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첼시 중위.”瓚? 판타지 세계로 가다 - 프롤로그 - - 삐리리릭 삐리리릭 삐리리릭 삐리리 삐리리 - 딸칵 "뭐야 벌써 4신가……?" 기름기에 절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석진. 원래 밤샘하고 잠자리에 들 때에는 잠 깰 때까지 한없이 자는 그였지만 오늘은 친구 놈들이 송별 파티를 열어준다며 7시까지 나오라고 엄포를 놓았다. 처음엔 귀찮다고 거절하려던 석진 이었지만 '공짜 술' 과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는 협박에 굴복하고야 말았다. "에휴 입소 할 날이 며칠 안 남았군" 일어나자마자 달력을 보던 석진은 땅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지지리 가기 싫은 군대건만 조국은 날 가만두지 않는다. 고교시절 3년 썩어줬으면 됐지 왜 그 딴 창살 없는 감옥에서 2년이란 시간을 국방의 의무라는 명목으로 허무하게 흘려 보내야 하는지…… '하긴 생각해 보니 지금 생활도 그다지 의미 있는 삶은 아니군' 밤과 낮이 바뀐 생활. 매일 자다가 일어나면 게임하고 게임 하다 졸리면 자고 게임 하다 질리면 만화책에 무협지. 그러다 친구 놈들한테 전화라도 오면 나가서 음주가무. 처음엔 단순한 보상심리였다. 대학 입시라는 억압된 틀 속에 거세당한 채 3년이란 세월을 집과 학교 학원밖에 모르고 살아온 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 그러나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것은 결코 그 가버린 세월의 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래도 군대는 싫다구……" ' 젠장 빽 있고 돈 많은 놈들은 이리 빼고 저리 빼서 안 가는 군대. 게다가 비오면 몸도 이곳 저곳 쑤시고 안 아픈 데가 없는 내가 어딜 봐서 1급이야 1급이 동훈이 그 자식은 학교 공익근무라 이것저것 편하다고 자랑 치드만…… 그리고 만약에 자대 배치 받은 데가 이라크 파병 군대면? 에이 씨X 그렇게만 되면 무장탈영해서 지 자식새끼들은 군대도 안 보낸 주제에 이라크 파병하자고 깝친 국회의원 새끼들 다 죽여 버릴 테다. 꾸르르륵 석진을 한없는 망상의 세계에서 돌아오게 한 것은 그의 불규칙적인 배꼽시계였다. "쩝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갈 때 까진 시간도 좀 남았고…… 제길 또 라면 먹어야 하나?" 라면은 한국인의 주식인 밥을 위협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값싸고, 만들기 쉽고, 맛있는 3박자를 다 갖추고 있는 라면은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한국인의 음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밤낮이 뒤바뀐 폐인 생활을 즐기는 석진은 어머님이 차려주신 아침, 점심, 저녁을 못 먹을 때가 많았고 밥을 거를 때마다 주로 라면을 먹었다. 거기에 자상하신 석진의 어머니는 밤 일? 하는 아들을 위해 할인 마트 세일 때, 라면 열 박스를 구매해 놓으신 뒤 유통기한 전에 다 먹어 없애라는 명령까지 내리셨고 석진은 지난 4개월 동안 무려 260봉의 라면을 먹었다. 그 결과 석진은 라면의 '라' 자만 들어도 헛구역질을 할 정도가 되었다. 밥 안 먹는 아들내미 버릇 고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차라리 굶자" 라면을 먹느니 굶기로 작정한 석진 밥을 포기하고 물이나 마시기로 작정한 석진은 식탁에 한 쪽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석진아 귀찮더라도 식사는 꼭 챙겨 먹으렴 - M - 새삼 어머니의 사랑에 감격한 석진. 그는 어머니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식탁보를 열었다. "우욱 우웨엑" 임신한 새색시처럼 헛구역질을 하는 석진. 식탁에는 퉁퉁 불어터진 라면 한 사발과 한 달 전에 피자 시켜 먹고 남은 오이 피클이 말라붙은 빛깔을 자랑하며 비닐에 쌓여 있었다. '이 이 아줌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해.' 어머니께서 아들이 먹을 것을 상상하고 키득키득 웃으시며 끓이셨을 게 분명한 불은 라면을 변기에 쏟아 붓는 석진. 확인 사살로 방뇨까지 한 석진은 완전범죄를 위해 물을 내린 후 라면냄새를 없애기 위해 세제까지 변기에 풀었다. "냉장고엔 그나마 사람이 먹을 만한 게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냉장고 문을 여는 석진. 냉장고 안에는 밑반찬 통과 김치 통만 담겨 있었다. 그는 과일 칸까지 꼼꼼히 뒤져보았다. 그리고 과일 칸의 끝자락에서 오렌지 맛 푸딩 하나를 찾아내었다. "하늘은 역시 날 버리지 않았어" 석진은 정신없이 푸딩을 떠먹었다. 오렌지 맛이라 그런지 맛은 아주 새콤했다. 그래 아주 새콤 새콤 새콤 시큼 시큼 시큼.....? "뜨헉 유통기한이 3주나 지났잖아 !!!" 그러나 푸딩은 이미 그의 뱃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일주일간 입었던 와이셔츠에선 땀내와 암내가 매우 심하게 코를 찔렀다. 석진은 이 냄새나는 셔츠를 벗어 던져버리고 ' WHAT ? ' 이라는 도전적인 문구가 쓰여져 있는 반 팔 티셔츠를 입었다. 그렇지만 냄새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목욕한 지 좀 됐었나 ?'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 목욕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 석진. 생각해 보니 지난달 길드 정모임에 나간 뒤로 머리도 한 번 감은 적이 없었다. "뭐 군에 가면 씻기도 힘들텐데 예행 연습이라고 치자……그나저나 오랜만에 목욕이나 좀 할까 ?" 석진은 정말 오래간만에 욕실에 들어왔다. 세수와 양치는 매일 하긴 해도 항상 방에서 가까운 싱크대에서 하다 보니 욕실을 쓸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세면대 앞에 선 석진은 근 한 달만에 거울과 거울 속의 한 걸인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좀 심각하네……하하하"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늘어놓는 석진. 그도 그럴 것이 폐인들의 세계에서는 보기 드문 미남형인 자신의 얼굴이 못 본 사이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엔 땟국물이 들었으며 장발이 되어버린 머리와 이마, 콧잔등에서는 개기름이 반질거렸다. 거기다 어느새 길어버린 수염과 구레나룻은 삼국지의 장비를 연상시켰으며 볼때기는 라면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퉁퉁 부었고 눈 밑에는 다크 서클이 짙게 끼어 있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석진. 시계는 어느덧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머리는 감아도 감아도 기름기가 반질거리기에 10번을 넘게 감았고 때는 밀어도 밀어도 끝이 없기에 손이 저리고 살갗이 파헤쳐질 때까지 밀었다. 하지만 근 2시간을 투자하고서도 해결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덥수룩한 수염이 바로 그것이었다. 석진의 아버지는 지방 공장의 숙소에서 지낼 때가 가족들과 지낼 때보다 많다보니 석진의 집에는 변변찮은 1회용 면도칼 하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석진은 회칼로 면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에 나온 석진. 목욕으로 개운해진 몸에 신선한 저녁바람이 맞닿자 기분이 쾌청했다. 속이 편한 것을 보니 방금 전 먹었던 상한 푸딩도 잘 소화되어 넘어 간 듯 했다. '그래 이런 일 한 두 번이냐 먹고 안 죽으면 되지 뭐 곰팡이 핀 빵도 먹고, 땅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씻어먹고 쉰밥도 라면에 말아먹는 나다' 상한 음식 재활용하는 것을 은근한 자랑으로 삼는 석진 이었다. 석진의 바지 주머니엔 예리한 사시미 칼이 하나 들어 있었다. 수염을 깎을 때 썼던 회칼이었는데 왜 이것이 여기에 들어 있을까? 사람을 죽이려고? 강도짓? 조직의 세력싸움? 허나 석진은 그런 종류의 나쁜 이유로 회칼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석진이 중학생 때 석진은 모 1인칭 액션 게임에 푹 빠졌었다. 주인공의 기본 무기는 총이었지만 총은 총알 개수의 제한을 받기에 주인공 캐릭터는 주로 칼, 도끼, 쇠파이프, 삽, 해머, 전기 톱 등의 무기를 가지고 이곳 저곳에서 느릿느릿 다가오는 좀비 들을 하나 하나 없애며 임무를 수행하는 게임이었는데, 이 게임에 너무도 심취한 석진은 약간의 정신 이상 증세를 나타냈었다. 비가 안 오는 날에도 우산을 휴대하고 다니거나, 길바닥에서 주운 나무 막대기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기도 했다. 학교 안에서 돌아다닐 때는 하다 못해 커터 칼이나 샤프 등을 항상 주머니 속에 대기 시켜 놓기도 했다. 이번엔 아마 나갈 때 가지고 나갈 무기를 찾다가 보니 눈에 뜨인 게 바로 회칼인 듯 싶었다. "저긴가 보군" '원조 춘천 닭갈비'라는 네이밍 센스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간판. 간판은 제법 새것으로 보였으나 가게문 앞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메뉴와 유리문에 붙여놓은 불투명 코팅지는 가게 안의 모습이 얼마나 허름할 것인지를 연상시켰다. 그래도 왕래하는 손님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서비스보다는 맛으로 승부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가게였다. 어쨌던 석진은 친구들이 자신을 식당으로 부른 것에 만족했다. 상한 푸딩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 초저녁부터 호프집으로 자신을 불러냈다면 석진은 회칼을 들고 난동을 부릴지도 몰랐다. 석진은 덜컥거리는 미닫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만원은 아니었지만 의외로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둥그런 테이블에는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여름인데다 고기 굽는 불길에 더울 법도 했지만 식당 한 구석에 에어컨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어 그다지 덥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야 석진아 여기다 여기" "어 그래" 에어컨과 제법 가까운 자리에 5명의 사내들이 석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고교동창이자 자신과 같은 폐인 생활을 즐기는 뚱보 장천, 마찬가지로 고교동창이자 현재 공익 근무 요원인 임동훈, 같은 과 같은 동아리에 속한 대학 베스트 프렌드 김용준, 게임하나 가지고 한국으로 놀러온 일본 유학생 무라카미 히데오, 게임 상의 길드 마스터이자 고등학교 영어교사에 겸업으로 부인명의의 PC방을 운영하는 30대의 기수 상규 형님까지. 이들 모두 현재 석진이 하고 있는 모 온라인 게임으로 뭉친 길드 원이기도 했다. 각각 인사를 나누는 친구들 허나 장천만은 고기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라 상규형이랑 무라카미 상까지 있었네. 오랜만입니다. PC방일로 오기 힘들었을 텐데" "하핫 무슨 말을. 길드의 가장 큰 전력이 빠진다는데 떠나기 전에 그 아이템은 받아 줘야지" "……그것 때문입니까?" "당연하지 그럼 뭣 때문에 네놈한테 공짜 술까지 먹여가며 불러냈겠냐? 다 네놈의 그 엄청난 재산을 노린 거지" 동훈은 얄밉게도 유독 공짜라는 말에 강조를 해서 말했다. "미친 쓰레기 같은 새끼 현질 해서 풀 미스릴 세트 맞췄으면 됐지. 공익 새끼가 시간이 게임 할 시간이 어디 있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현역보다는 많다네∼ 안 그런가 친구들?"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동훈. 석진은 놈의 상판때기에 젓가락을 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었다. "흐음 한국은 정말 나쁜 제도가 있군요. 그런데 도대체 군 생활 2년 동안 어떻게 욕정을 참습니까?" "흐흐 그래서 군인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도는 것 아닌가? 왕년엔 나도 좀……험 아니지" "석진이 저 녀석 생긴 게 좀 생겼잖냐 아마도 주변 고참들의 표적이 되어 밤마다 뜨거운 잠자리를……." 철푸덕 동훈의 이마엔 고깃 조각이 떡 하니 붙어있었다 석진으로서는 회칼을 꺼내서 휘두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많이 참은 정도였다. "고기 타는데 불 좀 줄이죠" 오랜만에 말문을 연 용준은 석쇠 화력을 낮추어 놓았다. "긴상 그나저나 입소일은 언제 입니까?" "어 닷새 후" "그 전에 총각딱지는 떼야 겠지?" "저 시키는 꼭 지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어" 동훈은 갑자기 히죽 실눈을 뜨고 웃으며 무라카미와 상규에게 눈짓을 보냈다. 무라카미와 상규는 대충 알아들었다는 듯이 같이 히죽 웃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뭘 잘못 먹었나' "석진아. 조심해라" 조용히 갈비를 먹던 용준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어? 왜?"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애" 그때 서빙하는 아줌마가 여러 병의 소주를 그들의 테이블에 가져다 놓았다. 상규는 하나의 소주 마개를 딴 후 각자의 잔에다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저주받은 어둠의 자식 석진을 위해 건배!!" '어둠의 자식은 또 뭐야' 속으로 투덜거리는 석진 하지만 정말 자신이 어둠의 자식이란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상규형이야 군대를 갔다 왔으니 그렇다 치고 살펴봐도 장천은 체중 과다로 군 면제, 동훈은 편하디 편한 학교 공익요원, 용준은 마이너스 시력에 눈이 엄청 안 좋아서 면제, 무라카미는 일본인이라 아예 안 가고……한 마디로 그들은 팔자 좋은 신의 아들들인 것이다. '제길……' 석진은 기분이 침울해 졌다. 그런 석진의 기분을 눈치 챘는지 상규는 그에게 술을 따라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걱정 마라 군 생활도 의외로 즐겁단다. 신병 때나 조금 고생하지 위로 올라갈수록 쫄다구들 늘어나는 재미에 텃세부리고 사는 것도 재밌다구" "별로 즐겁진 않을 겁니다. 학교 공익도 하기 힘든데 현역이면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 침울해진 석진 그와 동시에 활기찼던 술자리도 풀이 죽었다. 그런 조용한 술자리에 분위기를 깨는 것은 지금까지 열심히 먹기만 하던 장천이었다. "문신을 해 보는 건 어때?" "……." "멍청아 신검이 이미 끝이 난지 오랜데 이제 와서 문신하면 뭐해?" "그럼 지금이라도 별을 하나 달아 놓든가" 말마다 헛소리만 늘어놓는 장천이었다. "인생 망칠 일 있냐? 그리고 교도소는 더 싫어" "자자 그만 들하고 술이나 마시자 석진이 내 잔 받아라" "……." 무라카미는 그런 석진을 측은 한 듯 쳐다보았다. "긴 상 그렇게 군대가기 싫으오이까?" "너라면 가고 싶겠냐?" "제가 빼줄까요?" "일본 놈이 무슨 빽이 돼?" 석진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무라카미는 그런 석진을 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긴 상. 만약 군에 안 가고도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별 상관없겠지요?" "그래 합법적으로 그 창살 없는 감옥에 안 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 자포자기 식으로 되는대로 지껄이는 석진. '그런 방법이 어디 있어?' 그러나 석진은 무심코 내뱉은 이 한마디가 자신의 운명을 크게 바꿔놓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석진을 바라보는 무라카미의 눈빛은 묘하게 빛났다. "한 쪽 신장이나 간의 일부를 떼어 내 기증한다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을 거야." "……!" 조용히 있던 용준의 한 마디에 풀이 죽어 있던 석진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과연……하나를 떼어 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장기인 신장과 상당부분을 상실해도 다시 재생된다는 부활의 장기인 간이라면 기증한다 해도 몸에는 이상이 없고 군대도 면제받고 선행자라는 명예까지 얻게 되니 금상첨화로군" 흥분한 듯 묘하게 떨리는 석진의 목소리 그러나 그 흥분도 이어진 상규의 말에 무너져 내려 버렸다. "아서라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건. 전부 장기기증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의료계 등에서 퍼뜨린 뜬소문일 뿐이야 간은 기증자의 40%가량을 주로 떼는데 그 정도를 잃으면 무슨 일을 조금만 해도 극도로 피곤해지고 아주 적은 양의 알콜이라도 독소를 완벽히 해소하지 못해 술을 입에 대면 안 되지. 또 신장은 2개 중 하나를 떼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지만 아무래도 두 개보다 하나로 소변의 여과기능이 계속 몰리게 되므로 신장 기능이 나빠지게 돼있지. 특히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의 경우에는 신장이 정력과 맞닿은 중요한 요소라, 신장 하나를 떼어 내면 정력도 약해지지, 장기 떼어내고 예전처럼 멀쩡하면 무엇 하러 군 면제까지 시켜 주겠냐? 게다가 입소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장기기증 신청해 봐야 어느 세월에 기증할 것이오? 더구나 입대를 며칠 놔두지 않은 놈이 장기기증을 한다면 고의로 병역기피를 한다는 것이 인정되어 구속되지. 그러니 허튼 생각하지 말고 겸허히 받아 들여라." "휴우 그래야 겠죠……" "그래 그래 그 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고 고민하면 되는거다. 자 마시자 게임상의 동료이자 친우인 석진을 위해 건배" "건배" "건빠이" 그리고 여섯 남자들의 술판이 시작되었다. "욱" "우웨에에엑" "청산리∼달 밝은 밤에∼∼∼" 용준은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차까지 휩쓸고 온 일행들이 술에 취해 완전히 인사불성이 된 데다. 그들의 뒤처리를 술을 그다지 마시지 않은 자신이 떠맡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천은 연속해서 먹었던 내용물들을 전봇대에 쏟아 부으며 확인하고 있었고, 동훈은 볼썽사납게 길바닥에서 뒹굴며 코를 골았다. 석진은 취권을 하는지 계속 비틀거리며 지구의 중력을 확인이라도 하듯 계속해서 넘어졌다. 그나마 상규는 정상적이었지만 그도 생전 듣도 못한 노래들을 엉망진창으로 짬뽕을 시켜 부르는 것을 보니 영 위태로워 보였다. '괴물' 용준은 무라카미를 보고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도수 높은 양주와 강도는 조금 덜 하지만 그래도 맥주보다는 강력한 위력의 소주들을 생맥주 컵에 부은 뒤 무려 30여 잔을 비우던 무라카미는 전혀 취한 기색도 없이 주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훈과 석진을 부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아쉽네요 오늘 용준 상과 석진 상에게 여성의 신비를 몸소 체험시켜 드리려고 했는데……이렇게들 뻗어서는 무리 겠군요" "역시 그랬군……." 용준은 쓰디쓴 입맛을 다셨다. 방금 전의 식당에서 동훈과 무라카미 상규가 서로 음흉한 눈빛을 주고받는 게 어째 영 수상타 했는데……아마 석진과 자신에게만 집중적으로 술을 먹인 뒤 뻗으면 돈 6만원씩 쥐어서 사창가에 맡겨 놓을 계획이었을 것이다. "용준상 긴 상과 임 상은 제가 맡을 테니 용준 상께선 장 상과 이 상을 부탁드립니다" "그러지요" "그럼 전 먼저" 용준과 헤어진 무라카미는 동훈을 그의 아파트 앞에 버렸다. 곧 경비가 와서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비틀거리는 석진을 부축해가며 그의 집으로 향하는 무라카미 석진은 여전히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석진의 집은 동훈의 아파트에서 상당히 먼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야속한 택시들은 취객을 태워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마냥 석진을 부축하며 걷는 무라카미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겼지만 서울 시내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야! 무라카미∼" "아 하! 긴상" 석진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마 무라카미라는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것을 보니 약간 술이 깬 모양이었다. "난 말야 일본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그렇습니까?" "그런데 자꾸만 너 같은 일본 애들이 부럽다" 석진의 목소리에는 동경의 뜻이 담겨 있었다. "하아 또 그놈의 군대 때문입니까?" "그래……" "한국 남자들이면 다 간다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합니까?" "군기, 위계질서, 억압된 자유, 피곤한 훈련, 남북 분단으로 동포들끼리 총을 맞대야 하는 현실, 테러의 위협에 의한 국제 정세의 위험, 미국 대통령한테 있는 남한 군 총 지휘권, 핵이라는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 쉬쉬하는 군 의문사의 태도." "그냥 귀찮고, 게임하고 싶고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요?" 석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무라카미의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서 가기 싫어!!! 대한민국 헌법엔 대한민국의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고 써져 있다구!!!" "흐 정말 그렇게 싫은가? 인간" 갑자기 싸늘한 목소리로 반말을 하는 무라카미 그러나 술에 취한 석진은 그의 말투에서 물씬 풍기는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 싫어 전에 니가 그랬지? 군대 빼준다고 어디 한 번 빼 줘봐" "훗 후회할 텐데……?" 무라카미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상관없어" "좋다! 인간 이로서 네 번째 로군" "무슨 네 번째야?" 석진의 물음을 무시하고 무라카미는 말을 이었다. "날 원망하지 말아라 나는 엄연히 너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니까……너는 이곳에서의 삶과 가족과 생활을 잃게 되겠지만 대신 영생을 얻으리라" "……무라카미?" 사이비 교주 같은 말을 늘어놓는 무라카미를 이제 서야 눈치챈 석진. 뭐지? 이런 이질감은? "#@$%@^@@#$$**!!" 무라카미는 어느 곳의 언어인지 모를 말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그러자 은은한 빛이 무라카미를 감쌌다. 그리고 석진의 몸에도 빛 무리가 휩싸였다. '이 편안한 기운은 뭐지……?' 그것이 석진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석진이 빛 무리에 휩싸여 사라진 곳에는 무라카미가 흥건한 땀을 닦고 있었다. "휴 이렇게 많은 마나를 사용하는 게 얼마 만인지" 무라카미는 방금 전만 해도 석진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흐 고작 군에 가기 싫다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다니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구…… 전쟁 때마다 벌레들을 쏴 죽이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죽이고 강간하고 불지르고 크크크크 하긴 최근에 전쟁다운 전쟁은 태평양 전쟁밖에 없었지, 그 때 멍청한 인간들이 천황을 위한답시고 비행기 통째로 미 군함에 박치기했을 때, 그 때 진짜 재밌었는데……" 무라카미는 자신의 몸을 한 번 내려보았다. "이제 이 껍데기도 질리는군 오랜만에 껍데기나 바꿔볼까?" 무라카미는 다시 한 번 그 괴상한 언어를 주절거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아메바처럼 변했다가 다시 인간의 형체를 되찾았다. 그곳에는 무라카미 대신 석진이 서 있었다. "그럼 새로운 유희를 시작해 볼까?" 그의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참지 못한 듯 보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폐인. 판타지 세계로 가다 - 회상 아크라우스. 그는 실버 일족 최고령의 노룡이었다. 불과 200여년 전만 해도 실버 일족의 수장이자 전 드래곤을 총괄하는 드래곤 로드로써 정력적으로 활약했던 아크라우스. 그러나 그의 나이가 드래곤의 평균수명이라는 11000세를 넘어선 11300세가 되자 그에게도 노환이 닥쳤다. 드래곤들이 죽기 전에 나타난다는 '마나 분산'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드래곤들은 어린 헤즐링으로 부터 성장하여 500여세 정도가 되면 1차 성장이 끝나 정식으로 드래곤 칭호를 받는다. 드래곤 칭호를 받은 드래곤들은 2차 성장을 하게 되는데 드래곤 나이 4000살에서 5000살 즈음되면 2차 성장이 완료되며 에인션트 드래곤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그 뒤로 드래곤들은 연륜에 따라 쌓이는 엄청난 마나로 나이를 먹을수록 드래곤 하트의 마나 저장 용량이 딸리게 되어 피와 육신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몸체에 마나가 점점 쌓이게 된다. 허나 그렇게 쌓이던 마나도 드래곤 나이 정점에 오르는 만 살 즈음되면 더 이상 자연적으로 마나가 쌓이지 않게 된다. 이를 일컬어 '마나 정체'현상이라 부른다. 일족에 따라, 성장 속도에 따라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만 살이 넘은 드래곤들은 어느 날 갑자기 몸 속의 마나가 조금씩 빠져나가는 현상을 경험한다. 그들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명 '마나 분산'증상이었다.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이 '마나 분산'이 시작되면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드래곤 하트를 봉인하여 스스로 영원한 안식을 갖게 된다. 하지만 아크라우스는 마나 분산이 시작됨에도 스스로 안식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죽기에는 11000여년 이라는 세월이 너무나도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드래곤들에겐 워낙 방대한 마나가 있었기에 마나가 조금씩 사라진다고 해도 용언마법으로 체내의 마나를 끄집어내어 쓰지만 않는다면 마나가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500년은 족히 걸렸다. 그럼에도 많은 드래곤들이 자살을 택하는 이유는 500년 동안 마나가 빠져나가다 보면 말년에는 결국 헤즐링 만도 못한 소량의 마나 만이 남아 자기보다 어린 드래곤들이나 심지어 인간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아크라우스는 명예로운 죽음보다 구차하게 오래 사는 것을 택하였다. 하지만 그 남은 시간 동안 자신의 레어 에서 죽치고 잠이나 자는 것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했다. 그리하여 아크라우스는 마지막으로 새로운 유희를 즐겨보리라고 결심했다. 바로 금지된 마법인 차원이동으로 다른 차원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금지된 마법을 사용할 경우 자신의 일족 고룡들에게 사로잡혀 마나를 봉인 당한 채 강제 폴리모프를 당해 1000여년간 수감생활을 당해야 했지만 아크라우스는 드래곤 일족 최고의 노룡 어차피 죽을 날도 멀지 않았기에 아크라우스는 별 망설임 없이 차원이동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중원이란 곳이었다. 아크라우스는 중원의 문화와 이곳 인간들의 생활 방식에 푹 빠져들었다. 자신이 살던 차원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아크라우스에게 중원은 색다른 유희를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드넓은 중원과 변방 여러 국가들을 유람하던 아크라우스는 차원이동으로 엄청난 마나를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몇 백 여년 동안 죽지 않음에 의문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아크라우스는 자신의 차원에서만 볼 수 있던 기생충이 자신의 몸에 붙어 이 세계로 같이 차원이동 되었으며 1년도 채 안 되는 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수백 년 동안 살아 남았음에 놀라게 된다. 이에 아크라우스는 적들의 추격에 쫓기는 한 무림인을 자신이 살던 세계로 차원이동 시킨 뒤 맹약의 증표를 통해 그를 감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자신의 세계로 간 인간이 자신의 수명을 몇 곱절 끌어올린 수명을 누렸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아크라우스. 그러나 그 길고 긴 삶에 권태를 느낀 아크라우스는 유희도 때려치우고 수면을 취한다. 오랜만에 깨어난 아크라우스. 그는 자신이 잠든 900여년 사이 이곳 세계의 인간들이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에 감탄한다. 그리고는 또 다시 유희를 시작하는 아크라우스. 처음 유희로 택한 것은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독립 운동가로서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동료들이 일제에 체포되었다. 동료들이 모진 고문과 굶주림에 하나 하나 죽어가자, 아크라우스는 자신들을 감찰하던 무라카미 히데오 라는 일본 헌병을 죽이고 그의 모습을 한 채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크라우스에게 무라카미 히데오 라는 껍데기로 살아온 삶은 신기함과 놀라움 그 자체였다. 병사의 신분으로 태평양전쟁에 참가한 아크라우스는 하늘을 나는 기계와 불을 뿜는 전차. 핀을 뽑아 던지면 가히 3서클의 파이어 볼에 맞먹는 위력을 지는 수류탄. 그리고 강철을 간단히 뚫어버리는 총, 더구나 핵이라는 신무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을 때, 핵이 13000살이 넘은 자신의 브래스에 버금가는 위력이라는 것을 안 아크라우스는 하찮은 벌레라고만 생각했던 인간들의 발전에 왠지 모를 위험까지 느끼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패망했던 일본에서 무라카미 히데오로 계속해서 유희를 즐기던 아크라우스. 처음에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일본을 떠날 마음이 가득차 있었지만 옆 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고 일본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발전하는 지구 문명의 유산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텔레비전이라는 안에서 사람이 보이는 상자부터, 혼자 달리는 철 마차, 가라오케라는 노래부르는 기계, 저절로 빨랫감을 토해내는 세탁기 그리고 애니메이션 강국답게 무수한 출판 만화와 애니메이션 동인만화 및 각종 패키지 게임 등에 삶의 권태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인간들의 과학과 문화에 대한 탐구는 아크라우스의 마음을 빼앗았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족 드래곤인 그였지만 인간들의 상상력과 연구력 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했었던 것이다. 어느덧 게임에 미친 오타쿠가 된 아크라우스. 게임 사고 한정판DVD등을 사느라 돈을 다 써버린 아크라우스는 돈을 벌기 위해 경마장으로 향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돈 벌기는 쉬웠다. 헤이스트나 근력 증가 마법 등을 이용하여 꼴지 말을 일착시키는 방법으로 계속해서 돈을 따왔던 것이다. 그래서 언젯적인가부터 아크라우스는 대박을 부르는 사나이로 불려져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영 재수가 없었다. 막 치고 나가려던 말이 다리가 꺾이며 넘어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나마 생활비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오던 아크라우스는 게임 샵에서 3일간 무료라며 판촉용으로 나눠주는 모 한국 게임 CD를 받게 되었다. 인터넷 연결에 회원가입까지 해야 하는 복잡한 게임이었지만 돈 없는 그로서는 그저 감지덕지 할 뿐이었다. 난생 처음 온라인 게임을 접해 보는 아크라우스 일본 서버 접속자에 비해 한국 서버의 접속자가 훨씬 많자 그는 주저 없이 한국 서버를 택했다. 일본식 RPG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높은 자유도에 재미를 느낀 아크라우스. 그리고 그 깊은 세계관에 빠져들수록 그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세계에 대한 짙은 향수에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길드 정모임이 열렸다. 아크라우스는 별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향했다. 오프라인 상으로 만난 길드원 들은 자신이 일본인이고, 조금 서투르지만 유창한 한국어 실력,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되는 모임을 일본에서 한국까지 비행기 타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일본인이라는 왠지 모를 적대감으로 어색해 하긴 했지만 곧 게임상 에서 처럼 툭 터놓고 자신을 대해 주었다. 그리고 아크라우스는 유학이란 명목으로 한국에 정착했다. 그것이 약 1년 2개월 전쯤의 일이었다. "……" "여보세요 수업 중인데 누구십니까?" 숙취가 아직 덜 되었는지 저기압의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상규 였다. "핫! 죄송합니다. 쓰미마셍. 리 상 저 무라카미올시다" "무슨 일이야? 이 아침부터" "저 그게……오늘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뭐? 왜 그렇게 갑자기 가는 거야?" 상규의 목소리는 약간 올라가 있었다. "핫! 어제 다들 모인 김에 얘기하려고 했는데 긴 상 푸념 들어주다 보니 깜박 했지요.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접속은 꾸준히 할 테니까요. 나머지 분들한테도 잘 좀 얘기해 주십시오" "쩝 그래 나 수업 들어간다. 잘 있어라 무라카미" "핫!" 끊어지는 전화 무라카미는 아니 정확히 말해서 무라카미 목소리를 흉내내는 석진의 탈을 쓴 아크라우스는 핸드폰 덮개를 덮었다. "이제 이것도 별 필요가 없겠군" 붉은 빛을 띄는 석진의 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핸드폰 또한 붉은 빛을 내며 부식되어 갔다. 어느덧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핸드폰은 그의 주인이었던 무라카미 히데오 라는 존재와 함께 먼지가루가 되어 대기 중으로 흩날려졌다. "놈은 제대로 가 있는지 모르겠군. 하긴 어쩌면 벌써 오크 밥이 되어있을지도…… 크크크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하" 호쾌히 웃음을 터뜨리는 늙은 드래곤 아크라우스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폐인. 판타지 세계로 가다 "크핫 아이고 머리야 대가리가 터져 버릴 것 같네" 진창 퍼 마신 술 탓에 숙취로 생고생하는 석진. 그러나 숙취로 오는 두통마저 잊을 만큼 자신의 주위 광경은 황당한 것이었다. "이건 또 웬 숲이야? 숲이 분명히 무라카미하고 길거리 쪽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랬다. 현재 석진의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은 서울 시내에서는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울창한 숲 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수목원인가? 아님 산? 그것도 아니면 그린벨트 지역?" 뭔가 이상했다. 무라카미는 분명 자신의 집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데려다 주기 귀찮아서 자신을 버린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이런 숲 속에 자신을 쳐 넣은 것인가? 그냥 길거리에 노숙자 처럼 내팽개쳐도 되고 양심에 좀 찔린다 싶으면 파출소 앞에다 던져 놓기만 해도 경찰들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줄 텐데…… "혹시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가? 아님……설마 아리랑 치기?(취객 절도를 지칭하는 은어) 문득 자신이 범죄에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석진은 급히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민등록증과 운전 면허증, 신용카드 두 장과 약간의 현금이 들어 있던 지갑과 핸드폰이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다. "이런 제기랄 진짜로 도둑 맞은 건가?" 지갑이 절대로 들어 갈 수 없는 조그마한 셔츠 주머니까지 뒤져보는 석진. 그러나 예상외로 셔츠 주머니에선 은빛을 내는 반지 하나가 튀어나왔다. "이게 뭔 반지야 언제 내가 반지 산 적 있었나?" 수수한 모양에 표면엔 괴상 쩍은 문양이 새겨져 있는 반지. 진짜 은인지 은도금을 한 싸구려 반지인지 철로 만든 반지가 은빛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둘째치고 어째서 이런 물건이 자신의 셔츠 주머니에 들어 있는지 영 영문을 모르는 석진 이었다. "혹시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그 절대반지가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고 세상을 지배할 힘을 주기 위해 이렇게 주머니 속에서……잠들어 있던 것은 아닐 테지" '그럴 리가 있겠냐'라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엉뚱한 망상을 떠올린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는 석진. 하지만 석진은 왠지 모르게 자신이 반지에 이끌리는 것을 느끼며 왼손 무명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크캇캇캇 드디어 연결되었구나 인간" "……!" 급히 주머니 속의 회칼을 꺼내어 전방을 겨누는 석진. 그러나 이 숲 속에는 자신 외엔 아무도 없었다. "환청인가……?" 김 빠지는 군…… "크카카 당연히 환청이 아니지" 다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는 석진. 그러나 여전히 숲 속에는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너 넌 누구냐? 어딨는 거야?" 의문의 목소리는 석진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나? 크크 뭐라고 해야하나…… 아 네놈의 일본 친구 무라카미 히데오라고 해두지. 그리고 지금 있는 곳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위치한 김석진 씨네 집이지 아마?" "뭐 뭣? 그렇다면 여긴 어디야?" "네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쉽게 말해서 네놈이 그렇게도 미쳐서 하던 그 게임 같은 세계. 이곳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판타지 세계라고 볼 수 있겠지" "……!" 말문이 막혀버린 석진. 판타지 세계? 퓨전 판타지랍시고 무림고수들이 넘어가서 활약하는 그 세계? 게임 속에서처럼 기사들이 있고 마법사들 있고 몬스터가 있고 정령이 있는 그 세계라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을 직시해라 이 멍청한 인간 놈아. 뭘 그렇게 어이없어 하고 믿지 못하는가? 보여지고 들리고 만져서 느껴지는 상황을 그대로 인지해라. 그게 곧 진리다" "하하하하하핫 즐겁군……너무 즐거워 미쳐버리겠어. 크하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호쾌하게 웃으며 땅바닥을 뒹구는 석진. 이에 의문의 목소리는 상당히 어이가 없었다. "핫! 설마 진짜로 미쳐버린 것이냐?" "아니" 미친 듯이 웃던 석진은 의문의 목소리에 질문을 단호히 끊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이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너! 내가 왜 이런 곳에 떨어 졌는지. 어떻게 존재가 보이지도 않는 네 녀석이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는지. 네 녀석의 정체가 뭔지 그 경위를 알기 쉽게 설명해 봐!" 세게 나가는 석진. 그러나 그런 석진의 태도가 가소롭기만 한 아크라우스였다. "좋아 얘기해 주지. 네놈도 어차피 현실은 인정해야 할 테니까……. 내 이름은 아크라우스 80여 년간을 무라카미 히데오라는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지구란 곳에서 살아왔던. 실버일족의 늙은 드래곤이지." "뭐시여? 드 드 드 드래곤이라고라?" 방금 전 당당하게 나가던 그 태도는 다 엿 바꿔 먹었는지 놀라서 말까지 더듬거리는 석진.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알고 있던 드래곤은 게임에서나 소설 속에서나 도시 하나를 가볍게 파괴하고 인간 수백을 모조리 게임오버 시켜버리는 최강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드래곤을 만난 적 없고 존재할 것인지 조차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야 드래곤이란 존재가 그다지 실감나지는 않겠지만 항상 판타지 세계의 공상 속에서 살아온 석진에게 드래곤이란 존재는 무엇보다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 석진의 태도를 눈치 챘는지 아크라우스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크흐흐흐 너무 그렇게 쫄지는 마라. 네놈은 내가 몇 명 인정하지 않은 인간 친구들 중 하나니까 나는 너에겐 무라카미 히데오라는 일본 유학생 친구일 뿐이다" "크 그래? 그럼 내 질문에나 빨랑 답하시지" 자신을 친구처럼 여기라는 말에 금새 태도가 시건방져 지는 석진의 태도가 아니꼬웠지만 어쨌든 아크라우스는 그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계속해 말을 이었다. "어째서 다른 차원에 있는 네놈과 내가 대화를 나눌 수 있냐고 물었나? 그건 네놈이 차고 있는 그 맹약의 반지 덕분이다. 그 반지는 상대의 의식을 상대가 어느 곳에 있던 시술자가 읽을 수 있는 마법이 부여되어 있지. 때문에 나는 네놈의 의식을 읽고 네놈의 의식에 내 의사를 전달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네 녀석이 이 세상에 오게 된 이유는 네놈이 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로 유희를 즐기는 나라지만 차원이동 마법에 소모되는 마나는 엄청나다. 특별히 네놈은 내가 친했다고 생각했기에 그 소원을 들어준 것뿐이지. 군대에 가기 싫다는 그 소원 말이다" "크으 그랬던 거였나? 이제야 생각나는군. 네 녀석이 괴상한 말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내 몸을 빛 무리가 휩싸이던 거 말야. 그게 차원이동 마법이었나 보군." 그제서야 자신이 이 곳에 떨어진 경위가 생각나는 석진 이었다. "에휴……되돌아 갈 방법은 없는 거냐?" "크흣! 후회되냐?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네놈이 이 세계로 돌아올 방법 따위는 없다. 차원이동 마법을 알고 있는 드래곤이나 고위급 인간 마법사라면 너를 다시 차원이동 시켜줄지도 모르지. 허나, 차원이동 마법은 금지된 마법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자도 극히 드물지. 설사 다시 차원이동 한다 해도 이곳의 좌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가 없는 이상. 네놈이 이 곳으로 돌아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내가 그곳으로 가 너를 데려오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나는 수명이 이미 다한 몸이라 그곳에 도착하는 즉시 소멸해 버릴 테니 좋은 방법이 될 수 없지" "……." 자신이 살던 곳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말에 시무룩해진 석진. 아크라우스는 그런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너무 상심하진 마라. 너는 이 쪽 세계에서의 일상과 소중했던 사람들을 잃긴 했지만 대신 너는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 진시황도 얻지 못했던 영생을 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세계를 등진 자들에게 주어지는 차원의 보상이지" "뭐라고? 영생?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야?" 뜻밖의 질문을 받은 아크라우스. 사실 그도 다른 차원에서 왜 나이를 먹지 않는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대충 들어맞는 가설을 하나 세워 놓고 그렇겠다 싶을 뿐이지 그 가설에 대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쪽 세계에서 이미 수명이 다 했던 내가 이 지구라는 곳으로 넘어와서는 무려2000년을 살았다. 그리고 약 1000년 전에 내가 그곳으로 보냈던 한 인간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을 보니 아마 사고사 등이 아니라면 불로장생의 몸이라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천년 전에 보낸 인간? 그럼 이 세계에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을 보냈었더란 말이냐?" "아마 너 말고도 지구에서 간 3명의 인간이 그곳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흠흠 어쨌거나 앞으로 그 쪽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 테니 몇 가지 조언을 해 주마. 먼저 내 자식인 아크로니아를 찾아가거라 그 녀석에게 그 반지를 보여 주면 내가 소유했던 여러 물품들 중 몇 가지를 인계 받을 수 있을 거다." "큭 너 한테 내 생각이 읽히고 있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군. 이 반지 빼면 안 되나?" "그 반지엔 약간의 행운과 자동 통역 마법이 걸려 있다. 운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네놈이 잘 나게 되거나 그 쪽 세계 말을 유창하게 할 즈음되면 빼도록 해라." '행운 스텟이 붙은 게임 아이템 같군' 속으로 투덜거리는 석진. 아크라우스는 그런 석진의 마음을 읽고 쑥쓰러운 듯 대꾸했다. "흠 흠 사실 게임에서 컨셉을 잡아 제작한 물건이다." 역시 아크라우스도 석진 못지 않은 게임 폐인이었다. "그런데 말야 아크라우스. 이런 것 말고 무슨 차원이동을 통해 체내에 엄청난 내공이 쌓인다거나, 드래곤의 지식과 힘을 흡수한다거나, 드래곤에게 속성으로 마법을 배워 강해진다거나 뭐 그런 것 없어?" "큭 욕심이 끝도 없는 놈이로군. 그런 거 zotto없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아크로니아를 만난다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명검과 방어구, 각종 보물들을 얻을 수 있을 거다. 이곳 말로 하면 아템 빨이라고나 할 수 있겠지" "그럼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의 레어 정도는 가르쳐 줘야지" "크크크 그것은 너에게 남겨진 숙제다. 언제나 네 녀석이 꿈 꿔오던 세계에서 재미있게 살아보도록 크크크크큭" 이 말을 끝으로 아크라우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석진의 머릿속에 울리지 않았다. 석진은 착찹했다. 그리고 막막했다. 사실 석진은 이렇게 이 세계에서 살게 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판타지 세계 속에서 살아가길 열렬히 갈망해 왔다. 가족? 지방에서 일하느라 일 년에 몇 번 볼까 말까 한 아버지, 아버지 없는 히스테리를 자신에게 퍼붓는 어머니, 오빠라고는 폐인이라며 개 무시를 해대는 싸가지 없는 동생년, 친구? 어차피 나이 먹으면 기억도 가물가물 해질, 보증이나 서 달라며 귀찮게 굴 그런 사람들. 약간 삐뚤어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석진에겐 그들이 그렇게 그립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의 일상도 마찬가지 였다. 밤새서 게임하고 게임 하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또 게임하고, 군대가면 매일 훈련받다 졸리면 자고 자다 일어나면 또 고된 훈련, 사회에 나가서는 5일에서 6일 동안 일하다 이틀 쉬고 일하다 또 의미 없이 쉬고……석진은 그런 의미 없는 일상에서 탈출하기를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리고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구로 유희를 즐기러 놀러온 드래곤을 친구로 삼은 것 외에는 그 흔하디 흔한 기연도 없고 무림대륙 같은 데서 가져온 엄청난 무공도 없이 천둥 벌거숭이로 이 햇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숲 속에서 과연 무엇을 하란 말인가? 석진은 일단 장비를 확인했다. 아크라우스가 준 반지와 무의식적으로 뒷 벨트에 차 놓은 회칼 하나, 가죽 벨트 하나, 얇은 긴 팔 티셔츠, 옅은 하늘 색 청바지(사실 빨래하다 색 다 빠져 버린 싸구려 청바지) 양말, 운동화, 그리고 시계 하나. '이거 가지고 뭐한다? 나 참 판타지 세계에서의 모험? 여행?은 개뿔. 이건 완전히 숲 속에 조난 당한 거나 마찬가지 아냐?' 그랬다. 지금 석진의 첫 번째 퀘스트는 '아크로니아'라는 드래곤을 찾아 아이템을 받는 것. 그러나 이 망할 놈의 아크라우스는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의 레어가 어디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정보를 얻기 편한 도시 같은 곳에 떨어뜨려 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이곳 세계의 지리 따위를 알 리가 없는 석진에게 이 숲은 조난장소나 다름없었다. '가만 이 상황은 조난 당한 것보다 더 상황이 안 좋잖아?' 지구에서의 조난과는 달리 이 세계에서의 조난은 더욱 위험했다. 바로 지구에서는 없었던 '몬스터'라는 존재들 때문이었다. 그들 앞에서 별다른 힘이 없는 석진은 그저 맛있는 먹이감일 터였다. 자신이 몬스터 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생째로 뜯어 먹히는 기분 나쁜 상상을 해 버린 석진. 그런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지금으로선 단 하나! 바로 이 숲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석진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산 지 얼마 안 된 시계는 멈춰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나침반 대용으로 사용하게 될 시계이니 석진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석진은 나침반 만드는 방법을 알 지 못했다. 나무의 나이테로 방향을 가늠할 줄은 알지만 회칼 따위로 어느 세월에 나무를 벨 것인가? 석진은 시계를 12시로 맞추었다. 그리고는 시침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뭔가 신빙성 없는 방법이긴 했지만 일방통행으로 쭈욱 가다보면 언젠가는 숲의 끝이 나오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는 석진 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석진은 끓어오르는 열화를 참지 못하고 나흘 동안 애지중지 방향 판으로 보고 다녔던 시계를 집어 던져버렸다. "……." 석진은 던져버렸던 시계를 도로 주워왔다. 사실 잘못은 시계한테 있는 게 아니었다. 석진은 이 숲 속을 헤매고 다녔던 4일 가량만에 자신이 방향치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밤낮 없이 걷고 또 걸었건만 도무지 이 숲의 끝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석진이 이 숲을 빠져나가려고 작심한 지 이틀쯤 되자, 자신이 이 숲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석진은 나무에 횟칼로 자신의 영역표시를 해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한 번 봤던 '임동훈 바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나무를 4일째 되는 오늘 또 보자 결국 석진은 애꿎은 시계를 내팽개치며 폭발했던 것이었다. 이 숲은 이 곳 세계에서 파푸치아 숲이라 불리는 지구의 아마존 정도 되는 매우 넓은 숲이었다.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인간의 걸음으로 약 석달 반이 걸리는 넒은 너비에 드래곤들이 집단 서식하는 우라시드 산맥에 걸쳐 있어 예로부터 인간의 발걸음을 끊게 하였다. 훼손되지 않은 울창한 숲은 인간들에게 밀려 삶의 터전을 잃은 엘프 들과 오크들에겐 더 없이 살기 좋은 곳이기도 하였으며 오크와 엘프 들의 영역을 벗어나면 매우 보기 드문 희귀 몬스터 들이 출연하는 매우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 파푸치아 숲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제법 실력이 있는 모험자 파티에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 오크와 엘프들의 경계를 교묘히 지나쳐야만 안전히 살아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위험성에다 동쪽 디그리스 왕국과 현재 내전으로 분단되긴 했지만 디그리스 왕국의 영토였던 서쪽 포르티아 반도를 잇는 해로가 숲을 지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하기에 상인들이나 모험자 들은 대부분 해로를 이용했다. 물론 그런 것을 알 리가 없는 석진. 그러나 무리한 4일 동안의 방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뼈저리게 느꼈던 석진은 일단 이 숲 속에 익숙해진 뒤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 숲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인간 생존에 절대적인 의식주의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아직까지는 조금 시큼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 한 나무열매와 이 세계에서도 서식하는 느타리버섯으로 대충 끼니를 때웠지만 양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먹는 것이야 정 아무 것도 없으면 풀뿌리를 먹을 수도 있고 나무껍질이나마 벗겨 먹으면 되었지만 정작 석진 에게 심각한 문제는 바로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비치는 햇빛의 강도로 봐서는 분명 초여름이나 늦봄의 기운이었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체감온도는 매우 하락해 있었다. 그나마 낮에는 시원한 그늘에 신선한 바람이었지만 밤이 되면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가 찾아들었다. 두꺼운 외투라도 한 벌 있었다면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겠지만 석진의 복장은 완벽한 여름용이었다. 결국 석진은 밤마다 숲 속의 노숙자가 되어 나뭇잎을 이불 삼아 추위와 싸워가며 시란 밤을 지냈다. "이런 망할 놈의 드래곤새끼. 좀 사람이 살만한데다 떨어뜨려 주란 말이닷!" 석진은 숲 속에서 절규했다. 하지만 그 절규는 곧 석진 에게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데……. 석진의 절규 이후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거진 수풀 속에서는 석진을 주시하는 두 개의 눈동자가 빛을 뿜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생존의 투쟁 석진은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주저앉아 잇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라기 보다는 수풀 속에서 수상쩍은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회칼을 겨누며 경계태세에 나선 석진. 수풀 속에 눈동자는 석진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하자, 더 이상 기다릴 것 없다는 듯이 수풀 속에서 빠져 나왔다. "크르르르 오랜만에 인간의 고기를 맛 볼 수 있겠군." "하핫 드디어 몬스터 씨 등장이로군." 돼지 머리에 녹색 피부를 가진 직립 보행의 괴물 그러한 존재는 석진이 알기로는 오크밖에 없었다. "크르르 인간!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내 먹이가 되거라!" "킬킬킬킬 오크 순순히 내 경험치가 되거랏!" 오크는 황당했다. 보기에는 별 다른 힘도 없어 보이는 인간이 너무나도 당당했기 때문이었다. 혹 마법이라도 사용하는 인간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이 꾀죄죄한 인간에게 그런 생각은 날아가 버릴 뿐이었다. 하지만 석진이 오크를 보고 당당한 이유는 바로 그가 지금껏 접해왔던 게임이나 영화나 소설들 중에서 오크란 그저 인간의 가엾은 사냥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무장을 한 오크 전사나 오크 궁수, 오우거와 필적하는 힘을 지닌 하이 오크라면 말이 달랐겠지만 앞에 보이는 이 오크는 조잡하게 만든 한손 도끼와 허술한 가죽갑옷이 전부였다. 이 정도라면 중렙만 되어도 원 샷 원 킬이 가능했고 또 생 초보라 할 지라도 직접 전투력이 딸리는 마법사형 클래스만 아니라면 조금의 피해가 있을 지는 몰라도 충분히 사냥 할 수 있는 저 렙 몬스터였다. 물론 게임과 실전의 차이가 있고 상상 속세계의 오크와 현실의 오크에게 실력의 차이도 있겠지만 석진의 눈에 비치는 저 오크는 자신에게 아이템과 경험치를 남겨 줄 사냥감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석진은 자신이 먼저 오크에게 몸을 날렸다. 선공 몬스터에게 자신이 먼저 공격하는 것을 게임 속의 가장 큰 재미로 느꼈던 석진은 현실세계에서도 오크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돌진해오는 석진을 보고 적잖이 놀라는 오크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이 겁 대가리를 상실한 인간에게 도끼를 날렸다. "허걱!!" 돌진하던 석진의 바로 앞 땅에 꽂히는 오크의 도끼. 만약 석진이 급 제동을 하지 않았다면 저 도끼가 박힌 곳은 석진의 머리통이었으리라. "쿠르르르르" 오크는 땅바닥에 꽂힌 도끼를 별 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뽑은 뒤 도끼를 횡으로 휘둘렀다. "쳇 이런 젠장" 필살의 구르기로 다시 한 번 오크의 공격을 회피한 석진. 오크는 그런 석진에게 틈을 주지 않고 달려 들었다. "헛" 계속된 회피동작으로 오크의 공격을 피해내는 석진. 하지만 저 오크놈은 예상외로 강했다. 오크의 공격을 어찌어찌 해서 피하고는 있었지만 오크의 맹공은 간신히 피해내기도 벅찼다. '젠장 오크 따위가 뭐 이렇게 강한 거야' 석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실상은 오크가 강한 것이 아니라 석진이 약해 빠졌기에 이렇게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오크는 검이나 창으로 무장한 훈련받은 병사 정도라면 충분히 오크 한 두 마리쯤 압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석진은 훈련은커녕 무기조차 채 30cm도 안 되는 회칼 하나가 전부였다. 더러군다나 오크는 오크 전사로 승격하기 위해 많은 수련을 쌓은 데다, 많은 사냥을 통해 실전 경험도 풍부했다. 그런 오크를 석진 같은 어설픈 실력으로 상대한다는 것은 또라이 짓거리나 매한가지였다. "휙" 석진은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도끼 날을 피해냈다. 서서히 숨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라면 얼마 안 가 체력마저 바닥나고 만다. 체력이 바닥난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오 하느님 이 불쌍한 중생을 구제해 주소서' 석진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잡상이 떠올랐다. 아 드디어 여기서 죽는구나 이럴 줄 알았다면 진작에 총각딱지도 좀 떼고 군대가 가기 싫더라도 친구들 앞에서는 그냥 찍소리 않는 건데……무라카미 이 망할 놈의 드래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석진은 순간 마구 떠오르던 잡생각 중에서 한 가지 멋진 작전을 발견해내었다. 이 작전에 목숨을 걸어보기로 작정한 석진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근처의 나무에 등을 기대었다. "크르르 잘 가라 인간" 오크는 자신이 완벽히 승리했다고 생각하며 이 인간 사냥감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기 위해 온 힘을 쏟아 부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석진은 죽을힘을 다해 몸을 굴렸다. "쩍" 작전은 성공이었다. 석진이 등을 기대고 있던 나무에 오크의 도끼가 깊숙히 박혀버린 것이었다. 이제 저 오크가 도끼를 뽑으려는 동안 이 회칼로 저 오크놈을 회쳐 버리면 명백한 석진의 승리였다. 오크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석진. 오크는 사악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석진을 바라보며 낑낑대고 도끼를 뽑았다. 그러나 도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크에게 회칼을 겨눈 석진. 하지만 이 미련한 오크는 도망갈 생각도 안하고 여전히 도끼만 잡아당기고 있었다. "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오크 따위의 식사거리로 보다니……보답으로 널 육회로 만들어 주……커헉" 오크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때마침 도끼가 뽑혀. 뽑혀 나온 도끼 등이 석진의 오른팔을 강타한 것이었다. 회칼까지 떨어뜨리고 오른팔을 감싸쥐며 쓰러진 채 신음하는 석진. 오크는 뜻밖의 행운에 산신령님께 감사드리며 저 망할 인간 놈에게 최후를 선사하기 위해 석진이 나가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자신을 고생시키던 인간은 축 늘어진 채 기절해 있었다. 오크는 이 인간 놈의 머리에 도끼를 겨눴다. "크르르 잘 가라 인간" 순간 기절한 줄 알았던 석진의 두 눈이 벌쩍 뜨여졌다. "누구 맘대로?" 기절한 척 하고 있었던 석진은 발로 오크의 ZOT를 올려찼다. "쿠르르르르르르륵!!!!" 자세를 낮추며 괴로워하는 오크. 역시 어디를 가나 수놈들의 공통적인 약점은 거시기였다. 석진은 틈을 주지 않고 오크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오크의 몸에서 심한 암내가 나긴 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쓰다간 자칫 하면 죽음이었다. "백 바디 드롭!!!" 석진은 오크의 가랑이에 머리를 들이 민 채 그대로 일어섰다. 오크는 그대로 들린 채 나가 떨어져 뒤통수 째 머리를 땅바닥에 찧고야 말았다. 석진이 건 레슬링 기술이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석진은 고교 시절 프로레슬링을 플레이 스테이션2 게임으로 처음 접했다. 그 때 이후로 몰랐던 프로레슬링 엔터테인먼트의 재미를 알아버린 석진은 프로레슬링 방송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보았고 학교에서 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 편에서 벌어지는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급우들을 모두 꺾어 쉬는 시간 프로레슬링의 헤비 웨이트급 챔피언으로 군림했었다. 프로레슬링 기술은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지 모르지만 매트가 아닌 맨 바닥 등에서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석진으로서도 이렇게 제대로 된 기술을 써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끼리 했던 레슬링이래 봐야 킥이나 해머링, 거기에 몇 가지 서브미션 기술과 상대방을 들어서 매치는 기술이 아닌 기술들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서로 다칠까봐 기술 흉내만 낸 것이 다 였다. 어쨌거나 오크를 넉 다운 시킨 석진. 살았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저절로 풀렸다. 그러나……. "크르르르 죽여 버리겠다. 인간" 뒤통수를 쥐어 잡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오크. 석진은 다급히 회칼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회칼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오크도 도끼를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맨손이었다. "맨손 격투인가? 그거라면 나도 자신 있다. 덤벼라 못생긴 고자 오크" "크르르 이 씹어먹을 인간 죽어랏!" 그렇게 오크와 석진의 이종격투기가 벌어졌다. -퍽 "크훗!" 오크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석진.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분명 석진이 싸움은 압도했다. 때리기도 훨씬 많이 때렸고 피하기도 훨씬 많이 피했다. 그러나 오크는 전형적인 힘과 체력을 중시하는 전사 타입의 녀석이었다.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대로 라면 석진은 저 오크 놈에게 피떡이 되어 맞아 죽을 것이다. '크 그래 저거야!' 흐릿해져 가는 석진의 시야에는 이 위기 상황을 파훼 할 수 있는 무기가 들어왔다. 바로 구석기인들의 주무기인 돌멩이였다. 잽싸게 돌멩이를 주워 오크에게 던지는 석진. 운 좋게도 돌멩이는 그 납작한 오크의 콧잔등을 더 낮추었다. -주르륵 오크의 코에서 초록색 물줄기가 두 줄기나 흘러나왔다. 쌍코피였다. "크르르르르로롸롸락!!!" 피를 보자 빡 돌아 버린 오크는 성난 들소처럼 석진 에게 돌격해왔다. "이봐이봐 그렇게 미쳐서 발광할 것까지는 없잖아……으갸앗!!" 진짜로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 대는 쌍코피 터진 오크. 강력해 보이는 펀치이긴 했지만 이성을 잃은 분노의 주먹은 그 얄궂은 인간에게 한 방도 적중되지 않았다. -빡 두개골이 박살나는 경쾌한 파열음이 숲 속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눈에 뵈는 것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오크의 뒤통수를 석진이 정확히 장돌로 갈겨버렸던 것이다. 게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오크. 석진은 방금 전 오크가 흘린 도끼를 찾아왔다. "휴 잘 가거라 멍청한 괴물아." -빡 오크의 머리에 정확히 꽂히는 도끼. 갈라진 오크의 두개골 사이로 오크의 뇌와 뇌수 그리고 녹색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이 두르툰 오크 부족 이름 없는 한 하급 오크 전사의 최후였다. "제법 짭짤한 전리품이로군." 오크는 죽어서 석진에게 많은 아이템을 남겼다. 한 자루의 조잡한 오키쉬 액스와 오크족 가죽 갑옷, 제법 날카로운 오크의 송곳니와 몇 가지 건량들. 게임에서 보면 몬스터 들은 온갖 중무장을 하고 다닌다. 그런데 죽여보면 몇 가지 잡템 만 떨어진다. 겉보기에는 칼에 방패에 갑옷까지 입고 다니는 몬스터 들이 죽었는데 몬스터 들이 착용하고 있던 각종 장비들은 어쩌다 한 번 떨어진다. 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내용이기도 했지만 이 시대가 낳은 게임중독자 석진은 오크에게서 많은 전리품을 얻은 것이 마냥 흐뭇했다. 석진은 회칼로 오크의 시체를 하나 하나 해체했다. 먼저 숲의 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선 냄새는 좀 심하더라도 이 오크 놈의 털가죽이 꼭 필요했다. 오크의 가죽을 다 벗겨낸 석진은 고깃덩이로 변해버린 오크의 시체를 도끼로 토막내었다. 토막 난 부위에서 녹색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지만 피가 녹색이다 보니 그다지 섬뜩하거나 끔찍하지는 않았다. 오크의 고기는 다리 한 짝과 등심만 조금 맛보기로 한 석진. 그런데 불이 없었다. "제기랄 생살인 채로 씹어먹어야 하나? 아니면 부싯돌까지 찾아와야 되나? 이거야 완전히 원시인이로구만?" 돌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석진. 그의 원시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생존의 투쟁 "무 무 무 무 물 물!!!!!!" 석진은 정처 없이 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 떨어진 지 어언 열흘이 다 되어 가는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과일이나 버섯, 풀 등에서 함유된 수분 덕분에 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최근 집 짓느라 나무 베고 돌 줏으러 다니고 과일 따러 다니며 중노동을 하다 보니 안 그래도 여름 날씨에 수분 소모가 매우 심했던 것이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은 있었는지 나무로 만든 집은 조금 조잡하고 찬바람까지 새어 오지만 그럭저럭 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흠 아직까지 살아 있었군 그래" "……!" 석진은 급히 회칼을 숲 속으로 겨누며 두리번거렸다.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은 무슨 그렇다면이야? 이 얼빠진 인간 놈아" 그제 서야 소리가 들리는 음성이 아닌 머리에 떠오르는 텔레파시라는 것을 눈치 챈 석진. 자신을 이 망할 곳에 내다버린 철천지원수 아크라우스 였다. 하지만 석진은 아크라우스가 말을 걸든 시비를 걸든 무시하기로 작정했다. 지금 그에게 닥친 당면과제는 물을 찾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네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느냐? 왜 아무 말이 없어?" '목말라서 말할 기운도 없다. 일본 변태 오타쿠 도마뱀 새끼야' 속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석진. 허나, 석진의 생각을 읽고 말하는 아크라우스가 그것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큭 이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따위가 어디서 감히 이 위대하신 드래곤에게 그 따위 망발을!" 'A ssibal 그럼 여기 와서 죽여봐. 이 게임 중독 된 폐인 드래곤아. 네놈 장난질에 나는 수분 부족으로 이 만리타향에서 말라죽을 것 같단 말이다.' "크흑 말 다했나? 이 미천한 인간?" '입도 뻥긋 안 했다. 바보냐?' "크흐으으" 간신히 화를 삭이는 아크라우스. 수치스럽지만 저 인간 놈에게 부탁할 거리가 있던 아크라우스로 서는 석진의 성질 머리 건드려 봤자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후우 그래 그 쪽 세계에선 살 만한가?" '그딴 건 왜 쳐 물어 SB 지금 목말라서 언데드화 되어 가고 있는 것도 안 보이냐' 아크라우스는 자신이 한 수 접고 숙이고 들어가도 드래곤인 자신에게 반말 짓거리를 계속해서 퍼부어 대는 석진의 고자세에 배알이 꼴렸지만 최대한 진노를 가라앉혔다. "흠 물을 마시지 못한 듯 싶군" '…….' 침묵하는 석진. 긍정의 표시였다. '그래 이거닷! 이걸 이용해서 저놈에게 조건을 거는 거야!' 차원 반대편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 아크라우스 였다. "내가 물 있는 곳을 가르쳐 줄까?" 끄덕 끄덕 석진은 열렬히 목을 위 아래로 끄덕였다. "맨 입으론 안 되지" 석진의 얼굴 낯에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우 E.C……드래곤이나 되는 새끼가 쪼잔 하기는……그래 조건이 뭔데? 얼마면 되겠냐?' "네놈 게임 아이디와 비번" '뭐시여? 이런 잡것이! 뭘 달라 고라? 하루 24시간 중 17시간 동안 무려 730일을 풀로 돌려서 이룩해 놓은 나의 업적을 달라 고라? 개소리 집어치우고 ZOT이나 긁어 10새야!!' -뚝 석진의 욕설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아크라우스의 무언가가 끊어져 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어라? 이 개XX잡놈의 새끼가 감히 나한테 X이나 긁고 있으라고 했냐? 이XX X같은 새끼! 니 XX가 네놈 X빨라고 시켰냐? 이XX끼야? XXX XXXX XX해라 이 미X XX야!!!!!!" 아크라우스의 화려한 욕설난무가 석진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크라우스는 욕을 그다지 많이 알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생명체 중 최강으로 군림하는 드래곤에게 어떤 간덩이에 물 부은 인간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욕설을 퍼붓겠는가? 또한 유희를 즐길 때에도 언제나 아크라우스는 뛰어난 실력자였기에 그에게 험담을 하는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지구로 넘어와 평범하게 살던 아크라우스는 몇 가지 욕을 접해볼 기회가 있었지만 원체 욕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는 욕의 강도가 많이 딸렸다. 그러던 중 한국에 와서 게임 폐인 친구들. 특히 석진이 놈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인가 그 살벌한 욕설이 아크라우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 되어 있었다. 그것이 아크라우스가 이런 화려한 욕설을 내뱉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큭 내 말 잘 들어라. 이 멍청한 인간아! 어차피 너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언젠가는 다시 이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건 너의 착각이다. 설사 제로에 가까운 확률이긴 하지만 네놈이 돌아온다 쳐도 시간의 오차는 엄연히 존재한다. 잘 알고 있을 텐데 1년 동안 한 번도 접속하지 않은 계정은 자동 삭제된다는 것을?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나에게 계정을 넘기고 물을 얻는 것이 너에게 이로울 것이다. 보아하니 갈증이 심한 듯 싶은데, 정말 수분 부족으로 죽고 싶은 것이냐? 무한대의 생명을 버리고?" "크흣!" 석진은 알고 있었다. 두 번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도 그렇게 공들여 키운 캐릭터도 지워져 버린다는 것을……. 석진은 체념했다. "좋아 알려 주지 대신 먼저 물이 어디에 있는지 얘기 해봐" "네놈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쭉 가다 보면 강이 하나 나온다. 그리고 그 숲 속의 나무들 중에서 유독 껍질이 눅눅한 것들이 있는데 그 나무에 구멍을 뚫으면 나무의 수액이 나오지, 한 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할 경우 주전자 한 가득은 나올 것이다." "후우 아이디는 The pedigree 비번은 *******" "크흐흐 그래 고맙군. 그럼 건투를 빌겠다. 인간 잘 살아라" 목적을 이루자마자 대번에 텔레파시를 끊어버리는 아크라우스. 석진은 그런 아크라우스의 행동에 기가 찼지만 곧 강이 있다는 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끼야홋!! 강이다!!!!!!!" 석진은 뒤도 볼 것 없이 강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입에 들어오는 대로 물을 마셨다. "크 쥑인다." 공업화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인지 물은 정말 맑고 깨끗했다. 밑바닥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오염되지 않은 청명한 하천. 지구에서라면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나무가 가리지 않으니 초여름의 뜨거운 햇빛은 그대로 내리쬐었지만 시원한 하천 욕을 즐기고 있는 석진 에게는 그저 젖은 머리를 말려 줄 헤어 드라이에 불과했다. "인생의 행복이 느껴지는 군. 도대체 이게 며칠만에 해 보는 머리감기며 목욕 이다냐?" 폐인 현역 시절 40일 연속 목욕 안 하기 신기록을 세운 적도 있는 석진 이었지만 공부방 에어컨 풀로 돌리는 자신의 방과 잔 벌레 날아다니는 이 숲 속이 같을 리 없었다. 더군다나 매일 하던 세수와 양치까지 열흘 가량 못했으니 몸이 가렵고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대충 머리에 절은 기름기를 없앤 석진. 그러나 도구로만 할 수 있는 양치를 하지 못해 입안에서 단내가 났다. 제법 길어진 손톱으로 이빨을 긁어 대는 석진. 효과가 있을 지 없을 지는 미지수였지만 일단 입안의 기운이 상쾌해 졌는지, 석진은 입안을 물로 헹구었다. "팽~" 코도 한번 풀고. 석진은 대충 씻은 뒤 물가에서 나와 돌 하나를 주웠다. 그리고서는 입고 왔던 가죽 갑옷을 바위 위에 올린 다음 돌로 내리쳤다. 영락없이 조선시대 하천에서 빨래하는 아낙이었다. "뽀그르르르" 석진이 있는 바위에서 4m가량 떨어져 있던 물 속에서 어떤 생물의 호흡이 있었는지 기포가 맺혔다. 석진을 향해 헤엄쳐 오는 검은 그림자. 그러나 석진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로 빨래를 찧었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는 어느 덧 석진의 지척까지 도착해 있었다. "크오오오오옷!!" 갑자기 폭발해 나오는 물줄기.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으로 괴 생명체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거덕 이게 왠 악어냐?" 그랬다. 물 속에서 조용히 석진 에게 접근하던 괴 생명체는 공룡과 함께 파충류의 조상이라는 악어였다. 악어는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빠른 속도로 석진을 덮쳤다. "이런 망할!!" 큰 입을 쫙 벌리고 석진을 물어뜯으려는 악어. 석진은 빨래하던 돌을 악어에게 집어던지고 바위에서 땅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돌멩이에 맞고 잠시 주춤거리던 악어는 뭍으로 도망가려는 석진을 따라 땅에 상륙했다. "젠장 뭔 놈의 악어가 이렇게 빨라?" 악어의 육지 달리기 속도는 의외로 대단했다. 그 짧달 막한 다리로 어떻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석진 이었다. 원래 이런 상황에서라면 숲으로 도망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자 정석이었다. 그러나 도끼며 회칼이며 갑옷이며 죄다 물가에 던져놓았던 석진으로 서는 차마 그것들을 버리고 도망 갈 수 없었다. 계속되는 악어와의 즐거운 술래잡기 놀이. 많이도 뛰었건만 저 망할 놈의 악어는 도무지 포기할 기색이 아니었다. 석진은 회칼이 있는 쪽으로 잽싸게 몸을 날렸다. 일단 가장 가벼운 회칼이라도 들고튀어야 했다. 도끼와 가죽 갑옷이 아깝기는 했지만 저 악어 놈이 먹어 치울리도 없고 누가 주워갈 일도 없을 테니 나중에 악어가 없을 때 몰래 다시 와서 가져가면 될 터였다. 석진은 달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회칼을 주웠다. 그러나 악어는 그 잠시간의 딜레이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퍽 "커헉!!!" 악어의 주둥이에 부딪혀 나가떨어진 석진. 악어는 그런 석진을 한 입에 집어삼킬 심산으로 그 커다란 입을 최대한 벌렸다. "큭 돌이나 쳐 먹어라. 이 빌어먹을 악어새끼." 석진은 악어의 입에 제법 큰돌을 있는 힘껏 던졌다. 돌덩이로 인하여 악어의 이빨 몇 개가 깨져나갔다. "크오오오오오~" 입을 벌리며 괴로워하는 악어. 석진은 그런 악어의 아랫 입에 회칼을 박아 넣었다. 철철 쏟아져 내리는 악어의 피. 석진은 악어의 이빨을 깨부수는 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 돌을 다시 주워 들고 악어의 등짝에 올라탔다. "죽어랏!!!" 돌덩이로 악어의 머리를 갈기는 석진 "죽어라!!" "죽어!!" "뒈져 버렷!!!" 돌로 계속해서 머리를 얻어맞던 악어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물로 도망치려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크오옷 오오옷 크옷!!!" 석진은 어느새 인가 주워온 도끼로 악어의 꼬리를 내리찍었다. 파충류 과의 몇몇 도마뱀들은 위기에 빠졌을 때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고육지책을 썼다. 물론 잘린 꼬리는 다시 자라난다. 하지만 이 고등생물 악어는 여기서 살아나간다 해도 꼼짝없이 꼬리 잘린 장애악어가 되야 할 운명이었다. 석진은 악어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크오오오오오……." 머리에 도끼가 박힌 악어는 두 번 다시 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쿠르르르 대단하다 인간." 악어의 입에서 회칼을 뽑아낸 뒤 한숨 돌리고 있던 석진. 그런 석진에게 세 인영이 세 방향에서 석진을 포위하듯 다가왔다. '이런 지미럴…….' 산 넘어 산이라 더니, 기껏 악어를 패 죽여놨더니, 이제는 또 오크였다. '돌아 버리겠구만…….' 아무래도 아크라우스 놈이 준 반지에 행운이 걸려있다는 소리는 순전히 개 뻥인 듯 싶었다. "무슨 일인가 오크?" 석진은 신세 한탄이 저절로 입에 가득 찼지만 애써 담담하게 대꾸했다. "쿠르륵 여러 말하지 않겠다. 그 악어를 우리에게 넘겨라." 선두에 선 오크가 도끼를 땅바닥에 찍으며 은근슬쩍 석진을 위협했다. '이런 젠장 강도나 다름없군. 악어 가죽이 얼마나 비싼데 이걸 공짜로 먹으려고 해? 그냥 콱 싸워버려?' 무리였다. 오크 한 마리도 치열한 사투 끝에 간신히 잡았는데, 지금 자신을 협박하는 오크들은 무려 세 마리였다. 게다가 한 놈은 제 법 긴칼에다, 투구에, 사슬갑옷, 조잡한 나무 방패까지 든 것으로 보아 다른 오크 놈들과는 격이 틀리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악어 사체를 포기하기엔 악어 가죽과 지금까지 들인 공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리고 악어를 순순히 넘겨 준다해도 저 놈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석진은 마음을 굳혔다. '그래 기습이다. 좀 힘들지는 모르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악어 가죽은 물론이오 플러스 알파로 저 오크 놈이 가지고 있는 갑옷이며 칼이며 투구며 방패까지 얻을 수 있다.' 석진은 도끼를 들어 단단히 무장을 한 오크 놈의 발등을 찍었다. "쿠르르르 이 빌어먹을 인간!!" 다음으로 석진은 바로 몸을 돌려 옆에 있는 오크의 배때기를 회칼로 쑤셨다. "쿠르륵!!" 그리고 당황한 마지막 오크 놈이 도끼를 쥐고 있던 오른손의 동맥을 공격했다. "크르르르르!!" 기습으로 전투력을 약화시켜 놓고 각개 격파하려는 석진의 작전이 1단계는 성공한 듯 싶었다. 그러나……. "쿠르륵 죽어랏 인간!!" 맨 처음 공격을 당했던 중무장을 한 오크는 검을 들고 석진을 공격해 들어왔다. "헉 뭐 이렇게 빨라?" 뻘로 검을 든 것은 아니었는지 중무장 오크의 공격은 빠르고 매서웠다. "쿠르르 죽어버려!!" "쿠르륵." 칼침을 맞고 주춤거렸던 나머지 두 오크도 곧 공격에 가담했다. '제기랄 ZOT됐다.' 이제 석진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한 가지였다. '에라 모르겠다 튀고 보자!!' 석진은 오크의 공격을 피한 뒤 무조건 숲 속을 향해 내달렸다. "쿠르릇 거기 서라!!" 오크 삼형제는 이 일의 원인이 된 악어 시체도 내팽개쳐둔 채 석진을 추격핮기 시작했다. "이 망할 놈의 아크라우스~~~" 자신을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만들어 놓은 아크라우스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는 석진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생존의 투쟁 "헉 헉 헉" 낮은 숨소리. "쿵쾅 쿵쾅 쿵쾅." 쿵쾅대는 발소리. "좀 떨어져라 이 똥파리들아!!!!!" 오크들은 분명히 석진의 공격에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은 어느 놈 하나 뒤쳐지지 않고 지독하게 그를 쫓아왔다. "휘리리릭" "……!" 뭔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석진의 옆으로 도끼 하나가 홱 하니 날아갔다. "이놈들이 이제는 도끼까지 던지네……." "휘리리릭" "휘리릭" 이번에는 도끼 두 자루가 따불로 날아왔다. 다행히도 도끼는 석진을 맞추지 못하고 각각 땅바닥과 나무에 꽂혔다. "제길 그렇다면 나도 맞불 작전이다." 떨어진 도끼를 주워 있는 힘껏 내던지는 석진. 그러나 완력의 차이인지 도끼는 그다지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쫓아오던 오크들이 흠칫 하는 것으로 보아 효과는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선두에서 쫓아오던 오크는 떨어진 도끼를 바로 주워 석진에게 던졌다. -퍽 "크아학!!" 도끼 등에 그대로 등판을 얻어맞은 석진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아무래도 맹약의 반지가 석진 에게 부여하는 행운은 도끼에 얻어맞을 때 날이 아닌 등 쪽으로 얻어맞는 것뿐인 듯 싶었다. "크르르르 이걸로 끝인가 인간? 어디 살려 달라고 벌레처럼 빌어보시지? 쿠오오오오오" 오크 삼형제는 쓰러진 석진을 보며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빌어먹을 여기 까지 인가……?' -휙 "쿠르르르륵!!" 오크 한 마리가 갑자기 고꾸라졌다. 이 의외의 사태에 석진은 물론 오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게 무슨 조화냐?" -휙 "크라라라랏!!" 또 한 마리의 오크가 쓰러졌다. 쓰러진 오크의 목덜미엔 화살이 목을 꿰뚫고 있었다. "쿠르르륵 누구냐? 어서 나와라!!" 마지막 남은 오크가 소리쳤다. -휙 또다시 날아오는 화살. 중무장을 한 오크는 제법 실력이 있는지 들고 있던 나무 방패로 화살을 막아내었다. -드르르르르 한 동안 화살이 날아오지 않는 가 했더니 이제는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뭐야 이건 지진인가?" "쿠르르?" 오크가 서 있던 곳에 갑자기 땅이 솟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오크의 두 다리가 완전히 땅 속에 파묻혀 버렸다. "쿠르륵? 쿠르륵!" 오크는 빠져나가려 몸을 이리저리 바둥거렸다. 그러나 땅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휙 휙 휙 또 다시 날아오는 화살들 그래도 오크는 상반신만큼은 자유로웠는지 방패로 화살을 그럭저럭 잘 막아내었다. 하지만 오크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석진은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오크에게 기습을 가했다. -푹!! "쿠르르르륵" 오크의 옆구리에 정확히 꽂힌 회칼. 석진은 어디에선가 봤던 영화에서 나왔던 살인 강의를 떠올리고 박힌 회칼을 그대로 돌렸다. "쿠룩 쿠르르륵!!" 오크는 서서히 자세를 낮추었다. 석진은 오크의 옆구리에 박혀 있던 회칼을 빼내어 그대로 오크의 목에 박았다. 그리고 조금씩 오크의 목을 베어갔다. -서걱서걱 살이 베어지는 섬뜩한 소리. 오크는 목이 달랑 달랑 한 귀신이 되어버린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다. "휴 살았다." 석진은 한숨을 돌렸다. 오크 삼형제 에게 다구리를 당할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를 구해 준 것은 어디에선가 날아온 정체 불명의 화살이었다. "흠……." 석진은 이 정체 불명의 화살이 누구의 것인지 대충 짐작 할 수 있었다. 석진의 판타지 상식으로 봤을 때, 이런 정확한 활 솜씨에 방금 전 오크의 다리를 묶었던 땅의 조화는 대지 계열 정령 마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였다. '어떤 마음씨 고운 미소녀 엘프님께서 괴물들에게 쫓기는 나를 가엾이 여기시고 구해주신 모양이로군. 히히 역시 이놈의 인기는 사그라 들 줄 모른 다니깐.' 남자 엘프도 있건만 자신을 구해준 엘프를 자신의 외모에 반해 활로써 무지막지한 오크들을 쏴 죽인 미소녀 엘프로 단정하는 석진. 뭐 착각은 자유였다. 석진은 앞머리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색기있는 표정을 짓고서 외쳤다. "누구 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 이제 곧 별 말씀을 요 라고 말하며 그 아름다우신 자태를 드러내실 테지……흐흐흐' 그러나 석진의 망상과는 달리 숲 속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어라 부끄러워서 그냥 가버리셨나?' -휙 그런 석진의 망상에 대답해 주는 것은 한 발의 화살이었다. "아하하하하하하 저기요. 오크는 이미 다 죽었는 뎁쇼?" -휙 이 질문에 답해주는 것도 날아오는 또 한 발의 화살이었다. 이제야 대충 사태를 눈치 챈 석진은 죽어버린 오크의 나무방패를 급히 착용했다. 그리고서는 옆에 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왜, 왜 이러는 겁니까?" "인간이니까……" 드디어 들려오는 목소리. 일단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엔 왜인지 영문을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에……? 뭐라고요?" "인간이니까라고 했다" "으걋!!" 누가 활이 연사력이 떨어진다 했는가? 화살은 그야말로 머신 건이 연사하듯 석진에게 날아왔다. '젠장 이게 도대체 무슨 운명이야? 악어한테 쫓기다 악어 잡아놓으니 오크들이 쫓아오고 이제는 또 엘프라니 이거 아무래도 재수에 옴 붙은 날인 것 같군.' 아직까지는 나무방패로 그럭저럭 잘 막고 있는 석진. 그러나 방금 전 오크에게 사용했던 것 같은 정령마법 따위로 자신의 발을 묶어놓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영락없는 고슴도치가 되어 저기 죽어있는 오크들의 황천길 동무로 전락할 것이다. '내가 먼저 선공을 해야 해. 목소리로 봐서는 정말 여자 엘프 같으니 접근전이라면 나도 딸리지 않는다. 그리고 잘만 하면 부수적으로 총각 딱지도……흐흐흐' 석진은 강간이라는 엄한 상상까지 했다. 안 그래도 몇 달간 욕정을 참은 데다가 판타지 세계라는 사회 설정 자체가 석진의 윤리의식 리미터를 해제시킨 것이었다. 왼손으로는 방패로 화살을 막으며 쓰러진 오크의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석진. 그리고 나서 석진은 방패를 버리고 오크의 시체를 꼭 껴안았다. "우오오오오 돌격이닷!! 오크레인저 제 1호!" 석진은 오크의 시체를 꽉 껴안은 채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돌격했다. 덕분에 이 불쌍한 오크는 죽어서도 석진의 갑옷이 되어 화살 받이 노릇을 해야 했다. "큭!" 활을 쏘던 엘프 여성. 그녀는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저 인간이 오크를 방패막이로 쓰며 진격해 오자 활을 통한 공격이 소용없어 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라면 저 인간에게 근접거리를 허용하는 꼴이 되고 만다. 그녀는 몸을 숨기고 있던 수풀 속에서 뛰쳐나왔다. 자신의 빠른 발로 잽싸게 저 무지막지한 인간의 후방으로 가서 화살을 날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억!?" 맹렬히 돌진하던 석진은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참사를 겪고야 말았다. 그러면서 석진은 순간적으로 오크의 시체를 밀쳐버렸다. 석진의 넘어지는 반동으로 멀리도 밀쳐져 날아가는 오크의 시체, 방패막이가 없어진 석진은 이제 자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크라우스가 준 맹약의 반지에 붙은 행운 덕인지 자신이 놓쳐버린 오크의 시체가 생각지도 못한 호재를 맞게 했다. "꺅~" 석진이 밀치듯 놓쳐버린 오크의 시체는 때 마침 뛰어나오던 엘프를 그대로 덮쳤다. 오크의 무게에 잠시 아둥바둥 거리던 그녀는 곧 징그런 오크의 시체를 밀쳐 내고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앗!! 스피어!!!" 자세를 숙이고 그대로 막 일어서려는 엘프에게 돌격하는 석진. 이 기술은 프로레슬러 골드버그와 라이노가 주로 마지막 기술로 사용하는 스피어로 자세를 낮춘 채 그대로 상대에게 돌진하여 어깨로 상대의 배에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가하는 기술로 기술 자체가 강력한데다 사용하기도 쉬워서 학교 내 프로레슬링처럼 비공식 경기의 피니쉬 기술로 많이 사용되었다. 석진의 억센 어깨에 그대로 아랫배를 부딪힌 그녀는 석진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헉!! 예쁘다!' 석진이 쭈욱 들어왔던 대로 엘프는 엄청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방금 전 맞은 스피어의 영향인지 그네의 크고 맑은 눈망울엔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어 그것이 석진의 정복욕을 불러 일으켰다. -불끈 석진의 하체에 그 무언가가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아니 안 돼! 이런 천상의 아름다움을 내가 오염시켜서는……그래 정신 차려 강간은 안 돼……저 봉긋한 가슴, 매끄러운 다리, 보드라운 살결을……그리고 저 허벅지 사이를……크아악 미치겠네 왜 자꾸 야한 생각만 떠오르냐구!!! 자 자 잊는 거다 다 잊는 거야 무념무상 무념무상……크오오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걸 안 떠올리냐? 내가 고자도 아니고!!! 크 그래 그냥 먹어버리잣!!!!!' 석진은 끝내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에 올라탔다. 그의 코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석진은 개의치 않았다. 석진은 강간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회칼을 그녀의 목에 겨누며 말했다. "감히 날 해치려 들어? 그 대가로 목숨을 받아 마땅하나, 내 특별히 너의 몸을 받겠다. 반항하지 마라"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슬픈 눈으로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로웠지만 이미 욕망의 바다에 깊숙히 빠져버린 석진은 그녀의 웃옷을 회칼로 찢어버린 후, 여체를 탐닉했다.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마구 핥으며 주물러 대는 석진. 그러나 석진은 그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그녀의 하체 쪽으로 손을 옮겼다. 그리고 그녀의 하의를 조금씩 밑으로 밀쳐내었다. 서서히 벗겨지는 그녀의 하의. 석진은 그녀의 둔부를 감상하기 위해 머리를 낮추었다. "흑 흐흐흑" 그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극도의 흥분상태이긴 했지만 이성이 아직 남아 있던 석진은 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과연 이것이 잘하는 짓거리인지……석진은 그녀의 성기를 감상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서글프게 흐느꼈다. 그런 처연한 그녀의 모습에 석진은 욕정이 수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석진은 그녀의 하의를 다시 입혀주었다. 그리고 찢어진 상의도 동여매어 주었다. 그녀는 놀란 듯 했지만 다시 불신의 눈초리로 석진을 쏘아보았다. 석진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만 돌아버렸나 봐요. 차마 그런 상처를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다 제 잘못이에요. 절 용서하지 마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석진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그녀에게 연신 절을 해 대었다. 덕분에 조금 전부터 나던 코피에 이마까지 터졌는지 피가 흘러내려 석진의 얼굴은 그야말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 한동안 적막이 계속되자 석진은 땅에 처박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그녀는 언제 울었다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석진에게 활을 겨누고 있엇다. '헉! 이 독한 여자가 설마 진짜로 날 죽이려고? 이렇게 빌기까지 했는데? 이런 제길 지금이라도 다시 공격을……' 그러나 그녀의 싸늘한 표정에 숨겨진 슬픔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던 석진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절 죽이셔야 화가 풀리신다면 말없이 고이 죽어 드리오리다." -휙 날아오는 화살. 석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제길 진짜 쏘냐? …… '어라? 아플 줄 알았는데 감각이 없네' 석진은 감았던 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한 대의 화살이 자신의 뒤에 있던 나무에 박혀있었다. 그녀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엘프족의 영역, 불법 침입자는 오크든 인간이든 무조건 발포하는 것이 규칙……어서 사라져라 인간" '살았다!!!' 석진은 살았다는 기쁨에 웃음이 절로 서렸지만 애써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괜히 웃으면 다 된 밥에 흙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리라. "저……감사합니다." "……." 그녀는 잽싸게 몸을 돌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휴 살았다. 정말 까탈시런 아가씨로군." 그녀가 사라져 간 쪽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석진은 고개를 돌려 오크들의 시체를 둘러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전리품 하나는 정말 풍성하구만, 빨리 집에다 가져다 놓고 악어시체도 가져와야겠다. 해도 참 길군." 회칼과 오크족 검을 벨트에 차고 오크의 투구와 사슬갑옷을 착용하고 오크들이 입던 가죽 갑옷을 망토처럼 둘러매고, 계속된 도끼질로 날이 상한 자신의 도끼를 버린 뒤, 오크들이 쓰던 중고 도끼 두 자루에 나무 방패까지 들고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하는 석진. 무겁고 더워 매우 고생스러웠지만 풍성한 전리품에 마음만은 가벼웠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생존의 투쟁 -쏴아아아 숲 속에 폭우가 내렸다. 폭우가 쏟아지자 석진도 아침부터 개고생 이었다. 지붕 쪽은 비가 안 새게 제법 꼼꼼히 설계해 놓아서 한 두 방울밖에 비가 새지 않았지만 멍청하게도 흙탕물 설계를 빼먹었더니 악어가죽 장판으로 자꾸만 물이 스며들었다. 석진의 집은 참 조잡했다. 톱이나 대패 따위가 없으니 대충 나무 몇 개를 자른 뒤 회칼로 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아 땅에다 박아놓았다. 나무를 양 방향에 박아 대략 1평 반 정도의 공간이 나무삼각형 안에 생겼다. 거기에 나무 끝이 맞닿은 곳에 오크의 껍데기 가죽을 올려놓으니 대충 빗방울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못이 없어 맞대어 놓은 나무가 계속 쓰러지자 석진은 나무를 최대한 깊숙이 박았고, 덕분에 않거나 누워 자는 것 외에는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집이었다. 집이 아니라 무슨 토끼 굴이라고 해야되나? 석진은 이 집 같지 않은 집을 보고 자신이 어릴 적 기어서 통과하던 배수로 관이 떠올랐다. "으아 심심해 죽겠네." 석진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폭우가 쏟아져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딱히 놀 거리도 없고 가만히 누워서 뒹굴자니 뒹굴 자리가 좁고. 물론 평소에도 그다지 할 일은 없었다. 과일 따오고 버섯 때먹다가 정 심심타 싶으면 나무에 대고 레슬링 기술이나 연마하던 석진의 일과. 그러나 이 좁은 공간과 빗줄기는 그에게 지루함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아크라우스 하고나 놀아볼까?" 석진은 아크라우스를 떠올렸다. 분명 저쪽에서도 말을 걸 수 있으니 이쪽에서도 먼저 말을 걸 수 있을 테지. "야 아크라우스! 뭐하냐?" …… 아무 응답이 없었다. "야 아크라우스 너 뭐하냐고?" …… "야 임마 아크라우스 너 지금 나 쌩 까냐?" …… 역시 아무런 응답도 오지 않았다. "이런 지미럴 지놈은 내 생각을 고스란히 읽으면서 내가 먼저 그 쪽에 말을 걸 수는 없게 만들어 논건가? 이 망할 똥 멍청이 드래곤 같으니. 날 이렇게 재미없는 곳에 처박아 놨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냐!!" 석진은 아크라우스를 향해 온갖 욕설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자신을 무시하고 있더라도 이렇게 난리 발광에 욕까지 해대면 차마 고놈 성질머리에 가만히 참고 있지는 못할 터였다. …… 그러나 여전히 아무 응답도 없었다. 자포자기한 석진은 허리춤에서 회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왼손을 쫙 폈다. -휙 탁 휙 탁 휙 탁 휙 탁 휙 탁 회칼이 석진의 다섯 손가락 사이를 왕복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손가락이 잘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놀이. 하지만 이런 위험한 놀이를 할만큼 석진은 심심했다. 천천히 왕복하던 회칼은 점점 가속을 붙여가며 석진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오갔다. -콱! "헉 위험했다.!!" 운 좋게도 아크라우스의 맹약에 반지를 찍은 회칼 이렇게 되자 석진도 경각심이 들었다. '에이 별일 있겠나 쫌만 더하자. 라스트 초 필살 스피드!' "아다다다닷!!!!" 회칼은 빠른 속도로 석진의 손가락 사이를 왕복했다. "흐엑!!" 결국 석진은 우려했던 대로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약간 빗겨 맞아 베인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아이고 죽겄네" 석진은 공간도 좁은 자신의 집에서 손가락을 움켜쥐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굴렀다. 그 결과 이곳저곳에 몸을 부딪혔지만 손가락 출혈 덕분에 석진은 충돌의 아픔 따윈 느끼지 못했다. "……한심하군. 할 짓이 없어서 자해를 하나?" "……!" 석진은 어디서 들려왔는지 모를 소리를 찾아 비오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빗소리 밖에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벌써 이번이 몇 번째냐? 이제 익숙해 질 만도 하지 않았나? 이 멍청한 인간 놈아." 그제 서야 석진은 이 목소리가 아크라우스란 것을 눈치 채었다. "야 인마 언제부터 불러댔는데 이제서야 대답 하냐?" 아크라우스에게 책임을 묻는 석진. 그러나 그의 목소리엔 반가움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흥 네놈이 날 불러 봤자. 나는 네놈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맹약의 반지는 내가 원했을 때만 맹약자와 나의 의식을 이어주지, 그러므로 맹약자는 자신의 임의대로 나와 연결 할 수가 없다. 단 맹약자가 신체적 타격을 받을 경우 그 맹약의 반지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나는 그 신호를 보고 맹약자의 의식을 읽어 맹약자 에게 그 위기 상황을 파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뭐야 이런 불공평한 상황은? 그리고 나는 벌써 몇 번에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구. 그런데 왜 너는 그때마다 조언 같은 것을 해 주지 않은 거냐?" 석진은 입을 삐쭉 내민 채 아크라우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크흣 살펴보니 그때마다 상황이 급박하더군. 그런 상황에서는 괜히 말을 걸어 너의 정신을 흐트려 놓는 것보다 그냥 맹약의 반지가 부여한 행운에 몸을 맡기는 것이 현명하지, 그리고 맹약의 반지가 부여하는 행운을 뛰어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단 1회! 맹약의 반지가 나의 힘을 이끌어 내어 맹약자를 보호한다. 게다가 네놈은 내가 너의 의식을 읽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나? 그렇기에 나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너의 의식을 굳이 읽지 않는다. 다 너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는 이 아크라우스님의 자비로 알아라. 크크크 아! 그 엘프 계집과는 재미 잘 봤나?" 그때의 일이 생각난 석진은 그 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큭 무 무슨……그나저나 이번엔 왜 말을 건 거냐?" "네 녀석이 다쳤다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봤더니 네놈이 어찌나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지 어이가 없어 한 마디 했다." "아 맞아! 그러고 보니." 다행히도 아크라우스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석진의 손가락에 난 상처는 서서히 딱지가 굳어가고 있었다. "흠 대충 나은 듯 싶군. 그럼 난 이만." "엇 잠깐!" 석진은 다급하게 아크라우스를 불렀다. "뭔 할말이 또 남았나?" "놀아 줘~" 의외의 말이었는지 아크라우스는 약간 놀란 말투로 대꾸했다. "뭐라고?" "놀자고. 여긴 너무 할 짓거리가 없어서 심심하다. 게임도 못하고 TV도 못 보고 만화책도 못보고……날 이곳으로 보낸 놈이 너니까 네놈이 놀아 줘 이대로는 너무나 지루해 못 참겠다구!!" 아크라우스는 그런 석진을 대략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자신도 13000여년의 세월 동안 그러한 지루함과 삶의 권태를 너무나도 뼈아프게 경험했었다. 물론 이 지구에서의 새로운 유희를 즐기며 그런 지루함을 느껴 본지 제법 오래 되었지만 자신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것은 다 할 수 있는 드래곤. 그러나 인간인 석진이 놈은 달랐다. 볼거리 많고 할 거리 많은 세계에서 변변찮은 놀잇감도 없고 게다가 친구도 하나 없는 저 만리타향에서 죽지도 않으니 석진의 권태감은 가면 갈수록 심해질 터였다. 물론 당분간은 그 쪽 세계에서의 체험이 이것저것 재미있겠지만 100년, 200년, 천년이 지나고 만년이 지나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먼저 떠나 보내고 혼자 남을 석진의 공허함, 외로움은 누구도 달래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아크라우스는 오늘의 레벨 업 계획을 포기하고 석진과 놀아주기로 결심했다. "좋다 내가 놀아주지." "그으래? 정말 고맙다 아크라우스." 석진은 정말 진심으로 아크라우스에게 고마워하며 평소 생각하기에 궁금했던 점을 아크라우스에게 물었다. "아크라우스 너 내 모습으로 변해 있다고 했지?" "그렇다." "그럼 지금 군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랬다. 분명 아크라우스는 자신이 석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했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계정을 알려 달라기에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석진은 계속해서 의문을 품어왔었다. "훗 내가 처음으로 창조해 낸 실리콘 골렘에 환영마법을 걸어 내 대신 입대시켰다. 실리콘이란 것 정말 인간의 살 감촉과 비슷하더군." "실리콘 골렘? 뭐야 그 유치뽕짝한 이름은?" "크으 네놈은 게임도 많이 했으면서 골렘의 분류기준도 모르나? 나무는 우든 골렘, 돌은 스톤 골렘, 철은 아이언 골렘, 얼음은 아이스 골렘 그러니 실리콘으로 만든 골렘은 실리콘 골렘이지 뭐겠느냐?" 석진은 아크라우스의 화려한 작명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길드 현황은 어떠냐? 쥬렌 요새 먹었어?" "글세 그저 그렇다. 쥬렌 요새는 먹었는데, 쥬렌 먹은 뒤 너무 그쪽에다 신경을 쓰는 바람에 아쉽게도 루아켄 성을 뺐겼다. 쥬렌이 방어 면에서는 탁월하고 고렙 사냥터가 근처에 많긴 하지만 교통의 요지인 루아켄이 세금만큼은 많이 나왔는데……게다가 용병 고용에 성벽 보수, 마을 투자, 세금 조율까지 새로 해야 되다 보니 재정에 압박을 받아서 상규 형님께서 또 한탕 하러 뜨셨다." "크 애들 좀 그만 벗겨먹으라고 해." "그래도 형님 덕분에 최고 부자 길드로 이름이 나 있잖은가?" 박상규 선생. 그는 게임 상에서 탑 랭커 89위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그 정도라면 높긴 해도 탑 랭커 8위의 장천의 캐릭터나 랭커 21위의 석진. 그리고 랭커 5위권 안에 들어있는 각 성의 길드 마스터들에게는 매우 딸리는 수치였다. 그런데 1위 랭커의 캐릭터와 상규 형님이 1대 1 대련을 하면 언제나 승자는 상규 형님이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거기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랭킹 100위권 안의 경우 석진이나 장천처럼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려야 그나마 100위안을 노릴 수 있는데 반해 상규 형님은 이것저것 일이 많기에 그저 재미로 한 4~5시간 플레이 할 뿐인데도 랭킹 100위안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89위 랭커가 게임을 하루에 네 다섯 시간만 하고 어떻게 89위 랭커가 하늘과 땅 차이의 1위 랭커를 이긴단 말인가? 해답은 바로 아이템 빨 이었다. 물론 랭킹 1위의 길드 마스터 정도 되면 아이템이 절대 딸리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상규 형님의 아이템은 언제나 게임 내 최강을 자랑했다. 유저 들은 그런 상규 형님을 엄청 운이 좋은 사람 혹은 엄청난 갑부가 현금거래로 아이템을 맞췄겠지 라고 들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속사정을 보면 정말 뒤로 자빠질 만한 사연이 숨어 있었는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생존의 투쟁 몇 년 전 박상규 선생은 매우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 때가 두 번째 학교로 발령이 나 첫 번째로 담임교사를 맡았던 때였는데, 학교 학생 놈들이 공부는 할 생각도 않고 거의 대부분 게임에 빠져 폐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다 보니 당연히 학교에는 지각하고 수업시간에는 맨날 엎드려 자고 자율학습 시간마다 땡땡이 치고 PC방들 놀러가고, 컴퓨터 수업 때마다 게임 창 띄워놓고, 모의고사 성적은 계속 곤두박질 치고, 심지어 현 거래 사기까지 쳐 대는 학생 놈들의 실태에 박 선생은 경찰서를 한 두 번 들락거린 것이 아니었다. 참다 못한 박 선생은 학교에서 온라인 게임을 뿌리 뽑아 버리기로 작정하고 먼저 정보를 얻기 위해 학생들의 8~90%가 한다는 게임에 회원가입 했다. 그리고 박 선생은 미끼를 던졌다. 수업시간 중 10여분을 할애하여 '나 그 게임 시작했으니 그 게임에 대한 얘기 좀 해 보자'라며 학생들을 선동했다. 그 10분 동안만큼은 퍼 자는 놈이며 딴 짓거리하고 떠들던 놈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각자 떠들어대어 그 시간만큼은 교실이 언제나 활기로 넘쳤다. 이런 식으로 학생 놈들의 아이디나 레벨, 재산의 정도, 주로 많이 하는 서버 등의 정보를 수집한 박 선생. 그는 자신의 학교뿐만 아니라 그 주변 학교들이 대부분 한 서버에 9할 정도가 몰려 있는 것을 알아내고 그 서버에서 게임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박 선생의 시커먼 속도 모른 채.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게임을 한다는 동지의식과 유대감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박상규 선생을 키워 주었다. 그러나 박 선생의 레벨이 점점 올라가면서 그는 서서히 숨겨 놓았던 발톱을 드러내었다. 사제지간이라는 관계를 이용 학생들의 아이템과 돈을 갈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내에서, 그리고 게임 상에서 매번 아이템을 내놓으라고 들들 볶는 박 선생. 심지어 학생들의 체벌까지도 전부 게임 아이템이나 돈으로 받아가며 학생들의 게임 상 재정을 말라붙게 했다. 이에 학생들은 단체로 박 선생의 귓말을 수신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모두 박 선생에게 불려가 극악의 3시간 상담신공에 하나 하나 굴복해 박상규 선생에게 아이템을 넘겼다. 그 결과 학생들은 게임 내 아이템을 모두 털리고 게임을 접거나 접속시간을 줄이게 되었다. 괜히 박 선생의 접속시간에 게임에 접속했다간 아이템을 털리거나 아이템이 없으면 성직자 캐릭터 등으로 무보수 무 경험치의 박 선생 캐릭터 보조를 해 줘야 했으니 박 선생을 슬슬 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이들은 박 선생의 접속시간을 피해 야간활동을 주로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상규 선생은 '나 하나 폐인이 되어 아이들을 구제 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폐인이 되겠노라' 라는 신념으로 밤에 잠도 안 자고 학생들을 들들 볶았다. 물론 생업이 있는지라 밤을 새지 못하는 날에는 부인이 운영하는 PC방 알바생 에게 자신의 대행을 맡기기도 했다. 이 알바생 녀석은 어찌나 악독했던지 학생 녀석들이 기를 쓰고 지키려해 박 선생도 차마 뜯어내지 못했던 유니크며 레어 아이템들을 학생들로부터 잔뜩 뜯어내었다. 아이템을 빼앗기고 게임에 접속할 때마다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 그들은 더 이상 박 선생의 횡포에 참지 못하고 학교 홈페이지를 비롯 인터넷에 박 선생의 비리를 낱낱이 올렸고 박 선생은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알게 된 동료 교사들과 학부형들이 박상규 선생의 폐인 탄압 정책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며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교직원들은 말똥말똥하고 활기차게 된 수업에, 학부형들은 게임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게임 하는 시간을 스스로 줄이고 그 줄인 시간에 조금이나마 공부를 하는 모습에 흐뭇했던 것이다. 열심히 사냥하다 운 좋게 떨어지거나 열심히 재료를 모아 만든 아이템들을 뺏기고 게임 접속 시간마다 자기수련(레벨 업)을 못하자 학생들은 게임에 대한 재미를 잃고 하나 둘 씩 게임을 접었다. 물론 박 선생은 아이들이 게임을 접을 경우, 미련을 같지 않게 하기 위하여 떠나는 아이들의 아이템도 모조리 받아내었다. 이 박 선생의 '폐인 탄압 정책'은 대 성공을 거두었다. 폐인 아이들 중 6할을 게임을 접게 했고 3할의 게임 접속 시간을 대폭 줄이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던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컸다. 학교 성적과 입시생들의 일류대 합격률 비약적으로 높아져 박 선생이 근무하는 학교는 어느덧 사람들의 입에 명문고교로 오르락 거렸다. 그리고 박상규 선생은 이 '폐인 탄압'으로 엄청난 자본금을 얻은 데다, 뛰어난 상거래 술로 그 많은 돈을 더욱 불려 어느덧 게임 내 최고 부자가 되었다. 거기다 그 재력으로 맞춘 엄청난 아이템들과 균등 파티가 아닌 학생들의 일방적인 보조를 받아가며 어느새 랭킹 89위에 한 성의 길드 마스터로 우뚝 선 것이다. "요즘에는 모진 탄압으로 많이 들 폐인계를 떠난 재학생 녀석들보다는 형 따라 선배 따라 중학교 때부터 게임을 시작해 올라온 신입생들 것을 뺐는다고 하더군. 벌써 게임 포기율이 40%에 육박했댄다." "정말 대단 하시다니깐." 석진과 장천 그리고 동훈은 박 상규 선생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학교에 다녔었다. 거리가 가깝다 보니 이것저것 비교 당할 것도 맞붙는 것도 많았다. 석진과 장천도 게임 상에서 그 학교와 몇 번 단체전으로 붙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 쪽 학교에 알고 있던 게임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씩 게임을 접고, 그 학교 성적도 석진의 학교와 엇 비슷하던 것이 갑자기 뛰어올라 선생들이 석진들을 얼마나 갈구어 댔는지 몰랐다. 만약 석진이 상규 형님의 학교에 다녔다면 지금의 석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음 최북단 필드와 얼음 도시가 업데이트 됐다. 그리고 새로운 랭킹 갱신에서 태모와 정훈이 놈이 각각 40위 44위에 랭크 됐고 나는 7계단 뛰어오른 53위 너는 한 계단 떨어진 22위 장천과 상규 형님은 그대로고 용준이 녀석이 처음으로 랭킹 100위안에 들었다 99위." 태모와 정훈은 고교 2년생으로 박상규 선생 슬하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박 선생의 그 모진 탄압을 이겨내고 꿋꿋이 캐릭을 키워 랭킹이 100위권 안에 들자 박상규 선생에게 엄청난 레어 아이템을 헌납하고 길드에 덤태기 쓴 녀석들이었다. "이봐 내 캐릭도 좀 키우라고 랭킹이 22위나 되는 캐릭인데 썩혀두기 아깝잖아!" "흠 너는 군대 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게임 상에서 돌아다닌단 말이냐?……아 그러고 보니 국방부에서 앞으로 2년 안에 모든 군부대에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PC방을 설치해 놓기로 했더군. 좋다 내가 친히 키워주지 어차피 난 한 500년 동안 잠을 안 자더라도 몸에는 전혀 무리가 없으니 쨤을 내서 조금씩 키워주도록 하마 대신 10풀 플레이트는 나에게 넘겨라." "그려 뭐 네가 내 캐릭 가지고 무슨 짓거리를 하든 내가 뭘 하것냐? 맘대로 해." 문득 석진은 아크라우스의 말에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꼬집어 내어 물었다. "저 그런데 아크라우스 어째서 너도 상규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냐? 넌 13000살이나 먹은 노룡이라며?" "……무라카미로 살다보니 입에 붙은 모양이군. 이상한가?" 아크라우스는 석진의 지적에 문득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다. 그는 이곳으로 와서 지금가지 한 번도 본체로 현신한 적이 없었고 또한 자신과 같이 엄청난 삶을 사는 드래곤들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계속해서 인간의 모습으로만 2000여 년을 살아왔고 그래서 어느덧 자신을 인간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크라우스는 심각한 고찰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 아크라우스." "음?" "끝말잇기나 할까?" "크훗 네놈도 어지간히 심심했던 모양이로구나. 나 같은 위대한 드래곤께서 너와 같은 하등한 인간인 줄 아느냐? 머리 쓰는 일이라면 네놈은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한다. 내 백전 백승을 장담한다." "오호라 그렇다면 이 하등한 인간한테 한 번이라도 지면 네 녀석은 더 하등한 드래곤이 되는 건가?"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먼저 시작해라!"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끝말잇기. 그러나 말로만 서로와 의사소통을 가질 수 있는 그들로서는 그나마 할 만한 놀이였다. 먼저 석진이 시작했다. "포도." 석진이 이 곳 세상에서 가장 자주 먹는 과일이었다. "도자기!" "기름!" 석진은 결정타를 날렸다. "름?……이런 젠장 빌어먹을……드래곤인 내가 하등한 인간 따위에게 지고 말다니……." "푸헤헤헤 백전 백승? 그건 나한테나 해당하는 거 아냐?" 아크라우스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 그래. 졌다! 패배를 인정하지. 그러나 이번부터는 절대 봐주지 않으마……물파스!" 모기에 물린 곳을 긁던 아크라우스가 바로 떠올린 단어였다. 물파스란 단어를 들은 석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 "츠? 츠……크아악 이런 망할 놈의 자식이 이따위 단어만!!! 크르르.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콧대를 눌러주마!!" 투지에 불타는 아크라우스 그러나…… "장가!" "가창력!" "큭 또 지다니" 그 다음 번에도…… "퇴비!" "비듬!" "듬……? 크아아악!!" 그 다음에 다음에도…… "병원!" "원고료!" "……." 또 그 다음에도…… "바지!" "지뢰!" "뢰……" 결과는 아크라우스의 장담과는 달리 계속해서 아크라우스가 패배하고 있었다. 결국 참다 못한 아크라우스는 석진에게 따졌다. "네놈……. 무슨 그 따위 ZOT같은 단어만 알고 있는 것이냐?" "훗 끝말잇기의 황제에게 겨우 그 정도로 도전하다니 국어 사전 좀 더 찢어먹고 오너라." "내 반드시 네놈을 백전 백패로 꺾어 실추된 드래곤의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으리." 스무 살 가량의 애송이와 만 삼 천 세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의 끝말잇기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흐미 찌는 구만 쪄" 며칠 간 내리던 비가 그치자 따스한 햇빛이 내리 비췄다. 하지만 비의 영향인지 습도가 매우 높아져 연일 불쾌지수 높은 짜증나는 날씨가 지속되었다. 