 '고대 유물의 지식'이나, 트레저 헌터나 드루이드 같은 직업의 전용 스탯인 '비밀 문자 해독', '진실의 추구' 따위가 필요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모든 석판에 같은 수준의 지식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현재 내 고대 유물의 지식은 233. 일단 그 정도로 해독할 수 있는 석판을 모아 보자. 아란이 확인한 정보를 모두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부족한 부분은 대강 맞출 수 있을 거야.' 아크는 10여 장의 석판을 고대 유물의 지식에 맞춰 분류해 놓았다. 그렇게 따로 모아 놓은 석판은 4장이었다. '일단 반은 건진 셈이군. 그 정도면 어떻게든 대강은 알 수 있을 거야.' "자, 아란 녀석의 꿍꿍이가 뭔지 한번 확인해 볼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석판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석판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이내 눈앞에 정보창이 올라왔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에 기록된 비하인드 히스토리를 찾아냈습니다. 비하인드 히스토리는 밖으로 유출되면 위험하다고 판단해 고대의 예언자들이 숨겨 놓았던 역사입니다. 이 숨겨진 역사는 예언자 일족에게도 전승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25, 지능 20, 운 10, 명성이 200 상승했습니다.>> 아크가 봉인을 해제하자 석판의 노이지가 사라지며 내용이 떠올랐다. "응? 뭐, 뭐야, 이건?"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첫 번째 석판에서 떠오른 것은 1장의 지도였다. 스탄달과 시니어스 북부 해상에서 떠오른 2개의 이계까지 그려진 뉴 월드의 전도. 이 석판이 숨겨진 게 오래전임에도 스탄달이나 다른 이계까지 나와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암흑 세기 이전이나 당시의 지도이리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가란 지역이 시커멓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나머지 4장의 석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암흑의 제왕이 이 세상에 출현하면서 그 충격으로 현실과 지옥의 경계가 무너져 뉴 월드의 중심에 지옥의 강이 범람햇다. 지옥의 강은 지옥을 이루는 강력한 저주와 원념의 집결체라 나가란의 대지는 썩어 들어갔고, 마족들은 지옥의 강에서 뿜어내는 마기에 의해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한번 지옥의 강에 잠겼던 대지는 강력한 저주와 원념이 스며들어 설사 봉인한다고 해도 향후 60년 동안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린다. 또한 지옥의 강은 마족들이 사용하는 각종 저주 마법의 매개체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평범한 몬스터들도 마족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의 마력을 이용해 7인의 영웅와 100용사들은 지옥의 강을 나가란의 깊은 지하에 봉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세상에 범람한 지옥의 강을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때문에 봉인된 지옥의 강 밑바닥에 일종의 조절 장치를 만들어 지옥의 강의 힘이 밖으로 올라오지 않고 지하에서만 흐르도록 안배해 놓았다. 그리고 지옥의 강을 봉인할 때 사용했던 그것을 지옥의 강 깊은 곳에...... ......그것을 숨긴 7인의 영웅과 100용사는 지옥의 강의 힘을 조절하는 장치의 열쇠인 '지옥석'을 샹그리아로 가져왔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수정은 언젠가 암흑의 제왕이 부활할 거라는 신탁을 내렸다. 그리고 그때는 먼 훗날 이 세계의 찾아올 이방인들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영웅과 용사들은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대비해 모든 생명을 바쳐...... "지옥의 강!" 그제야 아크는 왜 고대 지도에 나가란이 검게 표시되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암흑 세기 때 나가란은 암흑의 제왕이 출현하는 충격으로 지옥에서 뿜어져 올라온 지옥의 강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7인의 영웅과 100용사가 지옥의 강을 봉인해 놨다는 지하 깊은 곳은 바로...... "......시르바나!"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서 모든 의문이 풀려 나갔다. 아크는 이미 시르바나의 비밀 던전 최하층에 있는 지옥문을 통해 들어가 지옥의 강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봤던 지옥의 강이 바로 7인의 영웅과 100용사가 봉인해 놓은 지옥의 강이었던 것이다. 암흑 세기가 끝난 뒤 나가란이 삼국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이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지옥의 강을 봉인했지만 한번 침수됐던 나가란은 60년 동안 불모지 상태여서 삼국 어디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뒤에야 삼국은 나가란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7인의 영웅과 100용사도 지옥의 강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지옥의 강이 다시 범람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그 덕분에 나가란은 수백 년 동안 안전하게 지켜져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잇는 열쇠가 바로 '지옥석'! 그런데 아란이 그 '지옥석'을 탈취하고 이곳에서 지옥의 강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뒤에 사라졌다. 아란의 목적이 뭔지는 나머지 석판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맙소사! 놈의 목적은 나가란을 다시 지옥의 강에 잠기게 만드는 거였어!"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크는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당했지만 마족 전쟁이 끝나면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록에 의하면 한번 지옥의 강이 범람하면 다시 봉인해도 나가란은 향후 60년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대지가 된다고 적혀 있었다. 60년이면 현실 시간으로 계산해도 20년이다. 일단 지옥의 강이 범람하면 시르바나는 끝장나는 것이다. 또한 지옥의 강은 '마족의 영향권'처럼 마족들이 사용하는 각종 저주 마법을 강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일반 몬스터를 마족으로 바꿔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없지만 마족 전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아란을 막아야 해!' 여기까지 알아낸 아크는 곧바로 방화벽 밖으로 기어 나오며 소리쳤다. "내비 양, 히스토리 크리스털을 나가는 방법은?" -종료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좋아. 종......" 아크는 곧바로 크리스털에서 빠져나가려다가 멈췄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은 뉴 월드의 모든 사람과 역사가 담겨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아란 녀석의 그 괴상한 힘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보 검색, 아란!" 아크는 아란을 키워드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곧 1장의 석판이 날아왔다. 아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는 석판이었다. "......뭐, 뭐야? 파멸의 기사? 그럼 파멸의 기사라는 게 아란을 말하는 거였어?" 정보를 확인하던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른은 원래 홀리나이트였다. 물론 레리어트가 이노센스 나이트로 전직할 때의 상황을 알고 있으니 아란의 직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뀐 아란의 직업이 설마 그동안 수없이 많이 들어 왔던 파멸의 기사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여러 정황상으로 지금까지 아크는 파멸의 기사가 그 붉은 남자일 거라고 짐작해 왔던 것이다. '젠장, 아란의 정보를 검색하고 파멸의 기사로 붉은 남자의 정보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설마 아란과 파멸의 기사가 동일 인물이었을 줄이야.' 붉은 남자는 이름조차 모르니 더 이상 정보를 검색할 수 없었다. '그런데 역시 뭔가 좀 이상한데? 분명 아란의 정보에는 레벨은 고작 400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증오 세트 완성으로 얻은 '증오의 오라' 스킬을 발동시키기 전에도 어둠 속성 보너스를 받는 나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거지?' 혹시나 싶었던 아크는 '파멸의 기사의 스킬'을 키워드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키워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창만 확인햇을 뿐이었다. '혹시 알아 두면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할 수 없지. 더 이상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검색 종료!" 동시에 아크의 몸이 하늘에 솟구치는가 싶더니 다시 히스토리 크리스털 앞으로 이동했다. 다시 거탑 밖으로 나가자 예언자는 죽어 있었다. "주인이 떠난 뒤로 계속 꼴딱꼴딱하더니 갑자기 픽 죽어버리더라고." 라카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렷다. 그러나 예언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젠장! 라둔, 라둔마로 변신해라. 다시 실리나드 주둔지로 돌아간다!"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마로 변신한 라둔이 또다시 눈 폭풍을 일으키며 설원을 가로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상상도 못 했다.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내용은 아크가 확인하지 못한 나머지 석판에 적혀 있다는 것을...... ACT 5 나가란 연합군 kianms10310@naver.com "룰룰루‥‥‥." 권화랑이 콧노래를 부르며 히죽거렸다. 오늘 권화랑은 뭔가가 달랐다. 머리에는 구두 광낼 때나 쓰는 거라고 말하던 왁스까지 발라 다듬었고, 얼굴은 마스크 팩이라도 햇는지 반질반질 매끈매끈 윤기가 흘렀다. 그리고 평소 입고 다니던 낡은 가죽점퍼 대신 칼처럼 날을 세운 양복에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광을 낸 구두까지 장비하고 있었다. 권화랑이 이렇게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선 것은 오늘이 바로 결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우후후후후." 권화랑이 나사 몇 개 풀린 사람처럼 실실거리며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형여나 깨질세라 조심스럽게 짝이 없는 동작으로 천천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비록 크지는 않지만 감정서까지 붙어 있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는 반지‥‥‥. 그렇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상자를 바라보는 권화랑의 눈에 뿌듯한 감정이 차올랐다. '드디어 왔다! 이날이 오고야 말았어!' 권화랑은 몇 년 전부터 '이날'을 기다려 왔다. 그러나 확 저질러 버리기에는 주변의 자잘한 문제들이 툭툭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신경 쓰였던 문제는 권화랑 본인에게 있었다. 강도의 칼에 찔렸던 다리에 후유증이 남아 다리를 절게 되었다. 게다가 여론에 밀려 본의 아니게 평생을 몸담았던 경찰직에서 쫓겨났다. 장애인이 된 상태로 직장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몸과 직장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권화랑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마치 세상에서 버림받은 낙오자가 돼 버린 기분. 물론 경찰에서도 사정을 생각해서 전과자의 사회 적용 프로그램 관리 업무를 맡겨 주었지만, 상실감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감히 '그 일'을 시도할 엄두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략 2년 전부터 구너화랑의 주변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년이나 권화랑을 괴롭히던 후유증은 점차 회복되더니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현우를 도와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상황이 변한 건 권화랑 만이 아니었다. 현우 역시 2년 전부터 점차 살림이 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정말 남부럽지 않은 수입을 올리는 중이다. 그리고 박소미도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 모든 변화는 권화랑과 현우, 박소미가 뉴 월드를 시작하고 나서 부터였다. 뉴 월드를 시작하고 나서 수입이 많아지고 건강이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아아, 저의 인생은 암흑의 터널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뉴 월드를 만나고 나서 제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은 빛으로 변하고, 절망은 희망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간증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뭐, 어쨌든 현재 권화랑의 주변 상황은 모두 좋아졌다. 그리고 모름지기 모든 일은 타이밍이 중요한 법. 마침내 권화랑은 수년이나 망설여 왔던 '그 일'을 추진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프, 러, 포, 즈! 그렇다. 권화랑이 수년 동안 망설이던 '그 일'.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그 일'. 그런 바로 오래전부터 가슴에 담아 둿떤 박소미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현우에게 지금이라면 프로포즈의 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희망찬 메시지도 받았다. 덕분에 현우의 집으로 향하는 권화랑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막상 집 앞에 도착하니 숨이 턱턱 막히며 긴장되었다. 매일 드나들던 집인데도 마치 뉴 월드에서 경험한 어떤 던전보다도 크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공포는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극복해야 하는 공포! '한다! 하는 거야! 해버리는 거다! 화랑아, 넌 하면 할 수 있는 남자다!' 권화랑은 다시 주머니 속에 들어간 반지 상자를 꽉 움켜쥐며 집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현관 앞에서 박소미가 방긋 웃으며 권화랑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아아! 이거야, 이거. 내가 원하는 게‥‥‥.' 남편이 집에 들어올 때 사랑하는 아내가 맞아 준다. 남들에게는 딱히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권화랑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다. 수십 년을 혼자 살아온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이었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결심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박소미가 유난히 예뻐 보였다. 적당히 다듬은 머리는 물론, 몸에 걸친 감색 가디건, 심지어 그녀가 앉아 있는 휠체어까지 반짝반짝 광이 나느 것처럼 보였다. "좀 놀랐어요. 갑자기 외식을 하자고 하셔서, 어디로 갈지 말씀을 안 하셔서 일단 적당히 무난한 옷으로 꺼내 입었는데 좀 그런가요?" "아, 아닙니다. 예쁩니다. 정말 예쁩니다! 환장하도록 예뻐요!" 권화랑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펄쩍 뛰며 고개를 저었다. 박소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현우의 작업실 -게임룸-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 녀석은 뭐하는 거람? 집에 손님이 오셨는데 얼굴도 내밀지 않고." "아니, 괜찮습니다. 제가 어디 손님인가요? 바쁜 것 같으니 그냥 두십시오." "그럼 오늘은 저희들만 나가는 건가요?" "네? 아, 그러니까‥‥‥ 실은 오기 전에 현우와 통화해 봤는데 오늘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힘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다음에 가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모처럼의 외식인데?" "그건‥‥‥이미 예약을 해 놔서 말입니다. 취소하기도 뭐해서 ‥‥‥현우와는 다음에 또 기회를 만들어 보죠." 권화랑은 현우가 코치해 준 대로 둘러댔다. 다행히 박소미는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할 수 없죠. 죄송하지만 휠체어 좀 밀어 주시겠어요?" "네, 기꺼이! 언제까지라도 밀어 드리겠습니다!" 권화랑은 행여 박소미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까 싶어 얼른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어딘지 평소와는 다른 권화랑의 태도에 박소미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갑자기 외식을 하자는 거나, 옷차림도 평소와 다르고‥‥‥." "좋은 일요? 있죠." "뭔데요? 제가 알면 안 되는 일인가요?" "그럴 리가요. 그건 식사하면서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권화랑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힘차게 휠체어를 밀려고 할 때였다. 콰당, 우당탕탕!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더니 현우가 구르듯 튕겨져 나왓다. 막 현관을 나서려던 권화랑과 박소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 현우야? 왜 그러냐?" "말시키지 말아요. 지금 바뻐요!" 현우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맹렬한 속도로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그때 권화랑의 가슴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나왔다. 받아 보니 휴대폰과 거실 , 두 군데에서 스테레오로 현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권 아저씨? 지금 어디세요?" "너 지금 뭐 하냐?" 권화랑이 어처구니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현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전화기와 현관 앞의 권화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뒤늦게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온 듯 전화기를 집어 던지고 권화랑에게 달려왔다. "권 아저씨, 큰일 났어요!" "큰일이라니? 뭔 소리야?" "여기서 이럴 게 아니에요. 일단 갱생단 형들부터 불러서 얘기해요." "야, 인마. 너 벌써 잊어버렸냐? 오늘이 그날이잖아." "그날이고 저 날이고 당장 시르바나가 사라지게 될지도 몰라요!" 현우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 * * "뭐, 그런 말도 안되는 ‥‥‥." 짝퉁이 황당한 표정으로 떠듬거렷다. 짝퉁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비상소집 된 갱생단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그만큼 현우가 알려 준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당해 버렸다는 것. 그리고 아란의 목적은 시르바나의 비밀 던전 최하층에 봉인된 지옥의 강을 끌어 올려 시르바나를 물론 나가란을 통째로 수몰시켜 버리려는 것이다. 추가로 일단 수몰되면 설사 다시 지옥의 강을 봉인한다고 해도 나가란은 향후 50년 동안 사람은 커녕 풀한 포기 자라지 않는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린다. 현우가 봣떤 고대 지도처럼 나가란은 존재하지 않는 땅이 돼 버리는 것이다. "정말 마지막까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놈이군." "그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까지 하는거야?" 설명을 들은 덩치와 불끈이가 어처구니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얍삽이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걸 몰라서 묻냐? 당연히 복수심이지." "그것마은 아닐 거에요." 현우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만은 아니라니? 혹시 또 뭐가 있냐?" "실은 지금까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뉴 월드에서 일어나느 사건들은 예정된 이벤트가 아니에요. 몇몇, 혹은 어떤 집단이 주동이 돼서 뉴 월드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아이템을 이용해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거에요. 그리고 아란은 그 집단데 속해져 있고요." 현우는 그동안 글로벌엑서스를 통해 들엇떤 이번 사건의 전말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아란이 이미 몇 달 전에 해외로 도피해 이번 사건을 주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란이 지옥의 강에 잠기면 당연히 저는 엄청난 손해를 보게 돼요. 아란이라면 충분히 노려 볼 만한 일이죠. 하지만 이번에 아란의 행동은 나에 대한 복수라기 보다는 지옥의 강을 지상으로 불러내 불리한 마족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데 이용하려는 목적이 더 클 거에요. 그 때문에 원정군이 실리나드를 포위한 상황에서 마족을 10만이나 동원한 거겠죠." "해외로 도피하면서까지 이번 일을 주동하고 있다고?" "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그놈이 얻을 수 있는 게 뭔데?" "지금이야 도망 다닐 수 있겠지만 나중에 귀국하면 어떻게 하려는 거야?" "놈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얻을 건 많지. 나중에 귀국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말이야." 그때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겨 있던 짝퉁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갱생단이 둘러앉은 식탁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만약 아란 일당이 주동해서 마족들이 전쟁에서 이긴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떻게? 그야 글로벌엑서스는 엿 되지." 덩치가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냐는 투로 대답했다. "엿이 안 되게 하려면?" "그야‥‥‥혹시 라도 마족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려면 아란 일당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던 덩치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짝퉁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현우가 말한 대로라면 - 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글로벌엑서스는 시스템상으로 아란 일당의 움직임을 막을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손을 쓰지 못한 거겟지. 그리고 만약 마족이 뉴 월드를 집어삼킨다면 뉴 월드의 모든 것은 마족을 조종할 수 잇는 아란 일당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란 일당은 마족을 이용해 도시를 없애거나, 반대로 마족을 도시 경비대로 활용하면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뉴 월드의 모든 것을 마음 먹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뉴 월드에 절대적인 독재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유저들이 아예 게임을 하지 못하는 상황도 만들 수 있겟지. 그리고 운영자 조차 그들을 막을 방법이 없어. 그렇다면 운영자가 뉴 월드라는 온라인 게임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야." "아란 일당에게 굽실거리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렇지." 짝퉁이 손가락을 튕기며 대답했다. 일순 주위가 조용해졌다. 현우와 권화랑, 갱생단 모두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족이 뉴 월드를 정복하면 언제든지 대륙 전체의 유저를 전멸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면 유저들의 불만은 당연히 글로벌엑서스로 향한다. 당연히 각종 손해배상 소송이 줄을 잇게 되리라. 글로벌엑서스에서 그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뉴 월드를 정복한 아란의 비위를 맞춰 제발 그런 문제를 일으켜주지 않기를 부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부탁에는 필연적으로 상당한 금품이 뒤따르게 되리라. "뉴 월드는 글로벌엑서스의 매출 가운데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들은 적이 있어. 상상이 가? 연간 매출이 수십조에 달하는 거대 기업의 수익 30%야. 그런 뉴 월드에 문제가 생기면 글로벌엑서는 한순가에 허물어질지도 몰라. 그러니 뉴 월드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라면 수십 억, 수백 억이라도 내놓겠지. 그뿐만이 아니야. 뉴 월드를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면 글로벌엑서스의 주식 시세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주식 시세?" "그래, 실제로 이번 마족 전쟁이 시작될 때 유저들의 항의가 빗발쳐서 뉴 월드 관련 주식이 폭락했어. 글러벌엑서스에서 마족 전쟁이 예정된 이벤트의 하나라고 발표한 뒤에야 다시 주식 시세가 정상으로 복구됐지." 그렇다. 이게 바로 하명우가 100억이나 들여서 이벤트를 진행시킨 이유였다. 주식 시세의 폭락으로 글러벌엑서스가 받을 데미지에 비하면 100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게 모두 아란 일당이 움직여서 만들어 낸 결과야. 그렇다면 놈들 입장에서 돈을 벌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마족을 움직여 유저들의 분말을 증폭시켜 주식 시세가 떨어졌을 때 사들였다가, 마족을 퇴각시켜 유저들에게 희망을 심어 준 뒤 주식 시세가 올라가면 팔아 치우는 방식으로 말이야. 뉴 월드만 정복하면 어떤 방법이든 땅 짚고 헤엄치기지. 마음먹기에 따라 수백 억, 수천 억도 벌수 있어." "수백 억, 수천 억‥‥‥!" "젠장, 우리가 깡패 소리를 들으면서 칼에 푹푹 찔려 가며 버는 돈이 고작 한 달에 수천만 원이었는데, 놈들은 그냥 앉아서 게임이나 하면서 수백, 수천 억을 번다는 건가?" "왠지 빈정이 확 상하는걸." "원래 진짜 악당은 그런 가야." 짝퉁이 염세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쨌든 짝퉁의 말도 현우에게는 그리 놀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사실 아란이 해외로 도피했다는 말을 들은 직후 이미 대강은 추측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영리한 아란이 무턱대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무모한 짓을 할 히가 없었다. 위험을 감수할 만한 이둑과, 범죄자가 되지 않는 방법을 나름대로 마련해 둔 것이리라. 그리고 실제로 놈의 계획이 성공하면 귀국해도 글로벌엑서스는 아란에게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 되리라. 실패하면 범죄자, 성공하면 재벌! 아란은 자신의 운명을 걸고 이번 도박을 시작한 것이리라. 때문에 현우는 아란이 자신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마족 전쟁에서 불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리나드를 포기하면서까지 시르바나에 마족을 집중시켰다면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뭐, 아란이 글로벌엑서르를 상대로 사기를 치든 강도짓을 핟근 관심 없어. 하지만‥‥‥.' 문제는 결과적으로 현우가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이었다. 당장 눈앞의 문제인 시르바나의 수몰도 그렇지만, 만약 현우에게 앙심을 품고 잇는 아란이 정말 뉴 월드를 지배하게 된다면 현우가 설 자리는 없어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돌고 돌아 결론은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결론에 도달한 갱생단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당장 슈덴베르크나 원정군에게 알려서 시르바나를 탈환해야지!" "이미 알렸어요." 현우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갱생단의 말처럼 샹그리아에서 아란의 계획을 알아낸 현우는 눈썹을 휘날리며 하베스틴을 찾아갔다. 그리고 하베스틴은 곧바로 왕성에 그 내용을 전달했다. 그러나 왕성에서 날아온 답신은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예정대로 브리스타니아 원정군과 함께 실리나드 공략에 집중하라. "그, 그게 무슨‥‥‥?" 현우의 말에 갱생단들이 어이없는 얼굴로 떠듬거렸다. "말도 안 돼! 나가란이 몽땅 없어져도 상관 없다는 거야?" "상관없다는 거예요." "뭐?" 현우가 답답한 한숨을 불어 내며 방금 전 하베스틴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대체 왜 입니까? 제가 알아온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설사 정보가 확실하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거네." "그럼 대체 왜‥‥‥?" "그 장소가 나가란이기 때문이네." 하베스틴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슈덴베르크에서 이번 사태를 현우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본래 나가란은 삼국이 세력 다툼을 벌이던 전장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소모전에 지쳐 삼국은 휴전을 합의하고 나가란을 완충지대로 삼기 위해 이방인들에게 던져 주었다. 다시 말해 나가란은 삼국 모두의 영지이면서, 동시에 어느 왕국의 소유도 아니었다. 영주가 된 이방인들에게 세금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 역시 3분의 1씩 나눠 가져야 하니 딱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반면 시니어스 공국은 확실히 돈이 될 만한 곳이었다. 공국 전체가 괴멸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마족을 무찌르고 공국을 되찾는다. 그렇게 되면 시니어스 공국에 막대한 양의 보상금을 뜯어낼수 있는 것이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진군한 원정군을 그대로 눌러앉혀 국토를 넓힐 수도 잇다. 양국이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원정군을 움직이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주도구너을 잡고, 그러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진군해야 하는 거네." 그런데 브리스타니아 원정군과 합류한 시점에서 슈덴베르크 원정군만 빠져나온다면? 겨우 잡앗던 주도권은 물론,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를 그만큼 덜 확보할 수밖에 없다. 반면 원정군을 돌려 나가란을 되찾는다고 해도 그곳은 어차피 슈덴베르크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잃는 건 많지만 얻는 건 없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옥의 강이 지상으로 나오면 단순히 나가란이 수몰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마족의 영향권'처럼 마족의 힘을 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잊었나?" 하베스틴이 말을 끊으며 바라보았다.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이미 창세의 궤를 손에 넣었네." 순간 현우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렇다. '마족의 영향권' 그 자체를 없애 버리는 창세의 궤! 슈덴베르크 왕국에게 더 이상 '마족의 영향권' 따위는 아무런 위협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니 , 오히려 '마족의 영향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창세의 궤를 가진 슈덴베르크 왕국은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리라. 때문에 슈덴베르크 왕성에서는 현우의 보고를 '못 들은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결국 현우는 자신이 찾아낸 보물 때문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버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창세의 궤가 있다는 건 아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옥의 강을 불러내려는 건 다른 목적이 잇어서일 겁니다. 창세의 궤로도 막을 수 없는." "그것을 증명할 자료가 있는가?" "그, 그건‥‥‥." 하베스틴의 질문에 현우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렇다. 그건 어디까지나 현우의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 현우가 대답을 못 하자 하베스틴이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더. "‥‥‥미안하네." 현우가 거기까지 설명하자 갱생단이 분개했다. "뭐 그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그럼 차라리 레리어트에게 연락해서 창세의 궤를 가지고 나오라고 해!" 갱생단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현우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슈덴베르크 왕국의 귀족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이미 말했듯이 창세의 궤가 처음 발동한 뒤로 원정군 병사들은 레리어트를 여신처럼 떠받들며 보호했다. 덕분에 현우조차 게임 속에서 레리어트를 만나려면 몇 번이나 검문을 받아야 할 정도엿다. '그때는 그냥 레리어트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보호'가 아닌 '감시'였다. 하베스틴의 보고로 창세의 궤가 가진 힘을 알게 된 슈덴베르크 귀족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레리어트와 예언자들을 가둬 놓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게임이든 ,현실이든 높은 자리에 있는 놈들이 하는 짓은 똑같군." "그래서? 레리어트느 뭐래? 아무리 NPC가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레이어트는 유저잖아. 수틀리면 확 접속 종료해버리겠다고 위협하면?" "그런 생각도 해 봤지만‥‥‥."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현우 역시 그런 식으로 슈덴베르크 왕국을 위협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어쨌든 창세의 궤는 마족 전쟁의 열쇠가 될 보물. 그리고 이제 그 보물에 대한 관심은 원정군만이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루빨리 마족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하는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창세의 궤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레리어트 역시 글로벌엑서스의 응시자였다. 때문에 레리어트가 창세의 궤를 다룰 수 있다는 정보가 알려졌을 때 이미 글로벌엑서스는 그녀와 '어떤' 교섭을 해 두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레리어트는 그 조건을 받아들여 창세의 궤를 손에 넣은 뒤로 아예 출근도 하지 않고 게임에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현우가 필요하다고 그녀에게 창세의 궤를 사용하지 말라는 둥의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가 아무런 도움이 되는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레리어트 님 덕분에 슈덴베르크로부터 군수물자 지원이라도 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건 다행이지만‥‥‥.' 현우가 다시 본부 막사에서 겪은 일을 떠올렸다. 당시 하베스틴이 안타까운 어조로 대답했을 때였다. "잠깐만요!" 10여 명의 호위와 함께 레리어트가 본부 막사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대강의 사정은 들었어요. 그리고 슈덴베르크 왕국의 입장은 이해해요. 하지만 나가란은 그동안 슈덴베르크 왕국에도 세금을 바치던 영지 아닌가요?본국의 이득을 위해 그런 나가란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니,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아크 님은 창세의 궤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공훈이 있잖아요. 만약 그런 아크 님의 곤란을 못 본척한다면 저 역시 창세의 궤를 슈덴베르크 왕국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약속을 할 수 없어요." 사실 이때 현우는 이미 레리어트가 글로벌엑서스와 모종의 협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NPC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창세의 궤의 중요도를 생각하면 설사 그게 엄포에 불과하더라도 그녀의 말을 함부로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원정군 사령관이 현우의 편이었다. 하베스틴은 곧바로 레리어트의 엄포를 200배 정도 부풀려서 왕성에 전했고, 왕성에서는 창세의 궤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단 한 걸음 물러났다. "만약 제가 병력을 모아 나가란 탈환에 나선다면 그에 필요한 군수물자의 대금은 모두 슈덴베르크에서 지급해 주기로 했어요." 이게 슈덴베르크 왕국이 내건 조건이었다. 그리고 레리어트도 더 이상 강력하게 뭔가를 요구할 상황이 아니라 일단 그쯤에서 물러났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갱생단원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역시 레리어트야. 그 녀석이 평소에는 조신하지만 한번 할 때는 하거든." "게다가 레리어트가 은근히 저 녀석을 챙기잖아." 갱생단들이 음흉한 눈길로 현우를 보며 중얼거렸다. 민망하기 짝이 없지만 현우 역시 레리어트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위해 나서 줄지는 몰랐다. 그리고 그녀가 나서 줬을 때 고마움과 함께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파비온 협곡에서의 일로 이제 그녀가 아란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레리어트도 현우가 그런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이후에 알게 되었다- 그런 감정은 더욱 기묘하게 얽혀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저희에게 필요한 건 병력이에요."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당장 필요한 건 벙력. 실제로 전투를 치를 병력을 구하지 못하면 군수물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새삼 상황을 깨달은 갱생단은 다시 불평을 쏟아 냈다. "불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러기를 잠시 짝퉁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슈덴베르크 왕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사정은 브리스타니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시니어스 공국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 결국 NPC들의 도움은 받을 수 없다는 거야." 웅성대던 식탁 주변은 무거운 침묵에 빠져 버렸다. 그렇다. 이런 저런 상황이 많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거였다. 정규 병력의 도움도 없이 10만 마족들에게 점령당한 시르바나를 탈환해야 한다는 것. 사실 현우가 거의 실성한 상태로 권화랑의 프로포즈를 방해하고, 갱생단을 불러 모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화랑이나 갱생단이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현우가 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물었다. "어떻게 병력을 모을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 지금 상황에서 보급 부대의 병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해도 1,000명 정도 밖에 차출할 수 없어. 그 이상 차출하면 군수물자 조달에 차질이 생긴다." "일단 1,000명은 확보한 셈이군요. 새발의 피지만, 다른 곳은요?" "스탄달에서 유저를 모은다고 해도 ‥‥‥ 이미 대부분 유저들은 원정군에 들어가 있고, 원정군에 들어가지 않은 유저들은 사냥이나 장사도 제대로 못 해서 아예 접속도 안하고 있는 상황이라 ‥‥‥ 바란족 전사까지 포함해서 잘해야 3,000 이나 4,000?" 권화랑이 중얼거리자 짝퉁이 고개를 저었다. "스탄달은 안 됩니다. 그렇지?" "네." 현우의 대답에 덩치들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런 반응에 짝퉁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미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당했는데 시간이 넉넉할 리가 없잖아." 그렇다.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당하고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리고 아란이 원하는 지옥의 강은 시르바나의 비밀던전 최하층에 있는 것이다. 일전에 현우가 비밀 던전 최하층에 내려갈 때까지는 18일 정도가 걸렸지만, 아란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리가 없었다. 이미 현우가 다크에덴과 함께 비밀 던전의 몬스터들을 싹쓸이했고, 그 뒤로도 NPC 연합원들과 유저 연합군이 비밀던전을 돌며 몬스터를 나오는 족족 청소해 놧끼 때문이다. '거기에 아란이 시르바나를 점령할 때 동원한 마족이 10만. 방어를 위해 그라돈과 베이크, 시르바나에 마족을 배치시켯다고 해도 1만가량의 마족과 함께 움직이고 있을거야.' 결국 아란은 1만의 마족과 함께 거의 비다시피 한 던전을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며칠이나 걸리겠냐?" "현재 다크에덴의 병력은 58층과 59에서 사냥하고 있어요. 50층 이전에 고대 미궁의 몬스터들이 많이 리젠됐을 거고, 51층의 어비스 지역부터는 지형이 복잡하고 함정이 많은 점을 고려해도 열흘이면 아란이 최하층에 도착할 거에요." 이게 스탄달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스탄달에서 병력을 모으면 나가란까지 이동하는 데만 4~5일이 소요된다. 아란이 비밀 던전에 진입한 지 이미 사흘이 지낫으니 나가란에 도착할 때면 모든 상황이 끝나 버리리라. 그리고 시간이 충분해도 고작 3,000~4,000의 병력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결국 하루 이틀 사이에 나가란에 집결시킬 수 있는 병력을 모아야 한다는 말이구나." 짝퉁의 말에 갱생단은 다시 침묵에 빠져 버렸다. 나가란 지역은 아직 '마족의 영향권'이 발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10만이나 되는 마족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5만은 필요하다. 거기에 시간제한까지 붙어 있으니 죽은 유저가 부활해서 합류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 점까지 고려하면 5만도 최소한이었다. 나가란과 인접한 지역에서 5만이나 되는 병력을 구한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라고 할 수있었다. 그렇게 현우와 갱생단이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아까운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였다. 무거운 분위기에 눈치만 살피던 얍삽이가 슬그머니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TV를 켜자 답답해하던 갱생단들의 시건이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현우 역시 별생각 없이 TV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연예인이나 되는 건데‥‥‥." TV를 보던 얍삽이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얍삽이가 보는 것은 게릴라 콘서트라는 방송이었다. 내용을 보면 신인 가수가 난생처름 가 본 도시에서 갑작스럽게 콘스터를 열며 길거리 홍보로 관객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방송이었다. TV에서는 1만여 명이 모인 콘서트장에서 신인 가수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클라이맥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연예인이면 사람 모으는건 문제도 아니잖아." "그러게요‥‥‥." 식탁에 엎드린 자세로 TV를 보던 현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그때 갑자기 현우의 머릿속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났다. '연예인? TV? 사람들?' 동시에 이 세가지 단어가 복잡하게 얽히며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현우가 벌떡 일어났다.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ACT 6 성동격서 kianms10310@naver.com -크라카, 크라카, 벨드람! 쿠콰콰콰, 쿠콰콰콰! 괴성과 함께 전방에서 엄청난 숫자의 마족이 달려들어싿. 지평선 너머까지 먼지구름으로 뒤덮이며 다가오는 마족의 숫자는 수만! 검과 창, 방패로 무장한 탈론을 선두로, 흉측한 마수들이 이끄는 전차를 탄 검마 라만, 집채만 한 바위를 들고 있는 자이언트와 크기가 수십 터나 되는 거대한 포식자 구더기 크라크. 마치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종류의 마족이 위협적인 포효를 터뜨렸다. 도시 하나 정도는 숫자만으로도 가볍게 밟아 버릴 수 있을정도의 마족 떼! 누구라도 이 정도 마족과 직면하면 공포와 전율을 ‥‥‥. "흥!" 그러나 아크는 콧방귀로 감상평을 대신했다. 그리고 양옆으로 늘어선 정의남과 갱생단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님들, 시작합니다!" "궁수 부대, 50미터 전방을 향해 탄막을 쳐라!"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갱생단이 일제히 검을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크의 등 뒤에서 거대한 먹구름이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거대한 먹구름‥‥‥. 그렇다. 그것은 바로 수천수만 발의 화살이었다. 먹구름은 마치 빨려 올라가듯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확 퍼지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슈슈슈슉! 수천수만 발의 화살이 아크를 향해 몰려드는 마족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선두에 달려오던 탈론은 순식간에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에 뒹굴었고, 마수가 이끌던 전차도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분해되었다. 그 숫자가 수백 마리! 그러나 마족들의 숫자는 줄어드는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크라카, 크라카, 벨드람! 동료들이 쓰러지자 마족들이 더욱 흉포하게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정의남 아저씨!" "좋아. 방패 부대, 충돌에 대비하라!" 정의남이 양팔을 힘껏 치켜올렸다가 왼판만 내뻗으며 소리쳤을 때였다. 돌연 아크의 등 뒤에서 수천 명의 병사들이 방패를 치켜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힘찬 기합과 함께 10여 미터를 전진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방패를 수직으로 세웠다. 수천 개의 방패로 만들어진 방어벽! "장창 부대는 와격 자세로 방패 부대의 후열에서 적의 돌격을 저지하라!" 이번에는 정의남의 오른팔이 앞으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다시 수천 명의 창병이 장창을 수직으로 세우며 일어났다. 그리고 방패 부대의 뒤로 붙어 창을 방패에 기대 30도 각도로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그러자 잠깐 사이에 허허벌판에는 방패와 창으로 이루어진 성벽이 만들어졌다. 적의 돌격을 저지하며 타격까지 줄 수 있는 방어 전형! 아크가 이전에 비밀 던전에서 몬스터들과 싸울 때 생각해 낸 진형이었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마족들은 달려오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창과 방패로 이루어진 방어벽과 충돌했다. 단단히 고정된 방패는 마족의 돌격을 막아 냈고, 사선으로 치켜세워진 창은 마족의 질긴 가죽을 가차 없이 뚫고 들어가 숨통을 끊어 놓았다. 아크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광채가 뿜어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지금이다. 개진, 각 군단별로 마족을 요격하라!" "우와아아아아!" 동시에 마치 거대한 댐이 방류를 시작한듯, 마족의 돌격을 막아 낸 방어벽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활짝 열린 방어벽 사이로 수만의 병사들이 달려 나갔다. 수만의 마족과 병사들이 뒤엉킨 처절한 전투가 펄쳐진 건 그때부터였다.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나도 몰랐어!' 아크는 흐뭇한 눈길로 마족들에게 뛰어들어 스킬을 난사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수만의 병사들! 이들은 아크가 불과 하루 만에 모은 유저들이었다. 그 숫자는 무려 6만! ‥‥‥대체 어떻게 아크가 불과 하루 만에 이만한 숫자의 유저를 모아 지휘할 수 있는 걸까? 아크가 그 방법을 찾아낸 것은 어제저녁, 얍삽이 틀어놨던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당시 tV에서 방송하던 있던 프로그램은 게릴라 콘서트. 그 방송에서 신인 가수는 몇 시간 되지 않은 시간에 1만여 명이나 되는 관객을 모았다. 그 방송을 보면서 아크는 생각했다. '저 가수가 그냥 혼자 다니며 홍보해도 그만한 관객이 모였을까?' 절대 아니다. 그만한 관객이 모인 것은 신인 가수가 잘나서가 아니라 TV의 힘이었다. TV로 나온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모여드는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구, 아니 세계 어디든 tV의 침투력과 영향력은 막대하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게임 특종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이전에 아크가 방송을 빌미로 유저를 모아 란셀 마을을 지켜 냈던 상황과 비슷해싿.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요즘 게임 특종에서 가장 큰 화제는 마족 전쟁이었다. 때문에 연일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동영상이 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새삼 TV 출연이 큰 메리트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들과 관련된 일이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뉴 월드에 관련된 특종이 있습니다. 당장 방송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크 님의 특종이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겠습니다!" 게임 특종의 시청률을 올려 주는 아크의 청탁은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아크가 보낸 동영상이 TV로 방송되었다. 아크가 샹그리아의 히스토리 크리스털에서 지옥의 강에 얽힌 비밀을 찾아내는 과정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이 끝나는 것과 함께 진행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이로써 마족 전쟁에 얽힌 또 다른 비밀 하나가 밝혀졌습니다. 마족들은 시르바나 영지의 지하에 숨겨진 지옥의 강을 밖으로 끌어 올려 나가란을 통째로 없애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왕국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고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진행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 대듯이 말했다. "오직 한 사람, 저희 게임 특종에서 후원하는 다크울프 님만이 그 사실을 알고 혼자라도 마족의 음모를 분쇄하려고 할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다크울프 님이라도 혼자 10만의 마족과 전쟁을 벌일 수는 없습니다. 이에 다크울프 님은 함께 마족의 음모를 분쇄할 용사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게임 특종 홈페이지를 찾아오시면 볼 수 있습니다!" 이 방송의 영향은 엄청났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홈페이지로 수만 명이 접속한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요청한 특별 게시판에 몇몇 유저들의 글이 올라왔다. 저는 그라돈 영지의 영주 아라미스입니다. 저역시 마족들이 영지를 점령해서 브리스타니아나 슈덴베르크 왕국에 도움을 요청햇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다크울프 님이 나서 주신다면 저희 아라미스 연합 4,800명이 함께 하겠습니다. 저는 베이크 영지의 영주 살로만입니다. 저희 입장도 아실테니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저와 골든크로스 연합 5,200명은 다크울프 님과 생사를 함께하겠습니다! 저는 그라나다 영지의 영주 베지터입니다. 다크울프 님이 찾아낸 정보처럼 지옥의 강이 범람해 나가란 지역이 모두 수몰된다면 이건 이미 한 영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 유니온 연합 4,900명도 다크울프 님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아크가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지옥의 강이 범람하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겠지만 역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은 피를 볼 사람은 나가란 지역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영주와 연합원들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들 역시 아크와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만약 이들이 나가란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다면?' 당연히 아크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다크울프라는 이름은 뉴 월드 유저들에게는 연예인과 다름없었다. 아크가 직접 나서서 호소하면 나가란의 영주와 연합원들은 망설임 없이 힘을 빌려 주리라! 그런 아크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방송을 본 각 영지의 영주들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멧돼지처럼 뛰어다니며 연합원을 긁어모았다. 연합원들 가운데는 원정군에 참전해 있던 유저도 적지 않았지만, 영지가 날아가는 마당에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대륙 여기저기에 퍼져 있던 유저들은 영주의 호출에 영자이동을 난사하면 나가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불과 이틀만에 나가란 지역 12개 영지의 연합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그라돈 영지의 아라미스 연합원 4,800명 집결 완료!" "베이크 영지의 골든크로스 연합 5,200명 집결 완료!" "그라나다 영지의 유니온 연합 4,900명 집결 완료‥‥‥." 그 숫자가 무려 6만! 순수하게 유저로만 구성된, 뉴 월드 역사에 유례가 없는 6만 연합군의 탄생이었다. "물러나지 마라! 여기서 물러나면 영지를 잃는다!"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어라!" 이 연합군의 가장 큰 장점은 일단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당장 지옥의 강이 터져 나오면 자신들의 영지가 잠겨 버리니 무슨 말이 필요하겟는가? 그건 정의남과 갱생단이 이끄는 1,000명의 다크에덴 연합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각무역이나 군수물자 납품, 돈이 될 만한 장사거리가 이제야 겨유 자리를 잡아가는데 - 말하자면 제대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만하니까 - 영지가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그동안 아크에게 부려 먹힌 게분해서라도 시르바나를 지켜 내야 했다. 그러나 정의남의 경우는 좀 달랐다. "빌어먹을 놈들! 하필이면 왜 지금이냐!" 정의남이 괴성을 지르며 마족을 닥치는 대로 잡아 메쳐 버렸다. 박소미에게 포러포즈를 하려는 참에 방해받아 열이 뻗칠 대로 뻗친 것이다. 물론 아크 역시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상황은 아니었다. "종아, 나도 가볼까? 마령소환 라크다, 퓨리탈, 샴바라!" "‥‥‥ 너 정말 죽는다?" 이미 소환(?)되어 있던 샴바라가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였다. 그러나 아크는 가볍게 무시하고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카드, 위성 감시 모드로 전황을 파악하라!" "예써 - !" "퓨리탈, 갑주화!" 딱딱딱, 딱딱딱딱! 퓨리탈이 마치 변신 합체 로봇처럼 분해되어 아크의 몸에 휘감겼다. 동시에 귓가로 라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좌측에 다크로더들이 헤비워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어." "저기 인가?" 뼈 갑옷을 휘감은 아크의 시선이 번뜩이며 마족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역시나 두꺼운 갑옷을 입은 헤비워커 틈에 검은 로브를 입은 마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아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수만의 병사와 마족이 뒤엉켜 싸우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10,000마리와 전투를 할 때 10마리를 죽여 봐야 1,000분의 1. 전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도 전황에 영향을 줄 수 잇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특수 능력을 가진 적을 요격하는 방법! 광역으로 상태 이상을 걸거나, 회복 마법을 사용하는 마족을 신속하게 처리하면 그만큼 아군의 부담이 줄어든다. 그리고 다크로더는 성직자처럼 마족을 회복시키는 놈들이었다. 놈들에게 타깃을 맞춘ㄴ 아크가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갈고리 폭사!" 순간 아크의 어깨와 무릎에 박혀 있던 갈고리가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다크로더 2마리의 몸을 꽉 틀어쥐고 아크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샴바라, 지금이다!" "일일이 명령하지 말라고 했지? 참 - !" 아크가 휘두른 검이 놈들의 가슴에 박힌 것은 그때였다. '갈고리 폭사' 와 검격의 연결 공격에 맞은 다크로더들은 외우던 주문이 캔슬되며 데미지를 받고 휘청거렸다. 그러자 뒤로 물러났던 샴바라가 화살처럼 쏘아지며 단검으로 다크로더의 목덜미를 갈라 버렸다. 서걱,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다크로더의 목이 댕강 잘려 나갔다. 완벽하게 무방비 상대의 적에게 치명타를 먹이던 목이 날릴 수 있는 갓 킬러의 스킬! 아크는 그렇게 샴바라와 함께 다크로더나 저주술사를 해치우며 전장을 누볐다. 덕분에 나가란 연합군은 불필요한 소모전을 최소화하며 마족을 몰아붙일 수 있었다. "한번 공격한 마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내라!" "궁수들은 도망가는 놈들의 다리를 노려라!" "검은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라!" 주변에서 마족들의 괴성보다 연합군의 목소리가 더 많아졌다. 그렇게 잠시, 돌연 어디선가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마족을 몰아붙이던 연합군의 한 축이 와르르 무너졌다. 동시에 각 부대장들의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듀라한이다!" "듀라한 기사단이 몰려온다!" 우르르 무너지는 연합군들을 짓밟으며 100여 명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뼈가 드러난 괴마에 올라탄 검은 갑옷의 기사들! 놈들은 끔찍하게도 자신의 머리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두르며 왼팔에 든 머리의 입에서는 지옥의 불길을 뿜어내느 놈들은 일명 목 없는 기사로 불리는 듀라한들이었다. "크크크크, 어둠에 대항하는 무지한 인간들이여! 지옥의 망자가 되어라!" 듀라한들이 지옥의 불길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상위 마족에 속하는 듀하란 무리가 나타나자 연합군의 방어선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알았다. 베지터, 그라나다 연합의 병력을 우측으로 이동시켜라!" "골든 크로스 병력은 좌측으로 반원형을 그리며 회전한다!" 정의남과 갱생단이 주변의 연합군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선두에서 전투를 벌이던 연합군이 좌우로 갈라져 교묘하게 듀라한 무리를 포위했다. "마법사, '정신 교류' 로 마력을 연결하라!" 수간 연합군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듀라한을 포위한 마법사들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그물처럼 얽혔다. 마력을 연결해 보다 높은 레벨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 "어둠을 삼키는 태초의 빛이여‥‥‥ 뇌신의 분노!" 쾅, 쾅, 쾅, 쾅, 쾅! 동시에 하늘에서 수십 줄기의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8서클에 해당하는 상위 광역 마법! 덕분에 마법사들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렸지만, 벼락에 맞은 듀라한들은 하얀 불길에 휩싸여 수천 대의 생명력이 단숨에 증발하며 빈사 상태에 빠져 버렸다.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라!" 뒤이은 아크의 명령에 좌우로 갈라졌던 수천의 연합군이 일제히 공격을 퍼부었다. 마법사들의 포위망으로 유인당해 8서클 상위 광역 마법에 난타당한 듀라한들은 이미 저항할 기력조차 잃어버런 상태였다. 수백 개의 창이 괴마의 몸을 관통했고, 말에서 굴러떨어진 듀라한은 수백 개의 검과 철퇴에 난타당해 찌그러진 주전자와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듀라한 기사단을 전멸시켰다!" "그대로 몰아붙여 검은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라!" 듀라한 기사단을 순식간에 처리한 연합군은 사기충천해 마족을 몰아 붙였다. 이번에 연합군의 앞을 가로막은 마족의 숫자는 대략 3만. 연합군은 6만. 이미 숫자에서 앞서 잇떤 연합군이 기세를 타자 마족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속속 무너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연합군은 거대한 파도처럼 마족들을 삼켜 버리고 진격했다. 그렇게 잠시, 결국 마족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베이크 영지를 탈환했다!" "이제 시르바나로 진격하자!" "우오오오오!" 산처럼 쌇인 마족의 시신 위에서 수만의 병사들이 검을 치켜올리며 함성을 터뜨렸다. * * * "젠장!" 아크의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터져 나왓다. 아크가 서 있는 언덕 아래로는 시르바나 영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러나 지금 눈에 들어오는 영지는 아크가 기억하는 시르바나가 아니었다. 영지 외곽으로 펄쳐진 넓은 경작지는 마치 공사 현장처럼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파여 있었고, 옹기종기 모여 잇던 마을도 폭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내가 어렇게 키워 온 영지인데‥‥‥.' 아크가 이빨을 바득바득 갈아붙였다. 헤르메스 연합에게서 시르바나를 탈환한 뒤로, 대륙상회에 조성해 놓은 비자금을 털어 죽어라 발전시켜 온 영지다. 그리고 노력의 성과를 보여 이제 B뜽급 승격이 코앞이었다. 그런데 마족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영지를 밟아 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B등급 승격은 고사하고 D등급으로 떨어질게 뻔하다. 이미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니 울컥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아크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진정하자.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그렇다. B등급이니 D등급이니 하는 것도 일단 시르바나를 지킨 뒤에나 걱정할 일이었다. 지옥의 강이 범람하면 시르바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영지를 내려다보던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아크는 나가란 연합군을 결성한 뒤 곧바로 진격을 개시해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를 탈환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시르바나 외곡 지역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나가란 연합군의 연전연승! 반면 연전연패를 당한 마족들은 매번 엄청난 피해를 입으며 퇴각에 퇴각을 거듭해 시르바나 성까지 물러났다. 그럼에도 현재 상황은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첫째 검은 오벨리스크의 존재였다. 나가란을 침략한 마족을 불러낸 검은 오벨리스크의 80%는 시르바나 성 내부와 주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를 점령한 마족은 시르바나에서 이동한 마족들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가란 연합군이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를 탈환하며 수많은 마족을 처리했지만, 검은 오벨리스크는 20% 정도 밖에 파괴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죽인 마족은 수만이 넘지만 실제로 줄어든 마족은 20%. 마족들은 다시 시르바나 성 주변에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부활한 것이다. 덕분에 현재 시르바나 성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펼치고 있는 마족은 7~ 8만에 달했다. 이는 단순히 숫자가 많다는 것 이외에도 앞으로 마족이 계속 부활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부활할 수 있는 것은 연합군의 유저 역시 마찬가지. '나가란 연합군의 힘이라면 며칠 안에 마족을 전멸시키고 성을 탈환할 수 있다.' 그렇다. 현재 나가란 연합군의 숫자는 6만여! 그것도 어중간한 NPC나 유저들이 아니었다. 뉴 월드 최대 격전지라고 할 수 있는 나가란에서 수많은 정적을 물리치고 영지를 손에 넣은 연합의 조직원들이었다. 개인의 전투력과 조직력, 경험, 장비품‥‥‥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베테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베테랑 유저가 6만이다. 아무리 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고 해도 마음만 먹으면 7~8만의 마족을 전멸시키는 건 문제가 아니다. 나가란 연합군이 결성ㄷ괸 시점에서 이미 시르바나 탈환은 예약된 것이다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고민하는 것은, 이번 사태의 최대 난관은 전투의 승패가 아니었다. '문제는 시간이다!' 아크가 tV로 나가란 연합군의 궐기를 호소한게 시르바나가 마족에게 점령된 지 사흘 뒤. 그리고 연합군이 결성되는데 걸린 시간이 이틀, 그라돈과 베이크 영지를 탈환하고 시르바나 영지까지 진격하는 데 걸린 시간이 이틀, 모두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그 말은 아란이 비밀 던전으로 들어간지 일주일이 지났다는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지금 아크가 해야 할 일은 시르바나 탈환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시르바나를 탈환해도 아란을 막지 못하면 나가란은 지옥의 강에 잠겨 버린다. 아란이 직옥의 강에 도착하기 전에 막지 못하면 모든 게 끝장인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나가란 연합군을 지휘하며 시르바나로 진격하는 한편, 비밀 던전에 숨어 있는 다크에덴의 연합원에게 아란의 움직임을 감시하도록 지시해 놨었다. 그리고 방금 전‥‥‥. -아란 일당을 확인했습니다. 비밀 던전에 숨어 잇떤 연합원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연합원이 감시하고 있는 곳은 비밀 던전 51층의 어비스 입구. 아란이 어벤저 길드원과 마족 1만 마리를 이끌고 어비스로 진입한 것이다. 보고를 받은 아크가 정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이었다. '어비스는 50층까지의 고대 미궁과는 수준이 다르다. 규모는 고대 미궁보다 몇 배난 거대하고, 지형도 미로처럼 복잡하다. 거기에 도처에 상상도 못 할 함정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어.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쉽게 어비스를 뚫을 수는 없다.' 아크 역시 다크에덴과 함께 비밀 던전을 공략할 때 어비스에서 몇이나 헤맸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던전에 몬스터들까지 득실거릴 때였다. 반면 지금은 비밀 던전에서 노가다를 하는 다크에덴이 어비스를 돌아디니며 몬스터란 몬스터는 싹쓸이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다. 50층 이전의 고대 미궁의 몬스터들은 리젠이 되었겠지만, 어비스의 몬스터들은 아직 대부분이 리젠되지 않은 것이다. '몬스터들의 방해가 없다면 어비스라도 2 ~ 3일 이면 충분히 통과 할 수 있어.' 다시 말해 이제 아크에게 남은 시간은 2 ~ 3일뿐! 물론 나가란 연합군의 힘이라면 2 ~ 3일 안에 시르바나를 탈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르바나를 탈환한 뒤에는 아크 역시 비밀 던전을 1층에서부터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란은 이미 50층을 넘어섰다. 아크가 지금부터 당장 밤잠도 자지 않고 전력 질주해도 아란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물며 아직 시르바나 성을 탈환하지 못했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시간상으로 아크가 성을 탈환 하는 것과 동시에 아란이 60층에 도달! 시르바나는 지옥의 강에 잠기게 되리라. "‥‥‥역시 그 방법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어." 아크가 진영으로 돌아가며 중얼거렸다. 사실 아크가 처한 상황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르바나를 점령함과 동시에 아란은 비밀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아무리 빨리 시르바나를 탈환한다고 해도 아란보다 늦게 출발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시점에서 아크가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것은 비밀 던전의 정예 몬스터들이었다. 당시 다크에덴의 연합원은 가장 경험치가 많은 어비스의 몬스터만 사냥하고 있었다. 때문에 50층 이전의 고대 미궁은 한동안 방치되어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리젠되어 있었다. '아란은 놈들을 처리하며 진행애햐 하지만, 나는 아란이 청소해 놓은 던전으로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돼. 잘만 하면 며칠 정도의 거리 차이는 따라잡을 수 있다.' 그러나 아란은 한패에 속한 유저 - 안델이 조직한 어벤저 길드원- 와 마족 1만을 이끌고 던전에 들어섰다. 고대 미궁의 몬스터들이 막을 수 있는 병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란은 이미 어비스까지 진입한 것이다. "명색이 정예몬스터인 주제에 시간도 못 끌어? 허접한 몬스터들 같으니!" 아크는 고대 미궁의 정예 몬스터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아크도 몬스터들이나 믿고 있을 만큼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에 대비를 해 놓지 않을 아크가 아닌 것이다. 뚝딱, 뚝딱, 뚝딱! 아크가 연합군의 주둔지로 돌아가자 요란한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막사 사이에 커다란 장치가 보였다. 고물 TV와 안테나 따위를 이리저리 뜯어 붙인 듯한 괴상한 기계였다. 그리고 웬 풍선처럼 생긴 유저 1명이 각종 공구를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나사를 조이고, 못을 박아 대고 있었다. "아직 멀었습니까?" "휴‥‥‥ 뭐야? 너냐?" 아크가 다가가자 풍선처럼 빵빵한 몸집의 유저가 땀을 닦아 내며 시선을 돌렸다. 시커먼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유저는 바로 워머였다. 워머는 커다란 기계를 탁탁 치며 씨익 웃었다. "이제 거의 다 됐네.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마무리 작업중이야." "성능은 확실한 거죠?" "걱정 말라니까.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잇어서 안정성은 좀 떨어지지만 성능 하나만큼은 확실해. 뭐니 뭐니 해도 이 천재 발명가 워머님의 작품이니까. 정 의심되면 직접 한번 확인해 보든가. 기능적인 부분은 다 됐으니 너도 확인해 볼수 있을 거야." 워머의 말에 아크는 고물 더미처럼 생긴 기계에 손을 가져갓다. 그러자 눈앞에 기계의 정보가 떠올랐다. 양자 물질 전송 장치 종류 : 1등급 발명품 설계, 제작 : 워머 마력을 이용해 사람이나 물건을 양자로 변환시켜 다른 공간으로 전송 할 수 있는 기계입니다. 단, 이 기계로 전송된 사람이나 물건은 다시 본래의 형태로 돌아오려면 양자를 수신해 합성하는 수신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양자 물질 전송에 필요한 마력은 대상의 부피와 전송 장치와 수신 장치 사이의 거리에 비례합니다. 부피가 크고 전송 거리가 멀수록 보다 많은 마력을 소비합니다. 그렇다. 이 기계는 바로 아크가 생각해 둔 대비책이었다. 양자 물질 전송 장치! 설명대로 사람이나 물건을 어디로든 이동시킬 수 잇는 궁극의 이동 장치! 아크가 샴바라, 정의남 들과 비밀 던전에 들어갈 방법을 논의할 때 워머가 이 기계에 대해서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아크는 만약에 대비해 워머에게 자재를 공급해 주고 즉시 제작을 의뢰해 놨던 것이다. "어때? 주문대로 성능은 확실하지?" 아크가 정보를 확인하자 워머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분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서둘러 만드느라 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 디자인도 그렇고. 젠장, 지하 기지에 만들어 놧떤 양자 물질 전송 장치는 성능이나 디자인이 딱 마음에 들었었는데‥‥‥." 워머가 양자 물질 전송 장치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엇다. 지금 만든 것보다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이 더 좋은 양자 물질 전송 장치를 지하 기지에 만들어 뒀다고 한다. 그러나 워머의 지하 기지는 이전에 아란과 마족을 가둬 뒀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원정군이 파비온 협곡을 점령한 직 후 다시 찾아가 보니 지하 기지에 쌓아 뒀던 발명품들은 산산조각으로 분해되어 있었다. 사실 은둔형 외톨이였던 워머가 이번 전쟁에 발 벗고 나선 이뉴는 그 때문이었다. "빌어 먹을 아란 자식, 감히 내 발명품을, 아니 예술품들을 고철로 만들어 놨겠다? 이 몸의 예솔품들이 얼마나 굉장한지 직접 경험하게 해주마!" 워머는 다시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는 듯이 씩씩 거렷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아크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냐? 이미 말했듯이 양자 물질 전송 장치는 이대로는 그냥 고철에 불과해. 수신 장치가 있어야 비로소 사용할 수있는 거야. 물론 수신 장치는 간단하니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만들어 줄 수 있지만 네가 이동하고 싶어 하는 곳은 비밀 던전이라는 곳 아니야?" 그렇다. 그게 양자 물질 전송 장치를 만들어 놓고도 아직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양자 물질 전송 장치는 무작정 사람이나 물건을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크는 요술 상자가 아니었다. 마법 학회에서 운영하는 영자 이동처럼 송신 장치와 수신장치가 쌍으로 준비돼야 비로소 물질을 전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양자 물질 전송 장치로 이동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비밀 던전의 60층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아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아크가 단숨에 시르바나를 점령하고 비밀 던전으로 진입한다고 해도 아란을 따라잡을 방법은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양자 물질 전송 장치를 이용해 가능한 많은 병력을 비밀 던전 60층으로 이동, 그곳에서 아크의 지시를 받고 숨어 있는 다크에덴의 NPC와 유저 연합원과 합류해 최대한 아란의 발목을 잡고 있을 계획이었다. 나가란 연합군이 시르바나를 함락시키고 비밀 던전에 진입해 아란이 잇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일단 나가란 연합군이 아란만 따라잡으면 상황은 간단하다. 아란과 1만 마족을 밟아 버리는 건 문제도 아니야.' 그런 ㅏ양자 물질 전송 장치로 60층까지 이동하려면 먼저 60층에 수신 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60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60층에 수신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 골 때리는 상황! 사실 워머의 지하 기지에 숨어 있을 때도 그런 이유 때문에 양자 물질 전송 장치를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있어!' "정말 수신 장치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거죠?" 잠시 생각하던 아크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자 워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몇 번이나 말해? 송신 장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천재 인 나밖에 없지만, 수신 장치를 그냥 송신 장치에서 보내는 양자를 이동할 곳으로 지정해 주는 안테나에 불과해. 설계도만 있으면 일반 장인들도 몇 시간 만에 만들 수 있을걸." "그럼 됐어요. 마저 마무리하고 언제든지 가동시킬 수 있도록 준비해 주세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말하고는 주둔지로 향했다. 주둔지에는 정의남과 갱생단, 각 연합장 그리고 6만에 달하는 나가란 연합군이 모여 있었다. 아크는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입을 열었다. "더 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많이 힘들고 지쳐 잇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그렇게 고생하는 이유는 단 하나, 나가란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마족들의 야욕을 분쇄한 뒤에는 월마든지 쉴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저희 연합원들은 얼마든지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 "네. 나가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며칠 밤새우는 건 문제도 아닙니다!" 각 연합장들이 의욕이 넘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 역시 나가란이 사라지면 엄청난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니 이런저런 사정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아크는 믿음직스럽다는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제 고지는 바로 눈앞입니다. 시르바나 성을 차지하고 있는 마족은 지금까지 상대한 놈들보다 많고 강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되겠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사의 각오로 임한다면 틀림없이 놈들의 야욕을 분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크가 검을 뽑아 들고 언덕 너머로 보이는 시르바나 성을 가르키며 소리쳣다. "자, 진격!" "우와아아아아!" 아크의 명령에 6만 유저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뜨리며 시르바나 성으로 돌진했다. 나가란 연합군이 언덕을 넘어 진군하자 시르바나 성 주변에 모여 있떤 마족들도 대지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몰려왔따. 함성과 괴성이 대기를 뒤흔들고, 수만의 발이 내딛는 대지가 지진을 일으키듯 흔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쿠콰콰콰콰, 콰콰콰쾅, 퍼퍼퍼펑! 인간과 마족, 10만이 넘는 숫자가 충돌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연합군이 방패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마족의 몸을 갈라 버렸다. 그러나 참았던 숨을 불어 내기도 전에 노도처럼 몰려드는 마족들에게 달려싸여 저항할 새도 없이 갈가리 찢어져 나갔다. 철퇴가 마족의 머리를 부수면 마족은 송곳니로 철퇴를 휘두르는 팔을 물어뜯었다.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처참한 장면과 함께 단숨에 수천의 생명이 피바다에 잠겨 버렸다. 연합군의 평균 레벨은 대략 350 전후. 반면 마족의 평균 레벨은 400 이상이엇지만, 전황은 레어 장비와 각종 특수 스킬로 무장한 연합군이 약산 유세한 가운데 진행 되었다. 그리고 그라돈이나 베이크 영지를 탈환 할때는 그게 그대로 승리로 이어졌었다. 그러나 시르바나는 마족의 최후의 방어선을 쳘친 곳답게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나단, 나단, 바라무트, 나단‥‥‥크라노스! 돌연 마족들 사이에서 섬뜩한 주문이 흘러나왓다. 순간 전장의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검은 불길이 번지며 수백 명의 연합군이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뒤이어 마족들 틈에서 수십 마리의 거대한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연합군들의 눈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주루룩 떠올랐다. -보스 몬스터 지옥의 사자' 혼 크래셔'가 나타났습니다. -보스 몬스터 절망의 옹자 '고르고'가 나타났습니다. -정예 보스 몬스터 절망의 왕 '모라이드'가 나타났습니다‥‥‥. 레벨 500~600에 달하는 수십 마리의 보스와 정예 보스 마족들! 놈들이 나타나자 선두에서 마족을 몰아붙이던 몇 개의 부대가 단숨에 전멸당했다. "후방의 마법사와 궁수 들은 지원사격에 전념하라!" "무턱대고 공격하면 안 된다! 진형을 갖추고 대응하라!" "성직자들은 보스들과 싸우는 부대를 우선적으로 회복시켜라!" 각 부대장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함을 질러 댔다. 그리고 보스 마족들의 등장으로 전황은 더욱더 혼란 속에 잠겨 버렸다. 그러나 그때, 아크의 시선은 보스 마족들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지금이다. '마기 발현', 창, 창, 창, 철퇴, 철퇴!" 기회를 노리던 아크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동시에 제물로 선택된 장비품이 가방에서 솟아 나와 1,000여 명의 다크에덴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기병창의 형상이 만들어졌다가 산산히 부서지며 병사들에게 흡수되었다. 마기를 추출할 제물은 (창, 창, 창, 철퇴, 철퇴) 입니다. 이 조합으로 발동되는 효과는 《파워 차지》입니다. 파워 차지 : 사용자와 주변의 아군에게 10분 동안 '파워 차지' 효과를 부여합니다. '파워 차지'는 돌격 속도가 50% 상승, 돌격하며 공격하는 모든 적을 5미터 밖으로 튕겨 냅니다, 단, 효과는 정면의 적에게만 적용됩니다. "다크에덴, 보스 마족들을 피해 좌측 마족 부대를 뚫고 돌진한다!" "우오오오, 전군 돌진!" 콰콰콰쾅, 콰콰콰쾅! '파워 차지'의 효과가 적용된 다크에덴이 돌진하자 마족들이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아크는 그대로 다크에덴을 지휘하면서 마족을 날리며 시르바나 성 외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수풀로 뛰어 들어가자 곧 작은 바위틈이 눈에 들어왔다. "됐다, 라카드!" 바위틈을 발견한 아크가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위성 감시 모드로 전장을 살피던 라카드가 아크의 앞으로 날라왔다. 아크는 곧바로 가방에서 두루마리 1장을 꺼내 주며 물었다. "아까 설명해 줬으니 상황은 알겠지?" "아, 알고 있다. 주인." "이제 시르바나의 운명은 너와 날개에 달려 있다." "마, 말하지 않아도 알아. 자, 자꾸 부담 주지 마." 라카드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떠듬 거렸다. "자, 출발해라." 아크의 말에 라카드가 두루마리를 집어 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떨리는 라카드의 날개를 바라보던 아크가 뒤에서 와락 끌어안았다.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나는 네가 얼마나 열심히 임무를 수행해 줄지 알아. 설사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고 해도 그건 내 잘못이다. 절대 널 원망하지 않은 거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부디 살아서 돌아와 다오. 너는 내가 가장아끼는 소환수다." "주, 주인‥‥‥!" 생각지도 못했던 아크의 말에 라카드가 당혹스러운 못소리로 떠듬거렸다. 그리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바로보더니 이내 어금니를 질끈 깨물어다. "안녕이란느 말은 하지 않겠어!" 라카드가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바람처럼 바위틈으로 날아 들어갔다. 아크가 혼란한 전황을 도외시하고 이곳으로 잠입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니, 이번 전투 자체가 바로 라카드를 이 바위틈으로 들여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바위틈은 시르바나의 비밀 가운데 하나인 땅굴 1호의 입구! 너구리족을 이용해 비밀 던전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잇도록 만들어 놓은 땅굴이었다. 그렇다.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어차피 현재 상황에서는 땅굴로 병력을 이동시켜도 아란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다. 그리고 많은 숫자의 병력을 들여 보내면 당연히 마족들고 땅굴의 존재를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박쥐 1마리라면 들킬 염려가 없었다. 그리고 비밀 던전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라카드는 아란보다 먼저 다크에덴 연합원이 숨어 있는 60층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라크드에게 워머의 설계도를 쥐여 주고 비밀 던전에 잠입시킨 것이다. 그곳에는 장인 종족인 너구리족도 함께 있으니 설계도만 전해 주면 수신 장치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리라. "너만 믿는다!" 아크는 라카드가 사라진 바위틈을 향해 척 하니 경례를 붙였다. 그러자 옆에서 샴바라가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지금이 놀고 있을 때냐?" "아니지. 전군, 마족들이 알아채기 전에 다시 전장으로 이동한다!" 아크의 명령에 다크에덴은 마족을 공격하며 수풀을 빠져 나왓따. 이제 나가란의 운명은 라카드의 날개에 걸려 있었다. * * *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았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져 던전을 수색하던 한 마법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 그는 놀랍게도 헤르메스 연합의 수석 마법사 쥬르였다. 그러나 아크에 대한 복수심에 란셀 마을을 공격하다가 박살 난 뒤 작센 영지에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자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걱정했던 헤르메스 연합장 라이덴 은 잽싸게 쥬르를 추방해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었었다. 그때 한창 아란과 함께 마족 전쟁을 도울 유저를 찾던 안델이 찾아와 쥬르를 어벤저 길드를 스카우트 한것이다. 그렇다. 현재 쥬르의 소속은 어벤저 길드. 쥬르가 보고하는 검은 갑옷의 기사는‥‥‥. "좋아. 흩어진 병력을 집결시켜라. 병력이 모이는 대로 다음 층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명령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란이었다. 그러자 쥬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의 유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통신병, 각 부대에 통신을 연결해서 마족들과 합류하라고 전해라." 명이 떨어지자 10여 명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속삭임의 깃털'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던전 여기저기 흩어진 동료들에게 아란의 명령을 전달했다. -입구를 찾았다. 마족들을 데리고 집결지로 귀환하라! 아란이 어벤저 길드의 유저들과 함께 비밀 던전에 들어온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로 마족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어쨌든 쥬르가 어벤저 길드원을 이용해 다시 던전을 흩어진 병력을 집결하고 있을 때, 아란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뭔가 이상하다.' 아란이 찜찜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비밀 던전의 51층, 어비스에 들어온 뒤부터였다. 비밀 던전은 정예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 아란은 그런 비밀 던전을 최대한 빨리 공략하기 위해 어벤저 길드원과 마족 1만을 이끌고 진입했다. 그러나 막상 비밀 던전에 들어와 보니 아란이 예상했던 것과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처음의 10층 정도까지는 이전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했지만, 그 이후로는 왠지 던전의 규모에 비해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게 느껴졌다. 보통 던전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몬스터도 더 많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1층 아래 어비스 지역에 내려오자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아예 몬스터들을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덕분에 일은 수월해졌지만‥‥‥.' 이전에 아란이 시르바나를 차지하고 있을 때 공략했던 비밀 던전은 고작 4층까지 였다. 당시 레벨 150 전후였던 연합원들로서는 그게 한계엿던 것이다. 때문에 아란은 시르바나 영지의 영주를 지냈음에도 비밀 던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지형은 물론, 이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들의 특수 능력 따위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아란이 유저와 마족 1만의 병력을 데리고도 이제야 어비스에 진입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비스에 도착한 아란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던 아크와 같은 상황에 직면했다. 어비스 도처에 깔려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함정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것이다. '만약 이런 곳에 몬스터들까지 득실거렷다면 걸음이 많이 지체됐을 거다.' 아란의 입장에서는 어비스에 몬스터가 보이지 않은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아란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찜찜함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시르바나를 마족이 점령하고 있는 한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없다!' 아란이 씨익 웃으며 속속 모여드는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설사 앞에 어떤 적이 있다 해도 1만의 유저와 마족들 막을 수는 ㅇ벗으리라. 그리고 아란이 비밀 던전의 최하층 지옥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가란은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후후후, 지옥의 강에 잠긴 나가란을 보며 아크 녀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군.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뉴 월드를 지배하게 되면 네놈은 이 세상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다 모였으면 다음 층으로 내려간다!" 아란의 명령에 엄청난 숫자의 마족들이 육중한 울림을 만들어 내며 던전을 가로질렀다. 그때 본대의 앞에서 서치 마법으로 혹시 모를 함정을 탐색하던 쥬르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던전의 상공, 어둠 속에 둥둥 떠 있는 뭔가 하얀 물체를 발견 했기 때문이다. "뭐지, 제게? 세컨드 사이트!" 쥬르는 곧바로 장거리 시야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하얀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박쥐? 헉! 가, 가만? 저 녀석은 아크의 소환수다! 아란 님, 아크의 소환수 입니다!" 그렇다. 하얀 물체는 던전 천장에 붙어서 아란 부대를 훔쳐보던 라카드엿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라카드의 뒤통수에 묻어 있는 하얀 반짝이 가루였다. "뭐라고? 가고일, 놈을 잡아라!" 동시에 수십 마리의 가고일 라카드를 향해 날아갔다. "히, 히익!" 그러자 라카드가 기겁하며 허둥지둥 도망치기 시작했다. 라카드는 비록 가고일과 1대1로 붙어도 이길 수 없는 허접한 뱀파이어였지만, 아크의 빡센 훈련 덕분에 도망치는 것 하나만은 초일류급이었다.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따라붙으며 광선을 뿜어냈지만 라카드는 곡예비행을 하듯이 피해 냈다. 그리고 재빨리 방향을 틀어 다음 층으로 통하는 계단 아래로 도망쳤다. 아니, 빠져 나가려고 할 때였다. "티모시!" "오케이! 마탄의 사수 2장, 악마를 쫓는 화살!" 돌연 아란의 등 뒤에서 다크엘프가 튀어나오며 날랜 동작으로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다크엘프와 라카드의 거리는 100미터 이상! "흥, 어림없다!"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을 확인한 라카드가 콧방귀를 뀌며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화살도 라카드의 움직임을 따라 퀘도가 바뀌는 게 아닌가? 그렇다. 이게 바로 예전에 샴바라마저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다크엘프 티모스의 특수 스킬 '악마 쫓는 화살'이었다. "이익? 뭐, 뭐 이런‥‥‥ 꾸엑, 꾸엑, 꾸엑!" 결국 라카드의 통통한 배에 화살 세 대가 박혀 버렸다. 그리고 휘청거리는 사이 10여 마리의 가고일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라카드는 가고일에게 잡혀 바닥이 쳐박혔다. "비, 빌어먹을! 우욱, 배 땅겨‥‥‥." "아크 자식의 소환수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라카드가 신음을 흘리는 사이 다가온 아란이 날카오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문득 라카드가 쥐고 있는 두루마를 발견하고는 와락 뺏어 들었다. "이건?" 두루마리의 내용을 확인한 아란의 눈매가 좁아졌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라카드의 목덜미를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뭐냐? 시르바나 성을 마족이 점령했으니 아크가 비밀 던전에 들어오지는 못했을 터. 그런데 대체 이 두루마리를 누구에게 전달하려고 한 거냐?" "제, 젠장! 다짜고짜 배때기에 화살부터 꽂아 놓은 놈에게 말해 줄 것 같으냐! 이 몸은 아크의 소환수란 말이다! 말 못해! 죽어도 말 못 해! 꺼져, 병신아! 퉤, 퉤, 퉤!" 역시나 싸기지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라카드! 당돌하게도 아란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발버퉁 쳤다. "이놈이 ‥‥‥!" 졸지에 침 범벅이 된 아란이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검 자루를 쥐었을 때였다. "아란 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섬뜩한 목소리에 아란이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란을 제지하며 나선 것은 후드를 눌러쓴 거구의 사내였다. 사내를 확인한 아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 네가 있었지." "흥, 웃기지 마. 나도 강단이 있는 뱀파이어라고. 어떤 놈이 와도 소용없어. 배 째!" "‥‥‥과연 그럴까?" 라카드의 말에 사내가 키득거리며 후드를 뒤로 넘겼다. 라카드의 얼굴에 공포심이 떠오른 거 그때였다. * * * "다크 스트라이크!" 퍼퍼퍼펑, 퍼퍼퍼펑!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가 섬광처럼 쏘아지지 공간이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자 일직선상에 모여 있던 마족들이 관통 데미지를 받고 생명력이 단숨에 20%나 깎여 나갔다. "지금이다. 적의 공격이 주춤할 때 정면에 보이는 검은 오벨리스크를 파괴하라!" 아크가 마족들을 몰아치며 명령하자 연합군이 검은 오벨리스크로 몰려들었다. 라카드를 땅굴 1호로 잠입시킨 직후, 아크는 다크에덴을 이끌로 다시 연합군과 합류했다. 그리고 거의 만 하루 가까이 쉬지도 안고 전투를 펼치는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마족을 쓰러뜨려도 검은 오벨리스크에서 계속 부활하는 통에 아직 시르바나 성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연합군은 차근차근 각지에 흩어진 검은 오벨리스크를 파괴시키며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다.' 아크가 헐떡이는 연합군을 둘러보며 한숨을 불어 냈다. 마족들은 어떻지 몰라도 연합군은 유저였다. 생명력과 마나는 잠시 물러나서 회복하면 그만이지만 실제 유저에게 쌓여 가는 피로는 그렇게 단시간에 회복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서둘러 시르바나로 진격하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전멸할 우려가 있다. 슬슬 퇴각해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카드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뭐야? 라카드가 아란에게 당한 건가?' 아크가 생각해 낸 최후의 방법이 봉쇄돼 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크의 입가에는 오히려 옅은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 작전대로다!' "전군 퇴각,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주둔지로 퇴각해 전열을 재정비한다!" 뿌우우우, 뿌우우우 - ! 아크의 명령에 각 연합장들이 일제히 호각을 꺼내 불었다. 그리고 연합군은 한차례 거세게 마족들을 몰아 붙이고 재빨리 주둔지로 퇴각했다. 마족들 역시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태라 추격을 포기하고 시르바나 성으로 돌아갔다. 일단 퇴각한 아크가 빠르게 명령했다.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반을 마족의 기습에 대비하고, 나머지 반은 접속 상태를 유지하며 수면을 취하십시오. 수면 시간은 각각 4시간. 8시간 뒤에는 다시 집결하여 시르바나 성을 공격합니다. 지금까지 검은 오벨리스크를 3분의 1 파괴햇으니 다음번 전투에서는 확실하게 시르바나를 탈환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피로에 지쳐 하얗게 질려 버린 연합장들이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휴식이 필요한 건 저희도 알지만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당장 시르바나를 함락시켜도 이미 비밀 던전에 들어간 마족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그건 제게 맡겨 주십시오." 아크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을 때였다. -보라매 님께서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귓속말을 신청하셨습니다. 보라매는 NPC 연합원들을 호위하는 부대의 부대장 아이디였다. 아크가 귓속말을 허락하자 보라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크 님, 라둔이 도착했습니다. -설계도는 ? -받았습니다. -너구리족이 그걸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하던가? -장치 자체는 간단한 거라서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라둔이 필요한 자재까지 모두 가지고 와서 너구리족이 이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종아, 완성되는 대로 다시 연락하도록. -알겠습니다. '성공이다!' 귓속말이 끝낸 아크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다. 아크가 라카드와 연결이 끊겼따는 메시지를 보고도 당황하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번 작전의 진짜 임무를 맡은 소환수는 라카드가 아닌 라둔이었던 것이다. 워머가 제작한 설계도는 복잡하지 않았지만 그냥 설계도만 전해 준다고 너구리족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신 장치를 만들려면 특수한 재료들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처음부터 이번 임무를 아이템까지 운반할 수 잇는 라둔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실행 단계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시르바나의 마족 숫자를 보면 아란은 적어도 1만 마리의 마족과 동행하고 있다. 거기에 유저들도 1,000명 이상 있어. 라둔이 '보호색' 스킬을 발동한 상태에서 좁은 틈 사이로 이동한다고 해도 아란 일당에게 들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만약 들킨다면‥‥‥.' 작전은 실패, 나가란은 지옥의 강에 수몰된다. '‥‥‥하지만 만약 아란 일당의 관심을 다른 곳에 집중 시킬 수 있다면?' 진짜는 라둔. 라크드는 말하지면 버리는 돌! 그렇다. 라카드의 뒤통수에 하얀 반짝 가루를 묻인 것은 바로 아크였다. 바위틈으로 들어가던 라카드를 뒤에서 껴안으며 살짝 묻혀 뒀던 것이다. 그리고 반짝이 탓에 들통 난 라카드가 신 나게 두들겨 맞고 있을 때 라둔은 살금살금 아란 일당의 눈을 피해 다음 층으로 잠입, 라둔마로 변해 60층까지 달려간 것이다. "악랄한 자식!" 설명을 들은 샴바라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솔직히 아크도 이번에는 좀 찔렸다. 그러나 양심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지 않은가? "일단 제가 병력을 데리고 비밀 던전으로 들어가 아란 일당을 막겠습니다. 그러나 양자 물질 전송기로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많지 않습니다. 비밀 던전에 숨어 있는 병력까지 합해도 대략 2,500. 아란 일당과 정면 승부할 수 있는 병력이 아닙니다. 하지만 최대한 발목을 잡아 볼 테니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시르바나를 함락시키고 비밀 더넌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오오, 역시 다크울프 님!" 그제야 비밀 작전에 대해 들은 연합장들이 감탄사를 발했다. 뒤이어 아크는 연합장들에게 구체적인 작전을 설명한 뒤에 워머를 찾아갔다. "워머, 준비됐습니까?" "지금 MG를 충전시키는 중입니다." 워머는 주전자처럼 생긴 마력 변환기로 양자 물질 송신기에 MG를 충전시키고 있었다. 그동안 연합군이 파괴한 검은 오벨리스크의 파편으로 모아 놓은 MG였다. 그렇게 잠시, MG를 모두 넣자 양자 물질 송신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동하기 시작했다. 워머는 몇 개의 계기판을 확인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주파수가 잡힌다. 지하 720미터 지점‥‥‥. 제법인데? 설계도와 주요 부품을 줫다고 해도 조립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쨌든 짧은 시간에 용케도 수신기를 만들어 놨군. 어디 보자‥‥‥. 아크, 지금 충전한 MG로 공간 이동 시킬 수 잇는 병력은 500명 가량이다." "500명 ? 예상 보다 적군요."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중얼거렸다. 500명. 그렇다면 비밀 던전에 숨어 있는 병력과 합해도 2,3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아크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워머가 와락 짜증을 부렸다. "젠장, 사람을 공간 이동시키는 게 말처럼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아?" "알겠습니다. 일단 이동하죠." 워머의 말대로 불평한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2,500명이든 2.300명이든 아란 일당과 정면 대결을 할 수는 없었다. 아란 일당을 막는 데 필요한 건 병력이 아니라 '방법' 이었다. 일단 아크는 함께 비밀 던전에 들어갈 병력을 차출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꼭 병력 편성으 ㄹ다크에덴 연합원만으로 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방등에 불이 떨어진 건 누구나 마찬가지. 그리고 이번 전쟁의 성패가 걸려 있는 임무라 아크는 샴바라와 갱생단, 워머와 함께 가장 전투 능력이 뛰어난 유저들만 뽑아 병력을 편생했다. "정의남 아저씨는 여기서 연합군의 총지휘를 맡아 주세요." "알았다. 중간 중간 연락을 보내라." "네, 부탁해요." 아크는 연합군의 지휘를 정의남에게 맡기고 양자 물질 송신기에 올라탔다. "자, 그럼 이동한다!" 빠르게 준비를 마치자 워머가 기계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양자 물질 송신기의 윗부분에 달려 있는 안테나에서 엄청난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파크는 점차 강렬해지더니 이내 주변에 있는 500명의 연합원들을 휘감았다. 순간 연합원들은 하나의 빛 덩어리로 변해 안테나에 빨려 들어갔다. 지이이이이‥‥‥콰콰콰콰콰콰! 빙글빙글 회전하던 안테나가 바닥을 향해 광선을 뿜어냈다. 영자로 변한 500명의 병사들이 벼락처럼 땅속으로 스며 들어 갔다. ACT 7 던전 키퍼 kianms10310@naver.com 콰지지지지! 어둠에 잠긴 커다란 지하 밀실. 돌연 그 지하 밀실의 천장에 격렬한 스파크가 번져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파크가 한곳에 집중되더니 지하 밀실 중심에 설치된 위성 안테나처럼 생긴 기계에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동시에 사방으로 시퍼런 섬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가 수백 명의 사람으로 변했다. "도착 했다!" 안테나 주위에 몰려 있던 수인족과 연합원들이 소리쳤다. "왔다. 나가란 연합군의 정예들이다!" 빛과 함께 나타난 수백의 병사들! 그렇다. 이들이 바로 나가란을 지키기 위해 모인 나가란 연합군의 최정예 용사들! 그들이 양자 이동 송신기를 이용해 너구리족이 비밀 던전 60층에 만들어 놓은 지하 밀실에 도착 한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나가란을 지키겠다는‥‥‥. "크아아아악! 불, 불이다!" "우욱! 쏘, 쏠린다‥‥‥. 보, 봉지‥‥‥우웨에에엑!" ‥‥‥의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유저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비명을 질러 댔다. 엉덩이에 불이 붙은 유저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고, 머리에 불이 붙은 유저는 미친 듯이 벽을 들이 받으며 비명을 질러 댔다. 절반 이상은 바닥에 쓰러져 오바이트를 해 댔고, 몇 명은 아예 시체처럼 늘어져 다 죽어 가는 표정으로 헐떡거렸다. 아크 역시 바닥에 엎드려 미친 듯이 구역질을 했다. "비, 빌어먹을‥‥‥. 대체 뭐야‥‥‥ 이건?" 뉴 월드에서 돌아다니며 영자 이동이니 뭐니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단연코 그 어떤 것보다 양자 이동이 몇 배는 더더럽고, 어지럽고, 속이 뒤틀렸다. 영자 이동이 쉐이크 병 속에 넣고 흔들어 대는 듯한 기분이라면, 양자 이동은 믹서기에 넣고 갈아 버리는 듯한 기분이랄까? 기분만 더러우면 말도 안 한다. 실제로 양자 이동으로 날아온 유저들은 생명력이 70~80%나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아마도 이동 거리가 좀 더 멀었다면 이동 장소는 비밀 던전이 아니라 황천이 됐으리라. 새삼 워머의 발명품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기계였다. "그래서 말했잖아. 좀 서둘러 만들어서 안정성이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양자 변환률이 100%가 되지 않아 땅을 뚫고 오면서 장애물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세밀하게 조율해 놔서 변환률을 100%까지 올릴 수 있는 지하 기지의 양자 물질 송신기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야. 뭐,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다. 이번에 사용한 양자 물질 송신기는 급하게 만든 것이라 유저를 100% 양자로 변환시키지 못했다. 워머의 말에 의하면 변환률은 대략 70 ~ 80% 정도. 덕분에 아크 일행은 땅속을 이동하며 엄청난 양의 흙과 자갈, 바위 따위를 관통할 때마다 데인저러스한 스릴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불이 붙거나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워머는 멀쩡했다. "좀 흔들린 것 가지고 너무 겔겔대는 거 아냐?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근성이 없다니까." 워머가 그을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매번 이런 황당한 발명품을 자체 실험하다 보니 어지간한 상황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괴물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이래저래 정말 황당한 인간이다. '그래도 어쨌든 모두 살아서 도착하기는 했군.' 간신히 정신을 차린 아크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란이 시르바나를 점령한 뒤로 아크는 급하게 연합원에게 연락해 비밀 던전 60층에 숨어 있으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1,800명 밖에 안 되는 이들로는 아란을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그중 1,500명이 묘족과 너구리족, 늑대족, 동방 민족 같은 NPC들이라 이들이 죽으면 다크에덴의 전력에 치명적인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크에덴 연합원은 아크의 지시대로 60층에 지하밀실을 만들어 놓았다. 아크가 연합군의 정예 유저와 이동한 곳이 바로 그 지하 밀실이었다. 아크가 좀 기운을 차리자 연합원 들이 달려왔다. "연합장님!" 쌕쌕쌕, 쌕쌕쌕쌕! 그러나 그보다 먼저 라둔이 혀를 날름거리며 재빨리 아크의 허리에 휘감겼다. "잘했다, 라둔. 현재 상황은?" 아크는 훌륭히 임무를 수행해 낸 라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비밀 던전 공략대의 지휘를 맡고 있던 보라매가 대답했다. "마족 부대는 현재 56층까지 진입한 상태입니다." "51층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지가 하루 전인데‥‥‥. 빠르군." 그러나 아란의 이동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했다. 일전에 아크가 처음 어비스에 진입했을 때는 한 층을 내려가는 데도 하루 이상이 소모됐다. 어비스는 고대 미궁과는 난이도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정예 몬스터들이 득실거릴 때의 경우였다. 현재 어비스는 1,800명의 다크에덴 연합원들이 몬스터가 리젠되는 족족 사냥한 덕분에 몬스터는 구경도 하기 힘든 것이다. 물론 어비스는 몬스터 이상으로 각종 위험한 지대와 함정이 널려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아란 부대의 걸음을 느리게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보라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55층부터는 갑자기 마족 부대의 움직임이 느려졌습니다. 놈들이 어비스에 진입한 이후부터 계속 감시하고 있는 중인데, 그때까지는 계단만 찾아 이동하더니 55층부터는 계단을 찾아도 던전을 샅샅이 뒤진 뒤에야 이동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그렇겠지.' 보라매의 설명에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사실 아크가 라카드를 이용해 노린 효과는 두 가지 였다. 하나는 이미 설명한 대로 아란 일당의 관심을 라카드에게 집중시켜 라둔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아란 일당의 움직임을 느리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란은 라카드를 붙잡음으로써 아마도 아크가 들려준 워머의 설계로를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설계도는 '수신 장치'가 아니라 '송신 장치'의 설계도였다. 다시 말해 아크가 들어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밀 던전에 갇힌 MPC연합원을 구출하기 위해 라카드를 파견했다고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어비스에는 몬스터가 ㅇ벗다. 당연히 아란은 비밀 던전에 다크에덴의 NPC 부대가 있다는 것을 확실할 거야. 그리고 아직 시르바나를 마족이 점령하고 있으니 이 기회에 NPC부대를 처리해서 다크에덴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싶어 하겠지.' 그리고 아크는 라카드를 보내며 비밀 던전 공략대의 정보를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숫자는 대력 3,000~ 4,000 정도 되고 어비스 어딘가에 있다고만 알려 줬을 뿐이다. 그리고 어비스에 진입하면 따로 원격 통신을 이용해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정보는 아란에게 들어갔겠지.; 아크는 라카드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비밀을 지키는 충성심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다. 라카드가 잡히면 그 정보는 틀림없이 아란에게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 아란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차피 라카드가 잡혀서 도망갈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이판사판으로 아란 일당을 기습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아란은 혹시 모를 배후 공격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각 층을 샅샅이 뒤지며 진군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크는 라카드를 이용해 설계도 전달과 아란 일당의 진군 방해. 한 번에 두 가지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아란 녀석은 내가 60층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이제 어쩌실 생각입니까?" 보라매가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특공대를 훑으며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일단 아크가 특공대를 이끌고 들어왓찌만 숫자는 고작 500명. 공략대와 합해도 2,300명에 불과했다. 반면 아란은 강력한 고위 마족과 어벤저 길드원 1만여. 연합군이 시르바나를 점령하고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아란 일당을 막아 낼 수 있을 만한 병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도착하자마자 오바이트를 해 대는 특공대는 도무지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아란 일당을 무찌르는 게 아니다! 연합군이 올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 "하지만 그게 그 말 아닙니까?" "아니, 전혀 다르지." 아크가 피식 웃으며 말했을 때였다. "자, 자! 시간 없다며? 빨리 던전 지도나 가져와 봐! 어차피 나까지 데려온 건 그 때문이잖아. 좋다고. 지하 기지에 고이 모셔 둔 발명품을 고철로 만들어 버린 놈에게 그게 얼마나 큰 실수엿는지 깨닫게 해 주지. 아, 뭐해? 빨리 가져오라니까? 있을 거 아냐, 지도! 그리고 제법 망치 좀 쓸 줄 아는 놈들이 많다며? 그놈들도 몽땅 데려와!" 워머가 팔을 걷어붙이며 소리쳤다. "뭡니까, 저 시끄러운 돼지는?" 보라매의 질문에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란 놈들을 막아 낼 비밀 병기지." * * * "아란 님, 또 나타났습니다!" 선두에서 주변을 살피던 어벤저 - 어벤저 길드원들- 가 소리쳤다. 어벤저들이 가르킨 지하 계곡 아래에는 이런 푯말이 서 있었다. 《던전 키퍼 가라사대》 위험! 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 못합니다.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세요. "이 자식들이 정말‥‥‥." 내용을 확인한 아란의 얼굴이 거칠게 일그러졌다. 그러자 어벤저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란 님,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라니?" "이전에도 경고를 무시하고 진군하다가‥‥‥." "그럼 저 경고대로 돌아가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아란이 잡아 먹을 듯이 어벤저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기세에 눌린 어벤저는 움찔하며 기어 들어가는 모소리로 떠듬거렸다. "그, 그게 아니라‥‥‥어비스의 함정은 탐색도 되지 않아서‥‥‥." "멍청한! 대체 뭣 때문에 1만 마리나 되는 마족을 데리고 들어왓따고 생각하는 건가?" 아란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쥬르!" "네, 아란 님." "탈론 200마리를 일령횡대로 세워 계곡으로 진군시켜라!" "알겠씁니다. 탈론 부대는 정렬하라!" 쥬르가 소리치자 탈론들이 웅성거리며 계곡 앞에 모여들었다. 그렇게 모여든 탈론들의 눈에는 정체불명의 위험에 대한 두려움의 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검은 오벨리스크의 사슬에 묶인 마족들은 아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탈론들이 공포에 떨면서도 아란이 명령을 내리자 계곡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탈론들이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바로 방금 전 어벤저가 발견한 푯말 때문이었다. 아란과 마족 부대는 비밀 던전에 들어온 뒤로 지금까지 그야말로 거침없이 진군해왓따. 고대 미궁의 정예 몬스터 따위는 1만 마족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50층을 지나 51층 어비스로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흔해 빠진 몬스터 따위가 아닌, 보다 두렵고 예측 할 수 없는 위험이마족 부대의 앞을 가로 막은 것이다. 근처에 있는 생물을 닥치는 대로 잡아 삼키는 식인 바위! 갑자기 뒤집히며 단숨에 수백 마리의 마족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바닥!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오는 용암 등등‥‥‥. 그렇다. 마족 부대를 위협하는 것은 몬스터가 아닌 바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어비스의 함정들이었다. 게다가 그 함정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벤저의 도적이나 사냥꾼들도 미리 알아내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그게 문제가 아니다.' 아란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현재 아란이 있는 곳은 59층. 어비스를 9층이나 돌파했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함정도 9층 정도 공략하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59층에 들어서자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바로 59층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왓떤 푯말을 발견하면서 부터였다. 《던전 키퍼 가라사대》 웰컴 투 어비스! 어비스의 탐험자들이여, 환영합니다. 겁도 없이 이 위험한 동굴에 들어온 여러분을 위해 조언해드립니다. 이 길은 좀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발아래르 잘 확인하십시오. "뭐지, 이건?" 처음 푯말을 확인했을 때 아란은 무슨 장난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좌우의 벽에서 엄청난 숫자의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것도 그냥 바위가 아니었다. "헉! 이, 이건 식인 바위다!" "쿠에에에엑!" 바위에 충돌한 어벤저와 마족들은 살과 뼈가 뭉개지며 그대로 바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부터 푯말에 서 잇는 장소에서는 어김없이 이런 황당한 함정이 발동했다. 발아래를 살피라고 적혀 있으면 머리 위에서 용암이 쏟아지고, 위를 보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는 발아래에서 산성 간헐천이 솟아올랐다. 몇 번 그런 상황을 겪은 아란은 반대로 오른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라면 오른쪽으로 가는 방식을 사용해 봤지만 또 그럴 때는 푯말에 적힌 방향에서 함정이 발동했다. 누군가가 가지고 노는 듯한 상황‥‥‥! '뭐지? 이건 지금까지 경험한 천연 함정이 아니다. 분명 누군가가 일부러 함정을 만들어 놓은 거야. 생각할 수 잇는 건, 그 박쥐가 말했던 다크에덴의 NPC연합원들밖에 없어.' 그러나 상대를 알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59층에는 그런 푯말이 수도 없이 많이 박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만큼 많은 함정이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느 뜻. 그런 곳에서 함부로 병력을 분산시켜 다크에덴의 잔당을 수색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도 같았다. 물론 천연 함정이 아니라 누군가가 함정을 설치했다면 어벤저 도적이나 사냥꾼들의 '함정 감지' 따위로 찾아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푯말 주변의 함정은 단순한 트랩이 아니라 천연 함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장치라 찾아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지역도 엄청나게 넓어서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 찾기. 그리고 아란은 일일이 그런 함정을 찾아내며 진군할 여유가 없었다. '아크 녀석, 설마 지옥의 강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나가란의 연합을 끌어들일 줄이야.' 그 연합군이 현재 시르바나를 포위하고 맹공을 펴치고 있는 중이었다. 시르바나 성에 남겨 둔 마족이 전멸하는 것은 시간문제. 마족이 전멸하면 나가란 연합군이 비밀 던전으로 몰려 들어올 게 뻔했다. 그리고 연합군은 비밀 던전을 쫙 꿰고 있는 아크가 지휘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아란이 고대 미궁의 몬스터들까지 정리해 놧으니 연합군은 불과 2~ 3 일이면 아란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함정을 수색하며 이동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없어.' 아란도 아란 나름대로 시간에 쫓기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이제 목적지까지는 불과 3층 밖에 남지 않았다. 알면서도 당해야 한다는 게 분하지만 지금으로써는 피해를 감수하되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판단한 아란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희생양을 던져 주는 것이었다. 아란이 데려온 마족들은 대부분 헤메라드나 수탄, 듀라한 같은 상위 마족들이었다. 아직 비밀 던전에서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르니 이런 마족들의 피해는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너 위험이 예상되는 지역이 나타나면 숫자밖에 믿을 게 없는 하급 마족을 먼저 진군시켜 일부러 함정을 발동. 즉, 몸으로 함정을 해제해 나가는 방식이다. 탈론들이 두려움에 떨며 진군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따. "뭣들 하나? 서둘러라!" 잠시 상황을 정리하던 아란이 움찔움찔하며 진군하는 탈론들에게 고함쳤다. 그러자 타모시가 짜릿한 표정을 지으며 아란에게 엉겨 붙었다. "후후후, 아무리 마족이라지만 대놓고 사지로 들여보내는 냉혹함이 너무 멋져." ‥‥‥변태기가 엿보이는 여자였다. 어쨌든 계곡으로 진군한 탈론들이 막 푯말이 박힌 지점을 넘어섰을 때였다. 털컥, 돌연 푯말 위 깃발이 솟아올랐다. 《던전 키퍼 가라사대》 경고를 무시했으니 벌칙을 내리겠습니다. "모두 주변을 경계하라!" 아란이 황급히 티모시를 떼어 놓으며 소리쳤다. 동시에 어벤저와 마족들이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방어 태세를 갖췃다. 이 불쾌한 푯말이 작동했으니 뭔가 함정이 발동됐으리라. 그리고 일단 함정이 발동하면 단순한 천연 함정이 아니기에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따. 잠시 상황을 살피던 아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이번에도 그냥 공갈이었던 건가?" 아란이 더욱 열 받는 게 이런 것 때문이었다. 59층에 수도 없이 박혀 있는 푯말. 그러나 그것들이 모두 함정과 연고나이 있는게 아니었다. 어떤 푯말은 협박이 잔뜩 쓰여 있지만 막상 진입해도 아무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도 적지 않았다. 그게 더더욱 푯말 주변을 수색하며 진군하지 않은 이유였다. 이런 공갈이라면 있지도 않은 함정 때문에 그곳에서 몇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젠장, 부대를 계곡으로 진군시킨다!" "아란 님!" 그때 어벤저 1명이 움찔하며 푯말 옆을 가리켰다. 아란이 고개를 돌리자 푯말 옆으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작은 불빛이었다. 불빛이 빠르게 움직이자 아란과 어벤저, 마족들은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빛을 따라 계곡의 벽을 지나 기둥을 타고 올라가자 천장에 박힌 푯말이 보였다. 《던전 키퍼 가라사대》 븅,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냐? '뭐, 뭐야?' "피해라! 최대한 빨리 여기서 벗어나라!"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고함 소리와 함께 천장에서 엄청난 폭음이 울려퍼졌다. 마치 수십 톤의 폭약이 단숨에 폭발하는 듯한 폭음! 순간 천장에 쩍쩍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날카로운 바위가 어벤저와 마족들의 머리 위로 우박처럼 쏟아졌다. "크윽, 빌어먹을!" 아란은 '신속'을 사용해 단숨에 100여 미터나 이동한 뒤에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흙먼지가 쏟아져 주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쏟아지는 바위 속에서 울려 나오는 살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 비명 따위로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항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상위 마족들이라 바위가 쏟아진다 해도 즉사한 숫자는 많지 않겠지만, 깎여 나간 생명력을 복구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고 피해 상항을 보고하라!" "제3, 4 탈론 부대가 전멸했습니다!" "제6, 8 헤메라드 부대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제13 듀하란 부대는 생명력이 40% 정도만 데미지를 입고‥‥‥크아아아악!" 퍼펑, 퍼펑, 퍼펑, 퍼펑! 보고하던 어벤저의 비명과 함께 흙먼지 속에서 격렬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마법사 부대, 풍 속성 마법으로 흙먼지를 날려라!" "창공을 달리는 바람의 정령이여‥‥‥윈드!"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자 거센 폭풍이 흙먼지를 말아 올렷따.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아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저, 저놈들은‥‥‥." 흙먼지가 사라지자 바위에 맞고 휘청거리는 마족들을 공격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병사들! 아란은 오래전에 같은 복장의 NPC들을 본 적이 있었다. 셀리브리드 근방의 야산에 모여 살던 암살자 일족. 그렇다. 바로 다크 브라더. 지금은 스탄달에 정착해서 살다가 아크에게 팔려 다크에덴의 연합원이 돼 버린 동방 민족이었다. 그러나 아란의 시선이 날아가 박힌 곳은 그들을 지휘하며 혼란에 빠진 마족들을 몰아치는 두 사람! "다크 스트라이크!" "십자화결!" 바로 아크와 샴바라였다. "그렇군, 저놈들이었어!" 둘을 발견한 아란이 이를 같아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아란은 내심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푯말을 걸어 놓고 사람을 가지고 노는 수법! 그런 사람 복장을 긁어 대는 수법은 바로 숙적 아크의 전매특허였다. 물론 비밀 던전에 숨어 있다는 다크에덴 연합원이 아크의 부하들이니 아크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수긍할 수 있었지만, 그런 것치고는지나치게 '아크 냄새' 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모든 게 아크가 직접 꾸민 짓이라면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납득과 수긍은 별개의 문제였다. "어떻게 저놈들이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풀리니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의문이나 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잡아라! 다른 놈들은 필요 없다! 아크와 샴바라, 두 놈을 잡아!" 아란의 고함에 마족들이 괴성을 지르며 몰려들었다. 그러자 아크와 샴바라가 동방 민족과 함께 뺑소니쳐 버렸다. "됐어, 이제 튀자!" "퇴각이다! 모두 퇴각하라!" "추격해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포위망을 만들어 놈들을 몰아 넣어라!" 아란은 빠르게 1만의 어벤저와 마족을 지휘해 일대에 몇 겹의 포위망을 만들었따. 그리고 간신히 발이 빠른 마족들을 동원해 아크를 쫓았다. 그러자 아크와 샴바라, 동방 민족은 몇 번이나 포위망에 부딪쳐 허둥대다가 결국 절벽 밑으로 몰려 버렸다. 과연 아란, 명령 전달이 느린 마족을 움직이면서도 순식간에 포위망을 좁혀 아크 들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었다. "크윽, 이런 젠장‥‥‥!" 아크가 수십 미터나 되는 절벽을 올려다보며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아란이 싸늘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놈의 장난도 여기까지다. 밟아라!" "크와아아아아!" 마족들이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내며 몰려들어싿. 1만에 달하는 어벤저와 마족들이 일시에 몰려들자 던전전체가 부르르 진동했다. 순간 안절부절못하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형님들, 지금입니다!" "오케이!" 동시에 절벽 위에서 짝퉁과 얍삽이, 덩치 등 갱생단이 수백 명의 병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절벽 가장 자리에 쌓여 있는 바위를 아래로 밀었다. 뒤이어 바위들이 절벽을 따라 굴러떨어지자 기계음이 울리며 아크와 샴바라, 동방 민족이 서 있던 바닥이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절벽위로 올라가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잡아라! 놈들을 막아라!" 코앞에서 아크가 도망가자 아란이 발작을 일으키듯이 펄쩍 뛰었다. 그러자 마족들이 괴성을 질러 대더니 날카로운 발톱을 찍어 대며 절벽을 기어 올라왔다. "그렇게는 안 되지. 시작해라!" 짝퉁이 히죽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절벽 위에서 망치를 든 수백 명의 다크에덴 연합원들이 나타낫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박혀 있는 말뚝을 내리쳤을 때 였다. 쿠콰콰콰콰, 콰콰, 콰콰콰콰콰! 말뚝이 깊이 박혀 들어갈 때마다 쩍쩍 균열이 번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절벽이 굉음을 터뜨리며 허물어져 버렸다. 덕분에 엘리베이터를 따라 기어 올라가던 마족들은 무너지는 절벽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절벽이 반ㅉ므 허물어지자 그 틈으로 시뻘건 용암이 밀려들어 왔다. "저, 저건‥‥‥용암이다!" "용암을 막던 바위가 무너져서 용암이 역류한다!" "도, 도망쳐! 높은 곳으로 도망쳐라!" -크락, 크락, 마드라마 크락! 절벽 앞에 모여 있던 어벤저와 마족들이 비명을 터뜨리며 도망쳤다. 그때 무너진 절벽을 바라보던 아란이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머, 멈춰! 절벽 사이로 밀려드는 용암은 많은 양이 아니다. 이곳까지 오지 않아!" -크락, 크락, 마드라마 크락! 눈앞에서 용암이 밀려들자 아란조차 마족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마족들은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며 고지대로 달려가다가 서로 부딪쳐 바닥에 나뒹굴었다. 심지어 탈론처럼 작은 마족들은 헤비워커나 자이언트 같은 거대 마족에게 밟혀 오징어가 되기도 했다. "이런 멍청한 놈들이‥‥‥!" 아란이 한심한 눈으로 마족들을 노려보다가 와락 고개를 치켜들었다. 절벽 위에는 아크와 샴바라, 갱생단, 동방 민족과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아란의 눈동자에는 오직 아크의 얼굴만이 박혀 들었다. 입속에서 바위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크- !" "‥‥‥이제 시작이야. 이제부터 제대로 즐겨 보자고." 아크가 씨익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이거 의외로 재미있는데?" "방금 전에 아란 녀석 표정 봤냐?" "키키키, 이런 걸 두고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고 하지." 어깨에 망치를 짊어진 짝퉁과 얍삽이, 덩치가 키득거리며 떠들어 댔다. 아크 역시 간만에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후후후, 아란 녀석, 아마 지금쯤 배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걸." 절벽 위쪽에서 연결된 길을 걸으며 아크가 히죽거렸다. 이제 와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아란이 59층에서 발견한 푯말은 모두 아크의 작품이었다. 푯말로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위협을 느끼게 만들어 아란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푯말과 연계된 함정은 다른 사람의 작품이었다. '워머의 '발명' 스킬을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어. 스킬이라는 게 응용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응용이 가능항 줄이야.' 그렇다. 푯말과 연계된 함정은 바로 워머의 작품이었다. 사실 아크는 일단 60층으로 이동해서 천연 함정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마족 부대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이미 어비스의 지형과 함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활용하려던 것이다. 그리너 1만 대 2,300. 4배가 넘는 병력 차이다. 게다가 아란이 데리고 들어온 마족은 대부분이 상당한 레벨의 상위 마족1 아무리 천연 함정을 활용한다고 해도 아란이 지휘하는 마족 부대의 발목을 잡는 데는 한계까 있었다. 또한 아크의 2,300은 1,500명이 수인족과 동방 민족으로 이루어진 NPC 연합원이었다. 이들을 잃으면 다크에덴의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나가란을 지키려면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어.'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각오를 다질 때였다. "굳이 놈들과 박 터지게 싸워야 할 필요는 없지." 이렇게 말하며 나선 사람이 바로 워머였다. "무슨 말이에요?" "발명밖에 못 하는 개가 어떻게 레벨을 400 넘게 올렸는지 아냐?" 워머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사실 아크도 그동안 그 점이 궁금하기는 했었다. 워머는 발명가. 지하 기지 같은 곳에 처박혀서 괴상한 기계만 만들어 내는 직업을 가진 유저였다. 그런데 레벨은 무려 410. 아크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레벨을 가지고 있었다. 아크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젓자 워머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끄덕였다. "긴말 필요 없고, 예전에 비밀 던전을 공략했다고 했지? 혹시 지도는 있나?" "네. 그야‥‥‥." 아크가 '지도 제작' 스킬로 만들어졌던 지도를 건네 주었다. 