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의 후예 - 프롤로그 프롤로그.<그녀와의 이별> " . . . . . . . . . . .꺼야?" "그래. 난 널 절대로 잊지 않을 꺼야!! 흑" 뺨을 타고 흐르는 내 눈물이 안타까운지 야위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우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영이는 뼈만 앙상한 손을 내 뺨에 댄 모습 그대로 편안하게 내곁을 떠나갔다. 그런 소영이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녀는 이 작은 미소로 마지막까지 나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해준 것이다. 한기를 일으킬 정도로 차가운 체온을 마지막으로 나에게 전하며 소영이는 행복하게 나의 곁을 조심스럽게 떠나간 것이다. 지금 눈물이 앞을 가려 고운 나만의 소영이가 뿌옇게만 보이고 있었다. 살며시 내품에 안은 그녀의 고운 머리결은 이미 여기 저기 듬성듬성 빠져 흉측스런 모습이건만, 난 그모습 조차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왜냐면 지금 내 품에 안긴 이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한 여인이라고 답해 주고 싶다. 너무도 불쌍한 나의 사랑-!.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내 사랑이었건만, 하지만 난 이렇게 무기력하게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었다. 너무도 슬퍼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나였기 때문에. . . . 그래서 더욱 내 가슴을 파헤치는 그녀와의 이별은 나에게서 그녀를 빼앗아 가 버린 누군가의 원망으로만 이어지고 있었다. "흐윽. 흑. . . .소영아! . . . 널....... 절대로 널 잊지 않을 꺼야. 너도 이런 내 맘 잘 알지? 난 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이 바보. 고작 이런 날 사랑해줄 거면서 왜 이렇게 빨리 가 버리는 거야!!" 뼈만 앙상한 그녀의 어깨와 머리를 조금이라도 흘러내리지 않게 조심을 하면서 난 천천히 식어가는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지 못했다.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간절히 그녀가 내 곁에 남아주길 그토록이나 기도했건만........결국 소영이는 너무도 쉽게 날 떠나가 버렸다. 그런 그녀를 지킬 수 있게 나에게 당신이 지닌 모든 힘을 달라고 그렇게나 신께 기도했건만. . . . 앞으로 난 절대로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불쌍한 영혼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그를 내가 앞으로 믿어야만 한다면 난 차라리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아 버릴 것이다. 진실로. . .!! 차가운 병원 시체 안치실에서도 난 결코 그녀를 떠나 보내지 못했다. 한국인인 내가 같은 고아의 신분인 그녀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쓸쓸하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고아인 우리들이 만나서 행복하게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린 앞으로도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다짐하는 내 못난 모습만이 유일하게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사랑이었다. 난 지금 그녀의 차가워진 육신 앞에서 단지(斷指)의 고통보다 더욱 애절한 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못난 내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게 고작 3일 밤낮을 그녀의 차디찬 냉동관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만 속삭여주는 일뿐이지만, 그래도 난 내 영혼을 걸고 그녀에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영원히 너만을 사랑할 것이라고........ 내 영혼이 잠들기 전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직 너만을 사랑하겠다고, 아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의 영혼이 너무도 슬퍼 할까바 난 이 맹세를 져 버릴수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미 순백의 영혼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러나 난 지금 그녀에게 예전에 따뜻한 미소를 애써 지으며 그녀를 위해서 마지못해 했던 약속을 못지키게 된 점을 다시한번 사과해야만 했다. 그 약속만큼은 절대로 지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어찌 그녀를 잃고 그녀의 남은 행복까지 누리며 살수 있겠는가! '소영아! 난 너 없이는 못살 것 같아.......미안해... 아무래도 너와 한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정말로 미안해........난 그 약속을 지키며 너를 영원히 기억하며 사는 것 보단 바보같지만 이게 더 좋을 것 같아......' 작지만 마음속 깊이 그녀에게 이별과 함께 재회를 고하는 한심하지만 애절한 나의 진실이었다. 뚜벅. 뚜벅. "이봐. 죠. 그 친군?" "말마. 여전해." "쳇. 그 여잔 죽어서도 행복하겠군." "그래. 네놈처럼 양아치 같은 놈과는 비교도 못할 사람이지!" "흥. 고작 엘로우 펑키 녀석이 우리 병원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그렇게나 울리면 됐지...고작 사랑타령에 유명 인사가 되 버리다니....... 쳇. 병신 같은 놈!" "이봐. 말조심해. 그러다가 너 누구에게라도 그 말이 들어가면 넌 앞으로 데이트는커녕 커피한잔 못 얻어먹어." 잭의 투덜거리는 듯한 충고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간담이 서늘해진 피터였다. "휴~! 정말 그놈. 아이비 리거 맞어? 어떻게 공부벌레들인 년놈들이 저렇게 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사랑타령을 할 수 있는 거지?" 어깨를 으쓱이면서 끝까지 자신의 생각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는 과장된 몸짓의 피터였다. 그런 피터의 모습은 너무도 가증스러운 모습으로 잭의 눈에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니 절로 욕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잭이었다. "미친 놈. 내일 그 여자의 장례식에 참가할 인물들이 누구인줄 이나 알고 그딴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거야?" "응? 저런 하찮은 엘로우 펑키 고아들 장례식에 어떤 놈팽이들이 오는데.........' 호기심이 동한 피터의 눈빛을 차갑게 받는 죠였다. 그런 죠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피터는 결국 진한 호기심때문에 자신의 뜻을 약간이나마 수그러트렸다. "쳇, 미친놈들......... 그래, 도대체 어떤 놈들이 온다는 거야?" 찡그린 얼굴만큼이나 불만이 잔뜩 실린 퉁명스런 목소리가 피터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잭의 얼굴엔 급기야 조금은 노여워하는 감정이 어렸다. 그런 잭의 입에선 귓구멍이 뚫렸다면 똑똑히 들으라는 듯 작게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피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흥. 이 양아치 같은 놈. 똑똑히 잘 들어. 네놈 말대로 저기서 사랑타령을 하는 그가 얼마나 많은 동문들한테 지지를 받고 있는건 잘 알고 있겠지? 그런 그를 존경하는 수많은 아이비리거 동문들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석학이라고 칭송받는 한 유명한 사람이 온다고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이 누군지나 알겠냐? 허긴 네놈처럼 한심한 양아치들은 감히 그분의 이름을 입에 담을 자격도 없지. 하여간 그런 분이 자신의 피를 사랑하는 여인에게 매일 마다 수혈하는 그의 기사를 읽고 노발대발을 한 것은 네놈도 똑똑히 알고 있을것이다. 맞지?" 잭의 비아냥 거리는 말투에도 피터는 오직 그 세계적인 석학이자 만인에게 칭송받는 누군가를 상기하면서 놀란 눈을 뜨고 잭을 바라다 보았다. 혹시나 하는 그의 마음이 눈빛을 통해 잭에게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으응? 설마 그 세계최고의 석학이자 존경받는 스승이라는 그 사람이...........?" "흥, 그래. 오죽 답답하면 토크쇼에 직접 나와서는 자신의 입지는 전혀 생각도 안하고 침을 튀기며 수많은 동문들과 제자들에게 자신의 애정을 모아서 투병중인 연인에게 작은 보탬이 되라며 저 동양인 친구를 응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내일 직접 여기에 온다는 것이다. 그토록이나 간절하게 기도하며 완쾌하길 바랬지만, 결국 혈액암으로 고생하다 불쌍하게 떠나가 버린 그의 애인을 위해 자신이 손수 제자들과 함께 모교 장례식을 치룬다고 연락이 왔다. 더구나 그 뿐 인줄 알어? " 죠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놀란 눈을 하고 있는 피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속에서 꽉 막힌 무엇인가가 확 하고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신이나서 큰소리로 피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털어 놓았다. "더구나 예전에 하루에 한번씩 자신의 피를 애인에게 수혈을 해준 저 위대한 동양 청년을 위해 전세계의 동문들에게 협박성 전화를 해대며 저 사내의 진정한 선배라고 자처하던 하버드 경제학과 출신의 미국 경제자문 위원인 존 F 부머 상원의원이, 자신이 직접 하버드대가 생긴 이래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모교 장례식을 그의 스승과 주관하고자 온다고 연락이 와서 지금 이 동네는 난리도 아냐. 그리고 전 동문의 가슴을 울린 이 가슴아픈 로맨스에 며칠 밤을 남편의 품에서 울었다는 부인과 직접 참가한다는 소식에 지금 여기 있는 병원장들이랑 아이비 리거 출신들은 조금이라도 흠이 잡힐까봐 아예 난리가 났어." 잭의 약간은 과장된 듯한 말을 끝까지 들으면서 피터는 허탈하다는 시선으로 잭을 바라보았다. 잭의 자신감 넘치는 긴 말에 정말로 어이가 없는지 피터는 내심 그의 말이 진실인가를 확인하고자 했다. 허나 잭의 매섭게 쏘아보는 눈길에 담긴 진실에 피터는 결국 저절로 어깨에 들어간 힘이 축 늘어지며 빠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쳇. 고작 엘로우 펑키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연애질에다가 애인이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걸 조금 도왔다고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다니....... 자신이 생각하기엔 모두가 한심한 년 놈들뿐이었다. "허. 정말로 그 아이비리거 출신들 모두에게 존경받는 유명한 독불장군 존 F 부머 상원의원이 고작 저 냄새나는 노랭이들의 사랑놀음 때문에 여기를 온다는 거야? 더구나 고작 고아인 동양 여자 장례식에 세계최고라고 자부하는 석학까지 참가를 한다는 거야? 참나. 정말로 할 일 없는 미친놈들이군." 결국 진실을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버팅기는 이런 피터의 말에 열 받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작고 힘없게 생긴 동양 사내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잭이었다. 또한 이런 놈을 결코 용서 할 수 없다는 정의감에 불타는 죠였다. 평소에도 백인 우월주의를 피터의 말속에서 느끼던 잭의 분노는 결단코 용서를 모르는 듯 우람한 덩치를 앞세워 피터에게 육탄돌격을 감행시키고야 말았다. 큰 체격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감성이 깃든 죠의 목소리는 지금 우렁차게 복도 전체에 메아리로 퍼지고 있었다. "이.........익. 이 미친 놈. 그러니 네놈은 평생 그모양 그꼴이야. 감히 죽은 애인을 위해서 저렇게 간절히 금식 기도를 올리는 그를 보고도 네놈은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그리고 네놈 같으면 죽은 애인을 천국으로 인도해 줄 천사들에게 삼일 밤낮 물 한모금 안 마시고 저렇게 죽은 애인을 위해 무릎꿇고 기도할 용기라도 있냐?" 불끈. 와락. 빽하고 고함을 지르던 검은색 피부에 뚱뚱한 몸을 가진 죠는 의자에서 거칠 게 일어나며 성난 몸을 잔뜩 세웠다. 지금 부릅뜬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미처 닦을 생각도 없었던 죠는, 이제는 자신의 우상이 되어 버린 불쌍한 동양 청년을 싸잡아 욕하는 놈을 결코 용서할수 없다고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 결국 죠는 이 망할 놈의 피터라는 보조 간호사의 멱살을 거세게 움켜쥐며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세차게 벽 쪽으로 그의 몸을 밀어 붙였다. 쿠웅. 이익. "이......이......... 이봐. 죠.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이 망할 놈. 네 놈은. . . .크흑. . . .네 놈은 백인 우월주의자가 확실해. 흐윽. 아픈 애인을 위해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갖 아르바이트로 이 비싼 병원비를 벌면서도 애인이 환하게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던 그를........더구나 사랑하는 여자가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선 자신의 피까지 거침없이 선물하는 남자를..........난 내 40평생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그런데........네놈이........네놈이 대관절....... 뭐라고...........흐윽." 엄청 뚱뚱한 몸과는 달리 자그마한 얼굴에 눈물과 콧물범벅을 한 죠는, 이젠 벽과 자신의 거대한 몸에 짓눌려 오징어포가 되기 일보직전인 피터의 어깨에 그만 얼굴을 박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자신의 가슴 여린 마음에 백인우월주의로 아픈 상처를 주는 피터의 말에 죠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시체 보관실에 모두가 인정한 로맨티스트이자 진실된 사랑을 아는 작고 마른 동양인 사내에 대한 서러움이 그의 눈을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가리고야만 것이다. 또한 병원 측에서 그런 그를 위해 따로 준비해준 임시분향소와 그 앞에서 지금도 홀로 외롭게 사랑하는 여자의 관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창백한 얼굴의 동양인 사내를 향해 죠는 아낌없는 눈물을 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3일 뒤. "이 기사가 우리들의 자랑스런 모교 신문에 난 건 지금으로부터 어언 3개월 전. 기사에 실린 그대로 이 따뜻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우리의 학우이자 이제는 동문이 된 라빈 킴. 한국 이름으론 킴 우썽 군의 너무도 가슴 설레이는 따뜻한 사랑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우리 모든 동문들에겐 너무도 행복한 감동을 주는 기사 였습니다. 허나 결국 사랑하는 우리들의 품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돌아간 그레이스 양과 그녀의 뒤를 따라간 라빈군의 애절한 사랑은 끝까지 그를 지켜 본 한 기자에 의해 지금 우리들은 너무도 가슴아픈 그의 사랑을 오늘 또다시 이자리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 큰 목소리로 수만에 달하는 관중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밝히던 한 사내의 목소리엔 지금도 작은 슬픔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사내의 뒤에는 초로의 호리호리한 남자가 여러명의 젊은이에게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서 있었다. 아마도 나이가 지긋한 것으로 보아 몸이 그리 자유스럽지는 못한것 같은 초로의 남자였다. 그런 그를 존경의 눈길로 바라다 보는 모든 동문들의 눈엔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작은 사진에 쏠려 있었다. 그리고 그 초로의 남자가 잠시 자신에게 다가온 듬직한 제자에게 건낸 사진은 이제 커다랗게 복사가 된 사진으로 그들의 뒤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나타나기 시작하는 여러장의 사진속에는 지금도 자신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한 사내의 힘든 모습들이 담겨져 있어 모든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저리도 힘들게 생활하면서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니........ 그리고 힘든 막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사랑과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 작고 볼품없는 동양인 사내가 이리도 커 보이다니...... 잠시 모든 이들의 침묵이 이어졌다. 어떤 이는 작게 기침을 터트리며 눈시울에 맺힌 눈물방울들을 털어내기도 했다. 이런 잠시의 침묵을 깬 것은 역시 조금전의 웅장한 목소리의 사내였다. "존경하는 동문 여러분, 어떠십니까? 과연 우리는 저 자랑스런 우리의 동문이자 작은 영웅과 같이 힘들어도 밝고 건강하게 살수 있었을까요?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그리고 아픈 가슴을 안고서 저렇게 활짝 웃음을 지으실수가 있으십니까?" 사내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목이 매이는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쳐들어진 그의 얼굴엔 불타는 눈동자가 남아 있었다. "여러분, 우린 저 작은 영웅을 잃고서야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 작은 영웅이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된 건 수십만에 달하는 우리 동문들에겐 너무도 가슴아픈 안타까움이고,그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희생과 봉사는 오늘 뒤늦게 모인 어리석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학우 여러분.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이를 가지고 계신 모든 동문 여러분.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사랑하는 이에게 작은 한줄기 미소로 다가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그는 우리에게 똑똑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감히 이 자리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은 우리들의 작은 영웅인 그의 사랑의 끝을 마감하게 되어서 진심으로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의 소중한 시간들을 오직 사랑하는 이를 위해 희생하며 작고 초라한 동양인이라는 갭도 우리들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그에게 우리 모두 다 같이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보냅시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고, 또한 진실된 사랑을 아는 우리의 진정한 동문이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내는 막대한 수술비와 매주 들어가는 수혈을 위해 직접 자신의 몸과 피로 감당하면서도, 그는 하루 2시간도 안되는 짧은 수면에도 연인의 작은 미소에 행복해 했으며, 오직 자신의 사랑의 힘으로 모든 힘든 역경을 이겨내며 일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애절한 사랑을 한 우리의 작은 영웅에게 우리 모두 진심으로 존경의 뜻을 보냅시다. 그는 스스로를 희생하고 봉사하면서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정말로 위대한 사내였습니다. 나 존 F. 부머는 이런 그에게 진심으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는 진정한 사내였고, 우리들의 영원한 동문이자 영웅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그의 동양적인 사고관을 존중하는 의미로 그가 진정으로 원하던 그녀의 장례식을 오늘 이렇게 그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할 수 있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아울러 동양의 장례식을 모르는 우리 모든 동문들에겐 지금이야말로 죽은자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고유 문화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존경하는 동문 여러분. 우리 이제 다같이 예전에 그들이 사랑을 나누었던 우리들의 자랑스런 모교에서 그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이 자주 오가며 사랑의 밀어를 속삭였던 우리들의 캠퍼스를 다 같이 순회합시다. 또한, 전 이 자리에서 존경하는 나의 스승님께서 성지로까지 선포하신 사랑하는 자에 대한 위대한 희생과 봉사정신이 깃든 추억의 장소를 오늘 하루 성지로 과감히 선포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매년 오늘이 오면 우리들은 이 자리에 다시 한번 모여서 그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들만의 성지를 기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웅장한 열변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이는 바로 다음번 미국의 대권주자이자 하버드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한 정치계의 돌격대장 존 F 부머 상원의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초로의 사내를 부축하며 연신 손수건으로 화장기 없는 얼굴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는 이는 차기 퍼스트 레이디로 지명되고 있는 캐서린 여사였다. 이런 그들이 힘차게 고함을 외치며 거의 축제분위기로 돌변되는 캠퍼스에 동문들을 이끌고 찾아간 곳은 인문과 대학 캠퍼스 한가운데에 임시로 만들어진 깔끔하게 정돈이 된 분향소였고, 그후 만 하루가 넘도록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곳엔 하얀 국화가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하얀 국화꽃이 만발한 그 곳엔 모든 이들의 엉거주춤한 절을 받으며 한눈에 그들을 내려다보는 한 쌍의 연인들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흑, 우썬이가 넘 불쌍해. 흐윽" ". . . . ." "이. . . . .이 봐. 우린 지금 그를 대신해야 될 사람들이란 말야. 어서 눈물 닦고 조문객들부터 챙겨."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급한 마음으로 말을 하면서도 연신 허리를 숙이는 곳엔 지금 미 대통령이 보낸 조문 사절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누군가가 힘겨운 노구를 작은 의자로 달래며 매서운 눈길을 쏘아보고 있는 곳이었고, 그런 눈길에 주눅이 든 조문 사절들은 엉성한 한국식 예절을 지키기에 급급한 조금은 분주한 분향소 한켠이었다. 그런 곳에서 상주로 지명된 이들은 오늘의 주인공인 라빈(우성)과 그레이스의 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믿겨지지 않는 둘의 합동 장례식에 나와서 막연히 먼 하늘만 바라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안으로 삼키고만 있었다. "흑, 이 바보. 고작 이런 짓이나 할꺼면 뭐하러 그 심한 고생들을 자초한 거야? 이 바보야~!!" 애절한 마음으로 외치는 고함에 모두의 얼굴엔 금새 우울한 감정들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커다란 사진 속엔 지금도 그들을 내려다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연인들이 우정이라는 가슴저린 감정을 선물하고 있었다. ~~~~~~~~~~~~~~~~~~~~~~~~~~~~~~~~~~~~~~~~~~~~~~~ 내 하나뿐인 사랑 그레이스에게. 난 지금도 네가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구나. 조금 전 너의 마지막 모습을 위해 내 맘대로 조금이나마 예쁘게 꾸몄단다. 그것도 평소 네가 간절히 원하던 아주 예쁜 웨딩 드레스로...... 어때, 마음에 드니? 후후후. 그래? 맘에 들어? 다행이다. 나? 나는 어떠냐고? 후후. 당연히 나도 너만 이뻐보이는게 싫어서 같이 입었어. 자 봐. 나도 너랑 똑같이 입고 있잖아. 봐~! 어때? 잘어울리지? 내가 봐도 확실히 너와 난 너무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그치? 그래. 나도 너와 이렇게 늦게나마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서 진심으로 기뻐. 비록 작고 볼품없는 결혼식이지만........ 후후후. 얘들이 또 비웃겠다. 이 바보 . 멍청이. 어떻게 된 놈이 오로지 그레이스밖에 모르냐면서. . . . 하지만 난 진짜로 후회 안 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난 그 심한 방황에 온동네를 쏘다니며 사고만 쳤었잖아. 그런 나를 고아라고 적대시하는 놈들을 마구 때려주며 엉망이 된 내 몰골을 그저 웃음으로만 반겨주시던 에르카 원장 수녀님이나 종교를 뛰어넘은 모습으로 심한 방황을 하던 나를 따끔한 회초리로 다스리시던 마음속의 진정한 스승님이신 노명 대사님도 지금 이렇게 너와 나의 행복한 모습을 보시면 아주 대단히 기뻐하실 꺼야. 그리고 검정고시 출신인 나를 이렇게 멀리 타국 땅에까지 유학 보내주신 모든 분들껜 조금은 죄송스럽지만 진심으로 우릴 아껴주신 그분들께 이 글로 깊은 감사를 대신 하고 싶어. 비록 아무도 봐주는 이 없는 초라한 우리들만의 결혼식이지만. 그레이스~! 아니 소영아! 넌 나와 같은 한국인이면서 한국말도 한마디 못하고 어려서 네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 머나먼 타국 땅에 입양 당해 가슴 한쪽에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지. 더구나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은 널 바라봐야만 했던 난 정말로 나쁜 놈이었어. 하지만 소영아. 나는 널 이렇게라도 만나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지금 깊은 감사로 마지막 겸손을 떨고 싶구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비록 너가 원하지는 않았다곤 해도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모두 그분들 덕택일 테니깐........ 소영아. 그러니깐 우리 가는 길에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와 너에게 잘못한 모든 이들을 너그러운 아량으로 용서 해주자꾸나. 비록 그들이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더라도 우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아름답게 용서라는 마음으로 예쁘게 꾸며보자꾸나. 어때? 괜찮겠지? 너도 내 맘처럼 그들을 용서하고 가줄꺼지? 그래, 넌 언제나 착한 천사같은 소녀였으니깐 아마 나와같을꺼야. 후훗. 소영아!. 근데 왜 바보같이 난 지금 이렇게 우리의 멋진 결혼식이 서글픈 거지? 왜 지금 바보 같이 눈물을 보이고 있냔 말야. 아마도 너무 기뻐서 겠지? 그래, 맞을꺼야. 이렇게라도 널 영원히 보내고 싶지 않은 어리석은 내 자신이 너무도 기뻐서 흘리는 눈물일꺼야! 하지만........... 하지만, 지금 네가 떠난 빈자리는 나에겐 너무도 커. 아니!! 내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널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내 작은 맹세를 위해서라도 난 네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지 않을 꺼야. 알았지? 내가 어떻게 너아닌 다른 사람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겠니. 오직 너 하나뿐인 나인데....... 후후. 그래. 이제서야 조금 마음이 후련하다. 이렇게 너와 같이 떠날 결심을 하고나서야 이렇게 후련하게 울어 볼수 있었다니...... 나도 진작에 너와의 약속때문에 삶에 미련을 두지 않았으면 되었을껄. 나 참 한심한 바보인가봐. 그리고 소영아. 인간은 자신을 만든 신을 존경하는 뜻에서 깊은 감사의 기도를 매일 올리지만 지금 난 그런 기도는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렇게 널 나에게서 빼앗아 가려는 자들에게 사악한 악마가 되어서라도 난 널 다시 되찾아 올 꺼야. 후후후. 왜냐고? 후후후. 혹시라도 너를 뒤따라가는 내가 조금 늦어서 너를 다시 찾지 못할땐 난 정말로 미쳐버릴꺼야. 그리고 그 다음엔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는 아무런 장담도 할수 없어. 진짜야. 그러니깐 소영이 너가 나를 조금만 기다려 주겠니? 응? 제발........ 그리고 말야. 나 지금 정말로 화가 나. 우리가 만나 사랑을 한 그 짧은 순간들을 시샘해서 이런 큰 시련을 우리에게 주는 것인지.........누구든지 절대로 용서하고 싶지 않아. 휴~~~~~ 미안. 내가 너무 흥분한것 같아서 미안해. 그리고 지금 네가 싫어하던 담배를 끊은 후론 지금처럼 간절하게 담배생각이 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후라서 인지 더욱 유혹이 강하게 밀려온다. 휴~~~ 하지만 걱정하지마. 내가 누구니? 난 너와 약속한 것은 절대로 어기지 않는 너만의 흑기사 이자 젠틀맨이잖아. 그래. 지금 내 이성이 감성을 이기고 있으니깐 너무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날 보지는 말아 줘. 난 단지 조금 후면 만나게될 네가 너무도 그리워서 이렇게 가슴이 설레인단 말야. 핏. 싫다고.......? 후후. 그래도 소용없어. 이미 난 결심했는걸...... 고작 이렇게 힘없이 널 떠나 보낼 거면 난 널 사랑하지도 않았어. 알지? 난 너 없으면 이곳에서 살아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리고 미안해~! 이게 아마도 너와 한 약속들 중 유일하게 못 지킨 일이 될 것 같아. 왜냐면 난 네가 없는 이 세상에서 너 대신 네 삶까지 짊어지며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어. 아참. 잊을 뻔했는데. . . 네가 그렇게도 신경 쓰던 내 논문은 지금쯤이면 모리스 교수님한테 전해져 있을 꺼야. 그분 성적 짠 걸로는 꽤 유명한 분인데 아마 이번에도 나 확실히 A플러스 먹을 자신 있어. 후후후. 어때? 너도 기분 좋지? 그래, 우리 이런 기분 그대로 저 먼 세상에서 다시 만나 사랑하자. 난 반드시 여기서 못다 한 우리들의 사랑을 다음 번 세상에서는 꼭 이루고야 말꺼야. 이건 신이라고 해도 우릴 말릴 수가 없어. 알지? 내가 한번 한다면 반드시 하는 놈이란 걸.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반드시 되찾아서 우린 사랑하게 될 꺼야. 그러니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걱정하지 말고 나를 꼭 기다려 주렴. 알겠지? 자~!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다. 그레이스. 아니 소영아~! 조금만 기다려. 짧은 며칠동안이지만 널 그 차가운 곳에 혼자 놔둘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은 지금 이렇게 널 다시 만나기 위한 일들을 준비하는라 그랬어. 만약에라도 그 점이 섭섭했다면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며칠동안 차가운 곳에 널 혼자 놔두고 널 쓸쓸하게 만든 나를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렴. 그리고 이제 내 옆에 들어가는 나한테 내 생이 끝남과 동시에 널 다시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동안 못했던 너의 그 유명한 바가지도 왕창 긁어주렴. 이젠 그 사랑스런 미소로 토라져서 바가지를 긁는 뽀루퉁한 네 얼굴이 한없이 그립단다. 흑흑. 안녕. 내사랑~! 안녕. 또다시 만나서 반가워. 내 사랑~!! 너의 하나뿐인 흑기사 이자 피앙새 우성이가. ~~~~~~~~~~~~~~~~~~~~~~~~~~~~~~~~~~~~~~~~~~~~~~~ 긴 장문의 편지를 들고 지금 조문객들로 구성된 수십만의 인파들 앞에 서있던 소피아는 어두워진 밤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결국 유언장이나 다름없는 편지를 울먹이는 모습으로 읽던 소피아는, 작은 종이컵에 담은 촛불로 두 사람의 천국에서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무리들 속에서 기여코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단지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부러웠을 뿐인데...... 그들의 사랑을 보면서 그당시엔 왜 그리도 시기하고 질투했었던 것인지........ 이미 지나간 모든 일들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눈물로써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보내는 소피아였다. 그리고 이렇게 흐느낌만 존재하는 곳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애절하게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성(라빈)이가 발견된 곳은 아주 뜻밖의 장소였다. 그녀의 장례식 문제로 우성이를 찾았던 친구들이 항상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그가 안보여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열어본..... 그의 유일한 우상이자 사랑인 그레이스의 작은 냉동관 속이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둘은 살며시 쥔 손을 꽁꽁 얼려 가며 이렇게 까지 간절한 자신들의 사랑을 모든 이들에게 증명했었다. 그런 소식을 듣고 망연자실하던 동문들에 의해 지금 두 사람은 5일장으로 내려져 오는 한국전통 장례식을 거창하게 받고 있었다. 이는 하버드대가 생긴 이래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뜻깊은 의식이었다. 하버드대가 있는 메사추세츠의 학교 캠퍼스에서는 그들만의 성지로 선포 된 두사람의 추억이 물씬 깃든 곳에서 지금 마지막 밤은 맞은 두 연인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눈물을 선사하며 밤이 새도록 수많은 인파에 묻혀 그들의 마지막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곱게 차려입은 웨딩드레스와 턱스도를 남들에게 선보이며 아주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전 안하던 화장을 곱게 한 그레이스의 모습은 청순미와 가녀린 그녀의 이미지때문에 동문들에겐 이젠 성녀로 알려지고 보여졌다. 그런 그녀를 사랑한 이 유약해 보이는 사내의 모습은 모든 여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애절한 자신들의 사랑을 위해서 긴 여행에 들어간 것이다. 또한, 둘만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된 하얀 장미가 가득차 있는 대형유리관에 나란히 들어가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동안 우성이의 뜨거운 사랑에 비웃음을 보내며 콧방귀를 치던 이들에게 또다시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단지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 . . 소피아는 수십만에서 이제는 백만이 넘을 듯한 조문객들에게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너무도 부러웠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서 그렇게도 그들을 매도하며 비웃었다고....... 이런 자신을 끝까지 그들의 베스트친구로 여겨준 두 사람이 고마웠다고 소피아는 울음 속에서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더불어 이렇게 여러분들의 앞에 서서 이런 못난 나를 위해 사과할 시간을 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그녀는 그렇게 울고 또 울었다. 그런 그녀의 독백을 들으면서 그의 친구들은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자, 그들의 눈앞에는 지금 작은 영사기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그들과의 추억들에 파묻혀 더욱 애절한 가슴에 눈물로 적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뜨거운 눈시울을 적시며 이제 밝아오는 아침이 되면 자신들의 곁을 떠나갈 그들에게 진심으로 축복 어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 제 1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 환생. 가녀린 등에 하얀 날개를 탐스럽게 단 소녀가 지금 그 작은 품에 안고 있는 사내는 윤기 나는 검정색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그런 사내와 너무도 잘어울리는 그녀는 화려한 흰색의 드레스를 곱게 입고, 연신 작은 몸에 달린 날개를 힘겹게 파닥이며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천사처럼 보이는 그녀의 눈앞에 작은 동산이 나타나자, 지금도 그 동산 위의 작은 꽃밭에서 나비들을 쫓으며 우아한 걸음걸이로 장난치는 소녀가 그녀의 눈앞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 안녕하세요. 천사님~!" "제발....... 제발 이 사람을 사랑해 주세요. 흐윽....." 자신에게 날아오는 천사에게 천진한 미소로 밝게 인사를 하던 소녀는 울먹이는 천사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자 가슴 한쪽이 순식간에 아파왔다. 왠지 꼭 천사인 그녀의 말을 들어줘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소녀는 자신의 대답을 대신 했다. 그런 소녀의 대답을 들은 천사는 자신의 작은 품에 꼭 안고 있는 소중한 이를 소녀에게 전해주며 눈물로 그 사내를 떠나 보냈다. "안녕. 라빈. 이렇게라도 널 다시 살려야만 하는 날 용서해 줘. 그리고 너와 마지막에 결혼한 건 내겐 가장 소중한 의미이자, 앞으로 내가 자랑스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가 될 꺼야. 널 만나서 행복했어. 그리고 나약하기만 한 날 위해 그렇게까지 사랑해준 널 영원히 잊지 못할 꺼야!" 아쉬운 듯 두 손을 뻗으면서도 끝까지 사내를 놓아주지 않는 천사를 보며 엘렌은 너무도 가슴아픈 사랑이 이들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조금 더 시간을 주고픈 마음과는 달리 얼른 사내를 빼앗아 자신의 속으로 넣어 버린 조금 전의 일이 너무도 후회했다. 아니 자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잘 몰랐다. 엘렌으로써는 꼭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은 생각에 그 사내를 얼른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그런 엘렌에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얼굴로 끝까지 사내를 부탁하는 천사에게 엘렌은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면서 친절하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엘렌은 손을 흔들던 자신의 아랫배에서 갑자기 느껴지는 차가운 이질감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어머? 꿈이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엘렌은 자신이 있는 곳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역시 꿈이었던 것이다. 그 꿈덕분에 간만에 달콤한 잠을 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겨우 놀란 마음을 추스르는 엘렌이었다. 이윽고 엘렌은 다시 침대에 몸을 누이며 조금씩 밝아오는 여명을 받으며 잔잔한 여운을 주는 그 꿈 생각에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호~오. 아무리 꿈이라지만 천족은 처음 보는데....근데 그 사내가 누구이길래 천족인 그 분을 그렇게까지 슬프게 했을까?' 엘렌은 계속되는 생각들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꿈의 여운을 즐기며 생전 처음으로 본 천족과 그녀의 손에 끼워진 작은 반지가 차가운 느낌을 주던 사내의 손에 끼워진 반지와 똑같은 것이라는 걸 기억해 냈다. "호호. 천족들은 결혼을 할 때 입는 옷이 참 특이하네." 기사라면 멋진 미스릴 갑옷을 입고 코르셋으로 꽉 조인 웨딩드레스의 여인에게 결혼 서약을 하게 된다. 그 후 예쁜 꽃으로 장식된 화환과 얇은 망사로 된 신부의 면사포를 살짝 들어올려 키스를 해주는 것이 바로 엘렌이 겪은 이곳의 결혼 풍습이다. 이곳의 이런 결혼 풍습과는 너무도 다른 천족들의 결혼 예복과 그 모습들이 엘렌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결국 검은색의 단정한 복장을 입고 있던 천족 사내를 기억해낸 엘렌은 또다시 느껴지는 아랫배의 차가운 이질감에 당혹해 다급히 전신의 마나를 개방 해 버렸다. 그러자 점점 강하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생명이 몸안에서 그 생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는 걸 발견한게 된 엘렌은 너무도 기쁜 마음이 들어 방안이 떠나갈 듯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악" 후다닥. 방문이 급하게 열리며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금발의 영준한 인물이 방안에 들어섰다. "무 . . .무슨 일이요. 엘렌?" "하아~~하아. 여보~! 멜빈." 엘렌은 듬직한 남편의 모습이 보이자 더욱 샘솟듯 밀려드는 행복함에 뺨을 붉혔다. "그. . .그래. 나 지금 여기 있어. 엘렌!" "아무래도 저 임. . . .신. . . ." 새빨게진 뺨을 어루만지는 남편의 손길에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자 더욱 창피함이 물씬 생긴 엘렌이었다. 창피함에 엘렌이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뒷말을 잇자 멜빈이라고 불린 사내의 눈엔 어느새 놀람이 가득 번져나갔다. "에....엘렌! 지....... 지금 임신이라고 그랬어?" -끄덕끄덕. "하하하하. 진~짜~?" "예. 아마도., . . ." "쿠하하하핫. 여보~옹. 싸랑~해!!" 금새 화색이 된 얼굴로 웃음을 짓는 멜빈이었다. 금발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20대 후반이 된 멜빈은 그동안 소식이 없던 아내의 임신 사실에 온 성이 떠나갈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 얼마나 초조하게 기다렸던 일인가?! 멜빈은 너무도 소중한 아내를 그 넓은 품에 덥썩 안아 버렸다. "우하하하하. 신이시여~! 진정으로 감사하옵니다. 드디어........... 드디어...........제가 아빠가 되다니........" 그의 이러한 행동에 놀라 성 안에 난리가 난 줄 알고 다급히 달려온 기사들이 숨을 헐떡이며 그들을 바라보자, 더욱 부끄러워진 엘렌은 남편의 품에 폭 안기며 홍당무가 된 얼굴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몇 해전, 미 동부대륙 전체가 아주 매서운 한파에 휩싸이며 우리를 감싸안던 날. 그 하얀 눈보라 보다 더욱 뽀얀 피부를 자랑하던 소영이를 난 만날수 있었다. 너무도 탐스러운 눈송이처럼 하얀 잠옷바람에 꽁꽁 언 맨발을 가지고 어두운 길거리에 나타난 소영이를 본 순간, 나의 작은 심장은 두방망이 치고 온몸에 차갑게 식어가던 피를 단숨에 뜨겁게 달구어 주던 내겐 너무도 소중한 소영이와의 첫 만남! 그 뒤부터 난 그녀의 작은 미소에도 황홀해하며 얼굴이 붉어지던 순수하던 그 시절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소영이를 만난 뒤부터 난 처음으로 나에게도 이성이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가 농담처럼 그녀와 나를 빈정거려도 그 말이 그렇게도 듣기 좋았던 철없던 그 시절.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낯선 따스한 기분들처럼 난 그녀와 함께 이 세상에 같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행복했었던 그 시절이 또다시 눈앞에 아련히 떠오르고 있었다. 지금 가끔씩 느껴지는 이 따스한 손길에 꼭 감은 내 두 눈에선 그 시절의 추억들이 감미롭게 떠오르고, 난 그 속에서 작은 행복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어머, 아기가 움직여요." "어디, 이야~ ! 이 작은 천사가 정말 우리의 아기가 맞아?" 작고 소박한 이들의 속삭임이 나의 피부로 느껴지며 조금씩 내가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는 더욱 나를 행복한 꿈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바로 나와 소영이가 꿈꾸었던 그런 순간이었어.' 그녀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가난한 유학생으로서는 도저히 받을 수 없었던 낯선 곳에서의 그 차가운 멸시와 구박들. 결국 그녀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며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그녀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힘든 그 시절의 나. 하지만 이미 악성으로 넘어간 종양 덩어리들을 몸 안에 지닌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나마 고통스런 치료들을 조금이라도 덜 받게 해주는 것이었건만...... 왜 그때에는 그렇게도 그녀를 힘들게 했었는지....... 단지 그녀와 나의 사랑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였을까? 누군가에게 그녀와 나만의 사랑의 결정체를 보여주고 싶었서 그토록이나 처절하게 희생을 했었던 것일까? 난 지금 그 순수했던 시절이 나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는 이들의 말들 속에서 떠올라, 점점 그 시절의 추억들이 아련한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후후후, 엘렌. 이 작고 축복 받은 생명을 위해서 내가 모든 이들에게 당신과 앞으로 태어날 우리들의 아기를 위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라고 하겠소." "호호 ~ 이이도 참 ~! 고마워요 멜빈 ~!........... 우리 아기 착한 아기~ 그래. 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한다고..........." 남편인 듯한 이의 말에 웃음으로 답하면서 엘렌이라고 불린 여인은 그렇게 그녀의 뱃속에서 울부짖는 나를 달래듯이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찰싹. "응애~ 응애~" 갑자기 온몸을 감싸는 한기에 놀라 숨을 죽인 나의 엉덩이를 누군가 힘차게 내리치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내가 그런 행위에 놀란 마음으로 다급히 한 모금 들이킨 이 낯선 곳의 대기는 너무도 익숙한 그 무언가를 담고서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헉, 이게 뭐야~! 난 지금 새로 태어나는 건가? 까마득한 절망 끝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이비리그의 유학생활을 깨끗이 포기하고, 내 삶을 스스로 끊은 나에게 새로운 삶이 주어진 것인가? 그럼 지금 나의 뇌리 속에 23년 동안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지? 그럼 소영이는..............?' 난 이 작은 의문들을 가슴에 안고 답답한 마음에 눈을 뜨려고 필사의 몸부림을 쳤지만, 그런 나의 행동은 이내 작은 내 손을 부드러운 수염에 마구 부비는 누군가에 의해 금새 포기하게 되었다. 최대한 안간힘을 쓰며 눈을 뜨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도저히 이 밝은 빛에 적응이 안된 지금의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후후. 정말로 환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어릴 적 누군가에게 버려진 내 삶에 작은 등불이 되어주셨던 노명 스님의 담담한 말씀처럼 '삶은 인고의 둘레이며 번뇌의 척도'라는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한 겁의 세월이 지나면 또다시 새롭게 반복되어지는 인간의 삶을 마치 이것이 마지막인양 욕심을 부려본들 그 무엇하랴" 라는 말씀처럼 지금 난 새로운 삶을 또다시 받은 것인가? 헌데, 지금 내 머리 속에 담겨진 내 전생의 기억들은 모두 어떻게 된 것이지? 그럼 나를 기다리고 있을 소영이는 어디에 있는 것이지? 난 그녀 없인 다시 삶을 살아갈 목적이 없는데............. 수많은 의문들 속에 내 작은 몸은 이미 여러 명의 품을 전전하며 또다시 작은 요람에 눕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젖으로 나를 배불리 먹인다는 것을 느껴졌다. 허나 이런 느낌도 잠시 또다시 찾아오는 긴 적막감에 난 작은 몸을 웅크리며 최대한 움직이려고 발버둥을 쳤다. '으, 너무 괴로워~!' 갑자기 가지게 된 낯선 환경 때문일까? 지금 내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이는 관계로 너무 답답해 괴로운 나는 자꾸만 몸을 움직여 보려고 꿈틀거렸지만, 이내 다가온 누군가의 손길에 곤히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사랑하는 엄마에게. . . 자장자장. . . 우리 아기 . . . ." 달콤한 평안을 주는 이 목소리에 난 조금씩 바둥 거리던 몸을 안정시키며 이미 새로운 삶에 대한 강한 욕망덕분인지 아니면 내가 반드시 찾아야 할 누군가를 위해서인지는 정확하겐 몰라도 난 이내 꿈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게 뭐야! 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 없단 말이야? 아니야. 난 꿈이 있었어. 누군가의 든든한 흑기사가 되어 주는 그런 꿈. 비록 그녀를 병으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물리적인 힘으로는 어느 누구보다 더 당당히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내 삶의 등불이 되어주신 노명 스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수벽치기와 해동검무로 인해 이미 외문기공이라는 육체적으론 작은 완성을 이루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고작 내 작은 목에 붙어있는 거대한 머리를 스스로 못 이겨 자꾸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이놈의 머리통을 향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결국엔 누군가의 손길 덕분에 이런 심한 자책감 같은 일들에서 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호호, 우리 작은 도련님. 벌써부터 이렇게 움직이려고 하시면 얼마 후에는 정말로 걸으실 수 있으시겠네요!"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나를 달래고 있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나의 유모인 마리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내 어머니의 유일한 하녀이자 나의 유모이다. 작은 어깨와 그에 걸맞는 쏙 들어간 허리라인이 매우 인상적인 이 여자는 벌써 애기가 셋이나 되는 28살의 젊은 어머니였다. 이는 그동안 이곳에 누워서 내 곁을 맴도는 이들의 지나가는 말들을 유심히 듣고 알아낸 사실들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주위의 정보들이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면서 내가 나름대로 정리한 것들 중 하나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나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바둥거리며 꿈틀거리는 나를 위해서 내 어머니와 마리는 번갈아가며 배고픈 나를 배부르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단지 여기서 큰 문제는 이런 그녀들의 행동이 오직 그녀들의 단순한 생각들이라는게 문제였다. '에구, 난 지금 배가 고파서 움직이는 게 아냐! 난 빨리 움직이고 싶다고. . . 하루라도 빨리 일어나서 내 스스로 움직이고 싶단 말이야! 그러기 위해선 매일 연습을 해야하는데.........왜 이런 나를 보면 항상 배가 고파서 칭얼거리는 줄 아느냐고~~~~~!!! 제발 누가 이 불쌍한 여자들을 나에게서 떨구어 달란 말이야~!'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나의 이런 공허한 외침을 선사해 보았지만, 결국은 그녀들이 없으면 그 날부터 당장 굶어야 되는 현실 때문인지 내 작은 외침은 오직 내 안에서만 존재할 뿐이었다. 크~ 이 얼마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심한 인간인가? '흑, 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단지 소영이만 만나면 되는 것을........... 난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스스로의 길을 선택한 것이란 말이야. 헌데 왜 그토록이나 보고 싶은 소영이는 보지도 못하고, 나혼자 생판 모르는 곳에 태어나게 된 것이냐고...................흑흑.' 난 몇 달동안 얌전히 누워있으면서 내가 원하던 무언가를 성취못한 허탈감에 치를 떨었다. 아니 죽으면 소영이를 잠시라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포기한 나였다. 이런 내 앞에 소영이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하얀 빛이 내려와 나를 감쌀때도 소영이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이런 내가 여기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흑흑,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다시 태어나게 하지나 말지............... 왜 나를 다시 인간들의 품으로 돌려보낸 것이란 말야?! 내 스스로 질문을 해봐도 뽀족한 해답은 없었다. 그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라는 갓난아기로썬 매우 황당한 결론만이 끝에가선 허무하게 내려졌을 뿐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2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난 드디어 내 스스로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되었 다. 매일 마다 먹고 자고 싸고, 또다시 자는 그런 한심한 일들이 한동안 반복되고 나 서야 난 비로소 내 몸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잠시라도 움직이지 못하면 병이라도 날 것처럼 매일 꼼지락거리던 내 삶의 눈물겨운 승리를 성취한 것이다. 이것이 내가 태어난지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간 덕분이었다. '에휴. 핫둘. 핫둘. . . .으이싸~!' 발라당. '켁. 커억. 흐~읍. 켁켁' 바둥바둥. '헉. 괴로워.....숨....막혀!' 그만 최선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다 숨이 막혀 질식사를 할 수 있을 뻔했다. 나 자신이 생각해도 매우 행복해 할 수 있었던 일이 기어코 생긴 것이다. 너무도 큰 이 저주받은 큰 바위얼굴 덕분에 내 머리는 푹신한 이불 속에 폭 파묻혀 버린 것이다. 난 최대한 본능적으로 바둥거리며 질식사에 포함된 괴로운 몸짓을 표출하고 있었다. 헌데 이런 나에게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 다. '끙~차. 헥헥헥헥. 야~! 고마워~!' 마음과는 달리 내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이게 아마도 이율배반적인 욕망 때문인 것일까? 아무튼, 작은 실처럼 생긴 것들이 나를 살며시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이자 난 그들을 향해 마구 고마운 마음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분명히 이 녀석들이 조금 전 나의 고민을 엉뚱한 쪽으로 해결해 준 것이리 라....... 문득 저 녀석들의 정체가 궁금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지처럼 생긴 하얀 실들 이 나를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묘한 상황을 알 수가 있다. 단지 다른 이들에겐 내가 보고 있는 장면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든 건 무엇 때문일까? 이건 아마도 나만의 착각일 것이다. 참,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지. '에휴! 덕분에 죽다가 다시 살았다. 맨 날 나 잠 잘 때마다 너희들이 내 옆에서 날 지켜주는 것 같은데......우리 이 기회에 인사나 하자. 난 우성이야~! 김 우성 ~!' 난 역시 용감하게 이들에게 먼저 인사를 보냈다. 한 손을 앞으로 내밀면 금새 잡힐 새라 연신 앞으로 손을 내밀어 휘저어 봤지만, 여전히 공허한 공간들과 내 손에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공허한 느낌만 주는 먼지 같은 녀석들이었다. 그래도 난 감사의 눈인사로 고마움을 연신 표현하며 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러자 하얀 먼지들은 이런 내가 건낸 말들을 그제야 알아 들었는지 더욱 내주위로 다가와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줬다. 이른바 땀에 젖은 내 몸을 말 려주는 다정한 먼지(?)같은 존재들로 이 녀석들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도 매일 마다........ 그리고 몇 일 후. '으~쌰. 헤헤헤. 그래. 이것만해도 얼마냐~!' 나 스스로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일어나 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쁘기 는 생전 처음이었다. 조금씩 두 팔과 다리로 엉기적 길 수 있는 것도 모두가 이 스스로 앉을 수 있었던 일 덕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난 더욱 몸에 힘을 주면 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었다. '안~돼! 조심해야 돼. 이 망할 놈의 큰 바위얼굴은 왜 이리도 날 따라다니는지... 이씨~!' 전에도 난 매우 커다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사각바위니 텔레비젼이니 하는 말들도 제법 들었었다. 하지만 진짜 내 모습은 그런 것들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 는 갸름하지만 커다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난 신의 장난인지 실 수 인지는 잘 몰라도 이렇게 작고 가냘픈 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머리통을 지니 고 태어나고야만 것이다. 난 애써 작은 손으로 흔들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안간힘을 썼다. '헤엥. 이~ 씨. 이래서 난 머리 큰 게 싫~어~!!' 잠시 앉아서 내 머리를 만지며 또록 또록 움직이는 눈으로 주위를 감상하던 난 제발 과분수에 가까운 내 몸이 균형을 잃지 않길 바라며 조금씩 아장아장 기기 시작했다. 비록 그것이 네발로 기어다니는 동물처럼 엉기적거리며 기어다니는 모습이지 만, 그래도 이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 것 이다. 그래서 드디어 오늘은 내가 그동안 미루고 미루었던 모험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 다. 쉽게 말해서 내가 여기서 태어나 단 한번도 벗어나지 못한 내 방을 과감히 벗어 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곳 이층의 나의 침실에서 벗어나 일층으로의 탈출의 이유 는 그동안 내 주위를 다녀간 사람들의 대화로 인해 나에게 내가 새롭게 태어난 집 에 대해 매우 심한 궁금증과 함께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새롭게 태어난 이곳은 내가 꼼지락거릴 때에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혼자 이렇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매우 궁금함을 자아내 고 있었다. 또한 내 스스로 주위를 둘러본 결과 어느 부유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난 것 같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사실들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전 나 홀로 이 나만의 침실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던 일 때문이었다. 어떻게 아기의 몸이라고는 해도 하루 종일을 기어다녀도 방문에 닿을 수 없을 만큼 큰 침실에 나만 덩그라니 놓아둘 수가 있 냔 말이다. 더구나 하루종일 기어다녀 봐도 힘만 빠질 만큼 내 침실의 크기는 상당했기 때문 이다. 이건 하루종일 내 몸을 혹사시키며 고생한 결과 덕분이었다. 또한 이런 나를 위해 이 커다란 방을 선물해 주신 내 아버지라는 인물은 매우 바쁜 인물인 것 같다. 나도 가끔씩 태열이나 기타 등등으로 온몸이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어 정신이 오락가락 해야만 겨우 볼 수 있는 인물 이었다. 그런 위인을 남편으로 떠받들고 사는 내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는 너무도 아 까운 분이셨다. 현명하고 고귀한 귀족부인 같은 자태로 매일 마다 엉기적거리며 온 동 네를 쏘다녀야만 성이 차는 어린 나를 위해서 이 넓은 침실의 문 앞에 나만을 위한 작은 이동식 간이침대를 놓아주실 만큼 애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이것 또한 내가 하루종일 방안을 헤매고 다니며 문밖의 낯선 세상을 구경하기 위 해 바둥거리던 내 호기심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더불어 그런 심한 육체적 노 동(?)에 온몸이 저리며 쑤셔 오는 몸살 덕분에 며칠동안 고생한 피눈물나는 노력 끝에 겨우 얻을 수 있었던 작은 기쁨이기도 했다. 어기적. 어기적. 차차 적응을 해 나가고 있는 몸을 이끌고 잠시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난 살짝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보았다. '헤헤. 아무도 없지? 그럼 이제부터 그토록 기대하고 기대하던 모험의 시작이다 ~!' 어기적. 어기적. 두리번 두리번. 살살 걸음을 옮기며 앞으로 열심히 전진을 하기 시작하는 내 눈에 처음 본 신기한 돌바닥이 들어오자 난 더욱 신이 나기 시작했다. 허나, 갑자기 내 뒤에서 나타난 존재 때문에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뜨자 난 기겁 을 하면서 재빨리 온몸을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그동안 몇 차례 억울하 게 당한 익숙한 일이었다. 때문에 난 여기에서 내 몸이 방안으로 강제 이동되는걸 막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해 온몸을 비틀며 마구 요동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애처러운 내 몸짓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이 망할 놈의 먼지녀석들은 바둥거리는 날 절대로 놔주지 않았다. 이러니 얼마나 열통이 터지는 일인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기대하고 기대했던 일이었는데.......... 이익. 절대로 용서 할 수 없어. "우아아아앙." 너무도 분통이 터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혀가 마비된 것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로썬 목이 터져라 울부짖 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나의 우렁찬 울음이 온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이내 나의 방은 갑작스런 나의 울음덕분에 난리가 났다. 우르르르. 쿵쾅. 쿵쾅. "헉헉. 무슨 일이십니까? 아기씨~!" 순식간에 떼거지로 몰려온 이들은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이 보이자 금새 나를 둘 러싸곤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재빨리 내 앞으로 다가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주던 유모는 나를 달래려는 듯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뒤에 서있던 사내들은 내 방을 금새 살기 어린 눈초리로 주변을 샅샅 이 훑고 있었다. 감히 이런 보호를 받고 있는 날 울린 존재를 찾으려는 듯 그들의 눈초리는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난 내 작은 손을 내밀며 지금 먼지로 추정이 되는 물체가 있는 곳 을 향해 마구 손가락질을 해댔다. 얼마 전부터 작은 실처럼 보이던 녀석들이 하나 의 덩어리로 뭉쳐진 모습을 보이더니 이젠 감히 나를 가지고 놀려?! 난 이 녀석(?)으로 추정이 되는 놈을 향해 반짝이는 눈빛을 빛내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천장에 둥둥 떠있는 곳을 향해 나 또한 주변사람들의 보호를 자랑하듯이 마구 째림을 보내며 부지런히 손짓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이런 나의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웃음을 날려주 는 듯 했다. 나로썬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익....저기 있잖아~! 저놈........히잉. 제발 저놈 좀 혼내주란 말야~~!' 이 무~식한 덩치들은 유모의 품에서 바둥거리며 마구 손가락질을 하는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한 채 내 방에 별다른 이상이 없자 나를 향해 살짝 고개만 숙이곤 나가려고 했다. '으윽. 이 바보들........저기 있잖아! 저기~~~'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내가 비록 아기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난 어엿한 성인이었단 말이다. 헌데 이런 나를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다니...............이익. 하지만 이런 내 속마음도 모르는 이 한심한 덩치들은 그저 눈짓으로 유모에게 나의 안부를 묻곤, 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리키며 심한 몸부림을 치는 데도 불구하고 그런 날 그저 말뚱 거리는 눈으로 바라만 볼뿐이었다. 이윽고 내 주위 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판단을 한 덩치들은 이내 날카롭게 날이 선 검들을 검집 에 집어넣어 버렸다. '안~돼. 저놈 혼내 주란 말야. 저 봐. 지금 날보고 배시시 웃잖아~! 우씨 안돼~!' 더욱 바둥거리는 몸짓으로 이들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리는 날 이들은 그저 내가 답답해 짜증을 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날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며 나에게 다가와 일일이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하곤 휘잉 소리가 날 정도로 내 방을 나가버렸다. '이~씨. 바보 멍청이들. 저 놈이 지금 팔짱을 낀 채 건방지게 날 내려다보는 게 안보여~? 이씨. 이 나아뿐 놈.........으윽. 미운 놈...... 응? 근데 쟤가 언제부터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 분명히 조금 전만 해도 저 모습이 아닌 것 같았는데......' 잠시 큰 눈으로 추정이 되는 내 눈을 깜빡이며 감히 날 내려다보고 있는 먼지녀 석에게 눈길을 보내는 나였다. 그러자 이런 날 알아본 건방진 먼지녀석은 내 곁을 살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조금 전 나에게 한 일이 미안한 듯 내게 다가와선 웃음을 지으면서 시원한 바람으로 나를 달래주려고 하는 것이다. '우헤헤헤헤. 간지러워~! 하지마~! 우히히히. 너 미~워~!!' 작은 손으로 옹알이를 하면서 난 지금 내 곁에서 미소 띤 얼굴로 날아다니는 먼 지녀석이 얄미워서 손을 휘휘 저어 보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어떻게 된 놈인지 그런 나의 손을 맞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히 이젠 내 이마에 바짝 붙어선 호호 하고 내 귀에다가 바람을 불고 있 었다. '우카카카카. 이~~ 변태 같은 놈~! 난 지금 어린 아기란 말야~! 감히 어린 나의 성~감대를 자극하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이라고 하신다면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일들을 부탁해 보라. 몽롱해지면서도 짜릿짜릿한 느낌이 과연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 리라. 신룡의 후예 - 제 3화 '아~웅. 잘 잤다. 으잉? 엄마다. 엄~마~!' "배~에!" '허걱. 이 무슨 뜻이야?' 지금 내 입에서 웃음 비슷한 소리가 나오자 난 매우 놀랐다. 더구나 내 마음과는 달리 지금 내 얼굴은 나에게 다가오는 어머니에게 방긋방긋 미소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윽. 이게 본능인 것인가?' 이런 내 자신에게 매우 혼란스러운 나였다. 이런 나를 보시면서 내 어머니는 화사한 미소와 더불어 자신의 웃옷을 훌러덩 걷어올리시며 뽀얀 피부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 곳은 점점 내 눈에 클로오즈 업 되더니 급기야 내 얼굴에 바짝 다가와 어머니의 모유창고(?)로 추정 이 되는 것이 내 입에 덥썩 물려져 버렸다. "호호호. 우리 싸이 잘 잤니?" 난 본능적으로 출출한 배를 위해 열심히 모유공급을 내 몸에 해주는데 정신이 나 가서 그만 엄마의 질문을 깜빡했다. '히히. 마시쪄. 마시쪄. 으~~음. ' 난 너무 행복해서 두 손을 꼭 쥐고 행복에 찬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연신 옹알거리 며 나를 살며시 안고 따뜻한 체온과 건강한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려주시는 어머니 의 모유를 신나게 쪽쪽 빨았다. '헤~~. 넘 조아~! 우케케케케' '이런~!! 야 임마. 난 지금 아기란 말야~! 아기!! 근데 그런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 어떻게~~!!' 내가 생각해도 이 바보 같은 본능이 숨쉬고 있는 머리통을 열심히 때리면서 연 신 모유를 먹던 난 결국 이런 행위로 인해 어머니의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품안에서 바둥거리며 내 머리를 스스로 벌주기 위해서 때리는 행위에 나의 초보 엄마는 고만 엉뚱한 생각을 해 버리셨던 것이다. "이~런. 우리 싸이가 이제 엄마 젖이 싫어졌구나. 호호호. 그럼 우리 아기 맛있는거 줘야지~!!" '허걱. 시~러. 그게....아니라......히잉. 난 엄마 젖이 더 좋단 말야~!!' 도리도리. 꼬옥.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내가 작은 손으로 꼬옥 쥔 채 놓치 않으려고 애를 써보아 도... 나의 엄마는 나에게 아직 배부르게 먹지 못한 모유창고를 강제로 빼 버리신 뒤였 다. 그후 내 방을 유유히 콧노래을 부르시며 나가시더니 잠시 후에는 유모와 함께 들어오셔선 작은 접시에 담긴 이상하게 생긴 죽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호호. 싸이야~! 이건 이유식이란다~! 이 엄마가 얼마나 맛있게 탔다구~ 자~! 우리 착한 싸이 아~~" 덥썩.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입을 놀려 받아먹은 죽은 역시 내 예상대로 맛이 너무 없었 다. '우~에~엑. 마업쪄. 베~에' 주르르륵. 열심히 혀를 놀리며 입안에 든 것들을 모조리 뱉어내자 금새 울상이 되신 어머니 의 얼굴을 보며 난 조금은 찔리는 양심에 말뚱말뚱 어머니만 쳐다보았다. "흑흑흑. 우리 싸이가 이 엄마가 주는 건 무조건 맛있게 먹으리라고 생각했는 데. . . ." '헉. 엄마~! 미안해요. 하지만 난 엄마 찌찌가 더~~ 조은데~~~!!' 뻔히 들여다보이는 연극배우 엄마를 열심히 노려보며 맛없어를 외치던 나는 얼 떨결에 엉엉 우시는 엄마 때문에 그놈의 맛대가리라곤 전~혀 없는 죽을 어쩔수 없이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울 수밖에 없었다. '헤엥. 으윽. 토할 것 같~아! 너무 맛없는 것들을 전부 거짓 눈물로 먹이시면서 내가 먹을 때마다 행복한 미소 를 지으시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결국에 난 통통하게 부어오르는 배에 만족감을 보내며 억지로 다 먹은 죽을 두 번 다시 보기 싫다는 생각만 다시 하는 한심한 내 모습을 찾을수가 있었다. 허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난 어쩔 수 없이 그후로도 아~주 오랫 동안 그 망할 놈의 이유식인지 뭔지를 달디단 꿀로 범벅을 한 채 먹어야만 했다. 지금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잘 몰라도 아마 내가 태어난지 1년이 조금 지난 시간들이 지나간 것 같다. 그동안 난 항상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관계로 이미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 다음에 내 아버지를 닮은 위대한 검사가 되려는 모습이 벌써부터 보인다는 둥 하는 그런 황당한 소리를 자주 듣는다. 헹. 위대한 검사라니.........마치 이곳이 중세의 어느 귀족의 성처럼 이야기하는 한심한 인간들의 말을 들으면 난 매우 기분 나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었다. 그래서 난 지금 이곳의 일층을 향해서 그동안 힘이 없어 포기해야만 했던 도전의 깃발을 반드시 번쩍 쳐들어야만 했다. 내 집의 일층으로 추정이 되는 그곳에 내 위대한 조상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는 소리를 지나가는 하녀들 의 말에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내가 이곳의 언어들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알 수 있는 것 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건 매일 저녁 나를 재우러 오시는 어머니의 손에 들 린 책들을 보면서 난 똑똑히 알수가 있었다.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사와 용 이 나오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매우 좋아했었다는 어머니의 작은 속삭임을 통해 부모의 태교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과거에 천재소리를 자주 듣던 나라도 배우지 않은 말들을 그렇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나의 부지런한 어머니가 매일 마다 들려주시는 재미난 이야기 덕분에 내가 이만큼 이들의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아직 혀가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이유로 간단한 어마(엄마)나 찌찌라는 아주 단순한 말들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매일밤 잠버릇이 험해서 이불을 마구 부둥켜안고 내던지며 자는 나였다. 이런 날 위해 그놈의 얄미운 먼지녀석이 작은 날개로 추정되는 걸 움직이며 나를 보호해주던 기간도 근 일년이 넘었다. 그 덕분에 지금 난 조금은 힘이 생겨 서 인지 겨우 아장거리며 걸음마를 할 수 있었다. 바로 그 무렵부턴 드디어 이런 약해빠진 나도 그 녀석을 조금은 이길 수 있었다. 케케케. 이게 그동안 가장 기분 좋은 일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먼지녀석은 나는 크고 있는데도 지는 크지를 못한 것인지 맨 처음 인간의 모습 비슷한 모양을 하고 나타났을 때의 크기 그대로라서 이미 통통하게 살이 찐 거구(?)의 모습이 된 나를 감히 들어올린다거나 하지를 못했 다. 단지 내가 어딜 갈려고 하면 이 녀석이 건방지게 내 옷자락을 쥐고 낑낑거리며 날 뒤로 잡아당기는 게 고작이었다. 이젠 그것도 내가 귀찮다고 손을 휘휘 저으면 내 손바람에 날아가는 먼지녀석을 보면서 난 내가 이 얄미운 먼지 녀석에게 그동안 당하고 살았던 일들을 요즘 부 지런히 보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캬캬캬캬. 이게 제일 신나는 나의 하루 일과였다. 허나 오늘은 다르다.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일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했다. 바로........ '헤~~그럼 드디어 나의 최초 목적지인 일층에 가볼까?' 그동안 생각만 했지. 정작 내가 이 방을 벗어나기라도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다는 듯이 말리던 먼지 녀석도 이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금새 내 어깨위로 날아오기 시작 했다. 그런 다음부턴 내 귀에다 대고 뭔가를 주절주절 거렸지만 난 그런 언어는 전~ 혀 모르는 관계로 그냥 뻔뻔스럽게 쌩까기로 했다. '키득키득. 니가 아무리 가면 안된다고 해도....그건 내 마음이지~!!' '아차. 이런 난 저 녀석 말은 무조건 모르는데......' 금새 스스로 쌩까기로 한 말을 까먹은 이 건망증을 위해 난 과감히 내 작은 주먹 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이제 더욱 커져 버린 내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조 금씩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기어가는 거지 나의 이 환상적인 움직임 은 과히 전광석화를 방불케 한다. 이 모든 게 그 맛대가리라곤 전~혀 없는 이.유.식. 때문이다. 쳇. 맛없는 건 자기들이나 먹지. 왜 싫다는 날 그렇게나 먹이려고 덤비는 것인지............쩝. 난 그 맛없는 걸 먹이려고 내방에 유모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최선을 다해서 방안 을 마구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 공포의 이유식을 어느 누가 좋아하겠는가? 결국 피나는 훈련 끝에 어느덧 나의 육체는 제법 튼튼해 졌던 것이다. '헤~에. 이봐. 자꾸 그렇게 붙잡지는 말아죠. 나도 이젠 내 몸 하나는 잘 간수할 수 있단 말야.' '쳇~. 뭐야? 내가 아직 어린 아기라고.......? 우이씨. 이게 점점........." 옆에서 쫑알거리며 앵앵거리는 녀석이 귀찮다는 듯 손바람으로 날려 버리면서 난 드디어 내 방문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이게 내가 태어난지 어언 1년하고도 2개월 만이었다. 저벅저벅. 누군가 내 주위를 지나가면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내 주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런 시선이 조금도 반갑지 않았다. '에휴' 갓 돌이 지난 몸으로 벽에 기댄 채 한숨을 폭 내쉰 내가 불쌍해 보였을까? 지나가는 사내가 나를 잠시 빤히 들여다보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하더니 이내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조심스럽게 나에게 다가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나를 가만히 들어 올렸다. ''후후, 사랑스런 나의 작은 군주님. 소신 메테우스가 우리 작은 군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이다음에 우리 군주님을 위해서 목숨도 받치겠다는 저의 이 맹세를 꼭 기억해 주 십시오'' '헉, 이 남자가 미쳤나? 왠 작은 군주? 지금 나를 보고하는 말인가?' 이 메테우스라고 하는 사내는 고전적인 유럽 복장을 하고 한 쪽 허리에 검을 찬 모습이었다. 난 지금 이 사내가 나를 향해 하는 말들을 되새기면서 심한 혼란에 빠져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정말로 이곳이 중세란 말인가? 난 지금 내 방을 나서서 한참을 기어다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 고 있었다. 내 방을 빠져나와 한참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생전처음으로 내 방을 빠져나와서 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도 거대한 돌벽과 바 닥들 때문에 난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찾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방황했던 것이다. 이런 내가 겨우 쉬려고 벽에 기대앉아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나타나 느닷없이 충성서약이라니............. 이 불편하기만 한 원피스(하얀색 레이스가 포인트)와 내 큰 머리에 조금은 긴 머리카락을 단정히 해주고 있던 흰색 밴드를 마구 긁으면서 난 이 메테우스라고 하는 사내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마구 도리질을 했다. '햐~. 이거 미치겠네. 지금 이 아저씨가 나한테 한 게 분명히 그 충성서약인가 뭔가 하는 것 같은데.......왜 나한테 그런 걸 하는 거지?' 정말로 황당한 경험이었다. 더구나 옆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먼지녀석과 그것도 모르는 이 사내의 진심 어린 말들은 이런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후후후. 작은 주군님. 소신 메테우스가 지금은 비록 이 저택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지만, 언젠가 작은주군께서 장성하시면 제가 주군의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부디 소신을 믿으시고 작은 주군께선 건강하게만 자라나시옵 소서. 제가 작은 주군께서 안전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최선을 다해 철벽경호 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함부로 방에서 나오지 마시고 작은주군을 위해서 방어 마법이 펼쳐져 있는 방안에서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크시기를......" 그러면서 메테우스라고 하는 사내는 나를 번쩍 안아 다시 내 방으로 돌려보내려 고 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나왔는데........ 이런 나를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다니......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그의 행동에 마구 몸을 비틀어 반항하며 그의 반듯한 코에 나의 작은 손으로 잽싸게 때찌를 해 주었다. 이씨. 어떻게 해서 나온 방인데......... "때~찌. 때~찌~!" 조금은 화가 난 내 주먹과 그런 작은 주먹에 맞는 불쌍한 메테우스의 코였다. 그러자 나의 손에 맞아서 많이 아프다는 듯 엄살을 부리며 날 살며시 내려주는 그의 호의에도 난 전~혀 고맙다는 표현을 생략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사내-메테우스-가 한 충성서약과 가끔씩 이긴 하지만 내 아버지를 따 라서 내 방에 들어온 이들의 복장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역시....... 또렷한 내 기억 속에서도 이자처럼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모습의 사내들을 간혹 보기는 했었던 것 같다. 그땐 그저 에이 장난이겠지 하는 마음에 그냥 넘겼 던 일들이 정말로 내앞에 현실의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21C에 살던 내가 이런 덜떨어진 동네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이야? 이건.............도저히 믿을 수 없어. 이건 분명히 신의 장난이야~!' 역시 이럴 땐 눈으로 확인을 하는 게 최고의 방법이었다. 해서 난 이런 강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게 만든 이곳의 세계를 반드시 보아야만 하는 강한 필요성을 가졌다. '그럼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닌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강하게 일어 급기야 난 나를 여전히 내려놓은 채 나를 살며시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바둥거리며 벗어났다. 그리고 나선 재빨리 온 힘을 다해 이 메테우스라는 사내가 왔던 길로 열심히 손과 발을 총동원해 쏜살같이 기어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 공간과 아래로 내려가는 계 단을 발견한 나는 일층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을 마구 무시하며 기어내려 갔기 시작했 다. 후다다닥. 신룡의 후예 - 제 4화 쿵, '아코. 엉덩이야.' 난 너무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일어서려다 결국 엉성한 포즈로 엉덩방아를 찧어 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일층까지 뒤따라온 메테우스라는 사내는 기겁을 하며 급히 나를 일으켜 주었다. "주......주군......괜찮으십니까?" 그러나 나는 그 손길을 나는 마구 거부한 채 한순간이나마 지금 내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곳의 현실감에 치를 떨고야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난 지금 나의 눈에 가득 들어오는 이곳의 풍경에 그만 넋을 놓고야 말았다. 세상에나~! 이 큰 집안을 온통 메우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전부 살벌한 기운들을 내뿜는 검들과 방패. 그리고 전신갑옷들 뿐이라니........... 그럼 이곳이 정말로 딴 세상이라는 것인가?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급기야 난 너무 어이가 없어 내 눈에 보이는 초상화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멋들어지게 치장이 된 초상화와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을 하나 하나 쳐다보면서 내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내 작은 손을 따라 움직이며 메테우스는 그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나의 손길에 따라 그 초상화 속의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해 주었다. ''작은 주군. 저 분은 과거 1300년 전. 이곳 카빌라이 대륙에 메르카 왕국을 최초로 세우신 작은 주군의 1대 조상님이십니다. 저분의 용맹성은 드래곤이라 고 불리는 존재들에게도 유명하셨으며 저분의 성함은 에스타냐 카빌라 폰 메르카 대왕이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그 분의 아드님이시자 이 카필라이 대 륙에 메르카 왕국을 최강국으로 만드신 위대한 군주 세루에닌 카빌라 폰 메르카 황제 이시고 그분이 이루신 업적은 이 넓은 카필라이 대륙을 하나로 통일하신 위대한 군주로 아직까지 세인들의 기억에 자리잡고 계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런 분들의 피를 이어받으신 "싸이벨리 카빌라 폰 메르카" 작은 주군께서는 지 금 메르카 왕국의 제 2왕위계승자이시자 작금의 황제폐하께 단 한분 뿐인 조카님 이 되십니다. 그리고 작은 군주님의 아버님이신 로멜쥬 카빌라 폰 메르카 대공전하는 이 카빌라이 대륙의 통치권을 자신의 하나뿐인 형님에게 순순히 양보하시고 그 분의 밑에서 온갖 궂은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시는 우리 기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시는 그런 위대한 분이십니다.'' 메테우스가 지금 나에게 뭐라고 떠들고 있어도 지금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왕위계승자이든 뭐든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이곳의 낯선 풍경들은 나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스런 현실들에 너무 기가 막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던 나는 급기야 두 눈을 까뒤집고 혼절을 하고 말았다. '헉. 이럴.....수가. ..그럼 난 도대체 어느 동네에 환생한 거야?' 눈앞이 까마득한 느낌을 받으며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난 그만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이다. ''헉, 주군~'' 다급한 누군가의 말을 끝으로 난 그만 혼란스런 나의 의식을 더 이상 가질 수 없 었다. 우당탕. 쿵쿵. 콰~앙. "마마~!" "무례하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엘렌은 이곳 카빌라이 대륙의 통치자인 메르카 왕국의 단 하나뿐인 대공 부인이 었다. 그런 자신의 침실에 건방지게도 노크도 없이 거침없이 들이닥친 사내를 보고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봤다. 그리고 나선 그자의 정체를 알게 되자 막 고함을 지 르려고 하다 그 사내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을 보면서 빽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싸이야~~!!" "마마.......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건방진 사내의 말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엘렌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빛 을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발을 동동 굴렀다. 급히 사내의 품에서 빼앗듯이 아들 을 품에 안은 엘렌은 점점 호흡을 하지 못해 하얗게 탈색되고 있는 아들의 호흡을 위해 급히 서두르는 손짓으로 아들의 입을 벌려 입안에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을 한 뒤 급히 침대에 눕혔다. 아들의 심장소리가 작게나마 뛰고 있는 것을 재차 확 인을 하며 엘렌은 기도가 막힌 이들을 위해 하는 심폐소생술을 아들에게 시전했다. 이런 소란에 놀란 집안의 하인들과 다른 기사들이 방안에 들어서는 것을 본 엘렌 은 급히 유모에게 눈짓을 하면서 주위를 물리치라고 하자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는 유모는 방문을 닫으면서 방안에 있는 모두를 강제로 내 보냈다. "싸이야~~. 어쩌다 이런 일이.......이래서 내가 실프 녀석을 방에 소환시켜 널 지켜주라고 했건만.....실프~~ 네 이놈~!" 엘렌의 악에 받친 고함에 허공에 모습을 들어낸 실프는 자신의 주인인 엘렌의 화가 난 표정에 어찌할바를 몰라 안절부절 했다. "실~프!. 이게 무슨 일이냐? 내가 분명히 우리 싸이가 방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너보고 철저하게 지키라고 했었는데.....그새 내 명령을 잊어먹은 것이냐? 감히 하찮은 하급 정령녀석이.......소멸 당하고 싶은 것이냐?" 너무도 화가 난 엘렌의 목소리는 차가운 얼음굴을 연상시켰다. 도리도리. "꼴도 보기 싫다. 어서 꺼져 버려라!!" 훌쩍. 작은 얼굴에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눈을 가득 채운 눈물로 훌쩍이며 주인의 매서운 눈초리와 명령에 급히 날개짓을 한채 사라지는 실프였다. 그런 실프를 바라보면서 여전히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던 엘렌은 이제 인공호흡으로 천천히 호흡을 되찾은 아들을 가만히 품에 안아주면서 이제야 겨우 안심이 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싸이야. 이곳은 아직 어린아이인 너에게 위험한 질병들이 많이 퍼져 있단다. 그러니 치유주문이 강제로 유지되는 내 방안에서 나오면 대단히 위험하단다. 내 방에 걸린 치유주문은 대사제라고 해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궁극의 주문이란 걸 어찌 어린 네가 알겠냐 만은 그래도 이 엄마는 내 생애 처음으로 나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그리고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네가 알아주었으 면 하는 구나." 쌔근쌔근. 엘렌의 다정한 목소리는 방안을 한바퀴 돌며 메아리로 퍼지다 그 뒤를 따라 잔잔 히 울려 퍼지는 아들의 숨소리에 묻혀 사라져 갔다. 이내 소란스러웠던 하루의 마감은 아들의 편안해진 얼굴을 바라보는 인자한 어머니의 숨결 속에서 점점 고요한 적막을 선사했다. "메테우스. 변명이라고 해도 좋다. 말해보라. 내가 왜 그 먼 서부전선의 사령부에 서 이곳까지 피를 말리며 달려 와야만 했었는지.......도대체 네놈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이냐?" 처음으로 보게 된 주군의 냉정한 표정과 주군의 뒤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 는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에 메테우스는 심하게 떨려오는 몸을 바닥에 더욱 납작하게 붙였다. 지금 주군의 살벌한 눈빛이 자신을 너무도 힘들게 하고 있었 던 것이다. 감히 인간으로써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주군의 기세는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평범한 인간들의 온몸을 난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무리 워리어스 최상급에 해당하는 메테우스 이지만 지금 주군의 살벌한 눈빛은 함부로 감당하기 어려운 기운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이곳의 경비를 책임지는 자로써 감히 주군이 명한 명령을 무시하고 작은 주군을 일층까지 내려보낸 죄는 오직 죽음뿐이었다. 더구나 눈앞에 있는 주군은 주군의 나이 18세에 위의 형님께 물려질 왕위가 자신의 뛰어난 검술실력으로 인해 동생인 자신에게 물려질 듯 하자 야밤에 왕궁을 뛰쳐나간 일화로 유명하신 분이다. 자신의 형님이 순순히 왕위를 포기하시곤 남몰래 유람을 떠나시려는 걸 알아챈 주군의 기막힌 대응이었던 것이다. 그후, 주군은 수년의 시간동안 대륙 곳곳을 다니시며 자신만의 검술을 갈고 닦 던 차에 지금의 부인되시는 엘렌키아니 갈리아스 님을 만나셨다. 그뒤 주군은 다시 왕권을 되찾으신 황제폐하를 찾아와 그분의 옆에서 지금까지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시면서 메르카 왕국의 든든한 기둥이 되신 분이시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셨으면 채 십 년이 되지도 않은 시간동안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마의 장벽을 뛰어 넘어 그랜드 마스터가 되셨을까? 이게 모든 기사들이 눈앞의 주군을 존경하고 따르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런 분이.....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달고 다니시는 분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처음으로 화를 내시고 계셨다. 이 때문에 메테우스는 오늘 자신의 잘못 때문에 어쩌면 죽음을 맞게 될지도 몰랐 다. 오늘 늦은 아침. 메테우스는 자신이 맡고 있는 주군의 저택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작은 주군의 안위를 살펴보기 위해 작은 주군이 계시는 침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잠시나마 귀여운 작은 주군을 보기 위해 한껏 기대감에 걸음을 옮기던 메테우스 는 방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작은 주군 싸이를 발견하곤 얼마나 놀았었는 지........ 메테우스는 너무도 놀라 심장이 마구 벌렁거렸다. 허나 그는 이내 자신의 임무 에 충실하기 위해 작은 주군을 방안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지만 귀여운 작은 주군이 그 작고 앙증맞은 주먹으로 간지럽게 자신의 안면을 어루만지며 때찌~! 때찌~! 하는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아무 생각도 가질 수가 없었다. 더구나 너무도 깨물어주고 싶은 깜찍한 어린 주군의 모습에 아무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던 메테우스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상기하며 잠시 작은 주군이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작은 주군의 주위를 경계하며 혹여라도 작은 주군이 넘어질까바 걱정을 하며 주위를 경계했었다. 또한 메테우스는 바라보기만 해도 자신의 가슴을 행복하게 해주는 어린 주군을 위해 작은 용기를 내어 아직은 어린 주군께 자신이 이다음에도 계속 작은 주군이 건강하시 기를 기원하며 충성서약을 해버렸다. 그런 자신의 말에 웃음으로 답해주는 어린 주군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잠시 몽롱한 느낌의 행복을 맛보던 메테우스 였다. 하지만 잠시 그렇게 앉아 계시던 작은 주군이 어떻게 자신의 손에서 벗어났는지 아주 빠른 속도로 일층을 향해 기어가시는 모습에 깜짝 놀라 뒤따라 가보았지만, 역시 핏줄이 끌어당기는 마법 같은 느낌에 충실한 작은 주군을 그는 볼 수가 있 었다. 자신의 위대한 조상들이 그려져 있는 초상화를 보시면서 작은 손으로 "어~~어~~"하시는 모습엔 메테우스는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확 솟구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어린 주군이 얌전히 초상화들을 바라보며 앉아 계시기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메테우스는, 곧이어 작은 주군이 궁금해하시는 걸 옆에서 가르쳐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서 조심스럽게 설명을 해드렸건만, 작은 주군은 미처 자신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만 혼절을 해 버리셨다. 이런 낭패는 생전 처음인 메테우스였다. 어리디 어리신 분이 자신의 조상님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시다니......... 다급한 마음에 메테우스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어 급히 작은 주군의 어머니이시자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군의 부인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 품안에 고이 모신 작은 주군의 모습을 보여주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그분께 작은 주군을 건내드린 일들의 모든 경위를 살벌한 기세의 주군 앞에 소상히 고해 받치는 메테우스의 눈 속에선 아직도 의식이 없는 어린 주군의 생각뿐이라는 것이 모든 이에게 확연히 전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오늘 본 작은 주군이 이렇게 되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소상하게 전하며 메테우스는 잠시 자신의 옆구리에 걸린 검을 눈물이 글썽거리는 모습으로 쓰다듬었다. "전하. 소신이 오늘 제대로 전하의 명을 이행하지 못한 죄는 오직 죽음으로써만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하지만 제발 작은 주군이 깨어나시는 것만이 라도 소신이 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전하! 제발..............." 끝내 메테우스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었다. 너무 가슴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잠시 방심한 것이 이토록이나 어린 주군의 생명이 위독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의 실책은 추호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다. 또한 용서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찌 메르카 왕국 최고의 경호단체인 왕실근위대 중에서도 십인장인 자신이 그런 못난 짓을 하고 용서를 받겠는가! 허나 지금 메테우스의 간절한 염원은 이런 자신의 직책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직 메테우스의 뇌리 속은 어린 주군의 안위만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해서 이제껏 자신이 왕실근위대의 기사로 책봉되어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간청을 주군에게 올리는 메테우스였다. 이런 기사도에 어긋나는 일을 서스럼 없 이 저지르면서까지 메테우스는 가슴속에 남아 있는 작은 주군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 지금 모든 이들 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주위 동료 기사들이었다.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위해선 기사의 명예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수 있는 충성스런 메테우스의 모습은 그들 또한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습이었기 때문이 었다. "전하. 지금 메테우스가 하는 짓은 매우 비굴한 짓으로 기사로써는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싸이 저하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의 충성심에서 나오는 일이오니 전하께서 부디 그의 명예를 생각하셔서 그가 스스 로 목숨을 끊기 전에 그에게 조금이나마 자비를 베푸심이 좋을 듯 합니다." 같은 근위대 소속이자 주군의 부관인 필립 경이 자신을 변호하는 말에 놀라 잠시 고개를 든 메테우스는 그의 눈에 어린 진심을 알고선 그에게 감사의 눈빛 을 보냈다. 그런 다음 메테우스는 다시 바닥에 고개를 숙으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좋다. 메테우스! 그대가 그동안 나의 곁에서 수많은 미개인들의 암살시도와 우리 집안의 안전을 위해 희생한 것을 생각해 내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우리 싸이가 정신을 되찾을 때까지만 그대의 죽음을 유보하는 바이다. 허나 앞으로는 근위대의 모든 기사들은 오늘과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내가 오늘 한 용서를 갚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도록 하라."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에도 위엄이 추호도 손상이 가지 않은 로멜쥬 대공의 명령이었다. "감사하옵니다. 전하." 이미 충성서약으로 인연을 맺은 왕실근위대 기사들이 자신의 상관이자 주군인 대공전하의 말에 일제히 부복했다. 그들의 정중한 감사 인사에 멜빈이라는 애칭을 지닌 로멜쥬 대공은 몸을 일으켜 자신의 아들이 있는 곳으로 육중한 걸음을 옮겼다. 내 작은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서 차가운 느낌의 기운이 전해졌다. 이런 기운은 이내 내 몸 안에 들어와서는 점점 따스한 느낌으로 변하며 한동안 의식을 잃어 버렸던 나를 감싸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신체의 기관들이 이 신기한 기운에 힘입어 점차 왕성하게 움직인 덕분에 난 오늘하루 열심히 기어다니며 생긴 작은 근육통과 점점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울림에 조그맣게 눈을 떴다. '우으응. 배..고파....... "찌....찌....우웅. 찌찌~!" 허나 나의 이런 중얼거림은 나보다 더 큰 목소리의 주인공 때문에 그냥 무시당해 버렸다. 얼마나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있으면 그럴까? 난 그저 배가 고픈 느낌만 있던 내 몸이 이상하게도 눈을 뜨지 못한 채 가만히 누워만 있게 반항을 하는 관계로 눈을 뜨기가 무섭게 감을 수밖에 없었 다. 난 감겨 버린 내 눈을 무시하곤 조그맣게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 다. "흑, 저하! 제발!! 어서 빨리 의식을 되찾으셔야 하옵니다." 마리라고 하는 유모의 흐느낌 속에 나의 어머니 엘렌 공작부인은 내 뺨을 쓰다듬으시며 자신의 애정이 얼마나 크신지를 애절하게 확인시켜주시고 계셨다. 난 어머니께서 내 온 몸을 부드럽게 닦아주시며 한없는 사랑의 손길로 내가 의식이 되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앉아 계시는게 확연히 느껴졌다. 이런 느낌에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 걸 느끼며 작게 내 손을 움직이려고 해보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마음과는 달리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이 한없이 답답했다. 그때 거칠게 문이 열리면서 나의 아버지이시자 이분의 남편 되시는 로멜쥬 대공전하께서 들어오시자 어머니는 급히 그분의 품에 안기시며 작 은 눈물을 흘리셨다. "흑, 여보. 우리 싸이가 몸에 열도 없는데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어요. 더구나 지금까지 아무런 차도도 보이지 않아요. 흑." 어머니의 애절한 속삭임에 너무도 화가 난 나의 아버지는 왕족들의 주치의가 그 자리에 안보이자 급히 그를 찾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뒤에 서있는 부관들 은 주군의 싸늘한 눈빛에 놀라 가슴을 졸이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런 아버지의 답답한 마음을 어머니께서 가라앉혀 주셨다. "이런, 우리 싸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른단 말이오? 도대체 주치의는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에 더욱 부관들의 몸은 긴장으로 곤두섰다. "조금 전 주치의가 다녀갔는데 그의 말로는 우리 싸이가 그저 체력이 모자라는 와중에도 심하게 운동을 해서 그 피로로 인해 잠을 자고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지금처럼 하루가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자 막상 주치의도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고 해요." 슬픈 듯 가라앉은 목소리에도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어머니의 음성이 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주치의도 모르는 의식불명의 상태인 내가 지금 이렇게 되도록 아무 조치도 못한 메테우스가 다시 생각나자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주치의보다는 메테우스에게 죽일 듯한 시선을 보내시고 계셨다. 이는 주치의도 모르고 있는 내 안의 혼란 때문에 벌어진 일로 생긴 일이라 질병의 이름도 모르는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메테우스를 향해 모든 화를 푸시고 자 했던 것이다. "이익, 이 놈! 메테우스!! 네놈은 내가 이곳에 없을 때 나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모 든 일들을 책임져야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놈으로써 어찌 우리 싸이가 저렇게 되 도록 방치를 했단 말이냐!! 네 이~놈!! 내 지금 당장 네놈의 목을 치고야 말겠다." 챠앙. 맑은 소리와 함께 자신의 검을 빠르게 뽑아든 로멜쥬 대공은 메테우스의 목을 향 해 빠르게 검을 내뻗으려고 했다. 허나 이런 아버지의 손길은 가냘픈 나의 어머니 에 의해 급히 가로 막혀버렸다. "여보. 멜빈! 이곳은 싸이의 방인데 지금 그의 목을 치시면 심한 피비린내에 우리 싸이가 더 괴로워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제발 참으세요." "이익, 빠드득. 좋다. 여봐라." 어머니의 돌출행동에 잠시 시선을 교환하시던 아버지는 이내 자신의 부하들에 게 명령을 내려 메테우스를 내 방에서 끌고 나가라고 고함을 치셨다. "예. 전하!" "저 놈 메테우스를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다. 당장에 이방에서 끌고 나가서 목 을 쳐버려라." "예, 전하!!" 우르르 몰려들어서 메테우스의 몸을 꽁꽁 묶은 사내들이 메테우스를 끌고 나가 려고 하자 그는 급히 아버지에게 무릎은 조아리며 간곡히 애원을 했다. "전하. 신 메테우스. 이미 죽어도 마땅한 몸이지만 제발........제발 싸이 저하께 서 의식을 되찾으실 때까지만 이곳에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발 그렇게만 해주시면 죽어서 도 이 크나크신 은혜는 잊지 않겠사옵니다. 전하. 제발 그동안 각하를 위해서 충성 을 다한 저를 높이 생각하셔서 이 못난 놈의 마지막 소원을 부탁드립니다. 전하." 메테우스의 애절한 부탁에 주먹을 부르르 떨고야만 아버지이셨다. 그런 주군의 모습에 더욱 용기를 내서 메테우스는 고개를 바닥에 부딪히며 간절한 자신의 소망을 내보였다. "전하. 만약 지금이라도 싸이 저하께서 의식을 되찾으신다면 전 제 스스로 그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로 목숨을 끊을 터이니.....제발 저의 이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시오소서. 전~하!!" 그의 애절한 눈빛과 그동안 나의 가족들을 위해서 목숨을 받쳐 충성을 한 것이 생각난 아버지는 조금전 그에게 약속한 일이 생각이 나서인지 그분의 눈에선 고심의 흔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아버지의 표정을 읽으시곤 어머니께서 잠시 고개를 끄덕이시자 아버지는 이내 그의 소원을 들어 주자고 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어머니의 눈길에 자신의 검을 내려놓으시며 급히 나의 곁으로 오셔서 여전히 의식이 없는(잘 자고 있는) 나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시며 어느새 눈물을 흘리 고 계셨다. 우응. 배고파!' 얼마의 시간들이 지나갔을까? 비몽사몽에 가까운 느낌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한 난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왠지 허전한 공복감에 몸을 뒤척이자 그제서야 내몸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이내 내 주위가 시끄러워지면서 살며시 뜬 나의 눈을 엄청 자극하던 불빛들이 금새 시커멓게 꺼져버렸다. '헉, 왠 인간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지?' 내가 잠시 실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이내 나의 찌찌라는 말에 반응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뒤 난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또다시 그 꿀로 범벅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이유식 같은 걸 먹게 되었다. 어느 정도 기력을 찾은 내가 주위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을 땐 나를 향한 여러 명의 뜨거운 시선들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이야~ 이곳에 와서 내가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인간들을 본다.' 내가 신기한 듯이 넓은 침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기대가 가득한 눈망울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조금은 느끼하게도 느껴지는 시선들을 거두지 않고 서로가 한번이라도 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누군가의 명을 기다리고 있는 메테우스의 모습도 보였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는지 그의 얼굴엔 핏기가 전혀 없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덧 배가 부른 난 몸을 뒤척이며 나를 안고 있는 유모의 품을 벗어나고자 꼼지락거리자 유모는 나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며 나를 가만히 내려 주었다. 내가 드디어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반가운 느낌을 주는 메테우스의 곁으로 다가 가자 이내 주위에선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난 너무도 깜짝 놀라 그만 오줌을 지리며 그 물기가 따뜻하게 번져가고 있는 바닥에 철퍽 주저 앉으며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더구나 이 치마처럼 생긴 유아복으로 인해 푹신한 카페트가 깔려진 바닥이 나의 무언가로 인해 금새 지저분해지자 더욱 민망스러워서 크게 목청을 높였다. ''이야~ 싸이 군주님이 드디어 걸으신다.~'' ''오오 ~! 우리 싸이가 드디어. . . .'' 그러나 그들의 외침보다는 내 목청이 더 컸는지 이내 장내는 쥐죽은듯이 고요해 졌다. ''으앙,~으아아앙~'' ''헉, 왜. . . .왜 그런 것이지?'' ''아마도 싸이 저하께서 너무 놀라셔서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저런. . .우리 싸이가 왜 울까? 아이 착하지 그만 뚜~욱'' 이내 다가온 낯익은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에 난 신기하게도 내 마음과는 달리 제멋대로 터져 나온 울음을 그칠 수가 있었다. 난 나에게 다가오는 손길에 내 몸을 맡기면서 어머니가 나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주신다는 생각에 한참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안겨 있을수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메테우스의 입가엔 살며시 행복한 미소가 어리 자 난 다시 그에게 반가운 마음이 들어 내 작은 팔목에 나도 모르게 채워진 팔찌가 인상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왼손을 내밀어 메테우스를 향해 손을 꼼지락거렸 다. ''헉, 이 죄인 메테우스가 주군의 명에 따르옵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새 젊고 헌앙한 모습이 팍삭 늙어버린 늙은이가 되어 버렸을까? 나의 손짓에 무릎걸음으로 바닥의 지저분한 것을 묻힌 채 다가온 메테우스가 내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만지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싸이야~! 이 애비가 그동안 어린 너를 자주 찾아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헌데 지금 너를 제대로 보필도 못한 대역 죄인 메테우스가 그렇게 반가운 거니?" '이게 무슨 말이지?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아버지의 이런 질문에 재빠른 무릎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는 메테우스와 아버지를 말똥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는 나에게 주위에 있던 이들은 그저 나만 보며 웃기만 할 뿐 나의 답답한 마음에 대답을 해주는 이는 없었다. 해서 난 고개를 돌리며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 일일이 눈을 돌리며 그들을 쳐다보았고, 결국 이런 나의 의문에 찬 눈길은 어리둥절한 나를 달래시려고 다가오신 어머니의 부드러운 말씀 속에서 곧 풀어질 수 있었다. "싸이야. 그러니깐.............." 참나, 내가 마음속으로 심한 혼란에 쑈크를 받아서 쓰러진 것이 내 주위에 있던 메테우스 때문이라니........이 사람들 참말로 무서운 위인들이구만. 어째서 갓난아기가 놀라 기절한 것까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씌우는 것 이지? 그럼 그 당시에 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전부 다 이런 하찮은 이유로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단 말인가? 만약, 진짜로 그렇다면 그때 내 주위에 메테우스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다면 그런 참변이 세상천지에 또 있었겠는가. 휴~~~이젠 앞으로 함부로 기절도 하겠구만. '우웅. 이 사람 정말로 불쌍하다. 나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다니....' 동정심이 생겨서라기 보단 어찌 보면 내가 이 방안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난 사람 이 나 때문에 억울하게 죽게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날 힘이 나게 해주었다.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에게 걸어가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했다. 이런 소동을 일으키면서 나의 어릴 적 유아시절에 만난 내 경호기사이자 싸이 태자 호위기사단 단장 메테우스 후작은 그 후로도 항상 꿋꿋하고 줄기차게 내 옆에서 나에게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는 철벽방어를 자랑했다. 이는 그가 기사의 신분으로 나를 만나서 그후 수십년이 넘게 나를 보좌해준 그의 뛰어난 충성심 때문인 것이다. 또한 이런 메테우스를 내 곁에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아주 거창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뭐냐고? 그건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일어나서 걷는 현장에서 자기 아버지를 놔두고 이 메테우스라는 인간에게 아장거리며 다가가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충성 서약을 받았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허~참. 이런 것도 전설이 되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것인지............ 하긴 내 딴에는 그가 내가 쓰러져서 하루가 넘도록 의식이 없자,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면서 내가 깨어날 때까지 내내 그런 모습으로 꿇어앉아 있다 내가 깨어난 것을 본 후에야 안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맹세를 했었다는데............ 어찌 내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를 죽일 수 있겠는 가. 해서 난 내 아버지의 품으로 다시 아장아장 걸어가 그분의 허리에 달린 작은 소도를 뽑아 들고선 이제는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내가 다가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해서 엉엉 울고 있는 그에게 다가 가 그의 머리와 어깨에 한번씩 소도를 들이댄게 죄라면 죄였다. 단지 난 과거 중세시절 주군이 기사를 임명하는 모습을 흉내낸다고 하던 것이 주위의 탄성과 더불어 위대한 주군이 되실 기미가 벌써부터 보인다고 칭찬을 하는 그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소문들을 어찌 어린 내가 막을 수 있겠 는가! 신룡의 후예 - 제 5 화 우르르르. 갑자기 방문이 열리면서 들이닥친 수십 명의 기세는 가히 내 방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남았다. "헉. 폐하~!"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쿠쿵. 방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이 나라 메르카 왕국의 황제 폐하이셨다. 이제 막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윤기 나는 금발머리를 지닌 젊은 황제의 등장은 내 방안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다시한번 얼어 붙게했다. 아니 얼어붙기 보단 긴장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런 공포분위기 조성의 주인공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곱게 자란 듯 하얀 피부가 매우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아직은 젊게 보이는 황제의 모습 속에선 그의 현명한 눈동자가 더욱 돋보였고, 그의 뛰어남을 감추어 주는 듯한 다소 가벼워 보이는 행동에선 행동 하나하나에 절대로 황제로 보이지 않게 해주는 이상한 느낌들을 전해주고 있다. 허나, 지금 방문을 박차고 들어온 메르카 왕국의 성군으로 추앙 받는 마르스 롬 카빌라 폰 메르카 황제는 자신의 빼어남을 절대로 남에게 자랑하는 이가 아니였다. 그랬기에 더욱 더 백성들에게 추앙 받는 훌륭한 성군이 되었던 것이리라. 그런 황제가 좁게만 보이는 싸이의 침실에 들이닥치자 방안의 모든 기사들은 일제히 바닥에 부복하기 시작했다. 황제는 일제히 인사를 올리는 기사들을 뒤로한 채 정신 없이 자신이 찾고자 하는 인물의 곁으로 순식간에 달려갔다. 지금 그에게 황제 폐하라는 직책 뒤에 반드시 딸려 다니는 체통은 도저히 따지기 힘든 듯 제정신이 아닌 매우 불안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을 터주는 길을 따라 달리다시피 걸어간 황제의 앞에는 오늘 하루종일 황제를 불안에 떨게 한 인물 싸이벨리가 서있었다. 싸이는 갑자기 나타난 인물들 때문에 너무 놀라 우두커니 바닥에 서 있었다. 그런 싸이를 보자마자 마르스 황제는 아주 반갑다는 듯이 싸이를 번쩍 안았다. "오오! 우리 싸이! 많이 아프다더니 이젠 괜찮구나.......쿄쿄쿄." 꼬옥. 싸이의 건강함이 너무도 반가운 마르스 황제였다. 자신이 하루종일 받은 심각한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품에 안긴 싸이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다. "이 못된 녀석. 이 삼촌을 하루종일 놀라게만 하다니...어디 이 삼촌한테 뽀~뽀!" 츄웁스~♡ '헉. 디러~~' 난 느닷없이 내 입술로 날아오는 상대의 입술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느닷없는 기습키스였기에 미처 숨이 막혀 제대로 대응도 못한 채 난 이 징그러운 아자씨에게 나의 소중한 입술을 뺏겨야만 했다. 결국 남의 침으로 범벅을 한 내 입술을 두 손으로 도리질을 치며 마구 닦아냈다. 온통 내 얼굴을 지저분하게 만든 더러운 침을 닦으려는 생각뿐인 나에게 잠시의 방심은 큰 화를 가져올 뻔 했다. "헉. 위험..." 스르륵. "으헉." 잠시 내 손에 들린 검을 생각 못했던 난 마구 도리질을 치며 그만 내 손에 들린 검으로 누군가를 위협하고야만 것이다. 내 손에 들린 검을 통해 묵직한 느낌이 전해지더니 난 누군가의 신음성을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잠시 내가 하고 있던 짓을 멈추며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며 바라보자, 나를 안고 있던 아자씨는 기어코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다 아주아주 황당한 봉변을 당하고야 말았다. 나의 이 날카로운(?) 기습공격에 수십년을 곱게 길러온 카이젤 수염을 뭉텅 짤리고만 것이다. "가........감히..." 황제 폐하의 뒤를 급히 따라온 신하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흥분을 한 채 뭐라고 지껄이려 했지만, 금새 인상을 바꾸며 환하게 웃는 나의 삼촌이자 이 대륙의 통치자인 마르스 황제 너털웃음에 그들은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야 말았다. "으하하하핫. 역시 우리 싸이로구나. 드디어 우리 가문의 자손답게 우리 싸이가 이 삼촌에게 확. 실. 한. 애정표현을 해주는구나. 음하하하핫." 놀란 눈동자로 바라보는 싸이의 눈에는 자신을 안고 있는 황제의 이런 행동이 전혀 가식이 없는 진실된 모습이라는게 왠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싸이를 더욱 안심시키는 황제의 말에 싸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조금 놀란 마음을 그제서야 겨우 추수릴수가 있었다. "하하하. 예전에 시넨 녀석이 이 멋진 턱수염을 뽑으려 한 게 채 일년도 안되었건만, 이젠 우리 싸이까지 나의 이 멋있는 수염을 사. 랑. 해. 주다니. 우하하하핫. 역시 사내라서 더욱 확실한 애정표현을 해주는구나. 쿠쿠쿠." 그런 황제의 호탕한 웃음에도 불구하고 멜빈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죄송스러운 마음만이 가득 차고 있었다. 메르카 왕국. 이 카빌라이 대륙에선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왕국의 황제라면 누구나 신의 계시로 인해 한평생 곱게 길러야만 하는 카이젤 수염이 조금전, 아들의 실수로 턱 아래 수염이 모조리 잘려나간 것이다. 더구나 조금만 더 깊었다면 목에 큰 상처가 날 뻔한 일을 가지고도 형님 되시는 마르스 황제는 그저 저런 밝은 웃음만 지어주시다니........... 너무도 감사한 마음과 그의 깊은 형제애를 느끼게 해주는 행동들이었다. 그러니 더욱 깊게만 숙여지는 꼿꼿한 멜빈의 허리였다. "전하. 이 모든 게 신의 방심 때문이라서..............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정중하면서도 그속에 자신의 신뢰와 애정을 듬뿍 담은 멜빈의 인사였다. "쿡쿡쿡. 됐다. 멜빈. 그만 하거라. 예전에 우리가 어렸을 때 이 근사한 콧수염을 가지신 아바마마를 우리 둘이서 공략했던 것에 비하면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느냐?! 음하하하핫." 분명히 예전에 철부지 꼬맹이 시절에 그런 적이 몇 번은 있었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시는 분은 하나뿐인 형님이자 이 메르카 왕국의 황제폐하이시다. 그리고 자신은 그분밑에서 충성을 다하는 기사이자 단 한명 뿐인 메르카 왕국의 대공신분이었다. "하지만.........." 멜빈이 더욱 감사한 마음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너무도 쉽게 아들을 큰 잘못을 용서해 주시다니........ 엘렌은 이런 남편의 형님이시자 메르카 왕국의 황제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도 그녀가 왕궁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얼마나 기쁘게 맞아 주셨던가. 그런 분이 오늘 싸이가 아프다는 말에 그 귀한 시간들을 쪼개셔서 바람같이 달려와 주신 것이다. 이런 황제폐하께 진심으로 깊은 읍을 올리는 엘렌의 모습엔 진심으로 황제를 공경하는 마음이 어려 있었다. "하하. 되었소이다. 제수씨. 그만 하시구료.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이거 내가 영 쑥스러워서.........허허허." "아니옵니다. 감히 폐하께 불경을 저지른 못난 저희 아들을 용서해 주신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미처 엘렌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손을 홰홰 저으며 말리는 마르스 황제였다. "후후. 제수씨. 예전에 말이요. 저녀석 멜빈과 난 아버님 되시는 프리아모스 폐하의 콧수염을 홀라당 태울뻔도 했었다오. 그 당시 처음으로 개발된 성냥을 가지고선 어린 마음에 그만 불을 당겨서 그분의 수염을 홀라당 태울뻔도 했는데 이까짓 쯤이야..........그렇지?! 싸이야~~~?" 공경스런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자세의 동생부부에게 조금은 허둥 되었던 자신의 실수가 쑥스러운 마르스 황제는 이내 품에 안긴 싸이에게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말을 이어갔다. '헉. 그럼 이 얼빵한 아자씨가........' 난 예전에 내가 태어났을 때 뻣뻣한 턱수염으로 아직 여리디 여린 나의 피부를 마구 부볐던 한 인간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저 내 고사리 같은 손을 부여잡고는 좋아라 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눈앞의 사람이라는 걸 이제서야 떠올린 난 이내 내가 저지른 실수를 깨닫곤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에휴, 그놈의 혈육이 뭔지........이 큰 바위 얼굴의 내가 뭐가 그리 귀엽다고.' 턱 아래 곧고 탐스럽게 기른 수염을 시퍼렇게 날이 선 소도 덕분에 뭉텅 짤린 나에겐 삼촌이 되시면서 이 메르카 왕국의 황제폐하가 되시는 이분은 그런 일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다시 나를 꼬옥 안으면서 또다시 부비부비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내 입술을 또다시 빼앗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에 이젠 가만히 나의 뺨에 뜨거운 뽀뽀를 선사했다. 그것도 매우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혀로 할짝할짝 핥는 굉장히 더러운 짓으로 말이다. '우읍. 디러~~!' 하지만 이미 지은 죄 때문에 묵묵히 당하고만 살아야하는 이 약한 자의 비애는............. 흑, 너무 슬프다. 너무 바쁜 관계로 자주 보지도 못한 삼촌이라는 존재를 내가 어떻게 기억 하고 있냐고.....지금 내가 처해있는 현실만으로도 나에겐 너무 벅찬 일인데.....더구나 지금 현재는 아기의 몸이지만 그래도 난 이미 다 큰 어른이란 말야~~!!!!! 후르륵. 얌냠. 짭짭. 식당 안을 가득 메운 주변 사람들은 아예 생각도 안한 채 묵묵히 음식들을 먹고 있는 이 태평한 사람들은 도대체 자신들이 왕족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어찌 이리도잘먹어 되는 것인지............. 난 그동안 나혼자를 위해 주위에서 권해준 이미 익숙하게 길들여진 습관에 의해 왕족이라면 당연시되는 이런 거북한 식생활엔 전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내 주위에선 매우 자연스럽게 먹고들 있었지만, 난 그동안 내 방안에서 오직 나홀로 식사를 해야만 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서 하는 식사에는 당최 적응이 안되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마냥 얌전히 접시에 담긴 스프 처럼 생긴 내 전용 이유식을 작은 스푼으로 뒤적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어디서 나타난 여자 애인지는 잘 몰라도 내 옆에 철푸덕 앉아 물끄러미 나와 내 이유식을 쳐다보는 이 심상치 않은 꼬맹이 요조숙녀를 드디어 내 새로운 인생 최초로 봐야만 했다. 더군다나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걸로 보이는 높은 의자를 뒤에 있는 시녀에게 손짓하나로 옮기라 명하는 꼬락서니가 결코 심상치 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쳇. 이 꼬맹이는 또 뭐야? 왜 나한테 바짝 붙어 앉는 거야?' 잠시 내 머릿속을 헤치고 지나가는 의문들은 이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귀여운 목소리에 의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야만 했다. "우웅. 그거 맛시께따. 그치? 헤헤. 나 그거 머고도 돼?"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 옆에 다가온 이쁘장한 여자애가 너무도 친근하게 대해줘서 인지 난 그냥 멍하니 고개만 끄떡이고만 있었다. "헤헤. 그럼 나 이꺼 또 머느다앙. 우아~앙." 순식간에 벌어진 너무도 황당한 일이었다. 더구나 목젖이 들여다 보일만큼 크게 벌어지는 여자애의 입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였다. '헉. 여자애 입이 뭐가 저리 커~!' 내 앞에 놓인 스프를 커다란 그것도 아주 커~다란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는 미처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 숟가락으로 쪽쪽 빨면서 신기하게도 내 전용 스프를 순식간에 해치우는 놀라운 여자아이의 등장이었다. 내가 보기엔 매우 똑똑하고 깜찍할 정도로 큰 눈과 그 속에 담긴 시원스런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지닌 소녀였다. 또한 그에 걸맞는 뽀얀 피부가 뽀송뽀송한 여자아이는 한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너무 이쁘장하게 생겼다. 그런 여자애가 매우 익숙한 손놀림으로 내 전용 이유식이자 죽같이 생긴 스프를 목에 걸린 냅킨에 단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모습은 나를 아예 감동으로 몰고만 가고 있었다. 이런 숙달된 숟가락질로 열심히 나의 아까운 이유식을 먹어치우는 그녀를 보고 난 그만 더 이상 정신을 놓고 있을수는 없었다. 한마디로 위기의식이 발동된 것이다. 이렇게 넋을 놓고 있다간 나의 아까운 밥을 미처 제대로 먹기는커녕 이 무식한 숟가락의 달인에게 모조리 뺏기고야만다는 생각에 난 도망간 정신을 급히 되찾으며 빠른 동작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예 나의 어깨를 꽉 붙잡고 놔주지 않는 그녀의 필살기에 나의 작은 팔은 환상적으로(제멋대로) 마구 움직이며 그녀의 마수로부터 열심히 숟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은 저녁을 굶으면 아침까지 굶어야만 한다는 배고픈 자의 피나는 노력이자 굶기를 밥먹듯이 했던 내 전생의 끔찍한 악몽이 한 획을 톡톡히 차지한 덕분이었다. 그런 눈물나는 노력으로 난 겨우 내 전용 이유식을 떠먹기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나보단 덩치도 크고 동그란 눈이 너무도 이쁜 그녀의 눈웃음 작전에 난 도저히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글생글 눈웃음 작전에 휘말린 난 미처 두 숟가락도 떠보기 전에 나의 아까운 밥들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이익. 이게...........뿌드득.' 몹시 노한 나였다. 허나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만 저 생글거리는 웃음을 짓밟아 줄수가 있을까?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웃는 얼굴에 누가 침을 뱉을수 있으랴. 더구나 내 밥(?)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대식가는 그래도 조금 모자랐었는지 나에게 보내던 눈웃음을 이젠 내 건너편에 앉아 계신 어머니께 보내기 시작했다. "헤헤. 짜근 엄마. 이거 넘넘 마씨따. 헤헤" 허. 그렇다고 접시째 내밀다니......... 정말로 못말리는 그녀였다. 아니 꼬맹이였다. 그러나 일이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바로 그 행동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면서 신나 하고 있었으니........... "캬캬캬. 드디어 우리 시넨이 여기까지 와서 또다시 음식욕심을 내는구나. 음하하하하. 어떠냐. 멜빈. 이래봐도 우리 시넨이 여자아이 이지만, 이 형님의 위대한 피를 이어받아서 대를 이어 너희 부자의 음식들을 모조리 거덜 내는 것이.....쿠헬헬헬헬. 아이구. 우리 이쁜 시넨.......뽀뽀~~♡" 츄웁스~~♡ '윽. 디러. 저게 무슨 자랑이라고........쯔쯔쯧.' 할짝.할짝. 역시 이 엽기에 가까운 뽀뽀는 모두가 저 여자아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사촌누이라고 하는 시넨 공주는 알고 봤더니, 열 명이 넘는 후궁을 가지고 있는 나의 삼촌이 유일하게 낳은 자식이었다. 이상하게도 나의 삼촌은 시넨 누이를 낳으면서 죽은 전 왕비의 자식인 시넨을 항상 옆에 대동하고 다니신다. 그러면서 그녀를 이렇게 디러운 짓으로 애정표현하기를 즐긴다고 하니 조금은 어딘가 모자라면서도 확실히 무언가 잘못된 듯한 분인것 같다. 더불어 이상한 마법인가를 써서는 더 이상 자식을 낳지 않게 다고 해서 전국의 대신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으신 분이시기도 했다. 당신의 말씀으론 이렇게 오직 하나뿐인 딸을 옆에서 손수 챙기시며 사랑하는게 제일 행복하시다는 매우 극단적인 애정 표현자이셨다. 뭐~ 내가 오직 사랑하는 이는 시넨의 엄마 뿐이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런 근사한 핑계로 오직 딸 하나만을 끔찍이 아끼시니 나로썬 달리 할말이 없다. 그리고 저렇게 아버지가 할짝거리며 핥아주는게 무지 좋다는 듯 까르르 거리며 뒤로 넘어가는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본 나의 첫인상은 정말로 엽기 그 자체인 황제폐하 부녀였다. 신룡의 후예 - 제 6 화. <엽기 공주 시넨의 등장> 화려한 벽들의 장식을 아주 깨끗한 정리정돈으로 깔끔하게 보여주는 방안에서 지금 작은 아이들로 보이는 꼬맹이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 덩치가 큰 귀여운 금발의 여자아이에게 갓난아이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여기서 문제는 바로 그 남자아이가 싸이벨리라는 게 문제라면 아주 큰 문제였다. "헤헤헤. 얌쩐이 이써 봐~~" '윽. 너 같으면 이런 자세로 얌전히 있겠냐?" 저녁을 근사하게 먹고 어린 아기답게 식곤증에 못이기는 몸을 이끌고(?) 간이침대로 잠을 청하러 올라온 시넨 공주는 어느새 깜빡 잠이 든 나를 마치 귀여운 곰돌이 인형을 안 듯이 꼭 껴안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껴안았으면 내가 숨이 차 바둥거리며 잠이 다 깼었을까? 더구나 지금 그녀는 애견으로 보이는 강아지를 내 배 위에 떡 하니 올려놓고선 지금도 열심히 나를 심각할 정도로 괴롭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주인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이 망할 놈의 강아지 새끼가 꼴에 자기도 개라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나한테 내보이며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건방지게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콜럭. 이씨~ 이것들이 감히~!' 이젠 아예 내 배 위에서 턱하니 주저앉아 기저귀를 차고 있는 내 모습을 지긋이 감상하던 강아지처럼 보이는 개새끼가 지금은 아예 코를 킁킁거리며 내 기저귀 안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좋다 이거야.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봐 줄 수도 있단 말야. 헌데 왜 자꾸만 그 지저분한 이빨로 나의 소중한 물건(?)이 있는 곳을 조금씩 자극시키고 있냔 말야. 그것도 그 더러운 이빨로 자근자근 깨물면서........!!! 또한 저놈의 지지배는 애완견의 그런 짓거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이젠 아예 대놓고 꺄르르 거리며 신나게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씨. 그래 내가 괴로워하는 게 그렇게도 좋아 보이냐?!' 내심 쪽팔리고 숨이 차서 괴로운 나였지만 현재 바둥거리는 내 몸을 위에서 꽉 누르고 있는 시넨과 그녀의 애완견의 공세에 난 그저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었다. 뒷다리를 빠르게 폈다 굽혔다 하며 나의 배를 마구 그 더러운 엉덩이로 때리는 얄미운 개쉐이의 공세를 한동안 얌전하게 받고 있던 나는 그만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화가 난 상태에서 뇌리에 갑자기 떠오르는 불안한 무언가가 내 온몸에 소름을 동반한 불안감으로 쫙 하고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헉. 저놈은 딸랑거리는게 없으니깐 분명히 암컷이고 그럼 난.............. 으으으. 시~~~러!! 난 개쉐이한테 벌써부터 이 어린 나이에 성추행 당하기 싫단 말야~~~!!!' 난 자꾸만 자극이 되어 빳빳하게 일어선 작은 무언가를 지금도 열심히 기저귀 위에서 핥고 살짝 살짝 깨물고 있는 이 망할 놈의 애완견이 너무도 미웠다. 더구나 커다란 머리 때문에 아주 쉽게 시넨에게 제압 당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가 이런 개 같은 일을 당할 내 자신이 너무도 처량했다. 결국 난 움직일 수 있는 나의 최선의 방어 공격을 준비해야만 했다. 온몸의 힘을 한군데로 모아서 그나마 자유로운 오른 손의 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고, 내 한쪽 어깨를 그 커다랗고 빵빵한 배로 누르고 있는 시넨공주의 마수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던 나는 오른 손 검지손가락에 그 힘을 모두 모아서 점점 허공을 향해 회오리를 치는 못된 암캐의 꼬리를 향해 거침없이 쭈~욱!! 그리고 있는 힘~~껏 찔러 나갔다. '이얍. 받아라. 내 필살의 공격이다.' 습관처럼 힘을 주면서 기합을 지르는 나였다. 그순간, 깨갱. 깨갱. 우당탕. 낑낑. 역시 나의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내 온힘을 다한 이번 공격에 그 망할 놈의 개쉐이의 꽁무니 어딘가로 쏙 들어가는 내 작은 손가락이 내눈에 똑똑히 보였다. '쿄쿄쿄. 역시 인간이나 개쉐이나 당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이 환상적인 고문.......큭큭큭, 하지만........으 ....디러...........어이~~ 저리가! 훠이훠이........캬캬캬. 너도 내 손가락에서 더러운 냄새가 나지~~~!! 휘~이. 훠~이!' 난 내 작은 검지손가락에 있는 힘을 다해 똑바로 세우며 공략하기 시작한 대응방법이 멋지게 효과를 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엽기 공주 시넨의 애완견과 그녀의 애완견의 무언가가 묻어 있는 작은 손가락을 가지고 꼬물거리면서 지금도 나를 꿋꿋이 누르고 있는 시넨 공주에게 시험삼아 멋지게 내밀어 주었다. 그러자 활개를 치며 설치던 그녀도 결국엔 내 작은 검지손가락과 그 손톱에 낀 시꺼먼 무언가를 발견하자 기겁을 하면서 몸을 바로 세웠던 것이다. 시넨 공주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이런 대응에 놀라 바닥에 떨어져 매우 고통스럽다는 듯이 비명을 지르는 애완견과 나의 손가락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결국 그녀에게 그동안 당한 화풀이를 위해 내가 손가락을 곤두세운 채 계속 다가가자 시넨 공주는 화들짝 놀라 드디어 나의 몸을 완전히 해방시켜 주었다. 그리고 나선 주섬주섬 뒤로 물러나 더 이상 내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는 시넨이었다. '큭큭큭. 역~~쉬............에효효효. 이제야 숨쉬기가 조금 편하네. 흐흐흐. 저 놀란 눈하며......이제야 난 완전히 해방이다! 만세! 만세!!' 내심 자유로운 몸과 마음에 신나게 만세삼창을 하던 나였다. 고작 하루였지만 내가 시넨에게 당한 일은 절대로 작지 않은 일이었다. 내 밥을 홀라당 뺏긴 것은 둘째 치고라도 곤히 자고 있는 날 완전히 인형취급에..........그걸로도 모자라서 자기 애완견의 노리개(?)로 만들려고 하던 그녀에게서 비로소 완전한 해방감을 맛보던 나였다. 하지만.... '으윽. 냄새.' 주르르르. 신나게 만세를 하고 있던 내 팔을 문득 발견한 내 눈이 그 끝에 있는 손가락과 그 손가락에 묻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그만 상한 비위에 맞춰 내 몸은 정확하게 아까 먹은 이유식을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한참을 그저 토하기에만 급급하던 난 매우 힘들어 옆으로 몸을 눕혀선 자꾸만 목안을 간지럽히는 무언가를 토해내려고 용을 쓰기 시작했다. 목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꽉 막혀 더 이상 나오지 아니하는 것들을 향해......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내가 숨쉬기가 너무너무 힘들어 결국 난 아무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입안에다 넣고선 목구멍을 자극해 속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응? 근데 이 찝찝한 냄새는? 허어어억. 이....이건.........으윽, "퉤~~! 쿠에에엑. 쿠에에에에엑" 마르스 황제는 간만에 정말로 달콤한 시간들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었다. 십여 년 전. 과다한 정신적인 노동으로 인해 매우 짧은 생을 사는 황제들을 위해서 젊은 나이의 왕자들 중에서 황태자를 뽑았던 그 시절 이후, 그야 말로 손가락에 꼽히는 유익한 지금의 시간들이었다. 그땐 그 얼마나 가슴 졸이며 안타까워 했었던가?! 하나뿐인 동생이 자신보다 월등히 검 실력이 뛰어났고, 그런 동생을 향해 동생 주위로 몇몇의 고위 귀족들이 몰려들면서 교묘하게 자신과 동생을 이간질시키던 귀족들 때문에 가슴이 타들어 가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 자신이 결국은 자기보다 더 나은 동생을 위해 과감히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동생을 찾아갔을 때, 그때의 동생 눈에 어린 따뜻한 형제애는 그가 죽어서도 잊지 못할 감동적인 형제애의 느낌 그 자체였다. 그당시 아직은 어린 십대였던 동생이 손에 들린 술을 자연스럽게 권하며 자신과 화기애애하게 웃음을 머금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밤을 새었던 추억에 젖어 마르스 황제는 절로 너털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런 동생인가?! 자신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는 형을 몰래 잠재우고선 그 날로 검 한자루 달랑 차고 왕궁을 박차고 나갔던 동생이 이렇듯 우아하면서도 청초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데리고 온 몇 년 뒤부터 마르스 황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 하나뿐인 동생에게 모두 물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허나, 동생은 그저 작은 미소만 지을 뿐 그런 모든 것들을 확실히 거부했다. 그리고 나선 항상 힘든 일들만 자청해가며 지금도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조금은 생각이 깊은 자신으로써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황제였다. 그랬기에 지금도 눈앞에서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동생이 더욱 자랑스러운 황제였다. 허기에 오늘 급한 전갈로 하나뿐인 이 나라의 대공의 아들이자 이 다음 보위에 오를 싸이벨리의 위급함을 핑계로 그 머리 아픈 왕궁의 일을 힘차게 박차고 나선 황제 폐하였다. 솔직히 그 얼마나 가슴 철렁했었는지 모른다. 싸이벨리가 누군가? 이 다음 자신이 물려줄 왕위를 이어받을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조카가 아니던가. 해서 밀려 있던 일들을 대충 급하게 마무리짓고 다급한 마음에 마차로 달려오던 마르스 황제였다. 그런 자신에게 또다시 전해진 싸이벨리의 무사함에 비로소 마음을 놓았던 마르스 황제는 이왕 나온 김에 아예 며칠동안 동생이랑 마음 편히 쉬고만 싶었다. 그랬기에 더욱 지금의 시간이 소중한 그였다. 그런데, 사촌남매들이 다정하게(?) 얌전히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방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괴성이라는 놈이 잔잔하면서도 행복한 그의 이런 기쁨을 단숨에 빼앗아 가버렸다. 갑자기 들려오는 돼지 멱따는 소리는 그런 여유와 행복함에 빠져있는 마르스 황제의 행복들을 단숨에 날려버린 것이다. 옆방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괴성에 화들짝 놀란 일행들은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기다가 놀라서 허겁지겁 방문을 박차며 들이 닥쳤다. 그들이 열어본 싸이벨리의 방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에 지저분함의 극치였다. 한눈에 방안의 모든 것을 확인한 그들의 눈에 침대 밑에서 게거품을 물며 푸들푸들 떨고 있는 공주의 애완견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져 있는 작은 간이 침대에선 울상이 된 공주가 눈물을 치렁치렁 담은 눈길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불안한 것인지 불쌍하게 헛구역질을 하는 동생과 자신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는 공주의 시선을 따라간 그들의 눈에 연신 모로 세운 몸을 가지고 바닥을 향해 멀건 국물을 연신 토하고 있는 싸이벨리가 보였다. 일행들은 그저 그런 모습들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며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너무 심하게 토해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 동생을 안간힘을 다해 일으켜 세우던 시넨 공주가 또다시 어린 동생이 계속 무언가를 애원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올려다보자 결국엔 놀란 마음에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 뒤를 따라 시넨 공주의 품에 안겨 있던 싸이벨리도 커다란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로 온 방안이 떠나갈 듯이 울어 제켰다. 우에에에엥. 와아아아아~~~아아앙. 얼마나 입을 크게 벌렸는지 입안에 있던 목젖이 흔들리는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넨 공주였다. 그런 울음을 터트리는 시넨 공주를 다급히 껴안은 마르스 황제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울음을 그치게 만들려고 애를 썼지만, 황제의 뒤를 따라서 급히 아들을 품에 안은 엘렌과 그녀의 품에 안긴 싸이벨리를 보는 시넨 공주의 눈은 심한 공포가 어려있어 결코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놀란 눈으로 싸이벨리를 쳐다보며 더욱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것이다. 그런 시넨 공주를 다정하게 꼬옥 안아주는 황제를 잠시 올려다보던 시넨은 그제야 겨우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선 이제 황제의 품에 안겨 안심이 된다는 듯이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만 있었다. 시넨 공주가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자 마르스 황제는 무언가 큰일이 생긴 줄 착각하고선 계속 부드럽게 시넨을 다독거려 주었다. "자자. 우리 시넨 착하지? 자~~뚝. 여기 이 아빠가 있단다." "우에에엥. 시러시러~~ 무쪕딴 마랴. 훌쩍. 와아아앙. 훌쩍." "그래그래. 착하지. 훌쩍. 이제 그쳐야 이쁜 공주지~~~. 뚜~욱. 훌쩍." 순식간에 애보기의 달인다운 모습으로 돌아간 엽기 공주 시넨의 아버지 마르스 황제 폐하였다. 그는 자신의 딸이 우는 것을 흉내내며 딸과 같이 훌쩍거리는 모습으로 시넨공주를 쓰다듬자, 이내 울음을 그치려고 하는 시넨공주를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었다. 그런 마르스 황제의 품에 안겨 있던 어린 시넨은 가는 손가락으로 싸이벨리를 가리키며 자꾸만 무언가 두려운 듯이 칭얼대고 있었다. "우헹. 아빠. 나 싸이 무서버. 훌쩍." "우잉? 싸이가 왜?" "훌쩍. 이짠아. 싸이가. 훌쩍. ...우에에에엥. 무서버......." 도리질을 치며 고개를 빠르게 움직이는 시넨의 말에 속이 타는 황제였다. "아.....아니.......싸이가 왜?" "크응. 팽. 이짠아. 싸이가 자꾸 코~하고 자지 않고 이러나려고 하길래. 내가 훌쩍. 우리 코아한테 얌전히 싸이 재우라고 해꺼덩....근데....... 싸이까 그만..............우우우~~" 이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던 시넨 공주는 황제의 옷에 눈물과 콧물범벅인 얼굴을 문지르면서도 무언가 떠올랐는지 매우 섬뜩한 포즈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참을 아빠의 따뜻한 품에 안겨 부들부들 떨던 시넨 공주는 이내 주위의 호기심 어린 눈들을 무시하기 어려웠는지 매우 조심스럽게 그동안의 사실을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후이잉. 짝은 아빠. 싸이가 글떄 아까쩐에 우리 코아 엉덩이를 저 손가락으로 꽉 하고 찌르더니 그걸 자기 입에 넣고 맛을 봤다!! 그리고선 갑자기 저렇게 울었쪄...." '엥?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쟤가? 헉 또 ..........우에에에엑' 주르르르. 난 겨우 안정이 되어 가는 내 속을 엄마의 다독거려주는 손길에 맡긴 채 느긋하게 있었다. 그러나 내 귀에 똑. 똑. 히. 그리고 너무도 허탈할 정도로 들려오는 억울한 소리에 난 너무나도 분통이 터지는 마음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내 귀로 들리고 있는 시넨의 목소리와 말들은 내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인격 모독이었던 것이다. 난 너무도 화가 나서 속에서 치받는 무언가를 한 바탕 시원하게 토해내곤 급기야 있지도 않는 사실을 또다시 거짓으로 꾸민 채 뭐라고 중얼거리는 시넨공주를 향해 고함을 빽 질렀다. "이띠~ 니까 끄러케 마뜰어짜나~~" 빽하고 고함을 친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란 어머니는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시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주위로 시선을 돌리셨다. 또한 주위에서도 갑자기 말문이 터진 내 말에 너무도 놀라 눈이 동그랗게 된 일행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어머니는 나를 가만히 돌려 안으시면서 화가 잔뜩 난 나를 주위 분들에게 보여주셨다. 난 또다시 목안에서 나오는 텁텁한 냄새로 추정되는 무언가로 인해 비위가 상해 고개가 팍 숙여지면서 압도적으로 크게 주르르 토하는 모습을 그분들에게 구경시켜줬다. "우~~엑.........으욱......주르르" 하지만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내가 언제 저 망할 놈의 똥개 쉐이의 X을 맛을 봤냐고? 결국 난 모든 사람들의 놀란 눈을 뒤로 한 채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또다시 질렀다. "우띠. 내까 그러꾸시퍼서 꾸런께 아니짜나~~~" "헉. 싸이가 말을........." "오!! 역시 위대한 우리 가문의 피는 이세상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놀라운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니깐.~!!" 매우 놀란듯이 탄성을 자아내는 아직은 젊은 주위의 어르신들이었다. 허나 지금 내 속은 그딴 말로는 도저히 가라앉지 않았다. '이 양반들이 지금 그게 문제야~~~! 감히 나에게 저 똥개 쉐이의 응응응을 먹게 한 게 누군데................. 우아아아악. 열뻗쳐~~' 난 매우 화가 난 얼굴로 뽀루퉁하게 삐져 나오는 볼살을 마구 흔들며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시넨에게 화가 나 꼭 쥔 주먹을 마구 들이밀며 너도 한번 당해 볼래를 연신 취했다. "우띠~ 너도 한뻔 머거~~바~~ 어서~!!" "우엑. 시러시러....우에에에엥" "우띠. 이리오라마랴~~~" 엄마 품에서 바둥거리며 어떻게 하든지 시넨 곁으로 다가가려는 나였다. 그런 나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분들은 워낙에 화가 나서 거칠어진 내 행동에 그저 넋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너무도 화가 나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또한 내 손가락에 묻은 무언가로 완벽에 가깝게 무장을 하고 있던 나는 거친 내 행동을 달래려고 가까이 다가오신 삼촌과 그분의 품에서 다소 안심하던 시넨에게 내 완벽한 손가락(!!)을 쭈~~욱하고 내밀었다. '우웁. 조금만 더........그래.......들어갔다..........이익......이까짓 이빨쯤이야.........' 결국 난 확실히 멋지게 보복을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엑. 우~~~엑" 꽈악. "우아아아악" 난 너무도 통쾌했다. 드디어 오늘 하루 동안 나를 못살 게 굴던 시넨 공주에게 확실한 보복을 해준 것이다. 그것도 그녀의 애완견인 똥개 쉐이의 무언가가 묻어 있는 손가락으로 말이다. 큭큭큭. 찝찝한 냄새가 나는 내 손가락을 가지고 그녀의 입안에서 조금 자라나기 시작하는 이빨에다 대고 빡빡 문질렀을 때의 그 쾌감은 정말로 해보지 않고선 아무도 모를 것이다. 엄청......그것도 진짜로 엄청나게 통쾌해서 아마 세상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통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허나 헛구역질이 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미처 못보고 방심하던 난 그만 이 통쾌한 심정을 다시 통곡의 아픔으로 되돌려 받아야만 했다. 그녀의 입안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따뜻하게 내 손을 감싸기가 무섭게 그 뒤를 따라 뽀족한 무언가가 나의 가녀린-사실은 매우 통통했다.- 손가락을 꽉 하고 깨무는 것이 동시에 느껴진 것이다. "우에에에엥. 호~~호~~" 난 너무도 아파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이젠 매우 디러운 그러면서도 느글거리는 건더기로 가득 얼룩이 진 손가락을 입 가까이에 대곤 연신 호호거리며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너무도 시큼한 냄새에 즉각 반응한 나의 속은 매우 정확하게 신물과 허연 침들로 구성된 것들을 또다시 내 옷 앞자락에 뚝뚝 떨구기 시작했다. '흑. 너무도 강하다!! 흐윽. 그 와중에도 날 깨물 생각을 다 하다니......' 너무도 아파서 이젠 빨갛게 부어오르는 손가락과 그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계속되는 나의 헛구역질은 쉽게 안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을 바라보던 일행들은 모두가 벙쩌 있는 얼굴들뿐이었다. "이......이런...........이 무슨 황당한 일들이..............." 이렇게 나와 엽기적인 나의 사촌누이 시넨 공주와의 첫만남은 모두가 느꼈듯이 아주 우아하면서도 멋~있게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훗날 아주 우아하면서도 진짜로 아름다운 공주가 된 시넨은 모든 이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이 카빌라이 대륙의 최고 미녀가 돼주었다. 한참 뒤에야 비로소 성장을 한 우리가 가끔씩 예전에 어릴 적에 있었던 일들을 가지고 이런 저런 얘기하는 시간들을 그녀와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친남매처럼 자라면서 한살 터울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란 우리들의 이러한 소중한 추억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말. 예전의 중세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별로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하루 왠종일 넓은 국가에서 올라오는 서류들을 살피는 황제에게서나 가끔씩 찾아 볼뿐이죠. 허긴 문맹률이 95%이상 차지하는 나라를 이끄는 존재가 과연 스트레스를 받으면 얼마나 받았을까요? 하지만 인간은 주변의 환경에 익숙한 존재랍니다. 그렇기에 그당시 황제와 재상들은 정말로 피말리는 세월들을 보냈죠. 그건 우리 나라만 해도 마찬가지랍니다. 오죽하면 60세가 넘으면 새로운 인생이라며 축하연까지 벌일까요?! 그 당시는 정말로 50세를 넘기는 황제가 드물정도였죠. 주위의 배신을 견제하랴. 밀린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새벽에 겨우 잠이 드는 그들이 현재 우리들에겐 성군이라고 불리는 황제들이죠. 그리고 기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는 그들의 화려한 삶도 알고보면 이런 심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마련하는 그들만의 현실도피와도 같은 잠시의 쾌락과 행복이겠지요. 하기에 제 글도 이런 추세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왜 이제야 싸이가 삼촌의 얼굴을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드실겁니다. 허나, 자신의 소중한 딸도 가끔씩 시간을 내야만 볼수 있던 황제가 왕궁에서 조금 떨어진 조카를 보기 위해선 그야말로 황금같은 시간을 쪼개야만 겨우 볼수 있다는 제 설정에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길..... 그럼 조만간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신룡의 후예 - 제 7 화. 푸르도록 시린 하늘위로 하얀 뭉개 구름들이 저마다 어울려 멋진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느덧 푸르른 초목들이 저마다 가을을 알리듯 곱게 붉은 색깔 옷으로 치장한 채 사람들의 시선에 감동의 물결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듯, 늦가을의 햇살답게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넓은 잔디밭에선 지금 작은 악동으로 추정이 되는 사내아이가 잔뜩 볼을 내민 채, 잔디밭 위를 뒹굴 거리며 허공에 헛손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우응. 띰띰해." 우씨. 이건 어떻게 된 노릇인지 너무도 화가 난다. 근 일년이 넘게 방에만 갇혀 살던 내가 이제야 겨우 방을 벗어나서 놀 수 있는 자유가 생겼건만........이런 자유로움도 잠시. 나한테 이 따분한 시간들을 유익하게 보낼 방법이 없다는 건 한마디로 고문이다. 고문!! 오로지 별다르게 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뒹굴거리며 시간이나 죽 때리며 지내야 하다니.....이건 너무도 심한 고문이라고~!!!!!!!!! 하긴, 지금 이 시대에서 내가 뭘 바라는 게 잘못된 일이겠지. 또한, 고작 한 살이 조금 넘은 놈이 벌써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이것 참 고민되는 구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로 황당했다. 물론, 조금 말이 빠른 아이들은 나보다 몇 개월 더 지난 다음부터 능수 능란할 정도로 말문을 트이기 시작하는 놈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허나 네 살이 넘도록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들도 부지기수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게 나는 고작 1년6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만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당연히 혀가 제멋대로 까부는 관계로 조금 곤란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정도면 남들이 충. 분. 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이기에 이만하면 거의 대부분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더구나 내가 지금 새롭게 태어난 이곳은 내가 전에 살던 곳과 나이계산 방법이 약간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나이에 벌써부터 말을 한다고 해서 매~우 신기하게 여기는 이들은 별로 없다는 점은 반드시 넘겨 집고 가야겠다. 이건 내가 한국 나이로 따지면 3살이 조금 못되는 나이니깐 뭐 크게 뭐라고 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난 지금 매~우 따분했다. 따땃한 햇살아래에서 혼자 뒹굴 거리며 아무 방해도 없이 뒹굴 납짝 푸쉬식 이라는 새로운 놀이문화를 창조해 낸 나였지만, 그래도 따분하고 심심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작은(?) 얼굴로 전해지는 바람의 기운들은 이런 한심할 정도로 따분한 내 마음을 달려주려는 듯. 더욱 내 멋지고 큰 얼굴(!!!)을 시원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가끔씩은 그 얄미운 먼지녀석이 나타나서 내 머리카락 사이에서 장난질을 치기도 한다. 그것도 내 머리칼을 마구 휘날리며 지 맘대로 마구 꼬기도 하고 비벼보기도 하면서 내 머리칼이 완전히 자기 금색 실뭉치 인줄 착각하면서 감히 간 크게도 놀고 있었다. 하긴, 그 덕분에 이 녀석이랑 아옹다옹하면서 말다툼하는 재미도 의외로 쏠쏠하니 괜찮았다. 덕분에 이 따분한 시간들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 모르게 나를 제법 심심하지 않게 해주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내가 넓은 잔디밭 위에서 혼자 뒹굴 거리며 노는 걸 보시곤 안타까워 달려나오신 어머님 때문에 이 놈은 새롭게 숨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현재 이 망할 먼지녀석은 내 머리카락사이에 쏙 들어가 완벽한 은폐술을 자랑하는 심도 깊은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카~아. 이 얼마나 훌륭한 은폐물이자 큰 바위얼굴인가~~? 윽. 이게 아니잖아. 크~윽. 이 크기만 잔뜩 큰 나의 ............ "우웅~~" 한껏 어머니의 다리품을 베고 누워 뒹굴 거리다 이젠 그것도 싫증이 난 나는 조심스럽게 큰 바위 얼굴을 부여잡고 벌떡 일어났다. 그동안 너무 누워만 있었더니 온몸이 근질거려 머리통을 붙잡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크게 기지개를 켜주었다. 이런 나를 사랑스런 눈으로 내려다 봐주시는 어머님이셨다. "어머. 우리 싸이 벌써 일어났니?" "웅. 어마. 나 너무 띰띰해." "호호. 우리 싸이가 심심하면 어떻게 하나?........음. 뭐가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시는 포즈로 이마를 살짝 찡그리시는 어머님이셨다. 허나 지금 내 눈엔 그분의 그런 표정하나까지 귀족적인 우아함이 묻어나는 게 더욱 자랑스럽기만 한 나의 소중한 어머님이다. "호호. 그럼 이 엄마가 우리 싸이가 좋아하는 책 읽어 줄까?" 훗,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어떻게 된 게 허구 헌 날 책보는 거 빼곤 크게 좋아하는 일이 없던 나에게 어쩌면 지금 어머님의 말씀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여기는 말 그대로 중세시절의 유럽과도 같은 곳이다. 단지 내가 아직 잘 모르는 이상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는 것만 빼고는 내가 알고 있는 시대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곳이다. 이러니 이 곳에서 내가 할만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오락거리라고는 오직 사람들 얼굴 구경하는 게 전부인 이곳에서 이 어린 나이에 내가 특별하게 할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책을 보는 것만 빼곤...... 왜? 왜 책만 보냐고? 당연히 이곳의 책들은 내가 모르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으니 내 불타는 학구열과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진한 호기심이라는 놈들이 건방지게 합동작전을 펼치며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최고의 긴급모드(두뇌운동)를 발동해서라도 나에게 유익하면서도, 아주 심심한 시간 때우기에는 최고의 취미생활이 바로 독서였다. 지금 이곳의 귀족세계에서는 독서가 모든 귀족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교양과목이다. 허나, 내가 비록 태어난 건 얼마 안되었지만 그동안 유심히 내 주위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이곳의 문맹률은 매우 심각한 것 같았다. 심지어는 우리 집의 유모도 이 범위에 해당이 되었다. 오죽하면 어린 내가 지금 현재보고 있는 책들........조금은 철학적 사상이 강한 난해한 책들을 유모가 전혀 읽어주지 못할 정도이니 이건 어린 내가 봐도 문맹률이 심각해도 한참은 심각했다. 왜? 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일까? 더구나 이 카빌라이 대륙의 단 하나뿐인 거대 왕국 메르카. 그 메르카 왕국에서도 오직 한 분뿐인 대공을 아버지로 둔 나를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챙겨줘야 할 유모까지도 거의 문맹에 가까운 사람이라니.... 왜 이런 심각한 일들이 생겨야만 했던 것일까? 이건 아마도 예전부터 관례로 내려오던 귀족들의 강한 권위의식 때문일 것이다. 글은 오직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매우 한심한 생각들. 평민이나 농노가 글을 깨우치면 반드시 반란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한심한 놈들. 내가 글을 깨우칠 때쯤에 본 동물 요감에 그려진 괴수들 중 돼지머리랑 아주 흡사한 한심한 놈들이 바로 지방 귀족 놈들 일 것이다. 에휴. 근데 왜 지금 내가 이런 심각한 일들을 떠올리는 거지? 난 아직은 한참은 어린데....... 아마 이것도 과거의 내가 머리 싸매고 공부한 일들 중 한 부분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어린 나이에 시간이 남아돈다고 이런 한심한 생각들이나 하고 있다니.....내 자신이 불쌍해진다. 쯧쯧쯧. 더구나 그놈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놈들일텐데........과연 내가 그놈들의 잘못된 의식들을 제대로 고쳐 놓을 수가 있을까? 이 사람들. 특히 기사들과 평민들. 그리고 천민에 이르기까지 내가 태어나서 본 모든 사람들은 정말로 순진해 보이는데......오죽 괴롭혔으면 머리에 지식이 들어가면 바로 반란이 생길걸 염려하고 있는 것일까? 그럼, 난 과연 이다음에 커서라도 이 사람들의 머리와 온몸에 뿌리깊이 박힌 불쌍한 노예생활에 대한 의식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그건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내가 너무나 어린 관계로 크게 할만한 일이 없으니깐.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더 큰 다음의 일이니 아직은 뭐라고 확실히 단정지을 수는 없다. 후후후.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리도 한심해 졌을까? 평소라면 난, 특히! 과거의 나라면 절대로 이렇게 살지는 않는다. 최소한 내가 해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매달려서 반드시 성취해냈던 나였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내 몸이 나를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난 항상, 그리고 언제나 철저하게 내 자신을 단련시켜가며 살아온 짧지만 확실한 인생이었다. 이런 내가 미래의 일이라고 이렇게 무사태평하게 있는 걸 보면 정말로 난 확실히 변하고 있는게 분명했다. 인간은 주위의 환경에 매우 민감한 동물들이다. 이는 주변의 환경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숨겨진 본성이 조금씩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건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를 비교해 봐도 명확한 일이다. 내가 그당시엔 고아였고 따뜻한 가족의 품을 단 한번도 못 느껴본 삭막한 생활들뿐이었다. 난 언제나 혼자였고, 그래서 난 더욱더 악착같이 무슨 일이든 매달렸던 것이다. 허나,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르다. 너무도 행복해할 정도로 나를 사랑해주는 따뜻한 가족의 품이 생긴 것이다. 비록, 내가 그토록이나 갈구하고 그리워하던 소영이와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난 영원히 믿는다. 아니 내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반드시 믿으며 살 것이다. 언제나 내 마음속엔 소영이가 크게 자리하고 있고, 내 영혼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않는 한 그녀는 반드시 내 앞에 그 사랑스런 모습을 꼭 들어내리라고...... 부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그녀가 나처럼 태어났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왜냐면 난 오직 그녀뿐이기에....... 내 영혼을 바쳐서라도 꼭 그녀를 만나야만 하기에, 난 무슨 일이든 그리고 어떠한 고난도 꿋꿋이 해쳐나갈 수 있다. 이건 내 영혼을 걸고 맹세하는 바이다. 난 언제나 약속은 잘 하지 않는다. 허나, 한번 한 약속은 죽을지언정 반드시 지키고야 만다. 이건 내가 고아라는 콤플렉스 속에서 키워진 또 다른 나의 단점일수도 있다. 그러나 난 절대로 이 단점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아닌 다른 영혼의 소유자일 테니깐. 또한, 내가 지금의 이 생활들을 즐기면서 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차피 난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내 삶을 포기하고 그녀의 곁으로 간 것일 뿐. 절대로 지금의 생활들을 위해서 내 삶을 스스로 포기한 건 아니었다. 하기에 난 짧지만 화려한 미래가 보장된 지금의 삶에 그리 큰 미련은 없다. 인간은 어차피 죽음이라는 절대명사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내가 두살박이 꼬맹이라곤 해도 그리 죽음에 대해 큰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다. 난 오히려 소영이가 나처럼 다시 태어나지 못했을까바 그게 더 큰 걱정거리이다. 만약 그녀가 나처럼 환생을 하지 못했다면? 아니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태어나지 못했다면?! 이게 제일 큰 걱정거리이다. 정 안되면 이번 삶도 모험 삼아 다시 그녀의 곁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나다. 제발 그동안만이라도 내가 조금 전에 목표로 삼은 이 불쌍한 사람들의 의식개혁이 이루어지기를 조금은 바라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내 모든 영혼과 삶은 오직 그녀뿐인 나이기에............ 이런 확고한 신념에 사는 내 자신이다. 철저히 이 악물고 살아가면서도 오직 한가지 목표는 절대로 잃지 않는 나이기에.... 근데 그런 내가 어떻게 이런 나약한 생각들을 가지게 된 것일까? 조금은 혼돈스럽게 뒤엉키는 머리 속이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진짜로 어려진 것 같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내 성격이 예전과는 달리 조금씩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나약한 생각은 절대로 가지지 않았을 텐데........... 더구나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입에서 나의 통제를 거부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황당한 말들 때문에 정작 나 자신도 매우 놀라고 있었으니 이 부분은 나중에라도 한번 심각하게 생각 좀 해봐야겠다. 이건 주변의 환경에 적응을 하기 시작한 나 때문인지, 아니면 예전의 내 자신과 지금의 내 자신이 부딪히면서 생긴 혼란 때문인지는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나도 잘 모르겠다. 이건 내 자신조차도 매우 혼란스러우니 나를 향해 너무 탓하는 눈빛들은 보내지 마시라.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 건 절대로 아니니깐. 지금까지 너무 이상한 생각들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허나 나에겐 이게 제일 중요한 일이자 어쩌면 내 혼란을 잠재울 그 무엇인가를 찾지 않는 한 난 정말로 어린아이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지금 나로썬 제일 다급한 상황이다. 아무튼, 난 지금 어머니의 말씀에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건 아마도 어머니의 우회전술이자 나에게 줄 새로운 책들을 가져 왔다는 암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러니 내가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제지술 덕분에 그나마 비싼 책이라고 펼치면 무슨 가죽재질처럼 생긴 책에 한쪽 면만 글이 써져 있어서 정작 보려고 몰입하면 어느새 끝나버리는 내 독서시간이었다. 그때문이라도 새로운 책에 대한 기대감은 항상 나를 들뜨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덕분에 간만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려지는 나였다. "헤헤. 엄마. 찌짜~?" 헉. 이건 진짜로 내 의지가 아니다. 완전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 멋대로 설치는 본능이라는 놈이 분명했다. 으윽. 얌마. 너 내 손 맞어? 감히 내가 생각도 안했는데 지 멋대로 움직이면 어떻해?! 도대체 지금 내 손이 어디를 간거야!! 흑. 생각은 다 큰 성년이건만, 몸은 아직 어린아이라고 내손이 본능적으로 엄마의 품을 찾으니...........정말로 낯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나의 이런 혼란스러움도 인자한 어머니의 미소엔 절로 사그라 들었다. 말 그대로 이런 내가 사랑스럽다는 듯 작은 엉덩이를 더욱 힘주어서 안아주시는 어머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 보자. 으음. 지금 있는 책들은 우리 싸이도 많이 보고들은 것들이니까. 오늘은 우리 새롭게 생긴 도서관이나 가볼까?" "또서꽌?" 어머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난 너무도 신났다. 갑자기 어머님 입에서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환장을 하기 시작하는 내 들뜬 마음과 이성이었다. 난 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내가 잘못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차 어머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것도 입에 방실거리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그래. 도서관. 음 . 이건 비밀인데...사실은 싸이를 무지무지 사랑하는 아빠가 우리 싸이가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달리, 책을 너무 좋아한다고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우리 싸이도 잘 알고 있지?" "응. 따여하찌. 내까 어마나 짹을 쪼아한따꼬." 혀가 꼬이는 와중에도 강하게 아래위로 움직이는 전자동 기능의 조금은 큰 머리였다. 어쩌면 가는 목이 부러질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끄떡거리는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귀와 눈은 오직 어머니를 향해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발 어머니의 다음 말씀에 내가 실망하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가득 실고서 눈이 빠져라 기대총총한 눈망울로 어머님의 다음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절대로 실망시키시지 않는 인자한 어머님이셨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싸이 아빠가 싸이를 위해서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이 넓은 대륙의 여러 곳에서 나오는 수많은 책들을 수집하고 있는 곳이 있단다." 이 대목에선 기대감이 큰 나를 위해서 더욱 애간장을 태우시는 얄미울 정도로 사랑스런 어머님이셨다. 왜냐면 나를 살짝 홀겨 보시면서 말을 끄시는 것 때문에 내 애간장이 다 녹아났기 때문이다. "꿀꺽. 끄.......끄래쪄?" "호호. 우리 싸이가 많이 궁금한가봐. 그치?" 완전히 내가 삐지기를 바라시는 눈치 같다. 훗. 이 다 큰아들을 그리도 놀리시는 게 재미가 있나? 하긴 내가 아직은 어리긴 어리지. 허나 난 절대로 정신적인 나이론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야. 결국, 난 어머니의 기대감을 배신 못하고 어느새 내 본능에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엄마한테 떼쓰면서 덤비는 못된 아기가 된 것이다. "히잉, 어마! 미뻐. 싸이어마 아냐!!!" 쿨럭. 이런 한심한 말이나 내뱉는 나라니......... 그런데 이런 내 반응에 더욱 신이 나시는 듯한 어머님이셨다. "어머나, 그럼 이걸 어째? 이 엄마는 우리 싸이를 위해서 지금 황제폐하께서도 함부로 못 들어가시는 그곳에 우리싸이를 데리고가려고 하는데.....?" 도리질을 하면서 칭얼거리는 나를 꼬옥 안아주시면서 가볍게 웃음을 지으시는 어머님. 허나, 훗, 황제폐하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라......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이건 과장을 하셔도 너무 심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내 속을 긁으시면서 한껏 재미를 느끼시던 어머님께서는 내가 평소에 매우 점잖은 모습과는 달리 책이라는 단어에 매우 예민하다는 걸 잘 아시는 듯 이내 다음 말씀에선 내 기분을 풀어주시고 계셨다. "호호호. 어때? 너도 가고 싶지?" "응. 나또 까고 씨퍼." "그래, 사실은 싸이야. 그 도서관이라는 곳이 뭐냐 하면, 네 아빠가 아무나 함부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엄명을 내리시면서, 이다음에 우리 싸이가 글을 지금보다 아~주 아~주 잘 읽게 되었을 때 싸이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곳이란다. 그것도 너한테 깜짝선물을 하신다고 벌써부터 이 엄마를 얼마나 구박하는데. 뭐?! 이 엄마보고 함부로 구경도 하지 말라던가?!....호호. 어떠니? 이 기회에 우리 얄미운 아빠 몰래 그곳을 살짝 구경해 볼까?" "헤헤. 쪼아쪼아. 히히. 씬난다." 어머님의 모처럼 긴 설명이 붙은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난 무조건 좋았다. 저렇게 눈을 반짝 반짝거리며 나에게 마치 오랫동안 숨겨둔 비밀이야기처럼 말씀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더욱 날 흥분시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에. 얼마나 멋진 곳일까? 아마도 엄마가 저 정도 반응을 보이실 정도면 아주 대단한 곳일텐데.' 입가에 침이 흐를 정도로 행복한 마음에 입을 벌리고 미소를 짓는 나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이 세계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문명과의 조우가 시작되는 어느 날의 오후 무렵이었다. "히야~~쭈긴다." 이건 내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본 멋진 도서관을 한번 둘러보고 내지른 탄성이자 감탄이었다. 허나 이런 말은 아직 어린 나한테 안 좋다는 걸 인식하신 어머님에게 곧 강하게 지적을 받은 말이기도 했다. "어머. 우리 싸이는 아직 어린아이 인데 함부로 그런 말 쓰면 안되요. 알았지?" "웅. 하찌만 맨날 내 빵 앞에서 쭈겨라. 쭉인다는 말만 들리는걸." "헉. 그....그건....." 내 변명에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시며 나를 내려다보시는 어머님이셨다. 에휴. 저도 알아요. 안다구요. 허나 절로 나온 감탄사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쩝. 아무튼 사과는 드려야겠다. "헤헤. 그건 기사아찌들이나 쓰는말 맡찌?" "응. 그리고 맡찌가 아니고 맞지. 알았니?" "웅. 마찌? 헤. 암튼 어마 미안. 헤헤" 살짝 쥔 어머님의 손을 꼬옥 쥐면서 방실거리는 얼굴로 사과를 하는 나였다. 이런 나를 보면서 살짝 찌푸리신 얼굴을 한숨으로 푸시는 어머님이셨다. "에효. 그래. 하긴 네 나이가 얼만데......... 벌써부터 이렇게 말만 하는 걸로도 이 엄마는 충분히 만족한단다. 하지만 앞으론 그이더러 네 방 앞에서 미리 네 안목을 넓혀 준다고 일부러 검술 연습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엄마의 한숨소리와 그 뒤를 작게 따라오는 독백에 조금은 무안한 마음이 생겼다. 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내 개인 도서관의 위용에 놀라 옛 기억 속에 있던 말들을 쓴 게 조금 죄송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지금 이곳의 기사들이 멋진 기술을 보여주면 내뱉는 말들과도 상통했다. 이러니 인간은 어느 곳에서든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지금 엄마의 손을 붙잡고 서 있는 곳은 한마디로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흠. 우리 집이 이 대륙에서 제법 크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가히 5층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약 천 여평 규모의 책장이라니....... 그리고 그런 수많은 책장들 가득히 내가 이제껏 보아왔던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시작으로 각종 교양서적과 문학소설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던 것이 다. 이러니 내가 어찌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겠는가?! 난 한동안 정신을 놓고 있다가 드디어 내 손을 이끄시며 걸음을 옮기시는 어머님의 발길을 따라 천천히 내 전용 도서관이 될 이곳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자아~~ 그럼 이곳을 우리의 새로운 아지트로 접수를 시작 하실까요? 도련님?" "헤헤. 웅. 조았서." 이 한마디론 부족한 곳이지만 그래도 난 너무 기쁜 마음에 찢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8 화 소년의 꿈. 소년은 달콤한 꿈을 꾼다. 소년의 달콤한 꿈속에선 따뜻한 가족들의 사랑이 지금도 물씬 풍겨오고 있었다. 너무도 사랑스러운 갈색머리에 투명한 듯 빛을 발하는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소년과 그 소년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얀빛을 받으며 더욱 눈부시게 보이고 있었다. 그 빛들 속에서 빛만큼이나 하얀 장삼을 곱게 차려입고 너풀거리는 장삼자락 소매를 조금씩 걷어올리며 소년은 사뿐 거리는 걸음을 매우 행복한 마음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시선 끝에는 아름다운 자태와 감미로운 향기를 내뿜는 꽃밭이 있었고, 꽃밭 한가운데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누군가와 자애로운 미소를 띤 얼굴로 소년을 반기는 누군가의 모습이 소년의 투명하리만치 푸른 눈에 잡혀 있었다. 그런 누군가의 자애로운 미소에 더욱 신이 나 까르르 거리는 웃음과 함께 어리광을 피우며 달려가던 소년은 이내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의 품에 안겨 이제는 넘실넘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랬기에 소년의 얼굴에선 해맑은 미소가 가득 차 있어 더욱 소년의 외모를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소년이 어머니의 손을 잡고 크게 원을 그리듯 맴을 돌자, 아리따운 여인과 그 여인의 남편으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엔 환한 행복의 미소가 어우러져 그들의 주위에 있는 꽃밭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너무도 따뜻해 보여 소년은 꿈속에서 만난 그들이 너무도 행복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시샘일까? 금새 주위를 어둡게 하는 먹구름과 그 먹구름들이 몰려오는 곳에서 일기 시작하는 천둥번개가 거센 회오리를 만들며 푸른 하늘을 온통 시커멓게 보이게 하자, 파랗게 부딪히는 번개들 사이로 소년이 깜짝 놀란 시선을 돌린 사이 꿈속에서 만난 소년의 주위는 순식간에 너무도 끔찍한 일들이 벌어져 있었다. 멍한 듯 자신의 주변을 살펴보는 소년의 눈에는 온통 붉은 빛의 진한 혈향과 검붉은 핏물들이 소년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새 소년의 주위는 붉은 피로 이루어진 작은 내(川)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 소년의 재롱을 받아주던 인물들은 지금 하나같이 그 소년의 눈앞에서 처참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이등분 된 몸뚱아리는 미처 온기를 잃지도 않았건만, 몸과 분리된 머리통과 그 안에 자리한 눈들은 지금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먼 하늘로 원통한 시선을 보내며 크게 부릅뜬 모습만으로도 자신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염원을 가득 담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더구나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꿈속에서 만난 갈색 머리칼의 소년에게 행복한 꿈을 이루어주던 꽃밭들은 어느 누군가에 의해 마구 짓밟혀져 여기저기 화려함을 자랑하던 꽃들이 무참히 꺾여져 있었고, 그 꽃들의 줄기 속에서도 지금 소년의 부모들처럼 붉은 피분수가 솟구치며 주위를 더욱 짙은 혈향에 잠기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장면도 잠시 소년의 고통스러운 외침이 긴 메아리로 하늘을 울리기 시작할 때, 어느새 붉게 충혈 된 눈을 부릅뜨며 그 소년은 누군가에게 원한이 깃 든 목소리로 절규를 하고 있었다. 그순간에도 소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붉은 색 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시리도록 투명한 눈망울은 간데 없고, 오로지 붉게 타오르는 원한에 사무친 핏빛 눈동자만이 자신을 둘러싼 이상한 기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시선을 따라 급히 바라본 그곳엔 그 소년의 주변을 떠도는 이상한 기운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갈색머리칼의 소년과 똑같이 바라보던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자신이 바라보기에도 그 음침한 검은 기운들은 가슴이 저릴 정도로 심하게 아파오며 그 속에서 강한 두려움이 샘솟듯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자들의 비릿한 웃음은 끊이지 않고 소년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웃음을 짓는 자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듯, 피눈물을 흘리는 동공 속으로 그들의 뒷모습들을 하나 하나 새겨 넣으며 피가 터져 나오는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런 소년의 외침 속에는 너무도 억울한 그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어 그 모습을 보는 또 다른 소년의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언젠간...............거.............................꼭......." 가슴속에 깊은 한이 맺힌 것일까? 소년의 목소리는 아련하게 들려오건만, 그 속에 담긴 저주의 고통과 강렬한 복수의 마음만은 지금도 여전히 소년의 세찬 심장만큼이나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외침이 너무도 처절한 그 무엇인가를 담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또 다른 소년은 그 피눈물을 흘리며 원통해 하는 소년이 너무도 가련하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두 뺨을 적시고 있었다. '우잉? 이건 눈물?...그럼 그 소년은 .......?" 난 작은 베개가 축축한 느낌에 황급히 눈을 뜨자마자, 지금 내 눈에 흐르고 있는 눈물이 무엇 때문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저 왜 내가 그 소년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 왔었는지, 그리고 막연히 내 눈엔 보이지 않았던 검은 구름들과, 그 속에 감춰진 존재들이 매우 강렬한 악의 기운들을 가진 무리였다는 것만 머릿속으로 상기시키면서 아직도 강한 여운이 남겨진 꿈을 뒤로 한 채, 축축해진 베개에서 나의 큰 머리를 일으켜 세웠다. "우띠. 뭐 이런 깨꾸미 다 있쪄!!" 어린 아이가 하는 말로는 가히 어울리지 않는 말을 터트리는 나였다. 그만큼 내 뇌리 속에 파고든 꿈의 여운은 강렬했던 것이다. 난 아직도 생생한 꿈의 파편을 다시 한번 천천히 정리를 해 보았다. '웅. 그러니깐 단란한 가정을 가지고 있던 소년이 갑자기 나타난 악의 무리들에게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그 나아뿐 악마새끼들을 죽이러 다니면서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그런 건가? 하지만 그런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벌써 며칠 째인지 몰랐다. 내가 이 꿈을 꾸게 된 것은 엄마랑 나의 전용도서관이 될 5층에 있는 도서관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이니 근 보름 가깝게 이런 개(?)꿈을 꾼 것이다. 맨 처음 날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그 악의 무리들과 싸우는 피비린내 나는 꿈을 꾼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 다음날은 왠 사내가 악마로 추정되는 검붉은 날개를 가진 존재의 목을 치고 그 잘려진 목안으로 거침없이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나선 그 악마라고 생각되는 존재의 심장을 끄집어내 자신의 손안에서 꿈틀거리는 심장을 꾸욱 짜며 그 심장 속에 남아있던 검붉은 피를 아주 맛있게 받아먹는 것이었다. 그리곤 끝내는 자근자근 살점들을 씹어먹는 섬뜩한 꿈이었 다. 그 이후로도 계속 그 사내가 나오는 꿈이 계속되더니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사내가 그런 끔찍한 살인을 밥먹듯이 한 이유가 내 꿈속에서 나타난 것이다. 악의 무리들과 거침없이 싸우며 주위에 있는 친한 이들을 잃으면 잃을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는 그 사내의 화려한 검술과 그 슬픔에 찬 투명하리만치 푸른 눈동자로 광기를 토해내며, 더욱 이를 악물고 상대를 베는 가히 아수라와 같은 이미지를 지닌 사내에게 이미 어느 정도 동정심이 생겨 버린 나로썬, 그 사내의 처참하리만치 불쌍한 과거와 삶이 더욱 처량하다는 생각에 지금도 내 큰 눈에서 조금 전에 흘려 내린 눈물을 닦지 못한 채, 멍하니 그 사내의 일기장같이 생긴 책을 꼬옥 움켜쥐었다. '흠. 그럼 내가 내 침상머리에 이 책을 두고 자서 이런 꿈을 꾸게 되었던 건가? 그만큼 사내의 복수심을 뛰어넘어 숭고하리만치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들이 이 다음세상에서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숭배 받아야만 된다는 것인가? 그럼, 그 사내가 생각하던 것들을 내가 꼭 알고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다음에 또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그 무리들을 걱정하는 사내의 강한 염원 때문에라도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 주어야 한다는 건데.......흐음.' 이거 어째 설정이 이상하다. 내가 왜 그래야만 하지? 더구나 이 책에 기록된 날짜들과 연도를 아무도 모르는 점으로 미루어봐서는 이 사내가 살았던 시대는 엄청 머나먼 과거 같은데......... '흠. 어째든 자신의 모든 삶을 다 받쳐 무찌른 악의 무리들이 언제 다시 나타나 소박한 이들의 꿈들을 무참히 파괴시킬지 모르는 관계로 누군가에게 자기의 일생을 알려주고자 이런 글을 남긴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을 본 이들 중 하나가 언젠가는 다시 나타날 그 악의 무리들을 자기 대신 나서서 자기가 미처 못 다한 일들을 끝내는 마무리 지어달라는 것이라 이거지?! 암튼, 내가 이 책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으니깐 이런 꿈도 꾼다는 거네?' 난 내가 곤히 잠을 잘 때마다 나타나서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들고 이런 슬프면서 도 가슴아픈 꿈을 꾸게 만든 그 갈색머리의 사내가 내심 얄미웠지만, 그나마 고대의 언어로 쓰여진 이 책을 엄마의 도움으로 조금씩이나마 읽을 수 있는 나로썬 이 책을 끝까지는 읽어봐야만 하겠다는 아주 황당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허나 찜찜한 마음이 가셔진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단지, 이상한 느낌이 들뿐이었다. '웅. 이 책 조금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느낌이 매우 찜찜한 내용으로 다가오는 이 책의 표지는 자기가 이미 오래된 서책임을 자랑하듯, 책을 감싸고 있는 가죽들이 너덜거리는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책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지만, 내가 도서관의 이곳저곳을 엄마의 손을 잡고 둘러보는 와중에도 점점 나의 뇌리에 어떤 강한 영감을 주던 곳에 있었던 책이었다. 또한 내 자신의 느낌을 믿고 따라간 곳에서 발견한 이 책을 나는 절대로 소홀히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수많은 책들이 빽빽이 들어찬 책장들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책꽂이에 있던 책들 중 하나라서 난 엄마에게 떼를 쓰며 졸라 이 책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난 그 문제의 책이 꼽혀 있는 책장 앞에 서는 순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에게 강한 끌림을 선사하던 느낌이 확연히 내 눈을 통해서 들어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 책장 앞에 선 순간 나의 눈에 가득 들어찬 책들 중 오직 이 책 하나만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어떤 신기한 기운이 감도는 이 책은 지금의 어린 나에겐 그야말로 가장 소중한 기억들 중 하나의 자리에 큰 비중을 차지할 만한 무게로 나에게 이렇게 다가왔던 것이다. "자. 보자. 현세에 나타날 그들의 징조? 웅. 이거 첫 장부터 너무 무거운 분위기인데..." 결국은 나 자신에게 믿음을 가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제아무리 찜찜한 꿈을 계속 꾸게 해주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실과 나에게 전달되어지는 느낌은 결코 나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책의 표지는 비록 낡아서 너덜거릴지언정 그 책 안의 내용들은 신기하게도 매우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마치 붉은 물감으로 그린 듯한 삽화가 책 맨 앞에 잠시 나타나면서 이미 나의 손을 거쳐 여러 번 보아왔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섬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림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그림들 속에는 붉은 구름과 그 구름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얇은 날개에 이마 양쪽에 작게 돌출 된 뿔들이 그들이 악마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고, 그들의 날개와 그 뒤로 보이는 화살촉처럼 생긴 뽀족한 꼬리엔 작은 검은색의 구체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 모습의 악마들을 상대로 땅위에서 열심히 수많은 여러 무리들을 이끌며 검을 치켜세우고 있는 이들 중 하나는 왠지 나와 매우 친숙한 느낌을 주는 잘생긴 은발의 머리를 지닌 사내였다. 그리고 그 사내의 옆에 서 있는 이가 바로 요즘 나의 꿈에 매일 나타나서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의 그 사내였다. 그리고 그 사내의 옆에선 작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여사제가 그려져 있었는데 내 눈엔 그 모습이 너무도 성스러워 보였다. 그런 그 들의 뒤에는 각종 유사인간들로 보이는 존재들이 강렬한 눈빛으로 검은 하늘을 향해 강한 째림을 날리고 있었다. "흠, 이 유사 인간이라는 게 정말로 살아있는 존재들인가? 그리고 이 그림은 뭐 야?" 여러 장으로 된 그림들 속에선 황당하게도 하얀색의 큰 붕조 처럼 보이는 새가 정의의 무리들로 추정되는 유사인간들을 보호하려는 듯, 그 큰 날개를 활짝 펴 그들을 검은 구름의 존재들로부터 가로막은 채 고개를 쳐들고 있는게 그려져 있 었다. 이 붕조처럼 보이는 새의 그림은 매 장마다 나오더니 이젠 마지막 그림 속에선 자신의 몸 위에 문제의 그 사내와 은발의 사내를 태운 채 그 악마의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흠. 이게 무슨 전쟁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우씨. 이 처음 보는 글을 어떻게 읽을 줄 알아야 뭔 내용인질 제대로 파악하지.....' 난 엄마의 도움으로 이 책에 적혀있는 거의 대부분의 글자들을 배울 수 가 있었는데 그건 진짜로 신기했다. 뭐. 예전부터 나한테 한번씩은 들려준 내용이라고 하시면서 가만히 내 머리에 손을 올리시곤 이건 이렇구.....저건 저렇구......하시며 설명을 해주시는 말씀이 매우 신기하게도 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엄마도 미처 모르시는 글자들이 이 책엔 종종 나오곤 했었는데.... 그게 바로 내가 지금 활짝 펼친 그림들 사이사이에 빽빽이 적혀 있는 이상한 글자들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 내용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친절히 부연설명을 하시면서 가르쳐주신 현명한 엄마가 계셨기에 난 부담 없이 이 책의 대부분을 훑어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요상한 그림처럼 생긴 글자들에게서 전해지는 강한 의문과 끌림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해주고만 있었다. '흠. 일단은 내가 모르는 글자들은 그냥 대충 넘어가고.........'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동안 내가 이 책을 내방에 가지고 와선 근 보름이 넘도록 다 읽지 못한 건 바로 내가 이 알 수 없는 글자들이 한 장 한장 넘길 때마다 더욱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아직까지 넘기지 못하 고 있는 것도 모두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라서 난 정말로 열 받기 시작했다. 누구는 그냥 대충 훑어보면서 끝까지 넘기면 되지 않겠냐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나, 난 절대로 그렇지 못하다. 물론 조금 전에 중얼거린 말들은 전부 이런 나를 조금은 바꾸려고 애쓰는 불쌍한 내 이성일 뿐이었다. 허나, 이런 노력은 아예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 다. 난 한번 펼친 책은 반드시 내가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을 다 읽지 못한 페이지 는 절대로 뒤로 넘기지 않는 아주 고약한 버릇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아직은 어린 나이로 커다란 머리를 가진 존재였기에, 이렇게 엎드려서 보다가 겨우 일어나서 자세를 바꿔 보아도 가히 이 무게가 내 몸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내 큰 바위 얼굴 때문에 난 오늘도 이렇게 미처 세 장을 넘기지도 못한 채 포기를 해야만 했다. '우씨. 이 망할 놈의 대갈통... 난 이래서 머리큰 놈들이 제일 미워~~!!' 퍽퍽, 이건 솔직히 내 오기에 대한 반감이었다. 거의 오기에 가까운 미련으로 알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한 책을 미처 읽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자해를 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스스로 머리를 세차게 두들겨 보아도 통통 소리만 요란했지, 정작 그림을 제외한 책의 내용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이렇게 또다시 하루가 가는구나하고 멍하니 엎어진 나였다. 그러나 하늘은 이런 나를 절대로 버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출렁. 마치 신의 도움이랄까? 아니면 나의 이 큰 머리도 이제 제대로 한몫을 단단히 하려고 한 덕분일까? 난 매우 힘들다는 표정으로 엎드려 있다가 아무래도 내 작고 가녀린 팔로는 제법 턱을 괴기가 힘들다는 생각에 몸을 옆으로 누이려고 했다. 그런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내 몸은 거침없이 큰 머리를 일으켜 세우더니 쿠션이 매우 뛰어난 내 침대에게 큰 충격을 주며 발라당 넘어졌다. 출렁. 출렁. 마치 물침대의 쿠션 마냥 침대가 비명을 지르면서 나에게 편안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다. 침대에 폭 파묻힌 난 또다시 습관처럼 작은 몸을 바둥거리며 내 허리쯤에 있는 책을 잡곤 간신히 들어올렸다. 거의 습관처럼 내 머리맡에 두고 또다시 느긋하게 낮잠을 자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팔랑. '응? 이건 뭐지?' 이 책을 가져와서는 그동안 고히 내 침대 머리맡에 만 둔 채 뒷장까지 들여다보지를 않았으니 이런 이상한 종이가 책장 사이에 끼여 있었는지조차도 난 몰랐다. 그런 조금은 무거워 보이는 책의 책장사이로 작은 쪽지가 고개를 내 밀다 내 눈앞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것을 발견한 난 그순간 어떤 강한 영감을 받았 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서 어쩌면 나를 도와줄지도 모를 이 문제의 쪽지를 향해 강한 째림을 선사했다. '이걸 봐야할까? 아니면 남의 편지일지도 모르니 보지를 말아야 할까?' 강한 의문을 주는 책답게 그 속에서 나온 쪽지하나에도 긴장을 하면서 난 그 쪽지에 망설임 없이 다가가는 내 오른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안돼.........이익. 말들어....." 그러나 나의 의지의 매서운 채찍질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내 본능이라는 말썽꾸 러기였다. 그리고 그 문제의 쪽지를 와락 쥐어 버린 내 또 다른 말썽꾸러기 오른 손을 다른 손으로 때찌를 하면서 '뭐 이왕 이렇게 잡은 거 한번 펼쳐나 보자'라는 합리화를 하는 내 한심한 자아였다. 그로 인해 내 눈은 벌써 활짝 펼쳐진 쪽지를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으잉? 이건..........." 작은 쪽지로 보였던 그 쪽지는 여러 겹의 접힘 속에서 점점 제법 큰 페이지로 변신을 하더니 이젠 그 속으로 시선을 돌리는 나에게 인간과 비슷한 체형을 지 닌 한 불쌍한 인체도를 선보였다. '호~. 이건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생겼네? 근데 왜 두 개의 띠가 인간의 몸을 관통해서 그려진 거지?' 나의 이런 의문처럼 그림 속에 나타난 인체구조는 지금 심장으로 보이는 부위를 중심으로 길 게 그려진 작은 선들이 고대언어로 추정되는 그림(문자)의 소개와 함께 붉은 점으로 작은 혈도처럼 보이는 곳들을 부연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는 선을 하얗게 그려서 더욱 붉은 점이 눈에 쏙쏙 들어오게 만들어주고 있었고, 심장을 네모의 큰 점으로, 그리고 하나의 선이 왼쪽으로 돌아 머리부위를 향해 올라가선 둥글 게 머리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인체의 명치 부분쯤에서 왼쪽 다리로 향해 바깥을 먼저 돌고, 다시 발바닥의 중심에서 다리 안쪽을 돌아 명치부분을 향해 가슴의 젖꼭지 부분을 감싸며 머리를 향해 가다 심장으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두 줄기의 선이 하나의 심장을 중심으로 또 다른 선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선을 이루면서 명치부분을 돌아 오른쪽 다리 안쪽을 감싸며 다시 발바닥의 중심부위에서 바깥쪽으로 돌아서 명치를 향했다. 그리고나선 결국 마지막엔 심장으로 들어오는 그런 그림이었다. 마치 내 눈에 쏙쏙 들어오게 하려는 듯 그림의 선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 그 선들이 마치 내 몸 속에서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며, 그렇게 한동안 그림 속에 있는 선들로 내 눈 속에 어지럽게 수를 놓게 만들고 있 었다. 그리고 그런 그림의 마지막 끝 부분에 적혀 있는 글자들은 전부 내가 모르는 언어들로 빼곡이 그려져(?)있었으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내가 알고 있는 딱 두 글자가 나왔다. ".......................친.......구.......%$@*$&^*@" 허~참. 이거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구만. 당최 알지도 못하는 글자들로 범벅이 되어있는 책이 왜 내 눈에 띄어서는 지금 날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지......... 매우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흠.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선들을 따라가면 내 몸이 시원한 느낌이 들던데........ 그치? 이 얄미운 먼지녀석아!' 놀란 눈을 한 채 날 내려다보고 있던 먼지녀석이 지금도 멍하니 날 쳐다보면서 작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 녀석. .. 내 머리카락사이에 숨어서 맨 날 머리카락만 배배 꼬더니 오늘은 왠 일이래?' 나도 신기하다는 듯 내 코앞에 가녀린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는 이 녀석에게 녀석과 같은 신기하다는 눈빛을 선사해주었다. 이 녀석은 마치 놀라운걸 보았다는 듯 작은 날개로 내 코를 간질이면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결국 난 점점 나오기 시작하는 재치기를 참다 참다 못해 강하게 밖으로 분출시켰다. "에에.........엣...취~!" 펄럭. 펄럭. 부비부비. '크크크. 짜~식. 되게 고소하다. 거봐. 네 놈이 날 간지럽히니깐 그렇게 콧물범벅이 되잖아. 깔깔깔. 글구 난 아직 애기란 말야. 당연히 침이랑 코를 흘려도 아~무 흉이 안 되는 거야. 그러니 그렇게 날 원망하는 눈초리로 째려보지 말라고..........쿡쿡쿡' 난 나를 바라보면서 지금도 열심히 얼굴과 몸에 묻은 내 코와 침으로 추정되는 끈끈한 액체를 부지런히 닦는 녀석에게 코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신경질적으로 바쁘게 손을 놀리며 온몸에 묻은 액체를 닦는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녀석은 나에게 강한 째림을 날리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난 나를 째려보고 있는 얄미운 녀석을 향해 결국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길이 없어 쿡쿡 거리며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러자. 이 건방진 녀석은 나의 웃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느닷없이 가녀린 날개 짓을 하다가 내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이내 방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호~. 저 녀석이 왠 일이지? 맨 날 내 옆에서 쫑알거리며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만 궁시렁 거리더니 이젠 나 보기가 싫어진 건가?' 조금은 내가 심했나 하는 죄의식을 받게되는 한 대목이었다. 허나, 저 녀석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걸 생각하면 절대로 이정도 일에 미안해 할 것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였다. 더구나 저놈은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보고 지낸 오랜 친구 놈이 아닌가?! 난 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에 엉덩이가 얼얼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다음, 제일 먼저 내 폐에 담았던 이곳의 공기 다음으로 내 주위에 있었던 가늘고 긴 실처럼 생긴 저 먼지녀석을 난 그때부터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오랜(?) 친구처럼 여겨지던 녀석이 고작 고만한 일로 삐질리는 없다고 자부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말뚱 거리는 시선으로 요람 안에서 큰 머리를 움직이지는 못하고, 눈만 말뚱 거릴 때부터 봐온 저 녀석이 급히 나에게서 멀어져 가자 오히려 내가 삐지는 듯 섭섭한 기분이 들 었다. '쳇. 얄미운 녀석. 맨날 앵앵거리는 날개 짓으로 내 귀만 간질이더니....... 이젠 감히 날 버리고 떠나가는 구나. 쳇. 흥흥흥. 이다. 어디 얼마나 잘먹고 잘사는지 두고 보자.' 잠시 화가 나서 삐지는 모드로 폭주한 나의 머리를 다시 응징의 주먹질(?)로 안정을 시키면서 난 조금씩 감겨오는 눈을 아주 다정하게 덮으며 그렇게 밤에 설친 잠을 보충하기 위해서 또다시 꿈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신룡의 후예 - 제 9 화 부우우웅. 작은 날개 짓이 제법 강한 소리를 내고 있는 곳은 싸이의 방에서 엘렌의 방으로 이어지는 긴 복도였다. 복도는 튼튼한 벽돌로 이어져 하얀 대리석 바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했고, 드문드문 난 우아한 나무 창틀은 세월의 힘 앞에서도 고색창연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런 복도의 여러 곳에선 신기한 양식의 그림들과 은색의 윤기 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을 바닥에 세운 채,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 부분을 누르고 서 있었다. 물론 그 갑옷들은 빈깡통들이었고,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긁힌 자국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과거 이름난 기사들이 생전에 입었던 걸로 보면 될 것 같은 갑옷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갑옷들의 광을 내기 위해 융처럼 보드라운 천에 기름을 발라 열심히 문지르고 있던 존재들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욱 자랑스러운 듯 열심히 그렇게 갑옷들과 여러 가지 장식품들에 묻은 먼지들을 말끔히 닦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먼지녀석이라고 불린 실프는 그런 자들을 무시하곤, 그들에게 때아닌 작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주면서, 자신을 이곳에 소환시켜 하급에서 중급의 정령이 되기까지 힘을 나눠준 주인을 향해 부지런히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갔다. 화사한 침실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주인 된 자의 단아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아이보리색에 가까운 천들로 백금으로 도금된 네 귀퉁이의 기둥들을 감싸고, 그 아래에 또 다른 흰색의 망사로 커튼을 친 침대와 그 침대를 중심으로 벽면에 걸려있는 대형 카페트와 십자수들은 정말로 이 침실의 주인이 고아한 취향에 여성이라는 걸 한눈에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응? 실프?" "베에에에~~" 실프는 자신을 소환시킨 주인을 만나자마자 아주 다급한 표정으로 심한 날개짓을 하고 있었다. 아직 중급이라서 말문이 트이지 못한 실프는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로 날개짓과 더불어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들을 연신 엘렌에게 전하고 있었다. 이는 텔레파시라고도 하는 염력에 의해 뇌파와 뇌파가 공명하는 두 존재에게는 특별히 필요가 없는 행동들이었다. 허나, 주인된 자 엘렌에게 종속된 실프로썬 정말로 다급했던 것이다. 자신은 오직 주인의 명에 의해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 주인 된 자는 자신의 힘을 새롭게 업그레이드까지 시켜줬으니, 지금 실프가 자신이 보고 놀란 것들을 엘렌에게 전달 할 때에는 더욱 과장된 표현들이 반드시 필요했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니깐. "뭐? 그게 정말이니?" -끄떡끄떡. "호호. 진짜로?" 주인의 기뻐하는 탄성에 절로 고개라 움직이는 실프였다. 그리곤 그 큰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작은 실프였다. -깜빡깜빡. "알았다. 그럼 어서 가서 계속 네 녀석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부우우웅. 실프는 주인의 미소에 잠시 자신이 전한 이야기들이 제대로 전달되어 졌다는 자부심이 들어 살짝 미소로 답하며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나선, 잠시 뒤를 돌아서 생각에 잠긴 듯한 주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본 뒤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엘렌은 지금 그녀에게 와서 보고를 마친 실프로부터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 다. 예전에 아들녀석이 태어날 당시 만해도, 갓난아이로 주변의 마나들을 아주 쉽게 접하는 이상한 체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아들이 점점 크면서 자기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땐 드래곤인 그녀자신도 엄청 놀랐던 것이다. 왠지 아들녀석이 주변의 마나들과 손쉽게 친화력을 이루며 몸 안에 받아들이는 모습이 이 다음에 마법과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해서 그녀는 그런 아들을 위해 아직 제 몸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연약한 아들이 주변의 마나들을 마구 분별 없이 받아들이면, 몸 안에서 생기는 반발력으로 인해 다칠 것 같아 내심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마나들이 만약에라도 아들의 몸 안에서 통제를 벗어나 크게 부딪히며 다칠 것을 염려한 엘렌으로썬 아들의 방에 치유주문과 더불어, 아들의 기운과 가장 흡사한 바람의 기운으로 다른 성질의 마나들이 변할 수 있 게 일반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마법진을 만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던 엘렌은 아들을 위해 하급의 정령을 불러 아들을 보호하게 해두었지만, 아장아장 기어다니는 아들녀석이 고작 한 살의 나이에 스스로 순수한 힘으로써 하급정령인 실프의 힘을 무시하게 된 일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실프가 자신을 함부로 붙잡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자연스럽게 주변의 마나들을 흡수해선 그 힘으로 하급 정령인 실프를 무찔러 버리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일인 것이다. 왜냐면, 하급 정령이라곤 해도 인간의 몸으로썬 감히 거부할 만큼 약한 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3써클에 처음으로 올라선 인간들의 마법사는 자신이 하급 정령 하나를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정신력을 소모할 정도로 정령들의 힘은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엘렌은 너무도 황당한 현실을 접하게 되자 급기야 아들이 치유주문과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벗어나도 아무 상관이 없도록, 용언마법으로 특별히 제작한 팔찌를 아들의 팔목에 채워줘야만 하는 사태를 얼마 전에 맞이한 적이 있었다. 이는 주변의 마나와 몸 안에 있는 마나들이 결국 크게 부딪혀 아들이 며칠동안 의식불명이 된 적이 있었기에, 그녀로썬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여간 자신만큼이나 별난 아들이라고 애써 놀란 가슴을 달래는 엘렌이었다. 그 때문에 아들의 별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던 엘렌은 어쩔 수 없이 잠시 외곽으로 이동을 해 본체로 현신 하였고, 그 드래곤 자체의 막강한 육체에 담겨진 마력으로 아들을 위해 8써클(인간기준)의 마법주문이 새겨진 팔찌를 만들어 채우면서부터 다소 안심을 할 수 있었던 엘렌이었다. 또한 그뿐만이 아니였다. 하급의 정령으로도 감히 제지를 못하는 아들이라면 그보다 더 힘쎈 존재를 부르면 된다고 생각했던 엘렌은, 급히 전신의 힘을 동원해서 중급의 정령들을 소화하려고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힘은 아들의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던 실프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버리고야 말았다. 이건 엘렌 자신이 잠이 든 아들 곁에서 실프를 불러 낸 다음, 새로운 종속자를 소환하던 와중에 생긴 황당하다 못해 우스꽝스런 사태였다. 어찌 마법의 종족인 드래곤이 이런 실수를 다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내심 아직까지도 그때의 일이 이해가 안되는 엘렌이다. 허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전의 매우 황당한(?) 일로 인해 엘렌의 힘을 받아 중급의 정령에 버금가는 힘을 지니게 된 실프 녀석이, 지금 그녀에게 와서 떠든 말은 매우 놀라운 것을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들이 벌써부터 드래곤인 엘렌 자신도 어릴 적 함부로 못 다룬 마나들을 스스로 제어를 하며 다룬다니....... 비록, 자신이 해준 팔찌덕분에 스스로의 의지로 마나들을 자연스럽게 몸 안에 받아 들일 수는 있을지라도 아직 어린 아기인 아들이 벌써부터 자기 맘대로 마나들을 움직인다니.......... 이건 드래곤인 자신도 거의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들이었다. . 그것도 거의 중급의 실프 녀석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막강한 힘들이라 니........ 이러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감히 어린 해츨링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중급의 정령들을 스스로 몸 안에 모은 마나로 쉽게 불러내거나 거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지금 엘렌에겐 하나의 작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고슴도치도 자기자식만은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더니만.......... 그녀도 역시 한 명의 강한 엄마였던 것이다. "호호호. 역시 드루시안이라고는 해도 드래곤인 나의 위대한 힘을 이어받은 아들이라서 그런지 너무도 신기하단 말야. 오호호홋." 너무도 기뻤다. 그냥 지금의 행복한 느낌 그대로 영원히 살고 싶은 엘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헤츨링 일 땐 거의 잠만 자는 존재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당당히 물려받은 드래곤이라는 존재로 무수한 사랑 속에 자라났기에, 그 심할 정도의 진한 애정공세 덕분에 배운 지식들로 인해 어느 정도 마나라는 대지의 기운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일이 쉽게 되었지만, 지금 성룡이 되어 처음으로 가진 인간의 유희생활과 그에 따르는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낳아본 인간의 자식이 부디 건강하기만을 바랬는데........... 처음 태몽부터 신기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아들녀석이 이젠 감히 헤츨링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하는 중급의 정령들을 마음대로 떨쳐낼 수 있는 힘을 몸 안에 갈무리 할 정도의 높은 경지에 이르다니........ 그저 이 일에 대해선 너무도 놀라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라도 달리 할말이 없었 다. 엘렌 자신도 헤츨링을 벗어나서도 근 500년 정도의 시간들을 레어에서 보내며 마나들을 충실히 몸 안에 담았었다. 그리곤 점점 커져 가는 거구의 몸만큼이나 거대해진 마나들로 성룡이 된 지금에서야 겨우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중급의 정령들이었다. 헌데 고작 2살이 채 못된 아들녀석이, 그것도 인간의 모습으로 낳았기에 변종이 틀림없는 드루시안 녀석이 그렇게까지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니....... 그것도 자신의 어린 의지 하나만으로........!!! 그저 꿈만 같았다. 왠지 인간의 모습을 한 아들이지만, 드래곤들의 유희가 끝나면 반드시 버려져야 할 존재인 여타의 드루시안들과는 달리,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로 태어난 자기 종족의 아들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 엘렌이었다. 역시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엘렌은 강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엄마였기 때문이다. 달리 어디 가서 특별히 자식자랑을 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이젠 조금씩 커 가는 아들녀석을 바라보다 보면, 언젠가는 이라는 아주 당연시되는 미련이 강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조금씩 생겨나는 그 욕심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녀였기에, 아마 지금 그녀의 생각대로 된다면 이다음에 진짜로 큰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 는 어느 늦은 오후 강한 엄마이자 초보 엄마인 엘렌의 행복한 한때였다. 신룡의 후예 제 10 화. "태초에 이 세상을 나누시메, 그 큰 무리를 넷으로 나누시고, 그 하나마다 각각의 명계를 두시며, 그 속에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신 위대한 내 아버지 창조주시여. 여기 당신의 순한 종인 저희들이 감히 고하건데, 왜 그들에게 그토록이나 영원한 자유를 주셨나이까? 아마도 당신의 그런 자비심으로 인해 그들의 오만 방자함은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옵니다. 또한, 당신께선 그들의 오만함을 영원히 모르실 것이옵니다. 우리 당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져 신이라 이름을 부여받은 존재들조차도 그들의 냉대에 이토록이나 치를 떨건만, 당신께서는 어찌 이토록 그들을 별개의 존재로 만들고자 하시옵니까? 위대한 나의 아버지 창조주시여. 여기 미흡한 당신의 자식이 이렇게 간청 하옵건데, 제발 그들의 오만방자함을 제지할 수 있는 힘을 저희들에게 내려주소서. 하여 그들이 더 이상 위대한 창조주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들을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들이 그들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정령의 자유에 관하여" - 음유시인 Ella Fitzgerald의 한 대목 中에서> *먼지 녀석과 새로운 변화의 시작* 소년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얀 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언덕 위에서 느긋하게 누워 작은 입가에 가는 풀피리를 입에 물곤, 언젠가 어릴 적 달콤한 행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소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두 눈 속에선 예전의 행복했던 시절이 가득 떠오르고 있었고, 그렇게 소년은 달콤한 미소와 함께 옛 시절의 추억에 온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누군가의 기운에 잠시 행복에 젖었던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면서, 영원히 깨기 싫은 행복한 추억이 또다시 누군가의 방해로 인해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자, 소년은 잔뜩 성이 난 얼굴을 환한 태양에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 소년의 손엔 자신의 달콤한 꿈을 깨게 만든 존재를 향한 타오르는 복수심을 표출하고자 붉은 검이 꽉 움켜져 있었고, 이내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색의 검을 누군가에게 힘차게 휘두름으로써 자신을 방해한 누군가를 깔끔히 정리하려는 소년의 의지가 뒤를 이었다. 휘이잉. 꿈속에서도 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인상은 구겨질 때로 다 구겨져 한쪽 손에 흐르는 핏방울들을 무시하며 조금 전, 자신의 공격을 여유 있게 피하며 검을 쥔 손에 상처까지 입힌 존재를 향하여 더욱 강한 일념으로 검을 내뻗었다. 그러나...... "붉은 검의 주인이여. 이제 그만 그대만의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처음으로 꿈속에서 들린 상대의 목소리였다. 하얀 얼굴에 그보다 더 하얀 느낌을 주는 은발을 길 게 늘어트린 청년이 소년의 상처 난 팔을 움켜쥐자, 주인의 강한 의지를 받아 더욱 기승을 부리는 붉은 검이 성난 분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허나 은발의 청년은 그런 붉은 기운들을 싸그리 무시한 채, 소년에게 점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뒤, 이 의문의 사내는 하얗게 변하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소년의 머리 위에 올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그대로 시간들이 멈추는 듯한 착각이 일만큼, 소년은 멍하니 자신의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낯선 기운들을 느끼며 어느새 몸 전체를 감싸기 시작하는 이 은발의 사내의 기운에 스스로 동화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년은 점점 허물어지듯이 자신의 몽롱한 의식을 잃었다. "후후후. 그대...신의 .......자식........" 점점 멀어져 가는 은발의 사내와 그 소년을 바라보던 또 다른 꿈의 주인공인 소년은 속으로 안돼~! 라는 안타까운 외침을 외치며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헉....헉.......헉.....왜찌?" 난 또다시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잠시 닦아내며, 그 갈색머리의 소년이 은발의 친근감을 주는 꿈속의 사내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왜 생기는 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막연히 그런 싫은 느낌만이 떠오를 뿐 무언가 집히는 문제점들은 없었다. "히유~~~" 그저 이렇게 답답할 땐 큰 한숨만이 최고였다. 하지만 언제 나타난 것인지 먼지녀석이 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내가 약간 더운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채곤 땀방울이 맺힌 이마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후아~! 시원~하다. 크크크. 역시 저 녀석은 내 마음을 아주 자~알 알고 있단 말야. 흠. 잠시 이대로 시원하게 있어 볼까?' 난 그러면서도 왠지 꿈속의 낯익은 은발사내의 정체에 대해 강한 의문이 일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보았다는 기억이 내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최대한 머리를 굴리며 그 사내가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요 며칠동안 본 사람들의 존재를 전부 떠올리며 그 꿈속의 사내와 매치를 시켜 보았지만, 역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엔 그런 탐스런 은발을 지닌 사내들을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나랑 가장 친한 존재들은 하나같이 화려한 금발을 탐스럽게 기르고 있었기에, 나의 이런 의문은 한참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휴, 도대체 누구야? 분명히 볼때마다 나한텐 매우 소중한 사람중에 한사람이 분명하다고 느껴지는데.......참 답답하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 이런 느낌은 정말로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내 머리맡에 놓여진 책으로 잠시 시선이 간 난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스친다는 느낌과 함께 화들짝 놀라버렸다. '분명히 요 근래에 내가 본 사내가 확실했어.' 허겁지겁 책장을 넘기면서도 난 내 자신을 믿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사내가 확실했기에 난 내가 요 근래에 들어서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기억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의 뛰어난(?) 기억력을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문제의 책 속에서 드디어 발견할 수가 있었다. '홀홀홀. 역시.......근데 이 사내가 누구길래.......' 한참동안이나 머릿속이 복잡하던 것이 한순간에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 친근감이 절로 일던 사내는 여러 장으로 된 그림 속의 한 사내였던 것이 다. 난 한참을 은발의 사내가 그려진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허나 또다시 사내에 대한 설명으로 추정이 되는 글들 속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만이 적혀 있었다. 결국 난 실망을 하며 그 사내의 정체에 나름대로 정리를 내리며, 이 책을 갈리아스 전기라고 내 스스로 이름을 지으며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햐~. 갈리아스 전기라.......하긴 내가 알 수 있는 단어 중에서 유일한 이름이 갈리아스이니.....뭐" 내가 이 책을 본지 꽤 많은 시일이 지났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떠들어대면서 갈리아스인지 뭔지 하는 어떤 사람이 나오는 책을 난 과감히 덮고야 말았다. 이 넓다고 표현이 되어 있는 카빌라이 대륙 전체를 괴롭히던 자들을 맞이하여 자신의 동료들과 그들을 무찌르는 내용을 마치 일기장처럼 구성해 놓은 이 책에 난 더 이상 흥미가 일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이 책을 따라서 별책부록처럼 나에게 온 그 인체 구조도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아주 훌륭한 그림이라는 것만이 나의 작은 만족감을 성취시켜 주었다. 이건 정말로 큰 비밀인데, 사실 난 요 근래 들어서 매일 마다 이 인체 구조도를 보는 낙에 산다. 왜냐면 신기할 정도로 이 그림을 내 앞에 펼쳐놓으면 내 눈은 거침없이 그림 속을 노닐기 시작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머릿속엔 온통 그림 속에 그려진 가는 선들이 마구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면 내 몸과 마음은 완전히 나만의 별천지에 온 듯한 작은 쾌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나와 이 세계가 어차피 전혀 다른 느낌이듯이,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이 말 그대로 완전한 자유를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비록 이런 느낌은 잠시지만, 난 이런 기쁨을 태어나서 첨으로 받게 해준 이 책을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겨놓으며 나만의 비밀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책도 내 소유가 될 도서관에 있는 책들 중 하나라 별로 큰 걱정이 되지 않는 나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평소 내 주위엔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누구든지 이 책을 들여다보는 건 매우 불쾌한.........마치 어린아이 같은 독점욕이 원인이기도 했다. '흠. 어디 보자. 그러니깐 이 글자들이 가리키는 곳이 인체의 중요 부위들인데........쩝. 이건 내가 알고 있는 의학상식과는 전혀 무관한 것일세. 오히려 예전에 장난삼아 보았던 그 무협진가 뭔가 하는 황당무계한 책들 속에서 나오는 인체의 혈과 비슷한 느낌이네. %$#*@이라는 건 심장?......에이 모르겠다.' 난 이 신기한 그림에서 평소처럼 눈을 떼지 못하고 집중을 하고 있었다. 가끔씩 내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난 이상하게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들이 차차 안정이 되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그림에 빠져서 몰두하는 순간마다 내 왼손에 차여진 팔찌가 환하게 빛을 내는걸 나는 이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저 내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이 신기한 일에만 몰두하며 그림 속에 있는 하얀색의 선들을 따라 내 시선을 둔 채, 난 열심히 그 선을 따라 내 몸 안에서 반응하는 무언가를 느끼려고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평소보다 더욱 시원한 느낌이 내 몸을 완전히 꽤뚫고 지나간다고 생각되던 그 순간 난 확연히 깨달았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인 듯한 낯선 기운이 내 몸과 마치 하나가 되려는 듯 나를 감싸는 느낌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환하게 내 몸을 감싸듯 빛을 내는 팔찌가 점점 강한 기운들을 내 몸 주위로 마구 잡아당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팔찌의 효능을 처음으로 발견한 난 멍하니 내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내려다보면서 그제야 내가 이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 팔찌를 차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저 어린아이의 팔목에 채워지게 만들어져 그저 참 이쁘다 라는 생각만 가졌던 물건이었건만, 오늘에서야 이 신기한 팔찌의 효능을 보게 되다니............ 서로 다른 색깔의 다섯 가지 보석들과 그 중앙에 큼지막하게 자리잡은 푸른 다이아몬드가 점점 나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착각을 일으키며,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 내 눈에 팔찌와 그림들이 하나의 선을 연상시키고 있었 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휘이이이잉. 잠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결을 매만지고 달아나듯 내 주위를 얼쩡거려도, 난 여전히 조금씩조금씩 내 머리 속을 차지해 이젠 오로지 머리 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하얀 선들을 그 순간 최초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신기한 어떤 기운이 내 몸 안을 맴돌고 있는 착각이 들며 이 신기한 팔찌를 통해서 내 주위의 기운들이 마치 내 몸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싸이야~! 밥먹어야지~!!" 문득 들려오는 경쾌한 발걸음소리에 차차 정신을 차리면서 난 아직도 작은 빛이 나고 있는 팔찌를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이 팔찌를 나에게 선물한 게 아마도 엄마라는 사실을 그제야 생각해 낸 것이다. 난 점점 나에게 다가오시는 엄마의 환한 미소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너무도 감사했기에....... 내가 이 세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에게 정을 느끼게 해준 분이 바로 이분이었기에........ 난 이분이 너무도 소중하게 생각되어졌다. "헤~~ 엄마~~~쪼옥~♡" 엘렌은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의 방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바람의 기운들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소중한 아들의 몸을 중심으로 바람의 기운들이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가만히 회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가슴 설래여서 엘렌은 이 대견한 아들을 번쩍 안아주었다. 쏴아아아.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향해 강하게 도전을 해오는 바람들이 아들과 그녀를 철저히 가로막으려고 했다. 마치 자신과 아들을 하나의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으며 그 속에서 아들을 보호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허나, 이런 느낌도 잠시. 마치 작은 벽이 되려고 하던 바람의 기운들은 엘렌의 품에 안기자마자 방긋 미소를 지으며 부비부비를 연발하기 시작하는 싸이벨리에 의해 순식간에 잔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싸이벨리의 편안한 미소를 바람의 기운들이 접하기가 무섭게 조용히 가라앉기 시작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된 엘렌이었다. '호. 이녀석. 이젠 우리 종족의 특유의 기운인 바람의 기운들로부터 벌써 스스로 보호를 받는 건가? 으응? 그런데 왜 이 기운들 속에서 누군가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것이지? 이거 확실히 어디선가 한번 맡아 본 것 같은 냄새인데. 누구지? 최상급 정령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렌은 아직까지 드래곤인 그녀자신 조차도 보지 못한 낯선 존재의 냄새에 잠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보호하려는 듯한 존재의 느낌에 엘렌은 잠시 긴장했던 마음을 풀기 시작했다. '허긴. 내가 아직까지 귀찮아서 안 만나 본 것들이 제법 많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드래곤인 자신에게 감히 덤빌 존재는 없었다. 그 때문이라도 태평스럽게 의문을 접고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식당으로 향하는 엘렌이었다. 이 또한 드래곤이라는 자부심이 불러일으킨 엘렌의 대담한 행동들이었다. 만약 그녀가 조금만 더 성숙한 드래곤이었다면 절대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의 에이션트 급에 가까운 드래곤들도 함부로 막지 못하는 자의 냄새를 우습게 여기는 웜 급에 갓 올라선 엘렌이었기에 그나마 가능한 행동들이었던 것이다. 무릇 정령이라 하면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의 기운들을 말하는 것이 다. 이 조화로운 세계에 신의 의지를 전하는 매체이자, 그 기운들의 주인 된 자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정령들이었다. 각각의 정령들에게는 그 특유의 강한 기운의 냄새가 퍼져 나오고,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자들은 이 기운들을 이용해 이 세계의 파괴를 일쌈기도 하고, 또는 복구시키기도 하는 존재들이기에 그들만이 유일하게 정령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이라고 해도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정령의 세계와 그들의 성장과정들이었던 것이다. 정령들은 신기하게도 각각의 계급들을 가지고 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아직까지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드래곤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들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 한 권의 책 속엔 정령들과 신들의 오묘한 관계가 조금 적혀 있었던 것이다. "창조주께서 수많은 별들을 생성하시고, 그 속에 각각의 기운을 지닌 존재들을 새롭게 빚어 내셨으니. 그들이 바로 정령들이다. 수많은 차원들이 저 밤하늘의 별들처럼 수없이 존재하는 곳에는 언제나 그들이 존재했다. 정령들은 창조주의 계시에 따라 자신을 밝히며 다른 생명들에게 작은 힘을 나누어준다. 마치 환한 빛을 불사르며 사라져 가는 촛불과도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기운으로 다른 이들에게 힘을 전해주며 그 신의 사명에 만족해가며 그렇게 덧없이 사라져만 간다. 허나, 그 아래 모든 신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공간들이라고 해도. 정령들은 절대로 신들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께서 그들의 희생에 대한 작은 선물이기에. 모든 신들은 그들을 대함에 있어, 절대로 자신의 종속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드래곤들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의 친구들이자 영원한 가디언인 정령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들을 전해 주지만, 그 정령들의 약속만을 상기해 보면 우린 그들의 영원한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단지 하나의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해 그들은 순순히 우리를 따라주는 것 일뿐이다." 쥬세페 일리안력 4327년 12월에 위대한 존재 신룡 헤르야킨이 남긴 다. 엘렌 또한 지고지순한 존재인 드래곤이었기에 그녀의 위대한 선조가 남긴 정령에 대한 기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 알고 있는 정령들의 냄새를 떠올리며 왠지 친숙한 이 기운들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했지만, 지금 품에서 쫑알거리듯이 입을 삐죽이며 연신 뽀뽀를 해대는......귀엽고 사랑스런 아들 덕분에 그런 존재의 냄새를 금새 망각해 버린 것이 어쩌면 대담한 행동의 원인일수도 있 었다. 잠시 후. 엘렌이 사라진 방안의 한쪽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속에서 맑고 투명한 인간의 형체가 어리더니 금새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들어냈다. "후후후. 위대한 실버 일족의 에르킨 갈리아스님의 외동딸 헬렌님~! 아직 저와는 계약을 하시지 못했지만, 부모님들의 친구인 나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부디 우리들의 위대한 주군이 되실 분을 잘 키워주시길........" 이 흐린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내가 내뱉은 말은 정말로 큰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또한, 엄청난 기운을 몸 안에 갈무리한 사내의 웃음 속엔 행복한 미소가 어우러져 있어 지금 이사내의 말이 절대로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 했다. 그런 그가 방안에 모습을 나타내기가 무섭게 그의 몸 주위에 나타나 맴을 돌고 있는 먼지녀석과 그의 동료들은 그 사내를 보는 것이 너무도 행복한 듯, 장난기 많은 몸짓들로 사내를 반겨주고 있었다. 사내 또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더욱 자신을 감싸고도는 작은 먼지처럼 생긴 기운들을 따뜻하게 다독여주고 있었다. "훗, 녀석들. 내가 그리도 반가운 것이냐? 후훗. 자. 이제 내가 여기 온 목적은 확실히 하고 가야겠지?" 사내가 웃음기가 감도는 얼굴로 자신의 뺨을 간질이는 먼지녀석 실프를 지긋이 응시하자, 실프는 자신의 왕인 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감미로운 미소에 취해 멍하니 흐린 눈동자를 보이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사내는 익숙한 눈짓 하나만으로 주위의 다른 기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는 실처럼 보이던 작은 기운들이 서로 앞을 다투며 사내의 명에 따라 멍한 눈의 실프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내는 작은 미소를 연발하며 자신의 목적을 완수한 듯 기분 좋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허나 이런 것도 잠시. 사내가 싸이벨리의 침대에 놓여져 있는 책을 향해 시선을 한번 던지더니 작게 고개를 끄떡이며, 나타날 때처럼 한쪽 공간을 찌그러트리면서 그 속으로 몸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밝은 빛의 구체들로 몸을 감싸며 장난을 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멍한 눈의 실프와 작은 기운들은, 점점 작아지는 구체들과 더불어 그렇게 먼지처럼 다시 자신들의 모습을 공기 속으로 사그라트렸다. 신룡의 후예 - 제 11 화 참방.참방. 따뜻한 욕조에서 하는 목욕은 정말로 신이 난다. 더구나 나만을 위한 목욕시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신이 난다. 항상 청결을 유지하며 뽀사시한 피부를 윤기 있게 만들어주는 목욕과 이제 점점 더워지고 있는 바깥 날씨를 생각한다면, 온몸이 나른하게 퍼지는 이 욕조에서 보내는 즐거운 오락시간은 나에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게 바로 누군가하면 나의..........크윽. 나의 사촌누이이자 엽기공주 시넨이다. '끄응.......근데 쟤가 왜 갑자기 여기에 나타나?' "헤헤. 안녕. 쪼옥.......할짝할짝." "윽. 디러. 시로. 할찌마~~" "헤헤. 우리아빠는 내가 이렇게 해주는 게 가장 기분 좋대. 넌 시러?" "윽. 그럼 이 디러운 찢이 뭐까 그리쪼아?" "우응. 이쌍하당." 절레절레. '쳇. 꼬락서니를 보니깐 너가 왜 들어왔는질 대충 짐작하겠다. 어이구. 여자애가 되어 가지고선 그게 뭐냐? 온 몸에 흙이라는 건 혼자 다 묻히고 있는 것처럼 그 시꺼먼 손과 발. 그리고 뭔지는 몰라도 얼룩진 얼굴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무튼 그것보다는 지금 얘가 왜 이리 들어온 거지? 내가 있는 곳말곤 목욕탕이 없나? 아님 사람들이 없나? 왜 남자인 내 앞에 발가벗고 나타나는 거냐구~~! 내가 아무리 어린 아기라고는 해도 엄연히 정신연령이 다른데........ 크윽.저 조그만 덩치에 볼록 튀어나온 공포의 뱃살하며............. 흑.......오늘밤 잠은 다 잤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난 지금 점점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슬그머니 나의 전용욕조를 독차지하려는 시넨의 악랄한 욕심에 맞서서 용감히 싸울 결심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감히 내 욕조에 들어와선 나 보란듯이 점점 중앙으로 깊숙이 들어오더니, 나를 욕조 끝 부분까지 밀려나가게 했음 됐지. 이젠 감히 내 전용욕조에 입을 묻곤 더럽게 뽀글뽀글 거품을 내기 시작하고 있 다. 근데 왜 아랫배 부분이 따뜻해지는 거지? 그리고 저 반짝이는 눈동자는 도대체 뭐야? 이까짓 건 좋다 이거야.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니깐. 근데 이제는 왜 자기 입에 들어간 물을 내 얼굴을 향해 뿜기 시작하는 것이냐고 ~!! '흑. 이놈의 머리통. 참 크기도 하지요~~! 요리 피해도 촤악. 조리 피해도 촤악. 으으윽. 이건 도저히 피할 곳이 없는 불쌍한 내 머리통.' 이익. 도저히 못 참겠다. 왜 자꾸 내 머리를 향해서 물을 뿜냐구~~. 철썩. 철썩. 분에 넘치는 나의 행동은 급기야 애들 물장난하듯이 작은 손에 물을 한웅큼 쥐어 시넨에게 뿌리는 시늉처럼 되어 버렸고, 그런 나의 장난(?)에 반응한 엽기공주 시넨의 장난은 아예 나에게 육탄돌격을 하는 것으로 되돌아 왔다. "꺄르르르. 이야~~~씬난따~~" 첨벙. 풍덩. "캑. 꼬르르륵" 바둥바둥. '컥. 나.....좀....살려 줘........!! 꿀~꺽.' 이 망할..... 어째든 난 너무도 거대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지금의 내 가녀린 팔 다리론 감히 저 빵빵한 뱃살을 가진 시넨의 강한 태클을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그 뒤를 따르는 강한 충격에 의해 난 어쩔수 없이 욕조의 물을 한웅큼 정도 들이마시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분명히 아까 저게 얼굴을 발그스름하게 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그럼 혹시 이 물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나 쭈거~~~우엑~~......" "헤헤헤헤. 머겄따. 분명히.......먹었찌?" 아니 저것이 지금 누구한테 손가락질에 코웃음까지.........?! 뿌드득. "으엑~~. 이띠 너~~~" "캬캬캬캬. 내 오쭘 먹은 싸~~이~~!" 컥, 기어코 시넨의 입에서 터져 나온 확인 사살. 내 약한 비위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구토가 일었다. "으.........우엑........주르르" 난 이 황당하다 못해 엽기적인 공주의 만행에 오늘도 이렇게 욕조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속에 들어간 요상한 물을 조금이라도 내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먹은 게 시넨의 오줌이 맞았을까? 그냥 밍밍한 물맛뿐이었는데.... 이익. 아니야. 저게 분명히 오줌이라고 했으니..... 우엑.....주르르르...... 으~ 분통이 터진다. 이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감히 나한테 물 먹이는 걸로는 모자라 자기 xx이 섞인 걸 먹이다니......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며 더욱 기승을 부리는 충동 욕구였다. 그러자 이런 내 속마음을 자~알 알았다는 듯, 나의 아랫배에서 뭔가 강한 욕구를 마구 뇌에 전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쿄쿄쿄. 그래! 너도 어디 한번 당해봐라.' 이젠 자기 오줌이 섞였다고 선포를 한 물 속에서 여전히 참방거리며 신나게 손뼉을 치고 있는 이 황당한 공주를 위해 내가 세운 계획은 아주 다양했 다. '사내녀석이 오기가 있지. 이대로 당하고는 못산다. 내가..' 우선 난 나의 아랫배를 또다시 강하게 잡아당기는 신경에 따라 느긋하게 다리를 쭉 뻗으며 시넨 누이의 얼굴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익. 조금만 더....그래.....신호가 온다. 이야~~압' 촤아아악. 나의 강한 의지와 욕구가 때를 맞추어 드디어 거창한 복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순간, 내가 지금 뭐 하려고 저러나 하는 호기심 어린 시넨의 얼굴은 금새 나의 아랫배에서 나간 작고 강한 한줄기 따뜻한 물에 강타를 당하면서 나에게 멋진 복수라는 단어를 만들어 주었다. 방금 내 아랫배를 무언가가 빠져나가 밖으로 강하게 분출되면서, 급기야 시넨의 머리와 얼굴을 그 무언가가 직격으로 그리고, 장렬하게 강타시켜 버린 것이다. '음훼훼훼훼훼훼.....캬캬캬캬. 쿠휄휄휄휄.....어떠냐~ 나의 이 비장의 무기가 ~~!!' 난 내 뜨거운 물줄기에 쫄딱 젖은 시넨을 보며 멋지게 승자의 미소를 지어 주었 다. "꺄~악. 이.....이익. 퉤~! 이건 모야~?! 찝찌름 해." 그 순간 너무도 통쾌했다. 지금 자기 얼굴에 묻은 뜨거운 물줄기를 두 손으로 닦으면서 시넨은 대충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었던지, 뽀루퉁한 얼굴로 나에게 강한 째림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시넨을 보면서 난 더욱 신이 나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보냈다. 그러나....... '끄응~! 헉. 이게.........안돼.......이건...........' 바둥바둥. 너무 힘을 주었던 까닭인지, 난 나의 몸이 급하게 아래로 미끄러지는 느낌에 아랫배에 더욱 힘을 주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허나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내 몸과 물이 잔뜩 든 욕조는 나의 자유로운 움직임 을 조금이라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미끄러지는 몸과 욕조에 섞인 다른 물들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눈을 꼭 감아야만 했다. 차마 다시 먹기 싫은 그 다른 물만 생각하며 잠시 온몸에 힘을 주자, 그 덕분에 무언가 또다시 나의 몸 안에서 아주 자유로운 해방감을 맞으며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난 그 느낌에 기겁을 하면서 마구 손을 휘저으며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허나 이런 나의 몸부림은........... 둥~~둥~~"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만 것이다. 너무 창피해서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넨은 아무런 눈치를 못 챘는지, 이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이 보면서 자기 얼굴에 묻은 무언가를 연신 닦고 있었다. "으이씨....이 뜨거운 물은 뭐야? 이잉. 찝찝해...어푸어푸...." '그래, 착하지. 고기까지만 해라. 응~!! 고기까지~!! 니가 싼 오줌과 내 오줌 물에 섞인 물로 세수하는 것까진 좋은데.... 제발 그건....안.......돼~!!' 난 말끔히 세수를 마친 시넨이 신기한 눈빛으로 물위에 떠다니는 무언가를 쥐려고 하자 시넨에게 강한 외침을 선사했다. "안~~돼~~!!" 그러나 이런 간절한 나의 외침은 이내 그녀의 엽기적인 발언에 희석이 되어 버렸 다. "헤헤헤. 이게 뭔데 ? 뭔데 안된다고 하는 거야? 으응? 이거 설마 너 혼자 먹끌려고 감쳐뒀던 거 맞지? 이잉. 이거 아주 따끈따끈하다. 헤에~덥썩. 킁킁. 우~엑" "이.....이익. ...........이 엽기........저리 치워~!" 참나. 내가 예전에 얘가 내 전용 이유식을 가지고, 입에도 안 들어가는 그 큰 숟가락으로 빼어먹을 때부터 알아봤다. 허참. 욕심낼 게 따로 있지. 그래 이젠 나의 떵(?)까지 욕심을 내냐~?! 마치 내가 먹을 것을 숨겨두고 있다가 자기한테 들킨 것처럼 굴던 시넨은 급기야 물위에 동동 떠다니는 그것을 두 손으로 덥썩 쥐더니, 나한텐 절대로 안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는 눈빛을 빛냈다. 그리고 나선 한 입에 그 말랑말랑하고 따끈따끈한 그것을 단숨에 덥썩 집어넣으며 맛이 요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큰 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 했다. 그후, 자기의 뾰족 하면서도 고운 선이 인상적인 코로 손에 묻은 그것들의 파편 냄새를 맡더니, 입안에서 이미 죽처럼 퍼져 버린 그것들을 내뱉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울상이 된 얼굴로 나한테 마구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양손에 잔뜩 묻은 그것(?)들의 파편들을 가지고....... 왜? 나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음, 당연히 하려고 하는 게 맞겠군. 그러나, 순순히 당할 내가 아니다. '나도 이젠 제법 살이 쪄서 힘 하나만큼은 너한테 안 진단 말야!!' 불끈. "이익. 저리 치워~~!" "우엑......우아아아앙. 시러시러. 너도 머거봐~~! 너~또~~~!! 이이익" '우띠. 이놈의 계집애가 무슨 힘이 이리 쎄~! 이익. 이게 어디 내 얼굴에...' 난 한참을 그렇게 그녀의 파편이 안 묻은 팔목 부분을 거머쥔 채, 그녀와 힘 겨루기가 아닌 힘 겨루기를 한동안 해야만 했다. 잠시 나의 이런 오락시간을 더욱 즐겁게 해주려는 배려로 유모가 데리고 나간 하녀들이 내 욕조의 따뜻한 물 온도를 신경 쓰면서 뜨거운 물을 한 통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난.......... 난 정말로 아무 일 없이 쌩쌩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크윽......지금도 그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다 돋는다. "어머. 저하~!. 공주 마마?" '쿄쿄쿄. 저 하녀의 표정이 가관이군..크크크. 어떠냐? 이래도 나한테 까불래?' 난 의기양양한 얼굴로 울상이 된 시넨공주를 강하게 째려보며, 약간의 방심 아닌 방심을 하게 되었다. 그게 바로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온 시넨의 강한 어퍼컷에 고만............! 퍼억, 슥삭슥삭.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또한 시넨의 재빠름 손놀림을 볼 수 있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에나, 어찌나 재빠른지 지금 당한 나도 얼얼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리 재빠르게 내 얼굴을 무언가로 도배를 하다니....... 그리고 이런 나를 더욱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까악~! 저..하?....지......지금....얼굴에......그건?" '으윽. 이럴 수는 없어. 지금 내 얼굴에 묻은 건...........우엑~~~!!!!!!!' 난 뜻밖의 봉변에 놀란 마음을 뒤로 한 채, 심한 냄새에 그만 속에 든 무언가를 토해내려고 욕조 밖으로 몸을 내 맡겼다. 허나 이런 나의 행동에 놀란 건 다름 아닌 하녀였던 것 같다. "아악, 저하!! 이,.......이를 어째..." 덥썩. 풍덩. "끼아아아악" "아아악. 이런........실수가.....죄......죄송합니다........저하.......주........죽을.... 죽을 죄를....." "끄아아아악. 뜨.......꺼..........." 떼굴떼굴. 난 너무도 재수가 없었다. 왜 내 욕조에 들어올 따뜻한 물이 내 몸에 뿌려 지는 것인지. 더구나 괴로워하는 나를 들었으면 잽싸게 씻겨 주던가 해야지, 왜 이런 나를 머리부터 거꾸로 물통에 집어넣는 것인지. 왜? 왜 자기 손에 묻은 무언가만 생각하고 내가 뜨거운 물로 인해 다치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냐고, 이 한심한 아가씨야...........!!! 그 일 덕분에 온몸에 가벼운 화상을 입어 한동안 물이라고 하면 치를 떨었던 그 날의 악몽은 이렇게 두고두고 나에게 물의 공포심을 가져다 주게 된 사건의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나를 구원해줘야 할 손길이 내 얼굴과 몸에 범벅이 된 그 무엇 때문에 마치 더러운걸 만진다는 듯, 내 몸을 감히 그 뜨~거운 물통 속으로 거꾸로 처박아 넣을 수 있었던 문제의 그 아가씨는 그 다음부터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쩝, 아직도 그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 하구만. 이왕이면 조금만 더 빨리 꺼내주면 내가 기절까지는 안 했을텐데! 참으로 아까운 구경거리였다. 자기 손에 묻은 무언가와 나를 번갈아 보는 그 눈빛하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여자였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보지를 못했으니 아직까지 사과를 못한 게 조금 안타까운 나였다. "으으으응........아......파......" "흑. 우리 싸이 많이 아프니?" "으응. 너무......아......파.." "그래. 싸이야. 이 엄마가 호~ 해줄께. 자. 호~오. 시원하지?" "으응? 시원? " 난 온몸을 하얀 붕대를 감고선 그 시원하다는 표현이 지금의 나에게 맞는 표현인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건 전~혀 아니었다. 내 온몸을 마치 개미들이 달콤한 꿀이 묻어 있는지 마구 깨물고, 간지럽히는 통증에 난 침대 모서리에 묶여져 있는 손으로 가려운 부위를 긁지는 못하고, 마구 몸을 요동치면서 이 간지럽기도 하고 따끔거리기도 하는 몸을 시원스럽게 긁어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내 앞에 계신 엄마 때문에 점점 더 심해지는 이 고통을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왜냐면, 지금 저분이 나보다 더 괴로워하시는 것 같기에........ "흑. 싸이야. 그렇게 자꾸 움직이면 몸에 난 상처가 더 성이나요. 그러니.... 얌전히 있으렴. 이 엄마가 치료 마법으로 우리 싸이를 낫게 해주고 싶지만....그러면 면역성이 없는 네가 더욱 심하게 앓으면 큰일이니.......싸이야~! 미안하단다. 넌 이런 엄마의 마음 알지?" 끄떡끄떡. 엘렌은 지금 너무도 분통이 터져서 이놈의 왕국을 왈칵 뒤집어 버리고만 싶었다. 감히 자기의 단 하나뿐인 아들을 이렇게 아주 가벼운(?) 화상을 입힌다니, 더구나 이런 짓을 한 시녀는 그녀가 뭐라고 화풀이를 하기도 전에, 남편인 작자가 직접 쑹덩 머리를 날려 버렸고, 이 문제의 화상사건을 일으킨 주범은 공주라고 하는 단 하나뿐인 조카 계집애이기에 그녀는 애써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아야만 했다. 게다가 그 계집애가 지금도 그 날의 공포에 사로잡혀서 밤마다 오줌을 찔금 거리며 기저귀를 찬 채 침대를 홍수로 만들고 있단다. 이러니 딱히 어디에다 대고 화풀이를 할 수 없었던 엘렌이었다. 이런 엘렌이 어찌 참기만 하겠는가. 당연히 자기 아들을 위해서 그녀 스스로 치유주문을 영창하며 아들을 말끔하게 낫게 해주려고 했었지만, 온몸에 조그마한 물집들이 잡혀 있는 아들은 이젠 그녀 자신만큼이나 마나에 대해 익숙해져 버려 아들의 몸 자체에서 그녀의 치유주문을 마구 무시해 버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욕심을 부려 점점 크게 마나의 양을 늘이자, 그녀의 마나와 아들의 몸안에 잠재된 마나들이 강한 트러블이 생겨 이렇게 온몸을 붕대에 칭칭 감을 정도로 상처가 더욱 악화되어 버렸다. 이게 모두가 다른 기운들과의 조화를 미처 생각 못한 엘렌 자신의 불찰이라 그녀는 더욱 애간장을 녹이며 아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랑스런 아들은 엄마가 행한 잘못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을 용서를 하는 눈빛을 한 채, 여전히 엄마인 자신이 나타나면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하는 모습에 더욱 가슴이 메어지는 엘렌이었다. "흑. 싸이야. 모든 게 이 엄마의 불찰이란다. 이런 엄마를 용서해 주겠니?" "무쓴말? 엄마가 왜?......따....랑....해! 엄마." "흑흑. 그래. 싸이야. 이 엄마도 널 무지무지 싸랑 한단다..." 무너지는 가슴 한쪽의 슬픔과 그 슬픔에 덩달아 온몸이 가려운 아들의 가련한 어느 날 오후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을 내려다보는 작은 그 무엇인가가 매우 안타까워 하기도 하는 어느 화창한 날의 오후였다. 신룡의 후예 - 제 12화 소년은 오랜만에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몸에 일어난 상처와 끔찍한 고통을 잊고 소년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 소년의 행복을 시기하려는 것일까? 오랜만에 찾아온 꿈속에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소년을 깨우지 않았다면 소년은 꿈나라에서 달콤한 행복을 꿈꾸었을 것이다. ".........?" "일...........어................라!" "우띠.........졸린다......마랴....." "헐헐헐. 고놈! 감히 어른이 찾아왔는데......계속 잠만 퍼질러 잘 셈이냐?" "응? 어른? 누구? 난 어른 없는데.......어른? 혹시, 할.....아버지?" 소년은 꿈결에 들리는 맑고 청아하지만, 그 속에서 제법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듯, 자신에게 없는 할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허허허. 고놈. 참으로 간악하게 생겼다. 감히 인간의 영혼을 가진 놈이 우리 일족이 되려고 하다니..." 자신을 할아버지라고 부른 소년의 말에 아무 거리낌없이 대하는 존재는 은색의 머리칼이 너무도 돋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허나 소년이 칭한 호칭은 불특정다수에게나 쓰일 법한 것이었건만, 은발의 사내는 그 단어 하나로 인해 소년을 자신의 가족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런 청년의 옆에는 감히 형언할 수 없는 기품을 지닌 중년의 사내가 은발의 사내 맘을 잘 알겠다는 듯, 느긋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 헤리아킨님. 그래도 이 소년은 우리 천족과 인연의 끈이 이어진 아이입니다. 괜시리 엘렌양을 내세워서......" 사내가 뭔가 곤란한 듯 말을 흐리자, 더욱 눈빛이 살아나는 은색 머리칼의 청년이었다. "호오. 그런가? 허면 이 아이를 낳은 내 손녀(?)와 우리 일족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 "후후. 그렇게 말씀하시면.....제가 좀....." 자신을 빤히 보는 청년에게 어처구니없게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존재는 고개를 살짝 돌리는 것으로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는 듯 보였다. "하하. 알았네. 내가 그만 하지. 허나 이것만은 명심해 두게. 저 아이는 나 신룡 헤리아킨의 손자야. 아암. 이건 절대로 변하지 않아. 알겠는가? 헤세르." 은발의 청년이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며 호기롭게 외치는 가운데, 자신을 신룡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이는 바로 실버 일족의 전설적인 수장이자, 모든 드래곤들의 영원한 로드 신룡 헤리아킨이었다. 그리고 그런 헤리아킨의 호기에 잠시 고개를 살짝 끄떡이던 사내는 천족들 만이 지닌 영롱한 눈동자의 주인공인 헤세르였다. 그런데, 왜 이들이 여기에 나타난 것일까? 설마하니 싸이벨리와 무슨 연관이라도............. 그동안 소년의 꿈속에서 이들의 일대기가 잠시나마 펼쳐진 것도 따지고 보면 모종의 음모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나는 가운데, 신룡 헤리아킨은 자신의 손자라고 명명한 싸이벨리에게 성큼 다가가 소년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자. 이제 가자꾸나. 오늘은 네게 제법 흥미 있을 날이란다." 싸이는 금새 말똥거리는 눈을 가지곤 언제 잠투정을 부렸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끄는 청년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싸이는 그 은발의 사내를 쳐다보면서 자기한테 할아버지라는 존재보다,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본 이를 따라 놀란 눈을 한 채 묵묵히 따라가야만 했다. 그건 몽롱하던 꿈결속의 느낌이 찬물을 끼얹은 것 보다 더욱 선명한 놀라움이었다. 어떻게...... '내가 인간이니 당연히 영혼도 인간이지. 그럼 내가 무슨 다른 존재라도 된다는 건가?' 싸이는 잠시 반발감이 이는 마음으로 눈을 빛냈지만, 이미 자신을 이끌고 가는 듯한 사내에겐 감히 뭐라고 따지지는 못했다. '헉. 근데 왜 발이 안 떨어져?' 싸이는 너무나 황당한 사실에 놀라 입을 크게 벌린 채, 손을 잡아주신 이를 보자 그 청년은 싸이에게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며 조용히 있으라고만 하였다. 그런 의문스런 행동에 싸이가 막 뭐라고 하려는 찰나, 소년의 귀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그대들은 진정으로 신과 악마가 둘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얀 날개를 등에 단 작은 여자아이와 그 아직은 어린아이로 보이는 소녀를 품에 안고 있는 한 남자의 질문이 모든 이들에게 내려졌다. 하얀 머리카락이 더욱 눈을 부시게 만들어주는 사내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자들에게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재차 한마디 묻자, 그 사내의 앞에 얌전한 자세로 앉아 있던 은발의 젊은 청년과 그 보다는 조금 어리게 보이는 갈색머리의 사내는 붉게 일렁이는 검을 가지런히 놓은 채 그 사내를 존경의 눈길로 우러러 보고 있었다. "신이시여~! 부디 저희 미련한 자식들을 위해서 ......" 먼저 입을 연 건 은발의 청년이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의 어투로 최대한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경건하게 보여졌다. 이런 은발의 청년의 모습에 살짝 이마를 모은 사내는 잠시 무릎을 꿇고 있는 은발의 사내를 보더니 그 옆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됐다. 헤르야킨. 너의 뒷말은 안 들어 보아도 뻔하구나. 그럼 중간계의 지배자 하이랜더의 후손이여. 그대는? 그대는 어떠한가?" 헤르야킨이 신이라고 부르며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하얀 머리의 사내가 자신에게 급작스런 질문을 던지자, 움찔 몸을 떨던 갈색머리의 사내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신이라는 존재가 내뱉은 한마디에 더욱 멍한 시선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쯔쯔쯧. 가련한지고....어떻게 고위 신족의 계급을 지닌 자가 잠시 인간계로 유희를 나오더니 한낱 미물에 가까운 유마계의 마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이젠 그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 존재가 어찌 저리도 미련스러울꼬.....쯔쯔쯧" 잠시 혀를 차는 신의 거만한 인상이 찡그려질 때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기쁨에 황홀에 하던 헤리야킨의 얼굴엔 온통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그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여기 있는 갈리아스가......" "그렇다. 바로 얼마 전 신계에서 이곳 물질계로 내려와 마수들에게 살해당한 쥬세페 갈리아스의 하나뿐인 아들이니라." 중간계의 지배자가 한낱 마수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 자체만 해도 놀라운 일이건만, 자신의 동료가 바로 그 지배자의 친혈육이라니......... 헤리야킨의 놀라움은 가히 극에 달하고 있었다. "헉. 어떻게....마족과 신족의 중심에선 자로써, 오직 주신의 명에 의해 중간계의 안정을 취하시는 분이 마수들에게..... 더구나 그분은 여러 종족들의 끝없는 견제를 덕으로 삼았던 분이건만..... 어찌 그런 분이 하찮은 유마계의 존재들에게 죽임을 당했단 말입니까?!" 놀란 눈을 치켜 뜨는 헤리야킨의 내심은 지금 신이라고 불린 존재와의 대화로 인해 온통 헝클어지고 심한 혼란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존재는 오히려 그런 헤리야킨이 한심하다는 듯, 잠시 혀를 차며 강하게 제지를 가했다. "쯧쯧.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 건 없다. 이미 그들의 만행은 다른 하급 신들에 의해 다른 명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허나 헤세르. 넌 이제 갈리아스의 가문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한 명뿐인 하이랜더! 이 점을 언제나 명심해라. 알겠느냐? 헤세르?" "예? 예. 주신이시여~!" 순간 자신의 정확한 신상명세가 확인이 되자 헤세르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눈엔 어느새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 부모의 억울한 모습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헤세르는 잠시 침묵을 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남에게 보이기 싫은 일종의 반항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앞에 있는 자는 이런 모습조차도 속속들이 다 보고 계신 분. 헤세르는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뭔가가 마치 자신을 꽤뚫고 지나가는 느낌과 더불어 그 속에서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그 무엇이 터져버리는 쾌감이 느껴진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그의 눈빛과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끈이 눈앞의 존재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 헤세르가 고개를 치켜들자, 그를 내려다보던 존재의 입가엔 작은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래. 드디어 네놈이 자각을 하기 시작했구나. 헤세르. 지금 네 눈에 어린 신기(神氣)엔 내가 정확히 보이는 것 같구나." 신이라고 자신을 칭하는 존재의 입가에 어리는 미소가 더욱 짙어질수록 헤세르는 마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헤세르를 지켜보면서 신은 곧이어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헤세르도 자신의 힘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니, 그럼 이제 너희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일들에 대해 잠시 논의를 가져보자꾸나. 우리 신들은 말이다. 항상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악한 마음을......" 그러면서 한참동안 이어지는 그들의 논의 속엔 진정으로 놀라운 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또한 그 문제들의 해결책들도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만들어졌다.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상한 이야기를 옆에서 시청하게 된 싸이는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 둘 새겨지기 시작했다. 어린 싸이가 맨 처음 이 꿈을 꾸게 되었을 때 보았던 소년과 그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의 피들이 지금 눈앞에 있는 갈색머리의 헤세르라고 하는 사내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게 된 싸이였다. 헤세르는 소년시절 자기 부모의 목을 직접 베고 그의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진정한 힘의 실체이자 혈연의 끈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헤세르가 자기 아버지의 목을 베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마계라고 싸이로선 생전 처음으로 들어본 세계에서 온 마족들때문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그들에 의해 순식간에 가족들이 인질로 잡힌 상태에서 헤세르의 아버지가 그들의 송곳니와 발톱들을 온몸으로 직접 받으면서 그의 가족들을 지켰었고, 결국 자신의 몸이 난자 당하면서까지 지키던 가족들 때문에 스스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르게 된 게 바로 그 원인이 되었다. 헤세르의 아버지는 끝까지 반항 한번 못해 보고 그들에게 온몸을 난자 당했다. 급기야는 이다음에 아들이 성장했을 때 자연스럽게 물려줘야 할 힘들을 유마계의 마수들에게 뺏기게 될까 두려워 가문의 순수한 힘을 전해주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 즉 자신의 생명이 경각에 달하면 강한 염원으로 전수자에게 텔레파시를 보내 그 전수자로 하여금 자신의 목을 직접 치게 하는 방법으로 헤세르에게 그 힘을 물려준 것이다. 이건 신족이지만 그들의 감시자인 갈리아스 가문에 유일신이 선사한 그들만의 법칙이자 힘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 목을 베게 되면 그 힘이 목을 벤 자에게 물려지게 된 일종의 자만과 나태를 방지하는 일이었다. 헌데 갈리아스 가문의 수백에 가까운 수장들 중 이런 일을 당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강했었고, 그 힘을 지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속에서 싸이가 본 시점은 너무나도 끔찍할 정도로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은 당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싸이는 이런 의문을 떠올렸지만, 그들의 대화엔 자세한 설명이 들어 있지 않았다. 싸이는 지금도 마구 흘러 나가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온통 난도질당해 만신창이가 된 몸. 허나 수 십 만년이 넘도록 지켜져 온 가문의 역사를 억울하게 망치기 싫은 까닭에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아들에게 다가간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은 헤세르라고 불린 어린 아들의 손에 마지막을 당하며 그렇게 그에게 진정한 중간자의 힘을 전해준 것이다. 때문에 싸이는 지금 듣고 있는 이야기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자세히 그려지고 있었다.. 뭐, 그때의 의문점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자세하게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싸이로서도 알 수 있는 부분들은 실로 미약했다. 좌우간 그후.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리를 해보던 싸이는 부모의 목을 친 악몽과 정신적인 충격에 자폐증이 심해진 헤세르라고 불린 소년을 지나가던 헤리야킨이 그의 몸에 실린 신기(神氣)를 알아보고, 그를 거둔 것이 자신이 꾼 또 다른 꿈속에서 본 장면과 매치 되고 있었다. 난 지금 너무도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이것이 꿈이라는 걸 나또한 알고 있다. 아니 생생히 몸으로 직접 겪고 있다는 것은 유체 이탈이라는 묘한 느낌처럼 내 몸이 깊게 잠들어 있다는 걸 내 스스로 자각하고 있었다. 허나, 이런 경험보단 나를 이렇게까지 해서 이끌고 온 두 존재와 그들의 예전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는 이들의 행태에 난 놀라움을 겪고 있던게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그들의 과거의 모습들과 열정적인 논의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가지 확실하게 명확해지는 건. 바로 신과 악마의 싸움은 사실상 신의 두 가지 마음에서 자라난 씨앗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황량하리만치 거대한 우주는 수많은 종족들을 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종족들을 만들어 내신 이가 바로 창조주였다. 이분의 이름은 없다. 어느 누가 이 분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겠는가? 이건 오직 하급 신들이나 하는 하찮은 짓거리 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하급 신들을 숭배하는 수많은 종족들이 이 세계에 있었다. 그런 수많은 종족들 중에서 그들을 다스리는 신과 악마라는 존재는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대립을 가져야만 했다. 이는 신이 자신의 고심이 생길 때마다 그 깊고도 오묘한 마음속에 나타난 작은 씨앗이었고, 그 씨앗에서 자라난 존재들이 바로 신과 악마였기 에........ 그들은 서로 극과 극의 마음으로 서로를 봐야만 하는 존재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런 씨앗 중에서도 강한 증오와 번뇌를 일으키는 씨앗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악마라는 종족이었다. 악마 또는 마족이라고도 불리는 그들.............!!! 마족들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개의 세계로 나누어져 진정한 마의 왕족이라는 마족들은 사실상 신과 가장 유사한 신적인 존재들이라고 했다. 그러하기에 마족들은 각자의 긍지와 자부심이 남달라서 신족들에게 강한 라이벌의식이 있을뿐, 이계를 침범한다던가 정복할 야심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내 꿈속에서 나타난 것도 알고 보면, 그 마계 대전이라고 거창하게 그림을 그려두었던 오래 된 전쟁에서 이들이 유마계라고 하는 곳에서 추방당한 유계의 마족들과 이 세계를 놓고 크게 한 판 붙었다는 걸 그려놓은 것이다. 또한 그들을 모두 없애는데 가장 큰공을 세운 이들이 자신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었다. 그런 자랑스러운 이들의 일생을 작은 이야기책처럼 만들어 후세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유계의 마족과 마수들에게서 인간들이 그들을 철저하게 대비하도록 준비해둔 하나의 안배와도 같은 책이 바로 내가 보고 읽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글이 신족과 고대종족들이 사용하던 언어로 적혀 있어 아무나 함부로 읽지도 못한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다. 때문에 근 이만 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선 지금의 인간들은 거의 알지도 못하는 일들이었다. 단지 먼 훗날을 대비해 헤리야킨이라고 하시는 분과 헤세르라고 하는 분이 갈리아스 가문이라는 신비의 가문을 이 대륙 깊숙한 곳에 남겨두었다고 하는데, 간혹 인간들의 세상에 갈리아스의 수장이라고 하는 이들이 나타났었던 것을 보 면 이 가문은 아직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문이라는 것만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그 가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펴지는 헤리야킨님을 보곤 나로썬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지금 이런 게 왜 내 현실세계처럼 보이는 거지? 그리고, 이런게 나랑 뭔 상관이 있다는 거지?' 난 이런 의문을 가진 채 잠시 손을 쥐고 있는 분을 올려다보자 그분은 나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는 듯이 가만히 신이라고 불린 분의 품속에 안긴 작은 꼬마아이를 가리키셨다. '헉....설마...그레이스?' 끄떡끄떡. 난 너무도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이럴 수가 ..... 그레이스라니....아니 나만의 사랑스런 소영이라니............ 난 둔기로 누군가가 내 머리를 내려치는 아찔함을 느꼈다. 과거와 지금까지 짧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날들을 선물한 그녀. 나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원망스럽게도 자기먼저 훌쩍 떠나가 버린 그녀를..... 어떻게 지금 내눈앞에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것도 너무도 사랑스런 대 여섯 살의 아기 모습으로........... 난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아마도 옆에서 이런 나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시는 분의 손길이 없었다면, 난 그대로 꿈속에서 신이라고 하는 존재에게 달려들어 나의 소영이를 빼앗아 왔을지도 몰랐다. 부들부들. 꼭 다문 내 입사이론 작은 신음성이 비집고 나왔다. 뿌드득. 저렇게 사랑스러워 하는 소녀를 왜 그토록이나 힘들고 아프게 했단 말인가? 그리고도 신이라고 칭한단 말인가? 내눈은 금새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면서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시는 분만 없었다면 난 정말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을 것이다. "헐헐헐. 그 녀석. 그리도 저 아이가 좋으냐?" "............!!" "호~. 그 앙 다문 입술이 강한 긍정의 뜻 이렸다. 오냐. 그럼 너 스스로 그녀를 저분한테서 빼앗아 오면 되지 않겠느냐?" 뚝. 한방울 눈물이 내 눈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순간부터 난 주체할 수 없는 눈물 때문에 억울하게도 잠시 그 신이라는 존재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치~. 난 아직 어린데.....그리고 감히 신에게 도전하다니.....그건 말도 안 되요." 강하게 내뱉은 말과 그 속에 깃든 분노를 잠재우려는 내 말은 지금 내 맘속에서 강하게 반발을 사고 있었다. 어떻게 그녀와 한 약속을 잊겠는가. 난 지금 너무 어리다. 저런 거대한 존재에겐 발톱의 때만도 못한 작은 아기였다. 헌데 무슨 힘이 있다고 지금 그녀를 뺏을수 있단 말인가?! 난 이 점이 너무도 원통했다. 어떻게......어떻게 만난 그녀인데......... 토닥토닥. 잠시 내 등뒤로 따뜻한 손길이 다녀갔다. "후후후. 그래. 그건 말도 안 된단다. 하지만 이미 너와 저분은 인연의 끈으로 강하게 이어져 있단다. 그 덕분에 넌 지금 이렇게나마 꿈속에서 그토록이나 보고 싶던 저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 않느냐? 어떠냐 그래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냐?" "이익....." 난 더욱 이말에 활활 타올랐다. 그래. 난 그녀와 약속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녀에게 찾아가겠다고....... 또한 내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오직 너하나만을 사랑하겠다고 내 스스로 맹세하지 않았던가. 지금 내 눈앞에서 화사한 미소를 짓는 소녀의 모습과 예전의 그 시리도록 투명한 소영이의 눈동자가 겹쳐지면서 난 너무도 선명하게 소영이의 모습을 또다시 내 머릿속에서 되새길수 있었다. "그래. 그런 강한 투지가 필요하단다. 명심하거라. 오늘 일은 여기 있는 헤세르님이 아니었다면.........영......원......히................. 묻......거......리...넌......우리......가무......문....." 점점 멀어져만 가는 영혼의 속삭임 같은 말들이 뇌리 속에서 한꺼번에 들이닥쳐 웅웅거리고 있었지만, 난 너무도 급작스런 그녀와의 만남을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에, 아련해지는 목소리들 속에 담긴 또 다른 진실들을 내심 듣지 못하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 제 13 화 '헉. 또.....꿈이었잖아....그런데 소영이는?' 난 온몸이 잔뜩 긴장해 있다 일시에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축 늘어진 어깨로 잠시 내가 있는 곳의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 혼자만의 공간인 내 방안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강조한 흰색과 부조가 조화를 이룬 인테리어들과 예쁘장한 꽃들만이 나를 반겨 주고 있었다. 잠시 난 내 큰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헤어밴드를 강제로 끌어내리며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뭘까? 지금 꿈속에서 나에게 전하고자 한 말들의 요지가.......'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마지막에 들린 말들은 가물가물 거리기만 할뿐, 당최 내가 원하는 단서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가만히 나의 손을 잡고 그들의 과거를 나에게 보여준 일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일깨워 주려고 했던 것일까? 난 그렇게 이른 새벽에 내가 원치 않은 모습으로 일어나 명상 아닌 명상을 해야만 했다. 조금 전, 너무도 생생한 꿈의 파편들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그들의 메시지에 골몰히 앉아 있었야만 했다. "흠. 그러니깐 그들이 나에게 다가와서 한 말이 날 자신의 손자라고 했지? 그럼 그 은발의 헤리야킨이라는 분이 내 할아버지라는 건데....우웅. 내 진짜 할아버지는 전대 황제이신 분이시라서 그 양반과는 얼굴이 영 딴판이던데...내가 잘못봤나?" 아니였다. 분명히 나의 할아버지는 위대한 메르카 왕국의 제 17대 황제이셨다. 단지 그분이 젊어서부터 가지신 지병으로 인해 일찍 돌아가셔서 내가 얼굴을 못 뵈었을 뿐이지, 분명히 집안에 걸려 있는 인자한 얼굴의 젊은 황제는 내 친할아버지는 그분이 분명했다. 그럼 결국엔 나의 외가쪽인가? 허나, 그것도 아닌데...... 분명히 엄마는 혈혈단신 고아이지만 그분의 가문이 제법 이 대륙에서 유명한 집안이라서 왕실에서도 큰 반대 없이 두 분께서 결혼하셨다고 들었는데.. 난 너무도 황당한 꿈을 결국엔 개꿈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개꿈 속에서 본 하이랜더의 마지막 후예인 헤세르라고 하는 이는 어쩐지 나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왠지 헤세르가 날 바라보는 모습이 나에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만들었다. 또한, 그 꿈속에서 소영이가 나왔다는 점은 개꿈으로 치부하기엔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것들이었다. '휴~~, 소영아. 고마워. 네 모습이 비록 어린 소녀의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이 새롭게 태어난 네 모습이라고 믿고 살께. 그리고 반드시 너도 나처럼 좋은 집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꺼라고 믿고 싶어. 꿈이었지만 잠시라도 네 모습을 보게 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 꿈속의 소영이를 본 기쁨에 젖어 내 눈엔 어느새 이슬방울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그리웠기에....너무나도 보고 싶었기에.... 지금 내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비단이불에 작은 파문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까짓 눈물이 대수인가. 사내라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난 내 소중한 이를 꿈에서나마 본 오늘이 내 새로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하루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행복에 젖어 흘리는 눈물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다고 내 스스로 믿고 있었다. '내 소중한 사람......널 꼭 만나고 싶어!' 잠시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난 큰 한숨을 쉬었다. 휴! 너무 행복하게만 살고 있었던 탓일까?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았다. 자꾸만 가슴부위에서 무언가 매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탓에, 난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자세로 한참을 보내자, 서서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머리 속은 매우 복잡한 감정의 물결이 치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부터 촉촉이 젖은 내 마음은 한결 편안해지고 있었다. 결국 난 내 머리맡에 있는 갈리아스 전기를 들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왜 이런 심란한 꿈들을 나에게 선사하는 거냐? 내가 소영이를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데.....고작 어린 모습의 소영이를 잠시 보여준 나쁜 놈. 개꿈이나 꾸게 하면서.....' 이성은 책을 바닥에 내팽겨쳐 버리라고 치근대고, 감정은 나에게 소중히 챙기라고 한다. 허나, 기어코 멋지게 낙하하는 갈리아스 책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며 나의 이런 혼란스러움은 밝은 태양을 맞이하게 되었다. 결국 이성이 감정을 이겨버린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내 손에 던져진 책이 내 침대에 활짝 펼쳐지면서, 그 책 위로 나의 눈물로 추정이 되는 물질들이 점점이 떨어진 것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얼룩들 속에서 이제까지 내가 본적이 없는 글자들이 나타난 모습이 보이자, 난 엄청난 놀라움과 반가움을 가지고 잽싸게 책을 들어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돼.....됐다.............크하하하하. ...드디어.........드디어 내가 읽을 수 있 다......." 왠지는 몰랐다. 단지 호기심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바라본 그 책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바로 나에겐 너무도 익숙한 언어가 나타나 날 보고 방긋 웃고 있었던 것이다. "크크크. 이럴수가....그럼 이 글자들이.....진짜로......." 과거 위대한 내 외가의 선조들이 고대언어로 추정되는 글자들을 해석하기 위해 서 만들어 놓은 주해들과 거의 흡사한 글들이었다. 마치 설명서처럼 새겨진 문자들이 그 책 속에서 나의 눈물로 얼룩져 조그맣게 모습을 들어낸 것이다. 난 이 너무나도 기쁜 희소식에 그동안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책속의 내용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너무도 행복한 기분에 책을 읽기 시작하던 내 귀로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엄청난 소음으로 들리며, 난 너무도 쉽게 그동안 날 괴롭히던 책을 순식간에 읽 어 버렸다. '크크크. 별 것도 아닌 여행소설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한마디로 통쾌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순 없었다. 그동안 뭔가 꽉막힌 듯 내 얼마 안되는 짧은 삶을 억누르고 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해 주던 일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순간 내 주위는 온통 빵빠레가 울려 퍼지고, 꽃잎들이 화려하게 춤추는 거리를 나홀로 행진하는 기분에 너무도 황홀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내가 이 책을 애지중지하며 그동안 끼고 산게 몇 달이던가? 나의 이런 노력을 하늘도 알아주셨는지 신기하게도 내가 의문을 느낄 만한 곳엔 어김없이 자세한 주해가 붙어 있어, 난 너무도 유쾌. 통쾌. 상쾌하게 이 책을 읽어 나갈 수가 있었다. "이야~~아! 드.....드디어~~해방이다~~~!" 난 너무도 기쁜 나머지 내 방에 누군가 들어온 줄도 모른 채,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다 행복한 만족감에 크게 기지개를 켜며 소리를 질렀다. 그순간 누군가와 내 시선이 마주치면서부터 난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헉. 쌈춘?" "그.....그래. 우리 싸이.....잘 있었니?" '헉. 저 양반이 왜 저래?' 난 깜짝 놀라 잠시 긴장을 했었지만, 다시 제정신을 되찾았을땐, 나의 삼촌이시자 이 나라의 황제 폐하이신 분이 나를 보고 얼어 있다는 생각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너.....어떻게 벌써 그 어려운 고대 언어를....." '아항.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헤헤. 그냥 심심해서 그림 구경한 건데요." '캬~아. 내가 생각해도 가증스럽다. 하지만 .......안되지. 지금 들키면 안돼.' "이럴 수가.....나도 아직 다 알지도 못하는 고대언어가 적힌 책들을 소리내어 읽는 놈이 내 3살짜리 조카라니...크흑" '헉. 이럴 수가 그럼...' 한마디로 x됐다 였다. 하지만 난 끝까지 모른척 내숭을 떨기로 했다. 왜냐면 이양반의 벙쪄 있는 얼굴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에 난 말똥말똥 거리는 눈망울로 지긋이 바라볼 뿐이었다. "허허허. 참으로 허탈하구나. 내가 고작 두 살이 조금 넘은 조카보다 못난 놈이었 다니.... 이....이익. 난 죽어야 돼. 에이~~!" 휘리릭 소리가 나도록 망토처럼 생긴 황제 품위(品位) 전시용 옷자락을 말아 쥐 면서 무작정 방문을 부술 듯이 방문을 박차며 나가시는 삼촌이었다. 그러나 잠시.......무언가 나에게 하실 말씀이 계셨던 듯 헐레벌떡 다시 되돌아오신 삼촌이었다. "헉헉헉. 그래. 이것보단 그게 먼저야.....궁시렁...맞아...궁시렁.....얘. 싸이야 ~!" 한참동안 뭔가를 중얼거리시던 분의 눈 속엔 많은 갈등이 서려있었다. 그런 분의 얼굴을 재차 올려다본다는 마음에 난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어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내 우렁찬 대답이 들리자 얼른 얼굴을 펴시며 다시 활기찬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황제폐하 이셨다. "훗, 내 귀여운 싸이. 근데 싸이야. 너 이번 생일에 뭘 받고 싶니?" 쿡....정말로 이 양반이 황제 맞아. 금새 죽을 듯이 안색을 구기며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다시 화사한 미소를 지으 면서 나에게 빤히 속들여다 보이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하시는지....나 참. 이거 혈육만 아니면 봐주지 말아야 하는 건데. 그래도 어떡하겠어. 내가 이렇게 심한 전신 화상을 입었다고 매일 아침마다 날 찾아주시는 분이신 데.... "헤. 글쎼요. 꾸냥 쌈촌이 나에께 까짱 짤 맞는꺼 주세요". 속으론 '전 그게 삼촌의 진한 사랑이 더욱 찐~하게 느껴져서 더 좋을 것 같아 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싶었지만, 지금 현재의 내 입으론 표현하기 힘들다는 생각에 꾹 눌러 참았다. 허나, 이분은 내 속마음까지 알아채셨는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셨다. "하하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우리 싸이가 어떤 왕잔데.....이놈들이 감히 우리 싸이를 뭘로 보고 그딴 선물을 하라고 성화를 부리다니.....뿌드득. 내 이놈의 간신 놈들을 당장에 모조리 끌어다가 참수를 해버려야겠다. 음화화화홧. 감히 우리 싸이를 뭘로 보고 그 따위 싸가지 없는 의견들을 내놓다 니..... 근데 싸이야? 으잉?"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혼자 신이 나서 나를 마구 쓰다듬으시다간 다시 천장을 째려보면서 누군가를 흉보고, 그러다간 다시 나를 보시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런 모습을 밑에서 올려다보던 나는 조금 혼동이 왔다. 왜 저러실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나를 부르시던 분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쳐든 내 코로 무언가가 흘러 내려버렸다. 주르르. "예? 왜 꾸러쎄요? 쌈춘." "너 지금....지...금......그게.....야~~~! 주~치~의~~!" 순식간이었다. 얼굴색이 울그락 붉그락 하시면서 나에게 손가락을 들이대시던 분이 갑자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치시는 것이었다. 난 어리둥절한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내 코에 따뜻한 촉감을 주는 무엇인가를 붕대가 감긴 손으로 쓰윽 문지르면서 다시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허나, 버럭 고함을 치시면서 내 방을 허둥지둥 나서는 삼촌이 복도에서 길길이 날뛰시는 모습들이 내 방까지 다 들릴 정도로 삼촌의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우리 집에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가 났다. "응? 왜 저러시지?" 갸우뚱. 주르르르. '으잉? 이게 뭐야? 이거 코피 아냐?' 난 잠시 내 코에서 따뜻한 게 흘러내려 콧물인줄 알고 신경도 안썼는데, 금새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이 흘러내렸으면 내 이부자리를 이렇게 시뻘겋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인지...... 난 처음으로 흘린 코피를 보면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었다. '참나. 내가 삼촌 때문에 그렇게 긴장을 했었나?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많은 피 를....' 얼마 후, 내 방에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 들어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뭐. 내가 큰 병에 걸렸다는 둥......이거 제대로 못고치면 너 죽어 라는 둥.... 난 한참을 현실감 없이 멍하니 앉아서 내 손에 묻은 피와 주변 사람들의 턱이 빠진 우스꽝스런 얼굴들을 보다가 그만 뒤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아~ 좋~~다. 아구 편해라. 이히히. 간만에 신나게 잠이나 한번 더 자야겠다.' 하지만 자꾸 내 귀에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려 조금 신경질이 난 나는 먼지 녀석의 날개 짓과 비슷한 소리에 잔뜩 짜증난 목소리로 '조용히 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코하고 잠이 들었다. 마르스 황제는 지금 낭랑히 복도를 울리는 귀엽고 사랑스런 조카의 목소리에 신이 난 발걸음으로 싸이벨리의 방문 앞에 다가섰다. '햐아. 고녀석 누굴 닮아서 저리도 똑똑한지...' 얼마 전이었던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시절.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데리고 온 아리따운 처녀와 그 처녀의 신분이 상상을 초월하는 가문의 하나뿐인 외동딸이 라는 말에 군소리 없이 동생의 결혼식을 올려준 자신이 이토록이나 자랑스러운건 아마도 지금 귀를 간지럽히는 사랑스런 조카의 탄생 덕분일 것이다. 한동안 결혼 후에도 아기 소식이 없어서 애를 태웠던 자신이었기에 조카의 탄생은 그에겐 두 번 다시없을 신의 선물이었다. 사실 마르스 황제 자신은 왕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달리 체력이 약한 관계로 검술 수련을 등한시한 그에겐 오직 책들과 그 속에 담긴 여러 지식들을 접하는 시간들이 훨씬 더 유익했기에, 검에 남달리 자질이 뛰어난 동생이 대륙 최고의 검가(劍家)이자, 대륙 최고 강국인 메르카 왕국의 황제로써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라온 그였 다. 허나, 동생 또한 박식한 형을 너무도 존경하며 자라났기에, 만 20세의 생일을 얼마 앞둔 마르스 황태자가 동생에게 이별주를 나누러 가면서 또 한번 지금의 마르스 황제는 자신의 동생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자신에게 숙취에 좋다면서 권한 허브 차안에는 동생의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어 그는 삼일이 훨씬 더 지난 며칠 후에야 자신의 침실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고 간만에 눈을 뜬 자신에게 선왕이시던 아버지께서 내민 하얀 종이 위에는 깨알같은 동생의 글씨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 순간. 마르스 황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생애 최초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동생이 자신을 위해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동생은 세계 제일의 검객이 되어서 왕실에 충성을 할테니, 형님께서는 가문에 길이 빛나신 성군(聖君)이 되시라는 긴 장문의 편지는 지금도 마르스 황제의 비밀금고에 고히 간직되어 있었다. 이런 동생이 긴 시간동안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마르스 황제 자신은 이미 황제가 되어 있었고, 멋진 기사가 되어서 돌아온 동생은 이 대륙의 최강자가 되어 있었다. 얼마나 고생이 심했으면 그 어린 나이에 대륙 최고의 검객이 되어 있었을까? 다시 한번 동생이 사랑스러운 마음에 미소를 짓던 마르스 황제였다. 이런 추억들을 머리속에서 떠올리며 마르스 황제는 살며시 조카이자 위대한 메르카 왕국의 단 하나뿐인 황태자 싸이벨리를 보기 위해서 살며시 문을 열었다. 비록, 온몸이 화상을 입어 붕대로 감고 지내지만, 역시 그 아버지에 아들다운 모습으로 심한 고통을 웃음으로 참으면서 매일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그러하기에 마르스 황제는 요 며칠 사이 매일 아침마다 조카의 병문안을 핑계로 싸이벨리를 보러 몸소 방문을 하는걸 잊지 않고 있었다. 삐이익. 작은 마찰음에 내심 시녀장을 혼내 줘야겠다는 생각에 혀를 차던 마르스 황제는 자신이 온 줄도 모른 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조카의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눈, 코, 입을 제외한 전신을 하얀 붕대로 칭칭 감긴 모습이지만, 그의 눈엔 그 모습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얼마나 그렇게 지켜보았을까? 자신의 귀로 들리는 생소한 글들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마르스 황제는 심장이 목을 꽤뚫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헉, 저건....' 어찌 그가 조카의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모르겠는가.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계 제일의 성왕을 목표로 학문에 매진하던 마르스 황제였기에, 지금 싸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단어들 중 대부분을 해석하던 마르스 황제는 내심 탄성을 내질렀다. '이.....이녀석. 그토록이나 어려운 고대어를 어린 나이에 통달하고 있다니... 아니, 나보다 더 훌륭히 해석하고 있다니.....아. 그럼 난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 인가?!' 심한 자괴감이 그에게 즐거운 방문을 하기 시작했다. 온통 지나온 지난 세월들이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을 꽉 채우기 시작하면서, 마르스 황제는 어린 조카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자신을 올려다보는 천재 조카 싸이와 눈이 마주친 마르스 황제는 당혹감에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난 죽어야 해. 어떻게 물려받은 이 자리란 말인가?! 하나뿐인 동생과의 약속도 못지킨 나같은 황제는 당장 죽어야 해!" 방문을 박차며 달려나가던 황제는 자신의 비명에 눈을 동그랗게 뜨던 여러 명의 하인들을 보자,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예전의 표정을 되찾기에 급급했다. '이 병신 자식. 오죽 못났으면 아랫것들한테 추한 모습이나 보이다니....한심한 놈.' 내심 자신을 비하시키며 혼쭐을 내던 마르스 황제는 이내 아랫것들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었다. '아차, 오늘 싸이 한테 큰 선물을 가져왔는데.....' 오늘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이리로 발걸음을 옮기며 즐거워했던 마르스 황제였던 것이다. 이런 자신이 좀전에 본 충격적인 어린 조카의 모습에 잠시 실수를 한 게 더욱 창피하다고 속으로 혀를 차던 그는 얼른 뒤돌아서서 조카의 방안으로 들어섰다. 마르스 카빌라이 폰 메르카 황제. 이는 카빌아이 대륙에 사는 모든 이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스러워하는 성왕이자 위대한 황제였다. 그는 평소에도 괴팍한 모습을 자주 들어내지만, 그 모습들조차도 자신을 겸손하게 보이려고 하는 자세라고 듣는 이 대륙에 몇 안되는 진정한 백성들의 어버이였다. 이런 그가 그토록이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든 귀족들의 무력시위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놀라운 검술의 달인. 로멜쥬 대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백성들은 평등할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마르스 황제가 모든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된 유명한 말이다.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기가 무섭게 수많은 백성들에게 생존의 자유를 부여하려던 마르스황제는 귀족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그 뜻을 꺾을 수밖에 없는 듯 했다. 허나 그가 황제로 등극한지 채 이년이 되지 않아 왕국으로 찾아온 로멜쥬 대공의 등장은 일대 파란을 몰고 왔다. 황제가 자신의 모든 것을 위임해 버린 뒤부터 로멜쥬 대공의 찬란한 위명은 전장에서나 암살자의 방문에서 빛이 났으며, 그에게 암살자를 보낸 귀족들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단두대의 제물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 뒤부터 마르스 황제의 뜻은 곧 하늘에 비유되면서 자신이 꿈꿔왔던 수많은 백성들과의 친목에 있어 마르스 황제의 새로운 제도는 세계 최강의 제국이자 최고의 무력왕국 메르카 왕국을 탄탄대로에 올려놓게 되었다. "백성이 있어야만 황제가 있고, 황제가 그들에게 베풀어야만 백성들도 우리들을 존경한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고, 이걸 모두 무력으로 다스릴 순 없다. 귀족들의 반발엔 당근과 채찍이 동반된 건 어찌보면 필수라고도 할 수 있었다. "Nobles Oblige. 귀족으로 태어나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기 위해선, 귀족으로써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렇게 시작한 마르스황제의 귀족에 대한 제재는 일대 파란을 예고했었지만, 이미 귀족들과의 전초전인 소리 없는 암투에서 승리한 로멜쥬 대공이 마르스 황제의 옆에 있는 한, 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백성들을 쥐어짜던 수많은 혜택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마르스 황제가 내걸은 새로운 제도는 서서히 카빌라이 대륙에 뜬소문에서 진실로 밝혀지면서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최강의 왕국의 황제가 된 마르스 황제였다. 이런 황제도 수많은 고민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자신의 후계자였다. 허나 이런 고민도 얼마 가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에게서 아주 이쁜 딸을 품에 안게 되었을 때. 마르스 황제는 황제라는 권력을 생애 최초로 사용하게 되었다. 바로 마법이라는 것을..... 왕국 수석 마법사를 밀실에 불러서 권위와 협박으로 눌러 기어코 불임수술을 받아 버린 놀라운 그였던 것이다. 그후, 눈이 빠져라 동생의 자식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였다. '나에겐 이미 물려지지 않았어야 할 왕위가 돌아 왔다. 이젠 나 또한 동생에게 선물을 해야할 차례다.' 흔들리는 마음을 이렇게 굳게 닫아걸면서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을 걸던 그에게 희소식은 뭐니뭐니 해도 싸이벨리의 탄생이었다. 오죽하면 만 백성들이 있는 자리에서 만세 삼창을 손수 외쳤겠는가. 이런 그가 오늘 너무도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자신도 미처 읽지 못하던 고대어를 조그마한 조카가 벌써 능숙하게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까지 해버리다니..... 황제는 너무 놀라 제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이런 그가 오늘 이 자리에 행차한 이유가 바로 그 어린 조카 때문이기에 그는 자신의 판단이 너무도 정확했다는 사실이 기쁘고 즐거웠다. "아직 어린 싸이 저하에겐 황태자는 너무 큰 자리이오니 제발 조금 더 시간을 가지신 뒤에 발표하소서." 모든 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를 단숨에 무찌르며 싸이의 이번 생일날에 싸이를 황태자로 등극시킬 날만 기다리기엔 그의 조바심은 참을성을 기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조금이라도 조카에게 일찍 선물을 주려고 온 것인데, 이런 놀란 광경을 보게 된 황제는 어떻게 시간이 간지도 모른 채 한동안 어린 조카에게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허나, 갑자기 화상환자에겐 치명적일지도 모르는 출혈이 일어났다. 이걸 보고 제정신이면 그가 아닐 것이다. 어떻게 본 조카인가? 그리고 싸이벨리가 누구인가?! 그의 조바심에 지금 싸이벨리가 살고 있는 대 저택은 한차례 심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한 몸살을 잃으키게 원인을 제공한 두 사람(?)은 때아닌 홍역을 앓게 되었다. 그것도 바로 위이자 하나뿐인 형님이라는 횡포의 홍역을........ 신룡의 후예 - 제 14 화. "우웅. 띰띰해~~!!" 너무 심심해 미치겠다. 며칠 전 꾸었던 꿈 덕분에 신기하게도 그놈의 재미 대가리라곤 전~혀 없고, 따분하기 조차한 갈리아스 전기를 단숨에 필독한 난, 지금 내 방에 갇히다시피 감금 당한 채,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더욱 심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휴~ 이게 다 그놈의 망할 코피 때문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잠시 새벽잠을 설쳐 코피를 쏟곤, 곤히 잠든걸 가지고 완전히 난리 부르스를 춘 집안의 사람들이나 황 뭐 뭐라고 하는 삼촌이나..... 하여간 그놈의 극성들은 엄청나서리, 감히 내게 책의 'ㅊ'자라도 말하는 인간은 참수형에 처하겠다고 눈을 부라리면 엄명을 내린 덕분에, 난 졸지에 이렇게 쓸쓸히 병상이 되어 버린 나의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서 하루종일 먼산의 풍경들만 곱씹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먼지 녀석과 놀면서 붕대 감은 손으로 실밥 뜯기라든가 아니면 조금씩 나아져 가는 발가락의 습포들이 메마른 딱지들을 꼼지락거리는 손으로 살짝 살짝 떼면서 느끼는 짜릿짜릿한 경험을 맛보기도 하는 나였다. 허나, 그렇게 딱지들을 강제로 띠면 상처가 더 성이 난다고 하면서 아예 다시 내 몸을 똘똘 말아 버리는 황당한 간호시녀 덕분에 난 지금 이렇게 눈과 코. 그리고 입만 빼꼼히 내놓은 채 할 일없이 멍하니 허송세월만 하고 있었다. '에익.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얌전하게 살았다고 하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도저히 삼일이상은 못 버티겠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이 들었다. 해서 난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이를 앙시 물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조심스럽게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 내 눈에 방문을 닫아 놓으면 내가 답답해 할까봐 활짝 열어두고, 그 옆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서 잠시 졸고 있는 간호시녀가 보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잠시 피해 다시 엉기적 엉기적거리며 방안을 기어다니며 내심 즐거운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쿄쿄쿄. 이렇게 좋은 것을...' 잠시 몸 안에서 찌뿌둥 하다고 연락을 때리는 나의 신경세포의 답례를 위해 난 내 방안을 한 바퀴 거하게 돌아준 뒤, 머리부터 뜨거운 물통에 쳐 박혀서 그나마 다리와 손이 덜 다친 것을 하늘에다 대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헉. 아니지~~~!! 내가 그놈의 신한테 기도를 올리면 사람 쉐이가 아니라고 분명히 그때 맹세했었는데.......웅.......하지만 그레이스....아니 소영이 는...........' 난 또다시 허탈해진 마음에 잠시 하던 짓도 멈추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그러자 그 천장 속에서 언제 나타났는지 하얀 나의 천사가 살며시 수줍은 미소로 나를 반겨주자, 난 너무도 행복해져서 방긋 미소를 지으며 그 천사의 얼굴을 만지기 위해서 손을 앞으로 쭈욱 내밀어 보았다. 허나. 이런 나의 손길은 허공에서만 맴돌고 있었다. "흑.....이...............이익.........바보처럼......" 역시 나의 손에 만져지는 건 먼지녀석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이었 다. 아니지. 이 녀석은 몇 개월 전부터 만질 수 있었잖아. 아무튼 그런 공허함 속에서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울음을 터트리던 난 잠시 나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 작은 존재를 향해 애써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우웅. 울지 마세요.' '헉.......지금.....너가?' 끄떡끄떡. 나의 착각이었을까? 이 건방진 녀석이 평소에 나를 우습게 여기면서 감히 내가 어릴 적에는 나의 감시자 역할을 하던 먼지 녀석이 이젠 나의 어깨에 아무 거부감도 안 느끼며 앉더니 이제는 나에게 위로까지 한다? '햐~. 이걸 믿어야 돼? 아님 내가 잘못 들었다고 해야 돼?' '후후후후. 싸이님은 아직 어린 아기이시면서도 너무 생각하시는게 너무 어른스러워요.' "으잉? 너 띠금.....뭐? 내까 어리 아키인떼 뭐얼?" '헤헤. 죄송해요. 하지만 싸이님은 지금 신체구조상 아직은 어린 아기이시지만 하시는 행동은아주아주 똑똑한 인간의 성인 수준이시라 서.....헤헤' 훗. 이놈이 이젠 아부까지?! 근데 언제부터 저넘이 나랑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거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런 놈이 내 눈빛과 마주치자 생글거리며 웃는 모습은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우띠. 우띠마~! 쩡뜨러. 칫" 역시 내 입과 본능은 정직한 법이다. 허나 이놈은 역시 이런 나에게 익숙한 놈이었다. '후후. 어쩜 그러실땐 너무 귀여워서......' "이띠~~! 떄찌~~떄찌." '헤헤. 이젠 저 때리셔도 안아파요?' "으잉? 끄럼 예나알엔 아빠쪄?" 끄떡끄떡. 호. 이거 점점 미안해지네. 아니야. 이놈은 그래도 돼. 맨날 날 방해한 놈이잖아. 허나 마음으론 이런 말들을 내뱉고 있어도 내 본능과 이성은 감히 나의 생각을 싸그리 무시해 버리며 점점 이 얄미운 먼지 녀석에게 호감이라는 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제길. 언제부터 저놈이 저렇게 능글 거리면서 나한테 게기는거지?' 제법 가슴한쪽에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에게 투덜거림으로 보복을 하려고 하던 난 녀석의 다음말에 놀람이 극에 달하게 되었다. '후후, 싸이님. 전 지금 싸이님의 기운으로 이렇게 존재감이 생겼는걸요.' '헉. 그게 무슨말?' 난 지금 너무도 황당했다. '허~~ 이젠 저놈이 나의 기운으로? 그게 무슨 말이야? 나같은 아기가 무슨 기운이 있다는 거지? 햐~아. 이젠 저 먼지녀석이 어린 아기인 나한테도 사기를 다 치려고 하네. 하지만 내가 누군데......절대로 안 넘어가~~!' 도리도리. 점점 솟구치는 호기심과 호감을 애써 도리질하며 내 속에서 몰아내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허나, 이 얄미운 녀석은 나의 이런 모습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점점 나를 갈구기 시작했다. '후후. 정말이예요. 그리고 이젠 조금씩 싸이님도 스스로 자신의 몸을 다스려 보 세요. 언제까지 그런 연약한 몸으로 계실꺼죠? 후후. 사실 싸이님이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시면 지금보다 훠~얼씬 더 나은 신체를 가지실수도 있는데...' "찐~~짜?" 난 두눈이 동그랗게 떠질 정도로 놀랬다. 내가 마음만 굳게 먹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신체를 가질수 있다는 이 녀석의 말이 답답한 내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 준 것이다. 해서 두눈을 빛내며 녀석을 유심히 쳐다보자 녀석은 고개를 끄떡이며 생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끄떡끄떡. 이젠 고개짓으로도 믿음이 모자라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귀엽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 코앞에서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던 녀석이 나의 이러한 심각한 질문에 동그랗게 치켜 떠진 내 속눈썹을 살며시 만지면서 귀엽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음. 이걸 어떻하지? 난 저놈 말을 확실히 믿을 수가 없는데. 당최 믿음이 가야 믿을거 아냐!' 항상 나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던 이 얄미운 놈이 하는 소리를 어느 누가 그리 쉽게 믿어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나 또한 이 얄미운 먼지 녀석의 말을 마구 무시하며 또다시 엉덩이가 배기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벗어나선 침대 앞에 펼쳐진 푹신한 카페트를 향해 다시 엉기적엉기적 거리며 붕대들이 풀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가만.....내가 오늘 저놈 말은 처음 듣지? 우웅. 그럼 내가 오늘 쟤한테 뭐 특별하게 해준 게 있었나?' 문득 곰곰히 생각해보니, 맨날 내가 심심할 때마다 저놈을 데리고 논게 어언 1년이 다되어 간다는걸 알수 있었다. 그런 놈이 느닷없이 나의 귀에다 대 고 속삭이듯이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자, 난 잠시 어이가 없어서 평소 벙어리인줄만 알았던 먼지 녀석의 그 귀엽고 싸랑스러운 포즈에 잘 어울리는 청아하면서도 맑은 음색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았다. '가만. . . 그러니깐 아까 내가 일어나서.....분명히 저녀석한테 손으로 인사를 하 다가....' 번쩍. 뇌리를 스치는 불길함이 나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그러니깐.....나 지금 매우 심심하니깐 너랑 얘기라도 할 수 있었음하고 저녀석한테 말한 적 있는데...' 도리도리. '아냐.....그때 분명히 내 마음 속으로 말을 했지 입 밖으론 절대로 내뱉지는 않았다구....그럼?' 여러분들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가장 섬찟 했던 적이 있었는가? 난 그런 경험을 지금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온몸의 피부조직들이 강한 트러블을 일으키면서, 전신에 소름이 쫘~악 끼치게 하는 존재가 지금 내 눈과 마주치려고,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헤헤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의 눈 속에서 난 매우 매우 엄청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헉. 이 쉐이. 너 지금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 다 듣고 있었지?' 끄떡끄떡. 결국 확인 사살 차원에서 물어본 말이었다. 그리고 그걸 우습다는 듯이 미소로 대답하는 놈이었다. 발라당. "헥........헥.....헥...숨 막혀......" 어쩔 수 없었다. 난 너무도 기가 차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숨쉬기 운동으로 인해, 잠시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발라당 넘어져서는 나의 이 웬수 같은 큰 바위 머리통을 쥐고는 마구 요동을 쳤다. "으~~~아아아아악~~ 이럴순 없어~~~ 나에게도 자유가 필요하단 말야 ~~~~!" 나의 이런 처절한 외침은 뜻밖에도 이상한 쪽으로만 흘러갔다. 누군가가 내 속마음을 읽는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절대로 있을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내 스스로의 자아를 다른 이가 훔쳐본다는 건 정말로 생각할수록 끔찍했기 때문이다. 허나, 내 스스로 처절하게 외친 비명에 반응을 한건 뜻밖에도 다른 존재들이었 다. 후다닥. 쿵쾅. 쿵쾅. 찌그덕. "끼아아악" "우아아악. 누구야~~~!" 꽈당탕. '허 참. 저 인간 정말로 몬스터가 인간으로 변한게 틀림 없다니깐.' 아무리 봐도 분명히 내 눈은 정확한 것 같았다. 지금 내 방에서 난 처절한 외침에 가장 먼저 뛰어 들어온 이는 바로 나의 전용호위 기사인 메테우스였다. 그런 그가 내 방에 들어와서 설치기 시작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나의 고함이 미쳐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래..그건 다 좋은데....왜 약한 여자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거야?' 난 그가 나의 안위를 위해선 지금이라도 불 속에라도 뛰어들겠다고 길길이 날뛰며 설쳐도 다 믿어줄만 했다. 하지만, 왜냐고...... 왜 방문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간호시녀를 무시하고, 무작정 검부터 뽑으면서 달려오는 거냐고.... 그러니 지금 저 여자 얼굴에 꺼멓게 나 있는 커다란 발자국은 분명히 이 오우거 사촌 같은 우락부락한 메테우스의 발자국이 분명하잖아~~! '"에휴~~. 뿌쌍하당." 두 눈을 살짝 치켜뜬 채 혀를 옆으로 삐죽이 내밀고 헤롱거리는 간호 시녀가 측은한 나로썬, 이 190cm가 조금 안될 엄청난 키에 갑옷무게랑 합쳐서 족히 120kg은 나갈 메테우스의 사정없는 발길에 짓밟혀 얼굴 한쪽이 돌아간 그녀를 위해서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밀려오는 식곤증을 못 이겨 깜빡 졸은 죄로 몇 달 동안 음식도 제대로 못먹을 불쌍한 간호시녀에게 잠시 묵념을 보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묵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두둥실. 번쩍. '햐~! 그래도 힘 하나는 정말 좋네~헤헤' 날 번쩍 치켜들고 자기 품에 소중히 안으면서 여전히 주위를 향해 그 섬찟한 예기를 뿌리는 검을 자랑하던 메테우스는, 아무리 주위의 기척을 살펴보아도 아무 이상이 없자, 이내 나를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침대로 다시 올려놓았다. 그러자 때를 맞추어서 우르르 달려 들어오는 인물들은 나와 메테우스를 번갈아 보더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몰아쉬 었다. "저...싸이 저하님? 무슨 일이시죠?" "그..그게 자유 어쩌고 하셨는데...." "네? 싸이 저하께서요?" "예. 시종장님." 가히 집안 권력의 짱인 마리 유모의 날카로운 질문과 기사이면서도 평민에게 존대를 해야만 하는 메테우스의 대화였다. 하긴, 저 인간이 남작인가 뭔가 하는 칭호를 나 때문에 받았었지?! 황제 폐하이신 삼촌이 어린 내가 한 행동에 감동하셔서 아직도 눈에 선한 하트가 그려진 눈동자로 눈물을 훔치시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릿속엔 생생하니 남아있었다. 더구나 왕실 근위대 사상 최초로 갓난아기인 왕자의 정식 호위기사로 임명된 메테우스에게 저 무서분 검이랑 최고급 갑옷을 선물하시며 내리신게 아마 남작 작위였었지......?! 난 잠시 둘이 하는 모양을 살펴보면서 호시탐탐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찬스로 만들까 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역시 마리 유모는 베테랑이었다. 난 환자. 그녀는 유모. 한마디로 꼼짝마라 였다. 더구나 내 어머니의 유일한 시녀인 마리 유모를 속이느니, 차라리 저 멍청한 오우거 사촌인 메테우스를 속이는 게 골백번 더 나으리라. "호호호호. 싸이~왕자님. 환자는 말이죠. 절. 대. 안. 정!!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아시죠?" 쳇, 그러면서 왜 나를 안보고 저 여자를 보는 거야? 난 마리 유모가 하는 말 속에 담긴 뜻을 생각하기에 바뻤다. 분명히 뉘앙스를 가진 저 말속엔 나를 협박하는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그녀의 다음 말에서 난 제빨리 고개를 끄떡여야만 했다. "싸이 왕자님. 전 우리 싸이 왕자님이 얼~마나 훌륭한 인품이 지니신줄 아주아주 자~알 안답니다. 저희 같이 미천한 아랫것들을 위해서 항상 웃음으로 답해주시는 분이 이렇게 하시면 저기 있는 시녀는 오늘로서 인생.....무슨 말씀이신 줄 자~알 아시죠?" '헉. 마리.....오히려 난 당신 지금 말하고 있는 표정이 더 무서워!! 왜 손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냐고.' 그렇다. 이렇게 알 듯 모를 듯 협박성 말투로 나를 꼼짝못하게 하는 이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도 나의 유모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왜냐면 난 사람은 공평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남들이 말하는 고위 귀족....말하자면 최고 권력자의 혈육이라서 이런 호대접을 받고 있어서가 아니라, 날 잠시 아프게 한 죄로 그 자리에서 목이 날아간 여자가 어디 그 신입하녀 뿐이겠는가? 내가 얼마 전부터 곰곰히 생각해보고 내린 결론인데. 언제부터인지 내 기저귀를 갈러 오는 하녀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내 침실에 들어와서 날 보살필 정도의 시녀들이 어째서 내가 인상을 잠시 찡그리거나, 내가 잠시 외면을 하면 그날로 두 번다시 볼 수 없을까 하는 사실들을 상기하면 지금 유모의 말엔 아주 무서운 뜻이 담겨져 있었다. 쳇, 고작 아기 기저귀 갈다가 내 응응응 냄새에 코 좀 막았다고 그날로 댕강. 내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다가 불현듯 쑥스러운 기분에 내가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그려도 댕강. 맨날 우르르 몰려와선 내 방을 드나드는 하녀를 붙잡고 끌고 나가면 그담에 왠지 가냘픈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댕강. 흥흥흥에 쳇쳇쳇이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는 거라고 생각이 든다.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요~~~!!! 이건 정말로 해도해도 너무하는 극심한 애정공세에다가 약간은 겁이 날 정도의 싸이코적 애정표현들이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무지무지 겁나는 인상으로 아랫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에선 가히 냉기가 풀풀 날리고, 그 냉기로 인해 온 집안을 차갑게 만들어서 나를 더욱 움츠러들 게 했다. 거기에다가 황제폐하의 엄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집에 파견 나온 기사들은 내 방에서 나는 소리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곤 수시로 내방을 들락거리는 시녀들을 검문하면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보이면 무조건 칼부림부터 하고 보는 통에 내가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뭐? 일단은 베고 나서 그 뒤에 확인하라고 하셨다나 뭐라나?! 암튼, 엽기적인 발상은 딸이나 아빠나 어쩜 그리 똑같은지....쯔쯔쯧. 이러니 내가 어찌 심심하지 않고 배길소냐. 조금이라도 내가 조심을 안 하면, 누군가의 사랑스런 딸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통에 완전히 나만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쩝. 저봐. 저 여자 또 끌려가잖아. 쯔쯔쯧.' "쳇. 이봐~~ 아찌!!" "옙. 저하." '응? 저하? 내가 언제부터 저하야? 하긴 뭐 난 왕위 계승자였으니 뭐....어째든.' "으응? 있짜나. 나 그 언냐 쪼아~!!" "헉. 알겠습니다. 저하." 그러면서 간호 시녀를 살벌하게 째려보는 무서분 기사아저씨들이었다. '휴. 뭐 저 정도 째림을 당하면 앞으로 알아서 자알 살겠지. 에~휴. 근데 오우거같은 메테우스한테 짓밟힌 얼굴은 언제 다시 원상태가 되려 나....' 별 수 없었다. 그저 이럴 때에는 낮잠이 최고였다. '우웅. 하지만 맨날 자고 또 자는데 잠이 올까? 이럴 때 그런 꿈이나 계속 꾸게 해주지.....쩝' 난 차라리 이렇게 따분하고 답답하게 허송세월을 할 바에는, 깊은 잠 속에 빠져서 계속 재미난 꿈이나 꾸었으면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 날 꾼 꿈이 마지막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그 책을 다 읽어서인지 통 연락이 없었다. 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난 지금 내 머리맡에 있는 -유일하게 뺏기지 않은 책이었다.-책을 다독거리며 날 다시 그 꿈속으로 초대해주길 빌고 또 빌며 눈을 잠시 내리 감았다. 팡팡. 마무리로 먼지가 나도록 책을 두들겨 주면서 제발 날 이곳에서 잠시라도 해방시켜 달라고 간절히 비는 나였다. <15> "우이띠~ 저리 가~~ 가아~~ 가란 말이야~!!. 이씨!!" 휘익. 훠~이. 싸악. 파르르르. '우씨. 저게 또~~' 난 저 놈이 너무도 얄밉다. 이젠 나의 장풍도 통하지 않고 내 손바람에도 유유자적하다니........ 어떻게 곤히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눈을 떠보니 깜깜한 밤이었다. 주위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맨날 그리고 허구헌 날 잠만 자는 나는 더욱 통통해진 나의 뺨에서 전해져 오는 압박감에, 꼭 조이고 있는 붕대를 살짝 풀며 숨을 좀 돌리려고 했었다. 허나, 어느새 나타났는지 저 놈의 먼지 녀석이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느슨해진 붕대를 내 머리 뒤에서 꽉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우띠. 너 미~뻐! 흥." '헤헤. 싸이님. 조금 답답해도 참으세요." "이띠. 너 가뜨며 참을뚜 이쪄?" '후후. 전 자유의 존재라서.....하지만 지금 싸이님은 마법의 부작용으로 인해 상처가 더 악화된 상태라서 더욱 조심하셔야 해요.' "응? 마뻐~ㅂ?" '음. 쟤가 또 왜저래? 누가 여기에 마법사가 있다고 마법 어쩌고 하는 거지?' 도저히 알쏭달쏭한 말만 하는 저 녀석이 이래서 더욱 밉다. 나한테 저놈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마법 어쩌고 하는 말을 하고는 안색이 파래져선 두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걸로 봐선, 분명히 뭔가가 있는데 당최 저 녀석의 속을 모르겠으니... 우씨. 저 자식은 내 속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데.....이띠. '헤헤. 그만 제가 헛말을.....했네요. 아무튼 주치의나 신관이 와도 지금의 싸이님을 빨리 회복시켜드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싸이님의 몸안에 있는 마나들 때문이라서........... 그러시니 어서 하루라도 빨리 마나를 다루시는 법을 익히세요.' "마~나? 그께 뭔떼?" '후후. 사실 싸이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마나를 자유자제로 다루시던 분이라 지금쯤이면 더욱 익숙하게 다루실 수 있으셨을 텐데...... 스스로 자각을 하지 못하시면 더욱 자신의 능력을 가로막게 되시는 거예요. 그럼 이다음에 가서는 아주 커다란 벽을 스스로 만드시는 꼴이라서 제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참견한 거예요.' '쳇, 그래도 꼴에 주제는 알아 가지고....으잉? 아니지. 그게 중요한게 아니네. 헉. 저넘이 지금 뭐라고 했지? 내가 태어나서부터 마나? 그게 뭐지? 아무튼 그 마나라는 기운을 자유자제로 다루던 놈이라고? 우띠 저게 또 사기를.....' 도리도리. '쩝. 저게 또 내 맘을 읽었군. 흠......근데 그 마나라는 게 뭐지?' '헤헤.' '우씨. 저게 또 비웃네.' '쿡쿡. 비웃는게 아니라 옛날을 생각해 보시라구요. 싸이님은 태어나셨을 때의 기억을 지금도 가지고 계시잖아요.' '흠. 그건 그렇지. 어디 그것 뿐이야. 엄마가 날 가지셨을 때 아빠랑 나누시던 대화들도 모조리 기억하는데.....헉' 뭔가 찜찜했다. 이건 분명히 저 녀석의 유도 심문에 넘어간 기분인데...... 흠. 아니군. 저 자식이 얌전히 나만 바라보면서 안타깝다는 듯이 눈빛을 죽이는 걸로 봐선.... 휴~~ 다행이다. '근데 그 마나라는 게 내 기억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야?' '후후후. 이제 관심이 생기세요?' '쳇, 관심은 무슨 관심....그냥 호기심에 한번 물어보는 거지.' '쿡. 어쩜......자. 그럼 이건 뭐죠?' 먼지 녀석이 날 잠시 보더니 콧방귀를 끼는 것 같아서 아주 불쾌했던 난 그래도 그 녀석의 말에 귀를 쫑긋하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 난 잠시 뒤, 먼지 녀석이 자신의 손을 활짝 펴면서 살며시 허공으로 띄우는 것들을 보곤 또다시 실망을 해버렸다. '쳇, 난 또 뭐 대단한걸 가르쳐 준다고......야~! 그거 네 녀석이랑 똑같은 먼지잖 아~~!' '네. 맞아요. 하지만 이건 싸이님만 먼지라고 하시지. 다른 인간들이나 유사종족들은 모두 이걸 보고 마나라고 부르죠.' '헹. 차라리 그런 먼지들을 마나라고 한다면 내가 진공청소기로 화~악 청소해 버린다~!' '네? 진공....청소기?' '우띠. 좌우간 그런게 있어. 근데 너랑 같은 그 먼지 나부랭이와 마나가 나한테 무슨 관계가 있다고 지금 이렇게 꼬드기는 거야?' 제법 진지한 먼지 녀석의 말에 난 내심 실망감이 있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먼지녀석의 진지 모드에 마치 감염이라도 된 듯 유심히 그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후후. 인간들은 말이죠. 항상 자신에게 있는 힘의 10분지 1의 힘도 제대로 못쓰고 어리석게 짧은 삶을 살다 사라지죠. 하지만 저희 같 온 세계를 유지시켜주는 힘의 존재들은 거의 모두가 자신의 힘 대부분을 그 먼지라고 생각하시는 마나를 이용해서 모든 힘을 발휘하며 이 세계의 균형을 이루어 가요. 자~ 그럼 생각해보세요. 싸이님이 지금 아야! 하고 아프신 게 몸 안에 있던 그 먼지처럼 생긴 마나와 밖에서 누군가가 강제로 싸이님의 몸 안에 넣어준 마나가 부딪혀서 지금처럼 상처가 더 악화가 된거라면. 그리고 싸이님처럼 마나를 자유자제로 다루실 수 있는 분이 자신의 몸 안에서 서로 다른 마나들이 부딪히면서 생긴 그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을까요? 아님 전~혀 손도 못되고 계셔야 할까요?' '으잉? 우띠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렇게 처음 듣는 말들을 길 게 쫑알거리면 누가 다 알아듣냐? 그리고 난 마나라는 거 몰라. 그럼 됐지!' 흥. 난 콧방귀를 끼면서 팔짱을 끼었다. 그러면서 먼지 녀석을 실눈으로 확 째려보자, 녀석은 금새 자기의 실수를 깨닫곤 뒷머리를 끌적였다. '쿡. 제가 너무 설명을 끌었나요? 그럼 자. 이렇게 하죠. 그냥 싸이님이 어리실 적...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리실 적에 싸이님은 요람에 누우셔서 뭐하고 계셨죠?' 난 먼지 녀석의 요상한 질문을 받곤 슈퍼컴퓨터라고도 자처하는 내 신기한 머릿 속을 마구 돌아다녔다. 역시. 한참을 돌아다닌 내 의지가 무언가와 만나더니 먼지 녀석의 말과 분명히 매치 되는 것들을 마구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응? 그럼 내가 요람에서 할 일없이 몸만 뒤척이다가, 심심할 때마다 눈앞에 날아다니는 먼지녀석 사촌쯤 되는 하얀 실들을 마구 붙잡고 놀던 걸 지금 말하는 건가?' 이런 나의 노력에 칭찬으로 일관하는 먼지 녀석이었다. '딩동댕. 정답입니다. 후후후' '쳇, 근데 그거랑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랑 무슨 관계가 있어?' '네. 그러니까 그 마나...즉, 먼지처럼 생긴 실들을 말이죠. 지금 불러보세요.' '응? 불러? 쳇. 이젠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나 지금 너 때문에 매우 심란하니깐, 더 이상 나랑 놀아주려고 그런 황당무계한 소리는 하지 않아도 돼. 알았지?' 칫. 망할 자식 같으니라고..... 이왕에 심심한 날 위해 해주는 이야기라면, 오늘 집에서 누가 뭘 했는지...그리고 신입시녀들을 군기 잡는다고 유모가 뭘 시키는지,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이나 알아보고 내게 전해주던지 하지. 이게 도대체가 뭐야~~! 쳇. 그렇게 슬픈척 해도 이번엔 어림도 없어~~ 난 뽀루퉁한 볼살을 더욱 부풀리면서, 아예 먼지 녀석은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홱 몸을 돌려 버렸다. 감히 말야. 그런 쓰잘데기 없는 말. 아니, 말도 안되는 것들을 듣느니 내가 차라리 한숨 더 자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를 아주 못마땅해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후후후...' '귀찮아.....건들지 마~~!' '후후후. 글쎄요. 전 손도 안 움직였는데.....' '헉. 이 무슨 조화야? 저......저 녀석은 .......' 난 또다시 놀라서 숨쉬기 운동을 까먹어 점점 노래지는 벽들을 보며 안색을 찌푸렸다. 그러자 어디선가 날아온 하얀 실뭉치가 나의 폐가 있는 부분 을 살며시 강타하는 느낌과 동시에 아주 상쾌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실 수 있었 다. "푸~~핫!" '고.....고마워....하지만 지금 이건..........' 말도 안 된다. 내가 얼마나 단단한 큰 바위 얼굴이라 한 무게 하는데....... 감히 이런 날 먼지 같이 생긴 하얀 실들이 나의 몸에 다닥다닥 붙어서 내 몸을 침대 위에 살짝 띄우다니....... 난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먼지 녀석만 쳐다보았다. 아니, 먼지 녀석 뒤에 서 있는 무언가 느낌이 심상치 않은 존재를 째려보고 있는 게 정확했다. '맞지? 저 녀석이 조금전 나한테 말건 놈이....'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였다. 감히 내 어릴적 친구 녀석들로 추정이 되는 것들이 마구 그 존재한테 날아가서는 하얀 실뭉치처럼 뭉쳐지는 것을 본 나는 너무도 화가 났다. '이씨. 내 친구들인데 왜 자꾸 장난감 취급하는 거야? 근데 저놈들은 왜 하나로 뭉쳐지는 거지?' 조금은 알쏭달쏭하면서도 화가 나는 부분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며 느끼한 미소를 짓는 존재의 말엔 나에게 다정다감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이런..이런. 갑자기 나타나서 행한 제 행동에 화가 나셨나요?' "쳇. 몰라~앗." '쿡쿡쿡. 여전히......' '쳇, 뭐가 여전히야...지가 나 언제 봤다고.....' 난 이 낯선 존재에게 여전히 반말을 고수하면서도 튕기듯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왠지 저 낯설면서도 어딘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낯선 존재에게 생전 처음으로 투정이라는 표현으로 내 감정이 살아나고 있는 것 이다. '후후후. 그럼 제가 언제 보았는지 가르쳐 주면 화를 푸실래요?' '쳇. 난 얼굴이랑 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존재와는 말도 안 해.' 여전히 뽀루퉁한 나였다. 허나. 이미 이런 내 모습을 기대했었는지 낯선 존재는 전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선하리만치 감미로운 미소만 보내주고 있 었다. '쿡쿡쿡.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아직 싸이님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존재라서.....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씀을 드릴 수 있답니다. 전 싸이님이 태어나셨을 때부터 싸이님을 봐왔죠. 생각나시나요? 싸이님이 태어나시자마자 제일 먼저 절 찾으신걸?' '쳇, 베~~에~~. 내가 태어나자마자 누굴 찾았다고......난 단지 이상한 공기가 내 몸에 들어와서 잠시 소스라치게 놀랐을 뿐인데.....' '쿡쿡쿡. 그 존재가 만약에 저라면 어쩌실래요?' '헉.' 난 그만 내 혀를 깨물뻔 했다. 저 희리멍텅하면서도 왠지 이상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가 나에게 자꾸 말을 걸어오자, 안그래도 먼지 녀석 때문에 화가 난 나는 무조건 그 존재에게 생전 안하던 구박을 하며 급기야는 혀까지 빼물고 약올렸는 데..... 역시 저 놈은 처음에 보여준 기세부터가 장난이 아니야. 이렇게나 나를 놀라게 하다니...... '후후후. 그런 독백은 여기 있는 먼지 녀석한테나 안 들리지. 전 아주 똑똑히 잘 들린답니다.' '허걱.' '후후. 그리고 저희들이 나누어 드린 힘을 왜 그렇게 사용을 하지 않으시는 것인 지.... 태고 적부터 내려오는 신성한 의무는 반드시 지키셔야만 이다음에 신이라는 존재를 만나시면 혼나지 않으시죠. 그러시니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노력을 해보세요.' '쳇, 난 그 재수 없는 신 녀석을 믿을 바에야 차라리 악마를 믿겠다.' '쿡. 재미있군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아웅다웅 하시는게 어찌 그리 똑같으시 지....' '힝. 내가 누구랑 똑같다는 거야?' '그럼...아니세요? 스스로 마음속에선 그분을 거부 하시지만, 언제나 무의식 속에선 항상 신에 대한 존재감을 가지고 계신 분이 바로 싸이님 아니신가요? 더구나 자기의 하나뿐인 따님의 힘을 고스란히 이어 받으신 분을 죽이려고 난리를 치시는 분도........허......이런.......암튼.' '이....이봐. 말돌리지마. 그......그레이스가......뭘? 그리고 무슨 힘?' '후후후. 그렇게 궁금하시면 어서 하루빨리 싸이님의 진정한 힘을 기르세요. 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제가 드릴말씀이 없네요. ' '이씨. 이왕 해주는 거 다해줘야 할꺼 아냐~!!' '후후후. 그렇게 조급해하셔도 언젠가는 스스로 모든 걸 아실 날이 올 겁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저희들 모두는 그 일에 대해 일체 함구령을 지켜야만 한답니다. 싸이님.' '이.....이익....그......' '후후. 죄송해요. 제가 조금 흥분을 해서...... 하지만 오늘 제가 드린 말씀은 가급적 다른 이들에겐 비밀로 해주신다면 제가 싸이님을 조금 도와드리고 가지요. 어떠세요?' '흥. 필요 없어. 나 내려놔. 난 이제부터 잘꺼야!' '쿡. 또 삐지셨군요.' '우잉. 듣기 싫어.' 덥썩. 부비부비. 난 너무 화가 나서 그 존재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내 귀를 꼭 틀어막으면서 베게에다 대고 열심히 큰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놈의 존재가 비웃는 목소리가 너무도 또렷이 들려와서 난 더욱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이씨. 저런 놈과 계속 얘기할 바에야 그냥 무시.....무시.......!! '후후후. 그렇게 무시하신다고 모든 일이 순리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랍니다. 더구나 악마와 계약을 하신다고 하셨는데......글쎄요. 아마 제가 알기론 싸이님과 계약할 만한 수준의 악마라면 오계를 다 뒤져도 없을껄요? 그러니 그만 화 푸시고 제가 드리는 선물을 받아주세요.' '으잉? 악마? 악마라면 어디든 다 있는 존재가 아닌가?' '후후후. 악마라는 건 사실 인간들이 지어낸 단어일 뿐. 그 단어에 해당되는 존재들은 흠...........이거 일급비밀인데.....쩝. 할 수 없죠.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씀드리는데요. 얼마 전 싸이님이 꾸신 꿈 중에 이런 말이 나왔죠?' 난 짜증이 나는 가운데에도 이 망할 먼지 녀석의 대장쯤으로 보이는 존재의 말에 신경이 쏠렸다. 말그대로, 내가 짜증이 난 이유가 뭔가를 알고는 있는데 나한테 가르쳐 주지 않아서 날 답답한게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내가 어찌 솔깃하지 않겠는가. '응? 무슨 말? 혹시, 신과 악마가 하나라는 거?' '네. 사실 신은 오직 유일신뿐이지만, 그 분을 도와주는 여러 명의 또 다른 신들이 있고, 그 신들의 마음속에 자라나는 또 다른 사악한 마음들이 하나 둘 모여서 나온 것이 바로 인간들이 말하는 악마라는 존재죠. 하지만 이런 악마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신적인 존재들이라서, 그들 스스로 구성원을 이뤄 나가며 차츰 유일신께 인정을 받아서 만든 세계가 바로 삼계. 즉. 마계.-이건 대표적인 마족들의 세계죠. 그다음이 유계.- 이는 마족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거의 마수에 가까운 것들이 있는 세계죠. 그리고 마지막이 사계.- 이는 죽은 영혼들이 기생을 하면서 새롭게 정화를 하는 곳이죠. 이런 삼계를 하나로 묶어서 커다란 하나의 명계가 이루어지고, 지금 이곳에는총 5개의 명계가 있지만, 4명의 명왕 만이 존재하기에 저희 정령계는 모든 신들에게 별도의 세계로 인정을 받고 있는 현실이죠. 하지만 이제 싸이님께서 태어나셨으니.............후후후. 부디 자신의 힘을 믿으세요. 아셨죠?' 쳇,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난 아직 아기란 말야. 그런데 그런 알쏭달쏭하면서 자기만 알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전해주려면, 보다 쉽게 풀어서 이해가 되도록 가르쳐 주던지........흥이 다. 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도 생전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자네는 전생에 뛰어난 머리로 유명한 석학들의 교육을 받지 않았는가? 라고 묻는 다면 확실히 예라고는 대답하겠다. 허나 이런 나도 생전 처음 듣는 낯선 세계와 그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구성원들에 대해서 바로 듣고 이해를 했다면 그건 거짓이거나, 신이라고 자처할만한 위인일 것이다. 결국, 난 나약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었고, 지금 나에게 생소한 세계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의 말을 십분지 일도 채 이해를 하지 못했다. 답답하기는 내가 더욱 심할 지경인 것이다. 이런 복잡한 심정의 나를 놔두고 이 낯선 존재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내가 알아 듣지 못하는 이야기만 나불거렸다. '쿡쿡쿡. 어차피 지금 고민을 하셔도 소용이 없답니다. 언젠가 때가 되시면 저절로 다 아실 일. 부디 그때까지 싸이님의 힘을 스스로 자각하셔서 지금 보다 나은 발전이 있으시길 빕니다. 싸이님~!' 흥. 이젠 내 의식 구조 속의 말들까지 모조리 훔쳐 듣는 주제에 큰소리는... 어쩔 수 없이 삐딱선을 타야만 하는 나였다. 내 머릿속의 의식도 마구 빼서 읽어버리는 존재에게 유일하게 대항할수 있는 자아만이 내 공격무기였으니깐. 허나. 저 요상한 존재는 이런 공격에도 까딱없었다. 완전히 끝까지 웃음으로 일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쿡쿡쿡. 그 점이 기분이 상하셨다면 앞으론, 싸이님 스스로 지켜보세요. 지금 싸이님의 힘이 아주 없는 듯 느껴져 제가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니까요.' 우띠. 그럼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난 이렇게 힘도 없는데..........아니지! 쟤들이 있잖아~!! 불연 듯 내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유일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판단을 긍정적으로 받아주는 그였다. '그렇죠? 이젠 조금 아시겠나요? 언제나 싸이님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저 녀석들을 항상 기억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지금 싸이님이 궁금해하시는 5계의 명왕계는 앞으로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그럼 전 이 만...........' 휘리릭. 자기가 할말이 끝났다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얌체 같은 누구였다. 허나, 내가 좀 과했다는 생각에 정말로 너그럽게 봐줬다. 뭘? 도대체 뭘 봐줬냐고? 그야 당연히 사라지는 모습이 멋져서 감탄을 해 준 것이다. '햐~! 이젠 사라지는 것도 예술이구만. 근데 나한테 뭐 준다고 하지 않았나?' 침이 뺨에 흐를 정도로 멋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헌데 뭔가가 좀 찜찜했다. 한가지를 빼놓고 간 것 같았는데....... '야~ 먼지 녀석아~!! 응? 이 녀석이 어딜 갔지?' 난 항상 내 주위에 있던 먼지 녀석이 보이질 않자, 조금은 걱정이 되어 그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먼지녀석은 내 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 이상한 존재가 내 친구들을 마구 주워 모아서 만든 하얀 실뭉치만이 지금 내 눈앞에서 작은 불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런 신기한 모양을 보면서 난 잠시 그 실뭉치로 손을 뻗어 보았지만, 내 손이 다가가기가 무섭게 잽싸게 위로 날아가 버리는 그 실뭉치를 보면서 이젠 날 마구 거부하는 녀석들이 너무 얄밉게만 느껴졌다. '이씨. 이젠 나랑 놀지도 않겠단 거지? 쳇.' 뽀루퉁. 휘익. 털썩. 팡팡. 너무도 화가 나서 난 내 침대에다 손바닥으로 화풀이만 해댔다. 오늘 하루는 정말로 불쾌했다. 생전 듣지도 못한 세계를 약올리듯이 가르쳐 준 존재가 내 방에 나타났고, 그 존재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 원망의 대상이었던 누군가가, 언제나 내가 의지하고 있던 존재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화나게 했다. 