더욱이 그늘이 있는 숲 속과는 달리 주변의 나무를 모두 베어내 지은 석진의 집 쪽 공터엔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데다가 빗물과 땀 등을 머금은 가죽들이 심하게 역겨운 냄새를 냈기에 석진은 집을 포기하고 나무 그늘 밑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 그늘 밑도 그다지 살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공해가 심하지 않아서 몇 없겠거니 했던 모기들이 밤낮 물어댐은 물론이요. 낮잠 좀 잘라치면 파리들이 석진의 몸 위에 앉아서 난리 부르스를 치는 바람에 신경 쓰여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거기다 설욕전이랍시고 시도 때도 없이 아크라우스가 말을 걸어 끝말잇기를 하는 바람에 밤잠도 설쳤다. 사실 아크라우스와 노는 것 외에는 특별히 할 일도 없던 석진이었지만 끝말잇기도 서로 밀고 당기며 아슬아슬해야 재미가 있지 상대가 너무 상대가 안 되니 무슨 재미가 나겠는가? 물론 처음에야 계속 이기는 데다가 아크라우스의 그 높은 콧대도 꺾어놓아 절로 신명이 났지만 가면 갈수록 너무나도 허무하게 승수가 쌓이자 한 방 단어 찬스에서 일부러 다른 단어를 대거나 몇 가지 한 방 단어들을 금지단어로 지정해 놓으며 봐주면서 게임을 해도 아크라우스는 석진에게 열 번을 채 이기지 못했다. 아크라우스는 어쩌다 한 번 씩 이길 때마다 월드컵 연장전에서 골든 골이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성을 질러댔고 그 승리의 기쁨과 반드시 석진을 꺾겠다는 호승심으로 밤낮 없이 석진에게 도전해 왔다. 그러다 어젯밤 드디어 3120전 만에 10승을 거두고 감격해서는 드래곤 피어를 쩌렁쩌렁 울부짖었다. 그리하여 아크라우스의 집을 비롯한 그 반경 3km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 8명의 사망자와 135명의 부상자 그리고 싯가 230억원 어치의 유리가 깨져 유리 제작 회사는 뜻밖에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다 만약 아크라우스가 석진에게 100승을 거두게 되는 날이 온다면 대한민국의 반절이 날아가 버린다고 해도 농담으로 웃어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석진의 불면증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엄청난 땀의 배출로 인한 자기 몸에서 나는 암내였다. 원체 석진은 암내 같은 것에 내성이 강했다. 몇 년간의 폐인생활로 인해 안 씻고 옷 안 갈아입는 것에 이미 만성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익숙하다 해도 그냥 익숙한 것이지 참아내기에 좋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거기에 더운 날씨 등, 위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 석진의 발걸음을 강가로 향하게 하고 있었다. 그늘이라 그다지 더운 온도가 아니었음에도 비오듯 땀방울을 흘리는 석진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가죽이란 가죽은 다 짊어지고 걸어가는 것이라 제법 운동이 되고 있었다.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하천에 도착한 석진은 가죽들을 숲 속에 내려놓고 수풀 속에서 오크나 그 따위 것들이 없는지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석진의 두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꿀꺽…… 석진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꺄 언니 그만해" "안돼. 먼저 물 뿌린 건. 너잖아!" 몸매의 볼륨은 완숙하지만 앳되어 보이는 옅은 금발 미소녀 엘프와 마찬가지로 옅은 금발에 열 서너 살 정도의 볼륨을 가진 앙증맞은 소녀 엘프. 그리고 연두 빛 머리에 대 여섯 살 가량으로 보이는 꼬마 엘프가 서로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 것도 안 입고!!!!!!!' 멱 감으러 왔다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게임마다 한 번쯤은 꼭 나오는 남자의 로망! '미소녀 목욕장면 훔쳐보기'란 발딱 서는 경험을 석진은 운 좋게도 직접 체험 할 수 있었다. '캬 죽이는 구만……가만 있자 저 엘프는 낯이 익은데……?헉! 그때 그 표독스런 여자 엘프잖아!!' 그랬다 멱 감고 있던 엘프들 중 가장 성숙해 보이는 엘프는 석진이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었던 바로 그 피해자 엘프였다. 그 때는 그 싸늘한 표정 때문에 독한 여자 같았는데 빙긋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는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불끈 -주르르륵 극도의 흥분을 받았다는 몸의 증거가 석진에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 뒤에는 마땅히 미연시의 법칙에 의거, 아래의 사례들이 나타나게 된다. 미연시의 법칙 하나 만약 주인공이 여성의 목욕장면을 훔쳐 보다 들킬 경우 여성들은 대체로 두 가지의 반응을 나타낸다. 1.같이 목욕을 한다.(주로 가슴으로 등 밀어주기, 남 주인공을 남자로 인식하지 않은 채 각종 대담한 행동하기, 결정타로 일명 H한 짓 하기 등이 부수적으로 나타난다) 주로 19금물에서 자주 나오는 반응이다. 2.남 주인공 개 피 보는 사태(여러 명의 경우 다구리, 호감도 하락, 태도 돌변 등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때때로 남 주인공을 죽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Game Over라는 아주 슬프고도 애잔한 문구가 뜬다) 즐감하고 있는 석진 그런데 그 때 석진이 숨어 있는 수풀 쪽을 꼬마 엘프가 보고는 조그마한 손으로 물장난에 여념이 없는 언니들을 건드렸다. 갑자기 싸늘해지는 그녀들의 분위기 그러나 석진은 그 이상기후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리고…… -드드드드드드드드드 "……!" 갑자기 석진이 있던 땅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무를 꼭 붙드는 석진. 그러자 땅바닥에서는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돌기둥들이 석진에게 X침을 먹이려 솟아오르고 있었다. "헉 이 이게 뭐얏!!" 이곳저곳에서 솟아오르는 돌기둥, 석진은 돌기둥을 피하기 위해 하천 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아 하하하하하하 무 물가에 손님들이 무척 많군요." 석진은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딴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변태!" "……저질!" 그녀들은 경멸의 표정으로 석진에게 한 마디씩을 내 뱉으며 그를 척살키 위해 마나를 끌어 모았다. "워터 애로우!!" 하천의 물이 갑자기 몇 가지 물줄기로 변하여 석진의 전신을 강타했다. 강력한 물줄기가 그의 뼈를 바스러뜨렸다. 몸이 산산 조각나는 것에 정신을 잃어가며 석진은 중얼거렸다. '오 신이시여 제발 절 구원하여 주소서' 그러나 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Game Over! 흐트러져 가는 석진의 시야에는 Game over라는 검은 화면이 들어와 박히는 듯 했다. "괜찮을까? 언니" "뭐 양팔과 다리 그리고 갈비뼈 쪽에 뼈가 몇 대 나갔겠지만 목이나 내장기관 쪽은 건드리지 않았으니 당장 죽지는 않겠지 하지만 거동을 못할 테니 곧 엘리게이터나 오우거, 오크들의 맛있는 먹이가 될 테지." "에엑! 그건 너무 심하잖아?" "어차피 저놈은 인간이야 생째로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내 손으로 직접 목숨을 거두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비를 베풀었어……그만 가자 루리엘, 리에나도 이리 오렴." "웅" 그녀들은 넝마가 된 석진을 뒤로하고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어나라 이 또라이 같은 인간 놈아' '……아크……라우스?' 석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석진은 자신의 몸을 일으키려 했다. "끄아아악!!!" 엄청난 통증이 엄습해 왔다. 이미 그의 팔과 다리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거기에 옆구리는 마치 칼로 쑤시는 듯이 쑤셔댔다. "쿨럭!!" 쏟아져 나오는 죽은 피. 아마 갈비뼈가 나가면서 폐 따위를 찌른 모양이다. '이대로 죽는 건가? 참 허망하군……오크들과 싸우다 죽느니만 못하네' "미친 놈! 죽기는! 네놈의 부상은 한 달만 그대로 누워서 정양한다면 인체의 자연 치유력으로 알아서 나을 거다." "어라 아크라우스? 그렇다니 다행이네 헤헤 나 안 죽는 거구나" 석진은 희미한 미소를 띄었다. 그래 살 수 있단 말이지? 조금은 고통스럽지만 충분히 살 수 있다고? "그렇지 다만 지속적인 음식 공급과 괴물들의 습격만 없다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을 거다." "우쒸 장난? 거동도 못하는데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해오고 몬스터를 피해?" "몬스터는 네 녀석이 죽은 척 하고 가만히 있으면 건드리지는 않을 거다. 뭐 시체를 파먹는 구울 따위라면 모르겠지만." 석진은 한숨을 내 쉬었다. 한 마디로 아크라우스의 말은 너는 얼마안가 굶어 죽는다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大자로 뻗어 있는 석진의 눈에는 짙은 밤하늘이 들어왔다. 서울에서라면 결코 보기 힘든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하늘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별 하나의 사랑과……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석진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한글 타자 연습의 별 헤는 밤을 떠올리고 읊었다. 군데군데 틀리기도 많이 틀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외우는 것을 보아하니 제법 그가 좋아하는 시 인 듯 했다. "다 죽어 가는 마당에 그 무슨 지지리 궁상이냐?" "감수성 없는 녀석! 너는 저 많은 별을 보고도 그 따위 생각뿐이냐?" "별? 개뿔! 여긴 낮이다 이놈아!" "윤동주 시인의 시를 궁상이라 표현하다니 네 녀석 대가리도 알 만 하다. 그러니 끝말잇기도 3000패나 하지." "흠 윤동주라면 나도 알고 있던 자다. 일제시대 때 당시에 조선의 시인이었다지?" "흠 역사 공부는 제대로 한 모양이군." 아크라우스는 역사 공부라는 석진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했다. "역사 공부? 훗 웃기는 군. 나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인데 무슨 공부를 한단 말이냐?" "살아 있는 역사?" "그래 네놈은 까먹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나는 2000여년을 이곳에서 살아온 드래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일 저 일 다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지." 석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네놈은 몸뚱아리는 만신창이가 다 됐어도 입 하나는 살아있구나." "후 안 그래도 지금의 나는 오감과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잖아 몸을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가 없으니." 그러던 석진은 뭔가가 떠오른 듯 아크라우스에게 외쳤다. "잠깐! 내가 절체 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분명 이 반지가 반응을 해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행운을 주거나 행운으로 상쇄할 수가 없는 악운이 닥치면 네 녀석의 힘을 끌어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냐?" "흠……그렇지" "그런데 나는 지금 왜 요 모양 요 꼴인 거냐? 혹시 이 반지 불량품?" "불량품은 무쉰! 아마 네 녀석의 상황이 죽을 상황이 아니었던 모양이지. 네놈이 살아 있는 걸 보면 모르겠냐? 내가 보기엔 그 엘프 계집이 일부러 네놈의 다리와 팔만 부러뜨려 놓은 것 같다. 굳이 널 죽일 생각은 없었나 보군" "하……그런 거였……냐?" "그리고 실상 이 상황도 네놈이 자초한 것 아니냐? 아무리 계집에 굶주려 있다고는 해도 적당히 훔쳐보고 자리를 뜨던지 아니면 어스 스파이크가 널 공격해 올 때 숲으로 냅다 튀면 이런 상황까지 벌어졌겠냐? 다 네놈이 멍청한 탓인 것을 어디서 반지에 죄를 덤태기 씌우냐? 엉?" "……." 아크라우스의 반박은 무엇 하나 틀린 것이 없었기에 석진은 가만히 찌그러져 있었다. 그러던 차였다. 고요한 하천 가에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큭 이런 망할' "왜 그러는 것이냐?" 석진은 발자국 소리를 최대한 주의 깊게 들으며 아크라우스에게 할 말을 머리속으로 떠올렸다. '뭔가 나타났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흠 느껴지는 적은 한 놈인 것 같군." '소리 내지마!' 석진의 마음 속 외침에 아크라우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뭐? 소리? 네놈은 내 말소리가 들리냐? 이런 또라이 같은 녀석." '그래 미안하다. 대신 좀 닥쳐 주려무나 신경 쓰인다.' "뭣이!!!! 닥치라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아크라우스. 그러다 자신이 조용히 있는 것이 석진에게 도움이 될 듯 싶었는지 알아서 닥쳐주었다. -저벅저벅 의문의 발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를 내는 자가 석진에게 점점 근접해 온다는 증거였다. '누구지? 오크? 오우거? 설마 진짜로 구울은 아니겠지? 나 죽었으니 제발 그냥 지나가!!!' 발자국 소리는 석진의 지척에서 뚝 하고 끊겼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석진의 부러진 팔을 만져대었다. 석진은 팔에서 오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로 그것을 참아내었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정말 모든 것이 끝이다. 그 누군가는 석진의 팔을 만지는 것을 그만두고 석진의 뺨을 툭툭 쳐대었다. 그러더니 언제 퍼 왔을지 모를 물을 석진에게 끼얹었다. -촤악 '큭 엿 됐다.' 물을 뿌린다는 것은 기절한 상대방을 깨우는 방법이었다. 한 마디로 누군가 모를 물을 뿌린 이는 석진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리라. 석진은 이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물을 맞았으니 응당 깨어서 일어나야 했다. 그러지 않고 계속해서 죽은 척을 해 대면 그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몰랐다. 그렇다고 깨어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죽는 것뿐이었다. 석진은 그냥 버텨보기로 작정했다. 물을 맞는다고 꼭 혼절한 사람이 깨는 것은 아니었다. 시체 취급을 받기는 이미 물 건너갔지만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사람'이라면 아직은 먹힐 수도 있었다. '크 깨울 라고 난리 부르스를 춰 봐라 내가 일어나나……그러니까 빨랑 딴 데로 가란 말여!!!' 물을 뿌린 이후로 그 누군가는 자신을 깨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그 누군가가 떠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은 이상.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 때였다. 상당히 많은 기가 석진의 주변으로 몰렸다. 마나를 느낄 줄 모르는 석진도 느껴질 만한 강대한 마나였다. '……?' "네놈 땡 잡았구나 이런 고위급 회복마법이라니 이 정도라면 거의 완벽히 네놈은 부활 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신관들이 아니라면 이 정도 마법은 대략 6서클은 되어야 시전할 수 있을 터인데 순수 마법만 익힌 엘프인 모양이로군." '회복 마법? 엘프? 그럼 설마 아까 그 표독스런 여자 엘프? 이거 원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뭐야?' 청량한 기운이 석진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석진은 온 몸이 나른해지며 골절상 부위의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히히 역시 그 때 그 썸씽이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 낮에 날 공격한 것도 아마 동생들이 옆에 있으니 차마 체면 때문에 그랬겠지. 안 그랬으면 두 번이나 날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도 날 살려 뒀겠어?……이제 슬슬 의식을 되찾은 척 해 볼까?' -풀썩! '어라 웬 풀썩? 으헉!' 석진은 배때기에 타격을 느끼고 서서히 뜨려던 눈을 바로 뜨고 자신의 배를 내려보았다. "이! 이 아이는……그 여자가 아니야?" 석진의 배에는 낮에 보았던 13세 가량으로 보이는 옅은 금발의 엘프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이 이봐 정신차려! 이 애 왜 쓰러진 거지 아크라우스?" "흠 아마도 너무 무리하게 정신력을 사용했나 보군. 뭐 괜찮다. 저대로 그냥 좀 자게 내버려두면 저절로 깰 테지. 그리고 외양은 어려 보여도 적어도 네놈보다 100살은 족히 더 살았을 것으로 보이니 꼬맹이 취급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그 그런데 어떻게 하지 아크라우스? 이대로 두고 가?" "생명의 은인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일이지 알아서 모셔라 인마! 그보다 먼저 이곳에 온 소기의 목적이나 달성하도록 해라. 네놈 암내가 예까지 진동하는 것 같으니!" 석진은 소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수풀 속에서 가죽들을 짊어지고 나왔다. 그리고 목욕도 할 겸 옷을 벗으려는데 아무래도 쓰러져 있는 여자애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것에 대한 왠지 모를 괴리감이 들었다. 아크라우스는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하긴 누가 보면 여자애 강간하려는 변태로 밖에는 안 보일 테지……어쩌구저쩌구 주저리주저리……(길어서 생략)운디네라고 외쳐라 친화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네 녀석이지만 물을 관장하는 실버드래곤인 나의 마력이 담긴 그 반지 덕에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 정도는 너도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주문이 뭐가 그렇게 복잡해?" "처음 맹약을 맺을 때만 복잡하지. 나중에는 '운디네 나의 부름에 응하라'정도면 언제든지 불러 낼 수 있다." "반지를 안 꼈을 경우에는 못 부를 테지?" "그건 아니다. 친화력은 정령과 계약 할 때나 필요한 것이지 정령을 소환하는데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운디네를 부리며 계속 친화도를 쌓는다면 네 녀석의 경우 물의 중급 정령까지는 부릴 수 있을 거다. 정령을 부린 다는 것에 커다란 메리트를 느낀 석진. 석진이 읽었던 모 판타지 소설에서는 드래곤과의 맹약 덕에 하급정령을 소환한다는 것이 정령왕이 소환되는 경우가 있었다. 자신도 혹시 그럴지 모른다는 대단한 기대를 하는 석진 이었다. "꿈 깨라 이 멍청아! 내가 그 쪽 차원에 있어서 네놈하고 맹약을 맺은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 생각 하냐? 설사 내 친화력이 전부 전해져서 네놈이 정령왕을 불러 낼 수 있다고 치자. 그래 봤자 네놈의 그 미약한 마나의 양으로는 정령왕을 부르는 순간 네놈은 마나 고갈로 에누리없이 뒈진다. 그러니 헛생각 말고 운디네나 소환해." "쩝 그래? 근데 운디네 부르는 주문이 뭐라고?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 해 봐." "어쩌구저쩌구 주저리주저리……운디네." 석진은 아크라우스의 말을 그대로 흙바닥에 회칼로 따라 적었다. 그리고 그대로 주문을 읊어 댔다. 그러자 허공에는 물의 결정체가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약간의 이지러짐을 거쳐 커다란 물방울은 인간형의 모습으로 변했다. "와우! 이게 운디네? 꼭 인형처럼 생겼네. 안녕 운디네?" "……." 큰 눈을 깜박이는 운디네. 운디네의 눈망울은 물의 정령답게 매우 맑고 투명했다. '오옷 큐티!!' 그 귀여운 모습에 석진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제는 정령한테까지 추파를 던지는 것이냐? 할 일이나 빨리 해라." "어, 어 그래." 석진은 엉거주춤 대답한 뒤 다시 운디네를 쳐다보았다. 불러냈으니 응당 '저와 계약을 맺으시겠습니까?'라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운디네는 눈만 깜박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얼레 왜 아무 말 없는 거지?" "운디네는 물의 최하위 정령 그러니 당연히 강한 자의식 따위가 없다. 네 녀석이 먼저 계약하겠다고 말해라. 그러고 나면 알아서 네 명령을 수행해 줄 거다." "어? 그런 거였냐? 운디네 나와 계약하지 않을래?" 운디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좋아 운디네 그럼 첫 번째 명령이다! 나를 씻겨 줘!" 운디네는 석진의 명령을 듣고 몸을 수 십 개의 물줄기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 물줄기들은 석진의 몸 이곳저곳을 빠른 속도로 훑고 지나갔다. "오우 개운한데? 이제 운디네 덕에 물 걱정 할 필요는 없겠군." 할 일을 다 마친 운디네는 다시 물의 입자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려졌다. "후 이제 이 많은 빨래거리만 남았군. 쩝 오밤중에 빨래라니." 석진은 투덜거리며 많은 가죽들을 물에 적신 후 돌로 두드리며 연신 물에 헹구었다. 그런데 분명히 깨끗이 씻어졌던 자신의 몸에서 아직도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닌가? "큭 그러고 보니 내 옷도 빨아야 되잖아? 젠장 그러고 보니 옷 벗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네." "훗 그게 다 네놈의 막힌 사고력의 한계다." "닥쳠마! 그럼 네 녀석은 사고력과 창의력이 풍부해서 맨날 끝말잇기나 털리냐?" "이번만큼은 나도 지지 않는다. 해보겠느냐?" "아니 사양하겠어. 빨래해야 돼." "질 것 같으니 빼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빨래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특별히 입 놀릴 때도 없잖냐?" "좋아 그럼 딱 한 판만 상대해 주마! 네 녀석이 깨지면 더 하기 없기다?" "좋다! 잠시만 기다려라." 아크라우스는 급히 서재로 뛰어가 국어사전을 펼쳤다. 석진이 자신의 상황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악용한 매우 치사한 방법이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겨야 할만큼 아크라우스는 절박했다. 사실 국어사전에는 '름'이나 '력' 같은 한 방 단어를 대비 할 수 있는 단어들이 수록된 것은 아니었으나 아크라우스의 3000패 중 거의 2000여 패가 부족한 한국어 어휘력 에서 비롯된 것을 감안했을 때 국어사전 동원이라는 아크라우스의 꽁수는 큰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상대는 여러 가지 단어로 자신과 밀고 당기는 싸움이 아닌 귀찮은 아크라우스를 한 방에 떨어뜨려 놓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다. 사전!" 석진은 웃음을 흘렸다. 제깟 놈이 그러면 그렇지 또 한 방 단어를 댈 수 있는 실마리를 주다니…… "전력!" 아크라우스는 말문이 막혔다. 각종 비장의 무기를 준비한 자신을 허무하게 눌러 버리다니……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큭 네놈 지난번에 분명히 시작하자마자 끝내기는 없다고 했을 텐데." "어라 그랬었던가?" 그제야 석진은 아크라우스가 너무 초반부터 털리기에 만들어준 '시작하자마자 한 방 단어 대기 없기'란 규칙을 생각해 내고는 쓴 입맛을 다셨다. 쩝 괜히 그딴 규칙 만들었나? "알았어 그럼 다시 하지……전갱어!" "어휘!" 석진은 아크라우스에게서 어휘란 단어가 나오자 새삼 그의 꽉 막힌 사고에 조소를 흘렸다. 만약 '어'란 단어가 자신에게 걸렸다면 그는 어휘력, 어획량, 어뢰 등의 단어를 이용해 아크라우스를 끝내버렸을 것이다. "휘파람!" "람? 음……." 생각하는 척 하며 재빨리 국어사전에서 '람'을 찾는 아크라우스. 분명 한 방 단어는 아닌 듯 했는데 딱히 생각나는 단어가 없었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람'으로 시작하는 그 어떠한 단어도 찾을 수 없었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책상에 머리를 들이박는 아크라우스. 결국 그는 패배를 인정했다. "내 내가졌다……." 그 말을 끝으로 아크라우스는 더 이상 석진 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얼레?" 석진은 어리둥절했다. '람'은 분명 한 방 단어가 아니었다. 람보, 람바다, 람세스 등의 단어들이 비공식적으로나마 엄연히 존재하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석진은 람보엔 보름을, 람바다엔 다윗을, 람세스엔 스포츠란 한 방 단어들을 내심 준비했던 터였다. 그런데 아크라우스 놈이 먼저 자폭해 버리니 석진으로서는 약간 허탈했다. "싱거운 녀석……." 석진은 아크라우스를 향한 비웃음을 흘리며 빨래를 계속했다. 냄새 나는 옷을 벗어서 빨래하다 보니 어느새 그는 팬티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팬티도 상태가 심각했다. 뭐 주변에 여자애가 하나 있긴 했지만 기절한 상태이고 오밤중이라 물가에는 왕래하는 것들도 없었다. 그렇기에 석진은 팬티까지 벗어 빨래했다. 대충 빨래가 끝나자 석진은 빨랫감들을 돌 위에 말려두었다. 보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알몸이란 것이 거슬렸던 석진은 쇠로 만들어져 빨 수 없었던 사슬 갑옷을 대충 하체에 걸쳤다. 열대야는 심각했다. 방금 전 씻은 데다 옷까지 훌러덩 벗고 있던 석진이었지만 흐르는 땀은 여전했다. 문득 쓰러져 있던 엘프 소녀에게 관심이 쏠린 석진. 예상대로 소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석진은 말려두었던 웃옷에 물기를 적신 뒤 소녀의 맺힌 땀들을 닦아주었다. 소녀는 온몸으로 땀을 흘렸는지 옷이 축축했지만 석진은 소녀의 얼굴만 닦아주었다. 괜히 소녀의 몸까지 이리 저리 닦으며 더듬는다면 나체의 자신은 영락없는 성추행 범으로 보일 테니……. 차가운 물수건이 닿자 소녀는 기분이 좋은 듯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던 소녀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온 듯 살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어! 깨어난 거야? 다행이다." 정신이 든 소녀는 무척이나 반갑다는 표정을 한 얼굴의 석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사슬 갑옷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석진의 몸과 사슬 갑옷의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보이는 석진에 그것까지…… '이 사람이 설마 정신을 잃었던 나를……?' 상상해선 안 될 그 금단의 장면을 생각해 낸 소녀는 석진을 강하게 밀쳐내었다. "꺄아아아아악 이 치한! 변태! 강간범!" "억? 아냐! 아니라구!!!" 변명해 보는 석진. 그러나 소녀는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손에 마나를 모았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전기 스파크가 지지직거렸다 그리고 그 전기 스파크는 하나의 구체가 되어 석진 에게 직격했다. "흐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갹!!!!!!!!!!!" 석진은 강력한 전기 충격에 또 다시 정신을 놓고야 말았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 춥다 추워 온 몸에 어째 오한이…… "이제야 정신이 드나 보네? 변태 아저씨?" 눈을 뜬 석진. 그의 눈앞에는 큰 눈망울을 깜박이는 소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으헥!!"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는 석진. 그러나 석진은 그의 뜻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왜냐 하면…… "헤에 무겁나 보네? 나 가벼운데?" 그도 그럴 것이 아랫도리의 사슬 갑옷 외에는 전라의 석진의 몸에 올라타 석진을 빤히 바라보는 이 당찬 엘프 소녀 때문이었다. -꿀꺽 석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여성이 자신의 위에 올라 탄 이 묘한 자세로 누워 있는 상황도 상황인데다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소녀의 허벅지 맨살이 자신의 배때기에 맞닿아 있었다. 살과 살로 맞닿으니 그것만큼 흥분되는 것도 없었다. "비 비켜……못 일어나겠잖아!" 석진은 기분 좋은 본능과는 다른 딴 소리를 내뱉었다. "어? 미안!" 엘프 소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석진은 볼 수 있었다. 소녀의…… "하늘색……." 석진은 자기도 모르게 소녀의 허벅다리 사이로 보이던 그 물체의 색깔을 중얼거렸다. 소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석진을 바라보다 곧 그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석진을 발로 밟았다. "변태!" "꾸헉!" 명치를 정확히 밟힌 석진은 강한 고통에 땅바닥에서 몸을 뒹굴었다. 그런데…… -스르르르 고통에 뒹굴던 석진은 어느 새인가 유일하게 자신의 물건을 가려주던 사슬갑옷이 벗겨진 것을 느꼈다. 당황한 석진은 사슬갑옷을 찾으려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만 엘프 소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꺄아아아악 변태! 노출증 환자!" 소녀는 강바닥의 자갈을 주워 사정없이 석진 에게 던졌다. 석진은 물건을 두 손으로 가리고 급히 물가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소녀는 다급히 석진을 말렸다. "어! 잠깐 물에 들어가면……." -찌리리리리릭 "흐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 전격마법에 맞아 아직 전기의 기운이 남아 있었는지 석진은 물에 닿자마자 또 다시 강력한 전기 충격을 받았다. -풀썩 이번에도 또 쓰러진 석진. 그나마 의식은 잃지 않은 것 같았다. "이봐요 변태 씨 괜찮아?" "아니……." "바보 아냐? 전격 마법에 맞은 지 얼마나 됐다고 쪼르르 물로 달려가?" "이게 누구 때문인데……." 따지고 보면 전격 마법도 돌 던져서 자신을 물로 뛰어들게 만든 것도 장본인은 다 이 계집애 때문이었다. "힐링!!!" 석진은 청량한 기운에 짜릿하던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의 회복마법에는 못 미쳤지만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릴 수는 있었다. "그러게 누가 목욕하는 거 훔쳐보래? 당해도 싼 거야 게다가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도 몰라보고 날 겁탈하려고 까지 했잖아 다 자업자득 이라구." "내 내가 무슨 겁탈을 하려고 했다 그래!" "찔리는 건 있나 보네요 변태 씨?" "큭……내 옷은 어딨어?" "조오기." 소녀가 한 바위를 가리키자 석진은 급히 옷을 말려둔 바위로 달려가 급하게 옷을 입었다. 햇볕이 강해서인지 옷은 잘 말라있었다. 일단은 전라의 변태에서 벗어난 석진. 그제야 석진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이 엘프 소녀에게 고맙단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전기 충격도 맛 보여주고 시시콜콜 자신을 변태 취급해서 그다지 고맙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강력한 회복마법 시전으로 기절까지 했던 소녀가 아닌가? 거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석진은 쑥쓰러운 듯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몸까지 사리지 않고 날 구해줘서 고마워." "헤 고맙단 인사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인사는 받을 게요 변 태 아 저 씨!" "글세 난 변태가 아니라니까!! 널 겁탈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변태란 말에 또 다시 발끈한 석진. 그러나 소녀는 유들유들하게 발끈한 석진을 상대했다. "어 그건 알고 있어! 대지의 정령한테 물어보니까 알려 주던 걸? 입던 옷은 빨래해서 옷을 못 입었고 내가 땀을 많이 흘리니까 물수건으로 닦아 준 거 그런데 맨 처음 목욕하는 거 훔쳐 본 것은 뭘로 해명할 거야? 게다가 난 아직 아저씨 이름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기억에 남는 이미지로 부르는 것뿐이라구!!!" "하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변태냐……?" 하기야 애초에 미소녀들의 목욕 씬을 숨어서 감상한 석진이었으니 이런 대접도 이상치는 않았다. "그런데 변태 아저씬 이름이 뭐야? 알려주면 변태라고는 안 부를 께." "어? 이름? 김……" 석진은 말을 멈추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쪽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이 세계의 이름이 필요했다. 물론 한 이름 모를 역술인이 지어준 '석진'이란 이름이 있었지만 한국식 이름인 '김석진'보다는 판타지 세계에 어울리는 서양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듯 했다. '가만 있자 그런데 이름은 뭘로 한다?' 이제 또 이름으로 고민해야 했다. 그의 머릿속엔 온갖 서양인들의 이름이 들락거렸다. 일단은 축구 게임에 나오는 해외 유명 축구 스타들과 WWE레슬링 슈퍼 스타들 쪽에서 골라보기로 한 석진이었다. '지단? 베컴? 또띠? 비에리? 피구? 더 락? 커트앵글? 헐크 호건? 오스틴? 부커티?……젠장 때려 치자.' 자신이 지구의 유명인으로 불린 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껴버린 석진. 그 다음으로 석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게임 캐릭터와 소설 주인공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것들 중에서도 별다르게 마음에 드는 이름은 없었다. '쩝 그냥 소설처럼 자신에게 흡수당한 드래곤의 이름 같은 것을 따서 지어버려? 그나마 그게 좀 나을 것 같기는 하군. 나 같은 경우는 아크라우스 였으니……아크! 괜찮군. 가만 그러면 또 성은?' 그러던 석진은 가명의 성에는 자신과 너무나도 친숙했던 단어를 붙이리라 결심했다. "변태 아저씨 이름 말해주기 싫어? 아니면 설마 지금 이름 짓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정곡! "아하하하 그럴 리가 내 이름은 아크야 성은 페인이고" 정곡을 찔린 석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몇 분간 들여서 지어낸 것치고는 별로네? 진짜 이름은 뭐야?" '……알아챈 거냐.' 이름을 댄답시고 몇 분 동안 멀뚱히 이름 지을 궁리만 했으니 알아채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할 수 없지' 체념한 석진은 애써 만들어 놓은 이름을 봉인하고 그냥 본명을 대기로 마음먹었다. "내 이름은 김석진이다. 됐냐?" "에엑? 뭐 그런 괴상한 이름이 다 있어? 그냥 만든 이름으로 부를래요." '똥개 훈련 시키냐?' 석진은 불만과 짜증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런 석진을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짓던 소녀는 자신의 이름도 밝혔다. "내 이름은 루리엘이야 잘 부탁해요. 변 태 아 크 아 저 씨" -뚝 아크로 개명한 석진은 자신의 이성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크아악 변태라고 부르지 말랬지!!!! 그리고 뭐 아저씨? 여자경험도 없는 숫총각한테 그게 할 소리야!!! 그리고 네년은 외양만 어리지 나보다 한 100살을 많이 살았을 것 아니냐고 나이도 어린 사람 자꾸 아저씨라고 부를래!!!!" 나무를 머리로 받아대며 폭주하는 아크. 소녀는 처음에는 배를 잡고 웃다가 살인귀의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크 덕에 웃음을 멈추었다. "미안해요 아크 장난이었어요. 맞아요 전 당신보다 족히 100년은 더 살았죠. 하지만 엘프들 사이에선 나도 어린 여자아이일 뿐이라구요 인간의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앞으로 그냥 '아크'라고 부르거나 '오라버니'정도로 아크를 부를게요 그러니 그만 화 풀어요." 진지해 지는 소녀의 태도에 그제야 폭주를 멈춘 아크. 100살이나 연상의 여인에게 '오라버니'로 불린다는 것에 괴리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루리엘은 영락없는 연하의 어린 소녀였다. 그래도 몇 번 마주치지도 않은 그녀에게서 '오라버니'소리를 듣는 다는 것은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그 오라버니라는 호칭은 좀……." "헤에 우리 엘프 마을엔 지금 오라버니라고 부를 만한 남자들이 없어요. 오크들과의 지겨운 전쟁으로 젊은 남자 엘프들은 죽거나 일찍 결혼들을 해 버려서 오빠란 호칭을 사용할 수 없죠. 그래서 아크한텐 오라버니라고 불러 보고 싶어요.'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루리엘. 그러나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슬픔이 서려 있었다. "어 그 그래." "응 그런데 아크 오라버니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에요? 여긴 인간 혼자서 살기엔 벅찬 곳인데?" "나도 몰라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친구 놈이 날 강제로 텔레포트 시켰지. 그래서 깨 보니 여기더라고. 나 참 황당해서 여기에 떨어져서 오크 한 마리와 맨손 혈투를 벌이고, 악어한테 잡혀 먹힐 뻔하고, 오크 세 마리한테 쫓기다. 여자 엘프를 만났는데 그 여자한테도 죽을 뻔하고 빨래하러 강에 갔는데 난데없는 물벼락에 전기 충격까지 참 악운의 연속이었지." "헤 대단하네요 어떻게 그 실력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가……."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도 운이라고 밖에는……." "우리 엘프 전사들도 이 숲에 들어가면 살아남기 힘들죠." "저기 그런데 루리엘." "……?" "그냥 방금 전처럼 말 놓으면 안 될까?" 아무리 외양도 어리고 정신 연령도 낮다지만 분명 루리엘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다. 게다가 아크는 잘생긴 외모와는 달리 게임에만 미친 청소년기를 보내왔기에 여성과의 접촉 사례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소곳하고 정숙한 태도의 여성에게는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껴왔던 그였기에 자신을 변태라 부르며 놀려대던 루리엘의 방금 전 태도가 더욱 친숙했다. "헤헷! 그럴까?" "응 그게 훨씬 낫구만. 그런데 안 돌아 가봐도 되는 거야? 엘프 전사들도 이 숲에서는 버티기 힘들다며? 그럼 지금쯤은 별 걱정하고 난리가 났을텐데??" "헤 이래 보여도 난 제법 높은 서클을 마법사라구. 거기다 오크를 맨손으로 때려잡으신 변강쇠가 계시는데 뭐 별일 있겠어?" "에휴 그래 그렇다 치고 난 그만 가봐야겠다. 빨래도 다 말랐고……." "엑 벌써? 그럼 나도 같이 가." "뭐? 와서 뭐하게? 할 것도 없고 썩은 내 나는 좁은 집인데?" "그래도 심심해 엘프 마을에서는 할 일도 별로 없단 말야." 애원하는 듯한 루리엘의 눈빛에 아크는 심심해서 회칼로 손가락 찍던 아련하고 그리운 그 옛날 추억이 떠올랐다. "좋아 대신 짐 반절은 네가 들고 와." "흑 힘없는 여자에게 짐이나 지우다니 정말 매너 없는 남자야." "어 안녕 잘 있어." 아크는 몸을 휙 돌린 채 그대로 가죽을 말려둔 곳으로 걸어갔다. "농담이야 농담! 아크 짐까지 실프로 들어서 날라줄게." "정말이냐? 그럼 가자." 아크와 루리엘은 바위 위에 말려둔 가죽 갑옷과 악어가죽을 각각 걷으러 갔다. -휙 아크가 막 집으려던 악어가죽에 갑자기 한 대의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제멋대로구나? 루리엘." "어……언니!"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는 루리엘의 언니이자 아크가 강간미수를 저질렀던 그 표독스런 여자 엘프가 아크에게 활을 겨눈 채 서 있었다. "저 저기요……." -휙 한 대의 화살이 아크의 가죽 벨트를 정확히 맞혔다. 다행히 질긴 소가죽 덕에 화살촉은 조금밖에 살을 파고들지 않았지만 아픔은 대단했다. "끄하아아악!!!!." "경고한다.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이번엔 내 화살이 너의 심장을 꿰뚫을 것이다." "언니!! 왜 그러는 거야 저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잖아!!" "정신차려 루리엘 저자는 인간이야 배신을 일삼는……벌써 아리아나를 잊은 거야?" "하지만……!!" 그녀는 활을 내려놓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루리엘을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루리엘 네가 심심하다는 것은 잘 알아. 하지만 인간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종족이야. 시기와 질투, 배신을 일삼는 것이 그들이지. 저자도 지금은 너의 호의와 외모에 친하게 대해주고 있을 뿐이지 언제 마성을 드러낼 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야." "거 참 나 이보쇼 고약한 성질머리 아줌씨!" 아크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다시 활을 아크에게 겨누며 그를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아크는 피가 흐르는 허리춤을 움켜쥐었다. 통증이 심한지 그는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아크는 그녀의 눈초리를 그대로 받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냐?" "내가 왜 이 화살에 맞아야 하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아줌씨!" 둘은 여전히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상대를 주시했다. "이유……?" "그려 당신 목욕한 것 훔쳐본 죄라면 그 수계마법으로 만신창이가 된 걸로 죄 값을 치른 것 같은데. 혹시 지난 번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요? 난 분명 그 때 날 처분해 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녀는 표정이 약간 흔들렸지만 여전히 아크를 노려보았다. 아크도 질세라 눈을 치켜 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완벽한 눈싸움이었다. "인간이니까 라고 했을 텐데?" "흐 그건 이유가 안 돼. 내가 뭘 어쨌다고? 나쁜 짓? 그래 두 번했다. 겁탈하려고 했을 때? 내가 그 때 미안하다고 죽여달라고 했잖아? 그 때는 그냥 용서해 준 것 아니었어? 그리고 목욕한 거 훔쳐본 거? 나, 물로 죽이려고 했잖아? 그것 외엔 당신에게 빚진 거 없지? 안 그래? 그런데 왜 다짜고짜 화살을 날리고, 루리엘 하고도 떼어놓으려고 하는 거지? 인간이라서? 인간은 왜 엘프 친구와 놀지도 못하고 엘프한테 무조건 적으로 화살을 맞아야 하는 건데? 강자의 오만이냐? 약자를 괴롭히는? 아니면 내가 사냥감? 나 쏴 죽인 다음에 가죽 벗겨서 바베큐 해 먹을 거냐? 그리고 왜 느그 동생이랑 못 놀게 하냐? 심심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잘 노는데, 뭐 내가 음흉해서라고 말한다면 나도 할 말 없지만 네 년 동생이 나한테 쉽게 겁탈 당할 것 같냐? 6서클이 넘는 마법사가 나 하나 못 이길 것 같냐고? 그것도 아니면 나한테서 발 냄새 나냐? 몸에서 땀내나? 무좀이 있냐? 인간한테서 옮는 치명적인 전염병? 목욕하면 되고 병 고치면 되지 뭐 어쨌다고 지랄이니 할망구야? 아크의 긴 연설이 끝나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연설을 듣고 감동해서 라기 보다는 계속되는 눈싸움에 눈이 아파서 이리라. 아크도 다를 바는 없었다. 눈을 감지 않으려고 별 인상을 다 쓰는 아크. 덕분에 핏발 선 시뻘건 그의 눈에 다크 서클까지 합해져 지구에서의 폐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보던 루리엘도 그 남자와 그 여자의 기세 싸움에 웃음을 참으려 애썼다. "좋아 다른 이유를 대 주지." 아크의 맹공에 주춤거리던 그녀는 재 반격을 시도했다. "이 하천 중상류는 엘프족의 영역, 너는 감히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의 영역을 불법 침입했다. 이에 나는 너에게 무단 발포할 권리가 있다. "뭐야! 그럼 목욕도 하지 말란 말이냐? 오크족 영역에서 목욕하다 무슨 봉변을 당하라고!" "웃기는군 네 녀석에게는 운디네의 기운이 느껴져, 운디네라면 충분히 널 목욕시켜 줄 수 있을 텐데?" "……." 아크라우스에게서 운디네 소환법을 배운 것은 바로 어제, 그러나 그런 얘기를 하고 자초지종을 댄다 해도 믿어줄 지나 의문이었다. 결국 아크는 다른 것을 걸고넘어지기로 했다. "그럼 루리엘과는 왜 못 만나게 하는 거지?" "네놈 같이 약한 녀석과 이 숲 속 한 가운데에 놔뒀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영악하기는 쳇)" 반박할 수 없는 반론에 입을 다문 아크. 그런 그를 보자 그녀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깜박거렸다. '아……!'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저 인간과의 기선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크는 여전히 눈을 크게 치켜 뜬 뒤 그녀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싸움은 내가 이겼군.' 아크는 마치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칫' "이번만은 용서해 주지. 알아들었으면 당장 우리들의 영역에서 꺼져라." "에휴 그러지 뭐." "나중에 봐 아크"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루리엘. 그런 루리엘을 그녀는 애써 말리려 하지 않았다. "가다가 오크 만나지 말고 잘 가라!" 아크는 같이 손을 흔들며 숲 속으로 사라지는 자매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아크의 머릿속은 누군가의 폭소로 가득찼다. "푸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꼭 삼류 드라마 같구나 결혼하겠다는 두 남녀와 결혼을 반대하며 그 둘을 떼어놓으려는 시어머니." "어 아크라우스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아크라우스는 아크가 깨어난 때부터 아크와 텔레파시를 주고받았지만 고맙게도 엘프 자매와 대화할 때에는 조용히 있어주었다. "그건 그렇고 아크가 뭐냐 아크가 아크 페인? 이름 한 번 참 유치하군." '실리콘 골렘은 어떻고' 라고 이죽거리는 아크 "얌마 니 이름 따서 지은 건데 웃기냐?" "벌레만도 못한 인간 따위가 감히 내 위대하신 이름을……그냥 루이 윌리엄스 세바스찬 주니어 18세는 어떠냐?" "닥쳐 임마! 내가 땅거지냐?" "아무튼 간에 네놈 이름 맘에 안 든다. 어디서 내 고귀하고 신성한 이름을 따서 네놈 이름에 붙일 생각을 하는가?" "알았어 시꺄 자식이 쪼잔 하기는……그냥 게임에 나오는 세계관에서 주인공의 동료 기사 '아크'에서 따온 거라고 칠 테니까 딴지 걸지 말어!" "흠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단순한 아크라우스는 피차 마찬가지인 줄도 모르고 만족했다는 듯한 말투였다. "지미 그나저나 이 많은 짐은 어떻게 다시 들고 간담?" "어차피 올 때도 들고 오지 않았나? 그 때의 각오를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여라." "어이 아크라우스 혹시 이 반지에 텔레포트라든지 경량화 마법 같은 거 없어?" "내가 몇 번을 말했냐? 그런 거 ZOTTO없다고." "드래곤이라며?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냐?" "귀찮다 이놈아!" 하는 수 없이 아크는 가죽들을 그냥 등에 짊어지고 숲 속을 부질없이 걸었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 아무래도 돌아가서 또 다시 목욕을 해야 할 듯 싶었다. "후후 힘들어 보이는군. 머리를 정신없이 굴리다 보면 육체의 고통쯤은 잊혀질 거다. 끝말잇기 한 판?" "시끄러." 아크는 그 날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120통." 아크는 나무 밑에 쪼그려 앉아 열심히 손을 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는 다섯 개의 조그마한 돌멩이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크의 손등에 올려져 있는 다섯 개의 돌멩이 아크는 그것을 하늘로 날린 뒤 재빠르게 손바닥으로 돌멩이들을 나꿔채었다. -데구르르 애석하게도 돌멩이 중 하나는 땅으로 떨어져 굴렀다. "……124통." 초등학교 때 여자애들과 했었던 추억의 공기놀이. 안 한지 어언 10년이 지났건만 아크의 실력은 제법 뛰어났다. -데구르르 덱 데구르르 공기돌 하나가 제법 멀리 튕겨 굴러갔다. 공기돌이 굴러간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크. 예전 그의 집이 있던 공터. "에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아크 한숨을 쉴 때 나오는 입김이 땅바닥을 파헤쳤다. "에휴우~." 그의 두 번째 한숨에 수풀들은 한 쪽 방향으로 허리를 굽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며칠 전 그날도 아크는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과일 따러 나가서 포도를 따 신나게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철푸덕 "이런 10!!" 고목의 튀어나온 굵은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진 아크. 덕분에 옷에 흙칠함은 물론이오. 손에 쥐고 있던 포도는 포도 알들이 대부분 빠져 숲 속에 굴러다녔다. "젠장 재수 없게 시리……짜증나 죽겠네" 아크는 흩어진 포도 알들을 주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포도넝쿨이야 숲 속 여기저기 널려 있으니 다시 따 올 수는 있었지만 언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를 이 숲 속에서는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더욱 안전했다. 흩어진 포도 알들을 하나씩 주워 모으는 아크. 그러던 그는 포도알에 묻은 흙을 보고는 운디네를 소환. 포도 알 껍질에 묻은 흙을 다 씻어내었다. 아크는 포도를 품에 한 아름 안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크아아아악!" -우지끈 집에 거의 근접한 아크는 웬 괴성과 나무들이 박살나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집 쪽으로 접근하는 아크. 그곳에는…… "컥 저건 또 뭐야……? 오우거?" 집 짓느라 나무를 베어서 만든 공터에 있던 아크의 조잡한 집. 그 집이 지금 한 무지막지한 중형 몬스터에게 개 작살이 나고 있었다. "저시끼는 또 뭐여? 왜 남의 집을 때려부수고 지랄이야 지랄이!!!"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투덜대는 아크. 아무리 좁고 살기도 힘든 집이라지만 아크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어 본 대형건축물이었다. 그런 집이 저 오우거 놈의 장난감이 되어 박살나다니…… 풍비박산이 난 아크의 집. 오우거는 파괴의 대상을 다 박살내자 다음 파괴의 대상을 숲의 울창한 나무로 삼았다. 그러던 차 아크는 자신의 집을 부수는 것을 그만하는 오우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그는 보았다. 오우거의 눈을…… "……하하하하하하 만나서 반갑다 안녕?" "쿠아아아아아!!" 오우거와 딱 눈이 맞아 버린 아크는 애써 웃으며 인사했지만 오우거는 맞 인사로 아크에게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선사할 생각이었는지 무지막지한 속도로 아크에게 달려왔다. "튀자! 안 그러면 쪽도 못쓰고 죽는다!!!!!!" 오크는 때려잡고 엘프는 대화로 어떻게, 어떻게 위기를 넘겼던 아크였지만, 저 오우거를 상대로는 도망치지 않으면 도무지 살길이 없었다. 저런 무지막지한 몬스터와 싸우리? 아니면 말로 타이르리? "사람 살류~!" -쿵쾅 쿵쾅 쿵쾅 오우거의 발자국 소리는 진동이 되어 숲을 뒤흔들었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어느덧 아크의 시야에는 강가가 보였다. 그럼에도 저 오우거 놈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아크에게 맹약의 반지가 행운을 선사했는지 하류 쪽으로 계속 달리던 아크의 앞을 가로막는 세 인영이 있었다. "쿠륵 인간! 어디 가는가? 멈춰라!" "쿠르르륵" 어디서 왔는지 오크 세 마리가 급히 달리는 아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크는 숨을 헉헉거리며 다급히 외쳤다. "얌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오우거가 쫓아온다구 오우거가!!" "쿠르륵 오우거가 어디 있다고 그러는……." "쿠오오오오오오~~" 오우거가 어딨냐고 아크에게 따지던 오크는 오우거의 방망이에 맞아 머리통이 홈런 볼이 되어 날아가는 영광을 누렸다. "빨랑 튀어!!! 안 그럼 죽어!!!!!!!!"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에 넋을 놓고 있던 오크들은 그제야 살길은 하나란 것을 깨닫고 아크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인간 하나와 오크 둘, 그리고 오우거 한 마리는 숲 속 이곳저곳을 누비며 계속해서 뛰었다. 마치 영화 '친구'에서 네 친구들이 극장을 향해 뛰는 모습과 묘하게 닮은 그들이었다. "쿠룩 도대체 저 오우거는 왜 저러는 것인가?" "나도 몰라 임마! 분명한 건 죽기 싫으면 도망치는 거야!!" "쿠르륵!!" 한 오크와 아크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오크 한 놈이 발을 헛디디고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아크는 뜨거운 전우애를 발휘하여 오우거가 바로 뒤에 쫓아오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넘어진 오크를 일으켜 세웠다. "빨랑 뛰어 돼지머리!!" "쿠르르르 고 고맙다 인간!" 설마 인간에게 도움을 받을 줄 몰랐던 오크는 감격한 듯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아 고마운 건 됐으니까 어여 토껴!" "알았다. 인간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으마." "죽으면 뭔 소용이냐? 살 궁리를 해야지." "쿠르르 놀랐다 인간. 적인 오크를 살려 주다니." "놀라지 말고 빨랑 튀자고! 벌써 저기까지 왔잖아!!" 오우거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그렇게 인간과 오크는 전우애를 쌓아갔다. 그렇게 세 네 시간쯤 뛰었을까? 아크와 오크 친구들도 이제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런 난코스 장거리 마라톤은 아크나 오크들에게나 모두 처음이었지만 그들은 생존의 본능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셋은 어느덧 달리면서 회의까지 하고 있었다. "쿠르륵 전사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자!" "멍청아! 그럼 진작 싸우자고 할 것이지 뭐 하자고 이렇게 힘 빠지게 뛰었냐?" "쿠르르르 그럼 어떡하지?" "싸우는 건 절대 무리야.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세 가지 있다." "쿠륵 뭔가?" "하나는 이대로 계속 달리면서 이 근방 오크 부족으로 저 녀석을 끌고 가는 거지. 하지만 문제는 근방 오크 부족이 어딘지 모른다." "……쿠르르" "두 번째는 이대로 계속 달리면서 저 오우거 놈을 따돌리거나 지쳐서 못 쫓아오게 만드는 것이지 하지만 이것도 문제는 그 전에 우리 셋 다 지쳐 쓰러질 상황이란 것이 문제다." 역시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아크였다. "마지막은 뭔가?" "마지막은 확실한 방법이긴 한데……." "쿠르륵 말해라 인간. 그것이 무엇이냐? 확실하다면 우리 모두 목숨을 걸겠다." "마지막은 이대로 우리들이 세 갈래로 흩어지는 거다." "……?" "우리들이 각자 흩어지면 저놈은 우리 셋 중 하나만 쫓을 것이다. 그럼 그 오우거가 쫓아간 하나는 웬만하면 죽겠지만 남은 두 명은 살 수 있다는 소리지. 어쩔래? 이대로는 우리 셋 다 죽는다." 오크들은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쿠르르르 좋다 인간!" "쿠르르 꼭 살아서 다시 만나자!" "그럼 가자!!" 그들은 그렇게 각자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다행히도 오우거는 아크 쪽으로는 오지 않았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어떻게 살아서 돌아오기는 한 아크. 그러나 잠시나마 뜨거운 전우애를 느꼈던 오크 한 녀석의 죽음과 박살난 자신의 집을 생각하니 편두통이 그의 머리에 엄습해 왔다. "뭐해 아크?" 상큼한 여성의 목소리. 공기돌을 주워 오던 아크는 목소리가 나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어라? 루리엘. 어떻게 여길……?" "실프 한테 아크를 찾아 달라고 했어. 그런데 돌 가지고 뭐하는 거야?" "정신 수양." "체 뻥! 그런데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보여?" "그저께 오우거랑 오크들이랑 5시간 가량 쉬지 않고 술래잡기를 했거든." "하아~?" 달릴 때야 생존의 본능으로 인하여 체력의 한계점을 느끼지 못했던 아크였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온몸이 안 쑤시고 안 결리는 데가 없었다. 그리고 달릴 때 숲 속 나뭇가지에 이곳 저곳이 찢기고 상처가 난 데다가 자신의 집이 박살났다는 그 허탈함과 상실감에 아크는 힘을 낼 여력이 없었다. "루리엘 나한테 힐 좀 써 줄래?" "에? 하지만 힐은 피곤한 것은 못 고쳐 주는데……?" "상관없어 이 뭉친 근육과 상처나 좀 나으면 돼." "응 그래……힐!!" 아크는 단단히 뭉쳤던 몸의 근육들이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 루리엘." "뭐 별로. 근데 정말 돌멩이 가지고 뭐 하는 거야? 정신 수양이네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인간들 사이에서 어린아이들이 주로 하고 노는 공기놀이란 거야." 사실 이곳 세계에는 공기놀이가 없었지만 '내가 예전에 살던 다른 차원의 세계에서 있었던 놀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짓거리였다. "헤에? 어떻게 하는 건데?" "자 봐봐 이렇게 돌 하나를 위로 던지고 밑에 돌을 집은 뒤 떨어지는 돌을 잡는 거야 그리고 이렇게 한 번씩 돌을 다 집으면 이렇게 두 개씩……네 개 다 잡으면 돌을 다 손등에 올려놓고 위로 날린 다음 나꿔채서 잡은 것들을 점수로 치는 거지." "헤 참 조잡한 놀이네?" "조잡해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루리엘은 조잡하다고 말한 것과는 다르게 행동은 아크가 설명해 준대로 공기돌을 가지고 놀았다. "유치하고 조잡해 보여도 의외로 재밌네? 역시 인간들의 상상력이라는 것은……." "호오? 너 잘한다?" 아크는 감탄했다. 공기놀이를 처음 해 본 사람치고는 루리엘은 상당한 실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아크의 호승심. 그는 이 재능있는 초보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잘하는군. 나랑 한 판 붙자." "그럴까?" 그리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크오옷! 인정할 수 없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이렇게 처참하게!!" 아크는 발광하며 눈앞에 보이는 큰 나무에 연신 박치기를 해 댔다. 제법 큰 충격이었는지 나무는 많은 나뭇잎을 떨구었다. 아크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어 어떻게 10년 경력의 내가 단 한 번도……." 물론 10년 동안 한 번도 잡지 않았던 공기돌이지만 그 10년 전만 해도 제법 하던 실력에 방금 전 혼자 할 때만 해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가지던 아크는 이 결과를 절대 인정하지 못했다. "피 결과에 승복해! 남자가 너무 그러면 쪼잔해 보여." 발광하는 아크는 그가 수 천 번을 눌렀던 아크라우스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100통은 한계로 두고 시작한 경기. 처음을 너그럽게 루리엘에게 양보했던 아크는 한 번의 삑사리도 없이 단 번에 100통을 채워버리는 그녀의 실력에 놀랐지만 자신이 먼저 한다면 나도 저 정도는 한다고 자부했었다. 물론 아크의 실력도 그 정도는 되었지만 100통을 향해 가는 길에 꼭 두 세 번 정도는 실패했었다. 루리엘도 처음처럼 한 번에 끝내버리는 신기는 없었지만 그녀는 통수를 쌓을 때마다 꼭 5개씩 성공하는데 비해서 아크는 꼭 한 두 개를 흘렸다. 그러니 당연히 경기는 루리엘에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해! 절대 이대론 못 끝내!!" "나 참 상대가 되야 계속하지!!" 루리엘은 야박하게 아크의 도전을 뿌리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크라우스의 끝말잇기 도전을 야속하게 뿌리쳤던 아크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아크는 아크라우스의 절박한 그 심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초보에게 아작 나는 것도 다 아크라우스에게 못되게 굴었던 자신의 업보이리라. '다음부턴 좀 성의 있게 아크라우스와 놀아 줘야 겠군.' "그래 고만 하자." 모두 자신의 업보라는 생각이 들자. 아크는 발광을 멈추고 순순히 재경기를 포기했다. "웅! 남자가 무슨 일을 박력 있게 밀어붙이는 맛이 있어야지." "너 지금 나 가지고 노냐?" "응!" 너무나 당차게 대답하는 루리엘. 그런 그녀의 태도에 아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방금 전에는 쪼잔 하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 박력이 없다고? 망할 지지배!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 간신히 화를 가라앉힌 아크는 뭔가 생각났는지 손뼉을 치며 물었다. "아! 맞아 그걸 물어본다는 걸 깜박 했다." "뭘?" "너희 언니는 왜 그렇게 인간을 싫어 한다니?" "……!" 루리엘의 표정이 갑작스레 굳어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알고……싶어?" "어 이유라도 알아야 미움 받는 게 덜 억울할 거 아냐? 뭐 미움받을 짓을 하기는 했지만……." "후우." 루리엘은 한숨을 내쉰 뒤 굳어진 표정을 예의 활달한 표정으로 바꾸었다. "그럼 내가 먼저 물어볼게. 언니하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 그 그건……." 아직까지는 순진한 숫총각인 아크는 그 때의 일이 생각나자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런 아크의 변화에 루리엘은 짓궂은 표정을 짓고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엉큼한 짓 했나 봐?" "그 그런! 잠깐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그런데 왜 그것에 대한 답은 안 해주고……." "먼저 안 말하면 나도 안 말할 거야." 루리엘의 단호한 태도에 아크는 할 수 없이 그 때 그 사건을 불기로 했다. "그 뭐였더라? 한 2주전쯤인가? 내가 처음 그 강가를 찾아갔을 때였지." 애써 차분히 말하는 아크였다. "그 때 말야 딱 악어를 만나서 악어를 죽여 패 놨지. 그런데 웬 오크 세 마리가 애써 잡아놓은 악어시체를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이 오크놈들을 공격했지." 루리엘은 공터에 널려 있는 초록빛의 오크 껍데기 가죽과 악어가죽을 보고는 그랬었구나 하고 납득했다. "그래서 오크 세 마리한테 쫓기던 도중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오더군. 그 덕분에 오크놈들은 다 죽었는데 여전히 화살이 날아오데? 그래서 화살을 날리던 니네 언니랑 격투를 벌였지. 뭐 어쩌다가 운 좋게 이길 수는 있었어. 그런데 내가……." 중요한 부분이 되자, 루리엘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 때 남성의 혈기가 넘치더군. 게다가 너희 언니의 미모도 미모던지라 그냥……덮……." "언닐 덮쳤어? 꺄악 이 변태, 성추행범!! 나가 죽어!" 루리엘은 아크의 말을 끊고는 박살난 아크의 집 파편으로 아크를 구타했다. "야 그게 아냐! 확실히 엄한 짓 할 뻔하기는 했지만 그냥 벗겨서 보기만 했다구! 보기만! 정말 아무짓도 안 했어!" 아크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걸 누가 믿어!! 여자 벗겨놓고 아무짓도 안 했다고 하면 그걸 누가 믿냐? 죽어도 싸다! 죽어도 싸!" 루리엘의 계속되는 구타, 참다 못한 아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안 했다니까! 못 믿겠으면 너희 언니한테 직접 물어봐! 했는지 안 했는지!" "뻔하지 뭐! 언니가 어떻게 그런 걸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해? 이거 정말 나쁜 놈이네!!" "아 진짜! 혈서라도 쓰리? 정말 안 했다고!!! 어떡해야 믿을래? 엉? 배가르고 죽을까? 혀 깨물고 죽을까? 버럭버럭 악을 써대는 아크. 그러다 못내 억울한 심정에 아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 방울을 떨어뜨렸다. '어라? 내가 우는 건가? 겨우 이런 일에? 이게 무슨 개 쪽이냐?' 아크는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얼굴을 돌린 채 눈물을 훔쳤다. 쪽팔린다는 생각이 들자. 서럽고 억울한 감정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런 아크의 움직임을 루리엘도 눈치를 챘는지 그녀는 몽둥이질을 멈추고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어? 아크 우는 거야?" "시끄러! 안 울어! 내가 왜 우냐?"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애써 퉁명스레 말하는 아크. 사실 우는 것과 눈물을 흘린다는 개념은 같을 지는 모르지만 엄연히 달랐다. '눈물은 하품을 하거나 눈이 아파도 나오는 것이었으니까'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는 아크였다. 등을 뒤로 돌린 채 앉아 있는 아크. 루리엘은 그런 아크를 뒤에서 안아주었다. "……!" "미안해 아크 장난이었어. 믿을 테니까 울지 말고 그만 화 풀어." '이것이 스킨 쉽? 으메 좋은거! 내가 왜 여태껏 연애 한 번 안 해 봤을꼬?' 등뒤에 느껴지는 루리엘의 감촉에 아크의 쪽팔림이네, 억울함이네, 열 받네, 하는 감정은 멀리 날아가고 그저 설레이고 두근거리는 아크였다. 누군가가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 했다. 하지만 남자의 눈물도 충분히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사례였다. "뭐 괜찮아! 그리고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먼지가 들어가서 눈물이 나왔을 뿐이야. 그나저나 이제 너도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겠어?" "응 그래 말 해줄게." 루리엘은 아크를 껴안았던 손을 풀고 심호흡까지 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을 증오하고 미워해." '흠 무슨 숲을 훼손했다거나 여자 엘프 들을 성노로 납치해 가던가 그랬나 보군' 아크는 그렇게 지레짐작했다. 사실 엘프가 인간을 싫어한다는 설정은 여러 매체물들을 통해 아크로서도 많이 접해본 사례였다. 그리고 엘프들이 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아크가 짐작한 대로 숲을 훼손하거나 미모가 탁월한 엘프들을 납치해 노예로 쓴다던가 하는 까닭에서였다. "먼저 말해 둘게 우리 언니 이름은 리엔느야 맏언니지." '호오 딸부자집인 모양이네? 이곳에도 남아 선호 사상이 있나보지?' 맏언니라는 루리엘의 말에 아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확실히 이 엘프 마을엔 그것 비슷한 사상이 있기는 했다. 이 몬스터들이 날뛰는 숲 속에서 살다보니 각종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시달렸던 엘프들 게다가 껌으로만 봤었던 오크들도 최근 두르툰이라는 이름으로 급 성장하여 엘프들은 선방에서 싸울 전사가 될 남아들을 더욱 선호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여아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라 루리엘의 엘프 부족은 이 척박한 환경에서 맥을 잇기 위해 조혼과 다산의 풍습이 있었다. "30년 전쯤 일이었어. 우리 마을에 일행과 떨어진 한 인간 남자가 흘러들어 왔지, 우리 엘프들 만큼이나 잘 생기고 인간다운 매력이 넘치는 그런 사람이었어." "……." "우리들은 처음엔 그를 경계했지만 여러 일들을 거치고 그 사람과 친해지게 되었지. 리엔느 언니와 둘째 언니는 그 사람을 짝사랑하기 까지 했으니까……그러다가 둘째 언니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했고, 큰언니는 그를 잊기 위해 예전부터 언니를 좋아하던 한 엘프와 결혼했어." "뭣? 결혼? 유부녀란 말야? 그 얼굴에? 혹시 장난?" 아크는 뜻밖의 말에 괴성을 질러대었다. 루리엘은 그런 아크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지만 발광하는 그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뭐가 그렇게 이상해? 그 나이면 적은 나이도 아닌데? 지난번 강가에서 봤던 그 여자애 있지? 걔가 내 조카야 언니 딸이고." 아크는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에 뭐라고 따지려던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루리엘은 실눈을 뜬 채 아크에게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흠 아크! 혹시 우리 언니 좋아해?" "무 무슨! 그런 표독스런 여자를 개뿔이 좋아하냐?" 아크가 생각하기엔 확실히 아름답기는 한 리엔느였지만 그 성격만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둘이 너무 잘 싸우고 서로 너무 미워하는 티 내잖아 꼭 좋아하는 사람한테 자기의 마음을 숨기려는 것처럼." "유부녀는 사양입니다." "에? 그럼 언니가 유부녀가 아니면 생각해 보겠다는 뜻?"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아크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다음 일은 어떻게 된 거야? 빨랑 얘기나 해 봐." "응 그 다음엔……."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노무 지지배가 계속해서 추궁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루리엘은 그것을 잊고 하던 얘기를 계속하려 하고 있었다. 루리엘은 사실 계속 아크를 몰아 붙일 생각이긴 했지만 결정적 트집을 잡을 만한 증거를 이야기하기 위해 일단 이야기를 끝낸 뒤 차차 추궁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잘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우리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 나무를 불태우고, 그곳을 지키던 촌장님을 죽인 뒤 엘프들의 보고를 훔쳐 달아났어." "……!" "그리고 우리들은 그 배신자를 잡아 처단하고 우리들의 보고를 다시 찾아오려 했지, 그래서 큰언니의 남편을 비롯한 몇몇 엘프 남자들이 그 사람을 쫓았지. 그런데 살아 돌아온 사람은 둘 뿐이었어.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온 주검에는 형부의 시체도 있었지, 그러자 둘째 언니는 그 죄책감에 그 사람의 하프엘프와 함께 집에 불을 질러 자살했어." 실로 충격적인 그들의 과거에 아크는 할 말을 잊었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모두들 치를 떨어. 특히 언니는 더 심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것도 부족해서 동생과 남편을 모두 잃었으니까." "하아 넌 그런데 인간인 나한테 왜 이렇게 늘러 붙는 거야? 그런 못된 놈하고 같은 인간인데?" 아크는 자신이 실제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란 놈에게 순수한 분노를 느꼈다. 그놈의 악행에 분노가 일기도 했지만 이렇게 자신을 죽음의 위기로 몇 번을 집어놓은 근원이 된 놈이었기에 아크의 분노는 더더욱 심했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은 아니잖아? 나쁜 사람이 있으면 착한 사람도 있고, 배신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까지 믿음을 주는 사람도 있지, 아크는 적어도 믿음을 주는 사람 같아." "……그래?" "응 그런데 말야 아크. 우리 언니 미망인이거든?" "……!" 겉보기엔 상큼한 미소를 짓는 루리엘. 그러나 아크의 눈에는 그 미소가 사탄의 미소로만 보였다. "유부녀였기는 했는데 지금 임자는 없다는 소리지." "그 그게 뭐 어 어쨌는데?" "미망인에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30년 청상과부. 어때? 이 정도면 그 외로운 마음을 파고들어 어필한 다음……그냥 콱!" "시 시끄러." 얼굴이 시뻘개진 아크는 떠듬거리는 말투로 애써 루리엘의 말을 끊었다. 루리엘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후훗 잘 생각해봐. 언니도 아크를 그렇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야. 인간만 보였다하면 무조건 쏴 죽이던 언닌데 몇 번씩이나 아크를 죽일 상황에서 한 번도 죽이지 않다니 분명 뭔가 있는 게 확실해!" "무 무슨 헛소리야!!" 한 때 정말 그녀가 자신을 좋아할 지 모른단 망상을 하던 아크지만, 3번에 걸친 만남에서 그녀가 보여준 태도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내가 돌아가서 언니 속도 한 번 떠볼게, 아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푸훗! 그럼 나중에 또 놀러 올게." 총총 걸음으로 숲 속으로 사라지는 루리엘. 아크는 그녀의 뒷모습을 흐리멍텅한 눈으로 우두커니 바라만 볼뿐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아크는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짧달막하게 외쳤다. "묵!" 그러나 소녀의 손은 쫙 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리엘.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빠르게 외쳤다. "찌!" -움찔 주먹을 펴지 않은 아크. 기세 좋은 루리엘의 목청소리에 쫄아서 미동도 하지 않은 것이 의외로 호재를 불렀다. "묵!" "……!" 급히 주먹을 쥐던 루리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훗 대시지." "흑 연약한 여자의 이마를 그렇게도 탐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러나 아크는 가차없었다. "놀구 있네! 어여 대!" "리에나는 한 대도 안 때렸잖아! 아 혹시 언니 딸이니까 잘 보이려고? 하긴 미망인 공략할 때 자식만큼 플러스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것도 없지." -발끈 루리엘의 도발은 성공한 듯 했지만, 도발의 결과는 그녀에게 그대로 떨어졌다. -딱! "아야!" 아크는 어찌나 힘을 줘 때렸는지 딱밤을 놨던 손가락의 길게 자람 손톱이 금이 가 있었고 루리엘의 이마빡은 시뻘개져 있었다. "됐지? 내가 이겼으니까 공기돌이나 꺼내." "싫네! 리에나하고나 하시지. 곧 아빠가 될 지도 모르니까." "죽을래?" 루리엘에게 협박을 가한 아크는 혼자서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는 조그마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리엔느라는 그 표독스런 여자 엘프의 딸. 리에나. 어리긴 했지만 역시 엘프인지 로리콘이 아닌 아크도 두근거릴만한 출중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자란다면 엄청난 미색을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묘한 눈빛으로 리에나를 바라보는 아크에게 루리엘은 어김없이 시비를 걸었다. "흠 사랑하시는 그녀를 닮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군." -뚝 뚜둑 "말 다했나? 그럼 소원대로 죽여주지!" 아크는 주먹에서 뼛소리를 내며 루리엘에게 다가갔다. "힉!" "죽여주마!" 아크는 화칼을 뽑아들고 루리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려줘!" 부리나케 달아나는 루리엘과 그 뒤를 맹렬히 쫓는 아크. 리에나는 그런 그들을 한심한 눈초리로 지켜보며 공기놀이를 계속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쿵! 쿵! 쿵! 갑자기 땅이 진동했다. 소녀는 공기놀이를 멈추고 진동이 난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심하던 소녀의 표정은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갔다. "야 임마 거기 안 서!!" "싫은데? 때릴 거잖아!" "야 안 때려 그러니까 멈춰!" "팽! 그걸 누가 믿냐?" 사실 아크는 정말로 루리엘을 때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 버릇없는 지지배 한테 피겨 포 레그 락(4자꺾기)정도라면 충분히 먹여줄 용의는 있었다. "어?" 한참 루리엘의 뒤를 쫓던 아크는 갑자기 숲 속에서 튀어나오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쿠당탕 아크는 갑자기 뛰어나오던 사람을 피하지 못하고 충돌을 일으키고 말았다. "이크 미안합니다. 미처 못 피했……엥 유부녀 씨?" 그랬다. 아크와 충돌을 일으킨 사람은, 아크가 지칭하기를 표독스런 여자이자 루리엘의 언니인 리엔느였다. "당신이 왜 여기에? 나 죽일라고? 여긴 오크족 영역인데?" 리엔느는 상처가 난 다리에도 불구하고 급히 일어나 아크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조급하고 불안한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리 리에나 어딨어!" "에?" 그 때 앞서 달려갔던 루리엘이 돌아왔다. "어! 언니." 그제야 리엔느는 아크의 멱살을 놓은 뒤 루리엘에게 물었다. "리에나 어디있어?" "에? 공터 쪽에 있을 텐데? 갑자기 왜 그래?" "너 이 소리가 안 들려?" "이 소리……?!" 갑자기 루리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리에나!!" "……뭐야?" 그러나 아크의 질문에 답해줘야 할 두 여자는 벌써 달려가고 있었다. "리에나 한테 뭔 일이 생긴 건가? 어이 같이 가!" 잠시 고민하던 아크도 곧 둘의 뒤를 따라갔다. "……흐흑 흐" "쿠오오오오" 주저앉은 채 뒷걸음을 치고 있는 리에나. 소녀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기에 오줌까지 지렸는지 리에나가 주저앉아 있는 땅바닥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어깨에 한 개의 도끼가 박혀 있는 거대한 몸체의 오우거는 느린 발걸음으로 천천히 리에나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을 내밀 때마다 나는 거대한 '쿵' 소리는 소녀에게 공포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리에나는 계속해서 뒷걸음 쳤다. 그러나 등뒤의 나무는 그녀에게 더 이상 도망칠 틈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흑 흐흑 엄마……."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는 소녀의 눈물. 사람들이 봤으면 누구든 그 눈물에 약해져 굴복하였을 테지만 지금 그녀를 위협하는 것은 소녀의 눈물 따위는 씨도 안 먹히는 상대였다. 서서히 거대한 몽둥이를 치켜드는 오우거, 저 몽둥이에 맞는다면 이 귀여운 소녀도 한 낱 고깃덩이가 되어버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리에나~!!" 하릴없이 울기만 하던 리에나는 자신을 부르는 이 소리에 오우거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엄마와 이모가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아!" 소녀는 눈물을 그치고 반색을 띄었다. 그리고 오우거는 이 꼬마엘프 에겐 흥미를 잃은 듯 소리가 난 쪽에서 달려오는 두 여자 엘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달려오던 루리엘은 갑자기 멈추어 오우거와 거리를 둔 뒤 외쳤다. "라이트닝!!!" 하늘에서 조그마한 벼락이 떨어졌다. 1서클의 최하위 전격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였다. 하지만 그것을 맞은 오우거는 발을 동동 구르고 성을 내며 방금 전 벼락을 떨어뜨린 루리엘을 표적으로 삼고 달려왔다. 벼락이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 증거였다. -휙 휙 휙 휙 휙 루리엘을 향해 달려드는 오우거의 등판에 리엔느의 화살이 빠른 속도로 꽂혔다. 워낙 넓직한 오우거의 등판 때기 였던 데다, 워낙 빠른 연사력을 가진 리엔느의 활 솜씨에 오우거의 등판은 금세 고슴도치가 되었다. "후으으읍!"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오우거는 심호흡을 하며 근육을 모았다. "……!" 오우거가 몸에 힘을 주자 리엔느의 화살은 더 이상 오우거의 살갗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럴 수가……" "언니! 빨리 워터 애로우를 사용해!!" "알았어!" 화살공격이 먹히지 않자 잠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춤거리던 리엔느는 곧 여섯 발의 물 화살을 만들어 오우거에게 날렸다. -촤아아아아아 물 화살은 다섯 발은 오우거에게 한 발은 옆의 나무에 명중했다. 그러나 나무는 부러졌어도 오우거는 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했다. "수고했어 언니! 하아앗!" 루리엘의 양손에서 두 개의 전기 구체가 형상화되어 오우거에게 직격했다. 지난번 아크를 변태로 오인하고 썼었던 전격 마법의 일종이었는데 두 방을 한꺼번에 날리는데다가 단순 충격용이 아닌 살상을 위한 기술이었기에 위력은 몇 배로 강했다. -파지지지지직!! "쿠오오오오!!" 오우거는 전기 충격에 괴로워하며 마구 발버둥쳤다. "끝난 건가?" 그러나 전기 충격이 끝나자 오우거는 또 다시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런……." 수계마법으로 상성을 좋게 만들어 놓고 쓴 제법 강력한 전격계 마법도 별 소용이 없었다. 물론 몇 가지 강력한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는 루리엘이지만 강력한 마법일수록 캐스팅 시간이 많이 걸려 쉽사리 사용할 것이 못 되었다. 전기충격을 이여낸 오우거는 리엔느를 향해 돌진했다. 루리엘은 다급히 소리쳤다. "언니! 이대로는 무리야! 노움한테 부탁해서 오거의 발을 묶어놓고 리에나를 데리고 도망쳐!" "아 알았어 대지의 정……아악!" 대지의 정령을 부르려던 리엔느는 오우거의 주먹에 맞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뒹굴었다. "언니!!" "엄마!!!" 루리엘은 그녀를 치료해 주기 위해 리엔느가 쓰러진 곳으로 잽싸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오우거는 리엔느를 향해 달려가던 루리엘에게 방망이를 날렸다. 다행히도 그 방망이는 루리엘을 맞추지 못하고 루리엘의 옆에 나무를 맞혔다. 그러나 오우거의 방망이에 맞아 부러진 나무는 그대로 루리엘을 덮쳤다. -우지끈! "아!" 나무에 깔려버린 루리엘. 리엔느는 간신히 기어서 루리엘에게 다가갔다. "바보 같으니라고 내가 당할 때 그대로 도망치지!" "어떻게 언니를 놔두고 가……근데 이대로 죽는 걸까? 느림보 거북이 같으니라고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하아 그 인간 따위를 믿는 거야? 그자가 와 봤자 뭘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리에나 대리고 도망이라도 칠 수 있잖아." "그래……." 두 자매는 자신들의 최후를 예감한 듯 서로 손을 맞잡았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거동을 못하는 두 희생양에게 다가가는 오우거. 막 사냥감을 피떡으로 만들려던 오우거는 뒤통수에 뭔가가 부딪히는 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쿠오?" 오우거는 뒤에 뭔가가 있는지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갑작스런 오우거의 행동에 리엔느와 루리엘은 어리둥절했다. -흠찔 오우거는 나무 뒤에서의 무언가의 미동을 감지해내며 괴수의 썩은 미소를 지은 뒤 기척이 있었던 나무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허걱!" 그리고 나무가 날아간 자리에 자신의 머리를 쥐고 있는…… "아크!" 예상대로 나무 뒤에 숨어서 오우거의 뒤통수에 돌멩이를 던지던 사람은 바로 아크였다. "하하 오우거야 안녕? 지난번에 오크 친구들이랑 같이 술래잡기 하던 거 기억나? 하하 그 친구가 준 선물도 어깨에 잘 박혀 있……흐미 그렇게 반갑냐? 한 방에 날려버릴 만큼?" 오우거는 아크의 인사는 한 귀로 흘려버리고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냥감을 향해 가차없이 몽둥이를 날렸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루리엘은 다친 몸과 안 어울리게 팔팔한 목소리로 아크를 추궁했다. "아 미안 오우거랑 싸우는 걸보고 대 오우거용 무기인 나무 창을 챙겨오느라고, 자아 괴수로부터 공주님들을 구하러 온 기사 님 등장이오!" 아크는 오우거의 공격을 연신 피하며 능글능글하게 대꾸했다. "인간……도저히 너의 상대가 아냐! 부탁해. 빨리 내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쳐!" "뭐?" "못 알아 들었나? 리에나랑 빨리 도망치라고!" 리엔느는 떨리는 목소리는 애써 아크에게 소리쳤다. "그럼 너희들은?" "우린 상관 말고 빨리 가!" "후 고렇게는 못하쥐!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했는데……바로 오우거 헌터가 되는 이 날을!" 사실 준비란 것도 없었다. 그저 아크가 집을 지을 때 썼던 나무들을 집 지을 때 땅에 박을 부분을 뾰족히 깎아놓았던 부분이 있기에 대 괴수전 창대용으로 쓸 것을 가져온 것 외에는 오우거 잡을 준비란 것은 쥐뿔도 없었다. 다만 아크는 '너희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어'라는 영웅적 대사를 말하기가 단지 쑥스러웠기에 오우거를 맞상대해서 이길 줄 아는 어리석은 인간 흉내를 낸 것뿐이었다. 사실 아크도 저 오우거를 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저 자신이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맺은 인연들이고 또 자신은 아크라우스가 줬다는 최후의 행운이라는 밑천이 있었기에 최소한 저 오우거를 유인하여 엘프들에게 도망을 칠 짬이라도 주겠다는 생각으로 대책 없이 이 오우거와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헤이 컴온 일로와 오우거!" 아크는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뻗어 오우거를 도발했다. 물론 오우거나 엘프들이나 가운데 손가락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오우거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아크는 엘프들에게 외쳤다. "이봐 이 녀석은 내가 유인할 테니 그 사이에 알아서 도망가!" 아크는 오우거를 도발한 뒤 숲 속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아크의 판단 미스였으니…… "얼레 왜 안 쫓아오지?" 한참을 달리던 아크는 뒤에서 오우거가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오우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예상외로 오우거는 단순히 배가 고팠는지 도망치는 아크는 내 버려 둔 채 쓰러진 리엔느에게 다가갔다. "젠장! 운디네! 어떤 공격이든 저 괴수한테 퍼붓어!" 아크의 부름에 응한 운디네는 오우거를 향해 물의 공격을 퍼부었다. "뭐 하는 거야? 아크! 도망치라니깐!" "ZOT도 없어 난 안 죽으니까!!!!!!!!" 운디네가 맹공을 퍼붓는 사이 아크는 오우거의 머리를 겨냥하고 도끼를 날렸다. 물론 도끼는 오우거에게 전혀 명중하지 않았다. "운디네 오우거의 얼굴에 물을 뿌려!" 운디네가 오우거의 얼굴에 물을 뿌리자 오우거는 갑자기 가려진 시야에 안절부절못했다. 그 사이 아크는 하나 더 가지고 있던 도끼로 오우거의 발등을 찍었다. "쿠오오오오!" 아크는 괴로워하는 오우거의 아킬레스건을 검으로 베었다. "쿠오옷!" 이제 결정타만 먹이면 되었다. 아크는 나무창으로 오우거의 가슴팍을 찔렀다. "어라? 이 시키? 뭔 비계가 이렇게 질겨!" 아무래도 오우거의 두꺼운 겉가죽을 나무 창 따위로 뚫기는 힘들었다. 발등이 찍히고 아킬레스건이 찢어진데다 물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오우거는 마구잡이로 몽둥이를 휘둘렀다. 그 때였다. -퍽! "크악!" "아크!!" 오우거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몽둥이에 머리를 맞은 아크. 맹약의 반지의 영향인지 다행히도 빗겨 맞았지만 죽지 않았다 뿐이지 충격은 대단했다. 머리에서는 하염없이 피가 주르르 흐르고 아크의 시야는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비틀거리는 아크. 오우거는 운디네가 알아서 시야를 가려주고 있었지만 아크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라구!!!" "흠 네놈 위험하구나? 적절한 시기에 내 힘을 보낼 준비를 하겠다." 나무에 깔린 루리엘의 절규와 자신이 다치자 걱정의 의사를 보내는 아크라우스. '크흐흐 걱정 마 아크라우스. 저놈한테 머리를 맞으니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뭐?" "이야아아아아압!" 아크는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내고 나무 창을 든 채 오우거에게 돌진했다. "아크?" "……!" "흐아아앗 필살 X침!!!!" -푸욱! "크오오옷 쿠옷 크오오오!!" 아크의 나무 창은 오우거의 항문을 정확히 찔렀다. 그리고 아크는 나무 창을 평균대 삼아 오우거의 등에 올라탔다. 리엔느의 화살을 발판 삼아 오우거의 어깨에 올라탄 아크. 꼭 오우거가 아크를 목마 태우는 형상이었다. 아크는 회칼을 꺼내들고 오우거의 목을 찔렀다. 그런데…… "큭 왜 안 박혀? 이 새끼 목살이 얼마나 단단한 거야? 좋아 그렇다면 눈깔이다!!" 아크는 표적을 바꿔 오우거의 눈을 노렸다. 그러나…… "이런 젠장! 운디네 빨랑 꺼져 버려! 빌어먹을!!" 운디네로 오우거의 시야를 가리는 것까지는 매우 좋은 작전이었다. 그러나 운디네가 계속 물을 뿜어대는 바람에 아크는 오우거의 눈을 찌르려던 회칼을 그만 떨어뜨려 버렸다. 시야를 가리던 운디네가 사라지자, 오우거는 아크를 떨어뜨리기 위해 계속해서 헤드벵잉을 해 대었다. 덕분에 아크는 공짜로 로데오 체험을 하는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 "좋다 C8 남은 건 필살의 목 조르기 뿐이닷!!" 아크는 오우거의 목에 양팔을 두르고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오히려 자신의 체력부담이 심각했다. 하지만 아크에게는 마지막 남은 밑천이 하나 있었다. 레슬러 헐크 호건이 매번 차고 나오며 간혹 무기로 사용하는 벨트! 인터넷 쇼핑으로 구입한 호건의 벨트가 지금 아크의 바지에 채워져 있었다. 아크는 주저 없이 벨트를 풀렀다. Hulk Mania란 문구가 쓰여져 있는, 지금은 팔지도 않는 초 한정판 레어 벨트였지만 그딴 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크하하하 기브 업? 기브 업?" 아크는 어느 덧 자신이 레슬링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오우거에게 경기를 포기하겠냐고 물어보았다. 벨트로 목이 조여지는 압박감을 당하던 오우거는 어떻게든 아크를 떨어뜨려 보려고 난리를 쳐 댔지만 아크는 떨어질 랑 말랑하면서 지독하게도 벨트로 오우거의 목을 졸라댔다. 그러면서 벨트를 잃은 바지가 흘러내렸지만 아크는 개의치 않았다. "쿠오오오오." "쿠헬헬헬 죽어버려! 쿠헤헤헤." 그렇게 장장 두 시간 동안 목을 조르자 그제야 오우거는 그 큰 몸체를 서시히 뉘였다. 하지만 기절만 했다 뿐이지 오우거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니었다. 아크는 돌을 주워와 호두를 깨듯 오우거의 대가리를 찍어댔다. 이미 피를 볼대로 본 아크는 잔인함이고 뭐고 계속해서 오우거의 머리를 깨부쉈다. 루리엘과 리엔느, 리에나는 그런 아크의 행동을 넋 놓고 바라만 볼뿐이었다. -콰직 드디어 오우거의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아크는 검을 들어 오우거의 목을 슬근 슬근 갈았다. 그리고 오우거의 머리가 몸통과 완전히 떨어졌을 때 그제야 아크는 큰 대자로 수풀 위에 그대로 누웠다. "큭 아크 나 좀 꺼내 줘." 루리엘의 신음소리에 아크는 오우거의 머리를 찧었던 돌과 오우거의 항문을 찔렀던 나무 창으로 루리엘이 깔려 있는 나무에 지렛대를 만들고 나무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하아 하아 하아 학, 학, 학, 학 이제 됐지?" 아크는 그대로 정신을 놓았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수련을 받은 몸도 아니고 체내의 마나도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저런 인간이 오우거를 잡다니……대단하다고 해야하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하나?" "히히 그래도 아크 덕에 살았잖아. 그리고 언니는 가만히 좀 있어! 다치기도 제일 심하게 다치 주제에." "치 그래도 리에나가 너무 잔인한 장면을 봐 버렸어." 오우거와의 싸움에서 죽음의 위기로 몰렸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간의 도움으로 살아난 엘프 일가. 하지만 아크는 뇌진탕 및 머리출혈을, 리엔느는 이곳 저곳 골절상을 입는 중상을, 루리엘은 허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루리엘의 회복 마법으로 부상은 대충 회복되어 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리엔느가 거동을 할 수가 없어. 엘프 일가는 꼼짝없이 아크의 공터에서 며칠 요양해야 할 판이었다. "헤헷 언니! 아크 제법 괜찮은 사람 같지 않아? 충분히 도망 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승산도 없는 싸움에 몸을 아끼지 않았잖아?" "하긴……이 인간이 리에나를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기만 바랬지. 설마 싸워서 우리까지 구해 줄 줄은……뭐 그건 인정해 주지." "헤에 언니 솔직히 얘기해 봐." 갑작스런 루리엘의 질문에 리엔느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고 무슨 뜻이냐는 무언의 압력을 루리엘에게 가했다. "뭘?" "아크한테 맘 있지?" 곧 자신의 언니가 폭발할 것을 생각하며 속으로 키득거리는 루리엘. 하지만 리엔느는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리엔느는 굳어진 무뚝뚝한 표정으로 단호히 루리엘의 말을 끊었다. 그러나 루리엘은 의외로 만만찮게 집요했다. "흠 그렇다면 왜 지난 30여 년 동안 눈에 띄는 인간마다 쏴서 죽였던 언니가 그를 죽일 기회가 세 번씩이나 있었는데 왜 아크를 살려 줬을까?" "……." 말을 잇지 못하는 리엔느를 보고 루리엘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애써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말했다. "……뭐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했어." "농담하지 말고 제대로! 그 세 번의 기회에서 아크를 왜 살려뒀는지 타당한 이유를 대라구, 타당한 이유!" 루리엘이 계속해서 다그치자 잠시 안절부절못하던 리엔느는 다시 표정을 굳힌 채 루리엘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첫 번째에는……죽이려고 했지. 그런데 도리어 내가 당하고 나는 저자에게 꼼짝없이 당할 처지가 되자. 그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었어. 그런데 저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애처롭게 미안하다고 빌 길래,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서 그냥 보내줬어. 그리고 두 번째에는 리에나가 보고 있는데 차마 사람을 죽일 수는 없어서 그냥 살려뒀고, 세 번째에는 그 자의 기세에 밀려 차마 쏠 수 없었어. 뭐 제법 착하고, 의리 있고, 재미있어 보이는 인간이긴 하지만 나는 그를 친구이상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어." 예상외로 솔직하게 털어놓는 리엔느의 태도에 계속해서 몰아 붙이려던 루리엘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데……그건 어떻게 할거야?" "뭐?……아!" 순간 리엔느의 표정이 암울해졌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아크가 언니의 몸을 요구한다거나 결혼하자고 한다면? 언니는 몰라도 아크는 제법 언니를 맘에 두던 눈치던데?" "……루리엘!" "응?" "저자에게 절대 말하지 마! 어차피 저자는 인간. 그걸 알고 있을 리가 없어. 그리고 따지고 보면 너하고 리에나도……." "응 알았어……." 루리엘은 쓴 웃음을 지었다. "끄으으 머리 아파." 뒷골머리를 감싸며 몸을 일으키는 아크. 벌서 이 세계에서만 세 번째 기절이었다. 어둑어둑해진 밤. 수풀 속에서 계속해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달빛이 비추는 아크의 공터. 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아크는 달빛을 통해 숲 속을 바라보았다. "휴 믿기지 않는 군. 내가 저런 괴물을 잡다니. 경험치는 많이 올랐겠는데? 게임이라면 절대 이 정도 수준에 오우거 못 잡지." 아크의 시야에는 모가지가 떨어진 거대한 오우거의 시체와 악어가죽을 덮은 채 노숙중인 엘프 일가가 들어왔다. "흠 내 칭찬을 해 주마. 6서클의 마법사와 숙련된 엘프 전사도 잡지 못한 오우거를 네 녀석 따위의 형편없는 실력으로 잡다니." 이제 사 깨어난 아크에게 시비를 거는 아크라우스. "칭찬을 하려면 제대로 해라. 아크라우스. 형편없는 실력이라니? 오우거 목조르기로 잡는 인간 봤냐?" "자만하기는……맹약의 반지가 없었다면 네 녀석의 머리통은 이미 터져 버렸을 것이다." "지미럴 그것도 행운이라고 집어넣은 거냐?" 아크는 투덜거리며 아크라우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불만인가? 그럼 빼라! 그래 뵈도 그 반지가 지금껏 네놈의 생명을 몇 번을 살렸는데? 도끼 날이 아닌 도끼 등에 얻어맞게 해 주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해서 상황을 좋게 만들어 주고, 회칼로 손가락 하나 잃을 뻔한 위기에서 빗겨가게 해 주고, 오우거 떨굴 수 있게 떨거지 오크들 만나게 해 주고, 오우거 방망이에 빗겨 맞고. 네놈은 그게 다 우연이거나 네 녀석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 하냐?"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아크라우스의 반박에 아크는 찍소리도 못하고 다 자기 잘못이라고 체념했다. "후 그나저나 네놈은 참 위험하게도 사는구나." "이게 다 아크라우스 네가 이딴 곳에 떨군 탓이잖아! 도대체 아크로니아라고 하는 드래곤은 어디에 사는 거냐?" "쩝 그건 나도 잘 모른다. 그저 아크로니아가 둥지를 튼 곳이 우라시드 산맥이라 길래 널 거기로 보냈지. 그러다가 산맥에서 약간 떨어진 그 숲에 떨어진 것뿐이다. 그리고 먼저 번에 보냈던 세 사람도 모두 아크로니아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그들은 다들 자기들의 인연을 찾아 잘 살고 있지. 하지만 네 녀석만큼은 워낙 불만이 많길래 꼭 한 번쯤은 아크로니아와 만나게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네 녀석은 아크로니아의 레어는 찾을 생각도 안 하면서 계속 나한테 따지기만 하면 어쩌자는 거냐?" "지도도 없고, 지리도 모르고, 방향이 어딘지 감도 못 잡는데 어떻게 찾아가?" 아크라우스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그 엘프들에게 부탁해서 어디냐고 물어 보면 될 것 아니냐? 아니 엘프들한테 말해서 엘프들과 친한 그린 드래곤 녀석들한테라도 찾아가 그 녀석이 어딨는지 물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잖느냐?" "우이씨 그런 건 진작에 좀 가르쳐 줬어야지!" "진작 알려 줬다. 하더라도 네놈이 저 엘프들과 친해지게 된 것은 최근이지 않느냐? 그리고 나는 정말 딱 좋은 타이밍에 말한 거다." 개뿔이……라고 생각하며 아크는 되물었다. "좋은 타이밍?" "그래. 엘프들은 아주 큰 은혜를 입었을 때 자신도 그 사람의 소원을 자신이 가능한 한도 내에서 들어주는 풍습이 있다. 지금 보니 너는 오우거를 때려잡음으로써 저 세 엘프들을 구한 공이 있으니 아마 한 명당 소원 하나씩 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뭐 저 꼬마 엘프같은 경우는 기대하기 좀 힘들겠지만." "오호! 그래? 그럼 몸을 달라거나? 내 노예가 되어 달라고 해도? 히히히히." "변태 같은 놈. 상상하지 마라! 네놈이 무슨 상상하는지 다 보인다 보여." 아크라우스가 자신의 생각을 읽는 다는 것을 망각하고 엄한 상상을 했다가 망신당하는 아크였다. "아무리 혈기가 끓어오를 나이이고, 수 십일간 참은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좀 건전한 생각을 하고 살아라! 건전한 생각! 그 소원들은 그린드래곤을 만나게 해 달라거나, 우라시드 산맥을 안내해 달라든가 하면서 좀 보람찬 일에 쓰란 말이다! 엉큼하게 벗으라니, 빨라니, 핥으라니, 마시라니, 넣는다니 그딴 거 시키지 말고!" 과연 아크는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 "어이 음양의 오묘한 조합을 '그딴 거'라고 표현 하냐?" "흥! 내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저 살색의 벌레 두 마리가 서로 붙어서 육수 흘리는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인다." 아크는 이야기가 엄한 쪽으로 흘러가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 맞아! 평소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말야! 너희 드래곤들은 양성체가 맞는 거냐? 아니면 남성체와 여성체가 나뉘어져 있는 거냐?" "흠 뭐 다른 차원에도 드래곤이란 존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웅동체다. 맘에 맞는 놈들끼리 서로 암수 역할 정해서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혼자서 하는 놈들이 많지." '암수 역할? 혼자서?' 또 다시 시작되는 아크의 이상한 상상에 아크라우스는 발끈했다. "크앗! 감히 인간인 네 녀석 따위가 어디서 드래곤 포르노를 상상하는 거냐? 우리들은 쾌락을 위한 관계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 뭐 타 종족의 형상으로 변해 즐기는 변태 같은 놈들이 있기는 하지만……으아악! 이런 제길!" "어? 왜 그러냐? 아크라우스." "크아앗 네놈과 이야기하는 사이 떨어진 크로넨의 링을 어떤 쳐죽일 놈이 먹자하고 날랐다!" "야 이 등신아! 그 비싼걸 떨어지자마자 먹어야지. 뭐 한다고 땅에다 두고 가만히 있었냐?" "자동 반격 모드로 해 놓고 있었지! 크아악 이 새끼 수신거부까지? 걸리기만 해 봐라 그냥 콱 PK를……아니지 이놈의 신상정보를 캐낸 다음 찾아가서 죽여버리고 헬 파이어로 시체까지 녹여 버린 뒤, 아이템을 강탈해 버려?" 역시 아크라우스는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아크는 그가 죽이겠다는 엄포가 장난으로 들리지 않았다. "살인은 안 된다. 참아라 아크라우스." "네놈 같으면 참겠냐?" "아니 절대 못 참지. 그치만 사람은 쉽게 못 죽이지. 쩝 내 궁사 캐릭터 창고 비번 알려 줄 테니 열어봐라. 거기에 크로넨의 링 하나 있을 거다. 비번은*******." 아크가 하던 게임에는 해킹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한 서버에 있는 캐릭터에 각각 창고 하나씩을 두는 개개인 창고 시스템과 캐릭터들과 공유가 되는 공동창고와 개인창고에 각각 비밀번호를 걸어놓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현재 아크라우스는 아크의 캐릭터가 장착하고 있던 아이템들은 모두 빼 갔지만 창고 비밀번호 때문에 그야말로 보물창고라 할 수 있는 아크의 창고와 은행예금을 빼 가지 못한 상태였다. "오홋! 그래? 고맙다 인간. 오랜만에 네 놈이 맘에 드는 일을 했구나." "뭐 가엾은 인생하나 살려 줬다 치지 뭐." 이런 아크의 자비 덕분에 아크라우스의 아이템을 먹고 튄 유저는 귀중한 생명을 건졌다. "어이 아크라우스! 거기 시간은 몇 시냐?" "오밤중이다." "잘 됐네 나 잠도 안 오는데, 너도 밤중에 노가다 뛸 려니 지겹지? 나랑 날밤이나 까자." "그래 끝말잇기는 어떠냐?" 평소 같았으면 아크라우스가 끝말잇기라는 말을 대자마자 아크라우스를 쌩까던 아크였지만 잠도 안 오는 이 밤에 특별히 할 것도 없어서 흔쾌히 아크라우스의 도전을 받아 들였다. 물론 루리엘에게 공기로 처참히 패배해서 패배자의 심정을 깨달은 탓도 있었다. "좋아 오늘은 내 특별히 너의 도전을 받아 주지. 먼저 불러라!" "좋다! 단어를 대라 인간!" 그렇게 그들의 하룻밤이 지나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새로운 만남 루리엘은 걱정스런 목소리로 옆에 있던 리엔느에게 속삭였다. "언니 아크가 왜 이렇게 안 깨어나지?" "걱정되니? 혹시 이 인간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아냐!"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루리엘. "후훗! 강한 부정은 긍정의 표시지." "언니!!" 루리엘은 심통이 난 표정으로 리엔느를 쏘아보았다. 리엔느는 루리엘이 깨어나지 않는 아크를 걱정하자. 어제 당했던 것이 생각나 계속해서 루리엘을 밀어 붙였다.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냐? 난 그냥 농담으로 건넨 말인데……진짠가 보네?" "아니라니깐!!" 주객이 전도된 괴상한 상황. 리엔느는 루리엘의 사람 놀려먹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일부러 도발을 해 보았지만, 의외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루리엘의 모습에 재미가 붙어 계속해서 루리엘을 밀어 붙였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네 낭군님은 그냥 자고 있는 것 같으니까." "뭐?" 아크가 자고 있다는 말에 루리엘은 '낭군'이라는 말에 반박하는 것도 잊은 채, 아크를 바라보았다. 확 실히 옆의 나무를 발로 차고 계속 뒹굴뒹굴 구르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까지 기절해 있다고 보기보다는 자고 있다는 리엔느의 말이 맞는 듯이 보였다. 계속해서 뒹구는 아크. 자매는 계속해서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아크는 하염없이 구르다 한 부드러운 장애물에 막혀 구르는 것을 그만두고 그 부드러운 장애물에 자신의 머리통을 올렸다.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는 루리엘과 리엔느, 그러다 문득 아크 쪽으로 고개를 돌린 루리엘은 아크가 베고 있는 베개를 보며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저 변태가!" "……?" 무슨 일인가 싶어 루리엘의 눈이 응시하는 곳을 보는 리엔느의 얼굴도 경악과 분노의 빛이 스몄다. "……!" 아크는 곤히 자고 있는 리에나의 자그마한 허벅다리를 베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문제는 어제 오우 거와의 혈투에서 리에나는 지극한 공포심에 다다라 그만 오줌을 지렸었다. 그래서 루리엘은 리에나의 스커트와 속옷을 벗겨서 빤 다음 말려놓은 상태였다. 여기서 문제는 리에나에게는 여분의 옷 따위는 없었고 인간의 수명으로 보면 리에나의 나이는 장년이었지만 엘프들의 기준에서 볼 때나 외양으로 볼 때나 리에나는 어린 여자 아이. 때문에 리에나의 정신 연령은 어렸고 그녀의 엄마도, 이모도 리에나를 어린애 이상으로 보지 않았기에 소녀의 하의를 홀라당 벗겨 놓고 있는 것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으며, 성교육 따위 받아본 적도 없고 남에게 보인다는 것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리에나도 자신 의 하반신 올누드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대담하게 하의를 완전 미착용 한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도 리에나도 뭐가 뭔지 모른 채 잠만 새근새근 곱게 자고 있었다. 하지만 루리엘과 리엔느는 이 황당한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리엔느는 당장 저 인간을 파묻어 버리고 싶었지만 거동을 못하 는 상태였고, 루리엘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몸이 굳어 있었다. 아크는 뭔가가 불편한지 계속해서 몸을 뒤척였다. 그러던 아크는 정자세가 불편했는지 리에나의 허벅 지 위에서 그대로 돌아누웠다. "……." "……." 그녀들은 할 말을 잊었다. 아크가 엎드려 누운 덕에 아크의 얼굴이 그대로 리에나의 '그것'에 닿아 버렸던 것이다. 거기에 엎드 려 누운 것의 부작용으로 아크의 입에서는 침이 리에나의 가랑이 사이의 '그것'을 타고 주르르 흘렀다. 루리엘은 침묵한 채 손에서 방전을 일으켰다. "잠깐 그러면 리에나 한테도……." "걱정 마 언니. 이 1서클의 마법 정도야 저 변태만 정확히 노려서 맞출 수 있어." 언제나 활달하고 밝던 루리엘의 목소리는 예전 아크를 대하던 리엔느의 싸늘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죽어 변태." 그리고 아크는 잠결에 지은 아동 성추행 죄 덕분에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자꾸 그런 표정으로 쳐다 봐?" 아크는 자신을 예의 그 경멸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초리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 그녀들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무언의 압력만 아크에게 넣고 있었다. 아니 차마 방금 전의 그 삐리리 한 장면을 묘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실 그녀들도 아크가 고의로 그랬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 다. 그러나 어찌나 딱 들어맞는 상황이 되었는지라. 그녀들은 계속해서 아크를 바퀴벌레 보듯이 쳐 다보았다. 벼락을 맞은 아크의 처절한 비명에 잠에서 깬 리에나는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크는 정말로 억울했다. 목숨을 다 바쳐 엘프 일가를 오우거에게서 구해 냈는데 감사의 인사는 없 을 망정. 이런 싸늘한 냉대라니. 그렇게 그녀들과 아크의 사이에 그어진 한랭전선에 갑자기 리에나가 걸어 들어 왔다. 엘프 자매의 무서운 눈빛 공격을 그럭저럭 잘 받아내고 있던 아크는 자신과 그녀들의 딱 중간쯤에 서 있다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리에나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아크는 하반신 올 누드의 리에나를 보고서는 갑자기 입고 있던 사슬 갑옷을 벗은 뒤, 속에 입고 있던 티셔츠도 벗어 제꼈다. "……!" "뭐 하는 짓이야!" 갑작스레 옷을 벗는 아크를 보고, 상상해선 안 될 상상을 해 버린 루리엘과 리엔느는 급하게 아크 의 행동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엄한 상상과는 달리 아크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루리엘과 리엔느를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본 뒤 자신의 티셔츠를 리에나의 허리춤에 빙 두른 다음 묶어주었다. "……!" "이런 거는 함부로 보여 주고 다니는 게 아니랍니다. 리에나 양." "후우." 리엔느와 루리엘은 자신들의 상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앉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크 가 리에나에게 보여준 자상함에 대충 화를 풀었다. 리에나는 볼에 홍조를 머금으며 조금씩 입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엄마하고 이모하고 또 저를 구해주셔서." 리에나의 자그마하고 여린 목소리. '크아악 귀여워 미치겠다. 이러다 로리콘 되는 거 아냐?' 의외로 리에나가 먼저 아크에게 구해준 고마움을 표하자. 멀뚱히 그 둘을 보고만 있던 엘프 자매 도 그제야 고맙단 인사 한 마디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해줘서 고마웠어 변태 기사님! 변태 짓만 안 하면 더 고마울 텐데." "내 동생과 딸을 구해줘서 고맙다. 인간……아니 아크." 리엔느는 계속해서 인간이라고만 부르던 처음으로 수줍은 듯 조그맣게 아크란 이름으로 불렀다. '훗 역시 여자들은 위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군. 이거 뿌듯한데.' 아크는 처음으로 리엔느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자. 엘프 자매들이 째려봤을 때 치솟았던 짜증 이 별나라로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 '어라? 왜 말을 안 하지?' 냉전상태에서 다시 엘프 일가와 대화의 장을 튼 아크. 그리고 그는 내심 어젯밤 아크라우스가 말 했던 것처럼 엘프들이 '우리를 구해 줬으니 소원 한 가지씩을 들어줄께.'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러 나 그녀들은 몇 시간이 흐른 뒤인 지금 껏 아무 말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리엔느와 루리엘은 아크가 사악한 소원을 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 그냥 어물쩡 넘어가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다. '후 젠장 그냥 내 쪽에서 한 번 넌지시 물어봐야 겠군. 아크라우스놈이 날 골탕 먹이려고 구라를 친 것일 수도 있지만. 뭐 밑져 봐야 쪽팔림밖에 더 당하겠나.' 이렇게 생각하며 아크는 말문을 열였다. "어이 엘프족에는 큰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원을 들어주는 풍습이 있다며?" "……!" "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딨어." 루리엘은 아크의 물음에 다급히 반박하고 리엔느에게 고개를 돌려 그녀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아크가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지?' '나도 몰라! 당황하지 말고 무조건 발뺌해! 알았어?' '응' 그러나 산통을 다 깨는 제 3의 인물이 있었으니…… "이모! 촌장님이 은혜를 입으면 꼭 갚으라고 했었잖아? 기억 안나?" '바보 그걸 지금 말해 버리면 어떡해!' 흙빛으로 변해 가는 엘프 자매의 안색에 아크는 대충 어떻게 된 일 인지 짐작 할 수 있었다. '호오? 내 소원을 들어주기 싫어서 나한테 사기를 쳤단 소리네? 그냥 아크로니아 찾는 거나 도와달라고 말하려고 그랬는데? 이것들을 골탕 좀 먹여 볼까?' "흠 그런 게 있었나? 좋아 인간. 내가 들어 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지. 얘기해 봐." 리엔느는 거짓말이 들통나자 생각이 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었다. '히히히 리에나의 아빠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해 볼까?' 리엔느를 골탕 먹이려던 아크는 리엔느 보다는 루리엘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아무래도 드래곤에 대한 것을 물어보기에는 루리엘보다 많이 산 리엔느가 더 많이 알 듯 싶었고, 또한 새삼 집요하게 자신을 놀려대었던 루리엘에게 복수하고픈 마음도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봐 리엔느. 혹시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을 알고 있어? 우라시드 산맥에 산다는 녀석인데." "아크로니아? 흠……잘 몰라 이 주변에 사는 그린 드래곤이라면 알고 있지만. 워낙 우라시드 산맥이 넓고 또 많은 드래곤들이 살다보니……뭐 하지만 촌장님과 친한 에인션트 그린 드래곤 그리드란 님이시라면 알고 계실 지도." "좋아!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의 행방과 레어의 위치 같은 정보다. 됐지?" "그러지." 리엔느는 의외로 쉬운 소원에 안도했다.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의 행방은 평소 엘프들과 친하게 지내는 그린드래곤들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아 낼 수 있는 것이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소원이었다. "그런데 아크. 드래곤은 왜 찾는 거야?" 루리엘의 물음에 아크는 솔직하게 말했다.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의 부모인 노룡 아크라우스 한테 뭐 좀 빌려 준 게 있거든. 그 빚을 받으러." "치! 말해주기 싫으면 싫다고 해! 꾸며내도 말이 되게 꾸며내야지." "하아?" 아크는 모든 것을 숨김없이 말했지만 루리엘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하기야 말은 맞는 말이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이니 어쩔 것인가? 아크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자 이제 이 집요한 지지배를 놀려 줘 볼까? 너무 직설적인 것보다 오해를 할 만한 말과 표정으로 나가자.' 아크는 목소리를 깔고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루리엘……너 한테도 소원을 말해도 될까?" "뭐 너무 어렵거나 괴상 쩍은 것만 아니라면 뭐든 들어줄게. 소원 100가지 들어줘 같은 거는 안 돼." 루리엘은 아크의 음흉한 소원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괴상 쩍은 소원은 안 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니 루리엘은 웬만한 소원이라도 들어주기 귀찮거나 조금 힘든 내용이라면 그냥 이전에 아크를 치료해 줬다는 핑계로 무시해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크의 소원은 정말 뜻밖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드래곤 원정대 "루리엘…….너와 함께 살고 싶어." "……뭐?" 루리엘은 자신이 무슨 환청을 들었나 싶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리엔느는 아크의 소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채고는 입을 쩍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다. 아크는 리엔느의 반응에 폭소를 터뜨릴 뻔했지만 여기서 웃으면 다 지어 놓은 밥 개 주는 꼴인지라 애써 웃음을 참으며 처연한 표정으로 루리엘의 눈을 응시했다. "너랑……. 같이 살고 싶다고." "……!" 아크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한 루리엘의 얼굴은 급속도로 새빨개졌다. 설마 아크가 고백을 할 줄이야. "아 그 그게 무슨……." 루리엘은 말을 떠듬거리며 혹시라도 아크가 뭔가 잘못 말한 것은 아닌지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아크는 루리엘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싶어. 루리엘 너하고." "아……!" 얼굴이 붉어진 데다 이제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루리엘. 아크는 이런 루리엘의 반응에 의아해 했다. '어라 울기까지? 이거 예상 밖의 반응인데…….'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동안 말이 없는 루리엘. 그러던 그녀는 한참에야 얼굴을 들었다. "……." 고개를 든 뒤에도 계속해서 머뭇거리던 루리엘은 한참 후에서야 입을 열었다. "미 미안 아크. 우린 아직 만난 지 보름도 채 안 됐잖아? 서로를 좀 더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풋 크카카카카카 이건 예술이야 이렇게 완벽할 줄은……푸하하하." 루리엘의 엄한 반응에 아크는 통쾌하게 거창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를 엘프 일가는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키키키키 목소리 좀 깔고 얘기했더니……어이 루리엘 씨 그러니까 같이 살자는 말은 나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니 엘프 마을에서 신세 좀 지자는 소리였어. 어떤가 볼려고 조금 말을 빙 돌려서 했더니 이렇게 멋지게 속아넘어갈 줄은……푸하하하하하." 아크는 자초지종을 말한 뒤 엄지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퍽 "크악!" 루리엘의 발이 그대로 아크의 정강이에 명중했다. 정강이를 양손으로 감싼 채 그대로 바닥을 굴러다니는 아크. 한참 괴성을 질러대던 아크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힘겹게 일어 선 다음 루리엘에게 항의했다. "큭 이봐 아프잖아." -짝 "……!" 루리엘의 손바닥이 아크의 뺨에 작렬했다. "바보." "……뭐?" "바보!" 루리엘은 그대로 수풀 속으로 뛰어가 버렸다. 