그러자 지도를 쭉 훑어본 워마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호오, 꽤나 상세하군. 마음에 들어. 이 정도면 충분해." "뭐가 말입니까?" "발명가가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 보여 주지." 그때부터 워머는 지도를 펄쳐 놓고 그 위에 각종 도형과 공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뒤집히는 바닥이 있다고? 그게 재미있군. 하지만 1~2마리만 떨어져도 함정이 금세 탄로 나잖아. 이런곳은 일단 단단히 고정시켜 놓고 놈들이 잔뜩 올라왓을 때 작동하도록 손봐 놓을 필요가 있겠어. 여기는‥‥‥ 호오, 식인 바위? 이건 이쪽으로 옮겨서 굴려 떨어뜨리면 좋겠군. 아, 이 용암의 강 옆에 있는 절벽은 구조상으로 이 부분에서 수직으로 충격을 주면 금세 허물어 질거야. 음음, 그럼 여기와 여기에 말뚝을 박아 볼까?" 워마가 지도에 그리는 도형과 공식은 함정을 개조할 장치의 설계도였다. 공중 다리를 부수는 시한 장치, 적을 사람 잡아먹는 바위에 떨어뜨리는 장치. 그리고 이번처럼 용암 근처의 절벽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타격을 줘야 하는지 등등‥‥‥ 던전의 지형과 함정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개조할 수 있는 설계도! 그렇다. 이게 바로 발명가 워머의 진가였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워머는 전투 능력이 전무했다. 물론 새로운 발명을 하면 경험치를 받지만 그것만으로 아크와 동등한 레벨을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워머가 레벨을 410이나 올릴 수 있엇던 비밀, 그건 바로 워머의 특기가 던전을 통째로 개조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워머는 전사들처럼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탐험하는 방법으로 던전을 공략하지 않았다. 새로운 던전을 찾으면 일단 몇 번을 죽더라도 던전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지형 정보를 갱신시켰다. 그리고 '발명' 스킬을 이용해 주요 길목에 갖가지 ㄱ계 장치를 만들어 놓고, 몬스터를 유인해 한 방에 섬멸시키는 방법으로 경험치를 긁어 모아 왔던 것이다. 워머는 그런 경력과 노하우를 유감이 많은 아란을 괴롭히는 데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리고 아란이 56, 57 ,58층을 공략하는 동안 너구리족을 동원해 59층을 통째로 개조시켜 버렸다. 그게 바로 아란과 마족 부대를 난감하게 만들었던 함정들의 정체였다. 그리고 덕분에 아크는 직접 싸우지도 않고 아란의 발목을 움켜쥘 수 잇었다. "자,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갱생단들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걸음을 옮기던 샴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방금 전에는 직접 마족을 공격 한거야? 어차피 마족에게 제대로 데미지도 주지 못햇잔항. 게다가 자칫 실수했으면 마족들에게 정말 포위될 뻔했고." "그야 당연히 아란 녀석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는 거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란 녀석이 좀 전부터 함정에 대한 대응을 바궜잖아. 사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게 그런 방법이야. 약한 마족을 희생양으로 함정을 작동시켜 버리는 것. 그런 식으로 함정을 확인하면 내가 만들어 놓은 공갈 푯말도 다 소용잉 ㅓㅄ어지지. 하지만 내가 언제든지 배후르 공격할 수 잇다는 걸 보여준 이상 이제 아란 녀석도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못할 거야." "흠, 여전히 치사한 쪽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치사가 아니라 전술이라는 거야." "치사한 전술이겠지." 샴바라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지금까지 함정만으로 아란을 괴롭혔던 아크가 이제 와서 굳이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면서까지 마족의 배후를 공격한 건 그 때문이었다. 이 던전에 도사리고 잇는 위험이 함정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그리고 그게 다름 아닌 아크라는 것을 확인 시켜주면 아란은 병력을 움직일 때 더욱 많은 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이 많을수록 움직임은 더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란 부대가 59층에 들어와서 읽은 어벤저와 마족은 대부분 1,700마리다. 아직 놈들이 있는 곳은 59층의 초입 부분이니 60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우리는 전혀 피해를 받지 않고 3,000~ 4,000마리 이상 줄일 수 있어. 그렇게 되면 마족들의 숫자는 6,000~7,000. 우리는 2,300이다. 정면 대결은 여전히 무리지만 워머와 다크에덴 연합원들이 요새로 개조하고 있는 60층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치면 연합군이 올 때까지 마족을 상대할 수 있을거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아크 - !" 돌연 엄청난 고함 소리가 던전의 벽에 반사되어 쩌렁쩌렁 울렸다. 확성 마법으로 증폭된 아란의 목소리였다. "후후후, 꽤나 열이 뻗친 모양이군. 그래, 소리쳐라. 네 목이 터지지 내 목이 터지냐?" 아크가 키득거리자 다시 아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겁한 놈,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멍청한 놈, 너 같으면 나오겠냐?" 아크가 목덜미를 긁적이며 코웃음을 쳤을 때였다. "주인 - !" 동굴 벽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란의 외침을 씹으며 걸음을 옮기던 아크의 몸이 움찔했다. 그리고 황급히 방금 전의 절벽으로 되돌아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무너진 절벽과 그 아래로 범람한 용암 너머로 아란과 마족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크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란이나 마족이 아니었다. 아란의 앞, 검은 자기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새장 안에 박쥐 1마리가 갇혀 있었다. '뭐, 뭐야? 저건 라카드?' 그렇다. 새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라카드였다. '어떻게 된 거지? 저 녀석, 어둠의 대지로 강제송환 된 게 아니었나?' 아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략 18시간 전에 라카드와 연결이 끊겼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아크는 그게 라카드가 아란이나 마족에게 죽어서 소환포트를 박아 놓은 어둠의 대지로 강제송환 됏따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런데 라카드가 버젓이 살아서 새장에 갇혀 있지 않은가? '라카드가 죽지 않았다면 저 새장 때문에 연결이 끊겼다는 건가?' 아크가 검은 자기장으로 만들어진 새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잠시 주변을 두러보며 반응을 살피던 아란이 다시 소리쳤다. "네놈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 박쥐를 없애 버리겠다!" '라카드를 없애 버리겠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지켜보던 아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라카드는 소환수다. 일반 NPC와 달리 유저처럼 죽어도 부활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소환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면 아크가 겁을 집어먹고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 녀석, 열 받아서 살짝 맛이 갔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래도 아크 녀석은 널 버린 모양이다." 다시 잠시 뜸을 들이던 아란이 라카드를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란의 뒤에 서 있던 후드를 누렀느 거구의 사내가 새장으로 다가갔다. 사내가 나타나자 새장 안에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라카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히, 히익. 주, 주인! 사, 살려 줘‥‥‥. 저, 저놈은‥‥‥." "인펙터, 시작해라." 동시에 거구의 사내가 후드를 뒤로 넘겼다. 마치 밀가루를 발라 놓은 것처럼 하얀 얼굴로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사내. 아란의 명령을 받은 사내, 인펙터가 희열에 들뜬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자 피처럼 붉은 입술이 길게 찢어지며 송곳처럼 날카로운 한 쌍의 어금니가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저건 뱀파이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아란의 태도나 라카드의 반응도 그렇고‥‥‥ 묘하게 뭔가가 찜짬하다. 혹시 아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재빨리 '고양이의 눈' 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자동적으로 '스킬 간파' 가 적용되며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인펙터(에이션트 뱀파이어)의 스킬 : 동족 흡혈 밤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뱀파이어는 보통 인간이나 몬스터의 몇 배나 되는 수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순혈종에 속하는 에이션트 뱀파이어는 1,000년에 걸친 삶을 산 존재로 지금은 잊힌 금단의 비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 뱀파이어를 멸종의 위기에 몰아넣었던 '동족 흡혈'! '동족 흡혈'은 뱀파이어의 비술이면서 뱀파이어에게 가장 두려운 비술입니다. '동족 흡혈'을 당한 뱀파이어는 마력의 결정체인 혈정을 흡수 당해 존재 자체가 포식자에게 먹혀 버립니다. 그리고 먹힌 뱀파이어는 영혼마저도 완전히 분해되어 포식자의 일부가 되어 버립니다. 때문에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동족 흡혈이 성행하던 고대에는 일족의 숫자가 급속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뱀파이어 로드는 '동족 흡혈'을 금지시키고 금단의 비술을 깊은 어둠에 봉인 했다고 전해집니다. 《뱀파이어의 혈정을 흡수해 자신의 마력을 강화시킵니다. 혈정을 빼앗긴 뱀파이어가 모든 마력을 흡수당하면 완전히 소멸합니다.》 ACT 8 라카드 소멸 '헉! 이, 이게 뭐야?'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인펙터는 1,000년을 살아온 에이션트 뱀파이어다. 아무리 이 박쥐가 소환수라고 해도 인펙터의 '동족 흡혈'에 당하면 소멸하게 된다. 네가 힘들게 키워 온 소환수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꼴을 보기 싫다면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정보창으로 확인한 내용을 아란이 친절하게 재방송까지 해 주었다. 그렇다. 인펙터라는 뱀파이어의 능력은 바로 뱀파이러를 잡아 먹는 것! 설사 소환수라도 뱀파이어인 이상 인펙터의 '동족 흡혈'에 당하면 소멸되고 말리라! '요즘 라카드의 비중이 작아졌다고 하지만 ‥‥‥.' 사실 요즘 아크에게 라카드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라둔은 특별히 신경을 써 본 적은 없어도 가방 역할을 하니 항상 사용하는 셈이다. 퓨리탈은 본래 라카드보다 존재감이 없었찌만 얼마 전에 진화해서 생긴 '갑주회' 덕분에 제법 활용도가 많아졌다. 그러나 라카드는 근래 '위성 감시 모드'로 밖에 활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활용도를 떠나 미우나 고우나 초보 시절부터 함께 다녔던 소환수다. 또한 라카드는 3마리 가운데 유일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소환수. 그동안 홀로 여행을 할 때 마다 얼마나 많은 위안이 되었던가? 그런데 그런 라카드가 소멸한다니? 만약 다른 때였다면 고민할 새도 없이 달려 나갔으리라! '아란이 노리는 게 내 목숨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아란의 목적은 내가아니라 놈의 발목을 잡고 있는 다크에덴이다. 만약 라카드를 살리기 위해 움직였다가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이 전멸당하는 사태라도 벌어진다면‥‥‥.' 아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건 곧 시르바나가 지옥의 강에 잠기는 결과로 이어지리라. 라카드의 목숨과 시르바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니, 냉정하게 생각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지금 당징 아크가 달려 나간다고 해도 아란이 라카드를 풀어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아란이라면 100%, 아니 1,000% 확률로 라카드를 소멸시켜 버릴 게 분명했다. 달려 나가도 라카드를 살릴 수 없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크는 간단하게 라카드를 포기할 수 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 해야‥‥‥!' 아크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던 아란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모양이군. 인펙터!" "우와아아아! 주, 주인! 사, 살려 줘‥‥‥." 인펙터가 다가가자 라카드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와들와들 떨어 댔다.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 라카드와 지냈떤 수많은 날들의 영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인펙터가 발버둥 치는 라카드를 와랑 틀어쥐고 목덜미에 어금니를 박아 넣었다. 그러자 버둥대던 라카드가 파르르 떨며 신음을 흘렸다. "우아, 우아아아, 우아아아‥‥‥." 순간 라카드의 몸이 서서히 흐려지며 붉은 결정으로 변해 인펙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소환수 라카드가 인펙터에게 동족 흡혈을 당했습니다. *인펙터가 혈정을 완전히 흡수하면 라카드는 소멸됩니다. 《흡수율 : 1%》 "맙소사!" 아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머릿속도 하얗게 되어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라카드가 인펙터에게 빨려 들어가는 장면만이 몇 번이고 반복 재생되었다. 영상이 반복 재생될 때마다 한 번씩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카드가 흡수되고 있습니다. 《소화율 : 5%‥‥‥10%‥‥‥15%‥‥‥20%‥‥‥.》 인펙터는 장이 튼튼한 녀석인 모양이다. 라카드를 집어삼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20%나 소화시켜 버렸따.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크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저 자식. 내 소환수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크가 어금니를 갈아 대며 잡아먹을 듯이 인펙터를 노려보았다. 2년이나 애지중지(?) 키워 온 소환수를 잡아먹어 버리다니? 뭐, 2년이나 키워 온 라카드가 이런 상황에 처해 버린 건 아크가 버리는 돌로 이용해 먹은 탓이지만‥‥‥어쨌든! '네놈 몸보신이나 시켜 주려고 2년이나 키워 온 게 아니야!' 그러나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어 버렸다. 라카드는 잡아 먹혔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당장 달려 나가 인펙터를 때려죽여도 라카드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물론 아란이 인펙터를 때려죽일 때까지 팝콘을 먹으면서 기다려 줄 리도 없었다. 아니, 그 자체가 아란의 함정. 아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달려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움직이지 않으면 라카드를 잃는다. 섣불리 움직이면 라카드와 시르바나, 둘 모두를 잃는다. 상황은 명확하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도저히 수긍할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가만? 그러고 보니‥‥‥.'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던 아크가 퍼뜩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크가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수 있는 것도, 아직 라카드가 완전히 흡수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아직 라카드는 완전히 흡수당하지 않았다. 먹혀 버렸지만 놈의 배 속에 라카드라는 존재가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환 해제, 라카드!" ‥‥‥아직 소환수에 대한 강제력이 남아 있지 않을까? 소환 해제를 하면 라카드는 소환 포트가 박혀 있는 어둠의 대지로 이동하게 된다. 20%의 힘을 인펙터에게 흡수당한 상태로 소환 해제하면 능력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멸이냐 아니냐의 상황. 20%의 능력치를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상관없어. 어떻게든 살릴 수만 있다면‥‥‥ 제발, 제발, 제발‥‥‥." -소환수에 대한 지배력이 부족해 소환 해제가 실패했습니다! "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소환 해제, 라카드! 소환 해제, 라카드! 소환 해제, 라카드!" 아크가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아크의 저항은 뉴 월드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벽에 막혀 좌절되었다. -소환 수에 대한 지배력이 부족해 소환 해제가 실패했습니다! -소환 수에 대한 지배력이 부족해 소환 해제가 실패했습니다! -소환 수에 대한 지배력이 부족해 소환 해제가 실패했습니다! -소환수 라카드가 소화되고 있습니다 《소화율 : 45%‥‥‥ 50%‥‥‥.》 그런 와중에도 라카드가 쭉쭉 흡수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순간 아크는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빌어 먹을. 정말 ‥‥‥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아크는 힘없이 벽에 등을 기대며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문득 아크는 뭔가가 평소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하니 그런 기분이 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메시지창이었다. 보통 소환수가 죽으면 '소환수가 강제 송환됐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번에 라카드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소환수와의 연결이 끊겼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투 중이라 정신이 없던 아크는 그 메시지를 그냥 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번에도 메시지창을 제대로 읽어 보지 않아 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소환 해제가 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시지창을 다시 살펴보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분명 소환 해제가 실패했다는 내용이었지만 그 앞에 '지배력이 부족해' 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 않은가? 그 말은 지배력만 충분하다면‥‥‥ 다시 말해 라카드를 흡수한 인펙터의 지배력보다 아크의 지배력이 강하다면 강제로 소환 해제를 할 수 있따는 말이 아닌가? '지배력!' 거기까지 생각을 진행시킨 아크의 눈동자가 번쩍 떠졌다. 지배력은 원래 소환수를 불러내거나 명령을 듣게 할 때 적용되는 수치였다. 보통 많은 소환수를 불러내야 하는 소환사의 경우 지배력의 수치에 따라 동시에 몇 마리나 불러낼 수 있는지가 결정되고, 소환수의 복종 여부도 결정된다. 등급이나 레빌이 높은 소환수를 불러내 말을 듣게 하려면 그만한 지배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만약 지배력이 낮으면 소환을 거부당하거나, 불러내도 오히려 주인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처음에 아크의 소환수가 말을 잘 듣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전 문 소환사가 아닌 아크가 한 번에 3마리나 되는 소환수를 불러내 놓고 있었으니 지배력이 분산되어 소환수에게 만만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공갈 협박과 폭력, 음식 고문 등등을 이용한 공포 정치로 소환수를 길들여 왔다. '어쨌든 지배력만 올리면 라카드의 소환 해제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크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대원 중에 소환사들은 내 앞으로 튀어 와!" 아크의 고함에 유저 몇 명이 헐레 벌떡 달려왔다. 대표적인 소환 계열의 직업인 네크로맨서나 정령사였다. 이들은 어느 정도 마력이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소환수를 불러내 각종 지속 효과를 얻거나 병력으로 사용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초반에는 다른 직업보다 훨씬 강한 편모를 보이지만, 이런저런 제약이 많고 레벨이 올라갈 때 상승하는 능력치도 낮아 고레벨이 될수록 허접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500여 명의 특공대 가운데 소환사는 고작 7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크가 필요한 건 머릿수가 아니었다. 허접한 소환사가 다른 나가란 연합군을 제치고 특공대에 낄 정도라면 그만큼 장비품이 좋다는 뜻! "지배력 보너스 옵션이 붙은 장비를 가진 사람?" 그렇다. 아크가 소환사를 불러 모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소환사에게는 소환수의 숫자와 능력을 결정하는 지배력은 전투력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소환사가 장비품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보는 옵션이 바로 지배력이었다. 무기를 바꿔 자신의 전투력을 약간 더 올리는 것보다 지배력을 올려 소환수를 1마리라도 더 불러내는 게 전투력이 더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 장비품을 빌려 착용하면 부족한 지배력을 메울 수 있으리라. "지배력 +90 귀걸이 세트입니다." "지배력 +180 짜리 목걸이 입니다." 설명을 들은 소환사들이 장비품을 풀어 건네주었다. 소환사들의 장비품에는 거의 모두 지배력이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이 소환사 전용이라 - 아크가 지배력 옵션 장비품이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장신구밖에 착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목걸이와 반지 세트, 귀걸이 세트를 받아 착용하니 지배력이 570이나 올라갔다. 본래 아크가 가진 지배력의 1.5배에 가까운 수치! "소환 해제 라둔, 소환 해제 퓨리탈!" 아크는 지배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라둔과 퓨리탈의 소환까지 해제했다. 그리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며 다시 소리쳤다. "소환 해제, 라카드 -!" -소환수에 대한 지배력이 부족해 소환 해제가 실패했습니다! "‥‥‥이런 젠장!"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지배력을 2배나 올렸음에도 여전히 인펙터의 지배력에는 미치지 않았다. 한 조각 희망을 걸었던 아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배력, 지배력을 더 올릴 방법은 없나? 음식이든 뭐든 지배력을 올릴 만한‥‥‥." 아크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각종 방법을 떠올려 볼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그 방법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생각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크는 생각이 떠오른 즉시 실행에 옮겼다. "수왕 세트 특수 옵션 스킬, 야생의 힘!" 순간 아크가 걸친 갑옷 세트에서 형형색색의 광채가 뿜어져 나왓따. 그 광채 속에는 묘족과 인어족, 너구리족, 늑대족의 형상이 차례차례 떠올랐다가 아크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호족의 포효와 함께 '야생의 힘'이 발동되었다. -세트 장비품 【수왕】의 옵션 스킬 '야생의 힘' 이 발동했습니다. 《10분간 모든 스킬의 효과가 50% 상승합니다. 단, 마나 소모는 100% 늘어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야생의 힘'은 모든 스킬 효과를 50% 상승시켜 주는 스킬. 그리고 소환수를 불러내거나 돌려보내는 것 역시 '마령 소환' 스킬 효과 였다. 다시 말해 '야생의 힘'을 발동시키면 '마령 소환'에 작용 하는 지배력도 50% 상승되어 적용된다는 말이다. 아크의 지배력이 1,100 정도. 거기에 장신구로 올린 지배력이 570. 1,670에서 50%가 더 적용되니 2,505! 본래 지배력의 2.5배나 상승한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젠장, 라카드 이 멍청한 놈! 정말 그따위 놈에게 먹혀 버리면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온갖 끔찍한 음식을 입속에 처박아 버리겠다. 소환해제, 라카드!" 아크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인펙터를 노려보았다. 이제 생각할 수 잇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진인사대 '뉴 월드' 명! 최신을 다했으니 이제 결과는 뉴 월드 시스템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뭐, 뭐냐, 이 강력한 힘은‥‥‥." 인펙터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치더니 갑자기 훅 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인펙터가 사라지자 아란이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빠르게 훑으며 소리쳤다. "쥬르!" "찾았습니다. 방금 전에 놈들이 사라졌던 절벽 위입니다!" '마나 추적'으로 마나의 흐름을 감시하던 쥬르가 절벽을 가리켰다. 그러자 아란이 눈동자를 번뜩이며 명령했다. "역시 꼬리를 드러냈군. 아직도 그곳에 숨어 있었나? 좋아. 범람한 용암은 이미 굳었다. 놈들을 잡아라!" "크와아아아아!" 가고일이 먼저 절벽을 향해 날아왔꼬, 그 뒤를 어벤저와 마족 수천 마리가 뒤따랐다. "젠장, 들켰다!" "일단 다음 기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아크, 라카드 문제는 일단 자리를 피하고 생각하자!" 샴바라가 아크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동굴 속을 달려갔다. * * * 휘뤼뤼뤼뤼뤼! 어둠에 잠긴 넓은 침실 안. 구석에 박혀 있는 마법봉 앞에서 돌연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뭔가가 나타났다. 검은 로브를 걸친 하얀 얼굴의 뱀파이어 인펙터였다. "크윽! 뭐, 뭐지?"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나타난 인펙터가 당혹스러운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구석에서 옅은 빛을 뿜어내는 마법봉을 발견하고는 대강의 상황을 알아챘다. "소환 포트‥‥‥. 인펙터의 입가가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렇다. 침실 구석에 박혀 있는 마법봉으 바로 아크가 박아 놓았던 소환포트였다. 라카드의 소환 지점을 등록시켜 놓은 소환 포트. 다시 말해 인펙터가 날아온 장소는 스탄달의 구석, 뱀파이어 로드가 지배하는 어둠의 대지 안에 있는 뱀파이어 성인 것이다. "고작 인간이 1,000년을 살아온 내 지배력을 능가할 줄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소환 포트로 이동하다니? 라카드라는 녀석, 아직도 의지가 남아 있는 건가? 약간의 협박에 주인의 계획을 줄줄 털어놓기에 만만하게 생각햇는데 의외로군." 인펙터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자신의 불룩한 배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무리 아크의 지배력이 강해도 만약 명령을 받는 라카드가 완전히 의지를 상실했다면 강제력이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소환 해제가 됐다는 것은 비록 미약하지만 라카드가 주인의 부름에 응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뜻이었다. "뱀파이어가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주인의 부름에 응하려는 의지를 보이다니. 그만큼 주인과 깊은 교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 그러나 그건 인펙터의 착각이었다. 물론 소환 해제가 성공한 건 라카드가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도 아크의 부름에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정신적인 교감 따위와는 코딱지만큼도 상관없었다. 라카드는 소환 해제를 하며 만약 이대로 죽으면 지옥까지 쫓아가서라도 음식을 퍼먹이겠다는 아크의 협박에 기겁했을 뿐이었다. 적어도 라카드가 보아 온 아크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다. 때문에 라카드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조건반사로 명령을 수행한 것이다. 그런 사정까지 알았다면 인펙터는 꽤나 씁씁해졌으리라. "어쨌든 놈의 귀환 장소라면 이곳이 어둠의 대지라는 말인데‥‥‥. 곤란하게 됐군." 인펙터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훑으며 중얼거렸다. 자초지종이 어쨌든 이곳은 스탄달의 어둠의 대지. 시르바나의 비밀 던전과는 1,00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잇는 장소였다. 당장 돌아갈 길이 막막한 것이다. 그러나 인펙터가 걱정하는 것은 단순히 돌아갈 차비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곳이 바로 뱀파이어의 왕, 뱀파이어 로드가 지배하는 땅이라는 점이었다. "로드에게 들키면 꼼짝없이 소멸되고 만다. 일단 그 전에 이곳을 탈출해야 해!" 인펙터가 두려운 표정으로 황급히 침실을 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침실 중심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엄청난 에너지의 파장이 전해졌다. 뭔가 강력한 마력을 품은 존재가 이곳으로 공간 이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문으로 뛰어가던 인펙터는 흠칫 놀라며 황급히 침대 뒤로 몸을 숨겼다. '제, 제장! 공간 이동만으로 이 정도의 파장을 만들어 내다니? 이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라면 설마‥‥‥. 로드! 뱀파이어 로드인가? 망했따. 이런 곳에서 로드와 마주치면‥‥‥.' 로드라는 이름을 떠올리자 인펙터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그때 일그러지는 공간에서 폭풍같은 돌돌풍이 뿜어지며 누군가가 나타났다.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치렁치렁한 예복을 걸치고 후드를 턱까지 눌렀느 존재‥‥‥. 망토처럼 두른 어둠의 기운이 일렁거리고, 등에 달린 거대한 검은 날개가 위압감을 뿜어내며 펄럴거린다.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뱀파이어! 공간 이동을 해 온 뱀파이어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군. 이 근처에서 갑자기 노이즈를 만들어 내는 마력을 감지했는데‥‥‥." '저 녀석은‥‥‥?' 침대 뒤에 숨은 인펙터의 눈매가 좁아졌다. 침실에 나타난 뱀파이어는 걱정하던 뱀파이어 로드가 아니었다. 바로 과거 라카드가 카라클을 무찌른 직후 나타났던 뱀파이어 심판관이었다. 뱀파이어 심판관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바로 인펙터 때문이었다. 본래 어둠의 땅에 있는 뱀파이어 영지는 다른 뱀파이어가 침입할 수 없다는 철칙이 있었다. 만약 규칙을 깨고 다른 뱀파이어 영지에 침입하면 마력이 충돌을 일으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심판관은 뱀파이어들이 규칙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최고위 뱀파이어. 인펙터의 출현으로 이곳에서 마력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정황을 알아보기 위해 공간 이동을 해 온 것이다. '뱀파이어 심판관이라‥‥‥. 크크크, 오늘은 운이 좋군.' 상대를 확인한 인펙터가 붉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훑어 내리며 희열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심판관이 문으로 다가가는 순간, 인펙터가 번개처럼 침대 뒤에서 뛰어나갔다. "음? 누구냐?" 등 뒤로 달려드는 기척에 뱀파이어 심판관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순간 인펙터가 뱀파이어 심판관에게 업히듯 등에 올라타며 목덜미에 어금니를 쑤셔 박았다. 목덜미를 뚫고 들어오는 섬뜩한 어금니의 감촉에 뱀파이어 심판관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무, 무슨 짓을‥‥‥. 감히 어떤 놈이‥‥‥." "크크크크. 오랜만이군, 타로스." "헛! 이 목소리는 설마‥‥‥. 인펙터!" "몇백 년 만이지? 다시 만나서 반갑군. 예전에는 꽤나 신세를 졌었지." "인펙터! 감히 네놈이 무슨 배짱으로 로드의 대지에 발을 들여놓은‥‥‥." "내가 원해서 들어온 게 아니다." 인펙터가 어금니를 더욱 깊이 박아 넣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쁘지 않군.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곳이지만 여기로 날려진 덕분에 네놈의 피 맛을 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내가 없는 동안 로드에게 꽤나 아부를 떨어 댄 모양이지? 미천한 하급 뱀파이어 출신 주제에 심판관까지 되다니 말이야. 아니면 로드도 이제 늙은 건가? 뭐, 그것도 좋지. 로드도 언젠가는 먹어 치워야 하니까. 오래전에 내가 약속한 대로 말이야." "네놈이 감히 로드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 뱀파이어 심판관, 타로스가 이를 갈아붙이며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건 마음뿐이었다. 실제로 타로스의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제야 타로스는 뒤늦게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깨달았다. "이 주박呪縛은 설마‥‥‥ '동족 흡혈'!" "크크크크, 이제야 알았나? 하지만 이미 늦었어." 인펙터가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마치 투명한 잔에 피가 차오르듯 인펙터의 눈동자가 완전히 핏빛에 젖어 든 순간, 타로스는 신음과 함께 한 줌의 핏물로 녹아 인펙터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인펙터가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슥슥 닦으며 물러났을 때였다. 돌연 침실 구석의 소환 포트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빛이 몸을 휘감자 인펙터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후후, 돌아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 인펙터의 몸이 빛과 함께 소환 포트로 스며들어 간 건 그 다음이었다. * * * "형님들, 여기서부터는 따로 움직이며 마족들을 유인해 주세요!" 갈림길이 나오자 아크가 먼저 300명의 병사와 함께 한쪽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그러자 짝퉁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명령했다. "알았다. 덩치, 불끈이, 타짜‥‥‥ 100명의 병력을 이끌고 D-15, 16, 17 함정이 있는 곳으로 마족을 유인해라. 우리도 100명을 데리고 나머지 마족을 C-6, 7, 8, 9 함정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겠다!" "종아, 상황이 정리되면 59층 출구에서 합류하자!" 그렇게 두 패로 나뉜 갱생단이 뒤따라온 마족에게 한차례 공격을 퍼붓고 좌우로 갈라졌다. 마족들이 쫓아 들어가자 갱생단이 지나간 길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왓다. 또다시 워머와 너구리족이 만들어 놓은 함정이 작동한 것이다. ‥‥‥인펙터가 사라진 직후, 아란은 어벤저와 마족을 동원해 아크 부대를 공격했다. 이에 아크는 곧바로 절벽에서 후퇴했다. 절벽 위라는 지형적 이점이 있었지만 고작 500명으로 1만이나 되는 마족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59층의 미로 같은 지형과 곳곳에 설치해 놓은 함정을 이용해 마족을 따돌리며 도망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적당한 곳에서 마족을 갱생단에게 맡기고 떨어져 나왔다. 마족들과 술래잡기나 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인펙터까지 어둠의 대지로 나아갈 줄이야!" 아크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렷다. 아크가 죽자 살자 소환 해제에 매달린 건 라카드를 인펙터의 배 속에서 빼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같이 날아가 버리면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냥 비밀 던전에서 소화되느냐, 어둠의 대지에서 소환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발상의 전환을 했다. 상황이 좀 골 때리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일단 라카드를 -정확히는 인펙터를 -어둠의 대지로 날려 보내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시 불러올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일단 놈을 내 앞으로 불러올 수 있다면 라카드를 빼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아크가 갱생단에게 마족을 떠넘기고 따로 떨어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일단 마족을 따돌리고 으슥한 곳에서 인펙터를 두들긴 뒤에 라카드를 되찾기 위해서! 그렇게 잠시, 아크는 곧 사방이 높은 절벽에 둘러쌍니 지하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좋아. 놈을 소환한다. 공격 태세로 주위를 포위하라. 마령 소환, 라카드!" 아크가 지하 광장 줌심에서 라카드를 소환했다. 그러자 곧 검은 기원과 함께 아크의 옆에서 인펙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쳇, 귀찮게 됐군." 인펙터가 주위를 둘러싼 300명의 특공대를 훑어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때 아크가 인펙터에게 검을 겨누며 상급 '협박'이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인펙터, 라카드를 토해 내라!" "크크크크, '협박'인가? 밤의 제황인 뱀파이어에게 그따위 장난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나? 어림없는 소리. 이 몸은 1,000년을 살아온 에이션트 뱀파이어다!" 인펙터가 로브 자락을 크게 휘두르며 괴성을 질렀다. "피의 화살!" 촤촤촤촤촤촤! 확 펼쳐진 로브 자락 안에서 수십 줄기의 핏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전사들이 황급히 방패를 들어 올렷지만 격렬한 굉음과 함께 수 미터나 튕겨져 날아갔다. 동시에 인펙터의 등에서 거대한 검은 날개가 솟아나더니 하늘로 솟아올라싿. "크하하하! 멍청한 놈들, 고작 그따위 포위로 이 몸을 어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햇나? 네놈들의 피는 조만간 실컷 마셔 주마. 피의 화살!" 인펙터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피의 화살'을 날려 댔다. 그래도 절벽을 넘어 마족들이 있는 곳으로 도망갈 생각이리라. 그러나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아직 제 상황을 잘 모르는군. 소환 해제, 라카드. 재 소환, 라카드!" "우욱!뭐, 뭐야? 이런 제기랄!" 막 절벽을 넘어가던 인펙터가 당혹성과 함께 훅 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아크의 앞에서 나타나 버렸다. 그렇다. 아직 인펙터는 라카드를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한 상태였다. 다시 말해 지배력만 충분하면 아크가 마음대로 라카드와 세트가 된 인펙터를 어둠의 대지로 날렸다가 불러올 수 있다는 듰! 아크의 지배력이 인펙터의 지배력을 넘어선 시점에서 이미 인펙터는 아크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흡수율이 올라가면 당연히 라카드에 대한 지배력도 더 강해질 거다. 그리고 놈의 지배력이 내 지배력보다 높아지면 마음대로 소환할 수 없어.' "궁수 분대, 사슬탄 공격!" 아크의 명령에 후열에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휴대용 대포를 꺼내 들었다. 너구리족이 사용하는 대포였다. 너구리족은 현재 59층에서 워머와 함께 던전 개조 작업이 한창이라 일단 특공대에게 보급해 준 것이다. 그러나 원래 대포는 장인 종족의 무기. 같은 원거리 무기라도 활 전문인 궁수들은 대포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아크가 대포를 휴대시킨 이유는 바로 '특수탄'의 효과 때문이었다. 특수탄(포탄) 너구리족이 다년간의 연구로 만들어 낸 특수한 포탄입니다. 특수탁은 이름 그대로 특수한 용도에 맞춰서 특별 제작된 포탄입니다. 종류로는 적에게 둔기 데미지를 주어 '스턴' 상태로 만드는 충격탄, 적을 묶어 이동속도 저하나 비행 불가 상태로 만드는 사스탈, 적의 방어를 뚫고 데미지를 입히는 관통탄, 전방의 적 모두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산탄 등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수탄은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전환이 가능합니다. 변신한 아크와 샴바라가 좌우에서 폭풍처럼 인펙터를 몰아쳤다. 그렇게 전사와 성직자, 아크와 샴바라의 연합 공격에 인펙터의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크아아아악! 이,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그러나 역시 레벨 500의 정예 보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방패와 신성 마법 속에서도 결국 인펙터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위대한 피의 왕을 찬향하라. 현혹!" 순간 인펙터의 눈동자에서 붉은 섬광이 확 뿜어져 나왔다. 최상위 뱀파이어인 인펙터의 특수 스킬 '현혹'! 비록 이렇다 할 연출 효과나 데미지가 없어 비교적 수수해 보이지만 막상 발동하면 그것만큼 귀찮은 마법이 없었다. 역시나 방패를 휘둘러 대던 대부분의 전사들이 몽롱한 표정을 짓더니 빙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침을 질질 흘려 대며 성직자들에게 공격을 퍼부어 댔다. "젠장, 멍청한 놈들! 날라차기!"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몸을 날려 전사들의 뒤통수를 걷어찼다. 그리고 전사들이 발차기의 경직에 걸려 있는 사이에 성직자들이 일제히 '정신 순화' 마법을 발동시켜 '현혹' 상태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전사에 비해 성직자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 계속 되는 전사들의 공격에 제대로 주문을 외우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전사와 성직자, 아크 들의 공격이 잠시 멈춘 틈이 인펙터가 다시 '현혹'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위대한 피의 왕을 찬양‥‥‥." "너나 많이 찬양해라!" 그때 아크가 가방에서 시커먼 고깃덩어리를 꺼내 집어 던졌다. 지옥폭탄 '창작 요리'로 만들어진 특수한 음식. 푹푹 썩은 고기를 후추, 식초, 와사비 등과 함께 발효시킨 변태적인 음식입니다. 이 음식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지옥의 밑 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듯한 엄청난 악취가 나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눈이 아리고 숨을 턱턱 막히게 됩니다. 공공장소에서 꺼냈다가는 몰매를 맞기 십상입니다. 《5미터 범위에 '지옥의 악취' 발동효과》 바로 '창작 요리'로 만들어 낸 지옥폭탄! 철썩, 면상에 지옥폭탄이 붙어 버리자 인펙터가 괴성을 질러 댔다. "크아아악! 이, 이게 뭐야? 누, 눈이‥‥‥ 코, 코가 ‥‥‥ 썩어 들어간다!" 지옥폭탄은 뱀파이어조차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악취를 풍겨 댔다. 덕분에 마치 최루탄을 뒤집어쓴 것과 같은 상태가 된 인펙터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려 대며 바닥을 굴러댔다. 그런 상황은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현혹'에 걸려 헤매던 전사들도 악취에 비명을 질러 대며 바닥을 굴러 댔다. "지금이다. 성직자 분대, 신성 마법으로 저 세균을 살균 시켜 버려라!" "‥‥‥홀리!" 성직자들이 악취를 피해 멀리 떨어져서 신성 마법을 들이 부었다. 인펙터는 몇 번이나 날개를 퍼덕거리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궁수들이 날리는 사슬탄에 휘감겨 바닥에 처박혔다. 그러는 사이 '지옥폭탄' 효과가 사라졌다. 그러나 전사들 역시 '현혹'에서 벗어난 인펙터를 둘러싸고 방패를 휘둘러 댔다. 그런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인펙터는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든 상태로 헐떡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공격에 결국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것이다. "샴바라!" "오케이. 결박, 결박, 결박!" 아크의 말에 샴바라가 인펙터를 향해 뛰어갔다. 동시에 품에서 수십 줄기의 밧줄이 뿜어져 나와 인퍽테의 사지를 묶어 버렸다. 빈사 상태에 빠진 적을 행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갓 킬러의 직업 전용 스킬 '결박' 이었다. 아크는 하단차기로 사지가 묶인 인펙터를 쓰러뜨리고 발로 목을 밟아 버렸다. ACT 9 하이퓨어 뱀파이어 kianms10310@naver.com "여기까지다!" 아크의 목소리가 동굴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인펙터가 아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크으으으, 너‥‥‥너 이놈! 하찮은 인간 주제에‥‥‥." "닥쳐라,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놈의 면상에 검을 내리찍으려 할 때였다. 인펙터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 잠깐! 네소환수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냐?" "뭐, 뭐라고?"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검의 궤도를 옆으로 돌렸다. '다크 스트라이크'가 아슬아슬하게 인펙터의 볼을 스치며 폭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인펙터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소환수를 잃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너 이 자식, 무슨 소리냐?" "후후후, 말한 그대로다. 소환주인 너라면 알 거다. 이미 나는 놈의 혈정을 80%이상 흡수했다. 이미 라카드라는 놈은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당연히 내가 죽으면 놈도 죽는다. 너도 그 정도는 짐작했으니 내게 협박을 했던 거겟지. 후후후, 흡수당하면서도 주인의 명령에 반응하는 충성스러운 소환수, 잃고 싶지 않겠지?" 인펙터의 말에 아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잠시 생각하던 아크는 다시 발로 목을 누르며 인펙터를 노려보았다. "‥‥‥당장 라카드를 토해 내라!" 순간 뭔가 말하려던 인펙터가 움찍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 대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크. 좋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정작 내가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그렇게 원한다면 그 박쥐를 되찾고 싶다면 돌려주마.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나를 풀어 줘라. 그리고 병사들을 모두 뒤로 물려라. 안전이 확보되면 네가 원하는 대로 놈을 풀어주지. "내가 그따위 말을 믿을 정도로 순진해 보이냐?" "믿든 안 믿든 네 자유다." 인펙터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인펙터의 여유로운 태도에 아크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사실 아크 역시 전투를 하면서도 그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라카드가 배 속에 들어 있는 상태로 인펙터를 죽이면, 인펙터와 함께 라카드까지 소멸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라카드의 소멸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인펙터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줄 수도 없었다. '라카드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인펙터를 살려 주는 것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크도 모략과 사기라면 나름 일가견이 있는 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펙터가 약속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 '지금 문제는 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정말 놈이 죽으면 라카드고 함께 죽을까? 그것만 알아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정할 수 있을 텐데‥‥‥.' 아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갈등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웅웅거렷다. - 속지마라, 이방인이여! "뭐, 뭐지?"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위대한 뱀파이어 로드의 명을 받고 어둠의 대지를 관할하는 뱀파이어 심판관이다. "뱀파이어 심판관?" 아크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인펙터가 움찔하더니 버럭 소리쳤다. "뱀파이어 심판관? 타로스? 너, 너 이 자식! 어떻게 아직까지 의식이‥‥‥어푸푸푸푸!" "뱀파이어 심판관이 어떻게 나에게?" 아크가 시끄러운 인펙터의 주둥이를 발로 몇 번 밣아 주고 물었다. 그러자 긴 한숨 소리와 함께 다시 뱀파이어 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인펙터가 어둠의 대지에 들어왔을때 나 역시 놈에게 흡수당해 버렸다. 다행이 곧바로 방어막을 전개해 비록 혈정을 흡수당하고 있지만 의식만은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펙터가 약해져 그대에게 말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잠깐 어둠의 대지로 날려 보낸 사이에 뱀파이어 심판관까지 먹어 치웠단 말인가? 아크는 황당한 시선으로 인펙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인펙터가 어둠의 대지로 날아가기 전과 다시 돌아온 지금, 뭔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인펙터가 어둠의 대지로 날아가기 전까지 불과 10분 만에 라카드가 이미 50% 이상 흡수된 상태였다. 그런데 어둠의 대지에 날아갔다 온 이후로는 그런 메시지가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인펙터가 아직 배 속에 라카드가 살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흡수가 멈췄다. 흡수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크는 그 이유를 전투 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뱀파이어 심판관, 타로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펙터는 어둠의 대지에서 흡수한 타로스를 우선적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라카드의 흡수를 잠시 멈춰 놓은 상태이리라. '그게 사실이라면 타로스에게는 미한하지만 다행이다.' 어쨌든 라카드의 흡수가 멈췃으니 한시림 놓은 셈이다. "그런데 속지 말라는 말은?" -나도 인펙터의 몸에 들어오고 나서야 이미 라카드가 먹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펙터가 사용한 '동족 흡혈'은 뱀파이어 로드께서 봉인시킨 고대의 사악한 비술이다. 한번 '동족 흡혈'에 흡수당한 영혼은 설사 인펙터가 원한다 해도 다시 토해 낼 수 없다. "뭐, 뭐라고요?" 타로스의 말에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결국 라카드의 소멸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뜻이 아닌가? 그 사실을 재확인 시켜 주듯 타로스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동족 흡혈'에 당한 시점에서 이미 라카드와 나의 소멸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대와 라카드의 관계는 알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자, 마반 영웅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방인이여! 망설일 것 없다. 그 검을 내리쳐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도 죽는 게 아닙니까?" -내가 보호막으로 의지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의지를 잃은 채 놈에게 먹힐 수는 없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섬기는 주인의 적과 함께 죽는다면 오히려 명예! 게다가 내가 섬기던 주인의 의지를 물려받은 그대의 검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섬기던 주인의 의지를 물려 받은?" -그렇다. 나는 마반 영웅의 소환수였다. 두두두둥! 참으로 황당한 상황에서 벌어진 타로스의 커밍아웃이었다. 아크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짓자 타로스의 밑도 끝도 없는 설명이 이어졌다. -‥‥‥오래전 나는 여행자를 습격해 피를 빨아 대는 하급 뱀파이에어 불과했다. 그러던 중 한 여행자를 습격했다면 오히려 사로잡히고 말았다. 나는 그때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햇찌. 그러나 그 사내는 나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감화시키고 자신의 소환수로 삼아 주었지. 그가 바로 훗날 7인의 영웅 가운데 하나라고 불리던 마반 영웅이다. 아크는 그 말을 들으며 이전에 어둠의 대지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랐다. 아크가 타로스를 처음 만낫을 때, 그는 마반 영웅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며 묘한 그리움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타로스가 마반 영웅의 소환수 출신이라면 당시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백 년에 사라진 주인에 대한 그리움이었으리라. "그런데 섬기는 주인의 적이라는 말은?" 문득 궁금해져 묻자 뱀파이어 심판관이 옛일을 회상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시 마반 영웅이 뱀파이어 일족의 땅에 들어왔던 이유는 뱀파이어 로드를 만나 어둠의 제왕과의 인연은 끊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 였다. 타로스의 말에 의하면, 암흑 세기 초기의 뱀파이어 일족은 어둠의 세력에 속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반 영웅은 그런 뱀파이어 일족을 설득하기 위해 홀로 뱀파이어 로드를 찾아가던 중에 타로스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는 홀로 뱀파이어 영지를 찾아온 마반 영웅의 용기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논의해 보겠다고 약속해 주었다. 인펙터가 등장하는 게 바로 이 부분부터였다. 본래 인펙터는 당시 뱀파이어 심판관이었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를 속이고 어둠의 제왕과 은밀한 거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뱀파이러 로드가 어둠의 세력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다급해진 인펙터는 마반 영웅의 침소에 잠입해 습격했다. 그러나 마반 영웅은 이미 인펙터와 어둠의 제왕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덕분에 인펙터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마반 영웅에게 되려 사로 잡혔고, 인펙터는 뱀파이어 로드의 분노를 사게 되어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하지만 인펙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을 탈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드조차 몰랐지. 인펙터가 이미 어둠의 제왕에게 오래전에 사라진 '동족 흡혈'의 비술을 배웠다는 것을 말이야. 인펙터는 그 '동족 흡혈'을 이용해 수많은 뱀파이어의 영혼을 탈취하며 어둠의 세력으로 도망쳤다. 그 사건으로 뱀파이어 로드는 완전히 어둠의 제왕과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 인펙터는 몇 년 뒤 7인의 영웅과 어둠의 제왕이 벌린 최종 결전에서 마반 영웅과 타로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본래 악당은 끈질긴 법. 놈은 검은 오벨리스크의 힘에 의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마반 영웅과 뱀파이어 일족에 얽힌 비하인드 히스토리! 이렇게 아크는 뜻하지 않게 또다시 뉴 월드의 숨겨진 역사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아크에게 그런 역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아크에게 중요한 건 2년이나 키워 온 라카드를 되찾을 방법이 정말 없느냐는 것뿐이었다. "정말 라카드를 되찾을 방법이 없는 겁니까?" -없다. '동족 흡혈'의 무서운 점이 그것이다. 일단 혈정을 흡수당한 시점에서 라카드는 놈의 일부가 된 것이나 다름없다. 놈이 데미지를 입으면 우리도 데미지를 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라카드를 구한다는 것은 몸을 죽이면서 팔을 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크크크크, 뭐라고 하던가? 방법이 있다고 하던가?" 그때 인펙터가 팅팅 부어터진 입술로 빈정거렸다. "놈과 얘끼했다면 더 이상 속일 수는 없겠군. 내 몸은 라카드라는 놈과 심판관과 일체화되어 있다. 놈들과 나는 같은 뱀파이어. 나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잇는 공격은 놈들에게도 데미지를 입힐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자식이 정말 ‥‥‥!" 발끈한 아크가 다시 인펙터의 주둥이를 밣아 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가만, 같은 뱀파이어라 어떤 공격이든 같은 데미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인펙터는 그 때문에 절대 라카드를 구할 수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댔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 말이 라카드를 구할 수 있는 힌트였다. '타로스의 말과 인펙터의 말을 잘 생각해 보면 라카드를 구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정말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화긴할 수 없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게 최선이야. 하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속도로 머리를 회전시키던 아크가 물었다. "타로스 님, 지금 라카드는 어떤 상태입니까?" -라카드는 이미 거의 인펙터에게 흡수된 상태다. 이대로 두면 불과 1분도 안 되어 인펙터에게 흡수되고 말 거다. 그리고 나 역시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앞으로 10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힘을 흡후사면 인펙터는 지금 보다 몇 배나 강해지겟지. 놈을 죽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다. 아크가 걱정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미 라카드의 힘이 '대부분' - 어둠의 대지로 날아간 뒤에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재소환 했으니 놈의 흡수 속도를 생각하면 이미 90%는 흡수됐으리라 - 흡수된 상태라는 점. 그리고 아크가 생각해 낸 라카드 구출 방법은 인펙터의 몸에서 라카드를 강제로 떼어 내는 방법이었다. 그렇데 되면 라카드가 이미 흡수당한 '대두분'의 힘을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만약 90%가 흡수된 상태라면 350레벨 수준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던 라카드가 35레벨 수준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도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구출을 해야 한다.' 그러나 구출한다 해도 라카드는 소환수로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타로스 님, 지금부터 제 말을 듣고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대답해 주십시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생각해 둔 한가지 가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타로스가 긍정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가능한 일이네. 하지만‥‥‥. "됐습니다. 그렇다면 라카드와 심판관님을 놈의 몸에서 구해 낼 방법이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할 수 있는 건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니다? 그렇군. 나에게 던진 질문과 그 말로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따. 나에게 라카드를 위해 희생하라는 건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구할 수 있는 것은 1명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타로스가 돌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하! 자신의 소환수를 위해서라면 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건‥‥‥." -멋지군! 타로스가 아크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쳤다. -됐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 죽음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어린 놈의 배 속에서 최루를 맞이한다는 것은 죽어서도 씻지 못할 수치. 그 수치를 씻을 수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마반 영웅의 의지를 이어받은 이방인이여, 그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타로스의 대답으로 모든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대포!" 아크가 손을 내밀자 궁수가 들고 있던 대포를 건내주었다. "헉! 이, 이 자식들, 대체 무슨 짓을‥‥‥아, 안 돼‥‥‥. 그만둬 네놈이 생각해 낸 방법은 안 돼! 정말 네놈이 애지중지 키워 온 소환수를 죽일 참이냐? 마, 말로 하자! 차분히 말하다 보면 틀림없이 좋은 방법이‥‥‥." "닥쳐!" 아크와 타로스의 대화를 듣고 대강의 상황을 알아챈 인펙터가 비명을 터뜨리며 버둥거렸다. 그러나 이미 결단을 내린 아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놈의 목을 꾹 누른 채 묵묵히 대포의 탄창을 바꿔 끼었다. 새로 장착한 탄창에 들어 있는 특수탄은 성수가 가득 들어 있는 '성수탄'! 느긋하게 탄창을 갈아 끼운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포를 놈의 아가리에 쑤셔 박았다. "잘 가라, 망할 놈아!" 투투투퉁, 투투투퉁, 투투투퉁! 방아쇠를 당기자 대포가 진동하며 수십 발의 성수탄이 뿜어졌다. 입에 쑤셔 박힌 대포에서 아가리로, 아가리에서 목구멍으로, 목구멍에서 배 속으로 수십 발의 성수탄이 굴러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쿠쿠쿠쿵! 쿠쿠쿠쿵! 퍼펑! 마치 가죽 북을 울려 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인펙터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러 올랐다. 그러던 어느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인펙터의 배가 폭발하며 엄청난 양의 피와 내장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비교적 쉽게 처리한 셈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레벨 500대의 정예 보스다. 괜히 이것저것 주워 먹던 인펙터가 배가 터져 죽자 특공대원들의 레빌이 단숨에 7이나 올라갔다. 그리고 덤으로 사방으로 흩어지는 인펙터의 살점 속에서 핏빛 목걸이가 발견됬다. 『인펙터의 혈옥(유니크) 아이템 타입 : 목걸이 내구력 : 53/60 무게 : 30 사용 제한 : 레벨 450 이상 에이션트 뱀파이어 인펙터의 능력이 깃들어 있는 목걸이입니다. 인펙 터는 오래전 뱀파이어 로드를 배신하고 '동족 흡혈'로 수많은 뱀파이 어의 힘을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동족 흡혈'을 강화하기 위해 그 힘의 일부를 목걸이에 담아 두었습니다. 《옵션 : 지배력+200, 지능+30》 《특수 옵션(동족 흡혈) : 목걸이의 착용자와 같은 종족(인간-인간, 엘 프-엘프 등)에게 사용한 뒤에 쓰러트릴 경우, 적의 능력치 일부를 흡 수할 수 있습니다. 흡수할 수 있는 능력치는 힘, 민첩, 체력, 지혜, 지 능, 운, 각각의 스탯 가운데 랜덤으로 1~3%입니다. 단, 흡수한 능력은 1시간 동안만 적용됩니다. 마나 소모 : 1,000 대기 시간 : 1시간 》』 유니크 목걸이! 목걸이를 주운 아크가 눈을 빛내며 정보창을 읽어 보았다. 그러나 인펙터의 전리품은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특수 옵션인 '동족 흡혈'이 역시 인펙터가 사용할 때는 꽤나 위협적 -뱀파이어에게만-이었지만, 막상 아이템으로 만들어지니 그다시 메리트가 없었다. 스킬을 사용하고 적을 죽이면 1~3%의 능력치를 흡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치가 적용되는 것은 불과 1시간. 그리고 스킬의 대기 시간이 1시간이다. 결국 '동족 흡혈'로 얻은 능력치는 여러 번 중첩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뭐, 보스 몬스터처럼 레벨이 엄청나게 높은 적의 능력치를 흡수한다면 좋겠지만‥‥‥.' '동족 흡혈'을 이름처럼 동족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다. 결국 아크가 인간이니 인간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데, 현재 유저들의 레벨은 대략 300~350 수준이었다. '동족 흡혈'을 사용해 봐야 올릴 수 있는 능력치는 3~10레벨 수준. 그 정도의 능력치를 얻기 위해 마나를 1,000이나 소모 할 메리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능이 30이나 붙어 있으니 아드리안의 목걸이 보다는 낫군. 나중에 팔 때도 지배력이 200이나 붙어 있으니 소환사들에게 비싸게 팔 수 있을 테고.' 아크는 적당히 목걸이를 감정하고 시선을 돌렸다. 사실 지금 아크의 관심사는 목걸이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라카드는? 라카드는 어떻게 된 거지?' 아크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인펙터의 파편을 뒤적이고 있을 때였다. 배 속에서 일어난 폭발 덕분에 활짝 열려 버린 인펙터의 뱃가죽 속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핏물 속에서 내장이 꿈틀거리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움직임 점차 커지더니 이내 사방으로 튄 핏방울이 커다란 덩어리로 뭉치더니 스물스물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형태로 변하는 게 아닌가? "라카드 - !" 핏덩이가 만들어 내는 형태를 확인한 아크가 소리쳤다. 그렇다. 핏덩어리가 뭉쳐 만들어진 형상은 바로 라카드였다. "저건 틀림없이 라카드야.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아크가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소리쳤다. 인펙터에게서 한 몸이 돼 버린 라카드를 떼어 내는 방법! 엉뚱하게도 아크에게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알려 준 건 인펙터였다. 바로 같은 뱀파이라 인펙터에게 데미지를 주는 공격은 라카드나 타로스에게도 데미지를 줄 수밖에 없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아크는 예전에 라카드와 카라클이 결투 하던 때를 기억해 냈다. 당시 승산이 없는 라카드를 위해 아크는 링(?)밖에서 뱀파이어에게 쥐약이나 다름없는 십자가와 마늘, 빛 따위로 장외 공격을 펼쳤다. 덕분에 제대로 싸우면 게임도 되지 않을 라카드가 카라클을 무찌르고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같은 결투장에 있던 라카드 역시 십자가나 마늘, 빛 따위의 공격을 받았지만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라카드의 출신 때문이었다. 라카드는 오리지널 뱀파이어와 달리 박쥐가 뱀파이어의 능력을 배운 존재였다. 때문에 뱀파이어로서의 능력은 약한 반면 약점 역시 그리 크지 않았다. 뭐, 뱀파이어 주제에 벌건 대낮에도 실실대며 돌아다닐 수 잇으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라카드는 무엄하게도 성수로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을 정도인 것이다. ‥‥‥그렇다. 성수! 아크가 성수탄을 인펙터의 배 속에 쑤셔 박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배 속에서 성수탄이 폭발하면 당연히 오리지널 뱀파이어인 인펙터는 무지막지한 데미지를 입게된다. 그러나 라카드에게는 그냥 시원한 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라카드의 속성은 혈정으로 변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 때문에 아크의 공격은 정확히 인펙터에게만 데미지를 주고 라카드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이미 인펙터에게 흡수당한 능력치다!' 그렇다. 강제로 라카드를 떼어 내면 이미 흡수당한 능력치를 되찾을 방법이 없었다. 아크가 인펙터를 폭사시키기 전에 타로스와 교섭했던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 타로스 역시 오리지널 뱀파이어. 배 속에 성수탄을 난사하면 당연히 타로스도 인펙터와 함께 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라카드의 혈정과 융합한다면? 아크는 이미 어둠의 대지에서 라카드가 카라클의 혈정을 흡수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뱀파이어는 '동족 흡혈'이 아니라도 이미 혈정 상태라면 동족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라카드와 타로스는 모두 '동족 흡혈'에 당해 혈정 상태로 흡수 된 상황. 물론 타로스가 라카드보다 몇 배나 강하니 두 혈정이 융합되면 당현히 라카드가 흡수당하는 상황이 되겠지만, 타로스가 스스로 흡수되는 길을 선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어차피 성수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라카드니 타로스가 흡수돼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뱀파이어 심판관 역시 인펙터에게 상당한 능력치를 흡수 당했겠지만, 그래도 정예급 몬스터다. 남은 능력치만 흡수해도 라카드가 빼앗긴 능력치를 복구할 수 있을 거야!' 이게 아크가 생각해 낸 능력치 복구 방법이었다. 그리고 타로스는 기꺼이(?)받아 들이고 라카드의 혈정과 융합한 것이다. '이제 라카드의 능력치를 확인해 봐야겠다.' 아크가 서둘러 핏속에서 부활하는 라카드의 정보창을 확인하려 할 때였다. 돌연 음험한 웃음소리와 함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카드'가 뱀파이어 심판관 '타로스' 의 영혼을 흡수해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라카드가 뱀파이어 심판관의 혈정을 흡수했습니다. 혈정 흡수가 금단의 비술인 '동족 흡혈'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면 혈정 을 흡수한 뱀파이어는 혈족의 규율에 따라 흡수한 상대의 지위와 능력 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로스의 혈정을 흡수한 라카드는 뱀파이어 심판관의 지위를 물려받았습ㄴ디ㅏ. 또한 혈정 상태로 최상위 뱀파이어 인펙터와 타로스 의 핏속에서 몸을 재구성하여 순혈의 하이퓨어 뱀파이어가 되었습니 다. 하이퓨어 뱀파이어가 된 라카드에게는 위대한 유계의 의지에 의해 '큐리오'라는 이름이 부여됐습니다. 』 "지, 진화?"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라카드의 능력치를 복구하기 위해 편법을 이용한 것이 진화로 연결된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일이엇다. 뱀파이어 심판관은 뱀파이어 로드의 측근인 최상위 뱀파이어, 그런 심판관의 혈정을 흡수했으니 능력치는 둘째치고 라카드가 뱀파이어로서의 격이 올라간 것이다. 진화가 이루어지자 라카드, 아니 큐리오의 몽에도 변화가 일어낫다. 얼굴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햇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하얗게 변하고,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뒤이어 큐리오가 핏빛 광채에 휩싸이자 아크의 눈앞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올랐다. 『큐리오 뱀파이어 심판관이 스스로 혈정을 건네주어 하이퓨어 뱀파이어로 진화 한 뱀파이어. 뱀파이어 심판관의 강력한 마력을 물려받아 최상위 뱀파 이어가 되어 뱀파이어의 각종 능력에 각성할 기회가 더 많아졌습니다. 단, 순혈의 뱀파이어가 되어 빛에 대한 치명적인 약점이 생겼습니다. (낮에는 뱀파이어로 변신하지 못하며 직사광선을 쬐면 초당 30의 데미 지를 받고 능력치가 50% 감소합니다. 단, 던전은 예외입니다. 또한 '어둠' 속성의 저항력이 100% 증가하고 '광', '성' 속성에 대한 저항 력은 100% 감소합니다.) 종족 : 마족 성향 : 어둠 등급 : 중급 생명력 : 2,820(+150) 충성도 : 450(+20) 힘 173(+40) 민첩 155(+60) 체력 399(+40) 지혜 88(+30) 지능 255(+80) 운 63(+20) +란셀의 검 공격력이 12, 내구력이 90만큼 증가했습니다. +'흡혈' 스킬의 슬롯이 3개로 증가했습니다. +'흡혈' 스킬에 '현혹' 효과가 추가 됐습니다. +'블러드 스톰' 스킬을 배웠습니다. 』 『현혹《흡혈 보조 효과》(초급, 종족 특성) : 큐리오의 특수 스킬. 자신 보다 약한 적에게 흡혈 스킬을 사용 할 경우, 50% 확률로 적에게 '현 혹' 상태 이상을 유발합니다. '현혹'에 걸린 적은 30분 동안 큐리오가 조종할 수 있습니다. 』 『블러드 스톰(초급, 종족 특성) : 어둠의 존재인 뱀파이어의 피에는 강 력한 파괴력이 깃들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블러드 스톰은 그런 뱀파이 어의 피를 폭풍처럼 흩뿌려 일정 지역에 있는 적에게 강력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스킬입니다. 피르 맞은 적은 한 발에 50~70의 관통 데 미지를 얻게 됩니다. 적에게 데메지를 입히는 핏줄기는 큐리오가 보유 하고 있는 피의 양과 비례합니다. 단, 피를 사용한 뱀파이어 역시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에 빠지고 흡혈 로 부족한 피를 회복할 때까지 50%의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또한 어 둠 속에서만 사용할 수 있으며 블러드 레인과 중복해서 사용할 수 없 습니다. 《직경 50미터 범위 안의 모든 적에게 관통 데미지. 》 』 "후후후후‥‥‥." 아크가 큐리오의 정보창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큐리오가 고개를 숙인 채 음산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광소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이제 나는 순혈위 최상위 뱀파이어다! 나는‥‥‥." 그렇게 큐리오가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말하려 할 때였다. "아크 님!" 뒤쪽에서 한 특공대원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소리쳤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59층 최후의 방어선이 뚫리기 직전입니다!" "뭐야? 갱생단 형님들의 부대는?" "그게‥‥‥전멸했습니다!" "이런 젠장!" 아크는 와락 특공대원을 밀치며 내달렸다. 혼자 남겨진 큐리오가 쭈뺏쭈뺏하다가 박쥐로 변신해 따라갔다. "어? 어이, 이봐‥‥‥ 나 진화했어. 어이, 주인‥‥‥ 같이 가!" 아크 23권 유성 게임 판타지 장편소설 ACT1 지옥문 방어전 ACT2 범람, 지옥의 강(I) ACT3 범람, 지옥의 강(II) ACT4 음모의 소용돌이 ACT5 나가란 복구 자금 구하기 ACT6 사르킨 공작의 음모 ACT7 아크 자작 ACT8 레전드 퀘스트 ACT9 펜저드라군 ACT1 지옥문 방어전 '헉헉헉... 빌어먹을!' 아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한숨을 불어냈다. 아크는 양자 물질 송신기를 이용해 비밀던전으로 들어올 때 현 상황에 대처할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 첫번째가 워머의 지식을 이용해 59층을 개조시켜 아란과 마족을 혼란에 빠뜨리며 나가란 연합군이 시르바나 성을 탈환할 때 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물론 소수의 병력으로 1만에 달하는 어벤저와 마족의 발목을 며칠이나 잡고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비스 59층의 복잡한 지형과 위협적인 함정 그리고 특공대를 이용한 적절한 게릴라전. 이 세가지를 잘 활용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사이에 나가란 연합군이 시르바나를 점령해서 비밀 던전에 진입하는 거야. 현재 비밀 던전은 아란과 마족들이 청소를 해 놓은 덕분에 몬스터가 없다. 게다가 정의남ㅇ ㅏ저씨가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헤맬 이유도 없어. 60층까지 진군하는데 하루면 뒤집어쓰고도 남아. 그정도는 60층에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거야.' 그리고 나가란연합군이 60층에 도착하면 상황은 간단하게 종료되리라. 그게 아크의 계획이었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떤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어떠냐? 역시 뭔가 달라 보이지 않냐?" 그때 바로 옆에서 잔뜩 으스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큐리오가 근처 돌벽에 등을 기댄 채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갖은 똥폼을 잡아 대며 라둔과 퓨리탈에게 중얼댔다. "후후후, 달라 보일만도 하지. 달라보이는게 당연해. 너희들이 알지 모르겠지만 이제 이 몸은 어제와는 달라. 순혈의 하이퓨어 뱀파이어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따다다닥, 딱딱? 쌕쌕쌕, 쌕쌕쌕쌕? "너희처럼 그저 그런 평범한 소환수와는 이제 신분이 달라졌다는 말이야." 큐리오가 침묻힌 손으로 앞머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훗, 뭐 그렇다고 새삼스럽게 잘난 척하자는건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단지 이제 나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이 몸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지. 이 몸은 이제 순혈의 하이퓨어 뱀파이어니까. 음, 하이퓨어 뱀파이어. 왠지 어감이 좋지 않아?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적당히 해라, 응?" "내가 뭘?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아크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큐리오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런 큐리오를 보자니 100%까지 치솟아 올랐던 짜증이 120%로 증폭되었다. '젠장, 눈에 뭐가 쓰였지. 내가 왜 이런 녀석 때문에...' 그렇다. 아크의 계획에 문제가 생긴 것은 바로 이 망할 박쥐 녀석 때문이다. 큐리오가 인펙터에게 흡수당하는 바람에 아크는 준비해 놓은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아란 앞에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큐리오를 구출하기 위해 전력을 분산시킨 탓에 갱생단과 200여명의 특공대를 잃었고, 그 결과 예상보다 빠르게 아란의 60층 진입을 허용해 버리고 말았다. 망할 박쥐 한 마리 때문에 모든 계획이 어긋나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큐리오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똥폼이나 잡아 대고 잇는 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그냥 확!' 박쥐 탕을 끓여 먹어도 시원치 않은 기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업었다. "아크님, 놈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때 망루 위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큐리오를 노려보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검붉은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 사이, 질퍽한 늪위로 떠오른 수천쌍의 붉은 눈동자가 거칠게 들썩이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비릿한 짐승 냄새가 확 밀려왔다. 놈들이다! 아란이 지휘하는 수천의 마족무리! 60층으로 진입한 어벤저와 마족은 8,000여. 아크의 예상보다 1,000 ~ 2,000이나 많은 숫자였다. 반면 방어선을 지키는 아크의 병력은 고작 2,000여. 숫자상으로는 도무지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화이었다. '하지만...' "각 분대는 위치로!" 아크의 명령에 병사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크아아아아아! 병사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를 잡는 사이 마족들이 지척까지 몰려들었다. "젠장, 쉴 시간이 없군. 큐리오, 퓨리탈. 작전 지역으로 이동해라!" "쳇, 뭐라 그럴 때는 언제고..." 큐리오가 툴툴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사이 가장 먼저 달려나온 마족은 귀뚜라미를 닮은 탈론들이었다. 장창과 도끼 따위를 꼬나 쥔 탈론들은 톡톡 튀며 질퍽한 늪지를 가로질러 아크가 올라서 있는 돌벽에 달라붙었다. 마치 계곡 사이에 놓인 댐처럼 여기저기서 모은 바위를 쌓아 만든 성벽이었따. 높이는 고작 10미터 남짓, 성벽에 달라붙은 탈론들은 순식간에 중간 부근까지 기어 올라왔다.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인 것은 그때였다. "방어 시스템 작동, 요새를 B타입으로 전환한다!" 철컹, 철컹, 철컹, 철컹! 기계음과 동시에 성벽전체가 일시에 날카로운 가시에 뒤덮여 버렸다. 성벽을 이루는 바위와 바위사이에서 수백개의 창날이 솟아나온 것이다. 그창날들은 방벽을 기어오르던 탈론들의 몸을 단숨에 꿰뚫고 꼽추처럼 굽어진 등으로 튀어나왔다. 수백마리의 탈론들은 마치 살아있는채로 표본이 돼 버린 곤충처럼 창날에 꿰여 움직임이 봉쇄된채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러대는 엽기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크락, 노마라드 파나람! 돌격대가 단숨에 꼬치가 되자 상위 마족들이 이를 갈아붙이며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잠시 주춤하던 수천 마리의 마족들이 다시 성벽으로 몰려들었다. 아크가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흥, 어림없다. 방사!" 끼리리리릭‥‥ 투투투퉁, 투투투퉁. 뭔가가 잔뜩 당겨졌다가 일시에 풀리며 발사되는 듯한 효과음! 동시에 순간 성벽에서 돋아나 있던 수백 개의 창날이 일제히 폭사되었다. 어둠 속에서 갑자기 수백 개의 창날이 폭사되자 마족들이 비명을 질러 대며 버둥거렸다. 그러나 성벽 앞은 일자로 이어진 좁은 계곡 피하고 숨을 공간 따위는 없었다. 마족들은 저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온몸에 창을꽃은 채 늪에 처박혔다. "성벽을 폼으로 세워 둔 게 아니야. 놈들은 숨을곳이 없다. 계속 공격을 퍼부어!" "알겠습니다. 공병들은 계속 쇠뇌를 장전해라!" 부대장들의 목소리가 성벽을 가로질렀다. 명령이 떨어지자 너구리족이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성벽안쪽에 부착된 장치를 개방했다 뒤이어 묘족과 늑대족이 창다발을 들고 뒤따르며 장치에 창날을 장착했다. 그러자 기계가 자동으로 작동되며 새로운 창날이 다시 성벽 밖으로 튀어 나갔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거친 작업이라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발사!" 투투투퉁 투투투퉁! 또다시 수백 발의 창날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아크는 성벽 앞을 초토화시켜 버리는 장날의 위력을 지켜보며 새삼 혀를 내둘렀다. '굉장하군.' 기계로 쏘아진 창날의 위력은 엄청났다. 마치 쇠뇌처럼 마족 두세 마리를 꿰면서도 100미터나 날아갈 정도였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위력의 창이라도 마족을 한 방에 즉사시킬 수는 없었지만 창에 꿰인 마족들은 단숨에 10~20%나 되는 생명력이 쭉쭉 딸려 나갔다. '이런 식으로 서너 번만 공격해도 일단 몰려드는 마족들은 전멸시킬 수 있다!' 아크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크락,크락,바눔! 육중한 울림과 함께 선두로 100여 마리의 마족들이 몰려나왔다. 중량감이 느껴지는 갑옷을 입고 두꺼운 방패를 든거구의 증장갑 마족. 헤비워커였다. 방어 태세를 취하면 진짜 쇠뇌조차 어렵지 않게 막아 내는 헤비워커! 놈들이 마족들의 선두에 나서서 방어 태세를 취하자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던 창도 허망하게 튕겨 나왔다. 창 공격이 막히자 아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쳇, 또 저놈들이‥‥‥‥ 하지만 창 공격은 시작에 불과해.자, 물청소를 할 시간이다. 수문을 열어라!" 아크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소리쳤다.그러자 성벽 좌우의 문이 빙글 돌아가며 엄청난 양의 물이쏟아져나왔다. 어비스 60충의 늪지는 본래 허리까지 잠기는 깊이였다. 그러나 현재는 바닷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진흙 바닥일 뿐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아크가 계곡 사이클 가로막은 형태로 만들어 놓은 요새에 댐처럼 계곡 사이를 흐르는 물을 모아 두는 기능이 붙어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장난삼아 그런 기능을 불여 놓은 게 아니었다. 쿠콰콰콰콰. 쿠콰콰콰콰! 좌우의 수문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충돌하며 거친 급류를일으켰다. 그리고 마치 성난 짐승처럼 포효하며계곡을 집어삼켰다.그런 기세의 급류라면 단숨에 성벽으로 몰려드는 마쪽들에게 상당한 데미지를 주고, 덤으로 물청소하듯이 깔끔하게쓸어 내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고작 그 정도의 효과로 만족할 아크가 아니었다. "연쇄 공격, 워터 그라인더 발동!" "우와아아아!" 아크의 명령에 연합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성벽 아래로 뭔가를 쏟아부었다.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자갈이었다. 그런 자갈 수십톤이 급류에 쏟아져 내리자 상황이 일변했다. 단숨에 수문을 열어 방출한 급류는 압도적인 힘과 질량을 가지고 있다지만 결국은 물. 마족들에게 직접적인 데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급류에 수십 톤의 날카로운 자갈이 섞여 있다면얘기가 달라진다. 날카로운 자갈을 품은 채 격렬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급류! 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 급류가 마족들을 덮치자 마치 뭔가를 갈아 대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바로 급류를 따라 맹렬하게 회전하는 수백,수천 개의 날카로운 자갈이 마족들의 살점을 찢고 뼈를 갉아대는 소리였다. "효과 만땅이군." 그렇다. 아크가 모아 둔 물을 방류해 얻으려는 효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급류만으로 마족에게 입힐 수 있는 데미지는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급류에 날카로운 자갈을 쏟아부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단순한 급류의 소용돌이에 날카로운 자갈이라는 재료를추가하면 마치 분쇄기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급류에 휘말린 마족들은 날카로운 자갈에 쓸리고 찢겨 순식간에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마족을 덮치는 순간 급류가 마족들의 피와 살점으로 빨갛게 변할 정도였다. 특히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은 것은 창 공격마저 무력화시키던 헤비워커 였다. "쇳덩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아크가 마족들의 피로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 버린 급류를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다른 마족들은 그나마 급류에 떠밀리며 자갈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헤비워커는 몇 톤에 달하는 육중한 갑옷으로무장한 마족! 덕분에 급류가 밀어닥쳐도 다른 마족처럼 가볍게 떠밀리지는 않았다. 이는 다른 마족보다 더 강하게 자갈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공격에는 갑옷이나 방패 따위가 마무런 도움도 되지않았다. 헤비워커들은 너덜너덜해진 방패와갑옷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가 벌거숭이가 된 채로 바닥을 굴러다니며 계곡의 바위와 충돌하고, 자갈에 갈려겼다. 아크가 명명한 이름처럼 워터 그라인더! 물로 만든 연삭기나 다름없었다.급류 덕분에 성벽으로 몰려들던 마족들이 몽땅 쓸려 내려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크람, 크람, 바라드람! 짐승의 숨소리 같은 목소리가 계곡을 따라 울려 퍼지자 또다시 수천 마리의 마족들이 괴성을 질러 대며 늪지로 몰려들었다. 마족 군단의 주력인 탈론과 헤비워커는 물론, 늪지 바닥을 기어오는 도롱뇽처럼 생긴 마족 카리,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광선을 뿜어 대는 가고일. 그야말로 육해공을 총동원한 공격, 놈들과 대치한 연합원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겨우 놈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고 생각했던 연합원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맙소사....!" "맙소사는 무슨 얼어 죽을!" 그때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연합원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정신 차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잖아. 숫자로는 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죽어라 요새를 만든 건 그 때문이잖아. 지금이야맡로 죽어라 만든 요새의 성능을 시험할 때다. 먼저 대공 기관부터!" "네. 가고일이 요새상공에 진입한다 G 기관작동!" 쿠쿠쿠쿠, 덜컹, 콰콰콰콰, 끼기기기, 퉁퉁퉁퉁! 동시에 요새의 여기저기에서 쉬지 않고 기계음이 울리며각종 기관 장치가 작동했다. 연합원들이 성벽을 뛰어다니며 수십 개의 밧줄을 끊자 길이가 10여 미터나 되는 장대가 튕겨져 올라왔다. 끝 부분에 강철격자가 붙어 있는 거대한 파리채였다. 그리고 요새 상공으로 몰려드는 가고일들은 정말 파리처럼 후려쳐 늪지에 처박았다. "좋아. 이제부터 요새의 전 기관을 전개한다. 각 부대장들은 상황에 따라 기관을 작동시켜라! 잊지 마라. 놈들에게 요새 진입을 허락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우리가 나가란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우오오오!" 단숨에 가고일 떼를 격추시킨 연합원들이 함성을 지르며성벽을 뛰어다녔다.그러자 요새 여기저기에서 기계음이 을리며 각종 기관이 쉴 새 없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마족들이 달라붙은 성벽에서 시뻘건 용암이 쏟아져 내리기도 했고, 성벽에 붙어 있던 바위가 대포처럼 발사되어 수십 마리 마족을 으깨 버리기도 했다. 그렇다. 아크가 지금까지 고작 2,000의 병력으로 8,000에달하는 마족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요새.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요새의 기관 장치 덕분이었다. 이 요새가 바로 아크와 특공대가 59충에서 마족들의 발목을 잡는 사이, 60층에서 워머의 주도하에 너구리족, 묘족,늑대족, 동방 민족이 힘을 합쳐 만든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천재 발명가 워머와 장인종족 너구리족의 모든 노하우를집대성시킨 요새!그런 요새의 모든 기관 장치를 전개하자 수천의 마족조차 속수무책이었다. 요새 함락은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성벽 앞에 쌓이는 마족의 시체만 늘어 갈 뿐이었다. 비록 위태위태하지만 전황만을 본다면 연합군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그러나‥‥‥ '대체 왜지?' 아크는 찜찜한 눈길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마족들을 바라보았다.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자, 상황을 정리해 보자.새삼스럽지만 현재 마족들이 비밀 던전에 기어 들어와 발광을 해 대는 것은 요새의 뒤, 지옥문 너머에 있는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기 위해서다. 만약 마족들의 계획이 성공하면 시르바나는 물론 나가란전 지역은 지옥의 강에 잠겨 죽음의 대지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샹그리아에서 확인한 정보에 의하면 지옥의 강에서 뿜어지는 마기는 마족들에게 상당한 어드밴티지로 작용하게 되리라. 사실이 부분이 좀 미묘하기는 했다. 샹그리아의 기록에도 마족들에게 적용되는 어드밴티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족 전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크는 그렇게 확신했다. 사실 처음에는 야크 역시 이번 사건이 단순히 아란의 복수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합군을 모으기 전,갱생단과 대화를 나눈 뒤로 생각이 달라졌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번 마족 전쟁은 글로벌엑서스를 노린 아란과 몇몇 악당(?)의 합작품이었다. 그것은 이미 거대 기업을 향한 테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아란은 재벌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아란이 제정신이 아니라도 아크에대한 복수심만으로 움직일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아란의 배후에는 붉은 남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 붉은남자!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그가 이번 사건의 흑막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국제적인 규모의 거대 기업을 상대로 테러나 다름없는 사건을 일으킨 의문의 유저. 아크는 그가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일을 진행시켜 왔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얼었다. 그러나글로벌엑서스가 수년에 걸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완성시킨 온라인 게임을 뒤흔들고 있다면 그만한 뭔가 ‥‥ 말하자면 자금력이나 조직력을갖춘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결과에 따라 수백억이나 수천억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적인 범죄 조직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아란이 그런 조직과 연계해서 일을 벌이고 있다면더더욱 제멋대로 움직이지는 못하리라. '결국 이번 시르바나 강습은 절저한 계획에 의해 일어난사건이라는 뜻이다!' 아크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현재 시니어스 공국을 공략 중인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실리나드 지역에 입성한 덕분에 마족들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마족들은 그런 상황에서 10만이나 되는병력을 동원한 것이다. 그것은 마족들에게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는 일이 시니어스공국을 지키는 것보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다는의미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족들이 요새의 방어 시설에 엄청난피해를 입으면서도 이렇게 미친 듯이 공격하는 것도 충분히납득할 수 있어,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60층 지옥문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요새는 천재 발명가 워머와 너구리족이 온갖 노하우를 집대성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현재 연합군과 마족은 4배에 달하는 병력 차가 있지만 요새의 방어 시설을 이용하면 못 막아 낼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24시간 동안 8,000에 달하는 마족군단의 공격을 막아왔다.그동안 마족 군단이 입은 피해는 거의 1,500여 마리.반면 연합군의 피해는 고작 200여 명에 불과했다. '이제 이대로 무턱대고 공격해서는 요새를 함락시킬 수없다는 것쯤은 알았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무턱대고 공격하는 거지?' 이게 바로 아크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적이 마족뿐이라면 그련 수도 있다. 마족이니 어쩌니 해도 결국은 몬스터. 몬스터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작전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재 마족을지휘하는 것은 다름 아닌 아란이었다.그럼에도 이렇게 무턱대고 대가리부터 들이미는 방식으로요새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뭣보다 아란에게는 이렇게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몇 시간 전에 정의남에게 날아온 긴급 통신 때문이었다. -아크, 지금 상황이어떠냐? -지금 60층에서 아란을 막아 내고 있어요. -그러냐? 여기는 이제 다 정리됐다. -네? 정리가 됐다면? -그래, 검은 오벨리스크를 몽땅 부수고 시르바나를 탈환했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연합군이 시르바나를 탈환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비밀 던전의 마족들뿐! 시르바나를 탈환한 연할군이 비밀 던전으로들어와 마족을 섬멸하면 모든 상황이 끝나는 것이다.물론 그러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연합군이 60충으로 올때까지 아크 부대가 아란 부대를 막아 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미 비밀 던전은 아란이 몬스더들을 몽땅 처리해 놔서 연합군이 내려오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요. 또한 정의남 아저씨는 비밀 던전의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니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점을 고려하면 대략 하루나 이틀. 그 정도는 워머와 다크에덴 연합원이 만들어 놓은 성벽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버틸수 있을 거예요. 아크가 그렇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을 때였다. 주저하던 정의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문졔가 좀 생겼다. -문제라니요? -시르바나를 공략하면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건데‥‥ 막상 시르바나를 탈환하고 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더구나. 우리가 마지막 공격을 펼치기 전에 확인했던 시르바나의 마족은 대략 4만. 그런데 막상 전투를 치를 때는 1만이상의 마족들이 부족했다. 그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시르바나를 탈환할 수 있었던 거야. -마족의 숫자가 부족하다니요? 순간 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정의남은 불길함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이미 몇 시간 전에 상당수의 마족이 비밀 던전으로 진입한 흔적을 발견했다.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상황은 아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연합군의 총공격에 수세에 몰리던 마족은 시르바나 성을지키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일찌감치 성을 포기하고아란 부대에게 지원군을 보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뒤이어 곧바로 연합군이 시르바나 성을 탈환했지만이미 비밑 던전에 진입한 마족들과는 몇 시간의 거리 차이가생겨 버렸다. 만약 비밀 던전에 몬스터들이 남아 있다면 그 정도 시간은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비밑 던전의 몬스터들은 요 며칠 사이에 아란 부대가 싹쓸이를 해 버린 상황. 장애물이 사라진 던전에서 연합군이 마족들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연합군보다 마족들이 먼저 60층에 도착한다면 ‥‥‥ '아란 부대의 6,500여 마족에 1만의 마족이 추가된다!' 물론 몇 시간 뒤에는 연합군도 도착하겠지만 현재 아크 부대원은 고작 1,800여 명. 아무리 요새가 있다 해도 16,500의 마족을 상대로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없었다. -아직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아란과 어벤저가 던전을내려가며 어느 정도 길을 익혔겠지만 성에 남아 있던 마족들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다. 마족들이 몇 시간 앞서 비밀 던전에 진입했다고 해도 이동속도가 빠른 병사들로 기동부대를 조직해 추격하면 60충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어. 그리고 기동부대가 놈들의 발목을 잡는 동안연합군 본대가 따라잡으면 놈들을 섬멸하고 아란 부대까지전멸시킬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크는 뭔가 입을 열려다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정의남의 말처럼 곧바로 기동부대를 조직해 추격따면 마족을 따라잡을 수 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없다고 하지만 비밀 던전은 미로처럼복잡한 곳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면 아란이 미리 보내 놓은 어벤저가 가이드 역할을 하겠지만 비밀 던전은 한 번 들어와 봤다고 모든 길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다. 분명 이번에 진입한 마족들은 적지 않게 헤맬 수밖에 없으리라. 반면 연합군에는 아크와 노가다를 한 덕에 비밀 던전을 달달 외워 버린 정의남이나 다크에덴 연합원들이 있었다. 마족들이 던전에서 헤매며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최단 코스로 추격하면 틀림없이 60층에 도착하기 전에 마족들을 따라잡을수 있으리라. 그러나 기동부대가 마족을 따라잡는 것과 발목을 잡을 수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비밀 던전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통로가 얽혀져 있는 곳이다. 그러나 결국 다음충으로 갈수 있는 길은 하나. 만약도마뱀 꼬리를 자르듯이 마족들이 일부 병력을 떼어 길목을봉쇄하고 본대는 계속 진군한다면? 결국 기동부대로는 마족 전체의 발목을 묶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기동부대가 길목을 봉쇄한 마족을 처리하고 다시 따라붙는다고 해도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그리고 최종적으로 수천의 마족이 아란 부대에 합류하는것을막을수 없다는 뜻. 아크가 이런 생각을 굳이 말하지 않은 것은 정의남 역시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굳이 말해 봐야 사기만 저하될 뿐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젠장.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그냥 지켜봐야만 한다는 거야?" 통신 내용을 전해 들은 샴뱌라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 뭔가를 생각하던 아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상황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 "뭐?" "말했잖아. 기동부대는 확실하게 마족 지원군을 따라잡을수 있어." "하지 마족들이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일부 부대로 기둥부대를 대하며 진군할거라며? ""그렇지. 그리고 그 말은 기둥부대가 따라붙을 때마다 마족 지원군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뜻이야. 기동부대의 레벨이나 병력을 생각하면 마족들도 한 번에 2,000마리 이상의 별동대를 동원하지 않으면 시간을 벌 수 없어. 다시 말해 기동부대가 마족 별동대를 두세 번만 격파하며 따라붙어 준다면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4,000 ~ 6,000의 마족을 줄일 수 있어." "그래도 아란 부대와 합류하면 우리가 10,000~12,000의마족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지금 우리 병력은 2,000도 되지 않는다고. " "대신 워머와 너구리족이 만든 요새가 있잖아." "하지만 이 허접한 요새만으로는 당장 6,500 남짓의 마족도 막기 힘들잖아." "허, 허접? 너 이 자식, 말 다했냐? 그나마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누구 덕분인데‥‥‥" 샴바라의 말에 요새 설계자 워머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그때 아크가 손을 들어 워머를 제지하며 말했다. "그건 요새가 미완성 상태라서 그래." 아크가 샴바라의 말을 끊으며 중얼거렸다.그렇다. 사실 60충에 세워진 요새는 아직 미완성이었다.본래 워머가 설계한 요새의 공사 기간은 최소 사흘이었다. 그 사흘은 아크와 특공대가 59충에서 벌어야 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큐리오가 소멸될 위기에처하는 바람에 계획이 어긋났고, 불과 40시간여 만에 59충이 돌파당한 것이다. "오호, 제대로 알고 있구먼. 맞아. 원래 이 요새는 처음아란 자식이 끌고 들어온 1만 마리의 마족을 상대하도록 설계한 거였어. 그런데 네놈들이 59층에서 제대로 시간을 골어 주지 못해서 현재 50% 정도밖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란말이다. 요새가 100% 완성된다면 마족 따위는 1만이든 2만이든 문제가 안 돼!" 워머가 콧방귀를 뀌며 맡했다. 솔직히 아무리 100% 완성된다고 해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워머가 처음 요새를 설계할 때 상정한적의 숫자는 1만. 1만의 마족을 상대로 3~4일을 버티는 것을 목표로 설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일단 요새가 완성되면 마족이 12,000 이상이된다고 해도 몇 시간을 버티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뜻이었다. 거기까지 들은 샴바라가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럼..?" "그래, 아무리 비밀 던전이 텅 빈 상태라도 마족 지원군이아란 부대에 합류할 때까지는 최소한 하루 이상 걸릴 거야그때까지 워머의 설계대로 요새를 완성시키면 연합군이 뒤따라올 때까지 버틸 수 있어." "하지만 고작 2,000의 병력으로 마족의 공격을 막아 내며요새를 만드는 게 말처럼‥‥‥" 회의적으로 중얼거리던 샴바라가 뒤늦게 뭔가를 알아챈둔 눈을 빛냈다. 그리고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군. 아란은 이 요새가 미완성 상태인 걸 모른다는 건가?" "그렇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아란이 알고 있는 건 6,500의 병력으로는 이 요새를 함락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뿐이야. 그래서 시르바나 성을 일찌감치 포기하면서까지 지원군을 불러들인 거겠지. 그리고 이제 하루 정도만 기다리면 최소 수천의 지원군이 도착해. 그런 상황에서 굳이 요새를 공격해서 병력을 소모시킬이유가 없지. 아란은 틀림없이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다가 총력전을 펼칠 거야.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최소하루의 시간이 있다는 말이다." 이게 아크가 생각해 낸 유일한 해결책이었다.아니. 생각해 냈다기보다는 상황적인 분석이었다. "그동안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요새를 증축하면 최소 80%정도는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마족 지원군과 연합군 본대와의 거리 차이는 고작 2~3시간. 80% 이상 완성된 요새라면1만 이상의 마족이라도 그때까지 버텨 낼 수 있을 거야.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 내겠어!" "암, 당연하지!" 워머가 출렁이는 가슴팍을 팡팡 치며 대답했다. 그 뒤로 아크 부대는 쉴 새도 없이 곧바로 요새 공사에 돌입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입맛대로만흘러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크의 예상대로 마족 지원군이 비밀 던전에 진입했다는 연락을 받은 뒤부터 아란 부대는 모든 공격을 중단하고 퇴각했다. 그러나 대략 5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수천의 마족들이 계곡을 뒤흔들며 요새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시간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도 쉴 새 없이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란의 행동...여기까지 기억을 더듬던 아크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생각할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가고일을 이응했든지, 염탐 마법을 이용했든지, 아란은아크가 부대원을 동원해 요새를 증축하는 것을 알아낸 게 븐명하다. 그리고 대번에 아크의 작전을 알아했으리라. "빌어먹을!" 계속된 악재에 절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아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마족들의 공격으로 요새 건설을 할 수 없다면 마족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아란 부대의 마족 숫자를 줄여 놓는 방법뿐이다. 그게 당장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고, 마족 지원군이 도착한 뒤에도 버텨 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새에 장착된 장치도 무한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 요새에 만들어 둔 장치는 대부분 반복해서 사용할수 있었지만, 아무 떼나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늪지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모야 뒀다가 방류하는 기관도 일단 한번 사용하면 다시 충분한 물이 모일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성벽을 따라 흘러내리는 용암이나 지면을뚫고 올라오는 간헐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족이 쉬지 않고 계속 공략한다면 그런 기관들은 하나 둘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며칠째 쉬지 않고 전투와 공사를 반복해 온 병사들의 피로도 심각한 문제였다. '이런 상태로 마족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싸운다면 지쳐 죽을 거야.'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크 님, 마족 진영에서 사이클롭스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이클롭스!' 아크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수백 미터 떨어진 계곡에서 거대한 마족 몇 마리가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근육질의 육체를 지닌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들이었다. 놈들은 양손으로 엄청난 크기의 물체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투포환 선수처럼 팔을 휘둘러 물체를요새로 날리기 시작했다.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든 건 그때였다. "이, 이런..... 막아라! 마법사들은 모든 마력을 집중해 방어막을 펼친다!" 각종 기관으로 무장한 워머의 요새.그러나 이 요새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공성 병기의 장거리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점이었다.사실 이게 일반 공성전에서 성벽에 트랩을 설치하는 방식이 쓰이지 않는 이유였다. 성벽에 아무리 많은 트랩을 설치해 봤자 그곳이 공성 병기에 두들겨 맞아 파괴되면 제대로써먹지도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는 무엇보다 강력한 방패가 되리라‥‥ 바운스실드!"아크의 명령에 성벽 위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실드 마법을펼쳤다. 그러나 현재 요새의 연함군 2,000여 가운데 1,500은 너구족, 묘족, 늑대족, 동방 민족 같은 NPC들.나머지 500여 명의 유저 연합원 가운데 마법사의 숫자는고작 4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고작 40여 명의 마법사로 성벽 전체를 커버하는 것은 무리. 게다가 사이클릅스가 던진물체는 수십 톤의 질량을 가지고 있었다. 콰쾅, 콰콰콰쾅!굉음과 함께 바위는 마법사들의 실드를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수많은 가고일을 파리처럼 때려잡던 파리채도 수십톤에 달하는 바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사이클롭스는 20여 미터나 되는 크기에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마족이었다. 그러나 그리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다. 한 방에 상대를떡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반응속도와움직임이 느려 터져서 적절하게 치고 빠지기만할수있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수 있는 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전투에서의 얘기.사이글롭스는 이렇다 할 특기는 없지만 방금 전처럼 연합원의 사정거리 밖에서 무지막지한 힘을 이용해 거대한 바위를 수백 미터나 날릴 수 있었다. 수성전을 펼쳐야 하는 아크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적이었다. "아크 님, 좌측 성벽이 심각한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방금 전의 공격으로 창발사 장치 10여 기가 파괴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차례의 공격으로 여기저기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공병들은 서둘러 부서진 기관을 수리하라!" 부대장들의 고함 소리에 수십 명의 공병이 무너진 성벽으로 뛰어갈 때였다. "필요한자재를 보급‥‥‥ 헉! 뭐, 뭐야 이, 이건...." 부서진 기관을 살펴던 공병 1명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공병의 눈동자 속에서 사이클롭스가날려 보낸 거대한 물체가움직이고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듯 꿈틀거리던 물체가 돌연 쭉 펴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튀어나온 물체는‥‥‥‥ -크르르르르! "헉, 바위가 아니야. 이. 이건‥‥‥‥" "크라크다!놈들이 던진 건 크라크다! 모두 도망‥‥‥ 크아 아아악!" 우드드득, 촤아아아악! 비명을 터뜨리던 공병의 몸이 통째로 잘려 나가며 피 분수 를 뿜어냈다. 잘려 나간 공병의 상체를 우적우척 씹고 있는 것은 거대한 구더기. 크라크였다. 그렇다. 사이클롭스가 날린 거대한 물체는 바로 수십 미터 크기의 구더기 크라크가 동그랗게 말려 있던 것이었다. 공병의 비명과 함께 크라크 10여 마리가 일제히 몸을 펴며 요새 내부에서 성벽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슨 이런‥‥‥ 젠장, 놈들의 목표는 기관장치다!"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기관 장치가 몰려 있는 성벽 안쪽을 공격당하면 요새는 단숨에 무너진다. 묘족은 너구리족을 보호하며 크라크를 요 새 후위로 유인하라. 늑대족과 특공대원은 요새 뒤쪽에서 유 인된 크라크를 섬멸한다. 서둘러!" "냐아아아아. 이쪽이다, 구더기들아!" 아크의 명령에 수백 마리의 묘족이 크라크의 몸을 할퀴며 도발했다. "지금이다. 공격하라!" 그렇게 묘족이 크라크 무리의 성질을 돋우며 요새 안쪽으 로 유인하자 대기하고 있던 늑대족과 특공대들이 일제히 달 려들어 공괴을 퍼부었다. 크라크는 비록 레벨이 300밖에 되지 않는 마족이었지만, 정예에 표피가 강철처럼 단단해서 방어력이 엄청났다. 그러 나 사이클롭스에 의해 100여 미터나 던져진 탓에 적지 않은 낙하 데미지를 받은 상태 였다. 거기에 묘족과 늑대족, 특공대가 스킬을 쏟아붓자 얼마 버 티지 못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졌다. 그러나 크라크 무리가 전멸하기 전에 또다시 10여 마리의 크라크가 날아들었다. 크라크가 날아들자 육중한 울림이 울리며 성벽 일부분이 우수수 무너졌다. 사이클롭스가 날릴 때는 투석처럼 요새에 데미지를 주고, 크라크로 변해 공병과 기관 장치를 공격한 다. 사이클롭스와 크라크를 이용한 이중 공격에 이크 부대는 일대 혼란에 빠져 버렸다. "모든 쇠뇌를 사이클롭스에게 집중하라!" 투투투퉁, 투투투퉁! 아크의 명령에 성벽에서 수백 발의 쇠뇌가 쏘아져 나갔다. 그러나 100여 미터 이상 날아간 쇠뇌는 이미 사이클롬스 의 두터운 피부와 근육을 뜰을 힘을 잃은 상태였다. 대부분은 륑겨져 나오고 제대로 박힌 쇠뇌도 간신히 피부 를 뚫은 정도였다. 그사이에 사이클롭스가 날린 크라크 10 여 마리가 다시 요새 안으로 떨어졌다. 크라크를 상대하는 부대장이 헐떡이는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대로는 밀려드는 크라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알고있어!" 아크가 버럭 소리쳤을 때였다. 돌연 아크의 귓가로 큐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도착레어!" "좋아, 큐리오. 시작해라. 살려 낸 값을 할 기회다!" "쳇, 똑같은 말을 해도 꼭‥‥‥‥" 큐리오가 툴툴거리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동시에 계곡에서 바위를 떼어 내던 사이클롭스 한 마리가 갑자기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모기를 옻듯이 손 바닥으로 자신의 몸을 찰박찰싹 때리기를 잠시 ‥‥‥‥ 난데없이 아크의 마나가 쑥 빨려 나가며 눈앞에 정보창이 올라왔다. 소환수 큐리오가 사이클롭스에게 '흡혈'을 성공시켰습니다. *'흡혈'의 보조 효과 '스킬 흡수'에 실패했습니다! *'흡혈'의 보조 효과 '스킬 봉쇄'에 실패했습니다! *'흡혈'의 보조 효과 '현혹'을 성공시켰습니다! <<큐리오는 30분 동안 '현혹'에 걸린 사이클롭스를 조종할수 있습니다.>> "성공이다!"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아크가 사이클롭스를상대하기 위해 빼 든 비장의 카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큐리오가 진화하며 새로 얻은 '흡혈' 의 보조 효과 '현혹''! 사이클롭스는 '힘이 세면 머리가 나쁘다' 라는 속설을 실 체화시켜 놓은 듯한 마족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수백 미터나 날려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스킬 하나 배우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마족인 것이다. 그리고 큐리오에게 새로 생긴 '흡혈 현혹'은 상대의 지능 이 낮을수록 성공 확률이'높아지는 스킬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머리가 나쁠수록 꼬드기기 쉬운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때문에 아크는 사이클롭스를 쇠뇌로 공격하며 시선을 끄 는 한편 규리오를 계곡 입구 부근으로 이동시켜 놓았다. 그리고 마족들의 이목이 요새로 집증됐을 때 '흡혈 현혹' 을 사용, 몇 번의 시도 끝에 멍청한 사이클롭스를 '현혹' 상 태에 빠뜨린 것이다. "크헤헤헤, 이따위 덩치만 큰 바보들이야 하이퓨어 벨파 이어인 이 몸에게 걸리면 한방이지. 자! 외눈박이야, 시작 해 보자!" 큐리오가 '현혹'에 걸린 사이클롭스의 머리통을 날갯죽 지로 탁탁 치며 소리쳤다. -쿠오오오오! 그러자 사이클롭스가 괴성을 질러 대며 몸으로 옆의 사이 클롭스를 들이받았다. 막 크라크를 집어 던지려던 사이클롭스들이 도미노처럼 한쪽으로 우르르 넘어졌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사이클롭 스들이 주먹을 휘둘러 댔지만 느려 터진 주먹에 맞을 큐리오 가 아니었다. 큐리오는 잽싸게 사이클롭스 사이를 날아다니 며 미친 듯이 피를 빨아 했다. 사실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는 '흡혈'을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흡혈'을 성공해도 '현혹'이 발동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20미터나 되는 크기에 둔 해 터진 사이클를스가상대라면 얘기가 다르다. 덩치가 큰 덕분에 물 데도 많고, 움직임이 둔하니 공격을 받을 위험도 적었다. 게다가 지능지수가 한 자리 숫자밖에 되지 않으니 '현혹'이 발동할 확률이 높다. 반면 일단성공 하면 수십 미터 크기의 마족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너희 같은 둔탱이에게 당할 이 몸이 아니시다!" 덥석, 쭉, 쭉, 쭉, 쭉! 그렇게 몇 번, 순식간에 네 마리의 사이클롭스가 '현혹' 에 빠져 버렸다. 덕분에 배가 빵빵해진 큐리오가 피에 취해 괴상한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크케케케케. 자, 외눈박이들아. 마음껏 날뛰어라!" 동시에 마족들 사이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큐리오의 명령을 받은 사이클롭스들이 다른 사이클롭스들 을 부둥켜안고 바닥을 구르며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이클롭스들이 드잡이질을 하며 계곡을 들이받자 집채만 한 바위가 우박처럼 쏟아졌다. 덕분에 근처에 몰려 있던 마 족들은 사이클롭스들의 거대한 몸과 바위에 깔려 토마토처 럼 으깨졌다. 계곡 입구에서는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크람, 크람. 바라드람l 결국 마족들은 동료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크케케. 좋아, 좋아. 너희들끼리 죽어라싸워‥‥ 어라?" 천장에서 파닥거리며 히축거리던 큐리오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집중하더니 이내 놀란 목소 리로 소리쳤다. "주인, 아란이다!" "뭐?아란?" 모족, 늑대족과 함재 크라크를 처리하던 아크가 퍼뜩 고개 를 들어 을렸다. "어디냐?" "사이클롭스들이 난동을 부리는 곳 바로 옆이야," 큐리오의 말에 아크는 곧바로 성벽 위로 뛰어 을라가 '고 양이의 눈'을 발동시켰다. 그리나아무리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 켰다고 해도 수천 마리의 마족들이 득실거리는 늪지 안에서. 그것도 수백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아란을 찾아낸다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직접 확인하기를 포기한 아크가 큐리오에게 재차 확 인했다. . "큐리오, 다시 확인해 봐라. 확실히 아란이냐?" "설마 내가 그놈을 못 알아보겠어?확실해! 아란이야!" "주변에 다른 놈들은?" "예전에 봤던 다크엘프나 마법사를 포함해서 한 100명 정 도가 함께 있어. " '다크엘프와 마법사라면 티모시와 쥬르, 놈들과 함께 있 다면 틀림없이 아란이다!' 큐리오의 대답에 아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대체 놈이 왜 밖으로 기어 나온 거지?' 사실 아란 부대가60층에 진입한 뒤로 벌써 하루 반나절을 싸웠지만, 아란이 직접 전장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 현재 전장은 일자로 이어진 계곡의 출구를 요새가 막고 있 는 형태로 이루어져 아란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마족을 지휘 하는 데는 큰문졔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계곡과 요새 주변에는 워머와 너구리족이 설치해 놓 은 각종 함정이 널려 있으니 굳이 앞에 나서서 위험을 감수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아란이 직접 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 이번 마족의 총공격은 아란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시작 한일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승산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비장의 수였던 사이클롭스 부대가 '현혹' 에 걸려 오히려 마족을 공격하고 있으니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혹은 뭔가 다른 수작을 부리려고 그리는지도 모르지. 어 쨌든‥‥‥‥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이건 기회다!' 사실 아란이 전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든, 현재 아크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비밀 던전으로 잠입한 뒤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전투와 요 새 건설에 동원된 부대 원들은 한참 전부터 안드로메다를 오 락가락했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검을 휘둘러 대며 코를 고는 경우도 있었다. 그뿐인가? 마족들이 계속 몰아붙이는 바람에 요새에 설치 해놨던 기관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연합군은커녕 마족 지원군이 올 때까지도 버 티지 못할지 몰라. ' 그러나 전황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바로 아란의 죽음! 그렇다. 새삼스럽지만 이 수천의 마족을 통솔하는 사람은 바로 아란이다. 만약 아크가 아란을 처리할 수 있다면 마족 을 통솔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마족들 틈에서 아란을 처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아란과 대결해서 이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일전에 파비온 협곡에서 아란에게 당했지만, 그 뒤로 아크 역시세트아이템 '수왕'을모두모으고, 전설의 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까지 손에 넣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아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확실하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그러려면 아크가 직접 아란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 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설사 아란을 처리한다고 해도 아크 역시 마족들에게 죽게 될 확률이 많았다. 그러나 아란과 아 크는 각부대애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다르다. 아크가 죽어도 부대에는 워머나 보라매를 비롯해 적지 않 은 유저들이 남는다. 이들이라면 아크 대신 부대를 지휘할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마족들은 다르다. 아란은 마족들의 유일무이한 지휘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아란의 죽음은 곧 마족들이 하나의 군단에서 평 범한 플스터 무리로 전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조직력을 잃은 평범한 마족이라면 아무리 지친 부대원이라도, 설사 아크가 없어도 어렵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으리라.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은 도박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 육가 없지!' "샴바라, 후방에 대기 중인 연합원 400명으로 별동대를 소집해라!"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아크가 소리쳤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긴 샴바라가 빠르게 연합 원으로 별동대를 편성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지옥문의 입구에서 최후의 방어선을 펼쳐 놓고 있던 연합원들이었다. 아크는 이들을 별개의 공격대로 등록하며 소리쳤다. "마기 왜곡!" 순간 아크의 가방이 벌컥 열리며 시커먼 장비품들이 허공 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천장에 거대한오망성을 만들며 일체 히 폭발하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기 왜곡'이 발동했습니다. 장비품에 갇혀 있떤 마기를 단숨에 방출해 공간을 왜곡시켜 적과 아군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이동시키는 적보다 많은 숫자의 아군이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위치바꾸기를 실행할 적 부대를 지목해 주십시오. "큐리오!" "3시 방향으로 300미터 지점!" . "3시 방향 300미터 지점, 직경 100미터 이내의 마족!" 아크가 큐리오의 말을 그대로 옮기며 소리쳤다. 동시에 천장에서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아크의 별동대를 휘감았다. 그리고 단숨에 허공으로 빨아 올려 아크가 지정한 장소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잠시 눈앞을 어지럽히던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바로 앞에 아란과 티모시, 어벤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아크가 아란을 기습할 수 있다고 확신한 이유가 바로이 '마기 왜곡' 때문이었다. '마기 왜곡' 의 유효 범위는 500미터. 아크는 아란이 요새 에서 500미터 범위 내에 들어온 지금이야말로 기습으로 아 란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이대 주변의 마족들은 상관할 것 없다. 모든 공격력 을 아란에게 집중시켜라!" 아크의 명령에 샴바라와 별동대 원들이 일제히 아란에게 달려들었다. 뒤늦게 별동대의 출현을 깨달은 어벤저들이 황 급히 아란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아란의 호위대튼 고작 100여 명. 물론 주변에는 수천의 마족들이 득실거렸지만, 이런 갑작 스러운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정도로 잘 훈련된 놈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직 근처에는 '현혹' 에 걸린 사이클롭스 들이 날뛰어 마족들은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사이에 최정예 400여 별동대원의 칼날이 어벤저들의 몸 을 관통했다. 콰자콰쾅, 콰콰콰쾅!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리며 순식간에 수십 명의 어벤저가 쓰러졌다. 호위 병력이 허망하게 쓰러지자 아란이 허둥지둥 뒤로 물러섰다. 그가 허둥대는 반응에 아크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미 늦었다! 샴바라, 바로 간다" "알았어. 살!" "다크 블레이드!" 단숨에 거리를 좁힌 아크와 샴바라가 양쪽에서 아란을 공 격했다. 순간 검은빛과 붉은빛이 교차되며 아란의 몸을관통 했다. 그러자 허둥지둥 도망치던 아란의 생명력이 단숨에 50%나 빨려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뭐지? 이 녀석‥‥‥ 왜 이렇게 약해졌지?' '고양이의 눈'으로 줄어든 아란의 생명력을 확인한 아크 는 당혹스러웠다. 아란은 1대1로승부를 겨뤄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상대 였다. 그런데 비록 기습이라고는 하나 일격에 50%나 생명력 이 빨려 나가다니? 아니, 그 이전에 방금 전의 어설픈 몸놀 림은 대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얻어맞은 지금도 바닥을 기 며 도망치기에 급급하다니? 아란만이 아니었다. 샴바라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던 티모 시 역시 별동대 원들의 공격조차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고 이 리저리 도망치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뭘 넋 놓고 있는 거야 이대로 놓칠 거냐?'" 그때 샴바라가 바람처럼 옆을 스쳐 가며 버럭 소리쳤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아크가 '전력질주'로 아란을 뒤 쫓았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마족들이 아크와샴바라의 앞 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별동대 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마족을 막아 준 덕분에 아크와 샴바라는 금세 아란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끼기기기! 끼기기기!" 아크가 앞을 가로막자 아란이 기괴한 신음을 흘리며 주춤 주춤물러났다. 그 모습에 뒤에서 아란을 압박하던 샴바라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야?이 녀석, 갑자기 원숭이로 퇴화한 건가?" "끼긱!" 그때 아란이 와락 몸을 돌리며 샴바라에게 달려들었다. "어쭈?해보자는 거냐! 폭우검!" 아란의 어설픈 공격에 샴바라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단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단검이 수십 자루로 분산되며 아란 의 몸을 꿰뚫었다. 아란은 순식간에 걸레처럼 변해 바닥을 나됩굴었다. 그리고 역시 안 되겠다 싶었는지 발딱 일어나 도망쳤다. 아니, 발딱 일어나 도망치려 했을 때였다. '대쳬 왜 이렇게 헤매는지 모르겠지만‥‥‥' "사정을 봐줄 거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겠지?" 아크가 일어나려는 아란의 목을 발로 찍어 누르며 씨익 웃 었다. 그리고 콰직, 아크의 검이 수직으로 아란의 목덜미를 뚫고 들어갔다. "크아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간당간당하던 아란의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버렸다. 적진 한복판에서 적의 지휘관인 아란을.쓰러뜨린 것이다! "대체 뭐야? 아란 녀석‥‥‥ 혹시 며칠 동안 무리하더니 유니트 속에서 잠들어 버린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허망하게‥‥‥‥" 너무 쉽게 아란을 처리하자 샴바라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 얼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아란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 따위 는관심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아란을 해치웠다는 점이다. 이제 통 제를 잃은 마족들의 조직력은 단숨에 허물어지리라! "좋아. 이런 상황이면 살아서 요새로 돌아갈 수도 있겠 어." 아란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던 아크의 얼굴이 돌연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아란의 몸에서 기괴한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닥에 쓰러진 아란의 시체가 마치 진흙처럼 일그러지더 니 밀가루 반죽처럼 허여멀건 덩어리로 변하는 게 아닌가? 얼굴 역시 완전히 지워져 마치 달걀귀신처럼 매끈해졌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아크의눈앞에생각지도못했던 '스킬간파' 정보창이 울 오른 건 그때였다. 도플갱어의 특수스킬 : 얼굴 훔치기 도플갱어는 고대에 서식했던 기괴한 마족입니다. 도플갱어는 비교적 약한 마족이지만, '얼굴 훔치기'라는 기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름은 '얼굴 훔치기'지만 실제로는 대상의 모든 것을 똑같이 복사해 변신하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일단 '얼굴 훔치기'에 성공한 도플갱어는 대상의 특성과 정보, 심지어 습관까지 완벽하게 복제해 냅니다. 도플갱어들은 이 능력을 사용해 친구나 형제, 자매의 모습으로 변신, 사람들 틈에 섞여있다가 방심한 틈을 노려 잡아먹는 사악한 마족입니다. 때문에 도플갱어가 활동하던 고대에는 무고한 사람들이 도플갱어로 몰려 마녀 사냥을 당하는일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단, 외모를 복제해도 실제로 대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습니다. ACT2 범람, 지옥의강(I) '도플갱어?' 정보창을확인한 아크는 혼란에 빠져 버렸다. 눈으로 확인하고도 대쳬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 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아크의 머릿속에 왕성에서 들었던 도플갱어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사실 비상계엄령을 발동시켜 왕국의 모든 관문을 폐쇄시 키고 상거래를 금지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마족이 바 로 이 도블갱어였다. 각지에서 도플갱어들이 여행자나 상인의 얼굴을흠쳐 마 을에 숨어 들어와 주민들을 잡아먹는 사건이 발발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계엄령이 발동된 뒤로 관문에서 정체가 발각되 어 대부분 사냥 당해 사라진 상태였다. 덕분에 아크는 지금 까지 실제 도플갱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아란이 비밀 던전에 데리고 들어온 마족들 가운데 도플 갱어가 섞여 있었던 건가?' 아크는 황급히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크와 별동대가 처리한 아란과 어벤저들의 시체가 모두 밀가루 반죽처럼 변해 있었다. ‥‥단순히 섞여 있었던 게 아니다. 아란과 어벤저들이 몽땅 도플갱어로 바뀌어 있었다. '아란의 지배를 받는 도플갱어들이 졔멋대로 아란과 어벤 저를 복제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도플갱어들의 변신은 아 란의 지시에 의한 것. 그렇다면?' 이 상황 자체가 아란이 만든 함정이라는 말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란의 지시로 도플갱어가 아란을 복제했다면 목적은 아 크를 유인하기 위한 것! "별동대는 나와 샴바라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축하라!" 