그 존재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리고 소영이가 누구의 딸이라고 했었는데 당최 생각이 안난다. 분명히 신 어쩌고 했고, 내가 정화의 기운 어쩌고는 들었지만, 내 속을 배배 꼬듯히 약을 올린 존재 때문에 제대로 기억도 못하다니....... 더욱 찜찜한 기분에 침대에 화풀이를 해보지만, 영 속이 편치 않은 하루였다. 신룡의 후예 - 제 15 화. 엘렌은 남편 로멜쥬 대공의 품에서 아주 달콤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달콤함도 잠시... 그녀가 집안곳곳에 설치해둔 낯선 존재(정령이나 마족)에 대한 방어 결계가 미세하게 움직이며, 그녀의 뇌리 속으로 빠르게 전하는 울림에 눈을 떴다. 문득, 엘렌은 살며시 눈을 뜨면서 낯선 존재의 마나에 대한 진동이 지금 그녀의 소중한 아들 방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방어 결계도 얼마 전에 황당한 경우를 당한 엘렌이, 그 이후에 급히 설치한 것이라서 대충해둔 것 같지만, 소중한 아들의 방에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들락거린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엘렌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마나들로 급히 구성된 매우 강한 용언 마법진이었다. 아들의 옆에서 아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라고 힘을 나눠준 실프녀석이 감히 못 막을 존재들을, 실프가 제대로 방어하지 못할 시나, 그 이상의 강한 존재들이 나타날 위급 상황을 위해 그녀가 직접 설치해 둔 것이었다. 그러니, 용언 마법으로 대충 한 듯해도 그 속에 담겨진 그녀의 마음과 강한 의념은 최고 고룡(古龍)이 펼쳐 논 방어 결계 못지 않은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본시 마법이란, 그 마법을 실행하는 자의 강한 의념에 따라 최고의 위력을 가져 온 다는 것은, 신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에게 내린 또 하나의 선물이었기에, 지금 엘렌이 드래곤이라는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해서 펼쳐 놓은 마법이 드래곤이기 때문에 강한 것만은 아니였다. 엄마로써,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강한 보호본능에 충실한 그녀가 펼쳐 놓은 마법이었기에, 싸이벨리가 있는 방안의 마법진은 거의 고룡(古龍)급의 드래곤이 펼쳐 논 마법진과 막상막하의 위력을 선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뇌리 속에 느껴지는 존재의 느낌은 얼마 전,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존재로, 그 존재가 그녀의 아들을 항상 보호하듯이 아들의 주변에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 엘렌은, 다소 안심을 하면서 다시 침대에 머리를 눕혔다. 그러나..........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만 했다. 제 아무리 최상급의 정령이라곤 해도, 함부로 그녀가 펼쳐 논 마법진을 무시하곤, 이렇게 아들 가까이 접근하는 건 정령과 드래곤 사이에 존재하는 태고적부터 전해져 오던 맹약의 계율과는 너무 차이가 있었다. 정령........그리고 드래곤. 이 둘 사이는 물질계를 보호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들을 지닌 존재였다. 이런 두 존재들이 당연히 서로 도우면서 이 물질계를 지켜 나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령이 드래곤과의 계약도 아닌, 자기만의 의지로 드래곤이 펼쳐 논 마법진을 무사 통과한다는 것은 어딘가 맞지 않다고 엘렌은 느꼈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 낯설면서도 어딘가 다정한 존재가 엘렌과 직접 계약을 맺은 존재가 아니라면, 누군가가 그 존재와 계약을 맺어서 싸이벨리를 지켜주라는 사명감에 이곳을 드나든다는 것인데........ 엘렌은 자기 주변에서 싸이벨리를 최고위 정령과 계약해서 지켜주라고 할 만한 존재가 없었기에 서서히 마음속에 이는 불안감에 가만히 있을수 없었 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아직 하급 정령을 소환하거나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였기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아들의 방으로 부리나케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얀 레이스의 잠옷을 휘날리며.......... 쿵. "누구냐?" "우웅? 엄마?" ".........!!" 엘렌은 지금 자신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곤,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세.......세상에나.........싸이. 네......네가?" "우응? 왜여?" "저.....저......실프........." "흥. 엄마. 저 먼지 녀석이 글떼 나랑 안놀아 쭤. 히~잉. 저놈 미뻐!!" "헉. 그.....그럼......" 헉~!! 하고 진짜로 놀라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감히 드래곤인 그녀가 쳐놓은 방어 결계 안에서 작은 구체로 뭉쳐져 있는 저 마나의 덩어리들은 분명히 최상급 정령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상급 정령에게서 가늘고 작은 끈이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은 엘렌은, 지금 침대에 누워서 주위에 있는 마나들을 가늘 게 늘어놓고선 일렬종대에서 이열종대....마지막으로 헤쳐 모여 를 시키고 있는 이 황당한 아들녀석 때문에 심장마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최하위 정령으로 있다가 그녀 덕분에 중급 정령수준으로 올라선 실프 녀석이 이젠 웜급에도 못 올라선 엘렌 자신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최상급 정령이 되어 가는 모습에 기겁을 하게 된 것이다. '허~억. 이걸 믿어야 하는 거야? 아니야. 저 녀석이 제아무리 특별한 존재라고는 해도 한낱 하찮은 호비트에 드루시안일뿐일텐데....... 감히 나도 아직 자유롭게 부리지 못하는 최상급 정령을........... 더구나 하위 정령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건 오로지 정령왕들뿐인데...... 그리고 그들은 절대로 저런 짓을 하지는 않는데........'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곧 붕대에 감겨서 칭얼거리던 아들이 방긋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펴자, 아들의 얼굴부위에 감겨 있는 붕대가 움찔거리며 그녀를 매우 반갑게 맞아준다는 생각에 엘렌은 급히 아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싸......싸이야! 혹시 네가 저걸......." "우응? 저 녀썩? 엄마도 저 녀썩이 뽀여? 이띠 그럼 저 녀석 때찌 쫌 해쭤. 우띠. 나랑 노라쭈지도 안코선 쩌렇게 끼냥 둥둥 떠썬 내 손을 깜히 피~해. 이 잉" "호. 그럼 넌 저녀석이랑 말도 하고 그러니?" "응- 끄떡끄떡.- 내까 나랑 말하꼬 놀짜고 하니깐 저 나아뿐 녀썪이 내 말데로 해쭤써." '헉. 그럼........얘가 정말로.......정령술을? 아니야. 이 녀석은 정령의 냄새가 전혀 없어. 그리고 실프 녀석의 말에 의하면 이 아이는 마나를 자유롭게 다루기는 하지만 자기 몸안에 담을 수 없는 체질이라고 했었는데......' 한동안 멍하니 아들이 잠옷바람의 엄마 찌찌에 손을 넣고 헤~ 하고 웃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엘렌은, 지금 받고 있는 강한 의문들은 모두가 저기서 애벌레처럼 주변의 마나에 감싸여 있는 실프가 깨어나면 확실히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로 지금 재롱을 피우는 아들의 커다란 머리를 꼭 안아 주었다. 아직까지 심한 화상의 후유증으로 인해, 방안에서 온몸을 붕대에 감긴 채, 생활을 해야만 하는 불쌍한 아들은 그래도 신기하게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그녀 같았으면 매우 아프다고 엄살도 부릴만 하건만, 전혀 그런 투정도 부리지 않으며 엄마를 편하게 해 주는 기특한 녀석이라고 엘렌은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엘렌은 아들이 더욱 사랑스러워 꼬옥 안아 주었다. 꼬~옥. 헤~~ 부비부비. '이녀석. 이 못난 엄마가 그만 조급함에 너의 상처를 이렇게나 더 심하게 만들어 준걸 알고선 이 엄마를 위해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흑...........' 아들의 어리광에 더욱 가슴한쪽이 뭉클해지는 엘렌이었다. "훌쩍. 싸이야~!" "웅. 엄마. 찌찌~!! 헤헤" "그래.....이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지?" "웅. 나또 나또...헤헤헤. 엄마 따랑해~~♡" "그래. 훌쩍. 내 이쁜 강아지." "헤헤" 쓱싹 쓱싹. 부비적부비적. 쪼~~옥. 헤~~에. 헤롱헤롱. 엘렌은 더욱 진한 애정표현으로 아들의 온통 붕대뿐인 얼굴에 찐한 키스를 퍼부으며, 더욱 아들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꼬옥 안아 주었다. 그러자 아들 녀석은 헤롱거리는 모습으로 그녀의 품속으로 안겨들면서 행복하다는 듯이 마구 재롱을 떨었다. 나는 너무도 심심했다. 저기 허공에 떠 있는 건방진 짜식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둥둥 떠다니며 내 주위에 있는 하얀 실들에게 반짝거리는 가루를 뿌려주면서 지 멋대로 혼자 놀고 있었다. 이미 한번 깊이 잠들었다가 깬 관계로, 더 이상 눈을 감아도 눈만 말똥말똥 거려 주위를 훑어보던 나는 급기야 내 주위로 그 하얀빛이 반짝거리는 가루를 온몸에 묻힌 먼지 사촌녀석들이 눈에 띄자 그녀석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런 내 손짓에 반갑다며 나에게 다가와 녀석들이 재롱을 떨 듯이 내 주변을 살살 떠다니자, 난 얼씨구나 자~알 걸렸다 란 심보로 그녀석들을 일일이 붙잡아서, 나한테서 도망가면 주~거 라는 제스처로 주먹을 꼭 움켜쥐며 그녀석들에게 공포의 헛주먹을 한방씩 선사했다. 참나. 내가 왜 이렇게 어린애가 되었는지...... 아니지. 난 어린 아기이잖아!! 아냐. 난 몸만 어린 아기야!! 이씨. 아직 말도 시원찮게 하는 주제에........무슨 어른 흉내를 낸다고...... 마음속에선 두가지의 생각들이 부딪혔다. 한쪽은 내가 어린아이라고 부르짖는 본능이라는 놈이었고, 다른 한쪽은 내 이성이 나에게 정신만은 어른이라고 울부짖음을 선사했다. 허나, 이미 이 생활도 몇 년인지, 새로운 몸을 다시 부여받은 나에겐 본능이라는 놈이 이성을 월등히 앞지르고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은 이 본능이라는 놈의 편이었기에, 복잡한 생각들만 하는 이성이라는 놈에겐 유리한게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 허나, 그렇다고해서 이성이 꼭 지라는 법은 없었다. 이 이성은 나만의 의지가 살아 있는 곳이었기에. 가끔씩 나의 무지를 일깨워주는 하나의 힘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쩝, 사실 내가 이렇게 유치한 놈은 아니였는데..... 내가 이리도 의지가 약한 인간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아마도 변명을 하자면, 이 모든 게 그 엽기 부녀와 극악 사악을 다 합쳐도 모자라 는 싸이코적 애정표현을 마구 남발하는 나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때문인 것 같았다. 더구나 그런 애정표현을 근 2년이 넘도록 받아오자 난 나도 모르게 내가 아직은 어린 아기라는 생각에 이런 유치한 짓들을 조금씩 하다가, 이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폭발적인 호응을 얻자, 얼씨구나 하고 줄기차게 해대다보니 이젠 만성이 되어, 내가 예전에 가진 생각들이 조금씩 보여질 때에는 나 자신도 깜짝 깜짝 놀란다. 이러니 내가 얼마나 유치해졌겠는가~~!! 그래서 난 지금 심심하다고 나를 갈구는 내 본능에 충실하기 위해서, 내 앞에 일렬로 서 있는 하얀 실타래 녀석들에게 주먹을 선보이며 말 잘들어 라고 협박을 해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 녀석들이 내 말에 따라 제까닥 움직이는 모습에, 더욱 신이 난 나는 심심한 이 긴긴 밤을 이녀석들이랑 즐겁게 보낼려고 나름대로 제식훈련-사실 난 아직 군대를 못 가보았다. 왜냐면 일가 친척하나 없는 고아로 자라나 채 20살이 되기 전에 주변분들의 도움으로 유학을 간 관계로 가끔씩 대사관에서 보여준 무적 해병. 막강 해병이라는 홍보물만 연신 본 관계로 몸은 익숙하지 않아도 머리 속은 굉장히 그런 일에 익 숙했다. 그러니 내가 이 녀석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는 차마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다루고 있었다. "야~. 그꺼 하나 딲딲 모했? 일열쫑떄 해처모엿!" '쿠캬캬캬캬. 짜식들. 어지간히 군기가 팍팍 들어가는 구나. 쿠헤헤헤' 난 너무도 신이 났다.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녀석들이 마치 손과 발이 있는 양, 내가 뭐라고 소리를 칠 때마다 구부정하거나 하늘거리는 몸을 바짝 곤두세우며, 심하게는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고 있었으니.... 당하는 자는 잘 모르겠지만 괴롭히는 자로썬 나는 아주 행복한 쾌감을 느끼고 있 었다. '윽. 이러다 나 세디가 되는거 아냐? 으윽. 그건 절대로 안돼.' 절대로 그런 일은 생겨선 안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이 몸이 벌써부터 남을 괴롭히는데 쾌감을 느끼다 니.... 하지만 문득, 빵빵한 똥배의 주인공인 시넨 누이를 떠올려 보면 난 확실히 세디 보다는 메조에 가까운 존재 같았다. 감히 그녀한테 덤비지도 못하다가 어쩌다 한 번씩 개기면 가차없이 날아오는 그 공포의 똥배치기는, 가히 큰 머리의 나에겐 머리가 후~둘리는 엄청난 충격에 일!격!필!사!! 이자, 그 살벌한 똥배를 내밀며 육탄 돌격하는 그녀에겐 행복한 쾌감의 극치요, 나에겐 꽥 소리나는 고문이었다. '으휴휴휴휴~~~! 끔찍해. 하지만 난 지금........봐라. 저기 제대로 못하나?' 정말로 소름이 쫙 끼치는 무서운 기억이었다. 그런 끔찍한 기억에 내가 몸을 떨며 다시 바라본 녀석들이 잠시, 내가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자, 난 눈에 불이 나도록 확 힘을 밀어 넣었다. 쉽게 말해서 눈에 힘을 팍팍 준 것이다. 이런 나의 힘에 의해 내 눈은 거대한 등잔처럼 커지고, 이런 나의 모습에 더욱 놀란 먼지 사촌녀석들은 기겁을 하면서, 잠시 흐트러져 있는 대열을 다사 맞추느라고 분주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제법 재미도 있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휴식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나에겐 너무도 보고싶고 반가운 엄마의 얼굴이 나타나 자 난 금새 이 따위 먼지 사촌 녀석들은 안중에도 없게 되어 버렸다. "헤~~ 엄마. 찌찌!" "어이구. 그래 우리 이~쁜 강아지~! 이 엄마보고 싶었져?" "우웅. 헤에~ 쪽.쪽.쪽." "아이. 이뻐......싸랑해요. 싸이~!" "웅, 나또 나또. 엄마 싸랑해요~~♡" 난 엄마의 적극적인 애정표현에 정신이 혼미 할 정도로 행복해져, 아까의 행복한 쾌감이 아직 남아 있는 내몸의 신경세포들에게 엔돌핀을 마구마구 퍼주고 말았다. '아이고. 아직도 헤롱 거린다. 헤에~~ 기분 너무 좋다. 헤에~. 근데 엄마가 나한테 뭔가 중요한 걸 물으셨던 것 같은데.........으이구. 이 바보 멍청이. 대가리만 띱다리 커서는 전혀 하등의 필요도 없는 넘. 에구에 구. 이익.' 탕탕. 두드리고 두드려도 항상 단련이 안 되는 이놈의 머리통을 부여잡곤, 난 매우 중 요한 무언가를 빼먹을 듯한 생각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중에 하나로, 엄마가 어떻게 저 먼지녀석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한 나의 매우매우 궁금한 의문들을 잊은 채, 그렇게 나의 큰 머리통은 밤새도록 고문당하면서 하룻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17> "신인지체身人支體, 소아우주小我宇宙. 생멸심환生滅審煥, 천지화합天地化合. 심득신공心得身空, 만류귀종灣流歸宗. 무릇, 인간이라 하는 그릇은 자신의 몸에 작은 우주를 담고 있기에, 그곳에선 천지의 모든 기운들이 생기고 사라지며, 결국엔 인간의 몸 안에서 천지의 기운들이 화합을 하기도 하고 반목을 하기도 한 다. 이를 자신의 몸에 이롭게 만들기 위해선 스스로의 마음을 곧게 세워, 그 뜻을 얻고 그로 인해 몸을 높고도 넓은 하늘처럼 비우며, 그에 따라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만물에 깃든 기운들이 자연스럽게 몸 안에 모이게 되기에, 모든 만물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나의 뜻에 따라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모이게 되리라." '음, 이건 태극오행에서 말하는 천지의 기운이 나의 마음에 따라 절로 일어나고 사그라드는 구절과 거의 흡사한 느낌을 주는데, 천지의 기운들이 서로 화합을 하기도 하고 반목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면, 지금 내 몸에 느껴지는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기운들이 큰 부딪힘 없이 움직이게 하려면 그 기운들이 서로를 도와주는 걸로 만들게 된다면......' 그순간. 난 내 머리에 떠오르는 내용대로 천지의 모든 기운들이 다섯 가지로 구분이 되 고, 그걸 음양의 오행기운이라고 하며, 그 기운들이 서로 상충되지 않기 위해선 그 나름대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깨닫게 되었다. 금새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깊은 무아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게 된것이다. "하나의 시작은 무(無)에서 시작하는 하나이다. 이는 삼극(태극)으로 나누어진 무(無)에 대한 근본이다. 천. 지. 인 그 하나를 천(天)일이라 하고 그 하나를 지(地)일이라 하며 그 하나를 인(人)삼이라고 한다. 해서 하나를 쌓아 아홉의 음(陰)을 세우고 열을 펼쳐 양(陽)을 만든다. 그러면 끝내는 궤(상자)가 없는 삼(三)이 된다. 이는 천. 지. 인. 삼신의 작용으로 음양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천에도 음양과 천지인이 있고 지에도 음양과 천지인이 있으며 인에도 음양과 천지인이 있다. 하기에 천지인 그 셋을 합하면 육과 칠과 팔과 구라는 숫자가 생겨난다. 그러므로 1.2.3.4.5.6.7.8.9. 이 모든 자연수가 이곳에서 모두 드러난다. 삼신의 작용과 천지음양의 운행이치도 이에 포함이 되며 그 모습은 다음과 같다. 토(土)를 가운데 두고 5와 10이라고 하며 그 아래로 수(水)에 1과 6이라 하며 좌에는 목(木)의 3과 8. 우로는 금(金)이라 하며 4와 9. 맨 위로는 화(火)로써 2와 7이라고 하메 156(水→土→水). 257(火→土→火). 459(金→土→金). 358(木→土→木). 각각의 3자연수가 4곳에서 자전을 하여 5를 중심으로 7자(칠성진)를 이루면서 서로 도움이 되는 기운들이 그 뒤를 따라 한바퀴 돌면(칠신기화) 결국엔 대통일인 하나가 완성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일기(一氣)이다. 이 하나가 묘하게 넘쳐 만 번 왔다갔다하여 그 쓰임은 변하여도 그 근본(土또는 우주)은 움직이지 아니한다. 고로, 만물은 이 하나가 진동하여 간섭하므로 서로 존재하며 억조창생 천변만화 한다. 그러나 그 중심이 되는 태극(소우주-즉 중심을 말한다)은 부동한 다. 그러하기에 대 우주와 소우주의 중심이 되는 인간의 몸 안에 있는 우주는 본체심과 나의 심(心)이 하나되어 영원히 밝게 빛나리라. 그 이유는 사람과 만물이 가운데 있으며, 그를 둘러싸고 천지 음양이 하나가 되기에, 하나의 끝은 무에 끝나나 결국에 가선 새로운 하나가 되기 때문 이다." "휴~우." 정말로 오랜만에 온몸에 기운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내가 조금 전 이런 일들을 벌이게 된 원인은, 모두 저기 떠있는 실뭉치 녀석이 벌써 일주일이 다되어 가도록 꼼짝도 안하고 나와 놀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저놈이 마지막에 내뱉은 알쏭달쏭한 말에 힌트를 얻어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내 몸안에서 서로 다른 기운들이 부딪혀 지금 상처가 더 악화가 되었다는 매우 찜찜한 말이 내 뇌리에 남아 있었기에, 난 예전의 기억들을 더듬어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난 아침에 기분 좋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다음은 당연히 유모가 내어준 맛난 이유식(?)- 흠. 이건 절대 아니다. 단지, 내가 안먹으면 작은 숟가락을 사용해서 강제로 내 입에 넣곤, 코와 입을 꼭 막아 버리는 악독한 식사법이 존재했기에, 난 어쩔 수 없이 환자의 몸이라는 핑계로 유모의 극성에 말려들어서 늦은 아침이라도 이유식만은 꼭 먹어야만 했다. 참. 그나마 다행인 점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냉기가 풀풀 날리던 엄마의 얼굴이 며칠 전, 내 방을 다녀가신 이후론, 마치 따스한 봄 햇살처럼 부드러워지셨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점만은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내가 알고 있기론 그 냉기에 여러 사람들이 얼음동상이 되었던 걸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이틀을 보내면서 이젠 나의 완벽한 쫄병이 되어 버린 먼지 사촌녀석들이 제법 제식훈련에 익숙해져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얼차려를 고만 못하게 되자, 난 금새 싫증이 났다. 그런 내가 할 일이라곤 딱 하나 밖에 없었다. 내 방에 있는 유일한 책인 갈리아스 전기를 붙잡고 달달달 외울 정도로 읽는 일이 나의 유일한 안식처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예전에 이 책에 숨겨져 있던 이상한 인체 구조도와 그 밑에 적혀있는 아직은 익숙하지도, 그리고 문맥도 엉성한 고대문자들 속에서 이와 같이 신묘한 기운을 다스리는 비법들이 적혀 있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게 되었다. 물론 위에 있는 것들과는 하등에 관계가 없고, 난 그저 내 전생의 기억들 중에서 그와 유사한 내용의 글들을 떠올리며, 나 스스로 짜집기한 고대문자와 그 예전의 기억들을 접목 시켜 버린 것이다. 정확하게는 천부경이라고 하는 아직까지 누구도 그 내용과 뜻을 잘 알지 못하는 81자의 구절들과 신선지경이라는 선경(仙境)에 이르는 깨달음을 준다고 하는 도가의 문구들을 고대 문자와 짬뽕한 것이었다. 무릇. 무예란 정신이 맑아야만 올바른 수행의 길에 올라선다고 하시면서, 이른 새벽부터 암자 뒤쪽에 있는 짧고 가파른 절벽 위에 올라서게 하신 어떤 분이 계셨다. 그분은 나에게 매일 마다 천부경을 이용한 단전 호흡을 익히게 해주신 분으로 진실된 내 마음속의 스승님이셨다. 바로 그분 노명대사님의 가르침이 오늘 가장 큰 효과를 보게 해주었다. 들숨과 날숨이라고 하는 걸로 나에게 회초리 검법을 확실히 가르쳐 주시고, 천부경의 글자순대로 두 구절을 외우는 동안 숨을 들이마시면서, 양쪽 엄지손가락들을 손안에 넣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꽉 움켜쥐며, 동시에 항문에 힘을 주어 마치 우주의 기운을 몸안으로 빨아 당기듯이 들숨을 쉬게 하시고, 또 다른 두 구절을 외우는 동안은 서서히 코로 숨을 내쉬며 마치 숨을 내뱉는 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살살 불어내며 단련하게 하셨던 이 단전호흡이 새로운 육체로 태어난 내가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난 내 스스로 아직 어린 아이의 몸인 여기에서 이 단전 호흡을 다시 하게 되었을 땐, 그야말로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이유는 바로........ 들숨을 들이쉬면서 천천히 천부경을 암송하면, 내 주위에 있던 먼지 녀석의 사촌에 팔촌까지, 모든 먼지 녀석들이 나에게 달라붙어서 점점 나의 피부 속으 로 스며들 듯이 들어왔다가, 천천히 내쉬는 날숨과 천부경의 구절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선 나의 몸을 한 바퀴 일주천 한 다음에 나의 몸을 살며시 빠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호흡을 반복하면서 문득 내가 느끼게 된 사실은 이 먼지 사촌 녀석들이랑 팔촌에 사돈까지 될 수많은 떼거지의 먼지 녀석들이 각각의 기운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어느 놈들은 아주 친한 듯 서로 두 개의 실을 비비며 하나로 만들 듯이 호응을 하기도 하고, 어떤 놈들은 마구 으르렁거리면서 머리끄댕이(?)-이 놈들 이 어디가 머리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난 단지 이놈들이 서로 가느다란 끝 부분을 날카롭게 세워서는 서로 찌르려고 하는 걸 이렇게 표현했다. 하여간 서로 아웅다웅하는 녀석들부터 가지각색의 먼지 놈들이 나의 몸밖에서 싸우다간, 금새 내 몸을 한 바퀴 돌고 나더니 이젠 아예 저기 저혼자 떠있는 재수 없는 먼지 녀석처럼 둥글 게 서로 모여, 내 몸을 들어갔다 나오기가 무섭게 그 크기를 점점 부풀리며 나의 몸을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 것이었 다. 그러자 나의 몸은 신기하게도 그동안 말을 안해서 그렇지, 매우 근질 근질거리고 쓰라리기도 했지만, 그런 것쯤은 부모님을 위해서 참는 다는 생각으로 버텼더니, 이젠 내 몸에 딱딱하게 붙어있던 딱지들이 자연스럽게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아주아주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니 내가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그동안 좁은(?) 방안에서 갑갑하게 지내던 몸을 완전히 완치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난 수십 번의 일주천으로 주문을 반복하며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땐 내 주위에 몰려 있던 먼지 녀석들의 모습은 정말로 가관이었다. 참나~ 내 좁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수많은 실뭉치 녀석들이 이제는 그 수가 너무도 많아서, 자꾸 방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시원한 바람을 나에게 선사하며 살며시 그리고 찬찬히 하나둘 사라지는 데 그모습이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하얀빛무리에 휩싸인 녀석이 있는가 하면, 붉게 빛나는 녀석도 있었고, 파란빛의 무리와 투명한 빛으로 안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녀석들 등. 도합 다섯 가지의 빛깔을 지닌 녀석들이, 내 몸 주위를 돌면서 나에게 살며시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은, 내가 넋을 놓고 쳐다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런 황홀경에 빠져서 멍하니 앉아 있던 난 느닷없이 나를 안아주는 손길에 깜짝 놀라 오줌을 살짝 지리며, 그 손길의 주인공에게 가벼운 째림을 선사해주었 다. 그 손길의 주인공은 자기가 해놓고도 미안한 듯이 나에게 빙긋 미소를 날려주기 에 조금은 화가 풀어진 난 투덜거리는 말들을 그 존재에게 날려 주었다.. '쳇. 건방진 먼지 녀석. 이젠 너가 나랑 안놀아 줘도 나도 이제 데리고 놀 애들 많 ~아!' 거의 유치할 정도의 어린아이 심보였다. 그래도 어떻게 하는가. 내 몸에서 이는 의지는 내 작은 이성으론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기 시작한 나였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 맘에 정말로 안드는 녀석은 나에게 씨익 웃음만 날려주고 있었다. '후후후. 정말이세요?' '헉. 이짜식이~!' '왜요? 제 목소리가 너무 안 어울리는가 보죠?' 소름이 돋을 만큼 청아한 맑은 목소리가 나의 귀를 감미롭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미 많이 삐진 상태인 내가 얌전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예전과는 많은 변화가 이 녀석에게 있었는지, 내 머릿속에 들려오는 이 녀석의 목소리는 말그대로 소름이 다 돋았다. 이런 소름을 동반한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내가 얌전히 넘어가면 사람이 아니였 다. '쳇, 알면 됐어. 글구 이제 넌 가~! 그동안 내가 불러도 대답도 안하고, 감히 배신을 때리는 녀석은 이제 나도 필요 없어.' 조금은 눈앞의 다른 먼지 녀석들을 믿고 큰소리를 치는 나였다. 허나, 이녀석도 결코 만만한 놈은 아니였다. '쿡쿡쿡. 전 그동안 이렇게 몸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 잠시 몸을 감춘 것뿐인 데.......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사정이 있어서....' <쳇, 이자식이 어디서 감히 핑계를 대는 거야? 흥이다. 요놈아. 그리고 나도 이젠 언제든지 너같은 놈 불러낼수도 있어.> 갑자기 그리고 막연히 내 뇌리 속엔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함께 시작된 나의 심술을 가히 극치에 달해 있었다. '흥흥흥. 그딴거 다 필요 없어. 쳇. 내가 왜 이딴 자식이랑 말을 나누는 거야~! 쳇. 이제부터 무시모드! 시~작~! 무시....무시......무시...' '쿡쿡쿡.' 흥. 도리도리. 꾸욱. 난 점점 두 손에 힘을 잔뜩 주면서 내 큰 머리통에 달려있는 귀를 불쌍하게 마구 짓이기면서 먼지녀석의 말들을 전부 쌩까기로 했다. 하지만 이젠 업그레이드가 된 듯, 조금 더 커진 몸을 가지고 내 앞에서 살살 날아다니며 작은 바람을 일으키는 녀석의 태도에 화가 치민 나는 그냥 콱 깨물어 주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라는 생각을 마구 날려보냈다. 주춤. 삐질삐질. '크크크. 그래. 이젠 네놈한테 공포의 내 손바람이 안통하면 비록 두 개뿐이지 만, 그래도 제법 자란 나의 이 강력한 이빨로 자근자근 깨물어 주마.' 난 점점 불타오르는 의욕을 돋구며 점점 그 싸가지 없는 녀석을 잡아서 어떻게 하면 더 아프게 깨물어 줄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잠시 주춤거리는 녀석의 몸을 날렵한 손짓으로 잡아 채 버렸다. "끼끼끼. 잡았당" 쿄쿄쿄. 너무도 신이 났다. 이 녀석이 의외로 둔한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제법 빠른 속도로 휘두른 내손에 너무 손쉽게 잡히자, 난 마구 신이 나서 두 팔을 빙빙 돌리며 매우 즐거워했다. 그래. 어디부터 깨물어 줄까? 음. 이왕이면 어두일미(생선은 머리부분이 최고의 별미라는 뜻)라고 했으니깐. 머리부터........확실히 씹어줘야지. 아~~! 그러나 나의 이런 간절한 바램이 깃든 시도는 그만 기겁을 하고 달려오신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중단이 되는 사태에 직면했다. "얘. 싸이야~. 안~~돼. 그런 존재를 함부로 괴롭히면 큰일나요~!!" '칫. 엄마잖아. 우이이잉. 이 짜식 혼구녕을 내줘야 두 번 다시 안까부는데.....' 난 느닷없이 나타난 엄마의 몸이 바닥에서 살짝 떠 있다는 사실도 눈치 못채곤, 그저 엄마에게 이 녀석을 빼앗길까봐 안절부절 했다. "이리......" 도리도리. "씰~어!" "이익. 어서....." 설레설레. "씰따고 했짠아~~!!" "어헛. 어서 빨리..." 난 엄마의 내민 손을 마구 거부하면서 점점 침대의 모서리 부분으로 엉덩이 후퇴 작전을 실행하며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어 제켰다. 하지만 어른인 엄마의 손길은 이런 나의 몸부림보단 매우 빠른 관계로, 난 더 이상 앞으로 그리고 뒤로도 나가지 못하는 첩첩산중에 고립무원이 된 상황을 맞게 되었다. "자~아. 우리 아들 착하지!! 어서 엄마에게 손에 든 그 녀석을 주렴." "이띠. 엄마 미~뻐~!! 히이이이잉" 난 결국 한손으로 나의 어깨를 꽉 누르면서, 다른 한손으론 강제로 내가 두손으로 꽉 움켜쥔 녀석을 빼앗아 가는 엄마의 강한 집념에 굴복을 해야 만 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순순히 물러나면 절대로 남자가 아니다. "이~~이.....익" "꺄아아악. 싸이~야~~~!" 대롱대롱. 도리도리. 꽉꽉꽉. '끄아아아아악' 헤헤헤. 성공이다. 근데 왜 이렇게 발 밑이 허전하지? 쑤~욱. 꽈당탕. "꽤~액!! 으아아아아앙" 역시 난 집념이 강한 사나이었다. 크크크. 정말로 이 놈의 먼지 녀석은 나의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놈이 확실했다. 너무도 화가 나서 주체를 하지 못한 나로썬 당연히 응징을 받지 않고, 엄마의 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에게 안도의 미소를 보내던 녀석을 절대로 그냥 둘 순 없었다. 잠시 내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팔짝거리며 뛰어선 그녀석의 작은 엉덩이를 꽉 깨물자, 안심을 하고 일어서던 엄마의 힘에 의해, 난 그 큰 머리통을 유지하느라고 고생하는 나의 목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여전히 작게 솟아 오른 내 이빨엔 그 녀석의 엉덩이가 말랑말랑한 촉감으로 물려져 있고, 그런 나를 들어올리신 엄마의 한 팔뚝 굵은 파워는 가히 나를 가녀린 목의 소유자답게 바닥으로 추락하게 만드는데 더욱 큰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내가 바닥을 향해 떨어진 높이는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다리부터 시작해서 엉덩이를 바닥에 떨구면 그리 아프지 않을 것을. 이 망할 놈의 큰 바위 얼굴의 머리통이 동시에 바닥에 착지를 해서는 난 지금 눈앞에서 노오란 병아리들이 별들과의 댄스로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의식을 잃지 않을 소냐. 당연히 그 다음부터의 기억은 없다. "후우~! 됐다. 이제 그만 해도 돼." "죄........송해요. 엘렌님." "응? 엘렌?" 엘렌은 아들이 기절하면서까지 괴롭히던 실프 녀석을 무섭게 째려보며,. 기절한 아들의 상태를 확인해보면서 제법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온몸에 진물이 흘러내려서 덕지덕지 누런 고름과 딱지들로 온통 붕대를 더럽혔던 아들의 몸이었다. 해서 매일 아침마다 갈아주는 새 붕대 속에서 안타까움을 동반한 모정을 느끼게 해주던 아들의 몸이, 예전보다 더욱 깨끗한 피부를 자랑하며 뽀송뽀송한 느낌으로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캐묻듯이 실프를 노려보자, 실프 녀석이 알아서 기며 설명한 바에 따르면 엘렌은 너무도 황당해서 믿지 못할 노릇들로 그녀의 머릿속을 온통 도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뭐? 자기 몸 안에 마나를 들어오게 해선 몸을 한바퀴 돌고 감싸게 하다가 밖으로 내보낸다고?! 이건 드래곤인 그녀로써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들이었다. 더구나 대기에 흩어져 있는 다섯 가지의 기운들을 모두 몸 안에 흡수를 해서 다시 내 보내면 그 기운들이 아들의 뜻대로 물의 기운이 되었다가도 불의 기운이 되는 ......이런 황당한 말들을 사실이라고 내뱉는 실프 녀석의 말을 어떻게 드래곤인 그녀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녀는 자기아들이 몸 안에 마나들을 모을 수 없는 체질이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이 자식이 하는 말이 더욱 가관이었다. '싸이님은 몸 안에 마나를 담아두시는 체질이 아닙니다. 싸이님은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 주변의 기운들을 정화해 주시는 힘을 가지고 계시기에, 싸이님의 몸에 들어갔다가 나온 마나들은 태초에 이 우주를 이루고 있는 순수한 힘의 결정체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에, 굳이 마나를 몸 안에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싸이님이 마나들을 사용하고 싶을 때에는 그때그때 마다 주위의 기운들을 몸 안으로 부르셔서 사용하시면 되는 분이 바로 싸이님이십니 다' 라고 한다. 그러니 그녀는 요 며칠동안 아들의 방에서 하위정령에서 최상급 정령으로 변신 해서 앞으론 그녀에게 최고의 가디언이 되어줄 실프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꼈 다. 그리고 엘렌 자신이 직접 소환해서 계약을 맺은 실프라서, 항상 그녀에게 존중의 예의를 보이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해야 될 녀석이 이젠 그녀보다는 아들에게 더욱 극진한 예의를 표하자, 엘렌은 약간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며칠동안 오늘이 기다려지기만 하던 그녀로썬 더욱 이 실프라고 하는 먼지 녀석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1500년 가까운 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계약하게 될 최상급정령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엘렌은 제법 의젓함을 보이며 잠시 솟아오르는 화를 삭히 자, 이제는 이 놈의 하찮은 하위정령이었던 놈이 그녀의 이름을 떳떳하게 부르고 있 는 것이다. '흥. 이젠 최상급 정령이라서 나같이 웜급도 되지 못한 성룡들은 우습다는 것이 냐' '후후후. 아닙니다. 엘렌님은 나의 최초의 소환자이시자 주인님이십니다.' '흥흥흥. 그런데 지금 감히 내 이름을 부르다니......' '후후 그건 이제 제가 엘렌님의 종이 아닌 싸이님의 하나의 부속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기에 그러는 것이죠.' "뭐? 싸이의 부속? 흥흥흥. 네까짓게 감히 이제는 최상급의 정령이 되었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태초의 약속은 오직 주인인 나와 너를 내게 연결시켜준 정령왕의 허 락이 없을 때에는 절대로 그 계약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후후후. 언성을 낮추시지요. 그리고 전 지금부터 엘렌님이 싸이님의 팔목에 채워주신 스트레인지 섹션 마법의 인도자로 정령왕께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시니 그만 화를 푸세요.' '뭐? 흡수변환 마법이 걸려 있는 저 팔찌의 인도자?' '예. 싸이님이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다른 성질의 마나들을 받아들이셔도 큰 탈이 생기지 않으시는 본래의 체질을 되찾기 시작하셨으니, 전 태초의 명대로 싸이님을 위해서 그분의 순수한 육체와 그 육체를 통해서 정화될 마나들의 인도자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엘렌님을 잠시 부른 것입 니다.' '그.......그.럼 난? 난 뭐가 되지? 네까짓 녀석이 정령왕의 이름을 팔아서 나에게 서 해방이 된다면, 너에게 준 나의 힘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잘 알고 있을 정령왕 이 너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다면 나에 대한 사과는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엘렌은 갑자기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뺴앗긴듯한 분노를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어디 성룡으로써 최상급의 정령을 가진 존재가 있었던가. 웜급이 되어도 최상급의 순수한 힘을 지닌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드래곤은 거의 없었다. 헌데 자신의 힘을 부여받은 실프가 이젠 눈앞에 최상급의 정령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이 실프란 놈의 몸에 어린 기운을 짐작해 볼 때 왠만한 최상급의 정령들 보다 더욱 순수한 힘을 갖고 있었다. 이런 소중한 보물이 갑자기 배신을 하듯이 태초의 약속을 어기곤 자신에게서 떠나 아들의 부속이 되려고 한다. 이러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면서도 냉정한 이성으로 손실을 따지기 시작한 엘 렌이었다. 아마 흡족한 대답이 없다면, 엘렌으로썬 이 녀석을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 다. 그런 엘렌이 죽일 듯이 노려보자, 그 눈에 서린 기운들도 담담히 받는 놀라운 모습의 실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엘렌의 마음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그건 오로지 그분의 뜻. 그점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른답니다. 대신, 그분이 저 때문에 생긴 문제로 인해 엘렌님께 전하라고 하신 말씀은, 곧 그분께서 엘렌님을 만나 뵙겠다는 말씀을 꼭 전하라고 하셨으니, 엘렌님께서도 조금만 참아주시길.' 당당하게 드래곤인 그녀의 기운에 맞서며 대답하는 실프의 기세에 눌려 엘렌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최상급의 정령은 왠만한 웜급의 드래곤들보다 그 기운이 강하다. 그런 존재가 이제 갓 성룡을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된 엘렌에게 벅찬건 사실이었다. 그런 존재가 지금도 눈앞에서 다소 공손한 모습으로 말을 전하는 까닭에 화가 가라앉기 시작하는 엘렌이었다. 더구나, 그 말의 끝엔 에이션트 급의 드래곤들 중에서도 고룡급에 속하는 존재들만 겨우 볼 수 있는 정령왕이 직접 그녀를 보러 온다는 말이 있었기에 더욱 쉽게 화를 푸는 엘렌이었다. '끄응.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할말은 없군. 알았다. 그럼 꺼져 버려라.' '네. 역시 실버 일족의 박력이 물씬 풍기시는 엘렌님께 제가 잠시 종속되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알고 전 이만......' 엘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프라는 하위정령에서 먼지 녀석이라고 이제껏 구박을 받다가, 이제는 최상급 정령이 된 녀석은 그렇게 싸이의 팔찌에 종속이 되면서 싸이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또한, 엘렌은 당연히 자신의 종이 될 줄 알았던 최상급 정령을 앞장세워서 그동안 드래곤으로써, 그녀를 얕잡아 보았던 또래의 드래곤들에게 자랑을 하며 뻐길 생각을 그렇게 속절없이 접어야만 했다. 단지. 앞으로 만나게 될 무시무시한 정령왕의 기운을 생각하며 나름대로 위안을 받는 그녀였기 때문에, 엘렌은 잠시 아들의 평온한 얼굴을 몇 개월만에(한달이 조금 지났다.) 보는 것인지,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아들을 품에 안고 곤히 재우기 시작했다. 하긴 정령왕이라고 하는 존재들은 에이션트라고 하는 지상최강의 존재인 고룡들 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그녀의 마음 속엔 어느새 6.000살이 넘어야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정령왕이 빠른 시일 안에 그녀 앞에 모습을 들어낸다는 사실 에 조금 전의 불쾌감을 모조리 털어 버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신룡의 후예 - 제 16 화. "냠냠. 우걱우걱. 쨥쨥" 이 무신 소리인고 하니, 바로 내 옆에서 음식을 열심히로는 모자랄 만큼 줄기차게 먹어 대고 있는 시넨누이의 멋진 화음을 이용한 우아한 식사 모습이었다. 나도 이젠 이빨이 조금씩 난 관계로, 약간 보드라운 살결을 지닌 고기 몇점을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 내 옆에서 저렇게 돼지처럼 먹어대는 시넨누이 때문에, 내 접시 위에 놓인 고기 몇 점들은 내가 엄마나 아빠. 그리고 완쾌한 날 보며 마구 미소를 날리는 삼촌에게 내가 잠시 시선을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놀라운 마법접시를 난 가지게 되었다. 말그대로 접시 위에 있어야할 내 아까운 식량들이 나도 모르게 사라진 것을 건방지게 주인인 나에게 통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칫. 저놈의 가시나는 무슨 음식 욕심이 저리도 많은지.' 하지만 난 내색은 삼가기로 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시넨누이가 이젠 제법 예절을 갖추고 나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맨 처음엔 삼촌의 손을 잡고 내 생일파티라면서 조촐하게 차려진 저녁상을 가족들 모두와 같이 먹으러 그녀가 나타났을 때에는, 불과 몇 일전까지만 해도 그녀 덕분에 얻은 영광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던 날들을 상기하며 난 그녀를 무서운 눈으로 피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시넨 누이도 그날의 악몽 때문인지 날 보면서 가벼운 딸꾹질을 하더니, 언제 배웠는지 제법 얌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인사를 해왔다. 난 그모습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째려보자, 여전히 헤헤거리며 웃고 있는 시넨의 얼굴엔 조금이나마 나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남자인 내가 대범하게 용서 할 수밖에. 그 후, 우리들의 식사시간은 예전과는 달리 아~주 화기애애하게 보내게 되었고, 가끔씩 내 마법접시가 마법을 발휘해서 음식들을 어디론가 순간이동만 시키지 않았다면 난 아주 행복한 생일 식사를 했을 것이다. "꺄아~~. 너무너무 귀엽당." "헤헤. 그러찌?" "응. 나도 이거 하나만 주라~앙. 응?" "피~. 글떼~? 아까또 내 밥 다 뺴써머근 너한때 내까 왜?" "이잉~! 그건 싸이 너께 더 살살 녹는 맛이 있으니까 그랬지! 하지만 나 이제 안그럴께. 응?! 이거 하나만~~응응응!!!" '후후. 드디어 니가 제정신을 차리는 구나. 까짓거 그 기념으로 내가 이정도 못해 주겠냐.' 이 무슨 난동이냐고 물으시면, 난 자신 있게 거하게 식사를 끝마친 일행들이 오늘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서 잠시 내 방에 모여 수다를 떨다가, 내가 코하고 잠이 들자 그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시넨 누이를 내 침대와는 조금 떨어진 간이 침대에 누이고, 일행들 모두가 응접실로 내려가면서부터 생긴 일들 중 하나라고 설명하겠다. 내가 잠시 곤하게 한숨 때리고 일어났을땐 내 침대 머리맡에서 두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유심히 내려다보는 시넨누이를 난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상상을 해보라. 곤하게 자고 개운하게 일어나던 내 눈앞에 갑자기 시넨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날 내려다 보고 있다면,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난 기겁을 한 채 허둥지둥 놀라 일어났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그녀는 예전과는 달리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뿐. 그 공포의 똥배치기나 거대한 똥배로 나를 깔아뭉개며 하는 잔인한 말타기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그 점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고 한 고생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아찔하다. 난 잠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시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그에 따른 선물로 나의 새로운 장난감을 소개해 주었다. 이 먼지 사촌 녀석들의 모습을 시넨에게 보여주자, 시넨 누이의 감탄은 지금처럼 끊이지 않고 나를 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난 당연히 내 주위에 있는 놈들을 하나둘 모아놓고, 시넨누이를 괴롭히는 것으로 그동안 내가 당한 일들을 부지런히 보복을 했다. 크크크. 한마디로 절대로 줄 수 없다는 굳은 신념에 사로잡힌 나였다. 그럴수록 더욱 애가 타서 나를 조르는 시넨을 보면서, 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힐 때 이런 기분일까?! 이제 제법 둥근 실뭉치에 존재감들이 느껴지는 먼지 놈들에게 내가 그동안 시켜왔던 제식훈련을 다시 한번 멋지게 그녀 앞에서 사열 삼아 보여주었다. 그때의 놀라워 하는 시넨의 눈을 난 잊지 못할 것이다. 크크크. 요것아. 그렇게 군침을 흘려도 난 눈하나 깜빡 안할꺼야. 분명히 속으론 이렇게 복수의 칼을 갈면서 즐거워 했던 나였다. 그러나...........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의 의지는 분명히 시넨을 괴롭히며 그것을 바라보기를 원했건만, 감히 내 의지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본능은, 어느새 시넨누이가 가~장 좋아하는 붉은 빛의 작은 테니스공만한 크기의 먼지 녀석을 그녀의 손에 덥썩 쥐어 주고 있었다. 헉.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 넌 분명히 내 의지대로 움직여야 할 몸이란 말야. 제발 자아를 가지란 말이다. 자아!!. 허나 이 본능은 나를 보면서 기쁨에 겨워 몸부림을 치는 시넨 의 얼굴에 온통 쏠려 있어서, 함박웃음이 가득 어리면서 금새 신기한 장난감에 매료가 된 시넨을 보며 흡족한 미소로 나를 또 배신하고 있었다. 이익, 이 나쁜 놈. 감히 주인인 내 의지를 배신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다니......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흡족한 거지? 조금은 알 수 없는 훈훈한 기분이 내 마음속에 전해지고 있었다. "헤헤헤. 너무 이쁘당. 싸이야. 글구 저기저기 흰색 토끼 같은 것도 나주랑. 응?" "허~. 그건 안때. 쟤는 얘랑 싸이까 안쪼아. 끌구 씨넨은 얘까 더 쪼아." 어느새 손에 든 신기한 장난감에 매료가 된 시넨은 자기 손에 들린 앙증맞은 두가지 색의 장난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움켜쥐면서, 역시 시넨다운 과다한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시넨을 보면서 나는 흡족한 미소를 더욱 진하게 짓고 있었다. 제법 의젓한 모습의 나인 것이다. 그런 내가 대견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을 무렵, 이젠 내 곁에 꼭 붙어선 이놈이 어쩌고 하면서 신이 나 떠드는 시넨에게 난 더욱 의젓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왜냐고?! 난 지금 불과 친한 속성인 바람의 기운을 지닌 녀석을 시넨의 손에 쥐어주었다. 하긴, 지금 시넨이 욕심을 내고 있는 약간 투명하면서도 파란빛이 도는 흰색의 물의 기운을 가진 먼지 녀석들은, 아무래도 불의 기운과는 상극이라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넨을 위해서라도 난 나와 가장 친한 바람의 기운을 담고 있는 녀석들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게 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독거리는 것을 잊지 않고 욕심내지 말라는 멋진 충고를 한참동안이나 해줘야만 했다. 시넨도 내가 설명하는 걸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조금 튀어나온 볼살로 추정해 볼 때 뽀루퉁 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따라주었다. 그 후, 나는 그녀와 먼지 녀석들이 아주 친하게 어울리며 공굴리기 놀이를 하는 것을 보며 역시 시넨은 어디까지나 시넨이라고 생각했다. 이 엽기 공주 시넨은 그동안 제법 성숙한 듯, 귀여운 금발머리를 곱게 두 갈래로 묶어서 그녀의 푸른 에메랄드 빛 눈동자와 아주 잘 어울리는 동일색의 드레스를 차려 입고 있었다. 헌데도 시넨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입고서도 마구 바닥을 박박 기면서 먼지녀석들을 가지고 구슬치기 하는 모습은 나에겐 역시 너답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나도 왠만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조금 떨어져 있는 녀석을 그 큰 눈으로 째려보고, 납죽 엎드린 머리로 각도와 거리를 재더니 벌떡 일어나서는 발로 한방에 차서 두 녀석을 내 방 벽에 부딪히게 만들 정도의 파워를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 녀석이 서로 부딪히면 좋아라하며 손뼉을 치고, 두다다다닷 거리며 달려가선, 이제 반대의 녀석을 향해 똑같은 짓을 하더니 잠시 자기 실수로 그 녀석이 맞추질 못하게 되면-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실수 때문에 안 맞은 것이다. - 자기가 찬 놈을 끝까지 쫓아다니며 발로 때찌때찌를 하는 것이다. 참나~! 그러니 내가 그 먼지 녀석들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였겠는가!! 이제는 시넨누이의 보복이 무서운 그 불쌍한 먼지녀석들이 스스로 알아서 시넨 누이가 눈치채지 않게, 살며시 각도를 바꿔 지들 스스로가 상대를 맞추기 시작하자, 한참을 내 넓고도 엄청 넓은 방안을 먼지를 날리며 도도도~ 다다닷 거리며 뛰어다니던 시넨은 이윽고 제법 지쳤는지, 싫증난다면서 그 먼지 녀석들을 품에 안고 날 보며 배시시 웃는다. 헉. 난 쟤가 저렇게 웃을 때가 가장 무서버. 역시 난 그녀에게 이미 익숙해진 메조라서(허거덩^,^;;) 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웃음에 담긴 놀라운 엽기에 절로 주눅이 드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왈. "헤헤. 우리 싸이가 나땜에 아야~~! 해서 이제 시넨은 우리 싸이 많이 이뻐하지 않을께. 대신 쪼금만 이뻐해도되지?" 라고 한다. 헐. 정말로 소름끼치는 말이었다. 그럼? 그동안 그 엽기적이며 변태적인 애정표현이 날 이뻐해서 한 짓들인가? 정말로 소름끼치는 엽기 부녀의 딸이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이런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내곁에 다가올땐 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난 너무도 무서워서.........꼼짝도 하지 못했다. 마치 맹수의 제왕이 작은 토끼 같은 먹이감에게 선보이는 살기와 기세를 보이듯이 점점 내게 다가오는 시넨의 모습에선 그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무시무시한 기세가 날 더욱 움추러 들 게 만들었다. 그러나. 쪼옥. 할짝할짝. 헤에~. 쪾쪾쪾. 크윽. 확실히 변하지 않은 건 하나있다. 어떻게 자기가 뽀뽀하고 내 뺨에 묻은 침을 더럽게 할짝거리며 핥는단 말인가. 더구나 조금이라도 물기가 남아있으면 매우 아깝다는 듯, 이제는 쭊쭊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쭉쭉 내 뺨을 빨아 당기고 있으니.......... 난 그날 그녀의 이 뜨거운 키스세례에 고만 양쪽 뺨이 볼그스레.... 그리고 탱탱 부어 며칠동안 제대로 입을 놀리지도 못했다. 물론 그 이후에 벌어진 일 때문에 더욱 그렇겠지만....... <19> "헤헤헤. 아무도 없다." 엉기적엉기적. 난 내 방을 나가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는 시넨누이의 의견에 엄청 뜨거운 열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러자고 맞짱구를 쳤다. 그럼 더 이상 내뺨이 터지기 일보직전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금 나의 뇌리 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손을 잡고 걸어갈땐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었다. 비록 내가 제법 잘 걷는다고는 하나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미 튼튼한 똥배덕분에 다다닷 거리며 달릴 수 있는 시넨 누이와는 전혀 다른 나의 주특기 걸음걸이는 그야말로 아장아장 이었다. 그런 나를 마구 잡아당기며 무어가 그리 급한지 빨리빨리를 연발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난 덜컥 겁이 나서는, 잽싸게 내가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자세로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는 두 손과 두 무릎을 사용해서는 두다다다 거리는 그녀를 도도도도거리며 뒤따라 잡기 시작했다. 에휴, 그놈의 가족이라는 정이 뭔지. 내가 요 망할 계집아이한테 왜 이렇게 질질 끌려 다녀야 하는거야. 처절한 비명은 그냥 속 안에서만 존재했다. 말한마디라도 잘못해서 시넨이 화를 낸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이런 겁나는 생각들을 정리하며 고생 끝에 다다른 응접실엔 제법 시간이 많이 지나갔는지, 작은 접시에 담긴 안주거리와 비스듬히 바구니에 누워있는 몇 병의 포도주 병들만이 우리 두사람을 반겨주고 있었다. '에궁. 아무도 없네? 근데 하인들은......' 평소라면 늦은 밤이라도 황제폐하가 잠시 방문하신 이 마당에 간 크게 잠을 잘 하인들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 생일이라고 성내에 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황제폐하의 은혜를 받아 공짜 술과 음식들을 마구 먹어치운 관계로, 지금 우리집도 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 은혜에 충실하기 위해서 어디선가 열심히 술과 안주를 벗삼아 나에 대해서 열나게 씹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를 하면서 축하해주기로 이미 결정을 보았기에. 오늘 같은 날 우리 집은 평소보다 더욱 조용한 밤이 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얼마 전까지 병상에 누워있던 나 때문이기에, 내가 시끄러운걸 무지 싫어하는 버릇과 습관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주변사람들이 나름대로 나를 위해서 준비해준 작은 선물이었다. 그러나....... 다다다닷. 껑~충. 투~웅. 덥석. 와구와구. 꿀꺽. "헤에. 마씨따." 이미 많이 해본 솜씨인지 익숙하게 의자를 쿠션 삼아 거의 내 키만한 식탁으로 날아 올라간 시넨은, 어느새 발견을 했는지 양손에 포크와 음식들을 들고선 조금은 큰 테이블 위에 거하게 차려진 음식들을 그새를 못 참고 마구 입안에 가득 집어넣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짓으면서 나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쿠쿠쿠. 저 걸신들린 지지배.' 이 한마디가 가장 확실한 것이리라. 하지만 난 나를 부르는 그녀의 손짓에 감히 그리고, 언감생심 반항할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나마 오늘처럼 시넨이 얌전하게만 있어줘도 얼만데...... 도도도도도. 낑낑. 헥헥. 끼~~잉. 겨우겨우 의자를 이용해서 내 큰 머리를 테이블 위에 두고, 두 발을 팔짝팔짝 뛰면서 겨우 올라간 테이블 위엔, 미처 손대지도 않은 여러 음식들이 우리를 아주 기쁘게 반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음식들이 대부분인 관계로, 난 차마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음식들은 애써 무시하며 가만히 앉아서 내 앞에서 더욱 신이 나서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있는 시넨누이를 빤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쩜 저리도 맛있게 먹을까?' 한 손에 든 포크로는 연신 음식들을 마구 찍어 나르면서도, 다른 한손을 절대로 놀려 둘 수 없다는 듯이 마구 주물럭거리며, 입이 터져라 음식들을 집어넣는 그녀의 모습은 가히 그리 이쁘게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주 잘먹는 씩씩하고 귀여운 아귀(餓鬼)가 내 앞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난 그냥 넋을 놓고 그런 그녀의 모습만 보고 있었으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응접실에 왔을 때부터 코를 자극하는 아주 향긋한 냄새가 지금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에서 더욱 진하게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불쌍한 내 운명이었다. "음냐. 음냐. 꿀꺽. 쨥쨥. 마띠따. 우물우물. 꿀꺽. 헤~ 아~~앙." 여전히 옆에 앉아서 내가 뺏어 먹을까봐 더욱 피치를 올리는 시넨을 보며 난 가만히 그녀의 옆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물끄러미 응시를 했다. '킁킁킁. 이거 저기서 나는 냄새 맞지?' 드레스를 입고도 책상다리로 테이블 위에 철퍼덕 앉아 있는 그녀의 무릎에는 치맛자락에 폭 덥힌 먼지녀석들이 조금씩 빛을 내다가 사그라트리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고, 조용한 응접실을 시넨이 음식 먹는 소리들로만 웅장하게 울려 퍼트리고 있을 때. 난 내 목을 가로지르며 넘어가는 아주아주 신 군침을 삼키며 가만히 시넨 누이의 옆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헤헤.마띠떠?" "우응. 마띠떠~!! 따이또 머끌럐?" "아니. 헤헤. 때씬 난 이꺼!" 그러면서 난 시넨 누이의 눈앞에 호리호리한 목을 가진 길고도 가는 병을 잡아 보이며 내심 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이 얼마 만에 먹어보는 알콜이냐!' 이름:*아방뜨까르또* 종류: 과실주<순수 포도주> 원산지: 카빌라이 몽셀 샤르 루워.... 이상이 내가 읽은 이 술병의 모든 것이었다. 지명은 사실 나도 잘 모르는 관계로 무슨 무슨 랜드라고만 써있어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짙은 블루의 병에 아기인 나도 한 손에 꼬옥 쥘 정도로 가는 목을 가지고, 점점 아래로 갈수록 그 라인이 마치 나팔바지처럼 아래로 뻗어나가는 이 병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는, 현재 나의 후각을 거의 마비시킬 정도로 뽕가는 냄새를 선사하고 있었다. '흐윽. 이 얼마만이냐!!' 사실 진짜로 그랬다. 난 점점 이곳에서의 삶이 익숙해지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대부분 안 쓰는 기억 창고쪽으로 보내고 있었다. 너무도 소중한 기억들은 가끔씩 찾아보기만 하고 있는 나에게 지금 이렇게 나를 기쁘면서도 슬프게 해주는 이 술이 너무도 반가웠다. 얼마나 추웠을까? 난 내 앞에서 두 뺨을 하얗게 만든 채, 발목이 푹푹 잠기는 폭설에 맨발과 하얗게 얼어있는 종아리를 가지고, 거의 잠옷과 비슷한 옷 위에 달랑 짧은 파카 하나만 걸친 소영. 아니 정확하게는 그레이스 N 티모시(N은 Nancy의 약자로 친한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세컨 네임.)를 만났을 때 내가 가진 첫 느낌이었다. 그녀는 오돌오돌 떨면서, 어두운 골목 안에서 더욱 움츠린 자세로 지나가고 있던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 큰 눈에 어린 검은 눈동자가 왜 그리 슬퍼 보였는지....... 난 늦은 밤까지 이어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의 저녁이 될 햄버거와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가다 나도 모르게 그만 그것들을 그녀에게 주고 말았 다. 흑. 나도 엄청 배가 고팠었는데..... 허겁지겁. 내가 준 음식들을 먹고 있는 그녀의 발은 파랗게 얼어붙어 있었고, 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내 목에 걸린 목도리를 걸쳐 주면서 잠시 그녀가 내가 준 음식들을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우면서 울먹이는 모습에 더욱 애처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넌 집이 없니?" ".............!" "말해봐. 너도 나처럼 검은머리에 동양인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트려 버리는 그녀의 얼굴은 사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불빛에 가끔씩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나와 같은 슬픔이 많은 눈동자라는 걸 잠시 본 것 이외에는....... 왜냐면. 난 그동안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자꾸만 눈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본다는게 무지 쑥스러웠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 눈물로 추정되는 따뜻한 물줄기가 흘러내리자, 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내 손을 내밀었다. 세상에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설마 했었는데 이 엄동설한에.... 더욱이나 수십 년 만에 내린 폭설로 이미 재해선포까지 된 이 마당에, 맨손으로 파카 안쪽에 두 손을 넣고, 지금까지 제법 오랜 시간들로 추정되는 시간을 저렇게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니........ 난 잠시 나와 같은 이방인을 이 낯설고 물 설은 동네에서 만났기 때문인지 금새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조금만 더 이렇게 있으면 얼어죽을께 뻔한 그녀를 내 등에 업으면서 어금니를 꾸욱 깨물었다. '이 나쁜 새끼들.....그래. 우리는 힘없고 가난한 나라 출신들이다. 그런 우리들을 동정심으로 데리고 왔으면 끝까지 책임을 못질 망정 이 추위 거리에 맨몸으로 내 쫓아 버리다니.........'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 생애를 통틀어 이런 슬픔만이 있는 사랑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따뜻한 욕조를 만들기 위해, 한겨울에도 난방비도 절약하던 난 그 날 기름을 소모하면서 펑펑 뜨거운 물이 나오는 욕조에 그녀를 눕히고, 가끔씩 마시던 싸구려 술인 독한 버번 위스키를 그녀에게 한잔 내밀며 싫다고 하는 그녀에게 강제로 마시게 해 버렸다. 그 후, 따뜻한 물 속에서 몸이 풀리면서 내가 준 알콜의 위력으로 곤히 잠의 세계로 떨어진 그녀를 안고선 난 내 침대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걸어갔다. 거의 전라에 가까운 그녀에게 두꺼운 내 추리닝을 입히고 내가 가장 아끼는 깨끗한 속옷들도 거침없이 입히면서, 난 점점 복받쳐오는 슬픔에 그녀의 몸 위로 눈물을 떨어트렸다. 이 가녀린 몸을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이 나쁜 새끼들~!! 온통 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자국들이 환한 불빛에 들어 날 때마다 난 젊은 남자라면 당연히 가지게 될 욕정은 전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난 점점 따뜻한 체온이 있는 내 품에 파고 들어오는 그녀를 더욱 따뜻하게 안아주면서, 내 방에 있는 전기 스토브를 가장 높은 온도로 틀어 놓은 채, 그렇게 그녀와 나의 첫날밤은 지나갔다. '후우~~! 그땐 나도 참 많이 미련했구나....... 그레이스 때문에 뼈빠지게 일하면서 돈이 아까워서 사지도 않았던... 덕분에 한동안 끊었던 술이 이렇게나 반갑다니.......' 아련한 과거의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난 그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손에 잡힌 술병에 시선을 던지며, 그만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 그 부드러우면서도 달싹 지근한 술을 단숨에 들이키기 시작했다. 목을 거쳐 내 위장으로 들어가는 술이 너무도 향긋했기에, 난 멋모르고 근 한 병 가까이 있는 술을 원샷에 가까운 짓거리로 고만 깨끗하게 마셔 버리고 말았다. '헤에~. 넘 맛있다. 후우~' 얼마나 감미로운지 내 몸 속에 들어가서도 향긋한 냄새를 코로 느끼게 해주는 이 멋진 놈의 이름을 다시 한번 기억하려고, 술병을 들어올리던 나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손을 따라 올라와야 할 술병은 올라오질 않고 내 몸이 점점 옆으로 기운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우응? 이상하다? 내가 왜 이러지?' 난 점점 기울어져 가는 몸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으면서, 앞에서 내가 하는 모양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시넨 누이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을 때에서야 내 머리에 이는 강한 충격을 받을 수 있었다. "꺄아아아아~~~악." 기우뚱. 휘익. 투~웅. 퍽. 헤롱헤롱. 따끈따끈. '헤헤. 그래도 기분은 좋~탓!' 뜨겁게 달아오르는 내 뺨의 이상현상에도 불구하고 헤롱 거리는 손짓으로 내 앞에서 날개를 활짝 편 병아리들을 잡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헤죽 거리다가 나는 점점 의식의 저편으로 떨어져 버렸다. 신룡의 후예 - 제 17 화. 우당탕. 쿵쾅. 두다다다닷. 헐레벌떡. "무.....무...무슨....." 헤. 아자씨. 옷은 제대로 입고 와야지요~! 딸꾹. 어라. 아닌가? 그럼, 지금 내 동생 만들려고 노력하시다 오셨나? 딸꾹. 에, 그....럼 내 아빠잖아~~~!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내 세 번째 생일의 마지막 기억이다. "싸.......싸~이~야~~~!" 엘렌은 남편과 근사한 저녁식사 후에 이어진 술좌석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있었다. 비록 시아주버님이신 황제폐하께서 홀로이 독수공방하시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왕궁에 가면 수십 명의 첩들과 여러 명의 후궁들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점점 뜨거워져 가는 남편의 눈빛에 반응하여 붉어져 가는 자신의 뺨을 매만지며, 먼저 방으로 들어가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야한 핑크색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는 잠자리를 같이 할 때마다 부부간의 의견존중을 위해서, 어느 한쪽이 상대를 원한다고 생각이 들면 입게 되는 말 그대로 뜨거운 밤에만 입는 야한 잠옷이었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남편을 위해 작은 최면효과가 있는 페르몬 향수를 살짝 뿌리면서 어서 빨리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에 침실에 왔다갔다하다 결국 침대에 몸을 눕히며 살짝 잠이 들은 엘렌이었다. 곧이어 황제 폐하의 잠자리를 챙겨주고 온 남편의 뜨거운 시선에 살짝 잠이 깬 엘렌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두팔을 활짝 벌려 남편의 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응~~~"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몸이었지만, 점점 다가오는 남편의 뜨거운 손길에 너무도 행복한 쾌감을 맛보면서 얼마의 시간들이 지났을까? 긴 시간들이 지나가는 동안 엘렌이 구름에 둥둥 떠다니는 환상을 맛보고 있을 때 그녀의 아랫배에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과 더불어 무언가 허전하던 곳을 꽉 막아 주는 뜨거운 기둥을 느끼며, 엘렌은 남편의 목을 꼭 부둥켜안고 더욱 큰 신음을 터트렸다. "아~윽. ....넘............좋아~~~~하아......" 이윽고 그녀의 신음에 더욱 몸을 뜨겁게 불사르는 남편의 허리놀림은 가히 절정에 달했으며 그럴수록 엘렌은 온몸이 마구 짓이겨지는 착각을 가질 수 있었다. 점점 호흡이 가빠오는 남편의 등뒤로 땀방울들이 흘러내릴 때 엘렌은 남편을 위해 크게 다리를 활짝 편 상태에서 남편을 최대한 끝까지 받아들이며 더욱 강한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는지는 잘 몰라도 힘든 남편을 위해 남편의 몸 위로 체위를 바꾼 그녀는 더욱 크게 허리를 놀리면서 그동안 익힌 8자에 가까운 허리 기술로 남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의 노력에 엘렌이 미처 느낄 새도 없이 거친 신음성을 터트리는 남편을 느낀 순간, 엘렌은 남편을 풍만한 가슴에 꼭 안은 채 거친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느닷없이 응접실에서 접시 깨지는 소리보다 더 큰 계집아이의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그 뒤를 이어 들려온 묵직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에, 엘렌은 깜짝 놀라 뜨겁게 달아오른 몸이 싸늘하게 식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불안한 생각에 엘렌은 여기 저기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옷을 주워 입은 엘렌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바람과도 같이 달려갔다. 한참을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던 엘렌은, 이미 아랫도리만 가린 채 그녀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남편이 갑자기 우뚝 서자, 남편의 거대한 등이 마치 미동도 않는 석상처럼 보여지기 시작했다. 멜빈의 굳어진 표정을 기어코 발견한 엘렌은 더욱 가슴이 메어지는 느낌에 응접실 안을 바라보자, 그녀가 경악하고도 모자랄 광경이 그녀를 기쁘게(?) 반겨주고 있었다. "아악......싸~이~야~!" 아들로 추정되는 작은 녀석이 손에 가느다란 병 모가지를 가진 순도45% 짜리 최고급 포도주를 한 손에 들고, 뒷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피를 콸콸 쏟으면서도, 여전히 눈앞에 한 손을 올리며 휘젓고 있는 모습은 아마 아기를 키우는 모든 여성이 받게될 정신적 데미지를 한참 상회하고 있었다. "어찌.........이럴.....수가......" 뒤에 서서 이곳의 상황을 가장 먼저 살펴본 남편이, 멍하니 술상이 차려졌던 테이블 위에서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있던 귀여운 시넨 조카와 그녀의 손에 들린 포크를 보면서, 그 옆에 당연히 있어야할......어른도 함부로 마시면 필름이 끊기는 술병이 보이지 않자, 그 술병의 흔적을 따라가는 그의 시선엔 이미 바닥에 한 방울의 술도 남기지 않고 병나발을 분 걸로 추정이 된 자신의 아들이 헤롱 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멜빈은 자신이 인간이 아닌 석상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이익.........." 이를 악물며 어떻게 하던지 제발 너무도 소중한 아들이 아무 문제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그의 두 손은 너무 세게 쥐어서 점점 손바닥을 파고드는 손톱으로 인해 한줄기 핏물들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 었다. <21> #엄마는 강하다.#-1 엘렌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였다. 삼일 밤낮으로 아들의 병간호를 직접하며 무수한 재생 마법과 치유주문을 번갈아 해대며 간호를 해도, 눈앞의 아들녀석은 전혀 의식을 되찾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악몽 같은 그 날 밤. 아들의 세 번째 생일을 맞아 친히 방문해주신 황제폐하와 그분의 따님이신 시넨 공주의 축하선물은 바로 소중한 아들의 황태자 즉위였다. 이는 아들이 메르카 왕국의 완벽한 왕위계승자로 추대된 것이기에, 엘렌의 마음은 너무도 흡족했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마음에 아들녀석이 곤히 자는 줄로만 알고, 미처 치우지 못한 술좌석의 음식들과 향기고운 술들이, 오늘날 이런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한 그녀였다. 이는 그녀의 조심성이 없는 결과가 가져온 비극이기에, 아들을 가진 여성으로써 그녀가 지금 받고 있는 고통은 끔찍하다 못해 정신이 피폐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무언가 뽀족한 돌파구가 없는 그녀로썬 하루라도 빨리 아들이 제정신을 차릴 수 있기만을 간절히 빌 뿐이었다. "흑. 싸이야. 이 엄마가 무조건 잘못했단다. 그러니 어서 정신을 차리렴.....흐윽." 아들의 상처부위였던 뒷머리는 이미 그녀의 뛰어난 마법과 상당량의 마나 소모 로 말끔하게 치유가 되어 아들은 고른 숨을 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아들이 넘어져 있는 바닥엔 아들의 머리에서 나온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급히 달려간 엘렌에게 보여진 아들의 상처는 그야말로 사망일보 직전의 중상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꽤 높아 보이는 테이블 위에서 아들의 사랑스런 그 큰 머리가 자신이 한 무게 한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먼저 바닥에 닿아서 지금과 같은 심한 후유증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엘렌은 우선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도 예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마나와의 친화력이 강한 아들의 상세를 살피며, 인간의 몸으로 낼 수 있는 6써클의 마스터들만이 쓸 수 있는 재생과 회복. 치유 마법을 펑펑 써대기 시작했 다. 서서히 자신의 마나들과 하나가 되는 느낌의 아들의 기운들이 느껴지자, 그제야 엘렌은 드래곤이 낼 수 있는(엘렌은 성룡이다. 또한 인간이 내는 마법써 클과 드래곤인 엘렌이 내는 마법 써클은 판이하게 다르다.) 5써클의 용언마법으로, 아들의 뒷머리 부분이 움푹 패여져, 머리뼈들이 잘 게 부서진 부위들을 정신 없이 치료하기 시작했었다. 그후 아래층의 소란에 놀라 잠이 깬 황제와 여전히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남편에겐 일체 시선도 두지 않던 엘렌은, 점점 뇌의 심각한 상처로 모여드는 피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자, 금새 안정을 찾아가는 아들을 안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들의 방으로 이동마법을 써 버렸다. "헉. 제수씨가 마법을......" ".....................!!" 이런 놀람의 말 따위는 지금 그녀의 귀엔 들리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처절한 어머니로써의 간호는 지금 퉁퉁 부어서 가는 실처럼 생긴 자국만이 그녀가 가지고 있는 눈이라고 추정이 될 정도로, 엘렌은 아들의 곁에서 식음을 전폐하며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며 아들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아들에게서 뚜렷한 희망이 보이지 않자 엘렌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그녀를 따라와서 지금까지 아들 방에서 단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아들의 얼굴만을 지켜보던 남편에게 무언의 시선을 보냈다. 마치 남편의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는 듯이........... "멜빈." "......" "나 지금 집에 가야겠어요." "..............." "흑. 그렇게 넋 놓고 앉아 있는다고 모든 게 해결이 되진 않아요." ".................." "여봇!" ".................알았소." 다소 투박한듯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런 멜빈의 대답에 엘렌은 치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녀를 위해서 얼마나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던 그였던가. 허나, 지금 눈앞의 아들은 종족을 떠나 엘렌에겐 너무도 소중한 자식이었다. "흑. 미안해요. 멜빈, 어쩌면 난 여기 다시 이곳에 오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녀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시선을 맞추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멜빈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애써 짜내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우리 싸이가 .............살 수 있겠소?" 절래절래. "자신 없어요. 하지만........" 엘렌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 멜빈의 눈망울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엘렌은 알 수 있었다. 그런 엘렌과 시선을 교환한 멜빈은 체념에 가까운 목소리로 엘렌에게 젖어드는 자신의 눈시울을 돌렸다. "알았소. 당신으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이건 알아두시오." "....." "나에겐 이세상 누구보다도 당신과 싸이만이 제일 소중하다는............것 을..........." 드디어 평생동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 같던 열혈남아 로멜쥬 공작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의 평생에 이렇게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 것은 오늘이 아마도 유일무이한 일일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묵묵히 아들로써 장례를 치루면서, 표정하나 바꾸지 않던 무적철면 페이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점점 따뜻한 표정을 가지게 되더니, 급기야 아들을 하나 낳고 나서는 온세상을 다가진 듯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을 지우지 않으며 살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드디어 큰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나게 되는 아내와 아들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엘렌의 가슴은 날이 바짝 선 비수가 그녀의 가슴을 마구 헤집는 고통에 작게 어깨를 떨었다. "흑. 멜빈. 죄송해요......하지만....우리 싸이가........" "크윽........나.........괜찮소.......우리......싸.........크어어엉......." 그렇게 대성통곡을 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떠나간다면 언제든지 곱게 보내주리라고, 언제나 스스로에게 굳은 맹세를 했던 그였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을 보는 재미에...... 그렇다고 온통 무지개뿐인 세상이 암흑 천지에 뒤덮혀 그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는 결코 그런 것들을 겁내지 않는 사내였다. 하지만 사랑스런 아들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한 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크허어어어엉.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를 아들을........ 생애 마지막 날이 되기 전까지 만이라도 다시 한번만 더 볼 수 있다면............. 크으으윽. 굳세게 움켜쥔 그의 손 바닥 안에선 어느새 완치가 되었던 상처들이 그의 손아귀 힘에 다시 터지며, 흘러나오는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으려고 힘을 줄수록 점점 살 속을 파고 들어가 뼈에 닿은 그의 손가락과 그 끝으로 전해져 오는 아픔은 지금 멜빈이 받고 있는 가슴속 깊은 곳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였다. "싸..................싸이야~~~~!" 제발 생애 마지막이 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불러보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과 이름 이었다. 애초에 멜빈은 첫눈에 반한다는 사랑을 믿지 않았다. 그에겐 수많은 귀족가문의 처녀들이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몸짓을 부렸기에, 언제나 그에겐 여자를 대함에 있어 기사도에 충실한 모습만을 보였을뿐, 사랑이라는 감정은 버리고 산 멜빈이었다. 아버님이신 황제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침상에서 몸조리를 하기 시작하자, 온갖 간신들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었다. 그런 귀족들과 간신들이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여자였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살아온 멜빈이었기에, 여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순수함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멜빈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술을 익히게 된 이유는 바로 자상하면서도 엉뚱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형님 때문이었 다. 어릴 적, 아장거리는 자신을 매일 데리고 다니며 온갖 신기한 세상의 모습들을 책으로 가르쳐 주시던 친절한 분. 이런 분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기사로써, 그리고 왕위 계승자로써, 절대 후회할 일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던 멜빈이었다. 그런 멜빈이 왕궁을 떠나게 된 사건은 바로 형님 때문이었다. 손에 물집이 잡히면 안달을 하면서 주치의를 닦달하시던 형님이 그날 밤, 이미 술에 취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술을 권하던 모습에서 멜빈은 형님의 눈에 어린 따스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왕위계승이 문제였다. 왕족들은 항상 암살 위기에 처한 불쌍한 존재들이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암살 당할지 모르는 그들은 그 때문에라도, 같은 피를 물려받은 형제들을 절대로 형제로써 대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멜빈이 나이가 들수록 차차 알게 된 엄청난 혼란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위대한 형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따뜻한 정을 나눠주며 자신이 귀족들의 환대에 휩쓸려 다녀도 넉넉하게 용돈을 아끼지 않던 그런 형님이었다. 이런 형님이 자신에게 왕위를 계승시켜주려고 한다는 것을 멜빈은 눈치 채고 있었다. 허나, 그건 죽어도 아니될 일이었다. 자신이 왜 검술을 연마하고 있는가?! 오직 이 자랑스런 조국과 그 조국을 더욱 더 번영시켜줄 뛰어난 황제감인 형님 때문인 것이다. 해서, 멜빈은 암암리에 구해둔 수면제를 허브차에 듬뿍 타서 형님에게 권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형님이 챙겨논 여행짐을 들곤 밤을 벗삼아 왕궁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을까? 검객에겐 마(魔)의 장벽이라고도 전해지는 검기의 벽. 소드 마스터에 드는 장벽이 멜빈을 괴롭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날도 이 넓디넓은 카빌라이 대륙을 정처 없이 여행하던 멜빈은 한밤에 뜬 환한 보름달을 벗삼아, 대륙의 중추라고도 할 수 있는 헬요리네 산맥의 중심부에 다달아 야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나 울창한 숲이던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곳들은 일자로 쭉 뻗은 붉은 주목들이 그를 자연의 품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에 대륙의 중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사인스타이나 호수는 젊은 검객 멜빈의 가슴에 도전이라는 깃발을 심어주고 있었다. 비록 성마 전쟁이라고도 일컫는 수만년 전의 마수들과 유사종족들간의 대륙전쟁으로 인해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어도 이 넓고도 거친 헬요리네 산맥의 중심부엔 제법 넓은 호수가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소문을 여행중에 듣게 된 이 호기심 많은 남자는, 그곳이 모든 유사종족들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라는 점에 더욱 도전을 해보고 싶어 기승을 부리는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다. 벌써 얼마의 시간을 이 산맥에 투자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산맥의 중심부라고 여겨지는 곳에 다가서면, 손맥에 찬 팔찌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 팔찌는 자신이 왕궁을 떠나오면서 아바마마께 인사를 드릴 때 받은 소중한 물건이었다. 왕국에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메르카 왕국을 대륙최고의 왕국으로 만드신 에스타냐 카빌라 폰 메르카 대왕이 젊은 시절 자신의 왕국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만난, 괴팍한 은룡으로부터 선물 받은 물건이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이는 평소 호탕한 인물로도 전해지는 에스타냐 대왕이 마수와 일전을 벌이고 있는 존재에게 도움을 주면서부터 시작된 드래곤과 인간의 우정에 전설로도 유명한 물건인 것이다. 이런 팔찌를 황제가 될 형님에게 전하지 않고 왜 자신에게 물려주는 것이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드는 불효를 저지른 멜빈이었지만, 그를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저으시며 그의 팔목에 팔찌를 채워 주셨다. 그런 추억이 깃든 물건에서 작은 울림이 전해지자, 멜빈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잠시 팔찌를 매만졌다. 주위로 시원한 바람이 전해지며 그가 피워논 모닥불이 춤을 추고 있을 무렵, 갑자기 그의 귀를 자극하는 기분나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앙. 거친 맹수의 표효가 어찌 이보다 더 하랴. 검을 쥔 검객으로써 주위에 이는 살기를 감지한 멜빈은 긴장감에 굵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이런 강한 살기라니......' 생전 검을 맞댄 검사로써 이런 진한 살기는 처음이었다. 이미 멜빈은 왕국의 전유물인 무장강병의 소유자였다. 이런 그가 다리가 떨릴 정도로 강한 살기를 뿌리는 존재가 주위에 나타나자, 멜빈은 절로 치밀어 오르는 분기를 느꼈다. '제길, 난 헤비 워커 최상급자다. 이런 나를 감히 두려움에 떨게 만들다니...' 강한 자긍심에 마음속의 분노가 어울리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을 한심하게 만든 존재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멜빈은 곧 여행중이라 등뒤로 갈무리한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들며, 진한 살기를 뿌리는 존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 제 18 화. 깜깜한 밤하늘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은색의 달빛이 가는 허리를 자랑하는 헬요리네 산맥의 숲은 고요함에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고요함에 묻혀 느긋하게 잠을 청하던 엘렌은 자신의 레어 근처에서 일렁이는 낯선 기운에 귀찮다는 듯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우웅, 뭐냐? 감히 우리 가문의 영토에 발을 들인 놈이......"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하얀 레이스가 달린 잠옷을 훌러덩 벗은 엘렌의 피부는 그야말로 은색의 달가루가 묻어 있는 듯, 어두운 레어 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착시 현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태평하게 자신의 레어를 어슬렁거리며 감히 잠을 깨운 존재에 대해 눈썹을 치켜 뜬 엘렌이 누구인가. 말 그대로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유사종족들이 칭송하는 위대한 가문. 수 만년 전, 이 땅의 모든 유사종족들이 파멸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한자루의 붉은색 검을 들고 무차별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마수들에게 맞서 싸운 자. 위대한 검황의 단 하나뿐인 손녀였다. 비록 고조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외쳐야 하는 엘렌이었지만, 드래곤이 어디 인간의 족보를 따지고 살던 존재인가. 그냥 엘렌에겐 까마득한 과거에 사셨던 위대한 할아버지로만 기억되고 있는 검황이자 신룡이었던, 헤리아킨님의 단 하나뿐인 손녀가 바로, 지금 달빛에 온몸을 탐스럽게 익히는 엘렌인 것이다. 이런 엘렌이었기에 지금 갓 성룡에 들어선 그녀는 자신의 레어 근처에 나타난 낯선 존재들이 겁나지 않았다. 감히 덤빌 존재가 따로 있지, 신룡의 손녀인 엘렌에게는 함부로 덤벼서는 안되는 불문율을 지켜야 할 유사종족들이었다. 단지 이런 생각이 엘렌의 착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 문제에선 자부심을 가져도 될 엘렌이었다. 1500년. 알에서 부화해서 살아온 긴 세월이다. 이런 엄청나게 긴 세월을 살아온 엘렌에겐 그야말로 가소로운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 유사 종족들 이였기에, 엘렌은 월광욕(?)을 마치기가 무섭게 자신의 손끝에 매달리는 마나들로 온몸을 감기 시작했다. "투 문 세이션이라............좋네...호호호" 자신의 피부를 내려다보면서 한껏 자부심을 느끼던 엘렌은 웃음으로 자신을 치장하며 서서히 레어 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손에는 벌써부터 풍족한 마나들이 모여들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자신만만한 엘렌이었다. 그대들은 이 땅에 현신했던 유마계의 마수들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잔악한 존재들에 의해 이 땅은 피로 강을 이루고 시체로 산을 만든 지난 세월들이 있었다. 허나, 인간들의 집념은 가히 놀라웠다. 이 땅을 피의 축제로 몰아세우는 존재들에게 맨 처음 칼을 뽑아든 존재들이 바로 인간이라는, 허약해 빠진 한낱 피조물이라는 역사는 그들이 두고두고 이 땅의 점령자들이 되게끔 만들어 주었다. 또한 그들을 도와 이 땅에 현신한 유마계의 마신 발킬마와 그의 수족들인 마수들을 몰아낸 존재들은 아직도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 땅의 수많은 유사종족들과 그들의 지도자 드래곤들이었다. 허나, 이런 드래곤들도 함부로 덤비지 못했던 유마계의 마수들이었기에, 수백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이 땅은 각종 유사종족들의 피와 살로 거름을 이루며 심한 몸살을 치러야만 했다. 인간들도 태반이 죽어 나간 이 치 떨리도록 겁나는 성마 전쟁은 수십만의 인간들의 신음성에 귀를 기울인 창조주이시자, 자신들의 어버이인 분의 작은 심부름꾼 헤세르 대제에 의해서 다행히도 미증유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도와 이 땅의 마수들을 깨끗이 몰아낸 또다른 존재는 바로 인간들이 신에 가까운 칭송을 늘어놓는 신룡 헤리야킨 이었다. 이 위대한 두 존재는 자신들의 사후를 대비해서 이 땅에 어쩌면 다시 일지도 모르는 혈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비기를 만들어 위대한 신룡의 가문이자, 물질계라고도 칭해지는 이 대륙의 지배자 가문인 갈리아스가를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이 땅에 다시 나타날지도 모를 마수들과 그들의 지도자에 맞서 싸울 힘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바로 신룡의 이름이라는 맹세를 통해서......... 엘렌은 다시 한번 자신이 성룡이 되면서 전해 받은 가문의 비기이자, 그녀의 힘인 용언 마법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이는 보통의 유사 종족들이 구현하는 마법과는 첨예한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들이 각자 낼 수 있는 마력이 다르듯이, 드래곤들 또한 각각의 종족별로 그 힘과 마력들이 차이가 나곤 했다. 지금의 엘렌 또한 위대한 신룡의 피를 직접 이어 받은 존재로써 기타의 다른 드래곤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막강한 기운을 몸 안에 갈무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너무도 귀하게 자라난 존재이기에, 그녀를 위해서 부모님들이 전해준 힘은 성룡을 넘어선 존재들과 비등 할 정도로 엘렌은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그 덕분에 같은 나이 또래의 드래곤들에게 매우 심한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 이유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엘렌 자신과 친구들은 그저 엘렌이 특이한 체질의 소유자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 적이 종종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엘렌 또한 부모로부터 특별히 자신의 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 또한 자신이 그리 잘나가는 존재가 될 거목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엘렌이다 보니, 자신의 레어 근처는 언제나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어 다른 유사종족들이 자주 왕래를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한마디로 친구들에게 따를 당하는 입장이라서 매우 외로워하는 그녀였기에, 언제나 그녀의 레어 근처에는 수많은 유사종족들이 둥지를 틀고 살아가고 있었다. 단지 그 유사종족들이 지금은 인간들에게 몬스터로 불리는 존재들이기에, 조금은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현 상황이었다. 헌데, 이제까지 엘렌과는 아무런 문제없이 공생을 하던 존재들인데,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가 되는 것일까? 바로 그것은 어떤 만남이 엘렌을 매우 숨가쁘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렌이 레어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이유는 그녀의 허락하에 왕래를 하던 몬스터들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그녀의 기분을 망쳐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르르르. 거친 맹수의 울부짖음에 주위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은 갈기를 곤두세우며, 머리를 땅에 박기 시작했다. 강자지존(强者至尊). 모든 먹이 사슬에선 항상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대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 지금 이 넓게만 보이는 산등성이의 작은 벌판에선 수많은 몬스터들이 서로 조잡한 무기들을 든 채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헌데, 갑자기 피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이는 수만년 전 이땅에 강림했던 마신 발킬마와 그의 후예들이 남긴, 저주받은 피의 율법이 다시 되살아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우어어어엉. 한때는 갈색 오거로 유명한 몬스터들 중 하나가 눈에 흉폭성을 들어내며, 검은색의 갈기로 탈바꿈하자, 주위에 있던 같은 동족인 갈색 오거들은 저마다 고함을 지르며, 검은색의 갈기를 휘날리는 오우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되었음을 눈치채서일까? 검은색의 마수로도 불리는 오우거는 드디어 이를 들어내며 거칠게 표효하기 시작했다. "크라라라라랄" 긴 두팔을 휘두르며 마치 성난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듯, 넓고 두툼한 가슴을 두드리던 오우거는 재차 자신의 광기를 토해내며 주위에 있는 갈색오거들에게 짓쳐들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엉" 이 땅에 존재하는 몬스터들 중 두 다리로 대지를 짓누르는 몬스터의 최강자 갈색오거들은 자신들에게 거칠게 팔을 휘두르는 검은색의 오우거를 바라보며, 결코 쉽게 승복하지 않겠다는 외침을 마주 토해냈다. 쿠앙. 서로 강한 기세를 선보이려고 애쓰던 오거들이 부딪히자, 그 주위에 몰려 있던 다른 유사종족들은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쿠라라라랄." "끼에에엥" 어떤 몬스터라도 오거 앞에선 감히 힘자랑을 하지 말란 속담이 있다. 그만큼 오거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헌데 지금 그런 속담의 주인공인 오거들이 단 한 마리의 오우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넘어지고 있었다. 거칠게 어깨를 들이밀며 반항을 해봐도, 상대는 넓은 가슴으로 손쉽게 툭툭 밀뿐. 그 어떤 힘도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흉폭함의 오우거가 서서히 자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오거들을 바라보는 시선엔 조금은 거만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왜일까? 한때는 같은 동족이자, 피를 나눈 형제이건만....... 이들이 왜 이토록 대적을 하면서 피튀기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점을 알고자 한다면 먼 옛날로 잠시 돌아가야만 한다. 마신 발킬마. 이 위대한 유마계의 제왕을 모르는 자는 이 땅에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만 년 전에 이 땅을 피의 율법으로 다스리려고 했던 그를 인간이나 다른 유사종족들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망각의 기쁨을 신에게 선사 받은 인간일지라도, 자신의 기억 속에서 잊으려고 해도 절대로 잊지 못하는 존재인 마신 발킬마와 유마계의 마수들은, 이렇게 아직도 이 땅에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백만이 넘는 이 땅의 존재들이 마신 발킬마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해봐도 유마계의 마수들은 결코 용서와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그런 존재들이 하나 둘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들에게 강제로 범한 일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악랄했던 일들은, 바로 종족의 번식이었다. 마수와 몬스터. 지금은 몬스터로 분류되어서 인간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는 유사종족들이었지만, 이들도 과거의 한때는 인간들과 함께 이 땅을 지켰던 선구자들이었다. 이런 유사종족들에게 베풀어진 마신 발킬마의 은혜는 바로 마수와 유사종족들간의 종족을 뛰어넘은 왕성한 번식이었다. 이 왕성한 번식을 통한 마신 발킬마의 은혜는 인간들도 예외는 아니였다. 해서, 마녀 사냥과 마괴 사냥이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마수들의 출몰은 주로 보름달이 하얗게 대지를 비출 때 많이 발생한다. 오늘도 어두운 구름들 사이로 보름달이 치솟아 오르며, 보름 달 주위로 이상한 기운들이 맴돌기 시작하자, 그동안 핏속에 담겨져 있던 마기가 발동을 하면서 한때는 같은 핏줄이었던 오거들이 지금은 목숨을 담보로 강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마기. 또는 보름달의 광기에 젖게 되는 존재들은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아마도 유전학적인 표현이 이 존재들에겐 가장 어울릴만한 마신 발킬마의 잔인한 은혜였다. 수많은 형제들이 있지만, 그중엔 꼭 하나둘 우성인자를 몸에 담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우성인자를 지닌 존재들은 이따금씩 보름달이 뜰 때마다 강한 마기의 유혹을 받게 된 다. 그런 유혹에 넘어가는 이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이성이 강한 존재는 무난히 넘기기도 하는 정말로 절묘한 신의 배려이자, 은혜로도 구분이 되는 현상들이었다. 허나, 몬스터들은 강한 이성이 존재하는 자가 거의 드물다. 그러니 지금도 이땅에 나타나는 마수들은 거의 대부분이 유사종족이요. 그런 유사종족들에게 수많은 인간들이 핍박을 받게 되자, 자연히 유사종족들은 인간들로부터 몬스터로 분류가 되기 시작했다. 이런 역사가 수만년이 넘게 내려오면서, 이 땅엔 몬스터만 전문으로 잡아죽이는 해결사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런 존재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바로 그 유명한 베이직 헌터들이었다. 이 베이직 헌터에 대해서는 이 다음에 다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아무튼, 눈앞에서 마기에 젖은 눈동자를 굴리며 흉폭성을 자랑하는 존재를 발견한 멜빈의 눈엔 어느새 작은 망설임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주위의 오거들을 무참히 살해하기 시작하는 검은색의 오우거를 발견한 멜빈은 굵은 땀방울들을 연신 쏟아내는 이마를 한번 쓸며 군침을 삼켰다. '제길. 저게 말로만 듣던 마수 오우거란 말인가? 이걸 어떻게 하지......?!' 검을 쥔 손엔 흥분으로 인해 작은 떨림이 다가왔다. 그런 자신이 흥분을 하기 시작하면, 검사로써 부적격이라는 생각에 애써 다독여 봐도, 생전 처음으로 발견한.........더구나 최초로 목격한 마수가 몬스터로썬 가장 강한 오거였다 는 점에서 멜빈의 설레임은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끄응. 어차피 몬스터들이니깐 그냥 놔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잠시 머리를 굴려보아도 지금 자신이 가지고 온 'E' 급의 헤비워커론 도저히 싸울 자신이 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인간들이 만든 병기 중 가장 뛰어난 병기인 헤비 워커를 가지고 있다곤 해도, 신적인 존재로까지 불리는 웜급의 드래곤들에겐 상대가 되지 못한다. 헌데 눈앞의 마수는 마수 중에서도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오우거였다. 그럼 웜급의 드래곤과도 물리적인 힘이나 마법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최상급의 마수인 것이다. 그런 마수와 지금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멜빈은 결국 씁쓸한 미소로 자신을 비하시킬 수밖엔 없었던 것이다. "쳇. 대륙 최고의 검객이 되겠다고 맹세를 한 놈이 고작 마수 앞에서 벌벌 떨다니....." 아무리 태연한 척 자신을 다독여봐도, 역시 검사로써 강한 존재와 싸우고픈 마음은 달랠길이 없었다. 허나, 여기까지 와서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히 지금 눈앞의 존재와 자신이 검을 맞대고 싸운다면, 백전백패 당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멜빈은 감히 용기를 내어서 검을 뽑을 자신이 없었다. 그런 멜빈이 씁쓸한 미소로 자신을 비하시키며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번쩍.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미처 다 들리지 못한 고운 미성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말을 미처 다 하지도 못한 채 눈앞의 상황에 넋을 잃고야 말았다. "어.....어찌 여기에 마수가......." 엘렌은 레어에서 막 빠져나오자마자 멋지게 비행마법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주위에 몰려든 유사종족들에게 더욱 멋진 모습으로 나타나고자 하는 마음에, 하늘 위에서 급히 펼친 이동마법은 그야말로 파랗고 투명한 은색의 기체들로 자신의 몸을 덮으면서 나타났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었다. 헌데. 지금 그렇게 우아하면서도 멋지게 나타난 눈앞의 상황은 결코 그녀를 반겨주지 않았다. '헉. 저 마기는 분명히.........' 어찌 그녀가 모르겠는가. 그녀의 위대한 할아버지가 손수 이 땅에서 몰아낸 존재들의 찌꺼기들이었다. 지금도 웜급에 올라서게 된 젊은 드래곤들은 하나같이 마수들을 수없이 무찌르며 자신의 기세를 드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린 웜급의 드래곤들이 이 땅의 마수들을 청소하는데에는 엘렌의 아버지인 갈리아스 옹의 위대한 걸작품인 헤비 워커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헌데, 그녀의 레어 근처에 살던 유사종족들 중에서도 아직은 어린 그녀를 위협할 만큼 거대한 대형 마수의 출현이라니............ 정말로 눈앞이 캄캄해지는 엘렌이었다. '뿌드득. 감히 이젠 내 레어 앞까지 쳐들어온다는 건가?' 이를 악물고 애써 몰려드는 공포에 대항을 해봐도, 아직 자신은 어리디 어린 성룡이었다.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싸움인 것이다. 그때였다. "쿠아아아앙" 거칠게 표효를 하면서 주위를 둘러싼 오거들을 피떡으로 만들던 검은 갈기의 오우거가 엘렌의 등장에 때맞춰 그녀를 발견하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건 본능의 힘이 작용한 마수와 마수사냥꾼의 한판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우거의 피속에 담긴 본능은 항상 자신들을 사냥하며 핍박하는 드래곤이라는 존재에게 겉잡을수 없는 강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었다. 이런 피의 자각이 일어나자 오우거는 자신을 향해 간지럼을 피우던 갈색 오거들을 뒤로한 채, 어쩌면 이다음에 자신을 핍박하게 될 존재인 엘렌을 향해서 거침없이 덤벼드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을 미처 어떻게 할지 갈피를 못 잡던 엘렌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오우거를 바라보며, 다급한 마음에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방어 마법과 함께 공격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이익. 감히 나에게 덤비다니...............이 땅에 군림하는 자들이여. 나에게 그대의 힘을 부여하소서. 디펜 더 월." 다소 긴장감과 공포심에 떨리던 마음을 다잡으며, 강한 의지를 실은 그녀의 용언마법이 막 달려들고 있는 오우거의 거대한 발톱을 가로막자, 그 충격의 여파로 주위에 은색의 기파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그 은색의 기파의 중심에 있던 엘렌 또한 내부를 진탕이게 만드는 충격에 이를 악물며, 애써 외우기 시작한 공격 마법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나 위대한 존재의 힘에게 명하노니. 눈앞의 적에게 나의 위대한 힘을 보여줘라. 써버리 브로우!!" 용언 마법은 흔히들 영창도 하지 않은 채 구현한다고 모든 이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 당연히 눈앞의 엘렌 또한 드래곤인 존재였기에, 그녀가 영창하는 마법 또한 용언마법으로써 다른 수식어가 필요치 않다고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허나,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드래곤이 어디 신이란 말인가? 드래곤 또한 긴 세월을 살면서 수없이 노력하고 단련해야만 자신의 의지를 생각과 동시에 마법으로 구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드래곤이건만, 인간들은 그저 드래곤이라고 하면 모두들 신성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손도 까딱 안하고 엄청난 마법들을 구현시키는 줄 알고 있다. 지금 엘렌은 갓 성룡을 벗어난 소녀 드래곤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그녀의 부모라면 아주 쉽게 상대할만한 거대 마수가 나타났다. 아직은 어린 엘렌이기에, 다소 힘든 의지의 발현을 앞두고 강한 공포감에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구사하는 용언마법이 너무도 벅차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한마디로 눈앞이 깜깜 한 것이다. 어디 달아날 생각이나 했겠는가?! 드래곤이 자신의 영토를 버리고 도망을 친다는 것은 아예 존재의 망각보다 더 심한 후유증을 가져 올 것이다. 해서 엘렌은 이를 악물며 눈앞의 적을 향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개방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상대의 마기에 가로막혀 제대로 충격을 주지 못하더라도, 엘렌은 죽음을 각오한 채 최대한의 힘으로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으득. 오냐. 내가 오늘 여기서 죽는지 네 놈이 죽는지 결단을 내자." 눈에 강한 독기가 어리면서 아직은 어리지만, 존재의 자부심이 대단한 엘렌은 자신의 힘에 맞서기 위해서 몸 안에서 마기를 뿜어내는 오우거를 향해 인간으로썬 감히 엄두도 못낼 강한 빙살(氷撒)의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허나. "쿠아아앙" 강하게 울부짖으며 자신의 검은색 갈기들을 난자하는 얼음 화살들을 튕겨내며 오우거는 한발 두발 엘렌의 가녀린 인간형 몸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몇몇 얼음화살들이 오우거의 두꺼운 검은 갈기들을 뚫고 박혔지만, 그걸론 도저히 오우거에게 치명상을 입히긴 어려운 듯 했다. 크기가 거의 3m에 육박한 오우거와 그 앞에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엘렌의 격돌은 보고 있는 이들에겐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이 일게 하는 모습이었다. '헉, 도저히 상대가 안되건만.......저 여인은 도대체 누구이기에.........' 자신보다 더 강한 용기를 지닌 존재를 발견한 멜빈 또한 너무도 창피해서 어디론가 숨어버 리고 싶었다. 어찌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기사라고 자부하던 자신보다 더 월등한 용기를 지녔단 말인가......항상 레이디를 존중해야만 하는 기사도에 길들여진 멜빈으로썬 눈앞의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픈 마음이 싹 가시기 시작했다. "끙.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도 저 간악한 마수에게 맞서건만, 이 못난 놈. 이야아아압." 도저히 사내로써 참지를 못하겠다. 이게 어찌 사내가 그것도 검을 지닌 채 대륙을 여행하며 검을 수련하는 기사로써 두고 볼 일인가. 거칠게 울부짖는 맹수와도 같이 멜빈은 자신의 검을 뽑아든 채, 가녀린 여인이 앞으로 당할 수모를 최대한 줄이고자 번개와도 같은 모습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 제 19 화. 꾸아아아. 거친 숨소리 속에서 묻어나는 팽팽한 긴장감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괴성이 엘렌의 귓가를 자극시키고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레어 주변에 나타난 마수를 퇴치하려던 엘렌은 이제 서서히 빠져나가는 힘을 느끼며 까마득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이익. 자랑스런 신룡의 후손인 내가 고작 마수 하나 때문에........' 비록 엘렌이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 안간힘을 써봐도 아직은 어린 성룡에겐 오거에서 마수로 변신한 오우거한테 엘렌이 덤빈다는 것은 아직까진 버거운 일이었다. 그런 엘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근사한 기사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녀의 눈앞으로 오우거의 비릿한 숨결이 느껴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다. 마수 오우거는 달빛에 실린 강한 음기로 인해서 이미 그 흉폭성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그런 오우거에게 본능적으로 강한 적이라고 느껴지는 엘렌을 가만히 두고 도망치기엔 오우거의 핏속에 끓고 있는 본능이라는 놈이 가만히 두질 않았다. 마치 수만년 동안 받아온 피의 율법에 따른 복수심이 극에 달한 듯 행동하는 오우거 앞에서 엘렌은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하면서 숱한 마법들을 쏟아 부었지만, 어디 마수가 자신의 힘에 상극인 신성력에 의존한 마법을 곱게 두고 보겠는가. 오우거 또한 자신의 마기로 대항을 하기 시작하면서 잠시 팽팽한 접전은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기력이 다 떨어진 엘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엘렌이 실버 드래곤의 기운으로 주변에 널리 퍼진 습기를 마법으로 급히 뭉쳐 아이스 블로우와 과거 신룡 헤리아킨이 창조주로부터 친히 선물 받은 바람의 기운으로 차고 강한 마법을 주로 공격마법에 실어서 공격을 했다. 허나 아직은 어린 그녀의 마법은 두꺼운 오우거의 가죽을 뚫질 못했고, 오히려 더욱 성만 내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는 오우거를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엘렌의 눈이 이채를 띄게 된 건 그야말로 하늘의 오묘한 인연의 시작이었다. '헉헉. 도저히 내 힘으론 안돼. 그렇다고 아빠나 엄마를 불렀다간 이담에 나를 두고 아직도 헤츨링인 엘렌이라고 놀려될텐데.......' 엘렌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또래 헤츨링들한테 받은 모욕적인 말들을 항상 콤플렉스로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헤츨링보단 월등한 덩치는 핏줄에 따른 계승(繼承)이라고 쳐도, 그녀의 부모들이 보이는 남들과는 너무도 다른 심한 편애와 애정공세는 아직도 여린 엘렌의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른 헤츨링들은 오히려 이런 엘렌을 부러워하며 질시의 대상으로 대하고 있지만, 정작 어린 그녀가 받게 되는 상처는 충분히 파더 콤플렉스가 되고도 남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이제 오우거에게 죽음으로 대항을 할 것인가?! 아니면 부모에게 잽싸게 도망을 칠 것인가를 두고 곰곰이 궁리하고 있을 때, 말 그대로 은색의 눈부신 갑옷을 입은 구원의 기사가 그녀의 앞에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압. 네 상대는 바로 나다. 이 흉측한 괴물아." 멜빈이 자신의 힘을 다해서 급히 달려간 현장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흔히들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느끼는 페닉 현상으로 엘렌의 정신 속의 세계는 그 짧은 시간들 속에서 무수한 장면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엘렌에게 구원의 기사인양 나타난 멜빈은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해서 오우거에게 긴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휘이잉. 강한 검풍에 침을 흘리며 적에게 사나운 이를 들어내던 오우거는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서 내리 꽂히는 검풍에 긴장이 된 듯,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꽈앙. 이건 검과 짐승의 몸이 부딪혔다곤 전혀 생각이 되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찌르르. 자신의 손목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강한 충격에 멜빈은 순간적으로 검을 쥔 손이 마비가 되는 듯 했다. "크으윽. 정말로 무식하게 강한 놈이군." 금방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놈이라곤 생각이 안들 정도로 오우거는 자신의 몸에 강한 충격을 안겨준 위인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가소로운 존재가 자신의 흥미를 끌고 있는 듯 천천히 이마를 만지며 그 속에서 살짝 번져 나온 검붉은 피를 긴 혀로 살짝 핥던 오우거는 서서히 긴 손톱이 자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멜빈에게 흉측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제길.........오늘 일진이 왜 이리 사나운지......." 마치 체념한 듯한 분위기의 멜빈이 그 큰 어깨를 긴 한숨과 함께 아래로 푹 내리자 오우거의 눈에 비친 멜빈은 그야말로 맛난 먹이감으로만 비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멜빈은 여기까지 와서 눈앞의 존재에게 굴복하고 싶은 맘은 전혀 없었다. 고개를 뒤로 심하게 제켜야 겨우 볼 수 있는 우람한 덩치에겐 그에 걸맞는 존재로 싸워주겠다는 멜빈의 생각은 이내 등뒤에 차고 다니던 투구가 손에 쥐어짐과 동시에 빠르게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좋다. 이 괴물. 내 비록 아직은 헤비워커 최상급자이나 반드시 널 꺼꾸러트려 주마. 자 와라. 내 강한 친구에게 좋은 경험을 쌓게 만들어 주겠다." 멜빈이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이 중얼거리며 손에 들린 투구를 눌러쓰자, 곧이어 멜빈의 뒤쪽으로 작게 공간의 구멍이 생기면서 그 속에서 은빛의 동체를 지닌 거대한 거인이 튀어 나왔다. "크르르르" 주춤거리며 멜빈의 뒤쪽을 살펴보던 오우거는 이내 자신의 키보다 배는 클 듯한 존재가 성큼성큼 걸어오자, 작게 이를 들어내며 으르렁 거렸다. 온몸에 검은 갈기가 곤두서며 위기감을 느끼는 동물의 본성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헤비워커. 이 대륙에 언제 어느 때에 나타난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투성이인 존재이다. 이 의문 투성이의 존재인 헤비워커는 모든 기사들에겐 꿈의 파트너였다. 근 10미터에 가까운 육중한 동체와 그 동체를 대부분 감싸고 있는 두꺼운 철갑들은 마치 근육질의 멋진 거인 기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헤비워커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이 대륙의 왕국간의 전투는 그야말로 신사도와 기사도가 어울려진 묘한 전투 양상을 불러 일으켰다. 절대로 기사도에 어긋난 자는 헤비 워커에 탑승을 하지 못한다. 또한 민간인들이나 헤비 워커가 없는 전장에선 절대로 사용을 금지한다. 위의 두 가지 불문율은 거의 모든 기사들이 숭배하는 헤비 워커의 법칙이자, 만약 이를 어긴 자에겐 언제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강력한 제재자의 방문을 받게끔 되어 있었다. 과연 그런 제재를 가하는 존재들이 누구일까? 이런 의문이 아직까지 헤비 워커를 숭배하는 모든 기사들에게 남아있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그 미스테리의 존재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이 대륙에선 헤비 워커라 함은 곧 힘의 상징이자 멋진 기사도를 지키는 존재들이 탑승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또한, 기사도에 충실한 기사들에게는 자신들이 헤비 워커의 탑승자가 되었다는 점만으로도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어 주는 값진 명예가 되었다. 그런 헤비워커가 육중한 동체를 선보이자 멜빈은 자신의 투구에 연결된 강한 자아의식을 통해서 자신을 헤비 워커 안으로 소환시킬 것을 영원한 파트너에게 명령했다. "나의 소중한 친구. 나를 그대의 품안으로 받아 들여주시길...." 파아아앗.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하얀 빛줄기가 멜빈의 몸을 감싸기 무섭게 멜빈은 마치 작은 원소가 된 것처럼 그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지는 착각과 함께 오우거의 앞에 서 있던 멜빈의 모습은 금새 사라져 버렸다. 자아를 지닌 존재가 만약 무생물이라면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허나, 지금 멜빈을 태운 헤비 워커라는 존재는 바로 이런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A부터 시작해서 신의 걸작품이라고 칭해지는 전설의 F급까지 인간들에게 최고의 병기로 전해져 오는 헤비 워커들은 그 급수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멜빈을 태운 E급의 엘리오나 역시 현 카빌라이 대륙에선 가장 강한 힘을 지닌 헤비 워커로 소문이 자자한 철갑 골렘이었다. 단순히 철갑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 마법 방어주문이 철갑 안쪽에 골고루 새겨져서 물리적인 힘이 아닌 마법에 의한 공격은 거의 대부분 막아주는 신통한 기술이 있었다. 그런 헤비 워커가 근 10M에 육박하는 거대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탑승자가 앉게 되는 좌석 아래에 위치한 거대한 마나 하트에 있었다. 인간의 몸이 제아무리 오묘한 우주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몇몇의 성현들이 주장을 했다고는 하나, 이 거대한 물체를 움직이기엔 인간의 작고 볼품 없는 힘은 미처 감당하지를 못했다. 허기에 헤비 워커는 자신의 목 부분에서부터 가슴 정 중앙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마나 하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나 하트의 정 가운데에는 어른 머리통 만한 거대한 수정구가 자리를 하고 있었고, 그 수정구 안에서 주변의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자아를 통제하는 메모리 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모리 석을 중심에 둔 채, 삼각형의 고리가 여러 겹으로 감싸면서 그 삼각형의 고리에 적혀진 고대 문자로 인해서 각각의 강한 회전과 함께 주변의 마나들을 몸 안으로 받아 들여 이 거대한 동체를 움직이는, 한마디로 인간들로썬 도저히 엄두도 내지 못한 신의 걸작품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헤비 워커는 그 삼각형의 고리들이 몇 개에 달하는가에 따라서 제일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한 A급에서부터 E급까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인간들에겐 전설적인 헤비 워커로 남아 있는 F급의 헤비 워커는 메르카 왕국의 제일 용사이자 건국왕인 에스타냐 카빌라 폰 메르카 대왕이 그 헤비 워커를 타고 나타남으로 인해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져 있을 뿐, 메르카 왕국이 전 대륙을 통일하고 그 힘을 만방에 알린 뒤론 그 종적이 묘연해 졌다. 하기에, 지금 멜빈은 자신이 왕국을 뛰쳐나오며 가지고 온 아직까진 인간들에게 최고의 병기인 E급의 헤비 워커를 탄 채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길. 과연 이걸로 마수들 중에서 제일 강한 힘을 자랑하는 오우거를 잡을 수 있을까?' 말로만 들었지 마수로 변신한 오우거는 생전 처음 본 멜빈은 조금 전 자신이 온 힘을 다해서 내리쳤던 오우거의 앞이마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의 힘이 얼마인가? 그래도 아직까진 검술과 힘으론 최고라고 자부하던 그였다. 그리고 그의 온힘이 담긴 검에는 왠만한 바스타드 소드는 단 한번에 부술 수 있는 강한 힘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 힘으로 내리친 오우거는 몬스터인 오거라면 두 쪽이 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건만, 이마에 작은 상채기만 났을 뿐 마수답게 전혀 충격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정말로 말로만 듣던 마수의 강한 힘에 소름이 돋는 현실이었다. "좋아. 끝까지 한번 해보자. 비록 전설의 F급 프라잉은 아니지만, 그래도 엘리오나의 파워는 현존하는 헤비 워커 사상 최고다. 자. 힘을 내자. 멜빈!" 스스로에게 강하게 최면을 걸면서 이를 악문 멜빈은 등뒤로 매어진 거대한 검을 뽑아 들면서, 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레티센스 검술의 기본 동작을 취했다. 한마디로 이 검술의 현란한 검세가 뿜어져 나오면 상대는 침묵을 맞이하게 된다는 전설적인 검술이자 메르카 왕국의 비전으로 유명한 검술이 멜빈의 손에 의해서 펼쳐질 준비가 된 것이다. 크아아앙. 자신보다 더 우람한 덩치를 발견하자, 흉폭성과 함께 동물적인 본능에 온몸을 휩싸인 오우거는 그 큰 눈을 뒤룩거리며, 조금전 다른 몬스터들을 학살할 때 사용한 나무 몽둥이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엘렌과의 마법 싸움에 잠시 바닥에 떨군 나무 몽둥이는 말이 나무 몽둥이지 거대한 나무를 하나 뽑아서 마구 휘두르다, 그것이 여러 번 부려져 결국은 길이 2M가 조금 넘는 울퉁불퉁한 삼나무 잔해에 불과했다. 상대가 검을 빼들자 그에 대비하는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멜빈 또한 상대가 비록 마수이기는 하나 맨손의 상대보단 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있으면 하는 바램에 오우거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거친 나무 표면이 쥐어지자, 오우거는 그 잔해에 묻어 있는 각종 몬스터들의 피와 살점들을 붉은 혀로 날름거리며 서서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꽈앙. 거세게 휘둘러진 오우거의 나무몽둥이가 멜빈이 탄 헤비 워커의 방패에 부딪히자, 두 배가 넘는 덩치에도 불구하고 헤비 워커는 뒤로 주르륵 밀려나 버렸다. "크윽, 강해도 너무 강하다. 뿌드득." 헤비 워커에 탑승하게 되면 투구를 통해서 모든 정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기에 멜빈은 마치 자신의 몸이 거대한 덩치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이런 거대한 덩치와 그 덩치를 이룬 금속체가 탑승자와 혼연일치의 모습을 갖춘 상황에서 헤비 워커가 받는 물리적인 충격은 곧바로 탑승자인 멜빈의 뇌신경을 자극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투구를 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멜빈은 곧이어 방패를 가격한 탄력을 살려서 자신의 가슴부위에 강한 태클을 시도하는 오우거를 보며 왼발을 살짝 뒤로 빼며, 검 끝으로 오우거의 발을 강하게 후려쳤다. "쿠아아악." 쿠웅. 달려온 탄력이 있어서 앞으로 퉁기듯이 날아가 바닥에 쳐박힌 오우거는 전혀 충격이 없는 듯, 거세게 표효를 하며 다시 멜빈에게 육탄공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아. 저건......." 엘렌이 어찌 눈앞의 은색 동체를 자랑하는 헤비 워커를 모르겠는가. 그녀도 웜급이 되면 멋진 여성형 몸매를 지닌 헤비 워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런 그녀에게 헤비 워커는 가슴 설레이는 선물인 것이다. 헌데, 눈앞에서 이를 들어내며 그녀의 작고 가녀린 목을 부러트릴 듯한 오우거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페닉 상태에 들었던 엘렌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귀를 자극하는 오우거의 괴성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서 오우거의 육탄 공세를 눈에 익은 검술로 차근차근 상대하는 멋진 베이직 헌터의 방문은 그야말로 백마 탄 왕자는 저리 가라였다. "호호, 힘내요. 저런 흉측한 놈은 단 한번에 죽여버려요." 너무 신이 나서 제자리에서 팔짝뛰며 응원하는 엘렌을 보노라면, 언제 그렇게 심한 페닉 상태에 빠졌던가 하는 의아함을 가져다 주기 충분했다. 그런 엘렌의 응원에 힘을 내는 듯, 멜빈의 화려한 검술이 헤비 워커의 거대한 검을 통해서 펼쳐지자, 오우거는 눈을 현란하게 만드는 거대한 검이 어느 것이 실체인지를 구분하지 못했다. 쉬이익. "꾸아아악." 퍼억. 단숨에 상대의 목을 잘라버리듯 힘껏 내려친 헤비 워커의 검에 오우거의 목에 최초로 긴 상처가 생겼다. 그러자 더욱 더 성질을 부리는 오우거의 괴성이 온 산맥을 긴장에 움츠리게 만들었다. "헉, 분명히 목을 꽤 뚫으리라 생각했건만....." 멜빈은 자신의 투구를 통해 보여지는 오우거의 작은 혈흔을 보며 바짝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전투에 앞서서 제아무리 오우거가 맷집과 힘이 마수들 중에서 최고라고는 해도 헤비 워커의 힘으로 충분히 제압하리라는 생각에 다소 긴장을 푼 상태였다. 헌데 막상 부딪혀 보면서 느낀 마수 오우거의 맷집은 상상을 불허했다. 거대한 동체에서 뿜어지는 힘은 이미 두 배가 넘는 덩치에도 불구하고 헤비 워커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헤비 워커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오우거의 육탄 돌격에 부딪힐 때마다 헤비 워커의 단단한 동체는 여기저기 찌그러지는 가슴 섬뜩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수가 조금전 자신의 검술에 휘말려 잠시나마 빈틈이 보였기에 멜빈은 온 힘을 다해서 오우거의 목을 잘라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헌데, 작은 혈흔만을 남긴 놀라운 오우거의 맷집에 멜빈은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제길. 강해도 너무 강하다." 휘이익. 목에 난 상처 때문에 더욱 화가 난 오우거의 방어를 무시한 채 감행되는 돌격에 뒤로 재빨리 물러선 멜빈은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저히 지금으로썬 자신이 눈앞의 마수를 물리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쿠아아앙. 금새 상대의 빈틈을 노린 오우거의 강한 태클이 다시 시작되자, 멜빈은 뒤로 중심이 밀리면서 꼴사납게 바닥에 내팽겨쳐 졌다. "크으윽" 헤비 워커가 받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신으로 엄습해 오자, 그 고통에 멜빈은 입가로 작은 핏줄기가 비췄다. 쓰윽. 팔목으로 대충 입가에 고인 피를 닦아 내면서도 멜빈은 속절없이 오우거의 나무 몽둥이를 사정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퍼버버벅. 방패로 간신히 막으면서도 왼손목이 뻐근한 느낌에 멜빈은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오우거의 복부에 강한 발길을 선사하며 그 탄력으로 상체를 번쩍 세웠다. 주춤주춤. 제법 아랫배에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뒤로 물러나는 오우거를 향해 멜빈은 이미 날이 듬성듬성 빠진 검을 움켜쥐며 오우거의 머리에 강한 박치기를 선사했다. 강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머리 양쪽에 뿔을 단 엘리오나의 머리로 강하게 박치기를 선사하자, 오우거는 다리가 잠시 풀린 듯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검처럼 작은 물체로는 오우거에겐 그리 큰 충격을 주진 못한 듯 했다. 헌데 지금 10m가 넘는 동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로 부딪히자, 최초로 오우거가 충격을 받는 느낌이 든 것이다. 멜빈은 그제야 제대도 된 대처 방법을 알게 되자 하늘을 날 듯한 쾌감에 사로잡혔다. 이미 근사한 은빛동체는 여기저기 파여져 예전의 멋진 기사의 모습은 간 곳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멜빈이 선택한 방법은 오우거와 똑같은 무식한 육탄돌격으로 눈앞의 적을 무찌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래. 이 방법이 제법 네놈에게 먹힌다면 나 또한 똑같이 해주마. 뿌드득"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 헤비 워커의 겉표면은 왕국에 돌아가면 다시 원상태로 복귀가 가능 할 것이다. 지금은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 된 것이다. 멜빈은 그래도 기사이기에 손에 쥔 검과 방패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우거에겐 이미 검이 통하지 않는 검붉은 갈기가 있는 이상 오우거의 내부에 충격을 주기 위해서, 멜빈은 그동안 제법 긴 여행으로 인해서 배웠던 여러 가지 기술들을 동원하며 오우거에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아아아악. 본능적으로 움직이던 오우거가 자신에게 대항하는 존재의 무차별적인 공세에 더욱 신경질이 나는지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내질렀다. 너무도 강한 마기가 넘실거리는 오우거의 눈은 더욱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고, 오우거의 괴성은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리며 주위에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허나 그 앞에 선 멜빈은 추호도 물러섬이 없었다. 드래곤들이 마나를 담아서 내지르는 드래곤 피어엔 모든 동물들에게 순종과 복종심을 일으킨다면, 마수들의 괴성엔 강한 공포감으로 온몸이 굳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멜빈은 생애 최초로 목숨을 건 싸움에 임하며 그동안 거대한 벽에 가로 막혀 있던 무언가에 대해 깊은 몰아감에 빠져 있었기에 오우거의 괴성이 귀로 들려오지 않았다. 혼연일체. 온 우주에 내려진 기운들이 자신과 하나가 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힌 멜빈이었다. 그리고 자신과 하나가 된 헤비 워커의 움직임은 머리에서 생각이 들면 몸이 그대로 따라 움직이는 생생한 느낌이 있었기에, 지금 멜빈은 만신창이에 가까운 헤비 워커를 이끌며 자신이 그동안 생각만 했지 몸소 실행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구 행하기 시작했다. 꾸아아악. 쿠앙. 퍼버벅. 강한 힘을 실은 나무 몽둥이를 방패로 막으면서 멜빈이 무게 중심이던 왼발을 축으로 허리를 비틀면 헤비 워커는 그 반응에 오른발을 사선으로 디디며 오른손 뾰족한 날이 달린 팔굽으로 오우거의 목에 강한 충격을 선사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멜빈의 몸이 허공에 뜬 느낌이 일면 헤비 워커는 살짝 몸을 비틀어 오우거의 두꺼운 가슴부위에 뾰족한 무릎 보호대를 과감히 찔러 들어갔다. 그야말로 본능과 무의식 속에 잠재된 기운들이 서로 치고 받는 조마조마한 순간들이었다. 엘렌은 눈앞의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면서 너무도 황홀한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맨 처음 눈앞에 나타난 헤비 워커를 보고나선, 자신을 구하러 온 근사한 베이직 헌터를 떠올렸던 그녀였다. 허나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마수 사냥꾼 헤비 워커리어인 베이직 헌터가 아니였다. 바로 인간의 헤비 워커 나이트였던 것이다. 인간이 탄 헤비 워커는 절대로 마수들을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지금까지 귀에 딱지가 박히도록 들어온 엘렌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광경을 보라. 마치 베이직 헌터들이 그토록이나 갈구하던 몰아의 경지에 든 것 같은 인간의 나이트는 지금 마수 중 최고라는 오우거를 거침없이 구석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가 어찌 저리도 멋있을 수 있을까?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행동과 그에 따르는 행동들은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본 마수보다 더욱 강렬하게 엘렌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마나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검에 마나를 실어 내리치지는 못하지만, 인간의 모든 방위로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엔 강한 의지가 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현란하게 만들어주는 절도감 있는 인간의 헤비 워커는 그야말로 존재의 자부심에 똘똘 뭉쳐져 살아온 엘렌의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켜 주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악. 멜빈이 탄 헤비워커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오우거를 향해 허리를 급히 숙이면서 오우거의 다리를 향해 어깨 태클이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몸이 쏠리자, 헤비 워커가 오우거를 번쩍 치켜 든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중심을 잃은 오우거와 부딪혀가던 그 탄력그대로 오우거를 번쩍 치켜든 멜빈은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뒤로 급히 제키며, 자신의 힘과 가속도에 오우거의 가속도를 실어서 멋지게 오우거를 머리부터 땅으로 박아버리는 것이었다. "아............" 더 이상 엘렌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인간 나이트의 모습은 온 동체가 찌그러져 보기 흉할 정도였다. 아마 저걸 고치려면 꽤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헤비 워커가 온 힘을 다해서 들은 오우거는 이미 허리가 반 이상이 잠기도록 땅에 머리와 상체를 박아 넣고 있었다. 갑자기 행해진 공격에 땅속에 묻혀서도 바둥 거리는 오우거의 괴성이 이어졌다. 그러자 멜빈이 온힘을 다해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한 손에 들려진 방패를 바닥에 던지며 행해지는 다음 행위는 엘렌의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퍼억. 퍼버버벅. 이가 듬성듬성 빠진 검은 이제 더 이상 그 존재를 잃어 버렸다. 허나 두 손으로 움켜쥔 채 검이라고 부리기도 민망한 작대기를 들고 오우거의 활짝 벌려져 바둥거리는 다리 사이를 거침없이 내리 찍는 멜빈의 행동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끄아아악. 생애 마지막 비명일까? 이미 검은 갈기 사이로 검붉은 마기에 휩싸인 오우거의 엉덩이 뼈가 훤히 들어 난 상태에서도 멜빈의 과거 검이었던 작대기로 행해지는 도끼질은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부 장기들이 하나둘 터져 나가면서 은색의 동체를 잔뜩 이물질로 뒤덮게 하고 나서야 오우거의 바둥거림은 그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멜빈은 이미 쇠 작대기에 불과한 검을 가슴에 댄 채, 상대의 강함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검을 쥔 오른손에 왼손을 감싸며 살짝 고개를 숙인 뒤 헤비 워커의 입술부위에 해당하는 곳에 검을 들이댔다. 그 뒤, 멜빈은 검을 높게 치켜들며 상대의 너덜해진 곳을 향해 검을 강하게 쑤셔 넣었다. 고통스런 상대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 멜빈은 온힘을 다해서 검을 쑤셔 넣으며, 자신을 지금까지 이끌던 본능에 사로잡힌 몸이 점점 힘을 다해 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상태로 검이 반 이상이나 들어간 오우거의 몸으로 멜빈을 태운 헤비 워커 역시, 서서히 동체를 숙이며 보름달이 뜬 날 밤의 광기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 제 20 화. {깨어나는 과거} 엘렌은 자신의 레어에 돌아오자마자, 이곳저곳을 치우느라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아빠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백마 탄 왕자님이 그녀를 방문한 지금 엘렌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하든 이 멋진 왕자님을 자신의 품안에서 놓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의 나이 이제 고작 1500살하고도 32년. 한참 감수성이 예민할 어린 드래곤인 엘렌이었다. 그런 엘렌의 눈앞에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를 구해준 멋진 흑기사이자, 백마 탄 왕자님이 된 멜빈은 지금 심한 내부 충격에 의해서 거의 혼수상태에 가까운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이미 외상과 내부의 출혈 등은 엘렌이 대충 치유주문으로 고쳐놓았지만, 어디 엘렌이 인간의 몸을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해서 엘렌은 초조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생전 안 하던 레어를 청소를 해야 한다느니, 어떤 음식으로 병간호를 하는게 좋을까 등등. 온갖 수선을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하늘에 통해서일까? 며칠 동안 침대 곁을 거의 떠나지 않던 엘렌의 귓가로 차차 안정이 되어 가는 숨결을 토해내는 멜빈을 바라보며 엘렌의 얼굴은 붉은 홍시처럼 점점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으응? 여긴 어디지?' 맨 처음 의식이 돌아 왔을 때의 느낌이었다. 작고 우아한 레이스들이 온통 방안을 도배하고 있는 침실에서 멜빈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고 있었다. 멜빈이 처음 눈을 뜨며 바라본 것은 둥근 원형의 돔으로 된 침대였다. 그리고 그 침대를 둘러싸고 있는 흰색의 천들은 매우 비싸보이는 레이스들로 치장이 되어 있었다. 이건 평소 왕족으로써 왕궁생활이 익숙한 멜빈으로써도 뜻밖의 놀람이었다. 매우 정밀한 솜씨로 짜여진 천들과 그 천들의 종류는 왕자인 멜빈으로써도 난생 처음보는 신기한 것들이었다. "으윽. 여긴........." 놀란 마음에 상체를 일으켜 세우다 갈비뼈쪽에서 전해져오는 짜르르한 아픔에 이마살을 찌푸리던 멜빈은 곧이어 자신의 한손을 꼭 움켜쥔 채, 침대 모서리에서 고운 뺨을 물들인 엘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 여잔.....그럼?!' 자신의 손을 꼭 움켜쥔 채 곤히 잠이 든 엘렌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남자로써, 그리고 그동안 왕자로써 주변의 공국과 상위 귀족들의 딸들을 무수히 보고자란 멜빈으로썬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다. '너.........너무 이쁘다. 고귀한듯한 기품과 그속에 담겨진.......' 차마 말로 표현치 못할만큼 신선한 기분이었다. 지금 자신이 누워있던 이 화려한듯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방의 주인이 아마도 이 여자 일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잔 자신의 못난 점을 몸소 가르쳐준 은인이기도 했다. 기사로써 어찌 도망칠 궁리를 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도 창피한 생각뿐이었다. 헌데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이 여인은 선이 분명한 고운 이마와 오뚝 솟은 콧날에 시원스럽게 흐르는 입가의 미소까지....... 남자로써 보호본능과 더불어 가녀린 품에 마구 안기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작은 어깨를 지닌 여자였다. 이런 여자가 자신도 겁은 내서 도망칠 생각을 했던 마수와의 싸움을 추호도 물러섬이 없이 당당하게 맞서지 않았던가. '역시 난 아직까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단지......' 지금도 의아할 정도로 죽음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리고 오직 자신의 모든 기력을 짜내며 눈앞의 막강한 적과 맞섰을 때 자신을 감싸고 있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된 듯한 그때의 느낌은 온몸이 욱씬거리는 멜빈의 뇌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 아마도 이게 나에게 운명의 여신을 받아들이라는 하늘의 계시인지도.....' 멜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괜찮게 생긴 사내였다. 보통의 기사들처럼 그렇게 우락부락한 얼굴도 아니요, 그렇다고 호리호리한 체구의 소유자도 아니였다. 딱 벌어진 어깨와 그 위의 동선을 덮어주는 금발의 화려함은 각진 턱을 더욱 선명하게 선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서 미쳐 깍지 못한 수염이 지저분한 상태였지만, 이미 엘렌이 의식을 잃은 멜빈의 수염을 깨끗이 면도해 주었기에, 지금 멜빈의 모습은 매력적인 남성으로 보이기 충분했다. 역삼각형의 등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굵고 가는 허리의 선이 알맞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허벅지와 다리의 선은 그가 두다리를 착 붙이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멋지게 단련된 기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멜빈이었기에 지금까지 그는 숱한 애정공세에 시달리며 어느새 여자들을 대하는 눈초리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멜빈이 지금 생애 최초로 자신의 손을 꼭 움켜쥔 ,채 침대 모서리에 황금색에 가까운 투명한 은색의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머리를 살풋이 기대며 잠이 든 엘렌을 바라보며 심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의 울림을 받고 있었다. 두근두근. '헉, 이.....이건 무슨 느낌이지?!' 강하게 반문을 하면서도 어느새 멜빈의 다른 손은 곤히 잠이 든 엘렌의 머릿결로 가고 있었다. '이익. 기사도를 숭배하는 내가 이 무슨 망발을.......' 절대로 레이디의 허락이 있기 전까진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되건만, 멜빈의 손은 잔 떨림을 일으키며 서서히 엘렌의 고운 귓가와 만지면 은색의 가루가 묻어날 정도로 뽀얀 뺨을 살짝 매만지고 있었다. "우웅....." '헉........이.......이런." 부스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려고 작은 몸부림을 치는 엘렌의 행동에 심장이 철렁 떨어지는 듯 멜빈은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서려고 했다. 그 덕분에 쿠션이 좋은 침대가 심하게 요동을 치자, 엘렌은 자신의 손과 연결된 상대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아. 일어나셨어요? 몸은......" 허나 뒤이어 들려온 상대의 대답은 아직까지 잠이 덜 깬 엘렌의 정신을 확 깨어나게 만들어주었다. "그......그게......이것 좀....." 멜빈의 당황스런 말에 엘렌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머나. 죄송해요. 너무 기쁜 나머지......" 아마도 높은 열에 달아 오른 쇠덩이가 이럴까? 지금 엘렌의 뺨은 그보다 더 심하게 붉게 물들었다. 엘렌이 꼭 쥔 멜빈의 손은 잠에서 깨어나며 상대의 안위를 묻던 엘렌의 가슴부위에 맞닿아 있었고, 젊은 남자로써 생전 처음 여인의 뭉클한 부위에 손이 닿자 멜빈의 정신세계는 지금 온통 도화 빛에 물들어 몽롱한 환각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서로 상대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이 두 남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제 분홍빛의 물결이 그들을 감싸는 일만 남은 듯 보였다. "그래. 그때부터 난 항상 이런 느낌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언제나 자신의 곁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던 그녀였지만, 무언가 낯선 이질감은 항상 멜빈을 괴롭혀오고 있었다. 그렇게 마수와의 싸움에서 기력을 회복하고 몇 달간 그녀의 집에서 꿈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그토록이나 심하게 방황을 하게 만들었던 검기의 벽이자 인간의 한계라고도 불리우는 몰아와 무아의 경지인 소드 마스터의 벽을 멜빈은 옆에서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는 엘렌을 통해서 뛰어 넘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종족들이 몸안에 가지고 살아가는 생의 원동력인 마나라는 것을 처음으로 듣던 날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의 모든 지식들이 깡그리 무시당한채 엘렌에게 새로운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 얼마나 행복했던가. 자신을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호흡이 가쁠 정도로 뒤에서 꼭 안으며 자세하게 몸안에 잠재된 힘. 즉 마나를 다스릴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 주던 엘렌을 바라보며 멜빈은 점점 주체할수 없는 감정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멜빈은 지금의 십여 년에 가까운 시간들이 흐르는 동안, 자신이 전설의 대지인 헬요리네 산맥에서 데리고 온 엘렌에게 언제나 자신의 애정이 식은 게 느껴지면 자신을 버리고 떠나도 좋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애정은 그때보다 더 깊어만 졌건만, 그녀는 자신의 곁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꼭 쥔 그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피들이 방안을 흥건히 적시고 있건만, 평소라면 난리를 치며 치료를 해주려고 하던 그녀와 그저 쑥스러워서 어린 아이같은 미소를 아내에게 보여주던 멜빈은 서로를 바라보며 작은 물안개를 눈가에 피우고만 있었다. "멜빈......" "알아요. 무슨 말을 할지........나도 그렇다오." 목이 매어서 도저히 나올 것 같이 않은 말을 내뱉으며 멜빈은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자신의 소중한 그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눈길에 실어 보내주려고 했다. 허나 이놈의 뿌연 물안개가 자신을 방해하자 성이 난 멜빈은 이를 뿌득 갈았다. 스윽. 아마도 이게 마지막으로 느껴질 아내의 손길일 것이다. "흐윽.............뿌드득." "멜빈. 참으려고 하지 말아요. 그냥.........자신의 마음이 가는 길을 따르세요." "흐윽. 흑." 기어코 눈물이 앞을 가리고야 말았다. 아내의 다정한 속삭임에 멜빈의 눈가에 맺힌 이슬방울들은 엘렌의 품에 안긴 싸이의 뺨으로 뚝뚝 떨어지며 아내의 가녀린 어깨에 기댄 이 시대의 진정한 강자라고도 불리는 멜빈의 큰 어깨는 흐느낌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번쩍. 최강의 제국이자 카빌라이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메르카 왕국의 동부전선 최고 사령부의 어느 한 곳에서 강한 빛이 번쩍였다. 가끔씩 병참기지를 순회하는 왕족이나 최고 사령관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장거리 마법진이 빛을 발하면서, 지금 그 앞에 부복하고 있는 사령관과 부관들은 잔뜩 긴장을 한 채, 누군가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촤르르르릉. 하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마법진안에 뿌옇게 사람들의 잔영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 앞에서 부동의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최강의 강병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인 왕국의 기사들은 목청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다. "카빌라이 대륙의 평화를! 메르카 왕국에 충~~~성을 위~햇! 민족의 영~~~광을 위~햇! 명령만 내리소서. 이 목~~~숨 다 받쳐 반드시 이루겠나이다~~~!" 쿠쿠쿠쿵. 일제히 외치는 구호와 그 뒤를 따라서 바닥에 깊게 부복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지금 그 앞에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일절 그런 것들에 신경을 두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쓰지도 못한 것이다. 오로지......! 보드라운 천으로 감싸인 곳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이 제국의 대들보와 그 대들보를 안고 있는 여성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모자(母子)의 뒤론 이 거대한 제국을 움직이는 이들이 천천히 뒤따라 걸어오면서 만인 앞에서는 차마 하지 못하는 왕족의 체통을 잘 게 부서 버리는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제........수씨.......미안합니다...제가......" "......괜찮아요. 하지만 이이가....." "하핫. 이놈 걱정은 마시고 부디......" 미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애써 얼버무리는 황제 폐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로멜쥬 공작은 마치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은 아들의 얼굴을 눈에 새겨 넣기 위해서, 열심히 그리고도 모자라 더욱 열심히 아들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멜빈. 내 스스로 당신의 생이 끝날 때까지 당신 곁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살겠다고 한 약속을 미처 지키지 못하는 날 용서 해주세요. 그럼...... 안녕. 내 사랑~~~!' 엘렌은 직접 말로썬 표현 못할 말들을 눈빛에 실어 남편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런 엘렌의 시선속으로 사랑하는 남편의 얼굴이 비춰지면서, 한동안 물끄러미 남편의 얼굴을 보던 엘렌은 이내 결심을 했는 듯 뒤를 돌아서 앞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안돼. 절대로 마음이 약해져서 뒤돌아보면.....그러면 정말로 난......' 그렇다. 지금 어금니를 꽉 깨물고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얼굴엔 한없이 굵은 눈물들이 비오듯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 모든게 드래곤들의 유희에선 반드시, 그리고 꼭 한번은 가슴저리게 겪게 되는 일들이라고 그동안 무수히 들어오고 스스로 깨달아 가고 있던 그녀였다. 헌데 막상 이런 이별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드루시안이자 유희의 끝에선 반드시 폐기처분 대상 일순위가 되는 아들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아니 누군가 그녀에게 아들을 포기하라고 강요를 하면 그 누군가와 일생을 걸고 사생결단을 내려는 강한 모성애를 지니게 된 그녀였다. 이까짓 유희쯤이야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품안에 안겨 있는 아들은 절대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그녀의 아기였다. 비록 인간의 형태인 아들이라고는 해도, 또 그녀가 지금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드는 드래곤이라고는 해도, 지금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아들만은 절대로 포기 못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새삼 굳게 다지는 그녀였다. 신룡의 후예 - 제 21 화. {슬픈 미소} 소년은 또다시 행복한 꿈을 꾼다. 따스한 봄햇살이 내리 쬐는 광장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다보며 갖은 인종들의 전시장이 되어 버린 광장에서 유독 시선을 끌고 있는 사랑하는 그녀에게서 소년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꺄아아아~아아핫" 무엇이 그리 좋은 것일까?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면서 자신의 방안에서 나잡아 봐라를 외치는 그녀와 하얀 와이셔츠 하나만 달랑 입은 채 뛰어 다니는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은 소년의 눈앞을 흐려지게 만드는 환각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런 소년의 눈앞으로 마구 여러장면들이 스치듯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소년은 사랑하는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 감추는 듯한 비밀이 있다는 것은 피부로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한참을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죽이며 고통을 받고 있는 여자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차라리 바보천치라고 해도 모자랄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것들은 일체 신경도 안 썼다. 자신이 하루 종일 두 세가지의 파트타임을 뛰며 학교와 직장을 오고 가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그녀와 단둘이 행복하게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그는 행복했던 것이다. 언제나 청순한 이미지로 하얗게 웃음을 짓는 그녀를 볼 때마다 소년의 친구들은 마구 그를 놀리며 팔불출소리를 해대도 소년은 눈썹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아니 그런 말들은 소년의 마음을 흔들지도 못했고, 그를 더욱 행복하게만 만들어주고 있었다. 더구나 커다란 캠퍼스에서 자신을 어떻게 찾아왔는지, 따뜻한 점심을 정성껏 마련해서 매일 마다 찾아오는 사랑하는 그녀는 소년을 매우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그가 힘든 일을 끝마치고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강한 피로회복제가 되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을 보여주는 꿈# 언제나 새벽 일찍 수산물 시장에 나가는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의 마음은 한없이 자신을 아껴주고 알뜰히 챙겨주는 남자에게서 생애 최초로 애뜻한 감정을 지니게 해주었다. 벌써 몇 달째 같은 침대를 쓰고는 있지만, 그 남자는 그녀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는 놀라운 모습들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자기가 그렇게 매력이 없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건 절대로 아니였다. 친혈육이 아니어도 항상 아낌없는 애정을 보여주던 양부모들이 그녀의 발표회 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교통사고로 이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오직 맨 몸뚱이 하나였다. 조금은 그녀에게 물려질 유산들도 이미 친척들에게 모두 양도가 되었고, 법적 성인이 되지 못한 그녀를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자청하던 이도 결국에 가서는 동양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녀의 미모를 탐내, 어느 날 그녀의 방에 술이 잔뜩 취한 채 들어와서는 옐로우 펑키 어쩌고 하면서 그녀를 마구 학대를 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에 여러 번에 걸쳐서 그런 끔찍한 만행을 일쌈으며, 심할 때에는 온몸을 발가벗겨선 심한 채찍질을 하며 그녀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적인 폭행도 일쌈았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과 다른 피부를 지닌 양부모에게 사랑만 받던 그녀로썬 감히 예전의 양부모 집을 뛰쳐나갈 생각도 가지지 못했었다. 점점 바보같이 참기만 하는 그녀에게 행해지는 폭행은 그 도가 지나쳐 결국엔 화가 나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가 10년이 넘도록 살아온 양부모의 집이자 이젠 친척이라고 하는 자의 집이 되어 버린 곳을 용기를 내서 밖으로 뛰어나오게 만들었다. 결국 외톨이 신세로 밤을 지샐 곳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모두가 짐승같은 이들에게 당하는 추악한 고통만으로 돌아 올 뿐이었다. 시꺼먼 피부와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패거리들에게 걸려 번갈아 가며 목에 칼이 대여지고, 아랫도리를 찢어발기는 고통에서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게 그녀를 지켜줄 든든한 흑기사가 나타나기만을 진심으로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기도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그녀는 어느 날밤. 낯선 이의 손에 이끌려 몽롱한 마약의 기운과 함께 아주 낯선 곳으로 끌려다니며 개처럼 구박 당하고, 환각상태에 젖어 갖은 수모를 당하며 사내들의 정액 받이가 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그녀가 보낸 지옥의 세월은 근 일년이 넘는 긴 시간들이었다. 그녀가 제정신을 되찾게 되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다 결국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그녀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꽁꽁 묶여져 있는 자신을 옆에 두고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사내에게서 벗어나고자 갖은 애를 쓰며 그 곳을 빠져 나와서는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었다. 이것도 모두가 약간이지만 환각제가 지배하는 몸을 가진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온몸에 묶여 있는 끈들을 이빨로 물어뜯을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길가에서 방황을 했을까? 문득 발에서 느껴지는 시린 통증에 그녀가 정신을 제대로 차렸을땐 마치 하얀 꽃밭에서 춤을 추고 있던 자신이 정말로 하얀.....온통 새하얀 눈 위에서 거의 맨몸에 가까운 몰골로 배회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흑흑흑. 너무도 슬펐다. 지금 이렇게 약기운이 떨어지면 얼마 못 가서 살을 에이는 추위에 결국은 얼어죽고 말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 그녀였기에..... 그녀는 초라한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서 작고 냄새가 나는 어두운 골목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결코 마지막에 가선 그녀를 버리지는 않는 듯 했다. 잠시 몸에서 느껴지는 짜릿짜릿한 고통에 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온통 날카로운 무언가에 배인 것처럼 피가 철철 나고 있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들 속에서 이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신경을 몸으로 느끼자 그녀는 곧이어 자신을 찾아올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한쪽 구석에서 죽음과 어울리는 어둠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느낌에 고개를 들고 보니, 따뜻하고 향긋한 냄새의 커피와 아직 식지 않은 빵을 쥔 손을 보면서 그녀는 아직은 살고 싶다라는 이율배반적인 강한 욕망을 지니게 되었다. 그후. 몽롱한 의식세계에서 어딘가 따뜻한 곳에 들어간 자신을 느끼며 무언가 강한 거부감을 주는 액체가 입안에 들어와서는 목을 타고 넘어가 뜨거운 쾌감과 함께 온몸이 부드럽게 풀리는 착각 속에서 그녀는 마지막 의식을 잃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눈을 떠보았을 때 보이는 생경한 방안 풍경과 아무도 없는 공간 속에서 따뜻한 실내 공기들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그녀에게 전해주며 행복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조금씩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그녀에게 작은 테이블 위에 정성껏 차려진 식탁과 함께 발견된 쪽지에선 항상 새롭게 만나게 되는 존재들은 그녀에게 바라는 것이 오직 하나라는 것들을 순식간에 깨부수는....... 마치 꿈속의 흑기사와도 같은 존재가 적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남겨져 있었다. '조금 있다가 돌아 올께. 하지만 크게 부담 같지는 말아. 어차피 나도 너처럼 고아이니까.....그리고 식었지만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먹으렴.'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수저를 놀리며 식탁에 소탐스럽게 차려진 음식들을 몇 달째 제대로 된 음식을 넣어본 기억이 없는 쪼그라든 위장 속으로 묵묵히 집어넣었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도 특별히 갈곳이 없었다. 그럴바에야........ 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꿈많은 소녀시절의 꿈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그녀였다. 그뒤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랐다. 비록 중독증세가 심한 마약들을 잊기 위해 발버둥치며, 사랑하는 감정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해준 고마운 사내에게 추한 몰골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과 의지로 스스로를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녀였다. 그러면서도 문득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위해서 끼니도 거른 채, 고생을 한다는 사실에 한참 먹어야만 든든하게 일할 남자를 위해 그녀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음식솜씨를 발휘해서 그 남자가 다닌다는 학교로 무턱대고 찾아갔다. 얼핏 지나가는 말로 경영학도였다는 것 하나만 달랑 가지고 찾아간 그녀의 배포는 무려 5시간이라는 긴 기다림으로 다가와선 품안에서 식어 버린 볼품 없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내에게 전할 수 있었다. 그때 놀란 표정의 사랑하는 남자의 얼굴과 그 뒤를 따라오는 환한 미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그녀의 소중한 신의 선물이었다. 이미 품안에서 식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세상 최고의 만찬이라며 맛있게 먹는 사내를 보며 눈가에 흐르는 감동의 눈물을 참을수 없었던 그녀였다. 아마 생애 최초로 행복에 겨운 눈물은 이게 처음 일 것이다. 그 후, 항상 아침을 먹자마자 출발을 해선 사내를 만나기까지, 하루반나절을 꼬박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낯선 이방인이라는 존재를 반겨주지 않는 이들의 시선 속에서도 그녀는 차츰 사랑하는 남자의 강의 시간표와 그 사람을 만나게 될 약속장소가 무언의 약속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녀와 소년은 행복한 점심을 매일 같이 먹으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알 게 된 사내의 친구들은 그녀에게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신뢰를 가져다 주며 가벼운 농담으로 사랑하는 이와 그녀를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한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다. 소년은 잠시 과거의 행복한 꿈들이 눈앞에 펼쳐지자 너무도 행복했던 그시절의 모습들을 조금이라도 더 지켜보고자 바둥거렸다. 지금 자신이 꿈속에서 그 모습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에 더욱 애를 쓰며 몸부림을 쳤다. 결코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들이 점점 식어가고 그 위를 다시 따뜻하게 새로운 물줄기들이 지나간다는 의식이 생기자, 소년은 이내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영상들을 애뜻한 마음으로 붙잡으려고 두손을 휘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그 꿈이 사라져 가는 곳에서 들려오는........ 어쩌면 평생 잊지 못할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라...빈. 사랑.....해요.........절대로.....포기하면....안되요.......... 전.......오직...........당신...........만을......................힘내세요............. 내가........바라는 건................오직..............당신의.........행복........뿐....." '이이이..............익. 빌어먹을. 그까짓 게 다 뭐라고..................흐윽....... 난 너 아니면 그 따위거..........다 필요 없단 말야!' "흐윽.............라빈.............안되...................흑................. 당신속엔..............항상..............제가 있겠.....................죠........... 그럼....................전............만족........해요.............그대를.........영원.........사랑........ 반드시..........다시.................만날....................포기...........하....마......요....." 점점 흐리게 들리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에 애처러운 소년은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안..................뙈.......................!!" 신룡의 후예 - 제 22 화. 여왕의 탐욕-1 "과거 이 세상에 파멸의 시간들이 도달했었을 때, 이 물질계를 수호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헤세르. 창조주이시자 유일신의 특명으로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는 그의 찬란한 위명은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도 넓도다. 그런 그를 옆에서 도와주는 친구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영겁의 존재 신룡 헤리아킨.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마계에서 건너온 무리들에게 속박 당하고 억압당하며 시체는 산을 이루어 넓은 들판들을 기름지게 하고 핏물이 내(川)를 이루어 강물로 흘러가니 모든 물 속 생물들은 그 피로 배를 채웠다네. 인간들은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자신들이 간절히 믿는 신들께 기도를 들여보아도 푸르른 하늘은 여전히 묵묵부답.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해 신음을 터트릴 때, 하얀 사제복의 엘프가 그들의 피와 섞은 시체를 거두어 불쌍한 길 잃은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구나. 아아~~ 암흑의 시간들이여~~! 영원하리라~~!. 갈리아스라고 하는 사내가 자신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헤레나 라고만 이름을 밝힌 엘프에게 구원을 받으며, 인간들의 고통을 그 작은 눈에 담게되자, 드디어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니...... 오~오~오. 드디어 인간들과 마계의 무리들의 전쟁은 시작되었도다. 숱한 역경과 이 세상 모든 유사인종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위대한 전사 갈리아스 그를 신뢰하고 따르며 추종을 하고 그의 옆에서 항상 이 세상을 관장하는 신의 부름에 답한 신룡 헤리아킨이 있어 모든 이들이 절망 끝에 힘을 낼 수 있었다네. 얼마의 시간들이 지나 갔을까? 인간들은 그들의 아래에서 하나둘 사라져 가고 신룡 헤리아킨을 따르던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들도 점점 억겁의 시간들을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멸망의 길로 들어설 때, 악의 무리들의 행포에 보다못해 나선 이가 있었으니 오오오오오. 이 세상 가장 강한 이가 나타났으니 그의 이름은 영원불멸의 존재 콘돌이라. 한번 홰를 치메, 온 천지가 진동을 하고 그 길고도 날카로운 부리가 한번 열리면 모든 생명들이 암흑으로 돌아가리.......... 아~ 신의 사자 콘돌이여~! 그대의 이름은 영원하리." 영원불멸의 존재 콘돌의 서사시 中에서 때는 까마득한 먼 옛날. 인간들의 기록으로도 이미 사라져 가 버린 아주 먼 옛날. 이 땅을 차지하려고 나타난 잔인한 존재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나타난 곳은 북쪽의 어두운 하늘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아직까지 미지의 존재들로 기록에 남아 전해지고는 있지만. 정확히 그들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들이 왜 이곳에 평화롭게 살고 있던 유사종족들을 멸족의 길로 들어서게 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작은 삶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고, 이런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앞장서며 지켜주던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갈리아스 대제였다. 그는 스스로를 갈리아스 가문의 마지막 수장이라고 칭했고, 그 위대한 신의 전사 갈리아스를 추종하는 무리들은 그에게 서슴없이 이 대륙의 지배자. 대제(大帝)라고 그를 불렀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던가!! 그의 화려한 검 솜씨는 아직 문명이 자리잡지 못한 인간들에겐 너무나도 눈부신 화려한 검무였고, 그의 눈에서 빗발치는 기세는 이 세계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받아 내지를 못했다. 그런 그의 옆에는 항상 신비한 기운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위대한 종족 드래곤들의 수장 신룡 헤리아킨이었다. 그는 화려한 은발의 사내로 그가 이끄는 유사종족들의 힘은 가히 하늘도 쪼개 놓을 만큼 강했으며 그의 말 한마디에 이세상 모든 종족들이 고개 숙여 경배를 했다. 그런 위대한 존재의 이름 신룡 헤리아킨은 지금도 대륙 곳곳에서 그를 떠받드는 무리들의 기억에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힘은 거의 신에 가까운 그리고 이 땅의 유사종족들에게 신룡으로 추앙 받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힘의 존재들인 자들을 항상 뒤따라 다니는 여사제가 한 명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바로 헤레나! 그녀의 작고 하얀 손에는 항상 모든 종족들의 피가 묻어 있었으며, 그녀의 성스러운 손이 이 땅의 무리들에게 닿을 때에는 모든 존재들의 상처는 씻은 듯이 나아지며 오로지 성스러운 모습으로만 길이 남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그녀의 손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항상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듯이 갈리아스 대제에게만 머물고 있었다. 오호. 통제라. 인간도 아닌 그녀가 그렇다고 숲의 신성한 종족 엘프도 아닌 그녀가 그런 사랑에 눈이 멀자 모든 이들에게서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에 동정을 받으며, 태고의 마계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의 영혼까지도 이런 그녀를 감싸며 그녀의 간절한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랬었다. 지금도 이 땅에서 성녀들로 불리우는 헤레나 여신도와 여사제들은 아직까지도 위대한 성녀 헤레나가 전쟁의 막바지에서 자신의 사랑을 위해 대신 목숨을 잃은 것을 그리며, 그녀를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무리들로 인해 헤레나! 그녀는 인간들에게 추앙 받는 최고의 여신이 되었도다. 이런 위대한 여신 헤레나의 신탁은 거의 모든 대륙에서 일어나는 분쟁들을 잠재우는 역량이 있었다. 지금 그런 성스러운 여신 헤레나로부터 전 대륙에 동시에 나타난 신탁이 이 땅에 새로운 피바람을 몰고 올 작은 씨앗이 되고 있었다. 헤레나, 그녀가 평소 치를 떨며 증오하던 무리들의 수장의 힘이 바로 신탁의 주제였고, 피바람이 불어 올 작은 씨앗의 원인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 온통 누런 모래바람이 자리를 잡고 있는 대륙의 오지에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의 모양은 신기하게도 뽀족한 원통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종탑의 아래로 일체감 있게 하나로 연결된 둥근 원의 건물에는 아주 소수의 여사제들이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띠게 보였다. "대사제님. 이제 그만 봉인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으음......정말로 저것을........" 매우 아쉬운 얼굴로 연한 연두색에서 점점 깜박이는 빛을 내며 짙은 초록색으로 변해 가는 둥근 수정구를 바라보는 하크 대사제의 눈빛엔 수정구에서 나오는 진한 초록빛보다 더 강한 탐욕과 아쉬움의 눈빛이 강하게 흘러나왔다. 그런 대사제를 바라보는 쥬엘의 모습은 그저 불쌍한 동정심과 안타까움만이 가득 자리했다. '어떻게 ........신을 모시는 사제로써 탐욕에 사로잡혀서 이 큰 대사를 그르치게 만들고 있다니........' 그런 마음의 쥬엘의 기억 속에 있는 대사제의 모습은 절대로 이런 모습이 아니였다. 어릴 적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물을 볼 수 있었던 나이의 쥬엘 기억 속에 있던 대사제는 지금 훌쩍 커 버린 그녀의 모습과는 달리 헤레나 여신의 가호아래 예전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신탁. 이 위대한 두 글자 속에서 운명이 결정지어져 버린 쥬엘은 자신이 누구의 자식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자라났다. 그런 그녀가 항상 존경하고 성심 성의껏 받드는 헤레나 여신의 신탁에 의해 지금 그녀는 이렇게 위대한 성녀 헤레나 여신의 일급 사제가 되어 있었다. 평소 헤레나 여신을 모시며 사는 여사제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녀는 어릴 적 이 오지의 사막으로 건너와 일반 평사제들과는 달리 각종 대륙의 검술과 궁술들을 배우며 자라나야만 했던 그녀였다. 하기에 그녀는 그녀의 동료들 중 가장 우수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여사제로써는 매우 색다른 성전사. 즉 스프리츠 파이터였다. 그리고 쥬엘은 스스로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대륙의 오지에서 신의 성물을 지키고 있는 성전사의 수장이 되어 있는 지금 현재. 쥬엘 그녀가 여신의 신탁을 받은 것은 이미 보름도 더 지난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미 지켜졌을 위대한 신탁이 지금까지 지지부진으로 아직까지 지켜지지 못한 것도 사실은 지금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대사제의 성물에 대한 깊은 애정 때문이었다. 이미 신탁에는 그 날로부터 최단 시간내의 봉인을 요구받았던 쥬엘이었지만, 성물에 강한 미련을 지니고 있는 대사제의 권한에 밀려 지금 이렇게 본단에서 신탁이 내려져 행하라는 명령이 오기까지 여러 번의 낮과 밤이 허탈하게 지나가게 된 것이었다. "하크 대사제님. 위대한 여신의 성물을 지금이라도 봉인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의 노여움을......" "그만...." 쥬엘은 조급한 마음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기는 지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히며, 평소라면 절대로 행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보였지만, 역시 규율에 얽매인 존재답게 대사제의 작은 손짓하나에 그만 입을 다물고 뒤이어 내려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 쥬엘. 내가 헤레나 여신을 모신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아느냐?" "그........그게.... 실은...." "되었다. 그래. 모두들 나를 보면서 인간의 수명을 건너 띤 여신의 은총을 받는 이라고 칭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 "..........." "그래. 의문이 일겠지. 따지고 보면 나도 잘 모르는 일들이니........ 이거 하나만은 너에게 확실히 말해줄 수 있겠구나. 내가 저 위대한 여신의 성물을 수호한지 오늘로써 어언 212년 째. 이 모든 게 저기 있는 성물의 힘을 받아서 이루어진 일이니 어찌 내가 이렇게 집착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난 절대로 후회를 하지는 않는단다. 비록 어릴 적 헤레나 여신의 신탁으로 이곳에 와서 숱한 날들을 지내며, 저 성물을 수호하며 이상하게도 몸이 늙지를 않고 점점 젊어지고 있었던 것이 이상하다 생각되어지기는 했단다. 허나 나의 유일신 헤레나님께 이런 사실을 간절히 찾아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신을 모시는 존재인 나에겐 두 번 다시 헤레나님의 신탁은 내리지 않더구나. 남들은 이런 나를 바라보며 부러움의 대상으로 나를 받들어 주지만, 이미 난 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것을 요 며칠 사이에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단다. 알고 보면 전부 나의 삶을 허무하게 만든 것도 저 성물이기에 난 지금 매우 혼란스럽구나. 너에게 매일 밤 헤레나님이 내리신 신탁이 나에겐 근 200년 가까이 단 한번도 내리지 않았으니.............그래. 어차피 긴 삶을 살아온 나. 무엇이 그리 미련이 남겠느냐. 자~!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작하자꾸나." 쥬엘은 대사제의 낮게 뇌깔리는 고백 같은 말들 속에서 알 수 없는 동정심을 느끼며 촉촉히 젖은 눈길로 대사제를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대사제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강한 신념을 지닌 여사제로 되돌아와선 자신을 동정하는 눈길을 던지는 쥬엘에게 작은 미소로 답을 해 주었다. 커다란 원통형의 신전 안에는 그 정 가운데에 어른 키만큼이나 두꺼운 둥근 봉인 마법진이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지금 그 앞에서 네 명의 여사제들이 허리에 가는 검을 찬 채 봉인구가 들린 사인거를 들고 점점 봉인 마법진으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모두가 거의 비슷한 복장을 한 것으로 보아 이들이 바로 그 유명한 헤레나 여신의 성전사들 같았다. 자신들이 성전사 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녀들은 각각 색다른 머릿결 위에 한결같은 디바인 마크를 단 써클렛을 차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하얀 실크 같은 분위기의 천으로 된 치마바지와 함께 일반 사제들과는 전혀 다른 목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브이넥의 다소 파격적인 복장으로 건강해 보이는 자신들의 어깨를 내 놓은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치마바지도 상당히 짧아서 무릎에서 간들거리며 그녀들이 지금 신고 있는 부츠와 그 위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일체감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은색의 물질로 만들어진 디바인 마크가 눈에 확 들어오는 다리 보호대를 차고 여자로썬 보기 힘든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팔목에도 그와 같은 손목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단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쥬엘은 비록, 자신과 같은 복장이지만 디바인 마크만은 그녀가 황금색으로 되어 있어서, 아래에 있는 이들과 다른 직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 쥬엘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녀의 아래에 있는 여사제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성물이었다. 쥬엘은 성물이 봉인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더 걱정스러운 빛이 가득한 굳은 얼굴을 한채 침착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 나의 존경하는 헤레나님. 드디어 이 못난 당신의 딸 쥬엘이 당신의 신성한 가르침을 이행할 수 있나이다. 부디 그간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사 이들에게 잠시 인 탐욕의 시선들을 감하여 주옵시고, 부디 당신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저 위대한 성물을 받으사 그 행한 일에 만인이 우러르게 하옵소서.' 잠시 감격의 눈물과도 같이 작게 이는 안도의 눈물을 훔치며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그녀의 두 뺨엔 어느새 여신의 신탁을 자신의 손으로 이루었다는 기쁨에 작은 홍조가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 검은 황소머리의 사내가 있다. 잔잔히 서쪽 하늘로 사라져 가는 태양의 마지막 절규와 함께 나타난 수백의 무리들 중 가장 앞에 선 자의 머리에서 빛나는 것은 칙칙한 검은 빛의 무구로써 그 사내는 아주 특이하게 검은 황소의 모양을 한 무구를 쓴 채,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매우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 사내의 눈앞에는 신비한 신기루와도 같은 하나의 종탑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신기루와도 같은 종탑을 가리키며 연신 공손한 태도로 뒤에 있는 존재와 조심스럽게 의논을 하고 있었다. "호호홋. 그래. 저기가 네 놈이 말하던 그곳이 확실 하느냐?" "예. 여왕 마마. 저곳이 바로 헤레나 여신의 성물이 있다고 하는 곳이 틀림없사옵니다." "호~ 그래? 그럼 저기에 있다는 여신의 성물이 바로 위대하신 제왕 발킬마 님의 모든 힘이 봉인된 봉인구는?" "예. 바로 헤레나 여신의 성물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과거 사악한 유사종족들에게 비겁한 암수로 봉인 당하신 발킬마님의 봉인구이옵니다." "흐음........." "여왕 마마. 부디 신을 믿으소서. 이 한목숨 다 바쳐 위대한 이자벨 여왕님께 충성을 맹세한 이 우라노스를......." 이자벨 여왕. 지금 이 사내에게 공손한 태도를 절로 일으키게 만드는 아주 무시무시한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여왕이 바로 이 오지의 사막 한가운데에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제법 미모가 출중한 듯 보였으나 얼굴에 온통 덕지덕지 쳐 바른 진한 색조 화장으로 인해 아주 무서운 모습 그 자체였다. 바로 그 점을 노린 듯한 파격적인 화장술의 이자벨 여왕이 지금 가만히 응시를 하고 있는 곳에선, 알 듯 모를 듯 그녀에겐 매우 익숙한 강한 힘의 파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잔잔히 서쪽으로 사라지는 태양 빛을 받으며 그 힘의 파동은 주위로 천천히 번져 나가고 있었다. '흥. 우매한 것들. 나 유마계의 서열 24위 이자벨이 달리 이 어리석은 놈들의 여왕노릇이나 하면서 있었는 줄 알면 크나큰 착오이다.' 뿌드득. 무언가 그녀에게 매우 불쾌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 생각난 듯 더욱 눈가에 붉은 광휘를 내뿜으며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그녀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그녀였다. 유마계. 이는 얼마 전 신계와 마계의 인물들에게 반란의 깃발을 쳐든 북명왕 발킬마의 발 아래에서 통치를 받고 있던 곳이었다. 비록 그것이 신계에선 얼마 되지 않는 일들이라곤 해도 물질계인 인간계에선 엄청난 세월이 지난 근 이만 년 전의 일이었다. 더구나 그런 일들을 벌인 원인은 유마계가 가진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흔히 인간들이 벌리는 땅덩어리를 둘러싸고 일어난 탐욕스런 일들 때문이었을까? 그건 절대로 아니였다. 모든 환경이야 오계가 거기서 거기이지만 이들이 그런 일들을 벌이게 된 데에는 소위 말하는 괴수 같은 외모 때문이었다. 그들이 다른 이들로부터 받았던 수모가 가장 거기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외모는 장난이 아니였다. 오죽하면 같은 명왕의 자리에 오르는 발킬마에게 보낸 다른 명왕들의 축하사절들이 어찌되어 단 한 명도 없었겠는가! 더구나 꼴 보기 싫은 몰골로 우두커니 서 있는 마수들의 세계 유마계에 평소에 볼일이 있어 오고자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애완용으로 키우는 가디언 같은 것들을 보내서 일을 해결하려고 했기에 더욱 이들을 열 받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 부당함이 오죽했겠는가!! 그러나 유일신. 이 양반만이 그런 그들에게 축하 선물로 내려주신 것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유마계의 모든 이들에겐 최고의 희망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바로 변신술. 그것도 평소 동경해 오던 인간형 즉. 신과 가장 유사한 체형으로의 변신이 가능한 변신술을 이들에게 전해주신 것이다. 그 때문에 한 때 유마계 전 곳에서는 아주 난리에 지랄발광........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희망의 몸부림들이 요동을 쳤었다. 그렇게 그 얼마나 기뻐하며 즐거워했었을까? 드디어 흔히 인간들이 말하는 끔찍한 외모의 마수들의 모양새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내 이들은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생긴 유일신의 선물에 경악을 하면서 이윽고 자신들을 무시한 유일신에게 급기야 도전장을 내밀 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발킬마의 반란 또는 성마대전이라고도 후에 기록으로 남은 천계 최초의 반란이자 물질계의 파멸에 가까운 희생을 가져다 온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달리 무언가 심각한 음모의 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으니.... 그 증거물로는 천계의 수호자이자 물질계와 각각의 세계의 중간자이던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을 살해한 이들이 바로 유마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이들이었다는 것이 유일한 증거가 되고 있었다. 이것은 발킬마도 유일신에게 스스로 고한 일이었기에 더욱 의문이 남는 사건이었다. 단지 어릴 아이가 받아 넘길만한 일이 아니였기에, 어린 나이에 너무도 큰 충격에 이성을 잃고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있었던, 마지막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이 그때의 일을 기억 못한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이었다. 그후. 지금 이렇게 물질계에 스스로 유마계의 일원이라고 자처하는 여인이 나타났으니............ 아직 천계에서 불투명한 사건으로 기록이 되어져 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미궁의 사건들 속에서 제대로 된 변명도 못한 채 유일신에 의해 봉인된 유마왕 발킬마의 봉인구가 앞으로 가져올 파문은....................... 오로지 우리는 가만히 두고 지켜보자!! 왜냐고 물으신다면 당연히 우리는 그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불구경+ 싸움구경이나 신나게 하는게 짱이지 않겠는가~!!! 신룡의 후예 - 제 23 화. "아아아악" 좁은 대리석으로 만든 긴 복도에선 지금도 연신 여인들의 끔찍한 비명소리와 그 뒤를 따르는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 무슨 천인공노할 짓이란 말인가? 신을 믿고 그 신을 위해서 지은 건물 안에서 신을 모욕하는 행동들을 벌이고 있는 사내들을 지금 제압하고 말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쥬엘은 지금 그녀를 끌고 가는 사내들을 노려보며 주위에서 벌어지는 만행에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흑. 날 용서해줘. 내가 조금만 더.....조금만 더 서둘렀다면........이런 일은.....' 크윽. 도저히 용서 못할 놈들이었다. 지금도 연신 일반 여신도나 성전사들을 마구 유린하며 보통 한명의 여자에게 두 세명의 사내들이 덤벼들어서 벌이는 눈앞의 사태는 이젠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감히 신을 모시는 사제들을 유린할 수 있다니........ 그것도 정상적인 자세가 아닌........저런 변태적인 만행을......... 그런 모습들을 눈에 하나 둘 새겨 넣듯이 노려보며 피눈물속에서 더욱 가슴이 찢어지는 쥬엘의 뇌리 속엔 이들의 만행이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를 데리고 가던 사내들이 한곳의 방으로 그녀를 이끌고 가자 그녀는 그 속에서 여유롭게 앉아 있는 사내들 중 한명에게 죽일 듯한 시선을 쏘아보내는 걸로 그녀의 분노를 표출시켰다. "이 죽일 놈......감히 대사제 님을........." "크크크. 대 사제라고 하셨나? 쿠하하하핫. 감히 어둠의 제왕이신 발킬라 님의 기운을 흡수 받아서 자신의 삶을 영유한 사제를......더구나 신을 모시는 사제라면 절대로 행하지 않을 악의 기운을 숭배하는 그 여자가?! 내 손에 단숨에 목이 날아가면서도 삶에 미련을 못 버리는 그 여자를 보고 신을 모시는 대사제라고? 음하하하핫. 정말로 웃기는 년이구나. 크크크" "이익....." 바둥바둥. 거센 사내들에게 잡혀서 꼼짝도 못하는 몸을 마구 몸부림쳐봐도 쥬엘의 반항은 그저 사내들에게 더욱 조롱거리만 되고 있었다. "쿠쿠쿠. 이봐라. 프로이드 에멜. 저 년에게 너의 그 근사한 모습을 한번 보여주는 것이 어떠냐? 크크크. 아직 저년이 자기가 처한 현실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여왕님의 은총을 받기 싫다는 것과 일치하는 듯 한데.....크크크크." "캬캬캬. 감사합니다. 대장. 그럼......크크크" 한눈에 보아도 눈가에 잡혀 있는 기운이 매우 사악함을 느낄 수 있는 사내가 점점 쥬엘의 앞으로 걸어오자 그녀는 절로 움츠러드는 몸과 그 속에서 나오는 작은 떨림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더욱 잔인한 미소로 쳐다보는 사내의 눈엔 순간 이채가 번뜩이면서 더욱 진한 미소를 지어냈다. "쿡쿡쿡. 이 계집. 막상 입으로 씨부리는 것과는 달리 몸은 아주 정직하게 반응을 하는 구나. 크크크. 그렇다면 .........오냐. 널 위해 더욱 좋은 선물을 선사하마. 대장. 괜찮겠죠?" "크하하핫. 이 짐승같은 놈. 쿡쿡쿡. 하긴 그래서 네놈 이름도 에멜이라는 애칭이 들어간 이름이겠지. 크크크. 그럼 기대해 보마." 자칭+타칭 짐승과도 같은 변태 짓으로 사내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짓거리를 매우 자랑삼아서 행하는 그에게 드디어 상관인 우라노스의 명이 떨어지자 프로이드 에멜이라고 하는 사내는 구석에서 대기중이던 아직은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사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가면서 그녀- 안느라고 하는 쥬엘에겐 친동생과도 같은 그녀를 개 끌 듯이 질질 끌고 나왔다. 그러나 성전사도 아닌 일반 신성력이 높은 사제인 안느는 더욱 무기력한 모습으로 초점이 없는 멍한 시선을 한 채 아무 저항도 없이 그저 질질 끌려오고만 있었다. "큭큭큭. 이년. 제법 보기보다 실하군. 근데 반항하는 재미가 있어야만.....크크크." 순간 쥬엘은 앞에 서서 건들거리는 사내의 입을 마구 짓뭉개 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감히 여신도들 중에서 가장 여신도다운 안느를 앞에 두고 허리에 차고 있던 벨트를 천천히 내리며 그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길쭉한 물건을 꺼내 안느의 얼굴에 대고 툭툭 치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눈가가 찢어져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눈꼬리를 더욱 크게 찢고 있었다. "빠드득......이.............이익..." "쿠쿠쿠. 그래. 그래야 내가 조금 더 찐한 재미가 있지 않을까? 후후후 그럼 어디 더욱 재미난 구경거리를 한번 만들어 볼까나? 음하하핫" 그러면서 사내가 자신의 윗도리를 벗으며 등뒤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꺼낸 작은병에는 푸른 액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잠시 약병을 쥬엘의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며 자랑을 하던 사내는 이윽고 병따개를 열면서 천천히 안느의 얼굴부분에 그 약병을 들고 그속에 든 액체의 향기를 그녀의 코에 들이대며 안느의 코를 간지럽혔다. "으..........으으응....." 잠시 몽롱하던 그녀의 눈빛에서 점차 맑은 혜지로운 빛이 일면서 안느는 침입자로 보이는 사내들에게 사로잡히며 강제로 복용했던 무언가로부터 점점 해방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으응.......쥬........쥬엘 언니?" "흐윽.........안느........미.............미안......." 철썩. 아악. 쥬엘은 멍한 얼굴을 들고 자신을 발견하며 매우 반가워하는 안느에게 미처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눈앞에 서있던 에멜이라고 하는 애칭의 사내가 거칠 게 뿌린 손날에 저만치 날아가서 쳐박히는 가녀린 안느를 보게되자 더욱 애절한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안~~~~느........이익. 이 나쁜 놈들.......아직 어린애에게 무슨 짓거리를 하려고..." "음하하핫. 무슨 짓거리라니.....? 쿠쿠쿠. 좋은 일이지......아암...좋은일이구 말고. 죽기전에 자기가 믿는 신이 계시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에 올라서는 쾌감을 얻는다는게 어디 쉬운일인가? 그렇지 않나? 음하하핫" "쿠헬헬헬헬." "음훼훼훼훼" "역시......캬캬캬캬" 일제히 사내들이 웃어제끼는 모습을 거보란 듯이 양손을 살짝 옆구리 높이만큼 올리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사내가 주위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글 돌자 주위에 있던 사내들의 얼굴엔 더욱 짙은 기대의 눈빛들이 생성되었다. "후훗. 자. 그럼 관객들도 충분하고.......어디보자.....흠.....제물도 제법 쓸만한데... 쩝." 무언가 아쉽다는 듯이 우두머리인 우라노스에게 시선을 던지는 에멜이었다. 그런 부하의 시선을 익숙한 얼굴로 받던 우라노스가 뒤에 서 있는 쥬엘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묻자 당연하다는 듯이 웃음을 짓는 에멜이었다. "쿡쿡쿡. 녀석. 욕심은.....그래. 좋다. 이왕이면 내 몫까지 확실히 즐기도록. 대신 나를 즐겁게 해주지 못할시에는 네놈의 목은 내가 확실하게 따주마. 만족하느냐?" "헤헤헤. 역쉬..... 고맙습니다. 대장. 그럼~~"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바뀐 사내가 뒤돌아서서 쥬엘의 얼굴 한 쪽을 긴 혀로 핥으며 목으로 내려가자 쥬엘은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사내들의 우악스런 손길에 의해 치를 떨면서 얼굴을 돌리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헤헤헤헤. 이렇게 고운 피부결이라니.......흐음.......이 얼마만이냐? 쿠케케케." 매우 섬세한 사내의 손길을 한동안 받던 쥬엘은 점점 사내가 아랫쪽으로 손을 내리면서 그녀의 제법 풍만한 가슴에서 숨을 헐떡이며 맴돌고 있자 더욱 화가 난 얼굴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크크큭. 과연 암코양이 소리를 듣는 계집이군. 좋다. 너가 그렇게 싫다면야...뭐!!" 그러면서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려세운 사내가 걸어가는 곳은 아직까지 벽에 부딪혀서 기절을 하고 있는 안느의 곁이었다. 쫘악. 찌익. 거침없었다. 이미 이런 일은 아주 익숙한 듯이 사내가 한번씩 신경질적으로 찢어발기는 손길엔 안느의 가녀린 몸을 감싸고 있는 옷가지들은 생애 마지막 비명을 토하면서 그렇게 힘없이 쭉쭉 찢어지고만 있었다. 크크크크. 꿀꺽. 흐읍. 쿡쿡쿡. 여러 명의 사내들 입에서 기대에 찬 소리들이 방안을 점차 메우고 있을 때 사내는 거침없이 기절한 안느의 허연 두 다리를 와락 거칠 게 벌리면서 남들에게 다 보이라는 듯이 번쩍 돌려 세웠다. "꿀~꺽." "주.....죽인다." "흐흐흐흐.....꿀꺽". 여전히 사내들의 시선은 안느의 허벅지 안 쪽을 향해 있었고 그런 사내들의 시선을 교묘하게 가리면서 자신의 성난 물건을 한손으로 툭툭 치는 사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내의 얼굴은 아래에 있는 안느의 무엇과 쥬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더욱 쥬엘에게 잔인한 짓거리를 해보이기 시작했다. '흐윽. 안느....부디.....신의 가호가 있기를.......' 그저 쥬엘은 그녀를 위해서 가녀린 영혼이 신께 인도 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달리 그녀를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토록 쥬엘을 따르며 평소 신전에서 조용조용하게 생활하는 것과는 달리 한 침실을 쓰면서 밤만 되면 그녀에게 항상 시끄러운 지저귐으로 쥬엘을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던 귀여운 동생이 뭇사내들에게 노리갯감과 눈요기감이 되어 버린 이 현실 속에서 쥬엘은 점점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더욱 강한 의지로 불태우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결코.....결코 사내놈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뿌드득.' 그러기 위해선 지금 저 사내가 행하려고 하는 짓거리를 더욱 더 확실히 머리 속에 각인 시켜야만 그녀의 분노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기에....... 쥬엘은 부릅뜬 눈으로 점점 안느의 허벅지 안쪽을 한손으로 희롱하는 사내의 짓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엘렌은 지금 너무도 기뻤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전엔 무수히 고민도 많이 했었고 과연 아들이 그녀가 원하는 수준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숱한 고민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가 행하는 일을 같은 동족들이 뭐라고 할까? 하며 심각한 고민도 많이 했었다. 왜냐면 아직 인간으로써는 자신들의 종족에게 대항한다거나 감히 흉내를 내는 일은 아직까지 인간들의 역사속에서도 전무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로썬 그렇게 크게 갈등이나 고민을 할 만한 여유로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자신의 레어가 있는....... 그리고 그녀의 위대한 가문의 성지인 이곳 헬요리네 산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가졌던 고뇌의 시간들은 지금 아들의 멋진(?)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다. "오호호호홍. 너무 이쁘다~앙! 호호. 이건 내가 해주고도 너무 잘한 것 같아. 그치 아가야?" 무엇을 보고 지금 이렇게 팔짝팔짝 뛰면서 소녀처럼 좋아라하며 박수를 치는 것일까? 흠. 그냥 그저 그녀의 레어 한쪽을 커다랗게 메우고 있는 은빛 찬란한 무언가 때문일까? 사실 엘렌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얼굴에 수심을 가득 달고 있었다. 그건 남편인 멜빈의 처음 보는 우울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이별로 받아들이고 안녕을 고하며 떠나 온 엘렌이기에 더욱 그녀의 얼굴엔 깊은 수심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동해 온 그녀의 예전 레어에는 이곳을 떠나기전 마지막에 가졌던 멜빈과의 추억이 가득 있었고, 간간히 그녀의 사랑하는 부모님과 그 중에서도 심한 장난과 호기심으로 일족들로부터....아니 전 종족으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모습이 가끔씩 떠올라 더욱 그녀의 아픈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휴우~. 과연 지금 내가 할 일들이 정녕 이것밖에 없었을까?" 도리도리. 그건 자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니야. 이건 반드시 필요해~! 그리고 당연히 해야 돼~!! 난 인간으로 트렌스포메이션을 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신체 구조를 정확하게는 잘 몰라. 이것 봐. 싸이 몸에 투시마법으로 이 아이의 뒤엉킨 뇌 속의 혈관들이나 신경줄기들을 내가 멋모르고 움직여서는 더욱 상태만 악화되고 있잖아. 흐~윽" 갑자기 발악하듯 말을 하면서 눈을 꼭 감은 채 숨만 쉬고 있는 아들을 내려다보자 더욱 설움이 복받치는 그녀였다. 하지만 이미 완성체인 몸을 지닌 이 세계의 가장 완벽한 존재인 자신이 이대로 아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 될 말이었다. 그냥 평범한 드루시안이면 그까짓거 신경도 안쓴다. 또한 최상급 정령도 감히 대하지 못하는 아들의 감춰진 능력 같은 것들은 지금 그녀는 신경도 쓰기 싫었다. 오로지 그녀는 왠지 아들만 보고 있으면 자신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기에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버지도 종족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 거기에 딸이 더 추가된다고 해서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며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는 엘렌이었다. '하지만......과연.......과연 우리 싸이가 종족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서........폭주라도 한다 면....' 지금 그녀를 가장 갈등시키는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그녀는 드래곤. 그것도 과거 위대한 유사종족들의 수장인 신룡 헤리아킨의 단 하나뿐인 증손녀.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아들은 드래곤이 아닌 유사종족 중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인간.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신기한 태몽과 그 뒤를 받쳐주는 신에 가까운 아들의 능력들. 물론 그 능력이라는 것도 사실 엘렌이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최상급 정령이라는 놈이 한 소리니깐 그녀는 곧이곧대로 믿었다. 왜냐면..........정령들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으니깐. 그러나 그녀가 아들 때문에 동족들로부터 따를 당하더라도 어차피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일들이 남아 있었기에 특별히 그 문제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아들이라면.......... 아직은 어린아이인 아들인데 과연 그 큰 종족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 된 자신을 과연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실버 일족의 로드인 엄마한테 과연 손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모든 일들이 엘렌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 하나로 쉽게 해결이 되고 모든 종족들로부터 아들이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인간인 아들이 과연 그 큰 몸으로 변한 자신의 몸을 끝까지 유지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엘렌의 번민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비록 최상급의 정령이 인정한 아들이라고 해도 인간인 아들이 드래곤들의 그 큰 몸을 유지시키는 마나들을 몸 안에 모두 갈무리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접하면서 엘렌은 심각하게 고대 용족들의 기록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위대한 과거 고대 용족들의 문명엔 분명히 자신들의 의지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낸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허나 그것은 자아를 지닌 존재이기 보단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 주인에게 복종하는 일종의 가디언일 뿐이었는데....... 그 때문에 지금 살아 있는 여러 종족의 드래곤들이 그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여러 번 인간의 몸과 유사인종들의 몸을 실험체로 사용하면서 각종 유사 인종들이 드래곤이 되는 모습들을 실험해보았지만, 과거의 위대한 고대 용족들의 문명 속에 남겨진 용언마법이 이제껏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는 엘렌이었다. 며칠동안 이런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던 엘렌이 드디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자, 지금 그녀를 애절한 마음에 더욱 커다란 대못질을 하며 그녀의 정신세계를 마구 뒤흔들고 있던 심란한 일들은 하나 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거기엔 벌써 며칠이 지나도록 전혀 차도는커녕 점점 악화되기 시작하는 아들의 증세를 바라봐야만 하는 엄마의 심정이 가장 거세게 불길을 당기고 있었기에, 지금의 문제는 그저 나중에 막상 부딪히면서 심하게 깨지더라도 소중한 아들만은 반드시 살려야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강한 엄마 엘렌이었다. "좋아. 그까짓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어때!! 우리 싸이에겐 내가 있잖아.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되실 내 아버지가 이 녀석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시면 이 녀석도 충분히 만족할꺼야! 더 이상 이렇게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이 엄마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아들녀석은 절대로.......그리고 더욱 건강한 신체를 지니게 될 우리 싸이를 위해 한 지금 이 결정을 난 용족인 내 이름을 걸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꺼야!" 으르렁거리듯이 용언으로 굳게 자신과 약속을 하는 싸이의 진정한 엄.마. 위대한 실버 드래곤 엘렌키아니 갈리아스였다. '우.......응........왜 이리 어지럽지? 근데 뭐야 이건........?' 난 지금 매우 불쾌한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직 술이 덜 깨서 그런걸까? 흠. 물론 내가 오랜만에 본 술이라고 옛날 버릇이 나와선 그만...... 에휴. 정말로 내 자신이 한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캬캬캬. 하지만 후회는 안한다. 왜냐면 비록 비몽사몽간이었지만 내 사랑 그레이스를 난 드디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그녀가 내게 가졌던 감정이 정말로 나와 같다는.... 흑흑흑. 너무도 기뻤다. 하지만 지금 내 골을 마구 마구 뒤흔드는 괴로운 감각은 역시 제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과용하면 몸을 망친다는 것을 똑똑히 그리고 확실히 증명시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그녀의 기억들과 그녀를 잠시라도 꿈속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한 나였다. 이제 이 기분 그대로 아~주 기분 좋게 일어나 볼까~~앗? 우으으으응. 쭈~욱. 부르르르르. 멋지게(?) 한 번 기지개를 켠 나였다. 그러나.... '에헤헤헤. 우~응. 잘잤다...........으잉? 이....이게...뭐얏?.... 어..........엄마?..............엄마가.......왜 저리........작아......으잉? 내.........내 몸이....?..멀뚱...멀뚱........두리번........끼이이악.' 케~에~엑? 끼아아아악!! 허억. 발라당. 바둥바둥. 켁켁. 엘렌은 드디어 그 큰 몸을 움찔하며 바르르 떨고 있는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런 아들을 보면서 이제 서서히 아들이 깨어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호호호. 우리 귀여운 싸~이~~!! 잘잤니~?" 그러나 이런 그녀의 상냥하면서도 친절한 물음에 당연히 대답을 해야할 아들은 이내 그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큰 눈을 뜨며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레어가 떠나갈 듯한 괴성을 내질렀다. 그 뒤를 이어 레어가 무너질 듯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로 발라당 넘어지는 아들녀석이 그냥 잠시의 몸부림을 마지막으로 기절을 해 버렸다. 생전 처음으로 아들의 훌륭하고 멋진 모습을 감상문(?)으로 받으려고 하던 그녀의 애정어린 기대는 또다시 호흡곤란에 커다란 몸을 발라당 눕힌채 네 다리를 허공에 대곤 바르르 떨며 빳빳해진 아들의 모습을 보는 걸로 대신 해야만 했다. "아~악. 싸이야~~!!" 이건 아기들이 흔히 받는 심한 공포로 인한 경기(매우 심히 놀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위급 신호라는 게 지금 그녀의 머리속에서 맹렬한 신호로 도움을 외치고 있었다. 절대로......... 아들을 저대로 가만히 놔두면 사랑하는 아들은 저 멋진 몸매를 하고도 죽는 다는 생각이 떠오른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최대한 빨리 아들에게 그녀의 힘을 전해 주는 것뿐이었다. "트.......트랜스포메이션~~!" 휘아아아앙. 강한 마나의 바람들이 그녀의 몸 주위를 맴돌며 감싸자 그속에서 은색의 강한 빛이 나오면서 전신이 거울처럼 매우 아름답게 반짝이는 은색의 드래곤이 그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위대한 종족의 힘이여~! 그 힘을 전해주는 나의 기운들이여~! 여기 나의 아들에게 그대들의 힘을 나누어주어라. 크라운 드 윈 워터 브라이~임!' 엘렌은 드래곤들의 수장이자 위대한 지도자인 신룡 헤리아킨의 단 하나뿐인 증손녀답게 대대로 그녀의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힘의 속성 중 실버 드래곤의 힘인 물의 기운과 신룡의 위대한 업적으로 인해 새롭게 신께 하사 받은 바람의 기운을 몽땅 모아서 어쩌면 드래곤들 중에서 왕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룡의 피를 이어받은 자신의 기운까지 몽땅 아들에게 내보냈다. 그러자 그녀를 감싸고 있던 은색의 두꺼운 비늘들 속에서 잠자고 있던 그녀의 위대한 피가 은색의 마나로 변하며 점점 주위로 모이는 물과 바람의 기운들이 하나의 정점이자 핵으로 작게 뭉쳐지자 그 속에 담긴 엘렌의 정화된 기운들이 주변의 마나들을 흡수하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그런 마나의 핵반응에 엘렌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핵들이 주변의 기운들을 다 모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더디게 느껴졌다. 드디어 핵을 둘러싼 마나들이 엘렌 자신의 의지에 반응을 하자, 엘렌은 마나의 회오리속에 담겨진 핵을 천천히 아들인 싸이의 새로운 육체인 귀여운(?) 은색의 드래곤 몸안으로 거침없이 날려보냈다.. 그러길 얼마나 했을까? 바둥거리며 뒤로 발라당 넘어져서 몸을 빳빳하게 굳혀 가던 아들의 몸을 마나들이 감싸기 시작하면서 작은 회오리로 돌며 서서히 몸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엘렌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위대한 신룡이 될지도 모를 그녀의 피와 그 피에 함유된 마나들이 혈육의 힘으로 이어진 싸이의 몸 안에 들어가서 점점 그의 드래곤 하트로 보이는 부분에서 합쳐지게 되는 것이 눈에 선명히 보인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몸은 그녀의 강한 의지와 함께 신룡의 피까지 전해져 점점 그 밝기를 더 해가면서 고르게 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겨우 안심이 된 엘렌은 잠시 너무도 과대한 힘을 단 한번에 방출한 일로 인해 그 큰 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을 가졌다. 어떻게......? 드래곤들의 진정한 정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나라는 대지의 기운들을 몸안에 갈무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드래곤들이 그 큰 몸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정체이자 비결이었다. 그런 드래곤인 그녀가 본체로 변신을 해서 온몸에 깃든 풍족한 마나와 그녀의 일족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피 속에 담긴 신룡의 기운들을 얼마나 밖으로 개방을 했으면 그녀가 잠시 빈혈에 가까운 마나의 공허함에 휘청거렸을까? 결국 아들을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 옆에서 잠시 눈을 감는 엘렌만이 그 느낌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존재이리라........!! 소년은 또다시 긴 꿈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이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누군가 강하게 소년을 이 곳으로 잡아당기는 미증유의 힘에 의한 꿈의 세계였다. "우응? 이게 뭐야? 내가 이상한 괴물이 되어있었는데?" 소년은 꿈의 세계로 오기 전에 보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손과 발. 그리고 특이한 대형머리를 쓰윽 매만져 보곤 나름대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에휴~~! 꿈이었구나....그럼 그렇지. 인간이 내가 어떻게 괴물로 변할 수 있었겠어? 안그래요? 할아버지?" 소년은 자기 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인자한 은발의 사내를 보곤 매우 반갑다는 듯 방긋 미소를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후후후. 녀석. 그 모습이 그렇게도 싫더냐?" "우웅. 그건........하지만 전 인간인데요?"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면서 올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엔 가득 자랑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로 족하단다. 하지만 넌 지금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단다. 어떠니? 지금 스스로도 느껴지는게 있지 않니? 라~빈!" "헉. 제 이름을.....어떻게.........전 지금....." "후후.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단다. 근데 넌 내가 누군지 아니?" "넵. 유사종족들의 자랑스런 지도자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님이 할아버지 아니세요?" "껄껄껄. 그래. 그리고 지금은 동명계의 사계에 떠도는 영혼들을 관장하는 직위를 가진 또다른 계왕이 바로 나란다. 후후후" "계왕? 그게 뭔데요?" "허~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한다~?! 음. 그러니깐.....오냐. 너 예전에 너랑 아주 친한 기운을 지닌 놈을 만난 적이 있었지?" "아하~. 그 씨꺼먼 안개처럼 자신을 위장하다가 내 눈에 띠어서 나온 그 바람둥이처럼 생긴 아저씨 말씀이세요?" "쿠하하하핫. 과연........그래. 언제 적부터 바람의 정령왕인 라이어나 녀석이 바람둥이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그 녀석이 정확하단다. 허면 그 녀석이 너한테 해준 이야기들 중에 생각나는게 있니?" "우응........글쎄요." "허긴. 자~ 그럼 이 할애비가 다 설명을 해 주마. 잘 듣거라. 조금은 난해할 수도 있으니.... 우선 이곳 신계에는 유일신이라고 하시는 이 세계의 창조주께서 신계를 이끌고 계시면서 그 아래로 네 개의 또다른 세계를 창조하셔서 그들 중 가장 안정된 존재들에게 그 곳들을 통치하게 하셨단다. 바로 그 네 명의 통치자들이 네가 알고 있는 명왕이라는 존재들이란다. 이는 동서남북을 하나씩 나누어서 통치를 하는지라 흔히들 무슨무슨 명왕 이런식으로 자신이 맡고 있는 방위의 앞이름을 따서 동명왕 , 서명왕. 남명왕. 북명왕. 으로 정확히 아랫사람들에게 불리지. 그리고 그들이 맡고 있는 각각의 명계에는 보통 2개에서 최고 5개까지의 세계가 있어서 그들은 각자 엄청난 시간들을 소비하면서 그곳의 세계들을 일일이 통치를 한단다. 하지만 지금 이 할애비가 있는 동쪽의 명왕자리는 얼마전 새로운 주인을 맞아야만 했었는데 그것이 그만.........." 소년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젊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 속에 녹아있는 세월의 파편으로 인해 더욱 인자하면서도 다정한 미소를 띤 신룡 할아버지에게 자세한 그곳의 상황들을 매우 신중히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이런 곳들이 있단다. 라며 친절히 설명하는 그분의 말씀에 소년은 더욱 혼동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단지 하나. 자신과 아주 밀접한 이가 그곳의 명왕자리를 걷어차고 지금 어딘가에서 모종의 체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의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한쪽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소년을 쓰다듬으면서 살며시 안아주시는 할아버지라는 존재의 가슴에 파묻혔던 소년은 이내 귓가로 아련히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음성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멀어지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깊은 한숨과 더불어 자신의 눈을 지긋이 응시하면서 말을 이어나가시는 분에게 차마 떼를 쓰지 못하는 소년이었다. "후~우. 이제 대충의 정리는 끝난 것 같구나. 하지만........... 이 네곳의 명왕자리이외에도 흔히 오계라고 칭하는 곳이 있는데.........그곳과 너의 인연은 아주 특별한 것이라서 부디..............깨끗한 마음으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스스로...........내야 한....." 이 말을 마지막으로 눈앞에서 하얀 가루와도 같은 느낌으로 부서져 사라지는 할아버지를 향해 무어라고 소리를 치려던 소년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오직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해야만 한다고 하기에........ 소년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또다른 현실에 이를 갈기 시작했다. '허억. 그럼............그럼 .....이게 바로 과거의 아픈 상처........?' 소년이 이렇게 놀라서 소리를 치고 있는 자리는 금새 소년의 과거 중 가장 깊숙히 묻어두었던 가슴 시린 추억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소년은 이내 자신의 모습이었던 사내를 발견하곤 무작정 그 사내를 뒤따라 걸어갔다. '흑. 저 바보......오늘이 무슨 날인 줄도 모르고.......' 절로 눈물이 흐르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년이 뒤를 따르고 있던 사내는 그저 싱글벙글 손에 든 꽃다발을 휘돌리며 정신없이 어느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흐윽.....참아야 해. 반드시..........꾸욱.' 작은 손에 힘을 주면서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차마 소년은 그 다음에 벌어질 일들에 알고 있었기에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라빈은 지금 열심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금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녀를 위해서 예쁘게 포장한 꽃다발을 든채 주머니에 든 무언가를 자주 만지작거렸다. 이후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자 한껏 숨을 들이마시는 라빈이라는 사내의 뒤에선 여전히 소년은 슬픈 눈을 가진 채 라빈 이라는 사내가 하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이야~~. 그레이~~스~!" 쾅쾅쾅. 사내가 문을 거칠게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칠게 문이 열리면서 그 속에서 누군가가 불쑥 몸을 내밀었다. 우당탕. 벌컥. 사랑하는 남자가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자,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급히 문을 열던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한없이 빛을 내고 있던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모습을 들어내자 라빈은 그녀를 번쩍 안아서 집안으로 성큼성큼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품안에서 여전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 있던 여자를 내려다본 라빈은 그녀에게 찐한 키스를 해 주었다. 츄~웁~스~~♡ 싱긋. 잠시 긴 달콤한 시간속에서 차차 여자의 콩닥이던 심장이 안정이 되어가자, 한없이 감미로운 미소로 자신을 응시하는 여자가 더욱 사랑스러운 사내 라빈은 품에 안긴 그레이스를 더욱 힘주어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가만히 그녀를 침대 곁에 서게 한 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기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무언가를 꺼내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레이스의 두눈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그레이스~! 난 너를 더도 덜도 말고 이 세상에 빛나는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만 사랑하고 싶어. 이런 나의 작은사랑을 받아주겠니?" 뚜욱. 뚝. 뚝. 가만히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그냥 흐르게 놔둔 채 그레이스는 더 이상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저 사내의 얼굴과 그 사내의 손에 들린 작게 빛나는 은반지를 바라보며 할말을 잃은 채 그저 서있기만 했다. 그러자 라빈은 더욱 애가 타는 심정이 되어선 그녀에게 눈짓으로 재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실은 오늘 수산시장의 잭 아저씨가 나보고 열심히 일한다고 가게에서 일하게 해 주셨거든.......그래서 너무 기쁜 나머지 주당을 선불 받아서 그걸로 이걸 샀는데..........마음에 안 들지......?" 자신이 보기에도 작고 가는 은반지는 너무도 초라하기만 했다. 이런 자신의 처지에 그레이스가 쉽게 프로포즈를 받아 주리라곤 생각지 못한 라빈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흐윽.........이 바보.........나 같은게 뭐가 그리..........흐윽..................흐아아앙" 결국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참고 있던 그레이스는 와락 라빈의 품에 안기면서 더욱 슬픈 듯 목을 놓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그레이스의 두팔에 엉겹결에 안긴 라빈은 멍한 듯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맨몸뚱이 하나만 있는 자신이 고작 가는 은반지를 선물하며 프로포즈를 한 것뿐인데.......그녀가 이토록이나 좋아하다니...... 너무 행복한 마음에 그녀를 더욱 거세게 안는 라빈이었다. "사랑해. 그레이스.......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너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꺼야." 사내의 작은 맹세에 더욱 더 가슴에 담긴 오열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그레이스였다. 그런 두사람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소년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활짝 핀 행복한 미소를 가득 얼굴에 싣고 있었다. '후후. 그래. 이때가 가장 행복했었어.........하지만.......' 곧이어 작은 성당으로 향한 이들에게 신부는 축복의 세례를 내려주면서 이들의 언약식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참관을 해주었다. 그 뒤 성당을 돌아서 나오는 연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태양보다 더 빛나는 행복이 가득 했었다. 하지만 이내 소년의 눈앞엔 사내가 늦은 밤까지 힘들 게 일을 마치고 돌아서 온 그의 방에서 아랫도리에 피를 흘리고 기절한 여자를 발견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헉.......이..건............안 돼~!' 라빈은 자신 앞에 흥건히 피를 흘리고 누워있는 그레이스를 발견하자마자 멍하니 넋을 놓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금새 신고를 받고 달려온 앰블란스로 옮겨지는 그녀와 라빈의 모습이 보이면서 소년이 그들을 따라간 곳은 바로 소년이 전생을 마감한 곳이었다. "선생님. 그레이스는........네?" 사내의 뜨거운 시선을 잠시 외면하던 의사가 이윽고 결심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해준 사실은 그야말로 라빈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레이스가......그레이스가...... 마약 금단현상을 스스로 이겨낸 그녀가 지금 유산을..........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욱 가슴아픈 현실은............. 크흑. 쾅쾅. 맨손으로 콘크리트벽을 두들기는 라빈의 손엔 피가 흥건하건만 지금 그를 말리는 사람들도 그의 아픔을 공감한다는 듯이 그에게 다정스런 말을 한마디씩 던졌다. 흐윽. 어떻게 이제 20살이 넘은 그녀가......... 라빈은 그날부터 진짜로 열심히 생활을 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은 그를 절대로 놀 게 하지 않았다. 가끔 힘들어하는 자신을 향해 선물 삼아 스스로 주던 담배도 그날 부로 끊었다. 이는 예전에 매일 마다 그에게 키스를 해주던 그레이스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라서 스스로 금연을 하며, 라빈은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그녀를 위해서 더욱 힘을 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육체적 노동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또다시 닥친 현실은 그를 더욱 힘들 게 했었으니....... Leukemia.-뉴케미아. 이 병을 가진 자들은 초기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그저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모두들 그냥 넘어가지만 이 무서운 병이 점점 인간의 몸안에 있는 백혈구들을 파괴하면서부터 생기는 부작용은 가히 사랑하는 연인에겐 너무도 가혹한 시련이다. 격리병동에서 유리 바깥쪽에 있는 연인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되는 환자나 그런 환자에게 마스크를 쓴채 얼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보호자는 너무도 가슴시린 형벌에 치를 떨어야만 한다. 라빈은 기어코 격리병동으로 옮겨진 그레이스를 보기 위해서 그가 낼 수 있는 시간들인 잠자는 시간들을 포기한채 그녀의 앞에서 짧은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다행이 병원장의 호의로 그녀의 병실 앞에 작은 의자들을 옮겨와 두 세시간씩 잠시 눈만 붙인 채 그녀를 위해서 다시 일터로 나가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자기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병원에서 권하는 마스크도 무시한 처사였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항상 라빈이 건강하기를 신께 기도를 드리며 그가 오는 늦은 밤에는 일체 잠을 자지 않은 채 유리벽 너머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힘든 육체를 제대로 눕히지도 못한 채 의자 위에서 꾸뻑꾸뻑 조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그녀는 그렇게나마 바라보며 지켜줘야만 했다. 하지만 미처 그녀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대량 수혈을 받아야만 하는 그녀의 몸 속엔 항상 그녀를 사랑하는 라빈의 혈액이 백혈구를 거른 채 들어가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단지 그녀를 바라보는 간호사들의 따뜻한 호의 속에서 잠시 의아 했을뿐인 그녀에게 라빈은 그렇게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또 하나의 생명의 신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잠시였다. 일년..... 이건 이들에겐 너무도 잠깐의 세월이었다. 더욱 악화되기만 하는 그녀를 위해서 라빈은 모두의 걱정을 비웃음으로 일관하면서 매일 1 파인트(pint. 즉 헌혈시 헌혈봉투를 칭하는 말)씩 자신의 피로 그레이스를 수혈시키면서도 꾸준히 그녀의 옆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씩씩하게 일을 하러 나갔다. 그런 그들의 사랑 앞에선 어느 누구도 그의 희생과 봉사에 대해서 무어라 하지 못했다. 모두들 그저 그를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라빈은 혹여라도 그레이스가 눈치를 챌까 바 애써 냉정하게 그들을 대하며 그 긴 시간들을 보냈다. 더구나 그는 일터에 가서도 절대로 꾀를 피우지 않았다. 비록 점점 말라 가는 그의 몸을 걱정하는 주위의 친구들이 더욱 그의 식사를 챙겨주었지만 점점 말을 잃어 가는 그의 눈빛에 오로지 신께 올리는 간절한 기도만이 존재했었다. '신이시여. 제발.......제발 나의 그레이스........소영이를 저에게서 빼어가지 마소서. 대신 여기 건강한 저의 몸을 가져가시오소서..........신이시여.' 항상 그는 힘든 짐을 옮기면서도 주기도문과 자신을 그레이스 대신 받치겠다는 기도를 연신 하면서 그 긴 하루를 끝내고 그녀의 곁에 다가가서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유리벽을 넘어선 자신의 사랑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것이 비록 슬픈 사랑의 노래이더라도.......... 언제나 행복했기에............. 너를 만나서 더욱 나의 인생이 빛을 발했기에.............. "으드득. 이게 뭐야~~!. 이걸로 나를 어떻게 하란 말이야~~!" 소년은 과거의 아픔들이 하나둘 회상되는 모습들을 지켜 보면서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선 자신이 괴로운 몸과는 달리 마음만은 그래도 행복했었던 기억들을 마구 보여주는 누군가에게 엉엉 울면서 거칠 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결국 소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허락된 면회에 들어서는 힘없이 축 쳐진 라빈의 뒤를 따라 다시 한번만이라도 더 그레이스의 슬프지만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날............잊지 않을............꺼야?" "흐윽........그래...........넌 내 생명이잖아.............." "...........고............워" "흑.....이 바보.........그런 슬픈 미소는.......안......어울려......." "피~...........나.....행복..........해..........알지?" "그래.....고마워........" "난..........라빈.......밖에...........없었..........어..........앞..............로" "크윽...........제발.................제발.............." "울....지마.........내가.....아프잖아............" "훌쩍......그래...안 울께.........하지만......나.....자신 없어......" "안......돼......무조건.............내.............행...........몫.............지?" "싫어. 너없이 어떻게............나 너없인 못살아......." ".........................흑" "울지마. 그래 내가 잘못했어......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께....그럼....됐지....?" "으....응.........나.....당신...만........서........행........어........." "응. 나도.......언제나 내 심장이 멈추지 않을 때까지 널 항상 사랑할꺼야." ".........후..........흣.........." "정말이야. 난 너만을 내 가슴속에 담아두고 살거야......이건 신께 이미 맹세했는걸...." "..........말................?" "응. 정말." 그렇게 마지막까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가는 그레이스........아니 소영이었다. "흐~윽. 그래. 난 널 절대로 잊지 않을 꺼야!! 흑" 더욱 애절하게 울음을 터트리는 라빈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주는 소년의 가슴속에도 지금 그의 애절한 마음이 처절하게 전해져 왔다. '어떻게....어떻게 그토록 빌고 또 빌었건만........으드득.' 소년은 더욱 화가 난 듯이 이를 악물며 눈가에 흐르는 눈물사이로 누군가를 죽일 듯한 시선을 내쏘아보냈다. '결코...........결코 용서하지 않을 꺼야~!!!' "죠. 제가 부탁드린 일은......" "으응? 여기 우선 물이라도.." "고마워요. 하지만 이미 그녀를 위해서 맹세한걸요. 마음만은 고맙게 받을께요." "그....그래. 그리고 신부화장은 걱정하지마. 우리 동네 최고의 아티스트한테 부탁했으니깐." "고마워요. 죠. 당신이 절 생각해주시는 것 절대로 잊지 않을께요." "으응. 그런건 됐어. 힘내. 라빈." "예. 그럼......" 정중히 인사를 한 라빈이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는 곳엔 뚱뚱한 체격에 작은 얼굴을 지닌 흑인 경비원 죠가 있었다. 그런 라빈의 미소에 어색한 폼으로 웃음을 따라 짓는 죠의 얼굴엔 라빈에게 보내는 신뢰와 존경스러운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라빈은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소영이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그녀가 시내에서 발길을 멈춘 채 한없이 바라보기만 하던 예쁜 웨딩 드레스도 월세 보증금을 빼서 장만을 하고 그에 어울리는 자신이 입을 턱시도로 하나 마련했다. 그리고 가장 미안했던 결혼예물로 그녀와 자신이 나누어 낄 금반지에 비록 큐빅이지만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내는 보석이 큼직막하게 박힌 반지를 준비하며 그는 그녀의 예쁜 신부화장에 어울릴 만한 화환을 사러 발걸음을 분주히 놀렸다. "소영아~!. 미안해. 하지만 난 널 떠나보내는 마지막에서야 이렇게 겨우 너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는 구나. 쿡. 재밌지? 맨날 그레이스~ 그레이스 하다가......." 잠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내며 미소를 짓는 라빈이었다. 그런 그의 손길은 어느새 차가워진 그레이스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쩜 이리도 고우니.......정말 너에게 너무나도 잘어울리는 화장이다. 그치? 자, 이 화환 어때? 옛부터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만 어울리는 이 멋진 화환을 준비하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지? 후후. 자~아.............. 이야~! 진짜 이쁘다. 헤헤 나 내 마음대로 이렇게 너랑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는데.... ....미안해....훌쩍. 내 마음대로 해서....... 후후. 하지만 정말로 우리 소영이 진짜진짜 이쁘다~♡" 라빈은 냉동관에 옮겨져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레이스와 그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동문들이 준비하고 있는 그녀의 장례식 전날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고 있었다. 이미 열흘 가까이 그녀가 위독하다는 말에 제대로 끼니도 못 먹고 병상을 지키던 그로써는 이제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소영이도 자신과 떨어져서 살기는 싫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 그가 택한 행동이라면 아마도 당연히............. '소영아. 미안해. 널 이렇게 혼자 보내기가 싫었어. 널 그 차가운 냉동관에 넣어서 너 혼자 추위에 떨 게 했던 것도 실은 이런 나의 마지막 선물을 너에게 주고 싶어서 그랬다~! 그러니깐 너 혼자 그 어둡고 차가운 곳에 두고 나홀로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고 화를 낼꺼면 조금만 기다려.....훗. 나 너가 예전에 딱 한번 나한테 바가지를 긁었을 때가 생각나. 그 귀여운 얼굴을 찡그리면서 밥도 제대로 안먹고 지금까지 뭐했냐고 하면서... 후훗. 그땐 정말로 행복한 시간들이었는데....... 소영아~! 지금 생각해봐도 네가 떠난 자리는 나에게 너무도 커. 아니~!! 내 심장이 멈추지 않는 한 널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내 작은 맹세를 위해서라도 난 네가 떠난 자리를 비우지 않을꺼야. 인간은 자신을 만든 신을 존경하고 아끼는 뜻에서 깊은 감사의 기도를 매일 올리지만 지금 난 그런 기도는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라도 널 나에게서 빼앗아 가려는 자들에게 사악한 악마가 되어서라도 난 널 반드시 다시 되찾아 올꺼야. 후후후. 내가 평소 싫어하던 담배를 끊은 후론 지금처럼 간절하게 담배생각이 나는게 아마도 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후라서인지 더욱 유혹이 강하게 몰려온다. 하지만 내가 누구니? 난 너와 약속한 것은 절대로 어기지 않는 너만의 흑기사이자 젠틀맨이잖아. 그래. 지금 내 이성이 감성을 이기고 있으니깐 너무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날 보지는 말아죠. 난 단지 조금 후면 만나게될 네가 너무도 그리워서 이렇게 가슴이 설레인단 말야. 핏. 고작 이렇게 널 떠나보낼꺼면 난 널 사랑하지 않았어. 알지? 난 너 없으면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는거...... 그리고 미안해~! 이게 아마도 너와 한 약속들 중 유일하게 못 지키는 일이 될 것 같아. 왜냐면 난 네가 없는 이 세상에서 너 대신 네 삶까지 짊어지며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어. 아참. 잊을 뻔했는데. . . 너가 그렇게도 신경쓰던 내 논문은 지금쯤이면 모리스 교수님한테 전해져 있을꺼야. 아마 그분 성적 짠걸로는 유명한 분인데 이번에도 나 확실히 A플러스 먹을 자신 있어. 후후후. 이제 우리 다시 만나자~? 응? 너도 좋다고 해줘. 나 지금 널 무지무지 만나고 싶어. 그래야 우리가 못다한 사랑의 노래를 행복하게 부를 수 있지 않겠니? 이이익. 미안. 잠시 내가 흥분했었나 봐. 후~우. 햐~아. 지금도 난 상상만 해도 참으로 행복하다. 훗. 너랑 파란 풀밭에서 나비를 쫓으며 노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서 그녀석들을 하나둘 챙기며 행복하게 웃는 네 모습이 너무도 이쁜 것 같아. 후훗. 이제 내가 네곁으로 다시 돌아가면 우리 이런 사랑을 다시 할 수 있겠지? 그래. 신이 우리를 버렸을지라도 우린 우리 둘만의 사랑으로 그 난관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꺼야. 소영아. 널 만나서 난 정말로..............흐윽...........정말...........흑.....행복 했어! 안녕. 내사랑. 쪼옥. 안녕. 다시 만나 반가운 내 사랑~~♡ 라빈은 자신의 눈앞에 곱게 화장을 한채 누워있는 소영이에게 잠시 이별의 키스를 해주었다. 그 뒤를 이어 자신의 사랑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희망찬 키스를 그녀의 입술에 살짝 해주며 서서히 자신의 몸을 눕히기 시작했다. 소년은 이제 자신의 생을 스스로 끊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내의 마지막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그 사내를 노려보았다. 병~신. 그렇게 죽어도 소영이는 만나지도 못하는데........이 병신~~아~!. 하지만 소년은 금새 자신의 말을 반박해야만 했다. 허억. 소영아~? 너 소영이 맞지? 소년은 지금 자신의 눈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제 아무리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분명히 등뒤에 탐스런 하얀 날개를 움직이면서 과거의 자신이었던 라빈을 말리는 소녀는 소영이가 분명했다. 점점 사랑하는 여인의 곁으로 스스로 몸을 눕히고 있는 사내를 등뒤에서 껴안으며 애써 말리는 하얀 날개의 천사. 조금전 사내가 선물한 하얀 웨딩드래스와 그에 걸맞는 푸른색의 꽃이 군데군데 들어가서 더욱 우아하게 보이는 화환을 머리에 이고 뒤에서 죽은 연인의 곁에 누워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려고 하는 사내를 말리는 천사는 분명히 소영이가 확실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것들을 전혀 모른 채 점점 스스로의 생을 끊으면서 사랑하는 여인의 뺨에 입술을 대고 서로 똑같이 나누어 낀 반지를 남들에게 보란 듯이 사랑하는 여인의 반지 낀 손을 꼭 감싸며 자신의 반지도 더욱 빛이 나도록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런 사내가 스스로 닫아 버린 냉동관 앞에는 이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하얀 천사만이 더욱 애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안~~~돼................라.............빈........................안~~돼~~요~~~!!!" 훌쩍. 훌쩍. 너무도 슬펐다. 자신은 절대로 과거의 마지막에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였다. 지금 까지 가슴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소년의 마음속엔 어느덧 그 심한 상처들이 한순간의 분노와 그 뒤를 따르는 행복한 미소가 다가오기 시작헀다. 과거의 인생에서 마지막에 나타나 그에게 보여주는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은 소년의 가슴속 깊이 새겨진 상처들은 하나둘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금새 아무런 고통도 없이 싸르르 하게 모든 과거의 아픔들이 사라지는 것을 소년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훌쩍. 이 바보. 죽어서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포기를 하고 살았었는데.........흐윽." "허허허. 그렇게 기쁘냐?" "이익.......할아버지 미워요. 지금 절 울리시려고 저에게 저런 환상을 보여주시는 거죠? 흐아아아아앙" "쯔쯔쯧. 녀석.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토닥토닥........하지만 싸이야! 이젠 네 스스로 너의 존재감을 가지렴. 그동안 넌 싸이가 아닌 라빈이었지 않느냐. 그런 너를 위해 지금도 스스로를 희생하시며 체벌을 받고 계시는 분을 위해서라도 넌 너의 존재감을 반드시 가져야 한단다. 비록 그게 드래곤이든. 인간이든....... 어차피 넌 그 분의 단 하나뿐인 유일한 피앙새이잖니. 그건 네가 이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란다." "훌쩍.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체벌이라뇨? 소영이가 뭘 잘못했다고....." "후후. 네가 마지막으로 그분을 떠나보낼 때 불러준 이름.....소영이라는 이름을 그분은 절대로 잊지 않으셨단다. 오죽하면 그분의 아버지이신 유일신께서 내리신 영광된 이름을 스스로 져버리시고 네가 불러준 그 이름으로 개명을 하셨겠니." "그.........그럼?"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끄떡.끄떡. 역시......... 그럼...............? "그래. 그분은 위대한 분의 단 하나뿐인 따님이시다. 그런 그분이 이곳 사계를 둘러싼 불쌍한 영혼들이 머무는 동쪽의 명계. 게다가 위대한 동명왕이 되실 분이 그만..........어째든 지금 그 분께선 스스로의 이름을 바꾸시고 그 이름이 아니면 어느 누가 불러도 대답도 안하신단다. 해서 위대하신 유일신 그분께 노여움을 사셔서 지금도.............. 그러니 싸이야. 이젠 네가 그분의 든든한 힘이 되어 드려야 하지 않겠니? 고작 자기 몸이 엄청난 괴물처럼 변했다고 스스로를 죽이려고 이런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은......... 이미 스스로 한번 죽은목숨을 네 생명을 영혼 채 거두셔서 널 자신의 모든 힘을 동원해 되살리신 그 소영이라고 불러달라고 하신 그분의 마음에 더욱 큰 상처를 주는 일이란다. 그러니..................알았지?" "훌쩍. 그........그럼......이제까지 제가 꾼 꿈들이..........." "후후후. 그래. 어쩌면 우리가 필요에 의해서 널 불러 들였을 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네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그분의 소원을 조금이나마 들어드리고자 널 이곳으로 잠시 데리고 왔다가 돌려보낸 것이지. 어떠냐. 이래도 죽고 싶으니?" 도리도리.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감히 누가 다시 준 삶인데....... 오직 소영이만 다시 볼 수 있다면... 난 스스로에게 맹세했었다. 그녀의 영원한 흑기사이자 그녀에게 항상 사랑 받는 남편이 되겠다고...... "그래.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각인시켜야만 네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당당하게 지금의 존재인 싸이가 될 수가 있지. 아암~!! 녀~석." 그렇게 소년은 스스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면서 받은 그날의 선물을 평생동안 잊지 않고 아주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게 되었다. 아니다. 정확하게는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 물려준 또다른 삶에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 벌을 청해 받고 있는 여인에게 한걸음이라도 더 다가가는... 그래서 그녀의 아픈 마음을 꼭 보듬어 줘야만 하는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이다. <27> 이쟈벨 여왕. 그녀는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저리도 즐거워.....아니 행복해 하는 것일까? 지금 그녀는 자신의 성이 있는 카르넬 산맥의 한곳에서 얼마 전 획득한 과거 유마계의 명왕이었던 발킬마의 봉인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대마도사이자 리치인 흑마법사 밀란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아주 행복한 시선으로 그윽히 쳐다보고 있었다. 과거 이만 년 전. 이 땅에 왕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발킬마와 그의 수하들은 유일신과 그의 부하들인 신마神魔 연합군에 의해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터전인 유마계를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가 무섭게 빼앗긴 채 새롭게 힘을 기를 수 있는 이곳 물질계로 내쫓기듯 밀려 왔었다. 그런 그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힘을 기르며 재정비를 하려고 하는 순간 신족과 마족은 유일신의 명에 의해 자신들이 직접 왕림하는 것보다는 이 땅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나누어주면서까지 그들을 철저하게 몰살시키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후에 벌어졌던 일들은 가히 물질계 전 종족이 멸망에 이를 정도의 파괴와 숱한 죽음의 길로 만들었으며, 그들이 흘린 피로 인해 이 땅은 성스러운 성지로 만들어지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피와 육신으로 대지는 충분히 피를 머금었다. 아직까지 그때의 그 영양분으로 인해 지금도 이곳 물질계는 번창을 하면서 숱한 종족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유마계가 멸망되었느냐? 이것도 아니었다. 지금 유마계는 성마 전쟁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숨을 죽이고 있던 유마계의 일원들이 과거와 같은 무리들을 규합하여 스스로를 왕이라고 자처하면서 여러 명의 왕들이 무리들을 이루며 은근히 세력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쟈벨 여왕. 그녀는 그런 세력싸움에서 지금 현재 어느 곳에도 특별히 속해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미 유마계 일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누군가의 배후조정이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몇몇의 뜻 있는 유마계 상위 마수들에게 포착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서 지금 그녀가 이곳 물질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숱한 고난과 투쟁의 역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 카르넬 산맥. 비록 이 드넓은 카빌라이 대륙의 서쪽 끝자락에 위치를 해선 바다건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트로이안 대륙과의 경계를 확실히 해주는 곳이다. 지금 이 산맥의 한곳에 교묘히 위장을 한 이쟈벨 여왕의 은신처는 가히 하늘에서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위장술을 갖춘 곳이었다. 앞에 나란히 우뚝 선 절벽들과 그 사이에 커다란 바위를 놓아서 길을 막고 하늘에서의 도전을 막기 위해 반듯하게 돌들을 쌓아서 만든 그녀의 성은 가히 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았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요새 중앙에서 지금 서서히 대전을 밝혀주는 따사로운 햇살들이 떠올라 더욱 이곳에 있는 무언가와 호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지금 이쟈벨 여왕의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를 짓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호홋. 밀란.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만 다시 예전의 힘을 되찾을 수가 있겠느냐?" "여왕 마마. 아무래도 지금 이 위대한 성물에 잠재된 엄청난 기운들을 모두 회복시키려면 족히 몇 년은 더 이렇게 가만히 둔 채 저희들은 그 곁에서 얌전히 지켜보아야만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시니......." 매우 죄송스럽다는 듯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을 하는 온통 검은색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는 흑마법사 밀란이었다. "흥. 그까짓 몇 년은 별 것도 아니다. 내 동포와 종족들이 수천 년 간 받아야만 했던 고난의 시간들에 비하면........허면 내가 전에 말해두었던 인간계를 손쉽게 접수할 수 있는 비밀병 기 는 어떻게 되었느냐?" 이쟈벨 여왕은 지금 발킬마의 기운들이 모두 봉인되어 있는 수정구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누군가에게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허긴 그 동안 그녀와 그녀의 종족들이 있는 유마계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무력을 행사하던 마족들의 전사와 그들을 감시하는 신족의 성천사들에게 받았던 모욕과 가슴 아픈 고통의 시간들이 그 얼마이던가~~! 이쟈벨 여왕은 이제 드디어 그들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자신이 지녔다는 생각에 그까짓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들은 우습게만 여겨졌다. 더구나 과거 이 땅에 살고 있던 어리석은 인간들과 그들을 도왔던 유사종족들에게 깊은 한이 있는 그녀로썬, 이미 유마계를 다시 영광의 시간들로 되돌릴 계획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의 선조들을 신족과 마족의 지휘아래 마구 탄압하며 싸웠던 인간들도 그녀의 복수 대상에서 결코 빼놓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서 명을 받아 지금 인간계를 정복할 준비를 하고 있던 비밀병기 담당자인 밀란은 한쪽에 서서 그녀의 질문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녀, 이자벨 여왕을 맞아 친히 앞장을 서며 대전의 바로 아래로 추정이 되는 장소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왕 마마. 위대한 그분의 신의 권능이 담겨져 있는 봉인구는 이미 꽤 많은 물질계의 종족들의 힘을 함께 품고 있어서 더욱 그 힘을 요긴하게 쓰기 위해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사옵니다. 그분의 힘이 담겨진 봉인구 아래에 작은 피라미드를 세워놓고 그 위에 그분의 봉인구를 올려놓아서 매일 마다 성스러운 태양의 빛에 반응을 하는 그 힘을 이용하여 자꾸만 밖으로 분출하시려는 발킬마 님의 성물을 저희는 그 나름대로 이렇게 받들고 있사옵니다." 그러면서 밀란이 이자벨 여왕을 데리고 간 곳의 천장에선 지금도 햇빛에 반사된 발킬마의 초록색에 가까운 빛이 그 아래 피라미드 구조 안에 놓여진 작은 수정구를 달구고 있었으며, 그 작은 수정구에서 다시 증폭이 되어서 흘러나오는 빛들은 지금 지하의 광장에 우뚝 솟아 있는 듯한 검은 기사들로 보이는 대형 골렘들에게로 속속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우람한 동체는 지금도 그 빛에 반응을 하여서인지 더욱 광택이 이는 검은 색을 지금도 연신 뿜어주게 하고 있었다. 그런 검은 색의 골렘 정중앙에 서 있는 골렘은 근 20여 대에 달하는 대형 골렘들 중 가장 우아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서 이자벨 여왕의 눈을 더욱 흥미롭게 빛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호홍. 그럼......저것이............?" "예. 여왕 마마. 소신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마도사들이 실패한 것들을 모아서 제 나름대로 성공한 레지나 급을 상회하는 힘을 가진 유일한 헤비워커가 바로 저 놈입니다. 후후후. 아무래도 여왕님의 우아하신 자태에 걸맞는 놈으로 만들다 보니.... 조금은 다른 흑기사들보다 가녀린(?)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래도 저들의 수장인 흑기사라서 그 힘은 저기 서있는 흑기사 두 세대쯤은 가볍게 막을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닌 진정한 흑기사 이옵니다. 여왕 마마.........어떠하오신지............?!" 말을 하면서도 연신 여왕의 눈치를 살피는 듬직한(?) 밀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자벨 여왕의 시선은 지금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건방진 놈의 우람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돋보이는 동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저것이...........오호호호호홋" 너무도 행복하다는 느낌과 함께 짜릿한 쾌감이 그녀를 전율이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온 몸을 훑고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감히 이 대륙 최고의 병기인 헤비 워커 중 레지나 급을 뛰어넘는 힘의 결정체라고 자부하는 놈이 지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그녀였다. 더구나 그런 위력을 내려면 당연히 그에 필요한 강한 마력의 응집체인 수정구를 심장부위에 장착을 해서 일명 코스믹 마나 하트라고 하는 심장을 지니고 그 심장에 강한 힘을 담아야만 하는데.......지금 저놈은 그 힘의 원류를 그녀가 떠받드는 위대하신 분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서 더욱 강한 힘을 내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더 강한 쾌감에 사로잡히는 이쟈벨 여왕이었다. 듬직한 흑기사가 마치 그녀의 종이라도 되는 양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서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감격스러운 그녀였다. 당연히 그녀의 옆에 서있던 밀란도 행복해 하는 주인의 모습에 더욱 가슴을 앞으로 쭈욱 펴는 행동을 보이며 간간히 웃음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레지나~~~! REGINA~~~!! 이 땅. 인간들이 살고 있는 물질계에서 과거로부터 가장 강하다고 추앙 받는 이 넓은 대륙의 통치자이자 최초의 제국을 세운 제레니안 문명의 위대한 초대 왕이었던 그를 모르는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인간들에게서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그의 숱한 전쟁역사와 전술은 아직도 최고의 전략으로 칭송을 받고 있는 위대한 자. 레지나~~~!!! 그런 그의 용맹성을 높이 떠받든 인간들이 예전에 신과 마족들이 그들에게 선사한 힘을 대부분 잃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의 시간들이 지나면 그분들의 위대한 힘들을 모조리 잃어버릴 까 겁이 난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아직까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신의 권능과 마족들의 힘을 모조리 뽑아내서 만들게 된 엄청난 병기체.........헤비 워커. 그동안 숱한 마법사들이 이 힘의 결정체인 헤비 워커를 만들기 위해 모든 마력들을 쏟아부우며 만들기를 갈망했던, 신의 힘이 깃 들었다고 여기는 레지나 급의 헤비워커는 가히 드래곤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인간들 스스로 등급을 매겨서 최고의 힘을 지닌 레지나 급의 헤비워커를 프로트 타입 G 급이라고 칭송을 하며 그 아래로 점점 내려가며 자신들이 만든 헤비 워커의 능력을 힘의 차이에 따라 A. B. C. D. E. F.급으로 매겼겠는가! 그런 인간들의 신의 권능과 마족의 힘을 지닌 병기 헤비 워커를 지금 그녀의 사랑스런 부하이자 가디언인 밀란이 감히 레지나 급을 뛰어넘는 위력을 지닌 흑기사로 완성을 했다고 보고하는 말은, 이쟈벨 여왕의 귀엔 이제 완성이 되면 인간계 정도는 충분히 그녀 혼자 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정복이 가능하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마족과 신족들에게 대항할 힘을 갖추고 어서 빨리 하루라도 일찍 긴 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그녀에겐 지금 이 흑기사라는 프로트 타입 H 급인 헤비 워커의 늠름한 모습은 더욱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으며 중앙에 우뚝 선 여왕 전용 헤비 워커가 주위의 부하들인 프로트 타입 G 급의 헤비 워커들에게 자신이 받고 있는 발킬라 님의 힘의 권능을 윤기 나는 검은색의 동체로 전해주고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오호호호홋. 위대한 우리들의 신이시여~~! 이제 전 당신의 그 억울하기만 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제가 지금부터 깨끗이 씻어드리겠나이다~~! 오호호호홋" <30> "싸이야~~! 뭘 그렇게 보고 있니?" 엘렌은 아직까지 완치가 되지 않은 몸을 가지고 우두커니 그녀의 레어 바깥쪽에 앉아서 그 아래로 보이는 하얀 색의 커다란 저택을 보고 있는 듯한 아들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가며 미소 띤 얼굴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었다. '우웅. 엄마~! 저게 바로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이야?' "호호. 아~니.-도리도리- 어떻게 그분들이 저런 조그마한 저택에 사시겠니~!! 그분들의 우람하신 모습을 우리 싸이가 아직 못 봐서 그렇지. 저정도는 정말로 우리 일족에겐 놀이터 수준이란다. 아가야~~!" '헤에. 그렇구나. 하긴 내 몸 크기만 해도 얼만데..........헤헤헤'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는 아들의 모습에 문득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미안한 마음이 뭉클 솟아나는 엘렌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자신의 존재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아들녀석이 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왜인지를 아직은 잘 모르고 있는 초보 드래곤 엄마 엘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은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자신의 새로운 운명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난 얼마 전 드디어 그 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이 큰 몸을 하고서도 귀엽게 코를 가르릉 골면서, 가끔 꿈을 꾸는 건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도 하고 귀여운(?) 주먹을 꼭 쥐곤 부들부들 떨기도 했단다. 그런 내가 간간히 눈물도 흘리고 그 큰 몸을 이끌곤 몽류병 환자처럼 마구 이 큰 레어를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기어다녔다는 엄마의 말씀에 난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이 갈리아스 가문이라고도 하는 엄마 집안의 내력을 제법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런 것을 모르시는 엄마의 조마조마한 심정과 나에 대한 각별한 애정에 한없는 감사함을 느끼고만 있었다. 조금은 죄지은 게 있어서 양심이 찔리기도 했었지만......... 하지만 내가 언제 이런 각별한 애정을 받아 보았겠는가~! 전생에서 난 홀로 버려진 아기였고, 누군가의 손에 의해 거두어져 고아원에서 그 긴 방황의 시간들을 보내며, 점점 삐뚫어져 가는 나의 심성을 가슴 아파하신 원장수녀님 덕분에 괴팍하지만 순수하셨던 노명대사, 그분의 뜨거운(?)애정으로 그나마 다시 바른 길로 인도된 기억뿐인 내가 지금 새롭게 가족이라는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에게 받은 이 큰사랑은 나를 더욱 감동시켜 주고 있었다. 물론 그중엔 아주 엽기적인 발상으로 나에게 싸이코 기질이 다분한 애정공세로 감싸주던 누군가도 정말로 잊혀지지 않는 고마운 분이셨다. 그런 감동의 물결 속에서 난 얼마 전 눈을 뜨고 다시 본 내 빛나는 비늘들은 지금까지도 어색하기만 했다. 우람한 크기의 몸과 그에 걸맞는 수많은 비늘들로 덮힌 내 몸은 햇살을 받을때마다 아주 뛰어난 미의 시각효과를 자아내고 있었다. 단지 그게 내 눈을 너무 부시게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엉기적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건 아직까지 인간형일 때나 큰 차이점은 없었지만 아직까지 익숙해지지 않은 꼬리가 내는 위력은 엄마의 레어 안을 마구 부수는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그런 일들을 보고 가만히 넘기실 분이 아닌 엄마가 어쩐지 나에게 미안한 듯 아무런 말씀 없이 그저 환한 미소로만 나를 더욱 각별히 챙겨주고만 계셨다. 해서 난 더욱 걸음걸이에 조심을 하면서 뒤뚱거리며 엉덩이를 움직이는 것을 최대한 자제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이 짧은 앞발을 이용해서 엎어져 걷는 내 모습은 나 스스로도 매우 보기 흉한 모습이지만, 그나마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는 꼬리를 생각하면 난 당연시되는 새로운 운명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음마 연습을 매우 신중하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이렇게 가슴 한쪽에서 나를 위해서 고통을 받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리면, 난 지금 천천히 그것도 아주아주 천천히 건강한 몸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지금의 순간이 너무도 답답하게만 여겨졌다. "휴~우. 싸이야~! 많이 답답하지? 하지만 넌 아직까지 다 나은 몸이 아니란걸 생각하렴. 너를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우리 일족의 모습으로 이 엄마가 강제 변신을 시킨 것도 사실은 너의 신체에 대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이 엄마가 알지 못해서 그랬단다. 그래서.........우리 위대한 종족 드래곤은 인간들처럼 매우 복잡한 신체를 지니지 않아서 마나가 있는 곳에서는 제아무리 심하게 다친 상처라도 매우 손쉽게 고칠 수가 있단다. 그러니.....이 엄마를..............흐윽........흑흑.........훌쩍." "베에~" 이게 바로 내 입을 통해서 나온 말이었다. 굉장한 몸을 지닌 존재가 되어 버린 내 몸은 이젠 구강구조로 인해서 올바른 대화는 하지 못한다. 단지 내 강한 의지를 남에게 쏘아보내듯이 전달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것도 맨처음은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마치 신에게 무언가를 갈구하듯 기도하는 심정으로 내가 생각했던 말들을 상대에게 전한다는 매력은.....뜻밖에도 괜찮은 느낌이었다. '전 괜찮아요. 엄마. 저 엄마 아들 맞죠? 그~쵸?' "그~으~럼. 당연히 넌 내 아들이 맞지~~!!" '헤헤. 그럼 전 괜찮아요.제가 무엇이 되었든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만 변하지 않으면 되요." "정말? 정말로 이 엄마가 밉지 않니? 흐~윽" '헤헤. 당연하죠. 엄마. 사랑해요~~~!' 부비부비. 츕~웁~스. 알라뷰~~~뷰뷰뷰. 정말로 고마우신 엄마였다. 날 이렇게까지 만드시면서까지 이 못난 놈을 버리지 않으시려고 하셨던 엄마의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도 드넓은 사랑 앞에 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엄마의 작은 몸에 내 큰 머리를 들이밀며 고개를 부비부비 거렸다. 단지 이 발음 구조상 나오는 어린 드래곤의 괴음인 베에~라든가 키에에에에~ 라는 소리만 나오지 않으면 아주 만족스러운 엄마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용언이라고도 하시는 드래곤들간의 정신력으로 보내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나는 그나마 조금이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 우리 귀여운 아들~~! 자. 그럼 오늘부턴 너 스스로 주위의 마나들을 너의 몸 안에 담으렴. 어떻게 하는 지는 잘 알고 있지?" 끄떡끄떡. "그래. 이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일단은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주위의 마나들을 네 폐로 빨아 당겨서 수많은 마나들을 내 몸에 맞게 걸려서 너의 진실한 힘으로 만들어주는 드래곤 본을 통해 드래곤 하트로 보내면 나머지는 네 몸이 알아서 해줄꺼야. 알겠지?" '우웅...........네. 엄마' 아직까지도 이렇게 날 어린아이 취급을 하시는 나의 어머니셨다. 하지만 너무도 사랑스러우신 분. 드래곤들로썬 아직은 한참이나 어린 나이의 이 초보 엄마와 그 아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보살핌엔 난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것이 아들로써 부모에 대한 감사의 효도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굳게 생각한다. 따라서 난 엄마의 충고대로 레어의 입구이자 한 산을 가파르게 짤라 버리고 생긴 절벽. 그 위에 제법 넓게 생긴 공터로 내 큰 몸을 엉기적엉기적 이끌며 나아가 곧바로 땅바닥에 턱을 괴곤 드립따 누워 버렸다. 허긴 인간이라면 제아무리 드래곤들이 강제로 트렌스포메이션을 해준다고 해도 그 작은 마나의 양으로는 몸이 버티질 못할 것이다. 아니 버티지를 못한다. 그러니 내가 제아무리 어릴 적부터 주위의 마나들과 친하게 지내고, 얼마 전부터는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내 왼쪽 팔찌에서 전해진다고는 해도, 내 몸에 별로 담겨 있지 않은 마나로는 이 큰몸을 유지시키기도 어렵다. 단지 엄마가 나에게 전해준 위대한 가문의 피를 조금이나마 받은 덕분에 내가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난 무지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라도 내가 살아날 수 있었던 원인은 나한테 외고조 할아버지가 되시는 신룡 헤리아킨님이 아마도 알아서 내 몸을 이렇게 잘 만들어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 엄마가 스스로 하시는 혼잣말을 통해서 내가 어림짐작하게 된 일이었다. "햐~아. 이건 내가 하고도 놀라운 일이야~♡ 아직 인간들의 나이로 봐도 헤츨링이 되어야 할 녀석이 어떻게 이렇게 큰 몸을 가지고 나타날 수가 있지? 호호호홍. 어째든 우리 아들이 이렇게 이쁘면 된거지 뭐. 엄마가 뭐라고 물어보시면 그냥........그래....호호호. 신룡 헤리아킨님도 예전에 헤츨링 시 절에 이미 성룡에 가까운 몸을 가지고 태어나셨다고 했으니깐 내 아들도 그렇다고 빡빡 우기면 엄마도 크게 뭐라고 하지 못하실꺼야..오호호호홍" 이런 웃음을 내가 듣지 못했다면 전부 거짓말일 것이다. 더구나 이 커다란 몸에 어디 붙었는지는 잘 몰라도 평소 때보다 더욱 늘어난 청각과 후각. 그리고 시각은 이런 엄마의 조그만(?) 예전 어여쁘신 몸이 구석진 곳에서 홀로 떠드시는 것 정도는 충분히 보고 듣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후~읍. 쭈~우~욱. 이미 많이 익숙해진 이 몸으로 하게 된 숨쉬기 운동은 평소보다 더욱 많은 양의 공기와 그 속에 담긴 나와 친한 먼지녀석들이 내 몸 안에 일순간 빨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간간히 내가 내뿜는 콧바람에 일어난 흙먼지로 인해 난 천천히 눈을 감으면서 가만히 엎드려서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내 폐가 가득 공기들을 들이마시고 그 속에 있던 먼지녀석들이 내 목에 있는 무언가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은 또다른 몸을 지니게 된 나에게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신기하게도 난 내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너무도 훌륭히 이 몸에 익숙해지면서 주위에 떠도는 마나들을 모으는 일을 손쉽게 하고 있었다. 이건 엄마가 옆에서 놀란 눈을 하시면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내 오감을 통해서 보여지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신기하게도 난 지금 내 머리 속에서 매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하얀 선들이 내 몸을 마구 가로지르며 메비우스의 띠처럼 움직이는 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히야~~! 이게 바로 그 인체 구조도에 있던 선들의 정확한 움직임이구나.' 맞았다. 알고 보았더니 인간의 몸은 하나의 심장이 두 개로 나누어져서 그 하얀 선 하나 짜리와 두 개 짜리가 빠르게 교차하면서 움직이는 걸로만 알고 있었던 나에게 지금 이 큰 몸에 달려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드래곤 하트라고 하는 심장은 하나의 선을 자신에게 끌고 와서는 주위의 마나들을 모으고, 그 모아진 마나들을 내 목에 있는 드래곤 본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신 곳으로 다시 보내 그 두 번째의 선들이 드래곤 본을 통과하면서 더욱 많은 마나들을 싣고 다른 쪽의 심장을 통과하면서 지금 엄청난 속도로 나의 몸에 마나들을 마구마구 흡수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난 신기하게도 내 몸 속에서 마구 요동을 치면서 점점 내 몸을 감싸기 시작하던 엄청난 양의 마나들이 이젠 나의 몸을 빠져 나와서는 주위로 서서히 퍼져 나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다. 이건 진짜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어떻게.......?! 내 몸에서 빠져나간 마나들의 공백을 다시 새로운 마나들이 차지하고, 그 마나들이 또다시 빠져나가면 이제는 주위에 있던 모든 생물들에게서 전해지는 마나들이 정신없이 나의 몸으로 새롭게 들어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는 나였다. 그러자 난 너무도 신이 나서는 내 몸을 거쳐서 나간 마나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 몸을 빠져나간 마나들이 주위에 퍼지면서 잔잔히 퍼지게 되자 나와 하나로 이어진 듯한 느낌의 마나들이 주위를 따뜻하게 감싸는데, 마치 내 주위 가까운 곳에 있던 모든 것들이 나와 하나로 동화되는 듯한 느낌을 나에게 마구 보내고 있었다. 난 이러한 느낌에 중점을 두고 점점 내 몸을 거쳐간 마나들을 더욱 신이 나서 다시 빨아들이며 다시 내보내기를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서 내 몸에 들어오는 마나들의 양이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으로 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난 깜짝 놀라 기겁을 했다. 어쩌면 내 큰 몸을 통째로 갈라 버릴 지도 모를 이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들과 그속에 담겨진 움직임을 미리 봉쇄하고자 난 내 몸 안에서 시행되고 있는 일들을 억지로 멈추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미 맹렬한 속도로 탄력을 받아 내 몸속에 들어와선 더욱 빠른 속도로 온 몸을 돌고 있는 새로운 마나들은 신기하게도 그 양이 늘면 늘수록 내 몸을 점점 아주 상쾌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자, 난 용기를 얻어 잽싸게 머리 회전을 시키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더욱 열심히 그 익숙한 냄새의 마나들을 마구마구 몸 안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크크크. 이놈들 먼지녀석들 맞지? 흐흐흐. 그럼 전부 내 쫄따구잖아.' 이런 사악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로썬 당연히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시늉도 내는 이 녀석들이 전혀...그리고 조금도 무섭지 않았던 것이다. <31> 여기는 정령계. 이곳은 사시사철 항상 푸르른 기운들을 가득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 덕분에 항상 변하지 않는 기운으로 인해 이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정령들과 그들을 다스리는 다섯 명의 각기 다른 기운들의 핵인 정령왕들은 그 수명이 얼마나 긴 것인지 스스로도 자신의 나이를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더구나 지금 여기에서 혼자 온갖 폼을 잡으면서 아랫것들을 마구 괴롭히고 있는 불의 정령왕 프레임은 그 성깔이 너무도 별나서, 평소 자신의 머리 위에서 스물스물 타오르는 불꽃 마냥 아주 급하고 아주 별난 극악스런 성질의 소유자였다. 그런 프레임 앞에는 지금 중급으로 보이는 제법 형태가 또렷한 정령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야~ 이 망할 놈의 새끼야~~! 내가 그동안 뭐라고 가르쳤냐? 아~앙? 도대체가 너 지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아님 어디다가 정신을 맡겨 놓고 다니는 놈이야~~! 너 또 그 망할 놈의 레드 녀석들이 마구 성질을 부린다고 그 놈들 꼬임에 넘어가서는........." 지금처럼 그의 성질이 한번 폭발했다고 하면 이 동네에 있는 불의 기운을 지닌 정령들은 하나같이 꼬랑지를 내리고 저마다 숨기에 바빴다. 왜냐면~~. 그는 절대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정령들을 죽이거나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자신이 자부하는 따뜻한(?) 정령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절대로 부하 정령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으로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 무식하지만 정말로 뜨거운 정령왕이었다. 대신. 자신의 엄청난 불의 기운으로 잘못을 하거나 이상한-쉽게 말해서 불과 안 친한 기운 들의 정령들과 겁대가리 없이 친분을 쌓는 녀석이 나오면, 그의 뜨겁디 뜨거운 애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 프레임은 전신의 마나들을 몽땅 화염의 기운으로 바꾸어선 그 정령에게 덮어 씌워 버린다. 그럼 같은 계열의 기운이기에 소멸은 안되지만, 자신이 받을 양보다 몇 곱절 은 높은 기운에 감싸이게 된 불쌍한 죄인 정령들은 자그마치 수백 년에 가까운 그 무식한 형벌 을 정령계에 있는 본체로 받아야만 했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러려니 했던 다른 정령왕들도 이 성질이 불같은 놈이 저지르고 다니는 행태에는 저마다 혀를 내 둘렀다. 가히 화염의 군주다운 모습의 불타는 싸나이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이렇게 지랄발광에 가까운 일들을 여러 가지로 해대는 이유는 실은 그린 드래곤들과 엘프들에게 친한 흙의 정령왕 네프로노미콘이, 오전에 자신을 찾아 와선 레드 드래곤들 때문에 홀라당 타 버린 물질계의 한 쪽 숲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 와선 떽떽대며 심한 잔소리를 들은 뒤라서 더욱 열이 뻗쳐서 저러고 있는 것이다. 그런 프레임의 뒤로는 정령계에서 오랜만에 생긴 시끄러운 일들로 인해 따분하던 날들이 조금은 재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하나 둘 모여든 정령왕들이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선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크크크. 저놈 또 저렇게 지랄발광을 하다가 엄한 놈 하나 병신 만들겠구만." 이 소리는 프레임과 가장 심한 트러블 메이커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가 한 소리다. 그리고.............. "푸헬헬헬헬. 마자~마자. 저번에 그 뭐라고 하더라.....암튼 제깐 놈이 감히 상위 정령이라고 물질계에서 마구 까불면서 놀러다니다가 어느 얼빵한 엘프들에게 소환된 그 머저리 같은 놈도 아직까지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하던데............켈켈켈..........에구, 저 화상......" 웃다가 인상을 찌그리다 다시 한숨을 내쉬는 이는 바로 오늘의 사건을 일으킨 진정한 배후 네프로노미콘이었다. 땅딸보에 허연 턱수염을 한 네프로노미콘을 바라보던 다른 정령왕들은 그의 변화무쌍한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 저런 성격의 소유자한테서 받은 잔소리가 오죽하겠냐는 듯이 마지막에 가선 프레임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다시 프레임에게 시선을 돌릴 때쯤엔 기어코 그들이 예상하던 일이 프레임의 뒤에서 생겨났다. 바로 공간의 뒤틀림이 심하게 생겨나면서 프레임의 뒤쪽으로 커다란 공간의 구멍이 생겨난 것이다. "허~. 얼라리여~~! 저놈 정말로 열받은 모양일세." "그러게......저놈 지금 정령계의 문을 열어서 뭐하겠다는 거야? 제아무리 프롤레가 중급의 정령이라곤 해도 본체를 밖으로 보내면......"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프레임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모습들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네 명의 정령왕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일을 벌이고 있는 프레임의 속내는 따로 있었으니...... '흐흐흐. 이정도 하면 제깐 놈이 쫄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오냐. 네프로노미콘 이 망할 놈의 땅꼬마 녀석아~! 어디 한번 두고보자. 내가 레드 드래곤 놈들을 몽땅 동원하는 일이 있어도 네놈이 애지중지 하는 물질계의 산림의 거지반을 날려 버릴테다....크하하하하'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자 더욱 신바람이 나는 프레임이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중급 정령에게 반 협박조로 말을 이어가는 것도 잊지 않은 한(?) 많은 프레임이었다. "자~! 어떻게 할래? 너 저번에 프라노임 녀석이 당한 것 봤지?" "........네.........!" "그걸로 할까? 아님 저기로 쫓겨날래?" "흐윽........잘....잘못 했어요. 대왕님~~!" "흥. 네까짓 녀석이 저지른 일 때문에 내가 저 땅꼬마 녀석한테........" 더욱 눈을 부라리면서 눈앞의 정령에게 성질을 폭발시키는 완벽한 연기파(?) 프레임은 막 성질을 내면서 주위에 몰려든 아랫것들에게 시범조로 무지막지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려고 하다가 더 이상.....그 뒤에 꼭 해야만 하는 아주아주 중요한 말을 미처 다 하지 못했다. 왜냐면..............!! 휘아아아아아앙. 쓔우우우우우욱. 끼아아아아악. 프레임이 자신의 뒤로 공갈성 협박에 꼭 필요한 구실로 열어둔 공간의 구멍들이 순식간에 점점 커지면서 그 구멍사이로 지금 엄청난...... 한마디로 이곳 정령계의 순수한 기운들이 마구마구 빨려져 나가면서, 물질계로 연결된 그 구멍에는 지금 엄청난 하위급 정령들이 다닥다닥 붙어서는 어찌 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이........이익.......안~~돼~~~!" 점점 그 공간의 구멍으로 전신의 모든 기운들이 빨려나가는 수가 불어나던 하위급 정령들이 이젠 그 구멍사이로 본체들까지 모조리 빨려져 나가면서 벌어진 이 황당하면서도 정령계가 생긴 수십 만년이래 최초로 정령계가 파멸되기 일보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건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이 황당하면서도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을 벌린 프레임은, 오늘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다른 정령왕들로부터 차후 엄청난 놀림을 당하며 한동안 그들의 수족 노릇을 하게 된 이 사건이야말로, 그에겐 너무도 아쉬운 마지막 뒷말을 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남게 되는 화염의 군주 프레임이었다. "안~~돼~~~~! 네 놈들은 저 땅꼬마 녀석들이.......해놓은.....일들에 대해서.... 필히..........불장난을..........해야만 ..........하는 의무가.............있단 말야.................!! 저 망할 놈이 ................가꾸는 숲은 ...................우리들의 ............. 밥이란 말이야..............바..........압.....!!" 이 말이야 말로 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정령왕의 최고 후회거리이자 속된 그의 마음이었다. 참나. 그렇게 할 짓이 없나? 물론 억울하겠지. 생전 듣기 싫은 잔소리를 수십 시간에 걸쳐 들으면서 가는귀가 먹을 정도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명 화통을 삶아 먹은 놈으로부터 시달렸으니...............더구나 지 생각대로 복수를 하고자 나무에 불을 붙이면 당연히 불이 야 잘 붙겠지...............그러나 애써 가꾼 나무들을 망치기 위해 불장난까지 하면서 상대의 속 을 긁어야만 지 속이 편해진다고 생각하는 이 성질이 괴팍하기 보단 단순 무식한 놈의 최후는 언제나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슈우우우우욱. '햐~~아. 주.....주긴다.........이~~~야......!' 난 진짜로 이 신기한 기운들이 내는 향긋한 냄새에 지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무슨 느낌인지는 잘 몰라도 예전에 먼지 녀석이랑 놀 때 받았던 재미난 기분이 마구 들면서 내 몸 안으로 빨려져 들어오는 기운과 그 기운을 지닌 놈들로 보이는 작은 먼지 녀석 친구 같은......작은 날개를 지닌 놈들이 내 앞에서 헤롱거리는 모습은 아주 아주 색다른 재미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 수가 불어나서는 이제 내 주위엔 온통 이런 놈들만이 가득 하자, 저마다 다른 기운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 놈들이 나에게 전해주는 기운들은 다양하면서도 내겐 아주 익숙한 그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해서 난 내가 의식을 잃고 있을 때 감히 내 허락도 맡지 않고, 날 버리고 도망간 먼지 녀석이 생각나 조금은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을 괴롭히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허나 이런 생각도 잠시..... 아무래도 이 놈들은 먼지 녀석과는 다른 아주 힘없고 약한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들자 이내 나의 몸 안에서 걸려져 나온 기운들로 인해 내 커다란 몸을 빙 둘러싸고 있는 이 녀석들에게 일일이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형태가 점점 희미해져 가며 울고 있는 듯한 표정을 하던 녀석들이 엄청 놀란 얼굴로 다시 또렷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녀석들이 내는 빛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난 내 주위에서 마구 신나게 날아다니는 녀석들의 재롱에 엄청 즐거워 졌다. '헤헤. 저녀석들.....그 망할 먼지 녀석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야. 아무렴. 저 봐. 날 무지무지 존경하는 눈빛으로 지금 나에게 부비부비를 해주고 있잖아?! 음훼훼훼훼훼. 너무 기분 좋다~~~♡' 여러분들은 정령이라는 존재를 아시나요? 정령은 흔히 우리가 어릴 적에 만날 수 있었던 피터팬의 수호천사 팅거벨과 가장 흡사한 존재랍니다. 여기 있는 싸이 또한 이제부터 새롭게 가지게 된 심각한 병인 피터팬 바이러스 증후군의 말기 환자로 그가 지금 눈앞에서 그에게 사랑스런 포즈로 저마다 재롱을 떨고 있는 정령들 을 보고는 있어도 싸이는 절대로 그들이 상위급 정령들이라는 것을 절대로 인식하지 못하 고 있습니다. 왜냐면 싸이는 아직까지 정령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배우지를 못했으니깐 요. 더구나 최상급 정령이 아니면 정령들은 물질계에 본체로 나타나면 모두가 자연히 소멸이 되는 존재들입니다. 물론 소멸된 존재들은 한때 싸이가 말하던 실같은 존재들로 다시 기나긴 세월을 보내다가 겨우겨우 근처에 있는 존재들을 하나씩 자신에게 흡수하거나 흡수당해서 또다른 하나의 존재로써 긴 생을 유지시켜야만 합니다. 그 뒤 같은 계열의 정령왕들에게 새로운 생을 부여받고 새롭게 시작이 되는 삶을 그들은 반복해서 살아가면 됩니다. 하지만 지금 싸이가 벌리고 있는 일들은 그런 절차들을 대폭 줄여 버린..... 한마디로 전답미문의 대 사건이랍니다. 점점 소멸의 고통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아픔을 느끼며 소멸해가던 존재들에게, 가끔씩 강한 자아로 주위의 기운들을 마구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이른 바 중상급 이상의 정령들에게서만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을 싸이는 자신의 힘으로 그들 하위급 정령들의 본체를 새롭게 구성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하위급 정령들의 수는 그야말로 수십 수백 조의 단위로 구성이 되어있고, 그 하위급 정령의 10만 분의 1 가 중급의 존재로 태어나고, 중급의 30만의 1이 상급의 정령으로, 상급의 90만의 1만이 최상급 정령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니 그들이 자신들의 위에 있는 상위 정령들의 명령과 힘에 대항한다 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알갱이 하나가 수십 미터에 달하는 절벽에게 나 너보다 더 큰놈이라 고 뻐기며 까부는 일과도 똑같은 게 지금 정령계의 현실입니다. 그런 정령계의 현실을 한순간에 확 바꾸어 버리는 일을 과감히 벌이고 있는 싸이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이젠 제법 몸 안에 마나들도 모였겠다! 이놈들아~!! 나랑 놀자라는 생각으로 그동안 못해 보았던 먼지 사촌 녀석들과의 제식 훈련을 지금 눈앞에 있는 수십만에 달하는 정령들을 데리고 시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보면 천사와도 같은 마음씀씀이로 인해 착하게만 보이는 싸이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싸이의 또다른 모습은, 정말로 이 놈이 사악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그런 것인지 자신의 그 큰 몸을 자신의 몸 가까이 있는 어른 주먹만한 놈들에게 명령조로 들라고 하고선 살짝 뜬 하늘 위에서 자신의 발 아래로 열과 줄을 맞추어 선 놈들에게 커다랗게 호령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으~아~~캬캬캬. 진~~짜. 찐~~짜 신난다...........이야호~~~! 야~~ 거기~~ 너희들 줄 똑바로 못 맞춰~~~? 저~~봐~~라....... 엄살~~피~우~지~~~!! 음헤헤헤헤헤." 새롭게 사귀게 되는 낯익은 존재들에게 둘러싸이면서 그동안 새로운 종족에 대한 스트레스를 말끔히 풀려고 하는 욕심 많은 꾸러기 싸이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신룡의 후예 - 제 24 화. 엘렌은 정말로 오랜만에 본체로 돌아가서는 느긋하게 낮잠을 한숨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나 그리웠던지...... 실제로 드래곤들은 유희 도중 가끔씩 이런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강한 유혹에 항복을 해서는 그동안 인간들의 세상에서 거창하게-물론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생각에 더욱 손크게- 벌려놓은 일들은 뒷전으로 한 채 레어로 순식간에 돌아가서 느긋하게 낮잠을 자기 시작하는 드래곤들도 가끔씩 나왔었다. 돌연히 의문의 실종을 당한 용사나 영웅들의 이야기들은 간간히 인간들의 역사에 자랑스럽게 남아있기도 했다. 하지만 엘렌은 그동안 사랑스런 아들을 키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았던 요 몇 년 동안은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아들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조금이라도 아프기라도 할라치면 엄마로써 그녀가 받았던 무수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하기에 그녀가 새롭게 받아들인 진실은 '엄마는 진정으로 위대하다' 라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들의 생사를 오가는 큰 부상 때문에 이렇게 자신의 레어로 돌아와 어쩔 수 없이 행한 일로 인해, 아들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으로 노심초사를 하며 아들의 무사함을 빌고 또 빈지 어언 한달이 가까운 시간들이 지나가는 동안, 그녀는 정말로 무수히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아들 걱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들은 점점 나아지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급기야는 인간의 빈약한 정신수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종족간의 벽들과 자신의 존재의 의미에 대한 각성을 해주고 있었다. 순순히 착한 아들답게 종족간의 벽을 허물며 자신이 드래곤이 되어 버린 사실들을 큰 충격없이 받아들이며 지금 그녀를 너무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더구나 지금 밖에서 갑자기 거대해진 몸에 반드시 담아야만 할 마나를 아주 자연스럽게 운용하는 모습은, 그녀가 지금 이렇게 마음을 푹 놓고 간만에 달콤한 휴식을 취하게끔 만들어주고도 충분히 더 남았다. 해서 그녀는 이렇게 느긋한 포즈로 간만에 본체로 현신을 해서는 그동안 밀렸던 잠을 작게 코를 골며 자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을 푹 놓고 자는 것도 어디 하루 이틀이지, 그녀는 곤하게 자고 있는 와중에도 아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아들 또한 엄마가 시킨 일에 최선을 다하며 역시 착한 아들답게 지금도 열심히 마나를 몸에 담으며 자신을 긴장감에서 해방을 시켜주 고 있었다. 헌데 이런 아들의 주위로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의 강한 존재감과 그속에서 느껴지는 자신들과는 아주 색다른 존재들의 모습과 냄새는 드래곤이라고 하는 위대한 존재들의 후각을 마비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아주 많은 수의 정령들의 냄새가 지금 곤히 자고 있는 그녀의 코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서 잠시 혼란스러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는 이렇게 간만에 얻은 휴식과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녀가 직접 자신의 레어에 펼쳐놓은 보호막을 뚫고 들어올 자들은 그녀와 동급인 웜급에 다다른 드래곤들 이상이 아니면 절대로 그녀의 보호막을 뚫고 들어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아직 정령술을 배우지도 않았기에 그녀가 지금 가지게 된 호기심과 강한 궁금증은 더욱 그녀의 정신세계를 혼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으응?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이 곳에 들어온 놈들이 누구지? 그 먼지 녀석이 동료들을 부르려고 해도 나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반드시 보호막을 뚫고 들어올 수 있었을텐데........혹시?' 역시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아들이 보여준 황당하면서도 아주아주 싸랑스러운 행동들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커다란 고개를 레어밖으로 쭈욱 내밀어 보았다. 그러자 역시...... 엘렌은 느긋하게 낮잠을 자면서도 하나뿐인 아들걱정에 그녀가 레어 전체를 도배하다 시피 만든 보호막은 가히 8써클의 마스터라고 해도 들어오기 힘든 강한 보호막이었다. 그런 그녀의 마법으로 생긴 보호막은 그 크기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그녀의 아들사랑이 절대로 작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거의 그녀 레어 주위 50km근방을 꽁꽁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그토록 믿어 의심하지 않을 용언마법으로 된 보호막 안에는 그녀로썬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수많은 상위 정령들이 지금 떼를 지어서 아들 곁에서 마구 재롱(?)을 떨고 있었다. 아들의 그 큰 몸을 감싸고돌며 지금 하늘에서 처음으로 비상하는 아들을 도와서 낑낑거리며, 움직이는 바람의 정령들 수백 마리(?)나 그 밑에서 열과 오를 맞추어서 마치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군대의 기사들 마냥 낑낑거리며 바닥을 기기도 하고 벌떡 일어나선 옆에 선 정령들과 줄을 맞추기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놈들의 모습은 그녀의 아들이 마치 통솔력이 강한 위대한 장군처럼 보여지고 있었다. 더구나 아들의 몸에 담길 마나들로썬 거의 하나둘 부르기도 벅찬 상위급의 정령들이 각각의 특성별로 줄을 지어서 아들의 시선을 받으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드래곤인 그녀가 살아생전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오호호호홋. 역시 내 아들이라니깐......그럼 내 보호막을 뚫고 소환된 것도 모두가 우리 싸이가 한 일이겠지? 호호. 그럼 어디 나도............' 어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들은 자식들이다. 그럼 자식의 명령을 받고 있는 자들이 그 어미를 보게 된다면....... 이건 잔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거저 들어온 떡고물과 호박줄기였다. 더구나 아주아주 커다란 왕건더기로............... 어슬렁. 어슬렁. "크.....험." '호호. 일단은 권위가 있는 것 처럼 보여야 돼. 호호호' 엘렌은 분주히 하늘과 땅위에서 움직이는 상위급 정령들의 수를 직접 그 좋은 용안으로 일일이 세기 위해 큰기침을 하며 당당하게 그 큰 몸을 레어 밖으로 내밀며 자신의 아들을 빤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미를 발견한 자식이 엄청난 반김으로 그녀를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엄마를 보자 그 높은 하늘에서 바로 급속 강하를 하는 아들을 엘렌은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오호호호홍. 싸이야~~~!" "우와~~~ 엄마다~~~! 엄~~~마~~~아~~~!!" 우두두두두두. 딸랑딸랑. 데롱데롱. 와~락. 부비부비. 할짝 할짝. 그 큰 몸을 가지고 하늘에서 급작스럽게 하강을 하는 아들을 덥썩 안으면서 -물론 당연하게도 아직 날지 못하는 싸이 덕분에 진땀을 빼면서 그 큰 육중한 몸을 붙잡기 위해 열심히 뒤따라 날아오는 정령들이 있었다.- 아들의 어쩌면 자신의 머리보다 더 클 거대한 머리를 껴안고 마구 부비부비를 하며 할짝거리는 아들의 혀를 더욱 강한 모성으로 안아 쓰다듬던 엘렌은 역시 그녀가 원하던 대로 무수한 정령들로부터 존경의 시선을 듬뿍 받을 수가 있었다. '오호호호홍. 역시.......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 쪼~옥~♡' 엘렌은 그녀의 보호막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무수한 상위 정령들이 어떻게 나타난 줄도 모르고, 무조건 자신에게 감사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정령들에게 더욱 거만한 시선을 보내며, 그녀와 거의 차이도 없는 커다란 덩치의 아들을 껴안고는 보란 듯이 주위를 한 바퀴 휘익 돌았다. 그러자 그녀의 긴 꼬리에 맞아서 추풍낙엽처럼 휩쓰리며 날아가는 불쌍한 정령들은 지금 오만해지기 시작하는 그녀의 눈엔 하나도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호호홍. 우리 싸이 지금까지 뭐하고 놀았어?-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능청스럽게....." "헤헤. 그냥. 저~기 있는 먼지 녀석들이랑 놀았쪄..헤헤 근데~ 엄마? 지금 이 우아하면서도 귀족적인 자태의 몸이 정말로 엄마 본 모습이 맞어?" "오호호호홍. 당연하지~~~이이잉! 우리 싸이가 이런 모습을 가지게 된 것도 모두가 이 엄마의 한 날씬하면서도 우아한 몸 덕분이이이이이이이징!" "이야아~~~진~짜 이쁘다~~~아!" 꼬옥. 더욱 더 아들의 꿀발린 칭찬과 애교에 아들이 자랑스럽기만 한 자부심과 모성애로 똘똘 뭉친....칭찬한마디에 홀딱 넘어간 엄마 드래곤 엘렌이었다. "호호호. 아이구~ 이쁜 내 새끼~!! 그래 이 엄마가 코하고 자는 동안에 나타난 쟤들이 우리 싸이 말은 잘 듣니?" "우웅. 끄떡끄떡..... 내 말엔 무조건 반항하는 놈들은 그저.........헤헤헤. 그래도 괜찮치? 엄~마!" 짧고도 작은 주먹을 꼬옥 쥐면서 눈을 귀엽게 부라리는 사랑스런 아들이었다. "그~러~엄. 당연하지~~~잉! 감히 이 엄마의 아들한테 어느 누가 반항을 해. 저놈들이 제아무리 상위 정령들이라고 해도 감히 우리 싸이한테 까불면 언제든지 이 엄마한테 말만 하렴. 아예 이 기회에 정령왕 놈들을 불러서는 이 엄마가 마구마구 혼을 내줄께. 알았지~? 싸이야~!!" "에헤헤헤헤. 역시~~ 우리 엄마가 제일 조~아!" 부비부비. 할짝 할짝. 꼬옥. 역시 아들만 믿고 큰소리를 치는 엘렌이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도 그 또래의 헤츨링과는 차원이 다른 아들의 어리광에 더욱 신이 난 엘렌은 보통의 실버 드래곤 헤츨링과는 달리 성룡 헤츨링(?)이 확실한 아들(!!)이 거의 성룡급에 이르는 덩치로 마구마구 상위 정령들에게 아주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는 지금의 현실이 마치 꿈만 같았다. 오죽했으면 지금 이 자랑스런 아들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기 위해 리멤버 크로우즈 업이라는 마법으로 마구마구 저장을 하기 시작했겠는가. 이다음에 만나게 될 그녀의 동족과 그녀의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자랑하려고 거의 수를 헤아리기 힘든 정령들의 모습들을 일일이 기록을 하고 있는 엘렌이었다. 해서 지금 그녀는 조금전 그녀에게 감사의 시선을 보내던 상위 정령들의 애뜻한 시선이 점점 과격한 눈빛으로 변하는 것도 모른채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아들의 재롱을 눈에 담기에도 바빴다. 더구나 그 간(?) 크기로도 소문이 난 실버 드래곤 엘렌으로썬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정령왕들까지 언급을 하면서 엄청나게 오버를 하고 있었다. 실지로 그녀는 정령왕을 만나보기는커녕 지금의 그녀 수준으로는 소환도 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드래곤들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파워를 지닌 에이션트급의 드래곤들만이 정령왕들에게 작은 부탁을 겨우 부탁할 수준이겠는가. 그리고 에이션트를 넘어선 위대한 존재인 크림슨급의 드래곤이라면 어찌어찌 해서 정령왕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는 망정 그들에게 감히 항의를 한다던가 한 바탕 붙는 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드래곤들로썬 엄중하면서도 반드시 그리고 확실히 지켜야만 하는 예절이었다. 허나 그런 예절 따윈 애시당초 생각도 안한 엘렌이었다. "우헤헤헤헤. 자~아! 오늘은 일단 여기서 해산~! 그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으로 집합해. 알았지~~?.....어쭈. 너 지금 누굴 꼬나보는 거야? 주~고~ 시~퍼~!" 깨깽.깨깽. 역시 한 파워 하는 엘렌의 아들이었다. 괜시리 까부는 놈이 있으면 든든한 엄마를 믿고 마구 으름장을 놓고 있는 싸이의 모습은 가히 광룡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그 순수하고 맑은 눈빛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정도로 눈에서 활화산 같은 분노가 살짝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싸이의 시선에 금새 주위에서 투덜거리던 수많은 정령들이 한순간 쥐죽은듯이 조용해지자, 그런 모습이 더욱 신기하면서도 듬직한 아들에게 더욱 정이 가는 엘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미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으니......... "흠. 그럼 저 분이.......?" "후후. 그렇다." "이야~~! 어쩜 저리도 피부(?)가 고울까?" "에헤헤헤. 역시.......하지만 저기 있는 어미는 이제 겨우 2.000살도 안된 핏덩이잖아? 근데 감히 우리를........." "케케케. 관 둬. 어차피 저분이 우리들의 왕이라면 그정도는 귀엽게(?) 봐줘도 돼. 안그래?" "맞다. 크크크. 하지만 너~어! 프레임!! 넌 절대로 용서가 안~돼." "으잉? 왜~~!" "이짜식이........" "맞아~! 이짜식이 감히 어디서 반~항이야~~!" "주~겨. 감히 우리를......." "그려. 감히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정령들을..........주~~겼" 우두두두두. 퍼퍼퍼퍼퍽. 질끈질끈. "케아아악..............항................항~~~보~~~옥!!" "우이씨. 이게...어디서......." "야~~! 더 세게 밟~어~!!" "주~~겨~~~어!@!" 퍼억. 퍽퍽퍽퍽. 쿠당탕....꽤~액. 자근자근. 꽈악.꽈악. 잠시 정령계가 혼란의 시간을 겪으면서 수많은 하위급 정령들이 물질계로 마구 소환 당하게 되자, 하위급 정령들이 본체까지 정령계를 빠져나가서 앞으로 한동안 하위급 정령들은 보기가 힘든 상황을 만든 프레임은 그래도 자신의 실수 덕분에 정령계의 위대한 왕이 될 존재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발끈 하면서 대들었다. 허나 동료 정령왕들과 사이좋게..... 위엄 있으면서도 강한 리더쉽으로 무장한, 새로운 그리고 수 만년이나 기다려온 정령계의 명왕이 될 위대한 분을 보고 있다 잠시 큰소리를 친 프레임을 보면서 악의에 찬 시선으로 마구 다구리를 해대는 동료들에게 그는 고만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멈춰지지 않는 동료들의 매서운 손길과 발길은 그가 처참한 몰골이 될 때까지 그칠 생각을 않고 있었다. "크으으으윽. 내가..........왜.......훌쩍.......아이고 .....아파라........" 정말로 처참한 몰골은 여기 있는 프레임이 아니면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앞에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불쌍하게 구겨진 프레임이었다. 그 멋있다고 자부하던 붉은 화염의 불꽃모양 머리채는 누구의 시샘인지 듬성듬성 뿌리 채 뽑혀 나가고 ....팬더가 보면 행님 할 정도로 양쪽 눈의 눈두덩이가 뾰쪽한 밤송이 마냥 퉁퉁 불어 있었다. 온몸에 피멍이 다 든 상황에서 가는 실줄 만이 예전의 붉은 정열의 눈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예추 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또한 엽기적인 발길질로 온몸을 난자 당해 앞으로 스스로 남자임을 증명할 수 없을 만큼 한때 꽤나 듬직해 보이던 그의 아랫도리는 지금은 쏙 들어가서 밋밋한 모습 그 자체였고, 그의 의상은 마구 찢기고 밟혀서 거지들도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을 몰골을 한 채 바닥에 앉아서 엉엉 울고만 있는 그였다. 하긴 집중적으로 누군가가 노린 듯한 하체의 중요부위에 가해진 여러 색깔의 발자국들은 아마도 그가 두 번 다시 남성체로는 현신 못하고 그저 중성이나 여성체로만 현신이 가능하게끔 만들어 버렸기에, 어느 누군가의 강한 집념이 졸지에 불같은 바람을 타고 일어나서는 중요한 부위를 아주 심하게 집중적으로 맞아 지금 그의 모습은 가히 군중심리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33> "아~~웅. 잘 잤다~앙!" 뿌드드득. 쭈~욱. 두리번. 두리번. 난 진짜로 간만에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으로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근데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내 옆에서 그 큰 몸을 눕히시곤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시던 엄마가 아침에 일어난 내 옆에 지금 안 계시자, 난 이 큰 원수덩어리 큰 바위 머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의 싸랑스런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우웅. 엄마가 어딜 가셨지?" 어슬렁. 어슬렁. 분명히 얼마 전까지, 아니...어제 저녁때까지만 해도 어색한 나의 꼬리와 몸이 하루사이에 제법 익숙해져서, 난 나의 새로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아직까지도 조심에 조심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이 드는 긴 꼬리를 이끈 채, 레어라고 불리는 드래곤들의 안식처라고 강조하듯이 말씀하셨던 엄마의 집에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아~! 내가 갑자기 이런 몸을 가지게 된 사실 때문에 한때나마 스스로 조금은 쑥스러운 감정을 가지게 된 일들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이 조금 되어서 이 시점에서 한마디하자면...... 사실 나의 엄마가 그동안 나에게 쏟아주시던 애정은 진짜로 하늘보다도 넓고 바다보다도 깊고도 푸르러 난 한동안 스스로 이런 나의 눈치를 엄마에게 보이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물론 꿈을 빙자해서 나를 다독거려주시던 사신계의 계왕이신 나의 외고조부 되시는 신룡 헤리아킨 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가 그동안 익숙하게 살아가던 삶이 한순간 괴물과도 같은 커다란 몸집을 지닌 다른 종족으로 바뀐다는 것은 차마 말로는 표현 못할 심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하지만 난 이런 내가 서글픈 마음이 조금..그리고 혹시 이런 나를 버리시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조금......이런 마음으로 내가 울먹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지게 된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나라는 존재의 의미가 변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았을 때, 단호하고 강하게 부정을 해주시며 항상 넌 나의 아들이며 자랑스런 가족이라는 엄마의 따뜻한 말씀에 난 이젠 조금씩 이 새로운 종족으로의 변신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더구나 내가 이런 몸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나의 실수로 인한 것이었고, 인간의 몸일 때 큰 부상을 당한 나를 완치시키려고 하신 엄마의 깊디깊은 애정과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것들이라서, 난 한동안 나와 눈만 마주치셔도 깜짝 깜짝 놀라시는 엄마의 미안한 모습에서 더욱 깊은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앗. 너무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우응. 하지만...... 난 지금 이 몸을 가지게 된 원인이 나의 심한 뇌출혈과 마구 부어서 머리뼈를 압박하던 뇌압과 혈압 때문에 어린 내가 심한 후유증을 남길까 두려워 이런 궁여지책을 벌이신 엄마의 깊은 사랑을 말하려고 했는데.....그만. 암튼. 이 드래곤이라고 하는 종족들의 몸을 내가 엄마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진짜로 이 생물들은 신기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면 이 커다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이들은 아주 단순한 구조의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덕분에 내가 엄마의 애정 어린 간호로 이렇게 완치에 가까운 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 단순하리만치 신기한 드래곤이라고 하는 종족의 몸 덕분이다. 누구나 그리고 어떤 종족이라고 해도 보통 음식들을 먹으면 그걸 소화시킬 소화기관이 있어야 하고 그럼 당연히 배출을 해줄 기관들도 몸에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이 드래곤이라고 하는 신의 아들을 자처하는 종족들의 몸은 그런 복잡한 기관들이 모조리 무시된 아주 희안한 존재들이었다. 왜냐면.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드래곤이라고 하는 이 거대한 몸집을 지닌 종족들은 그 커다란 몸에 정말로 어울리지 않게 몸 속의 기관들은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단순한 신체기관들이 존재했다. 맨 먼저....나의 두뇌를 담고 있는..쉽게 말해서 평생동안의 기억을 담고도 모자라 자잘한 일들까지도 모조리 담을 수 있는 뛰어난 기억력을 지닌 뇌라는 기관과, 그 밑에 커다란 입과 뾰족한 이빨들로 구성된 입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면, 목구녕 한가운데에 큼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드래곤 본이라고도 하는 이 기관의 기능은 우리 인간들의 기관지처럼 각종 먼지....즉 마나들을 모아서 내 몸 속에 바로바로 보내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구성되어 있는 기관이 바로 크게 심호흡을 해서 온 몸에 잔뜩 마나들을 모을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4개의 폐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위력은 드래곤들의 비장의 무기인 브레스인가 뭔가 하는 공격마법과 직결되어 있어서 차마 말로 하지 않아도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뜨거운 피를 맹렬하게 온몸으로 돌려주는 강한 발전기 같은 마나들의 펌프실..... 바로 드래곤 하트가 있다. 이 드래곤 하트는 긴 용생을 강조라도 하듯이 매우 튼튼하고 스스로의 치유력이 아주아주 뛰어나서 이 드래곤 하트라고 하는 나의 새로운 심장이 가지고 있는 효능은 무궁무진한, 그러면서도 드래곤들에겐 가장 중요한 신체 기관이다. 그리고 이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들의 커다란 크기의 몸집답게 그 크기가 엄청나다고 하는 데 실지로 난 그것을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지금도 맹렬하게 내 몸 속에서 뛰고 있는 이 두 개의 강한 펌프질의 대가~! 드래곤 하트는 아마도 이렇게 쿵쾅거리며 뛰는 걸로 보아서는 아주 대단한 크기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드래곤들이 이렇게 큰 몸집에 단순한 신체기관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점점 진화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를 이루어주는 뼈와 단단한 각질인 드래곤들의 비늘은 그 속에 자리한 피부조직들 덕분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강해지는 비결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흐음. 생각이 너무 많았나? 난 지금 엄마의 레어 밖으로 나와서 큰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최대한 가녀린 음성으로 엄마를 찾고 있었다. "베에~~베에~~"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나의 사랑스런 엄마는 보이질 않고, 간간이 내 목소리에 반응을 해서 튀어나온 먼지 녀석들이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내 커다란 몸을 바람을 이용해서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다. '우갸갸갸갸~~~. 아이~ 간지러워.......... 우웅. 그치만 엄마가 없어서 심심해. 근데 엄마는 날 두고 어딜 가셨지? 에잇. 이녀석이~~~!' 난 한참을 그렇게 엄마를 기다리며 웅얼거리듯이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잠시, 엄마를 부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선 매우 반갑다고 인사치레로 나의 몸을 간지럽히는 투명한 먼지녀석처럼 생긴 바람들을 향해 난 약간의 보복성이 짙은 몸짓으로 그들에게 보란 듯이 아직까지 나의 등뒤에 달려 있기만 한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는 녀석들에게 아주 멋지고 거친 날개 짓을 선사해주었다. '쿠헤헤헤헤. 역시.......감히 누구한테 까부는 거야?" 역시 나의 이런 몸짓은 헛되질 않아서 나에게 다가오며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던 녀석들이 갑자기 펄럭이며 움직이는 나의 날개 짓 때문에 기겁을 하고 도망을 치는 것을 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니 난 더욱 강한 자긍심으로 날 간지럽히던 괘씸한 놈들을 향 해 날개를 더욱 곤두세우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어딜 도망~가~~~!!" 펄럭.펄럭. 두다다다닷. 쿵쾅.쿵쾅. 난 열심히 나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며 매우 빠르게 달려가고자 두다리로 열심히 바닥을 박차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어어어어~~~~~~~~' 그러나.......... 나의 이런 심한 장난기 때문인지.........아니면 신의 노여움 때문인지........ 나의 거대한 몸이 한순간 붕 뜨는 듯한 느낌을 주더니 어느새 나의 발이 바닥을 벗어나 허공에서 열심히 헛 바퀴를 돌 듯이 맹렬히 돌아가고만 있었다. 그것도 허공을 마구 꾹꾹 눌러주면서............ "으갸갸갸갸갸.............끼에에에에엑............싸이 살~~려~~~~!" 끄아아악. 비틀비틀. 휘청휘청. 처음으로 날아본 하늘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과거 번지점프라는 것을 한번 해본 경험이 있는 나에겐 이 번지점프보다 더욱 스릴이 넘치면서도 떨어지면 죽는다는 강한 관념이 생긴 생애최초의 비행이 너무도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에라도 조금의 실수로 이 비행을 실패하면, 바로 땅아래로 추락할 것이 분명하기에, 난 죽지 않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날개를 퍼덕이며 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번지점프는 맨 처음 뛰어내릴 때 장난이 아니였다. 허공에서 들리는 바람소리와 그 속에서 달랑 나 혼자만 있다는 생각에 난 이렇게 죽는 건가 라는 아주 심각한 느낌과 생각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끈이 다 내려가서 내 몸을 붕 하고 띄울 때의 쾌감은 가히 환상적인 느낌이라서 그 매력에 번지점프를 매우 좋아한 나였기에, 지금 이렇게 스릴이 넘치는 일들을 마구 해대면서도 마음 한쪽 구석에선 어느새 그때의 쾌감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율배반적인 생각들이 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윽. 이러다가 떨어지면........." 이런 생각들은 두려움을 가져다 온다. 더구나 날개 짓도 어디 한두 번이지 어느새 근30분은 족히 될 시간동안 계속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본 생애 최초의 하늘에 대한 느낌은 이젠 서서히 힘이 빠져서 더 이상 날개 짓이 이어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쾌감이고 나발이고 뭐든지 다 필요가 없었다. '크흐흐흐흑. 너무 아퍼~~!' 정말로 아팠다. 가녀린 몸(?)에 어울리는 나의 우아한 날개가 수시로 아래로 들락날락 거리며 이 가녀린(!!) 몸을 허공에 띄우려고 하니 그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게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내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나한테 아주 재미난 거리를 매일 마다 제공하던 먼지 녀석들도 지금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자, 난 다급한 마음에 커다랗게 비명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악~~! 모두~~~집~~합~~~!!" '에엥. 이게........이게 무슨...........' 정말로 한심했다. 커다랗게 지른 내 목소리에 당연히 반응을 해서 나타나야만 할 놈들이 어찌 된 일인지 단 한 놈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난 눈물을 머금고 내가 어떻게 하면 아래로 보다 쉽게 내려갈 수 있을까 궁리를 해 보았지만 생전 처음으로 날아본 주제에 어떻게 알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난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는 확실한 방법을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더구나 한번씩 펄럭 일 때마다 떨어질 듯이 심한 통증을 전하는 나의 우아한 날개 를 위해서 난 과감히 튼튼한 나의 몸을 밑천 삼아 아래로......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너무도 무서웠다. 제아무리 이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몸을 지닌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리고 지금 내 몸이 그런 드래곤으로 변한 몸이라고 해도, 귓가와 눈가를 가르며 지나가는 매우 빠른 바람들 속에선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공포가 더욱 매서워지는 바람들 보다 강하게 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온 대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진동은 가히 큰 재앙을 가져오는 대지진은 저리 가라였다. 쿠아아아앙. 우르르르르. 부르르르르. "크아아앙~! 케~엑.....숨 막혀~~~!" 정말로........정말로 다행이었다. 내 커다란 머리에 걸맞게 머리부터 아래로 곤두박질 친 나의 몸은 본능적인 몸부림 덕분인 지, 다행히도 큰 탈이 생기지 않으면서 머리가 땅속에 깊숙히 박힌 몰골로 이렇게 무사한 나의 첫 비행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에휴~~. 끄응. 좀 나와라~! 나와~~~!' 부들부들. 아둥바둥. 쭈빗쭈빗.- 이건 하늘 높게 곤두선 나의 자랑스런 꼬리가 하는 짓거리이다. 그러나 나의 커다란 머리가 땅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느라, 난 매우 힘겨워하면서 나의 작은 팔을 든든히 받쳐 허공에 떠 있는 나의 우람한 뒷다리와 꼬리를 움직이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 부어야만 했다. 엘렌은 일주일째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아들을 곁에 두고 한동안 아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긴 혀로 일일이 닦아주며 아들의 몸에 더욱 광을 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애정표현에 가끔씩 아들이 까르르 거리며 웃다가도 깨질 않고 계속 잠을 자고 있자, 오랜만에 자신의 레어에 돌아온 기념으로 그녀의 레어를 한 바퀴 죽 돌아볼 생각에, 엘렌은 그 큰 몸을 이끌고 레어 밖으로 나와선 한 바퀴 목을 돌려주며 그동안 쌓여던 피로를 말끔하게 풀었다. 우두두두둑. "끼아아아아앙........잘 쉬었다. 어디 그럼........트랜스포메이션~!" 비아아앙. 한줄기 강한 빛 무리들이 그녀의 커다란 몸을 감싸고돌다가, 이윽고 서서히 빛 무리들이 줄어들면서 점점 가녀리면서도 어딘가 품위가 있어 보이는 모습의 여인이 그 속에서 모습을 들어냈다. 이윽고 자신이 평소에 하고 다니는 모습으로의 변신이 끝나자 엘렌은 우선 그녀가 주위에 펼쳐놓은 보호막들 중 어딘가 구멍이 났을까 하는 생각에 비행마법을 이용해 가볍게 몸을 띄운 채 꼼꼼히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히 어느 한군데에도 이상이 없어 보이자, 제법 튼튼한 그녀의 보호막에 대한 스스로의 만족과 강한 자부심을 주위를 향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런 엘렌이 한동안 레어 근처를 날아다니면서 유유히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무렵, 하늘을 날던 그녀의 눈에 작은 이채가 일었다. 자신도 모르게 레어 뒤편에 자리한 아름다운 꽃밭들이 거의 모든 산하나를 감싸듯이 펼쳐져 있자, 엘렌은 산등성이에 몸을 세우며 물끄러미........그리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밭의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어머머머머. 이게 웬일이래~? 난 이런 거 심은 적 없는데.......더구나 난 이런 걸 심을 생각도 못해서 모두들에게 여성스럽다는 소리를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헤에~!" 하긴 그녀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녀의 아들이 그녀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우아한 품위를 생각해서 저지른 일의 후유증으로 인해 생긴 엘렌의 레어 근처는 그야말로 환상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지금 그녀의 레어 주위엔 이런 꽃밭들이 앞을 다투며 서로 우아한 꽃밭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는 꿈에도 모를 사실이었다. 왜냐면 하위 정령들 중엔 물질계에서 꽃들과 친한 이들이 제법 많았고, 그런 하위급 정령들이 그녀의 커다란 보호막 안으로 강제 소환 당하듯이 끌려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던 곳이 바로 이곳과 그녀의 레어 주변이니, 그녀가 위대한 드래곤들의 기억력을 다 뒤져도 그런 기억은 생전 나타날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런 하위급 정령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지금 그녀가 서 있는 작은 산등성이는 온통 화려한 꽃들의 패션쇼가 멋지게 열리고 있었다.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주위에 있는 벌과 나비들을 유혹하는 광경은 흡사 그녀의 과거에 꾼 그녀의 아들 싸이의 태몽에서 본 꽃밭보다 더욱 아름다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이제 그런 곳이 그녀의 레어라는 사실에 더욱 감동 받은 엘렌은 그런 짓을 한 이가 바로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더욱 감동의 눈물을 진하게 흘렸을 것이다. 한참을 너무도 이쁜 꽃밭에서 이놈은......저놈은...........이렇게 품평을 매기 며 좋아라 하던 그녀는 느닷없이 하늘에서 들린 아들의 비명소리에 놀라 잠시간의 휴식에서 강제로 깨어나야만 했다. 느닷없이 들려오는 아들의 비명에 급히 하늘로 고개를 들자 어느새 거대한 몸짓에 어울리지 않는 방정맞은 몰골로 부지런히 날개를 움직이는 아들이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보이자 엘렌은 잠시 고운 아미를 찡그렸다. "아니....저 녀석이........언제.....난 나는 법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러나............그녀의 이런 생각은 금새 수정이 되어야만 했다. 이내 그녀는 자신이 아들에게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아주 다급한 마음에 비행마법으로 아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지쳐 보이던 아들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자 엘렌은 금새 울상이 된 얼굴로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에 용언 마법을 영창할 수밖에 없었다. "대지의 바람들이여~! 나의 아들에게..$*&#@*@^%.........안 그라비테이션(An gravitation) ~!!" 휘이이익. 역시 위대한 용언 마법은 비록 그녀가 채 6성을 익히지 못했다고는 해도 긴 영창을 통한 마법의 실행에 있어 제아무리 거대한 물체라고 해도 무중력에 가까운 모습으로 땅에 떨어지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 큰 몸에 붙은 가속도로 인해 멋지게 땅과 진한 키스를 나누게 된 아들의 몸이 순식간에 영창한 엘렌의 용언 마법에 의해 아무런 이상 없이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강한 의지가 실린 용언마법이 그녀의 뜻을 이루어 주었다. 그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육중한 체구에 걸맞는 가속도가 아들의 몸에 제법 붙었다고 는 해도 이미 용언 마법으로 엘렌이 실행한 아들의 몸에 무중력을 걸어준 마법 덕분에 갑자기 땅과 키스를 하게된 아들은 엄청난 가속도로 인해 땅에 머리를 통째로 박아 넣으면서도 심한 충격은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을 엘렌은 지금 하늘높이 솟구쳐 있는 아들의 반짝이는 투명한 은색의 꼬리 비늘을 보면서 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제야 안심도 할 수 있었다. "에휴휴휴휴~!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렇게 호기심이 많은 거지? 확실히 저런 짓을 할 존재는 나의 아버지를 쏙 빼다 닮은 내 아들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해~! 어떻게 가르치지도 않은 걸 하려고 덤비는 건지......." 매우 걱정이 되던 마음이 비로소 안심이 되자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그녀의 잔소리성 발언 속엔, 그래도 아들에 대한 정이 남다른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다소 포함이 되어 있었다. 왠만한 엄마들 같으면 시키지도 않은 일로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아들을 두고두고 괴롭히면서 심하면 매타작도 벌이겠지만 지금 작게 고소를 짓 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어느새 아들이라는 존재에 대한 진한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그녀도 엄마다. 해서 그녀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그녀의 아들을 앞에 앉혀 두곤 심하게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더구나 아들이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엄마 덕분에 안 다쳤다는 사실을 알곤, 엄마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울음을 터트려도 그녀는 전혀 못 본채 마구 잔소리를 해대는 모습의 엘렌은 정말로 그녀도 엄마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단지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그런 그녀가 아들을 데리고 온 곳이 바로 화려한 그러면서도 향긋한 꽃밭에, 언제 만들었는지 하아얀 파라솔이 쳐진 그늘 밑이 었다는 걸 눈여겨본다면, 엘렌은 결코 지금 아들이 미워서....아니, 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이다음에 또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위해 애써 냉정한 얼굴로 꾸지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모두가 잘 알 수 있었다. <34> 푸르른 하늘은 간혹 뭉개 구름들을 유혹하듯이 살랑이는 바람들을 선사하며 더욱 높고 푸르게 서 있고, 그 밑에선 봄바람 난 처녀 마냥 하얀 뭉개 구름들이 하늘로부터 선사 받은 향긋한 봄바람에 마구 일렁이면서 천천히 낮은 비행을 하고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이 카빌라이 대륙의 정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대륙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며 크게 분포되어 있는 헬요리네 산맥의 동북쪽 가장자리 근처에 있는 이곳에선 지금 그 가장자리를 수놓고 있는 화려한 꽃밭들이 이곳 헬요리네 산맥에 은신처를 만든 채 대륙의 역사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가장 존경받는 가문이자 더욱 신비한 가문의 은신처 중 한 곳임을 보여주듯이 온화한 기운에 의해 수만가지의 꽃들이 더욱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리며 하늘을 향해 멋을 부리다가 금새 그런 몰골을 시샘한 누군가의 요란한 방문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오호호호. 그래......조금 힘을 빼고.....자연스럽게......그렇지!" 뒤뚱뒤뚱. 쿵쾅 비비적. 쿵쾅. 비비적. 질끈 질끈 지근떡. 지근떡. 난 지금 엄마의 개인 특별학습에 의거해서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어쩌면 나에게 꼭 필요할지도 모를 비행연습을 위해 지금도 이렇게 꽃밭들을 마구 유린하면서 열심히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문득. 어제 점심때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엄마의 잔소리는 나중에서야 내가 엄마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내린 것을 알게 된 나로썬 어쩔 수 없이 하루종일 난생처음으로 엄마의 잔소리를 줄기차게 들어야만 했다. 물론 내가 아주 잘난 아들이라서 그렇게 시키지도 그리고 또 가르치지도 않은 일을 벌여서 엄마의 가슴이 콩알만해졌다고 했는데........ 다행이도 밤늦게 인간의 모습으로 트렌스포메이션 된 엄마의 가슴은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쿡쿡쿡쿡. 아 물론 그 말이 그냥 상황을 시기적절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난 아주 잘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엄마의 따뜻한 가슴) 하지만 역시 지금의 난 엄마의 포근한 품에 안겨서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해서 한동안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점이 가장 속상하면서도 너무도 큰 유혹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본격적으로 주위의 마나들을 모아서 부력과 양력을 이용하고, 그 힘들로 내 몸을 받치며 살며시 하늘을 날 게 하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시는 엄마의 친절한 교육에, 난 매우 빠르게 하늘을 활공할 수 있는 지식들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커다란 내 몸을 힘으로만 날려고 하는 초보 비행사인 나로썬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해서라고 하셨다. 마나로 하늘을 날기는 아주 아주 쉽다. 그러나 만약에라도 위기상황이 벌어져서 마나가 일정하게 흐르지 못하는 몸으로 그 위급 상황을 피하려면 이 큰 몸으로 텔레포트. 즉 워프를 하려면 최소한 8써클 이상의 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막대한 마력을 모으기까지 하늘에 잠시 몸을 띄우는 건 필수코스라고 가르치시는 엄마의 성화에 지금 난 이 큰 몸으로 아둥바둥 거리며 열심히 어제는 쉽게 한 일들을 오늘은 매우매우 어렵게 반나절 가까이 반복만 하고 있었다. '칫.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든거야? 분명히 어제는 아주 쉬웠는데........ 그리고 어제 쌓인 피로도 다 풀고 잤는데.....' 그러면서도 난 문득 어제 저녁에 내가 받은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해 나의 정신적 타격이 걱정이 되어서 피로회복 주문을 손수 해주시던 엄마의 다정한 얼굴이 떠오랐다. 그때부터 난 마구 행복한 마음이 들면서 더욱 날개를 펄럭이게 되자, 갑자기 옆에서 콧소리가 강하게 나시는 엄마를 살며시 바라봐야만 했다. 그러자......옆에 계시던 나의 어머님 말씀~~! "오오오오~~~역시..........우리 싸이~~~너무너무 멋있어요~~~!! 이렇게나 빨리 배우다니.............역시 넌 자랑스런 내 아들이야~~!" 엄마의 지금 행동들은 정말로 이상했다. "응? 뭐가........?" 그러면서 잠시 엄마를 유심히 들여다 본 난 매우 즐거운 표정의 엄마를 볼 수 있었다. 팔짝팔짝. 이야아아~~. 마구 손뼉을 치시는 엄마의 행복한 표정과 모습에 어리둥절한 난 '참나, 엄마는 왜 저러시지' 하면서 고개를 돌려 엄마가 빤짝이는 눈망울로 바라보고 계신 나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순간, 한순간에 아찔한 현기증으로 언제 떠 있었는지도 모르는 내 몸을 난 허공에서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기우뚱. 팔락.펄~럭. 역시 한번 한 일은 쉽게 몸에서 잊어먹지 않는가 보다. 난 어제의 그 악몽을 모두 잊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 마음에 시작한 이 날개짓이 엄마의 행복한 표정과 나의 부모에 대한 사랑덕분에 이렇게 쉽게 허공을 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해서 더욱 힘차게 날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야~~아~~호~~!!.........역시....주~~긴~~당..........." 역시 난 천재인가 보다. 이렇게 쉽게 허공에서 선회를 하면서 마구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는게 가능해지자,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배운 지식들이 아주 대단히 유용하다는 사실이 떠올랐 다. 물론 그거야 생각해 보면 단순하면서도 쉬운 것들이라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그게 어디 기본도 모르는 초보자와 지금 이렇게 떠있는 나에게 어림 반품 어치 에 택이나 있는 소리이겠는가?! 흐흐흐. 하늘을 날면서 선회를 할 때에 우아하게 선회를 하려면 살며시 한쪽 날개를 돌고 싶은 방향에다 대고, 날개를 살짝 몸 안으로 붙이면서 공기의 저항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돌게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런 다음 다시 날개를 펼 때에는 힘으로 하기 보단 공기의 저항으로 인해 생긴 반발력을 이용해서 튕기 듯이 활짝 펴면 되는 아주아주 쉬운 일들을 막상 현장에 서 느껴지는 공기의 저항에 대항해 가면서 해본 선회 비행의 묘미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 큰 몸을 하늘에서 마구 움직이면서 하게 되는 급선회나 급강하. 급하강들은 모두 마나와 바람의 기운을 빌려서 움직여야 하기에 방향타 역할을 톡톡히 하는 꼬리를 마구 요동을 치면서 날개들을 몸에 바짝 붙여서 날아 내리고 떠오를 때 의 쾌감은 가히 절정에 달했다. 상상을 해보라. 갑자기 하늘에서 까만 점으로 보이던 내가 엄청난 속도로 지상으로 떨어지다가 순간 정지를 위해서 활짝 펴는 날개에다가 냅다 마나들을 쏟아 부으면, 갑자기 내 몸이 붕 뜨듯이 허공에서 잠시 멈칫하는 순간은, 정말로 신기하다 못해 짜릿한 느낌을 나의 시야와 온몸에 마구 전해준다. 눈앞으로 엄청난 속도로 좁게 다가오던 지면이 한순간 넓게 활짝 변하면서 느긋하게 아래를 바라볼 때의 쾌감은 정말로 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는 듯한 느낌을 나의 뇌로 강렬하게 보내주고 있었다. 이런 재미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하늘 위에서 놀던 난 어느새 아래에서 풍겨지는 노릿한 고기 내음에 뱃속에서 요동을 치는 배꼽시계를 따라 천천히 그러면서도 엄마가 항상 강조하시는 우아한 포즈로 살포시 바닥에 착지를 감행했다. 쿠웅. "아야~! 우응. 분명히 가르쳐 주시는 대로 했는데....으씨." 참나. 머리에 신경을 너무 쓰다보니 어느새 꼬리가 강하게 바닥과 마주친 것을 생각도 못한 나였다. 난 조금 저리는 엉덩이를 호호 불면서 천천히 음식냄새를 풍기고 있는 곳으로 어슬렁 기어가기 시작했다. "헤헤. 엄마~~~!" "오오~! 우리 싸랑스런 아들~~! 배 많이 고프지?" "우응." 끄덕끄덕. 사실 드래곤으로 변해서 생활한지는 아주 오래 된 느낌이었다. 더구나 드래곤들의 주식은 특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어서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그냥 있고 싶으면 그냥 굶어도 된다. 이는 뱃속으로 음식이라는 것들이 들어가면 모조리 마나들의 영향으로 잘 게 해체되어선 몸밖으로 작은 원소처럼 배출이 되기에 특별히 음식을 먹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드래곤들의 전통 있는 생활들이었다. 하지만, 난 아직 내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기에,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으면 몰라도 점점 강하게 풍기는 음식 냄새에 꼬르륵거리는 느낌의 뱃속을 부여잡으며 뒤뚱거리는 몰골로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호호호., 우리 아들이 오늘 이 엄마가 보니깐 다 낳은 것 같아서 이렇게 음식들을 준비했는데.......어때 먹고 싶니?" "우응...머고 시퍼요." 이건 침을 질질 흘리고 있기에 말이 새서 이렇게 나온 것이다. "어머. 그렇게 침을 흘리면 남들이 흉봐요. 어서 닦아야 이쁜 아들이지~!" "헤헤. 네~엡. 후르르르릅. 쓱삭 쓱삭." 그러면서 시작된 나의 음식 욕심은 엄청난 식욕을 동반하면서 나타나서는, 커다랗게 꼬치에 꽤 뚫린 음식불명에 재료 불명인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음식들은 나의 커다란 입을 통과해서는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나의 뱃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음냐~~리. 꿀꺽. 아구아구......후르릅. 짭짭." 신룡의 후예 - 제 25 화. "애초에 우주의 모든 기운들은 인간의 작은 의지와 하나로 연결이 된 끈이 있었기에, 인간의 작은 몸은 하나의 통로요, 그 안에 우주의 기운들을 가득 채우고 순리에 순응을 하며 긴 삶을 영위하메, 우주의 거대한 기운들을 스스로의 몸에 받아들일 수 있게 정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련하라. 그러기 위해선 이 우주의 모든 기운들이 가지고 있는 법칙에 따라서 서로 상극되는 기운들은 멀리하고, 음양오행의 기운들이 서로 상생(서로돕고 살아감.) 하도록 노력 한다면 차후엔 나의 몸이 작은 소우주가 되리라." 난 지금 태극오행의 절기들이 적힌 심법의 첫 장에 기록된 말들을 떠올리며 급히 내 주위의 기운들을 몸 안에 모으기 시작했다. 화(火)의 기운을 도와주는 목(木)과 바람의 기운인 금(金)을, 그 뒤를 이어서 그런 목과 금의 기운을 되살려 주는 수(水)와 토(土)의 기운들을 내 몸 안에서 길게 꼬리를 물고 회전을 하게끔 만들어 준 것이다. 이런 내가 서서히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되자 엄마는 자신의 몸에서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마나들의 회오리에 깜짝 놀라 급히 베리어를 쳐보았지만, 그 베리어도 어차피 마나로 형성되는 것이기에 순식간에 내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듯 했다. 이내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신기한 현상으로 주변의 마나들을 몸 안에 빨아들이고 있는 나를 두고 잠시 밖으로 피하셨다. "어머, 쟤는 나도 처음 보는 이상한 방법으로 마나들을 모으네? 그런데 이거 주위를 너무 황폐화시키는 거 아냐?" 엄마의 작은 외침은 사실 나를 변호하고 아껴주는 말이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동굴과 밖의 풍경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나의 커다란 폐로 새롭게 마구 빨려 들어가는 주위의 마나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던 수풀들을 마구 헤치면서까지 내 몸에 강제적으로 빨려 들어왔던 것이다. 허나, 난 이미 태극오행의 심법으로 내 몸에 음양오행진기를 회전시키며 무아지경에 빠진 와중에 생긴 일들이라서 그 다음에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들을 보지 못했다. 잠시 내 몸 안에 빨려 들어간 마나들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서로 다른 다섯 가지 종류의 마나들로 내 심장 안에서 나의 기운으로 탈바꿈하면서, 이내 드래곤 본이라는 거대한 내 목에 그 크기만큼이나 굵고 길다란 드래곤 본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차곡차곡 채워진 다음, 내 스스로 나의 몸밖으로 마나들을 자연스럽게 방출하게 되자, 내 주위에서 조금 전까지 고사의 위기에 처한 식물들과 나무들은 금새 나의 이러한 기운들을 받아들여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운 자태들을 뽐내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이 하루가 넘도록 반복이 되자, 어느새 명상에 잠겨 있던 내가 눈을 뜬 순간 나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신기한 다섯 가지의 뚜렷한 색깔로 구성된 나의 마나들은 나의 커다란 몸 안에 서서히 스스로 갈무리가 되면서 내가 있던 주위는 평소보다 더욱 향긋한 꽃망울들을 터트리는 꽃들과 푸르른 나무들의 싱그러운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생물들이 나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선물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야~! 이게 정말 내 힘이야?" 난 이미 내 커다란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마나들을 생각하면서 매우 신기하다는 듯이 탄성을 터트리고 있었건만, 정작 이런 나를 만들라고 잔소리를 하시면서 나를 고생(?)시킨 엄마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주변을 산책하며, 처녀시절의 감성을 한껏 느끼고 계셨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그동안 잔소리가 부쩍 심해지신 엄마의 성화(?)에 의해서 이렇게 난 내가 예전에 생각해 두었던........어쩌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처음으로 내 주위의 마나들을 몸 안에 모을 수 있었던 일들을 지금 드래곤이 된 상태에서 해보게 된 것이다. 두 개의 메비우스의 띠 같은 선들을 이용한 참선과 비슷한 마나들을 모으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라는 존재 를 나에게 말씀하시면서 내가 가족이라는 존재들에겐 무척 약하다는 약점을 이미 알고 있는 엄마의 교묘한 계책 덕분인지도 몰랐다. 그땐 인간의 몸이라서 그런지 이런 무아지경 속에서 내 주위의 마나들을 내 몸 안에 담기보다는 그 마나들 속에 내 몸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벌였지만, 지금은 응당 내 큰 몸에 걸맞는 마나들을 담고 운영을 해야만 그.........뭐라고 하시더라.... 아~! 맞다. 드래곤들의 각기 다른 속성의 기운들을 부리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선 난 지금 열심히 내 몸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하고 엄청난 마나들을 몸안에 갈무리를 해야만 된다고 하시면서 극성을 떠시는 엄마의 성화덕분에 난 오랜만에 이런 참선을 시작한 것이다. 아 물론. 얼마 전엔 내 몸을 치유하기 위해서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면서 먼지녀석들을 마구 소환한 일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와는 달리 내 몸 안에 담을 마나들을 모으기 위해서 난 지금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몸에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빠져나가는 마나들을 나의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서 드래곤 본에 저장을 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으로 참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집념 덕분일까? 