아크는 루리엘에게 맞은 뺨을 감싸며 방금 전 상황을 곱씹었다. '바보……라고? 그리고 뺨 때리고 도망? 이건 아무리 봐도 연애 물 같은 데서 주로 나오는 그런 거? 에이 설마 저 성질머리 고약한 기집애가 날 좋아할 리 있겠어……아 진짜 여심이란.' 아크는 루리엘이 보여준 행동이 주인공에게 미소녀들이 꼬이는 그런 미소녀 물에서 자주 나오는 주인공이 여성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주로 나오는 장면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실전 경험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아크는 도무지 루리엘의 행동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때 이 청춘남녀 연애스토리를 조용히 감상하던 리엔느가 끼어 들었다. "인간……나는 네가 우리 일가를 목숨을 불사하고서까지 지키려 할 때부터 너에 대한 적이라는 인식을 버렸다. 하지만 내 동생에게 이렇게 상처를 준다면 그때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아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손뼉을 탁 치며 리에나에게 말했다. "리에나야 내 소원 들어 줄 꺼지?" -끄덕 리에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아크의 소원을 들어 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한테 나를 이름으로 좀 불러 달라고 말해줄래?" "……." "큭 알았다 인간……아니 아크." 그 말에 답한 것은 리엔느였다. 리엔느와 아크는 중무장을 한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크가 리엔느에게 바랬던 소원인 아크로니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둘은 우라시드 산맥의 에인션트 그린 드래곤 그리드란의 레어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리엔느는 부상이 다 낫자마자 아크의 부탁을 수행하기 위해 엘프 마을에서 여행 준비를 마친 뒤 돌아왔다. 그리고 루리엘과 리에나는 엘프 마을 내에 아크가 머물 만한 거처를 준비하러 마을로 돌아갔다. 덕분에 아크는 꿈에서 그리던 미소녀 엘프와의 2인 파티를 결성한 뒤 드래곤 레어 원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3일 동안 헤맸던 숲 속을 빠져나와 막 산행을 시작한 날이었다. 산길을 밟은 지 어언 한나절. "헉 쉬다가자 리엔느."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바위에 그대로 주저앉은 아크. 리엔느는 그런 그에게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흘렸다. "겨우 이 정도로 지친 건가? 예전에 오우거의 목에 벨트를 두르고 몇 시간 사투를 벌여댄 그 체력과 패기는 다 어디로 간 거지?" 아크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대꾸했다. "캬 물 맛 좋다. 모르나 본데 생명체는 생존의 위협을 받을 때 자신도 모르는 잠재능력을 끌어 낼 수 있는 법이지……그런데 그 그리드란인가 하는 드래곤의 레어는 얼마나 더 가야 나오는 거지? 설마 며칠동안 헤매야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 마라. 위치는 내가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한다면 앞으로 이틀 안에 도착 할 수 있는 거리다. 뭐 이렇게 늑장을 부린다면 조금 늦겠지만." "호"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위치를 알고 있다니 며칠 씩 헤맬 필요가 없고 리엔느의 말대로 라면 앞으로 이틀 정도 그녀와 단 둘이서 노숙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리엔느의 태도는 냉랭했지만 미소녀와 단 둘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모든 남자들이 꿈꾸던 로망이 아니던가? "대충 쉬었으면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한 곳에 오래 있다간 야생동물이나 몬스터들에게 사냥감 냄새를 풍기게 된다." "어이 4일 동안 걸었더니 발 아파 죽겠다구. 어차피 시간도 대충 된 것 같으니 밥이나 먹지?" "휴우 좋아 그러도록 해." 리엔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크는 보따리에서 보존 마법을 걸어 놓은 오우거 고기를 꺼내 씹었다. 상당히 얇게 썰어 구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질겨서 아크는 마른 오징어를 씹는다는 생각으로 질근질근 오우거 고기를 씹었다. 오우거란 놈은 상당히 거대해서 고기는 매우 많이 나왔다. 그러나 화살도 뚫지 못하던 오우거의 살은 정말 질겨 강력한 힘을 가진 몬스터 다웠다. 물론 안 질기고 제법 연한 부위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오크고기에 악어고기까지 먹는 아크도 그 부위만큼은 차마 입에 대기가 뭐했다. 암놈 오우거였는데 출산 경험 따위가 없었는지 활용도가 낮은 그 부분은 연하기는 했지만 차마 발라먹기가 어색했던 것이다. 거기다 세 여자의 보는 눈까지 있어 아크는 그래도 좀 덜 질긴 옆구리 살을 도시락으로 싸왔다. 리엔느는 포도와 지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몇몇 과일들을 점심으로 먹고 있었다. '흠 숲 속의 요정이라는 이미지 설정과 잘 어울리는 군.' 흔히 사람들은 미남 미녀들에 대한 어이없는 상상을 품는다. 예쁜 여자들은 화장실도 안 가고, 방귀도 안 뀌고, 먹는 것도 이슬만 먹고산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크는 그런 빠순이 같은 사고를 가진 무뇌충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아크에게 콩깍지를 씌운 여인. 게다가 엘프라는 이종족, 그러니 아크는 화장실 같은 생리적 문제는 몰라도. 아크의 머리 속에 리엔느의 이미지는 언제나 아름답고 초췌했다. '성격만 좀 고치면 참 좋은 텐데……. 아니 나한테만 유독 차갑게 구는 것일 테지.' 아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드래곤 원정대 "그럼 부탁한다 아크." "아 염려 말고 주무셔." 나무로 빽빽한 산중에 약간의 빈터. 리엔느는 그곳에 자신의 망토를 깐 뒤 팔을 베개 삼아 누웠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새근새근 리엔느의 반복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에휴 심심해라……. 이럴 땐 꼭 아크라우스 놈이 말을 안 걸어요. 쳇." 머피의 법칙을 예로 들며 투덜거리는 아크. 오늘밤의 불침번은 그였다. "지미럴 습관 때문에 졸리지도 않고 할 짓거리는 없으니." 밤새는 일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아크. 이틀 전 첫 불침번을 설 때만 해도 정상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가던 터라. 밤새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이제 폐인 생활 리듬의 작용으로 아크의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홀로 공기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아크는 뱃속에서의 요동을 느끼고 품에서 고기를 꺼내 모닥불에 구웠다. 차갑게 식어서 굳어 있던 고기는 불에 닿자 조금씩 말랑말랑 해지며 고소한 냄새를 풍겼다. "밤에 찔끔찔끔 몰래 먹는 야식만큼 맛있는 것도 없지. 그럼 잡숴볼까?" 대충 불에 데운 고기를 잘근잘근 씹어먹던 아크는 문득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차원의 음식들이 생각났다. 흰쌀밥과 별로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대충 인간이 먹고 죽지 않게 만들어진 어머니의 음식, 외할머니가 손수 담그셨던 김장김치, 주야장창 신물이 나도록 먹었던 라면. "쩝. 쫌 사람이 해 준 요리 좀 먹어봤으면 좋겠네." 여태껏 매일 버섯구이와 포도. 그리고 별 괴상한 생물들의 고기들만 먹어온 아크는 누군가 만들어 주는 요리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아크는 고개를 돌려 곤히 잠들어 있는 리엔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식사를 차려줬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품고서. 식후로 물을 들이켜 식사를 끝낸 아크는 요의를 느끼고 숲 속으로 걸어갔다. 그저께 리엔느가 있는 곳에서 그냥 소변을 보려다 이상한 짓거리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받아 칼침 맞을 뻔했기 때문이다. 리엔느가 자는 곳에서 약간 떨어진 수풀 아크는 횃불을 나무에 닿지 않게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한 나무에 오줌을 갈겼다. -쪼로로록 "후우 시원하다." 바지를 치켜 입으며 벨트를 차는 아크. 그러데 수풀 속에서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아크는 급히 검을 뽑아 들고 사태를 예의 주시했다. 그리고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무언가는 모습을 드러내었다. "……곰?" 횃불의 빛에 들어온 표적은 곰이었다. 아마 아크가 고기를 굽는 냄새를 맡고 찾아 온 듯 싶었다. "크르르르르." "휴 웅담, 곰 발바닥, 곰 가죽 코트를 헌납하시려 오셨소?……어랍쇼?" 아크의 시선은 곰의 가슴으로 향해 있었다. 한밤중에 찾아온 이 곰의 가슴에는 하나의 초승달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거의 멸종했다고 알려진 희귀동몰, 지리산에 방사했다는 그 희귀한 반달 가슴 곰이었다. 아크는 이 곰을 잡아서 보신용으로 쓰려던 생각을 접었다. 이곳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가 살았던 한국에서는 무분별한 보신문화와 밀렵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녀석들이기에 아크는 굳이 이 곰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아크에게 적의를 나타내는 반달 가슴 곰. 아크는 보따리에서 오우거 고기를 꺼내어 반달 가슴 곰에게 던져 주었다. 반달 가슴 곰은 배가 상당히 고팠는지 인간이 던져준 먹이에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주저 없이 고기를 낼름 집어먹었다. "하핫 잘 먹네. 옛다 고수래." 또 한 덩어리의 고기를 던져 주는 아크. 그때 수풀 속에서 또 뭔가가 나타나 반달 가슴 곰이 먹으려던 고기를 나꿔채갔다. "얼레 고양이? 아니……삵쾡인가?" 아크는 저 고양이가 환경스페셜에서 나왔던 삵쾡이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이건 또 무슨……혹시 시공간의 균열 같은 것이 생겨서 나도 모르게 조선시대의 지리산으로 들어 온 건가? 무슨 한국산 희귀 동물들이 이렇게 연이어 나와?' 잠시 밀리터리 소설에서나 나올 법할 발상을 하던 아크는 반달 가슴 곰의 눈빛이 다시 흉흉해 지는 것을 포착하고는 반달 가슴 곰과 삵쾡이에게 각각 고기 하나씩을 던져 주었다. 삵쾡이는 먼저 번의 고기를 다 먹고서는 하나의 고깃덩이를 물고 다시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마도 그 고기는 새끼들에게 줄 몫이리라. 반달 가슴 곰은 먹성이 좋았지만 아크가 여러 번 고기를 던져 주자. 배가 찼는지 그 큰 덩치를 이끌고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다. 어느새 오우거 고기는 몇 점 남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질기고 질려버린 오우거 고기라 아크는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버섯도 보존마법을 걸어서 가져 왔으니 앞으로는 채식을 하면 될 터였다. 아크는 남은 오우거 고기를 수풀 이곳저곳에 던진 뒤 횃불을 들고 다시 리엔느가 자고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에휴우 벌써부터 향수병인가?" 야참 먹다가, 그리고 반달 가슴 곰과 삵쾡이를 만나자 아크는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에 젖었다. 그답지 않게 감상적이 된 아크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이 세계의 밤하늘을 보며 그가 유일하게 제대로 외운 '별 헤는 밤'을 낭송했다. "좋은 시로군." "얼레? 깬 거냐?" "네가 어찌나 시끄럽게 구는지 잠이 깼다." 리엔느는 상체를 일으키며 무심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럼 더 주무시지 그러슈?" "그럴 참이다." 말은 그렇게 해 놓고선 리엔느는 몸을 일으켜 수풀 속으로 걸어갔다. "어이 어디가?" "그걸 꼭 얘기해야 하나? 바로 돌아올 테니 걱정 말도록." '화장실이 목적인 모양이군.' 이 한밤중에 산책을 나갈 리는 없고 이야기하기를 꺼린다는 것과 바로 온다는 말에 아크는 대충 리엔느의 용건을 짐작했다. 그러던 아크는 지난 번 강간미수 사건 때 보았던 리엔느의 알몸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붉혔다. "그때만 해도 제법 귀여웠는데." "뭐가 말이냐?" 어느새 돌아온 리엔느에게 혼잣말을 들키자 아크는 흠칫했다. "아 아니 반달곰이 귀여웠다고." "……?"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크를 보던 리엔느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졸리지 않나?" "뭐 별로." "밤을 잘 지새우는 모양이군." "뭐 소싯적에 밤일을 좀 했거든." 아크는 리엔느의 칭찬답지 않은 칭찬에 어깨를 으쓱했다. "새벽이 되면 날 깨워. 그럼." 리엔느는 이야기를 지속하려는 아크의 말을 단호히 끊은 채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리엔느가 다시 잠들고 아크는 찬바람이 쌩쌩 불어대는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절망 했다. "에휴 처량하고 궁상맞은 이 인생." 아크의 한숨소리가 산의 적막을 깨뜨렸다. "여기?" "그래 다 왔다." 리엔느가 멈추어 선 곳에는 울창한 나무에 덮여져 있는, 조금은 찾기 힘든 한 동굴 입구였다. "이 동굴이 드래곤의 레어?" "아니 동굴 밑으로 내려가면 지하 대공동이 있지. 거기가 레어야." "흠……." 아크와 리엔느는 나무에 불을 붙인 뒤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냐? 미개한 생물들아 아무 것도 모르고 들어온 것이라면 목숨만은 살려 줄 터이니 어서 꺼져라. 그리고 만약 나에게 용무가 있다면 거기서 말하라." 아크는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리엔느는 차분하게 의문의 목소리에 답했다. "숲의 종족의 딸인 리엔느가 위대하신 드래곤께 지식을 탐구하려는 인간을 안내하여 왔나이다." 리엔느는 공손히 말한 뒤 얼빠진 표정으로 회칼을 겨누며 서 있던 아크의 뒷덜미를 끌고 동굴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리엔느. 방금 전 그 소리는 드래곤?" "드래곤의 음성이지. 침입자를 경계하기 위한. 저기서 용건을 말하지 않거나 용건이 무슨 드래곤을 잡으러 왔다 등의 허무맹랑한 내용이라면 동굴 안의 각종 마법 트랙이 작동해서 침입자를 공격하지. 뭐 땅에서 칼이 솟는다거나, 천장에서 투창이 떨어지거나 철판 같은 것이 떨어지기도 하고 동굴 벽에서 화살이나 불길이 치솟기도 하지. 설사 침입자가 그 함정을 다 뚫었다고는 해도 드래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동굴 안에서 드래곤의 레어 입구는 절대 찾을 수 없어." "뭐 뭐얏? 그런데 아까 전에 드래곤이 아무 대답도 없었잖아? 들어와도 좋다는." "그건 가다 보면 알겠지. 함정이 작동한다면 인정받지 못한 것이니 도망쳐 나가야 될 테고 그게 아니라면 곧 레어 입구를 찾을 수 있겠지." '뭔가 무책임하군……." 언제 날아올 지 모를 칼침에 아크는 잔뜩 긴장 한 채 리엔느의 뒤를 주인 따라가는 강아지 마냥 졸졸 쫓아갔다. -물컹 한참을 가던 아크는 발 밑의 감촉이 물컹이는 것을 느끼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어 이게 뭐얏! 히엑!" "……!" 아크의 발 밑에는 종족이 뭐였는지 알아보기도 힘들만큼 난자된 시체가 널 부러져 있었다. 아무래도 리엔느가 말했던 그 함정에 희생당한 희생자들인 듯 했다. 오우거의 목을 따는 등 최근 들어 시체 해체를 자주 하던 아크도 이런 처참한 시체 앞에서는 할 말을 잊었다. "섬뜩하군." 리엔느는 발 밑의 처참한 시체를 보고선 짧달막하게 감상평을 했다. 그런 그녀의 맹한 반응에 아크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여자는 겁 대가리를 상실한 건가? 여자라면 응당 이런 모습을 보면 꺄악 하고 소리를 질러대야 되는 것 아냐? 섬뜩하군이 뭐야 섬뜩하군이.' 아크는 속으로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여자가 저렇게 성격이 강해서야 시집가기 힘들겠군. '가만 그럼 전 남편이란 그 엘프는 도대체 어떤 놈이 길래 저런 돌덩이랑 살았대?' 문득 리엔느의 죽은 남편은 누굴까 하는 생각이 든 아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리엔느." "뭐냐?" "네 죽은 남편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없을까?" "……!" 계속해서 냉정함을 유지하던 리엔느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아크는 괜한 질문을 했나 싶어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아 미안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였어." "뭐?" "천하에 둘 도 없는 정말 멍청한 바보였어……되었나?" 리엔느는 다시 차가운 목소리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무심하게 아크의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드래곤 원정대 "엇 저기!" "……!"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크는 괴상한 철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제대로 도착한 것 같군." 리엔느는 이 한 마디를 짧게 내뱉으며 철문을 열어 제꼈다. -끼이이익 "우왓!" 철문을 열자, 그 안에는 예상외의 큰 터가 있었다. 넓이와 높이 등의 크기는 꼭 월드컵 축구 경기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넓고 거대했다. 그리고 이 넓은 운동장의 주위에는 인간의 크기로 아담하게 만들어진 골렘들이 중장병기를 갖춘 채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으며, 그들 중 한 두기는 각종 사물들의 몸뚱이를 절단해 이어 놓은 괴물들이 있었다. 아크는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것이 키메라임을 눈치 챘다. 주변에 위화감을 느끼며 긴장된 걸음으로 리엔느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아크. 리엔느는 이런 주변 환경에 그다지 위축되지 않은 듯 당당하게 입구를 제외하고는 딱 하나 있는 또 다른 철문으로 향했다. "들어오세요." 문 앞에 선 아크와 리엔느는 한 허락의 말을 듣고는 그 문을 열었다. 아크는 실제로는 처음 보게 되는 드래곤의 모습에 대단한 기대를 품고 리엔느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나 아크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변했다. '쳇 변신한 상태였군. 이거야 원 무라카미로 변신해 있던 아크라우스 보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잖아.' 문안에는 제법 큰 원룸이 있었다. 서재와 식탁 소파 등이 있는 전형적인 집안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소파에는 녹색 단발머리의 자그마한 엘프 소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 리엔느는 그 소녀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위대하신 그린 일족의 드래곤 그리드란 님을 뵙습니다." "위 위대하신 그린 드래곤 그리드란 님을 뵙습니다." 아크는 리엔느가 소녀에게 인사를 건네자 얼떨결에 자기도 그리드란이란 저 소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이리 와서 앉아요." 그리드란은 책을 덮고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크와 리엔느는 서둘러 소파로 걸어갔다. 방이 워낙 넓어 소파까지 가는 데만 해도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통성명을 했다. "내가 그린 일족의 그리드란 이에요." "엘프 족의 전사, 리엔느입니다." "오우거 헌터, 아크입니다." 아크는 별칭으로 오우거 헌터라는 이름을 소개하고는 그리드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커헉! 뭐 뭐야 이거?' 아크는 경악했다. 그리드란이 변신하고 있는 모습이 그가 알고 있던 누군가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었다. 초록색 단발머리에, 커다란 눈, 그리고 크고 길쭉한 귀……. '완전히 HMX-12 메이드 로봇 M이잖아!' 일본 19금 미연시 게임의 제작사 Leaf의 3번째 비주얼 노벨 게임 'T' 메이드 로봇, 격투 소녀, 오컬트 매니아, 초능력 소녀 등의 독특한 캐릭터와 탄탄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Leaf의 그 차기 작 'White','Comic'과 함께 리프사의 전성기를 열었던 게임으로 13부작 TV애니메이션으로 방송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그 작품, 한국 내에서도 모 케이블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고, 그 19금의 버전이 인터넷 상에 한글화되어 돌아다니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발매 된 지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수많은 동인지로 회자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 내에 나오는 초경량 직립 보행의 인간과 똑같이 생긴 최신형 메이드 로봇 HMX-12 'M'은 지금 아크의 눈앞에 있는 그리드란의 폴리모프 모습과 완전 판박이였다. 여기에 귀 장식과 'T'의 교복을 입히고 빗자루 하나만 쥐어 준다면 영락없는 'M'이었다. 아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들고 그리드란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T'나 HMX-12 'M'을 아십니까?" "아니오 그건 뭔가요?"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암 그럴 리가 없지 설마 그 'M'을 보고 변신을 했겠어?' 그리드란은 아크가 자신을 보고 놀란 다음 계속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상상하는 것을 보고서 마법으로 슬쩍 아크의 뇌리에 있는 이미지를 훔쳐보았다. "이런 모습이로군요." 그리드란은 의복마법을 사용해 아크의 머릿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가 입고 있던 옷으로 의복을 바꾸고 귀에도 은장식을 달았다. "쿨럭! 켁 켁!" 아크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던 차를 마시다 그리드란의 바뀐 모습을 보고서는 사래에 걸려 쿨럭거렸다. 설마 진짜로 그것처럼 변할 줄이야……. 아크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해 시켜 줄 아크라우스를 부르기 위해 일부러 손등을 손톱으로 쥐어 파서 피를 냈다. '야 임마 아크라우스. 이 상황을 뭘로 설명할래?' "무엇을 말이냐? 귀찮게 시리……으헥! 이건 또 뭐냐?" 아크의 다급한 부름에 심드렁하게 대꾸하던 아크라우스도 어처구니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오타쿠의 진수를 맛보았던 아크라우스가 저 모습을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아크라우스는 아크의 이전 기억들을 읽어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후우 난 또 뭐라고 아마도 저 그린 놈은 네놈 기억의 이미지를 읽는 마법을 사용해 저 모습으로 변신한 것 같다." '그런 거냐? 아 부른 김에 뭐 하나 더 묻자. 저거 드래곤이 맞기는 맞는 거냐? 드래곤이라면 너처럼 오만하고, 싸가지 없고,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만 세고, 똥고집 세고, 인간 정도는 하찮은 벌레로 여기는 그런 건방진 족속들 아니냐? 근데 이놈은 왜 이렇게 다소곳한 거야?' 그리드란이 평소 알고 있던 드래곤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행동을 보이기에 아크는 그리드란과의 첫 만남부터 계속해서 의아했다. "뭐 성질이 유순한 그린 일족인데다가 여성형의 취향을 가진 듯한 녀석이로군. 뭐 이상할 것은 없다. 네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드래곤을 한 부류로만 편승시키지 마라. 의외로 저렇게 성질이 순한 놈들은 많으니까. 그런데 네놈 나보고 싸가지 없고, 똥고집 세고,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이나 세다고 했나?" 갑자기 험악한 말투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아크라우스. 아무래도 자신이 건방지고 오만하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듯 몇 가지 사례만을 물고 늘어졌다. '하하 그냥 예를 든 것 뿐이야. 야 너 게임 안 하냐?' "헉 맞아! 이런 깜박하고 있었다. 네놈……나중에 두고 보자." 아크라우스는 뭔가 다급한 일이 있는지 으름장을 놓고는 급히 텔레파시를 끊었다. "그나저나 나에게 물어 볼 것이 무엇인가요?" 붉은 색 세일러복에 은색 귀 장식, 초록빛 단발머리, 무릎 위 가지 치켜 올린 흰색 스타킹. 아크는 자신이 만화 속의 세계로 가서 만화 캐릭터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었다. "저기 혹시 아크로니아란 드래곤을 아십니까?" 아크가 그리드란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으며 아무 말도 없자, 대신 리엔느가 그리드란에게 아크가 물어볼 질문을 대신했다. "알고 있습니다. 7000세가 넘으신 실버 일족의 고룡이시죠. 그런데 그건 왜?"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크는 급히 대화에 끼어 들었다. "그 드래곤의 레어는 어딘가요?" "그 전에 그 분을 찾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이유라…….' 아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유라고 한다면 아크로니아에게서 이 세계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받는 것이 목적인데 곧이 곧 대로 말하면 믿어나 줄 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핑계거리를 찾지 못한 아크는 이전에 루리엘에게 말했던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아크로니아의 아버지. 아크라우스에게 빌려 준 것들을, 그의 자식에게서 받으려고 합니다." "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크를 바라보는 그리드란. 리엔느는 '그런 뻥을 치면 어떡하냐?'란 표정으로 아크를 째려보았다. "아크라우스 님이라면 2대 전의 드래곤 로드를 엮임하셨던 분이데 갑자기 그 존재가 사라졌죠. 그래서 마나 분산 증으로 인하여 자결하신 줄로 알고 있는데……." 이상스런 눈초리로 아크를 관찰하는 그리드란. 그러던 그리드란은 아크에게서 나오는 미약한 드래곤의 기운을 포착할 수 있었다. "호 혹시 헤츨링?" '뭔 뜬금 없는 소리여?' 자신을 드래곤의 새끼로 착각하는 그리드란이 어이가 없었던 아크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닌 뎁쇼." "그럼 마나 분산 증을 앓고 계신 노룡이십니까?" '마나 분산? 그건 또 뭐야?' 아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리엔느의 경악한 표정과 그리드란의 놀란 듯한 표정을 보고서 자기가 아크라우스라고 사칭 사기를 칠 까 하다가 걸리기 쉬운 거짓말 같아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아뇨 그냥 인간인데요." "그 그럼 혹시 드래곤의 힘을 흡수한 겁니까?" '지미 그런 전개로 가면 소원이 없겠다. 흡수는 무쉰 개뿔이! 그랬으면 내가 지금 뭐 하러 여기 와서 있겠냐? 실력을 숨긴 채 신비로운 떠돌이로 모험을 하고 있지. 아니면 아무 나라나 가서 귀족을 하든가.' "아니오." "그 그럼 대체……?" 그리드란은 이 인간에게서 어떻게 드래곤의 기운이 풍기는지 의문이었다. 드래곤과의 맹약을 맺었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럴 경우 드래곤의 친화력이 그대로 맹약자에게 전해져 저 인간에게서는 정령왕의 기운도 느껴져야 했다. 그러나 이 앞의 인간은 고작해야 하급 정령의 미약한 기운 밖에는 풍기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그리드란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드래곤과 맹약을 맺은 겁니까?" '맹약? 하긴 맺기는 맺었지. 차원은 틀리지만.' "그렇습니다만." "그런데 왜 그렇게 미약한 드래곤의 기운만 느껴지는 거죠? 혹시 죽은 드래곤이나 막 열 몇 살 될까 말까 한 아기 헤츨링하고 맹약을 맺은 건 아니겠죠?" "에 저 그 거시기가 뭐시냐 하면……." 대답할 거리가 없어진 아크는 방금 전 쥐어 파 놔서 이제야 딱지가 굳어 가는 손등의 딱지를 강제로 쥐어뜯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야 아크라우스!' 아크라우스는 짜증난다는 투로 대꾸했다. "크 왜 자꾸 처 부르냐? 공성전 중인데." "야 인마 지금 공성이 문제냐? 이 상황에서 뭐라고 하냐고? 빨랑 네 녀석이 뭐라고 좀 해봐 임마!!" "나 지금 바빠 죽겠단 말이다! 네 녀석 캐릭이랑 내 캐릭 동시에 돌리려니까!!!!!!" 현재 아크라우스는 두 대의 컴퓨터로 자신의 캐릭터와 아크의 캐릭터를 동시에 플레이하고 있었다. 아크의 캐릭터가 워낙 레벨이 높고 길드원 들을 선두지휘하는 위치에 있던 지라, 아크가 군 문제로 빠져버리니 그들의 길드는 본거지였던 루아켄성을 빼앗기고 산간벽지의 쥬렌으로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아크라우스는 아직 성벽 보수나 용병 고용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쥬렌 요새를 사수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여가시간에 군대 PC방으로 접속했다며 친구들을 속인 채 자신과 아크의 캐릭터를 동시에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상황이 긴박해지자 아크라우스는 자신의 몸을 머리 두 개와 팔 네 개가 달린 흉측한 괴물의 모습으로 바꾼 채 자신의 역할 하랴, 아크의 역할 하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래도 드래곤의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두 사람 역을 완벽하게 해 내고 있었는데, 아크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대며 심란하게 굴어대자. 그는 폭주하기 일보 직전까지 간 상태였다. "아 그럼 어쩌라고?" "이 멍청한 인간아! 네놈은 판타지 소설을 수백 권을 쳐 읽어 놓고 이런 상황에서 아무 대꾸도 못하냐! 나 바빠 죽겠다. 그냥 대충 네놈이 아는 드래곤의 설정 가지고 알아서 하란 말이다! 알아서! 이 등신아! 또 쳐 부르면 알아서 해라! 공성이고 뭐고 짜증나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날려 버릴 테니." 아크라우스는 난폭하게 외친 뒤 텔레파시를 끊어버렸다. "에라 이 성질 드러운 놈 같으니 이렇게 되면 대충 둘러대는 수밖에 없네 믿어나 줄까나?" 대충 머리 속에 변명거리를 생각해 놓고 말하려는 아크. 그런데 그런 그를 바라보는 리엔느와 그리드란은 아크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저기 아크씨." "아 예 그리드란 님." "방금 전 누구랑 얘기한 거에요? 성질 드러운 놈이라고 부르던?" '커헉!' 아크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방금 저 아크라우스와 말한답시고 속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하도 아크라우스 놈이 열 받게 하다 보니 그만 텔레파시로 해야 할 말들이 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X 됐다.' "너……미친 거냐?" "아하하하하하 그 글쎄요?" "무슨 사연이 있는 듯 싶군요." '에휴 이렇게 되면 별 수 없지.' 아크는 그의 판타지 지식을 총 동원해 대충 그럴 싸한 핑계거리 하나를 찾아내었다. "어 그러니까 나는 평범하게 살고 있던 청년이었는데 어느 날 반지 하나를 주웠지 그래서 그 반지를 껴 봤더니 갑자기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군. 뭐 자기가 아크라우스라는 드래곤이고 이미 천여 년 전에 죽었는데 어떻게 라도 이 이승에서 조금 더 살고 싶다고 죽을 때 자신의 정신을 이 반지에 봉인시켰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 아크라우슨가 뭔가는 나를 통해 세상을 보고들을 수 있게 되고 나는 그 대가로 아크라우스가 죽은 채 천여 년 동안 반지에만 갇혀 있었던 탓에 잃어버린 물의 친화력을 조금이나마 이어받을 수 있었고, 또 그의 자식인 아크로니아에게서 뭔가를 받을 수 있다 길래 아크로니아를 찾고 있는 겁니다. 방금 전 소리친 것은 바로 아크라우스와 대화한 거고요. 자 이제 아크로니아의 레어가 어느 곳인 지 좀 알려 주시죠." '크핫 난 천재야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말이 되는 스토리를 쓰다니…….' 아크는 속으로 자기 자신을 자화자찬했다. "아크로니아 님의 레어는 우라시드 산맥의 북쪽 북해의 해안가에 자리잡고 있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아크로니아님을 만날 수는 없을 거에요." "예?" "아크로니아 님은 이미 7년 전에 유희를 떠나셨답니다." 아크는 그리드란의 말에 오우거의 방망이로 뒷골을 얻어맞는 것과 같은 정신적 데미지를 입었다. "그럼 찾을 방법은 없습니까?" "아마 없다고 봐야겠죠. 드래곤들의 광범위 탐색 마법으로 찾아 낼 수는 있겠지만 다른 드래곤의 유희를 방해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아크는 미노타우로스의 해머에 얻어맞는 것과 같은 극심한 정신적 데미지를 고스란히 받았다. 'nigimi 그럼 어쩌란 소리야? 엘프 마을에서 죽치고 살아야 하나? 아니면 홀홀 단신으로 강호에 초출해서 농노나 떠돌이로 죽지도 않는 삶을 수백, 수 천년간 살란 소리야? 그러느니 미쳐서 자살하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뭐 대륙 제일의 검사나 대 마법사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실력 좀 있고 돈도 좀 있어서 이거하고 싶으면 이거하고 저거하고 싶으면 저거 하는 삶의 리얼리티한 체험이라고! 뭐 농노 같은 것도 체험해 보는 재미는 있겠지만 일단 받쳐주는 힘 같은 게 없으면 평생을 농노로 썩는단 소리 아니냐고?' 그랬다. 아크는 아크로니아를 통해 무력을 쌓거나 재력을 쌓은 다음. 그 뒷심으로 인간의 다양한 삶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군주를 모시는 기사, 바다를 누비는 해적, 때로는 농사를 짓는 소박한 자영농 등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몽땅 주어진 삶의 시간에서 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없다면 신원도 없는 홀홀 단신에 별 능력도 없는 아크는 노예나 되어 굶어 죽거나, 강제 징집 되어 길고 긴 삶을 어이없게 마치게 될 것이 뻔했다. 확실히 게임과는 다른 세계였다. 무조건 적으로 기사나 마법사, 성직자 등의 직업을 가져서 열심히 몬스터들을 잡아 무력을 높이고 성을 놓고 다툼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이 세계가 사람들을 기다리는 것은 빡세고 힘든 보통 서민의 삶이었다. 그렇다면 아크가 이 상황에서 세상으로 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껏해야 농노나 용병. 물론 전투능력은 형편없는 아크지만 운디네와의 연환 공격이라면 충분히 하급 용병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인간들 사이에서는 흔치 않은 정령사에 특히 생명에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물을 다루는 그이기에 여행 따위에 성가신 용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아크의 희소가치는 높기는 했다. '후 용병이라? 쩝 그래봐야 난 물 탱크일 테지 전투 시에는 별 다른 도움도 안 되는.' "생각이 많으시군요." "아 예 아크로니아를 만난 다음의 미래 설계가 무너져 내려서 앞으로 뭘 하고 먹고사나 잠시 생각 중이었습니다." 아크의 분위기는 많이 침체되어 있었다. "그럼 더 물어보실 거라도?" "아니오 더는 없습니다. 지식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드란 님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훗 두 분을 엘프 마을로 워프 시켜 드리죠." 이 세계로 넘어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은은한 빛 무리에 휩싸인 아크와 리엔느는 공간의 틈 사이로 빠져들어 갔다. 그리고 그 공간의 틈 사이에서 아크는 생각했다. '그래 초보부터 시작하는 거다. 어차피 인생은 게임. 강호 출수는 뒤로 미루고 안전한 엘프 마을에서부터 수련을 하면서 오크 열 서너 마리는 작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자.' 아크는 그렇게 다짐했다. 엘프 마을에서는 리엔느, 루리엘, 리에나를 오우거의 마수에서 구해 준 인간을 마을에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금발을 길게 길러 늘어트린 한 남자 엘프가 탁자를 탁 치며 소리쳤다.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단호한 말에 아크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저 재수 없게 생긴 시키는? "도대체 어떻게 저런 허약한 인간이 오우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십 년간 수련을 해온 엘프 전사 서넛은 되어야 상대 할 수 있는 난적입니다. 그런데 체내의 마나는 있지도 않고 운디네로는 물 밖에 퍼부을 줄 모르는 그런 자가 어떻게 오우거를 잡는단 말입니까? 이건 정말 말도 안됩니다." "아 그래서 증거도 끌고 왔잖아? 오우거 시체." 아크는 짜증스럽다는 듯이 대꾸했다. 못 믿을 것을 대비해 그 큰 오우거 시체를 낑낑대며 간신히 끌고 왔더니만 그것도 못 믿냐? "흥 그거야 운 좋게 발견한 이미 죽은 오우거 이거나, 리엔느 양이나 루리엘 양이 거의 잡아 놓은 것을 운 좋게 잡고서는 생색내기용으로 가져온 것이겠지." '크으윽 저놈의 면상을……그냥 콱!' 아크는 이 세계로 오기 전 동훈에게 느꼈던 극심한 살의를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저 재수 없는 엘프에게 강하게 느꼈다. 저 놈이 못 알아듣게 한국말로 귀가 썩을 정도로 더러운 욕설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맹약의 반지 덕에 저절로 통역이 되어 들리니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건 아냐 레골룸스. 나랑 언니 그리고 리에나를 구해 준 것은 확실히 아크야. 오우거랑 두 시간 동안 혈투를 벌여서 오우거를 잡은 것도 확실해." "맞아요." 루리엘과 리에나가 각각 아크를 변호해 주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규약은 어떡할 것입니까? 30년 전 그 자에게 당했던 일을 잊으셨습니까? 물론 우리들에게는 큰 은혜를 베푼 자에게 보답을 한다는 규약이 있기는 하나, 인정받지 않은 타 종족을 우리들 안에서 살게 하지 않는다는 규약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식충이 인간을 받아들인다면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습니까?" 레골룸스의 말에 회의에 참석한 엘프들은 조용히 다물고 있던 입을 다시 열었다. 사실 방금 전에 그들도 30년 전의 일로 트집을 잡아 아크를 몰아 붙였었다. 그러나 30년 전 있었던 일로 무조건 인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크의 논리 정연한 반박에 그들을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리엔느, 루리엘, 리에나를 제외한 엘프족 대부분의 반대 세력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 사이 상황은 찬성론 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레골룸스란 반대파 중 한 놈이 오우거 사냥 조작설을 들어 반대를 하는 것을 당사자들의 증언으로 잠재우려는 찰나. 레골룸스는 다시 인간 무용지물론을 펼쳐 찍소리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던 반대파들의 입을 열 기회를 주었다. 오지현 "레골룸스의 말이 옳소!" "활도 못 쏘고 마법도 못 쓰고 검술도 못 하는 저런 인간은 우리들에겐 필요 없다구." "밥값도 못 할거야!" 반대파들의 바대가 다시 극심해 지고 어느덧 회의석상의 분위기는 다시 반대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그러나 아크에게 남은 선택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숲 속에서 살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어찌어찌해서 오우거를 잡았다고는 쳐도 오우거보다 강력한 중대형 몬스터들이나 오크 떼거지들이 덤벼든다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 바로 숲 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엘프 마을이란 안전한 곳에 정착해서 강해지지 못한다면 세상에 나갈 수도 없다. 약자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은 이 숲 속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아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크는 더욱 필사적이었다. "이런 쓰버럴 조-옷 같은 XXX XX나 핥을 새끼들! 그럼 한 놈만 나와서 나랑 맞짱 뜨자. 내가 이기면 무조건 여기서 살고 지면 말없이 떠나 줄 테니까 나중에 개소리하기 없기다." 욕을 해대며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아크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엘프들은 수 백년 세월 동안 처음 듣는 아크의 심한 쌍소리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크를 이런 상황으로 빠뜨린 주범 레골룸스가 앞으로 나왔다. "내가 네놈의 그 더러운 입을 봉해 주도록 하지." "아하 레골룸스라고 하셨나? 레골라스와 골룸을 합쳐 놓은 이름이로구만 XX XXX XX XXX XX야 내가 네놈 ZOT를 아주 터쳐 놓은 다음 R을 따주마." "뭣이 어째? 이런 쳐죽일 놈이." "헤 쳐죽일 놈? 알고 있는 욕이 그것뿐이냐? XX XXXX XX야?" 통역마법은 아크의 C8이나 10새 등의 욕을 아주 듣기 좋게 풀어서 번역해주었다. "큭 이 망할 인간 놈이 내 당장 여기서 네놈을! 살라만더여 나의 부름에……." "그만 들 두십시오." 격해지는 아크와 레골룸스의 싸움을 말리는 것은 계속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엘프마을의 여 촌장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진 촌장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결투는 한 시간 뒤에 마을 중앙 광장에서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들 주십시오." -웅성웅성 마을 중앙에는 제법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이 마을에는 엘프들이 약 700여명 가량 살고 있었는데 평소 워낙 할 일이 없고 지루했던 그들인지라 거의 모든 엘프들이 그다지 넓지도 않은 마을 중앙 광장에 엘프 전사들 중 최고라고 칭송 받는 실력자 레골룸스와 오우거를 두 시간 사투로 혼자 때려잡아 리엔느 일가를 구했다는 오우거 헌터 아크의 대결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지구에서 입던 예의 그 옷 그대로에 웃옷에는 사슬갑옷을 입은 아크와 간편한 복장으로 허리춤에는 칼을, 등에는 활과 화살을 맨 레골룸스가 서로를 노려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엘프족의 촌장이 서 있었다. "레골룸스. 활과 화살은 안 됩니다." 레골룸스는 촌장의 말에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활을 아무렇게나 풀러놓았다. 활이 없어도 저 따위 인간쯤은 작살 내 놓을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러면서 레골룸스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가볍고 예리해 보이는 검으로 아크의 투박한 오크 족 검과는 무기레벨에서부터 딸리는 듯이 보였다. '제길 승산이 없군.' 도발은 해 놨지만 아크는 걱정이 앞섰다. 지난번에 리엔느와 싸울 때에 스피어로 승리를 거뒀던 자신감에 나섰던 그였지만 엘프 족 젊은이들 중 최강이라는 레골룸스의 전투실력이나 정령의 급수나 그 무엇을 따져보아도 아크는 레골룸스를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단 1%의 확률이라도 아크는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좌측은 엘프 족의 전사 레골룸스!" 촌장은 관중들에게 사회자처럼 레골룸스를 소개했다. 레골룸스가 소개되자 중앙 광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우측 오우거 헌터 아크!." "잘해 아크!" 레골룸스를 소개 할 때와는 다르게 아크의 차례에서는 루리엘의 짧은 응원 외에는 고요했다. "그럼 시작합니다." 시작 소리가 떨어짐과 동시에 레골룸스는 아크에게 빠른 쾌검을 날렸다. "으핫!" '뭐가 이렇게 빨라?' 빠른 속도로 연속기가 나오는 레골룸스의 쾌검. 오우거와 오크들과의 전투에서 제법 회피에 자신이 붙었던 아크였건만 레골룸스의 공격은 정말 빠르고 예리했다. 어떻게 간신히 피해내기는 했지만 이곳저곳 검날이 스쳐지나가며 아크의 몸에도 상처가 늘어났다.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아크는 레골룸스이 쾌검을 피하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챙 경쾌한 쇳소리가 울리고, 공격을 막아낸 아크는 레골룸스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 공격은 가볍게 레골룸스의 검에 막혔다. 그리고 연속되는 레골룸스의 공격! '쳇' 레골룸스의 검을 위태롭게 막아는 내고 있는 아크. 레골룸스와 아크의 공격속도의 차이는 확연했다. 아크는 왼손으로도 검을 잡았다. 한 손 검을 양손으로 잡자 어느 정도는 레골룸스의 공격 속도와 엇비슷해졌다. 그 덕에 아크는 공격을 할 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막 공세로 접어든 아크의 배에 레골룸스의 왼손이 닿아 있었다. "……?" "하앗!" 레골룸스의 기합소리! -퍼벙 "크악!" 아크의 배에 폭발이 일어나고 아크는 그 폭발의 여파로 10미터 가량을 나가 떨어졌다. "아크!" "켁 젠장 이 비싼 사슬 갑옷에 구멍을!" 아크는 주인의 생명을 구하는 데 일생을 다 바쳤던 사슬갑옷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 뒤 갑옷을 벗어 제꼈다. '어라? 가볍네' 갑옷을 벗자 몸이 가뿐해 진 아크. 그러던 아크는 검에 무게에도 신경이 쓰였다. -챙강 "어? 아크 왜 그래?" "어?" "왜 저러는 거야?" "……?" 아크는 무겁기만 한 검을 버렸다. 그러자 확실히 몸이 가뿐해 졌다. '좋아 어차피 검으로 저놈 때려잡기는 글렀고……저 놈의 검을 계속 피하다가 빈틈을 노려서 거시기를 까버리자.' 레골룸스는 그런 아크를 보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던지며 물었다. "왜 검을 버린 것이지?" "검에는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 오히려 거추장스럽군." "그럼 나도 검을 버리겠다." -챙강 레골룸스까지 검을 버리자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검을 버리다니 후회할 텐데?"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너 따위 약한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 "후우 그렇다면 너는 왜 내가 이 바닥에서 가장 비열한 남자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후우우우!" 아크는 기습적으로 레골룸스의 거시기를 발로 찼다 그러나 레골룸스는 아크의 발을 잡아 채었다. '호옷 이 상황은 롭 밴 댐이 자주 쓰던…….' "엔지그리!" 아크는 잡힌 오른 발을 그대로 두고 왼발을 날렸다. 그러나 레골룸스는 그대로 잡고 있던 아크의 오른 발을 놓아버렸다. -쿠당 아크가 발길질을 하려다 어이없이 엉덩방아를 찧자 관중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푸하하하하." "저게 뭐야?" "그러고도 오우거 헌터냐?" '크 저 바보가 그럼 그렇지…….' 루리엘은 두통이 오는 듯 미간을 압박했다. 괜히 레슬링 기술 따라하다 개망신만 당한 아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레골룸스의 주먹공격! -퍽 아크는 정신이 띵해졌다. 레골룸스의 주먹이 너무 빨라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공격이 강하면 방어가 취약하다는 세상의 이치를 뒤엎고 레골룸스의 주먹은 빠르면서도 은근히 파워가 강했다. -퍽 -퍼벅 -퍽 -퍽 -퍽,퍽,퍽,퍽 레골룸스의 빠른 주먹 공격을 아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연타로 얻어 맞았다. 레골룸스는 발차기까지 가미하여 아크를 계속해서 구타해댔다. 악으로 깡으로 몇 번 정면으로 맞으며 버텨 봤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인지 아크는 추하게 몸을 웅크리고 레골룸스의 공격을 그대로 얻어 맞았다. 하지만 아크는 이렇게 맞는 것도 상당히 아프자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냥 이대로 기권할 것인지 그러나 차마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크는 일단 레골룸스가 자신을 전혀 때릴 수 없도록 이종격투기에서 본 대로 레골룸스를 꽉 껴안았다. "큭 대단하구만 그래?" "이게 다 네놈의 오만으로 비롯된 결과이니 나를 원망 말아라." "글쎄?"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뺑뺑 돌아가는 아크의 잔머리. 이 상황에서 회칼로 칼침을 놓거나 레골룸스의 눈을 찌른 뒤 공격하려던 아크는…… '가만 지금 이 상황이라면 그 기술도 사용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좋다! 한 번 해 보자!' "흐아아아압!" "……!" 갑자기 레골룸스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는 아크 그리고……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으억!" 아크는 레골룸스를 껴안고 그대로 허리를 굽히면서 레골룸스를 날려보냈다. 그 덕에 자세가 무너지면서 맨 바닥에 머리를 찧긴 했지만 낙법을 모르고 날아가 떨어진 레골룸스의 충격은 더더욱 컸다. 수 십 개의 레슬링 기술을 쓸 수 있는 아크로서도 처음 써 보는 기술.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 맨 바닥 사용 시 자신도 데미지를 입으며 상대가 무겁거나 기술에 응해 주지 않으면 사용키 힘든 고 난이 기술로 레골룸스가 가벼웠기에 가능한 기술이었다. "크으윽" 피가 흐르는 머리를 감싸며 상체를 일으키는 레골룸스. 아크는 즉시 그에게 드롭 킥을 먹였다. 그러나 그다지 드롭 킥 데미지를 받지 않았는지 레골룸스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드롭 킥의 영향으로 바닥에 넘어졌던 아크도 벌떡 일어났다. "차앗!" 레골룸스의 분노의 주먹, 아크는 레골룸스의 펀치를 그대로 얻어맞으면서도 앞발로 레골룸스의 거시기를 걷어 차 버렸다. "끄아아아악!" 눈에 핏발이 선 채 두 손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집어 놓고 자세를 낮추는 레골룸스. 아크는 레골룸스의 머리를 잡은 뒤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레골룸스의 머리를 집어넣고 그의 배를 양팔로 감싼 채 들어 올렸다. 레골룸스는 정말 가벼웠다. 그리고 작렬하는 싯 다운 파워 밤!(데몬 밤) "끄으으으으."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와 싯 다운 파워 밤에 제물이 되어 넉 다운 된 레골룸스. 아크는 넉 다운 된 레골룸스에게 연속적으로 엘보우 드롭과 레그 드롭을 먹인 뒤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이 내가 아까 말했지? ZOT를 까고, R을 터쳐준다고? 얼굴도 반반한데 아주 여자로 만들어주지 키키키." "뭐 뭘 하려는 거냐?" "뭐긴 뭐야 이거지 뭐." 아크는 레골룸스의 양다리를 잡고는 한 발을 레골룸스의 거시기에 댄 다음…… "크하하핫! 이게 바로 최강 기술 진동 안마닷!!!!" "흐갸아아아앗! 제 제발 그만 해!!!!!!" 마구 밟아주었다…… "헹 절대 이 정도로는 못 끝내쥐." 아크는 잡고 있던 레골룸스의 다리를 꼰 뒤, 꼬인 곳에 자신의 다리를 집어넣고는 몸을 틀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는 캐네디안 레슬러의 대표주자인 브렛 하트의 마지막 서브미션기술 '샤프 슈터'였다. "킬킬킬 내가 아주 허리까지 작살내서 진짜 남자 구실 못하게 해 주지." "끄아악 제발 그만해! 항복! 내가 졌다구!" "시로."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하던 레골룸스는 채 30분을 못 버티고 기절해 버렸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관람객들은 도저히 말을 잇지 못했다. 수 십대를 얻어맞고도 한 대도 못 때리고 맞기만 하던 아크가 단 한 번의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로 기회를 잡은 뒤 괴상한 기술들로 계속해서 레골룸스를 몰아 붙여 승리를 따낸 것도 물론이거니와 진동 안마와, 샤프 슈터를 먹이면서 보여준 아크의 그 사악한 모습에 할 말을 잊은 것이다. 결국 심판을 보던 촌장이 보다 못해 말했다. "저기 아크 씨?" "켓! 뭐야?" "레골룸스는 이미 기절했습니다. 당신의 승리입니다." "어 그래? 그럼 내가 이긴 건가 쿠헬헬헬헬." 그제야 아크는 샤프슈터를 풀고 비틀거리며 리엔느와 루리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입술은 터지고 눈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고 머리엔 혹이 나고 코피도 하염없이 흘리고 턱은 붓고……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크가 털렸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크는 괴물이 된 자신의 얼굴은 생각도 안하고 고자가 되 버렸을 레골룸스를 생각하고 연신 실소를 흘렸다. "헤헤헤헤헤헤" 이제야 문득 생각나는 거지만 아크는 쇼가 아닌 실제로 아프게 쓰는 레슬링 기술은 정말 강력하다고 느꼈다. -풀썩 그리고 아크는 길바닥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낮에 치열한 혈투가 끝나고 어둑어둑해진 저녁. 정오에 아크의 문제로 회의가 있었던 촌장의 집에는 촌장과 한 중년 엘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촌장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년인에게 물었다. "레골룸스는 좀 어떻습니까?" "뭐 하초에서 출혈이 좀 있기는 했지만 심각한 건 아니고요. 먼젓번의 두 기술로 인한 뇌진탕과 목 부상이 좀 있고……결정적으로 마지막 기술로 인한 다리와 허리뼈와 관절이 심하게 상했더군요. 뭐 6,7서클의 그레이트 힐 등을 사용한다면 일주일 안에 나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다급한 일은 아니니 굳이 마나 소모가 극심한 그레이트 힐보다는 그냥 보통 힐로써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게 나을 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인간이더군요. 뭐 레골룸스가 활이나 칼로 싸웠다면야 가볍게 이겼겠지만 처음 봤을 때는 레골룸스가 육박전에서도 제압하던 분위기 였는데. 우리 엘프 전사들 중에서도 몇 이길 자가 없는 레골룸스를 제압할 정도라니." "뭐 검술이나 회피력, 공격력 등은 우리 엘프 전사들보다 훨씬 부족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엄청난 살인 격투술을 익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 딸아이들한테 물어 보니 오우거를 잡은 것도 그것과 비슷한 류의 격투기술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간으로서는 정말 보기 드물게 정령까지 다룰 줄 아는 자입니다." "오우거를 혼자서 잡을 수 있는 살인 격투술이라……잘하면 두르툰에게 먹힐 수도 있겠군요. 어쨌든 그를 우리 마을에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아테라인 님께서 잘 감시해 주십시오. 아무래도 그런 대단한 격투술을 익혔다는 자가 체내의 마나가 일반인과 같다는 것은 의심이 가는 부분이에요. 지금부터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 때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요." "어쩌면 정말로 두르툰을 처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기왕 이렇게 인간 족 청년이 한 명. 우리 마을에 살게 되었으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셨는지요?" "하긴 점점 강대해져 가는 두르툰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엘프 처녀들이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일까요?" "그렇지만 리에나 이후 태어난 아이들이라고는 다섯밖에는 안 됩니다. 하루에만 해도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오크들에 비해 우리의 인구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게다가 성장 속도도 더디니 우리들은 오크들과의 계속적인 국지전을 펼쳐 나갈 여력이 없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아무리 무식한 저급 오크들을 전체마법으로 한 번에 작살을 내 놓을 수 있다고는 해도 두르툰은 마법은커녕 화살에도 당하지 않는 녀석 이잖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삶의 터전이었던 숲을 몽땅 오크들에게 내 줘야 할겁니다." 현재 엘프들은 심각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뛰어난 머리와 엄청난 전투실력을 지닌 오크로드 두르툰이 오크들을 통솔하면서 오크들은 엄청난 발전과 종족 번식을 누렸고 어느덧 파푸치아 숲 남부 일대를 거의 장악해 버렸다. 그러면서 넘쳐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그들은 중 대형 몬스터들이 산다는 중부까지 야금야금 먹고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북부의 엘프들과 어느 덧 맞닿게 되었고 많은 땅을 얻었음에도 넘치는 인구 덕에 오크들은 서서히 엘프들의 땅에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엘프들은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마법과 정령에 매우 통달했기에 상급정령과 6,7서클의 마법에 통달한 이들이 많았다. 그 덕에 평지에서 싸운다면 엘프들은 일당백으로 오크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숲 속. 숲에서의 전투라면 엘프들은 대량 살상력을 100% 발휘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리엔느의 엘프 부족은 인간들처럼 성을 쌓았다. 공성전이라면 인구가 700여명 밖에 안 되는 엘프들도 능히 오크군 10만을 막을 수 있었다. 단단한 방어 마법이 걸린 성에서 그들의 뛰어난 활 솜씨와 마법이라면 가진 것이라고는 쪽수밖에 없는 오크들은 도저히 성을 뚫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뛰어난 두뇌와 무력, 마법과 원거리 물리공격을 상쇄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오크의 지도자 두르툰이었다. 그는 영리하게도 질게 뻔한 공성전을 피하고 성까지 지은 엘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엘프들의 활동 영역만 하나 둘 씩 잠식해갔다. 계속해서 이런 추세라면 엘프들은 성안에만 갇혀 버린 채 살아야 할 처지였다. 이에 엘프들은 두르툰을 암살하기 위해 급습을 했지만 두르툰은 쉽게 당할 자가 결코 아니었다. 이제 엘프들의 남은 선택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게 지속적인 국지전을 펴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어쩔 수 없이 피해가 생기고 그 피해를 감수키 위해서는 전투 동원 가능 인력이 충분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아테라인은 아크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20년이면 다 자라는 하프 엘프를 낳을 수 있는 씨내림인 데다가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면 죽일 수 없다는 오우거를 살인 격투술로 잡을 정도이니 지금껏 오러 블레이드 외에는 피해를 입힐 수 없었던 두르툰도 그가 해결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후 그러면 어디 당신의 딸들과 한 번 맺어 줘 보세요.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니 걔네들도 호감은 가지고 있을 겁니다." "……후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자 어서 들게." "아 예." '형편없는 음식들이로군.' 둥그런 가족용 식탁에 빙 둘러앉은 루리엘과 리에나, 리엔느, 아크 그리고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중년 엘프. 엘프 일가의 말투나 호칭으로 봐서는 아마도 리엔느의 아버지 정도로 보였다. 식탁을 빙 둘러 본 아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이게 밥 먹는 식탁인지 채소밭인지……아크는 문득 엘프들이 화식과 육식을 하지 않아 저렇게 엄청난 미모와 긴 수명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고기가 없는 것은 참을 수 있었는데 익히고 데친 음식이 하나도 없으니 그 쓰디쓴 생풀을 씹는 것은 도저히 참고 먹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몇몇 과일들이 있어 아크는 쓴 풀 먹고 과일 먹고 하는 방식으로 괴로운 만찬을 때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실컷 맞아서 괴물이 된 아크의 얼굴이 풀을 씹을 때마다 더더욱 일그러지자 루리엘은 계속해서 킥킥거렸다. "맛이 없나?" 리엔느도 아크의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는 말했다. "하핫 엘프족의 음식이 별로 입에 맞는 것은 아니군. 조리 같은 것은 아예 하지를 않는 건가?" "뭐 불을 쓰거나 고기도 먹기는 하지. 허나 우리들의 주식은 채소 생식이야 뭐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면 한 두 가지 정도는 네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주지." 그럭저럭 희망적인 리엔느의 대답에 만족한 아크는 리엔느들의 아버지로 보이는 이 중년인에게 질문했다. "저 그런데 말입니다." "음 뭔가?"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음? 아차 이런 그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을 하지도 않았군." 중년인은 손뼉을 치며 이제야 생각는다는 듯이 말했다. "뭐 나는 자네를 알고 있으니 그냥 내 소개만 하도록 하지. 나는 리에나의 외할애비이자 루리엘과 리엔느의 애비이지 이름은 아테라인이라고 한다네." 대충 짐작하고 있던 아크는 아테라인이 리엔느와 루리엘의 아버지라는 말을 쉽게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아테라인님." "그냥 장인님이라고 부르게 그게 어색하다면 아버님도 좋네." "컥! 콜록 쿨럭 쿨럭." 아크는 아테라인의 뜻밖에 말에 그만 놀라서 사래에 걸려 켁켁거렸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쿨럭 쿨럭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속으로는 아테라인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좋아라 하는 아크였지만 보는 눈이 있길래. 그는 좋은 내색하지 못하고 애써 더듬거리는 척 하며 반문했다. "응? 자네 데릴사위로 우리 집에서 사는 것 아니었나?" "아버지!!!!!!" 발끈해서 동시에 원망의 목소리를 늘어놓는 엘프 자매. 아테라인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애초에 마음이 있어서 이 청년을 데려 온 것 아니었나?" "전 그날 이후로 인간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를 구해 준 뒤 소원으로 같이 살고 싶다고 하길래 데려 온 것뿐……입니다." "누 누가 이런 변태를……그리고 난 언니처럼 젊은 나이에 미망인 되고, 또 내 아이들이 나보다 빨리 늙고 빨리 죽는 건 싫어." 아테라인은 두 딸의 반발 속에 숨은 뜻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리엔느의 경우 말끝이 흐려지고 왠지 모르게 말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애써 냉담하게 말하는 투가 역력했고 루리엘의 경우 변태라는 아크의 성격보다는 수명이 짧은 인간의 삶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제법 호감은 있는 듯 했다. 만약 아크가 자신은 죽거나 늙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얘기했으면 어떻게 반응이 달라질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테라인은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자네 그 살인 격투술은 어떻게 익힌 건가?" "예?" 아크는 아테라인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살인 격투술? 그게 뭐야? "자네가 레골룸스에게 썼던 그 기술 말일세." "아하." 아크는 아테라인이 말하는 살인 격투술이 레슬링 기술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 "그건 누구한테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 기술은 제가 직접 창안한 것으로 기술의 이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통칭하는 이름 따위는 없습니다." 프로레슬링 기술을 자신이 만들어 냈다고 엄청난 뻥을 치는 아크.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아크 외에는 정말로 이런 기술을 사용하는 이가 없었다. 목조르기 같은 것이야 있기는 했지만 그런 기초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샤프 슈터라든지 레그 드롭, 파워 밤,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 같은 기술들을 체계화하여 격투술로 분류하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뭣이라고? 그런 기술들을 자네가 만들어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마 이 세상 그 어디를 가도 이런 기술 여러 가지를 전문적으로 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가 전수하지 않는 이상." 아테라인은 아크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검법이나 권법등을 창조해 내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연구 그리고 노력이 필요했다. 하물며 저런 단 몇 초식만으로 상대를 완벽히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격투술이라면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과 여러 사람의 집중적 연구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저런 새파란 나이에 스스로 격투술을 창조해 내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그런 강력한 기술을 창조해 내려면 엄청난 시간의 투자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할 터인데……겨우 그 나이에." 아테라인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생각을 그대로 말로 옮겼다. 정말로 아테라인은 어제의 아크와 레골룸스의 격투에서 아크의 격투술에 감탄했다. 스피드에서부터 밀려 계속 맞다가 갑자기 상대를 껴안는 돌발행위, 처음에는 그것이 그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라고 외치던 기술을 쓰기 위한 단순한 준비동작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상대에게 중요부위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상대의 공격을 묶는 원천 봉쇄 방어술인 것부터 서슴없이 예리하게 급소를 노리는 무자비함. 그리고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한 쪽 다리를 들은 다음 나머지 다리로 허공으로 박 차 올라앉은 자세로 낙하하여 그 무게로 상대의 목을 노리는 무서운 기술. 마지막으로 허리와 다리를 동시에 꺾으며 극심한 고통을 주는 한 번 들어가면 절대 풀리지 않는 그 샤프 슈터란 기술까지 무엇 하나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말 그런 것을 자네가 만들어 내었단 말인가?" "그렇다니까요." 레슬링 기술이 그렇게까지 아테라인에게 강력한 기술로 보이고 있다는 것에 아크는 그 동안 TV 프로레슬링 중계를 열심히 보며 연습했던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다. "자네 말일세." "예? 무엇을 말입니까?" "그 격투술을 우리 전사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나?" "뭐 이 격투술은 힘과 유연성, 스피드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 밑천인 이 격투술을 모두 전수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몇 가지 기술 정도라면 강의해 줄 용의는 있습니다." 아크는 그런대로 흔쾌히 승낙했다. "하핫 정말 고맙네 그 대가로 내 딸들을 자네에게 주겠……." "아버지!!!!" 아테라인의 뒷말은 엘프 자매의 고함소리에 막혀 묻혀졌다. 그리고 졸지에 살인 격투술로 오우거와 엘프 족 최강의 전사를 때려잡은 실력 있는 격투가가 되어 버린 아크였다. "쑥덕 쑥덕." "수근 수근." "우이씨……." 아크의 짜증은 계속해서 심해져 갔다. '지미 내가 무슨 약장수가 데려온 원숭이냐? 눈빛이 뭐 이래?' 엘프 족의 차세대 최고 전사 레골룸스를 꺾었던 유명세 덕에 아크는 아테라인의 집을 나와 연무장으로 가는 동안에 봤던 엘프들에게 유심히 관찰(?)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하나같이 미인 아닌 이들이 없는 엘프 여성들의 뜨거운(?)시선을 받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시선 속에 담긴 각종 안 좋은 의도에 아크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려야 했다. 하지만 아테라인의 안내로 도착한 훈련장에서 엘프 전사들의 살기 어린 시선을 받은 아크는 차라리 마을 내에서의 눈빛 공격은 차라리 애교였다고 생각했다. 이 엄청난 적의와 살기에 아테라인 조차도 놀랍다는 표정으로 아크를 보았다. 자신이 움츠러들 정도의 살기다. 아크가 과연 이 강한 살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호오 제법이로군.' 움츠러들 줄 알았던 아크는 의외로 태연했다. 아니 아크 또한 투기에 불타고 있었다. 지난 번 회의에서처럼 그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욕설이 나올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괜찮은 놈이로군. 격투술 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도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정말 내 딸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아테라인은 말을 이었다. "오늘 부로 여기 있는 이 사람 아크가 너희들한테 격투술 강의를 할 것이다. 인간이라는 편견을 갖지 말고 따르도록." -웅성웅성 으레 이런 경우에는 박수를 쳐 대며 새로운 이를 환영하는 것이 맞겠지만 아크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엘프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러던 중 한 중학교 2,3학년쯤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 엘프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형님의 원수를 갚겠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레르가스!" 아테라인이 다급히 외쳤다. 그의 형인 레골룸스도 당할 정도이니 레르가스에게 맨손 결투라면 별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아테라인은 이 의미 없는 결투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이성을 잃은 듯이 보이는 레르가스에게는 씨도 안 먹히자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는 아크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내는 아테라인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결투를 너무 쉽게 받아들였다. "뭐 그러도록 해 대신 종목은 맨손 격투다. 검술이나 궁술이라면 나는 쪽도 못 쓰고 당할 테니까. 자! 잔말 말고 덤벼라! XX놈아." "으아아아!" 아크에게 다짜고짜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는 레르가스. 그러나 레골룸스보다 몸집도 작고 왜소한데다 스피드도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았다. 그래도 빠르긴 빨라서 아크는 피하기보다는 맞아도 별로 안 아픈 팔뚝으로 가드를 해 내었다. 물론 아크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제법 날랜 몸놀림과 치사한 급소공격, 그리고 한 방의 파워가 강력한 레슬링 기술만큼은 아크도 자신 있었다. 아크는 주먹을 휘두르는데에 정신이 없는 레르가스의 얼굴을 다섯 손가락으로 긁어 내렸다. "윽!" 그리고 그 틈에 작렬하는 아크의 비전 절정기 급소치기! "아아아악!" 아크의 무릎 찍기에 급소를 그대로 허용한 레르가스. 그 동안 아크가 무수한 적들을 꺾어왔던 최강의 기술이었다. 그 다음으로 아크는 레르가스의 목을 오른 손으로 잡고 그의 팔을 자신의 목에 걸은 뒤 왼손으로 레르가스의 허리를 잡았다. 거구의 레슬러들이 주로 쓰는 초크 슬램이었는데 상대가 가볍거나 응해 주지 않으면 매우 쓰기 힘든 기술이라. 아크는 괜히 시도했다가 못 들어서 쪽팔리지나 않을 지 고심했다. 그러나 그런 아크의 염려와는 다르게 레르가스는 아주 쉽게 들렸다. '얼라리요 진짜 가볍네? 하긴 풀만 먹고사니 살이 찔 리가 있나.' "……!" "우왓." 아크가 한 손으로 높이 들어올린 레르가스를 보자 아테라인을 비롯한 엘프전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쿵! 아크의 초크슬램이 작렬하자 약 2m 높이에서 맨 바닥에 쳐 박힌 레르가스는 게거품을 물며 눈이 획 돌아가 버렸다. 아크는 기절한 레르가스의 다리를 잡았다. 그리고 막 샤프슈터가 들어가려는 찰나. "그만 두시게 이미 레르가스는 기절하지 않았는가? 이봐 뭘 하고 있어 어서 힐을 쓰지 않고." 아크는 아테라인의 말에 막 기술이 들어가려던 레르가스의 다리를 풀었다. "애송이로구만! 그나저나 쓰기 힘든 기술인데 엘프들은 대체적으로 가벼운 모양이로군요." "흠 대체적으로 그렇다네." "힐!!" 몇 몇 엘프 전사들이 레르가스에게 달라붙어 각자 힐을 사용하자 레르가스는 뒷 골을 감싸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레르가스를 빤히 바라보던 아크는 묘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결과에 승복하냐?" "큭 치사하게 급소공격에 손톱으로 할퀴기까지 하다니! 그러고도 이겼다고 말할 수 있나?" 추하게 진 주제에 레르가스는 호기 있게 소리쳤다. "염병! 억울하면 이겨라." 그러나 레르가스의 말 따위는 개 무시를 하는 아크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아테라인 님 이제 강의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자 자 여기들 주목!." 아테라인은 손뼉을 쳐 레르가스에게로 몰렸던 엘프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쓰러진 레르가스는 살벌한 눈초리로 아크를 한 번 쏘아본 뒤 비틀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뭐 내 이름은 다 알 것이다. 사실 난 하나도 강하지 못해. 검도 무거워서 잘 못쓰고 활은 당겨 볼 줄도 모르고 운디네로는 물만 퍼부을 줄 알지. 그리고 따지고 보면 너희들보다도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일 뿐이다." 아크는 자신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강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떻게 레골룸스와 레르가스를 이겼을까?" "자기에게 유리한 종목인데다가 비겁하게 싸웠으니까 이겼겠지." 레르가스는 툭 튀어나온 입으로 이죽거렸다. "맞아. 난 비겁하게 싸웠어. 남자의 성징이라는 그것을 가차없이 차 버리기도 하고, 손톱으로 얼굴을 핡퀴기도 하고……하지만 뭐 당연한 것 아닌가?" "무엇이 당연하다는 말이냐? 전사에겐 전사의 명예와 긍지가 있어야 한다고 여기 계신 아테라인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처절하게 깨진 주제에 사사건건 아크의 말에 토를 다는 레르가스. 아크는 그런 레르가스의 모습을 보고 약간 뒤에 아주 죽여 놓겠다고 다짐했다. "어리석군. 그럼 너에게 묻겠다. 오우거에게 자신의 친구들이 죽임을 당하려고 한다. 그러나 너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오우거를 잡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너라도 살아서 도망가겠는가?" "끝까지 싸워 친구들과 같이 죽겠다." 레르가스의 비장한 대답에 아크는 가볍게 코웃음쳤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어떻게든 살 수 없는 상황을 살아남아 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정면 승부보다는 약한 곳을 공략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창으로 오우거의 항문을 쑤셨다. 그것이 발판이 되어서 나는 오우거를 잡을 수 있었지."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한 마디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비겁한 수를 써서라도 이기면 만사가 장땡이라는 거다. 남자의 약점인 거시기를 집중 공격하거나 상대의 시야를 빼앗기 위해 모래를 뿌리거나, 엄청 강한 적을 맞아서는 떼거리로 몰려들거나 하는 수작들을 악당들이나 하는 추잡한 짓거리라고 하지,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면 전리품과 승리의 영광이 돌아오는 것은 승자다. 약한 점을 노려서 공격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 강한 적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전사의 명예나 긍지, 자존심 따위는 버려라." "……." 아번에는 레르가스도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조용히 침묵했다. "뭐 서론은 이제 그만 접어 두고 기술 강의를 시작하지. 음……가장 쉬운 기술인 헤드락 먼저 시작해볼까? 레르가스! 이리 나와!" "어? 뭐지?" "어 실습용." "뭐얏? 왜 나인 거냣!!!! 아까 결투로 몸도 안 좋은데." "니 이름 밖에 모르니까. 초크슬램 한 대 더 맞기 싫으면 순순히 나와." "레르가스군 아크의 말에 따르게." "……예." 버텨 보려던 레르가스는 아테라인의 권유에 마지못한 얼굴로 애써 절뚝거리는 척 하며 걸어나갔다. "처음이니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기술을 가르쳐 주지. 자 먼저 상대방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운 다음. 한 쪽 팔로는 상대의 머리나 목을 감싸고 나머지 손으로는 감싼 팔을 같이 잡아당긴다." 아크는 레르가스의 머리를 옆구리에 집어넣고 약하게 하는 시늉만 해 보이자 잔뜩 긴장했던 레르가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리고 여기서 이렇게 힘을 준다!!"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힘을 준다를 강조해서 말한 아크는 레르가스의 관자놀이를 압박했다. "자 잘 봐라. 여기의 팔 뼈로……가만히 좀 있어! 급소 중 하나인 관자놀이를 압박한다. 발광하지 마 임마! 이렇게 하면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지." 실컷 기술을 걸고 아크는 레르가스의 머리를 풀어 주었다. 지옥의 고통에서 풀려난 레르가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나 아크는 안도하던 레르가스의 목을 그대로 조였다. "큭 켁 켁 사 살리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레르가스. 아크는 레르가스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으며 강의를 계속했다. "방금 전 관자놀이에 들어 간 기술은 상대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지만 그로 인해 상대의 끈질긴 반항을 불러 일으켜 풀려지기가 쉽다. 하지만 이렇게 목에 두르는 헤드 락은 상대가 아무리 목을 빼내려고 해도 기술을 걸고 있는 자의 팔에 턱이 걸려 쉽사리 빠져 나오지도 못하게 된다. 게다가 점점 숨이 막혀가게 되지. 자 옆의 짝과 번갈아 가면서 해 봐." 아크는 그제 서야 레르가스의 목을 조이던 팔에 힘을 풀었다. "콜록 콜록 콜록 켁 켁 이 망할 자식이!!!!" 심하게 기침을 콜록거리던 레르가스는 학생들의 기술 교정을 하고 있는 아크의 뒤에 대고 막말을 퍼부었다. 아크는 몸을 돌려 최대한 웃는 표정을 짓고는 레르가스에게 다가갔다. 레골룸스와 싸울 때 입었던 멍과 부은 상처들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탓인지 험상궂은 얼굴의 아크의 웃음은 묘하게 소름끼쳤다. 아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르가스 군 앞으로 당신을 제 전속 실습 파트너로 임명합니다." 그리고 나서 아크는 레르가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넌 이제 죽었어." "무 무슨!" 레르가스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아크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자 자 그만 들하고 오늘은 몇 가지 기술들을 맛보기로 보여주도록 하지." "……!" "맨 처음엔 헤드 락!"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두 번째로는 리버스 DDT!!!" -쿠당 "아야야야야야 이 망할!" 레르가스가 알고 있던 가장 심한 욕설이 튀어나오자. 아크는 더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세 번째는 플라잉 엘보우 드롭." "컥!" "네 번째는 레그 드롭!" "끄으으으으으." "다섯 번째는 샤프 슈터!!!!!!!" "아아아아악! 그만해에에에엣!!!!!" "어라 벌써 항복? 아직 다섯 개나 더 남았는데?" "다 다섯 개????" "흠 그럼 다음 기술은 뭘로 할까나? 레르가스. 응? 헤헤헤헤헤." 레르가스는 이 웃고 있는 미친놈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아테라인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테라인은 아크의 다음 기술을 기대하는 눈초리였다. 아크는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섯 번째는 페디그리!" "끄아아아아악 사람 살려!!!!!!!!!!!!!" 소년의 절규가 드넓은 파푸치아 숲을 뒤흔들었다. 식사중인 아크를 보며 루리엘이 물었다. "요새 안색이 좋아 보이네? 그 강의 나간 날부터." "하하핫 재밌는 녀석을 만났거든." 리엔느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작작 좀 해라. 애 하나 괴롭히는 게 그렇게도 재밌나? 레르가스가 불쌍해 보인다." "그래도 매일 볼 때마다 노골적으로 적의와 투지를 보여주는 게 귀엽잖아. 하하하!!!" 그 첫날 강의 이후로 레르가스의 전사 수업은 실미도 북파 공작원 훈련보다 빡세졌다고 한다. 괜히 아크에게 개겼다가 개 고생하는 레르가스. 그에게 봄날은 올 것인가? "……." "레르가스! 꼴이 그게 뭐야? 어떻게 된 거냐?" "……."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잖아!" 레골룸스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최근 레르가스가 전사 수련을 까닭 없이 받으러 기가를 싫어하고 계속해서 신경질적이며 집에 오면 매일 방안에만 처 박혀 있는 것을 염려한 레르가스의 형수, 즉 레골룸스의 부인이 무슨 남자애들한테만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레골룸스에게 말해 두었던 것이다. 레골룸스는 레르가스가 성장기에 무슨 심경 변화 같은 거라도 있나 싶어 자신이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게 되자. 레르가스를 찾았다. 그런데 레르가스의 모습은 자신이 인간 세상에서 몇 년 떠돌아다닐 때 보았던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것과 묘하게 비슷했다. 물론 엘프들 사이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레골룸스는 속에서 열화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떤 녀석들이 널 괴롭히는 거냐?" "훗 그럴 리가 없잖아." 무표정으로 멀뚱히 앉아 있던 레르가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레골룸스의 화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런데 네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레르가스의 수려했던 얼굴은 처참히 망가져 있었다. 페디그리, 불독, 블랙 잭, DDT, 크리플로 크로스 페이스 등을 집중적으로 맞은 결과로 이마며, 볼이며, 입술이며, 코며, 눈이며 멀쩡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어떤 녀석이 나 괴롭히거든." "뭐야? 그럴 리가 없다면서?" "당연하지 어떤 녀석들이 아니라 어떤 녀석이거든." 레골룸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놈 누구냐? 내가 몸만 나으면 아주 그냥 작살을 내주마." "체! 형도 졌잖아." "뭐 내가 져?……설마." "어 그 설마가 맞아." 레골룸스의 짐작에 레르가스가 결정타를 먹이자, 잠시 주춤거렸던 레골룸스는 다시금 질문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당하기만 한 거냐? 검이나 활 마법등으로 알아서 손 봐주면 되지 않느냐?" "안 돼……아테라인님이 그 놈을 격투기 사범으로 모시랬어. 그 덕에 나는 그 연습이란 핑계로 맞은 거고, 기습을 가해 볼 까도 했는데 매일 루리엘이나 아테라인님이 붙어 다니는 바람에 그것도 여의치 않아." -쾅 레골룸스는 탁자를 주먹으로 거세게 내리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씹어먹을 인간 놈이 감히 내 동생을 건드려!!! 아테라인님도 그렇지 아리아나를 그렇게 잃어 놓고 여전히 인간 따위를 그렇게 믿다니." "후 걱정 마 형 뭐 그깟 놈에게 괴롭힘 당한다고 정말 괴롭거나 버티기 힘들거나 그런 건 아냐. 단지 그 자식에게 복수할 거리를 고심하고 잇는 것 뿐이야." "뭘로 복수할 건데? 검으로 결투라도 할 거냐? 검으로 결투를 한다 해도 승리를 장담 할 수는 없다. 게다가 결투를 받아주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우리 마을에서 쫓아내겠어. 형도 도와줄 거지?" 레르가스의 말에 잠시 고심하는 레골룸스. 그 인간이 이 마을에서 사는 것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자신은 결투에서 패했다. 그래서 그 인간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까 했는데……그러나 동생이 이렇게 당한 것을 본 레골룸스는 자신을 비겁하게 이긴 아크에 대한 복수심이 새삼 다시 떠올랐다. "……좋아." 그렇게 형제의 음모는 진행되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붉은 거야? 파란 거야?" "붉은 거다. 그런데 파란 것도 있나?" "아 아니 녹색말이야." "색맹인가?" "아니." 리엔느와 함께 과일을 따던 아크는 새삼 한국어의 다양 무쌍한 표현에 감탄했다. "대충 땄으면 그만 가자." "어." '나 참 진짜 무뚝뚝하구만.' 아테라인의 권유로 리엔느와 과일 따러 나온 아크. 나름대로의 숲 속 데이트를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나눈 대화는 열 몇 마디를 넘기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말주변이 없는 건가? 루리엘하고는 이것저것 수다도 잘 떨 수 있는데 게다가 목숨 바쳐 구해주고 5일 동안 밀월 여행이라면 호감도는 제법 높아야 하는 거 아냐?' 아크가 해 봤던 미연시의 관점으로 봤을 때 리엔느는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호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남자 주인공에게 차갑게 대하는 그런 캐릭터였다. 이런 캐릭터라면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면 태도가 다정해 저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호감도를 올렸을 만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리엔느의 태도는 여전히 싸늘했다. '아차! 미망인 캐릭터라는 변수를 생각하지 못했군. 이런 경우 주로 딸인 리에나의 호감을 얻은 다음. 리에나에게 아빠가 없다는 면을 부각시켜서 내가 아빠처럼 어필해야 해. 즉 공략의 포인트는 리에나로군.' 연애 경험이라고는 없는 아크에게 있는 정보라고는 현실 세계에서도 통용될까 싶은 연애 시뮬레이션의 정보뿐이었다. '일단 어떤 화제로라도 대화의 장을 터 봐야겠군. 어디까지나 미연시의 기본은 '만나서 대화한다'니까' "어이 리엔느!" 그러나 대답을 받아야 할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아크가 망상에 빠진 사이 자기 혼자 뒤도 한 번 안 돌아보고 냉정하게 자리를 떠난 것이리라. "너무하네 안 오면 기다려는 줘야지." 아테라인과 루리엘이 일방적으로 밀어는 주고 있었지만 도저히 리엔느와의 관계는 발전할 줄을 몰랐다. "에휴 팔자려니 해야지 뭐." 체념하는 아크. "무슨 놈의 팔자냐 이놈아!" 그 때 아크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 아크라우스였다. "얼레리? 오랜만이다. 아크라우스. 공성으로 바쁘다더니?" "푸흐흐흐 최근 엄청난 캐릭터 육성 방법을 개발해 냈기에 조금 바빴다." "엄청난 캐릭터 육성 방법? 버그 플레이라도 하나 발견했냐?" "서유기에 보면 탁탑 이천왕의 아들 나타 태자가 얼굴 셋 팔 여섯인 괴물로 변해 요괴들을 때려잡지. 그것을 응용해 나도 얼굴 셋 팔 여섯으로 변해서 한꺼번에 세 개의 캐릭터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 덕에 잠수시켰던 네 녀석 캐릭터도 이제 돌릴 수 있게 되었지. 드래곤인 나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푸흐흐." "그런 걸 이제야 깨달았냐? 나는 진작에 그렇게 컴퓨터 두 대 풀로 돌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그나저나 용건이 뭐야? 끝말잇기라면 정중히 사양한다. 나 요새 바쁘니까." "네놈의 청춘 사업에 조언을 좀 해 줄까 해서 말이다." "뭔데?" 아크는 불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뭔지 모르게 냄새가 나는데…… "흠 그 전에 말이다." "그 전에?" "창고 암호 좀 알려줘라!" "어? 즐! 쌩깐다. 잘 먹고 잘 살아라. 나중에 보자." 아크라우스의 말을 대번에 무시해 버리는 아크였다. "큭 왜 그러나? 어차피 네 녀석 캐릭 키우는데 들어갈 돈인데?" "그걸 어떻게 믿냐? 게다가 고작 연애정보하나가지고 그 많은 것을 날로 먹으려고 해? 이런 날강도에 땅 거지같은 자식!" "뭣이! 날강도라고? 거기다 땅 거지? 이런 XX한 인간 놈이 어디서 감히!" 그리고 시작되는 아크의 욕설의 향연, 또 그것을 맞 받아치는 아크라우스의 폭언. "……!" 그리고 아크가 아크라우스와 떠들고 있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마을에서 누군가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 "그래. 걸렸다! 멍청한 놈 이렇게 빨리 걸리다니." 그리고 그 누군가는 대번에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촌장니이이이임!!!" -콰당 거세게 문이 열리고 그 문이 열린 곳에는 레골룸스가 심하게 헉헉거리며 서 있었다. "뭡니까? 레골룸스. 아직 완쾌되지 않았으니 뛰는 것은 자제하세요." 촌장은 읽던 책을 덮고서 레골룸스에게 조언했다. "촌장님 드디어 그놈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놈?……이라니요?" "그 인간 말입니다. 저와 레르가스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하도 정체가 의심스러워서 예의 주시하고 있었는데 우리들의 원거리 음성 탐지 능력도 모르는 지 제 무덤을 파더군요." "원거리 음성 탐지로 남의 말을 엿듣는 것은 규약 위반일 텐데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놈은 첩자가 확실합니다. 마법 통신구로 대화를 나눈 것인지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공성부터 암호, 정보 등의 말을 꺼내놓는 걸로 봐서는 우리의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보를 캐러 온 것이 확실합니다. 당장 잡아들여서 심문해야 합니다. 촌장님." 턱을 개고 골똘히 생각하던 촌장은 벌떡 일어서서 외쳤다. "좋아요 레골룸스. 엘프 전사들을 데리고 가서 그 자를 잡아오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레골룸스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한 뒤 얼굴에 깔리는 웃음을 애써 참지 않고 그대로 달려나갔다. 딴 과일을 아작아작 씹어대며 마을로 돌아오는 아크. 그의 앞에 나무와 흙으로 쌓아놓은 엘프들의 성벽이 위엄에 찬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엘프 마을 진입로에는 칼을 빼든 4명의 엘프 전사들과 미소를 띄고 있는 레골룸스가 버티고 서 있었다. "여 레골룸스! 상처는 좀 괜찮냐?" 아크는 미소를 지으며 반쯤 베어먹은 과일을 쥔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칼과 활을 겨눈 채 흉흉한 살기를 풍기는 엘프 전사들에게 그렇게 말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레골룸스가 짓고 있는 재수 없는 미소에 응해주기 위해, 또 적 앞에서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겠다는 그의 신조에 의해 아크는 계속해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본 레골룸스는 콧방귀를 뀌며 소리쳤다. "흥 가증스러운 놈. 어서 저 녀석을 포박해." "얼레? 포박?" 확실히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아크. 하지만 지은 죄는 없으니 꿀릴 것도 없었다. "까짓 거! 묶어라!" 아크의 팔과 몸통을 포승줄로 묶는 엘프 전사들 아크는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밧줄에 몸을 맡겼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했다. "어이 근데 뭐 때문에 묶는 거냐? 일주일동안 엘프마을에서 살면서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은데?" "몰라서 묻는 거냐?" "어 몰라서 물어."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아크의 대답에 레골룸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말 모르냐? 아니면 발뺌하냐?" "진짜 모르는데?" "큭 정말 모르겠다면 죄를 실토할 때까지 갈궈야 겠군." "엑! 난 결백해!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난리야?" "역시나 모르는 척 하는군. 네놈의 입에서 진실을 들으려면 손 좀 봐줘야 하겠어." 아크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무슨 짓거리를 했다고 다짜고짜 잡아가서는 심문을 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손 좀 봐줘야겠다는 레골룸스의 말에 아크는 틈을 타 도망칠 결심을 했다. 포박된 채 어느새 엘프 마을 중앙부에까지 도착한 아크. 이대로 계속해서 끌려간다면 이제 얼마 안가 고문을 당할 것은 뻔했다. 그러니 지금쯤 사생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어이 레골룸스." "뭐냐?" "헤헤헤 이거 먹으라구." 아크는 실없이 웃어대며 레골룸스에게 먹다 만 과일을 내밀었다. "큭 누가 이런 걸……." "누가 그거래?" 어리버리 하게 웃다가 갑작스레 눈초리가 달라진 아크. -콰직 "끄아아아아아악!!!!!" 아크의 전매 특허 기술 로우 블로우가 부상당했던 레골룸스의 남근에 또 다시 작렬했다. "무슨 짓이냐?" 아크의 오른 쪽 뒤에서 걷던 엘프 전사가 놀라서 외쳤다. 그리고 아크의 선두에서 가던 둘이 무릎을 꿇고 쓰러진 레골룸스를 급하게 부축했다. 다섯 명 중 셋의 경계가 풀리자 도망갈 틈이 생간 아크는 자유로운 두 다리로 냅다 달렸다. "큭 저놈이 도망을!!!!" "운디네! 저 녀석들 얼굴에 물을 퍼부어!" 아크는 엘프들의 화살공격에 대비하여 그들의 얼굴에 물을 퍼부어댔다. 그러고도 안심이 안 됐는지 아크는 곧바로 달리지 않고 좌우 지그재그로 몸을 비틀면서 달렸다. "어딜 감히!" 그러나 아크는 실수한 것이 하나 있었다. 급소를 맞아 널 부러졌던 레골룸스의 시야를 가리지 못했던 것이다. 레골룸스는 아픔을 참아 내며 아크에게 화살을 날렸다. -휙 "악!!!" 아크의 허벅지를 정확히 꿰뚫어 버린 화살. 그럼에도 아크는 불굴의 투지로 절뚝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휙 2타로 날아온 화살이 아크의 멀쩡하던 왼쪽 다리마저 명중시켰다. "이런 망할 인간 놈!" 물의 중급정령 운다이론으로 운디네의 공격을 상쇄시켜버린 엘프 전사들은 쓰러진 아크를 사정없이 밟았다. "크윽 이 개쉐들! 느그XX X이나 처 먹어라!" 아크는 맞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욕은 오히려 엘프들의 성질을 돋구어서 자신에게만 더 많은 피해를 줄 뿐 이었다. "휘유 이제 그만! 나중에 죽이더라도 지금은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 레골룸스는 남근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레르가스를 짓밟았던 인간의 추레한 모습에 만면에 여유의 미소를 머금었다. "가자." 다리 두 짝이 모두 아작 나버린 아크는 엘프들에 의해 땅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아직도 네놈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인정하지 못하겠나?" 이제 막 해가 져 어둑어둑한 저녁. 엘프 마을 중앙에는 엄청난 인파가 밀집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대략 일주일 전쯤 이 자리에서 맞붙었던 레골룸스와 아크가 다시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의 모습은 정 반대였다. 아크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 피에 흥건히 젖은 다리로 무릎이 꿇려 진 채 처참한 모습이었고, 레골룸스는 꼿꼿히 우뚝 선 채 검으로 아크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의 양옆에는 몽둥이를 든 남자 엘프 두 명이 무서운 기세로 버티고 서 있었다. "아 뭔지 알아야 자백을 하고 인정을 하지!!!" "끝까지 발뺌하는군. 지독한 놈. 아무래도 더 패 놔야 될 모양이다. 계속하게!" -퍽 -퍽 -퍽 "커어억!" 호된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아크는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며 피를 토했다. "아크!" 그 모습을 본 루리엘의 애절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아크는 고꾸라진 몸을 힘겹게 일으켜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 곳에는 아테라인을 위시한 엘프 일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아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리엔느의 냉기가 날리던 평소와는 약간 달라진 눈물을 머금은 듯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본 아크는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입에는 저절로 웃음이 걸렸다. 그러나 그 미소를 본 레골룸스는 아크가 짓는 미소의 의미를 오해하고서는 고문이 약했나 싶어. 더 강력한 것을 갈기기로 마음먹었다. "어이 가나안 아무 전격 마법이나 하나 부탁하네. 죽거나 기절하지 않을 만크의 강도로 저놈을 지져주게." "알았네 레골룸스." 아크의 왼쪽에 서 있던 가나안이란 엘프는 레골룸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에서 방전을 일으켜 아크의 등에 가져다 대었다. -파지지지지직 "흐흐흐아아아아아앗!!!!!!" 이전에 맞았던 루리엘이 썼던 전격 마법에 비해서는 강도가 조금 약했지만 그 때는 기절이라도 해서 중간에 끊겼던 것에 비해 이번 것은 아크에게 기절도 못하게 끔 교묘한 고통을 주고 있었다. 엄청난 전기 충격을 받은 아크는 사이오닉스톰에 지져지는 히드라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전기 고문이 끝나고 레골룸스는 또 다시 아크를 심문했다. "이제 자백해라 계속 버텨봐야 너에게 좋을 건 없다." "큭 무슨 일인지 얘기나 좀 해봐라아! 뭔가 알아야 자백을 하지!" "정말 지독하군. 계속해." 아크는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었다. 자백을 하려고 해도 뭐가 뭔지 알아야 자백을 할 것이 아닌가? 억울한 사람 죄 뒤집어씌우려면 '너 이러저러한 죄 지었지? 순순히 불어! 자백하면 살려준다.'고 말한 뒤에 고문을 하는 것이 정석인데 다짜고짜 죄 없는 사람 데려다가 '무조건 불어!' 하면 도대체 무슨 자백을 하란 말인가? 뭐라고 꾸며서 댈 수도 없고. 그나마 아크를 미치지 않게 한 것은 아크의 예상외로 고문이 미약했던 것이다. 아크의 고교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다던 역사 선생이 들려줬던 끔찍한 고문체험담이나 사극에서 보던 조선시대 고문에 비하면 이 정도 구타와 전기충격은 약과였다.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픈 것. 결국 아크는 우는 소리로 레골룸스에게 애원했다. "야 제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좀 얘기해 줘 봐라! 알고 맞아야 억울하기라도 하지!" "맞아! 무슨 일인지 알기나 하자 레골룸스." 루리엘도 아크의 말에 동조했다. "좋다 되도록 네 녀석이 스스로 털어놓기를 바랬는데 할 수 없지, 대신 내가 말해주는 대가로 너의 죄는 더욱 가중 될 것이다." "아 그래도 좋으니 어디 뭐라고 누명을 씌웠는지 들어나 보자." "오늘 낮 약 2시 50분 네 녀석과 리엔느양이 과일 따기를 끝내고 돌아오려는 때 너는 리엔느양을 먼저 보내고 숲 속에서 '미친 쓰레기 같은 오타쿠 도마뱀' 이란 자와 밀담을 나누더군. 마법 통신구 따위를 이용하였는지 그 '미친 쓰레기 같은 오타쿠 도마뱀'이란 자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정황상 암호며 공성이며 정보라는 말을 늘어놓는 것으로 보아 네놈은 우리의 성에 대한 약점 등을 캐내는 스파이임이 확실하다. 이제 너의 죄를 시인하는가?" "하? 하하하하……." 아크는 하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고작 아크라우스와 대화한 것을 꼬투리 잡아서 자신을 이렇게 고문하고 있었다니……그것도 참 절묘하게 공성전 얘기에 연애정보얘기, 암호얘기 했던 것을 교묘히 조합해 스파이로 몰아 세우다니……아크는 레골룸스의 잔머리에 속으로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나 참 아무리 그렇게 쫓아내고 싶었다고는 해도 그딴 것 까지 트집잡을 줄이야." "뭣이?" 발끈하는 레골룸스. "에 뭐라고 해야 하나……나 혼자 미쳐서 떠들어댔다고 할까? 내가 말해도 안 믿을 텐데? 너무 놀라운 사실이라. 말해줄까?" "흥 네놈의 입에서 진실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 줄 성싶으냐? 이보게 저 놈을 계속 패게 맞다보면 제깟 놈도 알아서 진실을 불겠지." "잠깐!" 갑자기 뛰쳐나와 막 매질을 다시 시작하려는 두 엘프를 저지하는 리엔느. 레골룸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 난입자에게 말했다. "뭡니까? 리엔느양." "제가 증명하겠습니다. 레골룸스." "증명이요?" "네 제가 아크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그는 결백합니다." 리엔느의 단호한 대답에 광장의 인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끄러워졌던 장내 분위기도 맨 앞에서 이 심문을 구경하던 촌장의 말에 의해 다시 조용해졌다. "여러분 조용히 하십시오. 그리고 리엔느. 무슨 근거로 아크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입니까?" 촌장의 말이 떨어지자 대번에 조용해졌던 엘프 인파들 중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여럿 들려왔다. "여러분. 아크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보이시죠?" 이 말에 뒤쪽 열에 있던 엘프들이 아크의 반지를 보기 위해 폴딱폴딱 뛰거나 앞 사람을 밀치고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사태가 속출했다. "네 보입니다. 그렇지만 저 반지가 뭐 어쨌다는 것입니까?" "저 반지에는 천 년 전에 죽었던 드래곤이 봉인되어 있습니다." -웅성웅성 조용했던 분위기는 언제였냐는 듯이 마을 광장은 또다시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곧이어 이어진 주연들의 대화에 다시금 고요해졌다. "드래곤이 봉인되어 있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촌장님. 저 반지는 죽기 직전의 실버 드래곤이 자신의 정신을 봉인시켜 만든 것으로 약 천 년 만에 아크를 주인으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아크는 그 드래곤의 눈과 귀가되어 봉인된 드래곤에게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고 또 그 대가로 그 죽은 드래곤의 자식에게 유산의 일부분과 드래곤에게 있던 약간의 친화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그 드래곤은 유일하게 그 반지를 찬 사람의 정신과 대화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크가 그 드래곤과 대화한 것을 레골룸스가 도청하다가 뭔가를 오해 한 듯 합니다." 촌장과 레골룸스를 위시한 엘프들은 리엔느의 말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아크. 사실이라면 왜 여지껏 솔직히 얘기하지 못했죠?" "레골룸스 녀석이 도무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려 줘야 말이죠. 또 제가 얘기했으면 믿었겠습니까? 다들 미쳤다고 할 테죠." "잠깐 여러분! 이 자의 말을 믿는 것입니까?" 레골룸스가 낭패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봐 증인도 있다고 추잡하게 물고 넘어지지마!" "흥 나는 믿지 못하겠다. 물증을 보여라. 리엔느양과 입을 맞춰 사전에 조작했을지 어떻게 아나? 드래곤의 맹약자라면 그 확실한 증거를 보여라." 아크는 리엔느까지 스파이로 몰아서 까지 반박하는 레골룸스에게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훗 증거? 그린 드래곤 그리드란 님께서 보장해 주셨다. 어쩔 것이냐?" "이제는 그리드란 님까지 팔아서 거짓을 주장하는 것이냐? 그것이 진짜 드래곤과의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반지라면 이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증명해 보아라." 레골룸스의 말에 거의 대부분이 반 아크 파인 마을의 엘프들이 아크의 주장이 증인도 있고 일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골룸스를 동조하고 나섰다. "맞아!" "정확한 증거를 대라!" "어떻게 믿냐?" 아크는 관중들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대꾸했다. "좋아 레골룸스 그럼 나랑 내기하자." "뭐?" "만약 내 말이 진짜라면 내가 이기는 거고, 아니면 내가지는 걸로 어때 진 사람은 이긴 사람 소원 두 가지 들어주기." "그러든지." 레골룸스의 동의가 떨어지자 . 아크는 추레한 몰골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뒤 아크라우스를 불렀다. "얌마 아크라우스!" …… "야 아크라우스!" …… "이 시벨 나 무진장 터져서 너 한테 신호 다 간 거 안다. 말해라." …… "야 이 미친 쓰레기 같은 변태 오타쿠 도마뱀이 말 안 할래?" …… "너 지금 쌩까지?" …… 계속해서 응답이 없는 아크라우스에 아크는 적잖이 당황했다. "야 진짜 자꾸 뻐길래?" …… '이 씨 아까 일로 아직까지 꿍해 가지고 있다니 쪼잔한 새끼 그러고도 지가 드래곤이야?' …… "아 알았어 암호 알려 줄게 그럼 돼잖어!" "흠 정말이냐?" 암호를 알려 준다는 말에 대번에 응답이 오는 아크라우스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엘프 마을 입성 "이 미친 쓰레기 같은 놈. 암호 알려 준다니까 인제 사 말하는 거 보소." "암호는 뭐냐? 아크라우스는 다짜고짜 암호부터 물었다. "*******이다 됐냐? 그럼 이제 뭐라고 해답을 제시해봐!" "아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우선 엘프들에게 통역마법을 걸어 달라고 한 뒤 촌장이나 저 레골룸스라는 놈에게 반지를 빌려줘라. 그러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쩝 이런 정보 하나 얻는 답시고 그 많은 돈을 넘기다니 영 손해보는 것 같단 말이야?" "흠 흠 빨리 끝내자 오늘도 공성있다." 아크라우스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하며 얼버무렸다. 아크는 손을 높이 들었다. "뭡니까? 아크." "저에게 통역마법을 걸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통역 마법이라……어째서죠?" "저는 사실 이 대륙과 조금 떨어진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이 반지에 부여되어 있던 통역마법에 의해서 지금껏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해 진 거죠. 그렇지만 이 반지를 뺀다면 도저히 의사소통이 안 됩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루리엘! 아크에게 통역마법을 걸어주세요. 약 20분 정도라면 루리엘에게도 무리가 가지는 않을 거에요." "네 촌장님." 루리엘은 앞으로 나와 엄청난 주변의 마나를 끌어 모아 배열한 뒤 아크에게 쏘았다. "됐어. 아크" "고마워 루리엘." 아크는 루리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한 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다음. 절뚝거리며 레골룸스에게 다가가 반지를 빼서 주었다. "차 봐." 레골룸스는 오른손 검지에 맹약의 반지를 착용했다. "안녕하신가? 재수 없는 낯짝을 가진 엘프여." "……!" 레골룸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흠칫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크는 레골룸스가 예전 자신이 처음 맹약의 반지를 찼을 때의 반응을 똑같이 보이자 소리내어 키득거렸다. "누구냣!" "얼레? 저 친구가 얘기하지 않았나? 생각보다 멍청한 녀석이로군." "누구냐니깐!" 아크라우스는 계속해서 자신이 보내는 텔레파시의 존재를 부정하는 레골룸스의 마음을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레골룸스는 이게 그 드래곤의 목소리인가 하며 놀라면서도 이대로 인정해 버린다면 다음에 닥칠 후폭풍을 견뎌내야 할 것을 염려해 일부러 아크라우스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었다. "흥 속이 다 보이는군. 그렇게 끝까지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가? 그렇게 해서라도 저 녀석을 쫓아내고 싶어? 흠 좋아 내가 너에게 한 가지 선물을 주지. 물의 정령을 소환하는 주문을 외워라." "뭐?" "네 녀석은 불의 정령을 주로 다루는군. 그래서 그와 정 반대 속성을 지는 물의 정령을 부릴 수가 없지. 그러나 실버 드래곤인 나의 친화력을 이용한다면 너는 물의 정령도 부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런 인간 놈 하나 때려잡느니 드래곤이 아닌 엘프로서는 최초로 물과 불을 동시에 다루는 정령사가 되는 거다. 어떠냐? 어차피 네놈이 계속해서 발뺌을 한다고 해도 저 아크 녀석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반지를 채워 준다면 너 만 바보 되는 것이다. 나의 친화력을 받고 진실을 밝히겠는가 엘프여?" 레골룸스는 논리 정연한 아크라우스의 말과 물의 정령을 다룰 수 있다는 조건에 혹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훔 네 녀석은 엘프라서 그런지 원체 정령에 대한 기본 친화력이 있는 데다가. 체내에 쌓인 마나도 충분하니 중급 정령 정도는 가능하겠군. 운다이론을 불러 봐라." "어쩌구 저쩌구 주저리 주저리……나에 부름에 응하라 운다이론이여!!" 레골룸스는 즉시 주문을 외고 운다이론을 불렀다. 그러자 제법 큰 물줄기가 모여 운다이론의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저 저럴 수가……." "불의 정령을 다루는 레골룸스가 어떻게 물의 정령을 소환시킬 수 있는 거지?" 중앙광장에 모인 엘프들은 불의 상급정령까지 다루는 불과의 친화력이 높은 정령사 레골룸스로서는 결코 소환할 수 없다고 알려진 물의 중급정령 운다이론을 불러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아크?" 촌장의 물음에 아크는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봉인되어있는 실버 드래곤의 물과 밀접한 친화력으로 인하여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없는 사람이라도 기본적인 물의 하급 정령을 소환 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죠." "그런데 하급 운디네가 아닌 중급 운다이론 이잖습니까?" "글쎄요. 저도 그건 잘 모르겠네요. 레골룸스 다음에는 촌장님께 빌려 드릴 테니 직접 물어 보시길." 레골룸스는 운다이론과의 계약을 끝마치고는 이런 뜻밖의 기연에 자신이 내기에서 졌다는 것도 잠시 잊은 채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런 레골룸스에게 아크는 반지를 받아서 촌장에게 주었다. 촌장이 반지를 끼자. 아크라우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호오 연륜이 매우 깊은 엘프로군. 이렇게 까지 오래 산 엘프는 내가 보기엔 처음이다." "당신이 드래곤이십니까?" "그렇다 왜? 꼽냐? 아 물어볼 사항이 있나 보군. 엘프들은 기본 친화력이 좋기에 운다이론이 부름에 응한 것일 뿐 다른 것은 없다." 촌장은 아크라우스가 자신이 물어보려 한 것을 알아서 대답해 주자 흠칫 놀랐다. "제 생각을 읽으신 겁니까?" "그렇지. 잘 알아듣는 군. 그나저나 이제 증명이 되었으면 저놈에게 반지를 돌려주게 아크로니아를 만날 때까지 놈은 그 반지를 분실해서는 안 되네." "아 예 알겠습니다." 촌장은 짧게 대화를 마친 뒤 아크에게 반지를 되돌려 준 뒤 마을 정 중앙 단상으로 올라가 선언했다. "방금 전 드래곤과의 대화로 피고 아크의 결백을 인정하겠습니다. 힐러들! 아크를 치료해 주세요." 촌장의 판결이 내려지자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되었건 아크라우스로 인해 시작된 사건은 아크라우스로 인해 대충 잘 해결이 된 듯 싶었다. 그리고 엘프들의 힐을 받자 아크의 다리 등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갔다. 통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그것도 사라진다니 아크는 노파심을 내지 않았다. "내 말이 맞지? 레골룸스 자 그럼 날 다짜고짜 잡아와서 이렇게 개 패듯이 팬 너에게 복수를 해 볼까?" "……큭!" 운다이론을 얻은 기쁨도 잠시. 레골룸스는 사악하게 웃는 아크를 보며 이제 자신에게 닥칠 후폭풍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좋다. 널 오해해 억울한 심문을 당하게 하고. 또 너와의 내기에서 졌으니 제시하는 어떠한 조건이든 받아들이겠다." "움 그럼 첫 번째 조건은 다음부터 레르가스의 교대로 니가 내 격투기 실전 상대로 나오도록 해." "그러지." 레골룸스는 의외로 약한 아크의 첫 번째 형벌에 내심 안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약한 조건이 아니라는 거였다. "다음은 뭐냐?" "아 그래 그게 좋겠군." 아크는 주먹으로 손뼉을 딱 치고 절뚝거리는 두 다리로 힘겹게 레골룸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벨트에 매 두었던 회칼을 꺼내었다. 아크가 칼을 꺼내는 것을 보자 레골룸스는 아크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두 번째는 나의 목숨인가?" "글쎄?" 아크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레골룸스의 얼굴에 회칼을 가져다 대었다. "큭 좋다 널 모욕한 대가로 내 목숨을 내놓겠다." 레골룸스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꼭 감았다. "잠깐!" "잠깐만요 아크." 이 상황에서 아크의 다음 행동을 저지하려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촌장과 레르가스였다. "아무리 레골룸스가 잘못을 했다고는 하지만 죽을죄를 지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니 한 번 쯤은 용서해 주지 않겠습니까?" "인간. 형을 살려줘 네 얘기를 훔쳐들은 것도 나고 오해한 것도 나야 형은 아무 잘못이 없어 그러니 형을 살려줘!" 아크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촌장과 레르가스가 어이가 없었다. "에……그게 무슨 소리? 내가 왜 레골룸스를 죽여?" "그 그럼 왜 칼을 꺼내 든 겁니까?" "아하 제가 칼을 뽑으니 오해하신 모양인데 전 레골룸스를 죽일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습니다. 살려 놔서 맨날 괴롭혀야 진짜 복수고 벌이지 뭐 하러 죽입니까?" "그럼 뭐지?" 두 번째 조건이 더욱 더 궁금해진 레골룸스는 감았던 눈을 뜨고서 아크에게 반문했다. "어? 네 녀석 머리카락을 보니까 사내 녀석이 너무 기집애 같아 보여서 싫구만. 그리고 내 샌드백이 되면 머리가 빠질 일이 자주 벌어지니깐 지금 그냥 삭발 시켜 줄려고." 중학교 시절부터 엄격한 두발 검역으로 6년을 스포츠 머리로 보냈었던 아크. 그러다 대학교 들어와서 머리 좀 기르고 다녔는데-폐인 짓 하느라 안 자른 거지만-이곳으로 오기 전 군에 입대하기 위해 머리를 빡빡 밀었었던 그였다. 지금이야 다시 제법 풍성하게 머리가 길었지만 억압받던 두발 비 자율화의 세계에서 살았던 아크는 그 빡빡머리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레골룸스의 금발을 빡빡 밀어버리고 싶었다. "……." 그 날 레골룸스는 180여년 동안 길러왔던 탐스러운 금발 머리카락을 모두 잃었다. - 오늘 머리를 밀었다......대한민국 중고등학교의 두발 자율화는 언제나 되야 이루어질 것인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억울했던 24시간 "잭나이프 파워 밤!" -쿠당탕 "끄아아아악!" 머리카락이 없는 한 대머리 엘프가 탁자의 모서리에 떨어져 그대로 등을 찍힌 뒤 나뒹굴었다. "자 이렇게 들어서 메치거나 던지는 기술들은 평평한 땅 말고 주변에 돌 같은 울퉁불퉁하고 제대로 낙법이 먹히지 않는 곳에서 쓴다면 충격을 몇 배로 줄 수 있지." 아크는 맡고 있는 엘프 전사들에게 레슬링 강의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크의 설명보다는 파워 밤을 정확히 맞은 레골룸스의 생사 여부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아크는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이 샌드백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 "어허 자꾸 엄살 피우면 진동안마 들어간다." 진동안마란 말에 그 즉시 일어나는 레골룸스였다. "이번에는 가장 파워가 강력하고 위험한 최강의 기술을 보여주도록 하지." 아크의 말이 떨어지자 레골룸스는 기겁했다. "이 이봐 아크! 벌써 기술을 세 개나 맞았다고!" "샌드백은 말을 못한다." 