아크는 자세를 낮추며 소리치고 고개를 들어 큐리오를 바 라보았다. "큐리오, 위성 감시 모드로 아란과 어벤저의 위치를 탐색 해라!" "어? 어?아, 알았어!'" 눈치를 살피던 큐리오가 허둥지둥 천장에서 위성 감시 모 드로 전환했다. 아란이 자신을 복졔한 도플갱어를 일부러 전장에 보내 아 크를 유인했다면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크가 도플갱어를 기습하는 사이에 배후를 공격하는 것. 때문에 아크는 곧바로 별동대를 방어 진형으로 전환시키고 아란의 기습에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 일행을 공격하는 것은 마족들뿐이었다. "없어. 전장에 다른 아란의 모습은 없어. " "없다고?그럴 리가‥‥‥‥" 뒤이어 들려온 큐리오의 보고에 아크는 더욱 혼란스러워 졌다. 주변에 아란과 어벤저가 없다면 아크를 전장으로 유인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유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왜 도플갱어를 자신으로 변신시켜 노출시켰단 말 인가? 아니, 그 이전에 이렇게 좋은 기회에 대체 아란은 어디서 릴 하고 있단 말인가? '뭔가‥‥‥ 분명 뭔가 있어. 대체 뭐냐?' -크아아아아! 아크가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도 사방에서 마족들이 송곳 니를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아직 '현혹' 에 걸린 사이클롭스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 많은 숫자의 마족이 별동대를 공격할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 지체하면 조만간 수천의 마족에계 포위되고 말리라. "젠장, 뭐하는 거야? 여기는 적진 한가운데 라고! 이대로 는 얼마못 버텨!" 샴바라가 밀려드는 마족을 처리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아크는 쉽사리 다음 움직임을 결정하지 못했다. 애초에 아크가 요새를 나온 게 아란의 계략이었다면, 그리 고 아크가 그 계략이 뭔지 파악하지 못했다면, 섣불리 움직일 경우 어떤 사태를 초래하게 될지 장담할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아란의 위치를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큐리오, 위성 감시 모드로 60층을샅샅이 뒤져라. 아란 을찾아내!" 아크가 버럭 소리쳤을 때였다. -아크 님, 적의 기습입니다! 거의 동시에 요새를 맡고 있던 보라매의 목소리가 고막을 후려쳤다. 아크가 움찔하며 요새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기습?기습이라니?대쳬 무슨 소리야?성벽을 넘은 마 족이 있단 말이야? -밖이 아닙니다. 뒤에서‥‥‥ 놈들은 어벤저들입니다! -어벤저?그게 무슨‥‥‥‥ 대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뜯는 소리란 말인가? 난데없이 요새 안에서 어벤저들이라니? 그러나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크는 대체 요새 안에 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다. "전원 나를 중심으로 모여라!" 아크는 보라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 동시에 가방에서 수십 개의 저주템이 쏟아져 나와 '마기 왜곡' 을 발동시켰다. '마기 왜곡' 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는 아크와 별동대를 성 벽에 몰려 있던 마족들과 바꿔치기했다. 단숨에 요새 안까지 이동하면 좋겠지만 요새 안에는 바꿔치기할 마족이 없어 일 단 성벽 앞으로 공간 이동 한 것이다. 갑자기 치열한 전장에 아크와 별동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족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 "젠장, 발 디딜 틈도 없군. 폭우검!" "방어 진형을 유지하며 요새로 퇴각한다. 화격!" 아크와 샴바라는 별동대 원과 함꼐 마족을 밀어내며 요새 로 퇴각했다. 그러나 이미 요새에서 나타났다는 어벤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보라매, 대체 어떻게 됐다는 거야?" 아크는 들이받을 기세로 보라매에게 달려들어 물었다. 그러자 보라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저도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습니 다. 갑자기 요새 뒤에서 나타난놈들이 지옥문으로향했습니 다. 뒤늦게 놈들을 발견했지만 마족의 공격이 거세져서 놈들 을 막을 병력을 차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옥문을 지키고 있던 방어 병력은 아크 님과 함께 전장으로 떠난 직 후여서‥‥‥‥" "그러니까 대체 놈들이 어디서 나타났다는 거야?" "그, 그게 저도 잘‥‥‥‥" "놈들이 요새 안에서 나타날 리가 없잖아? 알잖아?60층 은 그냥 계곡이라고! 성벽을 넘지 않고서는 이곳에 들어온 수 없어! 설사 놈들에게 날개가 달렸다고 해도 이렇게 뻥 뚫 린 곳에서 눈에 띄지 않고 수백 명의 어벤저가 성벽을 넘을 방법은‥‥‥‥" 버럭 소리치던 아크가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멍청한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어디론가 뛰 어갔다. 사이클롭스에게 던져져 무틱대고 돌진하다가 죽어 버린 거대 구더기, 크라크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곳이었다. 설마 하는 표정으로 크라크의 시체를 살펴보던 아크의 눈 동자에 절망적인 빛이 떠올랐다. "‥‥‥‥당했다"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며 웅얼거렸다. 아크는 그제야 이번 마족들의 총공격과 아란으로 변신한 도플갱어 등‥‥‥ 모든 상황이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한 포석 이 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아란과 어벤저의 요새 잠입! 그렇다. 방금 전에 아크가 말한 것처럼 아란 일당에게 하 늘을 나는 재주가 있다 해도 요새를 함락시키지 않고 지옥문 으로 들어갈 방법은 없었다. 지상에는 각종 기관 장치로 도배된 성벽이 버티고 있었고. 하늘은 거대한 파리채가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사 몇 명이 성벽을 넘어 들어온다고 해도 지옥문 앞에는 샴바라와 최정예 별동대원 400명이 방어선을 펼쳐 놓고 있었다. 요새가 함락되기 전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옥문으로 들어갈 수 없는 포진이 었던 것이다. 적어도 아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빈틈이 생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만들어졌다. 그렇다. 이번 전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란이 그린 시나리 오대로 진행된 것이다. '처음부터 아란 녀석은 우리의 요새 건설을 막기 위해 공 격했던 게 아니었어. ' 단지 아크가그렇게 생각하도록 판을짰을뿐이다. 아크가 아란이 초조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이클롭스 가 크라크를 투척하는 식의 무모한 공격도 이상해 보이지 않 기 때문이다. 사실 크라크를 요새 안으로 집어 던지는 공격은 전략상으 로 그리 의미가 없었다. 이미 요새와 충돌하며 상당한 생명 력이 깎여 나간 크라크가 난동을 부려 봤자 아크 부대에는 이렇다 할 피해를 출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크라크가 처음부터 타격을 줄 용도가 아니었다면 얘기 가 다르지. " "다른용도?" "크라크는 아란과 어벤저의 이동 수단이었어. " 생각을 정리한 아크가 침음성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동 수단?그게 무슨‥‥‥ 헉! 서, 설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샴바라가 크라크의 쩍 벌어진 아 가리를 바라보다가 움찔했다. 그리고 갑자기 크라크를 향해 달려가며 섬장처럼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크라크의 옆구리가 길게 찢어지며 텅 비어 있는 넓 은 공간이 드러났다. 성인 남자 1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크라크의 위장이었다. "이럴 수가‥‥‥!" 그제야 샴바라도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크라크는 크기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 한 구더기 마족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긴 몬스터들은 사냥감을 닥치는 대로 삼키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과거 유계에서 만났던 거대 구더기 몬스 터 포식자의 경우에도 배를 갈라 버리자 살아 있는 망자들이 우수추쏟아져 나오기도 했었던 것이다. 아란이 이용한 게 바로 이런 크라크의 습성이었다. 아란은 어벤저들을 10명 단위로 나눠 크라크의 배 속에 들 어가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이클롭스로 크라크를 요새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러나 아크는 이 공격을 아란이 생각해 낸 비장의 수라고 생각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요새 후미로 유 인해 처리했다. 요새의 후미‥‥‥바로 지옥문 앞까지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아크는 아란과의 수싸움에서 졌다. 아란과 어벤저는 너무나 당당하게, 한편으로 아크의 도움 까지 받아 가며 지옥문 코앞까지 잠입한 것이다. 그러나 아란과 어벤저가 지옥문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관문이 있었다. 바로 지옥문 앞을 지키고 있 는 샴바라와400여 정예 별동대 원들. 아크가 '현혹'으로 사이클롭스를 무력화시키기 전까지 요새로 날린 크라크의 숫자는 대략 50여 마리. 한 마리에 10 명의 어벤저가들어 있었다면 대략500명이 잠입했다는 계 산이 나온다. 그 정도 숫자가 일시에 기습을 가한다면 정예 별동대원을 뚫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아크 부대의 요새 내부. 아란과 어벤저가 별동대 원과 충돌하면 당연히 1,500에 달 하는 부대 원들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리라. 그리고 아크가 기대했던 대로 아란이 전사하면 그걸로 상황은 종결된다. 도플갱어가 아란과 어벤저로 변신해 얼정거려야 했던 이 유가 그 때문이었다. "모든 게 아란의 계획대로야. 놈은 도플갱어가 자신의 모 습으로 변해서 '현혹'에 빠진 사이클롭스 주변에서 얼정거 리면 큐리오에게 발견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러면 당 연히 내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리고 내가 도플갱 어를 처리할 때 데리고 갈 수 있는 병력은 하나. 성벽을 지키 는 병력을 차출할 수 없으니 당연히 지옥문을 지키는 샴바라 와 정예 별동대원‥‥‥ 젠장!" 아크는 욕설을 터뜨리며 크라크의 시체를 걷어찼다. 그렇다. 아크가 샴바라와 별동대원을 이끌고 도플갱어를 때려죽이러 떠난 직후, 크라크의 배 속에서 기어 나온 아란 과 어벤저는유유히 지옥문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마치 신화속에 나오는 트로이 목마처럼 말이다. "이런 빌어먹을, 그럼 우리는 지금까지 삽질을 한 거란 말 이야""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놈들을쫓아서‥‥‥‥" 보라매가 허둥지둥 병사들에게 소리치려 할 때였다. "놈들은 샴바라와 정예 별동대원만으로 쫓는다." "네?" "지금 우리가 고작 2,000도 안 되는 병력으로 6,000이 넘 는 마족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요새가 있기 때문이야. 요새를 포기하는 순간 아란을 잡기는커녕 마족들의 먹이가 될 수밖 에 얼어. 우리는 최후의 순간까지 요새를 지킬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아란이 세운 계획의 일부이리라. 설사 아란의 움직임을 읽고 아크가 움직여도 400여 명밖 에 동원할 수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선수를 빼앗긴 이상 아 란의 계획대로 병사들의 발을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크라크의 숫자로 보면 어차피 놈들의 숫자도 500명 내외다. 놈이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는 장치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는다면 이기지 못할 숫자는 아니야. 샴바라, 별동대원은 나를 따라 지옥문에 들어간다. 보라매, 이게 아란의 계획이라면 이제부터 마족들의 공격이 더욱 거세 질 것이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서 요새를 지켜라." 더 이상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크는 곧바로 샴바라와 정예 별동대 원을 이끌고 지옥문 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미 아란과 어벤저가 지 옥문으로 들어간 지 5분이 넘게 흘렀다. 하지만 일전에 아크가 지옥문에 들어갔을 때 지옥의 강을 범람시킬 수 있는 장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크가손수 부숴 버린 크리스털 신전에서도 그런 장치 따 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옥의 강을 범람시킬 수 있는 기관이 어딘가 에 숨겨져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얼어. 아란이 그 장치를 찾 지 못해서 혜매고 있기를 바라야겠지. ' 그게 아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조차 지옥문을 들어섰을 때 산산이 부서졌다. "이게 대체?" 지옥문에 들어선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전에 아크가 이곳에 왔을 때는 지옥의 강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지옥의 강은 마치 모세가 기적을 일으킨 홍해처럼 반으로 갈라져 있는 게 아 닌가? 그리고 좌우로 갈라진 지옥의 강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 통 로가 보였다. 반으로 갈라진 지옥의 강을 바라보던 아크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지옥석!" 샹그리아에서 아란이 탈취해 갔다고 알려진 수수께끼의 아티팩트 지옥적. 히스토리 크리스털에서 알아낸 정보에 의 하면 지옥석은 지옥의 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다고 했다. 홍해처럼 갈라진 지옥의 강은 그 지옥석의 힘이 작용한 결과리라. "‥‥‥‥이미 늦은 건가?" "아직 지옥의 강이 범람하지 않았잖아!" 샴바라가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아크의 어깨를 탁 치 며 통로로 뛰어 내려갔다. 아크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전력질주' 로 샴바라의 뒤 를 따르며 중얼거렸다. "그래, 아직‥‥‥ 아직은 아니야!" 그렇게 지옥의 강 사이에 생긴 통로를 따라 뛰어갈 때였 다. 점차 통로가 널어지더니 돌연 놀라운 장면이 눈앞에 나 타났다. 지옥의 강 위에 떠 있던 검은 크리스털 신전! 지옥의 강 사이로 생긴 통로의 끝에는 그 신전을 복제해 놓 은 것처럼 똑같이 생긴 크리스털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전을 가로질러 가자‥‥‥‥ "아란!"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신전 복도를 달려가던 아크가 고함 을 터뜨렸다. 과거 마그라가 있던-위쪽의 크리스털 신전 에서 -곳에서 한 사내가 몸을 돌려세웠다. "‥‥‥‥늦었군." 입술을 추어올리며 중얼거리는 검은 갑옷의 사내, 아란이 었다. 아란의 주위에는 크라크의 배 속에 숨어 있던 티모시 와 어벤저 5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아크와 샴바라, 별동대 원들의 시선이 향한곳은 그 들이 아니었다. "저, 저게 뭐야?" 별동대원들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웅성거렸다. 그제야 아란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물체를 확인한 아크가 움 찔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아란의 뒤에 있는 것은 칠흑처럼 검은 거대한 심장이었다. 크기가 무려 10여 미터나 될 듯한 거대한 심장! 졔물로 바쳐진 것처럼 제단 위에 놓인 심장은 마치 피를 갈구하는 짐승 모양으로 거칠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심장이 뛸 때마다 묘하게 섬뜩한 울림이 크리스털 신전을 가 늘게 진동시켰다. 1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는 아크 일행에게 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진동이었다. 아란은 흐뭇한 시선으로 심장을 바라보다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용케도 내 목적을 알아채고 이곳까지 찾아왔군. 하지만 이미 심장은 내 손에 들어왔다. " "심장?네 목적이 그 심장이라고?"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아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설마 이 심장이 뭔지 모른다는 건가? 그렇다 만‥‥‥ 아하, 내가 지옥의 강을 범람시켜 나가란을 수몰시킬 까 봐 허겁지겁 달려와 발광을 했던 거였군. 큭큭큭, 하긴 그게 너다운 행동이기는 하지. 아무래도 내가 너를 너무 과 대평가한 모양이군. 조금쯤은 바뀌었을 줄 알았는데 결국 너 는 푼돈에 벌벌 떠는 벌레에 불과했던 거야. 뭐, 좋아. 벌레 는 벌레대로 밟아죽이는 맛이 있으니까. " . "가만있어 주니 멋대로 지껄여 대고 있군. 네 말대로 나는 그 살덩어리를 어떻게 끓여 먹어야하는 건지 모른다. 지금 도관심 없어. 하지만 네놈의 목적이 그거라면 얘기가 달라 지지. 네놈이 그 살덩어리를 들고 나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 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는 말을 해 주고 싶군."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혔다. 사실 아크는 방금 전까지 아란의 목적이 지옥의 강을 범람 시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미 아란이 먼저 제 단에 도착한 것으로 상황은 끝이다. . 그러나 아란의 목적이 저 불쾌하게 꼼질거리는 심장이라 면 얘기는 달라진다. 딱 보기에 10여 미터나 되는 심장은 아 이템이라기보다는 구조물에 속하는 물건 같았다. 다시 말해 유저의 가방에 집어넣을 수 없는 물건이라는 뜻 이다. 실제로 가방에 넣을 수 있다면 아란이 지금까지 구경 만 하고 있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만약 아란의 목적이 지옥의 강 범람이라면 목적을 달성하 고 죽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심장을 탈취하는 게 목적이라면 이대로 죽으면 곤란한 것이다. 저 거대한 심장을 들고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놈이 심장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도록 막으면 지옥의 강 이 범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게 아크가 여유를 되찾은 이유였다. 그때 아란이 가소롭다는 듯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군. 하지만 이미 말했을 텐 데?한발 늦었다고. " 동시에 돌연 아란의 등 뒤에서 강렬한 섬광이 일어나기 시 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검은 심장에 강철한 스파크가 번지더 니 돌연 흑 하고 사라졌다. 아크와 샴바라, 별동대원은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 해하지 못했다. 그때 아크의 등 뒤에서 지켜보던 워머가 펄 쩍 뛰며 소리쳤다. "앗! 저, 저건‥‥‥ 내 거잖아? 내 비밀 기지에 있던 양자 물질 송신기야!" 그렇다. 심장 뒤에 가려져 있던 기계 장치는 바로 워머의 발명품인 양자 물질 송신기였다. 아란은 양자 물질 송신기로 거대한 검은 심장을 어디론가 공간 이동 시켜 버린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아란이 양 까물질 송신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아란을 워머의 비밀 기지에 가둬 놓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던 것이다. 훗날 아크가 다시 비밀 기지에 갔을 때 워머의 발명품- 아크에게는 잡동사니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은 몽땅 부서져 있었다. 때문에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아 란이 그때 발명품을 몽땅 부순 이유는 바로 양자 물질 송신 기를 훔쳤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그렇군. 심장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 아란이 요새의 병력 을 무시하고 이곳으로 들어왔던 건 양자 물질 송신기를 가지 고 있었기 때문이야. 젠장. 그렇다면 이제 놈이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단 말이잖아?'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폭탄을 터뜨리듯 소리쳤다. "샴바라, 별동대원, 아란이다! 아란을 막아라!" "늦었다고 했잡아. " 아크와 샴바라가 아란을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나. 아란이 히죽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돌을 제단에 을 려놓았다. 그러자 계단이 반으로 갈라지며 뼈로 만들어진 듯 한 레버가 나타났다. 아란이 레버를 당기며 빙긋 웃었다. "쿡쿡쿡, 이 몸이 주는 선물이다. 파멸. " 아크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지옥의 제단이 작동됐습니다! 지옥의 제단은 지옥의 지맥에 충격을 가해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는 장치입니다. 장치를 작동시켜일단 지옥의 강이 일정량 이상 지상으로 뿜어져 올라가면 마력을 통제할 수 없어 나가란 지역을 완전히 수몰시킬 때 까지 멈출 수 없게 됩니다. "너, 너 이 자식!" "일단 이번에는 이정도만 해 두지." 아란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검으로 계단을 내리쳤 다. 그러자 지옥의 제단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나갔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반으로 갈라진 지옥의 강이 요동치듯 흔들리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서도 파멸의 소리가 들려왔다. "지, 지옥의 강이 살아서 움직인다‥‥‥" 별동대원들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옥의 계단이 발동되자 신전을 둘러싼 지옥의 강에서 기 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옥의 강이 갑자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요동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옥의 강에 떠다니는 인간과 짐 승, 괴물‥‥‥ 갖가지 형상의 투명한 존재들이 경련을 일으키 듯 꿈틀거리며 서로의 몸을 비비대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수백, 수천만에 달하는 영혼들이 번쩍 눈을 떴다. 동시에 오직 절망밖에 찾아볼 수 없는 시커 먼 눈동자에서 피눈물이 쏟아져 나았다. 공포 영화에서나 나을듯한 섬뜩한 장면! 소름 끼치는 절규가 공간을 뒤흔든 건 그다음이었다. 끼야아아아아, 끼야아아아아!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고막을 꿰뚫는 것 같은 비명 소리! "크아아악!" "헉, 뭐야? 이 소리는?" "크윽! 머,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아!" 멍청하게 지옥의 강을 바라보던 별동대 원들이 신음을 흘 리며 일제히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귀를 막아도 비명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지옥의 강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은 고막이 아니라 뇌를 울 려 대고 있었다. 덕분에 아크와 샴바라, 별동대원, 심지어 지옥의 강을 폭주시킨 장본인인 아란과 어벤저들조차 뇌를 휘저어 놓는 비명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크리스털 신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그것' 이 시작되었다. 수백, 수천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혼의 입에서 터 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비명이 완벽하게 하나로 중첩 되는 순간, 엄청난 충격파로 돌변해 공간을 휩쓸었다. 콰콰콰콰, 찌쩌쩌펑. 쩌쩌쩌정!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에 바닥을 뒹굴던 병사들이 사 방으로 튕겨 나갔다. 뒤이어 충격파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따라 크리스털 신 전의 기둥과 바닥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번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옥의 강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표면이 푸딩처럼 부르르 흔들리는 정도였 다. 그러나비명 소리가 계속됨에 따라 점차 흔들림이 커지 더니. 이내 해일을 일으키는것처럼 출렁거렸다. 그러고크 리스틸 신전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 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시, 신전이 떠오른다!" 그때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별동대 원이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크리스털 신전을 뒤덮고 출렁이는 지옥의 강 때문에 감각이 혼란스러워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틀림 없이 신전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지옥의 강 중심에서 마치 거대한 뗏 목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며 떠올랐다. "지옥의 강이‥‥‥ 범람하고 있는 거야‥‥‥‥"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면으로 떠오르는 크리스털 신전에서 둘러보니 모든 상 황이 명확해졌다. . 급류를 일으키는 지옥의 강은 마치 수문을 열어 놓은 댐 하류의 호수처럼 엄청난 기세로 양을 불려 가고 있었다. 이 속도라면 순식간에 지옥을 가득 채우게 되리라. 그리고 지옥을 가득 채운 지옥의 강이 향할 곳은 하나, 유 일한 출구인 지옥문이었다. 아니, 지옥문 너머, 비밀 던전 너머. 시르바나와 나가란이 되리라. 진정한 의미의 파멸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다 끝났어‥‥‥‥" 아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지옥의 계단을 바라보았다. 지옥의 강을 조율할 수 있는 고대의 제어장치, 지옥의 제 단‥‥‥‥ 숱한 노력에도불구하고 제단은 발동되어 버렸다. 그리고 부서져 버렸다. 그렇다. 그게 중요하다. 발동된 상태로 부서져 버렸다는 것. 이제 아크가 할 수 있 는 일은 나가란이 1등급 공업폐수나 다름없는 지옥의 강에 잠기는 걸 구경하는 게 전부라는 뜻이다. '가만?' 그때였다. 갑자기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던 아크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뜩였다. 동시에 아크는 빠르게 시선을 돌려 주위를 훑었다. 균열이 번져 있는 신전 여기저기에서 충격파에 휩쓸려 날 아갔던 별동대 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충격파가 데미지를 주 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지옥의 강이 범람하는 장면을 목격 하고 넋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찾는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야?아, 저기 있다!' 아크의 시선이 멈춘 곳은 신전 기둥 옆에 엎드려 움찔거리 는 살덩이였다. 아크는 곧바로 기둥으로 달려가 살덩이를 흔 들어 대며 소리쳤다. "워머 !" "으악, 소리치지 마! 그렇지 않아도 고막이 터질 것 같단 말이야!" 살덩이‥‥‥ 워머가 발작하듯 소리치며 발딱 일어났다. "길게 얘기할 시간 없어요. 아까 지옥의 제단 봤죠?" "지옥의 제단? 저거 말이냐?" 워머가 반으로 갈라져 있는 지옥의 제단을 바라보았다. 아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물었다. "수리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라는 게 바로 이거였다. ' 계단이 발동해 버렸지만 아직 시르바나가 수몰된 것은 아 니다. 이곳은 비밀 던전 최하층. 지옥의 강이 폭주했다고 하 지만 밖으로 나갈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지 않은가? 만약 그 전에 다시 제단의 봉인을 발동시킬 수 있다면? 지옥의 강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바로 지옥의 제단이 파괴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크도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많 은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잠시 머리가 굳어 버렸 던 모양이다. 망가진 물건을수리하면된다. 이렇게 당연한 발상을 못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아크의 앞에 는훌륭한수리공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옥의 제단을 바라보던 워머는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저 제단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지옥의 강을 제 어할수 있는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아." "네?그럼?" "하지만‥‥‥‥" 그때 워머가 스패너를 꺼내 들고 씨익 웃었다. "아란 녀석이 부순 계단은 거대한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스위치에 불과해. 적어도 저 제단은 메커니즘이고 뭐고 그냥 기계 장치에 불과하단 말이지. 그런 건 끊어진 회로를 잇고 망가진 톱니바귀를 교체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고칠 수 있어. 뭐, 그것도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거지만. " '됐다.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어!' 아크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겠어요?" "그건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알았다. 그런데 확실히 제단을 수리하면 지옥의 강을 멍 출수 있는거냐?" 워머의 질문에 아크는 지옥의 계단이 발동할 때 나왔던 경 고 메시지를 뗘을렸다. 사실 아크는 지옥의 계단이 발동되면 모든 게 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경고 메시지에는 '지옥의 강이 지상으로 일정량 이상 분출돼 버리면 마력을 통제할수 없어 나가란이 완전히 수물될 때까지 멈출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돌려 말하면 지옥의 강이 지상에 어느 정도 분출될 때까지 는 마력을 통제해 멈출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 그 경고 메시지는 지옥의 강을 멈출 수 있는 방법 을 알려 준 것이다. "멈출 수 있어요. 멈출 거예요!"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마음에 드는군. 좋아, 실력 발휘를 해 보지. " 히죽 웃으며 중얼거린 워머가 제단을 향해 뛰어갔다. 이제 문제는 지옥의 강이 지상으로 분출되기 전에 워머가 제단을 수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이제 워머 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아크가 검을 뽑아들고 빙글몸을 돌렸다. .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설사 워머가 시간 내에 계단을 수리한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는 지옥의 강 범람을 막을수 없 다. 지옥의 제단은 어디까지나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 실제 로 지옥의 강을 제어할 수 있는 마력을 지닌 아티팩트는 바 로 지옥석! 아란의 손에 들려 있는 검은 기운의 돌이었다. 그사이 아란은 충격파에 흘어졌딘 어벤저들을 심장이 있던 자리에 모두 모아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제단으로 뛰어가는 . 워머를 힐끗거리더니 피식 웃으며 지옥석을들어 올렸다. "무슨 생각인지 대강 짐작이 가는군. 이게 탐나나?"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탐나는군. 네 목과 세트로 받아 내야겠다. " "일전에 확인해 보니 그럴 만한 실력은못 되는 것 같던데?" "다시 확인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란이 탐스러운 먹잇감을 바라보는 짐승처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다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 몸은 이제 너 따위와 놀 만큼 한가하지가 않아서 말 이 야." "뭐?" "아크, 저건‥‥‥ 마력 충전기다!" 그때 제단 쪽에서 워머의 고함이 들려왔다. 순간 아크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여 아란의 뒤에서 움직이 는 쥬르에게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쥬르가 들고 있는 물건이었다. 은빛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통물체. 아크 는 일전에 워머의 비밀 기지에서 그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아크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마력 충전기 종류 : 3급 발명품 설계, 제작자 : 워머 마력을 담아 보관할 수 있는 일종의 건전지입니다. 한번에 충전할수 있는 마력은 5,000MG까지입니다. 담겨진 MG를 모두 소비해도 다시 충전해 사용할수 있습니다. 이 마력 충전기는 워머가 제작한 모든 발명품의 표준 규격에 맞게 만들어졌습니다. "젠장, 저것도 내 거장아. 이런 도둑놈의 쌕히들!" 워머가 이를 갈아붙이며 방방 뛰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그 충전기의 주인이 누군지 따위는 중 요하지 않았다. 'MG건전지! 설마‥‥‥?' 마력 충전기의 정보를 기억해 낸 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으 로 물들었다. 사실 아크가 계단만 수리하면 어떻게든 지옥의 강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아란 일당이 더 이상 양 자 물질 송신기를 사용할 수 없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지만 양자 물질 송신기는 한 번 사용하면 충전해 놓은 MG를 몽땅 소모한다. 때문에 이미 심장을 공간 이동 시킨 시점에서 양자물절 송신기는고철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꽤 버린 셈이다. 이제 아크가 나름대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 그러나 아란에게 마력 충전기가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 놀란 표정을 짓지?" 아란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말했을 텐데?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심장을 찾고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는 거라고. 그렇다면 당연히 심장과 우 리. 양자 물질 송신기를 두 번 사용할 수 있는 준비를 해 오 지 않았겠나? 설마 내가 지옥의 강을 범람시키고 너와 같이 죽어 줄 거라고 기대한 건가? 내 목숨을 너무 싸구려로 생각 하는군." 아란미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쥬르가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양자 물질 송신기에 충전기를 끼워 넣었다. 동시에 양자 물질 송신기의 원부분엔 달려 있는 안데나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란이 지옥석을 가지고 공간 이동을 해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다급해진 마크가 '전력질주'로 아란에게 달려가 며 소리쳤다. "기다려. 이 자식, 도망치는 거냐!" "싸움에서 진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지." 아란이 가소롭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티모시가 아란의 팔짱을 끼며 염장을 질렀다. "안녕. 지옥의 강에서 해수욕이나 즐기라고!" 점차 강렬해지던 스파크가 아란과.어벤저들을 휘감은 건 그때였다. 동시에 아란과 어벤저들은 한 덩어리의 빛으로 변 해 안테나에 빨려 들어갔다.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아크의 눈동 자가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설마 아란과 어벤저가 이런 식으로 도망가 버릴 줄은 상상 도 못 했다. 그리고 양자로 변해 버린 이상 이제 놈들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이다. 지이이이이. 콰콰콰콰콰! 빙글빙글 회전하던 안데나가 천장을 향해 500명분의 광션 을 뿜어냈다. .나가란의파멸에 '확정'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아니, 찍히려 할 때였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뭐, 뭐야?" 털썩 주저앉아서 넋 놓고 지켜보던 아크의 눈동자에 의혹 이 떠올랐다. 아란과 어벤저들의 양자 변환작업이 완료됐다. . 그리고 안데나를 통해 어딘가로 공간 이동이 시작되었다. 문제가 없다면 이 시점에서 모든상황이 끝났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안데나에서 발사된 광선이 천장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잠시, 약간 떠을 랐던 광선은 주저앉듯 다시 안테나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엄청난 섬광과 함께 양자 물질 송신기에서 사방으 로 스파크가 뻗어 나갔다. 바닥과 벽, 여기저기에 부딪친 스 파크들은 곧 아란과 어벤저들로 변해 버렸다. "대체 이게 무슨-?" "크윽, 이게 대체?" 지켜보던 아크와 바닥에 내동힘이쳐진 아란이 동시에 당 혹성을터뜨렸다. 그런 반응은 별동대나 어벤저, 심지어 양 자 물질 송신기의 제작자인 워머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하나 도 없었다. 그때 근처에 내동댕이쳐졌던 쥬르가 허둥지둥 양 자 물질 송신기를 살펴보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상합니다. 방금 전까지 잡히던 수신기의 주파수가 잡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야?방금 전에 심장은 문제없이 이동했잖아?" "저도 잘‥‥‥ 고장 난 건지 뭔지 모르긴지만 하여간 주파 수가 잡히지 않습니다. " "뭐야? 고장이라니? 이 몸이 만든 발명품이 그렇게 쉽게 고장 날 리가 없잖아!" 쥬르의 말에 워머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펄펄 뛰며 소리 쳤다. 대체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이 되지 안는 사람이다. 어쨌든 양자 물질 송신기는 무조건 원하는 곳으로 공간 이 동을 시켜 주는 만능 기계가 아니었다. 원하는 장소에 수신기를 설치해 놓고 주파수를 맞춰야 공 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란이 맞춰 놓았던 수신기 의 주파수가 잡히지 않아 공간 이동이 취소돼 버린 것이다. 미리 맞춰 봤던 수신기의 주파수가 어째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크에게 그 이유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안았다. 중요한 것은 아란이 공간 이동에 실패했다는 것! "마령 소환, 큐리오!가라!" "오케이, 암혹돌진!" 아크의 손끝에서 소환된 큐리오가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 다. 그리고 단숨에 수십 미터를 날아 당혹스러운 눈길로 쥬 르를 바라보던 아란의 뒤통수를 들이받았다. 빠각, 하는 해골 갈라지는 소리와 함꼐 아란의 눈가에 검 은안개가뒤덮였다. 불의의 일격에 당해 '암혹' 상태에 빠 져 버린 것이다. "크윽! 이, 이 자식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란이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장님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검에 맞을 만큼 만만 한 큐리오가 아니었다. "흥, 받아랏!콧구멍 파기!" 큐리오는 몸을숙여 검을 피하며 수직으로 날아을랐다. 그리고 슈퍼맨처럼 양팔을 뼘은 채로 아란의 콧구멍에 쑤 셔 박아 버렸다. 장님이 돼 버린 상황에서 상상하지도 못했 던 공격을 받은 아란은 그대로 붕 떠올랐다가 뒤통수부터 바 닥에 처박혔다. "케케케. 감히 날 인펙터의 먹이로 던져 줬던 벌이다." 큐리오가 손에 흥건하게 묻어 있는 콧물을 툭툭 털어 내며 히죽거렸다. 시건방 떨던 아란이 고작 박쥐 한 마리에게 당 해 꼴사납게 바닥에 처박히는 장면은 그야말로 10년 묵은 체 중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 드는 장관이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그런 장관을 즐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란이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에 왼손에 들려 있던 지옥석이 공중으로 튕겨져 올라갔기 때문이다. "전력질주!" '마, 막아라!" 지옥석에 시선을 고정시킨 아크가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그러자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어벤저들이 벌떡 일어나 아 크에게 달려들었다. 아란 근처에 있던 어벤저 몇 명은 몸으 로 벽을 만들고, 몇 명은 몸을 날리며 태클을 시도했다. ."다크 댄싱!" 아크는 '다크 댄싱'을 발동시켜 육탄돌격을 해 오는 어벤 저들을 피해 냈다. 그리고 육체의 벽을 만든 어벤저들의 무 릎과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떨어지는 지옥석을‥‥‥‥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관롱하는 화살!" 그때 멀리서 지켜보던 티모시가 번뜩이는 손놀림으로 화 살을 날렸다. 그러나 화살의 목표는 아크가 아니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지옥석을 후려쳤 다. 덕분에 거의 손아귀에 쥐어졌던 지옥석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크윽, 이런 젠장! 큐리오!" 아크의 명령에 규리오가 빠르게 지옥석에 따라붙었다. 그러자 티모시가 마치 춤을 추듯이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연이어 화살을 날려 댔다. "흥, 감히 박쥐 새끼 따위가! 마탄의 사수 2장, 악마 쫓는화살!" "으힉! 저, 저 다크엘프 계집이 어디다 화살을 쏘는 거야?" 번뜩이는 화살이 엉덩이를 향해 날아오자 큐리오가 비명 을 터뜨렸다. 그리고 날개를 파닥이며 황급히 몸을 비틀었지 만 '악마 쫓는 화살 은 한 번 '시위를 떠나면 목표물에 적중 괼 때까지 따라붙는 화살이었다. 큐리오가 어떻게 움직이든 화살은 유도미사일처럼 따라 움직이며 기필코 큐리오의 엉덩이에 박히겠다는 집념을 보 였다. 그리고 결국 큐리오의 엉덩이에 박히기 직전! 슈슈슈슈, 챙강! 날카로운 금속음파함께 화살이 핑걱져 날아갔다. 동시에 화살을 날린 티 모시에게도 번뜩이는 쇠붙이가 날 아왔다. 티모시가 재주를 넘어 피한 뒤에 비도가 날아온 곳 을 쏘아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저 변태 자식이‥‥‥.1" "깜둥이 계집, 멋대로 설치지 말라고." 샴바라가 손가락 사이에 네 자루의 비도를 낀 손을 들 어 을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샴바라가 티모시를 견제해 준 덕분에 큐리오는 지옥석에 따라붙어와락움켜쥐었다. 아니, 움켜쥐려는 찰나였다. "우헤헤헤헤헤, 이건 이 몸께서 챙겨 주마!" "블라스트 오브 윈드 blast of wind!" 뒤에서 눈치를 살피던 쥬르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 다. 순간 한 줄기 돌풍이 휘몰아쳐 큐리오를 휘감아 수 미터 밖으로 날려 버렸다. "크윽, 저 망할 마법사 자식이!"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은 큐리오가 잡아먹을 듯이 쥬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류르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쥬르만이 아니었다. 아크와 샴바라를 포함한 별동대원 400여 명. 티모시와쥬르를 포함한 어벤저 500여 명. 쌍코피를 질질 홀려 대며 뻗어 있는 아란을 제외한 나머지 900여 명의 눈동자가 집중된.곳은‥‥‥ 툭, 툭, 툭, 데굴데굴. 지옥석이 크리스털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나가란의 운명이 걸려 있는 지옥석! 이제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지옥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그 사이에도 지옥의 강은 더욱 불어나며 거칠게 요동쳤다. 지옥의 외곽에 있는 벽면조차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쩍쩍 균열이 번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주변에서 요동치 는 지옥의 강따위에 시선을 주는 병사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듯이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오직 바 닥에 떨어진 지옥석만을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지옥석이 데굴데굴 굴러가다 딱 멈추자 마 치 신호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별동대 원과 어벤저들이 피성 을 터뜨린며 일제히 몸을 날렸다. . "우와 아아아아!" "지옥석을 잡아라!" "놈들에게 지옥석을 빼앗기면 안 된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900명의 병사들이 주먹만 한 지옥석 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있던 어벤처 1명이 몸으로 지옥석을 덮으며 소리쳤다. "잡았다! 지옥석을‥‥‥ 꾸엑!" 그러나 어벤저의 환호성은 곧바로 비명으로 변해 버렸다. 뒤따라 몸을 날린 수십 명의 병사들이 그의 몸을 깔아뭉갰 기 때문이다. 덕분에 차바퀴에 깔린 개구리처럼 되어 버린 어벤저가 비명을 지르며 지옥석을 놓쳐 버렸다. 그러자 기회를노리던 병사가 몸을 날렸고. 연쇄적으로 다 른 병사들도 몸을 날리기를 반복‥‥‥ 겹겹이 쌓인900명의 병사들은 작은 산이 되어 버렸다. "크악' 비, 비켜라!" '지옥석, 지옥석은 어디 있는 거냐?" "빌어먹을, 어떤 놈이 내 얼굴을 밟아 대는 거야?" "꺄악. 어떤 놈이 내 엉덩이를 만지는 거야?" 한 덩이가 된 살덩어리(?)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 왔다. 뒤죽박죽으로 얽혀 자기 얼굴을 밟고 있는 발이 아군 인지 적군인지, 자기가 밝고 있는 얼굴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병사들의 머릿속에 떠올라 있는 것은오직 하나, 지옥석! 병사들은 한 덩이가 되어 밟고 발히며 지옥석을 찾아 우글 거렸다. '지옥석, 지옥석을‥‥‥ 찾아야 해‥' 아크 역시 거대한 육체의 산(?)을 파고 들어가며 지옥석 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사방이 발에 팔에 몸통에 둘러싸여 어디가 바닥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쌕쌕쌕, 쌕쌕쌕쌕! 그때 갑자기 허리 어름에서 라둔이 혀를 발름거리며 튕겨 져 나갔다. 그리고 겹겹이 쌓여 있는 병사들 사이를 비집으 며 어디론가 기어갔다. '그래, 라둔의 '스토킹'! 라둔이 지옥석을찾은 거야.' 아크는 전력을 다해 사람을 헤치며 라둔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기를 잠시, 곧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는 병사들 사이에 박혀 있는 검은 돌, 지옥석이 보였다. 아크와 거리는 고작 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에게 짓눌린 상황에서는 300미터보다 멀게 느껴졌다. 다행히 라둔 역시 지옥석을 확인했는지 그곳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수백 명의 병사들이 뒤엉킨 상태라 아무리 라둔이 라도 마음먹은 대로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라둔은 뱀 특유의 유연함을 션보이며 조금씩 지옥 석을향해 접근해 갔다. '잘한다. 라둔. 조금만 뎌‥‥‥조금만더‥‥‥.!' 그렇게 조금씩 접근하던 라둔이 거의 지옥석에 다다랐을 때였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콰쾅1 돌연 굉음과 함께 크리스털 신전이 통째로 딜흔들렸다. 그 충격에 한 덩어리가 되었던 병사들이 사방으로 정걱져 날아갔다. 그리고 와중에 거의 라둔의 입에 들어왔던 지옥석 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 이런 빌어먹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아크가 주먹으로 바닥을 후려치 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지옥석을 찾아 고개를 들 어 올리다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이런 반응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900명 병사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번져 있었다.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옥의 강을 막고 있던 유일한 방벽 지옥문이 무 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옥의 강은 그 자체가 강력한 저주의 힘을 가지고 있어 이대로 계속 수량이 늘어나면 지옥문도 얼마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지옥문이 갑자기 붕괴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소용 돌이에 휘말려 떠오르던 크리스털 신전이 지옥문과충돌했 기 때문이다. 지옥문이 부서지자 주변의 벽도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 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일한 방벽이 사라지면 더 이상 지 옥의 강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옥 밑바닥에서 을라온 지옥의 강은 소용돌이를 일으키 며 지옥문 밖으로 밀려 나가리라. 이제 나가란의 파멸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ACT3 범람, 지옥의강(II) 콰콰콰콰, 콰콰콰콰! 지옥문과 주변의 벽에서 집채만한 바위가 지옥의 강으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엄청난 물보라와 함께 솟아올랐떤 물이 신전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물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지옥의 강의 정체는 저주받은 악령의 집결체였다. 물방울 하나하나가 악령의 저주 그자체, 물을 뒤집어 쓰자 감전된 것처럼 저릿한통증이 전해졌다. -강렬한 지옥의 강과 접촉했습니다. <<지옥의 강과 접촉하면 1초당 100의 생명력을 흡수당합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크의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제야 아크는 자신이 중요한 뭔가를 잊고 있었음을깨달았다. '연합원들!' 그렇다.60층의 요새에서 마족들과 싸우고 있는 연합원들!지옥의 강은 염산이나 다름없는 맹독이다. 이대로 지옥의 강이 60층으로 쏟아져 나가면 지옥문 바로앞에 모여 있는 연합원들은 그 순간 몽땅 지옥의 강에 녹아버리리라. 게다가 비밀 던전에 있던 아군 가운데 유저는 모두 별동대로 조직해 데리고 들어왔다. 다시 말해 요새를 지키는 1,500여 명의 연합원은 모두가동방 민족, 묘족, 늑대족, 너구리족‥‥‥‥ 이들은다크에덴의주축이자 목숨이 하나뿐인 NPC 연합원들이었다. 그리고NPC 연함원은 다크에덴의 주축! '하지만 이제 와서 탈출 명령을 내려 봐야‥‥‥‥' 이제 지옥문의 붕괴는 시간문제다. 그리고 지옥문이 붕괴되면 지옥의 강은 단숨에 60층을 휩쓸게 되리라. 연합원들이 아무리 빨리 도망가 봐야 그 전에60층을 벗어날수는 없었다. ,아니 60층을 벗어나도 지옥의 강이 차오르는 속도보다빨리 비밀 던전을 탈출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아직 요새 주변에는 수천의 마족들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그때 마크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가능할지 마늘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다!' 곧바로 생각을 정리한 마크는 요새 지휘관 보라매에게 첫속말을보냈다. -보라매, 긴급 상황이다! -아크 님, 방금 전의 그 충격은?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어. 지금 당장 요새를 포기하고퇴각해라! -퇴각?퇴각이라니요?대체 어디로 말입니까? 밑도 끝도 없는 아크의 명령에 보라매가 황당한 목소리로되물었다. -지하 밀실이다. -지하 밀실? 혹시 우리가 숨어 있을 때 만들어 놨던 곳말입니까? -그래, 당장 전 병력을 지하 밀실로 퇴각시켜라. 그리고입구를 폭파시켜 완전히 봉쇄해라. 물 한 방을 들어오지 뭇하도록 말이야,·무슨 말인지 알겠나?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최선책이었다. 이전에 아크의 명령으로 만들어 봤던 60층의 지하 밀실. 그곳은 혹시 모를 아란의 탐색에 대비해 마치 호리병 모양처럼 암벽에 길고 좁은 통로를 뚫어 넓은 지하 석실과 연결시켜 놓은 구조였다. 그 통로의 길이가 대략 20미터. 다시 말해 통로를 무너뜨 리면 석실은 20미터의 암벽에 둘러싸이게 되는 것이다. 일단 지옥의 강 해일을 피할 수는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 역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60층이 지옥의 강에 잠긴 상태로 유지되면 언젠가는 석실 도잠기게 되리라. 아니. 입구가그렇게 막히면 그 전에 산 소 부족으로 질식사하게 되리라. 그러나 어차피 지옥의 강을 다시 봉인하지 못하면 나가란 전체가 사라진다. 그때는 이미 연합원을 걱정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입구를 폭파시키라니 대체 그게 무슨‥‥‥‥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했잖아! -‥‥‥‥알겠습니다. 아크의 다급한 어조에 보라매가 한숨처럼 대답하며 통신 을 끊었다. 이제 연합원들의 생명은 보라매가 얼마나 빨리 대처하느냐에 달렸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지옥석을 되찾고 지옥의 강을 봉 인하는 것!' 그러나 지옥석 찾기는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돌입해 있었다. 지옥문과 충돌한 탓에 크러스틸 신전은 칵테일 잔을 흔들 어 놓은 것처럼 모든 게 뒤죽박죽 뒤엉켜 버렸다. 한데 뭉쳐 있던 900명의 병사들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그 와중에 주먹만 한 크기의 지옥석이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조 차 할 수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크리스털 신전이 여기저기 부서지며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크리스털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게다가 신전의 크리스털 역시 지옥석처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크리스털 더미 속에서 지옥석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크에게는그리 나쁜 상황이라고 할수 없었다. "라둔, 지옥석을 탐색해라!" 색쌕쌕, 쌕쌕쌕쌕! 허리 어름에서 뛰어내린 라둔이 눈알을 반짝이며 주변을 훑었다. 그렇게 잠시, 돌연 혀를 내밀고 몸을 빳빳하게 세우 며 한쪽을 가리켰다. -라둔이 '지정 목표 : 지옥석' 탐색 모드로 전환했습니다. <<라둔이 '지정 목표 : 지옥석'을 3시 방향 200미터 지점에서 감지했습니다. "좋아, 가자!" 아크는 곧바로 라둔이 가리킨 크리스털 더미를 향해 뛰어 갔다. 좌콰콰쾅, 콰콰콰쾅! 그러나 채 몇 걸음도 옮기기 전에 또다시 굉음과 함께 신 전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그리고 갑자기 바닥이 기울어지는 가 싶더니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지옥문이 부서졌다!' 그렇다. 결국 지옥문이 덕 이상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터 져 나간 것이다. 지옥문이 부서지자 한없이 높아지던 지옥의 강이 단숨에 뿜어져 나갔다. 폭풍처럼 소용돌이치며 비밀 던전으로 밀려 나가는 지옥 의 강! 크리스털 신전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지만, 격류에 휘말려 지옥문 밖으로 튕겨 나가자 당장이라도 뒤집어질 듯이 출렁거렸다. 덕분에 크리스털 더미로 몰려들던 병사들은 모두 한쪽으 로 와르르 넘어져 버렸다. 대부분은 균열이 번진 바닥이나 기둥을 잡고 버렸지만. 재수 없는 병사들은 그대로 신전 밖 으로 튕겨 나가 지옥의 강에 삼켜져 버렸다. "우아아아아!" "헉! 사, 살려 줘!" 지옥의 강에 떨어진 병사 주위로 악령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몇십 초 만에 병사는 피라니아 떼의 습격을 받은 것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지옥의 강이 얼마나 무시무시 한유독성 페기물인지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저건‥‥‥?" 그때 검을 바닥에 꽃아 중심을 잡고 있던 아크의 눈에 뭔 가가 보였다. 지옥문 바로 잎게 세워진 요새에 모여 있던 수 천의 마족들이었다. 아크의 명령에 연합원들이 지하 밀실로 대피하자 마족들 은 곧바로 요새를 함락시켰다. 그러나 채 승리의 기쁨을 느 낄 새도 없이 지옥문이 터지며 지옥의 강이 해일처럼 요새로 밀어닥친 것이다. 덕분에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진 마족들은 괴성을 지르며 도망쳤다. -키리, 카람, 크라마하! -노혼, 바기라마. 크라라! 그러나 이곳은 지하60층, 튀어야 벼룩이었다. 쿠콰콰콰콰, 콰콰콰콰콰! 지옥의 강은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단숨에 마족들을 뒤덮었 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마족들의 운명은 처참했다. 창칼조차 제대로 박히지 않던 두터운 가죽도. 수천에 달하 는 생명력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족들은 소용돌이에 휘말리기가 무섭게 분쇄기 속에 던 져진 고깃덩어리처럼 갈가리 찢어졌다. 수천 마리의 마족이 단숨에 갈려 버리자 지옥의 강에 떠다니는 투명한 형체들이 시뻘겋게 물들어 더욱 섬뜩한 형상으로 변해 버렸다. "저기다! 지옥석이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넋 놓고 핏빛으로 물든 지옥의 강을 바라보던 아크가 움찔 하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전의 충격으로 크리스털 더미가 무너지며 굴러 나온 지옥석이 눈에 들어왔다. 지윽석 역시 병사들처럼 제단이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옥석이 근처에서 굴러다니자 별동대원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아직 신전은 30도가 넘는 경사로 기울어펴 있는 상 태었다. 거기에 지옥의 강에 떠밀리다가 계곡과 충돌하자 또 다시 크게 요동치며 흔들렸다. ' 덕분에 지옥석으로 달려들던 별동대원들은 중심을 잃고 와르르 넘어졌다. 그중 몇몇은 바닥을 구르다가 어벤저들에 게 떠밀려 그대로 지옥의 강에 떨어져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여지없이 갈려져 다진 고기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별동대원과 어벤저, 모두 쉽게 옴직일 수 없게 되었다. 지옥석을 사이에 두고 두 집단이 노려만 보 는 기묘한 대치 상황‥‥‥ 그러나 그런 대치 상황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지옥의 강의 움직임이 갑자기 일변했기 때문이다. 단숨에 60층을 수몰시켜 버린 지옥의 강은 잠시 잠잠해지 는가 싶더니 돌연 신전을 중심으로 맹렬한 회오리를 일으키 며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마치 드릴처럼 천장에 구멍을 내 기 시작한 것이다. 쿠콰콰자콰자! 격렬한 굉음과함께 천장이 모래처럼 부서적 내켰다. 마치 지옥의 악마가 손톱으로 땅을 파헤치며 밖으로 기어 올라가려는 듯한 장면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아크 의 입에서 신음이 흗러나왔다. . '맙소사, 이런 식이라면‥‥!' 아크는 당연히 지옥의 강이 60층에서 59층, 59층에서 58 층‥‥‥ 이럴게 순차적으로 비밀 던전을 채워 가며 밖으로 나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럴 경우. 아무리 지옥의 강이 불어나는 속도가 빨라도 밖으로 분출될 때까지는 최소한 몇 시간이 걸리리라. 그러나 이런 식으로 천장을 뚫고 솟구친다면 채 1시간도 걸리지 않 을 게 분명했다. '시간이 없다!' 더 이상느긋하게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 지옥의 강이 신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를 일 으킨 덕분에 기울어져 있던 바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론아직 불규칙적으로 요동치고, 지옥의 강에 의해 부서 진 천장의 바위가 여기저기 떨어지는 상황이었지만 30도나 경사져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턱대고쫓아다녀서는 안 된다. 스크럼Scrum을 짜라!" 순간 아크가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전사들은 돌진해서 어벤저들의 움직임을 봉쇄한다! 발이 빠른 궁수와 사냥꾼 들은 지옥석을 탈취하라. 마법사들은 후 방에서 어벤저들에게 상태 이상 마법을 걸어라!"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이런 상황에서 제각각 지옥 석을 쫓아다녀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그런 식의 난전이 벌어지면 별동대가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별동대는 어벤저보다 숫자가 100명가량 적다. 또한 별동대는 지옥석을 손에 넣더라도 제단 수리가 끝날 때까지 계속들고 있을수밖에 없다. 가방에 넣었다가죽기라 도 하면 지옥석을 손에 넣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어벤저는 어차피 이곳에서 지옥석을 써야 할 이유가 없으니 가방에 넣은 뒤에 죽어도 그만이다. 모든 면에서 별동대에게 불리한싸움이었다. '하지만 아란이나 어벤저들은 아직 양자 물질 송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반면 별동대원들의 목적은 명확하다. 지옥석을손에 넣을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금이다. 지금승부를 봐야 해!' 이게 잠깐의 대치 상황중에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아크의 명령에 별동대원들이 재빨리 스크럼을 짰다. "합, 합, 합, 합!" "GO!" 그리고 신호가 떨어지자 일제히 지옥석을 향해 튀어나갔 다. 별동대원들이 움직이자 동시에 사방에서 어벤저들이 몰 려들었다. "선두의 전사들은 좌우로 갈라져 놈들을 막고 길을 확보 하라" 아크의 지시에 따라 전사들이 방패를 들고 몰려오는 어벤 저들을 막아섰다. 곧이어 수백 명의 전사들이 충돌하며 육중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전사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에 뒤쪽의 궁 수와 사냥꾼들이 지옥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건 현실에서 벌어지는 축구 시합과는 달랐다. "젠장, 막아라!" 그때 반대편에서 수십 발의 마법이 날아와 폭발했다. 동시에 직경 100여 미터 공간이 시커먼 폭연에 휩싸였다. '블랙아웃'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습니다. *마법적인 연막으로 인해 직경 100미터 내의 생명체는 시야가 제한됩니다. *어떤 종류의 마법이나 스킬로도 제한된 시야를 넓힐 수 없습니다. *밤이나 던전에서만 효과를 발휘합니다. 시커멓게 변해 버린 병사들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을랐 다. 별동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여 지옥석을 탈취하려 하자 어 벤저 마법사들이 연막탄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 '블랙아 웃' 마법을 난사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지옥석이 떨어져 있는 장소는 자욱한 연막에 횝싸 여 한 치 앞도 분간할수 없게 되었다. 그 속으로 수백 명의 유저들이 몰려 들어가자 아크의 의도 와는 달리 또다시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잡았다, 지옥석!" '흥. 어림없다. 돌진"! "크윽. 이 자식이‥‥‥ 앗, 내 지옥석!" "크크크, 내가 잡았다!" "웃기지 마라. 영웅의 일격!" 자욱한 연막속에서 고함 소리가 빈발쳤다. 누군가가 지옥석을 잡으면 주변에서 수십 발의 스킬이 날 아들었다. 그리고 지옥석을 놓쳐 버리면 다시 그곳에 병사들 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고, 누군가 차지하면 다시 스킬 난사! 그러는 사이에 지옥석은 몇 번이나 별동대와 어벤저의 손 을왕복했다. '‥‥‥‥밀린다‥' 연막 밖에서 상황을 엿보던 아크의 눈가에 초조함이 번졌 다. 400 대 500. 숫자상으로는 별동대가 밀리지만, 사실 아 크는 정면으로 붙어도 어벤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리라 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레벨 때문이다. 아크는 이미 59층에서 아란 부대를 상대할 때 '고양이의 눈'으로 어벤저들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그때 확인했던 놈들의 레벨은 330~350수준이었다. 반면 연합군에서 뽑아 온 특공대와 다크에덴의 연합원으 로 구성된 별동대의 레벨은 평균 350 이상. 그 정도라면 100 명의 병력 차이를 어느 정도 메울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의외로 별동대원과 1대1로 붙는 어벤저도 크게 밀리는 기 색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나 역시 파비온 협곡에서 아란을 만났을 때 놈의 레벨은 고작 400밖에 안 됐는데도 막상 전투를 할 때는 밀렸어. 아란처럼 어벤저들도 뭔가 수상한 방법으로 능력치를 올리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 이유나 추리할 때가 아니었다. 문제는 당장 별동대원들이 죽어 나간다는 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단 한 번 밀리면 끝장이다!' "라둔, 스토킹으로 지옥석을 찾아 확보해라!"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곧바로 꼬리를 흔들어 대며 연막으로 기어 들어갔 다. 그리고 아크 역시 라둔의 뒤를 따르듯 난장판이 되어 버 린 연막속으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마령 소환, 퓨리탈! 갑주화!" 딱딱딱, 딱딱딱딱! 그러자 아크의 뒤쪽 공간이 쩍 갈라지며 퓨리탈이 소환되 었다. 갑주화스킬과함께 소환된 퓨리탈은 나타나자마자 뼈 다귀가 분해되며 아크의 몸을 뒤덮었다. 먼저 갈비뼈가좌우로 갈라지며 상체를 덮었고, 해골은 투 구처럼 머리에 씌워졌다. 팔과 다리의 뼈는 기괴하게 비틀어 지며 아크의 장갑이나 장화에 달라붙었다. 갑주화를 사용했습니다. *공격력이 17~22만큼 상승했습니다. *방어력이 98만큼 상승했습니다. *생명력이 1,866만큼 상승했습니다. <<상승한 1,866의 생명력이 소모되면 갑주화가 자동 해제됩니다.>> "갈고리 폭사!" 스킬을 발동시키자 아크의 몸에서 4개의 갈고리가 뼘어 나갔다. 갈고리로 기둥을 휘감아 당기자 아크의 몸이 단숨에 연막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엇, 뭐야?" "아크다! 죽여 버려!" 연막 속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어벤저들이 달려들었다. "까불지 마라, 잔챙이들이‥‥‥‥'다크 댄싱'!" 순간 아크의 몸이 혹 하고 사라졌다. 아크가 '다크 댄싱'을 발동시키면 대낮이라도 실체를 잡 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어두운 던전에 연막까지 자욱한 장소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헉! 어, 어디냐?" 아크의 움직임을놓친 어벤저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당혹성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칼날 이 번뜩이며 어벤저들에게 치명타를 날려 댔다. 마치 형체 없는 유령이 보이지 알는 단검을들고 휘둘러 대는듯한 상황이었다. 바로 '다크 댄싱'과 '다크 블레이 드' 의 연쇄 스킬 '암격' 이었다. 아크가 가세하자 연막 속의 전투는 순식간에 별동대 족으로 기울어졌다. 아크는 일단 주변의 어벤저들을 대강 정리하고 소리쳤다. "됐다! 라둔, 지옥석을 찾아라!" 쌕쌕쌕, 쌕쌕쌕쌕! 눈치를 살피던 라둔이 바닥에 내려와 혓바닥을 날름거리 며 주위를훑었다. 그러기를잠시, 어딘가에서 지옥석을감 지했는지 스르르 연막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좋아, 이런 상황이라면 어벤저들도 라둔의 존재를 알아 채지못할거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붉은빛이 번뜩이더니 생명력이 쭉 빨려 나가는게 아닌가?동시에 눈앞에 붉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수 '라둔'이 유계로 강제 송환되었습니다. 소환수의 생명력의 5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뭐, 뭐야?라, 라둔이‥‥‥?"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에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을 때 였다. 갑자기 시커먼 연막을 꿰뚫고 한 줄기 섬광이 쏘아져 날아았다. . 아크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광선을 피하며 시선을 집중했 다. 그러자 연막속에서 검은갑옷을 입은사내가 모습을드러 탰다. 그러나 아크의 시선이 향한곳은사내가아니었다. 사내가 들고 있는 검에 꿰여 축 늘어져 있는 뱀‥‥‥‥ 라둔이었다. 연막 속에서 지옥석을 찾다가 당해 버린 것이다! 아크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 라둔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번 뜩 시선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검은갑옷의 사내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아란!" 쿠콰콰콰콰콰! 검은 크리스털 신전을 둘러싼 지옥의 강이 회오리치며 솟 아올랐다. 거대한 생물이 땅을 파헤치며 기어 올라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옥의 강이 뚫고 올라간 천장이 벌써 수십 개, 이미 비밀 던전을 반 이상 수몰시키며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때마다 크리스털 신전도 적지 않은 데미지를 받아야 했 다.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지옥의 강이 원뿔과 같은 형태로 크리스털 신전을 감싸고 있었지만, 천장이 무너지며 쏟아지 는 모든 바위를 막아 주지는 못했다. 천장이 뚫릴 때마다 여기저기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신전이 요동치며 기둥이 넘어지고 때로는 바닥 이 쩍쩍 갈라지며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크리스털 신전의 내부 상황은 더욱혼란스러웠다. 별동대와 어벤저가 충돌하는 바람에 다시 지옥석의 행방 이 묘연해져 버렸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바위와 신전에서 떨어져 나온 검은 크 리스털 파편 속에서 주먹만 한 지옥석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별동대와 어벤저의 마법사들은 적에게 행방을 놓 친 지옥석이 넘어갈 것을 우려해 닥치는 대로 블랙아웃 마법 을 난사했다. 덕분에 크리스틸 신전은 완전히 자욱한 연막에 휩싸여 버렸다. 시야가 4-5미터밖에 되지 않는 연막 속에서 수백 명이 뒤엉켜 혈투를 벌이는 것이다. 사방에서 쇳소리와 비명이 잇 달았지만 누구도 정확한 전황은 파악하지 뭇했다. 쩡- ! 시커먼 연막 속에서 격렬한 쇳소리가 울려 나왔다. 동시에 칼날과 칼날이 충돌하며 섬광이 연속적으로 터졌 다. 하나의 섬광이 사라지기도 전에 수 미터 떨어진 곳에서 또 다른 섬광이 터져 나앞다. 그리고 그 섬광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곳에서, 마치 수십 명이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 을 찍어 대고 있는듯한광경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카카카캉, 채챙! 두 인영이 충돌하며 강렬한 섬광이 룸어져 나랐다. 가죽 갑옷을 입은 사내와 검은 갑옷을 입은 사내. 아크와 아란이었다. 둘이 검을 마주한지 고작 몇 분. 그러나 둘의 상태를 보면 마치 몇 시간을 싸운 사람들 같 았다. 망토는 걸레짝처럼 찢겨져 있었고, 갑옷도 자잘한 상 처로 뒤덮여 있었다. 쉴 새 없이 충돌한 검 역시 듬성듬성 이 가 나가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것만으로도 5분간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지 짐작 할수 있었다. 두 자루의 검이 얽히자 아란이 거친 숨을몰아 쉬며 이를 갈았다. "아크 이 자식......." "헉헉거리면서 남의 이름 부르지 마. 기분 더럽거든?" "‥‥‥‥갈가리 찢어 죽여 주마. " "병든 개새끼처럼 헐떡이는 주제에 그럴 힘이 있을까?" "두고 보면 알겠지." . 아란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순간 마주한 검에 엄청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프레스로 찍어 누르는듯한 압력! 아란이 힘을 주자 아크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검을 사선으 로 늘어뜨렸다. 그러자 아란의 검이 불똥을 튀기며 아크의 검날을 타고 엮으로 미끄러져 바닥을 내리쳤다. 콰자자자작! 굉음과 함께 바닥에 굵은 균열이 번지며 크리스털 파편들 이 뿜어져 올라왔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크리스틸 파편이 볼 을 스치자 피부가 찢겨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나 아크나 아란은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 그 눈 한 번 깜빡이는 순간에 승패가 갈릴 것임을 알고 있 기 때문이었다. ' "사악한 안광!" 아란이 눈을 번뜩이자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검을 흘려 낸 아크는 앉은 자세에서 바닥을 굴러 광선을 피해 냈다. "인퍼노!" 그러자 아란이 아크의 움직임을 따라 얼굴을 돌리며 입에 서 화염을 뿜어냈다. 다급해진 아크는 손으로 바닥을 집은 채 물구나무를 서듯 이 양발로 아란의 턱을 올려 찼다. 덜컥, 아란의 턱이 치켜 져 올라가며 하늘을 향해 화염이 뿜어졌다. '기회다!' 아크는 다람쥐처럼 몸을 말고 아란의 발밑으로 굴러 들어 갔다. 그리고 시선이 분산된 틈에 다리를 공격하려는 순간 옆구리에 묵직한 통중이 느껴졌다. 아란이 턱이 치켜져 을라가는 순간 바닥에 박혀 있던 검을 치켜들며 공격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역습에 옆구리를 얻어 맞은 아크는 몸이 활처럼 휜 채 데굴데굴 굴러갔다. 수 미터나 굴러간 뒤에야 아크는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 었다. 그러나숨을돌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시커먼 기운이 이글거 리는 검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황급히 검을 치켜들자 검을 잡은 팔과 어깨를 따라 마치 해머로 두들겨 맞은듯한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꽉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았다. 그러나 아크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누우며 아란 의 다리를 걷어찼다.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둘렀던 아란이 중 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사이에 아크는 누운자세로 왼팔로 아란의 다리를 잡고 그대로 바닥을 굴러 버렸다. 다리를 잡은 채로 바닥을 구르자 자연스럽게 아란은 바닥 에 쓰러지고 그 위에 아크가 을라타는 자세가 되었다. 위에서 공격을 퍼부어 댈 수 있는 기회! "아란!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관통하는 화살!" 그때 수십 미터 딸어진 아크의 뒤쪽에서 검은 인영이 튀어 나왔다. 검은 머리칼을 망토처럼 휘날리는 다크엘프! 다크엘프 티모시 ! 목소리를 확인한 아크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연막을뚫고 날아온 한줄기 섬광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틈에 아란이 재빨리 아크를 밀어내고 몸을 일 으켰다. 동시에 티모시가 또다시 화살을뿜어냈다. "마탄의 사수 2장, 악마 쫓는 화살!" 한 번 발사되면 끝까지 목표물을 추적하는 '악마 쫓는 화 살' ! 아크는 화살이 발사되는 순간 쏘아지듯 튕겨 나가 아란 의 앞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러자 막 몸을 일으키던 아란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 다. 순간 아크는 '다크 댄싱'을 발동시켜 아란의 몸을 중심 으로 뎅글 회전해 위치를 바꿔 버렸다. 그러자 아크를 쫓던 화살이 아란의 어깨에 박혀 버렸다. "꺄악! 아, 아란!" 아란이 휘청거리자 티모시가 펄퍽 뛰었다. 아란은 뒤이은 아크의 공격을 막아 내고 뒤로 물러나며 고 개를 저었다. "크윽, 괜찮아! 티모시, 이쪽은 상관하지 마라!""" "하, 하지만‥‥‥‥" "봤잖아.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네 화살은 도움이 되지 않 아. 그보다 제단이다. " "제단?" "그래, 졔단쪽은 쥬르에게 맡겨 놨는데 난전에 휩쓸려 죽 었는지 아직 연락이 없어. 여기는 내게 맡기고 너는 제단을 수리하고 있는 놈을 처 리해!" "알았어!" 티모시가 고개를 고덕이며 날렵하재 몸을 날렸다. 티모시가 제단으로 사라지자 아란은 어깨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히죽 웃었다. "자, 아크! 이제 어쩔 거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크의 눈빛이 약간흔들렸다. 사실 아크도 내심 제단쪽이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현재 연막속에서 수백 명이 난전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언 졔 누가 지옥석을 손에 넣을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란의 입장에서는 굳이 지윽석을 손에 넣지 않아도 목적을 달성할 방법이 있었다. 바로 지옥의 제단! 지옥의 제단을 수리하는 워머를 처리하면 설사 아크가 아 란과 어벤저를 몽땅 처리하고 지옥석까지 손에 넣는다고 해 도 지옥의 강을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지옥석의 행방이 묘연해진 뒤로 별동대와 어벤저 들의 전투는 제단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난전에서 떨어전 나온 티모시가 워머 암살 명 령을 받고 움직 인 것이다. 아크의 입장에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상황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다. "글쎄?그게 생각만큼 쉬을까?" "잡았다, 돼지 자식! 마탄의 사수 1장, 악미를관통하는 화살!" 그때 전장의 소음 속에서 앙칼진 티모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연막 때문에 확인할 수는 없지만 티모시가 재단에 접 근해 워머를 기습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뭐, 뭐야?저 변태 자식이‥‥‥!" "세상모르고 까불어 대는 계집이 또 나타나셨군." 뒤이은 샴바라의 목소리에 아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다. 지금까지 아크가제단을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샴바라 때문이 었다. 제단은 지옥의 강을 막는 데 필요한2개의 열쇠 가운데 하 나다. 그런 중요한 열쇠를 수리하는 워머를 그냥 둘 리가 없 지 않은가? 이미 가장 믿음직한 호위병인 샴바라를 워머에게 붙여 놨 기에 아크는 마음 놓고 전장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샴바라가 앞에 나서서 싸우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 문이었다. "마탄의 사수 3장, 악마를 난자하는 화살!" "폭우검!" 덕분에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샴바라와 티모시 의 대결이 펼쳐졌다. 아크가 검을 앞으로 향하며 히죽 웃었다. "자, 그럼 우리도 다시 시작할까? 아니면 좀 쉬는 시간을 줄까?" "‥‥‥‥건방진 새끼!" 콰쾅, 카카카칵, 콰콰콰콰쾅! '빌어먹을, 대체 이 자식은‥‥‥‥' 아크가 거칠게 숨을몰아쉬며 아란을노려보았다. 사실 아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란과 다이다이(맞짱)를 붙으면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다. 아크는 일전에 파비온 헙곡에서 아란에게 밀렸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퓨리탈의 '갑주화' 스킬을 얻고 다시 붙었을 때는 거의 대등. 그리고 그 뒤에 전설의 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를 얻었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무기의 업그레 이드는 전투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유저들이 더 강한 무기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는 가장 높은 등급인 전설의 검! 대등한 상태에서 전설의 검을 얻었으니 당연히 우세해졌 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다시 맞붙어 보니 결 과는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아크가 전설의 검을 얻은 것 이상으로 아란 역시 뭔가 새 로운 능력을 얻었다고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정말 짜증 나는군.' 이쯤이면 됐겠다 싶으면 어느새 놈도 같은 위치에 올라와 있다. 정말 짜증 나는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그건 아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어쨌든 둘은 어느 한쪽도 승기를 잡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 이 이어졌다. 그러나 잠시 후, 그 균형은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무너졌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또다시 지옥의 강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가 천장을 뚫고 솟구쳤다. "낙석이다! 피해라!" 격렬한 굉음과 함애 크리스털 신전이 흔들리자 여기저기 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크고 작은바위가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런 바위들은 대부분 원뿔 형태로 크리스틸 신전을 뒤덮 은 지옥의 강에 의해 분쇄되어 사라졌지만, 100에 하나 정도 는소용돌이의 틈을 비집고 크리스틸 신전 위로 쏟아졌다. 이게 별동대와 어벤저들의 전투를 더욱 흔란스럽게 만드 는 원인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에 쏟아져 내린 건 바위만이 아니었다. 후두둑 후두둑.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던 아크의 얼굴에 문득 물방울이 털 어졌다. 처음에는 지옥의 강물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후, 검을 마주치는 아란의 얼굴에 묻은 것을 련 뒤에야 그게 쳔범한 물방울이 아님을 깨달았다. ‥‥‥피!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것은 시뻘건 핏방울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놀란 것은 아크만이 아니었다. 아란 역시 아크 의 얼굴이 펏물에 젖는 것을 보고 왜나 놀란 표정이었다. 그 리고 둘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밀어내고 고개를들어 을렸다. '뭐, 뭐야, 저건?' 푸카카카카, 푸카카카카! 수십 줄기로 말려 올라가 신전 중심으로 모여 고속으로 회 전하는 지옥의 강. 그 거대한 분쇄기에서 엄청난 숫자의 마 족들이 다진 고기처럼 갈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마족? 어떵게‥‥‥.?' 아크는 한참 뒤에야 그 마족들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 다. 바로 시르바나가 점령당하기 직전에 비밀 던전으로 들어 왔다는 마족들! 아크는 아란이 지윽의 제단을 발동시렀을 때, 보라매에게 60층의 연합원을 피난시키라고 명령한 뒤에 정의남에게도 연락해 연합군도 퇴각시켰다. 어차피 지옥의 제단이 발동한 상황에서 연합군은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당시에는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알아 지옥의 강보다 먼저 비밀 던전에서 탈출할수 있으리라고 생 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족들은 연합군보다 몇 시간 앞서 비밀 던전으로 들어왔다. 때문에 결국 도망치는 도중에 지옥의 강에 의해 뚫린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 크리스털 신전 위로 쏟가지는 것은 그 마족들의 피로만들어진비! 수천에 달하는 마족들이 머리 위에서 갈리며 피를 쏟아 내는끔찍한장면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끔찍한 상황은 그다음이었다. -크람, 카라마. 크람! -바호그람. 노른, 카라라라! 천장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린 바위틈에서 낮은 을림이 흘 러나왔다. 붉은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놈들은 바로 마족들이었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바위들이 100에 하나 정도는 소용돌이 를 피해 크리스털 신전으로 떨어지듯이, 마족들도 운 좋게 ,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신전에 떨어지는놈들이 있었다. 비밀 던전에 진입한 마족의 숫자는 1만여, 100에 하나로 계산하면 100마리나 되는 마족이 살아서 크리스털 신전에 떨어진 것이다. 설마 아란이 이것까지 계산하고 마족에게 퇴각 명령을 내 리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간신히 대등한 전투를 벌이던 아크와 별동대에게 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마족들이 하나 둘 몸을 일은키 자 아란의 입가에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 "놈들을 섬멸하라!" -크롸롸롸롸롸롸! 아란의 명령에 마족들이 괴성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를 피했다고는 해도 위에서 떨어진 마족들은 낙 하 데미지로 생명력이 30~50%가까이 깎인 상태였다. 특히 헤비워커처럼 수 톤에 달하는 갑옷을 입은 마족은 생 명력이 70% 이상 깎이기도 했다. 그런 마족 100여 마리. 평소라면 그리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러나 현재 별동대와 어벤저는 팽팽하게 전투를 하던 상 황이다. 거기에 100여 마리의 마족들이 가세하자 불안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단숨에 깨져 버렸다. 그런 상황은 아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가 검을 휘두르자 마족들이 안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마족들의 뒤에서 아란이 뤼어나오며 검기를 날렸다. "악마의 송곳니 !" 본래 근접전에서의 움직임은 상대가 맞거나, 막거나, 피 하거나, 이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가정으로 정 해지는 법이다. 상대가맞으면 이렇게, 상대가막으면 이렇 게, 상대가 피하면 이렇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마족들이 무턱대고 아크의 공격을 대신 맞아 버리 니 움직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란은 그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와 반격을 가했다. 물론 아크와 아란의 전투는 마족 몇 마리가 끼어들어 전황 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크는 '맞지 않는 전투'를 했지만, 마족들이 끼어든 탓에 '맞고 때리는 전투'를 할수밖에 없는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아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퓨리탈의 생명력이 소진되어 '갑주화'가 강제 해제됐습니다! *퓨리탈의 공격력, 방어력, 생명력의 30%로 적용되던 능력치가 소멸했습니다. 메시지와 함께 아크를 감싸던 뼈다귀가 이계로 빨려 들어 갔다· 아크가 교착상태가 계속됨에도 난타전을 피해 왔던 이유 가 이 때문이었다. 아크가 아란과 대등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갑 주화' 로 퓨리탈의 능력치 30%를 보너스로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주화'는 보너스로 받은 생명력 1,544를 받으면 자동 해제된다. 그렇재 되면 아크는 능력치 면에서 아란에게 미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생명력이 4000가까이 날아갔다!' '갑주화' 가 강제 해제된다는 것은 퓨리탈이 강제 송환됐 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소환수가 강제 송환되면 아크는 소환 수 생명력의 50%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입게 된다. 현재 퓨리탈의 생명렬은5,720. 결국 '갑주화'의 해제로 아크는 보너스 능력치는 물론, 2,860에 해당하는 생면력이 단숨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갑주화' 해제와 2,860의 데미지! 이것은 팽팽했던 승부에 치명적인 패널티로 작용했다. '이런 젠장‥‥‥.1! 아크는 뒤이어 쏟아지는 마족과 아란의 공격에 속수무책 으로 밀려났다. 갑자기 '갑주화'가 풀리자 아란의 공격 하나하나가 해머 로 두들겨 대는 것처럼 느쪄졌다. 아크만이 아니라 별동대원들도 마족-어벤저의 연합군 에게 절점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생명력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던 별동대원 100여 명이 단숨에 목숨을 잃고 쓰러 졌다. '이건 말도 안 돼! 수만 명이 동원되어 나가란의 운명을 걸고 벌이던 싸움이 결국 다 죽어 가는 마족 100여 마리 때 문에 패배로 끝나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허망하기 짝이 얼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지는 않는다! 죽을 때 죽더라도 아란 자 식에게 한 방 먹여야겠어!' 아크가눈동자를 번뜩이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훗, 최후의 발악이냐?악마의 송곳니!" 아란이 코웃음을 치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크의 목표는 아란이 아니었다. 아크는 '다크 댄 싱'을 펼쳐 아란의 공격을 흘려 내며 생명력이 간당간당한 마족의 옆구리에 검을 꽃아 넣고는 소리쳤다. "마기 봉인!" 쿠와아아아아아! 마족의 몸이 휴지처럼 구겨지더니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원래 '마기 봉인' 은 아이템에 마족의 영혼을 봉인하는 이 터널 소울. 그러나 이번에 마족을 봉인하는 곳은 평범한 아 이템이 아니었다. 바로 전설의 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에 마기를 봉인하자 검을 휘감은 검 은 기운이 크게 출렁이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에 마기가 충전됐습니다. <<충전된 마기 : 1>> *최소 10 이상의 마기를 충전해야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아크가 생각해 낸 게 바로 이것이었다. 아직 아크는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를 사용해 본 적이 없 었다. 얼마나 위력적인 스킬이 나올지는미지수. 그러나 일 단 명색이 전설의 검에 붙어 있는 스킬이다. 게다가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족의 영혼까지 충전해 놔야 하는 스킬! 틀림없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리라. 물론 아무리 강력한 위력이라도 지금의 전황을 뒤바꿀 정 도는 아니리라. 그러나 아란에게 한 방 먹여 줄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비겁한놈, 도망치는 거냐?" . "흥, 작전상후퇴라는거다. 마기 봉인, 마기 봉인, 마기 봉인!" 아크는 아란의 공격을 피하며 이미 생명력이 간당간당한 마족들을 눈에 보이는 족족 검에 봉인시켜 버렸다. 그렇게 잠시,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에 마기가 충전됐습니다. <<충전된 마기 : 10>>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됐다!"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가 빙글 몸을돌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려 할 때였다. 콰콰콰쾨콰쾅! 돌연 엄청난 굉음과 함께 크리스털 신전이 미친 듯이 요동 쳤다. 동시에 어두운 방에서 불을 켠 것처럼 눈앞이 확 밝아 졌다. -태양 광선의 영향으로 '블랙아웃'의 효과가 소멸했습니다! '태양광선?' 아크가 검을 지지해 중심을 잡고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 다. 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바, 밖이다!" '블랙아웃' 효과가 사라진 크리스털 신전 밖으로 성과 건 물, 평야와 산이 보였다. 그렇다. 결국 지옥의 강이 60층을 뚫고 지상으로 솟아올 랐다. 방금 전의 충격은 지옥의 강이 시르바나 성 후원의 신 전을 부수고 지상으로 분출하며 일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지옥의 강은 여력을 주체 못하고 분수처럼 솟아을 라 크리스털 신전을 지상수십 미터 높이까지 떠올린 것이다. "헉! 지, 지윽의 강이다!" "결국 실패한 건가?" "아아아, 나, 나가란의 종말이다!" 지옥의 강이 분출되자 까마득한 아래에서 당혹성이 들려 왔다. 비밀 던전에서 탈출해 후원에 모여 있던 정의남과 수 만의 연합군들이었다. 그들의 목소리에 아크 역시 절망했다. 아니, 절망하려는 찰나! "지옥석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아크의 눈에도 지옥석이 들어왔다. 지옥석은 수맏은 검은 크리스털 파편 사이에서 바닥의 균 열 틈에 박혀 있었다. '블랙아웃' 상태에서 발견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그러나 '블랙아웃' 효과가사라지고, 신전이 요동치자 균열에 박힌 지옥석을 제외한 크리스털 조각들이 몽땅한쪽으로 쓸려 가자확실하게 보였다. 그리고 절묘한 타이밍에 모습을 드러낸 지옥석을 본 아크 의 눈동자에서 희망이 되살아났다. '그래.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압았을지도‥‥‥‥ 지옥 의 강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몰라!' "워머!" "수리는 진즉에 끝났어!" 아크의 고함에 메아리처럼 워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아크의 몸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옥석을 향해 날 아갔다. 그러나 아크보다 먼저 지옥석을 향해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증오의 오라!" 검은 기운에 휘감긴 채 엄청난속도로 돌진하는 사람은 바 로 아란이었다. 아란은 아크보다 약간 더 멀리 있었지만 '증오의 오라'를 사용한 아란은 이동속도가 30%나상승한다. 아란은그야말로 질풍처럼 아크를 추월하며 지옥석을향해 손을 뻗었다. 다급해진 아크가 비명처럼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다. "아, 안 돼.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번쩍, 콰콰콰콰콰콰! 순간폭음과 함께 아크의 검에서 검은 기운이 줄기줄기 폭 사되었다. 어둠이라는 단어조차무색해질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 마치 검을 짖어발기듯이 튀어나온 어둠은 거대한 해일처 럼 전방의 모든 것을 삼키며 쏘아졌다. 그렇게 어둠의 기운 이 휩쓸고 지나가자 마치 뒤따르듯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 며 아란을 삼켜 버렸다. "크아아아악!" 폭발에 휘말린 아란이 비명을 지르며 수십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전설의 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의 필살기를 등 뒤에서 맞 은 아란은 치명타가 적용되며 단숨에 생명력이 40%나 증발 해 버렸다. . 그뿐이 아니었다. 아크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나간 폭발에 휘말린 어벤저나 마족들도 넝마처럼 찢겨지며 날아 갔다.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어벤저나 마족은 폭발에 횝 싸이는 순간 가루로 변해 사라질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핵폭탄이 떨어진 듯한 광경이었다. "이, 이게‥‥‥‥"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의 위력에 놀라서 그런 것도 있었지 만, 코앞에서 폭발이 일어난 덕분에 바닥에 끼어 있던 지옥 석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신전에 남아 있던 수백 명의 병사들은 일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툭, 툭, 툭, 툭‥‥‥‥ 하늘에서 검은돌 하나가 툭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지옥석! 폭발에 휘말려 하늘로 튕겨져 을라갔다가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덥석. 누군가가발치로 굴러 오는 지옥석을 집어 들었다. 그 사람을확인하는 순간 아크와샴바라, 별동대원들의 얼 굴이 일제히 굳어 버렸다. "쥬르‥‥‥!" 아크의 입에서 탄식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랐다. 그렇다. 최후의 최후에 지옥석을집어 든사람은 다름아닌 닌 마법사 쥬르였다. 수백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지옥 석을 집어 든 쥬르가 히죽 웃었다. "크윽!쥬, 쥬르‥‥‥ 지옥석을‥‥‥ 신전 밖으로 던져라!" 그때 넝마처럼 바닥에 처박혀 있던 아란이 휘청거리며 일 어나 소리쳤다. 아크와 샴바라, 별동대원들은 그것으로 모든 희망이 사라 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쥬르는 아란의 지 시대로 힘차게 지옥석을 집어 던졌다. . 그러나 상황을 지켜보던 별동대원과 어벤저, 모두는 다음 순간 멍청한 표정이 괴어 버렸다. "저. 저게 무슨‥‥‥?" 쥬르가 지옥석을 던진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의 제단, 워머 였던 것이다. 이런 쥬르의 행동에 아크와 아란, 별동대원과 어벤저 모두, 가 경악성을 터뜨켰다. 그때 갑자기 쥬르의 로브에 달린 후 드가 꿈를거리더니 박쥐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았다. "크케케채케,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 건 항상 이 몸이군. " "큐리오!" 아크가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순간 아크는 모든 상황을 이해챘다. 크리스털 신전이 '블랙아웃'에 뒤덮여 혼란에 빠져 있을 때, 큐리오는 평소감정이 많았던 쥬르에게 몇 번이나 '흡 혈'을 시도헌다. 그리고 결국 '현혹'을 성공시킨 뒤에 쥬르 의 후드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쥬르가 아란의 명령을 받고도 워머를 공격하지 않고 딴짓 을 해 왔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사실 이때 아크의 눈앞에도 큐리오가 '현혹'을 성공시켰 다는 메시지가 떠올랐었다. 그러나 아란과 전투 중이어서 쥬 르의 이름까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그저 어벤저를 현혹한 것 으로만 생각했다. 생각지도 뭇한 부분에서 큐리오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워머!" 아크의 입에서 폭탄이 터졌다. "막아라. 놈을 막아!" 뒤이어 아란의 고함이 을켰고, 남아 있는 마족과 어벤저들 이 제단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워머를 막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워머는 곧바로 지옥셕을 제단에 박아 넣고 스위치를 잡아 내렸다. 뚝. 갑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던 모든 소음이 한순간에 사라졌 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지옥의 제단이 부르르 진동하더 니 신전 아래로 한 줄기 벼락이 쏘아졌다. 지옥의 강에 떠밀려 10여 미터 상공에 떠 있는 크리스털 신전에서 아래로 벼락을 뿜어낸 것이다. 벼락은 그대로 솟구 치는 지옥의 강을 뚫으며 비밀 던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시르바나 전체에 지진이 일어난듯흔들켰다. 쩌쩌쩌정, 쩌쩌쩌정! 뒤이어 비밀 던전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곧 알수 있었다. 땅을 뚫고 솟아오른 지옥의 강을투명한 얼음이 엄청난속 도로 뒤덮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지상으로 분출되던 지옥의 강까지 얼음 기둥으로 변해 버렸다. -지옥의 강이 봉인됐습니다. "해, 해냈다. 막아 냈다‥‥‥‥" 아크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순간 얼음이 단숨에 모래처럼 부서지더니 크리스털 신전 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헉! 떠, 떨어진다! 모두 충격에 대비해라!" 콰콰콰광. 콰콰콰쾅! 수십 미터 상공에서 추락한 크리스털 신전이 비밀 던전 입 구에 쑤셔 박혔다. 엄청난 충격과 진동이 전해지며 크리스털 신전이 쩍쩍 갈 라졌다. 신전이 추락하자 그곳에 있던 유저와 마족들에게 엄 청난 데미지가 적용되었다. 간신히 버티던 별동대원이나 어 벤저. 마족들은 그 충격으로 대부분이 즉사해 버렸다. 아크 역시 생명력이 간당간당했지만 낙법을 펼쳐 겨우 살 아남을 수 있었다. 그때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아크의 주위로 살아남은 어 벤저와 마족들이 몰려들었다. "크윽, 끝까지 해보겠다는 건가?" 아크가 휘청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을 때였다. "지옥의 강은봉인봤다. 이제 남은놈들을 섬멸하라!" 아크의 등 뒤에서 정의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우렁찬 함성과 함께 수만의 연합군들이 신전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렇다. 시르바나 성 후원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수만의 연 합군들이었다. 신전으로 난입한 그들은 남아 있는 몇 안 되 는 어벤저와 마족들을 문자 그대로 짓밟아 버렸다. "다크 스트라이크!" 성직자들의 회복 마법을 받은 아크 역시 잔당을 처리하며 뛰어 들어갔다. 모든상황이 정리됐으니 이제 아크의 목적은 하나. 직접 아란을 처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아란 이나 티모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머리 위에서 큐리오의 목소리가들려왔다. "주인, 저 녀석들!" 고개를 들어 올리자 큐리오가 멀리 보이는 몇 개의 점을 가리켰다. "‥‥‥아란!" 큐리오가 가리키는 점은 바로 가고일을 탄 아란과 티모시 그리고 몇몇 어벤저였다. 놈들은 크리스털 신전이 추락할 때 가고일을 이용해 재빨 리 하늘로 도망친 것이다. "마법과 화살로 격추시켜라!" 정의남의 명령에 연합군이 마법과 화살을 난사했다. 그러나 이미 아란은 100여 미터나 떨어진 상공에 있었다. 대부분의 마법과화살은놈들에게 미치지도 못했다. 아란은 발밑까지 날아오는 마법과 화살을 바라보다가 이 를 갈아붙이며 가고일을 돌렸다. "젠장‥‥‥.!" 아크는 분한 눈으로 아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을 때였다. 순간 엄청난함성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와아아아아!" "해냈다. 우리 손으로 나가란을 지켜 냈다!' "나가란 연합군 만세! 다크울프 만세!" 시르바나 성 전체가 거대한 함성으로 들썩였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그 엄청난 함성조차 자장가로밖에 들 리지 않았다. 불안감과 긴장감 속에서 열흘 가까이 잠조차 졔대로 못 잔 아크는 멍하니 연합군을 바라보다가 안도의 한 숨과함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버렸다. "아크 님-!" 수만의 연합군이 쓰러진 아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길었던 나가란 수호 전투의 마지막장면이었다. ACT4 음모의 소용돌이 * SCAN070.JPG * 로마 고대 신전처럼 두꺼운 기둥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회 랑.그 회랑의 끝에 거대한 석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닥에 기괴한 검은 기운이 깔혀 있는 석실의 벽은 부조 로가득채워져 있었다. 악몽 속에서나 블 수 있는 수많은 이형의 짐승들. 그 짐숭 들의 발톱 밑에서, 어금니 사이에서 신음하는 수맡은 사람 들.거기에 일렁이는 횃불의 흔들림 더해지자 부조는 당장이 라도살아 움직이는것처럼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두쿵, 두쿵, 두쿵 묵직한 고동이 석실을 울렸다. 고동이 울려 나오는 곳은 석실 중심, 졔단 위에 놓인 시뻘 * SCAN071.JPG * 건 살덩이였다. 심장‥‥‥ 그렇다. 바로 아란이 지옥의 강에서 건져 올렸던 수수께끼의 심장이었다. 크기가 10미터는 족히 될 듯한 거대한 심장은 수축과 팽창 을 반복할 때마다 시커먼 기운을 뭉클뭉클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은 마치 드라이아이스처럼 바닥을 따라 신전 전쳬로 퍼져 나갔다. "과연, 그 뒤로 수백 년이 흘렀는데‥‥‥ 훌륭하군." 턱까지 후드를 눌러쓴 노인이 들뜬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그리고 마치 예술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 길을 심장으로 가져갔다. 주름진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심장에 닿으려는 찰나‥‥‥‥ "마스튜아라!" 거친 목소리가 석실을 쩌렁쩌렁 흔들었다. 순간 노인의 눈가가 불쾌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아쉬운 눈길로 심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세우며 후드를 벗었다. 나이를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깊은 주름에 뒤덮인 얼굴, 사자의 신 앙크의 대주교마스튜아라였다. "‥‥‥‥왔는가?" 뒤에서 다가온 사람은 온통 피범벅이 된 검은 갑옷을 걸친 사내였다. 바로 시르바나에서 가고일을타고 도주했던 아란이었다. 아란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마스튜아라를 노려보다가 쏘아붙이듯 말했다. "설명을 좀 해 줘야겠습니다. " "설명이라니?뭘 말인가?" 마스튜아라가 입매를 추어올리며 되물었다. "양자 물질 수신기 말입니다!" "그게 무슨문제라도 있는가?" 마스튜아라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갸웃거렸다. 그러자 아란이 울컥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만약 예정대로 양자 물질 수신기가 작동했다면 지금쯤 나가란은 지옥의 강에 수몰됐을 겁니다. 하지만 작동하지 않 았습니다. 덕분에 어벤저는 거의 전멸했고, 지옥의 강도 다 시 봉인됐습니다. 이 상황을 어떵게 설명하실 생각입니까?" "양자 물질 수신기를 아직 확인해 보지 않은 건가?" "확인해 봤습니다. 부서져 있더군요. "알고 있군. 그게 수신기가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이 이유네." "......전 부서진 이유를 듣고 싶은 겁니다. " 아란이 거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새삼스럽지만 아란이 시르바나를 공략한 이유는 두 가지 였다. 하나는 지옥의 강에서 지금 석실에 있는 심장을 건져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옥의 강을 범람시켜 나가란 을 수몰시켜 버리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동시에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목표였 다. 지옥의 강을 범람시켜 버리면 심장을 가지고 나을 수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비온 협곡에서 우연히 발견한 양자 물질 송신기 덕분에 두 가지를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지옥에서 곧바로 심장을 공간 이동 시킬 수 있게 된 것이 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란은 심장을 이곳으로 공간 이동 시 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정작 아란과 어벤저들이 사 용해야 할 때는 작동하지 않았다. '왜 양자 물질 수신기의 주파수가 잡히지 않았던 거지?' 아란은 내내 그런 의문을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으로 돌아와보니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곳에 설치해 놓은 양자 물질 수신기가 파괴되어 있 었던 것이다. "이곳은 아직 원정군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실 제로 제가 돌아왔을 때도 이곳이 습격을 받았던 혼적은 없었 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양자 물질 수신기가 부서져 있는 겁 니까? 게다가 심장을 보낼 때만 해도 제대로 작동했던 게 불 과 몇 분 만에 말입니다. " 아란으로서는 도무지 낟득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죽은 어벤저들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아란이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였다. 묵묵히 듣고 있던 마스튜아라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양자물질 수신기는 내가 파괴했네. " "뭐, 뭐라고요?" 뭔가 말을 하려던 아란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양자물질 수신기를 파괴한 게 마스튜아라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멍청한 눈길로 바라보던 아란이 와락 이를 갈아붙였다. "대체 무슨 짓을!" "진정하게." "진정?지금 진정이라고 했습니까?"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마스튜아라가 별일 아니라는듯이 손을 저었다. "이유? 이유라고 했습니까?" "그렇네." 마스튜아라가 가벼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 뒷짐을 지 고 천천히 심장 주위를돌며 말을 이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심장은 마족 전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이네. 지금까지의 모든 계획이 오직 이것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 심 장의 가치에 비하면 나가란이나 시니어스의 일 따위는 아무 래도 상관없어. 그리고 이 심장을 찾아낸 사람은 바로 자네, 파멸의 기사네. 자네의 공적은 실로 찬사 받을 만해." "그런데 왜 그따위 짓을‥‥‥‥" "자, 자! 더 들어 보게. 자네가 심장을 이곳으로 전송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자 물질 송신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었네. 그리고 양자 물질 송신기를 이용하면 자네나 어벤저들 역시 무사히 이곳으로 올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다음은?" "다음?" "이곳으로 주파수가 설정된 양자 물질 송신기가 놈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뜻이 아닌가?" 마스튜아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무래도 위험하지. 만약 양자 물질 송신기를 손에 넣은 놈들이 곧바로 뒤따라 공간 이동을 한다면 머쩌겠는 가? 물론 놈들이 이곳에 도착하면 죽음밖에 얻을 게 없겠지 만 자칫 이곳의 위치가 원정군에게 알려질 우려가 있네. 또 한 이방인 중에는 마나의 흐름을 추적해 공간 이동된 장소를 알아낼 수 있는 놈들도 있지. " 마스튜아라의 설명에 아란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 다. 확실히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니 마스튜아라의 행동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물론 양자 물질 송신기를 아란과 어벤저들이 사용해 버리 면 MG가 바닥나겠지만, 아크에게는 워머가 있었다. 개발자인 워머에게 마력 충전기가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 었다.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아란과 어벤저가 아크에게 당 해 양자 물질 송신기를 탈취, 먼저 이곳으로 공간 이동 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그리고 아크가 양자 물질 송신기로 이곳까지 따라오면 원 정군에게 이곳이 알려질 수밖에 없으리라. 때문에 그곳의 상 황을 몰랐던 마스튜아라로서는 심장을 얻는 즉시 양자 물질 수신기를 파괴해 위험 요소를 제거한 것이리라. 아란은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했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 었다. "그렇다면 그 전에 제게 설명해 줬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말할 수 없었네." "말할 수 없었다고?" "사실 양자 물질 수신기를부순 이유는 또 있거든. " "다른 이유?" "이제..." 마스튜아라가 피처럼 붉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축이며 눈 매를 좁혔다. "너희들의 도움은 필요 없어졌다는 거지. 아니, 아니지. 정확히 말하면 너희들에게 마지막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너회들의‥‥‥ 이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불멸의 생명을 가진 이방인들의 생명‥‥‥ 그게 펄요하다. 위대한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킬 마지막 재료로서." "우리들의 생명‥‥‥.?"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긴 아란이 한 걸음 물러났다. -크르르르르. 그때 갑자기 주위에서 섬뜩한울림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사방에서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뗘을랐다. 벽의 부조‥‥‥ 방금 전까지는 그저 조각에 불과했던 이형 의 짐승들이 일졔히 눈을 뜬 것이다. 그리고 마치 살을 잡아 뜯듯이 꿈틀거리며 벽에서 기어 나왔다. 역한 비린내와함꼐 석실은순식간에 수천의 짐승들로 가득 찼다. 아란은 몇 번이나 이곳을 들락거리면서도 벽의 부조들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놈들은 아란 에게 조종되는 마족들과는 풍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아란에게 집중된 수천 쌍의 붉은 눈동자에 감도는 것은 오 직 살기뿐이었다. "이, 이게 무슨‥‥‥-!" 아란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그러자 마스튜아라가 우아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파멸의 기사여, 그동안수고 맡았내. 하지만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네, 네놈‥‥‥ 그럼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게·..." "그건 사실이네. 자네는 이 세계에서 누구도 오르지 못했 던 지고의 자리에 오르게 될 걸세. 위대한 암흑 제왕의 피와 살이 되어서 말이야. 영원히‥‥‥‥" "네놈이 감히!" 아란이 이를 길아붙이며 검을뽑아들었다. 순간 군침을 질질 흘리던 수천 마리의 짐승들이 일제히 아 란에게 달려들었다. - 크와아아아아아! "제, 젠장! 악마의 송곳니!" 아란은 분노의 포효를 터뜨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란의 포효는 비명이 되어 버렸다. 아란이 전력을 다해 날린 공격도 파도처럼 밀려드는 짐승 에게는 1%의 데미지조차 주지 못했다. 정예 몬스터라는 뜻 이다. 수천 마리의 정예 몬스터! "크윽, 날뛰는 마정령!" 결국 아란은 마스튜아라를 포기하고 몸을돌렸다. 그리고 이동속도를 을려 주는 스킬을 발동시키며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이곳은 모처에 숨겨진 마족들의 비밀 기지. 그리고 이곳의 마족들은 모두 아란의 부하들이었다. 그러나 마스튜아라가 배신한 이상 마족들 역시 더 이상 아란의 부하가 아니었다.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아란을 졔물로 바치려는 마족들의 소굴일 뿐이었다. '안 돼.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수는 없다!' -크와아아아아아! 전력을 다해 도망쳤지만 짐승들은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 으며 발톱을 휘둘러 댔다. 그때마다 아란은살점이 뜯겨지며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크윽, 죽은자의 경계! 날뛰는 마정령!" 아란은 몇 번이나 바닥을 구르면서도 끈질기게 스킬을 난 사하며 도망쳤다. 그리고 끝내 회랑을 가로질러 입구 근처까 지 돌아 나올수 있었다. '일단 마신전 밖에서 기다리는 어벤저들과 합류해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른 일은 그 뒤에 생각해도 늦지 않 아. 으드득, 마스튜아라‥‥‥감히 나와 어벤저들을 가지고 놀다니!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 빛은 무슨수를 써서라도 갚 겠다!' 아란이 복수를 다짐하며 신전을 빠져나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입구의 기둥 뒤에서 붉은 형체가 번뜩이는 속도로 달려들었다. "헉! 뭐, 뭐야?" 아란이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림자는 마치 뱀처럼 검을 흘려 내며 아란의 품으 로 파고들었다. 콰콰콰쾅, 쩌저저적! 동시에 몸 내부에서부터 뭔가가 찢겨져 날아가는 듯한 소 리가 울려 나왔다. 파지지직, 눈앞이 노이즈로 가득 차며 메시지창이 떠을 랐다. '차크라의 파동'에 적중되었습니다. <<'센의 파동'효과로 몸 내부에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어력이 무시되어 8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신체의 마나 밸런스가 깨져 마나가 1,000 증발했습니다. 가격 부위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어 5분간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가 10% 경감했습니다. 경직에 걸려 3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차크라의 파동!' 피를 토하며 주르륵 밀려난 아란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흔 들렸다. 차크라의 파동, 아란이 아는 한 이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붉은 남자!" 그렇다. 아란에게 일격을 먹인 사람은 바로 하얀 가면을 쓴 붉은 머리칼의 남자였다. 붉은 남자의 일격은 이미 짐승들에게 수없이 뜯긴 아란을 빈사상태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붉은 남자를 확인한 아란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네놈도 마스튜아라와 한패인 거냐?" 붉은 남자는 대답 대신 허리에 걸려 있던 두 자루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한 줄기 섬광이 되어 3초 경직에 걸려 있던 아란을 향해 쏘아져 날아왔다. 그러나 아란의 눈에 비친 영상은붉은 남자가 아니었다. 공포스러운 얼굴의 아수라가 수십 자루의 검을 휘둘러 대 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검광에 쉽싸인 그 아수라가 아 란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촤촤촤촤촤촤촤! 아란의 전신에서 피가 뿜어져 올라오며 5%도 남지 않은 생명력을 바닥내 버렸다. "너, 너 이 자식...!" 아란이 시뻘겋게 물든 눈동자로 붉은 남자를 쏘아보며 뗘 듬거렸다. 마치 눈동자에 붉은 남자의 모습을 새걱 넣기라도 하듯 이‥‥‥ 복수를 다짐하는 행동이었지만 아란에게 그럴 기회 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직후에 아란의 눈앞에 려오른 경고 메시지 때문이었다. 특수 아이템이 발동했습니다. 캐릭터의 모든 데이터가 '어둠의 증표'에 흡수되고 있습니다. '어둠의 증표'에 흡수당한 데이터는 임의의 장소로 날아가 뉴 월드에서 완전히 삭제됩니다. '맙소사, 어벤저들이 말했던 게‥‥‥!' 아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않는 기분이었다. 방금 전, 마스튜아라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아란이 시르바나에서 탈출해 이곳으로 향할 때, 이미 죽었 던 어벤저들에게 물밀듯이 전화가 걸려 왔었다. 그 내용은 바로 방금 전 아란이 목격한 메시지에 대한 것이었다. "아란 님, 뭔가 이상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캐릭터 데이터가 목걸이로 빨려 들어간 다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대체 뭐가 어떨게 된 겁니까?" 어벤저들 역시 죽은 순간에 아란과 같은 메시지를 본 것이 다. 그리고 한참 전에 죽은 몇몇 어벤저들이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그 뒤로 다시 뉴 월드에 접속하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안내창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 말은 뉴 월드 메인 서버에서 어벤저들의 캐릭터 정보가 완전히 삭제됐음을뜻하는 것이었다. 혹시 글로벌엑서스에서 우리들에게 뭔가 조치를 취한 건가? 아란은 처음에는 그럴게 생각했었다. 새삼스럽지만 아란 역시이번사태가 글로벌엑서스에게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알고있었다. 만약 할 수 있다면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진즉에 캐릭터 삭 제나 계정 압류 이상의 조치도 취했으리라. 그러나 아란은 글로벌엑서스가 이미 뉴 월드에 대한 통졔력을 잃었다는 사 실을 알고 있었다. 아란은 알고 있었기에 이번 계획에 참가했고, 실제로 그렇 기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글로벌엑서스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 메시지대로 정말 목걸이에 데이터 를 흡수당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란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가슴까지 늘어져 있는 붉은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어둠의 증표(레어) 아이템 타입 : 목걸이 내구력 : 60/60 무게 : 10 사용제한 : 레벨 300 이상, 카오틱 수치 300 이상 고대의 어둠의 힘이 깃들어 있는 목걸이입니다. 이 목걸이에는 오래전 뉴 월드에 부활했던 강대한 어둠의 세력이 창조한 사악한 마법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은 그 순간 어둠의 세력이 되어 '마족의 영향권'의 효과를 마족과 동등하게 받게 됩니다. 단, 이 목걸이는 타락한 자만이 착용할 수 있습니다. <<옵션 : '마족의 영향권'에 들어가면 마족과 동등한 어드밴티지가 적용됩니다.>> <<특수 옵션 : 미확인>> 이게 시르바나로 떠날 때 붉은 남자가 아란과 어벤저들에게 준목걸이 '어둠의증표'였다. '마족의 영향권' 에서 카오틱 유저가 마족과 동등한 보너 스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 그렇다. 아크가 짐작한 대로 비밀 던전에서 어벤저들이 레 벨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이 아티팩트 덕분이었 다. 그러나 그 아티팩트에는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착용자가 죽었을 때 데이터를 흡수해 어딘가로 전송하는 것! 그게 바로 미확인 상태였던 '어둠의 증표' 의 특수 옵션 이었던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게임 상의 아이템이 캐릭터의 정보를 지우다니!'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실졔로 아란이 당하고 있으니 이제 부정할 수 없었 다. 동시에 아란의 머릿속에서는수많은 의문이 교차했다. '처음부터 계획적이었던 거야. 마스튜아라가 말했던‥‥‥ 불멸의 존재인 유저의 생명이란‥‥‥ 결국 유저의 데이터. 그렇다면 대체 그런 제물을 바쳐야 깨어난다는 어둠의 제왕이 란‥‥‥ 그냥 강력한 힘을 가진 마족이 아닌 건가? 대체 뭐 지? 그리고 그런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려는 이자는 대 체‥‥‥‥' 아란은 흔란에 쵭싸인 눈으로 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죽어 버린 육체가 기우뚱하며 붉은 남자를 향해 무너져 내렸다. 그때 아란은 붉은 남자의 가면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을확인했다. 아마도 '차크라의 파동'을날리기 위해 접근 할 때 아란이 휘둘렀던 검에 베여 떨어져 나간듯했다. 뉴 월드에서는 장비품의 내구려이 내려가면 이런 식으로 흠집이 생겼다가 수리한 뒤에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이다. 아란은 쓰러지면서 떨어진 가면 사이로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가면 속을 확인하는 순간 눈동자에 경악과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가면 속에 숨겨진 붉은 남자의 얼굴은‥‥‥ '이. 이자는‥‥‥ 헉! 으아아아, 으아아아아!' 그때 갑자기 아란의 머리에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마치 머리가통째로 일그러지는 듯한 고통! 뉴 월드에서 전해지는 고통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유니 트에 누워 있는 현실의 자신에게 전해지는 고통이었다. 그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아란의 기억은 끊어졌다. 다음순간, 아란의 시신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마치 시커먼 덩어리 같은 게 둥실 뗘오르더니 마치 빨려 들어가듯 석실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뒤이어 시커먼 덩어리 가사라진 석실 안에서 마스튜아라가 걸어 나왔다. "후후후후, 파멸의 기사까지 심장으로 흠수했군." 아란의 시신을 바라보던 마스튜아라가 붉은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 필요한 영혼은 다모았습니다." "‥‥‥그 장소로 이동하라. " "네. 그런데 밖에서 얼정거리는 떨거지들은 어쩔까요?" "‥‥‥‥죽여라. " 붉은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서진 가면 속에서는 무기질적인 눈빛만이 반들거릴 뿐 이었다. "상대를 평범한 유저라고 생각하지 마라. 데러리스트라고 생각해라." 문 옆에 등을 기댄 중년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문을 중심으로 빙 둘러선 10여 명의 사내들이 긴장 한 표정으로 끄덕 였다. 금발의 외국인, 동남아계, 다국적으로 구성된 사내들의 가슴에는 G.A.S.P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뱃지가 붙어 있 었다. G.A.S.P‥‥‥ 글로벌엑서스 특수보안요원의 약자였다. 그렇다. 이들은 바로글로벌엑서스에서 파견된특수보안요원. 그리고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집은 홍콩 교외 지역에 위치한 별장이 었다. "모두 작전 지역으로 이동해라." 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이 날랜 몸놀림으로 흩어졌다.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FBI의 데러리스트 진압 작전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 진짜 권총은 아니지만 그 들의 손에는 가스총까지 들려 있었다. 이들이 이 별장을 봉쇄한 것은 몇 시간 전 대한민국 본사 에서 내려온 지령 때문이었다. 홍콩 1134-46 별장을 봉쇄하고 그곳에서 뉴 월드를 하는 유저를 모시기 바람. 관련 법적 절차는 홍콩 경찰과 본사에서 협상해서 처리하겠음. 이런 지령이 내려온 이유는 얼마 전부터 본사에서 추진해 온 극비 프로젝트와 연관이 있었다. 바로 본사의 기획실에서 김권태가 수많은 해커를 동원해 추진해 온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일전에 현우를 통해 마족들의 배후에 아란 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때 아란은 이미 흥콩으로 도피한 뒤였다. 이에 본사 기획실 프로그래머 김권태는 해커를 동원해 뉴 월드 흥콩 서버를 통째로 해킹, 아란의 거처를 역추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역추적에 성공해 아란의 거처를 알아냈다. 그러나 지금 특수 보안 요원들이 봉쇄한 별장은 아란의 거 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김권태의 의견 때문이었다. . "좋아. 바로 홍콩 쪽 보안요원을 동원해서 아란을 잡아들 이자!" 처음 김권태의 보고를 받은 하명우는 당장 군대라도 동원 할 기세로 말했다. 그러나 김권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지금은 그냥 두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뉴 월드의 상황이 안 보여? 인 권 문제 따위는 일단 잡아들이고 나서 어떻게든 무마시키면 돼. 지금은 놈들을 막는 게 우선이야!" "해커를 동원해서 자사 서버를 해킹하는 제가 인권 문제 따위를 신경 쓸 인간 같습니까?" "그럼 뭐야?" 하명우가미간을찡그리며 물었다. 그러자 김권태가 두툼한 서류철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설명했다 "아란의 회선을 잡은 뒤에 서버를 역추적해서 그동안 놈 의 행적을 모두 조사해 봤습니다. 역시 우리 예상대로 아란은 이번사건에 깊이 관여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놈이 이번 사건의 주동자는 아니 었습니다. " "놈이 아니라고?그럼 역시‥‥‥-?" "네. 그동안 아란의 회선을 감시하며 어벤저라고 불리는 유저들이나 NPC들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도청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몇 번이나 얘기가 나왔던 붉은 남자라는 자가 주동자라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역시 그런 건가? 하지만 그게 아란을 잡아 족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나?? "대어를 낚으려면 피라미는 일단 놔두는 편이 좋다는 겁 니다." 김권태의 대답에 하명우가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그 말은‥‥‥ 놈을 잡을 방법이 있다는 건가?"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김권태가 사무실에 득실거리는 해커들을 가리쳤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흥콩 서버를 해킹해서 아란 의 회선을 역추적하는 겁니다. 메인 서버와 교환하는 모든 데이터를 가로챌 수 있다는 뜻이죠. 그건 아란에 대한 정보 만을 확인할수 있다는 의미가아닙니다." 그렇다. 한 유저가 게임 내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단순히 유저가 캐릭터를 조작하는 명령어가 메인 서버로 들어가기 만 한다는 뜻은 아니 었다. 예를 들어 아란이 적과 싸울 때 검을 휘두르라는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메인 서버로 전해져 게임 속의 아란이 검 을 휘두르게 된다. 그러나 적이 아란을 공격할 때 받은 데미 지 따위는 반대로 메인 서버에서 아란에게 전해져야 하는 정 보였다. 아란이 하는 모든 행동이 실제로 게임에 적용되려면 수시로 메인 서버와 정보를 교환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회선을 해킹하면 단순히 아란만이 아니라 아란과 접촉하는 모든 것, 아란이 사용하는 아이뎀이나 접촉하는 유저, NPC의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때문에 100여 명의 해커들이 밤낮 없이 쉬지 않고 데이 터를 분석해야 했지만‥‥‥‥ 어쨌든 김권태는 100여 명의 해커를이용해 요 며칠 아란이 메인 서버와교환하는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알아냈다. 붉은 남자가 이번 사건의 주동자임을확신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런데 아란이 얼마 전에 그 붉은 남자와 접촉했습니다." 김권태가 날카로운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이미 아란의 거처를 알아냈으니 더 이상 아란올추적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모든 해커를 동원해 아란과 접촉한 붉은 남자의 회선을추적했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자잘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건 전문적인 내용이니 제외 하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제 대강 놈이 접속하고 있는 장소를 특정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딘가?" "놈도 홍콩에 있습니다." "홍콩? 그렇다면 애초에 아란이 홍콩으로 간 이유도‥‥‥‥" "붉은 남자와 접촉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란을잡지 말라고 한 건?" "붉은 남자가 현실에서도 아란과 접촉하고 있다면, 우리 가 아란을 잡아들이는 즉시 붉은 남자가 알아챌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붉은 남자는 도마뱀 꼬리 자르듯 아란과 의 연결 고리를 끊고 장소를 옮겨 더욱 치밀한 방법으로 방 화벽을 만들 겁니다. 아시다시피 놈은 작정하고 글로벌엑서 스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놈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채면 두 번 다시 흔적을 찾기 힘들 겁니다." 김권태나 하명우도 이미 얼마 전에 현우와 갱생단이 나눴 던 대화처럼 붉은 남자와 아란의 목적이 뉴 뭘드를 장악해서 글로벌엑서스를 협박, 막대한 돈을 뜯어내거나 주가 조작으 로 엄청난 수익을 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거기에서 움직이는 돈은 수백, 수 천억 규모다. 그렇다면 이건 이미 단순히 게임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었다. 글로벌엑서스라는 거대 기업을 노린 테러. 그리고 붉은 남자는 테러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 다. 당연히 무대 뒤에서는 그 규모에 맞는 조직이 움직이고 있을 터.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책을 세워 뒀을 게 분명했다. 김권태는 그 대비책 가운데 하나가 아란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남자에게 아란은 일종의 안전장치였을 가능성이 큽 니다. 자신은 꽁꽁 숨겨 두고 아란을 밖으로 노출시키는 거 죠. 그리고 아란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경고로 판단하 고 재빨리 숨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아란을 방치시컥 놓고 붉은 남자의 위치까 지 파악한 뒤에 잡아들이자는 건가?" "붉은 남자를 잡을 방법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붉은 남자의 회선을 역추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이제 거처를 알아낸 아란의 회선을 역추적할 필요는 없 습니다. 그러니 모든 해커를 붉은 남자의 회선에만 집중시키 면 며칠 안에 놈의 거처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 "알았다. 서둘러!" 그렇게 해서 회선 역추적은 아란에서 붉은 남자에게로 옮 겨졌다. 그리고 이틀 뒤, 쌍코피를 흘리며 밤샘 작업을 계 속한 해커들의 노고 덕분에 붉은 남자가 접속하는 장소를 알 아낼 수 있었다. 이에 하명우는 곧바로 흥롱 지사에 급전을 보내 붉은 남자 와 아란이 숨어 있는 장소로 특수 보안 요원을 출동시킨 것 이다. 그리고 현재 보안 요원들이 포위한 별장은 붉은 남자 가 접속하는 장소였다. 물론 보안 요원이라 해도 실제로는 민간 기업의 직원에 불 과하다. 가택수색은물론, 체포권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글로벌엑서스는 사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사전 작업까지 완벽하게 끝내 놓았다. 때문에 흥콩 경찰도 보안 요원과 동행하고 있었지만 상부의 언질을 받은 경찰들은 멀 리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돌입하라!" 대장의 명령에 돌격대원이 문을 박차고 별장으로 뛰어 들 어갔다. 그리고 뒤따라 10여 명의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 들 어갔다. "1층에는 없습니다!" "1분대는 1층에서 대기.2분대는 2층으로 진입한다!" 대장의 명령에 보안 요원들은 정말 특수부대원처럼 신속 하게 움직였다. 각 통로를 봉쇄하고 날렵하게 2층으로 올라 가 모든 방을 수색했다. "찾았습니다. 뉴 월드의 유니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잠시 후. 구석의 방으로 돌입한 요원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뒤이어 방에 들어선 대장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번졌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후끈후끈한 열기가 흘러나오는 방. 대원의 말처럼 방 안에는 유니트가 있었다. 그리고 유니트 는 한창 게임에 접속한 상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유저는 보이지 않았다. 유저 대신 케이스가 벗겨진 유니트에 수백 개의 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들은모두 방구석에 자리 잡은 컴퓨터? 거대한 회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대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대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시스템 관리 요원이 재빨리 기계에 노트북을 연결 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자판을 두들기며 뭔가를 확인하더니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유니트에 연결된‥‥‥ 이 컴퓨터는‥‥‥ 맙소사, 거대한 오토 프로그램입 니 다. " "오토 프로그램?" "유저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지정해 놓은 명령에 따라 캐릭터를 움직여 주는 프로그램을 말하는 겁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지금이 무슨 2010년이냐?오토 프로그램이라니? 어떻게 한 번에 테라바이트 단위의 정보를 연산해야 하는 뉴 월드 캐릭터를 오토 프로그램으로 움직 여? 뭣보다 뉴 월드는 유저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거잖아?" "저도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관리 요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이 컴퓨터는 모든 데이터를 뇌파로 만들어 유니트에 전 송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억 데라바이트의 정보로 수천수 만 가지 상황에 따른 모든 대응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 다. 유니트도 완전히 개조되어 있고 말입니다. 이건 평범한 유저의 짓이 아닙니다. 저보다, 아니 제임 설계자보다 더 자 세히 뉴 월드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런데‥‥‥‥" "그런데?" 대장이 또 뭐냐는 듯이 불안한목소리로 물었다. 정보를 확인하던 관리 요원이 갑자기 시퍼렇게 질린 표정 으로 소리쳤다. "이 컴규터의 하드디스크는 몽땅 비어 있습니다!" "뭐?방금 전에 수억 테라바이트의 정보가들언 있다면서?" "그건 확실합니다. 분명 이 컴퓨터의 하드에는 수억 톄라 바이트의 정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그 런데 그 데이터들이‥‥‥ 모두 유니트를 통해 뉴 월드의 메인 서버로 전송된 모양입니다." "무슨 헛소리야? 일개 유니트에서 뉴 월드 메인 서버로 뎨이터를 전송하다니?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네.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능하지 않은데‥‥‥‥" 관리 요원이 흔란스러운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그렇다. 뉴 월드의 메인 서버에 새로운 데이터를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글로벌엑서스 본사에서도 뉴 월드 메인 서버의 정 보를 자유롭게 다를 수 없어서 통제력을 잃은 게 아닌가? 그 런데 일개 유저가 사용하는 유니트에서 메인 서버에 강제로 정보를 전송하다니? 그리고 그게 수천 명의 해커들이 한 짓 도 아니고 자동으로 돌아가는 오토 프로그램이라니? 이건완전히 난센스라고밖에말할수없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그 오토 프로그램의 데이터가 붉은 남자라면‥‥‥‥ 붉은 남자는 이미 뉴 월드의 NPC가 되어 버렸다는 뜻이 아닌가? 붉은 남자라는 명칭의 오토 프로그램은 이미 뉴 월드의 생 명체로 진화했다! 