한동안 내 주위를 떠다니던 먼지 녀석들이 어느새 작은 형체로 보이는 듯한 착각이 일더니, 어느새 그 녀석들이 나의 몸 안으로 들어와서는 주위의 다른 마나들을 불러모아서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는 느낌은, 정말로 내가 새로운 종족으로 이 엄청난 파워를 느끼게 해주는 마나라는 새로운 기운의 주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쿄쿄쿄. 이야~~! 이거 진짜로 신기하다~~!' 이젠 어느 정도 내 몸에 쌓이기 시작하는 마나라는 기운들이 점점 그 크기를 더해갈 쯤에는 내 스스로가 생각만 해도 내 주위에 널리 퍼져 있는 기운들이 내 몸에 들어오고, 내가 내보내고 싶을 때 빠져나가는 느낌을 내 전신에 퍼진 신경세포 하나 하나에 까지 강하게 받으면서 난 점점 친숙하면서도 반가운 먼지 녀석들에서 새롭게 바뀌고 있는 이 기운을 아주 즐겁게 내 몸 안으로 담기 시작했다. 이건 숫제 퍼담는다는 표현이 가장 올바를 것이다. 게다가 그 두 개의 각기 다른 선들이 하나는 양의 기운을 그리고 나머지 두 개의 점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의 선은 음의 기운들을 표현하는 듯한 나만의 생각들은, 지금 내 몸 속 에서 서로 다른 기운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부딪히지 않게 해준다는 사실에 날 너무도 기쁘 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천부경이라는 예전에 보았던 구절들 중 변하지 않는 태극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내가 직접 이름을 갖다 붙인 음양오행진기라는 이 기운들과 그런 기운들을 친숙하게 느끼게 해주면서 나의 참선을 도와준 천부경과 도가의 태극 심법에 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크크크. 이건 내가 생각해도 정말로 멋진 모습이다..........그치~?. 쿠헤헤헤헤' 뒤뚱뒤뚱. 어느새 난 내 스스로가 생각해도 대견한 일을 끝마친 후, 길다란 꼬리 때문에 꼭 아기 코끼리가 뒤뚱거리는 듯한 몰골로 어머니에게 다가가 나 혼자 놔둔 채 우아한 모습으로 산책을 하는 엄마에게 커다란 고함을 질렀다. "엄~~마!!!" "어머 깜짝이야! 아니~ 싸이! 벌써 일어났니?" '어~~? 엄마가 왜 저러시지? 무슨 생각을 하시느라고.......?' 이 무슨 황당한 말씀이세요 라는 말을 눈빛으로 전하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시던 엄마는 이내 상냥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아야만 하시던 전후 사정을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호호호, 넌 내 아들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넌 내가 낳았지만 정말로 대단한 아이야. 어떻게 에이션트급 중에서도 최고 고룡이신 네 외할머니께서 몇 백년 전에서야 겨우 하실 수 있으셨던....... 만물의 기운들을 몸 안에 갈무리해서 주위의 사물들에게 그 기운들을 나누어주는 일들을 고작 4년도 안된 그 어린 나이로 깨달을 수 있었니? 자 보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숲의 기운들이니? 이게 바로 모두 네가 이루어 놓은 일이란다. 더구나 넌 그런 와중에도 내 몸 안에 마나들을 모으면서 코하고 잠을 자지 않나 . . . 참으로 너에 대해선 이 엄마도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많구나" 엄마의 조금은 산만한 말들을 들으면서 난 내가 내 몸 안에서 음양오행진기를 퍼담으면서 주위에 끼친 영향들을 새삼스럽게 쳐다보았다. '오호~! 그러니까 지금 내가 도가에서 말하는 천지교태의 경지에 이르러서 내 몸과 우주의 기운을 하나의 끈으로 연결하고, 그 끈으로 인해 주위 만물들에게까지 내 몸을 이용해서 우주의 기운들을 전하며, 주위 만물의 힘들을 내 몸에 받을 수도 있는 화룡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거네. 캬캬캬. 그럼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젠.............. 음하하하핫. 그럼 난 이제 얼마 있으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겠구만.' 엄마의 고혹스런 목소리와 그 속에 담긴 뜻을 되새기던 난 나의 전생의 기억들을 되새기면서 천지교태의 경지에 이른 초인들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지금 이곳에 있는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한 나에게 생겼다는 게 너무도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그런 나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시는 엄마의 말씀엔 한없이 행복하기만 한 나였다. 그리고 뿌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날 올려다보시는 엄마의 모습은 이런 날 더욱 의기양양하게 만들어 주셨다. "자, 그럼 우리 싸이랑 이 엄마가 오늘 다시 저 하늘 높이 올라가서 우리 실버 일족에게 내려져 오는 바람의 기운들을 마음껏 느끼게 된다면, 우리 싸이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외할머니에게 갈 수도 있겠다. 그치? 자, 어떻게 할까? 지금 당장 시작할까?" "응, 엄마. 난 지금 하나도 안 피곤해. 더구나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어제 조금밖에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바람의 기운이라는 건 엄마가 자세히 가르쳐 줄꺼고....... 헤헤헤. 난 빨리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 이 대륙 최강의 존재라고 하신 외할머니가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이 싸이는 너무도 궁금해. 근데 실버일족은 물의 속성을 지닌 드래곤이라고 알고 있는데,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 이 근처라니..... 엄마,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엄마가 내가 피곤해 할까봐 걱정하시는 모습을 난 커다란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며 걱정말라는 듯 큰소리를 탕탕 쳤다. 더구나 마지막으로 종족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엄마를 내려다보자 어머니는 금새 나의 앞으로 다가오셔서 자신의 본체를 오늘로써 두 번째 로..........하지만 자세하게는 처음으로 선보여 주셨다. "좋~아!! 우리 싸이가 그렇게도 원한다면........자, 나의 위대한 힘이여. 여기에 나의 우아한 모습을...............트렌스포메이션~!" 부우우우웅. 번~~~쩍. '이야~~! 우리 엄마도 자세히 보면 나보다 더 투명한 은빛 비늘을 지니고 있네!!' 역시 난 엄마의 우아한 자태가 정말로 이쁘게만 보였다. 그런 나의 눈빛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다는 듯이 엄마는 더욱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커다란 웃음으로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셨다. 그러시면서 내가 마지막에 한 의문도 동시에 풀어주셨다. "오호호호, 어떠니? 이 엄마가 우아하면서도 이뻐 보여?" "우웅.........진짜 엄마는 이뻐~~!!" "오호호호호. 그래. 아이구 이쁜 내 새끼...........부비부비......더구나 우리 싸이는 이 엄마 를 닮아서인지 아주 똑똑해서 예전에 이 엄마가 읽어준 글들을 기억하고 있구나. 맞어. 아주 정확해. 사실 우리 실버 일족은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이라서 실은 물이 없으면 큰 힘도 못쓰는 일족이지만, 과거 성마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 님이 마신 발킬마를 무찌르시고, 신들로부터 새롭게 받은 속성이 바로 우리 실버 일족의 평생의 소원이었던 육지나 이곳 대륙에서 자유로운 행동을 해줄 수 있는 바람의 기운들이란다. 해서 지금 이 엄마나 싸이 넌 바람의 속성과 물의 속성을 동시에 지닌 실버일족으로 태어난 거란다. 그리고 근 이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실버 일족은 그동안 이 넓은 대륙에 나오고 싶어하던 소원이 그 분 덕분에 손쉽게 이루어진 덕분 에 지금은 물의 속성보다는 바람의 자유로운 속성을 더욱 좋아해서 지금 우리 실버 일족의 속성은 거의 바람에 가깝단다. 이제 알겠니?" "응. 그럼 엄마나 나만 그런게 아니고 실버 일족이라면 누구나 다 두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래.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자~아 그럼 우리 싸이에게 바람의 속성을 지니게 해줘 볼까!!" "이야~! 그럼 나도 이제 하늘을 마음대로 날수 있다는 거잖아. 야호~!!" "오호호호. 그렇게도 우리 싸이가 바람의 기운을 느끼면서 하늘을 날고 싶다면 이 엄마가 외면해서는 안되겠지? 자 그럼, 나의 모든 기운들이여! 나의 본래의 힘을 되찾아라. 이제 태초의 기운으로 이 만물을 지배하는 나 엘렌키아니 갈리어스가 너에게 나의 우아함을 보여주리라. 봉~인~해~제~~!!" 촤르르르릉. 마치 은쟁반에 흑진주가 구르면 날 만큼 아주 맑은 소리가 엄마의 은빛 비늘들을 휩쓰고 지나가자 그 자리엔 더욱 강한 은빛의 물결들이 엄마의 몸을 잠시 감싸기 시작했다. 그분의 우아한 말 그대로 진짜로 우아한 은빛의 비늘이 예전보다 더욱 반짝이면서 촘촘히 들어 난 모습에 이젠 바람의 기운이라고 하는 속성의 기운을 담은 아주 아름다운 눈망울을 지닌 드래곤이 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그동안 인간의 몸으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스스로 속성의 기운들을 얼마간 봉인해 두신 엄마가 자신의 힘을 모두 개방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레어 앞에 있던 꽃밭들은 한차례 마나의 폭풍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속엔 나의 너무도 고우시고 아름다우신 엄마의 진정한 모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야~! 지금 엄마의 그 눈동자는 너무너무 촉촉하게 보여서 더욱 신비한 것 같아!!" "호호호, 고맙구나 싸이. 그런데 이런 몰골로 있으면 누가 자식인지 잘 모르겠다. 그치?" 조금은 장난기가 담긴 그러면서도 나의 칭찬에 아주 기분이 좋으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신 엄마의 말씀은 나로 하여금 더욱 쑥스럽게 만들었다. 허긴 엄마의 본체 크기나 나의 몸 크기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당연히 그런 말씀이 나오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머리크기로 따지면 내가 훨씬 더 컸으니...............쯥. "우잉, 정말 엄마가 네 엄마 맞어~?........... 헤헤헤." 나 또한 비대한 내 몸으로 조금은 뻐기는 듯이 행동하며 엄마의 어깨에 내 작고 짧은 팔을 얹자 그런 나를 보시며 가볍게 눈을 홀기시는 어머니였다. "어머, 이런 꼬맹이가 감히 이 엄마를 놀려?" 그러시면서도 여전히 행복한 미소로 우아한 손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입을 가볍게(?) 가리시는 어머니였다. "오호호호. 자. 이제 농담은 그만하고 우리 싸이가 진정으로 바람의 기운을 이용해서 하늘을 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어야 되겠지?" "응!!" "잘 들으렴. 우선 네가 며칠동안 훈련한 바와 같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마나를 이용하면 아주 쉬워서 이곳 땅에 있는 마나들 처럼 하늘 높은 곳에도 그런 마나들이 가득 있는데, 그걸 네 몸에 있는 날개들을 이용해서 마법의 힘을 사용하는 것처럼 네 몸을 띄우는 거야. 그러면서 양력의 기운들을 날개 위로 보낼 수 있게 신경을 쓰고 부력의 힘으로 네 몸을 띄우면서 네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날개를 반대 방향으로 틀면 아주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꺼야. 이건 말보다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니까 우선 비행마법을 시작해 보자. 아마도 이건 이제 능숙하게 할 수 있을꺼야? 그치~? 싸이야~!" "예~!!" 이렇게 넌지시 물으실 땐 내가 큰소리로 대답하시는 걸 매우 좋아하시는 엄마이다. 그래서 난 어머니의 말씀대로 안 아빅터(An aviator) 라는 용언으로 된 비행마법을 떠올리 며 나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아직은 나의 날개로 전해지는 마나의 양은 매우 적어서 근육의 힘을 발휘해서 하는 나의 날개 짓은 아직까진 나에겐 매우 힘이 들었다. 단지 급속 강하나 급속 회전등만 난 아주 빠르게 익힌 것뿐인 것이다. 파닥파닥. "헥헥, 엄마 날개 짓 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이미 내 앞으로 우아하게 떠서 날아가시는 엄마를 향해 겨우 날개를 파닥거리는 난 죽을힘을 다해서 움직이려고 애를 썼다. "호호호, 싸이야!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니까 그렇지! 천천히.....아주 조심스럽게 허공에 있는 마나들을 내 몸에 담듯이 천천히 움직여야지." 나에게 보란 듯이 아주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시는 엄마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난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흔들어대는 날개를 떨어질테면 떨어져봐라 하는 심정으로 천천히.....그러면서도 주위에 나와 친숙한 기운들을 날개로 감싸듯이 살며시 흔들었다. "헉헉, 이렇게요?" "호호호,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어쩜 우리 싸이는 이렇게 빨리 배우나 몰라! 자~! 싸이야~! 그다음엔.....의지로 행하는 기운들이여~~! 나에게로 오라~~! 윈 프럼하츠~!" 허나, 어머니의 칭찬과는 달리 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비록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내 몸과 날개였지만, 내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느라 그분의 말씀을 미처 다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마지막에 엄마가 내게 전해주려고 하신 용언마법과는 조금은 상이한 기운들을 소환하는 방법을 머리 속으로 열심히 되뇌이며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이내 나의 몸을 갑자기 환한 빛으로 감싸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으키면서 그 빛과 함께 나에게 다가오는 기운들을 서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기 위해 가녀린 나의 날개를 틀 때마다 나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내가 날개를 잠시 접으며 조금씩 이 새로운 기운들이 내 몸에 달라붙는 현상에 열중을 하자 이내 난 어디선가 나타난 듯한 자유스러운 기운을 가진 바람들이 나를 살며시 감싸면서 내 몸을 더욱 자유스럽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그래서 내가 왜 바람의 종족인 실버 일족 의 피를 타고났는지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크크크. 내가 누군가........... 난 그래도 제법 빠른 속도로 학습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해서 난 어제 저녁 늦게 까지 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며 그대로 행하자, 역시 난 바람의 기운을 능숙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단지 요 며칠동안은 내가 미처 나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던 이 기운들을 마구 무시하고 그저 내 몸의 수평과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다 보니 나의 의지에 따라서 다가와야 할 바람의 기운들이, 미처 날 도와주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생각이 지금 절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에구......이 바보......멍청이......이렇게 쉬운 걸 가지곤..................쯥' 그러면서 난 여전히 내 앞에서 우아한 날개 짓으로 몸 안에 바람의 기운들을 능숙하게 받아들이시며 천천히 선회를 하시는 엄마의 꽁무니를 쫓아서 열심히 새로운 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시 이 투명한 느낌의 기운들이 나의 몸을 살며시 감싸 안으면서 나의 의지대로 내 몸을 이끄는 느낌은 가히 정말로 짜릿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계속해서 느끼며 이 감미로운 기분은 그동안 하늘을 날면서 내가 겁먹고 두려워했던 마음들이 한순간 실타래가 풀리듯이 술술 풀려 나가는 것 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건 오로지 나의 새로운 혈육인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 를 빨리 보고 싶어서 하는 짓이 아니라고 뻔뻔스럽게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역시 난 그분들이 너무도 보고 싶어서 이렇게 마음을 활짝 열고 대지의 기운에 순응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야! 이게 바로 바람의 기운들이구나." 난 내 몸을 비행하는데 필요한 일정량의 마나들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일으킨 음양오행진기 에 따라서 내 몸 안에 들어왔다가, 이내 내 몸을 감싸면서 둥근 막을 형성시키는 바람의 기운들을 느끼며 그 순간부터 화려한 곡예비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마치 나랑 친구하자고 내 몸을 마구 쓰다듬고 부비는 가느다란 실뭉치들이 내 몸을 꽁꽁 묶고 있는 착각이 일만큼 자연스러운 바람들의 스킨쉽이었다. "싸이야! 그러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마구 까부니?" "헤헤, 엄마 걱정하지마. 지금 내 몸을 감싸고 있는게 보여요?" "호오~! 벌써 바람의 기운들을 느꼈니?" "응, 이게 내 몸에 들어왔다가 지금처럼 날 감싸기 시작하면서부터 싸이는 하늘을 나는 게 아주아주 쉬워요. 헤헤헤" "호호호, 역시 대단한 내 아들이야. 오호호호홍" 엄마의 웃음소리가 하늘높이 울려 퍼지면서 난 이내 아래를 감상하는 여유를 부리면서까지 또다시 신나는 모험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야호. 초음속 제트기다. 끼야아."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아래로 급강하를 하면서 내 몸의 날개를 몸에 바짝 붙이고, 하늘에서 나의 몸의 괘적을 8자로 만들며 스카이다이빙을 하듯 멋진 곡예를 마구 해대기 시작한 나는 간간히 날개를 활짝 펴서 균형을 잡고, 다시 하늘 높이 떠오르려고 생각에 날개를 두 세번 움직이면 이내 날 감싸고 있던 바람의 기운들이 그런 나를 도와서 매우 빠른 속도로 내 몸을 하늘 높이 띄어 주고 있었다. 또다시 온몸의 힘을 쪽 빼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일들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난 지금 나의 커다란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연습 아닌 연습에 열중했다. 이건 숫제 새로운 장난감을 가진 어린 아이의 놀이와도 흡사했던 것이다. 헤헤헤헤. 멀리서 이런 나의 모습들을 지켜보시던 엄마의 얼굴(?)에선 이내 작은 코웃음이 나오면서 그런 나를 매우 사랑스럽다는 듯이 지켜보고 계셨다. "호호호, 역시 저 녀석은 내 아들이지만 괴물이 확실해.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과거 어린아이인 저 녀석을 인간들이 칭찬처럼 말하던 괴물 같은 능력은 내 위대한 피를 이어받아서 그렇거니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드래곤으로 변신을 한 상태에서도 저런 괴물 같은 짓을 하는 걸 보면 과거 우리 실버 일족에 전해내려 오는 어둠의 제왕을 봉인시킨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 님과 저놈이 하는 모습은 똑같은 것 같아. 어쩌면 저리도 똑같은 것인지. 오호호호홋. 하지만 헤리아킨 님과 저 녀석이 다른 게 있다 면 싸이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드래곤으로 변신을 한 것이라는 건데....... 어쩌면 이건 대단한 신기록이자 다른 종족이 드래곤으로 변신을 처음으로 한 놀라운 일이야. 어쩜 자신의 본모습이 아닌 드래곤으로 변신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만에 새로운 우리 종족의 몸은 마치 제 몸 인양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저런 괴물 같은 짓거리를 하는 지는 아직까진 잘 몰라도 이제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신룡 헤리아킨 보다 더 훌륭한 드래곤이 내 아들이라고 온 동네에 소문날거야...... 그럼 누가 감히 날 갈구겠어. 오호호호. 이건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니까. 더구나 엄마의 절친한 친구이자 골드 일족의 수장인 이플라네 아줌마도 더 이상 자기 아들자랑은 못 할꺼야!! 두고 봐~! 아마 그 오만한 골드 일족의 콧대가 우리 싸이를 보는 순간에 납작해질걸? 그럼 우리 싸이가 할머니한테 더욱 사랑 받겠지? 그럼 난 과거의 잘못은 모두 용서를 받고, 지금처럼 우아한 공작 부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 싸이를 훌륭한 이 대륙의 용사로 만들어서 더욱 화려한 유희를 만들며 살게될 꺼야. 그럼.....캬아아아아하 아이~! 신나!!" 정말로 철없는 엄마의 어마어마한 꿈에 부푼 상상 속의 나래였다. 정작 아들을 강제로 드래곤(?) 화 시킨 엄마가 누구인지는 그새 까맣게 잊으셨는 듯이........ 하지만 나처럼 착한 아들은 당연히 이런 부모의 소원정도는 충분히 들어줘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맘 깊은 곳에 대단하게도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난 앞으로 나의 남은 생이 더욱 화려하면서도, 온통 고생바가지라는 것을 어쩌면 이때부터 절실히 깨닫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신룡의 후예 - 제 26 화. 거대한 헬요리네 산맥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작은 계곡엔 지금도 연신 맑은 물소리를 내며 주위로 은은히 물안개를 퍼트리고 있는 데이지 폭포가 그 멋진 비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산 중턱의 넓은 정원에선 지금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는 화려한 꽃밭이 주위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화려한 꽃밭의 정중앙에 자리한 작은 테이블에선 지금 우아한 30대의 귀부인이 화려한 차양막 그늘아래에서 누군가에게 주려는 듯이 아주 아기자기한 모습의 어린아이 옷을 손수 바느질하며 공을 들여 만들고 있었다. "에효~! 한심한 년. 고작 그런 놈팽이한테 시집보내려고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정성껏 키운 줄 아나. 그래도 내 딴에는 사내놈들을 같잖게 보는 모습이 아주 대견해서 독립을 시켜주었더니. 뭐?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 기사가 마음에 들어서 결혼을 해야겠다 고....뿌드득.....내 이것을 당장에라도 찾아가서 머리끄뎅이를 잡아 데리고 오고 싶지만 그래도 제 딴에는 고르고 고른 놈이라서 내가 참고는 있건만.......... 에효~~~! 고작 메르카 왕국의 공작부인이 되서는 이젠 이 에미도 잊어버리고 애 하나 낳곤 일절 소식도 없이 제 혼자만 알콩달콩하게 살고 있다니. . . 에효~! 이 천하에 불효막심한 년." 조금은 뭔가 섭섭한 듯한 귀부인의 말투와 그 속에 담긴 딸에 대한 애뜻한 정이 물씬 풍기는 말들이었다. 난 귀부인의 한탄을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다가 드디어 작은 용기를 내어서 수풀에 숨겨진 내 몸을 일으켰다. 그 뒤 내 주위의 모든 기척들을 지우고 재빨리 그분의 뒤로 다가가서는 작은 두손으로 그분의 아름다운 눈을 덥썩 가렸다. "헤헤헤, 내가 누구~게?" "헉, 누. . . .누구냐?" 깜짝 놀라시는 듯한 귀부인의 고함소리였다. 한순간 주위의 공기들을 싸늘하게 만드는 그분의 고함에 난 매우 놀란 척을 하면서 급기야는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구 울려고 했다. 실지로 내 몸에서 나의 이성을 가끔씩 갈구는 본능이라는 놈이 이때 엄청 놀랐다고 내 머리 속으로 위급신호를 마구 쏘아 보내주었었다. 그만큼 작게 외치신 듯한 목소리 속엔 감히 범접 못할 위엄이 넘쳐흐르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흐윽, 으. . .으아아아앙" "아. . . 아니 . . 여기가 어디라고 호비트!! 그것도 꼬마아이가 나타난 거야?" 깜짝 놀라신 귀부인의 의문에 찬 신음성은 더욱 나의 완벽한 서러움에 복박친 눈물을 흘러내리게 만들고야 말았다. "흐아아아앙. 할머니 미워~!!" 이제는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마구 두발로 땅바닥을 밀치며 울부짖는 나를 한참동안이나 내려다보시던 귀부인은 이윽고 흔들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시며 나를 향해 애써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들어 올려 품에 안아주셨다. "아이고. 이렇게 이쁜 사내아이가 어디에서 나타나서 이 늙은 할미의 속을 태우시나!" 크크크. 거의 8,500살이 다 되신 나이로 이렇게 우아한 모습을 한 채 앉아 계시던 분이 낯선 나라는 존재를 향해 이제는 귀여운 손주의 재롱을 보시듯이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손수 닦아주시며 가만히 바라보시고 계신다. 허나 이윽고 무언가 느껴지시는 게 있으신 듯 이분께서 나의 두 눈을 뚫어져라 보셨다. "호~오! 우리 실버 일족에 너 같은 꼬맹이가 있다는 사실은 들은 적이 없는데... 그새 누가 헤츨링을 생산해서 이렇게 훌륭하게 키웠단 말인가?" 난 그땐 잘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트렌스포메이션을 해서 내 몸을 자유 자재로 움직이면서 부터 난 어머니의 피를 확실히 이어받은걸 증명이라도 하듯 실버 일족 고유의 바람의 기운 을 내 눈속에 담고 있었다. 모든 드래곤들이 그렇듯이 자신들만의 고유의 기운을 눈에 담고 있어서 지금 내 눈엔 실버 일족 특유의 바람의 기운이 강하게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런 의문으로 작전을 망치면 안 돼.........................!! "으아아아아아앙..........흑! 흑! 흑!" 난 할머니의 이런 물음엔 대답도 않고 오로지 작전대로 더욱 우렁차게 울기만 하고 있었고, 이내 유치하기가 도를 넘어서는 작전대로 나의 어머니가 우아한 모습으로 날아오시면서 할머니를 향해서 고함을 지르셨다. "감히 누가 나의 사랑스런 아.기. 싸~! 이~! 를 울리는 거얏~!!" 온 계곡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소리에 깜짝 놀란 할머니는 이내 나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시더니 조금씩 가까워지는 혈육의 목소리에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으셨다. 허나 금새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시며 꽥하고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셨다. "뭣~이라~~?! 무.엄.하.다~!! 감히 실버 일족의 수장인 나의 거처에 허락도 없이 찾아와서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네년은 누구냐?" 마치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이 외치시는 할머니의 고함엔 이미 년이라는 고유명사가 들어 있어서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허긴 아직까지 엉엉 우는 척 연기를 하는 나의 감쪽같은 모습에 당황 하시면서도 그런 나를 꼭 껴안고 일어나신 것만 봐도 나와 엄마를 얼마나 반기는 마음이 크다는 것이 빤히 증명이 되고 있었다. "흥, 그러는 당신은 누군데 나의 어머니의 거처에 그토록 태연스럽게 있는 것이지?" "흥, 요년, 감히 이 에미를 속이면서 까지 이렇게 찾아온 속셈이 뭐냐? 그리고 이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한참 할머니를 째려보시던 나의 엄마는 급기야 용언으로 화를 마구 내시며 실버 일족의 수장다운 기운을 맹렬하게 일으키시는 할머니의 강한 모습에 고만 꼬리를 내리시면서 귀엽게 투덜거리셨다. "쳇, 도대체 엄만 나이가 얼만데 아직까지 그런 숭.악.한. 모습으로 계시는 거예요?" 오히려 뭐 싼 놈이 뭐 낀 놈 나무란다고 나의 엄마의 명연기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흥, 근 2,000년이 넘도록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고 옥이야 금이야 하며 고이 키워놨더니 고작 인간 사내놈한테 홀라당 넘어가서는 집안의 가보를 훔쳐 달아난 주제에 아직까지도 그 죄를 뉘우치지는 못할 망정 큰소리를 치다니..에잉, 내 딸년만 아니라면 이걸 그냥 화악~~!!" 위험했다. 진짜로........진짜로 위험했다. 내가 할머니의 품속에서 지금 느끼고 있는 이분의 엄청난 기운은 엄마의 가녀린 모습을 한순간에 한줌의 재로 만들어 버리기에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나설 수밖에. "으앙. 싫~어~! 싫~어~!! 싸이는 누가 싸우든지 간에 서로 미워하면서 싸우는 건 싫단 마랴~!" 고함을 꽥지르면서 할머니의 따스한 품으로 더욱 깊게 파고드는 능청연기에 마구 부비부비를 남발하는 나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나 황당 하시다는 듯 더욱 힘주어 안아주시던 외할머니는 이내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고 흐느끼는 나의 고함소리에 정전협상을 하듯이 그렇게 서로 조금은 살벌한 눈초리를 나누시면서 조금씩 그리고 한발자국씩 양보를 하셨다. '헤헤헤. 그럼 다 된건가?' 역시 지금 내가 생각해도 난 참으로 사악했던 것 같다. 이렇게나 할머니의 품이 따뜻하다니.................쿠쿠쿠. "이야~! 그럼 할머니~!! 이게 바로 할머니가 싸.이. 주려고 만드신 옷이야?" 조금은 유치한 듯이 보이는 이 옷은 그러나 자세히 보면 한 뜸 한 뜸 정성이 물씬 들어간 할머니의 진한 애정을 확실히 느낄 수가 있는 나에겐 매우 소중한 옷이었다. 그건 할머니의 손주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고지순한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옷으로, 나를 직접 한번도 보시지 못하신 분이 오로지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내게 꼭 들어 맞는 훌륭한 옷을 만드신 나의 외할머니셨다. 난 이내 할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할머니의 정성이 물씬 풍기는 옷을 들고 너무도 기분이 좋아 재롱을 떨기 시작했다. 내 생애를 통틀어 어디 이런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단 말인가?! 솔직히 난 그 당시 감동을 무지 먹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이 옷이 나한테 잘 어울리냐는 듯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나에게 더욱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얼굴이 다가왔다. "에고, 우리 귀여운 싸이! 그렇게 그 옷이 마음에 드니?" "응, 지금처럼 가만히 이렇게 꼬옥 안고 있으면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물씬 풍기는 걸!" 정말로 이런 선물은 난 처음으로 받아본 것이다. 정말로.........해서 난 최대한 애교를 부리기 위해서 모든 이들이 껌뻑 넘어가는 나의 비장의 필살기인 초롱초롱 대작전을 전개하자 더욱 환한 미소가 눈부시는 할머니의 얼굴엔 내가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옷을 가슴에 꼭 껴안고선 아주 행복하다는 표정이 하나가득 담겨져 있으셨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미소엔 더욱더 나에 대한 애뜻한 손주사랑이 녹아 있었다. "호호호, 그래. 우리 귀여운 내 새끼~! 그럼 이 옷 말고도 저기 방에 들어가면 네 옷이 가득 있을테니 어서 가보렴." "정말? 야~호~옷~!" 난 이쯤에서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실 넉넉한 시간을 드리기 위해서 급히 할머니가 가리키신 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그런 나의 뒷모습을 인자하게 바라보시던 할머니 는.... 내가 사라지자마자 어머니를 향해 무서운 눈길로 그분의 기를 팍 죽여버렸다. "어떻게 된 일이냐? 저 아이는 분명히 내가 여기서 듣기에도 괴물 같은 천재성을 자랑하는 메르카 왕국의 태자인 싸이벨리 메르카 인데. 어째서...어째서 인간인 저 아이의 눈에 우리 실버 일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지? 저 아이는 분명히 드루시안이라서 그런 건 꿈도 못 꿀텐데?" "호호호, 아닌 척 하시면서도 저에 대해선 이미 다 알고 계시네요." "흥, 그럼 고작 2,000살이 채 넘지도 않아서 인간들에게 사냥 당하기 딱 좋은 내 딸년이 인간들의 세상에 나가서 하찮은 그들과 유희를 즐기는데 어찌 에미로써 신경을 안 쓴단 말이냐. 난 단지 지금 저 아이에게 일어난 일들이 무엇 때문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에휴~! 그건 그렇게 째려보셔도 설명 못해드려요. 단지 4년 년 전에 저 아이를 가지면서 태몽이라는 걸 꾸었는데." 잠시 고개를 살포시 내리며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는 할머니의 무서운 시선에 두손을 꼼지락거리시는 엄마이셨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더욱 무서운 눈빛으로 압박하시는 할머니...............! "그랬는데?" "근데 그 꿈이 하도 황당한 것이라서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단지 꿈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천족이 왠 남자를 소중하게 안고선 그의 몸을 안고 저한테 날아오는 꿈을 꿨었는데." "천족? 분명히 천족이라고 했느냐?" "예, 하얀 날개가 아주 인상적인 천족이 확실해요. 제가 아무리 어리다고는 해도 엘프처럼 생긴 천익족과 천계의 종족인 천족도 구분 못할까봐서요. 흥. 암튼 그 천족이 나에게 와서는 그 남자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사라지면서 꿈에서 깨어났는데 바로 저 아이 싸이를 임신하게 되었어요. 전 그꿈이 너무도 생생해서 혹시나 했더니 정말로 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신비로운 힘이 온몸에 가득 들어있었고, 전 단지 용언마법으로 그런 힘들을 조금씩 일깨워주기만 했단 말예요. 정말이라니깐요. 더구나 얼마 전에는 드루시안으로선 처음으로 드래곤으로의 트렌스포메이션을 성공시켰다구요." "뭐?.....뭐야~? 드래곤으로의 트렌스포메이션? 아니 이것이.............으드득........ 네가 정녕 정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감히 천한 드루시안 따위를 우리 용족으로 변신을 시키다니...............꾸욱. 에휴~~ 이 맹추같은 것. 제아무리 첫 자식이라서 매우 소중하다고 애착이 가도 그렇지. 유희 도중에 그런 큰 일을 저지르면........그러다가 나중에라도 다른 종족 중에 누군가가 그 일을 알게 되면 어쩌려고 그런 허무맹랑한 일들을 벌이는 것이냐. 이 원수덩어리야~!" 퍼억. 아얏. 코옹. 으흑. 역시 매서움을 가장한 따뜻한 애정의 손길이 엄마의 머리를 잠시 쓰다듬었다. "쳇, 엄만 괜시리 나만 구박하고 그래. 더구나 드루시안들은 인간과 똑같아서 감히 우리 용족으로 변신은커녕 용언마법도 못하는데..... 내가 무슨 큰일을 저질렀다고." "아니 이것이 그래도. . . .!!" 엄마의 톡 쏘는 대꾸에 급하게 안색을 바꾸시며 크게 혼을 내시려던 할머니는 갑자기 엄마의 말속에서 떠오르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뜨시며 또다시 도저히 믿지 못하시겠다는 듯이 어머니를 노려보셨다.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럼 우리 싸이가 아니 저..저 드루시안인 저 녀석이 그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벌였단 말이냐?" 급히 나의 이름을 말하며 애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씀하시다가 엄마의 사나운 눈길을 의식하시곤 이내 표정을 삭막하게 바꾸셨다. 그러자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할머니에게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시곤 말을 이어갔다. "예, 더구나 처음으로 변한 자신의 몸을 제대로 못다루기에 제가 옆에서 도와주려고 했더니만..............................글쎄...................자기혼자서 이 대륙에 존재하는 다섯 가 지의 마나들 을 자기 몸에 받아들이면서 엄마도 얼마 전에 이룩한 경지를 단번에 해치워 버리는 통에 내가 놀란 걸 생각하면.....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려요." "뭐? 다섯 가지 정령들의 기운들을 제 스스로 받아들였다고? 이럴 수가. . . ." 외할머니와 엄마의 대화를 몰래 엿듣던 난 다섯 정령의 기운이라는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와 그런 모습을 보시면서 도저히 믿지 못하시겠다는 표정으로 내가 숨어 있는 곳을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눈길에 그만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헤헤헤. 할머니! 이 옷 나한테 잘 어울려요?" 잠시 할머니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성이 있는 나로서는 급하게 갈아입은 옷을 선보이면서 나타나자 할머니는 금새 표정을 바꾸시며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호호호, 우리 싸이가 이 할미가 만들어준 옷을 입으니까 더욱 훤한 인물로 변했구나. 이리 오렴. 우리 아기." "에헤헤헤헤" 쪼르르르르. 덥썩. 부비부비. 난 할머니의 품으로 쪼르륵 달려가 마구 안기며 재롱을 피웠다. 아무래도 내 생애 최초의 할머니이시기에 난 다시 한번 더 할머니의 진한 애정을 느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호호호, 엄마. 우리 싸이가 할머니 품이 이 에미 품보다 더 좋은가 봐요. 그쵸?" "아무렴, 너 처럼 어린 것 보단 넉넉한 이 할미의 품이 훨~씬 낫지! 그렇지 아가야!" "웅, 맞아~!! 할머니 품에선 향긋한 꽃내음이 가득 나는걸." "오호호호. 거봐라. 내가 뭐라던?" 난 엄마의 조금은 째려보는 듯한 눈길을 혀를 쏙 빼물며 외면하면서 어머니보다 파워가 월등하게 쎈 할머니의 품에 안겨서 헤헤거리며 드디어 어머니와 나의 작전대로 크게 화를 내시며 문전박대 당할 줄 알았던 외할머니와의 만남을 이렇듯 수월하게 이루어낼 수 있었다. 에르킨 갈리아스. 이 이름은 지금도 용족, 즉 드래곤들의 사회에선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의 이름이다. 바로 그녀.....(?)는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의 단 하나뿐인 친손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였기에 이 천년 전 500살 연하의 남편인 갈릴네오를 만나기 전까지 그녀에게 청혼을 한 드래곤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었다. 일설에 따르면 그녀의 갑작스런 결혼 발표로 인해 목을 맨 용족도 여럿 된다고 전해져 오기까지 했던 그녀는 정말로 한 미모와 지성을 갖춘 대단히 아름다운 실버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남자(?)....특히 같은 드래곤 종족 중에서 남자라면 이상하게도 대용 기피증을 심하게 보이는 존재로 모두에게 알려져, 신기하게도 5.000년 가까이 그녀의 마음을 휘어잡은 남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지금도 그 이유를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는 아직까지 드래곤들의 사회에선 가장 큰 미스테리 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그녀를 더 이상 노처녀로 늙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위대한 고룡들로 구성된 용족 장로회에서 그녀를 결혼시키기 위해 문의성+독촉성의 마법통신이 난무를 했겠는가?! 허나 그녀는 그런 마법통신들을 일체 거절하며 홀로이 유유자적을 즐기는 매우 특별한 존재로 남들에게 비춰졌었다. 조금은 독하디 독한 화려한 솔로의 예찬자로 소문난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에르킨 갈리아스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드래곤들에게 아주 놀라운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 한동안 그일로 인해 드래곤들의 사회에선 이 세계의 종말론이 나올 정도로 모든 뭇 남성들의 심한 무력감과 자아상실감을 몰고 또다시 그녀의 신변 문제로 용족 사회에서 핫이슈 또는 태풍의 눈으로 부상을 한 적이 있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건 한마디로 자신들 보다 못한 아주 괴팍하고 지지리도 못난 드래곤과 그녀가 결혼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또한 드래곤들 사회에서 이렇게 강한 파장을 몰고 나타난 여인은 일찍이 오직 그녀뿐이라는 노룡 부안니키우스의 실의에 빠진 어린 드래곤들을 위한 일장연설 중에서도 어쩌면 노룡인 그의 마지막이 될 뻔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아마도 에르킨은 모성애가 무척이나 강한 여인 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도저히 드래곤으로썬 용납이 안되는 그...빠드득... 말썽꾸러기에 모든 드래곤들의 수치인 갈릴네오 녀석과의 결혼은커녕.........우리 장로들이 항상 생각만 해두고 있던 동족의 암살일호인 그녀석과의 만남은이루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우린 조금은 그녀의 결혼에 겸허하게 대처해야만 한다........뿌드득. 절대로 우리가 못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컥" 라는 의문성이 조금 생기는 말들을 남기며-이빨을 새롭게 틀니로 바꾸면서- 까지 발표한.............조금은 미심쩍지만 그로 인해 더욱 그녀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말을 끝으로 그는 잠시간의 심장마비에 의한 마나의 공허상태로 긴 요양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한마디로 다른 실의에 빠진 어린 드래곤들의 울분을 확실히 종결시키고자 억지로 울분을 삭히는 말을 남기며 심장마비로 죽다 살아나는 헤프닝을 벌이는 추태를 보인 이일을 보더라도 그녀가 다른 드래곤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대단한....... 영향력이 큰 존재이다. 또한.................노룡 부안니키우스의 말이 맞다. 그녀는 모성애가 지극히 뛰어난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짜로 대단한 실버 일족의 유일한 수장이다. 더구나 그런 그녀가 다른 종족들의 남자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은 있어도 대용 기피증 같은 것은 뭐라고 꼬집어서 말하기 싫을 정도로 눈꼽 만큼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그동안 숱한 드래곤들의 대쉬를 콧방귀를 뀌면서 거부한 것도 알고 보면 그녀의 강한 귀족 정신이 한 몫을 톡톡히 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기 시작한 실버 일족의 수장 자리를 고작 웜급의 드래곤인 그녀가 이어 받았겠는가. 그런 에르킨이다 보니 보통의 다른 종족의 드래곤들의 청혼과 대쉬는 그저 우습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오직 자신보다 하나라도 월등한 존재에게 시집을 가겠다는 스스로의 용언 약속에 의거해서 그동안 노처녀 드래곤의 수모를 기꺼이 감수한 대단한 여장부였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드래곤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던 갈릴네오와의 결혼발표 이후에 가져온 드래곤 사회의 일각에 끼친 영향은 너무도 막대해서 블루 일족의 전대 수장의 긴급 전기 충격요법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날 심장마비로 쓰러져 서 죽은, 황당하다 못해 드래곤 역사상 수치로도 기록될 일들은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다반사 로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그녀 에르킨 갈리아스와 자신보다 한참이나 연하인 갈릴네오와의 사이에 태어난 유일한 핏줄인 엘렌키아니는 그 덕분에 다른 또래의 헤츨링들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왕따를 당해야만 했다. 왜 이런 일들을 설명해야만 하는 것일까? 재미도 없고 따분하기만 한 이런 일들을..........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한가지 넘겨짚고 가야만 하는 일은 바로 갈릴네오라는 문제의 실버 드래곤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그.....갈릴네오라는 ............문제의 드래곤....... 그는 신룡 헤리아킨이라는 존재가 태어난 위대한 실버 드래곤 일족 중에서, 그리고 다른 드래곤 일족들에게서도 가장 수치스러운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남들보다 월등한 호기심과 그를 뒷 받쳐주는 뛰어난 창작력으로 인해 한때는 헤츨링 시절부터 초천재 드래곤이라는 칭호를 받던 정말로 기대가 총망 되던 그런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그런 초천재들이 항상 가지게 된 남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이 문제였다. 갈릴네오 그는 항상 생각하는 걸 매우 즐겼다. 그러기에 그의 주위엔 언제나 자신들과는 너무도 다른 놀라운 기행들을 벌이는 그를 염두에 두고 추종하는 무리들이 제법 많았다. 하기에 그는 언제나 남들에게 항상 요주의 인물이었고, 한때는 그의 심한 장난들도 언제나 무난히 웃음으로 받아 넘겨주어야만 하는, 어찌보면 드래곤 사회에서 매우 관대한 취급을 받던 인물 중 으뜸인 존재가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드디어....................매우 뛰어난 한가지 마법 병기를 호기심을 못 이겨 개발해 내면 서부터 이 땅에 있는 용족들과 유사인종들 사이에 엄청난 유행을 창조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위대한 발명은 용족들 뿐만 아니라 이 물질계에 살고 있는 모든 종족들이 그의 발명품에 매우 열광을 하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조건 따라하는 최첨단 유행의 핵이 되었고, 숱한 드래곤들이 갈릴네오의 뒤를 언제나 따라만 다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의 추종자들이 너도나도 그가 만든 발명품을 모방해서 만들 게 된 일이 원인이었다. 그러나........그게 바로 문제가 된 것이다. 그 얼마나 위대한 발명이었던가~!! 언제나 다른 종족들로 변신을 해서 유희를 즐기는 드래곤들의 삶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결과에 만족감을 느끼게 만들어주던 갈릴네오의 위대한 발명품은 이곳 물질계 중에서도 최고의 종족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카빌라이 대륙의 모든 곳을 휩쓸면서, 정말로 엄청난 인기와 꿈의 선망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과거에 그가 태어났다면 성마 전쟁에서 거의 멸족에 가까운 타격을 용족 자신들은 절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칭찬도 무수히 받았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언제나 최강의 존재였다. 인간이나 유사 종족으로 변신을 해도 변신한 종족들 중에선 최고의 영웅들은 자세히 알고 보면 모두가 드래곤들이었다. 인간들 사이에선 이런 입소문들이 있다. "몇백 년만에 하나 나타날까 말까한 위대한 영웅이다." 이건 바로 드래곤들이 벌인 유희로 인해 생긴 말이었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인간들은 어떤 한 인물이 영웅의 기질이 보이면, 몇 백년에 한번씩 이 땅에 나타나는 영웅들을 비유해서 그를 칭송하려는 마음에 이런 말들을 하면서 후세에 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 유행어까지 창조시킨 드래곤들이 최강의 존재로 이 땅에 군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그들의 튼튼한 육체와 그 육체를 구성하는 무한의 능력에 가까운 마나들의 결정체를 자신들의 몸으로 구성을 시킬 수 있었던 이유가 으뜸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하제일이라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진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갈릴네오의 위대한 발명품에 의해 깨지게 되어 버린 것이다. 헤비 워커...............레지나!! 이 레지나라고 하는 헤비 워커는 스스로의 자아가 아주 뛰어난, 놀라운 갈릴네오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다. 한번 주인을 모시면 오직 그 주인에게만 굴복하며 언제나 주인을 다른 위험으로부터 구하기 의해 스스로의 자아의식 속에서 주인을 보호하게 되는 정말로 위대한 가디언.........!!! 하지만 어느날. 웜급을 넘어선 4.500살의 레드 드래곤이 그만 살해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헤비 워커의 정당방위로 인해 인간을 주인으로 모신 레지나 급의 헤비 워커와 그 주인에게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모든 드래곤들은 정말로 그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의 동족 중에서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레드 드래곤이....... 그것도 웜급을 넘어선 드래곤이........한낱 호비트라고 하는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그날은 용족 사회에서는 길이길이 남을 치욕의 날이요. 한때 드래곤들 중에서 최강의 존재로 군림하던 레드 일족의 콧대가 한순간에 먼지로 사라진 날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든 인간이 있는 그 나라는 그순간부터 숱한 드래곤들의 도전장에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했다. 바로. 드래곤들의 보복성이 짙은 도전에 의해서.......... 인간은 위대한 신의 아들에겐 절대로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문제의 인간. 카빌라이 대륙 최강의 검사이자 아직까지 검신으로 추앙을 받던 한 나라의 황제와 그를 모시던 레지나급의 헤비 워커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졌다. 갈갈이 찢기고 금속 한조각 남기지 못한 채. 오직 드래곤이라고 하는 이 세계의 위대한 지배자를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 뒤부터 드래곤들 사이에선 유희 도중에 낳은 자식은 무조건 폐기 대상 일순위가 되어야만 했다. 갈릴네오도 그날의 악몽을 절대로 잊지 못했다. 자신이 발명을 하고 모든 드래곤들로부터 일일이 칭찬을 받던 발명품이 가지고 온 여파는 정말로 그도 생각지 못한 비극이었기에....... 해서 그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엄청난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또다시 이끌고 온 태풍은 말로는 도저히........ 그가 벌인 일들은 차마 입으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민망해서 그에게 한마디라도 좋으니 제발이라며 애원 어린 변명을 원하던 모든 드래곤들은 결국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스스로 드래곤이기를 거부한 그를 그날부터 알 게 모르게 서서히 자신들의 종족에서 배제를 시키기 시작했다. 허나 그는 그런 일쯤은 우습게 여기는 듯 그에 대해 별다른 행동들을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미친 듯이 온 동네를 싸돌아다니며 심한 방황을 해도 자신의 마음속의 짐들을 털어 버리지 못하자 스스로 깊은 실의에 빠져서 은거와도 같은 수면기에 든 그에겐 결국 남은건 초라한 은거였다. 무엇보다 앞으로 자신이 발명할 다른 일들과 가끔씩 벌이던 장난들도 그에게 조금의 유혹들로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는 영원한 은거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 자신도....그리고 다른 싸가지 없는 용족들도............. 그러던 어느 날. 갈릴네오는 자신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둥지를 틀고 있던 드워프들의 마을의 소란으로 인해 긴 잠에서 강제로 깨야만 했다. 이는 그와는 절친한 동지인 드워프들의 왕 뮤즈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벌어진 시끄러운 소란에 긴 잠에서 그만 강제로 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익. 어떤 싸가지 없는 놈팽이가........" 절로 거칠어진 그의 입에서 나온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이 스스로 걸어둔 긴 수면기를 방해한 인물을 향해 순간이동으로 몸을 옮겨야만 했다. 항상 자신의 발명품에 도움을 주던 뛰어난 장인 뮤즈의 처소로 이동을 해야만 했던 그는 사실 알고 보면 드래곤들 중에서도 꽤나 멋있는 의리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는 어쩌면 그의 용생 중 가장 큰 행운이자 구원의 손길일 수도 있는 여인을 만날 수 있었던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감히 자기가 보호해주던 드워프들에게 강제로 레어를 짓게 하고 그들의 뛰어난 공예품을 마구잡이로 갈취하려던 꼬맹이.......이제 갓 성룡이 된 놈을 아작을 내 버린 것이다. 그것도 굳건하게 땅을 디딜 뒷발 모두를 분지르고 한쪽 턱에 붙어 있어야만 할 이빨들을 모조리 날려 버린 것이다. 그리고...................행운의 여신 에르킨 이라고 하는 도도한 콧대의 노처녀를 그는 그곳에서 얼마 뒤 만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한때 그의 열열한 추종자이자 이번에 새롭게 골드 드래곤의 수장이 된 이스란 슈빙의 아들인 이라젠 데릭이 그에게 철저하게 당한 꼬맹이었기에, 드워프들이 있는 곳을 그것도 솜씨가 좋은 드워프가 있는 곳을 직접 소개시켜준 이스란 슈빙이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실의에 빠진 갈릴네오의 레어를 쳐들어 와서 한 바탕 싸움을 벌인 일이 그 일의 시작이었다. 잠시간 서로 대화를 하다, 이미 마음을 닫아 버린 갈릴네오와 서로간의 생사를 놓고 벌인 혈투를 실버 일족의 수장이 달려와서 말린 일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갈릴네오의 새로운 목표가 된 노처녀 콧대 꺽기 대작전은 두고두고 전해져 내려오는 젊은 드래곤들의 최고의 인기상품이 되어 버렸다. 아직은 꿈 많은 드래곤들의 달콤한 꿈을 철저히 짓밟아 버리는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리고...............오늘날 그 둘의 일은 어찌 되었을까?! "휴~~~! 내가 그때 왜 망할 놈의 영감탱이한테 넘어간 것인지...... 에휴......이놈의 망할 영감탱이....." 에르킨은 잠시 과거를 회상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매일 마다 그녀를 뒤따라 다니며 헤픈 웃음을 지으며 순간 순간 보이는 재치있는 행동의 갈 릴네오와 그가 그녀의 레어 전체를 화려한 꽃밭으로 장식을 하면서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의 찬란한 보광을 무대 삼아 벌인 환상적인 청혼에 순순히 넘어간 자신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 이 사건을 두 번 다시 돌이키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에르킨 여사는 손에 든 작은 아기 옷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호호호. 그래도 그 놈의 망할 영감탱이를 못 만났으면 이렇게 귀여운 우리 손주 녀석의 옷도 못 만들어 보았겠지? 호호호호" 역시 우아한 귀부인 차림으로 변신을 한 모습에 걸맞는 여성스러운 모습의 에르킨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아기 옷은 얼마 전부터 그녀가 새롭게 가진 유일한 취미이자 그녀의 행복한 미소의 원인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을 거의 닮지 않고 제 애비를 쏙 빼 닮아서 어딘가 모자란 듯 하면서도 가끔씩 놀라운 천재성을 보이던 그녀의 딸에 대한 기억을 항상 들추면서 사는게 유일한 그녀의 낙이었다. 자신이 아름다운 드래곤으로 항상 받아야만 했던 남자라는...또다른 존재들은 항상 자기 욕심만 채우면 그 다음부턴 여자에겐 일절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에르킨 여사였기에, 그녀가 다른 종족의 어린것들에게 괄시를 받고 살던 사랑스런 딸에게 주입시킨 남성 혐오 사상은 가히 극에 달했었다. 오죽하면 태어나 1.500살이 다 되도록 일 절 사내라는 존재들에겐 신경도 안 쓰고 살던 그녀의 사랑스런 딸이였으니, 에르킨 여사가 주입시킨 사상은 정말로 놀라운 위력을 가져온 결과였다. 헌데, 어느 날 딸의 레어 근처까지 침범한 인간의 기사에게 빠진 한심한 딸년이 고만 사랑에 빠졌다면서 달랑 편지 한 장 놓고 가출한 사건은 에르킨 여사가 지금까지 살면서 받은 가장 큰 슬픔 중 하나였다. 더구나 딸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서 인간의 기사에 대한 뒷조사를 벌이던 와중에 그 인간 기사가 예전에 유일한 드래곤 슬레이어의 칭호를 받던 모리스 제국의 황제와 거의 같은 수준의 검사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에르킨 여사가 동원한 인적, 물적 차원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허나 다행히도 그 검사는 지금 카빌라이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의 단 하나뿐인 대공이었고, 지금의 황제에겐 의좋은 단 하나뿐인 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검사가 에르킨 여사의 딸에게 보이는 애정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근 8.500년의 세월을 살아온 에르킨 여사가 본 것 중에선 가슴설레일 정도로 최고의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드디어 에르킨 여사는 자기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호호호..........."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조그만 고추를 단 하나뿐인 손주 녀석이 초보 엄마인 딸에게 하늘 높이 솟구치는 오줌 세례로 딸을 당황시키던 모습들이 차곡차곡 그녀의 기억 속에 메모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지금............. 에르킨 여사는 지금도 언젠가는 한번이라도 꼭 보게 될 자신의 손자에게 선물할 옷가지들을 정성껏 한 뜸 한 뜸 직접 수를 놓으면서 이렇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비록 하나뿐인 남편이 속을 상하게 해도 언제나 바가지만 긁는 아내가 될 수 없기에, 그녀는 스스로를 다스리고자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손주의 옷가지에 수를 놓고 있었다. 아마도 어젯밤에 꾼 꿈이 지금 그녀를 이렇게 집중시키는 지도 몰랐다. "호호호....싸이라고 했던가? 호호호" 손주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생기는 그녀였다. "호호호. 그 녀석............." 갑자기 귀엽고 사랑스런 손주를 생각하다 불현 듯 인상이 찡그러진 그녀의 뇌리 속엔 얼마 전 페밀리어로 보낸 작은 정령녀석이 손자의 방에 갑자기 생긴 강한 용언 마법으로 된 보호막으로 인해 손주의 방을 들어가지 못하게 된 관계로 자세히는 아니지만, 멀리서나마 붕대를 칭칭 감은 손주가 정령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더욱 그 고운 아미가 찡그러지고 있었다. "에효~! 그러구 나선 도대체 손주 녀석이랑 딸년이 보이지를 않으니........ 에효~! 이 불효 막심한 년. 내가 지 년을 키우느라고 들인 공이 얼만데..... 이 에미가 걱정되게시리 연락도 하지 않고.......에휴~~~! 이 천하에 불효 막심한.....아니지.......으드득........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아니지! 내가 그놈의 왕국을 그냥..........." 귀여운 손주의 안부가 더욱 걱정이 된 에르카 여사는 한순간에 확 하고 치민 분노에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냉큼 달려가 손주를 그렇게나 심하게 다치게 만든 그곳의 인간들 모두를 한줌의 잿덩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해서 움찔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 다시 주저앉아야만 했다. 에이션트급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인 자신의 마나를 몽땅 동원한 브레스로 그곳에 사는 모든 인간들을 확 녹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그나마 옆에서 아들을 위해 마법으로 치유를 시킬 딸의 실력을 믿고 조금씩 분을 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오늘도 여전히 차양막 그늘에 앉아서 손자에게 줄 옷을 정성껏 만들고 있던 여사는, 페밀리어로부터 여사의 레어 근처에 낯선 존재들이 탐지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뇌리를 스친 강한 예감에 의해, 가슴이 두근반 세근 반이 되어선 잠시 뒤 만나게 될 아주아주 귀여운 손주를 생각하면서 조금씩 바늘을 든 손이 잘 게 떨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조금 전 페밀리어가 전해준 낯선 침입자들의 소식은 바로, 여사가 그토록이나 간절히 보고싶어하던 여사의 단 하나뿐인 손주였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그녀석...아마 이 할미가 모른척 냉담하게 대하면 더욱 놀라겠지? 호호호호 아마도 어젯밤에 꿈에 나타나신 할아버지의 인자한 웃음이 바로 그녀석과 나를 만나게 해주려는 꿈이셨던 것 같아. 하지만 그녀석은 인간인데........ 아니지. 하찮은 드루시안일 뿐인데...........' 오랜만에 꿈속에 나타나 현몽을 한 할아버지의 모습과 마지막에 사라지시기 전까지 웃음을 보내시며, 앞으로 잘해보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신룡 헤르아킨의 모습은 지금의 여사를 조금이나마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사의 혼란은 금새 다가온 왠 꼬맹이의 손길에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헤헤헤헤. 내가 누구~~게? 알아 맞추면 뽀~뽀~~!!" "으잉? 아니 이게 누구지?..........왠 놈이냐? 감히 호비트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막 화를 내면서 여사의 뒤에서 기척도 없이 나타난 존재에게 무서운 드래곤 피어를 내뱉던 에르킨 여사는 이내 그녀의 뒤에서 까치발로 발뒤꿈치를 든 채 웃음을 짓던 사랑스러운 손자. 그것도 가까이서 숨결을 느낄 정도로 처음으로 본 손자의 얼굴을 본 순간 너무나도 놀라서 한동안 얼어붙은 듯이 꼼짝도 하지를 못했다. '헉.....싸이?! 이........이 녀석이 어떻게 여기를...........? 어떻게 내 주위에 아무런 느낌도 없이 다가 올 수 있었지?!' 에르킨 여사는 지금 너무도 놀라서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의 정신적 쇼크를 받고 있었다. 에르킨 여사가 누구인가?! 지금 이곳 물질계이자 가장 강대한 존재들이 자리를 틀고 있는 카빌라이 대륙 최고의 강자 중 한 명인 여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이제 고작 4살이 채 안된 여사의 손자라니............너무도 보고 싶었던 손주였다. 물론 하나뿐인 딸이 인간으로 트렌스포메이션을 해서 낳은 손주라 해도, 그리고 용족이 아닌 한낱 하찮은 드루시안일 뿐인 손자라 해도 그녀의 긴 용생 중에서 처음으로 보게 된 손자였다. 지금 그런 손주가 여사의 등뒤에...... 그것도 최강의 존재인 에르킨 여사의 등뒤로 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이다. 이 유일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손자 녀석이 바로 여사를 깜짝 놀라게 만든 녀석이었다. 드래곤. 유사종족 중 최강의 존재들도 숭배를 받고 있는 뛰어난 감각과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존재. 그런 드래곤 들 중에서 최강이라고 손꼽히는 6명의 존재 중 하나인 여사를 너무도 놀라게 만든 이 한낱 하찮은 드루시안 출신의 손자 녀석의 돌출된 지금의 행동은, 가히 에르킨 여사가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 정도였다. 물론 조금 전 페밀리어로부터 손주와 딸이 여사의 레어 근처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미 통보를 받았다. 그후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은근히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던 에르킨 여사 였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목을 속이면서 깜쪽같이 나타난 놀라운 실력의 손자 가 드루시안이라는 사실은 지금 여사의 용생 역사상 절대로 일어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일어나선 안되는 비극일지도 몰랐던 것이다. 해서 에르킨 여사는 매서운 호통으로 모든 종족들이 공포에 놀라 오줌을 지리게 만드는 드래곤 피어 중에서도 '에이션트 급의 드래곤 피어는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지금 눈앞에 있는 손자로 추정되는 녀석에게 확실히 보여주려는 듯이 강하게 그리고 호되게 내질렀다. 허나......... 에르킨 여사는 또 한번 자신의 손자녀석 때문에 놀라운 경험을 해야만 했다. 정말로 약간 그것도 아주 쪼금의 인정을 둔 드래곤 피어라고는 해도 왠만한 웜급의 드래곤들도 사지가 저릴 정도의 수준인 여사의 드래곤 피어를 그녀의 손자는 태연히 받아넘기면서 울먹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어딘가 조금은 수상한 거짓울음 같은 모습으로....... '헉. 어떻게 한낱 드루시안 주제에 나의 드래곤 피어를........그럼 저 녀석이 정말로?"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에르킨 여사였다. 왜 놀랐는지는 묻지 마라. 이건 에르킨 여사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 위의 상황을 유추해 보면, 자신의 이목을 철저히 속이며 깜짝 놀랄 정도로 다가온 손주이기에 , 혹시 자신이 방심을 했었나 하는 생각으로 크게 호통을 친 여사를 더욱 당혹시키고 있는 여사의 하나뿐인 손주는 그 우는 모습마저도 매우 싸랑스러웠다. 그 때문에 지금 에르킨 여사의 한 쪽 가슴은 괜시리 큰 소리를 질렀다는 뼈아픈 자책감과 그러면서도 한쪽 가슴이 무너지는 매우 아프면서도 동시에 뿌듯한 마음으로 여사를 매우 기쁘게 하는 동시다발적인 여러 가지 성질의 방문을 아주 기쁘게 받아야만 했다. '호호호.....너무도 사랑스러운 녀석......' 정말로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면서 마냥 행복한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놀라운 손주의 탄생이자 첫만남이었다. "호호호. 울지 마렴. 이렇게 이쁜 얼굴로 그렇게 슬프게 울면 이 할미가 놀라잖니....... 읏차~! 아이고. 이렇게 이쁜 사내아이가 어디에서 나타나서 이 늙은 할미의 속을 태우시 나!" 에르킨 여사는 눈앞에 있는 귀여운 손주를 번쩍 들어서 가만히 품에 꼭 안아 보았다. 그동안 너무도 보고싶고 걱정이 되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의 따뜻하면서도 향긋한 체온에 흠뻑 취하며 여사는 다정스럽게 손자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 얼마나 보고 싶었던 손자인가. '호호호. 아이고. 귀여워라~!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이쁘구나.......쪼~옥' 너무도 기뻤다. 에르킨 여사의 기나긴 용생 중에서 그녀의 이목을 속이면서 여사의 등뒤로 가만히 나타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가 바로 단 하나뿐인 그녀의 손자라니...... 게다가 머리색깔이 투명하면서도 윤기 있는 금발만 아니였다면 자신의 외모와 너무나 흡사한 손자와 그 손자가 품안에서 귀엽게 칭얼거리는 모습은 지금 에르킨 여사의 가슴깊은 곳에서 행복의 춤을 마구 추어대고 만들고 있었다. 너무도 가슴설레는 손자의 출현과 만남이었다. 그리고............. "아니 뭣이라고? 천족이 너에게....?" "응. 그래서 내가 얼마나 미안했었는데......흑....지금도 그분의 눈물어린 눈동자만 떠오르면 왠지 모르게 내가 그분한테 싸이를 낼름 뺏어 버린게 너무 죄송스럽고 마치 내가 지금도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 들어." 너무도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이 말을 하는 어린 딸의 모습에서 에르킨 여사는 너무도 놀란 사실에 가슴이 설레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그녀도 지금 딸이 꾸었다는 꿈을 똑같이 꾼 적이 있었다. 아마 그게 인간들의 시간으론 채 5년이 안된 세월이 지난 꿈이지만, 긴 용생의 모든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여사였기에, 스쳐 지나가는 꿈으로는 너무도 또렷한 눈물어린 천족의 애원하는 모습과 그걸 냉큼 빼앗듯이 몸으로 덥썩 받아 버린 못난 딸년의 횡포에 에르킨 여사는 꿈속에서도 마구 화를 내면서 뭐라고 꾸중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딸이 하나뿐인 귀여운 손자의 태몽이라면서 들려준 태몽이 지금 또다시 여사의 지난 세월들의 기억 속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부분과 동일하자 여사가 받게 된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큰 놀라움과 신성함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그럼 얼마 전부터 내 꿈에 나타나서 나를 이뻐해주시던 할아버지가........?!" 무언가 폭발하듯 행복함이 물씬 솟구치는 기분의 에르킨 여사였다. '그...그럼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바로?' 무언가 뇌리를 스치며 강한 무언가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분명히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꿈속에 나타나시던 할아버지였다. 그 때문에 여사는 꿈속에서 현몽을 해주신 할아버지 덕택에 못난 남편을 둬야만 했고, 중간계에서 무슨 큰일이라도 생길라 치면 항상 꿈속에서 나타나 미리 위험을 알려주시는 분의 현몽을 깊이 믿고 따르고 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요 근래 들어서 너무도 자주 꿈에 나타났었다. 그런 분이 자신을 어여삐 여기시면서 안아주시며 등을 토닥여 주실 땐, 무언가 강한 의지가 뒤를 따라 왔었다. '그래, 분명히 그때 손자녀석이 태어날때쯤에 나타나셔서 나보고 장하다 라고 하셨어. 그럼?! 혹시 저 녀석이?! 그럼 난 그분의 유지를 이어받아서......... 이젠 떳떳한 할머니............?!' 오호호호홋. 절로 웃음이 나오는 에르킨 여사였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분께 장하다라는 칭찬만큼 큰 영예는 없었다. 그런 분이 인정한 자신의 손자라면...............더이상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게 확실한 놈이 지금 자신의 눈에 실버 드래곤들 중에서도 신룡의 기운을 이어받은 여사의 기운과 동일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물끄럼. 볼수록 윤이 나는 손자의 모든 모습이었다. 손가락하나부터 금발에 살짝 섞인,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정도로 미세하게 섞인 은색의 투명한 머리칼. 그 아래에 올망졸망하게 광채를 띄고 있는 손자의 눈동자와 오똑 선 콧날. 반짝반짝. 너무도 신기했다. 어쩌면 자신을 이리도 쏙 빼담았는지.....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한 손자였다. 그리고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기운을 지닌 자랑스런 손자였다. 8천년이 넘도록 살면서 이런 기운을 지닌 존재는 단연코 처음이기에, 여사는 손자가 더욱 더 사랑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콩. 아얏. 이건 잠시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던 엄마의 갑자기 짓는 행복한 미소와 잠시 입가에 이는 웃음을 가소롭게 여기는 딸에게 내린 응징의 대가였다. 감히 귀족적인 모습으로 우아하게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짓는 엄마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 는 눈빛만 살아있는 딸에게 가한 응징성이 다분한 위대한 실버 일족의 수장으로서의 권위의 매이기도 했다. "오호호호홍. 그럼 저 귀여운 녀석이 진정한 용족으로써의 내 손주......?! 오호호호홋. 으드득.....두고보자!!! 이. 플. 라. 네. 흥흥흥. 감히 똥오줌도 못 가리는 멍청한 손녀 하나로 그동안 내 속을 갈기갈기 긁었겠다~!! 흥." 누군가에 대한 원한에 사뭇친 여사의 지금 눈빛을 감히 어느 누가 받을 수 있으랴~!! 더구나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이제는 자신도 든든한 고추를 단 손자를 가졌다는 남다른 자부심과 그런 손자가 너무도 대견한 할머니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는 에르킨 여사는 옆에서 쫑알거리며, 귀엽게 혹이 난 이마를 매만지는 사랑스런 딸이 오늘따라 더욱 이쁘게만 보였다. "오호호호호. 그래. 이제 나도 당당한 할머니가 되었다. 내가 가진 세상을 모두 다~~ 가지려무나~~~! 내 귀여운 손자야~~~!! 오호호호호홍" 저 멀리 떠있는 하늘의 뭉개 구름도 지금 그녀의 상승된 행복한 기분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 떠있는 듯한 가슴 뿌듯한 할머니의 심정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27 화. 음냐 음냐 쩝쩝 서걱 서걱. 후르륵. 꿀꺽. "아웅~! 잘먹었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쪼르르륵. 쪼옥. 헤헤. "아이구 이쁜 내새끼. 어쩜 이리도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로 밥을 맛나게 먹어서 이 할미를 더욱 기쁘게 만들어 주실까?! 오호호홍." 쪼~옥. "헤헤헤. 이 모든게 할머니한테서 제대로 교육받은 엄마 덕분이지요." 난 너무도 행복해 하시는 할머니와 그 옆에서 할머니의 꽤나 엄격한 식습관으로 인해 눈치를 보시면서 평소보다 더욱 우아하게 칼질을 하시고 계신 엄마를 위해 지금도 열심히 할머니의 비위를 맞추어 드리는 말들을 연발했다. 그리고.......그 뒤를 따라오는 인자하신 할머니의 우아한 미소 속에선 지금까지 그 긴 세월동안 강한 귀족정신으로 무장이 되신 나의 단 한 분 뿐인 할머니의 진실된 손주 사랑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 뿌듯해. 정말로 이분이 내 할머니~~?! 후후후. 정~말 기분 좋~닷!' 그랬다. 난 항상 이런 따뜻하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가지길 꿈속에서까지 열망했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괴로운 현실에 안주하길 거부하는 이상한 본능이 자리 잡고 있었 다. 해서 난 언제나 상상의 나래속에서 내 미래를 꿈꾸며 남들과는 다른 내 현실을 거부하며 보다 더 행복한 꿈들을 꾼 적이 많았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허무할 정도의 치 떨리는 고아라는 현실과 그런 나를 동정하는 이들의 조금은 소외된 눈치가 보여서 난 더욱 거칠 게 세상을 향해 반항해야만 했었다. 그런 나에게 이제야.....비록 인간은 아닐지언정 나에게도 항상 어린 날 보살펴주시고 베풀어주시기만 하는 할머니가 계시다는 사실이 또다른 삶을 살게 된 지금의 나를 너무도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후후후. 정말로 엄마가 평소에 하시던 절제된 귀족부인 모습이 드래곤이라는 존재들의 유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이렇게 할머니와 처음으로 함께한 저녁식사 시간들 속에서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비록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 또한 이젠 드래곤들 중에서도 강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수많은 드래곤들의 으뜸이자 귀족집안인 갈리아스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난 나에게 철저하게 주입식으로 가르치시던 엄마의 잔소리성 교육 속에서도 못 받은 작은 감동을 오늘 저녁 식사를 통해 받고 있었다. 더구나 엄마가 나에게 예전에 들려준 동화책이나 영웅소설에 나온 드래곤의 유희와 그 유희가 몰고온 대륙의 역사들은 정말로 엄청 놀랄 만큼의 부피로 내게 다가왔었다. 이 모든게 어릴 적 내 머리맡에서 잠자기 전에 항상 들려주시던 엄마의 동화책과 그속에 나온, 하나같이 뛰어난 동화 속의 영웅들이 지금도 실존하는 드래곤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나를 감동과 기쁨의 물결로 몸을 부르르 떨 게 만들었다. 아마도......이런 기분에 휩싸인 이들이 팬클럽을 형성해서 자신들만의 스타를 꿈꾸며 따라다니는 것이리라. 이제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용사와 영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더욱 나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인간이든 자신만이 어떠한 세계에서 영웅처럼 칭송받고 대접받는다는건 나이가 적건 많건 간에 상관없이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나 또한 그런 환경에 내가 속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작은 꿈을 꾸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넓은 꽃밭과 집안을 마구 돌아다녀도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으신 채 내 옆에서 일일이 손수 가르쳐 주시며, 웃음을 지으시는 든든한 할머니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이런 기분에 들 게 만들고 있었다. "헤헤. 할머니 이게 뭐예요?" 든든한 저녁식사를 겸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물론 아빠랑 있었을땐 난 항상 이유식과 아주 연한 고기를 잘 게 다진 스테이크 몇 점을 먹었을 뿐이었다.- 제대로 한 난 느긋한 포즈로 할머니가 미리 준비해 주신 침대에 누워 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만히 안아서 자신의 품에 인도를 하시던 할머니는 내가 편하게 누워있으라는 듯 곱게 뻗은 무릎으로 나의 이 큰 머리의 베게를 대신 하시면서까지 나에게 내놓은 한 권의 의미심장한 책은 더욱 나에게 영웅심에 사로잡히게 되는 큰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호호호. 네 어미에게 들으니깐 우리 싸이가 책보는 걸 무지무지 좋아한다고 하던데..... 정말이니~~?" "응. 이 싸이는 할머니처럼 우아한 귀족이 되고 싶어서 책을 무지무지 좋아해..... 헤헤, 근데 그 책은 동화책이 아닌 것 같아요..........!" "호호호. 역시 내 손주라니깐........아이구 이쁜 내 새끼~~! 오호호호홍" 더욱 기쁜 듯이 한 손을 입가로 가지고 가시면서 기분 좋게 웃어 제키시는 할머니셨다. 아~! 얼마나 저렇게 생활을 하셨으면 한 동작 한 동작이 저렇게나 자연스러우실까~?! 정말로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함의 극치이신 분이셨다. 또한 나도 저렇게 항상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강한 압력이 언제나 할머니 뒤에 서 계신 엄마의 따뜻하면서도 걱정스런 눈빛에 실려 있었기에 조금은 부담이 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헤~! 나도 정말 저렇게 행동하면서 살아야 되는거야? 에구구. 우리 엄마 어릴 적에 정말로 고생이 심했겠다....후훗. 시넨은 왕족인데도 그런건 눈뜨고도 못 찾아보았는데....' 꽁. 아얏. "호호. 요녀석. 감히 이 할미 앞에서 그런 한숨을 쉬다니..........." 역시 그 기나긴 생을 헛 사신게 아닌 할머니이셨다. 내가 잠시 생각에 열중하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할머니가 눈치 채지 못하시도록 내쉰 한숨을 이렇게 살짝 쓰다듬듯이 꿀밤을 메기시다니............... "자~! 우리 싸이가 너무 걱정스런 마음이 인 것 같으니깐 이 책은 내일부터 읽기로 할까? 그럼 어디............." 그러시면서도 내 잠자리를 챙겨주시려고 일어나셔서 주위를 꼼꼼히 살피시는 분이셨다. 정말로 할머니의 저런 따뜻한 모습들은 내가 감히 뭐라고 표현 못할 정도의 숭고하신 부모로써의 자식에 대한 내리 사랑의 표본 같으신 모습이었다. 엘렌은 정말로 오랜만에 엄마가 채려주신 저녁상을 받으면서 너무도 기쁜 마음과 착잡한 마음이 동시에 이는 상반된 마음으로 거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식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아들 앞에서 호되게 당할.......말 그대로 엄마로써의 체면에 무지무지 금이 갈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이제부턴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만 할 새로운 그러면서도 오래된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 얼마나 이런 식사시간이 그리우면서도 괴로웠을까? 비록 본체로 돌아가면 이런 관습과 습관들은 문제도 아니지만, 절제된 생활을 하는 수녀도 한 번 맛 본 고기 맛은 금식일을 어기면서까지 그리워한다고 하니........어찌 엄청난 기억 창고가 있는 드래곤인 그녀가 달콤하면서도 육즙이 부드럽게 혀를 감싸는 이 맛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해서 지금 엘렌은 열심히 그러면서도 최대한 우아하게 항상 귀족주의를 주장하며 열변 하시는 엄마의 주의력이 강한 시선을 느끼면서 그녀는 열심히 고기를 썰고 있었다. 더구나 간간히 손자의 식사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눈빛을 빛내시는 엄마의 모습은 자기가 제대로 교육을 못시켰으면 혼쭐을 내실 태세라 지금 엘렌의 눈에 비친 엄마의 눈빛은 절로 공포심이 일게 만드는 걱정스런 마음을 잔뜩 유발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처음 하는 할머니와의 식사에 아무런 부담이 없는지, 아들녀석이 매우 우아한 손동작으로 음식들을 먹는 모습은 가히 그녀가 일 천 년이 넘도록 꾸중을 들으면서 배운 식생활을 월등히 뛰어넘는......태연한 모습으로 엄한 잔소리를 하시는 엄마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모습들이었다. 게다가 뻔뻔스러울 만큼 할머니에게 해대는 방긋 미소 작전과 그 뒤를 따르는 아들녀석의 꿀 발린 아부성 발언엔 더욱 혼미해지는 행복감이 물밀 듯이 밀려와 그 가슴 벅찬 행복감이 물씬 풍기는 그녀로썬 처음보는 엄마의 행복한 미소가 뒤따르기에, 맨 처음으로 엄하신 할머니와 손자가 같이 하는 저녁상을 놓고 걱정하던 엘렌의 마음은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편안해 질 수 있었다. 그러나........ "흥. 네 요년. 하찮은 호비트 기사녀석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감히 집안의 가보를 꿀꺽 하고도 모자라서 이렇게 지저분하게 만들어 왔느냐? 게다가 가지고 같으면 제대로 익히기라도 해야지 요게 뭐냐~! 고작 6성의 깨달음밖에 가지지도 못하고선........" 찰싹. 매서운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면서 엘렌의 고운 종아리에 내려꽂히자 기겁을 하면서도 감히 치유주문을 발현시키지 못한 엘렌은 금새 죽을상을 하면서 엄마의 손을 잡기가 바빴다. "아악.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한번만....제발 한번만........흐윽." "흥. 건방진 년. 감히 어딜 잡는 거야~~!!" 찰싹. 찰싹. 아얏. 촤~악. 흑흑흑. "호~! 이젠 눈물 작전으로.....? 흥. 그걸로는 요번엔 어림도 없다~! 받아라~~! 정의의 매가 나가신다~~!" 찰싹. 찰싹. 휘익. 휘~~~익. 정말로 대책 없는 엄하신 엄마의 사랑의 매였다. 더구나 예전에는 눈물방울만 보이면 금새 그치던 매서운 회초리는 이젠 귀여운 손자를 안겨드린 엄청난(?) 공도 소용없이 한동안, 정말로 한동안 대책 없이 엘렌의 종아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흑흑. 엄마는 너무해~~욧! 내가 우리 귀여운 싸이를 낳느라고......." "흥. 요게 어디서 감히 변명이야~~!...으이구....더 맞아 볼테냐?" "아......아니예요. 무조건 내가 잘못했어..............흑흑" "흥. 내가 우리 싸이만 없었으면 넌 오늘 죽었어~~!. 알아들었냐~~? 에효~! 내가 너같은 대책 없는 년을 낳고도 그렇게 좋아라 설쳤던게 오늘에서야 너무너무 후회가 된다. 아이고 이 등신아~~!! 그래 남들은 이런 보물도 없이 웜 급이면 최소한 그들만의 가전 비법으로 인해 7성 이상의 성취를 취하는데 넌 어떻게 된 게 이런 보물을 가지고도........." 정말로 원통이 터지는 에르킨 여사였다. 어떻게 된 딸년인지 여사의 할아버지 되시는 신룡 헤리아킨님이 마신 발킬마를 봉인하시면서 받은 타격으로 인해 심한 부상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의 필생의 기록들 중에서도 최고 핵심들만 따로이 모아 여사에게 물려준 이 유물을 들고 다니면서 당최 익힐 생각은 안하고, 저렇게 방치를 했는가 싶은 마음에 오늘따라 더욱 매섭게 회초리를 든 에르킨 여사였다. 물론 하나뿐인 딸의 가녀린 종아리에선 지금도 피멍울이 생겨서 여사의 가슴을 더욱 저리게 했지만....지금 여사의 심정은?..... 진짜로 본체로 현신을 해서는 아직 어리지만 다 큰 딸년을 반죽을 정도로 자근자근 밟아놓고 싶은 게 지금 에르킨 여사의 진실된 속마음이었다. 더구나 인간 기사랑 야밤도주(?)를 벌인 딸년이 그래도 그나마 가문의 가보를 들고튀었기에 진짜로 조금은 믿고 있었다. 그저 인간의 모습으로 유희를 즐기고 싶은 어린 욕망에 그랬거니 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딸년이고 그동안 키운 정을 생각해서라도 애미를 위해 그리고 이 다음에 딸년 자신이 이끌 이 위대한 가문을 위해, 간간히 그러면서도 충실히 가문의 비법을 익히고 있으리라고 하나뿐인 이쁜 딸년을 그리도 믿었건만.... 어떻게 집 나갈 때랑 거의 변함이 없는 딸년의 마력 수준은 정말로 여사의 눈엔 형편이 없게 보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 뒤를 이어 내려진 보복성 사랑의 매엔 여사의 진실된 마음과 분노의 끈이 강한 힘을 동반해 담겨져 있었기에 더욱 서럽게 울부짖는 딸의 모습을 봐야만 하는 여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사의 단 하나뿐인 딸년이 그리 약한가? 그건 절대로 아니였다. 오히려 2.500살에서 늦으면 3.000살이 되어야만 웜 급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말 그대로 드래곤들의 긴 일생에서 단 두 번뿐인 탈피. 즉 허물을 벗는 수준인 6성의 용언 마법을 이미 마스터의 수준으로까지 몸에 담고 있는 딸의 강한 모습은, 두고두고 다른 수다쟁이 할망구 드래곤이나 아줌씨 드래곤들에겐 한결같은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뛰어난 여사의 교육방식을 칭찬하게 되는 대상이 되겠지만, 역시 강한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이 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엄마들의 한결같은 막강한 자식 자랑은 지금 여사에겐 너무도 소중했다. 하기에 더욱 강한 딸년으로 나타나길 은근히 기대했던 여사였다.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건 당연하게도 엘렌이라는 딸년의 아버지 갈릴네오 때문일 것이라는게 여사의 눈에 비친 다른 수다쟁이 드래곤들의 확실한 증언이자 확신이었다. 해서 어린 헤츨링 시절부터 또래의 다른 일족 헤츨링이나 그 부모들로부터 받게 된 딸년의 수모는 더욱 이런 모습의 에르킨 여사로 몰고 가게 만들었다. 하기에 지금도 이렇게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표정으로 하나뿐인....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플 것 같은 딸의 모습을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까지 매섭게 호통을 치는 에르킨 여사였다. 하지만 이젠 이쯤에서 혼구녕을 내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정말로 초천재에 가까운 남편과 그 피를 확실히 이어받아서 이미 웜급에 다다른 수준의 어린 성룡이 된 딸년이 있기에 더욱 마음이 놓이는 여사였다. 비록 지금 남편은 거의 스스로를 망치는 돌출 행동으로 여사의 속을 박박 긁고 있고, 얼마전 딸년의 가출과 동시에 자신의 레어에 콕 쳐박혀선 일절 두문불출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손자를 안고 돌아온 딸년과 그 딸년이 낳은 새로운 기대주이자 이젠 여사의 단 하나뿐인 든든한 손주를 생각만 해도 절로 기분이 상승되는 에르킨 여사였기 때문이다. '호호호. 저년. 그래도 지 애비를 닮아서 아~주 똑똑한 년이야~! 호호호. 그러니 아들인 우리 귀여운 손주 싸이 녀석이 고작 다섯 살도 안된, 그래서 똥오줌은커녕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레어 바닥에 누워서 칭얼거리는 다른 일족의 못난 어린것들과는 달리 저렇게 의젓하게 식사도 하고 이 할미를 기쁘게도 해주는 것이겠지~!! 오호호호" 절로 입가에 이는 미소에 따라서 반응을 하는 고운 손을 가진 여사였다. '그래 이젠 저년 보단 우리 든든한 손주녀석을 확실히 가르쳐선 그놈의 망할 할망구들의 콧대를 왕창 꺽어 버려야징~~! 오호호호홍' 너무도 기분이 좋아지는 에르킨 여사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금도 열심히 피멍이 든 종아리를 호호 부는 가녀린 그러면서도 조금은 불쌍한 엘렌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왜 여사는 자신의 손자를 드래곤이라고 꿋꿋이 믿고 있는 것일까? 여사의 손주 싸이는 분명히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한낱 하찮은 드루시안일 뿐인데...... 이건 아마도 뭔가를 강하게 믿고 있는 여사의 깊은 생각과 그에 따른 당연하다는 모습오로 일관하는 할머니다운 태도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런 자신감을 가지게 만들어 준 이가 바로 여사가 평생을 존경하면서 그 모습에 가깝게 다다르고 싶어하는 신룡 헤르아킨의 현몽 때문이었으니 굳이 다른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몰랐다. "우응.....쉬~!" 이건 완전히 습관이 된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깬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이는 지금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왠지 썰렁한 듯....... 하지만 밤이 매우 깊은 관계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든 상황이라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된 데에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벌컥. 고풍스런 문을 활짝 열면서 내가 방밖으로 나가면서 본 이곳은 비록 내가 오늘 처음으로 와서 잠이 든 곳이고, 그런 나에겐 매우 낯선 곳이지만 어딘가 따뜻한 애정이 흠뻑 깃 든 할머니의 미리 준비된, 그리고 항상 나를 위해서 준비된 침실이라는 걸 멍한 정신 속에서도 깨달을 수 있었던 난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이내 바지를 추켜 세운 채 열심히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탁탁탁탁. "헉헉. 이......이게 뭐야?" 난 지금 너무도 급했다. 그리고 너무도 황당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넓게 보이는 복도를 지나면 조금 있으면 문이 나오겠지를 당연히 생각하며 뜀박질을 한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항상 멈춰서면 그 자리인 이곳의 지리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로 이상했다. 그러나 난 뒤돌아 서서 다시 내 방안으로 들어가기는 정말로 곤란했다. 그렇다고 집안에다가 쉬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전전긍긍에, 이마에 실핏줄을 세우며 이미 한참을 참아서 방광이 터질 지경인 오줌보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인 내 몸은 차마 더 이상 참지를 못할 것만 같았다. '으윽. 이거 싸.........겠다........흐윽' 별 수 없었다. 집안에 온통 지린내가 진동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겠는가~!! 급해 죽겠는데........그렇다고 지금 이 나이에 오줌싸개란......? 절대로 안될 말이었다. 흑흑. 주춤. 후다닥. 쏴아아아아악. 거의 작은 폭포수준의 나의 강력한 오줌 줄기들이 결국은 벽을 향해 뻗어나가면서 하얀 대리석으로 된 벽에는 금새 노오란 물줄기와 만난 얼룩들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벽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후. "에~휴. " 부르르. 정말로 개운했다. 해서 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갈 생각이 까마득해서 이렇게 집안에서 졸지에 미아가 되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함이 물씬 밀려왔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뒤로 돌아서서 내방으로 가는 길은 내가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었고, 단지 앞으로의 전진이 무언가 투명한 벽에 막혀있는 듯한 분위기와 그 벽을 뚫고 달려나가면 항상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는, 이 황당하면서도 이상한 현상을 지금 내가 느낀다면 그건 과연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암튼 급한 건 그나마 해결했으니깐.......... "에구구구......찌뿌뚜~~웅" 휴~! 정말로 오랜만에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곤히 잔 밤이었다. 주위는 이미 찐한 어둠으로 인해 깜깜하게 어두웠고, 오직 나만의 침실로 준비된 방에는 그나마 한쪽 벽에서 은은한 불빛을 보여주는 작은 스탠드가 서 있어서 다행히도 내가 완전한 어둠 속에서 덜덜 떨지 않아도 되게끔 작은 것 하나에도 일일이 신경을 쓰신 할머니의 배려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나였다. "우응. 한잠 곤하게 잤더니.............이거............" 눈만 말똥거리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넓은 침대를 빡빡 기는 나의 긴 밤 지새기 작전은 그렇게 막이 올랐다. 하지만 어디 그것도 한 두 시간이지. 저녁을 거하게 먹곤 금새 식곤증으로 졸린 내가 꾸뻑꾸뻑 조는 모습을 보신 할머니의 품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은 관계로 지금 난 너무도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아마도 늦은 새벽. 즉 이른 새벽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해서 어쩔 도리 없이 난 내가 잠든 방안을 살며시 돌아다니며 뭔가 재미난 게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방안에 있는 신기한 석상이나 벽들에 수 놓여져 있는 그림들을 한 바퀴 돌며 심각하게 감상하면서 어느 새 나의 침대에 허탈한 모습으로 돌아와선 몸을 털썩 눕혔다. "에휴~! 뭐 처음 보는 것들도 있어서 심심하지는 않았지만.......그래도.....아~웅. 이건 너무 심심해." 난 정말로 이럴 때가 제일 싫다. 분명히 앞으로 인간으로선 감히 생각도 못할 긴 삶을 살아야만 할 운명이 엄마의 극진한 애정 덕분에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난 인간이었고, - 물론 용족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것도 있었지만 - 신룡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내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던지 간에 내 스스로의 존재감만 확실하면 된다고 하셨으니깐.................난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걸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열심히 살아가는 내 모습속엔 내가 그토록이나 그리워 하던 누군가가 있었고, 그 누군가를 반드시 내 힘으로 구해내야만 한다는 강한 일념이 내 안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난 지금의 낯선 환경에도 꿋꿋이 적응을 해야만 했다. 이런 나이기에 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다행이도 요새 내 안에 있는 본능이라는 놈이 나를 가만히 두고 있는 상황이라서 난 이 신기하면서도 감히 건방지게 나를 거부하던 또다른 나에게 이겼다라는 묘한 승부욕 아닌 승부욕에서 이어진 성취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것~! 끼야아호. 벌떡. 너무도 순식간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신룡 할아버지~! 바로 그분이 남겼다는 단 한권의 책. 그야말로 우리 외가 집의 가장 귀중한 보물. 난 본능에 충실해 깊이 잠이 들면서 할머니께서 마지막까지 내 곁에 머무르셨던 자리를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뒤지기 시작했다. 착실히 침대 아래부터 천장에 이르기까지 그 주위를 샅샅이 뒤진 덕분에 다행히도 침대 곁에 둔 작은 테이블의 서랍 속에서 그 진귀한 책을 드디어 내 손으로 꺼내 들 수 있었다. "흐흐흐. 드디어 찾았다." 펄럭. 꿀꺽. 너무도 궁금하면서도 기대가 되는 책이었다. '나 실버 드래곤의 수장 헤리아킨 러버쥬는 이제 새롭게 탄생된 위대한 가문 갈리아스의 시초가 되는 이 자리에서 나의 글을 후손들에게 남긴다.' 책의 서문은 이렇게 엄청난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걸 자랑하면서 나에게 더욱 흥분된 감정을 가지게 만들게 서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 그 얼마나 치열했던 생과 사의 전투였던가~!! 문맹과 원시인에 가깝던 수천만에 다달은 인간들을 이끌고 수많은 유사종족들의 비호아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으면 싸울 길 어언 수백 년. 드디어 우리들은 북쪽의 유마계에서 흘러 들어온 권위뿐인 명왕과 이미 신들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거의 모든 힘을 잃고 도망 온 그와 그 밑의 수많은 마수들로부터 이 땅을 겨우 지켜낼 수 가 있었다. 정말로 피눈물나는 대 격전 끝에 이루어낸 작은 우리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비록 유일신에게 당한 여파로 인해 거의 모든 힘을 잃었다고는 해도 그는 진정한 유마계의 명왕이었다. 해서 그 밑의 수많은 피난민처럼 보이던 마수들에게 대항하며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대항한 대다수의 우리 용족들은 결국에 가선 그들의 엄청난 힘에 의해 파멸의 길에 접어들고야 말았다. 그나마 겨우 나와 갈리아스 대제가 온 힘을 다해 보호하며 되살릴 수 있었던 일족들은 우리 실버 일족과 레드. 골드. 블루. 그린의 몇 명 안되는 어린 헤츨링들과 그들의 알들뿐이었다. 나머지 블랙 일족과 크로매틱 일족은 멸족의 기로에 서서 블랙은 순수한 암흑을 존경하는 의미로 유마계에서 온 침입자들에게 귀화를 했으며, 크로매틱 일족은 순수한 다섯 가지 정령들과의 친화력을 가지고서도 결국에는 그들에게 멸족을 당하고야 말았다. 너무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고, 피눈물로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봐야만 했던 우리 용족들이었다. 결국 우린 그런 아픔을 딛고 굳게 일어서서 그들을 이 땅에서 몰아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실 실버 일족이라서 원래 신께서 나에게 주신 능력으로는 이 대륙의 전쟁에 나와 우리 실버 일족은 사실상 참여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그들이 바다와 넓은 호수 가까이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우리 또한 그들과 힘을 보태 싸울 의향은 있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난 그 불가능한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떤 분들의 도움으로 인해 그 불가능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훗날 나의 후예로부터 성마 전쟁이라고 불릴 이 전투를, 내가 선봉에 서서 이 물질계를 자신들의 영토로 확장하려고 하는 불순한 이들과 싸움을 벌일 수 있게된 모든 일의 진실된 모습이다. 이는 나의 영토인 깊은 심해의 바다 속에 안치된 과거의 수많은 조상님들의 레어들 중에서도, 고대 드래곤 종족중 하나인 마리토레스 란 이름을 지닌 골드 드래곤과 에카란 디오스펠 이라는 우리 실버 일족의 선조 되시는 분의 레어 속에서 발견한 그 무엇 덕분에 난 우리 종족들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그 두 분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의 마지막 삶을 다하시도록 나오시지 않으시면서 연구한 것들로 바로 내가 그것을 사용을 하면서 가지게 된 진정한 나의 힘의 정체였다. 이는 두 분의 사랑을 이어주면서도 항상 어디에서든 꼭 붙어 다니고 싶은 마음을 열망하던 두 연인이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자 우리 실버 일족의 소원을 신께서 들어주신 무시무시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바람의 종족으로써 항상 자유를 상징하는 지혜의 드래곤답게 골드 일족의 오랜 역사와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자유로운 활동을 하며 가진 수많은 지혜들이, 나의 선조 되시는 에카란 디오스펠님을 사랑하게 된 마리토레스란 분의 뜨거운 열망과 합쳐지면서 생겨난 결과물이었다. 언제나 자신과 함께 사랑하는 연인이 대륙 모든 곳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꿈을 꾸는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연인이 갈구하는 삶을 선사하시기 위해 그분이 노력한 결과물로 인해 우리 실버 일족은 자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항상 아끼고 사랑하고 싶은 연인에게 보여주신 그분의 사랑이라는 커다란 힘으로 인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벽을 뛰어넘고자 노력하신 마리토레스 님의 결과를 생각하면 난 지금도 나의 진정한 새로운 힘을 선물해주신 그분께 고개 숙여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두분들은 오래 전부터 사랑엔 국경도 없다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시려는 듯. 모든 드래곤들이 속으론 넘고 싶으면서도 결국엔 주위의 눈치 때문에 넘지 못하신 일족간의 벽을 과감히 넘으신 정말로 로맨틱한 분들이셨다. 이 후배 또한 그분들을 존경하는 의미로 그분들의 레어가 있는 근처를 다른 실버 일족들이 일체 다니지 못하도록 성지 화 한 후에야, 난 그분들의 필생의 역작인 바람의 기운과 대지에 흩어져 있는 수분들을 모아서 그 기운들을 우리 실버 일족에게 다시 전해주는 이 신비의 팔찌를 이용하여, 모든 드래곤들이 떠받드는 우리 용족들의 수장이자 신룡이라는 성스럽고도 나에겐 과분한 직위를 선사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새롭게 가지게 된 자유라는 이름의 바람이라는 또다른 기운의 속성과 나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물의 기운의 속성을 가지고, 유일신에게 대항한 불순한 무리들을 무찌르며, 결국에 가서는 나의 죽음에 임박해서야 유일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신....너무도 어마어마한 분의 방문과 그분이 마지막에 선물로 주신 나의 또다른 힘은, 우리 실버 일족이라면 어느 누구나 그때부터 새롭게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자유라고 부르는 바람의 힘을 우리 실버 일족이 그때부터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이 모든 게 깊은 심해에 잠들어 계신 두분의 연인에 대한 희생과 봉사의 사랑에 대한 정의가 우리 실버 일족들에게 전해지며 그분들의 사후에 받게 된 실버 일족 전체의 크나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난 더욱 그분들의 고마움에 고개 숙여 감사를 비는 마음으로, 모든 일족간의 자유로운 왕래와 서로간의 애정이 있으면 둘이 서로 일족은 다를지언정 과감히 합칠 수 있는 드래곤들의 새로운 전통을 용언 마법으로 각각의 일족들의 수장으로부터 약조 받게 이르게 된 것이다. 후~! 기억도 하기 싫었다. 정말로 그해 성마 전쟁의 마지막으로 가는 길목의 끝은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르기가 힘들지 내리막은 아주 쉬운 법. 우리들은 일심 단결하는 모습으로 이 대륙을 멸망으로 이끄는 무리들을 힘겹게 무찌르고 받은 낯선 평화를 제대로 채 만끽하기도 전에 또다시 가슴아픈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콘. 돌. 이는 정말로 위대한 존재이다. 그 분이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시어 우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자신의 마지막이자 처음인 후손이 들어 있는 알을 우리들에게 인도하시면서 내뱉은 마지막 말씀 속에선, 항상 우리 드래곤들이 지켜야만 하는 규율이 담겨 있었다. 우리 드래곤들이 다른 종족들을 감히 범하거나 언제나 교만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언제나 우리 드래곤들의 모습들을 지켜보며 잘못된 종족간의 우월감을 끝까지 고쳐주지 못하고 먼저 떠나가게 되었다면서, 자신이 신께 받은 명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다는 불안한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으로 마지막 길을 떠나가시는 그분의 마지막은 정말로 가슴아픈 우리들의 새로운 현실로 다가와야만 했다. 우리 드래곤들은 진정으로 강하다. 하지만 우리의 열 배가 넘는 긴 수명을 자랑하시며 근 이만 년의 성장기를 거쳐야만 새롭게 이 땅의 조율자로 탄생하게 될 그분의 자식이 우리들의 앞에 다시 나타날 때까지 우리 드래곤들의 수장은 그분의 죽음 앞에서 용언으로 약속을 드려야만 했다. 아니면............. 그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우리 드래곤들 모두의 죽음이 뒤따라야만 했기에...... 그후 우리는 정말로 수많은 절제와 남다른 자부심을 강조하면서 기나긴 삶을 지배자 또는 절대자로의 외로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우리들의 그 약속은 끝끝내 지켜졌다. 아니 먼 훗날에도 지켜지고 있을 것이다.' "이~야~! 콘~돌?" 난 정말로 놀라운 일을 책의 서문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콘돌이라니..........!! 그럼 내가 예전에 읽은 갈리아스 전기라는 책에서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그림 속에 나타난 붉은 번개 머리이외에는 모든 깃털이 하얀 붕조가 바로 콘돌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 콘돌의 별식이 바로 드래곤 하트라고 하던데....... 정말로 놀라웠다. 세상에나........ 지금 이 세계에서 최강의 존재는 바로 드래곤이다. 그런 드래곤들 수천 마리가 덤벼도 다 자란 콘돌에게는 감히 상대도 되지 못한다고 지금 이 책에는 쓰여져 있다. 아. 물론 약간의 겁을 주려는 엄포성이 심한 문구라고는 해도 정말로 그 긴 20만년의 삶을 살면서 이곳 물질계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가 말로만? 아니다. 그림으로만 보던 콘돌이었다니...... 그리고 지금 이 대륙 어딘가에선 이 늦은 시간에도 열심히 크고 있을 콘돌이라는 새로운 절대자가 있다는 사실은 절로 나에게 호기심을 자극시키는 매우매우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헤헤.......얼마나 멋질까? 이야야야얏" 난 잠시 내가 콘돌이 된 양 커다란 날개를 단 듯한 흉내를 내면서 방안을 맴돌고 다니기 시작했다. 작은 내 입에선 연신 붕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내가 잠시 콘돌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 채 난 한동안 방안을 뛰어 다녔다. 햐~! 말로만 듣던 중간자와 그 중간자의 수호영물인 콘돌이라.......... 정말로 멋있었다. 과거 나의 꿈에 나타났던 갈리아스 대제. 그의 가문의 진정한 수호 영물인 콘돌이 갈리아스 가문의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이끌었다는 놀라운 사실은 나에겐 지금 신선하면서도 조금은 불쌍한 마음이 들 게 만들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중간자로써 그리고 천족들 중 최상위 귀족으로써 최강의 힘을 자랑하는 가문에 뒤를 이어줄 아들이 태어났고, 또한 때를 맞춘 듯이 그 아들을 새롭게 수호할 새로운 콘돌의 탄생이 가져온 행복감은 아마도 갈리아스 가문의 사람들에겐 조금의 방심과 기쁨을 동시에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이 유마계의 마수들로 변장한 어느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하고, 결국엔 어린 아들이 비극적으로 새롭게 가문을 이어받으면서 곧바로 시작된 이곳 중간계와 물질계의 동시다발적인 성마 전쟁의 시작은 그야말로 잘 짜여진 하나의 각본과 연출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책으로나마 읽게 된 내가 헤세르라고 하시는 갈리아스 가문의 마지막이자 영원한 수장이 어릴 적 받게 된 충격과 고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모습들은 나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나의 꿈에 나타난 이가 위대한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이자 이곳 물질계의 단 하나뿐인 위대한 수호자 갈리아스 대제였기에........ 하지만 이미 그 일들은 모두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었고, 그런 역사를 간직하면서 잠시라도 온 가족들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콘돌이 지금 어딘가에서 새롭게 힘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신기하게도 매우 기쁜 마음이 들었다. 왠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 콘돌의 아직은 어린 새끼가 그냥 막연히 좋을 뿐이었다. "쿡쿡쿡.........으하하하하핫..........우헤헤헤헤......" 발라당. 떼굴떼굴. 정말로 웃겼다. 세상에나......... 숲의 자식이자 보호자인 엘프가........ 푸하하하핫. 어떻게........... 눈물이 찔금 거려서 제대로 책을 읽지도 못할 만큼 매우 우스운 글이 한동안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세상에나. 이건 완전히 종말론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왜냐고? 그건 바로 이 책에 지금 나오고 있는 한 종족 때문이었다. 엘프. 그 이름도 거창한.....그러면서도 대자연만큼이나 신비감이 존재하는 존재. 이들은 진심으로 숲을 아끼고 자신들에게 내려진 남들 보단 조금 더 긴 생을 마치면, 항상 마지막에 가서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게 필생의 소원이라고 하는 존재들. 그러나 지금 신룡 할아버지가 남기신 책 속에는 간혹 정령술의 극치를 깨닫게 되는 엽기적인 엘프들이 하나 둘 나오는데..... 그들은 정말로 생기 발랄하면서도 엉뚱한 면이 너무너무 많았다. 세상에나....자기들이랑 친한 정령들 중에서 서로 상반되는 기운의 정령들을 친하게 지내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까지는 나도 그럭저럭 읽고 봐줄 만도 했다. 하지만 평생 숲을 가꾸고 아끼며 살아가는 그들이 자기 딴에는 불의 정령들을 소환해서는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온으로 주위에 있는 나무들을 더욱 알차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서는 급기야 불의 상급 정령을 소환해 나무 가까이에 불을 지피게 만들었다니....그러다가 결국엔 강한 호기심과 연구열을 참지 못한 채, 홀라당 마을을 태운 엘프들이 나오는 장면에선 난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했다. 쿡쿡쿡쿡. 아. 생각들을 해보시라...... 불붙은 나뭇가지가 부러질까봐 두려워서 안절부절 하면서 갈팡질팡....... 게다가 자신의 실수를 도저히 감추질 못하겠으면 물의 정령을 불러 불을 끄면 될 것을 가지고, 자칫 실수로 주위에 있는 꽃들이 망가질까 봐 하급의 물의 정령을 부른 것까지는 이해한다고 치자. 그럼 상급의 불의 정령이 저지른 불길을 어찌 한참이나 힘이 약한 하급 정령들. 그들로써 그 강한 기운의 불길을 끌 수 있겠는가 만은, 그래도 물의 하급정령을 불러 불을 끄려고 했다는 것까진 나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인 바람의 정령들을 불러서 물의 정령들이 내뿜는 물줄기를 얼린다고 하던 것이 그만 ...............큭큭큭 너무도 웃겼다. 찬바람이라곤 해도 거센 바람이 불면 당연히 불길이 번지는 건 생각도 못하고선.....푸훗. 암튼 여기 물질계엔 꽤나 많은 괴짜들이 살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따분하고 지루한 새벽을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보내려고 하던 나의 독서는 이렇게 아주 배꼽을 빼놓는 웃음보따리로 시작이 되었다. "큭큭큭. 아이구.......쯔쯔쯧. 아무리 당황을 했다곤 해도 바람의 정령들을 다룰 수 있는 존재들이 어떻게 불이 더 번지게 만들었는지.........쿡." 정말로 눈앞에서 당황하면서 이리저리 불길을 끈다고 설치며, 불길을 더욱 세차게 번지게 만들었던 존재들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듯 했다. 더구나 그 하얗고 동그란......꼭 빵 모자에 끝에 달린 하얀 방울 같은 꼬리에까지 불을 붙여선 펄쩍펄쩍 뛰는 생쑈를 벌이는 황당 엽기 엘프들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듯한 기분은 정말로 나에겐 신선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었다. 쿠쿠쿠. 펄럭. 그때부터 난 더욱 이 책의 재미난 이야기꺼리를 찾아서 눈을 반짝이며 큰소리로 낭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 정말로 이상하네." 갸우뚱. 정말로 이상하면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냥 편하게 읽을 때는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던 책의 내용들이 난생 처음 보는 마법의 문구라고 하는 요상한 문자들만 나오면 신기하게도 내 머리 속은 누군가가 마치 싹 쓸어 버리듯이 깨끗하게 비워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수차례의 반복을 해도 신기하게 낯선 마법 문자들은 내 머리 속에서 제 멋대로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난 과거 천재라는 소리를 곧잘 들었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태어나서도 처음으로 대하는 이곳의 문자들을 아주 손쉽게 이해하면서 천재적인 두뇌를 자랑하며 암기를 했었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이 나의 엄마 되시는 엘렌키아니 여사께서 나에게 손수 기억속성 마법을 걸어주셔서, 내가 더욱 천재라는 소리를 듣을수 있었던 나였지만, 어째 지금 이 일은 그런 나를 더욱 당혹하게 만들고 있었다. '음~~! 이 글자는 나도 오늘 처음 보는 문자들이지만, 엄마가 자기 레어에서 나한테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설명해주시던 용언 마법에 관한 문자들이 이 녀석들이 아니었나?' 당연히 난 이런 의문을 강하게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활짝 펼쳐서 읽고 있는 책들 속에 나오는 문자들은 이 대륙의 고대 공통어이자 나 또한 확실히 알고 있는 이곳의 오래된 문자들이었고, 책 중간에 가끔씩 적혀져 있는 문자들은 드래곤 족들에게만 대대로 내려져 온다는 신의 문자인 오딘어 였다. 오직 용언을 사용할 수 있는 자. 그리고 신에 의해 선택된 자들만이 쓴다고 전해지는..... 오딘이라는 상위 신이 우리 드래곤들에게만 내려주신 신들의 언어.............용언. 이건 신족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거의 흡사한 글자라고 들은 기억이 분명히 있는 나로썬, 지금 너무도 황당하다 못해 심한 자괴감을 마구 전해주고 있는 이 낯선 언어의 문자에게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다. 정말로 오기가 잔뜩 생기게 된 것이다. 뿌드득.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한번 해보자고.........으드득." 난 항상 옛 부터 나에게 도전을 해오는 것들을 결코 용서한 적이 없는 속 좁은 남자였다. 무엇이든....그리고 무언가이든 나에게 도전을 했다는 것은 절대로 그냥 웃으면서 넘기면 내가 아닐 정도로 난 매우 도전이라는 글자를 싫어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좋아했다. 그러기에 이를 악물고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며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중등과 고등 학력에 해당되는 공부를 마스터한 채 이국의 땅으로 유학을 떠난 나였다. 그 덕분에 주위의 분들에게 천재라면서 극찬을 받았던 나를 지금 이 낯선 언어가 감히 가로막으며 건방지게 도전장을 던지고 나에게 도발을 하는데.......... 이걸 피하면 난 정말로 사내도 아니다. 으드득. 빠각. 부리부리. 난 왠지 오늘밤부터 이 책 속에 담겨진 건방진 용언 마법이라는 것을 다 알기 전 까진 잠은 다 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로 인해, 난 내 방에 마법으로 불을 밝혀주고 있던 스탠드를 침대 쪽으로 바짝 끌어와선 불을 더욱 밝히면서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접한, 그리고 나에게 건방지게 도전장을 내민 이 신기한 마법서적을 또다시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를 않는 내 뛰어난 암기능력을 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부하던 나에게 오늘 철저하게 나를 물 먹이고 있는 이 책과 이 더러운 기분을 풀기 위해서 난 이를 악물었다. 읽으면 사라지고 또다시 읽으면 사라지는 이 책의 마법에 관한 내용들에게 난 더욱 오기가 생겼는지 또다시 이를 꽉문 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우씨. 감히 내 머리 속에 들어왔다가 내 허락도 없이 바로 빠져나가는 네놈을 오늘부터 내가 용서하면 난 인간이 아니다." 음. 그러고 보니 나 정말 인간이 맞나? 이익,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문제가...............!! 새벽녘의 길고도 따분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결국에 가서는 오기와 극단적인 도전정신으로 새롭게 무장을 하게 된 나는, 이 책과 씨름하면서 이 처음 보는 단어로 적힌 이 책들의 글자들이 어떻게 내 머리 속에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는지는 약간의 의문이 생겼다. 아직 어린 나로써는 제대로 알기 힘든 현상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나와 관계된 어떤 분의 도움이 있었으리라 유추해볼 뿐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접한 마법서적이라서 그곳에 적힌 낯선 문구들을 영창하며 외우기를 수십 번 반복해도, 영창하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리는 이 복잡한 수학공식들을 하나가득 싣고 있는 신룡 할아버지의 유품에, 난 이놈의 망할 오기와 도전정신 때문에 금새 빠져들고 있었다. "음, 화의 기운을 담고서 적에게 날려보내는 파이어 볼은 1써클에서부터 10써클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종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낼 수 있는 파이어 볼은 최고 6써클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외의 경지는 위대한 존재인 드래곤들만이 가능하다. 간혹 숲의 수호자인 엘프들 중에 변종에 가까운 엘프들이 모든 존재를 불사르는 화염의 마법을 7써클까지 익히기는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들 또한 왕성한 호기심과 정령마법 덕분에 불의 정령들을 만나 그 덕분에 익힌 마법들이라서 그런 화염의 마법들은 모두가 금새 외면을 해 버린다." '호~그럼 정말로 그런 엘프들이 종종 있다는 말이네. 쿡쿡쿡. 이야~! 나도 그런 엘프들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당......쿡쿡쿡. 확실히 신룡 할아버지께서 이런 사실들을 알고 계셨다니. . . .흐음, 왠지 대단히 존경스럽 네. 근데, 이런 분의 손녀이신 위대한 실버 드래곤의 수장인 할머니 밑에서 자란 엄마는 왜 마법을 익히시지 못했지?' 내 외할머니의 성함이 에르킨 갈리아스 라고 드래곤들 중에선 가장 위대한 마법사라고 하 신 엄마의 말씀에 난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며, 곧바로 그 뒤를 이어 아직까지 제대로 보지 못한 엄마의 마법에 강한 의아심이 생겼지만, 이내 현숙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깊은 애정으로 인해 난 이런 의아심들은 곧바로 생긴 강한 반문들로 생략해 버렸다. "에이, 우리 엄마가 한 손에 불덩이를 들고 또 다른 손엔 얼음 미사일을 들고 있는 게 도저히 상상도 안된다. 쿡쿡쿡." 한 장씩 넘겨지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써있는 책들을 넘기며 난 가만히 주위의 이목이 없는 지금의 순간을 놓치기 싫어, 급히 온몸의 기를 회전하면서 이곳에선 마나라고 하는 기운들을 내 의지대로 온몸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조금씩이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한 하급의 마법문구들을 실행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던 나란 표현이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흐음. 그럼 지금 내가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음양의 모든 기운이 담긴 태극 오행 지기를 이용해서 그 중에 화의 기운을 강하게 움직이며............. 어디 보자. 그럼 그 기운들을 이 수학공식에 맞춰서 운행을 해보는 건가?! 어디~!" 난 천천히 침대에 엎드린 상태에서 턱을 괸 채 나의 온몸에 퍼져있는 기운들을 오른 손으로 모으면서 대단히 복잡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머리 속에 누군가가 주입시켜 주는 듯한, 아주 손쉽게 이해가 착착 가는 마법공식들을 외우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나의 기운들을 태극오행지기 중 화의 기운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뒤에 내 몸에서 반응하는 작은 기운들을 내 한쪽 손으로 보낸다는 생각을 하자, 이내 내 손엔 뜨거운 기운들이 몰리면서 꼭 감은 내 눈으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거대한 불기둥들이 내 앞에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강한 의지가 실린 내 마음에 놀라 나도 모르게 눈을 뜨자.............. 역시 나의 눈은 실망을 하고야 말았다. "에게, 고작 요만한 불덩이가 그렇게 뜨겁단 말야?" 확실히 눈을 감으면서 용언을 영창 했을 때는 내 몸 주변이 엄청 뜨겁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여진 작은 불덩이를 바라보며 실망을 한 나로써는, 결국 내 손위에 긴 막대기처럼 생긴 어린 내 새끼손가락 크기 만한 불기둥들을 바라보며 실망을 금치 못했다. 허나,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실망감이 실린 내 말과는 달리 지금도 내 손위에서 화르륵 거리며 타오르고 있는 이 신기한 불길을 유심히 보게 된 나는 나도 모르게 다른 한 손으로 그 불기둥들을 만져보고 싶은 욕망이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음, 이건 어디까지나 내 몸에 깃 든 순순한 내 기운으로 만든 건데. 과연 내가 만져도 뜨거울까?" 에이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조금이나마 처음으로 하게된 마법과 그를 통해 생긴 이 신기한 불길의 유혹에 난 천천히 검지손가락을 갖다대면서, 매우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더불어 잔뜩 긴장을 한 모습으로 불기둥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내 손가락과 불기둥이 만나는 지점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역시.... "헉, 으아아아악, 우~악, 뜨거워!" 역시 혹시나 하는 나의 심정은 확실히 역시나 였다. 이놈의 불기둥이 감히 미쳤는지 순수한 내 힘으로만 만들어진 주제에 건방지게 나를 무시하고, 내 손가락을 마구 지지면서 내가 크게 호호 불어도 꺼지지 않자 급기야 난 길길이 날뛰면서 급히 물이 담겨져 있는 물병에 날아가듯이 뛰어가야만 했다. 불이 붙은 내 손가락을 급하게 물병에 넣은 채 나의 이 황당한 호기심에 대해 후회가 막심으로 밀려오는 한심한.....정말로 한심한 내 모습이었다. 흑흑. 너무 아프당. 아니 너무 뜨겁다~~앙! 으아아앙. 흑. 울고만 싶었다. 결국. 피시식. 역시 화의 기운엔 수가 으뜸인 듯 이내 손가락을 뜨겁게 달구던 기운들이 거의 슬라이딩에 가깝게 날아간 내 몸과 기대를 배신 안한 물통. 그리고 그 속에 구겨 넣듯이 담겨진 내 손가락이 금새 물을 만나 점차 사라지는 불의 기운을 느끼면서, 난 고통에 의해 찔끔거리며 생긴 눈물을 닦으며 괜시리 누군가를 향해 이유도 없는 투덜거림을 부리기 시작했다. "크흐흑. 이씨 어떻게 손에 불이 붙으면 곰방 꺼지든가 . . .흐흑, 아이구 내 아까운 손가락" 너무 놀란 나머지 손가락이 새까맣게 타 버려서 이제 큰일이라는 생각에 이미 불이 꺼져서 까맣게 그슬린 내 손가락을 입에 꼭 문 채 눈물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꺼내본 나의 곱디고운(?) 오동통한 내 손가락. 하지만 나의 이런 큰 걱정과는 달리 내 손가락은 정말로 신기하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뽀얀 피부를 자랑하며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 이상한 현상에 조금은 어색한 몸짓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지금의 일에 어리둥절해 지는 나였다. 아니 멍청해져 버린 나라는 게 올바른 표현이리라. "흠, 이건 또 뭐야? 그렇게 뜨겁게 느껴지던 기운들이 어째 내 몸엔 아무런 해도 주지를 않네?! 그럼 어디 이번엔 이 책에 써 있는 대로 주위의 기운들을 내 몸에 받아들여서 한 번 만들어 볼까?" 금새 용기가 백 배로 업그레이드되는 조금은 멍청한 나 자신이었다. 쿠쿠쿠. 잠시의 고통쯤은 새로운 도전에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난 내가 고통스러울 때 왼손에 차인 팔찌에서 투명한 빛들이 나와 내 몸을 잠시 감싼 걸 전혀 모르고 있었던 관계로, 나로서는 이 현상이 신기하기만 보여 내 독단적으로 만든 불기둥들을 무시하곤, 이제는 순수하게 할머니의 책에 담겨진 대로... 그리고 용언마법이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주위의 기를 느끼기 위해서 호흡을 조절하며 용언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만물에 깃 든 힘들이여! 나의 의지대로 그대들의 힘이 나에게 전해지기를. . . . 그리고 그 모든 힘들이 나의 의지에 따라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라. 뷰 마나 스킬 풀" 난 책에 적혀있는 최하위 마법 문구들을 영창 하면서 주위의 기운들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고 호흡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만히 서 있는 나를 향해 미처 주문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거센 기운들을 느끼면서 그 순간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나는 눈을 떠야만 했다. '헉, 이.......이게 뭐야?!' 화르륵, 정말로 이번엔 놀랄 노 자였다. 한순간 내 주위에 잔잔히 퍼져만 있던 기운들이 나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갑자기 내 주위가 소용돌이치듯이 거센 마나들의 흐름 속에서...... 그 거센 기운들이 내 몸을 들어와선 멋대로-아마 주문에는 마나들이 이동하는 방법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일으키는 이 뜨거운 기운들은 지금 꼭 감은 내 눈에도 무언가가 선명히 보이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놀란 눈을 뜨기가 무섭게 거센 기의 폭풍들이 순식간에 나를 감싸면서 정말로 이젠 나의 의지와는 달리 제멋대로 내 몸 안에 들어오더니 급기야는 내가 본능적으로 생각한 파이어 볼이라고 책에 그려져 있는 그림처럼 작은 불덩이를 떠올린 내 눈앞에는 지금 나보다도 더 큰 불덩이들이 다섯 개나 모여서 허공에 둥실 떠있었다. "헉, 이게 무슨 조화야? 어떻게 아까는 조그마한 꼬쟁이 같은 불기둥이더니....... 지금은 왜 둥근 불덩이들이 내 앞에 있는 거지?" 정말로 이번의 현상은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될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도 이 불덩이를 향해서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운들이 느껴졌고, 계속적으로 빠져나가는 기운들을 채우기 위해 내 몸 안에 새롭게 들어오는 기운들이 내 몸을 통과하면서 다시 이 불덩이로 계속 이동이 되는 와중에도 급속도로 재충전이 이루어지는... 계속해서 내 앞에 불덩어리들이 유지가 되고 있는 이런 현상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나로서 는 그저 매개체에 불과한 내 몸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더구나 조금전과는 전혀 다른 이 커다란 크기의 불덩이에 감동 받은 나로썬, 이내 내 몸을 통과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주는 기운들을 내 의지대로 없애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조금전의 상황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피식. 정말로 신기하게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기운들을 차단하자 금새 사라져 버리는 불덩이들이었다. 후후후. 귀여운 놈들. "흠, 그러니까 이 불덩이들은 내 마음과 연결이 돼 있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언제든 내가 원하기만 하면 움직인다는 것인데, 그럼 신룡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이 책대로의 설명이면 지금 내가 불러낸 이 파이어 볼은 자그마치 용언 마법 3써클에 해당되는 플레임 파이어네. 그것도 여러 개가 나왔으니까 난 3써클의 마스터라는 소린데........이씨. 이런 사기성 짙은 일이 어디 있는 거야? 이제 고작 오늘처음으로 마법을 접한 내가 벌써 4써클에 입문했다는 건가? 에이. 못믿어........아암 못믿고 말고. 하지만.....이건 또 뭐지?!" 지금의 아리송한 일들로 내 머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못마땅한 무언가들이 조금씩 내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의해서 허물이 벗겨지는 양파처럼 한 꺼풀씩 벗겨지기 시작하자, 그 속에서 더욱 새로운 일들이 지금의 나에게 새록새록 생겨났다. "이건 또 뭐야? 얘가 지금 미쳤나? 왜 지 멋대로 놀려고 하는거야?!" 내가 강하게 반문을 하면서 못믿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자, 그동안 내 속에서 얌전히 있던 녀석이 꿈틀거리며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뭐?! 자기의 힘을 왜 못믿냐고?!"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강하게 내 이성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내가 이 황당한 일을 곧이곧대로 믿으란 말인가?" 그런 반문이 생기기 무섭게 이 녀석이 당연하다는 듯 제 멋대로 몸 안에 맴도는 기운들을 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건 말만 내 몸이지 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결과이기에 난 한동안 내 속에서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내 본능과 그 뒤를 따라서 영사기처럼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의 과거 기억들이 합쳐지면서 나도 모르게 이 본능이라는 놈이 건방지게 제시하는 내 본연의 모습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도 내 자신을 통제 못하고 멍하니 내 머리속에 그려지는 여러 가지의 화면들을 바라보며 내 몸이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는 걸 두고 봐야만 하는데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우음. 그러면 내가 맨 처음엔 만든 그 불기둥은 지금 이것처럼 주위에 있는 마나들을 이용한 마법으로 인해서 생긴 파이어 볼이 아니라 워리어스들처럼 내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이용해서 만드는 검기를 변형시킨 모습이라는 것인데................ 왜 갑자기 그런 것들이라고 결론이 제 멋대로 생기는 거지? 도대체 지금 내 머리 속에 갑자기 이렇게 떠오르는 결론들은 도대체 뭐지?" 한순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곧바로 다시 다가와서는 이건 이렇게 결론이 난다라고 마구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제 멋대로 결론을 지어 버리는 일들이 지금 내 머리 속에 생겨나면서 난 지금 그일로 인해 받는 이 황당한 기분들이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쳇, 하여간 아까 전에는 제멋대로 내 기억 속에서 허락도 안 받고 건방지게 빠져나가선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더니, 이제는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이 황당한 책은 뭐야?! 허 참. 완전히 나를 갖고 노는구만." 결국에 가서는 오늘 이처럼 나를 혼란에 밀어 넣는 존재가 바로 이 책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냥 신기하면서도 괴롭던 난 결국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금도 내 의사와는 관계없는 결론을 짓는 무언가로 인해 심하게 혼란이 이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만약 잠시 후에 내 문을 박차고 들어온 어떤 이가 없었다면 난 이 황당한 일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구........두야.................!!' 빡.....빡.....긁적.....찌익..........찍찍. 꽝. "으드득.........누구야~~~~~~~~~앗!......감히 내 손주를 괴롭히는 놈이?!" 빠드득. 정말로 한 무서움 하는 표정으로 이를 가시는 누군가였다. 진짜로 화가 나신 듯한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 본 나로썬 문짝이 가루로 부서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내 방문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했다. 그리고....... "으잉?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히 우리 싸이 방에서 낯선 마나의 흐름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의 얼굴을 내가 잠시 보여주시는 할머니이셨다. 그리고 그 뒤에 서서 깜짝 놀라서 깨신 듯 잠옷바람에 나타난........ 크크크. 너무도 귀여운..... 귀여운 토끼와 비슷한 레이스가 달린 머리띠를 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뜨신 잠옷 바람의 엄마도 내 눈에 보였다. "푸훗.......엄마..............쿡쿡쿡...........그거어............?" 음하하하핫. "어어............엄마 무슨 일..............? 아앗" 후다다닥. 정말로 한 순간이었다. 약간 잠이 덜 깬 엄마와 놀란 얼굴로 내 방문을 박살내시며 들이닥치신 할머니의 어리둥절한 눈빛이 가운데에서 만나는 순간, 그 사이에 있던 나의 웃음소리에 놀라서 금새 나를 보시곤 품에 안긴 작은 인형과 머리에 장식된 하얀 토끼 인형의 얼굴이 인상적인 헤어띠를 한 엄마의 모습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우아아아아앙. 난 몰라아아아아아아아아~~!! 흐윽....어떻케에에에에에" 우왕아아아앙. 정말로 레어가 떠나 갈 듯한 엄마의 울음소리와 비슷한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내 침대에 활짝 펴져 있는 책을 발견한 할머니의 놀라신 표정과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매우 기쁨에 찬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셔서 나를 와락 끌어안으시는 모습은 정말로 내가 숨이 막혀서 질식사라도 하시길 바라시는 할머니의 또다른 모습 같았다. "오호호호호홍. 아이구.........이쁜 내 강아지이이이이이잉!! 그래. 이걸 익히느라고 이 할미를 이렇게도 놀라게 한 거냐? 오호호호홍. 너무너무 똑똑한 우리 강아지이이이이잉~!!" "켁켁....................켁, 수.......움...........숨..............마........" 콜록 콜록. 눈물이 다 날 정도로 숨쉬기 운동이 나에게 강하게 반항을 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항을 하게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의 토닥이는 손길은,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한동안 켁켁 거리서야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구웅. 우리 강아지....이 할미 때문에...........오오오.....부비부비..쪼~~옥~!!" 에르킨 여사는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곤하게 졸고 있는 손자를 보면서, 연신 이 하나뿐인 손자가 기특하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드래곤인 여사의 관점과 인간이 아닌 남다른 입장일 뿐 처음 보는 손주를 대하게 된 할머니들의 감정이라면 무조건 손주를 이쁘게만 볼 것이라는 게 지금 여사가 느끼는 새로운 감정의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그런 여사이기에 항상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으로 살아온 긴 용생 중에서 지금 여사의 앞에 앉아서 태평스럽게 조는 손자의 모습조차 여사는 마음에 쏙 들었다. 이는 여사가 그동안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올바른 자식교육이 드디어 그 결과를 보는 것이기에 지금 여사가 받고 있는 감정의 기복들은 어쩌면 지어미를 하나도 닮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쏙 빼 닮았을까 하는 손주의 사랑스러움이 가장 큰 부피를 지닌 채 여사의 열열한 환영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맨 날 음식을 먹으면서 재잘거리기를 무지 좋아하는 딸을 구박하며 제대로 된 식사 예절을 가르친 게 그 얼마이던가~~!! 그런 여사의 신념과 집념이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보게 된 하나뿐인 손자의 밝고 씩씩하면서도 어딘가 예의 범절이 깍듯한 모습은 지금 여사를 너무도 기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이미 생각을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움직이며 금방이라도 졸다가 의자에서 떨어질까 두려운 손자의 커다란 머리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에르킨 여사는 매우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유희를 떠난 딸에게서 손자를 얻었다는 연락을 페밀리어로부터 받은 뒤부터 딸년의 유희도 자신의 유희로 생각해서 언제쯤이나 딸년이 손자를 데리고 올까를 연신 기대하던 에르킨 여사였다. 하기에 미리부터 준비해 두고 잠시나마 인간의 모습으로 할미의 정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미리 준비해 둔 손자의 방으로 사뿐히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사의 마음 한구석에선 유희가 아닌 현실의 손자가 생겼다는 기쁨이 더욱 더 여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호호호. 아이구. 귀여운 녀석. 어쩜 이리도 이 할미를 쏙 빼닮았을까나...호호호 더구나 인간으로의 유희가 아닌 종족으로써의 손자라니.........' 절로 품안에 안긴 손자의 칭얼대는 모습까지도 너무도 사랑스러운 에르킨 여사였다. 그리고 그런 귀한 손자가 머무를 곳엔 당연히 최강의 방어주문이 자리를 틀고 있는 것은 지금의 여사 입장에선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간 크게 실버 일족의 수장이자 이 대륙 모든 종족들로부터 존경받는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이 머무를 곳에 쳐들어올 존재들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얻은 손자인데...... 그러하기에 여사가 준비한 방어 주문은 엄청난 것이었다. 모두 환영으로 구성이 되어서 아무 것도 못 느끼는 사이에 받게 되는....... 침입자에게는 끔찍한 공포와 죽음을 자연스럽게 안겨주고, 그 안에 머무르게 될 손자에겐 티끌만큼의 해도 끼치지 않을 10성의 용언 마법으로 구성된 보호막쯤은 지금 여사에겐 아무 것도 아니였다. 왜냐고 묻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여사는 자신 있게 세상 그 무엇이라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손자에게 이까짓 보호막 못해주겠냐고 으르렁거리며 시비를 걸고도 남을 여사였기 때문이었다. 그후. 손자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한 여사는 드디어 그동안 참고 참았던 분노의 칼...... 회초리를 과감히 뽑아 들었다. 그것도 아주 매섭게 움켜쥐곤 하늘 높이 올라가 버린 회초리를 탄력 마법까지 깃들이며, 하나뿐인 딸년의 곱디 고운 종아리로 매정하게 내리치는 여사의 손아귀에는 절로 신바람이 담기기 시작했다. '어디....요년.....니 년이 아무리 저리 귀여운 싸이를 데리고 왔어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다......요년~~~!' 철썩. 아얏. 철~썩. 아~악. '흥. 고작 그런 엄살이 통할 것 같냐~? 요년아~~!! 저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놈을 이제서야 데리고 온 년이 뭘 잘했다고....' 으드득. 절로 손자를 생각하기가 무섭게 이가 갈리는 여사였다. 무지무지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어디 한군데라도 긁히기라도 하면 큰일날 것 같은 여사의 단 하나뿐인 공식(?)적인 손자 싸이가 얼마 전, 붕대로 온몸을 칭칭 감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자 더욱 손에 힘이 들어가는 여사였다. 그리고 그런 귀한 손자를 이제서야 데리고 온 딸년이 오늘따라 무지 밉기만 한 여사였다. '에구.....그 귀여운 놈을 오늘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니........' 빠드득. "죽어라~~이년아~~! 뭘 잘했다고 엄살을 떠는 거~~야~~앗!!" 오늘에서야 그 귀한 손자를 데리고 온 딸년이 더욱 심하게 반항을 하면서 반항기가 함유한 눈물로 엄살을 부리자, 더욱 열이 뻗치는 여사와 괜시리 이유 없는 구박과 설움을 당하는 불쌍한 엘렌이었다. "아이구....내가 그동안 그 망할 놈의 할망구가 똥싸개 손녀 하나 가지고 유세를 떨면서 받았던 수모를 생각하면..........으드드득. 이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녀~언!! 고작 이제서야 우리 싸이를 나한테 데리고 온 년이 뭐야? 아~~퍼?" 촤아아아악. 숫제 가시 박힌 채찍질보다 더욱 살벌한 기운이 담긴 회초리였다. 그리고.... "흥. 그럼 내가 지금 네년 다리 몽댕이를 확 빠사뿌래야 안아프다고 엄살을 떨래? 아~앙?!" 더욱 강하게 반동을 이용한 매질이 가녀린 엘렌의 살 속을 깊이 파고 들 정도의 파공성이 그 뒤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하게...... 휘이이이익. 촤아아아악. 끼아아아악. "흑.......잘못 했어....엄마........엉엉........싹싹.......부들부들" 매질을 가하면서 더욱 화가 나기만 하는 여사였다. 딸년이 지금 눈앞에서 심한 엄살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에 더욱 열이 뻗치면서 눈에는 살기가 가득 담기는 여사였다. 하지만. "에휴휴휴휴휴. 내가 미쳤지.....왜 그 놈의 미친 할망구가 생각이 나선 저 고운 것을 그리도 심하게 다뤘는지...........에휴~~!" 지금도 조금전의 애정과 사랑의 표시로 따끔하게 혼을 낸 하나뿐인 딸년이 공포의 회초리에 의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인지 눈물을 찔끔 짜고 있었다. 그나마 눈물 자국을 채 말리지 못한 채 훌쩍이며 겨우 잠이 든 딸의 아직은 애띠면서도 고운 얼굴이 내려다보이자 그 고운 모습에 절로 한숨만 나오는 에르킨 여사였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하나뿐인 딸이었는데......... 휴~! 절로 후회가 막심인 여사였다. 그리고 그 앞에선 예전에 소녀 시절의 잠옷을 받아들고 잠시 방긋 미소를 지으며, 금새 곤히 잠이 든 딸이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곰돌이 인형과 토끼 헤어띠로 무장을 한 채, 곤이 잠이 든 모습은 아직은 한참 어린 딸이기에 더욱 무섭게 대한 자신의 실수가 매우 심한 후회와 연민으로 이어지는 가녀린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었다. 해서 여사는 오랜만에 온 딸의 잠자리가 험하지 않을까 매우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었다. 엘렌은 지금 곤하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잠이 들기 전까지 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만든 오늘의 일은 엘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뜻밖에도 아주 작은 체벌로 그 동안 가문의 가보를 들고 무조건 뛰쳐나간 자신의 실수가 감해지는 것에 대해 엘렌은 무한한 기쁨과 감사를 가질 수 있었다. 이는 이미 싸이를 안고 이곳으로 올 때부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엄마는 절대로 만만한 분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집의 가보를 슬쩍 훔쳐 달아난 자신을 과감히 용서하시고 따뜻이 반겨주시는 것만 해도 지금 엘렌의 가슴은 행복의 물결이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더구나 잠시의 아픔 뒤로 이어진 엄마의 잔잔한 사랑 앞에는 지금 어린 자식을 가지고 있는 엘렌으로썬 어미의 심정으로도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있었다. 한때 어릴 적 자신이 엄마로부터 받았던 모질고 귀찮기만 했던 잔소리가 한없이 듣고픈 한 명의 착한...그러면서도 이젠 훌쩍 다 자라 버린 딸로 되돌아간 그녀였다. 물론 엄청난 통증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건 잠시만 참으면 된다. 마법이 뭐 달리 유용하게 쓰이겠는가. 당연히 이럴 때 쓰면 되는 게 마법이다. 그리고 엄마의 매서운 회초리가 종아리에 작열 할 때마다 들려오는 엄마의 깊은 한숨 속에는 그동안 생각만 했지 두려워서 감히 찾아오지도 못한 자신의 실수와 후회가 덩달아 그녀를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본체로 현신을 해서 반죽음 상태로 몰고 가는 다른 일족의 부모의 체벌에 비하면 진짜로 아무 것도 아닌 체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강한 파공성을 띤 회초리도 알고 보면 자신의 다리에 닿을 땐 한없이 부드러워져서, 남들이 보면 매우 심한 회초리 질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막상 맞게 되는 당사자 입장에서의 엘렌은 한없이 포근한 엄마의 사랑이 담긴 매질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더욱 부모님께 미안하기만 한 엘렌이었다. '흑. 엄마....미안해요.........그리고 싸랑해요. 난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역시 인간이든 드래곤이든 자식을 둔 엄마가 되어보아야만 엄마의 진실 된 사랑을 알 수 있게된다는 말이 이럴 때 가장 확실하게 느껴지네요.......흑흑......... 어떻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손아귀 힘이 약해지셨다니............흑.' 근 일 천 년이 넘는 시간동안 몸에 밴 엄살을 동반한 비명이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면서도 그녀의 속마음은 이렇듯 촉촉히 젖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엘렌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회초리에 실린 힘들이 사라지면서 뒤따라오는 따뜻한 바람과 그 속에 담긴 엄마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엘렌의 종아리를 감싸기 시작하자, 엘렌은 태어나서 최초로 넓고 깊기만 한 엄마의 한없는 내리 사랑을 톡톡히 실감하고 있었다. 자기가 실수를 저지르고 도망을......물론 사랑에 눈이 멀어서 대책 없이 말리기만 하는 엄마가 미워서 야밤도주 하듯이 도망을 친 것도 따지고 보면 엘렌 자신의 큰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나온 일은 실수라기 보단 거의 중죄에 가까운 큰 잘못이었다. 그런 자신을 회초리로 다스리면서도 끝끝내 따스한 손길로 직접 치료를 해주시는 엄마의 얼굴에 어린 아픔과 눈가에 맺힌 눈물방울들을 눈을 감은 척 하며 지켜본 엘렌으로썬 더욱 지금의 죄송한 마음을 눈물로 적셔놓고 있었다. "엄.....마.....훌쩍......죄송해요........흑.......엄마......우아아아앙." 와락. 꼬옥. 결국 목이 메여와서 사랑한다고.......그리고.....무지무지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끝끝내 말로는 표현을 못한 엘렌이었다. 그런 후회와 반성의 시간이 제법 지난 뒤, 에르킨 여사는 지금 깜빡 잠이 들었다가 요란하게 여사의 머리 속에 울려대는 낯선 침입자가 지닌 마나의 흐름에 반응한 경보음에 놀라서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유심히 방안을 살피다가 한쪽 침대에서 어릴 적 모습 그대로 곤히 잠이 든 딸의 모습과 지금 여사의 머리 속에서 요란을 떨고 있는 경보음이 무관하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시 침대로 몸을 눕히던 여사는 급히 퉁기듯이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그러면서도 이제부터 여사에게는 매우 귀중한 존재가 된 누군가가 누워 있을 방으로 바람과도 같이 신형을 이동시켰다. 물론 워프로 금새 이동을 하면 되겠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여사가 받고 있는 심적 충격은 그런 걸론 도저히 해결이 되지 못할 만큼의 수준 높은 후회가 밀려오고 있었다. '감히.....으드득.....어느 정신 나간 놈이 내 하나뿐인 손주 방에서....빠드득. 으이구 이런 등신!! 어떻게 그 귀한 놈이 내 집에 와있다는 사실을 잊어 먹을 수가 있는 거야~!! 으이구.....늙으면 그저 빨리 죽어야 돼~엣!!' 지금 이게 바로 에르킨 여사가 받고 있는 가장 큰 정신적 쇼크였다. 잠이 들기 전만 해도 그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기만 한 손자의 어릴 적 모습들을 수정구에 보관된 마법으로 리와인드 시켜서 일일이 확대하면서까지 되새겨 보던 자신이 어떻게 깜빡 잠이 들었다가 낯선 마나의 흐름에 놀라 깨어나 딸의 안전한 모습만 보고 그걸로 안심을 했었는지..... 그저 이럴 땐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진 자신이 한없이 밉기만 한 여사였다. 그리고. 꽈앙. 매섭게 단 한번의 발길질로 두꺼운 철문을 걷어차면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결한 여사는 금새 손자의 방안에서 흐르는 묘한 마나의 여운과 그 속에서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약간은 놀란 표정의 손자 얼굴이 겹쳐지게 되었다. 여사는 그 순간 자신의 단 하나뿐인 손자가 너무도 귀엽게만 보였다. '아차. 이런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이 늙은 할망구 같으니라고......' 휘이익. 부리부리. "누구냐~~앗! 감히 우리 싸이를 넘보다니.....으드득." 화악. 절로 눈에서 불길이 솟구치는 여사의 살기 어린 눈빛이 방안 구석구석을 순식간에 빠짐없 이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금새 놀란 눈을 가진 채 뒤따라온 딸이 등뒤에서 기척을 흘리자 자신의 뒤에 있는 딸을 간덩이가 부은 침입자로 오해하고 반응을 보이는 여사의 살기는, 충분히 상대를 가루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의 마나들을 자동으로 여사의 오른 손과 왼손에 집결을 하기 시작했다. "에잇 이 미친 놈~!....감히 여기가 어디라고.....뿌드득. .헉.......엘렌? 왜 너가 내 뒤에?.....그럼.........이 방안에서 느껴진 마나들은......?" 정말로 간발의 차이었다. 조금이라도 손에 들린 화염구들을 내쏘았다면......... 자그마치 8써클의 헬파이어를 아주 작게 압축시킨 두 개나 되는 화염구였다. 그리고........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하나뿐인 딸을 소멸 시킬뻔한 여사가 자신의 손에 들린 화염구에 놀라 당혹해 하고 있는 사이에, 멍하니 졸린 눈을 부비던 딸은 졸지에 자신이 적으로 오해받아서 목숨이 간당간당 했다는 것을 알았는지, 심한 딸꾹질만 할뿐 달리 자신의 놀람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딸과 사랑스런 손자를 놀란 마음을 미처 다스리지도 못한 채 훑어보던 여사는, 유심히 손자가 있는 방안을 살피며 낯선 마나를 움직였던 범인을 찾고자 했다. 여사의 날카로운 시선에 뾰족한 이방인들의 기운이 추호의 흔적도 없이 느껴지지 않자, 비로소 살기 어린 눈을 풀기 시작한 여사였다. 허나 여사의 이런 모습에 지금 싸이가 있던 방안의 공기는 지금도 여사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절로 주눅이 들어서인지 감히 밤 공기들도 몸조심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딸꾹.....어.......엄마? 무슨 일이예요?" 다급히 엄마의 살기 어린 공격을 받을 뻔한 딸이 놀라서 되묻는 순간에도 여사는 당혹감이 물씬 밀려와선 지금도 자신의 온몸이 뻣뻣이 굳어만 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우헤헤헤헤. 엄마~! 너무너무 귀엽다~~~앙........우헤헤헤헤헤" 까르르르. 데굴데굴. 쿠웅. 얼마나 심하게 웃어 제키는지 그 큰 머리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을 울리면서도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손자의 사랑스런 웃음소리와 애교 어린 모습들은 이젠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진 여사와 딸에게 전해지기 시작하자, 빨갛게 뺨을 물들이며 뒤돌아가며 오랜만에 비명을 지르는 딸의 모습과 사랑스럽기만 한 손자의 생쑈를 동반한 웃음에 이젠 한없이 손자가 사랑스럽기만 한 할머니로 다시금 돌아간 에르킨 여사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호호호. 저년. 아직도 어릴 적 버릇을 못 버리다가 기어코 제 자식한테 망신살이 뻗쳤구나.....오홍홍홍홍. 근데 싸이야....혹시 네 방에 어떤 간 큰 놈이 들어왔었니?" "아니....도리도리....." 손자의 그 커다란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통통한 볼 살이 움직이는 모습까지 사랑스럽기만 한 여사였다. "아이구.....귀여운 놈. 근데.....니가 지금 보고 있는 그 책은?" 그순간 에르킨 여사는 어떻게 낯선 마나들의 흐름이 손자의 방에 존재하는지를 제대로 깨달을 수가 있었다. "싸.......싸이야. 네가 혹시.........혹시 네가 저 책을 보고 마나들을 움직였니?" "으응? 이 책?" "으..응. 그래 그책." 여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차 확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손자 또한 자신의 앞에 펼쳐진 책을 두 손으로 얌전히 쥐면서 여사의 코앞으로 들이밀면서 긍정어린 눈빛을 마구 보내고 있었다. "예, 맞아요. 할머니! 나 지금 무척 심심해서 그냥 책에 적혀 있는 대로 한번 따라 해본건데....할머니! 싸이가 이 책보면 안돼?" 역시........ 오직 이 생각뿐인 여사였다. 그리고..........이젠 손자가 너무나 대견하게만 보이는 여사이기도 했다. 그러니 강한 콧소리가 나면서 손자를 마구 쓰다듬을 수밖에 없는 여사이기에.... 쓱싹.쓱싹. 헤헤. "아~니. 그 책은 이 할미가 우리 싸이 줄려고 하던 건데. 당연히 되지. 근데 너가 정말로 조금 전에 저 책에 쓰여진 마법들을 이 방에서 발현 시켰었니?" "응? 응. 나 저 책과 지금 열심히 싸우고 있거든........감히 이 싸이 머리속에 들어와선 겁대가리 없이 마구 빠져 나가길래 내가 이렇게 맹세했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붙어보자고......헤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야. 할머니~~!" "오호~ 그래? 그럼 책 속에 있던 화염마법을 네가 정말로 했었니?" "아~하. 그 플레임 파이어라고 하는 3써클의 용언 마법?" "으잉? 프.....플레임 파이어? 그....그럼.....네가?" "응...끄떡끄떡...뭐 별로 어렵지 않은 마법이었어. 할머니~~!. 그냥 책에 적힌 대로 내 주위에 있는 마나들을 몸 안으로 끌어당기고 그 기운들에게 내 의지가 이끄는 대로 해보니깐 쉽게 만들어지던데......" "오오오옷~~~!" 엄청난 놀람을 동반한 할머니 드래곤 에르킨 여사의 외침이었다. 그리고......... 허....탈...........정말로 허탈했다. 지금 에르킨 여사의 속마음을 눈앞에 있는 손자가 알 게 된다면........ 그건 정말로 끔찍했다. 어떻게 이제 고작 4살박이인 손자가 성룡이 되어서야 겨우 발현시킬 수 있는 4성 수준의 용언 마법을......그것도 열심히 깊은 잠을 자듯이 누워서 꼼짝도 안한 채 정말 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면서, 뛰어난 신의 아들답게 엄청난 기억력을 지닌 존재인 드래곤들 이 헤츨링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선사 받게 되는 기억흡수 마법을 거쳐 수백 년에 가까운 잠을 빙자한 수련을 해야만 얻게 될 능력을 펼치다니......... 이 사랑스럽고 대견스러운 손자 녀석은 미처 자신이 제대로 된 가르침도 내려주지 않았는데 자기 혼자의 힘으로 그 힘든 걸 완성시키다니..... 너무도 놀란 마음과 그 뒤를 따라오는 든든한 손자의 대견함에 소름이 돋는 여사였다. 그리고 그 긴 세월동안 열심히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일들(?)도 거치지 않은 채 고작 하룻밤 새에 그냥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루어 버리는 괴물 같은 손자라니....... 이럴 땐 저 녀석이 과연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드래곤이 확실한 내 손자가 맞나? 하고 강한 의문이 이는 여사였다. '아. 저녀석 인간이 아니라 드루시안이었지?! 그런데 드루시안이 용언 마법을 할 수가 있었던가? 아닌데......절대로 못하는데......그럼 뭐지?' 여사는 자기도 헤츨링 시절 300년이 넘게 걸린 시간들 속에 엄청난 속도라면서 칭찬이 자자한 가운데 익힌 3써클의 용언 마법을 잠시의 시간밖에는 되지 않는 하룻밤의 시간동안 스스로 3써클의 용언 마법을 마스터한 손자 녀석이 엄청 대견하면서도 절로 소름이 끼치는 걸 어떻게 제어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저 놈은 별종이 확실하다는 딸의 말이 지금에서야 확실히 실감이 가기 시작하는 여사였기 때문에, 지금 여사의 머리 속엔 어느새 어찌보면 매우 위험한....그러면서도 뿌듯한 손자의 대견함이 자리를 강하게 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황당한 일에 대해 입을 못다물던 에르킨 여사가 그 이후에 벌인 일들은 과연 그 뒤에 싸이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되었을까? 신룡의 후예 - 제 28 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은 곧이라도 큰 태풍이 휩쓸고 지나갈듯한 커다란 웃음소리가 온 집안을 맴돌고 있는 넓은 응접실이었다. 그리고 나를 꼭 껴안고선 연신 웃음을 지으시는 할머니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까의 일이 할머니의 어딘가 꼭 막힌 듯한 체증을 풀어준 듯 했다. "오호호호홋. 그 할망구 놀라서 기절 초풍을 하는 걸 네가 보지 못해서......... 먀하하하하핫........아이구 속이 다 후~련~~ 하다~앗!! 더구나 자기들과 아주 친하다고 자부를 하던 정령왕이 우리 싸이를 보고나선 하는 말이...........오호호호홍.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 쪼옥. 부비부비. 쪼~~~오~~~옥. 살랑살랑. 이게 무슨 일 일까? 후후후. 그건 바로 나의 위대하시면서도 다정다감하신 할머니의 단 하나밖에 없는 손자 자랑으로 인해서 생긴 작은 에피소드의 결말이었다. 더구나 천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쑤욱 내려가셨다면서 나를 품에 꼭 안고 웃음 보따리를 푸시는 할머니의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음의 소프라노성 웃음소리엔 엄마도 덩달아 즐거워 하기 시작했다. 후후후.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물으신다면.....으음......이건 아무래도 오늘 아침의 일부터 시작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아무렴. 그래야겠지? 쿡쿡쿡. 음냐. 음냐. 서걱 서걱. "옳치. 우리 손자가 너무도 의젓하게 자~알 먹는 구나. 자. 아~!" "아~~앙. 음냐 음냐 쩝쩝." "아이구. 이쁜 내새끼~! 밤새 마법 공부하느라고 무척 힘들었지~~이!! 싸이야. 많이 먹어야 한단다. 알았지?!" "응.....우물우물.....끄떡끄떡." 조금은 시끄럽게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던 난 무식하게 예의 같은 건 생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주시는 음식들을 마구 먹고 있던 나로썬 나를 보시면서 뭐가 그리 좋으신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할머니의 과감하면서도 너그러운 식사시간의 예절들 덕분에 난 정말로 신나게 내 앞에 놓여져 있는 보들보들한 송아지(?) 스테이크를 맛나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이 재료가 확실히 송아지 스테이크냐고 물으신다면 나로썬 특별하게 설명할 수도 그렇다고 증거물을 제출할 수도 없다. 단지 내 입에 들어가서 씹히는 육질과 그 속에 담겨진 달콤한 육즙은 너무나도 감미로워서 나의 식욕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때문에 내가 예전에 한번밖에 먹어 본 적이 없는 그때의 그 비싸면서도 눈물이 날만큼 쪼금밖에 안되던 송아지 스테이크의 맛을 떠올리며 난 그저 정신없이 할머니가 썰어주시는 대로 먹기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더구나 이른 새벽부터 지금까지 깨어 있었던 나로써는 조금은 이른 아침 식사가 너무도 꿀맛같이 달았다. 또한, 내가 크게 다쳐서 이렇게 엄마의 극진한 애정(?) 덕분에 다른 종족이신 위대한 내 외할머니와 같이 나란히 식사를 하는 것도......그리고 이젠 튼튼하게 자라기 시작한 내 몸과 그에 걸맞는 하얀 치아가 가지런하게 나 있는 나로썬 오랜만에(?) 끔찍한 이유식을 벗어나서 정말로 맛나게 제대로 된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크크크. 그리고....... "호호호. 우리 싸이가 정말로 용언 마법을 책만 보고 익혔단 말이니? 그것도 4써클의 유저 수준으로?" "우웅.....쩝쩝......끄떡끄떡." "아니 요것이 지금 누가 밥을 먹고 있는데 건방지게 말을 붙이는 거얏? 너 주글래?!" "끄응.....엄마는........칫. 그래도 싸이는 내 아들인데......." "뭐~~얏? 그럼....그럼 난 뭔뎃?" "그.....그야..........." 화악. 깨깽.깨깽. 이씨.......!! 순식간에 불붙은 무서운 눈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눈싸움의 결과는 당연히 할머니의 완승이었다. 저렇게 온몸의 기운들이 눈으로 몰린 할머니의 엄청난 기운을 동반한 눈빛을 감히 받아낼 수 있는 종족은 에이션트급의 드래곤들 중에서도 몇 명 안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웜 급도 안된 엄마가 받기에는 조금은 힘든........ 솔직히 내 엄마라서 많이 봐 준거지만.........마주치기도 힘든 할머니의 눈빛이었다. 에구구구구. 왜 난 내 주위에서 나를 가지고 이렇게 살벌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 아니지....존재들만 나타나는 것인지.........쩝. 이건 어디까지나 전생에서 내가 받았던 그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보상해주려는 자상한 배려 덕분이지 싶다. 그리고 이런 애정을 받고 싶어도 못 받고 있을 존재들을 생각하면....... 이젠 조금씩 겸허한 마음으로 주위의 이들에게 애정을 받는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나였다. "호호호. 싸이야. 이 엄마는 정말로 궁금한데......저기 할머니가........." 엄마의 저런 가엾은 모습은 나로썬 처음이었다. 할머니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서 가녀린 어깨가 축 쳐진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시선엔 너무도 불쌍하신 엄마를 위해 과감히 내 능력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된 건, 어디까지나 너무도 고마우신 엄마의 사랑이 한몫 단단히 차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시면서도 자신의 강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싶어하시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면 내가 아주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지배를 하기 시작하는 나였다. "우물우물...어마......이꺼......" 화르륵. 확실히 쉬웠다. 분명히 신룡 할아버지가 남기신 책의 한 문구 중에는 자신이 이루게 된 경지에서 발현시키는 마법은 몸과 마음으로 익숙하게만 되면 쉽게 생각만으로도 마법을 발현시킬 수가 있다고 하셨었다. 그리고 난........ 마법문구를 영창하지도 않고 어제 밤 내내 그리고 해가 뜨기 전까지 수없이 반복을 하면서 가지고 놀던 불덩어리들을 자연스럽게 내 머리가 생각을 하고, 내 몸이 주위의 기운들을 받아들이고 내뱉는 과정 속에서 생긴 커다란 불덩어리들을 마법으로 발현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재롱을 부리듯이 엄마와 할머니의 곁으로 날려보내야만 했다. 그래야 내 엄마가 눈으로 확실히 보실 수 있으실테니깐. 화르르르르륵. 빙글빙글. 헤헤. "오오오오옷....이게 정말 3써클의 플레임 파이어가 맞아요? 엄마?!" "그......글쎄다........이건......나로써도 처음 보는..........." 할머니와 엄마의 외침성이 강한 반응에 난 그저 내 주위에서 맴돌면서 가끔씩 엄마와 할머니 곁으로 날아가기를 반복하는 불덩어리들에게 한번씩 시선을 준 다음 그저 열심히 내 앞에 놓여진 음식들을 먹고만 있었다. '우웅. 이거 분명히 책에 쓰여진 대로 한건데.........' 솔직히 조금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엄마의 놀란 외침성을 들어보면 그 정도 수준은 되는 듯 한데, 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는 할머니의 눈길엔 나도 모르게 뻔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은 듯한 느낌이라서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으음. 분명히 책에는 이 불덩어리들을 내 마음대로 조정을 하면서 내가 정해준 범위 내에서 움직이게 하는 게 맞는데.......그게 3써클 플레임 파이어 아닌가?' 난 정말로 어리둥절한 느낌이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마음을 애써 털어 내기 위해 눈앞에 있는 음식들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할머니의 놀라운 모습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분의 눈은 내 주위에서 식당 안을 마구 날아다니는 불덩어리에게 가 있건만, 지금도 열심히 두 손으로는 나에게 주실 음식들을 썰고 계신 할머니이셨다. 그리고 난 그분의 우아한 솜씨로 깨끗이 절단된 고기들을 연신 받아먹고만 있었다. "우걱우걱......우물우물......쩝쩝......꿀꺽." '음. 진짜로 맛있다. 헤헤' 난 열심히 턱운동을 무리에 가깝게 시키면서 할머니가 해주신 송아지 스테이크를 아주 열심히....그리고 재빠르면서도 게눈 감추듯이 순식간에 해치우곤 조금 빵빵해진 내 배를 한번 쓱 문지르면서 할머니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냈다. "헤헤. 할머니.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쪼~옥" "오호호홍. 에구 귀여운 내 새끼~!" 역시 나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은 어제 보다 오늘이 더욱 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호호. 싸이야. 이젠 저것 좀 없애 주지 않으렴. 이 엄마가 매우 정신이 없구나." "넵. 자! 들어와~~!" 이건 어디까지나 정신이 산만하다며 나를 매우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봐 주시는 엄마에 대 한 서비스 정신에 입각한 모양새였다. 그런 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내 몸 가까이 붙어서는 금새 사그라 드는 불덩어리들이 전해주는 작은 쾌감에 내가 잠시 눈을 감고 감미를 하고 있을 때 할머니의 놀라움을 동반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난 그 순간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의 손을 보곤 나도 깜짝 놀랐다. "헉.....안돼~~!" 휘익. 정말로 놀란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헤. 할머니가 왜 저렇게 놀라시지? 우응. 이녀석들은 지금 내 몸에 들어오려고 이렇게 변한건데.......헤헤. 아이 시원해라~~!' 갸우뚱. "우응. 할머니 왜요? 뭐가 잘못 됐나요?" "아..........아니.....그.....그게......." 난 할머니가 갑자기 말문을 닫은 채 그저 나만 바라보고 계시는 모습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맛난 음식과 더욱 따뜻하면서도 인자하신 눈길로 나를 지켜주시는 할머니의 애정에 감사하는 의미로 할머니의 품에 덥썩 안겼다. 헤헤. 부비부비. 꼬옥. "헤헤. 할머니.....너무 따뜻해요.......헤헤" 에르킨여사는 지금 고룡들이 툭하면 놀란 표현으로 쓰는 천년 감수가 무슨 말인지를 오늘 이 자리에서 똑똑히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분명히 손자가 지금 벌이고 있는 마법들은 4써클의 유저(웜급 초기의 드래곤들)들 만이 사용 가능한.....그 중에서도 대단위의 마법 중에서도 고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마법이었다. 그러니 여사 입장에선 그런 마법을 구현하는 손자도 놀라웠지만, 손자의 말과 함께 시전자에게 눈깜짝할 사이에 날아오는 불덩어리들을 본 순간에 여사가 받은 놀람과 경악은 거의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보다 더욱 놀라운 일들이었다. 아마 지금 용언 마법 중에서도 4써클의 경지에 든 자나, 그 불덩어리 가진 진정한 위력을 알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지금 여사처럼 손을 내밀고 불덩이들이 쏘아져 가는 방향에 있는 손자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하나의 불덩이. 그건 손자의 남보다는 조금 더 큰 머리보다 더욱 큰 불덩이었다. 그런 거대한 불덩이 하나가 터지면서 발휘되는 위력은 직경 10m가 넘는 바위 정도는 한순간에 재로 만들만큼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불덩어리 5개가 손자에게 그야말로 순식간에 달려가는 광경을 목격한 여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손자의 안전과 보호뿐이었다. 그러나 미처 손자의 몸에 실드를 형성시키기도 전에 날아온 불덩어리들이 한순간 작은 소음도 없이 손자의 몸 가까이에서 터지면서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로 화해 손자에 몸에 빨려들 듯이 사라져 버리는 모습은 너무도 놀라운 현상들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여사가 받게 된 충격은 완전히 용언 마법을 새로 창안하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들이었다. '이....이게 ......이게......지금.......무슨 일이......' 정말로 그동안 위대한 마법 종족 드래곤으로 태어나서 그 긴 삶들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하던 마법의 선구자이자 전수자인 여사 자신이 듣도 보도 못한 해괴한 일에 대해 받게 된 놀람과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저 멍하니 엉거주춤한 폼으로 서 있는 여사에게 도도 거리며 달려든 손자의 귀여운 어리광이 없었다면 여사의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린 이일은 두고두고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너......너 어떻게..........이런 일이........." 하지만........그래도 미련이 조금은 남는 여사였다. 그리고 정말로 말을 이을 수가 없을 만큼의 충격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은 여사였다. 여사 앞에 앉아서 우아하게 식사에 열중하던 엘렌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넋을 놓은 채 여사와 품안에 안겨 있는 아들을 쳐다보며 멍하니 입에 든 음식들을 삼키지도 못한 채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만 보고 있었다. "어........어마? 찌끔 뽀쎴쪄?" "제발 입에 든 음식이라도 삼키고 말하려무나............쯔쯔쯧." 더 이상 이런 복덩어리를 안겨준 딸에게 구박이라는 것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솔직한 여사의 독백.......처럼 들리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꿀꺽. 켁켁. 벌컥벌컥. 잠시 입안에 든 음식을 급히 삼키다 싸리가 든 딸이었다. 하지만 여사는 지금 그런 일들 쯤은 문제도 아니였다. 오로지........품안에 안긴 손자가 기특하다는 생각만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오호호호홍. 분명히 우리 드래곤들의 찬란한 역사상 우리 싸이처럼 뛰어난 용족은 이 할미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오호호호. 두. 고. 보. 자. 빠드득." 엘렌은 그 이상 자신의 엄마가 하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정확했다. 왜냐면 그동안 당한 수모가 떠오른 여사의 모습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고만 것이기에... 엘렌은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을 가진채 아침 식사를 하면서 눈앞에서 눈웃음을 치면서 자신을 반겨주는 괴씸하면서도 여전히 사랑스럽기만 한 아들과 함께 열심히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조금은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고 엄청난 섭섭함이었다. 쳇. 자기는 어젯밤 이후로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고, 지금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엔 자신보다 더욱 따뜻한 애정을 받고 있는 아들이 할머니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쌤이 나는 그녀였다. 하지만 어젯밤의 소동으로 알 게 된 아들의 마법실력은 그런 마음정도는 우습게 사그라트렸다. 왜냐면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열심히 맛난 음식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온통 신경이 쏠려 있는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싸이야! 근데, 이 할미가 듣기로는 우리 싸이가 이 할미의 마법책을 어젯밤에 모두 외웠다고 하던데 정말이니?" "웅,우걱 우걱. 아구아구. 쩝쩝쩝." 끄떡끄떡. 거하게 차려진 식탁 위에서 할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일일이 먹여주시는 할머니의 손길대로 그녀의 아들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선보이는 엄청난 식욕을 자랑하며 할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말로 얄미운 아들이었다. 하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아들을 뭐가 그리 좋다고 연신 호호거리며 알뜰히 챙기는 자신의 엄마였다. '흥. 난 그동안 밥상 앞에만 앉으면 맨날 호통만 치면서........칫'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귀와 눈은 쌤이 나는 아들과 엄마의 모습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호~오! 그~래? 하지만 이 할미가 알기에도 그 책은 생각 외로 꽤나 어려워서 저기 앉아서 가자미눈을 하고 있는 네 어미도 저 나이에 고작 반도 못 익혔었는데......... 어떻게 우리 어린 우리 싸이는 그걸 배웠을까?" 이건 엘렌으로써도 무진장 궁금한 대목이었다. 해서 아들의 대답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 시작한 엘렌이었다. "응, 꿀꺽. 그건 나도 잘 몰라. 나도 맨 처음엔 외우기만 하면 금새 잊어먹어서 내가 매우 화가 났어.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하고 맨 첫장에 있는 파이어 볼에 관한 마법들을 처음으로 해봤더니 그게 3써클의 플레임 파이어가 되더라고..... 아~아구아구. 구래져 내까 신기해 하니가 꿀꺽, 그다음부턴 제 마음대로 움직이더니 그후론 할머니 책에 있는 마법들이 모두 지 멋대로 외어지던데." 엘렌은 지금 아들의 투정부리듯이 주절거리며 더욱 할머니의 정을 애뜻하게 솟구치게 만드는 언어 미학으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아들녀석이 말한 내용들을 열심히 머리를 굴려가며 자신과 비교를 해보았다 하지만 엘렌 그녀로썬 감히 생각도 못한 황당한 방법으로 아들이 용언 마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도달했을 때에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엄마이자 아들에겐 외할머니인 에르킨 여사보다 더욱 놀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진짜? 싸이야 지금 그말 진짜니?........." 끄떡끄떡. 아들의 자랑스러운 고개 짓에 문득 떠오른 기상천외한 방법은 지금 그녀를 더욱 천년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지난 세월들을 절실하게 후회란 감정을 가지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런~!! 그런 방법도 있었네. 바보처럼 난 왜 진작에 그런 생각들은 못해 봤을까?" 한쪽 손에 들린 포크가 따꼼하게 허벅지를 열심히 찌르고 있어도, 그동안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생각으로 긴 생을 축복 받아서 가지게 된 여유와 나태가 절실히 후회가 되기 시작한 엘렌이었다. 그러자 엄마인 자신의 놀람에 찬 외침에 아들인 싸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해주곤 할머니의 시선에서 진짠가 하는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서 왼손을 내밀며 아무 생각 없는 얼굴로 용언마법인 파이어 볼을 시전 했다. "자~! 나와라. 파이어 볼!!" 이제는 어젯밤 내내 열심히 연습한 덕분인지 굳이 주문을 영창 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주위의 마나들과 몸 안에 있는 마나들을 손위에서 부딪히게 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파이어 볼을 만들어 내는 아들을 보자 엘렌은 더 이상 아들에 대해 의심을 할 새도 없이 갑자기 식당 안을 가득 메운 불덩어리에 경악을 하였다. "으악, 싸이야~! 갑자기 그렇게 말도 없이 만들면 어떡하니?" "엉, 얘들이 갑자기 왜 이렇게 늘었지? 야~! 해쳐 모여~~엇!!" 너무도 놀란 엘렌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는 걸 본 싸이가 갑자기 생긴 파이어 볼이 평소의 다섯 개에서 지금은 온통 식당 안을 가득 메운 수백 개의 불덩어리로 늘자 정작 그렇게 만든 자신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자신에게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에 대해 눈빛으로 물어보며 금새 다시 식당안을 가득 메운 불덩어리들을 다섯 개로 다루기 쉽게 축소시키기 시작했다. 엘렌으로써도 처음으로 보는 수백개의 파이어 볼과 평소 아들이 어릴 적부터 곧 잘하던 작은 마나의 덩어리들을 가지고 노는 일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듯한 모습은 엄마로써 자식을 보는 눈을 한층 더 높게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 행복한 마음의 엘렌을 축복하듯이 지금 화려하게 제 멋대로 원을 그리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오륜기의 형태로 모습을 갖추는 불덩어리를 피하기 위해서 애를 쓰면서도 엘렌은 행복한 마음을 감출 이유를 못느꼈다. 한순간 주위에 있는 불덩어리들이 하나로 모이면서 다시 새롭게 작은 수로 구성이 되는 모습에 엘렌이 받게 된 놀람은 가히 극치에 가까웠지만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어떻게 뾰족한 대답을 해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보다 더욱 즐거워하시는 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긴말이 필요 없는 엘렌의 위대한 엄마이자 그녀의 단 하나뿐인 아들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외할머니이셨다. "오호호홋, 우리 싸이가 이렇게 대단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니. . .음므하하하 이제 그놈의 이프라네 할망구가 자랑하는 똥싸개 손녀가 우리 싸이를 만나게 된다면 한순간에 꼬랑지를 감추고 도망을 다녀야 겠구나. 오호호홋. 참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우리 싸이 맛있게 다 먹었지?" "예,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조금은 놀란 마음이 안정이 되어가던 엘렌이 점점 웃음을 지으면서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엄마를 바라보자, 평소대로 식사가 끝나면 예의바른 인사를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아들인 싸이는 순식간에 외할머니의 품에서 어디론가 워프를 당해 버렸다. "그 망할 할망구의 집으로 워프!!" "아니 엄마~~~! 그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정말로 에이션트급의 가장 강한 이가 발현한 이동 마법은 간단한 시동어도 필요치 않는 아주 깔끔한 모습의 용언 마법으로 엘렌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뭔가를 빼먹은 듯한 느낌의 엘렌 혼자만이 덩그라니 식탁을 지키게 된 것이다. "컥......설마............어.......엄~~마~~!!" 한없이 엄마가 불쌍하면서도 가련한 엘렌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가슴에 쌓인 게 많았으면 미처 아들에게 충고도 못하게 만들고 저리 급하게 사라져 버렸을까 하는............ 조금은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과 더욱 안쓰러워 보이는 자신의 엄마였다. 번쩍. 휘리리리링. "................마~~!" 내 귀에 들린 엄마의 목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환한 빛 무리들로 이루어진 보호막 너머론 어느새 내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풍경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작은 공터에는 아기자기한 모습을 갖춘 정원이 소담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베에~~!"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를 경계하는 듯한 작은 물체와 내 눈이 마주치자 난 금새 내 또래의 또 다른 드래곤 헤츨링이 이 곳에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흥분이 되기 시작했다. "할머니.....저기......." 내가 할머니의 소매 자락을 잠시 쥐며 흔들자 할머니는 이내 내 마음을 잘 알고 계신 듯 그저 살짝 웃음만 지으셨다. "호호. 우리 싸이가 처음 보는 저 똥싸개에게 호기심이 생긴 것이구나... 조금만 기다리렴............오호호호홍. 이 똥싸개 할망구야~~!" 잠시 내 눈과 마주친 할머니의 눈길엔 나에 대한 자부심과 행복감이 잔뜩 실려 있었기에, 다소 안심이 되면서도 뿌듯하던 난 이내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걸로 추정이 되는 황당한 말에 기겁을 하면서 할머니를 또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의 이런 시선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으시면서도 내겐 일절 시선도 주시지 않으신 채 전방의 작은 집으로 위장이 된 듯한 또다른 드래곤의 레어 입구만을 주시하고 계셨다. 물론 할머니의 손은 내 머리 위에서 지금도 열심히 움직이고 계셨지만..... 쿡....정말로 황당했다. 똥싸개 할망구라니~~? 그럼 지금 할머니랑 비슷한 연세의 노룡이자 고룡이신 분이 똥........싸개? 쿡쿡쿡. 그럼 드디어 노망이 드신 할머니 드래곤의 탄생인가? 크크크. 하지만 그건 아닌 듯 했다.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작은 마나의 울림과 함께 모습을 들어내신 분은 정말로 나의 할머니와 막상막하의 미모와 교양을 자랑하시는 분이셨다. 단지.......머리 결이 나와 같은 노란 황금색이라는 것만 빼곤....... "오호호호홋. 왠 일이래~에? 늙어서도 손주 하나 없이 노는 짝 잃은 할망구가.......?! 근데.......누구......................?" 매우 반기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시던 분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설마 하는 심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다 보셨다. 그리고...... "오호호호홍....감히 누굴 보고 짝 잃은 할망구라는 거얏?! 감히 우리 싸이를 물로 보는 거냣? 홍홍홍. 싸이야~!! 자. 인사드려야지~~잉! 저 할망구가 바로 골드 드래곤들의 수장인 이플라네라고 하는 늙은 곰탱이 할마구고 저기 있는 똥싸개 헤츨링의 하.나.뿐.인. 대책없는 할망구란다." 할머니의 거의 닭살 수준에 가까운 콧소리와 함께 소개가 되신 분은 바로 그동안 수천년에 걸쳐 할머니의 복장을 빡빡 긁으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신다고, 드래곤들 사이에 제법 유명한 명성을 지닌 지혜의 드래곤 일족 골드 드래곤 이플라네님이셨다. 그리고.......처음으로 뵙게 되는 그분께 내가 인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안녕 하세요. 전 싸이벨리 이구요. 제 엄마는 할머니의 단 하나뿐인 우아하고 자애로우신 실버 드래곤 엘렌키아니라고 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보살핌 부탁 드릴께요." 후후. 이건 내가 생각해도 진짜로 대단한....아니지. 조금은 황당한 인사였다. 하지만. 난 반드시 할머니의 교양 있는 손자가 되어야만 했고, 그러자면 단순하게 이름만 밝히는 것 만으론 그동안 할머니가 당하신 일에 대한 복수로는 약할 거란 생각에 제법 긴 인사를 끝냈다. 왜냐면, 나를 품에 안으실 때마다 이를 가시면서 누군가에게 두고 보자를 연발하시는 할머니이셨기에, 그런 분이 나를 제일 먼저 집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소개 시켜줄 만한 분은 아마도 그 분뿐이라는 내 생각이 지금 눈앞의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내 작은 신념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이런 제법 정중한 태도의 인사를 받으신 이플라네 님은...... "허............헉. 네가..........네가 정말로...........?!" 쿡쿡쿡. 하긴 이제 고작 네 살인 내가 허리를 살짝 숙이면서 가슴에 한쪽 손을 댄 우리 왕족과 귀족들의 정중한 인사를 올리는 모습은 지금 저 앞에서 멍청한 모습으로 침을 흘리고 있는 헤츨링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모습과 커다란 충격일 것이다. 왜? 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동안 내 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하면서 항상 권위가 넘치는 분들께 그 밑의 신하들이 하는 예의 반듯한 인사법을 많이 봐 왔기에 이런 인사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호호홍. 봤지? 봤지?! 음후하하하하핫. 어떠냐. 내 손자의 우아한 인사가.....오호호호홋" 내 정중한 인사에 절로 한없이 하늘로만 솟구치는 할머니의 높디높은 콧날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경악에 가까운 모습으로 입을 크게 벌리신 채 한 손은 입과 주먹이 누가 더 큰 가를 비교하시고, 다른 한손으론 나를 가리키고 계신 채 벙쩌 계신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조금은 놀란 모습 같았다. "정말?!.....싸.......싸이라고 했지? 네가 정말 그 말괄량이 엘렌의 아들........? 걘 얼마 전에 호비트 기사랑 짝짝쿵해서 도망을 쳤잖아?!" 고개를 기우뚱하시면서도 도저히 못믿겠다는 표정의 이플라네 님이셨다. "흥. 이 못된 할망구 같으니라고....그럼 지금 내가 네 년 앞에서 거짓으로 없는 손자를 만들어 내서 연극이라도 벌린다는 거냐? 뭐냐?" "아......아니.....난.........." 음. 역시 할머니께서 평소에 살벌하게 눈빛을 강조 하시는게 아마도........이분과의 이런 대화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이런 할머니의 살벌한 눈빛에 놀란 이는 따로 있었다. 삐에에엑. 주춤주춤. 철푸덕. "으윽.......디러...........!!" 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누군가의 행동 때문에 내 입에서 이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 뒤를 따르는 할머니의 누군가에게 가슴에 비수를 꼽는 무시한 발언이 있었다. "홍. 역시.......저 똥싸개는 안 돼.........쯧쯧. 얼마나 간이 쪼만하면 저리도 경망스럽게 지 똥에 주저앉을까? 에휴~! 싸이야. 넌 저런 더러운 년이랑은 아예 눈도 마주치지 마라. 에구. 내 새끼 어쩜 이리도 듬~직하고 늠름할까나~!~!" 정말로 어깨와 목에 한 힘 들어가시는 할머니의 우아 모드와 교묘하게 남의 속을 긁어내리시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제법 한 무더기에 가까운 지저분한 물체 위에 주저앉은 금색의 헤츨링은 정말로 더티한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헤츨링이 어찌 에이션트 급 중에서 최강자 중 한 분으로 꼽히는 할머니의 살벌한 기세에 주눅이 들지 않겠는가. 내가 엄마에게 듣기로도 왠만한 웜 급의 드래곤들도 할머니의 사나운 눈빛엔 오줌을 싸면서 주저앉아서 눈치만 살핀다는데......어찌..........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금색의 헤츨링이었다. "헤헤. 나도 너랑 같은 헤츨링인데.........." 이건 내가 잘났다고 해서 하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단지 나랑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 금색 헤츨링에게 나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기 위한 말이었다. 그리고 속으로 힘내라고.....응원을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 에이미~잇. 또 그런다. 또오~~!" 두다다다닷. 끙~차. 휘이이익. 할머니와 나의 말에 어느덧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이플라네님은 날아갈 듯이 우아한 걸음으로 하나뿐인 손녀인 금색의 헤츨링 곁으로 다가가셨다. 할머니의 살벌한 눈빛을 받아 제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릴 듯 울먹이면서 통통한 배와 조금은 긴 꼬리의 연결지점인 엉덩이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게 싫은 듯, 더욱 애절한 눈빛으로 보호자를 쳐다보는 헤츨링이 자기 할머니에게 기어코 작은 울먹거림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런 헤츨링에게 다가간 이플라네님의 손길은 조금은 통통한 헤츨링을 아무런 행동도 없이 잠시 허공에 살짝 띄우며 에이미라고 불린 골드 드래곤 헤츨링을 익숙한 손길로 씻겨 주고 계셨다. 하지만 에이미라고 하는 헤츨링은 생각이 있는 것인지 아님 전혀 아무 생각도 없는 존재인 것인지, 그저 울먹이며 멍하니 있다가 자기 할머니가 급히 물의 정령으로 보이는 작은 하급 정령을 소환해서 지저분한 무언가가 묻은 엉덩이를 깨끗하게 씻겨주자 그제야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가만히 지켜본 나는 작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헤헤. 할머니. 쟤 이름이 에이미야?" "그렇단다. 싸이야. 하지만 넌 저 덜떨어진 헤츨링과는 전~혀 다른 존재니깐 저런 어린것과는 함부로 친해지지도 말아라~! 알았지?" "우응........" 잠시 생각에 잠긴 척 하는 나였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본 나와 비슷한 존재를 -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본 관점이 아닌 엄마와 할머니가 생각하시고 나름대로 판단해 버리신 일들이다-이렇게 서로간의 질투와 반목으로 친해지지 말라고만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은 조금 어폐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다른 드래곤들과의 친목을 위해서 나에게 공손한 태도로 그들을 대하면서 최선을 다하라고 하신 할머니의 말씀이 왠지 지금은 조금 섭섭하 게 들린 탓이리라. 그리고......... 이내 우리 곁으로 다가와선 재빠른 동작으로 안면을 바꾸신 이플라네님의 환대는 나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끝마치게 했다. "어머, 미안. 난 또....... 아무튼 그동안 잘 있었어?" 조금은 낯 간지런 말투로 금새 안색을 바꾸시며 우리를 즐겁게 반겨주는 이 분은 역시 할머니와 쌍벽을 이루는 질투심과 드래곤의 귀족정신으로 똘똘 무장하신 골드 일족의 올해 8,000살이 되신 이플라네 님이셨다. 더구나 외모상으로는 할머니와 큰 차이도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귀부인의 모습 그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하신 말씀엔 다소 놀람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는 내심을 한껏 내포하고 있는 뼈있는 말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더욱 나에 대한 자부심이 솟구치신 할머니의 남 기죽이기 말빨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호호호, 당연하지 이 할망구야. 나보다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것이 감히 나에게 아직 손주도 못 봐서 어떡하냐고 놀리더니, 지금은 고작 저런 똥싸개 손녀 뒷치닥거리나 하고 있냐?" "뭐? 할망구?" 도끼눈을 하면서 나와 할머니를 노려보시는 그 분의 앞에는 제법 깨끗하게 목욕을 했는지 금새 맑고 깨끗한 금빛으로 된 작은 몸을 빤짝거리며, 나의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을 집중시키는 나와는 색다른 외모를 가진 에이미라고 하는 진정한 헤츨링- 골드 드래곤의 새끼-이 금빛이 찰랑이는 맑은 눈망울을 굴리면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헤헤, 할머니 쟤가 바로 이플라네 님의 손녀야?" "그렇단다. 우리 귀여운 손주 싸이야!" "헤헤, 그럼 나 쟤랑 놀아도 돼?" "으음.......저런 못난 년을............." 그러시면서 앞에서 한껏 눈매가 하늘높이 솟구치면서 화나기 일보 직전의 모습을 가지신 이플라네 님의 매서운 눈빛을 여유 있게 받으시는 할머니셨다. "호호호. 그럼 우리 싸이가 아직 어린 똥싸개인 저 계집애를 잘 데리고 놀아야 한다. 알았지? 더구나 쟨 아직 어리니까 함부로 다루면 안돼. 물론, 넌 쟤보다 한.참.은 어리지만 네가 힘은 월.등.하.게. 세니까 아주 조심해서 데리고 놀아야 한다. 알았지?" "응, 할머니!" 난 할머니의 누구에게 들으라는 듯이 내가 월등하게 세다고 강조하는 말들을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한 후,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황금색의 귀여운 눈을 가진 소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뭐라고? 그럼 에르킨 당신이 안고 있던 쟤가 진짜로 엘렌의 아들이란 말야?" "그래! 이 할망구야! 어떠냐 넌 손녀지만 난 든든한 손주다. 더구나 쟨 아직까지 50살(?)도 안 되서도 저렇게 자기 마음대로 트렌스포메이션도 한다구. 어떠냐~?! 이래도 네 손녀가 마법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까불래?" "뭐? 그나이에 벌써 트렌스포메이션? 흥 이 할망구가 이제는 셈이 나서 별 거짓말을 다하는 구만. 흥" 멀리서 다정히 앉으신 분들이 속닥이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지금 인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내귀에 쏙쏙 들어왔다. '쿡, 내가 언제 50살이나 먹은거지?' 작게 미소가 입가에 어리는 나였다. 그런 나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할머니께선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한마디 거하게 외치셨다. "쳇, 얘 싸이야! 조금 전에 이 할미가 한 말은 모조리 취소다. 감히 우리 위대한 실버 일족을 저렇게 무시하는 할망구를 위해서라도 내가 이 할망구가 제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해주렴. 우리 싸이가 얼마나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인지 똑. 똑. 히. 그 어린것에게 가르쳐주라는 말이다. 알았지?!." 이런 할머니의 마음을 손자인 내가 받아주지 않으면 누가 받아 주겠는가?! 해서 난 과감히 한가지 행동을 하기로 맘 먹었다. "헤헤헤, 예~에. 할머니!" 난 귓속말로 소근거리며 수다를 떠시려고 하시던 분들이 갑자기 살벌하게 이를 들어내며 투닥투닥 싸우시면서 홧김에 하신 할머니의 말씀을 가볍게 대답과 동시에 무시를 해버리기로 한 것이다. 물론 조금의 예의를 갖춰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하지만 이런 마음을 먹은 내가 다가간 곳엔 지금 나를 보면서 할머니의 살벌한 말씀에, 더욱 겁을 잔뜩 집어먹은 소녀 드래곤이 나를 빤히 보며 자기를 진짜로 때릴까봐 주춤주춤 뒷걸음질로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이리와. 난 너랑 놀고 싶단 말야. 좀 전에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내가 변명처럼 말을 이으면서도 내심 친하게 지내자고 자꾸 눈웃음과 환한 미소를 겻 들여 선보이고 있었지만, 상대는 내가 웃으면서 하는 손짓에 더욱 겁을 집어 먹고 도망을 가는 소녀 드래곤이기에, 난 지금의 이 몸으론 커다란(?) 헤츨링을 잡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급히 할머니의 체면을 생각해서 실버 드래곤으로 트렌스포메이션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시면서 할머니는 아직까지 어머니로부터 말로만 듣던 나의 변신을 내심 초조한 듯이 지켜보셨다. "나 싸이벨리가 명한다. 태초의 기운들이여! 나를 위대한 존재로 되돌릴지어다. 트렌스포메이션!" 번쩍. 크아앙 제법 우렁찬 목소리로 주위의 시선에 답례라도 하듯이 기선을 제압을 하는 나였다. 난 잠시 내 몸의 거대한 머리를 할머니에게 돌리며 안심하시라는 눈빛과 동시에 내 몸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소녀 드래곤에게 다가가 잽싸게 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꼬리를 움켜쥐고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자 소녀 드래곤은 뜻밖의 거대한 내모습에 놀라 금방이라도 죽겠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미아아악. 미아아악 이 처음 들어보는 울음소리에 어리둥절한 내가 조금은 걱정이 되어서 뒤돌아 서며 할머니를 바라보자, 나의 할머니와 그분의 친구이신 이플라네 님은 나의 거대한 몸매를 보시며 기절초풍하셨다. "헉, 저게 정말로 50살 먹은 헤츨링이란 말야?" "음므하하하. -속으론 엄청 놀라셨다.- 어떠냐. 우리 실버 일족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룡 헤리아킨 님의 위대한 전설적인 핏줄을 그대로 이은 내 손주의 멋진 모습이. 오호홋" "이럴. . .수가......에이미~~잇! 감히 반항을 하면 안돼~~!!" 할머니의 소프라톤에 가까운 고운 웃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고성을 동반한 이플라네님의 고함이었다. 그리고........ 난 내 손에서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하는 에이미라는 이 작은 소녀 드래곤의 꼬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욱 주면서, 이젠 겁먹지 말고 내 말좀 들으라는 의미로 허공을 향해서 한차례 빙 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내 행동에 매우 놀랐다는 듯이 본능적으로 작은 두 손에 불덩이를 만들어서 나에게 쏘아 보냈다. 쐐애애애액. 번~쩍. 꽈아앙. 꽤액. 갑자기 나를 향해 날아오던 불덩이가 내 앞에서 폭발하며 그 엄청난 충격에 난 그만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뒤로 발라당 넘어가 버렸다. 난 설마 작은 헤츨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에이미가 나에게 이런 공격을 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다. 난 단지 같은 헤츨링(?)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한 일인데....... 그리고 그 충격은 생전 처음으로 나의 거대한 몸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나랑 친한 마나들로 뭉친 불덩어리들이 건방지게 감히 나를 때리면서 나와 내 몸에 큰 고통을 준 것이다. 그러니 순진해 빠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고자질을 하는 일밖에 없었다. "아야앗~! 으아아앙, 할머니 얘가 지금 나한테 마법을 써서 나를 아야 하게 했어!!" 내가 마구 아프다는 듯이 내 손에 잡힌 헤츨링을 놓친 채 큰 몸을 바닥에 요동을 치면서 소리를 지르자, 할머니는 이내 나에게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다가오셔선 금새 하얗게 빛나는 손으로 내가 맞은 부위에 대고 잠시 어루만져 주셨다. 그리고.....에이미라고 하는 골드 드래곤의 헤츨링을 아주 단단히 혼을 내주라는 듯이 손짓을 보내셨다. "아니 저게 지금 누구한테 감히 덤비는 거야! 죽고 싶어~~?! 얘, 싸이야 이렇게 맞지만 말고 아예 저 년을 네가 알고 있는 화염마법으로 아주 혼구녕이 나도록 패줘라. 알았지?" 난 잠시나마 나를 아프게 한 불덩어리들을 날린 에이미를 노려보며 매우 화가 난 표정으로 째려보았다. 그런 나를 마구 달래시면서 하신 할머니의 허락을 받자마자 고개를 주억거리 며 용기를 내서 에이미에게 마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씨. 너 두고보자. 나와라. 파이어 볼!!" 내가 매우 화가 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내 몸에 있는 모든 마나들을 개방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머리 부분에선 그 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불덩어리들이 형성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에이미의 눈에 드디어 절망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그런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플라네 님은 손녀의 마지막을 마치 못 보겠다는 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리셨다. 하지만.........난 착한 아들이자 손자였다. "야! 너 이리와. 아님 이거 모두 너한테 던져버린다." 난 나를 매우 겁내고 있는 에이미를 향해서 눈을 부라리며 명령을 하듯 고함을 쳐야만 했다. 결국엔 나의 엄청난 무력 앞에 한없이 약해진 에이미는 이내 나의 눈치를 슬슬 보며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시던 할머니께서는 나를 향해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셨다. "얘, 싸이야! 넌 아직 어린 헤츨링이라서 널 다치게 하는 이들은 누구라도 네 마음대로 혼내줄 수 있단다. 그게 제아무리 너처럼 모든 드래곤들로부터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어린 헤츨링이라고 해도 지금의 널 말릴 존재는 아무도 없단다. 왜냐하면 너 또한 헤츨링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니까 네가 널 아프게 한 에이미를 죽도록 혼내줘도 이 할미랑 에이미의 할미는 널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걱정 말고 완전히 반 죽도록 혼구녕을 내주렴." 그동안의 쌓이고 쌓인 울분을 한순간의 폭력으로 삭히시려는 듯, 제법 화가 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외침에 난 재빨리 머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든 이 상황을 나의 할머니에게 보다 더 큰 만족할만한 상황으로 만들 필요성을 간절히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금 이 에이미라고하는 소녀 드래곤을 혼내주면 할머니의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풀릴 테지만, 그건 나와 할머니와 나를 먼훗날에는 욕되게 할 수도 있었기에, 이왕이면 의젓한 손주를 가진 멋쟁이 할머니를 만들기 위해서 난 과감하게 할머니의 말씀을 무시하곤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떨고 있는 에이미의 작은 어깨를 안심하라는 듯이 움켜쥐어 주었다. 그러면서 할머니에게 한번만 봐주라고 부탁을 했다. "웅, 할머니! 하지만 얜 아직 나보다 한참 힘도 약한걸. 그리고 엄마가 그랬단 말야. 이 다음에 싸이가 아주아주 훌륭한 신룡 헤리아킨 님처럼 되려면 항상 나보다 약한 자를 보호해주고 아껴주어야 한다고. 그럼 얜 엄마 말처럼 나보다 약한 여자이니까 내가 아주 확. 실. 히. 보호해줘야 하는데. 얘를 지금 꼭 혼내줘야 돼?" 이런 나의 능청스런 모습을 느긋한 포즈로 감상하시던 할머니의 얼굴엔 어느새 화가 난 모습에서 엄청 놀란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나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과 한없이 사랑스런 감정의 물결들이 지금 할머니를 감싸면서 이런 착한 손주를 남보다 더욱 자랑하는 표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또한 무언의 눈빛으로 그분의 앞에 계신 이플라네 님의 기를 팍 꺾어버렸다. "오호호홍. 과연 내 손~~주야~~!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어떠냐? 이래도 니 손녀가 최고냐?" 할머니의 이런 말씀에 손녀의 안부가 걱정이 되는 이프라네님으로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와 할머니에 대한 우회적인 칭찬이 뒤를 따라야만 했다. "끄응, 아직 어린 녀석이 아~주 제대로 된 훌.륭.한. 교.육.을 받았구나." 그말이 떨어지자마자 나의 할머니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내심 난 나의 능글맞은 계획이 조금은 성사가 되었다고 여겨졌다. 이내 내 앞에 있는 에이미를 바라보며 기분마음에 난 씽긋 미소를 지었다. "헤헤헤, 그럼 할머니 난 얘랑 놀아도 돼지?" "그으럼~~! 우리 싸이가 누구 손주라고..........!! 홍홍홍. 그리고 싸이야~~! 걘 너무 약한 것 같으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대해주면서 우리 싸이가 자~알 데리고 놀아야 한다. 알았지" "응, 할머니." 자신의 손자가 아주 의젓한 게 더욱 마음에 드신 할머니는 손녀의 반항을 너그럽게 용서해준 나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극진한 대접을 이프로네님으로부터 받으실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린............ "히히, 어때 재밌지?" "응, 그런데 아까는 왜 그렇게 싸이가 무섭게 보였지?" "이 바보. 넌 내가 때릴까봐 미리 겁을 먹었으니까 그렇지!" 이렇게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내 앞엔 한떨기 수선화 같은 촉촉한 눈망울을 자랑하는 에이미가 내가 해준-정확하게는 마나를 빌려주어서 변하게 한- 트렌스포메이션 마법으로 지금 나와 비슷한 크기의 소녀로 변해서 마주 앉아 있었다. 에이미는 맨 처음 내가 다가갈 때에는 엄청 무서워하더니 내가 그녀의 곁에 다가가서 내 큰 몸으론 같이 놀기가 힘들다고 인간의 모습으로 트렌스포메이션을 하자고 하자, 자신은 아직 5써클(인간들 기준. 용언으론 2써클 마스터의 수준)의 트렌스포메이션을 스스로 못한다고 하기에, 난 손수 그녀의 몸을 변신마법으로 지금처럼 만들어 주었다. 평소엔 그녀의 할머니가 손수 해주던 마법을 그녀보다 어린 내가 해주자 에이미는 매우 놀라워하면서도, 이제는 나와 제법 친해져서 내가 조금 전에 가르쳐준 쎄쎄쎄를 아주 재미나게 하고 있었다. "근데, 싸이. 넌 아직 50살도 안됐다고 했는데. 어떻게 나보다 더 마법을 잘해?" "응? 그건 나도 잘 몰라- 삐질삐질, 왜냐면. 식은땀이 다 났기 때문이다-. 단지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난 태어나면서부터 정령의 기운들을 남들보다 더 잘 느끼는 이상체질이라고 해서 그렇다고만 하셨어." 조금은 살 떨리는 날카로운 에이미의 질문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난 조금 거짓이 섞인 말로 그녀를 혼란시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역시 어린아이(?)인 에이미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나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면서 자기가 궁금하게 여기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내가 인간이라고 밝히면 얜 과연 뭐라고 할까?' 조금은 조심스럽게 상대를 대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싸이는 지금 저기 있는 파이어 볼을 시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해도 괜찮아?" "으.....응?. 아~! 저거.......응. 난 괜찮아. 그러니까 너하고 지금 이렇게 놀고있지?" 역시 어린아이의 순진함은 드래곤이나 인간이나 똑같은 것 같다. 그러니 자신의 눈에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불덩어리에게 금새 이목이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그리고 난 계속 시위용에 가까운 불덩어리를 유지시켜야만 했다. 왜냐면 이 녀석들이 신기하게도 아까 에이미 한테 맞은 부위를 계속 맴돌고 있는 신기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난 처음으로 느끼는 이 녀석들의 또다른 행동들을 유심히 관찰해야만 했다. 물론 할머니께서 빨갛게 달아오른 내 피부들을 금새 원상태로 회복시켜주었지만, 내 몸 안에서 받은 충격들은 이상하게도 그 정도로는 치유가 되지 않았었다. 헌데 신기하게도 이 불덩어리 녀석들과 이 녀석들의 힘을 유지시켜주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내 몸을 거쳐서 빠져나가는 먼지 녀석들이 계속 반복적인 회전을 하게 되자, 내 몸안의 충격은 서서히 가셔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이런 나와는 달리 에이미는 이런 내 모습이 마냥 신기한 듯 애교 있는 모습으로 나에게 자꾸만 칭얼거리고 있었다. "이야~! 진짜로 신기하다. 헤헤, 그럼 그거 나도 가르쳐 줘." "응? 뭐? 저기 있는 파이어 볼?" "아니-절래절래- 그건 나도 할 줄 알어! 아까도 싸이가 내 파이어 볼에 맞아서 아야 했잖아. 나 그거 말고 지금 이렇게 나랑 놀면서 계속해서 저 파이어 볼에 마나를 전해주는 마법...그런 거 가르쳐 줘......응?" 배시시. 역시 여자라서 본능적인 애교와 그걸 뒷받쳐주는 몸짓이 핏속에 남아 있는 것인가?! 아직 어린 에이미가 본능적으로 나에게 애교를 떠는 모습은 정말로 깜찍하게만 보였다. "으응, 그건. . . .사실 그건 내 몸을 마나들이 거쳐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하는 거라서 나도 잘 몰라." 요게 바로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제 아무리 깜찍하고 애교 넘쳐도 나도 모르는걸 어떻게 가르쳐 준단 말인가. '윽.지지배. 가르쳐 줄 수 있는 걸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에휴~!' 헌데도 에이미는 포기라는 걸 잘 모르는 듯 했다. "정말?..... 이야~! 그건 우리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에이미도 성년이 되어야만 겨우 할 수 있다고 했는데....그럼 난 아직까지도 700년은 더 있어야 된다는 거네.우~웅." 뽀루퉁. 놀란 척하면서 왠 토라지는 표정?! '쳇. 저게.......근데 성룡이 되어야 한다면서 700년이라니? 그럼 헤츨링을 벗어나서도 이런 건 함부로 못한다는 거야? 그럼.....그럼 난 왜 되는 거지?'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난 바로 싸이벨리다. 저정도 표정과 삐짐은 꿋꿋히 버틸수 있는 배짱이 있는 놈이란 말이다. 하지만 에이미가 나에게 마지막에 한 말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 말은 정말로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내 스스로에게 걱정이 되는 말이었다. "헉, 700년? 진......진짜로 1.000살이 넘어야만 이런걸 할 수 있어?" "응, 내 나이가 지금 300살이 조금 넘었거든. 하지만 성년이 되는 500살이 되려면 몇 밤이나 더 코하고 자야 된데. 그리고 지금 싸이 네가 하는 것과 같은 고난위의 마법은 최소한 1,000살 이상은 되어야만 시전 할 수 있다고 하셨어. 그치만 할머니 말씀이 나도 너처럼 다른 헤츨링이 삼백 살일 땐 생각이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것과는 달리 아주 똑똑하다고 하셨어." "그~래?" 내가 모르고 있는 걸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 였을까? 에이미의 뽀루퉁한 표정은 금새 사라지고 어깨를 펴면서 서서히 내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듯한 자신을 내보이려고 했다. 허나, 난 이런 에이미의 행동은 전혀 신경도 쓰지 못했다. 단지, 이 드래곤들의 나이와 그에 따라 늘어만 가는 마나의 양들을 계산하면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왜냐면 '그럼 지금 난 뭐지?' 하는 의문이 지금 나를 아주 꽁꽁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꾸 나에게 다른 마법이나 마나들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는 눈빛으로 부탁하는 에이미때문에 나의 의문은 금새 사라져야만 했다. 왜? 그건 얘가 너무 이쁘기 때문이니깐.............헤헤. 물론 애교 부리는 모습이 너무도 깜찍하기 때문이었다. "헤헤, 그렇구나. 그럼 나도 모르는 건 생각하지 말고 우선은 내가 에이미가 잘 모르는 다른걸 조금 가르쳐 줄까?" "뭔데? 응? 뭔데.............!!" 결국 에이미의 등쌀에 못이겨 내가 다른 무언가를 조금 가르쳐 준다고 하자 에이미는 더욱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폴짝. 빤히. 배시시. 헉. 얘가 왜 이렇게 바짝 붙어 앉아선 눈웃음을 치는 거얏~! 쑥스럽게 시리..................헤헤. 그래도 기분은 좋다. "히히, 별건 아니구. 그냥 우리 드래곤들이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정령술을 조금 가르쳐 줄려고." "이야. 짝짝짝. 너무 좋아!!" 귀엽게 손뼉을 치면서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짓는 에이미를 보면서 난 매우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생각들이 들었는지는 잘 몰라도 괜시리 내 또래의 용족 친구가 그것도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영웅심리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놈의 숫컷이라는 우월감과 그 묘한 영웅심리 때문에 난 지금 할머니의 책으로만 읽은 얄팍한 지식들을 아주 내것인양 큰소리를 치면서 정신연령으로는 나에겐 아주 한참이나 어린 에이미에게 나의 이런 우월성과 영웅심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르쳐 줄려고 하는 것이 바로 내가 맨날 데리고 놀던 놈들과 깊은 관계가 있었기에 자신감이 엄청 넘치는 나이기도 했다. "잘 들어.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엔 여러 가지의 마나들이 있는데. 그건 너도 마나로 숨을 쉬면서 가끔씩은 그걸 섭취하기에 잘 알고 있지?" "응! 그래서 나보고 아주 똑똑한 아이라고 할머니께서 곧잘 말씀하셨어. 우리 골드 일족이 지혜의 상징인 일족이지만 그래도 나처럼 똑똑한 드래곤은 처음이라고 하셨거든." 에이미 또한 자기가 아주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나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그 가녀린 어깨에 힘을 주면서 똘망 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얘기했다. 이러니 어찌 내가 가만히 참을 수 있으랴. 해서 난 똘망똘망한 눈빛을 빛내는 귀엽고 깜찍한 에이미에게 아직 다른 드래곤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헤헤, 그러니까 너도 그걸 잘 생각해 보면 그 다섯가지의 마나들이 가지고 있는 기운들이 서로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꺼야. 그럼 그걸 서로 싫어하는 성질들끼리 맞부딪치게 하지 말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기운들끼리 꼬리를 물게 만들면................ 아주 쉽게 네 몸에 그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기운들을 가질 수 있어." "그래? 이야. 그건 할머니도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근데 싸이 너는 어떻게 그 어려운 것들을 그렇게 잘알아?" 부리부리. 또록또록. 음. 조금은 살떨리게 이쁜 눈이군. 쿡쿡. "응, 그건 바로 신룡이신 헤리아킨님이 남기신 기록을 참고로 해서 내가 마법을 익혔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나처럼 빨리 힘센 드래곤이 되고 싶으면 내 말대로 따라해 봐." "응, 알았어. 그럼 지금 싸이 네가 보는 앞에서 해도 돼?" "당연하지. 자~ 어서 해봐." 쿡쿡. 아이구 이쁜 것. 그려 어여 해봐. 어려운건 내가 옆에서 확실하게 가르쳐 줄께~~!! 이런.........확실히 내가 얘를 보곤 미쳤나 보다. 하지만 이런 감정으로 인해 내가 사랑에 빠졌다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마시길. 난 오로지 ONLY에 ONLY뿐인 소영이가 있다. 단지 에이미 얘는 귀여운 동생(?)같은 느낌의 꼬맹이었다. 근데 과연 얘가 나보다 300살 가까이 나이가 많은데 이런 말이 성립이 되나? 조금은 어리둥절한 나이 계산법이었다. 그러나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에이미를 보면 절대로 얘보다 내가 정신 연령이 어리다곤 할 수 없었다. "헤헤. 그럼 내가 잘모르는 건 싸이 네가 옆에서 도와주는 거다. 알았지?" "그래." 내가 다급히 둘러댄 헤리아킨 님의 절기란 말에 에이미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곧바로 음양오행진기와 할머니의 책에 적혀 있는 마법을 섞어서, 내가 손수 만든 마나를 손쉽게 다루는 방법들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난 옆에서 그녀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여러 번 되풀이해주면서 내 말에 따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곧바로 주위의 마나들을 느끼려고 모든 신경을 쏟아붓는 에이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난 그녀의 주위로 마나들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치않은 방법에 쩔쩔매는 에이미가 안쓰러워 이내 난 에이미의 머리 속으로 용언으로 된 마법들을 전해주면서 그녀가 보다 쉽게 다섯 가지의 마나들을 다룰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래. 지금처럼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기운들이 하나로 모으고, 그 속에서 화의 기운들을 나무와 바람의 기운으로 돕게 해. 그 뒤를 물과 흙의 기운들로 돕게 해서 서로 꼬리를 물고 서로의 힘들을 돕게 만들어 줘. 그리고 그 다음엔 그 힘들이 널 거부할 수 없게 너의 마나 하트로 보내서 드래곤 본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거야. 참고로 이들은 서로가 화합을 하면 너한테 큰 힘을 갖게 해주지만 서로 상극된 만남을 가지게 만들면 아주 큰일이 나니까 매우 조심스럽게............. 마치 사랑하는 친구들을 다루듯이 대해주는 거야." 나의 이런 말이 꽤 도움이 되었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을 맺히던 에이미는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에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몸 안에 담기기 시작하는 새로운 기운들을 마냥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듯 방긋 미소를 지어 주었다. " 아~! 이게 바로 다섯 가지 정령들의 기운들이구나. 호호호. 고마워 싸이~! 헤헤 그럼 어디 나도 할머니처럼 정령왕들을 불러볼까?" 눈을 뜨면서 나를 향해 배시시 미소를 짓던 에이미는 한순간 자기 몸에 담긴 놀라울 정도의 마나들을 느끼게 되자, 갑자기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아니면 그동안 정령들을 소환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부러워서 자기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었는지, 겁도 없이 아직은 헤츨링인 자신의 몸에 담긴 기운들을 바탕으로 그녀가 가지고 있던 물의 정령왕과 뇌(雷)의 정령왕을 부르기 시작했다. "음.....할머니가 뭐라고 하셨더라...............음. 맞어..........대지의 기운들이여~! 나의 순수한 힘의 기운들이여~! 이제 나 여기서............음.........그대들의 힘을 ................보여주리라............으응? 이게 맞았나?" 미처 제대로 된 용언을 외우지도 못한 에이미의 말에 한순간 에이미의 주위를 감싸고돌던 마나들이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난 이런 놀라운 현상에 조금은 놀란 얼굴로 에이미를 바라보자, 이내 내 몸을 거치며 빠져나가던 기운들이 그녀의 주위로 모여 엄청난 마나의 폭풍들이 생기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더구나 그 폭풍의 핵 가운데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강력한 존재들의 느낌 때문에 멀리서 나와 다정히 놀고 있는 에이미를 가끔씩 살피시던 할머니와 이플라네님은 경악을 한 얼굴로 다급히 우리들을 향해서 달려 오셨다. "안 돼~! 에이미~~!. 싸이~~얏~! 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정령왕들을 부르면 큰일나요." 어느새 우리 둘의 주위에 모든 마나들이 하나로 모으기 시작하는 기운들을 향해 자신들이 가지고 계신 모든 마나들로 다급히 방어막을 형성하시는 두분이셨다. 또한 최대한 우리들을 감싸시고자 최고급의 방어 마법인 8성의 용언 마법으로 된 베리어를 치시면서, 아직은 나약한 존재인 헤츨링을 보호하기 시작하시는 궁극의 존재인 두 분의 할머니와 이플라네님 덕분에 에이미의 이런 시도는 금새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니 물거품이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후다다닥. "베~리~엇~!" 번~~쩍. 그리고 방어막이 형성되기가 무섭게 나를 매섭게 째려보시는 이플라네님과 할머 니............!! '음. 왜 그러시지........난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는데...........' 하지만 이런 나를 오해하시는 두 분의 매서운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으셨다. "아니. 싸이! 지금 네가 얼마나 큰일을 저지른 건지 알고나 있니?" 난 처음으로 보는 할머니의 화가 난 모습을 보면서 어리둥절해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이런 점을 못마땅해하시는 이플라네 님의 말씀이 그 뒤를 따라와 나의 여린 마음을 조금은 아프게 다가왔다. "흥, 감히 내 귀여운 손녀가 있는 자리에서 정령왕을 소환하면 보나마나 그들에게 너희 둘 다 역소환 된다는 걸 똑. 똑. 한. 네 어미한테서 제대로 된 교. 육. 을 받은 뛰어난 실버 일족의 싸이가 모르고 있진 않았겠지? 그런데 감히 내 손녀가 있는 자리에서 어쩌자고 겁도 없이 정령왕들을 소환한 것이냐?" 매우 화가나신 그분의 말씀에 난 너무도 황당해서 빤히 그분을 쳐다보며 무슨 말씀이시냐고 의문을 토했다. "예? 정령왕들을 소환하면 저희들이 역소환 된다고 하시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그럼 우리 싸이는 그런 것도 모르고 정령왕들을 소환했단 말이니?" 흐윽. 할머니 마저........흑. 전 아니란 말예요......이잉. 억울해~!! 또록또록. 부리부리. 도리도리. "흐잉, 할머니. 난 정령왕을 소환한 적 없어. 그리고 어떻게 그들을 부르는지도 몰라요." "뭐야? 그럼 조금 전에 나타나려고 한 정령왕들은 누가 불렀다는 거야?" 할머니가 미처 내 대답에 답하기도 전에 나보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이 고함을 빽 지르시던 이플라네 님은 갑자기 그분의 뒤에 나타난 놀라운 존재를 보시며 경악을 하셨다. "후후후, 이플라네 님. 오랜만이군요." 그는 이플라네님과도 친한 존재인 우리 실버 일족의 원래 속성이었던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 였다. "헉, 어떻게........어떻게 에이션트 중 가장 큰 파워를 지닌 우리 둘의 베리어를 뚫고 나타날 수 있었지요. 클라우드." "후후, 그건 바로 그대의 손녀인 에이미가 나를 소환했기 때문이지요." "뭐라고요? 우리 에이미가 . . . ." 이내 나에 대한 의문이 한줌의 재로 사라지면서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이 증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조금이나마 화가 풀리신 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머리위로 다가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오~~! 그럼 우리 싸이가 소환한 게 아니었니?" 난 그제야 한풀 화가 누그러져 부드러워지신 할머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을 했다. 그런 내 눈은 여전히 클라우드라는 물의 정령왕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응, 할머니......난 저런 존재는 잘 몰라." 부비부비. 꼬옥. 역시 할머니는 나를 믿어주셨구나.........헤헤. 그러면서도 난 희미한 안개처럼 자신의 몸을 형상화시킨 멋진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클라우드를 할머니의 품에 꼬옥 안겨서 반짝거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우리 둘의 기운으로 싸이 몸 근처에 소환술이 끝나기도 전에 강력한 베리어를 형성시켰는데 그걸 뚫고 클라우드님이 납실 이유가 없지. 아암." 할머니와 이플라네님이 아까 전의 경악에 가까운 질문을 하셨던 이유가 그제서야 비로소 풀리기 시작했다. 허나 이런 할머니의 말씀은 귓전으로 흘러버리는 듯한 건방진 존재는 할머니의 말씀보단 그 분의 품에 안긴 나에게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후후후, 그대께서 얼마 전 바람의 기운을 몸에 담기 위해서 우리 정령계를 소멸시키려는 듯, 그 무지막지한 기운들을 흡수하던 문제의 실버 드래곤이군요. 그래, 그대의 이름은 뭐지요?" 자신을 불러낸 에이미가 그녀의 할머니 품에서 고개를 묻고 나처럼 신기한 듯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싸그리 무시한 채 그는 나 또한 처음 듣는 말로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응? 그건 무슨 말이예요. 난 정령계는 진짜로 잘 모르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곳을 소멸시키려고 했다는 거예요?" 빤히 자신을 쳐다보는 나에게 다가온 클라우드는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만지면서 할머니의 무시무시한 경계의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 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클라우드라고 불린 물의 정령왕은 나도 모르고 할머니도 잘 모르고 계셨던 일들을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가르쳐 주었다. "후후후, 며칠 전 그대가 하늘높이 나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드래곤들의 헤츨링으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그 큰 몸을 마구 움직이면서................모든 하위 급의 정령들 을................... 급기야는 우리 다섯 정령왕들의 힘 중 바람의 정령왕인 라이어나 의 힘을 소환한 적이 있었죠?" 아니, 도대체 뭔 소리야? 난 그저 내 핏줄에 담긴 순수한 기운들을 받아들이기만 했을뿐인데......... "아니요. 난 그런건 잘 모르고 그냥 하늘에 몸을 띄우기 위해서 주위의 마나들 중 나와 가장 친한 기운들을 불러서 내 몸을 띄운 적이 있는데요." 역시 똑 소리나도록 반문을 해준 나였다. 하지만 눈앞의 위인은 그런건 성에 차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후후후, 그래요. 그게 바로 바람의 정령왕인 라이어나의 힘을 빌려서 그대가 스스로 하늘을 날게 된 것이죠. 그치만 그대는 그것에 만족을 못하고 그 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위해서 이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힘들을 몸 안에 흡수를 하면서 그 큰 마나들을 자신의 것으로도 만든 적이 있었지요?" 허. 이 아저씨 정말로 이상한 말만 하고 계시네. 내가 언제 그런 일들을 벌였다고...... 난 단지 내 주위로 몰려든 어린 먼지 녀석들을 모조리 모아놓고 놀던 일들과 내 몸을 하늘높이 띄워서 제트기 놀이를 한 적밖에는 없었는데....... "웅, 그건 그냥 내 몸에 담겨진 마나들이 서로 상충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기운들과 친해져서 그런건데." 어리둥절한 나의 스스로에 대한 의문을 풀려고 하는 말에 클라우드는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자신의 품인 희뿌연 안개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그런걸 가만히 보실 할머니가 아니셨다. "아니 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고함을 치시는 할머니의 외침에 깜짝 놀란 난 매우 화가 나신 듯한 할머니를 바라보자 이내 클라우드의 잔잔한 음성이 이어졌다. "후후후, 그렇게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르킨 갈리아스 님! 전 단지 당신의 사랑스런 손자를 한번 안아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지, 당신의 위대하신 손자를 절. 대. 로. 역소환 하 기 위한 것이 아니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구나 당신의 손자 분은 우리 오대 정령왕들을 한꺼번에 모두 소환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가지고 계신데, 아직까지 에르킨님은 자신의 손자 되시는 분의 진실 된 능력을 잘 모르고 계셨군요." 정말로 이 아저씨가 말한 내용은 나도 깜짝 놀랄 말들이었다. 그러니 엄마도 아니고 이런 일들을 내 곁에서 처음으로 겪게 되신 할머니의 놀람은 가히 심장마비가 걸려도 모자랄 정도의 충격적인 말들이었다. "헉, 그......그 말이 정말인가요? 클라우드 님!" 화가 났을때와 오해가 풀렸을때의 대화는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좀전까진 눈빛을 빛내시며 사생결단의 조치를 취하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시던 할머니께선 오해가 풀리자마자 고룡으로써 자신들의 친구가 되는 정령왕에게 깍듯한 예의를 차리셨다. 더구나 그의 말에 조금은 놀라셔서 마구 날뛰고 있는 드래곤 하트를 살며시 달래시던 할머니이셨기에 그 놀람은 더욱 크신 듯 했다. 한참을 가만히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시는 듯한 모습의 할머니이였다. 이내 무언가 상기되시는 일이 계신 듯 어느새 화를 누그러트리면서 찬찬히 클라우드라고 자신을 밝힌 이를 바라보며 되묻는 이런 할머니의 말씀에는 어느새 진한 핏줄에 대한 자랑과 그 뒤를 따를 뭔가 자랑스러운 일들을 기대하시는 표정이셨다. 이런 할머니의 눈빛에 클라우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자랑스런 할머니의 손자인 나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예, 에르킨 갈리아스 님! 지금 생각하시고 계신게 아마도 정확할 듯 싶네요. 단지 아직까지 당신의 손자 되시는 이 분과 저희들이 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지. 이 분은 차후엔 우리 정령계의 지도자가 되실 지도 모를 위대한 존재로 이미 내정이 된 분이라는 걸 에르킨 님께서 명심해 주시면 저희들로서는 아주 감사할 뿐입니다." "헉. 이......이럴 수가!! 우리 용족들은 그저 당신들과 친구이상은 될 수 없다고 들었건만..... 그럼 지금 내 생각이 옳다는.........?!." 클라우드가 지금 한 말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할머니의 경악에 찬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짓는 클라우드였다. "후후후, 당연하죠. 우리 정령왕이라는 존재들은 에르킨 님 같은 고룡과 에이션트 급의 드래곤들에겐 조금이나마 친구로써 약속을 할 수도 있는 무한의 궁극에 가까운 존재들이죠. 하지만 이 분은 다른 드래곤들과는 전혀 색다른 드래곤으로써 아주 특이하게도 다섯 정령의 기운들을 갓난아이 때부터 다루시던...말 그대로 스스로 우리 정령들의 모체가 되는 마나들을 마구 다스리신....... 이 세계와 우리 정령세계에서는 아직까지 나타난 적이 없는 정령신의 능력을 이 작은 몸에 가지고 계신 분이랍니다. 해서 저희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유심히 이 분을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참.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으잉? 이 아저씨가 왜 갑자기 이렇게 친밀하게 구는 거지? 게다가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은 걸 보면 신룡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그 바람둥이 아저씨랑 동급의 존재인가? 그럼.......그럼 그 바람둥이 아저씨가 내 이름을 알텐데..... 조금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클라우드를 바라보는 나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빛엔 조금 놀란 내 모습이 담겨져 있기도 했다. "예? 저요?" "예, 그렇답니다. 우리들의 주인이 되실 분이시여!" 웅, 난 그런건 싫은데..........그냥 다른 먼지녀석들처럼 친구 하면 안되나? 이건 조금 부담이 가는 얘기라서........... "저......저기요. 그냥 우리 친구 하면 안돼요?" 이건 맨 처음에 나타나서 조금은 나에게 말을 내리다가는 이내 할머니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금새 나를 존중하려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을 하는 그에게 거리가 조금 생겨서 하는 말이었다. 더구나 나랑 친한 먼지 녀석들의 왕이라는 말에 조금은 주눅이 든 나이기도 했다. '헤헤. 내가 그동안 그녀석들 데리고 부지런히 군사교육을 시킨걸 가지고 뭐라고 그러기 전에 얼른 친구하자고 해야지. 큭큭큭.' 그리고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클라우드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존중을 표시해 주었다. "후후후. 그건 당신의 마음이 이는 대로 하셔도 상관이 없답니다. 그러니 부디 저에게 당신과 최초로 계약을 맺은 존재로 만들어 주실 순 없나요? 원래 헤리아킨님이 오딘 님으로 부터 바람의 속성을 받기 전 까진 우리 물의 정령들은 싸이님의 일족인 실버 일족과는 제일 친한 관계였답니다." "음, 그건 저도 알고는 있지만........지금 당장은.........할머니 나 이 사람(?) 말대로 해도 되요?" '헤헤, 다행이다. 아직 내가 한 일들은 눈치를 못 챘구나. 후후. 그리고 정령왕들은 나처럼 어린아이들에겐 나타나지 않는 존재니깐, 당연히 할머니가 나서셔서 반대하시겠지? 쿡쿡쿡' 하지만 이건 오로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조금은 혼란스럽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존재에 대한 할머니의 믿음은 이런 나를 더욱 겁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 . .그래. 싸이야! 이 할미도 이런 일은 한번도 겪어보지를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만, 저렇게 정령왕이 스스로 나타나서 너와 계약을 맺고자 한다는 것은 아주 축하할 일이란다. 더구나 정령왕이랑 계약을 맺게 되면 그 밑에 있는 수많은 정령들은 내 명령에 따라서 소멸이 될지라도 네가 시킨 일들을 모두 도와줄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계약을 하렴." 할머니의 놀란 말씀과 조금은 나와 친한 듯한 느낌의 그를 번갈아 보며 난 그제야 할머니의 말씀에 담긴 조금은 배신감이 이는 말을 느끼면서도 나랑 이 아저씨랑 계약을 한다면, 다음부턴 조그만 먼지녀석들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하신 말씀에 고만 마음이 조금 놓여서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헤헤, 그럼 좋아요. 대신..... 내 친구인 에이미와도 같이 계약을 해주세요. 어때요?" "후후후. 좋습니다. 싸이님이 저랑 계약을 제일 먼저 하신다고 하셨는데.....후후후. 대신 에이미는 아직까지 저희들을 소환할 만한 능력이 안되니까, 그냥 가계약만 하지요." 가계약? 그건 그냥 이름만 알고 지내자는 거 아닌가? "이잉, 그런게 어디 있어요. 어차피 아저씨를 부른 건 에이미고 그 덕분에 나도 아저씨를 이렇게 만나게 된 건데. . ." "후후후, 싸이님이 정 그렇게 나오시면 당신께서 당분간 에이미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주신다고 약속을 하신다면 저도 그렇게 하지요." "예? 그건 무슨 말씀 이신지........." 도대체가 내가 알수 있는 말을 해야 이해를 할게 아닌가?!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세계를 말하더니 이젠 나보고 힘까지 빌려주란다. 어떻게 빌려 줘야하는지도 모르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 아저씨 말하는 거랑 행동하는 게 영 불안한데....... "후후, 그렇게 고민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말 그대로 에이미가 이다음에 저를 부를 때 싸이님의 권능에 가까운 힘들을 제가 조금만 가져가면서 대신 에이미에게 제 힘을 부여한다는 말이죠. 어떠십니까? 제 말대로 하시겠습니까?" '이것 봐!! 확실하잖아!! 아까는 분명히 내 이름을 모른다고 했어. 근데 지금은 내 이름을 저렇게 유창하게 부르면서 자기 딴에는 친절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은 못마땅하단 말이야!! 하지만, 이 아저씨 말대로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는 조건 같은데....... 우음. 그런...........에이 모르겠다. 할머니가 이렇게 뒤에서 좋아라 하시는데 그정도 못해주겠냐.' "예, 좋아요. 그럼 나 싸이벨리 카빌라 폰 메르카의 이름으로 분명히 약속합니다. 차후 에이미가 자신의 힘으로 아저씨를 불러낼 수 있을 때까지 그녀가 아저씨와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 힘을 빌려줄께요." 속으로 굳게 결심을 하면서 곧바로 큰 머리를 끄떡이며 속시원하게 내 이름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당하게 약속을 하는 나였다. "후후후. 감사합니다. 그럼 위대한 정령신이 되실 싸이벨리 님의 이름으로 당신과 나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는 지금부터 하나의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가 되기 위한 약속을 정식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전 앞으로 당신이 저를 부르실 때 당신의 위대한 힘으로 나의 이름만 불러주시면 언제나 당신의 친구이자 영원한 신하의 모습으로 중간계에 나타날 것을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나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주위에 잔잔히 퍼지는 음색으로 약속의 맹세를 하는 클라우드였다. 나 또한 그런 약속을 하는 그의 눈 속을 지긋히 바라보며 그의 눈에 담긴 출렁이는 그 무언가를 접하게 되자, 신기하게도 내 몸 안에도 그와 같은 느낌이 드는 듯한 착각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헤헤, 그럼 정말로 클라우드 님이랑 전 친구의 인연을 맺은거예요. 그쵸?" "예, 싸이벨리님!" 오옷. 드디어.........음하하하핫. 아구 신나라. 그럼 이제 나도 할머니처럼 이 힘 쎈 아저씨의 친구가 되는 거네. 큭큭큭. 무조건 좋다. 왜냐고? 그건 이 아저씨와 약속을 하면서 이 아저씨의 눈속에 담긴 그 무언가를 느끼게 되자 내 몸이 너무도 신나게 꿈틀거리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예전에 어린 먼지 녀석들과 놀때의 추억들이 눈에 선하게 나타나자 더욱 기분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는 나였기 때문이다. 이러니 이 아저씨에 대한 찝찝한 감정과 조금은 섭섭했던 감정들이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는 변덕스러운 나이기도 했다. "이잉. 클라우드 아저씨~! 친구가 그렇게 부르는 게 어디 있어요. 그냥 앞으로 절 부르실 땐 제 이름인 싸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해주실꺼죠?!" "후후후, 그런 황공한 말씀을........그 명령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싸이님!" "또~! 또, 그런다." "아닙니다. 그 이상은 저도 양보를 할 수 없습니다. 싸이님! 그러시니 이만 양해를 해주세요. 그리고 에이미~?!" 한없이 나에게 믿음이 가는 눈빛으로 고개를 약하게 젓는 클라우드였다. 그리고 이내 그가 나에게서 시선을 옮겨 자기 할머니 품에 덥썩 안겨 있는 에이미를 부르자 마자, 그의 시선과 함께 부름을 받은 에이미는 더욱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눈빛으로 클라우드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에. . .예?" "그대는 나와의 계약을 원하는가?" 잠시 자기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분의 품에서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에이미를 바라본 클라우드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의 약속대로 그녀와의 계약에 대한 약속을 했다. "그럼 그대 또한 나의 주군이 되실 싸이님의 명에 의해서 그대와 나사이의 계약이 맺어졌다. 그러니 앞으론 나를 소환하고 싶을 땐 나의 기운을 떠올리며 이름을 불러라. 그럼 그댄 그대의 마나들을 나에게 전할 필요 없이 나를 소환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의 신성한 약속들은 앞으로 그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실행이 될 것이다. 알았는가?" 에이미의 촉촉한 금색 눈동자가 이채를 띄면서 작은 미소가 어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예, 그럼 저도 싸이처럼 클라우드 아저씨를 친구처럼 대해도 되나요?" "후후후, 그렇다. 어차피 그대는 이다음에 이플라네님의 뒤를 이을 골드 일족의 여왕. 나 또한 지금의 그대와의 약속을 매우 흡족하게 생각한다." 역시 멋진 아저씨다. 이렇게 나와의 약속을 위해서 정중하게 에이미와 계약을 맺다니..... 절로 흥이 나는 나였다. "헤헤헤, 이야~! 그럼 난 에이미 덕분에 진짜로 위대한 정령왕 아저씨랑 계약을 한거네. 그치?" "응. 그러니까 앞으론 싸이도 날 마구 무시하면 안돼. 알았지?" 조금은 뻐기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엔 다분히 장난기가 포함되었기에 난 매우 흡족한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떡였다. "응, 알았어. 원래 친구라는 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서로를 아껴주는 거라고 할머니께서 엄마한테 가르치셨다고 했어. 그러니깐 난 에이미의 친구로써 당연히 널 챙겨줄꺼야. 그러니까 클라우드 아저씨가 이 다음에 널 마구 구박하면 날 불러. 내가 너 대신 혼내줄께. 알았지?" 작은 사내아이의 몸을 한 나 답게 이 순간만큼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작은 주먹을 움켜쥐며 큰소리를 치고 있는 나였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에이미의 눈빛은 아까와는 다른 그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끄떡끄떡. "응, 알았어. 싸이. 고마워~! 쪽" 그새 나에게 쪼르륵 다가와서 내 손을 꼭 붙잡곤 신난다는 듯이 깡충깡충 뛰다가 급기야는 내 뺨에 키스를 한 에이미를 보면서 난 나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런 내 시선이 내 옆에 계신 할머니를 바라보자 그분은 이런 나의 모습에 매우 만족하시면서 나를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꼬옥 안아 주셨다. 또한 열열하게 내 반대쪽 뺨에 키스를 진하게 해 주셨다. "호호호, 우리 자.랑.스.런. 싸.이~!! 이 할미가 그토록 고생하며 네 어미를 가르친 보람이 오늘에서야 생기는 구나. 아이구 착한 내 강아지~~!!." 쪼~옥. 팡~~팡. 내 엉덩이를 귀엽다는 듯이 두드리시면서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하시는 할머니의 시선엔 기어코 모종의 라이벌을 향해 계셨고, 급기야 어느 분에게 콧방귀를 끼시는 것으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시는 할머니께선 나를 자랑스럽게 번쩍 안아주셨다. "호호호, 아무렴 누구의 손녀 같을까 봐. 이 귀여운 놈! 오호호호홋" 할머니의 이런 반응에 덩달아 아부성 발언을 우회적으로 해주시는 클라우드 아저씨였다. "후후, 역시 난 주인을 잘 만난 것 같군요. 이렇게 의젓하시다니. . . ." "응? 주인? 에이, 우린 친구야 친구. 알았죠 클라우드 아저씨!" 난 아저씨의 이런 마음 씀씀이에 앞으론 더욱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싸이님." 내 맘이 전달이 되어서 일까? 그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 가려는 듯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이러니 내가 어찌 소홀히 넘어 가겠는가?! "그럼 아저씬....... 이제 그만 가보셔도 돼요." "예, 저도 빨리 가서 다른 정령왕들에게 마구 자랑을 해야겠습니다. 어째든 싸이님과 제일 먼저 계약을 한 건 저니깐요............후후후." "헤헤, 그럼 다음에 봐요. 클라우드 아저씨!" "예, 그럼 안녕히 계시길." 마치 안개들이 사라지듯이 작은 회오리바람이 생기면서 그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곳엔 자신들도 감히 대하기 힘든 존재를 친구처럼 만든............. 드래곤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엄청난 일을 벌린 두 명의 아직은 한참이나 핏덩어리들인 어린 헤츨링이자 사랑스런 손자와 손녀가 난리 부르스 추면서 온 동네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오호호호홋, 내가 그 할망구의 얼굴표정을 보고 나서 어땠는 줄 아니? 글쎄 천년이 넘게 묵은 체증이 한순간에 쑤욱하고 시원하게 내려가는 거 있지!! 오호호홍." "하여간에 두 할마씨들이 모여서 얼마나 얘를 괴롭혔으면 저 얘가 돌아오자마자 저렇게 힘들어서 곤하게 잠이 들었을까. 에휴~! 우리 불쌍한 싸이." 엘렌은 여전히 할머니의 등쌀에 힘들어했을 어린 아들이 걱정이 되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만 있었다. 허나 기분이 하늘 끝에 닿을 듯한 에르킨 여사가 쉽게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흥, 요년아. 너 같은 건 감히 우리 싸이한텐 발끝에도 못 미치는 존재라는 걸 제대로 알고나 그렇게 떠들어. 감히 우리 싸이를 가지고 뭐~!!" 발끈. 부리부리. 싸~늘. 어떻게 된 일인지 이젠 엘렌이 싸이를 가지고 조금이라도 투덜 되면 곧바로 살벌 모드로 폭주를 하기 시작하는 에르킨 여사였다. 그리고 그 앞엔 자기만 빼놓고 아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 와선 마구 약을 올리는 듯한 엄마가 얄미운 엘렌이 입이 석자나 삐져 나온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은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아니, 엄마는 괜히 나만 같고 그래!! 난 누가 뭐라고 해도 저 얘의 하나뿐인 엄마라고요." 쳇. 내 엄마지만 이럴땐 너무 얄미워. 그럼 그동안 나 키우면서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단 말이에요?" 발끈. 오히려 자신이 더욱 발끈 되는 엘렌이었다. 하지만.... "흥, 그러는 난.....난 우리 싸이의 단 하나뿐인 할머니다. 왜 꼽냐?" 찌릿. 빠바바바박. 주춤주춤. 정말로 한 성깔이 묻어 나오는 눈빛이었다. "아니. . . .뭐 꼭 그렇다기 보다는. . . ." 하지만............ 아직까지 부모에게 덤비는 딸에게 분이 덜 풀린 듯, 온 집안이 울렁거리는 착각이 일만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할머니의 고함에 내가 잠시 잠이 든 몸으로 몸을 뒤척이자 그순간 실내는 이내 조용한 고요가 흘렀다. "우웅..............얌냠..........쩌~업........주르륵...." 윽. 이건 아닌데...... 무언가 꿈속에서 맛있는 걸 먹는 꿈을 꾸었는지 내 입가로 한줄기 군침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런 내모습까지 무지무지 사랑스러우신 할머니셨나 보다. "에구, 우리 귀여운 강아지가 그만 이 할미의 고함에 놀랐겠구나. 이런. 이런." 토닥토닥. 할짝할짝. 부비부비. 쪼~옥. 쓱싹쓱싹. 금새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에서도 코하고 잠이 든 나의 곁에 다가오셔서 조심스럽게 나를 쓰다듬으시며 다시 자장가를 불러주시는 할머니의 손길에 난 또다시 몸을 움찔거리다가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근데, 엄마! 아빠는 도대체 언제 오시는 거예요?" "글쎄다. 이 주책 맞은 영감탱이가 어디 가서 무얼 하는지. . . .하지만 오늘 밤 늦게까지라도 집에 안 돌아오면......내가 그놈의 영감탱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잡아 둘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꺼다. 더구나 이렇게 의젓한 외손주가 집에 왔는데 감히 집에 안 돌아오면 그땐...........으드득. 하여튼 그 영감탱이는 오늘 중으로 안 오기만 하면 내 이름을 걸고서라도 우리 용족 세계에선 생매장을 당하게 만들고야 말꺼야. 그리고 아까 골드 일족의 이플라네 아들이 네게 찾아와서 감사의 인사를 한걸 그 영감도 들었다면 아마도 이런 신경전을 만든 존재로써 제 손주가 얼마나 얼마나 귀한 놈인 줄 똑똑히 알게 되겠지." 절로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할머니셨다. 내가 그렇게나 자랑스러우셨을까? 하여간 잠결에 들은 말속에서도 나를 이토록이나 생각해주시는 이 분의 마음에 무지 고맙고도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나였다. "호호호, 그럼 엄마랑 이플라네님이 서로 좋아하는 친구사이인데도 그렇게 겉으로 으르렁거리는 게 모두 아빠 때문이라는 거야?" "에효효. 그러니 이 에미가 그놈의 영감탱이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 아니겠냐. 어떻게 자기 레어 근처에 새롭게 독립을 하려고 거처를 삼은 골드 일족의 수장 아들을 거의 반죽음 시켜두었으니. . .아마도 이 에미가 그때 나서지 않았다면 그 영감은 지금쯤은 모든 용족들 한테 구박을당하는 한심한 드래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은혜도 모르고 그날부터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서 천 년이 넘는 나이 차이 정도는 아주 우습다면서 이 에미를 괴롭히던 위인이 바로 그 영감탱이 아니겠니. 끝내 내가 눈 딱 감고 받아준 덕분에 그렇게 쏴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쳐도 지금껏 무사한 거 너도 잘 알잖니." "쿡쿡쿡, 하여간 그놈의 방랑벽과 장난기는 알아줘야 한다니깐." 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조금은 할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그리워하시는 느낌이 드는 건 과연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하여간 엄마와 할머니가 오랜만에 만나서 오붓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누군가를 원망 반 그리움 반 하고 있을 때 나의 외할아버지 되시는 갈릴네오 갈리아스님은 그시간에 자신의 레어에서 오랜 시간동안 낮잠을 푹 주무시고 계셨다. 신룡의 후예 - 제 29 화. 음. 어제 못올렸답니다. 집안의 일로 인해서 하루종일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했기에..... 그 덕분에 아직 피로가 풀리지도 못했어욤. 더불어 간만에 나가본 바깥세상은 이제 봄을 알리듯 화사하게 제 눈에 다가오더군요. 그 때문에라도 오늘 부랴부랴 수정을 봐서 길게 올립니다. 또한 제 소설이 좀 유치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답니다. 저도 그건 인정해요. 다만 싸이와 관계된 가족들의 모습만 그럴뿐이지 다른 존재들의 시각에선 그런 유치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나름대로 자부한답니다. 왜냐면 싸이는 전생에 이런 꿈들을 소중히 꾸고 가슴속에 담고 살았답니다. 자신만이 이 세상에서 외톨이라는 심정은 그를 이런 유치찬란한 가족애를 꿈꾸게 만들었고 판타지. 즉 상상의 세계에서 새롭게 태어난 지금의 싸이는 자신이 전생에 꿈꾸웠던 유치한 가족들과의 행복이 지금 그의 삶에서 큰 몫을 차지하게 된 것이죠. 더불어, 그와 상대하거나 다른 인물들이 나타나는 시점에선 처음과 같은 이미지가 계속 부각이 될 겁니다. 이점 참고하셔서 돌 던져 주시길.......... 더불어 제가 본 인간의 내면은 순수하다는 것. 그때문에 제 소설에 나오는 싸이의 주변 인물들 또한 싸이의 눈에는 순수하게 보인다는 걸 참고하신다면 어쩌면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실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어린 싸이로썬 자신의 눈에 보이는 건 무슨 일이든지 순수하게 보인답니다. 왜냐구요? 싸이는 전생의 기억을 가진 어린 아이인데 그게 무슨말이냐구요? 아니랍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를 당하고 살죠. 그리고 지금 싸이의 내면속에는 본능이라는 지금의 싸이와는 다른 또다른 어린아이의 영혼이 담겨져 있답니다. 이때문에 여러분들이 제 소설을 보시면서 가장 싫어하는 이름. 바로 싸이라는 존재의 진정한 탄생이었고, 싸이라는 이름이 주어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일이지요. 어떤 분들이 .....아니 거의 대다수의 분들이 저보고 주인공의 이름을 근사하게 바꿔달라고 요청하신 답니다. 하지만 제가 이름을 못바꾸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몸속에 두개의 영혼이 담겨져 있고, 그 두개의 영혼은 하나라는 사실이 제 소설에선 제일 중요한 원인이라서 감히 이름을 못바꿔드린답니다. 싸이의 영혼속에 또다른 싸이의 영혼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쉽게 풀어서 설명해드리면 이해가 되시려는지.........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지금 여러분의 영혼속에 또다른 자신이 담겨져 있다면? 과연 여러분들을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그 영혼이 싸이의 몸이 크면 클수록 점점 지금의 싸이의 영혼과 작은 충돌을 일으키고 그 속에서 서서히 자신을 되찾아가는 또다른 주인공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때문에 제 소설의 주인공은 싸이......벨리. {psy valley. - 정신적인 혼돈을 일으키는 곳. }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랍니다. 이런 싸이다 보니 지금의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그 속에 잠재된 그의 또다른 영혼이 지금의 순수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은 유치한 모습들이 자주 그의 눈에 들어오는거죠. 이정도면 제가 드리고 싶은 설명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셨는지....... 그리고 노파심에 한마디 더 하자면, 프레임이라는 불의 정령왕 모습이 너무 헤프죠? 하지만 전 그를 설정할 당시 불에 대해서 열심히 궁리를 했답니다. 불은 그 자체로 혼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 인간들에겐 매우 소중한 존재이죠. 그런 불의 모든 걸 가진 순수한 불의 원천인 프레임은 그 성질만큼이나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모습으로 여러분들께 소개시켜주고 싶었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짧은 필력으론 엄청 헤픈 프레임이 탄생이 된 것이죠. 그러니 조금 찌푸러진 눈쌀은 제 성의를 보셔서라도 좀 푸세요... 언제나 여러분들께 허접한 글이지만 작은 재미와 감동을 주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저 듀크옹이니만큼 그저 여러분들께서 이뻐해주시기만을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참고로 오늘 분량은 28P입니다. 열심히..그리고 천천히 감미하시면서 읽어주시길..... ********************************************************************************* "드르르렁. 푸욱. 카라라랑. 키이이이" 특이한 소음과 함께 깊은 잠 속에 빠져 신나는 모험을 즐기고 계시던 이 갈릴네오 갈리아스님은 잠시 후 자신을 찾아온 오랜 친구이자 조금은 상대하기 벅찬 골드 일족의 수장인 이스란 슈빙님의 방문을 받았다. 휘이이이잉. 작은 돌개바람처럼 주위의 마나들이 소용돌이치면서 그 속에서 제법 의젓한 30대 중반의 사내가 눈앞에 작은 동산 만한 은빛의 동체를 자랑하는 드래곤이라는 궁극의 존재를 향해 작은 한숨을 내 쉬었다. "에휴, 하여간 그놈의 코고는 소리는 긴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구만. 이~봐 갈리아스~!!" 우르르릉. 드래곤 피어를 약간 섞은 목소리로 곤히 잠든 갈릴네오 옹의 귀에다가 대고 냅다 소리를 지른 금발의 사내는 인간의 몸으로는 상상도 못할 화려한 금발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사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갈리아스옹은 이내 큰 소리로 자신을 깨운 이를 작게 뜬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곤한 잠을 깨운 그 인간이 꽤나 얄미운 마음이 일어났다. 뿌드드드득. 부르르르르. 쭈우우우욱. 두두두두두둑. "으갸갸갸갸. 아~웅 잘 잤다." 조금은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듯이 크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시는 갈리아스 옹.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내는 그런 모습은 수도 없이 봐왔다는 듯이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니...................!! "에휴~! 에휴휴휴휴휴휴휴휴~~~! 이 한심한 놈. 고작 그새를 못 참고 벌써 수면기에 든 것이냐? 조금만 더......아니 몇 년만 더 지랄발광을 해서라도 끝까지 개길 것이지. 쯔쯔 쯧 하여간 그놈의 잠탱이 버릇은 언제 생겼는지.......야. 이놈아~~! 지 외손주가 화려한 외출로 우리 골드 일족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도 까마득히 모른 채 그렇게 허구헌 날 잠에만 빠져서 살다니......너 정말로 그렇게 살고 싶냐? 야. 이 잠탱이야. 그만 눈 안 떠~!" 상대가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조금 전 꿈속에서 만난 신기한 물건들 때문에 정신없이 그리고 대책 없이 또다시 눈을 감고 있던 입맛을 다시던 갈리아스옹이었다. '쩝. 그 이동용 대포라는 놈.......고거 아주 쓸 만하던데........쩝. 근데...지금 저 놈이 뭐라고 씨부리는 거지? 으잉? 내 손주?! 그게 뭐야? 그럼 우리 엘렌이 그새 애 엄마가 됐다는 거야? 에라이............우리 엘렌이 지금 몇살이나 됐다고..... 이 섞을 놈..........화악.' 곰곰히 자신의 이쁘기만 한 딸을 떠올리던 갈리아스 옹은 꼭 감은 눈으로 다시 한번 딸의 이쁘장한 소녀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뜬금도 없이 찾아온 오랜 친구인 놈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라는 놈이 주절거린 말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절로 인상이 찌그러지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엥, 뭐야? 우리 엘렌이 뭐 어째? 이 쌍놈의 누렁이 쉐이가......너 죽고 싶어~~!! 게다가 곤히 자는 이 무서분 은룡님을 감히 겁대가리 없이 깨워놓고선 뭐가 어쩌고 어째. 이놈의 누렁이 도마뱀이 지금 감히 누구를 놀리고 있는 거야? 뭐? 내 외손주? 이걸 그냥........화악~~!" 쌍심지를 켜며 상대를 꼬나보던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말을 하고도 더 열이 받는지 급기야는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야! 이 섞을 놈아~~! 아직 우리 이쁜 딸내미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은 이 아비인 나도 못 들었다. 헌데 지금 누구한테 와서는 감히 나보고 할아버지가 됐다고 난리를 치는 거야!!" 불끈. 부르르. 절로 움켜쥔 작은 두 손들이 매우 노한 자신의 심정 인냥 부들부들 떨리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지금 찾아온 이는 그런 자신을 바라보며 끝내 혀를 차더니 내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노는 모습에 조금은 갈리아스 옹을 해깔리게 만들었다. '으잉? 저놈이 혀를 차?! 그럼...그럼 진짜........?!' 조금은 해깔리면서도 당황이 되기 시작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여간......쯔쯔쯧. 야~! 이놈아. 그 망할 놈의 귓구멍 활짝 열고선 잘 들어둬. 네놈이 내 친구만 아니었으면 예전에 내 아들을 괴롭힌걸 가지고 내가 두고두고 복수했을 꺼다. 더구나 내 마누라랑 하나뿐인 친구인 에르킨 님이 너와 날 중재해주지 않았으면 넌 그때 이미 우리 용족 사회에서 생매장 당한 유일한 드래곤이라고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에휴, 주신은 도대체 뭐하시나 몰라. 저 놈의 쌍통을 당장에라도 데리고 가야 우리 용족 사회가 지금보다 더욱더 발전을 하는데..............쯔쯔쯧." 잠시 오랜 친구의 어벙한 모습에 혀를 차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사내였다. "좌우간 지금 내 말 그대로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네놈의 그 황당한 피를 이어받은 네놈과는 전혀 다른 멋진 외손주가 우리 집에 나타나선 우리 골드 일족의 귀염둥이 에이미를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에게서 역소환 당할 일들을 무마시켜 준 일이 있었다. 내가 그것뿐이면 지금 네놈의 쌍통을 보러 오지도 않았어. 네놈의 황당한 피를 이어받은 외손주가 오히려 정령왕인 클라우드와 우리 에이미 사이를 파격적인 계약을 맺는 것까지 도와주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네놈을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 이젠 똑똑히 내 말을 알아들었겠지?" 갸웃. '뭐? 클라우드? 걔 물의 정령왕이잖아? 그럼......에이.....설마. 무슨 헤츨링이 나도 부르기 힘든 정령왕을 소환시켰다는 거야? 에이 저놈......또.....또......' 혹시나 하던 갈리아스 옹은 고룡인 자신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할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와 어린 핏덩이 헤츨링을 자신의 처음 들어본 손자가 둘 사이를 계약의 끈으로 이어주었다는 말에 더 이상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짜증이 치밀기 시작한 갈리아스 옹이었다. '저놈이 식전부터 뭘 잘못 쳐먹어서 저 지랄이지?' 답답함과 짜증이 치민 그의 입에선 곧이어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 있지도 않은 내 손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선 네놈의 그 멍청한 똥싸개 손녀딸을 구해주고 뭐? 정령왕까지 불러서 계약을 맺게 해줘?" 뿌드드득. 이젠 서서히 이가 갈리기 시작했다. '저놈이 이젠 내가 싸이코 짓을 몇 번했다고 아예 가지고 노는 구만.' 이를 갈면서도 자신을 이젠 완전히 병자취급하는 누군가에 대한 원한이 사뭇치기 시작하는 걸 똑똑히 느낄수 있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이익. 도리도리. 쩝. 하지만......너무도 오랜 친구사이에 이정도 농담으로 원한을 가진다는건 조금은 나이값 못하는 처사같다는 생각이 이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해서 갈리아스 옹은 가만히 그리고 끝까지 한번 들어나 보자는 심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갈리아스옹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사내는 연신 그를 헐뜯고만 있었다. "에구, 이 무식한 놈. 어떻게 어릴 적에는 나도 깜짝 놀라게 만들던 네놈의 그 뛰어난 머리가 이젠 아예 쇳덩이가 됐냐? 내말이 그렇게도 이해가 안되는거냐? 아니면 못 믿겠다는거냐? 좌우간 네놈 손자가 우리 귀염둥이 에이미한테 다섯 가지 정령의 기운들을 느낄 수 있는 비법을 손수 가르쳐주고, 그걸 배운 우리 귀염둥이 에이미가 호기심으로 부른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한테 역소환당하게 생긴 일이 오늘 아침에 있었다. 그때 네놈과 내 마누라 둘이서 나서도 막지 못한 클라우드를 네놈의 손자가 나서서 막아주더니 오히려 헤츨링인 에이미랑 정령왕인 클라우드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친구처럼 소환할 수 있게 계약을 맺어주었단 말이다. 이제 내말 똑똑히 알아들었냐?" 허어~. 절로 허탈했다. '뭐? 헤츨링 주제에 정령왕이랑 친구 먹기로 했다고.......? 그럼....그럼 고룡인 우린 뭐냐? 우린 걔들한테 함부로 까불면 수시로 주위의 마나들을 싸그리 묶어서는 우리 몸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횡포를 부리는 그놈들한테 우린 뭐냐고........!! 우이씨. 내가 이놈의 긴 용생을 살면서도 오늘 같이 황당한 일은 난생 처음일세. 쩝. 하여간 저놈의 누렁이 새끼 번지르르한 말빨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깐...... .에잉. 짜증나.' 조금은 자신이 한심하게만 느껴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긴 한숨이 절로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허~! 이젠 이놈의 누렁이 쌔끼가 남의 곤한 잠을 깨우기가 민망해서리 별별 거짓말을 다하는 구만. 야~! 이 때깔만 누리끼리한 놈아! 어떻게 그 때깔 가지고서도 아직도 그 속의 시커먼 고약한 심보랑 버릇은 고치지 못했냐~! 뭐? 내 손자가 정령왕과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갑자기 나타난 아니지. 네 놈의 그 멍청한 똥싸개 손녀딸년이 소환한 정령왕을 네 손녀딸과 손수 계약을 맺게 도와줘~? 에라~이 황금에 묻혀서 돼질 놈. 감히 나한테 사기 칠게 따로 있지 에이션트 급의 드래곤들도 함부로 못 부르는 정령왕을 뭐? 고작 헤츨링도 못 벗어난 어리디 어린 핏덩이들이 감히 불러서 계약을 맺어? 이걸 그냥 꽉......야 이 썩을 놈아~! 우리도 에이션트에 접어들면서 처음으로 구경한 그 귀하디 귀한 낯짝을 고작 300살도 안된 어린것들이 감히 친구를 삼았다고.......? 화악.......감히 나의 곤한 단잠을 깨우더니 이젠 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어." 화르르르륵. 갈리아스 옹은 너무도 황당한 말들을 씨부리는 이 누런 때깔의 다른 일족의 수장을 보면서 그동안 그토록 보고 싶었던.....가출 비슷한 걸로 유희를 떠난 딸의 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움에 이 정도쯤에서 화를 내는 걸로 그치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머리속에선 설레이는 마음에 이놈이 지금 정말로 떠드는 소린가 하는 작은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믿고 싶어도 믿을수 없는 사실들이었다. 사랑스런 딸이 유희생활에 재미를 못붙여 급히 자기 레어로 돌아왔다고 치자. 제아무리 그래봤자 5년전에 가본 텅빈 딸의 레어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하고 수면기에 접어들었던 갈리아스 옹으로썬 채 5년도 안된 그 짧은 공백기간 사이에 딸에게 무슨 아들이 생겼다고 믿을 수 있겠냔 말이다. 그리고 있다고손 쳐도 5살 먹은 헤츨링이라고 하면 이제 겨우 기기도 힘든 상황인 데............. 절로 온몸의 살기가 눈으로 옮겨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그런 갈리아스 옹의 시선을 눈썹 하나 까딱 하지 않고 바라보던 골드 드래곤들의 수장인 이스란 슈빙은 그저 한숨만 폭 내쉬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뿐이었다. "에효효효. 하여간 그놈의 황소 고집에 지만 잘났다고 하는 버릇은 그 나이 쳐 먹도록 고치지도 못하고 여전 하구만. 좌우지간 내 말이 그렇게도 안 믿어지면 네 놈의 그 잘나신 마누라님께서 계신 곳에 네놈이 직접 가서 내 말의 진가를 확인하도록 해라. 어째든 난 네놈한테 오늘 고맙다는 인사는 이걸로 확실하게 한거다. 이후에라도 나한테 고작 요걸로 넘어간다고 따지면 그땐 네놈과 내가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지 결투다. 알았냐? 그러니까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 망할 놈아!" 휘익. 짤랑. 걸죽한 대화....그래서 이들이 꽤나 오랜 시간동안 친한 친구사이라는 걸 더욱 강하게 보여주는 말들이 오고가는 와중에도 나의 외할아버지 갈리아스 옹은 이렇게 자신의 친구인 골드 일족의 수장 이스란 슈빙님이 내민 무제한 마법이 걸린 돈주머니와 그 속에 담긴 짤랑거리는 소리로 봐서는 꽤나 많은 황금과 보석이 들어가 있는 선물꾸러미를 받아든 채 물끄러미 친구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엥, 저 자린고비 같은 놈이 왠 일로 이런 과한 선물을.....그럼 지금 저놈이 떠들어 댄 게 전부 사실이라는 거야?' 잠시 의문에 사로잡혀선 자신의 친구가 나가는 것도 모른 채 고민을 하시던 나의 외할아버지는 아무래도 다시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가는 왠지 누군가에게 심한 구박을 당할 것 같은 예감과 찜찜함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급히 신형을 이동시키는 워프 마법을 실행했다. "흠, 어째든 밑져봐야 본전이니까. 오랜만에 마누라 엉덩이나 한번 두들겨 주러 가볼까?" 이미 나름대로 드래곤들의 세계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말썽꾸러기 드래곤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그토록 오랜 방랑생활과 사악한 장난을 가장한 마법으로 인해 가까운 용족들의 욕을 얻어 먹어가면서 익힌 매우 특이한 용언 마법으로 할머니의 집을 향해서 그 큰 몸을 통째로 워프를 시작했다. 띠리리링. 반짝. 반짝. 부르르르. "흥, 그놈의 영감탱이가 드디어 왔나보다." 할머니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환한 빛이 나면서 미세한 진동을 시작하자 할머니는 이내 누군가 특정인물이 가까이 다가오면 오면 자동으로 실행이 되는 이 마법 목걸이의 효능으로 인해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번쩍, 화려한 빛들의 춤이 할머니의 집 거실에서 한동안 머물더니 다른 드래곤들과는 전혀 색다른 워프 마법의 빛 무리를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내 어머니는 이내 그 빛의 가운데에서 무언가 궁시렁 거리며 걸어나오는 사내를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 그 사내를 힘껏 안았다. 두다다다닷. 활짝. 덥썩. "꺄아아. 아빠~!!" "오잉? 우리 딸 엘렌이 언제 왔니? 오오오오옷.........부비부비........... 근데 너 엄마한테 혼 안 났어? 그 할망구가 널 꽤나 벼르고 있던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품에 덥썩 안기자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절대로 잊지 못할 그리운 향기에 한동안 취해 계시던 할아버지는 한참을 자기의 사랑스런 딸을 껴안고 얼굴을 부비시다가 그제야 누가 자신들을 보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금새 딸의 귀에다 대고 조심스럽게 딸의 안부를 묻고 계셨다. 하지만 무언가를 딸과 머리를 맞대고 떠들고 있던 할아버지는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애써 웃음 짓는 얼굴로 매우 용면(?)대하기 어려운 누군가를 향해서 인사를 했다. "여보, 드디어 왔. 군. 요!" 왠지 살벌한 듯한 반김에 잔뜩 주눅이 든 할아버지는 이내 궁색한 인사를 건냈다 "으응,....쭈빗쭈빗......마누라~! 잘 있었어. 그동안 내가 조금 뜸했지?" "호호호. 아. 주. 자~알. 알고 있군요.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서 제가 조금 참. 지. 요! 그러니까 얼른 가서 당신의 귀한 외손주 얼굴이나 보고 와욧!" 조금은 살기가 어려있지만 그 속엔 한없는 신뢰가 쌓여있는 와이프의 눈길을 받으면서도 할아버지는 자신이 조금 전 들었던 내용들이 진짜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잠시의 멍한 느낌은 이내 강한 놀람을 동반하기 시작했다. "헉, 그럼 그 망할 놈의 누렁이 영감탱이가 말한 게 사실이야?" "예? 그게 무슨 말이예요?" 할아버지의 놀란 표정에 어리둥절한 엄마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급히 묻자 할아버지는 그제야 한참을 멍하니 입만 벙긋거리는 모습으로 계시다가 딸의 사랑스러운.........그러면서도 무언가를 묻는 듯한 강력한 시선을 느끼면서 뒷머리를 끌적였다. 그런 후에야 자신이 조금 전 겪었던 일들을 다급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으응,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에 그 황금으로 제 놈 몸을 칭칭 감고 있는 누렁이 놈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는 하도 믿기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말들로 나한테 사기를 치잖아. 그래서 난 이 놈이 미쳤나 하고는 욕을 한 바가지나 퍼부어 주고 온건데........ 정말로 나한테 그런 괴물 같은 외손주가 있다는 거야?" 괴물이라.............. 흠.....내가 괴물이 맞나?! 그리고 할아버지는 지금 무언가에 화가나신 듯 살벌한 눈빛을 빛내고 계시는 누군가를 잊고 계신 듯 한데...............쯔쯔쯧. 불쌍하신 분.......!! "호호호, 괴물이라뇨. 당.신. 죽.고. 싶.어.요.?"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얼굴표정이 마치 아수라보다 더 무서운 괴물로 변한 할머니의 소프라노보다 높은 톤의 고함에 찔끔 놀라서 고개를 숙이는 할아버지였다. "미......미....안해. 하지만 진짜 내 외손주라면 끽해야 5살도 안된 조그만 핏덩이일텐데 벌써부터 정령왕을 불렀다는 둥 하는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이미 눈앞에는 수면기에 접어들기전 사랑하는 딸의 허전한 레어가 떠나지 않는 갈리아스 옹이자, 내 외할아버지셨다. 그러니 이분이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지만.........할머니는 그정도에 쉽게 화를 가라앉히고 싶은 생각이 없으신 듯 했다. "흥, 하지만 당신보다는 나를 매우 많이 닮아서 아~주 똑똑하고 착한 손주가 정령왕을 부른 일은 사실이랍니다. 더구나 그를 자기와 친구의 사이로 인연을 맺은 것 또한 사실인걸요. 더군다나 그 자리엔 이플라네도 있었고 그녀의 하나뿐인 똥싸개 손녀인 에이미도 있었는걸요." 허리에 손이 서서히 가슴부위의 팔짱으로 변하시는 할머니이셨다. 헉. 휘청. 뜨끔. 그런 할머니의 사나운 눈초리에 심장부위가 조금은 그 기능이 약해진 듯 금새 심장 마사지를 시작하려는 듯 가슴을 움켜쥐신 할아버지이셨다. "헉뜨~! 그.......그럼 그 말이 전부 사실이야?" 심장부위가 날카로운 그 무언가에 찔린 듯이 아파옴을 느끼며 가슴을 움켜쥐면서 신음성을 흘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는 이들도 아찔할 정도로 심각한 듯 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모습을 보시면서 아주 고소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날리며 마무리로 대못을 꽝꽝 박아 버리시는 것이었다. "오호호호홋. 당.연.하.죠. 그러니까 그런 놀란 표정은 그만 짓고 어서 빨리 우리 귀여운 외손주 얼굴이나 보고 와요." 그러나 지금 너무 놀라서 석상이 된 할아버지가 굳이 나를 보러 오실 필요는 없었다. 왜냐면 곤히 자고 있다가 레어가 떠나갈 듯이 고함을 친 누구 덕분에 난 잠에서 막 깬 얼굴로 귀여운 은색의 드래곤이 새겨진 잠옷을 입고선 할머니를 찾아서 나왔기 때문이다. 부비적.부비적. 두런두런. "우웅, 할머니 누구 왔어?" "아이구. 귀여운 내 새끼. 그래 이 할미가 큰소리를 쳐서 깼니? 하여간 늙으면 주책덩어리라고 하더니 우리 귀여운 강아지 잠자라고 소리를 안 지른다는게.,......오호홍. 내 새끼." 번쩍. 화악. 부르르르. 나의 이런 잠이 덜 깬 모습마저도 귀엽다며 품에 꼬옥 안아주시는 할머니이셨다. 그런 그분의 지금 시선엔 조금은 살벌한 눈빛이 담겨 있었고, 그 시선의 끝엔 나의 곤한 잠을 방해한 누군가가 담겨 있어서 지금도 연신 그 누군가에게 원망의 눈길을 날리시는 할머니이셨다. 이러니 착한 내가 어찌 참을 수 있으랴........!! "우응. 누가 울 할머니를 괴롭히는 것 같던데.......내가 대신 혼내 줄까? 할머니?!. 근데 누구야? 누가 우리 할머니를 화나게 한 거야?" 똑 소리나는 나의 이런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이 나를 꼬옥 안으시면서 건너편의 누군가를 죽어라하고 째려보시는 할머니의 눈치를 본 나는 눈에서 아직도 덜 빠진 잠 기운을 최대한 지우려고 했다. 이런 내가 멋지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이 큰 머리로 떠올리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필요도 없었다. 대뜸 할머니의 품에서 날아가듯이 벗어난 나는 그 누군가를 향해서 멋진 도약과 함께 나의 이 환상적인 큰머리를 확실한 살상 무기로 삼기 위해서 멋지게 할머니의 복수를 모두에게 선보여 준 것이다. 부우우웅. "이얍, 받아라. 감히 우리 할머니를 괴롭히다니. . .정의의 박~치~기~다." 휘이익. 빠각. 삐용삐용. 번쩍이는 번개와도 같은 재빠른 나의 이런 모습은 이곳에 있던 모든 이의 제지보다도 더욱 빨랐기에, 나를 말리시려고 하던 엄마와 할머니의 다급한 외침은 이미 나의 깨끗한 박치기에 당해서 허공에 붕 뜨듯이 날아가는 할아버지의 몸과 함께 나의 눈과 귀에 동시에 들어왔다. "싸이야! 안~돼!!" "아이구, 고거 쌤통이다. 오호호호" 콰당탕 "캐액" '아고. 아퍼라........히잉. 내 머리.........아얏........' 찔금. 고만 나의 박치기에 대자로 쭉 뻗은 할아버지를 향해서 달려간 엄마는 이내 그분의 숨이 남아있는지를 확인하시더니 어리둥절해서 아직 잠이 내 몸에 반이나 남아있는 나의 정신세계를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셨다. "요 녀석. 싸이! 감히 건방지게............어떻게 네 녀석은 너한테 단 한 분뿐인 할아버지를 그렇게 심하게 대하면 어떻게 하니?" 억. 할아버지?! 나.......난 그저......... 다급히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버린 나는 도저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솔직한 이유만이 이 사태를 수습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예? 할아버지?! 어...엄마 무슨 말이야? 할아버지라니...... 나........난 그저 할머니를 괴롭히는 못된 악당인줄 알고선..........." "뭐야?" 도끼눈이 바로 이런 것이다를 나에게 똑똑히 보여주시는 엄마의 매운 눈초리를 보면서 난 급히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나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시는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내 등뒤에서 나를 감싸면서 난 이내 할머니의 품으로 들어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모든 혼란들은 할머니의 따뜻한 품안에서 금새 사그러 들었다. "호호호, 괜찮다. 그정도 박치기에 죽을 위인이었으면 벌써 수천 번도 더 죽었을께다. 더구나 자기의 하나뿐인 손주를 괴.물. 취급하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당해도 싸다. 싸!" 역시 이분은 나의 든든한 보호자이셨다. 하지만 그 앞에서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연발 하시는 엄마 입장에서는 쉽게 수긍을 하기 힘드시는 듯 했다. "아니 엄마는 어떻게 아버지를 그렇게 구박하시는 거예요." "흥, 그건 네가 몰라서 그런거지. 그 양반이 내 속을 어디 한 두번 썩혔니. 더구나 7,000살이 넘은 고룡이 되었으면 이젠 조금 중후하면서도 노년의 멋을 풍길 줄도 알아야지. 어떻게 자기가 아직까지도 헤츨링을 갓 벗어난 나이인 줄 착각하면서 살고 있는 영감탱이는 그렇게라도 해서 혼구녕이 한번 나야 돼." "에휴, 하여간 우리 아버지는 불쌍해도 엄청 불쌍해요. 어떻게 마누라와 딸한테 그렇게 구박을 당하며 사시더니, 이제는 하나뿐인 손주한테까지 얻어 맞어서 기절까지 당하시 고. . . 에효" 엄마의 한숨에 난 나도 모르게 조금은 캥기는 게 있어서 인지 할머니의 품에 폭 파묻혀선 나의 할아버지라는 분을 조심스런 눈치로 살펴보았다. '쯧쯧쯧, 불쌍하신 분. 진작에 그런 줄 알았으면 일부로라도 살살 박아주었을 텐데. . .' 조금은 불쌍한 연민의 정이 생기게 만드시는 분이셨다. 그리고..... 난 정말로 황당했다. 단지 몽롱한 잠기운에 낯선 이가 응접실에서 할머니의 살벌한 눈을 마주 대하고 있길래 그저 난 낯선 이방인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서 한 일인데....... 그분이 나의 단 한 분 뿐인 할아버지라니.........쩝. 조금은 죄송하면서도 어째 불안한 느낌을 첫만남에서부터 강렬하게 전해 주시는 나의 단 한 분뿐인 외할아버지 갈리아스 옹이었다. "아구구구, 갈리어스 죽네." 토닥토닥. 주물럭.주물럭. 뽀득 뽀득. 꾸욱.꾸욱. 엄청난 엄살을 동반한 할아버지의 외침에 난 금새 친해진 할아버지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다가 이내 호 하고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엄살을 떠시는 턱에 입김을 불어 드렸다. "으갸갸갸갸, 아이구 시원해랑. 헤헤헤 역시 이쁜 내 손주. 쪼옥. 쪽쪽쪽" 내 앞에서 과일을 깍고 계시던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와 그 옆에서 이런 나를 보시며 여전히 오랜만에 집에 온 기분을 한껏 느끼시던 엄마는, 이내 장난기가 다분한 할아버지와 내가 하고 있는 다정한 모습들을 보시면서 방긋 미소를 지으셨다. 하지만 이내 그 두 분의 미소는 그만...........말 그대로 할아버지가 또다시 벌이시는 일에 기겁을 했야만 했다. "흐흐흐, 싸이야!" "예, 할아버지!" 아구 귀여운 내 새끼. 꼬옥. 부비부비. "클클클, 이 할아버지가 소원이 한가지 있는데 네가 들어줄련?" 부리부리. 또록또록. "예? 무슨 소원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난 이미 지은 죄가 있는 입장이라서 이제 겨우 친해진 할아버지의 간절한 눈빛과 그 속에 담긴 일평생의 소원이라는 부탁조에 눈을 빛내며 뭐든지 들어주려고 맘 먹었다. "응, 다름이 아니라 우리 이쁜 손주가 이렇게 주물러주는 것도 매우.......엄청 시원한데 말 야. 근데도 이 할애비는 지난 수천년의 세월동안 언제나 이 할애비 앞에서 거만을 떨고 있는 정령왕이라는 놈들의 낯짝을 지금 한번보고 싶구나. 왜냐면 우리 싸이가 그 놈들을 마음대로 부린다고 하던데..........." 말이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부탁조로 간절히 애원하시는 분의 얼굴에 왠 이상한 웃음기?! 그리고 갑자기 나보고 어떻게 부르는지도 모르는 정령왕들을 불러달라고 하다니...... 왠지 다음말이 무척이나 중요할 것 같아서 내심 침을 꿀떡 삼키는 나였다. "그......그런데요........할아버지......" "흐흐흐. 해서 뭐 별다른 건 아니고 우리 싸이가 그놈들한테 주군의 소리까지 듣는 이마당에 이 할애비 앞에서 그 놈들에게 마구 명령을 내려서 이 아픈 할애비 어깨를 그놈들이 시원하게 주물러 주게 해주지 않으련?" 으잉? 지금 무슨 말씀을.............?! 그순간 난 확연히 이분의 속셈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난 이분의 지금 말씀을 들어드릴수가 없었다. 왜냐면 난 그들을 어떻게 부르는 지를 정말로 모른단 말이다. 오늘 오전의 일만해도 그건 에이미가 나대신 불렀기 때문에 난 그들을 소환인지 부르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아무튼 그들을 내 앞에 나타나게 하는 일은 정말로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네? 하지만 난 아직까지 정령왕들 이랑 계약을 하지도 못했는데요. 그리고 친구로 지내기로 한 클라우드 아저씨가 과연 내 말대로 따라줄지도 잘 모르구요. 더구나.......난 그 아저씨 어떻게 부르는지도 잘 모르는데.........!!" 쓱싹쓱싹. 헤헤. 살짝 장난스런 웃음기가 감돌기 시작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이었다. "히히히, 괜찮아. 그놈들을 몽땅 불러내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냐. 이 할애비는 그놈들이 내 앞에서 우리 싸이가 내 하나뿐인 외손주라는 것만 말해줘서, 그래서 그놈들 낯짝이 변하는 것만 봐도.......큭큭큭. 이 할애비는 평생 소원이 없겠다." 참나. 이분께서 이렇게 나오시는데 더 이상 빼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손수 나에게 소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라도 하겠다는 표정이시니 조금 곤혹스럽지만 나로썬 더 이상 선택의 방법은 없었다. "헤헤. 그건 어려운게 아닌데. 근데 할아버지. 지금 그 아저씨들 이 시간에 곤히 자고 있는거 아닌가요?" "끌끌끌. 괜찮아. 몇 십만 년이나 산 놈들이 그까짓 하룻밤 좀 샌다고 시간이 섞어 문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엔 우리 실버 일족의 가장 친한 친구인 클라우든가 뭔가 하는 놈이 지껄인 말대로 우리 싸이가 그놈들의 주인이라면 더욱 더 괜찮단다. 원래 정령이라고 하는 것들은 주인의 명엔 죽기살기로 움직이는 놈들이라서 우리 귀여운 싸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나타날꺼야. 아암." "그래요? 그럼 할아버지 소원대로 불러 줄께요. 근데 어떻게 부르면 되죠?" "오옷. 정말이니? 그래. 히히히. 이놈들 그동안 나를 갖고 지멋대로 까불다가 오늘 내 손주 앞에서 망신한 번 톡톡히 당해봐라. 크크크 싸이야. 그놈들을 부르는 건 말이다..." 정말로 대책이 없는 분이셨다. 나한테 고작 그런 일로 일평생의 소원이라며 강조를 하시다니........ 쩝. 마음 약한 내가 당연히 들어드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치만 할아버지의 그런 시꺼먼 속내가 들어있는 소원은 이내 할머니의 살벌한 외침에 그만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으잉? 내가 뭘?" "아니 이 양반이 아직까지 살 날이 창창한 우리 싸이한테 뭐요~? 우리 싸이의 친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이들을 불러서 망신을 줘요? 우드드득. 만약에라도 그런 짓을 하면 내가 당신을 가만 안둘테니 알아서 해요. 그리고 싸이야!" 손에 든 날이 바짝 선 과도가 한순간에 가루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살벌한 모습을 나에게 최초로 보여주시던 할머니는 이내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화사한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따뜻한 얼굴로 금새 변하는 놀라운 모습을 또다시 보여주고 계시기도 했다. "예, 할머니!" "정령이라는 존재들은 말이다. 우리 드래곤들과도 친하지만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반가운 생명수와도 같은 존재란다. 물론 우리 싸이랑 친한 정령왕들은 이 할미도 불러서 한 두가지 부탁을 겨우 할만큼 매우 조심스런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충분한 훌륭한 존재란다. 지금 네 할아버지가 저렇게 심술을 부리는 건 자신이 예전에 한 짓이 있어서 자기 딴에는 복수를 한다고 그 속이 시커먼 속셈으로 우리 순진한 싸이한테 아부를 하는 거니깐. 절대로 저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렴. 우리 싸이는 그들을 이왕 친구로 삼겠다고 했으면 아주 친한 친구로 삼아두렴. 그리고 우리 용족들은 반드시 자기가 한 약속은 꼭 지켜야만 한단다. 그런데 우리 싸이가 아까 낮에도 클라우드랑 한 약속에는 저 시꺼먼 속내가 득씨글거리는 네 할아버지처럼 심술 같은 건 안 부리는 친한 친구가 되자고 약속을 했지?" 한마디 한마디가 똑 소리가 날 정도로 올바른 소리만 하시는 할머니이셨다. 그러니 난 당연히 신나게 맞장구를 쳐드리고 있는 중이다. "예, 클라우드 아저씨랑은 그런 친한 친구가 되기로 했어요. 하지만.......... 그 아저씨랑 다른 아저씨들이 할아버지 말씀대로 할아버지를 마구 무시하고 뭐라고 그런 적이 있다면 손자인 내가 대신 혼내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든든한 할아버지의 우방이 되기를 힘쓰는 손자이기도 한 나였다. 하지만 역시 할머니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방긋 미소를 지으시면서도,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시선은 아직도 날카롭게 날이 선 칼보다도 더 심한 눈빛을 마구 내쏘아 보내고 계셨다. "에휴~! 하여간 저 도룡뇽(?) 때문에 내가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야!! 잘 들어라. 싸이야. 저 웬수는 지가 하는 짓 때문에 그들에게 구박을 당한거지 그들이 애초에 처음부터 네 할아버지를 구박한 건 아니란다. 어떻게 정령계에서 본체를 이곳에 함부로 나타내게 할 수 없는 일들을 저 나이에도 어린애처럼 마구 떼를 쓰면서 해달라고 조르는 철딱서니 없는 네 할아버지를 과연 어느 누가 좋아하겠냐? 만약에라도 네 할아버지 소원대로 정령왕들이 본체를 이곳에 나타나게 하면 이곳이나 그 정령계라고 하는 그들의 세계나 모두 한순간에 심한 충격으로 망가질게 뻔한데.............에휴. 그러니까 우리 싸이가 이왕에 그들을 부를 바에는 그저 앞으로 친한 친구로 잘 지내보자고 해보렴. 그럼 우리 싸이는 아주 든든한 친구들을 가진 존재가 되어서 나중에라도 우리 용족을 보면 못 잡아먹어서 지랄 발광을 하는 마족들과의 싸움에 그들이 아주 든든한 힘들이 되어줄꺼야. 이 할미 말 잘 알겠지?" 끄떡끄떡. 역시.......나의 존경스런 할머니 에르킨 여사였다. 긴 설명조로 나에게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만 하는지 교육을 시켜주시는 현명하시면서도 인자하신 내 할머니이셨다. "우웅, 잘 알았어요. 할머니. 그럼 지금 싸이가 할머니 말씀대로 모든 정령왕들을 소환해서 친구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어떻게 하면 돼요?" "엥, 아니 그럼 싸이.......넌 그런 것도 모르고 오늘 아침에 정령왕을 소환 한거냐?" 옆에서 할머니의 꾸중 비슷한 것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그 뻔뻔한 모습으로 아작아작 과일을 맛있게 먹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놀랍다는 질문이었다. 아니 저 양반이 아까는 분명히 나한테 그들을 소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더니 그새 노망이라도 드신건가? 조금은 이상한 눈앞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난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때서야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저분이 왜 저런 앞과 뒤가 다른 말씀을 하시는지....... 아마도 눈앞에서 살기를 뿜어내시는 할머니 때문에 끝까지 귓속말로 그들을 소환하는 방법들을 미처 전달하지 못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자 하신 행동이실꺼다. 그 때문에 난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어쩡쩡한 자세로 서 있어야만 했다. 그순간 내 머리속은 엄청난 속도로 회전을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저 난 에이미 덕분에 만나게 된 클라우드를 떠올리며 묵묵히 고개를 끄떡이며 그를 어떻게 하면 부를수 있을까를 내심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순간, 오전에 에이미처럼 힘들 게 하지 않고도 그들을 손쉬운 방법들을 생각해낸 나였다. 짝. "맞다. 클라우드 아저씨~!!" 나의 이거다 하는 생각과 함께 강하게 손바닥을 마주 치는 나였다. 이내 난 그 자세 그대로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존재를 강하게 떠올리며 그의 이름을 불러 보기 시작했다. 왜냐면 그가 사라지면서 했던 마지막 말이 지금의 내 머리 속에 깊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언제든 어디서든 저희가 필요하시면 싸이님은 그저 저희들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럼 언제든지 저희는 황공한 마음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분명히 그는 사라지는 자신의 몸처럼 내 머리 속에 이런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하도 어수선한 분위기라서 미처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던 이 둔하기만 한 내 머리통에 잠시 애도를 보내며 난 그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아저씨~~~~~~~~!!!!!!!!!!!" 나의 이런 간절한 행동들 때문이었을까?! 이내 우리들이 있던 곳으로 갑자기 시원한 물줄기들이 몰려들면서 그 속에서 너무도 반가운 존재인 물의 정령왕 클라우드 아저씨가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순간 나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너무 황당하셨는지 아니면 놀라셨는지, 입안에 든 무언가 때문에 한동안 캑캑거리시던 할아버지는 뿌연 안개와도 같은 물 속에서 나타난 한 존재에게 아주 반갑다는 인사로 한 존재에게 멋진 인사말을 건냈다. "어이~! 물의 정령왕. 오랜만이야." 한 손을 번쩍 들면서 우리들의 곁으로 나타난 존재에게 거만한 인사를 건내시는 할아버지를 힐끔 쳐다 본 클라우드는 이내 냉담한 얼굴로 톡 쏘듯이 한마디 쏘아주었다. "그렇군. 흠, 네놈이 싸이님의 할아버지가 되다니. . . 참 세상 말세다. 말세." 하지만 이런 말엔 이미 익숙하신 할아버지이시기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클라우드의 콧방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언가 즐거운 일이 생각나시는지..... 배꼽을 움켜쥐고 웃으시기 시작했다. "흥, 그러는 네놈은 네 손주의 부하가 되었다면서......에헤헤헤헤헤. 고작 우리 귀여운 헤츨링 싸이의 부하라......음훼훼훼훼훼훼." "쳇, 어떻게 네놈 같은 날나리 드래곤한테서 어찌 이리도 위대하신 싸이님이 태어났셨는지. . . ." 조금도 지기 싫다는 듯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나타나자마자 싸우기 시작하는 두 분을 보며 난 고소를 지은 채 그 두 분의 황당한 말싸움을 말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이잉. 이제 그만 싸워요. 두~분!!" "후후후, 알았습니다. 싸이님! 헌데 어쩐 일로 이 늦은 시간에 나를 다 부르시고. . ." 이제는 제법 자신의 존칭을 올리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아무 내색도 없이 살짝 옆으로 물러나는 신사같은 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난 내가 한 말 그대로 나의 친구의 입장으로 다가오는 클라우드를 보며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헤헤헤, 다름이 아니라 할아버지랑 아저씨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그런데 클라우드 아저씨. 저 지금 다른 정령왕 아저씨들도 같이 부르고 싶은데 제가 아직 그 방법들을 잘 모르거든요. 그러니까 아저씨가 저 대신 그 분들을 불러줄 수 있나요?" "후후,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군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촤아아악. 그러면서 순식간에 발 밑에서 생겨난 물줄기 속으로 모습을 감추는 클라우드를 보며 난 나를 빤히 바라보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엄마의 놀란 시선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헉. 왜........? 왜 그런 눈빛으로........? 또릿또릿. "헤헤헤, 왜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허 참. 진짜로 넌 내 손주가 아니라고 아무도 부인을 못하겠다. 아암. 그렇구 말구." 끄떡끄떡. "호호호, 그말이 정답이다. 어쩜 아빠랑 하는 짓이 그렇게 똑같을까?!" 짝짝짝.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헛. 내가 지금 무슨 큰일이라도 저질렀나? 왜 저런 반응들이 나오는 거지? 정말로 이상하네.............쩝.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와중에도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씀하시던 두 분의 말씀에 급히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런 내 눈빛을 받으시는 할머니 역시 나를 보시며 심한 두통을 생기시는지 머리를 콕콕 쑤시면서 나를 쓰다듬어 주셨다. 쓱싹쓱싹. "에휴~!. 그저 우리 싸이가 아직은 잘 몰라서 한 일을 감히 어느 누가 뭐라고 하겠니!! 하지만 싸이야~! 사실은 지금 우리 싸이가 클라우드라고 하는 물의 정령왕을 불러서 그런 하찮은 일들을 부탁하는 건 아마도 우리 용족 역사상 너 하나 밖에 없을 거다. 더구나 물의 정령왕은 자신과 상극인 불의 정령왕과는 아주 극과 극이라서 둘이 만나기만 하면 어느 곳이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게 그들의 당연한 일과란다. 헌데 네가 그런 이들을 한꺼번에...... 그것도 자기와 가장 싫어하는 존재한테 불러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헉. 그럼........그럼 그 때문에.......... 헛. 지금 그럼 그 때문에 할아버지는 저렇게 기분이 좋아지셔서 헤하고 웃으시는 거고 엄마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다고..............헐. 이거 진짜로 큰 실수했네. 이를 어째. 진짜로 식은 땀이 등줄기를 촉촉하게 적시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내가 한 조금전의 실수가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웅, 그러면.......할머니. 있잖아요. 클라우드 아저씨가 자기가 직접 안가고 다른 정령왕 아저씨.....즉, 불의 정령왕과 친하면서도 클라우드 아저씨랑 친한 아저씨에게 부탁을 하면 되잖아요. 그쵸?" 부리부리. 또록또록. 배시시. 어쩔 수 없이 지금 등에 난 식은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난 미소작전과 더불어 아주 쉽게 자기 변명과 합리화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휴~! 싸이야. 그건 우리 싸이가 아직 정령이라는 존재들을 몰라서 그런거란다. 싸이야. 정령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주인이나 친구 같은 존재로부터 받은 부탁과 명령은 자신이 직접.....그리고 자신이 꼭 들어줘야만 하는 신성한 의무가 있단다. 그런데 그런 존재들의 왕인 클라우드가 널 마치 주인처럼 여기는데, 감히 너의 명령을 어기고 다른 이들에게 부탁하면서 까지 너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으려고 할까? 아니야! 그건 우리 싸이가 아직 잘 몰라서 한 실수이니 조금 있다가라도 그가 오면 미안하다고 반드시 사과를 하려므나. 알았지?! 에휴~~! 그리고 그 양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가 싫으면 싫다고 하는 표정이라도 지으면 우리 똑똑한 싸이가 알아서 다른 이들 한테 부탁할 텐데, 어쩌면 그렇게 좋다는 듯이 싱글벙글 거리며 환하게 웃으며 사라진걸까?" 그순간. 난 할머니의 말씀 속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어서 조급한 마음에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헉. 이를 어째. 그럼 진짜로 내가 큰 실수를 한 거잖아. 물과 불...... 이건 진짜로 상극인데........ 이를 어째. "우웅, 그럼 어떻게 해. 히잉. 난 또 같은 정령왕 끼리라서 아주 친한 줄 알고 부탁한 건데." 정말로 후회가 막급인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 등뒤에서 좔좔 흐르기 시작하는 식은땀은 이젠 아예 시냇물 수준이 되어버렸다. 왜? 그건 내가 너무 큰 실수를 한 것이니깐. 할머니 말씀처럼 물의 모든 기운들을 다스리는 정령왕과 인간과 이 땅의 모든 생물체에겐 반드시 꼭 필요한 불의 기운을 다스리는 정령왕은, 모든 존재들에게 둘 다 꼭 필요한 존재 이면서도 서로의 기운들이 천적인 관계로 매우 안좋은 사이이다. 해서 내가 예전에 데리고 놀던 아그들도 알고 보면 지들끼리는 친한 존재에겐 아주 재미있게 달라붙어서 놀지만, 서로 상극인 존재들에겐 생각도 없는 존재들이 본능적으로 적대시했었는데.....정말로 한숨과 더불어 식은땀만 흐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심각한 고민을 들었는지 또다시 화려한 폭포처럼 시원스럽게 내 앞에 물줄기를 만든 클라우드는 이내 자신의 손에 귀가 잡혀서 질질 끌려나오다시피 하는 빨간 불덩이로 아주 우람하면서도 튼튼한 몸을 만들고 있는 이를 내 앞에 대령했다. 그런 그의 얼굴엔 나한텐 아무런 악감정도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주 기쁜 듯이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후후후, 싸이님! 여기 말썽꾸러기 불의 정령왕 프레임 대령이오." 환한 미소와 함께 나타나선 나에게 등을 떠밀 듯이 클라우드가 소개시켜준 이는 불의 정령왕인 프레임이었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조금 전 할머니에게 받은 충고를 확실히 실천하기 위해서 맨 먼저 클라우드에게 다소곳이 사과를 했다. "엉?....아.....안녕하세요. 그리고 저.... 클라우드 아저씨! 미안해요. 난 아무 것도 모르고 그래서.....웅.......아저씨에게 그 푸레임이라고 하는 불의 정령왕 아저씨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었는데......히잉. 정말로 죄송해요. 꾸뻑." 하지만 클라우드는 만면에 가득 미소를 지은 채 내 말에 반박하듯이 상냥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말로 나를 기운 나게 해 주었다. 헤. 내가 걱정하던 것만큼 그렇게 심각한 일은 없었나 보다. "후후후,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전 오히려 지금 싸이님한테 고맙다고 해야하는 걸요." "엥? 왜요?" 정말로 황당한 말이었다. 어째서? 난 자기와 상극인 존재를 불러달라고 했었는데...... 물론 다른 정령왕들도 같이 불러달라고 했지만, 그래도 자기와 상극인 존재를 나에게 데리고 오려면 할머니 말씀처럼 꽤나 시끄럽게 투닥 거렸을텐데....... 하지만 나의 이런 의문은 클라우드가 자기 옆에 서있는 존재를 슬쩍 쳐다보며 웃는 미소와 함께 아주 가뿐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하하하. 싸이님. 지금 무슨 말씀을 들으셨는진 잘 몰라도 내가 이놈하고 알고 지낸 지가 수십만 년이나 되었지만, 오늘처럼 이놈을 이렇게 잡아끌면서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싸이님이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해서랍니다. 그러니 저 또한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놈을 구박하면서 데리고 올 수 있었거든요. 후후후. 그리고 프레임 이놈도 자신의 주인이 될 싸이님이 불러주니까 얼씨구나 하고 이렇게 내 손에 붙잡혀서 따라온걸 보면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해야죠! 정말로 그동안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싸이님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오늘이 제 생애 최고의 기쁨이랍니다. 후후후" 역시 한 매너와 함께 부드러운 미소가 아주 잘 어울리는 클라우드의 한 말씀이었다. 그러니 난 당연히 조금전의 초조함은 물거품처럼 사라지면서 안심이 되어서인지 편안히 마음을 놓을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헤헤, 그럼 그 푸레임 아저씨랑은 내 앞에서도 그렇고 이다음에 정령계에 가서도 오늘 일을 가지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지 않는 거죠?" 난 사이좋게 나타난 이들을 보면서 만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들을 반겼다. 아니 클라우드 아저씨 말대로 강제로 끌려온 듯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들을 반기는 게 가장 정확한 일 일 것이다. 물론 조마조마한 마음이 풀렸으니 이런 미소가 나오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이때까지 나의 눈치를 살피며 얌전히 있던 불의 정령왕은 한참을 기다려도 자신을 소개시켜주지 않자 옆에서 아직까지 자기의 귀를 찢어져라 잡고 있는 클라우드를 향해 불같은 성질을 냈다. 역시 한 성깔이 빨간 불덩이처럼 눈에 보이는 이였다. 그리고 그런 성깔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클라우드도 있었다. "글쎄, 나야 싸이님한테 약속을 한 몸이니까 반드시 그렇게 하겠지만. 이놈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와락. "크아악, 야~ 이놈아! 감히 지금 누구 귀를 잡고 계속 수다를 떠는 거야? 네가 이토록 얌전히 미끌 거리는 네놈 옆에서 기다리는 걸 네놈이 아직까지 모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면서 대번에 클라우드의 멱살을 움켜쥔 프레임을 보면서 나에게 클라우드가 말하자 대뜸 멱살을 풀면서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금새 또다시 내 눈치를 살살 살피는 그였다. 그러니 더욱 기고만장한 클라우드와 불끈거리는 성질을 애써 감추는 이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봐야만 하는 난 정말로 황당하면서도 조금은 재미 있겠다라는 심정이 된 것이다. "쿡쿡쿡......" "거봐! 내가 뭐랬어. 이래도 내가 참아야 하는 거야? 싸이님" "오옷. 조금 화가 난 클라우드 아저씨~? 쿡쿡쿡" "우이씨~! 저게.......헹, 내가 언제? 네가 봤어? 봤어? 봤어?" "쿡쿡쿡. 정말.....재밌는 아저씨다........키득키득." 어린아이처럼 토라진 빨간 불꽃이 이글거리는 얼굴로 치지직 소리가 나는 물과 불의 만남엔 아랑곳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클라우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프레임이었다. 난 그런 모습이 자못 귀여워서 조심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쿡쿡쿡" "헤헤,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 그제야 네가 자신 때문에 웃음을 터트리는 걸 발견 한건가? 쿡쿡쿡.......... "아....니요. 키득키득.....반가워요. 푸레임 아저씨!!" "엥? 푸레임? 아니야!! 난 프레임이야. 프. 레. 임.!!" 아차~! 내가 이 무슨.........정신 나간 짓을.....이런 실수가....... "앗, 미안해요. 헤헤헤 프레임 아저씨! 제가 그만.........히히.....죄송..." "아무렴. 괜찮아..탕탕....난 마음이 넓어서 여기 있는 좁쌀 씨눈 만한 클라우드랑은 전혀 달라. 아무렴 다르고 말고. 그러니까 싸이님의 그정도 실수는 내가 확실히 눈감아 줄게. 그런데.........싸이님~?! 네가 다른 정령왕들에게 들으니깐 우리 싸이님이 우리들을 친구처 럼 지내자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놓아달라고 했다면서?" 오옷....확실히 화끈한 성격.....이야..... 끄떡끄떡. "헤헤....넵! 내가 클라우드 아저씨한테 친한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부탁했어요." "카카카. 그럼 지금처럼 내가 싸이님한테 말을 놔도 되는 거네?" "네, -끄덕끄덕- 지금처럼 프레임아저씨랑 이렇게 다정한 모습으로 대화 하는게 싸이는 가장 좋아요. 그리고 친한 친구는 이처럼 허물없이 지내면서 친구의 또 다른 허물들을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고 할머니랑 엄마가 저한테 가르쳐 주셨어요." 후후. 정말로 똑 소리나는 나의 대답이었다. 물론 이 대답은 내 옆에서 나를 응시하시는......내가 앞으로도 항상 존경하면서도 사랑해야할 분들을 위한 아부성 대답이라는 걸 난 전혀 부인하지 않겠다. 쿡쿡쿡....그러니 지금 저렇게 놀라워 하시면서도 꿋꿋하게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모습이시겠지?! 음헤헤헤...... 역시 난 조금은 사악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쿡쿡쿡. 하지만 나의 이런 대답을 내 할머니랑 엄마보다 더 좋아하는 이가 있었으니...... "캬~하. 내 비록 싸이님의 엄마와 할머니는 잘 모르지만 정말로 멋진 분들이시다. ............그런데. 에잉~!" 금새 웃음으로 전신의 불꽃을 화르륵 태우면서 좋아라 하던 프레임은 이내 내 주위를 둘러보며,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만, 내 할아버지를 발견하자마자 대뜸 할아버지 곁으로 달려가기가 무섭게 내가 보기에도 엄청 뜨겁게 생긴 불꽃을 확 뿜어 버렸다. 화악. 화르르르륵. "야~! 이 망할 놈의 갈리아스!! 네놈 참, 자~알 만났다. 뭐~~?! 감히 불의 정령왕인 내가 이 안개덩어리인 놈보다 약한 것 같다고? 그래서 물이 있는 곳엔 불의 정령인 내가 무서워서 얼씬도 못한다고~~?!. 에라이~! 이 똥물에 튀겨진 도마뱀 구이가 될 놈아~!!" 그러면서 프레임은 할아버지의 그 멋진 은색 머리카락을 마치 통구이 하듯이, 정말로 무지 무서분 불길로 할아버지의 멋진 은발을 뜨거운 불로 단숨에 구워 버렸다. 쿠에에에엑. 화르르륵. 무.......물.........무우우우우우울........ 화르륵. 팔짝팔짝.... "으아아아. 앗 뜨거. 아이고 제발 좀 꺼져라. 으아아아아 싸~이~야. 이 할애비 살려." 머리에 붙은 이 불꽃은 불의 정령왕이 직접 선사한 선물이라서 감히 마법으로 끄지도 못했다. 다급한 마음에 부엌에 있는 물주전자를 끼얹어보아도 활활 타는 그모습 그대로의 할아버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급히 나를 찾아서 달려오시면서 나에게 제발 불을 꺼달라고 애원을 하시듯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소해 하고 있던 할머니와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엄마는 이내 클라우드가 내 옆에서 날 도와주려는 듯이 내민 손에 순식간에 불이 꺼져서 졸지에 대머리가 되신 할아버지를 보고 깔깔깔 웃어 제키셨다. "오호호호호. 거보라고. 내가 그렇게 까불다간 오늘처럼 큰 코 다칠줄 알았지~~잉! 오호호호홍. 아이고 고소해라....영감~~!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만. 오호호호" 떼굴떼굴. 딸꾹. "꺄하하하하. 흐윽. 깔깔깔. 이걸 어째. 졸지에 대머리가 되신 내 아버지. 쿄쿄쿄"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어떻게....... 자기 남편이자 아버지인 존재가 지금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는데 저런 웃음들을 지으시다니....히잉. 왠지 나만 죄송스러운 마음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그런 두 분의 반응에 한껏 배를 내밀며 자신의 권위를 자랑하던 프레임은 나의 엄마이신 분의 불쌍한 내 아버지란 말에 화들짝 놀라서 그만 또다시 멍청하게 나를 바라보며 급히 클라우드의 뒤로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허거거걱..이.......이런. 이걸 어째? 할아버지~?. 그......그럼......딸꾹.......싸이님의 할아버지가.......저 꼴통 갈리아스..........?! 우아아아악......난 어떻게.................딸꾹" 빼꼬미..... 두리번 두리번. 부리부리. 훗....저 아저씨 꽤나 놀랐네.....쿡쿡쿡. 근데.......쩝. 내 한 분 뿐인 할아버지라서 그런지 몰라도 너무 불쌍하게만 보인다. "히잉....불쌍한 할아버지.....호~오. 할아버지! 도대체 과거에 원수진 분들이 몇 명이나 되는 거예요? 저기 있는 프레임 아저씨 표정을 보니깐 할아버질 아주 미워하시는 것 같은데...........히잉.....불쌍해라~!" 크윽. 부비적부비적. 음. 꽤 뜨거운 불길이라서 식으면 꽤나 간지러울 텐데........ 호~오. 살살. 난 열심히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화상을 입으면 상처 부위가 꽤나 근질거릴 할아버지의 환하게 된 이마...이마와 머리의 구분점이 사라진 곳에다가 열심히 얼른 나으시라고 입김을 불어 드렸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었고, 그저 기운내시라는 의미에서 한 일이었다. "크윽, 아이고 머리야~!....캐액.....싸이......야..........사실.....이 할애비도......얼마나........ 그게.....도리도리....나도 잘 몰라 내가 한 일이 .....어디 한 두가지여야 일일이 기억하지. 으드득.....하지만 이 놈의 프레임!!..... 감히 내 손주의 부하주제에 내 손주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이런 선물을 선사한단 말야~!" 고래고래. 빼~액. 끄응. 에휴. 주위의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여전히 내 품(?)에서 엄살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시던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시면서 큰소리로 호통을 치셨다. 이런 할아버지의 기세등등한 외침에 졸지에 클라우드의 뒤로 숨어서 내 눈치만 살피던 프레임은 무언가 나한테라도 변명을 해야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흥,.....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뭐?.....이씨...... 내가 네 녀석을 우리 귀여운 싸이님의 할아버지라서 많이 봐줬다는 생각은 안하고......뭐~얏? 지금 너 감히 나한테 덤비는 거야?" 화르르르륵. 푸시시시식. 하지만 프레임의 성화에 못 이겨서 그의 몸 가까이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던 사나운 불길들은 오히려 할아버지에게 해를 입히기 보단 바로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덤비기도 벅차게 보였다. "이런...... 쯔쯔쯧. 이봐 프레임! 내 뒤에 숨는 건 좋지만, 그렇게 기죽기가 싫어서 발끈거리는 네놈의 처지나 제대로 파악 좀 해라. 이런 간지러운 불길을 퍼트리는 주제에 몸조심이나 하란 말이다. 알겠냐? 너 계속 그렇게 큰소리치다가 진짜로 싸이님한테 혼나면 어쩌려고 그러냐?" 피시식. 클라우드의 엄포성 발언에 더욱 약해져만 가는 불꽃이자 불길이었다. 후훗. "에엥? 그...그렇게 되는 건가? 흠흠. 뭐. 그럼 내가 사과하지. 야! 이봐 날나리 도마뱀. 내가 미안하다. 됐지? 됐지?! 흥흥흥. 만약에라도 지금 내 사과를 안 받고 우리 싸이님 앞에서 허튼 소리라도 하면 진짜로 이번엔 네 녀석을 도마뱀 통구이 만들어 버린다. 알았냐?" 꾸욱. 화르르륵. 어? 어째 이젠 제대로 돌아온 불꽃이네~! 쿡쿡쿡. "쳇, 그게 어디 사과하는 놈이 하는 말이냐~! 그럼 최소한 내 멋진 머리카락은 물어내고 사과해!! 어딜 그냥 불구덩이가 물벼락 맞아서 금새 식어가듯이 넘어가려고...흥" "오...오..오라.어디 그럼 확실히 물어(?)볼까? 내 입은 조금 뜨거운데 부디 네 놈 머리통이 도마뱀 통구이가 되어도 난 신경 안 쓴다. 알았지?!" 화르륵. 화르륵. 주춤주춤. "허거걱" 후다다닥. 정말로 한 성깔이 보이는 화려한 불꽃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런 불꽃은 첨 본다는 듯이 다급히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프레임을 피해서 내 뒤로 잽싸게 숨으시는 불쌍한 할아버지이셨다. 해서 난 내 소중한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그만 이들의 싸움을 중재해야만 했다. "우웅,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토닥토닥.......근데 프레임 아저씨?" "응? 왜? 싸이님!!" 부리부리. 화르르륵. 우응. 자꾸 눈에 힘주면 내가 곤란한데......히잉. 꿀꺽. "우......우리 할아버지가 프레임 아저씨한테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건가요?" 끄떡끄떡. "그야 당연하지. 감히 우리 위대한 정령왕들의 명예를 깍아 내린 존재는 싸이님의 할아버지인 저 놈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걸. 더군다나 내가 알기론 클라우드 이놈한테도 아마 겁 없이 덤벼서 혼구녕이 난 도마뱀, 아차 싸이님도 그렇구나. 하여튼 드래곤들 중에서 감히 정령왕들한테 맞짱 뜨자고 덤빈 이는 싸이님 할아버지밖에 없어. 뭐? 자기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나? 뭐라나? 쳇. 정말로 우스워서리......흥흥흥" 에효효효효. 정말로.......... 그런 일들을 우리 할아버지가 저지르고 다녔다는건가? 솔직히 난 지금 이들의 힘이 얼마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존재인 할머니도 조심스럽게 대하는 이들이 바로 눈앞에서 화르륵 거리는 불꽃의 사나이 프레임과 잔잔한 물결같은 클라우드이기에 난 내심 할아버지의 옛날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고 있었다. "에효. 그럼 다른 정령왕 아저씨들이 오면 우리 할아버지는 지금처럼 혼날 일밖에 없는 거네요." 한숨을 폭 내쉬며 내심 은근히 다른 정령왕들에게서 구박 당할 할아버지가 걱정되기 시작하는 나였다. 이런 내맘에 못질을 하고 있는 눈치없는 프레임도 있었기에 더더욱 앞날이 걱정되는 나였다. "아~무렴. 당연하지. 무조건 그렇다고 보면 돼. 싸이님!" 끄응. 정말로 걱정이 되는 분이 내 할아버지 갈리아스옹이시다. 그리고 그런 분을 앞으로 내가 더욱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쩝. 이건 너무 건방진 말 같네. 하지만 어떻게......맨날 내 옆에서 이런 모습으로 당하실 불쌍한 내 할아버지 이신데.........히잉. 난 정말로 앞날이 걱정으로 뒤덮혀서 태산같은 부담이 가슴에 팍팍 꽂히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고민을 하늘도 무심하게 넘기시지 않으려는 듯 어느새 내 뒤로 새롭게 나타난 존재가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었으니........ "후후후. 글쎄,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 불현듯 내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난 뒤를 바라보려고 했다. 그순간 엄청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리던 난 급기야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이 내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빠악. 꽈앙. 케엑. "아~양!!" "에코. 내 이빨!!" 흔들흔들. 삐약삐약. 한심하고도 어처구니없게도 내가 급히 할아버지의 턱과 내 이마가 맞닿으면서 까지 보려고 한 존재는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정말로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눈앞에 있는 노오란 날개를 가진 병아리들을 날려보내며 정신을 차린 나에게 그가 다가와서는 곧 시원한......내게는 너무도 친숙한 바람 을 일으켜 주었다. 쒸이이이잉. 으갸갸갸...아구 시원해... 정말로 정신이 번쩍 들만큼 반가운.......그러면서도 아주 친근한 나만의 바람이었다. "후후후. 이제 정신이 들어요. 싸이님?!" "우응, 하지만 아직 아픈걸?" 에이. 쪼잔하게 벌써.......조금 더.....헤헤. 조금만 더 불어 줘!! 하지만 나의 이런 간절한 바램은 곧바로 무시가 되어 버렸다. 왜? 이런 나를 아주 한심하다는 듯이 아예 할아버지랑 같이 묶어서는 도매 값을 매기는 존재가 바로 그 바람의 주인공이었으니...........쩝. "후후후, 역시 피는 못 속인다고 하더니 어째 이 노망난 드래곤을 닮아서 그렇게도 엄살이 심하실까?.........후후후. 싸이님?!" 내가 잠시 엄살 좀 떨었다곤 해도 처음 보는 나한테 막 대하는 듯한 느낌의 이 넘(?)은 감히 건방지게도 나를 아주 자연스럽게 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글세 아프다고 엄살을 떠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호호거리듯이 시원한 바람을 내 이쁜(?) 이마에 난 혹에 불어주기 시작했다. 난 이 뻔뻔스러운 새로운 존재를 바라보며 조금 째려보기 시작하자 이런 나를 바라보시던 엄마와 할머니는 급히 일어나시며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이 넘(?)에게 아주 반갑다는 듯 인사를 했다. 꾸~뻑. "어머, 혹시......?! 라이어나 님?! 호호호. 만나 뵙게 되어서 정말로 반가워요." 까딱. 흠. 건방진 놈. 그래도 우리 엄마의 정중한 인사를 고개만 까딱거리다니......... 하지만 말솜씨하나는 확실히 기름기가 좔좔 도는 엄청 미분 넘이었다. "후후후, 나도 반갑습니다. 위대한 실버 일족의 아름다운 꽃. 엘렌 님!" 그리고 그 옆에선 이런 넘의 반질반질한 말솜씨를 추겨 세워주는 이가 있었으니....쩝. "호호호, 역시 멋쟁인 말 한마디도 다르다니깐. 호호호 감사합니다. 자유의 수호신 라이어나님!" 부들부들. 정말로 엄청 놀랐다는 듯이 조금은 방정맞은 내 엄마의 반김이었다. 꾸~뻑. 살짝 고개를 숙이며 싱그러운 자유의 미소로 답례하는 미운 놈(?)이었다. '음. 이제야 제대로 인사를 하네. 쳇.' 조금은 반감이 생기는 이유를 나 자신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상황은 이런 나를 무시하고 계속 친밀한 인사를 나누는 분위기로 무르익고 있었다. "후후후, 저 역시. 그리고 실버 일족의 수장이신 에르킨 님을 만나서 영광입니다. 에르킨 님!" 살짝. 역시.......할머니의 귀족적인 자태는 이런 순간에 더욱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다. "저 또한....오랜만에 뵙게 되는 군요.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우리 실버 일족의 자유를 수호해주시는 라이어나 님!" "예," 가볍게 목례로 할머니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이 라이어나 라는 정령왕은 왠지 느끼한 대사에도 불구하고........으윽. 정말로 나에겐 아주 친근한 느낌을 선사 해주었다. 그러니 어쩌랴 속은 조금 부글거려도 나 또한 인사는 확실히 해야지. 쭈빗쭈빗. 찌릿찌릿. 헉. 할머니께서 왜 저리도 사나운 눈빛을 나에게......끄응. 별 수 없이 이상하게 생기는 반감을 무시한채 애써 미소로 인사해야만 하는 나였다. "헤헤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전 싸이라고 해요." 흑. 어쩔 수 없었다. 할머니가 저런 눈빛으로 나에게 공손히 인사하라고 경고를 보내시니...... 하지만 이 넘은 정말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넘인지 이런 나의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스럽게 받아넘기는 아주 무서분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후후후,.....굳이.........후후......싸이님~! 우린 이미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지요. 더구나 얼마 전에는 하루종일 저와 즐겁게 놀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굳이.......!" 헹. 그러면서도 내 인사는 확실히 챙기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내가 언제 자기랑 놀았다고........ "네? 언제요? 난 아저씨를 지금 처음 보는데? 아닌가?!" 금새 내 속에 이는 반감은 뽀루퉁한 표정으로 표현이 되면서 말꼬리를 잡는 걸로 보복성 발언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를 안고 있는 존재는 이런 나를 완전히 무시한 듯 그저 싱그러운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이러니 속이 더 꼬이는 나였다.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말에는 나 또한 놀람이 생겼기에 왠지 모르게 친숙한 존재에게 졸지에 내가 어리광을 피우는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후후후, 왠걸요. 우린 이미 싸이님이 우리들 오대 정령왕들의 기운을 어린 나이에 몸 안에 갈무리하면서부터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 관계인걸요. 그리고 싸이님이 얼마전 최초로 하늘을 날면서 저의 힘을 빌려선 저와 하나로 이어진 상태에서 즐거운 비행을 했었는데.... 이래도 기억 안나세요?" "아하~! 그래서 처음 보는 아저씨의 몸에서 나는 이 기운이 이렇게 친한 느낌을 주는 구나." 훗. 그렇다면 내가 미워할 이유가 없지. 아암. 날 그렇게나 즐겁게 해준 사람(?)인데......클클클. 잠시 생애 최초의 그 화려한(?) 비행과 그 뒤에 벌어졌던 일들이 뇌리속에서 떠오리며 금새 그에 대한 반감이 사라져 버린 나였기에 더욱 그에 대한 느낌이 감미롭게 다가왔다. 끄떡끄떡. 부비부비. 쓱싹쓱싹. 헤헤 "딩동댕. 역시......정답입니다. 하지만 싸이님. 이런 절 놔두시고 클라우드를 먼저 불러서 계약을 맺으신 건 지금 제가 생각해도 조금 화가 나는 군요." 에엥? 이게...무슨 소리?! 도리도리. '아니란 말예요. 난 그저 에이미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건데......' 변명다운 변명을 꼭 해야만 하는 나였기에 이런 단순한 변명이 아닌 보다 더 논리 있는 변명을 떠올리려고 궁리를 해야만 했다. "웅, 그건.........있잖아요. 그건 제가 부른게 아니라 에이미라고 하는 내 친구 골드 일족 헤츨링이 자신의 기운을 가진 클라우드 아저씨를 불러내서 어찌어찌해서 만난 건 데............. 히잉. 그러시면 제가 죄송해요............." 끄떡끄떡. 어색한 변명은 역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건가? 겨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나마 솔직히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헌데도 그는 이런 나의 초라한 변명을 환영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후후후, 그래서 제가 이렇게 참는 거지요. 만약 싸이님이 이런 저를 제켜놓고 다른 정령왕들을 불러서 먼저 계약을 맺으셨다면, 아마도 앞으로 저와 실버 일족이 연결된 끈은 제 임의대로 모조리 끊어버리고 말았을 걸요?! 후후후" 헉.....그.....그럼........... 왠지 그 뒤에 말이 내심 더 맘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흐음. 매우 조심해야겠다. 어.....어떻게 받은 바람의 속성인데..........' 하지만 내가 속으로 앞으로는 더욱더 이 느끼한 아저씨를 챙기려고 마음먹는 순간에도, 라이어나의 약간은 투정이 섞인 듯한 말에 나보다도 더 놀란 이는 바로 내 할아버지였다. "헉, 그......그건 너무 심한 억지다. 라이어나 님!! 그동안 나와 맺은 수천년간의 우정을 그렇게 쉽게 단정을 지으면서 자르려고 하다니...........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면 난.......흐 윽" 덥썩. 철퍼덕. 매우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이제서야 겨우 일어나신 몸을 또다시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히시는 할아버지였다. 그리고......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쯧쯧쯧." 할머니의 묘한 여운이 담긴 목소리에서 난 나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다른 이들로부터 심한 구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쪼르르르륵. 토닥토닥. '아~! 그러고 보니.........저 아저씨.....?!' 난 불쌍한 할아버지에게 달려가며 그분을 작은 내 팔로 안아드리려고 했다. 그런 나에게 풍겨오는 할아버지의 기운과 내가 과거에 받았던 무언가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지자 그순간 내 머리엔 누군가에 대한 존재감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오옷. 부비부비. "헤헤헤, 할아버지. 이제는 그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헤헤헤. 지금 생각해 보니깐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존재가 바로 라이어나 아저씬데, 설마 그런 아저씨가 나와 할아버지를 두고, 우리 일족과 연결된 약속의 끈을 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예요. 그쵸? 아저씨!!" 헤헤. 또록또록. 배시시. 조금 전에서야 비로소 나에게 이렇게까지 친밀한 느낌을 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이 난 나는 더욱 눈에 힘을 주면서 설마?!라는 심정에, 그리고 예전에 먼지 녀석이 조금 커진 순간에 내 속마음을 읽으면서 나한테 충고까지 해준 존재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친밀한 느낌을 주는 라이어나에게 결국 확인사살을 하는 나였다. "우잉? 그건 무슨 말이냐? 싸이." "헤헤, 할아버지. 있잖아요. 제가 지금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도 내가 태어난 날에 나를 처음으로 반겨준 게 라이어나 아저씨인 것 같아요. 더구나 맨 처음엔 텁텁한 듯한 느낌을 주던 공기들이 금새 내 몸에 들어와선 나를 아주 개운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게 지금 생각이 나는데.......... 아무래도 그게 라이어나 아저씨의 기운 같아요. 헤헤. 내 말이 맞죠?" 빤히. 쩌~억. 동시다발적으로 모든 이의 입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호~오! 정말 그걸.......그런 작은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싸이님!" 또릿또릿. 끄떡끄떡. 음하하하하하. 내가 누군데......당연하지............크하하하하. 쭈~욱. 내가 한 확인사살 차원의 말에 놀람과 함께 탄성을 지르는 그를 본 나는 내 생각이 맞았다는 느낌에 가슴이 더욱 넓어지면서 힘이 절로 실리기 시작했다. "예, 남들은 저보고 갓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그런걸 기억하겠냐고 하겠지만....... 사실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엄마랑 아빠가 한 말들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걸요." 훗. 이건 조금...........아니 너무 심했나? 그래도 어떻게.......저렇게들 내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인데......쩝. 그리고.......이런 내 모습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그들에겐 난 확실한 그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했다. "에이~! 싸이 그건 너무 심한 말이다." 절래절래. "아니예요. 할아버지! 제가 처음으로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던 날 엄마 뱃속에서 들은 말이 '여보, 아기가 움직여요.'라고 엄마가 말했고, 그러자 아빠가 '엘렌, 이 작은아기가 정말 우리의 천사가 맞어?' 였어요. 진짜예요......히잉. 그런 눈빛을.......... 이익. 맞다니깐요. 그리고 나선 아빠가 나를 위해서 모든 백성들이 나와 엄마를 위해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게 하겠다고 했구요. 그런 아빠를 엄마는 웃으시며 나를 위해서 자장가를 불러주었는걸요. 엄마~! 내 말이 맞죠~?!" 쿠당탕. 헤롱헤롱.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앉아 있던 식탁 건너편에선 의자가 발라당 뒤로 넘어가면서 끝내 엄마가 기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고........그분의 마지막 말은 아직도 내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꺄아악. 쟨.........싸이 쟤는....... 정말로 괴물. . . .이야" 뽀글뽀글. 이게 바로 어머니가 오늘밤 마지막으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었다. '엄마........죄송해요. 하지만 지금 내 말을 아무도 안 믿어 주어서...그래서 그만........흑.' 마음 속으로 사죄를 하면서 조금은 속이 상한 나를 라이어나는 살며시 안아주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그가 제일 먼저 믿어주는 듯 했다. 토닥토닥. "후후후, 그럼 싸이님이 지금 하신 말씀이 정말로 진실이었군요. 아니면 엘렌님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실 이유가 없을 테니깐요. 후후. 그럼 이 라이어나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제부터 싸이님과 태고적부터 실버 일족과 바람의 정령간에 맺어진 인연의 끈에 대한 약속과 그에 걸맞는 계약을 맺고자 합니다. 싸이님~! 당신은 이런 저와의 계약에 찬성을 하십니까?" 히잉. 어떻게 해~! 별 수 없다. 엄마에게 근사한 선물이라도 하나 드리려면 어쩔 수 없는 나였다. "예, 이 싸이벨리 카빌라 폰 메르카는 나의 위대한 선조들의 친구인 라이어나님과의 성스러운 계약에 무조건 찬성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몰랐다. 그냥 예전에 엄마가 들려주시는 동화책 내용에 나온 그대로를 앵무새처럼 벙긋거리기만 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리는 이 순간을 슬기롭게 넘기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었다. 끄떡끄떡. "후후후, 좋습니다. 그럼 나 바람의 정령왕 라이어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싸이님과의 신성한 계약을 받아들여, 실버 일족이 이 세계에 있는 한 그들의 정다운 친구가 되기를 맹세합니다. 또한......?!" "넹? 또한.........?" "후후. 예전에 먼지 녀석이라고 싸이님께 불리던 실프에게 힘을 보태주신 엘렌님께도 저와의 신성한 계약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드리고자 합니다. 후후후. 어떠세요? 맘에 드시죠?" 역시 시커먼 형상으로 나타나서 내 머리 속을 들여다 볼 때부터 이 아저씨는 맘에 들다가도 안들고, 신경질이 나다가도 날 즐겁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내가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에 줄 선물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의 매력에 발을 들여놓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야~~! 헤헤. 실은 나도........그걸 부탁드리려고 했는데.......헤헤헤" "후후. 역시........싸이님은 너무도 착하신 분이시군요." "헤~! 고마워요. 라이어나 아저씨. 그럼, 저 또한 앞으로 제가 살아있는 날까지 라이어나님의 정다운 친구가 될 것을 천지신명께 약속합니다. 헤헤. 이러면 라이어나 아저씨만 손해 보신건 아니죠?" "후후. 저야 고마울 따름이죠. 더구나 먼지 녀석 뒤에서 흐리게 모습을 들어냈다고 마구 혼내시던 싸이님이셨는데.......후후. 지금 자신의 영혼을 걸고 해 주신 싸이님의 약속은 저로서는 과분할 정도로 고맙습니다!!" 그는 나를 품에서 살며시 내려놓으며 내 눈과 마주치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눈빛을 내게 보내왔다. 아마도 내가 무의식중에 한 약속이 그에겐 작은 감동이 된 모양이었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모두가 흐뭇하게 보는 가운데 무언가 한가지가 빠진듯한 허전한 느낌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차, 누굴 빼먹었네. 이걸 어쩌지...음. 최대한 사근사근하게......기분 나쁘지 않게 해주려면 뭐가 좋을까?' 난 그순간 모두의 흐뭇한 표정속에서 단 한 존재만이 뽀루퉁한 채 화르륵 거리는 불꽃을 날리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존재는 이젠 잔뜩 어깨를 부풀리며 씩씩거리듯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최대한 그를 다독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헤.......저두요. 아, 그리고 프레임 아저씨!" 뽀루퉁. "왜 불러? 싸이님!" '훗. 저 아저씬 왜 저리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이지? 훗. 귀엽다.' 조금은 삐진 듯이 말하는 프레임을 보면서 난 그의 귀여운 모습에 살짝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아저씬 왜 그렇게 삐졌어요?" 부리부리. "쳇, 내가 언제? 도대체 내가 뭣 때문에 삐졌다고?! 흥. 오히려 나한테 삐진 사람은 싸이님이 아닌가?" "으잉? 예? 내가 뭘요?" 이럴 땐 무조건 오리발이 최고다. 그리고 저런 순수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아저씨가 매우 단순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만큼 순수한 불의 정령이라는 말도 되기에 난 그를 멋지게 구워 삼아 주기로 결정했다. "흥, 어떻게 먼저 온 날 제켜두고 저런 흐느적 거리는 바람둥이 녀석과 먼저 계약을 한 거지? 설마 내가 싸이님의 날나리 할아버지를 조금 혼내 줬다고 소심하게 날 못 본 척 한 건 아니겠지?" 에잉, 역시 이 단순무식한 아자씨를 어떻게 구워삶아 줘야 해야 될지 조금은 난감했다. 아까는 내가 무섭다는 듯이 눈치를 살피며 클라우드 뒤에 숨어서 내가 뭘 하나 하고 바라보더니, 이제서야 내가 불러주니깐 단단히 삐진 모드로 대드는 이 아저씨를 위해서 난 결국 사탕발림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우웅, 그게 아닌데 . . . " "엥? 그게 아니면 뭔데?" 빤히. 또릿또릿. 금새 내 표정을 살피며 궁금하다는 듯이 다그치는 프레임이었다. "헤헤....실은 멋진 주인공들은 항상 맨 마지막에 등장을 해서................ 나도 아저씨를 그런 멋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음, 그럼 지금이라도 저랑 계약을 할까요?" "헉........ 오옷.....진짜?..........진짜로 나를?!..................오옷...흑흑.... 이런 내가 미안해서 어쩌지? 싸이님! 미안!! 진짜로 미안해~~잉!! 난 혹시라도 싸이님이 날 잊어먹었을까 봐 그런 거지 절대로........아니야. 싸이님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지는 몰라서.........흑흑흑흑..........우아아앙." 훗. 정말로 단순한 아저씨다. 쿡쿡쿡. 정말로 금새 자신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울먹거리는 순수한 모습 그대로의 프레임아저씨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난 나의 극약처방을 알아채곤 쿡쿡 거리면서 옆에서 웃고 있는 물과 바람의 정령왕들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제발 나를 도와달라고 간절한 눈빛을 담아서 작게 부탁을 했다. 그리고..........역시 그들도 내가 프레임의 성격을 꽤 뚫어 보고 그를 달래는 모습에 흔쾌히 승낙을 해주었다. 깜빡. 깜빡깜빡. 끄떡끄떡. 후훗. 고마워라......찡긋. 하지만 우리들의 이런 눈인사도 모른 채 프레임은 언제 자기가 울먹거렸냐는 듯이 매우.....그리고 길길이 화를 내면서 날뛰다간 이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이것들은 감히 우리 귀하디 귀한 싸이님이 호출을 했는데....... 건방지게 왜 뭐하느라고 이렇게 꼼지락거리는 거야?" 여전히 자신이 끝까지 멋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프레임은 아직까지 못 온 흙의 정령과 뇌전의 정령왕들을 싸잡아 욕하며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내가 프레임을 살살 꼬드길 때 이곳에 와선 그와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그 모습만 드러내지 않았을 뿐........ "헹, 이 재수 없는 불덩어리 녀석이 지금 누구를 욕하는 거야? 너 또 옛날처럼 우리들한테 다구리를 당하고 시~ 퍼~~엇!!" 촤아아악. 번~~쩍. 우르르르릉. 번쩍이는 번개와 같이 찌르르한 전기를 한웅큼이나 프레임에게 던지며 나타난 이는 바로 뇌전의 정령왕 너버스 쇼크였다. 더불어 그의 등장 또한 나에겐 너무도 쇼킹한 모습 그 자체였다. 파~밧. 파밧. 그는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전기들과 같이 한 쪽 공간에 전류를 마구 흩날리며 갑자기 땅과 하늘에서 동시에 그 모습을 들어내더니, 상체는 하늘에서 그리고 하체는 땅에서 솟아나게 만들며 자신의 몸이 내 앞에서 하나로 생성이 되는, 신기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그가 나에게 잠시 시선을 맞추는 것을 인사로 대신하며, 자신의 뒤에 서있는 프레임을 향해 전기 쇼크를 시원스럽게 날려버리는 모습은 눈앞에서 번개가 치는 듯한 조금은 섬짓한 모습이었다. 슈우욱, 파바바바박. "키아아아아아아~~~~!!!" 찌릿찌릿. 부들부들. 전류가 온 몸에 통해서 찌릿찌릿한 전기 쇼크를 받던 프레임의 머리가 안그래도 이글거리는 불꽃에 따라서 움직이다가 결국은 전기 쇼크로 인해서 바짝 곤두선 그의 머리에 전기들이 통하는 모습은 내겐 아주 색다른 현상이었다. "쁘히히히히히히히~!" "깔깔깔. 고놈 감히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날 흉보다가 아주 혼구녕이 나는구만. 클클클. 싸이님! 어떻습니까? 나의 이 멋~진 기술이!!" 훙, 저 아저씬 왜 저렇게 우리 할아버지처럼 구박만 당하고 살지.........훙 불쌍하다............쯔쯔쯧. 진짜로 꼭 우리 할아버지 같은 불쌍하면서도 너무 순진한........ 조금은 프레임의 단순무식하면서도 앞뒤 가리지 않는 저돌성과 그로 인해 생겨난 다른 이들의 박대가 마냥 측은하게만 느껴지는 나였다. "우웅........,멋있긴 한데.......그래도 프레임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 왠지 프레임과 할아버지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한 듯한 나로썬 그를 동정해줘야만 했다. 이런 나의 말에 강하게 반박을 하는 이는 바로 쇼킹한 모습으로 나타난 너버스 쇼크. 모든 생물들에게 강한 생명력과도 같은 뇌의 정령왕 너버스 쇼크였다. "흥, 저런 변태 같은 놈이 뭐가 불쌍하시다고..........암튼 뇌의 기운을 가진 정령왕 너버스쇼크가 지금 싸이님과의 계약을 원하옵니다. 부디 이런 나의 성의를 받아주셔서 태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법칙에 따라서 나를 당신의 종으로 받아주소서." 훗. 너무 정중하다. 이 아저씨 정말로 조금 전에 무시무시한 몰골로 나타난 그 사람(?) 맞어?! 끄떡끄떡. "예, 좋아요. 그럼 전 앞으로 아저씨를 쇼크라고 부를께요." "후후후, 쇼크라~!! 네. 아주 감명 깊은 이름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당신과 나의 주종으로 서의 계약은 당신이 이곳을 떠나 천계에 이르러도 파괴되지 않는 숭고한 계약임을 다시 한번 강조를 하며 당신과의 약속은 항상 그리고 언제나 지켜질 것입니다." 조금은 지금의 상황들이 유치하게 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순수하게 나를 아껴주고 보호해주려고 한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흥분시켜주고 있었다. 더구나 모든 생명체에겐 작은 발전기 같은 역할을 하는 육체가 있다. 그런 육체 속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기운을 가진 뇌의 기운이 흘러야만 온 몸의 에너지들이 신경이 시키는대로 움직임을 가질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든 기운들을 관리하는 존재가 바로 눈앞의 쇼크라는 사실이 나로썬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고 있던 나라는 존재가 이들에게 그토록이나 소중했다는 것은 나를 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게 해준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전생에서 내가 꿈꾸었던.......내가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로부터 사랑 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이렇게 이번 삶에서 성취시켜 줬으리라 생각을 하니 더욱 더 그녀가 고맙고, 그녀가 지금 내 가슴속에서 살아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었다. 때문에 난 이 순간이 너무도 행복한 것이다. "예. 고마워요. 쇼크 아저씨!......헤헤. 그런데 왜 흙의 정령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거죠?" 맞어. 모두들 이렇게 나랑 만나서 얘기하는게 즐거운 듯 보이는데 유독 흙의 기운들을 관리하는 정령왕은 그 모습이 안보이지........? 조금은 의문이 생기는 일이었다. 그리고.......이건 나에게 또다시 황당한 일이 생기기 직전의 상황일 것 같은 예감이...... 부르르. 제발......이상한 일만 아니라면....... 절로 주눅이 들어서 어깨가 조금씩 떨리는 느낌이었다. 또한 혹시나 하던 내 심정이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게......아무래도 그린 드래곤들과의 밀약 때문에 조금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린 일족과의 밀약?" 내가 그게 뭐냐고 쇼크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이내 여기 저기서 마구 떠들어대는 통에 나 또한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아마도 지금 그린드래곤의 수장이 있는 곳에서 조금 안 좋은 일들이 벌어져서 흙의 정령왕 네프로노미콘 이라고 하는 정령왕은 늦을 것 같다는 말들이 내 스스로 챙겨 들은 종합적인 이야기들의 주제였다. "음. 그럼. 이제 아저씨들과의 계약이 모두 끝났으니까 프레임아저씬 그 네프로노미콘 이라는 아저씨가 올 때까지만 기다리시고 나머지 분들은 바쁘실 텐데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돼요." 끄떡끄떡. 많이 피곤하실 꺼야? 아무래도 밤이 늦었는데......하지만 프레임 은 전혀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클클클. 모두들 싸~이님 말~~씀 자~알 들었겠지~? 우헤헤헤헤헤 그럼 어여~~ 어서들 가보라고. 크크크. 아마도 다시 돌아가서 할 일도 없는 네놈들은 밑에 애들이나 다독거리며 따분한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흐흐흐. 허나 거룩하신 이 몸은 우리 주인님과 룰루랄라 재밌게 놀고 있을께. 음하하하하하" 에고 귀여워......푸훗. 잔뜩 아랫배를 내밀고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귀여운 프레임의 모습에 모두들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중 나와 가장 가까운 기운의 정령왕인 라이어나가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무언가를 의논을 하는 모습은 지금 뇌리속에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치를 떠는 나에게 무언가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아직까지 나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던 지금의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더불어 내가 또다시 따분하면서도 황당한 일을 당해야만 하는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기도 했다. 신룡의 후예 - 제 30 화. 발킬마의 봉인구......!! 떼굴떼굴. "우웅......." 으음......이게 뭐지? 조금씩 내가 잠에서 깨기 시작한 느낌으로 눈을 부시시 떴을 땐 이미 난 거대한 석회 동굴 안에 자리를 튼 채 곤히 자고 있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뿌드드득, '헤엥. 역시.....아직은 드래곤이라는 이 막강의 생명체라는 몸이 익숙하지가 않구나. 근데 여긴 어디지?' 어슬렁 어슬렁. 두리번 두리번. "흐음....아무도 없나?" 뼤에에에에에. 우르르르릉. 아코. 내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나? 에휴...조심할껄. 어슬렁 어슬렁. 난 정말로 대책 없는 놈이었던가? 어떻게 석순이 오묘한 빛줄기로 환상적인 자태를 뽐내는 곳에서조차 나도 모르게 드래곤 피어를 섞어 내 주위에 있을 누군가를 부른다고 하던 것이 그만 온 동굴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면서 작은 소동이 일어나자 난 조금은 무안한 생각이 들었다. 쩝....아까운 종유석들.... 아주 이쁜 놈들부터 알록달록한 세월의 무게를 지닌 놈들까지 떼거지로 우수수 떨어지는 모습이 조금은 안돼 보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의 구조는 정말로 날 황당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는지는 자세히는 몰라도 내가 지금 자리를 틀고 누워있던 곳은 제법 넓직하면서도 네모 반듯한 석실구조였다. 이런 환경이 너무도 놀라운 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주위를 살펴보았는데, 내가 있는 네모반듯한 석실 밖은 내가 있던 곳과는 전혀 다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더욱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이런 낯선곳에 내가 왜 와 있을까?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면 아마도 누군가의 작은 애정때문이리라. 아마도. '음...이건 아마도 엄마나 할머니가 나를 이곳에 데려오신 듯 한데... 더구나 내가 잠이 들 땐 이 몸이 아니였으니깐. 그럼 누군가가 내게 트렌스포메이션을 해주었다는......그럼.....누가......? 여긴 할머니랑 엄마의 냄새가 전혀 안나는데...' 조금은 궁금한 마음이 이는 나였다. 대관절 누가 그랬을까? 난 아직 어리디 어린 핏덩어리인 헤츨링..... 그것도 고작 5살도 안된 나를 이렇게 무단 방치를 하다니........ 엄마는 절대로 아니고....흠. 그렇다고 할머니도...... 도리도리. 절대로 나만 혼자 놔두실 분들이 아니였다. "에휴........누구지?" 절로 한숨만 폭 내쉰 나였다. 그러나..... "클클클클. 이제 일어났냐?" 에잉? 할아버지? 어떻게 할아버지가 여길.....그럼.......? 한순간 뇌리 속에 있던 모든 의문들이 싸그리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허긴 대책 없는 무대뽀로 한동안 용족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신 분이 바로....... 쿡쿡쿡. 근데 왜 할아버지 혼자 계시는 거지? 할머니가 나만 할아버지 둘을 달랑 보내실 분이 아니신데....... 이건 어디까지나 그동안 내 주위에서 벌어진 일들을 내 스스로 정리하면서 조금은 순박하면서도 착하신 분들의 성격을 모두 파악한 뒤에야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켈켈켈. 드디어...........크크크크......" 엥? 왠 가래 섞인 목소리...... 