아크의 한 마디에 도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레골룸스였다. 아크는 침묵한 채 정 자세로 가만히 있는 레골룸스를 어깨에 매었다. 그리고는 레골룸스의 머리를 땅바닥으로 향하게 끌어내린 뒤 허리를 꾹 잡고서 외쳤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레골룸스를 거꾸로 잡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는 아크. 그 덕에 레골룸스는 정수리를 그대로 바닥에 찧고는 大자로 뻗어버렸다. "이 기술은 정수리와 목뼈, 척추 이 세 군데에 타격을 주는 기술로 특히 이 머리 중앙 부분으로 튀어나온 돌부리 같은 데에 조금 강하게 찍으면 그대로 상대를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무서운 기술이지. 너무 위험하니 이 기술은 실습이 없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위급 상황 시 사용하도록. 자 마지막으로 아직까지 익히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샤프 슈터를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주겠다. 샌드백!" "……." "어허 진동안마!" "……." 이번에는 레골룸스가 아예 작정을 했는지 진동안마란 말에도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아크는 진짜로 진동안마를 하려다. 감겨 있는 레골룸스의 눈꺼풀을 벗겨보았다. 정말로 기절했는지 눈동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흰자위만 있었다. "어이 레르가스 이 녀석 집에다 던져놓고 와라 쩝 오늘은 이만." 아크는 애지중지(?)하던 샌드백이 작살나자 그냥 그대로 강의를 끝마쳤다. 고문사건 이후 아크는 완전히 엘프마을의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엄청난 살인 격투 술을 익힌 오우거 헌터라는 칭호와 함께 고문 사건으로 밝혀진 드래곤의 이미지까지 합쳐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아크는 인간 세상에 출수하기 전 어느 정도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시작했다. 엘프들의 주력 기라 할 수 있는 궁술은 배우지 못했지만 엘프 전사 훈련 수업의 검술 수업과 아크 스스로 하는 체력단련 및 레슬링 기술 연마, 아테라인이 직접 도와주는 순발력 강화 훈련, 물의 상급정령까지 다룰 수 있는 리엔느의 정령술. 6서클의 마법사인 루리엘의 기초 마법 수업에 플러스로 글읽기 수업까지 받아 가며 아크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레슬링 강의를 하고 검술 수업을 같이 받으면서 아크는 아테라인 일가 뿐만 아니라 다른 엘프 전사들과도 어느 정도는 친해지게 되었다. 엘프들은 과거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하여 처음에는 친해지기 조금 힘든 면이 없지 않았으나, 마음을 틀수록 하나같이 친절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들이었다. 비록 레르가스를 위시한 몇몇은 아직도 아크를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흠 레골룸스군이 기절해 버리는 바람에 이번 훈련은 내가 담당하겠네." '오 굿!' 검술 훈련 시간. 원래의 검술 교관이었던 레골룸스가 아크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맞고 실신하는 바람에 그 땜빵으로 아테라인이 들어오자 아크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아크의 살인 격투 강의 시간에는 아크의 샌드백인 레골룸스였지만, 반대로 검술 훈련 시간에는 레골룸스가 샌드백의 스트레스와 원한을 아크에게 그대로 퍼부어 댔기에 아크는 내심 아테라인이 들어 온 것이 반가웠다. 물론 레골룸스가 들어와 자신을 갈궈 댄 다고 해도 아크는 별로 꿀릴 것은 없었다. 검은 잘못 다루면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레골룸스가 아크를 괴롭힐 때는 그다지 심한 것이 아니었지만, 서브미션 기술은 고통은 엄청나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이번 시간은 자율이네 알아서들 연마하게 자세 등이 좋지 않다면 내가 교정해 주겠네." '아싸 자율학습!' 헤어스타일이 대머리가 되면서 조금은 나아 졌지만 그래도 재수 없었던 레골룸스가 빠지니 대번에 좋은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아크는 자신의 검사 캐릭터가 쓰던 연속기 스킬을 그대로 흉내내어 나름대로의 검무를 펼쳤다. "잠깐! 아크 자네. 열흘 가량 수업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기초가 하나도 안 돼 있군. 어찌 된 건가?" "예? 기초라고요?" "이런 이런 찌르기와 베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겨눔세 까지 자세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군. 자넨 아무래도 검술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나 보네." '큭 이 대머리 자식이! 기초도 못하는 초보를 데려다가 기본 기를 가르칠 생각은 안하고 만날 진검 대련으로 이곳 저곳 베어 놨단 말이지? 어디 다음 시간에 두고 보자. 기절했다고 봐주나!' 기본 기를 가르쳐 줬어야 할 레골룸스가 지금껏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에 아크는 이를 빠득 갈았다. 아크도 가르쳐 준 것은 없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정당하게 팰 권한이라도 있지 않은가? "큭 사실 레골룸스가 만날 대련만 시켜서 기본 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뭐 실전을 하다 보면 저절로 익혀진다나?" "흠 그런가? 내가 레골룸스에게 말해 보겠네." "아뇨 괜찮습니다. 내일 격투 강의 시간 때 제가 따끔히 말해 놓겠습니다." 아크의 말에 아테라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레골룸스가 내일은 아주 박살이 나겠구먼……. "알았네 그럼 오늘은 내가 기본 기를 가르쳐 줄 터이니 틈틈이 연습하고 연마하도록 하게." "옙!" 아크의 믿음직스런 대답이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오전의 훈련이 끝나고 점심. 대충 식사를 마친 아테라인이 입을 열었다. "참 리엔느야." "예 아버지." "오늘 아크군의 순발력 훈련은 네가 좀 맡거라. 레골룸스가 쓰러져서 그 녀석 대신 할 일이 많구나. 아크 자네도 별 상관없겠지?" "아 예." "허험 난 그럼 먼저 나가 보겠다."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아테라인은 아크에게 눈짓을 한 번 하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잘해 보라는 듯한 눈빛이구만.' "대충 다 먹었으면 우리도 나가자." "그러지." 들려오는 리엔느의 짧막하고도 냉랭한 대답, 아테라인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 사람의 관계는 별 진전이 없었다. "쩝 잡생각 말고 수련이나 열심히 하자." 아크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뒤 밖으로 나갔다. 아크의 순발력과 회피능력, 반사신경을 높이는 훈련은 '촉 없는 화살 피하기'였다. 아크는 이 훈련시간이 제일 맘에 들었다. 화살을 맞으면 조금 아프긴 하지만 요리조리 화살을 피하면서 스릴과 재미가 있었고 무엇보다 발전이 확실히 보이는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화살은 검으로 퉁겨 낼 수도, 방패로 막을 수도 있었지만 아크는 가급적 피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야 확실히 민첩도를 올릴 수 있었다. -휙 휙 휙 휙 휙 휙 휙 -티딧 팃 팃 팃 팃 '졸라 빠르네!' 그러나 아크는 오늘 훈련에서 방패를 뿌리 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한 두 방씩 적절히 사정을 봐주면서 화살을 날리던 아테라인과는 달리 리엔느는 한꺼번에 두 발 날리기라든가 총알처럼 거의 딜레이가 없게 연발탄으로 화살을 날려대어 피하기는커녕 방패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기에 바쁜 아크였다. 허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잠깐만 리엔느." 아크가 손을 들어 외치자 리엔느는 아크에게 겨누었던 활을 거두었다. "뭐지?" "이렇게 쉴 틈도 없이 날려대면 화살을 피해 순발력을 기르는 것은 어떡하라고? 부탁인데 조금 천천히 한 발 한 발 씩 날려 줘." -끄덕 끄덕 리엔느는 대답 대신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든 뒤, 다시 활을 아크에게 겨누고 화살을 쏘았다. '어라?' 아크는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언제나 순식간에 자신의 지척까지 날아오던 화살이 이번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날아오자 가뿐하게 화살을 피해내었다. 하지만 아크는 느리게 날아온 화살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저기." "또 뭐냐?" "혹시 화살의 속도를 조절해서 날릴 수도 있어?" "몰랐나? 그 당연한 것을. 줄의 탄성 등을 이용한다면 쉬운 일이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을 화살에 씌운다면 더욱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지, 화살의 강도는 속도에 비례하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활에 대한 별 다른 지식이 없는 아크는 혹시 자신이 엄청 빠른 화살을 이제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었다. "그럼 계속하겠다." 리엔느의 발포선언과 함께 연속해서 날아오는 화살.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 엄청난 연사력에 아크는 처음 몇 번을 제외한 대부분을 고스란히 얻어맞았다. 그리고 엄청 빠른 속도로 빽빽하던 화살 통이 비어버렸다. "500개 중 398개라……겨우 5분의 1밖에 못 피한 건가?" "그래도 어제보다는 4개나 향상된 기록이라고!" "두말하지 말고 다음은 정령 수업이야." "이봐 떨어진 화살은 좀 같이 치우지?" "500개 중 400개 이상 피하게 된다면." "됐수다." 이죽거린 뒤 이곳저곳에 널 부러져 있는 촉 없는 화살들을 주워다 통에 담는 아크. 리엔느는 자신의 말과는 다르게 멀리 퉁겨져 나간 화살들을 모아다 통에 담으며 아크를 도왔다. 화살을 다 담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아크와 리엔느. "오늘은 그 동안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서 운디네 대 운디네로 정령술 대련을 하겠어. 무기 등은 일절 금지이며 오직 운디네로만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 준비됐나?" '무슨 포켓몬 시합 같구먼! 아니 조금 다르군 정령사를 직접 공격할 수 있으니까.' "뭐 그럭저럭. 그럼 시작한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억울했던 24시간 에 이번 편은 요다군의 요청으로 약간 H하게 써 봤습니다. 야설작가로 시작한 터라 이런 상황을 쓰는게 즐겁더라는...... "운디네!!" 아크와 리엔느는 거의 동시에 운디네를 불러내었다. "워터 애로우!!" "워터 볼!" 리엔느의 워터 애로우와 아크의 워터 볼이 서로 부딪히며 상쇄되었다. 그러나 워터 애로우의 물줄기는 또 다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날아왔다. 아크는 자신이 제법 자부하는 회피로 워터 애로우의 화살을 피해냈다. "워터 봄!" 아크는 물줄기를 피해내고서는 운디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자 여러 개의 물방울들이 리엔느를 향해 날아갔다. "워터 파일!" 리엔느가 외치자 워터 애로우의 다섯 배 가량 되어 보이는 커다란 물줄기가 만들어져 물방울들을 흡수하고는 그대로 아크에게 날아갔다. 아크는 아슬아슬하게 워터 파일의 거대한 물줄기를 피했다. 그러나 아크대신 애꿎은 나무에 부딪혀 두 갈래로 나눠진 물줄기는 방향을 틀어 다시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피한 줄 알고 잠시 한눈을 팔던 아크는 등뒤에서 다가오는 물줄기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달렸다. 하지만 물줄기는 점점 더 가까워져 오고 결국 아크는 동귀어진을 결심하고 그대로 리엔느를 향해 돌진했다. 리엔느는 아크가 물줄기를 이끌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워터 파일의 물줄기를 약하게 조절했다. -촤아아아아 엄청난 물줄기를 그대로 맞은 아크와 리엔느. 마지막에 리엔느가 파워를 낮추어 데미지는 경미했지만 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흠뻑 젖어 버렸다. "후 내가 진 거나 다름없군." "……오늘 수련은 이걸로 끝이다." "그래? 그건 그렇고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야겠다." 둘은 수련을 끝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아크는 수상쩍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걷는 리엔느를 제치고 재빨리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런 아크를 리엔느는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흐흐흐 빨리 들어와라." 아테라인의 집에서 아크의 방은 리엔느의 방과 루리엘의 방중간에 위치한 방으로 원래는 리에나의 방이었다. 그러나 골방을 주자는 리엔느의 건의를 무시해 버린 아테라인이 일부러 아크에게 정해준 방이기도 했다. 아크는 리엔느 방 쪽에 난 구멍으로 눈이 빠져라 리엔느를 기다리고 있었다. 리엔느에게 워터 애로우를 루리엘에게 매직 미사일을 배운 것을 가지고 리엔느가 없는 시간마다 열성을 들여 뚫은 구멍이었는데……아크의 의도는 말 안 해도 다 알만한 것이었다. -딸칵 '오홋 드디어 들어오셨군.' 아크는 어젯저녁부터 훔쳐보기에 맛을 들였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을 포착하지 못했던 아크는 진작에 이렇게 물 공격으로 리엔느의 옷을 적셔놓고 그녀의 탈의 장면을 훔쳐 볼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목욕 장면을 훔쳐 볼 까도 했는데 리엔느는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더운 여름에 가끔 물놀이를 즐기는 것 외에는 전부 운디네로 목욕을 했기 때문에 목욕 장면을 훔쳐 봐 봤자 아크가 기대하는 장면은 보기 힘들었다. 원래 훔쳐보기 같은 것을 즐기는 아크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참은 데다가 한 번 맛 봤던 훔쳐보기는 매우 중독성이 강했다. 입에 제법 침이 고였지만 아크는 침을 삼키지 않았다. 지난번 고문 사건에서 겪어 봤듯이 엘프들은 뛰어난 청각을 지녔기에 침 삼키는 소리를 낸다면 들키게 될 수도 있었다. 먼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는 리엔느. 그리고 나서 그녀는 축축이 젖어 버린 반바지를 벗었다. 물을 먹은 옷이 철푸덕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흘러내렸다. '으아 아악 주욱인다앗!' 리엔느가 입고 잇던 검은 색 팬티는 그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골반의 굴곡을 완벽히 드러내 주거 있었다. 그리고 나서 리엔느는 수건으로 물 묻은 다리를 닦았다. 하얗고 매끄러운 매력적인 각선미였다. -철푸덕 리엔느는 젖은 상의와 브래지어를 벗고 상체의 물기도 닦아내었다. 하지만 뒤돌아 있었기에 아크는 리엔느의 가슴을 구경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도 정면을 보고 옷을 갈아입었다면 들킬 위험이 높았기에 아크는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편히 먹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작된 메인 디시! 리엔느는 아크가 뜨거운 눈빛으로 알몸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유일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가려주던 팬티까지 벗어 내리고 팬티가 가려 주고 있던 부분들도 물기를 닦아내었다. 하지만 아크는 뒷모습만 보이는 데다가 그나마도 수건 때문에 보이지 않아 적잖이 실망했다. 리엔느는 수건을 허리춤에 둘렀다. 그러자 상체와 다리 외에는 볼거리가 없어져 버린 아크는 김이 샜다. 하지만 아직 결정타는 남아 있었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 리엔느는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벌릴 테고 그렇다면 약간이나마 그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었다. 그리고 리엔느는 새 속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맘에 안 들었는지 다른 속옷을 꺼내고 입어 보고 벗어 보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찔끔찔끔 그녀의 모든 것(?)이 보이자. 아크는 입에서 침이 주르르 흘러내리고 있는 사실도 망각했다. 그런데 그런 아크의 행복한 시간을 망치는 방해꾼이 있었다. "아크 뭐 해요?" 리에나는 이전부터 아크가 벽에 딱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조그마한 손으로 아크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나 아크가 계속해서 반응이 없자. 리에나는 조금 큰 소리로 아크를 불렀다. "떠헉!!!!!!!!!!!!!!!" 아크는 그제야 리에나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급히 구멍에서 눈을 떼었다. 그런 아크의 모습에 호기심이 발동한 리에나는 아크가 채 말릴 새도 없이 그 구멍으로 자기의 엄마를 보고는 얼굴이 시뻘개져 버린 아크에게 사심 없는 질문을 던졌다. "엄마 옷 갈아입는 건 왜 봤어요?" "아하 하하 그 글쎄?" 얼버무려보려는 아크. 그러나 리에나의 초롱초롱한 눈빛 공격에 성의 없이 받아넘기기보다는 성심 성의껏 대답해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하하 그게 말이지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여자의 알몸을 보고 싶어한단다." "왜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되묻는 리에나. 아크는 서른 살이나 먹었다는 리에나가 이런 것을 궁금해한다는 것에 의문을 느꼈다. '아니 아무리 외양은 어리다지만 30살이나 먹은 여자 애를 기본적인 성교육도 안 시킨 건가? 30년 세월 동안 얼마나 궁금한 것도 많고 호기심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아크는 리에나에게 자세하고 충실한 성교육을 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남자들이 아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준비가 되려면 여자의 알몸을 보거나 만져야 되기 때문에 그런 거야." "필요한 준비? 그리고 어떻게 남자가 아기를 만들어요?" "응 아기는 혼자서 만드는 게 아냐 남자가 여자의 몸 속에 아기씨를 뿌리면 그것이 여자의 몸 속에 있는 아기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크는 거야." 말해 주기가 곤란한 '필요한 준비'에 대한 대답은 대충 얼버무린 아크. "아기집이 어딨어요?" "아기집은 리에나가 오줌 싸는 곳 쪽에 있는 구멍이야." "아기씨는 어떻게 여자 몸 속에 들어가는 건데요?" 점점 대답하기 힘든 질문만 골라서 하는 리에나였다. 식은땀을 흘리며 돌려서 이야기 할 거리를 생각해내는 아크. "에 그게 뭐시냐 하면 그 필요한 준비가 다 된 남자의 신체 기관이 아기집으로 들어가서 아기씨를 뿌린단다." "그 신체기관은 어디 에요?" '젠장 엔간치 좀 물어 봐라!' "그 그게 말이지……." "……?" '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려던 아크는 리에나의 그 호기심 가득 찬 눈빛을 보고는 그만 마음이 약해져. 야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절로 솟아 오른 자신의 물건을 가리켰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이거야. 됐니?" "이거 오줌싸는 거 아니에요?" "음 아까 이야기했듯이 여자의 벗은 몸을 보거나 만지면 이게 커지게 된단다. 이렇게 돼야만 오줌이 아니라 아기씨가 나오게 되는 거야 앞서 말한 필요한 준비지." "그게 아기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아기씨가 나와요?" "그건 아니란다. 물론 들어가기만 하면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안에서 몇 번씩 왕복운동을 해야 나오게 되지. 그리고 그 왕복운동을 하면 남자와 여자 모두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구나. 나도 안 해봐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 아크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될 사항까지 자세히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럼 아크는 엄마하고 아기 만들려고 엄마 알몸을 본 거예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아기를 만드는 일은 남녀가 서로를 깊이 사랑해야만 가능한 거란다. 나는 몰라도 너희 엄마는 날 좋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동생하나 가지고 싶은데……아크 나랑 아기 만들래요?" "뭐 뭣? 켁 켁 콜록 콜록 쿨럭 쿨럭 그 그건 절대 안 돼!" 아크는 리에나의 충격선언에 삼키던 침에 사래가 들려 켁켁거렸다. "왜요?" "나 같은 인간의 여자아이라면 12살만 되어도 충분히 아기를 가질 수 있지만 리에나 같은 경우는 엘프니까. 아마 루리엘 이모 정도 나이는 되어야 아기를 가질 수 있지. 그리고 아마 리에나가 내 아기를 갖게 된다면 난 분노한 너희 엄마한테 아마 맞아 죽을지도 몰라. 또 무엇보다 서로 사랑도 없이 아기를 만드는 것은 본인이나 상대방에게나 아기에게나 무책임한 일이란다. 그러니……." -퍽 "쿠엑!" "애한테 좋은 거 가르친다. 이 화상아!!!!!!" -퍽 퍽 퍽 퍽 퍽 어디에선가 난입한 루리엘이 붉으락 해진 얼굴 색으로 엄청난 살기를 뿜어대며 끝에 붉은 색 루비가 박힌 스태프로 아크를 구타했다. "아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한참 죽어라 맞던 아크는 더 이상은 못 맞겠는지 스태프를 손으로 잡고서 반항을 해 보았다. 그러나 연이어 들어온 리엔느의 싸늘하다 못해 죽일 듯한 표정을 보고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감히 내 딸을 속여서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하다니……이번만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죽어라 변태 인간." 그리고 아크는 두 자매에 의해 처단 당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억울했던 24시간 "궁시렁 궁시렁." "어허 마나를 다루는 데 잡음은 삼가시게." 지난 번 레골룸스와의 결투 때 보다 더욱 처참한 몰골로 망가져 버린 아크는 지속적으로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해내고 있었다. "궁시렁 궁시렁." "아 그만 해! 시끄러워! 어린 애 꼬셔서 야한 짓이나 하려고 했으면서 뭐 잘했다고 궁시렁대!" "지미 30먹은 여자 애한테 성교육 하나 안 시켜놓고 그딴 말이 나왔!!" "인간들의 관점으로 봤을 때나 그렇지! 그리고 성에 대한 걸 가르쳐 주려면 아직은 어리고 철이 없으니까 빙 돌려서 얘기해 줘야지. 노골적으로 성행위까지 묘사해서 설명해줘서 호기심을 불어넣은 다음. 리에나 입에서 같이 하자는 말까지 나오게 했잖아!!!" 아크는 정말로 억울했다. 그저 이해하기 쉽게 모든 궁금증을 풀어 주려고 그렇게 말한 것뿐인데. 다짜고짜 아동 강간 미수범 취급이라니! 하지만 애초에 리엔느 탈의장면 훔쳐보기로 원인 제공을 한 아크였으니 어쩔 것인가? 무엇보다 리엔느의 반응은 정말로 무서웠다. 그녀의 외모나 여린 몸으로 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표정으로 또 망치 같은 쇠주먹과 각종 흉기로 아크는 얻어맞았다. 중간에 아테라인이 난입해서 조기 성 교육론을 역설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크는 오늘 생의 종지부를 찍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엄청나게 하락했을 리엔느의 호감도. "에이 씨 안 그래도 오크들의 급성장으로 전사 부족에 시달리는 이 때, 인구를 늘리기 위한 성 개방론으로 조기 성교육 좀 시킨 게 뭐 잘못이라고 지랄이냐고 지랄이!" "조카 가지고 딸 가진 입장 돼봐! 어떤 심정인지!" 결국 아크의 화가 폭발했다. "끄으으으 그래 너 잘났다! 그래 나 어린애한테만 성욕을 느끼는 변태 로리콘이라서 리에나랑 거시기한 짓거리 해보려고 했다! 어쩔 거냐? 리에나 본인이 동의를 했는데? 해도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관계라 이거야! 외양만 어리지 30세면 대한민국 헌법으로는 완벽하게 머리가 트인 성인이라 이거야 알았냐고?" 대한민국 헌법까지 예로 들며 큰 소리 치는 아크. 만 15세 이하의 미성년자와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다 해도 보호자의 고발로 처벌 할 수 있지만. 만 15세가 넘으면 합의 성관계는 아무런 형사법 적 하자가 없었다. 하물며 서른인데 어쩔 것인가? 아무리 외양은 어려 보이고 정신연령도 낮다고는 해도 30년 세월이란 것은 알만한 건 다 알 나이다. 아크는 루리엘에게 이 대한민국의 법을 그대로 읊어주려 했다. 그러나 아크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도 시끄러운 나머지 루리엘이 아크에게 침묵 마법을 걸어버린 것이다. "오늘은 마법 이름을 부르지 않고 마법 쓰기 수업이야. 알아서 매직 미사일을 캐스팅 해." "웅얼 웅얼 웅얼." "자꾸 웅얼대고 수업 안 들으면 전자기장파로 지져줄 테야." 아크는 속으로 한 맺힌 절규의 목소리를 토해내고는 1서클의 기초 공격 마법 매직 미사일을 만들어 이 나무 저 나무에 마구 날려대었다. 이렇게 라도 울분을 풀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C8 C8 2C8."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어두운 밤. 아크는 바닥에 누운 채 연신 욕을 뱉어댔다. 어찌나 억울하고 아픈지 잠자리에 든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크였다. -달칵 갑작스레 아크의 방문이 열리고 잠옷 차림의 리에나가 눈을 비비며 바닥에 엎드려 누워 있는 아크를 한 번 쳐다 본 뒤,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아크가 이 방에 배정 받은 후로 아크와 리에나는 매일 한 방에서 잠을 잤다. 물론 조그마한 아동용 침대에서 둘이 같이 자는 것은 아니었다. 원체 아크야 컴퓨터 앞에서 자기도 하고 숲에서 돌을 베고도 자는 노숙스킬이 있었기에 잠자리에 구애받지는 않았다. 오늘밤에는 루리엘이 리에나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재웠는데 리에나는 자리가 불편했는지 만날 자던 침대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새근새근 리에나의 반복적인 숨소리에 C8거리던 아크도 스르르 눈꺼풀이 감겨졌다. 갑작스레 방문이 열렸다. '음……? 뭐지?' 아크는 한밤중의 침입자에게 온갖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벅저벅 침입자는 달빛이 비치는 창문 가에 섰다. "일어나라 아크." "리엔느?" 한밤중의 침입자는 바로 리엔느였다. -스르륵 갑자기 리엔느는 하체에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 내렸다. "커헉! 뭐, 뭐 하는 거야?" 아크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조용히 해. 리에나 깨겠어." "무슨 짓이냐니까?" 당황스런 표정으로 리엔느에게 반문하는 아크. 하지만 그의 시선은 리엔느의 하체를 주시하고 있었다. "리에나에게 동생을 만들어 주고 싶어." "머시라?" "날 받아 줘." 리엔느는 상체에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전라의 몸인 채 아크의 옷을 하나씩 벗겼다. "자 잠깐 이 이러면……." "날……좋아하지?" 아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사실대로 이야기 할까나? "그 그래." "그렇다면……거부하지마." 리엔느는 아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리 리엔느……." "아크……." 두 남녀는 진한 키스를 나눴다. "헉!" 새들이 지저귀는 환한 아침. 아크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꿈이었나. 하! 아쉽네……." 간밤에 리엔느를 품는 꿈을 꾸어버린 아크. 꼭 할 만 하면 끊겨버리는 이전의 야한 꿈들과는 달리, 이번 꿈은 한참 리엔느를 공격하다가 극도의 흥분을 느껴 방사까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젠장 이 나이나 되어 가지고 팬티나 지리다니." 그랬다. 아크는 꿈속의 흥분에 못 이겨 그만 청소년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몽정을 해 버린 것이다. 야한 꿈을 꾼 것도 그랬지만 결정적 요인은 오래 참았기 때문이리라. 아크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하의를 벗었다. 그러던 중 어디에선가 진한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지린 냄새가 나고 있는 곳을 탐색해 가는 아크는 이 암모니아 냄새가 리에나에게 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이불을 들춰보았다. "하 참 나! 소금 받아오게 해야겠네." 멋들어지게 지도를 그려버린 리에나. 지도를 그린 지 얼마 안 됐는지 제법 축축했다. "휘유 갈아 입혀 줘야겠군." 아크는 자기 속옷 갈아입을 생각은 못하고 서랍장에서 리에나 사이즈의 속옷을 꺼냈다. 리에나의 짧은 반바지를 벗기는 아크. 리에나의 팬티가 축축이 젖어 소녀의 둔부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어 나름대로 에로틱했지만 곧 벗겨 볼 부위이니 아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암모니아 성분이 손에 묻지 않게 조심하며 리에나의 속옷을 벗긴 아크는 운디네로 수건을 적신 되 물수건으로 리에나의 둔부를 닦아주었다. 그러나 로리의 마신은 그런 아크를 질투했는지 암흑의 사도를 내려보냈으니……. "리에나 여기 있니?" "여 좋은 아침이야 루리엘." 아랫도리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망각한 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루리엘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크. 그러나 루리엘은 아크와 리에나 둘 모두 하반신 누드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보고는 상상하지 말아야 할 장면을 상상해 버렸다. "이 이 변태! 리에나랑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루리엘의 격한 반응에 대충 상황이 파악된 아크는 몽둥이를 들고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루리엘을 급히 말렸다. "잠깐만!" "뭐야?" "내가 아무 사심도 없었고 이상한 짓도 안 했다는 증거를 댈게!" 아크는 재빨리 증거를 언급했다. 어저께 변명은 도무지 통하지 않는 루리엘이란 것을 깨달았기에 확실한 물적 증거의 제시가 필요했다. 아크는 암모니아에 젖은 리에나의 팬티와 지도가 그려진 담요, 또 벗어놓았던 자신의 속옷을 제시했다. "에 그러니까 내가 서큐버스한테 홀려서 거시기를 했거든. 그래서 막 옷 좀 갈아입으려는 찰나에 리에나가 지도를 그려 놓으니까 그걸 갈아 입혀 주고 있었어." "……." 말이 없는 루리엘. 아크는 이번만큼은 먹혔구나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말야 아크." "뭔데?" "나는 말야 리에나처럼 어리지는 않거든?" "……?" "여자 앞에서 자꾸 거시기 내 놓고 있을래?" "헥!" 그제야 아랫도리를 급히 가리는 아크. "그리고 도대체 어떤 남자가 그거 묻은 속옷을 여자한테 보여주면서 흔들엇! 그러고도 니가 변태가 아냐? 나가 죽어!!" 노캐스팅으로 만들어져 아크에게 작렬하는 파이어 볼. -퍼벙 아침부터 경쾌한 폭음이 숲 속에 울렸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쾅 "……." 난폭하게 아크의 앞에 음식 접시를 내려놓는 리엔느. 아테라인과 리에나, 루리엘, 아크는 잠시 리엔느를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채 조용히 식사시간을 가졌다. "저기 리엔느." "……." 묵묵부답. 아크는 어제의 리에나한테 했던 성교육으로 인해 리엔느에게 완전히 씹히고 있었다. 하기야 미망인 공략의 하이라이트는 어린 딸인데 딸한테 이상한 거나 가르쳐주고 또 괴상한 썸씽을 가질 뻔했으니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거 이래서야 큰일이로군.' 아테라인도 내심 완전 냉각된 둘의 관계에 고심하고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음식도 대충 먹고 일어서는 아크. 그는 이전 리엔느의 싸늘한 시선이라도 다시 받고 싶었다. 이건 완전히 무시당하는 건데 정말 이렇게 무시당하고 사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크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리엔느와 한 자리에 있기가 불편해 일찍 연무장으로 향했다. "엄마아." "음 리에나 무슨 일이니?" 병아리처럼 쪼르르 달려와 리엔느의 품에 안기는 리에나 그리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아크한테는 절대 보여 주지 않는 따스한 눈빛의 리엔느. "엄마 아크한테 왜 그렇게 차갑게 대하는 거예요?"★ "……." 리엔느는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건 그자가 자꾸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우리 리에나에게 접근하니까 그래." "어제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거죠?" "응?" "나도 알 만한 거는 다 알아요. 어제 아크에게 했던 질문도 한번 골려 줄 생각으로 일부러 교묘하게 물어본 거에요. 서른 살이란 나이는 엄마나 루리엘 이모가 보는 것처럼 어리지 않아요." "……!" 리엔느는 언제나 철이 없고 어린아이다운 순수함을 보여주던 딸의 진지한 모습에 당황했다. "나를 너무 어린아이라는 틀에 가두지 마세요. 그리고 엄마도 이제 슬슬 재혼 같은 거 생각해야 되지 않아요?" "리에나!" "아크 괜찮은 사람이에요. 변태 끼가 좀 있긴 하지만 재밌는 성격에 의리도 있고 무엇보다 엄마를 좋아해요. 그리고 나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리엔느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야 빨랑 튀어 나와!" "이 이봐 정말 너무 한 것 아냐? 난 부상자라고!" "개뿔이……샌드백은 말이 없다. 몰라? 임마!" "……." 대번에 입을 다물고 절뚝거리는 척 하며 걸어나오는 레골룸스. 아크는 어제는 다리에 서브미션을 건 적이 없음에도 절뚝이는 레골룸스가 영 눈에 거슬렸다. "어허? 어제는 분명히 앵글 슬램하고 잭나이프 파워 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만 쓴 것 같은데? 어째서 다리를 절뚝거리냐? 앤클 락 좀 걸려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아크의 으름장에 대번 걸음걸이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레골룸스였다. "아다 슈퍼킥!" 아크의 불시의 옆차기 기습에 턱을 맞고 그대로 쓰러진 레골룸스. 아크는 뻗어버린 레골룸스의 양다리를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끼운 뒤 레골룸스의 몸을 틀었다. 크리스 제리코가 사용하는 피니쉬 기술. '월스 오브 제리코'로서 정식명칭은 보스톤 크랩. 한국 기술 명 새우꺾기 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어제와 오늘 아침에 당한 억울함을 모조리 레골룸스에게 풀어버리는 아크. 어떻게 보면 제일 불쌍하고 억울한 사람은 레골룸스였다. 어느덧 아크가 엘프 마을에 온 지도 반년이 다 되었다. 그 동안 계절은 바뀌어 엘프들이 고기를 먹는 겨울이 찾아왔다. 숲 속의 나무들은 이파리를 모두 잃고 처량하게 서 있었다. 추위 덕에 자라지 않는 풀 덕에 엘프들은 가을에 보존 마법을 걸어놓고 창고에 보관한 음식들이나 동물들을 주로 사냥하여 식량으로 삼았다. 아크는 반 년 동안의 수련으로 약간의 성취를 거두었다. 검술은 찌르기와 베기 외엔 발전한 것이 없었지만. 운디네를 제법 괜찮게 다룰 수 있게 됐고, 매직 미사일과 실드, 라이트를 마스터 할 수 있었다. 화살도 500개 중 반절 정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갑주를 착용한 엘프 전사들에게 밀리지 않는 스피드였다. 그 사이 레골룸스의 머리털도 조금 자랐다. 야한 생각을 안 하는지 반 년이나 된 것치고는 짧은 머리카락이었지만 긴 머리 일색인 엘프들 중에서 유일한 스포츠 머리로 최근 각광을 받는 레골룸스의 헤어스타일이었다. "눈이 다 내리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왠지 모르게 평화스럽군요." 촌장의 집에서는 촌장과 아테라인이 정좌한 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두르툰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가나안을 정찰로 보냈습니다. 지난달에는 월동 준비로 오크들도 정신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당분간은 두르툰의 움직임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요? 하지만 최근 자꾸만 안 좋은 예감이 드는 군요.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꼭 좋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는 했는데." "뭐 별 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러길 바래야 겠지요. 그나저나 아크는 사위로 보셨습니까?" "하하 그게 좀 일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더군요." 아테라인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의도하지 않은 방향?" "딸 사위가 아니라 손녀사위를 보게 생겼습니다." "하아? 손녀 사위라니요?" "아하하 뭐 그게 종족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나이가 제법 엇비슷하다 보니 서로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더군요. 루리엘이나 리엔느 같은 경우는 정신연령은 아크와 맞을 지 모르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노친네 같은 티가 날 테니까요." 그랬다. 현재 아크의 애인 자리는 공석이었지만 리에나하고 사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나이가 엇비슷하고 세대 차가 안 난다 고나 할까? 리에나는 어린아이다운 면과 어른스러운 면이 공존하는, 엘프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조숙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리엔느의 경우 여전히 아크에게 싸늘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고, 루리엘은 일부러 아크와의 관계를 친구 이상으로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한 방을 쓰며 지내는 리에나와 친밀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으리라. 물론 사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때로는 아빠와 딸 같이 때로는 누나와 동생같이, 친구라고 보기엔 너무나 절친한 관계였다. 그리고 둘 다 서로 이루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리에나는 좋아하는 아크가 엄마와 맺어지기를 바랬고, 아크도 리엔느랑 맺어져서 이 둘과 가정을 이루면 좋겠다 싶은 정도로. 하지만 촌장은 뭔가를 오해했는지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조숙하다지만 리에나는 아직 너무 어려요. 아직은 임신도 할 수 없으니 성합은 너무 이른 일이에요. 게다가 아크는 리에나에게 주어진 삶의 채 10분의 1도 못 살고 죽을 겁니다. 인간이란 종족은 수명의 한계점이 우리 엘프들보다 낮으니까요. 살날도 많이 남은 리에나가 아크란 연인을 잃고 난 뒤의 상실감을 생각해 보셨나요?" 리에나를 걱정하는 촌장. 그러나 칼침 맞지 않는 이상 죽지 않는 아크의 수명을 알았다면 오히려 아크를 걱정해야 옳은 것이었다. "하핫 연인 같은 건 아닙니다. 아크 군은 여전히 리엔느를 마음에 두고 있어요. 그리고 리에나도 아크와 리엔느를 이어주려고 무단히 애를 쓰고 있고요. 딸과 아빠 같은 관계랄까? 뭐 그렇지만 맞는 말씀이십니다. 인간들 같은 경우는 마스터가 되거나 7서클 이상의 마법을 익혀서 노화를 늦추지 않는 이상. 100년 살기가 힘드니까요 우리 엘프들처럼 긴 수명을 영위하는 종족과는 친분을……." -쾅 쾅 쾅 촌장과 아테라인의 대화를 끊어버리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아테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한 엘프 전사가 여러 군데에 상처를 입은 채 들어왔다. 아테라인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가? 가나안. 이 꼴은 대체 뭔가?" "크 큰일났습니다." "무슨 큰일?" "오크 놈들이 협정을 어기고 강의 상류에 전진 기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가나안의 말에 더 크게 놀라는 아테라인. "큰일이로군요……아테라인! 가나안을 치료해 주고 급히 원로 분들과 전사들을 소집하세요. 우리들의 영역에 기지를 짓다니 이건 명백한 도발입니다." "예 촌장 님." 아테라인은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흐아아암." '졸려……지루해…….' 아크는 입이 찢어져라 큰 하품을 했다. 그러자 몇몇 엘프들이 그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쏘아 봤지만 현재 사안이 사안인지라 곧 다시 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크들의 도발에 대한 대책회의는 거의 막바지로 다다랐다. 두르툰과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지만 오크들이 자신들의 영역 내에 세운 건물을 불태우고 몸을 빼는 기동작전을 펼치기로 의견들이 모아졌다. 이번 작전에는 아크를 포함 약 50여명의 엘프 전사들이 동원되었다. 전체 전력에 12분의 1 정도 되는 전력이었지만 기동작전에는 우르르 몰려가는 것 보다 소수정예의 인물들만 가는 것이 옳았다. "레골룸스가 지휘해 주십시오. 또 아테라인 님께서 혹시나 모를 매복이나 기습에 신경 좀 써 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전사들도 비상 태세를 갖추도록 하세요. 마지막으로 아크!" 촌장의 부름. 그러나 대답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시선이 꾸벅꾸벅 졸고 잇는 아크에게로 모아졌다. "멍청아 일어나!" -콰직 옆에 앉아 있던 루리엘이 아크의 발을 밟았다. "아크 군!" "……에 예 아테라인님……헤헤 죄송합니다." 발을 밟히고도 아테라인이 불러서야 잠이 깬 아크는 흘러내리던 침을 옷소매로 슥 닦고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멋쩍게 웃었다. "긴장감이 없군요. 하긴 엘프들의 일이니 인간인 아크가 지루한 것도 당연하겠지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머리를 긁적이는 아크였다. "아크 군은 만약 두르툰이 나타난다면 그와 상대를 해 주세요." "예에? 그 무지막지한 놈하고 붙으라굽쇼?" 아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력도 제일 딸리는 자신에게 화살도 마법도 안 먹힌다는 녀석을 상대하라니 이것은 죽으란 소리나 다름없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제 제가 어떻게 그런 녀석하고." "아니오 아마 아크 군만이 두르툰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잘 아시다시피 두르툰은 마법도 화살도 검도 먹히지 않습니다. 소드 마스터의 완성된 오러 블레이드라면 모르겠지만 엘프 전사들이 구사할 수 있는 조금 어설픈 오러 블레이드로는 그다지 큰 타격을 주지도 못하죠, 하지만 아테라인 님께서 아크 당신의 살인 격투술을 연구해 본 결과, 다른 기술들은 몰라도 서브미션이라고 분류되는 기술이라면 충분히 두르툰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그 기술들을 완벽하게 사용하는 것은 아직 까진 아크 군뿐이니 부탁하는 겁니다." "그 그래도……." 아크가 자꾸 주저하자 촌장은 최후에 카드를 꺼내들었다. "굳이 두르툰을 죽이거나 이기란 것은 아닙니다. 두르툰과 마주치지 않을 확률도 높고요. 그저 후퇴하거나 나머지 엘프 전사들이 상황을 대충 정리할 때까지 버텨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해 준다면 여러 엘프 전사들의 목숨을 구해주는 일이 되니 원한다면 아크가 원하는 것을 보답해 줄 용의도 있습니다." "……!" 그 보답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 아크였다. "뭐 한 번 맡아보도록 하죠." "좋습니다. 그럼 밤 11시쯤 야습을 개시합시다. 그 때까지 모든 준비를 마쳐주세요." "옛!" 전사들의 늠름한 외침이 회의장 내에 울려 퍼졌다. 조용히 움직이는 엘프 전사들. 몸이 가뿐해서 인지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아크의 발소리는 들렸지만. 엘프들은 어두운 밤에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 불빛도 없이 이동했다. 그 덕에 애꿎은 아크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숲 속을 달빛 하나에 의존하여 위태롭게 엘프들 뒤를 졸래졸래 쫓아갔다. 라이트 마법을 쓰면 들킬 위험이 높다나? 한참을 달리자 아크의 두 번째 앞에 달리던 레골룸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기로군." "뭐 어디?" 레골룸스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을 보는 아크. 그러나 그의 눈엔 칠흑과도 같은 어둠만 보일 뿐이었다. "조용히 좀 해라. 들키면 책임질래? 하여간 멍청하기 짝이 없군." "뭐시여? 이……." "시끄러워." "……." 리엔느가 짜증난다는 듯이 말하자 아크는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좋아 이제 마법 서클이 높거나 불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최대한 소리내지 않게 주문을 외워 저기 나무 건물에 퍼붓는다. 화염 마법 서클이 낮은 자는 동료들의 화살에 불을 붙여주고 화염을 다루지 못하는 자는 열심히 화살을 퍼붓는다. 마지막으로 쓸모 없는 아크는 구경이나 한다." "뭬라고?" '저 자식이……내일은 아주 진동안마로 두 시간 정도 밟아줘야 겠군.' 자꾸 시비를 거는 레골룸스에게 아크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레골룸스는 아크가 잠자코 있자. 그를 눌렀다는 승리감에 취했다. 아크가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레골룸스는 칼을 뽑아 한 쪽을 겨누고 외쳤다. "공격!" 레골룸스의 말과 함께 어두웠던 숲 속에는 여러 불빛들이 환하게 빛을 뿜었다. 날아가는 불화살들 그리고 하늘에서, 땅에서 나가는 각종 불덩이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오크들의 건축물에 큰불이 붙었다. 그리고 그제야 아크는 일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었다. "우와!"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나무 건축물 그리고 그 안에서 불을 휘 감은 채 뛰어나오는 오크들이 타 죽어 가는 모습. 싸움 구경과 함께 제일로 재미있다는 남의 집 불 구경에 아크는 눈을 떼지 못했다. 몇몇 오크들은 무기를 들고 불화살과 파이어 볼들이 날아오는 엘프들이 몸을 숨긴 수풀 속으로 달려오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화살에 맞고 운명을 달리했다. "익스플로전!" 루리엘이 외치자 다 타고 있던 오크들의 목조 구조물이 완전히 폭파되었다. 그리고 살아 있든 죽었든 간에 이곳저곳에 널 부러져 있는 오크들의 몸이 분해되어 팔과 다리, 내장 등의 파편이 튀었다. "좋아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이쯤에서 철수한다. 더 이상 있다가는 지원군이 올 지도 모른다." 레골룸스의 철수 명령에 엘프 전사들은 활을 등에다 매고 다시 어두운 숲 속으로 달려나갔다. 뒤쪽에서 일어난 엄청난 불로 인하여 아크도 그다지 어둠에 구애받지 않고 갈 수 있었다. "헹 싱겁다. 이건 뭐 10분도 안 돼서 끝장 났잖아. 이 정도 작전이라면 대 여섯 명이 와서 불만 지르고 튀면 되잖아? 뭐 때문에 번거롭게끔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거지?" "그거야 만약에 두르툰이라도 있다면 위험해 질 수 있으니까 그런 거지." "잠깐만요!" 갑자기 잠깐을 외치는 루리엘 덕에 엘프들은 급히 자리에 멈췄다. "무슨 일이지?" "모두들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사방에서 무언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고요!" "뭐라고? 이런 망할!" "어이 대체 뭔 일이야?" 영문을 모르는 아크는 엘프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레골룸스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제길 완전히 당했다. 그 나무 건물은 미끼였어! 우리들한테 먹기 좋은 미끼를 하나 던져두고 그 사이 포위망을 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니……. 어쩔 수 없다 숲 속에서 포위 당한 다면 우린 그대로 끝이야. 모두들 방금 전 있었던 강가의 나무 건물로 간다! 그나마 그 쪽에 오크들은 화염마법으로 대충 전멸한 것 같고 훤히 트여 있는 장소니 두르툰만 없다면 이길 수도 있다. 빨리 가자 더 이상 지체한다면 위험해!" "가만 그렇다는 건 아버지가 이끌고 간 정찰조는 어떻게 된 거지?" "아테라인 님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아마……." 루리엘의 질문에 말끝을 흐리는 레골룸스. 그리고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들은 방금 전 불을 질렀던 강가로 달려갔다. 엘프들은 모두 합심해서 아직도 치솟고 있는 불길의 진화작업에 나섰다. 그들이 지른 불이었으니 끄는 것도 그들이 해야 함이 당연했지만, 그리고 이번에는 아크도 나서서 운디네로 진화 작업에 동참했다. 그러면서 곧 공격해 올 오크들을 대비하여 배수진으로 나선 엘프들이었다. 그리고 더더욱 그들을 힘 빠지게 하는 것은 강 건너에서도 오크들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오크들이 강을 건널 수는 없으니 전투 시에는 큰 위협이 될 수는 없지만, 혹시라도 엘프들이 강을 건너 도망칠 수도 없게 배치해 둔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밑천으로 텔레포트가 있기는 했지만 랜덤으로 떨어지는 위험성과 그나마도 정령술과 궁술에 치중하면서 배우지 않은 엘프들이 많았다. 유일한 6서클인 루리엘이 워프를 쓸 수도 있겠지만 워프로 도망 칠 수 있는 인원도 몇 안 되었다. 레골룸스는 빠른 기습작전이라고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6서클 이상의 마법사 엘프들을 많이 데려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누구냣!" 그때 한 엘프 전사가 화살을 겨누며 외쳤다. 그러자 나머지 전사들도 그가 활을 겨눈 쪽을 경계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네 인영. 그리고 선두에는……. "아테라인 님!" "아버지!" "크흑 여기들 모여 있었구나."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정찰조들 그러나 친숙했던 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 아테라인 님 어째서 넷이서만……?" "젠과 앨런은 죽었다……제길!" 그답지 않게 욕설까지 내뱉는 아테라인. 그리고 그들은 친우 둘의 전사 소식에 침음했다. 하지만 곧 자신들도 그렇게 될 지 모른다. "아테라인 님 저들 중에 두르툰이 끼어 있습니까?" "젠하고 앨런이 왜 죽었겠나?" 긍정과 다름없는 아테라인의 대답에 레골룸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저 바보 녀석을 믿어봐야겠군요." "혼전이 벌어진다면 그것도 힘들지 상황이 안 좋아지면 죽으나 사나 텔레포트를 믿고 도망치게 두르툰에게만 안 걸리면 어떻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르네." 아테라인과 레골룸스는 서로를 바라보며 씁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큭 정말 두르툰이로군." 세 방향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크들 그리고 그 정면 중앙에 상체에는 은빛 갑옷을 두른 두르툰이 나타났다. 키는 150을 조금 넘을까 말까 한 키에 보통 오크들과 다를 바 없는 체구를 지닌 두르툰이었지만 한 손에 2m는 될 듯 보이는 거대한 그레이트 소드를 든 것으로 보아 결코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 인상이었다. "크크크 스스로 무덤을 찾아오다니 어리석은 녀석들……미끼를 던져 놓기는 했지만 정말 걸려 들 줄은 몰랐군. 이걸로 엘프 요새 공략이 더욱 쉬워지겠군." 오크 특유의 쉰 듯한 목소리로 엘프들을 비웃는 두르툰.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두르툰의 말에 반박하는 이 없었다. "펠루카! 2진급의 하급전사들을 공격시켜라!" "쿠르르 2진 준비!" 두르툰의 옆에 서 있던 유난히 송곳니가 많이 튀어나온 펠루카란 오크가 명령을 하달하자 전방에 포진하고 있던 갑주를 착용하고 검을 든 오크들이 뒤로 물러서고 그 뒤에 있던 가죽 갑옷에 조잡한 도끼를 든 오크들이 선두로 나왔다. "공격!!!" "쿠르르르르르르!!!!" 함성을 지르며 돌진해 나가는 오크들. "다가오지 못하게 쏜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레골룸스의 지휘에 일제히 화살을 날리는 엘프 전사들. 3면에서 몰려오는 많은 숫자의 오크였지만 원 샷 원 킬로 잡는 엘프들의 활 솜씨에 얼마 근접하지도 못하고 픽픽 죽어 나자빠졌다. "죽어라 이 망할 놈의 오크들아!" -피릭 피릭 휙 휙 핏 핏 핏 "쿠오오오오!" "쿠르륵!" "이런 젠장!"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오크들이었지만 몰려오는 숫자는 정말 끝이 없었다. 그 사이 엘프들의 화살이 모두 고갈되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마법을 날려대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는 두르툰의 눈에 징그러운 미소가 어렸다. -쿠콰콰콰콰 -퍼벙! 전체 마법 등에 의해 한 번에 거의 대 다수가 쓸려버리는 오크들. 하지만 그들은 주춤할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개미 떼 처럼 몰려들어왔다. 그런 자신의 부하들을 보던 두르툰은 그레이트 소드를 높이 세우며 외쳤다. "그만! 모두 전우들의 시체를 하나 씩 가지고 돌아온다." 전쟁의 함성소리까지 잠재워 버리는 두르툰의 거대한 음성에 돌격하던 오크들은 시체 한 구씩을 들고 질서 있게 뒤돌아 진영으로 돌아왔다. "지금부터는 나와 1진의 전사들 그리고 2진의 1급 전사들만 전진하다. 공격 개시!!!" "쿠르르르르르르르!!!!!!!" 두르툰은 그의 짧은 다리로 제법 빠른 속도를 내며 엘프 진영 쪽으로 달려갔다. 뒤 이어 지금까지 구경만 하던 검은 칠 갑옷과 투구, 방패를 갖춘 1진의 오크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제길 두르툰이 직접 나섰다. 저놈에게 집중 공격을 가해라!!" -번쩍! -퍼버벙! -쿠콰콰콰콰! 두르툰에게 작렬하는 각종 속성의 마법들 그러나 두르툰은 멀쩡하고 옆에서 두르툰을 보좌하며 달려오던 애꿎은 부하 오크들만 작살났다. 어느 새 코 앞 까지 다가온 두르툰. 엘프 전사들은 검을 빼 들고 돌진해 오는 오크전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두르툰은 내 차지다!" 주먹을 불끈 쥐고 두르툰을 향해 달려가는 아크. 그러나 레골룸스는 뛰쳐나가려는 아크를 한 손으로 저지했다. "뭐야? 샌드백." "저 녀석을 내게 맡겨라!" "뭐여? 샌드백 니가 저놈 잡을 수 있어?" "장담은 못하지만 나도 저 녀석을 오늘 처음 만났다. 왠지 모르게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젠과 앨런의 복수를 내 스스로 하고 싶다." "에……뭐 그러셔 내 대신 죽어 준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 아크는 그런 대로 흔쾌히 승낙했다. "고맙다. 아 그리고 너는 특별히 할 일이 없을 테니 전투능력이 딸리는 루리엘을 보호해라." "어쭈 샌드백 주제에 나한테 명령이냐?" "후훗 네놈이 고마워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레골룸스는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두르툰을 향해 달려나갔다. "에 난 공주님이나 지키면 된다 이거지? 쉽군." 아크도 루리엘을 찾아 전장에서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차앗!" 오크의 목을 그대로 따 버리는 아크. "슬로우!!" 뒤에서 주문을 외치는 루리엘. 아크는 그다지 뛰어난 실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섯이나 되는 오크의 목을 따 버렸다. 물론 루리엘이 아크에겐 헤이스트를 오크에겐 슬로우를 걸기도 하고 직접 뇌전 마법으로 보조공격을 하기도 했기에 아크도 능력을 십분 발휘해 완벽한 몫을 해 내고 있었다. "쿠르르르!" 이번엔 두 놈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지만 "워터 봄!" "체인 라이트닝!!" "크롸롸롸롸롸롹!!!" 아크와 루리엘은 물과 전격의 연계기로 한 방에 오크 둘을 전기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뭐 이렇게 달라붙어! 그렇게 느끼고 싶니? 변태?" "닥쳐. 기껏 보디가드 역할 해 주려고 왔더니만! 하앗!" 수직으로 내리 긋는 아크의 검에 반으로 머리가 반쪽으로 갈라져 분수처럼 피를 뿜는 오크. 마법사의 보조를 받는 연계 공격은 정말 대단했다. 이래서들 알바 성직자들을 쓰는구나. 또 한 마리의 오크가 아크에게 공격해 들어왔다. 아크는 가볍게 그어버릴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 오크는 이전 놈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지 가볍게 나무 방패로 아크의 검을 막았다. "오호? 제법인데?" 연속적으로 밀어붙이는 아크. 그러나 이 오크는 방어기술 하나는 탁월한지 아크의 모든 공격을 상쇄시키고 심지어 반격까지 틈틈이 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있던 루리엘이 외쳤다. "파이어 블레이드!" 아크의 검에 불꽃이 씌워지고 그것으로 전달된 화염이 오크에게 달라붙었다. 몸이 타 들어가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오크. -서걱 아크는 타 죽어 가는 오크를 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역시 이 오크들은 멍청했다. 마법사를 먼저 없애야 하는 것이 기본이자 정석일진대 멍청하게 아크만 노려서 공격하다니 하지만 정말 돌 머리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한 오크가 루리엘에게 검을 날렸다. "아뵤오옷!" 급히 루리엘 쪽으로 방향으로 검을 날리는 아크. 오크를 베는 데엔 성공했지만 아크 자신도 오른 팔에 제법 깊은 검상을 입고 말았다. "아크!" "아야야 아파라! 뭘 보고만 있어 빨리 힐 줘!" "으……응 고마워." 얼굴을 붉힌 채 힐링을 걸어주는 루리엘. '얼굴은 왜 붉어지냐? 아 호감도 상승인가?' 몸을 날려 루리엘의 호감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아크였다. "음? 아니 아크 군 왜 자네가 여기에 있나? 두르툰은?" 루리엘의 약간 옆에서 전투를 벌이던 아테라인이 문득 의문점을 느끼고는 아크에게 질문했다. "아 레골룸스가 싸워보고 싶다고 루리엘의 보호를 시키던데요?" "큭 이런! 자네 당장 가서 레골룸스를 도와주게! 두르툰은 그렇게 만만치 않아!" "아 예 그럼." 아크는 즉시 레골룸스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루리엘은 자신의 아버지를 약간은 원망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챙 검과 검이 부딪히자 한 쪽의 검날이 부러져 날아갔다. "젠장!" "쿠쿠쿠 오러 블레이드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겁 없이도 잘도 개겼구나 자 이제 검도 없으니 어쩔래? 마법? 아니면 엘프들이 제일 자신 있다는 활?" 레골룸스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안 그래도 피하기에만 급급한 상황인데 두르툰의 공격을 막다가 오러를 씌웠던 검까지 부러져 버렸다. 정령과의 연계 공격을 해 보았으니 헛수고. 이젠 체력이 다 할 때까지 피하기만 하다 죽는 일만 남았다. 두르툰은 무지막지한 그레이트 소드로 교묘하게 레골룸스에게 검상을 입히고 있었다. 뭐든지 박살을 내 버리는 그레이트 소드로 세밀한 검상만 입힌다는 것은 그만큼 검술이 뛰어나며 또한 상대방을 가지고 논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자존심이 강한 레골룸스에게 참기 힘든 치욕이었다. 마지막 남은 밑천은 이제 단 한가지였다. 아크가 강의한 살인 격투술. 그러나 수업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언제나 직접 체험만 당했던 그는 아크의 강의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설명들을 때 집중하지는 않고 속으로 아크 욕만 바득바득 해 댔던 결과였다. "나와라 운다이론 워터 파일로 상대의 시야를 가리는 거다!" 정령으로 정신을 빼 놓고 여기 저기 죽어 있는 오크들의 검을 주워 쓰려고 작정한 레골룸스 그러나……. "쿠쿠쿠 어리석기는 카앗차!" 두르툰이 운다이론에게 검을 휘두르자 운다이론은 반으로 갈라져 버린 채 정령계로 강제 송환 당했다. "이 이런!" "쿠쿠쿠 네놈을 가지고 노는 것도 이제 질리는 군. 끝이다!" 운다이론이 강제 송환 당한 것에 잠시 정신이 팔려버렸던 레골룸스는 자신에게 매우 근접해 오고 잇는 그레이트 소드를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그 때 레골룸스를 구해주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렸으니…… -딱 "뭐야? 어떤 자식이 돌을 던져!" 예기치 못한 돌팔매에 얻어맞은 두르툰은 레골룸스를 베려던 것을 그만두고 돌이 날아온 쪽을 보며 소리쳤다. 레골룸스는 양단 되야 할 자신의 허리가 멀쩡하단 것을 느끼자 눈을 번쩍 뜨고 뒷걸음질 쳐 오크의 검을 잡았다. 그리고는 검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그런데 그런 그의 등을 툭툭 건드리는 자가 있었으니……. "어이 샌드백 이제 고만 쉬어." "……!" "이제 저놈은 내가 맡는다." 아크는 레골룸스를 제치고 두르툰의 앞에 나섰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쿠쿠쿠 여기 있는 엘프 놈들 중에서 제일로 약한 인간 놈이, 나를 맡겠다구?" "그래." "쿠쿠 어떻게 가지고 놀아 줄까?" 아크는 갑자기 검을 버렸다. 그런 아크의 행동에 두르툰은 미심쩍다는 말투로 물었다. "뭐 하자는 액션이지?" "사나이들의 결투다!" "사나이들의 결투?" "서로 맨손으로 싸우는 거지." "쿠쿠 그거 재미있겠군. 좋아 나도 검을 버리지." -쿵 크기의 위용답게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그레이트 소드. "아 그리고 뭐 짜잘짜잘한 규칙 같은 거 집어넣지 말고 객관적 전력으로는 네놈이 더 강하다고 평가받으니까 난 무기 한 가지 쓰겠다." "맨손 결투라 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론 맨손이고 난 가끔 가다 바닥에 돌 좀 주워 쓴다고. 괜찮겠나?" "쿠쿠쿠 돌팔매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어차피 작살 날 것이니까 그러도록!" "네 부하들의 난입 같은 거 없다." "모두 싸움을 멈춰라!" 두르툰의 말에 공격을 멈추는 오크들. 지쳐 있던 엘프 전사들도 잠시 싸움을 멈추고 휴식을 가졌다. "좋아 시작한다. 덤벼라!" "네놈이야말로 내가 첫 수는 양보하지." 두르툰은 넘치는 자신감으로 아크에게 선방을 양보했다. 아크도 그것을 사양하지 않고 두르툰을 향해 내달렸다. '이번에도 먼저 거시기 치기를 한 방 먹이고 들어간다!' 아크는 자신의 전매특허기술 성기 노려 차기를 먹을 심산으로 두르툰의 가랑이 사이에 발차기를 먹였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울려 퍼지는 엄청난 비명소리. "쿠쿠 멍청하긴. 급소를 노린 모양인데 철갑을 두른 부위에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아이고 발 아파라……에고 나죽어." "저 저런 바보……." 의기양양하게 거시기 노려 차기를 해 놓고선 자신의 발을 잡고 이리저리 뒹구는 아크를 보며 구경하던 엘프들도 어이가 없었다. 다시 두 발로 일어서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 아크였다. "쿠쿠쿠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아무 곳이나 나를 공격해 봐라." 거시기 차기가 먹히지 않자 아크는 오래 전부터 강자 상대용으로 준비해 왔었던 초식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명 '릭 플레어 스타일' 아크는 있는 힘을 다 해 두르툰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 두르툰은 잠시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곧 예의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다냐?" "글쎄?" "그럼 진짜로 시작해 볼까?" -퍽 짧달 막한 다리를 가진 두르툰이 무거운 갑옷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높이 뛰어올라 아크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커허억!" 2m가량을 날아서 나가 떨어져 버리는 아크. 뼈가 몇 개 나갔는지 입안에서는 핏물이 절로 고였다. 그리고 나서 아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쿠쿠 나를 도발해 놓고 이렇게 끝나면 곤란하지. 풀 힐!" 두르툰의 새끼손가락에 걸려 있던 반지에 시동 어를 외치자 힐 보다 효과가 조금 더 뛰어난 풀 힐이 시동되어 아크를 치료했다. 그러자 아크는 약간의 시간 동안 누워 있다가 곧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두르툰의 한 방은 정말로 강력했다. 몇 대 맞으면 세상 뜨는 것은 순식간일 정도로. 아크는 잽싸게 일어나 스텝을 밟으며 두르툰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도저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실 공격할 빈틈은 널리고 널렸었지만 공격을 했다간 공격 할 때의 그 취약한 타이밍에 두르툰에게 한 방을 허용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두르툰이 말했다. "쿠쿠 그렇게 내 주위만 맴돌면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가주마!" 드디어 시작되는 두르툰의 공격. "힉!" 두르툰은 옆으로만 퍼진 몸매와는 다르게 레골룸스 못지 않은 빠르기로 아크를 공격해 들어왔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두르툰의 공격을 피해 냈다. 잠재 능력까지 끌어내어 눈앞에 보이는 주먹을 피해내다 보니 아크는 빠르게 지쳐갔다. 그리고 잠시 숨을 들이킨 사이 두르툰의 주먹이 아크의 배때기를 노리고 쇄도해 왔다. "아랏차앗!" 아크는 몸을 굴려 두르툰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두르툰의 빗나간 주먹이 땅에 박혔다. -쾅! "꽥 저건 또 뭐야?" 두르툰이 주먹을 내지른 자리가 거짓말 안 보태고 조그마한 둥근 크레이터를 만들며 가라앉아 버렸다. 이 장면을 본 아크와 관중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만약 저런 주먹을 그대로 맞았다면 아크는 장 파열로 속절없이 골로 갔으리라. "흠 너무 힘을 많이 줬나? 이렇게 때리면 한 방에 죽어 버릴 테니 재미가 없겠군. 어이 인간! 안심해라. 파워는 좀 낮춰주마!" "아하하 거 참 고마워서 눈물나네." 아크는 웃으며 두르툰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때 눈 깜짝할 새에 두르툰의 주먹이 아크의 얼굴에 박혔다. -퍽! "아악!" 왼쪽 뺨의 광대뼈를 맞고 그대로 넉다운 되어 버리는 아크. "왼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내밀어라 라고 누군가가 그러더군." -퍽! "쿠악!" 이번엔 오른쪽 광대뼈까지 맞고 또 다시 나뒹구는 아크. "끄으으." 아크는 안면 골절을 당한 것으로 느껴지는 양쪽 얼굴을 감싸며 가까스로 일어났다. -퍽 아크의 배를 공격하는 두르툰. 아크는 배를 감싸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퍽 자세가 낮아진 아크의 턱을 그대로 차 버리는 두르툰. 그러자 아크의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그대로 흘러 나왔다. 그리고 아크는 피를 토한 뒤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졌다. -퍽 퍽 퍽 퍽 두르툰은 아크의 등을 빨래처럼 밟아대었다. 밟힐 때마다 자그마한 신음소리를 흘리는 아크. "쿠쿠 어떠냐? 네놈의 무력함이. 그 정도로 나에게 덤볐단 말인가?" 아크는 의식이 흐려져 두르툰이 뭐라고 지껄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는 생존에의 갈망과 오기가 그를 조금 씩 깨워갔다. "끄으으으으으으." 아크는 두르툰의 한 쪽 다리를 기둥 삼아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호오 제법 패기가 있군. 그 꼴이 되어서도 이렇게 일어서다니." 두르툰은 대단키라도 하다는 듯 아크를 칭찬했다. 그 때였다. 그렇게 여유 만만하던 두르툰이 비명을 지른 것은……. "악! 뭐 하는 짓이냐?" 아크는 필사적으로 두르툰의 다리를 물었다. 오크의 암내와 혓바닥에 느껴지는 오크 털의 감촉은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이자 기습이었다. "으윽 이런 떨어져라 네놈이 개냐?" "우우 우우우욱!" 검도 안 박히면서 물리는 것은 아픈지 두르툰은 그답지 않게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두르툰은 이 지독한 똥개를 떨어드리기 위해 아크가 물고 있는 다리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이곳저곳 부딪히면서도 두르툰의 물고 있는 다리를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압!" 두르툰은 있는 힘을 다 짜내어 강력하게 허공에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자 아크는 그만 두르툰의 다리를 놓쳐 버렸다. -퍽 "흐어어억!" 아크가 문 다리를 놓자마자 그대로 아크의 명치를 발로 차 버리는 두르툰. 아크는 그렇게 나가 떨어져 또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라 인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로 네놈의 머리를 깨 주겠다." 두르툰은 발로 툭툭 쓰러진 아크를 건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두르툰은 못 봤지만 아크의 오른손은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콰직! 아크는 두르툰이 신경 쓰지 않는 사이 주어 둔 돌멩이로 두르툰의 발을 찍었다. 두르툰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아직 이 장난감이 부서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곧 웃음 지었다. "쿠욱! 그래. 그래야지 어서 일어나라!" "아크 힘내!" "힘내라 인간!" 엘프들의 응원이 이어지자. 아크는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쿠쿠 간다 인간." "……!" 아크는 공격해 오는 두르툰을 덥석 껴안았다. 지난 번 레골룸스와의 결투 때 썼었던 공격 방어 술이었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엘프들은 지난 번 처럼 연속적인 공격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물론 아크도 벨리 투 벨리 슈플렉스를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레골룸스와 두르툰의 무게는 거의 소와 닭의 차이였다. "쿠쿠 멋진 방어기술이로군." "……." 아크는 약간의 휴식을 취하지 두르툰을 밀쳐냈다. 그러자 두르툰은 곧바로 아크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푹 "끄악." 아크의 손가락 두 개가 두르툰의 눈을 찔렀다. 물론 반사적으로 눈이 감겨진 두르툰에게 많은 피해를 줄 수는 없었지만 약간의 시간을 벌 수는 있었다. "큭 이제부터 반전의 시작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아크는 옆에 나뒹구는 돌을 주워 방금 전 물고 있었던 두르툰의 다리를 내리 찍었다. "크으!" 신음소리를 내뱉은 두르툰. 아크는 사정 봐 주지 않고 계속해서 돌로 두르툰의 한 쪽 다리를 쿵쿵 찍어대었다. 그렇게 몇 번쯤 찍었을까 "이런 제길!" 찔렸던 눈에 아픔을 대충 극복하고는 다시 주먹을 날리는 두르툰. 아크가 그 주먹에 맞고 넉다운 되자. 두르툰은 돌멩이에 찍혀 부어오른 다리를 감쌌다. 검으로도 베이지 않던 두르툰이지만 두르툰도 중요 부위인 머리 등을 제외하고는 둔기로 때리는 것에 내성은 조금 딸리는 모양이었다. 두르툰이 자신의 다리에 신경을 쓰는 사이. 아프긴 했지만 기절하지는 않았던 아크는 벌떡 일어나 두르툰의 다리를 계속해서 걷어찼다. 두르툰이 아크를 저지하기 위해 주먹을 날려 댔지만 아크는 방심하지 않고 피하고 다리공격을 가하는 데만 온갖 집중을 다 했다. 그러자 웬만한 공격은 피할 수 있었고 맞더라도 중요 부위를 가격 당하지 않거나 빗맞았다. 온몸이 아프고 쑤시긴 했지만 맞을 때 두르툰이 뼈가 부러질 정도의 수준으로 때리지 않았기에 땅에 처박힐 때 터진 이마빡의 피가 시야만 가리지 않으면 본 실력의 80% 가량은 사용할 수 있었다. 두르툰은 아크가 집요하게 노리는 한 쪽 다리에 신경을 쓰느라 아크를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그러다 끝내 두르툰은 계속해서 얻어맞던 한 쪽 다리를 닭싸움하듯이 들었다. 제 딴에는 많이 공격당한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아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게 했다. '이 때닷!' 두르툰이 한 쪽 다리를 들어올리자 아크는 온 몸을 날려 두르툰이 지탱하고 있던 나머지 다리 한 짝에 태클을 가했다. 그러자 두르툰은 끝내 중심을 못 잡고 넘어갔다. "어 어 어!" -쿠당 넘어진 두르툰. 거기다 맹약의 반지에 걸린 행운의 영향인지 두르툰은 넘어지면서 뒤통수를 그대로 아크가 버렸던 돌멩이에 찧고 말았다. 뒤통수를 양손으로 감싸 쥐며 바닥을 뒹구는 두르툰. 아크는 두르툰의 피가 묻은 돌멩이를 다시 들어 집요하게 두르툰의 한 쪽 다리면 찍어대었다. 그리고 두르툰의 다리에서도 출혈이 있기 시작했다. "약점만 집중 공격이라……아크 군답군." 아테라인의 짧막한 평가가 들리자 아크는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겨 포 레그락!" 아크는 출혈이 나는 두르툰의 한 쪽 다리를 잡아 자신의 다리와 함께 꼰 다음 4자 모양으로 두르툰의 다리를 꺾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많은 다리 공격을 맞으면서도 제대로 된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던 두르툰은 피겨 포 레그락이 작렬하자 엄청나게 큰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크는 그렇게 다리를 꼰 채 땅바닥에 얌전히 누웠다. "넌 이제 끝이다! 자만의 대가를 맛 보여주마!" "크아악 이런! 대체! 어떻게? 내가 이렇게 당할 수가……." 두르툰은 당혹 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법 무효화에 원거리 공격 무효화에 웬만해서는 상처도 입지 않는, 거의 금강불괴인 자신의 몸이 지금 엄청난 고통의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었다. 아크의 이마의 출혈과 내상으로 인한 피가 아크의 웃옷을 적시고 또 그의 얼굴을 완전히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었다. 안 그래도 다리만 집중 공격을 당한 데다 그 다리가 지금 괴상한 기술로 엄청난 가중타격을 받고 있는 두르툰. 그는 태어나서 난생 처음, 또 하찮게만 여겼던 인간에게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두르툰 정도의 힘이라면 이 기술을 풀어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 피겨 포 레그락은 당하는 상대가 거꾸로 몸을 틀어 엎드리게 되면 오히려 기술을 건 사람이 타격을 받게 된다. 물론 웬만한 힘 가지고는 몸을 트는 것 자체가 힘들지만, 두르툰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러나 문제는 도무지 생소한 기술이라 빠져 나올 방법을 모른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진짜 프로레슬링 경기도 아닌데 로프를 잡으리? "크아아악! 풀 힐!" 두르툰은 자신에게 풀 힐을 걸었다. 그러나 다리의 상처와 뒤통수의 상처만 아물 뿐 자신의 다리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크아아악! 도대체 무슨 기술이기에 힐도 안 먹힌단 말인가?" "쿨럭 쿨럭 그 질문에 대답해 줄 의무는 없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 놈이!!" 두르툰은 상체를 일으켜 아크에게 주먹질을 가했다. 그러나 짤막한 두르툰은 전혀 아크를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더욱 분한 것은……. "케케케 숏팔! 더 뻗어 봐! 푸하하하하하!" 아크는 이리저리 주먹질을 하던 두르툰에 잠시 위축되었지만 숏팔인 두르툰의 주먹이 자신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키와 팔 길이를 믿으며 숏팔인 두르툰을 완전히 유린했다. 물론 아크의 주먹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르툰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했다. 그리고 약 2시간 가량이 지났다. 하지만 피겨 포 레그락은 풀릴 줄을 몰랐다. 두르툰도 제법 버티는 편이었다. 만약 이대로라면 아크 자신이 제풀에 지쳐 쓰러져버릴 공산도 컸다. 서서히 고심 중이던 아크는 문득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봤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푹! "쿠우우 이 벌레 같은 하찮은 인간 놈이 어디서 이 고귀한 몸에게 이거 안 빼?" 오크가 고귀하기는……이라고 생각하며 아크는 아주 얄미운 투로 말했다. "싫은데?" 아크의 손가락은 두르툰의 두 콧구멍에 두 개씩 사이 좋게 들어가 있었다. 코를 쑤실 생각으로 집어넣은 건데 워낙 두르툰의 콧구멍이 넓어서 손가락이 두 개씩이나 들어갔다. 그 덕에 코를 쑤셔 두르툰의 코피를 유발시키려던 본래의 작전은 무산됐지만 그 덕에 두르툰은 심각한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오크들은 원체 콧구멍이 커서 코로 주된 호흡을 했기에 입으로 숨쉬는 것에 익숙치가 않은 탓이었다. "큭 크크 큭!" 극심한 다리뼈 통증에 안 그래도 기절할 것 같은데 콧구멍까지 막히자 두르툰은 서서히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안 있어……. -풀썩 눈이 휙 돌아간 채 그대로 누워버리는 두르툰. 약 세 시간 가량의 혈투로 이루어 낸 아크의 승리였다. "대장!!" 오크들은 두르툰이 쓰러지자 아크를 향해 돌격해 왔다. 그러자 아크는 두르툰의 목에 회칼을 겨누었다. "니들 대장 아직 안 죽었다. 하지만 너희들이 날 공격한다면 그 즉시 니들 대장은 죽는다. 야 샌드백 빨리 이리 튀어 와!" 주춤거리는 오크들. 그 사이 엘프들은 급히 아크 쪽으로 달려왔다. 아테라인은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들 뜬 목소리로 아크에게 말했다. "장하네 아크 군! 정말 자네가 이길 줄은……대단하이! 설마 했는데 이 난적 두르툰을 잡을 줄이야. 이보게들! 아크 군에게 힐을 주게!" "큭 그나저나 빨리 이놈 포박해서 돌아갑시다. 언제 깨어날 지 몰라요. 이놈을 인질로 잡으면 오크 놈들도 길을 터 줄 겁니다." 그제야 기술을 풀고 일어나는 아크. 다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장장 두 시간 동안 꼬았더니 다리 힘은 다 풀려 있었고, 피를 제법 흘렸더니 정신이 혼미해 제대로 걷질 못했다. 그런 그를 보고는 아테라인이 외쳤다. "레골룸스, 게론! 두르툰을 포박하고 옮기게. 루리엘, 리엔느 너희들은 아크를 부축해라." "쿠륵 대장을 어떻게 하려는 거냐?" 펠루카라고 불리던 오크의 2인자 오크가 몇 몇 부하들을 이끌고 엘프들의 앞을 막았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너희들의 대장은 이곳에서 죽게 될 것이다!" "쿠륵!" 오크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좌우로 쫙 펼쳐졌다. 엘프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부상당한 동료들을 부축해가며 오크들의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오크들과 멀어지고 루리엘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해 아크! 정말로 그 두르툰을 잡을 줄이야!" "쿨럭 그래봐야 기절이야, 나로서는 저 녀석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그리고 만약 내 기술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면, 아니 하다 못해 저 놈이 날 우습게 보고 방심만 안 했다면 죽은 것은 나였을 거야." 아크는 피를 토하며 힘겹게 말했다. "그건 좋다. 하지만 왜 그렇게 내 가슴 쪽에 깊숙이 팔을 기대는 거냐?" "쿨럭 쿨럭! 이번만 봐 줘. 리엔느! 따지고 보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엘프들 다 나한테 소원 하나씩 들어 줘야 한다고 하하." "……이번 만이다." 만신창이의 몸으로도 챙길 것(?)은 다 챙기는 아크였다. "예에 두르툰을 생포하다니요?" 촌장의 말에 술렁이는 마을회의 참석자들. 이들은 어젯밤의 작전에 동원되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레골룸스와 아테라인을 제외한다면. "정말입니다. 촌장 님. 젠과 앨런 그리고 나스레딘이 죽었지만 아크 군이 그 살인 격투 술로 두르툰을 기절시켜 끌고 왔습니다. 지금 무장해제를 시켜 놓고 각종 족쇄를 채워 마법 장이 걸린 철창 안에 가둬뒀습니다." 흥분한 듯한 아테라인의 목소리. "믿을 수가 없군요. 설마 했는데 아크 군이 정말 두르툰을 이길 줄이야……좋아요 일단 두르툰을 확인 한 뒤, 마을 내에 두르툰을 사로잡았다고 공포하세요. 그리고 희생된 젠과 앨런, 나스레딘을 추모하고 두르툰을 잡은 공로자 아크를 치하하는 조촐한 파티를 준비하세요. 10년 전에 담궜던 청포도주도 꺼내고요." "예 촌장 님." "그럼 먼저 두르툰을 확인하러 갑시다." 촌장이 나가자 나머지 엘프들도 서로 수군거리며 아테라인을 따라갔다. 감옥에 도착한 그들은 철창 안에 갇힌 한 오크를 볼 수 있었다. "저 정말이었어……." 경악을 금치 못하며 눈을 비벼보기도 하는 엘프들. 철창 안에는 오크들의 수장이자 지금껏 50여 엘프 전사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든 두르툰이 묶인 채 자고 있었다. "기절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자고 있군요?" "그게 두르툰은 최대 7서클의 마법까지 모두 상쇄시킬 수 있는 브로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걸 뺀 다음 수면마법으로 재워 둔 겁니다. 하지만 강력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방심할 수는 없지요." "좋아요. 오늘 저녁 이자의 목을 베는 것으로 희생된 동포들의 넋을 달랩시다." 촌장은 그녀로서는 보기 드물게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이마 출혈이 조금 심하긴 했지만 뭐 별 것은 아니고. 맨 처음 맞은 가슴과 명치 덕에 갈비뼈가 4대가 나갔다. 또 코뼈가 내려앉고 턱이 빠지고 광대뼈가 함몰되는 복합 안면 골절을 당한 것이 좀 심하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장이 상했다 든가 하는 내상은 없는 듯이 보인다. 뼈는 회복마법으로 대충 아물어 가는 상태이니 한 닷새만 푹 누워 쉬면 거동할 수 있을 거다. 뭐 지금도 약간의 통증을 감수한다면 걸을 수는 있겠고." '완전 의사 같군…….' 리엔느의 냉정하고도 철저한 대답에 아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나 기계적인 그녀의 말투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좀 다정하게 얘기해 주면 안 되냐? 아주 돌덩이가 따로 없어! "힘들겠지만 저녁에 중앙 광장으로 가자 아크. 오늘 숙적 두르툰을 잡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한 댔어.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니까 아프더라고 꼭 참석해." "뭐 리에나가 부축해 준 다면 야 얼마든지." 아크는 미소를 지으며 리에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덜컥 그 때 루리엘이 그릇이 놓여있는 쟁반을 가지고 들어왔다. "점심 식사로 죽을 만들었어. 먹어봐 변태 아크." "변태란 말은 좀 빼 줬으면 좋겠군. 어쨌든 고마워 루리엘." '캬 이거 오우거를 잡았을 때보다 대접이 더 융슝하구만. 아픈 것도 나쁘진 않은데?' 엘프 일가의 정성스런 간호에 아크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아크는 무릎에 놓인 죽을 먹기 위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수저를 잡기 위해 팔을 안으로 굽히려던 그는 근육이 가슴팍 쪽으로 쏠리자 큰 고통을 느꼈다. "크흑!" "괜찮나? 상체는 되도록 사용하지 마라." "아 뭐 괜찮아 이 정도 고통쯤이야 뭐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루리엘? 죽은 못 먹을 것 같다." "내가 먹여줄께." "내가 먹여줄까?" 거의 동시에 외치는 루리엘과 리에나 둘은 서로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뭔가 무언의 합의를 봤는지 둘은 아크가 가르쳐 줬던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했다. 미소녀 물에 흔히 나타나는 무슨 방전현상 같은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자 아 해! 아크." "아-" 첫 번째 타자는 리에나였다. 미소녀가 떠 먹여 주는 죽이라……이 얼마나 갈망하던 미연시의 꿈이던가? 아크는 마냥 황홀했다. 내 인생에 이런 날이 올 줄은……이라고 생각하며. "자 입 벌려 봐." "아-" 2번 타자 루리엘은 스푼으로 죽을 떠 흘리지 않게 밑에 손을 받치고 아크의 입에 스푼을 넣었다. 거기다 더블이다 더블! 두 명의 미소녀에게서 이렇게 서비스를 받다니! 이런 꿈속에서나 그리던 상황이 나에게 닥칠 줄은! 아크는 황홀경에 빠져 죽 맛도 제대로 보지 않고 그저 주는 대로 꿀떡꿀떡 집어삼키기만 했다. 그래도 저기 저 무심한 표정으로 창 밖만 응시하는 리엔느가 이렇게만 살갑게 굴어준다면 정말 좋겠는데……. 아크는 리엔느가 자시에게 죽을 떠서 먹여주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러자 아크의 머릿속에는 모 미연시 게임의 CG에 나온 미소녀가 리엔느로 바뀌었다. 앞치마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리엔느가 음식을 떠서 먹여주는 장면이 떠올라 버린 아크. -주르륵 "아크! 코피!" "어? 코피?" 이불을 적시는 붉은 액체. 리에나는 급히 흰 헝겊을 가져와 아크의 코에 대 주었다. 고작 누드 에이프런 모습의 리엔느를 상상한 제법 약한 축에 속하는 자극이었지만 두르툰에게 맞아서 약해져 있던 터라 미약한 자극에도 아크의 코는 피를 토해내었다. 아크의 턱을 타고 목까지 흘러내린 피를 세심하게 닦아주는 리에나. "고마워." 아크의 고맙단 말에 얼굴에 홍조를 머금는 리에나. 그리고 남은 죽을 마저 떠 주는 루리엘. 아크는 자기가 코피를 흘리건 말건 여전히 무관심한 리엔느를 보고서는 차라리 루리엘이나 리에나의 마음을 받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태도로 봐서는 자신을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루리엘에겐 친구 이상의 감정이, 리에나에게는 어리다는 편견에 그녀들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아크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라는 말도 있듯이, 만난 지 반년이 다 됐어도 언제나 냉기만 풍기는 리엔느 보다는 편안하게 다가오는 루리엘이나 리에나가 그런 면에서는 나았다. 그리고 그 둘에게 이성의 감정만 못 느낄 뿐이지 아크도 그녀들이 좋았다. 아니 루리엘은 모라도 최근 들어 로리콘이 되어 버린 아크로서는 닮기도 많이 닮고(루리엘 같은 경우 금발을 제외하고는 리엔느와 별로 닮지 않았다)동거(?)하면서 서로 못 볼 것(?)도 많이 보고 살도 맞대며(?) 정이 든 리에나한테도 마음이 끌렸다. 리에나가 어리단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차피 사고사가 아니라면 죽지도 않은 아크로서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신의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리에나도 괜찮은 상대였다. 물론 보는 눈들이 있는 데다가 아크의 윤리의식 덕에 바로 거시기(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이라 번역하면 이해가 빠르겠다)를 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단단히 마음먹고 하겠다면 못하는 건 아니지만(피임은 자동이다 아직 그 능력이 없으니까) '모녀와의 2:1 플레이…….' "아크! 멈춘 줄 알았는데 코피가 또 흘러! 어디 문제라도 생긴 거 아냐?" "어? 아 걱정하지마 금방 다시 멎겠지." 리에나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 보던 아크는 문득 리엔느, 리에나와의 2:1플레이를 상상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덕에 멎어가던 코피가 도로 흘러나왔다. 죽 먹어서 배가 찬 데다 피까지 많이 흘려 졸려진 아크. "나 잠 좀 잘게." 아크가 힘겹게 상체를 침대에 눕히자. 루리엘이 그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크 잘 자게 다들 나가자." 루리엘의 말에 엘프 일가는 모두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크는 곤하게 낮잠에 빠졌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아크 혼자 곤히 자고 있던 그의 방에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자고 있는 아크를 바라보았다. 엘프들보다는 딸리지만 그런 대로 잘 생긴 얼굴. 하지만 이곳저곳 붓고 멍이 들어 이전의 모습을 찾기 힘든 아크의 얼굴. 그녀는 그런 아크의 입에 입술을 맞추고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냐 아크라우스. 또 아템 주리?" 병상에 누워 있던 아크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음 주면 고맙지. 하지만 다른 용건이다." "뭔데? 끝말잇기하고 놀자고?" "좀 있다 하고 내 얘길 잘 들어라." "뭔지 빨랑 좀 얘기해 봐." 아크는 아크라우스를 보챘다. "그 두르툰이란 놈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았냐?" "풀 힐 쓸 수 있는 반지?" "아니 그거 말고 다른 반지들 말이다." 아크는 두르툰의 손에 끼워져 있다는 반지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뭐가 뭔지 당최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억이 안 나는가 보군."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반지 구경이나 하고 있냐? 그런데 그건 왜 물어?" "그 오크 놈의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들이 모두 내가 예전에 소유했었던 것 같다." "뭐어? 그게 니꺼라고?" "나도 확실하게 본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제대로 보면 알 수 있겠지. 만약 내 것이 확실하다면 그놈에게 그 반지의 출처를 고문을 해서라도 밝혀 내라. 어쩌면 아크로니아의 행방을 알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크로니아란 말에 정신이 번뜩 든 아크였다. "알았어 이따 파티 때 처형한다니까 한 번 알아볼게." "뭐 그건 알아서 해라. 답답한 건 내가 아니니까 하지만 아크로니아 녀석 어떻게 컸는지는 한 번 보고 싶군. 5000년 동안 한 번도 못 만났으니." "짜식 꼴에 부모라고." "그러게 말이다. 헤츨링 때는 저런 말썽꾸러기를 데리고 어떻게 500년 동안 사나 싶었는데 그래서 독립시킬 때만 해도 해방이다 하고 좋아했는데 한 5000년 동안 안 봤더니 서운하기는 하군. 그러고 보니 녀석도 자식이 있겠구만. 허허 내가 벌써 할애비라니." "13000살이 벌써냐?" "음? 하긴 늦긴 하군. 대체로 에인션트가 되면 번식들을 하는데 나도 녀석을 늦게 낳았으니, 어찌 됐건 함 확인해 봐라. 혹시나 아크로니아를 만나게 된다면 연락해라. 그럼 이만." 텔레파시를 끊어버린 아크라우스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 아크의 머릿속으로 말을 걸었다. "아 참! 재밌는 사실을 알려주지. 네 녀석 자고 있을 때, 네 입술을 훔친 엘프 계집이 있다." "뭐어? 그게 누군데?" 아크는 자신의 입술이 정조를 잃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크크크 그건 알아서 찾아봐라. 네놈 청춘 사업 하는 거 보는 것도 재밌으니 쉽게 알려주면 재미없지." "자 잠깐 기사 아템 창고 비번 알려 줄게!" 함구하는 아크라우스의 태도에 다급해진 아크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혹시라도 그 사람이 리엔느 라면……. "필요 없다. 나도 동훈이 놈처럼 현 거래로 엄청난 자산을 쌓았으니까 그럼 누군지 열심히 고민해 봐라 그럼 이만!" "야 야 잠깐만!" 아크의 부름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 그대로 텔레파시를 끊는 아크라우스. "이 망할 놈의 폐인, 오타쿠, 변태 드래곤아! 누군지 알려주란 말이다!" 아크의 절규가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자 나가자. 아크." '내가 애기냐……?' 아크는 속으로 불평했다. 다리는 다치지 않아서 걸을 수는 있었지만 걸을 때마다 상체에 다쳤던 뼈들이 울렸기에 어쩔 수 없이 아크는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다. 그것 까진 좋았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휠체어가 아닌 밑에 조그만 바퀴 네 개에 뒤에는 손잡이가 달린 유모차였다. 그러다 보니 아크의 불만을 일으키게 되었다. 게다가……. "하핫 어린아이 같구만 아크 군." "리에나가 어릴 때 타던 거라 좀 작네." 엘프 일가의 일방적인 애기 취급. 다쳐서 못 걷지 걸음마 못해서 못 걷냐? 어찌 되었건 당분간은 이 유모차 신세를 져야 할 듯 했다. 그렇게 마을 광장까지 나간 아크. 언제나 한산하던 마을 광장은 아크와 레골룸스의 결투와 아크 고문사건이후로 최대의 인파가 몰려 있었다. 명목상으로는 이번 작전으로 희생된 엘프들을 추모하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자는 것이었지만. 많은 이들은 곧 진행될 두르툰의 처형 식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루리엘이 끄는 유모차에 타고 인파를 뚫고 중앙으로 가는 아크. 그 모습은 적장을 사로잡은 늠름하고 멋진 용사의 모습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인파로 둘러 쌓인 마을의 중앙에 당도한 아크. 그곳에는 아크 말고도 여럿이 있었다. 촌장과 레골룸스와 아테라인을 위시한 어제의 작전에 동원되었던 엘프 전사들. 몇몇 엘프 원로들 또 흰 천을 두른 시체 한 구와 엘프 전사들 여덟이 벽을 쌓고 감시하고 있는, 각종 쇠사슬에 포박 당해 있는 두르툰이 있었다. 그들은 막 도착한 아크를 보며 각자 한 마디씩을 던졌다. "수고했습니다. 아크 군." "대단하군. 인간인 자네가." "네가 나와 우리 전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전사들을 대표해 고맙단 말을 전한다." "아 예 뭐 별 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아크는 겸손하게 엘프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제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군요." "그럼 이제 시작합시다." 촌장은 단상 위로 올라가 모여 있는 인파들에게 말했다. "어젯밤. 오크들이 우리 영역에 지어 놓은 전진기지를 파괴하기 위하여 48명의 전사들이 출정했습니다. 자랑스런 우리의 전사들은 오크의 기지를 불태우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죠. 그러나 그것은 오크들의 사악한 흉계였습니다. 우리가 오크의 기지를 공격하는 사이 오크들은 그 주변에 포위망을 쳤고 소수였던 우리 전사들은 궁지에 몰렸지요." 많은 청중들에게 말하는 것치고는 예의 차분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는 촌장. 그도 그럴 것이 뛰어난 청각을 가진 엘프들은 조그맣게 말한다고 해서 못 알아들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 전사들은 다행히도 오크의 포위망을 뚫고 무사 귀환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최대의 숙적인 오크 로드 두르툰을 생포하는 전과까지 올리고요." 이 말에 청중들은 일제히 각종 쇠사슬에 묶여 있는 오크에게 시선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세 명의 전사를 잃었습니다. 위기에 빠진 정찰조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두르툰에게 달려들었던 젠과 앨런이 죽었고 오크들과의 혼전 속에서 한 오크 전사와 싸우던 중 전사한 나스레딘, 그리고 전사들을 총 지휘하던 레골룸스도 두르툰에게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여기 있는 인간 족의 격투가 아크 군이 두르툰과의 1:1 승부로 간신히 두르툰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촌장이 아크를 가리키자 아크는 자신을 바라보는 청중들에게 손을 들고 흔들었다. "젠과 앨런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나스레딘의 시체도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또 두르툰과 맞상대했던 아크 군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거동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귀한 희생 덕에 우리는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고 수십의 동료들을 잃게 했던 장본인 오크 로드 두르툰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먼저 떠나 보낸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적장 두르툰을 처형하고자 합니다. 두르툰! 당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순순히 인정한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당신의 목숨을 거두겠습니다." "쿠쿠쿠 뭐 인정하지.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불가침조약을 무시하고 많은 엘프들의 목숨을 빼앗았으니까 하지만 그 녀석들이 당한 것은 그 놈들이 약했기 때문이야." "뭐 좋습니다. 두르툰 당신에게 사약형을 내립니다. 그거 가지고 오세요." 상자를 들고 서 있던 한 여자 엘프가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 사약이 들어 있었는데, 아크가 생각하던 조선시대 사발에 담겨 있는 검은 한약이 아닌 컵에 담긴 녹색 빛의 액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녹차라고 착각할 빛깔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쿠쿠 인간. 너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뭔데? 아! 맞아 나도 너 한테 물어 볼 게 있다. 이제야 생각나네. 먼저 네가 말해봐." "쿠우 그 반지는 어디서 난 건가?" "이거? 그건 왜 묻지? 이건 드래곤이 준 맹약의 반지인데……? 혹시 너 드래곤과 뭔가 관련이 있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드래곤이냐? 이 반지를 알아보는 것은 드래곤 밖에 없어! 그리고 또 니놈 손가락에 반지는 어디서 난 거야? 아크라우스가 자기 꺼라고 우기던데." "뭐어? 네 네놈 어 어떻게 아크라우스를 아는 거냐?" 두르툰은 놀란 얼굴로 떠듬거리며 말했다. "난 아크라우스의 맹약자거든. 그나저나 아크라우스를 안다? 수상하군 너 사실대로 애기해! 실은 드래곤이지?" "아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드는 두르툰. 이 광경을 구경하던 엘프들도 이 둘의 대화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오크가 드래곤이라고? "아니다? 좋아 거짓말이면 곧 들통이 날 테니까." 아크는 두르툰을 드래곤이라 확신했다. 드래곤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크라우스를 알고 있겠는가? 그래서 아크는 손톱으로 손을 쥐어 파 피를 냈다. '이봐 아크라우스. 한 번 확인해 봐 이놈 아무래도 드래곤 같어.' "알았다." 아크라우스의 대답이 떨어지자 아크는 두르툰에게 말했다. "이 반지를 한 번 껴 봐. 네가 결백한 지 아닌지 증명해 줄 꺼다." 아크는 두르툰의 새끼손가락에 맹약의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리고 두르툰의 머릿속에는 어떠한 말들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흠 이렇게나 방대한 마나의 양이라니…… 드래곤 중에서도 에인션트가 확실하군." "컥 누구냐?" "동포여 나는 아크라우스라고 한다네." "……아 아버지!" "뭣? 그게 무신 소리냐! 아버지? 네 녀석 설마 아크로니아인 거냐?" 아버지란 말에 기겁을 하는 아크라우스. 그에게 아버지란 호칭을 붙일 수 있는 것은 그의 유일한 자손인 아크로니아 밖에는 없었다. "후 맞습니다. 저 아크로니아입니다." 두르툰이 자신을 아크로니아라 밝히자 차원 저편에서 듣고 있던 아크라우스는 물론, 두르툰의 혼잣말을 듣고 있던 엘프들 모두 경악했다. 통역이 안 돼는 아크는 제외하고. 그 중 리엔느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리드란이 말한 아크로니아가 유희를 떠난 시기는 7년 전, 두르툰이 오크의 지도자가 된 것도 7년 전. 묘하게 시기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두르툰이 드래곤이라면 그가 보여 줬던 그 신비한 능력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하하 오랜만이로구나. 그래 잘 지냈느냐?" "아 뭐 그럭저럭……." "손주는?" "아 200년 전에 분가시켰습니다. 이름은 아크라넨이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어떻게?" "흠 뭐 이야기하자면 길다. 약 2000년 전쯤에 마나 분산 증이 나타나자 나는 차원이동마법으로 이곳으로 왔다." "예에? 그 금지된 마법 차원……." "조용히 해라 이놈아 저 엘프 놈들이 듣고 다른 드래곤들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한다면 난 끝장이다." 아크로니아가 차원이동이란 말을 하려 하자 아크라우스는 다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자 아크로니아도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말에 대답했다. '예' "에 그리고 난 이쪽 세계에서 쭉 살았다. 그러다가 저기 저 인간 놈이 이쪽 세계가 싫다 길래 그 쪽으로 보내줬지. 맹약으로 이어진 반지를 줘서 말이다." '그럼 저 인간이 이곳의 인간이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 녀석이 당했던 그 기술도 이곳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격투 술 종목이다. 그리고 네 녀석 내가 남긴 재산은 잘 보관하고 있겠지?" '그럼요.' 아크로니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그 중에서 검 몇 자루하고 보석 몇 개를 골라 저 인간에게 주도록 하여라." "예에?" 아크로니아는 예상 밖의 아버지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저 한낱 버러지 같은 인간 놈 따위에게 드래곤의 보물을 주라고? "내가 저 인간 놈에게 이 쪽 세계에서 빚진 것이 있다. 그걸 갚으려는 것이니 내 말에 딴지 걸지 말거라. 유서에도 내 재산의 70%만 너에게 물려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그 나머지 30%를 몽땅 주라고요? 그것 만 해도 어딘데?' "누가 미쳤다고 다 주랬냐? 내가 아끼던 검 중에 한 두 자루 뽑아주고 드래곤이라면 껌 같이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악세서리와 약간의 자금만 쥐어 주도록 해라. 만약 저놈이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욕심을 부리면 현 거래 시세는 현재 50대 1이라고 말해줘라." '껌? 현 거래 시세 50대 1?' 아크로니아는 이해 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흠 뭐 그런 게 있다. 어쨌든 다 알아들었으면 나머지 일들을 끝내거라. 유희 중인 거 같은데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나중에 손주 녀석을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이 반지를 통해 이야기 할 테니 그만 저 녀석에게 반지를 돌려주거라." '아 예 아버지.' 아크로니아는 맹약의 반지를 빼서 아크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법으로 간단히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온 몸에서 은빛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은빛의 몸이 서서히 거대해졌다. "저 정말 드래곤이었어……." "……!" 거대한 은빛 몸체를 자랑하며 상공에 떠 있는 아크로니아. 대부분 본체로 현신한 드래곤을 처음 본 아크와 엘프들은 그 위엄 있는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크로니아는 이곳에 모인 아크와 엘프들에게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보다시피 나는 실버 드래곤 아크로니아다. 오크 로드 두르툰의 모습으로 유희를 즐기다. 뜻하지도 않게 저기 저 인간에게 어처구니없이 패배하여 너희들에게 정체를 들키게 되었으므로 이제 다른 모습으로 유희를 떠나려 한다. 그리고 그 동안 너희 엘프들을 괴롭혀 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 보상으로 저기 죽어가고 있는 너희들의 어머니 나무를 되살려주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엘프들의 정신적 지주인 어머니 나무. 그 잎과 열매로는 못 고칠 병이나 상처가 없었고, 그 그늘에서 쉬기만 해도 상처가 회복되며 그 그늘에서 잠을 자면 엘프들의 나아갈 길을 꿈속에서 제시해 주었던 어머니 나무. 그러나 30여년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불에 타 버렸던 어머니 나무는 간신히 생명만 유지할 뿐 예전의 신성력을 깡그리 상실해 버린 지 오래였다. 아크로니아는 최대한 많은 마나를 모았다. 보통의 나무라면 회복마법으로 생명력을 채워 주는 것으로 살릴 수 있겠지만 방대한 마나를 머금고 있었던 어머니 나무라면 마나 고갈로 죽어 가는 것이므로 그 소실된 마나를 채워 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마나가 나무로 빨려 들어갔다. 양이 워낙 많은지라 흡수되는 데만 해도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긴긴 작업이 끝나고 아크로니아의 엄청난 마나를 머금은 나무는 겨울철이라 잎 같은 것이 자라나지는 않았지만 나무를 감싸고 있던 그을음이 말끔히 사라지고 부러진 가지들이 새로 돋아나는 것으로 보아 부활에 성공한 듯 싶었다. '이제 됐다. 그리고 인간! 그대에게 아버지가 졌던 빚을 갚겠다. 나와 함께 내 레어로 가자.' 은빛이 찬란한 드래곤의 모습과 죽은 나무인 줄 알앗던 나무가 되살아나는 것을 보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던 아크는 한 무리 빛 줄기가 자신을 감싸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크는 유모차만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콰당 "으아아아악!" 유모차에 앉아 있던 형세에서 그대로 공간 이동된 아크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덕에 다쳤던 부위들이 요동을 부려대 아크는 비명을 질렀다. "쯧쯧쯧 아프겠구나. 역시 엘프 따위가 우리 드래곤의 마법을 따라 올 수는 없지. 그런 부상 하나 제대로 치료도 못 하다니……." 아크가 떨어진 곳 바로 옆에 있던 은 백발을 약간 길게 기른 미 청년이 아크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죽어 가는 이도 다시 살릴 만큼의 강력한 치료마법을 아크에게 쏘았다. 아크는 회복마법 특유의 청량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아크로니아가 쏜 회복마법의 영향력 때문인지 아크는 몇 가지 근육통 외에는 별 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이계에서 온 자라……어째 처음 볼 때 머리색과 피부색이 낯설다 했더니……." "아하하 그 그런가?" "어쨌건 따라와라 몇 가지 무기를 보여 줄 테니." 아크는 아크로니아의 뒤를 졸레졸레 따라갔다. 워낙 넓은 레어다 보니 창고로 가는 데만 해도 십 여분 가량을 소비했다. 아크로니아가 창고 문을 열자. 아크는 창고 안 광경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떠헉!" 그야말로 찬란한 황금과 보석들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한 쪽에서는 루비, 다이아 등을 위시한 보석들이 산을 쌓고 있었고 또 한 쪽에는 금괴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탑을 쌓고 있었다. "침 떨어질라. 그리고 그 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금은보화를 보고 넋이 나간 아크를 아크로니아는 뒷덜미를 질질 잡아 끌어 다른 방으로 데려갔다. 아크로니아의 무기고, 그 안에는 각종 갑옷, 건틀릿, 신발, 링, 지팡이 등의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방금 전 보물 창고의 보석 산이나 황금 탑에 비하면 초라했지만 반짝 반짝 때깔이 나는 것이 인간의 재욕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너에게 소개해 줄 무기는 이것들이다. 나머지는 다 내가 벌어서 모은 것이니 줄 수는 없고 아버지가 남기신 것들이나 한 번 잘 골라봐라." 아크로니아가 가리킨 곳에는 여섯 자루의 검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봐 무슨 검인지 알아야 좋은 걸 고를 거 아냐? 좀 소개시켜 줘 봐." 아크가 투덜거리자 아크로니아는 제일 왼쪽에 있는 검을 뽑고 설명을 시작했다. "음 먼저 이 검은 뱀파이어릭 세이버라고 한다. 뱀파이어 로드가 통짜 미스릴에 마기를 담아 만든 검으로 베지 못하는 게 없으며 그 이름답게 벤 상대의 생명력과 마나를 빨아들여 이 검의 소유자의 마나로 흡수시켜 주지. 또한 마나만 주입해 주면 상대와 검끼리 닿기만 해도 상대의 생명력과 마나를 빨아들인다. 이 검을 가지고 수련한다면 20년 안에 소드 마스터와 맞먹는 마나를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사악한 마나가 쌓이므로 성직자들의 주 표적이 된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 "오우 죽이는데? 다음 거!" "이 검은 드래곤들만이 만들 수 있는 마법 검의 절정인 마나 충전 검으로 적룡의 발톱이라 불린다. 말 그대로 레드 드래곤의 발톱으로 만들었으며, 소재 자체가 원체 무게가 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우 가볍지. 특징은 대기 중의 마나를 스스로 충전한다는 거다. 게다가 8서클의 헬 파이어 주문까지 걸려 있어. 충전 마나 량이 최대치까지 이르면 헬 파이어 두 방을 날릴 수 있게 해 주는 무서운 검이다. 단점은 1년은 족히 충전해야 최대치까지 이른다는 거지만. 파이어 볼이나 익스플로전 등의 서클이 낮은 화염 마법들은 별다른 충전 없이도 날려 댈 수 있으니 상당히 괜찮은 검이다." 헬 파이어를 쓸 수 있다는 말에 귀가 번뜩였지만 1년 충전이란 말에 곧 실망하는 아크였다. "다음은 프로즌 아이스라고 불리는 한랭 검이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드래곤 본을 제련해 직접 만든 검으로 주인과 주인이 얼리길 원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검날이 닿는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검이지. 아주 약간만 스치더라도 혈액을 통째로 얼려 버려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적룡의 발톱 같은 마나 충전 검은 아니지만 마력을 극대 증폭 시켜주는 마정석을 넣고 제련했기에 아주 미약한 량의 마나만 주입해 주더라도 거의 무한정으로 아이스 미사일을 날려 댈 수 있지. 조금 무리한다면 7서클 빙계 마법인 블리저드를 사용하게 할 수도 있다. 부수적 효과로 물에 넣으면 물이 얼고 항상 냉기를 뿜어서 여름에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흠……." "이 검은 더 소드 웡 오프 다쿠 파이어라고 하는 마검으로 여기 있는 나머지 검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검이다. 마왕이 만든 칼로서 세상을 피로 물들일 힘을 주지. 그러나 정신적으로 흐트러질 경우 검사의 영혼을 흡수해 꼭두각시 데스 나이트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약해 빠진 너에게는 비 추천이다. 게다가 이 칼이 세상에 나간다면 또 한 번의 마도전쟁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고르지 마라." 아크로니아는 다음 칼을 뽑았다. "라이트닝 샤벨. 세검으로서 매우 가벼우며 마나 충전 검이다. 뭐 적룡의 발톱과 모든 사항이 비슷하지만 불 대신 전격계열의 마법이 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다음!" "이 칼은 한 자루 씩 밖에 존재하지 않는 앞에의 검들과는 달리 총 세 자루가 존재하는 검이지. 주신 아서스가 자신의 신성력을 담아 만든 검으로 천상의 금속이라 하는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되었으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근력 증가, 민첩 증가, 피로 회복, 각종 병의 예방 등의 축복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며 온갖 저주와 사악함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준다. 또 고위급 프리스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신성 마법을 신앙과 마나가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며 검의 소유자가 다친다면 그 즉시 자동적으로 힐이 발동된다. 또 뱀파이어릭 세이버 처럼 신성의 마나를 몸에다 쌓아주는 좋은 검이다. 또 열심히 휘두르기만 해도 20년에서 30년 가량이면 마스터의 경지를 밟게 해 주지. 이름은 없지만 축복 받은 검이라고 해서 그냥 블레싱 소드라고 부른다. 강력 추천하는 검이다." "이게 마지막?" "아니 하나 더 있다." "뭔데 안 보이잖아?" "이거다." 아크로니아는 조그마한 은색 막대기를 아크에게 보여주었다. "……?" 아크로니아가 검에 마나를 주입하자 막대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와우 광선검?" "광검. 빛으로 적을 베는 검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벨 수 있지만. 마나 소모가 너무나도 극심하다. 따라서 초보자에겐 비 추천인 검이다. 자 다 소개해 줬으니 한 자루 골라봐라." "저기 말야?" "음?" "이거 다 주면 안 돼남?" "아버지가 그러시더군 현 거래 시세는 50대 1이라고 두 자루만 골라라 그 이상은 안 된다." 현 거래 시세가 50대 1이란 말에 아크는 아무 말도 못했다. 한 마디로 게임 아이템과 실제 무기가 가격이 같냐? 란 말과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드래곤이나 마족, 신들이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검들이다. 그러니 불만 가지지 말고 골라라." 턱을 개고 한참을 고민하던 아크는 결국 황금빛 광채를 뿜어대는 블레싱 소드와 그와 상반되는 은빛을 띄는 아크라우스가 만든 검 프로즌 아이스를 선택했다. "오! 엄청 가벼운데?" "그렇지? 경량화 마법이 영구적으로 걸려 있어 별 다른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프로즌 아이스는 조금 무겁겠지만 그것도 무거우면 검 드는 건 때려 쳐라. 블레싱 소드의 자동 근력 증가로 휘두르기엔 별 제약이 없을 거다. 그리고 분실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가지고 다니지 않더라도 부르기만 하면 아무리 먼 거리라도 주인 옆으로 소환이 되니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아크는 이 두 자루의 칼을 벨트에 끼워 고정시켰다. 그러자 아크는 몸이 가뿐하면서도 왠지 모를 오한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우와 힘이 넘치는데?" "블레싱 소드의 영향이다." "자 그럼 이제 갑옷 밑 방어 구만 맞추면 되겠네. 소개 시켜 줘봐." "훗 유감이지만 여기 있는 장비들은 아버지의 유산이 아니라 전부 내 소유의 물건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줄 수는 없다." "뭬라고?" "아 대신 이 브로치를 주마." "이게 뭔데?" "내가 두르툰으로 있을 때 쓰던 건데 7서클 마법 주문 무효화에 원거리 공격 무효화 등의 기능이 담긴 것이다. 이거라도 받아 둬라 웬만한 갑옷 한 벌보다 차라리 나을 것이다." 아크는 아크로니아가 손가락으로 튕긴 브로치를 캐치했다. "또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장비는 지원 못 해도 몇 가지 보석이나 약간의 황금 정도라면 지원 금으로 주겠다." "앞에 보이는 이성을 사랑하게 만드는 약 같은 건 없어?" "그런 게 어딨나? 정신마법이라면 가능 할 지도 모르지만 먹히기도 힘들뿐더러 우리 드래곤이 아니라면 9서클의 정신 마법을 사용 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흑마법이라면 6서클 정도만 되어도 세뇌를 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세뇌로 꼭두각시를 만드는 것일 뿐, 결코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여자를 미치게 하는 초강력 최음제라면 있지. 소환!" 아크로니아가 소환을 외치자 그의 손에는 여러 개의 알약이 든 병이 나타났다. "이 약을 세 알 주도록 하지. 여자에게 엄청난 효과를 자랑한다. 이 약을 먹게 되면 몸이 달아오르며 성합을 가지지 않을 경우 지속해서 성 충동을 느끼게 해 주지. 그리고 성합 시 남성에게도 그 효능이 전달되서 남녀 모두 10배 이상의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 준다." "어 으응." 얼떨결에 알약을 받아 든 아크. 훗날 그의 청춘사업에 큰 도움이 될 약들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에 그리고 이 보석 하나 가져가라!" 아크는 아크로니아가 던진 주먹만한 보석을 받았다. 푸른빛을 내는 사파이어로 보였지만 짙은 푸른 빛 보다는 옅은 하늘빛을 내는 보석이었다. "사파이어?" "아니. 블루 다이아몬드다. 매우 희귀한 광물이지. 팔면 제법 돈이 될 거야." "더 주면 안 돼?" "가져 갈 수 있을 만큼 금괴를 가져가라." 아크로니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크는 금괴를 각종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나 채 6개도 들고 갈 수 없었다. "봉투 같은 건 없나?" "없다. 재주껏 가져가라." 금괴는 크기가 제법 컸다. 그렇기에 무슨 수레나 봉투 같은 데 담아 가져가지 않으면 차마 몇 개도 가져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크는 유모차까지 같이 공간이동 했으면 하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래도 웃옷을 벗고 옷 을 보따리로 쓰는 방법을 쓴 아크는 12개의 금괴를 추가로 더 가져 갈 수 있었다. "욕심도 사납군." "그대의 아버지께 물어 보시게. 누가 더 욕심이 사나운지." "우리들 드래곤만큼 욕심이 많은 종족은 인간뿐이다." "그 덕에 인류가 세상을 지배하는 거 아니겠어?" "쩝 어쨌든 볼 일 다 봤으면 가거라. 워프 시켜 주마." "에휴." 아크는 마지막으로 이 보석의 산과 금괴 탑을 다시 한 번 봐 두었다. 생각해보니 아크로니아를 만나서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엄청난 검 두 자루를 얻기는 했지만 마법 방어, 원거리 공격 방어 마법이 걸린 브로치 한 개와 다이아 하나 금괴 18개는 어쩐지 모르게 약소해 보였다. 더 달라고 생떼를 부리고는 싶었지만 이 아크로니아 녀석은 드래곤이다. 