이것은 이제 유니트와 컴퓨터를 부숴도, 설사 오토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을 잡아들인다 해도 붉은 남 자를 막을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단 컴퓨터와 유니트를 수거하고 본사에 연락해!" 대장이 그렇게 소리쳤을 때였다. 한 대원이 방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대장님, 브라보 팀이 아란의 임대 사무실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또 뭐야? 설마 아란도 없다는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대원이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로 떠듬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란은 유니트에서 접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놈을확보했을 때는 이미 뇌사상태에 빠져 있었답니다." "뇌사 상태?" "네. 전문 요원들의 조사로는 데이터의 역류에 의한 쇼크 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대원의 보고에 대장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버렸다.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티모시가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시르바나에서 아란과 함께 탈출한 티모시와 어벤저 30명 은 마신전 앞에 모여 있었다. 양자 물질 수신기가 부서진 데 대해 마스튜아라의 해명을 듣기 위해 마신전으로 들어간 아란이 돌아을 때까지 기다리 는 중이었다. 그런데 금방 다녀오겠다던 아란은 10분이 다 되도록돌아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벤저 1명이 지루한 표정으로 마신전을 바라보았다. "뭔가 얘기가잘 안 되는 건가?" "잘되고 말고할 게 뭐 있어?" 티모시가골난표정으로 활시위를 잡아당기며 쏘아붙였다. "젠장,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으면 마스튜아라든 붉은 남 자든 가만두지 않겠어!" "뭔가 이유야 있겠죠." 어벤저가 티모시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을 때앗다. 마신전을 노려보던 티모시가 벌떡 일어나 동그란 눈을 깜 빡였다. 마신전 입구에서 뭔가 작은 물체가 둥둥 떠서 날아 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라? 저게 뭐야? '매의 눈'!" 티모시는 곧바로 '매의 눈' 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치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주변 경관이 몇 배나확대되어 보였다. 그렇게 '매의 눈'으로 물체를확인 한 티모시가 배시시 웃음을 흩렸다. "호호호, 뭐야? 아란의 눈알이잖아? 그새를 못 참고 내가 보고 싶어진 건가?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아란도 꽤나 귀여 운 구석이 있잖아?" 티모시의 말에 어벤저들은 일제히 '그럴 리가 없다' 는 표 정을 떠올렸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사실 티모시는 다른 어벤저들과는 전 혀 달랐다. 본래 카오틱이었던 어벤저들은 대부분 안델의 스 카우트 제의를 받고 길드에 가입했다. 그러나 티모시는 먼저 어벤저를 찾아와 TV에서 본 아란에게 꽃혔다며 어깃장을 부리면서 어벤저에 합류했다. 그리고 밤이나 낮이나 틈만 나면 아란에게 추파를 던져 대고 있었다. '돈 많은 남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여자인가 보다.' 이게 어벤저들 사이에서 티모시에 대한 평판이었다. 그럼에도 아란이나 어벤저들이 그녀에게 함부로 하지 못 햐는 이유는 하나였다. 티모시는 나사가 몇 개 풀린 정신 나 간 여자 같았지만, 레벨이나 전투 실력에서는 어벤저에서 당 할 유저가 없을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호호호, 모처럼 예쁜모습을 보여 줘 볼까나?" 아란의 눈알을 확인한 티모시가 재빨리 거울을 꺼내 들었 다. 그리고 각종 화장품 세트를 꺼내 덕지덕지 처발라 댔다. 그때 어벤저들 앞까지 날아오던 눈알이 갑자기 맥얼이 바닥에 떨어졌다. "엇, 떨어졌다!" "티모시의 화장한 얼굴이 그령게 충격적이었나?" "음‥‥‥ 확실히 밤에 보면 무섭기는 하겠지만‥‥‥‥" "뭐야? 지금 싸우자는 거냐?" 어벤저들의 말에 멱칠을 해 대던 티모시가 발끈하며 활을 치켜들었을 때였다. 바닥에 떨어진 아란의 눈알이 마치 풍선처럼 쪼그라들며 썩어 들어가는 게 아닌가? 농담을 주고받던 어벤저들이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란의 눈알이 썩어 들어간다. 이건 두 가지 경우밖에 생각할수 없었다. 하나는 떡칠한 티모시의 얼굴이 눈이 썩을 정도로 끔찍하 든가, 아니면-이쪽이 더 확률이 높겠지만-'뱀파이어 아 이'를 발동시킨 아란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족들의 비밀 기지에서 아란이 죽을 일이 뭐가 있 단 말인가? 티모시와 어벤저들은 황급히 썩어 가는 눈알을 향해 달려갔다. 비록 썩어 가고 있었지만 눈알에 박혀 있던 메모리 크리스털은 멀쩡했다. "대체 신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아란의 눈알에 박혀 잇던 메모리 크리스틸에는 뭔가 정보 가 남아 있으리라. 아니, 애초에 아란이 눈알을보낸 것은 어벤저에게 뭔가를 알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티모 시는 서둘러 메모리 크리스털을 재생시켜 보았다. 크리스털을 작동시키자 허공에 영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 이건‥‥‥!" 영상을 지컥보던 티모시와 어벤저들이 경악성을 터뜨렸다. 메모리 크리스털에는 아란이 신전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도망 나올 때까지의 영상이 담겨 있었다. 다시 말해 아란이 마스튜아라와 나눈 대화와 짐승들에게 쫓기는 내용이었다. 그렇다. 아란은 짐승들에게 쫓길 때 어벤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먼저 눈알을 날려 보낸 것이다. 그리고 눈알 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가 바로 마신전 입구에서 붉은 남자에 -게 최후의 일격을 당했을 때였다. 때문에 크리스털에는 붉은 남자가 아란을 죽이는 장면까 지는녹화되어 있지 않았지만. 눈알이 썩은 것으로 아란의 죽음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영상이 끝나자 티모시가 와락 크 리스털을 움켜쥐며 이를 갈아붙였다. "마스튜아라 자식이 감히 아란을‥‥?" "티모시 님!" 그때 옆에 있던 어벤저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던 티모시의 얼굴에 당혹감 이 번졌다. - 크와아아아아! 마신전에서 엄청난숫자의 짐승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바로 아란을 공격했던 짐승들이었다. 놈들이 왜 밖으로 몰려나오는지는 이제 아이큐가 한 자리 숫자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란처럼 티모시와 어벤저들을 숙청하려는 것이리라! 빠드득! 티모시의 입에서 이빨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나왔 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짐승들을 통구이로 만들어 먹고 싶었다. 그러나 아란이 남긴 정보에 의하면 눈앞의 짐승들은 모두 정예 몬스터였다. 아니, 정예 몬스터가 아니라도 고작 30여 명밖에 남지 않 은 어벤저로 수천의 몬스터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었다. 솔직히 지금 전력으로는 마족들의 소굴에서 살아서 도망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싸우면 100% 전멸! 그렇다면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젠장. 마탄의 사수 3장, 악마를 난자하는 화살!" 티모시가 와락몸을돌리며 수십 발의 화살을 뿜어냈다. 그러자 돌진해 오던 짐숭들의 움직임이 약간둔해졌다. "일단 이곳을 벗어난다! 진형을 갖추고 퇴로를 확보하라!" -크와아아아아! 티모시의 목소리는 곧 짐승들의 포효에 묻혀 버렸다. ACT 5 나가란 복구 자금 구하기 아란의 계획을 알아내고 저지하기까지 장장 열흘. 그동안 엄청난 시간과 노력, 돈을 투자해 온 시르바나! 현우가 뉴 월드에서 얻은 이득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르바나가 한 방에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잠이 제대로 올 리 가 없었다. 덕분에 현우는 그 열흘 동안 평균 2시간도 채 자 지 못하고 게임에 매달렸다. 그리고 지옥의 강이 봉인되어 단숨에 긴장감이 풀어지자 마치 시체처럼 곯아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모처럼의 수면도 결코 안락하지는 않았다. "와아아아아!" "싸워라. 무슨수를 써서라도 나가란을 지켜야 한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그동안 현우가 받은 스트레스를 증명이라도 하듯 자는 내 내 머릿속에서는 치열했던 전투 장면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재생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열흘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 어왔던 비명과 함성, 쇳소리가 쉬지 않고 고막을 을려 였다. 그렇게 대체 얼마나 지났을까-? 띠리리리, 띠 리리리. 고막을 뒤흔들던 함성이 어느 순간 익숙한 신호음으로 바 뀌었다. 비몽사몽을 헤매던 현우는 한참 뒤에야 그게 전화벨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우우. 대체 어떤 자식이‥‥‥‥ 몰라, 몰라. 오늘 지구가 멸망해도 못 일어나!" 유니트 안에서 번데기처럼 몸을 말고 곯아떨어졌던 현우 가 짜증을 부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기를 잠시, 전화는 곧 끊어졌다. 그러나 현우가다시 잠을 청하려는 찰나, 또다 시 요란한 소리와함꼐 전화벨이 울려 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결국 현우가 욕설을 내뱉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을 때 였다. "오오, 현우냐?" "짝퉁 형?" "그래, 나다. " "대체 무슨 일 때문에 아침부터 계속 전화예요?" "뭔 소리야? 이제 처음 하는 거구만‥‥‥‥ 그런데 자고 있 었냐?" "‥‥‥‥자고 있었죠. 형님이 깨우기 전까지. 그리고 당장 전 화를 끊고 다시 잘생각입니다." 현우가 짜증 120%의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러자 짝퉁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지금 잠이나 자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인터넷이 발칵 뒤집 혔다고!" "인터넷이 발칵 뒤집힌 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있어, 엄청! 그 주범이 너니까." "밑도끝도 없이 그게 무슨소리예요?내가뭘 어쨌는데요?" "긴말할 필요 없어.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서 아크라는 이 름으로 검색해 봐. 그럼 알 거다. " 짝퉁의 말에 현우는 인상을 찌푸리려 머리를 ,벅벅 긁어 댔 다.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방금 전에야 깨어난 현우로서는 대 체 짝퉁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잔뜩 흥분한 짝퉁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뭔가 일이 일어나기는 한 모양이다. 현우는 할 수 없이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검색 엔진에 '아크'라는단어를치고 엔터를눌렀 을 때였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을 바라보던 현우가 떠듬거렸다. "이, 이게 다 뭐죠?" "뭐긴 뭐야?다 네 이야기지!" "맙소사‥‥‥‥"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현우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우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컴퓨터 화면은 이런 내용이었다. 아크라는 이름으로 검색된 게시물은 14,680건입니다. 10만의 마족에게서 나가란을 구해 낸 영웅! 나가란 전투 직후, 현우의 명성은단숨에 급부상해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도 현우가 이름을 날혔던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에는 스케일인 달랐다. 이번 나가란 전투에 참가한 연함군의 숫자가6만이었다. 다시 말해 6만의 유저가 현우와 함께 참전하고, 6만의 입 이 경험담, 혹은목격담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본래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조금‥‥‥ 아니. 엄청 과장되기 마련. ‥‥‥아크 님이 직접 지휘하는 다크에덴의 돌격대가 우리 부대로 밀려오는 마족들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아크 님에 대한 소문이 반 이상은 부풀려졌다 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번뜩이는 몸놀림으로 마족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며 항상 선두 에서 적진으로 뛰어드는 아크 님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실 : 라둔을 이용해 전리품을 챙기려면 항상 선두에 있 어야 했을 뿐이다.) ‥‥‥‥그패 아크 님이 저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여기 서 포기하면 우리는 그저 병사애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포기 하지 않으면 영웅이 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지쳐 가던 제 몸 속에서 믿기지 않는 힘이 샘솟아 나는‥‥‥‥ (사실 : 착각하지 말자. 그 샘솟는 힘은 그저 '간병' 효과였 을 뿐이다.) ‥‥‥‥시르바나까지 진군했지만 이미 놈들미 비밀 던전 깊 은 곳까지 침입해 있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저는 거의 포기했 습니다. 하지만 아크 님은 소환수를 이용한 이중 삼중으로 치 밀한 작전을 펼쳐 비밀 던전 60층으로 이동했습니다. 나중에 그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고작 2,000명 남짓의 병력으로 1만의 마족을‥‥‥‥ (이건 사실이지만 그 뒤에 따라불은 아크의 전루 묘사는 거의 히어로 영화 수준이었다.) ‥‥‥인터넷에서 현우는 어느새 불세출의 영웅이 되어 있 었던 것이다. 사실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당히 각색한 정도라서 그 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현우의 입장에서는 낯 뜨거워서 차마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할수준의 글도 적지 않았다. 그런 인터넷에 떠도는 수천 종류의 게시물을 그대로 종합 해 보면, 아크라는 녀석은 싸울 때는 투신의 뺨을 후려칠 정 도로 강하고. 작전을 세울 때는 제갈공명의 수염을 잡아 뜯 을 정도로 치밀하고, 동료를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있단다. "대체 누구예요?이 아크라는 녀석?" 이게 게시물을 읽어 본 현우의 소감이었다. "크혜헤혜. 나도 모르겠다. 어쨌든 너, 인마! 이제 완전히 스타야, 스타!" 짝퉁이 키득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지금의 상황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돼 있더 라. ' 라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오전 11시. 현우가 지옥의 강을 봉인했을 때가 대략 새벽 3시 무렵이 었으니 고작 7시간이 지났다는 말이다. 그 7시간 만에 이런 게시물이 14,680건이나 게재된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게시물이 을라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뉴 월드의 유저는 물론. 뉴 월드를 하 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지리 라. 과거 한창 프로게이머가 유명세를 떨칠 때 스타크래프트 를 모르는 사람도 유명 프로게이머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연예인 지망생이라면 춤이라도 출 상황이었지만‥‥‥‥ '엿 됐다!' 그게 현우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새삼스럽지만 현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걸 그다 지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을 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기 집중된 다는 뜻. 분명 앞으로 게임을 할 때면 쓸데없이 많은 사람들 이 알은척을 하며 접근해 오리라. 그것만으로도 가능하면 유저와 얽히기를 싫어하는 현우로 서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알 은척을 하는 유저라면 지금처럼 편하게 장사를 해 먹기도 쉽 지 않다. 자칫 현우가좀 많이 남겨 먹거나 하면 곧바로 인터 넷에 험담이 올라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자고로 모난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선망의 대상은 곧 질투의 대상과도 같았다. 지금은 나가란 수호 작전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모든 사람 들이 현우를 영웅 취급 하고 있지만, 언제 손바닥 뒤집듯 현 우를 흠집 내기 시작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비난이 시작되면 영웅 취급 할 때 그랬던 것처럼 몇 배나 부풀려질 게 분명했다. 실제로 아란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암울한 어둠의 길을 걷게 되지 않았던가?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 게 가장좋아. ' 이게 그동안 현우가 생각해 왔던 이상적인 게임 스타일이 었다. 현우가 방송 동영상에서 항상 다크울프로 활동해 온 이유도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르바나가 끼어 있는 일이라 다크을프 로만 활동할 수 없었다. 덕분에 이번 사건으로 나가란 연합 군 6만 명 앞에서 시르바나의 영주인 아크와 다크을프가 동 일 인물이라는 것까지도 만천하에 모두 밝혀져 버린 것이다. '젠장, 시르바나 일이 너무 다급해서 미처 이런 부분까지 는 신경 쓰지 못했어.'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제 인터넷에서 몰매를 맞지 않으려면 죽으나 사나 '좋 유명해진 만큼 작은 실수라도 크게 확대되어 공공의 적이 돼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공의 적이 되면 정 상적인 게임을 하기가 힘들어진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던 상황!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로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 카는 현우 에게 그건 상당한 부담이었다. '나가란 연합군을 모을 때 미리 그 부분까지 생각했어야 했어‥!' 현우가그렇게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짝퉁에게 걸려 온 전화를 끊자마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려 댔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화를 받자수화기 너머에서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 님, 이제야 전화를 받으시는군요. " "누구‥‥?" "게임 특종의 PD 이윤규입니다!" 수화기에서 들려온목소리에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임 특종PD 이윤규라면 물론 알고 있었다. 일전에 쥬르 일당의 란셀 침공을 막아 낸 직후, 현우의 동 영상을 TV에 내보내기 위한 판권 계약을 할 때 본 적이 있었 다.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이미 얼마 전에 8편의 동 영상을보낸 것으로 계약이 끝났기 때문이다. "제가 전화 드린 건 재계약 문제 때문입니다. " "재계약요?" "네, 알고 계시겠지만 그동안 아크 님이 보내신 동영상은 게임 특종에서 시리즈로 편집되어 졔법 많은 호응을 얻었습니 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열화와같은 요청에 '다크울프의 모험 시즌 2'를 10부작으로 편성해 방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다크울프의 모험 시즌 2요?" 이윤규의 말에 현우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말은 곧 현우가 찍는 동영상을 또다시 방송국에 팔 기 회가 생겼다는 뜻이 아닌가? 현우가 이전에 계약할 때 받았던 판권료가 250만 원. 이전 보다 긴 10부작이니 앞으로 두 달 보름 동안 2,500만 원의 고정 수입이 확보되는 것이다. 마침 아크라는 이름이 말도 안 되게 화제가 되어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방송국 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재계약을 하자고 하다니? 문자 그대로 자다가 떡이 생긴 셈이다. 그러나 아직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우가 잠시 생 각을 정리할 때였다. "이전의 동영상 반응도 상당히 좋았으니 이번에는 판권료 도 편당 300만 원으로 올려 드릴 생각입니다. 또한 이번 나 가란 수호 작전의 동영상은 특별 방송으로 편성하기로 결정 됐습니다. 그 동영상의 판권료는 따로 1,000만 원이 지급될 겁니다. 저희 쪽에서 이미 글로벌엑서스의 허락을받아왔으 니 아크 님은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시면 됩니다. " 현우가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윤규가 서둘러 말 을이었다. 덕분에현우의 입이 쩍 벌어졌다. . 10부작 편당 300만 원이면 3,000만 원! 게다가 나가란 수호 작전 동영상이 1,000만 원!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동영상을 찍어 보내 주기만 하면 두 달 보름 만에 4,000만 원의 수입을 얻 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게 정말 웬 떡이냐?' 현우는 생각할 것도 없이 OK사인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현우는 뒤늦게 뭔가 얘기가 이상하게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방송됐던 '다크울프의 모험' 이 그렇게 시청률이 좋았던가?' 솔직히 현우는두 달동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게임 특종에서 '다크울프의 모험'은 실패작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게임 특종에서는 현우가 보낸 동영상을 3주 분량 만큼 모아 놓은 다음에 방송했는데. 하필이면 '다크울프의 모험' 이 방송될 때쯤부터 마족 전쟁이 시작되어 버렸다. 때문에 시청자들의 판심은 마족 전쟁에 집중되었다. 물론 그 뒤로 현우 역시 마족 전쟁에 참전했지만, 마족 전 쟁에 관련된 전투 동영상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이 올라 와 현우의 동영상은 그리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 이다. 그나마 시청률이 급증했을 때는 한 번. 현우가 샹그리 아에서 얻은 지옥의 강 관련 동영상이 방송됐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시즌 2가 계획되고 판권료도 50만 원이나 더 준 다고?' 막창 그렇게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생걱났다. 철저한 자본주의 방식으로 돌아가는 방송국에서 이유 없 이 잘해 줄 리가 없는 것이다. '뭔가 수상한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우의 머릿속에 갑자기 방금 전의 컴 퓨터 화면이 떠을랐다. 불과7시간 만에 14 680건이나 올라왔던 게시물! '그래, 그렇게 된 거였군. ' 현우는 그제야 잠이 깨며 모든 상황이 명확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일단 나중은 어떻게 되든 현재 뉴 월드에서 아크 의 유명세는 최고조! 인터넷에서 6만 명이 떠들어 대는 덕분에 뉴 월드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심지어 뉴 월드를 하지 안는 사람이라도 아크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관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방송국! 그제야 현우는 방송국에서 선심 쓰듯 판권료를 을려 준다 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나가란 수호 작전에 참전한 연합군은 6만 명. 그만큼 관련 동영상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전투의 사령관인 현우가 직접 촬영한 동영상 은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렇다 할 내용이 없 다 해도 '아크가 직접 찰영한' 이라는 광고 문구 하나만으로 시청률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 그게 '다크울프의 모험 시즌 2'를 졔작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군. 그럼 짝퉁 형이 전화하기 전에 계속울렸던 전화 벨은‥‥‥‥' 바로 방송국에서 걸려 온 전화다. 혹시라도 다른 방송국에서 미리 전화를 할까 봐 쉬지 않게 전화를 걸어 댄 것이리라. 일단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자 현우의 머리가 엄청난 속도 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그렇다. 현우가 찍은 동영상을 사 줄 방송국이 있다면 상 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굳이 급하게 현우가 게임 특종과 계 약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게임 특종과 계약하는 게 가장 이득이 많 겠지?' 그 이유는 바로 그동안 게임 특종에서 현우가 그럴듯한 일 을 할 때마다 떠들어 댔던 멘트 때문이었다. 게임 특종은 다 크울프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송국이라는 말 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웅이 돼 버린 현우가 다른 방송국으로 동영상을 내보내면 시청자들은 그동안 방송국에서 현우를 홀대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임 특종에서 안달하며 계속 전화를 걸어 댄 것은 그 때 문이었다. 그리고 방송국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다 른 방송국보다 많은 판권료를 주고서라도 게임 특종에서 '다크울프의 모험 시즌2'를 방송하고 싶어 하리라. 아쉬운 건 현우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주는 게 도리. 새삼스럽지만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 다. 현우가 짐작하는 대로 유저들의 선망이 질투로 바꿔면 방송국에서도 현우의 동영상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으리라. 그렇다면 몸값이 을랐을 때 최대한 받아 내는 게 상책! "글쎄요? 제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요즘 바빠서 확답을 드 리기가 힘드네요." 거기까지 생각한 현우는 슬슬 낚시(?)에 들어갔다. "혹시 벌써 다른 방송국에서 연락이?" "네?아니, 그, 그건‥‥‥‥" 현우는 짐짓 당황한듯이 떠듬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 자 조급해진 이윤규는 대번에 낚싯바늘에 꿰어 버렸다. "대강 알겠습니다. 전화 끊지 말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 습니까?" 이윤규는 허둥지둥 전화기를 대기 상태로 돌려놓고 어딘 가로사라졌다. 그리고 약3-4분 정도 지났을 무협, 대기 상태가풀리며 다시 이윤규의 목소리가들려왔다. "방금 전에 방송 국장님과 상의했습니다. 이번 나가란 수 호 작전에 관련된 동영상의 판권은 1 500만 원. 그리고 '다 크울프의 모험 시즌 2'에 사용할 동영상은 10분 편성에 10 부작. 편당400만원을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면 결 코 다른 방송국에서 제시하는 금액보다 낮지 않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윤규의 말에 현우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1 500만 원에 10편x400만 원이니 4,000만 원. 합계 5,500만 원!' 처음 게임 특종에서 제시한 금액이 모두 합해 4,000만 원. 만약 짝퉁의 전화를 먼저 받지 못했다면 당연히 이런 상황 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1,500만 원을 손해 볼 뻔한 것이다. '뭐야-? 그럼 결국 더 줄 수도 있으면서 대강 4,000만 원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말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모처럼의 기회니 가격을 더 을려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현우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이윤규는 이미 다른 방송국에서 얼마 정도 제시하려 했는 지 대강 감을 잡고 가격을 제시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5,500만 원이 게임 특종에서 졔시할 수 있는 최 대 액수. 그리고 게임 특종이 댜른 방송국의 게임 방송보다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게 모든 방송국을 통틀어 가 장 높은 판권료이리라. 자칫 여기서 더 욕심을 부려 동영상의 가격을 을려놔 버리 면 게임 특종은 물론, 다른 방송국에서도 포기해 팔아먹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장사를 할 때는 나갈 때와 물러날 때를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가격으로 하죠. 제가 방송국까지 가야하 나요?" "전화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일단 계약은 이뤄졌습니다. 계약서는 편할 때 방송국에 나오셔서 작성해도 됩니다. " "네." 현우는 차분하게 전화를 끊었지안 내심 기뻐 날뛰고 싶은 기분이었다. '유명세가 치솟아서 나쁜 일만 생기는 건 아니군. 아니. 그동안 내가 너무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 왔는지도 몰라. 유저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분명 지금처럼 장사를 하기는 쉽 지 않아. 하지만 유명세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장사할 수 있 는 방법도 있을 거야. ' 게잉 특종과의 계약으로 현우는 이번 사태를 새로운 시각 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잠이 깨어 즐거 운 기분으로 뉴 월드에 접속했지만‥‥‥‥ "하아......" 아크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흩러나왔다. 일개 유저로서 전무후무한 규모의 연함군을 조직해 10만 마족을물리친 영웅. 아크! 뉴 월드에서 이룩한 업적 덕분에 아크는 현실에서 부와 명 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업적을 이룩한 뉴 월드에 들어가자 암담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소유한 영지 정보창<<란셀,(시르바나)>> 영지 : 시르바나 현재 영주 : 아크 등급 : C 분류 : 대형 영지(소속 마을 15개) 영지의 주민 수 : 7,040명(▽하락중) 주민 유대감 : 350(▽하락 중) 주민 충성도 : 210(▽하락 중) 영지의 총수입 : 열흘 기준 -???골드(산출 불가) 현재 영지의 자산 : 3,700골드 현재 영지의 가치 : 447,150(▽하락 중) 영지의 명성 : 380,400(▽하락 중) 발전도 : 32,460(▽하락 중) 발전 속도 : 30,470(▽하락 중) 상업도 : 52,290(▽하락 중) 문명도 : 46,560(▽하락 중) 무장도 : 5,500 *현재 영지에게 적용되는 효과 전쟁의 신전 : 무장도 +30%, '치안 유지' 효과 <<파괴로 인해 재건 시까지 효과 중지>> 후원의 성당 : 주민 충성도 +10%, 주민 유대감+10% <<파괴로 인해 재건 시까지 효과 중지>> 용병 대기소 : 영제이 모이는 떠돌이 용병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또한 용병 대기소의 등급에 따라 영주가 용병을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파괴로 인해 재건 시까지 효과 중지>> *현재 영지 상황 -주민들이 불안해해 치안 유지가 힘든 상황입니다.(▽하락 중) -일부 농경지가 피폐해져 영지의 수입이 격감하고 있습니다.(▽하락 중) -일부 가옥이 파괴되어 쉴 곳을 잃은 주민들의 민심이 흉흉해지고 있습니다. 서둘러 주민들이 쉴 곳과 일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주민 수가 급감할 우려가 있습니다. "이게 그동안 제가 파악한 영지 상황입니다. " 로콘이라는 NPC가 두툼한 서류를 보여 주었다. 이 로콘이라는 보좌관은 전 보좌관 베라미의 아들이었다. 마족이 나가란을 공략하던 당시 아란은 뤼겐베르크를 이 용해 시르바나 성을 강습했다. 덕분에 영지의 다른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시르바나 성에 머 물고 있던 병사나 공무원 등의 NPC들은 탈출하지 못하고 전 멸당했다. 때문에 아크는 시르바나 성이 텅텅 비어 있을 거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다시 시르바나 성에 들어와보니 의외로 많은 공무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로콘처럼 죽은NPC들의 자식들이었다. . 뉴 월드에서는 영지 운영에 필수적인 공무뭔들은 이렇게 사망할 경우, 곧바로 같은 능력을 가진 NPC가 업무를 이어 받도록 시스뎀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아무리 현실 같아도 온라인 게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 NPC의 빈자리가 자동으로 메워지는 것은 아 니었다. 직속 보좌관 같은 필수 NPC 이외의 평범한 NPC들 의 빈자리는 그대로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어쨌든 아크는 로론 덕렬에 뉴 월드에 접속하자마자 시르 바나 영지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시다시피 현재 영지 상황은 심각한수준입니다. 다행 히 마족들이 하늘에서 강습하는 헝태로 영주성을 기습해서 영지민들의 사상자는 많지 않지만, 이번 사건으로 영지민들 이 두려움에 떨며 떠나갔습니다. 또한 연합군과 마족들의 전투로 영지의 부대시설이 대부분 파괴되어 여기저기에서 문 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게 문제지만 일단 가장 시급한 문졔는 식량입니다. 봄철 수확을 앞두고 있던 시기라‥‥‥" 보좌관 로콘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수치로 나온 피해만보면 내가 예상했던 피해보다 적다. ' 아크는 로콘의 사무적인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영지 정 보창을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는 시르바나가 아란에게 점령당했다는 말을 들 었을 땐, 곧바로 잿더미로 변해 버린 시르바나를 떠올렸다. 그러나 실제 피해는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다. 연합 군과 마족의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은 페허처럼 변해 버렸지 만, 영주성과 멀리 떨어진 지역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 이다. '아란의 목적이 지옥의 강 범람이었다는 게 차라리 다행 이었어. ' 그럴다. 그나마 영지가 이 정도로 멀쩡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만약 아란의 목적이 시르바나 파괴뿐이었다면 아크의 예 상대로 점령당한 직후 시르바나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됐으리라. 그러나 아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옥의 강 범람-이제 와서 생각하면 단순히 지옥의 강 범람만이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이었다. 그리고 지옥의 강이 범람하면 시르바나 는 물론 나가란이 통째로 사라진다. 그러니 굳이 번거롭게 마족을 동원해서 시르바나를 파괴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시르바나가 열흘이 넘도록 마족에게 점령당했음에도 폐허가되지않은이유었다. 그래도 역시 발전도, 발전 속도, 상업도, 문명도, 무장 도‥‥‥ 등 영지 발전에 관련된 모든 수치가 쪽쭉 내려갔지 만, 하락폭은 평균 20~30%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규모가 얼마나 됐든 피해를 받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동안 아크가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 던가? 헤르메스 연합을 물리치고 시르바나를 탈환한 아크는 1년 6개월이나 대륙상회를 이용해 조성해 놓은 비자금을 몽 땅 털어 영지를 발전시켜 왔다. 실제 아크의 쌈짓돈이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허망하게도 처음 영주가 됐을 때보다도 못한 수준이 돼 버렸다. 영지 정보창에는 아직 등급이 C로표기되어 있었지만, 다 음 심사-영지 등급은 한 달에 한 번. 3국 회의에서 심사를 통해 결정괸다-가 열리면 D둥급으로 떨어지리라. 물론 현재는 마족 전쟁 탓에 시니어스 공국은 물론, 브리' 스타니아나 슈덴베르크도 나가란에 관련된 모든 행정을 중단한 상태라 당장 심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등급이 떨어지지 않아도 실제 영지의 재정이 적자 상태라 영주 월급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으리라. 열흘에 6,000골드. 한 달에 18,000골드씩 들어오던 수입 이 중단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4,000명 규모의 연합을 운영하는 데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뭐, 영지가 이 지경이 됐으니 유저들은 그래도 이해해 주 겠지만 문제는 수인족과 동방 민족들로 구성된 1,500명의 NPC 연합원들이다.' NPC 연합원들은 일반 유저와 달리 연합원이라는 게 바로 직업이다. 아크는 이들을 연합원으로 들이기 위해 열흘 단위 로 2,000골드의 월급을 줘야 하는 것이다. 연합을 유지하는 데 매달 6,000골드의 돈을 아크가 직접 메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해고해 버리고 싶지만‥‥‥‥' 사정에 따라 일단 고용했던 NPC 연합원을 해고해 버리면 당장 너구리족, 동방 민족과의 관제가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저 세계와 스탄달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 고, 최악의 경우 군수물자 조달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아크가 지옥의 강이 범람하는 상황에서도 NPC 연합 원들을 챙긴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만약 아크에게 고용되어 있던 NPC 연합원들이 몰살이라 도 당한다면 각종 보상금 따위로 한 번에 수만 골드를 지불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리라. 그러나 다행히 당시 60층의 밀실에 숨어 있던 NPC 연합 원들은 거의 사상자 없이 구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구 해 놓고 보니 이번에는 유지비가문제였다. '어쨌든 최악의 상황만은 피했으니.원정군에 대한 군수물 자 조달에는 문제가 없어.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을 이 쪽으로 돌리면 당장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 그러나문제는당장 눈앞의 손실이 아니었다. 이게 당장 몇 달 만에 호전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시르바나는 이번 사태로 각종 농경지와 기 간 산업채가 적지 않게 파괴되었다. 이건 단순히 영지가 파 괴됐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만큼 맡은 영지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의미였다. 당연하지만 영지의 수입은 영지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이 루어진다. 그런데 영지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세금은커녕 오히려 영주에게 실업수당을 요구해야 할 상 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르바나에 남아 있는 돈은 고작 3,700골드. 7,000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에게 피죽도 먹이지 못할 정도였 다. 하물며 파괴된 농경지와 기간산업체를 복구해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미 가옥을 잃고 굶주린 영주민들의 민심은 피폐해진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라면 곧 영지에는 폭력과 약탈이 성행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영주성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대부분 전사해서 치안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 다. 조속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로콘이 쐐기를 박듯이 상황을 설명했다. 아크가 걱정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세금을 걷지 못하니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 한다. 일자리가 없으니 주민들은 세금을 내지 못한다. 악순환의 반복‥‥‥‥ 그런 식으로 주민들이 궁지에 몰리면 조만간 폭동이 일어 나리라. 그야말로 사망플래그. 일단 거기까지 진행되면 영 지 복구는 물 건너가리라.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돈‥‥‥‥‥' 그렇다. 현실이든 게임이든 결국 모든문계는 돈이다. 만약 영지에서 막대한 돈을풀어 복구 사업을 시작하면 주 민들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주민들이 일자리를 얻으면 세금을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세금을 다시 복구 사업에 투자 해 더 맡은 일자리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 그러면 영지를 떠났던 주민들도 다시 돌아와 시르바나는 이전처럼 발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게 되리라. "로콘, 지금 당장 급한문제가 뭐지?" "말씀드린 대로 저수지와농경지 시설의 복구입니다. 그 것만 복구해도 차후 식량 문제의 부담을 줄이고 현재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공급할수 있을 겁니다. ." "필요한 자금은?" "최소한으로 잡아서 대략30만 골드입니다. " "30만 골드‥‥‥‥" 아크는 숨이 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현재 시르바나에서는 땡전 한푼 나올 구석이 없었다. 결국 영지 복구에 필요한 자금은 아크가 직접 구하는 수밖 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크 역시 당장 영주 월급조차 못 받는 상황에서 NPC 연합원들에게 고용 비용을 주는 것도 허 리가 휘청일 지경이었다. 하물며 30만 골드라는 돈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당장 그만한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 암담한 현실에 한숨을 불어 내던 아크가 혼잣말처럼 중얼 거렸다. 그러자 로콘이 대강눈치챈 듯물었다. "‥‥‥‥투자 말입 니까?" 사실 나가란의 영지에는 투자라는 개념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일반 유저나 NPC 들에게 투자를 받아 영지 발 전 자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투자를 받은 돈은 모두 영지의 공금으로 사용 된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 영지가 발전해 여유가 생기면 투자금에 배당금을 얹어 돌려주는 시스템이었다.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면 영지는 당장 필요한 발전을 할 수 있어서 이득이고, 투자자는 안전하게 돈을 불릴 수 있어 이 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가란에서 실제로 투자자를 모집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차피 영지에 투자하면 안전하게 돈을 불릴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다른 사람에게 투자를 받을 필요 없이, 영주 나 연합원이 투자해 재산을 불리는 편이 이득이기 때문이었 다. 그렇다. 지금까지 영지에 투자한다는 것은 사실상 영주 나 연합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다크에덴의 연할원들은 대부분의 자금을 영 지에 투자해 놨다. ' 그렇다. 영주와 연합원들의 특권!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르바나는 나가란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영지였다. 아크나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이 이런 특권을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크와 다크에덴 연합원들은 이미 한참 전에 개인당 투자할 수 있는 한도까지 몽땅 투자해 놓은 상태였 다. 그런데 시르바나가 당장 망해 버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때문에 영지에 투자한 연합원들의 불평불만을 듣는 것만 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결국 외자를 유치할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하지만 몇만 골드도 아니고 최소한 30만 골드입니다. 30 만 골드를 쏟아부어도 영지가 제대로 복구될 수 있을지 장담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미 한번 마족에게 공격받아 주민 숫자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영지에 투자할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로콘이 회의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시르바나가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을 때라면 30만이 아니 라 100만 골드라도 투자금을 모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현재 시르바나는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영지였다. 게다가 일단 마족을몰아냈다고 하지만 또다시 그 런 일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리고 만약 시르바나가 몰락하기라도 한다면 투자금은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런 불안한 영지에 30만 골드나 되는 투자금을 댈 유저나 NPC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라도 안 한다. 게다가 개인이 한 영지에 투자할 수 있 는 한도액은 100골드. 한도액을 꽉꽉 채워 투자를 받는다고 해도 최소한3 000명 이상의 투자자를 모아야 한다.' 현재 시르바나의 재산 3,700골드로는 당장 이재민들에게 식략을 공급하기도 쉽지 않았다. 밀가루 죽을 쑤어 먹여도 잘해야 일주일이나 버틸까?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주일 안에 망해 가는 영지에 투 자할 넉넉한 인심을 가진 유저를 3,000명 이상 확보해야 한 다는 말이다. 가능할 리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대로 시르바나가 멸망하는 꼴을 손 놓고 지켜봐 야 한다는 건가?' 열흩 동안 죽자 살자 매달려 지컥 낸 결과가 고작 이거라 니‥‥‥‥ "빌어먹을!" 아크가 책상을후려쳤다. . 그러자 로콘이 쌓아 놓은 서류가 우수수 떨어찬다. 그때 바닥에 떨어지는 서류에서 문득 '317,100골드' 라고 적힌 숫자가 보였다. '뭐지? 317 100골드?' 현재 시르바나를 거꾸로 뒤집어 탁탁 털어 대도 나오지 않 을돈이었다. 대체 무슨 서류이기에 그런 금액이 적하 있는 걸까? 혹시 어딘가 박아 넣고 잊고 있었던 돈이라도 있는 건가? 아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서류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는 곧 실망감에 물들 었다. "아, 젠장. 그러고 보니 이게 남아 있었지. 빌어먹을, 당 장 내가 죽을 판에 이런 것까지 챙기고 있어야 하다니‥‥‥‥ 게다가 하필 317,100골드라는 애매한 숫자는 또 뭐야? 염장 질러? 시르바나에 딱 이 정도만투자를 받아도‥‥‥‥" 구시렁대던 아크가 움찔하며 다시 서류를 바라보았다. "가만?어쩌면‥‥‥ 아니, 이제 이것밖에 믿을 게 없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로콘, 당장 나가란의 영주들을 소집해!" 그리고 잠시 후‥‥‥‥ 웅성웅성, 웅성웅성. 시르바나 성의 대회의실. 10여 명의 유저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나가란의 11영지 영주들이었다. 아크가 황급히 이들을 소집한 이유는 바로 방금 전 집무실 에서 발견한 한장의 서류 때문이었다. 나가란 수호 전투에서 사용한 각 연합원들의 군수물자 현황. 그라돈 영지의 아라미스 연합 4,800명(군량과 기본 장비) : 24,000골드 베이크 영지의 골드크로스 연합 5,200명(군량과 기본 장비) : 26,000골드 그라나다 영지의 유니온 연합 4,900명(군량과 기본 장비) : 24,500골드 <<합계 나가란 12개 영지 63,420명이 사용한 군수물자 청구 비용 : 317,100골드>> 바로 이번 전투에 참전한 연할군이 사용한 군수물자의 비 용이었다. 아크가 이것을 조사한 이유는 간단했다. 아크는 이번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슈덴베르크 왕국에 도 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시니어스 공국에 집중하고 있던 슈덴베르크 왕국은 병켠 부족을 이유로 원군을 파견해 주지 않았다. 대신 아크가 병력을 모아 이번 일을 처리하면 군수 물자를 대 주겠다고 약속해 준 것이다. 물론 실제로 연합군이 사용한 군수물자는 그보다 몇 배나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왕국에서 병사를 모집하면 1명당 5 골드 내외의 군수물자가 기본 배급품으로 주어진다.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했던 것도 그 기본 배급품의 자금을 대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6만이 넘 는 숫자다 보니 그 총액이 무려 317,100골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연합군 개인에게는 고작 5골드밖에 되지 않는 돈 이다.' 아크가 그 서류를 보고 떠올린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지급받아야 할 돈은 30만 골드가 넘지만 결국 연합원 개개인에게 돌아갈 돈은 고작 5 골드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평균 레벨 350이 넘는 유저에 게 5골드는 그리 큰돈이 아니었다. 그러니 연합군을 잘 설득하면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받을 317,100골드를 시르바나에 투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 던 것이다. '이제 믿을 건 이것뿐이야. 이 317,100골드를 투자받지 못하면 시르바나는 끝장이다!' "‥‥‥‥해서 여러분이 좀도와주셨으면 함니다. " 아크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정을 설명하며 고개를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이외에 돈이 나을 구멍이 없다. 그 리고 당장 돈을 구하지 못하면 힘들게 되찾은 시르바나가 폭 삭 망해 버리리라. 체면 따위를 차릴 때가 아니었다. 물론 나가란의 영주들에게 투자를 받는다는 게 말처럼 쉬 ' 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크 역시 이게 마지막 방법이었다. 아크는 영주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각오였다. 그러나‥‥‥‥ "알겠습니다. " "물론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개 인으로 보면 고작 5골드입니다. 죽는 사람 살린다고 생각하 시고‥‥‥ 네?" 구구절절이 설명하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아크 님의 말대로 투자해 드린다고 했습니다. " "저, 정말입니까?" 영주들이 너무나 순순히 허락하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크가 입을 쩍 벌리자 그라돈 영지의 아라미스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저희도 영주들입니다. 시르바나의 상황을 보고 현재 아 크 님이 대강 어떤 상황인지 짐작합니다. 물론 우리는 경쟁 관계지만 이번에는 나가란 전체의 사활이 달린 문제였지 않 습니까? 때문에 다른 영주들과 함께 이번만큼은 이해관계를 떠나 아크 님을 돕기로 합의했습니다. " "네. 아크 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영 지를 잃었을 겁니다. " "게다가 총액이 30만 골드라고 해도 아크 님의 말대로 저 희에게는 고작 5골드가 아닙니까?" "서로 도우며 살아야지요. " 영주글이 넉넉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크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아크는 영주들이 거절해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자 약속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당연히 영주들이 거절하리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탁하기도 전에 이미 도와줄 생각이었다니? 대체 왜? 이번에는나가란 전체의 사활이 결려 있어 연합 군을 조직했지만, 사실 나가란의 영주들은 호시탐탐 서로의 영지를 노리는 경쟁 관계였다. 그냥 놔두면 저절로 강력한 경쟁 상대가사라지는데 말이다. '만약 나라면 절대‥‥‥‥‥' 내심 중얼거리던 아크는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흘으며 영주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 펴보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도와주지 않는다'라고 하려 던 말이 '도와주지 않았을까?'라는 의문헝으로 바러었다. 바로 지난 열흘간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크가 아란의 계획을 알아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믿었던 NPC들-슈덴베르크 왕국-조차 외면했을 때 아크를 믿고 달려와 줬다. 그리고 지난 열흘 동안 같은 뜻 으로 밤잠을 설치며 계속 부활하는 10만의 마족과싸웠다. 물론 이들이 아크와 함께 싸운 것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싸웠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 니었다. 중요한 것은 함께 싸웠다는 것! 그렇다. 11명의 영주, 아니 6만의 연합군은 이미 아크의 전우들이었다! 치열한 열홀간의 사투를함께 이겨 낸 전우! '‥‥‥‥도와줄 수밖에 없었을 거야. ' 거기까지 생각하니 아크 역시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까지 뉴 월드를 하며 한 번도 경힘하 지 못한 기묘한감정이 느객졌다. 새삼스럽지만 지금까지 아크에게 정의남과 갱샘단, 로코 등, 현실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졔외하면 유저란 딱 두 가지 종류밖에 없었다. . 적. 아니면 이용할수 있는상대. 그 외의 유저들에게는 뭔가 기대한 적도 없었고 뭔가 해 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 고, 더는필요치 않다고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아크의 착각이었다. '젠장. 나쁘지 않잖아?' 그렇다. 누군가의‥‥‥ 같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과 뭔가 뜻이 통한다는 느깁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가운 데 누군가가 같은 상황이 처한다면 아크 역시 거절하지 못하 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아크가 지금까지 NPC들과 유 대 관계를 쌓아 오면서 느쪘던 감정과는 전혀 달랐다. "감사합니다!" 아크는 꾸벅 고개를 숙었다. 뉴 월드를 시작한 이후. 유저를상대로는 처음으로 진심을 담아 감사를 전한 것이리라. 이때까지만 해도 아크는 셀리브리드에서 려게 될 일은 상 상도 못 하고 있었다. ACT6 사르킨 공작의 음모 "그게 무슨말입니까?" 아크는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하루 전, 시르바나의 복구 사업 자금 마련에 고심하던 아 크는 나가란 영주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지불하기로 약속했던 나가란 수호전쟁 군수물자 지원금을 시르바나 복구 사업 자금으로 돌려쓰는 방식 이 었다. '됐어. 이제 시르바나를 구할 자금을마련할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돈을 받아 시르바나의 저수지와농경지 복 구 사업을 시작하는 것뿐이다. 물론 돈을 구한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르바나가 정상 궤도로 돌아갈 때까지는 적지 않은 시 간과노력이 필요하리라. 그러나 일단 돈을 구한 것만으로도 지옥에서 살아돌아온 기분이었다. "1분 1초도 허비할 수 없다!' 희망에 부푼 아크는 단숨에 셀리브리드로 달려왔다. 그리고 로콘이 작성한 서류를 재무 장관에게 내밀고 닫당 하게 나가란 군수물자 지원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무 장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대체 이게 뭔가?" "뭐냐니요? 국왕 폐하쩨서 약속하신 나가란 전투의 군수 물자 지원금 청구서입니다." "나가란 군수물자 지원금 청구서?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재무 장관을.맡고 있는 반백의 중년 귀폭, 립튼이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열흘 전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 경 에게 나가란 지역을 침공한 마족들의 목적을 알렸을 때, 왕 성에서는 병력 지원을 해 주지 못하는 대신 제가 의용군을 모으면 필요한 최소한의 군수물자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 "흠..." 아크의 설명에 립튼은 잠시 서류를훌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그렇다면 왕성에서 발행한 서류 정도는 가지고 왔 겠지?" "왕성에서 발행한 서류?" "그래. 자네가 가지고 온 서류에 의하면 이번 전쟁에 동원 된 의용군의 숫자가 6만여. 왕성에서 지급해야 할 지원금이 30만 골드가 넘네. 왕성에서 그만한 지원금을 약속했다면 그에 맞는 서류를 발급했을 것 아닌가?" "그, 그게‥‥‥‥" 아크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는 경황이 없어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 지 못했다. 아니, 설사생각이 미쳤다고해도당시에는1분 1초가 급할 때였다. 왕성에 들러 그런 서류를 받은 뒤에 연 합군을 모을 시간 여유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아크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립튼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 물었다. "뭔가? 그런 서류도 없이 국고에서 30만 골드나 되는 돈 을 내 달라고 떠들어 대는 건가?" "하지만 사실입니다. 확인해 보시면 될 거 아닙니까?" "확인?누구에게 말인가?" 립튼이 슬쩍 눈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아크는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때 원정군과 교신했던 통신 장 교가 국왕 폐하께서 지원금을 약속했다는 말을 전했다고 말 입니다. 그 내용을 재무 장관님이 못 들은 것은 분명 뭔가 착 오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때 통신을 담당했던 통신 장 꾜에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순간 립튼은문득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한 달 전에 원정군과의 통신을 담당하던 통신 장교는 지 금왕성에 없네. 그는 불과 일주일 전에 뇌물 수수 험의로 파 직당했네. 그 뒤로 행적이 묘연하지." "네?" 립튼의 말에 아크는완전히 얼이 빠져 버렸다. 하필이면 지금 통신 장교가 뇌물 수수 혐의로 파직당한 데 다 행방까지 묘연하다니? 무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아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 백작도 저와 함께 들었습니다." "이보게." 그러자 립튼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피로한 목소 리로 말했다. "자네는 국왕 폐하께서 지원금을 약속했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관련된 서류 한 장 가져오지 않았네. 또한 자네가 증인 이라고 주장하는 통신 장교는 뇌물 수수 혐의로 파직당한 뒤 에 도망쳤네. 그리고 또 다른증인이라고 주장하는 하베스틴 경은 자네 덕분에 원정군 사령관이 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네. 자, 정리해 보도록 하지. 슈덴베르크 왕국의 국고를 담당하는 내가 자네에게 30만골드를 내줄 수 있겠는가?" ‥‥‥뭔가 일이 더럽게 꼬여 간다. 그러나 아크 역시 이대로 30만 골드를 포기할 수는 없었 다. 30만 골드를 포기하면 시르바나는 이대로 몰락할 수밖 메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30만 골드는 아크의 돈도 아니었 다. 6만의 나가란 연합군에게 빌린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왕성에서 30만 골드를 받아 내지 못하면 그 돈 은 아크의 빚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르바나는 시르바나대로 망하고 아크는 아크대로 빛더미 에 올라않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가란 연합군의 믿음도 배신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사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상황 이었다. "그렇다면 국왕 폐하, 국왕 폐하께 확인해 주십시오!" 궁지에 몰린 아크가 소리쳤을 때였다. 잠잠하던 립튼이 돌연 눈동자를 빛내며 되물었다. "국왕 폐하께 확인해 달라? 진심인가?" "네, 국왕 페하께 확인하면 모든 진실이‥‥‥‥"" 아크는 움찔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다급한나머지 경황이 없어 방금 전에 립튼이 했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득 다시 생각해 보니 어 딘지 모르게 뉘앙스가 미묘했다. 특히 하베스틴이 아크 덕분에 원정군 사형관이 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부분이 그랬다. 듣기에 따라서는 아크 가 사전에 하베스틴과 말을 맞추고 왕국에서 돈을 뜯어내려 한다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아크는 원정군 막사에서 왕성에서 보낸 전문을 확인 했다. 그럼에도 재무 장관이 그런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아 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때 통신을 담당했던 통신 장교가 뇌물 수수라는 험의로 파직됐다는 부 분도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과연 이런 우연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만약 이게 누군가의 음모라면?' 아크는 문득 그런 생각이 며올랐다. 그렇다. 지금 아크에게 일어나는 일이 누군가가 의도적으 로 꾸민 일이라면, 아크가 받았던 통신 장교의 답신이 누군 가가 통신 장교를 매수해 전달한 내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통신 장교에게 누명을 씌워 처리하면 아크는 그 사 실을확인해 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크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하베스틴과 국왕에게 확인받 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말 누군가가 작정하고 수작을 부렸다면 국왕은 지원금에 대한 내용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게 되면 국왕을 운운하며 재무 장관에게 30만 골드를 요구한 아크는 공금횡령을 시도한 게 돼 버린다. 만약 그게 하베스틴에게 먼저 확인을 한 뒤의 일이라면- 하베스틴은 당연히 국왕이 지원금을 약속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하베스틴 역시 공범으로 몰려 원정군 사령관 자리 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베스틴이 사령관 직에서 물러나면 가장 큰 이득 을 얻을 사람은‥‥‥‥ '사르킨 공작!' 그 이름을 뗘을리자 머릿속에 맴돌던 수맏은 의혹이 단숨 에 풀려 나갔다. 왕성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르킨이라면 통신 장 교를 매수하거나, 누명을 씌워 제거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 기였으리라. 게다가 재무 장관 립튼 역시 사르킨의 파벌에 속하는 귀족이었다. 이쯤 되면 자연스럽게 그림이 나오지 않 는가? '맙소사, 그렇다면‥‥‥‥' 결국 왕성에서 약속했던 지원금은 처음부터 아크와 하베 스틴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사르킨의 음모에 불과했다는 뜻이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 이 문졔를 해결할 방법은 사르킨의 음모를 밝혀내는 방법뿐이었다. 그러나 통신 장교가 사라진 시점에서 그 사실 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크와 그 자리에 동석했던 레리어트 그리고 보급 장교 나딘뿐이었다. 나딘은 사르킨과 한패일 테니 말할 필요도 없고. 레리어트 는 유저라 왕성에서 증인으로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남은 사람은 하베스틴뿐이다. 그러나 하베스틴과 아크의 관계는 이미 왕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사르킨이 통신 장교를 매수하고 처리했 다는 증거가 없으면 오히려 아크와 하베스틴이 공금횡령을 위해 사르킨을 모함한다는 식으로 결론이 나게 되리라. '내가 국왕에제 확인을요청하면 돌이킬 수 얼게 된다!'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아크 역시 이대로 물러날수는 없었다. 만약 이대로 물러나면 복구 사업 자금을구하지 못한 시르 바나는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후 사정이 어떻게 웠든 나가란 연합군에게 군자금을 약 속한 사람은 아크였다. 만약 왕성에서 지원금을 받아 내지 못하면 아크는 나가란 연합군에게 30만 골드를 대신 지불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30만골드를 갚지 못하면‥‥‥‥ 아크는6만의 나가란 연합군을 적으로 돌리게 되리라! 아크와하베스틴. 최소한 둘중 하나는확실하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음모였다.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더 알아 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그러자 아크의 자폭을 기대했던 립튼은 아쉬운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아직 단정하기에는 일러." 왕성을 나온 아크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의심 가는 부분이 있어 재무 장관의 집무실에서는 후 퇴했지만, 아직 지친금 문제가 사르킨의 음모라는 게 100% 확실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뭔가의 착오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일단 지원금 문졔가 실제로 국왕이 결정한 사안이었는지 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 이게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국왕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문제는그걸 어떻게 확인하느냐. "만약 이게 내 예상대로 사르킨 공작 파벌의 음모라면 재무 장관을 통해서 확인하는 순간 나와 하베스틴은 전시의 혼 란한 틈을 타 공금횡령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재 무 장관을 통하지 않고 확인해야 해."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곧바로 달틴 후작의 저택을 찾아 갔다. 현재 셀리브리드에서 국왕과 독대가 가능하고, 아 크를 도와줄 만한 귀족은 달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크의 사정을 들은 달틴이 왕성에 다녀온 결 과‥‥‥ "당했군." 달틴 후작이 외투를 벗으며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왕 페하와 시니어스 공국의 문제를 의논하며 슬쩍 나 가란에 대해 여쭤 보았네. 정규군은 아니지만 10만이나 되 는 마족을 물리쳤으니 어느 정도 보상을 해 줘야 하지 않겠 냐고 말이네. 그러자 사르킨 공작이 왕국에 그만한 재정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더군. 그리고 국왕 폐하께서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네. " "그렇다면‥‥‥‥" "국왕 페하꼐서는 나가란 지원금에 대한 말을 듣지 못하 신 거네." 달틴의 말에 아크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지원금 문제를 국왕이 결정했다면 달틴이 나가란 연 합군의 보상 문제를 꺼냈을 때 당연히 뭔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무런 반웅이 없었다면 애초에 국왕은 나가란 지원 금문제를들어 본 적도 없다는 말이다. 이는 아크가 추측한 모든 음모가 사실이라는 뜻이다. "립튼 경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고 나를 찾아온 건 잘한 일 이네. 만약 그때 국왕 폐하께 확인을 요청했다면 자네와 하 베스틴은 흔란한 틈을 타 공금횡령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쓸 수밖에 없었을 거야. 자네는 물론 하베스틴 역시 사령관 자 리에서 쫓겨났겠지. 자네가 물러남으로써 사르킨의 음모가 완성되지 못한 거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크로서는 결과가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나가란 지원금이 음모였다는 것은 아크가 예상한 최악의 사태가 곧 현실이 된다는 뜻이었다. 복구 사업 자금을 구하지 못한 시르바나는 곧 붕괴되어 버 릴 것이고, 아크는 6만의 나가란 연합군에게 30만 골드에 달 하는 빛이 생겨 버렸다. 물론 사정을 설명하면 나가란 영주들도 30만 골드를 내놓 으라고 목을 조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목을 조 른다고 아크가 30만 골드나 되는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젓 도 아니었다. 그러나 얼마 전 시르바나에서 보였던 그들의 호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분명했다. '이게 열홀 동안 밤잠을 설치며 시르바나를 지킨 대가란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이 폭발할듯한 분노가 치밀었다. "사르킨 공작‥‥‥!" 마찰을 일으키는 이빨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NPC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분노가 치밀어 보기는 처음이 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칼을 물고 사르킨을 찾아가 고 싶을정도였다. 아니, 만약 정말 시르바나가 붕괴된다면 기필코 사르킨의 목을 따 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당장은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뭔가 방법이 없겠습니까?" "사르킨이 중간에서 통신 장교의 전문을 가로챘다는 걸 증명한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겠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네. 사르킨이 국왕 폐하를 사 칭해 전장에 나가 있는 원정군에게 거짓 전문을 보낸 것이니 까. 아무리 사르킨이라도 그런 내막이 밝혀지면 결코 무사하 지 않을 거네. 무슨 말인지 알겠나?" 무슨 말인지 알고 있다. 이번 음모는 사르킨도 목숨을 걸고 진행시켰다는 말이다. 그만큼 치 밀하게 준비된 음모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물며 이번 음모를 밝혀낼 열쇠인 통신 장교를 아무렇게 나 방치할 리가 없지 않은가? 립튼은 통신 장교가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종적을 감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사르킨에 의 해 슥삭, 제거됐으리라. 분하지만 통신 장교가 사라진 시점에서 음모를 밝힐 방법 도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덕분에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 대던 아크는 와락 달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후작님이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말했지 않나?통신 장교를찾지 못하는 한 내가 할수 있 는 일은 없다고. " "사르킨 공작의 음모를 밝혀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 "그럼 뭘 도와달라는 건가?" "이제 나가란 전투의 군수물자 지원금이 사르킨의 음모였 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음모든 어쨌든 간에 나가란 연합군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 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나가란 연합군이 10만의 마족을 물 리치지 못했다면 지옥의 강 범람으로 더욱 강해진 마족들은 브리스타니아나 슈덴베르크 왕국으로 진군했을 겁니다. 그 걸 막아 낸 건 나가란 연합군이 아닙니까? 국왕 폐하께 그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공적을 세운 나가란 연합군에게 지원 금을 하사하자는 건의를 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이게 아크가 생각해 낸 최후의 방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사르킨을 암살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아크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안는다. 아크에게는 사르킨의 목 10개보다 당장 30만 골드의 지원금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명목이든 상관없다. 왕국에서 30 만 골드를 받아 내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었다. "그건 곤란하네." 그러나 달틴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사르킨은 이번 음모로 자네와 하베스틴을 처리할 생각이 었을 거네. 하지만자네가 립튼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아 일 단 하베스틴을 엮어 넣을 기회를 놓쳤지. 그렇게 되면 사르 킨은 최소한 자네에게만이라도 데미지를 줘야 체면이 서지 않겠는가? 명색이 공작씩이나 되는 사람이 음모를 꾸몄으니 까 그 정도는 건져야 말이 되지. 당연히 사르킨은 필사적으로 막아설 거네. 그리고 슈덴베르크 왕국의 재정을 좌우하는 사 르킨이 결사반대한다면 국왕폐하도 허락하지 못할 거네. " "하지만 후작님과 할벤 후작님이 강력하게 주청하 면‥‥‥‥" 이제 믿을 건 그것밖에 없었다. 아크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원했다. 그러나 달틴의 반응은 여전히 회의적이었다.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좋지 않네." " "시기가좋지 않다니요?" "그러고 보니 자네는 나가란에서 막 와서 아직 상황을 잘 모르겠군. " 달틴은 손가락으로 턱수염을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실은 얼마 전에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왕국의 원정 군이 시니어스공국의 마족들을모두몰아냈네. 아니, 정확 히 말하자면 원정군이 라쿤 지역까지 진군했을 무렵, 위기를 느낀 마족들이 물러갔다고 해야겠지. " 그건 아크 역시 알고 있었다. . 아크는 시니어스 공국을 떠나 있었지만 원정군에게 군수 물자를 공급하는 다크에덴의 연합원들에게 대략적인 상황은 보고받고 있었다. 또한 현재 뉴 월드에서 일어나는 마족 전 쟁은 TV나 인터넷에서 화제가 집중되는 중이었다. 마족들이 시니어스 공국에서 물러난 대사건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번 마족들의 퇴각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실리나드 지역을 장악한 원정군이 연전연승하며 마족을 몰아붙이고 있었다고는 해도, 당시 마족들은 아직 적지 않은 병력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한순간 마족이 밀물처럼 시니 어스 공국에서 물러난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유저들은 대체 마족들이 왜 갑자기 퇴각한 것인지 그리고 그 많던 마족이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는NPC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 설이 나왔지만 아직 무엇 하나 확 실한 건 없네. 그러나 어찌 됐든 원정군의 목적이었던 시니어스 공국 탈환은 성공했으니 마족 전쟁은 브리스타니아- 슈덴베르크 연합군이 승리한 셈이지." ‥‥‥그리고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었다. "마족은 물러갔지만 현재 시니어스 공국은 거의 붕괴됐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폐해진 상태네. 게다가 왕족 과 각지의 영주들도 대부분 마족에게 살해됐네. 고작 몇몇 왕족과 지방 영주만이 간신히 살아남았어. 때문에 일단 전후 처리와 재건을 위해 향후 10년간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 크가 시니어스 공국을 분할통치 하기로 합의했네." 달틴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반으로 주욱 그으며 말했다. 달틴의 말에 아크는 곧바로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왕국의 의도를 파악했다.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두 왕국의 원정군은 마족에 게 점력된 시니어스 공국을 탈환했다. 물론 이것은 마족이 자국을 습격하기 전에 선제공격으로 몰아내려는 방위 대응 에 가까웠지만 시니어스 공국을 구해 준 것만은 분명한 사실 이었다.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는 시니어스 공국에 그 만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시니어스 공국은 마족들에게 유린당해 보상 을 해 줄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브리스타니아와슈덴베르크 왕국은 보상 대신 향후 10년 동안 시니어스 공국을 분할통치 할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명목에 불과했다. 시니어스 공국은 마족들에게 완전히 파괴되었다. 게다가 대기와 대지를 오염시키는 검은 안개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향후 10년이 지난다 해도 제대로 복구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왕국인 10년을 통치해도 이렇다 할 이득이 없다는 뜻이다. 아니, 오히려 복구 사업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했다. 그 럼에도 양국이 굳이 분할통치를 하겠다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 기회에 시니어스 공국 의 영지를 집어삼키겠다는 거지. " 달틴이 양손을 깍지 끼고 깔꿈치를 탁자 위에 을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그렇다.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왕국의 목적은 시니 어스 공국의 식민지화에 있었다. 분할통치를 빌미로 각 영지에 총독을 보낸 뒤에 아예 흡수 해 버릴 작정인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 정도 이득을 생각 하지 않았다면 원정군을 조직하지도 않았으리라.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시니어스 공국의 왕족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왕족이 살아 있으면 브리스타니아나 슈덴베르 크가공국의 영지를 흡수할 명분이 없을 텐데요?"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시니어스 공국은 사정이 다르네. " 달틴이 씨익 웃으며 설명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본래 왕국의 땅이란 기본적으로 국왕의 소유였다. 물론 현실은 좀 다르지만 형식상으로는 각지의 영주나, 일 반 시민이 소유한 부동산도 공식적으로는 국왕에게 '빌린 것' 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각지의 영주가 죽는다고 해도 타 국에서 함부로 권리를 주장할 대의명분은 없었다. 그러나 시니어스 공국은 다른 왕국과는 사정이 달랐다. "시니어스는 왕국이 아니네. 수십 개의 종족이 연합한 공 국이란 말이네. 시니어스의 왕족이란 지배자가 아닌 그런 연 합의 대표에 불과하지. 그리고 실제 각 영지의 통치권은 그 지역의 종족 대표가 가지고 있었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 나며 여러 종족이 뒤섞이게 되면서 명맥이 끊기는 종족도 생 기게 되었네. " 그렇게 되자 시니어스 공국은 흔란에 쉽싸이게 되었다. 종족 대표를 잃은 영지는 단숨에 무정부 상태가 되었고, 흔란을 틈타 인접한 영지에서 침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시니어스 공국은 각 영지의 통치권을 보다 안전한 방법 으로 전승할 필요를 느꼈다. "그게 바로 시니어스 공국의 각 영지를 통치할 권리가 부 여된 신물이네." "신물?" "그래, 바로 이런 것이지. " 달틴이 비단에 쌓인 보석함을 열어 보여 주었다. 보석함에는 보라색으로 빛나는 반지 하나가들어 있었다. 영혼의 반지(레전드) 아이템 타입 : 반지 사용 제한 : 귀족 NPC 전용 자광석으로 제작된 고색창연한 광채가 감도는 반지입니다. 대륙 북동부 지역에서 살아오던 모라이어족은 자광석에 선조의 영혼이 담겨 있따고 믿습니다. 때문에 오래전 시니어스 공국의 국왕이 가 종족에게 영지를 상징하는 신물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모라이어족은 망설임 없이 자광석 반지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모든 모라이어족이 이 반지를 증거삼아 충성의 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지를 소유한 자는 모라이어 영지를 통치할 자격이 생기게 됩니다. 단, 아직 대다수의 뉴 월드 주민들은 이방인을 영주로 받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NPC, 그것도 고귀한 신분의 귀족 NPC만이 이 반지로 영지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특수 옵션 : 모라이어 지방의 영주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얼마 전에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손에 넣은 신물 가운데 하나네. " "브리스타니아가?그런데 왜 이게 후작님에게?" "슈덴베르크 원정군이 손에 넣은 신물과 바꾼 것이지. 영 흔의 반지는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임시 통치할 북동부에 위 치한 영지의 신물이니까. 이것과 바꾼 신물은 브리스타니아 가 임시 통치할 북서부에 위치한 영지의 신물이었고. 그 협 상을 내가 맡았던 거지. 달틴의 설명을 들은 아크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시니어스 공국은 마족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했 었다. 그리고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원정군은 그 마족 들을 물리쳤다. 그 와중에 신물은 시니어스의 왕족과 영주들에게서 마 족에게로 그리고 다시 마족에게서 원정군에게로 옮겨진 것 이다. 그리고 본래 이 신물들은 시니어스 공국의 왕족 소유물이 아니었다. 각 영지의 영주들이 사망한 시점에서 소유권은 되 찾은 원정군에게 있었다. 만약 전후 처리를 위해 각 영지에 파견되는 브리스타니아 와 슈덴베르크 왕국의 귀족들이 이 신물을 가지고 간다 딴‥‥‥ 그 영지에 대한 권리를주장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는 모두 26개네. 그중 살아남은 왕 족과 영주는 불과9명에 불과해. 결국 현재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17개는 임자가 없는 땅이라는 뜻이야. 그중 브리스타 니아는 북서부의 7개 영지를 임시 통치하기로 했고, 슈덴베 르크는 10개의 영지를 임시 통치하기로 합의했네. " 슈덴베르크 왕국이 더 많은 영지를 임시 통치할 수 있게 된 것은 브리스타니아보다 실리나드 지역에 먼저 입성해 마 족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10개가 슈덴베르크 왕국 의 영지가 되는 겁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아." 달틴은 띤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 었다. "슈덴베르크 왕국이 임시 통치하기로 했던 10개 영지 가 운데 신물을 확보한 영지는 6개밖에 되지 않네. 나머지 영지 의 신물은 행방이 묘연하지. 내가 자네의 부탁대로 국왕 폐 하께 나가란 전투의 군수물자 지원금 얘기를 꺼낼 수 없다고 말했던 건 그 때문이야." 슈덴베르크왕국에서 임시 통치할 영지는10개, 신물은 6개‥‥‥‥ 다시 말해 신물을 찾은 영지로 파견되는 귀족은 그곳의 영 주가 될 수 있지만 신물을 못 찻은 영지로 파견된 귀족은 죽 어라 고생만 하다가 결국 영지를 돌려주고 돌아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슈덴베르크 왕국의 세 파벌, 사르킨 공작 과 달틴 후작, 할벤 후작은 신물을 찾은 영지로 자신의 파벌 귀족을 보내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휘하 파벌 귀족이 영지를차지하면 결국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떤 영지에 어떤 귀족을 파견할 지를 최종 결정할 귀족 회의가 열리는 날이 바로 내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달틴이 밑도 끝도 언이 나가란 연합군에게 30만 골드를 지원하자는 말을 꺼내면 할벤이나 사르킨에게 트집 잡힐 빌미를 제공할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임시 총독 파견 문제에서 나는 영향 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입장이네. 확실한 건 내일 회의를 해 봐 야 알겠지만 나는 이번에 브리스타니아가 찾은 신물과 우리 측 신물 교환 헙상을 성공시켜 겨우 신물 2개를 확보한 게 전부네." "그럼 할벤 후작님 측은?" "할벤 후작도 신물 2개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원정군 사령관 하베스틴 경에게 영지를 하나 맡기는 건 확정 된 극항이니 그쪽 파벌은 영지 3개를 얻은 셈이지. " 달틴의 말을듣던 아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달틴은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찾은 신물이 모두 6개라고 했다. 그중 달틴이 2개를 차지하고 할벤이 3개를 차지하면 하나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르킨 공작은 신물을 하나밖에 얻지 못한다는 말이잖아?' 새삼스럽지만 사르킨 공작의 파벌은 슈덴베르크의 세 파 벌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런뎨 신물을 고작 하나밖에 차지하지 못했다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크가 그런 의문을 제기하자 달틴이 고 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네, 사르킨 공작은 신물을 하나밖에 확보하지 못했지. 대신 신물을 못 찾은 4개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 얻었네. " "하지만 신물을 못 찾은 4개의 영지는 10년 뒤에 돌려줘 야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권리라고는 해도 이미 폐허가 돼 버린 영지입니다. 그런 영지에서 뭔가 수입을 얻으려면 엄청 난돈을 들여 복구 사업을 해야 할 겁니다. 기간도 얼마나 걸 릴지 장담할 수 없죠. 1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득을 내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10년 안에 그곳에서 신물을 찾을수 있을 지도 모르지. " '과연 그럴까?' 달틴의 말에도 아크는 순순히 수긍할 수가 없었다. 물론 사르킨의 부하가 10년 안에 신물을 찾으면 영지의 소 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최종적으로 사르킨 파벌은 시니어스 공국에 서 5개의 영지를 얻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것도 승률이 낮은 도박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시니어스 공국은 마족들에게 점령당했 으니 당연히 분실됐던 신물들은 마족들이 가지고 있었을 것 이다. 그런데 마족을 물리친 원정군은 신물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마족들이 신물을 지닌 채 퇴각했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결국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내에서 신물을 되찾을 가능성 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달틴이나 할벤이 신물이 없는 4 개의 영지를 순순히 사르킨에게 넘겨준 건 그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걸 왜 사르킨이 떠맡았냐는 부분이었다. 신물을 찾지 못하면 엄청난 돈을 들여 영지를 복구해 놔도 10년 뒤에는 돌려줘야 한다.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아닌가? 뭐, 사르킨이라면 그 전에 빡세게 주민들을굴려서 본전을 찾겠지만. 아무리 수익을 얻어도 영지를 소유하는 것과 비교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사르킨이 그렇게 손해 보는 짓을 한 걸까? 뭔가가 있다. 분명 사르킨에게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내가 사르킨이고, 이런 선택을 했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을 진행시키던 아크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적어도 아크가 생각하기에 사르킨이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사르킨은 이미 신물을손에 넣은 거야!'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슈겐베르크 원정군에는 사르킨의 휘하 귀족에 속한 병사 가 30%를 넘는다. 사르킨은 이들을 이용해 하베스틴 몰래 병사들이 회수한 신물을 빼돌린 것이다. '하베스틴이 신물을 찾지 못한 영지는 달틴이나 할벤에게 는 별 의미가 없는 영지다. 사르킨이 신물이 있는 영지를 하 나만 갖겠다고 말하면 달틴이나 할벤은 기꺼이 양보해 주겠 지. 결국 사르킨은 힘들이지도 않고 절반에 해당하는 5개의 영지를 차지할수 있는 거야.' 냄새나는놈이 냄새나는놈을 알아보는 법! 아크가 사르킨과 같은 권력을 가진 귀족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른자나 다름없는 영지는 하나밖에 취하지 않고 들려줘야 하는 영지 4개를 떠맡았다면‥‥‥ 분명 그런 식으 로 밑 작업을 해 놓고 연극을 하는 것이리라. '만약 그 사실을 밝히면?' ' 당연히 사르킨은 국왕을 농락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하지만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그게 문제였다. 만약 이번 일이 성공하면 5개나 되는 영지를 얻은 사르킨 의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들통 나면 사르킨의 정치 생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당연히 관련된 모든 병사나 증거인 신물 역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지켜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아크가 사르킨을 고발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오후에 귀족 회의가 열리면 사르킨은 목 적대로4개의 영지에 대한 권리를확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르킨이 신물을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도 방금 전에 영지에서 찾아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결국 사르킨 자식에게 한 방 먹이려면 귀족 회의가 열리기 전에 놈에게 신물이 있다는 것을 중명해야만 한다. '사르킨이 신물을 어디에 숨겼는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 어. 사르킨 공작의 저택, 거기밖에는 생각할수 없다. ' 그렇다. 사르킨처럼 이것저것 음모를 꾸미기 좋아하는 녀 석은 절대 남을 믿지 않는다. 자신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위험한 물건이라면 분명 바로 옆에 두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아크에게는 가장 큰 난관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는 무한에 가까운 자유도가 허락된 게임이었다. 유저가 마음만 먹으면 NPC를 암살하거나 NPC 집에서 도둑질을 할수도 있다는뜻이었다. 그럼에도 유저들 이 NPC들의 집을 틸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 NPC들의 집은 대부분 일반 던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방범 시설로 도배가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유저는 곧바로 카오틱이 되고 경비병들이 벌 떼처럼 몰려드는 것이다. 하물며 슈덴베르크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르킨 공작의 저택이다. 전문 암살자인 샴바라조차 입구도 들어가지 못하고 발각되고 말리라. '하지만 이제 시간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증거 를 찾지 못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어. 영화에서처럼 수색 영장 같은 걸 구하지 못하는 한 내가 직접 들어가서 찾아보 는 수밖에 없어. 어차피 나도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어. 놈이 죽든 내가 죽든‥‥‥‥‥'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각오를굳힐 때였다. 갑자기 아크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어!'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한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후작님, 혹시 사르킨 공작의 인장이 찍힌 서류 같은 걸 구할 수 있을까요?" "사르킨 후작의 인장? 몇 장 있기는 하네만‥‥‥‥" "뭐든 좋으니 한 장만 주십시오. " 눈매를 좁히며 말하는 아크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감돌 았다. ACT7 아크 자작 "5분 뒤에 회의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슈텐베르크 왕성, 왕의 흘 앞의 궁내 부장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그러자 왕성 곳곳에서 병사들이 나팔을 불어 회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이번에 슈덴베르크가 확보한 시니어스공국의 10개 영지 에 파견 나갈 귀족을 선발하는 회의였다. 나팔이 울리자 삼 삼오오 모여 있던 귀족들이 왕의 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 슬슬 기어 나올 때가 됐는데‥‥‥‥' 아크는 왕의 홑 입구 부근에서 눈알을 빛내며 귀족들을 둘 러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곧 한 백발노인이 몇몇 귀족들에 게 둘러싸여 걸어오는장면이 포착됐다. 그 너구리처럼 생긴 노인이 바로 사르킨이었다. 아크는 재빨리 뛰어가 꾸벅 고개를숙였다. "사르킨 공작님, 안녕하십니까?" "음?자네는?" "얼마 전 남작이 된 아크입니다. " "아하, 그 벼락출세했다는 이방인 귀족 말인가?" 사르킨이 노골적으로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 렸다. 그러자 붕어 똥처럼 사르킨을 졸졸 따라다니던 귀족들 이 키득거렸다. 그러나 아크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 로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그 벼락출세한 이방인입니다. " "흥. 그래, 잘난 이방인게서 나에게 무슨볼일인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봤습니다. " "자네는 할 말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자네에게 들을 말이 없네." 사르킨은 불쾌한 눈길로 아크를 위 아래로 훑다가 팩 고개 를돌려 버렸다. "후회하실 텐데요?" "뭐?" "제가 이런 걸 주웠거든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가방에서 두루마리 한장을 꺼내 흔들 어 댔다. 마치 도발하는 듯한 아크의 행동에 사르킨의 눈가 에 노기가 어렸다. 그러나그것도 잠시, 흔들리는 서류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 고는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성난 멧 돼지처럼 달려들며 두루마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환갑 넘은 노인례에게 당할 아크가 아니었다. 아크가 마치 춤을 추듯이 빙글 몸을 돌리자 사르킨은 중심 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사르킨이 넘어지자 귀족 들이 움찔하며 일제히 검 자루를 움컥쥐었다. "너 이 자식! 무슨 짓이냐!" "호오, 해 보겠다는 겁니까?"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사르킨이 고함을 터뜨렸다. "멈춰라!" "네? 하지만‥‥‥‥" "됐다지 않는가? 나는 이자와 할 말이 있으니 자네들은 먼저 홀에 들어가 있게." 사르킨이 굳은 표정으로 귀족들을 노려보며 명령했다. 귀족들은 돌변한 사르킨의 태도에 당혹스러워하며 왕의 홀로 들어갔다. 아크는 사르킨의 반응에 감탄했다는 듯이 휘 파람을 불며 박수를 쳐 주었다. "과연 사르킨 공작님, 상황 판단이 빠르시군요. " "너 이 자식‥‥‥ 뭐냐? 그 종잇조각은?" "이 편지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주웠다고. 그런데 편지에 공작님 인장이 찍혀 있어 공작님을 찾아온 겁니다. 이 벼락출세한 이방인 귀족이 말입니다. " "그렇다면 길게 말할 필요 없군. 내놔라. " "그럼 이 편지가 공작님 거라는 걸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크의 질문에 사르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리고 잠시 미간을 좁히고 아크를 노려보다가 싸늘한 목 소리로 말했다. "아니라면?" "공작님에게 편지를 드릴 이유가 없죠. " "‥‥‥‥내 거라면 어쩔 텐가?" "그래도 역시 드릴 수가 없군요. 편지 내용이 왜나 수상쩍 거든요" 아크가 씨익 웃으며 편지를 들어 올렸다. 사르킨을 당혹감으로 몰아넣은 편지에는 짧은 내용이 적 혀 있었다. To. 나딘 키리안 경이 마몬 영지의 마족들에게서 회수한 <순수의 월계관>은 보름날 밤에 비밀리에 내 저책으로 수송하라. From 사르킨 편지에 적힌 '순수의 월계관' 은 바로 달틴이 말했던 시니 어스 공국의 22개 신물 가운데 하나였다. 바로 이번에 슈덴베르크 왕국이 임시 통치할 마몬 영지의 통치권이 부여된 신물! 문제는 '순수의 월제관'이 아직 국 왕에게는 보고되지 않은 신물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이 편지는 사르킨이 휘하 귀족에게 명령해 신물 을 빼돌렸다는 증거! 그러나 사르킨은 고개를 저으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나는 그따위 편지를 쓴 적이 없다!" "하지만 여기 공작님의 필체에 인장까지 찍힌 편지가 있 지 않습니까?" "모함이다!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기 위해 위조한 편지가 분명하다!" "그럴지도 모르죠. "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끄덕였다. 아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사르킨이 움찔하더니 낮 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설마‥‥‥ 네놈이냐?" "그럴지도 모르죠. " 아크는 여전히 여유 만만한표정으로 대답챘다. 그러자 사르킨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감히 이따위 짓을하고도무사하기를 바라느냐?" "걱정해 주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내 걱정보다 본인부터 걱정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가소로운 놈, 설마 이 따위 위조 편지 한 장으로 날 어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따위 조악한 위조 편지는 조사 하면 금세 위조라는 게 밝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공작님은 편지 내용을 보자마자 휘하 귀족을 물리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뭐?" "공작님에게는 이 괸지가 위조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겠죠. " 아크는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러자 사르킨은 속내를 들킨 사람처럼 불안한 눈으로 움 찔거렸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분명 이 편지는 위조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감정하면 금 방 위조라는 게 발각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편지가 위조라도 의혹은 남습니다. 게다가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와 관련괸 회 의가 시작되기 직전에 제기된 의혹입니다. 틀림없이 이 편지 가 문제화되면 달틴이나 할벤 후작님은 이의를 제기할 것이 고. 의혹을 풀기 위해 국왕 폐하는 공작님의 저택을 수색하 라는 명령을 내릴지도 모릅니다. 공작님이 걱정하시는 건 그 게 아닙니까?"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생각해 낸 작전이었다. 굳이 말할 펄요도 없지만 아크가 가지고 온 편지는 짝퉁이 위조한 가짜 편지였다. 아크가 달틴에게 사르킨의 인장이 젝힌 서류가 없냐고 물 었던 것은, 짝퉁이 사르킨의 필적과 인장을 위조하려면 먼저 견본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깍퉁의 레벨은 350전후, 짝퉁의 전문 스킬인 '위조'도 최상급에 달해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SA급의 짝 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아크는 위조 편지로 사르킨을 어찌해 볼 생각은 없었다. 이곳은왕성, 각종 공문서를 취급하는 감정 전문가가 널리 고 널린 것이다. 아무리 최상급 '위조'로 만든 편지라고 해 도 언젠가는 위조품임이 밝혀지 리라.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현재 왕성에서는 달틴과 할벤, 사르킨이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분할 문제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다. 그런 상 황에서 비록 위조라도 의혹을 불러일으킬 편지가 발견됐다. 국왕이나 귀족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생길 경우, 아크는 이미 달틴에 게 문제를 최대한 크게 확대시켜 달라고 부탁해 놨다. '그렇게 되면 국왕은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사르킨 저택을 수색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사르킨은 저 택 수색을 거부할 명분이 없어. 거부하면 의혹을 인정하게 돼 버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게 아크가 위조 편지를 만든 이유였다. 아크는 이미 행방불명된 네 영지의 신물이 사르킨 저택에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아크가 직접 사르킨 저택에 잠입 해 증거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아예 공권력을동 원해 사르킨 저택을수색하는 방법을생각해 낸 것이다. 그리고 정말 사르킨 저택에서 신물이 발견된다면 사르킨 은 단숨에 파멸해 버리리라. '하지만 만약 신물이 사르킨 저택에서 발견되지 알는다 면‥‥‥‥' 궁지에 몰리는 건 아크였다. 그리고 편지 위조와 협박, 공갈, 기타 등등의 지목으로 감 방에서 푹푹 썩어야 하리라. 아크가 국왕에게 편지를 제출하지 않고 사르킨을 만난 이 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르킨은 편지를 보자마자 취하 귀족을 물렸다. 그것은 편지로 인해 문제가 확대되는 상황을 피하려는 사르킨의 본능적인 판단력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런 본능적인 판단력은 아크에게 더욱 강한 확신 을 심어 주었다. '분명 사르킨은 신물을 빼돌려 저택에 두었다!' "네, 네놈이‥‥‥'" 아크의 말에 사르킨이 이를 갈아붙이며 바들바들 떨어 댔 다. 히죽거리던 아크가 안면을 갈아엎은 건 그때였다. "닥쳐. 이 빌어먹을 늙은이야. " "뭐, 뭐야?" "먼저 날 건드린 게 누군데 지랄이야? 나가란 지원금을 네놈이 중간에서 장난쳤다는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 나?하지만 날 완전히 잘못 보셨어. 이 몸은 죽을 때 죽더라 도 절대 혼자는 못 죽는 더러운 성격이거든. 어차피 죽을 거 면 같이 죽자고. " 아크가 으르렁거리며 사르킨에게 다가갔다. 사르킨이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원하는 게 뭐냐?" "이졔야 제대로 대화를 해 볼 마음이 생기셨나?" "네놈의 말처럼 내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분할 문제로 귀족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 그런 상할에서 이런 불미스러운 문 제로 국왕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드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 역시 노회한 귀족, 사르킨은 마지막순간까지도 결코 허점 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제안했다. "역시 네놈이 원하는 건 나가란의 군수물자 지원금이겠 지? 그걸 해결해 주면 되겠나?" "장난하냐?" 아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쏘아붙였다. "그건 처음부터 나와 연합군이 받아야 할 정당한 보상이 었어. 그걸 네놈이 중간에서 장난쳐서 날 궁지에 빠뜨린 거 잖아아. 그런데 이제 와서 달랑그것만 주고 끝내겠다고? 게다 가 그조차슈덴베르크 왕국의 돈이잖아. 네놈은 아무런 손해 도 보지 않겠다는 거냐?" "회의 개시까지 1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입장하지 못하신 귀족들께서는 서둘러 주십시오! 회의가 시작되면 왕 의 홀은 폐쇄됩니다!" 그때 왕의 홀 앞에서 시간을확인한궁내 부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사르킨의 얼굴에 다급함이 어렸다. 위조 편지를 만든 아크가 굳이 회의가 임박한 지금 사르킨 을 협박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 었다. 만약 다른 때라면 영악한 사르킨은 비밀리에 신물들을 다 시 어딘가로 빼돌리려 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회의가 몇 분 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런 방법은물론, 달리 머리를 굴 릴 여유도 없으리라. "그럼 대체 원하는 게 뭐냐?" "시르바나의 복구 사업에 필요한 모든 자금을 대 준다는 계약서를 써 주면 물러나겠다." "뭐, 뭐야?미친 놈‥‥‥.!" 아크의 대답에 사르킨의 얼굴이 휴지 조각처럼 구걱졌다. 시르바나의 복구 사업에 필요한 모든 자금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사실 아크가 나가란 영주들에게 투자받기로 한 30만 골드 는 실제 시르바나복구 사업 자금메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30만 골드는 어디 까지나 당장 급한 불을 끄고 복구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시르바나가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는 앞으로 수백만골드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 골드라면 아무리 일국의 공작인 사르킨이라도 단숨 에 그를 파산으로 몰고 갈 정도의 금액이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고작 그따위 위조 편지 한 장으로 모든 게 네놈 뜻대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7 좋다. 네놈이 그 렇게 나온다면 어디 한번 먼대로 해 봐라. 갈때까지 가보 자. 하지만 장담하지. 결코 네놈의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 이다. " 사르킨은 더 상대하기도 싫다는듯이 몸을 돌려 버렸다. 순간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않았다. 사실 아크가 위조 편지로 사르킨을 협박하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사르킨이 가볍게 무시해 버 렸다면 국왕에게 편지를 건네지도 못했으리라. 그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국왕이 사르킨 저택의 수색 명령을 내리지 않거나, 수색 명령을 내렸음에도 신물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아크는 단숨에 협박 공갈범으로 몰려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될 확률이 더 높았다. 아무리 의혹이 있다고 해도 사르킨은 일국의 공작이다. 국왕으로서는 저택 수색을 명령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르킨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위험한 신물을 안방 에 장식해 놨을 리가 없었다. 분명 자신만이 아는 비밀 장소 에 숨겨 뒀으리라. 그럴 경우 병사들의 수색으로 발견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르킨이 어떻게든 아크와 헙상하려던 것은 일 말의 불안감 때문이었다. 설사 0.1%의 확률이라도 수색이 시작되고 신물이 발견된 다면 사르킨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적당한 선이면 타협을 하려고 있었다. 그런데 사르킨이 물러서는 기 색을 보이자 아크는 지나치게 기고만장해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사르킨이 저렇게 나온다면 오히려 곤란한 건 나다' "자, 잠깐만! 방금 한 말은 실수였다. 시르바나 성을 복구 할 자금만 대 달라는 말이었어!" 다급해진 아크가 황급히 사르킨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 쳤다. 그러나그것도 실수였다. 아크가약한모습을보이자 사르킨은 콧방귀를 귀며 대답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너 따위 미천한 놈과 협상할 생각 이 없다. " "기, 기다려. 방금 전 말도 실수였다. 사실은‥‥ 그, 그래! 이번 전투로 부서진 시르바나 성 후원의 신전 재건 비용만 대 주면 돼. 나가란군수물자 지원금30만 골드를 왕성에서 받아 주고, 당신이 신전 재건 비용을 대 주는 걸로 협상하자!" "신전 재건 비용?" 사르킨의 걸음이 멈춘 것은 그매였다. 아크가 말한 신전이란 비밀 덜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 었던 아셔스 신전이었다. 사실 아크의 입장에서는 이미 비밀 던전이 만천하에 폭로 된 이상 굳이 신전을복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왕국에서 지급하는 30만 골드의 지원금만 받고 물러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1만 골드도 들지 않을 신전 재건 자금을 들먹인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사르킨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자네와 나 사이에는 아직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겠군." "회의 개시 30초 전입니다!" 그때 다시 궁내 부장의 목소리가궁정에 울려 퍼졌다. 방금 전에는 사르킨이 조바심을 냈지만 이제 상황이 뒤바 뀌었다. 이대로 왕의 홀 문이 닫혀 버리면 아크는 나가란 지 원금 30만골드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크는 서둘러 '상인의 계약서' 를 꺼내 협상 내용을 미친 듯이 휘갈겨 쓰고 사르킨에게 건네주었다. 상인의 계약서 <<계약자 : 사르킨=아크>> 사르킨은 시르바나 성의 후원에 있는 아셔스 신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 위 계약은 아셔스 신전의 재건 공사가 끝날 때까지 지속될다. *위 계약 사항은 사르킨이 왕국에서 나가란 지원금을 받아 냈을 때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10초 전입니다!" 대강 홀어본 사르킨은 궁내 부장의 목소리에 서둘러 사인 을 하고 왕의 홀로 쥐어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르킨은 상상도 못 했다. 이 한 장의 계약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말이다. "후후후. 사르킨, 넌 이제 딱 걸렸어." " 사르킨을 뒤따라 왕의 홀로 들어서는 아크의 입가에는 음 흉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좋아. 이졔 적당한 시기에 이것들을 푸는 일만 남았군. " 사르킨이 탁자 위에 놓인 4개의 보석함을 바라보며 흐뭇 한 미소를 지었다. . 금빛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월계관과 기모한 형상이 새걱 진 목걸이. 사파이어로 만들어진 팔찌와 복잡한 문양이 새겨 진 백금 반지‥‥‥‥ 이것들은 바로 시니어스 공국의 북동부 네 영지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신물들이었다. 그렇다. 이제 와서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아크의 짐 작대로 네 영지의 신물은 사르킨이 가지고 있었다. 원정군에 참전한 휘하 귀족을 이용해 하베스틴 몰래 신물 을 빼돌린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국왕이 주재하는 회의에 서 사르킨은 신물이 확보된 영지 하나와4개의 비어 있는 영 지를 받았다. 당장 신물을 풀어 영지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5개의 영지가사르킨의 소유가 된 것이다. "이 영지들까지 온전히 내 것이 되면 더 이상 달틴이나 할 벤도 내 상대가 아니다. " 사르킨 같은 중앙 귀족은 휘하에 몇 개의 영지를 두고 있 느냐로 영향력이 결정된다. 그리고 현재 슈덴베르크 왕국에 서 사르킨 휘하의 영지는무려 60%. 그런데 거기서 또다시 달틴이나 할벤보다 많은 영지를 수중에 넣은 것이다. 이제 슈덴베르크 왕국에서 사르킨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귀족 파벌은 없으리라. "아크 놈,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아크 놈의 요구대로 움 직였지만, 곧 네놈이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깨닫게 해 주 마. 슈덴베르크 어디에서도 발을 못 붙이도록 만들어 주마! 으하하하, 으하하하하!" 어두운 방에서 사르킨이 잔뜩 분위기를 잡고 광소를 터뜨 리고 있을 때였다. 분위기 없게 문가에서 노크 소리가들려왔다. "자, 잠깐만‥‥‥ 됐다. 들어와라." 사르킨은 얼른 신물을 비밀 금고에 쑤셔 넣으며 대답했다. 동시에 문이 열리며 시종장이 두툼한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뭐냐, 그건?" "네, 시르바나 영지에서 날아온 청구서들입니다. " "시르바나 영지에서? 아, 아셔스 신전인지 뭔지 재건 공 사비용 청구서인가? 뭐, 좀 불쾌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쯤이 야‥‥‥허걱, 이, 이게 뭐야?" 별생각 없이 청구서를 집어 들던 사르킨의 얼굴에서 핏기 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멍청한눈으로 청구서를 바라보다 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마, 말을준비해라! 당장 시르바나로 간다!" 뚝딱, 뚝딱! 시르바나 영자에는 쉴 새 없이 망치 소리가 울려 나왔다. 일주일 전, 사르킨은 아크와 협상한 대로 파벌 귀족들을 동원해 귀족 회의에서 나가란 군수물자 지원을 강력하게 건 의했다. 그리고 달틴과 할벤 역시 적극적으로 동조해 결국 국왕의 허락을 받아 냈다. 아크는 드디어 시르바나 복구 사 업 자금30만골드를손에 넣은 것이다. 현재 시르바나에서 시급한문제는 식수와 식량의 보급! 아크는 보좌관 로콘의 의견을 수렴해 30만 골드를 몽땅 투 자, 저수지와농경지 복구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예상대 로30만 골드가 투자된 대규모 영지 사업이 시작되자 암울하 기 짝이 없던 영지가 순식간에 활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지.' 아크가 씨익 옷으며 영주성 후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영주성 후원 역시 인부들이 모여 있었다. 사르킨에게 말한 대로 지옥의 강 범람으로 박살 난 아셔스 신전을 복구하기 위해 고용한 장인들이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 다. 30만 골드를 들여 공사를 진행하는 저수지나 농경지보 다 몇 배나 많은 인부들이 모여 있었다. 고작 작은 신전 하나 복구하는 데 왜 이렇게 많은 인부들 이 필요한 걸까? 거기에는 아크의 악랄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영주님, 셀리브리드에서 사르킨 공작님이 찾아오셨습 니다. " 그때 방문이 열리며 로콘이 들어와 알렸다. '후후후. 왔군.' 아크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 "아크!" 아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르킨이 와락 로콘을 밀치 고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아크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라?사르킨 공작님께서 제 영지에는 어전 일이십니까?" "너, 너 이 자식‥‥‥ 이게 대체 다 뭐냐?" 사르킨이 멧돼지처럼 콧김을 뿜어내며 서류 뭉치를 탁자 에 쾅 올려놓았다. ' 아크는 서류 뭉치를 대강 훑어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냐니요? 아셔스 신전의 재건 비용 청구서 아닙니까? 전에 왕성에서 아셔스 신전의 재건 비용은 공작님이 대 주시 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잊으신 겁니까?" "누가 잊었다고 했는가? 이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대체 뭐 냐고 묻는 거다!" 사르킨이 서류 한뭉치를 들고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시르바나 아셔스 신전 재건 비용 청구서 (인부 급료 : 8,000골드) -시르바나 아셔스 신전 재건 비용 청구서 (각종 자재 비용 : 12,000골드)...... 사르킨이 혼들어 대는 서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 지한 금액의 경비가 적혀 있었다. 하루 인부 급료가 8,000골드! 하루 소모되는 각종 자재 비용이 12,000골드!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지출되는 비용이 하루에 대략 5~6만 골드에 달했다. 그렇다. 사르킨이 미친 듯이 시르바나 영지로 달려온 이유 가 바로 그 때문이 었다. 사르킨은 아크가 아셔스 신전의 재건 비용을 대 달라고 말 했을때 1~2만골드면충분하다고생각했다. 그리고 위조 편지로 인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는 1~2만 골드 정도 던져 주는 편이 100배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 역시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분할 문제가 정리되면 어떤 식으로든 벌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청구서 폭탄이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일주일간쌓여 대략 39만 골드! 덕분에 사르킨은 불과 이틀 만에 가세가 기울 정도의 타격 을 받아 버렸다. 그러나 아크는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 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야 보시는 바대로입니다." "웃기지 마라! 대체 무슨 신전 재건 작업을 하는 데 하루 에 5~6만 골드가 들어간단 말이냐?" "아, 제가 설명을 안 드렸나요?" "뭐?뭘 말이냐?" "로콘, 사르킨 공작님에게 자세하게 설명드려라. 아크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로콘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로콘이 빙긋 웃으며 손뼉을 쳤다. 동시에 병사들이 커다란 패널을 가지고 들어왔다. 로콘은 지시봉으로 패널에 그려진 커다란 그림의 아랫부 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설명드리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건 이번에 재건 공사를 시작한 아셔스 신전의 단면도입니다. 여기 시커먼 부 분 보이시죠? 이 부분은 바로 이번에 지옥의 강이 뿜어져 올라 왔던 지하 던전입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가 주력하고 있는 작 업은 바로 이 지하던전을 정화시키고 메우는 작업입니다. " "뭐, 뭐야?지하 던전을 정화시키고 메워?" "네. 그렇습니다. 비록 작은 규모라도 신전. 저희 영주님 께서는 신전 재건 공사를 하는 데 소흘한 점이 없도록 모든 작업에 만전을 기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곳의 지형은 건물을 지을 상황이 아니죠. 지하 60층 깊이의 구멍 이 뚫려 버렸으니 맡입니다. 게다가 이곳은 지옥의 강이 뿜 어져 올라왔던 장소. 그래서 저희는 아셔스 교단 성직자들의 조언을 얻어 먼저 성수와소금을 이용해 지하 던전을 말끔히 정화하고, 축복받은 흙을 운반해와 지하 던전을 메우는 중입 니다." 그렇다. 이게 바로 하루에 30만 골드나 들어가는 재건 공 사의 비밀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원래 지옥의 강에 한번 수몰되면 그 대지는 향후 60년 동안 불모지가 되어 버린다. 다행히 아크와 연함군의 노력으로 나가란이 그런 지옥의 강에 수몰되는 것은 막았지만 단 한 곳, 지옥의 강에 수몰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비밀 던전이었다. 그리고 전설처럼 지옥의 강에 수몰됐던 비밀 던전은 전설 대로 완전히 불모지가 되어 버렸다. 그 뒤로 비밀 던전에서는 몬스터조차 리젠되지 않았던 것 이다. 상할이 그렇게 되니 이제 더 이상 비밀 던전은 아크에 게 필요 없는공간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거무튀튀한공기 가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는 기분 나쁜 장소가 돼 버렸다. 때문에 아크는 시르바나 복구 사업을 하면서 그냥 비밀 던 전을 막아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사르킨과의 문제가 발생한 뒤였다. '위조 편지로는 사르킨을 100% 몰락시킬 수 있다고 확신 할 수 없다. 게다가 국왕에게 편지를 전달했는데도 수색 작 업을 하지 않거나, 수색하고도 신물을 찾지 못하면 오히려 내가 당하고 만다. 위조 편지로 사르킨을 협박해서 나가란 지원금 30만 골드를 받아 내는 게 최선이야.' 아크는 처음 달틴에게 상황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 나 달랑 30만 골드만 챙기고 넘어가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사르킨에게 한 방 먹여 주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아!'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른 게 이 아셔스 신전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셔스 신전은 비밀 던전 위에 세워져 있던 신전이었다. 아셔스 신전을 재건한다는 명분이라면 비밀 던전에까지 손을 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성소를 짓기 위한 과정이라는 빌미로 비밀 던전을 비싼 소금과 쳔수로 도배하 고, 축복받은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한다면‥‥‥ '아무리 사르킨이라도 한 달도 안 되어 파산한다!' 이게 바로 아크가 세운 흉악한 계획의 전모였다. 그렇다. 애초에 아크가 시르바나 복구 자금을 대 달라고 했던 것이나. 영주성 복구 자금 운운했던 것은 모두 사르킨 이 의심 없이 아셔스 신전 재건 비용을 대게 만들기 위한 포 석이었다. 그리고 데미지를 더욱증폭시키기 위해서 아크는 일부러 일주일 동안 청구서를 모아 놨다가 한 방에 날려 보낸 것이 다. 덕분에 아크의 흉계에 빠진 사르킨은 청구서 폭탄을 맞 고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날 건드린 게 네 실수다, 사르킨.' 아크는 로콘의 설명을 들으며 점점 창백해지는 사르킨을 바라보고 히죽거 렸다. 그 사이에 아셔스 재건 사업에 대한 로콘의 설명도 종반부 로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지하 60층의 30% 정도를 메웠습니다. 앞 으로 나머지 지하 던전의 정화와 메우기 작업을 끝내고 본격 적인 아셔스 신전 재건 공사를 시작할 때까지는 앞으로 1년 정도의 공사 기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1,1년? 1년 동안 하루에 5~6만골드씩 쓰겠다는 거냐?" 로콘의 말에 사르킨이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로 떠듬거렸 다. 그러자 로콘이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생각하다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그건 정확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공사 초기라 그냥 정화와 메우기 작업만 하고 있지만 작업이 진행됨에 따 라 더 많은 작업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럴 경우에는 지금보다 공사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공사의 고문을 맡아 주신 성직자들에게 도 그만한 보수를 지불해야 하고‥‥‥‥" "닥치지 못하겠는가!" 사르킨이 이를·갈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리고 와락 아크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컥쥐었다. "이건 사기야!" "뭐가 말입니까?" "나는 저따위 밑 빠진 독에 돈을 쑤셔 박겠다고 한 게 아 니야!" "말씀드렸다시피 아셔스 신전은 원래 저 구멍 위에 세워 져 있었습니다. 같은 위치에 아셔스 신전을 재건하려면 구멍 을 메우는 수밖에 없죠. 그리고 그 구멍을 메울 때 정화하고 축복받은 흘을 사용하는 건 아셔스 교단 성직자들의 조언을 따른 겁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비용은 신전 재건 비용을 '모두' 대겠다던 사르킨 공작님에게 청구한 게 대체 왜 사기 입니까?저는 법정에서 싸워도 자신 있습니다. " "너, 너, 너 이 자식!" 사르킨이 괴성을 지르며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흥분해 혈압이 솟구치는지 돌연 됫목을 잡고 휘청거렸다. 그때 아크가 얼른 사르킨을 부축하며 유들 유들하게 지껄여 댔다. "이런, 조심하세요. 공사가 앞으로 1년이나남았는데 염 원하시던 신전 완공은 봐야지요. " "크으‥‥‥ 이, 이 자식‥‥‥ 네놈이 감히‥‥‥‥" 사르킨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잡아먹을 듯이 아크를 노려 보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고개를풀썩 떨구며 신음 처럼 중얼거혔다. "‥‥‥‥원하는 게 뭐냐?" 결국 사르킨이 괘배를 인정한 것이다. 그제야 아크는 진지하게 사르킨을 마주 보며 제안했다. "귀족 회의에서 받은 네 영지의 임시 통치 권리를 포기하 고,신물4개를넘겨주십시오." "뭐, 뭐야?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껄이는 거냐?"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 아크가 속삭이듯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러나 이미 사르킨은 아크가 어떤 조건을 내밀든 받아들 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아크가 달틴에게 들었던 사르킨 공작의 재산은 대략 200 만골드. 그리고 이미 하루에 5~6만골드씩 들어가는 아 셔스 신전 재건을 빙자한 돈 쏟아붓기는 일주일째에 접어 들었다. 오늘 공사가 완료되면 사르킨은 전 재산의 20%가 날아가 는 것이다. 그리고 공사완료 예정일인 1년은커녕 두 달도 되기 전에 파산하고 빚더미에 을라앉게 되리라. 게다가 사르킨이 4개의 영지를 얻으면 당장 그곳에 상 당한 복구 자금틀 투자해야 한다. 그렇게 이중으로 자금 압박을 받으면 사르킨은 파산하기 전에 고혈압으로 쓰러 지리라. 그러나 사르킨은 아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공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크의 말대로 아셔스 신전은 비밀 던전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재건'이라는 명목의 공사라면 당연히 비밀 던전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공사 방법을 대신전의 성직자들이 조언한 것이 라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알겠다. 공사를, 당장‥‥‥ 공사를 멈춰i! 결국 식은땀을 뚝뚝 흘리던 사르킨이 피를 토하는 목소리 로 대답했다. 그제야 하루에 5~6만 골드씩 쏟아붓던 공사가 멈췄다. "‥‥‥‥경이 이번에 해낸 일은 슈덴베르크의 누구도 부정 할 수 없는 공적이다. 이에 짐은 경이 보여 준 충성과 헌신 에 보답하고자 아크 남작에게 자작의 작위를 하사하는 바 이다!" 화려한 궁중 예복을 입은 중년 귀족이 목청을 높여 말했 다. 뒤이어 또 다른 귀족이 금빛 두루마리를 정중하게 내밀 었다. 그렇게 아크가 두루마리를 받아들자 웅장한음향효과 와함께정보창이떠올랐다. - '작위 수여증'을 습득했습니다. '작위 수여증'으로 '기사장(자작)'의 작위를 습득하셨습니다. 당신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역사에 남을 만한 공적을 세워 자작이 되었습니다. 자작은 상급 귀족의 지위로서 셩향에 따라 왕성에서 각종 주요 업무를 맡을 수 있습니다. 현재 당신이 맡을 수 있는 직위는 기사장입니다. 만약 부직업으로 기사장을 선택하면 당신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정규 기사단장이 되어 왕국에 봉사할 수 있습니다. 정규 기사단장이 되어 도적이나 몬스터 토벌, 혹은 전쟁에 참가하면 명성과 공적치에 최대 3배에 달하는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공식 임무에서 일정 수치 이상의 공적을 쌓으면 더 높은 작위를 받을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단, 공식 임무 도중에 기사단이 전멸하거나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패퇴한다면 명성과 공적치에 3배에 달하는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명성과 공적치가 일정 이상 깎여 나가면 파직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작위를 박탈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작 작위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5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10,000만큼 증가합니다. +영주 이상 급의 직위를 가진 NPC에게 받은 퀘스트를 수행할 경우 직위(기사장 : 1,000명)에 따라 경비대원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영주 스킬이 생겼습니다. 자작 작위 이상의 영주는 휘하에 직속 기사단을 결성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영주의 직속 기사단은 영지 내에서 정규 기사단과 동등한 어드밴티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이미 왕성에서 기사단장으로 취임한 경우에는 직속 기사단을 결성할 수 없습니다. +기사단 결성(영주 스킬) : 영지에 소속된 유저나 NPC를 고용해 기사단을 결성할수 있는 스킬입니다. 기사단은 일반파티나 공격대와는 달리 결속과 사기, 용맹 등의 수치에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또한 소속 영지에서의 전투에서는 10%의 전술보너스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대외적인 전투에 참전했을 때 역시 정규 기사단처럼 여성과 공적치에 2배의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또한 왕국 관할으 ㅣ공공시설(기사 숙소, 마구간, 병영 등)을 이용할 경우 50%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기사단에 영주가 동행하고 있어야 합니다. <<직속 기사단 결성 가능>> '설마 작위까지 올라갈 줄은 몰랐는걸. ' 작위 수여증을 받아 든 아크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크가 자작 작위를 받은 것은 4개의 신물 덕분이었다. '아셔스 신전 재건 사업을 빙자한 돈 쏟아붓기'로 사르킨 을 굴복시킨 아크는 결국 원하던 대로 4개의 신물을 빼앗았 다.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 소유권을 상징하는 신물! 4개의 신물을 왕성으로 갸져가자 국왕은 미쳐 날뛰었다. "오오오, 그대야말로 슈덴베르크 귀족의 귀감이다!" 국왕의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다. 4개의 신물은 곧 왕국에 4개의 영지가 생겼다는 것과 마찬 가지! 일거에 왕국에 4개의 영지가 생겼는데 좋아하지 않을 국왕이 어디 있겠는가? 국왕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아크를 칭찬하며 바라지도 않았던 자작 작위를 준 것이다. 당연하게도 자작 작위를 받자 남작이 됐을 때보다 많은보 너스가 주어졌다. 무려 전체 스탯 +15에 명성 10,000! 거기에 새로운 영주 스킬 '기시단 결성' 까지 생겼다. 직속 공격대를 결성하면 기사판으로 등록되어 각종 어드 밴티지가 주어지고,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는 50%의 할인 혜 택까지 주어지는 스킬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아크가 얻은 진짜 이득은 따로 있었다. "자작이 된 걸 축하하네." 작위를 받고 왕성 밖으로 나오자 맞은편에서 두 중년 기사 가 다가왔다. 슈덴베르크 왕국의 세 귀족 파벌 가운데 두 락벌의 수장 달틴과 할벤이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처음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는데‥‥‥‥ 정 말 해내다니‥‥‥‥" 듣자하니 사르킨 공작은 앓아누웠다고 하더군. " "무리도 아니지. 전 재산의 20%가 넘는 돈을 잃고 입에 넣었던 영지까지 뱉어 냈으니‥‥‥‥" 덕분에 사르킨은 파벌 귀족들에게마저 신임을 잃어버렸다. 괜히 아크를 건드리려다가 아예 박살이 나 버린 것인다. 달틴이 혀를 차며 중얼거리다가 아크를 바라보며 짐짓 꾸 짖듯이 말했다. "사르킨 공작은 나이도 적지 않은데 좀 심한 거 아닌가?" "얌전히 있는 사람을 먼저 건드린 건 그쪽입니다. " "무섭군." 아크의 대답에 달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고덕였다. "자네를 화나게 하지 압으려면 새로 얻은 영지를 서둘러 발전시켜야겠군. "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아크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아크가 사르킨에게 4개의 신물을 빼앗은 건 이 때 문이었다. 사실 4개의 신물은 4개의 영지와 같은 가치가 있지만, 어 차피 아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현재 뉴 월드에서는 유저가 영주가 될 수 있는 곳은 나 가란과 개척 마을뿐이었다. 다시 말해 신물을 발동시켜 소 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귀족.NPC에게만 해당되는 것 이다. 때문에 아크는 계약 파기의 조건으로 사르킨에게 돈을 뜯 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약을 파기할 때 이미 사르킨은 전 재산의 20%를 신전 재건 공사를 빙자한 돈 쏟아붓기로 날려 먹은 상태였다. 아크가 파악했던 사르킨의 재산 200만 골드는 부동산과 각종 권리까지 포함한 금액. 현찰 자산만 계산하면 대략 60~70만 골드밖에 되지 않으리라. 그중 40만 골드를 날려 먹었으니 20~30만 골드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 사르킨에게 돈을 뜯어내 봤자 몇만골드가한계. '그 정도로는 시르바나가 파괴돼서 잃은 손해조차복구할 수 없어. 그래서 아크가 생각해 낸 방법이 바로 4개의 신물을 팔아 먹는 것이었다. '어차피 사르킨은 네 영지의 권리를 포기했다. 내가 4개 의 신물을 돌려주면 달틴과 할벤에게 갈 수밖에 없어. 그렇 다면 4개의 신물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달틴과 할벤에게 네 영지에서 나오는 수익의 10% 정도를 요구해도 거절하지 못 할 거야.' 아크는 곧바로 달틴과 할벤을 만나 혈상했다. 만약 계획대로 진행되어 4개의 영지가 사르킨의 손에 떨 어졌다면 그의 영향력은 달틴과할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 로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달틴과 할벤이 4개의 영지를 얻는다면 사르킨을 견제하기가 쉬워진다. 그것만으로도 달틴과 할벤에게는 횡 재라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앞으로 영지를 관리하며 얻어지는 수입을 생각하 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중 10%를 아크에게 떼어 주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 역시 당장 몇만 골드를 버는 것보다4개의 영 지에서 지속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편이 훨씬 나았다. 물론 아직은 시니어스 공국의 영지들이 피폐해서 수입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일단 궤도에 오르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가 되리라! 이렇게 아크와 달틴, 할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모종의 계 약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모든 일을끝낸 아크가왕성을 나오며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셋이서 사르킨 공작님 병문안이나 가 볼 까요?" "그만두게. 정말 그 불쌍한 노인네를 죽일 참인가?" 달틴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을 때였다. "아크-!" 돌연 맞은면에서 날카로운 고함 소리가 들져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아크는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왕성의 성문 앞, 어두운 골목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5~6명 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바로 어빤저들과 티모시였다. "아크, 할 말이 있다." 티모시가 거친 숨을 불어 내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ACT8 레전드 퀘스트 "무슨 일이십니까?" 호명환이 잰걸음으로 휴게실로 다가왔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현우가 벌떡 일어났다. "몇 가지 알아낸 정보가 있어 상의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 "정보요?" "네.." 고개를 끄덕인 현우가 짐짓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실은 여기 오기 전에 이번 사건에 가담했었던 유저와 만 났습니다. " "이번 사건에 가담했다면 마족들의 배후에 있던 어벤저? 만났다면 뉴 월드에서 말입니까?' "아니, 현실에서 만났습니다. " 현우의 말에 호명환의 눈동자가 솥뚜껑만 하게 커졌다. 글로벌엑서스조차 아직 이번 사건에 가담한 어벤저들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물론 그건 모든 수사초점을 아란과 붉은 남자에게 집중해 서이기도 하지만, 둘과 달리 어벤저들은 국내에서 접속해서 이기도 했다. 뉴 월드 접속 회선이 몇만, 그것도 몇 개의 도시에 집중되 어 있는 홍콩과 달리 전국에 수백만의 회선이 뒤엉킨 국내에 서 특정 유저의 회선을 역추적한다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어쩠든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실제 사건 가담자에 대한 정 보는 처음이었다. 호명환은 눈짓으로 뒤이어 말하려는 현우 를 제지하고 주위를 두리 번거 렸다. 그리고 현우를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정확히 아크 님이 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티모시라는 아이디의 유저입니다. " "티모시?본명은?" "본명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자세 히 말하지 않았지만. 뉴 월드에서 봤을 때 아란과 꽤 가까운 사이인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 "아란과‥‥‥?" 아란이라는 이름에 호명환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그리고 불안한 얼굴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티모시라는 유저가 먼저 아크 님에게 연락한 겁니까?" "뉴 월드에서 절 찾아와 약속 장소를 정해서 만났습니다. " "왜 아크 님을 만나러 왔는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게..." 현우는 몇 시간 전에 뉴 월드에서 겪었던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아크-!" 