난 느닷없이 내 발치께에서 들여온 낯선 목소리를 확인하고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런 내 노력 끝에 금새 자신의 모든 몸에 하얀 털로 가장한 긴 수염을 길 게 기른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저 작은 몸에 발까지 내려오는 턱수염이 왜 필요한거지? 게다가 인상은 왜 저리도 늙어 보이는 건지? 정말로 짧은 다리에 어울리는 아담한 작은 몸이었다. 아직 내가 유사 인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독서광인 관계로 자주 내 전용 도서관에서 본 유사인종과 몬스터들을 비교한 서적에서 본 드워프라는 존재와 거의 흡사하면서도 조금은 색다른 그린아이(초록눈동자)의 존재를 난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날 수가 있었다. "헤에. 눈이 참 특이하시네요...." "클클. 우리 흙의 정령들을 처음 보는 이들은 그런 말들을 자주 하지. 더구나 어린 하급 정령들은 아주 연한 초록색 눈동자를 지녀서 잘 모르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진한 초록색 눈동자가 매력포인트인 우리 흙의 정령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깊은 땅속에선 제대로 다니지도 못해." "오옷. 그....그럼........할아......웅......아저씨가........" 난 급히 애늙은이라는 말을 긴급수정해야만 했다. 본인이 그런 모습이라도 다른 이로부터 직접 듣는건...특히나 처음보는 이에게 듣는건 기분이 불쾌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런 내 실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일까? 애늙은이처럼 생긴 흙의 정령왕은 잠시 답답한 듯한 웃음소리를 지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냈다. "크크크....고맙군. 난 네프로노미콘이라고 흙의 기운들을 다스리는 정령왕이야." "헤~에. 반가워요.....근데 다른 정령왕들이랑은........쪼금......." "큭큭. 아무래도 내가 좀 겉늙었지.....하지만 싸이님아. 나 이제 고작 19만살밖에 안됐어." 허걱.........고작...십구만 살......... 그..그럼........난.....아이구......... "큭큭. 많이 놀랐나 보네. 그 느끼 백만년인 라이어나 놈보다 내가 이래뵈도 더 어린데. 쩝" 컥컥. 정말로 숨이 막혀서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마치 자긴 어리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나를 지긋이 올려다보는 이 난쟁이 할아버지가 자그마치 십구만년의 긴 세월을 살았단다. 그럼 난?! 정말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왔다. "우웅. 그...그럼 내가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해요?" "히히. 그냥 나도 아저씨나 나의 깜찍한 애칭인 로콘이라고 불러 줘. 알았지?" 윽. 저 작은 덩치에 저런 애교가 어울리나? 흐음. 당연히 어울리겠군. 크고 우람한 덩치가 저런 애교를 떨면 진짜로 주접이겠지만....... 그래도 저건 조금 심했다. 허연 수염을 펄럭이면서 나한테 헤헤거리며 웃음을 날리다니...... "커.....컥....쿨럭.....음....어쨰......암튼 반가워요. 로콘 아저씨~!" "에헤헤헤헤. 드디어......오옷......." 덩실덩실. 정말로 한 춤을 어깨로 확실히 보여주시는 귀엽고 깜찍함을 스스로 몸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땅의 정령.......네프로노미콘이었다. 근데 왜 내가 아저씨라고 불러줬는데 저런 미소와 함께 어깨춤을 추시는거지? 조금은 의아한 모습이었다. 쿡쿡. 아마도 외모 때문에 꽤나 여러명한테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셨나 보다. 크크크. 나도 맨처음만 아니라면 놀리고 싶을 정도로 재미난 모습이니깐. 크크크. 갈리아스 옹은 지금 너무나도 행복했다. 비록 그 숱한 방황과 그로 인해 삐뚫어져 가는 자신을 스스로도 깨닫고는 있었지만, 이미 스스로의 긴 생을 포기하기를 마음먹었던 자신이었기에, 오늘이 있기까지 항상 자신을 옆에서 다독여주며 알뜰히 챙겨주는 실버 일족다운 마음씨 고운 아내 에르킨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신은 다른 드래곤들의 속을 빡빡 긁는 못난 행태를 일부러라도 계속 벌려가며 긴 생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아들로써 스스로의 생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자신의 이런 못난 행동에 성질들을 마구 부리며 펄쩍 뛰는 드래곤들이 생겨날수록 점점 그들과는 달리 초라해져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서서히 도태가 되어갈 때쯤에서야 허무하기만 한 지금의 삶을 스스로 끊는 유일 무일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계획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세워둔 갈리아스 옹이었다. 신의 아들로써 그분이 주신 생을 다른 종족과는 달리 도태가 되어가면서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자부 못하게 만들어서 긴 생을 끊겠다는 그의 생각은 어쩌면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허나 언제나 그의 옆엔 항상 든든한 아내가 있었다. 그러기에 자신이 계획한 어처구니없는...에이션트에 들어선 드래곤의 자살 계획은 허탈하게도 미수로만 그쳐야 했다. 또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엔 너무도 귀족적인 자태로 자신에게 여성스러움을 수천 년간이나 보여준 아내의 모습은, 그가 비록 겉과 속이 다른 행동들을 하더라도 깊이 신뢰하며 믿어주는 아내의 모습으로만 자신에게 다가오기에, 그는 남몰래 마음속으로 깊이 자신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준 고마운 아내에게 감사의 애정을 나누어주곤 했었다. 그랬기에 자신이 벌리려고 한 자살미수 사건은 영원히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는 일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이 지금의 행복한 삶을 살다가도 가끔씩 떠오르는 과거의 악몽은 하찮은 호비트에게 웜급에 다다른 동족을 살해당하게 했다는.... 그래서 자신도 어쩌면 그 호비트와 공범일지도 모른다는 심한 자책감이 솟아 나와 느닷없이 속에서 불이 솟구치는 현상이 생기게 되면, 마구 주위를 쏘다니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 자신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던 지난날들의 악몽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런데........그런데 지금 자신의 품에 작고 앙증맞은 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러기에.....한없이......지금의 순간이 너무도 행복한 갈리아스였다. '후후후. 너무도 귀여운 녀석~! 어떻게 이런 귀여운 녀석이 나한테도........ 역시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야. 아암~!......쿠쿠쿠.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생길 수 있다 니......' 너무도 감사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지난날의 아픔을 다 씻지도 못한 자신에게 이런 복덩어리 손자가 생길 줄이야... 더군다나 호비트라면 이를 가는 자신에게 하나뿐인 딸년이 유희 비슷한 몰골로 인간의 기사에게 시집을 가선 낳은, 100% 순수한 인간의 모습과 피를 가진 순수한 인간의 아이. 하지만 지금 그딴 건 다 필요도 없다. 그깟 호비트와 지금 품에 안긴 손주는 너무도 다른 존재이기에... 그리고 이 녀석은 멍청한 호비트가 아닌 순수한 인간의 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조금은 낯선 존재이지만, 손자의 몸 전체에서 은은히 풍기는 신의 아들다운 기운들과 냄새는 그를 너무도 오랜만에 평안의 길로 접어들게 해주었다. 그 때문에 손자를 안은 채 너무도 행복해 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인간의 아이. 그리고 비록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위대한 드래곤 일족 중 초천재인 자신의 유일한 손자..........!! 또한 자신들 실버 일족의 위대한 전사이자 지도자이신 신룡 헤리아킨님이 가지셨던 순수한 마나들의 기운들을 몸 안에 갈무리한 채, 넘실대는 은발과 은색의 눈동자가 지금 이 아이의 금색에 가까운 찰랑이는 부드러운 머리결에 묻어 있기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거의 알아 챌 수 없을 만큼 오묘하게 섞여 있는 이 큰머리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갸름하면서도 아주 이쁜 얼굴과 그 속에 찬란한 보석이 박혀 있듯이 간직되어 있는 밝고 깨끗한 눈동자. 그리고 그런 눈동자 속에 간간히 스쳐지나가듯이 반짝이는 총기의 눈빛을 빛내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은색의 물결들은 가히 진정한 실버 일족의 헤츨링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아이....... 자신의 하나뿐인 손주였다. '후후. 그래. 비록 인간의 피와 섞였을지도 모른다는 마누라 생각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꺼야. 하지만 이 녀석의 순수한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 실버 일족의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했던 신비한 기운들이 몸 안에 고스란히 잠재되어 있는 걸.... 아마도 이건 그녀나 딸 녀석도 미처 몰랐을꺼야. 하긴.......나도 처음에는 그랬지만....." 조심스럽게 품안에 있는 손자의 몸을 자신이 과거에 발명했던 신기한 발명품 중 하나인 물건으로 비춰본 게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나 대단하기만 한 갈리아스 옹이었다. 어떠한 존재들이라도 몸 안에 지닌 마나의 색깔과 부피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스카우터 기능이 첨부된 마령석으로 찬찬히 살피며 딸에게 들었던.......... 손자의 심각한 부상이 모두 완치가 되었는지 걱정이 되는 할애비의 마음으로 손자의 몸을 되살피다가 자신이 놀란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그리고 확실히 호비트의 피가 섞인 손자라고 불릴지라도 호비트라고는 전혀 눈꼽만치도 생각이 되지 않을 만큼, 몸 안에 순수한 다섯 가지의 모든 마나들을 가지고 있는 손자의 놀랄 만한 모습은 그에겐 지금까지 미워하기만 했던 인간이라는 종족이 오늘부터... 그리고 지금 품안의 손자를 따스하게 감싸안고 있는 지금 이순간부터 한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들로 변해간다는 것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게 된 갈리아스 옹이었다. 정말로 신기했다. 어찌 인간과 드래곤의 사이에서 하프도 아니고.......이런 양면의 모습을...... 아니다. 절대로 인간과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들은 태어날 수가 없다. 그런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일은 신께서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럼.......지금 이 아이는.........? 정말로 신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왜?! 왜 무엇 때문에...... 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아이를 드래곤으로 트랜스포메이션을 할 기특한 생각을 다 했냔 말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는 해도........ 어찌 인간의 몸으로 유희를 떠난 주제에 감히 신이 내려주신 신성한 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낳은 드루시안을 우리 신성한 신의 아들인 드래곤 일족으로 변신마법을 시킬 생각을 다 했는가 말이다. 그리고.....신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위대한 능력의 모습을 어찌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몸이 어떻게 우리들의 엄청난 힘들을 이 작은 몸 안에 받아들일 수 있었단 말인가?! 도저히 스스로........그리고 남들로부터 초천재라고 칭찬 받던 자신이기에.... 긴 역사를 자랑하는 드래곤들의 신께서 부여하신 길고도 긴 용생을 살아간 이들 중에서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은 초천재라는 칭찬과 떠받듬의 대상이 된 자신의 뛰어난 지식으로도 갸늠하기 힘든 놀라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절대로.....그리고 확실히 나타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품안에서 새근거리며 잠이 든 귀여운 손자를 통해서 현실로 나타난 상황에서 갈리아스 옹은 지긋이 품에 안은 손자에게 더욱 따뜻한 애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갈리아스 옹은 잽싸게 자신이 뚫여져라 바라보던 이 신비투성이이자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일을 벌여 신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를 손자를 위해서, 자신을 신의 처벌에 따른 희생량으로 과감히 내놓게 되는 결정을 내렸다. 아무래도........분명히 신은 이런 일들을 모조리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럼 분명히........ 확실히 자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런 일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납할 신이 아니였다. 만약 그랬다면 갈리아스 옹에게 속이 좁쌀만큼 좁은 쪼짠한 신으로 불릴 위인이 아닐 것이다. 그러했기에........ "후후후. 에르킨........난 절대로 후회 같은건 하지 않소. 내 생애에 있어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아마 나에게 이런 가족으로써의 당연한 의무를 다하라는 그분의 분부일지도.......아마도 밴뎅이 소갈딱지 같은 쪼잔한 그 양반이 자신이 저질러 놓고도 남보기가 민망하니깐, 대신 다른 이의 목숨을 가져가려고 할지도 모를 일........후후후." 잠시 조금전의 상황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이 조금도 후회가 되지 않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조금전이라...........후후. 아마 그럴지도...... 조금은 슬픈 미소가 어리는 갈리아스 옹이다. 조금 전. 자신이 처음으로 만난 사랑스러운 손자를 품에 안았을 때...... 정말로 환상적인 기쁨과 행복이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건 처음부터 헤츨링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수백년간 자신이 똥오줌을 직접 받아낸 사랑스런 딸을 인간으로 트렌스포메이션을 처음으로 시도해서 안았을 때와는 그야말로 천지차이인 남다른 따뜻한 감정이었다. 후후. 그땐 정말로 조그마한 소녀라서 더욱 이뻤는데...... 하지만 지금 듬직한 고추를 달고 나타난 손자의 모습과 자그마한 손자의 어깨를 자신의 넓은 품에 덥썩 안았을 때의 그 순간은....... 정말로 영원히 기억될 뿌듯함이 넘실거리는 순간이었다. 그 까짓 공포스러운 큰 머리의 박치기로 인해 거의 인사불성에 지금도 얼얼한 턱 정도는 지금 이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수백배의 보상이 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놀란 눈으로 금새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듯이 울먹이는 손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갈리아스 옹이었다. 근데...그런 손자가 자그마한 앙증맞은 손으로 토닥이면서 해주는 안마는.......?!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장난스런 마음으로 손자를 당황시키며 그런 모습을 감상하려고 했던 갈리아스 옹이었건만.....너무도 당당하게......고룡인 자신도 아직 다 보지 못한 다섯 명의 정령왕들을 모두 소환하겠다는 손자의 당찬 모습과 그런 손자의 명령에 아무런 거리낌없이 나타나서 천적수준인 불의 정령왕을 데리고 나타나는 물의 정령왕이나.....한동안 이어지던 정신없는 상황은 그에겐 조금....아니 솔직히 심장이 벌렁거리는 놀라운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흑.........흑. 하나뿐인 손자가......이제야 만나게 된 귀여운 손자가.......... 불치병도 아니고.....고작......힘이 없어서..........!! 너무도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던 갈리아스 옹이었다. 어차피 모든건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될 일...... 하지만....아뿔싸.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손자가 맨 처음에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을 금새 깜빡한 못난 자신이었던 것이다. 어찌 인간이......수백년.......수천년의 시간들을......답답하게 기다릴 수 있을까?! 당연히 자신이라도 홧병에 안걸리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 그였다. 그리고............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하는 손자의...어쩌면 종족간의 벽을 뛰어넘은 일의 심각한 후유증이 될지도 모를 일들을 해결해줄 방안들이 손자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입에서 너도나도 나오기 시작하자 절로 욕심이 나기 시작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만약에......진짜로 만약에....... 분명히 그런 일은 생기지도 않을 것이고, 생길 건덕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만약에...... 겁대가리를 상실한 인간들이 감히 진짜로 겁없이 자신의 손자를 해하려고 한다면.........?! 그야말로 그 순간부터 이 땅의 모든 인간이나 그와 유사한 종족들은 절대로 이 땅에 발을 대거나 댈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면.....!!! 자신부터 인간형의 모습을 가진 모든 유사종족들을 모조리 다 죽여 버릴 것이기에...... 그것도 갈기갈기 찢어죽이며 자신들이 저지른 엄청난 일을 직접 고통스럽게 당해보라고 아주 철저하고 잔인하게 죽여 버릴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신보다 더 순수한 실버 일족의 위대한 힘을 가진 아내가 손자의 일로 폭발해서 모조리.....그리고 어쩌면 이대륙을 멸망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절로 욕심이 생기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런 욕심이 나는 방법들은 하나같이 손자의 출현과 똑같이 시간을 맞춘 듯이 나타나서 더욱 한 욕심 나고 있는 그였다. 해서 갈리아스 옹이 결심을 굳히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자신이 그동안 받았던 고통을 옆에서 같이 나눠 받은 그 깊은사랑과 존경하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을 굳힌 갈리아스 옹이었다. 때문에 갈리아스 옹은 지금껏 받기만 했던 그 모든 일들을 확실히 보답하는 일이 바로 이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저렇게 손자의 안부와 건강에 저토록 펄쩍 뛰면서 광분을 하고 있는 아내가 저리 안쓰런 얼굴을 하고 있는데 가만히 넘어간다는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모욕이자 배신이었다. 해서 갈리아스 옹이 택한 방법은 단 하나..........!! 정말로 단 하나의 방법밖엔 없었다. 그것이 과연 사랑스런 손자에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아직 자신도 확실히 장담을 할 수는 없었지만... 발킬마의 봉인구.....!! 이 얼마나 가슴 울렁이는 단어들인가?! 하기에 단 하나~! 오직 이 단어가 주는 거대하면서도 공포가 이는 길을 그는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단지 전설일 뿐이라고.......그저 세월이 흘러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무수한 뻥튀기가 된 물건일 뿐일진데....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였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도 이제는 몇 안되는 이들만 남아 있기에, 갈리아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 거대한 존재의 힘이 들어가 있는 봉인석을 손자에게 선사하고자 스스로의 희생을 과감히 선택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이 선택에서 그가 꼭 죽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였다. 단지...혹시라는 단어가 있기에 그는 가슴 설레이면서도 병약한(?) 손자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도 있다는 뿌듯한 생각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선택을 하면서도 그가 지금 열심히 두뇌를 회전시키는 이유는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건너고자 하는 저의가 있었기에, 지금도 과거의 기록들이 엄청난 속도로 획획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그럼.......?!" "후후. 예... 아마도 지금 로콘이 가 있는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운들은 그의 말대로라면 분명히 마신 발킬마가 유일신께 봉인 당한 마령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일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그.....그런...........허면. 우리 싸이가?!" "후후후.....예. 십중팔구는 아마도 지금 생각하시는 대로......." 끄떡끄떡. 절래절래. 라이어나의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에르킨 여사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하나뿐인 딸이 데리고 온 손자녀석이 실버 일족의 수장이자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의 유일한 손녀인 자신도 다 보지 못한 정령왕들의 주군이 될 위인이라며, 이렇게 서로들 손자를 위해서 갖은 지식들을 토해내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도 가슴 설레이는 순간일 것이다. 허나,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 어쩌면 종족간의 벽을 뛰어넘으면서 생긴 후유증일지도 모르는 손자에 대한 중요한 일이기에 미처 거기까진 신경을 못쓴 여사를 대신해서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다니.... 그 부분에선 무척이나 고마운 에르킨 여사였다. 하지만 그런 여사를 지긋이 바라보는 갈리아스 옹의 속마음은 이미 안달이 난 상태라서 의자에 겨우 붙어 있는 엉덩이가 마구 들썩거리고 있었다. '에구. 이 불쌍한 여편네야. 맨날 똑똑한 척은 혼자서 다 하더니......쯔쯔쯧.'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신룡 헤리아킨님이 발견한 고대 유적들을 저혼자 싸돌아다닌 갈리아스 옹만이 알고 있는 기록이기에, 그의 아내는 이런 사실들을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안달하는 자신을 구원해주는 이가 있었으니........ "후후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르킨 님." "예?! 걱정........이라니요......클라우드 님." "후후. 사실 지금의 싸이님이 아주 훌륭하신 성품을 지니신 분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그런 분이 혹여라도 간악한 자들에 의해 작은 상처라도 입으신다면..." 화르르르륵. 미처 말을 끝내지도 못한 클라우드였다. '클클클. 저 탱이 말을 가려서 해야지. 원. 저러다가 남아있을 의자나 있으려나....쩝' 클클클. 정말로 클라우드가 툭 던진 한마디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단 한마디에 에르킨 여사가 앉아 있던 식탁은 금새 하얀 얼음가루로 변해서 허공 중으로 날아다니며 녹아들고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났던 것일까? 이런 모습은 근 4.000년간 살을 맞대고 살아온 갈리아스 옹조차도 처음 보는 아내의 열 받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효과는 이내 나타나고 있었다. "좋아요. 비록 우리 싸이를 몇 년동안 못 보는 한이 있어도 그 이상한 기운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우리 싸이를 데려 가셔서, 이 대륙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 싸이를 넘보지 못하게 확실한 힘을 실어주세요. 확실히 약속하실 수 있겠죠?!" 찌릿찌릿. 역시 한 성깔 하는 갈리아스 옹의 아내였다. 그리고...... ""잠깐~!!" "무슨 말씀이라도? 갈리어스님." 라이어나의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갈리아스 옹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 시작했다. "예, 라이어나님! 말씀 중에 대단히 죄송하지만, 전 당신의 친구로써 그리고 싸이의 하나뿐인 할아버지로써 홀로 쓸쓸하게 지낼지도 모를 우리 싸이의 보호자를 자청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부디 친구인 저의 이런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뻑. 어벙벙. "허허허, 이런......하지만 그곳에 가보셔 봤자 갈리아스님은 그냥 얌전히 죽치고 앉아 계셔야 하는데......그래도 좋습니까?" 끄떡끄떡. "물론이죠. 이제 겨우 만난 내 손주가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건 할애비로써 아주 감동적인 장면일 테니까요." 조심스런 눈치 작전과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카로워지는 아내의 눈치를 마구 도리질하며 끝까지 버팅기는 갈리아스 옹의 모습은, 잠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만들었지만, 이내 한숨을 폭 내쉬는 에르킨 여사의 눈짓으로 라이어나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과 시선을 마주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해 주었다. "정 그렇게까지 하시고 싶다면야......그럼. 갈리아스님도 동행을 하도록 하지요." "이야호~!! 감사합니다. 라이어나 님!!" 펄쩍펄쩍. 절래절래. "에효~!! 이 양반아. 지금 그런 모습을 보고 설마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죠?!" 역시.....하지만 아직은 자신의 속내가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위안을 가진 갈리아스 옹이었다. "우헤헤헤. 할멈. 사실 내가 이렇게 귀엽고 이쁜 손자가 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고작 발킬마의 봉인구 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 싸이를 몇 년동안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난 도저히 못참는다구. 차라리 그럴바에야 우리 싸이 옆에서 꼭 붙어서 낮잠이나 자는게 훠얼씬 더 나에겐 보약이 될거야. 아암. 그렇구 말구.....으헤헤헤헤." 조금은 뻔뻔스럽게 주변의 냉담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였다. 그리고...... "에휴휴휴휴휴" 절로 긴 한숨만 쉬는 에르킨 여사였다. 하지만 지금도 열심히 자신이 성취한 일에 대해서 확실한 결말을 내고자 열심히 또 열심히 자신의 기억들을 더듬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촤르르륵.- 성마 전쟁. 그리고 그 핵의 중심인 마신 발킬마.......... 과거 성마전쟁이라고도 불리던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과 중간계 최고의 지도자 헤세르 갈리아스의 모든 피와 땀이 모여진 그 순수함의 결정체.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피 흘리며 신음을 하는 모습을 보고 과감히 일어나서 신과 동일시되는 무한한 힘을 지닌 존재. 마신 발킬마에 대항한 이들의 피와 살로 점철된 잔인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역사. 그리고 그런 전설들을 모두 가지고 한곳으로 모아진....... 어쩌면 이곳 물질계의 모든 힘이 집대성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마신 발킬마를 봉인시킨 마령석. 바로 이것이 지금 갈리아스가 선택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손자에게 어쩌면 엄청난 기연이 될지도 모를 일을 자신이 해줄 수도 있다고 믿는 그였기에, 지금도 열심히 회전을 하면서 과거의 기록들을 일일이 그리고 하나씩하나씩 꼼꼼히 따져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리고........ 마신 발킬마의 봉인석........! 성마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그 잔인한 혈투와 그 속에서 파생된 수많은 생명들의 에너지가 함축된 힘을 가지고, 이 땅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전설의 영물 콘돌의 이십만년이 넘게 쌓여진 단 한번의 힘. 피닉스 블레스터 메가 브레스와 수천에 다다른 웜급 수준 이상의 드래곤들이 단 한번의 기회를 노려 날린 각각의 브레스가 하나로 모여져 있다고 전해지는 정말로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 마신 발킬마의 봉인석. 이는 한마디로 최상급 신의 실력을 갖춘 마신 발킬마의 마지막 비기를 설명하지 않으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일 것이다. 촤르르르륵. 마신 발킬마~! 신계 모든 최상급 신들 중에서 유일신이자 창조주이신 분 다음으로 강한 생명력과 힘을 지녔다고 회자되어지는 유마계의 진정한 명왕이자 북쪽의 방위를 점령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존재 북명왕 발킬마 데리사우스. 그리고 그가 가진 유일신의 가까운 힘이자 마지막 비기인 크리스터 프레리온. 이는 자신의 몸 안에 무한의 기운들을 축적해서 자신의 몸을 채우고도 남아 몸밖으로 넘쳐흐르는 기운들을 주위로 잔잔히 퍼트려, 자신에게 전해져 오는 다른 이들의 기운까지도 또다시 자신이 흡수해서 자기 기운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이로 인해 그를 진정한 유마계의 일인자라는 권위를 세워주며, 다른 위대한 존재들로부터 그를 유마계의 진정한 명왕으로 인정받게 해준 그의 최고 힘이자 신으로도 추앙 받게 해준 절대절명의 비기였다. 또한 각각의 명왕들이 서로 각기 다른 기운들과 힘들을 가지고 있듯이 , 그 또한 이런 비기로 자신을 다른 명왕들이 가지고 있는 힘들과 비교하며 자연스럽게 신계 서열 2.3위를 다투던 그였기에, 그가 성마 전쟁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공격하던 이들의 어마어마한....... 어쩌면 이 카빌라이 대륙을 통째로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도 남을 힘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 들여 자신의 기운으로 만들고자 했던..... 엄청난 마나의 폭풍과도 같은 회오리를 몸 주변으로 형성시키며 마지막 한올의 기운까지 흡수하며 잔인한 미소를 짓던 그였기에, 그를 따르던 이들에겐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위대한 신의 미소요....그에게 대적하는 이들에겐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보여주는 공포스런 미소였기에,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이렇게 모든 이들이 내뿜은 기운들을 흡수하며 미소를 짓던 그를 보며 용족의 위대한 전사 헤리아킨이나 신계 최상급 신의 후예인 갈리아스 대제나...... 그리고 그를 수호하는 천계의 영물인 콘돌의 구슬픈 울음들은 이렇게 절망으로 치달아 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이는 오직 단 한분. 창조주이자 자신들의 어버이 뿐이라는 생각에 올린 간절한 기도와 찰나의 순간밖에 안 되는 그 순간에 모든 이들이 경배하면서 간절히 올린 기도를 저 버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면.....아마도......... 정말로.......이땅은 이미 유마계의 한 식민지가 돼버렸을 것이다. 절대절명이자 끝도 모를 절망이 찬란한 희망으로 단숨에 뒤바뀌는 그순간~!!!. 그 얼마나 희열에 들떠서 기뻐했던가. 하늘을 울리는 거친 굉음과 그 주위를 울리는 검은 먹구름이 동반한 피빛 번개는 점점 엄청난 대자연의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유마계의 북명왕을 시샘한 것인지.........한순간 발킬마가 마나의 폭풍을 일으키는 곳에 내리 쬐여진 검은 먹구름 사이의 눈부신 태양 빛과 그 속에서 내려지는 은색의 투명한 햇살과도 같은 유일신의 권능에 찬 힘은, 그를 조금은 큰 홀리 실드로 감싸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와서는 점차 그를 감싸면서 줄어드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지를 찢어발기는 거대한 힘과 하늘을 가로질러 쪼개어 버리는 그의 권위를 단숨에 작은(?)- 드래곤들의 시각적으로- 봉인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그리고 이 땅엔 결국 평화가 내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꿀꺽. 이는 갈리아스 옹이 자신에게도 물려진 신룡 헤리아킨 님의 일기를 통해서 알 게 된 사실이었다. 물론 그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은 갈리아스 옹이기에 그저 책속에 빠져서 이런 기록들을 읽으며 그리 신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단지 헤츨링 시절의 철없는 유아기적 사고 방식일 뿐이었고, 그가 성룡이 되고 웜급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또다시 느끼게 된 마신 발킬마가 이 땅에 뿌려놓은 놀라운 씨앗들은 결코 그 전설적인 일기장이 허구가 아니였음을 그에게 보여주는 증거물이 되어 버렸다. 마신 발킬마. 그는 진정으로 이땅의 모든 괴수와 마수들의 어버이요 지배자였다. 어느날 북쪽의 하늘이 열리고, 그 위에서 이 땅으로 왕림한 그가 가진 위력은 ......작은 손짓 한번에 에이션트 급의 고룡 여러 마리 정도는 가뿐하게 재로 만들어 버리는.......정말로 소름이 끼칠 정도의 무서운 힘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하기에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선 감히 대적할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가 거느린 수많은 마수들은 이 땅에 유사 인종으로 살고 있는 숱한 몬스터들과의 강제력이 깃든 교접으로 인해 지금도 간간이 드래곤들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이곳 물질계에서 마수 또는 몬스터로 구분이 되는 지긋지긋한 것들을 수만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거......오우거. 오크......오킬라. . . . 어찌 보면 정말로 별 것도 아닌 차이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단어들에서 느껴지는 단순한 어감의 차이로는 이 땅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마수들의 피와 힘을 단순하게 몇자 다른 단어일 뿐이라고 무시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몬스터 킬러. 일명 마수 써팬터들의 천적인 베이직 헌터들은 그 하나하나가 거의 웜급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쿠쿠쿠. 당연히 베이직 헌터들의 진실 된 모습은 용족들 중 우수한 인재들을 특별히 고르고 골라서 키운 전사들이기에, 더욱 그들의 하나하나가 가진 힘은 이 대륙에선 어느 누구도 감히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엄청난 힘이었다. 해서 그들이 지금도 대륙 각지에서 물리치고 있는 써팬터들은 이미 예전에 마수들의 순수한 피로 내려오던 모습이 엄청 희석이 되어서 약해질 때로 약해졌다. 허나 그렇다고 무시하거나 경시 할 수만은 없었다. 어느 흑마법사가 자신의 힘을 조금만이라도 나누어준다면 그 희석된 피는 그 순간부터 또다시 순수한 마수들의 피로 변모하는 것이 바로 가장 무서운 유마계 마수들의 힘이었기에, 베이직 헌터들은 절대로 써팬터들에게는 추호도 인정이 없다. 그러기에 지금도 눈에 불을 켜고 드래곤들의 용사들로 구성된 베이직 헌터들은 위대한 신룡 헤리아킨님의 유지를 이어받아서 남성체라면 누구나 모두 다 자신이 진정한 용사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 꼭 10마리 이상은 해치워야만 용족 사회에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작고 하찮은 마수들의 피를 물려받은 써팬터들이 웜급의 용감한 베이직 헌터들에게 이를 들어내며 본능적으로 덤벼드는데, 하물며 진정한 유마계의 지배자인 마신 발킬마의 순수한 힘이 녹아 있는 봉인석이라고 하면.........절로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포를 전해주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은 절대로 자신의 결심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또한 갈리아스 옹이 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유일신이자 태양의 신 오딘님의 어버이 되시는 창조주께서 오딘님께 내려주신 영원불멸의 힘. 이 물질계 모든 곳을 한줌도 빠짐없이 감싸면서 모든 생명들에게 오오라 로 통하는 생명 에너지를 내려주시는 그 힘을 봉인석이 받는다면....... 정말로 이건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기회이자 모든 것을 건 도박이었다. 물론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은 자신을 믿었다. 아니 그동안 자신이 수천년에 걸쳐서 연구하고 해석한 고대 종족인 신룡족들의 기록을 토대로 자신이 차곡차곡 쌓은 지식들을 과감히 믿었던 것이다. 그 짧막한 기록들을 일일이 나열하면서 지금 맹렬히 돌아가는 두뇌 속을 헤집어 보아도 역시 자신의 이런 판단은 확신을 가질만 했다. 하기에 갈리아스 옹은 과감히 손자의 곁에서 자신이 행해야만 할 일들을 준비하며 떳떳하게 가족이라는 구실로 손자를 자신이 보호하기로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의 기반엔 자신이 드래곤들 사이에서 초천재로 불리게 해준 헤비 워커라는 고통스런 기억을 만들어준 물건도 있었기에, 그는 과감히 자신의 삶을 손자에게 투자 해 버린 것이다. 아니.....그저 손자의 혹시 생길지 모를 부작용에 자신의 긴 생을 저당 잡힌 것이다. 단지 하나 갈리아스 옹이 어릴 적부터 꾸준히 심혈을 기울여 헤비워커라는 신병기를 만들 수 있게 해준 고대 용족들의 기록이 그에겐 유일한 위안이 된 것이다. 또한 그 헤비 워커라는 물건으로 인해서 이 땅에 거의 과반수에 이르는 마수와 써팬터들이 사라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그였기에 더욱 지금의 손자를 안고서 길을 떠나는 그의 발걸음을 아주 가볍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우웅, 그러니깐 지금 할아버지 말씀대로 전 여기에서 그냥 이렇게 잠만 자야 한다는 거죠?" "그렇지. 어떠냐? 아무래도 조금 답답하겠지?" 헛. 정말로 허탈하다. 후웅. 어떻게.... 지금 그렇게 입맛만 다신다고 모든 일들이 해결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진짜로 이런 말이 목에 걸려서 차마 하지 못하는 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선 나를 인자하게 바라보고 계신 할아버지가 계셨다. 세상에나.....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흑.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런 형벌보다 더 무서운 일을 시키시는지.... 하지만, 내가 지금 이런 일들을 하게 된 원인을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곰곰히 들어보면 지금 일은 굳이 이분 잘못도 아니니....쩝. 하여튼 결국엔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이미 남들이 다 내려 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할 수밖에 없는 나였다. 흑.....어떻게 인간인 내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세월을 내리 잠만 자야 한다니..... 어떻게.....아무리 내가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아서 새로운 종족의 벽을 허물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별수 없었다. 나를 위한다면 만가지 독들도 강제로 먹이실 양반들이 내린 결정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아직까진 나에겐 없었기에....... "싸이야~! 그렇게 기죽지 않아도 된단다. 어쩌면...." "예? 어쩌면....이라니요.....할아버지. 그...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후~우. 글쎄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하여간 넌 지금....." 절래절래. 조금 작게 고개를 흔드시며 숙이시면 나보고 어떻게 판단을 하라고..... 흑. 왜 갑자기 소름이 돋으면서 무서워지는 것이지?! 꿀꺽. "저...할아버지.....! 그게....그러니깐....지금 할아버지께서 하시려고 하신 말씀이..." 쩝. 투덜투덜. "에구. 망할 놈의 정령왕들 같으니라고....괜히 천천히 해도 될 일들을 가지고선 그렇게 안달을 해서는....." 이렇게 긴 한숨을 내쉬시면서 나에게 들려주시기 시작한 할아버지의 대책 없는 손자 키우는 방법은 정말로 나에겐 황당무계 그 자체였다. "싸이야~! 실은 이 할애비가 널 여기로 데리고 온 이유는....조금 전에 그 다 늙어 빠져서도 어린애처럼 키도 못 큰 녀석 기억나지?" 끄떡. "네. 리콘 아저씨 말씀이시죠?" 후우. "그래. 그 놈이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지금 이곳이......" 허~! 이거 진짜로 황당하네. 그럼 뭐야~?! 그럼 내가 지금 지하 수백 미터에 달하는 곳에 와 있다는 거야?! 헉.....가슴이.....답답..... 그....그런데 더 놀랄 일은 지금 나에게도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 느끼하면서도 산뜻한 서로 다른 두가지의 기운들이 알고보니 나를 살찌게 하고 튼튼하게 키워주는 에너지와도 같은 기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한마디로 정확히 요약을 하자면....난 지금 지하 수백미터에 초자연적으로 생긴 석회 동굴에 와 있고, 이 장소를 만들기 위해서 리콘 아저씨가 나름대로 애를 쓰면서 내가 누워있을 자리를 지금처럼 평평하면서도 물기 하나 없이 반들반들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꿀꺽. 지금 이 지하의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들이 내가 그동안 그림책으로만 봐와서 그나마 익숙한, 갈리아스 대제와 신룡 할아버지가 예전에 성마 전쟁 당시에 죽을힘을 다해서 봉인했다고 전해지는 마신 발킬마의 봉인석을 가지고 있단다. 그런 그들이 그 봉인석에서 흘러나오는 초자연의 기운들을 이용해서 지금 대단히 위험한 물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난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점이 있었다. 해서 할아버지께 그 봉인석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도대체 뭘 만들 수 있냐고 원망 어린 목소리로 되물었더니........ 할아버지 왈, "인석아. 그 봉인석엔 네녀석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이나 무시무시한 기운들이 엄청나게 농축이 되어 있어서, 그 문제의 봉인석이 오딘님의 태양의 기운을 받으면 봉인석에 농축되어 있는 대지의 모든 기운들이 서서히 녹아 봉인석 밖으로 알게 모르게 흘러나오게 되는 거야. 그럼 그 기운들을 대형 마법진을 이용해서 9써클 이상의 마법사가 그 기운들을 어느 물건에다가 저장을 하게되면 그 물건은 아주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진 병기가 되는 것이지...!! 이건 이 할애비가 예전에 수천년 동안 연구하면서 개발한 마법 병기에 힘을 실어준 방법과 동일시되는 방법들이란다. 그리고 그 문제의 봉인석은 사실 우리 드래곤 일족들이 수천 명이나 모여서 일시에 내뿜은 브레스와 전설의 영물인 콘돌이 내뿜은 기운에 마신 발킬마의 기운들이 모두 모여 있는 물건인 만큼 지금도 너와 내가 서 있는 이 깊은 땅속까지 그 기운들이 느껴지는 것이야. 알겠니?!" "......예, 할아버지...." 결국 내가 기죽을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었다. 세상에나....웜 급 이상의 드래곤 수천 마리(?)가 모여서 내뿜는 브레스만 해도 얼만데, 거기에 더해서 20만년 이상을 산 전설의 영물 콘돌의 모든 힘이 깃든 브레스라..... 그럼 그 기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는 마신 이라고 불린 존재의 힘은......... 커억. 저절로 꼬랑지가 내려가는 내용들이었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저렇게 까지 정색을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인데...... 게다나 그런 무시무시한 기운들을 함축하고 있는 그 봉인석인지 뭔지 하는 물건이 지금도 하늘에 떠 있는 오딘님의 기운인 태양을 받아서 증폭이 되고, 그 힘을 대형 마법진을 이용한 9써클의 마법사가 어떤 물건으로 전해주고 있다는데.... 어찌 내가 이 대륙의 평화를 흩트러 트릴지도 모를 물건의 탄생을 그저 넋 놓고 봐줄 수가 있겠는가......!!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긴 한숨과 더불어 내 몸을 바닥에 눕히며 할아버지의 기대에 찬 눈빛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래. 아무래도 네 녀석이 그동안 인간으로만- 날 완전히 드래곤으로만 알고 계신 할아버지이셨다.-지내면서 익숙해진 생활 리듬을 이렇게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겠지..... 물론 네가 지금도 많이 피곤하면 곤히 잠이 들어서 며칠동안 꼼짝도 안하고 잘 수 있는 것도 실상은 네 몸이 점점 우리 종족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니 조금 안심이 된다만....그래도 넌 아직 어리단다. 싸이야~! 그러니.....어여~! 이곳 물질계의 온 천지에 널리 퍼져 있는 기운들만큼이나 많은 힘을 저장하고 있는 봉인석의 힘들을 내 몸 속으로 받아 들여서, 나쁜 무리로 추정이 되는 놈들의 계획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너 스스로의 힘도 키우려 무나. 그저 이 할애비는 네 옆에서 힘들지도 모를 너를 위해서 이렇게 얌전히 널 지켜주고 있으마~!" 흠. 어째 저런 부드러운 톤으로 말씀을 다 하시다니.......... 조금은 소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저리도 조용히 말씀하시다니..... 흠. 어째 점점 졸린다. 웅. 할아버지께서 지금 하시는 말씀은 다 듣고 자야 되는데......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손자가 점점 고른 숨을 쉬면서 잠을 자기 시작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제야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싸이야~! 이 할애비가 지금부터 너에게 하고자 하는 일을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하지만 이 일로 인해 네가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강한 존재가 된다면 이 할애비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단다........' 찌잉. 괜시리 코끝이 시큰거리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고 하는 일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점점 자신의 서 있는 키보다도 수십 배 더 큰 손자의 머리를 향해 두 손을 내밀며 용언 마법 중에서도 이미 사장이 된 고대 용족들이 사용했던 궁극의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궁극이라는 하늘의 기운을 지닌 존재의 기운들이여~! 온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거인들의 힘이여~! 여기 그대들의 기운을 바라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두 손과 어깨넓이 만큼 벌어진 두 팔의 사이로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대자연의 느낌 속에 광폭한 기운들을 지닌 마나들이 점점 긴 시간들을 흘려보내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궁극의 고대 용언 주문의 영창 속에서 고요하기까지 한 석실의 모든 곳을 자신들의 기운들로 채우기 시작할 때부터 꼭 감은 갈리아스 옹이라는 드래곤 일족중에서 몇 안 되는 절대자의 두 눈 속엔 어느새 이 땅의 절대자다운 기운들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조금씩 그 넓이를 석실을 넘어서면서까지 넓히던 새로운 고대 용언 주문의 기운들이 천천히 하나의 원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 중심을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어린 손자의 몸이 차지하게 되자 불현듯 두 눈을 번쩍 든 갈리아스 옹은 이제 자신이 영창한 용언 마법이 제발 성공되기만을 그의 생애 두 번째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우리 동족에겐 처음으로 거는 이 마법이 꼭 성공하기를.....'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그의 뇌리 속엔 예전에 건장한 기사를 연상시키는 헤비 워커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 곤히 잠이 든 손자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어느새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하면서까지 극성으로 실현시킨 궁극의 용언마법이 성공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눈길에 실어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지금 이 썰렁한 석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들은 서서히 잠이 든 싸이의 또다른 모습의 육체로 꾸역꾸역 모여들기 시작했다. 난 정말로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또한 얼마나 그렇게 오랫동안 꿈을 꾸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어떻게 이런 꿈이 나에게도......일어난단 말인가?! 예전에 신룡 할아버지께서 나를 위해서 행해주시던 꿈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 꿈속에서, 나는 한없이 넓게 펼쳐진 하얀 색의 공간과 그런 공간 속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웅. 이게 뭐야~?! 이게 바로 드래곤들이 자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긴 잠을 자게 되면 벌어지는 현상들인가?!' 조금은 알쏭달쏭쏭한 꿈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할아버지로부터 듣게 된 드래곤들의 긴 삶과 그 속에 가장 큰 부분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용언마법의 수련방법은 지금의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에구. 이게 정말로 말로만 듣던 용언 마법 수련인가?! 그.....그럼.......이렇게 나 혼자뿐인 곳에서 홀로 수련을 해야만 하는 거야?!" 절래절래. 조금은 섭섭하면서도 화가 나는 내 자신이었다. 어떻게...달랑 나 혼자 이 넓기만 딥다리 넓은 공간에서 유유히 수련을 하면서 지내야만 하다니........쩝. 말이 안나온다. 그저 꿈속에서 수련을 하면 된다고 하시길래 난 또 무지 쉬운 수련방법인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 상태에서 철저히 고립된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왜 감옥에서 독방이 그리 끔찍하고도 무서운 공간인가를 확실히 가르쳐 주는 무서운 현실 속에 처한 나였다. 하지만........ 음, 여기서 그냥 놀 수만은 없잖아~! 확실히 꿈속에서 나의 거대한 몸을 본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제아무리 넓다고는 해도 이곳이 내 정신세계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 바이기에, 난 넋을 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돌아보고 있는 내 모습을 조금씩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에휴. 그나저나 뭐부터 하지?! 할머니 책에서 본 내용은 이미 다 기억하고 있고....." 난 지금 이곳에서 할 일이 없었다. 언젠가 할머니 말씀대로 신룡 할아버지가 남기신 책과 그 속에 남아 있는 용언 마법들은 때가 되면 스스로 커져 가는 내 몸과 그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마나들로 인해 절로 익혀지리라고 하셨기에, 그 말씀을 옆에서 나랑 같이 들으시면서 쌍심지를 돋구며 할머니를 째려보시는 엄마의 날카로운 눈빛만이 지금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지금은.......... 에휴, 심심해~! 이 곳엔 내가 심심할 때마다 데리고 놀던 그놈의 먼지 녀석들도 없을텐데..........에휴........ 그러나....... 정말로 그러나였다. 왜? 너무도 놀라운 일들이 지금 내게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훗. 정말로 여전 하시군요~!" "엥?! 누......누구.........얏~?!" 엄청 놀랐었다. 나 혼자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곳에서 느닷없이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니...... 소름이 쫘악........무섭고 두려운 감정이.........최고조.........로 도달한 순간, 난 조금은 의아한 생각에 잡혀서 멍하니 놀란 나를 볼 수 있었다. "헉. 누가.....여긴 나 혼자만의 공간인데........" "후후. 당연하죠. 그곳은 싸이님만의 공간이죠. 이는 신께서 용족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게 해준 축복 받은 공간이기에, 싸이님이 지금 계신 곳은 오직 싸이님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바로 그 곳이죠." 헛, 누가........그럼 나 혼자만의 축복 받은 자아라는 공간에서 지금 나를 놀래키는 놈은 도대체 뭐야?!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진짜로 소름이 돋는 순간이었다. "후훗. 많이 놀라셨나요?" 꿀꺽. "그........그래~!" "역시....그래서 제 목소리를 잊으셨군요. 싸이님~!" "헉. 네 목소리.............갸우뚱." 네가 언제 저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도리도리. 쩝. 아닌 것 같은데........ "혹......혹시..........?!" "예. 싸이님께 항상 얄미운 먼지 녀석으로 불리던 실프랍니다. 싸이님~!" "헉뜨~~!! 너.....너가 어떻게.......?" 헉. 저놈 맨 날 내가 괴롭힌다고 날 버리고 도망간 놈이 아니였나? 도리도리. 절대로 믿을 수 없다. 우웅. 하지만.......목소리는 비슷한데............. 꿀꺽. 그리고 이런 놀란 모습의 나를 보지 못하는 놈의 말은 계속해서 내 머리속으로 웅웅거리듯이 마치 텔레파시처럼 자신의 말을 계속 전해주고 있었다. "후후. 지금 싸이님의 몸 안에 있는 저이기에 조금은 놀래키게 되어서......죄송해요." 컥...알면 됐어. 감히 나만의 공간을 방해하다니.......... 근데 내 몸 속이라니.......... 에이. 설마..........!! 도리도리. 아냐. 그럼 지금 이 목소리가 들릴 이유가 없잖아.........헉. 호........혹시............?! "헉.......두근.....뚜근....내 몸 속에?! 어떻게......설마~?!" 내 몸 속에 이 망할 놈의 먼지 녀석이 있었다니......어떻게?! 그러나 역시 이런 나의 의문은 당사자인 먼지 녀석이 풀어주기 시작했다. "후후.싸이님~! 제가 싸이님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와 싸이님께서 예전 모습과 지금의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면서도 항상 싸이님의 몸을 떠나지 않는 것이 하나 있죠?" 끄떡끄떡. 아참. 여기는 아공간이라서 저놈이 못 보지? 근데 그걸 저놈이 어떻게 알지?! 그 팔찌는 내가 드래곤으로 트랜스포메이션을 하면 내 앞발에 자동적으로 두꺼운 껍질 속에 묻힌다고 엄마가 그랬었는데...... 그럼..............혹시?! "으...응?! 내 몸을 떠나지 않는 물건?! 혹시........" "네. 맞습니다. 싸이님의 어머니이신 엘렌님께서 아직 어리신 싸이님을 위해서 특별히 자신의 뼈로 정성껏 만든 팔찌~! 실버 일족 특유의 기운인 바람의 속성을 간직한 채 싸이님의 몸 속에 갑자기 많은 양의 다른 기운들이 들어오면 그 기운들을 스스로 바람의 속성을 띤 기운들로 바꾸어 주는 용언 마법 6써클의 체인징 마법이 걸려 있는 팔찌가 바로.........." "헉.....그....그럼....너 날 버리고 간 게 아~냐?!" "후후. 버리다뇨....전 절대로 싸이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존재가 되라는 명을 라이어나님께 직접 받은 걸요. 더구나 전 그 덕분에 우리 정령들 중에서도 매우 신성한 존재로 탈바꿈한 실프가 된 걸요. 그리고 전 항상 싸이님의 곁에서 싸이님께서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주위의 기운들을 정화시키신 기운들을 이 팔지 속에서 제 나름대로 그 기운들을 싸이님 몸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어요." "헉............흐윽.........고......훌쩍....고마워! 날 버리지....않아서.....흑" 헉. 어찌 이런 일이...... 그럼 진짜로 날 떠난 게 아니라는 거잖아~! 난 너무도 놀란 마음에 무지 반갑기도 한 먼지 녀석이 이렇게 홀로 있는 나에게 말을 건내준게 너무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더구나 먼지 녀석이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간게 아니라 내 몸 속에서 항상 같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난.......... 흑흑. 너무 감동 받아서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언제나 난 혼자라는 생각으로 주위의 그 큰사랑과 애정에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던...... 내가 꿈속에서 존재의 각성을 끝마친 뒤로는 철저하게 내 주위 모든 이들에게 그들과 같은 부피만큼이나 큰사랑을 나누어주기 시작했는데....... 그랬는데.....지금 이 먼지 녀석은.......... 조금 미안한 나의 감정이 더욱 복받쳐 오르는 감동의 물결을 타고 먼지 녀석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흑. 고마워~! 난 네녀석이 날 버리고 간 줄 알고 얼마나 미워했는데......" "후후. 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걸요. 저또한 그런 싸이님께 저라는 존재를 가르쳐 드리지 못해서 매우 죄송했어요." "흑....훌쩍.....에엥?! 뭐? 가르쳐 주지 못해서?! 그...그럼 지금은........" 헉. 참나. 울다가 놀라기는 처음일세. 어떻게 평소에도 자신의 존재를 나한테 알리지도 못하던 놈이 이렇게 나만이 있는 장소에 이런 텔레파시를 이용한 방법으로 말을 걸어주다니........ 하지만. "후~!. 전 사실 싸이님이 이런 아공간에 계시지 않는 한 절대로 싸이님의 마음속에 제 마음을 보내드릴 수 없답니다. 제가 아무리 최상급의 정령으로 새로운 모습을 부여받았다고는 하나 싸이님의 힘은 이런 저를........" 으잉?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씨. 하여간 저 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하는 짓이 하나도 안 변한거야~! 무지무지 얄미운 녀석. 흥. 그러면서도 지 할말은 또 다하는 나아아아아뿐 녀석~!! 진짜로 얄미운 녀석은 바로 이 놈이다. 어떻게 슬그머니 사라진 줄 알고 있었더니.......결국엔 내 몸과 항상 함께 하면서 지 멋대로 이렇게 나만의 공간을 마구 텔레파시로 헝크러트리는지........원. "야~! 근데.....너 말야~!" 역시 말이 곱게 나올 이유가 없었다. "예. 싸이님. 말씀하세요." "너 말야! 그럼 지금처럼 내가 나만의 공간에 있을 땐 항상 나랑 이렇게 떠들 수 있는거야?" "예. 언제나 전 싸이님만을 위한 존재이니깐요. 그게 바로 저의 존재의 이유죠." "흥. 쳇쳇쳇에 흥흥흥이다. " "예? 예~! 죄송해요." 흥. 지깐 놈이 뭘 안다고 주접을 떨면서 죄송하다는 거야~! 나아뿐 놈. 지금 내가 얼마나 반가워서 이러는 줄도 모르고 그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맨 날 나만 위한답시고 지 멋대로 구는 놈이........... 확. 눈에 보이면 신나게 손바람이나 날려 줄텐데.........쩝. 아깝다. "후후. 지금 절 또다시 그 장풍인가 뭔가 하는 기술로 날려 버리실 생각 이셨죠?" 거 봐. 내가 뭐랬어. 저놈은 항상 저렇다니깐........지 멋대로 판단하고선 이게........나한테 최고라나 뭐라나 하면서 지 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놈. 게다가 워낙에 나랑 같이 지낸 세월이 길어서 누구도 모르는 내 행동을 눈치만으로 다 알아채는 무서분 놈. 에구. 역시 넌 나한텐 언제나 얄미운 놈이야~! 이 먼지 녀석아~~!! "흥. 너 또 내 속마음 읽었지?" "후후. 절. 대. 로.입니다. 지금 싸이님의 기운이 얼마나 쎈데 제가 감히 읽을 수가 있겠습니까? 후후후" 흥. 지금 그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저. 얼. 대. 로. 못 믿는다. 흥. 이 못된.........하지만 무지무지 반가운 녀~석!! "그러니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거라는 거야?" "예. 예전에 싸이님이 아기이실 때 절 깜짝 놀라게 하신 것 기억나시죠?" 응? 이게 무슨 말? 내가 지를 언제 놀라게 했다고..........?! 정말로 이 넘이 오랜만에 만나서는 헤깔리기 시작한 거 아냐?! 부리부리. 또록또록. 쿡쿡쿡. 지금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난 이 얄미운 먼지 녀석이랑 오랜만에 상봉(?)- 이건 아니구나. 어째든 텔레파시라고 해도 이 얄미운 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깐 상봉은 상봉이지 뭐. 암튼 난 이 얄미운 녀석이랑 지금 내가 해야할 막막한 일들을 논의하면서 알뜰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더구나 이 놈은 맨날 내 팔목에 채워진 팔지 속에 있었다면서 어찌나 그동안 내가 저지르고 다닌 일들을 시시콜콜 끄집어내면서 갈구어 대는지 정말로 난 확 돌아뻔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난 지금 내가 해야만 할 중요한 일에 대해서만큼은 이 놈만큼이나 확실한 조언자는 없었다. 지금도 이 넘이 나한테 내 주위에 퍼져 있는 대자연의 기운들과 그 속에 조금씩 녹아 있는 봉인석의 기운들을 어떻게 하면 올바르고 수월하게 흡수를 해서 내껄로 만들 수 있는지를 내 개인 비서 역할로 똑 소리나게 가르쳐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 물론 지금 이 녀석이 나를 가르쳐 주고 있다고 해서 내가 어찌 이 얄밉고 망할 놈의 뺘샤라고 부르는 놈을 개인 강사로 승격시켜주겠는가. 나.....그건 절대로 못한다. 쳇. 차라리 이 넘을 그런 높은 직위로 올려 줄 바에는 나 수련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지금부터 얌전히 잠이나 자다가 갈꺼다. 흥. 근데......막상 이놈이 내놓는 방법을 듣고 보니 나에겐 무지무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솔깃한 일이었다. 해서 난 과감히 이놈을 내 개인 비서 겸 내 마나 책임자로 승격시켜 준 것이다. 에구.....이놈이 원래 하던 일이 그거라고? 흥. 그래봤자 내가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는 거야~! 어딜..............화악~! 까부지 마~자. 개기지 마~자. 잊~지 마~자. 오케이~~?! 쿡쿡쿡. 하여튼 이넘이나 저넘(?)....켁.......나한테 저넘은 없구나......실수..... 하여간 이넘이나 저분들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존재들은 하여간 나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우선 설치고 보자고 행동 하는 일들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 먼지 녀석도 그 범위 안에는 확실히 들어가는 무서분 놈이다. 왜냐고? 그건 조금 있다가 보면 다 알 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글쎄. 내가 제아무리 아장거릴 때의 기억들을 모조리 가지고는 있다고 해도 어떻게 지놈이 말한 일들을 내가 일일이 알아들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저 내가 처음으로 마나라는 먼지 녀석의 사촌과 팔촌에 사돈이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가지고, 갈리아스 전기라는 책 속에 들어 있던 내용과 나 스스로 융합시켜서 만든 음양오행진기로 마구 내 몸속으로 받아 들여서 가지고 논 일들을 얘기하면 될 것을 가지고 무조건 나보고 자기를 놀라게 했던 일이라니.......!!! 내가 그래서 너무도 막연하다는 생각으로 이를 갈면서 이 얄미운 녀석을 내가 언제 놀라게 했지 하며 깊은 생각에 빠져서 가만히 있으니깐 지가 답답하다는 듯이 스스로 알아서 떠들길래 내가 그걸 가만히 들어보니깐 나도 참........정말로 나도 요상한 놈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부턴 일사천리로 먼지 녀석이 가르쳐 준대로, 내 주위에 있는 이 여러 가지의 기운들을 내가 흡수를 하기 시작하면 자기가 알아서 다 챙겨 주겠다고 하길래 난 정말로 이 얄미운 녀석이 또다시 반가워 미치는 줄 알았다. 쿠쿠쿠. 차악한 녀~석. 캬캬캬캬캬............메렁. 흑마법사 밀란. 밀란은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무지하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쟈벨 여왕이 자신의 권유대로 이 대륙에 깊숙이 보관되어져 내려오고 있는 마신 발킬마의 봉인석을 찾아내어 자신에게 가져오기까지, 그가 나름대로 복수를 위해서 그에 걸맞는 힘을 지니고자 마법 병기들을 개발하고 기다린 수백 년의 세월동안 뜬눈으로 지샌 밤들보다는 요 몇 달 동안의 박차를 가하며 마무리를 짓는 빡빡한 힘든 작업일정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었다. 허나, 그는 자신이 지금 개발하고 완성에 가까운 모습으로 당당히 지하광장에 서있는 이 자랑스런 마법병기가 이 다음에 이 대륙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면서부터 자신에게 부여 될 영광스런 명예와 명성은 두고두고 길이 남을 것이기에, 요 몇 달 동안 조금은 힘겨운 작업들이 절로 신바람이 나는 중이었다. 또한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부모님과 자신의 또 다른 친지이자 가족들이 받아야만 했 던 수모와 공포를 한순간에 모두 되돌려 줄 물건이기에, 그가 지금 숱한 밤을 지새며 개발한 이 마법 병기는 더욱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더구나 근래에 들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발킬마의 봉인석이 태양의 기운들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개발한 마법진을 통해서 지하광장에 설치된 마법진 한 가운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여왕전용 헤비 워커와 여왕의 헤비 워커를 충실히 보좌할 근위대 헤비 워커들에게 매일 마다 엄청난 기운들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일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하고 있던 밤샘 작업정도는 우습게 여기게 된 자신을 더욱 고조 시켜주고 있었다. "후후후. 이제....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음하하하핫" 쩌렁쩌렁. 온 지하 광장이 떠나갈 듯한 그의 우렁찬 한 맺힌 웃음소리였다. 태양의 기운들이 봉인석을 비추면 금새 주위로 넘실거리는 대자연의 기운들이 곧이어 그 아래에 설치된 수정구를 거치게 되고, 그 점을 이용해서 지하에 설치한 대형 마법진이 그 기운들을 수십 배로 증폭을 시켜주면, 이내 지하 광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늠름한 헤비 워커들과 그 주위의 모든 마법 무기들은 더욱더 윤기 나는 모습으로 주위를 비추어주는 모습은......수십 년의 준비를 거쳐서 부모와 일족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톡톡히 보상해줄 것이다. 하기에 이제 막바지에 이른 자신의 또다른 업적이 절로 자랑스러워지는 것을 밀란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더구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동안 자신이 흑마법의 일인자이자 간악한 다른 일족들에게 자신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뿌드득. "으득. 두고보자. 우리 블랙일족이 그동안 받았던 이 수모들은 내가 곧 수백 배로 너희들에게 반드시 앙갚음 해줄 것이다." 그는 문득 허공을 향해 초점 없는 눈동자를 들어올려 혹시라도 보일지 모를 그의 부모님 얼굴과 그 분들이 자식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어린 자신의 눈앞에서 스스로를 희생하시던 장면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주르륵. 어느새 노년의 절정기에 오른 멜빈의 거친 뺨에는 한줄기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만 년 전. 이 땅에 왕림한 마신 발킬마를 숭배하며 마신의 수하로 자처하길 원했던 블랙 드래곤 일족들은 흑마법과 암흑의 기운의 속성을 가진 자신들의 속성에 걸맞게 수많은 동족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친히 이 땅을 평정하러 내려오신 마신 발킬마님의 수족과도 같은 존재들이 되어서 자신들이 태초에 받았던 암흑의 기운들을 더욱 더 대성하여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드래곤들의 힘의 원천이자 삶의 핵을 이루어주는 드래곤 하트..........! 그걸 더욱 키워주는 일들을 개발해 내게 된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자신들과 속성의 기운만 다를 뿐인 다른 드래곤 일족들의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자신의 힘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는 마신의 말을 신봉하던 블랙 일족은 웜급 이상이 되면 레드 나 골드. 그리고 물위에선 실버 일족. 이렇게 자신들과 대등한 힘을 가진 일족들의 눈을 피해서 숱한 어린 드래곤들을 살해하며 그들의 힘의 원천인 드래곤 하트를 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같은 힘을 자랑하는 일족이라고 해서 그들의 마수를 피할 수는 없었다. 한 명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두, 세 명의 힘으로 암습이나 기습을 최우선하였으며 어린 헤츨링이라고 해서 봐주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또한 암암리에 이루어진 일들이라서 그 일로 인해서 남들 몰래 탈취한 수많은 드래곤 하트는 진정으로 그들의 힘을 다른 일족들보다 압도적인 우월감으로 나타나게 해주었다. 바로 마신 발킬마님의 전지전능하신 권위로 인해서 다른 일족들의 드래곤 하트를 섭취한 블랙일족의 전사들은 말 그대로 자신이 복용한 드래곤 하트의 힘을 그대로 암흑의 기운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 그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똑같은 웜 급의 무식한 힘을 자랑하는 레드 드래곤이라고 해도 블랙 일족의 업그레이드 된 힘 앞에는 당당히 무릎을 꿇고 자신의 드래곤 하트를 어김없이 받쳐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절로 뿌듯해지는 밀란이었다. 비록, 자신이 그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할아버지 되시는 블랙일족의 수장인 머린 님의 전설적인 무용담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그로써는 이런 기분이 들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블랙일족의 범죄를 파악한 다른 일족들과 드래곤 로드의 명에 의해서 블랙 일족들이 당하게 된 일들을 생각하면............ 으드득. 절로 치가 떨리는 밀란이었다. 이건 아예 블랙일족이라면 헤츨링부터 성룡. 그리고 에이션트급의 머린 님까지, 특히, 블랙 일족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마신 발킬마님의 오른팔이었던......드래곤들 중엔 어느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전해지는 크림슨 급에 도달하셨다고도 전해져 내려오던 머린 님이, 이곳 중간계이자 물질계인 이곳의 수호자인 콘돌의 힘 앞에 너무도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면서부터 시작된 여타 드래곤들의 블랙 일족 말살 정책은 정말로 천지신명이 노하실 만큼이나 잔인한 짓거리들이었다. 항상 그리고 어느 일족이던지 간에 헤츨링이라는 존재들은 어느 때고 귀여움의 독차지 대상이었고, 특별한 보호정책의 일순위에 들어가는 존재들이다. 오죽하면 수만 년을 살아가는 긴 용생 중에 헤츨링을 둘 이상 본적이 없다는 드래곤들이 어떻게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헤츨링의 안전에 결코 소홀할 수가 있으랴. 해서 블랙 일족들은 자신들의 잔인한 동족 살해와 시체 유기라는 범죄의 처벌을 당하며, 힘을 잃어버린 마신 발킬마 님을 대신해서 당당히(?) 숨어 다니다가 발각이 되어도, 어린 헤츨링들 만은 구원받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일명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베이직 헌터들로 불리는 전사들은 결코 헤츨링이라고 해서 특별히 용서라는 단어들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의 손에 죽어간 어리디 어린 헤츨링의 수만 해도 열 명 안팍인 것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잔인한 수법으로 드래곤 슬레이어를 자처했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이러니 6천년간이나 음지에 숨어살면서 암흑의 기운들을 숨기고 살아오던 자신이 그동안 받은 수모와 고통은 차마 입에 올리지도 못할 만큼 살 떨리는 날들이었다. 만약. 마신 발킬마 님이 오셨다고 전해지는 유마계의 상위 귀족인 이쟈벨 여왕을 자신이 만나지 못했다면............. 뿌드득. 분명 자신은 수십....아니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를 베이직 헌터들의 집요한 추적과 그들의 악랄한 공격에 얼마 못 가서 짧은 용생을 지닌 블랙일족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밀란이 만들고 있는 마법 병기들은 바로 자신들 블랙 일족들이 어이없게도 힘없이 당해야만 했던.........수천 년 전부터 대륙의 유행을 창조하면서 느닷없이 나타나 힘센 블랙 일족의 웜급 드래곤들에겐 함부로 덤비지도 못하던 다른 일족들의 성룡급 드래곤들에게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거창한 칭호를 안겨준 바로 문제의 마법 병기들이었다. 그리고......... 인간으로 변신을 해서 자신의 기운을 감추며 다니던 블랙 일족들을 디텍터 기능이 첨부된 마법 스카우터를 단 레지나 급의 헤비 워커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베이직 헌터들의 웜 급 이상의 드래곤 슬레이어를 자처하는 그들의 위용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할 암담한 현실을 블랙 일족들에게 선사했다. 깊은 산 속이나 지하 수백 미터에 위치한 블랙일족의 레어들은 레비테이션 마법으로 비행을 하면서 아래를 유심히 관찰하는 베이직 헌터들의 헤비 워커엔 어김없이 발각 당하고 말았으며, 미래를 기약하며 수천 년에 한번 낳을까 말까한 헤츨링들을 능력이 되면 마구 낳았던 블랙 일족의 씨는 거의 말살하기에까지 이르게 만든 마법 병기가 바로 지금 멜빈이 개발한 마법 병기 헤비 워커이었다. 물론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받은 헤비 워커의 공포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늘어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어렵게 포획한 베이직 헌터의 헤비 워커가 자신의 개발 계획을 무지 앞당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것도 에이션트에 거의 도달할 무렵에 만난 어린 웜 급의 베이직 헌터를 에이션트인 자신이 꼬리와 앞발 하나와 맞바꾸면서 얻은 전리품이기에, 그가 이를 갈면서 해부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렇게 위풍당당한 레지나 HI급의 헤비 워커를 만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니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업적들인가?! 비록 어린놈에게 어처구니없이 당하기만 했던 자신이었기에, 이를 갈면서 자신의 최후의 브레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맞붙어 싸워 이겨내던 그 놀라운 존재를 온몸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까지 물리적인 힘으로 무찌르고 이를 갈면서 가루조각도 남기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것을 혹시 자신도 이런 것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마음에 뜯어보지 않았다면......... 부르르르. 언제나 이 헤비 워커라는 명성에 항상 주눅이 들었을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지금은........ 음하하하핫. 정말로 통쾌했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용언 마법엔 천적과도 같은 9써클의 대 용언마법 방어 주문을 일일이 이 덩치 큰놈에게 새겨 넣었는지는 잘 몰라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의 새로운 모방품인 헤비 워커 흑기사가 더욱 진품보다 더 멋진 놈으로 보이는 밀란이었다. 더구나 지금 이렇게 자신의 발명품인 흑기사에게 유마계의 명왕이자 이 땅의 절대자로 군림하셨던 마신 발킬마님의 최고의 힘들을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자, 순수하게 그 위대하신 분의 힘을 몸안에 갈무리하면서 탄생하게 될 헤비 워커 흑기사의 위풍당당하면서도 절대자의 기세를 풍기는 지금의 모습은 정말로 자신을 힘이 불끈 솟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후후. 그래. 이제 얼마의 시간만 있으면 된다. 비록 충성 맹세를 한 이쟈벨 여왕이 안달을 내면서 독촉을 해대고는 있지만, 어차피 여왕도 몇 년 정도는 준비를 해야만 이곳을 좌표로 해서 유마계의 다른 마수들을 불러 낼 수 있을 것이다. 난 그동안 하루라도 빨리 흑기사가 자신의 힘을 더욱더 많이 몸 안에 갈무리하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우하하하하하핫. 두고보자.....이 간악한 베이직 헌터 놈들~! 뿌드득.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 부모와 내 일족의 원수들.................뿌드드드득" 절로 소름이 끼칠 회색 빛에 일렁이는 암흑의 기운과 그의 소름끼치는 미소만이 지금 이 지하광장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 제 31 화. 우와아아아아아. 정말로 따분해~! 진짜 이게 바로 고문이야~! 고문~!! 어떻게.....이럴 수가 흑흑. 너무 외로워서 미치겠다. 이건 진짜라고.......실제 상황이란 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난 지금 시간 관념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따분하게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하얀 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이 되어 있는 이런 나를 본다는 것이 이토록이나 괴로운 일 일줄은 정말로 몰랐었다. 진짜였다. 괘씸한 먼지 녀석이 나한테 이곳은 아마도 무척이나 따분할지도 모른다고 충고 어린 조언을 해주었을 때, 콧방귀를 낀 내 자신이 이토록 한심할 줄이야~! 진짜 그땐 몰랐었다. 흑흑. 벌써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해가 뜨는지, 달이 저무는지도 난 이곳에선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 홀로.....아무런 시간관념도 없이 해가 뜨는지 지는지도 모른 채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누워서 뒹굴거리며 보낸 숱한 시간들.............. 물론 가끔씩 이런 날 위문공연 해 준답시고, 싸가지 없이 내 머리 속으로 텔레파시를 때리는 건방진 목소리의 얄미운 먼지 녀석이 없었다면, 난 진짜로 절망이라는 단어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깨닫고 이곳을 빠져 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근데...?! 이거 확실히 나갈 수 있는 곳 맞지? 아니면......나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고........!!! 나..........진짜로.......확.............아냐!! 지금 누군가가 애타게 기다릴텐데 이정도도 못참으면 안되지. 에휴, 시간 때우는데에는 최고인 잠이나 한숨 더 자자~! "우갸갸갸갸갸갸.......아웅. 잠도 잘 만큼 잤고, 이제 슬슬......" 뿌드드드드드득. 길 게 기지개를 켜면서 이젠 습관처럼 나오는.....주위를 둘러보는 내 행동은 절로 실소를 머금게 하고 있었다. '에고, 내가 이렇게 미련이 많은 놈인 줄은 여기서 처음 알았네. 쩝. 하긴 아무도 없는 삭막한 이 공간을 얼마인지 기억도 못할 만큼 혼자서 시간을 보낸다는 건 정말로 끔찍한 일이니깐......' 절래절래. 이 또한 혼자 독백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모습들이 보기에 안 좋은 느낌이 들어 한숨과 더불어 고개가 절로 움직이는 나였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이 곳은 나만을 위한 공간이고, 이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던 간에 결국엔 나에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들인 것을........단지. 정말로 단지. 너무도 외로웠다. 이 때문에 긴 용생을 살아가는 드래곤들은 허구헌날 자신만의 공간에 대비하기 위해서 낮잠이라는 간편하면서도 매우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허긴 어릴 적부터 가만히 있으면 몸에 뭐라도 날 것처럼 꼼지락거리던 내가 지금 이렇게나마 조금씩 드래곤들의 일상생활에 동화가 되어 가는 걸 느끼며, 스스로를 다독거리는 것만 봐도 드래곤들이 얼마나 외로운 긴 삶을 철저히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긴 시간들이었다. 그리고.......난 조금씩 할 일이 없어지면 또 다른 습관으로 제자리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서 찬찬히 주위에서 느껴지는 마나들의 기운들을 몸 속에서 움직이는 연습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움직임엔 일정한 법칙이 있어서 이게 바로 용언 마법의 기본이 되는 마나의 운용이라고 먼지 녀석이 가르쳐 주었기에, 이젠 나도 조금씩 마법이라는 신기한 기술들을 욕심을 부리며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예전에 내가 처음으로 해본 파이어 볼. 정확하게는 3써클의 용언 마법인 파이어 플레임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높은 수준의 용언 마법들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그동안 심심풀이로 해본 장난들과는 진짜로 차원이 다른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4써클의 초입까지는 무지무지 쉽게 올라설 수 있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5써클의 초반에 해당하는 마법들을 아직까지 이곳에서 익히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성룡급의 브레스에 해당하는 파워라고 하니 그저 얄미운 먼지녀석의 말을 믿을 수밖에.........하지만......... 왜 이리 진도가 느린거야?! 어째서 그런 것일까? 이건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주위에 넘쳐나는 기운들이 내 몸 속에 들어오면 아주 상쾌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조차도, 여전히 내 머리속에 남아있는 위대한 신룡 할아버지의 절기들은 이렇게 거대해지는 내 기운들과는 상반되게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익히기가 힘들어지는 듯.........조금씩 늘어가는 힘에 비례해서 나의 마법이 점차 힘을 얻지 못하고 퇴화하듯이 무언가 꽉 막힌 벽에 부딪힌 듯 더 이상의 진전을 얻지 못하고 초조해하는 나였다. 그러나........ "에휴~!. 그래 먼지 녀석의 말처럼 갑자기 한 순간에 익힌 다는 건 정말로 있을순 없는 일이야~! 아무렴......단지 내가 엄마가 만들어준 이몸에 걸맞는 힘을 몸 안에 담고 있어서 처음으로 해본 마법들이 4써클의 초입부분에 달했을 뿐. 어찌 그때처럼 손쉽게 마법을 익히겠어~!! 모든게 그리 허술하고 쉽다면 이미 모든 드래곤들은 저마다 최고의 절기들을 자랑하면서 이 세계의 질서를 망가트려도 수백번은 망가트렸겠다.......에궁. 하지만 이거 진짜로 어렵네." 난 그냥 내 주위에 있는 마나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배열해서 그 속에 있는 서로 다른 기운들을 상충시키거나 배타시켜서 그로 인해 생겨나는 운동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는데........쩝" 조금은 알 듯 모를 듯 한 마법의 세계였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오묘한 법칙들은 서로의 반대되는 마나들을 가지고 일으킨 운동에너지나 서로간에 대한 반발력을 이용한 기운들을 가지고 재배치시키는 일들이기에, 난 아주 쉽게 예전의 먼지 사촌 녀석들을 가지고 논 일들을 상기하며 손쉽게 익힐 수 있다고 믿었건만........ 역시 엄마가 그 나이에도 아주 빠른 성취를 보이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지금 이순간 만큼은 나또한 확실히 엄마의 엄청난 재능을 인정하는 바이었다. 물론 내가 4써클의 용언 마법을 구사한다고 자랑하듯이 어깨를 으쓱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놀라서 턱이 빠지신 불쌍한 할아버지는 그 다음부턴 아예 날 마치 괴물 취급을 하고 계셨지만 ..........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어릴 적부터 먼지 아그들을 가지고 놀면서 숙달된 조교의 모습으로 장난을 했던 것 일뿐. 실지론 용언 마법에 담겨진 엄청난 힘들은 그 속에 실지 못했으리라 내 스스로 생각이 되어진다. 흠. 이거 어째 날 너무 비하시키는 것 아닌가? 에구. 이렇게 낙담하면 되는 일도 안되는데........쩝. 아자.......폴짝. 아자자자~! 힘내자~! 내가 여기서 새로운 도전 앞에 주눅이 들면 내가 아니잖아~! 힘내자........힘!! 잠시 기운을 되찾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자기최면을 거는 나였다. 실프는 지금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자신이 부여받은 새로운 존재의 힘 앞에서도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만 하는 일들은 조금은 버거운 느낌이 일 정도로, 지금 실프가 하고 있는 주인의 마나들을 다스리는 일들은, 애초에 마나로 태어나서 지금껏 수백 년의 삶을 살아온 실프에겐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자신만의 아공간속에서 철저하게 홀로서기에 성공을 한 다음부터 주인은 지금도 열심히 드래곤들의 마법인 용언 마법을 죽기 살기라는 식으로..... 매우 극단적인 성향이 보일 만큼 미련스럽게 매달려서 익히고 있었다. 그래봤자 세월이 보약인데.......... 절래절래.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실프는 그 잠시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감히 겁대가리 없이 주인의 몸 안으로 침투를 하는 못된 마나 녀석들에게 신경질이 담긴 매서운 눈길을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또다시 엉킬지도 모를 마나들을 일일이 자기가 원하는 구조로 줄 세우기에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동안 얼마나 자기가 나태해졌으면 생전 보지도 못한 가는 실뭉치의 마나들이 실프가 어릴 적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힘들을 실고 있는 것인지..... 절로 머리가 쪼개질 듯이 아파오는 실프였다. '휴~우. 하긴 이 정도는 되야 내 주인의 기운들이 될 자격이 있지.' 끄떡끄떡. 조금은 자신에게 벅찬 일이지만, 그래도 주인을 위해선 오로지 외길로 나아가는 기질을 지니고 태어난 실프였기에, 지금 이렇게 자신이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조금씩 주인의 몸 안에서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마나들을 바라보면, 그동안 자기가 한 일들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더구나 얼마 전부터 시작된 주인의 무지 엄청난 속도로 주변의 마나들을 흡수하고 있는 모습에선, 실프도 미약한 자신의 정신력에 대해 한계를 느낄 만큼 요동을 치는 마나들과 그 속에서 점차 최상급의 존재가 된 자신의 기운들이 점점 그 힘을 발휘하는 듯 한계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어느새 훌쩍 뛰어넘는 일을 주인을 통해서 성취했다는 자부심에 남다른 충성심이 불붙은 실프였다. 그리고........ 휘이이이잉. 거침없이 네모 반듯한 석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기운들이 여전히 그 막강한 기세를 잃지 않고 꿋꿋이 내려오고 있는 지상에서는, 지금도 갑자기 생겨난 놀라운 일들을 바라보면서 흑마법사 밀란이 넋을 잃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오~오, 이제......이제.......드디어............" 촤아아아앙. 너무도 눈부신 자태였다. 일찍이 부모를 잔인한 베이직 헌터에게 잃어버린 그의 기억 속에서 이만큼 거대한 마나들을 담고 있던 헤비 워커는 본적이 없었다. 더구나 대지를 굳세게 디디고 있는 헤비 워커 흑기사들의 발들이 얼마 전부터 조금씩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자신이 설치한 마법진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선 든든한 장면은 그가 오늘날 밤잠을 설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러니 이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장면들인가?! 더구나 이제 얼마 있으면 점차 막강한 기운들을 땅속으로 내려보내는 마신 발킬마의 봉인구와 그 기운을 받고 토양에 깊숙히 뿌리를 내릴 위대한 마신의 기운들은, 어김없이 유마계의 무시무시한 마수들이 이곳 물질계로 내려오는데 확실한 좌표와 게이트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면........ 부르르르르르. 꼬옥. 불끈 쥔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가는 밀란이었다. '이제.....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생애 최고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흐흐흐흐. 그러 면....' 이제 그의 눈앞에서 죽음의 공포로 인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간악한 드래곤들이 그 모습을 하나 둘 들어내는 걸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뿌듯한 기분이 든 밀란은, 이쟈벨 여왕의 요구대로 막강한 파워를 지닌 채 완성이 다 되어 가는 흑기사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새겨 넣듯이 바라보며 징그러운 웃음이 짓기 시작했다. "음뿌화화화화화화홧" 절로 유쾌한 마음에서 터져 나온 흑마법사 밀란의 웃음소리만이 지금 성스럽게도 보이는 하얗고 투명한 태양 빛에 부딪히며 자신의 기운들을 토해내는 마신 발킬마의 봉인구에 작은 울림을 선사하고 있었다. 갈리아스 옹은 지금도 걱정스런 눈빛으로 손자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이는 얼마 전부터 슬슬 깨어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손자의 행동에 반응을 하듯,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대지의 기운들이 지금도 엄청난 양으로 손자의 거대한 몸을 감싸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점점 손자의 투명하리만치 곱고 윤이 나는 은색의 비늘들이 갈리아스 옹이 보기에도 한눈에 반할 정도로 엄청난 기운들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클클. 누가 내 손자 아니라고 할까봐 이리도 이쁠꼬.......헐헐헐" 어쩜 이리도 팔불출이 되어 가는 것인지.......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조차 손자로 인해서 더욱 이뻐만 보이는 갈리아스 옹이기에 이젠 떳떳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자신의 남은 용생을 확실히 살아가리라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을 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손주에게 배푼 용언 마법이 이젠 확실히 성공했다는데에 남다른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갈리아스 옹이었다. 쓰윽. 잔잔히 손끝으로 밀려들어오는 손자의 사랑스런 비늘들과 그속에서 자신의 손을 이방인으로 구분 짓고 밀어내려고 하는 작은 반발력에 손을 움찔거리던 갈리아스 옹은 이젠 손자의 몸에 감히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를 유심히 생각해 보았다. '쿄쿄쿄. 벌써 이 어린 나이에 성룡들도 가지기 힘든 반발력이라........... 이거 정말로 이 녀석을 내가 괴물로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에구, 그래봤자 지 할미가 손주가 상채기라도 나서 화를 내는 것 보단 훨씬 낫지.........아암.....그렇고 말고..........' 자신이 행한 일에 남몰래 걱정이 앞서던 갈리아스 옹은 이젠 떳떳한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과거의 경망스러웠던 행동들을 다소 자제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합리화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정말로 이거 하나는 그의 말이 맞았다. 누가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싸이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남긴다면....... 정말로 그 순간부턴 그 주인공이 속한 종족들은 한순간에 파멸을 받던지, 아니면 전 대륙에 골고루 퍼져 있는 용족들의 뛰어난 전사들인 베이직 헌터의 열렬한 방문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엄청난 고통과 신음을 동반한 멸족이라는 삶 또한 선사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실버 일족의 수장이자 싸이의 단 한분 뿐인 할머니 에르킨 여사의 한 파워 하는 권위에 감히 도전한 어리석은 자들의 최후의 모습이었고, 지금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지긋이 눈을 감은 채 귀엽고 사랑스런 손자를 인간의 모습으로 겁없이 안고 웃음을 흘리는 갈리아스 옹의 별난 창작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하는 베이직 헌터들의 남다른 배려이리라. 제아무리 꼴통에 사고뭉치 갈리아스 옹이라고는 해도 베이직 헌터들은 죽음을 눈앞에 둔 마수들이 만신창이가 된 마지막 순간에도 놀라운 힘을 보이며, 이를 들어내고 죽음을 불사하며 덤벼드는 마수들과의 싸움으로 인해 자칫 방심하다가 당할 뻔했던 자신들을 구해주면서, 무수히 사선을 같이 넘나들며 마음속 깊이 신뢰가 쌓인 마법 병기 헤비 워커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미 수십번은 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런 위기를 여러번 넘기면서 자기 생명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는 그들이 이를 개발한 갈리아스 옹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으로 은혜를 갚고자 죽기살기로 덤벼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물론 존경심은 쥐꼬리만도 못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룬 용족 사회의 커다란 변화에 대해선 그들도 인정을 할 것이다. 그러니..............어느 누가 감히 겁없이 싸이에게 덤비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어느 곳이든 가끔씩은 겁대가리를 상실한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고, 어느 누가 싸이의 외모만 보고 그 뒤에 실버 일족의 수장과 드래곤들의 골치덩어리 갈리아스 옹이 있으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러니 막상 모든 일들은 눈앞에 들이 닥쳐야만 깨달을 수 있는......... 말 그대로 똥인지 된장인지는 직접 찍어서 맛을 봐야만 아는 어리석은 존재들은 꼭 하나 둘 정도는 있으리라. 그래서 더욱 마음이 쓰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렇다고 손자의 몸에다가 나 위대한 실버 일족의 수장인 에르킨 여사의 하나뿐인 손자요....라고 문신을 새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그랬다가는 갈리아스 옹이 제일 먼저 마누라의 손에 두들겨 맞아서 죽는 존재가 되리라는 건 모든 이들이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문신을 새긴다면.......... '에잉. 그건 절대로 안~돼~~!! 이 이쁜 놈의 몸에 흉측하기 그지없는 문신이라니.....' 자신만의 생각에서도 목이 뿌러져라 흔들어 대는 팔불출 갈리아스 옹이었다. 벼락이와의 만남. 성명:벼락이..- 바보같은 주인이 지은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어감이 좋은 느낌의 본명. 본명: 피닉스~!. - 전설 속에 나오는 불사조가 꿈이기 때문에 본인(?)이 지은 예명. 종족: 물질계 최고의 존재이자 위대한 수호자 콘돌. 임무: 물질계의 수호영물로써 가장 강대한 힘을 자랑하는 드래곤들 일족의 폭정을 다스리며 물질계의 균형을 책임져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모습: 모름.(?) 왜? 그건 오로지 밑에 나오는 못된 주인 녀석 때문에 확실한 모습은 본인(?)이나 주인이나 어느 누구도 잘 모름. 성격: 까불면 드래곤들도 한입거리. 파워: 추측 불가~!. 왜? 그것도 밑에 나오는 병신 같은 주인 녀석 때문에 한동안 힘을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기 때문. 나이: 대략 21.035<...이건 자신도 정확하게는 모름.> 이곳 물질계에선 모든 종족들이 위대한 존재들을 꼽아 보라고 한다면, 그들은 항상 그리고 제일 먼저 드래곤이라고 하는 막강한 전투력과 힘을 지닌 마법의 원조인 드래곤들을 누구나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일순위로 꼽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드래곤들을 제켜놓고 나서 자신들의 주위에서 최고의 인물들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부족사회를 거쳐 이제는 제국주의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은 누구나 베이직 헌터라고 하는 인간으로썬 최고의 힘을 가진 존재들을 손꼽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드래곤들이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면서 조심을 하고자 노력한 결과라는 것은 아직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었지만....... 또한 그런 최고의 전투 전문가들인 베이직 헌터들이나 막강한 생물체인 드래곤들에게 있어서 신들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면 그게 바로........콘돌이라고 하는 물질계이자 중간계인 이곳의 실질적인 지배자~! 또한 항상 어느 종족에게나 균형을 잃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최강의 존재인 콘돌이 바로 드래곤들에겐 가장 무시무시한 존재일 것이다. 이는 이만년에서 삼만년이 최고인 드래곤들의 긴 용생들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의 긴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 하늘을 날기 위해서 날개를 펴면 왠만한 산맥들을 날개 아래에 감쌀 수 있는 그 압도적인 크기부터 시작을 해선 파괴자이자 광룡으로도 불리던 몇몇의 드래곤들을 단 한입에 꿀꺽해 버리는 놀라운 신기를 지니기도 한 콘돌의 위용은 지금까지도 드래곤들의 역사 속에선 그 위대한 존재에 대한 기록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단지 이만 년 전에 이곳 물질계에서 일어난 성마 전쟁을 마지막으로 마신 발킬마를 봉인하면서 자신의 거대한 힘을 모두 소진한 콘돌이 구슬프게 동쪽의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토하며 사라진 이후론, 아직 이 땅에 콘돌이라는 신성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콘돌이 있었던 시절보다 오히려 콘돌이 나타나지 않는 긴 시간들 동안 광룡이나 드래곤들의 율법을 어기고 약한 종족들을 멸망시키는 똘아이 드래곤들이 나타나지 않는 모습은 정말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 전 드래곤들의 수장들로부터 중간계의 수호영물인 콘돌이 중간계의 균형을 위해서 일일이 용언으로 약속을 받은 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드래곤들과 콘돌 사이에서의 약속일 뿐. 다른 유사종족들이나 인간들은 아직 이러한 일들을 알고 있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드래곤들이 얌전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씩은 레어 주변이 시끄러울 때에만, 그 끔찍한 공포를 일으키게 하는 모습들을 선보이며 레어 주변의 왕국들에게 다소 강압적인 모습으로 멋지게 드래곤 피어를 날려 전 인류들을 공포에 떨 게 만들었던 일들은 제법 많았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드래곤들 때문에 멸망한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단지.....인간들에게 유일한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검신으로 추앙을 받는 불쌍한 갈루아 제국의 황제를 제외하곤.........!! 허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오직 자존심 강한 드래곤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일 뿐. 절대로 인간들은 이 위대한 검신의 죽음과 신생 제국 갈루아 제국의 멸망에 드래곤들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추호도 모르고 있는 사실들이었다. 더구나 그일로 인해 인간들은 오히려 드래곤들을 더욱 신성한 존재로 떠받들며 아예 드래곤들에겐 도전이라는 단어들을 생각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그게 바로 베이직 헌터들의 탄생 비화였던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역사상 최강의 존재들인 베이직 헌터들이 어느 날부터 신생 제국으로 카빌라이 대륙에 그 위세를 떨쳐나가던 갈루아 제국에 이상하게도 그 모습들을 자주 들어내게 되면서부터, 그들로 인해 갈루아 제국이 큰 반항 한번 못해 본 채 한순간에 멸망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주변의 상황을 예기치도 못하게 철저하게 이끌고 나아갔기에...... 미처 베이직 헌터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그들을 경계하기도 바쁜 다른 제국들과 왕국들은 자신들의 도전에 패한 검신 갈루아 황제와 그 주변의 인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일족의 복수를 외치는 베이직 헌터들의 살기 등등한 모습엔 오금이 저려 감히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후 수백 년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대륙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던 베이직 헌터들은 하나같이 인간들의 최고 경지인 소드 그랜져에 가까운 검신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런 그들이 주변에 있는 마수들의 사냥에 그 모습들을 드러내면서부터 보통의 평범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일들은 까맣게 잊고, 오직 그들 최고의 전사들인 베이직 헌터들을 칭송하는 소문들만이 이 카빌라이 대륙에 가득했었다. 그런 베이직 헌터들에게 가끔씩 그들의 동료들이 되었던 용병들이나 파티의 인원들이 혹시 그 환상적인 실력을 선보여주는 레지나 급의 헤비워커를 이끌고, 이 땅의 최고의 종족인 드래곤들에게 도전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 보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질문에 하나같이 인상을 마구 구기면서 같잖지도 않은 질문으로 치부를 하는 그들의 모습과 그 동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들은 막상 드래곤들 앞에선 한낱 우스운 수준의 힘이라고 전해지는 말들이 전 대륙을 돌고 돌아서 이젠 어느 왕국의 인간들이나 주변의 유사 종족들에겐 드래곤이라고 하면 거의 신적인 존재들로 칭송되면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또한 하나같이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들도 차마 무서워서 도전을 못하는 막강한 생물체가 이 땅에 소리소문 없이 존재를 하니.........바로 그 존재가 콘돌이라고 전해진 과장된 소문은 누구의 입을 통했는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아서 잘은 몰라도 지금 이 땅엔 콘돌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어느 날 그 막강한 모습을 드러내면 그순간부터 이 땅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드래곤들은 모두가 이 물질계의 수호자인 콘돌의 밥으로 전락하리라고 인간들은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드래곤에게 악감정은 없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위에 강한 존재가 군림한다는걸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인간이었기에, 그들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최강의 존재인 드래곤 위에 또다른 존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와는 전혀 달랐으니........... 진정으로 이 물질계의 수호영물인 콘돌은 존재 하였고, 단지 인간들은 수만 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존재이기에, 단지 상상속의 영물로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모두 알고 있는 베이직 헌터들과 드래곤들이 지금 신과 동일시하는 존재로 여기는, 이 땅의 모든 존재들에게 전설 속의 수호자로 추앙 받는 존재 콘돌이 지금 서서히 자신의 긴 유아기 시절인 이만 년의 세월을 지하 수백 미터에 해당하는 레어 속에서 긴잠을 통해 거대한 힘을 비축하며 앞으로 벌어질 새로운 모험의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그 큰 몸에 걸맞게 긴 나래를 펴고 있을 때였다. 이건 정말로 꿈속에서 신나게 날개를 펴면서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바라보며 기절을 하는 드래곤들을 신나게 밟으며 가지고 노는.....콘돌의 꿈속의 세계에선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면서도 길고 긴 유아기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후후후.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엄마가 남기신 유언대로 나도 이제 새로운 힘을 얻어서 이 땅의 떳떳한 수호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후후. 그러면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곳에 가서..........' 달콤한 꿈이 이토록 감미로울 수 있을까? 이건 오직 알에서 깨어나기가 무섭게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성애에 목이 타는 새끼의 조금은 가녀린 모습이었다. 하지만........얼마 전부터 ......정말로 얼마 전부터 자신이 있던 레어의 주변에서 시끄러운 일들이 하나 둘 일어나고, 그 뒤를 따라서 갑자기 느껴지기 시작한 엄마의 따스한 품속을 연상시키는.......달콤하면서도 따뜻한 기운들이 자신의 몸을 감싸기 시작하자, 콘돌은 아직 스스로의 이름을 짓지 못한 관계로 더욱 구슬프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꾸우우우우욱. '흑흑. 엄마~! 난 아직 이름도 없어요......흑흑...엄마~! 보고 싶어~!' 꾸우우우욱. 아주 어릴 적 기억이 가물가물한 순간에, 자신의 엄마가 구슬프게 울음을 터트리면서 전해준 엄청난 기억들과 그 속에 담긴 지식들을 오직 긴 잠을 통해서 자신의 힘으로 비축함과 동시에 깨우쳐나가던 콘돌이었기에, 지금 이렇게 성물로 추앙 받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하루빨리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는 콘돌의 애타는 마음은, 비록 꿈속이라고는 해도 더욱 애절한 울음을 토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울음을 터트리면서도 꿈속의 세계에서 나오기가 싫은 이유는 지금도 자신을 감싸고도는 이 따스한 엄마의 품속과도 같은 기운들이, 행여나 꿈이 깨어나면 사라져 버릴까봐 더욱 안달하는 어린 새끼의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본능적으로 그 거대한 몸을 바싹 움추리며, 그 찬란한 번개문양이 새겨진 머리를 하얗고 윤기가 도는 날개 속으로 폭 집어넣은 채, 콘돌은 여전히 자신의 힘이 어서 빨리 모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나....운명의 장난인 것일까? 지금 콘돌이 있는 곳에서 직선으로 수백 미터 쯤 떨어진 곳에선 여전히 가는 코를 골면서 콘돌만큼이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또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갸르르르릉. 딸꾹. 코로로로롱. 딸꾹. 이는 아직까지 성대 쪽이 완전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싸이의 작고 귀여운 잠투정과 그 속에 담긴 가는 코고는 소리였다. 그런 모습으로 주변의 공동을 울리는 싸이의 코고는 소리와 더불어 지금도 싸이의 거대한........물론 콘돌에 비하면 수십 배는 작은 몸을, 강한 회오리처럼 감싸면서 맴도는 거친 기운들은 하나같이 놀라운 힘들을 담고 있는 마나들의 폭풍이었고, 그 다섯 가지의 서로 다른 마나의 폭풍 속에선 지금도 여전히 신기한 일들이 아주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는 여전히 곤하게 잠을 자는 싸이가 자신의 아공간 속에서 열심히 마법을 익히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실프의 임무이자, 그 다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땀투성이(?)로 노가다를 하고 있는 실프가 가장 확실히 이 신기한 일들에 처리했기에, 실프만이 이 일에 대해서 자~알 알고 있을 것이다. 우우우우웅. 휘리리리리릭. 거친 바람소리를 내면서 주변 석실을 거의 황폐화시킬 정도의 강대한 기운들이 잠재된 마나들이 지금도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기운들로 인해 자리싸움을 열심히 벌이고는 있지만, 막상 어떻게 된 일인지 싸이의 드래곤으로 변신한 몸에 가깝게 다가가기만 하면 전부가 순한 양처럼 그 힘들을 고요히 다스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 싸이의 몸 바깥은 거의 열 겹이 넘는 보호막과도 같은 마나의 장벽들이 서로 다른 회전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삐질삐질. 쓰~윽. "휴~우. 이제 다 되어 가는 구나............에휴휴휴휴." 나이답지 않게 긴 한숨을 내쉬는 존재는 바로 실프였다. 더구나 영혼체에 가까운 모습인 실프가 이런 한숨을 내쉬는 이유도 알고 보면 생전 해보지도 못한 강대한 기운들을 다스리는 일이었기에, 실프는 자신보다 더 강한 기운을 가진 마나들을 오직 주인의 마나 책임자로써 임명되면서 받은 그 막강한 권한으로 주변의 거친 마나들을 일일이 다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부터...아니 정확하게는 조금 전부터 그 기운들이 더욱 뚜렷하게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실프 자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건 아공간에 있는 주인에게 텔레파시로 물어봐도 전혀 모르고 있는 일이었다. 어째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주변에 있던 다섯 가지의 기운들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간혹 느껴지곤 했었지만, 그당시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헌데 이제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결국 실프는 이 일로 인해 곰곰히 주인의 몸과 주변을 살펴보아도, 여전히 강한 회전으로 돌고 있는 마나의 장벽들은 여전히 주인의 몸 속을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그 기운들이 더욱 정순해져만 가고 있을뿐. 지상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다섯 가지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이 색다른 기운이 주인의 몸 안으로 빨려들 듯이 거침없이 들이닥치자, 막상 그 기운들을 다스려야할 책임이 있는 실프는 이제껏 몸에 익은 일들과는 전혀 다른 일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조금 전에 이마의 흐르는 땀(?)-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인간이자 드래곤이기도 한 주인의 성격을 점점 닮아 가는 실프의 본능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본능적인 일을 벌이면서도 이젠 거의 막바지에 달하는 주변의 기운들을 정리하던 일들이 다소 안심이 되면서 잠시 긴장을 풀었던 자신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얄미운 주인의 짓인지도 몰랐다. 어째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듯이 그 모습을 들어내면서부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양의 마나들이 봇물 터지듯이 주인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자,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실프의 얼굴은 경악의 표정으로 바뀌어지면서, 점점 어지러워져만 가는 머리 속을 세차게 쥐어박기 시작한 실프가 벌이는 일은 아주 쉽고도 단순하지만 매우 힘든 고된 작업의 또다른 시작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32 화. 카빌라이 대륙은 그 넓이만 해도 너무도 엄청난 크기를 지닌 땅덩어리라서 숱한 세월들을 여행으로 보낸 자라고 해도, 일생동안 대륙의 구석구석을 다 다녀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카빌라이 대륙은 수많은 왕국들과 거대 제국들이 앞을 다투어 자신들의 영토를 넓히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그 수많은 왕국들 중에 자그마한 왕국이라고 해도 그 왕국의 국토 넓이가 너무도 넓어 자신들의 엄청난 국토를 모두 수비하는 것만 해도 인력이 딸리는 관계로, 차마 곳곳의 국경선에 병력들을 다 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어디 인간들의 욕심이 거기에서 그칠 것인가. 해서 지금도 대륙 곳곳에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은 채 자행되고 있었다. 이는 대륙 최강의 제국인 메르카 왕국이자 카빌라이 대륙에 사는 모든 인간들에겐 인류의 역사상 최고의 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메르카 왕국이라 할지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하기에 지금 메르카 왕국의 서부 전선에선 어느날 갑자기 왕국을 박차고 나가서 대륙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검술을 연마하다 드디어 소드 마스터 의 경지에 오른, 전 국민이 열광적으로 숭배하는 위대한 검신이자 메르카 왕국의 단 하나뿐 인 대공 로멜쥬 카빌라 폰 메르카 대공이 살얼음을 방불케 하는 표정으로 눈앞의 적들을 향해 의미없는 시선을 던지며 서 있었다. 서서히 대군의 위용을 갖춘 채 자신을 반겨주고 있는 신생 왕국이자 겁없는 침략자들인 레인스트 왕국의 대군을 그는 여전히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뿌드득." 무엇이 그리 불쾌했던 것일까? 이는 아마도 과거의 추억 중에서도 매우 소중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서 일지도 몰랐다. 하나뿐인 아들이 생사를 오가는 사투 끝에 결국엔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길을 자기 어미와 함께 떠나자, 그 날부터 무표정 속에서 파랗게 살기가 어린 눈빛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던 그의 입술사이로 철판을 씹어 갈기갈기 해체를 시킬 듯한 소음이 연신 새어나오고 있었다. "각하~! 지금 적들의 규모와 무장 수준은 이미 저희 서부 전선에 있는 전 병력을 넘어서고 있사옵니다. 어서 속히 결정을........." 번쩍. 눈앞에 거대한 모습으로 서 있는 상관의 매서운 눈초리를 한 몸에 받은 서부 전선의 총사령관 라젠데릭은 한순간 몸 속을 관통할 듯한 상관의 사나운 눈빛에 순식간에 온몸이 굳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허나 지금 압도적인 전력차로 서서히 메르카 왕국의 서부 평원지대를 독차지 하고자 몰려드는 적들 앞에서 일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최강자로 군림한 자신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뻔했다. 당연히 저 눈앞의 간악한 침략자들을 일거에 무찔러 버려 두 번 다시 자신들의 왕국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왕국의 위력을 똑똑히 깨우쳐 주는 일 뿐이었다. 그러기에 스스로 서부 전선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가 있던 라젠데릭 후작은 여전히 이를 가는 냉막한 표정으로 눈앞의 적들을 향해 조금씩 매서운 시선을 쏘아대는 상관의 명이 하루속히 떨어지기만을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적들은 숫적으로는 후작의 부하들과 병사들을 압도하는 엄청난 대군이지만, 어디 전쟁이 머릿수만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보장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젠 국가간의 전쟁에선 결코 빠질 수 없는...... 엄청난 전력을 갖추게 해주는 헤비 워커들의 성능과 숫자에서 이미 적들보다 두 배가 넘는 메르카 왕국이기에, 라젠데릭 후작은 자신들이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거대한 기세로 적들을 째려보고 있는 자신의 상관만 해도 이미 과거의 전설적인 검왕이자 최초의 제국이었던 갈루아 제국의 황제 검왕 갈루아만큼이나, 뛰어난 검술 실력과 그에 준하는 헤비 워커 플라잉급(F급)의 주인 이었기에, 검신의 경지에 도달한 주군이 이 자리에 있는 이상 이곳 서부전선에 나타난 10만이 넘는 레인스트 왕국의 군대에 자신들이 패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 라젠데릭 후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동감한다는 눈빛을 보내는 메르카 왕립 기사단 중 화이트 호크 기사단의 단장인 모리스 경의 모습도 라젠데릭 후작의 마음과 크게 다를바 없었다. 허나........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 또한 언젠간 다시 돌아올 내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도 절대로 저놈들을 그때처럼 어리석게 용서치 않으리라!! 뿌드득. 예전의 기억 속에서 하나뿐인 아들의 생각이 더욱 간절히 떠오른 멜빈은 결코 눈앞의 적들을 예전과는 달리 절대 용서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땐 그 얼마나 놀랐던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신의 장점만을 쏙 빼닮은 듯한 너무도 사랑스럽게만 하던 아들이 갑자기 혼수 상태에 빠져들면서 이미 완벽한 승리를 눈앞에 둔 채 멜빈은 아들을 위해서 그때의 승리를 과감히 포기를 해야만했었다. 한데 지금 또다시 그때의 공포를 아예 싸그리 잊어 먹은 듯이 뻔뻔스럽게 자신의 용서를 바라고 쳐들어온 듯한 적들이 눈앞에 보이자, 멜빈은 자신의 검을 으스러지게 움켜쥐면서 절대로 이번만큼은 눈앞의 적들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을 추호라도 일지 않게큼 이를 악물었다. 뿌드득. '그래, 저런 놈들을 상대하면서 절대로 자비란 있어서도 그리고 행해서도 안되는 것이야. 제까짓 놈들이 그동안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를 했는지는 몰라도 감히 내 아들의 이름을 걸고서라도, 오늘 난 이곳에서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되어주겠다. 으드득' 절로 이가 갈리면서 그의 눈에선 가히 광선과도 같은 살기가 눈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아마도 이는 그레이트 나이트. 또는 소드 그랜져라고도 일컷는 검왕의 경지를 눈앞에 둔 멜빈이기에 더욱더 그 눈빛이 살벌할 것이다. 물론 소드 마스터라는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지는 말로썬 다 설명 못할 일이다. 하지만, 카빌라이 대륙 최고의 가문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갈리아스 가문의 위대한 수장의 단 하나뿐인 외동딸이자 차후엔 그 위대한 가문의 계승자가 될지도 모를, 엄청 빵빵한 능력을 지닌 아내를 둔덕에 손쉽게 마의 경지라고도 전해져 내려오는 소드 마스터라는 위대한 경지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자신이기에, 멜빈은 이제 점점 자신의 몸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기운들을 서서히 몸밖으로 꺼내기 위해서 그동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실천했던 마나의 운용을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시행했다. 전신에 깃든 마나들을 온몸에 골고루 퍼지게 해주면서 그 마나들을 몸 속에서 서서히 하나의 원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휘이이이익. 대공을 호위하던 왕실경호대 일부와 최강의 기사단들로 손꼽히는 왕립 기사단들 중 하나인 화이트 호크 기사단의 단장인 모리스 백작은, 갑자기 생겨난 엄청난 마나들의 폭풍과 그 속에서 휘날리는 금빛 머리카락들을 지긋이 투구로 가리며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하는 주군의 또 다른 모습을 보면서, 절로 목구멍을 넘어가는 달디단 침들을 꿀꺽 소리가 나도록 크게 삼켰다. '헉. 설마.......지금 주군께서........'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동안 십여 년이 넘도록 주군을 옆에서 섬기며 함께 한 그 긴 세월동안 주군이 저렇게도 심하게 전의를 불태운 적은 일찍히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러하기에 지금 엄청난 살기와 그 속에서 불타는 전의로 무장을 한 주군의 모습에서 모리스 백작은 이제 코앞으로 들이닥친 적들이 내심 불쌍하게만 느껴지는 어처구니없는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워리어스~! 쿼렐(quarrel)~ 준~비~!!" 우렁찬 지휘관의 목소리엔 잔뜩 마나가 실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로 자신들을 지휘하는 지도자의 명에 절로 사기가 충만해지는 워리어스들은. 상관의 명에 따라서 각각의 헤비 워커들을 집단전 형태로 위용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중갑 기병들과 일반 경보병 병사들의 가슴속엔 햇살을 등진 채 우람한 동체와 그 속에 담긴 투기를 일제히 발산하는 그들에게 뜨거운 승리에 대한 환호성을 내질렀다. 눈앞의 수많은 적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도 서서히 전의에 불타는 눈빛과 그속에 담긴 이기고자 하는 열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아~~" "메르카 왕국 만세~~~!" 우와아아아. 한순간 넓고도 넓은 푸른 초원을 사이에 두고 각자 자신이 속한 왕국의 기사들을 위해서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러대기 시작하는 병사들의 외침을 받으면서 서서히 하나의 진을 형성하기 시작하는 눈부신 은빛동체의 헤비 워커와 그속에 타고 있는 워리어스들의 손엔 어느새 흥분의 도가니로 변해져 가는 전장이 눈으로 파고들 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레인스트 왕국의 침략 사령관 오슬라 후작은 지금 막사 안에서 코앞으로 들이닥친 적들과 자신은 마치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양 느긋한 포즈로 향긋한 차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문득 병영 밖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소리와 그 속에 담긴 진한 살기가 어린 듯한, 상대편 진영의 지휘자인 로멜쥬 대공의 목소리에 잠시 깜짝 놀라서 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허나 오슬라 후작은 이내 자신의 뒤에서 흐릿한 미소로 로브에 감싸인 얼굴에 작은 선을 하나 그은 마법사를 바라보며, 다시 느긋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후후, 제 아무리 용맹한 로멜쥬 공작이라곤 해도.......후후......글쎄......" 그러면서도 잠시 옆에 서있는 마법사에게 확인사살을 하듯이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 오슬라 후작이었다. "이봐. 파올라. 네 놈 말대로 내가 전하와 모든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군을 이끌고 이곳에 왔으면 그에 따른 대비책은 완벽하겠지?"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 오슬라 후작이었다. "크크크크. 후작 각하. 그점은 조금도 걱정하실 이유가 없사옵니다. 그저 우린 그동안 적들을 상대하면서 항상 정면 공격만을 해온 멍청한 로멜쥬 공작의 아둔한 전투 지휘 전략과 그에 따른 적들의 정면 공격에만 신경을 쓰면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희들이 준비한 물건으로 상대의 헤비 워커를 견제하도록 잘만 활용만 하면 이까짓 전쟁쯤은 아주 쉽게 이길 수 있사옵니다. 다만........" 말꼬리를 흐리면서 파올라 라고 불린 마법사는 서서히 진영을 갖추며 헤비 워커들의 집단전 전투에 임하기 시작하는 바깥의 상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금도 밖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수정구슬을 통해서 조금은 사악한 듯한 시선으로 열심히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파올라와 오슬라 후작의 앞에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수정구슬이 지금도 전장의 여러 곳들을 빠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나......... 이들이 한가지 크게 간과를 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전투를 앞둔 로멜쥬 공작의 복잡하면서도 상상하기 힘든 전의를 다지는 모습들이었다. 메테우스는 지금 왕실 경호대의 에이스 자격으로 서부 전선의 급박한 상황을 보고받자마자 재빨리 멜빈의 행렬에 동참을 했다. 이는 주군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완벽한 경호를 위한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 보여졌지만, 실상은 다른 마음에 이 전투에 참전을 한 것이다. '이제 작은 주군은 영영 뵙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난........" 꾸욱. 부들부들. 더 이상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 이 땅에 없다는 사실에 잠시 분개한 메테우스는 자신의 옆구리에 매달린 예전 작은 주군이 선물한 작은 소검과 그 소검을 감싸고 있는 하얀 천을 꼭 움켜쥐었다. 그의 손에 잡힌 작은주군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더 이상 주체하기 힘든 감정에 몰입이 되면서 메테우스는 잠시 완전 무장을 한 자신의 육중한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그의 반응을 제일 먼저 느낀 말이 주춤거리며 진군을 멈추자 이내 메테우스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곤 다시 말고삐를 세게 움켜잡으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적들의 측면을 향해 자신이 속한 경호대 일류 기사들 몇 명과 화이트 호크 기사단의 워리어스들 중 과반수를 이끌고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는 평소 오로지 정면 공격만을 선호하는 로멜쥬 대공의 획기적인 변모를 보여주는 사건의 시작이자 앞만 방어를 하며 좌우의 진영은 다소 안심을 하고 있을 적들의 허점을 교묘하게 찔러 버리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작전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10만이 넘는 적들과 채 7만이 되지 않는 자신들의 전력차이는 흔들리는 적군의 기세를 타고 단숨에 상황을 뒤엎어 버리는 엄청난 효과를 가져오리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기에, 지금도 적들의 또 다른 측면을 향해 가고 있을 기사단들과 자신들의 일행이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메테우스는 목에 걸린 수정구슬을 열심히 바라보며 천으로 꽁꽁 싸여진 말발굽소리들을 잠시 음미를 하고 있었다. "전군~!......공격하라~~!" 우렁찬 로멜쥬 대공의 공격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지축을 울리면서 전진을 하기 시작한 워리어스들이 서서히 탄력을 받아서 그 육중한 동체들을 대지에 큰 흔적들을 남기며 질주를 하고 있을 무렵. 뜻밖에도 상대편 진영에선 곧이라도 뛰어 나올 것처럼 보이던 상대편 헤비 워커들이 주춤거리기가 무섭게 일제히 헤비 워커들의 뒤에서 하얀 연기를 피어 올리며 무시무시한 굉음이 뒤를 따랐다. 그와 함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새까만 철환들이 적들을 향해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메르카 왕국의 헤비워커들에게 일제히 날아가자 아차! 하는 마음과 동시에 일제히 모든 기사들이 전장을 바라볼 때에는 이미 전장에선 뿌연 먼지들과 요동을 치는 대지들이 광란의 춤사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헉. 저.......저것은........" 부릅 뜬 두 눈으로 조금 전 하늘을 찢어 버리듯이 굉음을 낸 물건들을 바라보던 메테우스의 얼굴엔 경악이 담겨져 있었다. 그런 메테우스의 뒤에 서서 적들의 측면을 노리고 다가가던 다른 일행들의 얼굴에도 지금 메테우스와 같은 경악이 어려 있었다. 얼마나 숫자가 많은지는 일일이 확인을 해보지 않은 이상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허나 최소한 메르카 왕국의 헤비 워커 150대를 단숨에 잡아 버릴 듯한 수천대에 달하는 시꺼먼 아가리를 지금도 연신 허연 연기로 감싸고 있는 대형 총통들의 굉음과 그에 걸맞는 성인 남자의 머리통 두배 만한 새까만 철환들이 작은 산을 이룬 채 쌓여 있는 장면은, 지금도 연신 철환으로 보이는 탄환들을 넣고자 병사들 서너 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움직이는 모습에서 메테우스와 메르카 왕국의 기사들은 조금씩 온몸에 돋아나는 소름과 함께 적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대비해서 철저히 준비를 했는가를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다. 허나...... 절대로 지금 여기에서 물러 설 수가 없었다. 지금도 뿌연 먼지가 가득한 전장을 노려보며 눈앞을 가리는 먼지들을 헤치며 허둥지둥 서두르는 모습으로 당황한 메르카 왕국의 헤비 워커를 노리고 있는 적들의 백여 대의 헤비 워커와 그들을 지원사격 해주는 처음 보는 낯선 대형 총통들을 바라보던 메테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내 그는 허리에 차여진 하얀 끈을 풀어 자신이 지금 들고 있는 마상용 장검과 오른손을 하나로 꽁꽁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얀 이가 으스러지도록 질끈 동여맨 장검이 끈을 통해서 자신의 오른손과 일체감을 주는 듯한 느낌을 받자 메테우스는 이내 죽기 살기로 말의 허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랴~~! 우리는 승리한다~! 모두들 적을 향해 일제히 돌진~!..........나를 따르라~~!" "우아아아아아~!"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비록 지금 적들의 측면 공략을 위해서 대열을 이탈한 자신들에게는 단 한 대의 헤비 워커도 없었지만, 지금 다시 한번 화약으로 보이는 대형총통 심지부분에 불을 당기는 적들의 총통을 이 기회에 무력화시키지 않는다면 자신들은 결코 이 전투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메르카 왕국의 기사들이었다. 하기에 육중한 중장갑을 걸친 메테우스가 맨 앞에서 돌격 명령을 내린 채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저돌적인 돌격을 실행하자, 적들의 헤비 워커가 교묘히 감싸고 있는 대형 총통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메르카 왕국의 기사들 가슴속엔 어느새 자라나 기 시작하는 이상한 연대감과 더불어, 점점 먼지가 가라앉는 전장에서 자신들에게 보이지 않 는 강한 믿음을 주는 어떤 이를 상기하며, 이미 적들의 심장부로 돌진을 한 메테우스의 뒤를 이어서 그들도 강하게 말들의 옆구리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소리에 느긋하게 막사 안에서 눈앞에 놓인 테이블과 그 위에 있는 수정구슬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대 헤비 워커 대항 무기들의 만족할 만한 위력들을 느긋한 포즈로 감상하던 오슬라 후작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분명히 은빛의 동체를 지닌 헤비 워커들 중에서 쌍두사의 문장을 오른쪽 가슴에 새겨놓은 로멜쥬 공작의 헤비워커를 중심으로 집중적인 사격을 가했던 자신들에게 느닷없이 측면에서 달려드는 말발굽 소리와 중장갑 기마병들의 출현이라니...... 이것은 절대로 상상도 하지 못한 오슬라 후작이었다. 이는 항상 적들을 상대하면서 어떤 때에는 오만할 정도로 정면 승부에만 집착을 보였던 메르카 왕국의 로멜쥬 대공의 작전이 결코 아니였다. 어떻게.......그토록 오만하게 항상 정면 승부만 택하던 인물이 어떻게 자신들의 계책을 눈치챈 듯이 육중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일반 경보병들에겐 죽음의 공포를 선사하는 중장갑 기마병으로 하여금 측면 공격을 감행하다니...... 그럼 눈앞에 펼쳐진 저 먼지 구덩이와 그속에 있어야 할 로멜쥬 공작은......? 순간 다리에 맥이 풀려 버린 오슬라 후작이었다. 뿌드드드득. "으득. 어떻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정면 공격을 이리 쉽게 포기하다니........ 으득.........실수다........실수...나의......치욕스런........실수~!! 여봐라~! 어서 워리어스들로 하여금 측면의 적들을 물리치도록 해라~!. 어서......시간이 없다......어서......." 부들부들., 지금 떨리는 심정이야 심장이 멈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대군을 지휘하는 지휘관답게 급히 상황판단을 맞친 오슬라 후작의 커다란 고함과 그 속에 담긴 발악하듯이 명령을 내리는 목소리엔, 어느새 순식간에 역전이 되어 버린 듯한 허무한 결말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는 전장의 먼지 구름들 사이로 번쩍이는 시선을 헤비 워커의 눈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쏘아 보내는 로멜쥬 대공의 헤비 워커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는 이내 맥이 풀린 다리로 더 이상 전신 갑옷을 차려 입고 있는 자신의 몸을 지탱하지 못했다. 철푸덕. "졌다.........완벽하게.........졌다. 이건 어디까지나 적의 정면 공격만을 생각한 아둔한 나의 실수다..........실수..........이럴수가!! 대륙 최고의 검객이라는 자부심으로 항상 정면만을 택하던 그가 어찌 이런 비굴한 모습으로 나를 상대하다니..........." 너무 안이한 대처 방안으로 침략을 서두른다는 누군가의 충고가 이토록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을 줄이야.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는 오슬라 후작이었다. 더구나 지금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변명을 하기 위해서 엉뚱한 생각으로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오슬라 후작이었다. 메테우스는 지금 자신을 둘러 싼 채 긴 창들을 마구 찔러 대는 적들을 향해 거침없이 마상용 장검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이 고립무원의 지경에 처해 이미 죽음의 문턱 앞에까지 다다른 그였지만, 메테우스는 포기라는 단어를 지금 이순간 잊어먹은 사람처럼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더구나 적들의 대형 총통들을 본 순간 돌격 명령과 함께 옆구리에 항상 준비하고 다니던 끈을 마상용 장검과 질끈 묶어놓은 그의 오른손에선 지금도 상대의 뼈를 가르는 느낌이 맹렬하게 그의 두뇌로 전해지고 있었다. 적들이 매섭게 찔러오는 창날들이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간지러운 느낌을 주고 있는 이 마당에 그까짓 죽음이 두려워서 이런 호기를 놓친다면 차라리 자신이 먼저 죽는게 낫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그였기에, 지금도 맹렬히 적들의 목과 방패를 짓이기고 있는 메테우스의 검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 기백을 실고 있었다. 하지만, 새까맣게 자신을 둘러 싼 채 덤비는 적들에게 엄청난 기백으로 맞서고는 있지만 이내 적들에게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메테우스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두두두두. 육중한 갑옷으로 전신을 꽁꽁 뒤집어 싼 메르카 왕국의 중장갑 기병들이 죽음을 불사한 채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든 메테우스의 용기에 감탄을 하면서 그들 자신들도 커다란 용기를 얻어서 이내 렌스와 도끼가 달린 헬버트로 적진을 유린하기 시작하자, 그들이 약간의 내리막을 타고 전력질주를 한 모습으로 들이닥친 적들의 진영은 지금 때아닌 피바람이 곳곳에서 빗발치고 있었다. 하지만.....적들은 결코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내 중장갑 기병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서서히 자신들의 병사들을 밟을까 조심을 하면서 다가오는 적들의 헤비 워커들은 중장갑 기병들의 곁으로 다가오기가 무섭게 헤비 워커의 긴 창이나 장검을 이용해서 메르카 왕국의 기사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적의 진영 곳곳에선 오히려 죽음을 불사한 채 뛰어든 용감한 기사들의 목숨을 끊어 놓는 일방적인 도륙이 감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들이 간과를 한 것이 있었으니..... 쿵쾅쿵쾅. 멜빈은 자신의 선조들이 위대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이 헤비 워커 F형의 플라이즈를 탄 채 열심히 적들의 진영을 향해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의 아내인 엘렌을 만나는 순간 폐기처분에 가까운 몰골이 된 엘레나를 보며, 엘렌이 그의 팔목에서 은은한 빛을 뿌리는 팔찌와의 인연을 일깨워 준 멜빈에겐 또다른 충격적인 선물이기도 했다. 이런 소중한 추억이 담겨져 있는 플라이즈와의 만남은 그에겐 더없는 소중한 친구를 만나게 된 사건이기도 했지만, 엘렌과의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기도 했다. 때문에 플라이즈에 오를 때마다 추억에 사로잡히던 멜빈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 속에선 이상한 느낌을 확실한 현상으로 가르쳐 주는 소중한 친구의 말이 전해졌다. "조심하라. 지금 적들의 뒷 편에서 무언가 느낌이 안좋은 무기들이 있다." 한순간 자신이 쓰고 있던 투구 저편에서 헤비 워커와 연결된 통신 마법이 그의 귀를 때리자 멜빈은 달려가는 자세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쪽 무릎을 땅에 붙이며 길 게 땅을 파헤치듯 친구의 신뢰성 있는 말에 멜빈이 즉각 대비 태세를 취하자, 이내 그의 뒤를 따라서 적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 나가던 메르카 왕국의 워리어스들은, 한순간 눈앞의 지휘관이 취하는 이상한 행동에 아무런 의문 도 취하지 않은 채 멜빈의 모습 그대로를 따라하며, 두 무릎으로 길 게 땅을 파며 달려가던 탄력 그대로 땅바닥에 긴 도랑을 남긴 채, 여지없이 자신들의 몸을 일제히 낮추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일사 분란함과 그들의 호흡이 어느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일이었다. 더구나, 슈우우우우욱. 때를 맞춘 듯이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엄청난 규모의 쇠구슬들이 일제히 그들이 하늘높이 치켜든 방패와 그들이 선 땅바닥에 부딪히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그들이 앞다투며 달려가던 전장의 한복판엔 엄청난 먼지들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어자세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승리는 간악한 적들에게 넘어갔을 것이다. 주군의 행동에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일제히 땅에 최대한 몸을 낮춘 그들의 앞에 떨어진 쇠구슬들이 날아오던 탄력 그대로 바닥에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던 헤비 워커들의 동체들을 향해 짖쳐 드는 모습엔, 일순간 모든 워리어스들이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무서운 공포가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만약 주군을 믿고 따르지 않았다면..... 쾅. 콰앙..쾅쾅. 정말로 정신이 없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들이 몸을 낮추지 않았다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러니 메르카 왕국의 워리어스들은 자신들의 지휘관인 로멜쥬 공작 각하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슴속 깊이 자리를 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적들과 조우하면 항상 어디서건 선두에서 자신들을 이끌고 돌진을 하였고, 언제나 기사도를 잊지 않고 행동하는 주군은, 반항하는 적들에겐 악마보다 더 잔인한 모습을 보여주며, 기세가 꺽여 항복을 하는 적들에겐 언제나 따뜻한 어버이의 미소를 지어주는 주군에게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을 기사들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자신들을 적들의 기습적인 공격에서 구해준 지휘관이자 어버이인 로멜쥬 공작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에 진심으로 감복하며 고마워하는 메르카 왕국의 기사들이었다. 그리고.....서서히 먼지가 가라앉는 전장에서 다음에 다시 이어질 적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서 제일 먼저 몸을 일으킨 채 적들을 주시하던 로멜쥬 공작은 자신의 좌우 양옆에서 부지런히 피해를 입은 부하들을 뒤로 후송 조치하는 기사단장과 서부전선 사령관들의 행동을 당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그들의 부하들을 후송하는 모습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점점 먼지가 가라앉기가 무섭게 방패를 번쩍 들고 자신들은 괜찮다는 듯이 거센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정말로 말이 필요 없는 함성이었다. 그런 우렁찬 환호성은 적들의 기습적인 돌발행위에 걱정 어린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바라보던 뒷 편의 병사들에겐 너무나도 찡한, 가슴에 무언가가 강하게 와닿는 울림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우린 반드시 이긴다~~~!" 우와아아아아아. 마치 상관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듯이 거세게 자신들의 검을 방패에 마구 두드리면서 고함을 질러대는 메르카 왕국의 병사들 모습엔, 그들과 코앞에 대치하고 있던 레인스트 왕국의 병사들과 워리어스들에겐 너무도 무서운 공포와 사기가 뚝 떨어지는 그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었다. 하기에 지금 자신들의 진영에서 마구 활개를 치며 날뛰는 적의 중장갑 기병들을 상대하는 레인스트 왕국의 병사들의 몸엔 금새 차갑게 식어 버린 사기가 파도를 치듯이 밀려들어오면서, 점점 그 웅장한 모습들을 드러낸 채 서서히 자신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적의 헤비 워커와, 지금도 수만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눈앞의 중장갑 기병들의 모습에 레인스트 왕국의 병사들은 하나 둘 슬금슬금 무기들을 내린 채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콰앙~ 챙캉~챙캉~ 퍼퍽. 지금도 전장에선 헤비 워커들의 살벌한 타격음과 그에 준하는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신 울려 퍼지며 얼마 전까지 잔인한 피의 축제가 벌어졌던 푸른 초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봐~! 살살 다뤄~! 저 놈들이 사용한 총통인가 대포인가 하는 물건들은 상부의 명대로 아주 곱게 모셔가야 한단 말야~!" 헤비 워커 안에서 보면 자그마한 생물체로만 보이는 한 기사가 연신 눈앞의 먹이를 산산조각 내고 있는 워리어스들에게, 상부로부터 자신이 받은 명령을 충실히 전하고 있는 지금 이곳은 이미 모든 전투가 완전히 끝난 이후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선 아주 피 튀기는 대혈투가 벌어 졌었지만, 대륙 최강의 검객이 지휘관으로 있는 메르카 왕국의 군대를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이 대륙에선 정말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아주 작았다. 그리고 놀라운 신병기를 이번 전투에서 새롭게 선보인 레인스트 왕국의 대형총통들은 지금도 연신 분노가 가미된 워리어스들의 발길질과 매서운 손질에 하나 둘 산산으로 조각조각 나고 있었다. 물론 상부의 명대로 일부만 제대로 가지고 가면 되는 것을 굳이 온전히 남아 있는 걸 모두 가지고 가려고 애를 쓰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과 자신들의 동료를 부상케 만든 물건에 대한 복수심은 당연히 이런 상반되는 모습들을 보이면서, 점차 전장에서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초원 위에 뿌려진 적들의 피가 점점 굳어가면서, 주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비릿한 피비린내가 동반된 바람들을 조용하면서도 어딘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모습으로 막고 있는 제법 큰 막사 안에서는, 조금전에 대 승리로 끝난 전투의 축하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누군가가 대륙 최강의 검객에게 내뱉은 한마디는 이내 커다란 막사 안을 온통 살얼음이 살짝 낀 긴장의 분위기로 바꾸어 버렸다. "뭣이라,,,,,!! 이....익....네 놈이 지금 정녕 제 정신으로 그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 쿠웅. "각하. 차라리 소신을 죽여주소서. 하오나 전 절대로......." 부들부들. 조금 전 최악의 전투로 변해 버렸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단신으로 용감히 적진을 돌파하며 이번 전투를 승리로 변할 수 있게 확실한 공을 세운 메테우스의 용기를 치하하던 로멜쥬 대공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로멜쥬 대공의 앞에는 지금 전신에 핏칠을 한듯한 용사들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누군가를 째려보고 있었다. 어찌 저리도 둔하단 말인가?!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자신들이 적들의 진영을 누비며 맹활약을 했던 것을 높이 치하하시는 대공께서 손수 술과 함께 내리신 그 감동스러운 칭찬의 자리에서 저런 망발이라니..... 조금 전, 전투를 끝내고도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살기들을 미처 떨쳐버리지 못한 기사들의 몸에선 잠시 투기가 이는 현장이었다. 적들만이 존재하는 곳을 향하여 거침없이 진격하며 죽음도 불사하던 메테우스와 그의 동료들을 불러 친히 따뜻한 말로, 손수 일일이 기사들의 손을 잡아주시며 해주시는 감격스런 칭찬 한마디와 더불어 그들의 공을 일제히 치하하고 계시던 로멜쥬 공작을 바라보던 기사들은, 최근 들어 무표정에 가까운 냉막한 얼굴로 일관된 행동을 하시며, 소중한 아드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현재의 자신 모습을 만천하에 알려 오시다, 그야말로 간만에 훌륭한 부하의 용기에 오랜만에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달고 계신 대공이셨다. 헌데 그런 미소도 잠깐...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용맹스런 공을 치하 받던 메테우스가 느닷없이 꺼낸 한마디에 또다시 얼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로멜쥬 대공의 모습에, 지금 막사 안의 모든 인물들은 이내 딱딱하게 안면을 굳히기 시작했다. "이..이봐. 메테우스 경. 경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그곳은......" 차마 동료가 죽음의 길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나서는 이 마당에 뭐라고 말을 꺼낼지 몰라 상관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그의 안위를 묻던 모리스 경은 이내 자신에게 날아오는 살벌한 상관의 눈빛에 그만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 메테우스 남작이 하고 있는 모습은 주군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하는 의절의 모습을 띠고 있었기에, 더욱 애간장이 타는 모리스 백작이었다. 그런 메테우스가 지금 두 손으로 공손하게 받치고 있는 물건은 예전에 주군의 품을 떠나지 않던 예식의 소검으로,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시며 자신들을 매우 즐겁게 해주시던 작은 주군 싸이 태자님의 검이었고, 그런 검을 지금 싸이 태자의 아버지인 로멜쥬 공작에게 다시 되돌려 주겠다는 것은 바로 주군을 섬긴 기사가 주군가 결별을 행할 때 취하는 태도였다. 하지만........지금 메테우스는 나름대로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너무도 소중한 물건을 죽음으로 가는 길일지도 모르는 자신만의 행로에 절대로 가지고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검이 그리 훌륭한 보검은 아닐지언정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 속에선 이세상 그 무엇보다 훌륭하고 값진 신검이었다. 하기에 먼길을 떠나며,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는 마당에 이 검은 반드시 예전의 주인이신 로멜쥬 대공에게 전해주어야 한다고 다짐한 그였다. "각하. 전 이미 과거에 싸이 태자님께 스스로 충성서약을 한 그 분만의 기사입니다. 부디 신의 불충을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이 불충한 소신이 저만의 주군을 찾아 떠나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다시 장막안에서 일던 살기가 넘실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메테우스의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려던 로멜쥬 대공의 눈가에 하얀 살기가 넘실 거렸다. 허나, 메테우스의 당당한 눈빛을 한동안 들여다 보던 로멜쥬 대공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어느새 입언저리에 솟아난 카이젤 수염을 메만지며 묵묵히 침묵을 지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꾸 주군의 앞으로 무릎걸음을 옮기는 메테우스가 있었기에, 로멜쥬 대공은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며 신음성을 터트렸다. "끄응~............허면 네 놈이 조금 전 죽을둥 살둥 한 모습으로 적의 진지 한복판에서 날뛰었던 일들도 모두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행동한 결과이었던 것이냐?" 멜빈은 눈앞에 만신창이가 된 갑옷을 걸치고 있는 메테우스를 바라보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확 치밀어 오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도 지금 메테우스가 가고자 하는 곳을 그 얼마나 가고 싶어했던가. 이미 떠나 버린 아내를 결코 잊지 못하는 자신이기에......... 아내와 자식을 절대로 포기를 할 수 없는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며 숱한 밤을 폐인처럼 술로만 살아오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한순간 폐인같은 자신의 모습을 정리해야만 했다. 어느 날이었던가?! 아들이 마시고 탈이 났던 술이 그의 입술에 병째 처박혀 있었을 때, 갑자기 찾아온 생소한 느낌은.......결코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는 엄청난 미련으로 다가 와 급기야는 그를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그때 내가 이런 못난 모습으로 그들을 반겨준다면....' 주르륵. 사내의 눈물이 이토록 잦아질 줄이야!!! 생전 눈물은 흘리지도 않았을 자신이 자식과 아내의 정에 굶주려서 이토록 자주 눈물을 보인다는 것에, 너무도 허약한 자신을 다스리고자 더욱 냉막한 얼굴로 무표정한 모습을 또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시킨 멜빈의 달라진 모습은 그 이후로는 입에 술 한방울 대지 않은 채, 모든 일에 자신의 아들이 이다음에 돌아온다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며 새롭게 시작하고 있었기에,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나 기사들은 하나같이 더욱 가슴속으로만 주군에게 작은 동정들을 보냈었다. 그리고......오늘. 드디어 예전의 주군보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전투에 임하는 주군의 앞에, 지금 어쩌면 불경한 짓일지도 모르는 일을 거침없이 벌이는 메테우스를 바라보는 모든 기사들은, 이내 눈시울이 붉어져 오는 또다른 주군의 약한 모습에 모두들 고개를 살짝 돌렸다. '불쌍하신 분....그토록이나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자 하시다니.......어쩌면 난...' 뿌득.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이다. 수만에 달하는 적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의 날카로운 창들이 자신의 몸을 마구 짓이겨 와도 그 앞에서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은 메테우스였기에, 지금 그는 주군 앞에서 이를 나즈막히 갈면서 앞으로 자신에게 벌어질 죽음의 길을 과감히 걸어가기를 결심했다. 이는 평소보다 더욱 두꺼운 통판 갑옷과 그 속에 갖추어 입은 체인 메일과 가죽갑옷들을 뚫고 들어온 적들의 창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 험한 전투에서도 자신이 멀쩡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용기 백배해 이런 결심을 주군 앞에서 과감히 털어놓은 그였기에, 앞으로 다가올 죽음 따위는 결코 겁이 나거나 두렵지 않았다. 단지.........진심으로 주군께 죄송할 뿐이었다. 그토록 자신을 아껴주고 믿어주시던 주군의 곁을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불민한 자신을 주군이 어떻게 생각 하실지......... 그러나 이미 예전에 죽었을 목숨인 자신을 구해준 작은 주군을 영원히 보지도 못할지 모르는 지금의 현실보다는, 이왕 그럴 바에는 작은 주군이 계신 곳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메테우스였기에, 지금 그가 취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는 힘찬 기백이 실려져 있었다. 그 얼마나 그리운 곳이던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전 검술에 남다른 재질을 보이는 자신을 위해 집을 떠날 만반의 준비를 끝낸 형님을 수면제로 잠재운 그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은 그곳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형님의 짐들을 홀라당 훔쳐들고 자신보다 더욱 뛰어난 검술실력을 인정받는 동생에게 형에게 물려질 왕위를 과감히 물려주고자 하는 형님의 마음을 감사히 생각하며, 절대로 동생이 왕이 되는 불상사를 피하고, 큰아들이자 너그러운 성품의 형님에게 왕위를 순순히 돌려드리기 위해서, 친히 자신의 방에 술을 가장한 이별주를 들고 나타난 형님에게 수면제를 탄 차를 술대신 권하며, 이내 잠이 든 형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왕성을 뛰쳐나와서 전 대륙을 방황 할 때까지만 해도 그곳은 꿈의 세계이었을지도 몰랐다. 그순간, 무언가 큰 벽에 가로막혀 있던 자신만의 검술에 고심을 하던 때가 막연히 눈앞에 어리는 멜빈이었다. 그리고....수년의 세월동안 대륙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깊은 산 속에서 뜻밖에 발견한 하얀 대리석으로 거대한 왕성처럼 세워진 저택과, 그곳에서 이상하게도 홀로 지내던 그녀를 발견한 순간.....!! 20살이 넘도록 숱한 대귀족 가문들의 영애와 여러 왕국의 공주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흥미도 없던 자신이 그녀와의 단 한번의 시선이 마주침과 동시에 심장이 터질 듯이 울부짖은 기억도 새록새록 돋아나는 멜빈이었다. 마수와의 힘겨운 전투를 마치며 기절한 자신이 잠시 눈을 떴을 때, 처음으로 보게 된 그녀의 티없이 맑은 눈동자. 순간적으로 목덜미까지 새빨게진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 너무도 놀라운 낯선 경험과 주위에 은은히 퍼져 있는 그녀의 향긋한 체취에, 몽롱한 눈빛으로 한없이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그 감미로운 시절들. 하지만 깊은 산 속답게 대형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깊은 산중에 우뚝 선 저택을 호시탐탐 엿보며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를 몬스터들이 노리는 것을 알고 나서는 용감히 검을 뽑아들며 기사도를 발휘하던 그에겐, 당시에는 한 마리를 상대하기 벅찬 대형 몬스터들의 공격을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모하게 맞서던 어리석은 자신이 떠올랐다. 가녀리게만 보이는 그녀의 앞에 나서며 한명의 기사로써 숱한 몬스터들의 공격을 떼거지로 받던 자신과 그런 자신을 보며, 어느새 호기심에서 용감하면서도 친절한 자신의 기사도에 감탄한 눈빛으로 순순히 자신을 믿고 뒤따라오던 그녀. 참으로 꿈만 같았던 시절들이었다. 그리고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스러운 비법이라며 손수 전수해 주던 그녀의 위대한 가문만의 비법과 그로 인해 그 신비로운 비법 속에 담겨진 천지의 모든 기운들을 몸과 검에 실을 수 있었던 자신의 놀라운 검술.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던 검술이 그 가로막힌 벽들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더욱 넓어져 흡사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듯한 착각을 일으키던 그 가슴 벅차던 그날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또 다른 검술의 경지에 도달해 버린 자신.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달콤한 시간들과 자꾸만 깊어지는 산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꼭 움켜쥐고 돌아다니며 그녀와 함께 한 수개월에 걸친 실전경험들. 점점 익숙해져 가는 마나들의 운용들을 몸 안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병으로 고생을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과 동시에 왕의 보위에 오른 형님에게 축하를 드리고자, 이제는 떳떳한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 되어버린 그녀와 함께 다정히 손을 잡고 찾아간 자신의 반가운 집과 하나뿐인 형님. 하지만 정신없이 왕위를 계승받고 그동안 지방에서 세력을 넓히며 시도 때도 없이 약해진 왕권과 아직은 젊은 혈기뿐이시던 형님을 넘보는 간악한 무리들에게 맞서 놀라운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선보인 자신의 검술과 숱한 경험에서 얻어진 전투능력들....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대견할 정도로 이룩한 지금의 만족할 만한 상황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멜빈이었다. 온화한 성격의 선왕 때보다 더 강해진 왕권회복과 동시에 단 하나뿐인 형님에게 부여받은 메르카 왕국의 대공 자리는 언제나 멜빈 가슴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 는 사랑과 깊은 신뢰의 바탕이 되는 아내의 내조가 있었기에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기에 항상 아내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던 자신이 언젠가는 그곳으로 되돌아가겠다고 고백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곳......!! 언젠간 그녀를 뒤따라 모든 지위를 버리고 자신도 되돌아가고자 하는 그곳을 지금 눈앞에 있는 기사가 자신보다 먼저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니 멜빈의 가슴속엔 숱한 과거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자라나기 시작했다. 또한...........지금 눈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자기가 충성을 맹세한 어린 주군을 찾아가겠다 는 부하의 말에 잠시 상념에 빠졌던 멜빈의 얼굴엔 어느새 예전에 밝고 행복했던 시절의 따뜻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너무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은 알고 보니 카빌리아 대륙에서 가장 위대하면서도 존경받는 가문의 영토였다. 그렇기에 그곳은 허락 받지 못한 이들은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 너무도 폐쇄적인 곳. 그러하기에 지금 목숨을 걸고 그곳에 계실 어린 주군을 찾아나서고자 하는 메테우스의 진심 어린 충정에 멜빈은 어느새 눈가에 뿌연 이슬을 달기 시작했다. '이런.....싸이가 이다음에 훌륭한 모습으로 커서 돌아온다면 이 눈물 많은 아비를 어떻게 생각할꼬.' 잠시 자신만의 상념에서 깨어나며 나약한 자신을 다독이는 멜빈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잠시 고개를 돌려 외면해주는 고마운 부하들에게 헛기침을 하며 자신만의 상념에서 깨어나는 멜빈이었다. "크흠. 허나 그곳은 위대한 분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다. 우리처럼 미천한 인간들이 함부로 범할 수 없는 신과도 같으신 분들이 조용히 은둔을 즐기며 계신 곳. 함부로 그런 곳에 발을 디딘다는 것은 이미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네 놈의 어리석은 충성심만으로는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곳....크흠" 잠시 목이 메여와 헛기침을 토한 멜빈이었다. "그러나....언제나 진심으로 길을 찾고자 하는 이에게는 어딘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있겠지........자~. 받으라." 멜빈은 자신의 품속에 고히 간직되고 있던 영롱한 보석이 장식된 작은 단도를 꺼내며, 눈앞에서 자신의 명을 기다리고 있던 메테우스에게 친히 다가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간곡한 눈빛이 서린 얼굴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이 소검은 엘렌이 나에게 자신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검이라며 전해준 신물이다. 이 검은 나와 그녀의 사랑의 맹세이자 내 목숨과도 같은 것. 메테우스 그대는 내 목숨과도 같은 이걸 들고 반드시 나의 아들과 아내를 만나고 돌아오도록....물론 네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가능하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순간 눈에서 번개가 치듯이 살기가 어리는 멜빈이었다. "메테우스. 반드시 이 말은 명심해라. 그곳은 너의 알량한 검술로는 차마 상대하지 못할 대형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허기에 넌 반드시 싸이와 엘렌을 만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어서는 안된다. 만약에라도 네 놈이 하찮은 몬스터들에게 죽음을 당해서 지금의 내 명을 감히 어길 경우엔, 내가 지옥 끝까지라도 네놈을 따라가서 네 놈의 멈춰진 심장을 친히 움켜쥐고, 내 말을 얼마나 우습게 들었는지 네놈을 직접 심문할 것이다. 알겠느냐?" 어딘가 조금은 어거지가 실린 멜빈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멜빈은 그런 일들은 지금 전혀 상관이 없었다.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아들의 생사와 관련된 일들이 언제나 가슴속 깊이 묻혀져 있던 그이기에, 그까짓 말장난으로 주위에서 수근덕 거리는 일들은 지금 그에겐 아무런 흠도 되지 않았다. 허기에 멜빈은 지금도 간곡한 눈빛으로 항상 자신의 짧은 생각으론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아들의 소식을, 자신에게 꼭 전해줄 수 있다고 믿는 메테우스를 붙잡고 이렇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룡의 후예 - 제 33 화. 흠, 오늘 올리는 글로 인해서 싸이가 나이를 먹게 되었네요. 사실 전 어린 싸이를 통해서 힘없는 백성들의 고초들을 좀 둘러보게 하려고 했었답니다. 하지만, 님들의 성화가 어디 한두번이야지요. 해서 싸이를 십대 초반의 어린 아이로 만들고, 그런 싸이가 대륙을 조금씩 다녀보면서 자신의 안에 있는 존재를 통해서 힘이 없는 자들의 고통과 그 고통들을 손수 도와주며 해결해 나가는 기존의 줄거리들을 그대로 실행코자 합니다. 아쉬운 점은 싸이의 입학문제인데.....이게 나이가 좀 먹게 되니깐 생략해야겠네요. 아무래도 요새 나오는 글들이 학교 개념의 상황들이 나와서 좀 진부한 점도 있겠지만, 제가 준비한 상황은 중세시대의 글사부나, 가정교사와도 같은 성격의 교육과 그를 보충해주는 기숙사 형태의 아케데미를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니 조금 다르다고 해도 남들과 비슷하게 될 것이 뻔하기에 이런 결정을 내렸답니다. 이제 서서히 십대 초반의 아직은 어린 아이인 싸이의 활약을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이번 챕터는 콘돌과 싸이의 만남으로 가려고 하는데 이번 편에선 콘돌의 활약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아마 담편에 나오겠죠? 대신 시커먼스 군단의 등장이 있으니 그리 섭하지는 않으실겁니다. 그럼 좋은 하루들 되세요.......^^ ********************************************************************************* <벼락이라는 이름의 어린 콘돌.> 콘돌의 어린 새끼에 대해서 그대들은 혹시 아는가? 이 신성한 존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는 아마도 천하 제일의 지식을 머리에 담고 살아가는 대현자이거나 대현자로 변신한 드래곤이 아니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콘돌일 것이다. 그런 콘돌의 단 하나뿐인 새끼가 지금 너무도 황당한 일들을 당하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알에서 갓 부화해서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신들의 세계로 돌아간 어미가 알면 영혼이라도 달려와서 온 대륙을 다 부수어 버려도 시원치 않을 억울할 일들이었다. '헉. 이.....이건......어째서 이런 일이........' 어린 콘돌은 너무도 황당했다. 그리고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분명히 태고 적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곳 물질계이자 중간계인 이 카빌라이 대륙 의 수호자 콘돌인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이일은 정말로 창피하면서도 황당한 일이었다. 콘돌 자신들만의 비법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에도 지금 자신이 받고 있는 이 엄청나면서 도 황당한 일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하기에, 근 이만 년이 넘어가는 긴 잠복기를 통해서 스스로 힘을 키워나가던 어린 콘돌은, 지금 자신의 몸을 감싸고도는 다섯 가지의 뚜렷한 기운들과 그 기운들을 바탕으로 거대한 몸에 칭칭 감고 있던 여러 겹의 보호막들이, 어느새 자신의 몸과 더불어 조금씩 작아지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러 멈춘 지금 이 현실에 너무도 놀라서 심장이 부리 끝까지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꾸에에에에엑. 너무 억울해서 힘껏 고함을 질러 보았다. 하지만 황당할 정도로 작아진....정말로 예전에 발톱 끝에 매달린 때만큼보다 더 작아진 자신의 몸에서 나온 소리는 이젠 콘돌에게 거대한 안식처로 보이는 동굴 속을 미처 다 울리지도 못한 채 허전하게 사라져 버렸다. '흑. 엄마~!.....흐윽. 엄마. 이건 너무 억울해요...' 어미를 찾는 작고 가엾은 콘돌의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이건 절대로 용서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거대한 몸을 뺏어간 건 둘째치고라도 근 이 만년이 넘도록 키워온 힘과 그전에 어미로부터 부여받은 기운들을 송두리째 훔쳐간 놈을 잡기 전엔 분하고 억울해서라도 잠이 들 수 없었다. 해서 콘돌은 서서히 꿈속이라는 아공간 속에서 험한 굴곡이 뚜렷한 현실로 다가올 자신의 삶 속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흑마법사이자 위대한 존재 중 저주받은 블랙 드래곤 일족 밀란은 지금도 자신의 눈이 제발 잘못되었길 간절히 마신 발킬마에게 빌고 또 빌었다. 어떻게.....눈앞에서 늠름한 동체를 자랑하며 연신 마신 발킬마의 뛰어난 은총으로 이젠 거대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로 대자연의 기운들을 몸 안에 담고 있던 흑기사들이 그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서 있던 마법진 위에서 감쪽같이 흔적하나 남기지 않은 채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이런 황당한 일들을 겪은 밀란이 어떻게 억울하고 분노에 차지 않을 것인가. 제발 자신의 이 썩어 빠져도 시원치 않을 눈을 탓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했다. 그동안 그것들을 붙잡고 들인 공이 그 얼마인데....... 여왕 전용 흑기사를 볼 때마다 망할 놈의 신성력 덕택에 한번 끊어져 재생이나 치유가 도저히 안되는 자신의 오른 손이, 날만 구질구질 하면 쑤셔오는 고통에 절치 부심 몸을 떨며 만든 작품이었다. 더구나 갓 웜 급에 올라선 레드 일족에게 멋진 죽음을 선사해주고 빼앗은 헤비 워커를 뼈대로, 그 위에 엄청난 크기의 레드 드래곤 사체를 이용해서 덧입힌 스케일 장갑들과 간간히 그 뒤에 자신이 여왕전용 헤비 워커를 바탕으로 새롭게 개발한 헤비 워커들에게 선사한 새로운 장갑들과 드래곤 스케일이 지금 이순간 모조리 꿈처럼 아련하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억울하게도 도둑을 맞은 것이다. 이는 자아가 있는 헤비 워커라곤 해도 스스로 주인이 없으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헤비 워커들이기에, 어느 간 큰 도둑놈이 부어터진 간뎅이를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였으리라 스스로 위안을 갖는 밀란이었다. 그리고, 한순간의 착오로 모든 헤비 워커들을 잃어버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그 간뎅이가 부은 도둑놈들을 찾기 위해서 급히 주변의 마나 흐름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밀란이었다. 실프는 어느새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몇 일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는 새로운 기운들을 나름대로 주인의 목에 달린 드래곤 본으로 착실히 인도를 하고 있었다. 이젠 그 새로운 기운들과 예전에 몸 안으로 받아들인 대자연의 기운들이 주인의 거대한 몸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나 주인의 몸밖에서 눈에 띠지 않는 막을 형성하며 스스로 돌기 시작하는 보호막들이 실프의 눈엔 주인의 의념과 하나로 연결이 되어진 듯한 지금의 이 순간이 너무도 기적같이 느껴졌다. 이는 어린 아기 때부터 주변의 기운들을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동화시키며, 그로 인해 정화된 순수한 기운들을 다시 주변으로 되돌려보내던 주인이 점차 자신의 힘을 가지기 위해서 스스로 자각을 시작한 시점부터, 자신이 그 일들을 도우며 지금에서야 이렇게 훌륭하게 이룩하게 된 일들이 자못 자랑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주인은 스스로의 힘에 대해서 자각을 못했던 관계로 주위에 있는 마나들을 그저 장난감 취급만 했을 뿐. 그 기운들을 이용해서 남을 공격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이제는 감히 주인을 해꼬지 하려고 하는 작자들이 나타나면 실프 자신의 생각만으로도 주인의 힘들 중 일부를 움직여서 보호해 줄 수 있다는 오늘날의 이 현실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었다. 물론 최상급 정령으로 올라선 실프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주인을 보호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상급 정령인 자기만의 생각일 뿐. 주인이 있는 정령이 감히 주인의 허락도 없이 건방지게 힘을 쓴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기에 얼마 전 어리디 어린 골드 드래곤 헤츨링에게 하급 정령들 수준의 공격을 당하고도 상처를 입은 주인을 그저 방관만 했던 자신이 더욱 밉기만 했던 실프였다. 허나..........이제는 달랐다. 이젠 주인이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자 하는 강한 생각이 뿌리를 든든하게 내려진 상황이기에, 이젠 주인에게 선 조치......후 보고도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실프였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막 잠에서 깨려고 몸을 움찔거리는 주인의 잠투정에 조금씩 여유 있는 미소를 짓기 시작하는 실프였다. 하얀 백사장 같은 나만의 공간에서 보낸 시간이 그 얼마인지를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서서히 내 몸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는 변화는, 내 자신이 내 모습 전체를 눈으로 살필 수 있다는 상당히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오면서, 이내 내 몸에 걸쳐진 은색의 비늘들과 그 비늘들이 발하는 은은한 빛들로 인해 난 내 몸에 작은 반탄력이 이는 비늘들이 결국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변모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허기에 난 드디어 이 지루하기만 엄청나게 지루한 시간들을 이제서야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에휴~ 이 놈의 수련방식을 생각해낸 인간이.....아니지......드래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게 어디 사람이.....헉...아니.....드래곤이 할 짓인가?" 정말 한심하면서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수련 방법들이었다. 그리고 난 아직 인간의 의식을 가진 존재라서 그런지 이런 세월만 좀 먹는 듯한 수련 방법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휴~ 그럼 내가 원하는 건 이미 다 완수했으니깐 이제 나가도 되는 거지? 으응.....근데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는 거지?" 알쏭달쏭 하면서도 막막하기만 한 상황이었다. 갈리아스 옹은 드디어 지난 십 년 가까운 시간들 동안 손자의 옆에서 떠나지 않고 지켜보던 자신이, 그동안 안절부절하며 소망하던 작은 목적이 운 좋게 달성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햐아~" 다시 한번 만져봐도 정말로 때깔 하나만큼은 죽이는 멋진 몸의 손자녀석이었다. 그런 손자녀석이 이제 들썩이는 몸을 가지고, 점점 크게 콧방귀를 끼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에, 갈리아스 옹은 서서히 길고도 거대한 몸을 움찔하면서 일으키는 손자와 그 짧은 앞다리를 평소 인간형의 모습에서 밴 습관처럼 길게 기지개를 켜는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가 어리는 얼굴이 되어갔다. "헐헐헐. 그 놈. 잠 한번 깨기 어렵네." 평소 드래곤들이라면 긴 수면기에 접어들어서 자신이 추구하던 바를 다 이루고 서서히 깨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바로 그동안 아공간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경지를 이루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 큰 눈을 번쩍 뜨는 게, 제일 먼저 수면기에서 깨는 드래곤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선 밀러 마법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속에 어린 기운들을 가지고 수면기 동안의 수련이 성공했는지 아님 실패를 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실패는 거의 없었다. 왜냐면 드래곤들의 그 영활한 두뇌구조와 그 속에 자리잡은 아공간에서 자신만의 경지를 이루지 않으면 깰수 없게끔 용언마법으로 주문을 걸어 수면기를 가지기에 절대로 실패할 경우는 일어나기가 무지 힘든 것이다. 물론 갑작스런 불청객들의 방문에는 당연히 비몽사몽간에라도 벌떡 깨어나서 그 싸가지 없는 불청객들을 한 입에 꿀꺽 한 뒤에 다시 잠이 드는, 한마디로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드래곤들이었기에, 자신이 수면기에 들게 되면 제일 가까운 이에게 부탁을 해서 가디언 노릇을 확실히 취한 뒤에야 수면기를 통한 수련을 하는 드래곤들이었다. 하기에 그런 일들을 8.000년 가깝게 살아오며 봐온 갈리아스 옹이기에, 점점 거세게 요동을 취하면서 일어나선 제일 먼저 눈을 뜨기도 전에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입을 쩌억 벌리는 손자의 우람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어리는 것이다. '역시 저 놈은 내 손자지만 뭔가 아주 특별한 놈이란 말야......' 하긴 자기 손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귀여운 갈리아스 옹에게 그 어떤 일들이 나쁘게 보이겠는가. 이는 갈리아스 옹의 눈에 지금 심각하게 씌워진 대형 콩깍지 때문이기에 그를 탓할 용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으갸갸갸갸~~"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난 드디어 어느새 내 몸을 볼 수 있었던 조금전의 상황들이 그저 꿈만 같다는 생각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응? 이게 왠 일? 이거 생각 외로 쉽게 나올 수 있었네? 괜시리 심각하게 고민 했었잖아~!!" 정말 쉬웠다. 아니 이건 누구나 다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괜시리 생각만 하면 알아서 깨어나는 걸 가지고 무지 어렵게 고민한 내 자신이 한순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난 무지 쉽게 그 망할 놈의 황량한 꿈의 세계에서 빠져 나온 나를 발견하곤 무지 기쁜 마음이 대량으로 업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헤헤헤. 이거 뭐야? 별거 아니잖아~!! 우헤헤헤헤..." 조금은 신이 나서 푼수 짓을 하는 나였다. 하지만 내 앞에서 이런 나를 올라다 보시며 놀란 가슴으로 비틀거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난 깜짝 놀라서 할아버지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끼에에에에엑~" 우르르릉. 잠시 내 구강구조를 생각 못한 채 평소처럼 크게 소리를 지른 덕분에 작은(?) 동굴 안이 금새 무너질 듯이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에구구구. 이 바보. 여태껏 조심하자고 다짐해 놓구선 일어나자마자 또 사고를 쳤군.' 통통. 역시 이럴 땐 내 스스로 알아서 자진 납세를 하는 게 제일 속편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어디 많이 편찮으세요? 늙으시면 심장에 무리가 많이 간다고 하던데....." 갈리아스 옹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금 가슴을 부여잡고선 작게 헐떡이기 시작했다. 어떻게.....그리 쉽다고 말하다니....... 그럼 그동안 긴 수면기를 거치면서 깨어난 다른 드래곤들은.....? 정말로 어이가 없는 행동거지를 선보이는 손자였다. 더구나 다른 드래곤들처럼 긴 한숨과 함께 반짝 눈을 뜨면 되는 일을 가지고 온 동굴이 무너져라 요동을 치면서 겨우 일어나서는 한다는 소리가 고작.......!! 어이가 없으니 열심히 뛰고 있는 심장이 이토록 지 멋대로 날뛰는 것이리라. 더구나 그런 자신을 보면서 한다는 소리가 늙으면 심장이 약해져? 이런..........!!! .드래곤들은 원래가 늙으면 늙을수록 더욱 강한 드래곤 하트를 가지게 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도 모르는 저 얼빵한 손자가 그동안 그리도 귀엽고 똑똑해 보였다니......... 드래곤들 중에서 초천재인 자신의 피를 확실히 이어받아서 헤츨링 주제에 성룡들도 하기 힘든 일들을 마구 벌이던 손자녀석이 이 순간 멍청해 보이는 건 뭣 때문인지.......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던 갈리아스 옹이었다. "얘, 싸이야. 그래 너만의 아공간에선 어땠냐? 무지 재미있었지? 그치?" 헉, 이 어르신이 정말....... 이거 정말로 무지 살 떨리는 질문 공세였다. 도대체가 말야! 내가 생각해도 족히 몇 년은 지난 시간들 같은데, 그럼 그동안 쫄쫄 굶은 손자를 위해서 맛난 거라도 준비해놓으시곤 이런 질문 공세를 펼치셔야지!!! 도대체 지금 몇 시간째야?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한 나였다. 하지만 나한테 어떻게 생긴 할아버지인데....... 절대로 경로사상이나 기타 등등의 이유보다도 더욱 소중한 핏줄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난 충분히 내 눈앞에서 작은 몸으로 내 콧잔등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애절한 질문공세에 짜증을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꾸만 반복이 되는 질문들이 어느새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연장이 되다 보니 사실 그렇게 크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내 뱃속에선 자꾸만 무언가를 넣어 달라고 조르는 통에 난 미치고 환장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신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았으니............. 우르르릉. 삽시간에 내가 앉아 있던 동굴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그 속에서 시커먼 동체를 지닌 물체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는 일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었다. 어떻게 이리도 시간을 잘 맞추어서 떨어지는 것인지.......... 더구나 내 머리 부분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 위로 무언가 커다란 물체가 떨어지자 기겁을 하시며 그 글썽글썽 애수눈치 작전을 급히 마감하시며 내 다리 사이로 잽싸게 몸을 이동시켜 버린 것이다. 빠악~ 꾸에에엑. 정말 눈앞에서 별들이 왔다갔다 난리 블루스를 추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흑흑. 이번에 새롭게 내 몸을 단련시키면서 난 신기하게도 내 두대(頭大) 라고도 불리는 이 저주받은 큰 머리 좌우에 나란히 나있는, 각각 두 개씩의 뿔과 그 사이에 신기한 보석모양으로 자리를 잡은 커다란 비늘이 영롱한 빛을 발하는 곳에 이 뜻밖의 불청객들이......내가 미처 이 보석 같은 내 비늘을 감상도 하기 전에 마구 헤딩을 한 관계로, 난 그야말로 땅바닥에 내 거구의 몸을 바싹 밀착시키며 지금도 내 머리위로 떨어지고 있는 시커먼스 넘들을 눈물어린 눈동자로 째려보고 있었다. "이씨~. 우아아아앙. 할아버지~ 저 놈들이 나 아프게 하고 있어요~~" 꾸에에엑. 손자의 애절한 비명과 고함이 동시에 울리면서 갈리아스 옹은 지금 손자의 몸 아래에 깔려 바둥거리는 자신이 이럴 때 미처 도움이 못된다는 사실에,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모자랄 처지였다. 허나......... 뿌드드득. 벌떡. 싸이의 몸에 달라붙듯이 제각각 다른 포즈로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헤비 워커들은 싸이가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나름대로 진영을 짜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물론 그 중앙에 자리를 턱하니 잡고 서있는 흑기사의 고운 선과 동체는 헤비 워커라는 걸 처음으로 본 싸이의 호기심을 충분히 끌 수 있는 매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크윽. 아퍼~! 너.......너 누구얏~?!" "........" "우띠. 저게 감히 내 말을........." 싸이는 어이라 없는 것인지 아님 자신의 힘을 믿게 된 것인지는 잘 몰라도 제법 강단 있는 목소리로 눈앞에서 약간은 부자연스런 몸놀림을 선보이고 있는 존재에게 강한 눈빛을 날려보냈다. "그.....그대는........" "시끄러~! 네 놈들 누구냐고 물었잖아? 빨리 대답 안 해?!" 역시 어딘가 믿는 구석이 확실히 있는 자의 여유가 지금 싸이의 말속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하긴 지금 자기 몸 아래에서 쥐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던 갈리아스 옹만 해도 그 힘이 장난이 아닌 까닭에 싸이는 점점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시커먼스들에게서 자신에 찬 어조로 마구 뻣뻣한 자세로 질문을 날릴 수 있었다. "나....난 여왕 전용 헤비 워커 제우스라고........" "흥. 네 깟 놈이 무슨 신이라고....뭐? 제우스?" 쿡. 정말로 웃긴 일이었다. 이곳 카빌라이 대륙에선 싸이가 전생에 읽었던 신화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신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제우스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콧방귀를 끼며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는 싸이라니........ 하지만 어디서나 우연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고,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하는 헤비 워커 흑기사와의 이런 첫 만남은 이제 싸이의 또다른 앞날에 큰 도움이 되는 만남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든지 다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난 정말로 이 황당한 몰골로 출현한 시커먼스 일당들에게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양 잔뜩 폼을 잡으면서 뒤에선 부하녀석들로 보이는 우락부락한 시커먼스들을 거느리고 있는 이 제우스라는 녀석의 거만한 행동들은 정말로 나에겐 조금이나마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왜냐면, 예전에 만화영화에서나 본 듯한 거대한 로봇 모양의 기사들이라...... 그럼 이놈들을 조정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 타고 있다는 것인가? 혹시......그럼 그 안에 탄 사람들이 워리어스? 이건 예전에 왕궁에서 가끔씩 만났던 기사들과는 또다른 존재들인 워리어스들이 자기가 가진 헤비 워커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서 약간 힌트를 생각해낸 로봇 조종사들의 직위였다. 허나 아직까지 눈앞에서 나를 가만히 주시하는 시커먼스들의 눈빛 속엔 무언가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뭐야? 왜 날 째려 보는거야? 나한테 무슨 불만 있어? 앙? 아니면 할말이라도 있어?" 난 대차게 나가기로 결정했다. 왜냐면 배도 출출한 판국에 할아버지의 오랜 질문공세로 짜증이 날대로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놈들 눈빛을 보니, 왠지 나한테는 조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내 딴에는 똥배(?)를 내밀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이놈들의 대장쯤으로 보이는 녀석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다소곳해지는 모습에 더욱 대차게 나가는 시비조로 일관된 행동의 신기한 내 모습이었다. "......" "호오~ 왜 대답을 안하지? 야. 너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껀데? 왜? 나랑 한번 붙어보자는 거야?" 한참을 눈싸움을 하면서 째려보던 난 그중에 제일 쎈 놈으로 보이는 녀석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강하게 눈을 부라려 주었다. 그러자 그 녀석이 하는 말. "끄응~ 아니다. 난 그저 그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나와 흡사한 기운으로 느껴져서....." "뭐? 내 몸에 있는 기운이 너랑 같다고? 이게 지금 어디서.........." 뿌드득. 한순간 그녀석이 하는 황당무계한 말에 이마에 작은 줄기가 생기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하겠는가?! 제법 날카로운 이빨들이 존재하는 턱을 내가 한차례 가볍게 비벼주면서, 심각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놈을 다시 강하게 째려보기 시작하자, 어찌된 영문인지 내 몸은 금새 하얀 막들로 뒤덮히기 시작했다. '히야~ 이건 또 뭐야?' 아직 내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이 순간까지 잘 알지 못하는 나였다. 갈리아스 옹은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체를 본능적으로 피하기 위해서 손자의 듬직한 몸 아래로 기어 들어간 것이 완전한 실수였다. 아직 어린 손자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갈리아스 옹은 이내 커다란 몸으로 위에서 자신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손자의 공격에, 정말로 정신이 빠져 기절하기 일보직전까지 내몰렸었던 것이다. 그러나 금새 일어난 손자덕분에 이제 겨우 숨을 돌리며, 갑자기 두꺼운 암반층으로 뒤덮힌 동굴 천장을 밀가루 반죽 뚫듯이 뚫고 떨어져 내린, 시커먼 몰골의 물체들을 쳐다보던 갈리아스 옹은 이내 심장이 요동을 치면서 다시 한번 가슴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이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심장질환이 새롭게 생겨난 후유증이 확실한 듯 싶었다. 갑자기 난생처음 보는 헤비 워커들이 떼거지로 나타나다니....... 왜? 이건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자신이 창조한 물건들이 이렇게까지 새롭게 변신을 해선, 왠만한 레지나 급의 헤비 워커들을 훨씬 상회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눈앞에 나타나자, 갈리아스 옹은 이내 헤비 워커의 창조자답게 마법적 탐구력에 불타는 마음에 이 시커먼 헤비 워커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옷. 어떤 놈이 새롭게 업 그레이드 시켰는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 놈들 자~알 생겼다.' 왠지 은색의 비늘을 지닌 자신의 모양을 본딴 기존의 헤비 워커들과는 무지하게 비교가 되는 검은색 일색의 헤비 워커들이었다. 더구나 각각의 헤비 워커들이 지닌 힘의 파워는 지금 갈리아스 옹이 지닌 레지나 보다 최소한 0.5이상의 파워를 더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기에, 갈리아스 옹은 지금도 자신보다 더 뛰어난 헤비 워커들을 개발한 누군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허나........ "헉. 저.......저건........"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드.....드래곤............" 뭐? 드래곤? 드래곤은 갈리아스 옹이 아니던가? "드래곤......스케일............!!" 역시......... 자신이 지닌 몸과 그 거대한 몸을 지탱시켜 주는 드래곤의 뼈대들만큼이나 중요한 두꺼운 강철 피부......드래곤 스케일........... 이걸 최고위급 마법으로 녹여서 만들어 왠만한 장갑들 무게에 반도 안되는 놀라운 무게를 지닌 최강에 가까운 드래곤 스케일 장갑. 그런 마법적 특성과 최고라고도 칭해지는 강한 반탄력을 지닌 장갑을 온몸에 칭칭 감다시피 한 헤비 워커라니........더구나 그 드래곤 스케일이 가진 탄력성과 반탄력들을 골고루 갖춘 이시대 최강의 마법 금속 중 하나로 손꼽히는 드래곤 스케일로 전신 무장을 한 시커먼스 군단들의 눈빛속에 감춰진 놀라운 파워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또한, 그들의 수장 격으로 보이는 놈은 왠지 자신이 예전에 만들었던 뼈대와 흡사한 모양으로 그 위를 여러 겹으로 된 드래곤 스케일 장갑을 걸쳐, 날씬하면서도 기동성이 무척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나, 지금 갈리아스 옹과 하나뿐인 귀여운 손자를 쳐다보는 모습은 갈리아스 옹이 등뒤로 흘리는 식은땀 만큼이나 놀랍고도 긴장이 되는 존재였다. '아......아무래도 저 놈은 옛날에 실종된 레드 일족 키에너스 녀석의 헤비 워커 같은데.....' 이건 자신이 손수 뼈대를 설계해서 넘겨준 놈이라서 더욱 기억이 선명한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런 옛 친우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성룡에서 웜 급으로 올라서면서 축하 선물로 받은 헤비 워커를 타고 마수 사냥에 나섰다가 실종 된지 그 얼마이던가... 헌데 지금 또다시 이런 낯선 모습으로 나타난 레드 일족의 헤비 워커라니......... 더구나 스무 대가 넘는 새로운 모습의 헤비 워커들의 수장으로 나타난 헤비 워커 제우스는 지금도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자꾸 쳐다보며 무언가를 궁리하는 모습이라서, 이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면 오늘은 득보다는 실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에 갈리아스 옹은 애간장이 타고 녹았다. 그것도 무지하게.......... 어린 콘돌은 지금 너무나도 분통이 터져서, 자신의 기운들이 흘러 들어갔다고 추정이 되는 곳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땅속을 파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오직 자신의 기운을 되찾겠다는 일념하나로 열심히 또 열심히 부리와 발톱이 다 헤어지도록 파헤친 덕분에 겨우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자신의 분노는 결코 사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해결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막상 어렵게 찾아간 곳에서 콘돌을 환영하고 있는 일들은 그야말로 기운을 뺏긴 일 만큼이나 황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나.......어떻게 저리도 큰 금속체들이 저마다 자아를 가진 채 서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것도 무지......... 쿵쾅. 쿵쾅. 삐질삐질. 주춤주춤. 싸이는 너무도 오버를 한 탓인지 얼굴에 흉측스런 미소를 지닌 채, 겁대가리를 상실한 듯이 보이는 시커먼스 일당들을 향해 육중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런 당당하면서도 어딘가 살벌해 보이는 싸이의 모습에, 마치 학질 걸린 것처럼 벌벌 떨던 헤비 워커 들이...이건 어디까지나 싸이의 시선에 그리 보였을 뿐이다..... .암튼 벌벌 떨던 헤비 워커들이 자신을 피해서 뒤로 주춤거리는 모습에, 싸이는 더욱 기세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봐. 너희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앙?! 그리고 말야~! 감히 건방지게 내 머리랑 키스를 한 배짱은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얏~?" 혹이 조금 돋아난 이마를 스윽 하고 만지려다가 팔이 너무 짧은 관계로 불발에 그치자, 무척이나 무안했던지 더욱 쌍심지를 켠 채 눈앞에 있는 새로운 장난감들에게 성질을 폭발시키는 싸이였다. 물론 그 시발점은 뭐니뭐니 해도 배고픈 자신에게 먹을 것을 안 준 채 씨잘대기 없는 수다를 늘어놓았던 누구누구이겠지만, 그래도 지금 짜증이 잔뜩 난 상황에서 당장 눈앞에 화풀이 상대가 있는데, 결단코 그냥 좋게 넘어갈 싸이가 아니였다. 주춤주춤. "허......억.......그.....그게........" 반짝. 눈앞의 존재가 다급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자, 눈에 잠시 이채가 이는 싸이였다. 그런 싸이의 모습에 제우스는 미처 할말을 다 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할 수가 없었다. 스윽~ 눈앞으로 다가온 드래곤의 날카로운 발톱이 마나를 가득 담고선, 동체의 얼굴부위를 살짝 매만지며 목 부위로 내려가자, 제우스라고 이름을 밝힌 헤비 워커는 강철에 드래곤 스케일을 덧입힌 몸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동체에 미세하게 흠집이 나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런 느낌에 제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허나 지금도 이런 상황을 보면서 안달이 난 갈리아스 옹은 당최 겁을 상실했는지, 아님 눈앞의 헤비 워커들의 실용성을 잘 몰라서, 말 그대로 하룻강아지 드래곤 무서운 줄 모르는 짓을 해대는 손자가 이순간 너무도 안쓰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헉........그....그럼.....안돼~" 휘익. "네? 무슨 말씀이세요? 할아버지?" 반짝반짝. 싸이는 할아버지의 다급한 비명성 고함을 들으면서도 태연하게 왼손에 잡힌 제우스의 목줄기를 지긋이 내리 누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에게는 다소곳이 미소를 짓는 조금은 사악하게만 보이는 싸이었다. 이러니 갈리아스 옹이 기겁에 혼비백산을 어찌 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허긴 갈리아스 옹이 언제 손자에게 마법병기.......더구나 대 마법주문이 완벽히 온몸에 새겨져 있어서, 오직 물리적인 힘만으로 대처를 할 수 있는 헤비 워커를 설명해 준 적이 있었는가. 그러니 지금도 연신 너 같은 놈은 한입에 꿀꺽 할 수도 있어 라는 살벌 눈빛을 강조하는 손자에게 더욱 안달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뜻밖에도.......... 제우스는 정말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엄청난 기운들이 저장된, 말 그대로 봉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긴 잠에 빠져들면서 누군가가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자신에게 전한, 대륙최고라고 들었던 헤비 워커 전용의 마나 하트와 그 속에 담긴 기운들 보다 더욱 거대한 기운들을 온몸에 풀풀 풍기기 시작하는 싸이의 모습에, 제우스는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해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는 창조주에겐 무조건 충성을 해야만 한다 라고 메모리 석에 고이 저장 받은 주입식 교육의 산물인 제우스이기에, 지금 자기 목을 쥐고 노려보고 있는 창조주에게 겁을 집어먹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메모리 석이 잘못된 경우일 것이다. 또한, 모두들 이 어이가 없는 상황이 생기게 된 원인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보아도 지금 제우스의 행동은 모두 이해가 충분히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제우스는 애초의 기억은 없다. 밀란이 자기 꼬리와 앞발 하나를 희생하며 수집한 물건에게 과거의 주인 기억을 결코 남겨두지 않았으리라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또한 그런 일들을 당해 놓고 이 무섭고도 치가 떨리는 마법 병기에게 또다시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가진 밀란이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였다. 해서 완전 분해가 된 제우스의 몸 속에, 새롭게 메모리 시킨 밀란의 절대 복종 명령은 지금 이순간에도 제우스의 자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우스가 지금의 새로운 자아를 가지고 새롭게 재 탄생을 하면서 받은 처음의 기운은, 바로 마신 발킬마의 봉인구를 거쳐서 나온 대자연의 모든 기운들이 함축된 마나들이었고, 그런 마나들을 몸 안에 가득 차고도 넘칠 정도로 갈무리 한 채, 거대한 덩치를 제우스 앞에 들어내고 있는 싸이의 또다른 모습은 지금 제우스의 눈엔 자신의 생과 사를 좌우하는 창조주라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약한 자의 모습으로 싸이 앞에서 쩔쩔 맬 수밖에 없는 제우스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모른 채 제우스보다 겁을 먼저 집어먹은...... 물론 갈리아스 옹만큼 헤비 워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존재는 없었기에 더욱 겁이 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갈리아스 옹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레지나를 꺼내서 이들과 맞붙어도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본체로 돌아가서 붙으면 아마도 온몸에 깊은 자상을 남긴 채, 어찌어찌해서 겨우 손자를 데리고 도망을 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과연 어디로 도망을 친단 말인가? 저 시커먼 동체를 이루고 있는 여러 겹의 장갑 속에는 이미 용언 마법으로 메모리즈 해둔 디텍터 마법이 수도 없이 새겨져 있을 텐데, 과연 어디로 워프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워프에 성공을 한다고 쳐도, 한번 적으로 간주하면 세상 끝까지 끈질기게 쫓아올 헤비 워커들을 자신이 무찌를 방법은 전혀 없었다. 이는 아직까지 주인이 없는 걸로 보이는 헤비 워커라고는 해도 최상급의 존재인 레지나 급보다 최소 대등하거나 더 높은 기운들을 풍기는 시커먼스 군단이었기에, 각각의 급수 별로 최소 1:10 이상의 대 헤비 워커 전투가 가능한 마법 병기들을 모조리 없애려면, 최소한 E급 이상의 헤비 워커를 지닌 베이직 헌터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수십 대 일로 붙으면 승리할 가능성이 겨우 50%이상이 되는 일이라 갈리아스 옹은 절대로 그런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애가 타는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갈리아스옹 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하는 일들은 그가 등뒤로 식은땀이 너무 흘러서 염분부족으로 이젠 시냇물 수준으로 맑은 수분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긴 시간이 지날 때쯤에는, 가히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갈리아스 옹 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던 갈리아스 옹도 자신이 보기에도 매우 요상하게 눈앞의 상황들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건 한마디로 자신이 너무 앞서가던 관계로 엉겹결에 쫄아 버린 한심한 모습이었다고, 눈앞의 손자와 살벌한 헤비 워커들이 손수 몸으로 가르쳐 주는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크흠. 말해 봐. 너 뭐 때문에 여기로 온거야?" "그.....그게......." 끄응. 미치고 환장하겠다? 과연, 이런 말이 통하기는 할까? 물론 태어나서 기억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눈앞이 안보인 상황 그대로 지금 까지 자기 몸에 담길 마나들을 마법진 위에서 갈무리하고 있던 제우스였지만, 이미 메모리 석에는 주인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무수한 단어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나로 움직이는 금속 신체를 가지게 되면서 스스로 자아를 형성시키는 마령석이 마나 하트 정중앙에 듬직하게 자리를 틀고 있는 제우스였기에, 지금 창조주이자 어쩌면 주인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가 내뱉는 질문에 열심히 쇠머리를 굴려서 괴팍하게 보이는 주인의 비유를 한껏 맞춰주고 싶은 제우스였다. 그러나 너무도 어려웠다. 어떻게 자기가 여기로 오게 된 것인지를 당최 모르고 있는 제우스에게, 주인이 될 존재이자 창조주가 이런 심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계속 목 부위를 꼬옥 움켜쥔 채 "너 제대로 말 안하면 이 가녀린 목 분질러 버린다" 라고 강조를 하는 주인에게 어떻게 만족할 만한 대답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저 제가요......위에 있는 동굴 비수무리한 곳에서 대형 마법진을 통해서 제 기운들을 갈무리하다가요. 며칠 전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하던 기운들이 오늘 갑자기 뚝 끊기면서 저도 모르게 주인님 곁으로 내려 왔는데요...... 사실 그 과정들은 저도 잘 몰라요.' 라고 이런 대답을 했다가는, 그 순간 자신의 가녀린 목은 주인 말대로 정말로 단숨에 똑 부러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제우스였다. 하기에 절대로 그런 대답을 할 수 없는 헤비 워커 이기도 했다. "흐음. 말을 하기 싶다? 그럼 묵비권 행사를 하겠다는 거지? 에잉, 맘에 안들어. 그럼 네가 목이 부러져서 죽은 최초의 시커먼스가 되라 알았지?" 꾸울. 쿨럭. 식은땀이 만약에 제우스에게서 나온다면 아마도 그건 강물 수준일 것이다. 역시.......주인이자 창조주는 너무도 무서분 존재였다. 그리고 이제는 창조주가 자신에게 맨 먼저 말을 걸었다는 의미에, 눈앞에 멋진 모습으로 서있는 창조주를 참된 주인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제우스였다. "헉.......그런..........살려 주세요........흑흑" 너무도 살고 싶었기에 바둥거리며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하는........ 무생물에 자아만 지닌 헤비 워커의 살고 싶다는 열망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있는 존재들에겐 너무도 황당한 일이었다. "어.....어떻게..........." 갈리아스 옹은 이제 너무도 놀라 입이 떡 벌어진 가운데,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창작품인 헤비 워커들을 상대하면서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지금의 이 상황에 대해서 열심히 그리고 맹렬하게 두뇌 운동을 시키기 시작했다. 어찌 무생물인 헤비 워커가 이런 자아가 뚜렷한 인간들 같은 행동과 말들을......... 어이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더욱 탐구열에 불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더 맹렬하게 두뇌 운동을 하고 있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24대나 되는 모든 시커먼스 군단이 지금 대장이 하는 꼴을 보고나선 저마다 열심히 쇠머리를 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굴리는 쇠머리 돌아가는 소리는 너무도 엄청났다. 쿠르르르릉. '헉...창조주가 대장을 죽으면.....그 다음은.........' 너무도 뻔히 보이는 상황이기에, 대장이 죽으면 그 다음에 창조주가 자기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을 예상하곤 나름대로 열심히 목을 최대한 짧게 만들면서 주인의 질문에 준비하기 시작하는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갈리아스 옹은 막연히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과 탐구열에 열중한 나머지, 조금 전까지 그들로부터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사실들을 깡그리 망각한 채, 이제는 시커먼스 군단 사이를 누비고 다니면서 시커먼스들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들과 그들이 몸 안에 갈무리하고 있는 기운들에 대해서 마구 되집어 나가며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언젠가 꼭 한번은 레지나를 넘어선 존재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던 그였다. 하지만, 인간들의 손에 넘어간 G급의 헤비 워커 한 대로 인해서 불어닥친 혈풍과 그 후유증은 너무도 크게 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기에, 절대로 그 다음부턴 F(플라잉)급 이상의 설계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이미 눈앞에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던 존재들이 무수하게 서 있는 관계로, 예전에 했던 다짐들은 이젠 저 멀리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호오~ 이런 방법도 있었군. 헌데 이렇게 각자의 기운들을 몸 안에 갈무리시키려면 왠만한 마령석으론 안 될텐데........이걸 해부해 볼 수도 없고........쩝" 움찔. 자신들 사이를 마구 날 듯이 뛰어다니며, 이 놈 저 놈 살펴보던 인간에게 호기심을 가지던 시커먼스 군단은, 아마도 창조주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 인간의 입에서 해부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온몸에 기운을 급히 몸 안으로 구겨 넣으면서 몸을 빠짝 세웠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행한 이 행동들은 해부라는 말을 들은 시커먼스 군단 전체였고, 그런 말을 내뱉은 인간의 마지막 입맛 다시는 소리는 그들에게 침이라는 물질이 있었으면, 대형으로 형성시켜서 목안으로 구겨 넣었을 상황이었다. 더구나 창조주가 이 인간으로 보이는 생명체에게 선보이는 따뜻한 미소는 시커먼스 군단 전체를 절로 긴장시키고 있었다. '크윽. 저놈의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왜 우릴 해부하겠다는 거야?' 이건 시커먼스 군단의 부단장 생각이었다. 시커먼스 군단은 확실히 힘의 서열이 서 있는 군단이었다. 각자가 맡은 바 임무가 다른 관계로 검이나 창. 도. 망치. 철퇴. 대형 도끼등 무수히 많은 개성이 존재하는 이들이기에,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무기들을 다룰 기술들을 메모리 석에 저장하고, 조금씩 파워가 다른 마나 하트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긴 서열을 매우 중요시 하는게 바로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이는 대형 마법진에 세워질 때부터 자연스레 생겨난 서열이었고, 그로 인해 각각 받게 되는 기운들의 부피가 다른 만큼 서열 또한 확실히 지키는 약육강식에 철저한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할아버지. 뭐 좀 건졌어요?" 싸이는 나름대로 대장격인 제우스랑 그동안 농도 진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기 머리에 난 혹만큼 확실히 겁을 주면서 알아낸 이 놈들의 힘은 어린 싸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로 놀라웠다. 물론 그 힘이라는게 바로 자기 몸에 들어가서 이젠 자기께 확실히 된 마신 발킬마와 대자연에 속한 모든 생물체들의 힘이었기에, 절대로 눈앞에 불쌍한 눈빛을 보내는 제우스라는 존재에게 겁을 집어먹을 싸이가 아니였다. 싸이는 자신이 쓸 수 있는 힘의 10분지 1도 안되는 눈앞의 놈들이 떼거지로 덤벼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 안되면 자기보다 월등히 파워가 높은 할아버지가 알아서 처리해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기에, 결코 겁먹을 일이 없었던 관계로 더욱 신이 나서 제우스를 괴롭히며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과연 그토록 믿고 있던 갈리아스 옹이 이 시커먼스 군단에게 쫄아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싸이가 알았으면 어땠을까? 그래도 신나게 제우스랑 스커먼스 일당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덤볐을까? 이건 어디까지나 모두의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싸이의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하는 갈리아스 옹의 말은 더욱 싸이의 목에 빳빳한 힘을 실어 주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싸이야. 이 놈들은 말이다.............아무래도 대자연의 기운들을 마법진을 통해서 몸 안에 주입시킨 모양인데, 그게 보통의 힘 가지곤 이런 힘들을 가지게 할 순 없는데....쩝" 그러면서 이어진 갈리아스 옹의 자기 합리화와 변명 속엔 정말로 엄청난 발견이 담겨져 있었다. 세상에나..........자아를 지닌 존재들이 자기 힘을 바탕으로 더욱 인간에 가까운 자아를 형성시킬 수 있다니......이건 마법적으로도 대단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런 발견을 하게 된 갈리아스 옹의 실력 또한 대단히 뛰어난 것이었다. 달리 드래곤들의 초천재로 손꼽히는 갈리아스 옹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갈리아스 옹이 지금 갖추고 있는 뛰어난 안목과 지식은 자세히 관찰만 한 상태에서도 이들의 힘과 능력을 단 한번에 꽤뚫어 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신룡의 후예 - 제 34 화. 제우스라고 무의식중에 이름을 선사 받은 여왕전용 헤비 워커는, 지금 서서히 눈앞에서 사악한 듯 하면서도 어딘가 정감이 엄청나게 가는 자신들의 창조주이자, 이제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은색의 드래곤에게 최대한 사근사근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제우스의 마음속엔 어서 빨리 주인과 자신이 계약을 맺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에, 더욱 친절하고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처럼 세계최강의 마법 병기를 시답지 않게 바라보는 위대한(?) 창조주 싸이라서, 제우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역시 자신을 창조한 존재답게 자신들을 우습게 여기는 싸이를 보며 마음속에 이는 울분을 삭히면서 제발 빨리 계약을 맺기를 내심 간절히 기원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나의 주인 될 자격은 오직 이분뿐이시다. 나처럼 듬직한 존재를 저리도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존재가 과연 이 대륙에서 얼마나 있겠는가?' 이건 무의식 속에 힘을 쌓고 있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강철피부로 느껴지던 어떤 사악한 존재와는 감히 상대도 되지 못할.....강하면서도 자신감이 물씬 풍기는 위대한(?) 주인을 발견한 자의 큰 기쁨이자 행복이었다. 또한 이 제우스라는 존재를 최강의 헤비 워커로 만든 어떤 불쌍한 흑마법사에겐 지금 제우스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너무도 잔인한 처사였다. 허나 눈앞에 있는 싸이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세계최강이라는 제우스의 힘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한마디로 거대한 드래곤의 몸을 여러 겹 감싸고도는 저 무형의 막이 제우스를 견제하기 위해 맹렬히 회전을 하면서 주인의 의지대로 제우스에게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다가는 다시 되돌아가는 모습들을 계속적으로 선보이게 되자, 제우스는 더더욱 이 눈앞의 창조주에게 굳게 충성을 맹세하게 되었다. 이는 제우스의 몸 안에 담긴 거대한 힘과 같은 느낌을 지닌 대자연의 마나들을 몸 안에 차곡차곡 쌓고, 그걸 정화시켜 더욱 순수한 마나를 지니게 된 싸이기에, 지금 제우스의 강철 피부에 와 닿는 싸이에 대한 느낌은 진정한 자신의 주인이자 창조주로만 여겨지게 된 것이다. 하기에 더욱 제우스의 속은 새까맣게 타서 재가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물론 등뒤에 시립을 하고 있는 든든한 부하녀석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주인이, 자신을 빼놓고 부하들에게만 러버주의 맹약으로 계약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자신감 넘쳐 나는 제우스였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전혀 자신들에게 눈꼽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 싸이의 모습에서 제우스는 점점 알 수 없는 어떤 불안감이 자아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이런 제우스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싸이는 지금 제우스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흐흐흐흐. 이거 잘하면 먼지 녀석처럼 가지고 놀 장난감들이 새롭게 생길 것 같은데.....' 어찌 이렇게 사악하게 변해 가는 것인지...... 하긴 그동안 무지하고도 매우 심심하게 아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제법 길게 보낸 싸이가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스스로 시커먼스로 명명한 장난감들......!!! 새로운 업그레이드 장난감들을 그냥 보낼 리가 만무했다. 물론 어떠한 나쁜 목적을 지닌 자가 만들어서인지 제법 딴딴하게는 생겨 보이기에, 이런 물건들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무지 곤란하겠다는 예감에 사로잡힌 싸이로서는 당연하게도 눈앞의 강철 장난감들을 단 한 대도 남에게 넘겨주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독식하리라고 나름대로 염두를 둔 상태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 싸이는 몹시 곤란한 처지였다. 왜냐면 자신의 이런 욕심을 방해할지도 모를 할아버지가 옆에 있었기에, 싸이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뜻밖에도 매우 곤혹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흐음. 할아버지가 저리도 좋아라 하시는데 이놈들을 몽땅 한입에 슥삭 하기는 좀 그렇고.........으음.....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역시 가족이라면 끔찍하게도 아끼는 마음이 그새 새록새록 자라난 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가족이 그리웠으면 저리도 모든 일에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인지.... 조금은 싸이가 괜찮은 놈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다. "저....할아버지?" "으잉? 왜 싸이야~" 연신 시커먼스 군단을 누비며 나름대로 병기를 꼬나 쥐고 있는 헤비 워커들의 전투 능력을 가늠하고 있던 갈리아스 옹은, 자신을 부르는 손자의 목소리에 얼른 하던 일들을 멈추고 손자의 거대한 머리 위로 잽싸게 날아올랐다. 역시 마법의 종족다운 깔끔한 비행 마법이었다. "헤. 할아버지...이놈들이 그리도 이뻐요?" "엥?.........후후후후. 그렇게 보였더냐?" "응.......끄떡끄떡." "후훗. 이 귀여운 놈.........슥삭슥삭............... 싸이야~!! 이 할애비가 너한테 미처 말을 못해줘서 그렇지. 이 할애비는 이미 헤비 워커 중 최강이라고 소문 난 레지나를 가지고 있단다. 단지............" 갈리아스 옹의 손자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모습과 말투속에서 싸이의 눈이 더욱 빛이 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제우스는 눈앞의 호리호리한 영감탱이가 감히 세계최강인 자신을 놔두고 건방지게 주인의 머리 위에 철푸덕 주저앉아서 자기 보다 더 센 존재의 주인이라고 자처하는 모양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 허나 그 뒤에 이어지는 영감탱이의 말에 너무도 큰 기쁨이 생기는 제우스였다. "네? 할아버지도 이런 장난......아차......암튼 이런 녀석들이 있다구요?" "흐흐흐. 장난감이라.........큭큭큭큭. 천하 무적의 마법 병기를 한낱 장난감으로 취급하는 우리 손자라..........음뿌화화하하핫~" 너무 기쁜 나머지 시원스럽게 웃어 제키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쿡쿡. 싸이야. 저 놈들 얼굴 좀 봐라. 뭐 네 눈에는 그저 무표정한 철가면처럼 보이지만, 이 할애비는 저 놈들을 창조한 몸이라서 저 놈들의 무표정한 아이언 마스크에 서리는 기운만으로도 저 놈들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단다." 뜨끔. 왠지 모르게 가슴부위가 찔리는 제우스였다. "호오~. 금새 지 놈이 잘못한 건 알아채는 구나. 크크크. 암튼 싸이야." 역시 갈이아스 옹다운 말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제우스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어리기 시작했다. '만약 저 영감탱이가 주인님한테 이상한 말을 한다면......?!' 확실히 제우스가 새가슴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었다. 그런 초조한 마음에 제우스가 바라본 두 조손들의 이야기는 다행이도 제우스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 듯 했다. 아니, 제우스가 그토록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더욱 기대감에 사로잡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 제우스였다고 설명하는 게 옳을 것이다. "싸이야." "네. 할아버지." "저 놈들은 말이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정말로 주인을 잘 만나면 모든 종족이 평화스럽게 살수 있는 이 세계의 수호자가 될 수도 있지만, 만약에라도 사악하거나 나쁜 마음을 가진 존재를 주인으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끔찍한 마수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된단다. 그러니 우리 싸이 처럼 착하면서도 이 카빌라이 대륙을 든든하게 지켜줄 존재에게는 저 시커먼 놈들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단다." 갈리아스 옹은 손자의 투명하리만치 빛이 나는 눈동자를 지긋이 응시하면서 슬쩍 손자의 속마음을 떠보려고 했다. "어떠냐? 우리 싸이가 저 놈들의 주인이 될 생각이 있니? 물론 저 놈들을 가지고 지금 네 생각대로 함부로 장난을 하면 큰일나요. 왜냐면, 궁극의 용언 마법 중에서도 9써클에 해당하는 온갖 마법들이 저 놈들의 거대한 동체에 아로새겨져 있는데, 그걸 가지고 함부로 장난치다가는 주변이 온통 황폐화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란다. 알겠니?" 갈리아스 옹의 다정한 말속에는 제우스가 그토록이나 원하는 무언가가 담겨져 있었고, 손자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도 잘 들어나 있었다. 허나 싸이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엉뚱한 쪽으로만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난 지금 남들이 보기엔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 말씀 해주신대로 이 시커먼스 놈들이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로봇(?)이라는 건 잘 알겠지만, 그 골렘 어쩌고 하면서 메탈이라는 금속재질이 기본으로 몸에 달려서 메탈 골렘이라고도 불리는 이놈들을 가지고 놀면, 앞으로 감히 내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치듯이 사라지는 제 2의 먼지 녀석 가출사건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내 몸의 반 정도밖에 안되는 키로 연신 내 눈과 마주치려고 노력하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이 제우스라는 놈에게 난 나도 모르게 새로운 부하가 하나 생길 것 같은 예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다시 시작된 말씀에 난 조금은 이 엉뚱하기도 한 상상을 아쉽게도 접어야만 했다. 칫. 고작 쇠덩어리에다가 인공적으로 마령석이라는 물질을 주입시키고, 그 마령석 안에 삼각형으로 생겼으면서도 뾰족한 부위가 없는 삼각형 테두리 안에 원을 하나 그리고 그 안에다가 다시 위와 같은 형태보다 조금 더 작은 삼각형을 넣어서 여러 개의 삼각형이 최초의 삼각형 안에 담겨져 있는 숫자를 기준으로 A.B.C.........G급으로 구분을 짓은 것 까진 좋다 이거야. 그런 마령석을 메탈이라고도 불리는 티타늄 비슷한 금속 물질 안에 넣어서 거대한 마나 하트를 형성시켜주고, 스스로 자아를 가질 수 있게 용언 마법으로 메모리 석을 저장하고 그 안에 온갖 지식들을 넣어주는 것도 좋다 이거야. 근데 왜 하나같이 이런 공을 들인 놈들에게 우리 드래곤들과는 상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 용언주문을 새겨놓았냐 이거야. 이건 정말로 말도 안된다고........!!! 할아버지 말씀이 이런 놀라운 헤비 워커를 개발하고 손수 만든 위인이 자신이라고, 그리도 입에 발린 자화자찬을 하실 땐 나 또한 이분이 무지 자랑스럽더니만, 이젠 드래곤들의 브레스로도 이 놈들의 몸에 상채기 하나 제대로 낼 수 없다는 추가 설명을 들은 뒤부터, 난 어느새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뭔가 중요한 일을 하나 간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그럼 이 놈들을 우리 드래곤들에게 상극의 존재로 만드신 이유가 뭐예요? 저 이게 무지 궁금해요. 이왕에 이 놈들을 우리 드래곤들이 개발하고 발전시키면서 우리 용족들의 전사들만이 사용하는 병기로 만들었으면, 최소한 우리종족에게는 안전한 제약이 있어야 되는거 아녜요?" "호오~. 역시........싸이야. 그건 말이다.........." 갈리아스 옹은 눈앞에 있는 손자가 고작 10살도 안된 존재가 맞는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면서도, 역시 자신의 피를 확실히 이어받은 듯 똑소리 나는 똑똑한 손자에게 더욱 진한 감동을 받았다. 어떻게 고작 10년이 조금 지난 핏덩어리 헤츨링이, 이리도 논리 정연한 것인지............. 이건 손자의 어미인 엘렌과 비교를 해봐도 너무도 차이가 나는 모양새였다. 근 300년 가까이 멍청한 모습의 헤츨링으로 자라나면서, 자신에게 항상 애교와 투정을 부리며 자라나던 엘렌이었다. 그런 딸이 커서 낳은 자식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 큼, 초천재적인 손자의 행동거지와 말에 절로 신바람이 난 갈리아스 옹이었다. 해서 그가 지금 손자에게 말해주는 내용들은 너무도 도가 지나친 엄청 복잡한 수식들이 잔뜩 들어간 헤비 워커의 중요 마법들과 대 용언 주문이 새겨지게 된 원인들의 해명이었다. 제우스는 듣도 보도 못한 내용들을 신나게 말하는 이 얄미우면서도 고마운 영감탱이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이제 갈리아스 옹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중간중간에 자신을 힐끔거리며 쳐다보기 시작하는 주인의 시선에 너무도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제야 위대한 골렘들의 신 러버주님께서 만들어준, 태초 적부터 내려오는 신성 골렘의 계약을 주인과 행하게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제우스는 무지 행복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을 눈에 독을 품고 째려보고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콘돌은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빼앗아 간 것으로 추정이 되는 얄미운 인간의 모습을 눈에 불을 켜고,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있었다. 왜냐면, 그 인간이 태연하게 앉아있는 물체는 엄마의 기록에 따르면 분명히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맞을 것이고, 그럼 머리 속에 남겨진 엄마의 기록들과 비교해 볼 때 저 드래곤이 풍기고 있는 기세는 가히 에이션트급을 상회하는 기운을 몸 안에 담고 있었다. 콘돌은 그런 절대자의 위치에 있는 드래곤이 자신의 기운을 어떠한 방법으로 훔쳐 갔을까하는 생각을 맨처음엔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이내 콘돌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했다. 왜냐면 지금 저 드래곤의 몸 안에 있는 기운만으로도 이 물질계에선 손가락에 꼽힐 강자라는 생각이 들자, 콘돌은 지금 드래곤의 머리부위에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에 이른 것이다. 역시....... 이런 콘돌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인간의 몸 속에서도 엄청난 대자연의 기운들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런 콘돌이기에 다소 엉뚱한 오해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 저넘이 분명해. 지금 내기운을 미처 다 소화도 못시켜서 아마 저 드래곤에게 그런 것들을 묻고 떠들고 있을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자 어린 콘돌의 눈에선 불꽃이 튀었다. 또한 지금도 얄밉게 자신이 상대하기엔 너무도 벅찬 에이션트급을 넘어선 드래곤에게 한없이 애정 공세를 펼치는 인간은, 아마도 자기가 저질러 논 일에 대해 겁을 집어먹곤 천하의 콘돌을 건든 대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 저리도 드래곤에게 살갑게 군다고 판단이 들었다. 그 때문에 콘돌은 내심 이를 북북 갈고 있었다. '두고 보자. 이 망할 놈의 인간.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해도 유분수지. 내 기운을 요상한 마법으로 훔쳐가?! 그리고, 그 후환이 두려운 나머지 저 건방진 드래곤 놈에게 착 달라붙어 있지만 언젠가는 틈이 있을 터....... 그때 두고 보자.........뿌드드득." 너무도 무서운 오해였다. 과연 드래곤들도 감히 무시 못하는 물질계이자 이곳 중간계의 수호 영물인 콘돌의 이런 오해와 복수심의 대상이 졸지에 되 버린 갈리아스 옹이, 과연 지금 이런 일이 자신의 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나 채고 있었을까? 이건 아무도 모르고 있는 일이 확실할 것이다. 그리고 싸이가 콘돌의 눈에 어떻게 에이션트 급을 뛰어넘는 존재로 비추어 졌을까? 싸이는 그저 마신 발킬마와 대자연의 기가 봉인된 마령석의 기운을 흡수한 것뿐인데.....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 지금 이 작은(?) 동굴 안에서 순식간에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헤비 워커들의 실종 사건 때문에 발칵 뒤집어진 이쟈벨 여왕의 요새엔 지금 어수선한 분위기가 고조가 되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쟈벨 여왕의 명에 따라서 어쩌면 고의적으로 실종 사건을 내고 헤비 워커들과 같이 사라진 흑마법사 밀란을 뒤쫓기 위한 추적대가 긴급 구성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이쟈벨 여왕은 지금 추적대의 선봉 역할을 맡은 우라노스를 향해 붉게 화가 치민 눈동자를 보내며 이를 지긋이 깨물었다. "네 놈들이 반드시 되찾아 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는 똑똑히 알고 있겠지?" "넵. 여왕님!" 이구동성으로 울리는 그들의 우렁찬 대답소리에도 이쟈벨 여왕의 복잡하면서도 화가 난 심기는 결코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가라. 가서 그 사악한 블랙 일족 놈을 산채로 반드시 내 앞에 대령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시에는.........." 화르르륵. 긴 머리로 추정이 되는 여왕의 머리카락들이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마구 날리듯이 허공을 향해 도약을 하는 모습에, 여왕의 든든한 호위 기사 우라노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화가 난 여왕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지금 자신이 명받은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피부를 통해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우라노스였다. "그럼....소신들 반드시 명을 완수하고 돌아오겠나이다."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돌아서는 우라노스의 눈가엔 지금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살기가 어리고 있었다. 쿵쾅. 쿵쾅. 찌그덕.....철푸덕. 이 무슨 소리인가? 갑자기 지하의 동굴 안에서 들려오는 무언가 짓밟히고 있는 듯한 소리는 무척이나 귀에 거슬리는 타격음들을 실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것들이 감히.......죽어!!" 퍼퍼퍼퍽. 쿵쾅. 쿵쾅 꽤나 오랜 시간동안 자해된 폭력 앞에 침음을 삼키며 서있는 존재들의 답답한 마음은 지금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흐음. 이를 어쩐다........쩝' 갈리아스 옹은 갑자기 동굴 안을 메아리로 꽉 채운 이 다소 살벌한 타격음에 이마에 작은 주름살을 만들면서도, 정작 그 원인 제공자인 자신은 현재 누군가를 향한 시선에 뜨거운 애정을 담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자처한 일이라서 어떻게 말릴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갈리아스 옹이 지금 나서서 말리기에는 조금은 어폐가 있었다. "크윽.....주인님........제발........" 제일 먼저 폭행을 당해서 동굴 벽에 처박혀 있던 제우스가 일어나 내뱉는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돌변한 싸이의 폭력 앞엔 시커먼스 군단 전체가 온 몸에 커다란 상처를 가득 담은 채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었다. "우씨. 이것들이 귀엽게 봐주니깐 내가 우습게 보인다 이거지? 이썅" 태어나서 첨으로 욕설을 입에 담은 싸이의 과격 폭주 모드엔 갓 생명을 부여받은 시커먼스 군단으로썬 매우 참기 어려운 두려움이 일었다. 맨 처음에 주인이자 창조주가 한 말은 제우스로써도 이해가능하고 반드시 지킬 사명감이 있었다. 또한 그런 말들을 내뱉은 저 얄미운 영감탱이도 어느 정도 봐 줄만은 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주인의 터무니없는 주문엔 제우스와 지금 열심히 짓밟히고 있는 시커먼스 군단 전체가 기겁을 하게 만들었다. 세상에나.......욕심도 많지. 오직 단 한 명의 주인만을 맞이할 수 있는 자신들에게, 골렘들의 신이라고 전해지는 골렘의 초기 창시자 로버주의 맹약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기분대로 따르라니........더구나 모든 시커먼스 군단 전체에게 자신만을 주인으로 삼으면서 나중에라도 괜찮은 놈이 나타나면 그 놈들에게 자신들을 임시로 빌려주겠다니...........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창조주의 너무 과한 욕심이었다. 물론....주인에게 까부지 말자~! 개기지 말자~!! 이 두 가지의 사항을 절대로 잊지 말자~!!! 까지는 좋다 이거다. 하지만 신성한 로버주의 맹약을 거부하면서까지 자신만을 섬기라니.....그것도 한 두 대도 아니고 25대 전원이........ 문득 제우스는 이런 말을 꺼낸 갈리아스 옹을 죽일 듯이 쳐다보았지만, 창조주의 할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괘씸한 인간에게는 절대로 덤벼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자리를 튼지 이미 오래라서 현재 제우스는 시꺼멓게 탄 속을 부글부글 혼자서 삭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주인이 자신을 이쁘게 봐줘서 주인 전용 헤비 워커로 임명된 사실에 뿌듯한 자부심이 생긴 제우스로써는 지금도 몇 시간째 그 육중한 주인의 몸에 짓밟히고 있는 부하들에게 작은 동정심이 물씬 생겨났다. 그런 제우스의 동정이 인 다음에도 얼마나 더 주인에게 짓밟혔을까? 이제 하나 둘 나가떨어지기 시작하는 시커먼스 군단들이 제법 수그러진 태도를 보이자, 그제야 거친 숨을 고르며 나오는 싸이의 부드러운 듯 하면서도 어딘가 무거운 뼈가 실려 있는 말이 그 뒤를 따랐다. "후아~후아~. 이것도 무지 힘드네........흥. 하지만 건방지게 다시 한번만 더 내 명령을 우습게 여기는 놈은 내가 반드시 포를 떠서 잘 말려 버릴 테니깐 명심해. 알았어?" 끄떡. 휙휙휙. 열심히 고개만을 끄떡이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을 보내는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시커먼스 군단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싸이었다. 어째 몇 년 사이에 제법 큰 듯한 몸을 자랑스럽게 선보이는 손자의 모습에, 어처구니없게도 미소가 어린 갈리아스 옹은 지금 놀란 속을 안정시키기도 전에 쿵쾅거리며 자신에게 걸어오는 손자가 내심 자랑스러웠다. 허나 손자의 다소 뿌듯한 미소가 걸려 있는 얼굴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잔인하면서도 사악하게 보이는 것은 그로썬 어쩔수가 없었다. '세상에 살다살다 내 저런 땡깡쟁이는 첨 보는구마. 허허' 이건 더 이상 할말이 안생길 정도로 마구 떼를 쓰면서 폭력까지 더불어 선사하는 손자의 모습에 할말을 잃은 갈리아스 옹이 할수 있는 최대한의 말솜씨였다. 하긴 자그마치 반나절동안이나 벌어진 시커먼스 구타 사건은 아마도 이 헤비 워커를 기획하고 개발한 학자로써인 갈리아스 옹에겐 무척이나 신선하면서도 놀라운 또다른 발견일 것이다. 언제 어느 때 생겨난 것인지는 용족들의 기록에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이 대륙에 나타난 스톤 골렘들은 그 효용가치가 무한했다. 몸 안에 제법 큰 마령석들을 집어넣고 그 속에 주인의 명령을 들을 수 있게 단순한 명령체계를 심어 놓고선 부려먹을 수 있는 이 스톤 골렘의 탄생은 정말로 획기적인 변화를 이곳 물질계에 가져 왔다. 그후부터 제법 유명한 던젼이나 유물들에겐 항상 지킴이로써 골렘들이 그 모습을 들어냈으며, 엄청난 마법실력을 지닌 대 마법사들이나 드래곤들에겐 골렘 만큼이나 든든한 가디언이 따로 없었다. 허기에 이런 스톤 골렘들을 메탈로 구상해서 그 속에 한층 업그레이드 된 메모리 석을 저장한 뒤, 그 메모리석에 공격 기술까지 첨부한 갈리아스 옹의 대발견엔 대륙의 역사가 다시 한번 요동을 치면서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골렘들에게 신성력으로 의지를 심어주면서 행하는 절대 마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절대 마법엔 언제나 골렘들의 신이자 창시자라고도 전해지는 로버주의 맹약이 들어가야만 했다. 그런 맹약을 통해서 스스로 의지를 지닌 골렘들이 탄생을 했고, 골렘들은 항상 그리고 언제나 오직 단 한 명의 주인만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헌데 지금 폭력 앞에서 이런 신성력을 무시하고 뒤따르겠다는 골렘들도 문제였지 만, 그런 강철덩어리들에게 땡깡을 부리면서 자신만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떼쟁이 손자의 모습은 더욱 가공스러웠던 갈리아스 옹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한 단 한마디. "싸이야. 헤비 워커들은 오직 단 한 명만의 주인을 섬기는 맹약이 있단다. 그러니 다른 놈들은 제켜두고 저 놈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가지려무나." 이 단 한마디에 갑자기 돌변한 손자의 홰까닥 눈빛모드는 전 헤비 워커들에게 이토록 무자비한 폭력을 안겨 준 것이다. 말 그대로 '너희들 전부 내 부하 될래? 아님 맞을래?'..............!! 오직 이 한마디뿐이었다. 멍하니 창조주의 요상한 명령을 접한 시커먼스 군단들이 어영부영 하고 있을 때부터, 열 받은 모습으로 꼬리부터 온 몸을 이용한 강력 태클과 그 뒤를 따르는... 살짝 몸을 띄워서 마구 짓밟아 버리는 잔인한 폭력은 이 신성해야만 할 맹약을 단숨에 이토록이나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러니 어찌 갈리아스 옹이 또 다른 역사의 파란을 예고하는 지금 손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고 핏줄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모든게 용서가 되는 또다른 현실 속에 갇혀버린 갈리아스 옹이었다. "허~ 싸이야. 이제 좀 기분이 풀렸느냐?" 아직도 씨근덕거리는 손자가 안쓰러워서 말을 건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우웅..........휴우~. 할아버지!!" 답답한 듯한 손자의 긴 한숨에 절로 놀라게 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응? 왜? 무슨 일이 또 남았니?" "아뇨. 단지.....저 녀석들 정말로 쇠대가리 맞죠?" "으잉? 그건 또 뭔 말이냐?" "쳇. 그토록이나 맞았으면 이젠 고분고분해야 될 놈들이 아직까지 눈빛이 살아있는게 조금 맘에 걸려서요. 원래 쇠대가리들은 머리에 확실히 새겨주면 평생 잊어먹지 않는다고 했는데......한번 더 해줘야하나?!" 헉. 심장이 다시 지 멋대로 광란의 댄스를 추기 시작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아무리 다시 확인해도 지금 시커먼스 군단들의 눈빛엔 하나같이 잘난 주인을 만나서 무지 행복하다는 미소가 어려 있는게 눈에 보이는 갈리아스 옹이기에, 지금 손자의 말속에 담긴 "다시 한번 저 놈들 정신교육을 시켜 봐?" 하는 뜻을 알아채지 못할 그가 아니였다. 그리고............ '헉. 저 놈 정말로 잔인한 놈이다. 어떻게 그리 짓뭉개며 잔인하게 팔다리를 뜯어 버리는 일을 서슴없이 거행하던 놈이 충성을 맹세한 놈들의 눈빛 하나가 맘에 안 든다고 저런 말을.........' 가슴에 서늘한 한기가 지나가는 콘돌이었다. 더구나 아직 어린 자신이기에, 지금 도저히 상대하기 힘든 수준의 존재가 내뱉는 말에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이자 가식이리라......!!!. 오직 솔직 담백만을 추구하는 콘돌로썬 눈앞의 존재가 지닌 잔인하면서도 사악하기까지 한 생각에 치를 떨면서, 역시 자신이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은둔자로 있는 동안 건방지게도 드래곤들이 이곳 물질계의 물을 많이 흐리게 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아직까지는 저 눈앞의 사악한 드래곤에게 함부로 덤비지 말자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어린 콘돌이기도 했다. 번쩍. 작은 빛 무리가 생기면서 얼마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엉망진창의 동굴 안으로 누군가가 워프를 단행하면서 그 신비한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작은 빛들이 하나의 원으로 이어지고 그 원안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오자 빛 무리들은 금새 빛을 읽고 다시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흥. 여기가 맞군." 다시 한번 찬찬히 바닥에 남겨진 거대한 발자국들을 확인하면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자 귀염둥이였던 헤비 워커들의 흔적을 마침내 발견한 밀란은, 이내 그 거대한 발자국들 사이에 남겨진 또다른 육중한 무게를 지닌 존재의 발자국을 바라보면서 무언가 섬뜩한 예감에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이........이건...........뿌드득.....용서하지 않겠다......이놈들........뿌득" 감히 겁대가리를 상실해도 유분수지, 왠만한 에이션트급 드래곤들 정도는 몸보신으로 먹어치울 수 있는 자신에게 건방지게 도전한 존재들을 떠올리며 분노에 몸을 떨던 밀란은, 이내 생각이 정리된 듯 몸을 곤두세우며 흔적이 이어진 곳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초고속의 마법 비행으로.............. "레비테이션~~~퍼스타 잉글리안~~" 위이이잉.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움직임을 보이며 날아가는 밀란의 목표엔 과연 어떤 일행들이 있는지를 아직까지 미처 모르는 그였기에........... 조금은 밀란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왜 드는 것인지...........!!!. 콘돌은 눈앞에서 인간으로 변하는 존재를 보면서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렸다. '헉. 저......저런 가증스런 모습으로............." 어떻게 저리도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하다니......... 허....허탈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자신과도 비슷할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신한 존재가 과연 조금 전까지 그토록이나 눈에 거슬리면서도 조심해야만 했던 존재가 맞는가를 무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콘돌은, 다시 한번 눈앞의 그 존재에게 심각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아직까지 인간으로만 알았던 존재가 또다른 드래곤이라는 사실에......더구나 조심해야만 하는 존재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에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하고 덤비지 않기를 아주 잘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할아버지~" 청명하면서도 따뜻한 가족애가 넘실거리는 귀여운 악동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맑은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손자를 맞이하는 할아버지라는 또다른 드래곤의 얼굴에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가슴 뭉클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흑. 나도......저런 사랑을 받고 싶어......흑흑' 가슴이 메어 오는 콘돌과 예전에 가족이 없었던 존재의 환생체 앞에는 어느새 알 듯 모를 듯 인연의 작은 끈이 놓여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던 콘돌은 이제 인간으로 변신한 채 룰루랄라 걸음을 옮기는 얄미운 존재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쫓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 제 35 화 모든 생명체에게는 인연이라는 끈들이 존재한다. 단지 이걸 자아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존재들뿐이다. 그 이외에는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이 조금씩 다른 차이를 보일 뿐, 막상 대지에 두 다리나 네 다리를 뻗고 굳세게 디딘 채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게는 신이 내리신 고유의 인연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것이 전생이든 그 다음의 생이었든지 간에, 모든 생명들은 윤회를 바탕으로 태어나고, 자라며, 다시 죽는, 긴 윤회의 사슬 속에서 항상 이렇듯 끈질긴 인연의 끈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과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인간이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서 그 연인과 사랑을 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정말로 우연이었을까? 그건 결코 아니리라. 인간은 고작 백여 년 남짓 되는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무수한 인연들을 만나고, 그 끈을 우연이라는 단어에 합당하게끔 서로 보이지 않는 법칙을 세웠을 뿐. 신이 인간에게 내린 인연의 끈은 수만 년의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의 사슬에 따라 인간은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린 존재들을 신봉하며 선을 추구하는 자들은 선한 인연을....... 악을 추구하는 자들은 악한 인연을.........끊임없이 만들고 화해하며 풀어 나가거나 끝내는 거부하며 잘라 버린 채 이렇게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건 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짧으면서도 복잡한 인연의 과(菓)에 신이 동정심과 연민으로 던져준 작은 혜택이 바로 선과 악 이 두 가지의 마음이었으니......... 어쩌면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은 더욱 복잡한 인연의 끈들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선 과 악. 과연 이 두 가지의 마음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이 마음들의 한계는 또한 어디까지일까? 이는 바로 신들의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미증유의.....어찌 보면 간사할지도 모르는 두 가지의 마음을 하나의 몸 속에 담고 태어나는 존재들의 비애이리라. 신들 또한 자신들이 탄생한 배경에 자신들의 창조주이시자 유일신인 그 분의 수많은 고뇌가 바탕으로 깔려져 있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악마적인 본성으로 태어난 마신(魔神)들에겐 유일신이 고뇌를 하면서 자신의 맘속에 담겨진 사악한 존재들을 털어 버리고자 하는 맘을 먹는 순간 하나 둘 태어났으며, 이 땅의 수많은 피조물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가끔씩 그 피조물들의 불행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 생겨나는 우주의 조화와 피조물들의 행복들은 바로 유일신의 웃음 속에서 조화(造化)의 힘을 받아서 탄생한 것이다. 하기에 이토록 질긴 듯 하면서도 어찌 보면 단순한 인연들은 결코 신들이라고 해서 감히 자기 멋대로 피조물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닌, 우주의 조화를 몸 안에 담고 사는 피조물 그 자체의 순수한 마음과 그 속에서 싹튼 작은 호감에 따른 유일신의 선물이리라. 지금 자신이 추구하던 목표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한 불쌍한 영혼이 이런 인연의 끈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어느 누군가에게 원한을 품고 달려가고 있는 곳에는, 한없이 감미로운 봄바람을 맞으면서 오손도손 걸어가고 있는 두 조손이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멀리 떨어져서도 무언가 끌어당기는 듯한 인연의 끈에 충실한 작은 어린 새 한 마리가 지금도 연신 복수를 하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기도 했다. "쿠헤헤헤헤. 그래서 내가 그 망할 놈의 날개를 똑 분지르고......." 열심히 손자에게 자신이 어떻게 할머니를 만났는지를 주절주절 고하는 갈리아스 옹의 넓은 품안에는 이제 어느새 열살이 넘어 버린 싸이가 안겨져 있었다. 또한 갈리아스 옹이 언제 준비를 했는지 지금도 연신 입안으로 넘어가는 맛난 열매들을 씹으면서 싸이는 할아버지의 친구 아들 작살내기 한판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쿡쿡쿡. 할아버지도 참.....정말로 대단하신 분이야. 아무리 절대자의 권위를 지닌 에이션트급에 올라섰다고 해도, 성룡으로써 이제 겨우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한참 크는 새싹을 마법도 아니고 물리적인 힘만으로 제압을 하셨다니..... 그리고......그게 그리도 자랑스러우신 걸까?' 물론 재미도 있고 신나게 말하는 이도 하나뿐인 할아버지라는 분이시기에 더욱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싸이였지만, 남들이 이런 챙피한 일들을 들을까봐 무지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당연히 깊은 산중처럼 보이는 곳에 누가 있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낮엔 새가 듣고 밤엔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들으며 자라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어리지만 속은 말짱한 어른인 싸이었다. 그동안 아직 어린 자신의 몸에 익숙해져서 어리광도 많이 피웠지만 역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홀로 깊은 사색과도 같은 수련을 이제 막 거치고 나온 존재답게 지금의 싸이 모습엔 예전의 이십대 초반에 온갖 고생을 다 경험한 이의 눈빛이 새롭게 담겨져 있었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에겐 지금 싸이가 마음 쓰이는 일에 대해 조심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절대자의 힘을 가진 존재가 가지는 특유의 그 뻔뻔함. 후안무치가 달리 나온 말이 아닌 듯 갈리아스 옹은 전혀 껄끄러울 것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기를 두고 조소를 날린다? 그건 곧바로 애꿎은 생명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확고부동한 의지가 있기에, 전혀 무섭거나 두려울 것이 없는 행동들이 그의 긴 용생 만큼이나 자리를 굳게 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이 두 조손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지만, 실상은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싸이의 문제인 것이다. 싸이는 분명 십년이라는 긴 시간들을 자기 홀로 아공간에서 보내고 나왔다. 헌데 왜 지금 싸이의 몸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 그건 갈리아스 옹조차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 일이었다. 아마도 절대자의 힘을 지닌 존재답게 "뭐 까짓거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라도 있었기 때문일까? 지금 갈리아스 옹은 품안에 폭 안기는 손자가 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여겨지고 있었다. 허나,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 고로, 그 인간의 영혼을 담고 있는 몸도 그 크기에 맞게 커져야만 했다. 헌데 지금 이 두 조손은 그런건 모두 무시하고 있으니........ 앞으로가 조금 기대가 되는 조금은 어리둥절하지만 뭔가가 기대가 되는 순간들이었다. 밀란은 열심히 비행 마법을 실행하면서 점점 까만 점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원수덩어리들을 발견하곤 이내 멈칫거렸다. 왠지 찜찜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길함이 그의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었다. "뭐지? 저 놈들 인간이 아니였나?" 유심히 눈앞에 사악한 적을 살피면서도 그의 분노를 넘어선 위기감은 절대로 눈앞의 적을 건드리지 말라고 연신 위험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전에 추적을 시작하면서 동굴안에서 보인 거대한 발자국은 드래곤이 맞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남겨진 성인 남자의 족적은 지금 밀란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음. 분명히 갓 성룡을 넘어선 드래곤이었는데.......그럼 저놈들은 뭐지?' 알쏭달쏭한 느낌에 사로잡혀 한동안 제자리에서 깊은 사색에 잠긴 밀란이었다. 허나......용서할게 따로 있지. 저런 하찮은 놈들을 보고선 겁을 먹고 용서한다는 것은 블랙 드래곤으로써, 또한 이젠 당당한 유마계의 일원이 된 자신으로써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떠오른 밀란이었다. 달리, 이쟈벨 여왕의 휘하로 들어가서 온갖 시달림과 숱한 모욕을 받으며 그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이 힘........!!! 영혼까지도 강해진 듯한 바로 이 어둠의 힘에 실린 블랙일족의 속성이자 진정한 마계의 힘을 얻기 위해서 그 지독한 수모까지 당한 밀란이었기에 , 점점 다가오기 시작하는 간악한 도둑들의 등을 바라보면서 내심 이를 악무는 블랙 드래곤 밀란이었다. "쿠하하하하핫~ 게 섰거라~! 이놈들...........!!!" 역시 불안감이 생길 땐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러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다는 걸 느끼게 된다. 밀란은 멋지게 드래곤 피어를 내지르며 거의 10m의 거리를 두고 사악한 적들의 앞에 그 모습도 당당하게 이를 부득 갈며 나타났다. "응? 넌 뭐야?............아니......넌.......뿌득"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드래곤 피어 속에 실린 힘의 부피를 느끼며, 어찌 자신도 모르는 에이션트급의 드래곤이 있을까 고민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자기 눈에 들어오는 칙칙한 검은 색의 로브를 뒤집어 쓴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냄새가 아주 고약하다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 갈리아스 옹이 유심히 바라본 상대의 몸에선 마수들보다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블랙 드래곤을 간만에 만났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니 이 즐거운 대화에 나타난 불청객에게 자신도 이를 부득 갈수 밖에 없었다. 근데......이 불청객이 한다는 소리가...........!! "이.......이 도둑놈들.........결코 내가 용서할 수 없다." 황당한 불청객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갈리아스 옹은 이내 눈앞에 나타난 로브의 사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흥. 고작 그 시커먼 놈들을 몇 대 만들었다고 감히 날 보고 뭐? 도둑놈? 이 망할 놈이............" 화르륵. 눈가에 불이 솟구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리고 이런 반응에 더욱 어이가 없는 밀란이었다. "뭐야? 내가 그리도 공들여서 만든 헤비 워커들을 몽땅 훔쳐간 놈이 지금 어디서..........?!" 사실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개발한 헤비 워커에 남다른 자부심을 지닌 인물이다. 허나 용족 사회가 발칵 뒤집어 질 정도로 대형사고가 생겨서 그동안 잠잠하게 살아가고 있었건만,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이 자신의 피조물이자 창작물을 도용하고도 모자라 고작 25대밖에 못 만든 하찮은 블랙 일족놈에게, 이런 도둑놈이라는 말을 위시해서 자신을 깍아 내리며 무시하는 말을 듣고도 얌전히 참을 갈리아스 옹이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다른 일족들의 눈에 눈앞의 블랙일족이 발견되었다면 저 놈은 절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 돌아갈 생각을 버려야만 했다. 허나 자신이 그토록 심하게 방황을 하게 된 이유가 같은 일족의 죽음 때문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망치는 방황을 하고 있던 그였기에, 잠시 화를 삭이며 되도록이면 저주받은 영혼을 지닌 놈들이라고는 해도 같은 동족인 허접한 놈과는 싸우기가 싫었다. 이는 영혼까지 마족들에게 팔면서 암흑의 힘을 추구하던 일족의 후예가 바로 블랙 일족이기에, 모든 드래곤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잡아서 죽임을 내려주던가 해야겠지만, 이미 오랜 세월을 은둔과 방황으로 제법 긴 시간들을 보낸 갈리아스 옹이었기에 가급적 일족과의 목숨을 건 혈투는 피하고자 했다. 허나 먼저 걸어오는 싸움에 물러설 절대자가 아니였다. 비록 영혼을 팔아서 힘을 얻은 존재라고는 해도, 자신은 이미 오래 전에 에이션트 급으로 올라선 몸이고, 한낱 어둠의 힘을 통해서 힘을 키운 존재에게 겁을 집어먹거나 쫄 갈리아스 옹이 절대 아니였다. 그리고 행동은 말보다 더 빨랐다. 이미 상대가 고위급 마법을 사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에 아직 핏덩이에 불과한 손자를 위해서 갈리아스 옹이 택한 싸움방식은 바로 육탄전이었다. "흥. 감히 내 손자가 있는 자리에서 고위 마법을 난사하고자 하는 속까지 시커먼 네 놈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놈~~~~!! 트렌스포메이션!!!" 절대자 에이션트 급다운 용언 마법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얀 막이 생기면서 혹시나 있을 적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하고 품안의 손자도 보호하는 일거 양득의 변신 마법을 실현한 갈리아스 옹이 하얀 빛무리 속에서 그 거대하면서도 어딘가 성스러워 보이는 거체를 꺼내기 시작하자 밀란은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헉....어찌 에이션트급을 넘어선 드래곤이..........." 왜 피부와 본능적 예감에서 다급하게 위험 신호를 보냈는지를 이제서야 똑똑히 알게 된 밀란이었다. '제기랄......지금 이 모양으로 어찌............결국엔 그것뿐인가?' 절대로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또한 자신이 명령을 받고 제작한 물건들을 잃어버린다면........ 아마도 마계의 마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만이 그를 기다릴 것이다. 결국 득보다는 실이 많은 싸움이라곤 해도 목숨이 걸려 있는 일에서 물러설 수는 없는 절박한 심정의 밀란이었다. 결심은 행동으로 옮기는데 가장 중요한 명령어다. 무언가 뇌리 속에 작전이 구상되는 순간 이미 밀란도 그 시커먼 특유의 비늘로 전신을 무장한 육체로 변신을 하면서 나름대로 눈앞에서 턱하니 자신을 과시하는 존재에게 자신의 눈빛에 강한 의지를 실어서 보냈다. "태초의 어둠이여 그대의 종인 나에게 힘을......블레임 스트리처!" 암흑의 열화마법으로 짧은 두 팔에 마나를 모으고 그 마나들을 길쭉한 손톱모양으로 만든 밀란은 곧이어 날아올 상대의 고위 마법에 대응을 하고자 두껍게 몸밖으로 보호막을 쳤지만, 이상하게도 상대는 자신을 보면서 그저 냉소만 짓고 있었다. 왜지? 갸우뚱. 제법 육중한 몸에 걸맞는 눈동자로 상대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밀란은 이내 자신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다. '크크크. 바로 저 것이 오늘의 승패를 좌우하겠군.' 오직 이겨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밀란의 눈엔 아직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싸이가 아주 감사한 신의 축복 같아 보였다. 그리고............ 쿠랄랄랄랄랄랄. 쿵쾅쿵쾅. 뿌득. 뿌드득. 거칠게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힘 겨루기에 들어간 두 거대 드래곤들이 거칠게 힘자랑을 하는 숲속은 어느새 작은 공터의 수준을 넘어선 넓은 황무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참동안이나 육탄전을 벌리고 있는 두 존재들은 핏발 선 눈동자로 상대를 향해 브레스를 마구 뿜어 대기 시작했다. 짧은 팔로 상대를 부여잡고 머리를 한입에 물어 삼켜 버릴 듯이 아가리를 쩍 벌린 드래곤들의 입에서 각각의 브레스가 터져 나오자, 그 두가지의 상반된 기운이 만나는 곳엔 지금도 독에 중독된 대지와 칼바람이라고도 불리는 차가운 얼음과 그속에 동반된 바람의 칼에 의해 대지는 온통 짓뭉개지고 있었다. '헉. 할아버지....' 난 지금 어찌 할 바를 몰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제길. 나도 한 힘 하는데....... 그럼 뭐하나. 아직 새파란 핏덩어리라서 싸움은 절대 무리라면서 극구 나서기를 말리시는 할아버지의 명령 아닌 명령에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 손을 꼭 쥐고 상대방의 독 기운에 점점 물들어 가는 할아버지의 은빛 동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제길....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끄응.' 아직 어린아이의 몸이니 물리적인 힘으론 한참 부족하고 그렇다고 인간이 내가 갑자기 괴물로 변한 듯한 기분을 가지게 만드는 드래곤의 몸으로 변신하고자 하니 이것도 영 찜찜하고........ 물론 할아버지가 나한테 무조건 이 원안에서 나가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따르려면 이렇게 멍하니 싸움구경만 해야 하는 건데........ 역시 난 이런 구경거리를 보고만 있기엔 성질이 온순하지 못해.' 생각이 일면 당연히 몸은 따라가는 법. 싸이는 이내 에이션트 드래곤이 직접 쳐 논 방어막을 빠져 나와서 치열한 혈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갈리아스 옹의 힘 앞에 수세에 몰려 있던 밀란의 눈동자가 빛을 발하는 것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밀란은 역시 에이션트 급을 넘어선 고룡이라고도 불리는, 절대자의 칭호에 어울리는 한 드래곤의 파워를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크윽......역시 드래곤의 절대자로 부리는 경지에 오른 놈답군. 흐윽........' 상대의 거대한 발톱엔 지금 자신처럼 길지는 않지만 제법 날카로운 마나가 실려 있어서, 그 날카로움으로 인해 자신의 두꺼운 비늘을 뚫고 들어와 몸에 상처를 입히며, 몸 안에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낯설은 마나들의 충돌에 정신이 혼미해지던 밀란이었기에, 이윽고 밀란은 자신의 실책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부딪혀선 안되는 존재이건만......' 문득 어릴 적부터 신성력과 상극인 블랙 일족에게 제일 조심해야만 할 실버와 골드 일족을 누누히 강조하시던 부모님이 망막에 떠오른 밀란은, 이미 발을 디딘 채 벗어나지 못할 곤경을 탈피할 무언가를 급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같은 동급의 힘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상대의 거대한 힘 앞에서, 어둠은 빛과 반대되는 속성이라서 정석대로 힘을 모으지 못한 존재인 자신에겐 지금 최소 1.000살 이상 차이가 나는 갈리아스 옹이 육체적으론 무지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붙자니 이미 바짝 밀착된 상태에서 상대를 떼어놓고 다시 시작하기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고, 마법으로 붙는다고 하더라도 두 가지의 속성을 지닌 존재에게 오직 마계의 힘인 어둠의 힘 만으론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밀란이었다. 하지만.........역시 신은 자신의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없이 어린 헤츨링으로 추정이 되는 존재가 지금 막 힘이 다해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자신의 눈에 띄게 되자, 밀란은 젖 먹던 힘까지 몽땅 쏟아 부으며 갈리아스 옹의 곁에서 떨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일심(一心)은 무극(無極)이다. 무극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뜻함이다. 왜냐면, 무의식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의 세계이기에, 인간의 모든 이성적인 행동들은 그 무의식의 세계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또한,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상대의 이성적인 행동들만을 보이게 된다.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들은 상대의 모든 행동들을 항상 이 무의식에서 뻗어 나온 결과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이는 신이 애초에 인간을 만드시면서 주신 또 다른 능력이었기에, 자신의 삶을 살면서 신이 주신 두뇌의 채 5%로도 사용 못하고 죽어 가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러한 경지를 알아 볼 수가 없다. 하기에 무의식의 세계에서 시작된 이성적인 행동들은 스스로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의 눈에 이성적인 행위로 표출이 되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바라보는 인간들의 행동들은 하나같이 어리석기 그지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들은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서 극히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허무라는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만들게 되고 그 속에 빠져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짓을 감히 행하는 것이다. 가끔씩 이러한 행위들을 뛰어넘는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그나마 신이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가지게 된 기대감에 조금이나마 충족을 주고 있었다. 이런 위대한 존재들을 일컫는 말이 바로 성인(聖人)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을 곧고 바르게 만들어 결국엔 무극의 경지에 오른 존재들이다. 즉 곧은 마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항상 중요한 의미로 두게 만들며, 그러한 행위들이 결국에 가서는 무극. 즉 무의식의 세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하나의 마음으로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순간 성인(聖人)은 곧 지고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 싸이가 있다. 자신의 존재감에 대해 얼마 전에서야 비로소 확실한 의미를 가지게 된 아직은 어린 싸이밸리 카빌라 폰 메르카. 그는 현재 자신의 이성은 용납을 못하나 상대가 뻗친 마수로 인해서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꾸만 보내는 신호에 따라, 결국 이성으로의 자기 합리화를 거치며 표출된 행동으로 어리석은 우(愚)를 범하는 한 불쌍한 존재가 된 싸이가 지금 심각한 장소에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암흑의 힘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상대에 대해 의념을 조절하는 흑마법을 수천년에 걸쳐서 익힌 밀란의 마법에,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지를 사로잡혀 버린 어린 싸이를 뜻함이다. "할~배.....할~매~~~~~에!!!" 푸른 숲 속에서 왠 사내아이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런 소년의 앞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수많은 몬스터들이 지금 사내아이를 빙 둘러싼 채 눈을 희번득 거리고 있었다. 사내아이는 이 수많은 중. 소형 몬스터들이 자신을 해꼬지 할까 바 두려운 나머지 지금 손에 든 긴 작대기를 붕붕 휘돌리며, 자신의 뒤쪽에 있는 곳으로부터 자신을 반드시 지켜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갈리아스 옹은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지금 온몸에 난 심각하기 그지없는 상처 때문에 매우 거동이 불편했다. 더구나 그 원인이 손자를 지키던 와중에 생긴 일이라서 지금 현재 그는 느긋하게 마누라한테, 그것도 정말로 오랜만에 완벽에 가까운 풀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물이 먹고 싶으면 냉큼 달려가서 떠온 뒤 직접 입에다 친절하게 넣어주고, 과일이 먹고 싶으면 딸이 쪼르르 다가와선 사근사근한 손으로 안마를 해주면서 눈치껏 먹여주고 있었다 너무도 단란하면서 행복한 지금의 이 시간들은 자신의 긴 삶 중에 손가락에 꼽힐 정도의 매우 귀하면서도 진한 행복이었다. 헌데 그런 갈리아스 옹의 귀로 느닷없이 들려오는 손자의 목소리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자, 갈리아스 옹은 언제 자신이 아프다고 했냐는 듯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침대여! 잘있으라 를 굳세게 외쳤다. "감히....이번엔 또 어떤 정신나간 놈이 우리 싸이를.........뿌드득." 화가 나는 순간 그의 눈앞에 떠오르는 화면은 바로 얼마 전, 수련이라고는 뭐한 귀여운 손자의 짧은 수면기를 마치고 집으로 룰루랄라 돌아오다가 만난, 재수도 더럽게 없어 보이는 싸가지 없는 블랙 일족 놈에게 당한 상처가 욱씬거리며 쑤셔우자, 그날의 악몽이 또다시 떠오른 갈리아스 옹의 눈가엔 과거의 푼수덩어리 갈리아스 옹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총명한 눈빛이 빛을 내면서 그 뒤를 줄기줄기 흘러 내려오는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바로 그 문제의 날. 번쩍. 눈앞을 가리고 있던 하얀 막들이 사라지자 싸이는 이내 할아버지와 싸우고 있는 존재에게서 난생처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지? 왜 갑자기 오한이 드는 걸까? 겁이 나냐고?' ......도리도리....... 지금 이 상황에서 겁먹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더구나 눈앞에 보이는 시커먼 드래곤의 덩치와 자신의 덩치를 비교해봐도 언 듯 비슷비슷해 보이기에 절대로 겁먹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헌데.....왜 자꾸만 소름이 끼치는 건지....... 그 순간이었다. 자신이 받고 있는 이 끈적거리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불쾌해서 고개를 숙인 게 싸이의 실수라면 실수요. 흠이라면 흠이었다. 번쩍. 분명히 할아버지의 손에 잡혀있던 시커먼 블랙 일족이 느닷없이 워프를 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나자, 주위가 이내 컴컴해진 착각에 고개를 들던 싸이는 어느새 자신을 움켜쥐려고 내려오고 있는 상대의 기분 나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윽.,디러....' 허나 이런 생각은 이내 쏙 들어가야만 했다. 덥썩. 꽈악. 너무 방심한 탓이었다. 갑자기 자신을 향해 상대가 이동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싸이였고, 갈리아스 옹 또한, 적의 꼬리가 날아오는 것을 똑같이 꼬리로 막다가 잠시 손에 힘이 빠지자 느닷없이 상대가 눈앞에서 이동을 한 순간이었다. "음하하하핫..........쿠케케케케.........." 무엇이 그리도 통쾌할까? 밀란은 지금 눈앞의 새끼손가락보다도 더 작은 존재를 왼손으로 꼭 움켜쥐면서 이젠 승리를 눈앞에 둔 자가 짓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쿠케케케케. 어떠냐? 이래도 계속 나한테 덤빌 테냐?" 흔들흔들. 몹시도 불쾌한 느낌이었다. 상대의 손이 앞으로 쭉 뻗었다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자, 그 안에서 숨이 콱 막힌 나는 왠지 속이 뒤집어 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윽....' 고약한 냄새가 온통 진동을 하면서 더욱 꼭 쥐는 상대의 악력에 온몸의 뼈들이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뿌드드득. 화르륵. 눈에서 불이 솟구친다. 내가? 아니 할아버지가.............!!! 이거 죄송해서 어쩌지...달리 할 말이 없다. 왠지 나 자신이 몽롱한 정신상태로 낯선곳에 처음 온 듯한 느낌이 자꾸만 속에서 치받는 무언가와 섞이는 듯한 불쾌감이 마구 생겨났다. 그러나 난 속에서 치받는 무언가를 꾹 누르며 할아버지를 눈으로 찾았다. 그순간 나와 시선이 마주친 할아버지의 눈빛 속에서 밝게 빛나는 저건..........?! 난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였는지.........더구나 쓸 줄 아는 마법이라곤 오직 먼지녀석들을 데리고 장난치는 일뿐인 나를........!! 갈리아스 옹은 느닷없이 사라진 상대가 손자의 뒤에 나타나서 그 흉측한 손에 손자를 움켜쥐며 짓는 미소에 절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기가 뻗쳐 나왔다. "크르르륵. 이 죽일 놈." 허나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상대의 조금은 큰 듯한 손의 움직임에 괴로워하는 손자를 본다는 것은 할아버지로써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흐흐흐흐. 몰랐지? 내가 너처럼 힘만 무식하게 센 놈이라기 보단 머리가 제법 똑똑하거든......쿠하하하핫.......순간이동마법이라..........이거 무지 좋구만." 할짝. 긴 혀로 추정이 되는 검붉은 혀로 손안에 쥔 물체를 핥는 밀란의 모습에 이마를 찡그리던 갈리아스 옹의 머리 속엔 지금 이순간 수만가지의 잡다한 방법들이 떠오르고 사라져 갔다. 그러나........무언가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단지 손자만 믿을 뿐이다. 자신의 초천재에 가까운 능력을 완벽히 물려받은 손자이기에, 갈리아스 옹은 왠지 손자의 똘망똘망해진 눈빛을 바라보며 손자에게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내 주었다. '그래, 우리 싸이가 누군데.....비록 저놈의 꽁수에 속은 것 같은데..... 금방 알아서 대처할꺼야. 아암. 당연하지. 내 손잔데...!!' 싸이는 싸이 나름대로 할아버지의 눈빛 속에서 자신을 염려하는 모습과 어떻게 하든 자신을 구출하려고 내심 갈등하는 모습에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허나, 상대의 긴 혀가 날름거리며 머리부분을 휩쓸고 지나갈 때엔 정말로 머리털이 온통 뽑힐 듯이 고통스러웠다. 크윽. 어떻게 하지? 정말로 난처한 상황이라 달리 뾰쪽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허나.........눈앞의 상황은 넋을 잃고 가만히 있을만한 분위기가 아니였다. 쿵쿵쿵.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거만하게 갈리아스 옹 앞으로 다가간 밀란의 왼손엔 싸이가 꼭 잡혀 있었고, 검은빛을 띤 다른 손은 어딘가 이상한 느낌의 피부들이 보였다. "크크크, 이 손의 재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제법 사악한 짓을 한 자답지 않은 태도였다. 그러나 그 말이 끝이 아니였다. 푸욱, "크윽.......이.....이건........." 갈리아스 옹은 순식간에 다가와서 자신의 단단한 피부를 뚫고 들어온 상대의 손에 어린 검붉은 막과 그 속에 있는 진정한 오른손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어떻게 지상최고의 존재인 드래곤의 강철 피부가 이리도 쉽게 뚫리다니... "크흐흐흐. 피오네.....이게 바로 그 신성력과 마력을 동시에 지닌 신계의 물질로 알려진 피오네이다. 크하하하핫. 맛이 어떠냐?" 상대가 잠시 방심한 틈을 이용해서 인질을 잡고 그 다음엔 상대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육체에다가 큰 상처를 낸다. 이건 어디까지나 끝이 뻔한 상황이었지만, 막상 억울하게 당해야만 하는 존재에겐 그런 허황됨은 잔인하게 현실로 다가온다. 갈리아스 옹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깟 놈이 설쳐봐야 굵고 단단한 자신의 마나로 둘러싸인 강철 피부를 뚫고 이런 큰 상처를 입히리라곤 결코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지금 상대의 의수로 보이는 손이 다가가고 있는 곳은 바로........... 두근. 두근. 꾸욱. "크으윽.......이 치사한 놈......또다시 저주받은 동족으로 치부되려 하다니......." "흥. 시끄럽다. 이 망할 자식." 퍼억. 쿠당탕. "그동안 우리 일족들을 사냥하면서 제법 즐거웠겠지?" "크으으윽" 파아앗. 파란색의 피. 너무도 선명해서 도저히 파충류의 피라고는 절대 생각 못할 피가 방금 뽑혀진 밀란의 손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피가 흘러나오는 곳은 바로 갈리아스 옹의 가슴부위였다. 지금도 연신 선명한 파란 피분수가 갈리아스 옹의 몸에서 일고 있었다. "크흐흐흐. 이제 드래곤 하트가 상처를 받아 잠시 마나의 혼동이 온 시간......크하하핫. 자~ 그동안 원한을 풀지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우리 블랙 일족의 복수다. 으하하핫. 축제의 시작이여. 빵빠레를 울려라...........레츠 파티~잇." 퍼버버벅. 쿠당탕. 쿨럭. 질끈 질끈. 휘이익. 쿠아앙. 역시 블랙 일족은 잔인했다. 이미 승리가 코앞에 있는 밀란이기에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더구나 방심하고 있던 상대의 가슴에 레드 드래곤 덕분에 잘려져 나가 새롭게 흑마법으로 재생된 오른팔을, 그것도 우연히 구한 피오네 금속으로 덧씌운 자신의 오른손이 있는 한 절대로 겁날 것이 없다. 이미 상대는 드래곤 하트를 살짝 움켜쥔 자신의 만행으로 인해 모든 마나들의 봉쇄가 자연적으로 몸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남은 건 오직 저 빌어먹을 단단하기가 지상 최고인 몸뚱아리뿐.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족의 원수이자 지긋지긋한 동족으로써의 자존심뿐인 저 놈을 가만히 두면 무척이나 억울할 것이다. 해서 밀란은 상대의 온 몸을 만신창이로 만든 다음, 자신이 잃어 버렸던 헤비 워커들을 되찾고 덤으로 저 놈의 크기만 무척이나 큰 몸뚱아리를 이용해서 또다른 발명품을 만들 생각에, 절로 신이 나 긴 꼬리로 상대의 몸을 난도질하면서 간간이 상대를 짓밟는 쾌감에 온 몸을 거칠게 부르르 떨었다. 헌데 갈리아스 옹이 블랙 일족의 진정한 원수가 맞나? 아마도...........그럴 것이다. 난 갑자기 나 때문에 이상하게 돌아가는 현장에서 적으로 추정이 되는 자의 손에 잡힌 내 몰골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할아버지........!! 너무도 심하게 다치신 모양인지 상대의 발길질과 꼬리질에도 미처 제대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신 채 마구 짓밟히고 있는 장면은, 정말로 이런 일을 가져오게 만든 내가 한심하다 못해 오로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마나로 형성된 칼날 같은 손바닥 안에서 내가 움직일 방법들은 전무한 상태였다. 이미 나 따위는 잊어버린 듯 할아버지를 마구 짓밟고 있는 적에게 내가 대항할 방법은 지금 이순간 너무도 당황해서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린 나에겐 어느 것 하나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은...... 갈리아스 옹은 지금 온몸이 말이 아니었다. 이미 짓밟히기를 얼마나 당했을까? 그 때깔 좋던 은색의 피부들은 마나들의 막이 사라진 다음부터 가해져 온 상대의 발길질과 꼬리질에 전부 벗겨지거나 구겨져서 이미 그 강철 피부라고 자부하던 드래곤 스케일 아래 연한 피부들에선 시퍼런 피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와 때를 같이해서 가슴부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분수 만큼이나 많은 피들이 대량으로 방출되어 바닥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더욱이 몸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피들 속엔 다량의 순수한 마나들이 뒤섞여 있었기에, 지금 대지는 금새 파란색의 물감을 색칠한 듯이 온통 질퍽거리는 진흙탕 속에서도 파란 피 속에 담겨진 마나들이 더욱 피 색깔을 영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크윽...제길.......조금.....조금만 더 있었다면......" 결코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아주 조금만 더 있었다면........허나 상대의 의수를 제대로 파악 못한 자신의 실수가 너무도 크기에, 지금 그가 몽롱한 의식 세계속에서 나름대로 세운 손자의 구출방법은 허망하게 하얀 재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갈리아스 옹은 매우 심각한 부상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달아 있었다. 드래곤 하트. 드래곤들에겐 정말로 중요한 곳이다. 그것이 드래곤들의 수명과도 직결되어 있기에 이보다 더 중요한 부위는 없었다. 헌데 지금 잠시의 방심과 자만으로 인해 그 드래곤 하트에 매우 심각한 부상을 입어 이미 몸 안에 쌓여 있는 거대한 마나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 갈리아스 옹이 지금 할 수 있는 방법들은............?! 그동안 긴 드래곤들의 역사 속에서 간혹 마나의 폭주로 이 세계를 온통 뒤죽박죽 시끄럽게 뒤흔들면서 난리법석을 떤 자들로 인해, 성룡이 되면 누구나 받게 되는 드래곤들 고유의 마나제어 마법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바닥에 몸을 눕히고 있는 자는 갈리아스 옹이 아닌 밀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아마도 이 대륙의 파멸일 것이다. 일찍이 마나의 폭주로 광룡이 된 자들은 하나같이 웜 급에 미치지 못한 자들이기에 그들보다 수십 배 뛰어난 고룡의 폭주라면......... 부르르.......정말로 끔찍할 것이다. 그나마 자동적으로 드래곤 하트가 마나들을 조율하는 그 기능을 잠시 세우고 스스로 자가 치유에 들어가고 있는 이 마나제어 마법이 아니었다면, 이 땅에서 살면서 졸지에 멸망으로 들어서게 될 종족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하기에 적에게 난도질을 당하고 있는 갈리아스 옹의 지금 마음은 미처 손자를 구출하지도 못한 채 이대로 생이 끝남이 내심 매우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손자는 이미 자신만큼이나 마나에 익숙한 존재이기에, 절대로 적의 손에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싸이야......미안하구나......이 못난.....할애비 때문에.........' 고통은 이제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죽음. 이 불안한 마음을 절로 가져다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떠오르면서 갈리아스 옹은 이제 흐려져 가는 눈으로 손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시선에 적의 손에 쥐여진 손자의 얼굴보다 먼저 들어오는 작은 물체가 있었으니....... 손자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고개를 든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눈에 자신의 마지막을 장식해 줄 적의 긴 흑색의 꼬리와 그 사이를 쏜살같이 파고드는 무언가 하얀색의 깃털을 지닌 존재가 눈에 들어오자, 이제 자신의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다가 왔다는 것을 알고선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 콘돌은 자신이 노리고 있던 먹이감(?)이 엉망이 되어 가는 모습에 분개함을 느꼈다. 왜인지는 잘 몰랐다. 허나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 가는 불쌍한 먹이감은 어처구니없게도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아직 저 놈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데...... 콘돌은 잠시 머리를 갸웃거리며 눈앞의 상황을 다시 한번 지켜보며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 다음 콘돌이 택한 선택은 매우 이상한 결론으로 자신을 이끌고 갔다. '쳇. 아직 어린 녀석이지만 한심하기 그지없군. 자기 힘을 아직까지 각성 못한 건가? 한심한 놈. 그렇게 공포에 떨면서 눈앞의 가족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그리도 좋은건가?' 누군가에게 조금 화가 나는 콘돌이었다. 아니, 과거에 이 빌어먹을 대륙을 지키기 위해 직접 몸을 불사르며 불사조처럼 붉은 화염으로 적의 심장을 도려내기 위해서 살신성조(?)한 어미가 생각났기에 더욱 화가 난 콘돌이었다. 마치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된 듯한 착각과 함께, 적에게 어리석은 자신 때문에 어미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느낌에 그 누군가에게 더욱 화가 나는 콘돌이었다. 휘이익. 검은 색의 꼬리에 실린 경력은 아마도 흑마법으로 단련된 어둠의 마나이리라. 그런 칙칙한 마나가 더욱 반질거리게 윤을 내주는 블랙 드래곤의 꼬리가 주위를 어둠의 마나로 동화시키면서 갈리아스 옹에게 지쳐들 때, 콘돌은 드디어 온 힘을 다해 밀란의 꼬리부분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가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악." 붕조의 소리는 모든 드래곤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건 아마도 본능적인 움추림일 것이다. 아직 어린 콘돌이었고 그 힘을 이미 어떤 정신 나간 놈에게 빼앗겼기에, 더욱 원통한 콘돌이었다. 그런 분노 때문에 지금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콘돌의 비상음은 원한에 사로잡힌 자들의 영혼에 절로 강한 족쇄를 채우기 충분했다. 휘청, 밀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이 땅의 모든 드래곤들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여 물질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각 종족별로 용언으로 맹세를 하게 한 위대한 존재 콘돌. 그런 콘돌이 자신의 자식을 이 땅 어딘가에 남겨두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콘돌이 가장 무서운 이유가 바로 드래곤들의 천하무적과도 같은 육체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군데 약점을 콘돌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해서 밀란은 지금 등뒤로부터 전해져 오는 공포의 비상음과 그에 따라 반응을 하는.....자신의 온 비늘들이 쭈빗 서는 광경에 절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이건........." 놀라서 뒤를 돌아보는 밀란의 눈에 띄는 한줄기 하얀 빛무리와 그 속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머리 부위의 붉은 번개모양. 확실히 콘돌이 맞았다. 허나........... "이럴수가. 어찌 이리도 작고 어린놈이 나를............뿌드득." 놀람은 잠시였다. 그리고 갈리아스 옹에게 날아가던 꼬리가 잠시 주춤거리며 멈춰선 것도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작은 빛줄기가 너무도 작은 어린 새끼 수준인 콘돌이기에, 콘돌의 비상음에 깜짝 놀라 공포를 느꼈던 자신에게 더더욱 어이가 없던 밀란은 가볍게.......아주 가볍게 한손을 앞으로 내밀며 그 빛줄기를 살짝 밀어 버렸다. 화르르륵. '어둠의 불꽃이여........그와 상극하는 존재를 지옥의 불로 태우소서.........' 이미 머리는 이와 같은 마법의 구현을 시작하고 있었고, 헬 파이어라고 불리는 마법의 구현은 이미 앞으로 내민 밀란의 손끝을 타고 흰색의 빛줄기를 향해 날아가며 어린 콘돌의 몸을 검붉게 감싸기 시작했다. 아직 어려도 콘돌이다.......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기에 절대로 방심하고픈 마음이 전혀 없는 밀란으로써는, 당연히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마법 중 가장 빠르면서도 위력이 있는 7써클의 헬 파이어를 가볍게.....아주 가볍게 어린 콘돌에게 날려보냈다. 케에에에에엑. 콘돌은 유일한 드래곤들의 약점이자 자신들 콘돌 종족이 드래곤들의 힘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금새 머리로 떠올렸다. 성체가 된 몸으로는 물질계의 어떤 종족이라도 가볍게 꿀꺽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모든 힘을 빼앗겨 한없이 나약하기만 한 어린 존재인 자신이었다. 그런 어린 몸을 지닌 콘돌이 택한 방법은 바로....... 지상최강의 단단한 피부를 자랑하는 드래곤. 그들의 긴 몸에 걸맞게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길다란 꼬리. 그리고 그런 꼬리와 몸통이 만나는 부위. 즉 드래곤들의 퇴화된 배설 기관을 떠올린 콘돌은 그 부위를 향해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제길. 어쩔 수가 없잖아. 지저분하지만 어린 콘돌들이 가끔씩 부모로부터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서 단련하던 이 방법을 쓸 수밖에.....' 아마 자신도 어미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경험들을 여러 번 해봤을 것이다. 허나, 갓 태어나 미처 부화도 하기 전에 이 땅에 몰려온 존재들을 무찌르며 스스로를 산화한 어미를 둔 자신이기에, 콘돌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자신들 종족만의 비기를 그 짧은 순간에 떠올리며 급히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허나, 그런 콘돌을 가만히 둘 밀란이 아니였다. 이미 본능적으로 상대의 몸 안에 손쉽고도 거부감 없이 길고도 뽀족한 부리를 집어넣을 수 있는 곳을 향해 잠시, 자신의 처지(어린 새끼)를 잊고 날아가던 어린 콘돌은 이내 온 몸을 불태울 듯이 날아오는 검붉은 불덩이를 보곤 혼비백산했다. 키아아아아악. "안돼~!" 뜻밖에도 들려오는 목소리는 검은 색 도마뱀녀석의 손에 잡혀 있던 꼬맹이의 처절하리만치 가슴에 와 닿는 울부짖음이었다. 화르르륵. 콘돌은 그 비명소리와 함께 온몸을 태울 듯한 이 불길이 너무도 뜨거웠다. 아니 너무 쉽게만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지금 자신의 힘을 알고선 조심에 또 조심을 하던 콘돌이 왜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나섰는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단지 이상한 끌림이 있었던 것 뿐. 무언가 인연의 끈이 강하게 자신을 이끌면서, 앞으로 누군가를 지켜 줘야 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따른 의무감이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때문에 콘돌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본능에 따라 무작정 분노의 힘으로 시커먼 도마뱀녀석을 향해 달려 든 것이다. 헌데......... 상대가 자신을 아주 쉽게 고통과 분노의 불덩어리 속에 가두자 어린 콘돌은 너무도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하늘의 인연을 알리는 이 시작은 저 넓은 우주공간들 만큼이나 오묘했다. 이 뜻밖에도 전신을 감싸고 있는 고통을 산산조각 내듯이 들려오는, 아직 어린 꼬맹이녀석의 비명성과 더불어, 이상한 연대감이 생긴 콘돌은 점점 그 머리 정중앙에 있는 붉은 번개 모양의 깃털을 중심으로 누군가와 마치 하나가 된 듯한 착각과 더불어 머리속에 일기 시작한 의념이 콘돌의 잠재된 힘을 자극시켰다. 거의 몰입에 가까운 단계에 접어든 콘돌은 미처 자각하지 못한 본연의 힘을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본능이 잠시 자극을 하자, 온 몸을 감싸면서 깃털하나까지 철저하게 홀라당 태우고 있던 지옥의 불길은, 이내 콘돌에게 차차 향긋한 화염의 마나 냄새만을 전달하며 달구어진 피부를 싸늘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뭐지? 이런 느낌은........뭐야?' 잠시 어리둥절한 콘돌의 뇌깔림이었다. 싸이는 지금 온몸이 부서져 나가는 상황 속에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분노는 극에 달했었다. 단지 아직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들.......... 물론 그동안 꿈속에서 드래곤의 모습으로 아공간에서 힘을 축적하며 보낸 시간들은 몇 년이라는 긴 시간들이 되겠지만, 꿈속에서 영혼체에 가까운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과는 달리, 현실에서 그 큰 몸을 이끌고 다닌 것은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매우 짧은 시간을 보낸 드래곤 싸이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었다. 허나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 앞에 쓰러져서 눈빛이 흐려지고 있는 은빛 찬란한 드래곤은 이 땅에서 오직 단 한 분뿐인 할아버지이셨다. 그리고 이 사악한 느낌의 검은 드래곤은 자신이 잠시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선, 할아버지와 자신을 동시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게 하려고 하고 있다. 이 순간. 싸이는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강한 분노를 느꼈다. 같은 동족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본 이 존재와 그 검은 눈동자 속에 어리는 이상한 영상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하니 사로잡혀, 지금껏 그 이상한 영상을 뇌리 속에서 되새기며 누군가의 조금은 불쌍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는 어린 드래곤의 모습을 본 싸이였다. 그 이상한 영상 속에서 복수와 이상한 힘에 갈등하는 어린 드래곤이자 불쌍한 영혼에 잠시 동정심이 생겨 그 영상과 같은 또 다른 지금의 상황을 싸이는 마음속으로 그때처럼 비극을 불러일으키지 않기만은 빌고 또 빌었다. 그런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 어리고 불쌍한 검은빛 동체의 드래곤은 지금도 연신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싸이 자신이었다면..........그래서 일까? 지금 싸이의 멍한 눈동자 안에 어린 영상 속의 드래곤은 너무도 불쌍한 여린 영혼이었다. 때문에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상황들이 과거의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을 순순히 보내줄 것이라는 안일하면서도 잘못된 생각을 하던 싸이는 한순간 무언가 강한 끌림을 주는 존재의 위험을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확실히 고쳐먹어야만 했다. 동족.......불쌍한 연민이 느껴지는 밀란의 영혼을 싸이가 과연 봤다는 것일까? 그래서 순순히 가만히 있었던 것일까? 그런 것일까? 하지만 지금 싸이가 이를 악물면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을 때. 그때부터 바뀌기 시작하는 장내의 분위기는, 점차 분노가 어리는 싸이의 눈동자와 그 속에 담긴 미련들이 그동안 가슴속에 맺힌 한을 할아버지의 거구를 난도질하면서 조금씩 풀릴 것이라는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들이 처절한 외침과 함께 한순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싸이는 자신의 머리 속에 잠시 떠오른 누군가의 불쌍한 영혼을 느끼며, 그 영상 속의 인물이 잠시 뒤에는 자신을 놔주고 할아버지도 반드시 치유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순수하면서도 누군가를 믿었던 자신의 마음은 아직도 강한 미련으로 남아 자꾸만 누군가를 용서하라고 속삭인다. 잠시 그 진한 검은색 눈동자 속에 담긴 후회와 번민이 교차하는, 불쌍한 어린 블랙 드래곤 의 한 많은 모습을 동정하며 지켜보던 자신이었기에, 싸이는 본능적으로 이는 이 동정심을 이를 악물며 떨치려고 애를 썼다. 그런 싸이의 눈엔 점차 절대로 용서치 않겠다는 의지가 실리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뜻이 일면 몸이 움직인다. 간단하면서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 행동의 묘리였다. 싸이의 몸에서 얌전히 주인의 명을 기다리고 있던 마나들이 싸이의 전신을 힘차게 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밀란은 도저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히 작은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던 매우 군침 도는 귀여운 인질이었다. 또한 의외로 순순히 반항하지 않는 기특한 인질이기도 했다. 헌데. 왜 갑자기 쉽게 끝날 일들이 이토록 복잡하게 꼬이는 것일까? 분명히 지금 자신의 손안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건 대자연의 마나였다. 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마나가 움직이는 이 느낌은, 정말로 드래곤 하트가 콩알만하게 변신하기에 충분한 살떨리는 충격이었다. '헉.........이건 나조차도...........도저히.......이 거대한 기운을.........설마?!.'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축제의 마지막 순간들이었다. 휘이이익. 어디선가 강한 바람의 힘이 느껴졌다. 밀란의 거구를 한순간에 휘감고도 모자라서 뿌연 먼지를 일으키는 강한 회오리성 바람에 잠시 눈앞의 콘돌 꼬치구이를 감상하던 밀란은, 느닷없는 고함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인질의 거대한 마나의 움직임에, 절로 거칠게 숨쉬던 자신의 무언가가 뚝하고 끊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갑자기 생겨난 이러한 변화에 눈을 찡그리며 애써 사그러드는 투기들을 다독이며 다시 일으키려던 밀란은, 손에서 느껴지는 인질과 인질의 몸 주위에 형성되는 마나들의 요동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흥. 제깟 핏덩어리 헤츨링 주제에 이런 거대한 기운을....아닐꺼야. 아니야....?!" 본능을 애써 찍어누르며 자아최면을 걸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분명히 자신의 눈에는 어린 소년의 모습인 인질이기에, 의례 어린 손자의 수면기를 할애비인 저 실버 드래곤이 지켜주었을 것이다 라고 밀란은 이렇게 두려움에 떠는 본능을 다독이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시켰다. 이는 본능이 매우 두려워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이성의 거부감이기에, 눈앞의 먹이를 포획하고도 놓칠까 두려운 마음에 밀란은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찍어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허나, 어느 순간 인질로 잡은 꼬맹이 몸으로부터 작은 반발력이 생겨나면서, 그 반발력을 잠재우기 위해 더욱 힘을 가해 움켜쥐던 자신의 손을 중심으로 낯선 바람이 조금씩 손을 벌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람이 잦아들면서 허전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헉. 이게......이 녀석이...........그럼 어디로......?!."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눈앞의 먹이감이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모습을 통쾌하게 바라보며 이제 저놈을 이용해서 무엇부터 만들까를 궁리하며 쾌감을 얻던 자신이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콘돌의 어린 새끼의 울음소리에 간이 철렁하며 심장이 놀라서 날뛰었고, 그다음엔 자신의 손안에 있던 얌전한 인질마저 어디론가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익.............어디 있는거냐? 네 놈의 할애비를 죽이기 전에 어서 나왓~!!" 주위로 울려 퍼지는 메아리엔 어느새 이를 가는 밀란의 살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흐흐흐. 어리디 어린 핏덩이 놈이 감히 간 크게도 나를 놀려?" 꾸욱. 한 발로 갈리아스 옹의 머리통을 짓밟고 있던 밀란은 방심은 하지 않았다. 이미 어린놈이 설쳐봐야 얼마나 설치겠는가 하는 생각은 갑자기 변해버린 상황에 의해 머리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단지 이 축제의 팡파레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서는 어린 헤츨링과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이 숨결만 살짝 붙어 헐떡거리는 고룡의 몸을 박제 삼아서 전시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자신의 힘을 확실히 믿는 밀란이었다. 뜻밖의 변수만 조심하면 되기에 밀란은 그 변수라는 놈을 위해서 방심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헌데 감히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사라져 버린 간 큰 헤츨링이 주위에서 느껴지지 않자, 그 변수라는 것을 가지고 있을 어린놈을 발견 못해 밀란은 더욱 성질이 폭발했다. 싸이는 지금 한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는 충격을 경험하고 있었다. 적이라고는 해도 분명히 동족이다. 그리고 그 적이라고 하는 작자의 검은 눈동자 안에 맺혀 있는 여린 영혼과 그 속에 담겨진 모습들은, 어릴 적 받은 어떤 충격에 의해 한이 깊이 맺혀져 있었다. 헌데 그런 이상한 영상들과 함께 자신에게 전해져 오던 상대의 여린 마음이 한순간 작은 흰색의 깃털을 지닌 새의 출현과 함께 뚝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부터 싸이는 영상 속에 담겨져 미처 자신이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 똑똑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어딘가 사악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무언가에 의해 싸이는 화들짝 놀란 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사악한 저주가 깃든 음성이 자꾸만 자신의 귀를 자극하고 있는 또다른 모습에 매우 당혹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아냐. 이건 무언가 잘못된 거야. 흑흑. 이건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였어. 무언가 강한 존재가 여린 영혼을 휘어잡고는 자기 맘대로 움직이는....그런 것이....' 지금 콘돌이 나타나면서부터 밀란이라고 불리던 작고 가녀린 영혼이, 어느 거대한 존재에게 복속이 되어진 모습을 발견한 싸이는, 그 어리고 불쌍한 영혼에 대해 심한 안타까움이 일면서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밀란의 영혼 뒤편에서 느껴지는 인물과 그 힘이 너무도 거대해 지금 자신의 정신세계마저도 온통 흐트러트리고 있는 어떤 존재의 모습에 싸이는 머리를 절래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 너무도 불쌍해. 자기 영혼을 남에게 빼앗겨 자신만의 의지를 잃어버리다니......'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이 불쌍한 주인 없는 영혼을 위해서 자신이 할 일은 단지 달콤한 휴식을 주는 일뿐.........!!!. 너무도 불쌍해서 눈물이 흘러 앞을 가리지만, 이미 주위에서 자신의 몸을 감싸고도는 바람들과 그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몸을 맡긴 싸이는, 자신의 머리 속에 떠오른 밀란의 여린 영혼을 앞세우며 서서히 자신에게 흘러 들어오는, 이상한 느낌의 또다른 존재를 향해 반항하며 쫓아내려고 이를 악물었다. 싸이는 이 신비하면서도 어딘가 자신을 자꾸만 잡아당기는 사악한 느낌의 존재를 향해 결국 거부라는 마음이 일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악~! 꺼져 버려~! 너 같은 사악한 놈들은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꺼야~!!!!" 휘청. 번쩍. 태고 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약속의 힘이 싸이의 몸 안에서 또아리를 틀며 자꾸만 어린 싸이를 회유하고 있었다. 허나, 이런 싸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또 다른 힘이 그동안 몸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마치 상극에 가까운 기운인 듯한 두 기운들이 만나며 싸이의 몸 안에서는 이 상반된 기운들이 서로 강하게 부딪히며 거대한 회오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한순간 이런 미증유에 가까운 힘들로 인해 생긴 거센 회오리들과 그 충격파에 휩싸인 싸이의 몸은 크게 휘청거리며, 그 회오리의 한 가운데에서 어린 싸이의 몸은 거칠게 울부짖는 낯선 기운들의 또다른 싸움터가 되고 있었다. 허나 너무도 간절한 싸이의 마음이 있었기에, 그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움직이게 되자 이 두 개의 팽팽한 힘 겨루기를 하던 기운들은, 지금 싸이가 내지른 큰 비명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힘의 균형이 한순간 무너지며, 잠시 한쪽이 주춤거리다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과 함께 그동안 안타깝게 싸이를 지켜보던 바람들이, 태양보다도 더 환하게 빛나는 순백색의 빛 무리에 힘입어 싸이의 몸에 강한 보호막을 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일까?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이 달콤하면서도 자신에게 불멸의 힘을 나누어주겠다고 회유를 하던 그 작은 속삭임은 이내 커다란 폭풍 속에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냈다. '크르르르륵............쿨럭....................끄으윽.........' 어디선가 잠시 들려오던 달콤한 소리들이 한쪽으로 밀려나면서, 그에 따라 예민한 귀를 자극하는 신음성으로 돌변하던 낯선 기운과 그속에 담긴 힘이 점점 아련히 사라져 가자, 싸이는 그제서야 천천히 자신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에 눈을 떴다. 찌릿. 작은 번개처럼 싸이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맑고 푸른 전기가 흐르는 듯 한 느낌이었다. "후후후.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난 아직 어린아이인데......" 왜 자꾸만 과거의 기억에 매달려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을까? 단지 과거의 일이었을 뿐인데........... 그것도 이제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미련스럽기만 한 과거. 이 새로운 세계에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비밀스런 과거........... 이미 어린 아기로 태어나서 인간의 본능대로 주변의 환경에 의해 점점 익숙해지는 어린아이의 습성과 그 속에서 부딪히는 젊은 청년의 사고방식은 나라는 존재를 두 개로 나누는 어리석은 행동들을 가져왔는데......... 이제서야 이리도 어리석은 자신이 후회가 되는 모습이었다. 비록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어도, 이미 자신은 어린아이로 이 새로운 땅에 태어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과거엔 있지도 않던 가족들이 지금 새롭게 부여받은 환생에선 숱하게 나타나, 너무도 따뜻하게 자신이 지닌 과거의 아픔을 감싸주며 자신을 사랑해주었는데..... 너무도 행복해서 자꾸만 그동안 못 부려본 투정도 부려보고 어린아이의 습성그대로 애교도 떨면서 행복했었는데.........!!. 헌데 이런 행복감에 빠져서 미처 자신이 가진 두 개의 기억으로 인해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하나의 마음을 두 개로 나누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 어리석은 자신이 가족들 중 소중한 할아버지가 죽음을 문턱에 둔 이제서야 그동안 어리석고 미련스럽기만 했던 자신을 깨닫게 되다니............ 너무도 죄송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싸이었다. '그래, 난 아직 어려. 하지만 이성은 어린아이가 아냐. 모든 것들을 그냥 평범하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왜 스스로 마음속에 내 멋대로 선을 그어서 나누었을까?' 이젠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순리에 거역하지 않고, 하늘의 뜻대로 그저 열심히 노력하며 살면 되는 것을.........결코 마음속으로 신을 거부하거나 배타시키지 않고 살아 왔었는데. 결론은 이미 과거나 지금이나 두 가지의 모습 모두가 하나인 자신일 뿐. 나라는 존재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자신을 보살펴주는 건 따뜻한 가족들이지만, 이렇게 숨쉬고 살아가게 만들어준 것은 모두 신의 섭리였건만, 왜 스스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듯이 행동했을까? 이런 작은 깨달음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런 잠깐의 깨달음에 도달한 싸이는 가만히 자신의 빛나는 몸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난 뭐가 되었던, 어떤 신체가 되었던. 오직 나만의 영혼을 지닌 존재잖아.' 허면.....눈앞에서 숨을 몰아 쉬며 마지막을 기다리고 계신 분은...........?!. 으드득. 불끈. 그건 너무나도 놀랍게 한 순간에 찾아왔다. 너무도 쉽게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한 어리석음이 눈앞에서 걷혀지자 그건 한순간에 다가와 자신을 휘어 감으며 제대로 된 존재의 자각이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이젠 난 나다. 과거에 어리석은 우성이라는 존재도 나였고. 지금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나 싸이도 나였다. 이젠 이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난 이제 지금의 나이대로 만족하면서 살꺼다. 누가 내가 어른이었고, 사랑하는 연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해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겠는가? 오직 난 나일 뿐이다. 어린아이치고는 제법 범상한 모습으로 모든 이에게 보여질지라도 그냥 난 내 느낌대로 충실히 살면 되는 것이다. 이젠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이건 신이라고 해도 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과거 내 사랑하는 연인을 구해 달라고 온몸을 받쳐가며 애원해도 못 본 척, 외면한 신을 이젠 내 스스로가 겸허하게 용서해 주겠다. 대신 내 사랑 그레이스...........소영이는 반드시 내 힘으로 되찾고 말겠다.. 이 어리석은 나를 지금도 어디선가 지켜 봐 주고 있을 불쌍한 소영이를 위해서라도 난 절대로 어리석은 과거처럼 살지는 않을꺼야. 이젠 됐다. 난 이젠 신들에게 의존하면서 신의 은총을 기대하지 않을꺼야. 두고 봐. 반드시 소영이는 내 힘으로 되찾고야 말꺼다. 어차피 나는 과거에 신을 의존하던 마음을 버렸잖아?! 앞으론 절대로 어리석게 신에게 모든 일들을 의존하지 않을 꺼야. 대신 신에게 나라는 존재가 당신을 간절히 믿고 따르지만, 내 속엔 언제나 당신을 의존하기 보단 당신이 베푸신 은혜를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존재로 항상 간직할 꺼야. 주르륵. 어리석기만 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눈물이 작게 이슬방울로 싸이의 뺨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쿠아아아아아아앙~~~~. 밀란은 느닷없이 머리 위에서 들리는 또다른 드래곤의 포효에 놀라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린 헤츨링을 해치려고 하던 자신을 발견하고 덤벼드는, 성룡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더 큰 몸집과 웜 급이라고 부르기엔 아직은 작은 드래곤을 향해서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이 낯선 불청객에게 코웃음을 쳤다. "흥. 어디서 왔는지는 몰라도 감히 나에게............흥" 어리석은 자에겐 그에 따른 보상을 주면 되는 일. 너무도 쉽게 결론이 난 일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밀란이 아니였다. 그리고 지금 발 밑에서 가는 숨을 몰아 쉬면서 영혼까지도 고통에 사로잡혀서 죽음으로 향해 가는 갈리아스 옹을 보면서 밀란은 가슴속에서 솟구치는 강한 열망에 승자의 포효를 멋지게 내질렀다. "크라라라라라라랄..........." '감히 날 업신여기지 말란 말야~!.' 귓가에서 들려오는 느낌 그대로를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포효로 뱉어내던 밀란은, 귓가로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과 동시에 전신을 강하게 감싸며 전해지는 이 어둠의 속성을 지닌 힘의 크기에 더욱 광분한 눈빛을 흘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존재에게 힘찬 표효를 내질렀다. 그런 밀란의 눈에 하늘 높은 곳에서 까만 점으로 보이다가 점점 태양 빛에 반사되어 하얀 은색의 비늘을 지닌 어린 드래곤이 보이자 그 어리석은 존재를 향해 밀란은 두 눈을 희번뜩 거렸다. "크크크크크.........크하하하하핫." 이건 마치 자신의 자아를 누군가의 힘에 의해 잃어버린 듯한 자의 음침한 웃음과 눈빛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36 화. 오늘 싸이가 처음으로 싸움을 하게 되는 날이랍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멋지게 싸운다.......? 그건 아니겠죠. 여러분들은 어린 아이들이 멋지게 싸우는거 보신 적이 있나요? 전 아직 없거든요. 해서 제 느낌 그대로를 썼답니다. 그리고, 아드레날린이라는 신경물질이 나온답니다. 지금의 리메를 쓰기 전 예전에 쓴 글에서 어떤 님이 그러더군요.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나이가 들면 점점 몸안에 마나로 가득차는 드래곤이 무슨 아드레날린이 있냐고 항의를 하셨더군요. 해서 이점 밝히고 넘어간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 중. 뼈와 근육으로 만들어져 움직이는 동물들은 전부 신경이라는 세포를 가지고 있죠. 그런 신경 세포중에는 인슐린을 제어하기 위해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교감신경이 있답니다. 그점을 그 분께서 잘 모르시고 한마디 던진 그 말이 내내 저에겐 상처가 되었답니다. 오늘 이 글을 보신 분들도 이점을 잘 모르고 계셨으면 참고 하도록 하세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시길........... 또한 황상현상이 매우 심하답니다. 호흡기 질환 조심하세요.(__) ********************************************************************************* 푸른 하늘에 투영되는 하얀 빛무리 속에서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고 있던 싸이는, 어느 순간 한줄기 강한 빛무리 속에서 자신이 일으킨 의념 만으로도 변신을 한 또다른 자신의 몸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아아앙. 제법 우렁차게 부르짖는 싸이의 울부짐 속에는 그동안 가슴속에 맺혀있던 답답한 그 무언가들이 한순간 재로 날아가는 통쾌함이 실려 있었다. 크르르르륵. 번쩍. 작은 인간의 모습에서 평소 어린 헤츨링들과는 전혀 다른 성룡에 가까운 몸으로 또다른 종족의 신체를 부여받았던 싸이는, 평소엔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흉폭스러운 눈빛으로 지상으로 내려다보며, 그 아래에 숨을 헐떡이고 있는 갈리아스 옹과 그런 갈리아스 옹의 머리를 지긋이 밟으며 음침한 웃음을 날리는 존재를 향해 전력으로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제트기 놀이를 한 것이 주효했던 것인지 싸이의 커다란 몸은 금새 하얀 빛무리를 꼬리에 달고, 커다란 머리통 앞에는 공기의 흐름이 울부짖으면서 내는 작은 칼바람들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크하하하핫. 가소로운 놈. 받아라....." 밀란은 제법 다른 드래곤들과는 달리 재빠르게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리는 싸이의 모습을 보면서, 에이션트 드래곤인 자신에게 덤비는 같잖은 어린 드래곤을 향해 시원스럽게 웃음을 날려주었다. 그와 더불어 작은...아주 작은 불덩어리 하나를 재빨리 쏘아 보냈다. 화르르륵. 분명히 파이어 볼로 보이는 이 불덩어리가 밀란의 의지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인지, 매우 기묘하게 곡선을 그리며 싸이의 머리 윗부분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들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쐐애애애액. 과연 누가 더 빠른 것일까? 그리고 누가 더 강한 것일까? 역시 아직 어린 싸이로썬 처음으로 접해보는 에이션트 급 드래곤의 마법에 당황스러운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언제 자신이 이런 강한 파괴력이 깃들어 있는 파이어 볼을 받아 보았겠는가? 더구나 지금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그 불덩어리 안에선 지금도 강하게 부딪히며 원형의 구 안에서 일렁거리는 마나들의 부딪힘은, 가히 헬 파이어는 저리 가라고 할 정도였다. 허나. 그런 당황도 잠시, 어차피 눈이 뒤집힌 상황에서 앞뒤 가릴 싸이가 아니였다. 후에 자신이 회고를 할 때에도 아직 세상 물정을 너무 몰라 겁이 없어서 설치던 이때가 두고두고 가슴 철렁했다고 말하던 것을 보면, 아마도 지금 싸이는 초보 마법사가 드래곤한테 덤비는 우스운 상황일지도 몰랐다. 키에에엑. 콘돌은 거의 최상급에 해당하는 마법을 파이어 볼로 교묘히 위장한 밀란의 회심의 역작. 헬 블러스트를 보면서 마지막 힘까지 짜내며 누군가에게 경고를 해 주었다. 허나, 이런 자신의 경고도 무시한 채 오직 발 아래에 있는 적을 향해 돌진하는 겁대가리 없는 성룡급의 드래곤을 보며 콘돌은 내심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저.....저 바보녀석............그게 어떤 건데....' 당연히 콘돌은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콘돌은 이미 탄생 그 자체로 모든 마법의 생물들을 관장하는 무서운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말해 이 대지에 널리 퍼져 있는 마나들을 사용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콘돌은 그들의 마나 운용을 없애 버릴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길. 그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을 찾아서 집을 나섰더니만........ 이젠 그 손자녀석까지 똑같이 설치는군.' 갈리아스 옹을 아직도 자기 힘을 뺏어간 못된 놈으로 알고 있는 콘돌의 투덜거림은, 금방이라도 헬 블러스트랑 부딪칠 듯하면서도 운좋게 거리를 좁혀 가며, 주위에 바람의 힘을 모아서 급히 나선 모양으로 몸을 비틀며 내려오는 싸이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휘리리릭. 정신없이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피해 몸을 비틀면서도 내려오는 탄력을 잊지 않고 상대의 머리를 향해서 돌격을 하던 싸이는, 어느 순간 자신의 가슴 한쪽부위를 찡하게 만들었던 어린 새가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검뎅이 도마뱀을 향해 조심스럽게 날아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제....길.........." 잠시의 한눈은 절대로 이런 상황에서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화르륵. 금새 눈앞까지 지쳐든 불덩어리를 보며 경악에 가까운 욕설을 내뱉던 싸이는 결국 눈을 질끈 감으며, 너 죽고 나죽자 라는 절망 끝에 생긴 동귀어진의 수법을 상대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륵. 휘이익. 쿠아아앙. 밀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날린 불덩어리를 제법 요령있게 요리저리 피하던 어린 핏덩어리 녀석이 갑자기 온 힘을 다해서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보곤 기겁을 했던 것이다. "저.....저 ..............저 미친 놈.........허억......." 저까짓 어린 핏덩이는 문제도 아니였다. 헌데 그 가소로운 핏덩이를 쫓아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어리는 밀란 자신이 제아무리 빨리 피하고자 해도 분명히 그 여파로 어디 한군데 제법 큰 상처를 입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크아아아악...." "쿠라라라라라라랄" '제길. 도대체 오늘 브레스를 얼마나 쓰는거야?' 누군가는 드래곤들이 각각의 급수별로 하루에 브레스를 사용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쉽게 단정한다. 허나 이건 크나큰 착각이자 오산이다. 드래곤들은 그 거대한 몸뚱아리 전체에 이 대지의 모든 기운들이라고 하는 마나들을 순수하게 걸러서 압축시키며 저장을 하고 사는 동물이다. 그런 드래곤들이 사용할 수 있는 브레스가 어찌 서너번 정도이겠는가? 온몸에 깃든 마나들을 모조리 토해낼 때까지 드래곤들은 각자 자신이 자신있어 하는 속성의 힘과 그에 따른 브레스를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온몸에 깃든 마나들을 브레스로 마구 펑펑 쓰다보면 다시 그 힘들을 비축하는데 시간이 다소 걸리는 단점이 있었기에, 드래곤들은 자신의 최후이자 최고라고도 하는 마지막 힘인 브레스를 조금씩 아끼고 사는 것이다. 이러니 밀란은 조금 전까지 피튀기는 육박전을 하면서 갈리아스 옹과 머리를 맞대고 무수히 몸 안의 기운들을 브레스로 토해냈었다. 이미 그 당시 몸 안의 반이상 되는 기운들을 브레스로 뿜어낸 밀란이기에, 지금 또다시 한번의 대형 브레스로 핏덩이와 함께 그 뒤에 날아오는 헬 블러스트를 잠재우기 위해서, 밀란은 힘껏 입을 개방하며 가슴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거대한 힘을 힘차게 내지르려고 했다. 그순간이었다. 갑자기 온몸에 오한에 가까운 공포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본능에 충실하고자 재빠르게 온몸의 힘들을 모으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본능을 다스리려던 밀란은, 갑자기 이는 두려움에 한눈을 판 사이에, 땅을 치고 통곡해도 모자랄 잠시의 방심을 하게 되었다. '크으으윽........이게 뭐.............뭐?................' "크아아아악................크윽................" 바둥바둥.......... 천재 일우였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와도 같은 찰나의 순간이 절대 절명에 있던 싸이를 구하면서 밀란의 잠시의 방심은 두고두고 후회를 하고야말 상황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퍼억. 바둥바둥. 힘차게 꼬리를 흔들어봐도 온몸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꼬리부분의 어떤 한 곳을 막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싸이의 쩍 벌어진 입은 신경도 못쓰게 된 밀란이었던 것이다. 꾸아아아악. 덥썩...... 크라라라라라랄. 쿠당탕. 풀썩. 아직은 브레스가 뭔지 모르는 싸이다. 그러니 어떻게 몸 안의 힘을 입 밖으로 쏟아내는지도 모르는 싸이가 지금 행한 일은 뻔한 육탄돌격이었다. 거대한 동체로 눈앞의 적을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내려온 가속도와 자신의 제법 육중한 몸으로 내리 누르는 방법이 지금 싸이에겐 제일 큰 공격이었다. 그와 동시에 적의 머리와 동체를 이어주는 목부위를 큰 입으로 덥썩 물어서 뒤흔드는 유치한 방법만이 싸이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그 때문에 순식간에 그 커다란 동체로 밀란의 뻣뻣이 서 있는 몸을 위에서 내리 찍어 누르며, 상대의 목을 짧은 팔로 꼭 쥐고 어린 드래곤답지 않게 큰 머리통을 가진 덕분에 더욱 커다란 입을 밀란에게 자랑하려는 듯 크게 벌린 싸이는, 강철 이빨로 밀란의 목을 꽉 물며 그 날아오던 탄력을 미처 감당하지 못하고 밀란의 몸 윗 부분에 매달려 거칠게 땅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쿠당탕. 풀썩. 뿌연 먼지가 금새 주위로 퍼져 오르기 시작했다. 콘돌은 이제 자신과 묘한 동질감을 주던 존재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미 서로 상극이 되는 힘들은 작은 구체안에서 심하게 부딪히고 있었고, 그 폭발력과 팽창된 힘들을 고스란히 간질한 불덩어리가 어린 드래곤의 몸에 부딪히면 한순간 작은 잿덩리로 변할 불쌍한 존재의 복수를 위해서, 콘돌은 온통 어린 드래곤에게 시선이 가있는 몹쓸 검둥이 도마뱀을 향해 빛과 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들썩 들썩. 무엇이 그리 기분이 좋은지(?) 꼬리가 들썩이면서 잠시 작은 살덩어리를 콘돌의 눈에 보여주고 있는 검둥이 도마뱀이었다. 그런 밀란의 꼬리부분과 몸통부분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는 엉덩이 부분은 점점 커다랗게 확대가 되듯이 콘돌의 눈앞으로 다가오며, 그 잠시의 들썩이는 시간동안에, 콘돌은 자신의 작은 몸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잔주름이 무척이나 많은 부위를 향해서 필격의 돌진을 자행했다. 푸욱. 끄윽윽. '윽. 디러...왠 털이 이리도 많은거야?' 잔털처럼 보이는 드래곤의 엉덩이 털은 날카로운 철사보다도 더 빳빳하게 날이 서 있었다. 제아무리 음식을 안먹고 살아가는 드래곤이라고 해도, 자기 앞에서 가끔씩 까불어 대는 생물들을 한 입에 덥석 삼킬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 생물들이 몸안에서 마나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져서 분해가 된다곤 해도 더러는 미처 분해가 되지 않아 뒤로 나올 때도 제법 많았다. 그렇기에 아직 퇴화가 진행되고 있는 배설기관이라곤 해도, 가끔씩은 사용을 해야만 하는 기관이기에, 두꺼운 강철 비늘로 둘러싸지는 못하고 이렇게 강철 비늘만큼이나 날카로우면서도, 함부로 다른 존재들이 이곳을 이용해 약점을 잡지 못하도록 최대한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급한 순간.....아니 위기의 순간에 엉덩이에 힘을 주면, 날카로운 가시 같은 잔털들이 항문부위로 곧게 날을 세워서 오무러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나.......콘돌이 어떤 존재이던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몸 안에 잠재된 마나들을 무위로 돌릴 만큼 거대한 힘들을 다스리는 수호영물이었다. 이런 콘돌이 제아무리 새끼의 모습이라고는 해도 빳빳한 강철잔털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을 찌르며 덤빈다고 해도, 그 안에 담겨진 마나들을 자신의 힘으로 무위로 돌리기에는 충분한 세월을 산 어린 새끼 모습의 콘돌이었다. 쭈우우욱. 주둥이가 그리 길지는 않았다. 아직은 갓 부화한 모습보다도 몇 십 배나 작은 덩치이고, 그에 걸맞는 부리였기에 그리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런 작은 부리라곤 해도 콘돌의 본능인 광룡이나 세계의 질서를 해치려고 하는 존재들 중 드래곤을 상대하는 방법으로 기억속에 저장된 정보들은, 점점 드래곤의 몸 안으로 거슬러 들어가 이 무질서를 꿈꾸는 존재의 몸 안에 담겨 있는 마나들을 헤치우는 방법들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거슬러 들어갔다곤 해도 몸안에 가득 들어찬 순수한 마나들을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 듯. 밀란의 몸안에 축적된 마나들을 자기 입안으로 빨아 당기면서, 몸 안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드래곤의 힘과 콘돌이 강하게 빨아 당기는 힘이 작용하면서, 점점 머리부분에서 목 부위까지 밀란의 몸 안으로 거의 빨려 들어간 콘돌의 몸체는, 조금씩 부리를 쉽게 벌릴 수 있는 여건이 되자 더욱 열심히 부리를 마구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모든 기관들이 마나로 충만하게 변한 에이션트 급의 드래곤인 밀란의 텅텅 비어 있는 듯한 몸 안에선 지금 난리가 났다. 감히 주인이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낯선 침입자는 자꾸만 더욱 거대한 자신들을 끌어당김으로 인해, 그 윤기 나는 불청객의 부리 안으로 줏어 담기듯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고, 주인이 이제나저제나 이 낯선 침입자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줄 것이라 믿고 있던 무형의 마나들은, 금새 자신들을 배신한 주인이 긴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옆으로 넘어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부리를 순식간에 수천번에 가까운 되새김질로 자신들을 잡아당기는 낯선 존재에게 그들은 억울하게도 그만 소화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밀란은 갑자기 엉덩이 부분에서 낯선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생전처음으로 이상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었다. 눈앞에는 어린 핏덩이가 날개를 몸에 바짝 붙인 채 자신을 향해서 돌격을 하고 있었고 그 뒤를 거대한 자신의 힘을 부여받은 지옥의 불덩어리가 따라 오고 있었다. 너무도 정신이 없는 아찔한 순간인 지금 이 현 시점에서, 갑자기 엉덩이 부위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라니...........눈앞이 깜깜한 밀란이었다. 더구나, 이상하게도 이 이질감은 자신이 엉덩이 부위에 힘껏 모든 근육을 이용해서 강제로 배출시키려고 해도 점점 몸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잘은 몰라도 날카로운 강철 털들이 이질감을 주는 존재를 갈갈이 찢어발길 것이 분명한데도 이 요상한 느낌을 주는 존재는 까딱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뿐인가? 잠시 그 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 꼬리가 들썩일 정도로 자신을 놀라게 한 존재는, 이미 커다란 은색의 이빨들을 들어내며 자신에게 날아와 부딪히기가 무섭게 온몸에 강한 충격을 주는 것과 동시에 덥썩 달라붙어 버렸다. 졸지에 우습게 보이던 어린 핏덩이 때문에 자신의 배를 하늘 높이 들어내게 된 밀란은, 잠시.....말 그대로 눈 한번 깜빡일 순간에 일어난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눈앞이 깜깜한 현상과 더불어 암담한 현실을 느껴 버리고 말았다. 화르르르륵. 실로 때를 잘 맞춘다는 말이 바로 이것일까? 어린 핏덩이가 죽기살기로 자신의 목을 꽉 깨무는 것쯤은 우습게 생각되는 밀란이다. 제아무리 날이 곤두선 강철이빨이라고 해도 에이션트 드래곤인 자신의 피부는 이런 핏덩이의 이빨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헌데 검붉은 빛이 도는 뱃살에 갑자기 날아드는 저놈의 망할 놈의 불덩이는 정말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크아아아악.......이.........이 핏덩이 녀석이............크아아악" 질끔. 몸 안에서 생기고 있는 이상현상을 최대한 거부하면서 재빠르게 몸 위로 커다랗고 두꺼운 방어막을 형성하는 밀란은, 곧이어 자신의 방어막이 펼쳐짐과 동시에 강하게 폭발하듯이 부딪히는 불덩어리를 보곤 눈을 질끔 감아 버렸다. 퍼어어어억. 화르르륵. 케에에에엑. 꾸에에엑. 두 개의 거대한 몸체가 하나가 된 듯한 형상의 밀란과 싸이의 몸에 전해지는 이 거세면서도 강한 폭발력과 그 여파로 생긴 충격파는, 둘의 정신을 까마득하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얼마나 거대한 충격파이면 그 둘이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부위가 금새 쇠덩어리를 벌겋게 달군 듯한 느낌을 주겠는가? 그 덕분에 정신을 잃고 이제 죽음에 다다른 갈리아스 옹은, 잠시 몽롱한 상태에서 고통도 못 느껴지는 몸으로 자신의 몸이 잠깐의 충격에 정신이 차려지자, 초점이 미처 잡히지 않은 눈을 들어 붉게만 보이는 주위의 상황을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정신을 잃어 버렸다. 아직도 그의 몸에서 솟구치는 파란 핏줄기들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을 보면, 출혈과다로 쇼크상태에서 매우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뿐, 피가 그치면서 죽음을 당한 드래곤으로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그를 놓고 상황은 너무도 심각하게 벌어져 가고 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온몸을 다해 생애 첫 전투를 벌리는 싸이는 턱이 부서져도 좋다는 듯 온 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싸이가 꽉 깨문 목이 부자연스런 밀란은 누여진 몸을 바둥거리며 자신이 급하게 친 보호막으로부터 미처 보호를 받지 못한 뱃살의 고통에, 몸 안에서 마구 난동을 치는 마나들의 움직임을 느끼며 고통과 동시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아아악..................허억.........헉..." 고통은 잠시 뒤엔 묘하게도 쾌감을 동반한다. 이는 아드레날린이라고 하는 신경물질이 고통 속에 잠긴 신경들을 자극하면서 최대한 고통을 줄여주려고 하는 신비스런 생존의 법칙인 것이다. 꽈악. 퍼버버버벅. 쾅쾅쾅. 휘익. 퍼억. 온몸을 이용해서 짧은 팔로는 밀란의 앞면을 마구 때리고 뒷발의 육중한 무게로 최대한 엉덩이를 들면서 밀란의 상처받은 옆구리를 자근자근 밟아주는 제법 용감한 싸이였다. 할아버지의 원수일지도 모르는 밀란을 싸이는 온몸으로 마구 때려주기 위해서, 자신의 긴 꼬리를 이용해 밀란의 몸뚱아리를 이곳 저곳 사정없이 내리쳤다. 하지만 이걸로는 도저히 분이 안 풀린 듯. 커다란 눈을 질끔 감아도 여전히 흘러내리는 눈물에 앞이 가려 잠시 손에 힘이 빠져나가는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쿠아아아아앙..............으드득.......빠드득........." 마구 이빨로 상대의 목을 짓누르고 깨물어 봐도 아직 어린 자신의 이빨로는 상대의 강철비늘을 뚫지는 못하기에, 목줄을 움켜쥔 입에 최대한 힘을 가하던 싸이는, 어느 순간 엎치락 뒤치락을 하며 상대와 떼굴 떼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허나 이내 이런 상황이 매우 못마땅한 싸이는 결국 벌떡 일어나선, 잠시 가수면에 가까운 현상으로 인해 그 큰 몸을 가지고 눈을 반쯤 뜬 채,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는 밀란을 향해 최대한 점프를 통해 온힘을 다해 짓누르기 시작했다. 깡충. 콰아앙. 풀썩. 먼지가 요동을 치는 가운데에도 싸이는 좀처럼 분이 안풀리는 듯 마구 점프를 해대면서 밀란을 밟다가도 그를 내려다 보면 볼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밀란은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린 채, 몸을 부르르 떨면서 헤실거리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싸이로썬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우씨. 이게 감히..........뿌드득.........." 순간이었다. 밀란의 눈이 번쩍 뜨이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착각이 인 것이다. 싸이는 밀란의 눈빛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다, 이내 상대가 몸을 어렵게 일으키려고 바둥거리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크으으으으윽........................." 아직은 어린 핏덩이와의 싸움이었기에, 그리 큰 충격을 받지 못한 밀란이었지만 드래곤의 신체 구조상 엉덩이 부분이 손이 닿지 않아서 매우 고통스러운 밀란이기도 했다. 그런 밀란을 쳐다보던 싸이는 어느 순간 작은 주먹을 움켜쥐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뿌드득. 소리나게 이를 갈면서 상대의 살기에 몸을 움추린 어리석은 자신을 탓하던 싸이는, 자신의 원수가 될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꼈다는 자체를 분노의 힘으로 잠재웠다. '으득. 이 바보 멍청이. 내가 아무리 어린 아이가 되었다고 해도 눈앞의 적에게 겁을 집어 먹다니........뿌드득.' 내심 소리나게 이를 갈면서 강한 상대에게 아직은 벅찬 자신을 생각하며 무언가 좋은 방안을 떠올리던 싸이는, 이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주 반가운 존재들이 떠올랐다. "우욱. 이 바보 멍청이. 그놈들을 왜 잊어 먹은 거야?" 제아무리 놀라서 정신이 달아났다고는 해도 얼마 전부터 자신의 든든한 가드가 된 존재들이 이제야 생각이 나는 현실이 처한 자신이 너무도 바보같았다. 어리석은 자신에게 가학적인 태도로 잠시 그 큰 머리통을 작은 주먹으로 거세게 때리는 가학성 변태로 순식간에 돌변하는 싸이었다. "크으윽 너.........넌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꺼야!!!!!!! 뿌드득.......야! 시커먼스~~~~~~전부들 나와~~~~!!!!!!!" 드디어 싸이의 명령이 떨어졌다. 주위의 공간들이 둥글고 커다랗게 열리면서 그 속에서 떼거지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각자 서로 다른 병기들의 시커먼스 군단들은 싸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순식간에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최강의 병기로 불리는 레지나 급이라고 해도 절대로 이렇게 빨리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밀란은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서 이제는 아예 자신이 악몽을 꾸고 있다는 생각으로 급히 방향을 설정했다. 아니면 저 놈들이 눈앞의 핏덩이가 말하기가 무섭게 저리도 빨리 나타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 자신은 헤비 워커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아니 원래 가지고 있던 헤비 워커를 여왕에게 받친 것이다. 헌데도 그 짧았지만 잠시동안 같이 있었던 헤비 워커와의 공감대는 눈앞의 핏덩이가 외치는 모습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헉........저....저것들이.........어떻게.......' 분명히 저 눈앞의 시커먼 윤이 나는 동체를 자랑하는 놈들은 자신이 그동안 수백년에 가까운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존재와 그 부하들이었다. 새빨간 도마뱀 한 마리를 잡고 나서 얻은 놈과 제법 긴 시간을 같이 생활하며 그 뒤에, 우연히 이쟈벨 여왕을 만나 자기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듯 하면서도 가끔씩 반항을 하던 그 놈을 선뜻 여왕에게 받친 밀란은, 뜻밖에 여왕의 눈에 들어 수십대에 가까운 놈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새로운 헤비 워커의 발명과 그 긴 시간동안 애지중지하던 저 놈들이 어떻게 단 한명의 주인의 말을 따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게 지금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느낌보다 더욱 괴롭게 여겨지기 시작하는 밀란이었다. 분명히 헤비 워커들....그것도 최고급 전투형 병기들은 오직 단 한명의 주인만 섬기고 그 이외에는 절대로 복종하지 않는다. 비록 밀란이 시커먼스 군단을 제작하면서 여왕의 전용 헤비 워커인 제우스에게 모든 시커먼스 군단들을 지휘할 힘을 메모리석에 저장시켰다고는 해도, 그건 반란에 대비하기 위해서이지. 지금 눈앞의 상황처럼 단 한명의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아직까지 넣어보지도 아니 넣지도 못했던 밀란이었다. 헌데........지금 눈앞의 상황은?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밀란이었다. 제우스는 아공간의 세계에서 주인과 연결된 끈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 주인이 처한 눈앞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오직 주인에게 충성만 해야 할 존재. 허기에 절대로 주인의 명이 있기 전에는 이 공간에서 나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헌데 느닷없이 주인이 강하게 의념을 일으키면서 자신을 불렀다. 그 순간 제우스가 받았던 놀라운 경험은 정말로 자신의 창조주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자신과 연결이 되어있는 흑기사 전원이 모두 제우스가 받은 강한 충격파와도 같은 명령을 동시에 고스란히 받았기에, 제우스는 주인의 이 멋지고도 엄청난 능력에 감탄하면서, 자칫 자신이 이런 멋진 주인의 눈에 미움을 살까봐 최선을 다해서 빠르게 공간의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헌데............ "뿌드득...." 주춤주춤. 자신들이 그야말로 눈깜짝할 새에 나타났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은 자신들을 향해 살기 어린 흉폭한 눈빛을 빛냈다. 그러하기에 최초로 창조주이자 주인인 싸이벨리님을 처음으로 봤을 때 모습 그대로 은색의 찬란한 비늘들은 예전과는 달리 빳빳하게 서서 성을 내고 있었다. 그 비늘들이 지금 주인의 의지와 동화가 되어서 자신들을 한순간에 소멸시켜 버리려는 듯한 모습에 긴장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 힘들은 점점 더 거세게 주인의 곁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절로 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제우스는 자신이 인간이 아닌 쇠붙이라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몸을 만들어준 창조주 싸이벨리님께 너무도 고마워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간이 콩알만해져서 심장마비는 물론 온몸의 땀을 시냇물 수준으로 흘려 탈수병 환자가 되고도 남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야. 이것들아.........이게 안보여..............뿌드득............죽여." 오직 이 한마디뿐이었다. 가타부타 설명도 필요없었다. 매우 짧막한 한마디만 내뱉는 화난 주인의 명령이 떨어졌다. 눈앞에 있는 무서운 주인의 살기에 주춤거리던 시커먼스 군단들은 주인의 손끝이 가리키는 검은 색의 도마뱀을 보자마자, 주인의 명령 속에서 자신들을 향해 주인님이 이를 갈고 있다고 판단하기가 무섭게 떼거지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우와와와와와와~~~~~. 두다다다닷. 퍼버버벅. 케에에엑. 망치가 난다. 그것도 헤비 워커들의 왕주먹 보다도 더 우람한 망치가 하늘 높이 날아서 땅으로 쏜살같이 날아 내리며 춤을 추는 것이다. 어찌 저리도 빠르게 오르락 내리락을 할 수 있을까? 극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것은 긴 언월도처럼 생긴 병기이나 끝부분이 날카롭게 휘어진 언월도와는 달리 끝이 일자로 반 듯한 모습이다. 허나 그 끝부분이 가장 넓고 손잡이로 내려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형태로 생겨 한쪽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극은 그야말로 왠만한 헤비 워커들의 팔 다리정도는 우습게 잘라 버리는 위력이 있었다. 다다다다. 꼬리부위에서 시작된 극의 화려한 칼질은 점점 뒷다리로 가면서 아예 밀란의 긴꼬리를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꾸에에에엑. 이건 거대한 헬버트가 밀란의 두꺼운 머리뼈를 부수는 소리였다. -에익. 끙차. 한번으로 안되면 무조건 될 때까지 계속 한다. 이게 바로 헬버트를 든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시커먼스의 구호였다. 퍼버버벅. 긴 모닝 스타가 이토록이나 빠르게 온몸을 두들겨 패는 일은 싸이도 생전 처음 봤다. 어떻게 쇠사슬에 매달린 철퇴가 길게 원을 그리면서 내리쳐야만 한다는 신의 섭리를 어기고 이렇게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밀란의 몸을 두들기는 것일까? 이건 싸이의 몸 가까이 서있던 모닝스타 전용 헤비 워커가 지금 가장 겁을 많이 먹어서 벌린 일이었다. 제우스야 주인의 전용 헤비 워커이니 절대로 죽음을(소멸) 당할 일이 없겠지만, 그 옆에서 괜시리 '제가 일찍 나타나서 이쁘죠?'라고 주인에게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던 모닝스타는 제일 많은 미움을 받았다는 자책감에 지금 주인의 명에 최대한 만족스런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평소의 자기 능력보다 두배는 더 막강한 힘을 마구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다른 헤비 워커들이 지랄발광에 가까운 일들을 마구 벌리는 대상이 된...... 말 그대로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밀란은 어떤 기분일까? 온몸의 피? 그건 얼마나 몸밖으로 튀어나가는지는 잘 모른다. 이미 꼬리뼈가 끊어져 나가는 통증이 머리 속에 와 닿았을 때 자신의 거대한 머리 중 한쪽은 거의 함몰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때를 같이 해서 꼬리뼈가 잘려 나가는 통증은 옆구리가 뚫리면서 그 속으로 들어온 부메랑처럼 앞쪽으로 45도 정도 꺾인 모양의 낯선 검처럼 생긴, 용맹한 쿠루족의 용사들이 사용하는 검에 의해 몸 속이 마구 휘저어 지고 갈비뼈란 갈비뼈는 모조리 끊어지고 부숴 지고 있었다. "쿠에에에에엑."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아드레날린이 엄청 부족했던 모양이다. 신룡의 후예 - 제 37 화. 밀란이 이런 끔찍한 보복을 당하고 있을 때, 싸이는 자신의 소중한 할아버지를 곁눈질로 살피면서 밀란의 죽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의 명령에 한순간 돌변한 듯한 모습으로, 너무도 끔찍한 살인 도구가 되어 버린 헤비 워커들의 숨겨진 잔인성은 싸이의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유도하게 만들었다. 허나. "끄으으윽.........." 마지막 몸부림을 치려는 듯 잠시 몸을 꿈틀거리며 신음소리를 내뱉는 밀란을 다시 바라본 싸이는 그순간 이를 악물었다. "그만~! 모두 그만~!!" 너무도 처참했다. 온몸이 난도질을 당해 시퍼런 피를 콸콸 흘리고 있는 밀란은, 블랙 일족의 핏속에 담긴 독의 기운으로 인해 약간은 검붉은 색깔의 피로 온통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그런 밀란의 피가 우람한 자신의 발에도 닿자 싸이는 화들짝 놀라며 그 큰 눈에 눈물을 조그마하게 달고선 고함을 꽥 질렀다. "이제 됐어.....죽이지는 마.............흑흑" 아직까지 누군가를 죽여 본 적이 없는 싸이로썬 전생이나 지금의 현실에서나 자신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것은 정말로 끔찍했다. 