귀찮게 굴다가 잡혀 먹히고 나면 어디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것인가? 게다가 아크는 어떤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무지막지하게 돈을 밝히는 편은 아니었기에 그냥 이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과연 이 정도로 인간 세상에 나갈 수 있을까?' 명검 두 자루와 제법 되는 재산을 얻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가기에는 세상이 위험했다. 몇 십 년 휘두르기만 하면 마스터로 이끌어 준다는 검이니 엘프 마을에서 수련을 쌓고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프마을의 일상은 조금은 따분했다. 좋아하는 여자랑 살림이라도 차리고 오손도손 재미있게 살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상대가 프로즌 아이스보다 더 강력한 냉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음제를 써 봐?' 무리수다. 당장 욕정은 풀 수 있을 지 몰라도 오히려 호감만 더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다. 아크가 바라는 것은 몸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이었다. "뭘 멀뚱히 그렇게 서 있나? 저기 저 구멍으로 가라. 워프 포탈이다." 아크의 옆에 생긴 워프 포탈. 그것을 본 아크는 굿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당장 실행에 옮겼다. "안 가고 뭐하나?" 아크는 포탈의 반대쪽에 있는 황금 탑 쪽으로 걸어가 마법 홀 안으로 금괴를 던졌다. 그러자 아크로니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크를 쏘아보았다. "욕심도 적당히 부려라. 그게 뭐 하는 생쇼냐?" "재주껏 가져가라며?" "으음……그건 말리지 않겠다만 저 포탈이 닫히면 다시는 공간이동마법을 시켜주지 않겠다. 참고로 이곳은 바다니까 열심히 헤엄쳐 가 보도록!" 아크로니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크는 포탈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금괴 열 덩이 더 얻은 것으로만 만족해야 할 듯 싶었다. 그리고 아크의 형상은 포탈과 함께 사라졌다. 승전 축제의 밤이 끝난 다음날. 촌장의 집에서는 도 다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어제의 축제 분위기도 가라앉은 지 오래. 그들 사이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쿠룩 왜 아무 말이 없는 것입니까?" 펠루카는 벌떡 일어나 엘프들을 다그쳤다. 오크 부족의 2인자인 그는 현재 협상 차 엘프 마을에 와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시끄럽게 자신과 논쟁을 벌였던 엘프들이 오크 측의 요구 조건을 듣자마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듯 쉬쉬하는 것이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촌장은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저들이 수긍할 것인가 고민 중이었다. 오크 로드 두르툰을 내 놓으라는 조건. 물론 그 조건을 들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아니 들어 줄 수조차 없었다. 두르툰이 아크로니아란 것을 알아버렸는데 그것을 그대로 너희 대장은 원래 드래곤이었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어찌 됐건 살아 있으니 죽어 버렸다고 하기도 어색했다. "설마 우리 대장을 벌써 죽였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확실하게 시체라도 보여 주십시오. 만약 대장이 죽거나 대장을 풀어주지 않겠다면 우리는 당신네들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용의가 있습니다." 펠루카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만약 엘프들이 두르툰을 해방시키지 않을 경우 전면전을 불사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엘프들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두르툰을 벌서 처형해버린 것 같았다. 설마 잡은 지 하루 밖에 안 지났는데 죽였을까 싶기도 했지만 설사 두르툰이 죽었다 해도 그의 복수를 위해 오크들은 전쟁을 감행할 것이다. 여기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두르툰이 드래곤으로 변해 떠났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한다면 전쟁은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두르툰이 없는 이상 전쟁을 한다고 해도 꿀릴 것은 없었다. 아니. 두르툰을 구금하고 있다는 거짓말 한 마디만 한다면 저 단순한 오크들은 자신들의 대장을 구하기 위해 엘프들의 성벽에 박치기를 해 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오크들을 거의 전멸 시켜 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 촌장은 전쟁을 결심했다. "미안하지만 당신네들의 로드는 풀어 주지 못합니다." 뜻밖인 촌장의 말에 엘프들은 서로들 수군거렸다. "쿠룩 좋습니다. 현재 부로 우리는 협상 사절이 아닌 선전 포고의 사절단입니다." 펠루카를 위시한 오크들은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탁자를 주먹으로 난폭하게 내리치는 것으로 보아 속마음이 그다지 호기롭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낸 다음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자 침묵을 고수하던 엘프들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촌장 님 정말 전쟁을 벌이 실 생각이십니까?" "뭐 못할 것도 없지요. 공성전이라면 충분히 오크들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의 효과도 확신 할 수 없잖습니까?" "아 그건 제가 말씀드리죠." 인간 세상에서 성을 증축 기술과 공성전의 전략 등을 배워 왔던 레골룸스가 거들었다. "아시다시피 오크들에겐 마법사란 존재가 없습니다. 게다가 수준 급의 두뇌를 가진 놈들도 아니고 말입니다. 인간들은 전쟁을 할 때 성을 최고의 방어 물로 삼습니다. 오크들이 성벽에 막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활과 전체 마법 등으로 초토화를 시켜버리거나 대지의 정령등을 이용하여 아예 접근조차 못하게 막아버리면 오크와의 전쟁은 오크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거기 아크 군. 자네가 한 번 얘기햬 보게." "예 저요?" "적어도 공성전에 관해서는 엘프인 우리들보다 인간인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 듯 싶으이." 얼떨결에 지목을 받은 아크는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거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허리춤에는 검집으로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광채를 미처 다 숨기지 못한 블레싱 소드가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아크는 전쟁 판타지 등의 설정과 삼국지 등의 자료를 토대로 공성에 대한 사항들을 생각해 내었다. "에 일단 마법사를 배제한다면 각각 같은 수와 같은 훈련도의 병사들이 공성전을 벌일 경우. 성을 점거해 지키는 쪽이 상당히 유리합니다. 일반적인 인간들의 통계로 보면 성을 함락시키려면 공격측이 약 세 배의 병력을 더 지녀야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법사나 공성 무기라는 것이 합류한다면 정황이 달라 질 수 있죠." "공성 무기?" "아 예. 공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문과 성벽입니다. 이 둘 중 하나라도 먼저 뚫린다면 전세가 근접 전으로 바뀌는 데다가 성벽과 성문 양쪽을 모두 신경 써야 되기 때문에 불리해 지게 되죠. 하지만 고작 인간 병사나 오크 병사들은 성문을 뚫기가 매우 힘들뿐더러, 성벽을 탄다 해도 위에서 아래를 공격하는 수비측 병사를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투석차 따위의 공성 무기로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성문을 뚫기도 합니다. 그리고 방금 생각 난 건데. 아크로니아가 계속해서 엘프들의 성을 노렸다면 아마 공성 무기는 제법 갖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법사의 존재는 공성시 공격이나 수비 측 모두에게 큰 도움을 주는데요. 공격측에서는 성문을 불태우거나 성벽을 파괴하는 목적으로, 수비측에서는 방어 마법을 이용한 성벽의 강화나 몰려오는 공격군을 초토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마법사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이, 제가 알고 있는 한 나라의 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멀리 떨어진 대륙에 트루베노아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군사력도 강하고 국력도 강하고 견고한 성곽 토대로 한 방어로 오크들과의 지속적인 전쟁에서 항상 승리만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헤츨링을 건드린 대가로 드래곤의 분노를 사 오크 측에 드래곤이라는 엄청난 마법사를 주는 꼴이 되었고, 약 3000의 군사로 2만이 넘는 오크 병력을 손쉽게 막아내던 요새를 드래곤의 마법 한 방에 잃고 이런 식으로 하나 하나 땅을 잃어갔지요. 그들은 후반에는 드래곤의 마법 한 방에 성이 무너지고 밀집해 있던 병사들이 전멸하자. 아예 성을 버리고 오크들에게 유리한 산악전을 벌이는 애절한 신세로까지 전락했다가 결국은 오크의 노예가 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 반대로 우리 아군측은 오크 군에게는 아예 없는 마법사를 많은 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방어 마법으로 성벽을 튼튼하게 만들고 전방을 늪지대로 만들어 오크의 병력의 발을 묶어두고 각자 정령이나 활, 전체 마법으로 한 방에 수천의 오크들을 날려보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머리를 쓸 줄 모르는 오크들이니 그저 돌진해서 박치기만 해 댈 테고 그렇게 되면 오크군 10만이 아니라 100만이 몰려와도 겁 낼 것 없습니다." 아크의 공성전에 대한 긴 연설이 끝나자 어느 정도는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어차피 전쟁을 하기로 한 것 지금부터 준비를 서두릅시다." "저기요." 아크가 손을 들고 말했다. "뭐죠? 아크." "성벽 밖에 원형으로 구덩이를 파야 하니 애들 몇 명 붙여 주십시요." "왜죠?" "방어법중 하난데 성벽 주위에 구덩이를 파 놓고 구덩이에 수로를 터서 하천 비슷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 인조하천으로 적들의 진군을 약간이나마 늦출 수 있습니다. 그 물에 전기를 통하게 하거나 독물을 풀어놓는다면 아예 오크들을 접근도 못하게 할 수 있겠죠." "꽤 괜찮은 방법이군요. 대지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잘 부리는 전사들 몇 명을 데려가서 그렇게 해 보세요. 레골룸스! 아크에게 전사들 몇 명 붙여주세요." "알겠습니다." "아 예 그럼." 아크는 레골룸스가 꼽아 준 엘프들 몇 명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펠루카의 선전 포고 후 9일 째 펠루카는 오크 군 9만을 이끌고 엘프들의 외성 앞 500여 미터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오크들은 공격 진지를 건설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나무들을 베었다. 그 덕에 성벽 바로 앞까지 울창했던 숲은 나무 밑동만 남은 허허 벌판으로 변했다. 그래도 그 많은 오크들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어 일단 약 3만의 병력으로 첫 번째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펠루카는 두르툰처럼 공성에 대한 정보 따위엔 무지했다. 그래서 두르툰이 애써 만들어 놓은 공성 무기는커녕. 수적 우세를 토대로 한 포위망 구축조차 해 두지 않았다. 9만 병력을 모두 활용해 사방에서 포위한 채 밀어붙인다면 승전을 자신하고 있는 엘프들도 상당한 곤란을 겪을 것이 뻔했지만 펠루카는 그저 정면으로 저 방어구조물을 뚫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돌격이다!" 드디어 시작되는 오크들의 진격. 상공에서 보았다면 수도 없이 많은 녹색 개미떼로 보이겠지만 수많은 오크들이 흙먼지를 뿌리며 그 짧은 다리로 달려오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아직 입니다. 활시위를 당기지 마세요." 엘프들은 아크와 리에나 같은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오크들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촌장의 지시로 아직 화살이나 마법을 날리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 저 많은 오크 병력을 성문 가까이 까지 붙인다는 것은 매우 위험했지만 그들에게도 다 생각이 있었다. 최선두로 달려가던 한 오크는 엘프 성 주변의 하천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던 오크들도 하천 앞에 하나 둘 씩 멈추었다. "지금입니다. 모두들 어스 스파이크를 사용하세요." 촌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엘프 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대지의 정령을 다룰 줄 아는 자들은 모두들 대지의 정령을 이용한 어스 스파이크를 날렸다. -드드드드드드드드드 갑작스레 흔들리는 땅. 그리고 땅에서 솟는 날카로운 돌 칼날들. -푸슉 푸슉! "쿠르르르르르!!" 4대 원소 중 대지계열의 가장 기초적인 공격 마법 어스 스파이크. 기본적인 1서클의 마법이라 고위급 대지의 정령을 부리거나 6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한 번에 수 십 수 백 개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었다. -푸슉 푸슉 푸슈슉 날카로운 돌기둥이 오크들의 살갗을 뚫고 들어갔다. 많은 오크들이 항문 부위에 돌기둥의 뾰족한 곳을 찔려 후장(항문)파열이란 사인으로 많이 들 죽어갔다. 어스 스파이크의 진동이 끝나자 물로 뛰어들었던 몇몇 오크를 제외한 선봉 오크들이 거의 수천마리 가량이 돌 꼬챙이에 꿰인 꼬치가 되어 버렸다. 그 덕에 그 뒤를 쫓아 돌진하던 오크들은 시체 더미에 막혀 더딘 진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성공이에요. 이제 두 번째 작전 시작하세요." "예 촌장 님." 루리엘은 들고 있던 스태프를 허공에 대고 휘휘 저었다. -쿠콰콰콰콰콰콰콰 오크군 후방에서 연쇄적인 대 폭발이 일어났다. 루리엘이 전쟁 준비로 미리 깔아놓았던 마나 트랩들에 신호를 보내 일제히 폭발시킨 것이다. 그 덕에 후방에 있던 오크 궁수들이 대부분 전멸해 버렸다. 오크들의 몸이 이리저리 분해되어 날아다니는 모습은 정말 구경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자! 이제 각자 활과 마법을 이용해서 오크들을 공격하세요. 인공 하천과 시체들 덕에 저들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합니다." 촌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엘프들은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휙 휘릿 휘릿 휘릿! "쿠륵!" "쿠오 나 살려!" 앞뒤가 시체 더미로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오크들은 하나 하나 화살의 제물이 되어 쪽도 못 쓰고 죽어갔다. 엘프들의 활 솜씨는 누구 하나 원 샷 원 킬 아닌 이들이 없었기에 그들이 활시위를 한 번 당길 때마다 오크 한 마리씩은 꼭 죽어갔다. 그리고 이 오크 학살 극을 관람하며 대화를 나누는 두 남녀가 있었다. "와우! 죽이는데? 리에나 징그럽거나 무섭지 않아?" "아니. 안 징그러." 전투에 별 다른 도움이 안 되는 아크와 리에나는 전망 좋은 곳에서 전투(일방적인 학살이 더 어울리겠지만)를 관람 중이었다. 위험하다고 리엔느가 나오지 못하게 했지만 전쟁 치르느라 정신없는 엄마 몰래 놀러 나온 리에나였다. 몸이 갈가리 찢겨 죽어가거나 화살이 배를 뚫고 내장을 꾀어 등 쪽으로 튀어나오는 모습, 하반신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꼬챙이에 너덜너덜하게 늘어진 오크의 시체들은 매우 자극적이었다. 그런 역겹고 잔인한 장면에도 리에나는 혐오감을 나타내기는커녕 오히려 흥미가 동한다는 듯 두 눈을 크게 치켜 뜨고 학살 극 관람을 계속했다. 이번 전투는 아크의 예상대로 대승리로 끝나가고 있었다. 어스 스파이크와 마나 트랩만으로도 거의 반 정도의 오크의 대군이 전멸해 버렸고 유일한 위협인 오크의 궁수대도 후방 마나 트랩 덕분에 초반에 박살내 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시체 더미들이 오크들의 진군 속도도 늦춰서 예상했던 성벽 공방 따위도 없었다. 간혹 한 두 마리 오크들이 성벽을 기어오르려 는 시도를 해 보기도 했지만 숏다리에 사다리도 없이 온 놈들이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화살에 맞고는 운명을 달리했다. 아크는 김이 샜다. 이렇게 손쉽게 끝나리라고는 예상은 했지만, 적어도 오크들 몇 마리 정도는 성벽을 타고 성내로 침입할 줄 알았다. 그런 그놈들을 상대로 새로 얻은 무기들이나 실험해 볼 까 했는데……. 그러던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에서 자동으로 나간다는 아이스 미사일에 생각이 미쳤다. 루리엘의 말로는 빙한 계의 기초적 공격 마법이라고 했다. 대지 계의 기초 공격 마법 어스 스파이크도 오크들에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이스 미사일도 어스 스파이크에 그다지 꿀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확실히 마법은 1서클의 매직 미사일만 되어도 사람 하나 때려잡기는 쉬웠다. 캐스팅 하는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마법은 그 자체만으로는 상당한 위력을 자랑했던 것이다. 하물며 노 캐스팅으로 수 십 개씩 연발탄으로 나간다는 아이스 미사일은 어떠하겠는가? "프로즌 아이스!" 아크가 검의 이름을 외치자 프로즌 아이스는 바로 아크의 손에 쥐어졌다. 블레싱 소드야 가지고 있기만 해도 주인에게 온갖 축복을 내려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 주는 효능이 있어 항시 휴대하고 다녔지만, 프로즌 아이스는 가지고 있으면 오한이 들어 휴대하기에 좋은 칼이 아니었다. 그나마 여름이라면 시원하기라도 하겠지만 겨울철에 들고 다니기에는 힘들었다. "어! 검이 소환됐네?" 아크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내 뱉은 리에나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이런 딸내미 하나 있으면 좋겠네. "후훗! 이제 이 칼에서 아이스 미사일이 나갈 꺼야. 잘 봐." 아크는 동료의 시체를 방패삼아 화살을 피해내는 한 얍삽한 오크를 쳐다보았다. 아크 자신이 이전에 리엔느와의 전투에서 저런 행동을 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참 정(?)이 갔다. 그래서 아크는 저 정이 가는 오크를 마음속으로 표적을 삼고 검을 휘둘렀다. 프로즌 아이스가 은빛 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자. 허공에 은근히 남아 있던 은빛 광채가 하나의 결정을 만들어냈다. 두꺼운 고드름 모양의 얼음 결정은 아크가 마음속으로 찍어 놨던 그 정이 가는 오크에게 날아갔다. 화살만큼의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제법 빠른 속도로 정 가는 오크의 등 뒤에 정확히 꽂히는 미사일이었다. "쿠루룩!" 오크의 배를 뚫고 앞쪽이 뾰족히 나온 얼음 미사일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며 폭발했다. 그러자 오크의 몸이 얼음 조각과 함께 산산이 찢겨져 나갔다. 매우 잔인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예상외의 위력에 아크는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크는 좋아라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해서 생긴 아이스 미사일들이 오크들에게 하나 하나 명중했다. "저기 뛰어가는 놈! 화살 요리조리 피하는 놈! 저기 화살도 안 맞았으면서 엎어져서 꿈틀대는 놈! 다 죽여버려! 푸하 이거 무진장 재밌네." 1인칭 액션 게임에서 저격수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아크는 신이 나서 아이스 미사일을 날려대었다. 그러나 백 몇 발쯤에서 더 이상 아이스 미사일이 생성되지 않았다. "쩝 배터리가 다 됐나 보네." 아크의 몸에서 더 이상 마나를 빼내면 위험했기에 프로즌 아이스는 저절로 아이스 미사일 생성을 그만두었다. 이 프로즌 아이스는 마법에 농통한 드래곤들만이 만들 수 있는 마나 충전 검이 아닌 보통의 인간 마법사들도 만들 수 있는, 사용자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마법 검이었다. 이런 마법 검은 체내에 웬만큼의 마나가 있지 않는 이상. 마법 몇 번 쓰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아크라우스가 자신의 드래곤 본으로 만든 마법 검 프로즌 아이스에는 소량의 마나를 증폭시키는 마정석이 들어가 있었다. 원래 마정석은 매우 희귀한 데다 인간이 낼 수 있는 불로는 절대 제련할 수 없었기에 굳이 제련을 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지팡이류의 무기나 서클렛 같은 데에만 들어갔다. 거기에 원체 마나 증폭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돌이었기에 비싼 만큼 효능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때깔도 안 나고. 그러나 드래곤들은 달랐다. 그들은 드래곤 특유의 마나 제련 술로 마정석의 증폭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그런 것들이 들어있으니 3서클 위력을 아이스 미사일을 초보 수련 기사 수준의 마나를 가진 아크가 백 여 개나 날려 댈 수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드래곤이 만든 무기다웠다. 어쨌건 아크의 미약한 도움까지 합해져 엘프들은 3만 병력의 오크를 괴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대승리에는 꼭 따라오는 희생도 전무했다. 아마 아크로니아가 오크 측에 있었다면 결코 이 정도 피해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크들은 그저 무식한 죄로 총 인구의 5분의 1을 잃는 아픔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멍청한 펠루카는 새벽을 틈타 두 번째 공격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병력도 먼젓번의 두 배인 데다가 마나 트랩도 이미 다 폭발해 버린 상태에 어제의 전투로 엘프들이 많이 지쳤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리고 후방 군에 대기 시켜두었던 사다리와 성문을 뚫을 전차. 그리고 죽은 전사들의 방패를 거두어 일반 전사들에게까지 하나 씩 나눠주었다. 그리고 새벽이 끝나고 막 해가 돋을 시간 즈음부터 오크들의 2차 공격이 시작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6만의 병력이었다. 그리고 시체로 인한 기동성 하락을 우려. 공격의 목표를 남문에서 서문으로 바꾸었다. 비록 1차 공격부대가 괴멸하면서 사기가 죽기는 했지만 이번만큼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펠루카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감돌았다. "먼젓번의 두 배는 됐음직한 숫자인데요?" "그래도 방패 몇 개씩 들고 오는 걸 보니 나름대로 준비는 좀 한 모양이군. 게다가 이렇게 까지나 많은 숫자라니! 도대체 얼마나 번성을 했으면■■." 몰려오는 오크들을 보며 엘프들은 또 다시 전투 태세를 강화했다. 이번 작전도 어제의 전투의 작전과 비슷했다. 늪을 생성하는 마법이나 전방을 시체 더미로 만들어 오크들의 기동성을 낮춘 다음. 마법과 활로 작살을 내 놓는 것이다. 그런 다음 깔아 놓은 마나 트랩을 폭발! 후방궁수대를 괴멸시켜 성 위에 있는 엘프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위험요소의 조기 제거와 후퇴를 더디게 하는 좋은 작전이었다. -드드드드드드 역시 처음 공격은 수 천 개의 어스 스파이크. 그리고 돌기둥에게 꿰인 시체 오크들 그 다음 후방에서 터지는 수많은 마나 트랩들. -쿠콰콰콰콰 사실 어제의 루트대로 남문으로 오크들이 쳐들어 왔다면 서문 쪽의 마나 트랩은 빛도 못 보고 매장될 위기에 놓였겠지만. 펠루카가 남문에 엄청난 오크 시체더미 덕에 진격하기가 힘들다고 공격 방향을 바꾼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이제 다시 전면 공격입니다. 각자 개인기로 오크들을 공격하세요!" 촌장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맹공을 퍼붓는 엘프 전사들. 몇몇 오크들은 방패로 대충 화살을 막아냈지만 대다수의 오크들은 날아오는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원 샷 원 킬로 쓰러져 갔다. 그러나 싱겁게 끝날 것 같았던 전투에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촌장 님! 오크 쪽에서 화살이 날아오고 있습니다! 한 두 발이 아니에요." "예?" 엘프들을 향해 무더기로 날아오는 화살들. 화살의 대부분은 그다지 멀리 뻗지 못했지만 워낙 많은 양의 화살인지라 어쩌다 운이 좋아 간혹 가다 엘프들을 사정권에 두는 화살들도 제법 많이 날아왔다. "큭 오크 쪽에 아주 머리가 없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군요. 궁수 대를 숲 속에 은닉시켜두고 후발대가 전멸하자마자 그 시체들을 방패 삼고 공격을 시켜 우리들의 공격을 더디게 만든다■■저 후방을 완전히 쓸어버릴 만한 마법이 있을까요?" 다급히 해결책을 찾는 촌장. 그녀는 오크들이 궁수 대를 숨겼다가 미끼 부대가 당한 다음 아꼈던 궁수 대를 내 놓는 용병술을 구사 할 줄 아는 오크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실상은 진군 시 뒤쳐져 오던 오크 궁수 대들이 마법 트랩이 터진 간발의 차로 도착했기에 운 좋게 궁수대가 산 것이었지만. "있긴 있지만 지금 마법사들이 기력을 많이 소진한 상태라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실드라도 치고 계속해서 싸우십시오. 저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이니 위력이 매우 약합니다. 실드로 몸을 감싸면 피해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실드를 멀리서 날아온 화살로 뚫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엘프들이 오크 후방 궁수 대에 신경을 쓰는 사이, 오크의 많은 군사들이 시체 바리케이트를 뚫고 인조 하천까지 다다렀다. "여러분! 후방 오크들 궁수부대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어차피 저 멀리서 날아오는 화살로는 다치지 않습니다. 저기 밀려오는 오크 보병들을 공격하세요! 저 인조 하천까지 뚫려 버리면 우리는 희생을 감수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법사분들! 힘들겠지만 저기 몰려 있는 오크들에게 전체마법을 사용하세요. 상황이 급박합니다!" 그제야 엘프들은 오크의 후방에 맹공을 퍼붓던 것을 그만두고 코앞까지 몰려온 오크 중군 들에게 공격을 해 대었다. 픽픽 쓰러져 죽는 오크들. 그러나 한 번 봇물이 터지자 오크들은 쉴 새 없이 몰려들어왔다. 워낙 숫자가 많은지라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벌써 몇몇은 인조 하천을 넘어 성벽과 성문 앞까지 다다랐다. 그 때문에 아크와 검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엘프들이 성벽 쪽으로 동원되었다. 그 덕에 활 쏘는 인원이 줄어들어 더 많은 오크들이 시체 벽을 뚫고 나왔다. 큰일이었다. 오크들이 가져온 사다리 개수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 많은 수와 직접 전투를 한다고 하면 희생이 커질 공산이 컸다. 오크들이 성문에 붙어 도끼로 성문을 마구 찍어대었다. 고위급 방어 마법이 걸려 있어 저런 도끼로는 뚫릴 염려가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오크들이 성문으로 붙는 것이 고마웠다. "사다리 못 걸게 막아!" 오크들의 사다리를 밀쳐 내자, 기어올라오던 오크들이 낙하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낙하에도 오크들은 집요하게 사다리를 가져다 대고 기어올랐다. 성벽을 넘으려는 공격군과 그 사다리를 못 걸게 하려는 전형적인 공성전 다웠다. 다른 오크들이 아래에서 사다리를 단단히 붙잡고 또 사다리에 올라탄 오크의 인원수가 많아지자 사다리 밀쳐내기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할 일 없이 놀던 아크에게도 건수가 생겼다. 아크는 순서대로 하나씩 올라오는 오크들을 베었다. 마치 나뭇가지 정도의 블레싱 소드의 무게에 아크는 힘 안들이고 오크를 척살할 수 있었다. "효과는 정말 죽이는 군." 곧이어 올라온 중 장갑을 갖춘 상급 오크 전사. 그는 아크의 빠른 공격을 급히 검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오크의 검은 깨끗하게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리고 그 오크도 갑옷과 함께 수직으로 이등분되어 저 세상으로 떨어졌다. 아크는 내친 김에 프로즌 아이스를 왼손에 들고 휘둘렀다. 약간의 중량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근력 증가가 걸려 있는 그로서는 우스운 무게였다. 다음으로 올라온 오크에 프로즌 아이스의 검날을 날리는 아크. 왼손으로 검을 휘두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에 오크의 목을 정확하게 벨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달랑달랑해진 오크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 분수가 허공에서 얼어 굳어버렸다. "캬!" 새삼 아크는 이런 불후의 명검을 준 아크로니아가 고마워졌다. 얼어붙어 사다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오크 시체 덕에 밑에 있던 오크들이 올라올 수 없어, 아크는 한시름 놓고 전장을 살펴보았다. 어느덧 오크 시체 바리케이트는 대부분이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오크들이 인공 하천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오호? 이렇게 하면 재밌겠는데?" 무언가 떠오른 듯 손가락을 퉁기며 딱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낸 아크는 오크 대중 목욕탕으로 변해 버린 인조 하천에 프로즌 아이스를 던졌다. 그리고■■. "쿠르륵?" "쿠오?" "뭐지?" 프로즌 아이스가 물에 떨어지자 그 냉기로 인하여 인조 하천은 순식간에 얼음덩이로 변해 버렸다. 그 덕에 물을 건너던 오크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물 속에 갇혀 체온 저하로 죽어갔다. 오크들은 물론 엘프들까지 이 의외의 사태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돌아와! 프로즌 아이스." 아크의 부름에 얼음에 꽂혀 있는 형태로 있던 프로즌 아이스가 아크의 손에 잡혔다. 그리고 나서 아크는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인 엘프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보쇼 모두들 물의 정령을 꺼내요!" "■■뭐냐? 아크 무엇 때문에?" 레골룸스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불이나 대지계열보다 공격력이 딸리는 물의 정령은 이런 전투 상황 시에는 비효율적이었다. 그런데 물의 정령이라니? "샌드백! 닥치고 내 말 들어. 이거 한탕 성공하면 오크들 한 방에 때려잡을 수 있어! 이 밖에 오크들 발목까지 찰 정도만 물을 채우면 돼!" "쩝 뭐 알았다. 촌장 님께 말씀드려보지." 레골룸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전투를 선두 지휘 중인 촌장에게 아크의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촌장이 엘프들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여러분! 물의 정령이나 수계 마법을 쓸 줄 안다면 모두 저 전장에 물을 뿌리세요. 발목보다 조금 위까지 찰 정도의 양이면 됩니다. 거기 마법사 분들도 오크들에게 폭우를 뿌리고요." 뜬금 없이 물을 뿌리라는 촌장의 명령에 엘프들은 의아해했지만 사다리 전투를 벌이는 이들과 물의 정령을 못 다루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크들에게 물을 뿌렸다. 7서클의 폭우 마법은 마나를 많이 소진한 마법사들에게 힘들긴 했지만 수계 마법의 특성상 큰 마나 소모를 필요로 하지 않아 무리 없이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화살공격이 멎고 갑자기 폭우에 엘프들이 물만 퍼부어 대자. 오크들은 약간 의아해 했지만 그저 화살이 날아오지 않으니 좋다고들 돌진했다. 중간에 빙판이 하나 있어. 전진이 조금은 느렸지만. 사다리 집중 마크 맨 들의 일거리 폭주는 물의 정령을 못 다루는 이들이 합세해 어느 정도는 막아주었다. 그렇게 약 30분 간 물을 뿌려 대자, 오크들의 종아리 중하단 까지 물이 찼다. "이제 됐어요! 활을 준비하십쇼!" 아크는 웬만큼 물이 차자 물 퍼붓기를 중지시켰다. 그리고 물 찬 땅바닥에 힘껏 프로즌 아이스를 던졌다. "도대체 뭐 하는 거냐?" 갑자기 아크가 적진으로 검을 던져 버리자, 레골룸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성 밑에서 벌어진 광경에 레골룸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프로즌 아이스가 물에 닿자 오크들의 종아리 아랫부분이 물과 함께 얼어 굳어져 버렸다. "지금입니다. 성벽에 붙은 놈들부터 처리하고 발목이 묶인 오크들을 공격하세요. 단 화염 마법은 금지입니다." 촌장의 말에 다시 이어지는 화살의 비. 오크들은 자신들의 발목을 묶고 있는 얼음을 깨기 위해 온갖 쇼를 해 대었다. "둔기류를 가진 오크들을 골라 쏘세요!" 그나마 도끼나 몽둥이를 든 오크들은 얼음을 깨려는 시도라도 할 수 있었다. 검이나 활을 든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화살을 맞고는 발을 고정시키고 있는 얼음 덕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꼿꼿이 선 채로 저 세상 관광을 떠났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관광을 말이다. "이런 제기랄!" 우세해 보이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역전되어 버린 전세에 오크들을 지휘하던 펠루카는 욕지기를 내뱉었다. 9만의 오크 병사들이 단 한 명의 엘프 전사를 죽이지 못했다. 평지에서 전투를 했다면 이기고도 남을 병력이었지만 저 괴상한 건축물 덕분에 부하들은 적들에게 접근도 못한 채 생애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 추세라면 전멸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펠루카의 멍청한 두뇌로는 도무지 이런 상황에 대책이 서 지질 않았다. 발목을 묶는 얼음 덕분에 후퇴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호오?" 아크는 최 후방에서 학질이라도 걸린 듯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제법 고급갑옷의 오크를 보았다. 두 번인가 봐서 그런지 얼굴이 확실히 기억났다. 오크들의 2인자 펠루카였다. 펠루카를 발견한 즉시 아크는 아이스 미사일을 날렸다. 안 그래도 작살나고 있었지만 지휘관을 잃은 부대는 완전히 콩가루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스 미사일은 강철을 뚫고 펠루카의 왼쪽 가슴에 박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종족 전쟁 "컥!"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펠루카. 오크들치고는 상당히 좋은 갑옷을 입었기에 아이스 미사일은 그의 심장을 꿰뚫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심장으로 통하는 정맥을 끊었는지 녹색의 피가 타지리의 그린 미스트 처럼 뿜어져 나왔다. (타지리:WWE에서 활약 중인 일본 선수. 암기로 녹색 독물 그린 미스트를 입에 숨겨 놓았다가 상대방의 눈에 뿜는다. 그린 미스트는 녹색의 액체이다) 펠루카는 자신의 심장이 활동을 멈춰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7년 전만 해도 오크로드 였던 펠루카. 그런 그를 아주 가볍게 꺾어 버리며 로드의 자리에 오른 카리스마 넘치는 두르툰. 한동안 두르툰을 인정하지 못했던 그도 두르툰의 카리스마에 탄복해 어느덧 저절로 고개를 숙이고 로드의 충실한 부하가 되었다. 아니 그것에 앞서 진심으로 두르툰을 존경했다. 펠루카는 마지막으로 먼저 죽어간 수많은 동족들을 보았다. 그 중에 두르툰은 없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사 살아......대장......" 그렇게 오크 족 2인자 펠루카는 숨을 거두었다. 부하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크로니아는 예의 그 미청년의 모습으로 한 인간 처녀와 사랑 놀음 중이었다. 그렇게 존경하던 대장이 그딴 책임감 없는 드래곤인줄 알게 된다면 죽은 펠루카도 하늘나라에서 통곡을 하리라. 펠루카가 그렇게 죽자. 운 좋게 동료의 시체를 밟고 서 있었거나. 물이 차지 않은 약간 고지대에 있었거나 장화를 신어 신발 덕에 얼어붙지 않았던 오크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원체 후퇴란 것을 모르던 오크들이라 많은 수가 도망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 덕에 오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던 몇몇 오크들은 후방 궁수대에게 알아서 즉결 처분 당했다. "촌장님. 화살이 다 떨어졌는데요." "흐음 거 큰일이군요."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어느덧 해가 저물 때까지 끝나지 않고 있었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탓도 있었지만 필요 이상의 화살 소비 덕에 일방적인 학살 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만 천 마리 가량의 오크들이 살아 남아 있었다. 이런 필요 없는 화살 소비를 촉진시킨 것은 바로 얼은 덕에 선 채로 죽어버린 오크시체 덕이었다. 널 부러져 죽지 않으니 어느 놈이 죽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고 결국 불필요하게 화살 맞은 놈에게 화살을 몇 발씩 더 쏘았기 때문이다 중간에서 촌장이 한 놈에게 두 발 이상 쏘지 말라고 지시하자 한 발 씩만 쏘기 시작했지만 문제는 이미 화살의 재고가 바닥났다는 거였다. "이제 마법 밖에는 없습니다. 저기 아크 녀석처럼 돌을 던질 수도 없고 말입니다......" "야! 샌드백! 돌이 어쨌다고 난리야! 원거리 근거리 모두 가능한 이 선사시대 최고의 무기를!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을 무시하는 거냐?" 레골룸스의 돌을 무시하는 발언에 아크는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행주대첩을 들어가면서 반발했다. 그러나 이들이 어찌 행주대첩을 알겠는가? 아크는 블레싱 소드의 근력 증가로 제법 먼 거리까지 돌을 던질 수 있었기에 아이스 미사일을 발동 하다가 마나가 떨어지자 계속해서 오크들에게 돌을 던졌다. 명중률은 굉장히 낮았지만 워낙 많은 수의 오크들이라 던지면 맞기는 다 맞았다. 물론 이미 죽은 시체들이 맞는 경우가 80%를 육박한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래야 겠군요. 화염마법을 제외한 마법으로 공격하세요." "잠깐만요. 촌장 님!" 아크가 급히 촌장을 불렀다. "뭐죠? 아크. 모두 합세해서 돌을 던지자 같은 말이라면 안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강력한 화염마법을 몇 방씩 날리라고 지시해 주십시오." "그러면 오크들을 묶어두던 얼음이 녹아버리지 않습니까?" "그걸 노린 겁니다.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여차하면 제가 다시 얼려 놓을 테니." "그러고 보니 어떻게 저렇게 순식간에 저 넓은 면적에 퍼져 있는 물을 얼린 거죠? 아크. 5서클 이상의 마법을 쓸 줄 아나요?" "그건 아니고......에 뭐라고 해야 하나?......나중에 설명해 드릴 테니 좀 부탁합니다." "좋습니다. 모두들 화염 마법으로 공격하십시오."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한 촌장의 명령이었지만 엘프들은 물을 뿌리라는 뜬금 없는 작전으로 전세가 멋지게 역전된 것을 떠올리고는 그대로 촌장의 말을 따랐다. "크아아악!" "핫 뜨거 뜨거 핫 뜨거 뜨거 핫!" 불에 타 죽어 가는 오크들. 발버둥을 치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오크들은 꼿꼿이 선 채 그대로 타 들어갔다. 이미 죽었기에 몸이 타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못했던 녀석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크는 이 세계에서 처음 먹었던 오크 고기 굽는 역겨운 냄새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참을 치솟던 불길의 열기는 오크들을 속박하던 얼음을 녹였다. 얼음을 녹이면서 불길도 사그라들었지만 불 덕에 얼음은 얼음물이 되었다. 오크들은 발이 자유로워지자. 그 동안 당하기만 했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전우의 시체를 밟고 진격해왔다. 엘프 측에선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이제 뭘 어떡할 겁니까 아크?" "후후 전멸기술입니다. 아무나 저 물에 전격마법을 쓰게 된다면 저 오크들은 단체로 감전사 할 겁니다." "......!" "그런 방법이!" 아크의 전략을 듣던 엘프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단하군요 아크 그런 생각을 다 해내다니." "후훗 제가 살던 코리아란 나라에서 강을 건너는 적병들을 그렇게 전멸시켰던 전투 경험이 있습니다." "전쟁 경험이 풍부한가 보군요." "그게 아니라 대규모 전쟁이 없었던 엘프들이 전쟁 전술에 밝지 못한 것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대규모 전쟁이라고는 이번 오크와의 전쟁이 전부였던 엘프들이어서 그런지 공성전이나 그런 점에서 아크의 발상을 따라가지 못했다. 적들을 물에 담궈 놓고. 전기 공격을 한다는 발상은 아크가 중학교 때 봤던 포켓몬스터의 영향이 컸다. "전기 공격을 하세요!" 물과 전기의 상관 관계를 잘 알고 있던 나머지 전사들도 이 멋진 작전에 감탄하여 벼락을 떨어뜨렸다. -번쩍 라이트닝 볼트와 벼락 몇 방이 얼음물에 직격했다. -파지지지직 "크르르르르르르!" "크카카아악!" 물을 통해 전달된 전기는 살아 있던 오크들을 감전사시켰다. 고무신이나 고무 장화를 신고 있었다면 무사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초호화(?)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오크는 없었다. 오크들은 정말 운 좋게 벼락이 떨어진 타이밍에 아크가 던졌던 돌을 밟고 서 있던 오크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사이 좋게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저 한 놈은 그냥 죽일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아크 군." -휙 -콰직 돌로 귀중한 목숨을 건졌던 마지막 오크는 아크가 던진 돌에 머리가 박살난 채 뇌수를 흘리며 죽었다. 믿는 돌에 머리 터졌다 고나 할까? 전쟁은 그렇게 엘프들의 대 승리로 끝났다. 또 이 전투로 오크들은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던 두르툰의 오크 부족은 인구가 무려 60%가 죽어 두르툰 집권 이전의 개체 수보다 더 줄게 되었다. 게다가 남은 인구라고는 전사가 되지 못한 허약한 오크들이나 어린 오크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남부 최강을 자랑하던 두르툰의 오크 부족은 크게 쇠퇴하여 엘프들과 영역을 나누던 경계에서 후퇴하여 남부 아지트로 모여들었다. 이리저리 분산되어 있다가는 엘프들에게 각개격파 될 것이 뻔했으므로. 단 한 명의 부상자란 피해로 오크군 9만을 전멸시킨, 전쟁 사에 길이 남을 초유의 기록이었다. 우라시드 산맥의 깊은 산자락 끝의 한 초야.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버린 한 나무 밑에 위 부분이 평평하고 반듯한 바위에 청의 장삼을 입은 한 중년인이 가부좌를 틀고 참선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짙푸른 남색에 가까운 머리를 엉덩이까지 길게 기른 낡은 도복의 젊은이가 다가오자. 중년인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 "저어......그만 하산할까 합니다 사부님." "흠." 그제야 중년인은 가부좌의 양반다리 자세를 풀고 주름진 눈을 떴다. "성취를 보았느냐?" "예, 사부님." "흐음. 그렇지만 아직 이르다. 네가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는 하나, 제국에는 4명의 소드 마스터와 1명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있다. 너 혼자서 그들을 꺾고 복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정녕 모르고 하는 말이냐?" "......" 사부의 다그침에 침묵을 고수하는 제자의 모습에 사부는 이미 제자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느꼈다. "휴우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하지만 네가 나 정도의 경지를 성취하지 못한다면 되도록 혼자서 복수하는 것은 피하거라. 소드 마스터인 너라면 어떤 나라에서든 높은 자리에 등용할 터. 그 나라의 힘에 편승해 복수를 하는 길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어느 나라로 갈 생각이냐?"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주인공이 서서히 세상속으로 가는 스토리로 진행되므로 설정이 필요할 것 같아서 처음은 주인공이 떨어진 대륙에 역사에 대한 설정을 첫머리에 붙여볼까 합니다. 대륙의 역사가 끝나면 본편이 진행됩니다. - 대륙의 역사. 주인공이 떨어진 세계에 있는 세 개의 대륙 중 하나로 나머지 대륙들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 다른 대륙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현재 이 대륙은 특별히 지칭해 부르는 이름이 없다. 지리학자들이 연구해 본 바로는 꼭 늑대처럼 생겼다 하여 달리는 늑대의 대륙이라며 한 시인이 비유한 것을 쓰고 있다. (훗날 주인공의 영향을 받아 이름이 붙는다.) 문명이 발달할 때부터 동쪽과 서쪽 지역에 편승된 자원을 노리기 위해 서부세력과 동부세력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여 이 대륙의 역사는 전쟁을 빼고는 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수천년을 이어져 온 지겨운 전쟁에 서서히 회의를 느끼는 자들이 많아지고, 결국 그것은 거대 제국으로 뭉쳐 있던 서제국과 동제국을 각각 찬전론자와 반전론자의 세력으로 분할시켰다. 서제국의 북부에는 찬전파의 루티안 왕국이, 남부에는 반전파의 하인델 왕국, 동제국의 북부에는 반전파의 루드비안 제국이, 남부에는 친전파들의 캘더린이 각각 자리잡았다. 이 네 나라는 대륙에서 가장 큰 세력이 되었고 이들을 통틀어 4대 강국이라 불렀다. 이 4대 강국들은 서로 동방과 서방을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전파와 반전파들도 싫어하게 되면서 각자 다투며 사이가 모두 좋지 않았다. 이런 4대 열강의 시대가 지속되던 어느 날. 루티안의 속국인 대륙 최북단의 가난한 시골짜기 왕국. 팬크라프트에 검으로서 이미 신의 능력을 초월한 이계의 검사 진이 이 가난한 나라의 피폐함을 보다 못해 그들을 도와 강력한 기사단을 구축한다. 엄청난 군사력을 갖추게 된 팬크라프트는 여태껏 자신들을 억압했던 루티안과 전쟁을 벌이고, 국력이 강한 루티안과 군사력이 강한 팬크라프트의 싸움은 상당히 오랜 세월동안의 장기전으로 진행되다가 결국은 팬크라프트가 루티안을 멸망시킴으로서 끝나고 팬크라프트는 대륙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다. 팬크라프트 제국은 먼저 교단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루티안에 편승해서 예전에 자신들에게 온갖 수탈을 일삼았던 교단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위협을 느낀 교황청은 비밀리에 망명하게 되고 그것이 또 다른 신흥 강국의 성립을 부르게 된다. 팬크라프트는 또다른 4대 강국 하인델과 전쟁을 벌이고 순식간에 하인델 영토 대부분을 장악한 뒤 평화조약을 맺는다. 이로서 조그마한 시골 왕국 팬크라프트는 예전 서제국 세력을 완전히 통일시킨다. 반면 루티안은 몇몇 유민들이 영지 단위의 조그만 영토에 겨우 명맥을 잇는, 예전 팬크라프트 같은 군소왕국으로 몰락했고, 하인델은 예부터 악마의 섬이라 불리던 마족의 땅 다크로드에까지 피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예로부터 서부와 동부의 치열한 경합장이 되어 왔던, 서부와 동부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중도 지방. 대륙의 중앙에 있었기에 한 때 서부의 영토였다가 동부에게 뺏겼다가를 반복하며 이리저리 채이던 중도 지방은 시민들의 사고에 정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강하여 이 대륙 어느 곳 보다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고 또한 시민들의 힘이 강했다. 이들은 동제국과 서제국이 네 개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동안. 서서히 부상하여 하나의 정치체제 중도 연합을 결성하였다. 중도 연합은 서부와 동부의 자원 불균형으로 인한 중계무역권을 독점하면서 국력을 급성장시켰고 국민 전원 징병제화를 통하여 막강 군사력을 보유했다. 그러던 차 팬크라프트에서 쫓겨난 교단을 중도에 정착시키면서 교단이 보유한 많은 사제들과 신도들, 성기사단, 십자군단 등의 무력 단체를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두면서 팬크라프트에 못지 않은 군사력으로 무장 중립을 선포했다. 하인델 정벌 후. 동부를 쳐서 대륙을 통일시키려던 팬크라프트는 강대해진 중도와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대륙 북동부에 위치한 디그리스 왕국의 폴티아 반도를 통한 동부 원정을 생각한다. 그렇게 폴티아 반도와의 항로가 뚫리자. 팬크라프트는 중도의 주 경제 활동인 중계무역에 타격을 주면서, 디그리스의 폴티아 공을 뒤에서 조종. 폴티아 반도를 디그리스에서 분리시킨다. 주인공이 처음 이 세계의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디그리스 왕국이 잃어버린 폴티아를 찾기 위한 원정대에 주인공이 합류함으로서 시작된다. -본편입니다. "아무래도 모국인 루티안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아무리 그곳이 너의 모국이라 하더라도 루티안의 국력은 너무나도 형편없다. 이미 한 번 망했다가 겨우 조금 큰 영지 정도의 영토와 백성을 가지고 나라랍시고 설치고 있지 않느냐? 그런 곳에서 너의 뜻을 이루려면 수 백년, 아니 어쩌면 영영 이루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4대 강국들은......?" "루드비안이나 캘더린은 팬크라프트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하인델은 국력이 기울어 이미 수도도 빼앗기고 소드 마스터들도 모두 잃은 상태이니 이젠 4대 강국이란 칭호에서 밀려나야 옳겠지. 국력이 강한 중도지방은 충분히 팬크라프트와 한 판 해 볼만 하지만, 언제나 중립인 영구 중립국가이니 전쟁을 일으키기가 힘들다. 또 연합체라 의견이 모이기도 힘들고 교단에서 전쟁을 금지할 테니 중도도 무리라고 볼 수 있지." "그럼 어떡하죠?" 제자의 근심 어린 목소리에 스승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진 말거라. 흠 내 생각에는 여기서 가까운 디그리스가 좀 나을 것 같구나." "그곳도 팬크라프트와 멀지 않습니까? 게다가 국력도 형편없고......" "허나 그것은 그들이 땅덩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항로가 뚫렸을 때만 해도 그들은 순식간에 발전했었지. 비록 얼마 못 가기는 했지만, 그렇게 계속 발전했더라면 중도와 맞먹을 정도의 부를 쌓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약소국이지. 하지만 그들은 잃어버린 폴티아를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 별을 보아하니 동쪽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드디어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닌가 싶어." "......!" "평화시에는 잘 모르겠지만. 전쟁시 소드 마스터가 등용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다. 어떤 최고급 우대도 서슴치 않고, 그렇게 그들이 폴티아를 되찾는다면 팬크라프트와의 직항로가 열리게 되고, 중계 무역으로 다시 국력을 쌓아 강대해 질 수 있지. 그런 다음 팬크라프트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과 연합한다면, 충분히 네가 원하던 복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래. 언제 떠날 생각이더냐?" "준비는 끝 마쳤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허허. 이 외로운 사부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냐? 무심한 것." 사부는 장난조로 말을 던졌지만 그 말은 제자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그것을 듣는 제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떨군 채)말을 잇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수 백년 동안 홀로 외로이 살아온 사부를 또 다시 혼자 두게 된 제자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외톨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순순히 제자를 떠나보내는 사부의 모습에 제자는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흐흑......사부님." "어허! 다 자란 녀석이 어디 사부 앞에서 궁상맞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냐? 뚝 그치거라!" "예." 제자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 보니 네가 우는 것도 그날 이후로 처음이구나." "......" 어찌 그 날을 잊을 수 있을까? 자신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 그 날을. 나라가 망하고 가족들이 처참하게 몰살당하던 그 날을. 사부가 자신이 일으켜 세운 제국에 환멸을 느껴 은거하게 된 그 날을 말이다. "참! 음성 변조의 술법은 잘 기억하고 있느냐?" "아! 예." "그렇다면 이제부터 남자 목소리로 남자 행세를 하거라." "예?" "아무리 이 세계가 여자에게 별다른 차별을 가하지 않는 곳이라고는 하나. 전투나 검 등에 관해서는 여자 따위가 라면서 은근히 무시당하는 그런 것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전쟁은 남자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녀석들이 어디를 가나 꼭 있지. 내가 가르쳤던 케레스는 그런 차별에 대항하려고 머리카락을 밀어버리고, 성 기능까지 봉해버렸지. 나는 너까지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굵은 목소리를 쓰거라. 그러면 누구든지 너를 여자 같은 미소년으로만 볼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흐음 그래. 그나저나 내 물품들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들은 없느냐? 가지고 있는 거라고 해 봐야 별 거 없지만. 떠나는 마당이니 내 하나 주마." "사부님이 그쪽 세계에서 쓰셨던 검을 받고 싶습니다." "이 녹슨 검을? 이 검은 별로 쓰기에 좋지 않은 검이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 제자가 침묵하는 것은 강한 의사의 표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사부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순순히 검을 내주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그래. 가거라.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 두거라. 복수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해 보았자 허무하고 또 다른 원한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뿐. 웬만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니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몸조심하거라." 제자는 사부에게 큰절을 한 뒤. 자기도 모르게 맺히는 눈물을 슥 닦은 뒤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갔다. 그런 제자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사부는 심경이 착잡했다. 제자는 자신이 예전에 가르치고, 자신이 일으켜 세웠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의 나라에 강한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먼저 가르쳤던 제자들이 약간의 과오를 저지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키워 낸 제자들이 서로 싸워 죽인다면 스승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것도 다 내 업보인 것을." 중년인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대륙의 동북부에 위치한 서부의 팬크라프트 제국 다음 가는 넓은 영토를 지닌 거대 왕국 디그리스. 그러나 그 넓은 영토의 대부분은 몬스터들의 땅 파푸치아와 드래곤의 집단 서식지인 험준한 우라시드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금껏 대륙의 역사에 별 반 중요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 중소 왕국이다. 영토 자체가 척박한데다. 4대 강국의 하나인 군사 강국 루드비안의 속국으로 매년 막대한 조공을 바쳐야만 하는 나라였기에 국력이 강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2년 전 대륙 서부의 대제국 팬크라프트가 크게 번성하면서 디그리스에 딸린 폴티아 반도와 해상 항로가 뚫리게 되고 그 덕에 중도 지방이 장악하고 있는 서부와 동부의 중계 무역 사업에 뛰어 들 수 있었다. 중계 무역으로 부를 쌓은 디그리스는 루드비안에 진 막대한 빚을 갚고 그들의 내정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누린 완전 독립의 기쁨도 얼마 안가. 대륙 서부와의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안겨줬던 폴티아 반도에서 반역이 일어나고 무역을 하기 위해 키웠던 그 강대한 폴티아의 해군력에 발목을 붙잡혀 디그리스 왕국은 부를 안겨줬던 폴티아란 땅덩이를 잃게 되었다. 그 덕에 짧았던 중흥기도 그렇게 쉽게 막을 내려버린 디그리스는 국가가 파산의 위기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씀씀이는 커졌는데 돈줄이 끊겨 나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다 왕이 죽고 후사가 없었던 왕의 조카가 그 뒤를 이었다. 그가 현 디그리스의 국왕 크론드 디그리스 1세였다. 그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배신한 폴티아 대공을 응징하고 무역의 거점지인 폴티아를 되찾기 위해 백부였던 선대왕이 재정난으로 해산시켰던 군대를 다시 소집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국민들도 무거운 세금을 전쟁 준비란 명목과 그들에게 풍요를 안겨 주던 땅 폴티아를 되찾기 위해 자진해서 군대에 자원했다. 그러나 폴티아 의 막강한 해군력에 번번이 막혀버린 원정에 국민들의 원성은 점점 높아만 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디그리스는 생각지도 못했던 두 가지 행운을 얻게 되는데...... 디그리스 왕국의 수도 텔포니움. 그 안에 위치한 왕국 최고의 검사. 레인하르트 공작의 대저택. 가난한 약소국 디그리스지만 한 나라의 공작답게 그가 사는 저택은 너무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넓직하고 웅장했다. 그리고 그 저택의 수비병 한스와 막스는 아침부터 어디서 구르다 왔는지 모를 개뼈다귀와 씨름 중이었다. "아니. 공작님이나 공작 가 식구 분들하고 선약이 없으면 들어 갈 수 없다니까!" "어서 꺼져!" 성격이 비교적 유순한 막스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성질 급한 다혈질의 한스는 다짜고짜 이 말이 안 통하는 얼빠진 손님에게 욕지기부터 내뱉았다. "웬만하면 합법적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저도 아침부터 피 보기는 싫습니다." "뭐야?" "이봐 참아! 그리고 자네 어서 다른 데로 가게. 어디 이 공작 가에서 구걸을 하려고 하나?" 방문객의 도발에 발끈해서 검을 뽑아들려던 한스는 다급히 말리는 막스는 이 앞의 방문자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하아?" 방문자는 그제야 자신이 거지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야 막스가 그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든 것도 당연했다. 방문자의 인상착의는 그야말로 거지꼴이었던 것이다. 나이는 갓 스물을 넘겼을까? 키는 좀 작았지만. 얼굴은......도무지 빌어먹을 녀석으로는 안 보이는 미인이다. 남색 빛에 가까운 짙푸른 머리를 긴 생 머리로 길게 늘어뜨려 여성복에다 브라차고 뽕만 집어넣으면 여자처럼 보일 만도 했다. 하지만 밋밋한 가슴에 어느 곳의 옷일지도 모르는 땟국물이 진하게 든 낡은 청의. 이 세계에서는 절대로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디자인의 옷이었다. 그러한 꾀죄죄한 의복 덕에 척 보면 여자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안 들고 남장을 하고 있으니 남자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인물이었다. 거기다가 목소리도 굵어서 도무지 여자의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기에 제 딴에는 무슨 대단한 떠돌이 검객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검 한자루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는데 이곳 저곳 이가 빠진 데다. 녹까지 슬고 심지어는 검집도 없는 저럼 검은 어디서 버린 것을 주워 가지고 다니는 것이 확실했다. "에휴 그렇게 보는 것도 당연하겠군요. 그런데 정말 들여보내 줄 생각 없습니까?" "동냥은 저 쪽에 수도원 가서 하게. 수녀 아줌마들 미소년에 굶주려 있으니 가기만 하면 각종 호화로운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껄세." "조언은 고맙습니다만. 전 쪽 레인하르트 공작을 만나야 하겠는데요?" "이봐 막스. 이런 건방진 애송이 녀석 따위 그냥 손 좀 봐주고 쫓아버려!" "옆에 분과 달리 말이 안 통하는 분이로군요." "뭐야? 이 애송이 자식이! 남창가에 팔아버리기 전에 빨리 꺼져!" "어쩔 수 없군. 실력행사를 하는 수밖에." "뭐? 이런 썅!" 검을 빼들고 이 건방진 애송이에게 달려드는 한스. 그는 자신의 검이 저 건방진 애송이의 목에 정확히 딱 닿아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어라? 이 녀석 어디 갔어?" "너무 느립니다." 떠돌이 검사는 어느 새 한스의 등뒤에 서 있었다. 그는 녹슨 검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자 한스의 갑옷과 옷이 이리저리 분해되어 한스는 털이 수북한 자신의 하얀 알몸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으헥! 이 애송이 녀석! 무슨 짓을 한 거냐?" "흠 작군요." "익!" 한스는 왼손으로 자신의 물건을 가렷다. 그리고 이런 치욕을 안겨 준 저 애송이 녀석을 다시 공격하려 했다. "허튼 짓 하지 마십시오. 아침부터 사람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어느새 인가 한스의 목에는 시퍼렇게 녹슨 검날이 닿아 있었다. "제가 공작을 만나려 하는 이유는 그와 비무를 해 보기 위해섭니다. 그렇게 절 못 들어가게 막으시려면 그냥 공작을 이곳으로 불러 주십시오. 안 그러면 이 아저씨 목은 책임 못 집니다." "아 알았네 잠시만 기다리게." 급하게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막스. 하지만 그는 저 방문자를 들여보내 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은 자신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경호대장을 불러 저 거지 검사를 쫓아내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막스였다. "들어가야 한다니깐요!" "어허 이 사람! 안 된다니까 그러네!" 아침 식사 중이던 레인하르트 공작은 집사와 어떤 의문의 인물이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를 듣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콰당 "공작니임!!!!!!: 거세게 문이 열리고 무서운 속도로 공작에게 달려가는 수비병 막스. 공작과 식사 중이던 공작의 가족들은 모두 이 수비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른 아침부터 이 무슨 소란인가?" 레인하르트 공작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평화로운 아침 식사시간을 망쳐 놓은 이 겁없는 병사에게 곱지 못한 시선을 보냈다. "큰일났습니다. 공작님. 어떤 떠돌이 검사가 공작님과 싸우겠다며 수비병 하나와 경호 대장님, 그리고 둘째 도련님과, 도련님의 교관이신 게리슨 경을 인질로 잡고 스트립쇼를 시키고 있습니다. "뭐야?" 공작은 이 황당한 보고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병사 놈이 늦잠 자다 일어나 꿈에서 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막스는 공작의 자신을 미친놈처럼 보는 듯한 공작의 눈초리에 똥줄이 탔다. 막스는 불러 온 경호 대장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당하자, 경호 대장보다 높은 실력의 둘째 도련님을 모시고 갔다. 그러나 공작의 둘째아들도 일초지적에 당하고 또 그 이야기를 들은 도련님들의 검술교관 게리슨 경이 발끈해서 나갔다가 그 역시도 일초지적에 당했다. 그 덕에 현재 그들은 모두 홀딱 벗은 채 억류 되 있는 터였다. 막스는 진작에 이렇게 공작을 찾아왔어야 했다. 괜히 저 떠돌이 검사 놈 이겨줄 사람 찾다가 이 넓은 대저택을 쉴 새 없이 뛰어다녔음은 물론이오. 아침부터 나체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 상관들의 후 폭풍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야 할 처지였다. "어디서 꿈을 꾸고 와서 아침 식사시간을 망쳐 놓는 게냐? 당장 이놈을 끌어내라!" "공작님! 정말입니다. 꿈이 아니라구요! 공작님! 아니라니깐요!" 막스는 공작의 바지춤을 잡고 늘어졌다. 그런데 어찌나 세게 붙들고 있었던지 그 비싼 공작의 바지단이 찍 소리를 내며 찢어져 버렸다. "큭! 이 미친놈에게 몽둥이 500대를 때려라!" "예!" "공작님! 공작님! 공작니이이임!" 발광을 하며 끌려가는 막스. 그리고 곧 저택에는 막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침부터 기분을 싹 잡쳐 놓은, 한 미친 병사의 울부짖는 소리가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제는 웬 놈의 인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레인하르트 공작의 기분을 더럽게 하고 있었다. "이보게 집사." "예 공작 나으리." "왜 이렇게 아침부터 시끄러운 겐가? 당장 좀 알아보고 오게." "알겠습니다." 막 집사가 나가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몇 명의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공작의 앞에 부복했다. "공작님! 큰일이 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둘째 도련님과 게리슨 경이 홀라당 벗은 채 한 떠돌이 검사에게 잡혀 있습니다." 공작은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압박했다. 이놈들이 단체로 쥐약을 먹었나......그러나 곧이어 들어온 나체의 병사 두 명을 보자. 공작은 무슨 이 따위 황당한 일들이 계속해서 생기는지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정녕 너희들이 단체로 미친 것이냐!" 드디어 화가 폭발하는 공작. 그때 항상 점잖던 집사가 헐레벌떡 뛰어 와 이 미친놈들과 같은 소리를 내뱉는 것이 아닌가? "크흠......" 일이 이쯤 되자. 공작도 이 사태를 더 이상 미친놈들의 쌩쇼로만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공작은 자신의 애검을 허리춤에 차고 일어서 말했다. "집사. 앞장서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오늘밤 3연참입니다. 대신 다음 편은 5월 12일날 중간고사 끝나면 올라올겁니다.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 할 줄 아느냐? 아버님만 오신다면!" "이거 보쇼. 후작 나으리? 분노는 그 막슨가 버슨가 하는 병사한테 푸세요. 전 분명히 공작님을 보겠다고 했지. 당신 같은 허접들 불러오라고 한 적 없어요." "뭣이?" "후작님. 고정하십시오. 흔들립니다." 그제야 후작은 딸랑이는 방울을 급히 감췄다. "큭 차라리 내 목을 벨 것이지. 어찌 이런 치욕을 주는 거냐?" "사람 죽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옷만 찢어놓는 거 거든요? 그리고 목에 칼 대면서 인질극 하는 것 보다 효과가 좋더군요. 그리고 약간 너무한 것 같아서 천 쪼가리는 드렸잖아요. 알아서 가리셔야죠." "이 이게 무슨 일이냐?" 때마침 나온 공작은 병사들이 말하던 꿈나라 이야기가 진짜 눈앞에 펼쳐지자 헛것이라도 본 듯 계속해서 눈을 비벼대었다. 묶인 채 천 쪼가리 하나 씩만 걸치고 있는 자신의 둘째 아들과 게리슨 남작 그리고 눈부신 미모를 가진 미소년이지만 허름한 옷을 걸쳐 그다지 귀티가 나지 않는 이 사건의 주동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 싼 많은 인파들. "아버님!" "공작님!" 공작은 잠시 상황파악을 하다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볼도 한 번 꼬집어보았다. 그리고 이 믿을 수 없는 장면은 유감스럽게도 진실로 판명되었다. "당신이 레인하르트 공작입니까?" "그렇다. 넌 누구냐? 왜 내 부하와 아들에게 저런 치욕을 주는 거지?" "아 일단 사과 드리겠습니다." 떠돌이 검사는 바로 둘을 묶고 있던 포승줄을 잘랐다. 그러자 그 둘은 공작이고 뭐고 신경 안 쓰며 딸랑이를 딸랑거리면서 부리나케 저택 안으로 달아났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에 이 왕국에 중요 인재로 등용되어 일하고 싶은데, 그 실력을 증명할 길이 이거 밖에는 없더군요." "하! 그 정도 얄팍한 실력으로 실력 운운하는 것이냐?" "두말할 필요 없죠. 제가 공작 님을 꺾는다면 저를 천거해 주십시오." "꽤나 오만하군. 다짜고짜 찾아와서 이런 짓까지 저지르고 말이야......뭐 좋아 단 내가 이긴다면 결코 너의 목숨을 편하게 거두지 않으리라." "물론입니다." 떠돌이 검사는 자신의 녹슨 검을 뽑았다. 그것을 본 레인하르트 공작도 자신의 애검을 뽑아들었다. 레인하르트 공작은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모양이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검에 오러가 그럴 듯 하게 자리잡았다. 다른 자들이 구사하던 오러 블레이드 보다 확연한 빛깔이었다. "후 훌륭하군요. 하지만 아직 멀었는걸?" "뭐?" 발끈하는 공작. "이거나 잘 보시죠." 떠돌이 검사도 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자 오러가 검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레인하르트 공작은 그 장면을 보고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소 소드 오러. 소드 마스터였던 거냐? 겨우 그 나이에?" "후훗 글쎄요?" 바로 시작되는 떠돌이 검사의 공격. 공작은 떠돌이 검사의 공격을 반격하지도 못하고 막고만 있었다. 아니 막기도 벅찼다.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는 것에 위축된 심리와 워낙 확연한 차이가 나는 실력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떠돌이 검사의 초식 하나가 끝나고 어느 덧 공작의 목에는 오러를 머금은 녹슨 검이 닿아 있었다. 비무가 시작 된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이건 팬크라프트 제국 검법! 팬크라프트에서 온 건가?" "사부가 팬크라프트 제국의 기사였던 적이 있어서 말이죠." "으음." 지기는 했지만 레인하르트 공작은 아침부터 잡쳤던 기분이 싸그리 날아갔다. 소드 마스터와 직접 검을 섞어 봤다는 무인으로서의 기쁨과 소드 마스터라는 얻기 힘든 인적자원을 얻은 데에서 오는 기쁨까지. 자신을 이렇게 쉽게 꺾어버린 검술의 고수라면 폴티아 원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좋아 당장 왕성으로 가세. 자네 정도라면 후작 아니 나와 같은 공작이라도 쉽게 꿰찰 수 있을 걸세!" 공작은 결투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여기 이 소년이라면 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황금의 땅 폴티아를 되찾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공작 자신이 부단히 노력했던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밟을 수 있게 도와 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묘한 흥분이 드는 공작이었다. "디그리스의 기사가 된 것을 환영하네. 에 그런데 자네 이름이 뭔가?" "......론. 론 루네아." 잠시 고민하다 나지막하게 이름을 대는 론. 그 모습에서의 수상한 점을 공작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론 루네아. 쇠퇴한 약소국 디그리스의 영광을 되찾아 줄 이름이었다. 황금을 녹여 놓은 듯 찬란히 빛나는 금발에 그다지 길지 않은 금빛 수염. 주름살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와 풍채 좋은 몸매의 미중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외모의 크론드 디그리스 1세 하지만...... -훌렁 "앗! 전하 가발이......" "음? 아! 이런." 그랬다. 망해 가는 나라를 되살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어 가며 노력했던 크론드 국왕은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되어 버렸다. 그것도 차라리 머리를 다 밀어버려 스님처럼 되면 모르겠는데 군데군데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들이 몇 가닥 씩 남아 있어 수염 밀고 눈만 조금 커지면 흡사 골룸 같았다. 급하게 다시 가발을 뒤집어쓰는 크론드. 그러다 가발을 거꾸로 썼는지 뒷머리는 허전하고 앞머리는 치렁치렁 내려오자. 크론드 국왕은 가발을 다시 벗고 돌려서 썼다. 긴급회의로 모인 조정 신료들은 그런 왕의 모습에 채 소리내 웃지도 못하고 웃음을 참기 위해 애썼다. 왕의 바로 옆에 있는 철 가면을 뒤집어 쓴 기사 외에는(소리만 안 냈지 그는 그 광경을 보고 배가 터져라 웃었다) "흠 흠 왜들 그러시오. 거기 클링턴 백작도 국무대신도 대머리이지 않소? 피차 같은 처지에 동정은 못할 망정. 그리고 여러분들은 대머리 안 될 것 같소? 두고 보시오 10년 후에 여기 모인 대신들 중 한 명이라도 대머리가 안 된다면 내 가발을 벗고 다니리다. 얼마나 좋소? 머리 감을 일 없고 비듬 생길 일없으니 말이오. 아주 시원합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머리 간편론을 주장하는 국왕 크론드. 이 빛나리 임금님은 자신의 대머리를 그다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온데 전하. 저희를 이렇게 불러모으신 까닭이 무엇이옵니까? 이런 긴급 회의는 폴티아 원정 이후로는 처음이 온데?" 체구가 깡마른 한 노인 대신이 일어나서 질문했다. 노 대신의 질문에 국왕은 비장한 목소리 톤으로 대답했다. "맞소. 드디어 우리의 염원인 폴티아를 되찾기 위한 원정을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이오." "......!" "오오!" "드디어!"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전하." 크론드의 말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대신들. 이런 상황에서라면 꼭 하나 씩 있는 강경 보수파들이 딴지를 거는 모습은 없었다. 애초에 전쟁을 추구하는 정권이었기에 보수파들의 참여가 적었고 그나마도 피의 숙청을 통해 현 국왕의 주위에는 중립은 있을 지 몰라도 반전파는 없었다. 하지만 중립파 중 하나인 그론다이저 백작이 반대의 표시를 나타내어 보였다. "전하 무리수입니다. 아직 우리의 해군력은 폴티아를 압도할 수준이 아니옵니다." 크론드는 그의 말을 가볍게 반박했다. "누가 해상으로 폴티아를 친다던가? 이번 원정은 육로로 갈 것일세." "......!" "아니되옵니다. 전하.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파푸치아 숲을 어떻게 군대가 빠져나간다는 것이옵니까?" "육로는 아니되옵니다." 한결같이 국왕의 말에 찬성하던 이전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은 서로 입에 침을 튀기며 국왕의 조금 맛이 간 소리를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 사실 그들의 반대가 틀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파푸치아 숲은 너무나도 넓었다. 거기다 남부에는 오크들이, 중부에는 초대형 몬스터들이, 북부에는 엘프들이 텃세를 부리고 있어 통과하기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두르툰이란 대 오크 부족이 디그리스의 본토까지 노리고 있지 않은가? 괜히 뒤통수를 깐답시고 출정했다가는 숲의 종족들에 의해 전쟁도 못해보고 전멸할 수도 있다. "절대 불가하옵니다. 어떻게 군대가 그 험한 파푸치아 숲과 우라시드 산맥을 뚫고 갈 수 있단 말입니까? 가는 데만 해도 3개월은 족히 걸릴 것이며 오크들과 충돌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원정은커녕 병사들만 개죽음 당할 수도 있습니다." "허허 그건......" 무언가 반박해 보려는 크론드.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신하들의 반대 농성에 그의 목소리는 묻혔다. "불가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절대 반대!"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을 좀......" 반박해 보려던 국왕 크론드의 말은 또다시 묻혔다. "죽어도 아니되옵니다." "결사 반대!" "아!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조용히 좀! 나왕이야! 왕! 왕도 말 좀 하자!" 국왕의 절규에 그제 서야 조용해지는 신하들. "흠흠 좀 닥치고 내 말 좀 경청해 주시오. 물론 파푸치아 숲을 통과해서 폴티아를 친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오. 하지만 이 작전은 적의 방심한 틈을 타 허를 찌를 수 있는 좋은 전략이오. 놈들은 분명 천해의 요새인 우라시드와 파푸치아를 건너 우리가 쳐들어 갈 수 있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을 것이오. 그런 틈을 타 우리가 공격한다면 놈들은 본토를 지키기 위해 해군력을 빼 우리 육군을 막으려 할 것이고 그 사이를 틈타 해상을 장악한다든지, 해상 병력으로 공격하는 척 하면서 놈들의 신경을 해군에 묶어두고 육로를 통해 적의 뒤통수를 친다든지 하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소." "하오나 전하." "아 공이 하려는 말은 다 알고 있소. 이 작전이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는 것을. 나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작전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치도 못했던 두 가지 변수가 생기면서 이 전략을 재고해 보기로 했소. 어이 거기 들어오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연참후 잠수 5월 12일 복귀.예정 크론드가 외치자, 문이 열리고 정보부장 포른오 자작과 투구를 써서 눈만 보이는 한 기사가 들어왔다. 기사치고는 약간 왜소한 체구였지만 기사의 몸에서 발산하는 기운은 결코 평범한 기운이 아니었다. "전하. 저 자는 누구이옵니까?" 그론다이저 백작이 투구를 깊게 눌러 쓴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두 가지 변수 중 하나인 사람이지." "그게 무슨?" 아리송한 국왕의 말에 그론다이저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이런. 레인하르트 공작을 꺾은 실력자를 모른단 말인가?" "......!" "예에?" 레인하르트 공작을 제외한 신료 들은 크론드 국왕의 말에 크게 놀랐다.레인하르트 공작은 소드 마스터에 거의 근접한 디그리스 왕국 최고의 검사였다. 그런 공작을 꺾을 실력자라면. "서 설마 소드 마스터?" 기겁하는 신하들을 본 크론드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맞네. 어제 부로 후작의 작위를 받은 론 루네아 후작이지. 소드 마스터이기도 하며 이번 원정에서 육군 총 사령관을 맡아 줄 사람이네." "그 그럼 완성된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줄 수 있겠습니까?" 의심의 뜻이 담긴 한 신하의 말에 론은 고개를 끄덕인 뒤 마나를 주입했다. 확실했다. 소드 마스터가 아닌 이들이 사용하는 어설픈 오러 블레이드 처럼 마나의 흐트러짐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푸른 빛 검기가 반듯한 직선으로 완벽하게 검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오 이로서 우리 디그리스도 마스터 보유국이 된 것이로군요. 대륙을 통틀어 10명 가량 밖에 안 되는 소드 마스터가 탄생할 줄이야." 예로부터 한 나라의 군사력의 강함은 병력의 수가 아닌 소드 마스터의 수로 평가받아 왔다. 소드 마스터는 일반 병사들 정도는 수천이 덤벼도 끄떡하지 않는 전쟁터의 공포의 대상이었고 그 덕에 마스터는 마스터로 상대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탓에 현재의 4대 강국 중에 소드 마스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고,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나라는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핵무기 보유국이나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국왕이 말한 변수가 소드 마스터를 지칭하는 것을 줄은 몰랐던 조정 신료들 하지만 소드 마스터가 있다고 해서 파푸치아를 무사히 통과시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확률만 조금 높아 질 뿐 여전히 숲은 위험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대신들의 표정을 읽은 크론드는 급히 두 번째 카드를 꺼냈다. "흠 물론 소드 마스터가 하나 생겼다고 숲을 뚫을 수 있단 말은 아니오. 내 두 번째 카드를 제시하겠소. 포른오 자작!" 국왕의 지시에 론과 함께 서 있던 포른오 자작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정보부에서 알아 낸 신뢰도 98.8퍼센트의 최신 정보에 의하면......" 신뢰도 98.8%가 어디에서 나온 수치인지는 모르지만. "의하면?" 말끝을 흐리는 포른오 자작. 그러자 신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며칠 전 오크들 중 가장 세력이 큰 두르툰 오크부족과 엘프들이 대대적으로 맞붙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9만의 병력을 자랑하던 두르툰 오크 부족은 완전히 쇠퇴해 최남단으로 후퇴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포른오 자작." "에 그 덕에 오크들이 장악하고 있는 파푸치아 남부의 길이 뚫렸습니다. 게다가 남부의 길이라면 1달 가량만 행군하면 충분히 폴티아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죠." 그랬다. 오크들은 많은 병력을 잃으면서 넓은 영토에 널리 퍼져 있던 인구들을 숲의 최남단에 집결시켰다. 그러다 보니 원래 중대형 몬스터가 출몰하는 중부는 모르겠지만 오크들이 차지했던 남부가 비는 것이다. 거기다 두르툰은 전쟁을 용이하게 치르기 위해 숲에 길까지 뚫어놓았다. 만약 그 길을 디그리스 군이 사용한다면 최단 거리로 폴티아의 최북단도시. 엑쿠스까지 1달 안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오옷! 훌륭한 판단이시옵니다 전하!" "이번 승리는 명백합니다." 포른오 자작의 말이 끝나자 마자 다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는 신하들. 정말 줏대 없는 위인들이다. "그런 고로 난 이번에야말로 부의 땅 폴티아를 되찾아 올 수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는 지금 하늘이 주신 기회와 땅이 준 인재를 얻었소.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파푸치아를 뚫고 적들의 뒤통수를 깔 것이오? 그러니 대신들은 각자 전쟁 준비에 서두르시오. 언제 길이 다시 막힐 지 모르니 최단 시간내로 끝내야 하오." "예 전하."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허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루네아 경." "예 전하." "그대는 우리의 희망이오. 꼭 이번 원정을 성공시켜 주시오." "장담은 못하지만 해보겠습니다." "이미 대충 준비는 다 되었소. 모레 군사를 출병하겠소. 해군으로도 폴티아에 도발을 하시오. 해군 총 사령관은 레인하르트 공작이 맡아 주게." "예." 작전회의가 끝나고 그론다이저 백작은 크론드를 개인적으로 알현했다. "전하." "무슨 일인가? 그론다이저 백작." "저 소드 마스터의 신분은 확실한 것입니까?" "흠.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잘 알겠네." "알고 계시다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어디서 굴러왔을지 모를 저런 인물에게 총사령관의 자리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레인하르트 공작을 사령관으로 세우고 부사령관의 자리로 내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그냥 믿고 쓰기엔 신원이 확실치 않습니다." "그래서 자네를 붙인 게 아닌가?" "예?" "나도 그를 믿지는 않네. 하지만 지금 전쟁이 시작될 판에는 한 명의 병사도 아쉬울 판국이야. 게다가 그가 만약 배신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말지. 하지만 나는 그를 신뢰하지는 않지만 신용할 수는 있어." "예에?" "그의 눈빛을 보았나?" "철투구를 써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눈빛은 우리들과 똑같았네. 무언가를 열렬히 갈망하는 그런 눈빛 말일세." "눈빛이 무슨 상관입니까?" "하긴 자네는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지. 좋아 정확한 증거를 대 주지. 론은 나에게 충성을 서약하지 않았어." "예에? 어떻게 그런." 그론다이저 백작의 당연한 반응이었다. 충성을 서약하지 않으면 결코 작위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충성을 서약하지 않았다니! "대신 이렇게 말하더군. 당신의 충직한 개가 되 줄 테니. 나에게 힘과 직위를 달라고.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고. 자신에게도 원하는 것이 있지만 결코 당신네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닐 거 라고. 그래서 나는 그와 계약했네. 그는 내 부하가 되는 조건으로 나는 그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물론 조금 미심쩍기도 하지. 그러니 자네는 론을 잘 감시하게. 주변에서 경계를 하란 말이네." "하지만!" "그를 믿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기 전까지는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걸세. 알았나?" "알겠습니다." 그론다이저 백작은 어쩔 수 없이 크론드의 말을 수긍했다. "자 한잔 들게." "아 예." 흰빛을 띄는 청포도주를 따라주는 아테라인. 아크는 공손히 두 손으로 잔을 받고 고개를 돌린 뒤 술을 마셨다. "캬 좋군요!"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먹고 근 반년만에 먹어 보는 술. 지난번 두르툰 잡이 축제 때, 엘프들이 술을 꺼내놓고 파티를 하긴 했지만 아크로니아의 레어에 있었던 아크는 그 술맛을 맛 볼 수 없었다. 이번 술판은 오크와의 종족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는 파티였다. 이런 승전축하연은 원래 전쟁이 끝난 뒤 바로 하는 것이 옮았지만 9만에 달하는 오크 시체 처리작업으로 인해 일주일이나 연기됐었다. 불질러서 한 번에 다 태워버리면 좋으련만 엘프들을 승전으로 이끌었던 물이 불이 크게 붙는 것을 막았고, 거기다 증발이라도 해 버리면 좋으련만, 추운 날씨 덕에 밤에는 얼었다. 낮에는 녹았다를 반복하며 땅을 질퍽하게 만들어 놨기에 도무지 불이 붙지를 않았다. 그 덕에 엘프들은 접전지가 아니었던 북문과 동문 쪽으로 오크 시체를 옮기는 작업에 동원됐고 엿새만에 그 많은 오크 시체를 한 곳으로 몰아넣고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전투 그 자체보다. 전투 후 뒤처리가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 이례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아크는 이번 종족전쟁에서 엘프들의 1등 공신이 되었다. 오크로드 두르툰의 생포와, 위기 때마다. 기발한 전략으로 엘프 측의 희생을 최대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는 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술맛이 좋긴 한데 좀 약하군요. 엘프들은 청포도주 외에는 안 마십니까?" "산딸기 술이 있네만. 이 술 보다 순하네, 그리고 나무껍질로 담근 술이 독하기는 무진장 독하지만 뒷맛이 그다지 좋지가 못하지. 그리고 또 몇 가지 더 있기는 하지만 술이 제대로 되려면 몇 년 정도 더 숙성시켜야 한다네. 게다가 우리 엘프들이 원체 음주를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라 술을 잘 담그지도 못하지." "흐음." 술맛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아크는 맥주나 소주맛이 더 땡겼다. 그러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에서 그런 술들을 마시기는 힘들 터였다. 하지만 정 마시고 싶다면 아크라우스를 통해 술 담는 법을 배워 아크가 직접 술을 빚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는 재료를 구할 수가 없으니 술 빚는 건 인간 세상에 나간 뒤가 되어야 했다. '술도가도 재밌겠군. 한국의 탁주가 이 세계에서 대중적인 술이 된다면 괜찮겠는걸? 후 그러자면 이제 슬슬 이 숲을 나서야 될 테지." 미약한 능력을 가진 아크지만 아크로니아에게 칼 두 자루를 받고 나니. 아크는 그가 목표하던 오크 열 서너 마리 잡을 정도의 실력보다 부쩍 강해져 있었다.(아템 빨 이기는 하지만. 실제 아크의 실력은 겨우 하급 오크 네 다섯 마리 상대할 정도이다.)이 정도면 오크가 아니라 인간 병사들이라도 아이스 미사일을 이용하면 100명은 족히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아주 떠나는 것도 아니다. 엘프들의 신임을 얻은 터라. 바람 쐬는 기분으로 한 2, 3년 떠돌다 돌아와도 문전 박대하지는 않을 터였다. 설사 인간사에 뛰어들어 몇 십 년 간 찾지 않는다 해도 칼침 맞지 않는 이상 아크가 죽을 리도 없었으니 언제든 다시 오면 된다. 이미 엘프 마을은 아크의 판타지 세계 고향이나 마찬가지 였으니까. 그러니 엘프 마을을 떠난다 해도 그리 서운할 것은 없었다. '아크라우스가 말했던 입술 도둑은 도대체 누구인거야? 저 로봇트 아줌마면 좋겠는데.' 아크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리엔느와의 관계였다. 만약 그녀와 어떻게라도 이어지기만 한다면 그는 한 여자의 남편과 아빠로서 엘프 마을에서 조용히 살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리엔느의 반응은 여전히 빙옥궁의 설녀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크는 괜히 지금의 관계만 더 나빠 질까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미연시의 얼빠진 남자 주인공 따위는 절대 되고픈 생각이 없었다. 물론 아크의 경우야 원래 관계 자체가 친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고 안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역시. 고백이란 살 떨리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덕에 아크는 애꿎은 술만 계속해서 마셨다. 아무래도 술빨이 아니면 용기가 나질 않는 모양이다. "술을 잘 하는 구만." "......?" 술을 그다지 잘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취하려고 마구 퍼 마시는 아크. 취하느라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닌 엘프들의 특성상 아테라인이 아크가 술을 잘 마신다고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크의 앞에 쌓여 가는 술병을 보면서 엘프들은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거 아냐?' '먹고 죽을 려고 저러나?' '도대체 주량이 어떻게 돼길래.' "이보게 아크 군 술이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이제 그만 마시게 몸 버리겠네." "에?" 그제야 아크는 들이키려던 술잔을 놓고 자신 앞에 펼쳐진 빈 병에 향연을 보았다. 슈퍼마켓에 팔면 천 원은 족히 나올 것 같은 수많은 빈 병들이 이곳저곳 데구르르 굴러다녔다. '얼레? 이렇게 퍼 마셨는데. 왜 내 정신이 말똥하지?' 블레싱 소드의 알코올 해독 능력을 모르고 있던 아크는 취하지도 않는 술을 연신 퍼 마셨던 것. 블레싱 소드는 주인의 건강을 위하여 간에 큰 부담을 주는 알코올을 체내로 흡수되기 전에 분해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런 영문을 모르는 아크는 맛 간 정신으로 고백하기를 포기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복귀했습니다. 컴퓨터를 못한 것도 아니고 비축분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비축분 보호 정책에 의해 쉬다 왔습니다. 웬만한 약속은 칼 같이 지킬 터이니 믿어주시길 '에라 모르겠다.' 아크는 술 한 병을 병째로 원 샷 했다. "레골룸스. 아무리 인간이라 지만 인간 중에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본 적 있습니까? 게다가 취하지도 않다니……." "아니오. 아마 저 녀석처럼 저렇게 술 드럼통 한 통을 비워 버리는 인간은 본 적이 없습니다." -쾅 "크으 술 맛 좋타!" 아크는 원 샷 하느라 옆으로 새서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한번 슥 훑고 죽일 듯한 살벌한 눈초리로 리엔느를 쏘아보았다. "뭐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쓰는 리엔느. 그런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아크는 술을 한 모금 더 머금고서 말했다. "너만 괜찮다면 내가 리에나의 아빠가 되고 싶다." "……!" 굳어져 있던 리엔느의 표정에 약간의 동요가 생겼다. '잘했네! 아크 군!' 조용해 진 분위기 속에 엘프들은 모두 리엔느와 아크를 주시했다. 인간들이 직설적이란 것은 알았지만 이런 공개석상에서 저렇게 까지 할 줄이야. 리엔느는 잔에 담긴 술을 약간 머금고는 입을 열었다. "……미안하군." "하아~" 아크를 비롯한 이곳저곳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럼 어쩔 수 없지." 저렇게 나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아크는 술병을 하나 더 따서 원 샷 했다. 취하진 않지만 술의 싸한 맛이 느껴졌다. '쯧쯔 완전히 채였군.' 레골룸스는 혀를 차며 아크를 동정했다. 조용해 졌던 분위기는 다시 살아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와중에 아크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촌장님." "무슨 일이죠? 아크 군." "내일 부로 떠날 까 합니다." "……!" 아크의 폭탄선언에 리엔느의 표정은 고백을 받았을 때보다 더 요동쳤다. "이렇게 간다니 못내 아쉽군요. 실연 당한 홧김에 떠나려는 거라면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이……그리고 아직 오크와의 전쟁에 대한 보답도 미처 못 했는데……."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리고 밑천 떨어지고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올 겁니다. 이 대륙에서의 고향은 이곳이나 마찬가지니까요. 보상이야 그때 와서 받으면 되고요." "그러면 날씨라도 좀 풀리면 가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살던 곳에 비하면 그렇게 추운 곳은 아니니까 별 상관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크의 배웅을 나왔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지루하던 엘프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유쾌한 인간. 그리고 엘프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크들을 섬멸하는데 앞장서서 공을 세운 영웅이었던 아크였던지라 그가 떠나는 것이 엘프들로서는 못내 아쉬웠다. "잘 가게 자네를 사위로 못 얻은 게 못내 아쉽구만." "하하하 뭐 좋은 인연들이 있겠죠. 하지만 리에나나 루리엘은 나중에 다시 왔을 때 노려보도록 하죠. 저야 뭐 속성으로 소드 마스터가 되게 해 주는 검도 있으니 일찍 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서 꼭 다시 올 겁니다." "잘 가 아크."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리에나. 근데 엄마랑 이모 어디갔니?" "웅? 글쎄." 자신을 배웅 나온 이들 중에 리엔느와 루리엘이 없다는 것이 의문스러웠던 아크 아쉽긴 하지만 다시 못 볼 얼굴들은 아니어서 그렇게 큰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안녕히 들 계십시오. 야 가자 샌드백!" "이름을 불러라! 이름을!" "흠 그럼 네 녀석 이름 중 두 글자만 따서 부를게. 가자 골룸." "그게 훨씬 낫군." 레골룸스는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그가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봤다면 그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고 생각하며 킥킥거리는 아크였다. 레골룸스는 아크와 몇 년간 동행해 주기로 했다. 이 세계에 대해서 서툰 아크인 만큼 인간 세상에서 20여년간을 떠돌았던 레골룸스가 붙어 다니기로 한 것이다. "그럼 조심히 다녀와야 합니다." "예 촌장님 그럼 이만." 마을을 등지고 아크와 레골룸스는 길을 떠났다. 그들은 촌장의 마지막 인사처럼 얼마 안 가 자신들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오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정말 안 나갈 꺼야?" "일거리가 밀려서……." "아까 다 했잖아. 으휴 답답해!" "……." "아무리 싫어하는 척 하고 있다고는 해도 잘 가라는 인사도 안 할거야?" "너 혼자 해." "맘대로 해!" 난폭하게 나가 버리는 루리엘. 리엔느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참을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리엔느의 눈에 흰색 털실로 짠 스웨터가 들어왔다. 리에나에게 주려고 짜던 것이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커져 버려 아버지에게나 드릴까 했던……. "……." "잘 가 아크. 꼭 다시 돌아와야 돼!" "너 꼴 뵈기 싫어서라도 와줄란다." "그만 가자." 막 길을 나서려는 찰나 헐레벌떡 뛰어온 루리엘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아크는 발걸음을 옮겼다. 가볍게 빠른 경보로 걷는 아크를 보며 레골룸스가 말했다. "걸음걸이가 많이 빨라졌군." "어라? 그러고 보니 그러네." 선천적으로 빠른 엘프들의 발걸음을 따라잡기 힘들어했던 아크였지만 자동 민첩성 증가 덕분에 오히려 이제는 레골룸스를 조금씩 앞질러 가고 있었다. "캬 정말 아템빨 하나는 끝내주는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레골룸스의 핀잔을 듣던 아크는 문득 레골룸스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야 근데 너 칼은 어따 두고 왔냐?" "음? 앗! 이런 빠뜨리고 왔다!" "에라 이 정신 빠진 놈아!" "갔다 올까?" "아서라 귀찮게 시리 자 당분간 이거 써라." 아크는 자신의 프로즌 아이스를 내밀었다. 검을 받아 든 레골룸스. 프로즌 아이스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레골룸스는……. "커헉! 이 이건 드래곤의 마법 검! 빙한계 고위급 마법 블리자드까지 걸려 있다니……." "거기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을 얼려버리며 나 정도의 미약한 마나로도 100여발이 넘는 3서클 급의 아이스 미사일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아크라우스 말로는 1서클 급으로는 900발이 나간다는군." 레골룸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5서클의 마스터라도 그렇게 많은 아이스 미사일을 날리지 못한다. 그런데 아크 정도의 미약한 마나로 5서클이 넘는 위력을 발휘하는 검이라니……. 만약 자신이 사용한다면 몇 천 발이 나갈지 모를 아마 오크들을 얼려버리던 그 기적은 이 검이 연출해낸 것이 분명했다……욕심 없는 레골룸스였지만 이 정도 검이 탐이 안 날 리가 없었다. 그런 레골룸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아크가 넌지시 물었다. "왜? 갖고 싶냐?" -끄덕 끄덕 "미쳤냐? 내가 그런 칼을 널 주게? 그리고 검날은 잡지마. 주인이 아닌 이상 그 칼은 누구든지 얼려버리니까." 크게 실망한 레골룸스는 궁금한 점을 아크에게 물어보았다. "이 칼은 어디서 난 거냐?" "아크로니아가 주더군. 이 지금 내가 차고 있는 칼 있지? 이것도 고놈이 준거야. 휘두르기만 해도 30년 안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이루어 주고, 각종 고위급 신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군. 또 자동으로 힐과 근력 증가, 민첩 증가등의 축복도 내려 주는 칼이지 그 덕에 너하고 똑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는 거야." '훔쳐서 튀어버릴까?' 아크의 칼들을 훔쳐 달아나려는 엄한 생각을 해 보는 레골룸스. 하지만 그의 자존심과 금욕적인 마음가짐은 절대 그것을 허락치 않았다. 그치만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엇는지 레골룸스는 나지막하게 비아냥거렸다. "돼지 목에 진주로군." "뭐시여? 죽고 잡냐?" "날 죽일 수 있나? 우습군." "이 시키가 요새 좀 나아지나 했더니 여전히 싸가지가 못돼먹었구먼. 이 칼들만 있으면 너 정도는." "훗! 그 검들 중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데 어떡할까?" 칼을 인질로 잡고 뻐기는 레골룸스. 하지만 아크는 그런 그의 행동이 가소로울 뿐이었다. "프로즌 아이스!" 아크가 외치자 레골룸스에게 들려져 있던 프로즌 아이스가 그 즉시 아크의 손으로 순간이동했다. "이래도 개길래?" "……아니다 갈 길이나 가자." 비굴해지는 레골룸스. 아무래도 저 아크 녀석과 다니는 인간 세상 여행이 순탄치 않을 것 같은 안좋은 예감이 드는 레골룸스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안 춥냐?" "검빨 덕에 전혀 안 춥다. 정말 쓸데 많은 녀석이라니깐. 방한 작용까지 있을 줄은 나도 몰랐군." 약간 서늘하기는 했지만 확실히 프로즌 아이스를 떼어놓으니 블레싱 소드의 자동 방한 작용으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아크는 그다지 춥지 않았다. 그때 레골룸스가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흠.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군. 싸울 준비해라." "뭐? 벌써 습격이." "달려오는 속도로 봐서는......엘픈가? 잘은 모르겠지만 싸울 준비해라." 아크와 레골룸스는 각자 검과 활을 꺼내들고 경계 태세에 나섰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뛰쳐나온 것은...... "헉 헉 잠깐만." "리엔......느?" "무슨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 리엔느양?" "이거......받아라 아크. 리에나 줄려고 만들던 건데 좀 크게 만들어 져서 날씨가 추우니까......입어." 리엔느는 품에 안고 있던 하얀색 스웨터를 아크에게 건넸다. 그런 리엔느의 표정은 숨이 가쁜 듯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다. "이거 주려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작별 인사 겸 온 거다. 옷은 추울까봐 가져 온 거고." "으응......고마워." "그럼 조심히 잘 가라." 리엔느는 어젯밤 아크의 고백을 듣고 그를 보기가 거북했었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 날 아크가 떠난다기에 심각히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 뒤늦게서야 이렇게 따라온 것이다. 아크는 막 뒤돌아 떠나려는 리엔느를 불러세웠다. "잠깐!" "뭐지?" "혹시 말야......" "......?" 아크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말했다. "지난번에 내가 다쳐서 자고 있을 때 나한테......그거 한 게 너냐?" 아크는 그거라는 대명사를 사용해서 물었다. 리엔느가 범인이 아니라면 그게 뭐냐라고 물어 볼 것이고, 범인이라면 순순히 인정하거나 그런 적 없다고 뺄 것이다. 그리고 대 놓고 물어보기가 어색한 이유도 있었다. 리엔느는 붉어지는 얼굴을 급히 돌리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냉정한 톤으로 잡고 대답했다. "......맞아. 그럼 이만." 리엔느는 대답하기가 무섭게 달아나 버렸다. "이 이봐 잠깐! 기다려! 그 그럼......" '뭐야 그럼 저 설녀도 날 마음에 뒀단 소리?' "하핫!" 아크는 허탈해졌다. 그의 예상대로 리엔느는 자신에게 호감은 있으되 애써 냉정하게 대하는 그런 캐릭터였다. 마음에 묻고만 있었는데 자기가 떠난다니까 이제야 실토를 한 것이다. 그런데 왜 내 고백을 거절한 거지? 그런 아크의 의문은 말없이 아크를 지켜보던 아크라우스가 해결해 주었다. "흠 그건 저 엘프 계집이 널 마음에 두면서도, 동생이 좋아하니까 라든지, 집안에서 반대한다든지 등의 어떠한 사연이 있어, 좋아하면서도 애써 떠나보낸다는 그런 연유일 것이다. 묻어만 두려던 마음이 이제 떠난다니까 안심하고 진심을 털어놓은 것일 테고." "그 그런 뻔한 3류 드라마 같은." "후 여심이란." 한 마디로 아크. 그는 괜히 마을을 뜬것이다. 애초에 그거 몰래 한 게 너냐 라고 물어 봤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라도 제대로 확인했을 거 아닌가? 다시 돌아가 리엔느를 잡고는 싶었지만 이제 늦었다. 떠난다고 난리를 쳐 놨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자니 뭔가가 캥기는 것이다. '한 이 삼 년 만 떠돌다 돌아와야겠군.' 그때 지금껏 조용히 이 이해 못할 한 편의 신파극을 감상하던 레골룸스가 입을 열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냐?" "쩝 리엔느도 날 좋아한댄다.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흠 타 종족에 배타적인 우리 엘프족 여성들이 도대체 왜 네놈이나 그 자에게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군. 아크 네 녀석의 변태 행각을 들어보니 영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인간들에게 반할 만한 점이 있나?" "왜 없냐?" "시기하고, 질투하고, 탐욕스럽고, 남을 배신하면서 항상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지 그게 다 사악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걸 부정하지는 않겠지?" "쩝 그건 그렇다만. 욕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인간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아크의 말은 옳았다. 인류는 욕심을 통해 무언가를 발명해 내고 역사를 발전시켰다. 강한 성욕 덕에 번식이 빨랐고, 탐구욕에 끊임없이 지식을 쌓고 창조욕에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었다. 지구에서의 예로 서양에서 식민지를 더 차지하고픈 욕심으로 항해 기술을 발달시키고 신 문물이 퍼졌으며, 지식에의 욕구로 생간 과학이 세계를 발전시키며, 자유욕구로 인하여 수 천년간 왕과 지배층에게 있었던 권리와 자유를 민중들이 찾아 온 것이 아닌가?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땅을 늘리고픈 욕심에 타 종족들을 모두 산간 벽지로 밀어 넣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끼리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자 수 없이 싸워 왔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마법을 발전시키고 검술을 연마했다. 그에 비하면 엘프들은 어떤가?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빼고는(그나마 식욕과 성욕이 강한 것도 아니다) 별 욕심 없이 무료한 절간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오크들의 위협과 자신들의 미모를 노리는 인간들로부터 마을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검술과 마법을 배우기도 하지만 그것 뿐 끈임 없이 강해지려는 욕심 따위가 별로 없었다. 실제로 몇 백년 씩 수련을 했음에도 소드 마스터가 없다는(인간들이 그 정도 수련하면 자질 있고 실력 있는 기사들은 소드 마스터가 되고도 남는다 인구 수 자체에서 비례가 안 된다는 점을 뺀다면)그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인간들의 번식력과 숫자, 무력에 밀려서 이런 벽지로 대륙 전체에 있던 터전을 모두 잃고 이런 벽지로 처박힌 것 아닌가? "쩝 그만 가자. 골룸아 한 10년 정도 떠돌까 했는데, 아무래도 좀 일찍 돌아와야 할 것 같다." "그러지." 두 남자는 계속해서 갈 길을 떠났다. 하지만 아크의 발걸음은 그다지 가볍지 않았다. "에휴 노숙이냐?"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는 어쩔 수 없다. 불의 정령에게 부탁해서 주변 온도는 올려놨으니 얼어죽을 일은 없을 거다." "쓰으읍. 이런 암내나는 사내놈이랑 다니려니 미치겠군." "암내는 무슨 암내냐! 이 자식아!" 확실히 암내는 안 났지만 그리드란을 만나러 리엔느와 함께 여행을 떠났을 때가 생각나버린 아크는 괜한 투정을 했다. 아리따운 미소녀와의 단 둘이서 떠나는 여행과 재수 없는 레골룸스와 가는 여행길이 같을 리가 없었다. "밥이나 먹자. 배고프다." "씹어라." 레골룸스는 아크에게 생전 처음 보는 풀들을 내밀었다. 하지만 아크는 생전 처음 보는 풀이라는 신기함보다는 그 양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겨우 이것 뿐?" "그래 뵈어도 한 장이면 이틀동안 아무 것도 안 먹어도 별 무리 없게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엘프들이 장거리 여행에서 주로 소지하는 식량이지." "쳇 더럽게 쓰네." "맛은 장담 못하지만." "이게 바로 개풀 씹는 맛이구나." 엘프들의 채식과 생식에 익숙해 질 만도 했건만. 아크는 여전히 쓴맛나는 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익혀 먹으면 먹을 만은 했지만. 익히면 풀의 영양소가 다 날아간다나? 곤욕스런 식사를 끝내고 둘은 각자 그럭저럭 평평한 맨땅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야 니가 오늘은 불침번 서." "왜 나냐?" "아 누가 맨날 너보고 서래? 오늘 네가 서고 내일은 내가 하면 되지." "쩝 뭐 그러지." 레골룸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을 꺼내 들었다. "졸지 말고 상황 잘 살펴라. 새벽쯤 되면 깨워. 그때부터 내가 불침번 설 테니까 졸리더라도 그때까지만 참아." "알아서 해라." 오랜만에 아주 일찍(현재 시각 오후 9시)잠자리에 드는 아크. 하지만 엘프 마을에서도 절대 12시 이전에 잠들지 않던 그가 이런 이른 시간에 잠이 올 리가 만무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아크는 결국 잠들지 못하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야 골룸아. 지루하고 잠 안 와서 미치겠다. 재밌는 얘기 좀 해 봐라." "그런 거 모른다." "이 멍청한 놈이 나보다 몇 갑절은 더 살았으면서 그딴 이야기 거리 하나 모르냐 임마?" "그러는 네 녀석은?" "훗 제법 많지." "나도 가만히 이 짓거리 하려니 심심하다. 네 녀석이 한 번 해봐라." "흠......그래 까짓 거 내가 이야기 하나 해 주지." 멍석을 깔아주자. 아크는 참 감명 깊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제목은 옆집 누나." "옆집 누나?" "그래." "흠 시작해봐." "에 친구의 누나와 한 방에 있게 되었다. 누나는 갑자기 덥다며 웃옷을 벗었다. 그러면서 열이 난다며 누나는 내 손을 자기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나는 놀라서 급히 누나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그러더니 누나는 졸립다면서 입고 있던 옷들을 모두 벗어버렸다. 나는 누나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누나는 난 잘 때 다 벗고 잔다면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운 누나는 눈을 감고 다리를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면서 누나의......" -퍽! 아크는 레골룸스가 던진 돌에 맞고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미친 놈! 귀 썩는다!" 돌멩이에 맞았지만 블레싱 소드의 오토 힐에 영향으로 바로 부활한 아크는 이야기를 계속하려다, 레골룸스가 무서운 표정으로 활을 겨누자 급히 입을 다물었다. "닥치고 가만있어!" "야 임마! 뭐가 어쨌다고 이 난리야? 이야기만 재밌구만." "그만두자. 잠이나 자라." "에휴 나 혼자 중얼거려야겠군." 아크는 도로 누웠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대기 시작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나는 캠퍼스 정문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 나의 눈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긴 생 머리의 여인이 보였다. 계단 위로 그녀의 스커트 속이 보였다. 찰싹 달라붙은 그녀의......나는 그녀의 뒤를 밟았다......그녀가 막 자신의 자취방에 들어가려는 차란 나는 몸을 날려 그녀의 입을 수건으로 막았다......노란색 티셔츠 속에 그녀의 커다란 유......그녀의 삐리리리리가......삐삐 흘러 내렸다......삐삐삐삐삐삐삐삐삐삐......호오 더 하고 싶은 모양이지.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좀 닥쳐!" 아크의 정신 공격에 레골룸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외설적 이야기이지만 청각 좋은 레골룸스가 그것이 안 들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여태까지 듣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재미는 있는 모양이다. 아크는 이렇게 야설로 레골룸스를 놀려먹는 것에 묘한 재미를 느꼈다. 킥킥 저 발광하는 모습이라니 남 놀리는 것은 놀림을 당하는 피해자가 반응할수록 더 재미있는 법이다. "아 알았어 임마! 이번엔 정말 가슴 찡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마." "크흠 해봐." 아무리 좋지 못한 내용이지만 심심했던 레골룸스는 아크의 이야기 듣는 데 어느 정도 재미를 붙인 모양인지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소꿉친구였던 히로유기와 알카리." 시작된 아크의 미연시 게임 스토리 읊어주기. 미행류나 애자매류의 무조건 H씬이 아닌 공략 후 호감에 따라 H씬이 나오는 그런 류의 미연시라면 초 중반 후반까지 가슴 따뜻한 러브스토리로 나가다 막판 뒤집기로 H씬이 나오니 잘 가다 뒤집어서 레골룸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전 두 편의 야설과 초 중반이 다르게 진행되자 레골룸스도 점점 아크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그리고 후반 클라이막스! "이런 젠장 서질 않아!" "......!" 레골룸스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곧이어 H씬으로 넘어 갈 만한 장면이 그냥 넘어가자 대충 봐 주는 모습이었다. "알카리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 "히로 짱을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어." -뚝 아크가 읊은 이 대사에 레골룸스의 이성의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악! 이 자식이!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에 그 따위 짓거리를 집어넣어? 죽엇!" "야, 야 참아!" 아크는 발광하는 레골룸스를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얌마 골룸. 삐졌냐?" "닥쳐. 이제 네놈 이야기 안 듣는다." "이번엔 진짜 야설 아닌 걸로 해줄게." "계속 그래 봐라! 이 화살이 어디로 날아가 꽂히는지." "옛날, 옛날." "쏜다!" "야 인마 조금만 들어본 다음에 쏠려도 쏴. 안 그래도 화살이 이렇게 겨누어져 있는데 내가 뻘소리 하겄냐?" "......" 레골룸스가 잠잠해지자 아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에 사우런이란 마왕이 있었지. 오크와 연합한 그 마왕을 막기 위해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는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그리고 곧 대규모 전쟁이 일어났지." "엘프가 드워프나 인간 따위와?" "조용히 들어! 그렇게 연합전선을 구축한 그들은 마왕 사우런과 대대적인 전쟁을 펼치지, 하지만 사우런에게는 엄청난 힘을 주는 절대 반지가 있었어. 그래서 그들은 마왕을 이길 수 없었지, 그런데 운 좋게도 인간의 왕이 절대 반지를 빼앗고 마왕 사우런을 물리쳤다." 진중해진 레골룸스. 야시시한 분위기를 끌고 가던 전의 이야기와는 달리 연합전쟁을 들고 말하는 것을 보니 흥미가 동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반지의 모든 힘을 끌어내어 쓸 수 있는 사람은 마왕 사우런 뿐이었다. 그래서 엘프족 족장이 인간의 왕에게 그 반지가 태어나고 또 유일하게 그 반지를 녹여 없앨 수 있는 빌길에 던져 버리라고 했어. 그러나 탐욕을 부린 인간의 왕은 그 반지를 자신이 가졌다■(중략)■그렇게 해서 드워프, 호빗, 인간, 엘프들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반지 원정대가 반지를 없애러 가게 된다■■." "뜸들이지 말고 빨랑 얘기해라!" '짜식 완전히 빠졌군.' 아크는 내심 흐뭇했다. 리에나도 이런 식으로 아크의 이야기에 푹 빠지곤 했다. 이런 지구에서의 게임이나 만화, 영화, 소설 스토리 수 백 개를(야설포함)알고 있던 아크였기에 이런 스토리들을 소설이나 희곡으로 쓴다면 아크는 이쪽 세계에서 제일 가는 문학가가 되리라. 