한몫 두둑이 챙기고 왕성을 나오던 현우의 귓가에 날카로 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친 사람은 피투성이가 된 채 셀리브리드의 골목에서 달려 나오는 티모시와 5명의 어벤저들이었다. 그들을 확인한 현우는 반사적으로 검을 쁩아 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카오틱인 티모시와 어벤저를 쫓던 경비병과 왕성 근위대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티모시가 두루마리를 꺼내 들며 소리쳤다. "아크, 할 말이 있다. 오늘 오후 4시 여의도‥‥‥‥" 그 말을 끝으로 티모시와 어벤저들은 어디론가 공간 이동 을 해 버렸다. 갑자기 나타나서 약속 장소를 설명하고 사라 져 버린 티모시와 어벤저. 덕분에 현우는 완전히 혼란에 빠 져 버렸다. 대체 왜 갑자기 티모시와 어벤저가 현실에서 만나자고 하는 걸까? '혹시 뉴 월드에서 안 되니까 안델처럼 폭력배라도 불러 서 현피(현실 PK)하려는 건가?' 가장 먼저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현피를 하려는 사람이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찾 아와 불러낸다는 건 이상하다. 게다가 약속 장소는 여의도 광장 한복판‥‥‥ 뭔가 꿍꿍이가 있다면 그런 곳으로 불러내지는 않으리라. 결국 현우는 이런저 런 고민을 하다가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크지? 아란이나 안델의 말처럼 한눈에 알아보겠어. " 약속 장소에서 서성일 때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 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내가 티모시야. " 막상 티모시를 만나니 나오기 전까지 불안해했던 게 바보 스럽게 느껴졌다. 뉴 월드에서 봤던 티모시와 현실의 티모시는 전혀라고 해 도 좋을정도로 느낌이 달랐다. 일단외모도그랬지만, 성격 도 그랬다. 뉴 월드에서는 살짝 가 보일 정도로 부산스러웠 지만 현실에서 만난 티모시는 오히려 말수가 적어 보였다. "왜 날 보자고 했지?" "부탁‥‥‥이라고 해야 하나?들어줬으면 하는 말이 있어. "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왜 네 부탁 같은 걸 들 어줘야 하는데?" "들어 보고 결정해도 꽤. " 틴모시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현우는 상상도 못 했던 말을듣게 되었다, 붉은 남자와 마스튜아라의 배신으로 마신전에서 아란이 죽어 버렸다는 내용이다. 다행히 아란은 죽기 직전에 필사적으로 눈알을 날려 보냈 다. 그 눈알에 저장되어 있던 매모리 크리스덜을통해 정보 를 입수한 티모시는 어벤저들을 데리고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티모시와 몇몇 어벤저들은 곧 궁지에 몰렸다. 간신히 마신전을 탈출했지만 갈 곳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 다. 새삼스럽지만 티모시와 어벤저들은 마족과 함께 수많은 유저와 NPC를 학살했다. 덕분에 카오틱 수치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되어 마을이나 도시에는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 붉은 남자와 마스튜아라의 배신으로 마족까 지 적으로 돌아섰다. "이, 이럴 수는 없어‥‥‥‥" 그제야 티모시와 어벤저들은 현실을 깨달았다. 새삼스럽지만 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마족의 편에 선 건 그만한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계획대로만 진행되면 뉴 월드는 마족의 세상이 되리라. 그리고 마족의 세상이 찾아오면 건국 공신(?)인 어벤 저들에게 영지 한둘은 장난이다. 게다가 아란은 현실에서도 상당한 금액의 보상을 약속해 주었다. 어벤저들은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붉은 남자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낙동강 오리알 신 세가 돼 버린 것이다. "‥‥‥‥이제 모두 끝장이야!" "빌어먹을, 이제 뉴 월드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얼어. " "그뿐이 아니야. 뉴 월드 정복 계획에서 떨려 나 버렸으니 졔작사에게 발각되면 를림없이 뭔가 법적 제재를 받게 될 거 야. 뉴 월드를 통째로 뒤흔들어놨으니‥‥‥‥" 어벤저들은 한숨을불어 내며 웅성거렸다. 역시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글로벌엑서스의 제재였다. 만약 계획대로 마족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글로벌엑서스도 감히 그들을 건들이지 못한다. 혹시라도 법적 제재가 들어오면 마족을 이용해 뉴 월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마족들에 게도 쫓겨난 이상, 그들은 그저 문제를 일으킨 유저에 불과 했다. 마족이 뉴 월드를 정복해도 글로벌엑서스가 그들을 고 소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제대로 게임도 할 수 없고 제작사의 고소를 받을지도 모른 다. 이제 그들이 선택할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차라리 그 전에 캐릭터 정보를삭제해 버릴까?" "하지만 2년이나 키운 캐릭터를 어떻게‥‥‥‥" "크윽,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렇게 어벤저들의 의견이 자살(?)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아니, 아직 방법은 있어." 티모시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원래 우리가 하려던 일은 제작사와의 정면 대결이었어. 계획이 성공했다면 졔작사까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겠 지. 그리고 비록 우리는 떨려 났지만 아직 그 계획은 붉은 남 자와 마스튜아라에 의해 계속 진행 중이야. 제작사 입장에서 는 우리 같은 피라미 몇 마리 잡아넣는 것보다 그 계획을 막 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그리고 우리는 제작사가 모르는 정 보를 가지고 있지. 그걸 잘 이용하면 헙상의 여지가 있을지 도 몰라." 그렇다. 비록 이런 몰골이 되어 버렸지만 티모시와 어벤저 들은 마족 전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마족 진영의 각종 정보를 꽤 많이이 아는 것이다. 그게 어떤 것이든 이번 사태를 한시라도 빨리 처리하고 싶 은 글로벌엑서스에서는 그 정보를 알고 싶어 할 게 분명했 다. 티모시는 그 정보를 이용해 글로벌엑서스에게 안전(캐릭 터를삭제한다거나, 고소하지 않는)을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사법 거래! "하지만 우리가 직접 제작사를 찾아갈수도 없잖아. " "찾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협상에 응해 줄지도 장담할 수 언고 말이야. " "유력한 응시자 가운데 1명이라면‥‥‥" 티모시의 머릿속에 텨오른 사람은 바로 현우였다. 본의든 아니든 현우는 이미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 되어 있었다. 현우가 이번 사건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해 오고 있 었는지는 일반 유저나 NPC 제작사보다 어벤저가 더 잘 알 고 있었다. 현우 때문에 얼마나 맡은작전이 실패했던가? 게다가 현우는 이번에 나가란 수호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폭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글로벌엑서스도 그런 현우의 의견 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티모시가 중재역으로 현우를 떠올린 것은 그 이유 만이 아니었다. "붉은 남자 자식......!!"" 티모시가 어벤저에 가담한 이유는 바로 아란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란이 붉은 남자에게 배신당해 분사해 버리고 말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캐릭터의 죽음 따위는 크게 분노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어둠의 증표'를 착용한 채로 전사한 어벤저들의 캐릭터 가 모두 삭제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아란 역시 죽을 때 '어둠의 증표 를 장비하고 있었다. 그렇다. 적어도 뉴 월드라는 세계에서 아란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감히 아란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 티모시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라. 설사 캐릭터가 삭제된다고 해도 아란과 자신을 배신한 붉 은 남자를 박살 내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티모시가 아는 유저 가운데 거기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현우밖에 없었다. 폭풍의 핵으로 급부상한 현우와 접촉하면 붉은 남자에게 한 방 먹여 줄 기회가 생기리라! 그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셀리브리드까지 찾아가 현우 와 접촉한 것이다. 문제는 현우가 과연 티모시의 제안을 받 아들일까 하는 부분. 그러나 그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나로서는손해날게 없지. '' 티모시의 얘기를 들은 현우는 오히려 내심 쾌재를 불렀다. 어차피 현우는 글로벌엑서스에 많은 정보를 전해 줄수록 이득이었다. 게다가 어벤저와 글로벌엑서스 사이의 중재역을 맡으면 지금까지 몰랐던 정보도 많이 알 수 있으리라. 그 정보는 앞 으로 펼쳐질 마족 전쟁에서 현우가 활약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줄 게 분명했다. 그리고문제의 '코드블랙 아이템'을손에 넣을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마족 전쟁에서 공적 1위의 상금이 5억! '코드블랙 아이템' 회수 상금이 10억! 최종적으로 15억의 상금을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현우는 15억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원한 정도는 말끔하게 잊어버리는 대범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곧바로 글로벌엑서스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된 거군요." 현우의 설명에 호명환이 담배를 탈아 대며 고개를 끄덕였 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뭔가 미적지근한반응이었다. 현우는 잠시 묘한 눈길로 호명환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티모시의 말로 확실해졌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사건의 진정한 배후는 붉은 남자입니다. 붉은 남자는 아란이나 어벤저들에게도 의혹이 많은 유저라고 함니다. 지 금까지 그는 마치 뉴 월드의 모든 시스템과 비밀을 알고 있 는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 " 호명환이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현우의 말허리를 잘 랐다. 그리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붉은 남자가 최종적으로 뭘 하려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 "네?"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는 것. 그렇지 않습니까?" "그걸 어떻게?" 현우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렇다. 현우가 티모시에게 들었던 붉은 남자의 목적이 바 로 어둠의 제왕 부활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아란이 마족을 움직여 왔기에 이번 사건 이 어둠의 제왕과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련이 있는 것과 어둠의 제왕 부활, 그 자체가 목 적인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리고 붉은 남자를 막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대체 어떵게 호명환이 붉은 남자의 목적을 확신하 고 있을까? "사실 저도 얼마 전에야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문 제를 아크 님과 상의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입니다. " "저와상의하다니요?뭘 말입니까?" "뭐랄까‥‥‥‥ 어디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 호명환은 답답한 한숨을 푹푹 불어 내다가 힘들게 입을 열 었다. "그냥 오픈시켜서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기획실 팀장팀에게 이 문졔에 대해서는 절대 보안을 유지하라는 명 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아크 님이 어벤저와 접촉했다 니 다른문제들도모두 알게 될 겁니다. 아니, 저희 쪽에서 는 아크 님이나 어벤저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설명해 드 릴 수밖에 없게 된 거죠. " 호명환이 사설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말을 이었다. "실은 얼마 전에 저희 보안 요원이 아란과붉은 남자의 거 처를 방문했습니다. " "아란과 붉은 남자를 찾았단 말입니까?" "네, 어떻게 찾았는지는 설명해 드릴 수 없지만. " "그럼 지금 아란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아란에 대한 얘기는 일단 나중에 하고 붉은 남자에 대한 것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범인인 붉은 남자를 만들어 낸 사람은 바로 박우성이었습니다. " "박우성?" 현우는 미간을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모르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었다. 현우 가 묘한 표정을 짓자 호명환이 무거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뉴 월드의 메인 시스템을 설계한 제작자입니다. " "제작자‥‥‥ 맞아, 뉴 월드가 상용화되기 전에 TV광고에 서 떠들어 댔던‥‥‥!" 그제야 현우는 박우성이라는 이름을 기억해 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TV에서 금세기 최고의 게임 디자이너 라고 떠들어 대던 박우성! 박우성이 설계한 게임은 뉴 월드만이 아니었다. 뉴 월드 이전에도 흥행에 성공한온라인 게임에는 항상 박 우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현우는 붉은 남자가 박우성이라는 말을 듣자 그동안 품었 던 의문이 단숨에 풀려 버렸다. 붉은 남자는 마치 뉴 월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이 계 획을 진행시켜 왔다. 그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몬스 터는 물론, 마족까지 부렸다. 그렇게 붉은 남자가 일개 유저 의 수준을 넘어선 초월적인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이 유. 그건 바로 붉은 남자가 뉴 월드의 모든 것을 창조해 낸 창조주 박우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부, 붉은 남자가 박우성이었단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네?하지만 방금 전에 박우성이 붉은 남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라고 했죠. 붉은 남자는 박우성이 만든 일종의 해킹 시스템입니다." "해킹?붉은 남자가 해킹 시스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 자세히 설명드릴 정도로 많 이 알지는 못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붉은 남자는 박우성 이 만든 캐릭터고, 현재도 게임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겁 니 다. " "하지만 대쳬 왜 그 사람이‥‥‥.?" 멀뚱멀뚱 듣던 현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듯이 물었다. 그렇다. 대체 왜 그 사람이? 지금까지 현우는 붉은 남자가 어둠의 제왕과 마족을 이용 해 뉴 월드를 정복. 게임 속에서 얻은 권력을 현실로 불러와 글로벌엑서스를 뒤흔들어 막대한 이득을 챙기려 한다고 생 각했다. 그리고 계획이 어느 정도완성 단계에 이르자 이득 을 독식하기 위해 아란과 어벤저들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티모시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붉은 남자가 게임을 만든 제작자라니? 그렇다면 결국 붉은 남자는 뉴 월드의 대주주나 마찬가지 가 아닌가?뉴 월드가 혼란에 빠지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사 람 가운데 하나란 말이다. '뭔가 다른 사정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쩠든 박우성은 뉴 월드의 창조주다. 만약 그가 작정하고 뉴 월드를 혼란에 빠뜨리려 한다면 이 렇게 복잡하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고생할 필요도 없었다. 제작자는 뉴 월드의 모든 시스템을 알고 있다. 귀찮게 돌아갈 필요도 없이 그냥 메인 서버에 접속해 원하 는 대로 일을 진행시키면 그만인 것이다. 현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호명환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원래 뉴 월드에 어둠의 제왕이라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 "네?그건 또 무슨‥‥‥ 티모시의 말로는 붉은 남자가‥‥‥‥" "네. 붉은 남자의 목적은 어둠의 제왕 부활. 하지만 원래 어둠의 제왕이란 뉴 월드의 시나리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었습니다. 아니, 저희는그렇게 알고 있었다고말해야맞겠 죠. 하지만 제작자인 박우성의 목적이 어둠의 제왕 부활이고 실제로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 뉴 월드에는 우리 도 몰랐던 뭔가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둠의 제왕 이 부활하는 순간 뉴 뭘드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누구도 예 측할 수 없습니다. " "예측할 수 없는 일?" "지금으로써는 그렇게밖에 말할수 얼습니다. " 호명환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글로벌엑서스에서는 별장에서 확보한 각종 자료를 통해 박우성의 최종 목표가 뭔지 대강 파악하고 있었다. 그 러나 자칫 그 정보가 흘러나가면 뉴 월드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게 된다. 때문에 호명환은 가능한 말을 아끼고 있는 것이다. "일단 아크 님은 티모시라는 유저를 저희 쪽에 연결해 주 십시오. " "연결이라면? 티모시와 어벤저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는 겁니까?" "솔직히 그들에 대한 제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 니다. 그리고 그럴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지금은 그런 걸 따 질 때가 아닙니다. 붉은 남자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도 급하 지만, 지금은 그보다 어벤저에 가담했던 유저들에 대한 정보 를 입수하는 게 우선입니다. " "어벤저에 가담했던 유저들에 대한 정보?" 현우가 고개를 갸웃거 렸다. 티모시의 말에 의하면 어벤저에 가담했던 유저들은 이미 대부분 사망했다. 그리고 '어둠의 증표' 라는 수상한 아이템 에 의해 캐릭터가 완전히 삭제되었다. 이졔 그들은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유저란 말 이다. 그런데 왜 정보가 필요하단 말인가? "역시 고소를 생각하고 계신 겁니까?"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고소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와서 왜 그들의 정 보가 필요한 겁니까?" "그건‥‥‥‥" 호명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실은 이번에 찾은 아란에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 "문제라니요?여기서 더 문제 될 게 뭐가 있는데요?" "‥‥‥‥현재 아란은 의식불명 상태입니다. " "네? 의, 의식불명?" 현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호명환은 머리가 지끈지끈거 리는 듯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란이 이용했던 유니트를 수해서 조사 중이지만 아마 도 이번 사건에 가담하기 위해 뭔가 불법적인 프로그램을 사 용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번에 어벤저들의 캐릭터를 삭 제시켰다는 '어둠의 증표'도 일종의 해킹 아이템이죠. 그 '어둠의 중표'와 아란이 유니트에 설치한 불법 프로그램이 소프트웨어적인 충돌를 일으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현재 저희 연구소의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어벤저도 같은 문 졔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때문에 글로벌엑서스는 비상상태로 돌입해 있었다. 물론 현재 글로벌엑서스에서 가장 근 문제는 박우성이 만 들어 놓은 붉은 남자가 앞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그것을 확 인하고 막는 일이었다. 그러나 만약 어벤저들 가운데 누군가가 아란처럼 유니트 안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면 그 역시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의식불명이지만 그대로 방치되어 자 칫 정말 죽어 버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책임과 비난이 글로벌 엑서스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유저가 죽었다. 그 사건이 가져을 사회적인 파장은 뉴 월드의 폐쇄 정도로 끝날문제가 아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제야 현우 역시 이게 결코 게임 속의 문제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붉은 남자의 정체가 게임 설계자인 박우성이었다. 게다가 박우성과 함꼐 움직이던 아란이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버렸다. 뭔가 거대한 음모 속으로 얽혀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이건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어벤저처럼 비밀 결사로 움직이던 조직이라면 오프라인에서 비상 연락망 정 도는 있지 않겠습니까? 현재 캐릭터가 삭제된 어벤저들의 신원을 확인할 가장 빠른 방법은 티모시라는 유저에게서 비 상 연락망을 얻어 내는 방법뿐입니다. " "알겠습니다. 글로벌엑서스와 얘기해 보고 뉴 월드에서 연락하기로 했으니 돌아가는 즉시 게임에 접속해서 상황을 알려 주겠습니다. " 현우가 지체 없이 대답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 달린 문졔인데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현우 는 움찔하며 멈춰 섰다. 단시간에 너무 많은 일이 터져 정작 궁금했던 질문의 답은 아직 얻지 못했다. "대체 박우성이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알고 계시지 요?" 현우의 질문에 호명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마 뭔가를 내밀었다. 손톱만한 크기의 플래시 메모리였다. 호명환은 플래시 메모리를 아크의 손에 쥐여 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박우성 별장에서 입수한 자료의 카피입니다. 아까 도 말했지만 기획실 팀장님은 작은 정보 하나라도 밖으로 유 출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때문에 파일을 복사하면서도 계속고민했습니다. 아니, 방금 전까지도. 하 지만‥‥‥ 아크 님은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또 직접 겪고 있는 유저입니다. 이게 붉은 남자를 막 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모르는 것보다 는 나을 것 같습니다. " 동시에 현우의 눈앞에 딩동,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현우는 '박우성의 자료 파일'을 입수했습니다. "그, 그 말이 사실인가?" 슈덴베르크 국왕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10여 명의 근위병들에게 둘러싸인 다크엘프가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순간 국왕은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라지듯 맥이 탁 풀려 버렸다. 동시에 왕의 흘에 모여 있던 수십 명의 귀족들이 공 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맙소사, 결국 우려했던 일이‥‥‥" "시니어스 공국에서 마족을 몰아내서 이제 끝났다고 생각 했는데‥‥‥‥" "이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모두 조용히 하시오!" 그때 귀족들 사이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형한 눈빛을 뿜어내며 귀족을 가로질러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달틴 후작이었다. 달틴은 다크엘프를 바라보다가 옆에 서 있는 청년에게 시 선을옮기며 물었다. "아크 경. 저 다크엘프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티모시는 제가 얼마 전까지 마족 전쟁을 일으킨 붉은 남 자의 옆에 심어 두었던 첩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체가 탄로 나 마족에게 숙청당하기 전까지 붉은 남자가 진행시키 던 모든 계획을 바로 옆에서 봐 왔습니다. 티모시가 이 자리 에서 밝힌 모든 것은 실제로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고, 지금 부터 일어날 일입니다. " 아크는 왕의 홀에 모인 귀족들을 주욱둘러보며 대답했다. 이게 현재 아크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다시 상황을 되돌려 몇 시간 전, 글로벌엑서스를 나온 아 크는 머 리가 복잡해졌다. 붉은 남자의 정체, 의식불명에 빠진 아란‥‥‥‥ 처음에는 그저 게임 속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확대되어 갔 다. 아크는 그런 상황에서 대체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뭘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감을잡기가 힘들었다. '일단 하나하나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자. ' 그렇게 생각한 아크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티모시에게 귓속말을 날렸다. 그리고 셀리브리드 근처에 숨어 있던 티모 시에게 호명환과 나눴던 대화를 전해 주었다. 일단 글로벌엑서스에서 법적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 을 받아 주자 티모시와 어벤저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 를 알려 주었다. 바로 붉은 남자의 계획이었다. -그동안 붉은 남자가 시니어스 공국을 점령하고 있었던 건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키는 데 필요한 준비를 하기 위해 서였어. 그리고 어둠의 제왕의 마력이 담긴 결정체인 마왕 의 심장을 손에 넣어 붉은 남자의 계획은 이제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어. 시니어스 공국에서 물러난 건 그 최종 단계를 위한 준비에 불과해. -어둠의 졔왕을 부활시킬 준비가 이미 끝났다고? -그래, 의식이 시작되면 불과 며칠 안에 어둠의 재왕이 부활할 거야. 티모시의 대답에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원래 뉴 월드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던 어둠의 제왕! 그러나 개발자인 박우성이 부활시키려 한다면 더 이상 어 둠의제왕을 부정할 수 없었다. 박우성이 미치지 않고서야 장난삼아 어둠의 제왕을 부활 시킬 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뭔가 목적이 있으리라. 그리고 그 목적이 뭐든 이런 상황에서 뉴 월드에 좋은 영향을 끼치 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목적이었다면 박우성이 굳 이 글로벌엑서스와 사생결단을 내듯이 달려들 리가 없는 것 이다.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면 뉴 월드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얼다!' 이건 아크에게 엄청난 위협이었다. 란셀 영지, 시르바나 영지 그리고 시니어스공국의 네 영 지에서 받을 수익금‥‥‥. 2년 넘는 시간을 투자해 아크가 이 룩해 놓은모든 게 바로 이곳 뉴 월드에 있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아크 혼자 힘으로 붉은 남자를 막을 수는 없었다. 붉은 남자는 수십. 수백만의 마족을 거느린 악의 축. 게다 가 계획의 최종 단계에 들어섰으니 모든 힘을 집중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 놀고 있으리라. 붉은 남자를 막는유일한 방법은 뉴 월드의 모든NPC와유저의 힘을 모으는수밖에 없었다. '붉은 남자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시작해 버리면 이 미 늦는다. 붉은 남자를 막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유저와 NPC들을 모아야 해. 하지만 현재 붉은 남자의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어벤저들뿐이다. 다른 유저나 NPC들은 이미 마족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착각하고 있어. 그런 상황에 서 내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소용없어.' 아크가 티모시를 왕성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붉은 남자와 함게 마족 전쟁을 일으켰던 티모시의 증언이 라면 국왕도 믿을 수밖에 없으리라. 아크가 티모시를 자신의 정보원이라고 말한 이유는, 왕성 에서 카오틱인 티모시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서와 티모시 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 주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충격 요법이 조금 지나쳤던 모양이다. "이,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니‥‥‥‥" "저, 정말 어둠의 졔왕이 부활하는 건가?" 아크는 들떠 있던 귀족들이 정신 차리고 서둘러 대책을 강 구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귀족들은 그저 공포에 질린 채 우왕좌왕할 뿐이 었다. "떠들어 댄다고 부할하던 어둠의 제왕이 다시 돌아가겠 는가?" 귀족들의 작태에 달틴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티모시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붉은 남자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할 때까 지 얼마나 남았는가?" "몰라." "붉은 남자가 부활 의식을 시작할 곳은?" "몰라. " "대체 아는 게 뭔가?" "젠장, 모르는 걸 어떡해? 그 빨간 놈은 아란이나 어벤저 에게도 어둠의 제왕에 대한 건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았단 말 이야. 사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마신전이 마왕인지 뭔지가 부활할 장소라고 알고 있었단 말이야. " 티모시가 짜증을 부려 대며 소리쳤다. "마신전?" "그곳은 이미 제가 확인해 봤습니다. 하지만 놈들은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 달틴의 질문에 아크가 한숨을불어 내며 대답했다. 사실 지금 가장 근 문제는 이것이었다. 아크는 티모시의 정보를 듣고 가장 먼저 슈덴베르크로 귀 환 중인 하베스틴에게 연락했다. 현 상황에서는 일단 붉은 남자가 어디에서 어둠의 제왕 부 활 의식을 시작할지 알아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모시가 탈출했던 마신전은 시니어스 공국의 알려 지지 않은 산중에 위치해 있었다. 위치상으로 봐서 시니어스 공국에서 귀환하는 원정군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빨랐다. 그러나 하베스틴이 보랜 수색대가 마신전을 찾아냈을 때 는 텅팅 비어 있었다. 부활 의식을 행할 장소는 마신전이 아 니 라는 뜻이었다. 달틴이 허탈한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그러니까 어딜지도 모르는 곳에서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 단 말인가?" "알아낼 방법은 있습니다. " "알아랠 방법? 어떨게?" "‥‥‥‥이제 곧 도착할 겁니다. " 아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 렸을 때 였다. 왕의 홀 밖에서 소란이 일어나더니 콰당, 거칠게 문이 들 리며 10여 명의 사람이 쏟아져 들어왔다. 하얀 갑옷을 입은 여기사와 후드를 눌러쓴 사람들이었 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근위병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소 리쳤다. "아크 님-!" "국왕 폐하, 근위병을물려 주십시오!" "음, 근위병은 물러나라!" 국왕이 세차게 손을 저으며 소리치자 근위병들이 경례를 하고 물러섰다. 그렇다. 아크가붉은 남자의 행방을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말한건 이들을가리킨 것이었다. 레리어트와예언자일족. 아크가 하베스틴에게 마신전의 수색을 부탁할 때, 보험으 로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에게도 샹그리아의 '히스토리 크 리스털' 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에 대한 정보를 모아 달 라는 부탁을 해 놨다. 뉴 월드의 모든 역사가 담긴 '히스토리 크리스털' 이라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마신전이 비어 있다면 이졔 믿을 건 '히스토리 크 리스털' 밖에 없었다. "레리어트 님, 알아보셨습니까?" "'히스토리 크리스털' 에 어둠의 제왕에 대한 정보는 하나 도 없었어요." 레리어트가 가쁜 숨을 물아실며 대답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부활 의식이 시작될지 짐작 가는 곳이 있어요. " "짐작 가는곳?" "저희가 샹그리아에 도착했을 때 '진리의 수정' 이 격렬하 게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 미간을 좁히며 되묻자 예언자 일족이 나서며 설명했다. '진리의 수정'은 창조주의 의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신성 한 수정이었다. 그러고 예언자들은 이 수정을 통해 뉴 월드 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욜 수 있었다. 그런데 레 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이 샹그리아에 도착했을때 이 '진리 의 수정' 에서 뭔가가 떠을랐다.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는 섬이었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 섬에서 어둠의 존재가 나타날 거라는 계 시가 분명합니다." "그 섬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콰리안이라는 섬입니다. " "콰리안?" 예언자의 대답에 국왕의 옆자리에 서 있던 주교가 당혹성 을 터뜨렸다. 그리고 충켠을 받은 듯 비틀거리며 중얼거렸다. "맙소사, 진즉에 알아챘어야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콰리안‥‥‥ 그건 성서에서 나오는 섬이네‥‥‥‥ 창조주가 우주의 힘을 모아 위대한 창조 마법으로 이 세계를 창조할 때 발을 디뎠던 최초의 대지이자 유일한 섬‥‥‥‥ 성서에서는 그 섬이 이 세계의 시작과 끝이라고 했네. 만약 세상을 멸망 시킬 존재가 부활한다면‥‥‥ 그 존재를 부흥시킬 수 있는 힘 을 가진 장소는 콰리안 외에는 없어. " "국왕 폐하!" 그때 달틴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무거운 침묵에 쉽싸여 있던 왕의 흘이 퍼뜩 깨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멍한표정을 짓고 있던 수십 명의 귀족들이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복창했다. "국왕 폐하!" 귀족들의 행동이 뭘 뜻하는지는 명확했다. 국왕은 부복한 귀족들을 바라보다가 주먹으로 왕좌의 손 잡이를 후려치며 일어났다. "들어라. 경들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대로 지금 대륙은 파멸의 위기에 봉착되어 있다. 이는 비단 슈덴베르크 왕국의 국민만이 해당되는 게 아니다. 위로는 짐에서부터 아래로는 작은 새까지, 이 세상에서 숨 쉬는 모든 존재의 생명을 위협 하는 위기다. 슈덴베르크의 국왕으로서 명령한다. 짐의 땅 에 발을 디딘 모든 전사를 소집하라! 브리스타니아와 시니어 스에도 국민 총동원령 발동을 요청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고함 소리가 왕의 홀을 뒤흔들었 다. 동시에 우렁찬 북소리와 함예 아크의 눈앞에 퀘스트가 갱신되었다.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성전을 위한 원정군=어둠의 제왕(레전드 퀘스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륙은 최대 최악의 위기에 몰려버렸습니다. 이 세상을 파멸로 몰고 갈 어둠의 제왕이 부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면 이 세상은 오직 탄식과 신음만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산자와 죽은자는 뒤바뀌고 불모의 땅에서는 지옥의 독기만이 뿜어져 올라올 것입니다. 이에 슈덴베르크 국왕은 대륙적인 국민 총동원령을 발동시켰습니다. 이는 국경과 종족을 초월한, 대륙의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절규이자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강철의 혼을 담은 용사들이여, 진리를 깨달은 현자들이여, 신의 뜻을 전하는 성자들이여! 세상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성전에 참가하십시오! 이 성전은 전설이 될 것입니다! <<난이도 : ++S 퀘스트 제한 : 레벨 300 이상>> <<300레벨 이상의 모든 유저들에게 적용되는 강제 퀘스트입니다.>> '됐다!' 아크는 퀘스트를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 었다. 이졔 대륙 전체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물리쳐야 하는 사람은 바로 뉴 월드의 창 조주 박우성의 분신이다!' 그렇다. 레전드 퀘스트 발동은 시작에 불과했다. 틀림없이 붉은 남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강행하리라. 그리고 그가 뉴 월드의 창조 주와 같은 사람이라면 대륙 전체가 움직여도 어둠의 제왕 부 활 의식을 저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질 수 없는 싸움이다!' 그것은 뉴 월드에 속한 모든 존재들의 의지였다. 쿵, 쿵, 쿵, 쿵, 쿵! 퀘스트가 발동하자 상황이 급류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콰리안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라!" "본국으로 귀환 중인 원정군을 북동부 해안으로 이동시 켜라!" "통신 가능한 모든 채널을 개방해 대륙 3대 길드에 지원을 요청하라!" "상선과 여객선, 군함, 물에 뜨는 모든 배를 징발해 해안 에 배치하라!" "각 영지에서 필요한 모든 군수물자를 징발하라!" 왕성에서 동시에 수백 마리의 전서구와 통신 전문이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현재 알아낸 바에 의하면 콰리안이라는 섬은 대륙 북동부 에서 해상으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국왕은 대륙 동부 해안의 모든 배에 징발 명령을 내렸 다. 그리고 선발대로 본국으로 귀환 중이던 슈덴베르크와 브 리스타니아 원정군을 시니어스 북동부 해안으로 이동, 그곳 에서 징발한 배를 이용해 라리안으로 넘어갈 작전을 세웠다. 그사이에 왕성에서는 남아 있던 모든 정규병과 유저를 소 집시켰다. 그러나 현재 슈덴베르크 왕국의 정규병 대부분과 레벨이 높은 유저들은 이미 원정군에 참전한상태였다. 병력이 한 번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뒤라 실제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 유저들이 아직 이게 뉴 월드 전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임을 알 리가 없었다. 그저 또 다른 퀘스트가 발동했다는 정도. 그러니 아크처럼 죽자살자 매달릴 리가 없었다. . "10시간동안 모인 병력이 고작6,000.... 다크에덴을 합해도 1만 명이다. " 아크의 연락을 받고 서둘러 달려온 정의남이 한숨을 불어 내며 말했다. 왕성에 모여든수천의 유저들을 보자니 아크 역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이 이미 콰리안으 로 출발했다. 양국을 합해 14만 명이 참전했다가 NPC 병사들이 전사해 현재 병력은 약 10만여. 그러나 시니어스 공국을 점령했던 마족들은 그 몇 배에 달하는숫자였다. 패퇴했다고는 하지만 최후의 결전을 위해 콰리안에 모인 마족의 숫자가 그보다 적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압았다. 게다가 걱정되는 것은 단순히 병력만이 아니었다. 레전드 퀘스트가 발동된 뒤, 아크는 셀리브리드의 마법 학 회를 찾아갔다. 슈덴베르크 국왕의 대리 자격으로 마법 학회 의 그랜드 마스터에게도 연락해 도움을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영격 통신으로 연결괸 그랜드 마스틀가 물었다. -음, 그런 싱찰이라면 마법 학회도 총력을 기울여 협조 해야겠지. 하지만 병력만으로 괜찮겠는가? 아크는 마스터가말한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마스터가 전송한 영상을 통해 그 질문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마스터가 영격 통신을 이용해 아크에게 보여 준 영상은 하늘을 날아가는 거대한 가오리였다. 바로 마족의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 -이건 얼마 전 시니어스 공국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파 견된 마법 학회의 열기구가 찰영한 것이네. 이 영상을 보낸 열기구는 곧 마족들의 공격에 의해 파괴되었지, 때문에 나는 이미 마족들이 뭔가 일을 벌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네. 마스터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자네도 알겠지만 뤼겐베르크는 마족들의 본거지나 다 름없는 곳이네. 마족들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준비하 고 있다면 틀림없이 그곳에 저 뤼겐베르크도 있겠지. 그리 고 뤼겐베르크는 암혹 세기에 연합군을 수없이 좌절로 몰 아넣었던 공중 요새네. 아무리 병력이 많아도 그런 공중 요 새를 이렇다 할 대책 없이 상대할 수는 없을 거야. 이게 마스터가 병력만으로 괜찮겠냐고 질문한 이유였다.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만‥‥‥‥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대답했다. 사실 뉴 월드에서 뤼겐베르크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은 바로 아크-붉은 남자를 제외하면-였다. 당연히 아 크 역시 뤼겐베르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아크 역시 어둠의 제왕 부활에 대한 정보를 얻자마자 그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문wp는 과연 시간 안에 그 준비가끝나느냐다.' 그렇다. 이제 어둠의 제왕부활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크의 대응은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설 명하자 마스터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군. 대강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네. 그렇다면 나도 그 준비라는 걸 돕지. 당장 가장 가까운 마법 학회에서 가 능한 많은 마도 공학자를 파견해 주겠네. 그리고‥‥‥‥ 마스터는 미묘하게 웃음기가 묻은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자네에게 조만간 선물을 보내도록 하지. -선물요? -지금은 그렇게만 알고 있게. -그럼 마법 학회의 병력 지원은? -선물을 받으면 자연히 알게 될 걸세. 마스터는 그 말을 끝으로 영격 통신을끊었다. 어쩠든 어감으로 볼 때 마스터 역시 이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확답은 아니지만 병력을 지원해 줄 마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마법 학회에서는 이렇다 할 연락이 없는 게 내내 불안했다. "게다가 마법 학회에서 마법사들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실제 원정군이 이 정도숫자라면 힘들어. " 아크는 한숨을 불어 내며 성 앞의 병력을 바라보았다. 뉴 월드의 사활을 건 전투를 앞두고 있는데 고작 1만이라니?설 사 아크가 준비하는 '그것' 이 시간 내에 완성된다고 해도 이 정도의 병력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보다 많은 병력을 모을 수 있으리라. 정 안 되면 TV를 통해 현재 글로벌엑서스에서 숨기는 정보 를 터뜨리면 이보다 많은 유저가모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언제 부활 의식이 시작괼지 알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만이라도 움직여 준다면‥‥‥‥" 다급해진 아크는 직접 동원 가능한 병력에게 연락을 보냈 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한 병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소리쳤다. "아크 자작님, 수만의 병사들이 왕성 앞에서 자작님을 찾 고 있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아크는황급히 왕성 앞으로 뛰어갔다. 성문 앞에 도착하자 엄청난숫자의 병사들이 셀리브리드 를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아크가 성문밖으로 뛰어나가자 병사들 틈에서 11명의 유저가 걸어 나았다.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아라미스, 살로만, 베지터 등, 얼마전에 아크의 주도아 래 연합군을 결성해 나가란 수호 전투에 참가헌던 나가란의 영주들이었다. 그렇다. 아크가도움을 요청한 병력은 바로 나가란 연합군이었다 . "와, 와 줬구나!" 그때 주먹 쥔 건틀렛을 앞으로 내밀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라돈의 영주 아라미스 이하 아라미스 연합원 4,800명 나가란 연맹장 아크 경의 명을 받고 집결했습니다!" "베이크의 영주 살로만 이하 골든크로스 연합 5,200명 나 가란 연맹장 아크 경의 부름을 받고 집결했습니다!" "그라나다의 영주 베지터 이하 유니온 연합4,900명 나가 란 연맹장 아크 경의 부름을 받고 집결했습니다‥‥‥‥ "여, 연맹장?" 아크가 얼멸떨한 표정을 짓자 아라미스가 씨익 웃으며 대 답했다. ·"솔직히 성전인지 뭔지는 별 관심 없지만, 함께 나가란을 지켰던 아크 님의 부탁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그래서 이참에 아예 각 영주들과상의해 동맹을 맺고 새로운 연맹을 창설해 참전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참전시킨 건 아크 님이니 당연 히 아크 님이 연맹장을 맡아주겠죠?" "하, 하지만‥‥‥‥" "저희는 개죽음을 당하기 싫다고요. " "연맹장을 맡을 사람은 나가란 수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크 님밖에 없습니다. " "연맹장을 맡아 주지 않으면 시르바나의 투자금을 돌려받 을 겁니다." 아크가 며듬거리자 살로만과 베지터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크는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유저들에게 신임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들의 호의와 신뢰가숨막힐 정 도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 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우리가 의논할 필요도 없었군. " 그때 문득 아크의 뒤로 4명의 귀족이 다가왔다. 슈덴베르크 국왕과 세 파벌의 수장 달틴, 할벤, 사르킨이 었다. 아크가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길을 보내자 국왕이 부 축을받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에서 빛나는 검을 뽑아 들고 아크의 어깨에 을리며 중얼거렸다. "슈덴베르크 국왕의 이름으로 아크 자작을 2차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국왕의 말에 아크의 눈동자가솥뚜껑만 해졌다. "2차 원정군 사령관?제가?" "국왕 폐하와 우리가 의논 끝에 결정한 일이네. 마족 전쟁 에서 수 많은 공적을 세우고 모두가 방심했을 때 어둠의 제왕 부활에 대한 정보를 가져온 건 자네네. 원정군 사령관 자리 를 맡을 사람은 자네밖에 없어." 아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달틴이 다가와 툭툭 어깨 를 쳤다. 뒤이어 할벤도 아크의 어깨를 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2차 원정군에 지원한 6만여 전사들이 이미 자네 를 수장으로 인정했네.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을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크에게 사기(?) 당해 며칠 사이에 폭삭 늙어 버린 사르 킨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지만 반대하는 기색은 없었다. 하긴 국왕과 달틴, 할벤이 결정한 일에 반대해 봐야 무슨 소용이 겠는가? 어쨌든국왕의 말처럼 원정군 7만여 가운데 64,000명이 아크를 따르겠다고 한다. 이미 아크는 사실상 사령관. 새삼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기필코 어둠의 제왕 부활을 저지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마족을 무찌르자!" 아크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6만의 함성이 셀리브리드를 떨쳐 울렸다. 동시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당신은 슈덴베르크 왕국의 2차 원정군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원정군 사령관은 작전과 전략, 휘하 병력에 대한 모든 권한이 부여됩니다. 휘하 원정군이 공적을 올릴 때마다 사령관에게는 보너스 명성과 공적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전투가 패전으로 끝날 경우에는 전투로 얻은 모든 명성과 공적이 소멸합니다. "징발한 함선을 루벤트항에 집결시키라고 명령해 두었네, 서둘러 출발하게. "네. 모두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진군하라!" 아크가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치자 7만의 병력이 움직이 기 시작했다. 언제 어둠의 제왕이 부할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가하게 행군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아크는 병력을 300명 단위로 분할시컥 마법탑의 영자 이 동을 이용해 루벤트항으로 이동시쳤다. 그러나 영자 이동을 이용해도 병력이 7만이나 되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몇 시간 이나 소모되었다. 그리고 대략 5만 명 정도가 루벤트항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돌연 엄청난 굉음과 함꼐 대지가통째로 들썩였다. 그리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며 눈앞에 시뻘건 경고 메시 지가 떠올랐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72시간>> "이, 이럴 수가‥‥‥!"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아직 원정군이 루벤트항에 집결조차 못 한 상황이다. 게다 가 루벤트에서 콰리안까지는 1,00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 었다. 순풍을 받으며 항해해도 며칠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하물며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의 여파로 요동치는 바다라면 그 몇 배가 걸리리라. 그런데 남은 시간이 고작 72시간이라니? "이미 늦었단 말인가?" 아크가 절망적으로 증얼거렸을 때였다. "저,저기 봐!" "헉! 뭐, 뭐야?저게?" 누군가의 목소리에 하늘을을려다보던 병사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들어 올린 아크의 눈동자가 이 따만 하게 확대되었다. 시커멓게 변해 버린 하늘에서 수백 개의 그림자가 다가오 고 있었다. 거대한 풍선들, 바로 열기구였다. 그리고 열기구 들 사이에서 엄청난 크기의 함선 수십 척이 번쩍였다. 그 열기구와 공중 전항의 선두에서 날아오는 것은 거대한 은빛 비공정이었다. "실버 애로우!" 그렇다. 마법 학회의 비공정 실버 애로우! 엄청난 속도로 접근한 열기구와 비공정들이 루벤트항에 착륙했다. 동시에 실버 애로우의 갑판이 열리더니 수십 명의 선원들이 달려 나와 일렬로늘어섰다. 뒤이어 제독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선원들 사이로 걸어 나 와 아크의 앞에 멈춰 섰다. "다, 당신은‥‥‥‥" 놀랍게도 사내는 아크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작센 방어전에서 추락한 실버 애로우의 갑판장이었던 자벨! "마법 학회의 비공전투대장을 맡고 있는 자벨 제독입니 다. 실버 애로우 외 비공정 30척. 열기구500척. 그랜드 마 스터의 명을 받아 아크 경의 휘하로 편입하겠습니다. 함께 성전에 참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벨이 각 잡힌 동작으로 경례를 붙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마스터께서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를 꼭 물어보라고 하셨 습니다. " 그렇다. 이게 바로 마법 학회의 그랜드 마스터가 말했던 원군이자 선물이었다. 바로 마법 학회가 수년간 막대한 자금 을 투자해 만든 비공전투대! "‥‥‥‥최고라고 전해 주십시오. " "살아 돌아간다면 꼭 전해 드리겠습니다. " 자벨이 빙긋 웃어 보이고는 빙글 몸을 돌리며 소리쳤다. "지금 부로 비공전투대는 아크 님의 휘하로 편입한다. 서 둘러 원정군을 숭선시키고 출발한다. 목적지는콰리안. 어 둠의 제왕이 부활하는 곳이다!" "우오오오오!" 열기구와 비공정의 숭무원들이 우렁찬 함성을 터뜨렸다. ACT9 팬저드라군 쾅, 쾅, 쾅, 쾅, 쾅!! 격렬한굉음이 대기를 흔들었다. 시커멓게 변해 버린 하늘에서는 수백, 수천의 섬광이 폭사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섬광 사이로 엄청난 숫자의 비행 물 체들이 개미 몌처럼 바글거렸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아크와 7만의 원정대는 루벤트항에서 마법 학회의 비공전 투대를 이용해 바다를 가로질렀다.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시작되어 대지는 뒤틀리고, 대기 와바다는 성난 짐승처럼 요동쳤다. 그러나 마력 엔진으로 움직이는 비공전투대는 마치 창으로 찌르는 것처럼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리고 대략 이틀이 지났을 무렵. "저기가 콰리안인가!" 요동치는 바다 위에서 섬 하나가 텨을랐다. 창세의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 디뎠던 땅이라는 콰리안 섬! 비공전투대가 콰리안 섬의 해역에 진입하자 원정군의 눈 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마족'의 영향권 안에 진입했습니다! 지옥의 지배자인 마족은 중간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일그러짐을 일으킵니다. 그런 공간의 왜곡은 차원 틈새애서 '마기'를 불러들여 대지와 대기를 오염, 중간계의 법칙을 무시하고 지옥과 같은 환경으로 변질시킵니다. 당연히 보다 강한 마족일수록 중간계의 법칙을 더 많이 무시하며 보다 강력한 '마기'를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진`마족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는 능력치가 20% 감소합니다. 반면 영향권 안에서 마기에 의해 변이를 일으킨 몬스터는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역시 예상대로 콰리안은 어둠의 기운에 휘감겨 있었다. 마치 섬 전쳬가 검은 베일에 뒤덮인 듯 윤곽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검은 하늘에서 콰리안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 정상까지. 마치 기다란 막대처럼 붉은 섬광이 내리꽂히고 있 었다. 그리고 그 중간 부분에 해당하는 공중에는 고성을 짊 어진 가오리를 닮은 거대한 생명체가 떠 있었다. 어둠의 제왕의 공중 요새, 뤼겐베르크였다. 그때 실버 애로우에 탑승해 있는 마법 학회의 마법사가 떨 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가오리의 등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에 엄청난 마력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마력의 수치는 거의 1 000만 단위‥‥‥‥ 마력만으로 섬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수치입니 다. 게다가 집중되는 마력 수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며칠 안에 억 단위를 넘어설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런 마력이 대륙에 떨어진다면‥‥‥‥" 대륙은 핵폭탄에 난타당한 것처럼 박살이 나리라. 그러나 지금 당장 급한문제는 그게 아니 었다. 사흘 전부터 오른쪽 구석에서 쉴 새 없이 깜빡이며 신경을 긁어 대는 메시지창이었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8시간>> 그렇다. 어둠의 제왕부활 의식이 시작되고 벌써 이틀. 이졔 아크에게, 안니 뉴 월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18시 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1차 원정군이 먼저 도착했다는 거야. ' 아크는 콰리안 해역을 내려다보았다. 비공전투대가 도착했을 때 콰리안 인근 해상에서는 이미 수천 척의 함선이 수만 마리의 바다 마족을 상대로 치열한 해전을 펼치고 있었다. 대죽 북부에 위치한 시니어스 공국에서 북동부 해안으로 이동한 브리스타니아와 슈덴베르크 1차 원정군이 었다. "발사!" 쾅, 쾅, 쾅, 쾅! 수천 척의 함선에서 뿜어 대는언청난 양의 포탄이 바다를 뒤덮었다. 뒤이어 바다가 폭발하듯 솟아오르며 수백 마리의 마족이 갈가리 찢겨 나갔다. 그러나 콰리안 해역에서 바글거리는 마족들의 숫자는 줄 어드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원정군의 포화가 주춤해지자 사방으로 뿔이 돋아 있는 코 끼리처럼 생긴 수십 미터 크기의 마족, 카라돈이 포격을 무 시하며 함선에 달려들었다. 카라돈의 뿔이 박히자 거대한 함 선이 일격에 뒤집혀졌다. "갈고리를 던져 카라돈의 움질임을봉쇄하라!" "작살과 마법으로 함선에 접근하는 마족들을 막아라!" 함선에서 마법과 화살, 각종 무기가 빗발쳤다. 그리고 몇 척의 함선이 연합작전을 펼쳐 갈고리로 카라돈 을 결박하고 포격을 쏟아부었다. 카라돈의 몸에서 정신없이 폭발이 일어나며 걸레처럼 너 덜너덜해졌다. 그러나 한 놈을 채 처리하기도 전에 다른 카 라돈과 도마뱀처럼 생긴 마돈들이 몰려들어 또다시 함선 한 척이 반으로 갈라지며 침몰했다. 동시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바다에 떨어져 마족들에게 살육 당했다. 콰리안 해역은 원정군과 마족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여 본 래의 바다조차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하루,.원정군은 콰리안에 상륙은커녕 오히려 해역 외곽까지 밀려났다. 이런 전황이라면 1차 원정군은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전 멸하고 말리라! 상공에서 전황을 확인한 아크는 콰리안에 도 착하자마자 조급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자벨 제독, 서둘러라!" "알겠습니다. 마력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개방하라!" "마력 엔진 최대 출력 개방!" 자벨의 명령에 선원들이 분주하게 갑판을 뛰어다녔다. 동시에 수백 척의 열기구와 비공정이 쏘아지듯 어둠을 가 로질렀다. 그리고 단숨에 거리를 좁혀 함성과 비명이 교차하 는 전장 위에 도착했다. "자, 마족 놈들에게 마법 학회 비공전투대의 위용을 보여 줄 시간이다. 비공전투대 전투태세! 전 함대는마력포와뇌 신의 창을 준비하라!" 자벨의 명령에 열기구와 비공정이 육줌한 기계음을 내며 포문을 일제히 개방시켰다. 그리고 마치 날카로운 창처럼 생 긴 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력한 마력을 웅축시켜 날리는 마력포! 그러나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었다. 30척의 비공정 선수에서 솟아 나온 거대한 삼지창처럼 생 긴 주포! 마법 학회가 자랑하는 궁극의 마도 병기 뇌신의 창이었다. "발사!" 번쩍-! 순간 바다를 향해 빛다발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30척의 비공정과 500척의 열기구에서 쏟아지는 수천 발의 마력포! 빛다발에 난타당한 마족들은 걸레짝처럼 찢겨져 나 갔다. 바다가한순간에 피와살점으로 뒤덮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 뒤이어 비공정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뇌신의 창을 폭발 시켰다. 동시에 시퍼런 벼락이 바다 위를 긁으며 지나갔다. 엄청난 전격 에너지가 내리꽃히자 바다가 한순간 시퍼렇 게 변하며 스파크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기화점을 돌파한 수천 톤의 바닷물이 수증 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엄청난 데미지에 풍선처럼 부풀 어 오르다가 폭발해 버린 마족들의 시체가 펄펄 끓는 바닷물 에 삶아졌다. 무지막지한 위력! "이, 이건 대체‥‥‥?" "위입니다! 열기구와 비공정‥‥‥ 본국에서 전문으로 알렸 던 지원군입니다!" "지, 지원군! 지원군이다!" 궁지에 몰리던 병사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함성을 터뜨 렸다. 지쳐 가던 병사들은 단숨에 사기가 치솟았다. "좋아, 지금이 기회다! 공중 지원을 받으며 마족들을 섬멸 하라!" 주변의 마족이 단숨에 익어 버리자 함선들이 일제히 콰리 안을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비공전투대의 포격으로 죽은 마 족은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콰리안주변에서 득실거리던 마족들이 일제히 함선을 향 해 달려들자 바다 전체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자벨 제독, 비공전투대의 방향을틀어 원정군 정면으로 몰려드는 마족들을 포격하라!" "알겠습니다. 전 함대 좌현 45도로 선회! 마력포와 뇌신 의 창을 하향30도로 고정하라!" 아크의 명령에 자벨이 비공전투대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함대가 포격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망루에서 주변을 정찰하 던 선원이 다급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제독님, 적입니다1 전방에서 수천‥‥‥ 수만의 적 비행 부 대가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 "뭐야?" 아크와 자벨이 난간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가아아아아아-! 콰리안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가오리 뤼겐베르크! 비공전투대가 콰리안 영역에 들어서자 뤼겐베르크의 복부 가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마치 소나기를 퍼붓듯 엄청난 숫자의 마족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크롸롸롸롸롸롸! 뤼겐베르크의 복부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엄청난 숫자의 드라칸과 가고일 떼였다. 탈론을 등에 태운 수천수만마리의 드라칸과 가고일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비공전투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경계병의 목소리가 파르르 멸려 나왔다. "적 비행 부대가 500미터 전방까지 육박했습니다! 400미 터,300미터‥‥‥‥" "젠장, 모든 마력포와 뇌신의 창을 적 비행 부대에게 조준 하라!" 아크가 함선 마이크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이대로 마족들에게 뒤덮이면 비공전투대는 괴멸적인 타격 을 입게 된다. 이제 해상 전투를 지원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곧 비공전투대가 진형을 바꾸며 마력포의 각도를 수정했다. "발사!" 콰콰콰콰콰, 콰콰콰콰콰! 동시에 마력포와 뇌신의 창이 벼락을 뿜어냈다. 엄청난 크기의 빛다발이 어둠을 찢으며 드라칸과 가고일 을 관통했다. 수천 발의 마력포가 비행 마족을 난타하고, 뇌 신의 창이 100여 마리의 마족을 삼켜 버렸다. 순간 1,000여 마리의 마족이 잿더미로 변해 바다로 추락 했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숫자의 드라칸과 가고일이 비공전 투대를 뒤덮었다. "크윽, 바퀴벌레 같은놈들! 전 함대, 방어막을전개하라! -베쿤, 베쿤. 마드호람! -크롸롸롸롸롸롸! 쾅, 쾅, 쾅, 쾅, 쾅! 비공전투대가 방어막을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격렬한 충 격이 선체를 뒤흔들었다. 순식간에 비공전투대를 뒤덮은 드라칸은 방어막에 달라붙 어 물어뜯고, 가고일은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광선을 뿜어냈 다. 그리고 드라칸과 가고일에 타고 있던 탈론들은 그대로 비 공정과 열기구의 갑판으로 뛰어내려 창과 검을 휘둘러 댔다. "오빠-!" 그때 뒤에서 로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크의 주위로도 수 마리의 탈론들이 달 려들었다. "망할, 다크 블레이드!화격!" 아크는 검을 휘둘려 달려드는 탈론을 갑판 밖으로 떨어뜨 리며 전황을 살펴보았다. 마족들이 들이닥치자 비공전투대는 단숨에 흔란에 휩싸여 버렸다. 마족들이 마력 엔진에 달라붙어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밀려드는 마족들에 의해 방어막이 찢겨 나가 궁지에 몰린 열기구는 당황해서 마력포를 난사하다가 아군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로코, 너는 선창으로 들어가 있어!" 아크의 목소리에 로코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끄덕이며 선 창으로 뛰어 들어갔다. '비공전투대 주변의 마족들은 각개전투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자벨 제독, 마력포와 뇌신의 창은 전방에서 접근하는 마 족들에게 집중하라!" "알겠습니다!" "정의남 아저씩 갱생단 형님들. 각개전투로 마족을 상대 합니다!" 아크가 고함을 터뜨리며 갑판 위에 줄지어 늘어선 기계 위 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고 세차게 당기자 굉 음을 뿜어내며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마법 학회가 마가로프의 연구 자료를 토대로 새로 개발한 개인용 전투 비행정이었다. "받아라. 다크 스트라이크!" 부아아아아! 비행정에 탄 아크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실버 애로우의 방어막에 달라붙어 물어뜯던 드라칸이 괴 성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주변에서 수십 마리의 가고일이 광선을 뿜어내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곧바로 비행정의 핸들을 돌려 광선을 흘려 내며 비 행정에 장착된 마력포를 발사했다. 아크에게 달려들던 가고일 한 마리가 마력포에 난타당했 다. 그러나 비행정에 장착된 마력포의 공격력은 비공정이나 열기구에 달려 있는 마력포의 2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가고일은 휘청거리면서도 날카로운 발톱으로 비행정을 후 려쳤다. "크윽!" 아크가 흔들리는 비행정을 바로잡는 사이, 나머지 가고일 들은 크게 선회하며 뒤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다시 아가리를 쩍 벌리며 광선을 뿜어내려는 순간! "대기를 가르는 바람의 칼날, 윈드 슬래시!" "영웅의 일격!" 콰콰콰쾅, 콰콰콰쾅! 돌연 옆에서 수십 발의 마력포와 마법이 날아와 가고일들을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냈다. 뒤이어 수백 대의 비행정들이 아크의 뒤로붙었다. 실버 애로우에서 정의남, 갱생단과함께 날아오른 비행정 들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30척의 비공정에서 수천 대의 비행정이 쏟아져 나와 마족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원정군 의 병사들이 비행정을 타고 마족을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 아란에게 한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마탄의 사 수 1장, 악마를관통하는 화살!" 그들 가운데는 다크엘프 티모시도 끼어 있었다. 다른 어벤저들은 글로벌엑서스가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 는다고 약속하자 대부분 게임을 종료하고 나가 버 렸다. 그러나 티모시는 아란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있다는 말 을 듣고 어떻게든 이번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억지를 부리며 따라온 것이다. "좋아! 정의.남 아저씨, 각 비행정은 100대 단위로 편대를 이뤄 마족을 상대합니다1 각 부대창들은 필요한 인원만큼 하 부 공격대를 괸성해 대삼각 진형을 갖춰 주십시오!" "알았다. 제 1편대 사령관을 중심으로 삼각 진형을 펼친 다! 나머지 편대도 편대장을 중심으로 삼각 진형을 이루고 1 편대를 중심으로 대삼각 진형을 펼친다!" 비행정에 타고 있는 수천 명의 유저들은 나가란 연맹원들 이었다. 뉴 월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유저들인 만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물론 비행정을 다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아크가 지난 이틀을 그냥 보 냈을 리가 없었다. 자벨에게 비행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아 크는 비공전투대가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 비행정을 맡길 유저를 선발하고 쉬지 않고 비행 훈련을 시킨 것이다. 덕분에 현재 비행정을 타고 있는 연맹원들의 비행 시간은 30시간을 넘은 상태였다. 허공에서 수천 대의 비행정들이 격렬한 마력 엔진음을 뿜 어내며 얽혔다. , 그리고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각 편대가 아 크를 중심으로 거대한삼각형 진형을 만들었다. 진형이 완성되자 아크가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저 망할 날파리들에게 나가란 연맹의 실력을 보여 줘라!" "훈련의 성과를 보여 줄 때다!" "가자!"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 동시에 수천 대의 비행정이 굉음을 뿜어내며 마족들을 향 해 돌진했다. 그러자 비공정과 열기구를 공격하던 마족들도 비행정을 향해 몰려들었다. -크롸롸롸롸롸롸! "어둠을 가르는 섬광, 레이!" "타오르는 강철의 검, 화이어 블레이드!" "받아랏, 애로우 스톰!" 수천 발의 마력포와 마법. 스킬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비행정 부대와 마족이 충돌하자 어두운 하늘에서 일시에 수천 줄기의 섬광과 화염이 폭발했다. 뒤이어 격렬한 굉음과 함께 수십 대의 비행정이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바다로 추 락했다. 그리고 그 몇 배에 달하는 마족들이 핏줄기를 룸어 내며 바다에 처박혔다. "화격!각 편대는 진형을 재정비하라!" 아크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족을 튕겨 내며 소리 쳤다. 그러자 다시 진형을 재정비한 편대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마법과 스킬을 날려 댔다. 그렇게 잠시, 열기구와 비공정을 뒤덮었던 마족들의 숫자 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비공정과 열기구는 수백 미터 밖에서 몰려드는 마족들을 향해 쉬지 않고 마력포와 뇌 신의 창을 발사했다. 그러자 새까맣게 상공을 뒤덮었던 마족 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됐다. 어느 정도숫자가줄었다! 자벨 제독!" 아크가 어깨 위에 탄 큐리오의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네, 아크 님!" 그러자 곧바로 큐리오의 입에서 자벨의 대답이 들려왔다. 큐리오의 뱀파이어 스킬, 종마 소환으로 불러낸 박쥐를 이 용한 원격 통신이었다. "마족들의 기세가 주춤한 지금이 기회다. 뤼겐베르크를 향해 진격하라!" "알겠습니다. 전 함대. 진격하라!" "각 편대는 비공정과 열기구를 호위하며 진격한다!" 아크의 명령에 비공정과 열기구가 뤼겐베르크를 향해 진 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크는 비행정 편대를 지휘해 몰려 드는 마족을 처리하며 따라붙었다. 그렇게 대략 몇 킬로미터를 접근했을 때였다. 문득 콰리안 산봉우리의 정상 부분에서 불길이 뿜어져 을라랐다. "저게 뭐지?" 아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시선을 집중했다. 멀리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수 킬로미터까지 접근 하자 대략적인 형창이 떠을랐다. 콰리안의 산봉우리 정상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은 거대 한 팔이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듯한손가락이 달려 있는 거대 한 팔! 불길은 그 손가락의 끝 부분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그 팔을확인하는순간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저, 저건, 설마‥‥‥ 마광 포탑!" 그렇다. 그 기괴하게 생긴 팔은 바로 마광포탑이었다. 단 두 대로 과거 작센 영지를 괴멸로몰아넣었던 악마의 포 탑! 그 위력은 직접 사용해 본 아크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 나 마광포탑의 무서운 점은 파괴력이 아니었다. 바로‥‥‥‥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 아크가 큐리오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자벨, 속았다! 전 함대를 퇴각시켜라!" "네?그게 무슨‥‥‥'?" 콰콰콰쾅, 콰콰콰쾅! 거의 동시에 굉음과 함꼐 10여 발의 검은 화염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러자 큐리오의 입에서 자벨의 당혹성이 터져 나았다. "저, 저건 마광탄!" 자벨은 마광탄의 위력을 뼈리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갑판장으로 있던 실버 애로우 초호기를 작센 영지 외 곽에서 격추시킨 게 다름 아닌 이 마광탄인 것이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듯 자벨이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전 함대, 회피 운동을 하며 전속혁으로 퇴각하라! 그러나 미미 마광은 비공전투대의 코앞까지 육박한 상 태였다. , 쿠콰콰콰콰, 쿠콰콰쾅! 수 킬로미터를 가로지른 마광탄이 비공전투대를 후려쳤다. 열기구는 일격에 잿가루로 변해 버렸고, 비공정조차 방어 막이 통째로 날아가며 선체에서 불길이 뿜어져 올라왔다. 일격에 열기구 다섯 척과 비공정 두 척이 30% 이상의 데 미지를 입어 버렸다. 비공전투대가 마광탄을 맞고 휘청거리 자 또다시 수천의 마족들이 몰려들었다. "마족을 몰아내며 퇴각한다!" 아크는 마족들을 상대하며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에 마광탄이 두 차례나 비공전투대를 덮쳤다. 아크는 비행 편대를 지휘해 마력포와 마법으로.마광탄을 요격했다.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 마광탄은 고 작 1~2개에 불과했다. 결국 마광탄에 의해 열기구 몇 척이 챗가루로 변하고 비공 정 한 척도 불길에 횝싸여 추락했다. 그리고 몇 척의 열기구 가 더 격추된 뒤에야 비공전투대는 간신히 마광 포탑의 사정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빌어먹을, 이대로는 뤼겐베르크에 접근하지도 못한다!" 그렇다. 마광 포탑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비공전투대의 마혁포나 뇌신의 창은 최대 사거리가 500- 700미터. 그러나 마광 포탑은 장거리 저쾨 포탑이라 최대 사 거리가 무려 2킬로미터가 넘었다. 비공전투대가 직접 마광 포탑까지 접근해 공격하려면 무 방비 상태로 포화를 맞으며 1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이동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만의 마족들이 방해하면 비공 전투대의 이동속도는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못하다. 무틱대고 돌진하다가는 마광 포탑에 절반 이상의 열기구 와 비공정이 격추당하리라. '그렇다고 여기서 미적거릴 시간도 없어!' 아크는 어금니를 깨물며 상단에 붙어 있는 메시지창을 바 라보았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4시간>> 그렇다. 원정군에게는 시간제한이 붙어 있는 것이다. 벌써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4시간. 콰리안에 도착하고 4시간이 지난 지금도 섬 근처에는 접 근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 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14시간은 촉박하기 짝이 없는 시 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전을 벌이는 원정군이 콰리안에 상륙 해 마광포탑을 처리해 주기를 기대할수도 없었다. 해상 원정군은 오히려 비공전투대보다도 뒤에 있는 것이 다. 그리고 해상 원정군 역시 콰리안으로 접근하면 마광 포 탑의 먹이가 되리라. '이렁게 되면 방법은 하나뿐이다!ㄱ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10개 편대를 지휘해 주 세요. 적진으로 돌입할니다!" 아크가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그렇다. 이제 남은방법은하나, 비행정 편대로돌입해 직 접 마광 포탑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광탄은 사거리가 긴 대신 속도가 느리다. 열기구나 비공 정은 선회 속도가 느려 한번 록온되면 피하기 힘들지만 소형 비행정이라면 마광탄을 충분히 피할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적은 마광 포탑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벌 떼처럼 달려드는 마족이다.' 날파리 떼처럼 바글거리는 마족들을 뚫고 콰리안까지 간다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마광 포탑의 사거리는 벗어났지만마족들이 계속 비공전투대를공격하고 있었다. 열기구와 비공정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숫자 이상의 비행 정을 남겨 둬야 했다. '10개 편대 1,000대‥‥‥ 이 병력으로 마광 포탑을 처리하 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 "아크, 준비됐다!" 그때 뒤에서 정의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아크의 뒤로 1,000대의 비행정이 배기 진형을 이루고 포진해 있었다. "모든 비행정은 마족을 비공전투대의 전면으로 유인하라!" 아크의 명령에 수천 대의 비행정이 복잡하게 얽히며 마족 을 유인했다. 그리고 마족들이 비공전투대의 앞에 모여드는 순간! "자벨 제독, 마력포와 뇌신의 창으로 놈들을 섬멸하라!" "네. 발사!"" 쿠콰콰콰콰콰콰 동시에 엄청난 섬광과 함께 빛다발이 마족들에게 뿜어졌 다. 순식간에 1,000여 마리의 마족이 녹아내리고, 살아남은 마족들은 괴성을 지르며 흩어졌다. "지금이다. 특공대는 콰리안으로 돌진한다!" 부아아아아! 부아마아아! 마력포가 난사되어 이미 전방의 마족들이 모두 죽거나 도 망친 직후! 그때 1,000기의 비행정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마 력포의 궤적을 따라 쏘아져 나갔다. 아크를 선두로 1 000기의 비행정이 화살처럼 쏘아져 날아 가자 흩어졌던 마족들이 벌 떼처럼 따라붙었다. 그리고 전방 에서도 수천 마리의 마족들이 돌진해 왔다. 그렇제 두 무리 의 마족들이 특공대를 샌드위치처럼 눌러 버리기 직전! "신경 쓰지 말고 전속력으로 돌진하라! '마기 왜곡'! 목 표는눈앞의 몬스터 군단!" 아크의 고함에 가방에서 수십 개의 저주템이 하늘로 솟마 올랐다. 그리고 오망성 형태로 늘어서며 폭발하자 마기의 폭 풍이 일어나며 특공대와 마족들의 위치를 바러 버렸다. 갑자기 공간 이동을 해 버리자 마족들이 우왕좌왕했다. 그사이에 아크와특공대는 거리를 벌리며 콰리안으로 돌진 했다. 그렇게 특공대가수천 마리의 마족들을 매달고 몇백 미 터 앞까지 거리를 좁히자 마광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예상하고 있던‥‥‥ 아니, 오히려 바라던 공격이었다. 아크가 이글거리는 검은 불길에 횝싸여 날아오는 마광탄 을노려보았다. "마광탄은 속도가 느리다. 50미터 앞으로 다가을 때까지 진로를 유지하라!" 그렇게 잠시, 거대한 마광탄이 코앞까지 밀려들었다. 순간 아크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전편대, 전속력으로산개하라!" 동시에 1,000기의 비행정이 굉음을 일으키며 방사형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바로 뒤까지 쫓아오던 수천 마리의 마족이 마광탄과충돌하며 훌길에 쉽싸였다.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각 편대별로 마광 포탑을 하라씩 맡아서 공격하십시오# "알았다. 2편대는 나를 따라레" "3편대는 나를 따라3시 방향의 마광포탑을공략한다!" 흩어졌던 비행편대가빠르게 마광 포탑을 향해 날아갔다. 콰리알 중심에 솟아오른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수백 미터 에 글하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 광 포탑은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시뻘건 용암을 뚫고 솟아 있 었다. "i편대는6시 방향의 마광포탑을공략한다!" 아크는 100기의 비행정을 이끌고 가장 앞에 위치한 마광 포탑으로 날아갔다. 아크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마족들이 가장 먼저 공격할 곳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위험한 곳에 들어간다! 그게 아크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공격하라. 다크 스트라이크!" "영웅의 일격!" "파쇄검!" 아크의 명령에 1편대가 포탑을 둘러싸고 스킬을 난사했다. 작센 영지 방어전을 펼칠 때는 '마력 폭탄'을 이용해서야 겨우 마광 포탑을 파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크나 다른 유저들의 레벨은 고작 60 전후. 지금 아크의 레벨은 460대를 넘어섰고. 편대원들의 레벨도 평균 350대를 넘었다. 게다가 비행정에 붙어 있는 마력포 역 시 약하다고는 해도 공격력이 100 이상 되었다. 100명의 편대원들이 마력포와 스킬을 난사하자 마광 포탑 이 요동치며 내구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크롸롸롸롸롸롸! 근렇게 마광 포탑의 내구력이 50%정도 깎여 나갔을 때였 다. 쫓아온 1,000여 마리의 마족들이 편대원들의 배후를 덮 쳤다. 아크가 비행정을 돌리며 명령했다. "젠장,50명은 졔속 마광 포탑을 공격하고,50명은 나와 함꼐 마족을 막는다I"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아크의 1편대는 나가란 연맹원 가운데 가장 레벨이 높은 강자들. 만약 이들이 무너지 면 마광포탑에 흩어져 있는특공대는단굴에 전멸당하리라! "마기 방출, 방패, 방패, 방퍼 방패, 방패!'!" 그때였다. 아크가 외칠 때마다 가방에서 방패가 솟아 나왔다. 그리고 일시에 폭발하며 1편대의 머리 위로 거대한방패 문양이 떠올랐다. 마기를 추출할 제물은 (방패, 방패, 방패, 방패, 방패)입니다. 이 조합으로 발동되는 효과는 '피지컬 실드'입니다. 피지컬 실드 : 피지컬 실드가 발동되면 그곳을 중심으로 직경 100미터의 공간에 방어력 500, 내구력 1,000에 해당하는 방어막이 형성됩니다. 방어막의 효과는 10분 동안 지속되며 그 사이에 내구력 1,000이 모두 소모되면 효과가 사라집니다. 단, 시전자가 움직여도 방어막은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또한 같은 효과를 중첩시킬 수 없습니다. 메시지와 함꼐 편대원들 주변으로 투명한 방어막이 만들 어졌다. 거의 동시에 수천의 마족과 편대원들이 충돌했다. 콰라콰쾅, 콰콰콰쾅! 격렬한 굉음과 함꼐 섬광이 번뜩였다. 수천의 마족과 편대원들이 허공에서 충돌하자 단숨에 난전이 되어 버렸다. 좌, 우, 발아래, 머리 위, 사방 천지에서 마족들의 발톱과 광선이 날아랐다. 그러나 편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 며 마력포와스킬을 난사하며 마족들을상대했다. 그러나 수천 대 50.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에서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용암으로 추락하는 비행정이 늘어났다. 그 리고 줄어든 숫자만큼 마족을 막아 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방어선이 뚫리며 수십 마리의 마족이 마광 포탑을 공 격하는편대원들에게달려들었다. '젠장, 이대로는 얼마 버티지 못해. 아직 멀었나?' 아크는 달려드는 마족을 반으로 갈라 버리고 마광 포탑으 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마광 포탑의 내구력은 30% 이상 남아 있었다. 그리 고 정의남이나 갱생단이 이고는 편대는 100명이 달라붙어 마광포탑의 내구력을 10%대까지 깎아놓은상태였다. '10%...... 그 정도면.9개의 마광포탑은 이제 5분 남짓이 면 파괴할 수 있다. 그리고 9개 편대가 합류하면 나머지 마 광 포탑을 파괴하고 퇴각해 비공전투대와 합류할 수 있어!5 분, 앞으로 5분만 버티면 된다!'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위, 위험해, 비켜-!" 갑자기 머리 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아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 다. 머리 위에서 시커먼 연기를뿜어내는 비행정이 미친 듯 이 회전하며 아크에게 돌진해 오고 있었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속도를 올리며 핸들을 꺾었다. 덕분에 직격을 피할 수는 있었지만 추락하는 비행정이 옆구리를 긁 으며 스쳐 지나갔다. 중심을 잃은 비행정이 팝콘처럼 튀어 을랐다. 순간 아크는 핸들을 놓치고 비행정에서 튕겨져 날아갔다. '아, 아차!' 아크의 등줄기로 섬뜩한 기운이 스척 지나갔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눈앞의 모든 것이 느려졌 다. 사방에서 난전을 벌이는 마족과 편대원들이.눈앞을 스친 다. 그리고 시커먼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눈앞으로 시뻘건 용암이 확 밀려들었다. '맙소사, 이런 식으로‥‥‥.!' 아크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막 용암 속으로 떨어지려는 찰나! 쌕쌕쌕, 쌕쌕쌕쌕! 라둔이 허리에서 튕겨 나가며 용암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라둔? 어째서‥‥‥?' 라둔의 돌발 행동에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을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서 섬광이 일어나더니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100% 소화시켰습니다. 소화된 '불타는 화룡족 심장'의 영향으로 라둔의 체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라모네 종족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비슷한 부류에 속하는 타종족의 힘을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완전히 체내에 흡수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족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라둔은 이제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흡수해 진화하게 되었습니다. '불타는 화룡족 심장?' 정보창을확인한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라둔은 오래전에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먹고 소화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화시킨 '불타는 화룡족 심장'은 95% 수준, 거기까지 소화시키는 데만 무려 세 달이 넘게 걸린 셈이다. 때문에 아크는 라둔이 100% 소 화시킬 때까지는 아직 열흘이 넘제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소화시키는 데는 아크도 몰랐던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불타는 화룡족 심장' 은 이름 그대로 화룡족의 심장. 이 심장을 소화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열이었다. 때문에 아크가 사막이나 더운 장소에 있을 때는 소화가빨 리 진행되다가, 서늘한 장소로 이동하면 소화가 느려졌던 것 이다. 게다가때는바야흐로 겨울. 사막이나화산지역이 아 닌 곳에서는 소화가 느려져 95%까지 진행되는 데만도 세 달 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용암지대에 들어서서 라둔의 소화가 엄청 난 속도로 빨라졌다. 그리고 거의 99%에 도달했을 때 라둔 이 용암으로 뛰어들어 100%를 소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아크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제 불과 영점 몇 초면 용암에 다이빙을 할상황이다. 그리고 만약 남은 원정군이 어둠의 제왕부활을 막지 못하 면 뉴 월드가 날아간다. 이졔 와서 라둔이 진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번쩍, 콰콰콰콰콰콰1 돌연 라둔이 사라졌던 용암이 섬광과 함께 솟아을랐다. 그리고 번들거리는 붉은 비늘에 뒤덮인 비룡 한 마리가 날 아올랐다. '뭐야? 용암 속에도 마족이 있었던‥‥‥‥' 그때 비룡이 입으로 아크의 뒷덜미를 물고 하늘로 솟아을 랐다. 아크의 눈앞에 새로운 정보창이 떠오른 건 그때였다.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으로 진화에 성공했습니다. '불타는 황룡족 심장'을 완전히 흡수한 라둔이 새로운 소환수로 진화했습니다. '불타는 화룡족 심장'은 고대 화룡의 혈통을 계승한 화룡족의 마력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마력을 흡수해 완전한 성체로 성장한 라둔은 고대 화룡의 성향과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완전체가 된 라둔은 유계의 위대한 의지로부터 불타는 뿔이라는 의미의 '버닝혼'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습니다. 버닝혼 라둔이 '불타는 화룡족 심장'을 흡수해 완전체가 된 유계 생물. 완전체가 된 버닝혼은 아라모네의 특성과 고대 화룡의 특성을 함께 지니게 되었습니다. 더많은 아이템을 저장할 수 있고, 보다 많은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본능에 따라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축적해 자신만의 능력을 배워 나갈 것입니다. 종족 : 유계 생물 성향 : 어둠 등급 : 완전체 생명력 : 2,000 충성도 : - 힘 : - 민첩 : - 체력 : - 지혜 : - 지능 : - 운 : - +스킬 장착 슬롯이 4개로 확장됐습니다. +아이템 보관 용량이 2배로 확장됐습니다.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팬저드라군 : 성장한 버닝혼은 일정시간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팬저드라군은 고대 화룡의 아류 용족으로 불길을 뿜으며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룡입니다. 속도는 어떤 비행 종족도 따라올 수 없으며 주인의 몸을 성스러운 불길로 감아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시킵니다. 고대에는 팬저드라군을 타는 전사를 용전사라고 부르며 최고의 전사로서 대우했다고 전해집니다. 단, 버닝혼이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하면 소환자의 마나를 10총 20씩 소모합니다. +팬저드라군으로 변시할 경우 생명력 +5,000 +팬저드라군을 탄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비행 속도 +1,000% +팬저드라군을 탄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공격력과 방어력 +20% "팬저드라군?그, 그럼 이 비룡이‥‥‥?" 크라라라, 크라라라! 아크가 멍청한 눈으로 바라보자 버닝혼이 불길을 뿜어내 며 울부짖었다. 확실히 거대해지고불길에 휘감겨 있었지만 아크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눈망을은 라둔! -크롸롸롸롸콰롸! 버닝혼이 아크를 물고 솟아오르자 드라칸 몇 마리가 괴성 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버닝혼이 고개를 흔들어 아크 를 등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날개를 활짝 펼치며 화살처 럼 드라칸 사이로 파고들었다. 순간 아크의 검이 폭밭했다. "다크 스트라이크!" 퍼퍼퍼펑, 퍼퍼퍼펑! 아크의 검이 불길에 휘감기며 드라칸의 몸을 관통했다. 검에 휘감긴 불길은 아크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20% 상승 시켜 주는 팬저드라군의 특수 효과! 공격력이 20%나 상승된 다크 스트라이크에 얻어맞은 드 라칸들이 단숨에 격추당했다. "좋아. 기세를 몰아 이대로 밀어붙이자! 살아남은 편대원 들은 날 중심으로 모여라!" 아크가 버닝혼을 이끌고 마족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그러자 20여 기의 비행정이 마력포를 난사하며 뒤따랐다. "모두 사령관의 뒤를 따라라!" 그렇게 아크가 다시 마족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 할 때였다. 콰콰콰쾅! 굉음이 울려 퍼지며 정의남이 공격하던 마광 포탑이 폭발 했다. 그러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4시간>> '엇?시간이‥‥‥ 늘어났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방금 전에 확인했을 때는 남은 시간이 12시간대까지 떨어 져 있었다. 그런데 마광 포탑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14시 간대로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마광 포탑은 그저 대포 역할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분명 콰리안에서 뤼겐베르크로 솟아 올라 가는 마력의 흐름을 조종하고 있었던 거야! 다시 말해 마광 포탑을 모두 파괴하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늦을 수 있 을지도 몰라!' 아크의 짐작은 곧 확신으로 변했다. 마광포탑이 하나씩 폭파될 때마다 남은 시간이 계속 늘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얍삽이가 이끄는 편대가 마지막 열 번 째 마광포탑을 파괴하자24시간까지 늘어났다. 시간이 늘어나기 직전 12시간이 남아 있었으니 딱 2배로 늘어난 셈이다. '뤼겐베르크에 집중되는 마력은 하늘과 땅, 두 곳에서 쏘 아지고 있었다. 마광 포탑을 파괴해서 대지에서 올라가던 마 력을 봉쇄했으니 남은 건 하늘. 두 곳에서 집중되던 마력이 하나로 줄어서 시간이 2배로 늘어란 건가?' 아크는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하늘 에서 내려오는 마력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마광 포탑을 모두 파괴하고 이로뛰 시간까지 벌 었다. 이제 남은 건 비공전투대와 합류해 뤼겐베르크를 파괴 하는 일만 남았다!' "모두 편대를 구성해서 비공전투대와 합류한다!" 아크는 살아남은 800여 명의 편대원들을 집결시켜 비공전 투대로 귀환했다. 그리고 비공전투대의 강력한 화력을 이용 해 마족들을 녹이며 콰리안으로 진격했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기를 대략 20여 분. 수많은 비행정과 열기구, 다섯 대의 비공정을 잃은 뒤에야 마력포와 뇌신의 창 사거리에 뤼겐베르크가 탈을 거리까지 접근했다. 아크는 버닝혼을 이끌고 비공전투대의 선두에서 검을 앞으로 향하며 소리쳤다. "됐다. 비공전투대, 전 화력을동원해 뤼겐베르크를격추 시켜라!" "발사!" 콰콰콰콰, 콰콰콰콰콰콰! 순간 아크의 뒤에서 시작된 수천의 빛다발이 뤼겐베르크 를 향해 폭사되었다. 그리고 그 빛다발이 닿는 순간 눈을 멀 게 만들 듯한폭발이 일어났다. "웠다. 아무리 뤼겐베르크라도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틀림없이 엄청난 데미지를 입었으리라! 그러나 격렬한 폭연 속에서 점차 드러나는 뤼겐베르크를 지컥보던 아크의 얼굴이 점차 당혹감에 물들어 갔다. 흩어지는 폭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뤼겐베르크에는 작 은 흠집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뤼겐베르크를 뒤덮고 있 는 반투명한 캡슐만이 가볍게 요동쳤을 뿐이다. "보. 보호막?" 아크의 눈가가파르르 떨렸다. 이제 와서 보호막이라니? 게다가 20발의 뇌신의 창과 1,000여 발의 마력포를 맞고 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 보호막?아크는 마치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크롸롸롸롸롸롸! 그때 뤼겐베르크의 가슴에서 또다시 엄청난 숫자의 드라 칸과 가고일이 쏟아걱 나왔다. 그리고 발밑의 해상에서도 엄 청난 숫자의 마족들이 솟아을랐다. 몇 시간을 싸운 게 허망하게도 마족들은 처음보다 더 많아 보였다. "검은 오벨리스크‥‥‥!" 그렇다. 검은 오벨리스크! 이곳은 마족이 최후의 전장으로 선택한 콰리안! 분명 해저 밑바닥이나 마족들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뤼겐 베르크의 고성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검은 오벨리스크 가 박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 킬 수 있을 정도로 강락한 마력이 집중되는 장소. 때문에 검은 오벨리스크의 마족 부활 속도도 다른곳의 몇 배로 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럴 수가‥‥‥‥" "이 마족들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죽여야 한다는 거야?" "게다가 뇌신의 창으로도 뤼겐베르크의 보호막을 부술 수 없다면‥‥‥‥‥" 원정군 병사들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정말 절망스러운 장면은 그다음에 펼쳐졌다. 돌연 굉음과 함께 뤼겐베르크의 등에 세워진 고성이 진동 했다. 그리고 성벽 여기저기에서 기괴하게 뒤틀린 거대한 팔 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뒤틀린 팔‥‥‥! 그렇다. 아크가 목숨을 걸고 파괴한 마광 포탑이었다. 고작 10대의 마광 포탑의 공격만으로도 비공전투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고성에서 솟아 나온 마광 포탑은 수십 대! 게다가 뤼겐베르크의 보호막 안에 있는 것이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마족과불길을 일으키는 마광포탑! "맙소사! 이, 이건 사기야!" 아크가 신음처럼 중얼거 렸을 때였다. 마광 포탑에서 시커먼 불길에 횝싸인 수십 발의 마광탄이 비공전투대를 향해 날아왔다.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공격! '끝났다!' 아크는 도망갈 생각조차 못 하고 멍하니 마광탄을 바라보 았다. 그때 갑자기 강렬한폭풍이 일어나며 비공전투대 뒤에 서 수십 발의 섬광이 뻗어 나왔다. 거대한 빛기둥과 같은 섬광은 단숨에 수백 마리의 마족을 관통하고 마광탄을 후려쳤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마광탄이 일제히 폭발하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이건‥‥‥!" 아크가목이 부러져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두운공간 을 가르며 날아오는 거대한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울창한 숲에 뒤덮여 백색 거탑이 세워진 거대한 땅덩어리‥‥‥‥ "샹그리아!" 그렇다.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는 거대한 땅덩러리는 바로 예언자 일족의 성지, 샹그리아였다. 그러나 샹그리아는 이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샹그리안를 뒤덮은 울창한 숲 여기저기에 거대한 포탑들이 세워져 있었다. "크하하.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는 법이지!" 포탑 위에서 풍선처럼 빵빵한 몸을 가진 노인이 거대한 확 성기에 대고 광소를 터뜨렸다. "워머 !" 아크의 입에서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준비한 대뤼겐베르크 계획! 아크는 원정군을 소집하기 전에 이미 워머와 너구리족을 보내 샹그리아 개조 계획을 시작했다. 뤼겐베르크를 떠올렸을 때. 방어 결계가 작동해 공중에 뜬 채 엄청난 숫자의 마족을 막아 내던 샹그리아가 떠올랐던 것 이다.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는 7인의 영웅과 100용사가 직접 마력을 부여해 만든 것이다. 그 샹그리아를 이동 요새로 만 들면 뤼겐베르크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하나 걱정은 시간 내에 개조가 완료될까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워머에게 개조가 끝나려면 앞으로 며칠이 걸려야 한다는 연락이 왔었다. 때문에 아크도 거의 포기하고 있었지만 그랜드 마스터가 파견한 마법 학회의 마도 공학자 들의 가세로 개조 기간을 며칠이나 앞당긴 것이다. 그리고 아크가 준비한 지원군은 샹그리아만이 아니었다. 샹그리아의 등장과 동시에 돌연 서쪽 하늘에서 수천 개의 '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그리고 비행 전투대로 달려들던 마족들의 옆구리로 수천 발의 비도를 날렸다. 그 그림자들은 바로 동방 민족을 태운 하늘 가오리 였다. "말 잘했다, 워머! 주인공은항상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는 법이지! 폭우검!" 그들의 선두에서 수십 발의 비도를 난사하며 소리치는 사 람은 샴바라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래에서 100여 척의 철 갑선이 바다 마족들에게 포화를뿌리며 나타났다. "마지막이면 제가 주인공인가요?" 상인 길드의 깃발을 펄럭이는 철갑선 위에서 히죽 웃으며 중얼대는 호비트는 바로 시드였다. 격앙된 눈으로 그들을 둘 러보던 아크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역시 뉴 월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가자, 버닝혼!' 크라라라! 크라라라! 불길에 휩싸인 버닝혼이 포효를 터뜨리며 마족을 향해 날아갔다. 열기구와 비공정, 1,000여 기의 비행정이 마력포를 뿜어내며 뒤따랐다. 뉴 월드의 운명이 걸린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23권 끝 다음 텍스트소설카페 : http://cafe.daum.net/JustABC 타이핑: Act1 ~ 3 모름 Act4 ~ 작가후기 - DarkSky(dnjfdbgid94) 알리는 말씀. 대부분 인터넷에서 공유중인 24권 텍본은 50%에서 짤려서 배포중이더군요. 마저 타이핑작업을 2010년 10월 14일에 시작하였습니다. http://cafe.daum.net/JustABC 카페에서만 배포하며, 추첨배포할 예정입니다. 불법 공유는 절대금물이며 타이핑자 이름을 바꾸면 못참습니다. 96~97 페이지가 빠저있더군요. 중간에 빠진 96~97페이지도 적어넣었습니다. 그럼 이제 아크의 마지막모습을 볼 24권, 아쉬움을 뒤로하고 타이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아크를 응원해주세요! - 다음텍스트소설 카페 [DarkSky(dnjfdgid94)]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하루되세요. 2010년 10월 14일 오후 5시 35분 아크 24권(완) 차례 1. 뤼겐베르크 공략 2. 영웅의 후예 3. 돌격, 돌격, 돌격! 4. 상념의 미로(Ⅰ) 5. 상념의 미로(Ⅱ) 6. 어둠의 제왕 7. 전설의 재림 8. 프로젝트 : 루시퍼 Epilogue [뤼겐베르크 공략] 콰콰콰쾅, 콰콰콰쾅! 글로벌엑서스 기획실에서 1,200W 스피커가 격렬하게 진동하며 굉음을 뿜어냈다. 우리에서 뿜어지는 중저음에 바닥이 들썩이고 서라운드 스피커가 쏟아 내는 고음이 벽에 반사되며 공기를 진동시켰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광란의 사운드! 그러나 기획실 직원들의 귀에는 이미 그런 사운드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운드에 귀를 기울이기에는 눈앞의 120인치 최신형 대형 LED TV에서 펼쳐지는 영상이 지나치게 압도적이였기 때문이다. 기획실 팀장 하명우나 대리 김권태, 호명환 등은 벌써 몇 시간째 그저 멍하니 대형 TV화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현재 그렇게 멍하니 TV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아니, 아마도 전 세계에서 수백, 수천만명이 이들과 같은 상황이리라. 그것은 바로 TV에서 나오는 영상이 현재 마족 전쟁의 최후 결전지 콰리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전투의 실시간 영상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런 영상은 5~6개의 채널에서 방송되는 중이었다. 뉴 월드에서 레전드 퀘스트가 발동한 직후, 각 방송사는 게임 내에서 활동하는 모니터 용원을 동원, 콰리안 전투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상당수의 모니터 요원을 투입한 상태였다. 기획실의 TV에서 펼쳐지는 것은 그 모니터 요원들이 보내오는 실시간 영상이였다. 그러나 글로벌엑서스 기획실 직원들은 그처럼 느긋하게 방송을 지켜볼 상황이 아니었다. "이, 이런!" "젠장, 마족 놈들!" "다시 원정군이 놀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앗, 마족들의 반격에 선두의 함대가 전멸당했어!" 시시각각 전황이 변할 때마다 직원들의 얼굴에도 희비가 엇갈렸다. 세삼스럽지만 이들에게 마족 전장의 승패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만의 하나, 원정군이 부활 의실을 저지하지 못해 어둠의 제왕이 부활한다면 뉴 월드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단 하나 명확하게 애기할 수 있는 것은 글로벌 엑서스가 뉴월드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다는 것. 그렇게 되면 결국 정상적인 서비스를 못 하게 되리라. 그건 글로벌엑서스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장의 위기는 직원의 위기! 글러벌엑서스가 재정 적자로 휘청거리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전해지리라! 그렇다. 마족 전쟁의 승패는 이들에게 흥밋거리가 아니다.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였다. 뉴 월드가 어둠의 제왕에게 점령당하면 유저들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아예 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 더 큰 피래를 입게 될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당연히 이번 마족 전쟁은 참전한 유저들보다 오히려 글로벌엑서스 직원들이 더욱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윽, 또 전투함 세 척이 침몰했어!" "빌어먹을, 이런 상황을 멀뚱히 지켜만 봐야 하다니....." 다시 마족들의 공격에 원정군 전함이 침몰하자 여기저기에서 비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실 클로벌엑서스에서는 뉴 월드를 하는 직원들에게는 특별 휴가를 줘서 원정군에 참전시켰다. 대부분의 모니터 요원은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레벨이 어느 정도 되는 직원들이나 가능한 일. 뉴 월드를 하지 않거나, 해도 레벨이 낮은 직원들은 그저 멍하니 화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달리 전황은 시시각각 암울해졌다. 시나어스 공국으로 진군해 있던 브리스타니아, 슈텐베르크의 원정군 10만 여! 이들이 수천척의 전함을 타고 콰리안 섬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기획실에는 희망이 넘쳤다. 그러나 콰리안에 집결된 마족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원정군을 저지하고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성공시키기 위해 방어선을 펼친 마족은 수십만! 게다가 콰리안 주변에 엄청난 마력이 집중되는 상황이라 놈들의 부활속도도 평소의 몇 배에 달했다. 덕분에 원정군은 몇 시간 만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밀려나는 중이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이대로 뉴 월드의 멸망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그렇게 모두가 절망적인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콰! 돌연 굉음과 함께 TV에서 엄청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넓은 사무실을 한순간 빛으로 뒤덮어 버릴 정도의 광량이였다.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린 직원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저, 저건 설마.....?" "틀림없어, 저 비공정과 열기구에 새겨진 문장은 틀림없이 마법 학회!" 그렇다. 어둠에 휩싸인 하늘에서 등장한 것은 바로 마법 학회의 비공전투대! 비공전투대는 등장과 함께 마력포와 뇌신의 창으로 수백마리의 마족들을 녹여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대형을 갖추며 원정군 함대를 공중에서 지원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하늘에서 비공전투대가 쏟아 내는 마력포와 뇌신의 창은 원정군과 기획실 직원들에게 그야말로 구원의 빛이었다. "시간 맞춰 왔구나!" 하명우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2차 원정군의 존재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2차 원정군이 비공전투대에 합류했을 무렵 이미 부활 의식이 시작되고, 콰리안 해역에서 원정군과 마족의 전투가 시작되어 그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쁘도 잠시, 비공전투대가 등장하자 뤼겐베르크에서 가고일과 드라칸 등의 비행형 마족들이 몰려나왔다. 지금까지 상상도 못 했던 마족의 공중 병력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벌 떼처럼 비공전투대에 달라붙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젠장, 비공전투대의 기동력으로는 놈들을 상대하기 힘들어!" "어떻게 하지?" 순신간에 몇대의 열기구가 추락하자 직원들은 다시 불안감에 휩싸였다.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 그때 격렬한 마력 엔진음과 함께 30척의 비공정에서 수천대의 비행정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진형을 갖춰 가고일과 드라칸을 몰아 붙이기 시작했다. "괴, 굉장하다!" "마법 학회가 저런 비행정을 보유하고 있는 죽은 몰랐어!" "비행정을 조종하는 유저들도 보통이 아니지만......" "......대체 누구야? 선두에서 비행정 편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비행정 편대가 단숨에 공중전을 제압하자 직원들의 시선이 한 유저에게 집중되었다. 놀라운 솜씨로 비행정 편대를 지휘하며 마족들을 몰아붙이는 유저! 그때 뒤쪽에서 호명환이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아크, 저 유저가 바로 아크 님입니다!" 그렇다. TV를 지켜보는 시청자와 직원은 물론, 글로벌엑서스의 모니터 요원들도 일제히 카메라를 집중시킨 유저, 한 대의 비행정에 몸을 싣고 전장을 누비는 유저는 바로 아크였다. 호명환의 목소리에 하명우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화면을 꽉 채운 아크를 바라보았다. "아크?" 물론 하명우도 아크라는 이름은 몇 번이나 들어 왔다. 그러나 동영상에서는 언제나 다크울프로 변신한 모습이라 실제 아크의 외모를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군, 저유저가......" 하명우가 젊은 나이에 대기업의 기획실 실장이라는 직함을 달게 된 건 운이 아니었다. 남들보다 빠른 상황 판단 능력과 직감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하명우의 직감이 이번 콰리안 전투의 핵심이 아크라고 말하고 있었다. "좋아, 당장 콰리안 전투에 참가한 응시자들 가운데 연락 가능한 모든 유저에게 전력으로 아크를 엄호하라고 전해라!" 하명우는 곧바로 상황을 판단하고 지시를 내렸다. 뭐, 이렇게 TV를 보며 내리는 지시가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엿다. 그리고 하명우의 기대대로 그 뒤로 아크가 더욱 눈부시게 활야한 덕분에 전황은 원정군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마족들은 콰리안 섬 정상에 설치한 마광 포탑의 사기적인 사거리를 이용해 비공전투대를 괴롭혔지만, 그 역시 하명우와 기획실 직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정작 당사자인 아크는 그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었지만-아크의 분투로 섬멸시켰다. "봤죠? 봤죠? 저게 바로 아크 님입니다!" 용암에 추락하던 아크가 불사조처럼 날아올라 마광 포탑을 괴멸시키자 호명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크가 레벨 150대 때부터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았던 호명환은 남다른 감회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오오오, 과연 아크!" "역시 아크는 불사신이다!" 아크의 활약에 기획실은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버렸다. "자, 가는 거다. 아크!" "저따위 가오리는 단숨에 태워버려!" "뤼겐베르크만 날려 버리면 원정군의 승리다!" 아크가 마광포탑을 파괴한 뒤에 비공전투대가 뤼겐베르크에게 접근해 일제사격을 개시했을 때, 기획실 직원들은 원정군과 일심동체가 되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러나 다음 순간, 기획실 직원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어 버렸다. 콰콰콰콰, 콰콰콰콰콰콰! 뒤이어 비공전투대에서 발사한 빛다발이 뤼겐베르크를 후려쳤다. 콰리안 전투에 참전한 원정군도, 실시간으로 그걸 지켜보는 기획실 직원들도, 확인할 수는 없니만 수백, 수천만의 시청자도,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욱한 폭연이 사라지고 드러난 장면은 모두의 예상을 뒤집어 벼렸다. 뤼겐베르크는 흠집하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뤼겐베르크를 덮고 있는 반투명한 캡슐만이 한차례 흔들렸을 뿐이다. "보, 보호막?" 화명 속의 아크와 기획실 직원들이 동시에 당혹성을 터뜨렸다. 그때 마치 떄를 기다렸다는 듯이 뤼겐베르크의 가슴에서 또다시 엄청난 수만에 달하는 마족들이 솟아 올랐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뤼겐베르크의 등 위에 세워진 요새에서는 방금 전 아크가 목숨을 걸고 간신히 폭파시켰던 마광 포탑 수십 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돼!" 이 장면은 원정군과 기획실 직원들을 단숨에 충격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다급하진 하명우가 와락 시선을 돌리며 소리쳤다. "김대리, 뭔가....뭔가 방법이 없나?" "방법이 있었다면 그냥 지켜보고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김권태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하명우가 책상을 후려치며 이를 갈아붙였다. "빌어먹을, 우리는 운영자란 말이야! 뉴 월드가 박살 날 상황을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게 말이 돼? 뭔가 방법이 있을 거 아냐? 어둠의 제왕이라는 놈이 되살아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메인 서버를 해킹하든 도끼로 내려치든, 뭐든 좋아 멀뚱히 있지 말고 머리를 굴려 보란 말아야!" "하지만....." 기획실 직원들이 눈 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암울한 표정으로 TV를 지켜보던 호명환의 눈동자가 솥뚜껑처럼 확대되었다. "티, 팀장님!" "뭐야?" 하명우가 버럭 소리치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120인치 대형 스크린에 거대한 물체가 떠오르고 있었다. 중심에 백색 거탑이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중저음의 기계음을 울리며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땅덩어리에 설치된 수십 대의 거대 포탑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비공전투대를 향해 날아오던 마광탄을 공중에서 폭발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돌연 서쪽 하늘에서 수천의 하늘 가오리가 화살을 날리며 비행 마족을 몰아쳤고, 바다에서는 100여 척의 철갑선이 바다 괴물에게 집중포화를 뿌리며 등장했다. "샹그리아와 동방 민족, 상인 길드...... 저들은 워머와 샴바라, 시다.....아크 일족입니다!" 빙글빙글 눈알을 돌려 대던 호명환이 소리쳤다. "아크 일족?" "아크 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세력입니다. 워머는 얼마 전부터 아크 님을 도와 마족 전쟁에 참전한 발명가고, 샴바라는 오래전부터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한-호명환은 둘의 관계를 매우 잘못 알고 있었다-전우, 시드는 오래전부터 아크 님의 재정 관리를 담당하는 경리부장 같은 사람으로 상인 길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인입니다." "그들이 일족의 수장인 아크를 돕기 위해 참전했단 건가?" "그렇습니다!" 호명환이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명우는 화명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내 직감대로 이번 전투의 핵심은 아크다. 아크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없나?" "아크 님은 얼마 전에 게임 특종과 동영상 계약을 했습니다. 다른 방송국에서도 이번 전투를 실시간 방송하고 있으니 게임 특종에서는 아크 님이 촬영하는 영상이 방송될 겁니다." "좋아, 게임 특종으로 채널을 돌려라." 하명우의 지시에 기획실 TV가 게임 특종의 채널로 전환되었다. 게임 특종도 이번 콰리안 전투를 특집으로 방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예상대로 게임 특종에서 아크가 복실이의 눈알을 사용해 촬영하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호명환, 아크에 대해서는 자네가 잘 알고 있으니 전황을 중게해라." "알겠습니다." 호명환이 신바람 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는......" 그러자 다른 직원들이 하명우의 눈치를 살피며 떠듬거렸다. 이대로 전투영상을 감상(?)해야 할지, 아니면 방금 전에 하명우가 소리쳤던 대로 뭔가 방법을 찾는 척-실제로 방법이 없으니 그냥 뭔가 방법을 찾는 척-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명우는 답답한 눈길로 그들은 바라보다가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할 것 없으면 응원이나 해!" "알겠습니다." "플레이, 플레이, 아크!" 기획실 직원들은 맹렬하게 응원모드로 돌입했다. -------------------------------- 콰콰콰쾅, 콰콰콰쾅! 어두운 공간에 또다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고막을 관통해 뇌를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굉음조차 눈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에 비하면 부족한 감이 있었다. 콰리안 섬을 중심으로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전장, 그곳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수천의 섬광과 열기에 뒤덮여 있었다. 바다에서는 1,000여 척에 이르는 전함과 철갑선이 쉴 새 없이 포화를 뿜어내며 수만의 바다 마족과 싸우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샹그리아를 중심으로 비공정과 열기구가 수만의 비행 마족을 상대로 교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건 바로 아크가 지휘하는 비행정들이었다. 선두에서 한차례 격전을 치른 아크가 숨을 몰아쉬며 버닝혼을 바라보았다. "흠, 버닝혼, 잠시 물러나서 재정비한다!" 크라라라, 크라라라!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한 버닝혼이 입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물러났다. 그렇게 일단 격전지에서 물러났지만 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물러나자마자 여기저기 긁히고 부서진 비행정 한 대가 불안하게 날아오며 소리쳤다. "아크 님, 21편대가 마족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아크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작전을 지시했다. "근처에서 방어선을 펼치고 있는 13, 14편대에 지원하라고 전하라!" "13, 14편대가 빠져나가면 우측 대열의 열기구 부대를 보호할 비행정이 없습니다." "알고 있어. 하지만 21편대는 우측 방어선으로 몰려드는 마족을 감당할 수 없어. 자칫하면 전체 방어선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열기구 부대는 일단 뒤쪽으로 퇴각시키고 21편대 구출에 전력을 기울여라!" "알겠습니다." 아크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비행정을 선회시켜 전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가 채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전령이 날아오며 소리쳤다. "아크 님, 8편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당장은 지원할 여유가 없다. 일단 전선에서 후퇴해서 재 정비하라고 전해라!" "라저, 명령을 전달하겠습니다!" 전령이 곧바로 비행정을 돌려세우며 대답했다. "젠장,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아크는 공중에서 복잡하게 뒤엉키는 마족과 비행정 편대를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예전에는 전황을 보고 있으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병력을 여기에 집중시키면 전황을 좀도 유리하게 이어갈 수 있을 텐데. 왜 지휘관은 그걸 못 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아크가 2차 원정군 사령관직을 수락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령관이 되어 전황을 보니 일개 병사였을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물론 아크가 지휘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저 세계에서 너구리족을 지휘했던 경험도 있었고, 스탄달에서 바란족을 지휘했던 경험도 있었다. 또한 시르바나 공성전을 지휘해 성을 함락시켰던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수천 명 규모의, 한정된 지역에서 한 가지 전략에만 집중해도 충분한 전투였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병력과 전장의 수준이 달랐다. 바다와 공중을 아울러 수 킬로미터의 전장에서 수만 명 아군이 수십만의 적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거대한 전장의 상황을 모두 확인하고 상황에 맞춰 지시를 내리는 일은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한 개인, 혹은 한 부대의 상황을 걱정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전체 전황을 파악해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규모 전장에서 최선의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아크가 원정군을 지휘하며 깨달은 점이었다. 때문에 때로는 병력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지원군을 보내지 못할 때가 있었고, 그대로 두면 전멸할 것을 알면서도 최후까지 자리를 지키라는 매정한 명령을 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물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 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듯이 느긋하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아크가 곤란은 겪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전장에서 사령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전체 전황을 빨리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병력이 많아지니 그조차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아크는 병력을 지휘할 떄 대부분 『속삭임의 깃털』같은 통신 전용아이템을 이용해 즉시 전황을 파악해왔다. 그러나 병력이 많아지니 그조차 불가능 했다. 그 이유는 바로『속삭임의 깃털』은 중첩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아크가 이미 귓솔말을 하고 있을 때는 다른 부대장과의 통신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명령을 내릴 부대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면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만의 병력, 부대장만도 수백명이나 되다 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더구나『속삭임의 깃털』은 유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통신수단, NPC인 비공전투대의 함장들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아이템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속삭임의 깃털』을 이용한 통신은 정의남이나 갱생단처럼 몇몇 주요 부대장에게만 국한시키고, 나머지 부대장들과는 전령을 통해 보고받아야 했다. 떄문에 실제 전황을 아크가 알기까지 그리고 다시 아크의 명령이 도달하기까는 몇십 초에서 길게는 몇 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대로는 안 돼. 전형에게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리면 이미 늦는다. 그 전에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전황을 그리며 병력을 미리 움직여야 마족들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어. 그러면 자칫 시행착오가 발생한 전장에서는 병력 비해가 커질 수밖에 없겠지만 모든 병력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어.' 이게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예를 들어 A라는 부대를 전면으로 진격시키면 당연히 마족들이 A부대를 공격할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A부대를 진격시킬 때 미리 비행정 편대에 A부대의 좌우 양측으로 이동하ㄷ록 명령해 놓는다. 그리고 마족들이 A부대를 습격하면 좌우로 이동한 비행정 편대가 총공격을 펼쳐 전멸시키는 것이다. 적을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움직이도록 유인해 놓고 공격! 실제로 그런 전술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때 보다 적은 피해를 받으며 적에게는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그나마 아크가 지휘하는 2차 원정군이 1차 원정군보다 피해가 적은 것은 이런 작전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적이 예상했던 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유인용으로 사용된 부다는 되려 고립되어 전멸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익 최선이다." 그리고 그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좀더 많이 예상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크는 수 킬로미터나 되는 전장, 그것도 해전과 공중전이 펼쳐지는 3차원 전장에서 수십만에 달하는 아군과 마족으 움직임을 쉬지 않고 시물레이션 하고 있었다. 덕분에 아크는 머리가 터질 것같이 쑤셔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장을 살피던 아크가 한숨을 불어냇다. "......상황이 좋지 않아." 아크가 두통을 참아 가며 수많은 작전을 구사했음에도 전황은 여전히 어두웠다. 사실 글러벌엑서스 기획실 직원들처럼 아크 역시 샹그리아와 동방 민족, 상인 길드의 등장으로 전황이 확실하게 나아질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전황은 기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단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바다에서 상인 길드가 철갑선을 이끌고 합류했지만 이미 1차 원정군의 함대는 절반 가까이 침몰한 상태였다. 전력이 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물론 그만큼 바다 마족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검은 오벨리스크의 힘으로 놈들이 부활해 버린 것이다. 상인 길드의 철갑선이 그 전에 도책했다면 분명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현재로써는 1차 원정군이 피해를 입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샹그리아와 동방 민족이 가세한 공중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는 공중전 모드로 전환한 뤼겐베르크에서 쏟아 내는 마광탄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힘드는 상태였다. 결국 수만의 달하는 비행 마족들은 비행정 편대와 하늘 가오리만으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행 마족들은 원정군과 달리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활을 반복해 숫자가 줄어드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어, 문가 전황을 바꿀만한 활로를 찾아내야 해." 아크는 답답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현 상태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퇴각해서 원정군을 최상의 상태로 재정비한 뒤에 다시 공략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희생된 유저들이 부활, 합류한 뒤에 모든 공격력을 집중한다면 마족들이 부활하는 속도보다 빨리 전멸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전투에는 시간지한이 붙어 있었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7시간 그렇다.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 콰리안 정상의 마광 포탑을 괴멸시켜 시간을 연장시켰지만 그조차 이제 17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설사 전사한 유저들이 모두 부활해서 대륙 북부 해얀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이제는 그들을 싣고 돌아올 시간조차 부족한 것이다. "결국 지금의 병력만으로 부활 의실을 저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병력으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물며 뤼겐베르크이 방어막을 뚫고 부활 의식을 저지할 여유따위가 있을 리가..... -크롸롸롸롸롸롸! 그때 바로 옆에서 위협적인 울음소리가 활 밀려들었다. 움찔하며 고개를 돌리자 드라칸 세 마리가 송곳니를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아크의 지시로 8편대가 방어선에서 퇴각해 마족들이 후방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체, 망할 놈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군. 버닝혼!" 아크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버닝혼의 불을 꽉 움겨쥐었다. 그러자 버닝혼의 등어서 몸을 회전시키며 연속적으로 스킬을 난사했다.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스트라이크!" 어둠고 동화된 칼날이 공간을 넘어 놈들의 목을 관통했다. 현재 아크는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한 버닝혼의 특수 효과로 공격력과 방어력이 20% 상승한 상태! 급소를 꿰뚫린 드라칸들은 단숨의 생명력이 20%나 깍이며 휘청거렸다. "이때다 버닝혼, 우측의 드라칸을 잡아라!" 크라라라, 크라라라! 버닝혼이 급격히 몸을 회전시키며 드라칸 한 마리의 목을 덥썩 물었다. 드라칸이 발악하듯이 몸을 흔들어 대자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버닝혼이 이리저리 휘둘렸다. 드라칸이 요동치자 위에 타고 있던 탈론이 중심을 잃고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버닝혼은 마치 품에 안기듯 드라칸의 가슴에 발톱까지 박아 넣고 달라붙었다. 그사이에 아크는 버닝혼의 불에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발버둥 치는 드라칸의 면상에 연속적으로 '다크 스트라이크'를 쑤셔 박아싿. 그렇게 잠시, 결국 드라칸의 생명렬이 3% 이하로 줄어들었다. "흥, 이제야 먹기 좋게 다져졌군. 마기 봉인!" 아크가 씨익 웃으며 드라칸의 턱 아래로 검을 쑤셔 박고는 소리쳤다. 동시에 드라칸의 거대한 몸이 휴지처럼 우그러지며 검으로 발려 들어갔다. 검에 검은 기운이 일렁이며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샤이닝 오브 타크니스에 마기가 충전됐습니다. 《충전된 마기 : 46》 *스킬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됐다." 아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아크는 가능하면 이렇게 마족을 '마기 봉인'으로 검에 쓸어 담는 중이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샤이니 오브 다크니스에 마족을 봉인하려면 직접 곰을 꽂아 넣어야 한다. 그러나 공중전에서 직접 검을 꽂아 넣을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아크가 힘들게 '마기 봉인'을 사용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생명력이 3% 이하라면 일격에 마족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족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위력을 가진 스킬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에 사용할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어. 그러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강력한 필살기 하나 정도는 준비해 둬야 해.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는 충전된 마기가 많을 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스킬이니 기회가 있을 때 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하자' 그리고 '마기 봉인'을 사용했을 때의 이점은 또 있었다. 콰리안 근처에는 엄청난 숫자의 검은 오벨리스크가 박혀있다. 게다가 이곳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중이라 엄청난 마력이 집중되는 상황. 아무리 많은 마족을 처리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하기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검은 오벨리스크는 대부분 뤼겐베르크의 배 속이나 머릿속에 박혀있어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족의 부활을 막을 다른 방법이 있었다. '마기 봉인'으로 마족을 장비품이나 거멩 봉인시키는 방법! 그렇다. '마기 봉인'은 마족을 그냥 죽이는 게 아니다. 마족의 존재 자체를 장비품에 봉인하는 것. 때문에 '마기 봉인'을 당한 마족은 검은 오벨리스크에서도 부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아크 혼자 아무리 날뛰어 봐야 봉인할 수 있는 마족은 한계가 있었다. 수십만의 마족이 득실거리는 전장에서 수십 마리를 봉인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수십 마리라도 숫자를 죽여 가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비록 한 마리라도 숫자가 줄면 그만큼 아군의 피해도 줄어든다!' -크롸롸롸롸롸롸! 그사이 양쪽에서 '다크 스트라이크'를 맞고 물러났던 드라칸 두 마리가 달려들었다. "버닝혼, 좌측의 드라칸을 맡아라!" 버닝혼이 날렵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좌측 드라칸의 날개를 물었다. 그때 아크가 보닝혼의 등에서 몸을 날리며 소리 쳤다. "마령소환, 퓨리탈. '갑주화'! '갈고리 폭사'!" 동시에 공간이 열리며 뼈다귀가 우수수 쏟아저 냐와 아크를 뒤덮었다. 그리고 양어께에서 뼈 갈고리가 폭하되어 우측 드라칸의 뒷덜미에 박혔다. 뒤이어 뻐 갈고를 잡아당기다 아크의 몸이 빨려가듯 드라칸을 향해 단숨에 10여 미터를 날아 갔다. 그러자 드라칸의 등에 타고 있던 탈론이 움찔하며 창을 들어 올렸다. -바쿰, 바쿰, 보라마랃! "시끄러, 인마! 화격!" -크라마, 노훔니라..... 카락..... 크아아아아.... 적을 10미터 밖으로 밀어내는 연쇄 스킬 '화격'! 아크가 '쳐 내기'와 '카운터 어택'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화격'을 발동시키자 탈론이 고무공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도플로효과를 일으키는 비명과 함께 바다 위로 떨어졌다. "자, 어디 네놈의 뒤통수가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해 볼까?" 드라칸의 등 위를 점령한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드라칸이 식은 땀을 삐질거리면 아크를 떨구기 위해 몸을 흔들어 댔다. 그러나 아크는 퓨리탈이 갈고리로 단단히 몸을 고정시키고 뒤통수에 폭격을 퍼부었다.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스트라이크!"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드라칸은 뒤통수에 이따만 한 혹을 매단 채 검에 봉인되었다. 그렇게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가 드라칸 한 마리를 머겅 치우는 사이, 나머지 드라칸의 등에 타고 있던 탈론이 창을 휘둘러 대며 버닝혼을 떨궈 냈다. 뒤이어 드라칸을 급격히 선회시키며 역으로 버닝혼의 목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어림없지, 갈고리 폭사!" 아크가 갈고리로 놈의 아가리를 휘감으며 몸을 날렸다. 그때 돌연 머리 위에서 드라칸 한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벼락처럼 떨어졌다. "헛, 뭐야? 다른 놈이 있었잖아. 젠장, 화격!" 공중을 날아 이동하던 아크는 빙글 몸을 회전시키며 '화격'을 발동시켰다. 벼락처럼 떨어지던 드라칸이 면상에 '화격'을 얻어맞고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마쿰, 바라마다!" 그렇게 간신히 위기를 넘긴 아크가 드라칸의 등에 올라타려 할때였다. 드라칸의 등에 타고 있던 탈론이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려 아크의 허리를 움켜잡고 매달렸다. 갑자기 두 사람 분의 체중이 실리자 갈고리 하나가 빠지며 덜컥 멈춰 버렸다. "이, 이 자식이! 다크 스트라.....젠장!" "바람, 쿠라다라, 크람!" 다급해진 아크가 검을 휘두르려 하자 탈론이 재수 없게 웃으며 몸을 흔들어 댔다. 마족어를 몰라도 이 정도는 대강 알아듣겠다. ......같이 죽자는 거다. "누가 너 같은 말단 마족하고 같이 죽어? 빌어먹을, 떨어져! 떨어져!" 아크가 탈론의 면상을 발로 꽉꽉 밟아 댔지만 한번 달라붙은 놈은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버닝혼과 몸싸움을 벌이는 드라칸까지 몸을 흔들어 대자 하나 남은 갈고리는 당장이라도 뽑힐 듯이 들썩였다. 덕분에 아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였다.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한 줄기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섬광은 정확히 아크의 허리를 움켜쥔 탈론의 손목을 관통해 버렸다. 손목이 절반이나 뜯겨져 날아가자 탈론은 홀로 바닥에 추락해 버렸다. "휴..... 사, 살았다!" 간신히 탈론과의 오붓한 동반 자살을 면한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며 시선을 돌렸다. 화살을 날린 사람은 다름 아닌 티모시였다. 새삼스럽지만 같은 편이 되니 그만큼 든든한 아군이 없었다. 사실 전투가 공중전으로 진행되다 보니 역시 전사보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마법사나 궁수가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중에서도 연사력이 월등한 궁사의 위력은 발군! 하물며 지상에서도 샴바라와 대등한 전투를 하던 티모시는 완전 물 만난 생선이였다. 아크조차 한 번에 서너 마리의 드라칸을 상대하기는 힘들었지만 티모시는 네댓 마리도 가뿐히 상대할 뿐만 아니라 아크를 도와줄 여유까지 있었다. 