심지어 지금 그의 머리 속에선 가는 숨을 몰아 쉬며 환한 웃음으로 자신을 떠난 소영(그레이스)이의 영상이 떠오르고 있었기에, 싸이의 눈에 걸린 눈물방울은 금새 은색의 윤기가 흐르는 비늘을 타고 땅바닥으로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파앗. 그순간이었다. 하얀 연기가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에서 일렁거렸다. 싸이의 눈물방울 속에 자리한 어떤 신비한 힘이 대지를 온통 파란색으로 적시고 있던 두 드래곤들의 피와 만나면서, 조금씩 작은 파문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투명한 파장으로 잠시 대지를 요동하게 만들던 그 신비한 힘의 결정체는 이내 하얀 연기와 함께 밀란의 핏속에 다량으로 함유된 독기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흑.....이제 그만해. 그 정도면 됐어." 제우스는 갑자기 울먹이는 주인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 거렸다. 이는 주인의 명령대로 적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도중 검둥이 도마뱀 엉덩이 부위에서 빠져 나와 주인을 향해 눈웃음을 짓는 하얀 새와 자신이 눈을 갑자기 마주치면서 받은 또다른 감정이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인간의 감정을 잘 모르는 단순한 쇳덩어리 골렘인 자신이 어떻게 이런 아련하면서도 가슴 저리는 기분을 느끼는 거지?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콘돌 또한 신나게 밀란의 몸 속에서 그동안 몸밖으로 빠져나간 영양분들을 흡족하게 취하고 있던 와중에, 꼬리부분의 깃털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놀라 바둥거리며 빠져 나와야만 했다. 그런 콘돌이 제일 먼저 확인하기 위해 쳐다 본 싸이의 모습과 그런 싸이를 위해서 열심히 명령을 따르는 듬직하면서도 시커먼 골렘과 눈이 마주치자 콘돌 또한 이상한 감동을 받고 있었다. '왜지? 자기 가족을 헤치려고 했던 존재에게 왜 자비를 베푸는거지? 혹시?' 무언가 섬뜩한 예감이 온몸을 지배하는 콘돌이었다. 아무래도 적에게 더 잔인한 최후를 주려는 듯한 꼬맹이 드래곤의 음모 같은 느낌이 불연 듯 떠오르는 콘돌이었던 것이다. 헐떡.........헐떡...... 이미 갈리아스 옹의 몸밖으로 대량의 피들이 배출된 후, 이제 서서히 그쳐 가는 와중에서야 겨우 할아버지의 곁으로 다가온 싸이는 자신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암담한 현실을 받게 되었다. "치.......치유 주문이......뭐지?" 머리 속에 든 신룡 할아버지의 책 속에선 숱한 치유주문들이 적혀 있었다. 허나 지금 자신이 운영할 수 있는 용언 마법이라곤 통틀어 봐야 고작 5써클의 초입부분에 있는 전격 주문이 전부 였다. 자꾸만 가슴의 기복이 약해져 가는 할아버지를 눈앞에 두고서도 머리 속에 있는 치유주문들을 제대로 영창하지 못하는 자신이 이토록이나 바보같다니................ 어린 싸이의 눈에는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앙. 할아버지...................흐윽..........." 도저히 눈앞의 할아버지를 자신의 힘만으론 구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자 속상한 마음에 한쪽 가슴이 저려와서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싸이였다. 작은 앞발들을 이용해서 거대한 할아버지의 몸체를 꼭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싸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존재들은, 마치 얼음 마법이 걸린 듯한 모습으로 주인의 마지막 명령이 떨어진 그 모습 그대로 선 채 하염없이 주인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호도 움직임은 없다. 만약에라도 그랬다가는 제우스를 위시한 다른 헤비 워커들이 단체로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을 잔인하게 다구리를 놓을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서열을 우선하는 헤비 워커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 조차 하지 않은 채 추호의 움직임도 갖지 않았다. "흑흑...." 그런 그들의 귀로 어느새 촉촉히 젖은 주인의 울음소리만이 남아 맴돌고 있었다.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주인의 울음소리에 어느 순간부터 가슴 한쪽이 시려오던 헤비 워커들은 마음속으로만 주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짧고 소리나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서 있어야만 했다. 만약에라도 주인이 이상한 명령을 내리며 자신들에게 엄포를 놓을까봐 걱정을 하는 눈초리도 빼먹지 않고 꼭 챙기는 알뜰한 쇠덩어리들이기도 했다. 왜냐면 주인의 격앙된 울음소리와 더불어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대지의 기운들은 지금 거대한 움직임을 무형의 기운으로 똑똑히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주위의 마나를 둥근 원형 안에 담겨진 작은 삼각형의 마나 하트로 보내고, 그 위로 여러 겹으로 된 또다른 원형과 삼각형의 마나 하트들이 내는 운동 에너지의 기본은 바로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대지의 기운들인 것이다. 그런 기운들을 몸안에 퍼오듯이 담아서 활동을 하는 헤비 워커들이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강철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기운들의 거센 움직임에 긴장을 풀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더욱 긴장한 헤비 워커들의 짧은 생각엔 분명히 지금의 이 기운들을 움직이는 것은 주인이 확실하다고 여겨졌다. 또한, 또다시 어디로 튈지를 모르는 주인이 대지의 기운들을 모으고 있는 모습에서, 그들은 약간의 긴장과 더불어 역시 자신들의 주인은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런 숨막히는 긴장감과 대지의 기운들의 거센 움직임이 한동안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핥키고 돌아 다녔다. 한참을 긴장 한 모습으로 주인의 다음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헤비 워커들은, 주인의 감정이 격해 졌는지 평소 자신들을 근엄(?)하게 다스리던 모습과는 전혀 달리,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던 주인의 몸 주위에 굉장히 강한 기운들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느낌에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윽, 드디어 시작되었다. 조심............또 조심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이런 마음을 제일 먼저 먹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동료애로써 어깨를 맞대고 선 채 모두들 자신의 마음이 동료들의 마음과 똑같다는 것을 작게 떠는 어깨너머로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들의 이런 모습은 금새 주인의 주변에 거대한 기운들을 움직이며 나타나는 존재에 대해서 초특급 경호체계로 넘어가야만 했다. '꿀꺽, 누군가가 다가온다. 이건 도저히 내 힘으론 벅찬 그 이상의 거대한 존재가.....' 제우스는 굵은 침을 삼키듯 잠시 긴장한 목을 뻣뻣한 모습 그대로 살짝 움지여야만 했다. 지금 주인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나려고 하는 존재의 거대함은, 자신의 몸안에 담긴 대지의 기운으로는 도저히 상대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이런 그의 마음은 다른 헤비 워커들과도 동일한 듯 했다. 모두들 하나같이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폼이 꽤나 긴장한 모양이었다. 허나, 그들은 갑자기 모습을 들어내려고 하는 거대한 존재들과 그런 존재들로부터 반드시 주인을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만큼이나 허전한 그 무언가를 급히 느껴야만 했다. 그것도 매우 허탈할 정도로 이루어진 주인의 단 한마디 때문에...........!!! "우아아아앙. 할아버지가 죽는 거 싫어~!! 이 못난 싸이 때문에.......흐윽..... 모두들..........모두들 나와~~!! 나오란 말야~~! 우리 할아버지 살려 내~~!!! 엉엉" 이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그 큰 발로 마구 밀치면서 울부짖는 싸이의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제아무리 과거에 똑똑한 수재이면 뭐 하는가? 도저히 그 당시의 똑똑한 기억으로도 지금 눈앞의 현실을 어떻게든 돌파할 방법이 전무했다. 마법? 이게 있으면 무얼 하겠는가? 아직은 어리디 어린 자신으로썬 5써클의 유저 수준만으로도 대단한(?) 존재이거늘. 6써클의 마스터들이나 쓸 수 있는 신성 치유주문과 8써클의 재생 주문을 쓸 생각을 아직 어린 싸이로썬 도저히 하지도 못했다. 이런 한심한 자신 때문에 이토록 심하게 다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싸이의 눈엔 암담한 현실과 못난 자신의 실책이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것.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 한 채,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지켜주기 위해서, 직접 온몸으로 희생하면서까지 어린 싸이를 지켜주려고 했던 존재였다. 결국 어린 자신이 이런 한심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할아버지.....아니 진한 혈육에 대한 향기를 전해주는 존재를 되살릴 힘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포기해야만 한다는 점이, 더욱 자신을 향한 독설과 비수로 싸이의 가슴속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터지도록 서글픈 싸이었다. 결국엔 몸 안에 잠재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 마구 떼를 쓰면서 강하게 의념을 일으키는 싸이였다. 허나, 이런 싸이의 노력(?)은 또 다른 기적을 만들고 말았는데........ 번쩍. 휘이이익. 주위가 온통 광풍과도 같은 회오리 속에 휩싸이고 있었다. 헤비 워커들이야 워낙에 거대한 덩치와 그에 걸맞는 무게를 지니고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콘돌은 자신의 주변에서 마구 소용돌이치는 바람의 위력 앞에 까마득히 하늘로 날아오르다 재빠른 제우스의 회피동작으로 인해 겨우 제우스의 손바닥 안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휘유유유.' 가슴 철렁이는 순간이었다. 다행히도 자신과 눈이 마주친 존재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저 바람 속에서......... 모든 생명체들과 자연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먼지로 만들고도 남을 광풍의 위력이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앙............할아버지..........." 아직까지도 그런 거센 바람엔 관계없이 목을 놓아 울부짖고 있는 싸이었다. 그리고 그런 싸이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아래로 흘러내리고, 그런 눈물 방울들이 광풍과도 같은 바람을 만나면서 마치 안개처럼 희뿌연 아지랑이를 남기며 사라지자, 순식간에 싸이의 눈물이 함유된 바람 속에는 작은 빛 무리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싸이와 그 앞에 누워 있는 갈리아스 옹과 거의 난도질 수준에 가까운 몰골로 싸이의 뒤에 누워있던 밀란에게까지 그 넓은 부위를 온통 날라 다니고 있었다. 파앗. 휘르르르르륵. 번쩍. 작은 빛무리들이 와닿는 곳엔 이런 신기한 현상이 한동안 이어지기 시작했다. 갈리아스 옹의 구겨지고 벗겨진 허물들은 뿜어내던 작은 빛무리들과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핏줄기들이 멈추고, 어느새 그 위로 하얀빛을 띤 작은 현상을 만들고 있었다. "뭐........뭐얏? 이게 무슨 일?" 라이어나는 지금 수십 만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생전 처음으로 자신의 명령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발생한 거센 바람의 힘과, 그 때문에 물질계의 모든 곳을 핥퀴고 지나가면서 태풍이 거쳐간 모든 곳들은 광폭한 바람에 의해 한순간에 파괴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거세게 울부짖는 바람들의 울음소리에 한동안 먹통이 된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다. 자신이 이제껏 관여해오던 바람들의 힘이 정령왕인 자신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거칠게 반항하는 광란의 바람들을 잠재우기 위해서 라이어나는 어쩔수 없이 잠시 물질계로 그 몸을 들어내야만 했다. 허나 그가 모습을 들어낸 물질계에선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모든 생명의 바람들이 자신을 마구 거부하면서 끝까지 강한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이미 그 여파로 생긴 회오리바람에 의해 점점 그 문제의 바람이 이는 곳으로부터 밀리듯이 멀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허........정말로 어처구니가 없군. 이게 도대체 뭔 일이야?" 마치 바람의 정령왕인 자신을 침입자로 간주한 듯 덤비는 날카로운 칼날 바람들 속에서도 역시 바람의 정령왕은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정확하게는 자신도 첨 보는 물질들로 형성된 바람들이었지만, 그 바람을 일으킨 존재가 자신과 무척이나 친숙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 후에야 라이어나는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신기한 현상을 만들어 낸 존재로 여겨지는 이가 아직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던 라이어나는 이내 거센 칼날 바람과 그 뒤를 따라오는 괴수(?)의 울부짖는 울음 속에서 자신이 이토록이나 빠르게 흥분상태의 낯선 바람들과 친숙하게 된 원인을 똑똑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라이어나는 바람의 정령왕이 되고 나서도 아직 이런 광란에 가까운 바람들은 보지를 못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런 광풍 속에선 정령왕이라는 체면보단 그 체면을 갖추게 만든 능력으로 조금이나마 버티면서, 그 바람의 핵을 찾아서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자신의 눈에 거센 회오리 안에서 또다른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는 부위와 그 부위로 몰려들고 있는 하얀 실들을 발견하곤, 역시 대지의 모든 마나들이 왜 저 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지를 그는 금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왜? 이 물질계에서 하얀 실처럼 생긴 모든 마나들을 이토록 쉽게 모아서 이런 거센 폭풍을 몰고 올 이는 오직 단 한명뿐이기 때문이었다. "싸......싸이님?!" 휘리리릭. 이제 이런 일의 모든 원인을 알게 된 라이어나로썬 바람의 정령들과 그들의 모체가 되는 대자연의 기운들이 불러일으킨 바람을 뚫고, 순수한 마나들을 주위로 불러모아서 일으키는 광풍들 사이로 쉽게 이동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에게 다가간다는 그의 의념을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대자연의 기운들이 이해했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마치, 자신들과 이 거대한 기운들을 움직이는 존재가 하나라는 느낌을 하얀 실들로 구성된 대자연의 기운들이 온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모든 정령들의 모체가 되는 대자연의 기운인 마나. 그런 마나들이 이토록 흥분상태로 모여들었다고는 해도 어차피 그 마나들이 결국 형체가 되고, 그런 형체가 된 존재들인 정령들을 부리는 정령왕으로썬 손쉽게 흥분한 마나들을 다독이면서 점점 더 많은 마나들을 모으고 있는 싸이의 곁으로 다가설 수가 있었다. 그런 그가 싸이의 곁에 도착해서 발견한 놀라운 일은, 너무도 가슴 저리는 울부짖음의 주인공 싸이와 그 앞에 누워서 기절한 듯 꼼짝도 못하고 있는 갈리아스 옹의 거대한 거체였다. "이....이럴수가.....어떻게 에이션트 드래곤들 중에서도 고룡으로 손 꼽히는 갈리아스가....." 비록 뒤에 보이는 시커먼 블랙일족의 거체와 이를 통해서 느껴지는 사건의 일말들 전부를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똑똑한 라이어나였지만, 그래도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는 잘 알진 못해도 시커먼 골렘들이 경호하듯이 둘러싼 싸이를 보호하며, 마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그 시커먼 덩치의 헤비 워커들에게 난도질을 당한 듯한 밀란의 거체를 갈리아스 옹과 비교해 보며 어느정도 지금의 상황을 조금씩 정리할 수 있었다. 허나 도저히 갈리아스 옹의 상대가 되지 않을 블랙 드래곤이기에, 조금은 머리 속이 복잡한 라이어나였다. 그건 라이어나 뿐만이 아니였다. 우르르르. 라이어나가 마나들의 회오리 속에서 겨우 싸이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던 시점을 기점으로 해서 모든 정령왕들은 자신들을 부르고 있는 애절한 외침에 이끌려 모두들 물질계로 동시에 이동을 해야만 했다. "모두들 나와~!!! 나오란 말야~~~!!!" 이 말이 전해주는 여파는 정말로 장난이 아니였다. 전 세계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마나들이 단 한 명의 울부짐으로 인해 이곳에 모두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갑자기 생긴 마나들의 충돌은 한공간에 수많은 마나들의 집합과 부딪힘으로 인해 생긴 충돌여파로 거대한 돌풍으로 발생했다. 마치 물질계를 온통 난도질해버릴 듯한 거센 돌풍이었다. 허나, 그런 바람들 속에서도 그 속에 존재하는 각자의 속성인 마나들로 인해 조금씩은 행동에 자유로움을 느끼던 정령왕들은, 지금 자신들을 눈을 미처 못 뜨게 만들고 있는 이 모든 바람들과 그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라이어나를 속으로만 원망해야 했다. 그들은 이런 짓을 방관한 라이어나가 무지하게 미웠지만 그것보단 자신들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 애절한 목소리에 반응해, 다급한 마음에 아무소리도 못한 채 서서히 자신들과 친숙한 마나들의 물결을 헤치고 싸이의 곁으로 속속 모여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헌데, 이 바람의 정령왕인 라이어나 녀석이 싸이의 곁에 제일 먼저 당도한 것을 발견한 다른 정령왕들은 속에 든 불만들을 마구 떠벌리며 뭐라고 하려는 순간에도, 싸이의 울부짖음은 계속 이어졌다. 이런 싸이의 울음소리에 광분한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마나들이 하나로 뭉치면서 일으키는 바람들을 보게 된 그들은, 그제서야 이 문제의 바람이 라이어나조차도 밀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똑똑히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자신들 정령왕의 힘을 넘어선 강한 존재의 잠재된 기운이 이 바람들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들의 머리 속은 그순간 하얗게 변해 버렸다. "허어어억........위.......위험........." 꾸아아앙. 미처 말할 틈도 없었다. 서로 다른 마나들이 계속적으로 흥분하면서 부딪히자, 그 여파로 계속 거센 바람들이 생겨나고, 그 힘은 이곳 물질계의 모든 바람들을 관리하는 라이어나 조차 날려버리려고 하자, 다른 네가지 기운들의 정령왕들은 그저 멍하니 넋을 잃은 채, 싸이만 바라보는 라이어나에게 조금씩 동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힘을 빼앗긴 정령왕의 탄생을 보는 뭐 같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싸.....싸이님......" "헉.....나.........난.........." 불덩어리들로 구성된 머리카락들이 그의 머리 위에서 한순간 때를 만난 듯 거센 바람에 마구 일렁이자, 급히 머리칼을 부여잡으면서 놀란 마음에 헐떡이는 프레임과, 축축한 안개들이 흠뻑 함유된 바람들을 피부로 느끼면서 그 속에 담긴 또다른 신비한 힘을 느낀 클라우드가 동시에 싸이를 불렸다. 허나 싸이는 미처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갈리아스 옹의 몸을 부여잡고 바닥을 치며 엉엉 울고 있었다. "우아아앙. 할아버지.........할아버지 살려 내란 말야~~~!!!! 우아아앙. 모두들 미워.........할아버지가 죽으면 모두들 가만 안 둘 꺼야~!!!!" 휘이이익. 화르르르륵. 더욱 거세어 지기 시작하는 바람들이었다. 아마도 싸이의 강한 의념이 전달이 되자 그속에 잠재된 미증유의 힘들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마나들이 더욱 안절부절을 못하는 듯 요동을 치는 모습이었다. 헌데, 그런 마나들의 거센 움직임에 기겁을 하는 인물들은 따로 있었다. "우아악.....안돼..........야~! 모두들 그만..............!!!" 동시에 외쳐지는 정령왕들의 고함에도 대자연의 기운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넌 뭐냐? 라는 식으로 마구 날뛰는 마나들의 발악에 제일 먼저 반응을 한 라이어나는 금새 이런 소동을 일으키는 싸이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머리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런 그의 몸에는 지금도 누군가와 하나로 연결된 끈으로 인해 친숙함을 느끼던 대자연의 기운들이 아직 그를 완전히 신뢰를 못하는 듯 거칠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싸이님......제발.......이제 제발 그만............" 꼬옥. 언제나 친숙하던 바람이었다. 이 하얀 색의 마나들로 구성된 바람의 기운이 자신을 감싸 안자 조금은 마음이 안정이 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허나 눈앞의 할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으로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하자 싸이는 더욱 미칠 것만 같았다. "우아아앙. 안돼~!!!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흐윽........바보같이 말을 안들은 나 때문에...........흐끅.....우아아앙." 참으로 어리석은 자신이었다. 아마도 9써클 이상의 보호막 이었을텐데 왜 그곳을 나섰는지..... 어떤 이상한 끌림이 자신을 잡아 당겼다고 해서 호기심으로 겁 없이 그 곳을 나가 이런 비극을 불러 일으키다니............ 물론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마음속에 인 강한 끌림에 본능이 호응하며, 나름대로 자신과 몸체가 비슷한 검뎅이 드래곤에게 난 겁날 필요가 없다고 자부한 어리석은 싸이 자신이었다. 왜 마음속에서 인 이상한 강한 끌림에 사로잡혔는지........ 정말로 한심하고 못나디 못난 자신이었던 것이다. "흑흑흑......다.......이 모든 것이 다 내 잘못이란 말야.......흑흑흑." 토닥토닥. 꼬옥. "싸이님.......이제 그만 진정하세요.......갈리아스는 안죽어요.....제발......." 흐윽. 딸꾹. 반짝. 싸이는 본능적으로 갑자기 들려오는 어떤 이의 말에 귀를 쫑긋거리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에 심한 딸꾹질로 울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너무 갑자기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잠시 아려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싸이는 눈물로 가득찬 두 눈을 겨우 떴다. "정.......정말이야?......정..정말 그 말이 사실이야?" "네. 그러니 이제 진정하세요.....이봐! 내 말이 맞아? 틀려?" 라이어나는 지금 은색의 전기가 흐르는 듯한 싸이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도저히 더 이상 싸이의 눈빛을 받기가 어색해, 주위에 모여든 다른 정령왕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허나. 주르르륵. 헤~에. 순식간이었다. 주위에서 요동을 치던 그 광풍들이 싸이의 이 단 한마디로 인해 뚝 그치듯이 잔잔히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라이어나를 바라보는 싸이의 눈동자를 발견한 네 명의 정령왕들은 하나같이 입을 벌린 채, 그 신비감이 감도는 눈빛과 그 속에 어린 작은 눈물방울을 넋이 나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헤~에. 진.....찐짜로 귀엽당......헤꾹....." 퍼억. "우악........누.....누구얏?" 플레임은 역시 가장 순수한 불꽃이다. 자신의 가슴속에 담긴 말들을 일부러 숨기는 그런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그의 찐한 표현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다른 존재들이, 얼른 자신들의 실책을 눈치채곤 잽싸게 이 푼수덩어리 정령왕의 머리와 다리를 강하게 공략했던 것이다. "야. 이 불꽃덩어리야. 지금이 어느 때라고 침을.......쯔쯔쯧." "어서 그 침 안 닦어? 이게 지금 누구 앞에서......" 부리부리. 전부들 완벽한 내숭으로 어느 한 존재를 바보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흥.....이것들이 작당을 하고선 나만........쳇" "이게........." 휘리릭. 덥썩. 작은 땅꼬마가 주먹을 말아 쥐자 잽싸게 어느 소중한 부분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던 플레임은 그런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째려보는 다른 정령왕들의 눈을 피해 잽싸게, 그것도 아직 라이어나의 대답만 기다리며 간절히 바라보는 싸이의 촉촉한 눈망울을 향해 날아갈 듯이 다가갔다. "헤헤. 싸이님. 안녕....헤헤..." "흑....딸꾹.....흑.....프레임 아저씨....흐윽.....우아아앙." 덥썩. 도리도리. 꼬옥. 부리부리. 싸이의 슬픈 눈망울을 살며시 닦아주던 프레임을 못마땅해하던 정령왕들이 이젠 아예 참았던 눈물을 다시 터트리며 프레임의 품에 덥썩 안겨 버린 싸이와 그런 싸이를 꼬옥 안아주는 프레임을 향해 집단적인 움직임을 벌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한마디로 자신들도 아직까지 못 안아본 주인의 몸을 겁없이 마구 안아주는 프레임에게 질투의 불길이 확 치솟았던 것이다. 허나 이런 그들의 움직임을 미리 봉쇄한 인물이 있었으니........... "저....싸이님." "우웅.......흑......" "저기.....싸이님 지금 그러실 때가 아닌데........" 라이어나는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간 존재가 더욱 허전한 느낌이 일자, 최대한 무언가를 자제 하는 목소리로 싸이에게 조금은 급박한 현실을 일깨워 줬다. "흑....할아버지......." 벌떡. 할아버지가 다시 생각난 싸이는 자신의 곁에 나타난 존재들로 인해 조금 안심이 되었던 마음이 또다시 급하게 변하자, 이내 그런 깨달음을 전해준 라이어나에게 다시 좀 전과는 비교도 안될 눈빛을 보내며 간절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흑. 라이어나 아저씨. 제발.....어서 제발 우리 할아버지를.......흑" 더 이상 말문이 막혀서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런 싸이를 모두가 이해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며 한순간 대지를 핥키며 찢어발기던 현장에선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진한 감정들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저....싸이님. 아무래도 지금 저희들이 하는 응급치료보다는 재생 주문을 자유롭게 하실 수 있는 에르킨님 곁으로 가는 게 더 좋을 듯 한데......." 이미 물의 지배자 클라우드가 갈리아스 옹의 곁에 다가가서 그의 상처난 부위들을 주변의 기운들을 모아서 빠르게 회복을 시키고 있었다. 허나 이것도 물의 기운을 지닌 실버 일족이기에 잠시나마 취할 수 있는 임시방편일 뿐. 몸 안의 모든 세포들과 뼈들이 심각하게 중독이 되고 물리적인 충격으로 심하게 다친 갈리아스 옹에게 이런 임시방편으로는 그를 되살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라이어나였다. "흑......흑.......난 워프도 할 줄 모른단 말야~!!" 이제 제대로 된 싸이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자신이 왜 이곳에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는지 속의 마음 그대로를 이들에게 전하는 싸이었다. "헉.........어떻게 그 많은 기운들을 의지 하나로 부리시는 존재께서, 순간이동이나 워프를 모른단 말씀이세요?" 끄떡. "흑. 라이어나 아저씨. 난 아직 워프 주문도 모른단 말예요...흑. 그리고 할머니 집이랑 지금 제가 있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몰라요. 흑." "헉....어떻게.......그....그래서 지금......." "흑..........훌쩍." 끄떡. 울음을 조금씩 자제하며 고개를 끄떡이는 싸이를 보면서 워프를 하려면 어느 방향의 어떤 좌표인지를 알아야만 하는....... 그래서 머리 속으로 그곳과의 거리와 이동경로를 계산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그제야 기억한 라이어나는, 금새 침울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싸이에게 비로소 자신들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흐음. 예전에 갈리아스 옹이 잠이든 싸이님을 안고 그냥 이곳으로 워프를 했다는 걸 깜박 했군....이런.........흐음.' "죄송해요. 싸이님. 제가 그만 실수를..........그럼 지금 이렇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어서 에르킨 님한테 가셔야죠. 자 어서 일어나세요." 라이어나는 땅바닥에 아직도 앉아 있는 싸이를 다독여 일으키면서 갈리아스 옹의 곁에 앉아 있는 클라우드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클라우드도 알았다는 듯 갈리아스 옹의 곁으로 물의 하급 정령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굳이 필요가 없는 듯 했다. "안돼. 너희들 모두 비켜~엇~!! 나를 지켜주신 소중한 분이야. 너희들이 감히 안을 분이 아니란 말야~!!!" 싸이는 재빨리 할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가선 정령왕의 명령에 급히 모여드는 하급 정령들을 그 작고 앙증맞은 팔로 휘휘 내치는 단순 무식한 모습으로 무찌르고선, 자신이 직접 갈리아스 옹의 처참한 거체를 번쩍 들어 품속에 꼭 안아 들었다. "끙차. 라이어나 아저씨.....빨리요.......빨리........." 축 늘어진 갈리아스 옹의 무게가 꽤 나갈텐데도 얼굴 표정하나 안 바뀌는 싸이의 대단한 의지와 그로 인해 생긴 힘을 보면서 흐뭇한 생각이 든 정령왕들은, 이내 에르킨 여사가 있는 곳을 향해 다같이 이동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 제 38 화. '이곳은 어디일까? 과연 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건가?' 한차례 거대한 폭풍이 인 듯한 곳에선 지금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은 작은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의 가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게 숨을 몰아 쉬는 게 아직은 분명히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존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은 거의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찾아오는 가슴 벅찬 환희였다. 자신의 몸을 투명한 성스러운 빛이 감싸는 듯한 세계 속에서, 작고 가냘픈 여자로 보이는 존재는 자신을 감싼 그 빛의 밝음에 이끌려 서서히 몸에 남아있는 고통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갇힌 지하 석실에서 미세한 진동이 생긴다고 여겨진 순간, 빨려들 듯이 지하의 까마득한 무저 세계로 떨어진 그녀의 육체는, 이미 만신창이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끼니도 제대로 먹지 않은 채, 아니.....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내들의 손아귀 속에서 그녀의 몸과 마음은 이미 스스로의 자아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맑고 순수한 영혼이 어린 그녀의 육체는 이미 그 불타는 신념을 잃어버렸고, 그녀의 육체가 지쳐갈수록 그 속에 담겨진 영혼은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만 빠져들고 있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사내들의 노리개로 전락한 그녀를 고이 놔줄 짐승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 혀를 끊으려해도 입안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살 방지용 재갈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짧은 삶을 스스로 끊지도 못한 채, 짐승보다 더 심한 사내들의 욕정에 의해 갈갈이 찢긴 영혼만을 가진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그녀에게 죽음은 차라리 편안한 휴식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 차라리 이대로 영원히 잠이 들었으면.......' 깊은 지하세계로 떨어진 충격에 의해 그녀의 육체는 이미 그 기능을 잠시 중단하려는 몸짓을 보냈기에, 그 몸의 주인인 맑고 순수한 영혼은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이렇듯 평화로운 휴식을 취하려고 했었다. 그 순간이었다. 하얀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마지막을 마감하려는 그녀의 영혼 속으로 어떤 낯익은 존재가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리석은 아이야. 넌 왜 스스로를 죽이고자 하니?" 마치 대지의 여신인 듯 모든 것을 품안에 안고 사는 존재가 그녀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주르륵. 거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 그녀의 눈가로 작은 이슬들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이야. 내 품으로 오렴. 이 넓은 대지만큼이나 깊고도 포근한 내 품속으로 오렴." 속삭이듯 그녀의 영혼에 작은 울림을 주는 존재의 모습은 온통 환한 빛무리에 쌓여 눈을 띄지 못할 만큼의 강한 이끌림을 그녀에게 선사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세계에 들어온 이 존재의 작은 손짓과 더불어 전해주는 성스러운 속삭임에 쥬엘은 점점 자신의 몸이 어느 곳으로 떠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지혜롭고 자비로우신 이여. 당신께 이 더러운 육신을 받치고 싶습니다.' 이미 기능 저하로 혀가 마비된 쥬엘의 육신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올 수 없었다. 허나 그녀가 가졌던 예전의 성스럽기까지 한 맑고 순수한 영혼은 어느 존재에게 지금 이런 간절한 자신만의 외침을 전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잠시 빛무리들이 그녀를 감싸안으면서 그 속에서 쥬엘은 평소 동경해 오던 한 존재의 따스한 품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언제나 나를 지탱시켜주시는 분. 바로 그 위대하신 분의 품이야...........흑, 이 짓밟히고 볼품없는 육신을 이리 감싸주시다니...........' 그동안 가슴속에 맺힌 한이 너무도 크기에 그녀를 감싸주는 어떤 분의 손길에 쥬엘은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또르륵. 작은 이슬방울들이 하나둘 맺히며 길게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얼굴에, 잠시 고통스런 표정이 일기가 무섭게 그녀를 감싸안는 빛의 무리가 더욱 강하게 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자신을 감싸안으며 그 속에 담겨진 한과 서러움이 그 빛의 따스함에 서서히 녹아들자, 쥬엘은 기억하기도 끔찍한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평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마치 어미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며 온몸을 떨던 순결한 작은 새가 어미의 품에서 서서히 잠이 드는 것처럼, 쥬엘의 맑고 순결한 영혼은 그 속에서 점점 밀려드는 환희의 세계로 이끌려나가고 있었다. 따가닥. 따가닥. 검은 색과 붉은 색이 장엄하게 어울려 육중한 느낌을 주는 초호화 마차가 깊은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 마차의 양쪽 모서리엔 펄럭이는 황금색의 깃발과 흰색의 매가 새겨진 깃발이 꼽혀져 있었다. 황금색 깃발 안에는 골드와 실버 드래곤이 가는 형상으로 새겨져 쌍두룡의 모습을 한 형상을 담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 꼽힌 흰색의 깃발은 마치 하늘을 뚫고 날아오르려는 듯한 매의 강렬한 기상이 담겨져 있었다. 이런 초호화 마차가 지금 깊은 산 속으로 접어들고 있는 곳엔 지금 이상한 현상이 눈에 띄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의 초호화 마차면 어느 부유한 왕국의 왕실전용으로 많이 쓰인다. 마차의 육중한 동체에 맞게 든든하게 보이는 문에는 쌍두룡이 새겨진 방패가 왕국의 문장을 상징하고 있었고, 윤이 나는 재질로 봐선 왠만한 왕국에선 결코 사용이 불가능한 고가의 마차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마차를 이용하는 자들이 어찌 단 한 명의 호위기사도 없이 한 명의 마부가 끄는 마차 안에서 이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지금 이 마차를 끌고 있는 사내는 보통의 마부들과는 달리, 거구의 몸에 가벼운 가죽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은 체인 메일이 상체의 주요부위만을 감싸고 있는 걸로 봐선, 역시 이 마부도 범상한 존재는 아닌 듯 했다. 고가의 마차에 걸맞게 비싼 체인 메일을 몸 안에 걸친 사내의 눈은 지금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이 사내는 마차를 매우 조용히 몰고 가는 것일까? 누군가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빠른 속도로 벗어나는 것이 통념화된 이곳에서, 마부를 자처하는 사내는 매우 조심스럽게 마차를 이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자세히 들여다봐도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인 왕실전용 마차의 등장이었다. '이제 잠시 뒤면 그곳의 영토로 접어든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무난했지만 여기서부터는 방심은 곧 죽음과도 직결된다.' 이를 지긋이 깨물면서 메테우스는, 그동안 제법 오랜 시간동안을 여행한 듯 덥수룩한 수염으로 얼굴의 반을 가린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의 메테우스는 눈앞으로 점점 다가오는 거대한 숲의 대지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꿀꺽. 몹시도 긴장이 되는 듯 굵은 침이 그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에 불타는 그의 눈동자엔 결코 두려움으로 인해 패배자가 되기 싫다는 의지가 뚜렷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메테우스가 간간이 마차의 뒤에 매달린 그 무언가와 자주 시선을 마주치면서 들어서기 시작한 곳은 헬요리네 산맥이라고도 불리는 거대한 가문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숲을 수호하는 자들은 엘프라는 통속관념을 깨고 이곳의 모든 숲은 사시사철 푸르름을 떨치면서도 스스로의 자생을 추구하고, 대지를 디딘 존재들의 생명고리로도 불리는 약육강식의 법칙도 이곳에선 모두 제외시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사냥이 아니면 이곳에 살고 있는 약한 동물들도 떼거지로 모여들어 자신들의 천적에게 대항하였고, 약육강식의 최강자인 오거와 와이번도 함부로 사냥을 다니지 않는, 모든 동식물들의 포근한 안식처에는 사실상 이곳의 주인 된 자의 평화로운 생각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기에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는 모든 동식물들에게 침입자의 방문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낯선 방문객이 나쁜 뜻으로 이곳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은 그들은 유심히 방문객들을 관찰하고만 있었다. 그 때문에 메테우스는 위대한 가문의 영지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일거수 일투족을 낱낱이 해부하는 듯한 느낌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때문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메테우스는 이내, 이곳에서 전해져 오는 미묘한 살기와 그들이 자신을 지금도 바라만 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찔함을 느꼈다. '윽. 이게 바로 위대한 가문의 지킴이들과 그들의 힘인가?' 자신의 상관이자 존경해오는 주군에게 간청을 드려 이곳으로 오게 된 메테우스는 주군의 지나가는 말투 속에 담긴, 이곳만의 느낌을 이제서야 피부로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허나 결코 여기서 발길을 멈출 메테우스가 아니였다. "어떤 힘든 길도 난 반드시 가야만 한다. 내가 지금 가고자 하는 길엔 나의 영원한 주군이 계시다. 난 그분의 영원한 종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자는 베고야 만다. 가다가다 못 가면 그곳에서 죽음으로써 그분께 불충한 이 목숨을 드리면 되는 일. 나 메테우 리트라인 딘 카리아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이곳에 사는 모든 이여~!! 나 메테우스는 여기 계신 내 소중한 분을 찾아 왔도다. 난 그 분의 영원한 어린 종. 이런 나에게 그대들의 자비를 부탁한다. 이런 내가 못마땅해 막을 테면 막아도 좋다. 어차피 난 이곳에서 그분만의 목숨인 내 목숨을 묻을 각오로 왔도다. 이제 그대들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하겠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메테우스는 가슴을 쭉 펴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대한 산들이 자신의 시야를 꽉 매운 곳에서, 그는 옆자리에 둔 검을 힘차게 움켜쥐며, 그 넓은 가슴에 담긴 자신의 진심을 눈앞에 대지에 발을 디디고 사는 존재들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그가 마지막에 취한 자세는 바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사도의 자세였다. 두 손으로 꽉 움켜진 검을 눈앞으로 바짝 이끌어 당기며, 결코 적에게 뒤를 보이지 않는 기사로써의 자세와 더불어, 상대에게 예의를 다하는 기사도에 충실한 모습을 그는 진심을 담아 이곳에 있는 존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조금은 인간답지 않게 걸걸한 메테우스의 우렁찬 목소리에 잠이 깬 새들이 시끄럽게 하늘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운명의 만남. 철부지 시절엔 나에겐 오직 검만이 유일한 벗이었다. 어차피 기사의 아들로 태어난 나에겐 가장 큰 목표는 중앙기사단의 정식 기사였다. 정식 기사로 수여식을 끝내면, 그담에는 이시대 최강의 기사로도 불리는 워리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검을 쥔 채 보낸 날들만이 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때는 왜 그리도 즐거웠었는지....... 하루의 시작을 내 목검과 같이 시작을 해선, 목검의 빈 몸통안에 굵은 쇠심을 하나둘 채우는 순간들이 더욱 더 행복하기만 했었다. 내 아버지는 정식기사로 최전방 야전 기사단에 계시는 분이셨다. 때문에 나는 그분을 졸라 야전 기사단의 기사들속에서 내 유년시절들을 보냈다. 온통 시끌벅적한 사내들의 품속에서 난 그들이 희망하는 육체의 강함을 이루어주는 기사단 검술의 토대가 되는 레이스트 검술의 기수식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그덕분에 여섯 살 꼬맹이 시절부터 시작된 나의 검술 연습은 탄탄한 기초를 그곳에서 배우고 익힐수가 있었다. 단 하루라도 검술의 기수식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내 주위에 있는 기사들로부터 나에게 전염된 까닭에, 난 하루하루를 검술의 기초인 기수식의 반복행위를 시작함과 끝으로 하루를 끝맺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직은 어린아이에 가까운 나에게 최전방 시찰을 나온 그분과의 만남은 내가 유아기를 거쳐 갓 소년의 티가 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제 막 성인에 접어드는 그분의 모습은 하얀 백마의 갈기보다 더욱 빛나는 눈동자로 내 눈에 비쳐들고 있었다. 자신의 검술에 대한 자만은 오히려 독이 되는지, 그분은 시종일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행동하셨다. 일국의 왕자. 그것도 두 번째 왕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위엄과 체통은 모든 기사들이 고개 숙여 진심으로 충성을 맹세할만 하건만, 그분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들 앞에서도 항상 자신을 낮추며 웃음으로써 그들을 대하고 계셨다. 그리고, 항상 아침과 저녁시간마다 일국의 왕자로써 자신의 검술에 최고봉을 만드려는 듯이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에 난 더욱 더 내 검술의 기초를 다지기로 맘 먹게 되었다. 이런 내가 그분의 눈에 띈 것은 아주 우연에 우연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막사의 후미진 곳에서 내 나름대로 기수식을 연마하며 수직 베기와 수평 베기. 그리고 찌르기를 수없이 연습하며 내 나름대로 조금씩 응용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분이 내 앞에 모습을 들어냈다. "호오. 제법 기초가 잡혔군. 어디의 누구인가?" 왕족답게 근엄한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 그분을 발견한 순간. 난 손에 잡힌 검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내 나이 고작 12살. 아직은 어린 아이이기에 난 너무도 놀란 마음에 대답도 못한 채 그분을 멍하니 바라봐야만 했다. "이런이런...쯔쯧. 기사는 말야. 자신의 검은 죽음이 다가와도 놓치지 않는 법이야." 이런 말씀과 더불어 미천한 일개 기사의 자식인 내 어깨를 토닥여 주시며 친절히 바닥에 쳐 박힌 내 목검을 다시 쥐여주신 그분의 그 인자하신 미소. 난 그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하. 소인 미천한 기사 케네보 카리아의 아들 메테우스라고 하옵니다." 울먹이며 어떻게 이런 대답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참으로 창피한 일이었다. 허나 그분은 이런 나의 젖은 눈시울을 자신의 손수건을 빌려주시는 것으로 내 대답을 대신 하셨었다. 그 뒤 난 언제나 나혼자만 해야했던 기수식의 연습을 그분과 같이 할수 있는 영광된 시간을 조금이나마 가질수 있었다. 이미 일정이 짜여져 있기에 다른 곳으로 가셔야 할 분이, 이 미천한 기사의 아들인 나를 위해서 주변의 호위기사들에게 이곳에 잠시 머물겠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최전방 야전 기사단의 허술한 막사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내시며 나에게 모자란 많은 부분들을 전수해 주셨었다. "이봐. 메테우스. 넌 아직 어리잖니. 그러니깐 너무 무거운 검보단 가벼운 검으로 자신의 몸에 맞는 검술을 기억시켜. 우선은 빠른 판단과 함께 스피드를 살린 검으로 찔러오는 적의 검을 막고, 네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트리는거야." 항상 이런 식이셨다. 내가 모자란 부분에 대해선 일일이 옆에서 지도를 해주시면서, 내 나름대로 변형시킨 기수식에서 꼭 필요한 부분들을 세밀히 지도해주시는 왕족답지 않은 친절함. 난 그때부터 이미 그분만의 기사가 되는게 꿈이었다. 그리고 짧았지만 근 한달에 가까운 그분의 지도로 판이하게 달라진 나만의 검술은 오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나름대로 내 몸에 맞게끔 연마하는 시간들을 가질수 있었다. 때문에 난 왕립 기사 아카데미에 18살의 어린 나이로 그분만의 기사가 되는 내 소중한 꿈의 시작을 펼칠 수 있었다. 기사의 작위를 수여 받고 그분을 제일 먼저 찾아뵈려고 했지만, 그분은 이미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하시기 위해 긴 여행의 길에 떠나계신 몸. 결국 난 그분의 지도로 이미 완성에 가까운 나만의 검술을 익혔다는 칭찬과 함께 내 동기들과는 조금 더 차별된 대우로 현재 메르카 왕국의 왕실 호위대 기사로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나에겐 새로운 하루를 알리는 아침과 더불어 나만의 검술을 연습하고, 저녁 해가 떨어지는 시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내 몸에 땀으로 목욕을 한 뒤에야 하루를 끝맺는 시간들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간 그분이 내 앞에 모습을 들어내시면 난 제일 먼저 그분만의 기사가 되기를 반드시 맹세하고자 맘속으로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그러려면 난 더욱 지금보다 강한 기사가 되어야만 했다. 일개 야전군에 소속된 기사의 자식을 모든 기사들의 꿈의 대상인 왕실 호위대의 기사로 만들어 주신 나만의 소중한 주군. 그런 주군을 위해서라면 난 이 비천한 목숨도 내놓을수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른 뒤. 난 드디어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분을 뵐 영광을 가질 수 있었다. 이미 어린 시절에 뵈었을 때보다 더욱 높아지신 그 위엄성과 그 위엄성을 뒤받쳐 줄 수 있는 대륙 최고의 검객이 되어 돌아오신 나만의 주군. 그런 분의 옆에서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시는 나만의 주군에겐 너무도 잘 어울리시는 아리따운 레이디. 내 인생의 가장 절정기는 바로 그 두 분만의 결혼식에서 내가 그분들의 마지막 기사가 될 수 있었던 그 순간이었다. 모든 기사들의 결혼식 마지막 예식은 주변의 동료 기사들이 모여서 길게 두 줄로 나눠서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그 뒤 일제히 검을 뽑아 든 기사들 사이로 검림(劍林)의 길을 걸어가는 예식의 끝에선 마지막 기사의 외침. "그대들은 오늘 이 마지막 자리에서 이 땅의 모든 평화를 위해 반드시 맹세하여야만 한다. 그대 우리들의 자랑스런 기사도를 숭배하는이여. 그대는 자신의 검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킬 것을 맹세하는가?" "그렇다. 난 나만의 검으로 이땅의 평화를 위해 이 목숨 다 하여 명예롭게 지킬 것이다." "그럼 그대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검 앞에서 옆에 선 레이디께 목숨을 다 바쳐 사랑을 한다고 맹세 할 수 있는가?" "그렇다. 난 기사도에 의해 명예를 아는 몸. 나만의 레이디께 내 목숨을 다 받쳐 사랑하고 또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그럼 그대는 자신의 검으로 이 땅의 모든 이의 생을 지켜주는 맹세의 서약을 하였다. 지금 이 순간, 그대는 자신의 자식에게도 그 맹세의 서약을 이어나가게 하겠다는 서약을 다시 하라. 그대는 곧 명예로운 죽음으로 생을 맺을 자. 그런 그대의 자식 또한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자식으로 키우겠다고 이 검에 대고 맹세하라." 차창. 자신의 검을 뽑아 마지막 기사의 검에 무언의 맹세를 하며 뒤에 늘어선 기사들이 검림을 유지하는 검으로 바닥을 일제히 두드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기사들의 로망이자 자신과 자신만의 레이디에게 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기사들의 로망은 바로 자신이 모실 명예로운 주군의 마지막 기사가 되는 것이다. 그때야말로 처음으로 자신의 주군께 같은 기사로써 동등한 자격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바로 자신이 기사로써 모든 이의 평화를 위해 명예롭게 죽을 수 있는 소중한 동료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난 그분께 이런 말을 했다. 그분이 감히 이 미천한 야전군 소속 기사의 아들 앞에서 같은 동료로써 죽음을 맹세했을 때, 난 그분의 검과 맞닿은 내 검을 바라보며 애써 부들거리는 내 몸을 급히 바닥에 부복시켰었다. "주군. 소신 메테우스를 기억하십니까? 당신께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은 저 미천한 기사 메테우스 카리아. 이 순간 주군께 감히 이 보잘 것 없는 목숨으로써 당신만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는 기사가 되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실 난 이 말을 하기 위해 근 십 년 가까운 시간들을 오직 검으로만 살아왔었다. 때문에 주군이 그 당시 나를 거절했을 때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여도 내 지나온 짧은 삶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그런 나의 신념이 그분께 전달이 되었을까? 그분은 평소보다 더욱 환한 미소와 함께 나의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그래. 이제 기억이 난다. 다른 쟁쟁한 기사들을 제키고 네가 마지막 기사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로써도 약간은 의외였었다. 그런 너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내 눈엔 너의 검술이 어디선가 본 듯한 검술이었었지. 그때의 그 꼬맹이가 이렇듯 성장해서 이젠 내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다니........ 좋다. 난 너의 그 눈빛을 기억한다. 어찌보면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너이기에 난 이 자리에서 널 나만의 기사로써 임명하는 바이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이 가슴 벅참과 희열은 나를 평생동안 잊지 못할 기사로써의 자부심으로 살게 만들어 주었다. 주군의 레이디가 두분을 위해 목숨 받쳐 충성할 자신들만의 기사에게 다가가 손수 하얀 손수건처럼 생긴 천으로 바닥에 꼽힌 내 검의 끝자락에 수실을 달아주셨을 때, 난 이미 그때부터 나의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니였다. 이런 내 인생에 있어서 지금의 내 모습은 어찌보면 어리석을 정도로 느껴진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나의 조금의 실수로 인해 주군의 명예로움을 실추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허나, 난 안다. 내가 그동안 모신 나만의 주군. 그분이 지방 호족들의 암습에도 꿋꿋이 기사로써의 명예를 지키시면서 항복하는 자에겐 자비를. 끝까지 대항하는 자에겐 깨끗한 죽음을 내리시는 일을 난 그분의 곁에서 몇 년 동안 지켜봤었다. 그리고 그런 그분의 편안한 휴식은 바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어쩌면 주군과 나의 연대감은 설사 신이라 해도 끊을 수 없는 강한 감정의 교환들이었다. 그런 주군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엇보다 소중한 어떤 분이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나만의 주군이시기도 하다. 해서 난 여기까지 와야만 했다. 더 이상 과거 나만의 주군이셨던 분의 슬픈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난 그분의 예전의 그 따스한 미소를 찾아주어야만 하는 사명이 있다. 또한, 내 욕심이기도 한 내 소중한 주군을 다시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난 죽음을 불사하는 기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 이제 미지의 대지 앞에서 다시 한번 그때의 내 소중한 추억들을 되집어 본다. 내 허리에 차인 그분의 신물과 그분만의 레이디께서 내게 남겨주신 이 천에 대고 나 다시 맹세하리라. '난 주군을 위해 이미 명예스런 죽음을 각오 한 자. 이제 난 그분과 나만의 주군이신 싸이밸리 황태자님을 위해 여기서 나의 마지막을 맞이하리라. 그리고 반드시 나만의 주군이신 싸이밸리 황태자님께 그분의 어버이신 대공 전하의 진심 어린 사랑을 꼭 전해드릴 것을 신께 맹세하는 바이다.' 신룡의 후예 - 제 39 화. 타닥 타닥. 조용한 숲 속의 밤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메마른 나무 가지들을 주워서 작게 모닥불을 피우며, 오늘 하루의 마지막을 마감하려는 준비로 인해 메테우스는 잠시 분주한 손놀림을 놀려야만 했다. 스릉. 언제나 기사로써 남달리 자신의 검에 애착을 가지고 있던 메테우스였다. 더구나 그 검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신 분께서 직접 내리신 검이기에, 그에겐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신검이었다. 그의 이런 하루의 마지막에 행해지는 소중한 검의 마무리 손질은, 언제나 흐뭇한 미소를 그의 얼굴에 가득 싣게 만들어주었다. 언제부터 이런 버릇이 든 것인지는 그 스스로도 몰랐다. 단지 이 검만 바라보고 있으면 폼멜에 매달린 작은 보석보다 더 찬란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의 주군이 떠오른다. 그런 착각 속에서 메테우스는 자신의 검을 기름수건으로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후우........." 잠시 긴 호흡과 함께 그동안 참았던 숨결을 내뱉으며 하얗게 날이 선 검 속에서 자신의 더부룩한 못난 모습이 불빛에 비쳐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잠시 어색한 미소를 짓던 메테우스는 이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이상한 기운에 작게 어깨를 꿈틀거렸다. '드디어 시작되는 것인가?' 미세한 살기가 자신을 감싸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이곳에 자리를 틀면서부터 내내 느껴왔던 바이다. 하지만 이런 살기를 조정할 수 있는 존재들은 결코 하급의 흉측한 몬스터가 아닐 것이다. 때문에 그의 목을 굵은 침이 스쳐 지나가면서, 메테우스는 왕실전용 마차의 뒤에 매달린 수레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저걸 꼭 꺼내야만 하는가?' 잠시 갈등의 시간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차가운 밤공기들이 그의 등에 흐르는 땀 줄기들을 훔쳐 갈때즘에야 비로소 메테우스는 이를 악물고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대들의 생각처럼 이 신성한 곳의 불청객이 맞다. 하지만 지금 나의 소망은 오직 단 하나. 나만의 주군이 계신 저 머나먼 곳까지 기필코 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건 오직 나의 죽음만이 그 길을 가로막을 수 있다. 그대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 올테면 오라. 이 미천한 기사 메테우스가 그대들을 맞이하여 정정당당하게 싸워 주겠다. 대신 이것 한가지만은 꼭 알아두기 바란다. 난 꼭 싸울때만 싸운다. 쓸데없는 희생은 바라지 않는 바이다. 어떤가? 그대들은 이런 나와 싸우겠는가?" 메테우스는 자신의 눈앞에 아직은 형체를 들어내지 않는 이에게 정식으로 도전장을 띄웠다. 이미 미세한 살기를 뿜어내는 존재들이 몬스터 수준의 미개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간파한 그로썬, 이 정식 기사도에 충실한 모습만이 최선책이었던 것이다. 엘프는 신성한 숲의 관리자이다. 그들은 숲에서 태어나고 숲에서 자라난다. 이런 그들에게 인간들은 요정이라는 칭호를 붙여준다. 이는 너무도 신비에 쌓인 존재들이 그들이었기에, 간혹 엘프들을 본 인간들은 자신의 경험담들을 떠벌리며 자랑하길 좋아했었다. 때문에 이 숲의 관리자인 엘프족들은 달리 요정족으로도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엘프들의 특징이라면 바로 자신만의 영토에서 누군가의 침입을 알려주는 모든 동식물들과의 교감이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이자 그들만의 생존 법칙이었다. 오늘 정오 무렵. 한 떼의 새들이 창공을 날아오르면서 침입자의 출현을 알려주었을 때, 그랑텐 숲의 관리자인 사르트르 엘프족의 전사들은 급히 출전할 차비를 갖추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한참 젊은이들의 각광을 받고 있던 카피톨리노는 자신의 용맹성을 선보이기 위해 제일 먼저 침입자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헌데 그런 그의 눈에 보이는 낯선 침입자의 모습은 한마디로 당당함 그 자체였다. '으음. 인간이 어찌 이 신성한 곳에 와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이는 거지?' 카피톨리노가 속해 있는 그랑텐 숲의 관리자 사르트르 부족은, 헬요리네 산맥의 가장 외곽지대를 지키고 있는 부족으로써 간혹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들을 자주 봐온 경험들이 많기에, 추악한 인간들의 욕심과 그들의 어리석은 고집에 대해선 매우 현명하다고 평해질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인간들의 모습들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카피톨리노로썬 지금 눈앞의 사내가 보이는 저 당당함에 약간은 혼동이 오는 느낌이었다. 허나, 저 사내가 지금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바로 종족을 떠난 한 존재와의 신성한 결투의 신청이었다. 카피톨리노는 자신이 제일 먼저 침입자를 발견했기에, 자신의 뒤에 나란히 서 있는 부족의 전사들보다 침입자에 대한 최우선권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했다. 때문에 더욱 그는 자신의 눈을 빛내며 눈앞의 침입자에게 시선을 뗄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윽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침입자의 당당함이 고개를 숙이지 않자, 카리톨리노는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야만 했다. 이미 그의 지시를 기다리는 젊은 전사들의 몸에는 미세한 살기가 넘실 거렸다. 그런 그들의 혈기를 대표해서라도 자신이 무언가 확고한 대답을 해줘야만 했던 것이다. "나 카피 톨리노. 위대한 숲의 전사인 너희들의 수장이 될 위대한 몸. 이런 나에게 추악한 인간이 도전을 해왔다. 난 이곳의 먼 훗날을 책임질 관리자이다. 이런 내가 보기엔 아직 저 인간은 우리에게 큰 죄를 짓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한 저 결투신청만큼은 반드시 내 손으로 직접 받아주어야만 한다. 동지들. 이런 나의 의견에 반대가 있는가?" 요정들의 언어로도 일컬어지는 말로 동료 전사들의 시선에 일일이 대답을 하면서 내뱉은 그의 말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없었다. 단 하나. 인간이라는 추악한 존재가 던진 도전장을 그들의 이다음 족장이 될 지도자가 잠시 유보하겠다는 마음에 불쾌감이 그들의 눈에 잠시 어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종족이다. 때문에 사르트르 부족의 젊은 전사들은 자신들을 이끄는 카피톨리노의 말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이다음에 보여줄 용맹성에 대해서 그들은 기대가 어린 시선을 마지막에 보내는 것으로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뿐이다. "좋다. 계속해서 두고 보겠다. 우리들의 성지에 그 더러운 발을 디디고도 그 당당함을 잃지 않는 너의 신념이 무엇인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허나, 만약에라도 우리의 성지인 이곳을 더럽히는 행위를 범할 시에는 우리 부족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게 해주마." 두 손에 쥔 긴 레이보우 롱샷과 함께 등에 담긴 활통으로 시선을 보내면서 카피톨리노라는, 이 헬요리네 산맥의 외곽을 관리하는 사르트르 부족의 젊은 지도자는 서서히 눈앞의 존재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단지, 용언이라고도 전해지는 드래곤들의 신성한 언어만큼이나 존재감이 확실한 요정어로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은 잊어먹을 수가 없었던 그였다. 메테우스는 잠시 자신의 모든 것을 훑듯이 전신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어떤 존재의 의지가 담겨져 전해오는 기운에 잠시 그는 당당한 가슴을 더욱 활짝 펴면서 두 손으로 자신의 검을 집고 선 그자세 그대로, 땅바닥을 점점 파고 들어가는 검끝과 함께 자신의 긴장감을 털어 낼 수 있었다. '휴우. 누구일까? 나의 도전에 이런 기운을 보낸다는 것은 아직까지 나를 지켜보겠다는 의지가 살아 숨쉬는 것 같은데........... 과연 숲의 수호자인 엘프가 맞는 것일까?' 메테우스는 자신도 어릴 적에 동화책을 통해서나 들어본 엘프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요정으로도 불리는 숲의 수호자에 대한 상념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미세한 살기를 쏟아내던 존재들은 결국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마음속으로 더 큰 긴장감을 안겨주고만 꼴이 되었다. 차라리 상대가 눈앞에 보인다면 이런 더러운 기분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를 알아야만 그에 걸맞는 대응방법들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상대는 자신의 앞에 그 모습을 들어내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숲의 기운만큼이나 매서운 살기를 보내는 것으로 그 끝을 감추고 말았다. 덕분에 긴장한 그의 몸에 식은땀들이 찬 밤공기를 맞아 신이 난 듯 울부짖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곳이 저 신비한 존재들만큼이나 신비에 감싸인 그곳이 맞다면 필경 이곳의 중심 되는 곳에 그분이 계실 터. 이제 나의 길은 여기서부터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 메테우스라는 미약한 존재보다는 오직 그분만의 기사로써 부디 명예로운 끝이 내 앞에 기다리길 빌고 또 빌 뿐이다.' 손에 쥔 검을 끝까지 놓지 않은 메테우스는 그 손에 땀이 가득 차서야 비로소 모닥불가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 그의 등뒤론 어느새 밝은 달이 아직도 찌푸린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젠가 저 달이 해맑은 미소를 지을 때쯤엔 반드시 꿈에 그리던 주군을 다시 만나길 빌면서, 메테우스는 오늘도 왕실전용 마차의 푹신한 침낭이 아닌 그 마차의 곁에 앉아서 축축한 땅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하루를 지새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덜컹 덜컹. 잔잔한 숲의 물결이 그의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드넓은 벌판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메마른 들풀들이 바퀴에 깔려 비명을 내지르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메테우스의 얼굴엔 점점 눈앞으로 다가오는 신비의 대지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 속엔 지금도 미묘한 표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벌써 몇 일째인지 알 수 없다. 저 기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숲을 벗어나서도 그들은 나에게 적대시한 눈길을 결코 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왜 내 눈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메테우스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숲이라는 은폐물이 있을 때에는 그 숲을 은폐 삼아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고 해도, 이제 서서히 울창한 숲이 끝나가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듬성듬성난 수풀들과 눈앞의 모든 걸 채워버리는 듯한 거대한 벌판으로 나와서도 저 신비한 존재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찌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 이런 일을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그로써는 더욱 긴장감으로 휩싸인 나날들을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허나, 사르트르 부족의 젊은 엘프 카피톨리노는 지금 요정어로 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종족에게 전해진 신의 축복으로 인해서 숲과 넓은 들판의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는 이 요정 마법은, 지금 낯선 불청객에게 공포라는 선물을 주기에 가장 알맞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가엔 불청객의 얼굴이 수심이 깊게 생기면 생길수록, 얼마 전 그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인간의 도전장에 대해 그날 자신이 받아야만 했던 심한 모욕감을 조금이나마 떨칠 수가 있었다. 이런 그의 눈가에 작은 미소가 어릴 무렵에도 메테우스는 아무 것도 모른 체,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오는 존재들에 대해서 아무런 제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인간의 기사로써 이미 완성에 가까운 몸을 가진 그이기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는 것 이외엔 달리 자신을 방어할만한 특별한 능력이 메테우스에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신경전이 오고 가는 와중에도 드넓은 벌판을 달리는 화려한 왕실전용 마차와 그 마부석의 마부는, 자신의 마차 뒤에 매달려오는 작은 수레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듯, 계속해서 긴장감이 생길 때마다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었다. 쥬엘은 자신만의 세계에서 지금 하얀 나신을 감싸고도는 이 빛의 이끌림에 이끌려 한동안 그속에서만 살아 숨쉬고 있었다. 어느새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간 듯이 느껴지는 억겁의 세월 동안, 쥬엘의 상처받고 찢기워진 영혼의 상처들은 하나둘 치유가 되고있었다. 단지 스스로를 자꾸만 가두는 행위를 하는 쥬엘에게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존재의 힘은 쥬엘의 눈물방울들만을 닦아주고 사라지는 일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 이제 일어나야만 하는 것인가?' 쥬엘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닥쳐오는 어떤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이건 강한 무언가가 마치 한순간에 무형의 기운으로 와서 그녀의 여린 가슴을 헤집고 사라지면서부터 그녀의 뇌리에 남기 시작한 의식의 끈이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 그리고 그 속에서 뛰어 놀고 있는 해맑은 아이의 미소. 간간히 꿈의 파편인양 그녀의 무의식의 세계에선 이런 영상들이 자꾸만 보여지고 있었다. 간혹 이런 영상을 부정할 때마다 그녀의 형체가 없는 영혼체를 핥키고 지나가는 무형의 기운들은 너무도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기에, 쥬엘은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깨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뭐지? 이 소년의 정체가 뭐길래 이런 신기(神技)로 일깨워 주시는 걸까?' 이미 과거 신성한 헤세르 여신의 사제로 여러 번 여신의 신탁을 경험한 바 있는 쥬엘로써는, 이 꿈속에서 보여주는 거대한 기운에 거슬리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여야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칠대로 지친 자신의 육신과 영혼이기에, 본능적으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는 몸부림에 몇 번씩이나 거부의 몸짓을 보내봤지만, 자신이 믿고 섬기는 신의 계시에 거슬리는 역행은 사제의 몸이었던 그녀에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때문에 이제 서서히 의식을 되찾아 가면서부터 쥬엘은 신이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최대한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드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헌데, 아직까지도 이 신탁으로 여겨지는 신기(神技)속의 소년과 그 소년이 살고 있는 곳이 어딘지 알쏭달쏭한 쥬엘이었다. 단지하나. 신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그녀에게 베푼 영혼의 휴식과 그속에 담겨진 애정을 맛본 쥬엘로썬 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신의 선물(신탁)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걸 피부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아마도 나의 생에 마지막 임무일꺼야. 이미 몸과 영혼을 스스로 버린 나를 감싸안으신 그분께 내가 할 수 있는 이 마지막 도리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것. 기필코 그 끝에 남겨질 그분의 진실을 난 반드시 봐야 할 의무가 있어.' 꿈속에서도 두 손을 꼭 움켜진 쥬엘은 이미 사제로써의 신분을 두 번 다시 회복할 길 없는 자신의 생을 이렇게 다시 시작하고자 이를 악물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로써 이미 그분을 배신한 행위를 한 쥬엘은 더 이상 성직자의 신분이 될 수 없었다. 이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수호녀로써의 신물들이 몸에 단 하나만 남아 있는 것을 보더라도, 이미 그녀는 성직자의 신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신께 받쳐질 때부터 그녀의 몸과 영혼을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헌데 침입자들로부터 신의 계시를 지키지 못한 책임만으로도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인 성직자의 신분을 내놓아야만 하는데, 몸을 버린 것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미 사내들의 더러운 욕망에 의해 짓밟힌 몸과 그 몸을 감싸고 있는 영혼을 스스로 져버린 그녀의 행동은 더 이상 달리 해명할 길이 없었다. 때문에 한때는 성직자. 그것도 수호녀의 신분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릎보호대만이, 그녀의 작고 가녀린 종아리에서 작은 빛을 내며 서서히 쥬엘의 몸과 영혼의 상처는 신성한 빛 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것도 그녀가 스스로가 정의를 내린 신의 마지막 계시와 더불어...... 신룡의 후예 - 제 40 화.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곳이 시신경을 자극하며, 그 끝에 길게 늘어선 협곡으로 인해 잠시 작은 선을 긋게 만들어준 곳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그곳에선 환한 빛무리에 휩싸인 공간이 자리를 틀고 있었다.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빛의 굵기에 굵은 침을 삼키며, 생전 처음으로 보게 된 신비스런 현상에 메테우스는 신음성을 토해내고야 말았다. "으음......." 눈앞에 펼쳐진 평야를 오로지 태양의 인도로 마차를 몰던 메테우스의 눈에 이런 광경이 펼쳐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메테우스가 받게 된 충격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럴수가.....나 스스로 기사라고 자부하던 내가, 바로 옆에서 무리를 지은 채 나를 경계하던 존재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니......' 지금 메테우스는 이 신비한 현상의 빛무리로 점점 다가갈수록 자신의 옆에 하나 둘 모습을 들어내는 하얀 털로 전신을 무장한 듯한 존재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신경을 자꾸만 거스리는 존재들의 출현은 오래 전부터 알 수 있었다. 단지 그걸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기에,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며 스스로를 자제했을 뿐이었다. 헌데, 저 성스럽기까지 한 빛무리를 오늘 우연히 발견하고 그 곳으로 향하던 자신의 마차가 그 빛무리의 영향권에 들게 되자, 바로 자신의 옆에 하나둘 나타나게 된 이 낯선 무리들의 발견은 메테우스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었다. 마차 바로 뒤와 옆으로 한 떼의 무리들이 투명한 빛무리로 자신들을 감싸며 이제껏 따라왔던 것을 이 신비로운 현상으로 인해서 우연히 알게된 그로썬 지금 매우 큰 충격을 먹고야 만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메테우스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사르트르의 젊은 엘프 카피톨리노 역시 자신들의 요정어로 실현시킨 마법이, 저 신비로운 빛무리와 맞닿으면서 아무런 충격도 없이 급격히 사라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자, 일견 생소하기까지 한 성스러운 빛무리의 신비로운 현상에 매우 큰 충격을 가지게 되었다. '음. 저건 무엇인가? 저 성스러운 빛과 그속에 담긴 이 포근한 기운은 내가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현상이다. 과연 신께서 내리신 자비로움의 향기가 묻어나는 저 빛무리는,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계시를 내려주려고 나타난 것일까?' 매우 현명하다고 스스로 자부하던 그도 아직은 이런 광경은 단 한번도 접해 보지 못했 다. 단지, 침입자를 경계하며 뒤따라오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이 현상에 아직까지 침입자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카피톨리노는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었 다. 문득, 낯선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던 그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의 시선에 잠시 노한 눈빛으로 맞받아치는 못난 모습만이 지금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후의 행동이었다. "그대들이 바로 이곳의 수호자들인가?" 첨부터 반말에 시비조였다. 아마도 자신을 몰래 미행하고 있던 존재들이기에, 스스로 화가 난 상태를 아직은 다스리지 못한 메테우스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곧 숲의 수호자이자 이곳 헬요리네 산맥의 초입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모든 관리를 맡고 있는 사르트르 부족에겐 명백한 도전이기도 했다. 때문에 카피톨리노는 자신의 기운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며 사나운 눈빛으로 상대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흥, 사악한 인간주제에 어디서 감히 무례한 언행을 하는 것이냐?" "뭐? 무례한 언행? 나 메테우스는 인간 중에서도 명예를 아는 기사. 스스로의 명예로움에 죽음도 불사하는 나에게 무례하다면, 이런 나를 몰래 미행하듯이 쫓아온 그대들은 무엇이냐?" 서로의 입장차이가 있어서인지 그들은 첫 대면을 이런 시비조로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감에 대한 입장차이는 곧이어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듯한 빛의 줄기 때문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쏴아아아. 화려한 빛줄기들의 자극 때문일까? 그속에 나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누워 있던 여인의 금색 머리결이 바람에 휘날렸다. 한 사내로써 탐욕의 시선을 보내기엔 너무나 순진한 메테우스는 얼굴을 붉힌 채 급히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이제껏 검만이 자신의 애인인양 소중히 다뤄왔던 메테우스는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옆에서 멍한 듯 여인의 나신을 들여다보는 뻔뻔스런 요정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 다. "흥, 추잡한 놈. 내가 너같은 존재들을 요정으로 알고 있었다는 자체가 수치스럽다." 이를 가는 듯한 메테우스의 말에 퍼득 정신을 차린 카피톨리노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부족 전체가 모욕을 당하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뭣이? 엄연히 존재가 다른 내가 한낱 인간 여인의 몸에 탐욕을 느꼈다는 말이냐?" 미처 당황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 카피톨리노로썬 다음 말을 잇지를 못했다. 같은 엘프족의 여인들 중 최고의 성실함을 일생의 소중한 덕목으로 여기는 아릿따운 약혼자까지 둔 몸으로써, 인간의 여인의 나신에 넋을 뺀 건 사실이기에 카피톨리노는 떨리는 몸을 주체하질 못했다. '제길. 저 여인의 몸에서 나는 빛에서 잠시 존경하는 그분의 체취를 느낀 게 오늘 우리 부족의 명예를 더럽혀 버린 꼴이 되었구나.' 스스로가 생각을 해봐도 이건 신기한 현상이었다. 분명히 인간족인 여인의 몸을 감싸고도는 저 성스러운 빛은 맨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점 다가갈수록 그 빛속에서 나오는 향기는, 자신들의 존재를 언제나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의 성스러운 빛과 포근한 향기가 동일했다. 때문에 인간들보단 더욱 신경이 예민한 엘프로써 그 빛의 향기에 취해서 잠시 넋을 빼고 있었건만, 이 오거 찜쪄 먹을 것처럼 우락부락한 인간 전사 놈이 한다는 말이 자신을 타 종족의 암컷에게 흑심을 품는 한심한 존재로 치부해버리다니...... 그러는 제 놈은 왜 얼굴이 뻘게져서는 고개를 땅에 쳐박고 있는거지? 하여간 둘의 이런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 곳에서의 이 신비로운 현상이 그둘이 티격태격하는 동안에서 계속 이어지고만 있었다. 화르륵. 타닥. 작은 모닥불을 피우며 자신이 끌고 온 마차로 잠시 시선을 돌린 메테우스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내가 과연 잘하는 짓일까?' 이건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오전과 오후 내내 엘프족이라고 하는 괴상한 놈이랑 신경전을 벌이며 긴장감을 유지하던 오늘 하루가 그에겐 평소보다 몇곱절 더 힘든 하루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기사는 레이디를 존중해주고 보호해줘야만 한다. 자신은 기사이기에 이런 신념이 사라지는 날에는 스스로 명예스런 죽음을 갖지 못한 소인배가 될 것이다. 때문에 메테우스는 신비로운 빛의 현상이 끝남과 동시에 바닥에 나신을 들어낸 채 잠들어 있는 여인에게 제일 먼저 다가가 자신이 지금껏 사용하던 담요로 그녀의 몸을 가려야만 했다. 두근두근. 아직도 그 순간의 손끝에 전달되어지던 여인의 살결이 온몸의 신경을 타고 흘러 다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인지 더욱 심장이 두근거린다. 무슨 심한 일을 당한 것인지는 잘 몰라도 여인의 성스러운 빛 속에 잠겨 있던 몸에는 작은 상채기들이 꽤나 많이 나 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서서히 아물어 가는 신비로운 현상을 목격한 메테우스였기에, 아직 의식이 없는 그녀를 마차에 태우면서도 이 여자를 자신이 가는 길에 동행을 해도 될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별다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서 항상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저 얄미운 엘프족의 전사 녀석이 이 여인에게 보내는 눈길은 기사인 메테우스로써는 조심에 조심을 해야만 했다. 비록 그 눈빛에 탐욕의 마음은 담기지 않았다고는 해도, 자신과 처음 대면한 순간부터 이상하게 신경을 긁고 있는, 이 요정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악한 엘프에게 인간의 여인을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으.....음......"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메테우스의 귓가로 여인의 가녀린 신음 소리가 들려 왔다. 두 손에 들린 나무 가지를 힘차게 분지르며 마차로 달려가던 메테우스는, 이내 왔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난리를 치고 있었다. 잠시 의식이 돌아왔는지 몸을 뒤트는 여인이 모포자락 사이로 그 하얀 살결의 허벅지를 내미는 순간, 메테우스는 눈을 질끔 감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크험험." 자신도 쑥스러운지 헛기침으로 상대에게 존재감을 알린 뒤, 메테우스는 자신이 몰고 왔지만 여인의 일만 아니였다면, 단 한번도 그 속에 들어가 보 지 않았을 주군의 마차 안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았다. 헌데. 이 무슨 괴상한 일이란 말인가? 분명히 메테우스는 기사다. 기사는 레이디를 존중하고 보호해야만 한다고 허구헌 날 큰소리를 치던 메테우스였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인이 마차 바닥에 모포를 감고 누워 있는 것인가? 그녀의 뒷편에 잠시 오수를 즐길 정도로 넉넉하고 포근한 시트를 놔둔 채, 여인은 왜 마차 바닥에서 지친 몸을 뉘여야만 했는가? 이건 단 한마디론 설명이 불가한 일이다. 아마도 메테우스의 신념과도 연관이 있기에 여인은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 "으으.......응." 이제 정신이 드는지 작은 신음소리를 내던 여인이 뒤척이는 모습을 보이자 메테우스는 얼른 뒤로 돌아섰다. "정신이 드십니까?" 평소의 메테우스보다 더욱 삭막할 정도로 굳은 목소리가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으음........여기는......." 이제서야 정신이 든 모양인지 쥬엘은 잠시 눈을 뜨며 자신의 망막 가득히 들어오는 고급스런 마차의 지붕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자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급히 방어자세를 취했다. 방어자세라고 해봐야 온몸에 걸친 거라곤 달랑 모포 하나이기에, 급히 모포자락 을 가슴께로 올리며 상대를 쏘아보는 일 뿐이었다. 허나 그런 모습도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는 제스처이기에, 자신의 이런 행동에도 넓은 등을 보이며 가만히 서 있는 사내를 발견한 쥬엘은 더욱 어리둥절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누......누구시죠?" "크흠. 전 주군을 찾아 이곳 성스러운 땅에 온 메테우스라는 보잘 것 없는 기사입니다." 잠시 여인의 상태를 오감으로 느끼면서 잽싸게 뒤로 돌아서며 절도 있는 목례를 취한 메테우스였다. 그런 뒤 여인과 시선이 마주치자 다시 절도 있게 뒤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는 그였다. 이런 메테우스의 모습에서 쥬엘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사내들의 듬직한 모습이 망막을 뚫고 전해지고 있었다. '이......이 무슨 망발을.......안돼. 사내들은 전부 믿을 존재가 아니야." 스스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으면서 그동안 당한 자신의 모습을 더욱 선명한 기억 속에 떠올리던 쥬엘은 자신이 신께 맹세한 그 무언가를 떠올렸다. 허나 이런 쥬엘의 속마음을 모르고 있던 메테우스는 등뒤의 여인에게서 아무런 답변이 없자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성큼 마차 밖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예의 그 딱딱하리만치 낯설은 목소리를 던져주는 것을 잊지 않는 그였다. "죄송하오. 그대는 존중받아야만 하는 레이디. 난 레이디를 반드시 존중하고 보호해줘야만 의무를 지닌 기사이나, 지금 그대가 앉아 있는 곳은 내 소중한 주군이 편안히 쉬셔야만 할 곳이오. 때문에 난 그대에게 주군이 미처 앉아보지도 못한 곳에서 편안히 쉬게 할 수는 없었소. 부디 이런 나의 처사에 그대가 불편하더라도 지금처럼 바닥에서 잠을 청해주시기 바라오." 메테우스의 진심 어린 말이 쥬엘의 마음에 와 닿자, 그녀는 왠지 이 사내의 등이 매우 거대하게만 보여졌다. "풋," 어쩔 수 없이 터져 나간 웃음이었다. 아직 온몸에 남아 있는 신성력 때문에 그동안 지쳐버린 그녀의 몸은 서서히 원기를 회복하고 있는 중이기는 하나,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였다. 해서 약간씩 통증을 전해주는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고급 양탄자로 인해 푹신한 느낌을 주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내의 등을 향해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왜? 무슨 일이라도........" 여인의 웃음에 고개가 인간의 그것이 아닌양 매우 빠르게 돌아가던 메테우스는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모닥불 가에 다가가야만 했다. 여인이 자신을 향해서 비웃음을 던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자신의 뜻이 전달이 되었다면 주군의 마차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낯선 불청객 신세의 여인이 알아서 잘 처신할 것이라 스스로 믿게 된 그였기 때문이었다. 쥬엘은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에 좀 곤혹스러웠다. 사실 지금 이 시대에 저 사내와 같은 미련스런 남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자신의 소중한 주군이 타실 마차라는 것은 곧 이 마차의 주인이 아직까지 마차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제법 긴 여행자의 몰골로 보이는 사내가 이런 초호화 마차를 두고 그동안 밖에서 노숙으로 밤을 지샜다는 말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헌데도 그의 눈 속에 담겨진 신념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건 너무 미련스러워 보이는 자의 행동이었기에 쥬엘은 정말로 간만에 사내의 순수한 마음에 잠시 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과연 누가 타려고 이렇게 알뜰히 준비가 되어 있는 지는 잘 몰라도, 마차 안에 담겨진 수납대에는 각종 생필품들이 오목조목하게 놓여져 있었다. 이건 도저히 저 무뚝뚝한 사내의 모습과 일치가 되지 않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훗.....자신의 신념만큼이나 이렇게 준비가 철저한 건가? 아니면......?" 쥬엘은 자신의 몸을 가리려는 듯 마차 바닥에 단정히 놓여 있는 옷가지들을 집으며, 사내의 배려가 담겨진 옷가지를 잠시 가슴에 꼭 안아보았다. 손에 쥐면서부터 그 재질이 평범한 것이 아닌 줄은 잘 알았지만, 마치 살결보다 더 부드러운 듯한 실크의 재질에 잠시 여인으로써의 존재감이 그녀의 본능 속에서 솟아난 것이다. 허나, 이내 정신을 차린 쥬엘은 사내가 미련스러울 정도로 고집스런 행동을 하는 이 마차의 주인에게 자신 또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이내 옷가지들을 걸치자 마 자 조심스럽게 마차 밖으로 나왔다. "왜?" 사내의 의문에 찬 시선을 뒤로하고 쥬엘은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당신의 소중한 주군이 타실 마차라서 날 바닥에 눕히지 않았나요? 그런 소중한 분이 타실 마차에 어찌 나같은 미천한 여자가 탈수 있겠어요?" "흐흠......죄송하오." 사내의 여전히 무뚝뚝한 어투에 살며시 미소가 어리는 쥬엘이었다. 여신의 은총에 영혼 깊숙히 각인 된 상처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난 뒤라 지금 쥬엘은 어느 정도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 간 듯한 모습이었다. 허나, 아직까지 남자의 곁에 앉는 다는 것은 본능이 두려워하고 있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상대의 반대편으로 몸을 이동시키면서 조심스럽게 주의를 하는 그녀였다. 이런 쥬엘의 행동에 메테우스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마치 그녀의 말에 담겨진 뜻이 가시가 돋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기 딴에는 정중하게 사과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인은 자신의 말을 그냥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지 둘 사이의 모닥불이 없었다면 주위는 삭막할 정도로 어색한 공기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살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와 이렇게 단둘이서 대화는 처음 나눠보는 어리숙한 메테우스이기에 그는 곧 자신의 시선을 모닥불로 향하면서, 지금도 주위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을 누군가에게 이를 부득 가는 걸로 대신했다. "미친 놈. 제까짓 놈들이 아무리 경계를 한다고 해서 내가 못 갈 것 같으냐......?!" 작게 으르렁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쥬엘은 잠시 의아해 하다가, 어색해진 주변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그녀 또한 사내의 시선에 고개를 뒤로 돌려보았다. "응? 저 사람들은 누구죠?" 신기하게도 그녀의 이런 놀라운 말 때문에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는 금새 사라져 버렸 다. 메테우스의 눈에는 지금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쥬엘의 말에 의하면 지금 그녀의 눈에는 보인 다는 뜻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메테우스는 놀란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머. 왜 그러시죠?" 메테우스의 이런 모습에 상당히 놀란 듯, 메테우스의 놀란 시선을 맞받아치려다 다시 고개를 숙이는 쥬엘의 모습이었다. "저들이.........저들이 지금 당신의 눈에는 보인다는 말입니까?" "........네" "어떻게.......어떻게 이런 일이......당신은 나와 같은 인간이건만......." 의아해 하던 것도 잠시 메테우스는 쥬엘의 등뒤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존재들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시선을 보낸 뒤 또다시 예전의 편안한 모습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후훗. 결국은 그런 것인가? 신성력이 깃든 몸이라는 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쥬엘의 의식을 잃은 모습을 두고 으르렁거리며 서로 그녀를 차지하려던 오후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자 메테우스는 눈앞의 여인에게 잠시 시선을 두는 것으로 가슴속에 이는 의문들과 궁금증을 가만히 덮기 시작했다. 카피톨리노는 지금 귓가를 간지럽히는 자신들과는 다른 존재이면서도 같은 기운을 몸안에 갈무리한 여인을 향해서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엘프 종족들은 자신들의 하나뿐인 소중한 사랑을 위해서 평생을 살아가는 고귀한 존재들이었다. 해서 지금 그의 시선에 담긴 열망은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저 쳐죽여도 시원치 않을 도둑놈이자 침입자인 인간 기사에게 종족과도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 그녀가 수모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달을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시선에는 더욱 뜨거운 기운이 담겨져 있었다. 허나,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저 사악한 인간 기사와 잠시의 다툼을 나누던 오후 시간에 카피톨리노는 자신이 다가가기도 전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자신을 뒤에서 잡아 당기는 이상한 일을 당해야만 했다. 그 잠시의 순간에 이미 인간 기사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아 버렸다. 이건 어디까지나 신의 가호로 인한 현상이라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음. 그분께서 어떤 사명을 내리셨기에 우리들을 잠시 방해하셨을까?' 카피톨리노는 아직 하이 엘프로써의 자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똑같은 엘프들로 구성된 부족들은 그들의 부족을 다스릴 존재들이 신의 선택에 의해서 가려진다고 지금도 믿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신께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면서 신의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루하루를 숲을 가꾸고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의 손길이 내려진 자들이 부족의 지도자로 뽑혀 성스러운 축복을 받은 존재인 하이 엘프로 변신을 하는 것이다. 카피톨리노 역시 자신이 하이 엘프가 되리라는 건 스스로의 행동으로 인해서라도 충분히 자신이 하이 엘프가 될 것이라 여겨졌다. 오늘 오후만 해도 자신이 믿는 분의 손길이 잠시 그의 몸을 잡았을 때 보통의 엘프였다면 못 느꼈을 신의 손길을 자신은 똑똑히 느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껏 신의 손길을 타고 나타난 저 여인과 그 여인의 곁에서 얼쩡거리는 못된 인간 기사를 죽자살자 쫓아다니는 것이다. 이미 인간 기사로부터 도전장을 받은 상태였기에 그것도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지만 지금 신의 계시를 받은 듯한 저 여인을 옆에서 지켜주는 것 또한 카피톨리노에겐 매우 중요한 사명이었다. 헌데. 지금 그 여인의 행동이 매우 이상했다. 자신의 눈에는 불한당처럼 보이는 인간의 사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더니 자신들이 있는 곳에 시선을 보내며 싱긋 미소를 짓는 것 아닌가? 이건 그야말로 어리숙한 인간 기사에게 자신들이 어디에 있다는 걸 낱낱이 고해 받치는 일이었기에, 더욱 머리 속이 혼란스러운 카피톨리노였다. 이런 서로간의 조금은 다른 상황 분석을 뒤로하고 서서히 하늘에서 밝은 웃음을 지으려고 몸부림치는 달님은 어느새 둥글어져만 가고 있었다. 콘돌은 지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푸르른 창공을 마음껏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미 몸 안에 깃든 모든 힘을 어떤 사악한(?) 존재에게 모조리 빼앗겨 버린 불쌍한 콘돌이었기에, 지금의 날개 짓을 하기 위해선 무수한 노력을 해야만 했었다. 이건 그야말로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어떤 일 때문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두발로 대지를 디디며 살아야만 할 일이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망정이지, 콘돌은 아직까지 자신의 힘을 모조리 뺏어간 사악한 자를 갈리아스 옹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갈리아스 옹이 확실했다. 그 이유를 들자면 어린 싸이의 몸에 고대 신룡족들의 마법을 건 위인이 바로 갈리아스 옹이었기에 때문이다. 그래서 콘돌은 그 마법을 사용할 자는 오직 갈리아스 옹뿐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주위의 모든 기운들을 어떤 거대한 동체로 모으는 고대 마법을 싸이에게 손수 건 갈리아스 옹조차도 모든 만물의 수호자인 콘돌의 힘까지 싸이의 몸에 흡수가 되는 일이 생길 줄은 까마득히 몰랐던 일이었다. 그러니 콘돌의 눈에는 아직 어린 헤츨링을 갓 벗어난 싸이가 자신의 기운을 훔쳐갔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단지 그의 보호자인 갈리아스 옹이라는 어린(?) 놈이 자신의 기운을 사장된 고대 마법으로 손자에게 전한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어린 콘돌은 자신의 반도 못살고 죽을 뻔했던 갈리아스 옹을 두고두고 괴롭히기로 맘을 굳게 먹었다. 이런 콘돌이 다시 예전의 힘에는 손톱만큼도 안되는 힘이었지만, 지금 창공을 날아 오를 수 있는 기운을 얻게 된 건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갈리아스 옹의 거대한 동체를 그 짧은 팔로 최대한 품에 끌어안은 싸이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급히 할머니의 집으로 텔레포트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잠이 든 상태에서 어딘가로 이동한 것이기에 장거리 마법인 텔레포트를 시전도 못하는 싸이로써는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서 제일 끔찍한 악몽같은 기억이었다. 이런 싸이를 데리고 에르킨 여사가 있는 곳으로 급히 텔레포트를 시켜주던 오대 정령왕들은 이내 자신들의 목적지에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반겨주는 이들은 놀란 눈을 띄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는 에르킨 여사와 그 옆에서 특이한 콧소리를 내면서 곤히 잠이 들어 있는 엘렌이었다. 그리고, 그런 여사의 레어 안에서는 이들이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괴성과 함께 온갖 마법들이 난무를 하기 시작했다. 과연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신룡의 후예 - 제 41 화. 에르킨 여사는 간만에 집에 온 사랑스런 딸을 위해서 지금 현재 자신의 레어 안에서 사랑스런 딸의 가디언을 손수 해주고 있었다. 딸이 태어나서 성룡이 될 때까지 극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한 보호를 했었지만, 이젠 당당한 성룡이 된 딸이기에 이제는 과감히 출가시켜서 과보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가만히 두어도 되었지만, 여사는 지금도 친히 그 옆에서 알뜰히 보호자를 자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슨 보호를 해주고 있었기에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건 아마도 그동안 밀린 마법들을 짧은 시간 안에 숙지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아공간에 들어간 에르킨 여사의 하나뿐인 딸의 매우 중요한 수련 때문일 것이다. 이미 수련에 들어간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초천재의 피를 이어받아서 나름대로 여사의 자부심을 만족시켜 주던 딸은 7써클의 용언 마법의 벽을 아직까지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참 신경이 예민해진 에르킨 여사는 그 높디높은 7써클의 장벽을 뛰어넘을 딸을 위해서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잠시간의 작은 충격에도 7써클의 장벽은 너무도 예민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 수년의 시간들이 도로아미타불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사는 딸의 몸 주변에 온갖 보호막들로 중무장을 시켜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여사의 레어가 있는 곳은 과거 엘렌이 태어났을 당시에 쳐놓았던 8써클의 보호실드가 이젠 더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9써클의 궁극의 프로텍트 실드로 감싸고 있었다. 그런 레어 안에서 홀로 수련에 들어간 딸의 몸을 여러 겹으로 이중 삼중의 보호막을 쳐놓고 느긋하게 보호를 해주던 에르킨 여사는 근 십 년만에 서서히 큰 몸을 꿈틀거리면서 아공간에서 깨어나려고 하는 이쁜 딸의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르르르. 반짝. 예전에 싸이의 별난 소동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깔끔한 아공간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엘렌은 자신의 몸을 한차례 떨면서 살짝 자신의 눈을 떴다. 그순간 미소가 어린 엄마의 얼굴이 보이자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면서 자신이 아공간에서 과연 마의 7써클이라고도 칭해지는 새로운 장벽을 뛰어넘었는지 확인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엘렌의 몸 정중앙으로 여겨지는 곳에서 갑자기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생겨난 것이다. '헉. 이.....이게 뭐지?' 엘렌이 놀란 눈으로 급히 고개를 들기가 무섭게 그 마나의 파동을 뚫고 그 속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자신을 찾고 있었다. "미야야야악" 에르킨 여사 또한 갑자기 들려오는 손자의 울음소리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갑자기 딸이 누워있던 공간 위쪽으로 커다란 마나의 파동이 생기면서, 그 파동의 여운으로 인해 작게 공간의 문이 열리자 마자 튀어나온 피투성이의 손자의 모습. 한마디로 간이 콩알만해지는 순간이었다. "쿠아아아아악" 본체로 현신해 있었기에 온 레어가 떠나갈 듯이 괴성을 지르는 에르킨 여사였다. 그런 여사의 지금 심정은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손자의 모습에 애가 타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싸이야. 누구냐? 누가 우리 싸이를..................허헉' 오로지 손자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던 여사는 공간의 틈 사이로 맨 처음엔 머리만 삐죽이 내밀고 자신을 내려다보던 싸이가, 서서히 그 피투성이에 가까운 몰골로 공간의 문을 빠져 나오자, 작고 가녀린 손자의 두 팔에 안겨 있는 누군가를 발견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세상에나............ 여사의 생각으론 그녀의 남편인 갈리아스 옹을 저렇게 심한 부상을 입힐 존재는 몇 되지 않았다. 설령 그 몇 되지 않은 용족 사회의 원로들이 집단으로 나서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한 남편 또한 저리 심하게 다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헌데 이미 손자의 품에서 가는 숨이 끊긴 듯한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여사는 거의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미이이익.......여보......" 작은 이슬방울들이 급속도로 여사의 두 눈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여사의 옆에는 놀란 눈을 뜨고 사태를 관망하던 엘렌 또한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던가? 이 카빌라이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초강자가 바로 엘렌의 아버지였다. 가끔씩 엉뚱한 생각으로 용족 사회에 혼란을 조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뒤에서 수근거리며 흉을 보면 봤지, 대놓고 나무랄 수 있는 드래곤들은 몇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헌데 지금 아들의 품에 안겨서 축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었다. "아빠..." 냉큼 달려가서 아들의 품에 안긴 아버지를 뺏어 든 엘렌은 금방 숨이 멎은 듯 서서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아버지의 동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뒤부터 엘렌의 눈물겨운 몸부림은 주위에 하나둘 나타나는 정령왕들의 눈에 잠시간 안타까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은색의 찬란하던 비늘들은 여기저기 빠져서 보기 흉한 몰골을 하고 있었고, 근 7,000년이 넘게 몸 안에 순수하게 걸러서 몸을 지탱시키게 해주던 마나들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때문에 엘렌은 자신의 작은 앞발을 내밀어 갈리아스 옹의 커다란 입안으로 급히 집어넣었다. 그 다음 아버지의 몸 안에 들어간 앞발을 의지의 힘으로 작은 상채기를 낸 다음, 급히 신룡의 피로도 전해지는 가문의 기운이 담긴 피를 갈리아스 옹의 몸 안에 뿌리듯이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시작된 엘렌의 심장 마사지는 이미 싸이로 인해서 경험이 있었던 덕분인지 엘렌의 이런 방법은 조금씩 효과를 가져오고 있었다. 헌데....... 에르킨 여사는 딸의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모습에서 작은 뿌듯함을 맛보고 있었다. 남편이 거의 죽음에 임박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녀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이미 그녀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남편이 어린 손자의 보호를 자청하고 나섰을 때에 이미 남편의 눈 속에 어린 열망을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몇 천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의 색다른 행동을 알지 못할 만큼 여사는 어리숙한 드래곤이 아니였고, 남편이 평소보다 더욱 오버하는 행동 속에서 이미 손자에게 모종의 일을 해주려고 한다는 것을 여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여사는 그리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과연 이 땅에서 여사의 남편을 곤란하게 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제아무리 상급의 마물이라고 해도 여사의 남편은 그들을 충분히 무찌를 능력이 되는 것이다. 그 상급의 마물 중에서도 블랙 일족의 마수가 남편 앞에 나타난다고 해도, 똑같은 에이션트라도 이미 궁극의 9써클의 위대한 마법을 익힌 남편과 편법으로 힘을 키운 블랙일족과는 그 힘의 차이가 확연한 나는 상태에서 여사의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갈 존재는 이 땅에 없다고 자부했던 여사였다. 헌데, 갑자기 어린 손자의 품에 안겨온 남편의 몰골을 보면서 여사는 내심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에 매우 심한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처량한 듯한 손자의 울음소리와 함께 그 앞에서 열심히 아버지의 몸에 기운을 불어넣는 믿음직한 딸을 내려다보면서 여사는 서서히 몸 안에서 이는 분노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감히 내 남편을.......죽인다. 모두 죽여 버릴꺼야.' 화르륵. 은색의 마나들이 여사의 화려한 비늘들과 만나면서 점차 그 살기가 여사의 레어 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런 여사의 레어에는 아직 손자가 넘어온 공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문에서 어떤 존재들이 이쪽으로 감히 넘어오려고 하자, 여사는 자신의 복수대상일지도 모르는 그 존재들에게 거친 살기를 내뿜었다. "누구냐? 감히 이 땅의 단 하나뿐인 절대자의 가문에 겁도 없이 발을 들여놓는 놈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여사의 외침에 잠시 공간의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정령왕들은 이내 자신들의 뒤를 따라 쭈삣거리며 다가오는 존재들에게 잠시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냈다. 어찌 저리 미련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머리가 없는 존재들이라고 해도 상황을 봐 가면서 알아서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들이 저리 미련을 쓰고 싸이의 곁에 나타나려고 하다니....... 그들이 이런 공통된 생각으로 그들에게 막 뭐라고 말을 하려는 그 순간. 이미 여사의 몸을 감싸고돌던 은색의 마나들은 하얀빛과 더불어 공간의 문 저쪽에서 이 안을 들여다보던 존재들에게 커다란 은색의 창으로 변한 모습으로 매섭게 쏘아져 가고 있었다. 쐐에에엑. 제우스는 자신의 가슴을 목표로 맹렬히 날아오는 엄청난 기운에 깜짝 놀랐다. 단지 자신과 뒤에 선 동료들은 주인의 마음과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기에, 주인이 너무도 슬퍼하면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르며 보호를 해주려고 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강렬한 기운이 쏘아져 오다니...... 이건 왠만한 공격마법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제우스와 다른 시커먼스들에겐 심장이 철렁일 만큼 놀라운 공격 마법이었다. 순수한 마나들의 결정체로 구성이 된 에르킨 여사의 모든 기운이 담긴 공격이기에, 궁극의 상위 마법에도 버틸 수 있는 제우스의 장판은 자신을 공격하는 낯선 기운을 발견하자마자 하얗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 제우스가 본능적으로 내민 왼손에 카이트 실드 (Metal Kite Shield)가 더욱 하얗게 빛을 내면서 에르킨 여사의 기운과 부딪혀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얼마나 거세게 부딪혔으면 온 레어가 무너질 듯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을까? 공간의 문 저편에서 살짝 고개만 내민 채 주인의 안부를 걱정하던 제우스는 자신을 목표로 날아온 은색의 마나를 막으면서 그 뒤에 선 동료들과 함께 뒤로 한참이나 밀려나야만 했다. '크으으윽.' 거의 주인과 필적할만한 놀라운 기운들의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운을 내뿜는 존재가 또다시 자신들에게 공격을 하려고 하자 제우스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공간의 문을 통해서 주인의 곁으로 껑충 뛰어 이동했다. 순전히 이 엄청난 기운으로부터 주인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모든 시커먼스 군단들이 제우스를 뒤따라 우르르 공간의 문을 통해 그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낯선 불청객들을 눈앞에서 발견한 엘렌은 목구멍까지 치민 비명을 억지로 집어 삼켜야만 했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이 낯선 불청객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인 갈리아스 옹이 개발한 헤비 워커 레지나를 상회하는 기운들을 연신 풍기고 있었기에 엘렌은 더욱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태에서 아버지를 포기한다는 건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때문에 엘렌은 자신의 뒤에 선 엄마를 굳게 믿곤 계속해서 갈리아스 옹의 몸에 자신의 기운들을 밀어 넣으며 어떻게 하던지 간에 회생을 시키려고 했다. "으드득. 네놈들이 내 남편을 저렇게 만든 것들이렸다?!" 에르킨 여사의 두 눈에선 불이 확 치밀어 올랐다. 눈앞에 모습을 들어낸 존재들을 바라보던 여사는 그들의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들을 바라보며 그제야 자신의 믿음직한 남편이 왜 저리 심하게 다쳤는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에 헤픈 행동을 하는 남편이라곤 해도 그 남편의 놀라울 정도의 창작력에 반해서 시집을 온 여사였다. 그런 여사의 남편이 이 세상에 탄생시킨 헤비 워커의 위력을 여사는 남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런 남편이 손수 만들었던 놈들과는 확연히 다른 낯선 헤비 워커들의 등장과 그들의 각종 무기에 묻어 있는 푸른색의 피들은 확실히 남편의 몸에서 나온 것들이리라. 해서 더욱 눈앞의 원수들에게 살기를 내뿜는 에르킨 여사였다. 더구나 건방지게도 감히 자신의 레어까지 따라와서 갈리아스 옹을 죽이려 드는 존재들을 가만히 둔다는 것은 제아무리 세계 최강의 마법 병기 헤비 워커들의 군단이 떼거지로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꼬리를 말 여사가 아니였다. 그러기에는 이 땅의 절대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여사의 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비록 그 불청객들이 용언 마법엔 상극에 가까운 절대 방어 마법이 새겨진 메탈 장갑으로 중무장한 존재들이라곤 해도, 에르킨 여사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제아무리 절대 방어 마법을 몸에 두르고 있는 놈들이라곤 해도 그 방어 마법을 두른 장갑이 메탈이고, 그 메탈들만 깨부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물질적인 힘이 여사에겐 충분히 있는 것이다. 단지 그렇게 하기 위해선 온몸의 힘들을 소진할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 순간이 바로 드래곤들에겐 제일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어차피 남편이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만 같은 상황에서 손자와 사랑하는 딸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여사는 이미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이다. 헌데 이 뜻밖의 사건으로 인해서 살기가 넘실거리는 여사의 레어 안에선 이미 말리기엔 너무 늦은 이 일에 대해서 매우 난감해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으음. 내 소중한 친구......" "그만하세요. 이미 전 마음의 정리가 끝난 상태에요." 라이어나가 나서서 이 상황을 말리려고 했지만,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온몸의 기운들을 끌어올리며 그의 말을 제지하는 에르킨 여사의 행동에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하는 라이어나였다. 그러니 다른 정령왕들은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단 하나 그들이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일은 저 시커먼 헤비 워커들이 싸이의 말이라면 그야말로 죽기살기로 지키려 든다는 것뿐이었다. 해서 그들은 이 상황에서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할 엘렌의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면서 제발 이 눈앞의 사태가 좋은 방향으로 해결이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서서히 달아오르는 레어 안의 분위기는 매우 매서운 공기들이 가득 차면서부터 엄청난 파공성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지금 온몸에 기운을 잔뜩 모아서 자신의 카이트 실드에 쏟아 부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자신의 주인이 이 강렬한 기운에 크게 다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런 자신에게 추호의 용서도 없었다. 오로지 죽기를 작정한 모양인양 초고룡에 가까운 기운들을 자신과 자신의 뒤에 서서 주인을 빙 둘러싼 부하들에게 몽땅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방어만 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제우스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공격을 하자니 자신의 등뒤에서 넋을 놓고 우는 주인님이 다칠 것이고, 그렇다고 방어만 하자니 자신의 카이트 실드를 뚫고 서서히 본체로 다가오는 이 강렬한 기운에 얼마 못 버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헌데 이런 공격을 퍼붓고 있는 여사 또한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감히 죽음을 각오하고 남편의 복수를 하려고 하는 자신을 두고 이 사악하기만 한 기운을 내뿜는 불청객들은 여사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손자의 몸 근처로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이러니 온 몸의 기운들을 몽땅 모아선 하나의 날카로운 창처럼 형성시킨 기운들을 계속해서 펑펑 쏴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견제를 하지 않았다가는 아직은 어린 헤츨링인 여사의 손자까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뜻밖의 힘겨루기는 지금 제우스가 서서히 동체가 뒤로 밀리면서부터 다행히도 조금씩 여사의 뜻대로 진행이 되는 것 같았다. 싸이의 몸 가까이에서 방어를 하던 시커먼스 군단들은 자신들의 듬직한 대장이 눈앞의 은색 비늘을 곤두세운 드래곤에게 서서히 밀리기 시작하자 하나 둘 대장의 등뒤로 다가가면서 제우스의 넓은 등을 받쳐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몇몇의 시커먼스 군단의 헤비 워커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꼬나 쥐고 이 맹렬한 기운을 날리는 은색의 드래곤에게 다가가려고 맘을 굳게 먹었다. 더 이상 주인을 방어하기만 했다가는 저 강렬한 기운에 주인이 크게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껏 머뭇거린 이유는 주인과 너무도 똑같은 은색의 찬란한 비늘을 지닌 존재가 지금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었기에. 방어만 충실히 하면서 나름대로 주인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라고 조심에 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이제는 주인에게 화가 미칠지도 모르는 강렬한 기운들을 계속해서 쏘아내고 있는 존재를 그들은 더 이상 봐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군에게 목숨을 받쳐서라도 충성을 하는 것만이 헤비 워커 최고의 사명이라고 로버주의 맹약에는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런 맹약을 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런 자신들이 주인의 위험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가만히 참고 있다는 건 한마디로 존재의 부정보다 더욱 심한 행위라고 굳게 믿고 있는 시커먼스 군단들이었다. 해서 주인에게 최대한 화가 미치지 않게끔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던 시커먼스 군단은 일제히 자신들의 빛나는 무기들을 높이 치켜들면서 온몸에 힘을 무기로 모으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기운들이 부딪히고 있는 이 좁은 공간에서는 단 한번의 과감한 공격만이 자신들의 존경받는 주인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시커먼스 군단들이었다. 그런 그들은 지금 온몸의 기운들을 자신들의 무기로 모으는 것만이 최고의 미덕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허나, 이런 그들의 노력은 단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야만 했다. 싸이는 할머니와 엄마가 있는 레어로 돌아오면서 오대 정령왕들이 앞장서서 열어준 공간의 문을 조심스럽게 바라다 봤다. 일단은 조급한 마음에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공간과 공간의 이동에 조금은 겁이 난 것이다. 해서 커다랗게 열린 공간의 문안으로 고개를 조심스럽게 밀어 넣으며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 싸이였다. 이런 싸이의 머리가 공간의 문 저편에 나타나자 싸이는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할머니의 놀란 눈을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었다. 그순간 지금껏 참았던 설움이 한눈에 쳐들어왔다. 해서 눈가에 눈물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커다랗게 울음을 터트려 버린 것이다. "할머니~~!!!!!!" 커다랗게 할머니를 외치며 엉엉 울기 시작한 싸이는 자신의 몸이 아직 공간의 저편에 남아 있다는 걸 직시하곤 무작정 할머니의 품으로 뛰어들어갔다. 헌데 자신의 팔에 안긴 할아버지의 몸이 출렁이자 깜짝 놀란 싸이는 할아버지가 방금 전 자신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을까봐 더욱 걱정스런 맘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니 누가 자신에게 이 상황에 대해서 묻기도 전에 다가와선 할아버지를 빼앗듯이 싸이의 품에서 내려놓고 회생시키려는 엄마를 싸이는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던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금처럼 가만히 들여다봐야만 하는 어린 싸이의 심정은 지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샘물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스스로 힘이 있다고 자부를 했었건만 자신은 아직 어린 핏덩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고작 자기보다 약한 어린 정령들이랑 시커먼스 군단들을 골탕먹이는 수준밖에는 안되는 어린 자신을 이제서야 직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진 싸이는 더욱 애가 타는 심정으로 할아버지의 식어 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눈가에 시냇물을 만들고 있었다. 헌데 이런 자신을 두고서 할아버지를 살릴 생각은 안하고 맹렬하게 싸움을 하는 할머니를 싸이가 발견하세 된 것은 아주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런 할머니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싸이는 자신의 명령도 없었는데 여기까지 따라온 시커먼스 군단이 그 뒤를 따라 망막 안에 들어오면서부터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냐면 이 멍청한 녀석들이 감히 할머니를 방해하려고 작정을 했는지 자신의 소중한 할머니랑 건방지게도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이었다. "너희들 여기서 뭐해?" 맨 처음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물었다. 헌데 건방지게 이자식들이 대답할 생각은 안하고 자신의 할머니에게 무기를 꼬나 쥐고 다가가고만 있는 게 싸이의 눈에 들어오자, 급기야 싸이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씨. 이것들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감히 이지랄들이야~!!!" 화가 치밀면 이성이 무디어진다. 때문에 여지껏 상소리라곤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싸이의 입에선 거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 에르킨 여사의 거대한 기운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제우스와 그 뒤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시커먼스 군단의 등으로 자신의 거대한 꼬리를 힘차게 휘둘러 버렸다. 휘아아앙. 얼마나 성질이 났으면 이런 파공성을 일으키겠는가? 그런 싸이의 거대한 꼬리는 뒤로 점점 밀리고 있던 제우스와 몇몇 시커먼스 군단의 다리를 세차게 강타해버렸다. 콰아아앙. 쿠당당탕. 케아아아아악. 한마디로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힘차게 날아간 싸이의 꼬리가 시커먼스 군단의 다리와 허벅지 위쪽을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뒤의 상황을 모른 채, 에르킨 여사의 강대한 기운들을 받아내던 제우스는 뒤에서 전해져오던 동료들의 힘이 한순간 빠지면서 그 뒤를 따라 자신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던 든든한 두 다리가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대한 창과도 같이 은색의 마나로 형성된 에르킨 여사의 기운은 수 천번이 넘게 제우스의 온몸을 빠르게 찌르고 빠지는 일을 반복하다가 제우스의 균형을 잃은 몸을 뒤로 한 채 그 뒤에 서서 화를 내고 있는 싸이의 몸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어이없는 사태를 맞이한 시커먼스 군단들의 안색은 그야말로 시커멓다 못해 하얗게 탈색이 될 정도로 놀라버린 것이다. 해서 그들은 뒤로 넘어지는 순간부터 눈앞으로 은색의 창이 날아가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봐야만 했다. 오직 단 한 명. 제우스만 빼고...... 이미 삶의 마지막 모습인 회색눈동자를 가진 채 힘이 빠진 몸을 손자의 작은 팔에 의존하고 있던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마지막 의식이 하얀빛에 감싸이는 것을 느끼며 까마득히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런 그에게 하얀빛이 인도하는 길은 너무도 멀고 험난해 보였다. 하얀 세상으로 치장이 된 그곳에서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얀 공간보다 더 엄숙한 빛이 내리쪼이며 그 속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 것은 무의식의 세계에 한발 다가선 갈리아스 옹의 모든 정신세계를 아득하게 만들어버렸다. "이 한심한 놈. 네놈이 우리 신룡 족의 망신을 도맡아서 시키는구나." 쩌렁쩌렁. 하늘이 울부짖고 대지가 그 여운으로 춤을 추는 듯 했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의 정신세계로 직결 된 이 미지의 음성은 갈리아스 옹의 정신세계에 작은 존재에 대한 파문을 가져다주었다. "누.....누구신지......." 미처 상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의문을 토하기도 전에 또다시 그 음성은 갈리아스 옹의 정신세계로 커다란 의지를 실어보내고 있었다. "이 바보 같은 놈. 네놈이 지금 여기에 올 나이더냐? 아직은 한참 청춘을 불살라도 모자랄 놈이 한심하게도 자기보다 허약한 놈에게 죽음이나 당하고... 에잉......쯔쯔쯧." 급기야 혀를 차는 듯한 상대의 음성에 절로 주눅이 든 갈리아스 옹은 금새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들어내는 은색의 화려한 빛줄기에 굵은 침을 꿀꺽 삼켰다. "헤세르............대제님?" 미처 은색의 빛줄기에 있는 존재를 제대로 파악 못한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앞에 언제 나타났는지 빛줄기 옆에 서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분에게 털썩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지금 본체의 모습인 관계로 갈리아스 옹이 무릎을 꿇은 형상은 결코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였다. "후후. 그만하시죠. 싸이도 자신의 힘을 아직 자각 못한 상태라서 그런 일이 생겨버린 것을 어찌 갈릴레오에게까지 문제삼으시려고 하시는 겁니까?!" 이미 모든 일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 인자한 미소로 갈리아스 옹을 대변해주던 헤세르는 이내 이맛살을 찌푸리며 나타나는 신룡 헤리아킨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래도 이놈은 우리 신룡 족의 명예에 똥칠을 한 놈이거늘....... 어찌 용서하라는 말입니까? 네 이놈을.............화악." 두 눈에서 빛이 솟아나는 건 드래곤이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신룡 헤리아킨처럼 온 몸의 기운을 담아 상대에게 쏘아보내는 건 아무 드래곤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지금 용족 사회에서 최강자 중 하나로 군림하는 에르킨 여사가 조금이나마 흉내를 낼 정도인 것이다. 이러니 그 살벌한 눈빛과 그 속에 담긴 성질을 한눈에 받게된 갈리아스 옹은 불쌍하게도 그 큰 몸을 벌벌 떨어야만 했다. '으윽. 나도 한 힘 한다고 여겼건만 저분의 힘에 비하면........'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의 힘에 대해서 처량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린 손주도 못 구하고 이렇게 사계로 넘어온 것이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갈리아스 옹은 시선을 땅바닥으로 내렸다. 용족들의 모든 신망을 한 몸에 받고 계시는 분에게 따끔한 처벌을 받는 것으론 도저히 자신의 죄를 씻지 못할 일이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단 이렇게 처벌을 받는 게 더 속 편할 것이다. 허나, 이런 갈리아스 옹의 생각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그를 잡아먹을 듯이 눈을 부라리던 신룡 헤리아킨의 다음 행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도란도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려던 갈리아스 옹은 자신을 두고 한참이나 속삭이는 듯한 두 분의 대화에 귀를 쫑긋거렸다.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거지? 우리 싸이가 왜?'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드는 갈리아스 옹의 귀로 이제 조금씩 두사람의 대화가 스며들고 있었다. "후..그럼 이번 일을 통해서 누군가의 소행이라는 것이 확실히 들어난 겁니까?" 예전의 동료시절엔 허물없는 대화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젠 서로의 직분 때문에라도 깍듯한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헤세르 대제의 모습과 신룡 헤리아킨의 모습은 갈리아스 옹의 눈에는 성스럽게만 여겨졌다. 하긴 동명계의 사계를 관장하는 신룡 헤리아킨의 신력이나 모든 신계의 규율을 책임지는 헤세르 대제의 신력은 아직 제대로 된 무의식의 세계와의 만남을 거치지 못한 갈리아스 옹에겐 너무도 높게만 보이는 존재들일 것이다. 허나 이런 갈리아스 옹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들의 의견을 주고 받는데에 더욱 신중한 모습들이었다. "글쎄요. 지금 물질계에 잠시 연결 된 그 기운은 아무래도 그쪽인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된거 아닌가요? 어차피 그쪽에서 흘러나온 기운이라는 것만 확인이 되면 그쪽으로 쳐들어가면 될 것을 어찌 참으시려고 하십니까?" 동그랗게 뜬눈으로 헤세르 대제를 바라보는 헤리아킨의 몸 뒤편으로는 분노의 기운들이 넘실거렸다. 아마도 자신의 후예가 당한 일에 대한 분풀이를 확실히 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헤세르 대제는 헤리아킨의 마음속에 있는 진정한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을 위해서 저렇게 흥분하고 화를 내는 것이리라. "후후후. 헤리아킨님. 내 소중한 친구이신 분. 고정하세요. 그렇게 서두른다고 수만 년에 걸쳐서 진행되어 온 그들의 은밀한 행위들이 쉽게 발각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럼 누가 한 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가만히 참겠다는 겁니까? 지금.......?!" 버럭 성질을 내면서 주먹을 움켜쥐는 헤리아킨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로 답하는 헤세르 대제의 모습엔 자소적인 미소가 어려 있었다. 허나 함부로 상대할 놈들이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이나 은밀하게 신계를 어지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상대에 대해 조사를 하려고 굳게 맘을 먹은 헤세르 대제였다. '이미 준비는 다 끝난 상태다. 비록 그분이 자신의 믿음에 대해 굳게 마음을 다잡고 계시기에 잠시 늦추어 질 뿐. 그분이 자신의 성스러운 힘으로 의지를 다스리시며 앞으로 나서기만 한다면 내 가문의 진정한 원수들에게 내 이 불타는 복수심을 그들에게 확실히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럼 내 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도 쉽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굳게 다물며 의지를 불태우는 헤세르 대제였다. 이런 그를 바라보면서 속에서 부글거리는 화를 잠시나마 잠재우는 헤리아킨이었다. "좋아요. 대제께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제가 잠시만 참지요.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피해자인 저 아이는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갈리아스 옹은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나누던 존재들이 이제는 그 대화를 접고선 자신을 바라보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 되었다. 과연 이런 갈리아스 옹을 어느 누가 어여삐 여길 것인가? 해서 신룡 헤리아킨은 금새 시무룩한 표정을 펴는 헤세르 대제에게 더욱 민망한 마음에 혀를 차야만 했다. "쯔쯔쯧. 저런 한심한 놈이 왜 내 일족에 태어난 것인지.............쯔쯔쯧. 네 이놈. 잘 들어라. 내가 네 녀석이 어여뻐서 이곳으로 네 놈을 소환한 줄 아느냐?" 갈리아스 옹은 생전 처음으로 와본 천계에서 이런 황당한 소리를 듣게 되자 더욱 허둥되어야만 했다. 참나. 생전 어느 누가 천계로도 일컬어지는 신계를 방문해 봤을까? 그런데 죽음을 맞이하여 이곳에 첫발을 들여 논 자신에게 대뜸 한다는 소리가 이곳이 신계가 아니라는 듯 말하는 폼이 약간은 갈리아스 옹을 혼란시키고 있었다. '그럼? 그럼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아무리 그 뛰어난 머리를 굴려봐도 신계가 아닌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리고 이런 갈리아스 옹을 옆에서 가만히 이끌어주는 헤세르 대제였다. "내 갈리아스 가문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준 그대 갈리레오야." "예?.......예에........" "후훗. 그래 여기가 어딘지 매우 궁금하겠지?" "............네....." 조용히 갈리아스 가문의 위대한 지배자 헤세르 대제의 말에 경청을 하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래서 더욱 예의바르게 대답을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는 그를 보며 헤리아킨은 매우 못마땅한 듯이 한마디 톡 쏴주었다. "흥. 이 우둔한 놈이 뭐가 영광이고 뭐가 명예스러운 일인지 알기나 하겠소?!" 과거의 기분이 든 탓인지 아니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것인지 약간의 경어로 헤세르 대제에게 말을 전하던 헤리아킨이었다. 그런 헤리아킨은 더욱 가슴이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하다는 심정으로 그 넓은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두들겼다. "에휴. 어떻게 저런 놈이 우리 싸이의 할아버지가 된 것인지...........네 이놈." 말을 하면 할수록 더 화가 뻗쳐서 결국 큰소리로 갈리아스 옹을 질책하는 헤리아킨이었다. 허나 헤세르 대제는 성질이 폭팔 하기 직전인 헤리아킨을 잠재울 능력이 있었다. "후훗. 그만 하세요. 지금도 충분히 자신에 대해서 각성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갈릴레오가 아닙니까?! 이제 그만 고정하시고........." 헤세르 대제의 만류하는 말에 못이기는 척하며 갈리아스 옹의 머리위로 커다란 주먹을 한방 선사하며 물러난 신룡 헤리아킨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일들을 옆에서 논리 있게 설명하며 다독이는 헤세르 대제에게 오늘의 일을 맡기며 가만히 자신의 후예인 갈리아스 옹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참이나 어리둥절한 갈리아스 에게 무언가 매우 중요한 일들을 지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런 갈리아스 옹이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구조가 된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보살폈기 때문이었다. 어린 손자가.....그것도 핏덩이에 불과한 헤츨링이 어떻게 고룡에 접어드는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도 드래곤 족들 중에서 최고의 명예인 블래릭 슬레이어를 고작 헤츨링에 불과한 싸이가 잡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용족 사회 전체에 커다란 파문을 몰고 올 일이었던 것이다. 블래릭 슬레이어. 일명 블랙 데빌 슬레이어로도 통하는 사악한 블랙 드래곤의 마스터 급을 잡은 용사를 칭하는 말이었다. 항상 각 종족의 마스터들은 고룡에 접어든 에이션트들이 맡고 있었으며, 그 마스터들 중에서도 초고룡에 해당되는 갈리아스 옹과 일대 일 대결에서 승자가 된 블랙 일족을 어린 헤츨링이 잡았다는 영광은 갈리아스 가문의 차기 계승자가 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과도 크게 연관이 지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갈리아스 가문의 진정한 주인으로부터 무언가 지시를 받은 뒤, 회생의 길에 오른 갈리아스 옹이 지금 다시 서서히 죽음에 접어든 그 큰 몸을 꿈틀거리며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시점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42 화. 메테우스는 지금 난감한 일에 봉착하게 되었다. 사실 여자와 단둘이 생활하는 게 처음인 그로써는 요며칠간의 생활이 마치 꿈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옆에 앉으면 향긋한 체취가 흘러나오는 금발의 머리결과 푸른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미처 낫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밤이슬을 맞던 쥬엘의 몸은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전신에 불덩어리를 뒤집어 쓴 형국이 되어 버렸다. 때문에 지금 메테우스는 자신이 몰고 가는 마차를 최대한 천천히 이끌고 있었다. 가끔씩 마차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가슴은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해서 메테우스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난감하기만 했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들이 잘 하는 일인가?' 아무리 되뇌여 봐도 어리석은 행동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주인을 모시는 명예로운 기사로써 지킬 건 지켜야만 했다. 해서 쥬엘은 지금 아픈 몸을 부드러운 양탄자가 깔린 마차 바닥에 뉘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쥬엘을 바라보는 메테우스는 더욱 마음이 심란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신경을 자꾸만 자극시키는 존재들에게도 이런 메테우스의 복잡한 심경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으득." 이를 악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난 기사다. 그분의 자랑스러운 기사.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은 그분의 소중한 명예와도 직결이 되는 것. 헌데 지금 난 과연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주군이 계셨다면 저렇게 아픈 환자를 바닥에 눕히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메테우스 또한 평소였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을 위인이었다. 헌데 왜 메테우스는 자신의 어리석은 고집을 꿋꿋이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일까? '안돼. 여기서 약해지면 안된다. 내 소중한 주군께서 아직까지 살아 계실지도 모르는데....아니 그분은 반드시 살아 계실 것이다. 헌데 그런 고귀한 분을 최초로 모시기 위해서 내가 직접 끌고 온 그분만의 마차에 레이디를 허락 없이 태운 것만 해도 난 지금 그분께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참아야만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꾸욱. 절로 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메테우스였다. 헌데 지금 메테우스가 몰고 있는 이 마차가 과연 일반 마차와 다르단 말인가? 외관상으론 별다른 차이도 없는 마차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메테우스를 아직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몰고 있는 마차의 왼쪽 상단 부분에 매달린 깃발을 본다면 지금 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메르카 왕실의 깃발. 이건 카빌라이 대륙에서 최강국으로도 통하는 메르카 왕실의 전용 깃발이었다. 바람에 부딪혀 휘날리는 깃발의 중심부분에는 왕실의 모든 문장이 들어가 있고, 그 아래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하얀 색의 그림은 콘돌을 형상화한 듯한 그림이 올려져 있었다. 거의 모든 카빌라이 대륙에 있는 왕국들의 전설에 꼭 등장하는 신조의 그림을 넣은 이 깃발은 지금 여기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바로 이 다음 카빌라이 대륙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진 깃발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왕국에서도 황태자의 깃발은 주로 콘돌이 장식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순백의 매와도 같은 문양들이었지만, 이미 전 대륙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 속에는 반드시 창공을 누비는 거대한 신조가 중요한 존재로 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각 왕국에서는 콘돌이라는 전설 속의 영물을 자신들 왕국의 수호영물로 여기고 있었다. 이건 드래곤들이 인간들이 자신들을 우습게 여긴다고 해서 감히 시비를 걸거나 덤빌 일이 아닌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모든 드래곤들이 지금과 같이 평화롭게 다른 종족들을 건드리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이 대륙의 수호영물인 콘돌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전 대륙에 골고루 퍼져 있었다. 때문에 각국의 왕실들은 앞을 다투어 자신들의 후계자가 이 대륙의 지배자가 되기 위한 염원을 담아 왕국의 황태자들에게 콘돌의 문양을 선사해주는 것이다. 메테우스는 이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상징성이 짙은 깃발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난 내 소중한 분을 위해서 목숨을 받치고자 하는 자. 그래. 비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기사도에 어긋나는 못난 행동이라고 해도, 그분이 맨처음에 앉으셔야만 할 자리에 결코 다른 이를 앉힐 수는 없다. 그것이 제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난 내 목숨을 받쳐서라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부르르. 주군의 앳띤 미소가 뇌리에 떠오르자 잠시 온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였다. 이런 메테우스였기에 지금 쥬엘은 불쌍한 모습으로 마차 바닥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꼭 그녀가 불쌍해진 것만은 아니였다.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고 있는 메테우스는 자신의 못난 행동을 보상이라도 하듯, 지금 쥬엘에게 최대한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열이 너무 높아져서 헛소리를 하면 급히 마차를 세우고 찬물에 담궜던 수건으로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을 닦아주는 등. 그녀를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점점 쥬엘이라는 여성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으로 와 닿고 있는 메테우스와 그를 여전히 뒤쫓고 있는 어떤 존재들의 신경전들은 거대한 헬요리네 산맥의 중심부에 다가갈수록 미묘한 갈등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갈리아스 옹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세계의 방문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에 회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는 온몸의 마나들이 빠져나가서 회생불능의 큰 상처를 입은 그로써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의 사랑스런 딸인 엘렌의 지극 정성이 담긴 간호가 톡톡한 효과를 가져 온 덕분이기도 했지만, 지금 갈리아스 옹은 그런 사실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단지, 자신의 소중한 손자의 탄생이 가져오게 될 이 다음의 미래에 대해서만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 그놈 처음 볼 때부터 심상치 않은 존재감을 주더니, 알고 보니 그런 일 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어리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런 그의 앞에 하얀 구름들이 그가 갈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활짝 웃음을 머금으며 갈라서고 있었다. 갈리아스 옹은 그런 신비로운 현상들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서서히 물질계로 통하는 문에 자신의 몸을 성큼 들여놓고 있었다. 꿈틀. 신룡의 핏줄로 태어난 자랑스런 기운들을 지금까지 아버지의 입안으로 흘러보 내던 엘렌은 한순간 자신의 손을 타고 전해오는 느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미 아버지의 몸 안에선 거의 대부분의 마나들이 흩어져 있었다. 때문에 회생 불가능이라고 여기면서도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엘렌이었 다. 헌데, 지금 그녀의 손끝을 통해서 아버지의 심장이 작게 뛰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해져 오자 엘렌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까악. 아.......아버지?!" 엘렌의 경악성에 가까운 비명에 레어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이 되 었다. 그런 시선에 엘렌은 금새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며 눈가에 이는 눈물을 닦기 시 작했다. "왜? 왜 그러니? 무슨 일이라도.......?!" 엘렌의 비명성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던 에르킨 여사는 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남편의 동체에 시선을 자주 옮기다, 결국엔 어떠한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만 했다. '설마......아니야. 절대로 이렇게 허무하게 가서는........' 주르륵. 딸이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자 에르킨 여사는 결국 남편이 사망했다 고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가슴에 남은 안타까움들이 곧 한으로 변하기 시 작하고 있었다. 그런 여사의 옆에는 한쪽 뺨이 퉁퉁 부은 손자가 울먹이고 있었다. "흐윽. 나.......나 때문에..............할아버지~!!!!!!!" 헤츨링이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너무 많은 큰 몸을 이끌고 힘없이 할아버지의 몸 근처로 가던 싸이는 울먹이는 모습으로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도저히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게 현실로 와 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트리는 싸이였다. "할아버지가......나 때문에. 이 어리석은 나 때문에...........흐윽." 가까이 다가가기엔 너무나 멀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가에 뿌옇게 보이 고만 있었다. 주르륵. 눈물이 타고 흐르는 뺨에서 이는 쓰라린 상채기의 아우성들은 지금 싸이에겐 아 무런 효과가 없었다. 단지 싸이의 이런 마음 때문인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목격하 게 된 지금 싸이의 몸에선 작은 빛이 일렁이며, 금새 레어 안을 가득 메우는 촉촉히 젖 은 물의 기운들이 급히 형성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런 현상들은 싸이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물의 정령들이 급히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싸이가 울먹이며 할아버지 의 몸 여기저기 얼룩진 곳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듯이 떠 오르자, 물의 정령들이 하나 둘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헌데, 그런 싸이의 울음이 레어 안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더욱 큰 비명이 뒤를 따 랐다. "아빠~!!!!!" 꿈틀. 엘렌의 비명이 다시 뒤를 따르며 이젠 갈리아스 옹의 거대한 동체가 꿈틀거리 자, 싸이를 달래려고 다가서던 정령왕들과 에르킨 여사는 이내 커다란 눈을 다시 한번 비벼야만 했다. 반짝. "끄으으윽." 아마도 목안에 무언가가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회색의 눈동자로 뒤덥혀 있던 갈리아스 옹의 눈가에 잠시 은색의 물결이 노도와 같이 몰아쳤다. 그 뒤를 이어 답답한 듯한 신음성이 터져 나오자, 엘렌은 급히 자신의 손에 있는 힘껏 마나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커어억." 갈리아스 옹은 이런 황당한 경험은 처음 해봤을 것이다. 자기가 그리도 끔찍히 아끼던 이쁘고 사랑스럽기만 한 딸내미가 자기를 죽이려 고 작정을 했는지, 아예 그 아담한 손으로 목을 꼭 틀어막으며 호흡을 하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이제는 그걸로는 부족했던 모양인지 거대한 마나들을 목구 멍 안으로 밀어 넣고 있기에 급히 몸을 일으키며 답답한 목의 숨구멍들을 좀 뚫어볼 요량 이었던 갈리아스 옹은 또다시 그 커다란 동체를 부르르 떨어야만 했던 것이다. '커.....억. 얘.....야.......나.......죽...는다........허.......억.' 아무리 힘껏 용을 써봐도 소용이 없었다. 딸내미가 그동안 뭘 먹고 이런 힘을 키웠는지는 잘 몰라도, 지금의 갈리아스 옹 의 몸으론 딸의 과격한 보살핌(?)에서 벗어날 힘이 없었다. 덕분에 한동안 꼬리까지 극렬하게 떨던 갈리아스 옹은 숨이 넘어가는 마지막 상 황에서야 겨우 의지의 힘으로 딸에게 숨가쁜 말 한마디를 전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갈리아스 옹의 노력과는 다르게 레어 안의 상황은 급전이 되고 있 었다. 엘렌은 자신의 마나들이 아버지의 거대한 동체에 흡수가 되기 시작하자 금새 아버지가 힘을 회복한다고 여겨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의지의 힘을 발현시키면서까지 자신에게 말을 건내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것이라 믿고 있는 엘렌이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엘렌은 급히 온몸의 힘들을 하나로 모아 강하게 아버지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쑤아아아악. 은색의 찬란한 동체가 주위에 떠다니는 마나들을 몸 안으로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은 곧 갈리아스 옹의 드래곤 하트 부근으로 쏘아지 듯이 다가가고 있었다. 정말로 눈물겨운 엘렌의 아버지 되살리기 대작전(?)인 것이 다. '커.....컥.....나.....진짜로.....죽.......는다........쿠에.........에엑' 부르르르. 갈리아스 옹의 긴 꼬리가 더욱 더 강하게 레어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아버지의 반응에 더욱 힘이 솟는 귀엽고 사랑스런 딸 엘렌이었다. 또한 엘렌의 마나 소비가 너무 과한 것 같아서 도와줄 욕심에 엘렌의 곁으로 한발자국씩 다가서는 정령왕들과 에르킨 여사였다. "야. 똑바로 안해?" 한쪽 뺨이 제법 부풀어올라서 아구(?)를 움직이기가 불편한 관계로 급히 인간의 몸으로 변신을 해보았지만, 이상하게도 싸이의 몸은 드래곤일 때 받은 충격이 인간의 몸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때문에 소리를 지를때도 은근히 뺨쪽에서 이는 통증에 더욱 신경질적으로 변하 게 된 것이다. 이건 보통의 드래곤들이 다른 종족으로의 폴리모프를 실현하게 되면 최 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과는 달리 싸이는 매우 신기한 몸(?)을 가지고 있었던 탓 이었다. 이러니 그 심통을 가만히 삭힐 싸이가 아니였다. 그 덕분에 지금 에르킨 여사는 잠시 손자에게 고운 눈길을 보내며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휴. 내가 저 귀여운 놈을 잡으려고 했었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사의 레어 안은 한마디로 고요와 죽음이 맴도는 바다와 도 같았다. 허나, 이제는 그 분위기가 급반전이 되어선 행복의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로 변 해 있었다. 잠시 딸의 과도한 마나 소비로 주춤했던 남편의 회생이 여사가 다가감 으로 인해서 확실히 결말을 맺은 것이다. 그 덕분에 졸지에 기도가 막혀 질식사를 당할 뻔했던 갈리아스 옹은 엘렌이 마나의 소비로 인해 빈혈 증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죽음 을 당할 뻔한 일을 여사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구사일생으로 되살아 날수 있었다. 어쨌든 이제는 모든 일들이 누가 보더라도 행복한 결말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 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말에 나서서 악을 쓰듯이 아래 것(?)들을 몰아세우는 싸이를 보 는 에르킨 여사의 마음은 여러 가지의 생각들이 담겨져 있었다. "후우......싸이야. 그만 하렴. 그녀석들이 무슨 죄가 있겠니. 모두가 이 할미가 어리석어서 그리 된 것을....." 싸이의 으르렁거리는 고함소리에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든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 소리였다. 하지만.......싸이가 과연 그걸로 만족을 할까? 그건 절대로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 저렇게 악을 쓰면서 시커먼스들을 혼내고 있을 것이다. 난 지금 할머니의 말씀에 절대로 동의를 할 수 없었다. 왜냐고? 그야 당연히 모두가 이 못난 내 부하 놈들 잘못이 제일 크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뺨이 부르터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 시커먼 놈들 때문이고, 할아버지가 미처 회복마법을 받지도 못한 채 죽음을 당할 뻔한 것도 모두가 이놈들 탓이다. 뭐, 내가 잘못한 점들도 있지만.......에이......잘났다. 잘났어. 그래. 이 모든 일들이 내 책임이다. 됐지?! 하지만......하지만 말야. 내가 아무리 크게 잘못한 점들이 있다고 치더라도 말야, 이놈들이 내가 지나온 공간의 문을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내 소중한 할아버지는 더욱 빨리 건강을 되찾으셨을 것이다. 맞지? 내 말이 확실히 맞지? 거봐?! 모두가 다 이놈들이 꼼지락거리면서 내 곁에 나타나서 이렇게 일이 늦어진 것이 란 말이야. 이 말에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꺼야. 아암......당연하지. 뭐라고? 근데 무슨 일이 늦어졌냐고? 그야 당연히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간호를 받으셨다면 금새 회복을 하셨을 텐데 이 못난 놈들 때문에 잠시 엄마가 할아버지의 간호를 맡으셔서 좀더 시간이 걸 린 것이란 말야. 아니면 엄마도 지금 저 옆에서 기절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테고...... 암튼 오늘 이 자식들은 확실하게 손을 봐줘야 해. 왜냐고? 이놈들이 불쌍하다고? 흥. 천만에 말씀. 이것 봐. 지금 내 뺨이 통통 부은거 보이지? 우씨. 모두 이렇게 된 일의 원인은 바로 이놈들이야. 근데 이놈들이 뭐가 불쌍하다는거야? 난 그런건 용서 못해. 더구나 내 할아버지가 이넘들 때문에 돌아가시기라도 했다면, 난 정말로 못참았을꺼란 말야. 그러니깐 이번 기회에 이 띨띨한 놈들 군기를 확실히 잡아놔야 해. 싸이는 퉁퉁 부은 뺨을 매만지면서 오늘의 원한을 잊지 않으려는 듯 제우스와 그의 부하들을 매섭게 다그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제우스의 등에 커다랗게 생긴 자국이 아니였다면 싸이는 아마도 지금의 이 행복한 결말을 미처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진짜 주인을 위해서 목숨을 받치는 일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제우스의 마지막 행동만 아니였다면, 이런 말도 못해보고 저승의 길이 어떤 곳인지 또다시 확인해봤을 주제에 저리도 매섭게 굴다니...... 조금은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거대한 꼬리로 눈앞에 있는 시커먼스 군단들을 모두 무찔렀을 때 싸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은색의 거대한 창이었다. 그 거대한 창이 회전을 하면서 자신의 몸으로 지쳐들 때, 만약 제우스가 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절대로 싸이는 지금처럼 무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에르킨 여사의 힘이 좀 대단한가? 그런 힘의 결정체인 마나로 형성된 창을 제우스가 튼튼한 등을 대면서 비켜가 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 싸이는 뺨에 살짝 스치는 상처가 아닌 그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헌데도 그런 고마움도 모르고 등줄기에 커다란 홈을 만들고 있는 제우스와 그 부하들을 또다시 자신의 꼬리로 협박을 하고 있다니........ 그리고 이런 싸이가 인간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더욱 긴장을 하며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듬직한 시커먼스 군단들은 에르킨 여사의 머리 속을 한바 탕 휘젓고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서. 박아......어쭈 동작봐라. 이게 안보여? 너희들 제대로 못하지. 앙?!" 쑤아아앙. 콰앙. 길다란 싸이의 꼬리가 또다시 요동을 치고 있었다. 그에따라 제우스와 다른 시커먼스 군단 전체는 금새 후다닥 거리며 싸이의 손가락 끝을 쳐다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싸이는 인간의 몸으로 잠시 돌아와 통통하게 부은 뺨을 매만져 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자, 싸이는 본능적으로 그 화풀이를 시커먼스 군단에게 풀고 있었다. 헌데 자신의 손가락질 한번에 후다닥거리며 땅바닥을 기는 불쌍한 시커먼스들 이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지금은 도저히 이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해서 머리끝까지 치민 화가 풀릴 때까지 시커먼스들을 굴릴 생각을 한 싸이는 자신의 손가락질로는 도저히 가슴에 담긴 이 성질이 풀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또다시 드래곤으로의 변신모드를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그 변신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금 뺨이 부어서 통증이 심해지는걸 가만히 방치해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일전에도 자신의 상처부위에 마나들을 끌어 모으니깐 저절로 상처가 나아지는 걸 기억해 낸 우리의 싸이였기에, 솔직히 자신의 몸에 이는 아픔 때문에라도 싸이는 드래곤으로의 세 번째 변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왜 세 번째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변신한건 이번이 딱 세 번째인건 알 사람은 다 알기 때문일 것 이다. 아무튼 그때부터 다시 시작된 여사의 레어 안의 풍경은 그야말로 살벌 그 자체 였다. 자신의 몸도 치료하면서 그 긴꼬리로 위협용도 되는 일석이조의 재미를 싸이는 톡톡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싸이의 뒤에는 이와는 다른 분위기가 형성이 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얼마전까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헤매던 갈리아스 옹이 이제는 완벽한 회생의 길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몸안의 마나들을 여사의 도움으로 충전을 하고 있었으 며, 그 옆에선 그의 귀여운 딸 엘렌(?)이 코를 살짝 골면서 깊이 잠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과한 마나의 소비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갈리아스 옹은 이제 자신의 옆에서 아낌없는 마나들을 전해주는 아내의 간호에 서서히 정신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아니 그전에 정신은 이미 말짱하게 되돌아 온 상태였다. 단지 몸안에 쌓여있던 마나들이 흩어져서 힘이 없었을 뿐이었다. 헌데 이런 자신의 회생 축하 잔치에서 귀여운 손자 싸이는 자신의 모든 기운들 을 아낌없이(?) 쏟아내며 할아버지 앞에서 재롱을 떨고 있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싸이를 좋은 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갈리아스 옹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연 싸이는 그런 뜻으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시끄러운 분위기 연출인 것이다. "에구구구. 저넘이 과연 내 손자가 맞소?" 이제 서서히 은색의 비늘들이 그 빛을 되찾아감에 따라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옆에서 수줍은 듯한 여사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넌지시 물었다. 아마도 자신도 이런 분위기가 쑥스러운 듯 했다. 어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날이 있었던가? 오직 성질 사나운 마누라의 등쌀에 밀려서 꼬리를 말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이었 다. 헌데, 지금은 그 성질 사나운 마누라는 간 곳이 없고 수줍은 새색시마냥 살짝 미소만 짓는 어여쁜 마누라가 옆에서 친히 자신의 뼈마디가 쑤시는 부위를 알뜰살뜰히 살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갈리아스 옹은 이 쑥스러운 분위기를 없애보려고 눈앞에서 시끄럽게 구는 싸이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했던 것이다. "오호호호. 당신도 참...그럼 저녀석이 누굴 닮아서 저렇게 괴팍스러울까요?" 아마도 여기서 갈리아스 옹이 여사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답을 했다면 이 좋은 분위기는 단 한번에 깨지듯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반짝. '아니. 이 여편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왜 괴팍해? 자기 성질이 더 더러우면서.......으잉? 저 눈빛은?!' 뭔가 위험한 느낌이 대뇌를 강하게 때리고 도망쳐버렸다. '호오. 이거 말한마디 잘못했다간 완전히 작살 나겠군. 그럼 어디.....' 텅텅. 긴 꼬리로 마누라의 넙쩍한 엉덩이를 두들기면서 갈리아스 옹은 씨익 미소를 지 었다. "후후. 그렇구려. 내가 그동안 엄청 괴팍했었던 모양이오. 미안하오." "어머, 이이가 무슨 말씀을, 당신이 언제 괴팍한 적이 있었나요? 단지 가끔씩 이상한 것들만 집안에 가져오지만 않았으면 그런 소리는 듣지도 않았을꺼에요." 여사의 수줍은 듯한 말을 듣자마자 갈리아스 옹의 모든 비늘들은 곤두서서 난리 를 부렸다. '캬아, 이 무슨 조화냐. 우리 마누라가 이럴 때도 다 있었네? 쿠헬헬헬. 아이고 이놈의 스케일 댄스...엄청나게도 돋아나는군. 흐흐흐. 그래도 좋다. 이 분위기 그대로 이렇게만 살자. 더도 말고 이대로 딱 이만년만 더 살자. 므흐흐흐' 텅텅.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여사의 긴 꼬리 끝이 살랑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에 맞추어 갈리아스 옹의 긴 꼬리도 하늘높이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헌데도 이런 핑크빛 무드와는 전혀 관계없는 손자의 악을 쓰는 드래곤 피어에 여사의 레어 안의 분위기는 서너개의 복합적인 무드가 뒤섞여 다소 어지러운 상황으로만 치닫고 있었다. "췌. 저것들이 이 홀애비들 앞에서 못하는 짓이 없구만," "흥, 그러게 누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라고 했어? 아이구 이놈의 닭살. 나도 이 기회에 신계로 가서 쓸만한 왕비나 하나 구해볼까나?" "어이구. 퍽이나......" 싸이의 폭주로 인해서 자신들의 할 바가 끝나고도 미처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정령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정령왕들은, 금새 화목한 가정분위기에 적응을 못해 온몸에 털들이 곤두서고 있었다. 이런 걸 가만히 넘길 땅꼬마 라콘이 아니였다. 헌데 그 옆에서 팔이 간지러운 듯 북북 끌던 프레임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다른 정령왕들의 분노를 사고도 남았던 것이다. 프레임의 말에 비꼬듯이 콧방귀를 치던 라콘을 째려보는 프레임의 곁에는 어느 새 다른 정령왕들이 모여들면서 서서히 이상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어. 너희들은 또 왜 그래?" "왜 그래? 어쭈, 아직도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선 추호의 뉘우침도 없다 이건 가?" 평소의 라이어나 답지 않게 그가 팔짱을 끼면서 다소 살벌한 눈빛을 빛내자, 다른 정령왕들도 그에게 뒤질세라 프레임을 죽일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순간 프레임은 라이어나를 바라보면서 아차 하는 심정이 되어버렸다. '아차차. 내가 그때 그 신계의 천사랑 연결될 뻔한 저넘을 깜빡 잊었다. 에휴. 저놈이 그 때문에 한동안 나만 보면 죽일 듯이 으르렁 거렸는데........ 흐음. 이걸 어떻게 하나?!' 잠시 라이어나의 눈빛을 맞받아치다 금새 생각나는 과거의 한 토막이 떠오르자 급히 어디론가 도망을 치려고 맘을 먹은 프레임이었다. 이들 정령왕들이 아직까지 결혼을 못한 건 모두가 자신의 주책바가지 행동들 때 문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줄행랑뿐이었다. "에휴. 이놈의 주둥이가 방정이다. 라이어나. 내가 미안했어. 앞으로 조심할게. 응? 한번만 봐주라. 응? 으응?" 몸을 배배꼬면서 하는 콧소리가 심한 프레임의 이런 변명은 이미 때가 늦은 듯 했다. 허나, 프레임은 이미 모든 계획을 세워두고 이런 닭살 돋는 행동을 한 것이다. "에엑. 저넘이......우엑" "쿨럭. 어제 먹은 마나가 솟구친다.......우우욱" 동시 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정령왕들의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프레임은 옳다구나 하며 잽싸게 공간의 문을 열어버렸다. "흐흐흐. 이놈들아. 나 먼저 간다. 열심히 놀다 와~!! 크하하핫." 역시 생각만큼이나 단순했다고 믿었던 프레임의 이런 놀라운 행동에 어이가 없 던 정령왕들이 그의 뒤를 쫓지 않고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지금 저넘이 무슨 짓을 한거야?" "글쎄? 지금 저것도 핑계라고 저런 짓을 한건가? 근데 왜 닭살이 다 돋았지?" "허. 어처구니가 없군. 이제 저것도 철이 조금 든건가?" 모두들 단순무식하게만 행동하던 프레임에게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진 상황이라 서 이렇게 완벽하게 뒷통수를 맞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복수심은 이런 허탈한 심정만큼이나 강하게 솟구치기 시작 했다. "이봐, 친구들. 지금 저놈이 도망치려고 저런 짓 한 거 맞지? 내 이놈을........." 파르르르. 라콘의 이런 질문에 그때서야 피부에 돋은 닭살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분노 게이지가 솟구치기 시작하는 다른 정령왕들이었다. 그들은 라콘의 말이 나오기 전까진 프레임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놀라고만 있었 던 것이다. 이러니 제일 먼저 화가 솟구친 땅꼬마 라콘을 위시로 해서 다른 정령왕들은 급 히 자신들의 공간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싸이의 회까닥 모드는 금방 안정되지 않을 듯 보였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피부에 돋은 닭살만큼이나 저주스런 프레임을 찾아 제일 먼저 복수를 하려고 이를 갈면서 그 자리를 떠난 것이다. 휘이잉. 잠시 공간의 문을 타고 시원한 마나들의 기운이 바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지나간 곳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정령왕들이 서 있던 곳이 움푹 패여 있었다는 것만이 썰렁한 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전해주고 있었 다. 신룡의 후예 - 제 43 화. 콘돌은 지금 자신의 날개를 가르며 지나가는 바람의 저항에 한껏 신이 나 있었다. 그 망할 놈의 어린 헤츨링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이미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리기엔 콘돌의 날개 짓은 아주 미약하기만 했다. '휴. 답답하던 마음도 이제 조금 뚫리는구나. 근데 이거 진짜로 신기한 구슬이네.' 문득 목에 걸린 그 망할 헤츨링 놈의 신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콘돌은, 은은한 연녹색을 내뿜는 구슬의 마력에 힘입어 더욱 거세게 날개를 펄럭여 봤다. 오늘 자신이 이 푸르른 하늘을 날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이 신비로운 구슬 덕분이라 지금 콘돌의 가슴속엔 터질 듯한 무언가가 솟구치고 있었다. 오늘 오전. 얼마 전에 몸 안으로 흡수한 검둥이 도마뱀의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정화시키려고 가만히 잠이 든 콘돌에게 다가서는 한 명의 악동 모습은, 그야말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사악하게만 보여지고 있었다. 더구나 그 악동이라고 하는 녀석이 바로 싸이이기에 조금은 어리둥절한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콘돌에게 고양이 걸음을 흉내내며 살금살금 걸어가는 싸이의 손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대륙에 큰 재앙을 몰고 올지도 모르는 연녹색의 조그마한 구슬이 쥐어져 있었다. '히히. 이놈이 완전히 잠든거 맞지?' 붉은 번개가 선명하게 새겨진 고개를 하얀 날개에 푹 파묻은 콘돌 앞에 서서 살그머니 손을 내려 상태를 확인하던 싸이는, 이때다 싶었는지 잽싸게 콘돌의 가는 목을 꽉 움켜잡았다. "푸다닥. 꾸에에엑" 거의 돼지 목따는 듯한 소리였다. 더구나 몸 안에 있는 기운들을 서서히 자신의 것으로 정화를 시키려다가 갑자기 당한, 이 뜻하지 않은 봉변에 콘돌은 몸 안에서 제멋대로 꿈틀거리는 마나들의 움직임에 더욱 크게 당황을 했다. '허억. 이.....이 잡종 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맨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자꾸만 드는 존재였다. 헌데 이런 느낌을 주는 존재와 몇 일을 같이 보낸 뒤에는 콘돌은 싸이라면 치를 갈 정도였다. 물질계의 성스러운 수호자인 자기가 무슨 애완용 새인가? 꼬맹이가 맨날 자기를 보면서 이거 해봐. 저거 해봐는 차라리 속편한 일들이었다. 그래도 스스로에 대한 강한 긍지가 있는 존재인지라, 너는 떠들어라. 나는 이대로 살테다로 꿋꿋이 버티는 콘돌에게,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어이없는 복수는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얌마. 너 새하얀 털이 맘에 드는데 이 꽁지털 하나만 내가 가져간다. 알았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달려들어서는 엉덩이에 제법 긴 꼬리털을 강제로 뽑으려 드는 싸이의 우악스런 행동에 치를 떨기 무섭게, 엉덩이 부분에서는 창자가 빠져나갈 만큼의 끔찍한 고통이 찾아들었다. 헌데도 이런 싸이의 행동은 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치. 이거 왜 안빠지는거야? 이씨......칼. 칼 어딨어?" 자기 말을 안들었다고 그러는 것인지, 눈에 불을 켜면서 주위에 칼을 찾아다니는 싸이의 모습에 심장이 벌렁거리는 콘돌이었다. 그러니 어찌 가만히 참으랴. 힘이 없으니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부리나케 날개를 퍼덕여 보았다. 헌데, 어째 바람의 기운들이 날개로 모여들기는커녕 점점 퍼덕이는 날개와는 상관없이 땅바닥에 먼지들만 자욱하게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싸이가 자신의 손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콘돌을 가만히 두고 봤을까? 전혀였다. 그런 관계로 급히 다가선 싸이의 왼손은 콘돌의 길쭉한 꼬리털을 꼭 움켜쥐고, 연신 날개를 퍼덕이는 콘돌을 질질 끌면서 어디론가 급히 걸음을 옮기는 싸이와 콘돌의 눈물어린 장면들이 주위에 연출이 되고 있었다. 허나,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은 이 어린놈의 할머니라는 분이 진짜 우아한 레이디였던 것이다. "싸이야. 지금 뭐하니? 그러면 안되요. 어린 짐승은 품안에서 곱게 길러주는 거란다." 때아닌 등장으로 싸이의 장난 모드에 찬물을 끼얹는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소리에 콘돌은 눈시울이 시큰거릴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이윽고 그런 콘돌을 자신의 따스한 품에 안은 에르킨 여사가 잠시간 품안에서 고개를 묻고 흐느끼는 콘돌의 등을 토닥여주자, 몸 안에서 일던 마나들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었다. 아니 그동안 엉덩이의 큰 통증으로 인해서 더욱 기승을 부려, 콘돌이 힘도 못쓰고 당할 뻔한 상황을 만들던 마나들이, 신기하게도 여사의 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부터 시작된 더욱 끔찍한 싸이의 복수모드는 그 위력이 상상을 불허 할 정도였다. 툭하면 여사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콘돌에게 심술을 부리기 위해서, 가는 다리에 줄을 묶어서는 지멋대로 끌고 다니기는 다반사였고, 그래도 싸이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발악을 하면서 콘돌이 소리를 지르려고 하면, 금새 어디서 구해왔는지 하얀 실로 콘돌의 가는 부리를 꽁꽁 묶어 버렸다. 이런 봉변에 콘돌은 자신의 기운을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서서히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기운들로 인해서 기진맥진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열심히 고개를 파묻고 몸안의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헌데 이 사악한 꼬맹이 놈이 거하게 점심을 먹고 나서 잠에 빠진걸 분명히 확인을 한 다음에, 자신도 힘을 기르기 위해서 고개를 파묻었던 것인데, 아뿔싸. 도대체 언제 다시 이놈이 나타났던 것이란 말인가? 콘돌은 이 눈앞의 끔찍한 존재를 보면서 이제는 정말로 끝장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 뒤에 파르르 떠는 몸을 마지막으로 콘돌은 자신의 생을 여기서 끝맺는다는 생각에 잠시 눈시울에 이는 작은 이슬방울들을 살짝 내비췄다. "헤헤. 드디어 잡았다. 엉? 근데 너 왜 울어? 지금은 너 괴롭히기 위해서 잡은거 아닌데..." 싸이의 이런 말에 놀란 눈을 급히 뜨는 콘돌이었다. '지금 이놈이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런 사악한 웃음을 짓는거지? 혹시 내 가는 목을 분지르기가 조금 미안해서 이런 말을 하는거 아냐?' 어리둥절한 눈으로 싸이를 바라보자 눈앞에서 씨익 미소를 짓는 싸이였다. '흥. 그러면 그렇지. 네놈의 그 버르장머리가 어디 가니? 자. 어서 죽여. ' 이제는 삶을 포기하려는 맘이 앞을 선 관계로 태연히 싸이의 작은 손에 목을 뻣뻣히 세운 채 시위를 하던 콘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이런 콘돌을 당황시키기엔 충분한 상황으로 변신을 하기 시작했다. "헤헤. 이 녀석. 진작에 나한테 이렇게 행동했으면 내가 얼마나 이뽀했겠니? 자, 봐. 이거 할머니가 나한테 주신 건데. 너 이걸 무지 좋아한다면서? 앞으론 내 말 잘 들어야 해. 아니면 이거 내가 다시 뺏어 버릴꺼야. 알았지?" 싸이는 오늘 점심시간에 할머니가 자신에게 건내주신 연녹색의 구슬을 어린 콘돌의 눈앞에 들이대면서 연신 즐겁다는 듯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마도 이 구슬을 건내 주면서 해주신 할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 거하게 자던 낮잠도 도중에 팽개치고 이렇게 콘돌을 잡으러 나타난 것이다. 난 말야. 요새 내 손안에 들어온 이 녀석을 보면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 왜냐고? 그건 말야. 이 녀석을 보고 있으면 난 맨날 옛날에 할아버지가 나 때문에 큰일을 당하실 뻔한 기억들이 자꾸만 떠오르는 거야. 더구나 이 녀석은 내가 제우스라는 놈의 말을 들어본 결과에 따르면, 내가 죽을 뻔한 상황에서 나를 구해준 고마운 놈이라는 거야. 뭐, 그 시커먼 드래곤이 내 머리를 향해서 브레스라고 하는 드래곤들의 주 공격마법을 시행하려고 할 때, 이 녀석이 시커먼 드래곤의 엉덩이를 강하게 파고들어서 내가 살수 있었다나? 어쨌든, 그래서 난 이녀석이 신기해서 맨날 같이 놀자고 쫓아 다녔어. 그런 와중에도 안좋은 기억들이 자꾸만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르길래, 가끔씩은 골탕도 먹여줬지. 제까짓 놈이 내 말을 안듣곤 태연하게 딴청을 부리는데 나보고 가만히 참고 지켜보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된 거라는 건 모두들 잘 알고 있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참겠어. 우선은 이 녀석의 가장 멋있는 부위가 머리털에 난 번개 모양과 긴 꼬리털에 선명하게 새겨진 빛나는 고대언어를 가진 두 곳이기에, 난 거침없이 내게 신기한 기분이 들게 하는 꼬리털을 먼저 공략하기로 했어. 그래서 난 꼬리가 살랑거릴 때마다 잔잔하게 빛을 밝히는 꼬리털을 내가 가지기 로 맘을 먹고선 이녀석의 그 꼬리털을 힘껏 잡아 뽑았어. 근데 이거 진짜로 신기하대. 왜냐면 내가 있는 힘을 다 써도 안 뽑혀지길래, 내 몸에 담긴 기운들을 일으키면 서 내 손에 힘을 더 싣게 했어. 어떻게 했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니깐 자세히는 묻지 말아죠. 단지 내 머리 속으로 손에 힘을 강하게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한참을 용을 쓰 니깐 이상하게도 내 아랫배 근처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벌떡 일어서더라고. 해서 신기하다 여기면서 난 힘껏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팔에 용을 쓰자 이 딱딱한 무언가가 내 뱃속을 돌아다니면서 서서히 내 팔에 힘을 전해주더라 고. 그때부터 난 한참을 그 신기한 힘을 이용해선 이놈의 꼬리털을 내껄로 만들려 고 했어. 근데.......헥헥. 아무리 용을 써도 안되는 거 있지? 그래서 화가 난 김에 칼을 찾으면서 한참을 돌아다녔더니만, 쿡쿡. 이놈이 내 어린 몸에 담긴 팔 힘 때문에 꼬리가 망가졌는지 제대로 날지도 못하 더라고. 크크크크. 암튼 내가 이런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다가 이젠 날개를 퍼덕이면서 두다리로 도망을 치려고 하는 그 놈의 꼬리를 다시 잡아버렸어. 안그랬다간 이놈이 나 싫다고 도망치는 어떤 못된 놈처럼 될 거 같았거든. 해서 난 이녀석을 데리곤 한참이나 신나게 할머니의 방을 거쳐 여러군데를 데리고 다니면서 신기한 것들을 많이 구경시켜줬어. 후훗. 지금 나보고 사악하다고 생각했지? 맞지? 하지만 아니야. 지금 내가 몇 살인지는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지? 나 어린아이가 아니란 말야. 가끔씩 내 속에서 이상한 놈이 자꾸 딴지만 걸지 않으면 난 멀쩡한 이십대 청년 이야. 근데 왜 이런 한심한 행동을 하냐고? 하하하. 그야 당연히 재미있으니깐 하는거야. 왜? 못 믿겠어? 그럼 당신들도 직접 해봐.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스스로 알게 될꺼야. 대신 나보고 어리다는 둥 하는 요상한 소리만 제발 하지 말아죠. 어차피 이곳은 재밌게 놀만한 곳이 하나도 없단 말야. 기껏 해봐야 오래된 고책들이나 들먹이면서 한심하게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이런 오락거리를 내가 놓치고 얌전을 떤다는 건 진정한 신사가 할 짓이 못돼. 그 왜 유명한 영국신사들도 가끔씩 여우사냥이나 폴로 같은 스포츠를 즐기면서 이런 애완용 동물을 데리고 놀 때가 많았던 건 기억하지? 그럼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조금은 이해가 가능하기를 바랄게. 물론, 조금은 날 열 받게 하는 일이 있어. 그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만약 영국신사들이 자기가 키우는 애완용 개나 다른 짐승들이 자기 말은 안 듣고 딴청을 피우면 가만히 있었을까? 제발 그런걸 생각 한 다음에 내 요상한 행동들을 나무라 줬으면 고맙겠어. 후후. 이제 조금은 내 변명이 된 건가? 암튼, 오늘 난 점심시간에도 그 녀석을 혼내주려고 작정을 했어. 왜냐면 이 녀석이 이제는 내 말을 우습게 여기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품에서 떨어질 줄 모르고, 건방지게 내가 받아야 할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거야. 더구나 이 녀석이 내가 시키면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던게,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기가 무섭게 똑똑하게 알아듣고선 그대로 따라하는 거 야. 이러니 정작 저 넘의 하얀 새 주인이라고 자처를 하던 내 심정이 어떻겠어? 한마디로 이런 배신은 없는 거야. 이건 말 그대로 완벽한 배신이야. 배신~!!! 해서 난 할머니에게 뽀루퉁한 내 볼 살을 내밀며 무언의 시위를 했지. 크크크. 당신들도 가끔씩 해보라고 이것도 의외로 재미있어. 아! 물론 이분들의 눈에는 내가 한참 크는 귀여운 손주로 보이시겠지. 그리고 그건 종족을 뛰어넘은 나이기에 이분들의 나이와 비교를 해봐도 난 확실히 이분들에 비하면 갓난아이나 다름없는 신세야. 그래서 당신들한테도 한번 해보라고 한 거야. 당신들도 이런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있으면 나처럼 해봐. 얼마나 신나고 재미난 줄 알어? 후후훗. 할머니가 잠시 내 튼튼한 볼살을 살짝 매만져 주셨다. 캬아. 바로 이 맛이야. 보드라운 손길에 담긴 할머니의 깊으신 애정. 후웃. 이런 기분으로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는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은 아무도 모를꺼야. 헌데도 난 이런 내 마음속의 생각들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해 야만 했어. 왠지는 다 알지? 이 얄미운 녀석이 내가 그동안 내가 받아야 할 이런 사랑을 지가 몽땅 받고 있는 데 내가 가만히 웃으면서 넘어가면 바보가 되는 거야. 더구나 자기 주인인 나를 놔두고 건방지게 내 할머니의 애정을 독차지하는데 나보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건 아니라는거 당신들도 잘 알고 있겠지? 해서 난 뽀루퉁한 내 볼 살을 더욱 살랑거리게 만들었어. "칫. 할머니 손에서 냄새나." "으응? 이 할미 손에서 무슨 냄새가? 킁킁" 잠시 나의 이런 말에 놀라신 듯 눈을 크게 뜨시면서 자신의 손의 냄새를 맡으시 는 할머니셨어. 훗., 순진하시기는......무슨 냄새가 나겠어요. 오직 손주를 사랑하는 분의 달콤한 애정만이 담겨 있는 손길인데.. 하지만 난 내 마음과는 계속 다르게 행동해야만 했어. 그래야만 저 얄미운 녀석을 제대로 할머니의 품에서 떼 놓을 것 같았거든. "흥. 할머니가 맨날 저 녀석을 감싸고도시니깐 저 녀석의 이상한 냄새가 배여 있 잖아." 거 물론 저녀석의 냄새라고 비유를 했지만, 저녀석은 신기하게도 매일 아침마다 풀잎에 맺히는 이슬방울 같은 걸로 목욕을 하는 매우 신기한 놈이라서 냄새가 날 건덕지가 전혀 없었어. 단지 내 머리 속에 있는 그 시커먼 도마뱀의 엉덩이 부근을 파고들던 저녀석의 모습이 그런 뜻으로 말을 하게 한거야. 하지만 내 이런 말에도 할머니의 웃음을 전혀 잃지 않으시더라고. "호호홍. 우리 싸이가 이 할미한테 골이 잔뜩 난 이유가 바로 이거 때문이었구 나." 역시 할머니의 웃음소리는 내가 들어봐도 이 세계 최고의 웃음이야. 얼마나 소름을 돋게 하는지......... 당연히 그 소름은 할머니를 내가 너무도 사랑스러운 나머지 내 몸에 돋는 소름 이니깐 당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거랑은 차원이 다른 거 잘 알고 있겠지? "근데, 할머니! 그게 뭐야?" 난 할머니가 말씀을 끝내시기도 전에 이렇게 되물어야만 했어. 왜냐고? 그건 할머니의 손에 들린 작은 연녹색의 구슬 때문이었거든. "호호. 싸이야. 이건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자상한 설명에 의해서 난 지금 낮잠도 자지 못할 정도 로 안달이 나 있는 상태야. 쳇. 이런게 있었다면 진작에 주실꺼지. 내가 할아버지의 일 때문에 잠시 넋이 나간 틈을 타서 중요한 건 전부 할머니가 알아서 챙겨놓으셨다니.........아무튼 난 이 신기한 보석이 발하는 잔잔한 자연 의 기운과 그 기운들로 인해서 이 나만의 하얀 애완용 새가 될 놈이 앞으로 내 말을 잘듣기 만을 난 기도하고 또 기도했어. 그래야 나도 진정한 신사로 태어날꺼 아냐. 맞지? 당신들도 내 이런 생각이 전부 옳다고 찬성하지? 아암. 그래야지. 안그랬다간 앞으로는 재미난 사건들은 전부 쏙 빼고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사건들만 기억해 버릴테니깐. 후훗.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선 큰 머리를 끄떡이는 싸이의 모습과 그런 싸이의 손에 목숨이 간당거리던 콘돌은 이내 시선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서로 으르렁 거렸다. 왜? 왜 저러는 것인지.........쯔쯔쯧. 아마도 둘사이의 인연의 끈이라는게 전부 악연들로만 구성이 되어서 저러는 것 일까? 하지만 콘돌은 이내 체념을 한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내뿜던 독기를 금새 지워 버려야만 했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이상하게도 엄마의 냄새가 배인 저 연녹색의 구슬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꾸륵." "흐흐흐. 이제 내 말에 대답하는 거야?" 갸우뚱. 반짝. "헤헤. 그래. 앞으론 내가 부르면 잽싸게 달려오고 내 말이라면 뭐든지 알아서 잘 따라. 알았지?" 반짝반짝. 싸이는 눈앞의 구슬 때문에 두 눈을 급히 반짝거리는 이쁜 하얀 털의 새에게 다시 한번 으름장을 놓으면서, 급히 준비해간 고급스런 천으로 구성된 하얀 리 본을 콘돌의 목에 달아주기 시작했다. 물론 그 리본은 에르킨 여사가 손수 만들어주신 것이고, 그 리본의 끝에는 연녹색의 구슬이 펜던트 처럼 매달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제법 묵직한 고위 마법이 결계로 쳐져 있다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이 하얀 색의 리본은 가늘고 하얀 목을 지닌 콘돌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스르륵. "잘봐. 이렇게 하면 풀리는 거니깐. 앞으론 조심하고. 알았지?" 손수 콘돌의 가는 목에 리본을 묶어주면서, 그 뒤에 달려 있는 작은 루비를 살짝 누르면 리본이 벗겨진다는 것까지 세심히 일러주는 싸이였다. 물론 콘돌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아직 잘 모르고 있는 싸이다. 단 하나. 이런 친절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 리본을 벗길 줄 안다는 것 을 은연중에 어린 콘돌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끼아아악" 펄럭펄럭. 리본이 목에서 떨어지자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양 날개를 들썩이며 펼치는 콘돌 이었다. 그런 콘돌을 씨익 웃으면서 쳐다보던 싸이는 다시 콘돌의 하얀 목에 리본을 달 아주었다. 그제야 콘돌도 만족한 듯, 여사의 레어에 와서는 처음으로 싸이의 품에 안겨서 꾸르륵거리기 시작했다. '흐흐흐. 됐다. 이제 이 놈의 목에 방울을 단 이상. 이놈의 내꺼야. 흐흐흐' 왠지 싸이의 눈에 이는 눈빛이 탐욕스러웠다고 한다면 과연 잘못 본 것일까? 콘돌은 이런 정오 무렵의 상황을 끝으로 드디어 푸르른 창공을 마음껏 날수 있 었다. 잠시 싸이의 손길에 몸을 의지하던 중, 갑자기 몸 안에서 일기 시작하는 마나들 의 움직임이 목에 걸린 구슬로 향하는 가슴 철렁한 일에 미처 제정신을 차리기도 힘이 들었다. 그런 콘돌이 급히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목에 걸린 구슬에서 잠시 빛이 일렁이더니 급히 콘돌의 몸 전체에 하얀 마나의 기운들을 생생히 전 해주기 시작했다. '헉. 엄마다. 이건 엄마의 기운이 분명해.' 하얀빛이 살짝 자신의 몸을 돌아 다시 구슬로 모아지자, 콘돌은 자신의 기억 속 에 선명히 새겨져 있던 엄마의 냄새가 자신의 몸에 전해지는 착각에 빠졌다. 그 뒤부터 콘돌은 한참이나 싸이의 품에서 가만히 대자연의 기운들을 구슬로 모 으고, 그 구슬에서 자신의 의지로 몸 전체에 전달시키는 방법들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계속 전해져 오는 엄마의 냄새에 더욱 행복한 마음이 드는 콘돌이었 다. 때문에 오늘따라 부쩍 몸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 자신을 꼭 안은 채 잠이 든 싸이의 품을 빠져 나와선, 콘돌은 드디어 생애 최초의 자유 비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휴우. 앞으로가 문제로군. 그 어린 잡종 놈이 언제 심술을 불리지 모르니...원.' 오늘따라 엄마의 냄새에 힘이 부쩍 나는 가운데에도 콘돌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냄새를 전해주는 이 구슬의 진짜 주인이 따로 있는 이상 푸른 하늘 높이 올라가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치기엔 아직은 새가슴인 콘돌이었 다. 그런 콘돌의 눈에 작은 무언가가 보인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44 화. "싸이야. 무슨 고민이 있니?" "에? 네? 할아버지?! 헤헤. 글쎄요. 아직 저도 잘...하지만 제 몸이...." 내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된 건, 한참 심각하게 내 몸의 상태를 되짚어 볼 때였다. 이건 아주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뭐가 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내 몸 안에 마치 작은 구슬 같은 게 하나 들어 있는 이 다소 생소한 느낌이 지금의 나를 매우 고민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흐음. 이걸 할아버지한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아무래도 내 의지는 힘들게 혼자서 고민하지 말고 주위의 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맹렬히 나를 다그치는 듯 했다. '칫.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나란 놈이 뭐가 그리 좋으시다고.....' 아무래도 속에서 나온 무언가를 기분 나쁘게 여기는 내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은 나 혼자선 도저히 해결할 자신이 없어서 할아버지에게 조심스럽 게 여쭤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음. 할아버지. 이게 말이죠. 좀 이상해요?!" "으잉? 그게 무슨 말이냐? 너 몸이 이상하니?" 갈리아스 옹은 요 며칠 편안한 노후생활을 지내고 있었다. 간만에 살갑게 구는 마누라와 불타는 신혼 밤의 열기를 다시금 맛보고 있는데, 그런 일을 만들어준 사랑스러운 손자녀석이 뜬금 없이 자기 몸이 어디가 불편한 듯 말을 하니 심장이 벌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다급한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잠시 손자의 말을 경청하던 갈리아스 옹은 역시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제법 의젓한 손자를 다시금 안아줄 수 있었다. "으하하하. 아무렴. 아암. 이녀석이 누구 손잔데.......음뿌하하하핫" "에엥? 할아버지! 지금 웃을 일이 아니란 말예요. 전 지금 심각하다구요~!" "하하하. 오냐. 하지만 싸이야. 그건 괜찮단다. 아암." "칫. 할아버진...! 뭐가 괜찮다는거에요?! 지금 제 몸 안에서 조그마한 구슬이 자꾸만 돌아다니는 듯 해서, 전 큰 병이 생긴 것 같아 걱정이 되서 죽겠는데...... 히잉." "우헤헬헬헬. 고녀석도 참..." 결국은 한참을 거하게 웃으면서 손자의 다소 큰 머리를 쓰윽 매만져 주는 것으 로 입맛을 다시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욘석아. 그건 괜찮은 현상이야. 아니지. 아주 좋은 현상이란다. 오홍. 욘석이 이 할애비 말을 못 믿는 거냐?" "끄떡." "후훗. 그럼 너 지금 인간의 몸으로 있으면 그게 느껴지는 거지?" "으음.....네!" "그럼 그 작은 구슬 같은 게 우리 종족으로 변신해도 느껴지니?" "우음......그게." 난 잠시 할아버지의 말에 한순간 멍해져 버렸다. '왜지? 왜 그 생각을 못해봤지? 흐음........가만있어보자. 내가 아까 변신을 해봤을 때 그런게 느껴졌었나?' 할아버지의 말씀에 가만히 생각을 해봐도 역시 그런 어색한 무언가는 드래곤으로 변신한 몸에선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말야. 그럼 지금은 왜 느껴지는 거지? 에휴. 이걸 누구한테 물어봐야 속시원히 갈켜 주는거야.....?!' 속으로 아무리 되물어봐도 답답하기만 한 마음에 큰 고개를 힘차게 휘젖자 할아버지는 이런 나를 가만히 안아주셨다. "끌끌끌. 역시 내 손자구나. 아암. 장하다 우리 싸이! 하하핫. 여보~! 에르킨~!!!" 갈리아스 옹은 손자가 혼자서 골똘히 생각하는 폼을 한동안 들여보다가 주체할 수 없는 희열에 들떠선 손자를 덥썩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갈리아스 옹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희열을 혼자서만 느끼기에는 다소 아까운 심정에 큰소리로 자신의 아내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의 고함에 가까운 큰 호출에 금새 딸내미와 나란히 나타난 여사의 얼굴엔 간만에 홍조를 띄고 있었다. 아무래도 간밤에 이 노친네 둘이서 뭔가 찐한 그 무엇을 나누셨는 듯. 괜시리 옆에 있는 엘렌이 더욱 행복한 콧소리를 연발했다. "호호홍. 아빠. 간밤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어째 하루만에 목소리에 힘이 팍팍 실리셨다. 호호호홍." 딸내미의 뭔가 의미심장한 말에 잠시 아내의 얼굴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갈리아스 옹은, 이젠 어른이 되었다고 부모한테도 겁없이 농짓거리를 하는 딸에게 무안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떽. 욘석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어디서...........이잉. 버릇없이.........험험. 그나저나 마누라." 아무리 큰소리를 쳐봐도 생글거리는 딸내미의 웃는 얼굴을 똑바로 보기 힘든 무언가 민망스런게 느껴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손자가 느껴지자, 자신이 왜 마누라를 불렀는지 후다닥 깨달은, 요즘 들어 밤이 매우 즐거운 갈리아스 옹이었다. "호홋. 왜 그러세요? 우리 싸이가 이번에 또 무슨 일을.....?" 미처 의문을 구하기도 전에 갈리아스 옹은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대견스러운 손자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암. 우리 자랑스런 손잔데 당연한 일 아니오." "네에? 그거랑 자랑스러운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맞아요. 아빠. 이번엔 또 어떤 사고를 쳤길래 그리도 좋아하세요?" 요즘 들어 맨 날 뽀루퉁해선 콘돌을 못살게만 구는 싸이였다. 그러니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궁금해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엘렌이 조심스럽게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버지에게 물음을 구했다. '휴우. 저 녀석이 이번엔 또 어떤 대형사고를 친거지? 아빠가 저리도 좋아하는거 보니깐 제법 엉뚱한 일을 저지른 모양인데.......' 잠시 미간을 좁히며 아들 걱정이 태산같던 엘렌이었다. 자기 아버지가 어디 보통의 드래곤인가? 맨 날 그리고 허구헌 날 사고만 쳐서 집안의 분위기를 망치는데에는 일가견이 있던 분이셨다. 그런 양반이 자신의 품안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어린 손자가 대견하다는 듯이 웃음을 짓고 계셨다. 엘렌은 이런 아버지의 엉뚱함을 아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았을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해서 더욱 안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윽고 터져 나오는 엄마의 비명성과 그 뒤를 이은 아버지의 웃음소리에 화들짝 놀란 엘렌은 덩달아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엑? 아빠.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소.....소드 마스터?! 그게 무슨...... 지금 싸이가 사고를 친 걸 감추시려고 엄마랑 저한테 거짓말하시는 거죠?! " "으하하핫. 사고는 무슨......내가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믿겠냐? 지금 이 녀석 몸 안에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만 겨우 생기는 내단이 이렇게 커다랗게 자리를 틀고 있다니깐.....음뿌화화홧" 이미 싸이를 품에 안으면서부터 손자의 어리광 같은 말에 일일이 몸을 체크 해 본 갈리아스 옹이었다. 누구나 인간형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고 해서 모든 드래곤 이 몸 안에 작은 내단을 형성시키는 건 아니였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생기는 시점들이 가지각색이었던 것이다. 헌데, 이 핏덩이에 불과한 손자 녀석의 몸에는 매우 신기하게도 갈리아스 옹과 비슷한 커다란 내단이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한때는 인간의 세상에 나아가 유희를 즐기려고 엄청난 노력 끝에 생긴 내단이었 다. 그 때문에 긴 잠을 잘 때에도 내단의 연마를 아끼지 않았던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런데, 지금 손자의 몸 안에서 자꾸만 요동을 친다고 하는 그 구슬 같은 게, 자신이 지난 세월동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서 겨우 만든 내단이 확실하자 갈리아스 옹은 더욱 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갈리아스 옹의 웃음소리와는 달리 싸이의 팔찌에 종속된 실프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으윽. 머리 아퍼! 이번이 도대체 몇번째야?! 흐윽. 이건 해도해도 너무 하잖아!!!' 아마도 성질이 잔뜩 난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생각해 보라. 싸이가 어린 몸에 비해 너무도 터무니없는 커다란 덩치를 가지게 되자 그 커다란 덩치에 걸맞는 힘들을 몸 안에 비축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했는 가? 그건 바로 마신 발킬마의 기운이 녹아 있는 마령석과, 그 마령석의 외부에 강한 결계를 치면서 녹아든 오딘의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싸이였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엄청난 신의 기운들이 녹아 있는 마령석이, 주위에 떠다니는 대자연의 기 운들과 자연스럽게 융합이 되면서 내뿜는 강하면서도 복합적인 기운들을, 얼마 전에 자신의 것으로 만든 싸이였다. 더구나 그 대자연의 기운들이 어떻게 융합이 그리 쉽게 될 수 있었는가? 그건 바로 전대 콘돌의 모든 힘과 수많은 드래곤들의 각기 다른 브레스들이 마령석 안에 하나로 모아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엄청난 기운들을 싸이가 어떻게 손쉽게 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게 과연 모두 싸이 혼자서 한 일이었을까? 그건 절대로 아니였다. 이 모든 일들은 싸이의 팔지 안에서 생노가다를 뛴 실프가 모두 이루어낸 일들 이었다. 물론 갈리아스 옹이 싸이의 몸 주위에 발현시킨 고대 마법도 한 몫을 톡톡히 했 다. 그 때문에 실프는 손쉽게 주인의 의도하는 바에 따라 각기 다른 기운들을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싸이는 이런 실프가 뺑이를 치고 있을 때, 그저 팔자 편하게 아공간에서 탱자거 리며 놀기만 했다. 주인의 몸 안에 들어온 기운들을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축적시 키는 일들은 모두 불쌍한 실프가 해야만 했던 것이다. 헌데, 지금에서야 겨우 휴식을 취하면서도 간간이 주인의 몸 관리를 도맡아오던 실프는 요 몇일 전부터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는 마나들 때문에 고생이었다. '갑자기 이놈들이 미쳤나? 감히 내 명령도 없이 주인님의 몸을 기어다니다 니.....' 이를 부득 갈고 싶었지만, 정령은 이빨이 없다. 이건 본체가 정령계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눈을 부라리는 실프였다. "얌마. 너희들 자꾸 까불꺼야?" 평소였다면 이 한마디에 눈치를 살피면서 얌전하게 말 잘 듣는 어린 친구로 돌아 왔을 놈들이었다. 헌데 요 며칠동안은 진짜로 아니올시다였다. "이익. 이것들이.......감히! 너희들 누가 맘대로 또 뭉치래?!"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만, 주인의 몸 안에서 작은 덩어리를 이루는 마나들이었다. 그래서 화가 잔뜩 난 실프는, 한가닥 한가닥. 주인의 몸에 겁없이 뭉치는 마나들을 일일이 손으로 하나씩 집어내는 마음으로, 그녀석들을 일일이 분해시켜 버렸다. 헌데 이건 분해 시켜놓으면 바로 옆에서 또 다른 놈들이 뭉치고, 그걸 또 부셔놓으면 또다시 다른 놈들이 옆쪽에서 자꾸만 뭉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런 열 받는 상황을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시간이 조금 지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분해시켜 놓은 놈들까지 그 놈들에게 달라붙는 형국이었다. 더구나 처음엔 조그만 했던 녀석이, 이런 일을 여러번 반복하다보니깐 이젠 자기 머리 만한 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질이 날대로 난 상태에서 혼자 화를 삭혀야만 하는 불쌍한 실프였다. "으아악. 누가 이녀석들을 제발 혼 좀 내줘요~!!" 도저히 이젠 힘에 붙이는 관계로 가만히 주시를 하는 심정은 미치고 환장할 지 경인 것이다. 어디 정령이 포기라는 걸 아는 존재인가? 그건 절대로 아닌 것이다. 하지만 실프는 여기서 그 포기라는 단어를 겸허하게 배워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자기보다 더 큰 마나의 덩어리가 주인님의 몸 안에서 허락도 없이 자리를 틀게 뻔한데.....!! 그걸 만들 용기까지는 도저히 없었던 가녀린 실프였다. 나풀나풀. 폴짝폴짝. '흥. 이게 뭐냐고? 지금 이건 내 눈앞에서 겁대가리 없이 날라 다니는 바람녀석들의 장난이야. 근데 왜 이런 장난을 삐딱선을 타면서 바라보냐고? 쳇. 누군 봐주고 싶어서 봐주는 줄 알어? 하여간 그놈의 극성은 어딜 가나 꼭 따라다녀요. 흥. 왜 이런 사랑을 받는 내가 꼽냐? 치. 나도 꼽다 뭐?! 자기들만 꼬운가? 아무튼 나도 이래야만 하는 내가 아니꼬와서 죽겠다! 쳇. 말 안해.................이씨...! 치.....! 하면 뭘 해? 전부 내 말은 우습게 보이면서......흥!' 뽀루퉁. 절래 절래. 잔뜩 화가 난 몰골로 통통한 뺨을 흔드는 싸이였다. 그런 싸이를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여러 가족들의 마음속은 작은 환희에 벅 차 있었다. '호호호. 역시 내 아들이야. 자기 아빠를 닮아서 벌써부터 소드 마스터라니..... 호호, 그럼 지금보다 좀더 가르치면?!' 무언가 머리에서 팍 하고 강한 영감이 떠오르는 엘렌이었다. 사실 드래곤들 중에서 그랜져 마스터라고도 불리는 무황(武皇)이나 검황(劍皇) 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아래 소드 그랜드 마스터들은 제법 많았던 것이 다. 이 모든 게 수천년이 넘는 긴 시간들 동안 검에 미쳐서 산 몇몇 드래곤들 덕분이 었다. 이런 드래곤들이 하나둘 인간의 모습으로 부지런히 검을 연마하면서부터 자신의 몸 안에 이는 신비로운 변화를 후대의 드래곤들에게 전한 기록들도 있 다. 그중 가장 최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드래곤 종족 중에서도 검황의 경지에 다 가선 드래곤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애초에 우리 드래곤들은 인간들과는 판이한 건강하고 강인한 육체를 타고 태어 난다. 하지만 이런 우리들도 어린 헤츨링 시절에는 매우 연약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맞지?! 자. 그럼 여기서 모두들 생각해 봐라. 과연 너희들이 기르는 헤츨링들이 너희의 손에서 벗어나서 인간이나 유사종족들의 품에서 자라면 어떤 모습으로 성장을 할까? 그리고 그 헤츨링이 성룡이 되면 과연 제대로 된 드래곤으로의 자각을 가질 수 있을까? 그건 아니란다. 모두의 생각이 각기 다르겠지만, 존재의 의미를 제대로 각성 못한 드래곤들이 결국은 성룡이 되어서도 그 허물을 벗지 못하듯, 어린 헤츨링이 인간이나 유사종족의 품에서 자라면, 그저 남들 보단 좀더 나은 단단한 몸을 지닐 뿐이다. 하지만, 너희들의 품에서 안전하게 자라서 성룡이 될 때까지 존재의 각성을 마 친 녀석들은 어떻게 변할까? 그래, 지금의 너희처럼 건강하고 강인한 육체를 지닌, 이곳 물질계에선 신 다음으로 강한 존재인 드래곤들이 되는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왜 내가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바로 이 것 때문이다. 검. 너희들의 생명을 끊어 놓을 수도 있는 이 존재의 불안감으로 인해 탄생이 된 검. 바로 이것 때문에 이런 구차한 설명을 해야만 했다. 헤깔리느냐? 하지만 이 검을 자세히 들여다봐라. 그리고 이 검을 사용하는 자들을 유심히 지켜봐라. 과연 그들이 이 검으로 어떤 일들을 저지르며 살아가는지를.........! 그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내 전 재산이다. 물론 모두들 어이가 없겠지. 소드 마스터를 꿈꾸는 인간들이나,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 싶어하는 너희들 베이직 헌터들에게는 이런 내 말이 조금 두서가 없이 이상하게 들리겠 지. 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니깐. 하지만 그건 바로 내가 말주변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그 점에 대해선 이해를 해라! 그리고 나 또한 내 속에 든 지식과 경험들을 이렇게라도 풀어놓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을 못 할 것 같아서 주절거리는거니깐 너희들의 많은 양해를 부탁한 다. 아무튼, 이런 내가 봐도 여기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이 검과 이 검을 사용하는 자들의 육체다. 너희들도 유사종족으로의 유희를 여러 번 즐겨봐서 잘 알겠지만, 몬스터 수준의 종족들은 이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힘들다. 또한 이 최고의 검을 만드는 대장장이 드워프들도, 이 검보다는 자신들의 힘을 자랑할 수 있는 도끼와 망치를 더 애용한다. 허면 이 검은 누가, 그리고 어떤 존재가 가장 잘 이용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인간이다. 바로 그들이 이 검을 탄생시켰으니깐...! 우리 용족 전사들은 이 땅에 우리 드래곤들의 우월성을 증명할 수 있는 본체를 드러내고 싶어도, 과거의 맹약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으면서 들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맹약에는 우리들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약속도 들어있다. 해서, 이 땅에 남아 있는 마수들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사냥을 다녀야만 한다. 물론 본체로 사냥을 다니면야 더 좋은 일이겠지만, 우리가 본체의 신성력을 이용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우리의 적인 마수들 또한, 그들의 주체적인 힘인 암흑의 힘을 주로 사용하게 된 다. 그럼 이 땅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 때문에 우린 이렇게 용족의 자랑스런 전사라는 이름으로 나서지도 못한 채, 베이직 헌터라는 인간들에게 자랑스런 존재들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우리의 본체로 마수들과 싸움을 벌이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 땅은 그야말로 파괴와 살육이 넘치는 곳이 될 것이다. 그들의 어둠의 힘과 우리의 우월성이 돋보이는 힘들이 만나게 되면, 온 대륙이 죽음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럼 우리는 과거의 절대 맹약에 의 해서 이 곳 물질계를 파괴한 죄로 모두들 자연의 품으로 강제 소환이 되버려야만 한 다. 그건 너희들 모두가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이 곳 물질계의 평화를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 고 있다. 그리고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맹약에 의해, 베이직 헌터라는 용족 전사들 의 집합소를 새롭게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헌데, 이런 우리 베이직 헌터들이 주로 이용하는 무기가 무엇인가? 바로 이 검이다. 게중에는 대형 도끼들도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 친구들도 자신의 몸에는 이런 검 한 자루는 반드시 가지고 다닌다. 자. 이제 지루한 설명은 이쯤에서 짧게 끊내자. 자. 이 검. 그리고 이 검을 사용하게 될 우리들의 몸! 지금 우리들이 현재 변신한 몸은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변신한 모습들이다. 때문에 우린 스스로 많은 제약을 가져야만 했다. 허나, 갈리아스 가문의 자랑이기도 하고 수치이기도 한 갈리레오에 의해, 우린 그나마 수많은 제약을 조금이나마 해소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우린 지금 헤비 워커를 이용한 마수 사냥에 임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자리에 있는 너희들 중에서 헤베 워커가 없이 맨몸으로 마수와 붙을만한 자가 몇이나 있나?! 아마도 내 다섯 손가락 안에도 못 미치는 한심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늘 너희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다. 잘 들어라! 말주변이 없어서 횡설수설했지만, 반드시 이 말만은 꼭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 다. 지금 우리가 변신한 인간의 몸은 우리가 생각 못한 신비한 기운들이 많다. 그건 인간들의 신경으로는 도저히 알아차리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들 때문이다. 그 중에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마나들이다. 우린 마나를 이용해서 그 큰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들! 그 덕분에 우린 인간들보다 마나에 대한 친숙도가 엄청난 경지에 있다. 지금 비록 우리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을 하고 있어도 우리는 똑똑히 느낄 수 있다. 바로 내 몸 안에서 움직이는 마나들과 주위에 떠도는 마나들을 말이다! 너희들도 나와 같은 그랜드 마스터의 마지막 경지에 이르고 싶을 것이다. 맞나? 그럼 내 말을 따라서 그대로 수련해라. 다른 건 모두 다 필요 없다. 그저 부지런히 자신의 육체에 마나들이 움직일 통로들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검을 휘두르는 팔에 힘이 들어가면, 나중에는 그 힘이 들어가는 통로를 따라 마나들도 움직이게 되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무조건 검을 쥐고 휘둘러라. 하루에 수만 번을 휘두르게 될 지라도 그냥 무조건 휘둘러라. 그러면 된다. 괜히 꾀를 부려서 더 빠른 방법들을 찾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련에 정도(定道)는 없다. 무조건 검을 쥐고 열심히 수련을 하는 자 만이, 이다음에 나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제법 설명이 길었지만, 내가 말주변이 없다는 건 너희들 모두가 알 것이다. 왜냐면, 난 언변을 배울 나이 때부터 검만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들보다 한심할 정도로 난 말주변이 약하다. 하지만 이런 내가 지금 올라선 경지에 대해 너희들 또한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검을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게끔 휘두르고 또 휘두르면서 수천년이 넘는 긴 시간들을 수련해라. 그럼 된다. 그럼 나처럼 위대한 검황을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상이다." 이건 엘렌의 머리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이 아니였다. 바로 갈리아스 옹의 머리 속에 든 생각들이었다. 그런 갈리아스 옹이 지금 용족 사회에서 최고의 마스터로 손꼽아 주는 드래곤이 있다면, 바로 어눌한 말주변으로 주위를 답답하게 하는 카이져 드래곤이자 블루 일족의 수장이 된 차이넬이었다. 베이직 헌터들의 카이져.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명예로움이던가! 모든 용족들의 전사들이 자기 부모보다 더 떠받들고 찬양하는 카이져 마스터. 이런 차이넬도 따지고 보면 검에 미친 드래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차이넬의 말에 앙심을 품고 쳐들어간 못난 드래곤이 바로 자신이었 다. 왜 자신이 가문의 수치였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그 일은 갈리아스 옹에게 자랑스러운 일로 남겨지고 있었다. 왜냐면 바로 그 어눌할 정도로 한심한 말투의 차이넬이 갈리아스 옹과 몇 개월의 긴 대화 끝에 스스로 감복해 버린 어떤 사건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차이넬은 갈리아스 옹을 만난 뒤부터 뭔가를 깨우치곤, 깊은 은거에 들어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아마도 갈리아스 옹과의 대화를 통해서 뭔가를 깨우치고 그 깨우침에 마지막에 있던 어떤 벽을 뛰어 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 인해 이미 오백년 전에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그가 아직까지 은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그 마지막 수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과도 일맥 상통한다. 헌데, 지금 눈앞에서 잔뜩 볼 살을 흔들며 어디론가 힘없이 사라지는 손자와 차이넬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이건 아마도 차이넬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 또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 갈리아스 옹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힘없이 축 쳐진 손자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갈리아스 옹은 절로 가슴이 콩닥거렸다. 이렇게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어주는 손자의 작은 등과 오래 전에 만나 본 차이넬의 얼굴이 왜 겹쳐 보이는 것일까? 아마도 이 때문에 더욱 가슴이 콩닥거리며 설레이게 만드는 손자일 것이다. '그래. 우리 가문에서 베이직 헌터 카이져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어! 우린 그동안 신룡 헤리아킨 님의 피를 이어받은 존재들이라서, 이 다음 사후세계에 가면 제법 대접을 받기에 다소 무리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분의 후광이 언제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헌데 저 녀석이 이제부터 우리 가문의 후계자로 지금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용족 사회에 그 모습을 들어내게 된다면.....!!! 우리는 굳이 그분의 후광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한마디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거야! 물론 그분이 내게 하신 말씀도 있지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저 녀석의 기운만으 로도 우리 가문은 충분히 이 다음에도 계속 존경받는 위대한 가문의 지킴이가 될 수 있는 거야. 아니지! 만약 저 넘이 진정한 이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면........?! 그래! 맞아. 바로 그 때문에 그분이 내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기신 건지도 몰 라!!' 얼마 전, 꿈같이 느껴지는 사후세계에서 처음으로 뵙게 된 위대한 갈리아스 가문의 진정한 주인인 헤세르 대제를 떠올리면서,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봤다. 이곳 물질계에서 갈리아스 가문의 지킴이가 된 신룡 헤리아킨의 후손들. 그런 후손들에게 동료 드래곤들이 존경하는 의미로 한단계 올려서 칭해주는 갈리아스 가문의 후계자라는 존칭들이 순식간에 그의 머리를 스치며 지나다녔 다. 아내 또한 신룡의 자손이기에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고, 그에 따른 노력을 지금까지도 아끼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도 이 위대한 갈리아스 가문의 지킴이인 실버 일족들은 드래곤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헌데, 지금 눈앞에서 토라진 손자의 등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 화사한 미소를 지어주시던 헤세르 대제의 기운이 그의 눈에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손자의 몸은 지금 수천년을 살아오며 검술을 연마하는 베이직 헌터들보다 더 월등한 내단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이러니 더욱 손자를 챙길 욕심이 드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단지 손주 녀석은 그걸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기에 오늘 손자에게 처음으로 나쁜 짓을 하게 된 갈리아스 옹이었다. "후후. 녀석. 아무래도 내가 한 말에 충격을 먹은 모양이군." "후우. 영감. 굳이 그렇게 시킬 필요는 없었잖아요." 한숨을 내쉬고는 있지만, 평소보다 더욱 다정하게 말하는 아내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어 마주보며 미소를 짓던 갈리아스 옹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부인. 저 녀석이 어떤 경로로 그 힘을 얻었는지는 잘 몰라도, 아마 내 생각이 맞다면 그 힘을 쓰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오. 아.....! 물론,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그 힘을 얻게 해준 건 어쩌다 운 좋게 그 마법이 성공해서.....아마도 그렇게 되었지 싶소만, 그런 운 좋은 일들도 자신이 땀을 흘리며 노력하지 않고선, 어떠한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건 이미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휴우. 아무리 그래도 우리 싸이는 아직 어린데.....전 그게 더 걱정이에요." 옆에서 갈리아스 옹과 에르킨 여사의 걱정스런 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엘렌의 눈에는 그런 초조함이 전혀 없었다. '흥. 두고보라지. 내 자식이 누군데......아암. 괜시리 아빠 엄마는 우리 싸이 걱정에 쓸데없는 생각들만 하고 있어. 지금 베이직 헌터들이 왜 소드 그랜져가 되기 위해서 안달을 하는데?! 모두가 우리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기 위한 욕심들 때문이잖아. 더구나 좀 있으면 그 잠이 들었다고 전해지는 콘돌이 나타날 시기가 다가오는 데, 그때 콘돌에게서 인정을 받은 자만이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갈리아스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로 탄생할 수 있잖아. 치이. 두고 봐! 난 반드시 내 아들을 우리가 지키고 있는 이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로 반드시 만들고 말꺼야!!' 꼬옥. 아들을 생각하면서 더욱 손에 힘이 들어가는 엘렌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어린 엘렌이기 때문이라서 이런 욕심을 부리고 있는지 모 른다. 갈리아스 옹이 스스로 말한 그 힘을 얻는 방법들은, 모두가 대대로 유산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고대 신룡족들의 마법을 이용한 덕분 이고, 그 힘을 얻은 자가 그 힘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가는 본인의 노력이 깃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 힘을 얻기 위해서 고생을 해야만 하는 손자가 걱정스러운 여사의 마음 씀씀이는, 엘렌보다는 네 배를 넘게 산 오랜 경륜에서 나온 일이다. 그래서 더욱 손자의 축 쳐진 어깨가 안타까운 여사였다. 하지만, 난 말야. 이건 진짜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왜냐고? 쳇, 아까 삐져서 말 안하려고 했었는데...........이씨. 하지만 너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말 좀 해야겠어. 흑. 어떻게 나한테 이런걸 시키냔 말야. 내가 수백살 먹은 성룡이야? 그건 아니잖아. 난 아직 핏덩이라고 불리는 헤츨링이라고! 뭐 아니라고?! 히잉.......그건 그래. 솔직히 난 인간이거든~! 그래, 맞아. 난 인간이야. 하지만 말야!!! 지금 할아버지가 나한테 시킨 이 일은 너무 하다고 생각해. 물론 내가 내 몸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걱정이 되서........ 이씨, 그래 나 겁 많다. 됐냐? 그래서 겁이 나 물어봤다. 어쩔래? 쳇. 성질 나면 말문 꽉 닫아걸고 도망쳐 버릴까부다........칫. 암튼, 난 지금 매우 못마땅해. 내가 아무리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이런 나한테 드래곤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만들어주시겠다니.....! 게다가 그 방법이 수천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요상한 검술을 연마하는 거라면서 아무 대책도 없이 가르쳐 주면 어떡하냐고....!! 잉잉...어디 가서 진짜로 속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다. 쳇. 더구나 그 이상한 검술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초고룡이라는 걸 자랑하시려고 일부러 내 머리 속에 마법으로 전달을 하시다 니..... 그럼 마법으로 전달을 했으면 그만이지. 왜 감시 마법은 또 거냔 말야?! 난 누가 시킨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다행히 그 감시 마법이 검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휘두르는지, 아니면 그냥 노는지를 감시만 하는 거니깐 지금 내가 참는 거지. 그보다 더 심한 감시 마법이었다면 난 할아버지랑 두 번 다시 말 안했을꺼야. 아암. 쳇. 나 이제 바뻐. 그러니깐 괜시리 옆에서 몰래 숨어서 졸졸 따라다니지 말고 앞으로는 내 앞에 나타나서 말 걸어. 알았어?! 아니면 나 대답도 안할꺼야. 부릿부릿. 싸이는 지금 자신을 향해서 이런 강한 의념들을 일으켰다. 혼자서 궁시렁 거리면서, 마치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이 자꾸만 성질을 내는 싸이였다. 하지만, 이런 싸이도 자신한테 걸린 뭔가가 자꾸만 의식이 되는 듯, 눈앞에 작은 막대기를 든 채 열심히 뚜벅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 제 45 화. 요즘 콘돌은 신이 나서 환장 할 지경이었다. 맨 날 툭하면 자기를 괴롭히던 못된 악당 녀석은, 검술을 배운다고 매일 마다 온몸에 피멍을 주렁주렁 매달고 나타났다. 그리곤 매우 피곤한지 자기를 괴롭힐 생각도 못하고, 그저 잠자기만 바쁜 것이다. 이러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어디 그 뿐인가?! 요새 들어서 부쩍이나 밖으로 나도는 악당 녀석 때문에, 자유시간이 많아진 콘돌은, 얼마 전 발견한 이상한 생물에게 수시로 들락거리며 재미나게 놀고 있었다. 아, 그 이상한 생물이 뭐냐고 묻는다면 콘돌은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귀가 쫑긋하게 생긴 게 꼭 토끼같이 귀여운 생물이라고...! 물론 콘돌도 자기랑 놀아주는 생물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태어나서 백살이 될 때까지, 토끼의 그 모습과도 흡사한 몸으로 살아야만 하는 존재. 더구나 꼬리에 난 털뭉치가 그 존재의 자각을 가져다주는 결정체인 것도 어린 콘돌은 매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린 생물이기에, 지금 콘돌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콘돌이 아침 일찍 피멍이 든 몸을 이끌고 나가는 싸이를 보자마자, 또다시 푸르른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후훗. 그녀석 쌤통이다! 맨날 나를 괴롭히는 취미로 살던 놈이......쿠헤헤. 나도 심심한데 몰아치는 바람한테나 놀러 가야겠다. 헬헬헬' 푸드득. 이젠 날개 짓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한 두번의 작은 움직임만 있으면,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콘돌이었다. 이런 콘돌이 서서히 방향을 바꿔서 날아가는 곳은, 헬요리네 산맥의 정중앙에 위치한 호수의 한 가장자리였다. 그리고 서서히 푸른 하늘을 담고 있는 호수가 눈에 다가오면서부터, 콘돌은 살며시 날개를 접으며 조용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오오. 또 오셨다." "어디? 어디에 오셨어?!" 푸른 하늘에 하얀 조각구름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높디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유로운 바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프리튠 부족의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내밀어 누군가를 찾으려는 듯, 연신 긴 목을 가지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허나, 그렇게 애를 써봐도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듯 날아가는 어떤 존재를 그들이 보기에는 너무 힘든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그들은 매우 손쉽게 성스러운 영물을 찾아 볼 수 있었다. 현재, 이 프리튠 부족의 족장을 맞고 있는 엘로니안을 찾아가기만 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꿈에도 그리는 존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로 엘로니안의 어린 손자를 찾으면 볼 수 있는 것이 다. 아직은 성년의 의식을 치루기엔 몇 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 어린 프리튠이기에 조심에 조심을 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남아 있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먼발치에서나마 위대한 신조를 볼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 것이다. 이 위대한 가문의 수족으로써 태어나 명예로움을 안고 자라난 자신들이기에, 위대한 가문의 수호영물이 작은 몸으로 변신한 채 자신들의 부족을 찾아준다는 건 너무도 가슴 설레이는 축복인 것이다. 해서, 오늘도 눈이 빠져라 먼 하늘만을 바라보는, 이 피끓는 젊은 청춘의 엘프들은, 자신들이 받들어야 할 분의 수호영물을 보려고 안달을 하고 있었다. 쐐애애액. 쿠당탕. 꽤액. 한줄기 작은 빛이 눈앞의 거목에 부딪히자 그 속에선 돼지 멱을 따는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빛의 주인으로 여겨지는 존재는, 뿌연 먼지가 한참이나 가라앉고서야 자리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야야. 아흑.........너무 아퍼!" 궁시렁 궁시렁. 제법 커다랗게 혹이 난 이마를 매만지면서 싸이는 눈물이 찔금 일었다. "흑. 너무 아프다. 이것 봐. 흐윽." 누가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마치 옆에 누군가에게 보란 듯이 궁시렁 거리는 싸이였다. 이런 싸이가 매일 저녁, 온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들어가도 이제는 예전처럼 난리를 치는 식구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가문을 위해서 꾹 참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모른 채, 싸이는 자신을 박대(?)하는 가족들에게 잠시 노여움이 일었 다. 하지만 그런 노여움도 잠시였다. 이미 자신과의 싸움에서 벌써부터 오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러니, 그런 시시한 건 모두 이 다음에 확실히 갚아주기로 했다. 지금은 오로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삼나무를 죽일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 "흥. 두고봐. 이까짓 목검으로 내가 저 넘을 못 벨 줄 알어?!" 이건 오기가 아니라 원한에 찬 눈빛이라고 말해도 될 듯한 악에 바친 싸이 눈빛 이다. 허나, 이런 오기가 생기게 된 일도 다 무지 미운 할아버지 때문이니, 싸이는 오로지 눈앞에 거대한 나무에게 그 원한까지 덧보태며, 오직 한 자루의 목검으로 큰 나무를 벨 생각만 하고 있었다. '칫. 두고봐. 내가 반드시 해내고야 만다. 아암. 내가 누군데.......씨!' 왠지 눈앞에 지름 5m가 넘어 보이는 나무가 불쌍해 보였다. 그런 나무의 아래둥지를 노려보면서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하는지 왈칵 서러움이 밀려왔지만, 간단히 입술을 비트는 걸로 훌훌 날려버리는 싸이였 다. '쳇. 미워. 이건 너무 미워. 내가 누군데............씨. 맨 날 나보고 이쁘다고만 했으면서, 갑자기 이런 일을 시키는 이유가 뭐야? 이씨. 이건 아마도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한 놈이 되니깐, 그분들이 이런 일을 시켰을꺼야! 쳇. 언제부터 내 의지가 이렇게 약해 진 거야?' 아무리 투덜거려봐도 속에 차있는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생각해봐도 이상한 노릇이었다. 내가 누군야? 비록, 지금은 어린아이의 몸을 가지고 있는 싸이지만, 한때는 외문기공에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련을 한 나잖아! 헌데 왜 안되냐고?! 지금 내 손에 들린 검이 나무라서 그런거야? 아니잖아. 옛날에는 이걸로도 빠르게 비켜 치기를 하면, 가는 대나무 정도는 우습게 벨 수 있었던 나잖아! 그런데 왜 지금은 안되냐고?! 더구나 지금은 내 몸 안에서 이 꿈틀거리는 기운들이 조금이나마 검으로도 전달이 되는데...! 왜 안되냔 말야?! 그리고, 지금 내 몸의 스피드 봤지? 이건 내 눈앞에서 뭔가가 휙휙 지나갈 정도로, 내 몸이 빠르게 움직이는데, 왜 그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도 흠집하나 못내냐고......!!! 참으로 한심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속에서 이는 이 황당하면서도 열받는 일들은 내 이런 한풀이성 말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거만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자신과 싸움을 시작하는 어린 손자를 보고 있는 에르킨 여사의 마음은 그보다 더 한심한 질문을 해보고 또 해봤다. '과연 저 어린것이 혹여 조급한 마음에 몸을 망치진 않을까?' 매일 저녁마다 손자의 멍든 몸을 보면서 속으로 울음을 삭혀야 하는 여사의 심정도 편하기는 힘들었다. 이 모든 게 가문을 위한다는 남편 때문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디 그 남편이 지금 손자에게 나쁜 일을 시키고 있는가? 그건 절대로 아닌 것이다. 손자와 더 나아가서는 이 위대한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일을 밑바닥부터 철저히 시키고 있는 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의 모습으로는 채 열 살도 안되어 보이는 작은 몸을 하고 있는 어린 손자가, 거대한 삼나무! 그것도 아이언 플릿과 재생마법이 걸린 삼나무를 작은 나무 막대기 하나로 베려고 하는 모습에 더욱 마음이 편치 못한 여사였다. "에휴.....이런걸 얼마나 더 봐야 저 어린것의 몸에 피멍이 빠질까?" 이미 페밀리어로부터 매일 마다 손자의 안부를 전달받는 여사다. 저녁마다 끙끙거리며 앓아 눕는 손자가 너무 안쓰러워 치료마법을 해주고자 해 도, 옆에서 눈을 부라리며 말리는 남편 때문에, 이젠 밤이 무섭기까지 한 여사였다. 그것도, 마법으로 몸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면 평상시의 몸이 그 마법을 기억하 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고 하는, 남편의 믿음직한 말 때문에라도 손자를 위해서 이 쓰린 속을 홀로 참아야만 하는 에르킨 여사였다. 그래서 손자가 얼마나 더 다칠지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페밀리어로부터 영상을 전달받게 해주는 수정구를 매일 눈앞에 놓고 사는 에르킨 여사다. 하지만, "이건 아무래도 못 참겠어! 우리 귀여운 싸이가 저런 몰골로 수련을 시작했는데, 도저히 할미로써 이대로는 방관할 수만은 없어. 내 오늘은 확실히 해결을 해주고야 말꺼야!" 수정구를 들여다보며 안절부절하는 것도 어느 정도다. 이젠 그게 며칠동안 반복이 되다보니,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옆방에서 지금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못된 딸년과 남편에게 뭔가 확실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엄~마?!" "어서...오구려!" "흥!" "왜.....왜 그러세요?!" "왜 그래? 호옹?!" 척. 옆구리에 손이 절로 올라가며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여사였다. 그러니 아니꼬운 나머지 방문을 세차게 걷어차며 들어왔을 것이다. "흥. 한심한 년! 넌 지금 하나뿐인 아들녀석이 저녁마다 온몸에 피멍이 잔뜩 들어서 들어오는데, 뭐가 그리도 즐거워서 나보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거냐?!" 서서히 불쾌지수가 오르기 시작하는 여사다. 그러니 절로 살벌한 어투로 입을 열리는 것이다. 이런 여사로 인해서, 간만에 오붓한 부녀간의 대화는 그만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이보시오. 마누라!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당신이 핏대를 세우니깐 우리 엘렌이 놀랐잖소?!" "흥.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싸이가 누구에요?!" "그.....그야." 딸에게로 향하던 화살이 자신에게로 날아들자 덩달아 놀라 일어서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 때문에 놀란 속을 부여잡으며 말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 다. 이걸 놓칠 여사가 아니였다. "흥. 그야?! 뭐죠? 우리 가문을 위해서 지금도 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싸이가 저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 불쌍한 녀석의 할아버지라는 위인이 지금 뭐하고 있는거죠?! 더구나 뭔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도 내가 이쁘게 봐줄까 말깐데, 이렇게 허구헌 날 희희덕 거리면서 손자가 고생하는걸 가만히 지켜보는게 당신은 그리도 좋아요?" "아...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원래 드래곤들이라면 누구나 태평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눈앞에 뭔가가 닥쳐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지금의 에르킨 여사처럼 핏대를 세울 일이 전혀 없는 것이다. 헌데, 간만에 딸내미와 즐겁게 이 다음에 훌륭하게 성장할 손자 자랑에, 한참 열을 올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방문을 걷어차면서 등장하는 마누라의 기세는 결코 태평스럽게 넘길 만한 일이 아니였다. "그.....그게 말이오." "뭐죠? 그게 어떤건데요...?!" 눈꼬리가 더욱 높게 솟구치는 아내를 보면서 갈리아스 옹은 순식간에 등뒤로 굵은 땀들이 차갑게 식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급한 나머지 이리저리 둘러대려고 해도 지금의 여사 분위기로는 쉽게 넘어갈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해서 갈리아스 옹은 그동안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매우 심각한 일들을 하나 둘 털어놓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게......지금 당신이 핏대를 세우면서 원하는 그게 말이오..." "흥. 내가 왜 화가 난 줄은 잘 알고 있군요." "그야......하지만 말이오. 그건 쉽게 해줄 수 없는 일이라서..." "뭐가요? 뭐를 쉽게 못해줘요? 당신은 우리 용족들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마이스터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 하지만 지금 당신이 원하는 건 싸이의 몸을 보호해줄 조금 특별한 갑옷들을 말하는 거 아니오?!" "그렇죠. 아무래도 당신이 손수 만들어주는 갑옷을 입는다면 우리 싸이가 지금 저렇게 몸에 골병이 들지 않겠죠?!" "그......그 때문에 더더욱 안된다는 것이오." "흥. 설마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 아니겠죠? 그 인간의 몸에 있는 자생치료 어쩌고 하면서 나보고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고 하실 참인가요?" "......끄응" 이젠 눈꼬리가 치솟다 못해서 아래로 쳐지고 있었다. 이건 진짜로 위험수위인 것이다. 그리고, 저 눈매가 다시 한번 제자리를 찾게 된다면,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위인들은 전부 죽음이 아니면 최하 병신이 되는 것 이다. 그게 가족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는 자신과 딸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폭발하면 어느 누구도 감히 말리지 못하는 아내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니 그걸 뻔히 알면서 당해야만 할 갈리아스 옹이었다. "끄응.........이보시오. 마누라! 우리 이럴게 아니라,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 좀 합시다." "왜요? 지금 여긴 분위기 좋은데요?!" 마치 들으라는 듯이 딸내미에게 시선을 보내며 차갑게 말하는 여사였다. -그래도 자리를 옮깁시다. 이건 엘렌한테도 말하지 못할 중대 사항이오. 여사는 갑자기 용언으로 말을 하는 남편의 심각한 얼굴을 보곤, 금새 눈꼬리를 치켜 떴다. 평상시의 남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 뭔 말이죠? 싸이의 에미인 엘렌한테도 말못할 사연이 도대체 뭐죠? -흐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아무튼 우리 조용히 자리를 옮깁시다. 갈리아스 옹은 자신에게 눈을 똑바로 뜨면서 응대를 하는 아내의 팔을 부여잡고 그 자세 그대로 어디론가 이동을 해버렸다. 엘렌은 느닷없이 폭주하는 엄마의 서슬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본능적으로 아빠의 넓은 등으로 피신을 했다. 하지만 갑자기 두 분이서 대화를 마치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리자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으웅. 뭐야? 왜 나만 쏙 빼놓고 사라지시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려봐도 지금 말하던 싸이 문제는 부모인 자신이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헌데, 아빠가 갑자기 자신을 따돌리면서 화가 잔뜩 난 엄마를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지자, 약간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드래곤답게 자신을 사랑하는 아빠가 험한 일을 도맡아서 해결하시려는가 보다 하며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휴. 가끔씩이긴 하지만, 엄마의 저런 모습은 오금이 다 저리단 말야!" 투덜거리며 힘이 빠진 다리를 이끌고 침대에 벌러덩 눕는 엘렌이었다. 그녀는 잠시 눈앞에서 서슬 퍼렇게 화를 내시던 엄마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크게 진저리를 쳤다. '흐응. 그래도 걱정이다. 아빠 혼자서 당하시기엔 엄마의 분노가 장난이 아니던 데...' 어디론가 사라진 엄마와 아빠를 떠올리면서 잠시 걱정을 하던 엘렌은 간만에 자신의 방에 평화(?)가 찾아오자 스르륵 눈을 감았다. 아마도 훗날의 일은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이 그녀의 몸 안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휘이익. 마치 바람이 스쳐지나가듯이 잔잔한 마나의 울림이 주위를 움직였다. 허나, 아무도 없는 여사의 거대한 레어 안에선 그 바람을 타고 갑자기 두 명이 모습을 들어냈다. "뭐예요? 갑자기 이리로 이동을 하면 어떡하겠다는 거에요?!" 여전히 서슬이 시퍼런 에르킨 여사였지만, 자신의 팔을 움켜쥐고 온 남편의 얼굴은 평소와는 전혀 다른 위엄이 있는 얼굴이었다. '흥. 그 헤퍼 보이는 웃음으론 안될 것 같으니깐 저러는거 아냐?' 약간은 의심이 들었지만, 간만에 보여주는 남편의 진지한 모습이기에 화가 난 속을 잠시 눌러 참는 여사였다. - 에르킨. 화가 많이 난 모양이구료. "흥.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왠 용언이에요? -하하하. 그래도 혹시 아오? 누가 우리말을 귀담아 들을지? "뭔진 몰라도 빨리 용건이나 털어놔요. 더 이상은 기다리기 힘들어요?!" 말이야 좋게 했지, 지금 여사가 서서히 얼굴을 붉히며 파르르 눈매를 떠는 모습은, 말과는 달리 행동이 우선시 될 상황이었다. 허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갈리아스 옹은 뭔가 내심 불안한 듯 쉽게 그 속을 털어놓지를 못했다. "뭐해요? 어서 못 털어놔요?" 남편의 평소 행동에서도 꼭 저런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있었을때에는, 반드시 대형 사고가 그 뒤를 따랐었다. 그러니 절로 화가 난 상태에서 조급한 마음까지 추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생전 보이지 않던 모습이 있었기에, 조금은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런 아내의 반응에 갈리아스 옹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조심스럽게 털어놔야만 했다. 그래야 집안이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끄응. 알았소. 대신 이일은 절대 비밀이어야 하오! -흥. 좋아요. 하지만 시시한 일 일땐 각오 단단히 하세요?! -에휴.....좋소.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나서, 당신 맘대로 하시구료! -뭐죠? 뭔데 절대 방어 마법이 걸린 이곳까지 와서도 용언으로 이야기하려는 거 죠? 아마도 아내는 내심 불안한가 보다. 그러니 용언으로 급히 말을 돌리면서도 초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리라. 해서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생각하던 바와, 얼마 전에 겪은 일들을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그래서요? 그래서 그분이 마지막에 어떤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어찌 알겠소?! 그저 그분은 마지막으로 내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 이셨는데...... 그게 지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단 말이오. -그.....그럼 우리 싸이가......?! 끄덕끄덕. -아마도 그런 것 같소. 아내의 놀란 눈을 마주보면서 갈리아스 옹은 크게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흐윽. 난......난 그것도 모르고........흑." 토닥토닥. "괜찮소, 어차피 우리도 겪어야 할 일일텐데. 뭘?!" "하지만, 아무리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넌지시 하셨다곤 해도, 정확한 뜻은 전부 전달이 된 상태잖아요! 그리고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지금 벼락이가 싸이의 옆에 있는 것이구요.......!." 주르륵. 속에서 뭔가가 치솟아 오르면서 기어코 에르킨 여사의 고운 눈매는 물기가 번져 흘러 내렸다. 이런 아내의 감격한 모습은 갈리아스 옹이 생각하던 바를 단숨에 털어놓게 만들어 주었다. "후우. 내가 그래서 여지껏 망설여 왔단 말이오!" "흐윽........그래도! 우리 싸이가 온몸에 골병이 다 들어가는데 가만히 두고 보자 니... 그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휴, 내가 왜 그 맘을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 싸이의 몸에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혀준다고 해도, 싸이 자신이 미처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맨 날 그 자리일텐 데..... 당신은 우리 싸이가 계속 저 상태로 있었으면 좋겠소?!" "......"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여사의 모습은, 노후를 눈앞에 둔 드래곤도 마음이 설레일 정도의 엄청 진한 매력덩어리였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은 그걸 참아야만 했다. 그것도 허벅지를 꽉 움켜쥐면서.......! '안돼. 저기에 넘어가면 진짜로 안돼~!!!!!' 속으론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어느새 갈리아스 옹의 손길은 여사의 젖은 뺨으로 향하고 있었다. '크으윽..........또.......또 넘어가고야 마는건가?!' 이미 뻗어나간 손을 되돌리기엔 마음이 쉽게 인정을 안해 주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저 눈앞에 서서 청순한 느낌을 주는 마누라를 꽈악 안아줄 수밖에! 꼬옥. 파르르. "......하실 거죠? 당신이 해 주실거죠?" 눈물로 애원을 하는 아내를 안아주면서, 이게 뻔히 눈에 보이는 작전임을 알고 있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가 이렇게 애원을 하는 것을.......! 이것도 모두가 사랑스럽기만 한 손자가 가져다 준 선물 중 하나 인 것이다. 갈리아스 옹은 힘차게 아내를 품안에 안아주면서 이를 지긋이 깨물어야만 했다. '흐음. 그걸 과연 그녀석이 해낼 수 있을까? 나도 고생 꽤나 했는 것을.......?!' 뭔가 자신 없다는 듯이 팔에 든 힘을 풀던 갈리아스 옹은, 이내 자신의 가슴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아내의 손길에 의해서 더욱 힘을 주며 이를 악물었다. ......시키고 보자. 그담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결국은 아내의 오버하듯이 화를 내는 모습과 그 뒤를 끈달린 실과 바늘처럼 뒤따라오는 눈물어린 애원에 넘어가고야 만 것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싸이가 죽다 살아나게 되는 그 끔찍한 일들 중 하나인, 어떤 의미심장한 사건의 시작이 되는 현장이었다. 물론, 조금은 도움이 되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신룡의 후예 - 제 46 화. 삐에에엑. 메테우스는 푸른 창공에서 힘차게 날개짓을 하는 작은 새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산 정상 어딘가에서 뛰쳐나온 듯 보였다. 이제 저 신비로운 날개짓을 하는 새가 나타난 곳으로 가기만 하면, 눈앞에 헬요리네 산맥의 정중앙임을 증명하는 거대한 호수가 나올 것이다. 사인스타니아 호수. 그 호수를 잠시 뇌깔리며 메테우스는 이를 악 물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설혹, 그것이 날 죽음으로 이끈다 해도, 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것이다.' 잠시의 격정 끝에 온몸이 긴장으로 뒤덮혔다. 그런 메테우스의 머리 속으론 예전부터 귀가 따갑게 들어온 어떤 곳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상상만으로 만들어 낸 곳이라 해도.....! 예전 고대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숱한 전설을 담고 있는 호수. 그런 거대한 호수를 감싸고도는 이 웅장한 헬요리네 산맥의 중심부에, 메테우스는 감히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쳐들어 온 것이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범한 일이기에, 뒤에서 여전히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쫓아오는 자들이 하나도 겁이 나지 않는 그였다. 더구나, 요즘 들어 더욱 사납게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이 있기에,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다는 것에 비로소 안심을 하는 메테우스였다. 이런 그의 옆에는 이제 화사한 미소를 되찾기 시작한 쥬엘이 함께 앉아 있었다. "어머, 저 새 좀 봐요. 너무 신기하네...!" "글쎄요. 이곳이 바로 그 위대한 전설 속의 가문이 자리한 곳이니, 아무래도 우리가 보지 못한 신비로운 새들도 많겠지요." 대수롭지 않게 말은 하고 있어도, 메테우스는 잠시 눈앞을 스쳐 지나가듯이 높은 상공에서 사라진 흰매의 영상을 쉽사리 떨치지 못했다. 흡사 자신의 옆에 휘날리는 깃발 속에 살아 숨쉬는 콘돌과 너무도 흡사한 새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닐 꺼야. 신화 속에 나오는 콘돌은 너무도 거대해서 우리 인간들의 눈으론 전부를 볼 수 없다고 했잖아. 그런 콘돌이 저렇게 작은 몸을 지니고 있진 않을꺼야." 부르르. 격동에 차서 온몸을 굳히면서도 반문을 조심스럽게 해보는 메테우스였다. 이런 그의 머리 속에는 조금 전에 긴 울음을 터트리며 날아 오른 새의 영상이 점점 새겨지듯이 박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메테우스를 보면서 비웃음을 날리는 존재들에겐, 그 하얀 색의 성스러운 새가 나타난 것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였다. 그 새의 날개짓 속에서 그들은 긴 꼬리털에서 흩날리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 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새는 오직 하나! 자신들이 끊임없이 믿고 따르며 존경하는 그 분의 신조가 틀림없었다. 때문에 카피톨리노는 급히 몸을 숙이며 깊이 읍을 했다. "위대한 이 땅의 수호자이시여~! 여기 당신의 어린 수하가 이제서야 인사를 올립니다. 부디 당신의 영명하심으로 저 불한당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엘프인 카피톨리노는 자신의 눈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의 눈에 하얀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아오르는 하얀 새는, 그 신비로운 기운만큼이나 성스러운 기운을 꼬리털에서 풍기고 있었다. 때문에 멀리서 지켜 본 하얀 새의 등장은, 절로 사인스타니아 호수가 가까이 다가오면서부터,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머리 속을 하얗게 비워주고 있었다. 비록 인간의 기사에게 결투를 신청 받았지만. 그건 이제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껏 인간의 기사를 뒤쫓고만 있었던 것도, 이 거대한 산맥만큼이나 위대한 가문의 지킴이들에게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은 뒤 대결을 할 요량이었 다. 헌데, 이제 그런 것들도 눈앞에 모습을 들어낸 신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이다. 바로, 저 성스러운 새가 따르는 분이 진정한 자신들의 주인이기에, 카피톨리노는 이제 이 땅에 새롭게 강림하시는 분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로 다른 종족이기에 각자의 존재에 대한 의무감을 두고 받았던 결투장도, 자신들이 믿고 존경하며 항상 그 뒤를 따라야 할 존재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대신, 이제까지 지켜보기만 한 채 뒤를 따라야만 했던 건방진 인간 기사는 저 성스러운 신조께서 직접 혼내 주리라 굳게 믿는 그였다. 왜냐면, 푸른 창공을 매섭게 떨어 울리는 신조는 바로 그 분의 수호영물이기 때 문이다. 굳이 하찮은 인간 기사를 그분이 손대실 필요가 없다. 그저 저 위대한 가문의 수호영물이 가볍게 할퀴어 주는 것만으로도 건방진 인간 기사녀석은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깐......! 이런 그들이 점점 다가서는 곳에서는 지금 싸이가 고생을 하고 있는 곳이었다. 쐐애애액. '조심.......조심........으아아악~!' 꽈아앙. 부르르르. 털썩. 이미 몇 번이나 반복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해도 이놈의 몸은 자신의 의지를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 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온몸은 한 달이 넘도록 피멍이 시퍼렇게 들고 있는 것이다. "끄응. 또........실패네......흐윽." 조금은 서러운 마음이 생겼다. 어쩌면 이리도 자신의 뜻대로 몸이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지금 싸이의 머리 속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전부 저장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조금은 낯설은 이 검도 적응을 할 수가 있었 다.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롱소드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목검. 하지만, 지금 싸이에겐 과거의 자신 손에 굳은살을 박히게 해주던 목도와 지금 손에 들린 목검의 차이는 별 상관이 없었다. 오로지 머리 속에 들어 있는 방식 그대로를 몸이 알아서 휘둘러주게끔 연습에 연습을 또 하는 것이다. '치이. 내 생각이 틀린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를 못하겠어.' 가만히 머리와 어깨의 통증을 참고 넘기며 생각을 해봐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 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머리가 생각을 하면 팔과 다리가 그 생각을 따라가는 건 어린 꼬맹이들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정작 자신의 몸뚱아리는 그런 간단하고 명료한 지식들을 거부하고 있었 다. '뭐가 잘못된 거지? 분명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 검을 움직이면 그대로 몸이 따라주는 게 정상 아닌가?' 여지껏 온몸에 심한 타박상을 입으면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예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으로 치부하고 참고 넘어 갔던 것이 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몸이 제대로 반응을 해주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답답하고도 원통한 일이었다. '분명히 내가 과거에 익혔던 본국검법에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들이 모두 담겨져 있단 말야. 천천히 하나의 검로를 밟아 나가면서 그 검로가 내 몸에 익히는 방법도 모두 기억하고 있어. 근데 왜 정작 지금 내 머리로는 이해를 하면 서도 몸으론 펼치지 못하는 것이지?!' 가만히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리면서 하나씩 하나씩 조급하지 않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벨 생각으 로 다리에 힘만 주면 이모양 이꼴이었다. 그놈의 요상한 구슬이 나를 이렇게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선 신중하게 하나씩 풀어보자. 일단은 내가 발검술을 하려고 했어! 근데 왜 기본 자세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가 욕심만 부리면 이렇게 되는거 지? 아니지, 이건 욕심도 아니잖아?! 그저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려고 하는건데...!' 약간은 혼란스러운 머리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크게 심호흡을 해봤다.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 그대로 천천히 손에 든 검을 옆구리로 옮 기면서 다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이렇게...' 휘익. 심호흡을 하면서 천천히 머리 속에 든 모습 그대로 발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미 왼발을 축으로 해서 오른 발이 앞으로 성큼 나서며 검을 빠르게 내 뽑는다. '여기까지는 된단 말야! 근데 왜 다음 행동이 이어지지 않는거야?!' 화를 버럭 내면서 다시 답답한 마음을 다듬기 시작했다. "요는 내가 어떻게 모든 동작들을 펼치는가에 딸린건가? 하지만 예전의 나였다면, 이렇게 바보처럼 되지는 않을텐데.....! 그리고 머리가 기억을 하고 있으면, 몸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그 기억에 따라서 천천히 익혀지는거 아닌가?!" 분명히 머리 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다음 동작 그대로를 펼쳐 보고자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두 번째의 기본 동작인 비켜 내려치기만 들어가면, 싸이의 몸은 빛살과도 같은 빠름으로 나무에 부딪히는 것이다. 이건 너무도 이상한 경험이라서 달리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이씨. 할아버지가 나한테 보내준 그 검술이랑 아무리 비교를 해봐도, 각 품세 별로 연결된 동작들과 그 속에 담긴 매끄러운 유연성(柔軟性)은 본국검법이 훨씬 더 낫단 말이야. 그리고 그 유연한 동작 끝에 나오는 순간적으로 매섭게 돌변하는 공격들도, 본국검법이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좋단 말이야. 가볍게 끊어 치듯이 내리치면서, 그 순간적인 찰나에 타점을 가격하는 힘은, 그 어떤 물건도 자를 수 있는 힘이 넘쳐나는데.......! 왜 정작 이렇게 빠삭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몸이 안따라주냔 말야!!' 꽤나 속상한 듯이 보였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검술을 다시 익히려고 해도 몸이 거부하는 현상이라 니....!. 하지만, 지금 싸이가 모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갈리아스 옹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석, 꼭 비 맞은 뭐처럼 중얼거리는구나." "치..............흥." "호오..이젠 이 할애비랑 말도 하기 싫다는 거냐?" "삐죽......흥" 입술이 툭 튀어나오면서 잽싸게 할아버지를 째려보는 싸이였다. "허허허. 이런, 이런......난 또 우리 싸이가 무척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좀 도와주려고 왔더니만.......내가 잘못 온 모양일세?!" 넌지시 떠본다는 게 바로 이런 갈리아스 옹의 행동을 두고 말함일 것이다. 이미 입이 석자나 삐집고 나온 싸이도 이런 할아버지의 너털웃음을 빙자한 슬쩍 떠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좋게 대답할 놈이 아닌 것이다. "칫. 맨 날 온 몸에 상처투성이인 이 손자가 뭐가 이쁘다고 웃으세요?" "하하하. 그럼 이 할애비가 울어야 네 속이 편하겠냐?" "흥. 누가 그렇다고 했어요? 이미 저한테 갈켜 줄껀 다 갈켜 준 분이 이제와서 하시는 말씀이 이상하니깐 그렇죠!" 제법 가시가 돋힌 말이었다. 하지만, 달리 오래산 고룡이 아닌 것이다. "글쎄다. 과연 그게 다 가르쳐 준 것일까?" 손자가 저렇게 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메모라이즈 마법을 이용한 것을 빗대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그정도에 쉽게 속을 들여다보일 갈리아스 옹이 아닌 것이다. "어떠냐? 이 할애비가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혼란스러운걸 좀 해결해 줄까?" 반짝. 순간적으로 싸이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제법 긴 시간동안 온몸을 괴롭히던 타박상들도 모조리 날려갈 정도였 다. 하지만, 금새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는 싸이였다. "에휴. 관두세요! 어차피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시는 건 뻔하잖아요." "으잉? 그게 뭔 말이냐?" 이런 손자의 반응은 조금 더 새로웠다. 아마도 갈리아스 옹은 자신이 이렇게 나타나서 제법 무게를 잡고 살살 꼬드기면 손자의 심술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허나, 싸이는 일언반구 대꾸도 없이 저만치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치. 할아버지는......내가 뭐 때문에 괴로워하는 줄도 모른 채.....' 투덜투덜. 연신 발 밑에 걸리는 땅바닥을 괴롭히며 걸음을 옮기는 싸이였다. 이런 싸이에게 그 말이 귀로 들어온 것은 아마도 운명이었을 것이다. "하하하. 우리 손자가 정말로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구나. 그새 그 힘든걸 깨달은 모양이니.......껄껄껄." 쫑긋. '분명히 조금 전에 하신 할아버지의 웃음 과 그 속에 담긴 저 말의 뜻 은.........?!' 팽그르르르. 급히 몸을 뒤로 돌려세워야만 했다. 아니면 지금까지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이 말썽 많은 몸을 다스릴 방법을 두 번 다시 배우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할아버지?! 지금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이에요? 분명히 뭔가를 깨달으신 것 같은 말씀 같은데............요?!" "헐헐헐. 녀석도 참.......요놈아. 이 할애비 나이가 올해 몇이더냐? 여지껏 그런 것도 못 깨우치고 살고 있는 줄 아느냐?" "히잉. 그러면서도 지금은 전혀 다르게 사시잖아요!" "엥? 뭣이라?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데 그런 요상한 말을 다 하는 거냐?" "칫. 관둬요. 괜시리 이상한 말로 마음만 심란하게 만들면서.......쳇." 역시 만만치 않은 싸이의 반격이었다. 보통의 꼬맹이였다면 금새 달려들어서 뺏어가려고 안달을 부릴텐데, 전혀 생각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얄미운 손주녀석이었다. '허허허. 저 녀석 확실히 다른 똥싸개들과는 차원이 달라. 아암. 차원이 다르고 말고...!!' 잠시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빠졌던 갈리아스 옹은, 자신을 두고 저 멀리 걸어가는 손자의 등을 보면서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어느 헤츨링이 저런 모습을 보여주겠는가?! 전부들 부모에게 아양을 떨면서 자기가 필요한 건 쏙 빼가면, 그 담부턴 나몰라라 하는 요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손주 녀석인 것이다. 이러니 더욱 믿음직스러운 것이다. '흐흐흐. 녀석! 잔뜩 골이 났군. 근데 과연 이걸로 해결이 될려나?! 흐음.......안되도 별 큰 상관은 없는데.......! 제발 나처럼 그런 골치 아픈 일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한때 갈리아스 옹에겐 크나큰 시련이 찾아 온 적이 있었다. 바로 헤비 워커를 완성하면서부터 찾아 온 것이었다. 자신의 창조물을 바라본다는 건 무척이나 희열에 들뜨게 하는 것이다. 헌데. 그 창조물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인다고 생각을 해보라! 과연 그런 일이 좋기만 할까? 그리고 그 피조물이 자신의 의식과 하나로 연결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움직여줘야만 하는 것인데, 그래야만 성공적으로 만들었다고 자랑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맨 처음에 만든 헤비 워커 레지나는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든 놈이라서 다른 것 보다 더욱 심한 애정을 깃들인 탓이었다. 최고의 금속들을 끌어 모아서 제작을 하면서, 이 땅에 어쩌면 두 번 다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마령석을 그놈의 심장에 넣어준 것이다. 때문에 자아가 너무도 뛰어난 레지나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었다. 네모난 커다란 상자. 그 속에 작고 둥근 수정구를 넣고, 그 수정구 안에다가 삼각형의 막대기를 박았 다. 그 삼각형의 막대기 표면에는 주변의 마나들을 빨아 당기는 고대 마법을 새겨주는 것도 잊어 먹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수정구로는 도저히 이 눈앞에 거대한 동체를 자랑하는 골렘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해서 두 개를 넣어 줘 봤다. 헌데 겨우 잔 경련을 일으킬 정도의 힘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러니 세 개, 네 개,......시간이 흐르면서 그 수정구 안에는 무려 7개나 되는 삼각형의 막대기를 넣어 준 것이다. 그것도 서로 부딪히지 않고 서로가 빨아들인 힘들이 충돌하지 않게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넣어 준 것이다. 그런 삼각형의 막대기들이 네모난 상자의 안쪽과 바깥 쪽 표면에 새겨진 마법 진으로 마나들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자, 갈리아스 옹은 수천년간을 투자한 일에 대해서 보람찬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꿈틀. 맨 처음엔 작게 꿈틀 거렸다. 하지만, 쿵. 거대한 한쪽 발이 들려지면서 바닥을 내 딛는 헤비 워커의 웅장함을 바라보게 되었을땐, 그야말로 하늘 위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완전히 이 세상 모든 게 자기께 되는 기분이 들었다. 헌데, 이런 멋진 기사형의 골렘이 채 열 발자국을 걷기도 전에 요상하게 움직이 기 시작했다. 그건 그야말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손은 앞으로 나가는데 발은 뒤쪽으로 빠져 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뒤로 나가던 한쪽 발이 미처 바닥에 닿기도 전에 나머지 한쪽 발마저 옆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다. 쿠당탕. 온 레어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최고의 기쁨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 요상한 행동을 하던 골렘은 그 담에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해서 유심히 관찰을 한 결과, 왜 골렘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인지를 깨닫는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흐음. 일정한 양을 몸 안에서 뽑아내는 건 가능한데, 그걸 몸 곳곳에 꾸준히 보내주는 힘들이 서로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군. 음. 이걸 어쩐다.......?!" 그러면서 한참이나 마나의 통로에 대해서 심각한 고찰을 하게 된 갈리아스 옹이 었다. 그리고, 그 고찰과 깊은 연구야말로 진정으로, 오늘 날 이곳 물질계에서 최강의 전사로 탄생하게 된 헤비 워커의 출현을 만들어준 매우 뜻깊은 결과들이 었다. 이게 바로 수많은 노력과 실패의 아픔을 내디디며 얻게 된 갈리아스 옹의 작은 지식들이었다. 헌데, 이런 마나들의 통로를 개척한 것과 손자의 깨달음을 주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더불어, 갈리아스 옹이 말한 끔찍한 일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건 바로 자아를 지닌 헤비 워커와의 만남 때문인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낯선 존재와의 만남! 그것도 얼굴을 맞대면서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식과 하나로 연결이 된 존재를 자신의 몸 안에서 만나는 결과이기에, 그 만남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 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갈리아스 옹은 그런 만남을 손자에게 은근히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일까? 탈도 많고 문제도 많은 만남이 분명한데.....! 아마도 그건 갈리아스 옹조차도 그 만남에 대한 자세한 결과를 모르고 있기 때 문일 것이다. 자신이 겪었던 그 만남은 좀 까다롭기는 했지만, 결코 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까다로운 만남을, 아직은 어린 손자가 무사히만 끝마칠 수 있 다면, 지금의 그 고생이 조금은 덜 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게 된 것이다. 정작 자아를 지닌 존재와 자기 의식 속의 세계에서 만난다는 게, 지금의 싸이에겐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전혀 모른 채.........! 난 말야. 지금 무척이나 가슴 설레이는 만남을 가지고 있어. 그게 뭐냐고? 후훗. 그건 바로..............비밀~!!! 캬캬캬캬. 너무 신이 나서 한 말이니깐 그렇게 삐지지는 마. 대신 내가 재미난 걸 보여줄게. 알았지?! "헤헤. 그런거였어요? 이잉. 할아버지 미워~!!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진작에 갈켜줘야죠?!" "후훗. 욘석도 참. 그래 이제 이 할애비한테 맺힌 원망은 다 사라진거냐?" "헤헤. 무슨 원망씩이나........." "어이구, 퍽이나 원망 안 했겠다. 맨날 입이 석자나 부르터서 나온 주제에.." "쿄쿄쿄. 할아버지도 참! 그럴 수도 있는 거죠?!" "그래! 그럼, 어여 시작해 봐라. 대신 조심해야만 한다. 알았지?" "헤헤. 걱정 마세요. 제깐 놈이 감히 저한테 해꼬지 하고싶어도 못하는 거 잘 아시잖아요~!!" "알기야 잘 알지. 하지만 그건 그녀석과는 전혀 다른 거라서 조금 걱정이란다." "치. 끝까지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탕탕. 힘차게 가슴을 두드리는 나였다. 아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동안의 고생이 너무도 아까워서 안될 거 같았 다. 때문에 난 할아버지에게 믿음직스런(?) 눈빛을 보내며 잠시 고개를 하늘 높이 들었다. "야. 모두들 들었지? 얼른 튀어 나와~~~!!" 잠시 내 머리 위의 공간이 일렁이는 것을 보면서, 난 희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 다. '크크크.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다니.......진작에 갈켜 주시지......!' 내 앞에 거대한 공간의 문이 열려지는 것을 보면서 난 매우 의미심장한 눈빛을 할아버지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게 될 제우스 녀석의 몸 안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저녀석을 이용해서 내가 답답하게 여겼던 모든 일들이 한번에 모조리 해결된다는 것에 더욱 신이 나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지금 보다 쉽게 내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하셨지만, 그것도 시간이 좀 걸린다 고 분명히 강조를 하셔도 지금의 내 귀에는 그런건 다 필요 없었다. 제발 내 말에 따라 제대로 움직이기만 해도 난 아무 불만이 없는 것이다. 해서 지금 내 앞에 서서히 나타나는 저 녀석이 오늘따라 더욱 듬직하게만 보였 다. '쿡쿡쿡. 그래! 첫술에 배부르겠어? 하다보면 금방 내 몸이 반응해 주겠지. 좋았어! 이제부터 시작이다~!!' 힘을 불끈 주면서 나도 모르게 눈에 한껏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싸이를 바라보는 갈리아스 옹은 내심 착잡하기만 했다. 왜냐면 바로 눈앞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거대한 제우스 때문이었다. '흐음. 제발 내 생각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런 갈리아스 옹의 심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 눈앞에 나타난 제우스를 닥달하는 싸이의 매서운 호통은 푸른 하늘을 울리고도 남았다. "얌마, 너 뭐하느라고 이렇게 꼼지락 거리는거야? 얼른 나 안태워~?!" 쯔쯔쯧.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자신의 의념을 일으키지도 않고, 무조건 태우라고 성화를 부리는 한심한 싸이였다. 제우스가 무슨 죄가 있는가?! 그저 부르니깐 나온 것이지.....!! 헌데도 계속 제우스에게 성화를 부리는 싸이는, 이윽고 제우스가 내민 손으로 껑충 뛰어 오르면서 또다시 재촉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내 말이 말 같지도 않아? 왜 안태우는거야?" '주인님. 그건.......주인님께서 들어오셔야 합니다.' "엥? 그건 또 뭔 소리야?" '제 몸 안에 있는 곳으로 주인님이 직접 이동을 하셔야만 한답니다.' "뭐? 그럼 너가 직접 문을 열어주는 거 아냐?" '맞습니다. 제가 그문을 열어드리는 건 확실합니다. 언제든지 주인님이 저를 타시려고 하면 제가 반드시 태워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씨. 근데 왜 안 태우는거야?" '네. 그....그건......' 속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고 느려 터진 행동을 하는 제우스를 닥달하면서, 싸이는 자신이 조바심이 나서 조급하게 구는 행동들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 다. 여지껏 제우스를 타본 적이 단 한번도 없기에 그 심정은 더 한 것이다. 어떻게 타야 하는지를 알아야 타는 것 아닌가! 이런 답답함에 짜증이 잔뜩 난 싸이는 이윽고 살벌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제우스는 다리가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섭게 화를 내는 싸이를 보자, 급히 몸 안에서 무언가를 전달해 주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해서, 주인과 자신의 생각을 하나로 연결을 시켜주는 헤비 워커의 시동키를 급히 꺼내서 전달한 것이다. '주인님. 그걸 쓰시고 저에게 타십시오. 그럼 됩니다.'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간 폼이 어째 장난이 아닌 듯 했다. 아마도 이 성스럽기까지 한 행위들을 제우스는 잔뜩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석대로 행동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어린 주인은 너무도 성급해서 그런 의식들을 전혀 생각치 않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 전통이 깊은 의식을 제대로 행하려고 해도, 바짝 성이 난 주인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 불쌍한 제우스였다. 이런 제우스가 급히 주인에게 전해준 물건은 바로 윤기 나는 흑색의 작은 투구 였다. 다소 큰 머리인 싸이의 머리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작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도 제우스와 맹약을 맺을 때 이걸 서슴없이 버린 싸이였다. 하지만 이미 안달이 난 상태에서 무엇을 주저하겠는가?! 비록, 머리에 꽉 낄 것 같은 작은 투구였지만, 싸이는 그동안 자신이 노력을 해 도 벗어 날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이번 단 한번에 해결해 줄지도 모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로 굳게 결심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싸이를 쳐다봐야만 하는 갈리아스 옹은 싸이가 손에 들린 투구가 점점 머리로 다가가자, 더욱 침을 끌어 삼키며 걱정스런 눈빛을 날리고 있었다. '제발. 내 사랑하는 손자야.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겨내야만 한단다.' 쓰라린 표정으로 싸이의 등을 바라보는 갈리아스 옹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런 그의 눈에 싸이의 머리와 투구의 끝이 맞닿자 금새 제우스의 검은 손 바닥 안에서는 환한 빛이 일고 있었다. 파앗. 난 지금 너무도 행복했다. 가슴이 벅차 오를 정도로 행복한 것이다. 온몸에 심한 멍이 들어도 결국은 해내지 못한 것들을 이번 한번에 모두 해치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니 어찌 내가 행복해 하지 않겠는가?! 헤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 로봇 같은 놈의 몸 안에 들어가서 이 녀석을 움직여 본다는 게 이젠 정말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이다. 헌데, 이 자식이 건방지게 그동안 나에게 어떻게 타는지도 갈켜 주지 않고 있었다는 게 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모두 용서해줄 참이었다. 왜? 그야 당연히 내가 힘든 생노가다를 뛰지 않고도, 손쉽게 머리 속에 든 검술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굳게 믿은 것이다. 헌데 말야. 좀 이상해. 아무래도 저 분이 발하는 눈빛은 왠지 좀 속은 듯 한데....... 하지만 어쩌겠어? 설마하니 손자 개고생 시키시려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신 이상,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라야지.......아암! 하지만 싸이의 이런 굳은 결심은, 채 오초도 지나지 않아서 후회 막심한 상황으로 어린 싸이를 데려가고 있었다. 파앗. 두근...........두근. 휘이이이잉. "뭐지? 이게 뭐야?!" 그담부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의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의식을 잃으면서 자신의 몸이 깊은 낭떨어지로 떨어진다는 착각만이 싸이의 전신을 덮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옴. 두근. 오옴.....! 두근 두근. 옴.......! 잠시 환한 빛이 싸이를 빨아 당기면서 싸이의 몸은, 급속하게 제우스의 몸 안으 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갈리아스 옹은 한참이나 그렇게 제자리에서 서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제자리에 서서 손자가 앞으로 겪게 될 상황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음. 저 녀석이 드디어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었구나. 제발, 제발 이 할애비 얼굴을 봐서라도 스스로에게 이기렴. 그래야만 네가 우리 갈리아스 가문의 위대한 후계자로 다시 태어날테니.....' 매우 걱정이 되는지 한참이나 몸을 떨고 있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하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졌다. 그 뒤의 문제는 어린 손자가 스스로 이겨내기만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일을 시키게 된 이유도 바로, 손자의 아직은 어리지만 깡 하나만큼은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 근성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시키게 된 것이다. "싸이야. 제발 이 할애비가 본 너의 그 끈질긴 근성을 발휘해 다오. 부탁이다!" 이제까지 근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저 거대한 삼나무와 씨름을 하면서도 끈질기게 버틴 손자의 그 근성을 갈리아스 옹은 믿고 또 믿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번 일만큼은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제우스를 바라보면서 더욱 현실로 와닿는 일이기에, 갈리아스 옹은 제발 자신의 한쪽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못된 생각들이, 한낱 기우이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아니면, 자아를 너무도 또렷이 지닌 저 눈앞의 제우스에게 손자를 잃어버릴지 도 모르는 일이기에, 갈리아스 옹은 그만큼 이번 일에 큰 모험을 건 것이다. 신룡의 후예 - 제 47 화. 콘돌은 지금 눈앞에서 귀여운 재롱을 부리는 흰색의 순결한 털을 지닌 꼬마 엘프와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노는 방식이야 별 다를게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이 귀여운 엘프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군데......아암. 난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 물질계의 하나뿐인 수호 영물 이야! 비록, 그 얄미운 꼬맹이 녀석이, 이런 나를 마치 애완용 짐승 다루듯 하는데, 흥, 감히 냄새나는 핏덩이 주제에 간이 부어도 유분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동안 당한 원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물론, 그 얄미운 녀석이 마지막에 선물한 이 목걸이는 맘에 쏙 들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애완용으로 여기는 어린놈의 간뎅이 부은 짓이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눈앞에서 자기 말에 고분고분 따 르는 이 나약한 꼬마 엘프. 정확히 말하면 새끼 엘프가 귀여운 것이리라. "삐얌" "꾸루룩..........푸득." 잠시 똘망똘망한 그린 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걱정스런 맘이 담긴 진실한 눈동자였다. 잠시, 눈에 인 노여움 때문에 겁을 집어먹었는지도 모른다. 해서 콘돌은 날개를 퍼득이며, 자신의 다리털을 매만지는 엘프를 살짝 안아주었다. "삐에에엑." 마치 보호자에게 아양을 떠는 듯한 어린 새끼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의 파동에 흥분을 가라앉히며 긴 부리로 살짝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잠시 몸을 떨던 어린 엘프는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이고 곤히 잠이 들기 시작했다. '후우. 그래 이런 평화야말로 내가 엄마의 대를 이어서 지켜나가야 할 일들이야. 이 얼마나 정겹고 평화로워~!! 단지 저 눈치 없는 놈들이 나를 보려고 나타나는 게 좀 맘에 안들지만........! 에잉. 그래도 어쩌겠어? 아마도 이 어린 녀석이 걱정스러운 모양인걸.' 살짝 고개를 돌려, 푸른 숲으로 보이는 곳을 바라보자, 그 숲속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마도 자신의 시선에 놀라서 꼬리를 감추며 도망치는 것이리라. 헌데 그런 존재들을 바라보던 콘돌에게 이상한 느낌이 찾아온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우옴. 반짝. 작은 구슬이 처음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내뿜고 있었다. '뭐지? 이런 현상은 나도 첨 보는데......?!' 맨 처음 이 구슬이 몸에 달리면서부터 지금까지 제 멋대로 이런 빛을 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모두 콘돌이 몸을 움직이면서 작게 의지를 실었을때만 빛을 내던 구슬이었다. 헌데 왜 갑자기 이런 빛이 나오는 것이지? 잠시 이런 의문에 사로잡혔던 콘돌은 그 뒤를 이어서 찾아오는 어떤 불안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혹시? 혹시 그 녀석이 무슨 일을........?!' 솔직히 인정하기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 얄미운 꼬마녀석과 자신은 하나의 끈 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던 콘돌이었다. 근데, 지금 갑자기 그 원수 덩어리 꼬맹이에게 무슨 큰일이라도 생겼는지.....! 그로 인해, 자신과 연결된 인연의 끈이 큰 파동을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파르르르르. '이......럴수가?! 설마....설마 했었더니만, 내가 진짜 그놈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건가?!' 그 꼬맹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온 전신에 잠들어 있던 대자연의 기운들이 큰 파동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다급한 비명을 지 르려고 하던 콘돌은, 급기야 자신의 의식 속으로 겁없이 침범하는 어떤 존재에게 사나운 눈빛을 내쏘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이익" 발끈. 이건 감히 건방지다 못해 간이 부은 놈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남의 의식 속으로 침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데, 이런 짓을 하려고 하는 존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대처하려고 하던 콘돌은, 자신의 뇌리 속에서 갑자기 팍 하고 떠오르는 작은 소년의 영상에 급히 고개를 묻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그 무시무시한 기운을 지닌 소년이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으려는 듯 해서, 절로 겁이 나 몸을 움츠리게 된 콘돌이었다. '허...억. 이........이건 위대하신 그분의 기운?! 그........그럼?!' 부르르르. 고개를 급히 파묻으면서 낯익은 작은 소년의 영상을 한없이 바라보던 콘돌은, 그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그 예사롭지 않는 기운과 그 기운 속에서 흘러나오는 무언가 정담 있는 향기에 취해, 조금 전까지 심하게 두근거리던 새가슴이 절로 안정이 되는걸 똑똑히 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향긋한 냄새가 콘돌과 누군가의 진정한 인연의 끈을 자각시키고있는 듯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감히 자신의 허락도 없이 의식 세계를 침범한 낯선 존재에 대 해서 이런 복종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까마득히 아늑한 곳으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지금 내 몸을 모조리 덮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아주 작고 볼품이 없는 내 발가벗은 몸은, 끝없는 추락에도 지치지 않았는지, 점점 깊고도 깊은 무저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몸을 추스리기 위해서 힘껏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발버둥은 헛된 모습이었다. 아무리 용을 써봐도 이곳은 온통 나를 끌어당기는 신비한 늪과도 같았다. 이런 곳에서 내 몸은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 그저 네모 반듯한 구덩이 속으로 내 몸이 끝없이 추락하는 걸, 모두가 즐기는 듯한 착각만이 내 뇌리 속으로 파고 들었다. "으아아아아악" 거대한 네모의 구덩이는 내가 한참 위에서 떨어지면서 보던 것보다, 더욱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채 내 발가벗은 몸을 한순간에 삼켜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찾아온 것은 바로 진한 어둠이었다. 내 눈앞에 들이 댄 손가락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 난 이 어둠이 주는 공포에 전신에 살얼음이 인 것처럼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다다다닥." 이빨이 추위를 이기지 못해 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무조건 이겨내고 싶었다. 왜 이런 심한 반발심이 생기는 지는 잘 몰라도, 분명히 이 곳은 내가 거쳐간 곳이라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주는 공간 속에서 난 꼼짝도 못한 채 앉아 있어야만 했다. 한참을 난 그 어둠 속에서 웅크린 채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는 잘 몰라도 꽤나 있었던 듯 했다. 이상하게도 이런 불안정한 마음일 때에는 그저 엄마가 보고 싶을 뿐이다. 허나, 내 입에선 그런 단어가 나오질 않고 있었다. 단지, "으.....으으......으. 이......이겨........야......해! 이.....건 나.....나와......의.....싸 움......이야!" 왜 엄마를 떠올리면서 난 이런 말을 했을까? 아마도 나약해진 내 자신을 북돋우기 위한 행위라고 여기고만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를 한없이 믿고 따른다는 것! 이건 신이 내게 선물해주신 것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신과는 전혀 다른......, 나와 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 난 지금 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생애 최초로 나를 배신했다고 여겨졌던 그 분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아마 이 깊은 어둠이 상관이 있는 듯 했다. 왠지 이 어두운 곳에서, 나 홀로 있는 이 공간 속에서, 내 주위에 친지들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지금 그 분만은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생각이 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으으으. 그래....난 이성으로는......그분을 미워하지만, 그건 내 과거의 기억 때 문일꺼야. 내가 그분의 소유물이고, 그분이 나를 태어나게 하셨어도, 그분은 나에게 아무 런 대가를 바라지 않으셨어. 단지 나만이 내 욕심에 사로잡혀 그분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을뿐이야..... 이런 못난 나를 그분은 아직까지도 지켜보고 계신거야. 자신의 한없는 사랑을 내게 주시면서, 내가 그분을 배신해도 그저 미소 어린 얼굴로 바라보고 계신거야. 그래, 참으로 어리석었던 거야! 그분이 나에게 뭘 바라고 행동하신 게 있었던가? 그건 아니잖아. 난 그저 그분이 지켜보고 계신 것만 해도 행복하다고 여겨야 할 그분만의 피조물인 주제에, 겁 없이 그분을 시기하고 원망만 했으니.......으득. 참으로 한심한 나였구나.....!' 어둠이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시원하게 씻겨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맨 처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내 온몸에 차가운 얼음들이 뒤덥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내 안의 무언가와 그 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난 한심하고 못났던 지난날의 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마도 모두가 이 나만을 감싸고 있는 듯한 어둠 때문일 것이다. 갑자기 이런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난 이 어둠이 한없이 포근하고 따뜻하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가 시리도록 추웠던 이 공간이 왜 이리도 친숙하면서도 따뜻하게 여겨지는 것인지......... 난 그렇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하얀 나신을 내 비추는 내 몸을 꿈속에서 볼 수 있었다.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서 까만 선 하나까지도 내 몸에 스쳐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 선들이 나의 모습을 이루고 이런 내가 점점 하얀빛으로 내 몸을 덮고 있을 때, 난 내 눈위로 빛나는 엄청난 빛의 밝기에 그만 눈을 감고야 말았 다. 아니면 내 눈은 영원히 떠지지 않을 듯 했기 때문이다. 뚜벅뚜벅. 얼마나 걸었는지는 잘 느끼지 못하겠다. 그저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작고 꾸불꾸불한 그 길을, 난 무의식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맨발로 차가운 바닥을 디디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서서히 내 눈앞에 모습을 들어내는 작지만 곧은길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두세 발자국을 걷기도 전에 다시 옆을 돌아서 그 뒤를 다시 돌고, 한참을 이렇게 빙글빙글 돌면서 눈앞의 길을 걷던 내게, 일자로 쭉 뻗은 그 길과 의 만남은 너무나도 가슴 벅찬 환희를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아아. 너무도 선명해! 난 왜 이 길 위에서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낄까?" 분명히 마음은 행복한데도 불구하고 한참을 그길을 걷던 나는, 이내 내 두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들이 선명하게 바닥을 적시며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으면서 걸었는지 모른다. 내가 뒤를 돌아보면, 내 눈물방울들이 그 곧게 빛나는 길 위에서 작은 웅덩이처 럼 신선한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난 그런 눈물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내 앞에 곧게 뻗어 있는 길을 무의식적으로 지금도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자꾸만 그 길을 걸어가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이 눈물을 주체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난 걷고 또 걸었다. 내 이런 무의식적인 행위는 내가 두 눈을 꼭 감고 있어도 행해졌으며, 그런 내가 다시 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면, 어김없이 내 눈물들은 하나 둘 그 길 위에서 작은 샘을 만들고, 그 주위에 신선한 향기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내가 눈물을 흘리며 걸었을까?! 내 몸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도 이미 한참은 전에 빠져나갔을 텐데 내 눈은 아직까지도 굵고 투명한 이슬들을 내뱉고 있었다. 이런 내가 한심해 보였을까? "헤헤. 형아는 바보야~!" 어디서 들려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기 싫어 이 앞을 가리는 이슬방울들을 보기 싫어서, 두 눈을 꼭 감고 걸었던 나이기에, 난 누가 어디서 이런 말을 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한참의 시간을 투자해서야 겨우 가능했다. "헤헤. 형은 진짜로 바보야. 바보~~~!! 까르르르." 작고 선명한 아이의 목소리였다. 내 앞에도 없고, 내 뒤에도 없으며 내 주위에 없었다. 헌데도, 이런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내 귀에 너무도 선명히 울려 퍼지고 있었 다. "아윽. 싫어. 너 누구야? 누구야~~~~~~!!" 한참을 이런 웃음소리와 함께 들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를 서서히 괴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귀를 틀어막으며 거칠게 소리를 질러봐도, 그 아이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는가 보다. 그러니 내 귀를 꼭 틀어막으며 괴로워해도, 그 아이는 내 모습을 볼 수가 없는지 연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그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몸부림을 치는 데에도 계속해서 깔깔거리며 웃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아이의 음성 속에는 나에 대한 원한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선명하게 또록거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는 듯 했기 때 문이다. 헌데도 왜 그 아이는 이렇게 괴로워하는 나의 몸부림을 못 본 체 계속해서 웃음을 터트리는 것일까? "하악.........학학... 그만 해. 이제 그.......만 해." 난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떠나지 않자, 매우 혼란스러웠다. 고막이 찢겨나가는 아픔쯤은 지금 내가 온몸으로 받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치 수백만.......그 끝이 보이지 않는 빨간 색과 검은 색이 아로새겨진 작은아이들의 영상이 내 뇌리를 파고들며, 이렇게 날 혼란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다. 곧고 끝없이 놓여진 길 한가운데에서 난 이 수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처럼 들리다가도, 한 명의 귀여운 듯한 꼬마아이의 웃음소리로 바뀌는 이 혼란의 시간들 속에서, 아까보다 더욱 심한 몸부림으로 내 몸에 난 모든 구멍 들을 막고만 싶었다. 내 귀. 내 눈. 내 코. 그리고 내 입. 모두 이 뚫려진 공간 속으로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파고드는 듯한 착각이 일었 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몸부림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한 아이의 웃음소리에 귀를 막고 모든 곳을 힘을 주며 꽉 틀어막으면, 금새 그 아이의 웃음소리는 내 피부를 뚫고 들어와, 수백만이 넘는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내 머리를 뒤덮어 버렸다. "끄아아악. 너........너 뭐야? 으아아아악" 너무 괴로워서 마구 발버둥을 쳤다. 내 발가벗은 몸이 차가운 바닥에 눕혀져 잠시 진저리를 치자, 그 뒤를 이어 더욱 선명한 아이의 웃음소리와 저 바보라는 소리만이 내 뇌리에 가득 차고 있었다. 그리고...............난 그 웃음소리가 가져온 충격에 점차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우음..........이곳은 어디지? 분명히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허억" 내가 눈을 뜨고 바라본 곳은 그야말로 까마득한 낭떠러지 바로 앞이었다.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난 조금 전에 내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였다면?! 이런 생각만 해도 마치 내 몸이 저 까마득한 무저의 세계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몸을 뒤로 급히 빼면서 난 이 낯선 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선명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내가 발가벗은 모습 그대로 급히 몸을 일으키자, 본능적으로 내 몸은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었다. 마치 꿈속에서 지독한 악몽을 꾸었던 것 같은 착각이 이내 내 몸을 휩쓸고 지나 갔다.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한 그런 끔찍한 악몽에 난 처음으로 시달린 것이다. 헌데, 이런 내가 의식을 되찾아서 처음으로 바라본 곳은 그 악몽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었다. 여전히 내 등뒤에 있는 곧고 쭉 뻗은 길은 내가 걸어 온 길이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길 곳곳에는 내가 뿌린 이슬들이 모인 작은 샘들이 선명하게 있었다. 꿀꺽.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목이 마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내가 흘렸던 눈물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생긴 작은 샘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뒤돌아 걸어가는 것이다. 그때였다. "형아! 형아 어디 가는 거야?" 그 끔찍한 악몽 속에서 나온 꼬마의 목소리였다. 흠칫.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급히 귀를 틀어막던 나는 이내 손에 힘을 풀었다. '저 목소리는 내가 귀를 아무리 틀어막아도 찾아오는 목소리인 것을...' 힘없이 포기하는 내 몸이 그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가는 또다시 그 끔찍한 악몽을 꿔야만 할 것 같았다. 해서 난 그저 힘없이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형아. 뭐하는 거야? 형은 정말로 바보다." "그래, 나 바보 맞아. 그러니깐 힘없는 너 같은 녀석한테도 이렇게 당하지." "쳇. 내가 뭘 어쨌다고? 난 그저 형이 그 끊어진 길로 들어서는걸 대신 막아준건 데. 치" 번쩍. 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대답을 들었다. 그것도 저 괘씸하기 그지없는 꼬맹이의 대답을 말이다. 내가 꿈속에서 그렇게도 애원하며 그만해 달라고 할 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녀석이 이제 모든 걸 포기한 이 순간에 대답을 하다 니.......!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았던 것이다. 헌데, 이런 생각을 하던 난 마지막에 그녀석이 한 말을 불현듯 떠올렸다. "뭐? 끊어진 길?" 번쩍. 부스스스. 급히 발걸음을 정지시키지 않았다면 난 그야말로 저 까마득한 무저의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십년 감수? 그건 나한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 이미 드래곤이 되었으니, 미리 살 세월들을 가불해서라도 갚고 싶은 마음이었 다. "우아~!! 헉헉. 십 년은커녕 천년도 모자라겠다. 우어어어억." 부르르. 내 오른 발이 반 이상이나 낭떠러지 끝을 밟고 있었다. 만약 내 몸의 중심이 급히 뒤로 빠지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번지점프 하듯이 머리부터 낙하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니 어찌 천년가지고도 되겠는가? 족히 만년은 심장병으로 앓다 죽어도 할말이 없을 지경이었다. 헌데, 그 괘씸한 녀석은 이런 나를 보고 좋다고 웃고 있었다. "야! 뭐가 좋아서 그리 웃어?! 앙?" "꺄르르르륵. 형아.............후암...........쿄쿄쿄" "어쭈, 너 지금 눈물까지 흘리면서 웃는 거냐? 이 꼬맹이 녀석이?!" 부릿부릿. 제 아무리 눈에 힘을 줘봐도 내 앞에 놓여진 이 무저의 세계로 통하는 낭떠러지를 건너지 않고는, 저 얄미운 꼬맹이를 쥐어박을 수 없을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보이는 이 제법 넓은 계곡을 건너 뛸 자신은 전혀 없었 다. 왠지 이 넓어만 보이는 계곡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좁게도 보이고, 더 멀게도 느껴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이상한 공간 속이었다. 이런 낯선 공간 속에서 내 욕심 차리자고 무리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무기력한 나를 봤음인가? '저녀석 이제는 뽀루퉁한 얼굴로 볼살을 마구 흔드네?! 엉? 뭐야? 저거 나잖아?! 이...........이게 뭐야?' 화들짝. 난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꼬맹이의 얼굴을 지금에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내 넋을 쏙 뺏어간 끔찍한 낭떠러지와 그 위에서 간당간당하는 나였던 것이다. 헌데, 왜 내 눈앞에 나타난 녀석이 내 모습과 똑같은 거야? 그러나, 난 이런 의문을 채 생각도 하기 전에 놀란 눈을 더욱 더 치켜 떠야만 했 다. 부시시. 잠시 내 머리결을 매만지다가 우연히 떨어진 가는 머리카락 한 톨. 너무도 선명한 검은 색의 머리카락! 난 이곳에서 분명히 새롭게 태어났고, 저 눈앞에 있는 꼬맹이처럼 화려한 금발 을 자랑하는 싸이밸리다. 헌데 왜 지금 내 모습이 검은머리를 지닌 청년이 된 것이 지? 잠시 의아한 생각에 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는, 아까 저 녀석의 방해로 못 가본 내 눈물로 이루어진 샘물로 급히 달려갔다. 아니, 날아갔다고 표현해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내 내가 그 샘물을 들여다 본 것을 너무도 후회하게 되었다. "흥. 형아는 정말로 바보야! 여기서 나랑 즐겁게 놀아줘도 좋잖아! 맨 날 그런 이상한 생각들만 하니깐, 자신의 아픔들이 그 속에 담겨져 나오는 거 야!" "이...........꼬맹이 녀석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왜 저런 모습이 이상해?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는 게 얼마나 행복한 줄 알기나 알어? 네까짓 어린 녀석이 뭔 안다고 그딴 헛소리야?" 울먹울먹. 아직은 어린아이인데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 저 녀석의 눈물어린 모습을 보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다. 허나, 녀석은 의외로 자신의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흘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매를 걷어붙이며 신나게 나한테 그 끔찍한 볼살을 흔드는 것으로 대신 하기 시작했다. "형아는 바보~!!! 메에렁~!!" 혀까지 빼물며 어린아이의 그 순수함까지 담아서 보내는 저 녀석의 모습에 난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허......허......허........푸하하하핫." 결국은 헛바람이 빠지듯 시작된 내 허탈한 웃음이, 혀를 빼무는 것으론 도저히 복수가 안 된다는 듯, 엉덩이를 내 쪽으로 돌리며 흔드는 녀석의 재롱에 난 어처구니 없게도 좀전의 상황은 까마득히 잊은 채, 배를 움켜쥐며 웃을 수밖 에 없었다. "후하.....후하..........이제 그만해......!" "치이. 한참 재밌었는데...........헤헤." "녀석도 참. 근데 넌 이곳에서 맨 날 혼자 있었던 거야?" "우음. 그렇기도 하고........아니기도 하고.........나도 잘 모르겠어. 형아!"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니? 네가 있는 곳을 모르면 어떻게 해?" "후음. 하지만 난 여기서 나가질 못하는 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제발 좀 헤깔리지 않게 제대로 설명 좀 해봐." "히잉.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을 해. 그러니깐 형아는 바보란 말야! 이씨. 난 맨 날 여기서 놀다가, 가끔씩 이쁜 누나가 찾아와서 나랑 놀다 가면, 가끔씩은 형아랑도 신나게 같이 놀기도 했단 말이야. 치. 그러니깐 나도 혼자인 것인지는 잘 모른단 말야." "뭐? 그런 게 어딨어? 여긴 너 혼자만 있었던 공간이 아니야?" "이잉. 그건 나도 잘 모른다니깐! 난 가끔씩 그 이쁜 누나가 찾아와서 형아 보러 가자고 하면, 얼른 달려가서 그 누나 손잡고 놀기만 했단 말야. 그러다 보면 형아랑 나랑 같이 재밌게 놀기도 하고..............힝. 하여간 나도 잘 모르겠어!" 울먹울먹. 자기가 생각을 하다가 너무도 외로웠는지, 금새 누군가를 찾는 애절한 눈동자의 꼬맹이 였다. 이런 꼬맹이와 애시당초 같이 대화를 나눈다는 건 내 실수 같았다. '흠. 뭐지? 알 듯 모를 듯 하네. 저 녀석이 말하는 그 이쁜 누나가 누굴까? 혹시 소영이? 아니야! 아무렴, 여기서 저 녀석이 말하는 것 중에 내가 딱 한가지 알아챌 수 있는 건, 확실히 저 넘은 나와 같은 존재인 것 같아. 그런 가정을 해본다면, 가끔씩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어린아이의 모습은 증명이 되는 거야! 헌데 저 녀석이 말한 이쁜 누나는 정말로 말이 안돼. 저 꼬맹이가 나라고 한다면, 여긴 분명히 내 의식 속이고, 남의 의식 속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어. 그건 신이라고 해도 결코 하지 않을 일이 야. 그럼 과연 저 꼬맹이와 나를 이어주었던 그 여자는 누구지?' 알 듯 모를 듯 내 눈앞에 안개가 끼인 듯한 느낌이었다. 허나,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하면서도 까마득히 먼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꼬맹이를 붙잡고 떠들지 않는 한, 난 이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저 녀석! 내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자, 자기 발 아래에 놓인 공간 속 으로 돌팔매질을 하면서 지 멋대로 놀기 시작하는데.......! 저런 녀석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만날 수 있을까? 난 이런 혼란 속에서 만난 신비한 꼬맹이이자, 나라고도 불릴 수 있는 존재에 대 해서 깊이 생각을 해봤다. 분명히 저 꼬마가 말하는 걸 유심히 들어보면, 알 듯 모를 듯 하지만, 여긴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길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길이라는 것이 내 의식 속에 닦여진 길이고, 그 의식을 닦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럼 맨 처음에 나타난 그 꼬불꼬불한 길과 한참 후에 나타난 곧고 바른 길에 대해서도 이해가 갔다. 아마도 그 길을 만났던 시점이 노명 대사님을 만나서 정신 수련을 하던 때일 것 이다. 그 뒤 점점 넓어지면서 곧게 뻗어나간 길은 내가 열심히 수련을 하면서 내 자신과 싸웠던 길이고......... 그 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던 그 길의 위 에는 나와 소영이의 소중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 그러니 조금 전 들여다 본 샘물 안에서 그 고통스러웠던 과거들이 새록새록 피어난 것이겠지. 후우. 답답하구나. 여기가 내 안에 있는 공간이 분명한데도 특별히 앞으로 나아갈 대책들이 없으 니.....! 허나, 나의 이런 고민은 쉽게 해결이 되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앞으로의 전진이 막힌 상태에서 다시 걸어왔던 길로 가는 것도 막막했다. 이미 내가 한번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 다는 것은 내 자아가 사라지는 것과 도 같다. 이건 내가 꼬맹이를 통해서 피부로 느낀 사실이다. 내가 뒤로 돌아가면서 지난 과거를 돌아볼 때, 난 정말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 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눈앞의 꼬맹이는 내가 먼 과거로 돌아가는 걸 탐닥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난 오도 가도 못한 채 있어야만 했던 것이 다. 헌데, 이런 나에게 그 빛이 다가온 건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신룡의 후예 - 제 48 화. 창조주께서 이 우주를 창조함에 따라, 우리 마족들은 그분의 위대한 유지를 이어받아, 오늘도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 강한 규율을 책임지고 있다. 흔히들 마족이라 하면, 모두가 범죄자를 떠올리는데.....!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악은 악으로써 다스린다는.....이런 말을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마족들은 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창조주께 도전하는 자들을 붙잡아서 모진 고문과 수만년에 해당하는 독방 신세를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럼, 이런 말을 내뱉는 내가 누군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가? 쿠하하하. 난 바로 위대한 마족 전사 칼베이 크리스틴 헤자르다. 제법 내 이름이 긴 이유는, 내가 바로 상위 마족 중에서도 서열이 매우 높은 까 닭이다. 그 때문에 지금 내가 지키고 서 있는 이곳은, 얼마 전 위대한 그분의 말씀을 어긴 채 지금도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한 신족의 거처이다. 보통의 신족이었다면 당연히 우리 마족들이 좋아하는 억겁의 지저갱으로 모시겠지만,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신족은 너무도 고귀한 그분과 관계가 깊은 존재라서, 난 지금 그 신족의 거처를 봉쇄시킨 채 이렇게 따분하게 지키고만 있어야 했다. 더구나, 이곳에 억류되어 있는 그 신족이 지닌 신분이 나보다 높은 까닭에 난 우리 마족의 유희인 괴롭힘과 고문도 못해보고 있었다. "쿠후후, 지금 뭐 하려고 저러는 거지? 또 정신계를 사용하는 건가?" 내 입가에선 잠시 비웃음이 일었다. 아무래도 저 안에서 육신을 이동시키지 못하니 저렇게 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리 라. 해서 난 잠시 그녀가 일으키는 정신계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내가 굳이 나설 이유도 없었지만, 나선다고 해도 아직까지 나설만한 이유가 없 었던 것이다. "흥. 두고봐. 지금은 당신이 그런 짓을 해서 내가 함부로 간섭할만한 권한이 없지만, 지금의 이 억류 보다 더 센 조치가 내려진다면......흐흐흐. 내 반드시 당신을 제일 먼저 괴롭히는 마족이 되어주지. 쿠하하하핫!" 잔뜩 아랫배를 내밀며 거만하게 웃어준 나는 이내 그녀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자세히 살피기로 했다. 그녀의 정신계도 이미 위대한 그분의 명령으로 인해, 우리 상위 마족 중 일부만 이 훔쳐볼 수 있는 권한이 내려졌기 때문에, 난 오늘도 그녀가 하려는 짓을 관찰해 야만 했다. 왜냐면, 이게 바로 내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흐흐흐. 오늘도 자기 힘을 나눠준 꼬맹이한테 납시는건가?" 잠시 그녀의 힘이 내려지고 있는 물질계의 한 곳을 떠올리며, 난 내가 가진 힘으로 그녀를 뒤쫓고자 내게 주어진 힘을 맹렬히 끌어 올렸다. 하지만, 난 잠시 후에는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뭐지?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떻게 다른 인간이 그녀를 만나는 거지? 그런데 이게 뭐야? 왜 내 힘으로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들여다 볼 수가 없는 거지? 뭐야 이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황당할 지경이었다. 분명히 위대한 그분이 내게 내려주신 사명으로 인해서, 어쩌면 나보다 더 높은 서열일수도 있는 그녀의 정신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가! 왜 지금 이상한 안개와도 같은 형체를 지닌 놈 하나 때문에, 그녀의 일거수 일동을 보지 못하는건가? 이건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허나, 난 끝까지 두눈을 치켜 뜨며 내 붉은 눈 속에 파란 불꽃을 일으켰다. "흥. 제깟 놈이 어떤 존재인지는 몰라도 내 시야를 가리는 이까짓 안개들은 우습게 없애줄 수 있지?! 아암...!" 하지만, 칼베이는 자신에 찬 말을 중간에서 접어야만 했다. 이상하게도 위대한 그분이 내려주신 힘으로도 이 눈앞의 안개를 밀어내는 일은 너무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분의 힘에 끝까지 저항하는 이 안개들은 지금도 신족인 그녀의 곁에서 지금 그녀가 만나고 있는 존재를 끝까지 지켜주고 있었다. 파앗. 난 한순간 내 눈을 부시게 만드는 강한 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깜깜한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빛을 받는 것처럼, 갑자기 내 앞에 커다란 빛을 뿌리는 이 현상은 내 눈을 멀게 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잠시 어둠으로 돌아간 내 눈은 금새 모든 정보들을 귀로만 받게끔 유도를 하면서, 난 내 건강한 두 귀를 쫑긋거리며 사내아이의 환대를 받고 있는 어떠한 존재에 대해서 매우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누......누구? 혹시........?!" 내 입은 금새 묵직한 자물쇠라도 잠긴양 내 혀의 움직임을 거부하며, 더욱 답답한 듯한 내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딱해 보여서일까? 난 잠시 후, 내 눈을 멀게 해버린 이 빛의 주인공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 었다. "라빈!" 어찌 이걸 아련한 꿈속에서 들리는 목소리라 할 수 있을까? 내 귀에 너무도 또렷이 들리는 이 목소리! 난 이 목소리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이런 나의 반응은 지금 컴컴한 어둠에 휩싸인 내 눈이 먼저 가려지면서 나타났 다. 주르륵. "너......너........크흑!" "......." "헤헤. 형아 또 운다. 그치?" 내 환희에 물결을 담은 속마음도 모르는 꼬맹이가 나를 잠시 흉보고 있었다. 허나,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과 나는 그런 일엔 이미 익숙해져 있기에 우리는 아무 부끄럼 없이 그저 미소로만 답하고 있었다. 단지, 실명이라도 한양 꼭 감긴 내 두눈이 떠지지 않고 있었기에 난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이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스윽. 그녀의 고운 손길이 내 두뺨에 똑똑히 느껴졌다. 그러나 그 손길은 예전의 따스한 소영이의 손길이 아니였다. 마치 지금의 내 눈을 멀게 한 밝은 빛에 휩싸인 듯한 그녀의 손길인 것이다. 이런 내 귀로 그녀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지금도 들려오고 있었다. 내 가슴을 너무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랑스런 그녀의 목소리가..! "라빈......당신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너무도......많았는데....." 위대한 창조주의 유일한 혈육으로 탄생한 그녀. 정식 이름은 이미 그녀의 성스러운 입으로 금했기에, 지금 라빈의 눈앞에 빛으로 감싸인 채 나타난 그녀의 고귀한 이름은 소영이었 다. 지금 그런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엔 맑은 이슬들이 저마다 그 크기를 자랑하듯 매달려 있었다. 뚝. 기어코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작은 이슬 한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파앗. 그순간, 너무도 눈부신 빛줄기들이 그녀의 이슬을 만나면서 더욱 강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태초에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그분께서는 이 세계를 정화시킬 힘을 따로 떼 어내시메, 그 힘이 가진 자의 모든 것은 이 땅의 오염된 모든 것들을 소생시키고, 정화시킨다. 지금 소영의 고운 뺨에 흐르는 이 눈물이 라빈과 싸이 앞에 놓여진 깊고도 깊은 억겁의 절벽사이로 떨어지면서, 그 속에서는 이제껏 어느 곳에서도 감히 볼 수 없었던 강한 의지의 안개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그 의지의 안개는 지금 허공에 떠있는 듯, 밝은 빛무리에 휩싸인 그녀의 발치께에 모여들고 있었다. 마치 어린 싸이와 라빈의 앞에 놓인 다가갈 수조차 없는 끊어진 길을 이렇게 잠시 안개의 다리를 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신이 난 듯 걸으며, 어린 싸이는 보통때의 모습보다 더욱 슬픈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이쁜 누나의 손을 덥썩 잡고 있었다. 그런 손길은 이미 익숙한 듯, 잠시 발아래의 꼬마에게 시선을 돌리던 소영의 입가에는 잠시 고혹스런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눈에는 맑고 고운 이슬방울. 그녀의 입가에는 애써 웃음을 지으려는 처연한 미 소. 이 둘의 모습을 어리둥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싸이는, 눈앞에서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작고 왜소한 형아와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누나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지금도 허리 아래에까지 감싸고 있는 이 간지러운 안개의 바람이 이 두사람의 곁에서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어린아이의 치기로도 이 안개의 다리와 지금도 자신을 감싼 채 이쁜 누나를 보호하는 듯한 이 안개가 너무나 정겨웠기 때문이다. 아직은 사랑의 감정을 잘 모르는 싸이의 눈에도 지금 눈앞의 두사람이 마음속으로 겪고 있는 감동과 슬픔들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헤헤. 형아! 지금 뭐해? 나랑 안 놀아 줄꺼야?" 한쪽 손을 내밀며 라빈에게 다가가는 어린 싸이의 해맑은 미소가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라빈은 지금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이 밝은 빛 때문에 눈앞의 사물들을 볼 수 없음이 이렇게 노여울 수가 없었다. 너무도 보고 싶었던 그녀인데......! 이 빛 때문에 눈을 감고 서 있어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도 미웠기 때문이다. 허나, 이런 그의 노여움은 잠시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어린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 때문에 금새 수그러들어야만 했다. "으응? 그래. 하지만 지금 이 형아는..." 다급히 말을 했지만, 문득 눈앞에 소영이가 있다는 생각에 우물쭈물하게 된 라빈이었다. 이런 그를 다시 한방울의 이슬과 더불어 다가온 소영은 잠시 그의 격동하는 어깨에 고운 손을 살며시 올려놓았다. '라빈. 내 너무도 소중한 사람.' 그녀의 입을 뚫고 나오지 못한 이 격동의 물결에 몸을 맡긴 감동 어린 그녀의 말은, 무언의 대화라도 가능한 양 지금 라빈의 귓가에 선명히 들리는 듯 했다. 마치 그녀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자마자, 그는 그녀의 마음을 너무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이 정도도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도 가슴 시린 사랑을 가지고 있던 두사람이기에, 잠시 서로를 배려하며 걱정하는 마음만큼은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더욱 간절하고 또 간절했던 것이다. "그.....래. 너 싸이라고 했지?!" "으응? 칫.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흥!" 마치 성이 난 듯 토라진 얼굴로 볼살을 흔드는 모습이 너무도 낯익었다. 하긴, 평소에 라빈이 주로 하던 행동들이니 낯익지 않으면 더욱 이상하리라. 하지만 지금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라빈이었기에, 장난기 가득 베인 싸이의 말에 빙긋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라빈은 두 번 다시 싸이의 모습일 때 이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 것이다. "푸훗." 똑같은 기억을 지닌 두 사람. 그래서 하나의 몸 안에 이렇듯 작고 큰 영혼을 소유한 사람.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지금 소영의 눈앞에 서 있는 라빈이었다. 자신이 이런걸 노려서 한 행동들이 결코 아니였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지 간에 너무도 소중한 이 사람만은 꼭 살리고 싶은 마음에 라빈을 환생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자신을 너무도 아끼고 보살펴 준 소중한 남자이기에,.....! 그로 인해 그녀는 이 세상을 정화하는 자신의 힘 중 태반을, 라빈의 죽은 영혼에게 이전시켰었다. 그리고 보다 더 라빈이 행복하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수 있도록, 그를 이 물질계 중에서도 최강의 존재인 엘렌에게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니, 잠시 그의 힘들고 불쌍한 영혼을 편안히 쉬게 할 생각으로 맡겼던 것이 다. 그정도의 월권행위는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던 소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 앞에 나타난 일말의 일들은 결코 그녀가 감당할만한 일들이 아니였다.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를 살리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 그녀의 주위에 있는 이들은 신을 거부한 이 사람을 반드시 소멸시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위대한 창조주이신 그분을 거부한 채, 영혼이라도 악마에게 팔아 그녀를 되찾겠다고 고귀한 맹세를 한 그를 결코 살려두어선 안된다고 펄펄 뛰는 것이다. 해서, 소영은 태어난 이래로 처음 자신의 창조주 아버지에게 대들어야만 했다. '흐윽. 너무도 소중한 당신이 왜 그런 모함을 받아야만 하는거죠? 당신은 그저 나를 위해서 그런 맹세를 한 것뿐인데... 그들은 이런 나를 견제하기 위해서 자꾸만 당신을 제물로 삼으려고만 해요. 미안해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 못난 것뿐이라서.....' 잠시 긴 투명한 머릿결을 라빈의 어깨에 기댄 채 살포시 안기는 소영의 마음은 이 따뜻한 사람의 심장고동만큼이나 애절했다. 그의 건강한 몸에 잠시 기댄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이 솟는데, 그들은 이런 그를 그녀의 곁에서 영원히 떼어놓으려고 드는 것이다. 더구나 그런 일들을 벌인 이유가......자신들의 힘과 연관이 있었기에 소영은 너무도 괴로웠던 것이다. "라빈...!" "......."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에 슬픔이 묻어나건만, 라빈은 그저 따뜻하게 소영의 작고 떨리는 어깨를 보듬어 안아주고만 있었다. '흑, 그래. 이 사람은 언제나 이렇게 말보다는 행동으로 나를 아껴주시는 분. 이 따뜻한 마음을 아버지 하느님도 알고 계실텐데, 왜 가만히 두고만 보시는 거 지? 흑. 이런 내가 너무도 미워!' 라빈의 어깨에서 기어코 울음을 참지 못하게 된 소영이었다. 이런 그녀를 라빈은 더욱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소영아. 난 언제나 너만을 위해서 살꺼야! 내맘 잘 알지?" ".......네에." 주르륵. 그녀의 고운 뺨에 흐르는 눈물만큼이나 작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뜨거운 마음을 전해주는 행동들뿐이었다. 말로는 못할 게 없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게 이럴땐 더욱 좋은 것이다. 해서 라빈은 그녀를 안은 채 잠시 몸을 숙였다. 그리고 이런 현재의 자신이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을 그는 행하기 시작했다. 라빈의 굽혀진 무릎에 앉게 된 소영은 두 눈이 멀어 꼭감은 그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만 보여지고 있었다. 이런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더욱 그에 대한 사랑이 일고 있는 그녀에게 천청벽력과도 같은 말이 라빈의 입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나 라빈은 이 자리에서 내 영혼을 걸고 천지신명께 맹세합니다. 내게 너무도 소중한 그녀에게, 나 라빈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보잘 것 없는 영혼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언제나 그녀를 위해서만 존재할 것을 맹세합니다. 더불어, 이 맹세를 집관 하시는 천지신명께서는 내 심장이 멈추는 그날까지 언제나 나와 그녀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만약 이를 거행치 않고 내가 태만하거나, 배반의 길로 빠져들 때에는 이 보잘 것 없는 나의 맹세를 버리셔도 되나이다. 이건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레이디에게 받치는 내 영혼의 약속이며, 난 그녀를 위해선 지옥의 불도 감당하는 기사가 되겠나이다. 신이시여! 부디 저의 이 보잘 것 없는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내가 그녀에게 영원한 그녀만의 기사로 남게 하소서!" 쿵. 소영은 지금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지금 이 남자가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녀는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라빈. 그럼 안돼요.....어쩌면 당신의 소중한......" 소영은 다급하게 라빈을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의 붉은 입술은 라빈의 꺼칠한 입술에 막혀 더 이상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놀라 커다랗게 떠진 그녀의 고운 눈만이 안타까움에 길길이 날뛰고 있 을 뿐이었다. "이야~! 형 너무 멋져. 헤헤. 영혼의 맹세라니......! 그거 용언으로 하는 약속 맞지? 그치? 헤헤. 나도 이 담에 반드시 나만의 레이디께 해줘야지! 까하하하하~!" 잠시 두 사람의 손을 놓은 채, 안개의 다리를 깡총거리며 뛰어다니던 싸이는, 라빈이 급작스럽게 행한 이 맹세를 듣곤 냉큼 다가왔다. 그리곤 두사람의 뜨거운 키스씬을 바라보며 저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두사람의 주위를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라빈. 내가 당신을 드래곤인 그녀에게 태어나게 한 것은 오로지 전에 받지 못했던 당신의 영혼에 남겨진 상처를 어루만져 주려고 했던 것인데.....이런 과한 맹세를 하시면 난.......! 어쩌면 당신은 오늘의 맹세로 인해 영원히 소멸할지도 몰라요. 전.........전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라고.......!' 소영은 조금 전 길고 긴 라빈의 키스를 뜨겁게 받고 있었다.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던 그의 입술은 이미 죽음을 넘나들어 다소 거칠게 변해 있었건만, 아직까지 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은 그런 고난을 통해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때문에, 소영은 그가 자신의 영혼을 걸고 한 맹세와 이 일을 계기로 주변의 이들이 더욱 성화를 부리지 않기만 바라고 또 바랬다. 그리고 지금 품안에서 간만에 곤히 자는 그를 안고 소영은 자신이 창조주이신 아버지에게 했던 그날의 일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 제 49 화. 덩실덩실. 품밟기를 하며 허리의 반동을 이용하는 추임세와 거듭 춤을 추듯이 어깨를 좌우로 움직이는 신형에는 절로 리듬감이 살아 있었다. "후웁," 한참동안 어깨춤이 절로 이는 신기한 춤을 추던 작은 체구의 사내는, 제법 오랜 시간동안 해왔는지, 이마에 굵은 땀방울들이 흘러내릴 때에서야 비로소 천천히 두팔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며 거친 숨을 달래며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언제 보아도 정감이 가는 택견이었다. 이미 한두해를 경험한 게 아닌 상태라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어린 싸이의 몸 일때는 이상하게 흉내도 못 내던 것이, 잠시 과거의 몸으로 돌아온 지금은 아무런 이상 없이 마음껏 해볼 수 있었던 것 이다. 더구나, 눈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영이의 간청에 의해 시작된 간만의 수련 에 라빈은 못이기는 척하며, 그동안 속에 든 모든 번뇌를 잊을 정도로 택견의 화려한 동작들을 뽐냈다. 그래서인지 더욱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어 소영이를 향해 빙긋이 웃음을 지어주 는 라빈이었다. 그런 라빈의 이마에 어린 땀방울들을 바라보며, 덩달아 소영이도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둘의 시선이 맞닿는 것이 샘이 나기 때문일까?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얄미운 녀석이 그 좋은 분위기를 깨고 있었다. "이야~! 형아. 진짜로 멋지다. 나도.....응? 나도 가르쳐 줘~!" 정작 오늘의 이 품세를 보고자 했던 소영이 보다는, 그 옆에서 라빈의 모든 행동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에메랄드 빛 눈동자 속에 어린 장난기를 유난히 빛내던 어린 싸이가 환호성을 빙자한 야리꾸리한 분위기 타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걸 예감하고 있었을까? 끝끝내 소영은 다소곳이 앉은 채, 라빈의 밝아진 얼굴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 었다. "훗." 뭐가 그리 우스웠을까? 아마도 어린 싸이의 느닷없는 해방에 얼굴이 붉어진 라빈 때문이었을 것이다. 옆구리를 꼬옥 부둥켜 안은채 떼를 쓰듯이 소영과 거리를 벌리는, 꼬맹이의 느닷없는 공격에 주춤거리는 라빈을 본 소영은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이상했지? 그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간만에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 더욱 행복한 시간들이었는데, 이 꼬맹이 녀석이 그걸 방해놓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약간 상했던 라빈은, 곧이어 터져 나온 소영의 웃음에 엉거주춤한 폼을 계속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니 이런 엉성한 말로 자신을 변명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그런 라빈의 모습에 소영의 얼굴에 웃음이 더욱 번지자, 그녀의 웃음을 잘못 생각한 라빈은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고 서 있었다. 이런 그를 올라다 보면서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존재는 바로 어린 싸이였다. "칫, 내가 가르쳐 달라니깐 아무소리도 없더니.....에잇!" "윽. 너......이게?!" 작은아이의 발길질이 뭐가 그리 아팠겠는가? 오로지 간만에 평화를 맛보는 라빈으로썬 어색하기만 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준 이 꼬맹이가 더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니 더욱 성이 난 얼굴로 위장한 채 어린 싸이의 목덜미를 움켜쥐며, 계속해서 소영의 눈치만 보고 서 있었다. "푸훗. 그만 해요. 그러다 싸이가 화나면 이담에 당신은 더 고생인걸요?" "응? 그.....그런가?" "네. 후훗. 정말로 많이 변했네요. 예전에 당신은......."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잠시 고운 이마를 찌푸리던 소영의 눈은 착잡한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어찌 그런 기억들이 아름답기만 할 수 있는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을 애초에 가지고 태어나지만, 자신은 그런 선물을 준 존재중 하나인지라, 그 기억의 파편하나에도 마음이 저려오는 것이다. 아무리 그때 그 인간의 모습이 본연의 모습이 아닌 영혼의 빙의라곤 해도, 그 영혼이 받은 상처는 고스란히 그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허나, 그녀는 다시 고운 미소를 입가에 달기 시작했다. 지독한 아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라빈의 모습들이 생생히 떠오르고 있는 것이 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희생해준 사람! 그런 사람이 눈앞에서 여전히 그때의 그모습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그다지 대화는 필요가 없었다. 소영의 살짝 찌푸러진 이마와 그 아래의 눈속에 담긴 아픔을 본 라빈이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손을 얹자, 소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더욱 불타오르는 그의 마음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고마워요....!" "으...응? 뭐가?" "당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만을......." "쉬잇." 라빈의 손가락이 그녀의 고운 입술에 머물렀다. 이런 그의 행동에 잠시 고개를 들던 소영은 라빈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살짝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당신은 언제나 그모습 그대로군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라빈의 손에 잠시 고개를 기대며 이 잠시의 평화가 가져다주는 행복에 두사람의 마음속은 어느새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 다. 이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어린 싸이의 얼굴엔 잠시 노여워하는 빛 이 어렸다. '칫, 두고봐. 맨날 나랑은 잘 놀아주지도 않으면서, 누나가 나타나니깐 금새 누나한테만 정신을 뺏겨서는... 쳇!' 뽀드득. 작은 주먹을 움켜쥐면서 라빈을 째려보던 싸이는, 이내 또다른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라빈을 어떻게 하면 골탕을 먹일지를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다. 이런 싸이의 행동을 이 두 연인은 전혀 알지도 못한 채, 간만에 가진 둘만의 오붓한 시간에만 집착을 하고 있었다. 언제 또다시 볼지 알 수도........그렇다고 기약할 수도 없는 인연이기에...... 갈리아스 옹은 사랑스런 손자가 며칠이 지나도록 자아의 세계에서 깨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자, 내심 걱정스런 마음이 일었다. 허나, 이미 자신만의 세계에 들어간 손자를 깨울 방법이 달리 없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지라, 갈리아스 옹은 손자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잠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휴. 저녀석 도대체 왜 이리 오래 걸리는거야? 보통의 어린 녀석들은 하루 이틀의 시간이면 충분하던데..." 하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자신도 자아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에도 제법 시간이 걸렸었다. 자신만의 공간 속에서 그동안 묻어두었던 지난 일들도 하나둘 깨우치기도 하고, 털어 버릴건 훌훌 털어 버리고 나온 경험 이 그에게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일주일이 넘도록 꼼짝도 안하고 서 있는 손자의 헤비 워커를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심정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휴우. 할망구랑 딸내미가 점점 이마에 핏줄을 돋구던데......이걸 어찌하나? 나도 대관절 이유라도 알아야 변명이라도 하지. 근데 과연 나도 저렇게 오래 걸렸었나?"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지난 경험을 되살려 보았다. 하지만 자기 혼자 레어 안에서 경험했던 과거의 일에 대해서 시간관념이 또렷이 떠오를 턱이 없는 것이다. "그려, 내가 여기서 아무리 애를 태워봤자, 저녀석이 평소에 욕심부리듯이 자아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행동한다면,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르지. 에휴. 하여간 하나밖에 없는 손자라고 하는 놈이 괴물취급 받기 딱 좋아요. 딱! 더구나 괴물도 저런 괴물이 따로 없으니....쯔쯔쯧. 아무튼 무턱대고 기다리기도 짜증나는데, 이 기회에 화난 할망구를 위해서라도 이쁜 짓이나 하고 와야겠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에 살벌한 눈빛으로 손자의 안부를 묻던 아내가 떠오른 갈리아스 옹은 별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혹여라도 생길지 모를 일들에 대비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금 손자가 타고 있는 헤비 워커야 특별히 변동도 없는 상황이고, 그 옆과 뒤에는 또 다른 시커먼 놈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뽑아든 채, 흉흉한 눈빛을 빛내며 열과 성을 다해 경호를 하고 있는 마당에, 자신이 굳이 옆에서 지키고 서 있을 이유를 못 느낀 갈리아스 옹이었다. "쿡쿡쿡, 그나저나 저놈들도 참으로 놀라워. 주인과 이미 대화가 끊어졌을텐데도 여전히 주인을 위해서라면 온몸이 바스러지도록 충성할 생각만 하다니......쿡" 과거의 손자에 대한 어떤 생각이 떠오른 갈리아스 옹은, 말그대로 놀라운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는 시커먼스 군단에게 시선을 준 다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급히 공간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손자의 일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마누라 곁에 있기보단, 족히 백 년이라도 수명이 늘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자, 그럼 간만에 뮤즈 녀석이나 보러 갈까나?" 이미 머리 속에 든 계획대로 움직일 생각에 갈리아스 옹은 자신의 오른팔과도 같은 존재를 떠올리며, 그 존재가 있는 곳으로 시동어도 없이 텔레포트를 시전 했다. 휘이이잉.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갈리아스 옹이 하얀 빛무리에 감싸이자, 그 주위에 작은 바람이 시원스럽게 불어왔다. 제우스는 지금도 아리송한 상태로 자신의 품안에 있는 주인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분명히 자신의 품으로 이동을 한 주인이 자신과의 연결을 이어주는 투구를 쓰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의식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러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제아무리 인간과는 다른 존재들이라곤 해도, 항상 주인과의 연대감이 생겼던 어느 한 선이 갑자기 끊어지는 봉변은 마나 하트가 한순간 멈출 정도로 끔찍한 것이다. 헌데도 주인은 이런 자신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근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 의식이 없는 것이다. 해서 조심스럽게 주인의 몸을 살피며 이상이 없는지 를 확인해본 결과, 진짜로 놀라운 일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평소의 주인이라면 끔찍할 정도로 괴팍스러운 성질을 자랑하는데, 지금 주인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어떠한 기운은 그런 성질까지도 선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주인의 몸에 이상이 있는지를 관찰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를 이용해 주인의 기운들을 살펴본 결과는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러니 모든 시커먼스 군단의 눈빛엔 무언의 질문이 강하게 담겨져 있는 것이 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 지난 며칠동안 시달린 제우스는 결국 무거운 입이 열려 야만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하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쇠대가리 답지 않은 제우스의 지능덕분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답답한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자. 알 았나?" "네. 대장. 헌데 정말로 주인님의 몸에 그런 일이 생긴 겁니까?" 평소보다 더욱 무뚝뚝한 대답을 하는 서열 2위 미려의 도끼파 부단장의 질문에 제우스는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된 행동을 보여야만 했다. 그러나, 비단 시커먼스 군단의 부단장만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부단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동안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장을 지켜보던 시커먼스들이 순식간에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빛엔, 평소에는 가지지 못했던 주인에 대한 진한 자긍심과 존경심이 가득 들어있었다. "대장. 말해주시오. 정말로 주인님의 몸에 신력이 깃들어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최상급의 신력이 말이오?!" 제우스의 침묵이 답답한지 미려의 도끼파인 부단장의 음성이 제우스의 뇌리에 와 닿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는 모습에, 결국 제우스는 그 무거운 입을 또다시 열기 시작했다. 이런 제우스의 모습도 다른 시커먼스 군단들만큼이나 자랑스런 주인에 대한 존경심이 하나가득 담겨져 있었다. "너희들 또한 나와 하나로 이어진 의지로 인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굳이 내 입으로 그런 말을 꼭 해야만 하겠나?" 제우스의 음성이 모두에게 들려오자마자, 잠시도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옆으로 바짝 다가온 분노의 철퇴가 입을 열었다. "그...그건 아니지만....그래도 .우리 주인님이 평소 하시는 행동을 생각하 면......." "쓰읍! 너 죽을래?! 앙? 지금 감히 어느 분한테 의문을 표하는거야? 대장이 하는 말 못 들었어? 무조건 믿으란 말야. 알았어?!" 자신의 어깨에 걸쳐진 미려의 도끼를 빛내면서 부단장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자, 하나둘 모여든 시커먼스 군단 모두의 눈에는 공포가 잠시 일었다. 