하지만 애초에 레골룸스에게 반지의 제왕 이야기를 들려 준 것은 심심해하는 레골룸스를 위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 레골룸스가 줄인 애칭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골룸'에 대해 말해주고 그것을 토대로 레골룸스를 폭주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되물어보자. 호빗족이 절대 반지를 얻기 전 반지를 가지고 있었던 괴물의 인상착의는 어땠지?" 아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민하는 레골룸스. 그러던 그는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 대답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짓이란 것도 모른 채. "걸레 자루 팬티 한 장 걸치고, 피부는 타버린 것 같은 잿빛에, 눈 만 되게 크고, 삐쩍 마른 몸에 머리카락은 대머리에 몇 가닥 치렁치렁 남아 있으며, 마이 프레셔스라는 울음소리를 내는 괴물이라고 했지?" "잘 외워 뒀군."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 괴물의 이름이 바로 골룸이다." "?" 아크의 말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한 레골룸스. 그러다 골룸이란 괴물과 자기 이름의 동질성을 생각해 내고는 얼굴 색을 잿빛으로 물들여 가는 그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날 골룸이라고 부른 건 단순히 줄여 부른 게 아니라 그 괴물과 같은 이름이라고 놀린 거구만?" 아크는 실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호오 이제야 알아들었구먼? 지난번에 내가 네 녀석 머리털 다 밀어 버린 적 있지? 그때 왜 네 녀석 머리를 몇 가닥만 남겨 놨을까?" 레골룸스는 이제야 뜬금 없이 아크가 자신의 머리를 밀어버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머리를 밀려면 다 밀 것이지 왜 몇 가닥만 치렁치렁 남겨 놨는지 궁금했는데 그게 다 그 골룸이라는 괴물과 비슷하게 보이려고 한 짓이리라......이런 사악한! "마이 프레셔어스! 골룸 골룸! 푸히히 야 골룸아!" 아크는 정말 유치하게 레골룸스를 놀렸다. 초등학생이나 하고 놀 만한 짓거리. 그러나 레골룸스는 그 유치한 도발에 또 다시 발광했다. "크크크 죽어라 이 망할 인간아." "야, 야 진짜 화살까지 날릴......으걋!" 만약 아크가 화살을 피할만한 실력이 못 되고 블레싱 소드의 보조마법빨이 없었다면 그날 밤 아크는 세상을 떴으리라. 길게 이어진 군사의 행렬. 그들은 총사령관 론 루네아 후작과 부사령관 체제린 그론다이저 백작을 필두로 한 디그리스 왕국의 폴티아 육군 원정대였다. 약 4만에 가까운 병력, 총 12만이 조금 넘는 디그리스 군의 약 3분의 1 병력으로 행군시간이 길고 길이 험한 만큼. 체력 좋은 병사들이 주로 배치되었다. 디그리스의 기사단도 대부분의 기사들이 이쪽 육로 원정에 몰려 있었다. 레인하르트 공작이 맡은 해상전에서는 대체로 함포 사격 등을 통해 승패가 결정 나곤 했었기에 수상전에 잔뼈가 굵은 병력이 그쪽으로 동원되었다. 그 덕에 현재 파푸치아를 통과하고 있는 중인 육군은 디그리스 군의 최 정예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전쟁은 모두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디그리스에 있어서 폴티아는 반역으로 분단된 땅이었기에 반역자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데다, 이 날을 위한 철저한 준비 덕에 소드 마스터 론이 영입되고 육로가 뚫리자마자 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선봉대가 지나가고 군사 행렬의 본격적인 본진의 최선두에는 말을 탄 늙은 장군 그론다이저 백작과 키가 조금 왜소하지만 온몸에 철갑을 두른 채 걷고 있는 루네아 후작이 있었다. 총사령관이라는 자가 자기 걸음으로 걷고 있자, 그 뒤를 편히 말 타고 따라오는 기사들의 맘이 편치를 못했다. 처음엔 말을 타라고 권유해보기도 했다. 허나 말을 타지 못한다는 말과 100kg이 넘는 육중한 중갑을 입고도 말보다 두 세배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후작을 보자 한 마디 하려던 부하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은 처음에는 레인하르트 공작이 부기사단장과 해군사령관으로 밀려나자 후작을 곱지 못한 시선으로 봤지만 그의 실력을 보자 그 누구도 후작에게 딴지를 걸지 못했다. 오히려 일말의 존경을 보이는 그들이었다. "저기 사령관 각하." "뭐지? 그론다이저?" "아직 전투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철갑을 두르고 걸으실 필요까지는." "아 그건 내 미모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남색가들이 늘러 붙어 귀찮을 것 같아서 그런다네." "......하하 그러십니까?" 사실 그론다이저 백작은 후작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걷는다는 걱정보다는(사실 소드 마스터인 론이 저 정도쯤의 갑옷을 무거워 할 리도 없다.)레인하르트 공작이 말했던 후작의 외모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처음 봤을 때부터 저렇게 철밥통을 푹 눌러 쓰고 다니니 당최 낯짝 한 번 볼 수가 있어야지. 그러면서 너무나도 뻔뻔스럽게 남색가 운운하는 것을 보니 외모에 자신은 있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선봉대의 병사 한 명이 전방에서 급히 달려와 말에서 뛰어내린 뒤 후작 앞에 부복했다. "총사령관 님!" "무슨 일이냐?" "최전방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적? 누구냐? 오크? 엘프? 오우거? 그것도 아니면 폴티아군의 매복?" 그론다이저는 병사의 보고에 후작 대신 궁금증을 표했다. 병사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곧 그론다이저 백작의 물음에 답했다. "저 그게......단 둘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둘이라면......설마 사이클롭스같은 대형 몬스터?" "아뇨. 인간 하나와 엘프 하나입니다." 그론다이저 백작은 병사의 보고에 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거 하나 처리를 못하고 예까지 와?" "대단한 실력자들입니다. 정령 마법에 신성마법 게다가 괴상한 얼음기술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검도 제법 잘 다루는 녀석들입니다. 레인하르트 후작님께서도 당하셨습니다." "그런!" 레인하르트 후작은 론에게 당했던 레인하르트 공작의 둘째아들이었다. 비록 소드 마스터인 론에게는 쪽도 못 쓰고 작살났지만 왕국 내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였다. 그런 그가 당할 정도라면. 론은 즐겁다는 말투로 말했다. "재미있겠군요. 안 그래도 이렇게 걷기만 하기가 지루했었는데......갔다 오겠소. 그론다이저 싸움구경하고 싶으면 알아서 따라 오시구랴." "예? 저도 같이." 그론다이저가 주절거리는 사이 어느덧 론은 경공을 사용하여 자리를 비웠다. "야 골룸아 근데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일단은 거리도 가깝고 진출도 쉬운 동부쪽으로 갈 생각이다. 오크들도 대대적으로 남쪽으로 후퇴를 했기 때문에 지금 이 길을 탄다면 늦어도 한달 안에 디그리스란 인간들의 왕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흠."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레골룸스의 말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방향치인 자신은 십중팔구 길을 잃게 된다. "그나저나 다크 위저드하고 창세기전쟁 이야기 다음 편은 언제 해 줄 거냐?" "짜식이 절단마공의 미학을 모르고 자꾸 졸라대기는......원래 이런 건 말이야 듣는 이의 궁금증을 극대화 시켜 놓고 결정타를 먹여야 재밌는 거라구. 그래 내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노소우드 평원에서 데스나이트들하고 싸우는 것까지 얘기했다. 창세기전쟁은 쿠리스티앙이 황제를 죽이려는 형을 사살한 것까지." "푸훗 짜식 완전히 빠졌구만. 확실히 이 이야기들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지. 리에나도 그랬으니까." "확실히 재밌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걸 쓴 인간작가들의 상상력이 놀랍군." 아크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사기를 치려다 곧 그만두었다. 아무리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그런 창작물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는 것은 그것을 쓴 작가들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베르쿠스의 엄청난 골렘과 리치부대였다. 결국 접전 끝에 이카룩스의 원정대는 모두 노소우드 평원에 뼈를 묻게 되지......다이면은 그렇게 리치가 되었고, 트루베노아는 오크의 대륙이 되고 만다." "끝인가? 아쉽군.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원정에 실패하고 대륙이 오크들에게 넘어가는 이야기가 나오자 레골룸스는 김칫국부터 먼저 마셨다. 하기사 누가 들어보아도 끝나는 분위기였으니 어쩔 것인가? 그 대륙의 인간들의 운명을 걸고 떠났던 원정대가 나 죽어버렸는데. "안 끝났어! 골룸 새꺄!" "다 죽었으면 끝난 거지." "크루센 대제에 의해 넘어간 알카디아의 인간들은? 그리고 주인공은 리치가 되기는 했어도 살아는 있다고, 리치는 주인공이면 안되냐?" "그럼 계속해봐." "네 녀석이 멍청해서 김 샜다. 다음 시간에." "또 나왔군. 절단마공." 레골룸스는 한숨을 쉬며 가던 길을 똑바로 걸었다. "뭐 상심 마. 지금부터 과부촌 4를." 아크는 야설을 레골룸스에게 또 들려주려다. 레골룸스가 갑자기 검을 뽑아들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레골룸스는 검을 아크에게 겨누지 않고 경계태세에 나섰다. "뭐 하는 거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지금껏 네 녀석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서 몰랐는데, 거대 몬스터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다." "호오 거대 몬스터라? 드디어 우리 파티에도 위기가 닥치는군."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 제대로 된 블레싱 소드의 위력 실험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다. 좀 강하다 싶은 녀석이면 냅다 튀면 된다. 나무를 좌우로 쓰러뜨리며 나타난 우리의 가엾은 사냥감은...... "우오오오!" "트롤이군. 오우거에 비해서 체격은 더 크지만 힘이나 체력 스피드는 전체적으로 딸린다. 하지만 재생력 하나 만큼은 엄청나게 뛰어난 녀석이지, 저놈의 피는 마법사들이 포션을 만드는데 쓰이는 비싼 수집품이다." "......!" 아크는 비싼 수집품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의 먹자 욕구가 발현된 것이다. "우워어어어!" "후 재료 아이템을 떨어뜨린단 말이지?"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트롤의 발목을 베었다. 아무리 재생력이 좋다 하더라도 완전히 잘라버리면 다시 재생하지는 못할 터였다. 그러나 아크의 어설픈 검술로는 트롤의 발목을 절단하지 못했다. -휘잇 휙 휘릭! 레골룸스가 쏜 화살들이 트롤에게 속속들이 명중했다. 그리고 그 화살들 중 일부는 트롤의 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좋아! 이제 조금만 조심하면 저놈에게 맞지 않는다. 눈이 재생되기 전에 빨리 해치우자!" "오케! 모가지를 한방에!" 장님이 된 트롤에게 달려드는 아크. 그것은 그의 생노가다가 시작됨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레인하르트 후작님!" 멀리 정찰을 나갔던 정찰병 한 기가 나타나 선발대의 대장 레인하르트 후작을 찾았다. "무슨 일이냐? 전방에 적이라도 나타났나?" "그게 아니라 길목에서 인간 전사와 엘프 궁수로 이루어진 파티가 트롤을 사냥하고 있습니다." "트롤? 으음." 레인하르트 후작은 중군에서 따라오고 있을 궁정마법사 막가이어가 한 말이 떠올랐다. '도중에 트롤이나 오우거를 만나면 꼭 잡아 그들의 피를 채취하십시오. 트롤의 피는 포션의 주재료가 되고, 오우거의 피는 마법 시약에 들어가는 첨가제이니 저에게 가져오신다면 전쟁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품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들이 트롤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더냐?" "자세히는 모르지만, 전투는 압도하고 있으나 트롤의 재생력 덕분에 트롤을 죽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빨리 그 쪽으로 가자. 전투를 도와주면서 그들에게 트롤의 피를 얻는 거다. 설사 주지 않는다면 뺏거나 흥정을 해 보도록 하고. 전투시 포션과 신관은 언제나 모자란 법이다." 디그리스 군 선발대는 일반 병사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사단과 대 몬스터 전에 특출 난 용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얼마 안 가 디그리스 군 선발대는 접전지역으로 당도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엄청난 신성력을 내뿜는 괴상한 복장과 검은머리, 누런 피부의 성기사(?)와 짧은 금발에 남색가들이 탐낼 만 한 미모를 지닌 남자 엘프가 눈에 화살 박힌 트롤과 계속되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레인하르트 주니어는(레인하르트 후작)자신을 뒤따라 온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트롤과 고전하시는 성기사님을 돕는다. 전원 공격!" "이야아아아아!" 기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트롤에게 돌진했다. 이 뜻 밖에 상황에 아크는 쉴 새 없이 'ㄴㄴㄴㄴㄴ'를 외쳤지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트롤은 여러 토막으로 분해되었다. 토막 나면서 트롤의 피가 솟구치자 레인하르트 후작의 당부를 들은 기사들은 빈 병을 가져다 대고 땅으로 그냥 흘려 버릴 뻔한 트롤의 피를 받아냈다.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웃는 얼굴과 존대말로 아크와 레골룸스를 대했다. 트롤의 피를 나눠 달라는 아쉬운 말을 해야 하는 데다가 뜻밖에 엄청난 신성력을 뿜어대는 고위급 성기사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도움을 주실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어쨌든 고맙소." "......" 레골룸스는 인사답지 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아크는 표정이 단단히 굳은 채 팔짱을 끼고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 냉담한 반응에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약간 당황했지만 곧 자기의 할 말을 꺼냈다. "에. 초면에 이런 말씀드리기가 좀 뭐하지만 저 트롤의 피를 저희에게 조금 나누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레인하르트 주니어의 말을 들은 아크의 이마에 실핏줄이 어렸다. 아크는 지금 기분이 X 같았다. 갑자기 난입한 웬 기사놈들에게 단체 스틸을 당한 데다가, 트롤이 죽어가며 흘린 피를 뻔뻔스럽게 먹자 까지 해놓고 조금만 달라고? 스틸에 먹자 까지는 웬만해서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구걸까지? 이런 쳐죽여도 모자랄 비 매너 새끼들! 아크는 문득 자신이 게임을 할 때, 게임 상에 존재했던 비 매너 길드 불사조 먹자단이 떠올랐다. 한 놈 찍어서 졸졸졸 쫓아다니며 스틸에 먹자를 일삼는 스토커 길드. 열 받아서 PK를 뜰려고 해도 그 쪽수가 더러워서 당하기만 했던 안 좋은 추억. 그리고 그렇게 단체 스틸을 당할 때마다 아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야 이 개XX X같은 새끼들아 XX에 쇠파이프 박히고 싶냐? 어디서 이 개X만한 새끼가 스틸에 먹자에 구걸까지 하고 지랄이냐? 너 오늘 현 피 한번 당해봐라! XX놈아!" 안 좋은 추억 덕에 화가 폭발해 버린 아크는 다짜고짜 레인하르트 주니어에게 덤벼들었다. "큭 왜 이러는 것이오?" "비 매너는 다 영구블록 먹여야 돼!" 아크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마구잡이로 블레싱 소드를 휘둘렀다. 마구잡이의 검격이지만 나무 막대기 정도 뿐의 무게만이 느껴지는 블레싱 소드는 그야말로 쾌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검술만큼은 아크보다 뛰어난 레인하르트 주니어였지만 무거운 바스타드와 나뭇가지 무게의 블레싱 소드가 같을 리 없었다. 명검이라는 이름 값 답게 블레싱 소드는 처음으로 검과 검이 닿자마자 레인하르트 주니어의 바스타드 소드에 깊은 흠을 남겼다. 그나마 놀란 레인하르트 주니어가 급하게 오러 블레이드를 발동시켰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벌서 검이 두 동강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가 아닌 레인하르트 주니어에게 오러 블레이드의 한계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그 덕에 조금씩 밀리는 레인하르트 주니어. 그리고 그걸 보다 못한 주변의 기사들이 단체로 아크에게 덤벼들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저게 대체 무슨 바보짓인지." 레골룸스는 팔짱을 낀 채 여유로이 아크의 전투를 관람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엘프 놈도 죽엿!" "으헉! 내 내가 뭘 어쨌다고?" 괜시리 미친 소리를 내뱉으며 병사들에게 시비를 건 아크 덕에 레골룸스는 지은 죄도 없이 전투에 동참해야만 했다. "나와랏! 운다이론! 사라만더!" 물과 불의 정령을 동시에 소환해 낸 레골룸스는 아크가 임대해 준 프로즌 아이스를 들고 전투에 참가했다. "......!" 레골룸스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이스 미사일이 자동으로 캐스팅 되어 기사들에게 명중했다. 그러나 마법 방어 주문이 걸려 있는 갑옷에 닿은 아이스 미사일은 부딪히자마자 속절없이 깨져 버렸다. 레골룸스는 원체 뛰어난 검 실력이라 검 덕분에 뻥튀기 된 아크보다 선전하고 있었다. 물론 워낙 적이 많은지라 막고 피하는데 급급했지만 정령과의 연환 공격은 충분히 위력을 발휘했다. "사 상처가 저절로!" 아크를 상대하던 기사들 중 하나가 기겁했다. 보조마법과 좋은 검빨로 선전하는 아크였지만 아무래도 기사들이 많이 달라붙으니 상처가 조금씩 늘었다. 하지만 힐이 자동으로 발동됐기에 상처는 저절로 아물었다. -뎅겅 레인하르트 주니어가 힘에 부쳐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시키지 못하자 아크는 그대로 그의 검을 베어냈다. 그리고 옆에서 공격해오던 기사들의 검도 한 번의 칼질로 모두 끊어버렸다. 아크가 오러 블레이드를 운용하지 못하자 얕잡아 보고 마나를 운용하지 않은 결과였다. "거 검을!" "먹자의 최후는 아템 떨구고 죽는 거다!" 아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었다. 그는 되도록 인간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뭐 특별한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틸에 먹자도 일단은 초범인 것 같으니 목숨을 빼앗을 이유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사실은 PK하면 성향이 나빠질까봐라는 게임 적 사고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져 졌다. 우리들의 목숨을 거두어라." 그러나 기사들은 패배를 곧 죽음으로 인식하고는 아크에게 죽음을 요구했다. 어째서 저 성기사가 자신들에게 칼을 겨눈 건지 몰라서 죽어야 할 이유는 몰랐으나 검이 부러졌으니 진 것은 진 것이다. 전투 시 패배하면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고리타분한 기사도의 원칙에 따라 이 기사들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아크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파렴치한 비 매너 범 들이기는 하지만 그것 가지고 죽이자니 뭔가가 캥기는 것이......현실 세계라 계정 정지 같은 벌을 줄 수도 없고(게임 속세계라 해도 운영자가 아니라서 못한다) "에라 모르겠다." 아크는 일단 고민을 접어두고 아직까지 전투 중인 레골룸스와 합류했다. 프로즌 아이스의 영향으로 얼어서 굳어 버린 칼들이라 쉽게들 잘라졌다. 그렇게 기사들이 모두 당하자 뒤에서 구경하던 병사들은 알아서들 무릎을 꿇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운용하는 11명의 기사들이 모두 당했는데 자기들이라고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후우. 이겼군. 근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기사들을 공격 한 거냐?" 레골룸스는 땀을 슥 닦고서는 말했다. 그러자 무릎을 꿇고 있던 기사들도 아크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도 자신들과 저 성기사와 왜 싸웠는지 영문을 몰랐다. "정녕 네놈들 죄를 모른다는 거냐? 첫째. 우리들이 잡고 있는 몹을 단체로 몰려와 스틸한 죄, 둘째 떨어진 아이템 먹자 한 죄, 셋째 먹자 까지 해 놓고서는 구걸한 죄.!" "당최 뭔 헛소리냐?" 알아서 무릎을 꿇고 있는 기사들의 생각도 레골룸스와 동일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지. "에이! 나도 몰라 인마! 에 아무래도 모르고 한 것 같으니 기합으로 끝내주마! 뒤로 취침!" "......?"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디그리스 정규군들, 아무래도 그런 기합을 모르는 모양이다. "모르냐? 휴 시범 보여준다. 잘 보고 따라해. 이렇게 바닥에 누운 다음에 양쪽 다리를 든다." 아크는 친절하게도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단체 스틸범들은 그 자세 그대로 따라했다. "자 그 상태에서 양팔 하늘 위로!" "끄윽!" "다음은 엎드려 뻗쳐!" 엎드려 뻗쳐란 말은 알아듣는 지 그들은 푸쉬 업 자세로 돌입했다. "자 하나 하면 스틸. 둘 하면 근절! 실시!" "하나!" "스틸!" "둘!" "근절!" "어허 구령이 작다! 왼손 손가락 세 개 떼고 다시 시작한다. 하나!" "스틸!" "둘!" "근절!" "어허 거기 누가 손가락 다 대고 하래? 다시 하나!" "스티일!" "■■." '아 씨 왜 둘 안 해?' 디그리스 정규군들은 팔을 굽힌 상태로 두 번째 구령이 떨어지지 않자. 서서히 힘이 빠졌다. 그리고 결국엔 낙오자가 생겼다. -쿠당 "오호 거기 넘어졌다 이거지? 다리 하나 든다!" "끄으으윽!" "둘!" "그은 저얼!" 아크의 고교시절. 해병대 출신의 마타 선생. 그는 절대로 제자들을 때리는 법이 없는 분이셨다. 그러나 그의 기합신공은 그 어떤 선생보다 그를 공포의 존재로 군림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신공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근육통의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만이 가득했다. 지금 디그리스 정규군들이 하고 있는 손가락 떼고 팔굽혀펴기는 장난의 수준이었다. 책상 짊어지고 오리걸음, 자전거 짊어지고 토끼뜀, 8명이서 자동차 끌고 운동장 달리기, 눈밭에 맨발로 세우기......그런 훌륭하신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았던 아크였던지라 마타 선생에게 배운 것들은 이 이계의 사람들에게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그나마 눈치껏 갑옷을 벗고 기합을 받는 이들은 편했다. 멍청하게 철갑을 두르고 팔굽혀펴기를 하는 이들은 등에 책상 엎고 팔굽혀펴기 하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의 극기훈련을 받았다. 그때 기사들을 구원해 주는 천사의 목소리가 들렸으니. "호오? 내 부하들에게 몸소 체력훈련을 시켜 주는 건가?" "......!"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이 목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겨 주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사령관 님!" "뭐요? 당신이 이 사람들 대장?" 아크는 무심한 눈으로 강철 갑옷을 뒤집어 쓴 단체 스틸범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그래? 대장이니 말 좀 통하겠군. 아니 대장이란 인간이 부하들한테 스틸에 먹자에 구걸을 시켜?" "먹자? 스틸? 그건 뭐지?" 생판 처음 듣는 소리에 론은 그 말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그런 그에게 부하들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들도 잘 모릅니다. 저자가 다짜고짜 알아듣지도 못할 이유를 들어가며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아니 왜 그걸 모르냐구?" 물론 먹자, 스틸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단어의 뜻과 트롤을 잡을 때의 정황 증거 상 알아서 추리해 내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설마 그게 비 매너란 생각을 못하는 건가? 아크의 짐작은 정확했다. 기사들은 트롤을 중간에 공격해 죽인 것을 스틸, 트롤의 피를 받은 것이 먹자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그게 아크같은 게임 폐인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와 분노를 주는 지 깨닫지 못했다. "뭐 그건 당신을 족쳐보면 알 수 있겠지. 무슨 영문으로 내 부하들을 건드렸는지." 론은 즉각 행동으로 나섰다. 그의 검 집에서 산화철 성분의 갈색 빛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검에서는 푸른빛의 오러가 완벽하게 자리잡았고 색깔도 매우 선명했다. 이 광경을 본 아크는 심드렁했지만 레골룸스는 기겁한 채 외쳤다. "조심해라! 아크. 소드 마스터의 완성된 소드 오러다!" "뭣여?" 소드 마스터란 말에 아크는 그제야 긴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은 실험해 보기로 했다. 아템빨의 자신이 저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것인지. 아크도 블레싱 소드를 뽑아들었다. 아크의 블레싱 소드를 보게 된 론은 가볍게 아크를 비웃었다. "검이 아깝군." "딴소리하지 마라! 내가 먼저 가주마!" 아크는 재빠르게 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블레싱 소드를 횡으로 휘둘렀다. 그러나 무언가가 검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빠른 공격이지만 그 정도로는 나에겐 안 통하지. 이번엔 네가 나의 검을 받아 봐."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을 공격해 오는 론의 검. 아크는 그의 검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여기저기를 베였다. 힐로 상처가 남지는 않았지만. '가 강하다.' 방금 전 상대했던 기사들 여섯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 막강함. "본래 실력이 없는 자가 검 하나에 의지하니 겉으론 강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의 나약함이 읽혀지는군. 그래도 검이 좋긴 좋은가봐? 레인하르트 공작에 버금갈 정도라니." 현재의 아크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론. 확실히 지금의 아크는 겉만 번지르르했지 내면의 깊음이 없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감도는 전운 연재는 이틀에 한 번입니다...... '제길.' 아크는 새삼 소드 마스터를 우습게 본 것이 후회되었다. 소설 등에서 워낙 그랜드 소드 마스터니 드래곤이니 드래곤의 힘을 흡수했다느니 하는 강력한 존재들을 많이 접한 터라. 소드 마스터는 눈에도 안 차던 그였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는 지금의 그로서도 멀고 먼 경지다. 30년? 말이 쉽지. 그 시간 동안 칼만 휘두르기도 힘들다. "자 이제 들어볼까? 내 부하들에게 왜 먼저 공격을 가했지?" "난 아직 안 졌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검집에 도로 집어넣었다. "호오? 검도 집어넣고 싸우시겠다? 검을 안 쓴다면 당신은 초보 수련 기사 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인 것 같은데?" "내 전공은 검이 아니거든." 아크가 검을 집어넣자 레골룸스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자신과 두르툰을 꺾었던 바로 그 살인 격투술이다. 솔직히 이기리라고 장담은 못하지만 두르툰 전에서 보여줬던 아크의 악다구니라면 승산은 있었다. "아크! 그 기술을 쓰려는 거냐?" "그래 서브미션과 변칙기술이라면 소드 마스터라 해도 꺾을 가능성이 있어." 론은 철투구 안으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궁금한 걸? 실력 차가 너무 심하니까 내가 몇 수 물러주지. 눈 가릴까? 아니면 양팔 묶기?" "굳이 봐주겠다면 갑옷을 해제해라." "투구를 제외해준다면." "맘대로." 론은 순순히 갑옷을 벗었다. 철갑이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낡은 청의 도복이 보였다. '저런 옷이 이 세계에서도 있던가?' 무협 풍의 론의 옷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아크는 곧 싸움에 정신을 집중했다. "자 먼저 덤벼봐."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론은 모르고 있었지만 블레싱 소드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각종 축복의 효과가 그대로였다. 또 검을 쓰지 말란 이야기도 없었으니 기습에도 용이했다. 거기다 확실히 소드마스터인 론이 강자이니 몇 수 접어 줄 거란 것도 확신했었다. 바둑도 하수가 몇 점씩 깔고 두지 않는가? 또 비전 절정기 급소 치기나 릭 플레어 스타일의 싸움을 하려면 갑옷의 제거는 필수적이었다. 급소가 가려지는 데다가 무거워서 메치기 기술 등을 사용하기 힘들게 했던 것이다. 투구를 벗지 않아 머리 타격기술을 쓰기가 조금은 힘들겠지만 아크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자세를 무너뜨리고 거시기 공격을 먹인 다음 월스 오브 제리코나 샤프 슈터로 끝장을 본다!' "이야압 스피어!" 아크는 첫 기술을 스피어로 결정했다.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에는 급소치기를 제외하고는 스피어만큼 좋은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론도 첫 기술은 그냥 맞아 줄 심산인지 가만히 있었다. -퍽 아크의 어깨가 론의 배에 닿자 아크는 옆의 나무로 그대로 돌진했다. 나무에 햄버거처럼 중간에 끼워 넣고 타격을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인가 론은 아크의 어깨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아크는 그대로 나무에 부딪혔다. "크악!" 아크는 오른 쪽 어깨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스피어 실패는 실제 레슬링 경기와 마찬가지로 치명타였다. "위력은 강한 듯 싶은 기술이군. 하지만 너무 단조로워 그리고 뭐 이래서야 싸울 수도 없겠군." 론은 기분 나쁘게 발로 아크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그것은 론에게도 최대의 실수였다. "어엇!" "방심하지 마라!" 아크는 론의 오른 발목을 꽉 움켜쥐었다. 론은 발을 빼내 보려고 발버둥쳤다. 그러자 아크는 그대로 론의 발목을 쑥 잡아 당겼다. -쿠당 그 덕에 바닥에 넘어지는 론. 그리고 끝까지 발목을 잡은 채 일어서는 아크. "나왔다. 앤클 락!"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골룸스는 새삼 살아있는 샌드백이었던 지난날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앤클 락!" 아크늘 론의 발목을 그대로 꺾어버렸다. "아아악!" 어딘가 삑사리가 나는 론의 비명. "역시 살인 격투 술의 서브미션!" 레골룸스는 저 소드 마스터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자 다시 한 번 아크의 살인 격투 술에 감탄했다. 아크는 두 다리로 론의 종아리를 압박하며 누워서 기술을 걸었다. 앤클락은 아무래도 한쪽 발목만을 제압하기 때문에 남은 다리로 풀려나기가 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누워서라면 풀려날 길이 없었다. 기사들과 곧이어 달려온 그론다이저 백작을 비롯한 중진들도 저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소드 마스터인 후작이 저렇게 당할 줄은. "후작 각하!" "후 그론다이저. 이거 좀 아프다." 아퍼 보이기는 했지만 론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항복해! 기브 업 플리즈! 쉽게 풀리지 않아!" "크흐흑 이거 내가 한 방 먹었는걸? 아야야 제법 아프군." 론은 애써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항복하라고 손으로 바닥을 내리쳐!" "후후 당해주는 것도 이걸로 끝이다. 나한테 이 정도까지 아픔을 줄 줄이야. 대단해......이거나 먹어랏!" 론은 자유로운 한 쪽 다리로 아크가 고정하고 있는 다리를 쿵쿵 내리찍었다. 그렇게 아크의 조이는 다리가 느슨해지자 한 쪽 다리로 몸을 일으키며 그대로 굴렀다. "억!" 론이 몸을 굴리자 론의 다리를 잡고 있던 아크는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역시 앤클 락은 샤프 슈터나 보스톤 크랩에 비해 걸리기는 쉬워도 빠져나오기도 쉬운 기술인지라 론은 쉽게 빠져 나왔다. "후후 재밌었어. 하지만 끝낼 시간이야." 론은 절뚝거리면서도 위압감 있는 걸음걸이로 땅바닥에 부딪힌 여운이 남아 있는 아크에게 다가갔다. 아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다시 한 번 론의 다리를 잡았다. "두 번은 안 통해!" -퍽 "컥!" 간신히 한 쪽 발을 다시 잡는데 성공했지만 아크는 론의 남은 발에 그대로 명치 부위를 차였다. '컥 속이 뒤틀어지는 것 같다.' "언제나 처절하구먼." 레골룸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씁쓸한 듯이 혀를 찼다. 아크 저 녀석은 저 살인 격투 술로 레르가스를 빼고는 누구 하나 완벽하게 제압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아크가 감당 못할 강자들만 건드렸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저렇게 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긴 것이 다반사였다. 애초에 론이 구를 때 지독하게 그의 발을 놓지 않았어야 했다. 앤클 락은 쉽게 풀리는 대신 상대의 발만 집요하게 잡고 있는다면 계속해서 상대의 발을 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론이 풀려날 때 아크가 나가떨어지면서 그는 실수로 론의 발을 놓아버렸던 것이다. "넌 이제 졌어. 그만 인정해." "푸흐 두르툰하고 싸웠을 때 도 아마 이랬지. 미안하지만 아직 내 초 절정 필살기는 보여주지 못했거덩?" 아크는 돌을 집어들고 론의 다리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론은 두르툰처럼 몸빵으로 버티는 타입이 아닌 피하는 타입이라 슬쩍 피해버리는 론에게 전혀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처절하군.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돌팔매질이라니." "엇! 저기!" "뭐?" 아크는 갑자기 놀란 듯이 외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론은 순진하게도 뭔가 싶어, 아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크가 의도한 대로 따라한 것이다. '넌 이제 끝났어. 이 자식아!' 아크는 론의 정신을 다른 데로 돌려놓고 그대로 로우 블로우를 먹일 생각이었다. 상대의 뒤쪽에서 하는 공격인(앞쪽에서도 가능하다)로우 블로우는 충격은 그다지 크지 않은 기술이지만 가랑이 사이로 알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자식의 알을 꽉 잡고 놓지 않으면 그 남성만의 극심한 고통이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그런 다음 연속기로 서브미션을 건다면 승리는 아크의 것이 되리라. 그리고 아크의 손이 잽싸게 론의 가랑이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론의 그 부위를 만진 아크, 그런데. '어라 물컹이(?)가 없어?' "너,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론은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황당해진 아크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하하하하하 서 설마 너?" "이런 미친 새끼!" -빡! 론의 건틀릿이 아크의 안면을 정확히 강타했다. 아크는 쌍코피에다 앞니 하나가 부러져 나가는 중상을 입고서 기절해 버렸다. 벌써 몇 번째냐. 론은 양팔을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었다. 투구 덕에 표정 연기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리얼하게 아픈 티를 내야 했다. "후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큭 뭐 괜찮다." 론이 여러 부하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받고 있을 때 레골룸스는 기절한 아크를 깨웠다. "야 아크! 일어나 인마!" 의식을 잃은 아크. 레골룸스는 그런 그를 깨우겠다는 명분하에 아크에게 주먹질을 가했다. 어차피 이빨 하나 나간 것 외의 상처는 알아서 회복되었으니 스트레스도 풀고 복수도 할 겸 겸사겸사 정신이 나간 아크를 구타하는 레골룸스. 역시 인간관계에서는 원수지고 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사령관님 저놈들은 어떡할까요?" "일단 오늘 행군은 여기서 마치고 막사를 펴라. 엘프는 가만히 놔두고 저 뻗어버린 자식이 의식을 찾는다면 나한테 데려와." "예!" 곧이어 병사들은 트롤 시체 처리하랴 막사 펴랴 분주해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편수 하나 잡아서 공지합니다. 최근 집필 컨디션의 호조로 인해 비축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이틀에 한 편이라는 연재 간격을 6일간 이틀에 두편 씩 연참으로 갈까 합니다. 5월 21일 오전 0시 10분을 기해 두편 5월 23일 두편 5월 25일 두편입니다 웬만하면 편수 까먹으면서 공지하기 싫으니까. 작가 공지 좀 읽어주십시오. 읽고 이것저것 꼬집어 주십시오. 이상하게 칭찬보다 비평들으면 더 힘이 납니다. 항의하는 고객이 잠재적 충성고객이라는 말을 신봉하고 있다는! 그리고 설문조사는 히로인과 H장면의 강도 등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니 많이들 참가해 주십시오 코멘 읽는 재미에 살맛나니 코멘도 달아주시고요. 참고로 말줄임표가 에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쉼표로 처리하니 그것은 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럼 좋은 밤 되시길.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엉망이 된 얼굴의 아크가 단단히 포박 당한 채 병사들에게 붙들려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수고했어. 그만 나가 봐." "옛썰!" 아크를 끌고 온 병사들이 나가자, 막사 안에는 아크와 론만이 남았다. "꼴이 가관인데? 역시 검 없이는 별 볼일 없군." "......" 아크는 고개를 떨궜다. 무장해제를 당한 탓에 오토 힐의 영향을 받지 못해 기절한 아크를 깨운다는 명분으로 기합 받았던 원한을 풀려는 기사들의 집중 구타를 당한 뒤라, 처참한 상태였다. 그에 비해 레골룸스는 싸움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던 터라. 구타, 포박은커녕 무장해제도 당하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엘프 특유의 특출난 미모 덕에 성욕에 굶주린 남색가들에게 추앙을 받으며 편하게 있었다. "이빨도 하나 나갔네?" "좃도 없는 내시 새끼 주제에." 아크가 정곡을 찌르자 론은 속이 뜨끔했다. "크흠! 사실 그 이야기 때문에 널 불렀다." "하긴 소드 마스터나 되는 상관이 거세당한 자라니 내 입을 틀어막아야 할 테지." "뭐? 거세?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군." "에?" "후 오해하는 것도 당연할 테지. 잘 봐." 론은 푹 눌러 쓰고 있었던 투구를 벗었다. 그러자 긴 남색 빛깔 머리의 수려한 론의 얼굴이 드러났다. 론의 얼굴을 본 아크는 그 미모에 놀라 한동안 할 말을 잊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성전환 수술 받을 만한 얼굴이군. 수염 난 게이면 어쩔까 했는데." "야! 너 자꾸 그럴래? 이 얼굴을 봐! 여자 같지 않냐고?" 자신을 여자라고 항변하는 론. 그러나 아크에겐 그것이 트랜스젠더가 수술하고 나서 '이제 나 여자 같지?' 라고 말하는 그런 투로 들렸다. "그래. 거시기 제거도 했겠다. 여자로 보이고도 싶겠지." "아니라니깐!" "아니긴 뭐가 아냐? 목소리는 탁하고 가슴도 없잖아! 가슴이야 절벽이라고 치자! 그게 사내놈 목소리지 여자 목소리냐?" 확실히 론의 목소리는 여자가 남자처럼 보이려 성대모사 하려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이 굵고 묵직했다. "오호 목소리 말이냐? 이제 됐지?" "......!" 갑자기 상큼해진 론의 목소리. "완벽한 남장을 위해서는 음성의 변화가 가장 우선 이지. 그 덕에 다들 날 여자 같은 미소년으로만 보거든. 머리카락 안 잘라도 되고 참 편하더군." '정말 여자인가?' 이런 생각이 들자 아크는 음흉한 상상을 떠올리고는 그것을 바로 실행으로 옮겼다. "목소리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 굵은 목소리가 원래 네 녀석 목소리고 지금 이 목소리가 위장한 목소리인지 어떻게 아나? 정확한 물적 증거를 보여 봐! 가슴이라든지! 거시기라든지! 만약 네가 진짜로 여자라면 잘라낸 흔적 없이 자연스러울 테니!" '킬킬킬 자 이제 증명해 보여라! 너의 그것을!' 점점 변태가 되어 가는 아크. 야동도 없는 이 세계에서 근 반년동안이나 금욕주의로 살아 온 부작용으로 이 건실했던 청년은 미쳐가고 있었다. "뭐, 뭐야? 거시기를 증명해 보이라니!" "훗 못하겠는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너는 신의 섭리를 거스른 이단의 성을 가진 것이라고 믿겠다." 여자라는 생각이 들자, 아크는 당황하는 론의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푸훗! 이 세계로 오니 여복이 터지는군. 이제야 그 많던 하렘물들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조 좋아!" 론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오호 드디어!' "대신." "대신?" "내 말이 맞으면 네 녀석의 목을 베어 버릴 거야!" 갑자기 무진장 보기가 싫어졌다. 론은 청의 도복에 매인 옷고름을 풀었다. "잠깐! 믿을게 믿어! 사람이 사람을 안 믿으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 하하하 안 그래?" "됐어! 똑똑히 봐! 그런 다음 죽어." '화났다!' 론이 옷고름을 풀수록 아크의 생애는 종말을 향해 갔다. "안 볼게요! 제발요! 살려줘요! 믿어요! 믿어! 믿쑵니다!" 아크는 비굴하게 무릎까지 꿇고 빌었다. 겨우 누드 한 번 보자고 목숨을 내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좋아." 필사적인 아크의 호소가 먹혔는지 론은 반쯤 벗어가던 옷을 다시 챙겨입었다. '살았다!' 한숨을 돌린 아크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날 부른 이유가 뭐지? 여자 인 거 확인시켜줄려고 불러 온 것은 아닐 거 아냐?" "여러 가지 이유야." "뭔데?" "우선 내가 여자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발설하지마. 알았어?" "왜지?" "묻지마. 죽여 버리기 전에." "아 알았어." 론은 아크를 요리하는데 협박이 가장 잘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두 번째로 우리 부대에 들어와." "그건 싫어." 론의 두 번째 용건에 아크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왜 이 세계로 오게 됐는가? 애초에 군대가기 싫어서 이곳으로 온 것 아닌가? 그런데 군대에 들어오라고? 절대 못해! 론은 허리춤에서 검을 반쯤 뽑아들고 엄청난 살기를 풍기며 아크를 노려보고서는 말했다. "죽을래?"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크윽 뭐 이런 성질 개 같은 년을 만나서 지랄이냐.' 어쩔 것인가? 힘없으면 알아서 기어야지. 아크는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묻겠는데......" "뭐죠?" 어느덧 아크의 말투는 존대어로 바뀌었다. "너 어디서 왔지?" "엘프 마을에서 왔습니다만." "그게 아니라 어느 세계에서 왔는지를 물어 보는 거야." "......!" "하하 어, 어느 세계에서 왔냐뇨? 전 그저." "거짓말할 생각은 마. 내가 알기로는 너 같은 피부를 가진 인간은 이 세상에는 네 명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내 말이 틀렸나?" 아크라우스가 아크에게 말해주었던 내용을 고스란히 다 알고 있는 론. 아크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걸 어떻게......" "그걸 말해 줄 테니 사실대로 얘기해. 너 중원이란 곳에서 왔지?" "주 중원? 중원은 아니지만 중원과 같은 세계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만." "어쨌든. 그리고 아크라우스란 드래곤이 보낸 것일테고?"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 있는 거지?' "그 그런데요?" "역시..... 사부님 말씀대로군." "사 사부?" "그래. 내 사부님은 중원에서 넘어오신 분이야. 사부님께서는 자신과 같은 황색 인종은 현재까지 네 명을 넘지 않을 거라고 하셨지. 그래서 처음 널 봤을 때부터 확신했어. 네가 사부님께서 그토록 찾던 중원인 이라는 것을." "전 중원인이 아니라." "알아.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중원 동서남북의 오랑캐들 중 하나일테지. 대한민국이라고 했나?" "고려라고 하면 알아 들을라나요?" "코레아? 아! 동이 족들이 세웠다는 나라로군." 역시 이 세계인들에게는 고려란 발음은 자연스럽게 코리아가 되는 듯 했다. "많이도 알고 있군요." "사부님께서 들려 주셨어. 그분이 살았던 곳에 대해서." "그 옷은?" "사부님이 주신 옷이야." 이제야 아크는 론이 입고 있던 도복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이곳에도 저런 옷이 있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지만 저 옷의 출처는 사부란 사람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내 부탁 한 가지 들어주겠어?" "글쎄......하하 그러죠. 뭔데 그러세요?" '글쎄요'라고 말하려던 아크는 조금씩 검집에서 빠져 나오는 론의 검을 보고선 급히 말을 돌렸다. "지금은 안 되겠지만. 나중에 우리 사부님을 꼭 만나줘!" "에?" 너무나 의외의 부탁에 아크는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되물었다. "사부님께선 자신과 같이 차원을 넘어 온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셔. 그 사람들만이 영원히 죽지 않는 자신을 이해해 주고 또 긴 긴 삶의 고독을 서로 달래 줄 수 있으니까." 그런 대로 납득한 아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께요." "후훗 고마워." 론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크윽 녹는다 녹아! "일단 기사단의 일원으로 넣어줄게. 지금은 형편없지만 그 검만 있으면 레인하르트 공작에 버금갈 정도이니 별 상관없겠지. 아 참 그런데 너 이름이 뭐지?" "핫! 그러고 보니 아직 통성명도 안 했군요." 그랬다. 이들은 대화의 시작 전에 해야 할 통성명을 끝날 때가 되서야 하게 된 것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2차 수정판 에 아크와 레골룸스의 기사단 가입에서의 엉성한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단 6줄 정도이지만 론은 몰라도 나머지 지휘부들은 아크와 레골룸스를 믿지 않는다는 그런 부분입니다. 또 그냥 전체적으로 엉성하다고들만 하시지 마시고 뭐가 엉성한지 정확히 좀 지적해 주십시오. 48화도 보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론의 영입에 대한 미심쩍은 부분을 보충했습니다. "내 이름은 론이야 에 이 군대의 총 사령관을 맡고 있는 후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일단은 가명을 쓰고 있고 진짜 이름은 나중에 알려 주지." "제 이름은 아크입니다. 저도 가명이에요. 나중에 진짜 이름 알려 주시면 저도 알려 드리죠." "나이는?" "에 올해 스물 둘입니다." "잘 됐군. 앞으로 단 둘이 있을 때는 누님이라고 부르렴. 난 스물 셋이란다." "그러죠 누님." 보통 사람들이라면 소드 마스터인 론의 나이가 고작 23세라는 것에 크게 놀랐겠지만 아크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워낙 열 몇 살에 소드 마스터니 그랜드 소드 마스터니 되는 이들을 많이 알고 있던 터라.(소설 속 주인공들이기는 하지만)별 반 새로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엘프 친구도 기사단에 들어오라고 권유해 줘. 그 정도 실력이면 거의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데. 좀 수고해 줘. 그만 나가 봐." "저기요 론 누님." "응?" "밧줄은 좀 풀어 주시는게." "참! 미안해." 눈 깜짝할 새에 아크를 묶고 있던 포승줄이 끊어졌다. 아크는 다시 한 번 론의 빠른 검술에 감탄했다. "아크!" "넵." "나중에 꼭 우리 사부님 보러 가는 거다?" "죽기 싫어서라도 가야죠." 아크는 한 번 이죽거린 뒤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아크가 나가고 난 뒤 론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닮은 것 같기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작 각하!" "말 그대로 그들을 기사단에 집어넣으라고." "그런! 위험한 생각입니다. 저 둘의 정체를 어떻게 그리 확신하신 단 말입니까? 말로는 여행자라고 하지만. 폴티아의 첩자일 지도 모르잖습니까!" "엘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외모가 아리따운 엘프들을 두고 인간들은 흔히 별 상상을 다 한다. 먹고 사는 것은 이슬만 먹고, 성격은 평화를 사랑하는 만큼 유순하며, 주신이 내린 신의 나무에서 열매처럼 태어났으며, 거짓말이나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그런데 엘프들과 같이 살아보지도 않은 그 인간들이 과연 무엇을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 물론 대체적으로 맞는 말이기도 했지만. 엘프의 성격에도 개인차와 부족의 차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한 것을 꼭 어떠하다 라며 틀에 박아 놓는 것은 잘못이지 않을까? 하지만 론은 일방적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던 그런 잘못된 지식으로 말했다.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엘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실제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느 소설가가 맘대로 붙여서 검증되지도 않은 설정을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끄흠." 론은 미간을 압박하며 그론다이저 백작을 납득시킬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이봐 그론다이저. 지금은 전쟁상황이야,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하고 있는 거라고. 이럴 때는 한 사람의 병사가 아까운 실정이야. 그런데 뒷 배경이 조금 의심스러워서 그러한 실력자들을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워." "그거야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이 육로 원정은 극도의 기밀을 요구합니다. 적의 뒤통수를 치는 작전이기 때문에 적이 알아 채 버린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작전이란 말입니다. 이런 일에는 조금이라도 더 신중을 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가지 말해두지. 자네는 3만의 병사들 사이에서 몰래 숨어있는 스파이가 무섭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노골적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일부러 싸움까지 걸면서 등용되려 하지 않는 이들이 무섭다고 생각하나? 그들이 뇌가 없는 무뇌충도 아니고 스파이 짓을 하려면 뭐 하러 우리 선발대와 전투를 벌였겠어? 그 정도 실력자들이라면 몰래 병사로 위장할 수도 있고, 직접 찾아와 등용을 청했을 수도 있는데 말야." '모르지. 사령관 당신과 작당을 했을 수도.' 그론다이저 백작은 여전히 의심의 씨앗을 버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군. 생각을 해 봐. 그들이 아무리 스파이라 하더라도 기사단이란 실력자들이 있는 곳에 두면서 우리 지휘부들이 철저히 감시를 한다면 스파이 행각은 금새 드러나게 될 거야. 그리고 선발대의 병사들도 충성과는 상관이 없는 용병들이지 않은가? 그렇게 용병들은 받아들이면서 왜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거지? 용병 기사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나?" "하지만 기사단에 소속시키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입니다. 기사단이란 것은 지휘부들이 있는 곳, 일반 병사들보다 허용된 정보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그리 쉽게 기사단의 자리를 내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어차피 그들 정도의 실력이라면 일반 병사의 직위에 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아 낼 수 있을 거야. 또 소드 익스퍼트 급의 실력자들을 일반 병사들과 섞어 논다는 것은 실력자들에 대한 예우가 아니야. 그정도 실력자들을 일반 병사들 속에 두었다는 전례가 있는가? 자네가 좋아하는 그 전례 말이야." "험험." 그론다이저 백작은 할말을 찾지 못했다. 매일 입에 '그런 전례가 없습니다'를 달고 살았던 그였던지라, 론이 전례를 들고 나오자 차마 더 이상 딴지를 걸지 못했던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은 수긍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대신 뭐?" "저를 감시역으로 제 7기사단에 보내주십시오." "뭐? 그럼 제 4기사단은 어떻게 하고?" "부단장 산토스가 잘 알아서 해 줄 겁니다." "좋아. 대신 더 이상의 딴지는 용납하지 않겠어. 가서 내 대신 그들에게 기사 서임식을 하고 와. 폐하가 하셔야 할 일이지만, 내가 폐하의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별 상관은 없을 거야." "예 그럼." 그론다이저 백작은 사령관 막사를 나갔다. "자네들이 소속된 전대의 막사는 여기일세." "아, 예." 아크와 레골룸스는 그론다이저 후작의 안내를 받아 자신들이 속한 디그리스 정규 기사단의 제 7기사단 막사로 들어갔다. 디그리스의 정규 기사단은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기사들 124명을 모아 놓은 디그리스의 최 정예 기사단이었다. 이 기사단은 각각 20명의 기사들 씩 일곱 개의 기사단으로 나뉘어 각각의 역할 분담을 했다. 현재 국왕의 친위대인 최고 실력자들만 모인 제 1기사단과 신출내기들로 구성된 제 6기사단이 수도 방어를 위해 남았고, 레인하르트 공작이 이끄는 제 3기사단이 해상전투에 동원되었으며 나머지 2, 4, 5, 7기사단은 전부 이곳 폴티아 육로 원정군에 소속되었다. 이 중 제 7기사단은 어느 기사단에도 배정 받지 못한 4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아크와 레골룸스는 바로 이 제 7기사단에 배정 받았다. 레골룸스는 막사 안으로 들어오면서도 연신 투덜거렸다. 그는 평화와 조화를 사랑하는 엘프 족이란 명분으로 이 인간 군대에 소속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었다. 그러나 론의 막사로 불려간 레골룸스가 곧 '난 이제 위대하신 엘븐 나이트'라며 발작을 하는 것을 운디네로 물 좀 퍼부어 주자. 그제야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냐고 아크가 물어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광을 하는 걸로 보아 뭔가 상상하기 힘든 일을 당한 모양이었다. 막 막사로 들어간 아크와 레골룸스는 자신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여 반갑다. 제 7기사단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옅은 갈색 머리를 약간 기른 능글맞게 보이는 인상의 한 기사가 손을 들어 신참들을 환영했다. "에르쿠스 경. 체통을 지키게. 아직 정식으로 소개도 안 했는데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닌가?" "체. 꼴값." 아크와 레골룸스를 따라온 그론다이저 백작이 에르쿠스란 기사에게 호통쳤다. 그러자 에르쿠스는 나지막하게 욕을 중얼거렸다. 백작은 그런 에르쿠스를 한 번 쏘아보고서 다시 입을 열고 신참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오늘 부로 제 7기사단에 입단하게 된 자들이네 검술 실력이 거의 레인하르트 공작 각하와 맞먹는 실력이니 신참이라고 갈구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에르쿠스는 능글맞은 웃음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각각 자기 소개를 하게." "에 말못할 협박으로 억지로 끌려온 아크입니다." "엘프 족의 레골룸스요." "오호 그래? 내 이름은 알고 있지? 난 에르쿠스다. 반갑다." "난 호킨이네." "내 이름은 쿠퍼. 헤헤 잘 부탁한다." 붉은 색의 앞머리가 한 쪽 눈을 가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니 남자답게 잘 생긴 기사 호킨과 육중한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눈이 옆으로 쳐져 불쌍해 보이는 인상의 기사 쿠퍼가 각각 자기를 소개했다. "흠. 자네들 저 에르쿠스라는 녀석은 조심하게." "예?" "크흠. 나중에 알게 될 걸세." 그론다이저의 귓속말에 아크와 레골룸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근데 7기사단 네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 사람은 어디 간 거죠?" 그랬다. 그들이 배정된 제 7기사단의 인원은 모두 네 명이다. 그런데 현재 통성명을 나눈 이들은 셋밖에 되지 않으니 아크가 의문을 가질 만도 했다. 이때 아크의 등뒤에서 그론다이저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 나머지 기사단원은 총사령관이신 루네아 후작님이시네. 그분도 최근 등용되셔서 편입되셨으니 어쩔 수 없이 제 7기사단을 맡게 되셨지. 하지만 현재는 총사령관이라는 큰 직책을 맡고 계신 터라. 당분간 제 7기사단의 단장은 나 체제린 그론다이저가 제 4기사단과 겸해서 맡기로 했네. 그리들 알게." "윽 저 꼰대가 여기 단장이라니." "뭐야?" "뭐가 말입니까?" 딴청을 피우는 에르쿠스. 백작은 그런 그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아크 경과 레골룸스경은 너무 사고 친 게 많아서 요주의 인물이네. 솔직히 사령관님은 몰라도 나와 몇몇은 자네들의 충성을 믿지 않아. 그러니 처신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사실 그론다이저 백작은 제 7기사단을 맡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크와 레골룸스라는 두 인물을 감시하기 위하여 일부러 제 7기사단 대행을 맡았다. 갑자기 들어 온 론 이라는 인물도 미심쩍었지만 실력만으로 그는 사령관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사령관이 어디서 왔을지 모를 두 인물을, 그것도 적으로 만났던 둘을 천거했다는 것이 수상했기에 그는 문제아 기사단인 제 7기사단을 맡은 것이다. 사령관은 용병이라 생각하고 마음 쓰지 말라고 했지만 연륜이 깊은 그론다이저는 그런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 둘이 첩자라면 디그리스 군의 육로 원정은 애초에 무산되어 버릴 수 있다. "예." "어쨌거나 우리 디그리스의 기사가 된 것을 환영하네. 비록 지금은 우리가 약소국 취급을 받고는 있지만 이번 원정에서 폴티아를 되찾는다면 이 대륙의 패권에 다크호스로 떠오를 걸세 물론 자네들은 원래 우리나라와 별 관련 없는 사람들이지만 왕국의 미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하겠네!" "에 뭐 그러죠." "여기 자네들의 제복이 있네. 그리고 각자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이 칼들도 받게." 그론다이저는 병사하나를 불러 아크와 레골룸스에게 잘 개인 기사 제복을 건넸다.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옷이니 평상시에는 입지 않아도 좋네. 하지만 아크 경은 입고 다니는 것이 좋을지도......" 그론다이저 백작은 아크를 한 번 쓱 본 뒤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아크는 리엔느의 스웨터를 제외하고는 지구에서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여름에 넘어왔으니 당연히 옷도 시원해 보이는 여름옷이었다. "쩝 입어는 보죠." 춥지는 않았지만 아크는 그론다이저가 건네는 제복을 걸쳤다. 코트 형식의 옷이라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입을 필요는 전혀 없었다. 가난한 디그리스 왕국이다 보니 제복은 그다지 화려한 면 없이 그저 그냥 수수했다. 어차피 갑옷 입으면 보이지도 않는 기사들 제복에 이것저것 수놓고 장식 놓는데 쓰잘데기 없는 돈을 쓰지 않는 훌륭한 절약정신이다. 그래도 나라의 군사적 얼굴인 기사 급 인물들이 입는 옷이니 수수하긴 해도 상당히 귀티 나는 옷이었다. "오우 뽀대나는데?" "흠." 아크가 제복을 갖춰 입자. 제법 그럴 듯한 폼이 났다. 그것을 본 레골룸스도 제복을 갖춰 입었다. 워낙에 외모가 받쳐 주다보니 레골룸스는 뭘 입어도 잘 어울렸다. "제법 잘들 어울리는 구만. 아! 그리고 빠뜨린 것이 한 가지 있군. 자네들 한 쪽 무릎을 꿇고 앉게." 레골룸스는 그론다이저 백작이 왜 무릎을 꿇으라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해 떨떠름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크는 그가 하려는 것이 판타지에 보면 꼭 나오는 검을 어깨에 올리며 작위 수여를 하는 것임을 깨닫고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레골룸스도 아크를 따라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론다이저 백작은 검을 아크의 어깨와 레골룸스의 어깨 중간에 걸쳐 놓고 쪽지를 읽었다. "에 나. 론 루네아는 국왕 전하를 대신하여 아크 페인과 레골룸스에게 기사의 작위를 내리노라." -짝짝짝짝 "휘익! 정식 기사가 된 걸 축하한다." "잘 해보자." "충성을 다하란 말은 하지 않겠네. 다만 우리 왕국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게." 제 7기사단원들의 축하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크는 축하를 받으면서 생각했다. '기사라......나쁘진 않군. 이 기사로서의 삶을 즐겨보도록 해 볼까?' 아크. 그가 게임에서 플레이하던 첫 번째 캐릭터도 기사였다. 전투 시 항상 선봉에 서서 맷집과 방어력 물리 공격력으로 버텨가며 동료들을 보호하는 직접 전투의 핵심. 하지만 이곳은 틀릴 것이다. 게임에서는 거의 유야무야 되던 기사도 정신 등을 철저히 숭배하고 주군에게 충성하는 그런 기사. 마법사와 함께 판타지의 두 축을 이루는 기사. '재미있을 수도." 아크에겐 블레싱 소드가 있기에 기사로서 검을 휘두르며 산다면 정말 30년 안에 소드 마스터도 될 수 있다. 일정 벽에서 더 이상 내공의 진전이 없어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밟지 못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아크의 경우는 노가다만 뛰어도 저절로 마나가 쌓이며 상승경지를 이룰 수 있다. 그러기에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이 기사란 직업은, 아크를 강하게 만들어 줄 계기가 될 것이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57화에서의 엄청난 비평! 고마웠습니다. 수정본들 한번 보시고 고쳤는데도 엉성하다! 싶으면 또 엄청난 태클및 비평을 걸어주십시오(욕과 비난은 사절) 이번 편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태클 걸어주십시오. 단 주인공이 너무 약하다느니 여자들 붙는게 싫다느니, 이 캐릭터 싫다느니 등의 비평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미행 3 해보신 분들 강간모드에서 어떻게 진행하는지 좀 리플좀 달아주십시오. 앉혀만 놓고 머리채만 몇 번 잡아당기며 벌써 1시간째 소모했습니다아 ㅡㅡ; 디그리스의 육로 원정대에 소속된 4개의 기사단은 각자의 임무가 달랐다. 왕국 두 번째 최 정예 기사단인 제 2기사단은 중군에 편성되어 전투 시 중진을 튼튼히 받쳐 주는 역할 및 군사들의 행군과 2000명 단위의 군사들을 통솔하는 대장을 맡았다. 제 4기사단은 후방의 수비를, 레인하르트 주니어의 제 5기사단은 선발대와 정찰대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와 레골룸스가 속한 제 7기사단은 원체 그 수가 적어 어느 임무에도 파견되기가 뭐 했지만 그렇다고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소드 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을(아크 제외)놀려 둘 수도 없었던지라. 총 사령관 루네아 후작이 항시 개인 별동대로 쓸 수 있도록 총사령관 호위라는 명목의 임무로 론의 옆을 호위하며 행군했다. 그 중점에 서 있는 총사령관 론. 그녀는 현재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을 가라앉히려 고생하고 있었다. 물론 눈만 보이는 투구 덕에 빨개진 얼굴이 드러날 염려는 없었겠지만 몸이 후끈해지는 것은 주체하지 못했다. 당장 그만두라고 하고는 싶었지만 남자 행세를 하고 있으니 이런 귀 썩는 이야기도 들어주며 맞장구도 조금씩 쳐줘야 했다. 도대체 뭔 이야기를 듣고 있길래? "잠이 안 와서 오늘따라 많이 뒤척였다. 그때 방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 얼굴에 손바닥을 휘둘렀다. 나는 일부러 잠든 척 가만히 있었다. 한참 나를 살피던 그는 갑자기 바지춤을 풀어 천장을 향해 솟은 그의 물건을 꺼내었다......" "꼴깍!" 유독 큰 쿠퍼의 침 넘어가는 소리에 이야기가 끊기자 아크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청중들이 하나 같이 쿠퍼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헤헤 죄송합니다." 쿠퍼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사과를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빨리 다시 시작하게 아크 경." "옙 두프레 백작님." 제 2기사단 단장 두프레 백작의 독촉에 아크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내 잠옷을 들친다음 속옷을 벗기고는 삐비비비비비비비비......에 막대기를 한참 비벼대기만 하던 삐비비비비비비비비비비......" 그랬다. 아크가 현재 실황 중계하는 것은 '자는 모 여인(이름은 비공개)X먹기'라는 야설이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체통 입네 하며 귀를 막아야 했던 귀족들이 아크의 이야기에 엄청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루한 행군에 이미 지친 데다가 거의 매일을 애첩들과 되는 대로 정사를 가지던 이들이니 여자 하나 없는 이런 곳에서의 야한 이야기에 환호하는 건 애교로 봐 줘야 했다. 에르쿠스를 위시한 제 7기사단 멤버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부터 이야기꾼 아크 덕에 행군이 조금은 즐거워지던 터였다. 거기다 벌써 수 십 편의 야설을 들어 놓고 아직도 재방송 야설까지 들어가며 발광하고 있었다. 원래 외설 소설이란 것이 설정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끓는 사내의 피는 어쩔 수 없었다. 귀족과 기사들이 이 모양인데 병사들은? 그들도 다를 바가 없었다. 최전방에서 아크의 이야기를 듣던 병사가 뒤에 병사에게 말해주고 또 그 병사가 그 뒤 병사에게 전해주고. 물론 이런 도미노 형식은 후방까지의 정보 전달이 더디기는 했지만 이미 4만여 병사들은 아크의 외설적인 이야기에 빠져 버렸다. 아직까지 아크의 외설적인 이야기(야설)에 빠지지 않은 이는 쪽팔려도 재미있는 척 하는 론과, 먼저 간 선발대, 레골룸스, 그론다이저 백작뿐이었다. "크으 귀 썩는다." "이보게들 체통을 지키게. 귀족이란 자들이 뭐 하는 짓인가!" 그나마 레골룸스와 나이 덕에 기능에 이상(?)이 생간 그론다이저 백작만이 저 악마의 이야기에서 빠져 나오라고 외쳤지만 이마 삼매경에 빠진 병사들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생략)......끝입니다." "또! 또!" 텔레토비처럼 '또'를 외치는 디그리스 정규군들. 이러한 열화와 같은 반응에 아크도 적잖이 놀랐다. 원래 7기사단 식구들을 빼고는 안 들려주려고 했지만 동료라는 놈들이 행군 할 때까지 계속해 달라고 조르는 바람에 여기서 이야기 꺼낸 것이 이렇게 엄청난 파장을 미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나 더 해보게 아크 경." 론은 애써 아크를 부추겼다. 그녀에겐 낯뜨거운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최대한 호색한처럼 보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론은 눈빛으로 은근히 아크를 협박했다. "킥킥." 아크는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매우 조용히 킥킥거렸다. 론이 듣기 싫으면서도 일부러 연기하는 테가 다 났기 때문이다. 저러면서도 은근슬쩍 자신에게 살기를 뿜어대니 이 어찌 귀엽지 않을 수 있으랴? "좋습니다. 하지만 먼저 가슴 찡한 러브스토리 하나 듣고 넘어갑시다." 조금은 실망하는 청중들. 하지만 다음에 또 외설적인 이야기를 해 준다니 별 불만은 없었다. 게다가 외설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크가 해 주는 반지의 제왕 이야기 등도 재미는 있었기에 그들은 다시 귀를 쫑긋 세웠다. "흠 아쉽긴 하지만 일단 그거 먼저 들어 보도록 하지." 론의 말에 아크는 속으로 '걸렸다' 라고 외쳤다. 아크가 러브스토리 이야기를 꺼낸 것은 치밀한 계산에서였다. 론도 일단은 여자이니 러브스토리라고 흥미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결말 부분 결정타의 레골룸스를 폭주시켰던 미연시 스토리로 가려는 것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론도 폭주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론은 러브스토리란 말에 조금은 기대하는 눈치였다. 야설을 듣고 있기가 조금은 민망했지만 아크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었다. "또 나왔군." 아크의 음모를 꿰뚫고 있는 레골룸스. 그렇지만 초 중반까지는 괜찮은 내용이라 그도 들어보기로 했다. "주절주절." 이번에도 아크는 투X트의 스토리를 꺼냈다. 외설 이야기라면 몰라도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 이후 H씬 이야기는 아크도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는 못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미연시는 많이 접했어도 한글 패치나 번역본을 읽은 것은 매우 드물었기에(그래도 아크는 선택지의 일어를 일일이 수첩에다 옮겨 놓고 선택지마다 세이브 로드 노가다로 비 한글화 미연시도 모두 클리어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의 부작용은 스토리를 모른다는 것)아크가 스토리를 기억하는 것은 몇 유명 미연시였고 그나마도 러브스토리로 시작해 H로 넘어가는 것보다는 야한 부분으로 가다가 결국 사랑이 이루어지는 류가 많았기에 이런 뒤집기 러브스토리는 아크도 밑천이 별로 없었다. 진도가 나갈수록 몰입해 가는 청중들. 특히 쿠퍼는 입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정신을 놓고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이것도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진진해 지는 것이 듣는 이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팔지 못하게 했다. 드디어 후반! 히로인을 괴롭히는 초능력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옥상에서 몸을 날리는 주인공(자신이 날린 것은 아님)은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필사적이 된 히로인이 마지막의 순간에서 저주받은 능력을 컨트롤하면서 주인공을 살리는데. 그리고 클라이막스! "나도 XXX짱을 좋아한다." "브라보!" "재밌었네!" -짝짝짝짝짝 청중들의 거창한 박수. 그들은 주인공과 히로인이 잘 이루어 진 것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가 끝난 뒤, 들을 수 있는 외설 이야기를 기대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이야기로군. 이상한 이야기만 너무 많이 하지말고 이런 이야기들을 주로 하도록 하게 아크 경." 론은 만족스럽다는 말투로 아크에게 충고했다. 하지만 그런 론의 충고에 아크는 떨떠름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에......아직 안 끝났는데요?" "끝난 거 아니었어?" "이제부터가 진짜 에요. 잘 들어보시죠." 시작되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스토리. "역시." 결국엔 저렇게 될 줄 알았던 레골룸스는 알아서 귀를 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떨까? 론은 또다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 지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그론다이저 백작은 연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몇 안 되는 반대파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의외의 전개의 잠시 놀랐지만 곧 생명을 만드는 작업 이야기에 몰두했다. "이렇게 끝이 나겠습니다." "빨리 다음! 그것도 아니면 앵콜!" "또! 또!" "그렇게 보채지들 마세요.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잠깐!" 론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귀족들과 기사, 병사들을 제지시켰다. "뭐죠. 사령관 각하?" "이대로 이야기만 듣다 보니 행군속도가 많이 늦어진 것 같다. 오늘은 이만 하게 아크 경." "우우우우우!" 청중들의 야유 론의 말은 확실히 잘못되었다. 물론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발걸음이 알게 모르게 아주 약간 느려지기는 했지만, 정신이 팔린 탓에 행군하는 병사들은 힘든 것도 잊은 상태라. 이런 날은 휴식 시간을 적게 해서 강행군을 한다 해도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악법도 법이듯이 상급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곳이 바로 군대다. 결국 아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총사령관 론의 명령에 따라야 했다. "저기......혼자 중얼거리는 건 괜찮겠습니까?" 아크는 레골룸스한테는 먹혔던 편법을 써 보려 했지만 론이 내뿜는 지독한 살기에 입을 다물었다. "아크 경 밤에 내 막사로 오게." 어떻게 보면 '오늘 밤 한가해요'란 투로 들릴 수도 있는 론의 말. 하지만 그녀가 뿜는 살기는 결코 지금의 명령이 유혹의 말로 느껴지지 않게 했다. '도발 성공!' 그럼에도 아크는 여유로웠다. 론을 발끈하게 했다는 묘한 성취감에 뒤에 닥칠 후폭풍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내가 하지 말랬지?" "......예." 아크는 '언제?'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차마 발설하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죽을 확률이 더 커질 것이다. "그리고 왜 그런 평범한 이야기에도 꼭 그런 걸 집어넣는 건데?" '젠장 그것만 벌써 몇 번을 물어보냐?' 이렇게 생각하며 아크는 대답했다. "그건 원래 그런 이야기라고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거기 새끼손가락 하나 더 떼!" "우워! 뭐어!" 아크는 웅얼거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빨리 안 뗄래?" "누님 제발 살려 주세요. 이러면 정말 죽는다고요." "죽으면 되지. 편하게." '이런 마녀 같은......' 연참 약속을 했으니 다음 편은 5월 23일 날짜 내로 올리겠습니다. 마왕의 딸들 다 깨야 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공지대로 연참입니다. 하룻밤 자기는 했지만 5월 23일자는 맞을겁니다. 내용이 어처구니가 없으시다면 많은 비평을 달아주십시오. 작가가 미연시와 애니에 빠져 살다 보니 만화에서 나올 듯한 그런 비현실적인 내용들이 있습니다. 물론 판타지란 환상문학이 약간 허무 맹랑한 점이 있으니 그냥 이해해 주셔도 고맙겠습니다만 비평에 일일히 답변 리플 달아드리는 것이 요새 인생의 낙입니다. -본편입니다. 아크는 현재 푸쉬 업의 자세(엎드려 뻗쳐 자세 혹은 팔굽혀펴기 자세)로 있었다. 이 자세로 죽네, 마녀네, 어쩌네 하는 것이 조금은 어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크가 엎드려뻗쳐 있는 땅에 솟아 있는 다섯 개의 칼날을 본다면, 열 손가락 중 네 손가락으로 이 칼날들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아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들은 참 교묘한 위치에 박아둔 것이, 하나는 아크의 목을, 또 하나는 가슴을, 또 하나는 거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거기다 옆으로 쓰러지지도 못하도록 양 쪽 사이드에 박힌 검날은 아크가 넘어 질 때 옆구리를 쑤셔올 것이다. 아무리 블레싱 소드가 치료해 준다고 해도 저 정도로 칼이 깊숙이 박혀 버리면 꼼짝없이 사망일 것이다. 결국 아크는 위기 상황의 괴력과 아크라우스의 맹약의 반지에 걸린 행운을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누 누님 웬만하면 살려 주세요." "어허! 여기는 명백히 군대다. 그런데 상급자의 명령에 항명을 하는 것이냐? 벌로 중지 떼거라." "큭!" 오른손 중지를 떼자 이제 남은 손가락은 왼손 엄지와 오른손 무명지와 검지만이 남았다. 아크가 버티기 쉬울 리가 없었다. 서서히 위태로워지는 아크를 보고 론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아크를 그만 가지고 놀기로 했다. 사부님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지구의 인간이니 죽이면 안 된다. 게다가 어쩐지 모르게 닮아 보인다. "그만 됐어. 일어나!" "감사, 감사!" 드디어 끝났다는 말에 아크는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힘이 풀리면서 아크는 중심을 잃어버렸다. "어! 어! 어!" "위험해!" 아크가 솟아올라 있는 칼에 박히기 직전 한 줄기 푸른 섬광이 스치면서 검들이 모두 잘려져 나갔다. "바보야! 죽으려고 환장했어!" 론은 검을 잘라내면서도 한 손으로는 자세를 잃은 아크를 일으켜 세웠다. "......이거 놔요." "뭐?" "젠장! 놓으라구요!" 아크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공연히 화가 났다. 론은 애초에 자신에게 체벌을 가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가지고 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크는 열화가 뻗쳐올랐다. 아크 자신은 론에 비하면 정말 터무니없는 약자다. 신분제가 남아 있는 이 세계의 사람들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겠지만 자유 민주주의 세계에서 살다 온 아크는 그것이 참기가 힘들었다. 그가 뭐 때문에 그렇게 군대 가기를 싫어했는가? 강자와 약자를 합법적으로 갈라놓은 그 수직적 체계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아크의 반항에 론은 검을 아크의 목에 들이밀었다. "죽고 싶나?" "죽이시죠. 약한 놈이 개겼으니 죽어야지. 아! 죽기 전에 몇 마디만 까놓고 합시다. 누님이 언제 나 보고 야한 이야기 그만 하라고 한 적 있습니까? 몇 번 째려보기만 했지. 그래도 그걸로 눈치 채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나면 꼭 빨리 다음 거 해 보라면 서 부추긴 사람이 누구냐고요?" "뭐?" "제 말 안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이 세상에 어떤 상관이 부하한테 칼침을 놓으려고 하냐구요? 죽이거나 벌주려면 명분이 있는 것으로 확실히 주시죠. 아! 누님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건드리고 괴롭히면서 느끼는 쾌감 같은 거 있나보죠?" 아크는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자꾸 론에게 큰소리로 개겼다. 이성을 잃으니 자신이 무슨 처지에 있는지도 망각한 모양이었다. "젠장 누님이 약자의 고통을 압니까? 맨날 터지고, 깨지고, 강자 앞에서 설설 기어야 하고, X이라도 핥으라면 핥아야 하고......18! 지금 누님이 하는 짓은 남자들이 신체적으로 힘이 세다고 여자들을 강간하며 유린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구요." "그만......그만햇!" 론이 갑작스럽게 고함을 지르자. 아크는 움찔했다. 갑자기 왜 저래? "그만 하란 말이야......" 아크의 항변은 하나 하나 비수가 되어 꽂혔다. 지금은 소드 마스터란 강자로 분류되는 론에게도 약자였기 때문에 당했던 씻지 못할 끔찍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그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짓밟았던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토록 강자가 되려고 노력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그때의 그놈들이 했던 짓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말에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기에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그래 미안해." 풀이 죽는 론의 모습에 아크는 왠지 모를 자아 도취감에 빠졌다. 고집 센 상관을 말빨로 굴복 시켰으니. 이 어찌 성취감이 크지 않으랴? "정말 미안해. 내가 너를 한 번 이겼다고 너무 무시한 것 같아. 약자의 설움도 모르고......그래서." 그래서란 말이 어찌 영 불안해 보였다. "약자의 설움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에?" "에는 무슨 어서 칼 뽑아." "왜요?" "결투. 여기서 날 꺾으면 넌 더 이상 약자가 아니야. 알았지 그럼 내가 먼저 간다." "잠깐만요! 이럴 필요까지는." "왜? 약자의 설움이 싫다며? 그럼 강자를 꺾어. 그럼 너도 강자가 되는 거야." "나, 나 난 약해도 상관없는데." "아니. 넌 강해져야 돼." "으아아악!" 아무리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아크가 개기는 것이 좋아 보일 리가 없었던 론은 명분이 선 괴롭힘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괜시리 개겨서 론의 신경 건드렸다가 죽도록 맞는 아크였다. "아이고 삭신이야." "쯧쯔 도대체 얼마나 맞았기에. 아니 사령관님도 그렇지, 아크 경이 뭔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심하게 패 놨데?" "그러게." 아크를 동정하는 기사단 동료들 하지만. "그것 참 쌤통이다." 레골룸스는 고소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우이씨 골룸 너 진동안마 맞고 싶냐?" "이제 너하고 격투술 대련 할 일은 없다." "이 빌어먹을......좃도 없는 시키가." "뭐야?" "너말고!" 론을 향해 내뱉은 욕설을 레골룸스 녀석이 잘못 알아듣자 아크는 큰 소리로 쏘아붙였다. 아크는 오늘도 처참했다. 그는 블레싱 소드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게다가 론은 잔인하게도 블레싱 소드를 일시적으로 압수해 상처 치료도 못하게 했으니 그의 몰골은 자신이 엘프 마을에서 매일 괴롭히던 레골룸스의 모습보다 더욱 끔찍했다. 쿠퍼는 그런 아크의 상처 부위에 몸소 구급약을 발라 주었다. 피 난 곳은 없었지만 붓고 멍든 곳이 너무나도 많았다. "도대체 왜 맞은 건가?" "글쎄요. 개긴 죄라고 해야 하나?" 정확한 죄명은 개기다 상관 아픈 곳을 건드린 죄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면서 아부를 했어야 하는데. 순간 빡돌아서 막말한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 물론 정당한 결투였지만 상대가 되야 결투가 되는 거지 이건 뭐 일방적인 폭력 행사라고 불러야 맞다. "에휴. 인생 참." 어쩌다 이렇게 인생이 피곤해지게 됐는지......이렇게 사령관 화풀이 감이나 되 주는 것이 기사냐? '틈을 타서 탈영해야 겠군.' 이렇게 맞고는 도저히 못 산다. 사부고 기사고 뭐고 다 때려 쳐! 어디 먼 곳으로 도망쳐서 무진장 수련해서 마스터가 된 다음. 이 사이코 년을 아주 그냥 조져 줄 테다. 라고 생각하는 아크였다. 이때 막사 안으로 한 병사가 들어왔다. "아크 경. 칼 찾아가라는 사령관 각하의 명령입니다." "지미......거동도 못하겠는데 가져다 주면 어디가 덧나냐?" 아크는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밤 도망치려면 지금 검을 받아 놔야 했다. 물론 도망치면서 소환시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일찍 들킬 공산이 컸다. 능그적 능그적 론의 막사로 들어가는 아크를 론은 반갑게 맞이했다. "어. 왔어? 많이 아파 보이네." '18 쌩까버리자.' "왜 말이 없어?" "......" "삐졌니?" '개뿔이.' "호오. 이젠 아주 무시하겠다. 이거지? 결투 한 판 더 할까?" "입이 아파서 차마 말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문득 아크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란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으휴 궁상맞은 이 인생. "내가 밉지?" "절대 아닙니다." 군기가 완전히 잡힌 아크. 역시 매에는 장사 없다. "미울 테지. 근데 도망칠 생각은 하지마. 마스터를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제 아무리 빠른 속도로 도망쳐 봤자. 난 다 추적할 수 있어." '관심법이냐!!' 이제는 도망도 못 치게 생겼다. "인생이 고달프지?" '잘 알고 있네. 근데 누구 때문에 고달픈지는 모르고 있군." "내가 안 고달프게 해 줄까?" "누님만 가만히 계시면." "뭐야?" "아 아뇨."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생각한 말을 내뱉었다가 급히 주워 담았다. 괜히 또 맞을라. "나한테 맞은 게 분하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먹히는 건 당연한거죠. 에휴 인생 참." "그럼 내가 결투에 조건하나 걸어줄까? 의욕이 솟을 만한."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네가 날 이기면 네 시중을 들어줄게." 이 얼마나 자주 접했던 장면이던가? 강한 여자를 꺾어서 자기 밑으로 귀속시키는, 여 해적 캡틴 실버부터 시작해 가지고 란X 2분의 1에서 여걸족 여자는 자신을 꺾은 강한 남자에게 시집가는 거 하며, S사의 C게임 3편에서 나오는 S모 주인공과 Y모 광선검사의 노예계약에, T게임 플레이 스테이션판 추가 공략 가능 캐릭터 S양 동생 A양의 소원계약까지, 하지만 이것들은 정녕 진정한 남자의 로망이라 할 수 있었다. 그토록 강하고 고집 센 그녀들을 꺾어 순한 몸종으로 만들어 친절봉사 시키는 메이드류. 자주 접했던 것이건만. 실제로는 처음인 이런 조건에 아크는 눈이 돌아갔다. "정말 이십니까?" "물론. 가능할지나 모르겠지만." "후후후후후." 아크는 웃음 지었다. 도주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그에게는 론을 상대할 최종병기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 최종병기를 적절히 사용한다면 이 시건방진 소드 마스터 아가씨도 무릎 꿇릴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이든 상관 없댔지요?" "기습은 안 돼. 그것 빼고 정당한 결투에서의 어떠한 암수라도 괜찮아." "흐흐흐 후회하시게 될 겁니다." 아크는 셔츠 안주머니에 곱게 모셔둔 아크로니아의 최음제를 꺼냈다. 세 알 밖에 안 돼서 고이 모셔둔 뒤 나중에 쓸려고 했지만 메이드 계약을 건 결투라면 충분히 쓸 가치가 있었다. 아크는 론에게 약을 내밀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작살났습니다. 다음 편은 연참 약속대로 5월 25일자 내로 올리렵니다. 그리고 기대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안타깝지만 자칫하다간 어덜트란으로 쫓겨납니다. "이거 드시죠." "독약이나 수면제는 사양이야." "그런 약은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내공의 감소효과가 있는 약이죠." "진짜?" "진짜. 독약이나 수면제는 아니에요. 생명에 위협을 줄 일은 절대 없습니다. 보장합니다!" "흐음." 론은 못 미더운 눈초리로 알약을 보다가 한번만 속아주는 셈치고 약을 삼켰다. '풋 완전히 걸려들었군.' 이런 몽혼약 따위를 이용하는 암습은 주로 무협지에서 나오는데 피해자의 무공의 경지가 높거나 내공이 정갈하다면 이런 암습은 안 먹힐 확률이 높았다. 허나 엄청난 고수이더라도 한순간의 방심은 치명적인 결과를 부르는 법. 어느 M모 소설의 M모 마교 교주는 현경의 무공에도 불구하고 이런 계열의 사술에 걸려 찐한 경험을 가지지 않았는가? 물론 거짓 약점이라 그다지 큰 피해는 없었지만 만약 그가 실제로 그러한 약점이 존재 했었더라면 무림과 판타지를 드나들며 펼쳤던 활약을 못 보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물론 그렇게 속절없이 돌아가시면 재미없다) "뭐야? 별 거 없잖아? 내공? 그대로인데?" "효능이 조금 늦게 나타나나 보군요. 기다려봐요." 아크의 말에 마냥 기다리는 론.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아크는 조바심을, 론은 짜증을 냈다. "대체 뭔 약이야?" "그 글쎄요? 소드 마스터한테는 효과가 없나?" "그런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덥지?" 론은 갑자기 덥다고 투덜거리며 푹 눌러 쓴 투구를 벗어버렸다. 아직 제법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밤인 데도 그녀의 볼은 붉게 달아오르고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드디어 최음제가 효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키키키! 어디 두고 보자.' 최음제가 정말로 효과를 보이자. 아크는 속으로 신이 났다. 설사 론을 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저런 상태라면 누님의 욕정을 해소시켜 드리기 위해서 밤새도록 자신이 친절봉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론은 자신의 아랫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아랫배가 왜 이렇게 타는 듯이 뜨겁지? 설마 너 나한테 설사약을 먹인 거냐?" "그럴 리 가요. 그나저나 이제야 효능이 제대로 나타나나 보군요." "큭......뭐야 이 약. 대체?." 하체로 쏠리는 뜨거운 기운에 론은 그만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론의 온몸이 그녀의 뇌에 정욕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크는 그런 론을 보면서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최음제라고 하죠. 여성을 성적으로 흥분시켜 발정이 나게 만드는 약으로 성합을 해야만 그 상태가 풀려요. 걸리셨습니다. 누님. 그럼 결투나 시작해볼까요?" 흥분해 버린 론을 보는 아크도 약간 가슴이 설레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메이드 계약이 걸린 결투가 더 중요했다. 이기기만 하면 지금의 상황 따위는 일도 아니다. 이 일 저 일 다 시킬 수 있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들고 론에게 덤벼들었다. -챙! 론은 급히 검을 뽑아 아크의 공격을 막았다. 원래 사령관의 막사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면 즉시 경비병들이 뛰어들어와야 했지만 론이 미리 비무를 할 테니 방해하지 말 것을 지시해 둔 터라. 사령관의 막사 주위에는 추위에 떨며 먹이를 찾고 있는 쥐새끼 한 마리밖에 없었다. "나쁜 녀석......나한테 이런 약이나 먹이다니." 론의 검격. 그러나 이전의 전투와는 다르게 론의 검에는 예리함이란 것이 사라져 있었다. 그 덕에 이전에는 얼마 못 가서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아크가 버티는 수준으로도 모자라서 반격까지 하고 있었다. 론은 검세 자체를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반신에 힘이 풀리면서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하체가 무너졌으니 제대로 된 공격 자세가 나올 리가 만무했고 또 제대로 된 공격이 나오기 힘들었다. "이런 걸 자만의 결과, 혹은 약물 오남용이라고 부르죠." "이런 얕은 수를 썼다고는 해도 그래 봤자야!" "글쎄요?" 확실히 현 상황은 아크가 주도하고 있었다. 론의 공격은 계속해서 허사로 돌아갔고 아크는 제대로 먹히지는 않아도 상당히 위협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진다!' 론은 자꾸만 떠오르는 이상한 생각을 겨우 억제하고(낮에 들은 아크의 외설적인 이야기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그녀를 더더욱 곤란케 했다)대책마련을 강구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제대로 된 검술을 펼칠 수가 없었다. 다리 힘이 풀려서 빠른 몸놀림을 구사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힘으로 단 1합에 승부를 보는 거였다. -챙 블레싱 소드가 자신의 검에 닿자 론은 있는 힘을 다해 아크의 블레싱 소드를 밀어 붙였다. 그러자 서서히 검날이 아크 쪽으로 기울었다. 아크는 힘에서 밀리지 몸을 뒤로 물린 뒤 다시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론은 뒤로 빠진 아크의 검을 강하게 쳤다. 아크를 베거나 굴복시키려는 생가깅 아닌 애초에 검을 끊어버릴 목적으로 블레싱 소드를 노린 론의 최후의 일격이었다. -챙! -휘릭! -푹! 물론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순간의 그 강력한 힘에 아크는 그만 블레싱 소드를 놓쳐 버렸다. 블레싱 소드는 부메랑처럼 회전하면서 날아가다가 바닥에 꽂혔다. 어찌나 강력한 일격이었는지 여태껏 블레싱 소드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이겼지?" "하핫 이번에도 졌네요." 졌지만 아크는 여전히 여유로웠다. 이제 봉사의 시간인가? 푸흐흐 "빠, 빨리 해독약 내놔." "없어요." "죽을래? 빨리 내놔." "죽여 봤자 안 나올 겁니다. 그 약의 효과를 푸는 방법은 정사밖에 없어요." "그, 그런." 방법이 없다는 아크의 말에 그나마 끌어올렸던 힘마저 모두 풀려버린 론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 론의 머릿속에는 낮에 들었던 아크의 외설 이야기 외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야기의 여주인공이 자신이 되는 그런 상상. 그녀의 몸도 남자를 간절히 원하며 이곳저곳에서 각종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효과는 정말 죽여주는군.' 아크는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온몸을 떨고 있는 론을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런 상황이지만 자기 쪽에서 먼저 덮치는 것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칼부림을 한 뒤라서 그런지, 땀을 흘려서 그런지, 아님 자신의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론은 아크에게서 남자의 체취를 느꼈다. 약간의 호감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쉽게 자신의 처녀성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과는 달리 몸이 너무나도 달아올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다다렀다는 것이 문제였다. 론이 보통의 자유분방한 사고를 지닌 여성이었다면 그냥 안겼을 테지만. 보수적이고 고지식하며 주자학의 시초에서 살다 온 사부의 영향을 받았기에 론은 대놓고 남자를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그렇게 말못하고 끙끙 앓는 론을 보다 못한 아크는 자신이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도와 드릴까요? 누님."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여자 쪽에서 먼저 '해 줘'란 의미심장한 대사를 읊는 것이 옳았지만, 론의 강한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지 않았다. "......마음대로." 론은 개미 만한 목소리로 긍정의 표시를 보냈다. -꿀꺽 아크는 침을 한번 삼킨 뒤 론의 철갑을 해제시켰다. 그러나 손이 자꾸 떨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강간미수전과도 있는 아크지만 이렇게 합의로, 그것도 첫 경험인지라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갑옷을 다 벗기고 나자. 아크는 이 다음에는 뭘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디에선가 봤었던 '여성은 거북이. 관계 전 충분한 애무를'이란 스포츠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이 일단 키스부터 시작해야 되나?" 아크는 살포시 눈을 감고 있는(이렇게 보니 너무나 사랑스럽게 생겼다)론에게 입을 맞췄다. 타의로 당한 것을 제외하면 아크의 진짜 첫 번째는 이것이었다. 게다가 혀굴림까지. 아크는 부러져 나간 앞니가 있던 자리에 론의 혀가 닿자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순간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 일본 미연시가 한국에 정식으로 들어 올 때 검열에 의해 19금 장면 다 짤리고 키스에서 끝맺는 그런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자 잠깐." "예?" 론은 갑작스레 자신의 위에 올라탄 아크를 밀쳐냈다. 아크의 우려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서 설마. 아직 약빨도 남아 있는 것 같은데?' "흐아아압!" 론은 기합을 지르며 자신의 내부에 있는 마나를 갈무리한 다음 회음혈을 비롯한 각종 성감대에 위치한 혈들에 퍼진 약 기운을 마나로 몰아내었다. 그리고. "커어어억!" -퉤! "우 써! 되게 맛없네." 론이 뱉은 침에는 피와 함께 다량의 하얀 가루가 뒤섞여 있었다. "토해낸 거에요?" "왜 아쉬워?" "조금은요." "후훗 귀여운 녀석." 아크가 사실대로 말하자 론은 아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론은 아직 온몸에 퍼진 최음제의 기운을 완벽하게는 토해내지 못했기에 여전히 조금 흥분된 상태였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보통 여자들 같으면 이 정도 양에도 못 참지만 워낙 마나의 흐름을 원할 하게 할 수 있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이다 보니 그다지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정신이 온통 성적인 곳에 팔려 사부가 가르쳐 준 독 배출법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키스 중 그제야 생각이 난 것이다. 아크는 죽상이었다.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마저 허사로 날려보내다니, 그것도 세 알 밖에 없는 초강력 최음제까지 쓰고서는. "너 이 약 또 있지?" "어, 없어요!" "상관 유인 성추행죄로 군법회의 받고 싶니?" "저 정말 없어요." "근데 왜 말은 더듬니?" "하 하도 어 어이가 없어서." "웃기네. 얼굴에 '나 거짓말하고 있소'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 이것만은." "봐봐 있잖아. 얼른 줘 봐." 아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을 건넸다. "압수!" "우워! 뭐어! 왜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런 걸 들고 다니는거니?" "에휴 힘없고 백 없으면 뜯겨야지 어쩌겠어?"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연참의 끝입니다. 다음부터는 그대로 2일에 한 번. 아 또 여러분들의 비평이 쏟아지는 군대 가입에 대한 스토리를 보충하려면 조금 바쁠 듯. 비축분은 많은데 수정을 한 번씩 하든지 해야겠더군요. 심심하다 싶으면 연참도 하겠습니다. 설정에 대한 비평은 받지 않습니다. 내용상 뭔가 엉성하다 싶은 것을 주로 비평해 주십시오.(어떤 독자분의 비평리플을 보고서 설정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되겠다 싶더군요) 미연시 퓨전 판타지를 표명합니다. "너 자꾸 힘이 없네 약하네 하면서 푸념하는데 그러면 정말 너 괴롭히고 싶어진다? 그러니 그만 해. 약은 돌려줄게." "감사합니다. 누님." 아크는 론이 약을 준다고 하자, 깍두기식으로 팔을 벌리고 인사했다. "근데 말야. 너." "......?" "처음......이야?" 아크는 이 주어가 빠진 문장을 알아들을 만큼 눈치가 좋지 못했다. "뭐가요?" "그 그거." 론은 얼굴을 붉히며 대명사로 지칭했다. 그런 론의 반응에 아크도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섹X요?" -빡! 론의 박치기를 정면으로 맞아 피를 뿌리며 쓰러졌던 아크는 바로 부활해서 따져대었다. "왜 갑자기 머리는 들이받고 난리에요!" "누가 그거래? 키스 말야." "그럼 그거라고 말을 하지!" "묻는 말에나 대답하셔." "두 번째에요. 첫 번째는 당한 거지만." "난 처음인데." 론은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아크는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다. '이 마녀가 갑자기 좀 귀여워 보이네?' "그나저나 약 주세요." "아! 응." 론은 약 하나를 아크에게 돌려주었다. "왜 하나입니까? 다 줘요!" "이건 말야......" "뭐 말이요?" "내가 만약 널 좋아하게 된다면 그때 줄게." "......예?" "후훗 물론 이 약이 다시 너에게 돌아갈 확률은 제로에 가깝겠지만." 갑자기 론에게 준 약 하나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아크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 대한민국의 대중적인 군가 '진짜 사나이'가 지금 대한민국과는 별 관계없는 디그리스 군 폴티아 육로 원정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군에 가지도 않았고 군대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아크지만, 고교 시절 마타 선생의 극악의 기합신공을 당할 때마다 목청껏 놓아 불러야 했었던(소리 작으면 기합의 강도 100퍼센트 상승)그 군가들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렇게 외웠던 군가들이 이 만리 타향에서 불려지고 있다. 어쩌면 이 군가들이 이쪽 세계의 대중적인 군가나 군가가 국가로 발전한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처럼 이 나라의 국가로 발전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 군대의 최고층 루네아 후작은 뒤를 돌아보며 짜증스럽다는 말투로 소리쳤다. "내 뒤에 뭐 묻었나? 왜 그리 들 빤히 쳐다보나? 이래서 얼굴을 가렸어야 했는데......" 그랬다 론은 지금껏 푹 눌러쓰던 투구를 벗고 행군 중이었다. 드디어 공개 된 론의 외모에 아크를 제외한 모두는 상관의 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목소리 톤만 탁하지 않았다면 정말 여자로 보일 만한(여자지만)엄청난 미모다. 이제야 그들은 후작이 어째서 그렇게 얼굴을 공개하길 꺼렸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튀는 외모인데다가 사령관이란 사람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고 남색가들의 표적이 되기 쉬워서 였을 것이다. 얼마나 여자로 오해받고 살았을까? 그런 후작이 갑자기 얼굴을 공개하자 그 모습을 궁금해하던 이들은 왜 갑작스레 얼굴을 공개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그들의 궁금에 대한 답을 주는 론의 한 마디. "갑갑하고 더워서." 물론 가장 타당성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놈의 약 효과는 언제까지 가는 거야?' 그랬다. 아크로니아가 준 최음제는 9할 가까이 론의 체내에서 빠져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워낙에 강력한 위력을 가져 미세한 양으로도 그녀에게 욕정을 일으켰던 것이다. 덕분에 더워진 론은 투구를 벗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이 소량이다보니 몸이 심하게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랄까? 물론 아크로니아표 최음제의 특성상 그 효과는 할 때까지 지속되겠지만. "저런 외모로 남자라니 아깝다 아까워." "남자면 뭐 어때. 오히려 좋구만 뭐 엄청난 강자라니 덮치기가 쉽지가 않아서 그렇지." "으이그 네 녀석이랑은 도저히 같이 못 놀겠다. 좀 제대로 된 사고를 하고 살아라! 남자 놈이 남자는 왜 좋아하냐?" "그럼 남자는 여자만 품으란 법 있냐?" "쯧쯔." 에르쿠스와 호킨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아크는 혀를 찼다. 저 둘의 상성은 정말 정반대였다. 호킨이 여성을 신봉하는 정상적인 인물이라면 에르쿠스는 짙은 남성 취향으로 인하여 동료 기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특히 아크가 외설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맞 받아치는 실황 남성 경험담은 게이 동인지에 익숙해져 있던 아크조차도 버티기 힘든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매일 밤 몰래 나가서 짙은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거 하며, 말로는 자기가 치질이 있어서 주로 공격을 담당한다나? 또 그론다이저 백작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에르쿠스는 최정예인 제 1기사단 소속이었는데 모종의 천인공노할 사건 때문에 당시 단 두 명이던 제 7기사단의 기사 하나와 보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제 7기사단에 있던 호킨 경은 그 귀공자풍 외모 덕에 에르쿠스 경의 표적이 되어 밤마다 기사단 숙소를 이탈해서 돈 써가며 여관에서 잤다니, 저 둘의 안 좋은 사이도 이해가 갔다. "저기 아크 경." "왜요? 쿠퍼 경?" "제 생각으로는 후작 각하께서는 아무리 봐도 여자이신 것 같습니다. 어깨의 넓이나 이목구비가 도저히 남성이 것이 아니에요. 목소리가 남자 같긴 하지만 그 정도야 마법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구요." '허걱!' 쿠퍼의 예리한 지적에 아크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크 경은 후작 각하와 친해 보여서 묻는 겁니다. 혹시 뭔가 알고 계신거라도?" 아크는 애써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최대한 차분히 대답했다. "루네아 후작님은 남자 맞습니다. 맨 처음 제가 후작 각하와 격투기로 싸웠을 때 후작님의 거시기를 공격한 적이 있는데 작아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확실히 그것이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요?" 당시 후작의 호위 임무를 맡았던 쿠퍼는 그때의 장면을 떠올리고 그럭저럭 납득했다. 그때 급소 공격을 맞고 난 뒤의 론의 반응은 웬만한 연기력으로는 보일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엄청난 거짓 연기였지만. 그때 가만히 걷고만 있던 레골룸스가 아크의 귀에 대고 소근거렸다. "거짓말 하기는. 여자 맞잖아." "뭐? 아냐 임마."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목소리가 변조한 티가 난다. 청각이 뛰어난 우리 엘프 종족을 우습게 보지 마라." 다 알고 있는 레골룸스에게 더 이상의 발뺌은 무리다. "쩝 발설하지는 마라. 그랬다간 우리 둘 다 죽는다." "그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밤마다 사령관과는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밀월 데이트라고나 할까?" "뭐? 밀월?" "골룸 겨엉!" 레골룸스를 부르는 다정하고도 애틋한 목소리. 그리고 곧이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 에르쿠스가 레골룸스를 뒤에서 껴안았다. "뭐 뭡니까? 에르쿠스 경." 급히 몸을 떼는 레골룸스. "야박하시긴 골룸 경. 그냥 에르 라고 불러줘." "누가 골룸입니까!" 에르쿠스는 레골룸스를 골룸이라고 불렀다. 아크에게 반지의 제왕 이야기는 들었어도 잿빛 피부의 괴물 이름을 정확히 모르는 그는 하도 아크가 레골룸스를 골룸이라고 부르기에 그것이 레골룸스를 놀리는 말이 아닌 레골룸스의 애칭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물론 레골룸스는 그것이 반가울 리 없었다. "그나저나 우리 클럽에 가입할 생각 정말 없어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으시겠습니까? 전 아내까지 있는 완전 노말이라구요!" "아 알았어. 그래도 나중에 생각나면." "생각 안나욧! 제발 그런 변태 모임에 저 좀 끌어들이지 말아달라고요!" 레골룸스는 에르쿠스를 비롯한 남색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엘프란 이 종족인 특이성과 웬만한 여자 뺨치는 외모, 변태들이 노릴 만 했다. 그런 에르쿠스의 불량 단체 회원 가입 권유를 보던 그론다이저 백작이 한 마디 했다. "어지간히 하게. 그게 무슨 추태인가 에르쿠스." "훗. 이제 잘 서지도 않으시는 백작님은 제 관심 밖입니다." "크 이놈이 정말!" 검을 뽑아 달려들으려던 백작은 애써 화를 삭히며 에르쿠스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도대체 왜들 저래?' 아크는 에르쿠스와 그론다이저 백작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일개 평민 기사가 백작에게 저렇게 대들고 개긴다는 말인가? "아크 경." "하핫 웬일이십니까? 에르쿠스 경." "밤마다 사령관님과 뭘 하시는지?" "예에?" "혹시 말야. 사령관님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우리 클럽에 한 번 오시라고 해 봐. 아! 자네도 그렇고, 그럼." "그건 또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아크는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행군일지 대대적인 수정 작업과 프로젝트 A의 가동(?)으로 스토리에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그리고 수정을 거쳤습니다. "게 무슨 추태인가! 자네는 우리 기사들의 수치야!" "어디서 개가 짖나?" 은근슬쩍 신경전을 벌이는 그론다이저와 에르쿠스. 그런 그들을 보며 아크는 옆에 호킨을 쿡쿡 찔렀다. "저기 호킨 경." "뭐지?" "그론다이저 백작님과 에르쿠스 경은 왜 저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죠? 게다가 어떻게 기사 급의 에르쿠스 경이 백작님께 저렇게 개겨도 되는 거에요?" "아 별이 참 밝다! 달도 참 둥그네." 호킨은 보이지도 않는 달과 별타령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벌건 대낮에 무슨 별하고 달입니까?" "험, 험 그론다이저 백작님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리고 하셨는데. 뭐 까짓 거! 같은 기사단 동료인데 그 정도는 얘기해 줄 수도 있지. 단 우리 기사단 사람들 외에는 절대 이 말을 퍼뜨려서는 안 돼. 알았지?" "물론입니다." "에르쿠스 경의 풀네임이 뭔지 알아?" "알 턱이 없죠. 성 없냐고 물어봤을 때 자기가 평민 출신 기사라서 성 따위는 없다고 하던데요?" "하! 평민이라고 뻥까지? 아무리 평민이라도 기사가 된다면 성을 하사 받을 수 있는데도? 그럼 지금 내가 알려주지. 에르쿠스 녀석의 성씨는 그론다이저야 에르쿠스 그론다이저." "백작님이랑 성이 같네요?" "그거 밖에 생각나는 게 없어?" "그럼 또 뭐가 있는데요?" 아크는 그론다이저라는 에르쿠스이 성을 듣고도 별 다른 동요가 없었다. 대한민국이란 같은 성씨가 즐비한 곳에서 살았다보니 그저 같은 성씨인가 보다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론다이저란 성은 이 대륙에서 유일하게 디그리스의 그론다이저 백작가에만 존재했다. "으이그 답답하긴. 에르쿠스 경이 그론다이저 백작님 아들이야 아들!" "예에? 아들이요?" 그러고 보니 지금 싸우고 있는 그론다이저 백작과 에르쿠스가 어딘가 모르게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에르쿠스는 그론다이저 백작가의 1남 9녀 중 막내이자 독자지." 아크는 이곳에도 남아 선호 사상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요?" "그래서 에르쿠스는 위로 딸만 아홉인 그론다이저 백작님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누나들에게 알게 모르게 혹독한 괴롭힘을 당했고, 대를 이을 유일한 남자여서 백작님께 너무나도 큰 기대를 받았지. 결국 에르쿠스는 누나들에게 당한 학대의 경험 덕분에 여자를 멀리하고 온갖 남자들과 추태를 부렸어. 그러니 자연히 그론다이저 백작님에게 꾸지람도 많이 들었겠지. 대를 이어 훌륭한 기사를 배출한 가문으로 에르쿠스가 기사가 되어서 자신의 장군 직위를 물려받게 하려던 그론다이저 백작님은 검은 배울 생각 없이 남자들하고나 스캔들을 일으키던 에르쿠스를 백작가 지하실에 3년 동안이나 가두어 놓았어." "무슨 사도세자 같군요." "으응? 사도세자? 자넨 가끔가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구만. 그게 누군가?" "아버지인 왕의 미움을 사.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왕자 이름이죠." "그래? 어쨌든 3년 후 풀려난 에르쿠스는 그날 부로 가출해 버렸지. 그리고 또 3년이 지나서 그 녀석은 소드 익스퍼트(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검의 전문가 소드 마스터의 아래 단계이다)급 검사가 되어 돌아왔어. 그러자 그동안 아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생각하던 그론다이저 백작은 그 녀석을 다시 반갑게 맞았지. 하지만 에르쿠스는 당했던 것을 보복하듯 기사단에서 온갖......크흑!" 안 좋은 추억이 생각나버린 호킨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짓거리를 저지르던 에르쿠스 덕에 그론다이저 백작님이 곤란한 지경에 빠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결국 둘은 대판 싸우고 저렇게 서로 의절해 버렸어. 그래서 저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지." "하. 그랬군요." 그 정도 사정이면 에르쿠스가 왜 이상성욕자가 되었는지 이해는 갔다. "후후후후후 그게 뭐야? 정말."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아크는 '재미없었으면 또 때렸을 테지'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네가 해 주는 이야기들은 재밌어." '재미없다고 밟을 때는 또 언제고?' "이리 와봐." '헉! 또 때릴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이 맞았으면 이렇게 될까? 인생이 정말 불쌍해진 아크였다. 이제는 모든 사고능력이 어떻게 하면 안 맞을까?로 흘러간다. "여기 누워." 아크는 즉시 땅바닥에 취침자세를 취했다. -콰직! "누가 바닥에 누으래? 여기에 누워." 왜 때리냐고 불평을 하려던 아크는 론이 자기의 허벅다리를 가리키자. 이 상황이 미소녀 허벅다리 베개란 것을 깨닫고는 찍 소리 않고 론의 허벅다리를 베고 누웠다. 그러자 론은 아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캬! 이 세계에선 미연시의 법칙을 몸소 깨달을 기회가 참 많군." "아크." "넵!" "너 말야. 내 동생이랑 제법 닮은 거 같아." "동생이요?" "응. 살아만 있었다면 지금 네 나이쯤 됐을 거야." "죽었나......봐요?" "그래 내가 이렇게 해 주면 참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그랬군요." 분위기가 진지하게 돌아가자, 아크도 숙연해졌다. "저기 말야." "말하세요." "우리 의남매 맺을래?" "의남매요? 그럼 결혼을 못하잖아요." "나중에 생각나면 해 줄게." 장난식으로 던진 아크의 말에 론은 네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뭐 때리지만 않는다면요." '어차피 싫다고 하면 또 때릴 테지." "응 앞으로 자제할게." 끝까지 안 때린단 말은 안 하지만 오히려 아크는 그런 론의 태도가 더 믿음직스러웠다. 론은 평소에는 아크 갈구기를 즐기는 가학적 취미를 가진 듯이 보이지만 가끔가다 왠지 모를 다정함으로 아크를 대하는 것이 약간 수위가 높았다. 아니, 괴롭힐 때도 미워서 괴롭히거나 하는 것이 아닌 정말 누나가 어린 남동생을 귀여워서 툭툭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동안 나를 동생처럼 봤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껏 당해왔던 것이 그렇게까지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누나." "후훗 고마워." 론은 화사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당근과 채찍!' 사실 론이 이렇게 아크에게 잘 대해주는 이유는 만날 갈구기만 한다면 이 녀석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행동하게 될 지도 몰랐다. 그 때문에 이렇게 조금씩 다정하게 대해주면 단순한 아크는 금방 헬렐레 하며 이전에 갈굼당했던 일들을 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소각시켜 버렸으니 이 어찌 다루기가 쉽지 않으랴? 하지만 조금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피부색도 머리색도 다르지만 왠지 모르게 아크와 자신의 동생이 겹쳐 보이는 것에 조금씩 그녀는 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미세하게 나마 론의 몸속에 남아 있던 최음제 성분 덕에 약간 들뜬 것이 론으로 하여금 평상시에는 절대 할 수 없는 허벅다리 베개(미연시에 가끔 등장)많은 남자들이 원하는 꿈같은 일을 가능케 했다. 론이 이렇게 허벅다리를 대여해 준 남자는 친동생 이후로 아크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편안했는지 어느새인가 아크는 곤히 잠들어 버렸다. 론은 그런 아크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공지 전환 62, 63, 64화를 수정합니다. 스토리상 불필요하고 읽는 분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야오이 부분을 과감히 거세하고 편집했습니다. 그걸 재밌게(보고서 재미있으셨다면 당신은 이미 동인!)보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퀄리티 상이나 내용면에서 별로였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A의 가동으로 투베를 노리기 위해 밤연참을 해 볼까 합니다. 학생이라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 밤도 못새서는 어디 감히 대한남아 소리를 듣겠습니까? 마침 내일 오전 수업 2시간이 자율이라 그때 자면 됩니다. 프로젝트 A에는 대대적인 수정 작업도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이곳 저곳이 수정될 듯 하지만 편수 잡아서 공지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지라. 