그런 티모시는 항상 아크의 주변에서 얼쩡댔는데, 물론 아크가 예버서는 아니었다. 아마도 아크 옆에 있어야 붉은 남자나 마스튜아라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기리라고 생각해서이리라. 그러나 도와주는 것과 친해지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흥, 너한테 관심이 있어서 도와준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마!" 아크가 빙긋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하자 티모시가 콧바귀를 뀌며 팩 고개를 돌렸다. 대체 뭐냐?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같은 편이 됐지만 여전히 밥맛없는 여자다. '뭐, 도움이 된다면 성격 따위는 문제가 안 되지. 그보다.....' "다크 스트라이크! 다크 스트라이크!" 탈론이 떨어져 나가자 갈고리 하나만으로도 무사히 드라칸의 등에 올라탈 수 있었다. 버닝혼을 공격하는 드라칸의 등을 점령한 아크는 속사포 같은 공격으로 생명력을 쭉쭉 빨아 대다가 단숨에 검에 봉인시켜 버렸다. 그리고 근처로 달려온 버닝혼으로 옮겨 탄뒤에 정의남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정의남 아저씨, 그쪽 상황은 어때요? - 일단 예정대로 마족을 유인했다. 반대쪽에서 갱생단과 함께 11개 비행정 편대를 지휘하는 정의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미리 마족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예측 전술을 사용할 때마다 유인용으로 사용되는 부대는 거의 정의남이 맡고 있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의남의 상황 대처 능력이나 적을 유인하는 기술은 아크도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용의주도한 것이다. 정의남은 이번에도 그런 능력을 십분 발휘해 마족들을 원하는 지점까지 유인해 놓았다. "자벨 제독, 함대를 4시 방향으로 선회시키며 마력포와 뇌신의 창을 발사하라!" 아크가 어께 위에 앉은 큐리오의 귓가에 대고 소리쳤다. 비공정 함장들은 NPC라『속삭임의 깃털』도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아크는 '종마 소환'으로 불러낸 큐리오의 부하를 비공정 함장들에 배치시켜 놓았다. 이번 전투의 중추적 역활을 맡고 있는 비공정에 신속하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아크가 명령을 내리자 곧바로 비공전투대가 선회하며 빛다발을 뿜어냈다. 쿠콰콰콰콰콰콰, 콰콰콰콰! 마족들을 유인해 한곳에 몰아넣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사실 비행정 편대의 백병전만으로는 마족들의 숫자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전투 시간이 많이 걸려 오히려 줄어드는 마족보다 부활하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 그런 마족의 숫자를 확실하게 줄이는 방법은 하나, 마족을 한 곳에 몰아넣고 비공전투대의 화력을 이용해 단숨에 녹여 버리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비공전투대의 마력포와 뇌신의 창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수백마리의 마족을 단숨에 잿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됐어, 이제 다시 여유가 생겼다." 아크는 뿌연 잿가루가 흩날리는 공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여유에 불과했다. 검은 오벨리스크가 남아 있는 한 마족은 무한대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원정군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샴바라와 동방민족이 참전해 병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무한대로 부활하는 마족을 상대해야 된다면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게 되리라. 아니, 이미 몇 시간의 전투로 비행정 편대나 동방민족 1,000여 명이 전사한 상태였다. 덕분에 계속 불어나는 마족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검은 오벨리스크를 모두 파괴한다고 해도......" 아크가 한숨을 불어내며 시선을 돌렸다. 바다에서는 함선과 철갑선이 그리고 공중에서는 비공전투대, 비행정 편대가 수만의 마족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상공에서는 그런 전투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박력 넘치는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콰콰코쾅, 콰콰콰콰쾅! 수십 대의 포탭에서 소나기 같은 포격을 날려 대는 거대한 땅덩어리! 그리고 그에 맞서 수십 대의 마광 포탑을 난사하는 거대한 하늘 가오리! 그렇다. 샹그리아와 뤼겐베르크의 공중전! 새삼스럽지만 콰리안 전투는 단순히 마족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가 아니었다. 원정군의 목적은 어둠의 제왕 부활 저지. 그리고 어둠의 제왕의 부활 의식은 뤼겐베르크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뤼겐베르크를 격침시키거나, 최소한 방어막이라도 부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마족을 죽여 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현재 뤼겐베르크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원정군의 공군력은 샹그리아뿐. 때문에 샹그리아는 전투가 진행되는 내내 뤼겐베르크와 약 1킬로미터의 거리를 두고 치열한 포격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일단 두 공중 요새의 공격력은 6 대 4 정도로 뤼겐베르크가 강하다.' 이게 지금까지의 접전을 보고 아크가 내린 결론이었다. 때문에 현재 샹그리아는 뤼겐베르크에서 날아오는 마광탄을 막아내는데 화력을 집중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방어력이다.' 그렇다. 바로 이게 문제였다. 뤼겐베르크를 감싸고 있는 사기적인 방어막! 대체 내구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몇 시간에 걸친 샹그리아와의 접전에도 아직 방어막은 건재했다. 물론 샹그리아 화력의 대부분은 마광탄을 요격하는 데 쓰이고 있지만 그동안 적지 않은 공격을 받고도 흠집하나 생기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접전이 길어질수록 샹그리아의 피해가 점점 가중되고 있었다. 물런 샹그리아의 전 화력, 거기에 비공전투대까지 가세해서 마광탄을 요격하고 있자만 100% 막아 낸다는 것은 불가능, 이미 샹그리아도 몇번이나 공격을 허용해 전면부는 이미 땅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잠시 상황을 정리하던 아크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사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크가 모든 전력을 마족의 숫자를 줄이는 데 집중시킨 이유는 다음 작전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는 다시 우측 상단에서 점멸하는 경고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6시간》 무엇보다 이제 시간이 없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시도할 기회조차 없을지도 몰라.' 잠시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자벨 제독, 전 비공전투대와 비행정 편대는 최종 작전에 돌입한다!" "알겠습니다. 전 함대 부상!" 큐리오가 척 경례를 붙이며 자벨의 목소리를 전해 주었다. 동시에 실버 에로우의 갑판에서 수십발의 신호탄이 쏘아져 올라갔다. 그러자 수백 대의 열기구와 20여 척의 비공정, 수천 대의 비행정이 수직으로 떠올라 샹그리아와 뤼겐베르크 사이에 집결했다.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는 샹그리아 주위로 집결하여 마력포와 뇌신의 창을 충전하라! 그동안 비행정 편대는 전방위에 방어진을 펼치고 남아 있는 마족들의 공격을 방어하라!" 아크의 명령에 비행정 편대가 격렬한 마력 엔진음을 발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족을 한데 몰아 섬멸시키는 작전이 몇 번이나 성공해 현재 비행형 마족의 숫자는 불과 몇 천, 비행정 편대로 방어진을 펼치면 총공격을 해 와도 당분간 버틸수 있으리라. 물론 그조차 마족들이 부활할 때까지였다. '지금까지으 상황으로 봤을 때 마족들이 부활하기까지는 아지 10~20분 정도가 남아 있다. 그때까지는 샹그리아나 비공전투대의 지원사격을 받지 않아도 남은 병력으로 방어 할 수 있어. 문제는 뤼겐베르크가 난사하는 마광탄. 하지만 그 역시 방금 전에 일제사격을 펼쳤으니 다시 재충전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아크가 마족들의 숫자를 줄이며 기대렸던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죽었던 수만의 마족들이 부활하기 직전에 생기는 불과 몇십 분의 공백기! 그리고 비행정 편대가 몰려드는 마족의 공격을 막아 내는 사이...... "아크, 샹그리아의 모든 포탑이 재장전을 완료했다!" "아크 님, 비공전투대의 마력포와 뇌신의 창이 재충전을 완료했습니다!" 큐리오의 입에서 워머와 자벨의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때를 같이해 뤼겐베르크의 고성 여기저기에 솟아올라 있는 마광 포탑에서도 불길이 치솟아 올라왔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마광 포탑도 재충전을 완료하고 포격을 재개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러자 수백대의 배행정이 아크의 옆을 스치며 앞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편대장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아크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아크 님!" "음.....부탁한다!" 아크 역시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콰콰콰쾅, 콰콰코쾅, 콰콰콰쾅! 거의 동시에 뤼겐베르크에서 마광탄이 폭사되었다. 집채만 한 검은 불덩어리 수십 발이 어두운 공간을 가로질러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두 공중 요새 사이에 운집해 있는 비공전투대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리라! 그때 아크가 번쩍 눈을 뜨며 소리쳤다. "결사대...!" "우와아아아아!" "오오오오옷, 나의 의지는 무엇보다 강력한 방패가 되리라 디펜스(잘 안보이네요) 실드!" 순간 선두로 날아가던 비행정 편대가 30대 단위로 나누어 지며 흩어졌다.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지 그들은 점차 확대되는 마광탄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정신 공유'로 30명의 마력을 집결시켜 실드 마법을 펼쳤다. 마법사들이 실드 마법을 펼치자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의 전면에 수십개의 방어막이 활 펼쳐졌다. 마광탄이 방어막에 충돌한 건 그때였다. "충돌한다. 모두 정신을 집중해라!" 쿠쿠쿠쿠, 쿠쿠쿠쿠, 콰콰콰쾅! 순간 공간을 가로질러 온 수십 발의 마광탄이 우뚝 멈춰 섰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마광탄의 위력은 고작 마법사들의 실드 마법 정도로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샹그리아의 거대 포탑이나 비공정의 주포 뇌신의 창으로도 막아 내지 못할 정도인 것이다. 역시나 충돌과 동시에 방어막에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쫙 번지더니, 쩍쩍 소리를 내며 방어막이 부서지기 시작 했다. 사실 아크 역시 실드로 마광탄을 막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다!' 그때 마법사들이 일제히 품에서 작은 철구를 꺼내 들었다. 마력 폭탄 종류 : 1급 발명품 설계, 제작자 : 마법 학회, 워머 마법 학회에서 발명한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마력 폭탄과거 시험 버전에서는 마나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불안했지만, 마가로프의 연구 일지를 입수한 덕분에 문제점을 보완했습니다. 거기에 워머의 첨단 기술이 첨가되어 개량되었습니다. 그러나 마력을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된 대신 폭발력은 약간 감소했습니다. 《타이머를 작동시키면 5초 뒤에 폭발합니다.》 - 마력 폭탄의 타이머가 작동했습니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 3초, 2초, 1초....》 바로 마법 학회에서 개발하고 워머가 개량한 마력 폭탄이었다. 사실 샹그리아의 거대포탑은 워머가 이 마력 폭탄의 기술을 응용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아크가 이번 작전을 생각해 낸 것도 샹그리아에 실려 있는 마력 폭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들이 마력 폭탄을 작동시키자 표면에 떠오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 0초가 되는 순간!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공간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사방에서 수백 대의 비행정이 흔들렸다.(여기도 잘 안보임...) 한 곳에서 30개의 마력 폭탄이 폭발했다. 그 폭발력은 거대 포탑에서 발사되는 포탄의 파괴력과 맞먹을 정도였다. 순간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폭발이 일어나며 실드 마법에 주춤하던 수십 발의 마광탄이 공중에서 폭발 했다. 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마광탄을 주춤하게 만든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목숨을 맞바꿔 마광탄을 막아 내기 위해서! 그리고 이들의 희생은 바로...... "지금이다.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는 모든 화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 폭격하라!" 순간 샹그리아의 수십 거포와 뇌신의 창, 마력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눈과 귀가 멀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굉음과 섬광이 어둠을 찢었다. 그 거대한 빛다발이 향하는 곳은 바로 뤼겐베르크! '뤼겔베르크의 방어막이 단단하다면 그보다 강력한 공격력으로 공격하면 그만이다!" 그렇다. 이게 아크가 마족들의 숫자를 줄여 놓고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를 집결시킨 이유! 그리고 수백 명의 마법사를 희생시키며 마광탄을 막아야만 했던 이유! 모든 것은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의 화력을 마광탄을 막는 데 소모하지 않고 100% 상태로 한 점에 집중시켜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날려 버리기 위해서였다. "받아랏! 이게 원정군의 최대 화력이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아크의 고함과 함께 샹그리아에서발사된 수십 발의 거포와 비공전투대에서 발사된 수백 발의 마력포와 뇌신의 창이 거대한 빛다발이 되어 뤼겐베르크를 후려쳤다.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뤼겐베르크가 크게 흔들리며 폭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영웅의 후예] "맙소사!" "이, 이건 말도 안 돼!" "대체 어떤 놈이 저따위 말도 안 되는 걸 만든 거야?" 120인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전황을 지켜보던 기획실 직원들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화면에 나오는 아크나 원정군들의 입어서도 똑같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카아아아아아-! 폭염이 사라지자 뤼겐베르크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뤼겐베르크를 뒤덮은 예의 보호막이 파도치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있었다'! 원정군의 모든 화력이 집중된 공격을 받고도 보호막은 여전히 있었다. 멍하니 보호막을 바라보던 아크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샹크리아와 비공전투대의 화력을 한곳에 집중하고도 보호막을 부수지 못했다면....." 보호막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동시에 그것은 당장 마족을 전멸시켜도 부활으식을 저지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절망! 그렇다. 그것은 곧 절망을 뜻하는 말이었다. 수백 명의 병사를 희생시켜서 얻은 결론이 고적 절망이라는 한마디인 것이다. "아크 님, 수백 대의 비행정이 자폭한 틈을 타 마족들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대원들이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때 사방에서 전령들이 날아오며 소리쳤다. "전대원은....." 아크는 쉰 목소리로 웅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뤼겐베르크를 감싸고 있는 망할 보호막은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원정군의 공격은 물론 진입 시도까지 100% 차단시켜 왔다. 그런 주제에 내부에서 외부로 발사되는 마광탄이나, 마족들은 통과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사기적인 방어막이었다. 그런데 이제 원정군의 모든 화력을 집중해도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뤼겐베르크를 공격할 수도, 상륙할 방법도 없다.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원정군에게 뭘 위해 싸우라고 말해야 한단 말인가? ".....버텨라. 지금은 버티는 수밖에 없다."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한숨과 함께 그렇게 중얼거렸다. 방법이없다. 그럼에도 차마 포기하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크!" 그때 큐리오의 입에서 워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샹그리아로 와 봐라. 보여 줄 게 있다!" '보여 줄 거?' 아크가 미간을 좁히며 샹그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솔직히 아크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욕이 넘치던 정의남과 갱생단도, 세상 모든 걸 발 아래로 깔아 보는 샴바라도, 아란의 복수를 하겠다고 설치는 티모시도, 아무 생각 없는 시드도, 그 외 기타 등등에 포함되는 사람들까지..... 여전히 건재한 뤼겐베르크의 사기적인 방어막을 본 뒤로는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 그러나 워머의 목소리는 아직 팔팔했다. 워머는 너구리족과 마법 학회의 공학자들과 함께 샹그리아를 개조하고 직접 조종까지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가장 절망해야 할 사람인데 이외로 멀쩡한 것이다. '혹시 뭔가 다른 방법이라도 알아낸 건가?' 워머의 목소리는 아크에게 그런 기대감을 품게 만들었다. "버닝혼, 샹그리아로!" 아크는 곧바로 버닝혼을 돌려 샹그리아로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백색 거탑 앞에 착륙해 조종실(백색 거탑 중앙실)로 뛰어 들어갔다. "아크 님!" 조종실에 도착하자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이 몰려들었다. 새삼스럽지만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은 샹그리아에 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샹그리아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움직이는 동력원 때문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과거 7인의 영웅이 창세의 궤를 샹그리아에 숨겨 둔 이유는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당연히 마족들로부터 창세의 궤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창세의 궤가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를 발동시키는 동력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땅덩어리를 공중에 띄우고 강력한 방어 결계까지 발동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창세의 궤에 담긴 신체에서 발현되는 무한한 마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레리어트가 창세의 퀘를 가지고 나가자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해제되어 당시 아란 일당의 습겨겡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이제 와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아크는 대충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워머에게 다가갔다. "워머, 보여 주고 싶다는 게 뭡니까?" "이거다." 워머가 턱으로 눈앞의 거대한 크리스털을 가리겼다. 위대한 창조주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신성한 수정 진리의 수정이었다. 아크가 의아한 눈길로 진리의 수정을 바라보자 워머가 밑에 달린 작은 수정들을 조작했다. 그러자 곧 진리의 수정에서 방금 전의 영상이 떠올랐다. 샹그리와 비공전투대의 화력을 집중시켜 뤼겐베르크를 공격할때의 영상이었다. 그러자 공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공격에도 불구하고 폭염이 사라지자 뤼겐베르크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뭐랄까, 다시 봐도 새삼 절망스러운 장면이었다. "이게 어쨋다는 겁니까?" 아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자 워머가 지저분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샹그리아에 장착한 루인건Ruin-Gun의 순간 출력이 얼마나 되는 줄 아냐?" 루인건은 워머와 마법학회 공학자들이 힘을 합쳐 설계한 샹그리아의 거대 포탑이었다. 그러나 루인건의 순간 출력 따위를 아크가 알 리가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초대형 마력포의 이름이 루인건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다. 아크가 고개를 젓자 워머가 우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려 20만 MG야. 그게 총 34기. 680만 MG의 출력을 낸다는 말이지." 굉장하다. 대체 그게 얼마나 굉장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굉장한 루인건도 결국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조차 어쩌지 못했지 않은가? 그런데 새삼스럽게 왜 아크를 불러다 놓고 루인건의 출력 따위를 자랑하는 걸까? "게다가 마법 학회 공학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비공정에 달려 있는 뇌신의 창도 7만~10만 MG의 출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마력포는 규격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비공정에 달려 있는 게 4,000MG, 열기구에 달려 있는 게 2,500MG가량 돼. 다시 말해 샹그리아와 비공정, 열기구의 화력을 한점에 집중하면 대략 1,000만 MG가 되는 거야." ".....그래서요?"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워머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버럭 소리쳤다. "이 멍청아, 아직도 모르겠어? 1,000만 MG라고 1,000만 MG! 지금 내가 말한 숫자에 '0'이 몇개나 붙어 있는 줄 알아? 7개야. 7개! 이건 마력 수치에서는 천문학적인 숫자랄 말이야! 이정도의 MG가 한곳에 집중되면 어지간한 영지는 통째로 증발하고도 남는다고! 그만한 마력을 막아 낼 수 있는 방어막은 적어도 뉴 월드에서는 이론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 워머가 침을 튀겨 가며 설명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는 온라인 게임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도 버젓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는 곳이라지만 검을 한번 휙 휘둘러서 수백 명을 죽이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뉴 월드에서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법칙이 존재하기에 뉴 월드의 밸런스가 유지되는 것이다. 만약 이 법칙이 무너진다면 뉴 월드라는 게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떄문에 워머나 마법 학회의 공학자들은 1,000만 MG의 마력이라면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뉴 월드의 법칙이 존재하는 한, 어떤 물질이나 마법적 기술로도 1,000만 MG의 마력이 집중된 공격을 막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은 버텨 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게 이상했어." 아크의 질문에 워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기본 법칙 안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처음에 저 뤼겐베르크라는 건 이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니야." 아크 역시 그 생각에는 동의했다. 아크는 이번 사건에 관련된 대부분의 정보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번 사건의 주동자인 붉은 남자는 바로 뉴 월드의 창조주 박우성의 분신! 사실 그 때문에 처음 뤼겐베르크가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의 화력이 집중된 공격에도 건재한 이유를 박우성이 뭔가 수작을 부려 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박우성은 뉴 월드를 만든 창조주, 그라면 그런 사기적인 방어막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만약 붉은 남자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시스템에 관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꾸미지 않고도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렇다. 만약 붉은 남자가 정말 뉴 월드 내에서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목적이 뉴 월드의 파멸이라면 애초에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킬 이유도 없었다. 그냥 메인 서버에 접속해서 뉴 월드를 파멸시키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붉은 남자는 번거롭게 이계를 끌어올려 마족을 부활시켰고, 아란을 이용해 마족 전장을 일으켜 유저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뒤에 마왕의 심장을 훔쳐 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나칠 정도로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 일을 진행시켜 온 것이다. 그게 말해 주는 바는 명확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붉은 남자는 뉴 월드에서 창조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붉은 남자 역시 뉴 월드 내에서는 일개 유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물론 일반 유저와 비교도 되지 않는 어드밴티지를 받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역시 뉴 월드의 법칙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리라. 그런데 이제 와서 새삼 뉴 월드의 법칙을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듯한 방어막을 창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즉 저 황당한 방어막 역시 뉴 월드의 법칙이 적용되는 방어막이라는 뜻이다. 아크가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워머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군."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 존재하고 있지. 그래서 이 몸은 생각했단 말이야. 존재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면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냐고 그래서 저 망할 방어막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 진리의 수정을 통해 방금 전의 상황을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해 봤다." "혹시 이유를 알아낸 겁니까?" "처음에는 몇 번을 재생해 봐도 모르겠더군. 하지만 영상을 100분의 1초단위로 나누어서 재생해봤더니 어처구니 없는 비밀이 밝혀졌어." "어처구니없는?" "일단 봐." 워머가 작은 수정을 조작하자 다시 방금전의 영상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빛다바링 방어막고 충돌하는 순간, 영상이 정지하더니 100분의 1초 단위로 나위어져 슬라이드처럼 한 장면, 한 장면 재생되었다. 그렇게 잠시, 곧 아크의 눈에도 방어막에 숨겨진 비밀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 이건.....?" "그래, 방어막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엄청난 방어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었어. 물론 방어력이 엄청나기는 하지만 1,000만 MG의 마력을 흠집하나 없이 방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단지 100분의 1초 단위로 재생해야 겨우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재생하고 있을 뿐이야. 젠장,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이 몸조차 그런 방법은 상상도 못 했어. 방어막을 실시간으로 재생시킨다니." 워머가 진리의 수정으 ㄹ바라보며 새삼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게 바로 뤼겐베르크를 보호하는 사기적인 방어막의 비밀이었다. 진리의 수정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빛다발이 후려치는 그 순간, 방어막은 절반 이상이 녹아 버렸다. 아마 그대로 계속해서 빛다발 공격을 받았다면 방어막은 결국 뚫리고 말았으리라. 그러나 그 직후 방어막은 100분의 1초 단위의 영상으로 봐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재생되었다. 방어막이 재생되는 속도는 빛다바르이 공격으로 방어막이 녹아내리는 속도보다는 느렸지만 거의 대등! 때문에 빛다발의 공격이 끝날 무렵에는 종잇장처럼 얇아져 있었지만, 폭염이 사라질 때쯤에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떨게 이런 일이....?" "내 짐작으로 그게 가능한 이유는 두가지야. 하나는 지금 뤼겔베르크에는 무한대에 가까운 마력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이거다." 워머가 다시 진리으 수정을 조작했다. 그러자 마치 뤼겐베르크의 등위, 커다란 광장이 망원렌즈로 보는 것처럼 확대되었다. 그 광장 한복판에서는 기이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광장 중심에 세워진 제단 앞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노인이 서 있었다. 그리고 빛다발이 방어막을 후려치자 노인이 뭔가 주문을 외우며 괴상하게 생긴 단검으로 제단은 후려쳤다. 그러자 광장에 모여있던 마족들 가운데 수천 마리가 폭발하듯 터지더니 검은 연기처럼 변해 제단에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영상이 거기까지 진행됐을 때 워머가 재생을 멈추며 말했다. "이때 방어막의 재생이 갑자기 엄청나게 빨라졌어. 그래서 혹시나 하고 마법 학회 공학자들에게 물었더니 이건 흑마법을 응용한 일종의 재물 의식 같다고 하더군." "흑마법을 응용한 제물 의식?" "생명을 마력의 매개체로 변화시키는 의식입니다. 조 흑마법사는 마족의 생명을 대가로 뤼겐베르크에 집중되는 마력을 방어막 재생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겁니다." 마법 학회 공학자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그제야 아크 역시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에 얽힌 비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방어막은 아크가 생각했던 것처럼 무적이 아니었다. 저 화면의 흑마법사가 수천의 마족으 ㄹ제물로 바쳐 뤼겐베르크로 집중되는 마력을 방어막의 에너지로 변환, 눈 깜빡할 사이에 재생시켜 흠집하나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 뿐이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 경고 메세지가 미묘하게 내 시계와 달랐던 거야.' 덕분에 그동안 아크가 품었던 의무도 풀렸다. 바로 어둠의 제왕이 부활 시간이었다. 아크는 전투를 하면서 계쏙 어둠의 제왕이 부활할 때까지 남은 시간을 체크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시간이 아크의 시계보다 약간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는 대체 왜 그런 오차가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뤼겐베르크에 집중되는 마력의 일부가 방어막 재생에 쓰였기 때문이였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에 쓰여야 할 마력이 분산됐으니 부활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겠지. 다시 말해 방어막을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어둠의 제왕 부활을 늦출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면 결국 마찬가지야'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크의 눈동자에서 섬광이 뿜어졌다. "방금 전의 영상을 보니 샹그리아와 비공전투대의 공격이 방어막을 파괴하는 속도는 약간이지만 재생 속도보다 빨랐습니다. 그렇다면 화력을 집중시켜 공격한 직후에 곧바로 비행정 편대를 동원해 공격한다면 방어막을 뚫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해." 워머가 고개를 가러저으며 대답했다. "다시 말하지만 저 방어막의 재생 속도는 100분의 1초 단위로 봐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빨라. 공격이 끝난 직후에 비행정 편대가 공격을 가한다고 해도 접근할 때까지 몇 십초는 소모될 거 아냐. 그때는 이미 절반 이상 재생되어 있을걸. 그리고 설사 시간차가 없이 공격을 가한다고 해도 비행정 편대의 공격력으로는 재생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어." "그렇다면 결국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 그러자 워머가 한숨을 불어 내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내가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최소 100만 MG의 출력으로 5분간 지속적인 데미지를 주는 방법. 다른 하나는 아예 한 방에 1,150만 MG 이상의 출력으로 방어막이 재생할 시간을 주지 않고 단숨에 부숴 버리는 방법." "100만 MG의 출력을 5분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없지." "한 방에 1,150만 MG 이상의 출력을 낼 수 있는 방법은?" "그게 말이지.....있었던 것 같아."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지. 있었던 것 같은 건 뭡니까?" "마법 학회가 처음 참전할 때 보냈던 비공전투대 500대의 열기구와 30척의 비공정 그리고 샹그리아의 화력을 모두 합하면 간신히 1,150만 MG 출력을 넘어가더라고." 워머의 대답에 아크는 벙찐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열기구와 비공정을 한 대도 잃지 않았어야 방어막을 부술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동아느이 전투로 열기구는 200대, 비공정 10척이 격추당한 상태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황급히 마법 학회 공학자들을 바라보았다. "마법 학회에 여분의 열기구와 비공정이 있습니까?" "네. 그랜드 마스터의 긴급명려으로 비공정은 모두 소집 했지만, 정찰 임무를 띠고 각지로 파견 나갔던 열기구는 아직 300대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워머 님에게 애기를 듣고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게 지원 요청을 보냈습니다만....." 마법 학회 공학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장 열기구를 소집해 필요한 장비를 싣고 보낸다 해도 여기까지 도착하려면 최소 사흘이 걸릴 겁니다." NPC에게 시간 개념으로 사흘이면 24시간이다. 이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끝날 때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15시간. 열기구가 도착할 때면 이미 상황은 끝난다는 뜻이었다. '결국 어둠의 제왕이 부활하기 전에 방어막을 뚫을 방법은 없단 말인가?' 아크는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 냈다. 뭔가 방법이 있을지 알고 달려왔건만, 결국 워머와 마법 학회 공학자 덕분에 얻은 것은 절망이라는 상황을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합리적으로 확인했다는 것뿐이었다. '.....가만?'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퍼뜩 떠올랐다. 자, 정리해 보자. 워머나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부술 수 있는 방법은 1,150만 MG에 달하는 출력을 일격에 집중시키는 방법과 100만 MG의 출력에 달하는 공격을 0.1초의 간격도 없이 5분 이상 지속적으로 발동시켜 방어막의 재생 속도보다 빠르게 녹여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법 학회의 열기구가 필요한 장비를 싣고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24시간이 걸린다. 물론 해상에 떠 있는 함선과 철갑선의 포격이라면 부족한 출력을 메울 수 있겠지만, 이들이 수백 미터 상공에 떠있는 뤼겐베르크를 사거리 안에 넣으려면 콰리안 섬의 정상까지 얼라가야 겨우 가능하리라. '상인 길드의 철갑선은 수륙양용이라 콰리안 정상까지도 이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거리 증폭 옵션이 붙은 철갑선의 특수 대포라면 뤼겐베르크를 공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철갑선이 해상의 수십만 마족을 뚫고 콰리안에 상륙한다는 건 힘들어. 비공전투대가 총력을 기울여 철갑선을 지원한다고 해도 15시간 안에 샹륙할지 장담할 수 없어. 결국 방어막을 일격에 부수는 방법은 무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크는 일단 첫 번째 방법을 접어 두고 잠시 두 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크가 워머의 태권 V-말하기도 민망하다-를 타고 샹그리아를 처음 왔을 때 봤던 장면! 그때 샹그리아는 주변에 세워진 방어탑을 이용해 강력한 방어 결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 방어 결계는 샹그리아 외각의 둘러처진 방어탑과 방어탑 사이에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접근하는 마족을 몽땅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워머가 말하는 100만 MG라는 게 얼마나 되는 마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닿자마자 수십, 수백 마리의 가고일을 잿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거긲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곧바로 워머에게 물었다. 그러자 워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확실히 그 방어 결계라면 100만 MG 정도는 간단하게 나올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창세의 궤로 충전하는 루인건 34기의 출력이 680만 MG. 그 마력을 100만 MG 정도로 나눈다면 동력원의 부담이 감소해서 5분간 지속적으로 방동시킬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는 이전에 아란의 습격을 받았을 때 모두 파괴당했어.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나와 마법 학회 공학자들이 모두 복구시켜 놨지. 그런데 도무지 발동시키는 방법을 모르겠어." "방법을 모르겠다니요? 이전에 예언자 일족이 발동시켰지 않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그 장치가 좀 묘하단 말이야. 일단 한 번 부서졌다가 복구시켜 놔서 그런지. 창세의 궤에서 나오는 마력을 방어 결계로 전환시키는 회로의 루트가 변경되었어. 그리고 그 루트의 중심부에 이해할 수 없는 락lock이 걸려 있단 말이네." "락?" "이거야. 한번보게." 워머가 답답한 표정으로 작은 수적을 조작했다. 그러자 육중한 기계음과 함께 진리의 수정 아랫부분이 떨리며 뭔가가 올라왔다. 거다란 크리스털 원형 석판이었다. 그런데 그 원형 석판은 가장자리를 따라 원형이나 삼각형, 칼, 물방울 등 갖가지 형태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워머가 그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이 장치는 여기에 맞는 뭐가를 끼워 넣어야 작동하는 것 같아. 그런데 그게 뭔지는 예언자 일족도 제대로 모르고 있더라고. 그래서 마력 회로를 우회시킬 방법을 찾아 봤는데 너무 복잡해서 지금 내 공학 스킬로는 제대로 해독조차 못 했어." "히스토리 크리스털로 정보를 찾아봤습니까?" "당연히 해 봤지. 하지만 이 크리스털 원판에 대한 정보는 1급 보안 지역에 있었어." 워머의 대답에 아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히스토리 크리스털에서 1급 보안이라면 관련 단어를 패스워드로 입력해야 열람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러나 패스워드를 알아낼 정도라면 굳이 히스토리 크리스털로 정보를 검색할 이유도 없었다. 패스워드를 알 정도라면 구멍에 들어갈 게 뭔지도 감을 잡을 수 있으니까. '어라?' 그때 원형 석판을 바라보던 아크가 눈을 깜빡였다. 원형 석판에 뚫린 구멍 중 하나의 크기와 형태가 묘하게 낯이 익었다. '이 원형으로 뚫린 구멍은 웬지 익숙한데? 이 형태나 크기가 마치....' 잠시 원형 구멍의 크기를 가늠해 보던 아크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접시만 한 크기의 원판이었다. 그렇게 원판을 꺼내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비교해 봐도 원형으로 뚫린 구멍고 똑같은 크기와 형태였던 것이다. 아크는 기대 어린 눈으로 원판을 구멍에 가져갔다. 철컥, 쿠쿠쿠쿠. 그러자 원판이 빨려 들듯 구멍에 들어가더니 빙글 회전했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샹그리아의 결게 수호석에 마반 영웅의 삼신기를 장착했습니다!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는 고대에 7인의 영웅이 직접 만든 강력한 병기 입니다. 당시 샹그리아를 인류 최후의 요새로 생각한 7인의 영웅은 각자의 능력을 합쳐 방어 결계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방어 결계에도 불구하고 샹그리아가 마족들에게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해 방어탑이 파괴된 뒤에는 다시 복구해도 방어 결계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것이 이 결계 수호석입니다. 그리고 7인의 영웅은 결계 수호석이 한번 파괴된 후에는 자신들의 후예들이 모여야 재가동할 수 있도록 안배해 놨습니다. 때문에 마력 회로가 전환된 결계 수호석을 작동시키려면 7인의 영웅의 신물을 모두 장착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장착되면 7인의 영웅이 샹그리아에 남겨 둔 마력이 완전히 개방됩니다. 《현재 장착된 신물 : 삼신기(마반 영웅 크리스틴)》 결계 수호석이 가동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결계 수호석의 내비게이션 시스텝이 발동됐습니다. "7인의 영웅!" 정보창을 읽은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샹그리아에 방어 결계를 만든 사람들은 바로 7인의 영웅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방어 결계를 재작동시키는 열쇠 역시 7인의 영웅과 관련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아크가 결계 수호석에 박아 넣은 원판은 바로 합체된 마반 영웅의 삼신기였다. 정보창의 설명에도 나왔듯이 7인의 영웅이 결계 수호석을 만들어 방어 결계 작동에 제한을 둔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방어 결계가 파괴되면, 그건 샹그리아가 이미 마족들에게 함락됐다는 증거. 때문에 7인의 영웅은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파괴되면 복구해도 재작동을 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설치해 둔 것이다. 꽤나 깊이 생각해서 만든 안배겠지만 결과적으로 삽질이나 다름없었다. '어쨋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일단 원형 석판을 작동시키는 방법은 알아냈다. 그러나 원형 석판을 작동시키는 데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다. '결계 수호석을 작동시키려면 7인의 영웅이 남긴 신물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전투에 영웅 후예가 모두 참전했다는 보장이 없어. 참전했다고 해도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설사 살아 있다고 해도 이런 전투 상황에서 어떻게 찾아내란 말이야?' 그러나 아크의 고민은 금세 해결되었다. "어멋! 뭐, 뭐지?" "우왓, 이게 뭐야? 가방이 왜 이렇게 덜그럭거려?" 아크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결계 수호석에 뚫린 나머지 6개의 구멍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졌다. 동시에 레리어트의 가슴 부근이 들썩이며 하얀 섬광이, 그리고 워머의 가방이 요동치며 갈색 섬광이 뿜어졌다. 기겁한 레리어트와 워머가 황급히 빛의 정체를 확인해 보았다. 레리어트는 목에 걸고 있던 눈물 모양의 펜던트가, 워머는 가바에 들어 있던 낡은 수첩이 부를 진동하며 빛을 뿜어냈다. '눈물 모양 팬던트와 사각형 수첩!' 아크는 곧바로 결계 수호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그곳에는 두 아이템이 딱 들어맞을 구멍에서 같은 색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틀림없어. 기동을 시작한 결계 수호석에 7인의 영웅이 남긴 신물이 반응하는 거야! 이게 결계 수호석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이라는 걸 거야. 하지만.....' 레리어트가 아란을 대신해 영웅의 후예가 됐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좀 의외였던 것은 워머였다. 방금 전까지는 워머마저 후예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아크가 그런 의미가 담긴 눈으로 바라보자 워머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후후후, 들켰으니 할 수 없지, 그동안 정체를 숨겨 왔지만 사실 이 몸은 위대한 드워프족의 영웅이자 뛰어난 공학자이며 천재 발명가인 하밀란의....." "시간 없어요. 빨리 신물이나 끼워요!" 아크가 버럭 소리치자 워머가 빈정 상한 얼굴로 수첩을 결계 수호석에 끼웠다. 그리고 레리어트 역시 목걸이를 벗어 물방울 모양의 구멍에 맞춰 넣었다. 그러자 아크의 눈 앞에 갱신된 정보창이 떠올랐다. 결계 수호석에 새로운 신물이 장착됐습니다. 《장착된 신물 : 천재 발명가의 수첩(천재 공학자 하밀란)》 《장착된 신물 : 로니안의 눈물 펜던트(홀리나이트 로니안)》 '됐어! 이제 7개중에 3개를 찾았다!' 그리고 필요한 게 영웅의 신기라면 다른 하나도 이미 확보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아크가 알고 있는 영웅의 후예, 샴바라였다. 아크는 곧바로 『속삭임의 깃털』을 사용해 샴바라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샴바라, 아직 안 죽었지? - 이 자식, 도와주러 왔더니 시비 거냐? - 시비 걸 시간 없어. 바쁘니까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당장 이곳으로 와! - 이곳? 이곳이 어딘데? - 샹그리아에 있는 백색 거탑 안이다. 서둘러! - 서두르긴 뭘 서둘러?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냐? -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와. 중요한 일이다. - 네가 부르면 내가.....알았다. 아크의 진지한 목소리에 샴바라는 뭔가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비록 성질이 괴팍하기는 하지만 눈치 하나는 빠른 샴바라였다. "자, 이제 나머지 3명이 문제인데.... 그들이 어디 있는 지 알 도리가....." 아크가 결계 수호석의 빈 구멍을 바라보며 중얼거릴 때였다. 문득 원형 석판에 뚫린 단검 모양의 구멍에서 나오는 붉은 빛이 점점 강해지는 게 보였다. 사실 아크는 결계 수호석의 7인의 영웅이 남긴 신물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누구의 자리인지 짐작했다. 어쌔신 마스터 살린이 남긴 신물, 바로 예전에 샴바라가 살린의 탑에서 인도자의 의식을 치를 때 봤던 단검이 들어갈 자리였다. '그 구멍에서 나오는 빛이 점차 강해진다? 그렇다면 혹시.....?' 샴바라는 연락을 받고 샹그리아로 오는 중이다. 그에 맞춰 빛이 강해진다는 것은 신물에 결계 수호석이 반응한다는 뜻이 아닌가? '맞아! 생각해 보니 방금 전에도 레리어트와 워머의 신물이 들어갈 자리에서 뿜어지는 빛이 가장 강했어. 분명 이 빛은 신물이 가까울수록 빛이 강해지는 거야. 그렇다면?' 아크는 아직 알 수 없는 3개의 구멍을 확인해 보얐다.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샴바라가 이동하기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나머지 영웅의 후예도 샴바라가 이동하기 직전에 있던 장소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는 의미였다. '나머지 영웅의 후예도 참전 했을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장소에 살아 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알아낸 아크는 곧바로 백색 거탑에서 뛰어나갔다. 그리고 거탑앞에서 대기하던 버닝혼의 등에 올라타며 소리쳤다. "큐리오, 지금 바로 박쥐들을 전장에 분산시켜라. 해상과 공중, 원정군이 있는 곳은 샅샅이 뒤져 빛을 뿜어내는 사람을 찾아서 위치를 알리라고 명령해!" "알았다, 주인. 어이, 애들아, 새로운 일거리다!" 큐리오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종마들에게 명령했다. 동시에 큐리오의 입에서 쏟아지던 각 부대장들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각 NPC 부대장들에게 붙여 놓았던 10마리으 종마가 전장을 돌아다니며 수색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비공전투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돼 버렸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큐리오가 귀를 움찔 거리더니 말했다. "주인, 내 부하가 빛나는 사람을 찾았어." "어디냐?" "바다 쪽이야. 마족들에게 둘러싸인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기함에 두 명이 모여 있다는데? 이곳에서 7시 방향 800미터 지점이야." "좋아, 버닝혼, 가자!" 크라라라, 크라라라! 아크가 와락 뿔을 움켜쥐자 버닝혼이 불길을 일으키며 날아 올랐다. 그때 하늘 가오리를 타고 막 백색 거탑에 내려서던 샴바라가 버럭 소리쳤다. "아, 인마! 바쁜 사람을 불러 놓고 어딜 가는 거야?" "설명할 시간 없어. 탑 안으로 들어가면 레리어트 님이 설명해 줄 거야!" 아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치며 불길과 함께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저공비행을 펼치며 해상을 가로지르자 잠시 후 정보창이 떠올랐다. 결계 수호석에 새로운 신물이 장착됐습니다. 《장착된 신물 : 죽음의 혈도(어쌔신 마스터 살린)》 샴바라의 신물도 원형 석판에 장착된 것이다. "됬어. 이제 나머지 3개만 찾으면....." 아크가 수백의 전함과 바다 마족이 뒤엉킨 전장을 살피며 웅얼거릴 때였다. 해상을 무대로 한 전장 한복판에서 거대한 해파리로 닮은 바다 마족 카라돈에게 둘러싸여 당장이라도 침몰할 듯이 들썩이는 전함이 눈에 들어왔다. 브리스타니아 원정군의 전함을 지휘하는 기함이었다. 그리고 그 전함의 갑판에서 두 줄기의 빛이 반짝였다. "저기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아크는 '블레이드 템페스트'로 득실대는 마족을 밀어내며 갑판에 내려섰다. 그리고 배 속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몸에서 빛이 나는 분은 이곳으로 오십시오!" "으라차차, '수혼 빙의'! 개 같은(?) 힘이여, 솟아라! 뭐야? 빛? 나말이야?" "고속 영창, 이중 영창, 불이여, 얼음이여! 젠장, 뭐야? 왜 몸에서 빛이 나는 거야? 괜히 눈에 띄어서 마족들이 더 달라붙잖아? 어라, 저 녀석은.....?" 아크의 고함 소리에 갑판 위에서 도마백을 닮은 마족 마돈들과 격전을 벌이던 두 남녀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눈이 마주친 아크와 두 남녀는 동시에 눈이 동그랗게 되었다. "너 아크잖아?" "어라? 네가 여기 웬일이야?" "브레드, 레디안? 너희들도 영웅의 후예였냐?" 아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겨렸다. 그렇다. 브리스타니아 진영의 기함에서 전투를 벌이는 두 남녀는 바로 시르바나 영지를 탈환한 직후 헤어졌던 비스트 마스터 비레드와 엘리멘탈 마스터 레디안이었다. 아크가 확인한 빛은 그 둘의 가방 속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브레드와 레디안 역시 영웅의 후예였던 것이다. "영웅의 후예? 뭐, 굳이 말하자면 그렇기는 한데, 어떻게 알았냐?"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어. 빨리 타!" "뭐? 타긴 뭘 타? 네 눈에는 여기 상황이 안 보이냐?" "우리가 나가면 기함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침몰할 거야." "기함을 지키는 일보다 더 급한 용무야! 버닝혼!" 브레드와 레디안이 영웅의 후예라는 건 꽤나 의외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도, 자세한 사정을 설명할 때도 아니었다. 아크는 다짜고짜 버니혼을 몰아 바닥을 쓸듯이 미끄러지며 브레드와 레디안에게 몰려드는 마돈 무리를 '화격'으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둘을 낚아채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야, 인마!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자세히 설명할 시간 없다고 했잖아." 아크가 버둥거리는 브레드에게 쏘아 붙였을 때였다. 큐리오가 귀를 움찔움찔하더니 번쩍 눈을 뜨며 소리쳤다. "주인, 마지막 한 명을 찾았어. 샹그리아에서 11시 방향 100미터(잘안보임 ㅋ) 떨어진 상공이야!" "잘했다. 버닝혼, 마지막이다!" 아크는 버닝혼을 몰고 큐리오가 지정한 장소로 날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장소에서 확인한 영웅의 후예는 브레드나 레디안보다 더 의외의 인물이였다. 비행정을 타고 마력포와 화살을 난사해 대며 하늘을 누비는 그는....아니, 그녀는 놀랍게도 아크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금 전까지도 항상 아크의 근처에서 얼쩡 거리는 사람이었다. "티모시....너였냐?" 그녀의 가방에서 뿜어지는 빛을 확인한 아크가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아크가 찾아낸 마지막 영웅의 후예는 다크엘프 티모시였다. "멍청아,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거야?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마족들이 몽땅 부활해서 난리도 아니라고! 게다가 저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은 흠집조자 나지 않고..... 젠장, 다 엉망이야! 이래서는 어떻게 아란의 복수를 하란 말이야?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티모시가 화살을 난사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멍하니 지켜보던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원한다면 네가 그렇게 씹어 대던 마스튜아라라는 놈과 붉은 남자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게 해 주지." "뭐? 어떻게?" "일단 따라와!" 아크는 버닝혼을 선회시키며 샹그리아로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크는 브레드와 레디안, 티모시와 함께 백색 거탑 앞에 내려섰다. 이어 간략한 설명으로 세 영웅의 후예에게 상황을 이해 시켰다. 그러자 브레드와 레디안, 티모시는 각자의 신기를 꺼내 결계 수호석에 끼워 넣었다. 이로써 7개의 신기가 모두 장착 된 것이다. 동시에 모두의 눈 앞에 갱신된 메세지창이 떠올랐다. 결계 수호석에 새로운 신물이 장착됐습니다. 《장착된 신물 : 수조 팔찌(백수왕 갈가라돈)》 《장착된 신물 : 정령의 마수정(엘리멘탈 발키리 슈라)》 《장착된 신물 : 고대 엘프의 룬 문자(파마 궁사 일렉트릭)》 샹그리아의 결계 수호석에 모든 영웅의 신물이 장착됐습니다.! 《봉인되었던 샹그리아의 마력 회로가 연결되어 방어 결계가 재가동됩니다.》 《샹그리아에 봉인되었던 영웅의 마력이 방출됩니다.》 순간 결계 수호석에서 일곱 빛깔의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도니 여기저기에 이어져있는 회로를 따라 거탑 전체로 퍼져 나갔다. 진리의 수정을 지켜보던 워머가 환호성을 터뜨린 건 그때였다. "됐다.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작동했어!" 워머의 말에 거탑에 모인 영웅의 후예들은 일제히 진리의 수정을 바라보았다. 진리의 수정에서는 샹그리아 외각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떠올라 있었다. 콰직, 콰직, 콰지지지직! 거탑에서 뻗어 나간 스파크는 샹그리아의 외각을 따라 빙 둘러쳐진 수십 개의 방어탑까지 이어졌다. 동시에 방어탑 전체가 강렬한 스파크에 휩싸이더니 정상에 위치한 수정구가 회전하며 엄청난 방전을 일으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한 방어탑에서 벼락처럼 뿜어진 스파크가 옆의 옆의 방어탑을 후려쳤다. 뒤이어 그 방어탑에서 다른 방어탑으로....그렇게 반복되던 수십개의 방어탑은 곧 스파크에 의해 하나로 연결 되었다. 방어탑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크롸롸롸롸롸롸! 사실 원정군이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에 수백마리의 마족이 샹그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뤼겐베르크의 마광탄을 상대하는 거대포탑외에는 이렇다 할 방어 병력이 없는 샹그리아는 마족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방어탑이 스파크를 튀기며 하나로 연결되는 순간 수천 줄기의 벼락이 마족들을 향해 뿜어졌다. -크와아아아악! 전격에 휩싸인 수백의 마족들은 빨대로 빨리는 것처럼 생명력이 줄어들다가 결국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워머와 마법 학회 공학자들 덕분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방어 결계의 위력! 방어탑의 위용에 워머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우호호호! 이거야, 이거! 봤냐, 봤어? 위력이 예전보다 더 강하지? 그게 다 이 몸의 천재성 덕분이다. 방어탑을 복구하면서 출력을 살짝 올려놨거든. 사실 그거 때문에 결계가 작동하지 않는 건가 싶어서 그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어쨋든 이 정도라면 100만 MG는 가뿐하지. 자, 그럼 이제 저 뤼겐베르크인지 영양 과다 비만 가오리인지와 제대로 한번 붙어 볼까?" 워머가 엄청난 손놀림으로 작은 수정들을 조작하며 히죽거렸다. 그러자 샹그리아가 웅장한 마력 엔진음을 발휘하며 뤼겔베르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샹그리아가 갑자기 전격을 뿜어내며 뤼겐베르크에게 돌진하자 마족이 벌 때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방어 결계가 작동한 이상 마족들의 공격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마족들은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에 접근하기가 무섭게 벼락을 얻어맞고 잿가루로 변해 버렸다. 수백이든 수천이든 일단 방어 결계 안에만 들어오면 100% 통구이가 되는 것이다. 마족들이 속수무책으로 구워지자 이번에는 뤼겐베르크가 마광탄을 퍼부어 댔다. 그러나 마광탄조차 방어 결계에 의해 전격에 휩싸여 샹그리아의 상공에서 모두 폭박해 버렸다. 그렇게 마족들의 공격을 막으며 돌진한 지 대략 10분. 1킬로미터, 500미터, 300미터..... 점차 거리를 좁하던 샹그리아가 결국 뤼겐베르크의 방어막과 충돌했다.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콰! 동시에 엄청난 굉음과 함꼐 샹그리아가 통째로 흔들렸다. 그리고 아크와 샴바라, 레리어트, 워머, 브레드, 레디안, 티모시, 영웅의 후예들은 진리의 수정을 통해 밖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녹는다!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이 녹는다!" 샹그리아의 방어탑이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향해 일제히 벼락을 뿜어냈다. 그러자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이 마치 물에 닿은 플라스틱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방어막은 녹아내리는 것과 동시에 재생이 시작됐지만, 방어탑에서 지속적으로 뿜어내는 수천 줄기의 벼락이 입히는 데미지는 재생 속도를 웃돌았다. "이대로 돌진한다! 출력을 높여라!" 워머의 고함에 마법 학회 공학자들이 일제히 작은 수정을 조작했다. 그러자 샹그리아가 한차례 거칠게 요동치며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기를 잠시.....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이 벼락과 샹그리아가 밀어붙이는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서서히 안쪽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터져 날 듯 불안하게 출렁거릴때였다. "이제 곧....이제 곧....이제....엇, 뭐, 뭐야?" 돌연 뭔가에 튕겨지듯 샹그리아가 요동치며 밀려났다. "저, 저자식....!" 워머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이를 갈았다. 워머가 바라보는 진리의 수정에서는 뤼겐베르크 등위에 광경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흑마법으로 제물 의식을 행하는 후드의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뭔가 주문을 외우며 단검을 휘두르자 수천의 마족이 폭발하며 검은 기운이 제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이 획대되듯 커지며 샹그리아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마족들의 생명력을 몽땅 마력 전환에 사용해 방어막의 재생속도를 증폭시키고 있어!" "그럼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로도 부술 수 없는 겁니까?" "모르겠어. 방어 결계를 최대 출력으로 올리면 방어막의 재생속도를 따라 잡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앞으로 몇 분만에 과부하가 걸릴 거야. 만약 그 전에 방어막을 파괴하지 못한다면 샹그리아는 무방비 상태로 방어막과 충돌해 박살이 날 거야!" 아크가 당혹스러운 눈길로 진리의 수정을 바라보았다. 뭔가 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대 흑마법을 펼치는 노인은 뤼겐베르크의 방어막 안에 있었다. 방어막을 뚫기 전에는 노인이 펼치는 흑마법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대로 돌진합니다!" "대책 없이 돌진하면 우리가 박살 날 확률이 많아." "여기서 물러나도 마찬가지에요. 어차피 박살 날 거면 부딪쳐서 깨지는 편이 나아요!" "훗, 그렇게 나와야지. 남자는 깡이다. 어디, 죽어보자!" 아크의 대답에 워머가 씨익 웃으며 수정을 조작했다. 동시에 샹그리아가 굉음을 뿜어냐며 더욱 맹렬하게 돌진했다. 깨느냐, 깨지느냐, 콰리안 전투의 향방이 걸린 운명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돌격, 돌격, 돌격!] "헉, 헉, 헉!" 어두운 공간에서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눈만 내놓고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사내는 삽으로 머리 위를 털어 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삽질 하나에만 전념했던가? 손에 물집이 잡히고 사라지기를 몇 번,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 끝에 사내는 그다지 원한 적 없었던 '삽질'이라는 스킬마저 생겨 버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뒤로 사내의 더욱 정교하고 날카로워졌다. 호흡에 맞춰서 정확하게 벽돌과 벽돌 사이를 공략하는 삽질! 부실한 벽이라면 이 노련하고 예리한 삽질에 이미 한참 전에 무너지고도 남았으리라. 그러나 이놈의 망할 벽은 용가리 통뼈로 만들었는지 제대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젠장, 좀 뚫리는 척이라도 해라!" 참다못한 사내가 버럭 소리차며 천장을 삽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한 무더기의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 졌다. "크악, 쿨럭....이, 이런 빌어먹을....쿨럭....." 흙먼지에 뒤덮여 졸지에 튀김옷을 입은 새우처럼 되어 버린 사내가 기침을 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와락 마스크를 벗어 던비며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내가 울컥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젠장, 내가 왜! 잘못은 저 녀석들이 했는데.' "어이, 막내야. 어째 삽질 소리가 안 들린다?" 그때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슬쩍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냉큼 구겨진 얼굴을 펴며 살살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잠시 먼지 좀 털고 있습니다, 형님. 금방 다시 할 겁니다." "열심히 해라. 형님들 심심하다." "알겠습니다." 사내가 다시 삽을 들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경찰청의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 몸께서 조폭 꼬봉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사내가 내장에서부터 끓어 올라오는 한숨을 푹푹 불어 내며 삽을 들어 올렸다. 경찰청의 귀신! 그렇다.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경찰청의 사이버 특수 요원-자칭-이슈람이 었다. 그런데 이슈람이 왜 이렇게 어두운 방에서 천장에 대고 삽질이나 하고 있는 걸까? 이슈람이 이런 뭐(?)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사연을 설명하자면 몇 달 전으로 돌아가낟. 사실 이미 이슈람은 일전에 복실이가 찍은 동영상을 확보한 상태였다. 사실 이슈람은 그 단계에서 잠입 수사가 끝날 거라고 기대했다. 형사들이 24시간 체재로 수배자들의 숙소를 감시하고 있으니 곧 조직의 전모가 밝혀지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수배자들은 의외로 신중했다. 숙소를 욺긴 뒤에도 조직원들은 단 한 번도 제페트와 접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폭력 조직의 두목인 제페트의 신병을 화보하지 못하는 한 잠입 수사를 중단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슈람은 아크를 도와 시르바나를 탈환한 직후, 계속 잠입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수배자들과 합류한 것이다. 그러나 수배자들과 합류한 뒤로도 좀처럼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기가 힘들었다. 복실이가 동영상을 촬영한 뒤에 운반책까지 체포당해 수배자들이 더욱 조심스러워진 탓이었다. 덕분에 이슈람은 수배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지난 몇 달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 했다. '.....정말 굴욕의 나날이었지.' 새삼 이슈람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이슈람의 지난 몇 달은 그야말로 처절한 굴욕의 나날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수배자들이 조심스러워진 상황에서 보스인 제페트에 대한 정보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동안 적지 않은 시간을 수배자들과 함께 보냈지만 아직 이들에게 이슈람은 '외부인'인 것이다. 때문에 다시 수배자들과 합류한 이슈람은 먼저 자신이 이들에게 같은 식구라는 인식을 심어 줘야 조직의 전모를 알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수배자들과 재회했을 때 제페트에게 조직원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흠, 우리 조직에 정식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네. 정식으로 조직에 들어가 성심성의를 다해 형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뭐, 뜻은 가상하다만....." 제페트는 볼을 긁적이며 슬쩍 이슈람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이슈람을 마음의 친구라고 철석같이 믿는 가람이 끼어들었다. "제페트 형님, 이슈람은 믿을 만한 녀석입니다. 형님도 그동안 이슈람이 우리에게 한 걸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만한 녀석은 쉽게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슈람은 이미 우리에게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공개했습니다. 형님이 걱정 하시는 게 뭔지는 알겠지만 혹 이 녀석이 딴맘을 품었다면 주소와 전화번호를 어떻게 공개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제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동안 함께 행동해 왔다 해도 단순히 게임 친구와 조직원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개인 정보를 하나도 공개하지 않는 사람을 조직원, 그것도 불법 폭력 조직원으로 받아들일 리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슈람은 사전에 ㅈ페트에게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물론 제페트에게 알려준 주소와 전화번호는 위장용이었다. 경찰청에서 수배자들의 숙소를 알아낸 성과를 인정해서 본격적인 수사를 위해 가짜 집과 전화번호를 지급해 준 것이다. 어쨋든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준 건 의심을 푸는 데 제법 효과가 있었다. "사신 얼마 전에 내 밑에 있던 녀석이 멍청하게 굴다가 달(안보임)가서-체포됬다는 뜻-쓸 만한 녀석을 하나 구해야 한단 말이야. 하지만 너와 알고 지낸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자세히 설명해 주기는 좀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 쪽 사정도 별로 좋지 않다. 하물며 게임에서밖에 만나지 못한 사람을 덜컥 조직원으로 받아들이는 건 좀 그렇지." "언제라도 밖에서 형님이 부르시면 튀어 나갈 준비가 돼있습니다." 제페트의 말에 이슈람이 얼른 대답했다.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다. 밖에서 제페틀르 만나면 그걸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역시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건 좀 그렇고....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조직 생활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게 아니야. 멋도 모르는 놈들은 우리가 그냥 놀면서 돈을 버는 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도 나름대로 전문 지식이 필요한 전문직이라고, 게다가 다른 사람보다 몇 배나 힘들지. 그러니 널 믿는 건 둘째 치고 일단 네가 조직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지." "그, 그럼?" "앞으로 한두 달 지켜보고 나서 잘 적응하는 게 보이면 정식으로 조직에 받아들이겠다." '됐다. 이제 조직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야!' 제페트의 제안에 이슈람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게 비명으로 변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이, 이슈람. 물 떠 와." "형님 몸에 먼지 묻었다. 빨리 튀어 와서 털어." "야 뭐하냐? 형님이 담배 물면 자동으로 불을 갖다 바쳐야지." 이슈람이 조직원 지망생이 되자 수배자들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그저 동료로 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 줬는데, 조직원 지망생이 되자 수배자들은 이슈람을 아예 꼬봉처럼 부려 먹기 시작한 것이다. 서열 관계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란다. 덕분에 이슈람은 팔자에도 없는 꼬봉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잠입 수사를 하면서 그 정도 각오는 했었다. 그러나 막상 겪어 보니 이건 정말 사람 할 짓이 아니었다. 각종 심부름은 물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맷집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툭하면 쥐어 패기까지 했다. 정말 성질 같아서는 잠입 수사고 뭐고 일렬종대로 세워 놓고 반쯤 죽여 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참자, 참아라. 이건 일이다. 일이나까 참는 거다. 화내면 지는 거다.' 그러나 이슈람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모진 굴욕을 참아 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드디어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았다. "음, 그동안 지켜보니 꽤나 쓸 만하군. 좋아, 그 정도면 조직 생활을 잘할 수 있겠어. 조만간 시간 내서 밖에서 한번 보도록하지. 그때 정식으로 조직에 가입시켜 주겠다." 드디어 제페트를 체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후후후, 직접 나와 주겠다고? 드디어 그간의 굴욕을 갚아 줄 수 있다는 말이군.' 덤으로 제페트를 어두컴컴한 방(취조실)에 가둬 놓고 마음대로 두들겨(?) 줄 수도 있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이슈람에게는 뜻하지 않았던 시련이 남아 있었다. 사실 이 무렵, 수배자들은 뉴월드에 접속해도 이렇다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본래이들이 뉴월드를 시작한 계기는 아이템을 사고팔아 돈세탁을 하기 위해서. 그러나 마족 전쟁이 시작되고 계엄령이 선포된 탓에 게임 내에서 물건 운송이 힘들어지고, 경매 사이트에서도 골드 가치가 떨어져 제대로 돈세탁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타커스라는 조직원이 제안했다. "형님, 이참에 저희도 던전이나 발굴해 볼까요?" "던전 발굴?" "어차피 원정군이 마족을 때려잡겠다고 여기저기서 설쳐대서 요즘은 필드에서 몬스터를 구경하기도 힘들잖아요. 하지만 원정군도 던전에는 들어오지 않죠. 던전에 들어가면 유저들과 부딪칠 일도 없을 거고, 레벨업은 물론, 재수 좋으면 아이템을 챙겨 돈도 벌 수 있으니 일석삼조 아닙니까? 요즘 수입이 없어서 살림이 힘들잖아요." "나쁘지는 않은데?" 어디 봐 둔 던전이라도 있냐?" "네. 얼마전에 북부 사막을 지나가다 기가 막힌 던전을 발견했습니다." 타커스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수배자들은 유저들과 만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뭐, 수배자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때문에 이들은 항상 유저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지역에서만 활동해 왔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시니어스 공국의 북부에 펼처진 사막이었다. 그리고 타커스는 그 사막 구석에서 기이한 고성 하나를 발견했다. 수백 년은 될 듯한 고성! 물론 뉴 월드에 고성처럼 생긴 던전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얼마 전 같은자리를 지날 때는 그런 고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불과 며칠 사이에 사막한가운데서 고성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틀림없이 그 고성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은 걸 겁니다. 그렇다면 그 던전을 터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 잘만하면 우리몫 두둑하게 챙길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지. 좋아, 가자!" 그렇게 해서 수배자 일당은 남부 사막의 고성을 털기 위해 출발했다. 마침 당시는 이미 시니어스 공국에서 벌어지던 1차 마족 전쟁이 원정군의 승리로 마무리된 상태였다. 원정군이 마족은 물론 몬스터까지 싹쓸이해 버린 뒤라 수배자 일당은 불과 며칠 만에 시니어스 공국의 남부 사막 구석에 마치 숨겨 놓은 듯한 고성에 도찰할 수 있었다. "자, 돌진이다. 보물이 우리를 기다린다!" 제페트는 우렁차게 소리치며 부하들을 이끌고 고성을 향해 돌진했다. 새로 생긴 고성에 쌓여 있을 보물을 상상하며..... 그러나 고성에 들어선 지 몇 분도 되지 않아 기대감은 실망으로 변해 버렸다. "뭐야? 텅텅 비었잖아?" "벌써 다른 놈들이 성을 털어 먹은 건가?" "빌어먹을, 여기까지 왔는데 허탕이라는 거야?" 고성 내부에는 기대했던 보물은커녕 몬스터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놈들이 들어왔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몬스터들도 안보여?" "혹시 어딘가에 진짜 던전으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 같은게 있는 건 아닐까요?" "흠,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가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던전에서 비밀 통로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이야. 좋아, 한번 찾아보자." 수배자 일다은 거기에 최후의 희망을 걸고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곧 벽을 더듬던 조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형님, 여기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오호, 역시.....지하실로 통하는 비밀 통로인가? 왠지 보물 냄새가 풀풀 풍기는군." 수배자 일당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지하실로 뛰어 들어갔다. -크르르르르! .....실수였다. 지하실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주변에서 엄청난 숫자의 마족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복잡하게 얽힌 지하실의 길목이란 길목은 꽉 채우며 나타난 마족은 숫자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헉! 혀, 형님, 놈들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수배자 일당은 마족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펑펑 논 덕분에 레벨이 그리 높지 않았다. 덕분에 마족들이 쏟아져 나오자 수배자들은 사색이 되어 버렸다. "제, 젠장. 튀어!" 제페트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러나 고성의 지하실은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였다. 게다가 수배자 일당은 던전 탐험 경허도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터대고 뛰어 들어온 지하실에서, 그것도 마족에게 공격받는 상황에서 제대로 출구를 찾아 탈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배자 일당은 이리저리 해매며 마족에게 두들겨 맞아 순식간에 빈사 상태까지 몰려버렸다. "크윽, 이대로는 전멸한다!" "형님, 이쪽입니다!" 그때 앞서 나가던 타커스가 작은 석실 안에서 소리쳤다. 수배자 일당이 석실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타커스가 재빨리 문 옆에 달린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굉음과 함께 두꺼운 쇠문이 떨어져 내렸다. "사, 살았다!" 그제야 수배자 일당은 간신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안심의 한숨이나 불어 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 그런데 우리 어떻게 나가지?" 그 즉시 수배자 일당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버렸다. 일단 석시의 문을 막아서 마족들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석실에 갇혀 버린 것이다. 문을 열면 마족들에게 죽고, 열지 않으면 나갈 방법이 없다. "차라리 죽어 버릴까?" 잠시 고민하던 제페트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가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희가 마지막으로 부활지점을 등록해 놓은 곳이 시니어스 남부 아닙니까? 지금 그곳은 원정군이 득실거릴 겁니다. 그런 곳에 카오틱인 우리가 부활하면 눈을 뜨기도 전에 박살이 날 겁니다. 카오틱이라 장비품을 떨구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여기서 썩을 수는 없잖아!" 제페트가 버럭 소리쳤을 때였다. 생각에 잠겨 있던 타커스가 제안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여기는 지하 1층의 석실입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지만 위층에는 마족들이 없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천장을 뚫고 1층으로 올라가면 마족들을 따돌리고 고성을 탈출할수 있을 겁니다." "천장을 뚫는다고? 그게 가능할까?" "석실이라고 해도 1층까지 몽땅 돌로 된 건 아닐 겁니다. 일단 천장에서 벽돌 몇 개만 떼어 내면 나머지는 흙으로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죠. 물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대책 없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제페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렇게 해서 수배자 일당은 천장을 뚫고 1층으로 올라가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천장을 뚫는 노가다는 당연히 막내 꼬봉인 이슈람의 몫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게 이슈람이 팔자에도 없는 조폭 꼬봉에 삽질까지 하게 된 눈물겨운 사연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닷새, 이슈람은 정말 코피가 터질 정도로 열심히 삽질했다. 그러나 석실의 천장은 예상보다 견고해서 아직 반의 반도 제대로 파 올라가지 못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슈람의 혈압은 200을 넘어섰는데, 수배자 일당까지 틈틈이 속을 박박 긁어 댔다. "막내야, 대체 언제쯤에나 이 형님들과 햇빛을 볼 수 있는거냐?" '빌어먹을 놈들, 두고 봐라. 조만간 평생 햇빛 구경도 못하게 만들어 주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형님들!" 이슈람은 속으로 이빨을 갈아 붙이면서도 짐짓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리고 분노를 담아 삽으로 천장을 후려쳤을 때였다.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콰! 돌연 엄청난 굉음과 함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석실이 요동쳤다. 석실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쩍쩍 번졌고, 천장에서 부서진 벽돌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옹기종기 모여 포커를 치던 수배자 일당이 한테 뭉쳐 석실을 굴러다니며 비명을 터뜨렸다. "우와! 뭐, 뭐, 뭐야?" "이슈람, 대체 무슨짓을 한 거야?" "우리를 몽땅 매장시켜 버릴 생각이냐?" "아, 아니, 저는 아무것도...." 쏟아지는 돌덩이를 피해 몸을 날렸던 이슈람이 주섬주섬 일어나 변명하다가 멈췄다.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바람이 볼을 스친 것이다. 이곳은 사방이 막힌 석실, 바람이 들어올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린 이슈람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처, 천장이....?" 그렇다. 이슈람이 삽질을 해 대던 천장! 이슈람이 닷새 동안 죽어라 삽질을 해 놔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 방금 전의 지진에 천장의 벽돌이 왕창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렇게 몇 미터에 달하는 천장이 떨어져 나가고 그(안보임...) 천장은 균열이 번진 얇은 석판만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었다. 바람은 그 균열 밖에서 흘로 들어오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제 나갈 수 있습니다!" "뭐, 뭐라고?" 이슈람의 말에 제페트와 수배자들이 우를 몰려들었다. 그리고 균열이 번진 천장을 확인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 이슈람! 드디어 해냈구나!" "좋아, 이제 나가는 거다! 이슈람, 천장을 뚫어라!" "알겠습니다!" 이슈람이 닷새간 희로애락을 함께한 삽을 꽉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번뜩이는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간의 갖은 굴욕을 담아 소리쳤다. "으라차차차, 승룡권!" 수간 이슈람은 삽과 혼연일체가 되어 쏘아져 올라갔다. 삽과 천장이 충돌하자 불또잉 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슈람의 분노가 응집된 삽은 날카로운 소음을 일으키며 마침내 천장을 뚫고 밖으로 솟아올랐다. "으악!" 밖에서 비명이 들려온 것은 그다음이었다. ---------------------------- 쿠콰콰콰콰콰콰,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바닥이 미친 듯이 들썩였다. "제1, 2, 3, 4, 5 방어탑에 과부화가 걸렸습니다!" "샹그리아의 전면부가 붕과히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많이 버티지 못합니다!" 요동치는 제어실에서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워머가 미친 듯이 수정을 조작하며 소리쳤다. "아직, 아직이다! 내가 개조한 샹그리아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그렇게 말씀하신들....." "시끄러, 시끄러, 남자는 깡이다! 밀어붙여!" 워머가 눈알을 빙글빙글 돌리며 막무가내로 샹그리아를 돌진시켰다. 이미 한참 전에 정신을 살짝 놔 버린 모양이다. 뭐 여기까지 와서 달리 방법이 없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아크가 보기에도 절망적이었다. "역시 무리였나?" 아크가 입술을 씹어 대며 진리으 수정을 바라보았다. 진리의 수정을 통해 보이는 샹그리아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뤼겐베르크의 방어막과 충돌한 전면부는 이미 완전히 파괴되서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었고, 전격을 뿜어내는 방어탑은 방어막의 재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과부하가 걸려 여기저기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졌다. 샹그리아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저 망할 늙은이!"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뤼겐베르크 등 위, 광장의 제단에 서 있는 노인을 노려보았다. "어둠 속에서 태어난 진흑의 영혼이여......" 단검을 휘둘러 대며 주문을 외우는 흑마법사! 그렇다. 지금 상황은 모두 저 망할 흑마법사 때문이었다. 워머와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는 뤼겐베르크 방어막의 재생 속도를 웃돈다. 그리고 실제로 방금 전까지는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녹이며 돌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망할 흑마법사가 고대 흑마법인지 뭔지를 사용해 마족들의 생명력으로 방어막의 재생 속도를 증폭시키고 있는 것앋. 덕분에 뤼겐베르크의 방어막 재생속도는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로 입히는 대미지보다 빨라졌다. 그 결과가 바로 진리의 수정에서 보이는 것처럼 샹그리아의 부오기였다. "대체 저놈 정체가 뭐야?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거야?" 브레드가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잡아먹을 듯이 진리으ㅢ 수정을 노려보던 티모시가 중얼거렸다. "어둠의 교단 대사제 마스튜아라야." "어둠의 교단 대사제?" "아란을 어둠으로 끌어들인 놈 그리고 아란을 배신한 놈." 티모시가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다. 티모시의 대답에 아크가 무너가 입을 열려 할 때였다. "흑마법사가 또다시 의식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방어막의 재생 속도가 증폭된다면 방어 결계로는 더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마법 학회 공학자들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보자 진리의 수정을 통해 흑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며 단검을 휘두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말처럼 놈의 의식이 완성되어 또다시 방어막의 재생 속도가 증폭되면 모든 게 끝장이다. 방어막을 박살 내기 위해 돌진한 샹그리아는 오히려 뤼겐베르크의 방에막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증발하게 되리라. '저 흑마법사의 의식을 막지 못하면.....' 아크의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갔다. 그때 진리의 수정을 지켜보던 브레드가 버럭 소리쳤다. 내가 나가서 저 망할 늙은이를 요절내겠어!" "이 멍청아, 뇌는 뒀다 머하니? 생각 좀 하면서 살아. 누가 그러고 싶지 않아서 가만있는 줄 알아? 저 망할 늙은이는 뤼겐베르크의 방어막 너머에 있잖아 방어막이 아직 멀쩡한데 무슨 수로 저 늙은이를 때려죽일 건데?" '움찔' 레디안의 말에 브레드가 들어 올렸던 대검으로 바닥을 후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누구도 브레드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이대로 샹그리아가 증발해 버리는 걸 넋 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에 마스튜아라의 제물 의식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제 주문의 완성되면 또다시 수천 마리 마족의 생명력으로 방어막의 재생 속도가 폭발적으로 증폭되리라. "....타락한 영혼의 생명을 바치니, 위대한 어둠의 힘을 보여주....!" 결국 마스튜아라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아니, 완성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마스튜아라의 발아래가 쩍 갈라지며 금속성의 뭔가가 불쑥 솟아 올랐다. 그리고 정확히 다리 사이, 중요한 그곳에 쑤셔 박히는 게 아닌가? "으악!" 주문을 외우던 마스튜아라의 입어서 비명과 함께 게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진리의 수정을 지켜보던 남자들이 일제히 미간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렸다. "아오-!" 남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고통! 비록 적이지만 그 엄청난 고통을 이해 하기에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들만의 동지 의식을 불태울 때가 아니었다. 대체 마스튜아라의 발밑에서 솟아 나온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정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의식이 중단됐다!" "어둠의 의식으로 증폭됐던 방어막의 재생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목소리에 아크가 눈을 번뜩이며 워머에게 고개를 돌렸다. "돌격!" "알고있어. 샹그리아 방어 결계 최대 출력! 돌격한다!" 워머가 맹렬한 속도로 수정을 조작하며 소리쳤다. 동시에 그에 응답하듯이 샹그리아의 방어 결계가 강렬한 전격을 뿜어냈다. 그러자 엄청난 재생 속도로 샹그리아를 압도하던 방어막이 다시 플라스틱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표면이 녹아 종잇장처럼 얇아진 방어막은 샹그리아가 밀어붙이는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안쪽으로 밀려들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뭔가가 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서서히 전진하던 샹그리아가 훅 하고 방어막을 뚤고 들어섰다. ------------------------ "으으으으으.....!" 마스튜아라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 한 번만 제물 의식을 완성하면 무턱대고 밀고 들어오는 샹그리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주문을 완성하기 일보 직전, 갑자기 차마 말할 수 없는 '그곳'을 뭔가가 엄청난 힘으로 올려쳐 버린 것이다. 순간 마스튜아라의 정신은 단숨에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버렸다. 그건 마스튜아라가 아는 그 누구라도-남자만 해당됨-마찬가지 였으리라. "대, 대체 뭐가....." 식은땀을 흘리며 '그곳'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던 마스튜아라는 잠시 뒤에야 자신에게 죽음, 그 이상의 고통을 안겨 준 원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삽?" 마스튜아라가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마스튜아라의 '그곳'을 가격한 것은 바닥을 뚫고 올라온 삽이었다. 대체 왜 삽이 솟아 올라 '그곳'을 후려친단 말인가? 마스튜아라가 상황을 이해할수 없어 멍청하게 바라볼 때였다. 바닥을 뚫고 올라온 삽이 거칠게 좌우로 움직이자 주변 바닥이 우수수 떨여졌다. 그리고 한 사내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어라? 여기가 어디야?" 흙먼지에 뒤덮인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내는 바로 방금 전까지 자하 석식에서 삽질에 전념하던 이슈람이었다. "이슈람, 뭐해? 비켜!" 뒤이어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는 수십 명의 사내들이 우글우글 기어 나왔다. 바로 제페트와 수배자 일당이었다. 대체 이슈람과 수배자들이 어떻게 마스튜아라의 발밑에서 기어 나온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실 붉은 남자는 (안보인...)에 머물고 있을 때 뤼겐베르크를 원정군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북부 사막의 구석에 숨겨 두었다. 그때 뤼겐베르크는 본채를 모래 속에 파묻고 있었기에 등위에 세워진 고성만 드러나 있었다. 그렇다. 수배자 일당이 발견했던 고성은 바로 뤼겐베르크의 등 위에 세워진 고성이었던 것이다. 수배자 일당이 고성안에 몬스터나 보물을 찾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붉은 남자의 소유나 다름없는 고성에 몬스터나 보물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지하실에 모아 뒀기에 수배자 일당이 지하실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마족들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얼뜨기 던전 탐험가 수배자 일당이 멋도 모르고 지하실로 들어섰다가 석실에 갇혀 버렸다. 그리고 직후 뤼겐 베르크는 콰리안으로 날아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시작해 버렸다.수배자 일당-작업은 전부 이슈람이 했지만-은 그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천장을 뚫어 댄 것이다. 그리고 샹그리아의 뤼겐베르크가 충돌하며 무너진 천장으로 이슈람이 뚫고 나온 곳이 공교롭게도 마스튜아라의 가랑이 사이였다. 그러나 마스튜아라가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네, 네놈들은..... 대체 뭐냐? 왜 그런 곳에서.....나오는 거냐?" 마스튜아라가 팅팅 부어오른 '그곳'을 주물거리며 이를 갈아 붙였다. 삽으로 '그곳'을 정확히 강타당했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뭐냐, 저 노인네는?" "왜 거길 주물거리면서 우리를 노려보는 건데?" "기분도 찜찜한데 확 발라 버릴까요?" 수배자들이 마스튜아라를 힐끔거리며 웅성거렸다. "네, 네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감히....죽여 버리겠다!" 마스튜라라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의 주문을 외웠다. "헛! 저 노인네, 마법사다!" "젠장,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여기는 어디고 저놈은 누구야? 왜 다짜고짜 시빈데?" "그런 건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아. 일단 저 노인네를 발라 버려!" 수배자들이 황급히 무기를 꺼내 들었을 때였다. "건방진....하루살이 같은 놈들이...헐!" 주문을 외우던 마스튜아라가 갑자기 움찔하며 마법을 캔슬하였다. 그리고 다시 엄청난 속도로 주문을 외우는가 싶더니 갑자기 훅 하고 사라졌다. "어라? 워프 마법이잖아?" "뭐야! 바로 도망갈 거면서 폼은 왜 잡아?" "헉! 혀, 혀, 혀, 형님!" 그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던 타커스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뭔가 하고 고개를 돌리던 제페트와 다른 조직원들의 얼굴에도 핏기가 쫙 빠져 버렸다. "저, 저게 뭐야?" (안보임..)만 해진 수배자 일당의 눈동자에 비쳐지는 것은 바로 엄청난 크기의 땅덩어리였다. 직경이 1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전격에 휩싸인채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마스튜아라의 제물 의식이 실패로 돌아가 방어막을 부수며 뤼겐베르크로 돌진하는 샹그리아였다. 마스튜아라는 그걸 보고 '워프'로 도망친 것이었다. "헉! 피, 피해라!" "이, 이미 늦었....."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쾅! 수배자 일당의 비명은 뒤이은 굉음에 묻혀 버렸다. 마스튜아라의 제물 의식을 저지해 샹그리아가 뤼겐베르크의 방어막을 파괴할 수 있도록 활약한 이슈람과 수배자 일당. 그러나 이들의 활약은 샹그리아와 뤼겐베르크 사이에 끼어 쥐포가 되어 버렸다. 뉴 월드에 또 하나의 비하인드 히스토리가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 콰콰콰콰, 콰콰콰콰, 콰콰콰쾅! 직경이 1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샹그리아와 전장 수백킬로미터에 달하는 뤼겐베르크! 천문학적인 질량을 가진 두 물체가 공중에서 충돌했다. 순간 공간을 통째로 뒤흔드는 듯한 충격파와 굉음이 전장을 휩쓸었다. 근처에 있던 비행정이나 마족은 충격파에 휩쓸려 수백 미터나 튕겨져 날아갔고, 원정군과 마족이 뒤엉켜 해전이 벌어지는 바다엔 폭풍이 일어난 것처럼 수십 미터나 되는 파도가 일어났다. 주변에 그 정도의 여파가 미쳤으니 샹그리아와 뤼겐베르크가 멀쩡할 리가 일어났다. 뤼겐베르크를 들이받은 샹그리아는 단숨에 절반 이상이 (안보임)처럼 으레치며 떨어져 나갔다. 그 충격이 밀려오자 백색 거탑도 쩍쩍 균열이 번지며 칵테일 술을 흔드는 것처럼 요동쳤다. "위험해!" "우와아아아앗!" 영웅의 후예들과 마법 학회 공학자들은 낙엽처럼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그러나 아크는 결계 수호석을 꽉 움켜잡은 채 진리의 수정을 노려보았다. '이럴 수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흙먼지가 사라지며 드러난 영상에 아크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방어탑의 전격으로 방어막을 녹이며 돌진한 샹그리아는 뤼겐베르크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 받았다. 그 충격으로 샹그리아는 절반 이상이 완전히 두부처럼 으깨졌다. 당연한 일이였다. 그만한 질량이 충돌했는데 멀쩡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아아, 샤, 샹그리아가....고대 예언자 일족의 유산을...." "젠장, 힘들게 개조한 샹그리아가....남자의 로망 공중 요새가....." 예언자 일족과 워머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문제는 샹그리아가 박살 났단ㄴ 게 아니었다. 샹그리아'만' 박살 났다는 게 문제였다. 방어막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뤼겐베르크의 방어력이 상상을 초월해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뤼겐베르크는 아직도 멀쩡했다. 물론 샹그리아와 직접 충돌한 등 위의 건축물 일부는 완전히 뭉개졌다. 그리고 뤼겐베르크의 옆구리도 길게 찢어져 폭포수 같은 피를 콸콸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 전장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뤼겐베르크의 거체에 비하면 생채기 정도에 불과했다. 샹그리아가 옆구리에 쑤셔 박힌 상태로도 뤼겐베르크는 여전히 날갯질을 하며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샹그리아로 들이받으면 뤼겐베르크를 추락시킬 수 있을수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던 아크로서는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어쨋든 이제 방어막은 뚫었다!' 그래도 일단 그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1번 시스템 아웃, 2번 시스템 아웃, 3번 시스템 아웃." "창세의 궤와 연결된 모든 회로가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샹그리아의 부력이 소멸됐습니다. 이 상태라면 몇 분 안에 추락합니다.!" 그때 마법 학회 공학자들의 목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젠장,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군. 모두 샹그리아에서 탈출하다!" "어디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하나밖에 없잖아." 샴바라의 질문에 아크가 진리의 수정에 비쳐지는 뤼겐베르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다. 이제 아크 일행이 가야 할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뤼겐베르크가 샹그리아와 충돌해 추락했다면 더 바랄 게 없었겠지만 일단 그건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방어막 역시 (안보임..)타격을 입고 제단까지 파괴됐지만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였다. 뤼겐베르크로 집중되는 엄청난 마력에 의해 느리지만 다시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방어막도 이전과는 달리 재생 속도가 느려 공략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샹그리아가 쑤셔 박혔음에도 멀쩡한 멀쩡한 방어력을 생각하면 비공전투대로 제한 시간 내에 다시 방어막이 재생된 뤼겐베르크를 격추시키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우리가 직접 부활 의식을 저지할 수밖에 없어!" "직접 돌입이라는 건가? 마음에 드는군. 사실 이대로 끝나면 어쩌나 싶었지." 브레드가 대검을 어께에 걸치며 짐승처럼 웃었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좋았어. 자, 가자!" 아크가 튀어나가자 영웅의 후예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뒤따랐다. 그때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이 소리쳤다. "잠깐, 창세의 궤를 가져가야해요!" "그렇군. 깜빡할 뻔했어. 창세의 궤는 어디 있죠?" "거탑 지하의 동력실에 있어요." "지하 동력실...." 아크가 미간을 좁하며 중얼거렸다. 창세의 궤를 샹그리아의 동력원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깜빡하고 있었지만, 마족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샹그리아가 붕괴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하 동력실에서 창세의 궤를 가지고 나올때까지 버텨주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뤼겐베르크는 적진 한복판이다.' 주변 10킬로미터의 '마족의 영향권' 효과를 소멸시키며 마족에게 데미지까지 줄 수 있는 창세의 궤! 적진에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창세의 궤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아티펙트였다. 물론 창세의 궤를 때어 내면 동력원이 사라진 샹그리아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차피 지금도 샹그리아는 회로가 마비되어 동력이 전달되지 않는 상태였다. '지금 샹그리아가 당장 추락하지 않는 이유는 뤼겐베르크에 박혀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창세의 궤가 동력실에 있어 봤자 샹그리아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어.' 생각을 정리한 아크가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샴바라, 브레드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먼저 뤼겐베르크를(샹그리아 아닌가?) 탈출해라. 나는 레리어트님, 예언자 일족과 함께 창세의 궤를 가지고 뒤쫒아 가겠다." "알았다." 샴바라와 브레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샹그리아의 수호 종족 백호족과 마법 학회 공학자들을 이끌고 거탈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아크는 레리어트, 예언자 일족과 함께 지하 동력실로 향했다. 길게 이어진 제단을 따라 내려가자 신비한 광채가 (안보임...) 창세의 궤가 보였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그때 동력실이 거칠게 흔들리며 벽이 쩍쩍 갈라졌다. 샹그리아의 붕괴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두르십시오!" 아크의 목소리에 예언자 일족은 서둘로 창세의 궤를 들고 쪼르르 달려 나왔다. 밖으로 나와 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여기저기에서 땅이 쩍쩍 갈리지며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어떤 곳은 땅덩어리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곳도 있었다. 백색 거탑을 둘러싼 숲은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스파크에 휩싸여 불기에 휩싸여 있었다. 마치 지진과 산불이 동시에 일어난 재해 현장을 방불케 하는 장면! 수십미터나 떨어져 있는데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뚫고 나갈 수밖에 없다!' "레리어트 님, 화염 속성 저항력을 올려 주십시오!" "불길을 막는 신성한 숨결!" '불길을 막는 신성한 숨결'로 화염 저항력이 상승했습니다. 《화염자항력 +35%, 폭염으로 인해 피로도가 증가하지 않습니다.》 "모두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아크가 불길에 휩싸인 숲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동시에 사방에서 엄청난 열풍이 몰아쳤지만 레리어트의 신성 마법 덕분에 그럭저럭 견딜만한 수준이었다. 불길이 직접 닿아도 데미지는 그리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크를 위협하는 것은 불길만이 아니었다. 우직, 우직, 콰드드득! 지반이 붕괴하며 불길에 휩싸인 아름드리나무들이 연속적으로 넘어졌다. "크윽, 화격! 화격! 화격!" 아크는 선두에서 그런 나무를 몽땅 '화격'으로 날려 버리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리자 어느 순간 눈앞을 가로막던 불꽃이 사라지며 수백 미터 앞에 뤼겐베르크의 등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먼저 출발한 샴바라와 브레드 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아크가 창세의 궤를 짊어지고 헐떡이는 예언자 일족을 돌아버보며 소리칠 때였다. 돌연 지반에서 격렬한 굉음이 울리며 바닥이 요동쳤다. 갑지기 엄청난 진동에 휘청거리면 아크에게 기묘한 감각을 느껴졌다. 마치 엘리베이터에 타고 하강 버튼을 눌렀을때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 불길한 예감에 시선을 돌린 아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쿠! 뤼겐베르크의 옆구리에 박혀 지지대 역활을 해 주던 땅덩어리가 결국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돼 버렸다. 그리고 지지대를 잃은 샹그리아는 뤼겐베르크에게서 떨어져 나와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아크가 느낀 기묘한 감각은 바로 추락할 때 생기는 감각이었다. '젠장, 늦은 건가!' 아크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뤼겐베르크의 등까지는 이제 고작 100여 미터! 고작 100여 미터를 남겨 두고 탈출이 저지된 것이다. 물론 아크는 번혼을 팬저드라군으로 변신시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두 명 정도는 어떻게든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은 모두 11명. 나머지 9~10명은 구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창세의 궤는 예언자 일족만이 손댈 수 있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세의 궤나 예언자 일족은 어쩔 수 없더라도 레리어트 님만은 구출해야 한다.' "버닝혼, 팬저드라군으로....." 버닝혼에게 명령하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멀어지고 있는 뤼겐베르크의 등 위, 그곳에 미리 도착한 샴바라와 브레드 들이 마족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받고 있었다. 뤼겐베르크의 등 위에 몰려 있던 마족들은 샹그리아의 충돌할 때 대부분이 그 충격으로 죽었지만 아직 2,000여 마리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고작 1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샴바라와 브레드 들은 구석까지 몰려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크에게 그건 절체절명 속에서 찾아낸 절호의 찬스였다. "마기 왜곡!" 순간 아크의 가방이 벌컥 열리며 장비품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천장에 거대한 오망성을 만들어 일제히 폭발하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마기 왜곡'이 발동됐습니다. 장비품에 갇혀 있던 마기를 단숨에 방출해 공간을 왜곡시켜 마족 들과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단, 이동시키는 적보다 많은 숫자의 아군은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마족 왜곡'을 실행할 적 부대를 지목해 주십시오. "상공 100미터 지점의 마족!" 그렇다. 바로 '마기 왜곡'! 동시에 상공에서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아크와 레리어트, 예언자 일족을 휘감았다. 그리고 허공으로 빨아올려 단숨에 뤼겐베르크의 등 위로 날아왔다. 그리고 샴바라 일생을 공격하던 12마리의 마족은 아크가 있던 장소로 날려가 샹그리아와 함께 추락해 버렸다. "레리어트 님!" 아크와 레리어트와 예언자 일족이 창세의 궤를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사란 나브란 헤이라드 나라드....." "디르도 바그란 하레나 보라드 바람...." 예언자들이 주문을 외우자 창세의 궤에서 흐릿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창세의 궤가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세의 궤! 창세의 궤가 발동되기 전에 놈들을 섬멸하라!" 창세의 궤가 발동하자 마족들의 후미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후드를 눌러쓴 노인, 어둠의 교단 대주교 마스튜아라였다. 샹그리아가 제단 앞에서 충돌하기 직전 '워프'를 난사한 덕분에 용케 목숨을 부지한 모양이다. 어쨋든 마스튜아라가 명령하자 2,000여 마족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몰려들었다. "백호족은 창세의 궤를 중심으로 방어진형을 펼쳐라 나무지는 선두에서 마족을 막는다!" 아크는 일단 임시방편으로 방어 진형을 펼쳐 놓은 다음 뒤로 물러나 『속삼임의 깃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정의남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정의남 아저씨, 지금 이곳의 상황이 보이세요? - 샹그리아가 떨어져 나가서 보인다. 이제 방어막은 완전히 뚫린거냐? - 뚫기는 했지만 다시 닫히고 있어요. 아크가 점차 좁혀지는 방어막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제단이 파괴되고, 방어막에도 엄청난 손상을 입어 재생 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졌지만, 앞으로 10분 정도면 방어막이 완전히 재생될 꺼에요. 그리고 방어막이 제생되면 제한 시간 내에 뤼겐베르크를 결추시키는 건 물론, 대규모 병력이 상륙할 기회도 없어요.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요. 비공 전투대에 엄호를 부탁하고 방어막이 완전히 재생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비행정 편대를 이곳으로 보내주세요. 아크가 뤼겐베르크의 등에 올라타자마자 정의남에게 귓속말을 보낸 건 이 때문이었다. 방어막이 닫히기 전에 뤼겐베르크에 샹륙할 수 있는 병력을은 현재로서는 비행정 편대밖에 없었다. 물론 비행정 편대가 뤼겐베르크로 들어오면 비공전투대를 호위할 수 없게 딘다. 그러나 지금은 비공전투대를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하는 것! 설사 원정군이 전멸한다고 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 알았다 통신을 마치자 곧 비행 마족과 전투를 벌이던 비행정 편대가 일제이 전선을 이탈했다. 그리고 급격히 선회하며 전속력으로 뤼궨베르크의 뚤린 방어막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비행정 편대가 뤼겐베르크를 향해 돌진하자 비행 마족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비공전투대가 마력포와 뇌신의 창을 발사하며 엄호했지만 모든 마족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족들이 몰려들자 비행정 100여 기가 순식간에 격추당했다. 그러나 비행정 편대는 응전하지 않았다. 벌써 수백 미터였던 방어막의 구멍이 수십미터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전속력으로 뤼겐베르크로 향해라!"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 그리고 잠시 후, 정의남고 갱생단을 선두로 비행정들이 방어막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모든 비행정이 들어올수는 없었다. 대략 1,000여 기의 비행정이 들어섰을때 방어막이 완전히 재생되어 나머지 비행정들은 다시 비공전투대에 합류해야 했다. "모든 편대는 일렬횡대로! 지상의 마족을 포격하라!" 정의남이 뤼겐베르크의 상공으로 날아오며 소리쳤다. 그러자 1,000여 기의 비행저잉 마족들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며 마력포를 난사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마력포의 융단폭격! 백호족과 영웅의 후예들을 몰아 붙이던 마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거의 동시에 방어 진형의 뒤쪽에서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섬광 속에서 신비로운 여신의 형상이 나타나며 하얀 날개를 활짝 펼치자 순백의 빛이 확 퍼져 나왔다. 처음에는 작고 부드러운 빛이었지만, 점차 범위를 넓혀 가더니 어느 순간, 마치 빅뱅이 일어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갔다. 쿠콰콰콰콰, 쿠콰콰콰콰!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창세의 궤가 발동됐습니다! 창조주의 신체에 담겨진 마력을 신성한 힘을 전환해 발동시켰습니다. 그러나 현제 창세의 궤가 발동된 지역은 창조주의 신체에 담긴 마력을 (안보이네염..)합니다. 때문에 창세의 궤로 '마족의 영향권'을 해제할 수는 없으며 완벽한 정화는 할 수 없습니다. 또한 '마족의 영향권'을 불태울 수 있는 지역 역시 직경 500미터 내외로 한정합니다. -세인트 나이트의 특수 능력으로 '생츄어리 : 성'이 발동됬습니다. 《주위 500미터 이내의 '마족의 영양권'을 빛의 힘으로 연소시켜 마족들에게 1~2,000의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군의 경우, 생명력이 1~1000이 회복되며 모든 상태 이사이 해체되고 사기가 50% 상승합니다.》 역시 엄청난 마력이 집중되는 곳이라 창세의 궤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마족의 영양권'을 해제할 수도 없고 범위도 500미터로 한정된 것이다. 그러나 500미터 범위 안의 모든 마족에게 1~2,000 데미지를 주는 것만으로도 창세의 궤를 가지고 온 보람이 있었다. 게다가 아군에게 1~1,000의 회복과 상태 이상 해제, 사기 50% 상승! 비행정의 융단폭격에 이어 창세의 궤까지 발동하자 마족들에 생명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반면 아크 일행은 생명력을 회복했고, 1,000여 기의 배행정이 가세했다. "지금이다, 돌격!" 아크는 백호족, 샴바라 들과 함께 돌진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정의남이 1,000여 기의 비행정을 이끌고 마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융단폭격과 '생츄어리'로 이미 생명력이 50% 이상 깍여 나간 마족들은 지상과 하늘에서 공격이 쏟아지자 단숨에 진열이 무너졌다. 일단 전열이 무너지자 마족들은 더 이상 원정군의 상대가 아니었다. 마족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뿔뿔이 흩어진 채 하나하나 각개 격파 당했다. 그렇게 마족들이 거의 전멸해 가자 마스튜아라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칫!" "놓칠 것 같으냐? 아란의 복수다!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놈을 발견한 티모시가 마족을 밀어내며 화살을 날렸다. 그러자 마스튜아라는 '워프'로 화살을 피해내고 (안보임..)해 사이로 몸을 숨겼다. "마족은 비행정 편대에 맡기고 나머지는 놈을 쫓는다!" 뒤늦게 마스튜아라를 발견한 아크가 얼마 남지 않은 마족들을 밀어내며 놈을 뒤쫓았다. 고대 흑마술로 방어막의 재생 속도를 증폭시켰던 마스튜아라를 그대로 방치하면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잠시, 놈을 뒤쫒아 광장 안쪽에 도착하자 여기저기 흩어진 건물 잔해 사이에서 마스튜아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채 사정거리까지 접근하기도 전에 마스튜아라가 콧방귀를 뀌며 근처의 건물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건물은 축구장만 한 크기의 돔이었다. 표면을(잘안보이네욤..ㅎ) 따라 기이한 마법 문자가 새겨진 돔! 그리고 어두운 하늘을 뚫고 내리꽂히는 붉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 고성이라고 생각 했지만, 실제로는 고성 주변에 창처럼 세워진 4개의 첨탑에 반사되며 중심부에 자리 잡은 돔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대체 어떤 마법적인 원리로 붉은 기운을 돔에 집중시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어둠의 제왕부활 의식을 위해 모으는 마력이 집중되는 건 둠! 그렇다면 돔의 정체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저기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곳이다." 아크는 슬쩍 시선을 올려 우측 상단에서 점멸하는 경고 메세지를 확인해 보았다. -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2시간》 아직 12시간이 남은 상태로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시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문제는 비행정 편대 1,000여 명과 백호족, 1,200여 명의 병력으로 어둠의 제왕 부황 의식을 저지할 수 있나냐다.'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돔은 대략 축구장만 한 크기다. 크기도 10여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그 속에 콩나물시루처럼 마족을 꽉꽉 채워 놨다 해도 수백 마리. 1,200여 명의 병력이라면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는 숫자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뤼겐베르크의 등 위에는 상당히 많은 마족들이 있었는데, 어째서 정작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돔 주변에는 마족들이 보이지 않ㄴ느 거지?' "아크, 뤼겐베르크 전역에서 마족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때 정의남이 비행정 편대와 남은 마족을 섬멸하고 날아 오며 소리쳤다. 돔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아크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숫자는요?" "건문 잔해 때문에 위에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수천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군." 아크가 다시 돔으로 시선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이미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건물을 발견한 이상 마족들과 노닥거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더 이상 증원부대를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직 병력 손실이 없을 때 돔 안으로 진격해서 붉은 남자를 처지하고 부활 의식을 저지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물론 그럴 경우 부활 의식을 저지해도 수천의 마족에게 포위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부활의식만 막아 낸다면 설사 전멸한다 해도 원정군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정의남 아저씨, 비행정 편대를 상륙시키세요. 마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돔으로 진입합니다!" "알겠다. 모두 상륙해라!" 정의남의 명령에 비행정 편대가 일제히 돔 앞에 착륙했다. 그때 착륙한 배행정 사이에서 누군가가 아크를 향해 달려왔다. 긴 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로코였다. "아크 오빠!" "에 로코? 네가 여기는 왜 왔어?" "왜 오다니요? 당연히 오빠를 도와주러 왔죠." 로코가 냉큼 아크의 팔짱을 끼며 슬쩍 뒤쪽에 있는 레리어트를 흘겨보았다. 그러자 레리어트는 물끄러미 아크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은 한숨을 불어냐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 레리어트의 태도에 아크는 가습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두 여자 사이에서 팽창하는(잘안보임 ㅋ)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곧 고개를 흔들며 잡념을 털어 냈다. 절망(이것도 잘 안보이네요)스럽지만 아크는 로코와 레리어트 사이에 정리해야 할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미 아크는 어느 정도 감정을 정리했다. 때문에 아크 자신이든, 레리어트든, 로코든, 간의 오해가 부풀어지기 전에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로코, 정신 산만하게 하지 말고 물러나 있어." 아크는 로코의 팔짱을 풀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돔 앞에 모인 최후의 결사대로 시선을 돌리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이제 마지막 전장이다. 전군, 돔으로 진입하라!" "와아아아아아!" 동시에 영웅의 후예들을 선두로 백호족과 1,000여 명의 나가란 연맹원들이 돔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막 돔의 입구로 들어섰을 때였다. 돌연 돔의 벽에 새겨진 마법 문자가 일제히 빛을 발하더니 묵직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게 뭐야?" 뒤이어 아크와 결사대원들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이 들어선 곳은, 고작해야 축구장만한 크기의 돔이었다. 높이도 대략 10미터 전후, 그런데 입구로 들어서자 문이 사라지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혼도..... 돔의 내부는 기괴하게 얽힌 혼돈의 공간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갖가지 색과 형태의 물건들이(잘안보임) 둥둥 떠다닌다. 그 공간 여기저기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길도 (안보임......)뒤죽박죽 이었다. 어떤 길은 꽈배기처럼 꼬여 있고, 어떤 것은 창처럼 하늘로 솟아 있었다. 심지어 어떤 길은 아예 뒤집혀 있었고, 버섯 처럼 듬성듬성 나있는 길도 있었다. 그때 어둠 속 저편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위대한 암흑신의 정신세계가 구체화된 공간이다. (안보인..)상상을 초월하는 함정이 깔린 미로지. 네놈들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마스튜아라! 놈이 우리를 함정으로 끌어들였다는 건가?'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떄였다. 두두두두둥, 소리와 함꼐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상념의 미로 -당신은 어둠의 교단 대주교의 계략에 빠져 상념의 미로에 갇혔습니다. 상념의 미로는 어둠의 창조주 암흑신의 정신셰계가 그대로 투영되어 만들어진 미로입니다. 이곳은 순수한 정신세계로 뉴 월드의 상식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암흑신의 상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암흑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곳입니다. 만약 당신이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고자 한다면 먼저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실을 알아내야 합니다. 그러나 상념의 미로에 펼쳐진 어둠 속에서는 당신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존재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암흑신의 상념에서 태어난 그 존재들은 허락받지 못한 침입자가 정신세계를 파헤치는 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험가의 지식 : 새로운 던전 발견 보너스(스킬 포인트 : 40)> ---------------------------------------------- Act 4. 상념의 미로(1) "젠장, 돔 주변에 마족들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던건가?"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이를 갈아붙이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이게 마스튜아라가 뻔히 결사대가 추격하고 잌ㅆ음을 알면서도 돔으로 도망친 이유였다. 마스튜아라는 이미 뭔가의 비술을 사용해 돔 주변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차원 결계의 스위치는 바로 돔의 문을 여는 것. 마족들이 돔을 지키고 있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만약 마족들이 돔을 지키고 있었다면 그리고 아크가 마족들을 전멸시켰다면 그렇게 서둘러 돔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리라. 분명 혹시 있을지 모르는 함정 따위를 확인해 봤을 것이고, 설사 결계를 해제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허망하게 마스튜아라의 계략에 말려들지는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돔 앞에 도착했을때 사방에서 수천의 마족이 밀려들었다. 이에 마음이 급해진 아크는 서둘로 돔에 들어서다가 놈의 계략에 걸려 버린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놈은 어둠의 제왕이 부활할 때까지 마족을 동원해 돔을 보호하는 것보다 상념의 미로가 더욱 확실하게 원정군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말이다.' 그만큼 상념의 미로는 복잡하고 위험하다는 말이리라. 방금 전까지 12시간이나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상황은 바뀌었다. 물론 상념의 미로는 이름 그대로 미로다. 출구가 없는 감옥은 아니라는 말이다. 때문에 이 역시 뉴월드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미로니 어딘가에 출구가 있겠지만 12시간 안에 탈출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것이다. "이제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서둘러 전진한다!" -크르르르르르!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을때였다. 갑자기 결사대 주위의 공간이 일렁이며 검은 형체들이 기어 나왔다. 마치 그림자처럼 시커먼 거구의 몸에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박혀 있는 괴물들! 사방에서 수백 마리의 짐승이 나타나자 역한 비린내가 흑하고 밀려들었다. "저놈들!" 놈들이 나타나자 티모시가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아붙였다. 공간을 뚫고 나타난 놈들은 바로 이전에 마신전에서 아란을 공격했던 짐승들이었다. 그리고 마신전에서 탈출하려는 티모시와 어벤저를 며칠이나 괴롭혔던 놈들이기도 했다. 짐승들을 확인하자 티모시의 팔이 번뜩이는 속도로 움직였다. "마탄의 사수 3장, 악마를 난자하는 화살!" 수십 발의 화살이 산탄총처럼 뿜어지며 짐승들을 향해 폭사되었다. - 크와아아아아아아! 그러자 염탐하듯 결사대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짐승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동시에 놈들의 움직임을 살피던 아크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전사들 앞으로! 역공 태세로 놈들을 막아라!" 아크의 명령에 전방에 서 있던 전사들이 일제히 검과 방패를 들어올렸다. 전사들의 전투태세는 보통 공격력을 30% 감소시키는 대신 방패 방여력을 50% 상승시키는 방어 태세, 공격력을 30% 상승 시키는 대신 방패 방어력을 50% 감소시키는 공격태세, 두가지다. 그러나 일정 레벨 이상의 전사들은 방어와 함께 공격을 할 수 있는 특수 전투태세인 역공 태세를 배울 수 있었다. 역공 태세는 아크가 사용하는 '화격'처럼 숙련된 타이밍이 필요하지만 일단 습득하면 가장 빨리 적을 섬멸 할 수 있는 전투 태세였다. "역공 태세로 놈들의 공격과 동시에 반격하며 단숨에 밀어붙인다!" 그리고 전사들과 짐승들이 충돌하는 순간! 콰콰콰콰, 콰콰콰콰! 쇳소리가 울리며 역공 태세로 전환한 전사 수십명이 마치 트럭에 치인 사람처럼 튕겨저 날아갔다. 수십 명이 날아가자 방어선의 일부가 허물어졌다. 그러자 빈틈으로 수십 마리의 짐승들이 송곳니를 번뜩이며 쏟아저 들어왔다. "뭐, 뭐야?" 생각치도 못했던 전개에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렸다. 결사대의 전사들은 뉴월드의 최고 클래스에 속하는 나가란 연맹원들이었다. 평균 레벨 350~370에 장비품도 그야말로 명품으로 도배한 유저들, 아마도 그들이 들고있는 방패 하나의 가격만도 수백에서 1,000만 원을 호가하리라. 가격만큼이나 방어력은 물론 각종 옵션은 장난이 아니었다. 역공 태세가 방어 태세보다 방어력이 낮다고는 하지만 그런 장비품으로 도배한 350 이상 레벨의 유저가 일격에 날라가 버리다니? - 크와아아아아! 그때 짐승 한 마리가 광기 어린 괴성을 질러 대며 달려들었다. 아크는 반사적으로 몸을 회전시키며 '다크 스트라이크'로 놈의 목을 후려첬다. 급소에 정확하게 빨려들어간 공격! 보통 마족이었다면 휘청거리며 몇 걸음이나 물러났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짐승은 살짝 고개를 흔들고는 곧바로 발톱을 휘둘러 댔다. 짐승이 물러서리라 예상하고는 다음 공격에 들어가던 아크는 뜻밖의 반격에 어깨를 얻어맞고 뒷걸음질 쳤다. "크윽, 무슨 이런 자식이....." 아크는 곧바로 '다크 댄싱'을 펼쳐 뒤이은 공격을 회피하며 물러났다. 그러나 짐승은 그런 아크의 움직임을 따라붙으며 다가와 발톱을 휘둘렀다.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관통하는 화살!" 그때 한 줄기의 섬광이 날아와 짐승의 발을 관통했다.덕분에 겨우 짐승의 공격에서 빠져나온 아크의 귀에 티모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은 일반 마족과 달라. 몽땅 정예라고!" "뭐?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지금 말하잖아! 마탄의 사수 3장, 악마를 난자하는 화살!" 티모시가 짐승들에게 화살을 난사하며 소리쳤다. '이놈들이 몽땅 정예 마족이라고?' 그사이에 아크는 뒤로 물러나 사방에서 날뛰는 짐승들을 훑어보았다. 새삼스럽지만 처음 보는 적이 나타나면 먼저 정보부터 확인한 뒤에 대응 방법을 결정하는게 아크의 전투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괴상한 공간으로 빨려 들어온 상황에서 갑자기 짐승들이 공간을 뚫고 나왔다. 게다가 마스튜아라의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아크는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12시간 내에 상념의 마로를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이 완전히 재생되었다. 물론 이전 같은 재생력은 없어 비공전투대가 총공격을 퍼붓는다면 다시 뚫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계속 부활해서 몰려드는 마족들의 방해로 쉽지 않았다. 결국 이제 부활 의식을 저지할 수 있는 병력은 1,200여 명의 결사대뿐이라는 말이다. 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결사대가 전멸하면 모든게 끝장인 것이다. '일단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자.' "전사들은 밀집대형으로, 방어 태세로 전환해 놈들이 진영 안으로 난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방벽을 하나로 연결시킵니다. 전사들에게 맡아야 할 포지션을 설명해주세요. 성직자들은 방벽을 만든 전사들을 우선적으로 회복시킨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아크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곧바로 난전을 펼치던 전사들이 한곳에 모여 방패의 벽을 만들었다. 상대는 수백 마리의 정예 마족, 보통 마족의 몇배나 되는 힘을 가진 마족이라 방어 태세로 전환한 전사조차 방패째로 날려 버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크가 밀집대형으로 전사들을 한곳에 모은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마치 고리를 연결시키듯이 수십 명의 전사들을 하나로 연결 시키면 그만큼 중량이 늘어나 쉽게 날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건 과거 아크가 비밀 던전에서 대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방벽이 완성되자 수백 개의 방패가 하나로 모여 철갑 성벽처럼 보였다. 쾅, 쾅, 쾅, 쾅, 쾅! 뒤이어 짐승들이 방벽에 돌진하자 일격에 10여 명의 들썩들썩 떠올랐다. 그러자 동려들과 팔이 엮인 전사들은 방금전처럼 가볍게 튕겨저 날아가지 않았다. "좋아, 일단 짐승들이 진영 안에 난입하는 것은 막았다." 그러나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짐승들이 돌진할때마다 전사들의 방패가 안쪽으로 움푹 움푹 파여 들어갔다. 방패가 변형될 정도로 내구력이 깎여 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상태라면 몇 분 안에 선두 전사들의 방패는 파괴되고 말리라. 게다가 전사들은 방어 태세를 취한 상태라 반격할 수도 없었다. 물론 아크 역시 이대로 구경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짝퉁 형, 놈들의 정보를 파악해주세요!" "아, 알았다. '지피지기!知彼知己' !" '가디언=전략가'로 전직한 짝퉁의 특수 스킬 '지피지기' ! 짝퉁이 지피지기를 발동시키자 검은 짐승들의 정보창이 떠올랐다 - 이름: 사념수(한자찾기힘드네요 한자생략) 레벨: 500(정예) 생명력:8,000 설명: 암흑신의 상념 속에서 태어난 어둠의 짐승(마 속성). 특성: 무기에 대한 저항력 +50%, 마법에 대한 저항력 -30%, 광 속성에 대한 저항력 -50% 특기: <<돌진>> 사념수가 돌진할 때 돌파력이 30%상승합니다. <<신속>> 사념수는 움직임에 30%의 보너스가 적용됩니다. <<착란>> 사념수가 빈사 상태가 되면 모든 공격에 '착란'효과가 부여됩니다. '착란'을 사용하면 사념수의 생명력이 깎이지만 '착란'에 적중된 상대는 일정 시간 동안 동료를 공격하게 됩니다. 지속 시간은 정신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제 대강 감이 잡히는군." 짝퉁에게 사념수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은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사념수가 아크의 '다크 스트라이크'를 맞고도 끄떡없는 것은 바로 무기에 대한 저항력에 의한 결과였다. 그리고 '다크 댄싱'을 따라붙은 것은 '신속' 효과, 전사들의 역공 태세가 일격에 박살 난 것은 '돌진' 효과때문이었으리라. '50%나 되는 무기 저항력도 그렇고 , '돌진' 이나 '신속', '착란'.... 특이하다고 할 만큼 능력은 없지만 하나하나가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건 '신속' 이야.' 근접전에서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전사들이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사념수가 속도에서 압도하기 때문이엇다. '먼저 놈들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아크가 곧바로 작전을 지시했다. "마법사들은 궁수의 화살에 마법을 부여하라!" 아크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워 궁수의 화살에 마법을 쏟아부었다. 그러자 궁수들의 화살이 불과 얼음에 뒤덮여 마법 화살이 되었다. "놈들의 다리를 집중 공격하라!" "정밀사격!" 슈슈슈슈, 슈슈슈슉!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백 발의 마법 화살이 구름처럼 떠올랐다. 그리고 포물선을 그리며 전사들의 방벽을 넘어 사념수들의 다리에 박혀 들었다. 새삼스럽지만 화살로 주요 급소를 적중시키면 '장님' 이나 '혈관 파괴' 같은 상태 이상이 발동된다. 데미지와 함께 상태이상까지 발동시키는 것, 이게 궁수들의 최대 장점인 것이다. 물론 전장에서 동전만 한 급소를 적중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급소를 퍽퍽 맞힐 수 있다면 궁수는 뉴 월드 최고 직업이 되어 있으리라, 그러나 움직이는 적의 급소를 원하는 대로 맞히려면 궁술 스킬은 물론, 유저 봊ㄴ인도 상당한 수준의 궁술을 몸에 익혀야 한다. 실제로 레벨이 100이 넘을 때까지 급소를 한 번도 명중시키지 못하는 유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뉴 월드 최상 클래스에 속하는결사대원들은 명중률이 70%를 상회했다. 