저 보석이 박힌 듯 빛을 내는 도끼의 끝에는 끔찍할 정도로 막강한 기운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런걸 모를 시커먼스 군단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질문을 던진 분노의 철퇴와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해주던 모든 시커먼스 군단들의 목은 급히 아래로 숙여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눈빛 속에는 여전히 주인에 대한 걱정이 남달리 담겨져 있었다. 평소였다면 이런 일들이 전혀 생길 이유도 없겠지만, 이미 주인과 연락이 끊어진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터라, 그들은 내심 주인에 대한 염려가 지나쳐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모두들 믿어라. 믿으면 된다. 그리고 너 도끼파! 요새 들어 네가 주인님 흉내를 너무 심하게 내는 것 같다. 너 설마 지금 주인님이랑 연락이 안된다고 까부는거 아니지? 너 앞으론 조심해라. 알았냐? 우린 어디까지나 주인님을 위해 존재하는 오직 그분만의 종이다. 이런 우리가 그분을 흉내낸다는 그 자체가, 바로 그분에 대한 모욕이라는 생각을 넌 해보지도 않은 거냐?! 이 무식한 쇠대가리야~!" 제법 부단장의 행동이 마음에 든 제우스는 그를 통해서 더욱 더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기 위해, 잠시 도끼파의 선두주자인 부단장에게 강한 힘을 실은 시선으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끼파는 이런 제우스의 시선에도 전혀 기가 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단지, 서열에 충실하겠다는 마음만이 그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었 다. "끄응. 알았소. 대장. 하지만 나만 쇠대가리는 아니잖소?! 주인님께서 평소에 주장하시는 바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쇠대가리들인데........" "쓰읍!" 부단장의 전혀 기죽지 않은 행동과 변명에 잠시 제우스는 그 굵은 쇠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머리 속에 금새 한가지 모습이 떠오르자, 제우스는 이내 그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야만 했다. 헌데, 평소 싸이의 화난 모습에서 자주 등장하던 귀여운 모습이, 우람한 덩치의 제우스를 통해서 나타나자 그 모습은 거의 꼴불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제지할만한 존재는 지금 현재 아무도 없었다. 왜냐면, 평소 화가 나면 양쪽 옆구리에 손을 올리며 눈을 부릅뜬 채, 양볼에 두둑히 뺨을 부풀리는 싸이가 현재 이 자리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 하나하나가 이미 뇌리 속에 강하게 박혀 있는 시커먼스 군단들은, 주인과 비슷한 모습만 보이는 존재가 있다면, 무조건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일 만큼 능숙하게 단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들이기에, 지금 제우스는 자신의 이런 엉성한 포즈에도 꼬리를 내리며, 고개를 숙이는 자랑스런 부하들이 오늘따라 더욱 맘에 들었다. '하긴 나부터도 주인님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공포가 이는데 너희들이야 오죽하겠냐?!' 이미 마음속 깊이 자리를 잡은 주인님의 평소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운 제우스는, 이내 자신의 주위를 빙 둘러싼 채, 더욱 눈에 힘을 주며 주위를 경계하는 부하들과 더불어 자신의 주인이 깨어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모습을 주인인 싸이가 과연 알고나 있을까? 자아의 세계에 들어와서 뜻하지 않은 만남에, 한참이나 정신이 나간 라빈이 이 시커먼스 군단의 사랑스런(?) 모습을 지켜볼리 만무했다. 그리고 이런 제우스와 시커먼스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빈과 싸이는 여전히 서로 으르렁거리며 신나게 놀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이란 말인가? "하나 둘. 하나 둘." "얌마. 보다 부드럽게 움직여야지. 그렇게 딱딱한 몸으로 어떻게 리듬을 살릴 수 있겠어? 잘 봐!. 이렇게.......하나 둘. 얼쑤. 하나 둘. 얼쑤!" 아직은 어린아이인 싸이에게 라빈은 너무나 많은걸 원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미 자신은 십여년 가깝게 해온 일들이라서 손쉽게 할 수 있었지만, 생판 처음 본 이상하면서도 신이 나는 행동을 어린 싸이가 쉽사리 따라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평소의 싸이와는 달리 라빈의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땀방울을 흘리며 따라하고 있었다. "헥헥......형아는 어떻게 그렇게 자연스럽지? 이잉 난 왜이래?!" 땀을 빗물처럼 흘리는 싸이의 입에선 연신 단내가 풀풀 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린 싸이는 정말로 열심히 따라하고 있었다. 이런 싸이를 매섭게 다스리는 라빈의 모습은 평소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선하다는걸 증명하듯, 어린 싸이의 잘못된 모습들을 옆에서 그대로 보여주며, 한가지씩 차곡차곡 열성 있게 가르치고 있었다. "헥헥......" 너무 급하게 움직였는지 어린 싸이가 지친 기색이 가득하자, 라빈은 싸이의 뒤로 가며, 싸이의 지친 팔과 다리를 힘껏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헥헥. 형아. 진짜로 이거 힘들다. 그치?" "짜식. 이게 뭐가 힘들어? 난 이거 배울 때 온몸에 시퍼렇게 멍을 달고 살았는 데!" "에엥? 왜? 저번처럼 내가 마구 움직여서 그런거야?" "으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난 그저 이걸 가르쳐 주신 사부님이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쓰다듬어 주셔서 그런건데......" "헤헤. 그랬구나. 근데 그 사부님이라는 분이 누구야?" "자식이 딴 소리는.......근데 너 아까 했던 말이 뭐야? 네가 마구 움직이다니?" "으...응. 그.......그게......." 라빈의 엄한 모습과는 달리 금새 지쳐 쓰러진 자신을 안쓰럽게 챙겨주는 걸 보 곤 금새 화가 풀린 싸이는, 자신이 행했던 지난 일들이 내심 미안한지 라빈의 눈을 바라보며 그 귀여운 얼굴에 미소를 달기 시작했다. "헤헤. 있잖아. 사실 내가......저번에 형아가 하는 칼싸움을 말이야......헤헤." 이렇게 시작된 싸이의 진실 고백에 한참을 가만히 듣고 앉아 있던 라빈은 놀란 눈을 부릅뜨며 싸이를 죽일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 지금 한말이 사실이야?" "으응. 미안해......형아! 사실 나도 형아랑 같이 칼싸움하고 싶어서 그만....." 금새 그 큰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런 싸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심을 크게 내셨다. "휴우. 그래. 어린 네가 보면 당연히 내 모습을 따라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 때문에 이 형아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기나 해?" "그건 알지만, 나도 배우고 싶었단 말야! 히잉" "그래...그래. 알았다. 다음부턴 같이 배우자. 됐지?" "헤헤. 진짜지? 약속하는 거다?" "그으래. 자 약속!" "헤헤...고마워 형아!" 꼬옥. 작고 가는 새끼손가락을 걸며 금새 눈에 걸린 눈물방울을 씩씩하게 닦는 싸이였다. 그리고 그런 싸이가 기특(?)한 듯 뜻밖에 미소로 일관하는 라빈이었다. '녀석. 얼마나 정에 굶주렸으면 그랬겠니? 원래 네가 받았어야 할 사랑을 전부 내가 가로챈거나 마찬가진데..... 미안하구나!' 잠시 손가락을 걸고 좋아라 웃는 싸이를 보며 내심 미안한 마음에 앞으론 싸이를 더 챙겨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라빈이었다. 그런 라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싸이는 급히 소영이에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대단한 일을 자랑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누나~!! 누나~! 형아가 나랑 이제부터 매일 마다 놀아준데~!!" 크게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는 싸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라빈은 잠시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훗. 녀석. 근데 도대체 아까 그게 무슨 말이지? 아직 어린 녀석이라서 그런지 말이 뒤죽박죽이니.......원." 분명히 어린 싸이의 입을 통해서 충격적인 말을 듣긴 들었는데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저녀석이 한 말은 내가 예전에 배운 검술을 보곤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 서 했다고 했는데, 나와 저녀석은 소영이가 나타나지 않는 한 절대로 이어지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잖아! 헌데도 내 몸은 저녀석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그럼 내 의지는 뭐지?' 잠시 그 자리에 앉아서 조금 전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려고 애를 쓰는 라빈이 었다. 분명히 어린 싸이의 입에선 이런 말들이 나왔다. 라빈이 예전에 배운 검술을 몸에 익히도록 노력하는 와중에도 연결동작만 들어가면 앞으로 쏘아져 나아가며 부딪힌 일들이 모두 어린 싸이 자신이 한 짓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건 갈리아스 옹이 싸이의 머리 속에 강제로 전송시킨 검술 때문이라고 말을 하는데, 분명히 라빈 자신의 머리 속에도 그 검술은 또렷이 남아 있는 것이 다. 헌데, 이런 같은 기억을 지닌 녀석이 자신이 새롭게 펼치려는 검술은 왜 따라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보다 정확히 정리를 하자면, 자신이 하려고 하는 다음 동작을 싸이 녀석이 신이 나서 자기 멋대로 펼치려고 몸에 더욱 힘이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맨날 의지와 몸이 따로 논 꼴로 온몸에 피멍을 안고 살게 된 것이다. "휴우.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이건 내가 직접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조차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니 제대로 알 턱이 있나!"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는 그의 눈에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온 작은 발과 고운 발가락의 주인이 들어왔다. '훗, 저 하얀 발가락이 우리 만남의 시작이었지! 쿡쿡쿡' 잠시 과거의 기억 속에서 한토막을 꺼낸 라빈이, 고개를 살며시 들며 그 발가락의 주인에게 시선을 돌리자, 라빈의 생각을 눈빛으로 읽었는지 소영도 잠시 뺨을 도화빛으로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쿡, 넌 여전히 발가락이 예쁘구나." "......고마워요." "핏. 뭐가 고맙니? 너의 고운 그 발가락 때문에 내가 너한테 다가갈 수 있었는 데....." "훗. 그런가요?" "응. 내가 뒤돌아서 가려고 하는데 자꾸만 그 발가락이 눈에 떠오르잖아. 그래서 그 고운 발가락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주인이 누굴까? 하는 생각에 내가 다가가게 된걸." "풋. 그랬어요? 전 그때 몽롱한 기운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도 않았는데....." "........후훗." 조금전의 복잡했던 머리 속이 하얀 발가락의 주인 때문에 시원하게 풀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영은 여전히 자신을 마음속 깊이 아끼고 사랑해주는 남자의 시선에 행복한 마음이 새록새록 생겨나 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라빈을 보는 소영의 마음은 내심 불안함과 그리움이 차기 시작했다. "라빈." "응?" "저......어." "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니? 말해봐! 걱정 말고....." "그게 말이죠. 지금 당신이 이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서요." "으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이곳에 있으면 안되는거니?" 소영의 조심스런 말속에서 자신이 그토록이나 듣기 싫어하던 말이 기어코 담겨져 나왔다. 이 얼마만에 가져보는 시간들이던가? 이런 시간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마음속으로 불안하게 여기던 현실이 기어코 그녀의 고운 입을 통해서 나타나자, 라빈은 점점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라빈. 힘내요. 우린 언제나 하나잖아요." 라빈의 떨려오는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어주는 소영의 모습에서 가슴저린 아픔을 느낀 라빈은, 풀썩 제자리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그래. 우린 언제나 하나였어. 헌데......헌데......." "알아요. 당신의 마음을......! 하지만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당신은 만족하실꺼 에요?" 애써 마음속에서 이는 유혹을 떨치며 소영이 힘을 주어 말을 건냈다. 어찌 자신도 이런 행복을 깨트리고 싶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이런 모습을 바란 건 절대로 아니였다. 단지 오랜만에 만난 그와의 행복한 이 시간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만을 진심으로 바라는 소영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모습은 진정한 만남을 가지는 시간들이 아닌 것이다. 해서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건낸 소영이었다. 라빈 또한 언젠가 이런 말이 나올꺼라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찰라에 소영의 입에서 나오는 매정한 말에 속에서 뭔가가 울컥 솟구치는 듯 했다. "그럼?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난....내가 얼마나 널 보고싶어 했는지 알 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 죽음을 각오한 나였어. 헌데, 보고 싶은 넌 보이지도 않고, 내가 원하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나를 넌 생각이나 해 봤어? 그래도 난 오로지 너를 만나기 위해서 지금껏 이 악물며 살아왔단 말야! 근데........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또다시......크흑." "흑. 라빈....." "놔! 너 말대로 가면 될꺼 아냐!" "그게 아니라...........흐윽" 라빈의 갑작스런 행동과 울컥한 마음에 나온 말에 속에 든 그 무언가가 기어코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 먼저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라빈이었기에, 소영은 라빈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든 무언가를 말해주고 싶었다., 허나, 갑자기 화를 내는 라빈의 앞에선 입이 굳어버린 그녀였다. 오직 그녀의 맑고 고운 눈 속에 그녀가 말하고픈 진실만이 담겨져 있을 뿐. 사랑하는 님이시여! 전 언제나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답니다. 내 생애를 통틀어 오직 당신만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저이거늘. 어찌 제가 당신의 모든 아픔을 모르겠어요. 저 또한 당신이 아프면 매일 마다 당신과 함께 아픔의 홍역을 치루고 있답니다. 언제나 내겐 소중한 당신이시기에.....! 사랑하는 님이시여! 당신께서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그속에서 슬픔과 아픔을 담고자 하신다면, 전 당신의 눈망울에 담긴 그 슬픔 모두를 저의 가녀린 가슴속에 아련한 아픔으로 담고자 한답니다. 저에겐 너무도 소중한 당신이시기에, 언제나 이 아픔의 끝에서 당신께 드릴 사랑만을 가꾸고 또 가꾸며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살고 있답니다. 사랑하는 님이시여! 하지만 전 이런 모든 아픔과 서글픔이 하나도 두렵지 않답니다. 전 언제나 당신의 빛나는 태양을 쫓고 있기 때문이지요. 언제나 당신께서 저를 떠올리실 때마다 저에게 그 순간만큼은 환희의 물결이 맴돌고 있답니다. 언제나 당신과 영원하고픈 저이기에, 전 언제나 당신의 곁에서 당신만을 바라보며 사는 작고 가녀린 천사랍니다. 울컥한 마음에 화를 낸 라빈은 곧이어 등뒤에서 흐느끼는 소영의 모습에 작은 아픔을 같이 공유하고 있었다. 이런 그가 그녀의 눈에 어린 사랑을 보지 못할리 없었다. 그런 라빈이기에 자신 또한 그동안 말로는 못했던 그녀에 대한 마음을 눈에 담아 보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곁을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은 그녀가, 자신의 이런 못난 모습에 실망해서 영영 떠나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소중한 눈물을 그 고운 눈망울에 담고서.....! 언제나 생각해보면, 내게는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는 당신. 언제나 생각해보면, 내게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당신. 난 오늘도 당신을 위해 내 마음에 이는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고 싶답니다. 언제나 당신만을 생각하고 있노라고..... 난 언제나 이 불타는 가슴속에 이는 진실을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서 풀어놓고 싶노라고. 내게는 너무도 소중한 당신의 모습이 아련한 회색빛 하늘 사이로 다가오고 있답니다. 난 이런 당신을 바라보며 나 홀로 속삭여 봅니다. 지금의 이런 내 사랑이란, 바로 눈앞에 어리는 당신의 모습 때문에 더욱 간절하고 애타는 내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구요. 오늘도 난 뿌연 회색빛 하늘을 바라보며, 암울하게 젖어 드는 내 마음속의 당신에게 힘없이 작고 가냘프게 변한 내 마음을 속삭여 봅니다. 언제나 당신이 있기에 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라구요. 회색빛 암울한 하늘 사이로 나에게 투명한 당신의 얼굴이 다가옵니다. 하얀 얼굴에 투명한 눈동자를 지닌 당신. 촉촉히 이슬을 머금은 당신의 입술에, 난 오늘도 내 마음속에서 되살아나는 일곱가지 무지개 빛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폭포수와도 같이 흘러내리는 당신의 머리결을 따라 내 작은 몸부림은 당신의 일부분이고 싶어한답니다.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봐요. 내 안의 당신이 살아 숨쉬듯, 당신의 작은 일부분이라도 내가 되었으면 하는..... 이 작고 불쌍한 내 마음속의 몸부림. 그 속에 나의 모든 사랑이 담겨져 있답니다. 곧고 바른 마음 하나로만 당신을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이런 내 맘이 당신에게 과연 사랑이란 감정으로 다가설 수 있을까요? 말해주세요. 언제나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사는 저이니깐요. 난 오늘도 이 회색빛 하늘을 품에 안으며 당신의 사랑을 간절히 기다리는 불쌍한 몸부림에 눈물겨워 한답니다. 내가 가진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봐요. 언제나 힘들고 지쳐 결국엔 당신을 향한 그리움에 타는 이 목마른 갈증. 당신의 작은 미소 하나에 그 모든 것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는 환희. 나에게 있어 사랑이란, 바로 당신이 내가 보내주신 작은 웃음만큼이나 소중한 신의 선물인 것 같아요. 그런 소중한 그분의 뜻에 따라, 언제나 함께 하고픈 나만의 사랑은 이 세상에 내가 하나이듯이 당신 또한 오직 하나라는 말을 꼭 해주고픈 간절한 나만의 기도와 같은 것이라구요. 신룡의 후예 - 제 50 화. 새하얀 구름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아린 감정으로 다가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오늘 아침이 그녀에게 이런 감정에 몰입시키는 것을 보면, 어릴 적 기억 속의 여러 파편들 중 깊게 새겨진 그 누군가가 오늘따라 더욱 가슴속에 되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니플레스는 문득 오늘 아침에 눈을 뜬 자신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일까? 지금 그녀가 처한 낯선 환경이 더욱 서글프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오늘따라 가슴이 설레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님은 어디에 계실까? 저 구름 너머에서 날 기다리시는 것일까? 오늘 그님이 내 곁에 이르도록 내 마음 살랑이는 바람들에게 담아 보내고 싶네. 사랑하는 바람들아! 이젠 내게로 전해져 오는 그님의 향기를 다시 빼앗아 가지 말아 다오. 난 오늘도 그님의 품속에서의 지난 추억을 떠올려 본다네. 모두가 축복 받은 은혜의 땅위에서, 난 그님을 사랑하게 해준 신께 감사하고 싶다네. 사랑하는 바람들아! 너희들은 이런 내 마음을 잘 알고 있겠지? 언제나 서성이는 작은 그림자에도 두근거리는 이 내 마음을...!" 누구의 입에서 전해져 내려 온 것인지 뚜렷하지 않은 옛 시를 읊조리며, 답답한 마음에 크게 심호흡을 해보아도 무언가가 꽉 막힌 가슴은 후련해지지 않았다. 스스로를 다잡아 보려는 마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자신의 감성에 젖은 눈물을 보이게 된 니플레스였다. 풍요의 신에게 축복 받은 아이라는 뜻을 지닌 니플레스는, 아버지 레벤크라인 백작이 그녀의 탄생일에 손수 신전에 가서 받아 온 이름이었다. 그당시 레벤크라인 백작의 영지는 옛 성마대전이 치루어졌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넓은 평야 근처의 작은 산골이었고, 온통 하늘을 향해 치솟은 절벽들 사이에 위치한 작은 영지였다. 그러나 군사적으론 매우 중요한 국경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곳이라서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능력을 높이 사준 현 국왕께 깊은 감사를 자주 드리곤 했었다. 그런 중요한 군사기점인 영지를 하사 받아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레빈크라인 백작과 니플레스의 추억이 담긴 그 곳이, 오늘따라 니플레스의 서글픈 감성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허나 이젠 그 꿈속의 단란했던 시절과 행복했던 기억들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변해 버렸다. 아버지에게서 영지를 하사 받을 아들이 생기지 않은 이유로, 니플레스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유일한 친척이자 사촌 오빠인 헤크라인에게 넘겨줘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이 설레이는 마음만큼이나 두려움이 물씬 풍기는 전장에 처음으로 선 니플레스의 가슴은 자꾸만 답답해져 왔다. 비록 칭칭 동여맨 천들이 가슴을 압박해오고는 있었지만, 그보단 자신의 아버지가 남기신 소중한 고향을 잃어버린 지금의 처지가 서러웠던 것이다. "으득. 바보처럼....난 오늘부터 자랑스런 레벤크라인 주니어야! 예전에 꿈꾸었던 소녀의 꿈을 망각한 자란 말이야. 니플레스 딘 칼베르 레빈크라인 Jr. 앞으로 넌 무슨 일이 있어도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되어야만 해. 그래야 나와 우리 가문을 배신한 그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단 말야!" 더욱 더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과 그에 반응한 복수심이 이글거리는 눈동자 속에 담겨져 있었다. 오늘 날 자신이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 나선 것 또한, 그와 같은 맥락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자 하는 불타는 의지가 엿보이는 니플레스 였다. 어차피 국가 대 국가간의 전쟁에선 많은 수의 남자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남자들이 빠져나간 공백은 모두 여자들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헌데, 왜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남자들이 어떻게 하든 빠져나가려고만 하는 전쟁터로 지원해서 나선 것일까? 그것도 본연의 모습이 아닌 남장을 한 모습 그 자체로.....! 아마도 오늘 그녀의 차가운 눈물만큼이나 더욱 가슴 아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가의 처녀로 태어나 그 고운 갈색의 머릿결을 짧게 자른 그녀의 뒷모습은 이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빛에 비추어지며 고운 자태로만 남겨지고 있었다. "후후. 그 계집이 손수 지원을 했단 말이지? 그것도 레빈크라인 가문의 자식으로?" "예. 주인님....헤헤. 아무래도 이 곳에 남아 있어봤자 자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을테니깐요." "쯔쯔쯧. 그냥 가만히 있다가 좋은 집안에 남자를 만나 시집이나 갈 것이지. 에잉. 한심한 년." 인상을 찡그리려고 애를 써보아도 앓던 이가 빠진 이 상쾌한 마음이 억지로 나타날 턱이 없었다. 그러니 헤크라인 자작의 입가엔 잠시 삐뚫어진 미소가 어리는 것으로 자신의 도의적인 책임을 끝내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런 헤크라인 앞에서 연신 헤실 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자는 헤크라인 자작가의 후대 집사로 유력시되는 엥겔이었고, 그는 자신의 평소 모습대로 손바닥을 붙인 채 살짝 고개를 내리고 서 있었다. 아무래도 이 두사람에겐 자신들이 포기하고 온 헤크라인 자작가보단 이제 국왕의 명령서만이 남은 레빈크라인 백작가문이 더욱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의 신분 상승보단 국가에 충성을 서약한 귀족으로써 중요 기점에 영지를 둔다는 자부심이 오늘의 헤크라인 자작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 그럼 이제 국왕폐하께 인증서만 받으면 되는군.' 더 이상 긴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다. 십여 년 전부터 시작된 라인스트 국과의 영토분쟁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최선봉에 선 레인크라인 백작의 운명은 자랑스런 기사도를 지킨 명예로 끝이 났다. 그 후, 외동딸만이 남겨진 이 곳 영지를 지키고자 온갖 귀족들이 몰려 들어왔지만, 지금 이 영지의 주인이 될 자는 이제 자신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 엥겔에게 헤크라인 자작은 더욱 더 의미 있는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쿡. 자랑스러우신 분. 내게 이런 중요한 기회를 주시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한순간에 불살라주시다니..........고맙소이다. 숙부.' 잠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짧게 생각을 정리하는 헤크라인 자작이었다. 어차피 여러 아들을 두고 있는 다른 귀족가문과 자신들의 가문이 비교를 당하는 입장이지만, 아직 이곳은 원인 모를 질병과 각종 성병들이 판을 치는 세상. 그러니 후대를 누가 잇게 되는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헤크라인은 이런 세상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이 행운으로도 여겨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런 중요 거점의 지배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에 가시 같던 사촌 누이 동생은 자신이 자랑스런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려는 듯 그 가녀린 손에 검을 들곤 며칠 전 이 영지를 떠난 것이다. 그것도 눈에 독기를 품고서..... 하나, 전쟁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비록 지금의 전쟁을 십 년 넘게 이끌어 오시는 분이 지상 최고의 검객이신 라멜쥬 대공이라곤 해도, 그 양반의 현재 스타일을 보면 많은 수의 군사들이 필요한 건 기정사실이었고, 자긴 그저 코앞에서 벌어지는 전쟁터에 물자만 제대로 지원해주면 만사 통과인 것이다. 그때문에 이제껏 전쟁터에 불려나가지도 않았던 것인데, 어리석은 사촌 누이는 전쟁의 전 자도 모른 체 그 험한 전쟁터로 손수 지원해 나간 것이다. 그것도 들키면 중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남장을 하고서 말이다. 그러나, 헤크라인 자작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조금 드는 것이 영 맘에 걸렸다. 왠지 여자는 영지를 물려받지 못하는 국가의 법률이 믿음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런 불안한 예감은 얼마 후에 다시 한번 그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것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만에....... 다가닥 다가닥. 잔잔한 진동을 온 몸으로 느끼며 창 밖을 바라다보는 건 매우 운치가 있는 느낌이었다. 점점 눈앞에 경치들이 변해 가는 것이 이 세계에선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풍경이라, 태어나 첫여행(?)길에 오른 싸이에겐 참으로 평온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 여행의 시작이 최상급의 마차 안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히야. 이건 거의 예술이다. 이렇게 편하다니......후후훗.' 잠시 자신이 뒹굴거리도록 설계된 의자에 누워 예전의 태평스러웠던 모습을 잠시 되찾아 보던 싸이는, 한참이나 편안하게 마차 안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냈다. 단지, 자신이 이런 옛 기억을 되살리며 편안하게 노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 짐승만 아니였다면, 싸이는 며칠동안 내내 이렇게 뒹굴거리며 편안한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삐이익. 높디 높은 창공에 하얀 점 하나로 변신한 어린 콘돌의 비상음에 귀를 쫑긋 세우던 싸이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절로 한숨을 내 쉬었다. "치잇. 저 망할 놈의 병아리. 어떻게 된 놈이 할아버지의 마법보다 더 무서운거야?!" 눈앞에서 살포시 눈을 감고 앉아 계신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궁시렁 거리던 싸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래이며 크게 기지개를 폈다. 저 얄미운 녀석을 시간만 나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괴롭히고 있었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반항하듯이 눈빛을 더욱 빛내는 콘돌이다 보니 싸이는 자신이 외할머니 댁을 나오면서 약속한 무언가가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후우.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이번에는 너무 심하셨어. 내가 아무리 어리다곤 하지만 무조건 지켜야만 한다면서 강제로 약속을 하게 만드시다니....그것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약속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만드시고....." 아무래도 무언가 맘에 안드는 상황을 겪게 된 싸이 같았다. 하지만, 그분들이 자신에게 약속을 하게 만들었던 일들이 전부 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었고, 그 약속들을 지켜나가면서 점점 성장하게 될 자신의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똑똑한 싸이는 잘 알고 있었다. 단지 매일 마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의 전투를 치러야만 하는 싸이다 보니 조금씩 짜증이 나는 건 어쩔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에 싸이는 절로 고개를 숙이며 어쩔 수 없이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야만 했다. "메테우스! 잠시 마차 좀 세워 줘!" "네? 넵. 전하!" 시원스런 바람이 귓가를 스쳐가는 시간속에서 옆에 앉은 쥬엘에게 간간이 시선을 보내던 메테우스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자신에게 말을 건낸 싸이의 모습에 깜짝 놀란 나머지 급히 마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워....워. 전하! 앞으로 절 부르실 땐 제발 안전한 마차 안에서 조용히 불러주십시오. 그렇게 고개를 내미시다 만약 조그만 나뭇가지라도 나타나면 어쩌시려고...." 놀란 마음에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담겨져 있는 메테우스의 걱정스런 말에도 그저 싱긋 미소하나로 일관하는 싸이였다. 어찌 메테우스의 저런 충심을 모르겠는가?! 얼마 전, 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메테우스와의 감격적인 재회에서 그가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가를 한눈에 알게 된 싸이였던 것이다. 지금은 깔끔하게 면도도 하고 새로 받은 갑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싸이를 다시 만나게 된 그 순간의 메테우스는 그야말로 몰골이 말이 아니였던 것이다. "후후. 알았어. 그러니깐 메테우스만이라도 잔소리는 하지 말아줘. 알았지?" "예? 옙. 전하. 소신이 실수를 한 것 같사옵니다. 죄송합니다." 싸이의 말에 급히 실수를 깨달은 메테우스는 급속도로 허리를 숙이며 자신의 주군에게 최대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싸이는 그런 메테우스의 모습에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 것으로 이 상황을 끝내야만 했다. 더 이상 이야기 해봤자 그와 실랑이를 벌리는 꼴이 될 테니깐 말이다. 우직한 성품의 메테우스를 이기기 위해선 아직까지 본연의 실력이 부족한 어린 싸이였기 때문에, 잠시 그의 진심 어린 모습에 고마워 하면서도 그를 좀 더 편하게 해 줄 방법이 없을까를 내심 고민하게 되는 싸이였다. 메테우스는 자신의 어깨에 살짝 올려지는 어린 주군의 손길에 절로 심장이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이런 순간이 있기까지 그의 주군과 자신은 많은 시간들을 떨어져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자신이 더욱 충심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어리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주군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어린 나이 답지 않는 의젓함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더욱 어린 주군이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메테우스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이 자랑스런 갑옷과 무구들이 전부 저 어린 주군의 배려 덕분인 것을 잘 알고 있는 메테우스는, 이제부터 주군의 손발이 되어줄 것을 요구한 어떤 분들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려야만 했다. '그래. 어쩌면 나란 놈이 저 분의 경호 기사가 된 것만으로도 내 평생 자랑스러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 미천한 놈의 실력을 높이 사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 할텐데 이런 명예스러움을 가지게 해 주시다니.....' 고개를 숙인 채 가슴에 손을 대고 서 있던 메테우스는 자신의 오른 손바닥 부위에 자랑스럽게 새겨진 어떤 가문의 문장을 다시 한번 유심히 매만져 보았다. 하얗게 날이 선 검을 두 날개를 활짝 펼쳐 감싸안는 은색의 드래곤 문양과 함께 테두리 전체를 흰색의 성스러운 카이스트 방패로 새겨진 문장. 그 옆에 또 다른 모습으로 새겨진 두 번째의 문장엔 전설 속의 영조 콘돌이 날렵한 모습으로 살아 움직이듯 음각이 되어져 있었고, 콘돌의 날카로운 발톱에 새겨진 검과 방패의 문양은 더욱 더 메테우스를 흥분에 차게 만들어 주었다. 이 두 개의 문장에 담겨진 뜻을 알고 있는 자들을 앞으로 만나게 된다면 지금 메테우스가 느끼고 있는 감동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바로 이 문장들은 자랑스런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임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그 옆에 자리한 문장은 지금까지 신비로 감춰져 있는 베이직 헌터들의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베이직 헌터들 중 최고의 명예로운 헌터라는 의미로 새겨진 대형 G자는, 메테우스 자신조차도 얼떨떨하기만 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이제 고작 14살밖에 되지 않는 어린 주군이 최고의 베이직 헌터라는 사실은 이런 주군을 모시는 자의 입장에선 매우 자랑스런 명예였다. 그로 인해 더욱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생겨나는 메테우스 였다. 하긴, 메테우스가 어찌 그런 사실들을 알 수 있겠는가. 최고의 고룡들 중 한 명(?)인 갈리아스 옹을 죽음의 길까지 인도했던 에이션트 급의 블랙 드래곤을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간 인물이 어린 싸이였다는 것은 메테우스로서는 절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또한, 메테우스가 지금 입고 있는 갑옷들과 무구에는 블랙 드래곤 밀란이 한쪽 손 대용으로 사용하던 최강의 금속들이 다소 녹여져 있다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메테우스는 그저 인간의 기사로써는 최초로 이 세계 최고 가문인 갈리아스 가문에 가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랑스러울 것이다. 또한 메테우스 자신도 그런 위대한 가문의 수장이라고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이런 과한 선물까지 선사 받았다는 자체만으로도 평생동안 만족하면서 명예롭게 살수 있었다. 그것도 갈리아스 가문의 현 수장격인 갈리아스 옹에게 겁없이 덤볐다는 걸 상기해보면 자신이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그땐 내가 미쳤던 게 분명해.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분께 불경을 저지르고도 살아남길 바랄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어디론가 사라지는 싸이의 뒷모습을 뚫어지듯 바라보며, 메테우스는 평소의 버릇대로 왼손에 잡힌 새로운 검의 손잡이를 거세게 움켜쥐며 그 속에서 자신의 지난 잘못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메테우스의 옆모습을 살피고 있던 쥬엘은 이 두 주군과 기사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살며시 짓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6 - 2 휘이이잉. 한차례 먼지를 일으키는 바람이 대지를 휩쓸었다. 살며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휘날리던 싸이는 곧이어 자신의 팔찌를 매만지며 잠시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제우스. 나직한 싸이의 말에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재빨리 나타나는 제우스였다. "주인님." "이제 시작해야겠지? "후후후. 알겠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웃음이 제우스의 목소리에 묻어났다. 어찌 생명이 없는 헤비 워커가 저런 웃음을 짓는단 말인가.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을 창조해낸 주인을 눈앞에 두고 있기에, 제우스는 오늘 또다시 주인의 힘없는 어깨를 살짝 매만지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매만지는 것이지, 몸 안으로 태우기 위해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는 게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이런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행하는 제우스는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분들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마치 가는 금이 전신에 걸쳐 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금들 사이로 연신 주변의 마나들이 빨려 들어가면서 제우스의 주변엔 강한 기운들이 꿈틀거렸다. 곧이어 제우스가 일으킨 환한 빛 무리 속에 감싸인 채 굳건히 대지를 밟고 서 있던 싸이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또한 싸이를 태운 제우스도 나타날 때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신비함 그 자체만 같았다. 예전에 보던 제우스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듯 보이는 순간이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품안에 들어온 이 작고 가냘퍼 보이는 주인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어디 그뿐이랴? 스스로 무적군단이라고 칭하는 시커먼스 군단 전체를 이렇게 만들어 준 주인에게 한없는 충성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이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시커먼스들을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검은 빛이 도는 장갑들 사이사이로 은색의 가는 균열이 가 있는 모습은 예전에 우락부락한 모습과는 천지차이였다. 마치 섬세한 도공의 작품과도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살짝 빛이 나는 은색의 균열 속에선 지금도 대자연의 기운들이 연신 흡수가 되고 있었고, 그 기운들을 받아들여 힘차게 움직이는 마나 하트는 더욱 더 성난 소리로 날뛰고 있었다. 이제 이들을 가로막을 만한 존재는 이 땅엔 아무도 없다는 것은 그들이 현재 내뿜고 있는 기운들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두 다리로 굳건히 선 대지 위에서 온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힘들에게 맞설 수 있을 만한 기세가 절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무적에 가까운 모습들이었다. 제우스는 이런 자신을 바라보며 서서히 전열을 갖추고 있는 동료 부하들에게 시선을 주며, 곧이어 주인의 뇌파와 하나가 되어진 공명석을 통해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한마디하자면, 이들이 공명석이라고 이름을 붙인 신비한 구체는 결코 물질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기운이 뭉쳐 있는 순수한 대자연의 기운일 뿐이었다. 이런 기운을 왜 공명석이라 칭하는 것일까? 이건 어디까지나 그 공명석이 있던 자리가 예전에 마령석이라고 불리는 물질이 있던 자리여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리라. 마령석. 일명 메모리얼 알뤼먼트(allurement)라고도 불리는 이 마령석은 헤비 워커라는 무장강병에겐 절대 없어선 안되는 매우 중요한 부속이었다. 이곳을 통해서 모든 명령이 전달이 되고 행동 하나 하나에까지 모든 명령체계를 담은 마령석의 위력은 반드시 필요한 주요부품이었다. 때문에 스스로의 자아를 넣어줄 수 있는 이 마령석의 가치는 희귀성을 제쳐놓고서라도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매우 값비싼 물건이었다. 그 크기에 따라, 또한 메모리 시킬 수 있는 용량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마령석은 이 곳 물질계에선 거의 나지 않는다고도 전해져 내려오며, 간혹 신비한 우주에서 작은 별똥별들이 떨어져 이 마령석으로 변한다는 일설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곳의 마법 수준은 순수한 마령석을 구하지 못한 일부 마법사들에 의해 급속도로 발전을 했으며, 그로 인해 인공 마령석의 발견은 그야말로 놀라운 쾌거였다. 하지만, 인공 마령석이 가진 용량은 극히 미약해서 지금 제우스와 같은 초거대 용량이 필요한 상급의 헤비 워커에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제우스의 남다른 자신감은 이로 인해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만나본 레지나급의 헤비 워커와 그당시 자신의 힘에 대한 차이는 약간의 오차를 빼고라도 0.5배정도 파워차이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마 직접 부딪혀 보지 않아서 그렇지, 한판 거하게 붙으면 혼자서 두 세대는 너끈히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가지고 놀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자랑스런 주인님 덕분이었다. 자신이 이런 느낌인데 부하들은 오죽하겠는가. 모두들 눈빛이 살아 있다는 게 전신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주인님이 과거 자신들을 단련시키던 모든 행위들이 오늘 이렇게 일체감 있는 공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눈빛하나만으로도 각각 자신이 지닌 최강의 무기를 이용한 파상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는 것 하나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주인님의 뇌파와 하나로 공명이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선 그야말로 집단전에서 최강의 전술을 사용할 수 있는 시커먼스 군단이라고 자부하는 제우스였다. 강한 방어력을 지닌 몇몇 시커먼스가 앞에서 모든 공격들을 받아내면 그 뒤에 날렵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시커먼스들이 적의 뒷통수를 노리는 이 공격전술 모두가 바로 주인과 하나로 이어진 유대감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주인님이 자아의 세계에서 나오면서 생긴 일들이었다. 그때 그 숨막히던 순간을 제우스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바로 생명이 없는 시커먼스 군단 전체가 그 날 죽음을 맞이하고 또다시 새롭게 태어난 날이므로......, 그리고 주인님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시점의 날이었기 때문에! 또한 제우스가 지금 하려고 하는 모의 전투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느 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을 미리 짜고 그때 그때마다 주인의 명에 따라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가지는 시커먼스 군단의 등장은 일대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런 기본적인 전술을 미리 마령석에 입력시킬 생각도 못했던 갈리아스 옹조차도 손자의 이 화려한 테크닉 전술에 크게 흥미를 느끼곤 이들에게 매일 마다 모의 전투를 하게끔 강한 약조를 받아버렸으니 오죽하겠는가. 그 결과 싸이는 매일 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육중한 시커먼스들을 이끌고 시커먼 동체에 구슬 땀(?)을 빚어내게 하는 훈련을 손수 지휘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이 대륙과 물질계에 어떠한 결과로 나타날지 미처 모르는 상태로.........., ********* 쾅쾅. 타타타탕. 전쟁터에서 울려 퍼지는 요란한 말발굽 소리는 이미 과거의 일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소란한 함성과 그 뒤를 이어 들리는 폭발음들은 그야말로 이곳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실감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전쟁터에서 생전 처음으로 죽음과 맞선 자들은 급격하게 날뛰는 심장의 고동소리에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쫘악. "아악." 지금 어디에 정신을 놓고 있는 거야? 정신 못 차려?" 상관의 채찍질에 깜짝 놀란 리플레스는 다급한 비명성을 토해낸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나마 세찬 비명성을 조금이나마 걸러주는 투구를 쓰고 있었기에, 주위 동료들에게 겁을 집어먹은 자신을 감출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내심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전쟁은 이런 상념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 연신 뿌연 연기를 토해내는 적군의 대포와 그 앞에 길게 쌓아 놓은 돌벽과 나무 방벽들. 비록 엉성하게 급조한 돌벽과 나무 방벽들이라곤 해도 그녀의 눈에는 죽음이 눈앞에서 스쳐가는 이 현실이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연신 연기를 내뿜는 적들의 대포는 그녀와 동료 기사들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날아올지 모르는 시커먼 쇠덩어리에 자신이 피에 절은 육포가 될지 모른다는 심각한 공포심을 안은 채......! 그 뒤를 따라 상대편 진영에서 살짝 머리를 내민 채 긴 쇠뭉치를 들고 서 있는 적병들은 자신들이 조금만이라도 앞으로 전진하면 연신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건 너무도 심각한 전황이었다. 니플레스 그녀가 어디 보통 여자인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대한 기사로 둔 훌륭한 레이디인 것이다. 지금껏 훌륭한 가문에서 자란 그녀답게 대륙의 새로운 학문을 대부분 접해본 신여성이다. 진짜 이곳 사회에서는 몇 안되는 인텔리 레이디가 바로 니플레스 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녀가 가진 해박한 지식들은 여기 서 있는 여러 동료 기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지금 적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신무기는 너무도 놀라운 것들이었다. 이쪽의 기사들이 가진 장비로는 도저히 접근전을 펼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대포와 소형 대포로도 불리는 라이플들은, 그녀와 같이 기사의 직위를 가진 사람들에겐 너무도 무서운 공포 그 자체였다. 그녀가 예전에 아버지로부터 배운 전투는 오직 치열한 몸싸움과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강한 의지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었다. 간혹 접근전시 여러 적들에게 둘러싸인 기사들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스나이퍼(석궁수)들만 아니면 큰 문제는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의 실력만 확실하다면 절대 패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는 그녀의 이런 생각들을 한순간에 날려 버리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적이 쏜 긴 라이플 한방이면 미처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도 저 라이플을 든 자들이 그동안 악명을 떨치던 전장의 스나이퍼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자들이 바로 기사들이었고, 기사들은 전쟁터에서 제일 위험한 존재들인 스나이퍼들을 보이는 족족 잔인하게 학살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헌데, 지금은 그런 학살을 해보기도 전에 기사들이 먼저 죽어 나가는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기사의 신분으로 생애 최초로 전쟁에 참여한 니플레스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다가서면 연신 대포로 주변을 초토화시키고, 이를 악물고 더욱 더 전진을 하면 앞에서 스나이퍼들이 긴 라이플로 자신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두고서도 뒤에선 아무런 명령이 없었다. 오로지 전진만을 외쳐대는 것이다. 그런 관계로 니플레스는 긴 참호 속에 머리를 파묻은 채, 동료 기사들과 돌격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심각하게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들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처 복수도 하기 전에 이곳에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기에......., "전황은 어떤가?" "넵. 아직 별다른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적들의 포격에 많이 힘든 것 같사옵니다." "크흠. 나쁜 녀석들. 저놈들은 진정한 기사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인가?" "각하! 아무래도 저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무리들이옵니다. 그런 관계로....." 부관인 필립 경의 답변을 작은 손짓 하나로 끝맺게 하는 멜빈이었다. 벌써 이런 상황이 십 년 넘게 지속되고 있었다.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으로 적들을 몰아내면 한 두 달 후에는 또다시 똑같은 짓으로 침범을 해오는 적들이었다. 그런 그들의 목적은 뻔한 것이었다. 바로 이 드넓은 옥토를 욕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드넓은 대지를 물려주신 위대한 선조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적들을 물리쳐야만 했다. 해서 전 군함들을 동원해 적들의 보급로를 차단시키고 몰아내면, 저들은 또다시 잠시간의 휴식기간을 지닌 다음 또 쳐들어오는 것이다. 벌써 수백번이나 반복된 지친 전투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쪽이 제대로 반격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왕실에선 적들에게서 수거한 대포 및 작은 소화기들의 위력을 실감하고 몇몇 고위급의 마법사들로 하여금 획기적인 발명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적들은 그런 자신들의 노력을 언제나 수포로 만들고 있었다. 이쪽에서 제법 근사한 대포를 만들어 내면 저들은 그보다 한단계 위쪽의 무기들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위대한 마법사가 저들에게 있기에 저렇게나 놀라운 신무기들을 해마다 선보이는 것인지. 아마 잘은 몰라도 메르카 왕국에서 지난 십여 년 간 각종 신무기 개발에 쏟아 부은 황금들을 합치면 이 드넓은 라인크란트 평야지대의 수년간의 작황과 맞먹는 엄청난 금액일 것이다. 그런데도 적들을 아직까지 따라잡지 못하는 이 현실이 너무도 수치스러운 멜빈이었다. 그러나 멜빈은 결국 이 전쟁의 승리는 반드시 자신들이 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문제는 수중에 있는 헤비 워커 군단을 언제쯤 사용해야만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실 그 신비로운 방문자들만 아니었다면 벌써 수중의 헤비 워커 군단들을 총 출동시켜서 적들을 싹스리 해버렸을 멜빈이었다. 하지만 힘없는 일반병사들을 학살한 헤비 워커들의 기사들은 채 며칠이 지나기도 전에 잔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규율을 떠올려보면 쉽게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신비로운 방문자들에게 죽음을 당할 자랑스런 부하들의 안위 때문에 언제나 침묵으로 참아야만 하는 멜빈이었다. 결국 속은 쓰리지만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적들을 이 땅에서 밀어내고만 있는 그였다. 그런 멜빈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항상 승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단지 그 승리에 수많은 병사들 대신 많은 수의 헤비 워리어스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만 하기에 잠시 결정을 유보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과연, 그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면서 얻은 승리가 얼마나 값진 것일까? 그리고 적들이 과연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서 또다시 얼마 후에 침범을 할 것인가? 하는 머리 아픈 현실들이 기다리고 있는 관계로 이 눈앞의 답답한 현실에 치를 떨고만 있는 멜빈이었다. "돌격 준비~!!" 가까운 곳에서 지휘관의 진격 명령이 들리자, 니플레스는 다급히 손에 든 검을 움켜쥐었다. 아마 이대로 돌진을 한다면 그녀는 자신의 복수를 미처 다 하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죽음만을 가지게 되리라. "안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빠드득!" 옆에서 니플레스의 작은 목소리에 퍼득 고개를 돌리던 네이퍼는 잠시 의아한 생각에 그녀를 노려보며 또다시 진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뭔 소리야? 죽을 수 없다니..... 우린 기사야!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맞이하러 달려가야만 하는 기사! 오직 명예로움만을 생명으로 삼아 살아가는 기사란 말이다. 그런데 죽을 수 없다니..... 기사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는 것. 또 그 자리에서 죽음으로서 기사의 명예를 명예롭게 빛낼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우리 기사들만이 지닌 특권이건만, 도대체 뭔 소리란 말야. 게다가 이빨 가는 건 또 뭔 짓이지?" 갸우뚱. 약간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내심 속에 있던 말을 시원스럽게 내뱉을 걸로 만족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네이퍼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대로 진격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은 뻔한 상황인데....... 인간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엔 아직까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젊은 기사였던 것이다. 이런 네이퍼의 수치심을 알고 있었을까? 귀를 쫑긋 세우고 대기하던 모든 기사들에게 곧이어 울려 퍼질 진격 명령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금새 떨어질 줄 알았던 진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최일선에 서서 진격을 해야만 했던 젊은 기사들은 의아한 마음에 뒤를 돌아다 봤다. 그런 그들의 눈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기사들을 보러 나온 최고 사령관 로멜쥬 대공의 모습이 먼발치에 나타난 것이 보였다. "으음......." 여기저기서 동시에 이를 악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이러시면 안됩니다. 젊은 기사들의 동요를 생각하소서." 맞사옵니다. 지금 이곳은 적들의 사정거리 안에 있사옵니다. 그러시니 제발....!" 순식간에 로멜쥬 대공의 주변을 방어하려고 들면 그보다 앞서 바람처럼 눈앞에서 사라지는 로멜쥬 대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놀란 눈으로 그를 찾으려 들면 어느새 자신들의 앞에 서서 오만히 적들을 노려보고 있는 로멜쥬 대공의 등이 눈에 들어 왔다. 그러니 참모를 비롯한 경호기사들의 눈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허나 멜빈은 그런 그들의 모습은 전혀 생각도 안한 채 눈앞의 적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만 있었다. "이익. 나쁜 놈들. 저 놈들의 못난 욕심 때문에 우리 조국의 젊은이들이 피흘리며 죽어가야만 하다니..... 됐다. 치워라. 그까짓 쇠조각들로는 나를 어쩌지는 못한다. 단지...... 단지 저들에게 이 억울함을 돌려줄 길이 없음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꽈두두둑. 건틀렛 사이로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금새 부풀어 오른 멜빈의 주먹이 보였다. 이런 멜빈의 모습에 비로소 주변을 물리며 전면의 전장터를 같이 응시하기 시작하는 경호 기사들과 참모진들이었다. 어찌 그들 또한 멜빈의 속마음을 모르겠는가. 자신들도 그와 똑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단지 방법이 없기에 참고 견딜 뿐인 것이다. 그 때문일까? 그들의 주변엔 금새 말로는 표현 못할 미묘한 기운들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이봐! 어딜 움직이려는 거야? 가만히 있어." "어어....." 삽시간에 주변에서 온통 소란스러움이 묻어났다. 그런 소란스러움을 애써 무시한 채, 니플레스는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녀의 뒤에서 애처로운 목소리들이 아스라이 멀어져 갈 즈음 니플레스는 심장이 터질 듯이 아파옴에도 불구하고 힘찬 기합을 내 질렀다. "이야야얏!" 그녀의 작은 기합에 놀란 것일까? 금새 주변으로 몰려드는 경호 기사들의 검들이 숱한 빛들을 뿌려내고 있었다. 챠챠챠챠챵. "멈춰라!" "이.......이 무례한........" 거의 동시적으로 들려왔다. 로멜쥬 대공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그 앞을 막아서던 경호기사들의 성난 목소리가 차츰 전장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미처 검집에 넣어진 검을 반도 못뽑아 낸 니플레스는 목에 대여진 검들을 건틀렛으로 밀어내며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각하! 소신 니플레스 무례하나마 이렇게 인사를 드리옵니다." 뭇사내들의 시선을 받으며 달아오르는 뺨을 작게 감추던 그녀는 이내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힘차게 들어 제켰다. "무례하다. 감히..... " "됐다. 그만 하라." "하오나....... 각하!!" 스윽. 뒤를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모든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는 멜빈이었다. "그만하라고 했다. 그래, 그대는 무슨 일이 있기에 나를 만나고자 했던 것인가?" "가......각하!" 어린 기사가 분명한 자신에게 이토록 신경을 써주는 멜빈의 모습에 갑자기 가슴에 뭔가가 와 닿는 듯 해 금새 울먹거리는 니플레스였다. 하나 그녀는 지금 목숨을 내건 채 이 자리에 와야만 했던 자신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해서 미처 뽑지도 못한 검을 힘차게 뽑아 내며 자신의 무릎 앞에 깊이 꼽았다. "각하! 이 못난 신하 니플레스 각하께 한가지 건의가 있사옵니다." "허허허허.....!" 어이가 없었음인가? 잠시 먼 하늘을 바라다보며 작게 웃음을 보내는 멜빈이었다. 이윽고 시선을 니플레스에게 보내는 멜빈의 눈가에는 작은 동정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래, 뭔가? 그대의 뜨거운 가슴을 생각해 내 이 자리에서 들어줄 수 있는 일들은 반드시 들어주도록 하마." "가.......감사하옵니다. 각하!!" 쿵쿵쿵. 깊게 눌러쓴 투구를 땅바닥에 쳐박으며 니플레스는 고운 눈가에 작은 이슬방울을 매달았다. "각하. 소신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주소서." "무슨 기회? 말을 해보라." "넵. 소신에게 부디 너그러운 아량을 베푸사 헤비 워커 B급 한 대만 지급해주소서." "호오, 그대도 헤비 워리어스 인가?" 잠시간 눈빛이 되살아나는 멜빈이었다. 하지만 그의 귀로 들려오는 소리는 금새 그의 눈에 작은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못난 소신 아직까지 워리어스의 자격은 가지지 못하였사오나 다행히 집안의 일로 몇 번 타본 적이 있사옵니다." 제법 기대를 했었지만 생각과는 다른 말들이었다. 그로 인해 멜빈의 이마에 작은 주름살이 잡혔다. 하나 눈앞에 죽음을 각오한 채 다가온 젊은 기사에게 자신의 약속을 저버릴 멜빈이 아니었다. "좋다. 그대가 비록 헤비 워리어스가 아니라곤 하나 B급 정도는 내 힘으로도 지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대는 반드시 헤비 워커가 필요한 그 이유를 내게 말을 해줘야만 할 것이다." "그...... 그것이......." 니플레스는 다급히 주변 인물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끝내 말문을 열지 못했다. 주변에 서 있는 쟁쟁한 인물들의 이력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도저히 자신의 계획을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비웃음도 걱정이었지만 아직까지 생각으로만 정리했던 일들이 확실히 효과가 있을것이라곤 장담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멜빈은 그녀의 눈에서 이는 수많은 상념들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젊은 혈기를 내세워 생각들을 정리하다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좋다. 내 그대의 모습을 지켜보마. 경들." "네, 각하." "저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라." "네. 각하!" 필립 경이 제일 먼저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은 채 크게 대답을 했다. 그 또한 멜빈이 뭔가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반응에 저마다 놀란 표정을 짓던 여러 참모들도 이내 필립 경의 시선을 쫓아 니플레스의 가슴께로 시선을 던지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대, 니플레스 주니어라고 했던가?" "네.....넵. 각하!" "그대의 아비를 내 알고 있다. 그대 또한 자랑스런 조국의 기사로 태어나길 진심으로 빌어주마. 그대의 아비에 걸맞게 그대 또한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러 가보라." "네.........넵. 소신 목숨을 다 바쳐 기필코 각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사옵니다." 부들부들. 아마도 아버지는 이런 기분 때문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존재의 눈빛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토록이나 가슴이 터질듯한데 어찌 조국의 최강 기사단 출신인 아버지가 이 기분을 몰랐을 것인가. 주르륵. 한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내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던질 때가 가장 멋지다고 했던가..... 내 비록 여자의 몸이라고는 해도 이토록 가슴이 떨려오는데..... 반드시.... 반드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자랑스런 딸이 되리라.' 그녀의 떨리는 어깨에 잠시간 손길을 내밀던 멜빈은 그녀의 격정 어린 감동을 한동안 다독여주는 걸로 그쳐야만 했다. 더 이상 말을 나눈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의 주변에서 작게 웃음을 던지던 필립 경은 작고 가녀린 어깨를 연신 떨고 있는 니플레스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짓고만 있었다. 신룡의 후예 6 - 3 쿵쾅쿵쾅. "이씨. 이것밖에 힘을 못내? 너 죽을래?" "주....주인님! 하지만 여기서 더 힘을 쓰게 되면......" "시끄러! 넌 쟤들을 어떻게 보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있는 힘껏 휘둘러야만 저놈들도 자기들의 힘을 제대로 쓸 것 아냐! 그래야 제대로 된 전력이 나오는 거야!!" "그......그래도....." 제우스는 순간 식은땀이 나는 듯 했다. 어찌 주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지금 휘두르고 있는 방패와 검에는 잔뜩 마나들을 머금고 있었다. 눈앞에 거대한 산이 있다면 단숨에 커다란 흠집을 낼 정도로 강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헌데도 주인은 더욱 더 강한 힘들을 원했다. 그러다 만약에라도 주변 동료들이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힘으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된다면..... 아마도 꽤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그런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제우스의 안에 태연히 앉아서 온갖 생각들을 정리하며 별의 별 짓들을 시키고만 있었다. 이건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도 제우스는 해야만 했다. 오로지 주인의 명에만 따르며 살아가야 할 존재가 바로 자신이었기에.....!! 이건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끄응, 주인님! 제발......" "시끄러! 너 미려의 도끼라고 했지? 도끼질을 하려면 제대로 하란 말야. 그따위 힘없는 손짓으로 제우스한테 흠집이라도 내겠어? 똑바로 못해!!" 연신 제우스의 몸 안에서는 이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제우스보다 더욱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미려의 도끼. 이 미려의 도끼가 바로 시커먼스 군단의 2인자였다. 현재 시커먼스 군단 중에서 제일 큰 몸집을 자랑하는 미려의 도끼는 연신 자신을 재촉하는 주인의 명에 시커먼 얼굴이 더욱 더 검붉어지고 있었다. 아마도 전신의 힘들을 얼굴 쪽으로 밀어 올린 탓일 것이다. 하지만 싸이는 이걸론 도저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 대 일 대결에선 이들을 이길 자는 없다고 분명히 할아버지가 말씀했었다. 그럼 어떻게 될까? 인간이라는 종족은 분명히 하나의 힘이 안되면 둘. 셋으로 밀어붙이기를 할 것이다. 일명 다굴이라는 표현으로.........!!! 그럼 분명히 각자의 전투에 연연하기보단 적들에게 단체로 뭇매를 두들겨 맞게 될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자신과 함께 전투의 최일선에 서게 될 시커먼스 군단들은 수없이 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두들겨 맞을 께 뻔했다. 그럼 그들이 제아무리 최강의 병기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간다면 못 버텨낼 것이다. 제아무리 천하장사라곤 해도 뭇매에는 버텨내질 못하다는 것이 바로 싸이의 생각이었다. 이건 과거의 생각들이 많이 포함된 개인적인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인간들의 습성은 크게 변하질 않았다고 나름대로 판단한 싸이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안되면 분명 더 강한 자를 불러왔고, 만약 그 자로도 안된다면 인간들은 여럿이 힘을 모아 한 명에게 집단적인 폭력을 행사했었다. 이게 바로 지금까지 숱한 인간들을 경험한 라빈의 기억들이었다. 그런 기억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싸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며 최악의 상황으로만 시커먼스 군단들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끄응. 할 수 없다. 전신의 힘들을 개방하자. 이건 주인님의 명령이다." 제우스의 답답한 듯한 명령에 순식간에 아공간으로 형성된 듯한 공간에선 일대 장관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휙휙. 순식간에 두세번의 도끼질이 난무하고, 미처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꽈꽝. 움찔..... 휘익. 챙챙... 챠앙. 온갖 시끄러운 소음들은 이곳에 다 모아 놨던 모양이다. 분명히 한번의 휘두름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잔영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결국 그 결과는 두 번과 세 번에 걸친 소음으로 이어졌다. "이것들 봐라. 이제까지 전부 자기 실력의 반도 안보였단 말이지?" 내심 놀란 건 싸이였다. 제우스의 몸체 안에 앉아 있으면 밖의 모든 풍경들이 여러 개로 구성된 수정구들을 통해서 보여진다. 그 수정구를 눈살을 찌푸리며 응시하다 보면 눈앞에서 방패를 때리고 있는 도끼파 부두목의 도끼질이 잔영과 함께 세 번에 걸쳐서 방패를 가격하고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이건 모두가 뛰어난 영상전달 능력을 갖춘 수정구 덕분이었다. 더구나 서열이 높을수록 민첩한 행동들이 보여지고 있었다. 이건 최하위로 알려진 시커먼스조차도 한번의 칼질에 두 번의 가격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커먼스 군단의 진정한 실력을 몰랐던 싸이로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어쭈, 도대체 어떻게 휘두르는 거야? 분명히 한번밖에 안 휘둘렸는데 왜 두 세 번씩 가격을 하는 거지? 이것들 봐라. 그럼 지금까지 연습했던 건 모두 완전히 장난이었다는 거네?!" "그.......그게....." "시끄러! 넌 지금 이 상황들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도 나한테 일언반구 말 한마디 안 해줬잖아!" "그..... 그게 주인님! 저들은 그저 주인님의 명령에만 따르다 보니....." "흥. 이젠 네 말도 안 믿을 거야. 이것들이 감히 나를 가지고 논다 이거지?" "끄응." 답답했다. 주인의 토라진 모습을 보면서 뭔가 시원하게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절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품안에 앉아 있는 주인이 어디 보통의 주인인가? 인간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신성한 존재였고, 드래곤으로 본다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운을 지닌 주인님이셨다. 이런 주인이 잔뜩 골이 난 표정을 보임에 따라 제우스는 앞으로 닥칠 앞날이 그저 걱정될 뿐이었다. '제길, 도대체 그때 우리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거야? 분명히 그때 우린 생명을 유지시켜주던 마령석들이 파괴됨에 따라서 모든 기억들을 잃어버렸으니.....' 이 모든 게 그때 일어난 일들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정리를 하는 제우스였다. 분명 그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는 잘 몰라도 시커먼스 군단들은 모두 죽음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찾았을 때에는 품안에서 새근거리며 잠이 든 주인의 모습을 최초로 봐야만 했던 제우스였다. -이봐. 미려의 도끼질. 넌 왜 그런 거야? -끙, 대장. 나도 어쩔 수 없었오. 우린 그저 주인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지. 만약 다른 맘먹고 까불다간 어떻게 될지 대장도 잘 알잖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주인님 표정 느껴지지?! -제길. 너무 똑똑히 느껴져서 탈이오. 이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 그 일이 있은 뒤부터 너무 심각해졌단 말이오. -휴우, 도대체 그때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쳇, 대장도 모르고 있는 걸 낸들 어떻게 알겠소? 단지 그때 하얀빛들이 우리 몸 안에서 일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도 기억이 없소. -으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넌 그때 느꼈던 다른 느낌들이 없어? -아..... 혹시 폭주의 일섬. 그놈이 말하던 그것 말이오? -그래, 넌 그런 느낌 없었어? -음, 그건 나도 확실히 잘 모르겠오. -이런 둔해빠진 놈! 도대체 자기 몸 안에서 일어난 그 느낌도 몰랐단 말야? -쳇, 그럼 대장은? 대장은 순식간에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가 버리는 그 순간 속에서 똑똑히 그 느낌들을 간직하고 있소? 퉁명스럽게 질문을 던지는 도끼파 부대장의 말에 잠시 침음을 토하던 제우스였다. 어찌 저 말이 틀렸다고 하겠는가. 단지 자신은 그 마지막 순간에 전신을 찢어발기는 마나들의 거센 소용돌이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던 도끼 녀석도 그 느낌이 싫어서 저렇게 퉁명하게 내뱉고 있을 것이다. -하긴, 나조차도 내 몸을 찢어발기는 그 느낌이 너무도 또렷이 기억된다. 휴우, 그건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이다. 하지만....! -하지만....... 뭐요? -분명 그때 무슨 일들이 우리 몸에 일어난 것만은 사실이잖느냐. -쳇, 나도 그정돈 말할 수 있소. 단지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난거란 말이오? 그 때문에 주인님께 이상한 소리만 듣게 생겼는데...... -끄응, 그때 분명히 이상한 일이 벌어진 건 사실이야. 내가 다시 기억을 되찾았을 때..... -뭐요? 얼른 좀 가르쳐주시오. 대장이 우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기억을 되찾으셨잖소. 그러니 제일 먼저 달라진 것들을 알아챘을 테고..... -그래, 내가 제일 먼저 기억을 되찾은 건 맞아. 하지만 나도 그당시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내게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채지 못했다. 더구나 주인님께서 내 품에 계셨는데.... -제길, 아마 대장 성격에 주인님의 안부부터 먼저 챙겼겠지. 그다음에는 내가 기억을 찾아서 깨어났을테고..... -맞다. 그래서 더욱 알쏭달쏭하다는 것이다. -에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제일 강하다는 대장과 나. 그리고 서열 15위까지는 정신 없이 깨어났는데........ 왜 유독 허약해빠진 저 녀석들만 그때 그 느낌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란 말이오? 이거 신경질이 너무 나서 미치겠소. -끄응. 그래도 할 수 없지. 우리들이 힘만을 추구했다면 저 녀석들은 섬세한 테크닉을 주로 사용했던 놈들이야. 그러니 우리보다 세심한 그 무언가가 있지 않았겠어? -후우, 앞으로가 걱정이오. 분명히 주인님 성격상 우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가지고 의문을 표하시는데...... 만약 제대로 된 변명을 못하게 되면........ -그렇겠지. 십중팔구는 우리들 중 한 명이 해부를 당할지도........ -끄응...... 대장! 그렇게 답답하게만 있지 말고 제발 우리 좀 살려주쇼. -이익...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단 말야! 이건 오로지 주인님만의 특권이시잖어!! 순식간이었다. 제우스와 미려의 도끼질로 알려진 부대장이 나눈 대화에 모두가 침울한 표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뽀족한 돌파구가 없었다. 모든 건 주인님의 마음대로였으니..... 또 하나 지금 대장과 부대장이 나눈 대화를 모든 시커먼스 군단이 다 알아듣고 있었다. 이 모든 건 주인이 깨어나기 전에 스스로의 안부를 묻다가 발견한 새로운 대화통로였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한지는 시커먼스 군단 아무도 몰랐다. 그저 걱정스런 마음에 주변 동료들의 안부를 묻는데 저마다 한마디씩 던진 말들이 이렇듯 새로운 대화통로로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단지 이 새로운 대화통로는 주인님과는 별도로 생긴 듯 보였다. 해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도 연신 성이 난 표정의 주인을 그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생생할 정도로.........!! 이 모든 건 주인을 태운 제우스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있었기에 시커먼스 군단은 앞날에 낀 시커먼 먹구름이 이 순간 제일 큰 걱정거리로 떠오르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6 - 4. 쾅쾅. 풀썩. 강한 쇠뭉치의 완력에 땅속 깊이 묻혀 있던 돌무더기들이 잘게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흙먼지들이 뿌옇게 솟구치고 있었다. 하지만 헤비 워커 중에서도 자질구레한 뒤처리조에 속하는 'A' 급과 'B'급의 헤비 워커들은 연신 망치질과 곡괭이 질을 중지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예, 아무래도 한시간 정도는 더 걸릴 듯 합니다." "흐음, 그럼 그동안 목책과 돌벽들의 방어는 충분하겠죠?" "예,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 뭐죠?" 니플레스는 자신이 타고 있는 헤비 워커와 그 앞에 서서 연신 현장을 정리하고 있는 조장의 모습을 통해서 이들이 뭔가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냐고 의문을 토하면 차라리 속이 편할 듯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과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마자 급히 현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조장의 모습에서 니플레스는 차마 뒷말을 들을 생각은 포기해야만 했다. '음, 아마도 이들은 공포에 떨고 있을 거야. 나 또한 이 방법으로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일단 시작해 보는 거야. 나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워리어스들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끝마무리만 한다면..... 분명히 이들의 공포도 조금이나마 풀어질 수 있겠지' 내심 잘게 떨려오는 공포를 느끼고 있는 니플레스였다. 어찌 그녀가 그 유명한 워리어스들의 법칙을 모르겠는가. 그녀의 아버지 또한 제국의 상급 워리어스 출신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과거의 일들이지만, 한때 황제의 근위대 출신이었던 아버지를 둔 니플레스로서는 어릴 적부터 숱한 전설과 함께 모든 기사들의 꿈이자 동경인 워리어스에 대해 귀가 닳도록 이야기 들었던 것이다. 그 중에 제일 겁이 나는 부분이 바로 지금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신비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출현. 그들과의 조우를 끝낸 워리어스들은 항상 잔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또 다른 전설 속의 이야기들. 한때 대륙 최강이자 인간의 문명을 가장 잘 발전시킨 한 제국의 몰락도 모두가 그들의 출현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니플레스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눈앞에서 약간은 허둥거리는 이들의 모습에 측은함 마저 느끼는 그녀였다. 하지만 니플레스는 더 이상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빠져 있을 수 없었다. 곧이어 그녀의 곁으로 멋진 헤비 워커 한 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후후, 안녕하신가." "아.....예! 안녕하십니까. 베르미스 자작님." "훗, 이봐. 여긴 전쟁터야. 그런 예의는 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나 챙기라고." "네에? 넵. 죄송합니다. 연대장님." 최대한 절도 있는 모습으로 상관에게 인사를 올린다는 것이 그만 습관에 길들여진 탓에 우아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냈다. 한데도 눈앞의 상관은 그런 일에는 일절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편안한 지적을 해주었다. 해서 급히 절도 있는 모습으로 인사를 올리는 니플레스였다. "흠, 내가 괜스레 왔나? 이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왔건만....." "그..... 그보다는......" 눈앞의 상관이 친히 도움을 주러 왔다는 사실에 급격히 놀란 표정을 짓는 니플레스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에는 상관의 뒤에 길게 늘어선 전투형 헤비 워커들의 모습이 더욱 놀람을 전해주고 있었다. "왜? 저 친구들 때문에?" "예? 예. 아무래도 이곳에는 전투형 헤비 워커들은 필요가 없는 상황입니다. 헌데도 이렇듯 모습을 들어내시는 게...." "쿡, 별 것 아니니깐 신경 쓸 것 없어. 그대 니플레스 주니어라고 했던가?" "넵. 제국 12군단 소속 제 8사단 27연대 3대대 분대장 니플레스 딘 칼베르 레빈크라인 Jr.입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비로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낸 니플레스였다. 지금까지 인사가 늦었던 것은 모두 눈앞의 상관의 편안한 대화와 함께 건내온 질문 탓이라고 생각을 해도 여전히 자신의 실수에 얼굴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하하. 그렇게 군기가 든 모습은 그대에겐 어울리지 않아. 난 그저 편안하게 그대의 일을 도우러 왔을 뿐이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날 박대하진 말라고!" "예? 아닙니다. 이건...." 상대가 큰 웃음으로 손을 휘휘 젓는 모습을 수정구를 통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니플레스가 타고 있는 헤비 워커라면 그저 전투가 끝난 다음에 뒤처리를 전문으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습이어서 상체가 외부에 노출이 된 형태였다. 하지만 상관들의 명령을 받기 위해서 가슴께에 달려진 연락용 수정구만은 최상급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보다 못한 'A'형의 헤비 워커는 말만 헤비 워커였지 인간의 몸에 조금 더 큰 갑옷으로 뼈대만 입혀 놓은 형국이었다. 그런 탓에 니플레스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만해도 몇 번 타본 'A'형의 헤비 워커와 지금의 헤비 워커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거대한 전투형 헤비 워커는 분명 'E'급의 개조형이었다. 이런 거대한 헤비 워커는 난생 처음 접해 본 니플레스였기에 거대한 헤비 워커 안에 있는 상관의 명령에 잔뜩 긴장을 한 모습이었다. "하하. 내가 좀 과했나? 하지만 말야. 자네도 나에 대해선 어느 정도 들었을 테고, 나와 여기 있는 내 동료들은 자네의 건방진 버릇은 확실히 뜯어 고쳐줘야만 한다고 결정했다네. 그러니 어떻게 하겠나? 직접 이렇게 와 보는 수밖에! 그러니 우리가 도울 일이 있다면 가르쳐 주길 바라네. 우리도 이렇게 손놓고 있는 건 곤혹이거든." 지금 상관이 말하는 뜻은 금세 이해가 되고 있었다. 자신이 건방지게 행동한 것도 사실이었고, 그로 인해 이렇듯 과한 직책까지 얻은 판국에 뭐라 변명할 길은 없었다. "저 그것이....... 사실 제가 그때 사령관 각하께 나선 건......" "알아. 안다고 분명히 말했네. 단지 우린 그대가 사령관 각하께 건의했던 일들에 대해 심한 궁금증으로 이렇게 온 것이야. 그러니 큰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알겠나?" "예,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 자네는 분명히 나와 우리 동료들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새 그 말을 까먹은 것은 아닐테고." "예, 베르미스 자작님과 그 이하 기사단원 분들의 말씀은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사옵니다." "허면, 우리가 맨 날 빈둥거리며 허송세월 하는 것도 잘 알고 있겠구만." "그...... 그게....... 사실 전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돌아오실 주군을 기다리며 자신의 실력을 최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말과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허허.. 이거 얼굴 들고 다니기 민망스럽군. 고작 자신의 실력을 한 단계 위로 올려놓은 걸 가지고선 그런 공치사를 듣게 되다니......" 수정구에 비춰진 베르미스의 얼굴엔 정말로 작은 홍조를 띄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과 동료 기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와전되어 있다고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 니플레스는 그와는 생각이 달랐다. "아닙니다. 그건 공치사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기사로써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옵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실력자로 올라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더구나......" 차마 다음 말은 꺼내지 못했다. 잘못하면 상대편에게 잔인한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서서 잠시 뒤를 돌아보던 베르미스는 니플레스의 말속에 담긴 뜻을 알아채고 있었다. "후후, 그렇겠지. 언제 오실지, 아니면 영원히 오시지도 못할 기약 없는 기다림. 그래. 우린 그런 기다림 속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올리기 위해서 기를 썼지. 하지만 제군." "네. 베르미스 연대장님." "제군은 혹시 우리의 주군을 뵌 적이 있는가?" 없었다. 아니 신비에 가려져 있다고 봐도 무난할 정도로 싸이벨리 황태자의 이야기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매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카빌라이 대륙에 숱한 소문을 창조해낸 황태자였기 때문이다. 그중엔 겨우 기어다니면서부터 말문을 터트린 것을 시작으로 해서 당금의 황제폐하 보다 더 깊은 학문을 갖췄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숱한 소문 속에서 큰 사고 인해 외가에 치료를 받으러 떠나신 싸이벨리 황태자. 그에 대한 숱한 소문들은 크게 와전이 되어 전해져 있다곤 해도, 어릴 적부터 그 총명함이 신과 필적한다는 소리는 아버지의 많은 칭찬을 통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니플레스였다. "그래, 그대와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젊은 기사들은 그분을 뵈려고 해도 못 뵐 수밖에 없었지. 나조차도 그분의 기사로써 딱 한번밖에는 뵌 적이 없단 말야. 하지만, 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네. 곤히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분을 위해 이 못난 생명을 끊으려고 했을 때, 잠시 내 눈에는 그분의 환한 미소가 떠오르다 사라졌다네. 이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난 분명히 그분이 내게 미소를 지어주셨다고 믿는다네. 그러니 어떻게 하겠는가? 난 그분의 기사로서 그분의 명예를 위해 자랑스러운 기사가 되어야만 했다네. 해서 최고의 실력을 가졌다는 분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분들을 이길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해야만 했지. 이건 내 동료들도 마찬가지야." 잠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 수정구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 모습속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일까? 니플레스는 눈앞의 상관을 올려다보며 내심 부러움이 솟아나고 있었다. "그....... 그러시군요." "그래, 나와 마찬가지로 내 동료들 또한 그분을 먼발치에서나마 뵌 적이 있었지. 그때 저 친구들 표정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가관이었거든. 하하하. 정말이라네. 뭔가에 취한 듯 몽롱한 듯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이라니......... 하하하하!" 뭔가 대단히 기분 좋은 일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금새 현장의 소란스러움을 큰 웃음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베르미스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행동을 답답하게 느끼는 이들로 인해 그의 웃음은 금새 사라져야만 했다. "이봐. 1연대장. 지금 너무 사설이 길다는 건 알고 있나? 자네가 왜 우리 대표로 이곳에 왔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줬으면 좋겠네" 탕탕. 가슴에 새겨진 문장 아래로 거대한 방패를 우뚝 쥔 모습은 가히 전사의 모습과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듯 방패를 쥔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은 정말로 멋져 보였다. 이런 행동을 지켜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워리어스에 대한 동경이 절로 묻어나고 있었다. "맞아. 내가 잠시 이 친구 때문에 깜빡했군. 이봐, 니플레스 경." "네, 베르미스 연대장님." 꼴깍. 이제부터 본론이 나올 것 같았다. 해서 긴장된 눈으로 상관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니플레스였다. "훗, 자꾸만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네. 우린 그저 경이 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도우려고 왔다는 것만 알아두게. 또한 앞으로 대공각하의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진 우린 그대를 최대한 도와 주겠다는 말도 잊지 말아주게. 알겠나?" "예. 그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많이 모자라는 저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씀에 이 기쁨 표현할 길이 없사옵니다." 매우 조심스럽게 상관의 말에 대답을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베르미스는 니플레스의 긴장한 모습 속에서도 자신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크게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하면 되겠나? 우리도 저들처럼 이 작은 바위산을 깨부수면 될까?" "그......그건 안됩니다. 전투형 헤비 워커는 전투를 전문으로 하기 위한 병기이옵니다. 이건 저희들 같은 소형 헤비 워커면 충분합니다." "그래? 허면 우리가 도울 일은 없다는 것인가?" 상관의 부탁조에 가타부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니플레스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기로 결심했다. "굳이 저희들을 돕고 싶으시다면 다른 방법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호오, 그거 다행이군. 그럼 그 문제에 대해서 한번 들어볼까?" 잠시 눈앞의 거대한 헤비 워커에게 시선을 던지는 니플레스였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이 과연 저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해서 굳은 결심을 하고서도 망설여지는 그녀였다. ****** 뾰루퉁.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습이었다. 눈앞에서 화르륵 거리며 불길을 날름거리는 모닥불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싸이의 화난 표정은 차가운 눈동자 속에서 변함이 없었다. 이런 싸이를 보고 있던 메테우스는 절로 미소가 나는 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웃으시다가 나중에 후회하실 것 같군요." "쿡쿡,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전하.... 아니 주군께서 저런 모습이실때에는 뭔가 재미난 상황이 곧잘 벌어졌답니다. 그러니 전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듯 웃음을 참을 수가 없군요." 조용히 소곤거리면서 최대한 말을 줄여봐도 괄괄한 목소리를 쉬이 낮출 수는 없었다. 그 속에서 처음으로 싸이의 호칭에 대해 조심을 하는 메테우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얼마 전부터 명령을 받은 상태라 더욱 더 조심에 조심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싸이는 메테우스의 말을 들었을텐데도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아마도 뭔가 깊은 생각이 필요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아들의 모습을 마차 안에서 바라보던 엘렌은 품안에서 고른 숨을 쉬고 있는 콘돌을 쓰다듬으며 골이 잔뜩 난 아들의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만 하고 있었다. "호호호, 저 녀석! 뭔가 단단히 삐진 일이 있던 모양인데. 혹시 넌 알고 있니?" 물론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니었다. 한낱 미물로만 보이는 콘돌인데 어찌 자기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겠는가. 더구나 엘렌은 부모님으로부터 신성한 새로 보여진다는 말을 일절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엘렌의 품에 있는 콘돌은 한낱 미물이 아니었기에 조금은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이익, 이게 감히..... 감히 나 콘돌을 못난 미물로 격하시키다니! 끄응. 이 모든 게 바로 저 놈 때문이야. 감히 인간의 탈을 버젓이 쓰고 있는 저 마족 같은 놈 때문이란 말야.' 푸드득. 작게 날갯짓으로 분한 마음을 삭혀 보려고 했지만, 푸득 거리는 자신을 살짝 힘주어 안는 엘렌으로 인해 그 짓도 물 건너 가버렸다. 그렇다고 성질을 부리자니 눈앞에서 화난 표정의 싸이 때문에 감히 해볼 생각도 못했다. '이 재수 없는 어린 드래곤 녀석. 두고보자. 내가 반드시 힘을 되찾으면 제일 먼저 네 녀석부터 혼쭐을 내줄 테니깐. 그때가서 이 모든 수모를 반드시 갚아주마. 뿌드득.' 아직 이빨이 제대로 자라지 않은 탓에 이를 간다는 것이 그만 부리만 비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판국이었다. 엘렌이 그나마 저 얄미운 녀석의 거친 행동을 조금씩 무마시켜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휴식은 정녕 생각도 못해볼 팔자였기 때문이다. '제길, 도대체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이리도 꼬이기 시작했는지.... 저놈 분명히 지금 골이 잔뜩 나 있는 상태인데... 그럼 더욱 조심해야겠다.' 어쩔 수 없었다. 전신에 소름이 잔털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지금 자신을 품고 있는 존재에게 아양을 떨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저 어린놈에게 혹독한 시련을 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오늘 점심 무렵의 일만 떠올려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제길, 아직도 그때 받은 꼬리털의 상처가 남아 있는 모양이네. 이렇게 욱씬욱씬 저리다니.. 근데 저 자식은 나보고 앉으라면서 팔까지 내밀곤 왜 내 꼬리털만 뽑으려 덤비는 거야?'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점심 무렵만 해도 그렇다. 한껏 창공을 누비며 살아 있음을 다시 한번 경험하던 콘돌은 끔찍한 악몽덩어리 싸이가 투덜거리며 아공간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순간. 작게 내밀어진 싸이의 오른 팔을 보며 잽싸게 창공을 박차고 내려앉으며 사뿐히 착지에 성공한 콘돌이었다. 이어 싸이의 칭찬을 들을 준비를 하면서 한껏 목소리에 힘을 주려던 찰나였다. "이자식! 모두가 네 놈 때문에 생긴 일이야. 네 놈이 나를 기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저 자식들까지 날 무시하고 내 말을 안 듣기 시작했어. 이 모든 게 전부 네놈 때문에 생긴 일이란 말야.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녀석." 꾸에에엑. 평소였다면 이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판국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평소보다 더욱 우악스러워진 손길로 인해 콘돌은 꼬리털이 빠지는 고통에 사로잡혀야만 했다. "흥, 이게 감히 어디서 소리를 지르는 거야? 이 겁대가리 상실한 녀석이. 감히 못난이 새 주제에 내 팔에 걸터앉으려고? 그래서 이렇게 갖은 폼 다 잡으면서 내 팔에 앉았던 거지? 우씨. 누가 너보고 감히 내 팔에 앉으라고 했어? 앙?" 휘익휘익. 도저히 말로는 성이 안 풀리는지 힘껏 움켜쥔 꼬리털을 중심으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말이 좋아 원이지, 새의 꼬리털을 움켜쥐고 휙휙 돌려 보라. 그럼 바깥 원의 주인공이 되는 머리 부분은 어떨까? 아마도 지금의 콘돌 모습을 보면 쉽게 연상이 되리라. '이익, 제길 이 자식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놈인 거야? 다른 녀석들은 그나마 나를 구박하려고 해도 내가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한데, 왜 유독 이놈의 손에만 들어가면 당최 힘도 못쓰는 판국이니......' 결국 이런 콘돌의 생각은 길게 붉은 혀를 내미는 것으로 끝이 나야만 했다. 하긴 콘돌로서는 이런 대우를 심심찮게 받은 입장이라서 화가 나도 어느 정도 참을 만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싸이의 매서운 손이었다. 다른 이들의 손과는 너무도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고작 어린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과 어른의 넓고 큼지막한 손의 차이가 아닌 것이다. 분명 고룡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자들의 손길을 적당히 거부 할 수 있는 본능이라는 것이 콘돌에게는 있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싸이의 고사리 같은 손에만 들어가면 본능이고 나발이고 간에 당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니 콘돌은 항상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싸이에게 끌려 다녀야만 했다. '흑흑, 어머니. 전 이 자리에서 분명히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약속할께요. 이 못된 놈의 손아귀를 벗어 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날. 전 이 마족을 찜쪄 먹고도 태연할 이 놈의 마수에서 전 대륙의 모든 이들을 반드시..... 꼬옥 벗어나게 할께요. 그러니 제발 제 힘을 돌려 받을 방법 좀 현몽해 주세요~!' 꾸에에에엑. 오늘따라 더욱 더 구슬픈 콘돌의 비상음이었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마차에서 우아한 걸음으로 나타나 아들의 심통 맞은 모습을 달래는 엘렌의 등장으로 인해 겨우 끝이 났다. 그 뒤부터 콘돌은 하루종일 엘렌의 품속에만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작게 피운 모닥불에 꼬치 구이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콘돌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눈빛을 잃지 않았다. 또한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작은 복수의 시작은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래, 오늘의 해가 사라졌다고 해서 내일 해가 뜨지 말라는 법은 없어. 단지 구름이 좀 끼었다고 해서 날이 밝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우는 범하지 말아야지. 두고보자. 내일부터는 시간 따질 것 없이 화날 때마다 크게 약속의 소리를 질러줄테니깐!' 작게 으르렁거린다는 것이 가르릉 거리며 행복의 콧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왔지만, 그래도 콘돌은 결코 오늘 당한 2058번째의 악몽을 잊지 않겠다고 내심 벼르고 또 벼르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6 - 5. *작가의 말* 잠시간 휴식을 취해봤답니다. 지난 삼개월동안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해본 기억이 없답니다. 그래서 인지 눈앞에 출력지를 놓고선 새로운 마음으로 글을 수정하다보니까 남들은 퇴고를 거치면서 며칠간 쉰다는 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답니다. 한꺼번에 모든 글들을 퇴고하려고 욕심을 부린 저도 어리석었지만, 성격상 눈앞에 할 일을 두고서 머리를 식힌다는 게 좀 어렵더군요. 해서 3권까지 휴식없이 그냥 메달려 갖은 용을 다 써봤습니다. 그래서 인지 작업 능률이 더 안오르는가 봅니다. 이번만 해도 그렇습니다. 밤새껏 퇴고할 글들을 눈앞에 두고선 최대한 빨리하려고 애를 쓰다보니깐, 하루 한 페이지 써놓고선 치고 싶은 마음이 없더군요. 이미 대부분 이년 전에 써놓은 글들이라서 새롭게 각색하는 재미가 전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 세시에 부랴부랴 씻고선 출판사로 그냥 올라가 버렸습니다. 조금은 즉흥적인 일들이었죠. 그덕분인지 며칠간 쉬면서 맘은 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물론 돌아와서는 피로가 안풀려서 이제껏 뒹굴거렸답니다. 몇달 간 제대로 자지도 못헀었는데........ 이번에 내려와서 만 하루를 잠만 자면서 뒹굴거렸답니다. 저번주에 연재를 재개하고선 격일로 글 못올린건 죄송합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있는 어떤 놈이 이렇게 유혹을 하네요. "저번 주에 한 약속은 지켰으니깐 푹 쉬고나서 다시 써!" 라고.......^^;; 그때문에 좀 늦었답니다. 용서 해주시길........_(__)_ 그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보시는 글에서 조금 스피드가 느껴지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요건 어디까지나 작가의 사악한 작전이랍니다. (크크크.) 그저 보시면서 즐거운 상상속으로 빠져보세요. 아마도 약간의 생각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 타닥타닥. 불꽃을 휘날리며 바람을 타는 모닥불이 구수한 나무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그 속에서 뾰루퉁한 얼굴에 심통이 잔뜩 난 볼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쳇, 정말 맘에 안들어. 허구헌 날 그 녀석들이랑 노는 것도 이제 슬슬 지겨운데, 나도 모르는 신기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니.... 흥, 나아뿐 놈들!" 싸이는 낮의 일들이 자꾸만 뇌리 속에서 되새겨 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더욱 화가 나는 것 같았다. 분명히 시커먼스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들은 자신에게도 놀라운 일들이었다. 그건 오히려 기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주인 대접을 받고 있는 처지에 자신도 모르는 부하들의 능력이 다소 부담으로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씨, 난 맨 날 제자리 걸음이라서 화가 나는데, 그 놈들은 어떻게 한 순간에 그런 능력들을 가지게 된 거야? 이건 너무한 처사란 말야." 뭐가 그리도 꼬여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건 본연의 문제일 것 같았다. 자기가 그토록 바라던 일들은 조금도 성장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이 성장하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 질투심을 유발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해서 싸이는 자꾸 꼬여만 가는 심사를 달리 주체할 수 없었다. 하긴 어린 마음에 욕심도 났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싸이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라빈이었다. 현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싸이의 정신세계에는 분명히 라빈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정신적인 나이에서는 어리지 않다는 게 더욱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 나도 노력하면 언젠가는 내 맘에 드는 일들이 나타날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서 그 자식들이 하는 모습은 나조차도 부러운 걸 어떻게 하란 말야. 이건 너무 복잡해서 말도 하기 싫단 말야." 자꾸만 속에서 누군가가 되새겨주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에 열중하는 싸이였다. 게다가 머리까지 쥐어뜯는 형편이니 옆에서 싸이를 지켜보던 이들에게는 놀라운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그런 일들은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듯 자꾸만 속으로 이야기를 되새기고 있었다. "우씨, 분명히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 기억나지? 내 몸에 담겨진 힘들을 내 스스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내 마음에 쏙 드는 모습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셨어. 그런데 왜 이렇게 노력해도 안되는 거냐고!! 넌 그거 알아? 내가 아무리 정신적인 면에서 성장을 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미약하기만 한 인간의 정신 연령이라는 것을? 난 그게 더욱 맘에 안든단 말야!" 화르르륵. 뭔가 맘에 안든다는 듯 궁시렁 거리는 싸이의 말에 모닥불들이 성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싸이는 내면의 누군가와의 대화를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니 그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투정을 부리는 듯 보였던 것이다. 결국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환한 빛을 뿌리기 시작할 때까지 이어진 싸이의 투덜거림은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조용히 사그러 들기 시작했다. 메테우스는 마차의 따뜻한 좌석을 놔두고 밖에서 노숙을 고집하는 싸이를 바라보며 매우 긴장된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차가운 땅바닥에서 주무시게 해 죄송합니다. 주군! 제가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다면 밤늦게라도 작은 마을에 들어섰을텐데..... 모두가 이 못난 소인의 잘못입니다." 작게 속삭이듯 말을 이어가는 그의 두 손에는 하얀 털가죽들이 웅크린채 잠이든 주군에게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메테우스는 조심스럽게 싸이의 주변에 서서 바람막이라도 되려는 듯 크게 어깨를 넓히고 있었다. "훗, 싸이님은 행복하시겠군요." "네에?" 잠이 든 줄 알았던 쥬엘이 옆에서 부스스 일어나자 메테우스는 잠시 놀란 눈빛을 보냈다. 허나 이내 나타날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차가운 눈빛이었다. "후훗, 아닌가요? 제가 지금까지 메테우스 경을 만나 쭉 지켜본 바에 따르면, 경은 오직 싸이 님만을 위해서 사시는 분 같았어요." "그.... 그건 너무 감당키 어려운 말씀이십니다." "제가 여자라서 예의를 지키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더욱 감사해요." "크흠....." "후훗, 얼굴이 붉어지시네요. 하지만 메테우스 경. 경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의 전 약간의 차이가 있죠? 그렇지 않나요?" "네에? 그....... 그게...." 사실 그랬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 표정관리가 힘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메테우스는 눈앞의 쥬엘에게 항상 적당한 선을 지켜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레이디에 대한 예의 범절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그때가 경을 만나고 나서 제일 인상이 깊었던 순간들 같았어요. 훗, 그렇게 놀라실 필요는 없답니다. 하지만 제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걸 아시죠?" "네......! 감히 인간으로서는 가지기 힘든 성스러운 빛을 품고 사시는 분이시죠." 등뒤로 고른 숨소리가 느껴지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대답을 해야만 하는 메테우스였다. 역시 이런 그의 모습이 가장 멋지게 보였다. 해서 쥬엘은 조용한 미소를 입가에 달기 시작했다. "그래요. 어느 날 내게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죠. 하지만 그건 신께서 제게 보낸 작은 메시지이었답니다. 인간은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든 성장을 하죠. 아마도 그게 그분께서 제게 내리신 메세지 같아요. 아마 못난 제게 뭔가를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작게 고갯짓을 하며 크게 심호흡을 하는 쥬엘의 모습은 낯선 게 아니었다. 종종 혼자만의 사색에 빠져 있는 그녀를 자주 봐왔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쥬엘은 꼭 감은 두 눈가에 작은 이슬들을 흘려보냈었다. 메테우스는 그런 쥬엘의 모습에서 뭔가 말로는 표현 못할 성스러움을 여러 번 느꼈었다. "휴우, 지금도 그때의 악몽을 되살리는 걸 제 본능이 허락하지 않는 답니다. 물론 그분의 따스한 품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그때의 그 끔찍한 일들 덕분이었죠.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전 과거의 악몽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겁니다." "쥬엘 양!" "훗, 아니랍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제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와 비슷한 경우랍니다. 메테우스 경. 경 또한 많은 시련을 겪으셨을 것만 같아요. 그로 인해 곁에 계신 싸이 님이 그토록이나 소중 하셨겠죠." 메테우스로서는 이 뜻밖의 대화에 잠시 감정을 다스려야만 했다. 이제까지 근 몇 개월 동안 같이 행동을 한 쥬엘이었지만, 이렇듯 깊은 대화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크흠, 사실 제 목숨은 바로 이분만의 것입니다. 이건 제 숙명이기도 하지요. 만약 그때 싸이 전하께서 절 구원해주지 않으셨다면 전 과거에 이미 죽어야만 했던 목숨이었죠. 더구나 제 실수가 분명한 상황에서도 이 분께서는 제게 너무도 과중한 직책을 주셨답니다." "호오....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쥬엘의 눈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메테우스는 자신의 말속에 깊이 빠져 있었기에 잠시간의 그 눈빛을 놓치고야 말았다. "후후후, 메르카 왕국에는 이런 전설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답니다. 바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걸음마를 옮기시던 싸이 황태자 전하와 그분의 무용담에 관한 전설이죠. 그리고 그 전설 속에 등장하는 기사가 영광스럽게도 바로 저랍니다." "호오! 정말인가요? 전 아직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걸음마를 옮기는 어린아이가 어떤 행동들을 했다는 건가요?" "후훗, 아마도 약간의 생각에 차이는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그때 싸이 전하께서는 이 못난 놈에게 기사의 작위를 수여해주셨죠. 전 그때 싸이 전하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답니다. 옆에 계신 주군을 놔두고선 눈앞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제게 오셔서 방긋 미소를 지어주시던 그 모습. 전 그때 그분만의 기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제 생애 최고의 명예로움이랍니다." 거대한 덩치는 기사라는 직위에 걸맞기에 그렇다고 쳐도,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의 이미지와는 달리 한순간 몽롱한 표정이었다. 그런 메테우스의 모습에서 과거의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기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쿡, 그래서 그때 그분 앞에서 불사신 같은 모습으로 뛰어가셨군요." 쥬엘의 말에 메테우스도 겁 없이 설쳤던 그 순간들이 상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그 순간이 다시 온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만큼 굳건했다. "네에, 아마도 제게 그때와 같은 일들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전 반드시 똑같은 모습을 보일 겁니다. 바로 이 분! 제겐 목숨보다 소중한 이 분과 관계된 일이라면 전 어떠한 일이라도 할 자신이 있답니다." 꾸욱. 가슴께에 올려진 주먹 속에서 메테우스의 신념이 넘쳐흘렀다. 이런 그의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쥬엘은 절로 든든한 마음이 생겨났다. "그게 바로 기사도인가요? 자신의 주군을 위해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모습. 정말 부럽군요. 전 이제까지 신을 받드는 사제들만이 그런 신념 속에서 살아간다고 믿었답니다." "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전 그저 이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지키는 메테우스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이었기에 더욱 듬직한 기사의 모습이 쥬엘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을 섬기는 자로서 맹약에 메인 몸인 쥬엘에게는 메테우스라는 존재는 그저 주군을 위한 충성스런 기사의 모습 그 자체만이었다. "클클클, 고약한 놈. 혼자서 온갖 똥 폼은 다 잡고 있구만. 크크크." 멀리 하늘 높이 떠 있는 곳에서 한순간 흘러나온 말이었다. 청명하기 그지없는 밤하늘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먼 하늘의 작은 별처럼 보이는 곳에는 아주 멋들어진 한 척의 대형 범선이 구름인양 떠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범선의 모든 곳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서는 연신 웃음을 자아내고 있는 갈리아스 옹이 멋진 포즈로 앉아 있었다. "크크크, 역시 생각할 때와는 달리 만들어 놓으니깐 아주 좋아. 게다가 우리 싸이 문제라는 말 한마디에 이렇듯 정성을 아끼지 않는 정령왕들이라니..... 크크크, 내가 확실히 손주 녀석하나는 잘 뒀단 말야. 아암!!"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책상처럼 보이는 곳에 올려놓은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에게는 책상에 펼쳐져 있는 항해도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 보였다. 하긴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이 대륙 곳곳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한 판국에 굳이 항해도 따위에 연연할 갈리아스 옹이 아니었다. 그러나 유독 그의 시선을 때지 못하는 곳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항해도보다 더욱 중요한 푸른 색의 수정구가 발 옆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수정구 속에는 그가 이렇듯 신기한 범선을 끌고 나올 수 있었던 손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비춰지고 있었다. 이런 판국이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편하고 멋들어진 범선을 타고 손자를 지킨다는 핑계로 마음껏 나들이를 할 수 있어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이다. "쿡, 아마도 우리 마나님이 저 띨띨한 놈의 모습을 보신다면 무지 좋아할텐데........ 참, 근데 이 할망구는 무슨 바람이 들어서 나랑 같이 안나온 거지? 으음, 눈치로 봐서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말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만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갈리아스 옹이 살살 꼬드기는데도 불구하고 한순간 생각을 바꾼 듯 당신 혼자 다녀오라는 마누라의 모습에서 뭔가 또다른 계획을 눈치 챈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혼자서 여행하던 버릇이 있는 갈리아스 옹은 이 나름대로도 편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의 멋들어진 범선을 멀찍이 따라오는 작은 뭉개 구름을 못 알아본 게 그의 실수라면 큰 실수였다. 그리고........!!!!! "휴우" 길게 내쉬는 한숨만으로는 지금의 육체에 쳐들어온 낯선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뮤즈는 길게 한숨을 내쉬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뮤즈의 뒤에 다급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작은 존재가 있었다. 수시로 뮤즈의 표정을 살피는 것으로 봐서는 매우 다급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작은 존재의 불안감은 긴 기다림 속에서 굵직한 목소리를 동반하게 만들었다. "저어..... 족장님." "무슨 일인가? 제발 나 좀 쉬게 해주게. 에플리 군."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걸요." "그래, 아무래도 그 분이 욕심을 부리셨으니... 우리는 그저 행운이 필요할 것이야." "그...... 그렇겠죠? 만약 그게 불발이라도 난다면......" "에휴휴휴...... 그러게 내가 좀 쉬자고 했잖은가. 제발 나 좀 내버려두게. 한동안 일이라면 손에 잡을 생각이 없네."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드워프의 입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나오다니.....!!! 이건 수천 년이 넘는 드워프의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는 말이었다. 아! 물론 드워프의 역사가 어찌 수천 년밖에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뮤즈가 속해 있는 부족은 모두 어떤 한 존재에게 종속되어 살아왔다. 그 세월이 바로 수천 년이었단 말이다. 또한 뮤즈의 부족은 대대로 일을 하면서 매우 즐거워했었다. 그 모두가 어떤 한 존재의 은총 덕분이었다. 다른 부족들처럼 일방적인 폭행과 갈취의 공포를 그들은 단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 부족의 족장을 맡고 있는 뮤즈의 입에서 이런 해괴한 말들이 흘러 나왔으니..... 뭔가 큰일이 벌어져도 한참이나 전에 벌어졌던가 보다. "그나저나 걱정이야. 그 분 성격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게 있으면 당장 난리를 피우실 게 뻔한데, 우리 부족의 명예 때문에 그리도 서둘렀으니...... 휴우,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터인데...." 뮤즈의 긴 한숨 속에서 묘한 여운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뮤즈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한 존재의 화가 난 표정이 더욱 더 미래에 암담한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느 불쌍한 종족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또한 다행히 그의 이런 불안한 미래는 조만간 환희에 차는 미래의 시작이라는 점이 오늘의 뮤즈를 반드시 기억하게 만들었다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일의 시작이었다. "어떠셔?" "말도 마. 아무래도 한동안 일을 포기하신 것 같아." 에플리의 조심스런 대꾸에 놀란 토끼눈을 하던 크라노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하긴, 그 물건이 어디 보통 물건이야? 아마도 상심이 크실 거야." "왜 아니겠어.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했던 것들인데 한순간 번개 불에 옥수수 튀기듯이 해치워 버렸으니....." "맞아. 우리 부족의 명예를 걸고 준비하던 것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이번 일로 피해가 크겠지?" "아암, 결과야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과거처럼 만만치 않을 거야." 크게 낙담한 듯한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에플리의 이런 반응에도 콧등에 작은 점을 가지고 있던 크라노프는 약간의 자신감이 어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 결과야 어떻게 나오던 간에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더구나 그 물건이 어디 보통 물건이야? 그분이 손수 개발하신 것들이야. 우린 그저 그분을 도와서 만든 죄밖엔 없어." 크라노프의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낙천적인 말투에 발끈 화가 솟은 에플리였다. 어디 그 물건이 보통의 물건인가? 잘못하면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처럼 한동안 얼음 투성이 자갈밭을 거닐게 될지도 모른다. "이 녀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 부족의 전설을 넌 싸그리 까먹었단 거야?" 아무래도 그동안 쌓여 있던 게 많았던 듯 에플리는 크라노프의 말에 발끈 했다. 하지만 동료 드워프의 말속에 담긴 진실을 그도 모를리가 없었다. "쳇, 그분이 한동안 실의에 빠져 계셨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 부족의 전설은 정확했잖아. 그분이 다시 되돌아오시는 그 날. 우리 부족 최고의 명품이 완성된다는 것을......." "흥, 그래. 그 전설은 사실일수도 있어. 그러나 귀대머리 부족의 일을 잊지 말자구. 그들의 최후는 너무 비참했단 말야." 잠시 시선을 교환하며 죽일 듯이 쏘아보던 에플리는 곧이어 들린 크라노프의 마지막 전설의 문구에 의미를 두며 잠시간 화를 낸 자신을 다독였다. 그러나 마지막까지도 그의 동료에게 주의를 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동료인 크라노프는 낙척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다. "알아. 귀대머리 부족이 한순간 멸망했던 것도 바로 그들의 작은 발명품 덕분이었지. 하지만 우린 다르잖아. 우린 그저 그분이 생각하셨던 것들을 그대로 만들기만 했어. 그러니 그들과 우린 엄연히 다른 거야." 끝까지 낙천적인 그의 사고방식대로만 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자신의 조급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씻으려고 애를 쓰는 에플리였다. "흐음......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과연 그분이 마지막에 만드신 그 물건으로 인해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분명히 그럴 거야. 우린 그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잖아. 그리고 저기 있는 물건들을 보란 말야. 저게 어디 헤비 워커야? 그동안 우리가 만들었던 헤비 워커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단 말야." 크라노프의 말에 시선을 옮기던 에플리는 자신의 눈에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모습들을 보여주는 일꾼형 헤비 워커들이 들어오자 조금씩 고개를 끄떡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눈앞에서 인간형의 모습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꾼형 헤비 워커들은 기존의 헤비 워커들과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동안 우린 전투형의 헤비 워커들만 만들었으니깐. 그런데 그분은 과연 저런 물건들을 어떻게 생각해내신 거지?" "글쎄. 그거야 그분이 용족 최고의 천재이시니깐 가능한 일이겠지. 더구나 저들의 몸에 새겨진 문양과 선들을 봐. 저건 에너지를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요소 요소에 제대로 전달해주는 선들이잖아. 그러니 겉모습은 'A'형과 'B'형의 헤비 워커형이지만 그것들과는 천지 차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맞아. 기존의 헤비 워커들과는 엄연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 아마 우리의 까마득한 선조 분들이 그분을 도와 이 땅에 헤비 워커를 창조해 내셨을 때와 지금은 비슷한 상황일꺼야. 아마도 그때 우리 선조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불안한 마음을 가지셨을 거야." "으음..... 아마 그렇겠지? 우리 부족 전체가 매달려서 만들어 낸 물건이지만 정말로 신기한 물건인 건 틀림없으니까. 더구나 기존의 헤비 워커에 필요한 탑승자들이 저 인간형 헤비 워커에는 필요가 없으니 더욱 놀라운 물건의 탄생인 거야." "그래, 아무쪼록 그분의 말씀처럼 이 대륙에 새로운 신화의 창조는 이번으로 끝이길 바래야지. 예전처럼 헤비 워커 붐이 일지 않게끔 자신이 나서서 단속하시겠다고 했으니까....." 과거의 전설로 내려져 오는 헤비 워커의 탄생에 대해서 이들은 귀가 닳도록 듣고 또 들어야만 했다. 그 때문에 한동안 찬바람이 이는 부족의 일화도 수시로 들어야만 했다. 해서 눈앞의 물건과 부족의 명예를 걸고 탄생시킨 발명품을 만들어 놓고서도 이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맞아. 그분께서 저기 있는 헤비 워커들의 설계도를 손수 태우시면서 두 번 다시 새로운 헤비 워커로 인해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게끔 단속하시겠다고 하셨잖아. 그러니깐 우리는 그분만 믿고 살아가자고." "으응. 제발 그렇게 되야지." 조심스럽게 누군가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확신하듯 친구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려는 크라노프의 노력이 돋보였다. "아마도 족장님 말씀처럼 그 물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야. 그분께서 손수 짜신 개발도면까지 우리 앞에서 불태우셨으니까. 과거의 전설 속에 나오는 그 일처럼 험한 일은 없을지도 몰라." "그래, 아마 그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셨겠지. 자, 그만 이 꿀꿀한 마음을 달래러 가자. 역시 뭐니뭐니 해도 이럴 땐 술이 제격 아니겠어?" 고마운 친구에게 한동안 쌀쌀맞게 대한 죄책감에 에플리는 근사한 술을 대접하고 싶었다. 아니 자신이 술독에 푹 빠져서 이런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크라노프는 눈앞에서 조금은 불안감을 벗어던진 친구를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드워프라면 멋진 개발품을 완성해 놓고선 한동안 술독에 빠져 살기로 유명한 일족이었으니 드워프 중에서도 가장 낙천적인 성격의 크라노프가 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지. 그동안 족장님의 수심 깊은 모습에 술도 제대로 못마셨는데.... 오늘 맘껏 한번 마셔보자." "그래, 가자. 친구. 그리고 말야......" 금새 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얼굴이 한결 풀리는 모습들이었다. 그렇게 풀린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창을 통해 지켜보던 뮤즈의 얼굴에도 수심 어린 주름살이 살짝이나마 퍼지고 있었다. "휴우, 우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은 오직 신만이 내리실 뿐. 모든 건 신의 뜻대로....." 작게 어깨를 내리며 한 손을 하늘을 향해 올리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신에게 기원을 드리는 뮤즈의 모습이었다. 신룡의 후예 6 - 6 *작가의 말* 어떤 분이 제가 무척이나 맘에 들지 않는가 봅니다. 팬 맬인줄 알고 열어본 메일이 심각한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덕분에 현재 제 컴 본체가 맛이 갔습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욤.......ㅠㅠ 아마도 담주 수요일은 지나야 찾아올 듯 합니다. 현재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덕에 글이 좀 늦었습니다. 이미 써놓은 걸 포기하고 새롭게 쓴다는 것이 시간이 좀 걸렸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10K가 넘는 메일은 무조건 삭제해야만 하곘습니다. 괜시리 열어본 제 죄가 더 크겠지요.........(__) 그럼 오늘의 글을 올리겠습니다. 약속보다 늦어진 관계로 좀 길게 올립니다. 전투의 비장함을 쓰려고 했는데 안되더군요. 아마도 다음 전투씬은 되야 약간의 비장함이 나올듯 하네요. 그럼.......... 즐거운 주말 되세요~!! *************** 휘이이잉. 넓은 초원 위로 심상치 않은 바람이 한차례 스쳐 지나갔다. 눈앞에 긴 선을 그리고 있는 상대편 진영에서도 이쪽의 분위기를 눈치 챈 것인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니플레스는 오늘 벌어지는 전투에 매우 긴장된 표정이었다. 바로 그녀가 계획한 첫 전투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꿀꺽." 옆에서 누군가가 심한 갈증에 목이 타는지 침을 삼키는 게 또렷이 들려왔다. 아마도 이들은 조만간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준비는 어떻게 되었죠?" 내심 긴장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네, 모든 준비는 말씀대로 진행시켰습니다. 분대장님!" "좋아요. 그럼 제 신호를 놓치지 마세요." "네,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걱정 놓으시지요." 며칠 간 손을 맞춘 탓인지 옆에 서 있는 조장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담겨져 있었다. 아마도 간밤에 보내준 독한 럼주가 한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니플레스는 모든 준비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작은 허점이라도 보이면 안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음, 분명 예상대로라면 적들은 우리의 진격에 맞추어 화력을 집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거야. 그때를 잘 맞춰야 하는데.....'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전투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쪽에서 진격명령이 떨어지면 적들은 그에 걸맞춰 모든 화력을 집중했었다. 비록 초원이 드넓고 전장의 대치 상태도 제법 길었지만, 모든 전투의 중심은 바로 이곳. 니플레스가 서 있는 중심부위였다. 양측은 이곳에 모든 화력과 힘을 집중시켜서 중앙돌파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번 공격에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적들의 화력을 잠재우는가가 관건일거야." 언제 다가온 것일까? 니플레스는 느닷없이 등뒤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가......각하!" "후훗, 그래. 오늘의 전투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해주기 바라네. 니플레스 중대장!" "여.......영광이옵니다. 각하!" 철컥. 쿠웅. 급히 헤비 워커에서 내리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는 니플레스였다. 고작 3m도 안되는 'B'형의 헤비 워커였기에 가녀린 몸매를 지닌 니플레스는 재빠른 행동을 보일 수 있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던 멜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내가 참모진들로부터 그대의 작전을 모두 들었다. 헌데 아주 기발하더군.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몰라." "송구스럽습니다. 각하. 아직은 많이 모자라는 저이옵니다. 그런 과찬은 오히려 각하의 심지만 흐려놓은 듯 하여 면목이 없사옵니다. 더구나......." 니플레스는 오늘과 같은 칭찬은 처음이었다. 그녀를 칭찬 해주는 존재가 모든 기사들의 우상인 로멜쥬 대공이었기에 더욱 더 가슴 설레이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좀 전에 파격적인 인사에 미처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는 니플레스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로멜쥬 대공의 별 것 아니라는 듯한 손짓 한번에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하하하. 역시 용장의 자식다운 겸손이다. 그대의 아비는 내가 무척이나 믿고 신뢰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이를 적들의 신식화포에 너무도 쉽게 떠나보냈던 것이 늘 마음이 아팠건만, 이제 그의 자식인 그대가 내 곁에 왔다는 것은 내 개인적으로나 우리 조국으로서나 모두가 환영할 만한 일일 것이다. 제군. 기대하겠다." 결국 정식 문서는 내려오지 않았지만 이로써 니플레스는 자기가 밑에 거느린 부대의 진정한 지도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네......넵. 각하! 오늘의 모든 업적은 두고두고 각하와 우리 조국의 커다란 명예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어주소서!" 쿠웅. 급히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서 바닥에 엎드리는 니플레스였다. 머리를 잠시 누르고 있던 투구가 땅과의 키스에 놀라 살짝 떠올랐지만, 니플레스의 신경은 오직 눈앞의 거대한 이에게만 몰려 있었다. "후훗, 그대의 머릿결이 오늘따라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주는군. 아마도 그대는 나의 부하로 있기보단 그녀의 호위 기사로 있는 게 제격일텐데....." 잠시 촉촉이 젖은 듯한 멜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느낀 순간 니플레스는 온몸에 힘을 잔뜩 줘야만 했다. 바로 멜빈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삐딱하게 눌린 투구를 바로 해줬기 때문이다. '오.....오늘로써 이분의 손길이 내 몸에 두 번이나 거쳐갔다. 너무도 다정하신 분. 이런 분의 기사로 살다가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버지!!! 두고보세요.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르는 자랑스런 자식이 되겠습니다.' 불끈. 땅바닥에 대고 있던 한쪽 손에서 투박한 건틀렛 사이로 이물질이 느껴졌다. 검붉은 황토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조국의 기사들의 땀과 피로 얼룩진 대지이다. 이 대지에 찬란히 사그러진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니플레스는 오늘의 전투에 최선을 다할 결심을 새삼 다시 하고 있었다. 멜빈은 감격한 듯 잘게 어깨를 떠는 니플레스를 일으켜 세우며 그녀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 멜빈의 눈에 전장으로 달려가는 니플레스의 뒷모습이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려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가던 그때의 모습과 너무 흡사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멜빈의 가슴속에는 작은 불안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그래, 이제 시작인가? 모든 준비는?"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이지만 다시 한번 준비 과정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옆에 서 대기 중이던 필립 경의 입에선 준비해 놓은 듯한 답변이 뒤를 따랐다. "넵, 각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출정을 못한 화이트 콘돌 기사단 이하 2개조의 특공대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도 출정을 못했다는 부분에서 유난히 악센트가 강해지는 어투였다. 멜빈 또한 부하의 그 악센트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흐음, 그 친구들을 이번 일에 꼭 써야만 했는가?" 아무래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자신에게서 떠나간 소중한 아들이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화이트 콘돌 기사단은 바로 아들의 자랑스런 기사단원들이었다. 그들을 혹시 있을 지도 모를 일에 투여한다는 게 멜빈으로서는 마음에 걸렸다. "각하! 그들을 믿어주소서! 그들은 지금까지 각하의 곁에서 모든 역량을 다해 성장을 했사옵니다. 그런 이들에게는 반드시 적당한 긴장이 주어져야만 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그들을 너무 감싸고돌았었지. 하나 그들은 내 기사단이 아닌 내 자랑스런 아들의 기사들이다. 난 그들을 잠시 맡고 있을 뿐이야. 그걸 명심하게나." "네, 저들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싸이 전하께서는 반드시 돌아오실 겁니다. 그때 저들의 뒤에서 모든 걸 아끼지 않으신 각하의 정성을 싸이 전하께서 아시게 된다면 더욱 더 각하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 날 것입니다." 필립은 자기가 한 말에 도취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자아도취가 되던지 아니면 자아 최면이 되던지 간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화이트 콘돌 기사단의 정예들을 그동안 정성껏 보살핀 것은 멜빈이었다. 그러나 그 옆에서 그들을 손수 챙긴 것은 자신이었다. 주군이 뭔가 명령을 내리면 모든 명령의 연결에는 필립 자신이 끼여 있었던 것이다. 해서 그들에게 어떠한 조치가 취해졌으며 어떠한 관심이 쏟아졌는가는 이 세상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필립이었다. 그들을 지금까지 쭉 지켜보면서 주군의 기사단보다 더욱 월등한 대접을 받고 있었던 화이트 콘돌 기사단이었기에 조금전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또한 멜빈도 그 부분에 대해선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흐음, 제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군." 아마도 혼잣말로 하는 말속에 담긴 뜻은 조금 다른 뜻일 것이다. 아들 앞에서 결코 공치사를 늘여놓을 멜빈이 아니었고, 그걸 잘 알고 있는 필립이었다. 현재 주군은 소중한 아드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저렇게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물론 광범위한 뜻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각하! 메테우스를 믿으소서. 그는 각하 앞에서 분명히 서약을 했사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싸이 전하께 다가간 명예로운 기사가 되어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시니 심려하지 마소서!" "그래, 내가 오늘의 전투에 미련이 많은 모양이야. 아무래도 신비에 쌓여져 있는 인물들이 싸이의 기사단 앞에 나타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이겠지. 허나 그들은 절대 나타나지 않을 것이야. 아니 나타난다면 먼저 나부터 만나야 할 테니까." 약간의 오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자랑스러움이 아닌 순수한 부하들을 아끼는 애정이기에 오히려 필립의 눈에는 든든한 주군의 본모습을 다시 한번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왔다. 이런 그들의 시선은 또다시 전투가 벌어지기 일보 직전인 전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발사 준비~!" 커다란 깃발이 바람을 타고 휘날리며 모든 전장에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화포를 전문으로 담당하던 부대에서는 어느새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탓에 악을 쓰는 듯한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하기에 급급한 모습들이었다. "뭣들 하느냐. 적들의 심장부를 향해서 조준을 잘하란 말이다." 전장은 금세 시끌벅적한 소음에 묻히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악을 쓰듯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기사들은 어느새 눈앞에 다가서는 적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항상 전투가 시작되면 이런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는 현상들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살인에 대한 희열.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희열을 느껴본 자들의 눈에는 차츰 카타르시즘에 젖고 싶어하는 파괴적인 본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명령 전달에 힘이 들었다. 모두들 눈앞의 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오로지 눈앞의 먹이감에만 신경이 곤두선 탓이었다. 더구나 눈앞의 먹이감들이 평소보다 더욱 먹음직스럽게 다가온 다는 것은 사냥꾼의 오감을 한껏 자극하고 있었다. "크흠, 오늘은 저놈들이 좀 특이하게 움직이는군." 라인스트 제국 원정군 제 2 야전대 사령관 스페나르드 후작은 또다시 전선에 활기를 불어넣는 메르카 제국군들을 바라보며 느긋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통상적인 전투에서 늘 승리를 건졌던 기억이 그를 더욱 편안한 미소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따라 상대편 진영이 좀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사령관 각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평소에 나오는 패턴이 아닙니다. 그 점에 대비하셔야 할 듯 보입니다." 옆에서 긴 망원경으로 적의 진영을 들여다보던 부관 세르페의 다급한 외침에 스페나르드 후작은 입술 끝을 살짝 비틀었다. "흥, 그래봤자 우리의 신형 화포에는 안 돼. 저들이 헤비 워커를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일반 보병과 기사단으로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제까지 겪어온 이곳의 전투는 늘상 이렇게 시작이 되었다. 물론 약간 불안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감히 이쪽에서 대 헤비 워커전을 치루지 않기로 한 이상 적들은 자신들의 자랑인 헤비 워커를 내놓을 생각을 못하기 때문이다. "각하! 그렇게 마음을 놓지 못할 것만 같사옵니다." 옆의 부관이 오늘따라 유독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고 있었다. "뭣이?! 네 녀석은 나의 실력을 우습게 보고 있다는 것이냐? 자! 봐라. 맨 앞의 스나이퍼들은 제국 내 최강의 저격여단 소속 제 3 연대 1200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를 우리의 신형 화포 5개 대대가 진을 치고 있다. 이런 곳을 헤비 워커가 아닌 순수 보병으로 어떻게 뚫겠다는 것이냐? 네녀석이 그런 우둔한 머리로 감히 나를 기만하려 들다니......" 내심 불안한 마음에 부관에게 화를 내는 스페나르드 후작이었다. 감히 부관이 자신이 말한 뜻을 모르겠는가. 그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단지 이렇게 말을 한 것은 모두 마음속에 이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뒤에 들리는 부관의 목소리는 그의 불안감을 더욱 더 증폭시켜주고 있었다. "아니옵니다. 각하! 지금 적들이 전투형 헤비 워커를 꺼내고 있사옵니다. 해서....." "뭐야? 이런 미친 녀석들을 봤나?" 휘익. 재빨리 부관의 손에 들려 있던 망원경을 뺏어든 스페나르드 후작은 급히 망원경을 눈에 대고 부관의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자책해야만 했다. "크흠........." 망원경에 눈을 댄 순간 이미 상대편 진영에서는 은빛의 동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굳이 망원경을 통하지 않아도 될 만큼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전장에서 또렷이 보일 만큼 적의 진영에서는 이미 여러 대의 헤비 워커들이 서서히 전투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적들의 본진 뒤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자는 의도인가? 분명 대 헤비 워커전은 우리가 치루지 않겠다고 공표를 했었다. 그렇다면 상대편에서는 절대 헤비 워커를 전장에 투입할 생각을 못할 텐데....... 끄응!" 적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는 초조함은 더욱 더 강한 불안감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스페나르드 후작은 내심 믿는 바가 있었다. 이쪽과 상대편의 머릿수를 비교하더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상태다. 여기에 이쪽은 신형 총포들로 무장을 한 상태이고 상대편은 아직까지 검과 창등의 구석기 무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각하!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오늘의 작전을 약간이라도 수정하심이......" 부관 세르페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스페나르드 후작은 곧이어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작전 계획을 수정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후작의 반응에 덩달아 부관 세르퍼 또한 각 곳의 지휘를 맡고 있는 연대장과 대대장 급 장교들에게 급히 작전의 변경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후훗, 역시 금세 눈치를 채는 것 같군."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의 진영에서 급히 뛰어다니는 전령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이쪽의 달라진 모습에 반응을 보이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평소와는 다른 모습 때문이겠죠." 옆에 나란히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케르디온 자작의 대꾸에 베르미스는 싱긋 웃음을 지었다. "그래, 우리는 이제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다. 모두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네엡!!" "넵" 케르디온 자작 이하 15기로 구성된 특공대 1조 대원들이 힘찬 대답을 했다. 자신의 조에 소속된 이들을 수정구로 다시 한번 살펴보던 베르미스는 이들의 사기가 평소보다 월등히 높아졌다는 점에서 마음이 들었다. "후훗, 그래. 아주 기발한 작전이었다. 우린 그 작전대로만 움직이면 큰 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점만은 다시 한번 명심들 하도록. 우리는 절대로 적을 죽여서는 안된다. 우리가 맨몸으로 달려간다면 모를까. 헤비 워커에 탑승한 이상 우리는 적을 죽여서는 절대로 안 돼. 우린 그저 상부에서 내려준 명령대로만 움직이도록 한다. 알겠나?" 베르미스는 이미 브리핑에서 강조를 했던 부분을 작전에 앞서서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미 부하들도 그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눈앞에 벌어질지도 모른다. 베르미스는 이런 작은 일에도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싶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굵고 힘찬 부하들의 목소리가 수정구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있었다. "후후, 조장님. 보십시오. 우리들이 모습을 들어낸 것 하나만으로도 우왕좌왕하는 적들입니다. 절대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옆에 서 있는 케르디온 자작의 말이 수정구를 통해서 전달이 되고 있었다. 이건 팀별로 일체형 통신을 열어둔 상태이기에 모두에게 들리는 말이었다. "고맙다." 베르미스는 더 이상 말을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오늘의 작전에서 부조장을 맡고 있는 케르디온 자작의 마음이 내심 고마웠기에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확실한 인사를 할 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팀의 사기는 드높아 지는 것이다. 휘이이이잉. 제법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상대편 진영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들 준비~!!" 니플레스의 한쪽 손이 번쩍 쳐들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사단 깃발병의 목소리가 전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니플레스의 등뒤로 매섭게 허공을 질주하려는 매의 깃발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꿀꺽." 니플레스가 타고 있는 헤비 워커의 통신 수정구로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아마도 긴장이 극에 달한 듯 보였다. "모두들 명심하세요. 이번 전투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겁니다. 오늘의 관건은 적의 대포보다 더욱 긴 사정거리입니다. 또한 공중 낙하지점에서 재빨리 그물을 회수해야만 합니다. 모두들 이 점만은 꼭 지켜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아직은 어린 나이였다. 해서 약간의 존댓말을 곁들여 주변 부사관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니플레스였다. 이런 그녀의 명령에 모두들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넵, 명심하고 있습니다. 중대장님!" "좋아요. 그럼 이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장전 준비!" 아침에 메르카 제국 최고 사령관 로멜쥬 대공이 다녀간 뒤부터 아래의 부사관들은 그녀에게 중대장님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올려주고 있었다. 아마 그들도 사령관과 독대를 하고 온 그녀가 이번 전투가 끝나면 승진을 한다고 예상한 모양이었다. 니플레스 또한 그런 호칭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뿌듯한 심정이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자신도 사단장의 직책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 예로 예전에 아버지가 살아 생전 전장터를 누빌 때 그 뒤를 따르던 사단기가 현재 니플레스의 명령 하나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니플레스는 절로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끼이이잉. 뭔가 쇠를 긁는 듯한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그 뒤를 이어 우렁찬 복창소리가 들려왔다. "제 1탄 장전 준비 완료!" "회수조 준비 완료!" 고작 이틀동안의 훈련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훈련기간이었다. 니플레스가 생각해 낸 작전의 일차 계획에 포함이 되어 있는 무기는 바로 투석기였다. 투석기만큼이나 오랫동안 전투에 사용된 무기는 없었다. 공성전이나 수성전 모두에 해당될 정도로 투석기는 한동안 큰 인기를 끈 무기였다. 그런 무기가 헤비 워커의 탄생과 함께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든 이 시점에서 니플레스는 임시방편으로 대형 투석기를 이 자리에 끌고 나왔다. 모두들 저토록이나 재빠른 솜씨를 보여주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이미 익숙한 무기를 다루기 때문에 부사관들이라면 모두들 절로 자연스런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군에서 복무하는 동안 제법 많이들 만져본 까닭이다. 단지 오늘의 투석기가 다른 것은 그것을 움직이는 자들 모두가 소형 헤비 워커에 탑승하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또한 투석기에 올라갈 돌무더기를 그물로 쌓아 놓았다는 것이다. "풍속 확인!" 니플레스는 최대한의 사정거리를 고려해 치밀하게 풍향계까지 동원해 놨다. 이런 니플레스의 세심함에 모두들 오늘의 작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서풍 풍속 37밀리바!" 곧이어 사단기 뒤에서 한껏 바람을 머금은 풍향계에서 신속한 대답을 전해왔다. "꿀꺽." 이번에는 니플레스의 입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약간은 모자라는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에는 적의 진지와 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적들에게 향해 있었던 탓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고.......공격 개시!" 이 한번의 명령으로 전투가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인지 처음으로 내리는 전투 명령에 잠시간 말을 더듬은 니플레스였다. 하지만 그녀의 밑에 있는 투석병들의 손놀림은 절대 우물쭈물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위해 더욱 힘찬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투아앙. 화르르르륵. 거칠게 뒤로 당겨진 대가 앞으로 신속히 튕겨 나가면서 그 뒤를 따라 긴 줄이 허공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곧이어 한참이나 허공에 긴 포물선을 그리던 굵은 줄은 어느 정도의 높이가 되자 강하게 뒤로 당겨졌다. "피........피햇!" "우아아악. 내 팔~!!" 한순간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돌변하는 전장터였다. 평소대로 적들의 진군을 기다리던 스나이퍼들은 눈앞으로 다가와야 할 적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게 보였다. 곧이어 상대편 진영 쪽에서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체가 시야에 잡히자 마자 스나이퍼와 그들의 뒤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지휘관들은 급한 신음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마치 시커먼 돌덩어리 같은 물체는 바로 촘촘한 그물속에 담겨진 수많은 바위조각들이었던 것이다. 그뒤를 이어 그물 속에서 커다란 돌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자 그들은 급히 몸을 숨겨야만 했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군사들이 많았기에 그들중 대다수는 속절없이 돌의 파편에 신체의 일부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또 온다. 몸을 최대한 숨겨~!" "제기랄." 다급한 비명소리와 그 뒤를 뚫고 나온 악을 쓰는 소리에 전선의 일부분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이..........이게 무슨 일이냐! 각 대대 피해보고!" 스페나르드 후작의 눈에도 거대한 그물로 짜여진 적의 수많은 투석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전투에 앞서서 모습을 들어낸 헤비 워커는 바로 미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적들은 헤비 워커를 동원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들을 기만한 채 이렇듯 어이없는 구석기 무기로 덤비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 수정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각 전문들은 결코 구석기 무기의 위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윽. 3대대 피해 보고. 현재 이쪽은....... 우아아아악" 찌찌찌찍. 잠시 우거지상을 한 채 보고를 하던 3대대장의 모습이 갑자기 생긴 노이즈로 인해 더 이상 보여지지 않았다. 마지막 비명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한 상태라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제길. 이게 뭐냐? 도대체 포병들은 뭣들 하는 것이냐? 어서 적을 향해 쏴라. 쏴!" 악을 쓰듯이 명령을 내리는 후작의 모습이었다. 뒤이어 사령관의 명령에 커다란 소음으로 답을 보내는 대형 포대들이었다. 꽈아아앙. 꽈아아앙. 연이어 불꽃이 튀기면서 허연 연기를 뿜어내는 대형 대포로부터 시커먼 철환들이 하늘 높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온다. 모두들 방어 준비~!" 어느 정도 사정거리를 생각해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지만 거대한 철환들은 날아오는 탄력이 있었기에 투석기 근처에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땅에 묻히지 않는 한 엄청난 속도로 굴러 오는 것이다. 꽈아아앙. "막아~!" 니플레스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그녀의 오른 편에 서 있던 투석기 중 하나가 쇠 철환의 제물이 되고야 말았다. "우득. 저건 운이 좋아서 날아 온 것일 뿐. 더 이상 적에게 여유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아시겠죠? 제 2탄 준비!" 어차피 이쪽에서 준비를 하는 동안 적들도 시커먼 대포 아가리에 솜뭉치를 끼여놓고선 재장전을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얼마나 줄이는가에 따라서 아군의 피해가 적어지는 것이다. "제 2탄 발사 준비!" 모든 전선에 길게 늘어선 투석기는 자그마치 그 수가 500여 개에 이른다. 이 모든 걸 단 하나의 명령 체계로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에는 소형 헤비 워커가 모든 일들을 주도 하고 있었다. 또한 소형이라고는 해도 헤비 워커 안에는 작은 수정구들이 있기에 더욱 더 빠른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발사~!" 이미 눈앞에서 적의 대포에 몇 명의 부하들이 부상을 당한 것을 본 니플레스의 입에선 악을 쓰듯 가늘고 째지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부하들은 그런 것엔 일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발사~!" 순식간에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소리와 함께 이쪽에서도 한꺼번에 수많은 돌무더기들이 그물에 쌓인 채 날아가기 시작했다. "장관이군." "넵. 각하. 확실히 멋진 광경입니다." "그래, 오늘로서 우리의 전투는 달라질 것이야. 아암!" 얼마나 그리웠던 승리인가? 아직까지 큰 패배는 없었지만 적들을 눈앞에 놓은 채 섬멸하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었다. 억울한 병사들의 죽음만 바라보던 멜빈의 눈에서 이제 적들을 몰아붙이는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각하!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헤비 워커들의 습격이 있을 것이옵니다. 그럼 소형 헤비 워커들의 진군도 준비해야만 하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의 전투 명령은 내가 아닌 그녀에게 일임하도록." "가........각하!" 매우 놀란 듯한 필립 경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한 멜빈의 목소리가 뒤를 이어 흘러 나왔다. "됐다. 그 일은 경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이미 고인이 된 레벤크라인 백작과 독대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 그에게서 자식 자랑을 종종 들었지. 우리 싸이 만큼이나 총명한 여식이 있다는 소리에 난 줄곧 두 녀석을 모아놓고선 서로의 지식들을 비교 해보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다네. 비록 그것이 지금은 이렇게 달라져 있지만........" 뒤로 갈수록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인지 오늘의 주군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 필립 경이었다. "하지만 각하! 그녀는 현재 제국의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점을 어찌해야 할지......" 아무래도 옛 동료의 단 하나뿐인 자식이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조금이나마 힘이 돼줄 수 있다고 해도, 모든 명령은 사령관의 말에서 끝이 난다. 사령관이 제국의 법에 대해서 이번만큼은 특별히 아량을 베풀지 않는 한 니플레스의 미래는 뻔했기 때문이다. "필립." 다소 차가워지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넵. 각하!" "아무래도 내가 좀 전에 추태를 보인 듯 하군. 이해하겠나?" "네....? 넵. 각하!" "그럼 됐다. 조용히 처신하도록." 꾸욱. 사령관의 입에서 뭔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뜻으로 들리는 지는 듣는 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필립 경은 마지막의 말에 크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군이 갑자기 추태를 부렸다는 점과 부하인 자신에게 조용히 처신하라는 말. 이 한 마디로 필립 경의 입가에는 잠시 미소가 어렸다. '감사합니다. 주군! 여기서 제가 더 이상 떠들면 주군께서는 체면 때문에라도 그녀를 벌하실 터. 이 못난 소신 주군께 이 한번의 예의를 갖춤으로 인해 대신 사죄의 말씀 올리옵니다.' 철컥. 쿠웅. 정중하고 절도 있게 검을 뽑았다. 검을 가슴 앞에 대고 손잡이를 위로 향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검을 쥔 모습 그대로 주군께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속에는 그동안 주군만의 기사로 살아오면서 얻었던 명예가 담겨져 있었으며, 오직 주군만의 기사로서 살다 죽겠다는 스워드 킬의 맹약도 담았다. "후훗, 고맙군. 내 마음을 알아줘서.....!" 주군의 인사에 더욱 깊게 고개를 조아리는 필립 경이었다. 신룡의 후예 6 - 7 *작가의 말* 이번 11월은 유난히 고생하는 달이군요. 여러가지 일도 생기고 또 몸도 편치 못하고.... 아무쪼록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담부터는 최대한 빠른 연재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_(__)_ 이제 슬슬 중반으로 가야하는 군요. 갈수록 힘이 들어지는 형편이라서 매우 고심이 된답니다. 베이직 헌터들의 활약상도 넣어줘야 하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중간중간 짤라버리고 넘어갈까도 생각중입니다. 그럼 좀 시원섭섭하게 될 것도 같은데.....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을 못내리는 형편이네요. 오늘 겨우 베이직 헌터들이 나오는 판국인데...... 그럼 좋은 결과를 가지고 여러분들을 찾아 뵙겠습니다. 메르카 제국의 서부지대에는 아주 유명한 곡창지대가 있었다. 바로 라인스트 제국이 탐을 내는 비옥한 라인크란트 평야가 그것이다. 너무도 드넓은 평야지대였기에 까마득히 먼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멀리 떨어진 칼데아 산맥이 아주 낮은 능선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메르카 제국의 영토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산맥이 바로 칼데아 산맥들이었다. 길고 둥글게 말려진 산맥으로 형성이 되어 그 품안에 드넓은 라인크란트 평야를 안고 있으며, 좌측에는 푸른 바다내음을 품고 있었고, 우측으로는 평야의 젖줄인 깔루아나 강을 끼고 있는 아주 유명한 산맥이었다. 그중 칼데아 산맥의 최정상 봉우리에 해당하는 크레즈(creuse)산 아래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는 현재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삐걱. 높고 험한 크레즈 산을 넘고자 하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좋은 휴식처로 알려진 라네아 여관의 미닫이문이 긴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시선을 모으던 여러 사람들은 곧이어 그 속에서 반가운 인물들이 나타나자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야, 이게 누구신가? 최고의 스나이퍼 켈빈! 어서 와. 안그래도 자네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네." 켈빈의 등장으로 한순간 시끌벅적한 소음이 사라지면서 그 속에서 탐스런 금발을 가진 사내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남자로서는 상당한 체구에 해당하는 거구의 사내가 내는 목소리는 라네아 여관의 식당 안에 메아리 칠만큼 우렁찼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납시셨군. 그래 갔던 일은?" 스윽. 붉은 장발을 뒤로 가지런히 묶은 켈빈이 모든 이들의 시선에 답하듯 코트 아래로 뭔가 길쭉한 물건을 내밀었다. 그 물건을 보는 모든 이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잔뜩 이는 모습이었다. "여기 있다. 이 정도면 벡스터 대장이 내린 명령은 완수한 것이겠지?" 남자치고는 상당히 가는 외모를 지닌 켈빈이었다. 목소리 또한 가늘고 여리게만 들렸다. 하지만 이런 그의 외모는 등뒤로 묶인 붉은 장발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래, 당연히 완수를 하고도 남지. 감히 어느 누가 우리의 켈빈군에게 뭐라 할 수 있겠어?! 안그런가 친구들!" "으하하하핫, 당연하지." "아암, 켈빈이 누군데.....!!" 얼핏 30여 명은 넘어 보이는 사내들이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큰소리로 웃는 모습에 켈빈의 입가가 살짝 비틀어졌다. "흥, 그럼 날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마. 이봐, 나한테 줄 술은 준비되었겠지?" "예? ..... 넵, 이미 술병에 담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잠시 싸늘한 켈빈의 시선이 한 사내에게 쏠리자 프랭크라고 불리는 점원은 급히 등뒤에 선반으로 몸을 돌렸다. 곧이어 가는 스트레이트 잔이 테이블 위로 올려지면서 붉은 색의 액체가 그 안에 담겨졌다. 쪼르륵. "여기.... 일전에 준비하라고 말씀하신 라데코아의 눈물입니다." 병에서 붉은 액체가 따라지는 순간 의자를 덥썩 거머진 켈빈은 곧이어 코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라데코아의 향에 이끌려 자리에 앉았다. "흠, 좋군. 됐다. 병째 내려놓고 가도록." "네. 여기...." 프랭크는 매우 가늘게 들리는 켈빈의 목소리에 한껏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로 돌아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다리는 조금씩 떨려오고 있었다. '휴우, 십년 감수했네. 저런 외모에 어떻게 그런 살벌한 모습을 보이는 거야?' 프랭크로서는 가슴이 뛰는 순간들이었다. 어찌 프랭크가 조금 전 켈빈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며칠 전, 이곳 라네아 여관에 켈빈이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만해도 프랭크는 그를 눈앞의 용병들과 별 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길게 늘어트린 장발만큼이나 눈에 확 들어오는 검붉은 색을 띤 코트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정도였다. 어차피 이곳 여관을 자주 드나드는 용병들은 하나같이 가슴부위에 이상한 문장을 달고 있었지만, 프랭크는 그 문장이 이들 용병단의 마크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켈빈을 첨 봤을 때 그의 가슴에 달린 대형 카이스트 방패와 그 안에 새겨진 문장만 확인하곤 용병단의 일원일줄 쉽게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생각은 채 이틀이 지나기 전에 바뀌어야만 했다. 다른 용병들과는 달리 가녀린 이미지의 켈빈을 보며 과연 저 덩치 큰 친구들이나 가능한 용병 일을 어떻게 할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지만, 이들이 내뿜는 기세에 호기심을 꾹 눌러 참던 그였다. 하지만 거친 산의 끝자락이기에 숱한 몬스터들의 보금자리기도 한 크레즈의 붉은 와이번이 마을에 나타난 순간, 프랭크의 생각은 확실히 바뀌어야만 했다. 며칠 전. 프랭크는 그날도 별다른 일 없이 여관으로 모여드는 용병들의 숙소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숙소정리라고 해봐야 시트와 베개정도만 제대로 정리하면 끝나는 일이라서 프랭크는 종종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간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레이나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프랭크에게 말을 걸었다. 으.....응? 아니....... 그저 저 사람이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칫, 그러다가 다른 용병들한테 잘못하면 큰 봉변을 당할텐데...." 레이나와 프랭크는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산골 마을 오누이 사이였다. 이곳에서 여행객들과의 인연은 산골 처녀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로맨스였지만, 현실은 그와는 달랐다. 해서 레이나로서는 몇 년이 더 지난 후 프랭크와의 인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레이나에게 프랭크의 시선을 단숨에 빼앗아 가버리는 켈빈이 결코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물론 켈빈이 남자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여자인 레이나가 볼 때 켈빈은 여자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가는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는 가냘픈 곡선들. 이건 산골 소녀의 약간은 통통한 외모와는 사뭇 비교가 되는 모습인 것이다. 그로 인해 레이나는 종종 프랭크의 시선을 뺏어 가는 켈빈에게서 약간은 불안한 무언가를 느껴야만 했다. "레이나.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저기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레이나도 알잖니?" "흥, 그래도 저 사람은......" 차마 더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질투에 눈이 먼 사람으로 보이긴 싫었던 것이다. 프랭크 또한 레이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 남자인 내가 봐도 확실히 멋스럽게 생겼어. 다른 용병들처럼 우락부락한 모습도 아니고, 아주 깨끗한 이미지란 말야. 하지만 말야, 왠지 저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힘들지 않니?" 그 순간이었다. 프랭크와 레이나의 시야에 푸른 하늘을 뚫고 떨어져 내리는 작고 강렬한 붉은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꾸아아아아악. 아주 멀리서 들린 듯한 괴성이 붉은 점의 형태가 또렷이 잡힐 즈음에서야 귓가로 들려왔다. "허헉......... 저......... 저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길게 허공을 선회하며 재차 마을로 날아드는 와이번이었다. 뗑뗑뗑뗑. 마을의 공회당에서 다급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마을사람들은 집안으로 대피를 하면서 마을 일대에는 공포가 전염되고 있었다. "으윽, 죄.......죄송합니다." 급히 여관 안으로 대피를 하려던 프랭크와 레이나는 여관 안에서 뛰어나오는 한 사람과 마주칠 뻔했다. 그 때문에 급히 사과를 하려는 프랭크는 미처 고개를 숙이지도 못한 채, 미동도 없이 하늘로 시선을 보내는 한 사내의 가녀린 등을 바라봐야만 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떠한 기운이 그 사내의 작은 등으로부터 전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꼴깍" 절로 가는 군침을 삼켜야만 했다. "오홋, 저게 뭐야?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레드 와이번이잖아? 아마 이 동네 명물이라지?!" 금세 프랭크와 레아나의 주변으로 몇몇 용병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의 대화로 인해 프랭크는 다시 한번 이들 용병의 무식함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저 공포스런 레드 와이번을 그저 이 동네 명물로만 생각하다니.... 그러다 죄없는 사람들이 레드 와이번의 밥이 되어야만 정신을 차릴 것인가?' 그런 와중에도 프랭크의 시선에는 선명한 붉은색 날개를 자랑하는 와이번이 날개를 활짝 편 채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익." 매우 가늘면서도 귀를 자극하는 휘파람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하늘에서 활개를 치며 날아 내리는 와이번의 동작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어 버렸다. "이야.... 저 성질 더러운 레드 와이번을 휘파람 하나로 조종한다는 게 사실이었어?" 누군가의 탄성이 들리는 순간 프랭크의 표정에 놀람이 가득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 와이번은 우리 마을의 재앙인데..." 미처 질문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프랭크와 레이나가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던 레드 와이번이 커다란 날개를 살짝 접으면서 마을 앞 공터로 사뿐히 착륙을 하는 것이었다. "후훗, 귀여운 녀석. 그래, 이번엔 무슨 일로 날 찾아 왔니?" 평소에는 무척이나 차가운 표정을 보이던 켈빈의 입에서 믿기 어려운 따뜻한 말이 나왔다. 그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운 듯 날개를 접은 채 고개를 숙이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쓰윽. 한차례 켈빈의 손이 레드 와이번의 부리에 닿자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레드 와이번의 차가운 동체로 잔떨림이 퍼져 나갔다. "꾸룩꾸룩" 마치 다정한 부모에게 재롱을 피우듯 귀여운 몸짓을 보이려고 하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이런 와이번을 마치 자식처럼 따뜻하게 대하는 켈빈의 얼굴엔 모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프랭크는 산속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지금까지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경험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태연히 성질 더러운 난폭자 레드 와이번을 마치 애완용 새다루듯 하는 켈빈의 모습과 그런 모습에 놀라운 표정을 짓기보단 부럽다는 듯 동료를 바라보는 용병들의 또다른 모습에 간이 떨려왔다. "큭, 저 녀석. 정말로 성질 더러운 레드 와이번을 순종시킨 모양일세. 우리 일족들은 감히 생각도 못하는 일들인데..." 초록색의 머리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남자의 입에서 부러움이 담긴 말이 나왔다. 그걸 듣는 다른 이들의 눈에도 약간의 탐욕스런 눈빛이 실려 있었다. "쩝, 저 녀석 일족들에겐 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테지. 잠시 겁을 준 다음에 새끼 한 마리를 뺏어오면 될 일 일테니까." "무슨 소리!! 저건 다 큰 와이번을 순종시킨 거야. 그 때문에 켈빈이 타고 다니는 와이번이 유명한거지. 제아무리 시간이 남아돈다고 해도 와이번 한 마리를 저렇게 키우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몰라?" "으응? 그런가?" 프랭크는 계속해서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말들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살아오면서 난폭한 레드 와이번을 무슨 애완용 동물 취급하는 건 첨 들어본 까닭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대륙에서도 유명한 이곳 크레즈 산 속에는 숱한 몬스터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흔히들 먹이사슬로도 통하는 이곳의 몬스터들 중 최강의 몬스터가 무엇인가? 바로 눈앞에서 켈빈에게 재롱을 부리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보통의 와이번들은 떼를 지어서 움직이는 습성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 크레즈 산에 사는 레드 와이번들은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여타의 와이번들과는 달리 마치 몬스터들의 절대자인양 홀로 살아가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그 때문에 유독 와이번들 중에서도 성질이 난폭하기로 유명한 것이다. 이런 레드 와이번도 간혹 무리를 지어 살기는 한다. 하지만 그건 발정기에 처한 몇몇의 어린 와이번들이 생식의 보존을 위한 작은 본능일 뿐. 새끼를 낳고 성장시키게 되면 또다시 홀로 생활을 하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그만큼 인간들에게는 몬스터들 중에서도 절대자로 손꼽히는 레드 와이번이었다. 그런 레드 와이번의 주요 식량들 중 하나가 크레즈 산맥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레드 와이번은 배가 고프면 그때서야 사냥을 한다. 대신 배가 부르면 눈앞에 먹이를 두고도 그냥 못 본 척 지나간다. 그만큼 위험한 존재이기에 이곳 크레즈 산맥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프랭크에겐 당장 눈앞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전설 속의 드래곤들보단, 마을 앞 광장에 모습을 들어낸 레드 와이번이 두려웠다. "꿀꺽." 절로 침이 목으로 넘어갔다. 두 손을 꼭 맞잡고 있는 레이나의 떨림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용병들이 자신감에 넘치는 이상한 소리를 해도 한낱 산골마을의 처녀인 레이나에게도 레드 와이번은 공포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프랭크는 옆에 서서 공포에 떨고 있는 레이나를 보면서 자신도 차마 위로의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본능이 두려움에 떨리고 있는데 그것을 가식적으로 꾸며낼 만큼 영악한 프랭크가 아니었다. 이런 두 명의 모습을 주변의 용병들은 순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인간이었다면, 절로 비웃음이 그들의 입가에 걸리고 있을 것이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프랭크와 레이나들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랭크는 그날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그날밤 당장 레드 와이번의 입안으로 꿀꺽 삼켜지는 공포스런 악몽을 꾸었던 것이다. ************* "흠, 이것이 바로 그들이 사용한 신형무기들인가?" 산골 깊은 마음에 있는 여관치곤 매우 편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방이었다. 보통의 여관방들과는 좀 다른 면이 그런 분위기를 전해주었는지도 모른다. 흔히 침대와 세면대가 나란히 있는 여관방들과는 달리 방 한쪽엔 네 명이 편안히 앉을 수 있는 소파가 준비되어 있었고, 약간 층이 진 방 한쪽엔 넓은 침대 두 개가 따로 놓여져 있었다. 바로 라네아 여관의 특실이었다. 간혹 크레즈 산을 넘기 위한 귀족들의 주요 휴식처 중 한곳이었기에 이만한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좀 남다른 분위기였다. 방안에 앉을 자리는 전부 꽉 차 있었고, 그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원들 전원이 하나같이 덩치가 좋은 남자들이었다. 오늘의 분위기는 마치 전쟁을 앞둔 용병들의 회의실 같은 분위기였다. 그중에서도 상석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금발의 사내가 잠시 눈앞에 놓인 길다란 쇠막대기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벡스터 대장. 그럼 이번에 소집령을 내린 건 어떻게 처리하실 거죠?" "흐음....." 잠시 긴 쇠막대기의 용도를 생각하고 있던 벡스터는 이내 옆좌석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잠시간 미간을 찌푸리며 손에 든 물건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 후 질문을 던진 은발의 사내에게 잠시 시선을 던지며 그 뒤에 서 있던 또다른 은발의 청년에게 말을 건냈다. "글세. 이건 좀 미묘한 구석이 많아. 이봐, 바티칸. 자네가 먼저 이 친구들에게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 우선일 것 같군." 바티칸이라고 불린 은발의 청년은 벡스터 옆에 앉아 있는 은발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 사내의 고개가 살짝 끄떡여지자 눈앞의 사내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명령받은 일들을 하나 둘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들만의 규율이 존재하는 듯 했다. 현재 테이블에 앉아 있는 네 명의 사내는 각각 서로 다른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 벡스터 대장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금발을 탐스럽게 기른 사내였고, 그 양 옆으로는 긴 은발을 자랑하는 사내와 켈빈처럼 붉게 타오르는 붉은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벡스터 대장을 마주보는 자리에는 짙푸른 자연의 색인 초록색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이들 네명의 사내 뒤로 각각 같은 머릿결을 지닌 사내들이 최대한 테이블 가까이에 앉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시선이 잔뜩 주목이 된 테이블 위에는 바티칸이라는 사내가 올려놓은 수정구슬이 있었다. 그 수정구슬 속에서는 현재 이 방에 있는 사내들에게 가장 어울릴 만한 시끄러운 전쟁터들의 모습이 하나 둘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으음, 놀라운 전술이군." 한참의 정적이 흐르던 방안의 공기가 미덥지 못했던 것일까? 바티칸의 수정구슬만이 반짝이던 공간에서 잠시 작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때를 같이하여 방안에 있던 여러 사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지금까지 전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전술이군요." 벡스터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전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지 은발의 사내가 내뱉는 말속에서 묘한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것이 그의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캡틴 서프. 자네가 볼 땐 어떻게 평결을 내려야만 할까?" 밑도 끝도 없이 심판자에게나 어울릴만한 말이 벡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캡틴 서프라고 불리는 은발의 사내는 벡스터의 말에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잠시간 미간을 찌푸른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글쎄요. 벡스터 대장께서도 저 일 때문에 아직까지 결정을 못내리신 듯 한데.... 아무래도 우리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참동안 고민을 하던 캡틴 서프의 입에서 약간 자신감이 사라진 듯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벡스터는 이미 예상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그런가? 하지만 오늘 우리가 모인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겠지. 헤비 워커가 인간들의 전쟁에 사용된 이후로 우리 심판자들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었네. 하지만 자네가 망설이는 이유는 따로 있겠지? 안그런가? 오늘 우리들이 모여서 정하게 되는 회의 내용에 따라 이후 인간들의 역사에 매우 놀라운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의 자네와 나는 매우 잘 알고 있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못 본 척 수수방관을 해야 할까? 아니면 예전의 율법대로 행해야만 할까?" 벡스터의 말에 캡틴 서프의 눈빛이 다소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또한 벡스터가 말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기엔 다소 벅찬 듯 보입니다." "그 말 진심인가?" 잠시 놀랍다는 표정의 벡스터 대장이었다. "네, 벡스터 대장!" "흐음, 나로서는 조금 놀라운 일이군. 현재 실버 일족 최고의 용사인 서프 자네의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다니......" "후훗, 글쎄요. 제가 아무리 용맹한 실버 일족의 일원이라고는 해도 아무 죄없는 인간들을 벌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듭니다." 어찌들으면 비아냥거리는 듯한 벡스터의 말에도 전혀 위축이 되지 않는 캡틴 서프였다. "그러면? 헤비 워커를 이용해 적의 신형무기들을 부수는 일로 인해 힘없는 병사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네. 그런데도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인가? 분명 저들의 행동으로 인해 한쪽은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다시피 한 상황인데도?" "과연 그럴까요? 우리 베이직 헌터들이 심판자로 왕림한지 어언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지금까지 행한 율법대로라면 저들의 행동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혹시 벡스터 대장께서는 인간들의 대학살에 대해서도 우리 심판자들이 나서야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잠시간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던 이들은 초조해 하는 부하들의 눈치를 느끼며 대립의 양상을 거두기 시작했다. "흠, 자네의 말에도 다소 일리가 있군. 그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는가?" 역시 현재의 지도자다운 모습이었다.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부하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을 잠시간 되돌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캡틴 서프는 벡스터의 이런 대담한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자신들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부터 벡스터의 책임감 있는 모습은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그분이 오실 듯 싶습니다." "호오, 그동안 자신의 레어 밖 출입을 금하시던 그분이 지금 이곳으로 오신다는 건가?" "네, 그분은 우리들의 자랑스런 카이져시니까요. 아마도 그분께서는 자신만의 정보라인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그렇게 판단을 한다면 우리들이 직접 찾아뵙기 전에 그분은 이미 움직이시고 계실 겁니다." "후후, 그렇지. 바로 그분이 우리 베이직 헌터들의 우상이시자 카이져이시니까. 그럼 우린 그때까지 지금과 같은 대기상태면 되겠지?" 누군가를 상기시켜주는 캡틴 서프의 말에 한동안 미소를 짓던 벡스터 대장은 이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두꺼운 손바닥을 살짝 부딪혔다. 팡팡. "좋다. 제군들. 지금까지의 회의내용을 다 들었겠지? 캡틴 서프의 말대로 그분이 오실 때까지 심판대상자들은 잠시간 유보한다. 그럼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도록." 짧게 끊듯이 내뱉는 벡스터의 말에 방안에 모인 모든 베이직 헌터들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 둘 방안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그들의 눈빛 속에는 얼마 후면 이곳에 오실 누군가에 대한 환상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신룡의 후예 6 - 8 추운 겨울은 모든 생물체에게 움츠림을 잔뜩 선사한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을 통해 향긋한 봄내음이 묻어 나올 때 즈음에는, 모든 생명체들은 굳은 몸을 풀며 하나 둘 저마다 새로운 계절을 맞기 위해 몸단장을 꾸미게 된다. 그건 세레와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마을 뒤로 길게 뻗어 있는 칼데아 산맥에서 간간이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지만, 이미 대지에 깃 든 푸른 새싹들은 저마다 생명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 건 아이들이 가장먼저 알고 있었다. 겨우내 추운 날씨에 움츠려진 몸과 마음을 한껏 달래기 위해 저마다 희희낙락하는 표정으로 산골마을을 힘차게 뛰놀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 저거 잡아~!!" 우루루루. 작고 앙증맞은 손에는 작게 개량된 활을 들고 있었다. 그 위에 뾰족한 화살을 재운 모습이 제법 사냥꾼 티가 났다. 그런 아이들의 시선에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먹이를 뜯는 버니캣이 들어오자, 더욱 신이 난 듯 아이들은 저마다 크게 어깨를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버니캣은 갑자기 들려오는 아이들의 함성에 놀라 동그란 눈을 부릅뜨며 위험을 감지한 듯 긴 뒷발을 움직이며 빠르게 숲속으로 도망을 쳤다. 작은 덩치에 제법 빠른 버니캣이라서 쉽게 따라잡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나 오늘의 사냥물인 버니캣을 따라 산 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봄이 다가오는 찰나이기에, 아이들의 눈에는 말린 고기보단 싱싱한 고기가 더욱 먹음직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먹이는 금세 도망을 쳤고, 그 뒤를 한참이나 따라갔지만 아이들은 결국 오늘의 사냥을 포기해야만 했다. "야, 코쟁이. 너 때문에 또 놓치게 생겼잖아. 얼른 뛰어오란 말야." 네 명으로 이루어진 아이들의 무리 중에서 큰 코에 누런 액체가 말라붙어 있는 아이가 지적을 당하고 있었다. 가슴의 기복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아이는 천식이 있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또래의 아이들 눈에는 답답하리만치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토마스가 미울 법도 했다. 맨 날 큰 코에 어울리지 않게 누런 콧물이나 흘리면서 얼마 뛰지도 못한 채 헥헥 거리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이상의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저마다 싱싱한 고기가 아쉬웠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또래 친구를 떼어놓고 자기들만 숲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왠지 배신감이 드는 모양이다. 그러니 작은 원망만이 토마스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헤엑, 헤엑. 미..... 미안해." 토마스는 가쁜 숨을 다스리면서 가슴속에서 날카로운 바늘이 온몸을 후벼파는 고통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마음껏 뛰어다니지도 못했다. 또래 친구들이 자기를 따돌리지 않고 이렇게 어울리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행복했던 것이다.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뛰고 또 뛰었지만, 항상 가쁜 숨과 가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헤헤, 그래도 오늘 토마스가 이만큼 왔으니깐 다음에 더 깊이 들어가서 잡으면 되지 뭐." 어깨를 으쓱거리며 살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영락없는 악동의 모습 그자체였다. 하나 그 속에 담겨진 순수한 애정은 또래의 아이들이 가진 맑고 깨끗한 순수함이었다. "맞아. 코웰 말대로 다음에 잡으면 되지 뭐. 그런데 오늘은 너무 깊이 들어온 거 아냐? 우리 얼른 돌아가자. 응?" 모든 결정은 코웰이 하는 듯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로 근심스런 얼굴을 한 데이몬이 코웰에게로 등을 돌렸다. 그런 데이몬의 눈앞에는 거대한 칼데아 산맥의 끝자락이 들어왔다. 평소보다 조금 더 분발한 토마스 덕분에 오늘은 평소보다 깊이 들어왔다. 보통 마을 뒤 야산이 경계선이던 세레와 마을 아이들은 야산을 넘어 깊은 숲의 초입까지 들어온 것이다. 아직은 10대 초반이었기에 깊은 숲 속에 도사린 위험들이 조금씩 겁이 나는 모습이었다. 그순간이었다. 묘한 동물의 소리가 아이들의 귀로 전해진 것이다. 두두두두두. 꾸엑, 꾸엑. "헉, 뭐..... 뭐야?" 다급히 주변을 울리는 산짐승의 발자국 소리와 울부짖음에 아이들은 저마다 놀란 표정이 다분했다. "저...... 저기다. 저기...." 토마스의 눈이 제일 먼저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다. 산 속의 몬스터가 나타난 줄만 알았던 아이들은 저마다 공포에 몸을 떨었지만, 제일 먼저 멧돼지를 발견한 토마스의 목소리엔 기쁨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허억, 저...... 저렇게 큰 멧돼지도 있었던 거야?" 제법 놀란 마음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더 큰 기쁨이 담겨지기 시작했다. 가끔 사냥을 나간 부모들이 잡아온 멧돼지와는 사뭇 다른 살아있는 멧돼지를 보게 된 것이다. "근데 어떻게 하지? 코웰이 가진 활로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은 금세 저마다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면서 결국에 가서는 오늘의 사냥물을 멧돼지로 얼른 바꾸었다. 하지만 아직은 십대 초반의 아이들이기에 산속에서 제법 큰 덩치를 자랑하는 멧돼지를 잡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멧돼지들이 하는 모습은 마치 뭔가에 쫓기는 듯이 급히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꿀꺽, 내가...... 내가 한번 해볼게." "뭐? 토마스, 너 미쳤니? 넌 힘이 약해서 안돼." "그.... 그래도 맨 날 나 때문에....." 토마스는 뭔가 가슴에 맺힌 게 있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13년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날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끔 이렇게 친구들과 마을 근처 야산에서 사냥을 하려고 해도 언제나 가슴이 답답한 자기 때문에 친구들은 사냥에 성공한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았던 것이다. 그것이 작은 한이 되어서 일까? 토마스는 아이들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토마스! 조심해야 해. 알았지?" 이미 빠른 걸음을 옮기는 토마스의 등뒤로 코웰의 응원이 전해졌다. 토마스는 친구들의 응원에 겁이 난 마음을 잔뜩 추스르며 서서히 멧돼지 앞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꿀꺽" 점점 다가갈수록 멧돼지는 거대한 모습이었다. 멧돼지 바베큐가 떠오르자 절로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아직 작은 체구의 토마스가 그리 쉽게 잡을 만큼 멧돼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토마스는 그 순간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빠. 난 이렇게 허약하게 태어났지만, 그래도 아빠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할께요.' 우득. 문득 병든 아버지 생각에 절로 힘이 나는 듯 했다. 어릴 적 집안에서만 생활하던 토마스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영웅보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언제나 허약한 아들을 위해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 몸에 좋다는 약초를 구해오는 아버지. 가끔은 몬스터와 마주쳐서는 줄행랑을 놨다며 우스개 소리를 하는 모습도 토마스의 눈에는 자랑스럽게 비춰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가 얼마 전 전쟁에 참여해 큰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어른들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것만 해도 큰 행운이라고 했지만, 아직은 어린 토마스에게 자랑스런 아버지의 한없이 약해진 어깨는 절로 눈물이 맴돌게 했다. 스윽. 잠시 불쌍한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어리자 토마스는 소매로 얼른 눈물을 감추며 이를 악물었다. "아빠. 제가.... 이 못난 제가 반드시 아버지의 뒤를 잇는 자랑스런 아들이 될게요." 토마스는 두 눈이 멀어 혼자 거동이 불편하게 된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젠 허약하기만 했던 자신이 예전에 자랑스런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결심했다. 순간 토마스의 눈에 제법 괜찮은 나뭇가지들이 몇 개 들어왔다. 토마스는 얼른 허리를 굽혀 나뭇가지들을 주우면서 예전에 아버지가 들려주신 사냥법을 떠올렸다. '그래, 어쩌면 이걸로 해낼 수 있을 거야. 아니, 반드시 해내고야 말거야.' 하루 종일 눈이 먼 아버지를 집안에 놔둔 채 어머니는 집안의 생계를 위해 마을의 갖은 뒷치닥거리를 해야만 하셨다. 아직은 어린 토마스였기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해도, 극구 만류를 하는 어머니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집에 들어갈 무렵에는 씁쓸한 아픔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반드시 그렇지 않을 것만 같았다. 만약 저 앞에서 성난 콧김을 내뿜는 멧돼지를 잘만 유인해 사냥한다면, 어머니도 이제 자신에게 작은 일이나마 할 수 있게 허락해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제로니스는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세상이 제법 시끄러운 탓도 있었지만, 혼자 레어 안에 틀어박혀 자꾸만 넘을 듯하면서도 결국엔 쉽게 넘지 못하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이렇게 머리를 식히게 된 것이다. "후후, 참으로 오랜만이군. 과연 얼마나 지났을려나?" 투명한 블루 빛 머리카락이 군데군데 색이 바랜 것을 보면, 제법 오랜 시간 명상에 잠겼던 듯 싶었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이런 감각이 너무도 좋았다. 비록 높은 벽이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만족감은 느낀 것이다. 그 순간 제로니스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우, 그 형님은 잘 계시겠지? 쿠쿡, 괜스레 이 못난 동생을 찾아와선 쓴소리만 내뱉던 양반인데..... 그 덕분에 이렇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겠지만......." 허리춤에 매달린 낡은 검자루를 움켜쥐며 제로니스는 뜻모를 웃음을 지었다. 모두가 그 형님이라는 작자 덕분에 이렇게 여유있는 마음이 된 것이다. "그래, 쉽게 넘지 못할 벽이라면 형님 말대로 잠시 옆으로 돌아 가는 묘미도 있는 법이겠지. 그 형님 덕분에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호연지기를 느꼈으니, 그것만 해도 충분한 것이야." 씁쓸한 웃음이었지만, 그 속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명 쓰디쓴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그 모습이 마치 대자연과 하나로 동화가 된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웬만한 이는 가히 상상도 못할 경지에 오른 자만의 기운이었다. 제로니스는 그렇게 대자연과 하나가 된 듯 미소를 지으며 잠시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오랜 시간동안 주변과 단절된 생활을 했지만, 자신의 종족이 지닌 특정상 이런 경우는 허다했다. 아공간이라는 곳에서 홀로 수련을 하다보면 몇 백년이고 쉽게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랜만에 나온 바깥 세상의 하늘은 한참이나 시리디 시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때였다. 제로니스는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잔잔한 기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다급하면서도 그 속에 강한 의지가 실린 느낌이었다. '호오, 뭘까? 분명 이 기운들은 인간의 감성이 담겨진 것인데..... 뭔가 위험하지만 그걸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생히 전달이 되는 것 같군. 이게 바로 그 형님이 내게 주신 선물인가?' 제법 오랜 시간 수련을 마친 끝에 목표로 잡은 대자연에 겨우 한 걸음 다가섰다고 느꼈건만, 어느새 자신의 감각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기운까지 느낄 만큼 성장해 있었다. 이런 느낌이 매우 거슬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즐거운 제로니스였다. "후훗, 그 형님이 내게 해주신 작은 조언만으로도 내가 이렇게 성장했다면, 앞으로는 항상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야겠지." 예전의 모습과는 꽤나 많이 달라진 제로니스였다. 지금 이 순간 제로니스를 아는 사람들이 그를 본다면, 엄청나게 달라진 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주변의 아는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대화를 하지 않던 제로니스였건만, 오랜 수련을 거치고 나온 그의 성격은 그동안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후훗." 순간, 제로니스의 얼굴에 작은 만족의 미소가 어리며 그의 몸은 긴 흰색의 꼬리를 남긴 채 앞으로 쭈욱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6 - 9 "후욱, 후욱." 겁이 잔뜩 난 몸 안에서 심장이 거칠게 울부짖었다. 그로 인해 더욱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토마스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때문에 주변에서 제일 큰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크게 호흡을 하며 멧돼지무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토마스는 주위에 떨어져 있는 나무를 몇 개 주워든 채 떨리는 손에 잔뜩 힘을 실었다. 그리고 나선 멧돼지 무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나뭇가지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꾸에엑. 마침 운이 좋아서 인지 두 번째 나뭇가지에 무리 속에 있던 작은 새끼 한 마리가 머리를 정통으로 맞았다. 그 순간 토마스는 이를 악물었다. "이리 와~!! 나한테 덤비란 말야~!!" 시비를 걸 듯 긴 작대기를 왼손으로 움켜쥔 채 크게 휘두르며 오른 손으로 연신 작은 나뭇가지들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그런 토마스가 얄미운 것인지 멧돼지 무리들 중에서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멧돼지가 서서히 콧김을 강하게 내쉬며 발로 거칠게 땅을 긁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이 토마스에게는 더욱 더 극심한 공포로 다가서고 있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멧돼지 무리의 우두머리가 자꾸만 눈길을 두고 있는 곳은 토마스가 아닌 무리들의 뒤편이었다. 미처 그걸 모르고 있던 토마스는 약이 잔뜩 오른 멧돼지 무리를 향해 겁없이 나뭇가지와 주변에 놓인 돌멩이를 계속 집어던지며 악을 쓰고 있었다. 순간 우두머리의 눈에서 살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꾸르르륵." 무리들에게 뭔가 신호를 하듯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내는 우두머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무리들은 서서히 토마스에게 멀어지면서 좌측으로 힘차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신경질을 부리면서 고개를 휘젖던 우두머리만이 홀로 남아 토마스를 향해 힘껏 달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꿀꺽. 오..... 온다." 제법 긴 몽둥이를 힘껏 움켜쥐던 토마스는 곧이어 자신을 향해 힘차게 달려드는 거대한 멧돼지를 바라보며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토마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생각들을 실행에 옮길 시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얍~!" 제법 힘차게 소리를 내지르며 잔뜩 움츠려진 몸과 마음을 다스려보려는 의지가 살짝 엿보이는 함성이었다. 그리고 토마스의 이런 간절한 외침은 그를 향해 똑바로 달려드는 멧돼지에 의해 금세 묻혀버렸다. "저...... 저거 너무 위험한거 아냐?" "그.... 글쎄." 코웰은 옆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데이몬을 향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다 보니 어떻게 대처를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아이들의 눈에 거대한 멧돼지가 토마스를 향해 짖쳐 들면서 순간 거대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아악...... 토마스......!!" 데이몬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토마스를 불렀지만, 큰 충돌음과 함께 멧돼지와 나무 사이에 끼게 된 토마스는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저...... 저거........ 큰일이다. 마을로 가서 아저씨들을 불러와야 해." 제법 생각이 깊은 코웰이 애들에게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잔뜩 얼어붙은 아이들의 발은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멍하니 토마스가 있을만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하나같이 입을 닫고 있었다. "허........헉..... 쿨럭." 울컥. 토마스의 입으로 검붉은 핏덩어리들이 연신 넘어오고 있었다. 자기 딴에는 순간을 노려 긴 막대기를 이용해 껑충 뛰어오를 생각이었지만, 거대한 멧돼지의 속도는 토마스의 상상을 뛰어넘고 말았다. 그 때문에 토마스는 긴 작대기를 미처 땅에 꼽기도 전에 멧돼지와 부딪혀야만 했다. 땅에 꼽으려던 작대기가 멧돼지의 턱 아래쪽으로 들어가면서 부러져버리자 그 탄력으로 두 다리가 살짝 뜬 것이 토마스에게는 다행히 큰 행운이었다. 그러나 살짝 뜬 토마스의 몸으로 날카로운 멧돼지의 뿔이 길게 스치면서 치명적인 자상이 가슴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그어졌다. 그곳으로 연신 붉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와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런 점은 토마스와 부딪힌 멧돼지의 뿔이 토마스의 등뒤에 있던 나무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허억......헉... 아파...... 쿨럭..." 몸의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손끝하나 움직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그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배에서 가슴으로 길게 찢어진 상처는 얼얼한 느낌만 전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평소에도 가슴을 답답하게 짖누르는 통증을 마지막까지 강하게 느끼며 토마스는 서서히 의식을 잃고 있었다. 제로니스는 대지를 밟는 탄력에 몸을 맡기며 앞으로 계속해서 쏘아져 날아갔다. 신기하게도 그의 발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건만, 그의 발 밑으로 형성된 작은 기운들은 잔잔한 풀잎들을 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훗, 역시..... 이 상태라면 내 몸과 반응하는 기운들로 인해 제이카가 더욱 좋아하겠는걸?" 수천 년 동안 그와 동거동락을 해온 제이카는 현존하는 헤비 워커 중 최강으로 손꼽히는 존재였다. 물론 기나긴 수면기에 접어들기 직전 누군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개량이 되었지만, 지금의 이런 느낌이라면 과거의 제이카만으로도 충분히 최강으로 만들어 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느낌을 감미하던 제로니스의 앞으로 서서히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있었다. 제로니스는 순간 앞으로 쏘아져 가던 몸을 급하게 세우며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에 넋을 잃고 있었다. "허어.... 아주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데 제법 강단이 있군." 순간 제로니스의 눈가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아무리 봐도 아직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이 강하게 내뿜는 의지는 수천 년을 살아온 제로니스에게 신선한 모습이었다. 보통의 또래 아이들 같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저렇듯 강한 의지를 보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거대한 멧돼지와 싸우려는 토마스의 의지는 다른 또래의 소년들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그때였다. 제로니스는 순간 그를 향해 밀려드는 기분 나쁜 기운에 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런, 내가 아무리 새로운 느낌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고는 해도 저런 같잖은 것들을 그냥 지나쳐 왔다니......" 제로니스로서는 조금 실망스런 느낌이었다. 새롭게 온몸으로 전해지는 기운에 의해 잠시나마 주변을 살피지 않은 실책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당연히 저런 하찮은 몬스터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단지 그 존재들을 미처 느끼지 못한 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가고일 떼로군. 아무래도 저 멧돼지를 쫓아온 듯 보이는데....." 산이 깊다보니 갖은 몬스터들이 우굴 거릴 만도 했다. 그런 무리들 중에 가고일 떼가 끼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가고일 떼들은 평소에도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하급 몬스터들과 산짐승들을 주로 사냥하고 다녔으니 이런 깊은 산중에서라면 간혹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그의 뒤에 새롭게 나타난 가고일 떼는 무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또한 저 기특한 소년은 아무래도 가고일 떼의 출현을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훗, 오랜만에 보는 가슴 설레이는 광경인데 저런 하찮은 것들이 방해를 해선 곤란하겠지." 스윽. 간만에 어린 소년에게서 작은 감동을 받은 제로니스는 살짝 손을 들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대여섯 마리의 가고일을 향해 작고 강력한 기운을 내뿜었다. "차앗, 대지의 신성한 기운을 내 손에 담는다. 블리스 필드(Bless Field)" 오래 전, 검과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시절. 그를 가장 행복하게 해줬던 기술이었다. 검과 내가 하나가 되고 그 위에 신들의 기운을 담는다는 뜻으로 개발한 기술이 바로 블리스 필드. 즉, 주변의 모든 사악한 것들에게 신의 은총을 베푼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검기였다. 파랗게 빛이 나는 가늘고 긴 선이 길게 횡대로 늘어서면서 그의 의지가 향한 곳을 따라 날아가는 모습은 그당시에도 대단한 기술이었다. 그런 검기와도 같은 제로니스의 기술이 지금 그의 맨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수면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만 해도 맨손으로는 겨우 1~2미터에 해당하는 선만이 겨우 생성이 되었던 그였건만, 이제는 대자연과 조금씩 동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길이의 검기들이 그의 손을 통해서 형성이 되었다. 그로 인해 제로니스의 등장과 함께 그를 향해 본능적으로 살기를 내뿜던 가고일 떼는 느닷없는 제로니스의 검기에 큰 봉변을 당해야만 했다. 휘이이잉. 한차례 파란 검기가 주변을 향해 날아가면서 순수한 대자연의 기운을 지닌 나무들에게 작은 바람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뒤에서 연신 살기를 뿜어내던 가고일 떼는 미처 날아오르기도 전에 제로니스의 검기에 맞부딪쳐야만 했다. 푸드득. "케에에엑" 검은 색과 흰색이 뒤섞인 날개들이 사방으로 흐트러지면서 가고일들의 몸통에는 작고 가는 선들이 여지없이 그어졌다. 그리고 주변나무들에 의해 수천 가닥으로 나눠진 푸른 선들은 그 이후에도 가고일 떼에게 수많은 조각이 되라는 손짓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수천 가닥으로 나눠지던 제로니스의 검기가 어느 순간 멈추어 버렸다. "응? 아직은 어린 새끼인가? 그래서 날지 않은 채 사냥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군." 한순간 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던 제로니스의 눈가엔 차가운 살기가 어른거렸다. 그 살기에 놀란 가고일 떼가 미처 날아오르기도 전에 제로니스의 검기는 그것들은 수천 가닥으로 분해시켜 버렸다. 그 와중에 제로니스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던 검기들이 잠시 주춤하자, 그는 이상한 마음에 숲 속 깊은 곳까지 기운을 뻗어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작은 덤불 아래 숨어 있는 가고일의 새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판단을 맞친 제로니스는 주변으로 뻗어나가던 모든 기운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몬스터라고 해도 아직 어린 새끼는 보호받아야 하는 법. 아무래도 네 부모들은 너를 위해서 죽어야만 했던 것 같구나. 그만 가거라." 제로니스의 눈가에 한순간 차가운 빛이 사그라들었다. 깊은 산중에만 있었다면 가고일 떼는 오늘과 같은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새끼를 가진 탓에 멀리 날아가지도 못하고 주변에 있는 짐승들만을 사냥하다가 오늘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제로니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죽일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에 대해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속에는 갓 태어난 어린 몬스터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기에 그의 자비에 의해 잘게 날개를 떠는 가고일의 새끼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씁쓸한 상황을 곧 맞이해야만 했다. 꽈아앙. 거대한 나무와 부딪힌 멧돼지의 충돌음이 그의 귀를 자극했던 것이다. "이런...... 아직은 어린 소년에 불과한데......" 그의 눈에 들어온 토마스의 모습은 처참했다. 제법 의지가 강한 인간의 아이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눈을 감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멧돼지의 재빠른 돌격 앞에서도 저렇듯 작은 상처만을 입고 있는 것이다. 만약 죽음의 공포에 의해 눈을 질끈 감았다면 멧돼지와 부딪힌 인간의 아랫도리는 피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한순간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어린 소년의 답답한 신음성을 듣게 된 제로니스는, 곧이어 충돌로 인해 잠시 기절을 했던 멧돼지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천천히 토마스의 곁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7 - 1 제국의 기사. 싸이가 갈리아스 가문이 있는 사인스타니아 호수를 떠난 지 근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동안 싸이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대륙을 여행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싸이의 신체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사실 싸이는 수면기라고도 전해지는 아공간에서의 수련(?) 때문에 그곳에서 제법 긴 시간을 보내면서 내면의 성장에 힘을 썼었다. 이건 누가 가르쳐 준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든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되는 일이 아니었다. 싸이는 그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점차 생각하는 이성을 길렀던 것이다. 그런 싸이였지만 외관상의 모습은 수면기를 거치기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데 요 한 달 동안 시커먼스 군단과 갖은 씨름을 벌이면서 싸이의 몸에 조금씩 힘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중요한 일이었다. 몸 안에 작은 내단이 형성이 되면서부터 갈리아스 옹에 의해 강제로 시작된 검술 수련이었지만, 그동안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제우스의 몸 안에서 점차 자신이 행해야 할 모습을 꾸준히 명상한 덕분에 몸과 마음이 차차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육체의 성장과 이어졌다. 그덕분에 지금 현재 싸이의 몸은 갓 10대에 접어든 수준이었다. 지금 싸이의 나이는 정확히 14살 7개월.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대략 5~6cm 정도는 작은 키였지만, 그래도 근 한 달 동안 꾸준히 커나갔던 걸 생각하면 앞으로 그 현상은 가속화가 될 듯 보였다. 그 때문일까? 싸이는 자신의 키가 점점 커짐에 따라서 조금씩 머릿속에 든 검술의 모양들이 몸으로 표출이 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제일 행복한 존재는 벼락이었다. 한동안 갈리아스 가문을 떠나 여행길에 접어들면서부터 싸이에게 더욱 심한 괴롭힘을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던 벼락이었기에, 요즘 들어 저 혼자 신이 나 아공간을 부지런히 오가는 싸이 덕분에 벼락이는 큰 봉변을 면하고 있었다. '후훗, 저 얄미운 녀석이 이젠 제 발로 알아서 기어 들어가는 걸 보니까 그곳에서 노는 일도 제법 재미를 붙인 모양이군. 하긴 요 근래 들어 저녀석이 하는 짓을 보면 과거 의지의 힘만으로 다루던 제우스와 시커먼 놈들을 이젠 육체의 힘으로도 움직이는 것 같던데, 아마 그 때문에 더욱 재미가 있을 거야.' 벼락이의 생각은 가장 정확했다. 이 물질계에 속해 있는 모든 기운들의 흐름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콘돌이다. 그런 콘돌이 바로 벼락이가 아니겠는가. 비록 몸 안에 잠재된 기운의 태반을 누구누구에게 빼앗겼다 하더라도, 그 안에 잠재된 본능까지 빼앗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여튼 오늘도 변함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메테우스가 몰던 거대한 마차는 싸이의 아버지이자 엘렌의 남편인 로멜쥬 대공이 있는 북서쪽을 향해 거의 일직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건 싸이의 의지로 인해 시작된 여정이기에, 메테우스는 과거 그가 오던 길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 시대에 길이란 거의 대부분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인간들이 걸어갔음직한 작은 소로를 따라 방향계의 바늘에 신경을 쓰면서 가야만 했다. 이런 실정을 아직까지 잘 모르고 있는 싸이다 보니 그냥 메테우스에게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곧장 가자는 말을 했다. 그럼 메테우스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싸이의 말이기에 산이 있건 강이 있건 곧 죽어도 똑바로만 가야 한다는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의 여행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단지 제국의 모든 지도가 제법 소상히 기록되어 있었고, 그 몇 장 안되는 지도를 메테우스가 가지고 있다는 점이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또한, 간간이 지도에 나와 있지도 않은 강들이 나타나면 엘렌이 손수 마법을 써서 메테우스를 편하게 해줬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이랴~! 더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가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서 너희들에게 맛있는 과일을 먹여주마. 이랴~!" 지도에 적힌 대로라면 대략 반나절 안에는 작은 마을이 나올 것이다. 메테우스는 그 점을 염두에 두며 말고삐를 힘차게 휘두르고 있었다. 그런 메테우스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만이 들어 있었다. '오늘은 반드시 전하를 따스한 곳에서 편히 쉬시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내가 기사의 명예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작은 산골 마을의 촌장집이라도 쳐들어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전하를 편히 쉬게 만들고야 말겠다.' 메테우스는 지난 일주일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잠을 자지 않은 상태였다. 이건 확실한 그의 의지였다. 분명 잠을 못 잔 것과 안 잔 것의 차이는 명확했다. 이건 싸이를 지키기 위해 기사로서 최선을 다했던 메테우스의 고집스런 모습이었다. 지금 현재 이들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칼데아 산맥이었다. 메테우스가 지닌 지도에 의하면 멜빈이 있는 서부 전선을 향해 일직선으로 가기 위해선 거대한 칼데아 산맥을 넘어야만 했다. 그 때문에 거친 산길을 따라 이동을 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물론 메테우스가 걱정하는 대형 몬스터의 출현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을 하기엔 너무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메테우스는 밤새껏 일행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경호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건 싸이의 행동을 봐도 확실했다. 메테우스가 마차 안에서 편히 주무시라고 그렇게 간청을 해도, 결국 찬 바닥에 두꺼운 가죽을 깐 채 잠을 청하는 싸이였다. 그로 인해 그 옆에서 밤새 경호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처 메테우스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었다. 싸이는 찬 곳에서 잠을 자려던 것이 아니었다. 답답한 마차보다는 대자연의 모든 기운이 피부로 생생히 전달이 되는 야외에서 편히 누워 온 몸으로 대자연의 기운을 만끽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되면 아침에 일어나 한결 개운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메테우스가 제일 걱정하던 대형 몬스터들은 절대 그들의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엘렌이 은연중에 전신의 기운을 풀어놓으며 싸이의 안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싸이 또한 밤새껏 대자연과 하나가 되기 위한 명상(Meditation)을 하고 있었기에 깊은 산 중에 우글거리는 몬스터들은 감히 그들 주변으로 얼씬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걸 새까맣게 모르는 이 우직스런 메테우스의 고집은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밤새껏 주군의 곁을 떠나지 않은 채 두 눈을 번뜩이며 경계를 서는 그에게 잠시 눈 좀 붙이라는 말은 그의 명예를 깍아 내리는 모욕적인 언사였던 것이다. 해서 쥬엘은 평소처럼 조용히 그들의 곁에 머물려 간간히 메테우스를 위해 은총의 기도와 피로회복 주문을 외워야만 했다. 어쩌면 그녀의 이런 마음은 순수한 남자의 믿음에 따른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우두두두. 제법 긴 여행길이었지만, 매일 아침 싸이로 인해 깔끔한 면도를 명 받은 메테우스의 얼굴엔 제법 윤기가 돌고 있었다. 아마도 쥬엘의 기도가 잘 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그가 이끄는 팔두 마차는 대형마차답게 거대한 진동을 주변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잠시간 명상에 잠겨 있던 엘렌은 서서히 느껴지는 묘한 느낌에 반짝 눈을 떴다. "으응? 결코 낯선 느낌이 아닌데..... 누가 이 근처에 있는 것일까?" 잠시 온몸의 기운을 잔잔히 퍼트리며 주변에 있을 법한 동족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엘렌이었다. 곧이어 그녀의 기운에 살짝 반응을 보인 존재가 느껴지자, 엘렌은 급히 몸 안으로 기운들을 되돌렸다. 이건 동족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비록 상대가 그녀보다 어리다고 해도 이런 예의는 반드시 갖춰야만 했다. 그렇게 엘렌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 존재를 향해 메테우스가 이끄는 마차는 빠른 속도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워~워~!!" 깊은 산 속에 있는 마을치고는 제법 보기 좋은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몬스터들의 침범을 막기 위해 마을 외곽으로 빙 둘러친 목책들이 다소 눈에 거슬렸지만, 결코 허술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기에 그 모습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메테우스의 심경은 남달랐다. "주군, 오늘은 저 마을에서 하루 쉬어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메테우스의 굵은 목소리가 싸이의 귀로 전해졌다. 잠시 잠이 들었던 것인지, 엘렌의 무릎 위에서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싸이가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곧이어 싸이의 눈에도 아담한 시골 마을의 풍경이 전해져 왔다. "우웅, 그렇게 해요. 메테우스." "넵, 주군. 알겠습니다." 이젠 싸이의 존칭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는 메테우스가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덕분에 요즘 들어 싸이가 존대를 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어린 아이가 말을 놓는 모습은 결코 보기 좋은 게 아니라는 싸이의 의견이 메테우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이런 두 주군간의 모습은 쥬엘의 눈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왔다. '후훗, 어찌보면 두 사람이 모두 고집스러워서 그런 것이겠죠?! 싸이 전하께서야 그렇다고 쳐도 그 밑에서 온갖 궂은 일을 묵묵히 하시는 메테우스 경도 마찬가지군요. 주군께 존대를 들을 수 없다면서 그렇게나 고집을 피우시더니만..... 아마도 두 사람이 가진 신뢰가 주군께 감히 대드는 기사의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겠죠.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랍니다. 아마도 당신들을 만나게 해준 것은 모두가 그 분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이유겠죠. 제가 당신들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한가지뿐이군요.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는 이가 되소서......!!' 쥬엘은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점차 마음 속에 신의 은총이 가득 내려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해서 이렇게 두 사람에게 축복 어린 말들로 그들의 앞날을 기원해 주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메테우스는 여러 번에 걸쳐 봐야만 했다. 살짝 미소를 띈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에 가슴이 크게 울렁거렸지만, 결코 겉으로 내색 않는 메테우스였다. 하지만 점점 그녀의 미소에 빠져드는 것은 남자로서 어쩔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런 쥬엘의 기도가 이루어졌는지, 점점 그들의 앞으로 다가오는 작은 산골 마을은 싸이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는 작은 인연의 시작을 전해주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7 - 2(소제:사부와의 첫만남) 메테우스는 작고 아담한 산골마을의 정중앙에 있는 제법 넓은 길로 마차를 몰고 있었다. 흔히 이런 작은 산골 마을에는 마을 한가운데로 나 있는 길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한눈에 마을을 볼 수 있는 길로 메테우스는 마차를 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긴장감이 감도는 그의 얼굴에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그래서 인지 세레나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차의 창문에 쳐져 있는 차양막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자신이 몰고 있는 이런 거대한 마차는 생전 처음 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호기심 짙은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메테우스는 산골 마을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해서 더욱 허리에 힘을 준 채 마차를 조심스럽게 몰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헛점을 들어내면 금세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인해 이 마차 주변 에는 온동네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그 때문에 메테우스는 사람들의 시선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금도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면서 간간이 느껴지는 주변의 시선은 그의 신경을 거슬리 기에 충분했다. 자신처럼 허리에 검을 찬 기사가 직접 모는 마차를 그들은 생전 보기 힘들 것이고, 또한 이처럼 거대한 마차도 처음 볼 것이다. 여덟 마리의 말들이 끄는 거대한 마차와 마차 전면에 윤기가 흐르는 모습은 대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기에 메테우스의 긴장감은 도를 지나치는 듯 보였다. '꿀꺽, 마을에 접어들면서부터 뭔가 이상한 기운이 전하와 마님의 주변을 머무르는 느낌이다. 이건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로 알아채지 못할 기운들이었어.' 왠지 전신의 피부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인지 더욱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 메테우스였다. 이런 그의 느낌을 알고나 있었을까? 옆에 앉아 있던 쥬엘이 조심스럽게 마차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이 타고 있는 마차는 이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마차가 아니었다. 마부석에서 마차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 있는 마차였기에, 그 모양이 절대 흔치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팔두 마차라 함은 시시한 귀족들은 감히 흉내도 못내는 힘과 권위의 상징성이 짙은 모습이었다. 해서 귀족들 중 최고의 직위라고 할 수 있는 후작 가문에도 팔두 마차는 감히 탈 생각을 못했었다. 이런 상징성이 짙은 마차를 호위도 없이 달랑 마부석에 앉은 기사 혼자서 몰고 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이 마차를 호위할 책임이 있는 메테우스에게는 하나 둘 주변으로 몰려드는 순박한 마을 주민들 보다, 조금 전부터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이질감이 그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멀리 마을이 내려다보일 때에는 미처 느끼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마차가 마을 입구에 다다르자 나무로 만든 작은 성문과 그 문을 지키는 경비병과 시선을 교환한 뒤부터 그는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 그들의 눈에 담긴 놀라움과 긴장감 때문만은 절대 아니었다. 그들도 마을을 자체적으로 지키기 위해 무장을 했지만, 그들의 무위와 메테우스의 무위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순박한 시골 마을 경비대에게 기가 죽을 메테우스가 아닌 것이다. 단지, 자신이 몰고 있는 마차로 다가오는 이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답답하게만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 마나를 갓 느끼는 상급에서 이젠 조금씩 응용을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워리어스로 접어든 메테우스였기에, 상대의 기운이 거대함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메테우스의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봐요. 메테우스 경. 저기가 좋겠군요." 차양막 안에서 고운 엘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렌의 고운 음성에 퍼득 정신을 되찾은 메테우스는 이내 눈앞으로 다가오는 이층으로 된 목조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려 조금이라도 깨끗한 건물을 찾고자 노력해야만 했다. 엘렌이 말한 건물은 그가 보기에도 너무 지저분했던 것이다. "마님, 이곳에서 묵으시렵니까? 차라리 이 마을 촌장집이라도....."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엘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기가 편하겠군요. 우리는 지금 여행중이랍니다. 굳이 깨끗하고 깔끔한 것만을 찾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 까요?" 더 이상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한 메테우스였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분이 손수 낡고 허름한 곳에 머무르시겠다는 것을 그로서는 감히 말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단지 목조 건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이질감만이 그를 더욱 애타게만 만들뿐이었다. "워워~!! 게 아무도 없느냐?!"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건물 안에 누군가를 불렀다. 이내 그의 목소리에 답하듯이 건물 안에서 작은 소년 하나가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답하는 소년에게 메테우스는 잠시 시선을 주며 마차 바퀴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메테우스의 뜻을 알아챈 소년은 급히 주변에 놓아둔 제법 큰 돌멩이로 마차 바퀴를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나리. 말들은 어떻게 할까요?" 제법 똑똑한 눈망울이었다. "여기에 그대로 둔다. 먹이는 과일을 잔뜩 넣은 것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네에, 소인이 최고의 먹이로만 직접 먹이겠습니다." 평소 이런 행동이 몸에 베었다는 것은 이곳이 산골 마을의 여관임을 알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더구나 소년의 싹싹하면서도 예의가 밴 모습을 보면서 전신으로 기어오르던 이질감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으음. 마치 누군가가 나를 테스트하려고 했단 말인가?' 조금은 이상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분명 마을 입구에서부터 그를 괴롭혀 오던 낯선 이질감이었다. 그 이질감은 이곳 여관으로 다가올수록 더욱 심했었다. 한데 눈앞의 소년에게 이것저것 세세한 것들을 말하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절대 방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를 한번 악무는 걸로 결심을 굳힌 메테우스는, 곧이어 허리에 찬 검집을 다시 한번 매만지며 이내 마차의 문으로 걸어갔다. "주군, 마님께서 손수 정하신 곳이옵니다. 내리시옵소서." 한눈에 봐도 메테우스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절도가 베여져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마을 입구부터 쭉 지켜봐 온 마을 사람들은 곧이어 마차 문이 열리면서 나타날 누군가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표하고 있었다. 이윽고, 마차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면서 그 안에서 젊은 여인이 모습을 들어냈다. "아아, 신...... 신의 사제이시다." 하지만 누군가의 탄성은 금세 터져 나온 또 다른 목소리에 의해 사라져야만 했다. "이야, 하얀 털을 지닌 성조다. 저.... 저 새 이름이 뭐지?" 하나 둘 탄성을 자아내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메테우스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허리를 급히 숙이며 누군가를 맞이해야만 했다. "메테우스 경. 여긴 어디야? 여행중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은 이곳이 처음이네." 순간 소년이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들어내면서 온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탄성과 놀람이 교차 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천상에 있는 소년의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검은 색의 다소 단순한 스텃 튜닉과 스텃 레깅스로 전신을 감싼 소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그 모습 때문에 놀랜 것은 아니었다. 최고의 무가에서도 저렇게 진한 검은 색의 가죽 갑옷을 걸치는 사람들은 손에 꼽힐 정도였 다. 흔히 이 시대의 염색수준이 그러하듯 저렇게 진한 검은색의 갑옷들은 최고의 기사가 아 니면 감히 흉내도 못 낼 값비싼 무구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값비싼 무구로 온몸을 장식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그 가죽 갑옷을 입고 나타난 작은 소년의 미소 때문이었다. 마치 그 소년이 나타남과 동시에 그들의 눈에는 평소 흔히 보던 마을 풍경이 한순간 성스럽 게만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가히 말로는 필설 못할 만큼의 커다란 감동이었다. 누군가를 본다는 것. 그건 아주 쉽고 단순한 행위였다. 하지만 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주변이 환하게 빛이 난다는 것은, 깊은 산 골에서만 살았던 이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느낌이었고, 대도시에서 부유한 삶을 이어가는 귀족들을 몇 번 본적이 있는 사람들 또한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이었다. 그 때문이었다. 우루루루루루. "위대하신 분을 뵈옵니다~!!" 누군가가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환하게 빛이 나는 소년이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들어낸 순간, 마 차 주변을 맴돌던 어린아이들부터 온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우웅...... 모두들 나를 알고 있는 건가요?" 이윽고 그들의 귀로 작게 속삭이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싸이의 의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 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해 싸이의 목소리는 사라져버렸다. "어서 들어가자꾸나. 아주 반가운 분이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밑도 끝도 없는 엘렌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싸이는 엘렌의 말에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단지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그저 눈짓으로 메테우스에게 조용히 묻기만 했다. 허나 메테우스 또한 눈앞의 이상한 사태를 맞이하여 다소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메테우스는 더 이상 어리둥절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걸음을 옮기는 엘렌의 뒷모습을 쳐다만 보고 있기엔 그가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 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는 엘렌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메테우스는 자신이 모시는 분의 현명함을 믿기로 한 것이다. 끼익. 작은 소음과 함께 세리에 마을의 하나뿐인 여관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여관의 일층이자 마을에 단 하나뿐인 주점 겸 식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 이 급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메테우스의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은 식당의 정 가운데에 위치한 테이블을 차지한 존재들이었다. 번쩍. 살기라고 봐도 무난할 정도의 날카로운 눈빛이 메테우스의 눈가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눈에 일던 작은 기운은 곧이어 그를 따라 들어오는 인물과 동시에 사라져버렸 다. 더불어 메테우스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던 존재들 중 한 명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히야, 겉보다 안이 더욱 아늑하네요." 작게 탄성을 지르면서 들어서는 싸이의 모습에 엘렌의 눈가에 작은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 다. 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신기하게도 주변의 낯선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결코 소홀히 넘기는 법이 없었다. 크고 험준한 산을 멀리서 바라볼 때는 산세가 어떻고, 이런 곳에서의 여행이 어떻고...... 등등의 귀여운 표현으로 그녀를 수시로 기쁘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런 아들이라고 해도 문제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씩 심술을 부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 자신도 놀랄 때가 많았던 것이다. 이건 조금전의 모습만 봐도 충분했다. '호호, 녀석도 참. 조금 전 낯선 사람들을 처음 봤을텐데도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우리 가문 의 기운을 내뿜더니만..... 이제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걸까?' 내심 조금 전에 싸이가 몸 주변으로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가문의 기운을 내뿜던 순간이 떠 오른 엘렌이었다. 그런 아들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엘렌으로서는 낯선 여관 의 풍경이 신기한 듯 눈을 빛내는 아들의 모습에 절로 머리를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후훗, 괜찮니?" "네, 아주 맘에 들어요." 작게 고개를 까딱이는 아들의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운 엘렌이었다. '훗, 내가 어렸을 때도 저랬을까? 아빠가 나를 어릴 적부터 무척이나 예뻐해 주신 건 알지 만, 저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그녀 또한 어릴 적 심한 투정과 고집을 피우며 보낸 세월들이 제법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 관계로 그 당시에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 심한 투정과 고집을 부려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현재 눈앞의 아들을 통해서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그녀가 부모님께 보여줬을 법한 가문의 기운들을 움직이는 모습도 아들을 통해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 모습이었다. 때문에 엘렌은 품안에 고이 안고 있는 벼락이의 안전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그녀도 어릴 적 주변에 사는 여러 종족들을 괴롭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엘렌은 곧이어 뇌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더욱 아들의 등을 힘주어 잡았다. 소중한 아들이 오늘따라 힘이 나는 듯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던 것이 다. 그리고 이내 누군가를 상기하며 급히 단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결국 엘렌은 아들의 웃음기 어린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시선을 주며 최대한 우아하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아들 또한 누군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신룡의 후예 7 - 3 제로니스는 부상이 심한 토마스를 품에 안은 채 세레아 마을로 들어왔다. 그 덕분에 그의 상의는 토마스가 흘린 피로 인해 시뻘겋게 변색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외모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태평한 모습이었다. 조금전 자신의 품에 안겨 돌아온 토마스에게 놀란 시선을 보내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제법 정다웠던 탓이었다. "후훗" 순간 알 수 없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어리기 시작했다. 토마스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서 기절한 아들을 구해주고 여기까지 안고 온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던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들의 피로 얼룩이 진 그의 옷을 빨아주겠다며 한사코 나서는 모습이 그의 오랜 감성을 따뜻하게 자극시켰던 모양이다. 하나 제로니스는 그냥 버려진 옷 그 자체로도 만족한 모습이었다. 때문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도 울먹거리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의 뇌리에 진하게 박히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묘하게도 그의 감각에 들어오는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마치 달콤하면서도 무언가 위엄이 서려 있는 기운이었다. 이건 그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함이었다. 마치 대자연의 품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듯한 기운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제로니스의 이마가 작게 구겨졌다. 왜냐면 새로운 기운을 느끼는 순간 그의 앞으로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다가왔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이 마을의 안전을 담당하는 제임스라고 합니다." 제법 정중하게 인사를 보내왔지만, 제로니스의 인상은 쉽게 펴질 생각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제로니스에게 자신들이 해야할 예의를 갖추기에 연연하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이 마을의 촌장처럼 보이는 이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십니까. 귀한 분께서 손수 이렇게 왕림해주셔서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토마스를 구해주셔서 대단히 감사 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제로니스의 외모만을 보고선 귀족으로 인식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저렇게 저자세로 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제로니스는 더욱 안색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반갑소. 난 제로니스라고 하오. 잠시 크레즈 산에 볼일이 있어 가던 중 우연히 그 아이를 발견한 것뿐이라오.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인사는..... 솔직히 거북스럽소." 솔직한 그의 마음이었다. 자신의 외모와 함께 현재 그가 몸에 걸친 하늘색 가죽 갑옷들이 산골 주민들의 눈에는 제법 귀하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굳이 이런 환대(?)는 원하지 않았다. 그 스스로도 이제는 대자연에 한걸음 더 다가선 입장이기에, 무언가 여유가 느껴지는 편안함이 더욱 좋았던 것이다. 헌데 눈앞의 이들은 작은 산골 마을을 대표한다는 생각이었는지 그에게 너무도 정중한 인사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약간의 가식을 읽지 못했다면 그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제로니스가 몰랐던 부분이 있었다. 어쩌면 그도 대충은 짐작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들추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를 바라보는 제임스의 시선은 특히 그를 거북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제임스는 눈앞에 서서 약간은 딱딱한 고자세를 취하는 존재에게 감히 표할 수 없는 존경심이 솟아나고 있었다. 이건 그의 아들인 카웰이 들려준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 아들이 그에게 다가와서는 놀란 눈으로 횡설수설한 이야기로 인해 그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어야만 했고 그 덕분에 눈앞의 존재가 더욱 우러러 보였던 것이다. 또한 조금 전 그가 겪었던 일들로 인해 그 존재가 보통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조금 전 제임스는 허겁지겁 달려와 뭐라고 떠들어대는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뭔가 큰 사고가 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말속에서 느껴지는 일의 발단은 바로 뒷산으로 사냥을 간 일이 시작이었다. 제임스의 아들 카웰은 평소처럼 동네 아이들과 다함께 어울리다가 오늘따라 낯선 모험터인 뒷산의 경계선을 넘어 놀이 겸 사냥을 나갔던 모양이다. 헌데 우연히 아이들 눈에 커다란 멧돼지가 발견이 되었고,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인 클리프의 아들 토마스가 어린 마음에 멧돼지 사냥에 도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아이들인 탓에 그들이 상대하기엔 다소 버거운 멧돼지였을 것이다. 또한 과한 욕심이 사고를 불러일으킬 법도 했다. 여기까지는 그도 어릴 적 몇 번 겪어본 일들이라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친 줄 알았던 토마스가 우연히 지나가는 이에게 발견이 되어 큰 상처 없이 돌아왔기에 그로서는 안심을 했던 일도 이런 생각을 거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아들이 그 문제의 멧돼지를 토마스가 잡았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본 사고현장에서의 첫인상은 도저히 믿지 못할 일들뿐이었다. 아직까지 깊은 산중에 들어가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커다란 멧돼지 형상을 하고 있는 데크라이안은 그저 멧돼지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그 문제의 멧돼지 데크라이안이 지닌 전투본능과 힘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몬스터들 중 중하위급에 기록이 되어 있는 데크라이안이겠는가. 외관상 대형 멧돼지 과에 속하는 데크라이안은 그 단단한 피부조직과 함께 두꺼운 가죽을 온몸에 두르고 있어 왠만한 활과 창으로는 가죽을 뚫지도 못한다고 했다. 또한 그들은 집단 서식을 하면서 잡식성의 식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데크라이안이 무서운 점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저돌적인 공격성향으로 인해 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깊은 산중에서 데크라이안 떼를 만나게 된다면, 제아무리 튼튼한 나무위로 올라선다고 해서 안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데크라이안이 무서운 점은 날카로운 뿔에 있었다. 흔히들 멧돼지들의 송곳니로도 알려진 삐죽한 이빨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데크라이안이 잡식성 동물로서 알려진 것도 모두가 그 뿔에 있었다. 땅 속에 깊은 굴을 파고 생존하는 여우 과 동물들을 비롯해서 작은 동식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데크라이안에게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의 뿔은 반드시 필요한 공격 무기였다. 그리고 그 뿔의 날카로움과 단단함은 거목을 향해 돌진하는 데크라이안의 공격성에도 한몫 단단히 했다. 때문에 인간이 깊은 산중에서 데크라이안 떼를 만나게 되면 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물론 상급의 기사들이라면 쉽게 피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기사들이라면 의당 기본적인 생존 경험들은 쌓았을 것이고, 데크라이안 떼를 만나게 된다면 수중의 검으로 자신을 보호하면서 피해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깊은 산중에 상급의 기사들이 나타날리도 만무했고, 제임스의 생각으로는 산중에서 사는 인간들은 대부분 힘없는 백성이라는 것이 확고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처음으로 보게 된 토마스의 첫 사냥터에 크게 퍼져 있는 데크라이안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장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가 모골이 서늘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끼리리릭." 흠칫 하는 몸의 반응과 더불어 그의 옆구리에 매달린 검집으로 그의 손이 다급히 다가갔다. 곧이어 날이 잔뜩 선 브로드 소드를 꺼내든 제임스의 눈에 풀섶이 움직이면서 그 속에서 작은 동물이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흐윽, 가......가고일.....!!"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새끼에서 조금 더 성장한 가고일이었다. 하나 그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분명히 가고일이다. 그럼...... 저 새끼를 보호하며 같이 사냥 다니는 어미들과 무리들은......?!" 아마도 태어나서 후회와 번민이 교차하기는 지난 전쟁 때 이후 처음일 것이다. 제아무리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왔다고는 해도, 고작해야 마을의 안전을 책임지는 치안대 소속 동료 3명이 그와 함께 온 인원수였다. 그것도 말로만 듣던 데크라이안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잔뜩 선보이는 갓 이십대에 접어든 치안대 동료들이기에 제임스가 가고일을 발견하고 느낀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것들이었다. "야~! 모두들 조심해. 그렇게 넋을 놓고 있지 말란 말이다. 너희들 눈엔 저 가고일이 보이지도 않아?" 그때서야 제임스의 호통에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가고일을 발견하곤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의 숲을 경계하는 치안대 일행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곧이어 극도로 긴장하던 와중에도 이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끼루루루룩." 분명 어미를 찾고자 소리를 지르는 것만 같은데, 가고일의 습성상 무리를 짓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전신 감각에는 또 다른 가고일들의 출현이 늦춰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평생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의 대치 후 제임스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황당한 일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아빠. 여기 이상한 깃털들을 좀 보세요." 자신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곧이어 벌어질 가고일 떼의 출현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들녀석이 가고일의 옆으로 다가가 화살을 재운 채 커다랗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 이녀석아.....!" 차마 더 이상의 말이 나올 수 없었다. 이건 용기가 너무 지나친 것인지 아니면 겁이 없는 것인지, 15살 생일날 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은 석궁을 들고 와선 제딴에는 제법 사냥꾼 티를 내고 있는 아들녀석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들에게 호통과 질책을 하려던 제임스는 곧바로 아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풀섶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 가고일에게 돌격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임스로서는 가고일을 상대로 이길 자신도 없었고, 아직은 어리다고 해도 괜스레 상처만 내서 보냈다간 그 후환이 두려운 관계로 크게 검을 휘두르며 가고일을 쫓아 보내기에 바빴다. 이런 그에게 아들 곁으로 다가갈수록 진해지는 혈향과 함께 발에 걸리는 이상한 느낌은 곧 커다란 안심으로 다가왔다. 물컹. "윽, 뭐........뭐지?" 급히 시선을 아래로 떨군 그의 눈에 가고일 특유의 깃털과 시뻘건 살덩이들이 작은 파편으로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리고 가고일의 깃털을 만지작거리는 아들녀석의 뒷통수가 눈에 들어오자 낼름 아들의 뒷통수에 가벼운 응징의 처벌을 가하는 제임스였다. 콩. "이녀석.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리도 설치는 거야? 그러다 가고일 떼가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어쩌려고 그래!!" 어쩌면 이건 어른들의 놀람에 따른 잔소리일수도 있었다. 아니 노파심에 나온 쓴소리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눈앞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세워두고 놀라지 않을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카웰은 금세 혹이 불거져 나오는 뒷통수를 움켜쥔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또한 제임스가 오늘 겪게 된 일들은 이것이 시작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면 아들의 횡설수설하던 이야기들이 하나 둘 그의 귀로 믿겨지지 않은 일들로 다가 왔던 것이다. "분명 토마스가 크게 상처를 입었다고 했지?" "네, 여기 가슴에서 배까지 크게 다쳐서 피를 철철 흘렸어요." "으....음. 그럼 아까 본 토마스는 어떻게 된 거야? 그땐 분명히 가는 혈선만 그려진 상태로 돌아왔던데....." "웅, 그건 아까 그 아저씨가 품에서 이상한 약을 꺼내서 발라줘서 그랬어요." "뭐어? 이상한 약?" 순간 데크라이안의 시체를 끈으로 묶어 땅바닥으로 질질 끌며 마을로 돌아가던 일행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놀랍다는 모습들이었다. 왜냐면 카웰이 신이 나 떠드는 말속에서 토마스는 커다란 자상을 입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한데 조금 전 마을을 떠나오기 전에 그들이 본 토마스의 외관상 상처는 작게 선이 간 가슴부위의 혈선 뿐이었다. 그것은 나뭇가지에 긁혀서 난 상처로 보기에도 별달리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한데 어린 카웰의 말을 빌리자면 큰 자상을 입은 토마스를 블루빛 머리에 약간은 회색이 섞인 인물이 품에 서 꺼낸 약으로 완치를 시켰다는 것이다. 이건 곧 놀라운 발견이었다. 흔히 마을이라고 한다면 도회지를 떠올릴 수도 있으나,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산골 마을도 나름대로 살만한 곳이었다. 단지 어디 심하게 부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그들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데 그 신비한 약을 조금이라도 얻게 된다면.....!! 아니 그 약의 처방전이라도 얻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곧 커다란 행복을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이건 순전히 욕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욕심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나, 가족과 주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만 하는 입장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덜 입게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제임스는 옆에서 따라오는 치안대 소속 어린 동료에게 눈짓을 보내며 자신은 다급히 마을의 촌장인 보르치니네 집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7 - 4. 클리프는 집으로 찾아온 마을 치안대 소속의 시몬을 바라보면서, 애써 감긴 눈을 부릅뜨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전쟁 중에 빗맞은 상처로 인해 실명한 눈에는 어떠한 빛도 전달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가슴속을 헤집는 커다란 충격은 그를 격동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자....자네, 뭐라고 했나? 우리 토마스가 데크레이안을 잡았다고....?! 그리고 저 상처가 원래는 큰 부상이었다는 것인가?" 깊은 산골마을에서 제법 유명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클리프였다. 그런 그가 데크레이안의 무서움을 모른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이었다. 한데 눈앞에 검은 그림자로 다가온 시몬은 연신 거친 숨을 헐떡이며, 데크레이안을 사냥한 마을 최초의 용사를 다시 한번 보고자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허억.... 헉. 네에, 제가 지금 토마스가 잡은 데크레이안을 끌고 왔다니까요." 연신 숨을 헐떡이면서도 침대에서 곤히 잠이 든 토마스를 쳐다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몬이었다. 하지만 토마스의 아버지인 클리프는 도저히 시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한 두 해 산골 마을에서 살던 그가 아니었다. 수십 년, 아니 그의 부모가 이곳에서 그를 태어나게 했으니 그 이상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런 클리프에게 있어 깊은 산 속에 살고 있는 몬스터들의 이름과 그 공포는 그리 쉽게 시몬의 말을 인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떨리는 다리에 힘을 준 채 시몬의 손에 의지해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이건 십여 년 동안 갖은 애를 쓰며 키워온 병약한 아들이 간만에 가진 평온한 휴식이 큰 영향을 줬다. 지금 토마스는 간만에 고른 숨을 내쉬며 편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런 엄청난 일을 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데 시몬의 말을 빌리자면 아들을 생사의 위기에서 구해준 분이 마을에 와 있다는 것이다. 혹시 자신의 판단이 틀려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더구나 그 신비의 약이라는 것도 매우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약초가 들어갔는지는 몰라도 주변의 모든 산을 뒤지면서 아들을 위해 귀하다는 약초는 다 캐본 그에게 그 신비의 약은 매우 심한 갈증을 불러 일으켰다. 아들이 저토록 편한 숨을 내쉬며 잠이 들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은인이라는 존재를 만나봐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만 다리가 떨리는 것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클리프였다. 또한 오늘 자신에게 벌어질 엄청난 일에 대해서도 그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헤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후후후, 만나서 반갑구나." 다소 어눌했던 말투가 이젠 많이도 바뀌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지 오랜 칩거(?)생활을 깨고 처음으로 만난 동족의 꼬맹이에게 살짝 미소를 보여주는 제로니스였다. 하나 그의 눈가에 이는 매서움은 엘렌을 직시하고만 있었다. 엘렌 또한 아들이 먼저 나서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지만, 곧이어 쏟아지는 상대의 눈빛에 절로 소름이 돋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갈리아스의 딸 엘렌키아니가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어찌되었든 상대는 그녀보다 한참이나 위에 있는 존재였다. 더구나 아버지를 보면서도 아주 가끔씩만 느껴지던 기운을 상대는 그녀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엘렌의 인사는 아주 정중하고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또한 눈앞에서 그녀를 직시하고 있는 존재에 대해서 엘렌이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그녀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다. 예전에 한참 세상에 익숙해질 무렵 엘렌의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던 존재가 바로 제로니스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모든 용족의 젊은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그였다. 하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렌의 인사를 받는 제로니스의 얼굴은 전혀 반갑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와 아들을 눈여겨보면서 간혹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그녀의 뒤에 버티고 있는 자랑스런 일족의 누군가 때문에 그나마 예의상 보여주는 모습 같았다. 그런 제로니스의 모습에 아들 앞에서 매우 당혹스럽기까지 한 엘렌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메테우스는 더욱 더 눈에 핏발을 곤두세웠다. 순간 그의 눈에서 불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눈으로 쏟아질 듯 들어오는 강렬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 사내의 주변에 이곳 산골 마을의 중요한 인물들이 모여 있었지만, 이제 갓 마나에 대해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그로서는 그들은 일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눈에는 눈앞의 사내가 풍기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만이 들어왔다. '끄응, 감히 내 주군과 그분의 어머님 되시는 분께 저런 건방진 모습으로 인사를 받다니...... 으득.' 당장이라도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든 채 그 사내에게 돌격을 하고 싶은 메테우스였다. 하나 그의 옆으로 어느새 다가온 쥬엘이 그를 말리고 있었다. '뿌득, 내가 일전에 그분께 불경한 짓을 한 일이 있기에 참는 것이다. 아암, 그분과 같은 기운을 내뿜는 사내라고 해서 절대 겁을 먹은 것이 아니야. 단지 저 사내가 나를 시험했던 것은 용서할 수가 있지만, 저분께 실례를 하는 건 나로선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내심 다짐하고 다짐한 채 눈앞의 사내를 죽일 듯 쏘아보고 있지만, 막상 그가 모시는 주군은 그 사내를 보면서 최대한 정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때문에 속만 북북 끓는 메테우스였다. 하지만 그런 메테우스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만 던지는 제로니스였다. 곧이어, 그의 목소리가 조용해진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후훗, 매우 충성심이 강한 아이를 호위기사로 두었구나. 그래, 형님은 안녕하시겠지?" 순간 메테우스의 눈가에 놀라움이 스쳐갔다. 분명 자신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의 입에서 태연하게 흘러나오는 또 다른 존재의 호칭이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이다. "네, 아버님께선 요즘 들어 더욱 혈기 왕성해지셨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소곳한 엘렌의 목소리에 속으로만 침음성을 토하는 메테우스였다. "호오, 그래? 이젠 제발 그 이상한 짓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던? 내 생전 그 양반 때문에 당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리는 구나. 헌데 저 아이는 누구이냐? 매우 낯설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존재감인데......" 평소와는 달리 큰 소리로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나누던 제로니스였다. 자신의 주변으로 몰려드는 위인들을 처리하기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캐물으려고 해도 그 뒤에 있을 누군가를 상기하며 애써 참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제로니스의 궁금증에 절로 미소가 어리는 엘렌이었다. 그러하기에 자랑스런 아들의 어깨에 올라간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만 있었다. "호호, 저의 보잘 것 없는 자식이랍니다. 앞으로 저희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가 될 아이이지요. 앞으로 제로니스 님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한 손으론 곱게 입가의 미소를 감추며 또 다른 손으론 아들의 등을 살짝 밀며 제대로 인사를 시키는 엘렌이었다. 이런 엘렌의 손길에 싸이는 그 신기함이 반짝이는 눈망울을 빛내며 눈앞의 제로니스에게 살짝 눈웃음을 보냈다. "다시 인사드릴게요. 저는 현 갈리아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싸이벨리 카빌라 폰 메르카 라고 합니다. 앞으로 어르신의 많은 보살핌 부탁드립니다." 순간 여관 안에는 적막 그 자체였다. 아니 잠시간 시간이 멎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일들은 그 적막을 깨부수고도 한참이나 긴 여운을 남겨야만 했다. 쿠웅. 누군가가 온몸이 허물어지듯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허억... 진심 또 진심으로 환영하나이다. 우리들의 자랑스런 군주이시여~!" 제일 먼저 무릎을 꿇은 채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이는 세레아 마을의 촌장인 보르치니였다. 그는 이 시대의 메르카 제국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온 인물이었다. 그런 이에게 진정한 이 나라의 주인이 될 자의 이름이 들려왔으니 그 가슴 벅참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우루루루. "위대한 군주님을 뵈옵니다. 황태자 전하의 강녕 하심에 미천한 저희들은 충심을 다해 인사드리옵니다." 제임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그 뒤를 이으면서 온 마을의 시선이 집중된 세레아 여관에서는 때아닌 인사가 온 동네를 훑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뒤이어 마을 밖 큰길가에 있던 이들도 공손히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납시셨다." "우..... 우리 마을에 황태자 전하께서 오셨다." 사람들의 눈가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눈빛이 맴돌았지만, 순간 그들의 눈앞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거대한 팔두마차는 더욱 더 지금 들려오는 말에 신빙성을 담아줬다. 때를 맞춰 마차의 안과 밖을 쓸고 닦던 데이몬은 마을 어른들이 자기가 올라 선 마차를 향해 인사를 하자, 아까부터 호기심이 생기던 곳에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어린 데이몬의 손에 의해 마차의 양쪽 모서리에 검은 천으로 쌓여 있는 깃발들이 풀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작은 미풍에 휘날리듯 흰색의 성스러운 콘돌의 모습이 온 마을 사람들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허억, 저건....." 어찌 그들이 저 깃발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모르겠는가. 제아무리 산골 주민들이라고 해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의 주인 된 자에 대해선 무지할 수가 없었다. 또한 그 주인 된 자가 어떠한 깃발로 움직이는 지에 대해선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건 이 시대에 깃발과 가문의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잠시 생각만 해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진실이었다. 그 순간 온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조금 전 천상의 소년과도 같았던 이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자신들이 왜 그 소년에게 당연하다는 듯 인사를 해야만 했던 순간이 떠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온 동네를 감동과 침묵으로 몰아놓는 사건을 저질러 버린 싸이는 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하나 제로니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잠시 놀랐지만, 그는 역시 대자연에 한걸음 성큼 다가간 이였다. "후후, 우리 일족간의 대화가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좀 어려운가 보구나." 잠시간 미소로서 싸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매만져 주는 제로니스였다. 그 덕분에 한결 표정이 풀린 싸이였다. 때때로 동족간의 인사에 지나친 언사는 조심해야만 했다. 그러나 싸이는 눈앞의 존재가 가진 힘과 기운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해서 최대한 예의가 바르게 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런 인사는 과거의 누군가에게나 통용되던 것이지, 이곳에서 통용되던 인사법은 아니었다. 하나 이런 싸이의 인사는 제로니스에겐 놀라움과 신선함을 가져다주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도 조금 전 너의 인사는 매우 놀라움을 가져다주더구나. 분명 아직은 어린 아이일터인데 어찌도 그리 참한 인사를 할 줄 아느냐? 허허허, 그 형님이 자식 복은 타고났구나. 아암. 타고나고 말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도 똑똑한 손자를 보겠느냐." "헤헤, 과한 칭찬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제로니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속의 불편함이 싹 가시는 싸이였다. 해서 진심으로 살짝 고개를 숙이며 존장에게나 할 법한 인사를 했다. 이런 싸이에게 제로니스는 너무도 산뜻한 신선함을 느끼고만 있었다. '역시 핏줄은 속이지 못한다는 신의 섭리가 맞는 것인가? 네 어찌 이리도 부러운 자태를 이 늙은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냐. 에휴, 그놈의 자식녀석은 이런 착한 손자하나 안겨줄 생각도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는데.....' 순간 싸이의 미소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린 제로니스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버지가 가진 힘과 능력을 채 반도 못 가진 채 태어난 우둔한 그의 아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어차피 우리 일족에게만 물려준다는 보장은 없지. 당장 저 아이만 해도 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주변의 기운들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듯한 눈치이니....!! 끄응, 어쩔 수 없지. 내가 예전에 그 형님께 받았던 은혜(?)를 그 후손에게 물려준다고 해서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니...' 제로니스의 고개가 작게 끄떡여지면서부터 그의 마음속에 있던 답답한 작은 경계선의 둑은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이건 어쩌면 대자연의 순리를 조금씩 터득해나가는 그에게 있어서는 자명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래. 그것도 괜찮을 것이야. 어차피 우리들에게는 일족과 동족을 나누는 경계선이 분명하지만, 현재 인간들의 눈을 의식해야만 하는 우리로서는 그들의 눈에 굳이 일족과 동족의 경계선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 더구나 저 아이라면 우리 동족들의 경계선을 허물만한 무언가를 이미 갖춘 듯 여겨지니 큰 탈은 없을 것이야. 아암.' 눈앞의 싸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내심 뭔가를 결심한 듯한 눈빛이 싸이의 어린 몸을 순식간에 스쳐갔다. 이건 제로니스와 같은 높은 경지에 도달한 자가 아니면 아무도 못 느끼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였다. 그 순간 싸이는 왠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전신에 소름이 돋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으응? 이건 무슨 느낌이지? 왠지 저 눈빛에 담긴 느낌은 좋은게 아닌 것 같은데...' 이 순간 싸이만큼이나 주변의 기운에 예민한 존재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자기를 바라보는 제로니스의 눈길에서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싸이기에 그 느낌은 더욱 더 선명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 순간 싸이는 할아버지가 마련해 준 무구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더불어 그 무구들로 인해서 자기가 앞으로 겪게 될 지옥의 수련은 더더욱 알지도 못했다. 때문에 알 수 없는 불길함만이 온 몸을 스쳐 지나가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삐꺽. 여관의 문이 다소 거친 신음성을 토해내며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 순간 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새롭게 등장한 인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새롭게 나타난 인물은 그런 것은 일절 모른 체 옆에서 자신을 부축하는 존재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되묻고 있었다. "어디에 계시냐? 우리 토마스를 구해주셨다는 그 분이......" 클리프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제일 먼저 달려간 이는 그의 절친한 친구 제임스였다. "어서 오게, 친구. 자네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었다네. 자자, 이리로 오게나." 이 순간만큼 클리프가 반가운 이는 제임스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하긴 마을의 촌장인 보르치니도 반갑기는 했지만, 제임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동보다는 약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세레아 마을이 생기고 나서 최초로 자랑스런 분이 오신 자리였다. 그 자리에 자신과 함께 생사를 나눴던 동료의 출현은 더욱 제임스를 자부심 있게 만들어 줬다. 아울러 그런 분이 오신 줄도 모른 체 다른 이를 찾는 친구를 위해 제임스는 친구의 눈이 되어줘야만 했다. "전하. 너무도 미천한 저희들이옵니다. 하지만 이 친구와 전 얼마 전 자랑스런 대공 전하의 휘하에서 용맹하게 적들과 맞서 싸운 적이 있사옵니다. 해서 전하께 이렇게나마 못난 꼴로 인사 올리는 것을 부디 노여워하지 말아주소서." 싸이는 큰 목소리로 자신과 그 옆에 어쩡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친구를 소개하며 조심스럽게 인사를 올리는 두 명의 중년 남자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잠시간 자신과 제로니스와의 대화에 그들이 끼여든 모습이었지만, 싸이에게는 그것이 결코 노여움의 대상이 될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방금 행한 처사는 이 시대의 일반 백성들이 황족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비교하자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지 메테우스는 매우 노여워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싸이에게 있어 자랑스런 아버지의 부하였다는 이들의 인사는 결코 노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막연히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체취가 물씬 풍기는 느낌이었다. "정말인가요? 내 자랑스런 아버지의 부하였다는 것이?" "네에,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말하겠사옵니까. 저와 클리프는 자랑스런 그분의 휘하에 속해 있던 병사들이옵니다." 쿵쿵. 그들은 싸이에게 한번씩 눈길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힘차게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행동이 메테우스에게 허리춤에 매달린 롱소드를 꺼내게 만들었다. 챠앙. "무엄하다. 감히 이분이 뉘신 줄 알면서도 어디서 그 못난 얼굴을 보이는 것이냐."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한 걸음 다가서는 메테우스였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한순간 그를 바라보는 싸이의 눈이 아주 매서워 졌던 것이다. "메테우스 경. 이들이 나에게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나요?" "그....그건.... 전하. 이들은 현재 전하의 얼굴을 감히 대면하고자...." "됐어요. 이들은 나에게 있어 소중한 아버지의 부하들이에요. 더 이상의 그런 억압적인 행동은 제가 용서 안할거에요." 싸이에게서 최초로 화난 음성을 듣게 된 메테우스였다. 더구나 무엄하게도 얼굴을 든 채 주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본 인물들에게 오히려 칭찬을 한다는 것은 기사로서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그였다. 쿠웅. "전하. 그 말씀만은 반드시 거두어주소서. 이 시대에 진정한 군주이신 전하를 감히 대면할 수 있는 분은 진정 몇 되지 않사옵니다. 전하의 기사들 또한 함부로 전하를 뵈옵지 못하건만, 어찌하여 저들에게 그런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용서하시려고 하십니까. 부디 전하를 모시는 이 땅의 자랑스런 모든 기사들의 명예를 생각하셔서 저들을 결코 용서치 마시옵소서." 역시 메테우스는 외곬수적인 성향이 뚜렷한 인물이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이 모실 주군에게 조금이라도 흠이 갈 일들은 결코 용납치 않을 패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부디 라는 부드러운 말로도 충분한 어투를 반드시 라는 딱딱하고도 다소 거슬리는 말에 악센트까지 주면서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처음으로 화를 낸 싸이의 얼굴표정은 결코 갈등이라는 것이 어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매서운 눈빛으로 바닥에 부복해 있는 메테우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히 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이름과 명예를 걸라면 걸겠습니다. 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 알고는 있지만, 이들은 내 아버지의 자랑스런 부하들입니다. 이들에게 난 진심으로 감사와 고마움을 느끼고 있어요. 더 이상 경이 나에게 이런 이들을 내치라 말한다면, 전 경을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겁니다. 명심하세요." 쿠웅. "전.....하. 아니되옵니다. 흐으윽." 기사에게 있어 주군이 내친다는 말만큼이나 충격적인 발언은 없었다. 지금 싸이에게서 나온 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말에 복종하라는 뜻으로도 들릴 법도 했다. 그러나 메테우스는 여기서 물러설 수가 없었다. 감히 황족을..... 그것도 이 땅의 진정한 군주가 되실 분을 감히 쳐다본 죄인들을 그는 기사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의 갈등은 다른 이의 불편함에 의해 쉽사리 해소가 되었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했다. "됐단다. 그만하거라." "예, 어머니." 엘렌의 고운 목소리가 다소 흥분된 싸이의 귓가로 들려오자 싸이는 조용히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순간 메테우스의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곧이어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렌의 손이 살짝 올라갔다. "메테우스 경. 경도 그만하세요. 분명 이 아이는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한 말이었답니다. 지금까지 아버지의 정에 굶주려 있는 아이예요. 그 아이에게 자랑스런 아버지의 부하들은 경이 지금 느끼는 저들의 죄에 대한 분노보다 분명히 앞선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차마 엘렌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감히 주군께 불경을 저질렀다는 것이 엘렌의 무언의 눈빛을 통해서 확연히 느껴졌다. 그러니 더 이상 이런 추태는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송구스럽습니다. 아울러 주군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싸이는 메테우스가 하는 사과에도 불구하고 살짝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눈앞에서 메테우스의 기세에 벌벌 떨고 있는 두 명의 중년 남자에게 애처로움을 느끼고만 있었다. 이런 싸이에게 등뒤로 다가온 누군가의 부드러운 기세는 심한 갈증에 목이 타는 듯한 고통을 깔끔하게 달래주는 달콤한 단비와도 같았다. "후후, 아주 소신이 뚜렷한 아이였구나. 네 녀석을 오늘 처음 봤는데도 불구하고 나 또한 아들을 가진 아버지로서 네 아버지가 무척이나 부럽구나. 이토록 자랑스러운 아들을 두었다니.....!!" 토닥토닥. 마치 할아버지가 등을 토닥여주는 듯이 부드럽게 다스려 주는 제로니스였다. 이런 제로니스에게 잠시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시선을 돌린 싸이는, 곧이어 그의 작게 끄덕여 지는 고갯짓에 용기를 얻어 한걸음 성큼 앞으로 나섰다. "두 분께 묻겠어요." "네? 옙. 전하." 퍼득 고개를 들려던 제임스는 조금 전 자신들이 저지른 실책을 깨닫곤 급히 고개를 조아리며 다급히 대답을 했다. "진정 두 분은 내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차마 여기서 무엇을 대답하겠는가. 제임스와 클리프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이 자리에서 말해야만 하겠는가?! 그도 아니면 얼마 전 큰 부상을 입고 마을로 다시 되돌아오면서도 여전히 가슴속에 남아 있는 자랑스런 누군가의 칭찬을 해야만 하겠는가. 이도 저도 못한 체 내심 진정으로 위대한 자신들의 주군과 그 주군의 하나뿐인 아들에게서 처음으로 듣게 되는 존댓말에 제임스는 정신이 몽롱한 지경이었다. 하지만 클리프는 제임스와는 달랐다. 눈앞의 존재를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처지라서 그의 정신세계는 또렷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최초로 큰 부상을 당해 누워 있던 그에게 다가와 따스하게 위로의 말을 해주던 누군가의 음성이 뚜렷이 각인 되어 있었고, 그 분의 하나뿐인 아들이 눈앞에 서 있건만 미처 보지도 못한 채 이렇듯 귓전으로만 그 분의 음성을 흘려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퍼지기도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제임스보다 또렷한 의식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다. "네, 전하. 저희처럼 미천한 놈들이 어찌 감히 그 위대하신 분을 가까운 곳에서는 모실 수 있었겠사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저희들처럼 미천한 존재들이 작은 부상이라도 입게 된다면, 손수 저희들 곁에 오셔서 따스한 어버이의 손길을 내밀어 주시던 그 분을 저는 결코 잊을 수가 없사옵니다. 저.........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흐윽. 비록 이 못난 놈이 간악한 적의 손에 의해 빛을 잃고 그 분을 가까운 곳에서 뵐 수 있었던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걱정 어린 모습을 영원히 뵙지 못하는 대역죄를 저질렀지만, 전 지금도 이 못난 놈의 귀로 들은 그 분의 따스하고 인자하신 말씀은 영원히 잊지 못하옵니다." 말을 하는 와중에 감정이 복받쳐 목이 메이는 클리프였다. 그런 그에게 다가가 한손으로 그의 어깨를 쓸어주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메마른 손을 꼬옥 움켜쥐는 싸이였다. "그래 내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말을 해주시던가요?" 내심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찡한 것이 느껴지는 싸이였다. 이런 싸이의 감동을 알고나 있었을까? 클리프의 목이 맨 목소리에는 하나가득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흐윽......흑. 전하께서 이토록이나 자상하신 것은 모두가 그 분의 소중한 아드님이시기 때문이옵니다. 어찌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 손수 내리신 임무도 미처 완수 못한 채 그분의 명예를 위해 죽어 마땅할 저희들에게 살아 돌아와서 고맙다는 말씀을 손수 하셨겠사옵니까. 또한 저희들이 있기에 이 땅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그분의 말씀은 오히려 이 못난 놈이 그때 죽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옵니다. 전하.......흐윽." 순간 클리프의 목메인 목소리가 여관 안의 공기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공기들은 바로 앞에서 누군가를 생각하는 싸이만큼이나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지는 못한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럼 그 분께선 더 이상 아무말씀도 하시지 않았나요?" 다소 물기가 어린 싸이의 목소리에 클리프는 감긴 눈을 애써 뜨면서 누군가를 보려는 듯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공간 속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곁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만이 그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런 느낌 때문일까? 왠지 클리프는 자신이 부상을 당해 이러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자랑스러웠다. 그당시 누군가가 심한 부상을 당한 자신에게 위로하듯 건낸 한마디가 더욱 더 그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아....아니옵니다. 그분께서...........흐윽....... 그분께선 제게 이 보잘 것 없고 미천한 제게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내리셨사옵니다." "........." 잠시 클리프의 흥분된 몸을 침묵으로 다스려주었다. 그러자 싸이의 침묵에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다스리던 클리프는, 싸이의 곁에 서 있는 누군가를 향해 시선을 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싸이를 상기하며 급히 자신이 해야만 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전하. 이 미천한 기사 클리프 정식으로 황태자 전하께 문안 인사 올리겠사옵니다." 이윽고 큰소리로 자신에게 힘을 내라는 듯 소리를 지르며 자신을 밝힌 클리프는, 한껏 움켜쥔 싸이의 손에서 살짝 빠져 나오며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울러 그의 옆에 있던 제임스 또한 클리프와 함께 일어섰다. 이윽고 그 둘의 힘찬 기상에 잠시간 눈을 빛내던 싸이는, 옆에 서 있던 젊은이에게서 검을 건내 받는 클리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곧이어 자랑스러움이 한껏 묻어나는 클리프의 음성이 싸이의 귀로 똑똑히 전해졌다. "자랑스런 메르카 제국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이들에게 따사로운 평화를 전해주는 위대한 황태자 전하를 위해. 우리는 자랑스런 조국의 명예를 걸고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황태자 전하를 보필하며, 만백성의 위대한 군주가 되실 분에게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챠앙. 힘차게 검을 뽑으면서 이제는 메르카 제국의 기사들에게는 충성 서약문이 되어 버린 문구를 목이 터져라 외치는 클리프와 제임스였다. 이윽고 그들은 거친 숨소리만큼이나 크게 날뛰는 가슴의 움직임을 선보이면서 자신들의 검을 바닥에 힘껏 꼽았다. 더불어 기사로써 최대한의 예의를 보여주기 위해 왼손을 무릎 위에 올리면서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순간 싸이는 이들의 인사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싸이의 움직임을 느낀 탓일까? 클리프는 힘껏 숙인 고개를 번쩍 쳐들며 싸이의 얼굴이 있을 법한 곳에 시선을 못박으며 똑똑히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신, 헤크라인 자작가의 기사 클라프. 황태자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옵니다." "신, 헤크라인 자작가의 준기사 제임스. 황태자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옵니다." 떡 벌어진 어깨에서는 그들이 지금껏 살아온 날들의 아픔들이 모두 씻겨져 있었다. 그들의 힘차게 날뛰는 가슴속에는 자신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반드시 지켜야만 할 이와 그 존재가 살아 숨쉬는 땅으로 되돌아갈 육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제 기사로써 최초로 서약을 하게 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동안 시간만 나면 연습해 온 기사들만의 예의는 평생동안 자랑스러움을 안겨다 줄 것이다. 아니 그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내려지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기사로서 누군가에게 충성서약을 했다는 것만큼은 자손 대대로 영광으로 물려줄 것이다. 때문에 힘차게 검을 움켜쥔 클리프의 손에서는 작은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이들의 인사에 당황했던 메테우스 또한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한 서약의 맹약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경들은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한참이나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싸이의 눈에 작은 이슬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황족은 자신의 백성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때문에 싸이는 촉촉히 젖은 눈시울을 애써 부릅뜬 눈으로 감추면서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자랑스럽습니다. 내 아버지의 소중한 기사들인 당신들께 내가 서약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도 명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난 당신들이 절대 실망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건 당신들께 드리는 내 소중한 약속이랍니다." 이 순간 어느 누구도 싸이의 말에 거짓이 담겨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싸이의 뒤에서 감동 어린 모습을 지켜보는 제로니스도 그러했고, 이런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엘렌의 눈에도 그러했다. 오히려 누군가가 더욱 더 그리워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까지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가는 싸이에게 있어서 메테우스는 또다시 제지를 해야만 했다. "전하. 신 메테우스 감히 한 말씀 아뢰겠사옵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싸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메테우스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곧이어 무언으로 승낙을 하는 싸이에게 메테우스는 힘차게 일어서면서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 충성의 서약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전하. 지금 이들은 전하께 충성으로 서약을 한 자들이옵니다. 저 또한 전하께 서약을 한 기사로써 이 말씀만은 반드시 드려야겠사옵니다." 작게 고개를 숙이며 또다시 용서를 구하는 듯한 모습에 이어 메테우스의 시선이 엘렌을 향했다. 엘렌은 그 순간 메테우스가 이들을 위해 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이들에게 너무도 값진 순간이 될 것이고, 싸이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해 진한 향수를 얻게 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엘렌의 미소는 이 순간 너무도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윽고 엘렌에게 무언의 승낙을 받은 메테우스는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힘차게 말을 이어나갔다. "전하. 이들은 현재 기사로서 처음으로 충성 서약을 했사옵니다. 그분께서 이들에게 기사의 칭호를 내렸다고는 하나, 그 순간은 이들에게 있어 진심으로 기사로 태어나는 순간이 아니었사옵니다. 자고로 기사란 자신이 모셔야 할 분의 은혜를 받아야만 진정한 기사로 태어나는 법이옵니다. 부디 이들에게 전하의 크나큰 은혜를 내려주소서." 순간 싸이는 메테우스가 하는 말에 대해 약간은 혼란스러웠다. 이들은 아버지의 자랑스런 부하들이었고, 아버지는 부하들이 심한 부상을 입었기에 손수 격려를 해주러 가셨을 것이다. 이런 마음은 아무 군주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분이 손수 기사의 칭호까지 내려주신 이 마당에 또다시 메테우스는 자신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고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처 싸이가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이것은 싸이가 아주 어린 시절 최초의 충성 서약을 한 메테우스의 일만 떠올려봐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가요? 저에게 있어 이 순간은 너무도 소중한 시간들이에요. 아직 제가 어리고 미흡해서 많이 모자란답니다. 그게 여러분들께 큰 실수를 할 수도 있었군요." 싸이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메테우스에게 믿음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메테우스는 그런 싸이의 시선에 살짝 미소로 답례하며 급히 마차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여관 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여러 사람들과 길가에 잔뜩 모여서 고개를 숙인 채 열심히 귀로 경청을 하던 마을 사람들은 한순간 고개를 들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런 마을 사람들의 눈에 검은 색의 가죽 갑옷을 걸친 싸이의 찬란한 금발은 영원히 잊지 못할 모습으로 다가왔다. 또한 급한 걸음을 마차로 옮기는 와중에도 기사로서 절도를 잃지 않은 메테우스의 듬직한 모습은 이들에게 기사라는 존재에 대해 강한 인식을 안겨다 주었다. 순간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낀 메테우스는 더욱 어깨에 힘을 주며, 마차 안에서 귀한 천으로 감싸인 길쭉한 통을 꺼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물건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는 급히 되돌아서서 싸이에게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전하, 이들에게 진정한 제국의 기사로서 태어날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살짝 무릎을 조아리며 두 손으로 공손히 전하는 물건은 싸이에게 있어서 결코 잊지 못할 물건이었다. 순간 싸이의 손이 고급스런 통 안에서 금빛 찬란한 검을 꺼내들자, 메테우스는 얼른 그 안에 고이 접혀 있는 망토를 꺼내어 싸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호오, 그건 화이어 천으로 만든 망토인가?" 잠시 제로니스의 감탄이 흘러나왔다. 제로니스조차도 감히 상상도 못한 무구들이 메테우스의 손을 빌어 그 모습을 들어내자, 그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환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절대 탐욕이 아니었다. 단지 이 천이 뜻하는 바를 여기서 알고 있는 이는 그를 빼고선 오직 단 한 명. 이 천이 뜻하는 바도 모른 체 무조건 누군가의 말에 따라 그저 자랑스럽게 여기는 메테우스와는 달리, 엘렌은 눈부신 황금색에 불타는 화염을 담은 듯한 화이어 천에 대해서 똑똑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싸이는 그순간까지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감동에 빠져 있었다. '아버지, 난 당신이 이토록이나 자랑스러운 분이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저 어릴 적의 단편적인 기억에 나오시는 당신께서는 항상 아랫사람에게 엄하신 모습뿐이었건만, 이토록 자신의 백성에게 따사로운 정을 베푸시는 당신을 왜 미처 몰라 뵙지 못했던 것인지.....!! 전 앞으로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만을 존경할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신이라고 해도 당신을 존경하는 이 마음은 변치 않을 것입니다. 내 자랑스런 아버지시여~!' 감동에 찬 나머지 너무 손에 힘을 준 까닭인지 손가락 끝이 빨갛게 변했다. 하지만 이런 싸이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메테우스는 묵묵히 싸이의 찬찬히 떨리는 감동의 어깨에 최선을 다해서 화이어 천으로 된 망토를 걸쳐주고 있었다. 이윽고 망토를 걸치는 작업이 끝나자 싸이의 허리에 신중한 모습으로 검집을 채우면서 그 자신도 똑같은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주군,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신 분이 당신을 이토록이나 그리워하며 감동하고 계십니다. 전 언제나 당신만의 기사랍니다. 아울러 이 소중한 분을 위해 마지막 생명의 순간까지도 최선을 다할 기사입니다. 제가 이분을 소중히 모시는 한은 제게 있어 주군은 오직 당신뿐이시라는 것을 부디 잊지 말아주시옵소서. 더불어 제게 너무도 소중한 이 분이 이토록이나 그리워하는 분이 당신이라는 것을 주군께서는 영원히 잊지 말아주시옵소서.' 질끈. 허리에 버클이 왜 이토록이나 잘 안맞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에 허리에 검을 차고 생활하는 메테우스로서는 눈을 감고도 훤히 할 수 있는 일이건만, 오늘따라 왜 이다지도 작고 소중한 분의 허리에 잘 안맞는지는 그로서는 진정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그의 손은 지금도 무척이나 떨리고 있었다. 이제까지 태어나 한번도 허리에 검을 차본적이 없는 소중한 작은 주군이었다. 이런 분께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검을 차게 하는 작업이라서 그런지 무척이나 감동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단지 그 자신조차도 그걸 못 느끼고 있다는 것만이 지금의 메테우스의 심경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윽고 한참이나 걸린 싸이의 복장을 만지는 작업이 끝이 나자, 그때까지도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복종의 자세를 유지하던 두 사내는 이윽고 자신들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깊은 환희와 가슴 벅참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아울러 그 뒤를 따르는 환희의 절정은 이 순간 온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아래에만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챠앙. "내가 존재하는 이 땅에 신과 함께 영원으로 가는 순간, 난 그대들과 함께 내 소중한 마지막을 맞고 싶다." 싸이의 작은 손에 쥐어진 검에서 푸른색의 검날이 춤을 추는 순간, 클리프의 정수리에 차가운 검의 기운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나와 태어난 시간은 다를지언정, 이 땅의 평화와 만백성의 행복을 위해 난 그대들과 함께 내 소중한 마지막을 맞고 싶다." 잠시 정수리를 스치던 검의 기운이 이윽고 오른쪽 어깨로 찬란하게 와 닿고 있었다. "나 여기 이 자리에서 먼 훗날 우리에게 다가올 소중한 순간을 위해 그대들과 나의 명예를 지키고자, 난 그대들과 함께 내 소중한 마지막을 맞이하겠노라." 귓전을 스치는 파란 검날의 기운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차가운 검의 기운은 흥분으로 힘차게 울부짖는 심장을 지나 왼쪽 어깨에 다소곳이 와 앉았다. 이 순간 귓전으로 들리는 아련한 목소리는 자신과 함께 영원의 순간. 그 미지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맞이하겠다는 주군의 맹약의 속삭임이었고, 주군의 다정한 맹약의 속삭임은 이윽고 가슴 벅찬 환희의 절정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이 땅에 태어나 진정한 당신만의 기사가 된 이 순간. 이 목숨. 이 명예. 이 자랑스러움.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하겠나이다." 순간 앞을 못 보는 클리프의 눈가에는 맑은 이슬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환한 빛을 보게된 클리프의 얼굴에는 잊을 수 없는 누군가의 모습이 먼발치로나마 다가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주군의 시선을 이 순간 클리프는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7 - 5 타닥, 타닥. 마을 정중앙에 마련된 모닥불 가에서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매달린 채 지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 주변을 분주히 오가는 마을 아낙네들의 모습에서는 하나같이 웃음 가득한 얼굴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네들의 시선은 종종 어느 한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에는 커다란 천막이 쳐져 있었다. 아직까지 밤이 되면 싸늘해지는 산골바람을 맞기 위해 준비된 듯 보였지만, 그 안에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건 전혀 의식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눈앞에 길게 놓여진 탁자와 그 위에 소담스럽게 놓여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주변 사람들과 향기 나는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저 친구의 엉덩이에 박힌 철환을 뽑는데 어찌나 엄살이 심한지...." 큰소리로 웃으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클리프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매우 힘있게 들렸다. 그의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른들의 무용담을 듣는 동네 꼬맹이들의 눈가에는 신비로운 눈빛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천막 안의 제일 상석에 앉게 된 싸이는 그저 모든 게 즐거운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이 곳 작은 산골 마을에서 기사와 그에 준하는 무용으로 인해 준기사를 하사 받은 두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을에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싸이는 아직까지 잘 몰랐다. 그저 아버지의 자랑스런 부하였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최전선에 나섰던 그들의 용기만이 싸이의 어린 눈에 빠짐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그리 좋게만 흘러갈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싸이는 이시대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복지와는 차원이 다른 곳의 생활상이 기억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억들을 잠시 더듬어봐서일까? 잠시 싸이의 눈에 작은 분노가 어른거렸다. "메테우스 경." "네에, 전하!" 잠시 주변을 살피며 가볍게 포도주로 입을 적시던 메테우스는 옆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싸이의 목소리에 절로 긴장감을 되살렸다. "경은 왜 저들이 저리도 즐거운지 알고 있겠죠?" 싸이의 묘한 질문에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그러나 뾰족히 떠오르는 의문사항이 없었다. "예, 전하. 저들은 자기 마을에 용사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전하에게 손수 기사의 명예를 서약했기에 더욱 더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메테우스는 같은 기사로서 오후에 있었던 너무도 영광스런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가자 목소리가 약간 떨려왔다. 작게 흥분을 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그의 대답과는 다르게 점점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가요? 하면 저들이 기사로서 받게 되는 영광들....... 아니 조국을 위해 희생을 한 대가는 어떻게 되는 거죠?" "........." 그제서야 싸이의 본심이 무엇인지 간파한 메테우스였다. "전.....하. 송구스럽사옵니다. 하지만 이제 저들은 자랑스런 메르카 제국의 기사들입니다. 절대 전하의 명예에 흠이 가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걱정마시옵소서!"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주군께 서약을 한 기사도를 떠올리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국의 병사들이 흘린 피의 대가를 깊이 생각하는 싸이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런 깊은 속마음을 쉽게 내뱉지는 않았다. 싸이의 다음 말을 기다리던 메테우스는 잠시 후 고개를 들자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싸이의 눈빛에 흠칫해야만 했다. 그러나 싸이의 작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이내 메테우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었다. "피곤하군요. 먼저 들어가서 쉬고 싶어요." "네, 소신이 모시겠사옵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며 싸이의 뒤편으로 이동한 메테우스는 최대한 정중하게 싸이가 앉은 의자를 뒤로 빼며, 조심스레 싸이의 한쪽 손을 잡은 채 허리를 폈다. 그런 메테우스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싸이의 깊은 눈빛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제로니스는 이내 엘렌에게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한순간 제로니스의 얼굴에서 평화로운 미소를 볼 수 있었던 엘렌은 호기심 어린 눈길로 그 다음에 이어질 그의 말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띠리리링. 맑은 류트 소리가 들리며 그 뒤를 이어 무릎 하프의 절묘한 하모니가 이어졌다. 곧이어, 마을의 축제 때마다 흥을 돋구던 이들이 앞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싸이가 있는 곳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보냈다. 싸이는 귓가를 맑게 해주는 음악소리에 금세 등을 돌리며 자신에게 인사를 올리는 이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 곳에서 처음으로 듣게 된 현악기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고귀하신 분들께 미흡하나마 작은 솜씨를 보여드릴까 합니다." 매우 공손하게 숙여지는 머리가 살짝 들리며 류트를 든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 사내는 앞에 있는 존재들에게 감히 시선을 마주칠 생각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살짝 무릎을 굽히는 것으로 인사를 하면서 품에 안은 류트로 시선을 보냈다. 곧이어 싸이의 눈가에 이는 호기심을 바라보던 메테우스가 허리에 매달고 있던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류트를 안은 사내에게 던져주었다. 사내는 매우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숙이며 금화를 주웠다. 그리고는 뒤에 서 있던 동료들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 친구들. 우리의 위대한 황태자 님께 아름다운 사랑이 함께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껏 재주를 뽐내 보세나." 사내가 어떤 노래를 할지를 밝히며 동료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자, 그들도 흥분이 되는 듯 잘게 손을 떨며 힘차게 심호흡을 했다. 곧이어 작은북과 류트, 그리고 무릎하프를 든 세 사내 사이로 곱게 치장을 한 아가씨가 한 명 걸어나오며, 세리에 마을의 작은 파티는 시작되고 있었다. O mio babbino caro,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mi piace e bello, bello; 저는 그를 사랑해요.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vo'andare in Porta Rossa 우리는 함께 포르타로사로 가서 반지를 사고 싶어요. a comperar l'anello! 예, 저는 가고 싶어요. Si, si, ci voglio andare! e se l'amassi indarno, 제가 그를 헛되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andrei sul Ponte Vecchio, 전 베키오 다리로 달려가겠어요. ma per buttarmi in Arno! 내 이 괴로움을, 이 고통을! Mi struggo e mi tormento! O Dio, vorrei morir! 오, 신이시여, 저는 죽고 싶어요 Babbo, pieta, pieta! Babbo, pieta, pieta!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완고한 아버지에게 사랑스런 딸이 결혼을 조르는 내용이 노래의 주된 줄거리였다. 한눈에 반한 귀족 청년과 평민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는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언제나 애뜻한 마음을 전해준다. 그래서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부분을 열창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선 여러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싸이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기가 가문의 유산을 교묘하게 빼돌린 남자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둘의 결혼을 완고하게 반대하는 여자의 아버지. 가문에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준 남자의 딸을 사랑하게 된 조카에게 심한 질책을 하는 귀족가문의 어른들. 과연 그 속에서도 꿋꿋이 둘만의 사랑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 현실은 냉정한 법이다. 그로 인해 잠시간 고뇌에 찬 노래 속으로 빨려드는 싸이였다. 잠시 후 노래가 끝이 나자 온 마을 사람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순간 상념에서 빠져 나온 싸이의 눈가로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 바로 이거야. 사람들에게는 작은 휴식이 필요해. 이들은 한 해에 몇 번 되지도 않는 휴식을 이렇게 축제로 즐기는 거야. 단지 나는 이번에 기회를 주었을 뿐이야. 후훗.' 오늘의 일로 인해 작은 산골마을에 해마다 축제가 열릴 것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많은 백성들이 행복해 한다. 그런 것들이 피부로 와닿자 싸이는 눈앞에서 즐거움에 환호를 부르는 마을 사람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싸이의 입가에 어린 미소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따뜻한 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순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면서 싸이에게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고귀하신 황태자 전하의 영광스런 방문에 감읍하며 우리 모두 황태자 전하께 무한한 영광만이 있기를 축원합시다." 클리프가 단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기사로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한마디를 했다. 그 순간 온 마을 사람들이 더욱 큰 환호를 보냈다. "우와와와~!" "황태자 전하 만세~!" "황태자 전하 만세~! 만세~!!" 신흥 귀족이 된 클리프의 선창에 맞춰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외치는 만세에 싸이는 두 뺨이 붉어졌다. '훗, 고작 나 같은 꼬마한테 감사에 눈물을 흘린다니......' 조금 전 클리프의 감읍한다는 말에 더욱 감동을 받게 된 싸이였다. 순간 싸이는 작은 팔을 들어 모두에게 일일이 화답을 해줬다. "고마워요. 여러분들의 마음 소중하게 받겠습니다." 살짝 고개까지 숙여주면서 인사를 하는 싸이에게 곧이어 더 많은 찬사가 이어졌다. 이 시대에 귀족이 평민을 대하는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싸이의 화답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황태자가 제국의 백성에게 살짝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를 한다는 것은 수천 년 제국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는 현 황제가 백성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를 몸소 실천해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 인해 싸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게 된 제로니스는 오랜 연륜을 지닌 자답게 놀라움이 몸밖으로 표출이 되고 있었다. "허허허, 이 다음의 메르카 제국은 역사에 길이 남을 성황을 가지겠구나." 작게 미소지으며 내뱉은 그의 말이지만, 그 말이 지닌 무게는 엄청났다. 모든 드래곤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그가 스스로 싸이를 인정한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 엘렌으로서는 이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단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이 고룡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존재로부터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호호호, 제 아들이지만 너무도 사랑스럽지요. 오늘의 말씀 감사히 받겠습니다." 엘렌은 의자에서 일어나 드레스 자락을 살짝 움켜쥐며 제로니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뛰어난 아들을 낳고서도 못난 어미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알고 있는 제로니스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래, 저 아이라면 먼훗날 인간뿐 아니라 우리 종족 모두에게 최고로 존경받는 존재가 될거야.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몸 안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모든 이들에게 몸소 보여주는 실천을 하고 있으니깐. 그런 행위는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암, 위대한 가문의 후예라는 건 역시 대단하구나. 선조의 능력을 물려받기 위해선 그만한 능력을 타고나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걸 내 오늘 널 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는 구나. 후훗, 내 앞으로 너를 유심히 지켜보마. 진정한 신룡의 후예 싸이야.' 싸이는 이런 제로니스의 눈길이 자신에게만 고정이 되어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흥이 난 마을 사람들 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그들에게 일일이 시선을 마주쳐 주었다. 그런 뒤 눈앞으로 다가오는 뮤지션들에게 환한 미소로 답례를 보냈다. "하하,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였어요. 제발 그들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졌으면 해요." "황........ 황공하옵니다. 전하." 황족이 손수 다가와 일일이 손을 맞잡아 줄줄은 전혀 몰랐다. 그렇기에 너무도 놀란 마음에 큰 실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둘거리는 다리로 인해 제대로 된 예의를 지키기에는 너무나 힘든 무브였다. 하지만 눈앞의 황태자는 그런 건 전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니 그 고귀한 손길로 어깨를 다독여 주는 것이리라. 다행이 황태자가 다가올 때 허리를 굽히고 있었기에, 황족에게 결례를 하지는 않았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에라도 황족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서 있었다면, 황태자의 뒤를 따라온 기사에게 단숨에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이 시대에선 감히 황족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목숨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신께서는 우리 메르카 제국에게 너무도 큰 희망을 주셨어.'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위대한 작은 군주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었다. 어린 나이에 말문을 트면서부터 가장 뛰어난 성황으로 추앙 받는 마르스 황제 앞에서 어려운 고대어들을 술술 읽었다는 전설은, 눈앞의 황태자가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가를 짐작케 해주는 일들이었다. 그러한 소문들은 곧바로 모든 백성에게는 큰 희망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눈앞에서 직접 황태자를 본 순간 그 소문은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게 된 무브였다. 오히려 황태자의 깊디깊은 눈동자 속에 담긴 현기는 소문이 모자랄 정도였다. 무브는 오랜 세월 대도시를 다니며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사내였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을 뒷받침 해줄만한 자금이 없었기에, 몇 년간의 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한 사내였다. 그런 그에게 아리따운 딸이 하나 있었기에 오늘 날 이런 큰 영광을 받게 된 것이리라. 뮤지션으로서 황족에게 이렇게까지 찬사를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무브의 현재 마음속에 이는 감동은 평생토록 간직될 소중한 은혜였다. 신룡의 후예 7 - 6 즐거운 축제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 왔다. 흔히 축제가 끝이 나면 갖은 쓰레기로 인해 지저분함이 극치를 이루는 것이 보통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과는 큰 대조를 보이고 있는 세리에 마을의 아침 풍경이었다. 간간이 마을 아낙네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바삐 움직이는 것을 보면, 세리에 마을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또한 어미를 찾는 아기 새처럼 몇몇 아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짹짹거리며 뛰어 노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였다. 그 속에서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토마스의 모습이 가장 돋보였다. 우선 깨끗해진 옷가지와 허리에 찬 작은 검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몇몇 아이들의 부러움이 묻어나는 눈길을 받으며 코웰 또한 토마스에 뒤지지 않는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에선 부러움을 시기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먼 곳을 떠나가는 친구를 위해 추억을 만들어 주려는 듯 밝고 희망에 찬 노래가 흘러 나왔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세면 밝아오지 않더냐~!" 손을 맞잡으며 잠시 마을을 떠나는 친구들에게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단지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멜로디였다. 그러나 저마다 흥취가 이는지 큰 목소리로 맑게 불러 제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였다. 그런 아이들로 인해 주변에서 마을을 치우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눈가에 밝은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녀석들. 또 저 노래군." "이 사람아. 황태자 전하께서 어젯밤 손수 불러주신 노래야. 우리 같은 민초들에게 큰 희망을 내려주신 노래란 말이세." "아암, 그렇고 말고. 고귀하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손수 불러주신 노래이니 그 속에 담겨진 뜻이야말로 우리에겐 큰 희망이 되는 거지." "후훗, 게다가 토마스와 코웰을 보게나. 저 아이들이 우리 마을의 희망을 담아 오늘 멀리 떠난단 말일세." "맞아. 이제 우리는 산골 마을 세리에 주민이 아닌 어엿한 제국의 기사를 배출한 자랑스런 세리에 마을 주민이 되는 거라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나." "그러게 말야. 하하핫." 아침 일찍부터 마을 정중앙에 남아 있는 모닥불 가를 정리하는 남자들의 입에선 저마다 꾀꼬리 소리보다 더 맑게 들리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에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이런 그들의 귓가로 연신 아이들의 즐거운 노랫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그러나 아이들의 노래 속에 담겨진 뜻은 이들의 마음과는 달리 자칫하면 위험한 쪽으로도 해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제와 오늘은 힘이 드는 하루일망정 내일의 태양은 흐린 날에도 반드시 떠오른다. 그러니 힘든 민초들의 삶 또한 반드시 밝아 올 것이라는 노래 가사는 자칫하면 반역적인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단어들이 종종 담겨 있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될 게 전혀 없었다. 자칫 반역적인 노래로도 들릴 노래를 제일 먼저 부른 이가 카빌라이 대륙 최고의 제국인 메르카 제국의 황태자였고, 그속에 담긴 희망에 찬 가사 또한 황태자가 손수 힘없는 백성들을 위해 불러준 것이기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전혀 두려움이 일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저 노래에 대한 탄압을 하려고 든다면, 바로 그가 반역자로 몰릴 판국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저마다 신이 나 부르는 노랫소리가 이토록이나 행복하게 들려오는 것이다. 또한 노래 속에 담긴 황태자의 백성을 대하는 마음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와 닿고 있었기에, 만약에라도 위대한 황태자에게 감히 반역을 도모한다면 제일 먼저 힘없는 민초들이 들고 일어설게 분명했다. 제아무리 귀족들의 횡포에 눈치만 살피는 힘없는 민초들이지만, 그네들을 따뜻이 보듬어 안아주는 황태자를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을 순박한 백성들이기 때문이었다. "후훗, 이보게, 저기 계신 기사 나리를 한번 보게. 저 분도 무척이나 즐거운 모양이야." "그러게. 처음 볼 땐 무척이나 겁이 났었는데...." "아무렴. 우리 같은 놈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단칼에 베어버릴 기세였잖은가." 이른 아침부터 주변을 오가는 마을 주민들을 살피며, 그네들에게서 행복한 미소를 대하게 된 메테우스는 멀리서 그를 바라보며 소근거리는 마을 남정네들의 속삭임이 귓가에 들어왔다. 순진한 산골 마을 주민들답게 그가 몸 안의 기운을 되돌리며 주변을 정탐하려고 들면, 먼 거리에서 행진하는 개미들의 발자국 소리도 선명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 그들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훗, 역시....... 전하께서는 어릴 적부터 만 백성들의 위대한 군주가 되실 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이셨다. 그로 인해 마리스 황제 폐하께서 고작 3살밖에 안된 분에게 황태자 제위를 내리셨을 것이다. 그때에는 나 또한 어리석어 그저 뛰어난 자질을 지니신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분을 옆에서 보좌하는 몸이 된 내게, 전하는 너무도 뛰어나 감히 상상도 못할 분으로 다가오셨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만 백성의 뛰어난 군주가 되실 전하께 감히 적들이 넘볼 수 없게끔 당당한 분으로 만드는 일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 얼마나 행복한 정경인가. 이다음 만백성의 위대한 어버이가 되실 분이 잠시 뒤 깨어날 아침 무렵, 그분을 위해 순수한 아이들의 해맑은 노랫소리가 주변을 아우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모든 이들이 행복해 하는 미소를 한가득 베어 물고 있다. 이런 풍경은 서른 해를 넘게 산 메테우스에게도 무척이나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단 하룻밤만에 이루어 낸 소중한 주군이시기에 메테우스의 가슴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순간 얼굴이 붉게 물드는 메테우스였다. 잠시 뒤 그의 귀로 소중한 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메테우스 경." 아릿하게 들려오는 작은 부름에 메테우스는 급히 신형을 돌려 세웠다. 그리고는 머리에 씌워진 투구를 재빨리 벗는 메테우스였다. "위대하신 황태자 전하. 만백성의 모든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는 가장 고귀하신 분이 되소서." "가장 고귀하신 분이 되소서~!!" 마을 밖까지 질서정연하게 따라 나온 주민들에게 큰절을 받는 순간이었다. 공손히 허리를 굽히는 마을 주민들의 제일 앞에 서서 힘껏 외친 클리프의 말에 모두들 따라 외치는 모습이 주변에 널리 울려 퍼졌다. 그들이 진심을 다해 인사를 올리는 모습에 마차 지붕에 올라 선 싸이는 크게 손을 휘저으며 밝게 미소로 화답했다. "언제나 소중한 목숨이랍니다. 부디 자신의 생명을 아낄 줄 아는 분들이 되시길 바래요." 싸이가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이 순간 모든 이들의 귓가로 똑똑히 전해졌다. 뜻밖에 싸이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게 된 클리프는, 싸이가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자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저희들처럼 미천한 백성들을 아껴주시는 존경받는 성군이 되소서." 비록 보이지 않는 눈이지만, 귓가로 들려오는 그분의 목소리와 주변에 가득 퍼져 있는 향기와 그 속에 담겨진 그분의 마음이 이 순간 클리프의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그순간 싸이의 말에 작게 화답을 하는 클리프의 목소리에는 작은 떨림이 담겨 있었다. 그 옆에서 그를 호위하듯 따라나선 몇몇 젊은이들의 손에도 작은 떨림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마을을 떠나는 황태자의 마차는 긴 먼지를 휘날리며 아련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나선 세 명의 어린아이들의 작은 그림자가 서서히 클리프의 마음의 눈 속에 긴 여운을 안겨줬다. '토마스. 내 자랑스런 아들아. 부디 네 꿈이 이루어지길 이 아비는 간절히 소망한단다.' 주르륵. 희망에 찬 목소리에 한껏 들떠 있던 아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아련히 남아 있는 듯 했다. 그 목소리를 다시금 듣는 날이 바로 아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임을 알기에, 클리프는 작게 주먹을 말아 쥐며 옆에 선 아내와 함께 아들이 떠나간 곳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하루종일 서 있어야만 했다. 신룡의 후예 8 - 1 *시 련* 잔잔한 진동을 주는 마차 안에는 미묘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 뜻하지 않은 불청객이나 마찬가지인 제로니스가 마차에 동승을 했기에, 이러한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엘렌은 뭐가 그리 좋은지 얼굴에 미소가 가득 맴돌고 있었다. 아마도 싸이가 제로니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호호, 녀석. 넌 제로니스님에게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존재란다. 그것도 헤츨링으론 유일무이한 존재이니 더욱 값진거야. 앞으로 이 엄마에게 무진장 고맙다고 해야 할꺼야. 아암.' 제로니스가 어떠한 생각으로 마차에 동승을 했는지는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닌 말로 처녀시절에 동경의 대상이었던 베이직 헌터와 그들의 수장인 제로니스를 모르는 용족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멜빈과의 잠시간 밀회를 보내며 사랑을 싹트게 만든 곳이 베이직 헌터들의 수련장이었기에, 먼발치에서나마 잠시 본 제로니스를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다는 자체가 엘렌에겐 너무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었다. '그래, 켈빈이 그때 그 일만 당하지 않았어도 내가 제로니스 님을 뵐 수가 없었겠지. 더구나 그이와 함께 뵙게 되어 처음에는 무척이나 겁이 났었는데, 다행히도 잠시 인상만 찌푸리셨을 뿐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얼마나 가슴 졸였었는데....! 아무튼 제로니스 님도 싸이에 대해 얼핏 눈치는 채신 듯 한데 더 이상 아무말씀이 없으시니까 꾹 참고 지내는 거야. 그러다 우리 싸이가 저 분께 확실한 인정을 받게 된다면........!!!' 제로니스가 베이직 헌터의 수장으로서 아직까지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십여 년 전에 있었던 한가지 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때 레어에서 은거를 하다시피 하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을 하던 제로니스는 뜻하지 않은 제자의 소식에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쫓아 나왔었다. 그때 처음으로 제로니스를 보게 된 엘렌이었다. 그 후 또다시 은거에 들어간 제로니스를 본 뒤 처음으로 만나게 된 순간이 어젯밤이었다. 그만큼 아들과 함께 멜빈이 있는 곳으로 가던 엘렌에게 제로니스의 출현은 뜻밖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들이 좋게만 풀려가고 있었기에 그녀는 한껏 행복의 나래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일이 싸이에게 얼마나 힘든 시련의 순간이라는 건 현재 그녀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용족이라면 당연히 겪어야만 하는 시련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한참이나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이들이 처음으로 침묵을 깨게 된 것은 마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시간이었다. "워~워~! 마님.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전하께서 시장하시리라 생각되옵니다." 마차를 몰고 있던 메테우스가 길게 고삐를 쥐며 마부석 뒤에 있는 창문 쪽을 돌아보며 엘렌에게 의향을 물어왔다. 순간 상념에 빠져 있던 제로니스가 고개를 들면서 엘렌과 시선을 마주쳤다. 엘렌은 잠시 화사한 미소로 답례를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경이 그렇게 말한다면 좋은 곳이 나왔겠죠." 항상 싸이를 위해 주변을 샅샅이 살피는 메테우스였다. 식사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싸이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되면 메테우스는 으레 주변 경관 중 가장 좋은 곳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으로 보였다. 그만큼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는 싸이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 우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길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아무래도 갑작스런 누군가와의 동승으로 인해 긴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 것이 무척이나 답답한 듯 보였다. 토마스는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였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나 흥분이 되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나이였고 태어나 처음으로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이 토마스를 더욱 더 흥분에 빠트렸었다. 그건 옆에 있는 코웰과 데이몬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기사와 준기사의 호칭을 황태자 전하께 받는 순간부터 세리에 마을에서 토마스와 코웰은 이다음 마을을 이끌어 나갈 자랑스런 신분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곤하게 한숨 자고 일어나 보니 한순간 마을의 영웅이 되어버린 토마스는 어정쩡한 폼으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가 위대한 분께 처음으로 인사를 올리게 되었었다. 그순간 또래로 보이는 황태자가 순진한 토마스에게 처음으로 물은 말이 지금의 이 순간을 맞이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랑스런 제국의 기사 클리프 경의 아들이라고 했지?" "네, 토마스라고 하옵니다." "응. 토마스. 넌 이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니?" 거침없이 질문을 해오는 황태자 앞에서 크게 긴장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있던 토마스는 너무도 긴장된 나머지 급기야 지병인 천식으로 인해 심한 기침을 해야만 했다. "저........ 저........ 쿨럭...... 쿨럭........" "이런, 어디가 많이 아픈 모양이구나. 괜찮단다." 손수 단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따스한 말을 해주는 황태자의 모습에 순간 하늘이 노랗게 보이도록 기침을 하던 토마스는 잠시 호흡을 멈추어야만 했다. 그 순간 토마스의 눈에 황태자의 머리 위로 커다란 태양이 떠오르는 듯 했다. 한참동안 호흡을 멈춘 채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되는 신비한 현상을 경험하던 토마스는 몸 안으로 따스하게 전해지는 태양의 기운에 이끌려 점점 편안한 몸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눈앞에 다가와서 여전히 등뒤를 토닥여 주는 황태자를 바라보며 토마스는 진심이 담긴 눈물을 흘렸다. 