특별한 공지는 없습니다. 아무튼 개혁을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대가인 법입니다. (모 게임 어느 캐릭터의 대사라죠 아마?) 그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파괴의 형제 대략 스토리 진행시킵니다. 이 파괴의 형제 파트에서는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며 훗날 중요한 역할을 맏을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스토리에 도움을 주는 두 캐릭터라죠?아마. 또 엄청난 하드코어 경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4편 가량으로 끝나며 그 다음 파트부터는 전쟁에서의 아크의 활약이 시작될겁니다. 서부의 대제국 팬크라프트의 화려하고도 깔끔한 대 궁성. 제국이 제대로 정착하여 왕성 건설이 시작된 지 어언 십 여년이 다 되어 가건만. 아직도 왕궁은 증축을 위한 공사소리로 시끄러웠다. 이런 화려한 건축물들 중에서도 유독 허름해서 눈에 톡 튀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직사각형의 단순하고도 멋없는 구조인데다 무늬나 장식은커녕 흰색 페인트를 대충 덕지덕지 떡칠해 놓은 건물. 그러나 이 허름한 곳이 바로 제국의 대공이자 최고의 권력자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집무실이었다. 듬성듬성 난 흰머리에 수염을 적정 선에서 자랄 말끔해 보이는 인상의 렌도로스 대공은 입에다 펜을 물고 질겅질겅 씹으며 부하가 올린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흐음 디그리스 그 촌구석 녀석들이 드디어 움직였다?" "그렇습니다. 레인하르트 공작이 이끄는 약 3만 가량의 수군이 현재 폴티아 군과 대치중이랍니다." "그래. 전황은?" "아직은 본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군사 수에서 월등한 디그리스가 앞설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폴티아의 병력이라고는 육군 5천에 해군 3만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들 해군이 강하다 한들. 전체적인 병력 수에서 밀리니 이긴다 하더라도 그들의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쉽게 말해 3만 중 반절이 죽는 것이 12만 중 3만이 죽는 것보다 손해란 이야기이죠." "거 참 내가 수학 싫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뭐 그렇다면 동부에 66사단부터 75사단까지를 폴티아로 파견하도록 하게." "10만씩이나 보낼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아니. 그 정도가 적당하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폴티아에 병력을 주둔시킬 필요가 있어. 적을 막아 주겠다는 핑계라면 폴티아 공 그 녀석도 찍소리 못 할거야. 그놈들이 반발한다면 그냥 그따위 조그마한 땅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래. 수고하게." 보고를 하던 부하가 나가자 대공은 책상 위의 포도주의 마개를 따서 한 잔 음미했다. "캬아 역시 좋군. 뇌물이란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제국 서남부의 대표적인 포도주 생산지 미트랑에서 뇌물로 진상된 대륙 최고의 술이라는 로얄 럼블. 동부 지방에 팔면 웬만한 시골짜기 왕국의 반 년 예산에 맞먹는 비싼 포도주로 팬크라프트 황실에도 겨우 두 상자하고도 3병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포도주를 한 상자나 대공에게 진상한 그레니어 백작. "도대체 얼마나 빼돌린 것이 많기에 이런 포도주가 한 상자씩이나......쓰레기 같은 작자로군 제국에 이런 쓰레기가 있으면 안 되지." 렌도로스 대공은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는 자를 결코 살려두지 않았다. 일단 뇌물을 받으면 진상품은 고맙게 받고 밀서를 보내 중앙 정계에 포진시켜 주겠다고 서약한 뒤, 좋다고 오는 귀족놈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 그놈들의 똥빛으로 변하는 낯짝을 감상하는 것이 대공의 악취미 중 하나였다. 이제 건국한지 20년도 안 되는 제국이다. 이러한 제국에 쓰레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방법이든 간에 쓰레기는 처리해야 한다. '제국을 위해서라면 살인마든 청소부든 뭐든 지간에 마다하지 않겠다.' 그것이 지금의 제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자 대공의 신조다. -다그닥 다그닥 "워, 워!" "히히히히힝." "웃차!" 말에서 뛰어 내린 병사는 번쩍이는 은빛 갑옷을 입은 짙은 푸른빛 머리의 루네아 후작 앞에 부복했다. "무슨 일인가?" "드디어 숲을 빠져나왔습니다." 병사의 보고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40일간의 이 지루한 행군이 끝난 것이다. "음 그래. 정찰조의 보고는?" "예 숲을 빠져나와 약 네 시간 거리에 자네멘이라는 엑쿠스로 통하는 성이 있다고 합니다. 조그마한 소도시이지만 몬스터들의 습격에 대비해서 폴티아의 육군 중 6할이나 되는 3000의 병력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해전에 동원된 해군들 대신 수도를 지키기 위해 1000명의 병사들이 떠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니 수비 병력은 겨우 2000이나 될까 말까 할 테죠." "잘들 들었겠지? 오늘부터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다. 해군력은 몰라도 육군은 형편없는 곳이니 매우 쉬운 전투가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의 해군병력이 이쪽 방면으로 몰려 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면 레인하르트 공작의 수군 병력이 상륙하게 되어 그들과 양동작전을 펼칠 수 있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의 승리는 확실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 그동안의 지루함을 떨쳐 버릴 듯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사실 행군하는 게 문제였지. 이번 원정은 행군하면서 별 이상만 안 생긴다면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전쟁이었다. 만약 두르툰 오크 부족이 짱짱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더라면 전쟁 자체가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오크들이 자멸함으로서 디그리스는 커다란 콩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 그것이 병사들의 사기를 크게 상승시켰다. "전진! 진격하라!" "우아아아아!" 그렇게 전쟁은 시작되었다. "드디어 전쟁인가?" "역시 인간이란 종족은." 아크와 레골룸스는 자네멘의 허름한 성벽을 바라보며 한 마디씩 했다. 일단 성의 동문이 주 공격대상이었다. 그리고 육로 원정대의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 서, 남쪽에도 몇 천 정도의 병력이 매복해 있었다. '사람을 죽이게 되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여러 매체에서 전쟁이나 살인을 접해본 그이지만 사람을 실제로 죽이거나 죽는 것을 보는 것은 그로서는 처음이었다. 대 두르툰 전 때 나스레딘이란 엘프가 죽는 모습은 두르툰과의 사투로 보지 못했으니 처음이 맞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면 살인이 아주 가볍고 잔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걸 생각하니 약간은 움츠려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크라는 인격체를 죽여 본 적은 있었다. 또한 디그리스 기사들과 충돌했을때도 사람을 죽여 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오크는 아크의 생각으로는 몬스터의 일종으로 그에게 경험치와 아이템을 남기는 존재에 불과했고 디그리스 기사들과 충돌했을 때는 꼭 그들을 죽일 필요가 없었기에 살려두었다. 이렇게 인간을 꼭 죽여야만 하는 상황은 다르다. 몬스터 로드 T군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분노할 일이지만. 어찌 되었건 아크는 인간과 타 생명체에 대한 차별의식을 엄연히 가지고 있었다. 한참동안 성을 응시하던 론은 검을 뽑아 성을 가리키며 외쳤다. "전원 공격!" "우아아아아아아아 이야아아아아아!" 전쟁의 북소리와 함성이 들리는 가운데 병사들은 지휘관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흙먼지 구름을 동반하여 돌격하는 디그리스 정규군 그런 그들에게 응사 하는 수비군들의 화살이 날아왔다. -휘리릿 휘릿 휫 대부분의 병사들은 방패로 몸을 잘 가리고 진군했다. 그러나 창이나 양손검, 그리고 소형 방패를 지닌 후방군들에게는 화살이 제법 위협적이었다. "훗. 어설프군. 활이란 이런 거다!" 레골룸스는 자네멘 수비병들의 어설픈 활솜씨를 비웃고는 활을 꺼내 화살을 장전했다. "또 나왔구만 잘난 척." "모든 것은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법이지." -휙 "으악!" -피릿 "크아악 내 눈!" -휫 "아아악!" 레골룸스의 화살은 원 샷 원 킬로 성벽에서 몸을 사리던 수비병 궁수들으 맞추었다. -핏 "큭!" 한 궁수가 레골룸스의 화살에 목이 뚫린 채 성벽 밖으로 떨어졌다. -콰직 "......!" 머리부터 떨어져 그대로 머리가 박살난 병사의 시체는 여중생들이 장갑차에 깔려 죽은 사진보다 더욱 처참했다. 보다 못한 아크는 옆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론을 불렀다. "저기 사령관님." "뭔가? 아크 경." "굳이 이렇게 전쟁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항복 권고만 한다고 하더라도 저들은 성문을 열어 줄 겁니다." "물론 경의 말은 옳다. 하지만 먼 거리를 행군한 병사들에게는 사기를 끌어올릴 만한 자극제가 필요해 그러자면 이번만큼은 저들을 조금은 잔인하게 다룰 필요가 있어." "하지만!" "더 이상 토를 다는 것은 항명으로 알겠다." "......" 론과 아크가 몇 마디 씩 나누는 동안 병사들은 어느덧 성문 앞에 다다른 채 전차로 성문을, 사다리로 성벽을 공략하고 있었다. "앗 뜨거!" 수비군의 끓인 쇳물에 한 병사는 몸이 그대로 녹아 바스러졌다. 너무나도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그것을 보던 아크는 고개를 돌렸다. "오크들은 처참하게 죽인 놈이 저런 것은 싫으냐?" "좀 보기가 그렇군." "오크나 인간이나 똑같은 인격체다." "마린 죽는 게 드라군 보다 더 끔찍해." "하아?" 아크에게 시비를 걸던 레골룸스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방 뚫릴 줄 알았던 수비군들의 저항은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그 덕에 셩벽을 타는 디그리스 군들은 많은 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자네멘 수비군들에게 당하고 있었다. 숫자의 차이란 게 이런 것이다. 수가 적은 쪽은 어떻게 라도 자기가 할 몫을 충실히 하면서 필사적인 각오로 나오지만, 수가 많은 쪽은 '내가 아니더라도'나 '대충대충' 하려는 안일한 생각에 괜한 피해가 생기는 것이다. 어차피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런 괜한 피해가 느는 것은 좋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론이 직접 달려나갔다. "하앗!" 론의 도약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단 한 번의 점프로 성벽에 올라서 버린 것이다. "역시 소드 마스터!" 성벽에 올라선 론에게 여러 수비병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론의 은빛 갑옷에 점차 붉은 핏자국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수비병들의 시체가 쌓여갔다. 그 모습을 본 디그리스 정규군들은 사기가 올라갔고 론의 무용에 할 말을 잊은 수비병들은 항복하거나 도망치기에 바빴다. 오러 블레이드를 쓸 수 있는 익스퍼트 급 기사도 하나 없는 조그마한 시골에서는 론 하나를 막을 이가 없었다. "성문이 뚫렸다!" 그리고 성문이 뚫리면서 약 1시간 가량의 전투는 매우 싱겁게 끝났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파괴의 형제 "으아아악!" "으흐흐흐흐흐." 접전이 벌어졌던 자네멘 시의 북쪽 성벽은 부상을 당한 병사들과 그 가족들의 비명과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성벽이 뚫리자마자 자네멘 성의 쾰른 남작은 순순히 항복했다. 폴티아 공에게 중용되지 못하고 시골의 수비 임무로 전락했던 그는 도시에 약탈을 자행하지 않겠다는 조건에 별다른 저항 없이 이 성의 소유권을 디그리스로 넘겼다. 디그리스와 폴티아는 반도인과 본토인이라는 지역 감정은 존재했지만 원체 한 줄기에서 나온 동포들인지라 병사들도 민간인들을 건드리지 않았고 민간인들도 반항하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는 내일까지 진지로 복귀하라는 명령과 함께 약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이 주어지자. 많은 병사들은 성내 구경도 하면서 성안에 있는 사창가를 찾아갔다. 원체 병사들이 많아 사창가가 크게 발달한 자네멘의 사창가들은 오늘 엄청난 전쟁 특수를 누렸다. 이렇게 주어진 자유시간에 아크는 성내의 식당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이 세계로 온 뒤, 여태껏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는 아크. 물론 군에 들어가면서 짬밥을 먹은 적은 있지만 짬밥은 단순한 배 채우기 용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크는 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3만이 넘는 손님이 찾아와 특수를 누리고 있는 자네멘. 하지만 활기찬 저자거리의 이면에는 여러 상이 군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크는 비명을 지르는 한 군인을 차마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이봐! 어디 가?" "잠깐만. 골룸." 아크는 배에 천을 두르고 그 천에 붉게 물든 얼룩을 움켜쥐고 있는 한 병사에게 달려갔다. "이보쇼. 괜찮소?" "크흑! 사, 살려 주십시오!" 디그리스 정규기사 복장의 아크를 보고 기겁하는 병사. "살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풀 힐!" 아크가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고 외치자 블레싱 소드는 아크에게 있는 약간의 마나를 흡수해 힐의 윗 단계 회복마법 풀 힐을 발동시켰다. 힐링의 청량감에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차린 병사는 고통은 남았지만 출혈이 그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서는 그는 자신의 배에 두른 천을 풀었다. "......! 가 감사합니다. 성기사님! 감사합니다." 병사는 배에 검상이 사라지고 출혈도 멈추자 남아있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크에게 연신 절을 해 대었다. '호오? 이거 뿌듯한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병사의 표정을 읽은 아크는 착한 일을 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가 감사의 인사를 표하면 예의 상 이렇게 말해야 했다. "뭐 별말씀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있지 않겠습니다." "하핫. 그럼." 아크는 성자의 미소를 한 번 지어 준 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레골룸스에게 돌아갔다. "착한 일을 했더니 기쁘군." "얼씨구. 성자 나셨다." "아. 마나를 썼더니 배고프다. 빨리 가자." "저기 하나 있다." 스푼과 포크가 새겨진 나무 표지판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는 아크와 레골룸스. "헤헤 어서 오십시오." 대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험상궂은 인상의 도저히 음식점 서빙을 하는 외모로는 보이지 않는 거구의 사내가 썩은 미소로 아크와 레골룸스를 맞이했다. "디그리스 군에서 오신 분들이군요. 오늘 그 쪽에서 온 손님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합석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사내의 말처럼 식당 안은 아크와 같은 목적으로 찾아 온 병사들로 북적거렸다. "에 뭐 그러죠." "하하 그럼 저쪽으로." 6인용 테이블에 병사 세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곳을 소개해 주는 사내. "뭐야? 자리도 좁은데 무슨 합......" 거절하려던 병사들은 아크와 레골룸스가 입고 있는 기사단 제복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뭘 가져다 드릴까요?" "여기서 제일 잘하는 게 뭡니까?" "연한 송아지 살을 강한 불에 살짝 구워서 자일리 소스를 바른 스테이크 식사 세트가 있습니다만." "그걸로 하죠." "옙! 옆에 엘프 분은?" "야채 샐러드 하나." "네에 알겠습니다." 근육질의 몸을 살랑거리며 주방으로 사뿐히 달려가는 거구 사내의 모습에 아크는 기가 찼다. "아니. 음식점에서는 마땅히 귀여운 여자 서빙원이 서빙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슨 게이 바도 아니고." "저기." 아크는 레골룸스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체구의 소녀가 남자들 사이를 헤집고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있었네?" "오늘은 바빠서 주인이 서빙을 나온 모양이지. 근데 너 돈은 있으면서 음식 먹으러 온 거냐?" "어? 그러고 보니 돈 없는데?" 생각해보니 아크에게는 현금이 한 푼도 없었다. "우리는 점령군이니까 무력으로 그냥 먹고 튀어도 뭐라고 못할 거 같은데?" "무립니다. 기사님." 조용히 수프를 먹던 합석한 병사 하나가 말했다. "왜지?" "저기 저 주방을 보십시오." "......쟤네들 뭐냐?" 주방에는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든 여러 병사들이 열심히 접시를 닦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몇 명은 식탁을 닦거나 서빙 까지 하고 있었다. "다 이 식당에서 무전취식 하려다 저 떡대한테 실컷 얻어터진 녀석들입니다. 저 식당 주인. 보통 실력이 아니에요. 뭐 기사님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야 골룸. 너 돈 있냐?" "없다." "그럼 음식 아직 안 나왔으니까 그냥 튈까?" "그럴까?" 아크와 레골룸스는 슬쩍 일어나 출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어깨를 잡는 거대한 손이 있었다. -덥썩 "손님들 어디를 가시는지?" 떡대 사내였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위압감을 풍기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하하하. 배,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좀." "화장실은 저쪽입니다만." "그래요?" "아! 참고로 음식 시켜 놓고 그냥 가시려면 가실 때 저 좀 보고 가시지요." 떡대 사내의 왠지 모르게 무서운 목소리. "아하하 음식 시켜 놓고 왜 가요? 먹고 가야죠." "하하 그럼 좋은 식사시간 되십시오." 결국 떡대 사내의 위압감에 눌려 도로 테이블로 돌아 온 아크와 레골룸스는 사내에게 잡혔던 어깨가 욱신거렸다. "상당한 고수 같은데?" "이제 어떡하지?" 아크와 레골룸스는 합석한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그런 아크와 레골룸스의 애처로운 시선을 애써 피하며 음식을 먹는데 열중했다. "어이 돈 좀 빌려 줘." "저희도 돈 없습니다." "뒤져서 나오면?" "저희들도 처음에 무전취식 하려다가 저 녀석들이 당하는 거 보고 간신히 음식값만 빌린 겁니다." "크흑!" 아크에게는 열 여덟 덩이의 금괴와 블루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하지만 가방 속에 그 무거운 금괴를 이런 곳에까지 들고 들어올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아크는 현재 한 푼도 없는 상태였다. "자.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아크의 앞에 놓여진 화려한 음식들. 상당히 비싸 보였다. "서비스로 레몬 에이드와 파인 향으로 살짝 익힌 닭다리 살 구이입니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체하지 마세요." 인자한 웃음을 짓는 사내. 하지만 그 웃음은 너무나도 섬뜩했다. 식욕을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 그러나 이것을 다 먹고 나면 남는 것은 지긋지긋한 접시 닦기이리라. 아니 어쩌면 노예로 팔릴 지도. "젠장.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더 좋댄다. 그냥 먹고 버티자!" 결국 아크는 뒷일 생각 안 하고 퍼먹는 길을 택했다. 한참 고개를 처박고 먹던 아크는 갑자기 고개를 퍼뜩 들고 말했다. "호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뭐가 말이냐?" "골룸아. 그 샐러드 야채 좀 줘봐." "여기." 아크는 부수적으로 주어진 빵에 레골룸스가 준 야채를 깔았다. 그런 다음 큼지막한 스테이크 고기를 반으로 잘라 그 위에 올린 다음 빵을 덮었다. "먹는 거 가지고 장난하면 벌받는다." "무식한 녀석. 이게 바로 햄버거란 거다." 음식들을 재료 삼아 햄버거로 만들어 먹는 아크. 그런 그를 보고 한 병사가 물었다. "기사님. 그거 맛있습니까?" "별미 중에 하나지. 아마 이렇게 먹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나뿐일 걸세. 한 번 맛 볼텐가?" 병사는 이게 왠 횡재냐 하며 넙죽 받아먹었다. "......! 이거 맛있네요." "그렇지?" "하핫! 꽤 기발한 생각입니다. 빵에다 야채와 고기를 끼워서 먹다니." 감탄하는 병사와 그런 그의 반응을 보며 흐뭇해하는 아크. 먼 훗날 이런 아크의 행동은 이 세계 패스트푸드의 시발점이 된다. 먹기엔 조금 찝찝했지만 어쨌든 이쪽 세계에서 만족할 만한 식사를 마친 아크.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무전 취식의 난관을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골룸아. 어디서 바퀴벌레 같은 거 못 봤냐?" "바퀴벌레는 왜?" "잡아서 몸통을 반절로 자른 다음 빵 속에 끼워 놓게." "무슨 그 따위 짓을." "야 이 시키야! 돈 없이 밥 먹었으면 음식에서 바퀴벌레라도 나왔다고 해야 할 것 아냐? 빵을 먹다 보니까 이상한 게 씹히길래 한 번 봤더니 반절만 남은 바퀴벌레 토막시체가 있더라. 이러면 어디 식당 주인이 돈 내놓으라고 하겠어?" "좋은 방법이긴 한데. 날씨 덕분인지 벌레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젠장. 뭐 좀 좋은 생각 없어?" "글세? 그냥 내일 군부대에서 찾아 올 때까지 버텨볼까? 기사단의 기사들이 돈 없어서 못 가고 있다고 하면 알아서 처리 해 주겠지." "손님도 많은데 테이블은 비워 줘야 할 거 아냐? 임마!" "그럼 어쩌자고?"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그냥 빨리 튀자. 너나 나나 달리기 속도는 빠르니까." "좋아. 한 번 해 보자." 공짜 밥 먹고 도망치기로 작심한 아크와 레골룸스는 그제야 테이블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얼마입니까?" "1골드 2실버입니다." "가만 있자. 지갑이 어디 있나......튀어!" 주머니를 뒤지는 척 하던 아크와 레골룸스는 그대로 출입구로 달렸다. "거기 서라! 감히 내 식당에서 음식값을 안내고 도망을 쳐?" 뒤늦게 카운터에서 일어 난 떡대 사내는 그 둘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워낙 빠르게 도망치는 무전 취식 자들을 놓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막 문 밖으로 나가려던 아크는 그만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콰당탕 "아야야야야야야 야! 골룸! 같이 가!" 치사하게도 레골룸스는 넘어진 아크를 본체만체하며 자기 혼자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아크는 뒤따라 나온 떡대 사내에게 붙잡혔다. "야! 이 골룸 새꺄 너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냐? 이 치사한 자식아!!" "헤헤헤 친구 한번 잘 두셨군. 그나저나 감히 음식값도 안 내고 도망을 쳐? 처절한 피의 응징을 가해주마!" 떡대 사내의 주먹 공격이 날아오자 아크는 몸을 비틀어 사내의 공격을 피해냈다. "오호? 피했다? 그럼 이건 어떠냐?" 사내는 반짝이는 대머리로 아크에게 박치기를 가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콰직!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끄아아아악!" 아크에게 박치기를 먹이려던 사내는 오히려 아크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하고 말았다. 바로 아크의 전매 특허 기술. 남근 무릎 찍기 말이다. "뭐야? 괜히 겁냈나? 별 것도 아니잖아?" 가랑이 사이에 양손을 집어넣고 뒹구는 사내의 모습에 아크는 허탈했다. 급소 공격 한 방에 이렇게 나가떨어질 녀석이었다면 그가 겁낼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파괴의 형제 "이야아아압!" "어! 어! 어!" 벌떡 일어선 떡대 사내는 끝난 줄 알고 방심하고 있던 아크를 그대로 들어서 던져 버렸다. -와장창창! 식사 중이던 테이블에 그대로 떨어진 아크는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어디서 이 자식이 내 거시기를!" 떡대 사내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면서 테이블을 부수며 떨어진 아크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기절한 줄로만 알았던 아크도 벌떡 일어나 나무 의자로 떡대 사내에게 체어 샷을 먹였다. -빡! "컥!" 왼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는 떡대 사내. 아크는 의자로 정확히 그의 뒤통수를 갈겨 버렸다. -빡! 앞뒤로 출혈을 일으키며 쓰러져 버린 떡대 사내를 아크는 사내의 가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그대로 들어서 어깨에 짊어졌다. "F-U!" -콰지직! 존 시나의 마지막 기술 F-U가 그대로 떡대 사내에게 들어갔다. 그것도 테이블에 정확히. 원래 아크의 힘이라면 도저히 떡대 사내를 들어 올릴 수 없었지만, 근력 증가 마법 덕에 가뿐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떡대 사내를 들어서 메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아크와 떡대 사내와의 무전 취식 타이틀을 놓고 벌였던 테이블, 체어 매치는 아크의 승리로 끝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크크크크 제법인데?" "뭐야? 어떻게 에프 유를 맞고도 멀쩡하지?" 아크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체어샷 두 방에 테이블에 피니쉬 기술까지 당했는데 이렇게 빨리 일어난단 말인가? "이거나 먹어랏!" -쨍그랑! 아크는 떡대 사내가 던진 술병에 이마를 그대로 얻어맞고서는 쓰러졌다가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떡대 사내는 아크의 뒤통수를 잡아서 그대로 테이블에 처박았다. -퍽!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지 못하는 아크. 그런 아크에게 구경하던 병사들의 응원이 쏟아졌다. "아크 경! 힘내십시오!" "파이팅! 저 떡대 눕혀버려요!" 그러자 이 식당 종업원들을 비롯한 자네멘 주민 손님들의 응원이 떡대 사내에게 모아졌다. "힘내라! 케인!" "저 건방진 애송이를 날려 버려 케인!" 정신이 혼미해 진 채로 비틀거리던 아크는 떡대 사내의 이름을 듣고는 갑작스레 정신이 말똥해졌다. '케, 케인? 저 덩치며 빡빡 민 대머리며 획 돌아간 눈동자며......진짜 케인 같잖아?' 케인이라는 이름은 서양에서 제법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워낙 전투 상황 자체가 레슬링의 하드코어 경기 같은데다가 외모까지 닮았으니 만약 케인이 화염마법까지 사용한다면 정말 비슷해 보일 것 같았다. 일단 대충 정신을 차린 아크는 접시 하나를 주워 들고 케인에게 접시 샷을 먹이려 했다. "이야아아압! 접시 샷!" -쨍그랑! -퍽 접시 샷을 날리려던 아크. 그러나 케인은 다리를 들어 접시를 차 버렸다. 케인으로서는 그저 접시 공격을 막으려고 다리를 뻗은 것이지만 그것을 당한 아크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명백한 레슬링 기술 빅 풋이었다. '뭐야? 아크라우스 이 자식이 다섯 번째로 케인을 이곳으로 보낸 건가?' 이런 생각까지 하던 아크는 곧이어 케인의 체어 샷이 날아오자 그 의자를 향해 드롭킥을 날렸다. -퍽 "억!" "OK 성공!" 아크가 드롭킥으로 차버린 의자는 그대로 케인의 얼굴에 명중했다. 아크는 케인이 의자를 놓치자, 그 의자를 주워 케인의 배를 공격했다. 그러자 케인은 배를 움켜쥐며 허리를 굽혔다. "액스 킥!" 아크는 케인의 자세가 낮춰진 것을 놓치지 않고 케인의 뒷목을 발뒤꿈치로 내리 찍었다. 그러자 케인은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크는 케인이 쓰러진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아크는 케인을 깨진 유리조각이 흩어져 있는 테이블에 눕히고 테이블을 두 개를 쌓은 뒤, 그 꼭대기에 올라 간 다음 소리치며 뛰어내렸다. "플라잉 엘보우 드롭!" -콰지직 -쿠당탕 2단 테이블에서 뛰어내려 그대로 케인을 팔꿈치로 찍어버린 아크는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일어났다. "하아, 하아, 학, 학, 학." 아크는 숨이 가쁜 듯 연신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엄청난 유혈이 낭자한 하드코어 경기였다. 여기저기 깨진 유리 조각들이 여기저기 박혀서 출혈을 일으켰던 것이다. 물론 아크야 자동적인 힐 발동으로 외상은 없었지만 유리조각이 박힌 부분이 아파왔다. 피는 대부분 케인의 피였다. 온몸에 유리조각이 박힌 채 피를 흘리는 케인. 실제 레슬링 경기가 아니기에 커버는 없지만 이 정도면 아크의 승리라고 봐야 했다. "물 한잔 줘요." "예." 무전 취식 하려다 케인에게 맞고 나서 서빙일을 하던 병사는 재빨리 아크에게 물을 가져다 주었다. 아크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또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다음. 나머지 물을 모두 머리에 뿌려 머리카락을 적셨다. 그리고 입에 머금은 물을 분수처럼 뿜으며 물쇼를 해 승리를 자축했다. 그런데 갑자기 케인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푸웁! 뭐, 뭐 저런 놈이 다 있냐?" 아크는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케인을 보고 머금었던 물을 뿜었다. "오호. 이번엔 정말 확실하게 끝내 주도록 하지." 아크는 부러진 테이블 다리를 주워 들고 루리엘에게 배웠던 1서클 화염마법 파이어 볼로 막대기에 불을 붙였다. 가시철사를 감아서 캐터스 잭(프로레슬링의 반칙이 없는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에서 사용하는 나무 방망이에 가시철사를 감은 무기)을 만들면 금상 첨화겠지만 일단은 불 방망이로 만족해야 될 듯 싶었다. "케헤헤 이렇게까지 날 몰아붙이다니. 대단한 걸?" "너야말로." "지금이라도 음식값과 식당 수리비를 낸다면 살려서 보내주마." "수리비는 반절은 네 부담이잖냐?"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돈 없소만." "그럼 죽어랏!" 케인은 테이블을 들어서 그대로 아크에게 던졌다. 아크는 그것을 가볍게 피한 뒤 케인에게 불 방망이를 날렸다. "요거나 먹어라!" "이얍!" "......!" 케인은 불이 붙은 방망이에 불타고 있는 부분을 손으로 잡았다. "야! 너 안 뜨겁냐?" -콰직! 케인은 불타고 있는 방망이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방망이는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케인은 아크에게 박치기를 먹였다. -퍽 뇌가 터져 나갈 듯한 고통에 아크는 현기증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우랴아아아압!" "우와아!" 케인이 그대로 아크를 들어 올리자, 이 광경을 보던 손님들은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했다. 아크를 고릴라 프레스 자세로 들어올린 케인은 음식접시가 많이 보이는 테이블 손님들에게 눈짓으로 비키라는 신호를 보냈다. 손님들이 자리를 비우자 케인은 아크를 그 테이블 위로 던져 버렸다. -와장창창 -쨍그랑 -콰당탕! "으아아! 아악!" 유리 조각이 살을 파고드는 아픔에 아크는 이리저리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다. 케인은 아크를 끝장내기 위해 의자를 들고 쓰러진 아크에게 다가갔다. "흐흐 끝장내주마." "크으윽 웃기지 마라! 드랍 터 홀드!" "어어억!" 아크는 누운 자세에서 걸어오는 케인의 다리를 두 다리를 이용해 걸어서 넘어뜨렸다. -콰당 "이제 끝내주마!" 아크는 넘어진 케인의 왼쪽 팔을 자신의 가랑이 사이로 집어넣고 양팔로 케인의 콧등을 강하게 조였다. 레슬러 크리스 베노아의 마지막 서브 미션 기술 '크리플로 크로스 페이스'가 작렬한 것이다. "으으으으아아아악!" "이대로 끝낼래? 안 끝낼래?" "돈 내놔! 이 자식아." "독한 것." 최후의 서브미션기술에 걸려들었으니 이제 승부는 대충 아크의 승리 쪽으로 기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어, 어, 어, 얼라리요?" 케인은 엎드려 누운 자세에서 그대로 아크를 업은 채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실로 가공할 만한 힘이었다. 그러자 아크는 더 이상 크리플로 크로스 페이스의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어 케인을 그냥 풀어주었다. "젠장 샤프 슈터 같은 걸로 끝장을 봤어야 했는데." "제법 아프구만. 웬만하면 그냥 순순히 돈이나 돈 되는 것을 내 놓는 게 어때? 나도 이렇게 내 식당 부숴 먹기는 싫다." "......!" 그제 서야 아크는 등뒤에 매 놓았던 블레싱 소드가 생각났다. 이 칼을 맡기고 돈을 가지러 가도 되고 또 블레싱 소드로 음식값을 치른 뒤 필요하면 언제들 소환 시켜 쓰면 될 것 아닌가? -용어설명 F-U : 현재 WWE레슬러 존 시나의 마지막 기술. fuck you의 약자이며 상대방의 가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 넣고 어깨에 들러 맨 다음. 그대로 땅바닥에 메치는 기술이다. 체어 샷 : 말 그대로 의자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기술. 반칙의 대명사이다. 레슬링 경기에서는 철로 된 철제 의자를 쓰나. 본편에서는 나무 의자로 대체했습니다. 테이블 매치 : 상대방을 테이블에 던져서 테이블이 부숴지면 승리하는 경기의 방식 드롭 킥 : 크게 점프하여 두 발로 상대를 차버리는 기술. 케인 : 현 WWE 레슬러이며 월드 급 챔피언을 1회 차지하였다. 현재 기믹은 미치광이이다. 각본상의 형 언더테이커와 여러 번의 대립을 거쳤으며 언더테이커와 파괴의 형제라는 태그 팀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본편의 케인은 이름과 컨셉만을 따 왔을 뿐 그와는 관련이 없다. 크리플로 크로스 페이스 : 상대의 한 쪽 팔을 잡아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넘어 뜨린 뒤, 두 손을 깍지를 쥐고 상대방의 얼굴을 조이는 기술로 밑의 설명과 같이 현 WWE 월드 챔피언 크리스 베노아의 마지막 서브미션 기술이다. 고릴라 프레스 : 상대방을 두 손으로 하늘 높이 치켜 든 다음. 그대로 던져 버리는 기술 드랍 터(더) 홀드 : 누운 자세에서 달려오는 상대방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 주로 WWE 프로레슬러 레이 미스테리오가 619란 기술을 쓰기 위해 준비동작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플라잉 엘보우 드롭 : 링의 삼단 로프에서 누워 있는 상대에게 그대로 뛰어 내리며 팔꿈치로 상대를 찍는 기술. 본편에서는 아크가 테이블 위에서 사용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파괴의 형제 점점 바보스러워 지내요......스토리나 빨리 진행시킬렵니다. -벌컥 그때 마침 음식점 문이 벌컥 열리고 몇 명의 상이 군인들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왔다. 아크와 케인은 한참을 전투 중이라 저 상이 군인들이 단순한 손님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중 앞장서서 들어온 멀쩡해 보이는 병사가 손가락질을 하며 외쳤다. "저기. 저 분이 그 성기사님이셔!" 병사의 손가락질에 아크는 슬쩍 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자신이 그 성기사란 것을 눈치 채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상이 군인들을 유심히 살펴 보자.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했던 그 병사가 방금 전 치료해 준 그 병사라는 것을 눈치챘다. 상이 군인들은 우르르르 달려와 아크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저희도 치료해 주십시오. 성기사님." 이 예상외의 사태에서 아크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훼할 수 있는 묘책이 떠올랐다. "좋소 대신 치료비는 가지고 있겠지?" "예? 저 친구는 공짜로 치료를 받았다고 하던데요?" "저 친구는 오픈 베타버전이야." "?????????" "뭐 비싸게 생각 할 것은 없네. 단돈 10실버만 받을 테니까." 아크의 말에 병사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부상을 완치시켜 준다는데 10실버면 그다지 비싼 가격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케인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 지금 뭐 하는 거냐?" "기다려. 케인 씨. 곧 음식 외상 값 갚아 줄 테니까. 그럼 위급한 사람부터 와 보시오." "전 팔이 잘렸는데 지혈을 해도 피가 안 멎습니다." "옆구리가 칼에." "저는 등이 베여서." "화살을 네 대나." 아크는 제각기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 성심껏 힐링을 걸어 주었다. 상처가 심해서 최하위 급의 힐로는 잘 낫지 않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마나를 약간 씩 덜어서 풀 힐이나 그레이트 힐로 치료하기도 했다. "다음." "저는 며칠째 열이 펄펄 끓어서." "뭐요?" 마지막 환자는 특이하게도 앓고 있는 병을 호소했다. 그러나 다친 것만도 치료하는 힐로는 이 환자를 치료 할 수 없었다. 아크가 무슨 'R'이라는 정명기를 운기 하는 중국인 치료사 소녀도 아니고. 물론 고위급 치료 마법에는 질병을 치료 할 수 있는 마법도 있었고, 블레싱 소드도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힐, 풀 힐, 그레이트 힐, 근력 증가, 민첩 증가, 홀리 라이트 등의 몇 가지 신성 마법 밖에 모르는 아크로서는 그 주문을 실행할 수 없었다. "이보쇼. 내가 무슨 고위급 신관도 아니고 난 그저 몇 가지 신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기사일 뿐이오. 그런데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아니오? 그리고 그런 감기나 열병 가지고 무슨 성기사까지 찾아와서 호들갑이야! 앙! 감기 걸렸으면 이불 뒤집어쓰고 땀 흘리면서 푹 자 알았어!" 아크가 큰소리로 몰아붙이자 병사는 찍소리도 못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병사들을 치료해 준 아크는 그 대가로 100실버(=1골드)를 벌 수 있었다. "어이. 여기 음식 값!" 아크는 케인에게 100실버를 주고는 그만 음식점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 아크의 어깨를 붙잡는 케인. "이봐." "또 뭐야?" "2실버가 모자라." 그랬다. 아크가 외상으로 먹은 음식값은 1골드 2실버였다. "크으으으 그것 좀 깎아 주면 어디가 덧나냐?" "그건 그렇다 치고 식당 수리비 10골드 더 내놔라." "뭐시여? 반절은 네놈이 부순거잖어!" "어쨌든 돈 내놓기 전에는 절대로 못나간다." 단호한 케인의 태도에 아크는 최후의 수단인 '인질로 칼 맡기기 전술'을 사용키로 마음먹었다. "그래. 이 칼 너한테 맡겨 놓고 돈 가지러 갔다 올게." "아니. 그걸로 갚을 필요는 없어." "그럼 뭐? 접시 닦기? 서빙? 지랄! 그런 걸 하느니 차라리 다시 싸우고 만다. 덤벼 새꺄 박살내주마!" "그건 아냐." "그럼 뭐여?" "이리 따라와라." 케인은 2층 계단으로 저벅저벅 올라갔다. 이 틈에 도망쳐볼까 하며 고민하던 아크는 그냥 한 번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다." 케인은 어느 방으로 아크를 불렀다. 케인이 들어간 방에 따라 들어간 아크는 지독한 악취에 코를 막았다. "켁 이건 또 무슨 냄새야?" 케인은 이런 지독한 냄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 침대 위에 놓인 검은 천을 벗겨 내었다. 침대에는 케인과 같은 거대한 키의 거한이 누워 있었다. "도대체 뭐냐?" "우리형이다." "형?" "그래. 장의사 일을 하다가 얼마 전에 시독에 중독 되서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 "뭣? 장의사?" 아크는 케인의 형인 이 누워 있는 사내가 장의사라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형 이름이 뭐냐?" "앤더." "너희 성은?" "태이커." "하? 하하! 하하하하." "갑자기 왜 웃는 거냐?" "만약 신이란 존재가 진짜 있다면 지금 상황은 그 신이란 자의 농간일거야. 하하하하." "???" 케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건 그렇고 뭘로 돈 내라는 거야?" "우리형을 치료해 줘." "에?" "부탁이다." "크흠. 한 번 해 보지." 아크는 일단 앤더에게 힐을 써 보았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풀 힐!" 풀 힐을 써도 마찬가지. 역시 어디를 다친 것이 아니라 독에 걸렸다니 힐 계열로는 치료하기 힘들었다. 시체 독에 걸린 앤더를 고치려면 블레싱 소드에 있는 상태이상 회복마법을 써야 했지만 아크는 그런 신성마법을 몰랐다.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전직 폐인이다. 그의 판타지 상식으로 보았을 때 독 따위의 상태이상 증세를 치유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고 외쳤다. "큐어!" 블레싱 소드가 빛을 뿜었다. 마법이 발동되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앤더의 상태는 여전했다. '위력이 약하거나 큐어가 다른 개념의 마법인가 보군. 그렇다면." "리커버리!" 게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상태이상 치유마법. 큐어와 리커버리 그리고 리커버리는 확실히 앤더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 고약스럽던 시체 독 냄새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 그 첫 번째 증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앤더의 몸 여기저기에 녹색 반점도 수그라 들었다. "휴 이제 얼마 안 가 깨어날 거야. 됐냐?" "고, 고맙다. 정말 고마워." "이제 그만 가도 되겠지?" "잠깐!" "또 뭐야? 이 자식아!" "형을 고쳐준 데 대한 답례를 하고 싶다." "답례? 얼마나 줄래? 아! 돈은 필요 없어. 식당 부순 것 수리비 깨나 나올테니까." "그럼?" "흠." 솔직히 사례를 받을 마음은 별로 없다. 하지만. 모 치료사 소녀 나오는 소설에서 봤던 격언. 치료비는 어떤 거라도 꼭 받아라 라는 말이 떠오른 아크는 아무 거나 받기로 했다. 아크는 앤더의 방에 놓여진 한 허름한 삽을 가리켰다. "저거." "이 삽을 달란 말이냐?" "그래. 어때 싸게 먹히지?" "안목이 뛰어나구나. 세계 8신기 중 하나인 이 삽을 고르다니." "뭐 8신기? 그건 또 무슨 뜬금 없는 소리냐? 음 그래. 형을 살려준 은인에게 이런 허름한 삽 하나 줘서 보낼 려니 미안하기도 하겠지. 그렇다고 뻥 칠 것까지는 없어. 잘 살아라." 아크는 케인이 준 삽을 가지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러나 아크는 이 삽이 자신의 인생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리란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란 말이 어울리는 디그리스 육군은 자네멘 성을 떠난 지 하루만에 1천 가량의 군사가 주둔 중이던 폴티아 반도의 4대 도시 엑쿠스를 점령함과 동시에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단 일주일만에 어느덧 폴티아 북반부 전체를 거의 다 장악해 버렸다. 물론 폴티아 반도에 육군이란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에 별 다른 전투를 겪지 않은 탓도 있엇지만. 때문에 폴티아는 해상 병력 3만 중 1만의 병력을 폴티아 중심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이자 4대 도시 중 하나인 트로본 시에 급파하였다. 만약 트로본이 뚫린다면 수도 포르티아 항까지 걸어서 3일이면 도달할 수 있었기에 폴티아 공은 해상 병력의 수를 줄여가면서 까지 필사적으로 트로본을 사수하려 했다. "제법 큰 성이군."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막간 코믹 황당 외전 글이 막히고 결국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외전을 하나 써 봤습니다.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묻힌 아크라우스를 주인공으로 했으며 욕설과 어처구니 없음이 난무하지만 황당과 코믹이라는 것으로 변명해 볼까 합니다. 본편은 6월 3일 이전에 올리겠습니다. - 아크라우스와 불사조 스틸단 일본. 코믹 마켓 코미파. 많은 동인작가들과 그들의 동인지를 구입하기 위해, 또 코스튬 플레이를 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밀집해 있었다. 한국의 폐인과 맞먹는 일본 오타쿠들. 항상 게임이나 애니, 동인에만 처 박혀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기에 그들 중에서 미남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런 이들 중. 짙은 흑발을 약간 길게 길러 앞머리가 눈의 윗부분을 조금 가릴 듯한, 대체작으로 '미남'이라 분류될 만한 남자가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눈 밑의 짙은 다크 서클이 흠이면 흠이랄까? 여하튼 세라복을 입고 코스프레 중인 여성들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다. 그런 그의 앞에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몰려왔다. 코스프레를 하는 나이 먹은 여성들인지도 모르지만 앳되 보이는 얼굴로 봐서는 20대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우리랑 놀래요?" 소위 날라리들인 모양이다. 여자가 헌팅 당하는 일은 제법 흔해도 남자에게 먼저 놀자고 말을 건넬 정도라면, 이 남자의 외모가 상당히 잘 생겼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함과 동시에 이 계집애들이 하룻밤을 화끈하게 놀아 줄 수 있는, 성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난 한국인이오. 미안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소."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본어 억양이었다. 정중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집애들은 오히려 더 이 남자에게 집요하게 엉겨 붙었다. 일본 여성들은 대체로 불의를 보고도 참고, 별 변태짓을 다 하는 일본 남성들보다는 외국인을 남자친구로 더욱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이란 말을 하자, 흥미가 동한 모양이다. 남자는 이런 여학생들을 뿌리치고 가려 했다. 그때 그는 실수로 파마머리의 험상궂게 생긴 이들을 어깨로 치고 말았다. "음메? 아이고 팔이 부러졌네. 전치 1년은 나오겠는걸?" 남자는 기가 찼다. 이런 놈들 하루 이틀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놈들은 머리에 괴상한 파마까지 했다. 하지만 오타쿠들이나 찾아오는 코미파에서 시비나 거는 껄렁패들이 진짜 야쿠자일 리가 없다. 괜히 머리 볶아서 삥 뜯는 자해 공갈단 사업에 도움을 주려 한 모양이지만. 그들이 건드린 이 한국인은 일본 내 모든 야쿠자가 덤벼든다 해도 눈썹 한 번 안 꿈트릴 남자다. 그는 시비 거는 이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자 팔이 부딪혀 부러졌네, 아프네 하던 파마머리 건달이 남자의 어깨를 잡아 그를 돌렸다. "이거 그냥 가면 섭하지?" -훗 남자는 가볍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그러자 파마머리 건달들은 그 도발에 넘어가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퍽, 퍽, 퍽, 퍽 순식간에 파마머리 건달 넷은 코에서는 피를, 입에서는 이빨을, 속에서는 토사물을 출가시키며 쓰러져 신음했다. 그것을 보던 여학생들의 함성이 터졌다. 남자는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곧이어 코미파 제복의 직원 아가씨들이 그들을 치워갔다. "이런 제기랄!" 남자는 한국말로 욕을 내뱉었다. 파마머리 건달하고 여고생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그가 사려했던 오오바 에이미의 신간이 이미 매진되어 버린 뒤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코미파때 눈도장을 찍어 놨던 센도 카즈키와 하세베 아야의 판매 창은 보이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일본에 왔더니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워프로 다시 자신의 한국 지하 비밀 기지로 돌아온 남자. 아니 김석진이란 인간의 탈을 쓴 실버 드래곤 아크라우스. 괜히 잘나신 석진이 녀석 낯짝으로 갔다가, 웬 파리들이 꼬여서 뜻하던 바도 이루지 못하고 헛 마나만 쓰고 말았다. 아크라우스는 컴퓨터를 가동시켰다. 이런 날은 득템이라도 하나 하면 지금의 기분이 싸그리 날아가리라. 아크라우스의 주 캐릭터는 마검사였다. 마검사 하면 마법과 검을 같이 쓰는 그런 무진장 좋은 캐릭터인 줄 아는 이들이 있는데 웃기는 소리다. 마검사는 검에서도 어설프고, 마법에서도 뛰어난 점이 없어서, 근접, 원거리 전투. 뭐 하나 특출 난 게 없다. 거기다 레벨 업을 위한 필요 경험치는 더럽게 많아서 레벨 업이 무진장 힘들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일수록 고 레벨이 되면 진가를 발휘하는 법. 고 레벨이 되야 생기는 스킬 속성부여와, 마법 공격력과 일반 공격력을 합한 공격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하는 광검의 사용까지. 이러한 마검사 고 레벨의 장점은 공격력이 막강하고 마법형 몬스터나 방어형 몬스터 모두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어, 파티가 없이도 대단한 사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렙이 되어도 마검사 클래스는 공성에서 만큼은 버림받았다. 원체 같이 못 놀고 혼자 개인 플레이 하기 좋은 캐릭터라 고른 스텟과 스킬을 가졌지만. 마법사나 기사, 성직자처럼 공성에서의 특화된 역할을 맡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크라우스는 길드의 초기 멤버라 버림 받지 않고 지금껏 열심히 공성에 임할 수 있었다. 그들의 길드 영지인 쥬렌 요새에서 시작한 아크라우스의 캐릭터. 레비아탄. 아크라우스는 먼저 알고 지내는 이들에게 귓말을 보냈다. 길드 마스터 박 선생은 지금 학교에 있을 테니 당연히 없었고, 용준이 녀석은 MT간다고 접속 못한다고 했다. 동훈도 지금은 근무시간이고, 폐인 장천은 있었다. 레비아탄 : 하이 장 상! 전우의 시체를 밟고 : 안녕 무라카미 레비아탄 : 지금 어딥니까? 전우의 시체를 밟고 : 포테논 사막. 그레이트 어스 웜 잡는 중이야. 레비아탄 : 뭐 먹은 거 있습니까? 전우의 시체를 밟고 : 자수정 하나. 레비아탄 : 겨우 그것뿐? 전우의 시체를 밟고 : 오늘 영 그렇다. 람세스도 잘 안 뜨네. 장천이 몬스터 이름 람세스를 거론하자, 아크라우스는 멍청하게 석진에게 패했던 끝말잇기가 생각났다. 1989년 초판 인쇄하고 1997년 10쇄 개정한 그 국어사전만 아니었어도...... 레비아탄 : 뭐 열심히 하십시오. 전우의 시체를 밟고 : 람세스 뜨면 귓말할 테니까. 도와 주러 와 혼자 잡기엔 힘들거든 레비아탄 : 아 예 아크라우스는 귓말을 끝내고 요새 자주 가던 사냥터 진홍의 광산으로 갔다. 그때 그런 아크라우스의 뒤를 밟는 수상쩍은 궁수 캐릭터들이 있었다. 160 그렌 획득. 쓰론의 뿔 획득 아크라우스는 쓰론이라는 악마형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악마답게 푸른 창을 들고 나오는 몬스터였는데, 이놈에게 나오는 쓰론의 창은 어둠의 속성과 맞는 적에게 온갖 저주를 내리는 옵션이 걸려 있어, 대체적으로 성속성을 지닌 성직자 캐릭들을 때려잡기가 수월해서 공성과 사냥 모두 각광받는 아이템이었다. 리젠되어 아크라우스의 캐릭터에게 달라 붙는 쓰론. 아크라우스는 쓰론에게 성속성 부여한 광검으로 갈겨대었다. 그때 어디선가 11발의 화살이 날아와 쓰론에게 박혔다. 그리고 쓰론은 속절없이 누워버렸다. 아크라우스는 화살을 쏘아 댄 궁사 캐릭터들에게 항의했다. 레비아탄 : 뭡니까? 왜 스틸하고 난리에요? 구래? 근디? : 아 지성 님 잡는 걸 못 봤네요. 조금 짜증은 났지만 사과하는 모습을 봐서 아크라우스는 그냥 넘어가 주기로 했다. 아크라우스는 다른 곳으로 가 뜬 쓰론 한 마리를 쳤다. 때마친 한 마리의 쓰론이 더 달라 붙어 그를 공격해 왔다. "물약 좀 빨아야 겠군." 전형적 공격력 중시형인 마검사 캐릭은 자신의 렙에 안 맞는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대신, 약한 몬스터와의 다 대일은 불리했다. 떨어져 가는 피를 보며 아크라우스는 물약 단축키 F1을 연타했다. 그런데 "우어억!" 치고 있던 쓰론 한 마리가 '우어억' 소리를 내며 잡템을 떨구고 죽었다. 곧이어 나머지 한 마리도 날아온 수십발의 화살에 뿔 하나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빠득 이를 가는 아크라우스. 이것만큼은 고의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런 망할 스틸범들! 아크라우스는 엄청난 욕설을 써서 채팅창에 썼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불량단어 검출로 전송이 중단되었다는 메시지였다. 결국 아크라우스는 아주 교묘하게 욕을 써야 했다. 레비아탄 : 아 이 스버럴 ㄱ ㅐ 조옥 같은 시키들아, 어디서 몹 스틸하고 질알이냐? 맞춤법의 완벽한 파괴다. 피카츄배구 : 아 그건 님이 힘들어 보이시길래. 레비아탄 : 조옥 까고 앉았네. 내가 치라고 했냐? 스틸해 놓고 힘들어 보여서 쳤다고 하면 다냐고? 씽씽이 : ㅋㅋ 그래 스틸했다. 그래서 어쩔건데? 레비아탄 : 니그 부모들 낯짝 한번보고 싶다. 자식새끼들을 왜 이렇게 병신 같이 키웠냐? 구래? 근디? : 즐! 레비아탄 : 이 시키들이 정말 뒈질라고! 피카츄배구 : 반사! 레비아탄 : 스샷 찍어 신고한다. 개쉐들아. 피카츄배구 : 즐하셈 "크윽!" 열 받지만 쪽수가 더러워서 참는 아크라우스. 하지만 기억해 두고 나중에 두고 보리라 하며 이 스틸범 녀석들의 캐릭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불사조......스틸단?" 그랬다. 단체 스틸범들의 길드 이름은 불사조 스틸단이었다. 아크라우스가 하던 서버 최악의 비 매너 길드. 불사조 먹자단이 최근 운영자들의 단호한 조치에 와해되고 난 이후 생긴 아류 길드인 듯 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말이 있으니, 아크라우스는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진홍의 광산 3층으로 내려가 사냥하기로 했다. 물약이 조금 많이 들기는 했지만 한적한 사냥을 즐기는 아크라우스. 달라붙은 쓰론 3마리와 그레이트 배트 1마리를 처리하느라 마법을 남발했더니 엠이 딸려 엠탐 중이었다. 금방 리젠된 쓰론 한 마리가 공격을 가해 왔다. 아크라우스는 가볍게 잡아 줄 생각으로 마우스 커서를 눌렀다. 그런데 "우어억!" 또 다시 날아온 화살에 죽어 버리는 쓰론. 아크라우스는 또 스틸을 당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폭발하려는 찰나. 떨어진 아이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헉!" 쓰론이 죽은 곳에는 고가 아이템 '쓰론의 창'이 떨어져 있었다. 쓰론의 창에 마우스 커서르 연타하는 아크라우스. 그러나 채팅창에 뜨는 메시지 '아이템은 몬스터를 잡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유저에게 우선권이 돌아갑니다.' 5초 먹자 방지 시스템. 몬스터를 사냥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유저에게만 아이템을 먹을 권리를 주는 것. 그 이외의 몬스터를 잡는 데 공헌한 다른 이들은 5초 후, 한 대도 안 치고 구경만 한 일반 캐릭터들은 7초의 딜레이 타임을 주는 시스템. 그래도 아크라우스에게는 희망이 남아 있었다. 바로 저 궁수 놈들과의 거리! 저놈들이 이 쓰론의 창을 먹으려 접근하는 사이. 5초가 지나가 버린다면 이 레어 아이템의 소유권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크라우스를 놀리기라도 하듯, 큐펫 팰컨이 쓰론의 창을 먹고 스틸범 주인에게 날아가 버렸다. 팰컨은 원거리에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서 주인에게 가져 올 수 있는 특수 능력을 지닌 펫이라 궁수나 마법사 캐릭 등 레인지 어택 캐릭터들에게 선호되는 펫 중 하나였다. 피카츄배구 : ㅎㅎ 즐! 즐이란 말을 남기고 한 무리 빛줄기와 함께 사라지는 스틸단 캐릭들. 아크라우스는 차마 봐주기 힘든 엄청난 욕설 귓말을 보냈다. 그러나. 피카츄배구님은 레비아탄 님에 대해 수신거부 중입니다. 구래? 근디? 님은 레비아탄 님에 대해 수신거부 중입니다. "뷁! 죽인다아아아앗!" 절규하고 마는 아크라우스. 참 처량하기도 하다. "감히 이 버러지 같은 인간 놈들이 위대하신 드래곤. 이 아크라우스 님을 건드려? 이 도끼로 토막낸 뒤, 산채로 씹어 먹어 주마!" 아크라우스는 서슬이 시퍼런 도끼를 들고 충주의 한 PC방으로 왔다. IP추적의 결과 놈들은 모두 이곳에서 게임 중이었다. "그래 현피다. 드래곤에게 씹혀 먹히는 고통을 몸소 체험 시켜 주지." 드래곤 아크라우스를 건드린 대가는 무서웠다. 아크라우스는 도끼를 안 보이는 데에 숨겨 놓고, 2층에 위치한 PC방으로 올라갔다. 중 고등학생들이 끝나지 않을 시간이라 PC방은 빈자리도 많았고 초딩과, 폐인들만 있었다. 아크라우스는 모니터를 살피고 다녔다. 곧 어렵지 않게 스틸범으로 추정되는 초등학생 무리들을 발견했다. "푸하 이 새끼 졸라 웃긴다! 귓말 거부 하니까, 길드 메시지로 보냈는데 우리 현피 뜨러 온덴다." "헤 오라고 해. 그나저나 쓰론의 창 얼마에 팔지?" "1200만 정도 나갈 껄? 정말 땡잡았다." 당사자를 뒤에 두고 잘도 떠드는 우리의 스틸범 초딩들. 아크라우스는 속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크라우스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서 이 초등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얘들아." "왜요?" "그거 나 주면 안 될까? 쓰론의 창." "안 되는데요." "응. 그래?" 이 한 마디로 스틸범 초딩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똑바로 안 하냐? 죽고 싶은 녀석들은 꾀 부려 봐." 우리의 불사조 스틸단 초딩들은 온몸이 성한 데가 없이 터진 상태로 컴퓨터 모니터를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있었다. 죽이려고 장담하고 온 아크라우스 였지만. 철없는 꼬마 인간들일 뿐이라 죽이려니 뒤처리가 귀찮았다. 아크라우스는 담배를 손에 쥔 채 연설을 시작했다. "이 철없는 꼬맹이 놈들아. 네 녀석들이 말야. 고생을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서 아주 버르장머리가 못돼먹었구나? 부모 잘 만나, 밥걱정 안 하고, 학교 다니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있어. 아프리카 개발 도상국에서는 너희 만한 나이에 총 들고 사람 죽여야 하고, 북한에서는 하루 한 끼 옥수수죽도 못 먹고 구더기 기어다니는 시궁창에서 옥수수 국수 한 가락 건져 먹고 배탈나 죽는 꽃제비가 있는 가 하면. 가족들 먹여 살리려 누나가 국경선을 넘어 만원도 안 되는 값에 팔려서 몸을 팔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나라에 태어나서 북한 어린이들은 꿈도 못 꾸는 온라인 게임까지 하면서, 최소한 남을 배려할 줄은 알아야지 앙?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이타심이 눈꼽만큼도 없는 너희들이 훗날 이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겠냐?" 담뱃재를 털어 내고 이 연설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려야 할 꼬맹이들을 쳐다보는 아크라우스. 그러나 스틸단 꼬맹이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아크라우스가 연설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모니터를 내려놓고 꾀부리다가 아크라우스가 째려보자. 허겁지겁 자세를 잡았다. "이 자식들이 정말! 웬만하면 잡아먹어 버릴 것을 살려주니까? 꾀를 부려? 안되겠다. 네 녀석들에게는 철저한 인성 교육의 실습이 필요하겠어." 아크라우스는 마나를 모았다. 그리고 이 초딩 녀석들을 워프 마법으로 날려보냈다. 10년 후 사막을 날고 있는 비룡 아조리다하까. 지금까지 존재 유무가 확실치 않아 아프리카 오지의 미개 부족민들에게만 전설로 내려오던 생물이지만. 최근 그 존재가 드러나면서 공룡의 부활이라며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비행형 파충류이다. 이 아조리다하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3년 전. 소말리아 내전에 시바르 슈미터라는 용병단이 개입하면서부터 였다. 그들은 아조리다하까에 각종 기관총과 포탄을 실어 다니며, 측면이 취약한 독재 정부군의 전차부대를 섬멸하는데 앞장서는 큰 전공을 올렸다. 이 시바르 슈미터는 4인의 대장이 이끌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이들 모두가 황인종 청년들이라는 것이다. 짐작대로 그들은 아크라우스가 보냈던 스틸단 꼬맹이들이었다. 이들은 내전과 기아를 겪으며 7명이 죽었고 남은 이들은 4명뿐이었다. 아크라우스의 마법에 걸린 대가로 그들에게는 용의 기운이 서리게 되었고, 인류의 눈을 피해 서식해 오던 아조리다하까들은 이런 그들의 용의 기운에 끌려 스틸단 꼬마들에게 등을 허용해 주어, 지금이 시바르 슈미터가 있게 했다. 이제 그들 한국인 청년 4명이 이끄는 시바르 슈미터는 소말리아 내전을 종식시킬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트로본 성 전투 최대한 인지도를 높여 달라는 모 단체의 요청에 대대적인 수정과 함께 밤 연참으로 투베를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 쌓인 약 18회 분량의 비축분을 모두 하루 내에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제 모든 것을 불태워 보겠습니다. "레인하르트 공작님께서 보내 오신 신뢰도 97.7%의 정보에 의하면 저 성안에 병력은 약 1만 가량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정보부장 포른오 자작의 보고에 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성만 뚫으면 된다. 이거지?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마스터는커녕 익스퍼트 급 기사도 고작 7명에 불과한 폴티아입니다. 후작님께서만 나가셔도 모두 피떡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 좋아 병사들을 공격 준비시켜. 아 참! 북문과 서문 쪽으로만 공격을 하도록 해. 두프레 백작!" "예 사령관 각하!" "자네가 총 지휘를 맡아." "예?" "나는 제 7기사단원들하고 비어 있는 남문 쪽으로 성안에 침투해서 성 내부를 휘저어 놓겠어. 아무래도 전면전으로 맞붙는다면 이길 수는 있어도 피해가 너무 클 거야. 그러니 우리가 출동할 때까지 주위를 끌어 줘야 돼. 알았나?" "하지만. 후작 각하!" "포른오 자작 말 못 들었어? 상대편에 마스터가 없는 이상. 내 걱정 따위는 하지 마. 제 7기사단 기사들은 어떻게 라도 내가 지켜 낼 거고. 나하고 제 7기사단만 성안에 투입시켜도 하루만에 다 작살 내 버릴 수 있단 말이야." "예." 어차피 론의 지휘, 통솔 능력은 다른 장군들보다 오히려 조금은 떨어지는 편이었기에 두프레 백작이 지휘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별 무리는 없었다. "전원 공격 개시!" 함성과 함께 성을 향해 병사들이 돌진하고, 진영에는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 남은 약간의 병사와 론과 그론다이저를 비롯한 제 7기사단 기사들이 있었다. 그론다이저는 기사단원들에게 물약을 하나 씩 나누어주었다. "막가이어가 만든 투명약이네. 효과는 단 5분이니 적들의 눈에 들켰다 싶을 때만 사용하도록." "투명약이라굽쇼?" 약을 보는 아크와 에르쿠스의 눈빛이 어딘가 모르게 심상치가 않았다. "커험. 아껴뒀다가 나중에 이상한 짓거리 할 때 쓰지 말고. 쓸 때 쓰게." "옛썰!" "그럼 출발합시다. 그론다이저 백작." "예 사령관 각하." 디그리스 정규 기사단 제 7전대 대원들은 트로본 성의 남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헥, 헥, 헥, 헥." "뭐들 이렇게 늦나?" "조금만 천천히 뛰시라고요. 사령관님 따라잡을라니 힘 빠지게 달려야 되잖아요." 아크는 론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빠르다지만 최소한 부하들에게 맞춰서 뛰어야 할 것 아닌가?" 그나마 지금 론을 따라잡은 기사라고는 블레싱 소드의 영향으로 체력의 소모가 적었던 아크와 원체 빠른 레골룸스, 경갑을 입은 호킨 뿐이었다. "하아, 학, 학, 학, 학 따라잡았다!" 뒤쳐졌던 나머지 기사들도 하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론다이저 백작과 에르쿠스는 서로 달리기 경주를 하는 듯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다 결국 백작이 막판 스피드를 내서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보기에도 덩치가 크고 육중한 쿠퍼는 맨 나중에서야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쯧쯔 그렇게들 체력이 약해서야." '댁이 너무 강한 거야 댁이!' 안 그래도 시가지가 크다 보니 그 넓은 시가지를 둘러싸는 트로본 성도 상당히 넓었다. 그런 성의 외곽을 그것도 보초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몇 킬로미터 씩 떨어져서 원형으로 돌았으니, 그들은 거의 단축 마라톤을 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체력을 키워 온 기사들이었으니 망정이지. 일반 병사들이 이렇게 전력 질주로 마라톤을 했다면 뛰다가 심장이 터져 죽어버렸을 것이다.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저 성내로 잠입해야지." "그건 아는데 어떻게 잠입 하냐고요?" "뛰어 넘어." "......" 기사들은 모두 할 말을 잊었다. "왜 표정이 그 모양들이야?" '우리가 댁 같은 줄 아쇼? 저 높은 성벽을 단숨에 뛰어넘게.' "호오? 못하겠다는 표정들인데" "무립니다 그건." "절대 무리에요." "휴우 그럼 투명 물약 먹고 열심히 달려서 성벽에 딱 달라붙어 있어 그 다음에는 내가 알아서 하지." "옙!" 여섯 기사들은 투명 물약 뚜껑을 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라리요? 효과가 없잖아?" "왜 약효가 없지?" "좀 기다려 들 보게. 효과 늦게 서야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잖은가?" 그론다이저 백작의 말이 일리가 있기에 기사들은 마냥 효과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뭐야 왜 이 시간이 될 때까지 효과가 없어?" "가짠가?" 기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물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지를 살폈지만 여전히 물약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호킨이 욕설을 내뱉었다. "큭 이런 제기랄." "왜 그러나 호킨 경." "물약병 밑에 붙여져 있는 사용 주의 사항을 읽어보십시오." 기사들은 모두 물약병 밑에 주의 사항을 읽어보았다. 주의! 먹는 약 아님. 몸에 바르십시오. "......" "끄아아악!" "이런 젠장!" -쿵쿵쿵 기사들은 모두들 자신들의 멍청함을 탓하며 땅바닥과 나무에 머리를 받는 등 온갖 자학행위를 했다. 그런 모습을 본. 론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지압하면서 말했다. "으휴 바보들. 어쩔 수 없군. 내가 먼저 올라가 보초들을 쓸어버릴 테니. 알아서들 성안으로 난입해. 알았어?" "예." "레골룸스! 저기 보초 둘은 자네가 좀 처리해." "알겠습니다." 레골룸스는 활을 꺼내 후방 보초병 둘을 쏴 버렸다. "좋아. 그럼 알아서들 성안으로 난입해. 못 들어오면 명령 불 복종죄로 군사 재판에 넘겨 버릴 테니 잘 해." 론은 그 말을 끝으로 단번에 도약하여 성을 넘어갔다. "우리도 가세. 어찌되었건 사령관님과 합류해야 하네." "옙!" 여섯 기사들도 성벽을 향해 달렸다. "젠장." -피릿, 핏, 피릿, 휫, 휙, 휙, 휘리릿. "이게 무슨 지지리 궁상입니까?" 아크의 질문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벽에 도착한 여섯 기사들. 그러나 투명 물약의 사용 없이 그냥 오다 보니 당연히 보초들한테 걸렸고 그들을 반겨주는 것은 화살비였다. 결국 그들은 론이 위에 궁수들을 다 처리해 줄 때까지 성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화살을 피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어쩔 수 없지. 후작 각하께서 위에 궁수들을 다 처리해 줄 때까지는." 벽면에 붙어서 온갖 행위 예술 적인 자세로 있는 기사들은 그저 화살 세례가 멈추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젠 또 어떡합니까?" "으음. 사다리나 밧줄을 가지고 올 것을." 화살비가 그치자 이제는 성안으로 어떻게 난입하느냐가 문제였다. "암벽 등반하는 것처럼 성벽을 기어올라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쿠퍼의 어처구니없는 말에도 나머지 기사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정말 그런 방법 밖에는 그들도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탑 쌓아서 한 명씩 올라갈까요?" "크흠.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만." '도대체 뭐가 괜찮아!' 그러던 와중이었다. 아크는 불현듯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땅굴 팝시다." "어느 세월에?" 바로 태클 들어오는 아크의 의견. 이건 확실히 바보 같은 생각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땅굴 파서 어느 세월에 성안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아뇨. 그런 땅굴말고 기어서 들어갈 만큼의 개구멍을 파자는 소립니다. 마침 저한테 삽도 있고." "뭐? 삽?" 그러고 보니 아크는 등에 블레싱 소드와 삽 한 자루를 교차해서 가지고 다녔다. 케인에게 선물로 받은 삽이었는데. 1인칭 액션 게임으로 인한 정신질환 증세로 아크는 공격력은 낮아도 땅을 파서 숨게 해 주고 아이템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던 삽을 항상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물론 현실에서 삽으로 땅 파서 숨거나 땅파보니 아이템 나올 일은 별로 없다) "그 삽은 어디서 난 건가?" "어떤 사람이 주던데요. 뭐 이 삽이 8신기라던가?" "뭬라고!" 8신기란 아크의 말에 나머지 기사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놀라워했다. "이게 킹 네크로맨서 시르옹의 삽이란 말인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트로본 성 전투 "대체 그게 뭔 소립니까?" "아크 경. 몰라?" "그런데요." "그럼 내가 설명해주지." 에르쿠스는 아크에게 8신기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쉽게 말하자면 이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8가지를 가리켜 8신기라고 불러. 엄청난 마법사가 만들었거나 영웅들이 쓰던 무기들이지. 교황 친위 성기사단 단장에게만 주어지는 신성검, 캘더린의 여왕 이자벨이 썼다는 용 가죽 채찍, 8서클의 유일한 대마법사 간달포의 마성의 피리와 H슬로지 해머, 8서클의 흑마법사 살로만의 파멸의 책 아포칼립스, 용지팡이 장룡, 엘프들의 신궁 루기아, 네크로맨서 왕이라고 불리는 킹 네크로맨서 시르옹이 시체들을 팔 때 썼다는 시르옹의 삽. 이 중 세상에 나온 것은 신성검과 용 가죽 채찍, 신궁 루기아 뿐이라더군." 에르쿠스의 이야기를 듣던 레골룸스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신궁 루기아가 어디 있는 지 아십니까?" "그거? 현재 폴티아 공이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군." "......!" 레골룸스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골룸." "30년 전에 탈취 당했던 것이 바로 신궁 루기아다." "뭐?" "폴티아 공이란 자가 그놈이거나 그놈의 행방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이 군대에 들어온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오히려 나에게 행운을 불러왔군." 레골룸스는 갑자기 전의에 불타올랐다. 다른 기사들은 레골룸스의 돌발적인 행동에 약간은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속사정을 알고 있는 아크는 그러려니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요 볼품 없는 삽이 그 대단하다는 무기라고요?" "글세 겉모습을 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군. 이런 구린 삽이 8신기라니. 아마 장난 친 거겠지." "어쨌든 땅 파서 성벽 밑으로 기어들어 갑시다. 이의는 없죠?" "뭐 할 수 없지." 그렇게 아크는 삽질을 시작했다. 나머지 대원들도 각자 알아서들 땅을 파서 아크를 도왔다. "휴 대충 사람 들어갈 구멍은 판 것 같은데요?" "흠 그래 내가 먼저 들어가겠네." 그론다이저 백작은 제일 먼저 개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런 백작을 두고 에르쿠스는 다 들으라는 듯한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이고 고귀하신 백작님께서 땅바닥을 개처럼 기고 계시네?" "이놈이 정말!" "자, 자 싸우지들 마시고 빨랑 들 들어갑시다." 그론다이저 백작의 뒤를 호킨이 따라 들어가고 그 다음은 쿠퍼가 기어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왜 안 들어가 쿠퍼?" "껴, 꼈어!" "뭐어?" "끼어서 안 들어가져!" 그랬다. 일행 중 가장 몸집이 큰 쿠퍼는 개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구멍에 껴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원래 가장 몸집이 큰 쿠퍼의 사이즈에 맞게 판 구멍이지만 쿠퍼의 중갑이 구멍에 걸린 것이다. "젠장. 아크 경은 이 녀석 좀 빼내게 삽질 좀 더 하시고, 골룸 경은 나랑 이 녀석 뒤에서 당깁시다. 어이 거기 꼰대 할배랑 호킨! 당신네들도 알아서 이놈 좀 빼도록 해봐!" "으이구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라 더니 뭐 하러 갑옷까지 입고 들어가!" 쿠퍼의 두 다리를 줄다리기처럼 잡아당기는 레골룸스와 에르쿠스. 그런데 그들에게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덮쳤다. -뿌웅 빠아아앙 "욱!" "야! 이 자식아! 뭘 먹고 이렇게 고약하게 뀌어!" 생화학 테러를 당한 에르쿠스와 레골룸스. "오옷 빠진다." 그러던 차에 잡아당긴 보람이 있었는지 쿠퍼가 빠져나왔다. -콰당! "아이쿠! 허리야." 쿠퍼가 빠져 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에르쿠스와 레골룸스는 자신들이 쿠퍼의 다리를 당기던 힘을 못 이기고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미, 미안해." "네 녀석은 갑옷 먼저 넣고 들어가라! 알았냐?" "알았어." 이런 우여곡절 끝에 여섯 기사들은 개구멍으로 성안에 침투했다. 마지막으로 들어 온 아크가 처음 본 것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시체였다. "여기는 후작님께서 깨끗이 청소해 주신 것 같군." "후작 각하께선 괜찮으실 까요?" 아크의 물음에 에르쿠스는 실눈을 뜨고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호오. 아크 경 애인 걱정?" "누가!" 아크는 강하게 부정했다. "흠. 자네와 사령관님의 밤의 밀회는 나도 알고 있네. 웬만하면 정상적인 사랑을 하게 아크 경. 하기야 뭐 그 정도 미소년이면." "백작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이제는 게이 취급까지 받는 아크. 사정을 알고 있는 레골룸스만이 가볍게 그를 동정할 뿐이었다. 그론다이저 백작은 과거나 행적이 미심쩍은 아크와 론이 자주 접촉하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 막가이어까지 동원한 사령관 감시 작전. 하지만 그론다이저 백작이 얻은 결과는 아크와 론의 뜨거운(?)애정행각(?)과 아크가 맞는 군대 내 폭력의 현장뿐이었다. "그런데 시체들이 대부분 온전하네요." "역시 소드 마스터라 그런지 다르시구만. 대부분 한 번에 심장이 꿰뚫리거나 단칼에 목이 베어졌군. 걱정 말게 아크 경. 소드 마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소드 마스터나 수 십 명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 떼거리로 덤비는 방법뿐이라네. 마스터는커녕 익스퍼트 급 기사도 7명이 전부인 폴티아 같은 경우는 후작 각하 혼자만 계셔도 멸망시킬 수 있어. 그렇게 강한 분이시니 너무 걱정하진 말게. 분명 멀쩡히 돌아오셔서 자네 품에 안길 걸세." "뭐가 품에 안겨요! 뭐가!" "근데 이제부터는 뭘 어떻게 하죠? 백작님." "우리의 임무는 내부 교란이다. 궁수대와 고위급 인사, 그리고 성문에서 몸으로 버티는 자들을 처리하는 게 주된 임무이지만 단지 적들의 시선을 우리들에게 집중시키는 역할만 수행해도 된다. 가장 중요한 건 쓸데없이 우리 병사들의 피해를 늘리지 않는 것이다. 많은 적들이 우릴 공격해 오겠지만. 폴티아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 모두 이곳에 있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잘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도록 할까?" "어디로 말입니까?" "일단은 서문 쪽으로 가세나." 여섯 기사들은 그론다이저 백작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트로본 성의 남서쪽 성벽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촤아악! "죽어랏!" -푸슉! 제 7기사단원들은 모두들 혼자서 열댓명의 달라붙은 병사들과 싸웠다. 전형적인 파워형 기사 쿠퍼는 몸이 굼뜨다보니 가끔 공격을 당했지만 그의 중갑옷 덕에 별 대미지를 입지 않는 모습이었다. -푸슈슉! "으아악!" 경갑옷의 호킨은 의외로 그다지 빠른 몸놀림을 보여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한 줄이고 치명적이고 위험한 공격만 가볍게 피해 내는 체력 안배를 하고 있었다. "꼰대 할아범! 뒤쪽에 창 날라 오잖아!" "네놈이야말로 옆구리나 조심해." 부자관계라는 것이 티나게 에르쿠스와 그론다이저 백작은 엇비슷한 몸놀림을 보이며 적들을 베었다. 그리고 가장 큰 활약을 펼치는 것은 단연 레골룸스였다. -화르르륵 -촤아악 레골룸스가 소환한 사라만더, 운다이론 콤비는 수비군 병사들을 알아서 도륙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레골룸스는 누구보다도 빠른 몸놀림으로 무빙샷을 이용 별 피해 없이 폴티아 병사들을 화살로 처리하였고 가끔 뒤에서 기습하거나 달라붙는 적들은 단검으로 정확히 목만 그으며 벌써 처리한 이들만 수십에 이르렀다. 그리고 주인공 아크는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아무리 검 덕분에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내는 그였지만 이렇게 떼거리로 덤벼드니 당연히 위험한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무기를 절단하여 적을 무력화시키는 소극적인 전투로는 위기 상황을 벗어 날 수 없었고 결국 아크는 병사들 몇 명을 찔러 죽였다. '내 내가 뭘 한 거지?' 맨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충격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적들의 맹공을 당하다보니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적들을 죽여야 했다. 그리고 몇 명을 더 죽이다 보니 칼을 사람의 몸 속에 박는 기분은 오크 찌르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조금 더 연하다는 것 빼고는. 그래도 양심의 가책은 남아 있어서 아크는 웬만하면 단 일격에 목을 날리거나 심장을 찌르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다. "젠장. 아무나 적이면 막 죽이는 그런 먼치킨류 인간은 별로 되기 싫단 말이다! 제발 무기 좀 부러지면 가만히 처 박혀 있어라!" "쥐새끼들을 처리해라!" 그때 한 무리의 군사가 아크들을 잡기 위해 더 충원되었다. 그들이 합류하자 그럭저럭 싸울 만 하던 전세가 포위공격을 당하다 보니 더욱 악화되었다. "쿡! 이렇게 분산되면 각개격파 당할 수 있어요. 빨랑 모입시다!" 호킨이 외쳤지만 병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아무리 익스퍼트 급의 마나를 다루는 기사들이라지만 이렇게 따로 나뉘어져 각개격파 당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결국 보다 못한 레골룸스가 프로즌 아이스를 뽑아 들었다. 주인이 아니어서 맘대로 아이스 미사일이 나가는 것을 컨트롤하지 못했는데 이런 다대 일 상황이라면 필요할 것 같다. "프리징!" 레골룸스가 외치자, 그의 말에 반응한 프로즌 아이스는 반경 약 30M안의 적들을 모두 얼려버리는 5서클 빙한계 마법 프리징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법 방어 갑옷을 입은 몇몇 지휘관 급들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꼿꼿이 얼어버렸다. 아크를 제외한 모두는 활이며, 검이며, 정령에 마법까지 다재 다능한 레골룸스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남아 있는 몇몇 장교급들을 처리한 여섯 기사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에르쿠스. 이 멍청한 자식아! 네가 적진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자네 때문에 죽을 뻔 했잖은가?" 호킨과 그론다이저는 이런 위급한 상황을 연출시킨 장본인인 에르쿠스를 꾸짖었다. 그런 그론다이저 백작에게 에르쿠스는 삐딱하게 대꾸했다. "훗 그런 하급병사들도 못 이길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트로본 성 전투 "끄으으으." 애써 화를 참은 그론다이저 백작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대단하구만 레골룸스 경. 레인하르트 공작과 맞먹는다는 말에 반신반의 했지만 지금 보니 오히려 자네가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을 듯 싶어." "과찬이십니다." "겸손해 할 것까지야." "예의 상 겸손한 척은 해야지. 안 그러면 싸가지 없는 놈 소리 듣지." 아크가 이죽거리자 웃고 있는 얼굴의 레골룸스의 이마에 실핏줄이 어렸다. 분위기가 영 안 좋자. 백작은 화제를 또 다른 곳으로 돌렸다. "험. 이제부터는 여섯이서 몰려다니도록 하지. 이제 빨리 서문 쪽으로 갑세나." "옙." "여섯이라고?" "예 백작님." "빌어먹을 이렇게 기사들이 없어서야......익스퍼트 급 기사 여섯 명을 무슨 수로 막는다?"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서문의 총지휘를 맡고 있는 자신이 빠질 수도 없고, 성문 앞에 적들이 부지기수인데 수비병들을 빼서 후방에 투입하기도 힘드니 많은 병력으로 인산인해 전법을 쓸 수도 없고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단지 성내에 침입한 것만으로도 제 7기사단 기사들은 폴티아 군에 큰 골칫거리였다. 서문 방어를 담당하고 있던 폴티아의 몇 안 되는 오러를 쓸 수 있는 기사. 필로스 백작은 아크 일행을 처리 할 묘안을 찾고자 머리를 쥐어 짰다. 하지만 곧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적들입니다!" 필로스 백작은 병사의 보고에 성 아래를 내다보았다. 여섯 명의 기사들이 아군의 추격에 도망치다 성벽에 오르는 계단까지 왔다. 그리고 계단에서의 전투가 벌어졌다. "몸이 가뿐하다!" "쿠퍼가! 호킨처럼 움직여!" 계단 전투. 확실히 좁은 곳이라서 그런지 제 7기사단원 모두들 대 선전하고 있었다. 위에서 공격해오는 내려오는 적들을 상대하기가 조금 벅찼지만 이렇게 아래 3명 위 3명씩 등을 맞대며 대략의 진형을 갖추자 틈이 생긴 아크가 동료들에게 근력 증가 등의 보조 축복마법을 걸어 주었기에 기사들은 더욱 강하고 날렵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사라만더! 블레이즈 웜!" -화르르르륵 "으아악 뜨거워." "앗! 뜨거." 레골룸스는 블레이즈 웜으로 꾸역꾸역 밀려오는 아래쪽의 적병들을 태워버렸다. 좁은 계단이라 이놈저놈 많이 밀려서 적들의 피해가 컸다. -촤악 -푸슉 -푹 위쪽을 맡아 싸우는 그론다이저와 호킨, 쿠퍼도 선전하며 단 한번의 검놀림으로 적병을 한 명씩 시체로 만들었다. "애로우 봄!" 레골룸스는 공력을 실어서 폭발력을 지닌 기공의 화살을 후방 쪽에 날렸다. -퍼버벙! "크아악. 내 팔!" 폭발에 휩쓸렸던 한 병사는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달려 있던 자신의 오른팔이 날아가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쪽도 못 쓰고 시체로 변해 버리는 폴티아 군 병사들. 이대로라면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생각한 필로스 백작은 몰려오는 디그리스 군대를 막을 임무를 띠고 있던 궁수대를 어쩔 수 없이 디그리스 제 7기사단원들을 막는데 투입시켰다. 궁수대를 뺀다면 성벽이 위험하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했다. "쏴라!" -휘리릿, 피릿, 핏, 휙 갑자기 날아오기 시작한 화살. -푹! "큭." "호킨!" 한참 앞의 장교급 수련 기사와 싸움하는데 온갖 정신을 쏟고 있던 호킨의 오른쪽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휘릭. 휘릭, 휫 "이런 제길!" 레골룸스는 화살비에 대응하여 급히 1서클의 실드를 펼쳤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인지라 완벽히 막아내지 못해 레골룸스는 그 좁은 계단에서 화살을 이리저리 피해 가는 수밖에 없었다. -푹! "크아아!" "호킨 경! 젠장 백작님 빨리 엄호좀 하세요!" "아, 알았네." 쓰러져 있던 호킨은 피해보지도 못하고 옆구리와 팔에 화살을 또 맞았다. 경갑을 하고 있던 그인지라 화살을 많이 맞아도 중 장갑 덕에 화살이 튕겨 나가는 쿠퍼에 비해 상당히 위험했다. 방패를 사용하는 그론다이저 백작이 호킨을 화살로부터 지켰다. 그리고 위쪽 계단은 화살의 피해를 입지 않는 쿠퍼가, 아래는 방패를 가진 에르쿠스가 맡았다. 하지만 둘다 화살에 신경쓰랴, 전투에 신경 쓰랴 정신이 없어 이전 같은 살상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크는 그론다이저 백작의 엄호 아래 호킨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요?" "큭. 별로." 우선 화살을 빼야 했다. -주르륵 호킨에게서 화살을 뽑자. 화살 맞은 자리에서 상당량의 출혈이 있었다. "그레이트 힐!" 아크의 외침에 반응한 블레싱 소드가 호킨에게 고위급 회복마법 그레이트 힐을 사용했다. 심각해 보이던 호킨의 상처가 6서클 급의 고위 회복마법에 회복되자 그론다이저 백작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기사인줄 알았지만, 성기사들은 저렇게 고위급의 신성 마법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크 같은 경우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교황청 친위 성기사단 기사 급 정도 된다는 소리다. '아크 그리고 레골룸스. 정말 보기 드문 인재들이다. 충성심이 미심쩍기는 하지만 실력 하나 만큼은 대단하군. 저들과 사령관님이라면 우리 왕국도 크게 중흥할 수 있을 거다.' 그론다이저는 아이템 블레싱 소드로 인해 강해 보이기만 할 뿐인 아크를 엄청난 인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애로우 봄!" -퍼버벙! 레골룸스는 실드로 몸을 감싸고 궁수들과 활로 맞상대했다. 레골룸스는 그의 뛰어난 활 솜씨와 애로우 밤을 적절이 섞어 궁수들을 요리하고 있었다. 대충 호킨을 회복시킨 아크는 위쪽에서 병사들을 상대하는 쿠퍼와 합류했다. 그러자 완전히 노출되어 버린 아크에게 궁수들의 화살이 집중되었다. -휘릿, 휘릭, 피릭 화살을 피할 능력 정도는 되는 아크였지만 그는 일부러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사실 계단 폭이 좁아서 못 피한 이유도 있었다) "어, 어떻게 저럴 수가!" "아, 아크 경." 아크를 본 이 자리의 모두는 지금 벌어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갑옷을 아예 걸치고 있지 않은 아크건만 화살들이 돌에라도 부딪힌 듯이 아크의 몸에 닿자마자 맥없이 튕겨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의 효과가 발현된 것이다. 그 때 병사들의 거대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우와아아아아아!" 부실해진 성벽의 방어를 뚫고 디그리스의 군대들이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큭! 이런 제기랄 북쪽 성벽에 원군을 청하러 간 녀석들은 왜 여태껏 안 오는 것이냐?" 엄청나게 불리해 진 전황에 필로스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 이라면 구원 군이 오지 않을 경우. 서문이 그대로 뚫려 버린다. 때마침. 북쪽 방향에서 한 병사가 지휘부로 달려왔다. 방금 전 원군을 청하러 보냈던 병사들 중 하나였다. 필로스는 반색하며 병사를 맞이했다. "배, 백작님!" "그래. 어찌한다 하던가? 원군은?" "그게 아닙니다. 아무래도 성을 버리고 달아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북문이 뚫렸습니다." "뭐라고? 아니 병력도 많고 익스퍼트 급 기사도 셋이나 있는 북문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벌써 무너졌단 말인가?" 이때 추궁하듯이 병사에게 외치는 필로스의 말을 받는 이가 있었으니. "나 때문에." "누구냐?" 필로스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음성이 들려온 뒤쪽을 바라보았다. 자기 정도의 검사라면 뒤에 누가 올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너무 방심한 건가? 라고 생각하며. 그곳에는 짙은 푸른빛 생 머리를 흩날리는 한 기사가 서 있었다. 필로스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그대로 오금이 저려왔다. '엄청난 위압감이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자가!' 남색 빛 머리의 미인 기사에게 주눅이 든 필로스. 그러나 그는 애써 냉정함을 갖추고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잡은 손바닥에서는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다. 필로스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 적." 간략한 대답이었다. "별 수 없군. 당신 같은 자가 적이라니 최악이군.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 주눅 들 필요는 없지. 덤비시오." "그렇게 죽고 싶어?" "별로. 죽고 싶진 않군." "그럼 살려 줄까?" 론의 말에 필로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혼전이었다. 디그리스 병사들이 성안으로 난입하자 전투는 6대 수백의 싸움에서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춰 서로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문 공격부대의 선봉에 섰던 제 5기사단 기사들이 성에 난입하면서 전투는 완전히 디그리스 군으로 기울어 버린 상태였다. -뎅겅. "카, 칼이!" "그만 포기해. 괜히 싸우다 죽지말고." 숫자가 맞아가자 아크는 다시 무기파손전투 형식의 전술을 취했다. 하기야 어차피 무기만 파손시켜 놓으면 병사들은 알아서들 살려달라고 빌었다. 아크는 주변을 살폈다. 여기저기서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창자가 창에 꿰어 나오는 자, 검에 머리가 베어져 뇌수를 흘리는 자, 몸이 어깨부터 대각선으로 잘린 자. 배가 갈라져 내장을 모두 바닥에 쏟아 붓고 신음을 흘리며 죽어 가는 자. 무기를 든 채 잘려나간 자신의 오른팔을 왼팔로 만지작거리며 미친 듯이 오열하는 자. 저 사람들은 나름대로 가정이 있고 가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패자가 된 저들은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할 자들이다. 불쌍하긴 하지만 아크는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너무 심각한 피해를 입은 자들은 살릴 수도 없다. 아크는 치료해 줘야 할 것 같은 아군 병사들을 찾아보았다. 웬만하면 나이팅게일처럼 적병도 치료해 줄까 했는데 전투 중 적병치료는 배신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그때 아크에게 화려한 옷을 입은 높은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젊은 장교가 은근슬쩍 몸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아크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자기 혼자 살겠다고 부하들 사지로 내모는 상관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한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저런 자들 욕하는 사람들도 자기 목숨부터 챙기지 않을까?) 아크는 병사들 사이를 빠르게 달려 그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뛰어가고 있는 장교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익!" 도망치려던 장교 녀석은 아크에게 검을 날렸다. 그러나 아크는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장교 녀석에게 스피어를 먹였다. "컥!" 장교 녀석은 배를 감싸며 뒹굴었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가 고통을 이겼는지 금세 몸을 추스르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아크는 그가 그렇게 쉽게 일어나게 놔두지 않았다. 아크는 막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려는 장교 녀석의 가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그대로 들어 올려 짊어졌다. 이럴 때 공격을 당하면 위험했지만 아크에게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한 폴티아 병사는 없었다. "뭐, 뭐 하려는 거냐?" "왜 도망치려고 했지?" "살려고." "......!" 장교 녀석의 반문에 아크는 새삼 지난 과거가 떠올랐다. 살아 남기 위해서 온갖 발버둥을 쳤어야 했던 파푸치아 숲에서의 조난과 두르툰이나 론과의 레슬링 혈투. 그런 것들이 떠오르자 아크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도 기왕지사 짊어졌으니 어떻게 처리는 해야했다. 아크는 여차하면 살려 줄 생각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럼 부하들과 함께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그런데 왜 너 혼자 도망친 거냐?"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서슴치 않던 아크였지만. 이 부분에서는 자신도 오우거를 앞에 두고 엘프 일가에게서 도망치지 않았던 전례가 있던 지라 아크는 떳떳했다. 아크에게 짊어져 있던 이 장교 녀석은 이런 상황에서 살려면 대충 멋진 변명을 대야 했다. 그런데 이놈은 멍청하게도 자기가 생각해오던 것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부하? 흥 그런 천한 평민들까지 내가 왜 생각해야 하지?" -뚝 그 말이 아크의 고민을 사라지게 했다. 이 자식은 판타지 등 중세 세계관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썩은 귀족 녀석이다. 서양의 귀족 등 지배 계급들에게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일종의 지배 계급의 의무가 있다. 그곳에는 당연히 전쟁시에서는 일반 평민들을 지휘해 전투에 앞장서며 끝까지 후퇴하지 않는 그런 내용도 있을 것이다. "너 가족은 있냐?" "약혼녀하고 아버님이 계시다." "네가 지금 여기서 죽으면 그들이 슬퍼하겠지?" "그럴 테지." "그래. 근데 네가 버리고 간 부하들이 죽으면 그 부하들 가족들도 슬퍼할 거야."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훗. 그래? 그럼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었다. 잘 가라! 에프 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크는 짊어지고 있던 건방진 장교 녀석을 성벽 밑으로 에프 유를 써서 떨어뜨려 버렸다. 잠시 후.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가 아주 경쾌히 들렸다. 살인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후련하다. "미안하군. 명복을 빌어주마. 다음 생에서는 자애심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태어나길 바라마." 아크는 진심으로 장교 녀석의 명복을 빌었다. "모두 멈춰라!" 그렇게 아크가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지휘대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필로스가 외쳤다. 그러자 폴티아 군들이 전투 중에 그대로 멈추었다. "모두 멈추고 이곳을 주목한다!" 디그리스 군들에게는 론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런 론에게 필로스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졌다. 항복하겠다." "와아아아아아!" 적군의 사령관이 론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자 성안은 승자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콰과과광 -펑 -퍼버벙 -화르르르륵 커다란 폭음과 불길이 이는 소리가 고요한 바다를 뒤흔들고 있었다. 론이 이끄는 육군이 대승리를 거두고 있을 즈음 레인하르트 공작의 해군도 오랜만의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그동안 강력한 폴티아 해군에게 항상 밀려왔던 해상 병력들이지만 수도 방어를 위해 전력이 반이나 빠진 적들을 못 이길 이유가 없었다. "후." 대충 상황이 정리되고 폴티아 군이 후퇴하자 레인하르트 공작은 이마에 맺힌 땀을 슥 닦았다. 바닷바람이 쌀쌀한 겨울이건만 여기저기서 엄청난 불길을 뿜어대는 폴티아 군의 함선들 덕분에 제법 떨어져 있는 해군 사령관의 배에도 후끈한 열기가 그대로 전해져 왔다. 폴티아군은 수 십 척의 함선을 잃은 데에 반해 디그리스 군은 열 네 척의 함선을 잃는 비교적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화포나 함선은 해상병력에 중점적인 투자를 했던 폴티아가 조금 우세했지만 서클은 낮아도 많은 마법사와 폴티아 군보다 많은 병력 덕에 서로의 배로 건너가 벌이는 전투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것이 승리의 이유였다. 포탄이 훨씬 멀리 날아가더라도 디그리스 군의 실드에 막히고 접근을 허용했으니 병력도 딸리고 기사들도 부족한 폴티아 군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사실 이렇게 해전을 벌일 필요도 없다. 육군이 행군하기가 어려울 뿐이지 안전하게 폴티아에 도착하기만 하면. 육군도 기사들도 형편없는 폴티아 정도는 론과 기사단만 동원해도 멸망시킬 수 있다. 너무나 싱거웠다. 십 여년이 넘도록 염원해 왔었던 일의 성취가 너무나도 쉽게 눈앞에 다가왔다.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레인하르트 공작은 영문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과연 이 일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던가?' 예감이 안 좋다. 적들에게 큰 승리를 거두었고 또 마법 통신구를 통해 론이 이끄는 육군의 대승리 소식도 들었다. 이제 이 해전을 마무리짓고 바로 폴티아 항에 상륙하기만 한다면 그토록 바랬던 폴티아를 얻는다. 하지만 공작은 자꾸만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그가 이런 안 좋은 예감이 들었을 때는 결과도 항상 안 좋았다. -콰광! 그때 커다란 포성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폴티아의 함선은 이미 모두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아군측에서 오발을 한 것인가? 그런 레인하르트 공작의 마음 속 질문에 답을 주는 두 번째 포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포성이 들려 온 방향을 바라보던 공작은 그의 얼굴에 짙은 경악의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포성이 들려 온 곳에는 수백 척의 함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배들에는 하나같이 불사조를 문양화 한 붉은 깃발이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팬크라프트!" 그들은 바로 팬크라프트 제국의 10만 지원 부대였다. "모두 후퇴! 빨리 후퇴하라!" 상황이 파악된 레인하르트 공작은 급히 후퇴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상대의 포화에 다섯 척의 배가 불길을 치솟으며 침몰하고 있었다. "어서! 후퇴하란 말이다!" 그러나 바람은 그런 공작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는지 자꾸만 반대 방향으로 불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그리고 그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디그리스 해군의 함선은 120대 중 30대에 불과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통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그랑테 평원을 지나면 폴티아 군의 마지막 거점지 수도 포르티아 뿐이다. 이러한 생각에 디그리스의 병사들은 매우 들떠 있었다. 전쟁이 시작 된지 이제 겨우 2주일이다. 하지만 전쟁은 어느덧 마지막 전투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랑테 평원에서 폴티아의 수도 포르티아 항까지는 고작 하루거리. 하루가 지나고 포르티아 성에서의 농성을 끝으로 이 전쟁은 끝이 난다. 아니 그냥 포르티아를 고립만 시켜놓고 새로운 항구를 개발해 무역에만 뛰어들어도 별 상관없다. 디그리스 군의 선두에는 총사령관 론 루네아 후작을 비롯 제 7기사단의 기사들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말을 탄 제 2, 4기사단 기사들이 따랐고 병사들이 나머지를 채우고 있었다. 선두에 선 사령관의 호위 임무를 맡은 제 7기사단 그런데 그들말고도 또 한 사람이 최선두에서 걷고 있었다. 바로 디그리스 군에게 투항한 필로스 네크론 백작이었다. 비록 지금은 자작의 직위로 격하되었지만 정원 수 부족한 제 7기사단의 기사가 되어 론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중년의 나이인 필로스는 제 7기사단의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론다이저는 너무 나이가 많고 나머지 기사들은 그와 세대가 맞지 않았던 데다가 필로스가 워낙 과묵한 성격이라 쉽사리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는 그론다이저의 엄중한 감시를 받았다. 비록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지만 일단은 폴티아 공의 편에 섰었던 전과가 있고, 과거가 불투명한 론이 천거했다는 점에서 감시자의 임무를 맡은 그론다이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하하하하하하!" 디그리스 군 최선두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휘부들이 다수 속해 있는 이곳에서 터진 거창한 웃음은 바로 아크의 음담패설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론은 애써 붉어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앞만 똑바로 보며 걸었고, 강경 보수주의의 그론다이저 백작과 레골룸스는 이제는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며 체념하고 걸었으며 그 외 나머지들은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고 각종 간혹 우스우면서도 매우 민감한 성적인 곳을 예리하게 찌르는 대목마다 웃음을 터뜨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게 군대가 맞기는 한 건가?' 디그리스 군에서는 이미 익숙한 이 분위기를 신입생 필로스만은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전쟁이 끝나가는 마당이라 긴장들이 풀린 것은 이해가 가지만...... "응?" 론이 갑자기 굳어진 얼굴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사령관의 돌발행동에 부하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론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후작 각하." "포른오 자작!" "예. 후작 각하." "폴티아 군의 병력이 얼마 정도 남았으리라고 예상되나?" "저희 정보부의 신뢰도 99.5%의 정보에 의하면 폴티아 군은 많아야 1만 5천 이상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하하. 그럼 그 0.5%의 오차율이 들어맞은 건가?" "예?" 론의 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레골룸스는 음담패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신경을 기울였던 청력을 원거리 탐지에 사용해 보았다. "어, 어디서 이렇게나 많이!" 레골룸스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나머지 사람들의 궁금증도 더해져 갔다. "무슨 일이야? 골룸." "전방에 약 10만여 병력이 포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야? 10만!" "게다가 벌써 진까지 펴놓고 기다리고 있군. 막가이어! 레인하르트 공작의 전언이 있나?" "그러고 보니 이틀째 불통입니다." "후퇴한다. 최대한 빨리." "선발대는 어떡할까요?" "선발대!"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제 5기사단 기사 11명과 2백여 병사들로 이루어진 선발대를. 병사들이야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두가 용병이었으니 그들을 죽게 내버려뒀다고 해도 욕먹을 일은 없다. 하지만 선발대에는 디그리스 왕국의 미래라 할 수 있는 기사들이 있다. 그론다이저는 굳어 있는 론에게 조언했다. "애석하지만 그들을 희생시켜야 할 듯 싶습니다. 그들을 미끼로 차라리 적의 진군 속도를 늦추는 길이 우선책입니다. 괜히 그들을 구하고자 병력을 희생시키는 것은 적들에게만 좋은 일입니다." "아니." "예에?" "나 혼자 간다." "!!!" "그건 아니 됩니다. 위험합니다. 10만의 병력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날 무시하나?" "아무리 후작 각하께서 소드 마스터라 하셔도 그것은 정말 무리입니다!" 그론다이저 백작의 강경한 반대에 론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서 말했다. "너무 걱정 말게 그론다이저. 난 죽으러 가는 것이 아냐. 내가 느껴 본 바로는 저쪽에는 소드 마스터급 인물이 없어. 대신 익스퍼트 급 기사들은 좀 있고 병력도 많다지만 내가 마음먹고 상대한다면 힘들지는 몰라도 선발대 녀석들이 도망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 줄 수 있단 말이다. 그리고 정 상황이 안 좋으면 그냥 도망치면 돼. 내가 도망치는 것도 힘들어 할 것 같아?"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이봐 줄줄이 가면 오히려 방해된다고 게다가 나는 몰라도 자네 목숨은 장담 못해." "상관없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그론다이저 백작의 표정에 론은 이 노기사의 뜻을 꺾을 수 없음을 눈치채고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죽어도 난 몰라." 론의 긍정적인 답변이 떨어졌다. 그러자 제 7기사단 멤버들의 자원이 이어졌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보내주십시오." "따라가겠습니다." 그론다이저 백작을 받아들인 터라 변명할 거리가 없어진 론은 어쩔 수 없이 그들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꼭 빼야 할 사람이 있다. "아크. 넌 빠져." "예? 저도 싸울 수 있습니다." "내 말 들어." 사실 아크는 별로 적진 한 가운데에 난입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동료들이 다 간다고 하니 왠지 모를 정의감이 들어 얼떨결에 동참한 것이다. 내심 자꾸 후회 중이었는데 때마침 빠지란 권고가 들어 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빠지라고 하니 오히려 더 가고 싶었다. "동료들을 적진 한 가운데에 보내고 저 혼자만 살자고 남을 수는 없습니다." '이 바보가!' 론은 이렇게 생각하며 아크를 설득했다. "아크. 넌 내 소중한 동생이야.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듯이 나도 널 지키고 싶어. 하지만 네가 날 따라온다면 나는 널 지켜줄 수 없게 돼. 그래서 너만큼은 이곳에 남기려고 한 거야. 이해해 줄 수는 없겠니?" 론의 다정스러운 말과 미소에 헬렐레 하던 아크는 그에 맞는 아주 닭살스러운 대사를 준비했다. "이해할 수 있어요. 저도 누...아니 사령관님이 소중하니까요. 하지만 저도 우리 기사단 동료들과 적진에 고립된 아군을 구해야 한다는 신념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전 그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뿐입니다." '웩! 내가 말했지만 정말 느끼해 죽겠다.' 아크의 말에 론은 두통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바보한테 소중하네 어쩌네 그런 말로 설득했다가 오히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애초에 아크를 남기려면 '이따가 맞기 싫으면 꼼짝 말고 처박혀 있어.'란 식으로 협박을 가해야 했었다. 한 마디로 론은 실수한 것이다. 그리고 안 그래도 불편한 론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들이 있었으니. "휘익! 너무 티내는 거 아냐? 보긴 좋지만." "에르쿠스. 이게 다 네 녀석이 물들인 거 아냐!" "어허. 이거 금단의 사랑은 좋지 않은데......" 그리고 조용히 있던 필로스까지 한 마디 했다. "게이 커플은 처음 보는 군. 하긴 저 정도 얼굴이면 여자가 아깝지 않을 테지." 졸지에 게이가 된 론과 아크는 동시에 고개를 떨구었다. "저 녀석들 의외로 버티고 있군요." 10만 대군의 최선두에서 디그리스 군 선발대의 처절한 투쟁을 관람하는 두 남자가 있었다. 붉은 불사조의 문양을 하고 머리에는 체인을 둘러썼으며, 흰 수염을 짧게 기르고 귀족들이나 살 수 있는 사치품인 썬글라스를 썼으며 유독 팔뚝이 굵어 팔 근육의 둘레가 여성의 허리 사이즈에 맞먹는 근육질의 폴티아 지원군을 맞은 팬크라프트의 기사 스컷 스타미노 후작. 비록 마스터의 경지를 밟지는 못했지만 재작년 팬크라프트 군 재편성을 위한 무술대회에서 8위를 차지한 대단한 기사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짧은 갈색 콧수염을 샤프하게 기른 짙은 푸른빛 눈동자를 가진, 본래 나이 50대라는 것이 무색해 보이는 30대 후반 정도의 미남자가 백마를 타고 있었다. 그가 바로 디그리스의 대공이자 신궁 루기아의 주인이라고 더 잘 알려진 폴티아의 지배자 폴티아 공. 세프가 포르티아 였다. "뭐 죽을 때가 되면 자기도 모르는 괴력이 나온다는데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지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이때 이 거물급 인사들의 대화에 한 마법사가 끼어 들었다. "스타미노 후작 각하!" "왜 그러느냐?" "디그리스 놈들이 대대적인 후퇴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뭐야?" "눈치 챈 모양이로군요." "빨리 뒤쫓아라!" "아!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스타미노 후작. 내가 미리 그들의 후방에 6천의 병력을 매복시켜 놓았으니 그다지 빠르게 도망치지는 못할 것이외다." "꼼꼼한 일 처리로군." "별말씀을." 스타미노 후작은 폴티아 공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었고 폴티아 공은 스타미노 후작에게 자연스럽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폴티아 공이 일국의 대공이고 폴티아 공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우두머리라도 대제국 팬크라프트의 후작과 약소국의 대공이 같은 급수일 리가 없었다. 스타미노 후작과 폴티아 공의 대화가 끊기자 방금 전 보고했던 마법사가 말했다. "저기 후작님." "뭔 또 할말이 남았나?" "예 제 패밀리어로 본 상황으로는 지금 저희 진영으로 쳐들어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쳐들어 와? 미쳤군. 죽고 싶은 모양이니 죽여줘야겠어. 아이젠버그, 델피로! 너희들에게 각각 2만의 군사를 줄 터이니 후퇴하는 디그리스 놈들을 추격해 섬멸시켜라. 나도 여기 쥐새끼들과 쳐들어온다는 놈들을 처리하고 곧 뒤따라가겠다." "저기 후작님. 제 말 아직 다 안 끝났는데요." "또 뭐냐?" "쳐들어오는 놈들은 모두 8명입니다." "뭐? 여덟 명? 지금 장난치나?" "장난일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 중 여섯 명은 익스퍼트급의 마나를 가진 기사들이고 하나는 마나의 양은 형편없지만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것으로 보아 신관인 듯 싶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소드 마스터급 검사입니다." "뭐라고? 소드 마스터? 잘못 본 거 아니냐?" "확실합니다." "이보시오 폴티아 공. 디그리스에 소드 마스터가 있었소." "글세 말입니다. 저도 처음 듣는 소리인지라. 뭐 레인하르트 공작이라면 마스터의 경지를 밟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는 딱히 마스터가 될 만한 인물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 소드 마스터가 끼어 있다니, 상황이 곤란해져 버렸다. 소드 마스터에 익스퍼트 급 기사들 여섯이라면 소드 마스터를 잡기는 힘들다. 그러나 잡는다면? 분명 스타미노 후작의 명성과 지위가 상승할 것은 뻔했다. 일반 병사들로는 수가 아무리 많아도 소드 마스터를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병사들로는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맡게 하고 우리 편 기사들은 떼거리로 소드 마스터만 노린다면? 승산이 있다. 그리고 그 때 디그리스 군 선발대를 포위하고있는 포위망 뒤쪽에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검폭!" -퍼버버벙 "운다이론 파도 공격이다!" -촤아아아악 론과 레골룸스는 포위망의 한 부분만을 전체 공격기로 공격해 뚫었다. 그리고 포위하던 적병들이 갈팡질팡 하는 사이. 론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뚫린 길을 달렸다. 그리고 뚫린 길의 끝에는 고군분투하는 다섯 명의 디그리스 기사들이 있었다. "사령관 님!" "레인하르트. 아직 살아 있었군." "예 간신히." "말할 시간 별로 없다. 빨리 따라와라. 지금은 비록 포위망을 일시적으로 무너뜨려 놓은 상태이지만 곧 다시 포위 당할 거다. 빨리." "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아직까지 살아 있던 제 5기사단 기사들은 이렇게 위험한 곳까지 사령관이 자신들을 구하러 오자 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뿌리며 충성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위기 상황에서 피해자를 구해 주는 것만큼 상대의 신뢰를 얻을 만한 일도 드물다. 그래서 연애물이나 기타 등등을 보면 꼭 마왕에게서 자신을 구해 준 왕자에게 사랑을 느낀다든지, 놈팡이들에게 윤(뭐시기 하므로 뒤에 나올 글자는 밝히지 않겠다)당할 뻔한 여자를 구해주면 꼭 거시기(이것 역시 거시기라는 대명사를 쓰겠다)하는 흔한 스토리 적 상황이 나온 것이리라. 순식간에 포위망이 뚫리고 고립되어 있던 디그리스의 기사들이 빠져나가자 스컷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알퐁스." "옙." 뭔가 텁텁한 듯한 쉰 목소리를 내는 기사 알퐁스가 대답했다. 그는 언제나 강철 갑옷을 벗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 평소에도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때문에 동료 기사들 및 사람들은 그를 강철의 기사라 불렀다. 어쨌거나 그는 이 전장에서는 스타미노 후작 다음 가는 실력자였기 때문에 부사령관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기사들을 모두 동원해라. 디그리스의 기사들을 한 명씩 맡고 나머지는 모두 저기 남색 머리 소드 마스터에게 덤빈다. 그리고 저 소드 마스터에게 덤비기 전에 최우선으로 저기 검을 차고 기사로 위장한 이상하게 생긴 검은머리 신관을 처리해라." "예. 총사령." 폴티아 원군에 딸려 온 팬크라프트의 익스퍼트 급 기사들은 모두 53명. 그들 중 11명은 디그리스의 기사들과 아크를 처리하고 나서 모두 론에게 덤벼 들 터였다. 아무리 론이 소드 마스터라지만, 그 정도 숫자가 부담이 안 갈 턱이 없다. 막 포위망을 빠져 나온 디그리스의 기사들. 그러나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는 50여명의 기사와 또 다른 포위망을 구축한 수많은 적병들이었다. "이런." 포위망의 맨 앞에 서 있던 강철 갑옷을 통째로 뒤집어쓴 한 기사가 앞으로 걸어 나와 론에게 말을 걸었다. "디그리스 왕국에는 소드 마스터가 없다고 들었는데? 당신은 누구요? 통성명이나 합시다. 난 팬크라프트의 기사이자 현재 폴티아 지원군의 부사령관 알퐁스 에렉이오." "강철의 기사!" 디그리스의 기사들 중 몇몇은 알퐁스 에렉이란 말에 놀라고 있었다. 이 놀라는 멤버 중에는 아크도 끼어 있었는데, 그가 놀란 이유는 다른 이들하고는 달랐다. '알퐁스 에렉? 갑옷까지 완전히 세트네? 젠장 강철의 알케미스트 보고 싶다. 휴지 중령 죽은 다음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미치겠네. 혹시 저 자식 갑옷 벗으면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갑옷 몸뚱아리 아냐?' 이렇게 아크가 망상 중일 때, 론은 알퐁스의 자기 소개에 맞추어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내 이름은 론 루네아. 망국 루티안의 루네아 공작가 마지막 후손이며 현재 디그리스의 총 사령관을 맡고 있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를 물어 보아도 되겠소?" "스물 셋이다." 론의 대답에 팬크라프트 기사 진영에서는 너무나도 뻔한 '저 나이에 소드 마스터라니'하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소설에서 많이 봐왔던 장면이라 아크로서는 새삼 새로울 것도 없는 반응이다. '응 그래. 스물 셋에 소드 마스터라구? 참 대단하구나.'란 기운 빠지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없나? 알퐁스가 갑자기 론의 나이를 물어 본 것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몸이 더 이상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수명이 무한대가 되는 것은 아님)또 나이가 들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반로 환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회춘을 하여 그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므로 알퐁스는 론의 실력을 가늠하기에 아주 적절한 질문을 하였다. 