게다가 화살을 마법으로 코팅한 덕분에 사념수의 무기에 대한 저항력도 없었다. -크와아아아아! 무릅이며 종아리에 수십 발의 화살이 박히자 사념수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리고 절반 이상이 '속도 저하' 에 걸려 절뚝댔다. "마법사들은 방벽 너머에 광역 마법을 살포하라!" "지옥의 밑바닥에 들끓는 분노의 불길이여, 여기 현신하라, 헬 브레스!" "대지의 정령이여, 대기의 정령이여, 불의 정령이여, 물의 정령이여, 태초의 정령술사이자 위대한 신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미쳐 날뛰어라. 프린지 스피리트!"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사념수들이 모인 공간이 통째로 일그러졌다. 결사대원들이 '정신 교류'로 마력을 증폭시켜 발동한 8서클 광역마법이 3~4개나 중첩된 것이다. 바닥이 갈라지ㅏ며 쇠조차 녹이는 시뻘건 화염이 수십 미터나 치솟아 올랐고, 갖가지 형태의 정령들이 벌 떼처럼 날아 다니며 사념수들의 몸을 갉아 댔다. 이미 궁수들의 '정밀사격'으로 불구가 되어 버린 마족들은 제대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지옥의 불길에 살점이 타들어가고, 찢겨 나가며 비명을 터뜨렸다. 화살과 마법만으로 이미 수백 마리의 사념수들은 전의를 상실할 정도! ".....이 땅에 강림하소서, 만물의 위대한 어머니시여!" 그때 뒤에서 레리어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창세의 궤가 열리며 신비로운 형상의 여신이어둠을 뚫고 솟아올랐다. 콰콰콰콰콰, 콰콰콰콰콰! '생츄어리'가 발동하자 빛이 퍼져 나가며 주변의 어둠을 연쇄적으로 연소시켰다. 그러자 폭발에 휩싸인 병사들은 생명력이 회복이, 사념수들은 데미지를 받고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다. 마법사, 전사들의 방패와 검에 마법을 부여하라!" "대기의 마나여, 검과 방패가 되어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자 전사들의 검과 방패에서 섬광이 뿜어졌다. 아크역시 눈동자에서 섬광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공격태세로 전환해 돌격하라!" "우화아아아아!" 수백 명의 전사들이 방벽을 헤제하고 마법검을 휘두르며 돌진했다. 거친 쇳소리를 울리며 한 덩어리가 되어 돌진하는 전사들은 마치 거대한 탱크 같았다. 그 거대한 탱크는 박력 넘치는 함성과 함께 마법 화살과 대마족 전용 광역 마법, '생츄어리'에 연속적으로 두들겨 맞아 해롱거리는 사념수를 덮쳤다. 순간 접점에서 시커먼 핏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사념수들은 이미 대부분이 마법 화살에 맞아 '속도 감소' 에 걸려버렸다. 거기에 또다시 궁수들이 '정밀사격'을 팔과 눈 등의 급소를 적중시켜 계속해서 '장님'이나 '공격 속도 감소' 등의 상태 이상을 걸어 댔다. 덕분에 장애인이 되어 버린 사념수들은 전사들의 돌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좋아, 이제 승기를 잡았다. 남은건 마무리다!' "이제 각개전투로 돌입한다. 모든 병력은 10명씩 파티를 이뤄 사념수를 한 마리씩 상대하라!" 결사대가 확 분산됐다가 10명씩 나누어졌다. 아크가 자주 사용하는 전술, 파티형 각개전투였다. 전사, 마법사, 성직자, 백호족..... 모든 직업을 조합해 한 파티를 만들어 그 파티를 한 사람의 병사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보통 대규모 전투를 펼치면 성직자들의 회복이 한 전사에게 집중되거나, 여러 궁수가 한 몬스터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어 전력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파티형 각개 전투를 사용하면 그런 전력 손실을 막을수 있었다. 아크와 파티를 구성한 멤버는 영웅의 후예왕 로코! "다크 댄싱, 다크 스트라이크!" 가장 먼저 아크가 유령처럼 사념수에게 접근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곧바로 우람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사내가 대검을 들고 뒤따르며 소리쳤다. "'수혼 빙의'! 곰같은 힘이여 솟아라! 개 같은 힘이여 솟아라!" 곰과 개의 형상을 흡수하며 사념수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리는 사내는 바로 비스트마스터 브레드! 브레드가 어깨로 들이받자 사념수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그떄 사념수의 등 뒤로 뭔가 흐릿한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아크와 브레드가 사념수의 시선을 집중 시키는 사이 십자화결로 배후를 장악한 샴바라 였다. "....은살!" 샴바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스쳐 지나가자 사념수의 옆구리가 쩍 갈라지며 검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렇가 아크와 브레드, 샴바라가 연계 공격을 펼치자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진 사념수가 고통스러운 괴성을 질러 대며 미친 듯이 발톱을 휘둘러 댔다. "지랄하지말고 얌전히 있어!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뒤에서 티모시가 날리는 화살이 광선처럼 날아와 사념수의 어깨를 관통했다. 동시에 사념수의 팔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사념수는 성난 울음을 터뜨리며 발광하다가 아크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떄 뒤에서 레리어트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순결한 방패!" 순간 아크의 앞에 빛의 방패가 떠올랐다. 레리어트가 아크를 돕자 로코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하프를 들어 올렸다. "흥, 멜로디안 랩소디 즉흥곡. '고통의 소나타'!" 그러자 손톱으로 세차게 현을 뜯자 강력한 음파가 뿜어져 날아갔다. 로코는 하프로 뿜어낸 음파로 사념수를 공격하려는 의도 였다. 그러나 이 음파 공격은 레리어트가 만들어 낸 빛의 방패에 충돌했고, 생각지도 못했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쿠우우우우우! 빛의 방패가 진동하며 소리굽쇠처럼 음파를 증폭시킨 것이다. 충격파가 빛의 방패에 반사된 음파는 엄청나게 증폭되며 앞으로 확 뿜어져 나갔다. 그러자 바닥에 균열이 쫙 벌어지며 달려들던 사념수가 단숨에 20미터나 튕겨저 날아갔다. 레리어트와 로코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오른건 그때 였다. - 새로운 협동 연쇄 스킬이 등록됐습니다. 합동 연쇄 스킬 : 상성이나 특성이 맞는 직업을 가진 동료와 함께 있을 경우, 특정 스킬은 서로 합체되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협동 연쇄 스킬입니다. 단, 협동 연쇄 스킬을 발동시키는 동료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낑낑대며 괴상한 쇠붙이를주렁주렁 매단 워머가 주먹을 번쩍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이것이 남자의 로망이다! 아머드 슈트 장착 완료!" -크와아아아아! 때마침 사념수 한 마리가 워머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른 때라면 기겁하고 도망쳤을 워머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죽을 자리를 찾아 오는군, 아머드 슈트 마력 개방! 사념수 록온, 발사!" 투투투투, 투투투투! 순간 어꺠와 가슴, 배, 무릅, 워머가 장착한 쇠붙이들의 전면부가 열렸다. 그리고 마력포가 솟아 나오더니 달려드는 사념수를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렇다. 워머가 만든 아머드 슈퍼트의 정체는 바로 마법 학회 공학자에게 마력포의 설계도를 받아 특수 제작한 개인용 전투 아머였다. "우하하하, 이 몸의 천재성이 집결된 아머드 슈트의 맛이 어떠냐?" 마력포가 불을 뿜자 사념수는 순식간에 폭연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폭연이 확 갈라지며 사념수가 달려 나왔다. 개인용 장비로 개량된 마력포의 위력으로는 정예 마족인 사념수의 돌진을 막을수 없었던 것이다. "워머!" 사념수가 달려들자 아크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워머의 입가에는 아직도 여유만만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후후후, 내가 이정도로 예상하지 못했을 거 같아? 마력 엔진 개방!" 동시에 아머드 슈트-솔직히 말하지만 그냥 잡동사니처럼 보인다-의 발 부분에서 굉음이 터지며 워머가 바닥에서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아머드 슈트는 발에 장착된 소형 마력 엔진을 이용해 '신속' 효과가 적용된 사념수들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쿠하하하하, 걸레로 만들어주마!" 워머는 자유자재로 바닥을 미끄러지며 뒤쫓은 사념수에게 쉬지 않고 마력포를 쏟아부었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머드 슈트를 장착한 워머는 웬만한 전사보다 강했다. "아크, 사념수들이 몰려온다!" 멍청한 눈길로 워머를 바라보는 아크의 귓가에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 검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자, 가자! 다크 스트라이크!" "대지 폭풍!" "폭우검!" 아크와 브레드, 샴바라는 또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사념수들을 몰아쳤다. 아크와 영웅의 후예들로 구성된 파티의 전투력은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직업과 스킬의 상성이 좋다. 영웅의 후예들은 모일수록 강해진다!' 아크가 이들과 파티를 이뤄 전투를 하며 깨달은 점이었다. 사실 과거 샴바라와 처음 보조를 맞춰 전투를 치를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다크 소울과 갓 킬러 -당시에는 다크워커와 세인트어쌔신이었지만-는 스킬의 용법이나 효과가 전혀 달랐다. 그러나 투기정에서 페어를 이뤄 싸워보니 판이한 두 가지의 스킬이 기이할 정도로 절묘한 연계 효과를 발휘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그 이유는 바로 아크와 샴바라가 과거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운 영웅의 후예들이었기 때문이다. 마반 영웅 크리스틴과 어쌔신 마스터 살린은 동료로서 오랫동안 어둠의 세력을 맞서 싸웟으니 당연히 스킬로 서로 연계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영웅의 후예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판이하게 다른데도 막상 함께 전투를 하면 절묘하게 연계 효과를 발휘했다. 그리고 레리어트와 로코가 보여준 것처럼-로코는 영웅의 후예는 아니지만-둘이나 셋의 스킬이 융합해 협력 연쇄 스킬이 발동하는 빈도수가 상당히 높았다. 게다가 영웅의 후예들은 아크가 이터널 소울로 어둠의 세력과 싸울 때 능력치를40%나 올리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오둠의 세력에 대비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아크 파티는 문자그대로 사념수들을 녹여버리며 전장을 누볐다. 그렇게 대략 30여 분, 사념수들의 숫자는 수십 마리로 줄어들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놈들을 섬멸하라!" "우와아아아아!" 아크의 외침에 결사대원들의 검이 일제히 섬광을 뿜어내며 어둠을 갈랐다. ----------------------------------------------------------------- "좌측에서 출몰한 사념수를 섬멸했습니다!" "우측에서 출몰한 사념수를 섬멸했습니다!" 사념수들의 피와 살점으로 뒤덮인 곳에서 결사대원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수고했다. 최대한 빨리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며 장비를 점검해라."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상념의 미로에 들어온 이후, 결사대는 벌써 10여 번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시간이 없다. 게다가 병력도 더 이상 충원할 수 없다. 일반 던전이라면 미리 정찰을 해서 가능한 전투를 피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사념수들은 공간을 뚫고 갑자기 출현했다. 놈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에측할 수 없으니 전투를 회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사념수를 상대하는 전술은 대강 자리를 잡았다.' 사실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힘든 상대는 처음 만난 몬스터 였다. 상대의 특성이나 움직임의 패턴을 모르니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사념수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 결사 대원이 버벅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념수들의 습격을 10여 번이나 받아 보니 이제 놈들의 공격 패턴에도 익숙해졌다. 공격 패턴에 익숙해졌다는 것은 놈들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뜻. 결사대원들은 이제 사념수들이 갑자기 습격해 와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처음 천투를 치를 때는 100여 명의 대원이 전사하고 30분이나 넘게 걸렸지만 이제 그때보다 많은 사념수가 습격해 와도 거의 피해를 받지않고 20분 안에 전멸시켰다. '덕분에 레벨도 많이 올랐지만....' 아크가 캐릭터 정보창을 확인하며 한숨을 불어 냈다. 캐릭터 이름 : 아크 종족 : 인간 성향 : 선+500 명성 : 42,535(+500) 레벨 : 496 직업 : 다크소울 작위 : 남작 칭호 : 캣 나이트, 민중의 간병인, 작센의 영웅, 위대한 모험가, 마법 학회 정회원, 스탄달의 영웅 생명력 : 8,990(+475) 마나 : 9,190(+225) 영력 : 786 힘 989(+38) 민첩 1,304(+120) 체력 1,564(+65) 지혜 199(+10) 지능 1,672(+25) 운 234(+60) 특수 스탯 고대 유물의 지식 : 258 유연성 : 329 화술 : 89 애정 : 229(+10) 탄력도 : 483 어둠의 안개 : 91 *장비 아이템 효과 @인어족의 수호 갑옷(갑옷) : 물 속성 저항력+100, 수중 페널티 무효 @고양이 손(장갑) : 공격 속도+10%, 민첩+15, 치명타율+10% @너구리 투구(투구) : 민첩+10, 지혜+10 @늑대의 발(신발) : 민첩+40, 이동속도+40%, 공격 속도+10%, '도약' 사용 가능 @백호족의 망토(망토) : 무력, 사기 저하에 먼역, 용기+30%, 민첩+30, '백호의 외침' 사용 가능 *<<수왕>> 세트 효과 : 힘+35, 민첩+35, 체력+35, 방어력+70, [야생의 힘] 사용 가능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양손 검) : 마족 추가 데미지+10%, 민첩+20, 체력+20, 지능+20 전사의 견장(견갑) : 힘+3 아드리안의 목걸이(목걸이) : 방어력+40, 애정+10, '바다의 가호' 사용 가능 라르칸의 반지(반지) : 민첩+10, 공격 속도+10%, 치명타율+8%, '어둠의 보호' 사용 가능 아크의 반지(반지) : 힘+5, 민첩+5, 체력+5, 지혜+5, 지능+5, '능력의 폭주' 사용 가능 활력의 암렛(팔찌) : 생명력+50, 생명 회복 20초당 5 검투사의 명예(팔찌) : 힘, 민첩, 체력+10, 명성+500, 검 계열 스킬 성장+5% +어둠 속에서 모든 능력이 50% 증가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숨기는 능력이 생겼습니다(지속 시간 30분. 전투가 시작되면 해제됨). +공포, 어둠, 현혹, 매혹 마법에 저항력이 50% 증가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마도구에서 진정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충격 흡수, 독 저항이 20% 증가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0% 증가했습니다. 상념의 미로에 들어올 떄의 레벨이 492. 이곳에서만 레벨이 4나 올린 것이다. 하긴 그동안 쉬지 않고 정예 마족 사념수를 수백 마리씩 해치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아크의 표정은 어둠기 짝이 없었다. '아직 1,000여 명의 병력이 남아 있고, 사념수를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하지만....' 지금 아크의 목적은 레벨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한시라도 빨리 상념의 미로를 탈출해 부활 의식을 저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7시간>> 경고 메시지를 확인한 아크가 한숨을 푹 불어 냈다. 아직도 상념의 미로에 빠져나갈 방법도 찾지 못하고 5시간이나 허비해 버린 것이다. '젠장, 대체 이놈의 미로는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아크는 답답한 눈으로 괴상한 상념의 미로를 훑어 보았다. 사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마치 3차원 입체 퍼즐처럼 수백, 수천 개의 길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는 미로, 덕분에 바로 눈앞에 보이는 길을 이동하려고 해도 엉뚱한 곳으로 이동하거나 같은 자리로 되돌아 오기 일쑤였다. 게다가 배경은 만화경처럼 수백 가지의 기이한 형태가 빙글빙글 돌아가서 다른 던전처럼 주변의 풍경을 보고 대강 지형을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덕분에 결사대는 5시간이나 헤매다가 거의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와 있었다. '지도 제작 스킬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적어도 갔떤 길은 되돌아오지는 않을 텐데.' 상념의 미로는 일반 던전의 개념이 아니라 지도 제작 스킬도 작동하지 않았다. 물론 병력을 분산시켜 출구를 찾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사념수가 습격할지 모르는 상황. 병력을 분산시키면 자칫 각개격파 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턱대고 3차원 미로 속을 돌아다닐 수도 없다. '완전히 진퇴양난이군.' 아크가 한숨을 불어 내며 슬쩍 허리에 감긴 버닝혼을 바라 보았다. 이제 아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버닝혼을 팬저들어군으로 변신시켜 공중에서 길을 찾는 것뿐이엇다. 상념의 미로는 길을 제외하고는 텅 빈공간 이었다. 공중에서 크고작은 기둥이나 크리스털들이 둥둥 떠다니지만 움직이지는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 버닝혼을 타고 미로를 돌아다니면 출구를 찾을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 버닝혼이라면 출구를 찾을 수 있어, 하지만 그게 출구까지는 가는 길을 알아낼 수 있는건 아니야.' 그렇다, 아크가 지금까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못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다시말하지만 이곳은 수백, 수천 갈래의 길이 살태러처럼 얽혀 있는 3차원 미로였다. 출구를 찾아낸다고 해도 아크가 거기까지 도달하는 길은 몽땅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상념의 미로에는 여기저기에 다른 장소로 워프를 시켜 버리는 웜홀worm-hole까지 있었다. 때문에 끊어진 길도 길이 아니었고, 이어진 길도 이어진 길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결사대원이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돈 것은 바로 이 웜홀 때문이었다. 이런 웜홀이 사방에 존재하는 한 하늘에서 대강 길을 알아낸다고 해도 실제 결사대원들이 그 길을 따라 출구까지 이동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젠장, 마스튜아라 녀석은 어딘가에 숨어서 히죽거리고 있겠군.'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울컥 화가 치밀었다.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놈을 추격해서 박살 내버렸어야 하는건데...' 그때 한숨을 푹푹 불어 내던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가만? 놈을 추격한다고? 그렇다면..." "맞아, 그방법이 있었어!" 잠시 뭔각를 생각하던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혼자 끙끙거리던 아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치자 결사대원들이 깜짝 놀라 아크를 바라보았다. 혹시 미치지 않았나 하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선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아크는 그들을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모두 그만 일어나라. 이제 그만 여기서 나가야 할 때다." --------------------------------------------------------------------------------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치 피가 흘러내리는 듯한 붉은 철문에 가로막힌 넓은 공간, 마스튜아라가 흥분에 휩싸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앞으로 4시간... 4시간 후면 위대한 어둠의 제왕님께서 온전하신 형태로 이 땅에 강림하신다! 그때가 되면 누구도 그 분을 막을 수 없다. 설사 신이라도! 어둠에 숨어서 수백년을 기다려 온 암흑 세기가 다시 도래하는 것이다! 크하하하하..." "누구 맘대로!" 그때였다. 갑자기 반대쪽에서 고함과 함께 한 줄기 광선이 어둠을 가로질렀다. 생각지도 못했던 공격에 마스튜아라가 허둥대는 사이, 광선이 허벅지를 관통하고 지나갔다. 마스튜아라가 휘청거리며 한쪽 무릅을 꿇고 광선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네, 네놈들이 어떻게?" 마스튜아라가 당혹성을 터뜨린 건 그다음 이었다. 광장으로 길게 이어진 길을 따라 수백 명의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병사들의 선두에 서 있ㄴ슨 사람들은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레리어트, 티모시, 워머, 바로 7인의 영웅 후예들이었다. 그렇다. 이들은 바로 원정군의 최정예이자 최후의 결사대! 그들을 확인한 마스튜아라가 불신의 빛이 가득한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이곳은 영혼조차 빠져나가지 못한 다는 상념의 미로다. 그런데 어떻게 고작 인간 따위가 불과 8시간 만에..." "이거 왜이래? 길은 네가 가르쳐 줬잔아." "내가? 그게 무슨 당치도 않는....." "뭐, 네가 질질 흘려놓은 단서를 찾은 건 훌륭한 내비게이션 덕분이겠지만." 아크가 빙긋 웃으며 허리에 감겨 있는 버닝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버닝혼이행복한 표정으로 골골거리며 몸을 비벼 댔다. 그렇다. 아크가 이 괴상하고 짜증나는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낸 것은 버닝혼 덕분이었다. 상황을 잠시 되돌려 약 3시간 전, 혼자 끙끙대던 아크가 벌떡 일어나 결사대원들에게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이제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자고 했을 때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는 나가기 싫어서 안나갔냐?" "출구를 찾아낼 방법이 없었으니까 이러고 있는거 아냐?" "....혹시 열 있어요?" 샴바라와 브레드, 레디안, 심지어 레리어트까지 살짝 맛이 간 거 아니냐는 듯한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로코가 아크의 앞을 가로막고 울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크 오빠는 헛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에요! 나가겠다면 나가는 거에요!" 역시 아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로코였다. 그렇다. 아크는 그런 사람이다. 한다면 하는 사나이다. 로코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자 약간 뻘쭘해진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정말 뭔가 방법이 있는 거냐?" "후후후후후." 아크는 대답대신 기분 나쁜 웃음으로 흘렸다. 그리고 허리에 감겨 있는 버닝혼을 향해 소리쳤다. "보닝혼!" 크라라라, 크라라라? 슬슬 머리를 비벼 대던 버닝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아크가 씨익 웃으며 버닝혼에게 말했다. "버닝혼, '스토킹'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져 모든 발자취를 탐색해라!" 크라라라, 크라라라! 버닝혼이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거리며 바닥으로 뛰어 내려갔따. 그리고 마치 냄새를 맡듯이 바닥에서 바짝 머리를 붙이고 혀를 날름댔다. 그러자 잠시 후, 아크의 눈앞에 엄청난 숫자의 발자국이 떠올랐다. "필터링 적용, 마족의 발자국을 지워라!" 아크가 명령을 내리자 바닥에서 사념수의 짐승 발자국이 훅 하고 사라졌다. "필터링 적용, 이방인의 발자국을 지워라!" 이번에는 결사대원들의 발자국이 훅 하고 사라졌다. 그렇게 모든 발자국이 사라지자 길게 이어진 단 하나의 발자국이 남았다. -대상의 발자국의 정보를 검색했습니다. <<구분 : 흑마법사 게열, 성향 : 카오틱 NPC, 이동시간 : 5신 16분 전>> '찾았다, 마스튜아라!' 발자국을 찾아낸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 아크가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이 이것이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결사대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마스튜아라는 당연히 출구를 알고 있을것이다. 그리고 결사대를 피해 도망친 놈이 아무 데나 걸터 앉아 담배나 뻑뻑 피우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놈이 도망친 곳은 겨사대로부터 가장 먼 곳, 그리고 결코 결사대가 찾아 내지 못할 거라곳 ㅐㅇ각하는 출구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놈이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든, 이미 상념의 미로 밖으로 도망쳤든, 놈의 발자취를 쫓아가면 출구가 나온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아크는 자연스럽게 버닝혼의 '스토킹'이 떠올랐다. 이미 '스토킹'을 마스터 수준까지 올린 버닝혼은 이렇게 발견한 발자취를 필터링을 적용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 생겼다. 게다가 초급일 때는 1시간 전의 발자취만 추적할 수 있었지만,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검색 시간이 50%씩 늘어나서 마스터가 된 지금은 6시간 전의 발자취까지 추적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튜아라가 이곳에 들어온 지 5시간이 지났으니 아직 추적할 수 있어. 이곳에는 결사대와 사념수를 제외하면 마스튜아라밖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흑마법사 계열의 카오틱 NPC는 마스튜아라밖에 없다!' 출구를 찾아낼 확실한 방법이 생겼다. 더 이상 이런 곳에서 미적거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모두 일어나라! 이제부터 출구를 향해 진격한다! 버닝혼, 앞장서라!" 그렇게 아크와 결사대는 버닝혼을 앞세우고 마스튜아라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마스튜아라가 길을 가르쳐줫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이곳에서 며칠, 아니 몇 주는 헤맸을 거야,' 아크는 마스튜아라의 발자취를 쫓으며 새삼 상념의 미로가 얼마나 복잡한지 실감했다. 상념의 미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마스튜아라는 당연히 이곳까지 최단 코스로 왔을 것이다. 그런 마스튜아라의 발자취를 쫓아온 결사대가 이곳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 그보다는 이곳까지 오는 길이 그만큼 복잡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도중에 몇 번이나 사념수의 습격을 받아 결사대원의 숫자가 8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버닝혼 덕분에 800명이라도 살아서 상념의 미로를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결사대를 노려보단 마스튜아라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네놈들이 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왓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마 식상하게 '여기까지다.'라는 헛소리를 하려는건 아니겟지?" "......여기까지다." 아크가 도중에 말을 가로채자 마스튜아라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응얼거렸다. 그리고 와락 얼굴을 구기며 벌떡 일어나 ㅅ소리쳤다. "건방진 놈, 네놈에게 진정한 공포가 뭔지를 보여 주겠다!" 그떄였다. 갑자기 마스튜아라의 몸이 붉게 섬광에 휩싸이더니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피부에서 시커먼 점액질 같은 게 뭉클뭉클 흘러나오더니 이내 단단한 각질로 변해 갔다. 그렇게 잠시, 마스튜아라는 머리가 2개 달린 거미 같은 괴물로 변해 버렸다. 아크는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오른건 그 때였다. -보스 어둠의 대주고 '진 . 마스튜아라'가 나타났습니다! ----------------------------------------------------------------- Act 5. 상념의 미로(2) '뭐야? 저 녀석, 그냥 평범한 NPC가 아니었던 거야?' 거대한 거미처럼 변신한 마스튜아라의 모습에 아크는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고양이의 눈'으로 놈의 정보를 확인한 아크의 입가에는 여유 만만한 미소가 번졌다. 마스튜아라의 레벨은 무려 800이나 되었다. 그러나 정예 보스는 아니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아도 정예 보스가 아니라면 800이나 되는 결사대원의 상대가 아니었다. 아크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추어올렸다. "어디 한번 붙어 보지. 800대 1로." 그리고 주먹을 펼치며 마스튜아라에게 향했을 때 였다. 슈슈슈슈, 슈슈슈슈! 동시에 연속적인 파공음과 함께 아크의 등 뒤에서 형형색색의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바로 마법으로 코팅된 수백 발의 화살이었다. 불과 얼음, 전격, 독, 기타 등등의 마법에 고팅된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며 마스튜아라를 향해 쏟아졌따. 아니 쏟아지려는 찰나! "텔레포트!" 고속 영창을 발동시킨 마스튜아라가 엄청난 속도로 주문을 외우자 훅 하고 사라졌다. "......시간을 끌려는 수작인가?" 아크가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순간이동 마법을 난사하는 마법사라면 병력이 많아도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텔레포트'는 '워프'와 달리 이동할수 있는 곳을 지정할 수 있는 마법이라 더 까다로웠다. 그러나 한때 위자드 슬레이어-물론 자칭이다-로 명성을 날리던 아크에게 '텔레포트'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버닝혼, '스토킹'으로 마스튜아라의 위치를 추적해라!" 크라라라, 크라라라! -버닝혼(본문에선 '뱀'으로 표시됨)이 '스토킹'을 사용했습니다. 마나의 자취를 쫓아 '텔레포트'를 사용한 목표물의 이동 방향을 알아냈습니다. <<현재 마나의 흐름 : 6시 방향 100미터 지점>> "뒤쪽이다! 궁수들은 6시 방향, 100미터 지점에 집중사격....." 소리치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마스튜아라가 '텔레포트'로 이동한 장소는 바로 결사대원들이 밀집한 장소였다. 무턱대고 화살을 난사하면 결사대원들이 고슴도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가 네놈의 무덤이라는 사실은 달라질 게 없어. 근처의 병사들은 놈을 둘러싸고 '방패 치기' 로 주문을 캔슬시켜라!" 아크의 명령에 근처의 결사대원들이 마스튜아라에게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때 마스튜아라의 왼쪽에 달린 얼굴이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폭주하라, 마기여! 외쳐라, 악의 종마여! 데빌 익스플로전!" 순간 마스튜아라의 머리 위로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검은 구체에서 수십 줄기의 검은 쇠사슬이 폯하되어 주변에서 달려드는 모든 결사대원들을 옭아맸다. 동시에 검은 구체가 폭발하자 결사대원들을 휘감은 쇠사슬들도 연달아 폭발하며 강력한 데미지를 주었다. 일격에 마스튜아라의 주변 20미터 내의 결사대원들이 치명상을 입고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다른 결사대원들이 달려들자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주문을 외우고 있던 오른쪽 머리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크크크크, 텔레포트!" "맙소사, 이게뭐야?" 아크는 마스튜아라의 전투 방식에 입을 쩍 벌렸다. 마음먹은 대로 몇백 미터의 거리를 공간 이동 해버리는 '텔레포트'는 확실히 귀찮은 주문이지만, 사실 전투용으로 사용 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텔레포트'의 영창 시간 때문이었다. '텔레포트'는 주문을 외우는 데만 무려 1분이나 소모되는 마법인 것이다. 고속 영창을 사용한다 해도 30~40초, 전장에서 30~40초 동안 웅얼웅얼 주문이나 외우고 있으면 맞아 죽기 딱 좋은 것이다. 게다가 '텔레포트'는 어쨌든 공격마법도 아니었다. 30~40초 동안 주문을 외워 봐야 몇백 미터의 거리를 공간 이동 하는게 전부인 것이다. 때문에 '텔레포트'는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전투가 시작 될 때 발동시켜 적과의 거리를 벌려 놓고 강력한 마법 주문을 외우는 용도로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스튜아라는 2개의 머리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버렸다. '텔레포트'로 공간 이동을 하며 다른 머리로는 '데빌 익스플로전'이라는 마법을 외운다. 그리고 '데빌 익스플로전' 으로 주변에서 몰려드는 결사대원들에게 데미지와 함께 움직임을 봉쇄시켜 놓고, 그동안 다른 머리로는 외우고 있던 주문을 발동시켜 다른 결사대원들이 몰려오기 전에 다시 '텔레포트'를 해버리는 것이다. 그 간격은 불과 10여 초. 그 시간으로는 '데빌 익스플로전'에 걸린 병사들이 장애물이 되어 다른 병사들은 마스튜아라에게 접근 할 수 조차 없었다. 2개의 머리로 '텔레포트'와 '데빌 익스플로전'을 번갈아 외우며 두 마법의 영창 시간을 벌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젠장, 이런 식이면 버닝혼으로 놈이 나타날 위치를 알아내도 손을 쓸 수 가 없어!" '데빌 익스플로전'의 공격 범위는 대략 20미터. '데빌 익스플로전'에 걸리지 않고 공격할 방법은 화살이나 마법뿐이었다. 그러나 마스튜아라가 '텔레포트'를 사용해 병사들이 밀집한 곳으로 이동하면 화살이나 마법을 난사할 수가 없었다. 근거리 공격은 ' 데빌 익스플로전'에 봉쇄 되고, 원거리 공격은 '텔레포트'에 봉쇄된 셈이다. "크하하하, 하찮은 놈들! 데빌 익스플로전!" 콰콰콰쾅, 콰콰콰쾅! 마스튜아라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결사대원들 사이를 누비며 '데빌 익스플로전'을 폭발시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데빌 익스플로전'은 일격에 결사대원들을 즉사시킬 정도로 강력한 마법은 아니었다. 또한 마스튜아라의 속성은 마법사라 전사들에게 둘러싸여 '방패 치기' 세례라도 받으면 ㅂ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한번 '데빌 익스플로전'을 사용하고 곧바로 '텔레포트'로 도망가 결사대원들은 금세 회복 마법을 받을 수 있었다. 떄문에 수차례에 걸친 공격에도 아직 전사자는 없었지만.... '놈의 목적은 결사대원들을 죽이는게 아니다. 시간을 끌려는거야' 그렇다. 마스튜아라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결사대원과 싸울 이유는 없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는 이제 불과 2시간 40분. 이곳에서 2시간 40분만 결사대원의 발을 묶어 두면 어둠의 제왕이 부활, 이 세계는 단숨에 어둠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그렇게 될 확률이 많았다. '하지만 저놈이 결사대원들 사이로 '텔레포트'를 하면 막을 방법이 없어.'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며 다시 결사대원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마스튜아라를 노려보았다. 비록 방법 자체는 심플하지만 꽤나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가만? 놈은 결사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 떠올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회복의 노래'를 불러대는 로코에게 소리쳤다. "로코, 바로 그거다!" "그거?" "란셀 마을에서 쥬르를 엿 먹였던 스킬!" "아!" 아크의 목소리에로코가 눈을 반짝였따.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하프를 뜯어 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800여 명에 불과 했던 결사대원이 갑자기 수천명으로 불어나 광장을 꽉 채웠다. 그렇다. 과거 란셀 마을을 습격했던 쥬르와 도적단을 헤매게 만들었던 '환상 소나타'. 실제와 똑같은 신기루를 만들어 내는 유령 음유시간 멜로디안의 비기였다. "크하하하, '데빌 익스플로전' !" 그때 마스튜아라가 또다시 결사대원들이 밀집된 지역에서 나타나며 '데빅 익스플로전'을 발동 시켰다. 동시에 놈의 머리 위로 검은 구체가 떠올라 사방으로 쇠사슬을 뿜어냈다. 그러나 쇠사슬은 결사대원들의 몸을 그냥 관통하며 바닥에 쑤셔 박혔다. 환상으로 만들어진 결사대원들이었던 것이다. "음, 뭐, 뭐냐?" "후후후, 뭐긴 뭐냐? 딱 걸린 거지." 아크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동시에 잔뜩 시위를 당기고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헉! 테, 텔레.... 쿠와아아아악!" 마스튜아라가 황급히 텔레포트를 발동시켰지만 화살이 약간 빨랐다. 마스튜아라는 마치 고슴도치처럼 100여 발의 화살이 박힌 뒤에야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꽝이다. 멍청한 거미 새끼야. 발사!" 슈슈슈슈, 슈슈슈슈! 마스튜아라가 서둘로 공간 이동을 한 장소 역시 '환상 소나타'로 만들어진 신기로 결사대원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다. 이번에는 버닝혼의 '스토킹'으로 미리 마스튜아라가 이동할 장소에 예측 사격을 퍼부어 댄 덕에 마스튜아라는 또다시 수백 발의 화살에 맞아버렸다. 그렇게 연달아 화살 세례를 받자 마스튜아라의 생명력이 단숨에 70%나 날아가 버렸다. 일반 보스가, 그것도 화살에 약한 마법사 계열의 마스튜아라가 무방비 상태로 수백 발의 화살을 맞앗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크으으으, 이, 이놈.... 감히 이따위 속임수를 쓰다니..." 수백 발의 화살에 꿰어 더욱 흉측해진 마스튜아라가 이를 갈아 붙였다. 그러나 아크는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웬만하면 전술이라고 불러주지, 거미 양반?" "네놈..... 내가 이렇게 당하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크와아아아아아, 나와라!" 그떄 마스튜아라가 거칠게 몸을 흔들어 대며 소리쳤다. 그러자 갑자기 거미로 변신한 마스튜아라의 등 부분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수천 마리에 달하는 주먹만 한 거미들이 하늘로 뿜어져 올라갔다. 그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결사대원들 위로 쏟아졌다. 마스튜아라의 의도는 명확했다. 거미들이 그냥 통과하는 결사대원들은 환상, 거미를 공격하는 결사대원들은 진짜. 거미들로 진짜 결사대원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알아내 '텔레포트'를 하려는 것이다. "뭐야? 젠장, 나는 또 뭔가 괴상한 수작이라도 부리려는줄 알고 놀랐잔아." 마스튜아라의 괴성에 움찔하던 아크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샴바라와 브레드 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멍청아,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래, 거미들이 떨어지면 환상이 몽땅 탄로 난다고." 그러나 아크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단숨에 뿜어내며 소리쳤다. "오랜만이군. 고양이의 기백!" 냐아아아아 ㅡ ! 순간 아크의 머리 위에서 검은 고양이의 형체가 떠올랐다. 그리고 황금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터뜨리자 새까맣게 쏟아지던 거미들이 그대로 딱딱하게 굳으며 맥없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아크가 초보 시절에 배운, 일격에 주변의 모든 소형 몬스터를 마비시켜 버리는 '고양이의 기백'의 위력이었다. "이, 이건 사기야!" "네가 할 말이냐? 일제사격!" 슈슈슈슈, 슈슈슈슈! 다시 엄청난 화살이 마스튜아라를 향해 빗발쳤다. "크윽, 텔레포트!" 그러자 마스튜아라가 준비해 놓았던 '텔레포트'를 발동시키며 훅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광장 외각의 신기루 결사대원들 틈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번에는 마스튜아라도 신기루라는 걸 짐작한 듯 '데빌 익스플로전'을 사용하지 않았다. 엉덩이에서 굵은 거미줄을 뿜어 광장 밖의 미로를 휘감으며 몸을 날렸다. 상황이 불리함을 깨닫고 미로속으로 도망치려는 것이다. "흥, 웃기지 마!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관통하는 화살!" 그때 티모시가 바닥을 차고 뛰어오르며 광속의 화살을 날렸다. 순간 한 줄기의 섬광이 번뜩이며 날아가 정확히 마스튜아라의 거미줄을 끊어 버렸다. 덕분에 거미줄에 몸을 싣고 날아가던 사스튜아라는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지금이다. 궁수와 마법사, 총공격!" 뒤이어 결사대원들 틈에서 수백 발의 마법과 화살이 폭사되었다. "크으으으... 부, 분하다. 하지만... 네놈들은 결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곳이 네놈들의... 무덤이다. 크크크크. 크하하하, 크아아아악!" 역시 보스답게 마지막까지 재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히죽 거리던 마스튜아라는 폭염과 화살에 휩싸여 비명과 함꼐 쓰러져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허접한 자식!"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에 아크가 한심스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인원수가 많다고 하지만 명색이 어둠의 교단 대주교라고 불리던 보스인데 고작 레벨 1업 이라니? 게다가 경험치가 80% 이상 올라간 상태였으니 실제로는 20%정도밖에 못 얻은 셈이다. 아마도 레벨업조차 못 한 결사대원들이 부지기수이리라. 정예 보스도아니었으니 할 수 없지만 그 정도 경험치밖에 안 주는 놈을 상대로 1시간이나 싸웠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젠장, 떨구는 전리품도 허접하기 짝이 없군." 뒤이어 전리품을 확인한 아크의 얼굴이 더욱 불쾌하게 변했다. -어둠의 교단 성서 <<어둠의 제왕과 어둠의 교단에 얽힌 역사와 비밀이 적힌 책입니다.>> -어둠의 교단 지팡이(레어) 무기 타입 : 지팡이 공격력 : 30~38 내구력 : 55/90 무게 : 50 사용 제한 : 레벨 350 이상 카오틱 흑마법사 어둠의 교단 대사제 마스튜아라가 사용하던 지팡이입니다. 본래 어둠의 교단 대사제의 지팡이는 어둠의 세력이 세상을 장학하고 있을 때 엄청난 마력을 집중해서 만든 지팡이였습니다. 지팡이의 마력은 지옥의 마왕 가운데 하나를 소환해 어둠의 교단 대사제를 강력한 마족으로 변화시킨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이 몰락하고 어둠의 교단이 대륙의 전사들에게 멸망할 때 분실되었습니다. 이 지팡이는 당시 분실된 지팡이의 모조품에 불과합니다. <<옵션 : 정신력 +10, 지능 +40, 마나 +200, 흑마법사 스킬 위력 +10%>> <<특수 옵션 : 흑마법사 전용 스킬 '죽음의 각인' 효과가 적용 됩니다. '죽음의 각인' 은 흑마법사가 사용하는 모든 저주 마법에 1% 확률로 즉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어둠의 교단 성서' 는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책이었다. 그리고 '어둠의 교단 지팡이'는 그럭저럭 쓸 만 했지만 능력치는 레벨 250~300대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레어 지팡이보다 못했다. 그건 지팡이가 레벨 제한 350에 카오틱 흑마법사 전용이니 제값에 팔릴 리가 없었다. '뭐, 전리품 따위야 중요한 게 아니지만....'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갑자기 바닥이 크게 진동하더니(본문엔 진동하다니 로 표시됨>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의 잔여시간이 깜빡이는 경고 메시지 아래로 새로운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차원 결계를 유지하던 마력 매개체가 사라져 상념의 미로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상념으 미로 붕괴 시간 : 59분>> "이곳이 붕괴된다고?" "아크, 저길 봐라!" 그떄 광장 외곽에서 정의남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거대한 3차원 미로가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당황하지 않았따. 당황할 필요가없었다. 결사대원은 이미 출구에 도착했다. 그러나 수문장 역활을 하던 마스튜아라까지 처리했다. 붕괴까지는 앞으로 59분. 출구를 막고 있는 문을 열고 나가기에는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제 걱정해야 할 일은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는게 아니라, 탈출한 뒤의 일이다. '이 문을 여는 순간 최후의 결전이 시작된다.' 그렇다. 어둠의 제왕은 아직 부활하지 않았지만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이 문 너머에는 붉은 남자와 마족들이 모여있으리라. 반면 남은 결사대원은 800여 명. 이곳이 적진 중신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800명 이라는 병력은 결코 넉넉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원군을 기대할 수 없으니 좋든 실든 이 병력으로 결판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컨디션이라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이미 출구를 확보했으니 동요할 필요 없다. 상념의 미로를 나가면 바로 전투가 시작될 가능성이 많다. 아마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 모두 이곳에서 생명력과 마나를 100% 상태로 회복한 뒤에 탈출한다." 결사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에 적당히 흩어져 앉았다. 그리고 최후의 결전에 대비해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하는 한편, 각종 버프로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놓고, 전사는 힘이나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마법사는 마력으라 증폭시키는 특수 아이템을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방을 재정리 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나도 이제 슬슬 준비해 놔야겠군" 결사대원들을 지켜보던 아크가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아크는 아직 상념의 출구를 나가면 어떤 적을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딱 하나 확신할 수 있는 적이 있었다. '붉은 남자!' 그렇다.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인 붉은 남자! 이미 스탄달에서 한번 전투를 치러 본 아크는 붉은 남자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었다. 물론 당시 레벨은 300이었다. 그 뒤로 마족전쟁과 나가란 수호 전투를 거치며 미칠듯한 광렙으로 레벨 497이 되었고, 2차 전직을 한 덕에 직업 전용 스킬도 업그레이드되었다. 실제 전투 센스 역시 그떄보다 훨씬 숙달되었다. 그럼에도 아크는 붉은 남자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만큼 당시 붉은 남자가 보여 주었던 전투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놈에 대한 데이터도 없었고, 정신이 없는 전투 상황이라 제대로 마음의 준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에는 결코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겠어.' 사실 아크는 콰리안으로 출발했을 떄 부터 그 순간에 대비해 나름 대책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마음속으로 최상으 대응책을 결정해 둔 상태였다. '가능하면 이런 방법은 두번 다시 쓰고 싶지 않지만.... 그게최선이다.' 한숨을 불어내던 아크가 이내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큐리오를 바라보았다. "큐리오, 따라와라." "뭐? 왜?" "잔말 말고 따라와!" 아크가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말하자 큐리오가 지레 겁먹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크는 가차 없이 큐리오의 날갯죽지를 틀어쥐고 광장 구석으로 끌고 갔다. "어? 어? 어? 내가 왜?" 덕분에 큐리오는 난데없이 상급생에게 잡혀 화장실로 끌려가는 신입생 같은 얼굴이 되어 버렸지만.... "키키키키, 진작 말하지 그랬어, 주인. 이런 일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젠장, 적당히 좀 하지, 헉헉헉, 아예 눈앞이 하얖자나..... 헉헉헉!" 잠시 후 잔뜩 겁에 질려 끌려갔던 큐리오는 불과 몇십분 만에 피둥피둥 살이 올라 있었다. 오히려 하얖게 질린 채 비틀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아크였다. "아크 님!" "아크 오빠!" 아크의 몰골에 레리어트와 로코가 동시에 깜짝 놀라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리고 상대박의 목소리에 움찔하더니이내 서로를 바라보며 눈싸움-사실 로코가 일방적으로 노려보는 거지만-을 시작했다. 둘의 분위기에 아크가 얼른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야. 그보다 모두 정비는 끝났나?" "최상의 상태로 셋팅을 맞쳤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나가자.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라." "네. 출발이다!" "우오오오오오!" 결사대원들이 우렁찬 함성을 터뜨리며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수리'를 마친 검이 예리한 빛을 뿜어내고, 구겨젔던 방패와 갑옷이 제 형태를 되찾았다.그러나 장비품보다 날카로운 빛을 뿜어내는 것은 결사대원들의 눈빛! 수많은 수라장을 헤치고 마침내 이곳까지 도달한 800여 명의 결사대원들의 눈빛이었다. 이제 이들은 뉴 월드를 구하기 위해 원흉을 쓰러뜨리고 오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하기 위해 작지만 큰 한걸음을...... "어라?" 그때 철문으로 다가섰던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철문을 열기위해 손을 가져가자 붉은 기운이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스파크가 튀었다. 동시에 짜릿한 통증과 함께 순이 뒤러 튕겨지며 눈앞에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 미지의 기운에 의해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데미지 500!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하던 아크가 문 앞에서 허둥대자 결사대원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혹시 뭔가 문제라도 생긴건가?" "어이, 농담하지 말라고. 이제 이 공간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30분도 안남았어. 이제와서 문제라니?" 결사대원들이 동요하자 정의남과 영웅의 후예들이 몰려들었다. "아크, 무슨 일이냐?" "이게 .... 열리지 않아요" "열리지 않는다니? 무슨 말이야? 마스튜아라도 죽였잖아." "젇 그래서 문제없다고 생각했는데... 손을 댈 수 조차 없어요." 아크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결사대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놈은 마스튜아라! 때문에 아크는 마스튜아라를 해치운 시점에서 이미 상념의 미로에서의 문제는 해결 됬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출구까지 눈앞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념의 미로가 붕괴 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할 여유는 그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나가려니 철문을 열기는 커녕 손을 댈 수 조차 없었다. "설마 뭔가 열쇠가 필요한 건가?" "아니...열쇠를 넣을 곳조차 없어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던 아크의 머릿속에 문득 마스튜아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내가 죽어도 네놈들은 결코 상념의 미로를 빠져나갈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냥 죽는 놈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철문이 열리지 않자 그 말이 더 이상한 헛소리라 생각되지 않았다. '이 문을 절대 열 수 없을 거라는 의미였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아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돼. 이 문은 틀림없이 상념의 미로를 탈출할 유일한 출구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마스튜아라가 이문을 지키고 있을 이유도 없어. 그리고 출구라면 당연히 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들어갈 방법이 있다면 나갈 방법도 있다. 그게 뉴 월드의 규칙이다. 붉은 남자라도 뉴 월드 속에서 뉴 월드의 규칙을 무시할 수는 없어!' 그건 이미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에서 증명되었다. 원정군의 집중 공격에도 끄떡없던 방어막을 보고 아크는 붉은 남자가 뉴 월드의 규칙을 무시하는 일종의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몇 가지 고대 비술을 섞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말은 붉은 남자가 뉴 월드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활용할 수는 있을지언정, 뉴 월드의 기본 설정을 뛰어넘는 권능을 가지지는 못했다는 의명ㅆ다. '그래, 이 문도 방어막과 마찬가지다. 뉴 월드의 설정상 무적의 방어막이 존재할 수 없는 것 처럼 '절대로 열수 없는 문'도 존재 할 수 없어. 열 방법이 있으니 '문'이 존재하는 거야. 때문에 마스튜아라도 목숨을 걸고 싸워 시간을 번 거야.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비켜 봐!" 아크가 뇌 기능을 풀가동시키며 바업을 찾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브레드가 대검을 휘드르며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열리지 않으면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성문파괴'!" 콰콰콰쾅! 철문과 대검이 충돌하자 폭음이 터져 나왔다. 전사 계열의 유저가 대검을 들고 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성문 파괴'! 성문을 공격할 때 200~500%의 추가 데미지를 입히는 공성용 스킬이었다. 그러나 브레드의 대검이 철문을 후려치자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대검이 후려친 부분의 붉은 기운이 안쪽으로 쑥 들어 가는듯 하더니 고무공처럼 다시 튕겨저 나왔다. 동시에 철문을 뒤덮고 있는 붉은 기운이 일제히 날카로운 송곳처럼 변해 결사대를 향해 폭사되었다. 슈슈슈슉, 슈슈슈슉! "헉! 이, 이게뭐야?" "함정이다! 모두 방어태세!" 철문 근처에 모여있던 결사대원들이 비명을 터뜨리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채 방어 태세로전환하기 전에 붉은 송곳이 결사대원들의 몸을 꿰뚫었다. 붉은 송곳이 관통하자 중장비를 걸친 전사들 조차도 생명력이 20~30%씩 쭉쭉 빨려 나갔다. 다행히 직전에 생명력을 100%상태로 회복시켜 놔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전사 수백명이 허망하게 철문에 맞아 전사할 뻔 한 것이다. ㅋ"어, 이, 이게 아닌데...." "이 멍청아, 생각 좀 하고 움직여! 네가 개냐? 모르는게 있으면 일단 물고 보게?" 바닥을 구르던 레디안이 울컥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브레드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브레드가 머리를 긁적이며 죽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럼 어떻게 해? 시간은 없지, 문은 안 열리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두들겨 대는 게 정상이냐?" "잠깐!" 그때 아크가 손을 들어 레디안과 브레드의 말싸움을 제지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브레드가 한 짓이 삼질은 아니었나 보다." "무슨말이야?" "....이걸봐." 아크가 철문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사실 그 부분은 아크가 한번 살펴봤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렇다 할 뭔가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방금전 브레드의 공격에 붉은 기운이 반응하면서 수십개의 송곳을 뿜어낼 떄 다른 부분의 붉은 기운이 옅어지며 실제 철문의 형태가 좀 더 정확하게 보였다. 그때 아크가 가리킨 부분에서 기이한 문자가 새겨진 철판을 발견한 것이다. 붉은 기운에 감춰져 잇던 한 장의 철판! '....이거다!' 아크는 그게 이 철문을 열 방법과 연관 있음을 직감했다. 아크의 설명에 정의남이나 다른 영웅의 후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후후후, 봤지? 봤지? 이 몸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는거야." 그러자 브레드가 함껏 가슴을 부풀리며 우쭐댔다. 그러나 문제는 철판이 다시 붉은 기운데 뒤덮여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금 전 브레드가 철문을 공격했을때 붉은 기운이 송곳으로 변하며 다른 부분의 붉은 기운은 옅어졌다. 철문을 뒤덥고 있는 붉은 기운은 용량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야. 다시 말해 방금 전보다 더 강한 공격을 가해 더 많은 송곳을 만들도록 유도하면 철판의 근처 붉은 기운을 잠깐이라도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일이라면 내게 맡겨라! 아자, '성문파괴!' 상황을 전해들은 브레드가 망설임 없이 대검을 휘둘러 철문을 후려첬다. 역시나 충격이 가해지자 철문을 휘감은 붉은 기운이 또다시 송곳으로 변해 폭사되었다. 동시에 붉은 기운이 옅어지며 철문 아랫부분에서 철판이 드러났다. 그러나 아직 철판의 앞에는 붉은 기운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송곳은 철문 앞에 있는 브레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때 레이어트와 레디안이 동시에 소리쳤다. "순결한 방패!" "엘리멘틀 실드!" 콰콰콰콰, 콰콰콰콰! 붉은 기운과 두 장의 실드가 충돌하면서 파열음을 일으켰다. 순간 브레드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실드 위로 몸을 날리며 대검을 내리쳤다. "자, 다시한 번 간다. '성문 파괴!'!" 연속적으로 충격이 가해지자 철문에서 또다시 수십 발의 송곳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앞서 방출된 송곳이 회수하기도 전에 또다시 뿜어낸 송곳! 허용한계를 넘어서는 송곳을 뿜어낸 탓인지 송곳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붉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며 철판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건 이전의 송곳이 회수 되기전까지 불과 영점 몇초에 불과하리라! "지금이다! '도약' !" 뒤로 물러나 있던 아크는 '도약'을 발동시켜 철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아크가철문 앞, 붉은 송곳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서자 눈 깜빡할 사이에 여기저기에서 피가 튀며 생명력이 40%가 넘게 빨려 나갔다. 그러나 데미지 따위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아크는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다크댄싱' 을 펼치며 철판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막 철판이 다시 붉은 기운에 뒤덮이려는 찰나에 슬라이딩을 하며 손을 뻗었다. '성공이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철판의 차가운 감촉!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 위대한 창조주, 운명의 어머니.... 자신의 생명을 깎아 생명을 창조한 그녀를 기억하라. 그녀의 희생 덕분에 세상이 창조됐지만, 세상을 멸할 암흑신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오직 그녀만이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빈 틈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다. -'진실의 문'을 발견했습니다. 고대 유물에 대한 지식으로 숨겨진 정보를 밝혀냈습니다. 당신은 상념의 미로속에서 유일한 탈출구인 '진실의 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의 문'은 강력한 마법과 저주의 힘으로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절대 열리 않는 그 강력한 마법 결계는 암흑신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암흑신 조차도 단 하나, 바로 뉴 월드에 생명력을 불어 넣은 위대한 운명의 어머니라는 존재만큼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운명의 어머니의 이름이 진실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고대 유물 '진실의 문'의 정보를 습득한 보너스 <<고대 유물의 지식 +40, 지능이 15, 명성이 100 상승했습니다.>> 파지지지직! 뒤이어 곧바로 철판이 붉은 기우네 뒤덮여 아크는 튕겨저 날아갔다. 아크가 주르륵 밀려 나자 물러나있던 정의남과 영웅의 후예들이 몰려들며 물었다. "아크, 뭔가 알아냈냐?" "네. 이제 대강 어떠헥 해야 할지 알았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철판에 적힌 글귀만으로는 어떻게 해야 철문을 열 수있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직후 떠올랐던 정보창을 확인하자 대강 감이 잡혔다. 철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운명의 어머니라는 창조주의 이름이다. 그 말은 창조주 이름이 곧 철문을 열 수있는 새프워드라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답을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은...' "레리어트님, 혹시 운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창조주의 이름을 아십니까?" 그렇다, 레리어트! 새삼스럽지만 레리어트의 직업은 성직자 계열이었다. 그리고 이노센스 나이트-현재는 세인트 나이트-는 신앙심에 따라 능력치가 올라간느 직업이라, 신학 관련 서적을 읽으면 정신력과 지능 스탯에 보너스가 적용되었다. 때문에 스탄달에 떠오른 뒤로 레리어트는 몇번이나 대성당의 지하 서고를 들락거리며 엄청난 양의 신학 서적을 읽었다. 스탄달 출현 직후 그녀가 한동안 활동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그만한 독서 양이라면 창조주의 이름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네? 운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창조주의 이름?" 그러나 기대와 달리 리어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힞 ㅔ가 읽었떤 신학 서적에 운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창조주의 대한 언급은 굉장히 많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창조주의 대해 자세히 나와있는 책은 없었어요. 심지어 그 창조주의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적힌 '위대한 신들의 영광'이라는 서적에도 정작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소리야?' 레리어트의 말에 아크는 혼란스러웠다. 새삼스럽지만 셀리브리드의 대성당에는 이 세계의 모든 성서가 망라되어 있었다. 그런 성서를 거의다 읽어 본 레리어트조차 그 창조주의 이름을 모른다니? '성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 창조주의 이름을 대체 어떻게...가만?' 그때 아크의 머릿속에 방금 전에 주워 먹은 서적이 떠올랐다. 바로 '어둠의 교단 성서'! '그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빛 쪽의 성서에 세계의 어머니에 대한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면 뭔가 그만한 이유가 있을거야. 암흑신의 정신 세계를 탈출한 열쇠라면 그 창조주도 결국에는 암흑신과 한 통속이 되어 버렸거나.... 뭐, 그래도 교단에서도 그녀의 업적을 칭송하면서도 이름을 삭제시켜 놨을 가능성이 있어, 그렇다면 오히려 어둠의 교단 성서에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을 가능성이 많다!' 아크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건 그동안의 경험 떄문이었다. 보통 뉴 월드에서 풀리지 않은 수수께기의 해답은 항상 근처에 있었다. 상념의 미로도 결국은 던전, 이곳을 빠져나갈 열쇠의 해답은 분명 여기에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소둘러 '어둠의 교단 성서'를 꺼내 읽어보았다. '.....없어!' 그러나 아크의 예상은 반은 정답이고, 반은 오답이었다. 짐작대로라고 해야 할까? 예상대로 '어둠의 교단 성서'에도 세계의 어머니라는 존재가 몇 번이나 언급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성당의 성서처럼 정작 그녀의 이름은 나와있지 않았따. "지케이드, 엘리아나, 카셀리안....!" 다급해진 아크는 혹시나 해서 어둠의 교단 성서에서 몇 가지 의심되는 단어-세계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한 신의 이름-를 소리쳐 봤지만 철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크, 이제 20분도 남지 않았따!" 그때 뒤쪽에서 정의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따.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암흑 공간이 둥둥 떠 있는 3차원 미로의 붕괴가 점차 가속되고 있었다. 쩍쩍 균열이 번지며 갈라지는 미로의 파편은 기괴한 형태의 문양이 소용돌이 치는 곳으로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제 잠시 후면 결사대원들이 모여 있는 광장도 잘게 부서져 암흑 공간에 삼켜저 버리고 말리라.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허망하게....' 아크가 절망감에 휩싸여 신음을 흘릴 때였다. 문득 착시 현상을 일으킬 것처럼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는 공간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어두운 공간 여기저기서 둥둥 떠다니는 메모리 크리스털! 정확히 말하자면 그걸 발견한 건 지금이 아니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쏙 보아 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갑자기 이런 미로에 갇힌 데다, ㅏ쉬지 않고 사념수들의 습격을 받은 상황에서 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 했던 메모리크리스털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에서 그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상념의 미로에 처음 들어왔을때 봤던 정보창에 적혀 있던 글귀가 떠올랐다. -만약 당신이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고자 한다면 먼저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실을 알아내야 합니다. '암흑신의 정신세게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실!' 상념의 미로가 암흑신의 정신세계라면 떠다니는 메모리 크리스털은 암흑신의 기억. 그리고 철판에는 문을 열 패스워드는 암흑신조차 부정할 수 없는 존재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어머니라는 존재의 이름은 암흑신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닌가? '뉴월드에서 해답의 힌트는 언제나 문제 근처에 있다.' 그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힌트는 마스튜아라가 흘린 '어둠의 교단 성서'가 아닌 던전 자체였따.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는 '어둠의 교단 성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버닝혼,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해라!" 동시에 버닝혼이 불길에 휩싸이며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했다. 아크가 갑자기 버닝혼을 변신시키자 정의남 들이 뒤로 물러나며 물었다. "뭐야? 왜 그래?" "설명할 시간 없어요!" 아크는 다짜고짜 버닝혼의 등에 올라 날아올랐다. 새삼스럽지만 상념의 미로가 3차원 미로라 해도 버닝혼을 이용해 날아다니면 메모리 크리스털을 확인하는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스튜아라를 해치우고 모든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해 40분을 지체한 뒤에야 철문에 패스워드가 걸려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가량. 그동안 얼마나 많은 메모리크리스털을 확인할 수 있을지 그리고 확인한 메모리 크리스털에서 원하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 보는 데까지 해 볼 수밖에 없어. 버닝혼, 최대 속도로 날아라!" 크라라라, 크라라라! 버닝혼이 불길을 뿜어내며 질풍처럼 어둠을 갈랐다. 그렇게 몇 분, 붕괴하는 3차원 미로 상공에 떠다니는 첫번째 메모리 크리스털을 찾아냈다. 그리고 아크가 빠르게 거리를 좁혀 메모리 크리스털을 움켜쥐려 할 때 였다. -크와아아아아! 순간 메모리 크리스털 주위가 일렁이더니 사념수 세 마리가 괴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미로에서 수없이 마주친 사념수들과 달리 날개가 달린 거대한 사념수들이었다.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서 상념의 미로 정보창에 적혀 있던 구절이 떠올랐다. -암흑신의 상념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허락받지 못한 침입자가 정신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젠장, 그게 이런 뜻이었나?' 아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진즉에 메모리 크리스털에 접근할 때 사념수들이 나타난 사실을 알았다면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하고 미리 메모리 크리스털을 확인하며 진군했으리라. 뭐, 그거야 이미 후회해 봐야 늦은 일이니 그렇다 치고, 지금 문제는 사념수가 정예 마족이라는 점이었다. 아크가 아무리 레벨 497의 강자라도 세 마리의 사념수를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아니, 혼자 상대할 수 있어도 지금은 사념수와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버닝혼, 우측으로 선회하라!" 버닝혼이 급격히 몸을 회전시켜 사념수들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그러자 사념수들이 한데 뭉쳐 버닝혼의 옆구리를 노리고 돌진해 왔다. 순간 아크는 선두에서 달려드는 사념수의 발톱을 '쳐 내기'로 막아 내고 '카운터 어택'을 연결시키며 소리쳤다. "화격!" 쿵, 쿠쿠쿠쿵! 그러자 선두의 사념수가 확 밀려나며 뒤따르던 사념수들과 충돌했따. 비행형 마족이 한번 중심을 잃으면 다시 부력을 회복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걸린다. 아크는 충돌한 사념수들이 허우적 거리는 틈을 이용해 메모리 크리스털을 와락 움켜쥐었따.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노이즈 같은 게 번지더니 흐릿한 영상이 떠올랐다. '.....어라? 이게뭐지?' 그러나 아크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당혹성이었다. 이곳은 암흑신이라는 존재의 정신세계. 당연히 이곳에 떠다니는메모리 크리스털은 암흑신의 기억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당연히 무슨 지옥이나 창세기에 대한 기억따위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떠오른 영상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지옥ㅇ이나 창세는 커녕, 뉴 월드의 영상 조차 아니었다. '여기는 설마...현실?' 그렇다. 메모리 크리스털에 담긴 기억은 놀랍게도 현실 세계의 영상이었다. 아크가 곧바로 현실임을 알아본 이유는 눈앞에 떠오른 영상의 배경이 너무나 눈에 익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하얀 벽에 하얀 침대,그리고 수많은 튜브가 연결된 기계에서 규칙적으로 흘러나오는 신호음, 오래전 아크가 수없이 드나들었던 병원 중환자실의 풍경이었따. '....어떻게 이런 곳에 떠다니는 메모리 크리스털에 현실의 영상이 담겨 있는거지?' 혼란스러워하는 아크의 눈앞에 침대에 앉은 한 여자가 떠올랐다. 중환자실이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여자는 병새이 완연해 보였다. 수술때문에 삭발한 머리를 숨기려는 것인지 모자를 눌러 쓰고, 바짝 마른 얼굴에입술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의학 지식이 전무한 아크조차 한눈에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앉아서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치열한 무언가가 느껴젔다. 그때 갑자기 아크의 머릿속에 분노에 가득찬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빌어먹을, 빌어먹을! 동시에 영상이 거칠게 흔들리다가 팍 꺼져 버렸다. 뒤이어 아크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고대 유물에 대한 지식으로 '암흑신의 기억'에 숨겨진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고대 유물의 지식 +10, 지능10, 운5, 명성이 50 상승했습니다>> "뭐야, 이게 전부? 대체 이게 뭐야? 이게 암흑신의 기억이라고?" 메모리 크리스털의 영상은 오히려 아크를 더욱 복잡한 미궁 속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그런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떠다니는 메모리 크리스털에 대체 왜 현실 세계의 영상이 담겨 있단 말인가?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크와아아아아! 그때 뒤에서 밀려 났던 사념수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젠장,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버닝혼, 마법검이다." 아크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버닝혼을 선회시켰다. 그리고 버닝혼이입에서 마법검을 뱉어 내는것과 동시에 소리쳤다. "받아랏! 블레스트 템페스트!" 콰쾅, 콰콰콰콰콰! 마법검이 입 앞에서 폭발을 일으키자 마치 버닝혼이 브레스를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사념수들은 수천 조각으로 부서진 칼날의 회오리에 휘말리더니 다시 수 미터나 밀려났다. "버닝혼, 다음 크리스털로 이동해라!" 그사이에 아크는 버닝혼을 몰아 다른 메모리 크리스털을 향해 날아갔다. 첫 번째 메모리 크리스털로 확인한 영상이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아직 아크는 상념의 미로를 탈출할 패스워드가 메모리 크리스털에 숨겨저 있을거라 확인했다. 메모리 크리스털이 중요하지 않다면 사념수가 왜 지키고 있겠는가!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16분 남짓, 메모리 크리스털 이외에는 달리 찾아볼 여유가 없었다. 메모리 크리스털이 정답이 아니라면 남은건 죽음뿐! "다크 스트라이크! 화격! 블러드 템페스트!" 아크는 점차 불어나는 사념수들을 따돌리며 쉬지 않고 메모리 크리스털을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그 뒤로 3~4개의 메모리 크리스털을 확인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중환자실에 앉아 있던 여자가 유채 꽃밭에서 밝에 웃는 영상, 진료실에서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듣고-분위기를 보니 이때 병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았다.-눈물을 흘리는 영상, 어떤 영상은 한참 동안 새로 만들어진 무덤만-결국 그녀가 죽은걸까?-나오다가 사라졌다. 손에 잡히는 대로 확인하다 보니 영상의 사간대가 뒤죽박죽 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 속에서 운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창조주와 관련된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아크가 메모리 크리스털을 확인하는 사이, 상념의 미로는 거의 90%가 붕괴 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6~8분 가량 . 그떄까지 알아 내지 못하면 결사대원은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먹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빌어먹을, 대체 뭐야? 말하고 싶은 게 뭐냐고?" -크와아아아아아! 궁지에 몰린 아크가 버럭 소리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였다. 그때 수십 마리로 늘어난 사념수들이 코앞까지 밀려들며 괴성을 터뜨렸다. "헉,놈들이 언제 여기까지...버닝혼 옆으로...!"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려는 순간, 사념수 한 마리가 버닝혼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그대한 사념수의 몸통 박치기에 버닝혼이 휘청거리며 수미터나 밀려났다. 그때 근처에 떠 있던 메모리 크리스털이 아크의 볼을 스치자 눈앞에 영상이 떠올랐다. 덕분에 아크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뭐, 뭐야? 이런 상황에서눈앞에 영상이 떠오르면 대응 할 수가.." 연달아 벌어지는 예상 밖의 상황에 짜증을 터뜨리던 아크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영상에도 병ㅇ실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항상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던 그녀가 이번에는 일손을 놓고 TV를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 TV에 나오는 광고 방송이었다. 바로 뉴 월드가 사용용화 되기 직전에 각종 채널에서 지겹도록 방송됐던 광고! 화려한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광고가 끝나자 여자가 아크에게 고개를 돌리며 싱긋 웃엇다. 그리고 여기저기 갈라진 입술로 띄엄띄엄 말했다. -이제 됐어요. 저는 이걸로 만족해요. 동시에 아크의 머릿속에 또다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됐다고? 뭐가 됐다는거지? 네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목숨을 바쳐 한 일이 고작 저따위 게임을 만든 거였어. 그래도 됐다는 거냐? 저따위 게임을 만들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목숨마저 갉아먹으면서, 죽음의 공포와 고통을 참을 필요가 있었던 거냐? 대체 왜? 누구를 위해서? 그저 게임 출시가 늦는다는 이유로 게시판에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해 대는 유저라는 무책임한 놈들을 위해서? 아니면 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회사 사정만 들먹이는 제작사를 위해서? 아니야, 그건 아니야! 네가 뭐라고 말하든 나는 용서할 수 없다. 죽어 가는 네게 욕설을 퍼부어 대던 유저라는 놈들도, 죽어 가는 네게 일을 시켜 온 제작사도, 무엇보다 네 목숨을 갉아 먹고 태어난 저 망할 게임도! .....부숴 버리겠어! 저따위 게임은 내 손으로 부숴 버리고 말겠다! '가만? 혹시 이건....?' 순간 아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까지 아크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영상에 계쏙 여자의 모습만 나와 이게 그녀가 촬영한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메모리 크리스털에 담긴 영상은 단순하나 영상이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누군가의 기억! 그녀를 지켜보는 누군가의 기억이었다. 중간중간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기억의 장본인 이었다. 방금 전에 그녀가 바라보던 사람 역시 아크가 아닌 그. 이 기억을 가진 '어떤' 사람이었다. '뉴 월드의 영상이 아닌 현실의 기억을 메모리 크리스털에 담는다.... 이게 가능한 건 이미 일반 유저가 아니라는 뜻이야. 그렇다면 이 기억의 주인공은 제작사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그리고 그 제작자의 기억을 암흑신의 정신 세계에 남겨진 기억이라는 말은.. 어둠의 창조한 암흑신의 정체가 바로....' "....박우성!"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수난 상념의 미로에 럭혀 있는 모든 수수께끼가 풀려 버렸다. "....박우성!" "맙소사, 그렇게 된 건가?" 아크는 붉은 남자와 박우성을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붉은 남자는 박우성이 만든 일종의 오토 프로그램에 불과 하다. 제작사인 박우성은 보다 초월적인 존재, 말하자면 창조주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마족과 아둠의 제왕까지 탄생했으니 그야말로 어둠의 창조주, 암흑신 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상념의 미로는 박우성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기억의 저장소! 그렇다면 대체 왜 뉴월드를 만든 당사자인 박우성이 뉴 월드를 파괴하려는 걸까? 사실 아크는 얾라 전에 호명환에게 박우성의 별장에서 확보한 각종 정보가 담겨 있는 플래시 메모리를 받았지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할 순 없었다. 플래시 메모리에 담겨 있는 박우성의 메모들에는 단편적인 정보만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뉴 월드를 용서할 수 없다! 이게 아크가 플래시 메모리에 담긴 박우성의 메모에서 발견한 내용이었다. 그렇다. 박우성이 뉴 월드를 파멸시키려고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크는 대체 누군가의 죽음과 뉴월드가 무슨 상관이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념의 미로에 흩어진 메모리 크리스털의 영상과 합쳐보니 단숨에 모든 상황이 연결되었다. '자,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해보자.' 메모리 크리스털로 당시 박우성의 감정까지 공유 했던 아크는 여자와 박우성의 관계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박우성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뉴월드의 제작자 중 하나였다. 그런데 뉴 월드가 완성될 때 쯤 그녀는 불치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박우성은 당연히 그녀가 일을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 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박우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석에서도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더욱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 붙이며 일을 계속 했어. 박우성은 대체 왜 그녀가 그렇게 까지 일에 매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 그리고 얼마 뒤에 보고야 말았다.' 바로 그녀가 관리하던 뉴 월드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수많은 악플을!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는 글로벌엑서스의 사운을 걸고 시작판 프로젝트라 제작 단계부터 매스컴의 집중 조명을 받아 왓ㅎ다.그러나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한다는 계획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번번히 출시가 지연되어 왔다. 때문에 관심이 컸던 만큼 출시가 늦어질때마다 유저들의 항의와 불만이 쇄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던 박우성은 그런 유저들의 악플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검색하다가 알 게 된 것이다. -이거였나! 순간 박우성은 확신했다. 병마에 시달리는 그녀가 죽음을 앞두고도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때문이라고! 아니, 애초에 그녀가 병에 걸리게 된 원인도 이런 악플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순간 뉴 월드의 상용화와 동시에 그녀가 죽자 방황하던 박우성은 분노가 목적지를 찾아냈다. 그녀를 병들게 한 원인, 바로 뉴 월드와 수백만의 유저들이었다. -뉴 월드의 모든 유저에게 도전한다! 그게 바로 박우성이 잠적하기 전에 제작사에 보낸 예고장의 진실이었다. 물론 박우성의 복수심은 억지스러운 결론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크는 박우성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크는 역시 사랑하는 어머니가 수년이나 병석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만약....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했으리라. 그러지 않고는 아크가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박우성에게 그 대상은 뉴 월드였다. 하지만 아직 아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박우성이 정말 그렇게까지 뉴 월드를 파괴시키고 싶었따면 더 쉬운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박우성은 제작자, 그것도 총 책임자로 뉴 월드를 디자인하던 사람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메인 시스템에 접속해서 버튼 하나로 데이터를 날려버릴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고 불안한 방법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걸까? '뭔가 그러지 못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예를 들면 한번 시도해 봤다가 내부 고발로 미연에 저지당해 시스템에 접근할 권한을 잃어버렸다든지... 아니면 뉴 월드의 안에서 유저들과 직접 대결을 펼쳐 붕괴시켜야 제대로 복수심이 만족 된다고 생각하는걸까?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자잘한 내용은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건 '진실의 문'을 열 수 있는 패스워드. "암흑세계의 정신세계조차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진실. 자신의 생명을 깎아 뉴 월드를 창조한 운명의 어머니... 이 모든게 단서가 가르키는 패스워드는 하나밖에 없다.!" 동영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아크가 번쩍 눈을 뜨자 사방에서 사념수들이 몰려들었다. "버닝혼, 마법검, 블레이드 템페스트!" 순간 버닝혼의 입에서 솟아 나오던 마법검이 폭발을 일으켰다.그렇게 칼날의 소용돌이로 사념수들을 몰아낸 아크가 버닝혼의 뿔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5분,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다. 버닝혼!" 크라라라, 크라라라! 버닝혼이 불길을 뿜어내며 휘청거리는 사념수들을 뚫고 공간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버닝혼조차 '신속' 을 사용하는 사념수들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크와아아아아! 사념수들은 폭발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추격해 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서너 마리가 버닝혼의 꽁지에 따라붙으며 어그ㅏㅁ니를 드러냈다. "젠장, 문 라이트 일루전! 다 덤벼!" 순간 아크의 몸에서 3개의 환영이 나타나 달려드는 사념수의 면상을 와락 부둥켜 안았다. 사념수들은 거칠게 머리를 흔들어 곧 환영을 떼어 냈지만 그사이에 버닝혼은 전력을 다해 수십 미터나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불과 1분도 되지 않아 버닝혼은 뒤쫓아 온 사념수들에게 둘러싸여 버렸다. 메모리 크리스털을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숫자가 늘어난 사념수는 무려 20여 마리! 놈들이 일제히 공격하면 아무리 버닝혼이라도 피하기 어려웠다. "아크다!" "저놈들은 사념수!" "공격해라! 마법과 화살로 아크를 엄호해라!" 그때 아래에서 결사대원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렇다. 버닝혼은 이미 결사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광장 근처에 도착한 것이다. 아래에서 마법과 화살이 빗발쳐 올라오자 앞을 가로막았던 사념수들이 휘청거렸다. 순간 아크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버닝혼, 돌진해라!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는 검을 휘둘러 단숨에 사념수의 포위를 뚫고 돌진했다. 10여 마리의 사념수가 화살과 마법을 무시하며 따라붙어 한 입에 아크를 삼킬 듯이 거대한 아가리를 벌렸다. 그러나 아크는 시선조차 돌리 않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2분여, 결사대원들이 모여있는 광장도 붕괴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결사대원들이 암흑신의 정신세계에 먹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크는 몸을 바짝 숙여 철문을 향해 돌진하며 소리쳤다. "유나ㅡ!" 그렇다. 유나. 박우성의 메모에서 수십 번이나 나왔던 연인의 이름이었다. 그렇게 아크는 유나라는 이름을 외쳤을 때였다. 돌연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격렬하게 진동하더니 눈을 멀게 만들듯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아크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던 사념수들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리고 검은 몸이 점차 회색으로 변해 가더니 이내 모래처럼 우수수 흩어져 버렸다. 아크는 그대로 활짝 열린 문으로 날아 들어가며 소리쳤다. "모두 출구로 탈출하라!" "가자!" 결사대원들이 서둘러 출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대원이 출구로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광장이 무너져 버렸다. ------------------------------------------------------- Act 6.어둠의 제왕 철컥. "우와아아아앗!" 문소리와 함께 800여 명의 결사대원들이 한 덩이가 되어 우르르 넘어졌다. 결사대가 상념의 미로에서 헤맨 시간이 거의 10시간.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결사대가 돔으로 들어설 때 시간이 멈췄다가 진행되는 것처럼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 과정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모두 전열을 정비하라!" 버닝혼과 함께 내동댕이쳐졌던 아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다행히 제한 시간 내에 상념의 미로를 빠져나와 돔에 진입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돔은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 당연히 마족들이 최후의 방어선을 펼치고 있으리라. "1대대, 2대대, 3대대는 전면에서 방어 라인을 펼처라!" "마법사와 궁수는 보조 마법으로 전사들을 지원하라!" 역시 노련한 유저들은 재빠리 몸을 일으키고 대열을 갖추었다. 그리고 뒤이어 밀어닥칠 마족들의 공격에 대비했지만 돔 내부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수천의 마족도, 부활을 준비하는 어둠의 제왕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설마 이제 와서 여기가 아니라는...' 아크가 눈으로 텅 빈 공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아크, 앞이다."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피던 샴바라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크가 움찔하며 '고양이의 눈'을 발동시키자 어둠속에서 한 사내가 떠올랐다. 기괴한 문양의 붉은 갑옷에 하얀 가면을 쓰고 있는 붉은 머리칼의 사내였다. ".... 붉은 남자!" 그렇다. 이번 사건의 원흉, 붉은 남자였다. 아크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붉은 남자가 슬쩍 입술을 추어 올렸다. "후후후, 용케도 여기까지 왔군, 하지만..." "문답무용問答無用!" 부활 의식이 진행되는 곳에서 붉은 남자를 발견했다. 아크와 결사대원들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원정군이 목숨을 잃었던가? 그 모든 노력과 희생은 바로 눈앞의 붉은 남자를 처치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리고 모든 그 목표가 눈앞에 나타났는데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붉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티모시, 워머, 레이어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수백년 전, 같은 상황에서도 암흑 세계(본문엔 암흑세기 라고 표시됨)를 종식시킨 7인의 영웅 후예가 각자의 필살기를 발동시키자 폭풍처럼 대기가 진동하며 붉은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콰콰콰콰, 콰콰콰쾅! 동시에 굉음과 함께 붉은 남자가 서 있던 장소가 통째로 뜯겨저 날아가 버렸다. 엄청난 위력! 아무리 붉은 남자라도 이 정도의 공격을 받고 멀쩡할 수는 없으리라! "뭐, 뭐야, 이 감각은?" "붉은 남자가...." 그러나 당혹성을 터뜨린 건 아크와 영웅의 후예들이었다. 분명 그들은 정확하게 붉은 남자에게 필살기를 먹였다. 검이 놈의 급소를 박히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 보였던 것과는 달리 손에는 아무런 감각을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공격이 그냥 붉은 남자의 몸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이미 늦었다." 그때 뒤에서 붉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크가 움찔하며 신형을 돌려세웠을 때였다. 그들이 만들어 낸 건 거대한 크레이터 중심에 서 있던 붉은 남자가 서서히 흐려젔다. 그리고 투명해진 몸이 다 탄 촛불처럼 흔들거리더니 갑자기 훅 하고 사라져 버렸다. "뭐지? 공간 이동?" "버닝혼, '스토킹'으로 놈의 위치를 추적해라!" 붉은 남자가 '워프'로 도망쳤다고 판단한 아크가 빠르게 명령했다. -버닝혼이 '스토킹'을 발동시켰지만 위치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대상의 지정이 정확하지 않거나, 명령이 잘못됐습니다>> ' 뭐야? 대상의 지정이 정확하지 않거나 명령이 잘못됐다고?' 아크는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떄 붉은 남자가 사라진 곳으로 이동해 '마나 탐지' 를 발동시키던 레디안이 소리쳤다. "아크, 놈은 공간 이동을 한 게 아니야. 애초에 실체가 아니었다고!" "뭐라고? 그럼 놈은 어디에 있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지만....." 정신을 집중하며 대답하던 레디안이 움찔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돔 천장을 올려다보며 비명을 터뜨렸다. ".....무, 물러나, 모두 물러나!" 콰콰콰콰, 콰콰콰콰콰! 레디안의 비명 같은 고함과 동시에 굉음이 울리며 돔 천장이 폭발하듯 터져 버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크가 결사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젠장, 또 함정인가? 모두 낙석에 대비하라!" 아크의 명령에 결사대원ㄷ르은 일제히 방패를 위로 향하며 몸을 숙였다. 그러나 조각조각 부서진 천장의 파편은 수백 미터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 우수수 떨어졌다. 마치 압두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돔을 옆에서 후려처서 천장을 통째로 날려 버린 듯한 장면이었다. "대체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결사대원들이 웅성거릴 때였다. 두쿵, 두쿵, 두쿵, 두쿵! 돌연 어디선가 공간을 통째로 들썩이게 만드는 육중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는 울림에 병아리 떼처럼 한데 뭉친 결사대원들은 불안한 눈망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멍청한 눈길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레디안을 따라 시선을 올리다가 입을 쩍 벌리며 굳어 버렸다. "저, 저, 저, 저기...!" "서, 설마 저놈이 어둠의....." 시선이 집중된 어둠의 공간에서 뭔가 내려오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칠훅의 형체! 마치 갓 탈피한 나방처럼 구겨진 여덟 장의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돔 앞으로 내려오는 존재! 놈의 머리에는 기이하게 뒤틀린 6개의 뿔이 돋아나 있었고, 눈동자에는 당장이라도 피를 뿜어낼 것처럼 붉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빼곡이 돋아난 입에서 시커먼 기운이 뭉클뭉클 흘려 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마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형상! 그러나 결사대원들을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런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었다. 100미터에 달하는 놈의 거대한 몸집 때문이었다. 쿠쿵! 결사대원들의 얼빠진 시선 속에서 놈이 바닥으로 내려섰다.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내려섰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덜컹 진동했다. 동시에 콰리안 주변의 모든 원정군들의 눈앞에 붉은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정예 보스, 어둠의 제왕 '루시퍼'가 나타났습니다! "맙소사! 어, 어째서...?"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호아급히 눈동자를 굴려 우측 상단에서 깜빡이는 경고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1시간 50분>> 고오오오오오오! 전장이 단숨에 침묵에 휩싸였다. 방금 전까지 단 1초도 멈추지 않았떤 비명과 고함, 폭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바람이나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원정군이나 마족, 심지어 대자연조차 하늘을 찢고 나타나 뤼켄베르크의 등 위에 내려선 거대한 존재에게 압도당해 버렸다. 그 존재가 등장하자 모든 원정군의 눈앞에 놈의 정체가 공개되었다. 그러나 경고 메시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단숨에 수만 명의 원정군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압도적인 박력, 추정할 수 없는 마력, 그런 마족이 둘이나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 수백 년 전 대륙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어둠의 제왕... 그 이름은 바로악마의 왕, 루시퍼! "맙소사......!" 콰리안 주변의 모여 있는 원정군들의 입에서 절망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수십만의 마족과 싸우면서도 꺾이지 않던 투지가 수 킬로미터 밖에서 루시퍼가 등장한 것만으로 단숨에 꺾여 나가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는 절망은 단순히 '어둠의 제왕이 부활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본문엔 "박이도록"으로 표시됨) 들어 왔던 어둠의 제왕이 부활했다는 사실 자체의 의욕을 잃고 전의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같은 절망이라도 결사대원들의 절망은 수위가 달랐다. 그들은 바로 앞에서 루시퍼가 뿜어내는 엄청난 마력에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혼란에 빠진 것은 단순히 루시퍼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사대원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며 떠듬거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직 부활하지... 않았던 거 아니었어?" "그럼 대체 우리는 뭐 때문에... 적자 살자 달려온 거야?" "뭔가, 뭔가가 ... 잘못됬어!" 결사대원들이 공황 상태에 빠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아직 루시퍼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 어둠의 제왕, 루시퍼의 부활까지는 1시간 50분이나 남아 있지 않은가? 그동안 결사대원들이 화장실 갈 시간까지 아껴 가며 미친 듯이 달려온 건 루시퍼의 부활 의식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숱한 고생 끝에 간신히 1시간 50분 전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루시퍼가 예정 시간보다 일찍 부활해 버리다니?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 무슨 개 같은..." 아크가 우측 상단에서 깜빡거리는 경고 메시지를 바라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루시퍼 부활 시간을 알려주는 경고 메시지가 이제 자신의 우롱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경고 메시지를 향해 다크 스트라이크 10연발을 먹여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경고 메시지를 넝마로 만들어 버린다고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결사대원들을 위협하는 것은 루시퍼만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르. 결사대가 상념의 미로에 빠지기 전에 돔으로 몰려들던 수 천의 마족들! 그 마족들까지 결사대원들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루시퍼는 부활해 버렸다. 게다가 수천의 마족들에게까지 포위당했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여기에서 포기하고 얌전히 죽느냐, 아니면 되든 안되든 붙어 보느냐, 둘밖에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택 사항을 좁히면 해답은 명쾌해진다. 그냥 죽는 것보다 칼이라도 휘둘러보고 죽는 편이 덜 억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100%질 거라고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결사대원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기고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목이 터져라 돌격을 외쳐 봐야 제대로 전투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 머리를 굴리던 아크가 와락 몸을 돌리며 '협박' 의 기운을 담아 소리쳤다. "멍청이들, 정신 차려라! 알고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모든 모습은 내 눈을 통해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다. 그 중에는 너희들의 친구나 가족, 연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고작 온라인 게임의 몬스터에게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가? 그러고 싶은 대원이 있자면 지금이라도 도망쳐라. 내가 똑똑히 지켜보며 비겁자라고 낙인을 찍어주마!" ".... 하다 하다 이제 별걸 가지고 협박을 해 대는군. 히틀러 같은 놈." 아크의 협박에 샴바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아크의 저찾원적인 협박은 생각 외로 엄청난 성과를 발휘했다. "핫, 그러고 보니!" 주춤주춤 물러나던 결사대원들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렇다. 지금 콰리안 전장은 각 방송국에서 보낸 모니터 요원들에 의해 빠짐없이 전국, 아니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그 중 가장 시청률이 높은 실황중계는 바로 아크에게 붙어있는 복실이의 눈알을 통해 방송되는 게임 특종. 다시 말해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결사대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영상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전투를 벌일 떄마다 인터넷에서는 수천, 수만의 격려가 올라오고 있었다. 사실 결사대원들이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아크를 따르는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인다면 평생 비겁자라는 낙인이 찍혀 인터넷에서 공적으로 몰리게 되리라.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왕따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따. 루시퍼 따위는 현실의 왕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까지생각한 결사대원들의 반응이 180도로 달라졌다. "누, 누가 겁을 집어먹습니까?" "루시퍼인지 슬리퍼인지 따위는 조금도 무섭지 않습니다!" "어둠의 제왕도 결국 몬스터가 아닙니까?" 결사대원들이 뜨거운 코식ㅁ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그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목적이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하는 것에서, 어둠의 제왕을 무찌르는 것으로 변한 것뿐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있어도 포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최선을 다해 어둠의 제왕을 상대하는게 우리의 일이다!" "우오오오오오!" 아크의 충동질에 결사대원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어 올리며 함성을 트뜨렸다. -크와아아아아아! 동시에 광장을 둘러싸고 있던 마족들이 괴성을 터뜨리며 일제 히 달려들었다. 아무리 사기가 올라도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한 일. 고작 800여 명의 결사대원으로는 루시퍼는 커녕 수천의 마족조차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따. 그러나 아크에게는 아직 비장의 수단이 남아있었다. "지상에서 붙어 봐야 승산이 없다! 결사대원들은 모두 비행정에 탑승하라!" 그렇다. 바로 나가란 연맹원들이 뤼켄베르크에 돌입할 때 사용했던 비행정! 전장이 광장으로 옮겨졌으니 이제 비행정을 타고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정을 이용하면 발발거리며 뛰어다니는 마족들의 공격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따. 또한 전장 100미터나 되는 루시퍼를 상대하기도 한결 쉬우리라. 부아아아아. 부아아아아! 결사대원들은 일제히 비행정에 올라타 날아올랐다. 아크 역시 버닝혼을 변신시켜 하늘로 날아올라 소리쳤다. "싸움은 뭐니뭐니해도 선빵이 최고다. 공격!" 아크의 고급스러운(?) 명령과 함께 수백 대의 비행정이 루시퍼를 향해 돌진했다. 전사들은 루시퍼를 둘러싸고 있는 방패와 검, 창, 도끼 따위를 휘둘렀고, 궁수들과 마법사는 광장을 넓게 포위하고 마법과 화살을 소나기처럼 쏟아부었다. "영웅의 일격!" "어둠을 파멸시키는 빛의 힘이여, 레이!" "어둠을 꿰뚫는 화살!"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폭음이 울리며 루시퍼의 거체가 단숨에 섬광과 폭연에 휩싸였다. 그러자 루시퍼가 휘청거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됐다. 놈이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의 공격이 먹힌다는 증거다! 이길 수 있어!" "루시퍼 자식, 별거 아니었어! 제대로 반격도 못 하잖아!" 루시퍼의 반응에 결사대원들은 더욱 기가 살아서 스킬을 난사했다. 휘아아아아아아악! 그떄 갑자기 자욱하게 피어오르던 폭연이 어디론가 확 빨려 들어갔따. 폭연을 빨아들인 것은 바로 쩍 벌어진 루시퍼의 거대한 입이었다. 숨을 들이켜는 것만으로 주변을 뒤덮고 있는 폭연을 모두 빨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결사대원들을 경악하게 만든 것은 그게 아니었다. "뭐, 뭐야, 저게?" "그 공격을 받고도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단 말이야?"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서는 굳이 생명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상대가 받은 데미지를 대강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갑옷의 내구력이 많이 내려가면 갑옷이 일그러지고, 육체에 타격을 입으면 멍이 들거나 심할 경우 살점이 뜯겨저 나가기도 했다.그러나 결사대원의 집중 공격을 받은 루시퍼의 몸에는 작은 상처하나 보이지 않았다. "마, 말도 안돼!" 이건 사기야!" 결사대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루시퍼는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폭연을 빨아들인 입에서 수백 발의 붉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헉, 저게 뭐야? 철벽 방어!" "'정신 교류' 로 고위 방어막을 펼처라!" "위대한 마나여, 방패가 되어라, 엡솔루트 실드!" 전사들이 기겁하며 방패를 치켜들었고,후열의 마법사들은 '정신 교류'로 8서클의 광역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러나 루시퍼으 입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광선은 방어 마법을 단숨에 유리 조각처럼 박살 내며 결사대원들의 머리 위로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동시에 시뻘건 폭염이 불길처럼 수십 미터나 솟아올랐다. 그리고 뒤이어 드러난 참상은 모처럼 불타오르던 셜사대원의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폭격이 가해진 자리는 문자 그대로 박살 났다. 공격 범위 안에 있던 수십 명의 결사대원들은 생명력이 30~50%나 날아간 상태로 피를 콸콸 흘려 대며 넝마가 된 비행정과 함께 추락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크와아아아! 추락한 결사대원들은 바닥에서 짖어 대는 마족들의 송곳니에 순식간에 갈가리 찢겨젔다. 동료가순식간에 개밥(?)이 되어 사라지는 장면에 간신히 끌어올렸던 결사대원들의 투지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공포심이 떠올랐다. -하루살이... 같은 놈들...! 그때 루시퍼가 섬뜩한 목소리를 흘리며 다가와싸. 전장 100미터! 25층 빌딩만 한 거체가 움직이자 그것만으로도 바닥이 거칠게 요동첬다. 한 걸음이 수십 미터를 다가온 루시퍼가 손바닥으로 후려치듯 공간을 휩쓸었다. "헉! 피, 피해라!" "늦, 늦었어! 막아!" 전사들이기겁하며 일제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상대는 전장 100미터에 팔 길이만 무려 50미터에 달하는 괴물이다. 수백 톤에 달하는 중량을 가진 팔이 휘둘러지는데 방패 따위가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쿠와아아아악!" 전사들은 트럭에 치인 개구리 같은 비명을 지르며 비행정과 함꼐 튕겨저 날아갔다. ..... 다시 말하지만 결사대원들의 레벨과 장비품, 실력, 모든 면에서 뉴 월드 최강의 멤버였다.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전사들은 레벨에 따라 공격력과 방어력의 차원이 달라진다. 이는 전사들이 레벨업을 할 때마다 가산되는 각종 패시브 스킬 특성 때문이었다. 게다가 항상 파티의 선두에서 탱커 역활을 소화해 내야 하는 전사들은 우선적으로 '대충격'이나 '대거인' 같은 스킬을 익혀 방어력에 집중 투자한다. 그런 전사들이 최고 방어 스킬'철벽 방어'를 발동시키고도 날파리 처럼 날아간다. "이게 레벨 1,500 최정예 보스 루시퍼...!" 아크가 신음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다 . 아크가 '고양이의 눈' 으로 확인한 루시퍼의 레벨은 1,500 이었다. 이제 겨우 레벨 487의 아크로서는 상상도 못 할 아득한 수준의 레벨! 평균 레벨 350~370대의 결사대원들과는 4배가량 차이 나는 괴물이었다. 더구나 최정예 보스! 거의 신급에 몬스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바닥에서는 수천의 마족들이 날뛰며 결사대원들이 떨어지는 족족 난자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불과 몇 분도 버티지 못하고 전멸한다" 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은 비공전투대가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는 것뿐이다. 그러나 비공전투대는 게속 되는 비행 마족의 방해로 아직 방어막에 공격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헐적인 공격으로 는 방어막의 재생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 놈을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 하다는 건가?" 어둠의 제왕 루시퍼의 수천 마리의 마족! 고작 800여 명의 결사대원들로는 도무지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크마저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루시퍼를 바라보고 있을 때여싿. "이 멍청한 놈아, 네가 충동질 해 놓고 멍청하게 보고만 있으면 어쩌란 거야?" 뒤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찌하며 고개를 돌리자 샴바라가 옆을 스치고 날아가며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대체 뭘 생각하는 거냐? 놈이 아무리 강해 봐야 몬스터라고 말한 건 바로 네놈이잖아! 결사대원들은 네 말을 믿고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어, 그런데 넌 뭘 하는 거냐?" 순간 아크의 귓가로결사대원들의 고함 소리가 드려왔다. "아래에 있는 마족들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루시퍼에게 집중해라!" "루시퍼의 공격은 막을 수 없다. 모두 흩어져서 공간을 넓혀 놓고 싸워라!" "궁수와 마법사는 최대 사거리까지 물러나서 공격해라!" "받아라, 영웅의 일... 우아아악!" 아크가 잠시 넋을 놓고 있는 동안에도 결사대원들은 필사적으로 루시퍼와 싸우고 있었다. 정의남가 갱생단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혼라네 빠진 결사대를 진정시키고, 각 부대장들은 그들의 명령에 따라 루시퍼 주위를 날라다니며 마력포와 스킬을 퍼부었다. 비록 루시퍼에 비하면 날파리 떼에 불과해 보였지만, 루시퍼가 팔을 한번 휘둘러 댈 때마다 몇 기의 비행정이 추락해 마족들에게 찢겨 나갔다. 결사대원들은 당장이라도 훅 하고 꺼질 듯한 한 조각의 투지를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발버둥 쳤다. '그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아크는 와락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레리어트, 워머, 티모시! A포메이션으로 간다!" 아크가 버닝혼의 뿔을 꽉 움켜쥐고 루시퍼에게 돌진하며 소리쳤다. "흥, 그렇게 나와야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바퀴벌레 처럼 끈질긴 게 네 유일한 장점이니까." "오오오, 이제 실력을 보여줄 때군!" 그러자 샴바라와 브레드가 씨익 웃으며 아크의 뒤를 따라 루시퍼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나머지 멤버까지 가세해 루시퍼를 둘러쌌을 때! "영역 선포, 영광의 밤!" -'영광의 밤'이 발동되었습니다. <<직경 100미터 내에서 시전자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마법 저항력이 20% 상승했습니다.>> "영역 선포, 혈하!" "영역 선포, 야수의 대지!" 아크를 선두로 샴바라와 브레드가 일제히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 세 명이 유효 범위가 100~200미터나 되는 영역선포를 발동시키자 루시퍼를 완전히 둘러싸 버렸다. 그렇게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가 영역 선포를 발동시키자 다시 그 영역 선포 공간을 둘러싸듯 레리어트와 티모시, 레디안, 워머 가 접근하며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 "영역 선포, 정화의 대지!" "영역 선포, 엑소시스트!" "영역 선포, 불과 얼음의 대지!" "영역 선포, 무한 에너지 필드!" 영웅의 후예들이 두겹의 영역 선포로 루시퍼를 둘러싸 버린 것이다. 이게 아크가 최후의 순간에 써먹기 위해 생각해 두었던 A포메이션 이었다. 새삼스럽지만 결사대원 가운대 가장 전투력이 높은 유저는 바로 영웅의 후예들이었다. 그리고대마족 전투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 역시 영웅의 후예의 영역선포! 때문에 일단 루시퍼를 영웅의 후예들이 발동시킨 영역선포 안에 가둬놓고 뻥튀기된 능력치를 앞세워 아크가 샴바라, 브레드가 금접전을, 레디안과 티모시,워머가 원거리 엄호, 레리어트가 보조와 회복 마법으로 보조한다는 작전이었다. 사실 결사대원들도 대부분 2차 전직을 했지만 영역 선포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다. 현재 전장은 고작 직경 600~700미터 내외. 이런 곳에서 다른 결사대원이 먼저 영역 선포를 사용해 버리면 정작 영웅의 후예뜰이 필요한 위치에서 영역 선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영웅의 후예뜰이 먼저 영역선포를 발동시켜 위치를 선점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영웅의 후예들의 영역 선포 범위를 벗어나 각 부대별로 한 명씩 영역 선포를 발동시킨다. 단, 전체 부대에 영향을 주는 영역선포를 우선적으로 발동시킨다!" 영웅의 후예들이자리를 잡자 나머지 결사대원들도 적당히 거리를 벌려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보단 영역 내의 동려들에게 버프 효과를 부여하는 성직자들의 버프가 발동하자 결사대원들의 능력치가 수직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결사대원들은 자신에게 가장 적당한 영역 선포 공간으로 이동하라. 그리고 영역 선포를 발동 중인 성직자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며 전투한다. 나머지 성직자는 영역 선포를 발동 시킨 동려의 생명력을 최우선적으로 회복시켜라." 아크는 빠르게 명령하며루시퍼를 중심으로거대한 진형을 만들었다.그리고 결사대가 완전한 진형을 형상한 순간! 아크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소리쳤다. "모두 총공격! 간다. 다크 스트라이크!" "쾌, 영, 별, 참!" "뇌전폭풍!"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가 섬광처럼 날아가며 검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뒤에서 레리어트와 레디안, 티모시, 워머도 각종 스킬을 난사했다. "공격용 3종 버프! 위대한 전사의 영혼이여.. 영웅의 기상, 전사의집중력, 질풍의 호흡!" "고속 영창 발동, 최상위 마법 봉인 해제! 지옥의 밑바닥에서 타오르는 꺼지지도 않는 불꽃이여! 엘리멘탈 마스터 레디안의 이름으로 적을 멸하라! 볼케이노 오브 헬!" "스킬 봉인 해제, 마탄의 사수 6장, 악마를 섬멸하는 빛의 화살!" "아머드 슈트 다탄두 미사일 전기 발사!" 콰콰콰콰콰콰, 콰콰콰콰쾅! 영웅의 후예뜰이일제히 영역 선포를 발동시키고 레리어트의 버프에 절여져 쏘아부은 필살기!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의 검이 섬광을 번뜩이며 수십 차레 난타하고, 레디안의 마법이 폭발을 일으키고 티모시의 호살이 박혀들어갓다. 그 위로 워머의 아머드 슈트에서 발사된 수십 발의(본문에선 '수십 말의'라고 표시됨) 미사일이융단폭격을 퍼붓듯이 연속적인 폭염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도시작에 불과했다. 그들의 공격에 채 끝나기도 전에 루시퍼를 둘러싼 수백 명의 결사대원들이 날린 각종 짬뽕스킬이 일으키는 폭발이 루시퍼의 몸을 완벽하게 뒤덮어 버렸다. 그러나... -크크크크크크, 이게 다냐? 시커먼 폭연속에서 섬뜩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또다시 폭연이 훅 하고 사라지더니 붉은 고아선이 뿜어 나왔다. "헉! 피, 피해라!" 콰콰콰콰,콰쾅! 콰콰콰콰콰, 콰쾅! 아크의 비명과동시에 사방으로 퍼져 나간 붉은 광선에 비행정 수십기가 추락해 버렸다. 방금 전의 공격은 결사대원 최대 최강의 공격! 그러나 결과는 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루시퍼는 오히려 반격을 가해 수십 기의 비행정을 추락시켜 버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상황은 그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생명력이 고작 0.1%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이럴 수가!" "우리의 공격은 루시퍼에게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단 말인가?" 결사대원들 사이에서 신음이 흘러나왓다. 그러나 아크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번 공격은 확실히 수확이 있다!' 사실 방금 전까지는 아크 역시 멀리 떨어져 있기에 제대로몰랐다. 그러나 막상 루시페어게붙어서 스킬을 난사하다보니 멀리서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방금 전에 결사대원들이 공격이 한 점에 집중됐을 때, 자깐이었지만 놈을 뒤덮고 있던 검은 기운이 사라졌다.하지만 금세 다시 복구되었어. 내가 본게 확실하다면 놈이 검은 몸은 본체가 아니라 일종의 방어막이야. 뤼켄베르크를 보호하는 방어막처럼 재생이 가능한. 그렇다면 놈의 생명력이 줄지 않은 것도 해명할 수 있다!' 아크가 루시퍼의 옆에서 확인한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무리 레벨 1,500대의 최정예 보스라도 일단 NPC 몬스터, 영역 선포의 영향을 받는 수백 명의 집중 공격을 받고도 생명력이 0.1%도 줄지 않는건 납득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결사대원들도 완전히 의욕을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결사대원들이 두들겨 댄 것처럼 루시퍼의 껍질, 방어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놈을 공략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샹그리아가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을 뚫을 때 사용했던 방법! 거기까지 생각한 아크가 검을 번쩍 치켜들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결사대원들은 세 부대로 나누어 로테이션으로 한 점에 공격을 퍼붓는다! 1대대는 내가 공격을 한 뒤에, 2대대는 샴바라가 공격 한 뒤에, 3대대는 브레드가 공격한 뒤에 같은 지점을 향해 공격을 집중시킨다!" 그렇다. 일격에 방어막을 제거할 수 없다면 한 지점에 쉬지 않고 지속적인 데미지를 가해 방어막 재생 속도보다 빠르게 파괴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고는 해도 고작 수백 명의 공격으로는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에 흠집도 낼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최정예 보스라도 루시퍼는 일개 몬스터, 전장이 수 킬러미터나 달하는 고중 요새와 동급의 방어막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루시퍼가 귓가에서 떠드는 아크가 귀찮다는 듯이 팔을 휘둘렀다. 아크는 수직 상승으로 팔을 피해 내고 그대로 떨어지며 검격을 뿜어냈다. "1대대, 시작한다. 다크 스트라이크!" 어둠과 동화된 검이 루시퍼의 이마에 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순간 잔뜩 벼르고 있던 1대대의 결사대원들이 이마를 향해 일제히 스킬을 난사했다. "검기!" "정밀사격!" "불타오르는 화염의 분노여, 임팩트 파이어!" 루시퍼의 얼굴이 단숨에 폭연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크는 시선을 집중해 공격이 집중되는 이마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쉴 새 없이 공격이 퍼부어지는 루시퍼의 이마 앞부분에서 공간이 뒤틀리는것처럼 일그러지더니 아느 순간, 마치검은 막 같은게 팍 하고 터져 나갔다. 그리고 찢겨저 나간 검은 막 사이로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혐오스러운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다. 저게방어막 뒤에숨겨진 진짜 루시퍼의 몸이다!' "샴바라, 지금이다!' "오케이, 비검난사!" 동시에 샴바라가 루시퍼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며 비도를 난사했다. 그러자 재생되던 검은 막이 다시 쩍 벌어지더니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피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쉬지 말고 공격을 퍼부어라!" 뒤이어, 2대대가 같은 지점에 공격을 퍼붓자 철퍽, 철퍽 소리가 울리며 루시퍼의 피부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방어막이 재생되기 전에 브레드와 3대대가 공격을 퍼붓자 결국 피부가 쩍쩍 갈라지며 검은 피가 뿜어져 올라왔다. "효과가 있다!" 거리를 벌리고 루시퍼를 관찰하던 아크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고양이의 눈'으로확인한 놈의 생명력 게이지가 약간이지만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엄청나게 긴 루시퍼의 생명력에 비하면 개미 코딱지 만큼의 데미지에불과했다.그러나 데미지를 줄 수있다는 것은 현재 병력으로도 놈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 였다.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번 공격의 성공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크와아아아아아! 아크는 슬쩍 시선을 내려 바닥에서 괴성을 터뜨리는수천의 마족을 바라보았다. 마족들은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발톱을 휘둘러 댔지만 비행정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어차피 대원들이 모두 비행정을 타고 있는 이상 날지 못하는 마족들은 우리를 공격을 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루시퍼도 입에서 뿜어지는 광선만 조심하면 돼. 팔을 휘두르는 나와 샴바라, 브레드가 패턴을 파악하고 적당히 놈의 주위를 분산시키면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을 끄며 깔짝깔짝 놈의 생명력을 갉아 대면 언젠가는 놈의 생명력을 바닥낼 수 있어!" 아크가 그렇게 전체적인 전략을 구상했을 때였다. -하루살이들이.. 감히 이 몸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루시퍼는 지금까지 100여 명에 달하는 결사대원을 날파리 때려잡듯 죽인 주제에 살짝 긁힌 상처가 났다고 징징대며(?)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어째 어둠의 제왕 루시퍼라는 놈이 하는 짓은 세살배기 어린애처럼 쪼잔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놈의 정신연령이 세 살이든 네 살이든 크기는 25층 빌딩과 맞먹는다. 한방이라도 잘못 맞으면 바로 황천행! "버닝혼, 우측으로 선회해서 공격 반경을 벗어나라!" 마족들을 내려다보던 아크는 움찔하며 황급히 버닝혼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반응이 늦어 루시퍼의 손바닥이 일으키는 폭풍에 휘말린 버닝혼이 휘청거렸다. 그사이에 루시퍼의 손바닥이 아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려는 찰나! "아크 님! 신격 스킬, '이지스, 광신의 방패'!" 순간 레리어트가 들고 있떤 방패가 수천장으로 갈라지며 솟구쳤다. 그리고 허공에서 겹쳐지며 거대한 방패로 변해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콰콰콰쾅! 루시퍼의 손바닥이 방패에 충돌하며 굉음을 울렸다. 처음에는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루시퍼가 와락 얼굴을 구기며 반대쪽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레리어트가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방패가 팽이처러 ㅁ회전하며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더니 다시 루시퍼의 주먹을 튕겨냈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철벽 방패! 이게 바로 레리어트가 샹그리아에서 배운 신격 스킬이었따.공격력은 1%도 없지만 어떤 공격이라도 80%확률로 막을수 있는 세인트 나이트 전용 신격 스킬 '광신의 방패'! 연달아 두 번의 공격이 저지당하자 루시퍼가 눈매를 좁히며 북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크윽! 이 방패는 광신의 힘... 그렇군. 주위에서 왜왱거리는 날파리들, 왠지 낯설지 않다 싶더니 놈들이 후예인가..... "좋아, 이제 우리 차례다!" "우와아아아아아!" 레리어트가 '광신의 방패'로 루시퍼의 공격까지 막아내자 결사대원들이 함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모처럼 사기충전도 정말 잠깐에 불과했다. -놈들이 후예라면 더 이상 장난으로 상대할 수는 없겠군. 네놈들은 당시의 내 호적수보다 한참 아래인 듯하지만.. 한때나마 이 몸을 몰아붙였던 네놈들의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진정한 어둠의 힘을 보여주마. 아크와 결사대원들이 역습을 위해 스킬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루시퍼가 갑자기 양손을 치켜들며 주먹을 분끈 쥐었다. 그리고 마치 공간을 찢듯 확 잡아당기자 루시퍼를 중심으로 거대한 원형 마버진이 전장을 뒤덮어 버렸다.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순간 루시퍼 주위에 모여 있던 아크와 샴바라, 브레드, 레리어트, 티모시, 레디안, 워머는 물론 멀리 떨어져 있던 결사대원들의 영역 선포가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영역 선포가 사라지니 당연히 레리어트의 신격 스킬 '광신의 방패'도 사라져 버렸다. "뭐 , 뭐야? 어떻게 모두의 영역 선포가?" 폭발의 여파에 10여 미터나 밀려난 아크가 당혹성을 터뜨릴 때였다. 루시퍼의 마법진에 뒤덮인 전장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루시퍼의 신역 선포 '지옥의 경계'가 발동했습니다! 루시퍼를 중심으로 직경 2km(킬로미터) 공간이 신역 선포의 영향권으로 설정됐습니다. <<지옥의 왕이자 어둠의 제왕인 루시퍼는 자신의 영지인 지옥을 현실세계로 불어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지 안에서 루시퍼는 무한한 마력을 공급받아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 어둠의 방어막 재생 속도가 20% 상승합니다. 또한 신역 선포는 최고 동급자의 직업을 가진 유저나 마족만이 발동시킬 수 있는 스킬입니다. 따라서 하위 스킬인 영역 선포의 효과를 일방적으로무시 할 수 있습니다.>> "뭐, 뭐야, 이건?" 어크가 멍청한 표정으로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마족 주제에 신의 선포라니? 하긴 그냥 마족도 아닌 어둠의 제왕, 신과 동급으로 노는 악마쯤 되니 그렇다 치자. 그런데 문제는 루시퍼가 바롱시킨 '지옥의 경계'의 효과였다. 자신의 능력치를 올리는 거야 당연하다 해도, 신역 선포보다 낮은 등급인 영역 선포를 몽땅 캔슬시켜 버린 것이다. '그럼 이제 영역 선포도 없이 20%나 더 강해진 루시퍼와 싸워야한다는 건가?' 이런 상태로 루시퍼와 싸울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크는 이제 그런 고민조차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분노와 공포, 절망.. 지옥을 지키는 세 악마여, 나 어둠의 권능을 가진 루시퍼가 명하노니... 그대들의 분노와 공포, 절망으로 이 세계의 생명을 불태워라.... 루시퍼의 외침과 함께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고양이의 눈'에 옵션으로 붙어 있는 '스킬 간파'로 '아포칼립스의 정보를 확인한 것이다 -루시퍼가 신격 스킬 '아포칼립스'를 발동 시켰습니다! '아포칼립스'는 루시퍼가 가진 세 가지 권능(신격 스킬) 가운데 하나로, 고대의 맹약을 이용해 복종시킨 세 악마, 분노와 공포, 절망을 불러내 루시퍼의 신역 선포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괴멸시키는 궁극의 살상 마법입니다. 5분 뒤에 효과가 발동합니다. <<이 절대 마법은 루시퍼의 신역 선포 범위 내의 모든 적을 대상으로 발동합니다. 그러나 이 마법을 발동시키려면 루시퍼 역시 세 악마에게 50%에 달하는 생명력을 대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대신 '아포칼립스'가 발동되면 타깃이 된 상대에게 9만~10만의 데미지를 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종류의 방어력과방어막을 무시합니다. 암흑 세기에 루시퍼에게 도전했던 수많은 용사들은 '아포칼립스'에게 전멸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마, 말도 안돼!" 아크의 얼굴이 대번에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현재 아크의 생명력이 9,000대였다. 그조차 각종 장비품과 직업 보너스를 이용해서 그만큼이라도 올려놓은 것이다. 레벨이 350~370의 결사대원들은 완전 장비를 갖춘 전사라도 간간히 9,000이 될까 말까, 그중(본문엔 '개중'이라고 표시됨) 가장 생명력이 많은 브레드 조차 1만 2천 대의 생명력이었다. 그런데 일격에 9만~10만의 대미지라니? 아무리 레벨 1,500의 최정예 보스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일단 마법이 발동되면 범위가 2km(킬로미터)나 되는 신역 선포 안에 있는 모든 유저 즉, 뤼켄베르크에 진입한 아크와 결사대원들은 일격에 전멸한다는 뜻이다. 물론 아크 역시 루시퍼가 일격에 세계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궁극 파괴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수의 말에 의하면 그런 마법은 루시퍼조차 어둠에 속한 존재의생명력을 끌어모으며 며칠이나 주문을 외워야 한다고 했었다. 떄문에 루시퍼가 궁극 파괴마법을 발동시켰음에도 7인의 영웅도 고대 비술서와 세계수의 힘을 모아 막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포칼립스'는 궁극 파괴 마법보다는 수수해서(?)인가? 발동 시간이 고작 5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살아날 방법은 5분 안에 신역 선포 범위를 벗어나는것뿐이었다. 그러나 현재 아크와 결사대원들이 있는 곳은 뤼켄베르크의 등 위, 방어막 안이었다. 방어막을 뚫고 도망치지 않는 한 '아포칼립스'의 효과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 모두 놈을 공격해라! 마법을 캔슬시키지 못하면 전멸이다!" 아크는 비명처럼 소리치며 루시퍼에게 달려들었다. 그렇다, 남은 한 가지 방법은 집중 공격으로 루시퍼의 주문을 캔슬시켜 버리는 것!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떤 존재든 마법을 사용할 때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린다. 루시퍼 역시 '아포칼립스'를 발동시키기 위해 엄청나게 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치명타를 얻어맞으면 높은 호가류ㅜㄹ로 마법이 캔슬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크와 결사대원들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루시퍼는 미동조치 없었다. 하긴 방금전의 영역 선포를 발동시킨 상태로 공격을 퍼부었을 때도 루시퍼가 받은 데미지는 고작 1~2%에 불과했다. 하물며 영역 선포조차 사라진 상태로 퍼붓는 공격에 루시퍼의 궁극 마법이 캔슬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부질 없는 공격으로 5분이 지났을 무렵.... "저, 저기...."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던 결사대원 한 명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떠듬거렸다. 뒤이어 고개를 들어 올린 결사대원들의 입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저, 저건 악마.. 악마다!"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굉음과 함께 어둠에 잠긴 하늘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갈라진 하늘에서 거대한 악마들이 천천히 내려왔다. 팔과 다리 몸통이 기괴하게 뒤틀린 채로 하나로 무여진 끔찍한 형상의 세 악마! 그들이 바로 지옥의 분노, 공포, 절망이라는 이름의 세 악마였다. 지옥의 악마들이 현세에 등장하자 대기가 절규를 터뜨리는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쳤고 먹구름이 몸을 비비대며 뇌전을 일으키고, 여기저기서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다. -나의 적을 멸하라... 신격 스킬 절대 마법 아포칼립스! 동시에 루시퍼의 살상 마법이 완성되었다. 쾅, 쾅, 쾅, 쾅, 쾅! 순간 세 악마가 번쩍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 수백 줄기의 핏빛 광선이 작렬했다. 피ㅣ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루시퍼의 궁극 살상 마법 아포칼립스! 고아선에 직격당한 결사대원ㄷ르은 핏빛 불길에 휩싸였다. 그러자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타들어가더니 불과 10초도 되지 않아 숯이 되어 버렸다. 방패로 막아도 몸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고, 전력을 다해 도망쳐도 광선은 궤도를 바꾸며 ㅇ덤청난 속도로 추격해 와 결국 희생자를 삼켜 버렸다. 그렇게 결사대원들이 엄청난 속도로 숯이 되어 버리자 주인을 잃은 비행정이속속 추락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주, 주인!" 큐리오가 여기저기에 쌓여 가는 숯 더미를 보고 겁에 질린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아크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다가 붉은 광선이 날아들자 와락 소리쳤다. "젠장, 모든 소환수 소환 헤제! 허억, 우와아아아아아!" 소환수들을 돌려보내자마자 아크 역시 붉은 광선에 휩싸였다. 동시에 가상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고통과 함꼐 생명력이 엄청난 솓고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채 10초도 되지 않아 생명력이 바닥나며 쓰러졌다. '비, 빌어먹을! 이러헤 허망하게....' 단숨에 숯이 된 아크가 허탈한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크가 쓰러졌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다. 루시퍼의 마법 한 방에 원정군의 최정예로 구성된 결사대원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못 해보고 몽땅 숯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허탈한 결과를 지켜본 방어막 밖의 비공전투대와 함대 원정군들도 넋이 나가버렸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결사대원들의 전멸은 곧 뉴 월드의 멸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바닥에 쌓인 숯 더미를 내려다보던 루시퍼가 시선을 돌리며 마족들에게 명령했다. -어둠의 종자들이여, 나머지 잡놈들을 처리하라! -크롸롸롸롸롸롸롸! 