그순간 토마스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장면만 들어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거의 무의식적인 말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흐윽...... 만백성께 존경받는 고귀한 황태자 전하께 진정으로 충성을 다하는 자랑스런 기사가 되고 싶어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잘 몰랐다. 편안한 잠을 한숨 자고 일어났다고 느꼈는데, 눈앞에서 환히 웃으시던 어머니는 생전 처음 보는 화사한 옷을 입으신 채 아릿따운 미소를 지어주셨다. 그리곤 자신에게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게 해주셨다. 처음으로 입어보게 되는 매우 고급스런 옷가지들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토마스에게 어머니께서 작게 고개만 끄떡이셨을 뿐 아무런 언급도 없었기에, 토마스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었다. 결국 그런 상황이 황태자 전하라는 고귀한 분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토마스는 그순간 편안한 잠에 빠져들기 전의 모습이 생생이 떠올랐다. 거대한 멧돼지가 눈앞으로 짓쳐 들고 있었을 때, 오래 전 건강한 모습으로 전쟁터에 나가시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고 싶어!' 아직은 어린 나이였지만, 먼 훗날 장성했을 때 아버지처럼 자랑스런 남자가 되고 싶었다. 이러한 욕망이 순수한 마음에서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눈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주는 황태자를 보는 순간, 토마스의 눈에는 자랑스런 아버지의 듬직한 뒷모습이 가득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토마스의 말에 놀란 건 클리프였다. 아직 아들은 자신이 황태자께 기사의 작위를 받은 것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에게 눈앞에서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겠다고 소원을 말하는 토마스의 모습은 뿌듯함 그 이상이었다.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우리 마을의 경사야." "아암, 자랑스런 클리프 경에 이어 토마스까지 제국에 충성을 다하는 기사가 되겠다고 하잖아." "맞아. 저 어린것이 아버지를 그대로 쏙 빼닮았구만. 그려." "하하하하핫. 맞아. 아암 그렇고 말고. 클리프 경의 전설이 어디 가겠어?" 모두들 입을 모아 어린 토마스를 칭찬했다. 그 순간까지 토마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어린 14살의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바탕의 소동을 치루면서 세리에 마을에서는 처음으로 어린 세 명의 소년이 고귀한 황태자의 귀환길에 동행을 하게 되었다. 물론 데이몬이 따라나선 것은 토마스와 코웰 때문이 아니었다. 기사는 먼 여행을 떠날 때에는 의당 종자를 두어야 하고, 지금까지 홀로 여행을 했던 메테우스는 제국의 자랑스런 기사였기에, 그에게 필요한 종자로 데이몬이 선택이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데이몬 부모는 확실한 선택을 받은 토마스와 코웰에 이어 데이몬 또한 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어린 데이몬을 종자로 선택한 이가 황태자의 최측근인 메테우스였기에 그들의 기쁨은 너무도 컸다. 물론 데이몬이 메테우스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는 것은 선택에 여지를 두지 않았다. 그로 인해 싸이의 귀환길에는 큰 포부를 안은 채 열심히 그 뒤를 따르는 세 명의 예비 기사들이 포함이 되었다. 그런 관계로 생전 처음 마을밖을 나서게 된 아이들의 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신기하게만 보여졌다. 더구나 앞에서 거대한 마차를 끌게 된 데이몬은 메테우스가 하는 모든 일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의 양옆으로 따라가면서 연신 호위 기사를 흉내내는 어린 소년들의 치기 어린 모습은 한순간 평화로운 오후를 더욱 더 포근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뭐든지 좋은 일에는 꼭 화가 끼는 법이다. 이 모든 말들이 현재의 싸이를 두고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싸이의 표정이 저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때까지 싸이의 표정은 해맑았다. 항상 혼자였다고 느꼈는데 또래의 아이들과 잠시라도 어울리게 되었으니 절로 즐거운 마음이 들 법도 했다. 그러나 잠시간의 즐거움은 눈앞에 나타난 제로니스로 인해 한순간 절망에 가까운 고통으로 다가와야만 했다. 모든 일은 주군을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는 메테우스의 간절한 충성심이 한몫 단단히 했다. "후후, 옷이 무척이나 화려하구나." 왠지 비웃는 듯 한 어조에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는 싸이였다. 제아무리 공경해야만 하는 용족의 어르신이라고 해도, 싸이의 할머니 또한 존경받으셔야만 할 분이셨다. 헌데 그런 분이 손수 만들어 주신 옷가지들을 내려다보며 뜻하지 않게 가시가 돋힌 말을 하는 제로니스로 인해 싸이는 심기가 불편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윽, 그래도 참아야 해. 엄마가 보여주시는 모습은 이 분이 매우 존경받으시는 분이시라는 걸 나에게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모습이었어. 하지만 우리 할머니도 용족세계에서 무척이나 존경받으시는 분이신데.......' 순간 알 수 없는 치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아마도 속 안에 있는 어린 동생이 욱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해서 속으로 계속해서 다독이며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왠지 저 말에 담긴 가시는 날카롭기만 했다. "네, 감사합니다. 제 할머니께서 손수 만들어 주신 옷이에요." "호오, 그러냐? 에르킨 여사께서 해주셨다니 의당 알아서 자알 해주셨겠지. 하나, 왠지 내 눈에는 등뒤의 그 망토가 눈에 거슬리는구나." 싸이는 그 순간 눈앞의 제로니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이런 흔한 천으로 만든 망토를 가지고 시비를 거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제로니스는 어이가 없는지 픽하며 웃음을 지었다. "녀석. 당돌하구나. 도대체 네 녀석은 어떤게 참 모습인 것이냐?" 싸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서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이었다. '헉, 저 양반이 지금........ 싸이와 내가 제대로 보인다는 것인가?' 속으론 잠시 놀랐지만 그래도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고룡이라고 해도 신의 손길로 이어진 인연의 사슬까지는 볼 수 없을 것이란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할머니를 탓하시는 듯 해서......." 급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나 제로니스의 눈길은 싸이의 어깨춤에서 떠나지 않았다. "글쎄다. 네 녀석의 실력을 내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면 그양반의 말을 조금이라도 믿을 수 있겠지. 따라오너라." 밑도 끝도 없이 말한마디 툭 던진 채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는 제로니스였다.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혼란스러웠던 싸이는 내심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순간 멀리서 싸이와 제로니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엘렌이 더욱 화사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호호, 싸이야. 원래 그분은 정이 가는 이에게는 아주 엄한 모습을 보이신단다. 그러니 꾹 참고 이 기회에 네가 원하는 경지에 도전을 해보렴.' 미리 알고 있었다면 넌지시 언질을 해주었겠지만, 이토록이나 빨리 제로니스가 싸이에게 다가설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최소한 며칠의 시간이라도 있겠거니하며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잠시 후회가 되는 엘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을 믿고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망을 시킨 적이 없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엘렌의 마음속은 점점 행복한 물결만이 철썩이고 있었다. 그러나 엘렌은 결코 제로니스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또한 그녀와 싸이를 먼 하늘에서 주시하고 있는 성급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 또한 절대 알 수 없었다. 신룡의 후예 8 - 2 *첫 패배* 갈리아스 옹은 눈앞에 놓여진 수정구를 통해 시시각각 싸이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느긋한 포즈로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내내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제로니스도 볼 수 있었고, 그가 무언가를 작심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결국 갈리아스 옹은 아침 내내 표정을 굳히고 있던 제로니스를 보면서, 그에게 어젯밤 부탁한 일이 먼 훗날 손자에게 아주 명예로운 일로 나타날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손자의 미래를 상상만 해도 행복한 마음이 들어 하루 종일 미소를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클클클, 그 친구. 어젯밤 내내 놀란 표정을 짓더니만, 그새를 못 참고 일부터 치루는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믿지 못하는 그 성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네. 그나저나 우리 싸이가 과연 얼마나 그 무심한 친구를 놀라게 할꼬?!" 비록 마음은 손자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안심이 되었지만, 눈앞의 수정구에 비췬 제로니스의 얼굴은 비장감 그 자체였다. 마치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여실하게 들어 난 모습이었다. 결국 오늘 손자가 겪게 될 일들로 인해 내심 손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은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렇기에 태평한 모습으로 앉아 앞으로 벌어질 손자의 첫 결투를 흥미진진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순간 제로니스는 왠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전신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이건 뒤에 따라오는 싸이의 기운을 통해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뭐지? 혹시 그 양반이 어젯밤에 헛튼 소리로 약조를 한건가? 그건 절대 아닐텐데?! 근데 왜 등줄기가 서늘해지지?' 역시 대자연에 한 걸음 다가선 존재답게 그는 싸이를 통해 전해지는 누군가의 기운에 급히 반응을 보인 것이다. 왠지 그 기운 속에 담긴 감정은 '앞으로 두고봅시다....!' 라는 강력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단 생각이 미치는 것부터 해결할 심산이었다. 어찌되었든 처음으로 인정한 용족 아이였다. 그 믿음에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도 밤새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로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절대 믿을 수가 없는 허무맹랑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허허허. 늙으면 죽어야 한다더니만. 나도 제대로 만나보지 못한 정령왕들을 저 어린 나이에 모두 거느렸다니...... 후훗, 만약 에르킨 여사가 그런 일을 벌였다면 내가 어느 정도 믿어나 주지. 고작 핏덩이나 다름없는 헤츨링이 그런 일을 했다고 말을 하니...... 당최 믿음이 가야 믿어주지.' 지난 밤 느닷없이 그를 찾아와 강제로 신기한 배에 태운 갈리아스 옹의 얼굴이 이순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겨난 불신은 그의 허무맹랑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다짜고짜 5대 정령왕들과의 인연부터 장황하게 늘어놓기를 시작하더니만 결국에 가서는 갈리아스 옹을 죽음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악한 에이션트 블랙 드래곤을 어린 헤츨링이 사냥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만을 어린 헤츨링이 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강압적으로 무조건 믿음을 가지라고 말을 하니 그로서는 당최 믿기 어려운 현실의 벽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뻗어 나왔다. 그로 인해 아침 일찍부터 마차 안에 앉아 긴 생각에 잠겼었다. 간간이 눈앞에서 해맑은 웃음을 짓는 어린 헤츨링을 유심히 살펴본 제로니스로서는 당최 믿음이 가지가 않았다. 물론 간밤에 보여준 의젓한 모습은 한층 더 신뢰를 하라는 유혹을 보내왔지만, 그래도 그는 대자연의 기운을 마음속 깊이 느끼는 존재였다. 그런 이의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 기운을 내뿜는 싸이의 모습은 그저 남들보다 특별한 헤츨링 수준정도였다.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봐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의문은 강하게 남았다. '그런데 과연 저게 헤츨링의 기운이 맞나? 나도 하도 오랜만에 보는 헤츨링이라서 그런지 제대로 알아보질 못하겠군. 이럴 때 그 망할 녀석이 듬직한 손주라도 안겨주었다면 이리도 혼란스럽진 않을텐데........ 에잉. 못난 놈.' 순간 머릿속으로 아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잠시간의 혼란스런 감정이 못난 아들에게 미운 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더 이상 혼란스런 마음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느 덧 눈앞에 다가오는 작은 소로와 그 뒤에 펼쳐질 아공간의 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작품이 하늘 높이 떠 있을 망할 존재의 감탄할만한 실력이기에 제로니스는 잠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다가 이내 눈앞으로 다가오는 아공간을 향해 힘있는 걸음을 옮겼다. 쿠웅. 속상한 마음에 아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힘껏 지면을 디뎌봤다. 이런쪽으론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존재가 만들어 낸 아공간이기에 믿음은 있었지만, 속상한 마음도 풀 겸 아공간이 얼마나 단단한지 실험도 해볼 겸해서 힘껏 대지를 밟아버렸다. 그 기세에 어린 헤츨링이 조금은 놀랐기를 마음 한켠에서 바라고 한 행동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뒤로 돌아서며 싸이를 바라보던 제로니스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이런, 저 녀석이 간밤에 듣던 대로 정말 한 물건 하는 모양일세. 보통 이정도 기운이면 웜급을 넘어선 녀석들도 벌벌 떨던데.....' 제로니스로서는 싸이가 에르킨 여사의 화난 모습도 담담히 받아넘긴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사나운 기세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절로 놀란 마음이 든 것이다. 게다가 성난 마음에 내뿜는 그의 기운이 어디 보통의 기운들인가?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코앞에 두고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운 세계로 나와야 했던 그였다. 이 순간 그가 내뿜는 기세는 날카롭다 못해 무거운 중압감을 잔뜩 담고 있었다. '역시 신성한 존재의 핏줄이라 이건가?!' 잠시 뒤돌아 서며 매서운 눈초리로 싸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내가 형님께 듣기론 네 녀석에게 걸출한 헤비 워커가 있다고 들었다. 꺼내 보거라." 대뜸 싸이에게 헤비 워커를 소환하라고 명령하는 제로니스였다. 순간 싸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러시지?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라서 있으신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싸이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눈앞에서 화가 난 얼굴로 시퍼런 안광을 내뿜는 제로니스의 모습은 차마 말로는 표현 못할 거부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저.... 왜 그래야 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돌할 정도로 소신을 밝히는 싸이였다. "흥, 그럼 내가 한참이나 어린 핏덩이인 네 녀석과 직접 손으로 대화를 나눠야겠느냐?" "네에?" 싸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듣기로 용족 최고의 전사가 바로 제로니스였다. 한데 그런 양반이 손수 자기와 결투를 서두르고 있었다. 당최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렇게 놀랄 것 없다. 네 녀석의 뻔뻔한 할애비라는 작자가 나에게 한 부탁을 들어주려면 어쩔 수가 없다. 네 녀석의 실력을 알아야 어떻게 가르칠지 알 것이 아니냐. 그러니 맘놓고 그 시커먼 놈이나 꺼내보거라." 솔직히 제로니스로서는 이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심히 불쾌했다. 그러나 간밤에 스스로 생각했던 것도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형님에게서 친히 부탁도 받았기에 내심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문제는 그 말투가 상당히 신경질 적이라는 것이 탈이었다. 하지만 그가 용족 사회에서 얻은 명예는 그러한 일들이 조금도 흠이 되지 않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니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싸이는 그렇지 못했다. '음, 그럼 이 모든 상황이 할아버지의 부탁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건가?' 속으론 여러 가지 의문들이 솟구쳐 나왔지만 눈앞에서 거대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존재 때문에 길게 생각을 잇지는 못했다. 단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가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급히 하나의 생각을 굳혀야만 했다. '뭐 그리 나쁠 건 없겠지. 할아버지께서 저분께 제우스랑 다른 놈들에 대해 이야기 해주신 듯 한데, 나도 그 녀석들의 실력이 궁금하던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과연 몇 놈이나 붙여야 가능할까?' 항상 시커먼스들과 놀면서 그들의 실력이 매우 궁금하던 차였다. 할아버지인 갈리아스 옹의 말에 따르면 시커먼스 군단자체가 대륙 최강이라 했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제로니스의 기운을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대륙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시커먼스 군단 중 몇 대나 희생을 해야 그를 무찌를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순간 결심을 굳힌 싸이의 입에서 작게 속삭이는 듯한 말이 흘러 나왔다. "모두 나와." 아주 간결하면서도 짧은 말이었다. 그 순간 싸이를 유심히 노려보던 제로니스는 황당함에 치를 떨었다. "허, 그게 무슨 짓이냐? 네가 분명 그 시커먼 놈을 불러내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는 미처 싸이에게 호통을 치기도 전에 스스로 입을 닫아야만 했다. 이건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쑤욱. 처음에는 커다란 머리가 보였다. 그 다음엔 전신에 은은한 빛을 뿌리며 가늘게 금이 간 몸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제로니스는 황당함에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었다. "저.... 저..... 무슨 저런 놈들이......" 오로지 그 말뿐이었다. 제로니스가 황당함에 미처 말을 내뱉지 못하는 순간에도 시커먼스 군단은 속속들이 그 모습을 아공간에 내보이고 있었다. 휘익. 휙. 휙. 매우 민첩한 행동들이었다. 이제껏 수천 년이 넘게 헤비 워커를 다뤄온 제로니스로서도 처음으로 보는 기민한 행동들이었다. 또한 더욱 기가 막힌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님. 대장 제우스를 비롯하여 25기 모두 주인님의 부르심에 집합을 끝마쳤습니다." "............." 근 7천년을 넘게 살면서 이런 황당한 일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제로니스였다. "허..... 허........" 입으론 연신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속으로 받은 충격으로 인해 어이없는 웃음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헤비 워커는 오로지 탑승자 한 명과 대화가 가능 할텐데........ 저 녀석들은 어떻게 내 귀에도 들리는 말을 할 수가 있지? 형님이 새로 개발한 기능인가?' 아무리 생각을 안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시커먼 동체에서는 연신 대자연의 기운들이 물씬 풍겨왔다. 그건 쉽게 볼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한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연신 풍기는 존재들이 자그마치 25대나 되었다. 이건 용족 사회의 이단자인 갈리아스 옹이라고 해도 쉽게 못할 짓이었다. 그런데 그 손자라는 녀석이 아무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것을 보고 놀란 가슴은 심하게 콩닥거리고 있었다. 더구나 외부인과도 대화가 가능한 헤비 워커라니....!! 그저 감탄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허...... 허. 얘야. 넌 재주도 좋구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 말 한마디면 충분히 족한 것이다. '허허, 내참 살다살다 별일을 다 겪어 보는 구나. 제아무리 갈리아스 형님이라고 해도 혼자서 헤비 워커 25대를 말 한마디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야. 헌데 그 손자라는 녀석은.......'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 올 뿐이었다. 예전의 인연으로 인해 형님으로 모신 양반이 평소에 골머리를 썩히는 일들을 종종 벌려왔다지만, 이렇게까지 큰 일을 저지를 줄은 까마득히 몰랐었다. 손자 사랑이 제아무리 지극하다고 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저렇게나 위험한 물건들을 어린 헤츨링에게 줄 생각을 다 했단 말인가. 이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한가지 위안을 삼자면, 눈앞에 서 있는 시커먼 녀석들이 어린 헤츨링의 말 한마디에 꼼짝도 못하는 듯한 행동이 유일한 위안이 될 뿐이었다. "넌 매우 위험한 짓을 벌이는 구나. 앞으로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제로니스로서는 놀란 마음을 최대한 자제하며 노파심에 이는 말 한마디를 꼭 해줘야만 했다. 하지만 싸이는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우웅, 저어.......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이 녀석들이 위험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이 녀석들을 불러낸 일이 잘못한 것인지......" 싸이 입장에선 늘상 겪는 일이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한데 용족 최고의 전사라는 양반이 노파심에 하는 듯한 말을 흘려듣기엔 싸이는 너무도 똑똑했다. 단지 그 속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할 뿐이었다. "허허허, 그래. 아직은 어리니깐 힘들 수도 있겠지. 하나 앞으로는 주의해서 행하려무나. 내가 보기에도 저 녀석들은 내 오랜 지기인 트라이아드(Triads)와는 전혀 다른 존재 같구나." 싸이는 제로니스의 말속에 담긴 뜻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에, 절대 힘있는 자로 군림하지 않을게요." 순간 제로니스는 가슴속이 무언가로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허허허, 역시 자식 복은 그 형님이 타고났구나. 타고났어." 제로니스는 금방 자신이 한 말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빛내며 공손히 대답하는 싸이의 모습에 부러움이 생겼다. 스스로 가진 힘에 대해 남 앞에 내세우지 않으려는 자는 극히 드물다. 한데 어린 헤츨링으로 봤던 아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놀라웠다. 그 스스로도 자신만만하게 내뱉지 못할 말들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남 앞에서 강한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어린아이답지 않게 말하는 폼이 어쩐지 맘에 쏙 드는 제로니스였다. "하하하. 내가 널 잘못보지는 않았구나. 용언이란 함부로 내뱉어서도 아니 되지만, 한번 내뱉은 것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사명이 있단다. 왜냐하면 존재의 이유를 부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한데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자신 있게 말하는 기특한 아이는 내 생전 네가 처음이구나." 처음 아공간에 들어왔을 때의 노한 감정들은 이미 찾아보기 힘든 제로니스였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눈앞의 헤츨링에게 칭찬이 절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제로니스는 어젯밤 그토록이나 침을 튀기며 자식 자랑을 하던 갈리아스 옹의 심정을 내심 이해할 수가 있었다. '후우, 내 처음에는 콩깍지가 씌여서 손자 자랑만 하는 줄 알았더니만, 오히려 그 칭찬들이 무색한 녀석이로세. 부럽다. 부러워....!' 어제 처음 싸이를 보면서부터 느낀 감정이 이 순간에도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제로니스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바꿨다. 멀리 하늘 위에서 필요할 때마다 아공간을 형성시키고 있는 갈리아스 옹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진지한 부탁을 받은 그로서는 지금부터라도 투기를 일으켜야만 했다. "후후, 좋아. 이제 이 곳에 들어온 목적만 제대로 끝을 내면 되겠지?" "......." "후후, 그렇게 긴장할 이유는 없단다. 내가 듣기론 네가 아직까지 검술 쪽으론 많이 부족하다고 들었단다. 이제부터 나를 네 검술 사부로 생각하려무나." "네에? 검술 사부님이라구요?" "그래. 앞으로 널 최대한 괴롭힐 작정이란다. 모름지기 용족의 자랑스런 사내란 자신과 검을 하나로 합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야 하는 법. 이 순간부터 네가 용족의 자랑스런 사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구나." "네에........" "허허, 녀석. 벌써부터 그렇게 기가 죽어서야 어떻게 내 자리를 물려받을 수가 있겠느냐? 어여 고개를 힘차게 들고 어깨에 힘을 넣으면서 가슴을 크게 펴거라. 항상 사부 앞에서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야지. 그래야 제대로 가르칠 맛이 난단다." 제로니스는 검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안색이 변하는 싸이를 바라보며, 내심 가벼운 미소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간밤에 듣기론 눈앞의 헤츨링은 검술에 뛰어난 체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건 직접 그의 눈으로 확인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제로니스의 눈에도 싸이는 정말로 말로만 듣던 최상의 체질을 가진 어린 헤츨링이었다. 그로 인해 제로니스는 벌써부터 마음이 흡족할 만큼 싸이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생애 마지막 제자가 될 아이에게 물러터진 검술을 전수할 수는 없었다. 제로니스는 제자를 강하고 혹독하게 키워야만 먼훗날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이순간부터 싸이를 대함에 있어서도 매우 혹독하게 굴 작정을 했다. 신룡의 후예 8 - 3 *무의식의 세계는 오직 신들만의 경계이다.* 제로니스는 기형학적 무늬가 그려진 팔찌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누군가를 소환했다. -하늘이 당신을 지켜 주시기를 ! 내 소중한 친구. 나를 그대에게 인도해 주기를...... 제로니스가 용언으로 누군가를 부르자 곧이어 그의 뇌리로 작은 뇌파가 전해졌다. -하늘의 은혜가 당신께 있으시기를 ! 내 소중한 친구. 그대에게 나의 뜻이 전해집니다. 곧이어 뇌파의 움직임이 끝이 나면서 제로니스의 뒤로 푸른색의 게이트가 열렸다. 드디어 그 안에서 연한 하늘색 빛을 띤 동체가 오랜만에 모습을 들어냈다. -내 소중한 친구. 참으로 오랜만에 결투를 위해 나를 불러주는군요. 연한 하늘색의 동체는 코발트 빛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듯 했다. 한눈에도 마음 편하게 보이는 색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는 헤비 워커가 모습을 들어내면서 눈 주위가 파랗게 빛을 내뿜는 모습은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제로니스는 자신의 헤비 워커인 트라이어드가 모습을 들어내자 뒤를 돌아서며 씨익 웃음을 지어 주었다. -후훗, 내가 그동안 행한 일을 그대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좀 뜻밖이군. 하나 앞으론 바빠질 것이라고 내 자신 있게 말해주지. 제로니스는 오랜 지기를 만난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건 혼자만의 생각인 듯 보였다. 간만에 본 트라이어드의 기운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가요? 만약 당신 앞에 서 있는 저들 때문이라면 전 가급적 사양하고 싶군요. 이제껏 제로니스와 숱한 결투와 처절한 전투를 거치며 마음이 하나로 이어진 소중한 친구였다. 마치 피붙이처럼 대하고 있던 트라이어드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제로니스로선 매우 곤혹스러웠다. -호오, 그대처럼 강한 이가 왜 몸을 사리는 것이지? 그대의 영원한 친구인 나를 못 믿겠다는 건가? -글쎄요. 전 당신과 함께라면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있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아니군요. 제가 가진 기운으로는 도저히 저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답니다. 오랜 된 인연이기에 솔직함이 주된 대화를 이끌어 주고 있었다. 그 속에서 지상 최강의 강자로 군림하던 레지나 급의 트라이어드가 미리부터 패배주의에 물든 말을 전하고 있었다. 솔직히 제로니스로서는 그 점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트라이어드. 그대는 나를 못 믿는다는 것인가? -아니랍니다. 그러나 당신이 저와 하나가 된다고 해도 저들은 쉽게 승부를 낼만한 존재들이 아니죠. 이 점은 당신도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안그런가요? -후훗, 그런 것이었나? 그래서 내 마지막 제자가 될 아이의 헤비 워커를 보면서 나조차도 그대처럼 순순이 패배를 자인해야만 한단 것인가? 순간 제로니스의 눈가에서 처음으로 살기 어린 시선이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대자연의 공포가 연상되는 눈빛이었다. 그 순간 트라이어드는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 보이는 제로니스에게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고개를 숙였다. - 하늘이 당신을 보호하시기를 ! 잠시 그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군요. 언제나 소중한 인연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끝까지 당신과 함께 운명을 나누는 존재가 되지요. 어서 오르십시오. 내 소중한 친구여 ! 거대한 고개가 숙여지면서 그 속에서 환한 빛이 제로니스의 온 몸을 감쌌다. 그 모습은 마치 넓고 커다란 바다가 그를 한 몸에 받아들이는 모습으로 보였다. 그 속에서 제로니스는 다시금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으며 작게 뇌까렸다. "어쩌면 오늘이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날이 되겠군. 내 마지막 제자가 될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줄 수 있는 멋진 순간을 만들어줘야겠지." 싸이는 눈앞에 모습을 들어내는 제로니스의 헤비 워커를 보며 극도로 긴장을 했다. 언제나 말로만 듣던 전설의 헤비 워커 레지나 급이었다. 할아버지가 최초로 만들어 낸 지상 최강의 전투형 헤비 워커. 용족 전사들의 숱한 전설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그들만의 멋들어진 동체. 그런 것들을 이제 눈앞에서 직접 경험한다는 생각에 전신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져 갔다. 곧이어 제로니스의 등뒤로 파란 게이트가 열리면서 그 속에서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트라이어드가 모습을 들어내자 금세 호기심이 발동한 눈빛과 함께 작은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응? 저게 레지나 급이야?" 이건 싸이도 모르게 시커먼스 군단과 자연스런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네, 주인님. 예전에 주인님의 할아버지께서 가지고 있는 레지나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확실히 레지나 급의 전사가 맞습니다." 싸이가 작게 뇌까린 듯한 말을 제우스가 급히 받아 대답했다. 순간 싸이는 눈을 빛내며 눈앞에 모습을 들어낸 레지나 급의 헤비 워커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우씨. 저게 정말 레지나 급이란 말야? 뭐가 저리 약해 빠지게 생겼어?!" 만약 이 말을 다른 이가 했다면, 전설의 헤비 워커 레지나를 탄생시킨 갈리아스 옹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갈리아스 옹의 유일한 손자였다. 갈리아스 옹조차도 스스로 인정한 손자였기에 이 순간 싸이가 어떠한 말을 하던지 간에 용서가 되었다. 하지만 싸이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설의 레지나 급 헤비 워커가 너무도 허약하게 생겼다는 것에 다소 불만이 생겼다. "저게 정말 그 유명한 레지나 급이라면 너희들은 도대체 뭐야?" 이게 싸이의 제일 큰불만 사항이었다. "주인님. 레지나 급은 제각각 고유의 색체를 띄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되는 자를 고름에 있어서도 무척이나 깐깐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과는 도저히 비교도 안되는 허약한 놈들입니다." 제우스는 싸이가 시커먼스 군단을 칭찬하는 듯한 말에 무척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말문이 술술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우스의 신이 난 듯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싸이는 점점 불만스런 표정이 되고 있었다. 싸이가 생각하기에도 제우스의 말은 옳았지만 감히 그 속에서 자기 할아버지까지 덩달아 씹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감히 !! 내 할아버지께서 공들여 만든 헤비 워커가 어쩌고 어째? 우씨. 제우스. 너 죽고 싶어?!" 버럭 성질을 내는 싸이였다. 순간 제우스는 당황한 모습으로 허둥거렸다. 곧이어 몸을 빳빳이 세운 채 싸이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싸이를 보며 제우스는 한참이나 지나도 더 이상 다른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속으로 큰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기 시작했다. -휴우, 주인님이 매우 화가 나신 듯 한데..... 눈앞에 모습을 들어낸 상대의 헤비 워커를 보면서부터 왠지 알 수 없는 자신감에 말실수를 한 것이다. 비록 제우스가 헤비 워커인 쇠대가리 족이 맞다고는 해도, 얼마 전부터 대자연의 기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루면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예전에 비해 많은 이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후후후, 대장. 그러게 말조심 하셔야죠. 제아무리 약하게 보여도 저 앞의 레지나는 현재까지는 지상 최강의 존재란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저 앞의 레지나는 수천 년에 가까운 시간들을 대자연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한 존재란 말이오. 거기에 비하면 우린 미약한 존재일 뿐이오. 단지 저 앞의 레지나와 비교하자면 우리들은 레지나 급으로는 상상도 못하는 주인님과의 자연스런 동화가 이뤄진 존재들. 아마도 그 점 때문에 대장의 눈에 저 앞의 파란 레지나가 같잖게 보였을 것이오. 이제껏 침묵으로만 일관하던 광폭한(Frenzied) 할버드가 말문을 터트렸다. 순간 제우스의 시선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지금 네가 한 말이냐? -후후, 그렇소. 대장! 제우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살짝 미소를 짓는 광폭한 할버드를 바라보며 왠지 알 수 없는 친밀함이 느껴졌다. 이 모든 건 말보단 행동으로 먼저 모범을 보이는 존재에게 신뢰가 가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 언제나 말도 없는 네가 이렇게 한마디 한 것을 보면, 저 앞에 있는 존재가 대단한 건 사실이겠지. 그래도 우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건 사실이잖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우리가 주인님과 의지의 동화를 이뤄냈다면 저 레지나는 주인의 마음과 하나로 이어졌다고 봐야겠죠. 비록 그것이 긴 세월의 연륜인지 아니면 그만이 지닌 독특한 심성 때문인지는 잠시 후에 느낄 수 있겠지요. 하나 우리보단 월등한 전술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게 옳다고 여겨집니다. 제우스는 광폭한 할바드의 말에 곰곰히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껏 주인과 하나로 동화가 되면서부터 숱한 모의 전투를 치룬 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광폭한 할바드의 지원은 위기에 빠진 동료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 존재가 남을 배려하는 듯한 말을 남기는 것은 그만큼 느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리 블랙 스톰 레젼드리 군단이 주인님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지. 그러나 우리 개개인이 지닌 힘과 기량은 그것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광폭한 할바드의 배려심을 생각해서 상대를 존중해주도록 하지. 제우스의 이러한 결정으로 인해 모든 시커먼스 군단은 눈앞의 트라이어드에 대한 대접을 남달리 하기로 작정했다. 그로 인해 앞으로 치뤄질 전투에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싸이는 제로니스가 트라이어드에 탑승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잠시 고개를 들어 트라이어드의 파란색 동체를 다시 한번 쳐다 보았다. "으음. 볼수록 멋들어진 모습이구나. 그래도 우리 시커먼스 녀석들에 비하면 왠지 초라하게 보이는데...." 왠지 제로니스의 말이 자꾸만 귀에 남아 있었기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뭐 사부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나라면 저 놈들 중에 하나를 고르겠지만, 오랜 친구같은 느낌을 쉽게 버릴 수는 없으시겠지. 아무튼 나도 슬슬 준비를 해볼까?" 역시 싸이의 속마음은 남달리 따뜻했다. 제자에 비해 사부의 헤비 워커가 한없이 약해보인다는 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곳 아공간에 들어 온 이유를 떠올린 싸이는 곧이어 등뒤의 제우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우스. 너 다음부터 그딴 실수를 저지르면 알아서 해결해. 알았어?" 조금 전의 실수를 잊지 않고 있는 싸이였다. 그러니 잠시 안도를 하고 있던 제우스는 느닷없는 싸이의 매서운 한마디로 인해 크게 주눅이 들었다. "넵. 주인님.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이번 한번만 용서해 준다. 담부턴 알아서 대가리 묻어." "네엡." 아공간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대답하는 제우스였다. 그런 제우스를 보며 씨익 웃음을 짓던 싸이는 곧이어 제우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나 태워." 순간 제우스의 두 눈에서 투명한 빛이 쏘아져 나왔다. 그 빛은 순식간에 싸이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눈깜빡할 새에 싸이의 모습을 아공간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후우, 이넘의 과정은 진짜 맘에 안들어. 매번 탈때마다 왠지 내 몸이 아무 느낌도 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싸이는 찰나에 속하는 시간이라고 해도 전신으로 느끼는 기분이 매우 거슬렸다. 예전에 무의식의 세계를 접하면서부터 이런 기분이 내내 이어져 왔다. 제우스로서는 주인의 기분을 알아채곤 재빨리 하려고 최선을 다 했지만, 싸이가 불만을 느끼는 일들은 그저 몸안에 태우는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제우스와 시커먼스 군단의 모든 의지들을 주인과 하나의 의지로 연결을 하는 일이기에 최대한 서두르는 와중에도 몇 초의 시간이 흘러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순간에도 제로니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레지나 급의 한계였는지도 몰랐다. 주인과의 하나된 의지를 만든다는 것은 고대 용족들이 전한 궁극의 주문에 의존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레지나 급에 갓 올라탄 존재들에겐 이런 점들이 별로 필요가 없었다. 단지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해 매우 자연스런 움직임을 포기해야만 할뿐이었다. 이것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은 미스테리였다. 오옴.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잠시 제로니스의 뇌리로 오랜 지기인 트라이어드의 음성이 전해져 왔다. 대략 삼분 여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후우, 이짓도 오래 할게 못되는군. -후후, 그렇다고 해서 제로니스님이 다른 레지나 급의 주인과 똑같이 행동하실 순 없겠지요. -그래도 내 자아가 잠시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은 나로서도 참기 힘든 고통이야. 현재 제로니스는 트라이어드의 내부에 설치된 버켓 시트에 앉아서 눈을 꼭감고 있었다. 지금처럼 트라이어드와 하나의 의지로 연결시키는 작업은 그에게도 아직은 낯설은 일이었다. 만약 예전에 갈리아스 옹이 찾아와 새로운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면 그로서는 이런 경험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로니스 님. 속 안에 이는 불안감은 떨쳐 버리시길 바랍니다. -끄응. 이봐. 내 오랜 친구. 그대도 알다시피 그건 내 본능이야. 그리 쉽게 떨칠 수가 없어. -그러나 전 모든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순간만큼은 절대 어느 누구도 저와 제로니스님을 속박하지 못합니다. 그점 안심하시고 불안감을 떨치세요. 그로 인해 자꾸만 늦춰지고 있답니다. -끄........응.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제까지 이러한 경험은 수백번이 넘는 일이었다. 어쩌면 수천 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은거도 모두가 이러한 경험들을 이뤄내기 위해 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대자연의 기운을 한결 가까이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자아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만 같은 이 기분은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경험했던 일들과는 너무 생소한 일이라 아직까지 익숙하게 할 자신이 없군. -후후, 그러나 잠시간의 경험으로도 제로니스님은 많은 성장을 하셨다는 것을 아셔야겠지요. -후우, 그렇지. 그 양반이 무의식의 세계와 그 속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나보고 느껴보라고 했을땐 눈앞이 깜깜했지. 첨에는 그저 미친 짓만 하는 영감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그의 말을 들어보니 새로운 세계는 달콤한 꿈이 아니더군. 해서 그날부터 그대와 이렇게 시작을 한 것이지. 근데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일까? -글쎄요. 제 대답은 단 한가지뿐이랍니다. 제로니스 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선 편안한 마음을 지닌 자아로 하여금 저의 전신을 누비게 만드는 일이죠. 그렇지만 제로니스 님은 지금처럼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저로서는 종종 아무런 사심없이 편안한 휴식을 저와 함께 취하시면 어떨까 하는 대답만 드릴 수 있군요. -후우,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냐. 언제나 그대에게 나를 맡길때면 내 몸의 본능은 자꾸만 뜨거운 전투를 연상시킨다네. 그러니 쉽게 안정을 하기 힘들지. 아마도 내 오랜 습관때문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어서 좀 서둘러줘. 앞에 있는 내 제자 녀석이 날 굼벵이 사부로 여기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두 그대의 노력에 달려 있어. -후후후. 이미 그 분은 높은 경지에 올라선 분 같군요. -으응? 그게 무슨 말인가? 저 어린것이 무슨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인가? -글쎄요. 차마 발끈하며 화를 내는 제로니스에게 자세한 대답을 해줄 수 없는 트라이어드였다. 한참동안 이쪽을 주시하던 싸이를 경계 대상 일순위로 삼고 있던 트라이어드로서는 싸이의 다음 행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싸이가 잠시 후 제우스에게 탑승을 했다. 그때 이미 트라이어드는 전신에 일어나는 경계심에 극도로 긴장을 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이쪽을 기다리는 듯 편안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 모든 것을 제로니스에게 곧이곧대로 이야기 해줬다면 좀더 빠른 동화가 이뤄졌겠지만, 지금도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차마 이 말만은 못할 짓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들었다. 그렇기에 트라이어드는 잠시 뒤 침묵으로만 일관하기 시작했다. 그순간에도 제로니스는 조금씩 생겨나는 조바심으로 인해 안달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쉽게 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의식의 깊은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모든 일들을 알기엔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부족한 제로니스였기 때문이다. "끄응." 눈앞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듯 제로니스가 탄 헤비 워커의 기운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것이 수정구를 통해 비춰졌다. 싸이는 제로니스가 헤비 워커에 탑승 한 후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비로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잠시 따분했다는 듯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 제대로 앉기 시작했다. "준비는?" "이미 끝냈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잘 들어." "넵." 싸이의 눈앞에 박힌 여러 개의 수정구를 통해 각기 다른 기운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깜박거렸다. 이건 싸이가 갈리아스 옹에게 부탁을 해 새로이 만든 기능이었다. 물론 갈리아스 옹이 직접 제우스의 몸 안에 탈수는 없는 일이라 모든 작업은 싸이가 도맡아 처리했다. 그래서 인지 이번에 새롭게 넣은 기능에 유달리 집착을 보이는 싸이였다. "이제부터 우린 눈앞의 거대한 존재와 싸워야 해. 물론 이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이야. 그 점 명심해. 알았어?" "네엡." "좋아. 그럼 일단 삼각 편대 전술부터 시작하자. 내가 맨 앞에 제우스랑 선다. 그담은 후속조들이 2열을 맡아. 그리고 제 3열은 몰이랑 합성 활이 맞고. 나머진 4열에서 대기해." "네. 알겠습니다." 제일 먼저 큰 소리로 대답을 한 것은 거대한 쇠뭉치를 든 크레이지 몰이었다. 그 뒤를 이어 합성활로 불린 궁극의 라이트닝도 작게 대답을 이었다. 각자 손에 든 무기로 인해 제멋대로 불리는 게 조금은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한 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며, 위대한 창조주인 싸이의 호명에는 절대 불만을 품지 못하는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저마다 각자 이름은 있었지만, 싸이는 그런걸 시시콜콜 외우고 다니지 않았다. 어쩌면 천재만이 지닌 극악의 단점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제껏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시커먼스 군단은 저마다 그 점에 대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모두들 준비." 싸이가 큰 소리로 수정구를 향해 소리를 지르자 모두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단 한 명과 한꺼번에 여럿이 대결을 할 땐 둥글게 둘러싸는 게 다구리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그런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정정당당하게 힘으로써 상대를 제압한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호오, 상당히 빠른 몸놀림이군. 순간 제로니스가 외부 통신을 이어주는 수정구를 통해 싸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헤헤, 아직은 많이 모자라요. 싸이는 제로니스의 칭찬에 밝게 웃으며 중앙에 박힌 수정구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제로니스의 얼굴이 환하게 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녀석. 과연 누구의 핏줄인지 정말 대단하구나. 사내 녀석이 그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아암. 제로니스로서는 여럿이서 한꺼번에 덤비는 일을 시도할 줄 알았던 싸이가 전혀 예상 밖의 모습으로 나오자 왠지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후훗, 내가 말년에 제자 복이 터졌구나. 그 형님만 아니었으면 네 녀석을 이토록 쉽게 제자로 만들 수 없었겠지. 아암. 내 나중에 형님께 무릎꿇고 술한잔 올려야겠다.' 생각할수록 매우 흡족한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용족 사회의 이단자로 낙인찍힌 갈리아스 옹에게 서슴없이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어쩌면 치욕적인 일로 치부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내심 결심한 제로니스의 배포도 여간 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앞에서 정정당당한 모습과 언행일치를 하는 싸이의 모습에서 제로니스는 그딴 치욕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길 마음이 든 것이다. -좋다. 네 입으로 직접 군림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내 오늘 그만한 실력이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다. 자, 오너라 ! -그럼, 갑니다. 순간 싸이의 힘이 실린 말 한마디로 인해 아공간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넘쳤다. 꿀꺽. 누군가의 침이 목구녕에서 큰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곧이어 싸이의 외마디 외침과 동시에 거대한 아공간에선 커다란 폭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이얏, 모두들 돌격 앞으로~! 나를 따르라~!!" 쿵쾅 쿵쾅. 커다란 대형 검을 한 손에 들고 둥글게 생긴 대형 카오스 방패에 온힘을 실으면서 싸이는 앞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그 뒤를 이어 여러 대의 시커먼스들이 줄을 맞춰 달려가기 시작하자, 그 앞에 선 제로니스는 눈을 커다랗게 치켜 떴다. '허억, 저것이 바로 대자연의 투기(鬪技)인가?' 가히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만큼 시커먼스 군단의 주변에는 투명한 아지랑이들이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그걸 직접 눈으로 지켜보는 제로니스의 눈에는 경악에 가까운 놀람이 스쳐지나갔다. -꿀꺽. 온다. 패링 준비. 이미 기선을 제압한 듯 빠르게 달려오는 싸이에게 정공법으로 맞서는 제로니스였다. '으음, 정공에는 정공이 가장 좋은 병법이지. 자 오너라. 내 오늘 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경험해 보마.' 왼발을 앞으로 굳건히 내밀어 잔뜩 힘을 준 채 강하게 디뎠다. 그리곤 오른 발을 뒤로 살짝 빼 사선으로 서며 거대한 히터 방패에 전신의 기운들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한 손에 든 검을 바닥으로 내리며 다음 동작을 위해 힘을 축척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앞에 다가온 싸이가 왼쪽 손에 든 방패를 비스듬히 내밀며 어깨를 앞으로 쭉 내밀자 제로니스는 이를 악 물었다. "흐읍......! 이익 !" 그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앙. 아공간을 찢어발기는 듯한 소음이 최초로 터져 나왔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미리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뒤로 거세게 나뒹굴었을 것이다. 순간 제로니스는 머리끝까지 띵하게 울리는 충격에 크게 신음하며 한참이나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곧이어 그의 눈에 싸이의 또 다른 공격이 들어왔다. 왼쪽으로 비스듬히 든 방패를 급히 오른쪽으로 돌리며 재빨리 내민 팔꿈치로 자신의 복부를 가격하려는 싸이의 이차 공격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짖쳐 들어왔다. "이..... 이녀석." 얼마나 다급했는지 제로니스는 평생 단 한번도 해보지 못한 후퇴를 감행해야만 했다. 하나 잠시간의 갈등이 큰 후유증으로 나타났다. 끼이이익. 다소 귀에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트라이어드의 복부에 긴 자상이 남겨졌다. -복부 자상 30%. 조심해야만 합니다. 순간 제로니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분명 트라이어드의 다급한 메시지는 복부에 긴 자상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한데 순간적으로 살짝 긁힌 줄로만 알았던 것이 30%씩이나 되는 충격이었다니.......! 이렇게 되면 뒤로 후퇴한 보람이 없는 것이다. 순간 너무 놀라 잠시 호흡을 멈춘 제로니스였다. "뭐.... 뭣? 자상 30%?!" 그의 자존심이 이토록이나 심하게 구겨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급히 긴급기동으로 들어간 트라이어드는 시커먼스 군단과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서 있어야만 했다. "이 미친........!!" 차마 눈앞의 꼬맹이한테 심한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받은 상처는 충격과 공포 그 이상이었다. 분명 눈앞에서 어깨를 맞대는 순간까지는 그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상대의 헤비 워커가 이쪽보다 월등히 뛰어난 힘을 지녔기에, 그로서는 오랜 시간동안 쌓아온 패링 기술로 슬쩍 흘려주면 어느 정도 균형은 이룰 줄 알았었다. 한데 그런 생각이 맞아떨어졌다고 판단을 하려는 순간 급히 오른쪽으로 허리를 틀며 빠르게 내질러진 상대의 왼쪽 팔꿈치는 너무도 놀라왔다. "끄응. 역시 힘 앞에선 작은 기술은 무용지물이란 말인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곧이어 트라이어드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제로니스도 그 점만은 인정해야만 했다. 조금 전 그가 선보인 패링 기술은 레전드리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최강의 기술 중 하나였다. 상대의 힘을 순간적으로 흘려주면서 날카롭게 선 무기들까지도 아무런 충격을 줄 수 없을 만큼 무기력화 시키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눈앞의 꼬맹이의 패링 기술은 지금 이순간에도 매우 설익어 보였다. -끄응, 그럼 저 녀석의 잔머리에 칭찬을 보내줘야 하는 것인가? -네, 그것도 정당한 기술 중 하나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머리는 수긍을 해도 이성이 절대 용납 못했다. -안돼. 저건 잔머리에서 나온 잔기술일 뿐이야. 그런 걸 어떻게 정당한 기술로 여길 수 있나. 그러나 제로니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어드는 잠시간의 침묵으로 긍정하라는 표현을 전해왔다. "끄응. 놀라운 놈이로다." 어쩔 수 없이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로서도 도저히 생각 못한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물론 앞으로 숙련을 더 해야만 할 필요성이 있는 기술이었지만, 그래도 방심하고 있던 상대에게 허를 찌르는 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기술이었다. 단지 그 기술을 시전 하려면 상대의 힘을 월등히 뛰어넘는 힘이 있어야만 했다. '녀석. 네가 가진 헤비 워커의 힘만 아니었다면 절대 실현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상태이니 이번만은 인정해 주마.'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인정이었다. 지금의 트라이어드보다 월등한 덩치와 그에 걸맞는 힘. 잠시 어깨를 맞대 본 결과만으로도 이미 느낄 수 있었던 확연한 힘의 차이였다. -아주 놀라운 기술이었다. 이 점만은 인정해 주마. -헤헤, 감사합니다. -좋다. 그럼 다음 번엔 어떤 기술로 들어올지 기대해 보마. 자 와라. 한번 기선을 제압 당했으니 힘껏 소리를 지르며 기운을 돋구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제로니스가 내지른 기합은 제법 멋드러졌다. 순간 싸이는 수정구 안에서 눈빛을 내뿜는 제로니스를 향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자아, 이번의 일차 공격은 성공했다. 다음은 이차 전술로 승부 한다. 모두들 준비~!!" 싸이의 힘찬 기합에는 승자로서의 기쁨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 당연히 제로니스가 봐준 것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조금 전 어깨를 부딪혔을 때 매우 큰 곤경에 빠질 뻔했던 것이다. 자칫하면 달려가던 탄력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것이다. 싸이는 오래 전부터 상대의 힘을 옆으로 슬쩍 흘리는 패링 기술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감히 몸에 익힐 생각은 전혀 못했다. 그건 매우 미묘한 시차를 두고 자연스럽게 타이밍을 맞추어야만 되는 기술이었다. 그런 기술을 몸에 익히려면 무엇보다 수많은 실전감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급박한 순간을 숱하게 치뤄야만 가능 한 일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가족들로 인해 그런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일이었다. 한데 제로니스는 조금 전 싸이에겐 항상 환상적인 꿈의 기술로 여기던 패링을 아주 자연스럽게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곧 싸이가 두고두고 인정할 만큼 대단한 존재의 출현인 것이다. 신룡의 후예 8 - 4 그런 까닭일까?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제로니스의 방어 자세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싸이였다. '역시, 빈틈이 없어. 조금 전엔 일부러 헛점을 보였다면 이번에는 확실한 방어자세이기 때문에 전혀 빈틈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신 머릿속으로 제로니스의 빈틈없는 자세를 공략할 전술을 떠올렸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곧 경험의 차이였다. "좋아. 현재 우리의 힘만으로 승부를 해야겠다. 누구의 전술이 뛰어난지는 곧 판가름 나겠지. 자아, 모두들 일심 동체의 자세를 잃지마. 알았지?" 싸이는 호탕하게 시커먼스 군단을 다독이며 곧바로 정면 승부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모두들 공격 앞으로~!!" 싸이의 명령에 제우스가 제일 먼저 앞장을 섰다. 처음부터 싸이를 태운 상태라 겁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제우스였다. 그런 제우스를 시작으로 모든 시커먼스 군단이 하나된 호흡으로 움직임을 보이자, 싸이의 2차 공격을 기다리던 제로니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기분이었다. -역시 무서운 기세로군. -아마도 좀 전의 기술은 쓰지 않을 것 같군요. 조심하게 대처하시길. 트라이어드로서는 정면으로 달려오는 상대를 막을 자신이 없었기에 제로니스의 의견에 작은 조언을 행했다. 제로니스 역시 그 의견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좋아. 정면으로 온다면 그에 맞는 기술을 구사해주면 되겠지. 제로니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할 즈음 싸이를 태운 제우스가 전면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그 순간 아공간에서 두 번째 강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꽈아아앙. 마치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러나 싸이를 태운 제우스와 제로니스가 탄 트라이어드의 모습은 건재해 보였다. 막상 상대와 부딪히는 순간 서로간의 우열을 가름하기 힘든 기술로 인해 큰 피해를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뒤 낭패한 기색이 뚜렷한 제로니스의 음성이 아공간에 울려 퍼졌다. "이런......... 어떻게.......!!" 제우스는 빠른 속도로 달려가면서 연신 싸이의 머릿속에 떠오른 전술을 그대로 따라하기 바빴다. 예전의 모습이었다면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싸이가 무의식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면서부터 새롭게 가지게 된 육체는 주인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 덕분일까? 제우스는 힘차게 지면을 박차며 눈앞으로 다가온 트라이어드에게 거대한 검을 강하게 휘둘렸다. 휘이잉. 소름이 쫙 돋을 만큼 강한 파공음이 그 뒤를 이었다. 순간 트라이어드의 왼쪽 팔로 모든 기운들이 모이는 듯 싶자, 제우스는 싸이의 의지대로 힘껏 트라이어드의 방패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순간 제우스의 모든 힘이 들어간 거대한 검과 대자연의 기운이 담긴 방패가 거칠게 부딪혔다. 꽈아앙. -크으윽. 제우스는 강한 충격과 함께 손끝을 타고 흐르는 진동에 전율을 하면서 급히 사선으로 몸을 비트는 트라이어드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순간 제우스의 몸 주변으로 환한 빛이 솟구치는 환영이 일어나면서 트라이어드의 방패는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꽈앙. 꽝. 꽝. 연속해서 세 번의 부딪힘이 짧은 순간에 들려왔다. 그순간 제우스의 뇌리 속으론 잔뜩 힘이 들어간 검을 최대한 빠르게 끊어주라는 싸이의 의지가 전달이 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제우스의 몸주변의 흐름이 이상함을 느낀 미려의 도끼가 급히 안부를 물어왔다. -대장. 괜찮소?! 다음 공격을 위해 어서 뒤로 물러나요. -아직은....... 아직은 버틸만 해. 나름대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제우스가 작은 대답을 토해냈다. -대장. 어서 뒤로 물러나세요. 우리가 갑니다. 순간 제우스의 답답한 듯한 대답에 2열에 선 크레이지 몰이 힘찬 기합과 함께 앞으로 솟구쳐 나왔다. 그 뒤 크레이지 몰이 힘차게 휘두른 쇠뭉치에 트라이어드의 방패가 서서히 쪼개지는 모습이 제우스와 다른 시커먼스 군단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그 순간 제우스는 싸이로부터 특별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자 연신 몸 안에서 요동을 치는 대자연의 기운을 끌어내리기 위해 급히 명상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제우스의 오른 팔은 트라이어드와의 첫 충돌에서 큰 낭패를 겪었다. 모든 기운을 담아 힘차게 내지른 검을 사선으로 살짝 비켜나면서 옆으로 흘려버리는 제로니스의 기술로 인해, 제우스는 급히 전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주인의 의지에 따른 기술을 구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순간 제우스는 대자연의 흐름에 순응하지 않은 채 역행의 기술을 행했기에 몸 안의 기운이 잠시간 거꾸로 돌았다. 비록 찰나간의 시간이었다고는 해도 거대한 대자연의 기운에 맞서기에는 제우스의 육체는 아직까지는 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주인의 의지를 받고 있었기에 최대한 기운을 짜내며 마지막 검을 내질렀었다. 그 때문일까? 제우스의 불타는 의지덕분에 잠시간 눈을 멀게 하는 빛이 제우스의 몸 안에서 솟구쳐 나오면서 트라이어드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온힘을 다해 강하게 방패를 때리는 제우스의 힘에 의해 트라이어드는 손에 든 방패에 가는 균열이 생기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제우스의 뒤를 이은 크레이지 몰의 공격에 정신적으로 또다른 충격을 받은 제로니스였다. "어떻게 한번의 기술로 연속해서 세 번의 휘두름을 가질 수 있었지? 분명 마지막에 들어온 기술은 단 한번의 사선 베기였다. 헌데 어떻게 세 번씩이나 큰 충격을 주냔 말이다." 스스로 자문을 구해봐도 여지껏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일이었다. 잠시 이러한 일들로 인해 깊은 생각에 빠져든 제로니스는 곧이어 울려나오는 트라이어드의 비명성에 퍼득 정신을 되찾았다. 만약 생사를 결하는 전투였다면 결코 가질 수 없는 일이었다. -으윽.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상황입니다. 뒤로...... 어서 뒤로 물러나시길. 순간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진 제로니스는 잠시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쇠뭉치를 노려보며 힘껏 손에 든 검을 내질렀다. 꽈앙. 비록 흘려 보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몸에 반동을 받은 덕분에 한결 후퇴가 쉬웠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기가 무섭게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거대한 화살이 보이자, 순간적으로 손에 든 방패로 가슴을 막으려고 했던 제로니스는 곧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크아아악." 한쪽 손에 낯선 이물질이 들어온 듯한 착각이 일면서 잠시간 몸에 고통이 뒤따라 왔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잠시간의 상념이 두 쪽으로 난 방패만큼이나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순간 제로니스는 너무도 황당함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그는 이제껏 단 한번도 상대의 힘 앞에 굴복해본 적이 없었던 존재였다. 그런 그에게 오늘 싸이와의 결투는 끔찍한 악몽과도 같았다. 처음의 부딪힘에서 약간의 찰과상과 함께 힘의 우열이 뚜렷하다는 것을 경험했었다. 곧이어 벌어진 두 번째의 승부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트라이어드의 몸에 큰 상처까지 입혔다. 거대한 화살촉이 한쪽 팔을 관통한 것이 제로니스의 감각에 뚜렷이 들어왔던 것이다. 한순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로니스를 보며 싸이는 순간적으로 이번 공격이 겨우 성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우, 겨우 성공했다. 제우스. 넌 지금 어때?" -주인님. 걱정 마십시오. 아무 이상 없습니다. 비록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연신 검을 쥔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우스의 뚝심 앞에서 그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였다. 하나 싸이는 시커먼스 군단의 절대자였다. "흥, 그러면서도 연신 온몸에 기운이 제멋대로 움직이게 놔둔다는 거야?" 싸이의 작은 호통에 제우스는 속으로 찔금했지만, 곧이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넵. 이 정도는 금방 회복이 됩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좋아. 어차피 저 분도 조금 있어야 정신을 차릴 듯 싶어. 그동안 열심히 집중해봐. -넵. 주인님. 제우스는 싸이의 말에 따라 급히 신형을 곤두세우며 얼마 전부터 배우게 된 기술을 온몸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말이 쉬워 집중이지 결투를 벌이던 상대를 앞에 두고 명상에 빠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포커스(Focus), 일명 집중을 시키는 새로운 기술은 시커먼스 군단에겐 창조주의 큰 은혜였다. 온몸에 심한 찰과상을 입으면서 연신 새로운 전술들을 몸에 익힐 때부터 주인의 의지에 따라 새롭게 가지게 된 기술이 바로 포커스였다. 전신에 깃든 대자연의 기운을 이용해 몸 안에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기운의 흐름들을 하나로 다스리는 포커스. 이 작은 기술 하나로 인해 시커먼스 군단들은 심한 부상을 입어도 그리 걱정하지 않는 존재로 탈바꿈이 되었다. 오늘 새로운 존재와의 결투를 하면서도 몸에 이상이 생기자 곧바로 포커스를 행한 제우스를 보더라도, 이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 있는 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 속에서 제우스는 또다시 주인의 의지가 원하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끄응, 대장. 지금 이건 또 뭐죠? -모르겠다. 단지 주인님이 뭔가를 새롭게 경험하고 싶으신 것 같다. 한쪽으론 온몸의 기운들을 움직이면서 새롭게 받은 육체를 하나의 커다란 통로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또 다른 쪽으론 주변에 서서 그를 호위하는 동료들에게 새로운 주인의 의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도 싸이는 뭔가 새로운 것들을 떠올렸는지 연신 제우스에게 뭔가 강한 의지를 전하고 있었다. -대장. 이거 혹시 새로운 방어 전술이 아닐까요? -글쎄요. 제가 판단할 땐 이건 방어보단 상대의 기운을 되돌리는 것 같은데요? 연달아 주변 동료들이 그들만의 통신 채널로 제우스에게 의견을 물어오자, 제일 먼저 주인의 의지를 받았던 제우스는 혹여 실수라도 할까봐 머릿속으로 강한 의지를 일깨우고 있었다. -시끄럽다. 주인님이 원하시면 우린 온몸이 바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행하면 그뿐이다. 명심해. 우리가 이렇듯 새로운 육체를 가지게 된 이유도 모두 주인님 덕분이다. 지금의 우리 몸에 큰 상처가 생겨도 하루저녁이면 말짱해지는 것도 모두 주인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성은이란 말이다. 잔소리 말고 딴 생각 할 시간이 있으면 주인님이 보내주신 새로운 은혜를 몸에 맞게끔 익히도록 해라. 제우스는 거칠게 숨소리를 내뱉으며 주변 동료들에게 주인의 은혜를 강조했다. 분명 다른 동료들도 이 순간 주인이 원하는 새로운 기술을 몸에 익히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커먼스 군단의 대장으로서 제우스는 시시콜콜한 일들은 거론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서로 확연히 다른 강한 개성을 지닌 존재들이 하나로 뭉치게 된 이유도 모두가 위대한 주인님 덕분이었다. '우리 모두는 주인님께서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더 이상 다른 생각들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우스는 연신 온몸에서 힘차게 요동치는 기운들을 다스리면서 새롭게 받게 된 주인의 의지를 몸에 각인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쏟아 붓기 시작했다. 싸이는 눈앞에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제로니스를 보며 왠지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비록 간발의 차이로 인해 제우스가 이득을 보았지만, 그건 그리 큰 이득은 아니었다. 만약 크레이지 몰의 이차 공격이 없었다면 제로니스가 저렇듯 큰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어떻게 하지? 이건 결투라기 보단 일종의 테스트에 불과해. 처음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큰 스릴은 없는 거 같은데... 더이상 하지 말자고 말하기에도 좀 불편하고......" 싸이로서는 제로니스의 반응이 더욱 중요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새로운 존재와의 결투를 벌인다는 생각 자체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의 부딪힘의 결과는 모두가 제로니스의 놀람으로 끝이 났다. 게다가 결투에 임하기 위해 시커먼스 군단에게 잔뜩 공격 명령을 내려놨는데, 막상 상대가 뒤로 빠지면서 피하게 되자 더 이상의 공격을 못한 채 끝을 내야만 했다. 이러한 점들이 무척이나 아쉽게 느껴지는 싸이였다. 하지만 꼭 서운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제로니스와 부딪히는 순간들을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시커먼스 군단의 시각으로 기록을 해놨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상대의 힘을 옆으로 흘리는 기술을 비롯해서 강하게 상대와 맞설 때 반드시 필요한 점들도 이번 기회에 똑똑히 보고 배우게 된 것이었다. 이건 오히려 싸이와 시커먼스 군단에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싸이는 새로운 경지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잠시 뒤 벌어질 3차 격돌에서 싸이 자신과 시커먼스 군단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지는 이순간 싸이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으득.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제로니스는 태어나 처음으로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띄고 있었다. 이건 갓 태어난 핏덩이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늘의 이 치욕을 경험하게 된 것이 비록 먼 훗날 크나큰 경험이 될지언정 지금 당장은 눈앞의 꼬맹이를 산산조각 내고 싶은 욕망뿐이었다. -제로니스 님. 내 위대한 친구시여. 부디 살기를 좀 더 거두시길 바랍니다. "흥, 필요 없어. 저 망할 놈의 꼬맹이가 내게 한 짓을 똑똑히 보란 말이다. 내가 비록 방심을 했다고는 해도 이렇듯 낭패를 겪은 것은 그대와 함께 한 5천여 년의 시간 동안 처음이란 말이다. 절대 용서 못한다." -글쎄요. 어찌 보면 개인의 욕망에 따른 집착이 아닐까요? 트라이어드는 거대한 몸에 이렇듯 큰 상처를 가지게 된 것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제로니스와 만난 뒤부터 이러한 경험은 단 한번도 없었던 까닭이다. 제아무리 기억에 담긴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봐도 눈앞의 상대처럼 강한 존재들은 결단코 없었다. 거대한 흑색의 몸뚱아리를 지닌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토록이나 심하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제로니스의 뛰어난 검술도 한몫 단단히 거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결투에선 그런 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처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치기도 전에 매우 곤혹스러운 변칙 기술을 지닌 상대에 의해 이렇듯 낭패를 겪게 된 것이다. 그것이 아마 제로니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트라이어드는 알고 있었다. 비록 제로니스가 화를 낼지언정 상대인 꼬맹이를 심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지 몇백 년 전에 새롭게 얻은 기술을 마지막 순간에 쓸 것이라는 것만 예감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현재 왼손이 부자연스럽지만 오히려 이것이 기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고 있어. 내 왼손목이 빠져 나갈듯한 통증을 이미 겪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시건방진 꼬맹이 녀석에게 톡톡히 빚을 갚아줘야겠지." -그럼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너무 심한 것은 자제하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흥, 어차피 저 녀석이 타고 있는 헤비 워커는 그대도 알다시피 매우 단단해. 이번 기회에 끔찍한 고통을 한번쯤 경험해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대도 단단히 각오하고 있도록." 눈앞에 모습을 들어낸 시커먼 녀석들이 그 모습을 나타나기 전까진 누가 뭐래도 최강의 존재로 군림하던 트라이어드였다. 비록 여러 대에 달하는 레지나 급 헤비 워커가 있었지만, 제로니스가 가진 헤비 워커만큼 섬세한 기술을 사용하는 레지나는 단 한 대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갈리아스 옹이 몰래 감춰두고 있는 레지나 만이 지금의 트라이어드와 비교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그런건 염두에 두지 않았다. "흥, 제아무리 헤비 워커의 창조자라고 해도 지금의 트라이어드만큼 매우 세밀한 기술을 사용하진 못할 거야. 비록 그가 새롭게 만들어준 기술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와 트라이어드만큼이나 강할 수는 없을 거야. 이번 기회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아마도 그걸 보면 매우 놀랄 거야. 흥, 두고 보자." 누구에게 원망 어린 시선을 보내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먼 하늘 위에서 지금의 이곳을 들여다보고 있을 얄미운 존재를 떠올리면 아주 간단히 해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는 지금 자신이 당한 낭패를 오히려 즐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제로니스는 곧이어 생각이 바뀐 눈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제길. 처음 이곳에 들어와서 약간의 재주만 보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저녀석이 이토록이나 강하게 덤비니 나로선 어쩔 도리가 없어.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승부를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사부에 대한 존경심을 똑똑히 알게 만들어 줘야겠지. 또한 위에서 이곳의 풍경을 즐기고 있을 영감탱이에게도 이번 기회에 내 힘을 똑똑히 알려줘야겠지. 으득.' 순간 결심을 굳힌 제로니스의 눈빛이 강하게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스스로 자문을 한 결과 얻어진 결론이었기에 절대 후회하지 않기로 작심했다. 비록 눈앞의 꼬맹이가 이 마지막 한수를 받아내지 못해 소멸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에겐 큰 책임은 없다는 위로도 그 뒤를 이었다. "후훗, 하늘이 정한 이치대로 흘러가자. 어차피 우리들의 욕심은 한낱 티끌과 같은 것일 뿐. 자. 마지막에 앞서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도록."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작게 으르렁 거리는 제로니스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환한 빛을 온몸으로 뽑아내는 트라이어드가 성큼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신룡의 후예 8 - 5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그럼 이제 내가 가마. 준비는 되었겠지? 이미 싸이에게 강한 어조로 한마디 내뱉은 제로니스는 처음생각과는 달리 싸이에게 공격을 결심하면서 재차 안전에 대비한 확인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모든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는 싸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헤헤, 부족한 솜씨지만 최선을 다해 막아 볼게요. 단 한마디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무시무시했다. -호오, 내 지금껏 살아오면서 너처럼 시건방진 녀석은 처음이로구나. 하나 그만한 실력이 있다면야 아무 문제없겠지. 좋아. 각오는 단단히 해두거라. 내심 싸이의 웃는 얼굴이 귀엽게 느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이는 것과는 달리 그의 겉모습에선 강한 전사의 투기가 물씬 느껴졌다. -자아, 간다. 순간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제로니스의 몸에서 하얀빛이 솟구쳐 나왔다. 그것은 곧이어 트라이어드의 몸을 감싸면서 순식간에 제우스의 면전에 다 달았다. "허억." 뜻하지 않는 빛줄기에 놀란 눈을 뜬 싸이는 곧이어 본능적으로 한쪽 손을 이마 쪽으로 급히 올렸다. 순간 옆구리에서 강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매서운 제로니스의 발길질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제대로 못 봐?!" 순식간에 들이닥친 상대의 발길질에 얻어맞은 채 두 걸음이나 뒤로 밀려난 싸이는 무서운 호통으로 제우스를 꾸짖었다. 그러나 또다시 빛에 감싸인 채 재차 다가오는 제로니스의 기운이 느껴지자 다급히 큰 눈을 부릅떴다. 쉬이이익. 파란 기운이 전신에 넘실거리는 검이었다. 만약 파란색의 기운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결코 막아내지 못할 공격이었다. 꽝. 단 한번의 소음이 뒤를 이었지만, 한쪽 팔이 얼얼해 질 정도로 제로니스의 검술엔 힘이 담겨 있었다. "끄응, 도대체 뭐지?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잖아." 한순간 강렬한 빛이 눈에 쏘아져 들어오면 곧이어 제로니스의 공격이 몸에 와 닿았다. 도저히 피하고 막고 할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순간 싸이는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제로니스의 실력에 기겁을 했다. 작은 빛이 깜빡인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순간 제우스를 닥달해 급히 왼손에 든 방패로 막았지만, 왼쪽 손으로 스며드는 고통은 팔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파 오고 있었다. "으흑, 아파. 도대체 볼 수가 있어야 제대로 대응을 할 것 아냐. 너희들 모두에게도 안 보이는 거야?" 싸이는 최대한 인내를 하면서도 제로니스의 공격에 대응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을 했다. 그러나 제우스의 등을 받치고 선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시커먼스 군단이었다. 싸이는 그들의 무기력한 듯한 반응에 절로 이맛살이 구겨지고 있었다. 그순간에도 제로니스의 검은 매섭게 싸이의 가슴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호오, 역시 감각이 상당히 뛰어나군." 어린 핏덩이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처음으로 전신에 잠재해 있던 모든 투기를 끌어올렸다. 곧이어 상대를 향해 내뻗는 투기는 강한 힘으로 솟아났다. 하지만 눈앞의 꼬맹이에게는 그리 큰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단지 작은 기운의 흐름만이 감지되고 있을 뿐이었다. -후훗, 악독하십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던 기술들까지 쓰셔야만 했습니까? 트라이어드는 제로니스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했다. 평소 이미지트레이닝을 할 때 가끔 사용하던 기술들까지 총동원한 그의 공세를 작게 나무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순간에도 트라이어드의 전신으로 활기찬 대자연의 기운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흥, 제아무리 이제껏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이라고 해도 상대가 강하다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법이야. 지금까지 내 모든 기술을 받아 들일만큼 강한 놈들이 없었다는 건 그대가 제일 먼저 깨닫고 있지 않았나? -훗, 그렇다고는 해도 저 분은 아직 어린 상대입니다. 하이딩(Herding-은폐이동) 기술까지 사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과연 저 녀석이 언제까지 버틸지도 의문이지만, 짧은 순간이지만 그대의 검을 점점 막아내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아, 그렇군요. 순간 대답을 하면서도 싸이를 향해 짓쳐 들고 있던 트라이어드는 한쪽 손에 이는 감각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빠르게 아래로 내리 긋는 검을 커다란 카오스 방패로 막아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싸이를 태운 제우스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상대는 맞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제로니스가 싸이를 향해 매서운 호통을 내뱉었다. 그저 막기에만 급급한 싸이에게 뭔가를 깨우쳐 주고 싶은 마음이 이 순간 밖으로 표출이 된 것이다. -이녀석. 도대체 생각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상대가 다가오면 그 기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에 승부를 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도대체 누가 가르쳐주더냐? 아니면 고작 눈에 보이는 것만 쫓는 한심한 녀석이었던 것이냐? 휘이익. 화난 말투와 함께 성난 그의 팔이 빠르게 움직이는 착각이 일자 몇 걸음 앞에 서 있던 제우스를 향해 순간 파란 원형의 기운이 쏘아져 나갔다. 제로니스가 전신의 기운을 한쪽 팔로 모아 날카롭게 쏘아낸 것이었다. 순간 제우스의 손에 들린 방패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쑤우우웅. 꽈아앙. -크으윽. 죄...... 죄송합니다. 제로니스의 공격에 답답한 신음성을 토하는 싸이의 얼굴이 재차 수정구를 통해 보였다. 그러나 제로니스의 얼굴엔 추호도 망설임이 보이지 않았다. -명심하거라. 상대는 너의 감각을 최대한 속인 채 가까운 곳에서 이렇듯 기습을 노릴 수도 있단 말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항상 먼저 주변의 기운을 느끼거라. 제대로 된 교육은 네 스스로의 감각을 최대한 키운 다음에 해주겠다. 아무래도 몸이 직접 경험하는 것이 최고일 터.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야. 어쩌면 제로니스의 화난 얼굴은 자신의 치욕을 달래기 위한 한 방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순수한 마음은 지금처럼 싸이를 향해 있었다. 또다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싸이를 향해 한발을 내뻗은 제로니스의 몸에 강한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순간 정신없이 물러나던 싸이가 우뚝 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훗, 저녀석 뭔가를 느끼려는 모양이군." -쿡, 지금 상태로는 느낀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저 녀석이 과연 얼마만큼 거대한 기운에 맞설 수 있는가가 이번 승부에 관건이 될 것이야.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제로니스는 하얀빛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곧장 싸이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온 제우스의 동체가 보이자 제로니스는 급히 왼손을 말아 쥐며 강하게 앞으로 쭉 뻗었다. "Kal Vas Flam." 힘이 실린 제로니스의 목소리가 아공간에 울려 퍼졌다. 순간 트라이어드의 왼손에서 시뻘건 불덩이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곧바로 싸이를 태운 제우스의 발아래로 스며들었다. 곧이어 시커먼스 군단이 서 있던 대지 아래로부터 커다란 폭발음이 일면서 시뻘건 화염 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 기둥의 중심에 휩싸인 싸이는 순간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커어어억." -크으윽. 주......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곧이어 두 차례의 비명성이 제우스에게서 터져 나왔다. 싸이는 잠시 입안으로 솟구치는 무언가를 급히 되삼키며, 빨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제로니스를 쏘아보고 있었다. "크으윽. 뭐였지? 분명 마법 같았는데..... 쿨럭." 잠시 숨을 참은 채 말을 내뱉던 싸이 입으로 기어코 새빨간 핏덩이가 토해졌다. 하나 그것이 오히려 더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았다. "누..... 구든지 대답해. 방금 나와 제우스를 아프게 만든 게 뭐였지? 싸이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여러 개의 수정구를 쏘아보며 속에 이는 궁금증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도저히 지금의 상태론 쉽게 파악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커먼스 군단 전체에는 어두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단지 그들은 자꾸만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제우스에게 전신의 힘을 보내주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주..... 주인님. 조금 전에 인 불길은 저희들도 처음으로 본 것이었습니다. 제우스가 겨우 대답을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간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 다급히 토해낸 비명성과도 같았다. 하나 싸이는 그 대답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맞지? 분명히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온 불길이 맞지?" "네엡. 주인님." "끄응." 싸이는 답답한 듯 신음을 토하며 재차 제로니스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조금 전의 거대한 화염 공격을 감상하는 듯 한결 느긋해진 그의 포즈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그것은 플레임 스트라이크(Flame strike)였어. 자그마치 용언 마법 7클래스에 해당하는 궁극의 화염 마법. 어떻게 그런 마법을 쓸 수가 있지? 본체로 현신 하지 않는 이상 7클래스 마지막의 마법인 화염 공격은 쉽게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 너무도 놀란 마음에 한껏 눈이 치켜 떠졌다. 그러나 머릿속에 이는 또 다른 의문이 앞에 서게 되자 싸이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었다. "후훗, 그녀석 꽤나 놀란 모양이군. 그럼 조금 시간을 줄까?" -쿡, 너무 하십니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마법입니다. 저 또한 헤비 워커 전에서 마법을 써보긴 이번이 처음이군요. 그런 것들이 제로니스 님은 매우 즐거우신 모양입니다. 현재 제로니스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은 트라이어드가 가장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처럼 감정의 기복이 심한 존재가 절대 아니었다. 이건 5.500년 가까이 이어진 그와의 인연을 두고서라도 맹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제로니스의 감정에 기복은 점점 뒤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처음 아공간에 들어서면서 그는 작게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곧이어 어린 상대에게 방심을 하다 놀란 표정을 보였고, 그 다음엔 서서히 화가 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결코 그 이상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을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런 제로니스가 조금 전 궁극의 화염 마법을 실현하면서부터는 매우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치 눈앞의 상대가 어린 제자가 아닌 그와 맞먹는 실력자라도 되는 양 이번의 결투를 즐기는 마음이 강하게 전달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탑승자의 의지에 따라 감정을 느끼게 된 트라이어드조차 매우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중심이 되는 싸이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본다. 반드시 본다. 그럼 어떻게 볼 것인가?" 머릿속이 한가지 생각만으로도 복잡해져왔지만, 싸이는 인내를 다해 참아냈다. 그 속에서도 오로지 상대의 움직임을 본다는 생각만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될까? 분명 몸에 움직임이 생기기 전에 작은 공기의 흐름이 있을 터. 그걸 보면 될까? 아니면 저분의 말씀대로 주변의 기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처음으로 가져보는 의문이었기에 다소 어지러웠다. "너무 난해한 말씀이셨어. 처음부터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기 보단 내 스스로 직접 느끼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그걸 느낄 수 있을까?" 내심 결론은 단 한가지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러자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좋아. 지금처럼 몸에 아픔이 일지언정 무조건 패면 맞자. 그러다 한가지라도 느껴지면 그것은 나에게 큰 재산이 될 거야." 순간 결심을 굳힌 싸이의 눈가로 점점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 빛 속에서 빨갛게 충혈된 눈이 서서히 맑게 빛이 나자 싸이는 제우스와 하나가 되는 듯한 의지를 느끼고 있었다. 한가지 생각으로 깊은 몰입에 빠져 주변의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순간 싸이를 지켜보던 제로니스의 입가로 잔잔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후후, 정말 대견한 아이로구나. 한순간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몰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쉽게 이룰 수 없는 일이거늘. 저런 모습 때문에 그 양반이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야." 작게 미소를 지으며 제로니스는 절로 턱을 끄덕였다. 싸이의 모습이 대견스러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제자. 이 단어가 그에게 남겨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였다. 지금껏 몇 되지 않은 제자를 키웠지만, 생애 마지막 제자를 가진 다는 것은 그에게 뜻하는 바가 매우 컸던 것이다. -훗, 아마도 켈빈군을 염두에 두셨겠지요? 그러나 저분은 그보다 더 뛰어난 재질을 가지신 분 같군요. "그대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네에, 가슴에 담은 한 여인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켈빈군도 문제겠지만, 그런 제자를 끝까지 보듬어 안으시려는 제로니스 님도 문제랍니다. 눈앞의 저분처럼 마지막 순간에는 오직 한가지만을 생각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제로니스는 트라이어드의 충고가 이 상황에선 맞다고 느껴졌다. 언제나 중요한 순간에 이르렀을 때 한가지만을 고집하는 자는 거의 드물었다. 모든 상념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속에서 오로지 한가지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조차도 버거운 일일 것이다. 한데 눈앞의 꼬맹이는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더욱 마지막 제자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후후훗, 그렇지. 아마도 내 고집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오직 그대뿐일 것이야."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좋아. 이제 내 마지막 제자가 될 아이에게 아주 커다란 선물을 전해줘야겠지. 그대도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낼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라고." 마치 농담을 던지듯 편하게 말하는 제로니스였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매우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는 트라이어드조차 과연 그의 선물이 눈앞의 싸이와 제우스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 유일한 탑승자이자 오랜 지기인 제로니스의 의지는 강하고 뚜렷했다. 트라이어드는 그 의지에 따라야만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부디 이번의 공격을 버텨내시길 바랍니다. 싸이를 향해 작게 내뱉는 트라이어드의 안타까움이었다. 싸이는 한순간 깊은 몰입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자주 행해왔던 일이기에 싸이나 제우스를 비롯한 시커먼스 군단에게도 결코 낯선 일은 아니었다. 단지 그 몰입의 마지막 순간에 작게 전해지는 어떠한 의지가 싸이를 기쁘게 하고 있었다. "뭐였지? 마치 부드러운 바람과 같았는데.....!!" 트라이어드의 말이 이순간 싸이에게 와 닿았다고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 단지 트라이어드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작은 바람이 싸이에게 전해져 왔다. 그 시원한 듯하면서도 포근한 바람속에서 싸이는 서서히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 저건....... 분명히........" 순간 싸이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마치 오래 된 친구들처럼 작게 먼지로 떠다니는 주변 기운들이 이 순간 싸이의 눈에 뚜렷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바람 속에 이는 기운들처럼 보이기도 했고, 중력을 벗어난 미세한 기운들이 서서히 유영을 즐기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온 다는 자체가 매우 신이 난 싸이는 절로 두 뺨에 작은 홍조를 띄기 시작했다. "보......인다. 드디어 보여!" 매우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의식세계의 저편에서부터 오랫동안 집착하듯 빠져 있었던 까닭인지 한순간 눈앞에 광채가 서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싸이에게 눈앞에서 서서히 유영을 즐기면서도 한순간 거친 바람 속에 휘말리는 작은 기운들은 너무도 반가웠다. 그 순간 싸이를 태운 제우스는 주인의 뜻하지 않은 반응에 급히 명상에서 깨어나며 몸 안 곳곳에 남아 있는 불순물들을 밖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주인님. 현재 75%의 가동률만이 가능합니다. 하나, 이 제우스 주인님의 의지를 최대한 따르는 종자가 되겠습니다. 마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따르겠다는 제우스의 말에 싸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미 눈앞에 보이는 작은 존재들로 인해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진 싸이였기 때문이다. "하하핫. 드디어 보여. 그러니깐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마. 난 저 녀석들과 오랜 친구란 말야." 시커먼스 군단에게는 싸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 단지 주인이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모습에 한참이나 떨어진 사기가 서서히 달궈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눈앞의 제로니스를 향해 시선을 던지는 싸이였다. 제로니스는 이런 싸이의 반응에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몸 안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들로 인해 뿌옇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몸 주변으로 조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하얀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빛을 바라보는 싸이에게선 지금도 밝은 미소가 담겨져 있었다. '훗, 진짜로 보인다. 저 하얀 빛 속에 서 있는 모습. 너무도 멋지다. 역시 용족 최고의 전사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었어. 저렇게나 멋있으시다니.....!! 언젠가는 나도 저런 자태를 뽐내는 최강의 전사가 되고 말 거야.' 조금 전까지 몸에 이는 고통 속에서 한편으론 제로니스가 속절없이 미웠던 싸이였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힘에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한순간 모든 미움이 감탄과 존경의 대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싸이의 눈은 더욱 더 환한 빛에 감싸이고 있었다. 사악. 머릿결을 스치듯 지나가는 작은 바람이었다. 그순간 싸이는 머리를 작게 숙이는 것만으로도 그 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스윽. 거칠게 휘말리는 듯한 광풍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이는 매서운 찌르기는 싸이의 몸이 살짝 옆으로 돌려세워지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휘이잉. 무거운 대자연의 분노가 강한 주먹과 함께 다가오면서 대자연의 공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작게 말아 쥔 주먹으로 살짝 팔을 들어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분노를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만들었다. 그 순간 싸이의 눈은 꼭 감겨져 있었다. 단지 그 속에서 환한 빛들이 눈 안에 갇혀 안타깝게 자유를 외치고 있었다. "마음이 일면 몸이 움직이기 마련이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기 보단 내 피부와 내 모든 오감에 느껴지는 그대로 행하면 그 뿐이야. 언제나 내 속에서 하나가 되는 기운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하여 뭐라 탓할 이유는 없는 것이야." 아련하게 전해져 오는 말이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혼잣말을 하던 싸이에게는 이 순간 오래 전 기억들이 하나둘 나타나면서 한순간 자유로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주변에서 요동치는 기운들에게서 별반 고통을 받지 않는 편안함이 생겨났다. 단지 몸이 미처 생각도 하기 전에 작은 움직임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신룡의 후예 8 - 6 작은 변화는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금껏 몸 안에서 심한 이질감을 느끼게 만들던 작은 구슬이 점차 싸이의 의지와 만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싸이는 묘한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점차 온몸이 알 수 없는 나락에 빠진 듯한 착각이 일고, 곧이어 환한 빛과 함께 전신 곳곳에서 작은 폭발이 이는 듯한 느낌도 나타났다. 작고 가는 세맥으로 활발히 움직이는 붉은 선혈들이 한순간 투명한 액체로 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아.......!!" 왠지 여운이 남는 듯한 탄성이 싸이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티없이 맑은 하늘에 투명한 육체가 자유로이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순간 싸이는 점점 전신을 빨아 당기는 묘한 안락감에 온몸을 내맡긴 채 그렇게 다시 한번 무의식과의 조우를 맞아들이고 있었다. 제로니스는 순간적으로나마 싸이의 탄성이 귓가로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가졌다. 서로 헤비 워커에 앉아 검을 나누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러한 일들은 통신 수정구가 아니면 절대 받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현상이 그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하얀빛에 휩싸인 채 연신 싸이를 공격하던 제로니스는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는 날카로운 공세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호오, 이 녀석 보게. 지금 내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고 있군. 그럼 어디?!" 휘이잉. 오른 손에 들린 검에서 힘찬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눈앞으로 다가온 제우스의 머리를 향해 빠르게 내리친 검이었다. 순간 싸이가 탄 제우스의 눈 부위에서 하얀빛이 솟구치며 그의 검을 향해 빠른 대응이 이어졌다. 까앙. 짧지만 둔탁한 소음이 뒤를 이었다. 조금 전까지 근근이 방패로 막아내던 그의 검을 똑같은 검으로 막아낸 덕분에 생긴 소음이었다. "어헛, 이놈 보소. 힘으론 추후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라 이건가? 좋아. 어디 한번 붙어보자." 순간적이지만 그의 검을 정확히 맞받아낸 싸이였다. 제로니스는 그런 싸이가 기특한 양 입가에 잔뜩 미소를 지은 채 검을 쥔 손에 힘껏 기운을 실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의 검으로 파아란 기운들이 뭉실뭉실 일어나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잠시 검끼리 마찰되는 소음이 귀를 자극했다. 이어 제로니스의 검에서 파란 검기가 형성이 되자 제우스는 다급한 신음성을 토해냈다. -허엇, 이럴 수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이제껏 최강이라고 자부했던 제우스의 검이 제로니스의 파란 검기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끄응, 대장. 힘내요. 그까짓 검기는 우리도 할 수 있단 말이오.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이냐. 상대의 검에 실린 속성을 보란 말이다. 등뒤로 바짝 다가온 미려의 도끼가 제우스에게 응원의 소리를 보내자마자 제우스의 입에서 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모든 시커먼스 군단의 눈이 제로니스의 검으로 향했다. -허억, 저럴 수가....!! 그들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 어리는 순간이었다. 분명히 파란 검기로 보이는 제로니스의 검에서 뭔가 알 수 없는 하얀 기운들이 연신 제우스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 다. -어찌.... 어찌해서 저렇게도 강한 냉기가 에너지 화로 변환되었단 말입니까? 다급한 제우스의 비명성이 이어지면서 다른 시커먼스 군단들도 덩달아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하얀 냉기에 대항하고자 급히 전신의 기운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제우스의 몸주변은 제로니스의 검에서 뻗어 나온 하얀 냉기에 연신 얼어붙고 있었다. -끄으윽. 주인..... 님. 제우스의 입에서 기어코 싸이를 부르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싸이는 제우스의 호출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흐으윽. 냉기 공격에 의한 파손으로 인해 현재 가동률 52% 다급한 제우스의 음성이 이어졌다. 그 순간에도 싸이는 여전히 몰아의 세계에 빠진 듯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싸이의 입에서 작은 음성이 새어 나왔다. "추.....워....... 으윽......" 멍한 듯한 싸이의 얼굴에 하얀 서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순간 싸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작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하얀 이가 아래위에서 살짝 부딪히면서 작은 소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싸이는 여전히 멍한 눈동자로 눈앞의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추.....워..... 따뜻한....... 공기를 마시....... 고 싶어......."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단지 본능적으로 흘러나온 말인 듯 싶었다. 그러나 의지가 담기지 않은 싸이의 말에는 아무런 동요가 생기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제우스의 전신은 하얗게 얼어가고 있었다. 만약 아무런 대응이 없다면 곧 싸이의 전신은 하얀 얼음으로 덮힐 듯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극한 상황에까지 내몰린 싸이의 몸 안에서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바로 왼쪽 손목에 차여진 금색의 빛나는 팔찌가 그 변화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휘이이잉. 무의미하게 흘러나온 싸이의 말에 누군가의 방어 본능이 일어나자 대자연의 기운들이 매우 빠르게 반응하며 힘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순간 그 작은 기운은 주변에 서서 관망하듯 조용히 흐르는 여타의 기운들을 향해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 때문일까? 잠시 뒤 싸이의 몸을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들던 기운들은 곧이어 점점 그 넓이를 더해가며 차차 하나의 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였다. 하나의 기운이 모여 작은 막을 만들면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기운들이 모여 새로운 막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현상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 속에서 제우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왠지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뿌드드득. 지금껏 밀리기만 했던 제우스의 검이 처음으로 성난 분노를 토해내는 순간이었다. -으득, 절대 밀리지 않는다! -대장, 힘내요. 힘!! 하얗게 얼어붙은 제우스의 얼굴에서 강한 의지가 표출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뒤에 있는 시커먼스 군단의 응원이 차가워진 아공간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제로니스는 일련의 현상들을 눈앞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한순간 표정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금세 그의 얼굴엔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허허허, 이게 뭔가? 아직은 나만의 기운을 받아내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이라 여겼건만....! 그건 곧 나만의 착각이었단 말인가?!" 왠지 허탈한 미소가 다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제로니스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지금껏 깊은 심해의 영토는 물의 지배자인 실버 일족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블루 일족뿐이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깊은 심해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제각각 몸 안에 쌓을 수 있는 기운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상대를 순간적으로나마 마비시킬 수 있게끔 하얀 냉기를 뿜어내는 것이었다. 한데 아직은 애송이라 여겼던 싸이가 서서히 그 기운을 밀어내고 있었다. 분명 처음에는 마비가 먹힌 듯 보였다. 하지만 제우스의 검을 밀쳐내며 다시 공격하기엔 그도 힘에 붙이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눈앞의 제우스가 뿜어내는 힘은 폭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대를 동결시키기 위해 잠시나마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곧이어 제우스의 몸 안에서 일기 시작하는 따뜻한 기운에 의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후훗, 과연 누가 이 일을 믿어 줄까? 요런 꼬맹이 녀석한테 베이직 헌터의 수장인 내가 겨우 동수를 이끌어 냈다니.....!! 하하하, 형님! 정말 대단하오. 정말로 저 녀석은 형님이 아니라면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괴물이오. 괴물!! 하하하핫." 한순간 머릿속에 이는 모든 상념들이 누군가의 영상과 함께 시원스럽게 사라져버렸다. 더불어 점차 진하게 일기 시작하는 웃음으로 인해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호기심이 가득한 누군가의 눈망울이 여과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시원스럽게 웃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하는 트라이어드를 향해 흐뭇한 눈길을 보내줬다. "내 소중한 친구! 정말로 멋지게 싸워주었네. 난 그대가 있기에 더욱 더 자랑스럽다네." 한순간이지만 가슴속에서 이는 여러 가지 감정들 중에서 가장 솔직 담백한 그의 말이었다. 메테우스는 싸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바쁜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그의 시종인 데이몬에게 처음부터 하나씩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것들이었다. "잘 봐라. 전하와 대공 마님께서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처리해 야만 하는 것이 이 일의 첫째 임무다. 또한 젖은 물수건과 마른 수건은 항상 청결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메테우스의 자상한 말에 데이몬은 잔뜩 끌어 모은 침을 삼키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마차 뒤편 공간에서 하얀 천으로 된 장막을 꺼낸 메테우스는 큰 걸음으로 숲속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들이 그의 뒤를 쫓으며 따르는 데이몬의 눈에는 매우 신기하게만 여겨졌다. '히야. 그럼 전하와 대공 마님께서도 우리들처럼 볼일을 보신다는 거네?' 잔뜩 호기심이 어린 눈동자였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이었기에, 처음이지만 고위급 귀족들의 뒤처리를 담당하게 된 데이몬으로서는 메테우스의 작은 손길 하나에도 신경을 놓칠 새라 분주히 쫓는 모습이었다. 곧이어 메테우스는 적당한 숲속의 공터가 나타나자 하얀 천을 잠시 나무에 기대게 만든 채 한 손에 든 작은 삽으로 주변을 깨끗이 치우기 시작했다. 그리곤 힘껏 땅을 파며 데이몬에게 무언의 눈길을 보냈다. "땅을 팔 때에도 조심에 또 조심을 해야만 한다. 너무 깊어도 안되고 너무 얕아도 안된다. 그분들이 편안하게 볼일을 끝마칠 수 있도록 작은 정성이라도 아끼지 않아야 하는 법이란다." 메테우스로서는 아주 쉽게 네모나게 땅을 파고 그 위를 가져온 천으로 둘러싸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어린 데이몬이다 보니 설령 잘못을 저지르더라 도 모든 것이 그의 책임하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매우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데이몬은 아직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매우 총명했다. 어릴 적부터 집안 일을 돕다보니 몸에 밴 습성도 있었고, 성격 또한 또래의 친구들 보다 매우 싹싹한 맛이 있었다. 그 덕분에 메테우스는 데이몬에게 작은 정을 느끼고 있었다. "저어.... 나리. 그럼 천막을 치는 것 까진 알겠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 갑쇼?" 또래의 산골 아이답게 아직은 말문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모양이다. 메테우스는 속으로 데이몬의 말투부터 손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잡으며, 기사답지 않게 종자가 물어오는 일을 매우 친절하게 알려줬다. "일단 전하의 경우는 그분의 곁에는 항상 내가 있다. 그건 직접 보면서 하나둘 깨우쳐 가면 될 것이고, 대공 마님께서는 현재 몸종이 없는 관계로 이곳까지만 조심스럽게 안내해드리면 된다. 그 뒤는 저기 위에 걸린 막대기에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만 제대로 챙겨놓으면 될 것이다." "저어기.... 그러면 그분들이 사용하신 것들은 어찌해야 하는 건가요?" "당연히 이동을 하기 전에 소각을 해야한다." 메테우스의 턱이 제법 근엄하게 끄덕이며 나온 말이었다. 이제껏 아랫 종자들이나 해야만 할 일들을 손수 처리한 그였다. 하지만 그의 길이 순탄하지만 않았듯이 그의 곁에 종자들이 있는 일도 없었다. 그 덕분에 항상 혼자서 모든 일들을 처리해 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기사답지 않게 여러 경험들이 쌓인 메테우스였다. 하나 이런 메테우스의 자상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데이몬은 매우 놀랍다는 듯한 눈동자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나....... 나아리. 그럼 저 비싼 천들을 전부 소각을 하란 말입니까요? 그것들도 깨끗하게 빨아서 다시 사용하면......" 데이몬으로서는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가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황태자와 대공 마님이 뒤처리용으로 사용하는 천들만큼 값비싼 천은 본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메테우스의 솥뚜껑 같은 손아래에서 어린 데이몬의 절약정신은 결코 이어질 수 없었다. "이놈. 감히 황태자 전하와 대공 마님께서 사용하신 물건이다. 그걸 감히 어느 누가 사용하겠다는 것이냐?! 만약에라도 그러한 자가 나타난다면 그건 곧 그분들의 명예에 흠을 내려는 자들의 소행. 그들은 곧 제국의 법이 엄격함을 두 눈으로 똑똑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순간 섬뜩할 정도로 메테우스의 두 어깨가 부풀어오르는 순간이었다. 또한 데이몬으로서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서운 순간이었다. 거대한 메테우스의 손이 작은 데이몬의 멱살을 움켜쥔 채 달랑 들어올렸으니 어찌 안무서울 것인가. "케..... 엑...... 나리...... 잘못했습니다요." 데이몬으로서는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 수밖에 없었다. 바짝 들어올린 상태로 메테우스와 두 눈이 마주친다는 자체가 매우 겁이 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메테우스는 속으로 작게 미소를 지었다. '후훗, 꼬맹이 녀석. 자기딴에는 꽤나 똑똑하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그분들의 명예에 흠이 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야. 내 종자라면 이정도쯤이면 똑똑하게 깨우쳤으리라 믿는다.' 그로서는 어느 정도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는 것이 여실 없이 들어 나는 순간이었다. 또한 데이몬으로서는 눈앞의 메테우스가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할 소중한 주인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정립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영악해도 아직은 어린 데이몬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작은 사건이 끝이 나고 메테우스가 마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목 부위를 움켜쥐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는 데이몬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신룡의 후예 9 - 1 *탈 피* 싸이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하얗도록 시린 하늘을 투명한 육체로 떠다니며 마음껏 자유의 나래를 펼쳤다. 이제껏 속박의 사슬아래 묻어두었던 모든 감정들을 한 올 한 올 풀어 던지며 싸이는 행복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간혹 속박에서 벗어난 육체에 작은 아픔들이 몰아쳐 왔지만, 살짝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모든 것을 털어 냈다. 그 속에서는 이제껏 꿈꾸어 왔던 편안한 자유도 있었고, 안락한 행복의 물결도 있었다. 언제나 꿈꾸듯 자유롭게 날아가고픈 욕망이 한껏 기지개를 켠 채 싸이를 반겨주고 있었다. 싸이는 너무도 시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유로이 비행을 하는 몸을 더욱 더 높이 띄웠다. 그때였다. 작은 아픔이 속 안에서 꿈틀거렸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언제나 합리적이지 못해. 푸른 하늘을 맘껏 날고자 하는 욕망은 감춘 채 똑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언제나 억압만 하려고 들어. 누구나 다 그래. 뭔가 꿈꾸는 것이 있다면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반드시 갖춰야만 해. 그러나 과연 누가 노력한 뒤의 행복을 꿈꾸지?! 언제나 그랬어. 그저 편안하게 남들이 모두 해주기만을 원했잖아. 그도 아니면 남을 시기하기만 했잖아. 그러나 인간들은 이것만은 알고 있는 거 같아. 편안한 휴식 뒤에는 항상 거친 물살과도 같은 불행이 뒤따라온다는 것을. 또한 그것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소리치면서 정작 본인은 자꾸만 뒤로 숨으려고만 하는 진실들을....! 과연 이런 생각들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합리적일까? 아.....!!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한순간 뇌리 속에서 강렬하게 일어나는 불안함이었다. 하나 곧이어 싸이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걸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너무도 소중한 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따스한 손짓을 보내주고 있었다. -그래. 노력은 본인의 의지에 뒤따르는 것 일거야. 분명해. 단지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을 두려움에 떠는 본능이 자꾸만 비켜가라고 손짓하기 때문일 거야. 그래. 난 내 앞에 놓인 새로운 길을 걷기 보단 언제나 뒤돌아보며 피하려고만 했어. 이젠 좀 달라져야만 해. 그녀가 나에게 전해준 말처럼 언제나 불행을 딛고 일어서는 자의 웃음이 여유롭다는 진리를 이젠 명심하고 살아가야만 할거야.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여유도 갖출 수 있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남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순간 작은 이슬방울이 싸이의 투명한 뺨 위로 흘러 내렸다.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한층 더 성숙해야만 한다는 진리를 이미 몸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싸이의 투명한 몸에 새빨간 선혈들이 솟아나며 점차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세맥에서 부터 솟아나던 선혈들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며 온 몸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힘차게 날뛰는 심장소리에 맞춰 가슴부위에서 새파란 선혈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두 가지의 선명한 선혈들은 점차 온몸으로 빠르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런 뒤 투명한 육체의 모든 곳들을 매우 빠른 속도로 맴돌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성질로 인해 작게 으르렁거리며 충돌을 하기도 했지만, 투명한 육체를 지탱시켜주는 하얀빛이 내리쪼이자 점점 서로에게 양보하며 싸이의 육신을 양분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싸이에게 너무도 큰 환희와도 같았다. 처음에는 빠르게, 그 뒤에는 아주 천천히. 서로 호흡을 맞춘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은 육신의 굴레에서 거리낌없는 움직임을 선보였다. 하지만 두 가지의 선혈에게는 작은 불만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싸이의 작은 몸이 매우 거추장스러운 듯 보였나 보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싸이의 투명한 육체를 부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곧이어 싸이의 몸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새빨간 선혈이 오른쪽을 차지하더니만, 곧이어 밀려오는 새파란 선혈에게 그 자리를 양보해주며 급히 왼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새빨간 선혈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작은 폭발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한 현상은 싸이의 투명한 육체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새빨간 선혈이 빠르게 지나가면 금세 싸이의 투명한 육체는 작은 혹처럼 부풀어올랐다. 곧이어 급히 그 뒤를 따라온 새파란 선혈에 맞닿으면 작은 혹 안에 담겨진 힘들이 세차게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작은 폭발음이 들려오는 곳이면 어김없이 투명하면서도 성스러운 하얀빛이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주었다. 그 속에서 싸이의 정신세계는 온통 새빨간 폭죽과 새파란 폭죽이 가득 담겨졌다. 그런 와중에도 싸이는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높디높은 투명한 하늘로만 치솟고 있었다. 아울러 작은 환희의 신음성을 토해내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싸이는 서서히 새로운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었다. 언제나 불안정한 육체를 새롭게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신의 영혼과 인간의 육체와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유일무이한 존재에 걸맞는 새로운 육체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로니스는 아공간에서 한참이나 밀려나와 가장자리에 다 달았다. 그를 끝까지 힘차게 밀어붙이는 제우스의 힘 앞에 결국 두 손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허허허, 꼭 내 입에서 그만 하자는 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냐? 처음에는 인자한 목소리로 싸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껏 예의바르게 보여지던 싸이는 그의 말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묵살하려고 드는지도 몰랐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제로니스는 마음속에 이는 흐름대로 움직이고자 했다. -그만 하거라. 이만하면 충분하니....!! 더 이상은 버티기가 곤란하구나. 이미 트라이어드의 검에는 파란 검기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끝까지 그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로니스가 선택해야만 할 일은 많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앞으로만 돌진하는 제우스를 노려보며 씁쓸한 미소를 떠올렸다. "결국 나에게 모든 밑천을 들어내라는 것이군. 허허허. 간특한 녀석." 현재 싸이의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는 제로니스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제로니스의 몸 주위로 서서히 파란 기운들이 뭉치기 시작하자, 이제껏 뒤로만 밀려나던 트라이어드의 동체가 옆으로 살짝 휘청거렸다. 그순간 제우스의 두 눈가에 하얀빛이 더욱 진하게 어리며 힘껏 오른 어깨로 트라이어드를 밀어 제켰다. 그때였다. 쿠당탕탕.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아공간의 벽이 큰 출렁임을 선보이며 제우스의 동체를 깊이 안았다. 곧이어 아공간의 벽 속으로 파묻혔던 제우스의 동체가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쿠우웅. 잠시 아공간의 대지가 커다란 비명을 토해냈다. 그 안에서 제로니스의 여유 있는 미소가 살짝 돋보였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후훗, 녀석. 그저 단순하게 밀어붙이기만 하는 짓거리는 또 누구의 성정을 물려받은 것이냐?" 혼잣말로 싸이를 나무라던 제로니스는 곧이어 동체를 일으켜 세워야 할 제우스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그때서야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이제껏 수정구를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던 그가 다급히 들여다 본 수정구 안에는 싸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강렬한 빛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처음으로 제우스에게 말을 붙여야만 할 처지에 놓인 제로니스였다. 결국 그는 최대한 정중하게 제우스에게 말을 건냈다. "그대! 검은 폭풍과도 같은 전사인 자여.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위대한 주인님의 친구 분에게 미천한 제우스 인사 올립니다." 대뜸 그의 질문엔 아랑곳없이 흘러나오는 공손한 제우스의 환대에 더욱 황당한 제로니스였다. "고맙네. 그러나 난 그대의 주인과는 친구사이가 아닐세. 또한 난 그대에게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란 말일세. 도대체 싸이는 어디간 것인가? 그리고 그대의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력은 또 무슨 현상이란 말인가?" 제로니스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현상들이었기에 매우 빠른 질문들을 쏟아냈다. 허나 정작 대답을 해야만 할 제우스는 여전히 바닥에 몸을 눕힌 채 전혀 움직이려고 들지 않았다. "잠시만..... 이대로 잠시만 계셔주실 순 없는지요." "왜?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도 자세한 것은 말씀드리기 힘이 듭니다. 단지 주인님께선 일전에도 이러한 일을 경험하신 적이 있기에, 우리들은 그저 주인님이 깨어나시기만을 간절히 기다릴 뿐입니다." 제우스의 알쏭달쏭한 대답에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에 서 있는 시커먼스 군단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들은 하나같이 곤두세운 무기들로 주변을 보호하며 서서히 제우스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서기 시작했다. 순간 제로니스는 이들의 행동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언제나 소중한 나의 친구! 그대도 이러한 일들을 본적이 있는가?" 그로서는 눈앞에 있는 시커먼스 군단의 행동에 대한 의문을 트라이어드에게서 풀고자 했다. 하나 이러한 현상은 트라이어드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상이었다. -글쎄요. 일전에 나의 소중한 그대께서도 저러한 현상을 보인 적이 있었죠. 하지만 저 분처럼 강한 신력을 일으키시진 못했답니다. "허허허, 그럼 저 아이가 일으킨 신력이 모든 검은 폭풍의 전사들을 이끈단 말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헤비 워커들은 주인과의 의사가 단절이 되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주인을 찾던가, 아니면 영원한 고향에서 편안한 안식을 찾지요. 한데 저들은 주인과의 의사소통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도 저렇듯 행동한다는 것은 오직 그 이유뿐이라고 봐야겠지요. 잠시나마 트라이어드의 말에 작은 의문은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점점 작은 원을 그린 채 거대한 동체로 제우스를 짓누르듯 감싸는 그들의 행동은 여전히 의문으로만 남아 있었다. 결국 제로니스는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진 상황에 처하고야 말았다. "제길. 도대체 저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는 알아야 대처를 할 것 아닌가." 그로서도 헤비 워커와의 인연 속에서 일어난 작은 일들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불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워리어스들이 자신만의 헤비 워커와 처음으로 조우하면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여지껏 아무도 모르고있었다는 것이 제로니스의 모습을 통해서 확실히 보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형님! 형님 거기 계시우?!" 다급한 제로니스의 목소리가 하늘 높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의 호출에 급히 대답을 해야만 할 존재는 이미 책상을 박차고 하늘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파라라라락. 눈시울이 따가울 정도로 찬바람들이 온몸을 스쳐지나갔다. 아울러 몸에 걸치고 있던 옷자락들이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허공에서 아무런 장비도 없이 뛰어내린 존재에겐 그 순간이 너무도 더디게만 여겨지고 있었다. "큰일이야. 큰일. 만약에라도 내 생각이 맞다면 이곳에서는 도저히 어찌할 방법이 없는데......!! 집사람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달랑 나 혼자만으론 너무도 힘든 상황이야. 우리 엘렌이야 아무 걱정 없이 겪었다지만 현재 싸이의 상황에선 너무도 안 좋아." 세찬 바람에 온몸을 맡긴 채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존재는 바로 갈리아스 옹이었다. 뜻하지 않는 싸이의 변화에 다급한 중얼거림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매우 속상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그는 속으로 큰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물론 이것은 궁극의 마법으로 실현한 아공간을 단숨에 못 들어가는 불편함에서도 기인했지만, 무엇보다 제일 소중한 싸이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기에 터져 나온 비명이었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은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여기서 더 흔들렸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어여 가자. 어여. 제발 아무 문제만 생기지 말아다오." 얼마나 다급했으면 지상으로의 공간이동도 생각못한 채 이렇게 자유낙하를 하겠는가. 결국 갈리아스 옹은 속 안에 이는 다급한 마음을 손자가 있는 아공간으로 흘려 보내며 그 뒤를 빠르게 따르고만 있었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은 그의 뒤를 급히 뒤쫓는 새로운 존재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갈리아스 옹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 사실 이번 챕터는 제국간의 전초전이 되는 곳에서 시작하려고 했답니다. 물론 지난 챕터의 마지막 장면이 싸이와 멜빈의 만남으로 끝을 내려고 했지요. 한데 자꾸만 베이직 헌터들이 걸려요. 그들을 빼놓고 간다면야 쉽겠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기다리시는 싸이의 모험씬은 물건너 갔다고 판단이 들더군요. 때문에 이렇게 새로운 챕터로 시작하게 되는군요. 아울러 멜빈과의 만남은 조만간 이루어 질겁니다. 물론 좀 더 기다리셔야만 하겠지만요.....^^;; 그럼 모쪼록 즐독하시고...... 행복하세요~!! 신룡의 후예 9 - 2 제로니스는 아공간 속에서 강한 빛을 내뿜는 제우스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달리 어쩔 방법이 없는 순간이기도 했고, 처음으로 보게 되는 광경에 가슴이 크게 뛰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싸이를 태운 제우스의 몸에서는 하얗게 성스러운 빛이 그 강도를 점차 넓혀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차가운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이 아공간의 한쪽에서 전해져 왔다. 새로운 느낌에 제로니스가 놀란 눈으로 주시하자, 그곳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오는 갈리아스 옹이 보였다. "형님! 왜 불러도 대답도 않고......" 미처 그가 트라이어드에서 나오지 않은 채 갈리아스 옹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뭔가 폭발하듯 강한 빛이 아공간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너무도 강렬한 빛의 결정이었다. "으윽.......!!" 다급히 눈을 가리며 작게 신음을 토하던 제로니스는, 방금 터져 나온 눈부신 빛에 의해 갈리아스 옹이 봉변을 당했을 거라 내심 판단이 들었다. 하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어느새 갈리아스 옹이 등을 돌린 채 품안에서 뭔가를 계속해서 찾고 있는 모습이 곧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이다. "형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그로서는 솔직한 대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뭔가를 계속해서 찾고 있는 갈리아스 옹의 등은 평소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곧이어 갈리아스 옹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발 밑에 주섬주섬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봐.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날 좀 도와!" 한참이나 갈리아스 옹의 등을 바라보던 제로니스의 귓가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제로니스는 급히 고개를 들었다. 뜻밖에도 그 목소리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현상이 뭔지는 알고서 저러는 것일까?' 내심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속으로 삭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눈가에 시커먼 광석을 들이댄 채 그를 올려다보는 갈리아스 옹의 모습이 그의 눈에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또 왜......." 제로니스는 갈리아스 옹이 손에 든 물건을 보며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태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는 곧 트라이어드에서 내려 갈리아스 옹의 곁으로 다가섰다. "형님. 지금 이 사태와는 전혀 상관도 없는 물건을 꺼내면 어쩌자는 겁니까? 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최대한 조용히 갈리아스 옹을 격려하려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은 요지부동이었다. "시끄러워. 어서 장비들이나 챙겨." "끄응. 알았소. 그럼 난 뭘 도우면 되겠소?" 결국 갈리아스 옹의 말에 꼬리를 내린 제로니스였다. 곧이어 그는 갈리아스 옹이 건내준 길쭉한 드라이버를 손에 쥔 채 눈치를 살폈다. "대관절 나보고 어쩌라고... 나 원 참. 솔직히 대장장이나, 그도 아니면 엔지니어들이나 사용할 법한 도구를 가지고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 투덜거렸지만, 제로니스도 손에 든 드라이버로 헤비 워커를 만져본 경험이 있었다. 잠시 후 속에서 이는 불만들과는 달리 제로니스는 갈리아스 옹이 재차 건내준 쉐도우 광석으로 눈을 가린 채 서서히 제우스의 얼굴 부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조심해. 말 안 해도 알지? 최대한 천천히 하란 말야. 그리고 장갑 속에 음각된 고대주문들에도 최대한 신경을 써야 할거야. 괜히 잘못 건드려서 벌집 되지 말고..!!" "흥, 내가 형님 때문에 어디 이런 일을 한두 번 경험하오?! 그만 신경 끄고 형님 일이나 잘하슈!!" 제아무리 베이직 헌터의 수장이자 용족 최고의 전사인 제로니스라고 해도, 결국 헤비 워커에 관한 일에서는 갈리아스 옹의 말에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로서도 갈리아스 옹을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헤비 워커의 해체 및 수리였기 때문이다. 곧이어 두 명의 고룡이 달라붙은 제우스의 몸은 서서히 겉표면의 장갑이 하얗게 속살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조심하셔야만 합니다. 지금 주인님은 매우 불안정한 흐름을......" "시끄러. 당최 집중을 못하잖아. 네 녀석만 싸이가 중요한 게 아냐. 난 목숨이 달려 있단 말이다. 알았냐? 괜히 우리 싸이를 보호한답시고 내 앞에서 설치지 말고 조용히 안정된 기운을 흘리는 데만 신경을 써." 제우스가 조바심에 찬 목소리로 갈리아스 옹에게 말을 붙였다가 본전도 못찾고 말았다. 하지만 상당히 신경질적이었던 갈리아스 옹의 말투와는 달리 그의 표정은 매우 신중하기만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서서히 제우스의 최초 장갑이 가슴부위에서 가는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 사이로 강렬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오오~!! 드디어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싸이야! 이 할애비가 왔단다. 그러니 아무걱정 말고 얌전히 있으렴. 곧 그 답답한 곳에서 꺼내주마." 지금껏 갈리아스 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진지모드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 속에서 제로니스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그의 손에 들린 길쭉한 드라이버를 조심스레 놀리며, 조금씩 틈을 보이고 있는 강철 장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으음, 여기 장갑사이에 걸리는 핀의 틈새에 드라이버를 걸고, 최대한 천천히 기운을 밀어 넣으면 된다. 그런후에는 최대한 헤비 워커 안에서 흐르는 기운들에 거슬리지 않게끔 조정을 해주면 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계속 중얼거리며 작업에 임하는 제로니스였다. 솔직히 이런 작업을 해본 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는 고룡이었다. 그것도 용족 사회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고룡 중 한 명인 것이다. 잘게 떨리는 손에도 그의 명예가 담겨져 있었고, 작은 실수 하나도 쉽게 인정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아집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새로운 생명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슴이 뛰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헤비 워커라는 물건이 신이 내린 생명력을 지닌 것들은 아니었다. 단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성한 고대 마법으로 인해 생명을 이어받은 것들이다. 그러나 현재 그의 손이 닿고 있는 헤비 워커에는 대자연의 기운들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아울러 그 속에서 감히 이 땅의 그 누구도 모방하지 못할 만큼 강렬한 신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현재 그를 이끌고 있는 이는 헤비 워커의 창조자인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 덕분인지 마음이 한결 안정되어 보이는 제로니스였다. 결국 두 고룡의 손에 의해 제우스의 시커먼 동체는 하나 둘 껍질이 벗겨지는 양파처럼 상체의 모든 갑옷들이 벗겨지고 있었다. 두 고룡의 행동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사태를 주시하던 다른 시커먼스들의 힘이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는 초조함과 긴장감의 시간들이었다. "자, 조심 조심......." 갈리아스 옹의 수신호에 맞춰 두 대의 시커먼스들이 제우스의 마지막 3차 장갑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순간 아공간을 더욱 강렬하게 메우는 빛이 그 사이로 뿜어져 나왔다. "으윽, 도대체 이건 무슨 빛입니까? 도저히 눈이 시큰거려서 보지를 못하겠어요." "이 봐. 엄살 떨지 말라고. 분명 그대 몸에서도 반응이 올텐데? 괜히 엄살부리지 말고 머릿속에 오늘의 일이나 확실히 기억시켜둬. 아마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일 테니까." 어이가 없을 정도로 느긋한 말투였다. 하나 말은 그렇게 하고 있을지언정, 갈리아스 옹의 내심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현재 갈리아스 옹마저 눈앞의 사태에 넋을 놓아버린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후우, 이제 겨우 장갑들을 무사히 해체했네. 저 친구 보기 보다 강심장인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든든해. 저렇게 집중력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일테니까.' 왠지 제로니스를 바라보는 갈리아스 옹의 눈이 흐뭇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이렇듯 초조한 마음을 감춘 채 편안히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제로니스의 든든한 보조덕분이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투덜거릴지언정 정작 그의 손과 몸은 온통 집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갈리아스 옹도 자신의 할 일에 최대한 집중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두 고룡은 서로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미묘한 공기의 흐름 속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우선 우리 싸이가 보이게 되면 최대한 조심을 해서 들어내야만 해. 알겠지?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갈리아스 옹이 옆으로 다가온 제로니스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순간에도 두 대의 시커먼스의 손은 아주 조금씩 제우스의 장갑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건 함부로 다룰 일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손은 긴장감에 휩싸여 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헤비 워커간의 대화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들의 대화 속에는 평소의 성격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존재가 하나 있었기에, 더욱 그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미려의 도끼가 성난 목소리로 닥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조심하란 말야. 함부로 잡아당기면 속에 있는 메모리석에 충격을 준다고 말씀하시잖아. 도대체 그 소리를 뭘로 들은 거야? -도끼. 그만해라. 네가 너무 몰아세우니깐 저들이 더욱 긴장하잖아. -아니 대장.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생기면 그순간 대장은 끝인걸 모르오? 그냥 날 믿고 잠자코 계시오. 이 순간만큼은 제우스도 감히 성질을 낼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고삐 풀린 미려의 도끼를 말릴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야. 임마. 조심하란 소리가 안 들려?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들리면 그 순간 끝이야! 끝!! 감히 주인님의 신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리도 조심성이 없어. 아주 신이 난 듯 목소리에 힘이 절로 풍겨져 나왔다. 그런 까닭에 시커먼스 군단 중 최고의 손감각을 자랑하는 폭주일섬과 징벌의 도리깨는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안 그래도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미워 죽을 판국인데,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선 완전히 제 멋대로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결국 그놈의 서열 때문에 꾹 참고 지내야하는 신세가 오늘따라 무척이나 서럽기만 했다. 하나 생각 속에 이는 서러움 보단 눈앞의 일이 더욱 중요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현재 주인인 싸이의 몸 주변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단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대자연의 기운들로 인해 마음 한편이 안심이 되고 있었다. '휴우, 예전처럼 성난 대자연의 기운들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지금도 주인님의 곁에서 최대한 편안한 느낌을 주려고 얌전히 있으니...... 역시 우리 주인님이셔!!' 미려의 도끼의 등쌀에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전을 염려하는 진심을 알고 있었기에, 조심에 또 조심을 하며 제우스의 동체를 분해하는 그들이었다. 물론 마음속으론 점점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는 주인에 대한 염려와 걱정. 그리고 또다시 느껴지는 강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작업 내내 피를 말리는 듯한 초조함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었다. 신룡의 후예 9 - 3 *가문의 피* 에르킨 여사는 다급히 아공간으로 들어서다 때아닌 곤혹을 치뤄야만 했다. 그것은 너무도 성스러운 빛줄기들의 환희였기 때문이다. "흐윽......" 다급히 손을 들어올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에르킨 여사는 견뎌내야만 했다. 바로 손자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저 양반이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에르킨 여사는 말문을 닫아야만 했다. 곧이어 여사의 눈에 갈리아스 옹의 다급한 손놀림이 보였다. '음. 저 양반이 꽤나 놀란 모양이네. 손이 저리도 떨리다니......' 곁에 서 있는 제로니스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한 미묘한 것들이, 에르킨 여사의 눈에는 여과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결국 여사는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껏 같이 살아오면서 온갖 대형 사고만 쳤던 남편이지만, 그래도 일에 대해선 한치의 오차도 없는 성실한 남자였기 때문이다. '여보. 제발 조심하세요. 우리 싸이의 일신의 문제가 걸린 일이랍니다.' 여사는 속에서 이는 조바심을 꿋꿋히 참아 넘기며 남편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었다. 더불어 손자에게 제발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곧이어 여사의 이러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서서히 싸이의 몸이 찬란한 빛과 함께 아공간에 그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싸이는 편안히 잠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사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것은 곧 남편의 일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었다. 결국 여사의 이러한 판단으로 인해 갈리아스 옹은 한차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파아아앗. 마지막 장갑이 제우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자, 곧이어 끔찍할 정도의 강렬한 빛이 솟구쳐 나왔다. "으윽.......!!" 그 순간 쉐도우 광석으로 눈 주위를 보호하고 있던 두 명의 고룡들도 그 빛 앞에서는 작은 신음을 토해내야만 했다. "윽.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군요." 제로니스는 생애 최초로 맛본 신성력의 강렬함에 작은 탄성을 지었다. 하나 그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갈리아스 옹은 작은 신음만 토할 뿐 일언반구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고통을 참으며 싸이가 있는 부위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한다? 마누라도 없고, 우리 싸이를 저대로 두면 안될텐데......' 싸이의 형체가 하얀빛 사이로 보이기 시작하자 갈리아스 옹은 내심 조급함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결코 서둘러선 안되는 일이었다. 언제나 침착한 대응만이 안전을 보장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손자의 안위가 달린 문제였기에, 그의 이런 마음은 더욱 강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끄응." 결국 작은 신음성을 토해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장시간 강렬한 빛을 참아내며 싸이의 모습을 쳐다본 대가였다. 한순간 눈앞의 쉐도우 광석보다 더욱 어두운 느낌이 뇌리를 스쳐가고 있었다. 결국 그의 뇌신경이 작은 상처를 입고야만 것이다. "형님. 왜 그러시오? 형님~!!" 제로니스는 순간 휘청거리는 갈리아스 옹을 껴안으며 큰소리를 냈다. 하나 이맛살을 찌푸린 채 작은 신음만 토해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이런........ 제길. 형님. 이 사태를 나보고 어쩌라고......" 이 상황에서 갈리아스 옹의 부재는 곧 큰 시련을 몰고 온다. 그것을 알고 있는 제로니스로서는 초조함과 다급함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하나 고룡이 달리 고룡인가? 그만큼 세월의 연륜이 녹아 있는 존재였다. "제기랄. 형님 도대체 제 정신이오? 그 강렬한 빛에 장시간 시신경을 내맡기면 어쩌자고 그런거요?" 금세 갈리아스 옹의 몸 안에서 어색한 부위를 진단한 그였다. 이건 대자연의 기운들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한 채 한군데에서 꼼짝도 안한 걸 파악한 것이다. 그 다음은 의외로 간단했다. 자신의 몸에 담겨진 기운들을 뿜어내며 갈리아스 옹의 몸 주변에 작은 막을 씌우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고룡인 갈리아스 옹의 몸 자체가 해낼 것이다. 대자연의 기운이 몸 안에서 느껴지는 순간부터 그의 몸 또한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자연 치유에 들어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휴우, 형님. 제아무리 손자가 소중하다고 해도, 자기 몸부터 추스려야만 한다오. 내 비록 형님처럼 저렇게 귀한 손자는 없지만, 그래도 내 몸 간수는 확실히 하고 살고 있수. 부디 힘내시오. 모든 건 형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작게 갈리아스 옹을 응원하는 제로니스였다. 아울러 그의 몸 주변에서도 환한 빛에 대항하듯 대자연의 성스러운 기운들이 물씬 풍겨지고 있었다. 에르킨 여사는 뜻하지 않는 일련의 사태에 순간적으로 놀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토록 믿었던 남편은 갑자기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용족 최고의 전사라고 칭해지는 이는 당혹한 표정을 여실 없이 들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이를 어째!!" 여사는 눈앞의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물론 하나뿐인 딸이 저러한 현상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하나 그때와는 너무도 다른 현상들이었다. 이건 드래곤들의 탈피 때마다 느껴지는 신성력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거대한 빛줄기였다. "집중해야 해. 집중. 과연 남편이 뭘 보고 저러한 행동을 했을까? 우선은 그것부터 깨달아야만 해. 그것만 해결하면......." 작게 손을 말아 쥐며 여사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말들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여사의 감각에 뚜렷이 느껴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 덕분에 더욱 다급한 마음만 일었다. 하나 여사는 금세 몸안의 기운들을 되돌리며 스스로 침착성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여기서 흔들리면 안돼.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일은 여자인 내가 해결해야만 해.' 순간 어머니의 강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모든 생명의 고향인 어머니의 품. 그 속에서는 자유로운 창조의 힘이 담겨져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한 힘이 자손 대대로 전해졌고, 수백만 년 동안 자연 진화가 이뤄진 것이다. 만약 어머니의 힘이 없었다면 모든 생명은 지금과 같은 번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에르킨 여사가 순간적으로 이끌어 낸 힘에는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곧바로 무의식에 잠긴 싸이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우웅...... 따뜻해.' 하얀빛 속에서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따스함이 물씬 풍겨왔다. 그 덕분에 한결 편안해진 몸은 어느새 모로 누워지고 있었다. "쪼옥, 쪼옥." 무의식의 습관인양 싸이의 엄지손가락이 붉은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가며 작은 소리를 냈다. 마치 어머니의 젖을 빠는 아이처럼 싸이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이게 바로 어머니의 힘이 창조해낸 또다른 강함이었다. 그 속에서 싸이는 어느새 편안한 표정과 행복한 미소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화르르르륵. 마치 거대한 불길이 솟구치는 것처럼 싸이의 전신에서 강렬한 빛들이 솟구쳐 나왔다. 이제껏 외부를 감싸고돌던 하얀빛 사이로 선명한 빨강과 파랑의 색깔들이 몸 안에서 찬란히 터져 나왔다. 너무도 선명한 세 가지의 색깔들이 차차 하나의 원형을 이루며 서서히 싸이의 몸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자, 여태껏 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던 대자연의 기운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대 장관이었으며, 어떤 이에게는 죽음보다 더욱 달콤한 유혹이었다. -허어억. 드디어...... 드디어 시작이다. 모두들 준비햇~!!! 이미 한번의 강렬한 경험이 있었던 탓에 아공간에서 미려의 도끼가 토해낸 신호에 맞춰 시커먼스 군단은 매우 빠른 움직임을 선 보였다. 하나 그 속에서는 제법 침착한 행동을 선보이는 이도 있었다. -우린 이미 한번의 죽음을 경험한 바 있다. 모두들 침착히 대응하자. 미려의 도끼가 내지른 말에 저마다 몸 안의 기운을 끌어올리던 시커먼스 군단들은 곧이어 또 다른 명령을 접하게 되었다. 바로 시커먼스 군단의 대장인 제우스의 명령이었다. 그순간 제우스의 거대한 손은 싸이의 몸 주변을 둥글게 말아 쥐며 보호를 하고 있었고, 각자 그쪽으로 놀란 시선을 보내자, 제우스는 뜻밖에도 편안한 목소리로 주변을 환기시켰다. -대....... 대장. -그래. 우린 이미 한번 죽음을 경험했던 자들이다. 여기서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우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주신 주인님께 또다시 죽음으로써 맹세를 지켜가야만 하는 것이다. -흐.....윽. 누군가 작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저마다 손에 든 무기를 제자리로 옮기며 서서히 하나의 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명령에 따른 행동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 때문에 한결 밝아진 표정들이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순간 미려의 도끼가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들고 있었다. -이런.... 그렇다면 나 혼자만 설친거잖아! 흐흐흐. 대장. 용서해 줄 거지? -용서가 뭐가 필요한가? 어차피 우린 주인님과 하나인 생명. 이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울 것인가. 안 그런가 동지들?! 뜻밖에도 싸이의 편안한 모습을 제일 먼저 느끼고 있던 제우스에게선 평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순간 모두의 얼굴엔 공감이라는 감정이 생겨나고 있었다. -맞아. 주인님과 함께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아. -그래. 우린 이미 죽음도 같이 경험한 동료잖아. 게다가 우리에겐 꺼져 가는 생명도 다시 살려주신 주인님이 계셔. 이런 판국에 그 무엇이 부럽겠어!! 순간 시커먼스 군단 전체로 퍼져 나가는 믿음과 신뢰의 힘은 너무도 강렬했다. 모두들 저마다 행복한 표정이 여실 없이 들어 나고, 각자 서로에게 시선을 돌리며 하나된 마음을 재차 확인하고 있었다. 그 순간 시커먼스 군단이 서 있는 자리는 굵디굵은 끈이 거대한 원을 그리며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인연이라는 질긴 끈이........!! 그와중에도 싸이의 몸 주변은 강한 빛과 어우러진 대자연의 기운들이 연신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나 대자연의 거친 기운들은 더 이상 시커먼스 군단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싸이와 함께 하길 꿈꾸는 대자연의 기운들은 그 순간부터 시커먼스 군단의 소중한 인연으로 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에르킨 여사는 잠시간의 생각들을 정리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래. 과연 우리 싸이야. 저렇듯 대자연의 기운들이 우리 싸이의 몸 주변을 보호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분의 말씀과 이어지는 뜻일지도 몰라. 하지만......." 하지만 때로는 뜻밖의 사고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만 할 책임과 의무가 바로 여사의 몫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사의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단지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이 이 순간에 통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기대로 움직일 수밖에." 작게 의문을 토해냈지만, 결국은 믿음만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속에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은 쓸모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분명 할아버지께선 용족의 모든 이들이 강한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어. 그 때문에 신비에 감싸인 뮤 대륙을 발견하시고는 그곳에 수련장을 만들어 놓으셨고, 대대로 모든 용족의 전사들이 그곳에서 수련을 하시라고 명하신 거야. 바로 그곳이 우리 갈리아스 가문의 비기 중 하나야. 그리고 또 하나의 비기를 바로 내 몸 안에 담아놓으셨어. 우리 용족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신성력을 더욱 풍족하게 만든 우리 가문만의 피. 이 순간만큼은 우리 가문의 피가 모든 신뢰의 틀을 가지길 믿을 수밖에 없어. 싸이야. 부디 이 할미의 간절한 믿음을 깨트리지 말아 다오. 우린 너만을 믿는 단다."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온 손자였다. 한때 남편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여사였기에, 그때의 인상은 더욱 진하게 남아 있었다. 더불어 남편이 잠시간 겪었던 일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받았던 그때의 감동은 모두 손자에게로 전해졌다. 그런 손자였기에 이순간 여사의 가슴은 처녀 때의 가슴 설렘보다 더욱 쿵쾅거리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비록 두 뺨에 홍조가 일었지만, 그것은 가문의 수장으로써 새로운 부흥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희망에 찬 본능일 뿐이었다. 그런 느낌을 가슴에 안은 채 에르킨 여사는 서서히 작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가문의 희망찬 미래가 여사의 품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 했다. 제로니스는 품안에서 서서히 고른 호흡을 이어가는 갈리아스 옹을 내려다보며 왠지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것은 어쩌면 눈을 멀게 하는 강한 빛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일수도 있었다. 하나 그는 대자연의 기운을 몸 안에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자연에 순응하고 있었다. "후후, 형님. 정말로 대단하지 않소? 내 나이 이제 7천을 바라 보고 있소. 자그마치 6천년이 넘도록 오직 검만을 휘두르며 살아온 인생이란 말이오. 한데 고작 핏덩이에 불과한 녀석이 나를 앞서고 있다니.....!! 아마도 형님은 이러한 경험을 일찌감치 해봤겠죠? 그러니 침이 튀도록 손자 자랑에 밤새도록 날 괴롭혔을테고....... 후후훗. 형님, 고맙소. 이건 진심이오." 어느새 갈리아스 옹의 얼굴에도 작은 평화가 어리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싸이가 무의식중에 이뤄내는 일이란 것을 이순간 제로니스는 똑똑히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갈리아스 옹에게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는 곧이어 등뒤로 다가온 기척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뭐가 그리도 고맙다는 거죠?" "허어억. 누..... 누구?" 급히 등뒤로 돌아서며 대응자세를 취하려고 했지만, 제로니스는 순간 몸을 굳혀야만 했다. 그의 어깨에 어느새 고운 손이 와 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럴 수가. 어찌 이런 일이...... 내 스스로 최강이라고 자부했건만....... 역시 위대한 가문의 힘은 남다르다는 것인가?' 내심 작게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이것은 그의 생애에서 어쩌면 최초의 패배일지도 몰랐다. 하나 그는 곧 편안한 미소를 흘렸다. 등뒤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존재에게선 눈앞의 하얀빛보다 더욱 편안한 생명력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니 형수님. 어떻게 여길......!!" 속 안에 이는 감정과는 달리 그의 얼굴엔 격앙된 표정만이 담겨져 있었다. 하나 그런 것에 구애를 받지 않는 에르킨 여사였다. "호호호. 우리 남편은 행복하겠군요. 비록 의식은 없지만, 그래도 베이직 헌터의 수장인 그대에게서 고맙다는 찬사를 다 듣다니.....!! 역시 삶이란 오래 살수록 더더욱 행복한가 봐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여사의 고운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숙이는 제로니스였다. 어느새 그의 뺨에도 작은 홍조가 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 그는 급히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형수님. 혹시 저 사태를 어떻게 할지 아시고 찾아오신 겁니까?" "..... 네에." 비록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문의 비기를 믿기에 에르킨 여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작게 대답을 했다. 그순간 제로니스의 눈에서 놀람의 탄성이 새어나왔다. "오오...... 역시. 그럼 어서 저 녀석 좀 해결해 주세요. 형님 걱정은 마시고." 마치 여사가 앞으로 행할 일에 대해 진한 호기심으로 지켜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 까닭에 에르킨 여사는 두 뺨에 더욱 진한 홍조를 띄우며 살짝 몸을 틀었다. "그럼 용족 최고의 전사인 제로니스 그대에게 제 남편을 잠시 맡길게요." 물론 이것은 필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속에 이는 불안을 잠재우는 데에는 작은 대화가 최고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여사였기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제로니스의 눈을 들여다봤다. 재차 확인하고자 하는 심사였다. 그순간 제로니스의 눈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자 에르킨 여사의 마음에서도 점차 불안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 믿자. 용족의 모든 이를 대표하는 저 사람도 우리 가문의 힘을 믿어주는데 내 스스로 믿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야. 믿자. 추호도 의심하지 말고. 우리 싸이가 저렇듯 힘을 내는데 이 할미가 움츠려든다는 것은 핏덩이 애들에게 웃음거리만 될 뿐이야.' 파르르 떨리는 손에서 불안감을 씻어내기 위한 안간힘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스스로의 감정을 몰입시키는 자가 최면이 여사의 머릿속으로 크게 번져가고 있었다. 순간 여사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점차 그 강도가 진해지고 있는 다채로운 색의 보호막 앞으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당신께서 제게 내리신 이성과 우주에 넘쳐나는 대자연의 이성. 그리고 자연에 의하여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순응은 이제 여기에서 잠시 멈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순수한 힘은 당신께서 베푸시는 은총에 의해 이순간부터 더욱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만물의 순환에 순응하며 살아온 제 생명을 걸고 잠시나마 대자연과 맞서고자 합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고, 잠시간의 맞섬이 또 다른 순응을 낳게 하는 어버이의 이치를 부디 베푸소서. 이는 신중의 신 오딘 님과 그분의 어버이 되시는 분의 영예로움에 축복을 드리는 일이오며, 재차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킨 그분의 위대함에 경배하는 일이옵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두 팔을 활짝 벌려 하얀빛의 성스러움 앞에 온몸을 들어낸 여사는, 곧이어 긴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그 순간 하얀빛에서는 강한 움직임이 솟아 나왔다. 하지만 빛의 움직임은 신기하게도 여사에겐 조금의 충격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여사를 반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로니스는 서서히 가슴속에 강한 여운이 담겨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의 눈앞에서 에르킨 여사가 강한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까지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속속들이 담기고 있었다. 오딘 님과 그분의 어버이에 대한 긴 예찬과 진심 어린 기도. 대자연의 기운을 품에 안고 살며 삶이 끝날 때까지 순응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진솔한 행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깊은 신뢰와 믿음. 신의 자식이라는 축복된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기꺼이 이어가겠다는 생명력의 찬송. 한순간 긴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제로니스의 머릿속에서 흘러갔다. 비록 찰나에 가까운 순간이었다고는 해도, 그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더욱 강하게 솟아 나왔다. 그 속에서 제로니스는 신중의 신 오딘 님의 자식이라는 사실이 이토록 소중하고 명예로운 일인 줄은 처음 알았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것이 그토록이나 뼈저리게 후회가 되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비록 긴 세월을 흘러보냈지만,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명예로움을 지키며 신뢰와 믿음으로 지켜나가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신은 언제나 지켜보신다. 단지 우리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믿음을 잃지 않으시기 때문에 미처 깨닫지 못할 뿐이다. 바로 그것이 신의 위대함일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그분을 그토록이나 신뢰하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부터 그분을 믿고 따르면 그분은 무척이나 행복해 하실 것이다. 왜냐면 내 모든 것들을 지금껏 쭉 지켜보며 계셨을테니까." 급히 무릎을 꿇으며 품에 안은 갈리아스 옹을 바닥에 조심스레 눕혔다. 그리곤 두 팔을 길게 뻗어 뿌연 아공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푸른 하늘을 향해 진심어린 경배를 올렸다. 곧이어 그의 두 팔이 땅에 닿으며 그의 입술은 메마른 땅에 축복의 키스를 올렸다. 이것은 긴 깨달음의 시간 속에서 일어났던 모든 고통을 깨끗이 씻어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며, 신의 자식으로써 미처 행하지 못한 불경함을 조금이나마 씻어주는 계기도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이 더더욱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제로니스에게 이러한 깨달음의 계기를 선물하게 된 에르킨 여사는 강렬한 빛 속에서도 그녀를 반기는 또 다른 기운을 느끼며, 점점 알 수 없는 행복함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9 - 4 쥬엘은 호사스런 대귀족의 생활상속에서 여자로서 작은 부러움이 생겨났다. 그것이 거대한 카빌라이 대륙을 통치하는 메르카 제국의 유일한 황족의 일상이기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후훗, 이렇게 호사스럽게 일을 마치는 자들에 대해 항상 말로만 들어왔었는데, 나 자신이 직접 느껴보다니..... 이것이 제아무리 인간의 3대 운명 중 하나라곤 해도, 이건 다른 세계 사람들의 생활 같아." 문득 과거의 시절이 떠올랐다. 비록 대사제와 여러 신성 사제들이 함께 하는 금욕적인 생활이었다고 해도, 그녀에게는 평생의 삶이 남겨진 시절이었다. 그 속에서 쥬엘은 거친 잎사귀로 인해 남모르게 고생하던 어린 사제들이 떠올랐다. 그녀 또한 처음 신전에 들어와서 익숙해지기 전까지 한동안 고생을 겪어야만 했던 추억이 있었다. 한데 그러한 기억 속에서 남몰래 동경하기만 하던 생활을 요즘 들어 하고 있다보니, 마치 지금이 꿈만 같았다. 거대한 체구에 걸맞는 우락부락한 얼굴을 지닌 사내가 최선을 다해 경호해주고, 그 사내가 손수 모는 마차로 제법 긴 여행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를 만나 신의 계시를 따라야만 하는 그녀의 운명 중 일부분이겠지만, 그 안에서 이렇듯 호사스런 생활을 한다는 자체가 마냥 신기하고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인간은 애초에 신이 부여한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3대 운명에 필하는 행위를 통해 살아가게 된다. 바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 이 세 가지 행위가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참 인생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어린 시절부터 신전에서 몸소 생활하며 깨닫게 된 그녀는, 사제로서 반드시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우선했던 삶이 바로 신께서 내리신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그 일은 곧 그녀에게 신이 정해준 삶을 끝까지 제대로 마치기 위한 일들이었으며, 그러기 위해선 최선을 다해 지켜나가야만 했다. 물론 소식과 신의 계시를 듣기 위한 집중은 당연지사였다. 정신이 강해야만 그에 따라 육체도 강인해 지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소위 말하는 금욕주의였다. 스스로의 자제와 그를 통해 깨닫게 되는 삶 속의 여러 행위들은 인간을 한층 더 성장시켜주었으며, 그 속에서 작은 환희들을 경험하게끔 해줬다. 쥬엘은 이렇듯 몸소 느낀 바를 행동하며 살아왔지만, 오늘 따라 자신이 무척이나 호강을 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막 볼일을 마치고 정리를 하려던 찰나, 그녀의 전신감각을 통해 묘한 느낌이 전해져왔다. 처음에는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었고, 곧이어 그 느낌은 너무도 강렬하게 전해져 오며 한순간 그녀를 휘청거리게 했다. 마치 온 몸이 투명한 아지랑이 속에 갇혀 흐느적거리는 느낌이었다. "허억........" 잠시 휘청거린 몸으로 인해 큰 봉변을 당할 뻔 하자, 그녀의 고운 입술에서 작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 그녀는 곧 신형을 곤두세우며 균형감각을 되찾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지?" 잠시 고개를 들어 눈으로 쏘아져 들어오는 네모난 하늘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환한 태양만이 떠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쥬엘은 그 안에서 뭔가를 찾고자 한껏 눈을 부릅떴다. 조금 전 느껴진 강렬한 신성력은 그녀로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성스러움이었다. 곧이어 쥬엘은 그녀를 힘들게 하던 묘한 느낌이, 평생 그녀가 모시는 분의 힘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일자, 힘차게 천막을 헤치고 나와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하늘의 축복과 어떠한 이들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감사의 선물을 내려주신 내 어머니시여! 우리 안의 영혼에 닥친 위기를 염려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옵니다. 부디 푸른 잔디 한 올에도 내 안의 어머니와 그분의 성스러움이 함께 하시길!" 쥬엘은 황급히 이마를 조아리며 최대한 경건한 몸짓으로 성호를 긋고, 그녀의 무릎에 짓이겨진 푸른 초원을 향해 감사의 키스를 올렸다. 아직까지 그녀의 전신감각과 기억 속에는 여신의 품과 그 안에서 느껴지던 편안한 신성력이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로 인해 쥬엘은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전 강렬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결코 이 땅에 살고 있는 존재가 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비록 그 기운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고 있었지만, 잠시나마 그녀의 곁에 왕림한 신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야만 했다. 비단, 이러한 현상은 그녀만이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엘렌은 편안한 자세로 마차에 누워 간만에 달콤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는 하나, 아직은 너무도 어린 용족이었기에 그녀는 달콤한 오수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잠시 마차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잠에 빠진지 얼마나 되었을까? 엘렌은 평소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한 느낌이 온몸에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느낌을 또렷이 받았다. '으응? 이건.......... 뭐지?' 미처 달콤한 잠의 유혹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새로운 감각에 어리둥절하여 눈을 뜨려는 찰나 엘렌은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허억......." 분명 그녀의 입을 통해 신음성이 토해졌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에 불과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고운 입술을 가지런히 한 채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들어 있었다. 엘렌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느낌에 치를 떨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나 그것은 그녀의 허약한 의지에 불과했다. 전신의 감각이 또렷이 살아나고 있건만, 그녀의 몸은 의지를 거부한 채 꼼짝도 안했다. "으득.... 뭐냐? 도대체 이것이 무슨 일이야!!" 지금껏 용족으로서 강한 자부심으로 살아온 엘렌이었다. 한데 오늘 처음으로 찾아든 생소한 고통은 그녀를 끔찍한 고통과 함께 빈약한 의지에 큰 자극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엘렌은 포기하지 않았다. 강하게 의지를 일깨울수록 몸 안에서 이는 고통이 더욱 강해져 왔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라는 것을 몰랐다. 비록 한순간이지만 잔뜩 이마를 찌푸린 채 용을 쓰던 그녀는 잠시 후, 아련한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누군가를 맞이할 수 있었다. "................." 투명한 아지랑이 속에서도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존재는 이제껏 엘렌이 잊지 못하는 반가운 존재였으며, 그런 존재가 엘렌에게 잠시 선보인 작은 미소는 곧 커다란 황홀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모습을 들어낸 존재는 지금껏 엘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으며,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하기에 엘렌은 몸에서 이는 끔찍한 고통을 참은 채, 그 존재를 향해 살며시 몸을 굽히기 시작했다. "이제껏 전 당신께서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답니다. 하나 미천한 저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신 것 하나만으로도 당신께서는 이 땅의 모든 이들로부터 진심 어린 축복을 받을 것이옵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우리들에게 믿음이라는 선물을 내려주신 이유이며, 자애로우신 당신께서 이 땅에 풍요와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신다는 것을 뜻하옵니다. 부디 저 또한 당신께서 내려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또한 당신께서 제게 내리신 아이로 인해 온 세상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게 하옵소서." 비록 엘렌은 거역할 수 없는 기운으로 인해 몸 안에서 끔찍한 고통이 찾아들었지만, 곧이어 고통에 겨운 이마를 최대한 편 채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와 인사를 올렸다. 이것은 빈약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었다면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오직 전지전능하신 그분에 대한 강한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일까? 엘렌은 곧이어 머리 쪽에서 따스한 정이 느껴졌다. 이것은 그녀가 감히 바라보기 힘든 존재의 기운이 다가온 느낌이었으며, 곧이어 몸 안에서 일기 시작하던 고통은 점차 사라지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런 느낌에 너무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들던 엘렌은, 그순간 너무도 깜짝 놀란 듯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허억...... 안돼요!!" 너무도 끔찍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일까? 엘렌의 고운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자세를 갖춰야만 했다. 그것은 귀족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님. 무슨 일이시옵니까?" 퍼득 정신이 든 순간 밖에서 작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메테우스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가 앉아 있는 창 앞에서 등을 돌린 채 검을 뽑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뭐였지? 왜 그분이 내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려고 하셨을까? 내가 고통스러워하니깐 따스한 품으로 안아주신 것 까진 이해가 돼. 제아무리 의지의 힘을 일깨우려고 해도, 내 안의 힘과 내 육신이 따로 노는 느낌의 고통은 정말 끔찍한 것이었어. 한데 왜 그토록 고귀하신 분이 나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려고 하셨을까?' 차마 떠올리기 싫은 순간이었다. 이제껏 그분만큼 강한 신력을 보여주던 이는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물론 그것은 엘렌이 태어나 지금까지 최초이자 유일하게 본 천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존재들은 어떠한 기운을 지녔는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다소 신뢰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엘렌은 결단코 그분보다 더욱 강한 신력을 보이는 존재는 없으리라 단정지었다. 이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보고 들어왔던 신룡 헤르아킨 할아버지의 기운과 비교해본 결과였기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확고한 믿음이 생겨났다. 한데 그러한 존재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것은 신의 자식이라는 남다른 존재감 하나만을 믿고 평생을 살아가는 용족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엘렌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눈앞에서 거대한 등을 보인 채 여전히 전신의 기운을 뿜어내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 잠시 꿈을 꾸었나 봐요. 메테우스 경! 고마워요." 엘렌은 여전히 등을 돌린 채 주변을 살피는 메테우스에게 잠시나마 고마움에 인사를 건냈다. 아무리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라곤 하나, 메테우스처럼 상관을 위해 저토록이나 세심하게 행동하는 이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 엘렌의 인사를 받은 메테우스는 마치 별 것 아니라는 듯, 잠시 뒤로 몸을 돌려세우며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주군과 마님을 뫼실 수 있어 행복했사옵니다. 부디 그러한 말씀은 거두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기사도에 어긋나지 않는 정정당당한 모습이 물씬 풍기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러한 메테우스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조금 전 꿈속에서 받았던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인사가 떠오르자, 엘렌은 황급히 마차의 창문을 닫았다. 그리곤 또다시 곰곰이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에르킨 여사는 낯설지 않은 기운들이 전신을 휘감으며 즐거운 듯 주변을 맴돌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녀와 하나로 연결이 된 듯한 이 기운은, 그녀의 표정 하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한순간이나마 주위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느낌을 받았다. 하나 여사는 자신이 해야만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되는 일이었다. "싸이야! 이 못난 할미가 왔단다. 언제나 너 하나만을 바라보며 산단다. 내겐 우리 싸이가 너무도 소중하거든. 부디 존재의 각성 속에서도 너만의 의지를 잃지 않도록 노력하렴. 우리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의지를 행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의무가 있단다. 알겠지?" 손자의 새로운 재탄생의 순간 앞에서 여사는 한껏 행복했다. 현재 손자의 몸 주변을 가득 감싸고 있는 하얀빛 속에는 여태껏 여사가 꿈꿔왔던 신비로운 신세계가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여사의 모습에서는 편안한 미소와 자유로운 행복이 담겨져 있었다. 에르킨 여사는 온통 하얀빛을 내뿜으며 본능적으로 주변을 경계하는 와중에도 자신을 반겨주는 손자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소중하기만 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당신의 자식으로서 거룩하신 그 이름 앞에 언제나 존경과 찬양을 올립니다. 우리의 고귀한 생명과 안전 모두를 당신께서 길이 번영케 하소서. 또한 우리 일족의 아이에게도 당신께서 행하신 자비로움과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소서. 이는 당신께서 저희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지켜나가게 하겠다는 의무의 맹세이며, 당신이 내리신 은총에 보답하는 작은 간절함이옵니다. 부디 이러한 저희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자손대대로 당신만을 찬양케 하옵소서." 몇 안되는 일족의 수장으로써 누군가에게 예의를 갖춰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신의 자식으로 태어난 자존심으로 인해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하나 그 예의의 대상이 용족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해준 신이라면 남달랐다. 때문에 에르킨 여사의 작은 두 손이 모여져 이마로 모아졌을 때, 평생 무릎을 꿇지 않을 존재로 보였던 여사의 두 무릎은 공손히 바닥에 맞닿아졌다. 이순간 여사의 진심은 오직 신께서 내리신 생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동반하고있었고, 곧이어 여사의 두 손이 앞으로 내밀어졌을 때에는 경건함이 잔뜩 묻어 났다. 제로니스는 뜻하지 않은 에르킨 여사의 출현에 속으론 깜짝 놀랐지만, 겉으론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또한 최대한 주의를 했다. 그 또한 갑자기 나타난 에르킨 여사가 눈앞에서 행하는 일이 어떠한 것인 줄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것인가? 바로 그 일로 인해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하면 형님과 형수님은 아직 성룡도 되지 않은 아이를 태연히 밖으로 외출을 시켰단 말인가? 아니, 도대체 뭔 정신으로 그런 간 큰 일을 벌이신 것이야! 일족의 소중한 아이에게 자칫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책임을 뭘로 지시려고 그러셨단 말인가? 도저히 알 수가 없군. 알 수가 없어.' 내심 속에 이는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에 작게 신음을 터트리려고 했지만, 급히 의지를 발현시켜 애써 참아야만 했다. 일족의 수장이 소중한 헤츨링에 대해 책임을 지고 세상 밖으로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나, 그에 따른 여러 가지 소란들을 보면 결코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품안에서 의식을 놓고 있는 갈리아스 옹이나 눈앞에서 강한 빛을 맞으며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에르킨 여사의 얼굴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기색이 완연했다. 이로 인해 잠시 혼란함에 빠져드는 제로니스였다. 그러나 그는 곧이어 행해지는 일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며, 잠시 후 벌어질 일에 대해 강한 기대감을 가졌다. 잠시 뒤, 경건한 기도를 올린 에르킨 여사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품에서 작은칼을 꺼내 열 손가락 모두에 큰 흔적을 내기 시작하자, 제로니스의 가슴은 심하게 두방망이질 쳐졌다. 그 순간이었다. 파아앗. "대지의 성스러움과 하늘의 곧고 바름에 모든 희망을 담고자 합니다."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피로 온 대지에 생명의 힘을 축여주었고, 그 다음 하늘을 향해 신성함한 마음을 담아 힘차게 뿌려주었다. 아울러 가는 손가락 끝을 타고 흐르는 핏줄기에 어머니로서 자식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사랑과 풍요한 삶. 그 모든 것을 축복하는 마음을 간절히 담았다. 그런 와중에도 점점 손에서 빠져 나오는 핏줄기들이 강해질수록 여사의 고운 눈망울에는 작은 기쁨의 환희가 어렸다. 이것은 현재 여사의 전신을 감싸고도는 낯익은 기운들이 그녀의 축원과 사랑에 작은 감사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싸이야. 이 순간만큼은 이 할미가 네게 꼭 해줘야 하는 이야기가 있단다. 난 결코 너를 인간의 아이로 보지 않는단다. 이 할미는 비록 우리 싸이가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네 안에 담겨진 소중한 영혼과 네 몸 안에서 넘쳐흐르는 성스러운 핏줄로 인해, 너를 우리 일족의 아이로 받아들이고 있단다. 명심하렴. 이 할미는 신룡의 후예란다. 그건 곧 먼 훗날 너 또한 이 땅의 자랑스런 신룡의 후예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란다. 부디 이런 할미의 소망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싸이는 분명 이 할미가 믿어 의심치 않는 훌륭한 자식으로 자라날거야. 이는 천지신명께 맹세를 할 수도 있는 이 할미만의 진심이란다. 부디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렴." 평생동안 이순간 만큼이나 진심 어린 말을 쏟아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연에 이는 의지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매우 낯뜨거운 모습이라고도 여겼다. 하나 절대 후회되지는 않았다. 이순간 만큼이나 평생동안 신의 자식으로서 살아온 존재감이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없었기에, 여사는 그렇게 가족이 아닌 다른 이 앞에서 진심을 털어놨다. 그 때문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곧이어 여사는 작게 심호흡을 하며, 생각하면 할수록 가빠져 오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 후 여사는 손가락 끝에서 흐르고 있는 피를 이용해 제우스 주변으로 거대한 육망성을 그리기 시작했다. "언제나 용기(Valor)있는 자가 되어라. 명예(Honor)를 알고 모든 이를 연민(Compassion)할 줄 아는 정의로운(Justice) 자가 되거라. 오직 정직(Honesty)함을 실천하는 이가 되어야 할 것이며, 숭고함(Spirituality)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거라. 어떠한 희생(Sacrifice)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항상 겸손(Humility) 할 줄 아는 당당한 남아대장부가 되거라." 점점 작아지는 핏줄기 속에도 여사의 진심은 담겨져 흐르고 있었다. 그러한 마음으로 이어진 육망성의 곳곳에는 에르킨 여사가 손자를 위해 희생하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고, 어느새 긴 혈선으로 이어진 거대한 육망성 안에서는 환한 빛을 내뿜는 싸이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었다. 한순간 작은 빈혈증세로 인해 상체를 휘청거리던 에르킨 여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살짝 훔치며 뿌듯한 마음으로 손자가 누워 있는 곳을 바라다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하얀빛도 한결 수그러져 있었다. 또한, 여사의 신체 어떠한 곳에도 충격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여사의 따스한 정에 한층 더 친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사는 그 속에서 손자인 싸이가 밝게 웃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후훗, 녀석! 그리도 좋니? 그럼 이제 마음 푹 놓고 편히 한숨 자고 일어나렴. 모든 건 이 할미가 책임을 질터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알겠지? 자, 그럼 이제 우리 싸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이 할미가 자장가를 불러주마. 부디 이 할미가 믿어 의심치 않은 든든한 손주가 되어 다시 깨어나 주길 바란단다." 여사는 하얀빛에 휩싸인 채, 작은 목소리로 그 빛을 향해 이야기했다. 곧이어 하얀빛들이 여사의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 들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사는 곧장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어 발아래 그려진 거대한 육망성으로 전신의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밝고 힘차며 언제나 푸르른 오딘님의 신성함이여! 우리들 모두에게 생명의 젖줄이자 비옥한 대지로 항상 풍요롭게 만들어 주시는 헤레나님의 은총이여! 부디 당신들의 작은 힘을 이 자리에 내리시어, 성스럽고 고귀한 한 생명의 새로운 탄생을 축복해주소서. 언제나 당신들의 명예로움을 지킬 줄 아는 용기 있는 자식으로 키울 것이며, 연민과 희생을 덕으로 삼아 살아갈 줄 아는 이로 키우겠나이다. 정의가 무엇인지 정직함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게 할 것이고, 항상 겸손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겠나이다. 부디 당신들의 축복으로 이 아이가 이 땅의 자랑스런 신룡의 후예로 살아가게 하소서." 에르킨 여사는 그녀의 소중한 딸이 그러했듯이, 하얀빛에 휩싸인 손자를 향해 모든 신들에게 축복을 내려달라는 기도를 큰 목소리로 올렸다. 곧이어 손가락의 피가 멈춰지는 것이 보이자, 여사는 그녀의 힘을 받아 서서히 대자연의 기운들로 인해 꿈틀거리는 육망성을 향해 모든 의지를 담아 크게 외쳤다. "이제부터 감히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이 땅의 자랑스런 실버 일족으로 탈바꿈하거라. Con Position Var Materialize." 순간 거대한 장관이 아공간 가득 펼쳐졌다. 오오오오옴. 마치 살아 숨쉬기나 한 듯이 육망성에서 푸른빛이 솟구쳐 올랐다. 그 빛은 이내 아공간을 가득 메운 채 자욱하게 일렁거렸다. 그것은 곧 일대 장관을 이루며 커다란 아공간 전체로 휘몰아쳐 왔다. 곧이어 푸른 색의 기운들이 일렁임을 멈추며 서서히 에르킨 여사가 그린 육망성으로 다시금 몰려들었다. 순간 그 일대를 호위하던 시커먼스 군단이 움찔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나 그들은 대자연의 기운이 결코 싸이를 해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고, 순순히 대자연의 기운들과 하나로 동화되고자 노력해야만 했다. 그런 가운데 싸이를 품에 안고 있던 제우스는, 두 손이 강제적으로 열리는 느낌에 최선을 다해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결국 거대한 푸른빛에 의해 순응을 해야만 했다. -크으으윽. -대장. 그만 버텨요. 주인님께 결코 해가 되지 않을 일이에요. -크......윽. 싫다. 난 죽어도 주인님과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길게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제우스는 결코 포기 할 수 없었다. 하나 에르킨 여사의 푸른 피로 형성이 된 거대한 육망성과 그 안에서 이는 기운에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버티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육망성이 발현되는 순간 생겨난 푸른빛이 품안에서 잠들어 있던 싸이 주변으로 빠르게 몰려왔고, 곧이어 그 빛은 싸이의 몸에 와 닿기가 무섭게 투명한 액체로 변해 거대한 막을 형성했다. 그런 와중에도 제우스는 푸른 액체의 막을 두 손 가득 담아 몸 안에서 빠져나기지 못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제우스의 욕심일 뿐이었다. 도저히 제우스의 기운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압력이 전해져 왔다. 결국 제우스는 강제로 벌어지는 손가락을 원망하며 점점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싸이에게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푸른 액체에 감싸인 싸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주... 인님. 부디...... 부디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몰라도, 선명한 세가지의 기운에 휩싸여 있던 싸이의 몸에 푸른빛이 어울리기 시작하자 제우스의 가슴 한켠에는 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싹텄다. 하나 제우스는 곧이어 무의식 속에서 최초로 울려 퍼지는 싸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0 000 00 0000 000000." 뭐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주인의 목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순간 제우스는 속에 이는 불안감이 싸그리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도 행복한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듯한 제우스였다. 그런 제우스의 눈에 점차 또렷한 형상을 띄기 시작하는 싸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거대한 육망성에서 피어오른 푸른빛이 선명한 세 가지의 기운들과 어울려 투명한 푸른색의 액체로 변했으며, 그 액체는 점점 싸이의 몸을 감싸안으며 따스한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오오...... 대장. 저거.... 저것 좀 봐요. -나도 보고 있다. -으음...... 대장. 과연 저게 뭘까요? 왠지 따스한 느낌이 전해져 오네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건 주인님이 저 안에서 매우 행복해 하신다는 거다. -그렇군요. 그럼 잠시지만 조금 전에 전해진 주인님의 의지는 바로 그걸 우리에게 말씀해주려던 것이군요. -그렇겠지. 마치 그 순간이 나에겐 억겁의 세월보다 긴 시간이었다. 그 속에서 난 끔찍한 악몽과 행복한 꿈을 동시에 꾼 듯한 느낌이었다. -후후훗, 대장. 그런 시시한 이야긴 집어치우고, 우리 저것 좀 어떻게 저장 하자구요. 너무도 신기한 순간이에요. 각자 신이 난 듯 제우스에게 말을 붙여왔다. 그런 관계로 제우스는 어쩔 수 없이 상념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제우스에게는 그 무엇보다 주인과의 연결이 가장 소중했기에, 작은 일 하나에도 의무를 두는 것 자체를 행복의 제일로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했을까? 하지만 주인님. 전 믿고 있습니다. 이 세상 무엇보다 자랑스런 분이시니까요. 부디 못난 저희들 곁에서 수만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들을 보내시며 항상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시길 이 못난 제우스 간절히 바랍니다. 제우스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깊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곳에서 싸이는 푸른 액체에 감싸인 채 점점 누군가의 품으로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 드디어 싸이의 탈피가 시작되었군요. 이제 남은 것은 제피로스가 싸이를 순수한 드래곤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깜짝 놀랄 이야길 듣고선 울며겨자먹기로 받아들일지만 남았군요. 오늘도 제법 길다고 여겨지시죠? 당연히 약속대로 시간보단 양으로 맞춰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아..... 내일이 어버이 날이군요. 이번 글의 성격과도 많은 연관성이 있는 날이네요. 부디 진심이 담긴 선물을 부모님께 해주시길 바래요. 꼭 꽃을 달아드리라는건 아니랍니다. 남들 다하니깐 따라 하는 것보단, 순수한 마음으로 부모님께 따뜻한 감사의 말 한마디라도 해보세요. 그럼 오히려 더 부모님이 행복해 하실꺼에요. 모두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신룡의 후예 9 - 5 메르카 제국 서부전선 정보국은 며칠 전에서야 겨우 도착한 극비문서로 인해 한바탕 소란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전 국토에 거미줄처럼 빽빽이 깔아놓은 정보망이 한순간 거대한 구멍을 낸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서부 전선의 정보를 도맡아 처리하는 해밀 경의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득 잡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내 분명히 이런 특급정보들은 그곳의 영주들로 하여금 직접 이곳으로 전하라고 누누이 이야기 해놓았건만, 도대체 헤크라인 자작은 이러한 일이 생길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감히 그분이 자기 영지를 지나가시는데도 미처 제대로 된 마중도 못하다니.......!! 이건 위대한 황제 폐하와 제국의 수호신이신 로멜쥬 대공각하를 욕보이는 반역 행위나 마찬가지 아니냔 말이다." 연신 큰소리로 눈앞의 제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호통을 치는 해밀 경의 책상 위에는 노란색에 황금색 인장이 선명히 찍힌 작은 봉투가 놓여져 있었다. 이건 제국 내에서도 최고의 기밀에 해당하는 표시였다. 이런 표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까닭에, 함부로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가히 반역죄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 봉투를 품에 안은 채 며칠동안 산길을 헤치며 뛰어온 젊은이를 놓고 해밀 경은 더욱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해밀 국장님. 하오나 지금의 헤크라인 영지에서는........" "시끄럽다. 사소한 변명거리는 늘어놓지도 마라. 또한 최전방에 나가 계신 대공 각하를 위한 후방지원 어쩌고 할 핑계라면 더더욱 함구하라. 알겠느냐?" 제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서 위대한 검사인 로멜쥬 대공을 욕보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친한 친구에 대해 궁색한 변명을 미리부터 차단하기 위해 내지른 말이었다. 그 때문에 그의 얼굴에 서린 노기는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 정보국의 모든 라인은 최고비상경계령인 토네이도 3으로 가동한다. 더불어 그분께서 현재 계실만한 곳을 미리미리 체크하라. 이미 정보가 들어온 이상 추호도 그분의 안위에 작은 심려조차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알겠나?!" "네, 국장님." "그럼, 어서 움직여!!" 사소한 뒷처리는 이번 일이 무사히 끝남과 동시에 해결하면 된다고 스스로 정리해 버렸다. 그와 더불어 이번 사건에 대해 해밀 경 본인이 직접 황제폐하가 계신 수도와 서부전선의 최전방에 갔다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과연 어느 곳부터 먼저 가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잠시간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번 정보가 제일 필요한 곳이 어느 곳인지를 먼저 가늠하자, 그는 이내 마른 체형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두 손으로 눈앞의 황금색 봉투를 고이 들고 집무실을 나섰다. 두두두두두. 약간의 동산을 끼고 있는 푸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게 눈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그런 곳을 힘차게 질주하던 사내는 이미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또한 장시간 말을 달려 왔기에, 이미 그의 골반뼈와 허벅지에는 극심한 통증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하나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제국의 상위 계층에서도 몇 안되는 고급인력으로선 감히 상상도 못해본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해야만 했다. 이러니 그를 보호하기 위해 중무장을 한 채 뒤를 따르는 자들의 입에선 연신 단내가 뿜어져 나왔다. "헉.... 헉....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버텨라." 연신 채찍질을 하는 와중에도 타고 있는 말에게 최면을 걸 듯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이미 삼일에 걸쳐 달려 왔다. 특급 비밀 문서를 가지고 있는 자에게 주어진 모든 게이트의 사용은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그 끝에나 있을법한 전쟁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해밀 경의 마음은 끝없이 초조함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다. 또한 그런 마음은 그를 따르는 호위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라인크란트 평원의 끝자락이라곤 해도, 적의 매복이 있을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모든 병참선들이 철저하게 관리가 되고 있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상황을 그들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털어내질 못했다. 때문에 그들의 무장은 최고급 풀 플레이트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니 제아무리 튼튼한 군마라고는 해도 버티어내질 못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각자 보유하고 있는 'B'급과 'C'급의 헤비 워커를 동원해 각 조별로 번갈아 가면서 틈틈이 말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물론 그 휴식이라는 것이 육중한 기사들이 잠시간 헤비 워커로 신형을 이동한 것이 불과했지만, 그래도 각자 두 필 씩의 말을 끌고 왔기에 3교대로 행해지는 일 덕분에 지금까진 수월하게 왔다. 하지만, 이제 말들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나타나자 그들의 마음은 조바심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정한 라인크란트 평원은 그 거대한 넓이를 자랑하며, 점점 그들의 눈앞으로 그 위용을 자랑한 채 멋들어지게 펼쳐지고 있었다. "헉헉. 국장님. 더 이상 무리를 하게 되면, 지금 타고 계신 헤비 워커가 수명을 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잠시간의 휴식을 건의 드립니다." 이미 타고 온 말들은 라인크란트 평원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내던져 버려야만 했다. 엄밀히 말하면 평원에 들어선 그날 저녁, 모든 군마들이 일제히 하얀 거품을 문 채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현재 해밀 경의 뒤를 따르는 기사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모두가 그를 호위하고자 했지만, 군마는 곧 기사도의 상징 그자체였다. 기사. 일명 나이트(Knight)라고도 불리는 말은 어원상으로는 사환 아이나 하인을 의미했다. 그것이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특히 무기를 휴대할 수 있는 특권이 인정된 젊은 남자를 호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이 특권은 부유한 명문 출신의 청년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겐 무기의 휴대가 허용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기사는 말을 탄 전사(戰士)로서, 그 자신이 지위 있는 자이거나 또는 다른 지위 있는 자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독립된 생활 수단을 가지고 있으나 때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웃사람이 주는 보수에 의존하기도 하였으며, 종종 실력에 호소하기도 했다. 전시에는 기사는 종자(從者)들과 함께 자기 영주의 야영지에 있거나 싸움터에서 전투 지휘를 했고, 간혹 영주의 성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로서 가장 인정을 받는 일은 따로 있었다. 모든 기사들이 숭배하는 기사도(chivalry)의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사도는 말(cheval)에서 유래했다. 그 때문에 기사라고 칭하는 자들은 각자 튼튼한 말을 꼭 지참하고 다녔다. 이들은 평화시에 자기 영주의 성에서 시중을 들었고, 제후(諸侯)들이 여가를 즐기는 연회나 마상 경기(馬上競技)등에 참석함으로써 그 자리를 한층 빛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사는 곧 말을 탄 전사(戰士)로 일컬어지며, 자기의 말을 명예로움만큼이나 지키고자 애를 쓰는 자들이다. 이런 관계로 해밀 경을 따르는 호위기사들은 각자의 말에 안위를 위해 몇몇의 수하들을 따로 추스려야 했고, 그것이 현재의 인원수로 줄게 된 원인이었다. 그 때문에 서부 전선사령부 정보국의 모든 경호를 담당하는 리오넬의 신경은 한층 더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국장님. 잠시라도 좋으니 휴식을 취하셔야만 합니다. 이는 기밀을 우선시하는 입장에선 매우 부득이한 경우이나, 안전과 책임을 져야만 하는 제 입장에선 꼭 이루어져야만 할 일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연신 해밀 경의 헤비 워커를 뒤따르며 그와 모든 이들의 안전을 위해 리오넬의 진심이 담긴 말이 전해졌다. 하나 해밀 경의 입장에선 모든 건 무시해야만 했다. 오로지 품에 담고 있는 문서가 빠른 시간안에 제국 최고의 검객이자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로멜쥬 대공에게 전해져야만 했다. 그 때문에 소모되는 헤비 워커들은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도 마음속은 심란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여서라도 이 문서가 제때 도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의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너무도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는 더 이상 잡스러운 생각을 잇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단 그가 타고 있는 헤비 워커가 조금 전부터 작은 트러블을 일으키는 게 문제였다. 뒤에서 연신 헤비 워커의 안전을 위해 휴식을 부탁하는 부하의 충심도 모두가 이런 일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더욱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고 있었다. "리오넬 경. 경도 알다시피...... 우린........ 우린 빠른 정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잠시 가슴이 터질 듯 하여 숨을 고르게 내쉬려고 했다. 하나 벌써 오일째 강행군을 해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체력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었고, 그가 가진 모든 물자들도 서서히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경. 우린 그때문에라도 한시바삐 대공각하가 계신 곳으로 가야만 한다. 경의 마음은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린 각자의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자들이다. 그대가 우리의 안전과 이 문서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듯이, 나 또한 빠른 시간안에 이 문서를 대공각하께 건내 드려야만 한다. 만약....... 만약에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난 경을 믿고 모두를 뒤로 한 채 오로지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앞을 향해 달릴 것이다." 결국 해밀 경은 부하들의 안전을 뒤로한 채, 자기 혼자 살려고 하는 못난 상관의 전철을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그의 평소 행동과는 너무도 다른 입장이었다. 이를 알고 있는 리오넬이다 보니, 상관의 말에 별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만큼 상관이 가지고 있는 문서는 매우 중요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푸른 초원 위를 상큼하게 지나가는 바람과 맞서며 그들은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떠올리며 주변을 경계하고자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부터 몽롱해지는 정신은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머릿속으로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는 의지만이 또렷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메르카 제국의 서북쪽에는 거대한 바다와 만나는 커다란 항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릇 대륙과 대륙을 이어주는 곳에는 푸르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지금 두 나라의 군대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포와그 해안에서는 그 신비로운 바다의 색깔이 붉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은 몇 해 전부터 서로간의 공방전을 주고받으면서부터 모든 이들이 치를 떨게 하는 사선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거대한 라인크란트 평원에 쳐들어온 적들을 쫓아내면 또다시 그들은 쳐들어왔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항상 이곳 포와그 해안에서 적들과의 마지막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그들로서는 본국으로 넘어갈 수 있는 마지막 기지인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으며, 결국 적들은 항상 이곳에다가 마지막 마지노선을 펼친 채, 죽음으로서 항전을 했었다. 그런 곳이었기에, 이곳 포와그 해안은 쌍방간의 치열한 전투로도 유명했지만, 메르카 제국의 입장에서는 이곳만 탈환하면 전쟁은 끝이 난다는 생각이 절로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런 포와그 해안이 넓게 보이는 장소에는 푸른 초원과 하얀 백사장이 만나는 곳이 넓게 퍼져 있었고, 그곳에 둥지를 튼 메르카 제국군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매우 빠른 몸놀림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병사들이 있는 곳 정중앙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천막 안은 바깥의 풍경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뭘까? 왜 자꾸만 우리 싸이가 눈앞에서 밟히는 것일까?" 내심 알 수 없는 번뇌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미 두 제국간의 전투는 종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동안 연신 적들을 밀어붙여 이곳까지 오게 된 메르카 제국군이었지만, 적들도 이곳에서만큼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구석까지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려고 덤빈다는 일화가 잠시 생각나게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때문인지 적들이 끝까지 사수하고자 하는 곳을 눈앞에 두고 연신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적들과의 교전에서 마지막 교두보를 탈환하지 못하는 수치심이 그에게 이런 번뇌를 가져온 것 같았다. 하지만 멜빈은 잠시 심호흡을 하며 간밤에 꿈에 보인 아들의 어릴 적 모습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떠올려 봤다. "후훗, 사랑스럽기만 한 녀석. 한참 사고만치는 어린 시절에도 남들과는 달리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네 녀석을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알고는 있니?" 평소 업무량이 많아 일에 파묻히다 보니 항상 집에 들어설 때면 사랑스런 아들의 잠든 모습만을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잠이 든 모습일망정 언제나 아들의 사랑스런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이 뿌듯해짐을 저절로 느끼게 해주었던 소중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그의 곁을 떠난 지 어언 십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멜빈은 항상 마음속에서 살아 숨쉬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불길한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마음은 항상 내 안에 살아 숨쉬는 것. 그 속에서 네가 살아 있으니 난 너를 느끼며 같이 호흡한단다. 아들아! 이 못난 아비에게 자랑스러움을 가져다주는 네가 오늘 무척이나 보고 싶구나."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생각에 슬쩍 손으로 눈주위를 문질렀다. 간만에 촉촉한 느낌이 다가왔다. 그와 함께 턱주변으로 까칠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멜빈은 이내 옆구리에 차고 있던 작은 소검을 꺼내어 들며 천천히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고 싶었던 그였기에, 천막 안에 놓인 작은 군용침대로 생활을 할지언정, 항상 깔끔하게 차려입은 제복과 그에 어울리는 환한 금발에 한치의 오점도 없는 모습을 부하들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그의 면도는 매일 아침에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스윽. 평소처럼 그는 부하들을 시키기 보단 손수 물가로 다가가 여럿 장교들이 보는 앞에서 숙련된 모습으로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부하들도 연신 상관의 모습에 걸맞는 품위를 가지기 위해 열심히 나름대로 면도를 하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국군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제국군의 최상층에 속하는 장교들이 매일 아침 모여 깨끗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모습을 보이자, 그 밑의 부하들도 각자 자신들의 직위에 걸맞는 모습을 보이고자 안간힘을 썼다. 이것은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나라 군대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일찍이 어느 나라의 군대도 지금의 메르카 제국군 같은 깨끗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보통의 지휘관들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아랫사람들을 부려 모든 편의를 제공받았고, 이것은 그 아래의 부하들에게도 이어졌다. 흔히 위계질서 운운하는 자들 치고,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데 메르카 제국군은 그 점에선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다. 아랫사람들을 시켜 모든 편의를 누려야 할 지휘관들이 손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기 시작하자, 그 밑의 지휘관들 또한 이런 상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이것이 맨 아래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판국이니, 그들의 위계질서는 다른 이들의 눈에는 한참이나 요상한 짓거리로 보여졌다. 그러나 옛날부터 맨 아래 하급병사들에게까지 존경받는 지휘관이 있는 군대는 곧 최강의 군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현재 메르카 제국군은 적의 최후기지인 포와그 해안에서 연패를 하고는 있었지만, 그 사기만큼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매일 아침 만나는 여러 고급 장교들의 얼굴에도 어두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스윽. 마지막으로 턱선을 따라 움직이던 멜빈의 손이 작은 흔들림을 가져왔다. 그 덕분에 그의 얼굴에 작은 혈선이 생겨나며 턱으로 선명한 핏방울이 작게 일어났다. 그것을 바라본 여러 장교들이 앞을 다퉈 입을 열려는 찰라, 멜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흐르는 시냇물에 손을 담궈 얼굴에 이는 핏방울을 쓰윽 문질러 버렸다. 이런 와중에도 모든 행위를 중지한 채 상관을 바라보는 부하들에게 멜빈은 씨익 웃음을 지어주었다. "간밤에 우리 싸이가 꿈에 보이더군. 아마도 그 흥분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러니 너무 부럽다는 표정들은 이만 지우도록. 후후훗." 약간의 농담이 섞인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장교들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감돌기 시작했다. "각하. 역시 오늘 벌어질 전투를 싸이 전하께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그러니 각하의 얼굴에 수심이 깊은 걸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잠시 모습을 보이신 것 아닌지요." 누군가가 멜빈을 향해 농을 건내 왔다. 이처럼 최고위 장교들이 모인 곳에선 간혹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멜빈은 부하의 시선에 고개를 살짝 움직여 주는 것으로 그들의 사기를 한층 더 복돋워 주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장교들이 저마다 손에 든 소검들을 닦으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역시 우리들에겐 각하 보단 싸이 전하가 수호신으로 걸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자꾸만 아랫 친구들은 각하만을 최고의 수호신으로 손꼽는지 이해가 안된단 말야. 그렇지 않나?" "글쎄. 아마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 것만을 최고로 치는 까닭이겠지. 우리야 싸이 전하가 어릴 적부터 하시는 모습을 직접 본 까닭에 그렇게 믿고 있지만, 그들이야 어디 감히 우리 싸이 전하를 볼 기회라도 있었겠나?" "맞아. 싸이 전하께서 매일 아침 창문가로 고갤 내미시면서 우리들에게 손짓을 하시던걸 기억하지? 우리가 아침마다 혹독한 훈련에 몸살을 앓고 있다 생각하시곤 기운 내라고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엔 선해. 그 덕분에 지금의 우린 엄청난 경지를 코앞에 두고 있지. 안그런가?" 모두들 오래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왜 그들이 메르카 제국군 중에서도 최고의 기사들로 불리는 지를 잠시 회상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당시의 기억으로는 치가 떨리도록 온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던 끔찍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나 그러한 고통을 참고 이겨냈기에 지금의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그들이 있기까지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던 최고의 주군이 있었기에, 그들은 이렇듯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화기 애애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들이 아랫사람들에게까지 그 여파를 끼쳐 지금의 메르카 제국군과 그중에서도 최강 제국군이라는 명예를 가져다주고 있었다. 물론 그에 맞서는 라인스트 제국군들 또한 죽기 살기로 덤비는 까닭에 눈앞의 고지를 두고 근 한 달이 넘도록 실강이를 해왔지만, 그들은 내심 믿고 또 믿었다. 언젠가는 저 눈앞의 고지가 자신들의 영토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것을......!! ********* 음... 많이 늦었지요? 누군가의 협박때문에 급히 한편 올립니다. 차마 이번 주말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궁색하나마 이번 챕터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글 한편 썰렁하게 올립니다. 아마도 싸이가 왜 안나오냐고 물으시는 분이 있을수도 있지요. 그럼 전 이렇게 대답해드려야만 한답니다. 왜 싸이가 멜빈의 꿈에 보였을까? 요것을 잠시 생각해보시라고요..........^^;; 그럼 전 주말쯤에 6권 끝내고 다시 찾아뵐께요. 많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_(__)_ 신룡의 후예 7권 7권. 싸이는 꿈을 꾼다. 무언가 따스한 곳에 온몸이 감싸이는 듯한 느낌이 한없이 포근하기만 했다. 그 덕분에 마냥 행복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그런 싸이에게 따스한 꿈은 지나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언제나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겼건만, 꿈속에 보이는 모습들은 대부분 기억의 저편 깊숙이 묻혀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그속에서 싸이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멜빈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빠~!’ 어릴 적에도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멜빈의 존재는 싸이에게 무척이나 낯설면서도 다정한 존재였다. 그는 언제나 사랑한다는 말과 어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곧잘 행동으로 보여주곤 했었다. 그렇다보니 싸이로서는 가슴속에 묻어두기만 했을 뿐, 쑥스러운 마음에 자주 미소만 지어주었다. 그런 싸이에게 멜빈은 언제나 따뜻한 아버지의 정을 전해주었다. 싸이는 꿈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 둘 떠올리며, 마치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자 더욱 더 멜빈에게 감사함과 존경스러움이 생겨났다. 평소 엘렌에게만 자주 보여줬던 미소와 애교스런 행동들을 그에겐 미처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생기게 되자, 싸이는 이순간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꿈속의 일일지라도 어린 싸이에서 이젠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는 한 명의 존재로 탈바꿈이 되는 시기였기에, 싸이의 이런 결심은 두고두고 이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빠! 그동안 어색하기만 해서 미처 따뜻하게 불러보지도 못했어요. 죄송해요. 언제나 당신께서 알게 모르게 제게 베푸신 큰사랑을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되었어요. 이 죄송한 마음 언제나 당신만을 존경하며 진솔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이순간부터 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아빠. 전 이 순간 당신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존경합니다.’ 싸이는 살며시 두 뺨에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이순간 가장 정직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 눈물은 그냥 흘러내린 것이 아닌, 기억 저편 속에 깊이 묻혀 있던 멜빈의 여러 모습들을 떠올리며 흘린 눈물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새벽녘에 잠시 잠이 깨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건만, 알고 보니 늦은 밤 침실로 찾아온 한 명의 방문객 때문이었다. 그 방문객은 어린 자신이 곤히 잠이 든 모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심스레 금색과 은색이 살짝 섞인 머릿결을 부드러이 어루만져 주었다. 너무 어린 시절이었다곤 해도, 미처 그러한 것들도 모른 채 살았었다는 자책감에 매우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언제나 바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늦은 밤이라도 꼬박꼬박 침실에 들려 잠이든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잠결에 잠깐 눈이라도 비비게 되면 그 넓은 품에 따스이 안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자장가도 불러주었다. 왜 미처 이런 일들을 모르고 지냈을까? 부스스 잠이 깬 자신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주던 어머니의 미소와 그 뒤에 담겨진 새로운 모습을 왜 미처 몰랐을까? 언제나 눈을 뜨면 어머니가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모든 것이 그 방문객의 사랑 때문이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면 언제나 어린 아들에게 보내주는 환한 어머니의 미소 너머에는, 그 방문객에게 보내는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었던 것을 싸이는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그러한 것들을 지금이라도 겨우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했다. 그저 아버지라는 존재가 떠오를 때마다 가슴 한켠이 따스해지고, 격한 감정에 의해 한쪽 구석이 짜르르해졌던 이유가 바로 지금의 꿈속에서 확연히 나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눈물을 흘린 채 울먹이는 싸이의 모습은 잠이 든 모습일망정 너무도 애처롭고 사랑스러웠다. 하나 그러한 내면의 변화와는 달리 싸이의 겉모습은 점점 성장을 해나가고 있었다. 푸른색의 액체 속에서 환하게 빛이 나던 몸은 점차 투명한 육체를 밖으로 유혹했고, 그동안 답답한 곳에 들어가 억눌려 있던 투명한 육체는 점차 답답한 육체를 벗어나고자 안달했다. 그로 인해 투명한 육체가 추구하던 자유로움은, 완벽에 가까운 새로운 육체를 원했고, 그것은 곧이어 어린 싸이의 몸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스르르륵. 투명한 육체가 원하는 새로운 몸이 되기 위해 작은 육체에 남아 있던 모든 것들은 한풀씩 벗겨지며 새하얀 속살을 고스란히 내놓았고, 생기를 잃은 회색의 껍질들은 힘없이 몸밖으로 흘러내렸다. 한번 두 번. 수없이 반복이 되는 와중에도 투명한 육체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 채 자꾸만 새롭고 완벽한 육체를 꿈꾸며 잠이 든 싸이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마치 서로 팽팽한 신경질을 벌이듯, 이런 게 좋아. 아니 난 이게 더 좋아 를 외치며 서로간에 활기찬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고, 그 결과는 점점 싸이의 몸 아래에 쌓이는 회색빛 껍질로 나타났다. 신룡의 후예 7 - 2 메테우스는 급작스런 싸이의 소식에 아연한 표정만 지었다. 분명 검술사부가 될 이와 함께 잠시 비밀스런 곳으로 수련을 간 싸이였다. 한데 느닷없이 나타난 존재가 그에게 당분간 혼자 되돌아가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러나 싸이의 소식을 전해온 이가 다름 아닌 갈리아스 옹이기에 그는 내심 이는 불안함을 극복해야만 했다. "자, 어서 서두르자꾸나. 싸이가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단다. 그리고 너! 잠시의 시간이 될지 긴 세월이 흘러야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잠자코 네 갈 길을 가고 있거라. 알아들었느냐?" "하오나....... 저 혼자 어찌......" "시끄럽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데, 네 깟 녀석이 어디를 끼여들려고 해?! 잠자코 네 갈 길이나 가고 있어. 정 안되면 엘렌이라도 먼저 보내줄터이니." "그러나 주군께서는........." "어허!" 메테우스는 갈리아스 옹의 부릅떠지는 눈길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어찌 잊을 수가 있겠는가. 눈앞의 존재는 지상 최강의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었다. 평생을 가부장적인 제도하에서 자란 메테우스에게 현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은 분명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한 존재가 말하는데 감히 말대꾸를 한다는 자체가 불경이었다. 더구나 눈가에 검은빛 도는 광석을 끼운 채 나타난 신비로운 모습부터 심상치 않은 듯 보였기에, 결국 메테우스는 갈리아스 옹의 엄포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저어..... 그럼 어르신! 제가 상그리알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주군께 꼭 전해주십시오. 전 반드시 그곳에서 주군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이넘이......!!" 메테우스는 갈리아스 옹이 윽박지르는 말에도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간절한 소망을 담은 눈길을 보냈다. 그로서는 목숨을 건 신념이 있었기에, 결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메테우스의 신념 어린 눈빛에 갈리아스 옹은 내심 대견한 녀석이라는 말과 함께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지었다. 결국 엘렌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불안한 생각과 느닷없이 나타난 갈리아스 옹의 얼굴에서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아무말없이 그의 손을 잡은 채 이동을 했다. 그 시각 갈리아스 옹이 공을 들여 만든 커티샥 에메랄드 호에서는 놀라움에 가득 찬 신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저 아이가 인간이라는 것이 진정 사실이란 겁니까?" "네. 한치도 틀리지 않는 진실이지요." 담담한 에르킨 여사의 대답이었다. "하면 저 아이의 눈에 담긴 일족의 기운은 어떻게 설명하실 참이시죠? 또한 대자연의 기운에 저렇듯 자연스레 동화가 되는 건 어찌 설명하실 겁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짝 다가와 앉으며 질문을 하는 제로니스의 모습에 에르킨 여사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글쎄요. 그건 오직 그분만이 아시겠죠. 로드(Lord) 제로니스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싸이 또래의 헤츨링이 저런 가공할 모습을 보일 수 있나요? 그건 절대 아니죠. 그럼 제 말에 조금이나마 신뢰를 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끄응. 그렇죠. 저 또한 에이션트에 접어들면서 겨우 맛본 대자연의 기운들이었으니까요. 어린것들이 멋모르고 까불어 대며 이야기하는 기운들과 현재 우리들이 느끼는 대자연의 기운은 천지차이죠. 그러한 것들을 저 어린 몸에서 자연스럽게 동화를 시킨다는 건 로드(Lord) 에르킨님의 말을 결정적으로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답니다. 하나......" "그럼 된 것 아닐까요? 어차피 저 아이의 몸에 담겨진 신성력은 저로서도 감히 감당 못할 크나큰 은혜랍니다.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까요?" 대화 도중에 말을 끊으며 못을 박는 듯한 에르킨 여사의 말에 제로니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 뭔가? 그분의 뜻이라니....!. 하면 수만 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절대자의 가문에 드디어 수장을 맞을 이가 등장한 것인가? 그런데 왜 유독 허약하고 나약하기만 한 인간의 육체를 빌어 나타났을까? 오랫동안 내려온 전설에 따르면 헤세르 대제께서도 맨 처음 신룡 어르신과 만남을 가졌을 때 인간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하나 그분만이 지니신 고유의 기운은 절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거대한 것들이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저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기운과 비교하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것이거늘. 허구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엔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일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데 이런 일들이 내 눈앞에서 직접 일어나다니...... 하긴 내 생전 처음 보는 낯설면서도 무시하기 힘든 기운이었 으니, 결국 나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제로니스로서는 현재 용족의 최고 전사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알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 제자가 될 아이의 신분은 너무도 놀라웠다. 결국 속 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답답한 신음성에 제로니스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로서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끄응..... 도저히 믿기 힘든 현실이군요. 로드(Lord) 에르킨 님께서 저 아이의..... 아니 저분의 몸에 성스러운 신룡의 피로 축원하시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셨을 때 하셨던 말들을 전 그 당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답니다. 어찌 하나의 존재에 그토록 다양한 기운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천족의 영혼이라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한 관계로 그저 나약한 인간의 육체로 어찌 우리들의 고귀한 피를 담고 살아갈 수가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지요. 한데 이 모든 게 그분의 뜻이라면, 또한 이 모든 일들이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이어져온 헤세르 대제님의 전설을 그대로 답습하는 일이라면 전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군요. 후후, 저 같은 미천한 자가 어찌 감히 저분의 검술 사부가 될 꿈을 꾸었는지...... 죄송한 마음 금치 못하겠습니다." 제로니스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마음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찌 보면 푸른 액체에 감싸인 싸이에게 하는 인사로도 보였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에르킨 여사에게 하는 인사로도 보였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소리는 그의 힘이 빠진 어깨에 작은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렇게 낙담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네에?" 순간이지만 제로니스의 눈이 기대감으로 일렁거렸다. "로드(Lord) 제로니스께서도 이미 마음속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겠죠? 만약 제로니스께서 저 아이에게 작은 계기를 주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결과는 쉽게 생기지 않았겠죠. 저 아이는 그런 아이랍니다. 항상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친절함과 남의 아픔도 같이 느끼려고 하는 따뜻함을 지닌 아이죠. 그런 아이가 스스로 가지게 된 힘든 과정들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는 오직 저 아이 혼자만이 알고 있답니다. 저와 가족들은 그저 포장된 겉모습만으로 판단했을 뿐, 진실 된 마음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이번 일로 증명이 되 었답니다." "그렇습니까? 전 여태껏 그런 아픔이 있는 줄은 미쳐 몰랐답니다." 제로니스의 눈에 언뜻 놀라움이 스쳐지나갔다. 그걸 본 에르킨 여사의 눈에 얼마 동안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싸이의 어린 모습이 떠올랐다. "후우, 저 작은 몸으로 거대한 아이언 트리와 씨름을 하며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노력한 아이랍니다. 그런데도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히 행동 했었죠. 그렇게나 속이 깊은 아이는 제 생전 처음이랍니다. 그런 아이에게 로드(Lord) 제로니스께서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었죠. 뭔가 속 안에 이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던 아이에게 큰 벽과도 같은 경계를 허물 수 있도록 계기를 준 제로니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에르킨 여사가 잠시 의자에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순간 깜짝 놀란 제로니스 또한 급히 일어나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과찬은 감히 받기 힘듭니다. 로드(Lord) 에르킨 님." "하지만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기도 하죠." ".......으음, 하지만 제가 한 일은 별일도 아니었답니다. 그저 지금껏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미를 어린아이의 몸으로 나타난 저분을 상대로 조잡하게 보여줬을 뿐입니다." "호호, 조잡하다니요. 그리고 아직은 우리 집안의 후손이랍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너무 어려운 존칭은 삼가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에르킨 여사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가로 손을 옮겼다. 눈앞에서 제로니스의 저런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곤 절대 상상도 못했던 일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감히 용족 최고의 존재에게 이토록이나 공경스러운 인사를 받을 존재가 몇이나 있겠는가. 어쩌면 그녀이외엔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일까? 제로니스는 에르킨 여사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너무도 과한 말씀입니다. 이곳 물질계와 온 우주의 균등함을 위해 평생 봉사하실 분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그분을 찬양하는 모든 이들에게 앞으로 무한한 존경을 받으실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런 분께 미천한 제가 함부로 행동한다는 것은 크나큰 은혜를 저버리는 일입니다. 부디 과한 말씀은 거두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로니스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이토록 극진한 모습으로 말을 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과거 이 땅에 왕림했던 헤세르 대제와 그가 남긴 위대한 가문의 수장이라는 직책은 매우 공경 받는 것이었다. 이제 그러한 직책을 책임질 존재가 나타났기에, 제로니스는 태초부터 내려오는 맹약에 따라 행동해야만 했다. 한데 그걸 방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에르킨 여사였다. 이건 명백한 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겨도 무난할 일이었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곧이어 에르킨 여사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뜻하는 바를 내심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우리 가문에는 이러한 말들이 전해져 내려온 답니다. '먼 훗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왕림할 이가 있으니, 그 존재가 가진 힘과 용맹함. 뛰어난 슬기로움은 모두가 우리 가문의 큰 영광이로다. 언제나 존경받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며 명 예로움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리라.' 이건 곧 이 땅에 잠시 머무르며 따스함을 온누리에 나눠주며 그로 인해 신의 은총을 널리 알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에 따라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하는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들만이 가져야 할 책임이랍니다. 이제 저 아이가 지닌 힘은 온누리에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모자란 것들이 많답니다. 그걸 일깨워 주며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저희들의 소임이기도 하죠. 그중에 한 짐을 로드(Lord) 제로니스께 서도 맡아주셔야만 한답니다." "영광, 영광. 너무도 커다란 하늘의 영광이옵니다. 감히 저같이 모자란 이에게 이러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께 제 모든 것을 받치며 살겠습니다." 에르킨 여사의 말에 급히 무릎을 조아리며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쿵쾅거리며 힘차게 날뛰는 일이었다. 감히 이 땅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헌신할 이를 책임지고 기른다는 것은 어떠한 명예보다 더욱 값진 일이었다. 순간 고개를 숙이며 가슴에 이는 감동에 몸을 맡기던 제로니스는 눈앞의 에르킨 여사가 한 말이 무얼 뜻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거대한 이는 아직까지 위대한 가문의 수장에 걸맞는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에르킨 여사의 말에 제로니스의 가슴은 더욱 심하게 두근거렸다. "호호, 쉽게 이해하시니 저로서도 감사드려요. 부디 앞으로도 편한 마음으로 우리 싸이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 아이가 먼 훗날 진정한 우리 가문의 수장에 오르게 되면, 그때 로드(Lord) 제로니스 께서 베푸신 은혜만큼 큰 영광스러움이 돌아갈 것입니다." 에르킨 여사는 속에 든 말을 편안히 내뱉으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오래 전부터 느껴왔던 자부심이 오늘 날 커다란 행복으로 나타난 것이다. 항상 남들에게 고귀한 신룡의 후예로서 체통을 지키며 행동했던 것도 모두가 이러한 일을 겪기 위한 것들이었다는 게 매우 자랑스러웠다. 이제 눈앞에서 편안하게 잠이 든 손자가 깨어나기만 하면, 여사는 그토록이나 소원했던 갈리아스 가문의 수장이 지닌 진정한 힘을 볼 수 있으리라 내심 기대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 땅의 모든 존재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이를 손자로 두게 된 자부심이 말년의 큰 기쁨으로 돌아오리라고 확신했다. 그런 여사에게 눈앞에서 공손한 모습으로 싸이를 올려다보는 제로니스의 모습은 더욱 강한 확신을 주고 있었다. 엘렌은 다급하게 움직이는 갈리아스 옹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건 두 노친네의 극성에 가까운 애정에 익숙해진 그녀로서 쉽게 보일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 우리 싸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거죠?" "그.... 그게 말이다." "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엘렌의 초조한 목소리를 들으며 갈리아스 옹은 최대한 빠르게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주변의 눈을 인식해 마차와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다음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휴우, 아무튼 그냥 가자꾸나. 일단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한 다음 네 엄마에게 자세하게 듣거라." 갈리아스 옹으로서도 쉽게 대답할 성질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딸에게 잠시 시선을 주는 것으로 모든 걸 설명하려고 들었다. 하나 엘렌의 얼굴에 이는 초조함과 불안함은 쉽게 수그러들 기색이 아니었기에 그는 모든 걸 에르킨 여사의 몫으로 떠넘겼다. '제기랄. 그녀석이 그렇게나 민감하게 반응할 줄 누가 알았단 말이냐. 휴우, 나로서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단다. 그러니 엘렌아! 네 엄마에게 자세히 듣거라. 지금 이 애비로서는 도저히 말로선 표현하기 힘들구나.' 이 땅에서 용족만큼 뚜렷한 모계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가족들의 일은 항시 가족의 수장인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되고 끝을 맺었다. 이건 수십 만년이 넘도록 내려오는 전통인 것이다. 인간들 또한 과거에는 모계 사회였다. 씨족사회부터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며 이어져 오던 전통은 인간들이 지닌 몽매함에 의해 힘있는 자에게 권력이 돌아감 과 동시에 사라졌지만, 드래곤. 즉 자랑스런 신의 자식들인 용족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갈리아스 옹은 엘렌에게 자세한 속사정은 이야기 해주지 못했다. 그로서는 에르킨 여사가 지닌 힘에 감히 월권을 할 욕심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론 현 실버 일족의 수장인 에르킨 여사와 갈리아스 옹의 대접은 같았다. 이건 서로를 존중해주는 또다른 전통인 것이다. 그로 인해 현 수장의 남편이 되는 자 또한 로드(Lord)라는 호칭으로 종종 불린다. 에르킨 여사가 제로니스에게 깍듯이 로드(Lord)라는 호칭으로 불러주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일족의 수장이 밖에서의 일들도 겸해서 해결 해줘야만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자연스레 생긴 전통이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대외적인 일들은 남편들이 손수 도와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엘렌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갈리아스 옹의 손에 몸을 맡긴 채 하늘 높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녀로서는 마법으로 쉽게 이동하면 되는 것을 이렇듯 귀찮게 이동하는 게 어리둥절했지만, 그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휴우, 쉽게 이동할 생각에 배 전체에 마법진을 그려놓으면서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들이 이리도 귀찮을 줄은 내 진작에 몰랐다. 에혀. 이 한심한 머리통." 엘렌은 귓전을 스쳐 가는 바람을 통해 아련히 들려오는 아버지의 한숨에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는 커다란 돛단배 형태의 범선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저게 이번에 아빠가 새로 개발한 물건이에요?" 그러나 미처 엘렌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갈리아스 옹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돛단배의 한 곳으로 빠르게 신형을 이동시켰다. 신룡의 후예 7 - 3 *팔라딘* "우리의 명예와 자랑스런 긍지 끝없는 영광을 당신께 바칩니다. 언제나 푸른 하늘을 굽어보시며 모두에게 어둠으로 평안을 주시는 당신께 이 모든 생명 받치옵니다. 부디 황금빛 밝은 광휘와 성스러운 투명한 옥체에 우리들의 긍지를 심어주소서. 언제나 당신께 다가가기 위해 자유로운 바람에도 우리들의 자랑스런 긍지를 담사옵니다." -팔라딘의 맹세 중에서- 따각따각. 어찌 들으면 힘이 빠진 듯한 소리였다. 쥬엘은 이틀 전 느닷없이 나타난 갈리아스 옹을 본 뒤부터 오래 전 이 땅에서 사라진 명예로운 기사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뇌리에 맴돌았다. 그런 걸 새삼스레 내색하기 보단 혼자서 골몰히 생각에 잠긴 채 하룻밤과 이틀 낮을 보냈다. 하나 메테우스에게는 무척이나 힘이 빠진 시간들인 모양이다. 그의 눈부신 갑옷은 여전히 자랑스런 기사의 자부심을 세워주고 있었으나 힘이 빠진 어깨에는 무거운 투구가 씌워진 채 자주 아래로 향해 있었다. 묵묵히 마차를 끌며 앞만 보고 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많이 상심한 모양이다. 결국 쥬엘은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다간 마차 뒤를 따르는 불쌍한 아이들의 신세가 너무도 처량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저어.... 메테우스 경." "..........." 묵묵부답이었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만 같았다. 다시 한번 말을 붙이기 위해 두 주먹을 살짝 움켜쥐었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메테우스 경." "................"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쥬엘은 그가 듣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경께서도 과거 이땅에 위대한 존재가 왕림하신 걸 아시고 계시겠죠? 위대한 검황이라고도 불리시는 분이시니까요. 경께서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신의 사제들은 특히 그때의 기록을 무척이나 소중히 여긴답니다. 왜냐면 이 땅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신 그분과 그 분의 밑에서 평생 신을 섬기며 뛰어난 무용을 자랑하시던 분들의 기록이 비밀리에 저희들에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죠." 막연히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릴 적 신의 사제로서 처음으로 검을 쥐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쥬엘이었다. 그런 그녀의 귀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 팔라딘. 신의 성스러운 기사. 오직 신께 경배하는 마음으로 검을 쥔 자들." 급히 고개를 돌린 쥬엘은 여전히 앞을 보며 고삐를 쥐고 있는 메테우스를 바라봤다. 그의 메마른 입술이 살짝 들려진 것이다. "네에, 맞아요. 바로 그분의 자랑스런 근위대이자. 신의 기운을 검에 담을 수 있는 진정한 기사 중에 기사인 성기사." 너무 기쁜 나머지 손뼉을 치며 맞짱구를 쳤다. 그러나 쥬엘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메테우스는 그저 묵묵히 갈길만을 가는 모습이었다. "후훗, 아시고 계셨군요." "아무래도...... 기사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존재들이니까요."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메테우스의 대답이 들려왔다. "훗, 그럼 왜 그렇게 힘이 빠지신 모습이시죠?" 순간 메테우스의 회색빛에 가까운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마치 모든 걸 잃어버린자 같은 그의 눈동자에 잠시 생기가 이는 모습이었다.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시죠?" 거의 감정이 메마른 자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쥬엘은 그 속에서 메테우스의 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절 믿으신다면, 지금의 경이 하고 계신 모습은 매우 불경스러운 모습이라는 걸 가르쳐 드리기 위해서죠." "워워~!" 쥬엘의 말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자 메테우스는 급히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왜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는 겁니까? 전 하늘을 우러러 단 한 점도 부끄럽지 않은 그분만의 기사입니다. 오히려 그런 말씀이 제게 모욕을 주고 있다고는 생각 하지 않으십니까?" 메테우스에게 기사라는 것은 목숨을 걸고 누군가에게 봉사해야만 한다는, 그만이 지닌 일평생 걸어갈 외길이었다. 한데 쥬엘이 던진 말은 너무 심한 모욕적 언사였다. 그러나 쥬엘은 살기를 자제하는 메테우스의 눈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훗, 역시. 하지만 당신께서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기사도에는 분명 이러한 의무가 있지 않나요? 주군께 평생 봉사하며 희생해야만 한다. 아닌가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전 그분만을 위해 이미 목숨까지 받칠 기사입니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기사로서 오직 주군을 위해 일평생 살아가겠다는 맹세는 이미 신께 제 영혼을 걸며 했습니다." 두 눈이 붉어질 정도로 힘을 주며 말을 하는 메테우스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사로서 자부심을 내팽겨 친 모습을 하고 계신 건 무엇 때문이죠?" "끄응......." 하지만 쥬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엔 차마 속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기사도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기쁠 때와 슬플 때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한데 잠시 낙담한 마음에 힘이 빠진 모습을 보였다고 이렇듯 모욕을 받아야 한다는 게 내심 무척이나 자존심 상했다. 그러나 메테우스는 곧이어 쥬엘의 말속에서 평생 자신이 가져야만 할 마음가짐을 깨닫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 그분께서 자신의 힘든 길을 끝까지 따라오겠다는 몇몇의 기사들에게 이런 말씀을 내리신 적이 있으셨죠. '언제나 가시밭길을 홀로 걸어야만 한다. 평생 한 분만을 마음 깊은 곳에 모신 채 끝없이 추구해야 한다. 스스로 그 분 안에 귀결될 때까지 웃음으로서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온몸을 불길에 담은 채 걸음을 옮긴다 하여도 언제나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신의 기사들이다. 그대들은 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선 그분께선 몸소 시뻘건 용암이 이글거리는 자갈밭을 맨 발로 걸으셨죠. 그것도 얼굴 가득 행복한 미소를 지으신 채. 만약 그분께서 끝없이 믿고 따르는 신앙이 없으셨다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끄응.... 할말이 없소. 미안합니다." 메테우스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지는 쥬엘의 시선을 감히 맞받아치지 못했다. 주군께 끝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지만, 쥬엘이 말한대로 자신은 지금껏 말로만 떠들었을 뿐이었다. 그런 메테우스에게 쥬엘은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아뇨. 제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답니다. 당신께서 자랑스러워하시는 그분께서 현재 어떤 일로 못 오시는 건지는 저 또한 모른답니다. 단지, 그 분을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면 더욱 힘있는 모습이 그분을 진정 기쁘게 하지 않을까요? 또한 당신에겐 그런 모습이 더 어울릴 것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메테우스는 쥬엘의 말에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순간 힘이 빠져 있던 그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곧이어 빳빳이 세워진 그의 목이 살짝 숙여졌다. "고맙소." 진심에서 우러나온 모습이기에 더욱 멋져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라 더욱 든든하군요." 살짝 마주 보며 고개를 숙인 쥬엘이 작게 칭찬을 건냈다. 하지만 메테우스의 굳은 얼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쥬엘 양께서 베푸신 은혜에는 이미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소. 하지만 그 전에 제게 했던 말에 대해선 확실한 답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나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잘 아시리라 믿소이다." 결코 모욕적인 언사에 꽁할 사내는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쥬엘은 이제껏 혼자만의 생각을 그에게 조심스레 가르쳐 줄 결심을 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신을 따르며 그분을 믿은 신앙심 하나만으로 무한한 명예로움을 몸소 보여준 이들이 있었죠. 그들을 우린 성기사라 불렀으며, 과거 성마 전쟁때 그분들이 이루어내신 기적들은 결코 쉽게 잊혀질만한 일이 아니었죠." 쥬엘의 눈동자에 푸른 하늘이 가득 담겨졌다. 그걸 바라보며 메테우스는 그녀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저러는 것을까 하는 고뇌에 빠졌다. 그러나 쥬엘은 많은 시간을 기다리게 하진 않았다. "오로지 신께 맹세하고 그분만이 내리실 수 있는 은혜를 몸에 담은 자. 당신께서도 그런 자긍심 강한 기사가 되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쥬엘의 말은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어찌 기사로서 그런 꿈을 꾸어보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메테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싫소. 난 이미 내가 목숨받쳐 모셔야 할 분이 계시오. 내겐 그 분보다 더 소중한 분은 계시지 않소." 역시 기대했던 것 만큼이나 간결하면서도 무뚝뚝한 답변이었다. 그걸 들으면서 쥬엘은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후훗, 그렇죠. 그 때문에 경께서는 반드시 팔라딘에 대해 아셔야만 한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팔라딘은 바로 신의 기운을 가진 분을 옆에서 모시는 기사들이랍니다. 오직 그분만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일평생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하지만, 가슴속에는 언제나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자세가 갖춰진 자만이 바로 신의 기운을 지닌 분을 옆에서 모실 수 있는 자랑스런 팔라딘이죠. 또한 팔라딘은 자신 앞에 위대한 이가 직접 왕림한다 해도 스스로 주군으로 모신 이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만 한답니다. 마흡한 제가 보기에도 당신은 그럴만한 배짱은 있지만, 결코 믿음 앞에서는 쉽게 신뢰를 주지 못한답니다." 쥬엘의 뜻 있는 말이 들릴 때부터 메테우스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왜 그녀가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일까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러나 쉽게 이해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신을 모시는 그녀가 내뱉는 말들을 쉽게 내버리지 말라고 아우성쳤다. 결국 메테우스는 마지막에 가서야 자신의 잘못된 점과 앞으로 해야만 할 일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것이었나요? 내가.... 오직 주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잠시의 태만을 보였다는 것은 곧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의지가 약했다는 것을 증명하는군요. 속죄하겠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절대 그 분만을 믿고 따를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 새로운 마음으로 그분께 속죄하겠소. 고맙습니다. 내게 미흡했던 것을 깨닫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쥬엘양." 메테우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쥬엘을 향해 인사를 올렸다. 평소 주군에게나 할법한 예의 바른 인사로 쥬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메테우스는 회색빛에 가까웠던 눈동자에 힘을 주며 점차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건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으나, 한가지 올바른 의지를 가진 인간이 보이는 모습은 결코 쉬이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물론 메테우스의 원래 눈동자 색이 회색빛으로 바뀔 수가 없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단지 원기가 빠진 눈동자가 그렇게 보였을 뿐. 그의 눈이 생기를 되찾기 시작하자 푸른 에메랄드 빛 눈동자는 한층 더 밝은 빛을 토해냈다. *********** 음...... 드디어 팔라딘이 나왔군요. 솔직히 기존에 나온 팔라딘에 대해서 많이 연구 해 봤답니다. 하지만 왜 팔라딘이었는지, 또한 그들이 어떻게 신의 기운을 빌어 쓰는지에 대해선 대부분 미진하더군요. 그래서 이 엉뚱한 듀크는 다른 생각을 했답니다. 대충 위에서 느끼셨을테지만, 제 글의 팔라딘은 과거에 이미 사라진 존재들이랍니다. 아마도 두어명이 남아 있는걸로 나오지만, 그건 아주아주 뒤에 나올겁니다. 아무튼 이번 챕터는 달라진 싸이의 모습과 신의 기운을 맛본 쥬엘.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멜빈이 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드래곤의 거대한 힘 앞에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 어느 미련곰탱이 사내도 나올 겁니다. 그럼 많이 기대해주시길 바라면서, 전 이만 병원으로 가볼까 합니다. 자꾸만 어떤 분이 뱃살에 꼽힌 작은 쇠붙이들을 내놓으라고 엄포를 놓으셔서, 얼른 뽑아다 드릴참입니다. ㅋ.ㅋ 그럼 즐독하세요. 신룡의 후예 7-4 엘렌은 잠이 든 싸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생전 처음 타본 커티샥 에메랄드호였지만, 아버지의 손길이 닿은 곳이라 그런지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신기한 것들도 많았고, 중앙에 거대하게 자리한 메인 홀도 멋졌다. 예전부터 초호화 여객선을 생각해봤지만, 지금 타고 있는 것보다 더 멋들어진 대형 여객선은 없다는 게 엘렌이 내린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평가이다. 그런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상층부에는 보통의 대형 범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 큰 부피를 차지한 채 서 있었다. 바로 배의 모든 곳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한 폭의 그림인양 이 곳 카빌라이 대륙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아무래도 둥근 원형의 유리창들 하나 하나마다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듯 선명하게 보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커티샥 에메랄드 호가 떠 있는 상공은 하얀 뭉개 구름들이 떼지어 몰려 있는 것이 발 아래로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엘렌은 그러한 곳에서 이틀을 보내며 많은 고뇌와 번민. 그리고 행복함을 맛보고 있었다. 고작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인 싸이가 현재 겪고 있는 황당한 일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꿈에 자꾸만 나타나는 천족의 모습. 또 어머니와 아버지의 뜻모를 시선이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걸 증명이나 하듯 싸이의 곁을 일정거리 이상 떠나지 않는 제로니스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라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후우, 싸이야. 이 엄마는 아직도 잘 모르겠구나. 어떤 것이 너에게 올바른 것인지, 또 네가 왜 그렇게 일찍 성장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만약 이러한 모든 것들이 네게 좋은 일이라면 이 엄마도 마냥 행복하겠지만,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구나." 엘렌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따뜻한 빛 속에 감싸여 있는 싸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로선 아들이 성장한다는 점에선 부모님과 같이 좋은 것이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미처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한 천족과의 조우는 심상치 않은 불안감을 가져왔다. 결국 엘렌으로서는 현실에 충실하자는 에르킨 여사의 말에 따라 조용히 아들의 곁에서 머물 결심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싸이가 담겨져 있는 푸른 액체는 조금씩 그 부피가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에르킨 여사가 예고한 것처럼 아들은 그 안에서 점차 성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싸이야. 이 엄마는 널 믿는단다. 비록 다른 어머니들처럼 네게 많은 것을 주지는 못하지만, 이 마음만은 언제나 너만을 향해 있다는 걸 명심하렴. 자, 사랑스런 우리 아기. 이 엄마의 많이 모자란 사랑을 받고 부지런히 크렴." 순간 엘렌의 손끝에서 파란빛이 일렁였다. 비록 다른 용족의 부모에 비해 나이가 어리긴 하나 그녀 또한 자식을 둔 어머니였다. 흔히 용족의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엘렌 또한 중요한 시점에 서 있는 아들을 위해 올바른 길라잡 이를 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었다. 바로 성스러운 가문의 피로 매일 마다 아들이 몸담고 있는 푸른 액체를 정화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는 육체의 고단함도 찾아왔고 푸른 액체의 아랫부분에 잠식된 지저분한 것들을 순수한 기문의 피만으로 치워야만 했다. 그러한 것들을 모두 순수한 가문의 피로 없앤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엘렌은 어머니의 힘이 어떠한 것인지 이 순간 가장 확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심정은 모든 것을 이겨내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 하던 이들도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에 감춰진 어머니의 힘을 꺼내는 것을 보며 안심하는 눈치였다. 제로니스는 또다시 순수한 어머니의 힘으로 정화를 시작하는 엘렌을 바라보며 참으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저 어린 나이에도 저렇듯 의젓하게 힘을 낼 수 있을까? 저것이 바로 위대한 어머니의 힘인가? 모든 생명을 창조하고 평생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식에게 잘못된 점들을 깨우쳐 주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것인데, 저 아이는 모든 걸 아낌없이 희생하려는 마음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 이것이 바로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일까?' 내심 부러운 듯 엘렌을 바라보던 제로니스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본인이 생각해봐도 우스웠던 것이다. 이제껏 용족의 전사로서 강한 자부심하나로 살아온 그였다. 그에게 뒤를 돌아볼 여유는 많았지만, 이토록 가까이에서 신의 영혼을 지닌 존재에게 허물없이 사랑을 전하는 엘렌의 모습은 무척이나 낯설기만 했다. '하긴, 저 아이가 보통의 아이는 아니지. 위대한 우리 용족의 수장이셨던 분의 단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니........' 물론 현 실버 일족의 수장인 에르킨 여사 또한 신룡 헤르아킨의 손녀였다. 그러나 그 다음 대를 이끌 이는 오직 엘렌뿐이었다. 그녀 또한 위대한 신룡 헤르아킨의 적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엘렌이 어머니의 힘으로 정화를 해주는 싸이는 실버 일족뿐만 아니라 모든 용족의 지배자가 될 존재였다. 그건 이미 제로니스가 결정한 일이었고, 그의 이러한 결정에 반대를 할 존재는 없을 것이다. 아니 있어서는 절대 안되었다. 눈앞의 싸이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힘을 각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믿고 있었다. 먼 훗날 이 땅의 모든 용족들이 싸이에게 앞을 다투어 무릎을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러 볼 것이라고. 그리고 자신은 그런 이들의 제일 앞에 서서 이곳 물질계의 평화를 위해 모든 걸 받칠 것을 맹세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상상만 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마냥 뿌듯 해지고 행복해졌다. 그 때문에 한시도 싸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조금의 실수도 결코 용납 못하는 고룡 특유의 아집도 있겠지만,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고귀한 존재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을 그는 쉬이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렌은 안색이 파리해지도록 정화의 힘을 짜내고 있었다. 순수한 신룡 가문의 피로..........! 투명한 원형의 장막 안에는 고운 이마로 땀을 흘리며 온 힘을 다하는 엘렌의 모습이 여과없이 보여지고 있었다. 그 뒤에 서서 주변 곳곳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뿌리며 보호를 하는 제로니스도 보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지랑이처럼 주변의 기운들을 동화시키는 다섯 존재들은 저마다 갈등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모두들 어떻게 할거지? 이미 저분은 스스로 자각만 하지 못하셨을 뿐 우리들이 과거에 나눠드렸던 힘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계신다. 이제 우리가 결정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언제나 자유로운 곳을 떠다니는 바람이 답답한 곳에 묶여버린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묘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이제 저분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들은 움직여야만 하겠지?!" 마치 속삭이는 듯한 바람에게 동조를 보이는 촉촉한 이슬의 대답이었다. "후우, 그게 그리 쉬운 건 아니잖아. 이젠 저분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감히 들여다볼 능력도 안되는 처지야. 만약에라도 저분이 깨어나셔서 성스러운 기운을 주변 이들에게 나눠줄 결심을 하신다면 우린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데..... 생각들 해봐. 우리가 가진 힘이 보통의 힘인가를." 무언가 걱정이 가득한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번개의 답변이었다. "큭큭큭. 우스운 짓들 하고 있군. 그런 고민이 왜 필요한가? 어차피 태고적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이다. 제아무리 물질계가 신들의 기운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곳이라곤 해도, 신들이 그곳에 왕림하면 반드시 그에 따른 기운을 지닌 자들이 나타났다." 역시 뜨거운 화염은 모든 걸 힘으로만 부수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불과는 극성인 이슬의 촉촉함은 그 뒤를 따를 파장에 걱정스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프레임. 동화를 할 수 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아. 오로지 저분만을 믿고 따르며, 위대한 이 앞에서도 감히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거부할만한 존재는 불안정한 인간에게선 그리 찾기가 쉽지 않잖아." "시끄럿. 그렇게 답답하게 생각할 필요가 뭐 있어? 우린 그저 저분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다면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돼. 감히 넌 우리들의 지도자를 믿지 못하겠다는 거야?" 발끈하며 외치는 프레임의 머리에는 활활 타오르는 불의 기운이 몰려 있었다. 그걸 바라보며 클라우드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하긴. 프레임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이런 잡다한 생각들은 저 분을 믿고 따라야 할 우리들에겐 큰 장벽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프레임. 이건 생각해 봤나? 너와 우리들이 지닌 순수한 힘이 물질계와 모든 명왕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조용한 듯 다가오는 바람의 기운이었지만, 프레임은 그 속에 담긴 라이어나의 순수함을 맛봐야만 했다. "흥. 그래. 제아무리 위대한 신이라고 설치며 온갖 폼을 잡는 이들이라도, 그들은 우리들에게 감히 억압과 구속을 할 수 없어. 이건 태초에 창조주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사명감 때문이야. 그정도는 나도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너희들은 뭘 걱정하는 것이지? 싸이님께서 비록 나이는 어리시다 해도 우리들에게 했던 그 많은 일들을 한번 떠올려 보란 말야. 어디 그분이 자기만의 욕심을 위해 우리들을 이용하신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나? 그건 아니잖아. 저분은 작은 마나 한 톨에도 소중한 친구를 대하시듯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신 분이야. 오히려 우리들처럼 거대한 기운을 움직이는 이들에게 대항 하실지언정 결코 약한 이들을 억압하고 괴롭히시진 않았잖아. 안그래?" 순간 거대한 장막 앞에 서 있던 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건 사실이다. 예전에 아기 시절이실 때 싸이님이 내게 하셨던 것을 떠올려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프레임 넌 이걸 간과하고 있다. 만약에라도 저분이 친인들에게 우리들의 기운 을 나눠주실 생각을 하신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저분 성품상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이다." 라이어나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프레임의 말에 충분히 납득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현재 느끼는 갈등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 바로 싸이가 평소에 보여주는 주변 이들을 아끼는 성품이었다. "훗, 웃기는군. 혹시 라이어나 네가 지금 말한 게 팔라딘을 뜻하는 거라면 더욱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면 인간들의 작은 육체론 우리들의 거대한 기운을 감당치 못할테니까. 최소한 드래곤은 되야지 제대로 된 기운을 가져다 쓸 것이 아닌가. 안그래?" 프레임의 뜨거운 시선에 담긴 진실을 나름대로 합당하다 여겼지만, 내심 불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드래곤들처럼 가식 없는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이들이라면 이러한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하나 인간은 다르다. 복잡한 의식구조와 짧은 수명으로 인해 그들은 이 땅에 많은 신화와 고통을 동시에 남겼었다. 과거 위대한 헤세르 대제를 따라 이 땅의 평화를 지켰던 이들 중 많은 수가 팔라딘이라는 성스러운 신의 기사로 불렸으며, 모든 종족 앞에서 스스로 교만함을 들어냈었다. 그때부터 이 땅은 인간과 유사종족들의 갈등으로 숱한 피를 뿌려야만 했고, 그로 인해 순수한 대자연의 기운들은 갖은 신음을 토해내야만 했었다. 그것은 바로 팔라딘을 이끌 이의 부재와 함께 나타난 폐단이었다. 그때부터 과거의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까 두려운 나머지 깊은 생각에 빠지는 정령왕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네 명의 존재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가 있었다. 바로 너바나 쇼크였다. "이 봐. 우리 입 아픈 소리는 그만 하자. 대신 싸이님이 깨어나시기 전에 어여 움직이자고." "으응?" 잠시 침묵으로 깊은 생각에 몰입했던 이들이 저마다 의아한 듯 고개를 들자, 너바나 쇼크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뭘 그리 머리 아프게 고민해. 각자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테고, 그다음은 쉽게 생각해도 되잖아. 힘을 준 존재가 너희들이라면 힘을 빼앗을 수도 있는 이들도 바로 너희들이야. 아, 물론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법칙에 따라 한번 팔라딘이 되면 죽는 그날까지 명예롭게 살아야 한다는 건 나도 잘 알어. 그러나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어. 왜냐면 우리들과 같은 존재들이 헤세르 대제님의 주변엔 없었기 때문이야. 자, 그럼 쉽게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들지 않아?"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는 라이어나와 클라우드였다. 하나 그와는 반대로 프레임은 무척이나 기쁜 표정이었다. 단지 그의 발 아래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땅꼬마 로콘 만이 애매모호한 태도였다. "으음, 글쎄. 쇼크 네 말대로라면 좋겠지만, 현재 물질계에는 정령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잖아. 그건 또 어떻게 할 꺼야? 분명 우리들이 싸이님의 종자들에게 기운을 나눠준다면, 그로 인해 물질계는 한동안 정령사들로 넘쳐날텐데...! 그건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으음.... 맞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팔라딘이라고 해도 그들은 평소에 정령들과의 친화력을 위해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할텐데. 그건 어떻게 처리해야만 좋을까?" 역시 땅의 지존답게 조용한 침묵과 함께 깊은 관찰력이 있는 로콘이었다. 역시 정령왕들에게 이러한 골치 아픈 문제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대자연의 기운을 움직이며 때때로 정화할 곳에는 많은 기운을 쏟기도 하고, 모자라는 곳이 있다면 나눠주기도 하는 평화롭고 순리적인 일이 가장 어울렸다. 그런 관계로 로콘의 지적에 따라 깊은 생각에 빠졌던 이들은 곧이어 쇼크가 내민 결정에 모두들 탄성을 지었다. "좋아. 우리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모든 건 신의 뜻대로...!! 너희들 생각은 어때? 우린 그저 싸이님께서 원하시는대로만 한동안 움직이는 거야. 물론 자잘한 것들은 우리가 뒤에서 몰래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은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만 움직이는 거야. 물론 몇 가지 문제점들은 생기겠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 해결해줄 이가 있어." "혹시 에르킨 님을?" 순간 라이어나의 입에서 에르킨 여사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마치 맞짱구라도 치는 양 로콘이 손뼉을 치며 좋아라 말을 했다. "그래. 어차피 싸이님께서 제대로 된 자각을 하시려면 한참 후가 될 거야. 그때까지 모든 책임은 쇼크의 말대로 에르킨님이 가지고 계시잖아. 또 이건 싸이님만의 문제이기도 하고." 로콘이 쇼크의 의견에 찬성을 하고 나오자 클라우드는 라이어나와 잠시 시선을 교환한 후 턱을 쓰다듬으며 불안한 듯 한마디했다. "흐음... 과연 그래도 될까?" "잘 생각해봐. 원래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우린 그저 싸이님께 믿음을 가진 자들과 그 중에서도 인정받은 자들에게 힘을 나눠줘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들이잖아. 또 그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선 우리 또한 자세히 듣지 못해서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까 쉽게 가자. 우리들은 그저 태고적의 약속만 지키고 그 이외의 일은 모두 에르킨 님과 상의하자. 그러다 보면 우리들의 일도 체계적인 것들이 짜여질 테니까 그리 큰 걱정은 안해도 될 듯 싶은데..... 너희들의 생각은 어때?"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 쇼크와 흐뭇한 미소를 짓던 로콘의 시선이 프레임을 향하자 프레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뭔가 미진한 듯한 말을 흘렸다. "흠, 나도 그 의견은 맘에 드는데, 한가지 걸리는 게 있어. 그 골통. 현재 그 골통이 싸이님 곁에서 알짱거린단 말야. 그 일만 해결이 되면 나도 무조건 찬성이다." 역시 과거에 은원이 깊이 사무친 모양이었다. 모두들 쉬쉬 하는 분위기에서 가장먼저 갈리아스 옹의 이름을 언급한 프레임은 다른 이들의 눈치를 살피며 너희들도 결정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쩝. 그 괴물이 문제군. 하지만 모든 일족의 문제는 수장들이 책임지는 거야. 뭐, 에르킨 여사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음, 그게 쉽게 될까? 그 자식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저런 요상한 물건만 만들어 내잖어." "괜찮아. 요샌 그래도 싸이님 보느라 정신이 쏙 빠져서 싸이님에게 이로운 것들만 만들고 있어. 그러니까 클라우드 말대로 에르킨 님이 해결하라고 놔두자. 설마 지까짓게 손자 앞에서 망신살 뻗치고 싶겠어?" "휴우, 역시 갈릴네오가 찍히긴 무척 찍힌 모양이구나. 그래도 얼마 전에 일로 몸 안에 새로운 기운이 맴돌던데,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너무 구박하지는 말자." 라이어나가 유일하게 갈리아스 옹을 편들며 찬성의 표시를 하자, 다섯 명의 정령왕들은 속안에 이는 찜찜한 것들은 이다음 생각하기로 하고 각자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바로 이다음 싸이를 따를 존재들에게 합당한 힘을 부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신의 기사라고 불리는 팔라딘이라는 성스러운 힘의 경지를. 신룡의 후예 7 - 5 싸이는 꿈을 꾼다. 푸른 창공을 박차고 올라 마음껏 하늘을 날던 투명한 육체에는 어느 덧 작은 띠가 길게 뒤를 따르며 따스한 빛을 내뿜는 영혼을 부드럽게 감싸기 시작했고, 점차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띠가 부드럽게 영혼을 감싸고 돌며 투명한 육체까지 감싸는 순간이 되자,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의식은 차차 밝아져 오는 투영의 기쁨을 맞이하고 있었다. '뭘까? 한없이 편안하기만 한 이 느낌은?' 순간 무의식을 경험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때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싸이는 무의식 속에서 둘로 나눠져 있던 뚜렷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과는 다른 존재를 볼 수가 있었다. 하나 지금 겪고 있는 현상은 너무도 신비한 느낌이었다. "형아? 형아 맞어?" 마치 믿을 수 없다는 듯 의문에 찬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싸이니?" "헤헤, 진짜 형아네. 형아 어떻게 된 거야?" "그.... 그게 잘.....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 라빈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얼떨떨한 느낌뿐이었다. 그러나 어린 싸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우웅.... 그렇구나. 헤헤, 근데 형아. 지금 뭐해? 나 지금 무지 심심해." 결국 싸이의 해맑은 목소리가 또로록 들려오자 라빈은 짧게 웃음을 지었다. "쿡, 녀석. 여전하구나." "헤헤,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히히. 근데 형아!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야? 나 좀 전에 일어났단 말야." "으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라빈은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어 싸이에게 기대 어린 말을 건냈다. "웅,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이제까지 코하고 잔 거 같어." 그순간 청명한 싸이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여전히 어린아이의 심성을 간직한 귀여운 목소리였다. "그래? 근데 인석아. 지금 네 녀석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코하고 잔다고 그러니?" 라빈은 싸이의 그런 면이 귀여워서 농담처럼 구박을 해줬다. 그때였다. 싸이에게서 너무도 놀라운 말이 들려져 왔다. "헤헤, 그래도 누나는 이게 더 좋다던데? 내가 나이가 들면 무지 징그럽대.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키가 큰 멋진 남자가 되고 싶다고 졸라도 맨 날 방해만 한 걸. 치. 근데 이게 뭐야. 왜 갑자기 자고 일어났는데 내 몸이 이렇게 큰 거야? 우씨. 생각한 것보다 무지 거추장스러워." "뭐...... 뭐야? 몸이 커져?!" 역시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걸 느끼며 라빈은 크게 몸을 떨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지?" "으응? 형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 아냐. 별 것 아냐. 단지 싸이 네가 좀 더 의젓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라빈은 다급히 생각나는 대로 둘러댔다. 그러나 싸이는 여전히 라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듯 했다. "아앙. 그렇구나. 참 근데 형아! 나 코하고 잠자면서 오랜만에 꿈을 꿨다. 근데 꿈속에서 아빠가 나오잖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마구 눈물이 나와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 헤헤." 싸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라빈은 파란 번개에 전신을 들어낸 사람처럼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건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 뭐야?! 왜 싸이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것이지? 아니야. 애초에 저 아이와 난 하나였다고 할 수는 있어. 그러나 우린 분명 각자 다른 영혼을 가진 상태란 말야. 한데 왜 내가 꿈속에서 느낀 감정과 저 아이가 말한 꿈속에서의 감정이 똑같은 것이지?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라빈은 복잡해져 오는 마음을 급히 다스렸다. 현재 무의식의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던 싸이와의 조우를 경험하고 있었기에 다급히 마음을 다잡은 것이다. "싸..... 싸이야!" "으응? 왜? 나한테 무슨 할말이 있어?" "음. 그게 말이야." 뭔가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만약 현재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현실로 들어난다면 그 다음에 자신이 받을 충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빈은 자꾸만 보채는 싸이를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야만 했다. "형아. 도대체 뭐야? 뭔데 형아만 알고 넘어가려는 거야? 나도 궁금하단 말야. 나한테도 좀 가르쳐 줘~! 응? 응? 좀 가르쳐 줘." 결국 칭얼대기까지 하는 싸이의 목소리에 라빈은 용기를 내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 안에 이는 의문스런 것들을 내뱉었다. "싸이야. 이걸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걱정이 되서 그런단다. 그러니까 이 형아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응? 응. 알았어. 어서 말해 봐." "이건 너와 나한테는 무지 중요한 일이야. 만약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게 맞다면, 앞으로 우린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만 해." "우움. 뭔 말인지 나 잘 모르겠어." 아직은 어린 싸이다보니 쉽게 이해될 말이 아니었다. 라빈은 그것을 알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어야만 했다. "만약 너와 내가 이렇게 만나는 일이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육체에 영향을 끼친다면....." 라빈은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싸이에게 걱정스러운 말들을 전해줬다. 싸이 또한 라빈의 말을 들으면서 매우 걱정이 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듯 싶었다. 눈으론 직접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의 육체에 깃들어 있는 공유자들이기에 상대방의 표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둘의 대화는 제법 진지하게 이어졌다. 엘렌은 며칠째 계속되는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그걸 뒤에서 바라보는 에르킨 여사와 갈리아스 옹은 이제 딸이 다 큰 성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녀석. 많이 힘들텐데 어찌 저리도 잘 참누." "호호, 달리 우리들의 딸이겠어요? 그나저나 제로니스님께서 고생이 많으시군요." 에르킨 여사가 엘렌의 뒤에 앉아 있는 제로니스를 보며 고마운 마음을 두 눈 가득 담았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생각은 남달랐다. "흥, 제까짓 녀석이 뭐가 대수라고 저렇게 폼만 잡고 앉아 있는거야? 감히 우리 싸이한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군. 쳇, 꼴 보기 싫어." "아니 이 양반이 무슨 그런 섭한 말을 해요? 그러다 제로니스 님께서 들으면 섭섭하다 여기실 거에요." 제로니스를 보며 핀잔에 가까운 험담을 늘어놓는 갈리아스 옹에게 에르킨 여사가 펄쩍 뛰며 말조심을 시켰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으로서는 쉽게 참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뭘?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거지만, 저 녀석한테 우리 싸이의 모자란 검술실력을 손봐달라고 부탁한 게 누구야? 바로 나잖아. 근데도 일언반구 고맙단 말 한마디 안하는 녀석한테 무슨 말을 조심하란 거야? 오히려 섭섭한 건 나라고. 알겠소?!" "으음, 당신이 그렇게 공치사를 좋아하는 분인 줄은 미처 몰랐군요." 순간 에르킨 여사의 신음성을 들은 갈리아스 옹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결코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은 아니었다. 단지 기분 나쁜 검사의 살기를 풀풀 내뿜은 채 싸이 주변을 맴도는 제로니스가 고까워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은 이런 마음을 쉽게 표현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치사한 쫌팽이로 낙인찍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싸이가 들어 있는 푸른 액체가 작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갈리아스 옹에게 제일 큰 아군은 싸이였던 모양이다. 지금껏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있던 푸른 액체가 심한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다. 출렁. 처음에는 잔잔한 호수에 작은 돌멩이가 담겨지며 이는 작은 파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파문은 점점 크게 번져나가며 싸이가 담겨져 있던 푸른 액체는 서서히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엘렌은 그 앞에서 피곤한 몸에 잠시 찾아든 수마로 인해 깜빡 잠이 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잠결에 아련히 들려오는 어린 싸이의 해맑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다급히 싸이를 바라봤다. 아무리 잠결이었다곤 해도 너무도 생생하게 들려온 싸이의 목소리에 급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던 엘렌은 서서히 진동을 전하는 푸른 액체를 보며 환호를 보냈다. "싸. 싸이야! 엄마 여기 있어. 싸이야~!!" 다급한 고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푸른 액체 속에서 잠이 든 싸이를 재차 확인하며, 혹여라도 꿈속에서처럼 어린 아들이 그녀의 손을 벗어나 먼 곳으로 날아 갈까봐 급히 아들에게 그녀의 존재감을 일깨워주려 했다. 한데 그순간 놀라운 일이 생겼다. 푸른 액체 속에 담겨진 채 며칠 동안 미동도 없이 얌전히 있던 싸이의 몸이 서서히 움직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제일 먼저 발견한 엘렌의 입에선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새어나왔다. "아악~! 싸....... 싸이야! 힘을 내. 우리 아들 장하지?! 좀 더..... 좀더 힘을 내~!" 순간 엘렌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비명성이 확실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엘렌이 이렇듯 다급한 표정을 보일 까닭이 없었다. 그순간 엘렌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과거에 그녀 또한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 당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녀도 싸이처럼 또래의 헤츨링보다 빠른 탈피를 경험했었다. 그 때문인지 남들보다 무척이나 힘이 드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직 힘이 부족한 탓인지, 위대한 가문의 피로 형성이 된 보호막은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 안에서 이제껏 모자란 영양분과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기운을 맛보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힘들을 모두 소화하고 나서도 푸른 보호막을 벗어나기는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찾아들기 시작하는 달콤한 유혹은 모든 걸 포기하고 새로운 세계에서 즐겁게 살자는 환상의 연속이었다. 비단 그건 엘렌만이 겪었던 일이 아니었다. 모든 용족들이라면 의당 신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나는 탈피의 순간은 기나긴 용족의 삶 중에서 가장 힘이 드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새롭게 받게 될 힘은 아무런 노력 없이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남들에게는 잠시간의 고통으로 보였지만, 용족의 모든 이들은 알고 있었다. 탈피의 마지막 순간이 가장 힘이 드는 순간이라는 것을. 갖은 애를 쓰며 몸 안에 이는 기운들을 내뿜으며 벗어나려고 해도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점점 의지는 약해져 가고, 육체 또한 쉽게 포기라는 것을 떠올린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 것이다. 그 때문에 처음 탈피의 시간에 접어들게 되면 모든 어머니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식들에게 전해준다. 그것이 비록 의식이 없는 자식에게 순수한 피로 전달이 되는 것이지만, 희생은 결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어쩌면 축복 받는 탈피에 성공한 자식과 함께 긴 동면을 함께 가지는 이유 또한 바로 이 우스워 보이는 희생 탓일 것이다. 그만큼 용족의 탈피는 부모와 자식 모두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신에 깃 든 힘을 내뿜는 것은 누구나 쉬운 일이다. 자랑스런 용족이었기에 소모한 힘을 다시 쌓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힘을 누군가에게 전부 전하는 일이라 면 그건 쉽게 내뿜고 쉽게 회복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엘렌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목이 쉬어 말을 못하게 되더라도 지금의 목소리를 듣고 제발 아들이 힘을 내길 바라는 어머니의 순수한 정이 듬뿍 담긴 모습이었다. 그걸 바라보면서 제로니스의 두 주먹은 힘껏 쥐어졌다. 그 또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급히 뒤에서 달려오는 두 존재를 위해 잠시 자리를 양보해야만 했다. "우리 싸이 파이팅~! 힘을 내. 그 까짓 쓰잘데기 없는 유혹은 훌훌 털어 버리고, 만약에라도 까부는 놈이 있으면 힘껏 내질러 버려라. 싸이야. 알았지?" 제일 먼저 달려온 이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 또한 마지막 순간에 꾼 꿈속에서 평생 잊지 못할 달콤한 유혹을 당해봤다. 그건 쉽게 포기 못할 만큼 많은 미련이 남는 것들이었다. 그 때문에 무척이나 고민을 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래서 인지 그의 말은 상당히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에르킨 여사가 내뱉은 목소리에는 그보다 더 화려한 것들이 담겨져 있었다. "싸이야~! 만약 어떤 놈이 상판대기를 내밀며 살살 쪼개면 무조건 턱주가리를 날려 버려. 그 놈들은 전부 네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미련덩어리란다. 그걸 무조건 패버려야만 네가 아주 시원하게 나올 수 있단다. 그러니 어여 패. 지금 당장 눈앞에 몽둥이를 떠올리면 나타날 꺼야. 그걸로 무조건 패버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커다랗게 헛스윙을 하는 에르킨 여사의 모습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 상황에서 그런걸 시시콜콜 기억할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각자 오래 전에 경험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었기에, 그들은 각자 그 시절에 받았던 달콤한 유혹들을 떠올리며 부디 싸이가 아무 탈없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만큼 현재 싸이가 처한 상황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생에 딱 두 번밖에 없는 탈피의 순간들이지만, 나이가 들어 고룡으로 접어들때의 탈피와는 달리 헤츨링에서 갓 성룡으로 탈피하는 순간은 무척이나 위험도가 높았다. 오죽하면 50%의 성공률도 안 되는 극악한 환경이라며 신룡 어르신이 헤세르 대제를 윽박질러가며 새롭게 개선시켰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개선을 했다고 해도 의지가 약한 존재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록 예전과는 달리 실패율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자식을 잃고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일로 인해 다른 일족 모두가 신룡 헤르아킨을 존경하는 것이다. 일족모두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준 존재를 존경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를 존경할 것인가. 그 때문에 헤츨링에서 성룡으로의 탈피가 이뤄지는 순간에는 모든 용족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것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져 왔다. 그리고 싸이의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며 여기 세 명의 고룡 어르신들과 갓 어른에 접어들어 부모가 된 엘렌의 피튀기는 응원의 현장은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싸이는 편안한 상태였다. 용족 모두가 탈피의 마지막 순간에 겪게 되는 유혹은 싸이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단지 싸이는 알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하며 크게 신음을 토할 뿐이었다. ************************* 멜빈은 며칠동안 계속 되는 피말리는 전투 현장에서 멍한 눈을 떴다. 그와 참모들이 세운 작전 계획은 매우 단순했다. 적들이 기를 쓰고 막고 있는 곳을 향해 일단의 정예병들을 투입해 쓸어버리면 되는 아주 간단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커다란 벽을 만나야만 했다. 바로 죽음으로 내몰린 적들의 반격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심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멜빈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이미 모든 병사들에게 소형 헤비 워커로 무장시키고 적의 포화를 뚫고 들어가게끔 조치도 취해줬다. 그러나 적들은 사암으로 지어진 성 안쪽에 수십 대가 넘는 대포를 설치해 놓고 있었다. 그로 인해 힘들게 성벽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간신히 극복하고 들어서는 메르카 제국군의 정예병들에게 적들은 직격에 가까운 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이 부분이 가장 힘이 들었다. 이것을 어떻게 하든 극복해야만 적들을 몰아낼 수 있건만, 적들은 추호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많은 피해를 당해야만 했다. 비록 병사들의 사망률은 현저히 낮아졌지만, 그만큼 소형 헤비 워커의 파손이 많아졌다. 이건 곧 국비에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 아무리 작은 헤비 워커라고 해도 그걸 하나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다. 결국 멜빈은 눈앞의 적들을 놓고 연신 설전을 벌리는 참모들을 뒤로하고,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해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한숨의 잠으로 잠시 달래려고 했다. 그러나 멜빈은 피로를 풀 수가 없었다. 바로 조금 전에 꾼 꿈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싸이야~! 이 아비가 얼마나 널 보고 싶은지 아니? 부디 꿈속이라곤 하지만 다시 한번 네 목소리를 들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아." 주르륵. 순간 그의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텅 빈곳에 홀로 버려진 듯한 아픔이 그를 감쌀 뿐이었다. 멜빈은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제껏 그는 모든 이들 앞에서 이토록 서럽게 울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비록 천막으로 가려진 곳에서 울음을 터트렸다곤 해도,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먼 곳에 있는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로 둘러싸여진 곳에서 홀로 울음을 삭혀야만 했던 멜빈은, 조금 전 꿈속에서 들려온 아들의 다정한 목소리에 인해 절로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싸이를 향한 그의 가슴은 뜨거웠던 것이다. "싸이야. 부디.... 부디 이 못난 애비에게 힘을 주렴. 널 반드시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언제나 널 기다리며 늠름할 수 있는 아비가 될 수 있게 기도해 주렴. 너무도 보고 싶은 내 아들아. 사랑한단다. 사랑..... 한단다...... 흐윽!" 애써 눈물을 참으며 떠나간 아들을 떠올렸다. 그리곤 뿌옇게만 떠오르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스스로 힘을 낼 수 있게 최면도 걸어봤다. 그러나 쉽게 울음은 그쳐지지 않았다. 결국 멜빈은 너무도 그리운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끝으로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멜빈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다급히 뛰어왔던 이들이 급히 뒤로 돌아서며 전신의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겐 주군의 명예만큼이나 더 소중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약하게 보인 왕족은 여러 귀족들에게 반드시 업신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드 마스터의 초입을 경험하고 있는 십여 명의 기사들이 전신의 힘을 개방했다. 그건 일반 병사들에겐 감히 꿈도 못 꿀 어마어마한 힘의 현신이었다. 하나, 그들은 다급히 내뿜은 기운들을 급히 몸 안으로 되돌려야만 했다. 이건 스스로의 의지가 행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그들의 기운은 무기력하게 사라져야만 했던 것 이다. 그건 곧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짜라라랑. 너무도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진원은 멜빈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는 천막의 꼭대기였다. 순간 모든 기사들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 안으로 되돌아오는 기운들을 재차 내뿜으며 힘차게 검을 움켜쥔 채 소리가 들린 곳을 올려다봤다. "허억.... 저....... 저건...........!!" "주군!!!" 모두의 입에서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필립 경의 찢어지는 듯한 절규 어린 외침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제일 먼저 천막의 문을 걷어차며 들어가는 필립의 뒤를 따라 모든 기사단이 멜빈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하나 그들은 들어섬과 동시에 얼어붙어야만 했다. 그들은 분명히 본 것이다. 주군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할 막사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울지 마세요. 그분이 슬퍼하세요. 제발.... 제발 그분을 아프게 하는 당신의 슬픔을 다스리세요." 너무도 고운 목소리였다.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도 같았다. 순간 눈물을 가득 머금은 멜빈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맞춰지자, 막사 안으로 급히 들어선 필립과 여러 기사들은 움찔 어깨를 떨어야만 했다. "누구인가? 감히 날 찾아온 그대는 누구인가?" 도저히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는 푸른색의 투명한 육체를 지닌 존재였다. 그런 존재에게 눈물 가득한 눈에 살기를 담은 멜빈의 시선은 결코 무시 할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순간 멜빈의 머릿속은 매우 빠르게 회전했다. 그토록 나타나지 않기만을 빌었던 미지의 존재와 눈앞의 존재를 동일시하게 보기도 했고, 의문에 찬 시선으로 상대를 낱낱이 훑어보기도 했다. 결국 도저히 그의 힘 만으론 내칠 수 없는 거대한 상대라는 것이 느껴지자 멜빈은 이를 악물며 온몸의 기운을 움직였다. 하나 곧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멜빈은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 했다. "전 그분의 친구랍니다. 당신께서 이토록 그리워하시는 그분을 대신해 당신에게 작은 위로를 하러 온....." 그러나 멜빈은 다시 힘을 내야만 했다. 뒤로 갈수록 말문을 흐린 존재는 아마도 멜빈의 분노를 눈치 챈 모양이다. "뭣이라? 네가 감히 요망한 망발로 내 아들을 무시한단 말이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멜빈은 큰 소리와 함께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무서운 기운이었다. 여태껏 말로만 들어왔던 멜빈의 기세는 왠만큼 마나를 다스려 보던 존재들에겐 경외감만 줄뿐이었다. "헉, 주군......" 제일 먼저 필립이 다급한 신음을 토해냈다. 그도 멜빈이 전신의 힘을 개방한 것은 딱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 한데 지금 멜빈이 내뿜는 기운은 과거와는 도저히 비교도 안될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이건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하나 멜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미 그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개방하지 않기로 한 약조도 이 순간만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멜빈은 분노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 보라. 네가 아무리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곤 해도 감히 내 아들을 입에 담다니.... 진정 소멸하고 싶은 것이냐?" 이미 멜빈의 눈가에는 눈물이 말라가고 있었다. 대신 그의 눈에는 파란 살기가 넘실거렸다. 짜라라랑. 멜빈의 살기가 너무도 강력해서 일까? 눈앞에 나타난 투명한 여성체는 작게 날개를 떨었다. 마치 파란 연기와도 같은 모습으로 멜빈 앞에 서 있던 존재는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신비로운 소리를 내며 날개를 떨었지만, 이내 멜빈의 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전 이곳에 싸이님을 대신해서 찾아온 거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당신께서 이런 절 소멸시킨다고 해도 아무렇지도 않답니다. 하지만 제가 고귀한 싸이님의 친구라는 사실은 제 존재가 소멸이 된다고 해도 절대 변함이 없답니다. 이미 그분께서 절 친구로 인정해주신 이상 당신께서 절 소멸시켜도 전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시니 마음대로 하세요. 전 절대 반항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 점 하나만은 꼭 명심하세요. 제가 당신을 찾았다는 것은 곧 싸이님의 의지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요." "이익." 순간이지만 멜빈의 검이 힘차게 빛을 내뿜었다. 이미 일어설 때부터 뽑아든 검에서는 무시무시한 기운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멜빈은 차마 그 검을 눈앞의 존재에게 휘두를 수 없었다. 그 존재가 말한 것들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곧이어 투명한 눈 안에 그려진 영상은 그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대의...... 그대의 눈에 담긴 것이 나에게 진실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것인가? 내 말이 맞는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억지로 참으며 멜빈은 그의 검 끝에 다가선 투명한 존재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제 의지를 통해 싸이님께 곧 전달이 될 겁니다. 현재 싸이님께서는 매우 힘든 결정을 내리셔야만 하는 순간을 맞이하셨답니다. 그러하기에 고귀한 그분의 친구들인 우리 정령들은 그분이 의지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그분의 생각을 전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그분께 힘이 되고자 당신을 찾아 온 것이랍니다. 부디 노여움은 잠시 뒤로 물리시고, 제 눈을 통해 당신께서 그분께 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주십시오. 그것만이 싸이님을 위하는 길이랍니다. 우리 많은 정령들은 이미 그분의 친구랍니다. 이건 절대 후회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선택이랍니다. 또한 그것만이 싸이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이기도 하구요. 자, 어떠세요? 결정 하셨나요?" "이익......... 이익........!" 멜빈은 결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메마른 눈에는 투명한 이슬이 또다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을 위한다면 무엇이든 할 멜빈이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온 상급의 물의 정령 팔라페는 이미 모든 힘을 그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그건 곧 멜빈의 의지와도 이어져야만 할 힘이었기에 멜빈은 무척이나 곤혹스런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아주 쉽게 내려졌다. 아들을 위해선 죽음도 두렵지 않은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멜빈은 그의 몸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팔라페의 거대한 기운에 반항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순응하기 시작했다. 짜라라랑. 다시 한번 팔라페의 가녀린 날개가 작은 소음을 내며 멜빈의 의지를 받는 순간 필립은 급히 부하들을 바라보며 힘껏 소리를 질렀다. "모...... 모두들 피해! 우리들이 감히 맞설 힘이 아니다." 이미 그의 말이 나오기 이전부터 메르카 제국군의 최고 기사단인 로얄 크림슨 기사단의 최정예 기사들은 천막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다행이 필립의 경고가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어닥치는 기운에 대항하기 보단 순응하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났다. 그 덕분에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이했던 로멜쥬 대공 휘하 최정예 근위 기사단은 다행이 무사 할 수 있었다. 만약 최상급에 가까운 팔라페의 기운에 맞섰다면, 웜 급의 드래곤이라고 해도 큰 낭패를 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필립과 그의 동료들이 맞서고자 했다면 그들은 잘 다져진 고깃덩어리 마냥 갈기갈기 찢어져버렸을 것이다. 물론 예고도 없이 멜빈을 찾은 팔라페 역시 그들을 조금도 해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때문에 멜빈의 동의를 받아내기 전까지 전신의 기운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다. 팔라페는 싸이의 어린 시절동안 싸이 주변을 맴돌며 이미 익숙해질 만큼 자주 봐왔던 존재들에게 피해를 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이 다치면 싸이가 슬퍼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그녀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모든 정령들에게 그들을 소중한 친구로 대해주는 싸이는 무엇보다 우선시 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팔라페는 최대한 힘을 조절하며 오로지 멜빈을 향해 모든 기운을 되돌리고 있었다. 비록 멜빈이 인간들 중 최강자라곤 해도 그녀의 기운을 모두 받기엔 큰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팔라페는 그에게 보내는 힘을 결코 줄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당신께선 그분이 선택하신 분! 이제 당신께선 위대한 이와 함께 아름다운 생애를 보내셔야만 한답니다. 이건 당신을 선택하신 분이 당신께 드리는 영예로운 선물이랍니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멜빈의 뇌리에 강렬하게 되새겨지고 있었다. 이건 처음으로 무아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때 보다 더욱 강렬한 순간이었다. 그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몸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멜빈은 그녀의 눈동자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싸이의 모습 때문에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겨를도 없었다. 오직 그의 눈은 싸이의 잠든 모습과 훤칠하게 커버린 아들의 얼굴만을 쫓고 있었다. "내....... 아들...... 자랑스런 ..... 내..... 내 아들!" 무의식적으로 떨린 그의 몸에 활력소가 되어주는 의지는 오직 싸이만을 찾을 뿐이었다. 곧이어 그가 서 있는 공간을 푸른 안개들이 감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그가 있던 천막은 투명한 푸른 안개에 휩싸인 채 한동안 알 수 없는 침묵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비단 그런 일은 멜빈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멜빈 앞에 나타난 팔라페처럼 바람의 상급 정령인 실피드도 눈앞의 사내를 위해 최대한 기운을 억제해야만 했다. "으..... 윽.... 우웩!" 멜빈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력으로 인해 메테우스는 검붉은 핏덩이를 연신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실피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로서는 최대한 힘을 억제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인간은 도저히 참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나 실피드는 그의 강한 의지를 존경하기로 했다. 이미 처음에 나타나 그의 주변을 꽁꽁 묶어 버렸다는 것이 이토록 다행이란 점에 안도의 한숨까지 내뱉었던 것이다. "그대 아직은 미약한 존재여. 이제부터 그대는 그분의 뜻에 따르셔야만 한답니다. 비록 한없이 약한 그대지만, 그대가 지닌 의지를 믿으세요. 오직 그분만을 따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그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답니다. 부디 우리들이 나눠주는 힘에 거슬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분만을 위해 순응하며 살아가는 바른 도리를 보여주세요. 이것만이 당신께서 명예로운 삶을 살아갈 새로운 힘이 될 것입니다." 실피드는 이미 의식의 저편에 빠져버린 존재에게 계속해서 되내였다. 비록 눈앞의 사내가 나약한 존재라곤 해도 그가 평소 보여준 강한 의지는 반드시 살아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로 인해 처음 그와 시선을 마주치며 그에게 잠이 든 싸이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이 지닌 힘들 중 하급 정령도 안되는 미약한 힘부터 서서히 풀어냈을 때 이미 그는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존재들을 위해 그의 주변에는 투명한 막이 씌워져 있었고, 그 주변을 또다른 하급의 정령들이 연신 생명의 기운을 뿌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모두 나약한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세심한 배려이자 작은 정성이었다. "명심하세요. 그분은 우리처럼 미약한 존재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시는 분이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들처럼 미천한 존재들에게 감히 친구라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았 을 것입니다. 그대는 평생 그 점을 자랑스러워하십시오. 우리들처럼 미약한 존재에게도 감히 맞설 수 없는 그대를 위해 자신의 힘을 베풀어주시는 그분만의 소중한 은혜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길 이 실피드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미 실피드가 하급에서부터 중급의 힘으로 올리면서부터 눈앞의 사내는 입과 얼굴에 나 있는 모든 구멍으로부터 검붉은 피를 토하며 서 있는 모습 그대로 기절했다. 그러나 그의 의식세계에 또렷이 남겨지는 실피드의 말은 기절한 그의 몸에 커다란 격정을 안겨주고 있었다. 부들부들. 마치 죽음을 눈앞에 둔 이처럼 온 몸을 꿈틀거리며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메테우스의 부릅뜬 눈에는 붉게 흘러내리는 핏물과는 다른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또한 굳게 쥐어진 주먹은 힘찬 기운을 담고 있었다. 바로 의지와 신념이라는 거대한 힘을........! ***************** 짜잔~! 위에서 멜빈과 메테우스가 겪고 있는 일이 무엇때문인지 아시는 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이 챕터의 주인공들이니까요. 그리고 성기사. 즉 팔라딘이란 존재는 신의 기운을 내려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 이외에 신이 내린 힘을 쓸수 있는자들이죠. 그래서 보통때보다 몇배의 힘으로 쉽게 적을 내칠 수 있죠. 분명히 이자리에서 말씀드리지만, 제 글에 나오는 팔라딘과 다른 소설에 나오는 팔라딘을 같은 선상에 놓고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전 분명 자신의 힘과 신이 내린 힘. 이 두가지를 명시했습니다. 제 글의 팔라딘은 기존의 글에 나온 팔라딘과 확실히 다르답니다. 여러분을 믿는 제 맘을 아프게 하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자, 그럼 앞으로 그런 실수를 하실 분이 없으시라 믿고, 앞으로 저들이 펼칠 새로운 검술을 기대해주세요.^^ 물론 밑에 샤를휘나님이 예상하셨듯이,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상대앞에서 곧죽어도 덤빌수 있는 우직한 아자씨는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케릭터 메테우스랍니다. 이상하게도 전 싸이보다 그를 괴롭히는게 더욱 재미있답니다. 쿠쿠쿠. 그럼 우리의 메테우스에게 제일 먼저 당할 드래곤을 모집해 볼까요?!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릴께요.^^V 신룡의 후예 7 - 6 -대장. 어떻게 할거야? 이 친구들 말을 그대로 따를 거야? -으음.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저들의 말로는 주인님께서 자기들을 대신 보내셨다고 하는데, 아직 난 그분에게서 직접 명령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이건 간접적인 명령이나 마찬가지잖아. 주인님께서 이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들이 어떻게 우릴 찾아왔겠어? 안그래? 제우스는 눈앞에서 거대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를 바라보며 참을 수 없는 침음을 토했다. 얼마 전부터 주변을 맴돌던 기운을 제우스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주인이 평소에 의지를 전하던 방식과 유사한 방법으로 다가오는 기운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별로 거부감은 생기지 않았다. 하나, 눈앞의 이들이 정령이라는 새로운 존재라는 것과 그들이 앞으로 자신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말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때 또다시 제우스를 독촉하는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 성스러운 기운을 따르는 자여. 어서 우리에게 그대들을 인도해 주세요." 청명한 옥구슬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한참이나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던 제우스는 작게 말을 건냈다. "모든 세계의 생명을 전달하는 이여! 미안하지만 우린 아직까지 준비가 되지 않았소이다. 우리들은 오직 주인님을 위해 존재하는 종자들! 우리들에게 그대들의 힘은 무한한 영광일 것이나, 우리에게 다른 이와 함께 생활하라는 주인님의 명령을 우린 아직까지 받지 못한 상태이오. 부디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리오." 제우스는 눈앞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오래된 연륜을 쉬이 무시할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무에서 유로 새롭게 거듭난 것 같은 신비로운 형상과 그 안에 자리한 거대한 힘. 결코 소홀히 대할 존재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제우스의 부탁을 들어주고픈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이미 그대들 또한 싸이님께서 가지신 생각을 느끼시고 계실 텐데요? 쉽게 우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그대의 의지는 저와 제 동료들 또한 인정한답니다. 하나, 반드시 싸이님을 따를 이들에게 되돌아갈 힘 중에는 그대들 또한 포함이 되어 있답니다. 이건 나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루엣트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부디 그대의 작은 경계를 털어버리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끄응." 결국 제우스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어찌 이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준단 말인가? 이건 주인인 싸이가 불호령을 내려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나 제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주인이 평소 생각하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또 이들이 말하는 것들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 어서 결정을 내려. 이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게다가 주인님도 어느 정도 생각하셨던 것들이고. -그래, 대장. 지금 저들이 이렇게 다급하게 조르는 것도 모두가 주인님 때문이잖아. 혹여라도 우리가 늦게 대답해 주인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거야? 응?! 모두들 안달이 난 듯 싶었다. 그들도 다른 이와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쉽게 허락하고픈 마음은 없을 것이다. 단지 오랜 시간 주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게 이런 사단을 벌이게 된 것 같았다. -끄응, 이 미련 곰탱이들. 너희들은 주인님이 아닌 다른 자들을 태울 생각이 있단 말이냐? 난 절대 그 짓만은 못해. 아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군. 주변에서 제우스의 눈치를 보며 의견을 전하는 시커먼스들을 향해 제우스는 확고한 생각을 밝혔다. 차라리 죽을 지언정 주인 이외에 다른 이들을 절대 태우기 싫은 그만의 의지였던 것이다. 그 순간 참기만 하자니 속이 터질 지경이던 미려의 도끼가 성질을 토했다. -에잇, 짜증나! 대장. 정말 그렇게 답답하게 굴거야? 어차피 저들도 우리한테 많은 요구를 한 건 아니잖아. 몇 명만이라도 좋으니까 도와달라고 하는건데, 왜 그리 쪼잔하게 구는거야? -이익. 순간 제우스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곧 그가 일으킨 살기는 모두 미려의 도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 죽일 놈. 정녕 내 손에 죽기를 원하느냐?!" 모두에게 들리는 제우스의 성난 음성이었다. 순간 특별한 공간에 모여 있던 모든 존재들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건 미려의 도끼도 마찬가지였다. "제길. 그러게 조금만 양보하자니까 괜히 성질만 부려가지고......." 곧 죽어도 꿇리기 싫은 미려의 도끼가 아주 살짝 입을 열었다. 하나 제우스는 그것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평소의 제우스였다면 그냥 참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이 상황에서 제우스는 용서라는 것을 용납치 않았다. "이것이!!" 휘익. 순식간에 사라진 제우스의 신형은 너무도 빨라 그 앞에서 상황을 쭉 지켜보던 실루엣트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만큼 놀라운 속도였다. 곧이어 제우스를 찾던 그의 시야에 자신보다 더욱 거대한 덩치를 하고 있던 미려의 도끼의 뒤로 나타나 목을 쪼르기 시작하는 제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꺼억...... 대..... 대장.... 숨....막혀!" "감히, 주인님이 안계신다고 네 녀석이 망발을 부린단 말이냐? 절대 용서 할 수 없다. 죽어라!" 매우 살벌한 제우스의 말이었다. 그와 더불어 제우스의 양팔에는 거대한 대자연의 기운이 뭉클 솟아 오르며 미려의 도끼 전신을 감싸기 시작했다. "헉, 대장! 진정해요."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여러 대의 시커먼스들이 일제히 나서며 제우스의 팔과 다리를 붙잡은 채 뜯어 말렸다. 하나 제우스는 결코 힘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성난 기운을 내뿜었다. "대장! 그러다 도끼 부대장 죽어요! 그만 참아요." "시끄럿. 네녀석들도 마찬가지야! 감히 주인님께서 잠시 외유를 하신다고 이렇게 간뎅이가 부어서 나에게 덤빈단 말이냐?" 어찌나 화가 났던지 제우스는 주변에서 그를 말리는 동료들에게 두 다리를 번갈아 휘두르며 그들을 연신 걷어찼다. 하나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없이 오직 제우스의 곁에만 달라붙어 있었다. 화가 난 대장을 뜯어말리기에는 그 방법이 제일 나았던 것이다. 그때였다. 제우스는 이미 몸 안의 기운을 소모한 채 헐떡이는 미려의 도끼 목에서 급히 떨어져야만 했다. 이건 모든 시커먼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건 꿈만 같았다. 지금껏 아무런 소식도 없이 조용히 잠이 든 주인의 목소리가 아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진 것이다. 그것도 매우 화가 난 듯한 음성이었다. "허억.... 주..... 주인님!" 쿵. 쿵쾅쿵쾅. 아공간에 있던 모든 존재들은 한순간 정신이 없었다. 그들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것인지 미처 파악도 하기 전에 모든 시커먼스 군단이 일제히 땅바닥을 향해 빠른 속도로 헤딩을 하고 있었다. 순간 이 모든 것을 바라보던 실루엣트는 멍한 듯 벌어진 입을 뻐금 거렸고, 곧이어 놀라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도저히 말로는 표현 못할 만큼 아찔한 기운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순간 실루엣트의 입은 감격에 겨운 괴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끼......... 끼야야야야야얏." "응? 넌 또 뭐야?" "싸.... 싸이님~!! 제 소중한 친구 분이시여~! 위대한 우리들의 군주시여~!" 투명한 옥에 가는 금이 가듯 귀를 자극하는 비명소리(?)에 일순간 뻥진 듯한 싸이의 음성이 들려오자, 곧이어 실루엣트가 급히 바닥을 향해 몸을 낮추며 최대한 공경에서 우러나는 음성으로 싸이를 불렀다. "으응? 너는 누군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모든 생명의 마나를 지닌 우리들의 친구이자 위대한 지도자 이신 고귀한 군주시여! 여기 당신의 어린 종 실루엣트 인사드립니다." 매우 공손한 인사에 싸이의 음성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하나 그것은 잠시였다. 곧이어 들려오는 싸이의 음성에 실루엣트는 감격에 겨운 몸부림을 쳤다. "너 혹시 먼지 녀석이랑 같은 족속이야?" "네. 하찮은 마나의 친구인 실루엣트가 바로 저랍니다." "으음. 그렇구나. 아무튼 반가워! 너 스스로 내 친구라고 했으니까 앞으로도 친구처럼 지내는 거 맞지?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예? 네. 제 영혼이 소멸할지언정 그 약속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지키겠나이다. 내 소중한 친구시여!" 금세 투명한 눈가로 선명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어찌나 감격했던지 바람의 정령 안에 물의 정령이 들어간 듯한 모습이었다. 비단 이것은 실루엣트에게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그를 따라 이곳 아공간에 들어온 수많은 정령들은 싸이가 재차 자신들의 입장을 확인시켜주는 말에 모두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우리들을 친구로 인정해주신 분은 오직 싸이님 뿐이십니다. 여기 모인 저와 동료들은 오늘의 일을 두고두고 감사에 또 감사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고귀하시고 위대하신 신이시여!" 비록 그 말은 싸이가 듣지 못했지만, 실루엣트의 음성은 모든 정령들에게 또렷이 전해졌다. 이것은 아공간에 들어선 이들 중 제일 힘이 센 최상급 정령 실루엣트의 말이었기에, 그들 모두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정령들이 기쁨에 겨워 행복의 춤을 추고 있을 때, 제우스는 또다시 혼쭐이나고 있었다. "근데 너희들 지금 뭐하냐고 물었잖아? 왜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가리는 박고 난리야? 너희들 설마 나 없을 때 사고 친 건 아니겠지?" "허헉. 절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뭐야? 내가 지금 심심해서 너희들 있는 곳을 잠깐 들여다봤는데, 네 녀석들 모습이 절대 장난치고 있는 건 아니었어. 그럼 뭐야? 너희들 나 없는 사이에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한거야?" "끄응........." 차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모든 이들을 대표해서 가장 먼저 매를 맞아야만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주인님. 불충한 절 죽여주십시오." "응! 그건 걱정마. 언제든 말만 해. 내가 확실히 죽여줄게." 도저히 이렇게 쉽게 나올 말은 아니었다. 하나 싸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순간 모든 시커먼스들의 전신 피부엔 강철 소름이 돋아났다. "흐윽, 주인님. 죽이실 때 죽이시더라도 제발 대장을 내치지는 마십시오. 그는 우리들을 위해 화를 냈던 것뿐입니다." 시커먼스 군단 중에서 제일 마음이 약한 자들은 하위급 스커먼스들이었다. 말만 하위급이지 그들이 가진 힘은 결코 무시 못할 엄청난 것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같은 동료들과의 힘 차이에서도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단지 기술적인 면과 여러 가지 특별한 행동에 대해서만 뚜렷이 차이가 나곤 했다. 그건 각자 지닌 고유의 심성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심성에 걸맞은 섬세한 기술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싸이는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존재였다. 그런 싸이에게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폭주 일섬과 몇몇의 시커먼스들은 매우 특별한 존재였다. "우씨. 징그러. 그 덩치에 질질 짜면 누가 좋아한다고 질질 짜고 난리야? 당장 뚝 그치지 못해!" "........ 네에. 주인님. 자진 신고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급히 고개를 숙이며 못난 꼴을 보인 죄로 스스로 맨땅에 헤딩을 하는 폭주 일섬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싸이의 음성이 뒤를 이었다. "됐어. 자진 신고는 나 없을 때 알아서 하고, 도대체 뭔 일이야? 설마 제우스 저 자식이 나 없다고 그새 너희들 군기 잡고 있었던 거야?" 순간 이 상황에서 제일 찔리는 미려의 도끼가 힘껏 땅에 머리를 묻었다. "주... 주인님! 절대 아닙니다. 대장은 저로 인해......." 미려의 도끼는 고공폭격에 움푹 파이는 땅에 머리를 묻으며 급히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주변 동료들의 대답에 그만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주인님. 그건 절대 아닙니다. 그저 저희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나름대로 합당한 이의를 제기 했을 뿐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건 주인님의 오해십니다. 저흰 그저 주인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탑승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만약 주인님께 작은 힘이라도 된다면 그 일이 어떤 것일지라도 당연히 해야만 한다는 의견을 나눴을 뿐입니다." 조용한 듯 속삭이는 바람의 기운에 할버드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그를 따라 쾌검의 달인인 섬광의 빛이 말을 이었다. "흐음, 그래?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나없는 사이에 너희들끼리 사소한 의견 다툼을 하다 그런거라면, 이번 한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대신 내가 없는 동안 탱자거리며 놀고 있었다는게 내 눈에 보이면 단단히 각오해 둬야 할거야. 알았어?" "네에~!" "넵. 절대 놀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모두들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하나 미려의 도끼만은 지은 죄가 있는 관계로 다시 한번 큰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듯 싸이의 목소리에 웃음이 담겼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실루엣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담겨졌다. "후후, 역시 우리들의 위대한 군주시다. 모두들 잘 봤겠지? 저들은 나 최상급 정령인 실루엣트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강한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된 마음으로 떠받들고 계신 우리들의 고귀한 군주를 잘 기억해 둬라. 앞으로 우린 저분의 작은 손짓 하나에도 아낌없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존재이니까." 주변에 모여 있는 정령들에게 작은 속삭임으로 가르침을 내리는 실루엣트였다. 그의 말에 모든 정령들이 행복한 미소를 띄운 채 아공간을 부지런히 날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조금 전 들려온 싸이의 목소리와 함께 아공간으로 전해지는 그분만의 향긋한 향취에 취해 온 힘을 다해 자유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나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정령들의 기운은 하나같이 땅바닥에 머리를 묻고 있는 제우스와 시커먼스 군단에게는 정신 사나운 일이었다. -제길. 저것들은 뭐가 좋다고 저 난리야?! -야, 조용히 해. 우린 지금 자진 납세중이야. 또 입방아 찧다가 뭔 일 당하려고? -으윽, 맞다. 아까 주인님이 하신 말씀 못 들었어? 언제든 말만 하라고 하시잖아. 주인님은 우리 같은 하찮은 것들은 언제든지 해부해 버리실 맘을 가지고 계신단 말야. -모두들 조용히 못해! 이것들이........!! 하여튼 다시 한번 떠들기만 해 봐. 주인님에 앞서서 내가 먼저 네놈들을 해부해 버릴 테니까. 정신없이 오가는 시커먼스들의 대화에 문득 제우스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어렸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어도 그들의 대화에서 점차 정이란 것이 싹트는 느낌이었다. -됐다. 그만 하자. 우린 이미 주인님의 무의식에서 전달이 되는 의지를 느꼈잖아. 그걸로 된 거다. 우린 지금부터 저 앞에서 우리의 못난 꼴을 보고 있는 존재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생각해 보자. 주인님께서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라 명하셨으니까, 우린 그대로 따라야만 한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 -당연하죠. 대장! 내가 제일 먼저 나갈게. 아까 지은 죄도 있으니까 내가 제일 먼저 할께. 그러면 밑에 녀석들도 알아서 잘 하겠지 뭐. 대신 대장은 주인님을 확실히 모셔. 약속할거지? -좋다. 도끼 네가 그렇게 해준다면 난 안심하고 밑에 애들을 내보낼 수 있다. -후후, 그럼 제가 도끼 부대장을 모시죠. 혼자서 성질 난다고 난리 법석 떨면, 그 감당은 쉽지 않을테니까요. -뭐야? 야! 할버드. 너 죽고 싶어? 이게 감히 요새 주인님께 이쁨 좀 받는다고 날 무시하고 덤비네. 이걸 그냥 콱. 조용히 머리를 박고 있으면서 서로간의 대화를 나누던 시커먼스들이 한순간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자연 그 우스꽝스런 포즈에 살짝 미소를 보이던 실루엣트는 순간 그들의 정중앙에서 쏟아나는 거대한 기운에 흠칫 놀랐다. "헉. 저건........ 저게 과연 말로만 듣던 성기사들의 투지인가?" 생전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이었으니 당연히 놀람은 클 수밖에 없었다. 온통 시커먼 광채가 빛나는 물결 속에서 파란 기운이 뿜어져 나왔으니, 그걸 보고 있는 눈은 온통 감동의 물결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시커먼스들도 마찬가지였다. -허헉. 이.... 이게 뭐야? 대.... 대장! 나 아무래도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 제일 먼저 미려의 도끼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금 전 화가 난 상태로 온몸의 기운을 끌어올리기가 무섭게 가슴부위에서 파란 구체가 솟아난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의 귀로는 감히 형용할 수 없는 기운찬 소음이 들려왔다. 삐이이이잉.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소리에 모든 이들의 감각은 한순간 무뎌져야만 했고, 오직 제우스만이 그 소리에 반응을 보였을 뿐이다. -침.. 침착해라. 아무래도 조금 전 주인님께서 전하신 의지 중에 하나였던 거 같다. 아마 우리들에게 새로운 힘을 전해주신 거 같다. 스스로에게 침착 하자고 다짐하면서도 동료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헉. 그럼...... 주인님이 또다시 의식을 되찾자마자 우리들에게 내린 또다른 은혜란 건가요? 폭주 일섬으로선 처음 죽음을 맞이했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운 일들이 아직도 전신 감각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한데 이번은 달랐다. 전혀 느껴보지도 못한 것이다. -역시.... 우리들의 기대는 저버리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주인님께서 그러한 경험을 하실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기운들이라니......! 대장. 아무래도 우리가 저들을 돕는 일에 약간의 일을 더해야 할 것 같군요. -역시 그런 건가? 주인님이 조금 전 내게 따로 뭔가를 전하셨을 때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바로 그걸 뜻하는 것이었던가? 그럼 우린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지. 할버드. 네 말대로 하자구나. -끄응. 대장. 그럼 나는? 난 그런 건 싫단 말야. -도끼. 너 또 나한테 혼나고 싶지? -제길. 우린 주인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블랙 스톰 레젼드리 군단이란 말야. 말 그대로 천하무적 군단.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하란 거야. -시끄럿. 주인님이 명하시면 그대로 따라. 그게 우리들에게 결코 해가 되진 않을테니까. 모두들 알았지? -그래도 우리의 힘을 어떻게...... -쓰읍. 도끼! 내 말 안들을 거야? 그리고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내 말 알았어 몰랐어? -.......네에. 대장. -옙. 미려의 도끼가 차마 하기 싫다는 느낌이 다분한 목소리로 마지못해 답하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걸 보면서 제우스는 점점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과연 뭘까? 주인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리고자 하셨던 그 의지는? 과연 그것이 우리들만의 의지로 가능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느낀 그대로 행하여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의미였으니까. 제우스는 그렇게 단정지으며 앞으로 자신들 앞에 새롭게 다가설 미지의 대륙을 향해 거침없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한때 긴장이 팽팽했던 포와그 해안의 전장에선 왠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가득했다. 이건 최상층 지도부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코앞에 적들을 놔두고,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키는 그들의 모습은 아래 부하들의 사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들은 추호도 모를 것이다. 그들이 믿고 따르는 이가 벌써 며칠 째 의식조차 없다는 것을. "필립 경. 어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군대를 물린 다는 것은 저들에게 좋은 빌미만을 줄 뿐입니다." "맞습니다. 만약에라도 우리가 여기에서 물러난다면 병사들의 사기엔 엄청난 피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필립은 둥근 원형의 테이블에 모여 있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찌 내가 그런 것을 모른단 말이오. 하나 우리들의 주군이신 로멜쥬 각하를 생각합시다. 이미 그분이 깊은 잠에 빠지신지 벌써 5일이나 지났오. 신관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분의 병세는 깊어만 가고 있단 말이오." "하오면..... 지금 군대를 물리셔야만 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좀더 생각해 봅시다. 하나 각하만은 편한 잠자리가 있는 곳으로 옮겨야만 할 것 같소. 그대들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소. 각하께서 평소에 하시던 모습들을......" "으음. 그렇지요. 각하께선 그 편한 잠자리도 모두 마다하시고 일반 병사들이 사용하는 작은 간이 침대만으로 전장에 계셨으니...... 그 점은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로얄 크림슨 기사단의 부단장이자 메르카 제국군의 제일 선봉군단인 제1군단장의 말에 모두의 안색은 어두워만 졌다. "하지만 필립 경. 지금 당장 시행하기엔 병사들의 사기에 문제가 됩니다. 제발 며칠만이라도 미루시면 어떻겠습니까?" 작전 참모 중 제일 연장자인 네슈라 후작의 말에 잠시 눈을 치켜 뜨던 필립은 결코 그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슈라 후작의 말씀이 옳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나 각하께서 아무런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시일을 미룬다는 것은 큰 불충이기도 합니다." 필립의 말에 네슈라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입장에도 찬성한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여러 참모진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긴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언제나 건강하시고 강하시던 분이 왜 이유도 알 수 없는 희귀한 병에 걸리셔서........." "어허, 말조심하세요. 각하께선 현재 병에 걸리신 게 아닙니다. 그저 잠시 깊은 잠에 빠지신 것뿐이에요." 네슈라 후작과 필립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던 몇몇 참모진에서 한숨 섞인 불안이 입으로 토해지자, 네슈라 후작이 가장 먼저 그들의 입단속을 시켰다. 이미 군사학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네슈라 후작은 현 메르카 제국군의 작전 계획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이었다. 단지 여러 용맹한 기사들과는 달리 그는 뒤에서 전군을 책임지고 보살펴야만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기에, 표면상 나서는 일이 극히 드문 인물일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참모진들이 모여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 사이, 메르카 제국군은 며칠째 알 수 없는 이유로 휴식이 취해지자 병사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참모진의 생각과는 정 반대의 것들이었다. "이봐. 정말 사령관 각하의 침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야?" "그렇다니까. 로얄 기사단 전원이 기를 쓰고 덤벼도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본 유령이었대. 그런 유령이 우리 사령관 각하에게 공손하게 이야기를 전하며 휴식을 취하실 것을 부탁드렸대." "흐음. 하긴 각하께서 우리들과 함께 하신 게 얼마야? 그동안 제대로 된 휴식한번 취하지 않으신 채 우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분이시잖아. 그런 분이니 당연히 신들도 각하께 휴 식을 권하셨겠지." "아암, 우리같이 미천한 것들이나 먹는 음식들을 손수 같이 나눠 드시면서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시는 분을 신들이 배척할 이유가 없는 거야." "그래, 맞아. 우린 각하께서 푹 쉬실 동안 최선을 다해 각하를 지켜드리자. 그게 그동안 받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야." 꾸욱. 평소 전투에 임할 때보다 더욱 많은 힘이 절로 손에 들어갔다. 그로 인해 할버드를 잡은 채 주변 경계를 서는 병사들의 얼굴엔 대단한 각오가 서려 있었다. 이건 메르카 제국군이 현재 묵고 있는 포와그 해변의 모든 경비초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역시 위대한 지도자 밑에는 뛰어난 병사들만이 있다는 말은 결코 헛튼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각 멜빈이 조용히 잠이 든 막사 안에는 가히 향언 할 수 없는 진귀한 향기들이 온통 진동을 하고 있었다. 이건 대자연의 향기를 그대로 막사 안에 모아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로 인해 몇몇 신관들은 막사 안에서 잠시간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그 향기는 진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멜빈이 잠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야만 하는 신관들의 얼굴엔 경이로움이 하나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대사제님. 과연 이게 무엇일까요? 도저히 성스러워서 표현을 못할 것만 같습니다." "글쎄다. 나로서도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나 이것이 로멜쥬 대공 각하의 곁에서 묻어나고 있다는 것은, 곧 신께서 이 나라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대사제의 현재 모습은 어린 사제들에겐 경이의 대상이었다. 하얀 사제복과 그 위에 네모난 외투를 걸친 채 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예전 신께서 이 땅에 친히 왕림 하셨을 때 보이셨던 성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건 대사원에 그려진 벽화와도 연관이 되는 모습이었기에 그를 따르는 어린 사제들의 눈에는 경이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나 그들은 추호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우러러보는 대사제의 노안에는 짙은 의문과 혼란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도대체 어떠한 기운일까? 신을 믿고 따르는 나조차도 감히 알아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들이었다. 그 기운들로 인해 대공의 막사 안은 온통 진한 향내가 진동을 한다. 감히 신을 따르는 나 베르미안의 의지마저도 흔들어 놓을 만큼 진한 기운들이라니.... 부디 자긍심 강한 메르카 제국의 기사여. 우리 성 가르피 교단과 같은 길을 가는 이가 되시길 바라오. 그대와 같이 뛰어난 이를 잃는다는 것은 우리에겐 너무도 큰 후회와 번민을 남길지도 모르니.......' 예전부터 무교론자로 유명한 로멜쥬 대공이었다. 그는 오직 신중에 신 오딘 님만을 공경할 뿐 그 이외의 신에게는 어떠한 공경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여러 교단에서는 그를 이단자로 몰아세우며 갖은 협박을 다했었다. 하나 그들은 엄청난 기운을 몸 안에 담은 채 자신들에게 맞서는 로멜쥬 대공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거대한 기운을 물씬 풍기며 직접 교황청에 난입해 으름장을 놓는 그를 보며 고개를 숙였겠는가. 이건 베르미안이 속해 있는 성 가르피 교단만의 일이 아니었다. 카빌라이 대륙에 존재하는 세 곳의 교황청 모두가 된서리를 맞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결혼 후에도 한동안 자식이 없는 것을 놓고 모두들 신의 분노로 인해 그런 것이라는 헛소문을 내뱉기도 했던 고위 사제들의 모습도 종종 봐왔던 베르미안이었다. 이런 베르미안이 전쟁터로 불러온 건 아주 우연이었다. 평소 착실한 신앙 생활을 하던 마리스 황제를 위해 축복 미사를 해주려고 황궁을 방문했던 베르미안이었다. 그런 그에게 황실로 급히 전달이 된 로멜쥬 대공의 소식은 놀라운 것이었고,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길길이 날뛰는 황제의 엄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곳을 오게 된 것이다. 이건 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만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철저히 무시해버린 황제의 엄명이었기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곳으로 와야만 했다. 결국 베르미안의 예상대로 로멜쥬 대공의 신체에는 지금 그 어떤 신성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지 대사제만이 지닌 연륜과 경험으로 인해 로멜쥬 대공의 신체 어느 부분에도 잘못된 부위가 없다는 결과만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르미안이 절대 상상도 못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가 믿고 따르는 빛의 신 가르피는 그 어떤 명왕계에서도 직위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제아무리 대단한 영력을 가진 가르피라고 해도 명왕에 버금가는 이의 은총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 베르미안이 선보인 신성력은 멜빈의 몸에 그 어떠한 은총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더불어 신성력을 짜내려고 온갖 기도를 하며 땀을 흘리는 베르미안을 보며 차갑게 미소를 흘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절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기도가 멜빈의 주변에서 이뤄질 때마다 향기로운 기운을 내뿜으며 그를 방해하고 있었으니, 만약 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받게 될 충격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 었다. "휴우, 오늘도 겨우 돌아갔네. 엉터리 사제 녀석. 툭하면 찾아와서 쓸데없는 기도나 주절거리다니..... 흥,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그따위 헛튼 수작을 부리는 거야. 내가 팔라페 님의 명령만 없었어도 넌 아주 혼쭐이 났을거다." 양손을 허리에 척 올리며 방금 전 천막 안을 나간 베르미안을 노려보던 물의 중급 정령 라디아의 입에선 놀라운 말이 흘러 나왔다. 도저히 이 세계의 균형과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정령이 내뱉을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 그 나름대로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라디아의 말이 옳을지도 몰랐다. 이미 라디아는 팔라페에게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바로 눈앞에서 깊은 수면을 취하고 있는 멜빈과의 혼신일체를 지시 받은 것이다. 이건 곧 얼마후면 최상급 정령으로 올라서게 될 팔라페의 명이었기에, 라디아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지켜야만 했다. 그래야 팔라페의 빈자리를 그녀가 맡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중급 정령들의 지도자인 상급 정령자리는 쉽게 맡을 수도 없었고, 그만큼 오랜 시간동안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한데 그녀에게 내려진 명령은 너무도 파격적이었기에, 라디아로서는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차, 저 인간 때문에 또 늦었네. 이를 어째. 맨 날 이맘때쯤 와서 날 방해만 하는 얄미운 인간. 으휴, 저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려니까 내 속이 다 터질 지경이네." 물의 정령치곤 상당히 다혈질인 모양이다. 금세 멜빈의 주변을 맴돌며 그녀만이 지닌 향기로운 기운을 내뿜는 라디아는, 곧이어 쓸데없이 멜빈의 몸 구석구석에 들어간 이질적인 기운을 털어 내기 위해 무척이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자연 신경질적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는 그녀로서는 잠이 든 멜빈의 코끝으로 잠시 빛이 나는 푸른색의 투명한 손을 대며, 그의 따스한 호흡에 조금씩 동화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와중에도 라디아는 멜빈의 몸 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기운들을 일깨우기 위해 또 다른 의지를 가져야만 했다. "제발 이번의 휴식을 통해서 많은 걸 깨달으세요. 당신께서 받으신 힘은 저와는 비교도 못할 거대한 것이랍니다. 그대 최상급의 깨달음을 몸소 가지시게 된 위대한 인간의 기사여." 라디아의 고운 목소리에 잠이 든 멜빈의 얼굴이 더욱 평화로워졌다. 한데 최상급의 깨달음이라니..! 이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작 멜빈에게 동화를 하러 왔던 팔라페가 잠시간의 동화와 함께 최상급의 정령으로 탈바꿈이 되어버렸으니, 순수한 정령인 라디아는 그 믿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록 그것이 최상급을 눈앞에 둔 팔라페였다곤 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힘을 한번의 동화로 가지게 되었으니 자연 그녀를 따르고 있던 여러 정령들은 이 신비로운 현상에 모두들 멜빈을 우러러 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경지를 잠시간 맛본 멜빈이었기에 그러한 신비로운 현상을 일으켰을지도 몰랐다. 더불어 잠이 든 그가 깨어나 몸 안에 있는 새로운 기운을 스스로 인식하고 동화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라디아의 희망은 달콤한 꿈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라디아의 염원이 전달이 되어서 일까? 현재 깊은 잠에 빠져있는 멜빈은 그토록 보고픈 아들을 먼발치에서 보고 있었다. "까르르르르." 티없이 맑고 고운 아들의 목소리였다. 마치 오래 전 스쳐지나갔던 시절이 다시 한번 꿈속에서 나타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멜빈은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이 꿈의 공간이라는 것을 분명 자각하고 있었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아들의 작고 귀여운 모습은 이런 그에게 너무도 현실감 있는 모습이었다. 비록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이가 바로 과거의 자신이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지만, 멜빈은 꿈속일망정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격하고 있었다. "신이시여! 제 소중한 아들을 돌려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미 눈가에는 맑은 이슬이 흘러내렸지만,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언젠가 신의 곁에 다가서는 그날이 오더라도, 단 한번만 품안에 안아볼 수만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해도 좋다고 스스로 다짐한 그였다. 그런 그에게 비록 꿈에서라도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감격스런 모습이었다. "비록 저기 있는 존재가 현재의 제가 아니라곤 해도, 전 당신의 은혜에 감사하옵니다. 항상 당신께서 저와 제 가족을 지켜보고 계시기에 지금껏 전 절대 후회 없는 날들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당신께서 제게 내리신 혼돈이라 할지라도 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나이다." 꼭 감은 두 눈가로 뜨거운 물기가 흘러내렸지만 그의 맞잡은 두 손에서는 성스러운 기운이 일렁였다. 멜빈은 그순간 온 몸으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기도가 이뤄졌다고 여긴 것이다. 그때였다. "헤헤, 아빠." 평생 들어보지 못한 다정한 목소리가 그의 귀로 들려왔다. 비록 꼭 감은 두 눈으로 인해 볼 수 없었지만, 지척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다정한 목소리엔 마냥 행복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멜빈의 온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빠! 그동안 저 때문에 걱정 많이 하셨죠? 헤헤. 죄송해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전 이제부터 아빠를 위해서라도 늠름한 아들이 될 거예요." 너무도 선명한 아들의 목소리였다. "내.... 내아들. 내 자랑스런 아들아." 비록 이것이 꿈이라 할지라도 그는 행복했다.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었던 아들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울려왔다. 조금 전 눈앞에 보였던 아련한 영상만으로도 마냥 감격스러웠건만, 이젠 그의 귀로 똑똑히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는 신께서 그의 간절한 바램을 이루어주는 순간이라 믿었다. "아빠.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전 이 세상 누구보다 아빠를 가장 존경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살 거예요. 아셨죠?" 마치 귓가에 이는 속삭임인양 달콤한 음성이었다. 멜빈은 혹여라도 눈을 뜨면 곁으로 다가온 아들의 음성이 달아날까 두려워 더욱 더 두 눈에 힘을 준 채 부들부들 온몸을 떨었다. "부디.....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거나. 이 못난 애비는........ 흐윽........이 애비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단다. 내 아들 싸이야." 아들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무도 작고 가녀린 몸으로 그의 곁을 떠난 아들이었다. 일평생 후회와 번민에 휩싸여 있을 망정 아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모든 걸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드릴 목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그렇게 아끼고 또 아끼며 살아온 십여 년의 세월동안 그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아들의 무사함 하나뿐이었다. 한데 지금 곁에서 들려온 아들의 목소리는 그의 간절한 바램인양 너무도 씩씩하고 건강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고마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멜빈이었다. 이런 그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불현듯 그의 어깨위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아빠! 제가 아빠한테 가면 꼭 해보고 싶은게 있어요. 그때까지 건강하게 기다려 주실거죠?" "..............."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는 어깨 위로 다가온 손길에 의식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너무도 고대하던 순간이었기에, 그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잠시 혼절을 한 것이다. "아빠. 아빠! 정신차리세요. 아빠..............아........ 빠....!" 순간 그의 몸이 잠시 흔들리는 듯 싶었다. 잠시 의식을 놓고 있었기에 멜빈은 다급한 아들의 목소리에 급히 정신을 되찾았다. "싸..... 싸이야. 이 아빠 여기 있다. 싸이야~!!" 아주 짧은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었지만 멀어져가는 아들의 목소리에 멜빈은 급히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의 곁에 다가온 아들이 멀리 떠나갈 것만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허억..... 각하! 각하 이제야 정신이 드십니까?" "주군." 갑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란스러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아직까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아들의 음성을 기다리던 멜빈은 재차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에 순간 이마를 찌푸렸다. "...... 뭔가?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토록 시끄러운가." 오랜만에 들려온 그의 음성에 주변에 서 있던 이들이 급히 환호성을 지르려고 했지만, 그들은 번쩍 치켜든 두 손만큼이나 빠르게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만큼 지금 들려오는 멜빈의 음성은 너무도 차가웠던 것이다. "주군. 이제서야 의식이 돌아오신 겁니까? 주군! 이 불충한 필립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순간 고개를 들어 차마 뜨기 싫은 눈에 힘을 주며 그를 부른 부하를 올려다보았다. "주군." 감격에 겨운 눈물은 그만 흘린 것이 아닌가 보다. 멜빈이 올려다본 필립의 눈에는 한가득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필립. 조용히 있고 싶군." 차마 부하의 못난 모습을 꾸중하고 싶은 생각은 일절 없었다. 단지 조용히 아들과의 만남을 음미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나 부하들은 그런 그를 놔두고 싶지 않은가 보다. "주군. 며칠 동안 미동도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 계셨던 주군께서 오늘 새벽부터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그게 큰 일이 생기는 전조인줄 알고 얼마나 가슴 떨리는 시간을 보냈는지......." 이미 대사제로부터 멜빈이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왔기에 필립과 여러 참모진들의 생각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한데 아무런 반응도 없던 멜빈에게서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들려온 뒤부터 그들은 일말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결국 그의 신체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게끔 노력했고, 그 결과 멜빈은 아무런 이상 없이 깨어났다. 그러니 그들이 지금 받고 있는 감격은 말로는 표현 못할 것들이었다. 하나 멜빈에겐 모든 게 귀찮기만 했다. "알았다. 나의 몸은 내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만하고 물러나라. 난 잠시 생각할 게 있다." "주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희 모든 참모진들은 주군의 건강하심에 깊은 감사를 올리옵니다." 필립이 조용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며 옆에 서 있는 네슈라 후작의 손을 이끈 채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모두들 멜빈에게 한마디씩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그의 굳어진 표정을 보게 되자 다음날을 기약하기로 마음먹어야만 했다. 그렇게 멜빈의 꿈은 덧없이 끝나 버렸다. 하지만 멜빈은 마음 깊은 곳에 와 닿은 아들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으려 해도 조금 전부터 어깨 쪽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온통 그의 뇌리는 아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었다. ************ 에구구구..... 큰일이네요. 너무 오랜 시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작업을 했더니만, 벌써부터 눈이 침침해지네요, 그리 늙은 나이도 아닌데 이러면 진짜 곤란한데..... 안과에서는 눈의 피로가 너무 심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안약을 넣어봐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네요. 그렇다고 의사 말대로 휴식을 취하자니, 누구누구의 사시미와 독침. 또 다른 분의 허리꺽기. 하여튼 무서운 고문이 겁이나서라도 감히 휴식은 꿈도 못꿔본답니다. 그리고 요즘 저에게 격려 쪽지 주시는 분~!! 고맙습니다........._(__)_ 그 마음에 보답할 요량으로 오늘은 무지무지 길게 올렸답니다. 어제 9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보시곤 모자란다 하시기에, 오늘은 자그마치 12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과감히 올렸습니다. 부디 이걸로 지난주에 저지른 저의 만행을 모두 용서해주시길~!! 그럼 전 또다시 안약 넣고 조용히 음악이나 들으렵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신룡의 후예 7 - 7 "후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웬일인지 가슴속에서 이는 진한 설레임이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러나 싸이는 시선을 고정했다. 눈앞에서 자꾸만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눈을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싸이는 문득 조금 전 보게 된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비록 얼마 전 꿈속에서 보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현실이었다. "아빠! 무슨 걱정이 그리 많으셨던 거죠? 혹시 저 때문에 지나치게 몸을 혹사하신 건 아니겠죠?" 어찌 된 영문인지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마주치게 된 여러 장면들과 상황들이었지만,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들만의 아픔과 감정들이 깊이 느껴졌다. 싸이는 갑자기 맞이한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올리던 멜빈의 얼굴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얼마나 간절하게 열망했던 것인지 아직도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그의 진한 감정들이 속 안에 남아 있었다. 싸이는 이러한 경험이 너무도 낯설었기에, 잠시 머릿속에 떠오른 멜빈의 얼굴과 그의 감정이 남긴 슬픔을 조용히 감미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비록 당장 갈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빨리 아빠 곁으로 갈께요. 그날이 오면 이제껏 갚지 못했던 당신의 사랑에 꼭 보답할께요." 아직까지 싸이의 뇌리에 남아 있는 멜빈은 어색하고 쑥스러운 존재였다. 다 큰 나이의 정신 연령과 또 다른 아이의 감정이 공존하고 있었기에,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부턴 달라질 것이다. 그토록 간절히 자신을 원하는 것을 느끼게 된 이상, 싸이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동안 받기만 했던 사랑을 돌려드릴 작정이었다. 그 때문에 더욱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 그런 사이에도 싸이의 눈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직 그런 현상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을 할 때마다 자신만의 의지가 전달이 된다는 것을 싸이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결코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접해본 경험이었지만, 이미 싸이의 의지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다가오는 낯선 기운과 동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또 다른 싸이의 모습을 변모시키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외모가 아닌 내면의 모습이었지만, 먼 훗날 그 모습은 진정한 싸이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어떤 존재감으로 다가올지는 비록 현재까진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만. "으응?" 엘렌은 분명히 보았다. 푸른 액체 안에서 모로 누워 있던 아들의 몸이 똑바로 눕혀졌을 때, 아들의 머리 쪽에서 나타난 신비로운 빛을 말이다. 하나 그 빛은 아주 잠깐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 다음부터 아들의 몸에 이상이 생길까 두려워 계속 해서 주시했지만, 두 번 다시 그런 현상은 생기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녀의 모습은 초조함과 안절부절 하는 모습으로 남들의 눈에 보여졌다. 에르킨 여사는 그런 딸의 곁으로 다가와 살짝 어깨를 감싸 안아주었다. 어찌 그녀가 딸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별다른 말은 해주지 않았다. 끈끈한 혈육의 정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작은 눈빛, 몸짓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엘렌의 초조한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러나 두 손은 번갈아 가며 가는 손톱을 뜯고 있었다. 최대한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자 했지만, 본능이 쉽게 놔주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여전히 편안한 미소와 함께 푸른 액체 속에서 누워 있었다. 그러나 몸은 그렇게 있을 망정 싸이의 영혼은 갖가지 영상들을 접해야만 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곳들도 볼 수 있었고, 또한 여태 알지 못했던 이들의 모습도 계속해서 보여졌다. 그렇게 싸이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의 틀 안으로 서서히 인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싸이의 생각과는 별개로 또 다른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바로 싸이만의 수족이었던 몇몇의 시커먼 동체를 가진 이들로 인해.........!! *오, 신이시여!* 멜빈은 어느새 밝아져오는 바깥풍경을 바라보며 서서히 천막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난 며칠간 깊은 잠을 잔 덕분인지 그의 얼굴은 한결 밝아 보였다. 최고 사령관의 안색이 밝아 보인다는 것 하나는 불안함에 떠는 모든 이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멜빈의 주위로 다가오는 이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밝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각하.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그렇군. 오늘은 아침공기가 상당히 상쾌하군." "하하, 그러시다면 더욱 안심입니다." 필립과 함께 나타난 여러 명의 참모진의 얼굴에 한결 더 밝은 미소가 어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멜빈은 간만에 미소를 지었다. "나 때문에 제군들의 고초가 상당히 심했겠군." "아닙니다." 필립이 제일 먼저 대답했다. 그로서는 주군의 안녕함이 더욱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럼 작전은 어찌 되었나? 그동안 유보를 시켰는가?" "네, 각하." "음. 네슈라 후작. 나 때문에 맘고생이 심했나 보군. 그새 눈가에 주름이 더 늘어난 거 같아." 오랜만에 가벼운 농담을 건냈던 것 같았다. 멜빈의 인사를 받게 된 네슈라 후작의 몸에 가는 진동이 생겼다.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후후, 내가 그동안 너무 인상만 찌푸렸던가 보군. 제군들이 이처럼 놀라는 걸 보니....." 멜빈으로서도 잠시간의 휴식이 자신에게 가져온 또다른 선물에 아연한 모습이었다. 가볍게 건낸 인사 정도에 부하들의 안색이 급히 돌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빈은 이런 모습 하나에도 왠지 알 수 없는 상쾌함이 느껴졌다. 이건 그동안 미처 가져보지 못한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모습이었다. "하하, 각하! 지금의 모습을 뵈오니 마치 각하를 처음 만났을때의 모습이 연상되는군요." "그렇습니다. 각하! 예전의 그 강인한 모습과 자신감 넘치시던 젊은 시절로 저희 모두가 되돌아간 듯 싶습니다." 오랜 시간 같이 지낸 동료이자 부하들인 그들의 입가엔 왠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어렸다. 왜 그동안 저러한 자신감을 느낄 수 없었을까? 멜빈은 다시 한번 자신의 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가? 그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잊어먹고 살아온 모양이군." 왠지 자조 섞인 목소리였다. 하나 주변에 모여든 기사들에겐 그런 멜빈의 모습이 더욱 멋져보였다. '왠지 주군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신 뒤부터 저 분의 곁에선 거대한 기운들이 샘솟듯 몰려다니는 것 같다. 과연 저 기운의 정체가 무엇일까? 나 또한 소드 마스터에 올라섰지만, 저런 기운은 감히 상상도 못해본 것이거늘.' 필립은 점차 떠오르는 태양의 이글거리는 기운들이 멜빈의 곁에서 아지랑이처럼 타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건 그와 같이 소드 마스터에 이른 이들은 전부 또렷이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하나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멜빈의 모습은 그저 작은 기운만이 감도는 겉모습일 뿐이었다. 정작 그의 몸안에서 들끓고 있는 새로운 기운은 멜빈이 가장 먼저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왠지 내 몸이 과거의 내 몸 같지가 않다. 이건 소드 마스터에 처음으로 올라섰을 때 느꼈던 기운과는 사뭇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대자연이다.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 멜빈은 부하들의 따가운 시선에 마지못해 걸음을 옮기며 생각에 잠겼다. 그의 옆으로 빨갛게 얼굴을 내미는 태양의 붉은 기운보다도 더욱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그는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며칠 전 내 앞에 나타난 존재에게서나 느껴지던 거대한 기운이 왜 내 몸에 자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설마 그 존재가 내게 모든 기운을 전했단 건가?' 며칠 전 알 수 없는 존재의 출현과 함께 느꼈던 기운과는 또다른 이질감이 몸 안에서 느껴졌다. 마치 그 동안 몸 안에 쌓아두었던 기운들이 새로운 기운과 만나 수백 배 증폭되어 온몸을 맴도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연 이게 뭘까? 분명 내 기운이 확실한데, 나 스스로도 못 느끼는 사이에 바뀌어버린 듯한 이 새로운 기운과 그걸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이질적인 기분이라니.'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광폭함이 스스로를 이끌려는 듯한 기분이었다. 또한 그걸 은근히 즐기면서 지켜보기만 하는 의지도 느껴졌다. 아직은 스스로가 가진 힘에 대해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한 멜빈으로서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몸과 마음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그로 인해 부하들과 평소 세면을 즐기던 곳까지 깊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상념은 그가 본능적으로 얼굴에 끼얹은 물과 함께 깨끗이 사라졌다. "허억. 누...... 누구냐?!" 어찌나 놀랐던지 그의 입에서 단발마와 같은 비명이 내질러졌다. 이건 그를 오랫동안 따랐던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일이었다. "헉, 주.....군!" "각하!" 챵. 챵챵. 얼마나 다급했는지 잠시 세면하려고 옆에 내려놨던 검집을 거꾸로 잡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멜빈의 작은 손짓에 급히 경계의 태세만 취한 채 그를 주시해야만 했다. "누..... 누구냐. 그대는 누구이길래 이런 요망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냐?" -훗, 깜짝 놀라셨죠? 호호호. 그래도 전 너무 반가운걸요. 나의 마스터 멜빈님. 너무도 또렷하게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여성스런 목소리였다. 순간 멜빈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시 한번 묻겠다. 그대는 누구인가? 누구인데 감히 내 영혼에 속삭이는 것이냐?!" 비록 조금 전은 경황이 없어 실수를 했지만, 멜빈은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기분으로 침착하게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제껏 익숙해져있던 기운과는 사뭇 다른 기운들이었지만, 멜빈은 그 기운들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이미 깨달은 존재였다. 그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일까? 멜빈의 눈앞에만 살짝 모습을 들어낸 존재는 곧이어 그의 뇌리 속으로 맑은 음성을 전했다. -호호, 그렇게 경계를 하시면, 당신과 하나가 된 저는 너무도 슬프답니다.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혀 주시길 부탁드려요. 무엇이 그리 즐거운 것인지 그의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하나 그녀의 목소리에서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멜빈은 오른 손에서 전해져 오는 차가운 검의 기운을 살짝 밀어냈다. "좋다. 네가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정식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우선 네 모습부터 확실히 들어내라." 멜빈은 결심을 한 듯 손에 든 검을 내려놓은 채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이미 그는 손에 든 검을 내려놓음으로서 상대방에게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결심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멜빈 님. 저만의 소중한 마스터시여. 전 아직까지 당신의 주변에 함부로 몸을 들어낼 수는 없답니다. 부디 그 점만은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처음으로 정중한 목소리였다. 그 속에서 주변 이들을 걱정하는 묘한 뉘앙스가 느껴져 더욱 어이가 없어진 멜빈은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요망한 것. 내 분명 너와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기로 작정했거늘, 감히 요사한 말로 나와 내 부하들을 모욕하려 들다니....... 뿌득." 어쩜 이리도 빠르게 돌변 할 수 있을까? 상대의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난 멜빈은 금세 온몸의 기운을 몸 곳곳에 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억눌러두었던 그만의 투지가 솟아나자, 멜빈의 주변은 갑자기 생겨난 파란 회오리바람에 의해 반경 3m가 넘는 둥근 막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에서 천천히 오른 손을 가슴께로 올리던 멜빈은 땅에 놓여져 있던 검을 빠른 속도로 움켜쥐었다. "허억, 저.... 저건." "설....... 설마 주군께서......." "그...... 그랜드...... 마스터.....만의 투......지." 급박하게 돌아가는 황당한 상황에 멜빈의 주위로 급히 다가오던 참모진들은 갑자기 그들의 앞에 생겨난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멜빈이 땅에 놓여진 검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편히 서서 손으로 잡는 모습이 보이자,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들 놀라 크게 탄성을 터트렸다. 마치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검황 인양 의지만으로 땅에 떨어져 있는 검을 쥐는 모습은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멜빈은 오직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존재에게 작게 으르렁거렸다. "나에게 덤빌텐가? 그렇다면 언제든 오라." 이미 화려한 금발은 그가 일으킨 기운으로 인해 뒤로 휘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신(戰神)이 왕림한 모습 같았다. 이런 멜빈의 모습에 눈앞에 나타난 존재는 처음으로 초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뭔가 오해를 하신 듯 합니다. 마스터시여. 전 절대 당신께 위협을 가할 수 없는 당신만의 존재. 감히 그러한 명령은 절대 따를 수 없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히시길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흥, 이미 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은 이상, 그대는 나의 적이다. 난 결코 물러설 생각이 없다. 어서 와라. 절대 용서치 않겠다." 이미 한번 일으킨 투기는 절대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오랫동안 검을 잡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존재가 바로 검사였기에, 스스로 일으킨 투기는 반드시 그 대가를 가져가야만 했다. 그로 인해 멜빈이 서 있는 곳에서는 잠시간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상대를 노려보며 서 있었던 것일까? 멜빈은 점점 눈가에 맑은 이슬을 모이는 존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그의 투기는 잔뜩 성이 난 상태.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멜빈 자신과 그의 소중한 동료이자 부하들을 모욕한 존재를 용서한다는 것은 기사로서 긍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빈은 쉽게 눈앞의 존재에게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왠지 그렇게 하려고 해도 또다른 그의 기운이 자꾸만 막아섰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마음속은 심한 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멜빈은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어마어마한 기운에 소름이 끼쳤다. 이건 오직 그만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인지, 급히 주변을 돌아보자 부하들은 여전히 놀란 눈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만 서 있었다. 그 순간 멜빈의 곁으로는 이제껏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대자연의 기운이 해일처럼 다가왔다. "으윽. 그... 그대는....."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자신에게 거대한 대자연을 경험케 한 존재였다. 한데 그때와는 감히 비교도 안되는 거대한 기운을 가진 채 나타났으니, 멜빈의 입은 다급한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성스러운 빛의 기사이신 분이시여. 잠시라도 그대의 마음속에서 우릴 거부하는 의지를 담지 마소서. 그건 곧 우리에겐 너무도 큰 형벌이니.... 부디 너그러운 아량으로 우리를 받아주소 서. 나와 모든 물의 기운을 정화해주실 고귀한 분이시여." 그때와는 도저히 비교도 안되는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그당시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에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이미 그의 의지에 녹아 있는 이끌림은 가히 비교를 거부했다. "그...... 그대. 대자연의 어머니.... 그런 그대가 어찌......... 쿨럭." 잠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무의식적으로 일으켰던 의지가 그의 몸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짧게 내뱉어진 말과 함께 목을 비릿하게 감싸며 토해져 나온 검붉은 핏덩이는 곧 편안한 감각을 전해주었다. 순간 멜빈의 입에서 검붉은 핏덩이가 토해지자 너무도 놀란 이들이 주변을 소란스럽게 했다. "각하!" "으....... 으아아아악. 각하~!" 가까이 다가서려고 해도 자꾸만 막아서는 투명한 막으로 인해 여러 기사들이 악을 쓰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서려고 했다. 그럴수록 그들은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져 뒹굴었다. "그만... 그만 하라.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결코 그의 말에 신뢰를 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뚜렷이 보이지 않는 존재로 인해 지워지자, 그의 둥근 보호막밖에 서 있던 모든 기사들의 눈에는 불안과 초조함이 어렸다. 그러나 그들은 곧이어 생각을 고쳐먹었다. 바로 멜빈만이 지닌 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곧 침착한 모습으로 대처를 하기 시작했다. "훗, 역시 당신께서 지니신 의지는 모두를 이끄는 강인함. 그런 당신을 모시게 된 팔라페 진심으로 신께 감사드린답니다." "....... 후.......욱....... 후욱. 고맙소." 멜빈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들끓는 속을 진정시켰다. 아울러 그에게 잠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거대한 대자연 앞에 진심 어린 인사도 건냈다. "호홋. 오히려 제가 감사하답니다." 다시 한번 그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내는 팔라페였다. 그런 모습에 잠시 의아했지만, 얼마전보다 더욱 거대한 대자연을 품에 안은 그녀의 겸손한 모습에 멜빈은 왠지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과찬이십니다. 한데 제게 무슨 전할 말씀이라도?" 그로서는 감히 상대치 못할 거대함을 이미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기에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상대의 의향을 알고 싶어했다. 그런 의지를 느꼈기 때문일까? 팔라페는 그녀의 뒤로 급히 물러난 라디아를 손짓으로 불렀다. "잠시 이 아이가 반가운 마음에 당신께 큰 실례를 범한 모양이더군요. 어찌나 다급하게 절 찾던지 제가 다 정신이 산만해졌답니다. 부디 당신께서 이 아이에게 보내신 분노를 조금이라도 없애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 왔습니다." 그순간 멜빈은 쭈빗거리는 모습으로 팔라페의 옆에 서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라디아를 그때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상체만 보였던 그녀가 이젠 맨발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으음, 전...... 사실 전 아직까지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답니다. 하나 대자연의 어머니이신 당신의 가르침이기에 믿고 따르겠습니다." 이미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다가선 멜빈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비춰지는 팔라페의 새로운 모습은 전설 속의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감히 맞설 수 없을 만큼 강한 모습이었다. 부드러운 속에 감춰진 저 거대한 기운들. 그의 전신 감각에는 그 모든 것이 뚜렷이 느껴졌다. 만약 얼마 전의 자신이었다면 결코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대자연을 품은 그녀의 기운을 말이다. 그러나 팔라페는 멜빈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랍니다. 그 말씀은 부디 당신의 속 안에서도 지워주시길 간절히 청한답니다." 순간 멜빈의 눈이 경악으로 치켜 떠졌다. "어찌.... 어찌하여 나약한 인간인 저에게 대자연의 어머니이신 당신께서 그런 부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빈으로서는 추호도 생각 못했던 말이 그녀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어떻게 당신을 나약한 인간이라 칭하십니까? 그대 성스러운 우리들의 마스터시여." "허헉."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팔라페의 눈 속에 담긴 것은 진실뿐이었다. "아.... 아무래도 잘못 보신 듯 합니다. 제가 어찌 당신들의 마스터가 된다는......" 급히 변명이라 생각될 말을 떠올리며 내뱉었다. 하나 그것조차 상대는 용납하지 않았다. "아니랍니다. 이미 제가 당신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은 이상. 당신은 그분께서 정하신 우리 모두의 마스터가 확실하답니다. 그렇지 않다면 수만 년이 흘러도 감히 얻지 못할 깨달음을 당신께서 제게 베풀 수가 없었겠지요. 또한 당신께선 현재 스스로의 힘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신 상태랍니다. 그리하여 이 아이를 당신께 보낸 것인데, 아무래도 작은 오해가 생겼나 봅니다. 하나, 당신께서 받으신 성스럽고 영예로운 영광을 부디 잊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작은 표현에도 당신께서 행복해 해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답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팔라페의 말은 이미 그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 되었다. 이미 그녀가 그의 앞에 나타날 때부터 그 스스로가 성스러운 영예를 차버리지 않는 이상 평생을 같이 해야 할 인연이었기에, 멜빈은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깊이 각인 된 그녀의 말을 절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팔라페가 멜빈에게 다가온 순간, 이미 그녀의 의지와는 또 다른 힘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대인가? 나의 새로운 친구가 될 이가?" 한동안 푸른 장막에 휩싸인 채 격동의 모습을 보이는 멜빈의 주위로 느닷없는 음성이 전해져 왔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입에선 또다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허억, 감히 주군께 저런 망발을....." "이익, 누구냐? 감히 누군데 그따위 소리를." 하나 그들은 입으로만 연신 소리를 질렀을 뿐, 결코 다른 행동을 표출하지 못했다. 이미 그들의 몸은 새롭게 나타난 존재의 힘에 의해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묻겠다. 그대가 이제부터 나와 함께 성스러운 길에 동참할 친구인가? 마치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일절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한 광오한 말투였다. 그러나 멜빈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존재의 힘과 그에 걸맞는 의지는 결코 자신으로서는 맞설 수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건 그와 함께 할 팔라페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서 오세요. 오직 그분만을 위해 성스러움을 빛낼 위대한 전사여!" "후훗, 그대는 또 누구지? 우릴 찾아 왔던 이들과는 또다른 존재군." 이건 광오함을 넘어선 광폭함이었다. 어찌 최상급이 된 팔라페를 이따위로 대접한단 말인가?! 그러나 팔라페와 라디아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그녀들은 스스로의 힘과 새롭게 모습을 들어낸 존재의 힘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네, 이제 갓 최상급에 접어든 물의 정령 팔라페라고 한답니다. 우리들의 자랑스런 성전사이시여." 순간 그녀의 고운 목소리는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제껏 멜빈과의 조용한 대화만을 고집하던 그녀였기에,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 모든 이들은 그 순간부터 절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앉아버렸다. "이..... 이건........." "서........ 성.......전사........ 고귀한 ........ 신의 기사 팔라딘......!" "허억, 전...... 설 속의 파.... 팔라딘.... 이라니.......!" 한순간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메르카 제국 내에서도 가장 강한 자들만이 모여 있던 곳이기에, 그 여파는 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이가 있었다. 바로 새롭게 등장한 광오함을 가슴에 담고 사는 존재였다. "쿡, 그댄 나보다 낫군. 단순한 말 한마디로 저들을 무릎 꿇렸으니..." 여러 기사들의 소란에 새롭게 나타난 존재는 팔라페에게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랍니다. 이미 당신께서 나타난 순간부터 예고되어 있던 일들이지요." "그런가? 고맙군. 나를 인정해 줘서. 하면 이제 내가 여기 온 이유를 밝혀도 되겠지?" 역시 자신이 지닌 힘을 믿는 듯 모든 게 당연하다는 양 광오하게 행동하는 존재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해주는 굵직한 저음이었다. 그러나 그 존재의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처음에 나타났을 때 느꼈던 기운을 기억하기에 자신감에 차 있는 그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여지껏 목소리만 들리던 존재가 서서히 거대한 푸른 원형의 게이트를 열며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기에,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모두의 가슴은 심한 통증을 받고 있었다. "크....윽." "커...... 커억. 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이미 혼절 직전까지 가는 기사들이 여럿 나왔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롭게 모습을 들어내는 자는 푸른 게이트 너머로부터 거대한 기운을 물씬 풍기며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겨났다. "야! 이 밥통아. 너 눈에 힘 안풀어?!"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광오한 모습을 보이던 존재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어깨를 움찔하면서. 또한 대꾸를 하는 목소리에서도 이제껏 듣지 못한 연약함이 물씬 느껴졌다. "네에? 왜요? 제가 뭘 어쨌길래요?" "이게....." 휘익. 콰앙. 한순간 푸른 게이트 너머로 상반신을 들어냈던 존재가 급히 아래로 신형을 떨구었다. 쿠우웅. 멜빈이 서 있던 주변이 큰 진동을 일으켰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팔라페의 귓가로 멍멍한 울림이 전해지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급히 기운을 끌어올리며, 바닥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하는 기사들에게 푸른 장막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전 들려왔던 목소리는 예의 삭막한 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야. 이 미련 곰태이야. 대장이 조금 전에 했던 말 기억 못해? 우리 주인님이랑 몇 분의 어르신들을 제외한 모든 존재에게 항상 조심스럽게 대하라고 했잖아. 괜히 잘못해서 그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우린 주인님한테 줄초상 난다고!! 그렇게 귀가 아프도록 듣고서도 여태 이해 못한 거야? 아앙? 너 죽고 싶어?!" 그제서야 자신을 뒤에서 강하게 두들겨 팼던 이의 말을 이해한 그 존재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허억, 맞다. 이런..........." 꼴사납게 바닥에 쳐박혔던 존재는 급히 신음을 토하며 주변에 퍼져 있던 힘들을 급히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 그와 함께 이제껏 로얄 기사단원들을 괴롭히던 거대하고 광폭한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어찌나 빨리 사라졌는지 그 존재의 기운과 함께 주변의 공기가 한순간 사라지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와 때를 같이해서 푸른 게이트 너머로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쯔쯔쯧, 자알 한다. 이번 한번만 특별히 봐주는거다. 명심해! 차후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넌 제일 먼저 내 손에 해부될줄 알어!" "헉. 부대장. 절대.... 절대 그런 일 없을꺼에요. 그러니깐 심장 떨리는 그런 소린 하지 말아요." 그러나 이미 고함에 가까운 소리는 파란 게이트가 닫힘과 동시에 덧없는 메아리로만 남겨졌다. 그러나 그 존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게이트가 사라져버린 곳에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멜빈은 느닷없이 눈앞에서 벌어진 괴이한 광경에 기어코 넋을 놓고야 말았다. 일평생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황당한 일은 단 한번도 겪어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생전 처음 느낀 상쾌한 기분과 그걸 가능케 만든 이 새로운 힘. 그와 함께 나란히 나타난 저들은....... 도저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일을 어찌해야만 한단 말인가." 거의 탄식에 가까운 그의 말이었다. 그와 함께 멜빈의 시선이 윤기가 흐르는 시커먼 동체에 고정이 되자,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리는 새로운 존재와의 시선교환이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그순간 멜빈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너무도 감당키 어려운 걸 목격하게 된 것이다. "오, 신이시여! 어찌..... 어찌하여 이런 일들을 제게 시험코자 하십니까." 본능적으로 절규에 가까운 멜빈의 음성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멜빈의 절규에 주변에 있던 이들도 하나같이 시선을 집중하며 절규 어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신이시여! 제발...... 제발 저희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어.....어찌..... 어찌 저런 일이......... 안~돼!" 한순간 온통 건장한 사내들의 울부짖음이 조용한 초원을 점령해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팔라페와 라디아였다. -쯔쯔쯧. 어찌 저런 흉측한 모습이람.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너무 꼴불견이다. 그치? -그러게 말이에요. 어찌 저 커다란 덩치에 눈물을 질질 흘리다니............ 너무 불쌍해요. 그런 그녀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멜빈과 그의 동료들은 때이른 새벽부터 피토하는 절규를 내질러야만 했다. 그것도 목이 다 쉬어 터져 며칠간 말을 못할 정도로. 그만큼 눈앞의 존재가 하고 있는 짓은 눈 버리기 딱 좋은 일이었다. ****************** 음. 일단 올렸네요. 사실 주말이라서 좀 쉬고 싶었거든요. 현재까지 올린 분량이 정확히 52쪽 3칸. 무려 반권에 가까운 분량이랍니다.^^;; 그러니 좀 쉬어도 되겠죠? 그럼 이번주의 연참은 요기까지만 할께요. 좋은 주말 보내시고 담주에 뵈요. 특별한 일만 아니면 가급적 연참으로 가곘습니다. 그럼 전 이만~ 신룡의 후예 7 - 8 싸이는 복잡하던 환경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천천히 몸 안에서 뭔가 강렬한 이끌림이 전해지자, 서서히 편안한 의식을 가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동안 눈앞을 스쳐가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작은 휴식이 필요했다. 그걸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싸이는 작게 숨을 고르며 서서히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성은 본능을 앞질러서도 아니 되고, 본능은 이성을 누르려고 해도 아니 된다. 그저 흐르는 물처럼 맑고 고운 소리로 모든 것에서부터 구속되지 아니하는 순수한 자유를 꿈꿔야만 된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언뜻 듣기에도 매우 현묘한 말이었지만, 싸이는 복잡한 의식을 구원키 위해 취한 휴식에서까지 복잡한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하나 방금 전 들려온 말은 이런 마음에 곧이어 작은 파문을 주었다. '내가 느끼지 아니하고, 거부치 아니하면 되는 것 아닐까? 그저 내 마음을 명경도수처럼 편안하게만 가지면 되지 않을까? 그저 모든 흐름에 거슬리지 않고, 나와 내 앞에 놓여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이 따르면 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을 던졌고, 그건 곧 의식의 저편에서 밝은 해답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미처 의식치 못했던 몸은 본능에만 치우쳐 움츠러들고 벗어버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그것은 모두 의지가 따르면 사라질 일. 결국 싸이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면서 몸 안에 이는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비록 싸이의 의식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뭔가 깨달음을 주는 말에 따르며 스스로 속안에 이는 작은 흐름을 깨달아갔다. 더불어 점점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싸이는 누군가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멜빈은 며칠 전 일어났던 일로 인해 자신과 부하들에게 휴식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물론 눈앞에 적을 놔두고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신적 황폐화가 낳게 되는 고통은 쉽게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중요 참모진과 더불어 멜빈은 잠시간 휴식을 취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심에 결정적 공헌을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라인스트 침공군들이었다. "각하.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각하.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저희들이 휴식을 취한다는 것은 오히려 적들에게 사기를 복돋워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사옵니다." 아무래도 그의 뒤를 따라오던 부하들이 걱정이 된다는 듯 말을 건냈다. 멜빈은 그런 부하들에게 작은 미소를 보여주며 자신이 타고 있는 백마의 갈기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경들. 내 경들의 근심은 모두 알고 있다. 하나 이미 적들은 내가 잠시 취한 휴식만으로도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그들을 몰아내고자 전투를 벌인다면, 그건 또다시 많은 병사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될 것이다." 멜빈이 씁쓸한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쉽게 동의하지 못했다. "각하. 하오나 적들의 보급선은 고작 30여 척뿐이었사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물러선다는 것은........" 필립이 급히 반문을 하려고 들었다. 그도 어제 새벽녘에 들이닥친 적들의 새로운 보급선을 똑똑히 본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숫자에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이제껏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멜빈은 아무말없이 조용히 부하들을 뒤로 물리게 했다. 이 점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멜빈은 따로이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필립 경. 경은 이미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고작 그따위 숫자놀음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 병법에는 분명 이러한 어귀가 있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라고. 고로 이번에 우리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고는 하나, 그건 곧 적들을 이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전술이 될 것이다. 난 그 전술을 생각하고 잠시 병사들을 물렸다. 또한 그들에게 휴식을 취하라 일렀다." 필립은 혹시나 했던 느낌이 현실로 와닿자 멜빈의 마지막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하오면 이번의 후퇴를 마지막 도약 단계로 생각하시고 계시단 말씀이시군요. 신 각하의 깊으신 생각에 감명 또 감명 받았사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키는 멜빈이었기에, 그를 믿고 따르는 부하들은 그의 말에 전부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필립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가슴께로 절도 있는 인사를 올렸다. "후후후, 알아주니 고맙군. 하면 앞으로 모든 근심을 걷어버리고 휴식을 취하는데에만 집중하도록 하라. 이건 곧 그대들 모두에게 내리는 엄명이니라." "넵.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그의 뒤를 따르는 이십 여명의 모든 기사들이 조금 전 필립이 한 인사를 그대로 했다. 모두들 절도가 있는 모습이 상당히 멋들어져 보였다. 그걸 바라보며 멜빈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서두르자. 내 자랑스런 선조들이 세우신 안식의 궁전 상글리에는 생각 밖으로 먼 곳에 있는 곳이니........" 멜빈의 말에 모든 참모진의 눈에는 빛이 났다. 그들 중 몇몇은 말로만 들었던 상글리에를 방문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분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멜빈은 한가지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그 시각 상글리에를 향하는 자신에게 찾아드는 소식이 있었다는 것을......! 싸이는 편안한 모습으로 꿈을 꾼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순간, 이 꿈이 깨어나면 그토록 열망하던 새로운 육체와의 만남이 뒤를 이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대감에 잔뜩 부푼 몸은 거북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움을 가져왔지만, 이미 의식은 오래 전부터 편안한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분명 꿈속에서 홀로 있다고 느꼈건만, 어느 새 싸이의 곁으로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홀홀. 기특한 녀석. 그 동안 잘 지냈느냐?" 그러나 싸이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유는 잘 몰랐지만, 예전에 꿈속에서 나누었던 할아버지와의 대화는 지금 이 순간 금지 당하고 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겠지. 하지만 굳이 의연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단다. 이미 너만의 기운은 나의 의지를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싸이는 왜 이런 일이 생겨났는지를 확연히 깨달았다. 그런 깨달음은 곧바로 싸이의 눈에 담겨졌고, 싸이의 눈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진하 게 어렸다. "역시 넌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이미 네 스스로 이토록 훌륭하게 성장한 이상 난 더 이상 바랄게 없단다." 그리곤 곧바로 싸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싸이야. 이제부터 넌 너만의 생활을 가지게 될 것이다. 비록 이 늙은이가 노파심에 이렇게 찾아왔지만, 이런 내 행동에 헤세르 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시더구나. 그건 곧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로부터라도 스스로의 영혼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싸이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힘들었다. 그러나 며칠의 시간동안 눈앞을 어지럽게 했던 영상들 중에서 이런 깨달음의 작은 힌트가 있었다. 곧이어 싸이의 머리가 가볍게 끄덕여지자, 할아버지이기를 자처하는 신룡 헤르아킨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서렸다. "싸이야. 그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많이 힘들 것이야. 하나 이것만은 명심하렴. 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감히 대할 수 없는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또한 네가 맘먹기에 따라선 이 세상 모든 것을 성스럽게 정화를 할 수 있다는 믿음도 꼭 가지고 있거라. 자,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 앞으로 널 언제 다시 만날지는 기약을 할 수 없지만, 이것이 내가 네게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 여기고 부디 좋은 일에 사용했으면 하는구나." 싸이는 할아버지인 신룡 헤르아킨이 내미는 물건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하얀 색으로 보이는 한쪽뿐인 장갑이었다. 너무도 투명하게만 보이는 물건에 하얀 색이 어린것은 그 장갑만이 가진 고유한 기운 탓이었다. 싸이는 그런 물건을 자신에게 내미는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비록 말로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눈앞의 할아버지는 이미 눈빛만으로 자신의 의도를 깨닫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놈은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사용했던 물건이란다. 그것이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영력을 지녔지만, 네가 사용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야. 대신 이 물건을 통해서 차후에 많은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니, 항상 주의하며 사용해주기 바란다. 알겠지?" 마치 위험한 물건인양 이야기하면서도 그 눈빛은 자신을 믿어 준다고 여겨졌다. 곧이어 싸이는 대답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왼손을 잡고 계신 할아버지가 섭섭해하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싸이의 의도는 보기 좋게 전달이 되었다. "후후, 녀석. 아무리 봐도 네가 내 자손이라는 게 이토록이나 가슴 설레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구나. 언제나 네가 있으므로 해서 난 그분께 감사를 드린단다. 앞으로 더욱 자랑스러워질 내 가문에 보다 많은 애정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그럼 이 할애비는 너만 믿고 가마." 말을 하는 와중에도 싸이의 왼손에 투명한 흰색 장갑을 씌워 주었다. 싸이는 왼손으로 전해지는 차가운 느낌에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이미 자신을 믿고 간다는 말과 함께 서서히 사라지는 신룡 헤르아킨 이었다. 그순간 싸이는 처음으로 말을 할 수 있었다. "할...... 할아버지! 신룡 할아버지........!" 그러나 나타날 때와 같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 신룡 헤르아킨이었다. 엘렌과 에르킨 여사는 싸이의 온몸에 어리는 광채를 바라보며 놀란 탄성을 질렀다. "오오. 드디어.... 우리 아기가 드디어 깨어나는 구나." "엄마! 지금 저거......... 저 하얀 빛...... 저 빛을 보셨죠?" "그래, 저건 바로 우리 신룡의 자손들만이 지닐 수 있는 신성력이란다." "그래요? 그럼 저도 저런 현상을 보였었나요?" "당연하지. 넌 내 자랑스런 딸이잖니. 신룡 할아버님의 후손이기도 하고." "어머나. 그럼 나도............" 엘렌은 분명 아들의 몸에 매우 짧은 시간동안에만 머무는 빛을 보았다. 그 빛은 며칠 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고, 그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 어머니인 에르킨 여사의 말에 따르면, 그녀 자신도 오래 전 탈피의 순간에 보였던 것이라 한다. 그 때문에 더욱 가슴 한켠이 벅차 오르며 울렁거렸다. 마치 답답한 가슴에 짜르르한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엘렌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며 계속해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가족이라는 것. 오로지 가문의 핏줄로만 이어진 소중한 인연의 끈이라는 것. 이 두 가지 모두가 너무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이제 인간의 모습으로 낳은 아들로 인해 걱정해야만 했던 지난날의 잘못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오로지 눈앞의 가족들과 곧 잠에서 깨어날 그녀의 아들만이 눈에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저토록 소중한 아이를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엘렌은 점점 거칠게 일렁이는 광채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히며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기도에 반응이라도 하는 양 더욱 심하게 움직이는 빛의 무리들이었다. 그와 때를 같이 하여 푸른 액체 속에서 빛의 환희를 받던 싸이의 몸도 꿈틀거렸다. 처음엔 오른쪽 발이 빠져 나왔다. 곧이어 언발란스하게도 왼쪽 손이 빠져 나왔다. 그와 함께 점차 강하게 몰아치는 광채와 함께 싸이의 왼발이 빛에 휩싸인 채 액체 밖으로 빠져 나왔다. 두근두군. 강하게 느껴지는 심장 박동 소리와 더불어 주변에 서 있는 모든 이의 얼굴은 점차 붉어져갔다. 마치 귓가로 강하게 들려오는 듯한 심장 뛰는 소리는 그들의 심장박동과 하나로 이어지는 듯 했다. 그로 인해 숨소리가 상당히 거칠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한참 동안 감겨져 있던 싸이의 눈이 가늘게 떠지기 시작했다. 파앗. 마치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의 기운이 터져 나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우웃." 얼떨결에 싸이 곁으로 다가왔던 제로니스가 놀란 신음성을 터트렸다. 그 순간 모두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곧이어 에르킨 여사가 한쪽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았다. "쉬잇." 제로니스는 에르킨 여사의 손길에 따라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 와중에도 싸이의 눈은 점점 크게 떠지고 있었다. 반짝. 순간 모든 빛이 눈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현상이 생겨났다. 더불어 싸이의 주변을 감돌던 광채들도 하나둘 싸이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움....." 탈피의 시간을 겪으며 처음으로 미동도 없던 싸이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모두가 그 소리에 놀라 저마다 입을 열려는 순간 반드시 누워 있던 싸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싸.... 싸이야!" "우리 강아지.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순식간에 두 모녀의 음성이 뒤를 따랐다. "우웅. 엄마! 할머니........." "오오..... 내 기특한 강아지." 제일 먼저 에르킨 여사가 싸이를 품에 안았다. 이건 엘렌이 싸이에게 달려드는 것을 급히 왼손으로 떠밀치며 독차지한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는 못했다. "앗. 차거워!" 급히 싸이를 품에 안던 에르킨 여사는 곧이어 뾰족한 비명을 토하며 급히 싸이의 곁에서 떨어졌다. 분명 품에 안을 때에는 따스하던 손자의 몸이 곧이어 하얀 냉기를 피워낸 까닭이다. "이.... 이게 무슨 영문이야." 에르킨 여사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싸이의 벌거벗은 몸을 훑어보았다. 비록 중요한 부위까지 여사의 시선이 닿았지만, 결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기에 그리 볼쌍 사납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하얀 냉기를 일으키는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싸.. 싸이야! 지금 이 한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니?" 애써 놀란 가슴을 뒤로한 채 에르킨 여사의 질문이 쏟아졌다. 싸이는 잠시 어리둥절한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다가 자신의 몸이 발가벗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급히 신형을 움츠렸 다. 그때였다. 휘익. 콰아앙. "아악! 싸이야~!" 엘렌의 비명이 뒤를 따랐고, 그와 함께 싸이를 지켜보던 모두의 표정엔 경악의 시선이 어렸다. 모두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이건 당사자인 싸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곧이어 뒷통수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에 급히 머리를 숙였다. "아야야! 할아버지. 이거 왜 이래요?" 어찌 만물박사인 갈리아스 옹이 모르는 일이 있겠는가. 하지만 눈앞의 현상은 그도 직접 목격을 했지만, 미처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옆에 서 있던 제로니스는 그 현상이 뜻하 는 바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의지가 일어나면 몸이 반응한다." 마치 중얼거리듯 내뱉는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은 그를 향해 있었다. "허헐. 뭐라고? 의지가 일면 몸이 반응해? 그건 당연한거잖아." 제일 먼저 황당한 일 앞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던 갈리아스 옹이 핀잔을 줬다. 하나 제로니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또 다른 말을 내뱉기만 했다. "의지를 이어받은 육신은 유를 벗어나 무로 향한다." "으잉? 도대체 뭔 소리야?" 신경질적인 갈리아스 옹의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답변은 제로니스가 아닌 에르킨 여사의 입에서 나왔다. "으음, 혹시 만물의 법칙을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만물의 법칙?" "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하시면서 모든 생명체를 창조 하셨잖아요. 그때 우리 모두는 무에서 유로 새롭게 태어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유에서 무로 되돌아가는 존재들이 간혹 나타났는데, 그들이 바로..........." 에르킨 여사는 더 이상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급히 그녀의 고운 입술을 가로막는 불청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만. 하면 그 현상이 바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단 말인가? 이...... 이 무슨 믿을 수 없는 일이........" 갈리아스 옹이 급히 에르킨 여사의 입을 가로막으며 알 수 없는 탄식을 내뱉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엘렌이 궁금증에 물든 말을 건냈다. "어... 아빠! 왜 아빠만 알고 다른..... 아니 전 못 듣게 하시는 거죠? 저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그러나 엘렌의 호기심 어린 질문은 철저히 배척 당했다. 이건 알고 있는 자가 적을수록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엘렌아! 지금은 많이 궁금하겠지. 하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리렴. 언젠가 네 스스로 알게 될 날이 올테니까." "아.... 아니. 그래도......." 정색을 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에르킨 여사와 갈리아스 옹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깨달은 그녀는, 무조건 참고 기다리라는 아버지의 말에 반색을 표했다. 하지만 제로니스도 막상 에르킨 여사의 입을 통해서 나온 사실에 급히 말문을 닫아버린 처지라 그녀의 궁금증은 쉽게 풀릴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싸이는 뒤통수의 통증이 점점 커지는 관계로 두 손으로 빠르게 머리를 비벼주고만 있었다. "크흑, 아파. 헤엥. 너무 아파." 하지만 자신이 아프다고 이야기 해놓고선 급히 한 손으로 입을 막는 싸이였다. '아차. 지금 난 과거의 어리기만 했던 싸이가 아니었지?! 이런.... 너무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아. 이렇게 엄살이나 피우다니.' 사실 엄살은 아니었다고 본다. 왜냐면 뒤통수에선 피가 흘러 내리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생각을 해 보라. 급히 온몸을 움츠리려고 들던 몸에 순식간에 하얀 잔상이 어림과 동시에 뒤쪽에 있는 벽과 강하게 부딪혔던 싸이였다. 아마 조금만 더 세게 들이박았다면 벽에 가는 금이 났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벽과의 조우를 끝마친 싸이의 머리가 괜찮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싸이는 죽어도 몰랐다. 자신이 왜 그런 현상을 겪어야만 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 순간 절대 몰랐다. 쿠앙. 쿠당탕. 철퍼덕. "커........ 억. 엄마........ 나 죽어!" 투웅. 콰앙. "케...... 엑." 온통 주변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건 너무도 황당한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싸이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미 싸이의 온몸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새롭게 만난 육체는 고통에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흐흑.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내가 일어나고자....... 아차. 으아아악.' 콰앙. 부르르르르. 지금은 어떠한 생각도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생각이 일자마자 몸은 그대로 행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가히 빛과도 같이 빨라 감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방금 전 만해도 마찬가지다. 미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싸이의 몸은 급히 위로 떠오르며 천장과 하나가 되었다. 곧이어 만물에 적용이 되는 추락의 법칙에 따라 싸이의 몸은 또다시 빠른 속도로 바닥과의 조우를 해야만 했다. 이러니 어떻게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아파 오는 몸을 눈물로 달랠 수밖에 없는 싸이였다. "흑...... 흐윽. 너무 아파요. 제발..... 제발 좀 절 살려주세요..." 하나 애절한 싸이의 울음에도 불구하고 싸이가 있는 방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었다. 아니 들어 올려고 해도 이미 그들은 신체의 한 부위씩 심하게 다쳐버린 상태라 차마 오고 싶어도 오지를 못했다. 왜냐면 그들 또한 언제 어느 곳으로 튈지 모르는 싸이의 몸을 고정시켜주려고 했다가 이미 손과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법이라는 뛰어난 능력을 온몸으로 깨달은 이들이, 감히 치유주문을 외쳐도 먹히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 이러니 그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온 방안을 휘저으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싸이만큼이나 더 괴로웠던 것이다. 그만큼 현재 싸이의 의지에 따르는 새로운 육체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했고, 고룡이라고 자처했던 이들도 단 한번에 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그 육체에 이는 힘은 가히 장난이 아니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여전히 몸과 마음을 따로 놀게 만들며, 정신없이 온몸을 내던지며 새로운 육체와의 조우를 끝마치고 있었다. 신룡의 후예 7 - 9 쥬엘은 평소 메테우스가 해오던 일들을 묵묵히 뒤에서 바라보며 여기까지 왔었다. 한데 요 며칠동안 그의 부재가 가져온 많은 일들이 이토록 힘들었던가 하는 의아심을 느껴야만 했다. 그냥 바라볼땐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던 일들도 막상 몸을 움직여 행해보면 무척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저 앞만 보고 마차를 끈다는 것이 이리 힘들 줄은 진작에 알지 못했다. "휴우, 보자.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며칠 째 의식이 없는 메테우스를 놓고 어찌 할까를 고민하다 결국 그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미 그곳의 위치는 메테우스의 지도를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가끔 마부석 옆에서 지도와 육분의로 이동하는 모습을 종종 봐왔기에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커다란 착각이었다. 비록 사제 교육을 받으면서 간단한 지도 판독과 이동술을 교육받았지만, 생전 처음으로 만진 육분의로 아주 작게 표시된 위도와 경도의 점을 찾아간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동서남북을 알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쥬엘은 손에서 작게 떨리는 육분의 바늘을 확인하며, 현재 있는 곳을 확인해 봤다. 그녀가 들고 있는 육분의는 주로 마법사들이 쓰는 것으로, 공간 이동 마법과 게이트 마법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동할 곳의 위도와 경도를 정확히 알아야만 이동마법을 할 수 있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물건이 바로 육분의였다. 물론 사용법을 모른다면 쓸모 없는 물건이었지만, 쥬엘은 평소 메테우스가 사용하는 것을 자주 봐온 까닭에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손에 든 육분의를 정밀하게 그려진 지도의 끝부분에 놓고, 원하는 위치와 자신이 있는 위치만 제대로 짚어주면 가야 할 방향과 거리가 대충 나오기 때문이었다. "휴우, 당신의 빈자리가 이토록 클 줄은 미처 몰랐군요. 메테우스 경. 어서 기운을 차리세요." 쥬엘은 지도에 그려지는 위도와 경도를 보며,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 메테우스의 빈자리가 더욱 커지는 순간이었다. 쥬엘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길수록 더욱 힘을 내려는 듯 고삐를 쥔 손에 파란 핏줄이 돋을 정도로 힘을 줘 움켜쥐었다. 비록 며칠 전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평소 은은한 신성력을 풍기던 메테우스의 주군과 상관이 있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는 낯선 존재들에게서 따뜻한 관심을 받았던 걸 기억하고 있기에, 마차 안에서 의식을 잃고 있는 메테우스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단지 신성력을 가지기 위해 받는 신내림 치곤 너무 과했다는 것만이 그녀의 불안함이었다. 그녀 또한 과거 신내림을 받아본 사제이기에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메테우스처럼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과한 기운을 내려 받지는 않았다. 처음엔 그녀도 그 낯선 존재들이 실수했으리라 여겼지만, 신내림이라는 것 자체가 성스러운 일이었기에 곧 그런 실수 는 존재치 않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쥬엘은 메테우스가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일행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하루도 밝은 이끌림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숲 속의 기운은 편안하기만 했다. "조.... 조금만 더..... 앞으로 천천히 기어가면....... 허억..... 안돼~!" 청아한 미성의 목소리가 작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순간 그 뒤쪽에서도 작은 탄성이 흘러 나왔다. "조심해~! 이궁, 다 가서 갑자기 그러다니......" "쯔쯔쯧, 아쉽구나. 조금만 더 조심했더라면 성공 했을텐데." 모두들 혀를 찬 채 아쉽다는 표정이 여실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은 혹여나 청아한 미성의 주인공이 다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나가는 신형을 쫓고 있었 다. 휘익. 콩. 다행이 이번에는 그리 세게 부딪히진 않았나 보다. 하긴 조금 전 부딪힌 곳이 일반적인 벽이 아닌 푸른 게이트처럼 생긴 타원형의 문이었기에, 그리 아프진 않은 모양이었다. "헤헤, 드디어 성공했다." 싸이는 드디어 목적하던 곳에 손이 닿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자그마치 이틀을 고생해야만 했던 지난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충돌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이제 손에 닿은 곳의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앞으로는 그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이 절실히 와 닿았다. "할아버지. 진짜 이 문만 열고 들어가면 되는 거죠?" 아무래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지 재차 확인하는 싸이였다. "그래, 앞으로 넓은 공간에서 맘껏 뛰어다니다 보면 금새 적응이 되겠지. 대신 쉴 때는 반드시 제우스 녀석 안에서 쉬어야 한다. 괜히 감기 들지 말고." "네에." 갈리아스 옹의 말에 비로소 안심이 되는 싸이였다. 그러니 자연 목소리에 생기가 넘쳐 났다. 그걸 보면서 에르킨 여사의 입가에 작은 비틀림이 생겼다. "휴우, 그 동안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나오자마자 이런 생이별이라니....." "마누라. 그만 속 끓이고 잠시 휴식을 취합시다. 어차피 적응만 하면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테니." "그래도....... 어찌 혼자......." "어허, 내가 이 모양을 하고서도 재차 손을 본 곳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말고 우리들 몸이나 치료하면서 기다려 봅시다." "흐윽..... 남들은 성력을 몸에 담는 순간만 지나면, 평소보다 훨씬 더 편한 생활을 하는데.... 왜 우리 싸이만 저렇게 고생해야 하죠?" 에르킨 여사는 옆에서 어깨를 토닥여 주는 갈리아스 옹을 올려다보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며칠 전까진 목이 터져라 응원도 해줬고,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의젓한 손자를 품에 안아볼 수도 있었다. 한데 다른 이들과는 너무도 다른 육체와 그에 버금가는 성력을 몸안에 담고서도 손자는 저렇듯 고생을 해야만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가문을 위해 길이 빛나는 영광의 순간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어린 손자가 고생하는 모습은 그리 보기 좋은 건 아니었다. "허허, 에르킨. 당신이 너무 저 녀석을 감싸고돌아서 그런거요. 남들은 탈피를 하게 되면, 성룡으로 취급을 해서 홀로 생활을 시킨다는 것을 떠올려 보구료. 이제 저 아이도 당당한 용족의 일원이 되었단 말이오." 갈리아스 옹은 내심 손자의 나이를 떠올려보며, 황당한 손자의 내력과 그로 인해 먼 훗날까지 이어질 파란만장한 전설의 시작점에 서서 에르킨 여사를 다독거렸다. 물론 성룡이 된 손자를 어떻게 대해야 될지도 빼놓지 않았다. "무릇 사내라면 스스로 독립을 해야만 하는 거요. 당신이 자꾸 저 녀석을 감싸고돌면, 자칫 나쁜 버릇에 물들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만 하고 우리 몸부터 추립시다." 에르킨 여사는 남편 갈리아스 옹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성룡이 된 용족의 사내아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린 것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율법에 따라 성룡이 된 존재는 그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을 지녀야만 했다. 그로 인해 싸이의 나이가 매우 어리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뇌리 속에선 사라졌다. 나이와 상관없이 몸안에 받아들이는 성력은 때때로 이른 시간에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는 것이 안쓰러움과 근심으로 남아 있었지만.......! **************** 에.... 일단 연재가 늦어진 점 죄송합니다.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쉬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음.... 두통이 제법 심한 상태라서, 이 앙시 물고 썼는데도 불구하고 요것밖에 안되는군요. 과연 주말까지 한편 더 올려드릴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아무튼 최대한 기력을 짜내보겠습니다. 에혀... 여러분들도 날씨 덥다고, 창문 열어놓은 채 주무시지 마세요. 괜히 그러다 저 같은 일 당한답니다. 그럼 여러분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신룡의 후예 7 - 10 쿠아아앙. 부르르르. 뭔가 강력한 폭발음이 터져나오며 아공간의 한쪽 공간이 작살을 맞은 듯 부르르 떨렸다. 곧이어 진동이 멈추지 않는 아공간의 벽으로부터 작은 인형이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크으윽."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에 절로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작은 인형의 속도는 또다시 반대편 아공간의 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싸이는 매우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날아가는 와중에도 편안한 육체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리도 꼬이는 거지?" 생각할수록 답답했다. 이곳에 온지 벌써 하루가 지났지만 새로운 육체에 여전히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비록 자신의 몸이라곤 해도 뭔가 행동을 연상시키는 단어만 떠올라도 곧바로 따라하는 몸이 너무 저주스럽게 여겨졌다. 그런 와중에도 싸이는 새로운 육체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 해야만 했다. 투우우웅. 순식간에 반대편 아공간의 벽이 뒷통수를 부드럽게 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다. "크윽, 이번엔 완전히 힘을 빼니까 덜 아프네. 근데 할아버지가 어제저녁에 주신 이 갑옷은 너무 무거워. 꼭 이걸 착용해야만 하는 걸까?" 싸이는 얼굴을 가리는 투구가 답답하다는 느낌에 투구만 제외한 풀 플레이트만 입기로 한 결정을 금세 뼈저리게 후회했다. 비록 시야가 좁아진다곤 해도 머리부분에 받게 될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는 무구를 빼놓은 덕분에, 화려한 금발의 머리결 사이로 보이지 않는 작은 혹들이 무수히 들어섰던 것이다. 지금처럼 투명한 아공간의 벽에 부딪히면 그나마 아찔한 현기증만이 생길 뿐이지만, 재수 없게라도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면..........! "응? 맨땅에 헤딩?! 으아아악. 내가 미..........쳐.........!" 휘이이익. 콰아아앙.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다가 땅 쪽으로 시선을 옮긴 게 큰 잘못이었다. "크으으윽. 아....... 파........!" 그러나 이미 아공간에 형성된 바닥은 싸이의 따스한 키스를 받고 있었다. 거대한 헤비 워커들의 수련을 위한 조건을 충분히 충족시키기 위해 바닥만은 특별히 단단한 금속제로 형성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바닥과 부딪힌 충격만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이미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적응하고 있었다. "크윽, 이런 고통이 두려워 포기한다면 내가 아닌 거야! 힘내자. 그리고 일어서는 거야!" 순간 싸이의 몸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벌떡 일어섰다. "휴우, 좋아. 패배주의에 젖은 말은 생각도 말고, 언제나 진취적인 것만을 떠올리자. 자, 첫술에 배부른 법은 없는 거야. 천천히 하나씩 이루어보자." 싸이는 일어선 상태로 잠시 위쪽을 올려다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곧이어 뭔가를 의식하듯 천천히 한쪽 팔을 들어 올렸고, 편안한 마음으로 오른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곧이어 싸이는 왼발을 살짝 밀며 힘차게 올린 오른 손을 내리고 왼손으로 살짝 감싸듯이 움켜쥐었다. 그런 상태로 싸이는 두 손을 앞으로 천천히 내밀었다. 정권으로 감아쥔 오른손과 그 손을 부드럽게 감싸쥔 왼손이 앞으로 내밀어지자, 그 주위로는 신비로운 파란색의 투명한 아지랑이들이 어리기 시작했다. "후우욱." 온 몸에 잔뜩 힘을 주며 매우 답답하게 보여질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는 손길에는 작은 길이 담겨져 있었다. 일명 투로(鬪路)라고 불리는 길이었다. 아직 이 세계에는 나타나지 않은 것들이지만, 싸이의 뇌리 속에는 깊이 각인 된 것들이었다. 과거에는 단전호흡과 함께 행해져던 것들이지만, 이미 신에 버금가는 기운을 몸 안에 가지게 된 싸이로서는 작은 호흡하나만으로도 모든 동작에 거대한 기운을 담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은 미처 의식치 못한 행동이었지만, 싸이의 몸은 마치 무아의 지경에 든 것처럼 머릿속에서 연상이 되는 동작들을 충실히 따라하고 있었다. 간간히 느린 동작에 불만을 품은 본능이라는 것이 싸이의 머릿속을 자극했지만, 이미 무언가와의 대화에 성공한 싸이로서는 작은 본능의 반항을 강한 의지로 다독이며 포근한 품으로 인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싸이의 몸은 신비로운 동작들을 아공간에 선보이며 한참동안 의지와의 고른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장. 지금 주인님이 하고 계신 것들은 뭐지? -글쎄다. 우리로선 매우 낯익은 동작들인데..... 직접 주인님이 행하시니까 매우 겁이 난다. 제우스는 어깨너머로 들려오는 미려의 도끼에게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전해줬다. -그렇지? 나도 어째 저 주먹에 맞으면 뼈도 못추릴 것만 같아. 으휴우우우. 제우스는 자신과 바짝 붙어 있는 미려의 도끼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뭔가 두렵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자, 자신의 몸도 작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건 지금껏 주인의 동작 하나 하나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양 지켜보던 모든 시커먼스 군단의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은 이제껏 자신들에게 의지 하나만으로 모든 행동들을 명령하던 주인이 갑작스레 몸으로 여러 가지 다채로운 행동들을 보여주자, 뭔가 강한 것이 와닿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해왔던 것들이 아주 얄팍한 재주였다는 것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깨우쳐지자, 그들은 절로 주인의 동작 하나 하나까지 머릿속에 되새기고 있었다. -이 봐. 전부들 이렇게 멍하니 구경만 하지 말고 지금부터 우리들도 주인님의 동작 하나 하나를 모두 따라하자. 네 녀석들도 이미 느꼈을테지만, 과거 우리들이 주인님께 받았던 명령들은 아주 잘못 된 것이다. 우리들이 스스로 느끼지 못했으니 그 힘들이 어떤 경로로 이어지는지 잘 몰랐고, 그로 인해 겉모양만 비슷했던 것 같다. 모두들 내 말 인정하지? 제우스는 주인이 자신들 앞에서 보여주는 느린 행동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미 가슴속에서 깊이 깨우친 게 있었다. 그런 까닭에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말을 건내자, 이미 모든 시커먼스 군단들도 그의 생각과 동일한 듯 크게 대답했다. -맞아. 대장! 내가 이제껏 얼마나 미련했는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어. 주인님께서 손수 우리들에게 저러한 은혜를 베풀어주고 계신데, 감히 우리가 그 은혜에 보답치 않는다는 것은 존재의 부정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해. -그래. 미려의 도끼. 네 말이 맞다. 우리들 스스로 존재의 부정을 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주인님이 행하시는 모든 것들을 따라하자. 그게 바로 우리들의 의무이니까. 그때부터 아공간은 후끈한 열기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미 시커먼스 군단의 최고 서열인 제우스와 미려의 도끼가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싸이의 뒤에 서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든 시커먼스들도 뭔가 가슴속에 이는 뜨거운 것을 느끼며 하나둘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아공간은 그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에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몸 안의 작은 곳까지 강한 힘을 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싸이의 작은 손동작 하나에까지 담겨져 있었던 까닭에, 그날부터 시커먼스 군간은 또다른 깨달음의 경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건 비단 시커먼스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으잉? 저것들이 도대체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 손자의 안전를 위해 아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정구에 시선을 고정시켜 놓고 있던 갈리아스 옹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놀란 눈으로 수정구를 들여다보았다. "아니 저 녀석들이 왜 저러는 거죠?" 에르킨 여사가 제일 먼저 헤비 워커들의 이상한 움직임에 놀란 듯 갈리아스 옹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나 갈리아스 옹조차도 그들의 순수한 의도를 몰랐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달랐다. 그는 이미 무예의 길에 평생을 바치며 나름대로 수련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저런...... 어찌 저런 방법으로 몸 안의 기운들을 되살린단 말인가?" 내심 놀란 마음에 혼잣말을 한다는 것이 제법 크게 새어나왔다. 그걸 듣고 가만히 있을 갈리아스 옹이 아니었다. "아니 뭔 소리야? 저것들이 지금 하는 짓거리가 뭔데 그런 이상한 말을 한단 말인가?" "형님. 저 친구들이 행하는 걸 자세히 보세요. 아니 그렇게 눈으로만 쫓지 말고 그들의 주변에 이는 기운들을 느껴보시란 말이에요." 순간 갈리아스 옹은 제로니스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며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뭐야? 어찌 저런 단순한 동작 하나마다 저토록 몸 안의 기운을 되돌리는 방법들이 담겨져 있단 말인가?" 비단 갈리아스 옹만 놀란 게 아니었다. 제로니스와는 또 다른 길을 걸으며 이미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대자연과 동화가 가능한 에르킨 여사 또한 놀란 입을 쩍 벌렸다. 여사 또한 남편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엘렌만이 뭔소리인가 하는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러나 세 명의 고룡들은 놀란 마음에 미처 엘렌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이미 그들은 수정구를 통해 보여지는 시커먼스들의 행동과 그 앞에 서서 그들을 가르치는 양 매우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싸이의 손동작 하나 하나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의 시작은 한동안 석화 마법에 걸린 양 앉은 자세 그대로 숨도 내쉬지 않은 채 꼼짝도 안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허억...... 엄마?! 아빠?! 로드 제로니스 님?! 제 말이 들리세요? 왜 들 이러세요... 갑자기 숨도 안쉬고 계시면 큰일 난단 말이에요. 제발 정신 차리세요." 엘렌으로서는 이 황당한 일에 앞서 세 존재의 부재가 가져올 파장에 매우 놀란 모습이었다. 그로 인해 안절부절한 모습으로 맴돌았지만, 이미 그들의 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대자연의 기운으로 인해 그녀는 감히 어찌할 바를 몰랐다. "흐윽, 설마 이런 모습으로......... 아닐 거야. 이미 이분들의 몸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으니까 설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기만을 기도해야해." 그렇게 맘먹은 엘렌은 급히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먼하늘에서 온 대지를 밝게 비추는 태양은 존재의 임무를 마친 채 되돌아갔고, 그뒤를 이어 푸른 달빛과 함께 은하수의 밝은 빛이 그들의 머리위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얼마나 몰아의 상태로 있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싸이는 이 모든 일의 끝에 생겨날 것들을 알고 있었다. 이건 그동안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이다. '후욱, 자 이제 마지막이야.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끝을 맺자.' 이미 의지는 그의 육체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건 긴 잠에서 깨어날 때부터 그러했다. 단지 새로운 육체는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움직임을 보여줬기에 그동안 고생을 했던 것이다. 맨처음 아공간에 접어들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해본 일이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몸은 그대로 따라 해줬다. 예전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던 일들이 이번에는 무슨 영문인지 쉽게 따라왔던 것이다. 비록 그 마지막 순간에 꼭 육체에 고통을 주 는 일들이 생겨났지만 말이다. "후읍. 후우우우." 깊게 숨을 들이키며 양쪽 폐가 터질 듯 팽창할 정도로 크게 들이마셨다. 이어 거친 숨결을 달래기 위해 아주 미세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처음 내쉬는 숨결이 귓가에도 들려왔지만, 이미 여러 번 반복을 거치면서 점차 숨결은 편안하게 온몸을 감싸며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그런 상태로 싸이는 조용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반짝.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보다 더욱 찬란한 빛들이 싸이의 눈 속에 담겨진 듯 싶었다. 그러나 싸이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고요히 서 있기만을 원했다. 결국 이러한 의지 덕분에 싸이는 아공간에서 처음으로 편안히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너무도 신이 난 마음 때문일까? 싸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제자리에서 팔짝 뛰었다. "야호! 드디어 됐......... 어어.......... 안 돼!" 그러나 걱정했던 일이 기어코 터져 버렸다. 너무 기쁜 나머지 높디높은 하늘로 뛰어오르는 것을 연상했던 것이다. 결국 그런 생각은 상상치 못한 일을 저지러 버렸다. 꽈지지직. "으어어어억. 이게 뭐야! 왜..... 왜 아공간을 뚫는 거야......!!" 연약한(?) 싸이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갈리아스 옹이 최대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아공간의 벽은 바로 대자연의 기운들로 뭉쳐진 무형의 기체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몸 안에 대자연을 꿀꺽(?) 삼킨 싸이에게 아공간의 벽은 미처 거부를 할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몰라도 지금처럼 너무 신이 나 자신도 모르게 대자연의 미소를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싸이였으니,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점차 까마득히 하늘로 솟구쳐 오르며 허탈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단지 이번엔 추락의 법칙이 무시된 듯 매우 느린 속도로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신룡의 후예 7 - 11 거대한 산을 통째로 옮겨온 듯한 던젼 안에서 두 명의 사내들이 제법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컴컴한 던젼안에서 나이트 마법으로 인해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연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저어, 헤르아킨 님. 정말 이곳에서의 수련이 필요한 건가요?" 짙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미소년이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건냈다. 그러자 금발소년의 질문을 받은 미청년의 입가로 작은 미소가 어렸다. "헤세르님. 많이 긴장되시는 가 보군요." "네, 아무래도 최상급의 몬스터들만 나온다는 곳이라 그런지 무척 떨리는군요." "후후, 당신께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다면 그렇겠지요. 하나 저를 믿고 안심하란 말을 꼭 해주고 싶군요. 비록 이곳이 당신께는 낯선 공간이겠지만, 저희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수련장이기에, 그 어떤 위험으로부터 전 당신을 지켜드릴 수 있답니다." 아무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하는 청년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내심 떨려오는 몸을 주체못하는 눈치였다. 하긴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기억 속에서도 간간이 떠오르는 검이 손안에 쥐어져 있기에 결코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항상 등뒤에서 그를 보호하며 도움을 아끼지 않은 헤르아킨과 함께 이미 여러 던젼을 돌파하며 많은 경험들을 쌓았지만, 마지막 관문과도 같은 이 곳은 들어설 때부터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긴장감은 결국 무시 못할 만큼 큰 공포와 전율을 안겨줬다. "후욱, 후욱." "띠리리링.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당신의 힘을 스스로 믿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답니다." 연신 뒤에선 그를 지탱시켜주는 현묘한 음악이 들려왔다. 그 사이로 음악을 연주하는 헤르아킨의 따스한 말이 전해지자, 힘껏 검을 쥔 손에 파르르 전율이 일었다. "후읍. 이햐아아앗." 크게 숨을 들이키며 다시 한 번 눈앞에 거대한 날개를 펼친 화이트 드레이크를 향해 거침없이 짖쳐 들었다. 이미 오거 로드를 비롯해 최강의 몬스터들과 실전을 치룬 상태였다. 며칠동안 이어진 사투로 인해 온 몸은 긴장과 공포로 한없이 무거워졌고, 간간이 무뎌진 몸으로 시전한 검술로 인해 상처 입은 몬스터들의 흉폭한 본능은 더욱 큰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눈앞의 화이트 드레이크만 잡으면 이 던젼의 마지막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몸 안에 내재된 힘을 모두 끌어 모아 힘찬 기합과 함께 내질렀다. 휘이잉. 콰앙. 끼아아악. 세찬 검풍을 일으키며 휘둘러진 검 끝으로 하얀 가죽들이 작은 상채기를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이트 드레이크는 꼼짝도 안했다. 바로 등뒤에서 헤르아킨이 현묘한 음악으로 최면을 걸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세르는 이 최면 음악이 그리 길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최면 음악이 유지되는 순간까지 최대한 드레이크에게 타격을 줘야만 했다. "흐아아아압." 다시 한번 깊게 숨을 들이키며 힘차게 기합을 내질렀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잘 몰라도, 온몸에 힘껏 힘을 주며 내지르는 기합엔 스스로도 모르고 지냈던 거대한 힘이 따라왔다. 곧이어 그런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헤세르의 아랫배에선 파란빛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몸 안에서 터져 나온 빛은 그대로 그가 휘두르는 검 끝으로 쏟아져 나왔다. 콰앙. 콰지직. 콰앙. 콰지직. 비록 힘이 다한 몸이라곤 해도 힘찬 기합과 함께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또한 그 검에 담긴 힘은 가히 몬스터중에 최강이라는 드레이크에게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었다. "끼아아악. 끼아아아악." 하얀 몸뚱아리에 길게 생겨나는 자상으로 인해 금세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그런 와중에도 최면에 걸려 몽롱해진 정신은 몸뚱아리에 나는 상처의 고통에 본능적인 울부짖음을 질러댔다. 하지만 헤세르는 연신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하얀 몸뚱아리를 뚫고 자신에게 튀어 오르는 붉은 피를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치이익. 파아아앗. 어쩌다 드레이크의 몸에서 빠져 나온 붉은 피가 부근 바닥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금세 검을 휘두르는 헤세르의 몸이 휘청거렸다. 급속도로 얼어붙는 냉기로 인해 잠시 피해를 입는 것이다. 그러나 헤세르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드레이크의 최후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 이제 그만 하세요." 헤세르는 이미 몸의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온몸은 젖은 솜 마냥 아무 감각도 없이 무겁게만 느껴졌고, 몽롱한 정신은 오직 본능적으로 휘두르는 검에만 가 있었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휘둘렸을까? 등뒤에서 다급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드레이크의 마지막 숨을 거두려던 검에 힘을 주었다. 움찔. 본능에 충실한 드레이크도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움찔하는 모습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후우............. 후우............." 헤세르는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도 마지막까지 검을 거두지는 않았다. 만약 헤르아킨이 하려는 일에 반항이라도 할라치면 거침없이 베겠다는 의지를 검에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헤르아킨은 헤세르에게 잠시 감사의 눈인사를 건네며, 거침없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순간 헤르아킨의 왼쪽 손으로 무언가 강한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의 왼손이 숨을 거두기 일보직전인 화이트 드레이크에 다가가자, 드레이크는 본능적으로 긴 울음을 터트렸다. "꾸아아아아아악." 그러나 드레이크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 헤르아킨에게는 아무런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왼손을 감싸고도는 종속의 장갑은 그러한 반항을 무시할 만큼 거대한 기운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착하지. 이리와! 넌 이제부터 나와 내 친구의 소중한 동료가 되어야 한단다. 앞으로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내 말 알겠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헤르아킨의 왼손바닥에선 하얀 육망성이 형성이 되었다. 그순간 눈앞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육망성의 모습에 드레이크는 크게 눈을 부릅떴다. 하나 그뿐이었다. 뭔가 차가우면서도 화끈한 열기가 머리쪽에 느껴짐과 동시에 드레이크의 붉은 눈동자는 금세 파랗게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룡 헤르아킨의 종속의 인에 대한 작은 에피소드 중에서- 싸이는 뭐가 그리도 불만이 많은지 뾰루퉁한 표정 그대로였다. 이젠 다 큰 청년의 몸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도 과거의 습관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듯한 모습은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왠지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정감이 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갈리아스 옹의 부릅뜬 눈과 그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는 엘렌의 얼굴엔 여전히 싸이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져 있었다. "이넘아. 그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이 할애비한테 삐진 모습을 보이는 거냐." 그러나 싸이는 요지부동이었다. "흥, 할아버지. 한번 생각 해보세요. 제가 오늘 몇 번이나 해드렸죠? 자그마치 열 다섯 번이란 말예요. 그것도 오직 할아버지만을 위해 해드린 횟수라고요." "아니 그래도 이넘이!" 갈리아스 옹은 싸이의 아랑곳없는 태도에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큰 호통을 쳤다. 하나 싸이가 누군가. 그런 호통엔 눈하나 깜짝 안하는 유별난 존재였다. 결국 손자와 할아버지간의 눈싸움은 긴 시간동안 이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싸이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갈리아스 옹의 패배는 당연한 듯 보였다. "에휴, 욘석아, 이 할애비가 이젠 나이가 들어 기억력 감퇴가 좀 심하기로서니, 손자라는 녀석이 이렇게 구박을 해도 되냔 말이다. 이거 어디 늙어 서러워서 살겠냐." "쳇, 그래도 소용없어요. 할머니랑 제로니스님은 두 번씩 해드리면 다 끝나는데 유독 할아버지만 절 골탕먹이시려고 이러시는 거 잖아요. 절대 더 이상은 안되요." 나중엔 늙은이 서러움까지 들먹여가며 손자를 달랬지만, 역시 꼼짝도 안하는 당찬 싸이였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은 여기서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등뒤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순수함과 연약함의 결정체인 하나뿐인 딸이 있기에 여기서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 비장의 수단을 써야만 했다. "인석아. 어디 이 할애비가 너한테 섭하게 한 적이 있더냐? 이번만 해도 그렇다. 널 위해서 최고의 물건들만 선별해서.........." 역시 감정이 듬뿍 담긴 표정으로 그동안의 일들을 쭉 나열하는 갈리아스 옹의 작전엔 마음 약한 싸이는 긴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뻔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말의 끝에는 언제나 가슴 철렁했던 블랙드래곤 밀란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휴우. 그만하세요. 치잇, 맨 날 할아버지는 나한테 아쉬운 말만 했다하면 무조건 공치사만 잔뜩 늘어놓고선....." 결국 싸이는 갈리아스 옹의 마지막 수단엔 고개를 저어야만 했다. 유독 그부분에선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싸이로서는 갈리아스 옹이 그동안 해준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지닌 값어치를 알 수 없었다. 단지 엘렌과 제로니스의 얼굴에서 그 물건들이 심상치 않은 것들이란 것만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갈리아스 옹의 마지막 수단인 타칭(?) 공치사와 자칭(?) 목숨걸고 손자 구하기와 지상최고의 선물 콤보대작전 앞에서는 싸이도 두 손 두발 다 들어야만 했다. "아무튼 오늘은 이번 한번뿐이에요. 만약에 또 그러시면 저 이 배에서 내려서 혼자 갈꺼에요. 아셨죠?" "으응? 혼자?!" 금세 반문을 하면서 잠시 시선을 맞추던 갈리아스 옹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급히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안돼. 절대 그것만은 안돼." "흥. 그럼 맘대로 하세요." "오냐. 알았다. 이번 한번만 제대로 보여주려무나. 그럼 내가 오늘은 그걸로 끝을 내마." 어찌 보면 아쉬움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등뒤에 있는 딸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에휴, 저놈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토록 신통방통한지 모르겠단 말야. 그나저나 이번엔 우리 엘렌이 제대로 배워야 할텐데....... 내가 가르쳐 주고는 싶지만, 어찌된 게 머릿속에선 선명하게 떠오르는 동작들이 막상 시작만 하면 금세 딴 곳으로 빠져버리니...... 이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나 원, 참.' 내심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엉성한 폼으로 서 있는 엘렌에게 향해 있었고, 싸이는 그것도 모른 채 뒤돌아 서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매우 느린 속도로 최선을 다해 투로를 밟고 있었다. 벌써 며칠 째 똑같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일이었다. 이건 어찌된 영문인지 아침만 되면 눈뜨기가 겁이 나는 것이다. 꼬박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을 아공간에서 보내고, 겨우 그곳에서 빠져 나온지 오늘로서 정확히 삼일째였다. 그동안 싸이와 가족들이 타고 있는 거대한 범선 커티샥 에메랄드 호는 제자리에 멈춰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건 갈리아스 옹의 욕심 때문이라서 더더욱 싸이가 갈리아스 옹에게 반항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을 지키고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가히 공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유독 딸에 대한 사랑이 깊다는 것은 이미 장안의 화제에 가까운 것들이었지만, 그래도 염치가 너무 없는 듯한 갈리아스 옹의 모습은 그리 좋게 보여지지 않았다. 하긴 손자와 할아버지 사이에 무슨 체면이 필요하고 염치가 존재하겠는가만은, 그래도 여전히 우아한 모습을 보이는 할머니와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결국 오늘도 아침에 눈뜨자마자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와선 오전 내내 이 짓만 하고 있는 싸이였다. 그러니 어찌 짜증이 나지 않을 것인가. 한두 번으로 끝을 낸다면 싸이로서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해줄 의향도 있었다. 그러나 몸치에 가까운 할아버지로 인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밤새도록 시달리면서 해야하는 것이다. 이건 이미 이틀동안 뼈저리게 느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말만 그렇게 할뿐 여전히 할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같았으면 싸이 편을 들어줄 할머니 에르킨 여사도 한쪽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었다. 또한 그 옆에선 제로니스가 깊은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투로를 밟는 싸이의 얼굴엔 편안한 모습이 어려 있었고, 그의 의지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몸은 이미 모든 의지를 소화하고 있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어머니인 엘렌을 위해서 하는 일이었다면, 싸이는 친절하게 성심성의를 다해 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욕심은 따로 있었다. 그 덕분에 간만에 맞이한 다정한 시간이 덧없이 흘러가고만 있었다. ************* 음.... 오늘은 몇시간 자지도 않았는데, 아침 일찍 눈이 떠지는군요. 왜그럴까요? 암튼 간만에 새벽일찍 일어난 기념으로 한편 올립니다. 저로서는 아주가끔 몇시간 안자도 개운한 상태를 맞이한 기분에 즐겁게 쓴 것이지만, 이런 게 과연 얼마나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못한답니다. 아무튼 이 글을 보시면서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실 어느 분께 좋은 하루 보내시란 말 꼭 해주고 싶네요~! 아무래도 저에게 기를 불어넣어주신 덕분에 이런 일이 일어난듯 싶거든요.^_^ 그럼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신룡의 후예 7 - 12 긴 여행의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수마는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 또한 여행의 목적지에 다 왔다는 안도감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덧없는 소중한 마음을 가져줬다. 그로 인해 멜빈은 오랜만에 찾아온 상글리에 궁전에서 편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멜빈은 꿈속에서 소중한 그녀와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띠리리링. 마치 꿈결인양 그의 귀를 간지럽히는 멜로디에 멜빈은 씨익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보았다. 아직까지 혼자의 힘 만으론 아이스 오거를 잡기엔 힘이 부쳤다. 그런 까닭에 뒤에서 최면음악을 연주해주는 엘렌이 너무도 고마웠다. 비록 그녀가 마법에 뛰어난 재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곳 아이스 던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보게 된 음악연주 실력은 가히 마스터에 버금가는 놀라운 것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옆에 선 켈빈의 눈가에도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후훗, 이제 그만 시작하자고. 언제까지 지켜볼 수는 없잖아." 켈빈이 가볍게 농담처럼 이야길 건네자 금세 멜빈의 얼굴엔 붉은 홍조가 어렸다. 아무래도 만난지 얼마 되지 않는 이 낯선 친구는 엘렌과 자신의 사랑을 부러워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눈치도 없이 툭하면 핀잔을 주는 것이다.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보자고. 그리고 자네도 제발 리아나 양에게 그 느끼한 시선 좀 그만 보내라고. 알았나? 우하하하핫." "흥, 남이사." "쿡쿡쿡. 자, 가자! 하이야야얍" 멜빈은 달아오르는 뺨을 뻔뻔스럽게 내놓은 채 옆에 선 켈빈을 향해 똑같은 핀잔을 줬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느낌이 다소 낯설기만 해 어색한 웃음을 크게 지으며, 힘찬 기합과 함께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아이스 오거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휘이잉. 콰직. 거친 파공성과 함께 묵직한 느낌이 온몸을 타고 찌르르 전해져 왔다. 순간 머리부위에 큰 타격을 입은 아이스 오거에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왔다. "크아아악." 그러나 추호도 물러서지 않는 멜빈이었다. 이미 페링 전사로 파티의 모든 전투에서 선봉에 서게 된 멜빈은, 뒤에서 보조해 주는 켈빈의 연사 석궁에 믿음을 가지며 힘차게 검을 휘둘렸 다. 어쩌다 최면이 풀린 아이스 오거가 힘껏 방망이라도 휘두르면 언제 쏘았는지 알 수 없는 켈빈의 매서운 퀘렐 덕분에 그 힘이 많이 줄어있었다. 그 때문에 아이스 던젼의 입구에서부터 파티를 이루며 지금까지 던젼 수련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엘렌을 보호해주듯 나란히 서서 마법을 케스팅하는 리아나의 마법은 팀의 든든한 지원이 되고 있었다. 간혹 그녀가 발휘하는 회복마법과 해독마법은 몬스터들의 피와 무기에 깃들어 있는 각종 독에 탁월한 효과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점점 흘러 팀원들간의 멋진 호흡으로 인해 숱한 아이스 오거를 무찌르며 멜빈과 엘렌은 드디어 아이스 오거 로드의 방에 도달해 있었다. "휴우, 막상 여기까진 왔지만, 오고 나서도 후회가 앞서네." 켈빈이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도 멜빈처럼 리아나와 단둘이 사냥을 겸한 수련을 나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녀간의 사랑은 힘들수록 더욱 값진 애정을 가져다 주는 모양이다. 생사가 걸린 이곳에서 두 사람이 팀을 이뤄 갖은 관문을 통과하다보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강한 유대감이 생겨나기 때문에, 과거부터 몇몇 뛰어난 전사들은 이렇게 사랑을 키워나간다는 켈빈의 우스개 소리는 멜빈에게 큰 감흥을 안겨줬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옆에 서 있는 엘렌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냥 행복했기에, 그녀가 자신을 이끌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의 험난한 던젼들을 여행 하는데에도 불구하고 큰불만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뿐이었다. 이런 까닭에 두 쌍의 연인으로 이루어진 네 명의 아이스 던젼 탐험대는 그 휘날레를 눈앞에 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가끔 탐험대에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들이 던젼 곳곳에 형성이 되어 있었다. 또한 이곳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동안 시달려온 각종 몬스터들의 공격이 주춤하다 어이없게 사라져버리곤 했다. 멜빈으로서는 왜 그런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의 그에겐 엘렌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없었기에 그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꿈속에서 멜빈은 한동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엘렌의 영상을 바라보며 잠시 손을 가져가 보았다. 마치 손에라도 잡히는 양 그녀의 고운 얼굴을 쓰다듬으며 멜빈은 오랜만의 편안한 꿈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엘렌. 나만의 영원한 사랑. 당신이 있기에 저 하늘의 태양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시린 별빛들이 화려하게 춤추는 밤이 오면, 오직 당신만의 눈 속에는 이세상 모든 사랑이 담겨진다오. 비록 이렇게 내 몸은 당신과 떨어져 있다해도 언제나 마음만은 당신과 함께 영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이 나만의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이오. 엘렌! 내 지나온 생애에 당신은 가장 큰 신의 선물이었소. 언제나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내 가슴속 깊이 파고든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오. 소중한 내 하나의 사랑." 잠결에 한 말치곤 너무 과한 듯 싶었다. 그러나 멜빈은 깊은 수면상태에서도 자신이 한 말을 똑똑히 듣고 있었다. 비록 낯간지러운 말들이었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엘렌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부피로 남아 있는지를. 그렇기에 남들 앞에서 더욱 당당할 수 있었으며,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멜빈은 새삼스레 깨닫고 있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어렸기에 잘 몰랐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힘에 자각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섰기에, 그 기초가 되는 수련을 하게 만들어준 엘렌은 평생 가슴속에 간직해야만 할 매우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렇기에 과거 철모르던 시절에도 그녀에게 영혼의 언약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두움은 그를 더욱 짙게 감싸기 시작했고, 또다시 멜빈의 의식은 편안한 꿈속 저편에서 지난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그를 깊이 유혹하고 있었다. "후욱, 후욱." 거친 숨소리가 연신 몸에 매달린 땀방울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손에 들린 검은 매우 느린 속도로 들어올려졌다 내려지기만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멜빈으로서는 생전 처음 해보는 낯선 검술수련이었지만, 이미 간밤에 느낀 바가 있어 이토록 이른 아침부터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비록 이것이 아직까지 무엇인지는 선명히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손해는 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전신을 휘감고 도는 새로운 기운을 확실히 느끼고 싶어 이렇듯 낯선 수련을 하고 있었다. 단지 등뒤로 하나둘 느껴지는 부하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는 결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후욱, 이 급한 마음을 최대한 참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천천히 움직이자. 과거 그녀가 나에게 몸 안에 깃든 힘을 자각시키는 방법을 이야기 해줬을 때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행하자. 분명 그녀가 말한대로 마나는 내 몸 안에도 흐르고 있으며 몸 주변으로도 흐르고 있어. 이걸 하나의 흐름이라 여기고 내 몸과 마음이 하나를 이루 듯 마나 또한 하나가 되게끔 노력해야 해.' 멜빈은 이미 몸 안에서 도도하게 흐르는 마나의 거친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몸 구석구석까지 세밀하게 움직이질 못했다. 스스로 마음이 이는 대로 마나 또한 자연스 레 따라와야 하지만, 현재 그의 마음이 가는 곳으로 따라오는 마나는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걸 자연스레 이끌기 위해 불현듯 아침에 일어나 생각난대로 이런 수련을 시작한 것이 다. 비단 이것은 하루 이틀 해본 수련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미지트레이닝으로 수련을 하면서 스스로의 생각 속에서 이끌어보던 것과는 달리, 직접 몸으로 해보는 수련에는 많은 착오가 있었다. 그러나 멜빈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미약한 수준의 마나들만이 따라왔다. 그러나 점점 그의 주변에 짙게 깔리는 달콤한 향기와 더불어 조금씩 그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순간 멜빈은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을 따갑게 하자,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이었다. 뭔가 시원한 느낌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멜빈은 평소 이미지트레이닝으로만 이루어졌던 상상 속의 동작들이 천천히 매우 느린 속도로 이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통해 마치 거대한 대자연의 일부가 따라온다는 것을 확연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은 멜빈의 검은 마치 자아라도 있는 양 두둥실 허공에서 화려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그의 검이 지나가는 곳에는 어느새 생겨난 파란 빛줄기들이 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후우우웅. 어찌 느리게 움직이는 검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단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천천히 검을 움직이는 멜빈의 얼굴에 가끔 작은 미소가 어릴 뿐이었다. 몸 속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던 거대한 기운이 꿈틀거리며 그의 몸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자, 절로 어리는 미소였다. 이런 멜빈의 모습을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던 그의 부하들의 얼굴엔 어느새 감탄의 표정이 일었다. 그러나 그들도 자칫 방해가 될까봐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쪽 공간에서 멜빈의 수련을 지켜보던 또다른 눈은 금세 커다란 호기심을 담더니만, 곧이어 멜빈의 소중한 순간을 방해해 버렸다. 후우우웅. 거친 숨결과는 달리 천천히 옆으로 흘러가는 검에선 고요한 진동만이 흘러나왔다. 이러한 진동은 곧이어 주변의 공간을 짖누르며 작은 파동을 가져왔고, 그건 곧 전신에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한 소음을 뿜어냈다. 그순간 멜빈은 어떠한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건 검사로서 두 번째 맞이하는 거대한 장벽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만약 누구라도 작은 소음을 일으켜 방해를 한다면,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여기 이러한 소중한 시간을 방해하는 존재인 광폭한 할버드는, 예전과는 달리 전신의 기운을 몸 안에 담은 채 푸른 게이트를 열고 그의 앞에 씩씩하게 나타났다. "호오, 그대는 진정 재주가 좋군. 우리 주인님께서도 얼마 전에야 이룬 일을 그대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제 딴에는 친근감을 주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말을 꺼냈다. 그 순간 멜빈의 뒤에 서 있던 여러 기사들의 이마에는 불끈 힘줄이 솟아났다. "저..... 저런......." "어찌 저리도 광오 하단 말인가. 검을 쥔 기사로서 소중한 깨달음을 눈앞에 두고 계신 분을 방해하다니......" 그들도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수련이라 여겼지만, 금세 멜빈의 주변으로 생겨나는 거대한 기운을 보며 그가 새로운 경지를 뛰어넘는 중요한 순간이라 여기게 되었다. 한데 이 느닷없는 불청객이 그런 중요한 순간을 깨버린 것이다. 그들은 너무도 화가 나 눈앞의 그 존재를 자신들의 헤비 워커로 잔인하게 짓뭉개고 싶은 욕망이 물씬 일었다. 하나 그들은 참아야만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멜빈은 고요한 신색 그대로였던 것이다. 오히려 말을 붙인 광폭한 할버드가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결국 민망하다는 감정이 아직까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던 그는 성큼 걸음을 옮기며 멜빈의 곁으로 다가서려고 했다. 광폭한 할버드는 조금 전 아공간에서 봤던 멜빈의 몸짓이 자신의 생각과 맞는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발을 떼기도 전에 거대한 기운의 방문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만 하세요.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함부로 이분의 수련을 방해하시는 거에요." 매우 뾰족한 고음의 목소리였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 광폭한 할버드는 또다시 눈을 빛내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았다. 이미 대자연의 기운과 동화를 이루기 시작한 그에겐 매우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또다시 귓가로 매우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얼마나 중요한 순간인지 그새 까먹으신 거에요? 제가 조금 전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기운을 끌어올리시면 어쩌라고 이러시는 거에요? 어서 거두지 못하세 요?" 순간 광폭한 할버드의 눈에 시퍼런 빛줄기가 솟아 나왔다. "감히 나에게 그따위 명령조를 내뱉다니, 으득, 내게 명령을 내리실 분은 오직 우리 주인님 뿐이다. 너희들이 비록 주인님과 친분이 있다고는 하나, 함부로 내뱉는 그따위 소리는 내게 통하지 않아." 어찌 보면 그의 말이 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의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추호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버럭 성질까지 내고 있었다. "흥, 제아무리 싸이님만의 명령을 받는다곤 해도, 우린 이미 그분의 소중한 친구에요. 또한 이분이 누구신지 아시고 그딴 소리 하시는 거에요?! 감히 싸이님의 소중한 아버님이신 이분께 그런 무례함이 과연 통하리라 생각하시나요?" 거대한 광폭한 할버드의 기운에 맞서 추호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빽하고 고함을 지르며 그를 자극하는 성난 고음의 목소리였다. 순간 그 목소리의 경고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기려던 광폭한 할버드는 우뚝 제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곤 뭔가를 떠올리며 급히 질문을 던졌다. "뭐.... 뭐라고? 우리 주인님의 아..... 버......지?!" 부르르르르. "방......... 금 그 말이 사........ 실인가?" 마치 급살이라도 맞은 양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재차 되묻는 광폭한 할버드였다.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그 고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흥흥흥, 그럼 이분이 누구시라고 생각한 거죠?" "나..... 나야 그저..... 주인님과 비슷한 방법으로 기운을 일깨우는 존재에게 ......... 헉, 그럼 진짜 주인님의 아버지?! 커억. 나...... 난 죽었다.....!" 그순간 광폭한 할버드의 뇌리에는 주인의 담담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 미소의 뒤에는 언제나 공포 어린 광기가 묻어났었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을 해부하는 주인의 모습이 상상이 되는 순간 광폭한 할버드는 그 자리 그대로 얼어버렸다. 곧이어 멜빈의 주위로 거대한 진동과 함께 대지가 무너지는 소음이 뒤를 따랐다. 쿠우우우웅. 시커먼스 군단 사상 최초로 서 있는 모습 그대로 기절한 할버드가 한쪽 다리만으로 선 채 기절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결과였다. 그리고 이런 할버드의 모습은 곧이어 공간 저편의 아공간에 커다란 소란을 가져왔다. 그와 함께 고음에서 가는 목소리로 바뀐 주인공의 목소리가 작게 이어졌다. "휴우, 어쩜 저리도 미련한지 몰라. 꼭 강물인지 바닷물인지 일일이 손으로 찍어서 맛을 봐야만 깨닫는 한심한 모습이라니......! 그나저나 지금 매우 중요한 고비였는데.... 히잉, 어떻게?! 결국 넘어서질 못했잖아!" 마치 멜빈의 몸과 하나가 된 듯 투명한 모습으로 그의 몸을 뒤에서부터 감싸고 있던 라디아가 위기의 순간 방해자로부터 멜빈을 지키기 위해 잠시 혼연일체를 벗어난 게 매우 억울하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많은 날들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라디아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여전히 손에 들린 검을 이용해 온몸의 기운을 일깨우는 멜빈의 모습에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그와 더불어 잠시 후 몰아의 상태에서 깨어날 멜빈을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라디아와는 달리 아공간에 있던 또다른 정령들은 어이없는 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허억, 설마 저것은..........! 도끼 부대장! 도끼 부대장~!!" 금세 아공간은 시끌벅적해졌다. 얼마 전부터 주인이 새롭게 연습하던 몸동작들을 부지런히 익히기 위해 저마다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던 시커먼스 군단은 갑자기 비명과도 같은 고함으로 방해를 하는 폭주일섬에게 눈쌀을 찌푸렸다. 곧이어 자신들을 찾아온 두 명의 최상급 정령들과 함께 시커먼스 군단을 대표해 제우스와 뭔가를 의논하던 미려의 도끼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또한 미려의 도끼 옆에 서 있던 제우스의 눈빛도 결코 그에 못지 않게 살벌하게 빛이 났다. "야! 미친 칼질. 너 죽을래? 왜 시끄럽게 소리는 지르고 난리야. 지금 내가 대장과 너희들 문제로 의논하는 게 안보여? 이것이 감히 군기가 빠져서는..... 에잉." 그러나 미려의 도끼가 내지른 고함에도 불구하고 폭주일섬의 비명은 끝이 나지 않았다. "어어, 대장. 도끼 부대장도 여길 본 다음에 나한테 뭐라고 하란 말에요. 지금은 그렇게 노려봐도 소용없어요. 그러니까 저기.... 저길 보고 난 다음에.... 제발......!." 연신 손가락으로 어떤 곳을 가리키는 폭주일섬은 자신에게 날카롭게 눈빛을 쏘아보내는 제우스와 미려의 도끼에게 또다른 사건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허둥거리지 않을 폭주일섬이 마침 중요한 일로 최상급 정령들과 의논하는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자, 제우스는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손님이 와 있는 마당에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으니 시원치 않은 일로 그랬다면 혼쭐을 내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폭주일섬이 가리키는 곳을 본 순간 제우스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곧이어 그뒤를 따라온 미려의 도끼 또한 인상을 확 구겼다. 이건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청량한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 멜빈 경이네요. 호호, 역시 대단한 분이세요.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짧은 시간동안 벌써 라디아와 많은 일체감을 느끼시고 계시다니!" 물의 최상급 정령인 팔라페의 고운 음성이었다. 그러나 제우스와 시커먼스 군단에게는 멜빈이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싸이를 호위하며 뒤따르는 메테우스 정도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옆에 서 있던 실루엣트의 입에서 청천벽력과도 멜빈의 신상명세가 흘러나왔다. "호오, 역시 싸이님의 아버님다우신 멋진 모습이시군요. 스스로 저러한 깨달음을 가지시다니. 정말 팔라페의 말대로 대단한 분이시네요. 저리니 우리 싸이님께서 그토록 아버님을 뵙고 싶어하시죠." 순간 제우스는 심장의 한구석이 멈추는 것 같았다. "헉, 그...... 그럼 주인님의............." 부르르르.. 그렇다면 저 앞에서 뻣뻣하게 몸을 세운 채 넘어져 있는 광폭한 할버드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도 곧 그에 못지 않은 입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혹...... 시..... 너 저분께 무례하게 굴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선 미려의 도끼에게 물어봤다. 하나 아직까지 왜 광폭한 할버드가 쓰러져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 미련 곰탱이 도끼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장. 뭔 소리야? 저분이라니? 아하, 저 인간. 예전에 첨 봤을 때 그냥 광폭 할바 녀석이 지 스타일대로 하고 싶다고 해서 그대로 놔뒀어. 그대신 대장이 걱정할까봐 내가 주의는 단단히 줬지. 근데 왜?" "허어어억. 주............. 죽었.............다." 그순간 제우스는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한때 스스로의 엄청난 힘에 우쭐한 마음으로 갈리아스 옹을 노려본 적이 있었다. 이건 주인과 처음 만난 날의 일이었다. 한데 주인은 그러한 자신의 마음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 예의 그 무표정에 가까운 삭막한 미소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와 함께 나타난 주인의 광기는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흉터로 나타났다. 아주 살짝 긁었을뿐인 주인의 손길에 의해 지금까지 목줄기를 시작으로 해서 심장부위까지 미세하게 흉터가 남아 있는 것이다. 제우스는 그때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우둔한 몇 명만이 직접 그 상황이 되어야만 깨닫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의 뒤로 다가와 서서히 몸을 떨고 있는 부하들만 봐도 제우스는 자신이 모신 주인이 소중한 가족에게 무례한 자를 어떻게 다룬다는 것을 새삼 절실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대표해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신이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순간 제우스는 급히 누가 말리기도 전에 아공간의 벽을 박차고 나서며 급히 어떤 존재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하여 뒤에 서 있던 모든 시커먼스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며 제우스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뒤에서 떠미 는 부하들에 의해 어정쩡하게 아공간 밖으로 나온 도끼는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도 하기 전에 제우스의 죽일 듯한 시선을 맞이해야만 했다. "야! 이 바보 멍청이 도끼놈아! 어서 그 싸가지 없는 기운 집어넣지 못해~!!" 아공간 밖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제우스의 고함에 가까운 명령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제우스의 성난 감정이 듬뿍 담긴 고함은, 어이없게도 멜빈의 있던 주변으로 살벌한 대치상황을 만들고야 말았다. ************** 음... 점심시간에 맞추려고 했는데...... 좀 아쉽더군요. 도중에 짤라서 올린다는 게 그래서, 조금만 더 쓴다는 게 이렇게 되었답니다. 후훗, 근데 멜빈과 시커먼스 군단의 조우는 생각한 대로 시작은 되었는데...... 과연 싸이와 멜빈의 만남은 과거부터 생각해놓은 설정을 그대로 해야만 할지..... 걱정이 앞서네요. 암튼 서서히 다가오는 멜빈과 싸이의 만남을 끝으로 7권은 그 대단원의 막을 맞이할 것입니다. 모쪼록 아껴주시는 분들께 흡족한 글이 되도록 제게 힘을 불어넣어 주세요~!! 신룡의 후예 7 - 13 *아버지* 띠리리링. 띠띵. 마치 구름의 바다인양 하얀 뭉개 구름들이 발 아래에로 드넓게 퍼져 있었고,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구름의 바다를 뚫고 솟아올라 온통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태양은 점차 내뿜는 빛의 농도를 진하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주변은 온통 밝은 빛에 고스란히 노출이 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상층부 갑판에서 웃통을 벗어 던진 젊은 사내가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의 피부는 힘찬 빛을 뿌리며 떠오르는 태양 빛에도 불구하고 더욱 윤기가 흐르는 우유 빛 피부 그 자체였으며, 곱게 빗어 넘긴 금발의 머리는 어깨 위에서 찰랑이고 있었다. 또한 역삼각형에 가까운 어깨와 등선으로는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균형 잡힌 근육들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무릎 위에는 검 한자루가 단정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검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 전사의 몸으론 너무 부실해 보였다. 흔히 이곳에서 기사로 불리는 자들은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했다. 그 이유는 보통의 검들이 지닌 내구력 때문이었다. 만약이라도 약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상대의 검과 잦은 마찰을 가지게 되면 너무도 쉽게 부러져버린다. 그러니 자연 내구력이 높은 검을 만들기 위해선 검 자체의 무게가 상당해야만 했다. 그런 관계로 자연 검을 들고 적과 싸워야 하는 기사들은 온몸에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들어 그곳에서 솟아나는 강한 힘을 이용했다. 그런데 이 사내는 보통의 기사들과는 너무도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제법 큰 키에 골고루 발달된 근육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기사들과 비교하면 너무 말라 허약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 잠재된 힘을 따져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내면의 힘을 사용하는 이에게는 거추장스런 울퉁불퉁한 근육들은 방해가 되는 것이다. 또한 스스로 몸 안에 잠재된 내면의 힘을 온몸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자만이 가진 여유가 그 사내에게 간간이 보여졌다. 엘렌은 그 사내의 뒤에 앉아 석상과도 같은 고운 사내의 자태에 넋이 나간 양 곱게 손에 들린 무릎 하프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건 그 사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것이어서, 매일 아침 엘렌의 일과가 된 일이었다. 한참 후 엘렌의 손에 들린 작은 하프의 현이 울림을 멈추자 미동도 하지 않던 사내의 넓은 등판이 꿈틀거렸다. 곧이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크게 심호흡을 하던 사내는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후아아아아앗." 마치 폐부 깊숙이 담겨져 있던 무언가를 시원하게 뚫어버리는 듯한 고함이었다. 온통 태양의 발 아래에 놓여져 있던 하얀 뭉개 구름들이 그 고함소리에 놀란 듯 바삐 움직이기 시작 했다. 그와 함께 사내는 처음으로 가슴속에 담긴 말을 크게 외쳤다. "대자연의 모든 이치는 무한한 본능에 따라 전체와 연관이 되어 흘러가고, 세찬 급류에 떠내려가듯 장엄한 우주와 하나가 된다. 보아라. 힘찬 태양과 함께 새롭게 힘을 얻는 대자연들을! 난 이제 자유로운 대자연에 하나가 되어 흘러가리라. 힘차게 외쳐라. 그대 오만한 태양이여! 모두에게 추구하라. 내 안에 잠재된 선함이여! 머지 않은 시간에 난 이 거대한 대자연을 잊게 되리라. 그리고 나 또한 머지 않은 시간에 대자연으로부터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기억할 것이다. 여기 내 아래 살아 숨쉬는 자유가 곧 그들에게도 전해질 것이기에." 그 순간 힘차게 표효하는 사내의 고운 목소리는 도도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힘찬 기운을 몸 안에 담고 있었으며, 그의 주변으론 온통 진한 대자연의 향기가 샘솟고 있었다. 마치 세찬 호연지기를 느끼며 대자연을 몸 안에 담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짝짝짝짝. 어느새 나타났는지 사내의 뒤로 제로니스와 갈리아스 옹이 힘찬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그리고 엘렌의 어깨 위에도 에르킨 여사의 따스한 손길이 전해지고 있었다. "호호호. 잘 보았니? 우리 싸이의 저 힘찬 기세를. 저 아이는 역시 우리들의 욕심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구나. 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나조차도 힘든 대자연과의 융합을 보여주고 있으니."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소리가 더욱 부드럽게 느껴졌다. 엘렌은 살짝 고개를 들어 미소 띤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훗, 엄마! 괜히 겸손한 척 하지 마세요! 사실 얼마 전부터 싸이한테 배운 체술 덕분에 엄마 또한 저런 경지에 올라섰다고 로드 제로니스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호호호, 그랬니? 그래도 얼마나 기특하니. 이 못난 할미를 위해서 보름이 넘게 구슬땀을 흘리는 대견한 손주녀석인데. 정말 저녀석만 보고 있으면 절대 후회가 되지 않는 선택이었단다." 엘렌은 화사한 에르킨 여사의 미소를 올려다보며, 절로 눈가에 미소가 어렸다. 사실 엘렌의 앞에서 힘찬 호연지기를 발산하고 있는 사내는 바로 싸이였다. 온통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커티샥 에메랄드 호에서 근 보름 넘게 주변 어르신들에게 손수 수벽치기의 기본자세를 전수(?)한 싸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 싸이는 스스로도 미처 의식치 못했던 여러 가지의 기술들을 몸에 습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늘 이렇듯 모든 이 앞에서 대자연의 한쪽과 스스럼없이 융화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비록 본인 스스로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곧 어린 나이로 인한 시행착오일 뿐. 싸이 주변에 있는 고룡들께서는 하나같이 의젓하고 기특한 손자의 미래가 눈앞에 아른거릴 지경이었다. 이건 에르킨 여사보단 갈리아스 옹과 제로니스가 더욱 심했다. "허허허, 벌써 저 나이에 대자연을 하나로 모으는 힘을 가지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려." "크크크, 달리 내 손자인줄 아는가? 게다가 저녀석 덕분에 나도 모르고 있었던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되었으니! 마치 요 며칠이 꿈만 같네. 그려!" "허,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겠습니다. 이 나이 되도록 여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도 못 받고 있으니..... 어찌 저런 아이를 제가 감히 제자로 삼겠습니까?" 오늘 보게 된 싸이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는 제로니스였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생각은 남달랐다. "이보게. 그건 또 다른 문제일세.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싸이가 이제서야 겨우 자기가 지닌 힘의 일부를 깨닫게 되었다네. 앞으로도 그 힘들을 일깨우기 위해선 몸 안에 담긴 기운들을 자연스레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한데, 그건 자네 전공이 아닌가." "허허, 그럼 진짜 저보고 저 아이의 수련을 맞으란 말씀이십니까? 그건 스스로가 해내야만 하는 것이라는 걸 형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로니스로서는 이런 말이 싫지는 않았지만 사실 엄청난 부담감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갈리아스 옹의 말에 살짝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어허, 내가 그걸 말한 게 아니잖는가. 어차피 수련이야 우리 싸이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한다고 쳐도, 다급한 순간들을 맞이해서 그때마다 몸 안에 잠재된 기운을 이끌어내 사용하는 방법은 자네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란 말일세." "흐음, 이건 어째 제가 세뇌가 되는 듯 싶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싸이는 아직 어린아이니까 말일세." "후우. 하긴 탈피를 했다고 하나 나이를 생각하면 아직까지 미진한 점들이 많겠지요." 제로니스는 가슴속이 답답하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시간이 날 때마다 갈리아스 옹으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싸이의 문제점들이었다. 또한 아직까지 스스로 지닌 힘에 대해 자각만 못하고 있을 뿐인 현 상황에서, 어찌 들으면 갈리아스 옹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미 마지막 제자로 점찍었던 싸이였지만, 사부인 자신보다 더욱 강한 힘을 지닌 제자를 맡기엔 일단 부담도 켰고, 뭔가 석연치 않은 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형님. 왜 이토록 쉬쉬하면서까지 저 아이에게 자신이 지닌 힘을 알려주지 않으십니까? 전 이게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허! 내가 그리도 입조심하라고 했건만. 쉬잇. 우리 싸이를 위한다면 무조건 그 문제에 대해선 입 꾹 다물고 살게. 부탁일세." 정작 결정을 위해 마음속에 든 의구심을 떨쳐버리려고 했지만, 항상 이렇게 그 문제에 대해선 함구령이 내려졌다. 이걸 당최 이해 못하는 제로니스였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심각한 얼굴로 봐선 뭔가 비밀이 있어도 아주 심각한 비밀이 있는 것 같았기에, 결국 제로니스는 어정쩡한 스스로의 위치를 나름대로 굳힐 결심을 하고 있었다. "뭐 형님께서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고 형수님께서도 긍정적인 반응이시니까, 내 특별히 이번만은 제대로 된 수련을 시켜보겠습니다. 대신 제 마지막 제자가 될지도 모르니 제 마음대로 할 작정입니다. 그 점은 각오 단단히 해두세요. 아셨죠?" "좋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해준다는데 우리 집사람이나 나나 자네만 믿고 안심하겠네." "고맙습니다. 형님. 그럼 전 그렇게 알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좀 해야겠습니다. 하하하." 뭔가 쑥덕되는 분위기였지만, 제로니스는 결국 자신이 할 일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렸다. 곧이어 그는 눈부신 태양을 등뒤로 한 채 이쪽을 향해 오는 싸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허허. 보면 볼수록 멋진 모습이로군. 사내 녀석이 저 정도는 되야지. 아암.' 볼수록 듬직한 마지막 제자의 모습이 그의 눈 속에 작은 파문을 던졌다. 자신 또한 저 나이에 저토록 멋들어진 모습을 가졌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절로 미소를 짓는 그였다. 그리고 답례를 하듯 미소를 짖는 싸이의 몸이 한층 더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신룡의 후예 7 - 14 그시각, 멜빈은 황당한 일을 겪고 있었다. 한평생 검과 함께 살아오며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봤지만, 이런 일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휴우, 과연 저걸 믿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착각이라 여겨야 할 것인가?" 애써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달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지만, 주변에 서 있는 부하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결코 이 상황은 자신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일을 현실이라고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헤비 워커. 그것도 가히 성능을 따져보기도 힘든 최강의 헤비 워커들이 지금 그의 눈앞에 그 웅장한 모습을 들어냈다. 일찍이 저토록 멋들어진 블랙 헤비 워커 군단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선명한 리얼 블랙의 동체를 지닌 헤비 워커의 모습에 제발 이것이 악몽이기만을 바랬던 적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아직까지 부하들과 불문율로 여기며 무언의 침묵을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와 부하들로서는 블랙 헤비 워커가 나름대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판단했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거부하기엔 그 시커먼 헤비 워커가 뿜어내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멋진 상상으로 최대한 그 끔찍했던 상황을 합리화 시켰던 것이다. 결국 그러한 결과가 바로 자신과 부하들의 담담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한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하나 지금도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통사정을 하는 블랙 헤비 워커 군단의 모습은 그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위대한 주인님이시여! 제발.....! 제발 이 못난 놈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절대 교만 하려고 행했던 일이 아니었사옵니다. 그저 주인님의 위대함을 온 천하에 떨치기 위해 행했던 일이었사옵니다. 그러하오니.......... 흐윽, 위대하시고 위대하신 주인님이시여! 부디 이 못난 놈들을 하해와도 같은 마음으로 가엾게 여기사 부디 통촉하여 주십시오." 귀가 멍멍해질 정도로 울부짖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25대의 블랙 헤비 워커 군단이었다. 그것도 우람한 동체를 땅바닥에 바짝 붙인 채 머리로 땅을 짓이기며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건 도대체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미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행동이었다. 당연히 그런 반응은 멜빈의 어이없는 표정과 그의 뒤로 길게 늘어선 부하들의 넋이 나간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나 훈련이 잘되어 있었는지 멜빈의 주변에는 대 메르카 제국의 대형 전투 헤비 워커들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로얄 크림슨 기사단의 핵심 멤버들이 지닌 최강의 전투 헤비 워커였고, 그들이 지닌 힘은 가히 카빌라이 대륙 최강이라 불리고 있었다. 한데 현재 그들이 내뿜는 기운은 눈앞의 블랙 헤비 워커 군단과는 감히 비교도 못할 만큼 초라한 수준이라는 것이 멜빈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이건 어린아이가 봐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은색의 빛나는 동체를 지닌 로얄 크림슨 기사단의 헤비 워커들은 지금 하나같이 블랙 헤비 워커 군단의 맞은편에 서서 그들과 똑같이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로얄 크림슨 기사들이 제아무리 다그쳐도 그들은 그저 묵묵히 블랙 헤비 워커군단의 기운에 항복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멜빈은 어이가 없는 웃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허허헛. 이 무슨 황당한 일이란 말인가. 정말로 어이가 없군. 도대체 그대들은 누구신가? 과연 어떤 주인을 모시고 있기에 그토록 예의를 갖춰 나와 그대들의 주인에게 사죄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내 부하들의 헤비 워커들은 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어서 대답해 보라." 예전과는 달리 멜빈은 눈앞의 블랙 헤비 워커군단에 하대를 했다. 이건 그들이 현재 행하는 모습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항상 메르카 제국의 황족으로서 명예를 중시했던 그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는지도 몰랐다. 블랙 헤비 워커군단이 그 놀라운 기운을 뿜어낸다면 몰라도, 지금처럼 아무런 기운도 없이 하나의 그림처럼 자연과 동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그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청하고 있었으니 멜빈은 절로 속에서 이는 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런 멜빈의 마음을 한층 더 즐겁게 해주는 말이 블랙 헤비 워커 군단에게서 흘러나왔다. "감히 이 미천한 제우스. 위대하시고 고귀하신 각하께 인사 올리옵니다. 일전 제 못난 부하가 각하께 저지른 무례는 평생 고귀하신 각하께 충성을 다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사옵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위대하시고 위대하신 우리 주인님의 아버님이시여!" 제우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멜빈의 눈은 한껏 치켜 떠졌다.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 제우스에게서 나왔던 것이다. "뭐..... 뭐라고 했는가? 아버님?! 분명 그대가 싸이..... 내 아들 싸이의 부하라고 했는가? 맞는가?" 그순간 멜빈은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제우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독촉하고 있었다. 이미 그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으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처한 그의 몸은 또다시 투명한 기운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제껏 아들의 생사조차도 모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의 한이 어찌 이 한마디에 풀리겠는가. 하지만 멜빈은 굳이 제우스가 대답을 하지 않아도 확실히 믿을 수 있었다. 대자연과 하나의 동화를 이루어내는 존재의 입에선 결코 거짓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허억......... 헉." 숨이 멎을 것 같은 짜르르한 통증이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순간 멜빈은 휘청이며 급히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러자 정작 놀란 것은 그의 부하들이었다. "각~~하!!" "주구우우운!!" 어찌나 놀랐는지 그들이 힘껏 내리 밟는 땅바닥들은 푹푹 파이며 비명을 내질렀고,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하나같이 빠른 속도로 멜빈에게 달려왔다. 그 때문에 휘청이는 멜빈의 주변으론 금세 뿌연 먼지들이 휘날렸다. 하나 그들에겐 멜빈이 제일 중요했다. 급히 그의 몸을 부축하며 굳어진 얼굴로 급히 그의 안부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단 더욱 급한 마음에 멜빈을 보살펴주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얼마 전 물의 상급정령이 된 라디아였다. 찌리리리링. 청아한 울림과 함께 멜빈의 몸을 투명한 막으로 감싸며 그에게 편안한 기운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급격히 날뛰는 멜빈의 심장으로 푸른 물기가 가득 담긴 서늘한 기운을 빠르게 보내며 보호막을 씌워주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런 라디아의 보살핌 때문일까? 멜빈은 급격히 달아오르는 얼굴에도 불구하고 점점 편안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디아의 이런 정성어린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멜빈에게 커다란 충격을 전하는 블랙 헤비 워커군단이었다. 그들은 이미 멜빈이 휘청거릴 때부터 조바심에 몸살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가..... 각하! 부디.... 부디 고정하소서. 고귀하신 각하께 만약이라도 큰일이 닥치면 저희 모두의 목숨은 이순간 끝이옵니다. 그러하오니 제발 불쌍한 저희를 위해서라도 고정하시옵소서." "맞사옵니다. 만약에라도 저희 때문에 각하께 작은 일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저흰 그날로 끝장난 목숨이옵니다. 분명 주인님께서 아버님이신 각하께 불경했다고 저희들 전원을 해부하시겠다며 그 끔찍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러시니 제발.......... 허어어억." 제우스의 조리 있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려의 도끼의 어설픈 위로의 말이 전해졌다. 하나 미려의 도끼가 내뱉던 말은 도중에 끊겨야만 했다. 어찌나 다급했던지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두 손으로 입을 가리는 미려의 도끼였다. 그 순간 이미 멜빈은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뚝하고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띵하는 울림과 동시에 보드라운 대지와의 조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미려의 도끼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왜 여기까지 억지로 끌려 왔는지를 모르다 주변 동료들의 친절한 설명에 겨우 이해를 했었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멜빈이 위대한 주인님의 소중한 아버님이라는 사실과 얼마 전 자신과 광폭한 할버드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주인님의 아버지에게 큰 실수를 했던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때부터 미려의 도끼는 더욱 큰소리로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주인인 싸이가 요즘 들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이가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당연히 자신에게 떨어질 불호령과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미려의 도끼는 전신에 소름이 돋은 모습으로 자기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후회로 멜빈에게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 단지 문제라면 그게 너무 직설적이었다는 것이었다. 여태 싸이의 천진난만한 어린 모습을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며 살던 멜빈에게 아들의 포악한 성격은 쉽게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하나 눈앞의 거대한 기운을 품에 담고 있는 존재들이 이처럼 겁에 질려 벌벌 떠는 것에 대한 이유가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자 순식간에 멜빈에게 찾아온 쇼크는 너무도 컸다. 이러니 아늑해지는 시선으로 주변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구타당하는 미려의 도끼의 모습을 끝으로 멜빈은 그 아늑해진 의식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멜빈이 졸도하는 사태를 맞아 다급해졌던 그의 부하들은, 멜빈이 쓰러지자마자 지축을 울리며 행해지는 잔인한 블랙 헤비 워커군단의 폭력에 잔뜩 움츠려진 몸을 이끌고 조심스레 멜빈을 후송하기 시작했다. "이..... 이 멍청한 놈. 감히 주인님의 아버님이신 저 분을.......... 으아아아악." "우..... 우린 죽었다. 크아아아악. 부대장~!! 책임져~! 책임지란 말야~!" "크흐흐흐흐. 그래. 우린 이미 죽은 목숨이야. 흐으윽. 그러니 부대장부터 죽어!!" 파파파팍. 쿠아아앙. 콰아앙.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여지껏 서열을 중시하던 시커먼스 군단이 최초로 그 반기를 들었다. 이미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겁이 날게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들 패닉에 가까운 상태로 벌이는 일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다. 이미 온몸에 구겨 넣듯 급히 끌어내린 기운은 줄기차게 뻗어나왔고, 마치 주변을 황폐화시키듯 맹렬히 솟구치는 힘으로 행해지는 폭력 앞에는 지상최강의 존재라고 불리던 선명한 리얼 블랙의 동체는 버텨나질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의 주변으로 속속들이 등장하는 최상급의 정령들로 인해 주변을 황폐화시키던 기운들이 오직 한곳으로 집중이 되고 있다는 것과 나머지 주변에는 최상급 정령들이 급히 친 보호막으로 인해 그나마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재빠른 보호가 없었다면 카빌라이 대륙의 최강국이라 불리는 메르카 제국의 위대한 전사와 부하들은 엄청난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또한 동료들에게 집단 폭력을 당하는 미려의 도끼는 제우스가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순간 이미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소동으로 인해 멜빈은 오늘 아침의 짧은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이 일로 인해 블랙 헤비 워커 군단의 앞날에 낀 먹구름은 더욱 더 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싸이는 깔끔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느긋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매일 아침마다 자신을 괴롭히던 할아버지의 횡포(?)도 이젠 많이 줄어들었고, 새롭게 가지게 된 몸도 제대로 자각할 수 있게 되자 간만에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여유로운 시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해야만 했다. 이건 며칠 전부터 피부로만 조금씩 느껴지던 불안감이 조금 전 아침식사 시간에 기어이 사실로 확인하게 된 일 때문이었다. "후우, 과연 내가 잘해 낼 수 있을까? 아직은 한참 모자라기만 한데......" 당연히 이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용족의 생활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부턴 자신만의 숙명으로 인해 홀로 험한 길을 떠나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도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위대한 신의 아들이라 칭하는 드래곤으로 성인식을 치루게 된 자신 또한 이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다른 성룡과는 달리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건 가족들의 또다른 보살핌으로 해결될 것이다. 아니 이미 해결되고도 충분히 남았다. 남들은 성인식을 치루면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데, 정작 성인식을 치루고도 싸이 자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사부가 된 제로니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직까지 어린 싸이를 떠나보내기 싫은 엘렌의 고집 때문에 모든 이들은 고심해야만 했다. 이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로써 어린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겠다는 엘렌의 고집은 당연히 인정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싸이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껏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이다. 비단 이건 싸이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른 가족들도 모두가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단지 문제라면 싸이만 모르는 그들만의 욕심(?)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싸이는 이쯤에서 용기를 내야만 했다. 뭔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자신만의 숙명으로 인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얼마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그래. 이렇게 고민만 하는 것은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아. 자고로 남자는 홀로 여행을 다녀봐야만 성장을 할 수가 있는 거야. 남자다움? 패기?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아냐. 홀로 걷게 될 운명에 대해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갖추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의 경험이 가장 소중할테니까. 대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원하시는 일은 해드리고 떠나기로 하자. 아직까지 약간의 시간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되니까,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그분들께 작은 행복이라도 가져다 드리자. 그후에 생겨날 일들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해야겠지. 아직까지 난 저분들에 비하면 약한 존재이니....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최선을 다해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보자." 싸이는 이미 스스로의 숙명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단지 지금까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지만, 얼마전 성인식을 치루며 보게 된 수많은 영상들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운명은 이미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결심이 서자 싸이는 편안히 누워 눈을 감았다. 오늘 아침부터 힘찬 기운을 뿌리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하는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잔잔한 율동이 너무도 아늑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면 짧은 휴식과 함께 새로운 경험들이 펼쳐질 것이기에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며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싸이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엘렌은 초조함에 입술이 떨려왔다. 그러나 이미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는 아들이 내심 믿음직스러웠다. "흑, 불쌍한 녀석. 아직은 한참 더 이 엄마에게 따스한 보호와 사랑을 받아야만 할 나이인데........" 어찌 어머니의 마음이 이 말 한마디로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평생 어머니의 눈에 아들은 어린아이나 매한가지이거늘. 그러나 그녀의 소중한 아들은 신의 아들로서 가진 성인식에서 나름대로 가지게 될 운명과 숙명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가장 먼저 존중해줘야 할 부모였기에, 엘렌은 아들을 위해 작은 고집을 피웠다. 또한 어머니의 고집에 감동한 나머지 촉촉히 젖어 드는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 한쪽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아마도 아들의 운명의 끝은 남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때론 여자의 예감은 무서운 법이다. 그 때문에 더욱 속이 타는 엘렌이었다. 단지 유일한 위로가 되는 일은 아들이 지닌 놀라운 힘과 그 힘을 나눠준 존재들이었다. 그녀는 그들이 가진 책임감을 믿고 신뢰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들의 엄청난 힘이라면 반드시 아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처 다 크지도 못한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런 어머니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멀리에서 아들의 잔잔한 숨소리만이 그녀의 귓가로 맴돌았다. ********** 좀 늦었지요?! 7권 앞부분에 들어갈 것을 약간 각색하다보니, 자연 좀 늦어졌군요. 이미 써놓은 분량도 제법 되는 상태라, 미리미리 교정해서 7권 분량을 다 써서 올리게 되면 바로 출판사에 보낼 작정이랍니다. 그럼 지난번처럼 여러분들이 길게 기다리지 않으셔도 될테니까요.^^;; 그럼 전 멜빈을 만나러가는 싸이를 열심히 그려보렵니다. 모두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신룡의 후예 7 - 15 제로니스는 며칠 동안 고심한 끝에 결정한 물건들을 앞에 놓고 또다시 고심에 잠겼다. 마지막 제자. 이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지금까지 긴 세월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성과들이 이 마지막 제자의 노력여하에 따라 크게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과연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이왕이면 좀 더 챙겨주는 건 어때?" 은근히 손자에게 더 좋은 무구들로 도배를 시킬 욕심에 갈리아스 옹이 자꾸만 참견을 해왔다. 하나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여겼다. 처음부터 너무 좋은 것들만 사용하다보면 나중에는 나태함과 권태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스로 고생해서 이뤄야만 성취감도 남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냉정하게 딱 짤라 거부하는 제로니스였다. "형님. 그건 안되요. 지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될 정도에요. 이제 갓 수련장으로 떠나는 아이에게 이런 최상급의 아이템들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흥, 그래도 나와 에르킨의 단 하나뿐인 손자야. 그런 아이에게 내가 미리부터 몇 가지 좋은 것들로 좀 챙겨 주겠다는데..... 자네 정말 이럴 거야?"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고집은 제로니스라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정도였다. 그러니 눈앞에 엄청난 무구들을 늘어놓고 또다시 고심하게 된 것이다. "어허, 형님. 아까도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형님 앞에 있는 것들은 이다음 싸이가 마스터의 소리를 듣게 되면 그때 써도 충분해요. 지금은 이렇게 초호화 보조 아이템들만 챙겨줘도 다른 아이들이 싸이를 오해 할 판국이라구요." 결국 제로니스는 매정하게 말하며 화려한 무구들 중 몇가지 보조 아이템들만을 골랐다. 그 순간 눈빛부터 달라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갈리아스 옹의 시퍼런 안광에 속으로 찔금 하면서도 겉으론 태평한 척 시선을 돌렸다. 하긴 손자를 위해 여태껏 몰래 감춰두고 혼자서만 감상하던 비장의 무구들까지 죄다 토해낸 마당이니 그의 시선을 어찌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겠는가. 예전부터 제로니스가 그토록 보고싶다고 졸라도 냉정하게 굴며 구경조차 시켜주지 않던 전설적인 무구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이번 기회에 모두 토해낸 갈리아스 옹으로서는 저토록 살벌한 눈빛을 보내는 건 당연한 처사였다. 물론 에르킨 여사의 살벌한 도끼눈 보단 간질거리는 딸의 애교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하나뿐인 손자를 위해서라면 본인의 드래곤 하트도 아깝지 않을 그의 진솔한 마음도 크게 차지했을 것이다. 비록 낯간지러운 관계로 내심 아닌 척 하고는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떤 걸 더 꺼내놓을까 궁리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판국이니 완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너무 과하면 오히려 모자라니만 못하다라는 옛 명언들을 상기하며 애써 갈리아스 옹의 보물창고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렸다. 아마도 여기 나열되어 있는 것들보다 더하면 더했을 갈리아스 옹의 보물창고였기에 내심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욕심이 화를 부르는 꼴은 그로서도 보기 싫어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이런 제로니스의 행동에 속으로 분통이 터지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이놈. 제아무리 내 손자의 사부라곤 하지만, 이건 너무 하는 처사잖아.' 곧이라도 이 말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매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제로니스의 의견이 올바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끄응, 그럼 이 모든 걸 나중으로 미루란 말인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꺼내놓은 것들인데....." 내심 이 아까운 것들을 오늘부로 몽땅 손자에게 안길 생각에 간밤에 잠까지 설친 갈리아스 옹이었다. 비록 손자가 이 물건들의 사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곤 해도, 차차 전사로 탈바꿈하면서 적응하리라 믿었다. 한데 이건 처음부터 심각한 벽에 부딪힌 꼴이었으니, 갈리아스 옹만이 지닌 황소고집과 남다른 아집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하나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휴우, 이 아까운 놈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주인을 못 만나 그 진가를 발휘 못한 것이거늘. 어쩔 수 없겠지. 우리 싸이라면 금세 이 할애비의 섭섭한 이 마음을 달래줄거야." 긴 한숨과 함께 또다시 탁자 위에 놓여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품안의 공간으로 집어넣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이런 갈리아스 옹의 손안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는 최상의 아이템들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던 제로니스는, 속으로 저 물건들이 뛰어난 용족 전사들에게 전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갈리아스 옹이 쉽사리 그 물건들을 내놓을리 만무했다. 하나같이 최강의 아티펙트라 불리는 것들이기에 그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갈리아스 옹의 별명이 따로 있는 것이다. 바로 용족 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초호화 판 갑부라는 빅 리치(Big rich). 어찌 들으면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자 다분히 뼈 있는 별명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제로니스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갈리아스 옹의 말대로 아직까지 제대로 된 주인을 못 만나 빛을 발하지 못하던 아티펙트들이 이제부터는 마지막 제자인 싸이의 손에 의해 그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들 새로운 시선으로 갈리아스 옹을 바라볼테고, 상당히 즉흥적인 성격인 갈리아스 옹으로선 전혀 상상 밖의 장소에서 품안에 든 아티펙트들을 내놓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 제로니스는 곧 눈앞에 남아 있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갈리아스 옹이 마지못해 내놓은 연두색의 작은 손가방으로 속속들이 그 물건들이 들어가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 며칠 동안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복귀하겠다는 멜빈의 생각은 얼마 전 그 모습을 들어낸 블랙 헤비 워커 군단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이건 그의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며칠 동안 폭음에 가깝게 마신 멜빈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 그를 지켜보던 부하들도 속으로 씁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어찌 그 천진난만하던 싸이 황태자가 그토록 포악스럽게 변할 수 있을까? 이건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나 아랫 부하들을 대함에 있어 냉정한 모습과 포악스런 모습은 분명 그 차이가 컸다. 자고로 부하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 것과 공포심에서 우러나온 충성심에는 그 차이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가장 많이 느끼며 살아가는 멜빈으로서는 이 시대의 황족으로써 부하들의 얼굴을 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후우, 옛부터 만 백성에 추앙 받는 성군은 그 아리따운 성정이 주축을 이룬다고 했거늘. 내 그토록 믿었던 우리 싸이가 그토록이나 공포스런 모습이었단 말인가?" 아무리 믿으려 해도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 꿈속에서 본 아들은 과거 그의 기억 속에 남겨진 천진난만한 미소보다 더욱 아름답고 따뜻한 미소를 보여줬다. 한데 그건 자신만의 상상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그의 마음은 너무도 삭막해졌다. "하긴 그 최강의 전사들을 다루려면 그리 쉽게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진심으로 존경을 받는 것과 공포심을 이용한 통치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일진데, 우리 싸이는 과연 그동안 무엇을 목표로 지내왔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난 십여 년의 세월동안 못보고 지낸 아들과 자신의 사이엔 많은 벽들이 생겨났다고 여겨졌다. 며칠 전의 그 황당한 일도 그 벽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멜빈은 자신의 뜨거운 혈관 속에 흐르는 피를 믿기로 했다. 아무리 빗나간 성정을 지녔다곤 해도 그동안 아버지로서 못 다해준 따뜻한 사랑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잡아주면 되리라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지난 며칠간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더 이상 이러한 고민으로 인해 미리부터 겁먹고 도망치려는 의지는 자신과 너무 안 맞았던 것이다. "그래, 그동안 못 다한 이 아비의 못난 사랑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주면 될 것이야. 우리 싸이의 그 어진 성정이 결코 변했다고는 믿을 수가 없어. 단지 그 아이가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조금 성격이 나빠졌다는 것만으로 치부하면 돼. 앞으로 그 아이의 삐뚫어진 성정을 바로잡는 건 나만의 노력이면 충분할 것이야. 아암, 그렇고 말고. 그 아이가 누군데."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 것이며, 인간은 자기 합리화에 충실한 동물이었다. 또한 멜빈의 그 각별한 아들 사랑은 이러한 합리화를 만드는데 있어 유별난 것이었다. 하나 멜빈은 추호도 모를 것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만약에라도 갈리아스 옹과 에르킨 여사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날이 바로 착한 아들 망신시키려는 못난 아버지의 음모로 치부 될 것이다. 또한 뜻하지 않은 사고로 헤어졌던 과거와는 달리 끔찍한 이별이 그 뒤에 도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는 절대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싸이의 진솔한 가족 사랑이 그러한 악몽을 깨끗이 잠재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멜빈은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상글리에 궁전에 온 이후 처음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며칠째 밤을 세우며 마신 술의 취기로 인해 그의 정신은 몽롱한 상태에 처해 있었고, 요즘들어 꿈속에서 자주 보게 된 아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자 서서히 수면을 취한 것이다. 이건 그의 주변에서 향긋한 기운을 풍기던 라디아의 긍정적인 생각이 한 몫 단단히 한 일이었다. 어찌 그녀가 멜빈의 근심을 모를 것인가. 그러나 함부로 간섭을 할 수가 없었다. "휴우, 답답하시겠죠. 그분이 당신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미처 모르실테니까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편히 잠든 멜빈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내심 입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멜빈이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들을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함부로 발설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그녀가 섬기는 위대한 이의 남다른 사랑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말로 떠들며 사랑한다 외쳐봐도 막상 가슴속에 뭔가 강한 것이 와닿지 않는 이상 그 사랑은 허무할 뿐이다. 아직까지 인간의 감성에 대해선 잘 모르는 그녀였지만, 간간이 멜빈의 곁에 머무는 위대한 존재의 기운에는 다분히 그러한 감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을 가장먼저 느끼는 라디아였기에 꾹 참고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제가 아무리 당신에게 저희들만의 긍정적인 사고를 안겨드리고자 해도, 당신의 진실한 마음이 그걸 거부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이러한 현상은 당신께선 싸이님을 믿고 있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일 거랍니다. 부디 눈앞에만 보이는 현실 보단 그 뒤에 숨겨져 있는 행복을 믿어보세요. 행복은 언제나 당신의 곁에 머문답니다. 단지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요. 부디 당신께서도 숨겨진 히든 피스를 발견하는 이 중에 한분이 되시길 이 라디아 진심으로 기원할게요." 이러한 라디아의 축원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일까? 조금 전부터 잔잔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깊이 잠든 멜빈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대는 라디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만의 이러한 생각이 잠이 든 멜빈의 의지 속에 녹아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라디아는 급히 긴장해야만 했다. 잠이 든 멜빈의 주위로 감히 범접치 못할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 위대하신 우리들의 신이시여! 당신 앞에 이 가녀린 작은 소녀 라디아 진심으로 당신만의 행복을 추구하옵니다. 부디 당신만의 사랑을 모든 이에게 베풀어주소서." 금세 투명한 이슬들로 만든 단아한 드레스 자락을 바닥에 끌며 길게 절을 올리는 라디아였다. 우아한 그녀의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며 꿇려진 한쪽 무릎과 그 위로 겹쳐지는 또다른 무릎에 공손히 머리를 묻은 라디아는 잠시 후, 그녀의 곁으로 왕림한 이에게 아낌없는 찬양을 보였다. 그런 라디아의 따스한 마음 때문일까? 금세 멜빈의 전신을 감싸며 흐르는 따뜻한 기운은 곧 그의 헝클어진 심신을 맑고 깨끗하게 정화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멜빈은 깊은 수면에 잠긴 상태에서 전신으로 기어오르는 신비로운 기운에 매우 행복한 듯한 미소를 얼굴 가득 담았다. *종속의 장갑* 띠리리링., 띠잉. 끼잉. 어째 곱고 맑은 소리가 나야만 하는 하프에서 자꾸만 이상한 불협화음이 새어나왔다. 이를 듣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귀를 틀어막으려고 했지만, 그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흐그그극. 도대체 이게 뭔 조화야. 왜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것이냐?" 제일 먼저 갈리아스 옹이 치를 떨며 속 안에 든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도저히 참고 들을만한 음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 그는 머릿속이 울렁거리는 고통보다 옆구리에 이는 고통 이 더욱 진하고 아프다는 것을 새삼 실감해야만 했다. "흥, 이 양반이 지금 어디서.....!! 누군 처음부터 잘합디까? 그냥 쥐죽은듯이 입다물고 있어요. 안 그래도 저 아이가 괴로워하는 게 눈에 보여 속상해죽겠는데, 어디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에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해소하는 에르킨 여사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금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이런...... 이 할미가 또 방해를 했구나. 호호호홋. 괜찮단다. 싸이야! 아주 맘에 들었어. 그러니 어여 한 곡 더 연주해 보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또한 여사의 앞에 서서 어정쩡한 폼으로 하프를 껴안고 있는 싸이의 처연한 얼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묵묵히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제로니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뭔가 이유가 있는 일 같았다. 또한 하얗게 탈색이 되다시피 한 엘렌의 모습에서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휴우, 정말 힘들지? 그러나 용기를 가지렴. 이 엄마도 처음에는 그랬단다. 아니 어쩌면 너보다 더 심했을거야. 오죽하면 이 엄마의 집 근처로는 한동안 어느 누구도 감히 접근을 안했단다. 아마 지금의 너보다 더 심했기 때문일거야.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말고, 최선을 다 해보렴." 자꾸만 인상을 찌푸리는 싸이 곁에 앉아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주는 엘렌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이가 바로 엘렌이었기에 더욱 아들에게 용기를 줘야만 했 다. 그러나 그녀가 내뱉는 위로의 말만으로는 싸이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더욱 괴로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크윽, 내가 왜 아는 척을 했을까? 이건 진짜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어.' 싸이는 구겨지는 얼굴을 최대한 펴보려고 했지만, 자꾸 손끝에서 어긋나는 하프 현으로 인해 더욱 이맛살이 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서 응원 해주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미소 띤 얼굴을 보면 차마 여기서 포기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싸이는 품에 안은 하프로 시선을 주며 자꾸만 어긋나는 선율을 바로잡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띠리링. 띠잉. 낑낑. 참으로 듣기 힘든 불협화음의 극치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위대한 분이 남긴 악보는 오직 실버 일족에게만 남아 있다는데, 그걸 마스터하기 위해선 이렇듯 애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 "아니란다. 그부분에선 너무 힘을 줘선 안돼. 여기 음표를 봐. 한박자 쉰 다음에 고음으로 넘어가야지." 띠잉. 또다시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고음의 현을 튕겨봤다. 하나 말로 설명하는 것들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막상 연주를 하려고 들면 이렇듯 엉뚱한 소리가 났다. 또한 이런 불협화음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눈에 보였기에 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다. 52줄의 현을 모두 차분히 연주해야만 하는 손가락들도 벌써부터 그 끝이 발갛게 부어 올랐지만, 결코 여기서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만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윽, 또 실패네. 왜 자꾸 이러는 거지? 아까 엄마가 연주할 때는 그토록 쉽게 느껴지던데...' 이건 정말로 이상한 현상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음악을 들어본 것은 얼마 전 방문을 했던 세리에 마을에서였다. 그때 뮤지션들이 나와 음악을 연주했을 때 왠지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들었다. 그 때문에 탈피를 끝마치고 나서부터는 매일 마다 어머니인 엘렌을 졸라 하프 연주를 들으며 그 시간들을 매우 즐겼었다. 왠지 낯설지 않는 멜로디들은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해줬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하려고 들면 이렇듯 불협화음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싸이는 앞쪽에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선 자신의 음악연주를 감상(?)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지금의 연주실력으로는 그들의 귀만 괴롭힐 뿐이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저어... 죄송해요. 아까 제가 괜히 친숙한 멜로디라고 했던 것 때문에 할아버지랑 할머니. 그리고 제로니스 사부님께 걱정만 안겨드린 거 같아요." 작게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싸이였다. 이런 싸이의 모습에 모두들 아니라고 손짓을 했지만, 싸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아니 싸이야. 어딜 가니? 이 할미가 그토록 듣고 싶다고 하는데...... 설마 이 할미한테 네 연주를 들려주기 싫은 거니?" 왠지 풀이 죽은 듯한 손자에게 기운을 실어주려는 듯한 에르킨 여사의 고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싸이는 살짝 뒤로 돌아서며 인사말을 한 채 또다시 배의 선미부분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절대 그렇지 않아요. 단지 제 실력이 아직은 한참 모자라는 것만 같아요. 제가 조금만 더 혼자 연습을 한 다음에 할머니께 제일 먼저 들려드릴께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엘렌에게 잠시 시선을 주자 엘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내라는 무언의 시선을 보내줬다. 그 시선에 마주 답하며 싸이는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이런 싸이를 보면서 엘렌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엄마. 난 왜 이런 황당한 생각이 드는걸까요?" "뭘? 무슨 생각이 드는건데?" 조금 전 싸이에게 보낸 고운 목소리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목소리였다. 하나 엘렌은 그런건 이미 상관이 없다는 듯 그녀만의 생각을 전했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잖아요. 아까 그 악보를 싸이에게 보여줬던 걸 생각해봐요. 남들은 음악연주를 배우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동안 악보와 여러 가지 음표들을 공부하 고, 또 그 음표들에 맞춰서 연주하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엘렌이 여사에게 시선을 맞추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을 하자, 여사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보였다. "으음, 분명히 그렇지. 엘렌 너 또한 지금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 근 50년 이상 노력했었지. 그런데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냐?"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르킨 여사가 그녀의 말에 호응을 해주자, 엘렌은 금세 양쪽 뺨에 홍조를 띄며 흥분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더욱 이상하다는 거죠. 생각해 보세요. 제가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음표들을 보면서 그것들의 쓰임새를 배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요. 게다가 저 아이는 아직까지 음표라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단 말이에요. 한데 어떻게 가르쳐 주지도 않은 것들을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죠? 또한 음표문제는 그렇다치더라도 음악 연주에 필요한 악기들의 현은 어떻게 알고 있냐는 거죠. 아무리 천부적인 뮤지션이라도 처음 다루는 악기의 현이 지닌 깊이는 절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누군가에게 그 현이 내는 소리의 깊이를 배워야만 알 수 있 는거잖아요." 엘렌의 말에 점점 눈이 커지기 시작하는 에르킨 여사였다. "맞아. 미처 그걸 생각 못해봤구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라니? 분명 오늘 처음으로 하프를 만져본 아이인데 어떻게 그 많은 현들의 깊이를 그토록 자세히 알고 있었지? 혹시 네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니?" "아니에요. 전 아직까지 저 아이에게 음악에 대해선 그 어떠한 것도 전달한 적이 없어요. 엄마도 그건 잘 아시잖아요." "으음, 그렇구나. 우리 용족들은 갓 태어난 헤츨링에게는 그리 많은 것들을 전해주지 않지. 단지 삶의 중요성과 자신의 존재감에 관해서만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전해주지." "그러니까 더욱 이상하다는 거에요. 오늘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가 어떻게 그러한 것들을 알 수 있냔 말에요. 이건 정말 유령이 트림했다는 소문보다 더 소름 돋는 일이에요." 살짝 어깨를 떨며 생각만해도 무시무시하다는 표정을 짓는 엘렌이었다. 분명 그녀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고, 이러한 놀라운 현상에 대해선 누구라도 감히 쉽게 단정을 짓지 못했다. 그러나 에르킨 여사는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현상들에 대해서 쉽게 납득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구나. 제아무리 신동이라고 해도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선 알 수가 없는데..... 과거 신룡 할아버지께서 지니셨던 종속의 장갑이 아니라면, 이러한 현상들은 쉽게 납득하기가 어렵구나." 그 순간 에르킨 여사의 말에 가장 놀란 것은 바로 엘렌이었다. "네에? 그..... 그 전설의 아티펙트인 종속의 장갑요? 그건 이미 신룡 할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넘어가시면서 같이 사라졌다고 알려진 물건이잖아요." "그렇지. 신룡 할아버지께서는 그 물건이 지닌 마성에 가까운 효능으로 인해 사후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결심을 하셨다고 했거든. 그로 인해 자신의 사후에는 그 물건이 남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남다른 신경을 쓰셨다고 했단다." 엘렌은 어머니인 에르킨 여사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어린 시절에 숱하게 들어오던 신비로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이 땅에 수많은 생물들이 평화롭게 존재하던 시절. 물질계 최고의 존재들인 드래곤들은 엄청난 일들을 했었다고 한다. 가히 전설로도 치부되는 일들 중에서도 가장 가슴 설레이는 일들은 바로 여러 종류의 몬스터들을 길들이는 일이었다. 이건 오랜 시간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들이었기에 그 전설들은 더욱 많은 이들에게 즐거운 상상을 선물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신이 나는 일은 바로 최강의 몬스터인 드레이크를 길들이는 일이었다. 이건 순전히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었다. 야생의 동물들을 우리에 가둬 놓고 사육시킨다고 해서 그리 쉽게 길들여질까? 그건 절대 아니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사육사라고 해도 야생의 본능이 살아 숨쉬는 몬스터들을 길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해낸 이가 바로 신룡 헤르아킨이었다. 그것도 야생의 드레이크 중 제일 사납고 힘 센 화이트 드레이크를 길들여 타고 다닌 전설은 두고두고 모든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전설이었다. 그 전설에 보면 바로 야생의 몬스터들을 종속시키는 장갑에 대한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화이트 드레이크를 앞에 두고 신룡 헤르아킨의 왼손에서 강렬한 빛이 일어나 드레이크의 영혼을 종속시킨다는 대목에서 바로 문제의 종속의 장갑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에르킨 여사는 쉽게 단정짓지 못했다. 더구나 그 마성에 가까운 매력을 지닌 종속의 장갑이 만약에라도 손자에 있다면 그건 큰일이었다. 또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한동안 여사와 그 가족들은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에서 손자를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고로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이건 모든 드래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가히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갑이 만약 싸이의 손에 있다면, 모든 용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싸이에게 덤벼들 것이다. 설령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모두들 전설 속의 드래쿤 라이더가 되기 위해서라도 꽤 많은 이들이 싸이를 괴롭힐 것이다. 이런 것들이 순간 눈앞에 떠오른 에르킨 여사는 급히 온몸에 이는 소름에 저항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입조심을 시켜야만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모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가장 많은 시선을 받게 되어 졸지에 요주의 인물로 찍힌 엘렌은 그 이후 한참동안이나 여사의 끈질긴 협박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만큼 종속의 장갑에 서린 전설은 무시무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싸이는 아무도 없는 선미로 걸음을 옮기며 사색에 잠겼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쉽게 납득할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이상해.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혹시 나한테 절대 음감이라도 있다는 건가? 에이 설마! 그건 절대 아닐 거야. 나같은 음치한테 그런 재능이 있을 리가 없어." 전생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전설적인 음악가들은 하나같이 절대 음감이라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어떠한 음악이라도 한번 듣게 되면 그대로 연주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또한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음들을 작곡하여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줬었다고 한다. 그런 재능이 지금의 자신에게 있을 리가 없다고 싸이는 생각했다. 아무리 새로운 곳에 태어나 새로운 삶을 받았다곤 해도, 과거 끔찍할 정도의 음치였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싸이다보니 그런 결정이 쉽게 내려진 것이다. 이건 얼마 전 이곳에서 처음으로 불러본 노래에서도 그 진가가 들어 났다. 제법 마음에 들 정도로 불렀지만, 그래도 가끔식 노래 중간에 음들이 틀렸던 것이다. "하긴 나같은 음치가 그정도만 해도 훌륭한거지. 뭐. 후후훗." 많은 이들이 자신의 노래에 기립박수를 보낸 기억이 떠오르자 새삼 즐거운 기분이 든 것이다. 그러나 싸이는 절대 모르는 것이 있었다. 분명 중간중간 어색한 부분들도 있었지만, 모든 이들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 그 노래에는 결코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본인만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자꾸만 배의 선미로 다가섰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지 않는 장소를 찾고자 하는 본능에 따른 행동 같았다. 띵띠리리링. 띵띠이잉 차분한 마음으로 현을 훑어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현은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대로 쉽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비록 가족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왠지 모르게 불협화음을 내는 어색한 음색들도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싸이는 푸른 창공을 가르며 나아가는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선미에서 느낀 감정들을 그대로 연주해보고픈 욕심이 들었다. 혼자만의 만족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연주하고픈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의지가 일어서일까? 싸이는 곧 눈을 감고 차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손끝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마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 바로 이 곡이었지? 왠지 저 넓은 하늘과 맞닿은 산들과 그 계곡을 마음껏 스쳐 지나가는 바람들이 네가 좋아하는 이 곡에서처럼 웅장한 멋을 안겨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부디 못난 연주라고 흉보지는 말어. 알았지?" 마치 눈앞에 그녀가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싸이는 지긋이 눈을 감은 채 과거 자신에게 연주를 해주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비록 하프와 피아노의 소리는 달라도, 그 곡에 존재하는 음표들은 이미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이건 아직까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었지만, 머릿속으로 어떠한 곡이라도 떠올리게 되면 자연스레 연주할 현들로 손가락이 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렇듯 용기를 내 연주를 해보는 것이다. 곧이어 차분한 마음으로 연주를 시작하는 싸이 곁으로 뿌연 구름들이 모여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싸이의 몸에 차가운 기운들이 함부로 어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왼손의 팔찌에서 환한 빛이 터졌다. 그것은 곧이어 싸이 주변의 모든 기운들을 다스리며 하나로 모아졌고, 하나로 모여진 기운들이 빠른 속도로 팔찌로 전달이 됐다. 하나 찰나의 순간에 모여든 기운들이었기에 약간의 기운들이 미처 팔찌로 들어오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곧 하얗도록 시린 빛이 왼손부위에서 일어나며 그 기운들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 당겼다. 그순간 싸이는 왠지 알 수 없는 느낌과 함께 편안한 멜로디를 상상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비단 이 멜로디는 싸이의 상상 속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니라, 싸이의 주변을 맴돌며 아름답게 연주되고 있었다. 띠리링. 띠리리링. 촤르르르릉. 마치 신이라도 내린 양 싸이의 왼손이 중요한 흐름을 이끌어 나가면, 오른손은 자연스레 그 뒤를 따라오며 아름다운 화음을 이뤄냈다. 이건 조금 전과는 너무도 다른 양상이었다. 스스로 자각을 함과 동시에 싸이가 연주하는 곡들이 불협화음에 접어들었던 것과는 달리 무의식의 상태에서 떠오르는 곡들은 이토록 아름답게 연주가 됐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아름다운 그녀의 멜로디로 빠져들고 있었다. 바로 엄청난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그랜드 캐넌의 달콤한 속삭임 속으로 거침없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낯설은 멜로디 소리에 놀란 이들이 하나 둘 싸이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금전과는 너무도 다른 싸이의 음악연주에 놀란 듯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잠시 후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 듯한 멜로디의 감흥에 젖어 점점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순간에도 싸이의 왼손에선 하얀빛이 새어나오며 하프의 여러 현들을 바쁘게 누비고 다녔다. 더불어 싸이의 왼손에 이는 하얀빛을 잠시나마 발견한 에르킨 여사의 입은 점점 크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이미 에르킨 여사의 눈동자는 주변에 이는 달콤한 최면음악에 의해 현저히 풀어져 있었던 것이다. *************** 좀 늦었지요? 일단 게시판에 테그를 쓰고 싶어서 며칠간 노력을 했는데, 결국 이렇게 그냥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하는군요. 이번에 글을 올리면서 여러분들에게 케논 변주곡을 같이 선물하고 싶었지만, 역시 컴맹은 아무리 배워도 힘들군요.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평소의 이연참에 가까운 글의 분량에 만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캐논 변주곡을 위의 글과 연관지어 들어주시면 감사하곘다는 제 마음도 같이 전해올립니다. 모쪼록 무더운 날씨에 미리미리 몸건강히 지내세요. 그럼 전 다음 글에서 찾아뵐께요. 신룡의 후예 7 - 16 메테우스는 얼마 전에야 겨우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간신히 의식만 되찾았을 뿐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에 가까운 몰골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 며칠간 겪었던 일들은 가히 악몽의 군주와 힘겨운 전투를 치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전신의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겨우 눈을 뜬 그를 제일 처음 맞아준 것은 바로 등을 통해 전달이 되는 잔잔한 마차의 진동이었다. 그러나 메테우스는 잠시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몰라도, 신비한 존재와의 조우 도중 자신은 의식을 잃었다는 기억만이 간간이 떠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이미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는 상태였고, 약간의 의식만이 남아 있는 상태라 비몽사몽간을 헤매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자그마치 며칠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분명히 손가락을 움직이려는 생각과 함께 작게나마 몸이 의지를 따라줬다. 이제부터는 몽롱한 시간 속에 잠든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을 했다. 그의 강한 의지 덕분일까? 한참을 노력한 끝에 겨우 마차바닥에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헉.... 헉......" 고작 바닥에 뉘어진 몸을 일으켜 앉았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전신은 물먹은 솜처럼 자꾸만 쳐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손과 발에는 아무런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메테우스는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잊지 않았다. 과연 며칠동안 이런 상태로 있었는지는 잘 몰라도, 현재 그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이렇게 망가진 몸은 이 다음 그곳에 도착해 주군을 기다리며 천천히 회복시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주군과 만나기로 한 곳에 가기 위해서라도 메테우스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며 주저앉은 신형을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끄윽....... 커억............ 헉헉." 차마 전신에 이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군가를 불러 부축을 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미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숨결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져 목이 메어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며, 두 손으로 마차의 벽을 짚은 채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쿠당탕. 풀썩. "으윽." 잠시 발목에 힘이 빠지며 균형을 잃어버리자 그의 신형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메테우스는 전신에 이는 끔찍한 고통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하나 좋은 일도 있었다. 그가 쓰러지는 소리에 갑자기 마차가 서며 마부석 쪽에 나있는 창이 열렸다. "어머나. 메테우스 경! 드디어 깨어나셨군요." 쥬엘의 목소리가 아련한 환청처럼 들려왔다. 메테우스는 그 순간 입술을 비틀며 그녀를 올려다봤다. 도저히 혼자만의 힘으론 일어서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쥬엘의 목소리는 그의 이런 의지를 꺾어놓았다. "메테우스 경. 아직은 움직이시면 안돼요. 자세한 건 저로서도 잘 모르겠지만, 현재 메테우스 경의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없어요. 전신의 뼈란 뼈는 모두 부러져 있는 상태거든요. 다행이 놀랄만한 속도로 빠르게 아물고 있다고는 해도, 지금처럼 무리하게 움직이시면 큰일나요. 그러니 얌전히 누워 계세요. 아셨죠?" 금세 옆으로 다가와 그의 몸을 부축하며 조금 전 누워있던 곳으로 이끄는 쥬엘의 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메테우스의 계속되는 무언의 소리를 쥬엘이 알아듣고선 재빨리 그를 안심시켜줬다는 것이다. "네. 지금 무슨 말씀이 하고 싶은 건지 잘 알고 있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샹글리에 궁전이에요. 그러니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편히 쉬세요. 후훗."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보는 듯한 기분에 쥬엘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샹글리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녀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따르는 메테우스였기 때문이다. 그런 후 쥬엘은 또다시 마부석 쪽으로 이동을 했다. 그 모습을 누운 채 바라보던 메테우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가 자신을 보며 비웃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대접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남자로서의 자부심에 큰상처를 입은 것이다. '크윽, 제길. 언제나 레이디를 보호하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기사라는 놈이 겨우 이따위 육신의 고통에 안주하다니......! 뿌득. 메테우스. 넌 고작 이것밖에 안되는 남자더냐?!' 스스로에게 따끔한 질책을 하며 이를 악문 채 마차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전신의 몸은 물에 불은 솜 마냥 축축 쳐지는 느낌이었고, 또다시 등뒤로 느껴지는 잔잔한 마차의 진동에 그의 의식은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메테우스는 그 와중에도 한가지 행동을 하고 있었다. 굵직한 그의 주먹이 파란 힘줄을 토해내며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봐선 꽤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것 같았다. 바로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기 위해 자신과의 피나는 전투를 벌이고 있는 메테우스였기 때문이다. 오후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쪼이는 갑판 위에서 싸이는 난생 처음으로 검을 쥔 채 고요히 서 있었다. 아침나절에 생겨난 작은 소동을 통해 제로니스의 허락이 떨어진 결과였다. 사실 너무 듣기 힘든 불협화음으로 인해 제로니스는 아침 내내 귓가로 마나를 모아 주변에서 이는 소음들을 무시한 채 조용히 명상에 잠겼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분명 전신에 깃든 마나로 주변과 격리를 시킨 그에게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아련한 멜로디가 생생히 전해졌었다. 이건 정말로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놀라운 현상은 잠깐일 뿐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행한 명상의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멜로디로 인해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던 기억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아찔할 정도의 현기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싸이를 노려보는 눈매가 날카로웠다. 하나 그는 속으로 대견한 싸이를 칭찬하고 있었다. '녀석. 정말로 대단한 녀석이야. 어찌 저토록 고고히 서 있단 말인가. 아마 오늘이 태어나 처음으로 검을 쥔 날일텐데......' 이건 이미 엘렌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오래 전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봐도 생전 처음 만져본 검이라면 의당 심장이 쿵쿵 뛰며 흥분을 해야 정석일텐데, 눈앞의 싸이는 고요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정말 모든 것이 신비로운 제자의 모습이었다. 하나 그건 속 안의 생각일 뿐. 결코 이번만큼은 칭찬으로 키울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최고의 아이로 만들고야 말 것이야. 아암, 저토록 집중이 강한 아이는 내 생전 처음이거늘, 그전처럼 쉽게 칭찬하고 웃음으로 대하게 되면 저녀석도 금방 나태해질지 몰라.'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마지막 제자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만족할 만한 성장을 시키리라 내심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때문에 더욱 날카로운 눈매를 유지한 채 제자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오랜 시간 제자리에 서서 숨소리마저 조용히 잠재운 듯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런 모습에 감탄한 나머지 제로니스는 기어코 속안에 드는 마음을 살짝 끄집어냈다. 그만큼 눈앞의 제자는 너무도 대견스러웠기 때문이다. "후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거라. 검이란 그저 네 손의 길이를 조금 더 늘여주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기거라. 언제나 네 몸과 마음이 그 검과 동화하여 하나라 여겨질 때까지 스스로 네 몸과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거라. 검술이라는 것은 그러한 기초가 쌓인 다음에서야 비로소 시작하는 것이란다. 알겠니?" 지금까지 제법 많은 수의 제자를 키웠던 훈련방식은 매우 간단했다. 그저 검과 하나된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 숱한 나날들을 검과 함께 생활하며 휘두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단한 마지막 제자를 키우는 방법은 남다르게 할 작정이었다. 이미 머릿속으로 마지막 제자를 위한 특별훈련 조항들이 빼곡히 들어찬 상태였기에, 그 중에서 제일 어려운 것들만을 골라 가르칠 작정이었다. "후훗, 녀석. 이미 깊이 몰두하고 있으니 내 말이 들리지는 않겠지. 하나 명심하거라. 네 의지는 본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분명 지금의 이 말까지 네 의지는 듣고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네 스스로의 생각과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하나 이다음 네게 진정 힘든 고비의 순간이 닥쳐오면, 그때 이 늙은이의 어줍잖은 말 몇마디가 불현듯 떠오를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들이 아직까지 깨닫지 못한 무의식의 세계가 지닌 미지의 힘이란다. 만약에라도 그런 미지의 세계에 빠져들 날이 생기거든 부디 명심하고 또 명심하거라. 언제나 네 스스로가 지닌 최강의 힘은 항상 네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제로니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반달과도 같이 고운 제자의 이마 위로 또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땀방울은 오똑 솟은 콧날을 타고 앵두처럼 붉은 빛이 도는 입술 끝에 매달렸다. 잠시 뒤 갸름한 턱을 두껍게 받치는 목안의 돌기가 살짝 움직이자, 그 땀방울은 신이 난 듯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그러나 바닥을 수놓는 땀방울의 주인인 싸이는 여전히 검을 든 자세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중단세. 상대의 검과 시선이 맞닿는 곳에 놓여진 검의 끝. 그 아래로 살아 숨쉬는 근육들이 파르르 떨리며 힘을 전하는 비스듬한 각도의 검날과 강한 의지가 실린 앙다문 입술. 검을 쥔 기사라면 누구나 기본동작으로 여기는 중단세의 자세가 이토록 아름다울 줄은 어느 누구도 미처 생각 못했다. 그러나 거친 물살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는 천년암석의 도도한 자태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법이다. 단지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기에 무심코 넘겨버릴 뿐이다. 하지만 막상 그 모습들이 자신과 연관이 있다면 모두의 시선은 다시 한번 모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연관성은 몇시간째 제자리에 서 있는 싸이에게도 해당이 된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의 존재들이 눈빛을 빛내며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호호,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군요. 그렇죠?" 에르킨 여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잇고 있었다. 그건 갈리아스 옹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런 모습 때문에 검술을 배우려고 그토록 애를 쓴 것 아니겠소. 허허.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군.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리도 멋진 자태를 보이는 것인지.......!" 아마도 자길 닮아서 싸이가 저렇듯 멋진 자세로 서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갈리아스 옹의 이런 바램은 하나뿐인 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오호홋. 아빠도 참. 싸이 쟤 아버지가 누구예요? 바로 인간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인정받는 검사잖아요. 당연히 저와 그이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저런 멋진 모습을 보이는 거죠. 평소 멜빈 그이가 하는 모습과 너무도 똑같이 닮았네요." 엘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내뱉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진실이 소중하다 해도, 상황에 따라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걸 깨닫자마자 급히 둘러치기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누군가는 단단히 삐진 후였다. "흥, 감히 하찮은 인간 나부랭이 기사녀석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유세를 떠는 것이냐? 흥흥, 그딴 놈 열 명이고 백 명이고 데려와 봐라. 내가 눈하나 까딱하나." 맞는 말이었다. 갈리아스 옹은 이미 오래 전 멜빈보다 더욱 뛰어난 최고의 전사들 수백 명에게 둘러싸여 곤혹을 치룬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미 오래 전 대지의 거름이 되어 조용히 잠들었을 뿐이다. 감히 검술에서 최강이라 칭해지는 자들이라고 해도, 갈리아스 옹이 지닌 실력과 비교하자면 어불성설에 불과할 뿐이다. 한마디로 비교할 걸 비교하란 소리다. 이미 웜 급에 이른 시절부터 용족 사회에서 그를 말릴 존재는 거의 손가락에 꼽혔다. 제아무리 고룡급의 원로가 직접 나서서 그를 혼내주려고 해도 여간해선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탄 갈리아스 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겐 말 한마디면 꼼짝 못하게 만드는 천적이 존재했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이 어느 때라고 그딴 헛소리만 늘어놓는 거에요? 정말 손자 앞에서 망신살 뻗쳐 보이고 싶어요?" 아주 조용히 속삭이듯 한마디하는 에르킨 여사였다. 하나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금세 고개를 푹 숙이는 갈리아스 옹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되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다고.... 딸년 앞에서 망신 어쩌고 하는 것이오? 사실 말이 나와서 그렇지, 내가 왕년에........" 그래도 끝까지 한마디하며 고개 숙인 남자가 되고 싶은 갈리아스 옹이었다. 그러나 에르킨 여사는 그걸 용납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는 모양이다. "흥, 조용히 해요. 괜히 질투에 눈이 멀어 손자 앞에서 망신당하지 말구요. 아셨죠? 당신이 과거엔 어땠는지 몰라도, 이젠 어엿한 할아버지란 말이에요. 제발 좀 점잖은 모습을 보여주세요. 이제 손자도 다 큰 마당에 자꾸 그러시면 정말 재. 미. 없. 어. 요." 남편 말마따나 차마 딸애 앞에서 심한 구박은 하기 싫었던 까닭에 작게 속삭여줬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는 모습에서는 지켜보고 있던 엘렌조차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무리 갈리아스 옹이 남들에게 큰 효과를 봤던 신기한 물건들이라고 해도, 에르킨 여사 앞에선 별반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이미 숱한 세월을 옆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처지였기에 그 물건이 지닌 효용성을 에르킨 여사는 이미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힘으로 붙어도 밀리고, 아템빨로 덤비려고 해도 당최 소용이 없는 까닭에 갈리아스 옹은 그저 찍소리 못하고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천적은 오직 단 하나만 존재할 뿐이지만 말이다. 결국 질투심에 눈이 멀었던 갈리아스 옹은 조용히 아내가 내민 과일 조각을 쓴 입으로 집어 삼켜야만 했다. 그러나 어찌 그가 모르겠는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의 모든 능력과 행동거지를 인정해주는 고마운 천적이기에, 그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제법 멋지다는 나름대로의 합리화에 빠져 사는 존재였다. 또한 인정할 건 반드시 인정해야만 하는 성미를 지닌 갈리아스 옹이었다. "제길. 저 녀석은 도대체 누굴 닮아서 이 할애비를 고생시키누." 아마도 도끼눈을 하고 있는 마누라와는 다른 존재가 그 누구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 그의 말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속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여전히 고요한 신색 그대로 검과 자신과의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 성분의 검이 주는 기분은 상당히 복합적인 것들이었다. 언뜻 보면 든든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두려운 무언가를 전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요망스런 물건과 하나가 되려는 마음가짐은 본능이 쉽게 놔두지 않는다. 그 때문에 무아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손에 들린 검을 마치 수족과도 같이 여기게 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아직까지 몇 안되는 전사들만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던 것만 봐도 제로니스가 요구하는 일은 현재의 싸이에게 상당히 벅찬 일들이었다. 하지만 싸이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사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뭔가 뜻이 담겨져 있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할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싸이는 몇 시간째 검을 쥔 손으로 뭔가를 느껴보고자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과연 나와 이 검은 무엇일까? 나와 어떤 인연이 깃들었기에 이렇듯 하나가 되어야만 할까?' 좀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쉽게 납득하기 힘든 상식이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고스란히 전하는 사부였기에 싸이는 믿고 또 믿어보고자 했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그는 이런 내 생각을 쉽게 이해해줄까? 물론 이 검은 생명이 없는 무생물일 뿐이지만, 그래도 혹시 나처럼 의지가 있는 존재였다면, 이런 내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왜 이러한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저 머릿속에서 이러한 생각이 깃들자 있는 그대로 의문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 의문들 속에 무엇인가 담겨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검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역시 이건 나만의 헛튼 생각인 것일까? 아니야. 다시 한번 더 믿어보자. 사부님이 쉽게 그런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는 거야. 나와 내 손에 든 검이 하나가 된다는 것. 이 속에 분명 뭔가가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지고자 더욱 힘을 내 강한 의지를 검에 전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에 미동조차 하지 않는 무생물의 검이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싸이는 왠지 그 검에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색다른 의지가 살아 숨쉰다는 믿음이 어느 순간 생겨났다. 이건 시커먼스들을 떠올려보면 분명한 일이었다. 맨 처음 그 녀석들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에는 그저 신비한 물건을 바라보며 무조건 좋아라 여겼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면서 서로의 호흡을 조금씩 느낄 수 있게되자, 미처 그들도 모르고 있었고 자신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그들만이 지닌 새로운 지식들이 발견되었다. 그로 인해 한동안 즐겁게 생활하지 않았던가. 이제부터 이 검 또한 그런 인연의 시작이라 여겨졌다. 앞으로 많은 시간들을 이 검과 함께 하다보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럼 더욱 즐거운 생활을 함께 누리게 되리라 생각됐다. 그 순간 싸이는 검을 쥔 상태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의 의지와는 확연히 다른 기운이 검안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순간 사부인 제로니스의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듣고 있니? 난 아직까지 너에 대해서 잘 모른단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너와 하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볼 작정이야. 너 또한 이런 나를 무조건 거부하지 말아줬으면 해. 이건 진심으로 부탁하는 거야. 알았지?' 우웅. 마치 싸이의 말에 대답을 하려는 듯 작게 일렁이는 검의 의지였다. 그 순간 싸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또 다른 삶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너를 내 소중한 삶의 일부라 여길게. 항상 나와 함께 살아 숨쉬며 기쁠 땐 같이 웃고 슬플 땐 같이 울자구나. 그리고 너와 내가 앞으로 거쳐갈 험난한 길들을 멋지게 개척해보자꾸나.' 과거의 시간들은 이미 아련한 세계로 흘러갔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지의 시간들은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몰랐다. 간간이 행복한 시간들도 경험하겠지만, 언제나 슬프고 힘든 시간을 극복해야만 달콤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싸이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힘들고 슬플 때에는 아주 작고 소중한 일에도 큰 감사와 뿌듯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언제나 기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다보면 남들에겐 아주 소중한 행복도 스스로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은 고뇌의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행동으로 숨겨진 행복들을 찾는 것이다. 싸이는 이러한 것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깨달아왔고, 이젠 온몸으로 느껴볼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피부로 절실히 실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손에 쥔 검의 작은 울림에도 이토록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살아가야겠지. 진취적이라는 것은 무조건의 도전정신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야. 항상 주변을 살피고 모든 이들에게 소중함을 나눠 줄 수 있을 때에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진취적인 삶의 한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거야. 자아, 앞으로 우린 이러한 삶에 충실 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들을 함께 해보자. 그리고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준 소중한 인연이 되어 줘 진심으로 고마워.' 살짝 고개를 숙이며 검에게 인사를 하는 싸이였다. 물론 이건 무아의 경지에서 행한 것들이기에 싸이의 겉모습은 여전히 평온한 모습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단지 싸이의 주변으로 아지랑이와도 같은 기운들이 어리며 새롭게 만난 검과의 인연을 축복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었 다. 신룡의 후예 7 - 17 제로니스는 도도히 서 있는 제자의 모습에서 뭔가 짜릿한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검안에 자신만의 의지를 불어넣었을 때에나 가능한 모습이었다. 이건 검에 대한 궁극의 이해를 맛본 그만이 느낄 수 있는 현상이었다. "호오, 고작 몇 시간만에 그런 일들을 성공시키다니...... 역시 내 제자답구나." 그는 역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사실 검을 처음 쥔 제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주문이었다. 한데 지금 눈앞에서 고고히 서 있는 싸이를 보라. 도저히 처음으로 검을 쥔 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싸이는 검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것이다. 때문에 자신이 계획했던 바대로 싸이를 이끌 생각에 절로 신바람이 나는 제로니스였다. "후훗, 기특한 녀석.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을 시켜도 넌 반드시 해내리라 여겨진다. 그럼 이제 나도 슬슬 준비를 해 볼까?" 내심 속 안에 이는 즐거움에 환호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었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보여질 체면이라는 것 때문에 행복한 미소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이런 모습을 싸이에겐 직접 보여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 때문에 뒤를 돌아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그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에 내가 생각한 과일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형님이 맨 날 형수님 드린다고 여러 과일을 챙겨 놓았을텐데..... 부디 내가 찾는 게 있길 바래야겠군." 그러면서도 등뒤로 다시 한번 시선을 주는 제로니스였다. 그만큼 지금 그가 계획한 일은 웬만한 검사가 아니면 감히 흉내도 못 낼 훈련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고고히 서 있는 싸이의 자태를 보며 기특한 마지막 제자는 그 일을 빠른 시간 안에 해낼 것만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히는 제로니스였다. 싸이는 문득 무아의 경지에서 깨어났다. 바로 무념무상의 경지만이 지닌 까탈스러움 때문이었다. "으음, 내가 잠시간 집중한 것인가?" 온몸이 흠뻑 젖도록 아무런 감각을 못 느꼈다는 것은 곧 의식을 잃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나 이건 흔히 말하는 기절이나 졸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보통 불면증이 심한 사람일 경우 이러한 경험을 많이 한다. 분명 의식은 또렷이 깨어있다 여겨지지만, 이미 시간은 한참 흘러갔다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와 비슷한 것이 바로 무아의 경지였다. 하지만 이건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쉽게 빠져드는 것도 아니었고,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다고 해서 지속이 되는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완전히 제 멋대로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가 않았다. 그저 몸 안에서 이끄는 대로 나타날 뿐이다. 단지 그 경험들을 자기 맘대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무념무상의 경지만이 지닌 까탈스러움이었다. 때문에 싸이는 갑자기 들이닥친 한기로 인해 화들짝 놀라며 문득 무아의 경지에서 깨어난 것이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느낌이 무아의 경지에선 큰 충격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토록 허탈하게 깨어났을 것이다. 하나 뭔가 알 수 없는 따스함이 검을 통해 전해져 오자, 싸이는 허탈한 웃음 속에서도 뿌듯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후후, 맞아. 앞으로 너와 함께 하기로 했지?"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검을 들어올리며 저녁 햇살에 반짝이는 검날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보통의 롱소드와는 확연히 다른 검에서 작은 빛이 솟구쳤다. 아마도 석양에 드는 태양의 마지막 몸부림이 푸르스름한 검날에 비쳐진 모양이다. "너란 녀석은 참으로 멋진 것 같아. 할아버지가 처음 내게 널 건내줬을때 부터 왠지 너에게선 알 수 없는 신비감이 들었어. 그런데 지금 이렇게 널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넌 내게 무언가를 전해주는 것 같아. 비록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당장에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너와 함께 하면서 차차 깨달아 나가면 되겠지. 모쪼록 많이 부족한 나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렴. 알겠지?" 마치 검에게 생명이라도 있는 양 대화를 하는 싸이였다. 그런 싸이의 따스한 마음 때문인지 손에 들린 검에선 더욱 푸른빛이 맴돌았다. 그런 모습에 더욱 환한 미소를 짓는 싸이였다. 그러나 싸이의 이런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새 싸이의 곁으로 다가온 제로니스 때문이었다. "이 녀석. 항상 검을 소지 할때는 그만큼 신경을 쓰라 말했거늘. 그새 까먹은 것이냐?" 문득 냉소에 가까운 제로니스의 말속에서 싸이는 알 수 없는 오한을 느껴야만 했다. 이건 처음 검을 쥐었을 때 보다 더욱 무서운 느낌이었다. 바로 살기라는 것을 생전 처음 느껴본 것이다. "윽..... 죄송해요. 왠지...... 이 녀석과는 금세 친해진 것 같아서........" 다급히 변명을 한다는 것이 제로니스에겐 같잖게 들렸나 보다. 조금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무시무시한 기세가 곧 덮쳐왔기 때문이다. "뭣이라? 금세 친해져? 이 녀석이 감히 어디서 그런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냐? 무릇 검이란 오랜 시간 함께 생활을 해야만 겨우 일 할의 값어치를 깨닫게 되거늘. 오늘 갓 검을 쥔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뭐? 금세 친해져? 흥, 감히 어디서 헛튼 소리를 내뱉는 것이냐?" 싸이로서는 다급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내뱉었던 것이다. 하나 오랜 시간 검과 함께 한 제로니스에겐 그런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쉽게 용납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심한 잔소리를 해야만 했다. 그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제로니스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한 약속에는 분명 사부인 제로니스의 어떤 말에도 반항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약조가 있었다. 때문에 싸이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청했다. "죄송해요. 제가 아직 많이 모자란 까닭이랍니다. 부디 화가 나셨다면 그만한 체벌을 내려주세요. 달게 받겠습니다." 싸이로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하나 싸이는 지금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이 세계에서 지금의 말이 지닌 뜻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오. 그 말이 진정이렸다." 재차 확인하는 제로니스의 눈을 마주보며 싸이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큭큭큭. 순진한 녀석. 지금 한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 채 있는 그대로 사과를 한다는 것인가? 역시 심성 하나는 곧고 바르게 자란 녀석이야. 하나 욘석아! 넌 지금 한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 흐흐흐.' 오랜만에 사악한 미소가 절로 이는 제로니스였다. 그 또한 욕심 많은 드래곤이었고, 드래곤에게 있어서 작은 꼬투리는 엄청난 결과를 자아내는 촉매제였다. 이런 것도 모른 채 순진하게 용서를 구하는 싸이의 모습은 무척이나 불안하게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해서 제로니스의 입을 주시하며 용서를 구하던 싸이의 귀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들어왔다. 너무 심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다. 네 녀석이 그렇게 원한다면야 나로서는 용서할 수밖에. 하나 쉽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말거라. 자고로 검이란 언제 어느 때 사납게 변할지 모르는 무서운 것이다. 그런 검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녀석이 고작 친한 감정이 들었다고 해서 함부로 다루는 것을 내 이번에 확실히 뜯어고칠 생각이니 말이다. 알겠느냐?" 왠지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싸이에겐 사부인 제로니스의 용서가 고마웠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이었다. 곧이어 제로니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주문은 장난이 아니었다. "나 푸른 바다를 지키는 자유의 눈물로 대지와 천공의 자유에 이는 바람의 속삭임으로 명한다. 부디 내 앞에 있는 이에게 그대들의 숨결을 부여하라. 중력 부과(Gravity imposition)의 구속." 흔히 이건 악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부모가 삐뚫어진 자식에게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한 체벌을 가할 때 쓰이는 주문이었다. 또한 이 주문은 공격 주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보조 주문도 아니었다. 단지 말 안 듣는 자식에게 자기가 지닌 작은 힘에 대한 우쭐함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똑똑히 깨닫게 해주는 체벌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체벌치고는 너무 심했다. 그러나 제로니스는 이러한 부모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마음으로 행한 일이었다. 이건 순수한 사부의 마음으로서 제자의 수련을 돕기 위해 따로이 계획했던 일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과 갑자기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미리 준비도 하기 전에 갑작스레 자신이 느끼던 중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그 느낌부터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릇 반작용과 비례와의 관계에서도 갑작스럽게 받게 된 중압감은 그 이해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법이다. 그로 인해 싸이는 온몸을 쥐어짜듯 압박해 오는 느낌에 크게 신음을 삼켜야 했다. "흐으읍....... 크으으윽." 도저히 반항을 하거나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느닷없이 주문을 영창한 제로니스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그저 싸늘한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곧이어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이 바닥에 맞닿았다. 그러나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 제로니스였다. 오히려 눈빛을 살벌하게 빛내며 무언의 독촉을 보내고 있었다. "크으윽...... 일어날게요........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싸이는 분명 제로니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중압감이 온몸을 짓이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눈앞의 사부가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런 벌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금세 힘든 압박에 시달리는 몸을 추스려야만 했다. 곧이어 이런 싸이의 몸은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반응했다. 이건 제로니스조차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파아앗. 한순간 눈을 멀게 할 정도의 파란빛이 싸이의 배꼽 부분에서 터져 나왔다. "허어억. 저...... 저럴수가.........!"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 생겨난 까닭에 제로니스의 놀람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싸이는 바닥 쪽으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꼭 감고 있었기에 그런 현상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단지 감겨진 눈앞으로 파란빛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끄으윽..... 일어......나야.... 해. 여기서.... 절대...... 물러설 수 ..... 없어." 부들부들 떨려오는 두 팔로 굽혀진 무릎을 힘껏 눌렀다. 그리곤 그 탄력에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곧 싸이만의 생각일 뿐, 몸은 미처 따라주지 못했다. 단지 두 팔 쪽으로 조금 전 나타났던 파란빛이 잠시 머물렀을 뿐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계속해서 몸과 마음을 향해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힘을..... 내. 제발....... 넌 할 수 있어........ 크으윽." 숨이 턱턱 막혀왔지만 스스로 청한 체벌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건 곧 커다란 후회로 다가올 것이다. 옛날부터 그런 것은 죽어도 싫어하던 성미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까닭에, 싸이는 이를 악물며 제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리고 이런 강한 의지는 다시 한번 신비로운 일을 만들었다. 콰아아앙. 뭔가 내부에서 강한 힘이 맞부딪히며 커다란 폭발음이 생겨나는 듯 했다. 아니 그것은 정확한 것이었다. 언제나 이질감만을 전해주던 배꼽아래의 구슬이 조금 전 터져 나온 파란빛에 자극이 된 듯 곧이어 붉은 빛을 토해낸 것이다. 그 순간 싸이는 전신에 향언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한다는 느낌과 함께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것도 자그마치 십여 미터나 위로 솟구친 상태로 말이다. 제로니스는 조금 전 싸이의 몸에서 파란빛이 솟구치던 순간, 감히 상상도 못할 거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싸이가 탈피의 순간에 내뿜던 기운과 흡사한 것이었으나, 그때와는 너무도 다른 곱게 정재된 기운이라는 것을 그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허억, 저.... 저녀석이 지금 무슨 짓을........" 그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온 몸에 이는 중압감은 이미 몸 안에 절제된 마나를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한데 이런 그의 의도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그저 몸 안에 있는 마나를 움직여 힘든 중압감을 이겨내며 신체의 힘을 극대화 시켜주려는 욕심에 한 일이거늘, 오히려 싸이는 다른 방법으로 극복하려고 들었던 것이다. 이건 도저히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남다른 기운을 지녔던 아이이기에, 이번에도 색다른 일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곧 증명이 되었다. 싸이의 몸에서 또 다른 기운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 압력에 의해 제로니스는 주르륵 뒤로 밀려나야만 했다. 미처 방비를 못한 까닭에 그의 입가에는 붉은 선혈이 길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쿨럭, 이..... 이건........ 또... 무엇인가?" 미처 의문을 구하기도 전 그의 몸은 벌써 푸른 보호막을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안전한 치유를 재촉했다. 곧이어 본능에 속한 치유력은 그의 몸을 감싸고 돌며 내부로 받은 강한 충격을 조금씩 치료하기 시작했다. 제로니스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이뤄지고 있음을 재차 실감하면서 부릅뜬 눈으로 싸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고개를 하늘을 향해 벌떡 제킨 채 두 팔을 좌우로 활짝 펼치고 있었다. '아..... 편안해. 과연 이건 무엇일까? 나를 너무도 편하게 해주는 이 느낌은.......' 조금 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중압감은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지고, 싸이의 몸은 있는 힘껏 좌우로 활짝 펼쳐졌다. 그 속에서 싸이는 남다른 황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레 엄청난 중압감을 받고 있다 한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 그 느낌은 곧이어 움츠려진 몸에 활기찬 기운을 전해주고 있었다. 싸이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로움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무언가 심한 어긋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대자연의 모든 것을 거스르는 듯한 기분은 지금의 이 느낌의 끝을 불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막힘이 없는 거대한 자유로움을 꿈꾼다. 푸른 창공을 박차고 올라 모든 것의 정상의 끝에 내가 있음을 만끽하고자 한다. 그러나 흘러가는 강물을 막아 세우는 우(愚)를 범하고 싶진 않다. 자유란 스스로가 지닌 책임과 의무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부디 이런 순리에 따르려 하는 나를 거스르지 않길 바란다." 마치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듯 굳은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치는 싸이였다. 그러나 메아리에 가까운 싸이의 말에는 엄청난 권능이 담겨져 있었다. 마치 그 말에 거부한다는 것은 큰 죄를 짓게 된다는 깨달음이 담겨져 있었기에,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싸이의 몸은 신비로운 기운에 휩싸인 채 서서히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그 순간 싸이는 달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치 자기의 의지에 따라주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무언의 속삭임과도 같은 미소였다. 그것은 마치 신의 강림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또한 본능의 맡겨진 제로니스의 몸은 곧 엄청난 속도로 치유가 되었고, 그의 두 무릎은 어느새 바닥을 향해 공손히 꿇려졌다. 그런 것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싸이는 여전히 푸른 하늘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더불어 싸이의 몸은 어느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는 싸이의 몸 안에서 심하게 꿈틀거리던 기운들이 순리에 따르려는 몸부림 때문이었다. 결국 잠시간의 시간이었지만 싸이의 몸은 중력에서 벗어났었고, 또다시 거대한 압박감에 짖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판이한 느낌이었다. 마치 투명한 벽에 의해 외부에서 이는 압박감은 내부로의 침투를 막고 있는 듯 보였다. 또한 그 투명한 벽은 싸이의 피부로 스며들며 내부에서 이는 활화산 같은 기운에 의해 더욱 탄력을 받고 있었다. 그때부터 싸이는 힘겨운 중력과의 싸움에 자연스레 동화가 되기 시작했다. 이건 제로니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연히 꿇려진 무릎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마치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진 것처럼 자연스레 싸이의 제켜진 고개가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제로니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야만 했다. 그를 바라보는 싸이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는 앞으로 이러한 경험들이 한 두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히자, 꿋꿋한 모습으로 제자를 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흥, 놀랍구나." 단지 이 말 한마디뿐이었다.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듯 홱 소리가 날 정도로 신형을 돌려세우던 제로니스는 작게 호통을 쳤다. "앞으로 네가 별도의 말을 꺼내기 전까지 그 상태로 지내거라. 그리고 저녁 수련부터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찬바람이 쌩쌩 도는 그의 말에 싸이는 힘이 하나도 없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해야만 했다. "....... 네에." 한순간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경험이 마치 꿈인 양 느껴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그리고 찰나간에 선보인 힘으로 인해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게 열린 싸이의 불쌍한 하루 중 한때였다. *********** 이제 엄청난 저녁 수련이 남았군요. 그와 함께 멜빈의 등장이 다가오는군요. 그럼 좋은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 저녁에 만나요~ 아마 기다리시던 멜빈과의 만남의 시작이 월요일 저녁에 여러분들을 기다릴겁니다.^_^ 신룡의 후예 7 - 18 "헉........ 헉......" 싸이는 연신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여지껏 이렇게 힘든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 덕분에 속이 거북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송아지 스테이크를 해주신 할머니께서 왜 그토록 양을 작게 주셨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만약 식탐에 가까운 입맛으로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면, 땀으로 범벅이 된 바닥에 엄청난 토사물을 선사해줬을 정도였다. 그러나 싸이는 한순간도 한눈을 팔 여력이 없었다. "이 녀석.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내 분명히 제대로 집중을 하라고 했다. 내 말이 그토록 우습게 들렸던 것이냐?" 휘이이잉. 순간 화가 난 제로니스의 음성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귓가로 파공성이 메아리쳐왔다. "허억....." 아찔한 순간이었다. 싸이는 매서운 파공성이 들려오기가 무섭게 급히 허리를 숙이며 몸을 뒤틀었다. 그 순간 뒷머리를 살짝 스치며 지나가는 검날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매서운 파공성은 계속해서 싸이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절대 방심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길.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냐?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일일이 찍으란 거야?' 속으로 누군가에게 원망섞인 말을 곱씹었지만, 결코 입 밖으론 내뱉을 생각이 없었다. 이것도 모두 수련의 일부분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이 새로운 수련이 주는 제약으로 인해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할 수밖에......! 그 순간에도 싸이의 주변으로 시퍼렇게 날이 선 검들이 맴돌고 있었다. 휘이잉.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또다시 등뒤로 매서운 파공성이 이어졌다. 순간 싸이는 손에 든 검에 힘을 불끈 주었다. '잘 봐야만 한다. 사부 말대로 순간적인 타이밍이 제일 중요한 거니까.' 생전 처음 만져본 에스터크라는 검은 상당히 무거웠다. 양손검처럼 육중한 무게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손만을 사용하라는 것이 제로니스의 요구였다. 그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써보긴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진 않았다. 그러나 싸이는 제로니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통의 플레이트 메일이라면 단 한번의 찌르기만으로도 단숨에 관통해 버리고 마는 공격성 때문에 'Mail Piercing Sword'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에스터크였다. 검신 자체가 + 형태로 생겨 오직 찌르기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에스터크를 준 것 자체가 이번 수련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사부인 제로니스는 모든 검술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칠 심산인 것 같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수련으로 찌르기를 확실히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찌르기 기본과는 너무도 다른 수련방식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건 현재 싸이의 왼발을 보더라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거대한 원형의 돔의 정중앙에 선 채 왼발을 발목까지 오는 이상하게 생긴 부츠에 고정시켜야만 했다. 그 때문에 움직임에 큰 제약이 생긴 것이다. 다행이 바닥에 고정이 된 부츠는 360도 전 방향으로 신형을 움직일 수 있는 기능은 있었지만, 제자리에서만 그것이 가능하다는 제약은 상당히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더구나 둥근 원형의 돔에는 촘촘히 가시처럼 솟구 친 검들이 빼곡히 들어찬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날이 선 검들이 온몸으로 지쳐들었다. 절대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손에 든 에스터크를 이용해 수많은 검의 끝에 꼽혀 있는 복숭아를 찔러야만 했다. 그것도 정중앙에 해당되는 부위를 찔러야만 그 복숭아가 검에서 떨어졌다. 그렇게 되면 그 검도 같이 사라지는 기능을 가진 곳의 정중앙에 현재 서 있는 상태였다. 지금 싸이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검들은 정확히 36개. 그 숫자 모두를 사라지게 해야만 오늘 저녁 수련이 끝이 난다. 그러나 가만히 고정된 검도 아니고 계속해서 맴을 돌면서 움직이는 검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힘든 판국에, 복숭아의 정중앙을 찔러야만 한다는 제로니스의 주문은 싸이에겐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싸이는 투덜거릴 수 조차 없었다. 제로니스에게 싸이의 투덜거림은 같잖은 변명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할테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은 싸이의 오기를 자극하기엔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싸이는 눈앞을 어지럽히는 검에 정신을 팔다가 가슴과 머리부분을 제외한 모든 갑옷에 보기 좋은 훈장들을 여럿 얻으면서부터 이토록 집중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단지 여기서 문제라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갑옷에 검들이 스쳐지나간 흔적이 하나씩 생겨날수록 주변을 맴도는 검날이 하나씩 더 생겨난다는 점이었다. 조금은 악독하다 여겨질 만도 한데 제로니스의 옆에 서 있는 갈리아스 옹의 심드렁한 표정을 봐서는 이런 수련은 아무 것도 아닌 모양이다. 결국 싸이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깨닫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머리와 가슴부위는 교묘하게도 원형에 달려 있는 검들이 피해가고 있었다. 아마도 손재주가 뛰어난 갈리아스 옹의 안전장치 덕분인 것 같았다. 단지 뒤쪽에서 의식치 못한 상태로 툭툭 찔러오는 검들에 신경이 곤두설 뿐이었다. '뭘까? 분명 사부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을텐데.... 아무런 말씀도 없으니 답답해. 그러나 분명 나 혼자만의 힘으로 깨닫길 바라실 거야. 그렇지 않다면 벌써 불호령이 떨어졌을테니까.' 자꾸만 신경을 거슬리는 검날 때문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했지만, 내심 차분하게 상황을 풀어갈 생각을 하니 별반 대수럽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그순간 싸이는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차, 제일 기본적인 걸 빼놓고 있었구나.' 순간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에는 바로 이곳의 기본이 되는 것이 담겨져 있었다. '이런......! 내가 왜 이렇게 아둔해졌지? 분명 내 정면에 해당되는 부분에는 검날과 내 몸에 여유가 있어. 단지 그 검날들이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야만 등뒤의 좁은 공간으로 찔러오는 것인데..... 지금 이곳은 내 시력을 집중시켜주는 곳이란 말야. 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손에 들린 검만 아니었으면 예전처럼 자진해서 멍청한 머리를 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한손으로 들기에는 너무도 힘든 까닭에 두 손 모두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덕분에 싸이의 남들보다 조금 큰 머리는 오늘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 싸이의 움직임은 그 순간부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햐아압." 힘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두 손으로 쥐고 있던 검을 힘차게 앞으로 쭉 뻗었다. 짧은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눈앞으로 다가오는 복숭아와 오른손으로 이동한 검을 자신의 명치부분과 일직선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런 빠른 대응으로 인해 세가지 모두를 수평으로 만들어 내자, 처음으로 명쾌한 소음이 뒤를 따랐다. 챙그랑. '오홋. 됐다. 바로 이거야.' 비록 한순간이지만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가는 미소가 어렸다. 스스로 생각해 낸 이 방법이 제법 효과를 본 까닭에 절로 미소가 어리는 것이다. '아... 바로 이거였구나. 스스로 생각해서 이룬 결실이 가져다 주는 이 쾌감. 바로 이런 성취감 때문에 사부님이나 할아버지께서 아무런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구나.' 한동안 속을 거북하게 만들던 통증도 이 순간만큼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복숭아들을 모두 떨굴 수 있다는 자신감만이 지배할 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찾아낸 해답으로 인해 속 안에 이는 자신감은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 줬다. 그때였다. "후훗, 역시.... 내 제자답구나. 날 실망시키지 않다니....." 스쳐지나가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음성의 주인공이 제로니스라는 것과 그 작은 목소리 속에 담긴 작은 칭찬은 더욱 힘을 내게 해주었다. 챙챙. 눈앞으로 다가온 검들을 일부러 쳐내며 잠시나마 검날의 진동을 음미하는 싸이였다. 분명 제로니스는 복숭아들만 떨구면 저녁 수련은 끝난다고만 했다. 그것은 곧 등뒤로 다가오는 검날들을 미리 쳐내어 방향을 바꿔도 상관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단지 지금까지 그 생각을 미처 못했을 뿐이었다. 오로지 눈앞에 다가오는 복숭아를 찌를 생각만 골몰한 자신이 바보 같다고 여기는 싸이였다. 그때부터 싸이의 주변은 시끄러운 소음들이 난무했다. 등뒤로 다가올 검날들은 상하좌우로 180도 정도의 여유로운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빠르게 맴도는 원형의 돔으로 인해 무게 중심이 한곳으로만 쏠려 있었던 것이, 싸이의 새로운 대응으로 인해 조금씩 여러 움직임을 가지기 시작하자, 싸이는 다소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러나 등뒤로부터의 암습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것이 더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정하게 움직이는 검들과 그 앞에 꼽혀 있는 복숭아들의 중심부위가 어느 때보다 더욱 커보이기 시작하자, 일정하게 눈앞으로 다가오는 검들을 쳐내면서 스스로의 타이밍을 잡아내기 시작했다. "하아압." 챙그랑. 마지막 검이 눈앞으로 다가온 순간 싸이는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힘껏 찔러버렸다. 이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겼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에 따라 눈앞을 어지럽게 만들던 검도 마지막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싸이는 이제껏 알 수 없었던 성취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헤헤, 저 어때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제로니스와 눈이 마주치자 쑥스러움에 뒷머리를 긁으며 말을 건냈다. 하지만 싸이에게 돌아오는 건 기대한 것만도 못한 냉소뿐이었다. "흥, 고작 그따위 기본적인 것을 가지고 몇 시간동안 헤맨 녀석이 뭘 잘했다고 웃는 거냐? 다른 아이들은 한시간도 안되면 모두 끝낼 일들을 가지고...... 에잉." 뜻밖에도 이렇게 어려운 관문들을 다른 용족의 전사들은 아주 쉽게 대처하는 모양인가 보다. 싸이는 제로니스의 냉소를 듣는 순간 순간적으로 굳었지만, 또다시 그 특유의 넉살로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헤에, 그렇군요. 전 이제 겨우 시작하는 상태라서 많이 모자란답니다. 앞으로도 이보다 더 어려운 관문이 있을테지만,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께요."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겸손하게 말하는 싸이의 목소리엔 전혀 주눅이 든 기색이 없었다. 단지 앞으로 더욱 많은 경험들을 하면서 그걸 바탕으로 사부를 실망시키지 않는 제자가 되겠 다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제로니스는 그런 싸이의 반응에 속으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금치 못했다. 단지 겉으로만 냉정한 모습을 유지 할 뿐이었다. '녀석. 넌 정말로 특별한 아이구나. 검을 쥔지 고작 하루. 그런 상태로 이렇게나 빠른 진도를 보여주다니.... 이제까지 만나본 녀석들은 모두 네 재능에 비하면 와이번의 발톱에 낀 때보다 못한 한심한 녀석들뿐이구나. 후후훗. 그래 네 말대로 앞으로도 최고의 수련만을 시켜주마. 기대해도 좋을 것이야.' 속으로는 마냥 특별한 마지막 제자에 대한 뿌듯한 기대감과 기특한 면에 의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얼마 전 새롭게 결심을 한 까닭에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제자를 내려다 봤다. 그 순간에도 그를 올려다보며 겸손한 미소를 짓는 제자의 모습이 어찌나 가슴에 와 닿는지 기특하다며 어깨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하나 그런건 결코 이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낀 그였기에, 그저 제자에게 푹 쉬라는 말과 함께 거처로 걸음을 옮기는 제로니스였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다행이구나. 오늘의 수련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힘든 수련일 것이다. 방심하지 말고 오늘 새롭게 사용한 근육들을 미리미리 잘 풀어놓거라. 그래야 내일 수련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오늘 수고많았다." 결국 속 안에 이는 행복한 마음을 마지막 수고했다는 말에만 살짝 풀어놓는 제로니스였다. 그러면서 뒤돌아 가는 그의 얼굴엔 함박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싸이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제로니스와 싸이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갈리아스 옹은 속에서 이는 불길로 인해 제로니스에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그의 당부가 있었기에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그리곤 손자에게 잠시 시선을 준 다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말없이 해나가고 있었다. '나쁜 놈. 내 이제껏 이런 수련을 단 몇 시간만에 끝낸 애들을 보질 못했다. 근데 뭐? 고작 한시간도 안되서 모두 끝내? 저놈이 감히 내 손자를 뭘로 보고 그딴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성질대로라면 확 일부터 저질러버려야 하는데..... 에휴, 우리 불쌍한 싸이.' 그러나 제로니스의 신신당부와 아내의 윽박지르는 협박에 못 이겨 성질을 부릴 수 없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더구나 제로니스와의 약속으로 인해 수련 중에는 절대 손자인 싸이에게 아무 말도 안하기로 맹세한 것이 더욱 그의 화를 돋구웠다. 만약 제 성질대로 했다면 두 번 다시 손자의 수련을 구경조차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 화풀이는 애초의 제로니스와의 약속대로 수련장을 정리하는 것으로만 풀어야 했다. 그러니 그 수련장이 제대로 남아날 턱이 없었다. 휘익. 쿠웅. 챙깡. 성질대로라면 이놈의 수련장부터 박살을 내야 하지만, 그걸 다시 만들 사람도 자신뿐이니 바닥에 떨어진 검들을 힘껏 집어던지며 절묘하게 검들이 빠져 나온 곳으로 다시 집어넣는 갈리아스 옹이었다. 단지 그 힘이 너무 과한 나머지 검이 뿌러질 듯 진동을 하는게 심상치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손자가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일을 돕기 시작하자, 더더욱 성질을 못 부리는 갈리아스 옹의 열받는 저녁시간이었다. 그래도 옆에서 미소를 지으며 일을 돕는 손자를 보는 재미에 조금씩 그의 화는 의미 없는 메아리처럼 사라져가고 있었다. 뿌연 먼동이 터올 무렵. 메테우스는 조금씩 원기를 되찾는 몸을 이끌고 샹글리에 궁전이 보이는 산중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것은 모두 해가 뜨지도 않은 컴컴한 시간에 일어나 움직인 결과였다. 그 덕분에 마차 지붕에는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세 명의 기사후보생들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메테우스의 심정은 남달랐다. 초조함과 심한 갈증에 목마른 두근거림. 간밤에 꾼 꿈속에서 본 어린 주군이 혹시라도 먼저 오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왠지 오늘이라면 주군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짜릿한 예감. 이렇듯 평생 해보지 못한 복잡한 심사들이 눈앞의 샹글리에 궁전이 점점 다가올수록 더욱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러나 고요한 아침태양이 떠오르는 자태에 고스란히 노출이 된 샹글리에 궁전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은 목적지에 다 왔다는 생각에 점차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익. 마차를 몰고 있던 메테우스의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허억, 설마.............." 급히 두 눈을 부릅뜨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제키는 메테우스였다. 그의 다급한 음성에 옆자리에 앉아 잠이 들었던 쥬엘이 깜짝 놀라 선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죠?" "아.... 저 때문에 일어나셨군요." 메테우스는 제대로 확인도 안한 채 반가운 마음에 주책을 부린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런 생각에 붉어진 얼굴로 쥬엘에게 살짝 고개짓을 했다. "조금 전 벼락이의 소리를 들은 듯 해서 번거롭게 잠을 깨운 것 같습니다." "호오, 한동안 보이지 않던 벼락이가 다시 나타났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싸이님께서 근처에 계시다는 거네요." 메테우스와 한동안 동행을 한 까닭에 언제나 싸이 주변을 맴도는 벼락이의 존재를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언제나 싸이와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지지 않는 벼락이었기 때문이다. 쥬엘의 말을 듣는 순간 메테우스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후후,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 불충한 신하가 되지 않을 것 같군요." 왠지 그의 웃음에서 그동안의 피로가 말끔히 씻긴 듯 보였다. 그러자 쥬엘은 며칠간의 힘든 여정이 눈녹듯 사라지는 걸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로군요. 경의 아픔이 오늘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요." 쥬엘이 다정하게 그의 안부를 물어오자 메테우스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힘차게 채찍질을 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샹글리에 궁전으로 들어가 또다시 만나게 될 어린 주군을 위한 채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조금 전 들린 벼락이의 창공음이 잘못 들리지 않았기만을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또다시 먼 산정상에서 벼락이의 힘이 실린 비상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삐이이이익. 졸지에 극악스런 작명으로 인해 촌스러운 이름을 가지게 된 벼락이는 한동안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이건 모두 어이없는 누군가의 소행(?)덕분이었다. 싸이가 갑작스레 탈피의 순간을 맞이할 때 벼락이 또한 낯선 존재들의 방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준 푸른색의 공간 속에서 오래 전 잃어버렸던 기운들 중 극히 미약한 일부분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덕분에 제법 오랜 시간 싸이의 곁에서 떨어져 나와야 했으며, 그 기간동안 벼락이란 이름을 받은 콘돌은 달콤한 잠을 자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게 많은 순간이기도 했다. 뭔가 다가올 듯 하면서도 멀어지고, 가까이 왔다가도 금세 사라져버리는 요망한 기운 때문에 제대로 된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친근한 존재의 출현으로 인해 콘돌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 것이다. '끄응, 이 간악한 놈. 오려면 진작에 오던가, 아니면 좀 더 있다가 오던가. 이렇게 어쩡정한 시간에 들이닥치면 나보고 어떻게 하란 거야?! 이제서야 겨우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러나 투덜거림은 아주 짧게 끝을 내야만 했다. 혹여라도 그 심장이 멈출 것 같았던 순간에 느껴진 친근한 존재의 본연의 힘이 사실이라면, 절대로 이런 투덜거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휴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만약 그때 내가 본 것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그 간악한 놈이 내 주인일 수도 있으니......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그놈의 쌍퉁 맞은 애교(?)는 받아줘야만 내가 편해질 거야. 자칫 잘못했다간 예전과 같은 꼬락서니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한동안 몸살이 날 정도로 괴롭히던 그 친근한 존재는 요즘 들어 자기에게 제법 관대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모두 그 친근한 존재가 요구하는 애교(?)덕분이었다. 물론 자존심 강한 콘돌로서는 그 애교(?)들을 모두 받아준다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지만, 제 수명대로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단지 제발 그 이상한 짓만은 요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쳇, 내가 무슨 재주부리는 곰도 아닌데, 느닷없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면서 굴러봐~! 요럴땐 진짜 그놈이 한없이 싫다니까. 에휴, 제발 이번에는 제대로 정신이 박혀서 나타났으면 좋겠 는데.......' 오로지 그동안 겪었던 일들만을 떠올리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콘돌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온 몸으로 느껴지는 친근한 존재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어설프게 깨어난 잠으로 인해 생겨난 신경질적인 마음은 최대한 가라앉히고, 최고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며 힘껏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삐이이익 - 제발 날 좀 괴롭히지 마~!" 푸드득 날개짓을 하며 힘껏 들이마신 숨을 길게 내뱉으며 이런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리곤 서서히 날개짓을 하며 그동안 키워 온 몸을 자랑하기 위해 그 존재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런 마음에 최선을 다하기로 새삼 결심했다. "삐이이이이익 - 이젠 나도 사랑 받게 해주세요~!" 태어나 처음으로 그 친근한 존재에게 존댓말을 하며 다가가는 불쌍한 콘돌이었다. 이런 콘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은 환히 대지를 비춰주며 그 넓이를 넓혀가고 있었다. 또한 길게 메아리로 울려 퍼지는 어린 콘돌의 신비로운 비상음과 함께 태양을 등진 채 서서히 그 모습을 들어내는 커티샥 에메랄드호의 웅장한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신비로운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단지 그 아래에서 죽음의 기로에 선 자들은 하나같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다소 눈에 거슬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우스는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이건 그의 주변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째 한자리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든 채 자진해서 벌을 받고 있던 그들은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로 인해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아직까지 주인의 아버지로부터 이렇다할 용서를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그 공포심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님의 또다른 종이자 자신들에겐 친근한 동료가 긴 울음소리로 주인의 등장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부터 제우스는 단정히 꿇려진 두 무릎이 벌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옆에 앉아 있는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그들이 앉아 있는 대지위로 작은 진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부하들은 이미 죽음을 실감하고 있는 듯 보였다. '꿀꺽. 어떻게 해야 할까?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간 필히 주인님께 죽음을 명받을 것이다. 그건 절대 있어선 안되는 일이야. 우린 지금까지 주인님을 위해 살아온 존재들. 그런 우리들 중 누구라도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건 곧 우리 모두의 생이 끝나야 하는 것을 뜻한다. 언제나 주인님은 그 점을 강조하셨다.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동료를 버리고 도망치는 한심한 존재가 될 바에는 모두 다 같이 산화하는 자랑스런 존재가 되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이제 그것을 위해 결정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비록 내가 저지른 잘못은 아니라 해도, 우린 주인님을 기준으로 하나로 뭉쳐진 존재들. 곧 저들의 잘못이 내 잘못이 되는 것이다. 일단 내가 주인님께 죄를 청하고 그 죄를 달게 받는 것으로만 끝이 난다면 다행이지만, 주인님의 성격상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제나 연계를 시켜서 우리들을 벌하시는 분이시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고, 주인님의 소중한 아버님께 무례를 저질렀으니 그 죄는 어떤 것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순간 제우스는 마음속으로 동료들을 위해 죽음을 결심해야만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토록 두렵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제우스는 한순간 편안해진 마음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주변에 앉아 있는 부하들이 걱정이 되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비한 일은 그를 중심으로 또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모종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발하더니만 천천히 몸의 진동을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때를 같이해 제우스에겐 여럿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대장. 설마 혼자서 죽을 생각은 아니겠지? -맞아. 주인님께선 언제나 우린 하나라고 하셨어. 그러니 그 결심은 우리도 같이 해야만 하는 거야. 치사하게 혼자 죽을 생각은 하지 마. -섬광의 빛 네 말이 맞다. 그래. 우린 지금까지도 하나였고, 앞으로도 하나여야만 해. 설마 주인님의 이런 가르침을 거스르는 놈은 우리들 중에 아무도 없을 거야. 그렇지? -빛의 광염. 네 말이 옳다. 네 녀석이 쏘는 퀘럴이 항상 표적의 정중앙에 꽂히듯 의당 우리들 또한 죽을 땐 다 같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설사 주인님께서 우리들을 용서하실리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히 주인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도 없잖아. 그러니 우리 다 같이 오늘 주인님께 잘못을 빌고 죽자. 그게 바로 대장부라고 주인님이 그러셨어. 크레이지 몰이 죽음이라는 단어에 특히 강한 악센트를 주며 재차 강조를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구도 그 단어에 움츠러드는 존재는 없었다. 제우스는 이런 동료들을 보자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 왔다. -그래, 바로 너희들의 그런 마음이 우리들 모두의 자랑스런 힘이다. 모두들 마지막까지 주인님을 위해 멋진 대장부가 되도록 하자. 절대 죽음 앞에서 떨지 않는 자랑스런 주인님의 전사들이 되자. 제우스는 모두의 의견대로 멋진 최후를 맞이할 생각을 하자 왠지 힘이 불끈 솟는 듯 했다. 그리고 이런 제우스의 마음을 헤아려주려는 듯 멀리서 보이던 웅장한 모습의 커티샥 에메랄드호는 빠른 속도로 그들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시각 멜빈은 평소와는 달리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 음...... 절단 신공이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후훗, 얄밉더라도 양해해 주세요. 대신 내일 저녁에는 반드시 멜빈과 싸이의 상봉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자... 조연들은 전부 준비하고 있고, 이제 멋진 해후만 남았군요. 무더운 날씨라 땀이 줄줄 흐르는군요. 찬물에 샤워를 해도 잠깐이고, 그렇다고 미지근한 물로 하자니 답답하네요. 이럴때 모두들 건강을 조심하셔야만 한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시고, 내일 뵙죠.^_^ 부디 시원한 수박이라도 한쪽씩 가족과 나눠먹는 시간되세요~ 신룡의 후예 7 - 19. 7권 완결편. *아버지 II* 싸이는 동이 터 올 무렵 커티샥 에메랄드 호의 선상에서 아래쪽을 유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싸이의 곁으로 다가온 엘렌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싸이의 듬직한 어깨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아빠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무척이나 설레이지?" "네, 그런 것 같아요. 아주 오래 전의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아빠는 무척이나 자상하신 분이셨어요. 그런 분이 어떻게 변했을까 걱정도 되고..." 차마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우연히 보게 된 멜빈의 모습이었지만, 그는 무척이나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걸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게 무척 힘이 들었다. '그래, 엄마는 아직까지 그런 일을 이해하기 힘드실 거야. 비록 할머니께 의논을 드려봤지만, 할머니께서도 그냥 순리대로만 흘러가라고 하셨어. 그게 가장 좋은 일이라고.' 탈피를 겪고 제일 먼저 그 안에서 겪은 일들을 조용히 할머니와 의논해봤었다. 그때 그분이 보여주신 초연함을 싸이는 잇고 싶었다. 그 때문에 차마 어머니인 엘렌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무척이나 놀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싸이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엘렌의 고운 입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언제나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하셨단다. 우리 싸이 또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맹세했을 테고. 그렇지? 그러니까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마렴." "네. 걱정 마세요." 아직 젊은 어머니인 엘렌은 탈피의 마지막 순간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 안에 담겨진 뜻은 이미 탈피가 끝나는 순간 싸이도 경험했었다. 그러하기에 어깨를 다독이는 손길을 맞잡으며 내심 믿으라는 뜻으로 힘을 주었다. 그러자 엘렌의 입가에 화사한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호호, 아무렴. 누구 아들인데....! 그나저나 그이가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는 것 같구나. 예전 같았으면 벌써 새벽 수련을 하고 있을 양반이 아무런 기척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것 같구나." 순간 엘렌의 넋두리에 가까운 말에 살짝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녀의 얼굴에선 잠시 갈등이 일었다. 이런 아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 엘렌은 혼잣말처럼 조용히 말을 이었다. "예전에 그이와 단둘이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단다. 그때에는 무척이나 행복했었지. 아마도 내 인생에서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구나. 물론 널 가지게 된 이후에도 언제나 행복했었단다. 그러나 한 남자에게 사랑 받는 여자로서는 이곳에서 함께 한 지난 시절이 가장 추억에 남는구나."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을 건내는 엘렌이었지만, 가슴속에 이는 격동은 진한 아픔을 가져다 줬다. 오래 전의 행복한 추억들을 되살리며 살아가야 하는 삶을 받았기에 그 아픔은 더욱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 선 아들을 위해 내심 현실에 충실하리라 다짐하는 엘렌이었다. 그런 엘렌의 갈등을 지켜보던 싸이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만, 곧이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엄마, 그럼 이곳에서의 추억 중에서 아빠랑 함께 한 가장 행복한 추억은 뭐가 있어요?" "흐음, 글쎄다.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꼭 집어서 말하기가 곤란하구나. 음.... 내가 처음으로 지어준 아침식사에 감동하는 모습도 있고, 함께 나란히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며 남은 인생을 계획하던 시간들도 행복했었구나. 아, 맞아. 그이도 우리 싸이처럼 매일 내 음악연주를 듣는걸 무척이나 좋아했단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뜰 때 머리맡에서 음악을 들려주면 행복한 미소로 잠에서 깨어나곤 했었지. 호호,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 표정을 다시 한번 보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엘렌의 얼굴로 행복한 미소가 어리며 추억 속에 잠기는 모습이 보이자, 싸이의 장난기 어린 미소는 더욱 진해졌다. "헤헤, 그럼 그걸로 결정했다." "으응? 뭘?" 옆에서 들려오는 싸이의 활기찬 목소리에 금세 추억에서 깨어나며 놀란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엘렌이었다. 그러자 싸이는 이내 그녀의 귓가로 뭔가를 소근거리며 눈빛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렌 또한 손뼉을 치며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이런 두 모자의 음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시각 멜빈은 평소와는 달리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언제나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쁜 일이다.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작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멜빈은 잠에서 깨어나면 본능적인 서글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게 습관이 되다보니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좀 더 누워 있고자 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기분 나쁠 정도의 서글픔에 하루 종일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멜빈은 오늘도 그렇게 미련을 가진 채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잠결에 느꼈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도 베개에 머리를 묻게 되었다. 그 순간 멜빈은 평소에는 느끼기 힘든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건 뭘까? 마치 그녀와 함께 하는 달콤한 느낌 같은데......' 꿈속에서 작게 되뇌어 봤다. 그러나 분명 눈을 뜸과 동시에 씁쓸한 외로움이 찾아들 것이다. 그것이 싫어서라도 잠에서 깨기 싫었다. 하지만 잠시 후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일어나야만 했다. "랄라라~ 라리랄라~ 라라 랄리랄라라~!" 이 곳 샹글리에 궁전에 설치된 대형 파이프 오르겐의 울림소리와 함께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웅장한 오르겐의 소리에 맞춰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소리였다. 그 순간 멜빈은 갓 잠에서 깨어난 부스스한 몰골로 멍하니 눈을 떠야만 했다. 넓직한 침대에는 오직 상체를 벗고 있는 자신 혼자뿐이었다. "이것도 꿈인가? 후훗. 요즘 들어 자주 꿈을 꾸더니만 깨어나서도 헤매는 것 같군." 분명 그렇다고 여겼다. 아주 오래 전 사랑하는 여인과 성대한 결혼식을 치룬 후, 달콤한 허니문을 나눴던 곳이 바로 이곳 샹글리에 궁전이었다. 거대한 대자연의 상쾌한 아침기운을 맛볼 수 있는 이 곳에서 한동안 지내며 그녀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그때 그녀는 이른 아침 그를 위해 머리맡에 앉아 달콤한 멜로디를 들려줬었다. 그때에는 참으로 그 시간들이 행복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홀로 남겨진 상태다. 한데 오랜만에 찾아온 생경한 느낌에 취해 잠에서 깬 상태에서도 꿈속인 양 멍하게 앉아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하지만 멜빈은 또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크게 떠야만 했다. 띠이잉. 띠잉. 띵. 띵. 띠이이잉. 분명 대형 파이프 오르겐의 소리가 맞았다. 이토록 전신으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는 샹글리에 궁전에서도 오직 단 한 곳뿐이었다. 또한 그 곳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파이프 오르겐의 소리는 신이 내린 최상의 악기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오르겐은 아무나 연주 할 수가 없었다. 이곳을 방문한 황족의 인가를 받아야만 비로소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다. 만약 황족의 허락 없이 만지게 된다면 극형에 다스리게 된다는 것을 이곳의 하인들과 경비병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데 이른 아침에 그의 잠을 깨우는 오르겐 소리와 노랫소리 라니......! 후다닥거리며 재빨리 바닥에 놓여진 옷가지들을 대충 걸친 그는 침대 아래에 놓여진 소파에서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곤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내심 그녀와의 소중한 추억을 변질시키는 이를 단단히 혼내주겠다는 다짐을 한 채 힘주어 이동을 하는 멜빈이었다. 그러나 멜빈은 대형 파이프 오르겐이 설치된 중앙 홀로 다가갈수록 뭔가 강한 끌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노랫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조금 전 잠결에 들렸던 노랫소리였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그 노래 속에 담겨진 내용들은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셔왔다. 그 순간 멜빈은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문을 힘껏 밀어 제켰다. 쿠웅. 다소 큰 소리를 내며 중앙홀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러나 안쪽에서 연주되는 웅장한 오르겐 소리와 그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는 미성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인해 문에서 나는 소음은 금세 묻혀버렸다. 뚜벅뚜벅.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오르겐 쪽으로 다가가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하지만 홀 안에 자리한 몇몇 불청객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에게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거대한 오르겐 앞에 앉아 연주를 하는 두 명의 존재에게만 시선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우루루루. 멜빈의 뒤쪽으로 약간의 금속음이 들리며 급히 무장을 한 기사들이 앞다퉈 멜빈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멜빈은 본능적으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오른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 순간 멜빈에게 뭔가를 말하려던 이들이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그들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멜빈이 손을 치켜 듬과 동시에 홀의 중앙에 앉아 있던 이 중 한 명이 살짝 입가로 손을 가져가는 것을 말이다. 그 손짓에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꿀꺽." 누군가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때 마침 연주의 흐름이 잠시 멈추었기에 그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는 듯 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오르겐은 웅장하 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다시 토해내고 있었다. 단지 맨 처음에 들려온 연주와는 약간의 차이를 느낄 뿐이었다. 그 순간 멜빈의 눈은 크게 부릅떠졌다. 너무도 익숙한 느낌이 가슴속 깊은 곳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엘......렌......." 분명 그랬다. 오랫동안 함께 수련 여행을 하며 들려줬던 그녀만의 독특한 연주기법이 조용히 들려오는 것이다. 무심결에 엘렌의 이름을 부르며 넋이 나간 듯 멜빈이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멜빈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다. 뿌연 시야 너머로 사랑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그의 가슴은 더욱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의 이런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뿌연 시야 너머로 보이는 그녀와 그 곁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화사한 미소를 지은 채 연신 흥겨운 고갯짓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남자에게로 눈웃음을 보내는 엘렌과 그녀의 눈웃음에 화답하듯 환한 미소로 얼굴을 붉히는 젊은 사내. 얼핏 보이는 몸매로는 이십대 초반의 사내라 여겨지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듯 고운 미성을 내고 있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며 멜빈은 조금 전 그의 잠을 깨운 고운 화음의 주인공이 그 사내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머리 속의 광경들은 아주 잠시 뿐이었다. 그가 다가가는 소리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던 사내가 살짝 그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순간 사내와 눈이 마주친 멜빈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 넌........." 미처 멜빈이 그 사내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와 똑같은 윤기 찬란한 금발을 가진 고운 미성의 사내가 그를 힘차게 불렀다. "아버지!" 챙그랑. 고운 미성을 지닌 사내의 입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멜빈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너무도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아이였다. 언제나 소중함을 간직하며 기억하고 있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하지만 이순간 아무런 말도 건낼 수가 없었다. 뿌연 시야를 가득 메운 채 연신 사랑스런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서 고맙다는 진심 어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뜨거운 눈물은 두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고, 그럴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바보처럼 아무 말도 건내지 못했다. 그러나 뜨거운 가슴은 이미 수천 번도 넘게 말하고 있었다. 널 다시 볼 수 있어서 행복 하노라고. 다시는 너를 떠나보내지 않겠노라고..... 뇌리 가득 되내이고 또 되내였지만, 떨려오는 입술에선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지 뜨거운 가슴에서 벅차게 솟구치는 눈물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과연 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알고는 있었을까? 아마도 모를 것이다. 단지 겉으로 느껴지는 감정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멜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 여겼던 소중한 아들이었기에, 지금처럼 밝고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만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그것만으로는 만족치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 뜨겁게 앉아주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큰 가슴 저림에 온몸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그의 몸은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아들이 그의 곁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 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주 오래 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검사는 단한순간이라도 손에서 검을 놓아선 안된다. 만약에라도 검사의 손에서 검이 떨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면 그 순간이 바로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라구요. 하지만 단 한가지 예외는 있다고도 말씀 하셨어요. 검사로서 반드시 지켜줘야만 하는 이들의 곁에 다가갈 때에는 잠시 손에서 검을 놔둬 된다고 하셨죠." 얼마 전 꿈속에서 들을 것과 같은 아련히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멜빈의 가슴은 크게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쿡..... 쿡......" 눈물이 가득 맺혀 목이 메어와 제대로 웃음을 짓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크게 웃고 싶었다. 바보 같은 아버지가 오래 전 해준 말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아들이 너무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가장 존경하고 있다는 말이 더욱 그의 목을 메이게 했다. 하지만 아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더욱 그의 가슴을 날뛰게 하는 말을 다정하게 잇고 있었다. "언제나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겠다고 얼마 전 그 분께 맹세했어요." 그 순간 아들의 놀라운 말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지긋이 바라봤다. 어느새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눈에도 서서히 뜨거운 눈물이 맺히고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그런 모습에 멜빈의 손이 천천히 들려졌다. 하지만 너무도 느리고 올라가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답답했던지 아들은 공손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땅에 떨어진 그의 검을 힘차게 움켜쥐며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아버지. 언제나 당신만을 존경하며 살게요. 그리고 앞으로 당신만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 명예로운 기사도 되고 싶어요. 이런 절 믿어주실 거죠?" 눈앞에 서 있는 아들처럼 자신도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목이 메어와 아무런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매우 느리게 올라가던 손끝으로 아들의 턱에 걸려 있는 뜨거운 눈물이 와 닿은 것이다. 그 순간 처음으로 멜빈의 입이 열려졌다. "고....... 맙... 다..... 내 모든 삶을.... 가질 ..... 사랑하는 아들아!" 기사로서 그리고 만인에 추앙 받는 위대한 지도자로서 가진 모든 명예와 자랑스러움은 이순간부터 아들에게 물려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모든 이 앞에서 자랑스럽게 외칠 것이다. 여기 있는 내 아들을 보라고.....! 이 못난 아비보다 더욱 훌륭하게 자란 자랑스런 내 아들을 보라고 말이다. 그런 뒤 하늘을 향해 당당하게 외칠 것이다. 난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언제든 자신을 불러달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경고의 말을 해줘야만 했다. 만약에라도 소중한 아들만은 절대 넘보지 말라고 말이다. 만약 이런 요구를 묵살하고 아들을 헤하려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막을 것이라 굳게 결심했다. 그순간 격정에 못이긴 그의 품으로 단단한 체구를 가진 아들이 안겨왔다. "흐윽.......... 부디..... 용서.... 하거라... 이 못난 애비를........." 예전부터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것을 오늘에서야 겨우 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그의 힘겨운 용서를 결코 봐줄 수 없는 듯 보였다. "아니에요. 아버지께선 그런 사과를 하실 필요가 없어요. 모두 제 잘못인걸요. 용서하세요. 앞으로 절대 심려를 끼치지 않는 자랑스런 아들이 될게요. 부디 이런 절 용서하세요." 그의 어깨를 힘껏 안아주면서 오히려 용서를 구하는 아들이었다. 멜빈은 그 순간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흐어어엉. 절대....... 절대 널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다.... 결코........ 두 번 다시......" 이미 마음속으론 두 번 다시 이런 이별은 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차라리 그런 순간이 다시 찾아오면 그가 먼저 나서리라 생각했다. 설사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두 번 다시 아들을 품에서 떠나보내지 않을 것이라 굳게 결심했다. 그 순간 중앙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은 점점 붉게 충혈이 되고 있었다. 뭔가 많은 말들이 오고갈 줄 예상했건만, 두 부자는 허무하게 스쳐 지나가는 말들 보단 뜨거운 무언의 감정으로 서로를 감싸고 있었다. 그저 뜨거운 눈물로서 서로의 감정에 충실한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한동안의 격정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시간 속에서 멜빈은 간간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바로 옆에 서 있는 엘렌 때문이었다. 그녀와의 생이별은 떠올리기도 끔찍했지만, 그간의 흘러간 세월의 장벽을 말끔히 걷어치운 채 아무 내색 없이 다가오는 그녀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 담긴 행복한 미소뿐이었다. 그건 엘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멜빈 또한 아무 내색 없이 행복한 미소를 답례로 보내주었기 때문이었다. 멜빈은 이렇게 못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엘렌이 고마워 그녀의 손을 꼭 쥐어줬다. 그리곤 그녀의 안내로 둘을 위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는 인물들에게 조심스레 걸어갔다. "미처 인사가 늦었습니다. 위대한 가문의 어르신들이 오신 줄도 모르고 경망스레 큰 실례를 범한 절 부디 용서해주시옵소서." 최대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청했다. 그로서는 카빌라이 대륙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위대한 가문의 힘을 존중해줘야만 했다. 제아무리 대 메르카 제국의 대공이라곤 해도, 눈앞에 앉아 있는 이들은 그로서는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듯 보였다. 그의 공손한 인사에 제일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존재가 바로 에르킨 여사였기 때문이다. "호호, 너무 그렇게 정색을 하니 어색 하구만. 그래도 내 딸의 하나뿐인 남편인데......." 비록 양가의 승인을 받은 결혼은 아니었지만, 이미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싸이를 인정함으로써 둘의 결혼을 인정해줘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에르킨 여사의 눈매는 곱게 미소짓고 있었다. 멜빈은 금세 고개를 들어 앞으로 장모님이라 불러야 할 위대한 가문의 수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에르킨 여사가 수장이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단지 감히 형언하기 힘든 기운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의 에르킨 여사였기에, 애써 태연한 척 마주 미소를 보냈다. "감사하옵니다. 모쪼록 많이 모자라는 절 인정해주셔서 이 기쁨, 이 행복. 영원히 그녀만을 사랑하며 갚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리는 멜빈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은 최대한의 공손함을 지닌 인사였지만, 누군가는 그걸론 도저히 만족 못하는 듯 했다. "흥, 그 정도로 쉽게 엘렌과 함께 살아가겠다는건가? 난 절대로 그꼴은 못 봐. 감히 우리 엘렌이 누군데..... 흥. 안돼. 절대 안돼. 그러니 다시 해." 곱게 미소를 짓는 귀부인의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가 인상을 팍 찌그리며 거친 말을 내뱉었다. 분명 경우에도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건만, 안하무인격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그의 말에 꼬리를 달 수 없었다. 그 순간 멜빈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장인 어른으로 보이는 이에게 잘 보일까를 고민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고민은 옆으로 다가온 아들이 금방 해결해줬다. "쿡, 할아버지. 괜히 아버지한테 심술부리시면 곧 후회하실 지도 몰라요." "으잉? 싸이야. 이 할애비가 뭘 어쨌다고 그런 섭한 말을 하니?" "헤헤,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지금 할아버지가 괜히 미워하시는 제 아버지는 이 거대한 대륙을 통치하는 대 메르카 제국의 단 한 분뿐인 대공 각하이세요. 그런 분이 할아버지랑 할머니께 공손히 인사를 올리시는데, 좀 섭섭하시더라도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안그럼 조금 있다 후회하실지도 몰라요." 어느새 듬직한 아들이 되어 돌아온 싸이가 멜빈의 곤란한 입장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무릇 모든 아버지에게 딸이라는 존재는 애뜻한 사랑의 대상이자 소중한 혈육이었다. 그러니 자연 갈리아스 옹의 눈은 거칠게 도끼눈으로 변해야 했다. 하지만 그동안 정이 흠뻑 들은 손자의 말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줘야만 했다. 그러자니 자연 씁쓸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에휴, 하나뿐인 손주 녀석이 이 할애비 맘도 모르고 저렇게 나서니...... 이익. 하지만 이번 뿐이야. 앞으로 자넬 두고볼 것이야. 만약에라도 우리 엘렌이 슬픈 표정만 지어도 이놈의 제국인지 왕국인지 하는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알아서 잘 해. 흥." 그래도 치미는 화가 있었기에 좋게 말을 해줄 순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엘렌이 살짝 손으로 신호를 전해주자, 멜빈은 급히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으며 크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두 분 모두 이 못난 절 이해하시고 받아들여주셔서 뭐라 감사를 올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남자의 명예를 걸고 앞으로 제 하나뿐인 소중한 그녀를 위해 신명을 다해 봉사하겠습니다. 부디 이런 절 믿어주십시오. 장인 어른, 장모님!" 큰소리로 두 존재의 위치를 새삼 확인시켜주며 커다란 동작으로 과장된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장인어른은 이런 걸 좋아하는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 옆에 선 아내를 바라보자 그녀 또한 살짝 드레스를 말아 쥐며 그의 옆으로 천천히 앉고 있었다. 아마도 위대한 가문에선 이런 인사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 같았다. 멜빈은 과장된 큰 동작으로 올린 인사에 갈리아스 옹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을 보며 그제서야 내심 안심을 했다. 그리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리는 멜빈의 모습에 그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의 몸이 굳어지며 절도 어린 동작들이 나타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또다시 부부의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대신 과거와는 달리 이젠 장성한 아들이 그들 옆에 든든히 서 있다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이런 광경에 뒤로 길게 늘어섰던 멜빈의 휘하 기사단원들이 어느새 절도 있는 동작으로 찬란히 빛을 뿌리는 검림을 만들며 두 사람의 재회를 기쁘게 맞이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어릴 무렵. 밖에서 눈치만 보고 있던 존재들이 하나 둘 제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일어선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자리에 주저앉아야만 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머리를 맴도는 하얀 새가 보내는 무언의 날개짓을 통한 조언을 믿어야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