동시에 마족들이 전의를 상실한 원정군에게 몰려들었다. '안 돼, 안 돼!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절대 안 돼! 한 번만.. 한 번만 더 기회를!' 그 장면에 아크가 입술을 꽉 깨물고 부질없는 대살을 웅얼거릴 때였다. 갑자기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벌어졌다. 아크와 함꼐 쌔까만 숯이 되어 버렸던 가방이 덜그럭 거리며 흔들리더니 돌연 확 열리며 두툼한 책 한권이 강력한 빛을 발하며 하늘로 솟구쳤다. '어라? 저, 저건... 불멸의 서?' 그렇다. 바로 마그라를 해치우고 얻었던 불멸의 서였다. 아크는 그동안 불멸의 서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몇번이나 책을 살펴보았다. 그래도 명색이 화룡족의 보물이니 뭔가 했을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봐도 불멸의 서는 펼쳐 볼 수조차 없었다. 때문에 그 뒤로 가방에 쑤셔 박아 넣고 잊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저절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 Act 7. 전설의 재림 아크의 머릿속에서 북이 우리는 것처럼 장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역경와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불멸의 영혼을 가진 전사여! 아크는 뭐가 어떠헥 돌아가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게임상에서는 이미 숯이 되어 죽은 몸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존재가 죽은 아크에게 말을 골 수 있단 말인가? '누, 누구?' -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과 운명을 부여해 주는 위대한 창조주, 운명의어머니를 대신해 영원한 운명의 조율을 위임 받은 유일한 존재, 불멸의 서다. '운명의 어머니? 불멸의 서?' 상념의 미로에서 획득한 정보에 의하면 운명의 어머니는 유나라는 제작자였다. 피조물에게 생명과 운명을 부여한 창조주라는 말은 그녀가 뉴 월드의 시나리오와 NPC의 AI를 담당했기 때문이리라. AI는 NPC들의 생명, 시나리오는 NPC의 운명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위대한 창조주,운명의 어머니는 창세기부터 당신께서 낳은 이 세계에 닥쳐올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운명의 어머니는 이미 수명이 다해 가고 계셨다. 때문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나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지. '너는 앞으로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며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네가 지켜본 세상이 진정 내가 바라던 그런 세상이라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하고 있다면, 어둠의 시기가 닥쳐 올 때 그대를 손에 넣은 운명의 전사를 위해 나의 권능을 행하라.' 라고. 운명의 전사여, 어머니 이름으로 묻겠다. 그대에게 뉴 월드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뉴 월드가 어떤 의미....?' 차세대 온라인 게임 뉴 월드! 2년 전 뉴 월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대답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글로벌엑서스에 입사해 안정된 수입을 얻기 위한 방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곧 뉴 월드의 아이템이 곤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목적이 돈벌이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나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뉴 월드를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부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붉은 남자가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켜 뉴 월드를 파멸시키려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크가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돈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지만 뉴 월드라는 세계 그 자체였다. 2년간 아크가 키워 온 소환수들과 함께 수많은 모험을 경험하고, 수많은 NPC와 유저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 온 수많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게 무엇보다 두려웠다. 그렇다. 이제 뉴 월드는 아크에게 있어 단순한 온라인 게임이 아니었다. '.....세상으로 통하는 단 하나의 문이다!' 아크는 소리치듯이 머릿속으로 강렬하게 그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불멸의 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명의 어머니께서 들었다면 기뻐하셨을 것이다. 동시에 굳게 잠겨 있던 불멸의 서가 섬광을 뿜어내며 활짝 펼쳐졌다. 그리고 폭풍이 일어나듯 책장이 주르륵 넘어가다 멈추며 빛이 휩싸인 글자가 떠올랐다. -불멸의 서 : 제 3장 <<부활>>! -나는 그대를 운명의 어머니에게 선택된 운명의전사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운명의 어머니에게 부여받은 권능으로 세계의 힘을 모아 그대에게 단 한번의 기적을 허락한다! 콰쾅, 콰쾅, 콰쾅, 콰쾅! 그떄였다. 갑자기 뤼켄베르크이 동서남북, 사방의 공간이 거칠게 이렁이더니 강렬한 스파크와 함께 빛에 휩싸인 네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하얀 로브를 걸친 노마법사, 은빛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여기사, 긴 창을 든 중년 남자, 성직자 복장의 여신관! '저, 저들은!' 아크가 눈동자가 솥뚜껑처럼-물론 현실에서-커졌다. 중년 기사와 여궁사는 처음 보지만 노마법사와 여기사는 아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니 나무들이었다. 바로 지저 세계의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스탄달의 세계수 유즈리아!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도?' 마족 전쟁 직전에 떠올랐다는 두 이계의 세계수이리라. 불멸의 서에 의해 뉴 월드의 동서남북에 위치한 네 그루의 세계수가 소환된 것이다. -저놈들....! 세계수들이 소환되자 루시퍼가 시뻘건 눈동자를 번들거리며 이를 갈아붙였다. 과거 루시퍼가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 모든 마족의 생명력을 대가로 궁극 파멸 마법을 발동시켰을 때 7인의 영웅을 도와 막아 낸 것이 바로 이 네 그루의 세계수였다. 다시 말해 세계수는 루시퍼에게 천추의 한을 남긴 존재! 그러나 붉은 광선을 뿜어내도 세계수를 그냥 관통해 버릴 뿐이었다. 이곳에 소환된 세계수들은 정신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에 불과하기 떄문이었다. 세계수들은 루시퍼의 반응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중걸거렸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세계수들은 이미 세계로 뻗어 있는 뿌리를 통해 이곳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루시퍼가 부활해 궁극 살상 마법을 펼칠 때조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세계수의 존재 의의는 어디까지나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 세계수에게는 뉴 월드의 역사를 바꿀만한 어떤 행위도 허락되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러다 단 하나, 세계수를 옭아맨 금제를 풀 방법이 존재해싸. 창조주의 권능이 담겨 있다고 전해지는 고대 비전서! 과거 루시퍼가 궁극 파멸 마법을 펼쳤을 떄 세계수가 세계의 마력을 한곳에 집중시켜 강력한 결계 주문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7인의 영웅이 고대 비전서로 세계수의 금제를 풀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신의 권능을 발휘한 고대 비전서는 직후 힘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때문에 세계수들도 고대 비전서에 대해서는 잊어 먹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다시 고대 비전서가 등장한 것이다. 이그드라실이 놀랍다는 듯이 불멸의 서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크가 고대 비전서, 불멸의 서를 찾아냈을 줄이야. 그렇다. 아크가 가지고 있던 불멸의 서가 바로 수백 년 전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고대 비전셔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세계의 운명을 부여하신 운명의 어머니의 뜻인가? -수백 년 전 7인의 영웅이 루시퍼를 쓰러뜨렷을 때는 이미 궁극의 파멸 마법이 발동된 뒤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대륙의 피해를 줄이는 게 전부였지. -하미나 지금이라면... -..... 아직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어요. 유즈리아의 말에 이그드라실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신관과 창사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이 결코 그때보다 낫다고는 생각되지 않네. 만약 우리가 세계의 마력을 개방해 이들을 살려도 놈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머지 않아 루시퍼는 미수에 그쳐야 했던 궁극 파멸 마법을 발동시켜세계를 파멸시키겠지. 하미나 나는 이들을 믿고 싶네. 고대 비전서가 선택을 했듯이 이들이 운명의 어머니꼐서 예언하셨던 어둠을 봉인할 이방일들이라고. -음. 여궁사와 창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손을 활짝 펼치자 불멸의 서가 네 세계수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세계수들의 입에서 웅장한 목소리의 주문이 흘러나왔다. -위대한 창조주, 운명의 어머니 이름으로 명하노니..... -세계의 운명을 창조한 위대한 신의 권능이여...... -이곳에 현신하여 당신의 뜻을 보여 주소서..... -위대한 부활, 그랜드 리저렉션! 콰콰콰,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순간 불멸의 서에 집중 되던 거대한 빛이 폭포수처럼 아래로 쏟아졌다.그러자 루시퍼의 '아포칼립스'에 숯이 되어 버린 결사대원들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커멓게 타버린 피부가쩍쩍 갈라지며 하얀 피부가 드러나고, 이내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며 한 명,두 명 몸을 일으켰다. 아크 역시 그들처럼 숯처럼 변한 피부가 떨어져 나가며 흑백으로 보이던 시야가 총천연색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 '불멸의 서' 의 권능으로 '궁극의 간병'을 발동시켰습니다. 불멸의 서는 위대한 창조주, 세계의 어머니가 창조한 고대 비전서입니다. 이 불멸의 서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마음을 허락한 자의 손에 의해서만 발동됩니다. 불멸의 서가 발동하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세 세계수의 마력을 빌려 소유자의 능력 가운데 하나를 증폭, 단 한 번 '창조주의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과거 불멸의 서는 이 권능으로 세상을 지키고자 하는 홀리나이트 로니안의 손에서 발동해 '광신의 방패'를 증폭시켜 루시퍼의 궁극 파멸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불멸의 서는 다시 한 번 루시퍼와 싸울 기회를 얻고 싶어 하는 당신의 염원에 부응해 창조주의 권능으로 '간병'을 증폭시켜 궁극의 간병인 '위대한 부활'을 발동시켰습니다. '위대한 부활'의 효과로 직경 2Km(킬로미터)의 모든 아군이 부활합니다. 창조주의 권능까지 빌려 부활의 기적을 일으킨 당신! 세계 최고의 간병인이되었습니다. <<직경 2Km 내의 모든 아군의 생명력이 50%의 상태로 부활합니다.>> +궁극의 간병 성공으로 모든 스텟이 10씩 증가합니다. +애정이 1,000 증가했습니다. +명성이 1,000증가했습니다. +성향이 선으로 200 증가합니다. - 궁극의 간병을 성공해 칭호가'神'의 간병인'으로 승격되엇습니다. 간병인으로서의 명성이 높아져 세상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됐습니다. +칭호에 대한 보너스로 모든 스탯이 10씩 증가합니다. +명성이 1,000 상승합니다. '궁극의 간병!' 진정한 의미의 기적이 일어났다! 불멸의 서의 진정한 능력은 소유자의 능력을 창조주의 권능으로 증폭시켜 주는 것! 그리고 다시 한 번 루시퍼와 싸우고 싶다는 아크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 불멸의 서가 선택한 스킬은 '간병' . 불멸의 서는 '간병' 에 창조주의 권능을 덧씌워 부활의 기족을 발휘한 것이다. 덕분에 '아포칼립스'에 전사한 모든 결사대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거기에 아크는 모든 스탯 +20의 보너스까지 덤으로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불멸의 서의 기적은 끝난게 아니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성물이 그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운명을 창조한 위대한 차오주, 운명의 어머니의 뜻이다! 여신관이 페허처럼 변해 버린 광장을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동시에 결사대원들이 모여 있는 곳 중심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저건 창세의 궤?" 아크가 빛을 뿜어 올리는 물건을확인하며 중얼거렸다. 그때 갑자기 레리어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끌려가더니 창세의 궤 앞에 다가섰다. 그러자 창세의 궤가 자동으로 덜컥 열리더니 순백의 빛 무리가 하늘로솟아올랐다. 그리고 회오리처럼 맹렬하게 회전 하며 날아와 레리어트의 몸에 빨려 들어갔다. 순간 레리어트의 몸이 빛 무리에 휘감겨 둥실 떠오르더니 수백, 수천 배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검은 하늘은 배경으로 떠오른 영상은 레리어트가 아니었다. 흑요석을 녹여 시로 엮은 듯한 검은 머리칼, 맑고 투명한 눈동자, 설원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놀라올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 아니 여신의 모습이었다. '저 얼굴은 그렇구나... 그랬던 거야!' 멍청한 눈길로 여신을 바라보던 아크는 뒤늦게 뭔가를 깨달았다. 아크가 상념의 미로에서 메모리 크리스털로 정보를 수집 할 때 몇번이나 봤던 유나! 사실 그떄 아크는 어딘지 유나의 얼굴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됐었다. 그러나 뉴 월드의 제작사니 어딘가에서 프로필을 봤겠지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창세의 궤가 발동하자 확실하게 꺠달았다. 창세의 궤에서 나온 연신은... 바로 유나였다. '맞아. 그러고 보니 창세의 궤에는 창조주의 신체가 담겨저 있다고 했었지. 그리고 불멸의 서도 몇 번이나 운명의 어머니라는 말을 했었어. 운명의 어머니는 바로 유나. 결국 창세의 궤와 불멸의 서, 두 가지 모두 유나라는 제작사가 만들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아크는 곧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유나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악플에 시달리ㅏ며 일을 하다가 죽어 버렸다.그리고 박우성은 그런 유나의복수를 하기 위해 어둠의 제왕을 부활시켜 뉴 월드를 멸망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어둠의 제왕을 막을 열쇠가 되는 불멸의 서와 창세의 궤를 유나가 만들었다? 대체 왜? 아크가 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뤼켄베르크의 등 위에서 연속해서 벌어지는 신비한 현상에 결사대원들은 물론 콰리안 주변의 수만 원정군, 심지어 마족들마저 넋을 놓고 지켜보는 가운데 여신의 등 뒤로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둠을 불태우는 빛이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다. "산들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볼을... 어, 어멋!" 궁극의 간병으로 결사대원들이 모두 부활했지만 생명력은 50%밖에 회복되지 않았다. 때문에 로코는 부활하자마자 회복의노래를 열창하며 결사대원들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여신이 나타나자 로코 역시 레리어트처럼 창세의 궤로 끌려갔다. 그리고 레리어트와 등을 맞댄 채 빛이 휩싸였을 때였다. "아ㅡ!" 여신의 입에서 로코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마치 황환에 물든 신비로운 숲 속에서 들려오는 요정들의 노랫소리처럼, 볼을 간질이는 작은 속삭임처럼, 은은하고 감미로운 목쇠였지만 수 킬로미터 밖에 떨어진 원중군의 귀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자 결사대원과 콰리안 주변의 원정군들의 생명력과 마나가 엄청난 솓고로 회복되었다. 동시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창세의 궤가 발동했습니다! 창세의 궤에는 태초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의 신체의 일부가 담겨 있습니다. 빛도 어둠도 창조주에게는 창조물의 일부. 이 창조주의 힘은 빛과 어둠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신체에 담긴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의 축복을 받은 세인트 나이트와 신의 저주를 받은 파멸의 기사뿐입니다. 세인트 나이트가 불러내면 창조주의 힘은 빛(생츄어리 : 성聖)이, 파멸의기사가 불러내면 어둠(생쳐어라 : 마魔)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창조주, 운명의 어머니의 권능을 가진 불멸의 서가 거기에 하나의 기적을 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구하는 신의 사랑입니다. *세인트 나이트, 황혼의 음유시인의 협력 연쇄 스킬로 '생츄어리 : 성가聖歌'가 발동됐습니다. <<주위 10Km 이내의 모든 아군의 생명력고 ㅏ마나를 100% 회복시킵니다. 또한 아군의 사기와 용기를 50% 증가시키고, 어둠 속성의 적의 사기와 용기를 50% 감소시킵니다.>> 10Km 이내의 아군 전체회복! -아크, 자네를 믿네. 그떄 마력을 몽땅 소진한 세계수들이 점차 흐려지다가 사라졌다.동시에 빛에 휘감겨 있던 불멸의 서도 낱장으로 분해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미 원정군은 세계수나 불멸의 서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사대원들이 부활했다!" "우리의 체력까지 몽땅 회복됐다!" "신의 뜻은 우리에게 있다는 증거다!" "서둘러 마족들을 섬멸하고 결사대원을 돕자!" "비공전투대, 마력포와 뇌신의 창을 재충전하라!" "철갑함대, 전 포문을 개방하고 마족을 향해 돌진한다!" 결사대원의 전멸로 절망에 빠져 있던 원정군들은 거듭된 기적에 광분했다. 그리고 '성가'의 효과로 사기와 용기가 급락한 마족들을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원정군의 반격을 지켜보던 아크도 새삼 활기가 샘솟았다. '불멸의 서 덕분에 흐름이 바뀌었다!' -크윽, 할우살이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별 수 있을 것 같으냐?" 세계수들이 사라지자 루시퍼가 결사대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눈을 반뜩였다. 그러자 루시퍼 주위에 모여 있던 수천의 마족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전 대원은 진형을 갖추고 충돌에 대비하라!" 아크가 곧바로 뒤로 물러나며 명령했다. 거듭된 기적으로 아크와 결사대원들은 다시 한 번 루시퍼와 싸울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현재 상황이 환호성을 터뜨릴 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 아크 주위에 모여 있는 병력은 800여 명. 그 병력으로는 루시퍼는 커녕 눈앞으로 몰려드는 수천의 마족들을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 방금전에는 비행정을 이요해 마족들의 공격을 따돌리며 루시퍼에게 공격을 집중할 수 있었지만. 신의 기적도 비행정까지는 부활시키지 못했다. '마족과 루시퍼를 동시에 상대할 수 밖에 업사는 뜻이다.' 상황만 보자면 오히려 좀 전보다 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크에게도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크와아아아아! 마족들이 송곳니와 발톱을 번뜩이며 걸사대원들을 덮치려고 할때였다. "애로우 스톰!" "나의 진노는 벼락이 될지니.. 체인 라이트닝!" 돌연 여기저기서 흩어진 건물 잔해 속에서 화살과 마법이 폭사되었다. 그리고 막 결사대원들을 향해 뛰어오른 마족들의 옆구리를 후려첬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온 공격에 옆구리를 얻어맞은 마족들이 튕겨저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동시에 건물 잔해 속에서 수백 명의 전사들이 몰려나와 마족에게 공격을 퍼부어 댔다. "왔구나!" 아크가 씨익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건물 잔해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백 명의 전사들! 그들은 바로 고대 흑마법사의 제단고 상념의 미로에서 전사한 결사대원들이었다. 새삼스럽지만 뉴 월드에서 유저가 사망하면 24시간동안 시체가 사라지지 않는다. 당연히이들의 시체는 부서진 건물 잔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거러다가 '궁극의 간병'효과 덕분에 이들가지 몽땅 부활해 버린 것이다. 물론 '궁극의 간병'은 아크조차 예상하지 못햇던 기적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혹시라도 이들이 캐릭터가 부활했음에도 접속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걱정과 달리 부활한 결사대원들은 곧바로 재정비를 마치고 전장에 복귀했다. 몇 시간 전에 전사한 그들이 이렇게곧바로 전장에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TV 덕분이었다. 현재 전 세계의 게이머들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전사한 결사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니트에서 나온 뒤로는 손에 땀을 쥐게 게임 특종에서 철야 방송되는 콰리안 전투를 지켜보다가 '궁극의 간병'이 발동하자 혹시나 하고 유니터에 접속해서전장에 복귀한 것이다. "우하하하하, 정말 살아날 줄이야!" "크, 어차피 한번 죽었던 몸이다. 무서울 게 뭐냐!" 부활한 결사대원들은 간덩이가 몇 배나 커졌다. 덥분에 사기 +50%의 창세의 궤 효과가 아니라도 사기는 이미 만땅이었다. "작전을 하달한다! 현재 우리의 상대는 수천의 마족고 ㅏ루시퍼다. 마족을 상대하려면 밀집대형을 취하는 게 좋지만 루시퍼르 상대하는 밀집대형은 자살행위다. 따라서 각 부대는 사념수 섬멸전을 펼칠 때처럼 10명 단위로 파티를 구성해 마족들을 상대한다. 하지만 이 작전은 마족을 상대하기 위한게 아니라 루시퍼의 공격을 피하는 게 목적이다. 항상 루시퍼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최대한 멀리 떨어져라!" "다시 말해... 도망 다니라는 말이냐?" 아크의 명령에 샴바라가 미간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아크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다가 만약루시퍼가 다시 좀 전의 살상 마법을...." "놈은 이제 살상 마법을 사용하지못해." 아크가 샴바라의 말을 잘라먹으며 씨익 웃었다. 그렇다. 아무리 결사대가 루시퍼를 피해 도망 다녀도 놈에게는 '아포칼립스'가 있었다. 일단 발동되면 직경 2Km의 공간의 모든 적을 ㅅ머멸시키는 사기적인 마법! 루시퍼가 '아포칼립스'를 발동시키면 결사대원들은 곧바로 전멸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멸의 서가 흩어졌으니다시 기적을 바랄 수도 없으리라. 그러나 기적이 단 한번 밖에 발동하지 않는것처럼 루시퍼의 '아포칼립스'도 1회용에 불과한 마법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아크가 '스킬 간파'로 알아낸 '아포칼립스'의 발동조건 때문이었다. 루시퍼가 '아포칼립스'를 발동시키려면 생명력의 50%를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루시퍼는 이미 50%의 생명력을 대가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결사대원들이 죽기 전에 루시퍼의 생ㅇ명력을 1~2%가량 깎아 냈으니 현재 놈의 생명력은 49% 전후! "그 상태로 '아포칼립스'를 발동시키면 우리보다 놈이 먼저 죽어버릴걸." '하지만 언제까지 나 마족과 루시퍼를 피해 도망만 다닐수는 없잔아." "누가 도망만 다닌데?" "방금 전에는 도망 다니라며?" "도망만 다니라는 게 아니라 내가 마족을 쓸어버릴 때까지 도망 다니라는 거지." "뭐? 마족을 쓸어버려? 너 혼자? 아무리 죽었다가 살아났다지만 간이너무 부운거 아니야?" 샴바라는 어디가 아프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후후훗, 너는 그냥 몰려드는 마족이나 때려 주면서 이 몸의 실력을 구경이나 해." 그때 아크가 히죽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마령 소환, 큐리오!" "오옷! 주인,사, 살아 있었냐?" 공간이 갈라지며 큐리오가 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아크가 다짜고짜 큐리오의 목을 꽉 움켜쥐고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자, 시작하자. 흡혈 스킬, '신탁의 권' 발동!" "오오오오오! 신탁의 권!" 그렇다. 이게 바로 아크가 상념의 미로를 탈출하기 전에 준비한 對최후 결전용 필살기 중 하나였다.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을 저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붉은 남자와 싸워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 힘으로 붉은 남자와 싸워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 그렇다면 뭔가 필살기로 삼을 만한 공격법을 생각해 놔야 해." 그때 아크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스킬이 '신탁의 권' 이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괴한 효과를 적용시켜 주는 기술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크가 '신탁의 권'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는 스킬을 바롱 시킬때마다 500이나되는 생명력이 소모된다는 점, 그리고 마음대로 원하는 효과를 발동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신탁의 권' 창시자도 결정적인 순간에 꽝이 나와 허망한 죽음을 맞이 했다지 않은가? "하지만 타이밍만 맞추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신탁의 권'을 그냥 봉인시켜 놓기는 좀 아까워" 이렇게 생각한 아크는 '신탁의 권' 효과를 마음먹은 대로 발동시킬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신탁의 권'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속성이나 성향, 환경 등 모든 조건을 충족시켜도 확률은 60~70%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크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신탁의 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큐리오의 스킬 흡수 기능을 이용하는 것! 그렇다. 큐리오는 흡혈로 스킬을 흡수했다가 필요할 때 발동시키는 기술이 있었다. 아크가 '신탁의 권'으로 필요한 효과를 발동시킨 뒤에 큐리오가 흡혈 스킬로 기술을 흡수하면 그 당시에 발동시켰던 '신탁의 권'효과를 고스란히 저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크가 상념의 미로에서 마스튜아라를 처리한 뒤에 장비를 점검할 때 큐리오와 함께 구석으로 향했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이었다. 필살기로 사용할 '신탁의 권' 효과를 미리 저장해 놓기 위해서! 아크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큐리오의 소환 해제를 먼저 생각한 건 그 때문이었다. 큐리오가 죽어 버리면 등록해 놓은 스킬까지 몽땅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노력을 보답받을 때가 도래했다. 큐리오가 흡혈스킬을 발동시키자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소환수 큐리오가 슬롯에 저장된 스킬 '신탁의 권(흉내쟁이)'을 바롱시켰습니다. 신탁 결과 【속성】: <<장난꾸러기>> 【성향】:<<재주꾼>> 【환경】: <<거울>> 신탁으로 선택된 공격방식은 '흉내쟁이'입니다. <<시전자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공격을 똑같이 흉내 내어 바롱합니다. 단, 흉내쟁이로 스킬을 발동시켜도 소모되는 에너지는 같으며 위력은 80%밖에 발휘되지 않습니다.>> 큐리오 저장 스킬 제 1탄 '신탁의 권(흉내쟁이)'! 흉내쟁이는 아크가 잡몹을 잡을 때 이것저것 시험해 보다가 우연이 찾아낸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흉내쟁이라는 기술은 꽤나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흉내쟁이는 딱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아크가 마지막에 받았던 적의 공격을 80%의 위력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아크가 죽기 직전, 루시퍼에게 받았던 마지막 공격은.... -흉내쟁이로 루시퍼의 신격 스킬 '아포칼립스'를 발동시켰습니다! '아포칼립스'는 루시퍼가 발동시킨 궁극의 살상 마법입니다. 스킬을 발동시키고 5분이 지나면 효과가 발동합니다 <<이 마법은 루시퍼으 신역 선포 범위 내의 모든 적을 대상으로 발동하니다, 단 흉내쟁이로 발동한 것이라 루시퍼의 신역 선포가 사라져도 발동합니다. 대신 생명력 50%가 소모되며, 위력도 80%로 감소해 타깃이된 대상에게 7만 2천~8만 데미지밖에 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 바로 루시퍼의궁극 살상 스킬 '아포칼립스'! 흉내쟁이를 발동시키자 아크의 몸은 검은 기운에 휩싸이며 '아포칼립스'가 발동되었다. 비록 80%위력이라도 2Km 범위 내의 모든 적에게 7만 2천~8만의 데미지! "설마 이런 스킬을 흉내 내게 될 줄은 상ㅅ아도 못 했어." 스킬을 발동 시킨 아크게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혹시나 싶어 저장시켜 놨던 '신탁의 권(흉내쟁이)'이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아크가 결사대원들에게 일단 피해를 줄이며 도망다니라고 한 이유가 이때문이었다. 일격에 7만 2천~8만의 데미지! 일단 스킬이 발동하면 뤼켄베르크의 등에서 돌아다니는 모든 마족은 방금 전의 결사대원들처럼 즉사다. 굳이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네놈이...? 아크가 스킬을 발동시키가 루시퍼가 당혹성을 터뜨렸따. "왜? 특허 받았냐?" -저놈을... 놈을 죽여라! 루시퍼가 수천의 마족과 한 덩이가 되어 아크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러자 정의남과 갱생단, 영웅의 후예뜰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놈들을 막아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아크를 보호하라!" 스킬이 완성되기 전에 아크가 치명타를 맞거나 죽으면 모처럼 역전 스킬도 캔슬돼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아크는 '전력질주'를 난사하며 도망쳤고, 상황을 알아챈 결사대원들은 루시퍼의 공격을 펑펑 날아가면서도 끈질기계 루시퍼와마족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한참의 술래잡기 끝에 결국 루시퍼는 아크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막 주먹을 내려치려는 순간, 아크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미 늦었어," 쿠쿠쿠쿠, 쿠쿠쿠쿠, 쿠쿠쿠쿠! 동시에 굉음과 함꼐 어둠에 잠긴 하늘이갈라졌따. 그리고 기괴하게 뒤틀린 지역의 세 악마, 분노와 공포, 절망이 고개를 내밀었다. -크으으으, 멍청이들! 내가 아니다... 돌아가라! 루시퍼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지억의 세 악마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고대의 게약에 의해 불려 나온 세 악마에게 이미 루시퍼는 주인이 아니었다. 세 악마는 루시퍼의 고함을 무시하며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또다시 먹구름이 거칠게 꿈틀거리더니 돌연 수천줄기의 붉은 광선을 소나기처럼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어막 무시 효과로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을 관통하며 내리꽃혔다. 이전 똑같은 상황, 그러나 이번에 붉은 광선이 목표는 결사대가 아니라 마족과 루시퍼였다. -크와아아아아아! 살상 마법의 타깃이 된 마족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미 발동된 궁극 살상 마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쾅, 쾅, 쾅, 쾅, 쾅! 하늘에서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수천 줄기의 붉은 광선! 마족을은 도망가는 자세 그대로 시커먼 숯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수천의 마족이 일격에 잿가루로 변하자 눈앞에 메시지가 쭉 올라갔다. 비록 1,200명의 결사대원과 공격대를 구성한 상태라 경험치도 나눠 먹을 수밖에 없었따. 그러나 공격대를 구성해도 모두가 똑같은 경험치를 받는게 아니었다. 적에게 가장 많은 타격을 입히는 대원이 가장 많은 경험치를 받았다. 게다가 아크는 공격대장. 적을 죽일 때마다 보너스 경험치와 명성, 공적치가 적용되는 것이다. 덕분에 아크는 단숨에 7레벨이 올라 504레벨로 점프해 버렸다. 그런데 레벨이 500을 돌파할 때 아크의 몸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가 일어났다. 돌연 아크의 양팔이 시큰거리기 시작하더니 팔목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이터널 소울 봉인이 깨져 나간 것이다. 동시에 눈앞에서 섬광이 일어나더니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터널 소울'의 봉인이 헤제되어 새로운 직업 전용 스킬을 습득했습니다. 【마기감응】: 이터널 소울 9단계(패시브) '마기 감응'은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으로 마반 영웅의 소울스톤에 담긴 비기를 배워 나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 단계의 스킬입니다. '마기 감응'을 습득하면 마 속성의 상태 이상에 저항할 확률이 50% 상승합니다. 또한 몬스터의 체내에 숨겨진 마기를 감지할 수 있게 됩니다. <<마기 감지, 마 속성에 대해 공격력 +50%, 속성 저항력 +60% 【영웅 융합】: 이터널 소울 10단계(액티브) 어둠의 제왕이 7인의 영웅에게 패퇴해 지옥으로 돌아갔지만 마반 영웅은 세력이 수백 년 뒤에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마반 영웅은 다른 영웅들과 달리 어둠의 마력이 남아 있던 오벨리움에 찾아가 자신의 후예가 수백 년 뒤에 찾아올 어둠의 세력을 상대할 방법을 찾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랜 명상 끝에 각기 다른 속성을 가진 영웅들이 완벽하게 하나로 힘을 모아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마반 영웅은 연구를 거듭해 자신의 몸에서 다른 영웅의 힘을 융합 할 수 있는 취후의 비전 '영웅 융합'을 창인하게 되었습니다. '영웅 융합'은 영역 선포를 외부가 아닌 자신의 몸 내부에서 발동시키는 기술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영웅의 후예가 발동시키는 영역 선포까지 흡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흡수한 영역 선포는 몸속에서 융합되어 시전자에게 초인적인 능력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영웅 융합'의 힘은 충분히 달련되지 않은 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조건이 충족돼도 레벨 500이 되어야익힐 수 있습니다. <<영웅의 후예가 발동시키는 영역 선포를 흡수합니다.>> "마지막 이터널 소울!" 아크는 정보창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드디어 마반 영우이 물려줬던 모든 이터널 소울의 봉인을 해제하게된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옛아했던 것과 달리 이터널 소울을 모두 봉인 해제했으멩도 3차 전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터널 소울이 3차 전직으로 가는 열쇠임은 분명했지만 아직 뭔가 조건이 부족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로써 마 속성에 대한 추가 공격력이 50%가 되었다! 거기에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까지 합하면 70%! 그것만으로도 이터널 소울을 완전히 해제한 보람은 있어! 이제 마족들도 모두 사라졌으니 남은건 어둠의 제왕 루시퍼!' 아크가 번쩍 시선을 들어 올리며 루시퍼를 바라보았다. 루시퍼 역시 궁극의 살상 마법'아포칼립스'를 피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포칼립스'는 방어력과 방어막 효과까지 무시해 버리는 마법! 루시퍼를 휘감은 어둠의 갑옷조차 '아포칼립스'의 불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크아아아아! 이, 이놈...! 막 아크를 공격하려던 루시퍼가 불길에 휩싸여 괴성을 질러 대며 물러났다. 동시에 미동도 하지 않았던 생명력이 엄청난 속도로 증발하며 단숨에 10%나 빨려 나갔다. 그걸 확인한 아크의 입이 쩍 벌어졌다. '7만 2천~9만의 데미지를 주는 '아포칼립스'를 맞고도 고작 10%? 놈의 전체 생명력은 최소한 72만~90만은 된다는 말이잔아? 그리고 이제야 60%가 날아갔으니 아직 32만 정도는 남아 있다는 뜻이다!' 사실 아크는 이번 공격으로 루시퍼가 죽기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적어도 빈사 상태는 되라록 기대했다. 그런데 결사대를 절망에 빠드렸던 마법을 맞고도 줄어든 생명력은 고작 10%, 게다가 아직 32만에 달하는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것까지 확인해 버리고 말았다. ....32만 이라니?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숫자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모든 마족을 처리했다고 해도 1,200명의 결사대원만으로는 승산이 없다. 방금 전에도 결사대원이 비행정을 탄 상태로 거의 1시간 동안 수백 명이 전사하며 맹공을 퍼부어 대고도 놈의 생명력은 고작 1~2%밖에 줄여 놓지 못했는데..... 40%를 줄이려면 루시퍼와30~40시간을 싸워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아무리 사기가 높아도 이건 물리적을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콰리안을 포위한 비공전투대와 철갑 상선대의 화력까지 가세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가 발동시킨 '아포칼립스'로 전멸한 마족은 뤼켄베르크의 등 위에 잌ㅆ던 마족들 뿐이었다. 아직 콰리안 주변에는 10여 만에 달하는 마족들이 우글거리는 것이다. 물론 원정군은 레리어트와 로코의 협력 연쇄 스킬 '성가'덕분에 사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적은 병력으로도 마족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시간에 마족을 전멸시키고 뤼켄베르크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주기를 바라기는 힘들었다. '젠장, 대체 이 망할 어둠의 제왕인지 마왕인지를 어떻게...' 루시퍼의 생명력을 수치로 확인하자 모처럼 치솟았던 사기가 푹 꺼저 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루시퍼를 노려보는 아크의 눈에 기묘한 장면이 들어왔다. 루시퍼가 불길에 휩싸이자 놈을 보호했던 어둠의 갑옷이 잠깐이지만 비늘처럼 녹아내렸다. 그러더니 마치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루시퍼의 진짜 피부가 드러났다. 결사대원들은 그 혐오스러운 몰골에 비명을 터뜨렸지만, 이미 가까이서 놈의 진짜 몸을 감상(?)했던 아크에게는 새삼스러울게 없었다. 아크가 관심을 보인 것은 그런 흉한 몸이 아니었다. '뭐,뭐지? 저건?' 아크가 시선을 집중한 곳은 잠깐 어둠의 갑옷이 벗겨졌을때 드러난 가슴부분 이었다. 그 부분에서 상상도 못했던 '무엇'을 발견한 것이다. '설마.... 정말 내가 본게 확실한 건가? 가만? 그러고 보니 루시퍼가 나타난 뒤로부터 그놈도 보이지 않았어. 내가 왜 그놈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 루시퍼가 나타났는데 놈을 부활시킨 놈이 보이지 않는 건 이상해. 그런데 놈이 저기에? 그렇다면 혹시 어쩌면....' 생각을 진행시키던 아크가 움찔하며 우측 상단의 경고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48분>> '틀림없이. 그것밖에 설명할 수없다.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아크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루시퍼를 향해 달려가며 소리쳤다. "샴바라, 브레드 나를 따라와! 레리어트, 워머, 레디안, 티모시, 백업 부탁해! 정의남 아저씨, 모든 병력을 전방에 집중시키세요!" "뭐? 하지만 병력을 한곳에 집결시키면..." 자칫 루시퍼의 광범이 공격에 전멸당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놈이 불길에 휩싸여 혼란이 빠져 있는 지금이 기회예요." "....알았다. 전 병력은 루시퍼의 앞에 집결하라!" 정의남의 명령에 결사대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루시퍼의 앞에 몰려들었다. 그사이 먼저 루시퍼의 앞에 도착한 영웅의 후예들과 합류한 아크가 소리쳤다. "큐리오, '신탁의 권(운수대통)' 발동!" "우오오오!" 스킬 자판기로 전락한 큐리와 빛을 뿜어내며 스킬을 발동시켰다. -소환수 큐리오가 '신탁의 권'을 발동시켰습니다. 신탁결과 【속성】<<행운>> 【성향】:<<귀인>> 【환경】:<<명당>> 신탁으로 선택된 효과는 '운수대통'입니다. <<10분간 시전자의 주변 100미터 공간의 아군들의 운이 200% 상승했습니다. 운이 상승하면 공격의 치명타 확률과 특수 효과발동이 증가합니다.>> 동시에 큐리오의 흡혈 스킬 2탄 '신탁의 권(운수대통)'이 발동되었따! 추가 효과는 주변의 아군의 운이 200% 상승하는 것! 이건 어떻게 보면 별 의막 없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써보면 의외로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 운이라고하면 보통 유저들은 절대 올리지 않는 스탯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운은 유저가 하는 모든 행동의 성공률과 치명타 발동 확률, 기타 등등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치는 스탯이었다. 물론 그 효과가 눈에 띌 정도가 아니라 굳이 운을 올려서 성공률이나 발동 확률을 높이는 것보다 필요에 따라 지능이나 민첩에 투자하는 편이 효율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민첩이나 지능은 가장 강한 버프를 받아도 고작 50% 정도밖에 올라가지 않지만 '신탁의 권(운수대통)'은 운을 200%나 올려 주는 것이다.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영향 범위 안의 결사대원들은 치명타 발동 확률이 비약적으로 상ㅅ으했으리라! 그러나 아크가 '운수대통'을 사용한 건 치명타 발동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전방의 모든 병력은 루시퍼의 가슴에 집중 공격하라!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의 명령에 1,200여 명의 병사들이일제히 루시퍼의 가슴으로 스킬을 난사했다. 엄청난 섬광과 화염, 고아선이 루시퍼의 가슴에서 폭발을 일으켰다.그렇게 일제히 공격을 퍼붓자 루시퍼의 가슴을 막고 있던 어둠의 갑옷이 점차 떨어져 나갔다. 결사대원의 공격력이 어둠의 갑옷 재생 속도를 압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도 놈의 갑옷은 금세 벗길 수 있다. 하지만 놈이 아포칼립스의 불길에서 벗어나면 비행정도 타고 있지 않은 결사대원들이 루시퍼의공격을 받으며 가슴 부분에 공격을 집중시키기는 힘들어.' 그렇게 생각한 아크가 한 걸음 물러섬 영웅의 후예뜰을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레리어트, 티모시, 워머, 닥치는 대로 공격하지 말고 서로 정확한 타이밍에 스킬을 날린다, 하나, 둘, 셋. 다크 블레이드!" "대지 폭풍!" "뇌검!" 콰콰콰콰, 콰콰콰콰! 영웅의 후예뜰이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 스킬을 날리자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그런 공격을 몇 번이나 성공시켰을 무렵... 아크의 눈앞에 돌연 격렬한 뇌전이 일어나며 새로운 정보창이 올라왔다. -새로운 협력기가 등록되었습니다. 협력기 : 상성이 70% 이상 동조되는 동료와 함께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할 경우, 매우 드문 확률로 협력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기도 합니다. 현재 아크님과 레리어트 님, 샴바라 님, 브레드 님, 레디안 님, 티모시 님, 워머 님의 상성 동조율은 73ㅁ%입니다. 또한 특정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하는 조건을 만족시켜 새로운 협력기가 등록되었습니다. 단, 협력기의 발동 확률은 5%이며 7명이제한 시간 내에 연결된 스킬을 하나라도 실패하면 스킬이 취소됩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협력기 -라크나로크 다크 블레이드(소성 : 암暗)=뇌검(속성 : 살殺)-그랜드 크로스(속성 : 성聖)=대지의 폭풍(속성 : 수獸)=볼케이노 오브 헬(속성 : 화火)=악마를 관통하는 화살(속성 : 파마破魔)=장비 투척(속성 : 기機) <<협력기 성공 시 : 각각 스킬 데미지 +1,000%의 추가 데미지 발동>> "됐다! 성공이다!" 정보창을 확인한 아크가 호나호성을 터뜨렸다. 그렇다. 아크가 '신탁의 권(운수대통)'을 발동시킨 이유는 바로 이 떄문이었다. 협력기는 상성이 70% 이상 동조되는 동료와 함께 직업 전용 스킬을 사용할 경우, 불과 5%의확률로 발동하는 필살기였다. 솔직히 천운이 따르지 않는 한 실전에서 제때 발휘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필살기! 그러나 확률이라는 것도 어차피 운. 모두의 운이 200% 상승한 상태라면 천운이라도 불러들일 수 있는 것이다. "다크 블레이드ㅡ!" 아크가 옅어진 어둠의 갑옷을 향해 검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아크의 검이 훅 하고 사라지더니 하늘에서 거대한 검이 나타났다. 그리고 위그리마를 상대할 떄 이미 한번 협력기를 경험해 본 샴바라와 레리어트도 능숙하게 스킬을 연결시키자 거대한 검이 십자 형태로 변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으라차차, 대지 폭풍!" ".... 적을 멸하라, 볼케이노 오브 헬!" "마탄의 사수 1장, 악마를 광통하는 화살!" "받아라, 1골드짜리 스패너다!" 나머지 영웅의 후예들도 그동안의경력을 증명하듯 스킬을 연결시켰다. 그렇게 여섯 명이 모든 스킬을 합체시키자 거대한 십자 검에는 폭풍과 불길까지 일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머가 스패너를 집어 던지자 거대한 기계 병사가 공간을 뚫고 나타나 마력을 뿜어내는 심자 검을 움켜쥐더니 루시퍼의 가슴을 향해 돌진했다. 콰콰콰콰콰, 콰콰콰콰콰! 십자검이 박히자 루시퍼의 가슴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각각 스킬 데미지 X1,000%의 데미지! 엄청난 데미지에 루시퍼의 가슴을 보호하던 어둠의 갑옷이 단숨에 뜯겨저 날아가며 단숨에 1%의 생명력이 깎여 나갔다. 1%.... 솔직히 박력 넘치는 시각 효과를 생각하면 씁쓸하기 짝이 없었따. 그러나 결사대가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 부어도 생명력이 줄어드는 티도 나지 않는 상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굉장한 공격력이었다. 그러나 아크가 협력기를 발동시킨 이유는 단순히 루시퍼에게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드디어 놈의 가슴이 열렸다!" 아크가 시선을 지붕해 어둠의 갑옷이 떨어져 나간 루시퍼의 가을 노려보았다. 구더기가 들끟는 듯한 루시퍼의 가슴 부분.... 그곳에는 놀랍게도 투명한 캡슐에 쌓인 붉은 남자가 박혀 있었다. 그렇다. '아포칼립스'의 불길에 잠깐 어둠의 갑옷이 녹아 내렸을 떄 아크가 봣던 장면이 바로 그 붉은 남자였다. 사실 아크는 루시퍼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서 그동안 붉은 남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루시퍼의 가슴에 박힌 붉은 남자를 보고 의문이 떠올랐다. '붉은 남자가 심심해서저기 박혀 있지는 않을 거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야, 대체 왜?' 그런 의문을 떠올리는 순간 새로운 의문이 실마리가 풀렸다. 분명 아크가 처음 루시퍼를 봤을 때 시스템 경고 메시지에서는 아직 부활의식이 2시간이나 남아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루시퍼는 부활해서 결사대원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게 루시퍼와 싸우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었다. 그런데 루시퍼의 가슴에 박혀 있는 붉은 남자를 보자 퍼뜩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만약 루시퍼의 부활 의식이 아직도 진행되는 중이라면? 그럼에도 루시퍼가 움직이고 있다면 혹시.. 붉은 남자가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삼아 부활 의식을 진행시키는 도중에 루시퍼를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이게 아크가 순간적으로 생각해 낸 가설이었다. 물론 이건 아직 아크의 짐작에불과했다. 그러나 어찌 됐든 붉은 남자가 루시퍼의 가슴에 박혀 있는 것은 사실이어싿. 당연히심심해서그런 곳에 기어들어갈 리는 없으니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을 터.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아크에게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리라. '일단 놈을 뿜어내면 모든게 명확해진다!' 아크가 전력을 집중헤 루시퍼의 가슴을 공격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보호막을 걷어 내고 붉은 남자를 밖으로 드러내기 우해서.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 "마령 소환,버닝혼, 팬저드리군으로 변신!" 크라라라, 크라라라! 순간 공간이 갈라지며 불길과함께 팬저드라군으로 변신한 버닝혼이 튀어나왔다. 아크는 저공비행을 하는 버닝혼의 등에올라타 루시퍼의 가슴을 향해 날라갔다. 아크가 어둠의 어둠의 갑옷이 사라진 가슴으로 접근하자 루시퍼가 양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러나 아크는 버닝혼을 수직상승시킨 뒤에 등을 차고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도약, 다크 블레이드, 아돌ㅡ!" '도약'과 '다크 스트라이크'의 연쇄 기술 아돌! 순간 검과 일체가 된 아크는 화살처럼 쏘아져 루시퍼의 가슴에 박혀 버렸다. 아크의 검이 파고든 곳은 붉은 남자를 감싼 캡슐과 루시퍼의 살점이 뒤엉킨 곳 검이 파고들자 캡슐을 둘러싼 살점 일부가 끊어지며 덜렁거렸따. 아크는 마치 껴안듯 캡슐을 부여잡고 번개처럼 검을 놀려 주변 살점을 찢어댔다. 그러나 상대는 루시퍼. 피부가 고무처럼 질겨서 몇 번을 휘둘러도 제대로 끊어지지가 않았다. "크윽, 젠장...!" "아크,놈의방어막이 닫힌다! 폭우검!" 그때 밑에서 샴바라의 목소리가 드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둠의 갑옷이 엄청난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에 아크가 매달려 있는 상황이라 결사대원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공격을 퍼붓지는 못하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어둠의 갑옷에 갇혀 버리면 몇 초도 버티고 소멸해 버리고 말리라!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제 루시퍼도 혼란에서 벗어난 상태다. 게다가 아크가 가슴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으니이대로 물러나면 두 번 다시 이런 기회조차 없으리라. 그리고 만약 아크의 에상대로 루시퍼가 불완전한 상태로 움직이고있었던 것이라면... 믿기 힘들지만 지금까지의 루시퍼는 완전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놈이 완전해지는 것은 부활 의식이 종료됐을 때. 즉, 40여분 뒤에는 훨씬 강한 루시퍼와 싸워야 하나는 뜻이다.' 아크는 어금니를 꺠물며 더욱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그러나 아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의 갑옷에 뒤덥여 버렸다. 아크가 어둠의 갑옷에 삼켜지자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아크 님!" "아크 오빠!" "대장님!" "이, 이런, 공격해라! 놈의 어둠의 갑옷이 두꺼워지기전에 모든 화력을 집중시켜라!" 멍청한 눈길로 바라보던 정의남이 와락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을 때였다. 결사대원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던 루시퍼의 가슴 부분이 갑자기 들썩거렸다. 그리고 마치 혹처럼 불쑥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쩍 갈라지며 아크의 목소리가 드려왔다.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콰콰콰콰콰, 콰콰콰콰콰콰! 그 동안 전투를 하며 닥치는 대로 마족을 봉인시켜 놨던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 무려 60마리가 넘는 마족을 충전시켰던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를 폭발시키자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가며 아직 완벽하게 재생되지 못한 어둠의 갑옷을 찢어버렸다. 동시에 뻥 뚫린 어둠의 갑옷 사이로 아크가 붉은 남자가 담긴 캡슐과 함께 튀어나왔다. "크윽!" 어둠의 갑옷에 갇혀 적지 않은 데미지를 받은 아크가 간신히 낙법을 펼치며 중심을 잡았다. 동시에 루시퍼의 발치에 떨어진 캡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흩어지는 캡슐 잔해 속에서 붉은 남자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뻘건 눈동자로 아크를 노려보며 이를 갈아붙였다. ".....아크!" ---------------------------------------- Act 8. 프로젝트: 루시퍼 -크와아아아아! 캡슐이 뽑혀 나가자 루시퍼가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광란했다. 그러다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괴성을 터뜨리며 마구잡으로 팔을 휘둘러 댔다. "우왓! 피, 피해라!" 루시퍼 앞에 모여 있던 결사대원들이 놀란 닭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루시퍼는 결사대원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루시퍼는 손에닿는 것은 뭐든지 닥치는 대로 두들기고 때려 부수며 바닥에 머리를 찧어 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우뚝 멈추더니 온몸이 흐물흐물 젤리처럼 녹아내렸다. "노, 녹잖아? 그럼 이제 죽은건가?" "뭐야,? 이제 끝난 건가?" "우리가 이긴 거야?" 결사대원들이 엄청난 크기의 점액질로 변해 버린 루시퍼를 바라보며 중얼거려싿. 그러나 아크는 슬쩍 시선을 돌려 여전히 깜빡이 경고 메시지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어둠의 제왕 부활 의식이 진행되고 잇습니다! <<어둠의 제왕 부활까지 남은 시간 : 37분>> 아크의 고함과 동시에 검은 점액질이 움찔움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발하듯 사방으로 수십 줄기의 촉수가 뻗어 나갔다. 쿠콰콰콰콰콰, 쿠콰콰콰콰콰! "헉! 뭐, 뭐야?" "사, 살려 줘, 우와아아아아!" 멍하니 지켜보던 결사대원 수십 명이 촉수에 휘말려 루시퍼에게 흡수되었다. 그렇게 루시퍼에게 흡수된 결사대원은 순식간에 녹아 뼈만 앙상하게 남아 버렸다. '맙소사, 루시퍼는 부활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공격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아크는 새삼 루시퍼의 위력을 실감했다. 사실 아크는붉은 남자를 빼 버리면 루시퍼는 건전지를 뺀 인형처럼 움직이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붉은 남자를 뺴 버려도 루시퍼는 형태를 잃었을 뿐,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콰콰콰콰쾅, 콰콰콰쾅! 루시퍼가 미친 듯이 수백 개의 촉수를 휘둘러 대자 돌풍에 휘말린 흙먼지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광장을 뒤덮었다. 흙먼지 때문에 불과 10여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결사대원들의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게다가 부활 의식 역시 중단되지 않았다. 결국 37분 안에 루시퍼를 완전히 박살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은 지금까지와 확연하게 다르다. 이전에는 나름대로 의식을 가지고 움직였지만 지금은 그저 발광하는 것에 불과해. 게다가..." "쳇, 이런 괴물 자식. 폭우검!" "저리 안 꺼져? 대지 폭풍!" 콰콰쾅, 콰콰콰콰쾅! 그때 옆에서 샴바라와 브레드가 사방으로 날라다니는 촉수를 후려렸다. 그러자 폭발과 함께 수 미터나 밀려난 촉수가 맥없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루시퍼의 생명력이 단숨에 0.5%나 깎여 나갔다. "놈이 부활 의식을 치르는 단계로 퇴화해버려서 방어막이 사라지고, 방어력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이런 상태로 루시퍼라면 결사대원만으로도 제한 시간 안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만약 결사대가 상념의 미로를 탈출했을 때 루시퍼가 이런 상태였다면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으리라. 붉은 남자의 속임수에 속아 꽤 많이 돌아온 셈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제 붉은 남자의속임수도 밝혀 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7분. 결코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족이 전멸하고 1,200여 명의 결사대원들이 모두 부활했으니 승산은 충분했다. '정의남 아저씨, 갱생단 형님들, 침착하세요. 뭉개진 루시퍼는 그냥 아메바에 불과해요. 공격 패턴이 단순해서 조금만 살펴보면 충분히 피할수 있어요. 게다가 방어막도 없고, 방어력도 일반 보스 몬스터 수준밖에 안 돼요. 침착하게 대처하면 어려운 상대가 아니에요." "나도 눈치 챘다!" 정의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갱샌ㅇ단이 루시퍼의 공격 패턴을 읽어 내고 소리쳤다. "전군, 50명 단위로 부대를 만들어라. 궁수와 마법사들은 ㅁ놈의 본체를 공격하고, 전사들은 놈의 촉수로부터 부대원을 보호하라! 부대의 이동 위치는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그동안 수많은 격전을 치르며 손발을 맞춰 온 결사대원들! 정의남과 갱생단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진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자 위치를 맡아 촉수를 상대하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됐어. 이대로 밀어 붙이면...!" 번쩍ㅡ! 아크가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낼 때였다. 돌연 눈앞에서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등줄기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젔다. 아크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팔다리가 저릿저릿하며 움직여지지 않았다. ='차크라의 파동'에 적중되었습니다. <<'센의 파동' 효과로 몸 내부에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습니다. 망어력이 무시되어 800의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신체의 마나 벨런스가 깨져 마나가 1,000증발했습니다. 가격 부위에 심각한 타박상을 입어 5분 간 공격 속도와 이ㅏ동속도가 10% 경감했습니다. 경직에 걸려 3초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크윽, 차크라의 파동?" 아크가 움찔하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루시퍼의 난동으로 자욱파게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하얀 가면을 쓴 붉은 머리의 사내... 그를 발견한 아크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붉은 남자!" "네놈... 죽여 버리겠다!" 붉은 남자가 이를 갈아 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또 루시퍼 때문에 저놈이 근처에 있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잖아?' 아큭 자신의 건망증에 망연자실 하고 있을 때여싿. 붉은 남자가 허리에서 두 자루의 장검을 뽑아 들며 몸을 날렸다. 거의 번뜩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스피드! 이전에 경험해 본 붉은 남자의전투를 생각하면 일격이 곧 치명상으로 이어지리라. 그러나 방금 전에 '차크라의 파동'을 백스탭으로 얻어맞은 아크는 마비에 걸려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금니를 꺠물고 이어질 충격에 대비하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리고 막 붉은 남자의 검이 아크의 목에 닿으려는 찰나! "우리는 핫바지냐? 대지 폭풍!" "폭우검!" 먼지 안개 속에서 샴바라와 브레드가 뛰어나오며 붉은 남자를 향해 검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붉은 남자가 마치 뱀처럼 몸을 휘며 좌우로 쌍장을 뿜어냈다. 그러자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더니 샴바라와 브레드가 피를 뿜어내며 튕겨저 날아갔다. "크윽! 뭐, 뭐야, 저 자식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도 않아." "저 자식이.. 내 펫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그러자 뒤늦게 나타난 레디안이 와락 얼굴을 구기며 양손에 불과 어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양팔을 X자료 교차시키며 소리쳤다. "융합 마법, 엘리멘탈 브레이크!" 긴포물선을 그리며 좌우에서붉은 남자에게 달려두는 화염과 얼음! 그러나 두 마법이 충돌하기 직전, 붉은 남자가 훅 하고 사라지더니 레디안의앞에서 불쑥 나타났다. 동시에 붉은 남자의 주먹이 레디안의 복부에 박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꺼져라, 계집!" 레디안은 비명초자 치르지못하고 10여 미터나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떄 먼지구름 저편에서 붉은 남자를 록온하고 기회를 노리고 던 티모시가 눈동자를 번뜩이며 수십 발의 화살을 난사했다. 아니, 난사하려 할 대였다. "빨간 놈, 아란의 복수다! 마탄의 사수 4장, 악마를 난자...." 붉은 남자가 번개처럼 몸을 회전시키자 망토가 활짝 펼처지며 수십 발의 붉은 광선이 폭사되었다. 망토에서 뻗어 나간 수십 발의 광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정조준 자세로 막 시위를 당기던 티모시의 몸을 관통했다. 티모시는 시위를 당기던 그자세 그대로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우와아아아아아!" 콰콰콰콰, 콰콰콰콰콰! 이번에는 아머드 슈트를 걸친 워머가 맹렬히 돌진하며 마력포를 난사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아머드 슈트의 양 어깨 부분에서 검은연기가 뿜어져 올라오더니 폭발해 버렸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아머드슈트는 속도를 주체하지못하고 급격히 회전하다가 미끄러저 버렸다. 이미 워머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챈 붉은 남자가 붉은 광선으로 티모시와 워머를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아니, 흙먼지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어 마법을 외우던 레리어트도 붉은 고아선을 맞고답답한 비명을 터뜨리며 쓰러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반응속도였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 순식간에 영웅의후예들을 처리해 버린 붉은 남자가 일그러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실수다. 하찮은 놈들이라 신경도 쓰지 않았는디... 진즉에 네놈들을 처리 했어야 했어. 하지만 실수는 수정하면 그만이지. 네놈들은 내 손으로 처리한 뒤에 루시퍼를 완전체로 부활시키면 약간의 실수 정도는 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누구 맘대로?" 그제야 마비가 풀린 아크가 비틀거리며몸을 일으켰다. 나름대로 호기를 부려 붉은 남자의 말에 대꾸했지만 내심 식은땀이흘러 내렸다. '젠장, 이제 쪼금은 싸워 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크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샴바라와 브레드 등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아크가 붉은 남자와 처음 검을 마주쳤을 때가 레벨 300대. 당시 아크는 샴바라와 함께 협공을 펼쳤음에도 제대로 검 한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박살 났다. 그러나 그 후로 거의 1년여. 아크는 레벨 500을 달성했고 장비품도 그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제는 붉은 남자와 붙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붉은 남자와 다시 만나 보니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번에 아크가 일격에 받은 것은 기습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샴바나 브레드는 아크와 거의 대등한 실력자,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먼저 붉은 남자를 기습했다. 그럼에도 제대로 공격조차 못 해보고 바닥에 처박힌 것이다. 그 뒤로 티모시와 워머, 레리어트, 나머지 영웅의 후예들도 단 일격에 같은 꼴이 돼 버린 것이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4초! 믿어지지 않은 강함이었다. 그러나 붉은 남자의 정체가 박우성이라면 그런 상황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었다. '박우성은 뉴 월드를 만든 장본인, 말하자면 창조주다!' 당연히 박우성은 게임을 만들 때부터 테스트를 위하여 여러 캐릭을 키워 봤으리라. 그리고 만약 그런 캐릭터 가운데 하나를 지우지 않고 남겨 뒀었다면? '붉은 남자는 .... 뉴 월드의 최초의 캐릭턷!' 그렇다면 아마도 뉴 월드가 상용화 됐던 시점에 이미 붉은 남자의 레벨은 수백 대에 도달해 있었으리라. 그리고 뉴 월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장비품은 물론 각종 방법으로 능력치를 뻥튀기 해 놓았으리라. '하지만 놈의 강함은 단순히 레벨과 능력치만이 아니야.' 아크도 얼마전에 야 알게 됏지만 붉은 남자는 박우성이 프로그램 해 놓은 오토 시스템의 일종,말하자면 NPC에 가까운 유저 캐릭터 라는 말이다. 그러나 같은 NCP라도 평범한 NPC들과는 다르다. 고작 몇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로움직이는 NPC들과는 달리 붉은 남자는 수십, 수백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것은 붉은 남자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전투를 할 때도 인간의 뇌를 훨씬 상회하는 연산 속도로 공격과 방어를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놈과 전투를 한다는 것은 슈퍼컴퓨터오 장기를 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무적! 당연하다. 창조주인 박우성이 작정하고 무적으로 만든 놈이니 말이다. '붉은 남자는 능력치도, 장비품도, 전투의 대처 능력까지 모든 부분에서 우리를 압도 하고 있다. 이런 괴물을 대체 무슨 수로 쓰러뜨리라는 거야?' 아크가 대체 어떠헥 상대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 였다. "귀찬으니까 모두 한꺼번에 처리해 주마. 시바의 신역 선포!" 북은 남자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소리쳤다. 쿠콰콰콰콰콰! 동시에 갑자기 거대한 석상이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힌두교의 세 주신 가운데 하나. 4개의 팔, 4개의 얼굴, 목에 뱀과 송장의 뼈를 감은 모습을 하고 있는 파괴신 시바의 형상을 닮은 석상이었다. 지면을 뚫고 솟아난 석상이 4개의 팔을 기묘하게 움직이자 이내 주변의 지면이 붉게 달아올랐따. 순간 아크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해 버렸다. 아크는 이미 이신역 선푸의 위력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직경 300미터의 공간에서 붉은 남자의 모든 능력치가 50%나 상승하고, 신속, 증폭, 철벽 효과를 부여해 주는 사기적인 스킬, 시바의 신역 선포! 아크는 스탄달의 전쟁에서 이 신역 선포에서 발동시킨 붉은 남자의 신격 스킬, '인드라의 뇌전'을 얻어맞고 한 방에 골로 간 기억이 있어싸. 그렇지 않아도 무적인 놈이 더 강해져 버린 것이다. '틀렸어. 놈이 신역 선포를 해 버리면 이제 영역 선포조차 할 수 없다.' 아크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붉은 기운에 휩싸인 붉은 남자를 바라볼 때였다. 순간 방금 전의 이터널 소울의 각인을 해제해 익혔던 스킬이 떠올랐다. 바로 영역 선포를 지역이 아닌 자신의 몸에 흡수시키는 '영웅 융합'! 물론 '영광의 밤'을 발동시킬수 있다 해도 이미 신격 선포를 발동시킨 붉은 남자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영웅 융합'은 자신의 영역 선포만 아니라 다른 영웅의 영역 선포까지 흡수할 수있었다. '이미 우리들은 모드 영역 선포를 사용햇지만 죽었다가 살아 났으니 모든 스킬이 초기화되었다. 그리고 모든 영웅의 영역 선포를 흡수하면 그들의 영역 선포보너스를 나에게 집중시킬수 있어! 지금 붉은 남자의전투력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죽어라!" 아크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떄 붉은 남자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끼이이이이잉! 순간 붉은 남자의 검이 마치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했을 때 뿜어내는 소리처럼 밀려들어싿. 아크는 감히 검을 마주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바닥을 굴러 몸을 피하며 소리쳤다. "이터널 소울, 영웅 융합! 영역 선포, 영광의 밤!" 순간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떠올랐다. -'영광의 밤'이 발동되었습니다. 이터널 소울, 영웅 조합의 효과르 인해 '영광의 밤'이 체내에 흡수됐습니다. <<시전자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마법 저항력이 20%상승했습니다.>> 동시에 아크는 마치 백 덤블링을 하듯이 몸을 튕겨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금이다. 샴바라, 브레드, 레디안, 레리어트, 워머, 티모시, 영역 선포를 발동시켜라!" "뭐? 하지만 이미 붉은 남자가 신역 선포를...." "설명할 시간이 없어. 놈을 상대할 방법은 그것뿐이다! 나를 미독 영역 선포를 발동시켜!"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난 이상태로는 움직이지도 못해. 영역 선포 무한 에너지 필드!" 고장 나나 아머 슈트 속에서 워머가 소리쳤다. 순간 워머를 중심으로 확 퍼져 나가던 영역 선포가 갑자기 누군가 주욱 당기기라도 한 듯 공중에서 작은 구슬처럼 뭉쳤다. 그리고 쏜살같이 날아와 아크의 몸에 흡수됐다. 거의동시에 붉은 남자가 공간을 도약하며 날아와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남자의 검이 닿기 직전, 워머의 영역 선포를 흡수한 아크의 몸이 출렁거리더니 갑옷이 번쩍이는 금속판으로 뒤덮였다. 워머의 영역 선포 '무한 에너지 필드'의 추가 효과! 크카카카카카! 붉은 남자의 검이 금속판을 긁으며 불똥을 튀겼다. 뜻밖의 상황에 붉은 남자가 미간을 찡그리며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챈 나머지 영웅의 후예들이 일제히 영역 선포를 발동시켰다. "영역 선포, 혈하!" "영역 선포, 야수의 대지!" "영역 선포, 정화의 대지!" "영역 선포, 엑소시스트!" "영역 선포, 불과 얼음의 대지!" 순간 5개의 영역 선포도 구슬처럼 변해 아크에게 쏘아저 날아왔다. 그리고 회오리를 일으키듯 맹렬하게 회전하며 흡수되는 순간, 아크의 몸에서 엄청난 푹발이 일어났다. 그 충격파에 수 미터나 밀려난 영웅의 후예들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뭐야? 뭐가 잘못된 건가?" 그떄 서서히 가라앉은 흙먼지 속에서 아크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미 그는 이전의 아크가 아니었다. '영웅 융합'으로 7개나 되는 영역 선포를 체내에서 융합시킨 아크! "이제 마반 영웅이 창안한 최후의 비기, 영웅 융합..." 아크가 빛에 휩싸인 자신의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영역 선포를 흡수한 아크는 방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항상 입고 다니던 가죽 갑옷은 급속판이 뒤덮여 있었고, 팔과 다리는 생전 처음보는 근육질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몸 주위로는 마치 크리스털로 만들어진 듯 한 투명한 방패 두 장이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고, 몸은 황금빛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런 외모변경이 아니라 몸 낼부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엄청난 힘의 파동이었다. 그때 아크의 눈앞에 정보창이 올라왔다. -'영웅 융합'을 이요해 모든 영웅들의 영역 선포를 몸 안에 흡수했습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00% 상승했습니다. *모든 속성 저항력이 200% 상승했습니다. *이동속도와 반응속도, 공격 속도가 200% 상승했습니다. *스킬 사용에 필요한 마나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보광의 효과로 모든 저주 마법과 상태 이상의 저항력이 100* 상승했습니다. *크리스털 실드의 효과로 적의 공격ㅇ을 30%의 확률로 반사할 수 있습니다. *철갑 효과로 방어력이 100% 상승했습니다. "맙소사, 이게 정말 정상적인 스킬의 효과야?" 정보창에서 줄지어 올라오는 내용은 아크조차 뜨악할 정도였따. 그때 아크가 넋이 나간 틈을 타 붉은 남자가 또다시 공간 도약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쓰레기들을 모아 봐야 쓰레기다!" 순간 크리스털 실드가 빙글 회전하며 붉은 남자의 검을 막았다. 동시에 크리스털 실드의 표면에 반사된 검이 불쑥 튀어나오며 붉은 남자의 어깨를 스쳤다. "크윽! 이, 이게 무슨..." 엉뚱하게 도 자신의 검에 일격을 허용한 붉은 남자가 당혹성을 텈뜨리며 물러났다. 그러자 아크가 씨익 웃으며 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쓰레기를 모아 봐야 쓰레기? 과연 그럴까?" 아크가 살짝 몸을 숙였다가 발목에 힘을 주어 바닥을 찼다. 순간 아크의 몸이 훅 하고 사라졌다가 붉은 남자의 코앞에서 나타났다. 딱히 어떤 스킬을 사용한 게 아니었다. 이동속도가 2300%라 단순한 이동조차 마치 공간 도약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자, 이제 벌을 받을 시간이다." 끼이이이잉ㅡ! 붉은 남자의코앞에서 나타난 아크가 씨익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아크의검에서도 붉은 남자처럼 음속을 돌파한 제트기 같은 소음이 울려 나왔다. "이, 이 자식이...!" 붉은 남자가 이를 갈아 붙이며 공간 도약으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크는 붉은 남자가 움직이면 눈으로 쫓지도 못했다. 그건 뉴 월드에 적용되는 '상대속도'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상대가 자신의반응속도보다 빠른 이동속도로-실제도 반응속도보다 이동속도가 빠른 경우는 거의 없었다.-움직이는 경우 '상대속도' 가 적용되어 복잡한 움직임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이었다. 그게 붉은 남자가 사용하는 공간 도약의 비밀! 그러나 지금 아크는 반응속도가 200%나 상승한 상태였다. "이안하지만 이제 다보이거든?" 콰콰콰콰, 콰콰콰콰! 아크가 복잡하게 움직이는 붉은 남자의 옆에 따라붙어 속사보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이, 이게 뭐야?정말 저기서 싸우고 있는 게 아크야?" 브레드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아크는 아직도 아동속도가 200%나 상승했다는 실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속도' 시스템의 함정에 빠져 버린 샴바라나 브레드 들은 붉은 남자를 쫓아 복잡하게 움직이는 아크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빈 공간에서 쉬지 않고 검광이 번뜩이며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떄문에 대체 둘의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누가 누구를 밀어 붙이고 있는지 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하물며 난입 따위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치열하지만 지루한-보이지 않으니까-전투가 이어지기를 10여 분... 콰콰쾅, 콰콰콰쾅! 섬광과 함께 공간을 뒤흔드는 격렬한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주변의 흙먼지가 확 피어오르며 사라졌던 아크와 붉은 남자가 나타났다. 1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아크와 붉은 남자의상태는 외견상으론 거의 호각이었다. 아크는 가족 갑옷을 덮은 금속판이 몇 장 떨어져 나가고 옆구리에서 필흘 흘리고 있었지만 붉은 남자도 그에 못지 않은 부사을 입고 있었따. 그렇게 잠시, 붉은 남자를 비틀비틀 몸을 돌리며 이를 갈아 붙였다. "크윽, 감히 창조주에게...." 그러자 아크가 경쾌하게 몸을 도리며 콧방귀를 뀌였다. "헛소리 하지마. 오토 주제에! 오토가 불법인 거 몰라? 넌 인생 자체가 불법이야!" "뭐, 오토? 뭐가 오토라는 거냐?" 붉은 남자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어라? 뭐야, 이 반응은? 설마 이 녀석, 자신이 오토라는 사실 조차 몰랐던 거야?' "너..." 아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을 이으려고 하자 붉은 남자가가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닥쳐라! 나는 창조주다. 이 세계를 파괴하든 말든 그건 내 자유야!" "보자 보자 하니까 불법 소프트웨어 주제에 놀고 있네 확 'Del(삭제)' 키 눌러 버린다?" "닥쳐라! 신격 스킬, 인드라의 노격!" 파지직, 파지직, 파지지지직! 순간 붉은 남자의 등 뒤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4개의 둥근 원판이 떠올랐다. 갑옷에 새겨진 인드라와 같은 형상이 새겨진 원판! 뒤이어 원판에서 스파크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아크를 향해 엄청난 뇌전을 뿜어냈다. 마치 신화 속에서 되살아난 인드라가 벼락을 일으켜 적을 섬멸하듯이, 뇌전이 공간을 찢으며 퍼져 나갔다. 뇌전이 직격하자 아큰 단숨에 눈을 멀게 만들듯한 섬광에 휩싸였다. "아, 아크ㅡ!" 샴바라와 브레드 들이 일제히 경악성을 터뜨렸다. 일단 적중하면 마비된 상태로 생명력 이 바닥까지 빨려 버리는 최강의 신격 스킬! 미처 피하지 못하고 뇌전에 휩싸인 아크는 이제 잿가루로 변해버리리라! 영웅의 후예들이 숯이 돼 버린 아크를 상상하며 신음을 흘릴 때 였다. "하, 레퍼토리가 변하지 않는군. 또 그거냐? 너는 이미 오래전에 필요한 스킬을 몽땅 배워 놔서 레퍼토리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 몸은 한창 성장하는 파릇파릇한 꿈나무라고. 이 몸의 새로운 레퍼토리를 보여 주마. 신격 스킬, 화룡강림!" 아크의 이죽거리는 목소리ㅗ아 함께 시퍼런 스파크 사이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신격 스킬【화룡강림】이 발동됐습니다! 10분간 <<불멸의 화룡>>효과가 적용됩니다. +스킬 발동 시 모든 공격에 300의 화염 데미지가 추가됩니다. +스킬 발동 시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 반응속도가 50% 증가합니다. +스킬 발동 시 자신을 공격하는 모든 적에게 10~1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힙니다. +스킬 발동 시 사용자의 화염 저항력을 500%, 파티원의 화염 저항력을 100% 상승시킵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불길이 닿은 공간 내의 모든 적에게 1,000의 화염 데미지를 입히며 사용자 최대 생명력이 50%가 회복됩니다. "헉! 어, 어떻게 인드라의 뇌격을...?" "뉴 월드를 만든 사람은 네 주인이지만 더 잘 아는 사람은 이 몸이다, 멍청아!" 아크가 씨익 웃으며 그대로 붉은 남자를 관통해 버렸다. 콰콰콰콰, 콰콰콰콰! 순간 아크가 지나간 궤적을 따라 엄청난 화염이 폭발하며 얼마 남지 않은 붉은 남자의 생명력이 쫙 빨려 나갔다. 여기저기에 불이 붙은 붉은 남자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다가 풀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아크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붉은 남자는 아크게 어떻게 '인드라의 뇌격'을 막았는지 알아챘따. "이, 이럴 수가!" 아크가 서 잇던 자리에는 몇 자루의 검이 바닥에 곶혀 있었다. 그렇다. 이게 바로 과거 아크가 '인드라의 뇌격' 한 방에 잿가루로 되어 억울하고 원통한 나머지 며칠 밤을 새우며 생각해 낸 방어법 이었다. 바로 사방에 검을 박아 넣는 방법! 그 검이 일종의 피뢰침 역활을 해서 '인드라의 뇌격'을 몽땅 흡수해 버린 것이다. "컴퓨터로 움직이는 오토가 유저보다 전투력은 강할지 모르지만 응용력은 게임이 안되지. 후후후, 역시 사람은 지식보다 지혜야. 안 그래?" 간만에 한 건 올린 아크가 잇는 대로 폼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아크와 붉은 남자의 팽팽했던 전투는 '응용력'으로 승패가 갈려 버렸다. -쿠오오옹오! 거의 동시에 정의남과 갱생단이 이끄는 결사대원의 맹공에 결국 발광하던 루시퍼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붉은 남자와 루시퍼가 모두 패배한 것이다. "자, 이제 모두 끝났다." 아크가 여유 만만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반대로 그야말로 ㅍ켸기물처럼 변해버린 루시퍼를 바라보는 붉은 남자의 눈동자에는 절망이 떠올랐다. 그때 문득 거품을 뿜어내며 쪼그라드는 루시퍼의 몸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절망감에 빠저있던 붉은 남자의 눈동자가 번뜩인 건 그때였다. 그리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루시퍼를 향해 달려갔다. "엇! 이, 이 녀석이.." 아크가 바로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붉은 남자는 레리어트와 로코를 사이에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검을 막았다. 그리고 루피서를 무찔렀다는 기쁨에 서로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러 대는 결사대원들을 쳐 내고 와락 루시퍼의 살점에 손을 쑤셔 박았다. "이 자식이 무슨 짓을! 가만 놔둘 것 같으냐?" 거의 동시에 붉은 남자를 따라잡은 아크가 검을 뒬렀다. 아니, 휘두르려 할 떄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붉은 남자가 갑자기 비명을 터뜨리며 하얀 가면이 폭발해 버렸다. 순간 붉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아크가 뒷걸음질 치며 떠듬거렸다. "뭐, 뭐야? 저 녀석 얼굴이?" 0100010101000010101111011010101001011110............ 붉은 남자의 가면 뒤에는 사람의 얼굴이 없었다. 그저 공허하게 뻥 뚫린 얼굴에는 이런 숫자가 쉬지 않고 올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 다음 이었다. 붉은 남자의 가면이 폭발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정지해 버렸다. 폭발로 인해 생긴 폭풍도, 폭풍에 휘말려 날아올랐던 먼지도, 움직이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 상태로 급속 냉동된 고등어처럼 굳어 버렸다. 움직이는 것은 붉은 남자의 얼굴에서 올라오는 숫자들 뿐. '뭐, 뭐지? 왜 몸이 안 움직이지?' 아크가 용을 써 대며 몸을 움직여 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던 루시퍼가 점차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졌던 수백 거의 촉수도 본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 붙어 버렸다. 동시에 바닥까지 내려갔던 루시퍼의 생명력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 이건 설마 백섭back server?' 백섭... 시스템 오류로 인해 모든 데디이터가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 버리는 현상! 아직 온라인 게임들의 시스템이 불안전하던 2000년 대에서나 일어나던 현상이 뉴 월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현상은 단순한 백섭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건 움직이지 않고 오직 루시퍼만 본래 형태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루시퍼는 처음 만났던 상태로 부활하게 돼 버린다.. 그리고 이미 오랜 저ㅗㄴ투로 체력과 스킬이 바닥난 아크와 결사대는 단숨에 짓밟혀 버리고 말리라. '이, 이럴 수는 없어!' 딱딱하게 굳은 아크가 소리 없는 비명을 터뜨렸다. ----------------------------------------------------------------------------- "찾았다!" 어둠속에서 두 눈이 번뜩였다. 눈을 번뜩이며 노트북을 바라보는 사람은 비찍 말라붙은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글로벌엑서스 놈들, 얕은 수작을 부리다니...! 하지만 나는 결국 찾아냈다. 이게 손에 들어온 이상 이제 누구도 날 막을 수 없다. 이대로 루시퍼를 부활시켜 뉴 월드를 통째로 사라지게 만들어 주마!" 사내가 엄청난 속도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겨 댔다.그때마다 노트북에 엄ㅇ청난 데이터가 올라오다가 딱 멈추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스터 코드로 '프로젝트 : 루시퍼'를 완전 상태로 기동하시겠습니까? Yes/No "자아, 사라져라. 추악한 데이터 덩어리야!" 사내가 희열에 찬 눈동자를 번뜩이며 Y 키ㄹ를 누르려 할 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만둬!" 사내가 움찔하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10여 명의 사내들이 산비탈을 헐떡이며 뛰어 올라왔다. 금발의 외국인, 동남아계, 다국적으로 구성된 사내들의 가슴에는. G.A.S.P라는 이니셜이 새겨진 배지가 붙어있었다. G.A.S.P..... 글로벌엑서스 특수 보안 요원들이었다. 그들의 배지를 확인한 사내의 얼굴에 당홉감이 번졌다. "어, 어떻게 여기를?" "뉴 월드가 가르쳐 줬습니다." 그떄 정장을 입은 30대 남자가 SP들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MP(Move Play)의 화면을 사내에게 항하며 말을 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당신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설마 이런 곳에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몇 시간 전에 한 유저가 촬영한 뉴 월드의 동영상에서 이걸 보기 전까진 말입니다." MP의 액정 화면에는 얼마 전 아크가 상념의 미로에 떠다니는 메모리 크리스털에서 보았던 무덤이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사내의 옆에 자리 잡은 아담한 무덤이었다. 정장 남자가 MP를 챙겨 넣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 거렸다. "이게 바로 당신이 인수해 간 그녀.... 유나 씨의 무덤이겠죠, 박우성 씨." "하명우...." 그렇다. SP들고 함께 나타난 정장 남자는 바로 글로벌엑서스 기획실장 하명우. 노트북을 들고 있는 깡마른 사내는 몇 년 전에 실종되었던 박우성이었다. 박우성은 말없이 하명우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영상 하나로 용캐 이곳을 찾아냈군." "무덤을 보는 순간 생각났습니다. 여기가 유나 씨의 고향이라는 게 말입니다. 당신은 유나 씨가 사망한 직후 병원에서 시신을 인수받자마자 사라졌죠. 그리고 상념으 미로에 무덤의 영상이 남아 있다는 것은 당신이 뉴 월드 사용화 직전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다는 뜻이겠죠. 그녀를 목숨보다 사랑했던 당신이라면 무덤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수완가로 소문난 기확실장 하명우 다워." 박우성이 키득거리며 웃었다.그러나 공허한 웃음기가 맴돌던 눈동자는 금세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상황은 끝났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당신이 그걸 손에 넣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MP로 지금 뉴 월드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이미 그게 당신의 손에 들어갔다고 짐작했습니다." 하명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나의 무덤을 바라보다가 하소연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저희는 그동안 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뉴 월드 메인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 마스터 코드를 숨긴 사람이 당신이라고 말입니다."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냐? 그건..." "네. 당신은 저흐기ㅏ 숨겼다고 생각했겠죠. 혹시라도 당신이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을까 봐 두려워서 어딘가에 숨겨놓았다고. 그리고 상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마스터코드를 작동시키지 않은 것도 당신이 메인 서버에 침입해 마스터 코드를 탈취할까 봐 두려워서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닙니까?" ".....아니란 말이냐?" "아닙니다. 마스터 코드를 숨긴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하, 나와 글로벌엑서스 이외에 마스터 코드를 숨길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유나 씨입니다." 하명우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비웃음을 짓고 있던 박우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닥쳐라! 감히 어디서 유나를 들먹이는 거냐?"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방금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아 냈습니다." 박우성은 잠시 씁쓸한 눈길로 '유나'라고 적힌 묘비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얽힌 모든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모든 진실?" "네. 아마도 저보다당신이 더잘 알 겁니다. 본래 뉴 월드가 개발 단계에 있을 때의 시나리오에는 어둠의 제왕이나 7인의 영웅 같은 등장인물은 존재하지 안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나리오에 어둠의 제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났죠. 그리고 뒤따르듯 7인의 영웅이라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그 중 어둠의 제왕은 바로 박우성, 당신이 만들어 낸 존재죠." 하명의 말에 박우성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개발 단계의 시나리오에는 존재 하지 않던 어둠의제왕의 정체는 단순한 NPC가 아니었습니다. 놈의 정체는 바로 당신이 뉴 월드 메인 서버의 데이터를 파괴하기 위해 심어두었던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젝트 : 루시퍼' 였죠. 그리고 당신은 이미상용화 직전에 '프로젝트 : 루시퍼'를 가동시켜 뉴 월드의 메인 서버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뉴 월드 따위는 처음부터 만들지 말았어야해! 그녀를...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악마의 게임이다!" 갑자기 방우성이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그러나 하명우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 루시퍼'는 뉴 월드의 데이터를 파괴하다가 저지당했습니다." "그 점은 확실히 의외였어. 멍청하고 굼뜬 네놈들이 용케도 내 게획을 알아챘더군. 하지만 네놈들도 '프로젝트 : 루시퍼'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했지." 박우성이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하명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아니, 부끄럽지만 저흳르은 그때는 물론이고 방금 전까지도 '프로젝트 : 루시퍼'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냐?" "물론 저희도 당시 메인 서버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가 당신이 만든 '프로젝트 : 루시퍼'라는 건 몰랐습니다. 그리고 막을 방법도 없었죠. 그저 바이러스가 메인 서버의 데이터를 날려 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 : 루시퍼'가 갑자기 기동을 멈추고 봉인 됐습니다." "저절로 기동을 멈췄다고? 헛소리. 그럴 리가 없다!" "네. 그럴 리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그때 좀 더 그 원인을 알아 봤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당시 메인 서버에 접속할 수 없었던 저희로서는 알아볼 수단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겨우 이유를 알아냈죠. 당시 바이러스의 기동을 멈추게 만든 존재는 바로 7인의 영웅이었습니다." 하명우의 말에 박우성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장난하는 거냐? 7인의 영웅은 그냥 시나리오상의데이터에불과해!" "저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의제왕이 시나리오상의존재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컴퓨터 바이러스였듯이, 7인의 영웅들도 시나리오상의존채러머 위장했지만 실체는 어둠의 제왕이라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한 일종의 백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영웅의 스킬이 대 마족용으로 특화되어 있던 이유였다. 7인의 영웅이란 뉴 월드를 공격하는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젝트 : 루시퍼' 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심프로그램. 때문에 고거 박우성이 메인 서버에 '프로젝트 : 루시퍼'를 퍼뜨렸을 때 7인의 영웅이 기동해 봉인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게 바로 뉴 월드의 NPC들이 기억하는 제 1차 마족 전쟁. 암흑 세기의 진실이었다. 그 설명에 박우성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그럴 리가! 그렇다면 대체 누가... 누가 7인의 영웅 시스템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명우가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박우성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유나 씨입니다.:" "유, 유나? 그, 그럴 리가...." "당심 ㅔ인 서버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유나, 둘뿐이었습니다." "거짓말, 거짓말이다! 유나는... 유나는 유저들의 악플에 시달리며 죽어 가면서도 뉴 월드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유나가 왜 나를 막겠는가?" "정말 유나 씨가 유저들의 악풀 때문에 병석에서까지 뉴 월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외에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이냐!" "이걸 보시면 그 이유가 뭔지 알게 되실 겁니다." 하명우가 한숨을 불어 내며 품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편지의 전면에는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 글씨체를 확인한 박우성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이건...?" "아마도 유나 씨가 죽기 직전에 당신에게 보낸 것일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유나 씨가 죽자마자 시신을 인수 받고 종적을 감췄죠. 그 때문이 이 편지는 다시 유나 씨가 투병 생활을 하던 병원으로 반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누군가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보관하고 있었죠. 그런데 이번 저희 SP들이당시의 별장에서 유나 씨의 병원에 대해 적힌 메모를 발견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다가 받은 겁니다. 이걸 읽어 보시면 보든 게 당신의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하명우가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하며우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이유는 박우성이들고 있는 뉴트북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하명우는 이곳으로 오면서도 MP를 주시하며 뉴 월드의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와 결사대원이 붉은 남자와 루시퍼를 쓰러뜨렸을 떄 갑자기 시간이 정지하며루시퍼가 부활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뉴 월드에서는 그런 일을 일으킬 수 이쓴ㄴ 방법은 오직 하나! 마스터 코드를 좆가했을 때 뿐이었다. 그리고 상황적으로 보면 그 마스터 코드는 지금 박우성이들고 있는 노트북과도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우려했던 대로 마스터 코드가 박우성의 노트북과 연결되어있다면 버튼 하나만으로도 뉴 월드를 붕괴시킬수 있었다. 결국 박우성은 뉴 월드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다. 하명우가 물러나자 박우성이 위협하듯이 노트북을 들고 슬금슬금 다가와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편지를 펼치자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우성 씨에게... 우성 씨, 정말 미안해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제가 뉴 월드를 제작에만 관심을 쏟아 그동안 많이 속상하셨죠? 당신이 느꼈을 아픔과 슬픔, 분노는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그건 당신의 오해랍니다. 제가 그동안 뉴 월드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쏟아부은 것은 오직 다신 때문이었어요. 저는 이제 죽어요.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당신과 내가 만들고 있는 뉴 월드에서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현실의 사람이네요. 그래서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나밖에 모르는 바보를 혼자 남겨 두면 얼마나 아플까? 그래서비록 저는 가지만, 당신이 나를 추억할 수 있는 뭔가를 남기고 싶었어요. 당신과 나의 아이, 뉴 월드라는 거대한 세계를 말이에요. 나는 지금 뉴 월드의 마지막 시나리오를 만들며 당신이 이 세계를 거닐고, 제가 만든 풍경과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며 나를 떠올리기를 빌어요. 그리고 그것만이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고, 또 가장 큰 선물이라고 믿어요. 하지만 당신은... 저와 당신의 결실을 당신 자신의 손으로 부수려고 하는군요. 저는 그게 너무 두려웠어요. 내가 몇 번이나아니라고 했는데도 당신은 듣지도 안았죠. 그래서 당신 몰래 마스터 코드를 뉴 월드에 숨겨 두어야 했어요. 이해해주세요. 내가 그럴수 밖에 없었다는 걸. 분명 뉴 월드가 부서지만 가장 슬퍼할 사람은 당신이기에.... 당신이 그 마스터 코드를 찾을 때 쯤이면 모든 오해가 풀려있기를 바레요.(본문엔 '바라요'라고 표기됨) 그리고...부디 당신과 나의 아이, 뉴 월드를 부탁해요. "이, 이게...!" 박우성이 부들부들 떨며 떠듬거렸다. 하명우는 한숨을 불어내며 중얼거렸다. "보신 그대로 입니다. 마스터 코드를 숨긴 것은 유나 씨입니다.바로 당신과 자신의 아이라고 부른 뉴 월드를 당신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그리고 7인의영웅 시스템을 만들어 혹시라도 당신이 편지의 내용을 무시하고 루시퍼를 되살리려고 하면, 시스템이 작동해서 유저들 스스로 뉴 월드를 지킬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 그렇다. 그게 바로 붉은 남자가 루시퍼를 부활시키기 위해 계획을 진행할 때마다 7인의 영웅과관련된 이벤트나 사건이 발성하며 게속 붉은 남자를 방해했던 이유였다. 그리고 흩어졌던 7인의 영웅이 모여 완벽한 백신 프로그램이 되었을 때 붉은 남자 조차 뛰어넘는 위력을 보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의산물이 아닌, 천재 디자이너 박우성과 유나의 대립이 빚어낸(본문엔 '빗어낸'이라고 표기됨) 결과였다. 그리고 인해 글로벌엑서스에서 피해 본 금액은 무려 수천 억원 대! 돌이켜 생각하면 꽤나 엄청난 부부 싸움을 한 셈이다. "....아니야!" 박우성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듯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소리쳤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그럴리가, 그럴 리가 없다! 이건 가짜야!" "박우성 씨!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뉴 월드의 사용오하를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 그게 대체 뭣 때문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녀는 죽기전에 당신과 자신의 결과물을 마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기뻐한 겁니다!" 순간 박우성의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떠올랐다. -이제 됐어요. 유나가 그 어느때 보다도 활짝 웃으며 했던 말이다. 그렇다. 사실 박우성도 알고 있었다. 아니, 누구보다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살다 갔다는 증거를 자신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이어싿. 그걸 인정하지 않고 글로벌엑서스와 유저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박우성의 억지에 불과했다. "나는.....나는....나는...." 박우성이 덜덜 떨며 중얼거리다가 뭔가가 툭 떵러진 것처럼 풀썩 쓰러졌다. "SP! 박우성과 노트북을 확보해라!"(노트북은 그렇다치고 박우성은 사람인데 확보하라니?) 잔뜩 긴장하고 있던 SP들이 총알처럼 튀어 나가 쓰러진 박우성과 노트북을 확보했다. 그떄 박우성을 살피던 SP가 당혻헝을 터뜨렸다. "팀장님, 박우성은 이미 오래전에 독을 삼킨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 "아무래도 이번 삭너을 끝내고 이곳에서 죽을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상태는?" "다행히 독이 늦게 작용하는 것이라 서둘로 병원으로 가면 가망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 뭘 떠들어 대고 있는 거야? 빨리 병원으로 후송해야 할 거 아냐!" "네!" SP들이 허둥지둥 박우성을 들쳐 없고 산을 뛰어 내려갔다. 그들을 지켜보던 하명우가 와락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노트북은? 마스터 코드는?" "모, 모르겠습니다. 방금 전에 떨어진 충격 때문인지 노트북이 켜지지 ㅇ낳습니다." "뭐, 뭐야?" 하명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 '젠장, 이게 대체 무슨 개 같은...!' 아크는 당장이라도 복장이 터져 죽을 듯한 심정이었다.이제야 겨우 루시퍼를 쓰러뜨리고 붉은 남자까지 빈사 상태에 몰아넣었는데,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바로 코앞에 빈사상태의 붉은 남자가 뭔가 일을 벌인 것을 두 눈 뜨고 보면서도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니?" '한 번..... 더도 마록 딱 한 번만 움직일 수 있으면..." 그렇게 아크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붉은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볼 때였다. 갑자기 붉은 남자의 등이 경련을 일으키듯 꿈틀거렸다. 동시에 아크는 자신을 막아서던 정체불명의 압력이 단숨에 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아크가 절절한 심정으,로 기도하던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순간 아크는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반응했다. 대체 이 주변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나중에 고민해 봐도 늦지 않는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한다!" "....다크 스트라이크!" 아크는 잔뜩 당겨졌던 시위가 튕겨지는 것처럼 쏘아져 날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검붉은 검광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붉은 남자의 정수리를 가르고 지나갔다.순간 붉은 남자의 몸에 수직으로 혈선이 길게 그어지더니 털석 무릎을 꿇어싸.그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머리를 하늘로 향하며 긴 한숨을 흘려 냈다. "하아...오토라고...나는..." 그것이 뉴 월드에서 수백 년을 살아오며 파멸을 꿈꾸었던 붉은 남자의 마지막 말이었다. 붉은 남자는 미끄러지듯이 바닥에 쓰러졌고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레벨 999의 카오틱 플레이어를 쓰러뜨리셨습니다. 명성 +1,890 붉은 남자가 쓰러지자 메시지가 올라왔다. 그제야 확인한 붉은 남자의레벨은 999! 현재 뉴 월드의 만랩(최대 레벨)이었다. "어어어어...." 그렇게 모든 상황이 끝난 뒤에야 결사대원들은 마비가 풀렸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마비가 풀렸음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붉은 남자와 아크를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아직 뭐가 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를 잠시, 몇 분이 지난 뒤에야 간신히상황을 깨달은 결사대원들은 멀뚱멀뚱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닥 가밪기 우레와 같은 함성을 터뜨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이, 이겼다! 어둠의제왕을 쓰러뜨렸다!" "악의 원흉을 쓰러뜨렸다!" "해냈다, 해냈어!"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함성이 뤼겐베르크의 등을 휩쓸었다. 지금까지도 콰리안 주변의 마족들과 전투를 벌이던 원정군들도 일제히 함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크는 이미 그런 함성 따위는 들리지도 않았다. '틀림 없이 여기 어딘가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는데...' 아크는 붉은 남자가 손을 쑤셔 넣었던 루시퍼의 시신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신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그렇다면 전리품 이외에게 뭐가 있겠는가? 게다가 상대는 뉴 월드르 파멸로 몰아 넣으려고 했던 어둠의 제왕 루시퍼, 당연히 그 전리품은 지금까지의 아크가 얻었던 그 어떤 전리품보다 비싸리라! 그 뿐인가?" 아크가 쓰러뜨린 붉은 남자는 비록 NPC에 가까운 오토지만 시스템상으로는 틀링벗는 유저다. 카오틱 유저를 쓰러뜨렸으니 장비품 하나느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것이다. 레벨 999의 유저가 사용하던 장비품을 말이다! '그런 전리품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 "버닝혼, 루시퍼와 붉은 남자의 시체를 뒤져 챙길수 있는 건 몽땅 챙겨라" 아크는 분위기에 취해 환호성을 지르는 결사대원들의 시선을 피하며 속삭였다. 크라라라, 크라라라! 그러자 역시 눈치 빠른 버닝혼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슬쩍 슬쩍 루시퍼의 시신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버닝혼이 전리품을 챙겼따는 반가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수 버닝혼이 '아수라의 장검'을 획득했습니다. '오옷, 아수라의 장검?붉은 남자가 사용하던 검이잖아?' 아직 실물은 확인하지 모했지만 이름으로 볼때 아수라의 형상에 새겨진 간지 촬촬 넘치던 바로 그 장검이 분명했다. 비록 떨군 전리품이 하나뿐이라 붉은 남자가 사용하던 쌍검을 모두 얻지는 못했지만, 방어구보다는 검이 훨씬 가치 있는 전리품이었다. 아크가 머철머 횡재에 침을 질질 흘릴 때였다. 버닝혼이 또 다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전리품을 집어 삼켰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수 버닝혼이... "아크!" 그때였다. 갑자기 뒤에서 브레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알을 돌출시키며 전리품을 확인하려던 아크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뭐, 왜? 왜?" "너 이 자식...!" '젠장, 들킨 건가? 빌어먹을, 그럼 설마 이걸 몇만 명하고 나눠야 한다는 거야?'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수만 명과 나눠 먹으면 몇 실버 조차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투는 분명 아크가 혼자 아닌 원장군 모두의 승리였다. 이미 전사한 사람은 어쩔수 없다 해도 아직 살아 있는 원정군 전체가 전리품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아크도 나름 유명 인사가 됐으니 철판 깔고 먹튀(먹고 튀기)나 먹쨰(먹고 배 째라고 드러누워 버리는)를 할 수도 없는 일! 완전히 자기 거라고 생각했던 전리품을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눈물을 글썽거릴 정도로 원통했다. 그때 브레드가 아크의 목을 와락 껴안으며 소리쳤다. "크하하하하! 천하의 다크울프도 이번에는 ㅗ깨 고생햇던 모양이구나. 그렇다고 울기까지 하냐? 하긴 좋기도 하겠지, 너도 좋으면 계집애처럼 질질 짜지 말고 화끈하게 소리 한번 질러봐. 모두 너를 지켜복 있잖아!" "어? 뭐?, 그 그런말이었어?" "그럼? 또 뭐가 있냐?" "아, 아니! 없지! 당연히 없지! 맞아,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는거라고!" 아크가 열나게 고개를 흔들어 대며 브레드를 떼어 놓고 몸을 도렸다. 그리고 결사대원들을 주욱 훑어 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전리품을 독차지한 걸 눈치챈 사람이 있나 싶어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그들은 어둠의 제왕을 무찔렀다는 기쁨에 전리품 따위는 일등공신인 아크에게 줘 버리고 싶다는ㅡ물론 아크의생각이다ㅡ 의욕만 가득해 보일 뿐이었다. 덕분에 아크는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졌다. 아크는 울컥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꾼 쥐고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우와아아아아아아!" 아크의 선동에 결사대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러나 아직 전투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콰리안 주변에는 수만의 마족들이 우글 거렸다. 그러나 루시퍼와 붉은 남자의 죽음으로 통제력을 잃은 마족은 흔하디흔한 몬스터 떼에 불과했다. 또한 루시퍼의 죽음으로 뤼겐베르크의 방어막도 사라졌다. 원정군은 치솟은 사기로 단숨에 마족들을 쓸어버렸다. 그렇게 원정군이 마족을 학살하지 사랑관인 아크의 경험치와 공적치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후후후후!" 음침한 분위기의 숲 속. 한 사내가 음흉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흘리며 냄비를 바라보고 있었다.섬뜩하게도 사내의 어깨에는 야비한 웃음을 짓고 이슨 납ㄱ쥐가 앉아 잇었고, 무릅에는 커다란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사내의 다리에 몸을 비벼 대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거대한 스켈레톤이 쪼그리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마녀를 그려놓은 듯한 장면! 그러나 이들은 다름 아닌 아크와큐리오, 버닝혼, 퓨리탈이어싿. 아크가 계쏙 냄비만 바라보자 큐리오가 답답하다는 듯이 궁시렁댔다. "주인,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어?" 딱딱딱딱, 딱딱딱딱? 크라라라, 크라라라? "이제 3분밖에 안 남았으니까 부산 떨지 말고 기다려 봐." 냄비에 시성을 고정시킨 아크가 마른 침을 꼴깍 꼴깍 삼켜대며 중얼거렸다. 사실 아크 역시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뉴 월드를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남아 있는 3분이 세 달이나 3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생각을 하던 아크는 문득 새삼스러운 눈길로 어두운 숲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여행을 시작한 지도 세달이 지났구나. 그러면 콰리안 전투에서 붉은 남자와 루시퍼를 해치운 것도 벌써 넉 달이나 된 셈인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지도몰랐네. 아니, 오히려 너무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건가?" 그렇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쾨리안 전투 끝난 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그리고 그 넉 달동안 아크의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그 사건들을 시간벼로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면 가장 첫 번째는 슈베르크 왕국으 보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크조차 잊고 있었지만 애초에 원정군이 조직된 건 슈덴베르크의 국왕이 발동시킨 레전드 퀘스트 때문이었다. 당연히 마족 전쟁이 승리로 마무리 되자 슈덴베르크와 브리스타니아 왕성에서는 엄청난 포상 행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슈덴베르크 왕국에서의 공적치를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은 다름아니 ㄴ아크였다. ㄱ비공전투대가 포함된 2차 원정군의 사령관에, 결사대를 이끌고 루시퍼를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붉은 남자까지 1대1로 붙어 침몰시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덕분에 아크는 수백년 동안 슈덴베르크의 왕성에서 보관했었다는 전설의 갑옷 '왕국의 수호자' 셋트를 받았다. 그게 지금 아크가 입고 있는 간지작살의 가죽 갑옷이었다. @왕국 수호자의 가죽 갑옷(레전드 갑옷) <<방어력 330, 물리 저항력 +20%, 마법 저항력 +20%, 힘 +40, 특수옵션 스킬【불멸의 신체】사용 가능.>> @왕국 수호자의 가죽 장갑(레전드 장갑) <<방어력 130, 공격 속도 +20%, 치명타율 +20%, 민첩 +40, 특수 옵션 스킬【영광의 손】사용가능.>> @왕국 수호자의 가죽 투구(레전드 투구) <<방어력 200, 정신 마법 저항력 +40%, 지능 +30, 지혜 +30, 특수 옵션 스킬【투사의 집념】사용가능.>> @왕국 수호자의 가죽 신발(레전드 신발) <<방어력 100, 이동속도 +50%, 지형 효과 무효화, 운 +40, 특수 옵션 스킬【신속】사용가능.>> @왕국 수호자의 가죽 망토(레전드 망토) <<방어력 50, 속성 마법 저항력 +40%, 폭염과 한파 저항력 +50%, 체력 +40, 특수 옵션 스킬【휘광】사용가능.>> *<<왕국 수호자>> 셋트 효과 : 힘 +60, 민첩 +60, 체력 +60, 방어력 +60, 특수 옵션 스킬【영웅의 외침】사용가능.>> 대략적인 정보만으로도눈이 돌아갈 정도의 장비품이었다. 그러나 공적 1위의 보상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글로벌엑서스가 이벤트에 걸어 놓았던 1등 상금 5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퀘스트에 숨겨진 뭔가ㅡ아직 아크는 그게 코드 블랙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ㅡ는 아직 누구도 찾지 못해 상금 10억은 붕 떠 있었다. '뭐, 다른 사람이 챙겼다면 배가 아팠겠지만 아무도 못받았으면 됐어.' 아크는 일단 10억에 대헤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마족을 다 때려잡았는데도 나오지 않았다면 포기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마족 전쟁이 끝난 뒤에 아크가 겪은 특별한 사건 두 번째는 바로 3차 전직이었다. 아크가 3차 전직을 하게 된 건 왕성에서 보상품을 잔뜩 챙기고 룰루랄라 란셀 마을에 들렀을때대였다. 아크가 돌아오자 묘족과 늑대족, 너구리족, 백호족의 장로들이 맨발(?)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새삼스레 아크의 공적을 칭송하며 '마반 영웅'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모든 수인족이 충성을 맹세하느 수인족의 최고의 칭호 마반 영웅! 그때 정보창이 갱신되며 3차 전직을 해 버린 것이다. 그렇다. 아크는 마반 ㅕㅇ웅응 크리스틴의 후예. 때문에 아크가 3차 전직을 하기 위해서는 마반 영웅의 칭호를 얻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반 영웅은 어둠의 제왕 루시퍼를 무찔러야만 얻을 수 있는 칭호, 다시 말해 영웅 직업의 3차 전직은 조건은 루시퍼 퇴치 였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빡센 전직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어쨋든 그로 인해 아크는 '다크소울'에서 '다크 이터니티'라는 직업으로 전직했다. 동시에 영역 선포가 신역 선포로 업그레이드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아크가익히고 있던 '다크 스트라이크'나 '다크 템페스트', '다크 스케일', '문 라이트 일루전'을 또다시 한 단계 높여 주었다. 물론 보너스 스탯이나 직업 효과도 엄청나게 따라붙었다. ....일단 아크가 마족 전쟁의 영웅으로서 얻은 건 여기까지 였다. 새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훗훗훗훗훗훗!" 아크가 히죽거리며 보글보글 끓는 냄지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크는 마족 전쟁에서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보상 두 가지를 더 얻었다. 바로 붉은 남자와 루시퍼에게서 획득한 2개의 전리품! 그중 하나는 붉은 남자가 사용하던 아수라의 장검이었다. 아수라의 장검은 과연 레벨999가 사용했던 무기 답게 성능이 장난 아니었다. 공격력은 샤이닝 오브 다크니스의 비교해도 4배 이상 높았고,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갈 정도의 옵션에 '아수라 참'이라는 필살기 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정말 꿈에서라도 한 번쯤 차 보고 싶은 전설의 장금! ㄷ그러나 아쉽게도 착용 제한이 레벨 850이라 아직 아크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한때 뉴 월드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 엄청난 검은 언젠가 다시 세상에 나올 때를 기약하며 란셀 마을의 개인 금고에서 푹푹 썩어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전리품이 지금 내비 속에서 끓고 있는 '루시퍼의 정수'였다. 루시퍼의 정수... 그렇다. 루시퍼가 흘린 전리품은 바로 서바이벌 요리로 내단을 만들 수 있는 재료였던 것이다. 사실 처음 '루시퍼의 정수'를 발견했을 때는 실망슬헙기 짝이 없었다. 어둠의 제왕을 물리쳤는데 고작 정수 하나라니? 정말 완전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루시퍼의 정체를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결과였다. 루시퍼의 정체는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 컴퓨터 바이러스를 해치웠다고 전리품을 우수수 떨궈 줄 리는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사실을 모르는 아크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않 나온 걸 어쩌겠는가? 게다가 루시퍼가 전리품을 왕창 쏟아 냈다면 다른 유저들의 눈을 속이고 독식할 수도 없었으리라. 그런 점을 생각하면 비록 '루시퍼의 정수'하나라도 속 편하게 혼자 독식하는 편이 낫겟다는 생각... 을 하면서 스스로 위안했다.게다가 어쨌든 뉴 월드의 최강 몬스터였던 루시퍼의 정수다. 뉴 월드의 최강 몬스터이니 내단으로 만들었을 때의 능력치는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 그건 내단에 필요한 재료 아이템만 봐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루시퍼의 내단' 레시피 젤리 상태의 빛나는 루시퍼의 정수 1/1 자이언트의 손가락 0/1,000 블랙 와이번의 송곳니 0/1,000 어둠을 걷는 자의 다리털 0/1,000 파이어 엘리멘탈의결정 0/1,000 하나하나가 레벨 500의 보스급 몬스터에게나 구할 수 있는 재료 아이템! 솔직히 다른 유저라면 레시피를 보는 순간 절망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레시피를 확인한 아크는 곧바로 짐을 싸 들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피 비린내 나는 노가다 삼매경에 빠졌다. 그리고 장장 세 달 동안 혹한의 대지와 열사의 사막, 지옥의 계곡등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쥐어 패고 모든 재료 아이템을 약타랬다. 그리고 냄비에 몽땅 썰어 넣고 부글부글 끓여 대기를 무려 일주일! 그리고 '루시퍼의 내단'이 완성까지는 불과 3분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지.' 돌이켜 생각하면 이 내단을 만드는 게 루시퍼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크가 회상에 잠겨 있는 사이 시가은 계속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냄비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폭음과 함께 모든 재료가 사라지더니 이내 작은 환약 하낙 나타났다. -숙성 과정이 종료되어 '루시퍼의 내단'을 완성했습니다. 당신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비법으로 '루시퍼의 내단'을 완성했습니다. 내단 연성은 뉴 월드의 숨겨진 비법 가운데 하나로, 루시퍼의 정수에 담긴 힘을 극대회시켜 플레이어에게 적용시키는 효과가 잇습니다. 이런 내단을 만드는 것은 서바이벌 요리사에게 가장 큰 영광이며, 연금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명서이 1,000 상승했습니다. +지능이 50 상스했습니다. +서바이벌 요리 숙련도가 30 상승했습니다. +'루시퍼의 내단'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현재 완성시킨 내단 : 8>>] "드디어 오나성했다!" 아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단을 들어 올렸다. 재료 아이템을 구하는 데 걸린 시간만 무려 세 달! 드디어 어둠의 제왕을 잡아 만든 '루시퍼의 내단'이 완성된 것이다. 대체 이 내단은 아크의 능력치를 얼마나 뻥튀기 시켜 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것처럼 쿵쾅거렸다. "지, 진정하자. 이러다가 내단도 먹기 전에 심장마비로 죽겠다." 아크는 심호흡을 하며 요동치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내단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한입에 꿀끅 삼키자눈앞에 화려한 섬광과 함께 정보창이 떠올랐다. -루시퍼의 내단(내단 등급 : ☆, 완성도 : ☆) 프로젝트 : 루시퍼의 체내애 깃들어 있던 신비한 정수로 만들어진 내단, 복용자에게 창조주의 느역을 부여합니다. +완성도에 따른 추가 보너스 <<모든 스탯 +50>> -창조주의 힘을 지닌 '마스터 코드'가 체내에 완전히 흡수되었습니다. <<마스터 코드 : 마스터 코드는 뉴 월드를 구성하는 모든 데이터에 접근해 원하는 대로 조작 할 수 있게 해주는 창조주의 권능입니다. 마스터 코드를 몸에 지닌 사람은 뉴 월드의 모든 정보와 시스템에 임의대로 접근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방식으로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 능력은 뉴 월드에 관련된 한 무한대에 가깝습니다>> "에에? 이게 뭐야?" 아크의 입에서 당혹성이 터져 나왔다. -------------------------------------- 프롤로그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게임 특종입니다." 게임 특종이라는 로고가 새겨진 스튜디오에서 진행자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도 역시 상용화 이후 3년간 온라인 게임 차트를 휩쓸며 현재 1,000만 명의 유저를 확보한 글로버엑서스의 뉴 월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특집은 다른 때와 뭔가 다르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뭐가 다르죠?" 진행자의 질문에 여성 캐스터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은 바로 뉴 월드의 최고의 유명 인사 아크님을 직접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네? 아크 님? 아크 님이라면 반년 전 부활하던 어둠의 제왕을 수만의 유저를 이끌고 물리친 전설의 유저가 아닙니까? 게다가 뉴 월드 최고의 복합 기업체 아크 상점의 회장이며 유저로서는 처음 슈덴베르크 왕국 공작 작위를 받으신 분이잖아요." "어머, 저보다 저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그야 저도 아크님 팬이거든이." 진행자가 넉살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아크님은 매스컴에 추련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신데 말입니다." "이번특별히 축하할 만한 일이 있어서 모셨습니다." "특별히 축하할 만한 일이라니요?" "직접 들어보시죠." 여성 캐스터가 빙긋 웃으며 말하자 스튜디오로 한 청년이 들어섰다. 낡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건장한 청년은 다름아닌 현우였다. "반갑습니다, 아크 님!" 현우가 들어서자 진행자가 갖은 수선을 떨어 대며 반겼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마자 속사포 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젊어 보이시는데요, 나이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올해 스물다섯입니다." "아, 역시 젊으시군요.그런데 특별히 축하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글쎄요. 이런 자리에서 대놓고 할 말인지는 모르겟지만 얼마 전에 뉴 월드의 제작사인 글로벌엑서스의 고문 이사직을 맡게 됐습니다." "고문 이사요? 스물다섯에 말입니까?" "글로벌엑서스에서도 유례가 없는 최연소 임원이라고 하더군요." "현우가 무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진행자가 새삼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말 이례저긴 발탁이군요. 혹시 비결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비결이라..." 사실 현우가 고문 이사가된 과정은 매우 복잡했다. 일단 그 발단이 된 것은 바로 두 달 전, 현우가 루시퍼를 때려잡고 날름 집어 삼킨 '루시퍼의 정수'였다. 현우는 '루시퍼의 정수'가 능력치를 뻥튀기 시켜줄 영약 이라고 생각했지만 엉뚱하게도 그 내단은 글로벌엑서스에서 찾아 헤매던 마스터코드 였다. 유나가 마스터 코드를 숨겨 놓은 곳은ㅇ 바로 '프로그램 : 루시퍼'의 내부 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적의 진영에서자신의 보물을 숨겨 놓은 기막힌 속임수! 그런데 당시 유일학 ㅔ마스터코드에 대해 알고 있던 박우성이 몇 달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바람에 글로벌엑서스 에서는 마스터 코드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현우가 잽싸게 내단으로 만들어 먹어 치운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글로벌엑서스 에서는 마스터 코드를 되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헀다. 그러나 마스터 코드는 이미 '아크'가 소화시켭 ㅓ린 뒤. 아크와 완저닣 붙어 버린 마스터 코드를 떼어 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뉴 월드를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을 갖게 된 유저를 그냥 풀어놓을 수도 없는 일. 때문에 글로벌엑서스에서는 아크에게 고문 이사라는 직함을 달아 주고 '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잠시 당시의 일을 회상하던 현우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뉴 월드를 위해 가능한 만흔 일을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고맙게 도 글로벌엑거스에서 그런 저의 노력을 높이 사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너무 교과적인 대답 아닌가요?" 그렇다고 유저들 몰래 내단을 빼돌려 훔쳐 먹고 고문 이사가 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우는 짐짓 대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실망스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월드 최고의 글로벌 복합 기업체 아크 상점의 회장이자 글로벌엑서스의 고문 이사가 되셨다면 돈도 상당히 많이 버시지 않나요? 모르긴 몰라도 게임 재벌이라는 소시를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군요?" "아니라는 겁니까?" "게임 재벌의 기준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교묘하게 대답을 피하시는군요?" "교묘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하시는군요."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현우의 대답에 진행자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사실 지금 앜님께서 뉴 월드와 현실, 양쪽엥서 얻은 부와 명예는 역시 반년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마족 전쟁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당시의 동영상은 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죠. 저희가 아크 님을 모신 것도 그 떄문입니다. 사령관으로서 수만의 원정군을 지회하고 직접 어둠의 제왕과 붉은 남자를 쓰러뜨린 아크 님에게 당시의 기박한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서 말입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스튜디오 뒤의 커다란 모니터에서 과거 현우가 콰리안 전투에서 활약하는 동영상이 펼처지기 시작했다. 진행자는 그 동영상을 지코보 기현우에게 당시의 상황 따위를 물어보며 방송을 진행시켜 갔다. 그렇게 대략 1시간... 시계를 들여다보던 현우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 켰다. "아 죄송하니다. 오늘은 여기 까지 하죠." "네? 그게 무슨....?" "사실은 오늘 중요한 행사가 있거든요." 현우가 허둥지둥 일어나 스튜디오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깐만요. 그럼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아크 님이 성공하신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당황한 진행자가 어쩔 줄 모라 하다가 황급히 물었다. 그러자 스튜디오를 뛰어나가던 현우가 우뚝 멈춰서며 대답했다. "노가다." "노, 노가다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온라인 게임의 세계에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죠." -------------------------------------- "서둘러라, 버닝혼!" 크라라라, 크라라라! 아크의 명령에 번이혼이 불길을 뿜어내며 바다위를 질주했다. 그러헥 잠시, 이내 아크의 눈앞에 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과거 유계라고 불리던 스탄달이었다. 아크느 저공비행으로 해안을 가로질러 스탄달의 중심 하만 요새로 향했다. 그런데 하먄 요새에는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성벽이며 건물 여기저기에 갖가지 만국기가 걸려있었고, 수많은 꽃입들이 사방으로 나부끼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 하먄 요새에서 일찍이 유례없는 행사가 벌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늦었군. 젠장, 그 녀석이 성미에 또 툴툴댈 게 분명한데..." 하만 요새 광장에 착륙하며 머리르 벅벅 긁어 댔다. 그때 앞쪽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이, 아크, 이제 도착했냐?" "벌써 식이 시작됐어." 그렇게 말하며 달려오는 사내들은 바로 갱생단이었다. "어째 날아다니는 놈이 제일 늦게 도착하냐?" "다른 사람들은 다 도착했어요?" "그래, 벌써 한참 전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 정의남 아저씨와 어미는 같이 안계시고요?" "말도 마라. 이제 곧 결혼할 사이라고 아주 찐득찐득해서 같이 못 있겠다." 짝퉁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주변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찰떡처럼 붙어 있는 한 쌍의 바퀴벌레.... 아니 , 정의남과 소미가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정의남은 마족 전쟁이 끝난 뒤에 소미에게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뒤에 결혼 날짜 까지 잡아 놓은 상태였다. 그 뒤로 정의남과 소미는 아크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정 행각을 벌여 대고 있었다. "젠장, 이거 어디 노총각은 서러워서 살겠냐?" "나도 빨리 애인이라도 만들어야지, 이거 원." 덩치와 불끈이가 입술을 대 발이나 내밀고 툴툴거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니들 얼굴로는 무리다 싶다. 차라리 기호를 바꿔서둘이 사귀는게 빠를 걸." "뭐야? 어떤 잡놈이..." 덩치가 와락 인상을 구기며 돌아서다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는 사내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런 잡놈이다. 어쩔래?" "아, 아니, 이슈람 형님이십니까? 헤헤헤, 요즘은 수사는 잘되시죠?" "징그러워, 인마. 달라붙지 마." 그렇다. 금세 굽실거리는 덩치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콧방귀를 뀌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슈람이었다. 마족 전쟁 당시 방어막 재생 속도를 증폭시키는 마스튜아라의 소중한 '그곳'을 삽으로 찍어 혁혁한 공적을 세웠지만 곧바로 샹그리아와 뤼겐베르크 사이에서 짜부되어 잊혔던 비운의 영웅, 이슈람! 그러나 이슈람도 마족 전쟁에서 얻은 게 있었다. 아크가 뉴 월드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놀 수 있느 마스터 코드를 손에 넣어 이슈람이 잠임수사를 하던 제패트와 수배자 일당의데이터를 몽땅 추적해 놈들을 일망타진 한 것이다. 덕분에 이슈람은 경찰청에서도 공적을 이넞ㅇ바다 특별 사이버 수사대의 팀장을 맡게 되어싸. 이슈람은 또 다시 답답한 유니트속에서 살아야 하냐며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내심 근무를 핑계로 뉴 월드에서 노는 게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사법님, 그동안 잘 계셧어요?" "오냐, 바쁜 건 알겠지만 가끔은 체육관도 좀 나와라." 이슈람이 툭 한마디 던지고는 건들건들 하만 요새로 향했다. 그러자 안도의 한숨을 불어 내던 덩치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런, 이러다가 식 다 끝나겠다. 빨리 가자!" 덩치의 말에 아크와 갱생단은 하만 요새로 뛰어갔다. 요새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배낭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시드(현재 시드는 상인 길드의 스탄달 지부장이었다.), 근처에 쌓여 있는 음식을 노려보며 침을 질질 흘려 대는 복실이와 삽질이, 울먹이(아기돼지 삼형제는 아크 상점의 스탄달 지부장이었다.), 여전히 얼굴만 맞대면 투닥거리는 브레드와 레디안(그래도 둘은 이제 공식 연인 사이였다.), 이미 적당한 그늘가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워머(마족 전쟁 이후 워머는 마법 학회 공학부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하지만 하만요새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유저와 NPC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이들이 오늘 모두 하만 요새로 모이는 이유는 바로..... "저기 봐, 키키, 항상 잘난 척하던 놈이 바짝 얼어 있잖아." "들었냐? 저 녀석 술 먹고 울면서 프로포즈했단다" "암살자라는 직업도 이제 때려치워야겠군." 인파를 헤치던 갱생단이 숨낳은 병사들이 도열해있는 성문 앞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그곳에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두 남녀가 서 있었다. 바로 샴바라와 이사벨이었다. 그렇다. 오늘은 샴바라의 오랜 야망(?)이 현실로 이루어 진 날이었다. 바로 온라인 게임 역사상 최초로 유저와 NPC, 샴바라와 이사벨의 결혼식이었다. 때문에 하만 요새에는 수많은 유저와 NPC 그리고 각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로 득실 대는 것이다. "저 녀석, 설마 정말 NPC와 결혼을 할 줄이야." 이미 한참 전부터 결혼식 얘기는 들었지만 막상 직접 보게 되니 묘한 기분이 들더라. 하지만 뭐 어떠랴? 본인이 좋으면 그만이지. 이곳은 뭐든지 가능한 뉴 월드가 아닌가? 그때 짝퉁이 아크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대며 히죽거렸다. "야, 저 목석도 결혼하는데 너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냐?" "네? 저야..." 아크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일 때 였다. "자, 이제 신부 이사벨 양이 부케를 던지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에 이사벨이 밝게 웃으며 부케를 하늘 높이 던졌다. 그러자 갑자기 수만흔 인파 속에서 두 여자가 엄청난 기세로 뛰어나와 몸을 날렸다. 야수처럼 부케를 향해 돌진하는 그녀들을의 이름은 로코와 레리어트! 그녇르의 저돌 맹진에 결혼식장의 하객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랄까.... 아무래도 아크의 고민은 좀 더 이어질 모양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