보통 마스터급들의 실력은 대충 엇비슷하지만, 갓 마스터가 된 자와 마스터가 된 다음 더 높은 경지의 그랜드 마스터를 이루기 위해 오랜 수련을 쌓은 자와의 실력 차이는 엄연히 존재했다. 만약 론이 자신의 나이를 높여 말했더라면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 좀 더 경계심을 가졌겠지만 23세의 젊은 나이라는 사실을 밝힌 이상.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론이 이제 막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신출내기라는 사실을 알고 긴장을 약간은 늦췄다. "그럼 시작해 볼까? 공격!" 알퐁스의 지휘에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각자 할당된 기사들에게 덤볐다. 특히 론에게는 수 십 명이 떼거리로, 아크에게는 셋이 붙었다. 아크를 신관으로 보고한 마법사는 뽀대로 검을 차고는 있었지만 체내의 마나도 형편없고 그저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아크를 그들은 고위급 신관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전투시 대단한 공격력을 가진 마법사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궁수, 그리고 각종 보조와 회복을 담당하는 성직자는 게임 상의 공성전에서도 서로 먼저 제거해야 할 주 제거 대상이었다. 그러니 아크에게 기사가 셋이나 붙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아니 솔직히 신관 하나 잡는데 익스퍼트급 기사들 셋이면 상당한 오버다. 하지만 신관들에게는 그를 엄호하는 기사들이 항상 붙기에 셋 정도는 되야 안전히 처리할 수 있는 숫자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신관을 엄호하는 기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신관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은 한 기사는 그런 점에 의문을 느꼈지만 곧 이상한 피부색의 흑마법사 같이 생긴 신관의 목이 자신의 검에 곧 떨어져나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신관의 움직임은 의외로 날렵했다. "에?" 자신의 공격이 헛방으로 돌아간 것을 깨닫자 마자, 기사는 자신의 남근에 어떠한 것이 닿은 것을 깨달았다. "크허어억!" 하마오카 켄지의 만화 우당탕탕 괴짜가족에 맞먹는 엄청난 표정으로 바닥을 뒹구는 기사. 나머지 두 기사들은 예상외로 자신들의 동료가 너무나 쉽게 당해버리자. 한심하다는 표정과 말투로 동료를 비웃었다. "쯧쯧 브루노. 겨우 저런 신관 하나 못이기고 나가떨어지기냐? 기사란 칭호가 아깝다." "이 형님이 하는 걸 잘 보라고." 다른 기사 한 명이 검을 뽑아들고 아크에게 달려왔다. 물론 그도 아크가 자신의 검에 두동강이 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오만한 생각도 쌍방울에 닿은 집게손가락의 느낌을 느끼자 씻은 듯이 날아가 버렸다. 이어지는 아크의 싸늘한 목소리. "파리넬리나 되 버려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꽉!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크는 기사 녀석의 방울을 사정없이 세게 꼬집었다. 그러자 방울이 으스러져 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역시 괴짜가족에나 나올 법한 표정으로 거품을 물고 실신해 버린 팬크라프트의 기사. 너무 아크를 얕잡아보고 방심을 했다가 이미 두 명의 익스퍼트 급 기사가 전투 불능이 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부수적 효과로 성 불능이 될 지도 모른다. 동료들이 엄청난 급소 공격으로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리는 것을 목격한 남은 한 기사는 아크에 대해 약간의 경계를 취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는 동료들에게는 없는 갑옷의 성기 보호대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여유가 생긴 기사는 이 정체불명의 신관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말을 걸었다. "급소 공격이 훌륭하군. 어디서 배운 건가?" "트리플 에이치. 아니 츄플은 슬레지 해머의 대가니까 릭 플레어가 낫겠군." "??? 어느 유파지?" "중앙시장 고들빼기파." 아크는 매우 성의 없이 대답했다. "뭐 고들빼기파? 처음 들어보는 유파인데? 어디 수도원 출신인가?" "삼청교육대." 아크는 무심한 표정으로 무책임하게 말했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네. 혹시 이름은 알려 줄 수 있겠나?" "오사마 빈 라덴." 정말 끝까지 장난이다. "그래 라덴! 어쨌든 우리는 적으로 만났으니 싸워야 겠지. 난 자네를 처리할 임무를 맡은 세비어라고 하네. 내 임무에 충실히 하기 위해 자네를 죽이겠네." "맘대로." 세비어는 겉으로는 멋진 말을 늘어놓았지만 매우 성의 없게 말하는 아크의 태도에 약간 심기가 상해있었다. 세비어가 검을 뽑자. 그에 맞상대하기 위해 아크도 블레싱 소드를 뽑아들었다. "호오? 괜찮아 보이는 검이군. 검을 쓸 줄 아나?" "휘두를 줄은." "그러겠지." 세비어는 씁쓸히 웃으며 '장식용이니 그러겠지'란 말을 함축해서 말했다. 아크를 향해 종으로 검을 휘두르는 세비어. 그런데 예상외로 아크의 검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낼 듯이 보였다. '내 검을 받아 낼 정도라니. 순발력은 있나보군.' 그리고 검과 검이 닿았다. 그러나 쇠막대들이 부딪히는 것치고는 상당히 허무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뎅겅 세비어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했다. "내, 내 검을 자르다니, 실력을 숨긴 건가?" "글세." "오러도 쓰지 않고 검을 부러뜨릴 실력이라니 어떻게 겨우 그 정도의 마나로." 세비어의 경우 아크보다 실력이 월등했기에 아크의 실력쯤은 유심히 관찰만 한다면 알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론처럼 아이템 빨로 뻥튀기 된 아크의 실력을 정확히 꼬집어 내지 못했다. 안목의 차이랄까? 결국 세비어의 판단으로는 아크가 엄청난 실력을 숨기고 있는 수수께끼의 성기사였다. "무기를 잃은 자가 무슨 할 말이 더 있으랴? 졌다. 날 죽여라." "나는 널 죽일 이유가 없다. 대신 전투에 더 이상 참여하지 마라. 아무리 사람 죽이는 것을 꺼리는 나지만 계속해서 방해한다면 그때는 소원대로 네 목숨을 빼앗겠다." "날. 살려주겠다는 것인가?" "진정한 기사는 한 번의 패배로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자신을 누른 강자를 이기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이 진짜 기사다." '내가 말했지만 정말 멋진 대사군. 흠흠.' 아크는 겉으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자기가 한 멋진 대사에 스스로 감탄하며 주책을 떨었다. "당신을 부르는 기사 칭호를 듣고 싶다. 그것을 말해 준다면 당신 말에 따르겠다." '기사 호칭? 아까 뭐 강철의 기산가 뭔가 하는 거 말인가?' 아크는 모 소설에 나온 말끝마다 '~다아'를 붙이는 이상한 기사단 단장의 별칭을 표절하기로 했다. 어차피 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테니. "묵시의 기사다. 묵시의 기사 아크." "아크?" "방금 전 오사마 빈 라덴은 그냥 장난이고 그게 진짜 내 이름이다. 되었나? 그럼." 아크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을 짓고 기사단 제복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옆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료들에게로 달려갔다. 아크가 가고 나자 세비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기사단 제복이다. 누가 묵시의 기사에게 신관이라고 말한 거지? 저 사람은 성기사다. 신성마법을 쓰는 기사. 그리고 패자에 대한 저런 너그러운 자비라니. 저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일지 모른다." 착각도 유분수다. "말톤!" -촤악! 한 기사의 몸이 그대로 두 동강났다. 제 5기사단의 기사 한 명이 또 시체로 변해버렸다. 제 5기사단 멤버들은 먼젓번의 전투로 체력을 소진한 뒤였던지라. 전투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셋이나 작고하셨다. 그래서 현재 남은 제 5기사단 기사는 기사단장 레인하르트 주니어와 게리슨 남작뿐이었다. 수에서 밀리다 보니 전황이 너무나 안 좋았다. 소드 마스터 론은 수 십명 중에서 다섯을 전투 불능 시키는 전과를 올렸지만, 점점 벅찬 듯 다섯 명째를 전투불능 시킨 뒤 한참동안 단 하나의 적도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기사들은 모두 사정이 안 좋았다. 그들에게 할당된 적은 동급의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지만 기사들 외에도 몇몇 떨거지 병사들이 붙어서 다 대 일 전투를 벌였기에 버티기조차 힘들었다. 일반 병사들은 기사들에게 별 위협을 주지 못하지만 그 속에 익스퍼트 급 기사가 끼어 있다면 이야기가 틀리다. -찌익! "큭!" "도련님!" 레인하르트는 한 병사의 창에 오른팔을 베였다. 그 광경을 본 그의 개인 검술교관 게리슨이 상대하던 적을 밀쳐버리고 레인하르트에게 가려고 했다. 그러나 게리슨을 상대하던 기사는 그를 쉽게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오른팔에 출혈을 감수하고도 열심히 싸웠지만 팔에 힘이 빠져 그만 검을 놓쳐버렸다. "죽어라!" 그가 상대하던 팬크라프트의 기사가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헙!" 그때 레인하르트를 찌르려던 기사의 표정이 엄청난 고통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기사의 가랑이 사이에는 의문의 손이 기사의 성기를 잡고 있었다. "양촌리 딸딸이 권법!"(여기서 딸딸이는 '남자의 그 행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경운기를 가리킴) "뜨아아아아악!" 의문의 손은 기사의 물컹이를 꽉 쥔 채 마구 조물딱 거리며 잡아당기고 있었다. 기괴한 상황이지만 목숨을 건진 레인하르트는 검을 다시 주워 들고 상관이 당하는 것을 멍청히 보고만 있던 병사들을 공격했다. 의문의 손에 남자의 성징을 완전히 유린(?)당한 기사는 가랑이에 두 손을 집어넣은 채, 입에 거품을 물고 무릎을 꿇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쿵 기사가 쓰러지자 레인하르트는 그에 가려졌던 뒤에 서 있는 의문의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볼 수 있었다. "아크 경!" "오랜만이군. 먹자, 스틸, 구걸범." "살아 있었군요! 세 명이나 달라붙었던 것 같은데?" "뭐.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근데 그 팔 가지고 싸울 만 해?" "힘이 좀 빠지는 군요." "풀 힐!" 아크가 외치자, 레인하르트의 팔에 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고맙습니다. 아크 경." "아. 그럼 수고." 아크는 간략하게 인사한 뒤 위급한 동료들을 찾아 나섰다. 할당량이었던 세 기사들을 처리하고 나니 아크에게 붙는 건 몇몇 병사들뿐이었다. "보조 마법을 걸어들 줘야 겠군." 아크는 동료 기사들에게 각종 회복과 보조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수 십명의 기사들에게 둘러 쌓인 론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몸이 가뿐해졌다? 그렇다면?' 론은 신성의 마나가 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크가 그론다이저 백작에게 보조 마법을 쓰고 있었다. '의외로 쓸모가 있군.' 어쨌든 몸이 가뿐해진 론은 상대하던 기사의 팔을 잘라 버렸다. 조금씩 굼떠지던 론의 움직임이 갑자기 이전보다 팔팔해지자. 알퐁스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셋이나 붙였던 신관이 아직도 살아서 회복마법을 써 대고 있었다. "젠장. 케르단! 빨리 저 신관을 처치해라. 여태까지 살아 있다니 세비어 녀석은 대체 뭘 했단 말인가!" "예." 론을 포위하고 있던 기사들 중 케르단이란 이름의 기사가 아크를 처치하기 위해 대열에서 빠져나갔다. 레골룸스는 대활약 중이었다. 불과 물의 두 정령을 이용한 연계기로 이미 처음에 공격했던 한 기사를 처리하고 제 5기사단 멤버들이 당한 뒤 그들을 죽였던 팬크라프트 기사들 3명과 싸워서 벌써 기사 한 명을 처리한 상태였다. 물론 레골룸스가 검 실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두 중급정령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하아압!" -퍼벙!" 레골룸스의 기공포에 한 기사는 갑옷에 구멍이 뚫린 채. 몇 미터 가량을 날아갔다. 그렇게 1:1 상황이 되자, 레골룸스는 남은 한 기사를 매섭게 몰아 붙였다. 팬크라프트의 일반 병사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운다이론과 사라만더라는 안 어울리는 콤비에 의해 싹쓸이를 당하고 있었다. "골룸이 녀석. 잘 싸우는데? 그런데 프로즌 아이스는 안 쓰나 보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산뜻한 장의사 맛 언더깡! 전국 모의고사가 6월 9일인 관계로 일일 2,3연참은 힘들고 다음 파트까지 1일 1연재 하겠습니다. 제국의 개입 파트가 끝나고 다음 파트는 제가 개인적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파트입니다. 빨리 올려보고 반응을 보고 싶군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재는 조금 슬픈 듯한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코믹하게 나왔던 내용과는 어딘가 모르게 안맞지만 괜찮겠죠. 비축분은 약 15회 가량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고민되는 내용이 있어 설문을 하나 더 할까 합니다. 조연급인 호킨이란 기사가 있는데 이 기사를 살릴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호킨의 본명은 스티브 호킨이며(어느 고명한 과학자 분 계시죠)지금 죽일까 말까 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여담이건대 어떤 친구놈이 저보로 이사쿠랍니다. 자식이 지는 요시키처럼 생겨 놓고 한다는 소리가......제가 이사쿠 같습니까? 그것도 설문때립니다. 레골룸스는 프로즌 아이스의 주인이 아니었기에 프로즌 아이스를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기사단 입단 때 받은 검을 쓰고 있었다. "동료들이 병사들한테 고립 당해 있는데, 안 쓰고 뭐 하는 거야? 회수해야겠군. 프로즌 아이스!" 프로즌 아이스는 주인의 부름에 반응해 아크의 왼손에 잡혔다. 그것을 본 아크 뒤의 목소리가 흥미가 동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소환 마법인가?" "그런 거 일종일걸?" 아크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뒤에 다가온 기사 케르단의 질문에 대답했다. "넌 도대체 누구냐? 진짜 신관이 맞는 거냐?" "난 신을 믿지 않아. 하지만 사람들은 날 성기사라고 부르더군." "너에게 붙었던 셋은 어찌 되었나?" "죽이지는 않았고. 모두 그냥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지." "그럴 만한 실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난 방심하지 않는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케르단은 특이하게도 두 개의 검을 사용하는 쌍검사 였다. 두 자루의 검을 뽑아든 케르단은 아크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자(정확히 말해서 못하자)자신도 굳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최대의 실수였다. -서걱! "......!" 케르단은 크게 놀랐다. 아크의 검에 닿자마자, 자신의 애검 자웅합체검의 웅이 잘려 버렸기 때문이다. "오러를 쓰지 않고도 검을 자를 실력이라니. 그랬군. 죽이지 않았단 말이 무슨 뜻인가 했더니. 무기를 파손시켰단 이야기였군." "3분의 1은." "전력으로 상대해 주겠다." "기대하지." 케르단은 나은 칼에 오러를 씌웠다. 그리고 아크를 공격했다. -챙! 챙! 챙! 검끼리 부딪히는 쇳소리가 아주 경쾌로왔다. '제길!' 아크는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었다. 확실히 기사의 검술은 대단했다. 어설프게 오러 블레이드도 안 쓰고 당했던 세비어 같은 녀석들과는 달랐다. 케르단은 그야말로 전심전력을 다해 아크를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가지 가벼운 검의 무게로 보여줄 수 있는 쾌검이 아크의 어설픈 검술을 보완해주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케르단이 쓰는 검이 대검이나 중검이 아닌 장검. 그것도 검날이 얇은 가벼운 검이라 무게에 따른 잇점을 100퍼센트 다 발휘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케르단은 성기까지 방어할 수 있는 형태의 갑옷을 입고 있어, 성기 공격도 먹힐 턱이 없었다. "젠장! 나와라! 운디네." 아크는 운디네를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은 정령과의 연환 공격뿐이다. "정령! 정령사였던 건가?" "그럴지도." 운디네의 물공격에 약간의 틈을 보이던 케르단은 운디네부터 처치하기로 마음먹고 운디네를 베려 했다. 그때였다. "끝이다!" 아크는 운디네가 뿜어대던 물에 프로즌 아이스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운디네는 물론이오 물에 흠뻑 젖었던 케르단도 머리만 남기고 그대로 얼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옷 덕에 케르단이 체온 저하로 즉사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큭! 이게 무슨. 빙한 마법까지 쓸 줄은 몰랐군." "후후. 이 몸은 생각보다 대단하거든?" 얼음덩이에 갇혀 나오지 못하는 케르단. 아크는 검을 쥐고 있던 케르단의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얼어 있던 케르단의 팔은 피 한 방울 뿌리지 않고 깔끔히 잘렸다. "팔을 자른 건 미안하지만. 목숨을 거두지 않은 것은 다행으로 알아라. 너는 왼손으로도 검을 쓸 수 있으니, 죽음보다 가혹한 형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나와 붙었던 너의 동료들에게 물어봐. 네 동료들은 더욱 끔찍한 꼴을 당했으니 말이야." 검을 쓰는 기사가 팔을 잃는다는 것은, 기사로서의 생명을 잃는 것을 뜻한다. 기사인 케르단에게는 결코 가벼운 형벌이 아닌 것이다. 허나 훗날. 아크에게 당했던 동료들을 만난 케르단은 자신의 팔이 잘린 것이 결코 무거운 형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래 두 자루의 검을 쓰던 그에게 오른 팔을 잃은 것은 기사의 생명을 완전히 잃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동료들은 남자의 생명을 완전히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케르단을 게임 오버시키고 동료들을 돕기 위해, 아이스 미사일을 날리는 아크. 그 중 필로스가 적 기사에게 밀리자, 아크는 서슴없이 기사에게 아이스 미사일을 날렸다. 기사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기겁을 하며 막았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그의 갑옷에는 상당한 수준의 마법 방어 주문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그냥 맞아도 무고나한 것을, 방패로 막는 바람에 상대하던 필로스에게 결정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푸슉! 필로스의 검이 기사의 심장에 박히고 기사는 피분수를 뿜으며 죽었다. 필로스는 아이스 미사일을 날린 아크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아크도 그에 회답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호? 역시 성직자의 보조는 대단한 것이었군." 숫자에 밀리던 동료들이 각종 보조 마법의 효과로 지금은 조금 밀리더라도 거의 대등한 전투를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적들의 숫자는 위협적이었다. 자신에게 할당되었던 기사를 해치운 레인하르트와 필로스를 보면 기사들은 붙지 않았어도 수많은 병사들에게 둘러 싸여 아직껏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럴 때 아크의 프로즌 아이스가 꼭 필요하다. 아크의 뜻에 따라, 프로즌 아이스는 많은 아이스 미사일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날렸다. 별다른 마법 방어구를 갖추지 못한 병사들은 아이스 미사일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가 없었고, 때문에 일반 병사들을 상대로 한 마법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촤악! 마지막까지 남아 레골룸스를 상대하던 한 기사가 레골룸스의 오러 블레이드에 몸이 수직으로 갈라져 피를 철철 쏟으며 죽어갔다. 론과 아크 다음으로 많은 네 명의 기사를 처리한 레골룸스. 순수한 검실력으로만 따지자면 레골룸스는 결코 익스퍼트 급 기사 둘을 상대할 수 없었지만. 아크의 보조마법과 정령과의 연환계 공격 등으로 기사들을 각개 격파시키는 매우 영리한 작전으로 그는 맹활약을 하고 있었다. 레골룸스는 자신에게 할당된 적들을 다 처리하고 나자, 여유가 생겼다. 워낙 혼전인지라 덤벼드는 적도 없었고, 수십에 둘러싸인 론을 돕자니 숫자가 무서웠다. 주변 상황을 살피며 도움이 필요한 동료들을 찾던 레골룸스는 이 포위망을 야간 벗어난 곳에 말을 탄 두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먼 거리에 흙먼지 때문에 정확히는 안 보였지만, 레골룸스는 백마를 탄 자의 얼굴이 강렬히 뇌리에 박혔다. "저, 저놈은!" 레골룸스는 그가 누군지 눈치 챌 수 있었다. 어찌 꿈엔들 잊을 수 있으랴? 저 얼굴을. 레골룸스는 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백마를 탄 남자에게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분노가 너무 강해서인지 화살은 그 자의 목을 맞히지 못했다. 화살이 명중하지 않았음에도 레골룸스의 표정엔 희열감이 나타났다. "이런 행운이 닥칠 줄이야. 내 저놈의 목을 잘라 어머니 나무 앞에 바치리라." 레골룸스는 분노의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마법이지만. 레골룸스의 집념의 힘은 그를 정확히 원하는 곳에 떨어뜨렸다. "적이다!" 갑자기 나타난 디그리스의 엘프 기사에 총 사령관을 지키던 병사들이 경계 태세에 나섰다. "비켜! 애로우 봄!" -퍼버벙! "크악!" 둘러 싼 병사들을 처리해 버린 레골룸스는 오랜만의 그리운 낯짝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이야. 세프. 30년만인가? 별로 늙지 않았구만? 때문에 알아보기 쉬웠어." "오랜만이군. 레골룸스. 리엔느는 잘 있나?" "네놈이 그녀의 이름을 거론할 처지라고 생각하나?" 레골룸스는 지금까지의 얼빠진 모습과는 다르게 강렬한 눈빛으로 폴티아 공을 노려보았다. "글세? 내가 뿌린 씨는 잘 있나 해서." "그래 지금 생각해보니 아크 녀석보다 네놈이 더 심한 변태였어. 리엔느는 그래도 네놈의 씨앗을 버리라는 원로들로부터 지키려고 했었지. 멍청하게도 그때까지 네놈을 믿었던 거야." "그랬나? 역시 엘프 족 여자들은 순진하단 말야. 맛도 있고." "그 썩은 입 다물어라." "그런데 아크가 누구냐?" "그런 것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적어도 네놈보다는 착한 인간이니까. 피차간에 말이 많았군. 이렇게 만나게 됐으니 이제 네놈의 목을 베어 어머니 나무에다 바치겠다. 엘프는 은혜도 반드시 갚지만, 원수도 기필코 갚는다." "폴티아 공. 저 엘프는 누군가?" "30년 전 친구입니다. 지금이야 너무 원한을 깊게 사서 미움 받고 있지만 말입니다." "닥쳐라!" 레골룸스는 오러를 발동시키고 폴티아 공의 말을 죽여버렸다. 폴티아 공은 넘어지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이런 진정하라고 레골룸스." "죽여버린다!" 폴티아 공에게 달려드는 레골룸스. 그때 그의 앞을 스타미노 후작이 막았다. "꽤나 실력이 있어 보이는군." "넌 뭐냐? 죽고 싶지 않으면 비켜라." "하핫. 대단한 패기다. 무슨 원한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폴티아 공을 죽이려면 나 먼저 쓰러뜨려라." "소원이라면 죽여주지. 운다이론! 이 자를 공격해라. 워터 헤븐!" -쏴아아아아 레골룸스는 스타미노 후작의 시야를 가린 뒤 공격했다. "죽어라!" "쉽게 당해 줄 것 같은가?" -챙! 검과 검이 부딪히는 쇠소리가 아주 경쾌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국의 개입 '이거 이래선 안 되는데......' 수 십 명의 기사들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론은 계획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여러 명의 주위를 끌고 그 사이를 틈타 기사들이 도망쳐야 했는데 포위망이 너무나 빠르게 형성된 데다가 워낙 적들의 인원수가 많다보니 도저히 도망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아크와 레골룸스 등의 예상외의 선전으로 나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론도 사람인지라 이대로 몇 시간 동안 드잡이질을 한다면 결국 체력이 다해 숫자에서 밀리게 된다. 밀리면? 곧바로 죽음이다. 론은 일단 자신이 미끼가 돼서 적들을 유인한 다음 부하들을 탈출시키고 자기는 나중에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론은 전음을 통해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 말 잘 들어라.' 디그리스의 기사들은 누군가 귀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다들 이 소리의 주인이 누군가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크라우스냐?' "나 아니다. 아마 네 누님이라는 사람의 전음같군." 아크의 위급상황에 항시 대기하고 있던 아크라우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난 너희들 총사령관이다. 이대로 싸우기만 한다면 우린 절대 승산이 없다. 내가 책임지고 포위망을 뚫어 줄 테니, 기마병을 죽이고 말을 빼앗은 뒤 재빨리 도망쳐라. 레골룸스! 넌 나와 포위망을 뚫는다.' 전음을 사용할 줄 모르는 다른 기사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했지만 레골룸스는 원거리에 음성을 전하는 마법을 이용해 론에게 항의했다. '사령관님! 전 계속 싸워야 합니다. 우리 엘프들의 원수를 여기서 만났는데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어리석긴! 아무리 여기서 원수를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자네가 죽어버리면 어쩔 건가? 어차피 다시 만날 기회도 충분하니 그냥 빠져 나와!' '하지만!' '어허 그렇게 여기에 남고 싶나? 좋아 그럼 우리는 도망칠테니 자네 혼자서 10만 대군을 막고 있게. 물론 몇 초도 못 버티고 시체가 될 테지만 그렇게 남아 싸우고 싶다니 할 수 없지.' '큭. 알겠습니다.' '진작에 그래야지. 내가 검폭으로 저기 북쪽을 뚫을 테니, 화염마법으로 길을 뚫는 것을 도와. 그리고 나머지! 모두 북쪽으로 간다. 알았어! 지금 상대하고 있는 놈들을 최대한 떨어뜨리고 빨리 도망쳐.' 론은 지시를 마치고 다시 싸움에 집중했다. 그녀로서는 일단 자신에게 엉겨 붙은 기사들 먼저 떼버려야 했다. "월영참(月影斬)!!!" 두 줄기의 검기가 반월을 그리며 기사들을 덮쳤다.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 기겁하는 사이. 론은 잽싸게 몸을 뺐다. "잡아라!" 기사들은 론을 쫓아 와르르 몰려갔다. "이때다!" 디그리스의 기사들은 상대하던 적들의 기사를 있는 힘껏 밀어내고 론이 달리는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거냐? 놓칠 줄 알고!" 할당량으로 맡은 자들이 도망치자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그들을 쫓으려 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었다. "아이스 월!" 막 쫓으려던 기사와 병사들 앞에 거대한 얼음 장벽이 세워졌다. 아크가 프로즌 아이스로 농간을 부린 것이다. 론은 북쪽에 병사들이 밀집한 곳에 도달하자 검폭을 시전했다. -쿠콰콰콰콰콰! "사라만더! 블레이즈 웜!" 스타미노 후작과 전투 중이던 레골룸스는 검폭이 시전된 자리에 사라만더를 보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화염을 피하기 위해 좌우로 갈라졌다. "지금이야!" "빨리 갑시다!" 디그리스의 기사들은 불길의 끝을 따라 잽싸게 달렸다. 그리고 론은 자신을 쫓아오던 기사들과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포위망을 재구축해라. 절대로 저놈들이 못 빠져나가게 막아!" 불길이 지나가자 좌우로 갈라진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은 다시 썰물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아크가 프로즌 아이스를 휘두르자 그들은 얼음벽에 막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좌우가 얼음벽으로 장식된 길을 빠져 나오는 디그리스 기사단 멤버들. 그런 그들의 앞을 막는 몇몇 기마병들이 있었다. 기마병들의 목적은 디그리스의 기사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역할이었지만 그 임무와는 다르게 모두 허무하게 당해 오히려 말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주인이 없어진 말들은 각자 새 주인을 맞아 달리기 시작했다. "기공포!" -퍼벙 "으헉!" 레골룸스는 기공포로 스타미노 후작을 날려 버린 뒤, 스타미노 후작의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병사들에게 호위 받고 있는 폴티아 공을 한 번 쏘아보고서는 그대로 달렸다. '다 탈출했군. 그럼.' 부하들이 안 보일 만큼 달아나자, 론은 그대로 포위망의 병사들을 뛰어서 넘었다. 워낙 먼 거리를 뛴 지라 이 모습을 보던 이들은 모두들 론이 날아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론도 경공을 이용 전속력으로 달렸다. "제기랄 잡아라!" "푸핫! 아크 경. 그게 무슨 꼴이야." "젠장 전 말 탈 줄 모른다구요!" 에르쿠스의 핀잔에 아크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크는 말을 타는 것이 아닌. 완전히 말에 매달려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맨 처음 출발이 무색하게 두 번째로 늦게 출발한 에르쿠스한테도 벌써 추월 당해 버렸다. "쯧쯔 수고해라!" "얌마! 골룸!" 맨 뒤에서 그것도 가장 늦게 출발한 레골룸스도 이제는 아크를 제치고 푸른 하늘 저 멀리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크는 말 등에 찰싹 붙어 가던 것을 말 목을 껴안고 가는 자세로 바꿨다. 그러자 이제야 좀 안정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주인의 안정적인 자세가 말에게는 목조르기의 고통을 주고 있었으니. 결국. -콰당탕! "커헉!" 아크는 낙마해서 그대로 어깨를 땅바닥에 부딪혔다. 상당한 고통이었다. "젠장. 빨리 도망쳐야 되는데." 멀리서 흙먼지가 일고 있었다. 팬크라프트 군의 추격이 있는 모양이다. 블레싱 소드 덕분에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속력으로 달릴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빨라도 말 이상의 속도를 내기는 힘들었다. 그러니 적들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말을 타고 가야 했다. 그때 무언가가 아크의 앞을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쳤다. -쌩! -휘이이이잉! "뭐야? 바람까지 일 정도라니." 아크가 중얼대는 사이, 저 멀리 떠났던 빠른 속도의 무언가가 다시 아크 쪽으로 오고 있었다. 짐작대로 그 무언가는 론이었다. "누님!" "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적들이 몰려온다고." "낙마해서요." "뭐? 낙마? 말 탈줄 몰라?" "예." "할 수 없군. 내가 말을 몰 테니까. 뒤에 타." "예?" "예는 뭔 예야? 어서 올라타." 론도 말을 타보기는 십 여년 만에 처음이었지만 그 이전만 해도 귀족가의 영애로서 승마라는 고상한 취미를 가졌었기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는 했다. 론과 아크가 동시에 말에 올라타자 말은 '히히히힝' 이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자세를 낮춰 론을 떨어 뜨려 버렸다. -쿠당! "어라? 둘은 무린가?" "무게 때문이 아닐까요? 근데 아까 쿠퍼 경은 잘만 가던데. 누님 혹시 숨겨놓은 뱃살?" -퍽 "아주 맞을 소리만 골라서 해라. 아마 갑옷 때문일 거야. 별로 아까운 것도 아니니 버려야 겠군." 론은 빠르게 갑옷을 벗어 땅에 던졌다. 원래 갑옷을 입고 벗는데 시종의 도움과 함께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정말 빠른 속도였다. 아니 부숴서 벗었다는 말이 옳았다. -쿵! "와우!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죽이는데요?" "그럴 수밖에 50kg이 넘으니까." 론은 갑옷과 건틀릿, 그리브까지 모두 벗어 던졌다. 그러자 론은 예의 도복 차림이 되었다. 아크는 때가 탄 도복을 보고 물었다. "빨기는 하는 겁니까?" "흠. 글쎄?" "혹시 목욕도?" "실례야! 자주 한다고!" "그런 소리 못 들어 봤는데요?" -퍽! "토달지 말고 빨리 타기나 해! 벌써 저기까지 왔다구." 명치를 맞아 숨이 막혀 말이 안 나오는 탓에 아크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적 의사를 표했다. 확실히 갑옷을 벗어버리자 말은 제대로 달렸다. "꽉 잡아 아크! 아! 맞아. 너 보조마법 쓸 줄 알지?" -끄덕끄덕 "말한테 좀 걸어봐. 빨리!" -끄덕끄덕 말에게 은은한 하얀 빛무리가 어렸다. "좋아. 간다! 이랴!" "히히히힝!" 말은 콧김을 뿜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으갸갸갸갸갸갸갸!!" 명치를 맞아 말을 못하던 아크는 말의 엄청난 속도에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갈량의 계책 전편의 므흣(?)예고로 기대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죄송하지만 므흣의 강도가 그다지 강하진 않습니다. "꽉 붙들어!" "네, 네, 넵!" 보조마법이 걸린 말은 정말 엄청난 속력으로 달렸다. "저기다! 쏴라!" 팬크라프트의 추격군들은 말의 엄청난 속력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이 따라 와 있었다. 갑옷을 벗네 어쩌네 하며 시간을 끈 것이 원인이리라. "누님! 화살 날라와요!" "제길." 론은 말의 방향을 이리저리 틀었다. 그 덕에 뒤에 있던 아크만 더 위태로워졌다. "누님. 그러지 마요! 저 화살 안 박히니까!" "너 얼음마법 쓸 줄 아니까 저기 쫓아오는 놈들한테 날려봐." "아! 맞아 프로즌 아이스가 있었지! 아이스 월!" 맹렬히 추격해 오던 한 기사는 갑자기 솟아오른 얼음 장벽에 그대로 충돌해 버렸다. 아크는 말들을 향해 아이스 미사일을 날렸다. 말 위에 탄 기사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아이스 미사일이지만, 말들은 아이스 미사일을 맞는 족족 죽어나갔다. 화살이 제법 많이 날아왔지만,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가 있는 아크에게는 등에 닿자 마자 미끄러져 버렸다. 이렇게 계속해서 추격해 오는 적들을 물리치고 말의 빠른 속도로 따돌리니 제법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긴 아크는 론에게 말을 건넸다. "누님." "응?" "뱃살은 안 나오셨군요." "꺄!" "저기요." "뭐야?" "남자 목소리로 꺄! 하니까 좀 그렇거든요?" "호오 그래? 나중에 두고보자." '커헉! 실수했다.' 그제야 아크는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론이 자기를 팰 수 없는 상황에 있다는 생각에 그만 맞을 소리를 한 것이다. 뒤에서 껴안다 보니 배가 만져지길래 가볍게 말 한번 건넸다가, 꺄 소리 듣고 헛소리를 해버렸다. 그래도 꽉 껴안은 론의 배 감촉은 부드러웠다. 그때 갑자기 론이 비장한 목소리 톤으로 말했다. "아크." "넹?" "나 놓치지 마라." "예? 그게 무슨." 아크가 채 반문하기도 전에 말은 펄쩍 뛰었다. -펄쩍 "이히히히힝!" "으아아아아아악!" 폭 3m 가량의 하천을 그대로 뛰어 넘은 말. 아크는 그 반동으로 말등에서 엉덩이가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안 떨어지려면 론을 잡고 버티는 수밖에는 없다. -풀썩. 불안전하기는 했지만 말은 하천을 그런대로 잘 뛰어 넘었고, 아크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휴! 살았다." "아크야." "넵 누님." "너 자꾸만 은근슬쩍 이런 짓 하면 죽도록 맞는 수가 있다?" "예에? 뭐 말이요?" "니 손." "엥? 으헥!" 아크의 두 손은 론의 가슴을 꽉 잡고 있었다. 말이 도약할 때 자기도 모르게 어쩌다 보니 론의 가슴을 잡게 된 것이다.(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론의 가슴에 저절로 손이 갔다가 정답이다) "죄, 죄송합니다. 죽여주십쇼. 누님." "후우. 빨리 가기나 하자." 론은 물을 마시던 말을 다시 채찍질했다. "근데 말이죠. 누님." "또 뭐야?" "절벽 아니시네요?" -빠득! 론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녀의 이마에 실핏줄이 어렸다. 열 받은 모양이다. "자, 잠깐요. 가슴 크다고 칭찬한 거에요! 천 같은 걸로 동여매고도 그 정도라니, 놀랐다구요." "쓸데없이. 뛰면 출렁거리고, 검을 쓸 때 거추장스러워. 팬크라프트의 여검사 케레스 카르넨은 상승 경지에 들기 위해 가슴을 잘라내 버렸다고 하던데 나도 그래 볼까 고민중이야." "그러지 마요." "왜?" "제가 좋아하니까요." 론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뭐, 뭘?" "큰 가슴이요." 론의 표정에 약간의 실망의 기색이 어렸지만 붉어진 그녀의 얼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아크의 말은 거짓이었다. 여러 미연시를 접한 아크는 안경녀, 소꼽친구, 누나, 선생님, 유부녀, 여동생, 메이드, 간호사, 어린아이, 미망인 등 어떠한 캐릭터에도 면역이 되 있었다. 한 마디로 글래머 캐릭터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로리 캐릭터도 좋아한다는 뜻이다. "변태 녀석." 론은 아크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나 그 강도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사망 5937여 명, 부상 7214명, 제 5기사단 기사 9명 전사, 트로본 성, 로벤터 성, 훼렌 성 빼앗김......" "그만, 그만 듣기 싫어. 정말 처참하군." 론은 포른오 자작의 보고를 중간에서 끊었다. 들을수록 머리 아픈 말이다. 팬크라프트의 10만 지원군에 순식간에 안 좋아진 전세. 그랑테 평원 전투에서 후퇴하다가 적의 매복에 걸려 1만 3천이 넘는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대패를 당했다. 또 레인하르트 공작의 해군도 약 3분의 2가 궤멸하는 대패를 당했다. 한 마디로 전황이 엄청나게 안 좋아진 것이다. 파죽지세로 빼앗았었던 성들도 이젠 역으로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디그리스 육군은 데일런스라는 폴티아 중부의 중소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후우.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두프레." "일단은 본국에 원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기사의 수는 우리가 많으니 원군이 도착한다면 충분히 일전을 벌일 만 합니다." "그걸 누가 몰라? 문제는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느냔 말이야! 이대로 후퇴만 하고 있으면 레니아 항구를 잃게 돼, 그러면 원군이 육로로 올 수밖에 없고, 그걸 기다리다간 우리는 궤멸하게 된다. 허나 그렇다고 이 병력가지고 레니아 항을 지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 철군 밖에는......" 철군이라는 말이 나오자, 회의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몇 년만에 맞은 이런 기회를 이렇게 무산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의 선택지는 없었다. "일단은 후방의 번즈 성으로 후퇴하는 게 좋겠습니다. 정보부의 신뢰도 88.9%의 정보로 봐서는 사흘 후쯤 팬크라프트 군이 도착할 것 같답니다." "정보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군. 포른오." "아무래도 0.5% 오차율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정보가 있는 이상. 이전의 90%대를 유지하기는 힘들지요." "그런데 말이야. 아크 경. 꼴이 그게 뭔가?" 그론다이저는 경호의 임무를 맡고 론의 오른쪽에 서 있던 아크를 질책했다. "아하하. 그게 낙마를 해서." 어색하게 웃는 아크의 모습에 그론다이저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크의 저 얼굴은 낙마해서 생긴 것이 아닌 어떤 구타의 전문가에게 교묘하게 맞아서 된 몰골이다. 그것에 대해 따지려는 그론다이저. 그러나 그론다이저가 막 입을 열려 할 때, 론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럼 이만 해산을 하도록 하지. 결정은 내일 내리겠다. 그럼." 이렇게 은근슬쩍 사건을 은폐시키려는 론의 행동에 피해자 아크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용한 막사. 제 7기사단 천막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하기야 대패하고 도망다니는 마당에 활기찬 놈이 있다면 비정상이거나 분위기 파악 못하는 눈치 없는 쓸개빠진 놈일게 뻔했다. -펄럭 그때 갑자기 천막의 천이 바람에 휘날리고, 의외의 인물이 기사단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님!" "이런 군기가 완전히 빠졌군 그래?" 각자 편한 자세로 있던 기사들은 급히 사령관을 맞는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아 편하게 있어." '똥개훈련?' "무슨 일이십니까?" "잠도 안 오고, 심심해서 레골룸스 경의 이야기나 들어볼까 해." "예? 저 말입니까?" "그래. 폴티아 공이라는 자와 미묘한 관계인 것 같은데. 그걸 좀 이야기 해 줄 수 있겠나?" "폴티아 공!" "......!" 기사들에게는 각자 분노의 표정이 어렸다. 이유는 각자 달라도 폴티아 공은 이 디그리스 기사들에게 원한을 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아크가 끼어들었다. "사령관 님. 그건 엘프들에게 민감한 사항입니다. 그런 사항을 그렇게." "아니오.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그자가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는지." "궁금하군. 내가 이전까지만 해도 섬기던 주군이 어떤 짓을 했는지." 레골룸스는 30년 전의 엘프족 비사를 이야기했다. 아크야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어, 귀를 기울여 들었다. 레골룸스가 이야기하는 사이 동료 기사들은 '그런 못된'이라거나 '신궁을 어디서 구해왔나 했더니 거기서 였구만' 등의 분노 섞인 반응을 토로했다. 레골룸스의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아크는 이야기에서 자신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그런 말을 들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갈량의 계책 "자, 잠깐. 지금 뭐라고?" "리엔느양이 강제로 범해졌다고." "저, 정말이냐? 루리엘은 그런 말 안했는데?" "그래 사실이야. 그렇게 해서 그녀는 리에나를 출산한지 얼마 안 돼서, 폴티아 공 그놈의 아기를 갖게 되었고, 달이 차서 하프 엘프를 낳았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려 했지만, 아기는 그자의 핏줄이란 이유로 버려져야 했지. 그때 도도하던 리엔느 양의 서글픈 울부짖음을 난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쾅! 갑자기 쾅 소리가 들리자 기사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크가 천막을 지탱하던 나무에 주먹을 대고 있었다. 그리고 앞머리로 가려진 아크의 눈에서 물방울이 주르르 흘렀다. -쾅! 쾅! 쾅! "이 개 같은 자식이! 리엔느를! 죽여버린다! 으아아아아!" 울면서 발광하던 아크는 곧 고개를 처박고 궁상맞게 울었다. "리엔느으으." 왜 자신이 울고 있는지는 아크 그 자신도 몰랐다. 그냥 슬펐다. 아니, 어쩌면 좋아하던 여자의 슬픈 과거와, 자신이 그런 상처를 또 한 번 남길 뻔 했다는 죄책감에 울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와중에서도 아크는 동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크는 막사를 빠져나왔다. 눈물은 나오는데 우는 게 부끄럽다는 자각이 들자. 더 이상 막사 안에서 있기가 뭐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크가 나가고 호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골룸 경. 리엔느가 누구길래. 아크 경이 저 난리를 피우는 거야?" 상황에 맞는 호킨의 아주 적절한 질문에 기사들은 모두 레골룸스를 쳐다보았다. "리엔느 양은 아크가 짝사랑하던 여자 엘프죠. 고백했다가 차이고 홧김에 마을을 떠났는데, 알고 보니 그녀도 아크 녀석을 맘에 두고 있더군요." 론은 아크가 사랑한다던 엘프 여성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꼈다. '뭐지 이 느낌은?' 에르쿠스는 그런 론의 심리로 인한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챘다. '호오? 질투라? 이거 재밌겠는걸?' 달밤에 다 큰놈이 훌쩍이고 있다. 누가 보면 미친놈 소리가 대뜸 튀어나올 것이다. 짐작대로 '달밤에 훌쩍이는 미친놈' 배역은 아크가 열연해 주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거셌다. 게다가 아직 겨울도 다 안 갔으니 밤 날씨도 싸늘했다. 그 덕에 눈물은 이미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고, 애꿎은 콧물만 훌쩍여 대는 아크였다. 이것저것 복잡한 거 이젠 다 필요 없다. 그 폴티아 공이란 녀석을 잡아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혀 준다. 결론은 그것이다. 월스 오브 제리코부터 시작해서 서브미션 종합세트메뉴로 아주 고자를 만들어 줄 테다. '어떻게?' 문제는 그것이다. 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처절한 응징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아크는 성을 한 번 쳐다보았다. 성이라...... "추울 텐데. 그만 들어가지 그래?" 아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론이 남색 빛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서 있었다. "사랑하던 여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게 슬프니?" 아크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좋아했나봐?" "그럴 지도 모르죠." "대답이 애매하네?" "그래 보여요?" "그래." "좀 건방진 말이라서 또 때리실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 좀 그만해 주실래요?" "알았어. 그러니 빨리 들어가 자." "저기요. 누님." "응?" "후퇴하실 겁니까?" "그럴......거야 아마." 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싸울 수는 없을까요?" "나도 싸우고는 싶어. 하지만 난 사령관이야. 함부로 수만의 생사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만약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요?" "물론 싸워야지." "이 성 주변에 하천 하나 흐르고 있죠? 어느 성문 방향이죠?" 아크는 뜬금 없이 하천의 방향을 물었다. "동문일거야." "그럼 됐어요." "무슨?" "제가 이 전쟁을 끝내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디그리스 군 지휘부의 막사에는 마지막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모두들 후퇴한다는 데에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총사령관 론의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물론 모두는 이미 후퇴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사령관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후퇴하지 않는다." "예? 그게 무슨." "지금 남은 길은 후퇴하는 것뿐입니다." 당연히 부관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론은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이길 방법이 생겼다. 그런데도 도망치겠는가?" "어떤 방법인지 궁금합니다." 한 젊은 장교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제 7기사단의 아크 경이 내놓은 계략이다. 자세한 건 설명하지 않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만을 아크 경이 내 대신 설명해 줄 것이다." "뭔가? 아크 경." "요새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이 세지요?"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화공입니다." "뭐 화공?" "자세한 것은 작전을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모두들 이 데일런스 성에서 빠져나가십시오. 한가지 주문을 하자면 꼭 다들 후퇴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후퇴한 다음 북쪽 숲에 숨어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포른오 자작님!" "뭔가?" "자작님께서는 지금 성안에 있는 주민들을 모두 강제로라도 타 도시로 이주시키십시오. 절대 성안에 남아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 좋지 않은 방법이지만 정 말들을 안 들으면 본보기로 몇 죽이고 강제로 보내십시오. 계속 반항한다면......으음 학살하셔도 좋습니다." "왜지?" "그 이유는 다음 작전들을 들으면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다음으로 산토스 남작님은 이 성의 동문에 하천이 하나 있는데. 그 하천을 막아놓으십시오. 아시겠습니까?" "흠." 산토스 남작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프레 백작님께서는 유황과 마른 풀 등. 불에 잘 붙는 것들을 준비해 놓으셨다가, 팬크라프트 군들이 성안에 진을 치고 잠을 자는 밤에 신호를 기다리셨다가 북문, 서문, 남문에 일제히 불을 지르십시오." "호오? 적들을 쥐구멍으로 몰아넣고, 쥐구멍에 불을 지르자는 말인가?" "바로 맞히셨습니다." "그런데 동문은 왜?" "문 세 곳이 불바다가 되면 적들은 어쩔 수 없이 동문 쪽으로 밀려나올 겁니다. 그 좁은 곳으로 꾸역꾸역 나오다 보면 자연히 넓게 퍼진 진형의 아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요. 그리고 동문까지 불태우면 그들은 도망쳐 나오기보다는 불을 끄기에 주력할 것입니다. 도망갈 구석을 두고 쫓으란 말도 있듯이, 동문을 가만 놔두는 것이 오히려 작전의 성공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알았네." "레인하르트 후작님." 평상시에는 아크가 레인하르트에게 하대를 했지만, 공석에서 기사 작위의 그가 레인하르트 후작에게 반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난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후작님께서는 많은 병력으로 동문 앞에 포진하신 다음. 나오는 족족 적들을 처리하십시오. 다 죽이 려고는 하지 마시고 기사 급 인물들이나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자들은 굳이 쫓으려고 안 하셔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령관 님." "음." "사령관님께서는 최대한 많은 기사들을 이끌고 하천 주위에 매복하십시오. 적들이 하천가로 도달하면 막아 놓은 물길을 터뜨리십시오. 그런 다음 물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 남은 마지막 적들만 처리하시면 될 겁니다." "심심하게시리......내가 할 일이 별로 없잖아?" "기사 급의 인물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남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니 그곳에는 사령관님이 가시는 것이 낫습니다." "잠깐!" "왜 그러십니까? 그론다이저 백작님." "확실하기는 한 건가? 우리의 운명을 걸만큼?" "그럼 겨우 30대 남은 배로 얼마나 많은 원군이 오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아니면 빨라봐야 한달 반 후에나 올 육로 원군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무산시키고 다시 본국으로 퇴각하실 겁니까? 절 한 번 믿어주십시오. 기필코 이 전쟁을 제 손으로 끝을 내겠습니다." 함께 생활하며 정이 든 아크를 백작은 아직까지 미심쩍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각자 맡은 임무들에 충실하기 바란다. 철수하려고 쌌던 짐들을 그대로 짊어지고 성밖으로 진영을 옮긴다. 알았나?" "예! 사령관님."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지는 의심스러웠지만. 어쨌든 꽤 괜찮은 전략이라 생각하며 지휘부들은 각자 맡은 일에 충실히 임했다. 이 계략은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에서 나온 신야성 전투로 번성으로 퇴각하던 유비군의 책사 제갈공명이 조조군의 조인이 이끄는 10만 병력을 텅 빈 신야성에 몰아 넣고 불을 지른 다음. 연속적인 수공과 공격을 가해 궤멸시켰던, 삼국지를 한 번 이상 읽어 봤다면 머릿속에 남을 만한 그런 계략이었다. 발칙하게도 아크는 삼국지에서 봤던 그 계략을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 양. 이 세계에 써먹고 있는 것이다. 바람의 정령왕도 그런 디그리스를 도와 주려는 듯. 건조한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갈량의 계책 이 편을 조금 더 길게 쓰려고 했는데......끝나는 건 순식간이로군요. 여기 이 전투가 훗날 주인공의 운명을 크게 바꾸는(스토리에 진행시키는)그런 중요한 장면인데 말입니다...... 에 요새 1일 1연재를 했더니 비축분이 많이 딸리네요. 만약 내일 이 시간대 쯤에 다음 편이 안 올라오면 2일 1연재로 재전환 했다고 알아주십시오.(이렇게 말은 하지만 비축분 13편 올릴 여력은 있음) "성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후작 각하." "역시 예상대로 모두 도망친 모양이군." "그런데 성내에 주민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민들이 없어? 설마 다 학살한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흠 이상하군. 어쨌든 입성하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스타미노 후작은 별 고민 없이 데일런스 성에 들어갔다. 유령의 성이란 수식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사람 하나 없는 성안의 모습에 왠지 모를 싸늘함을 느낀 스타미노 후작은 병사들 몇 명에게 지시를 내렸다. "성안을 샅샅이 뒤져서 살아있는 자를 찾아내서 자초지종을 물어 보아라." 잠시 후. 한 병사가 달려와 후작에게 보고했다. "성 중앙에 다 탄 시체들이 대량으로 엉겨 붙어 있습니다." "뭐라고? 가보자." 병사가 보고한 곳으로 간 스타미노 후작은 수 천구는 되어 보이는 타서 뼈만 남은 시체의 산을 볼 수 있었다. "잔인한 놈들." 남의 나라에서 하는 전쟁이니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것은 그들의 알 바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죄 없는 주민들을 이렇게나 많이 죽일 줄이야. "이상하군요. 아무리 그래도 동포들인데 이렇게나 죽일 이유가?" "모르지." 검게 그을린 해골더미를 보고 스타미노 후작은 유령의 성에 대한 의문을 너무나도 쉽게 풀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아크가 노린 속임수이자 후작의 첫 번째 실수였다. 삼국지에서는 워낙 유비가 덕을 중시하는 인자한 군주인지라, 백성들을 버리고 갈 수 없어 데리고 떠났다는 전제 덕에 조조의 부하들이 텅 빈 성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까닭 없이 텅 비어버린 성에 팬크라프트 군은 의심을 지닐 수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시체 모으기 전략이었다. 이곳의 서민들은 대체로 사람이 죽으면 한 구덩이에 여럿을 파묻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을 이용 디그리스 군들은 장의사들을 족쳐 시체들이 묻혀 있는 곳에 유골들을 모았다. 작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천 여년 간 사람들이 살아온 데일런스인지라. 해골들이 상당히 많이 발굴되었고, 거기다 디그리스 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같이 태우니 웬만한 시골 마을 인구 수 정도는 맞출 수 있었다. 물론 데일런스의 인구수에 비해 유골의 숫자가 반절 이상 턱없이 부족했지만. 어느 할 일 없는 사이코가 유골 숫자를 셀 것이오? 게다가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나 법의학팀 같은 게 있을 턱이 없으니 유골들의 사망 연대를 추측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하루는 성안에서 푹 쉰다! 내일 일찍부터 다시 쥐새끼 같은 디그리스 놈들을 쫓을 터이니, 일찍들 잠자리에 들어라!" 스타미노 후작은 소등시간을 앞당겼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두 번째 실수였다. 스타미노 후작은 제갈량이 짜고 아크가 각색한 이 계략에 조금씩 말려들고 있었다. "흠 별로군." 저녁이 지나고 약간 늦은 밤. 스타미노 후작은 포도주 잔을 비우며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최고급 포도주만을 입에 대던 그에게 이런 시골짜기 싸구려 술이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다. 식사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식가인 그에게 전장에서 먹는 이따위 수프가 맛이 있을 리도 없다. "최대한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겠어." 문득 후작은 새로 들여온 애첩 스텔시가 생각났다. 180이 넘는 키인 자신과 맞먹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쭉 빠진 다리, 너무나 가벼워 후작의 팔뚝에 새처럼 걸터앉던, 그러고 보니 정력남이라고 불리던 자신이 수 일째 여자도 품어보지 못했다. "불이야!" "......?" 불이야 라는 다급한 외침에 후작은 상념을 접고 무슨 일인가 싶어 막사 밖으로 나왔다. 스타미노 후작은 자신의 막사를 지키던 경비병들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더냐?" "잘은 모르겠으나, 어디서 횃불이라도 넘어뜨려 불을 낸 모양인가 봅니다." 설마 적들이 낸 불일 것이라고는 짐작치 못했던 경비병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흠. 그래?" 여기서 후작은 세 번째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불이 난 것이 디그리스 군의 화공일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하고 대비를 소홀히 한 것이다.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간 스타미노 후작. 다시 상념에 빠져들었던 그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헐레벌떡 막사 안으로 들어 온 폴티아 공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큰일이 났습니다. 후작." "무슨 일이기에 일국의 대공이란 사람이 그렇게 체통 없이 다니는 거요?" "불이 났습니다." "하! 실수로 난 불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라니." "우습게 볼 불이 아닙니다. 스타미노 후작! 지금 성의 북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에서 엄청난 불길이 일어 성안까지 태우고 있습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뭐요?" 후작은 그제야 놀라 급히 갑옷을 입었다. 그리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뭐야 이거?" "이런! 전보다 더 심해진 모양입니다. 방금 전만 해도 이렇게 까지는!" 불이 나는 것을 보면서 막사 안으로 스타미노 후작을 부르러 갔던 폴티아 공도 스타미노 후작이 갑옷을 챙겨 입는 몇 분의 시간만에 불길이 바람을 타고 성안에 펼쳤던 팬크라프트 군의 진영에까지 옮겨 붙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소등시간을 앞당기고, 힘든 행군을 한 덕에 피곤했던 병사들은 불길이 자신들의 막사를 덮칠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나마 잠이 깨서 뛰쳐나온 이들은 무기나 갑옷도 제대로 챙겨 오지 못했다. "사령관 님!" 알퐁스 에렉 후작을 비롯한 여러 기사들이 스타미노 후작의 막사 앞으로 달려왔다. "오 알퐁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불이 난 것은 확실합니다. 어서 아직 불이 옮겨 붙지 않은 동문으로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겠군. 어서 서두르자!" 스타미노 후작을 비롯한 군의 수뇌부는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동문으로 향했다. 동문 방향은 이미 수만의 군사들이 빠져나가기 위해 밀리고 밀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서로 나가려다 보니, 오히려 탈출도 힘들었고, 밟혀 죽는 자들도 속출했다. 거기다 불길이 바람을 타고 동쪽으로 번져왔기에, 불길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병사들은 더욱 더 필사적이었다. "비켜라! 사령관님이시다!" "뭐야? 사령관이면 다야?" "이래서 힘 약한 놈들은 다 죽어야 한다니깐." 병사들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군 수뇌부들에게 길을 열어 주면서도 원망의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들만 살면 다냐? 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비켜!" 막히는 길을 말을 탄 여럿이 지나갔다. 그렇게 부하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빠져 나온 군 수뇌부들을 기다리는 것은 먼저 빠져나갔던 병사들의 고슴도치가 된 시체와, 동문을 포위하고 있는 디그리스 군대였다.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제법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적들이 나오자, 활만 쏘았던 소극적인 전투 방식을 바꾸었다. "돌격하라!" "큭 이런 제기랄!" 팬크라프트 군들은 싸워 볼 염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는 길을 택했다. 병력의 수는 팬크라프트 군이 10배 가량 많았지만 진형은 최악이었다. 그야말로 나오는 족족 죽는 것이다. 넓게 포진해 있는 디그리스 군들을 꾸역꾸역 몇 명씩 밀려나오는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이 상대할 길은 없었다. 도망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진형이지만 팬크라프트 군 수뇌부와 몇몇 운 좋은 병사들은 그래도 도망쳤다. 충분히 추격해 잡을 수 있었지만 디그리스 군들은 애써 그들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동문에도 불이 옮겨 붙었다. "불이다!" "빨리 나가!" "내가 먼저야!" "앗 뜨거!" 불이 붙은 지 얼마 안가, 동문도 불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약 4만여 병사들은 속절없이 인간 불고기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이냐?" 스타미노 후작은 투구를 벗어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황제에게 받은 10만의 군사가 고작 수천으로 줄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빌어먹을 디그리스 놈들!" 남은 선택은 하나였다. 포르티아 항으로 돌아가 수성을 하며 버티는 것. 그뿐이다. 여기서 살아남은 병사도 약 7천 가까이 되고, 포르티아 항에도 폴티아의 약 8천의 병력이 남아 있기에, 성의 잇점을 이용한다면 버틸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그 소드 마스터를 막을 길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저기, 저 앞에 수심이 얕은 하천이 있습니다." "음. 잠시 쉬어 간다." 스타미노 후작은 하천이란 말에 휴식을 명했다. 보아하니 디그리스 군들은 자신들을 쫓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고 쉬라고 명령한 것이 후작의 네 번째 실수였다. 병사들은 말에 물도 먹이고 얼굴에 그을음, 열나게 도망치면서 흘린 땀을 씻어냈다. 방금 전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잊은 채 물장난을 치는 놈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 아수라장을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그 병사들은 그 끔찍했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건조해서 그런지. 넓은 폭 치고는 물이 별로 없군요." "그런가 보군." 폴티아 공과 스타미노 후작이 한가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어디선가 촤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엄청난 물살이 하천가에서 쉬던 팬크라프트 군들을 덮쳤다. "푸아아아악!" "으아악!" "살려줘! 난 수영 못해!" 물살은 하천에 들어가 있던 자들뿐만 아니라, 물가인 뭍에 있던 자들도 덮쳤다. 원래 그곳은 육지가 아니었지만 물길을 막아 놓고 보니 자연적으로 생긴 땅이었다. "크흐흑!" 간신히 뭍으로 올라온 스타미노 후작. 이제는 정말 상황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병사는 한 일 이천이나 될 듯 말 듯 했고, 알퐁스와 폴티아 공을 비롯한 기사들도 물살에 휩싸여 떠내려가 버렸다. "쯧즈 이런, 이런. 남긴 것도 별로 없이 다 처리해 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재미없게." 물살이 대충 잠잠해지자, 나타난 론과 한 무리의 군사들을 보고서는 남은 팬크라프트 군사들도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버렸다. "큭, 큭큭큭. 크하하하하하!" 스타미노 후작은 미친 듯이 광소를 흘렸다. 그런 그를 보고서 론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전멸한 사실이 즐겁나?" "그 질문에 답해 줄 의무는 없다." -푸슉! 스타미노 후작은 멋있게 대답한 뒤, 그대로 단검을 자신의 목에 박아 넣었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으며 땅바닥을 적셨다. 그렇게 죽어 가는 스타미노 후작을 보고 론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지." 론의 손짓이 한번 번쩍이자 스타미노 후작의 목이 그대로 잘려진 채 땅바닥을 굴렀다. 목이 잘려서 땅바닥을 구르는 그 느낌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이제 끝났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후작 각하!" "축하드립니다!" "10만의 대군을 겨우 2만 병력을 가지고 전멸시킬 줄은...... 설마 했는데 멋진 계략이었어. 아크 경." "하하하 자네 덕분에 살았네!" "대단한 걸? 아크 경. 다시 봤어." "머리 쓸 줄 아는 모양이야." "잔머리 하나는." "뭐야 골룸?" "아니다." 전투를 이끈 사령관의 축하 다음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게 한 아크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평소 삼국지를 즐겨 읽었던 것이 주효했다. 아크는 이런 대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한, 제갈량과 나관중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런 아크를 보는 그론다이저 백작의 눈빛이 묘했다. '정말 대단한 인재다. 지략과 무력.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자다. 비록 신분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잡아야 한다. 놓치면 후회하게 될 거다.' 착각은 자유다. 어쨌거나 훗날 역사가들의 입에 오르락 거릴 아크 페인이란 이름은 데일런스 대 전투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제갈량의 계책 "국왕 전하. 막가이어 후작이 보낸 전보가 도착했사옵니다." "오오 그래." 크론드는 신하가 건넨 마법구를 건네 받았다. 통신 결과가 아마도 구원군의 규모와 행로를 결정할 공산이 컸다. 전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신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통일을 앞에 두고, 대 제국 팬크라프트의 개입으로 해군과 육군 모두 대패를 다해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본토의 5만여 병력과 급히 끌어 모은 용병 1개 사단이 꼭 필요했다. 때문에 크론드는 이미 원군을 편성해 놓았고 상황에 따라 몇을 어디다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크론드는 마법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궁정 마법사 막가이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런데 의외로 막가이어의 표정이 밝았다. "전하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지 못했네. 자네들이 대패를 당했다는데 어찌 편하게 있을 수 있겠나? 그래 어디로 몇 명이나 필요한가?" "제 1기사단과 전하께서만 오시면 됩니다. 이동 마법진을 구축하려면 1년 정도 시간이 걸리니 쾌속정을 타고 오십시오." "그게 무슨 소린가?" "대승입니다. 전하 10만. 아니 정확히 말해서 팬크라프트와 폴티아의 10만 5천 적군을 데일런스 성에서 전멸을 시켜버렸습니다." "뭐? 전멸? 농담이 심하군. 막가이어." 크론드는 막가이어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해 버렸다. 겨우 2만의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그 다섯 배가 넘는 적들을 전멸시킨단 말인가? 막가이어의 밝은 표정으로 봐서, 어느 정도 상황이 좋아 진 줄은 짐작했지만. 전멸이라니 솔직히 뻥이 좀 심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전하! 현재 팬크라프트의 사령관 스타미노 후작과 다수의 지휘부들을 참수하고 폴티아 공 녀석을 수장시킨 뒤, 다시 재진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트로본 성입니다. 또 방금 전 폴티아에서 항복의 뜻을 표하는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크론드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도무지 이겼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믿겠네. 그런데 당최 어찌 된 영문인지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 주겠나? 막가이어." "예. 일단 아크란 기사의 이름을 아십니까?" "알고 있네. 그론다이저 백작이 실력은 뛰어나나 과거의 행적이 불분명해 어딘지 모르게 의심스러운 자라고 하더군." "그가 사고를 쳤습니다. 아무래도 귀족자리 하나 주셔야 할 듯 합니다." "무슨 사고?" "그가 짠 계략에 적들이 말려들었죠. 성을 완전히 비우고 후퇴한 척 하면서 팬크라프트 군들이 성안에 입성하자, 밤에 몰래 성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한쪽 문만 남겨 놓은 뒤, 적들이 빠져나오는 족족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영상으로 보낼 테니 잘 봐주십시오." 크론드는 수정구에 뜬 대략의 전황을 볼 수 있었다. 불타는 성부터 좁은 문에 잔뜩 끼어서 서로 먼저 도망치려다 밟혀 죽고 나와서 활 맞아 죽는 팬크라프트 병사들. 하천에서 멋도 모르고 쉬다가, 엄청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마지막으로 목을 찔러 자살한 스타미노 후작의 목을 베어 버리는 론. "호오 놀라운 작전이군." "그렇습니다. 그론다이저 백작의 말에 따르면 자세한 뒷 배경이나 꿍꿍이속은 모르나. 꼭 충성을 바치게 해서 잡아야 할 인재라고 합니다." "그래?" "예. 그럼 포르티아 입성이 대충 마무리 된 뒤에 다시 전보 올리겠습니다." "수고하게." 마법 통신구의 영상이 꺼지자, 크론드는 잠시 동안 침묵했다. 국왕의 1:1 통신의 결과를 들을 수 없었던 신료들은 침묵하고 있는 크론드의 모습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도대체 전세가 어떻게 되길래. 그러시옵니까? 전하." "후......후. 후하하하하하하!" 크론드는 국왕 체면도 잊어버리고 거창하게 웃으며 어퍼컷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신하들은 그런 왕의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려 노력했다. 한참 온갖 기쁨의 세레모니를 보이던 크론드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멈춰 선 다음.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휴일을 선포하라! 그리고 국고를 털어 성대하게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쾌속정을 준비하고 제 1기사단에게 동원령을 내려라." "결과가 어떻기에?" "전멸!" "예? 전멸 당했단 말씀이십니까?" "전멸 시켰단 말이네. 어쨌든 빨리 준비하게. 내 생전 다시 폴티아를 밟아 볼 줄은. 크하하!" "그럼?" "대승일세. 우리 육군이 10만 대군을 전멸시켰단 말일세!" "정말이십니까? 전하." 신하는 혹시라도 국왕이 너무나 비참한 결과에 실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뜻을 품은 채 말했다. "어디 왕이 거짓말을 하겠나? 자네들도 믿지 못하겠지만 곧 알게 될 걸세! 어이구 좋다!" 크론드가 어찌나 오버를 하는지 신하들은 이겼다는 소리는 둘째치고 그가 약간 맛이 간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포르티아 성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거리엔 시민들이 나와 꽃을 뿌리고 깃발을 흔들며 디그리스의 군사들을 열렬히 환호하며 맞이했다. "정말 번화했군." 나지막한 호킨의 혼잣말. 그의 말대로 폴티아의 수도. 포르티아는 엄청난 번화가를 이루며 도시가 엄청나게 성장해 있었다. 디그리스의 현 수도인 텔포니움보다 두 배는 더 큼직한 도시의 면적과, 가난한 디그리스의 초라한 건물들과는 달리, 하얀 대리석이 깔린 광장하며, 세련되고 화려한 여러 상점들과 파스텔 풍의 목가적인 주택들. 시민들의 복장도 하나같이 말쑥하고 깔끔한 것이 상당한 부자 동네 티가 났다, "어서 오십시오. 루네아 후작각하." "음." "이야!" 웅장하고 흰 대리석으로 만든 하얀 빛깔의 화이트 하우스. 폴티아 공의 대공관저였다. 이곳에 도착하자 미리 마중 나온 폴티아의 2인자 남바투가 정중히 론과 군사들을 맞았다. 론과 몇몇 귀족들이 관저 안으로 들어가고, 그들의 호위를 맡은 기사 몇을 제외한 기사들에게는 대공관저의 제 2응접관으로 병사들은 폴티아 해군 본부 숙소로 안내 받았다. 제 2응접관에 도착한 디그리스 기사들은 응접관 안의 엄청난 인테리어와 그 넓이에 놀랐다. "이곳이 당분간 기사단의 임시 숙소가 될 것입니다. 2기사단 여러분들은 1층의 좌측을, 4기사단은 우측. 5기사단은 2층의 좌측을, 7기사단은 우측을 써 주십시오." 제 1응접관의 손님이 폭주하면 임시로 쓰던 제 2응접관은 원래 관료들의 숙소로도 쓰였던 곳이라. 기사단 숙소로 쓰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2층 복도의 우측 홀에 도달한 제 7기사단 기사들. 20명씩 한 구역을 써야 하는 2기사단이나 4기사단과는 달리, 7기사단과 5기사단은 인원수가 적거나 적어진 케이스였기에 한 사람 당 영역(?)이 매우 넓었다. "와우 침대닷!" 아크는 침대를 발견하고는 매트에서 방방 뛰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온돌류 방바닥 잠과 책상 앞 엎드려 자기, 숲에서 돌 베고 자기 등 굳이 침대에 구애받지 않는 성격인지라(다시 말해 노숙스킬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침대가 없었고, 그 덕에 이 나이 되도록 침대만 보면 방방 뛰는 유치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캬아! 이게 다 은이잖아? 부자 동네 티가 확실히 난다니까!" "돈만 쳐 바른다고 좋은 건 아니네." 각자 기사들은 자기의 자리와 방을 잡아 놓고 짐을 풀었다. "이봐 아크. 그리고 필로스 경." "왜 그래 골룸?" "뭔가?" "같이 가 줬으면 하는 데가 있는데." "어딜?" "필로스 경. 폴티아 공 녀석이 어디 삽니까?" "폴티아 가 저택 말인가? 대공 관저에서 얼마 안 떨어진 거리에 있지. 그런데 그건 왜?" "전에 말씀 드렸을 걸로 압니다. 비록 제 손으로 세프. 그 자를 죽이진 못했지만. 엘프 들의 신물만큼은 찾아야 합니다." "흠 그런가? 따라 오게." 아크와 레골룸스는 필로스의 뒤를 따라 나섰다. "정말 돈 아까울 줄을 모르는 족속들이군." 아크의 볼멘소리. 그의 말대로 폴티아 공의 저택은 대공관저의 규모를 능가하진 못해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거의 상암 월드컵 경기장 넓이? 도저히 뒤져 볼 엄두가 나지 않는 크기다. 하지만 이 대 저택은 주인을 잃고 쓸쓸히 버려져 있었다. "이제 나머지는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 이 넓은 데서 활 하나 찾는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난 먼저 가겠네." "하하. 나도 오랜만에 도시 구경이나 해 볼까?" 저택의 크기에 압도당해서 은근슬쩍 도망치려는 아크. 그러나 레골룸스는 그의 뒷덜미를 붙들고는 놔두질 않았다. "넌 남아!" "필로스 경은 그냥 보내 줬잖아!"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넌 아쉬울 때만 친구를 찾는다?" 결국 아크는 투덜거리면서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인들은 주인이 죽자. 집안의 온갖 재화를 뜯어가서 금테 난간은 부스러기만 남아 있었다. "야! 다 언놈들이 훔쳐 간 것 같은데?" "아니. 신궁은 아직 이 저택 안에 있다."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육감." 아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삽질하고 자빠졌네. 나, 간다!" "농담이야. 하지만 신궁의 기운이 이곳에서 느껴진다는 것은 진짜다." "그럼 무슨 마법이나 정령으로 못 찾아내냐?" "바람의 정령이라면 찾기 쉽게 도와 줄 수 있지." "불러내." "난 실프를 소환할 줄 모른다." "아 그럼 어쩌자고!" "뒤져봐야지." "장난? 여길? 뒤져? 언제? 어느 세월에? 뒤지다가 늙어죽겠다." 늙어 죽을 일도 없는 아크가 늙어 죽는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저택이 넓기는 넓은 모양이었다. "조용히 해 봐라! 인기척이 들렸다. "인기척?" "지하실이군. 가자!" "지하는 또 어떻게 내려가? 땅파서?" "일단 따라와라!" 아크는 레골룸스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도착한 어느 방. "여기 어딘가 일 거다." "우씨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게 없잖아!" "그러게 말이다. 소리는 이 밑에서 나는 게 확실한데......" "어딘가 비밀 통로 같은 거 없을까?" 아크는 비밀 통로가 있을 만한 곳을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웬 수상한 책장 하나가 있었다. "야 골룸 이거 밀어 봐!" "책장 뒤? 이런 뻔한 곳에 비밀통로를 만들었겠냐? 바보 아닌 다음에야." "바보 맞네." 책장을 밀치자. 어이없게도 정말 너무 뻔한 자리에 비밀 지하 계단이 있었다. "내려가자." 아크와 레골룸스는 지하로 내려갔다. 상당히 어두컴컴했다. "라이트!" 빛이 사방에 퍼졌다. 블레싱 소드의 기본 신성마법 불켜기였다. "저기 저 철문이 수상하군." "기공포!" 레골룸스는 철문에 기공포를 먹였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애로우 봄!" -퍼버벙 "켁! 콜록 콜록. 야! 이 멍청이 쪼다 같은 골룸머리새꺄! 여기서 이 따위 폭발 기술을 쓰면 어떡해! 콜록 콜록!" "아직도 멀쩡하다니 꽤나 단단한 모양이군." "비켜! 내가 한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철문의 틈에 넣고는 슬근 슬근 갈았다. 그러자 철문과 벽의 이음쇠가 떨어지고 철문은 그대로 아크에게 넘어졌다. -끼이이익 "으아악!" -쾅 아크는 불행히도 철문에 깔리는 참사를 맞고야 말았다. "야 골룸! 이, 이것 좀 치워 봐!" "어두워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아크가 깔릴 때 빛을 뿜던 블레싱 소드도 같이 철문 밑에 깔리면서 지하실은 다시 어두워져 버렸다. 그때 "우아아아아아!" 철문 안의 어두운 공간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기합소리를 내며 레골룸스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넘어진 철문을 밟고. "쿠엑! 어떤 놈이 밟았어!" -챙! 레골룸스는 암흑 속 그림자의 검을 소리로 듣고 가볍게 막아내며 간단히 암흑 속의 그림자의 검을 튕겨내 버리고 그의 목에 칼을 겨눴다. 그리고서는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불의 정령을 이용. 지하실을 밝혔다. "왜 날 공격했지?" 레골룸스를 공격한 것은 은발을 귀를 덮을 정도로만 기른 한 청년이었다. "으으으." "말해주기 싫은가? 좋아 다음 질문을 하지. 신궁은 어디있나?" "으으으." "죽어야 겠군." "잠깐요!" 그때 철문 안 지하실에서 한 여성이 뛰어나왔다. "그 아인 말을 잘 못해요." "어아, 어아!" 말소리의 주인공은 문턱에 놓여진 철문을 밟으며 나왔다. "아이 씨! 철문 밑에 사람 있다고! 밟지 좀 말란 말이다!" 철문 밑에 깔린 아크만 불쌍할 뿐이다. "그 아일 놔주세요." 불빛이 비치는 곳까지 온 묘령의 여자. 그녀와 레골룸스는 서로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 "레, 레골룸스?" "너, 너, 넌?" 레골룸스는 자신을 알아보는 여인의 얼굴을 보고선 그대로 굳어버렸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하아...낮잠도 안 잤고 열대야도 아닌데 이상스럽게 잠이 안오는군요. 잘려고 그냥 이불 덮고 누워있다가 어느덧 시간이 3시 반이 됐기에 투베가 생각나서 컴퓨터를 잡았습니다. 큰일나겠습니다. 이거 내일 0교시 수업이 그 지독한 억지신공 이삼구 선생인데 말입니다. 푸념과 함께 짧은 이번 편 내용의 용량을 길게 해 보기 위해 서두가 길겠습니다. 이삼구 선생은 주인공이 몸 담고 있던 길드의 길드마스터 박선생의 모델입니다. 뭐 실제 게임 폐인이거나 피시방 주인은 아니지만 게임을 즐기는 선생이죠. 이 이삼구 선생(본명 아닙니다) 되게 재밌으신 분입니다. 실제 학생들의 아이템을 갈취하는 폐인 탄압 정책은 비록 우리 세대까지는 넘어오지 않았지만 이전 선배들은 정말 심하게 뜯겼다고 하더군요. 이 소설에서 팔신기 중 하나로 나오는 용지팡이 장룡은 이 선생님이 애용하는 무기입니다. 야구방망이를 깎아서 만들었으며 실제 용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장룡 풀 스윙 5대 맞으면 정말 죽습니다. 실제 한 학생은 엉덩이 출혈이 있었고, 한 학생은 경련을 일으켜서 양호실에 실려 갈 정도였죠. 그런 선생이지만 꽤나 괜찮으신 분입니다. 현재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명문을 표방하며 학생들을 교장선생이 잡들이고 있습니다. 그 압박을 우리 이삼구 선생님께서는 다 막아주고 계십니다. 실제로 3학년이야 수능이 있어 원래 빡세다지만 현재 1학년은 토요일 자율학습과 공휴일 비정규 자율학습에 전원 야자라는 엄격한 규율에 맞춰서 생활중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1살 더 먹고 수능도 가까운 우리 2학년들은 이삼구 선생님이라는 방패 덕에 토요일 자율학습 공휴일 비정규 자율학습 도 빼먹을 수 있고, 야자도 전원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아이들은 그것도 빡세다고 하지만 현재 학교에서 우리 학년만큼 편한 학년도 없습니다. GTO의 오니즈카 선생, 괴짜가족의 이소룡 선생 다음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입니다. 요새 이 선생님 덕분에 학교 갈 맛이 납니다. 다만. 이분 12살이나 어린 여자분과 결혼하셨습니다. 정말......부러워 죽겠습니다. 고향 마을 슈퍼를 보던 꼬마 아이였다고 하던데......분명 노리고 있었을 겁니다. 5살 때부터! 본편 "으랏차차!" 그때 마침 아크가 철문 밑에서 기어 나왔다. 깔려서 빛을 제대로 뿜지 못하던 블레싱 소드의 불빛이 지하실을 밝게 비추었다. "우이 씨! 어떤 놈들이야! 내가 밟지 말랬지! 처절한 응징을 가해주마! 엥?" 아크가 기어 나와 본 광경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굳어 있는 레골룸스와 레골룸스이 검에 목이 닿아 있는 한 청년. 그리고 뒷모습이 엄청난 퀸카로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었다. 특히나 완전히 넋 나간 표정의 레골룸스를 본 아크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봐! 아줌씨. 당신이 설명 좀 해줘야 하겄는디? 왜 골룸이가 저 따위로 혼이 빠졌는지." 아크의 부름에 묘령의 여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헉! 미인이다! 앞모습까지." 그리고 추가적으로 몸을 돌리면서 머리카락이 흩날리며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숨겨져 있던 뾰족한 귀가 드러났다. 게다가 왠지 모르게 아크가 알던 사람과 닮은 듯한 저 얼굴! "에, 엘프? 거, 거기다 머리색만 바꾸면 완전히 성인판 루리엘?" "......! 어떻게 당신이 루리엘을 아는 거죠?" "누, 누굽니까? 아니 레골룸스한테 물어 보는 게 낫겠군. 야! 골룸 정신차려 임마!" 레골룸스의 뺨을 툭툭 쳐보고, 프로즌 아이스로 만든 얼음을 비벼보기도 하는 아크. 하지만 레골룸스는 빳빳이 굳은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큭 젠장! 이 방법만큼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빨리 안 깨어난 네 탓이다. 나중에 나 원망 말아라." 아크는 무릎을 레골룸스의 남성의 상징에 대고 한 마디씩 또박또박 외쳤다. "진 동 안 마!" "으헥!" 끔찍했던 기억이 되 살아난 모양인지. 그제야 레골룸스는 정신을 차렸다. "야! 골룸. 저 여자 누구냐?" "아테라인 님의 둘째 딸이자, 리엔느 양의 동생 아리아나 인 것 같다." "뭐시여? 자살했다며?" "어떻게 살아 있는지는 나도 이제 막 물어 볼 참이야." 레골룸스는 아리아나라는 엘프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그때 죽은 것 아니었나?" "......" "말을 해! 어떻게 살아서 그놈의 저택에 있는 건지!" "미안해요. 레골룸스. 하지만 전 도저히 그 사람을 버릴 수 없었어요. 그 불은 마을을 빠져나간 뒤, 정령에게 부탁해서 낸 불이에요." "하? 그렇게나 그 인간 놈이 좋았나? 우릴 배신하고 리엔느 양까지 욕보인 그놈이? 고향과 가족, 종족을 버릴 만큼. 그놈이 좋았더란 말이냐!" '얼씨구? 아주 신파극을 찍어라. 무슨 말투가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란 말이냐? 이렇게 들리네? 지들이 이수일과 심순애냐?' "그래. 신궁은 어디있나?" "안에 있는 상자에 들어 있어요." 레골룸스는 철문을 밟고 철문에 막혀 있었던 지하실로 들어갔다. 아크는 아리아나를 유심히 살폈다. 차분해진 성인판 루리엘이라......전혀 실감이 나질 않는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루리엘을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리에나의 새 아빠이자 리엔느의 속살을 본 아크라는 사람입니다." "네에?" 아리아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엘프 여성의 속살을 보고도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설마! "언니도 아직 인간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군요." "하하. 뭐 그러죠. 이 스웨터도 리엔느가 짜 준 거에요. 그 싸늘함 고치느라 애 좀 썼죠." "언니는 겉으로는 쌀쌀맞아 보여도 속은 정말 여리고 따뜻하답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하하하. 아 그런데 저쪽 청년은?" "제 아들이에요." "예에 아들......에? 저게 아들? 지금 혹시 장난?" "후훗 놀라실 수도 있겠네요. 저 아이는 하프 엘프에요. 아크와 언니하고 사이에서 아이가 나온다면 이런 모습이겠죠." 갑자기 아크는 일본 성인 근친 망가가 떠올랐다. 그때 레골룸스가 푸른빛으로 빛이 나는 거대한 활을 가지고 나왔다. "호오? 그게 신궁이냐?" "그래." "뭐 그럼 이제 가자. 아리아나 씨는 여기 계속 계실 겁니까?" 아크의 질문. 그러나 그것에 대답한 사람은 레골룸스였다. "아니. 그녀는 이곳을 나가지 못할 거다." "뭐?" 레골룸스는 싸늘한 표정으로 아리아나에게 활을 겨눴다. 그러자 레골룸스를 제외한 이 자리에 있던 모든 인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배신자는 처단한다. 그뿐이다." "이봐! 무조건 배신자라고 죽여도 되는 거야? 아리아나씨는 폴티아 공 그 자를 사랑했을 뿐이야. 엘프들을 죽인 것도, 나무를 태운 것도, 신궁을 훔친 것도 다 그자가 한 짓이라고! 아리아나의 죄라면 그의 아내란 죄 밖에는 없잖아!" "이것이 우리의 피의 율법이다." "그깟 율법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해! 목숨보다 그딴 것이 더 중요하단 말이야?" "중요하다. 그것이 있기에 우리 엘프 족은 인간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종족의 순수혈통도 지킬 수 있었지." "그래도 안 돼! 그만둬 골룸!" 그때 아리아나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요 아크 씨. 제 죄는 죽음으로 밖에는 씻을 수 없는 죄 에요." "아리아나 씨도 정말 왜 그러세요!" "아크. 네가 너 자신을 우리 엘프 족 일원이라 생각한다면 더 이상 방해하지 마라!" 그리고 활시위가 당겨졌다. "안 돼!" -푹 "끄! 어, 어아." "예, 옐,!" "어, 어아." -털썩 "예르으으으으." 화살에 맞은 건 아리아나가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 예르가 그녀 앞으로 뛰어들어 화살을 맞은 것이다. 아리아나는 피를 뿌리며 죽은 아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했다. 레골룸스는 화살을 하나 더 장전했다. 예르의 죽음에 넋을 놓고 있던 아크는 뒤늦게서야 그것을 보았다. "그만 둬! 골룸." -푹 그러나 이미 화살은 아리아나의 심장을 관통시켜 버린 뒤였다. 아리아나의 시신은 그대로 예르의 시신에 엎어 졌다. "이 자식! 죽여야만 했냐? 죽여야 했냐고? 이들이 무슨 죄를 졌지? 죄를 지었다고는 해도 용서하고 눈감아 줬어도 되는 일 아냐?" 아크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레골룸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배신자는......죽인다!" -퍽! 레골룸스는 아크의 분노의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두 모자를 별 가당찮은 이유로 학살해 놓고 그딴 말이나 지껄이냐?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역시 넌 재수 없는 놈이다." 아크는 레골룸스를 한 번 노려 본 뒤, 아리아나의 시체는 들쳐 매고, 예르의 시체는 땅바닥에 질질 끌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혼자 남은 레골룸스의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도......나도 이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아크는 대 저택의 정원에서 케인이 준 삽을 가지고 열심히 삽질하고 있었다. 두 개의 구덩이가 생기자. 아크는 두 모자의 시신을 조심스럽게 구덩이에 안치 시켰다. 그리고 나서는 파헤쳤던 흙을 다시 시신 위에 뿌렸다. 원래는 시체에 수의도 입히고, 염도 하고, 관도 사서 묻어야 했으며, 화장이 더더욱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임에도 불구하고 장의사가 아닌 아크는 그저 땅 파서 파묻을 줄 밖에는 몰랐다. 무덤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게 울타리 나무 판자를 떼서 무덤 위에 꽂고 정원에 물을 뿜어대는 장식에서 물을 담아 무덤 위에서 빙빙 돌린 다음. 무덤 위에 뿌렸다. 그리고 나서 아크는 큰절을 두 번 하며, 나름대로 죽은 이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마지막으로 잡초 두 가닥을 뽑아 불을 붙여 향 대신 피웠다. "뭐 하는 거냐?" 어느새인가 레골룸스가 다가와 말했다. "시끄러. 제사 지내는 거다." 아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흠." 레골룸스는 아크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했다. 물 뿌리고, 큰절하고, 불 피우고. 어찌나 어설픈지 아크는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강한 분노를 표출한 뒤라 애써 웃지 않았다. "내가 못할 짓을 한 것은 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아. 다만 이들의 옆에 폴티아 공 그놈의 토막난 시체를 묻어주지 못 한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말은 잘한다." "기분이 상했다면 풀어라. 내가 술 한잔 사겠다." 두 모자의 죽음에 마음이 착잡해 한 잔 생각이 났던 아크는 차마 레골룸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래 가자! 가. 실컷 퍼마시고 잊어 볼란다." 역시 아크는 술과 여자에 약하다. -아크가 너무 일찍 잊어버린것 아닌가에 대한 태클 방지용 해설입니다. 원래 아크는 뭔가를 빨리 잊어버리는 성격입니다. 이 때문에 나중에도 복수의 명분따위를 잊어버리고 헤매는 일이 생기죠. 좋게 말하면 쉽게 용서하고 나쁘게 말하면 줏대가 없다고나 할까요.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에 연참은 기본이겠죠? 투베를 노리는데? 수요일 부터 수련회라 아마도 이때 좀 올려 놓고 며칠 쉬어야 할 듯 싶습니다. "고마워요. 호킨 경." "아. 뭐 그렇게 까지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 나도 볼일이 있었고, 또 에르쿠스 녀석과 단 둘이 남아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거든." "하긴......" 아크는 말끝을 흐렸다. 아크는 호킨과 함께 치과 병원을 찾고 잇었다. 원래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필로스를 대동해서 포르티아 시를 구경하고 다니던 아크였지만. 필로스는 엄연히 귀족이라 폴티아 정부가 디그리스와 통합되면서 복권되어, 지금은 관저에서 행정일을 맡았다. 이제 며칠 후. 디그리스 국왕 크론드 디그리스가 와서 공식적으로 업무를 보고 폴티아를 디그리스의 땅이라 선포만 한다면 전쟁은 완벽히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아크는 큰 전공으로 국왕을 직접 알현해서 상을 받게 되 있었다. 그 탓에 아크는 론과의 전투에서 잃어버렸던 앞니를 새로 박아 넣기 위해 치과를 찾았다. 이전 번에도 치과를 찾아는 갔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크의 앞니 사이즈의 이빨을 찾지 못해 그냥 이빨 제작만을 부탁하고 나왔다. 금괴 한 덩이 던져 주었으니 알아서 잘 했으리라. "어이구 오셨습니까? 기사 나으리." 후덕해 보이는 인상의 노의사가 아크를 반갑게 맞았다. 시가 150골드의 금괴 한 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줄 정도의 손님이다. 그러면 VIP고객으로 모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인 것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대륙에는 치유마법이란 것이 있어, 외과의가 있을 필요가 없었다. 물론 탈골류의 부상이라면 치유 마법으로도 회복이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민간의 치유요법으로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이곳에서의 '병원'이라 함은 대체로 내과 병원을 가리켰다. 물론 내과계 질환도 저주로 인한 것이라거나 독으로 일어난 경우에야 신관의 치료로 치유가 가능했고 웬만한 병은 하이 프리스트의 고위급 회복 마법에 낫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하이 프리스트는 대륙을 통틀어 열 몇도 안 될 정도로, 소드 마스터보다 수도 적었고 그나마도 중도의 교황청에 모두 있었기에 질병을 회복마법으로 치료하기는 힘들었다. 이와는 달리 몇몇 특이한 외과계 병원들이 소수 단위로 존재하기는 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치아의 건강을 책임지는 치과나 성적인 문제를 책임지는 비뇨기과였다. 그러나 치과의는 내과의들보다도 대접이 시원찮았고, 그래서인지 이 부자 동네 포르티아에도 이 병원은 허름했다. "자 이쪽에 앉으십시오." "그러지." "아! 잠깐. 겉옷을 벗고, 이 가운을 입어 주십시오." 의사는 붉은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흰 가운을 건넸다. 무늬는 조금 이상했지만 빨래는 말끔히 해 둔 것 같아서, 아크는 별 생각 없이 옷을 입었다. "자!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이빨을 소독 중입니다." "소독?" 의사는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이던 아크의 앞니 사이즈의 금이빨을 장갑을 낀 손으로 꺼냈다. "이제 의자에 앉아 주십시오." 아크는 의사의 지시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의사는 의자에 달려 있던 벨트 따위를 이용하여 아크의 팔과 다리를 의자에 완전히 묶었다. "뭐 하는 거요?" "시술 중에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겁니다." "그렇소?" 아크는 뭔가 수상했지만 그런가 보다 하며 대략의 상황을 납득해 버렸다. "그럼 입 벌려주시고,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1분 후 치과 밖에서 산책을 하던 호킨은 고통에 찬 비명소리와 그 비명소리에 답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뜨아아아악! 사람 살려!" "좀 가만히 있어요!" "야 이 돌팔아! 마취도 안 하냐?" "여기에 그런 게 어딨소! 그 비싼 마취약을!" "으아아악! 돌팔이가 사람잡네! 하느님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 천지신명이시여 살려줘요!"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병원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하하 이제 끝났습니다." "......" "응? 이런 또 기절해 버리셨네?" 의사는 거품을 문 채 정신을 놓아버린 아크에게 물벼락을 가했다. "끄으으." "정신이 드십니까? 시술이 끝났습니다." 그제야 눈을 뜬 아크는 의사가 했던 행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의자에 몸을 묶은 것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환자들을 고정시키는 도구였고, 가운의 붉은 얼룩은 이전 희생자들의 끔찍한 고통이 피라는 매개체로 형상화 된 것이리라.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가운은 아크의 출혈로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야. 이 무면허 돌팔아! 사람 잡으려고 환장했어!" "허허.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입니다. 거울 한 번 보시죠." 아크는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얼굴 이곳 저곳이 피로 물들었지만 그것은 논외로 치고, 치아를 살피는 아크. 비어 있던 앞 이빨이 찬란한 금빛으로 빛을 뿜고 있었다. '이거 너무 빛나니까 불안하네?' 아크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거 이빨이 너무 빛나는데?" "그렇죠? 은 이빨을 달 걸 그랬나?" "그래도 이빨은 금니가 가장 나아." "아! 저기네요." 호킨의 볼일은 봄옷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행군을 합쳐 두 달 반 가량의 전쟁이 끝나고 대지에는 새로운 봄의 기운이 감돌았다. 확실히 날씨도 풀리고 화사해지자, 두터운 겨울옷은 서서히 옷장 안으로 처 박혀 들어갔고, 가볍고 편한 옷이 각광받았다. 아크와 호킨은 의류점 안으로 들어갔다. 제법 미인이지만 날카롭게 생긴 인상의 여점원이 둘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여점원은 두 잘생긴 미남 기사가 들어오자, 최대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영업용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둘을 맞았다. "무엇을 찾으시는지?" "봄옷 좀 보여 주시구랴." "네 이쪽으로." 여점원이 호킨을 데리고 남성옷 코너로 가고 나자. 아크는 여유롭게 옷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아크에게는 기사단 제복과 지구에서 입던 옷, 그리고 아테라인이 준 옷 여러 벌이 있는데다가 프로즌 아이스만 대동해서 다니지 않으면 추위도 타지를 않으니 옷은 그다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아크는 자꾸만 한 옷걸이에 걸린 코트와 모자에 눈이 갔다. 묵빛의 긴 코트와 챙이 넓은 우중충한 색깔의 모자. '언더테이커 코스프레 세트잖아! 갖고 싶다!' 물론 이 세계에서 WWE프로레슬러 언더테이커의 코스프레 의상을 팔리는 없었지만. 어찌나 비슷한 스타일의 옷인지, 지금 아크가 가지고 있는 제 3의 무기 삽과 세트를 맞추면 상당히 어울려 보일 듯 싶었다. "저기요. 아가씨." "네?" "저 코트랑 모자 얼마에요?" "원래 4골드 50실버 받는 건데, 겨울도 이제 다 지나가서 팔리지도 않으니까 지금은 3골드에 팔고 있습니다. 역시 재화의 가치는 시기나 장소 등 희소성에 따라 변동이 있기 마련이다. "이걸로 하나 주십시오." "취향이 독특하시네요. 나이 드신 분들이 주로 찾는 디자인인데." "하핫. 뭐 구경 좀 더 하고 이따가 계산하죠." "그러세요." 아크는 계속해서 옷들을 더 살펴보았다. "음?" 아크의 눈에 적갈색의 짧은 윗도리와 세트를 맞춘 화사한 핑크빛의 원피스가 포착되었다. 아크는 갑자기 론이 생각났다. 여태껏 때탄 도복 하나 입고 있을, 옷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집무 중에도 갑옷을 두르던. 이 기회에 옷 한 벌 선물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저기 이 옷 얼맙니까?" "사시게요?" "예." "여자친구분 한테 줄 선물인가 봐요?" "아.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이즈는 어떻게?" "그냥 저 정도로 주세요." "손님! 여자 사이즈는 그렇게 확신하는 게 아니랍니다!" "괜찮아요. 안 맞으면 바꾸러 오죠. 뭐. 포장해 주세요." "후우 그러시다니 어쩔 수 없군요. 3골드 60실버입니다." 이렇게 론의 사이즈를 맹신하는 아크의 속셈은 음흉했다. 론의 성격으로 봐서는 자신이 선물한 옷을 안 입을 리 없다. 작으면? 옷이 찰싹 달라붙으니 론의 몸매가 그대로 굴곡을 드러낼 테고, 크면? 헐렁거리는 틈새 시장(?)공략을 하는 거고. "아크 경. 무슨 여자 옷이야?" "선물할 사람이 있어서." "호? 사귀는 여자?" "그럴 수도." "잘 생각했어. 남자보다야 훨 낫지 안 그래? 사령관님도 정신을 차리셔야지. 지휘부 체계가 그러니 부하들도 맛이 가는 거 아니겠어." "하하하. 그건 좀." "그나저나 능력 있네? 설마 리엔느라는 그 여자 엘프에게 줄 거는 아닐 거고, 그새 또 여자를 꼬셨어?" "글쎄요." "잠깐! 혹시 에르쿠스 녀석이 부탁한 거는 아니겠지? 그 집회가 원체 좀 은밀하고 변태스러운 짓거리를 즐기다 보니. 혹시 정말 가입 한 거야?" "미쳤습니까!!" 아크는 고함을 질렀다. "으아 심심해!" 아크는 기사단 숙소의 홀에서 자꾸 굴렀다. 막상 전쟁이 끝나고 보니 아크는 이전 숲 속 조난 때보다 더 심한 권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소식을 듣자 하니, 이틀 후쯤 국왕이 도착해서 임무 같은 것을 맡긴다고 하는데 지금은 할 일이 없다. 거리 쇼핑 및 구경은 질렸지, 검술 수련은 지겹지, 동료들은 어딜 가서 올 생각도 안 하지. "아. 젠장 강철의 알케미스트 보고 싶다. 지난번 했을 레슬매니아 보고 싶다. 렙업하고 싶다. 다운만 받아 놓고 안 본 풀야동 보고 싶다. 여태껏 나왔을 책들도 보고 싶다. ED는 아직도 안 나왔을 거야. AP는 완결 났을라나? BR도 아직 완결 안 났지? 젠장 다섯 명 살아 남은 것까지에서 끊길 게 뭐람? 노무현은 막나가던데 국정 운영 잘 하고 있을까? 아! 맞아 화앨 한글 패치 해 놓고 아직 한 번도 안 해봤네. 롤링 아줌마가 해리포터 6권 출간했을라나? 투하트 2도 해보고 싶은데. 그런데 언더 형님한테 타이틀 샷 줬나? 상규 형님이 쥬렌 요새 잘 지키고 있을까? PJ B양하고 A양 보고 싶다." 아크는 지구에서의 온갖 놀 거리가 다 생각났다. 근 1년동안 자신이 이 다른 차원에 있으면서 나왔을. 만화들, 애니들, 게임들, 성인물들, 소설들, 영화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혼자 있어도 여러 영상 매체의 영향으로 외롭지 않게 해 줬던 지구의 삶과, 혼자서는 아무 할 일이 없는 이 곳이 같을 턱이 없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풀어놓았다. 그리고는 회칼로 손가락을 살짝 베며 자해했다. 그동안 미친 놈 소리 들을까봐 안 찾았던 아크라우스가 생각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소설 등을 보면 맨 처음 주인공의 정신이나, 내면 쪽에서 말을 걸며 친하게 지내던 그런 존재(죽어서 맹약을 맺은 드래곤이라거나 자아를 가진 검)들은 가면 갈수록 새로운 등장인물로 인하여 점점 잊혀져 가기 때문이다. -스토리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듯 보여도 이 83회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금이빨과 언더테이커 코스프레, 그리고 론에게 줄 옷 선물. 과연 이것들로 어떤 스토리가 진행될지 기대해 주십시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흐아암. 뭐냐? 바보 인간." "어 오랜만이다. 아크라우스 지금 뭐 하냐?" "잔다. 왜?" "자는 놈이 무슨 말을 해?" "헐. 이런 멍청한 인간 놈을 보았나? 내가 지금 눈뜨고 네 녀석 상태를 살피는 줄 아냐? 자면서도 충분히 네놈 따위 상대해 줄 수 있다." "근데 왜 자냐? 게임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이제 수면기로 돌입?" "어떤 망할 초딩놈들 손봐주느라 마나를 좀 썼더니 공연히 졸리는군." 아크는 아크라우스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닫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 초딩놈들 죽인 거냐? 아무리 매너가 없고, 네 녀석 관점에서 개미만도 못한 존재라고는 해도 그렇게 죽여버려도 되는 거냐고?" "불사조 스틸단이라고 아냐?" "불사조 스틸단? 먹자단은 아는데. 그건 처음 들어보는군. 아류 단체인가 보지?" "먹자단은 길드원 모두가 영구 블록 먹고 쫓겨났지. 근데 초딩들로만 이루어진 새 단체. 스틸단이 자꾸 내 몹을 단체로 스틸하다가, 결국엔 쓰론의 창을 쳐 먹고 나르더군. 열 받아서 IP추적으로 찾아내서 소말리아로 워프 시켜 줬다. 이놈 시키들이 유복한 나라에서 태어나 부모 잘 만나 밥 굶는 걱정 안 하고 팔불출 부모들이 오냐오냐하고 키워놓으니까 어찌나 버르장머리가 없던지. 단체로 비매너나 하고 말야. 이런 놈들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애들도 총 들고 전쟁하는 그런 나라에서 살아 봐야 해." "흐음. 잘했다." 아크라우스의 말 가운데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기에 아크는 그런 대로 납득했다. 사실 그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초등 세대들에게 뭔가 확실한 예절 교육 따위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냐? 놀아달라고? 귀찮다. 난 잠이나 자련다." "아니. 그게 아니라. 뭐 좀 부탁할 게 있어서." "부탁? 뭐냐?" "내 컴퓨터 안에 있는 자료 같은 거. 무슨 태양열 전지 딸린 노트북에 옮겨서 여기로 보내 주면 안 되냐?" "뭐야?" "아니지. 부탁 정정한다. 노트북에, 백과사전에, 플스에 TV에 최근 나온 책들에, 오토바이 같은 여기에는 없고, 지구에는 있는 과학문명의 유산들을 이리로 좀 보내 줘라." "흠. 어려운 주문이군. 의뢰비는?" "엥? 의뢰비?" "기브 앤 테이크." 아크는 어쩔 수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좋아! 기사 창고 아이템!" "흐음 겨우 그거 가지고? 이 많은 노동과 자본이 들어가는 의뢰를 얼렁뚱땅 해치우시겠다?" "푸흐흐 내 기사 아이템을 너무나 과소평가 하는 군. 거기에 뭐가 있는지 들어 볼 테냐?" "말해 봐라." "+10 엑스칼리버." "뭐, 뭐라고? +10!" 아크라우스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기겁했다. 엑스칼리버가 어떤 검인가? 카멜롯의 아더왕이 쓰던 검이라는 타이틀로 중세를 배경으로 한 롤플레잉 게임이라면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그 칼. 아크라우스가 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 내 15개 서버를 다 합쳐 500여 자루밖에 존재하지 않는 초 레어 아이템. 공격력은 검류 중 3번째로 강력한 정도이지만. 성 속성 부여와 블레싱 소드와 같은 각종 보조 마법이 걸린, 검 계열 클래스라면 누구나 탐을 내는 레어 검. 거기다 제련 안전 성공치 +5를 벗어난 과감한 제련 수치 +10! 이 정도면 가히 신급 아이템이라고 할 만했다. 아무리 아크라우스가 현금 거래로 아이템을 맞췄다고는 하나, 이 정도 신급 레어 아이템이 탐이 안 날리 없다. "제련은 안정선 까지만 해 뒀지만. 헤르메스 부츠도 있지." "헤르메스 부츠!" 헤르메스 부츠라는 말에 아크라우스는 입도 떡 벌어졌다. 방어력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이동속도의 엄청난 상승과, 회피력의 증가 옵션으로 인하여 무한 무빙샷을 가능하게 해 줘서, 궁사 계열 클래스의 갑부 풀셋이라 불리는 그 부츠. 이것 역시 몇 개 찾아보기 힘든 초 레어급이다. "네놈......상규 형님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그런 초 레어급 아이템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니. 혹시 운영자가 네 친구냐?" "그럴 리가. 날 무시하는 모양인데. 이래 보여도 전직 폐인이다 이 말씀이야. 하루에 열 다섯 시간이 넘게 노가다를 했는데. 이 정도 대가가 없으면 안 되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장천이도 보면 이런 거 몇 개 가지고 있을 걸?" "흠. 그래 좋아. 이 의뢰를 받아들이마. 그런데 TV나 그런 거는 어디다 두고 쓸 생각이냐? 들고 다닐 셈이냐? 또 전기는 어디서 나고?" "듣고 보니 그러네? 어떡하지 아크라우스?" "기왕 서비스를 해 주는 김에 화끈하게 해 주마! 전기가 필요한 제품들 중 일부는 전격 마법으로 전류만 흘려줘도 가동이 되지만 안 되는 것들도 있지. 그런 것은 내가 직접 마나 연료를 쓰는 것으로 개조해 주마. 충전용 건전지는 전격 마법으로도 충분히 충전이 가능하고, 건전지는 공장에서 한 몇 천개 훔쳐다 보내 주마. 그리고 이런 것들은 뭐든지 꺼내고 넣을 수 있는 드래곤의 마법 보고에 넣어서 전송해주지." "드래곤의 마법보고? D소설 인크레시아 같은 거?" "그래." "역시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군. 아크로니아는 그런 거 없다고 하던데." "커험. 흠흠." 아크라우스는 무안한지 헛기침을 했다. "근데 그것들 인터넷은 되냐?" "무리다. 차원을 넘어서까지 TV전파나 인터넷이 연결 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정 인터넷을 쓰고 싶다면 마법 보고에 IT관련 서적 몇 가지를 넣어 줄 테니. 네놈이 직접 회선 같은 거 설치하고 다녀라. 아니 우선 그러자면 전화기부터 만들어야 할 테지." 문득 아크는 이 세계에 지구 같은 과학 문명을 발달시키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과 검기, 소드 마스터, 신성 마법, 드래곤, 엘프, 오크, 마족 들이 존재하는 이곳에 프로레슬링, 만화, 게임, 인터넷, 정보 통신 기술, 건축기술, 생명 공학 기술 등 지구의 인문적인 요소와 과학적인 요소를 도입한 그런 세계 말이다. 세월은 좀 걸릴지 모르지만. 죽지도 않고, 지구에 아크라우스라는 연결 고리가 있는 아크로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아크라우스에게 지구에서의 과학 지식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또 거기에 마법이란 신비로운 요소를 접합시킨다면?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멋진 생각이다. 어차피 이곳으로 돌아 올 수 없다면. 그곳을 이곳처럼 바꾸는 것이다. 네 녀석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테지." "그래......또 한 가지 인생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어." "자, 그럼 이제 비번 말해라." "뭐? 널 어떻게 믿고 먼저 말해!" "드래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 뻔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할 지도 모른다가 정답이겠지. 거짓말 안 한다던 엘프도 거짓말을 하는데, 드래곤은 어떻게 믿냐? 게다가 아쉬운 것도 내 쪽이니 내가 먼저 밑천 보일 일은 없어." "좋다. 그럼 일단 일주일 내로, 온갖 물건들을 마법 보고에 넣어서 그쪽으로 보내주마. 됐냐? 의뢰의 사례는 그때 받겠다." "고맙다. 아크라우스." "흥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의뢰를 맡은 것이니,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 "어. 그럼 수고해 줘." 아크는 또 다시 뒹굴기 모드로 들어갔다. '이거 나도 소설 속에 나오는 그런 팔불출 드래곤이 돼 버린 건가?' 아크라우스는 심각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 지구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로 읽었던 소설등에서 보면 자신의 동족인 드래곤들은 괜시리 인간 하나 졸레 졸레 따라다니면서 헛짓거리를 하거나, 인간에게 잡혀 죽기도 많이 죽었다. 아니 그런 것 정도면 차라리 낫다. 인간에게 자기 힘과 지식을 다 넘겨 줘 버리는 것은 물론이오. 심지어 R소설의 한 멍청한 드래곤은 무슨 인간 놈 하나 살리려고 멸족에 위기에 놓인 자기 동족 드래곤들은 신경도 안 쓰고, 드래곤 하트 반쪽을 인간에게 주질 않나, D소설의 화이트 드래곤은 그깟 흑마법사하고 데스나이트를 못 이겨 인간에게 잡혀 살지를 않나, M소설의 A골드 드래곤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인간 아들놈 하면 쓸개를 떼 줄 정도로 사족을 못 쓰지. 도대체 왜 그렇게 위대한 종족인 자신들이 그렇게 체신 머리 없게 시리. 인간한테 꼼짝을 못하는지 원. 아무리 미약한 인간들이 대리 만족을 위해 읽는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때문에 아크라우스는 그런 결과가 나올 리는 없겠지만 D소설에서 베르카스라는 레드 드래곤이 인간들을 쓸어 버렸음 하는 생각을 했다. "뭐. 난 거래의 형식으로 한 것이니 큰 상관은 없겠지." 차원 너머에 있는 아크를 쳐죽일 수 없는 이상. 아크라우스와 아크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는 없다. 그러나 심심하다고 놀아주고, 아크의 게임아이템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아크라우스는 이미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팔불출 드래곤의 분류를 피하기는 힘들 듯 싶었다. "국왕 전하 납시오!" 후작인 론부터 직위 순으로 좌우에 나란히 포진한 육로 원정군에 소속된 귀족과 기사들. 그 앞을 근엄해 보이는 30대 가량의 크론드 국왕과 레인하르트 공작. 그리고 은빛 찬란한 갑옷에 '1'을 나타내는 이 세계 숫자 문양이 새겨진 20명의 기사들이 지나갔다. 폴티아 대공 관저가 어찌나 넓다보니, 100여명에 가까운 인원이 이곳에 모였음에도 좁다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다음 편은 6월 18일에 올리겠습니다. 작가군은 바다로 떠납니다. 응접실 정 중앙의 용상에 국왕이 앉자. 두 기사는 국왕의 양옆에,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각자 좌우로 포진한 귀족과 기사들 사이에 끼어 들어갔다. 연습한 것도 아닌데 묘하게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너무 정상적이고 전형적인 왕으로 보이는 국왕이었다. 아크는 개인적으로는 만두가게 아저씨 같은 타입의 왕을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인상이다. "경들은 들으라......" 국왕의 연설이 시작되고......그 장황하고도 긴 서사시의 언급은 피하기로 하자. "그래서 나 크론드 디그리스 1세는 정식으로 폴티아 반도가 우리 디그리스에 다시 귀속되었음을 선포한다." "우와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가 쏟아지는 가운데, 국왕은 말을 이었다. "이러한 오늘의 영광이 있게 한 이들에게 내 각자 공을 따져 포상하겠네. 마루타 레인하르트 공작!" "예. 전하." "그대는 12년간 나를 도와 끈임 없이 전쟁 준비를 하고 여러 기사들을 양성시켰으며, 비록 패하긴 하였어도 제 1, 2차 폴티아 원정을 책임졌고 이번에도 해군 사령관을 맡아 활약한 공이 있으므로 대공의 칭호와 함께 현재 주인 없는 르타르만 영지를 그대의 가문에 내리겠네." "망극하옵니다." 레인하르트 공작은 교지를 받은 뒤 제자리로 돌아갔다. "다음은 론 루네아 후작." "예." "그대는 육로 원정대를 최선두에서 이끌며 많은 적들을 베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큰공이 있어. 공작의 작위와 함께, 포르티아 항을 영지로 하사한다. 또한 폴티아의 총독 자리를 맡기는 애써 주길 바란다." "알겠습니다."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론은 상당히 큰 보상을 받았다. 과거가 불분명한 론에게, 그것도 이전에 폴티아 공에게 배신당한 이력이 있으면서도 총독의 자리를 내린 것은 사전에 론과 국왕과의 사이에 암묵적인 협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인인 론에게는 원체 영지 관리나 행정일이 그다지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등 공신과 전쟁에 선봉장을 푸대접하는 것은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아, 론은 그저 이름만 있는 도장 찍는 총독이었고 실질적 권한은 론의 밑으로 부임할 부총독이 알아서 하는 그런 내용으로 말이다. 폴티아라는 땅덩이가 새로이 생기자, 전쟁에 참가한 귀족들에겐 대부분 새로운 영지가 하나 씩 할당되었다. 그러나 원체 귀족이 많지 않은 디그리스 왕국의 특성상. 폴티아의 많은 영지들은 그대로 비거나, 자유도시화 되곤 했다. "에 다음은 팬크라프트의 10만 대군을 막아내는 전략을 세워, 결정적으로 전쟁 승리에 가장 큰공을 세운 한 기사에게 상을 주리다. 아크 경!" "......?" 아크를 부르는 국왕. 그러나 왕 앞으로 나와야 할 아크가 나오질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은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코를 고는 한 기사에게 모아졌다. "일어나 이 멍청아!" 레골룸스는 옆에서 졸고 있던 아크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크 경!" 국왕이 다시 크게 호명하자. 레골룸스가 꼬집어도 일어나지 않았던 아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예? 교장선생님. 무슨?" '웬 교장선생님?' "아차차! 예 전하." 침을 닦고 그제야 달려나오는 아크를 보고, 원래 육로 원정대 였던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납득했지만, 국왕을 따라 온 제 1기사단 기사들은 그것이 영 못 마땅스러웠다. 그 중 한 다혈질의 기사가 칼을 뽑을 기세로 나오려고 하였다. "이런 무례한 자를 보았나!" "아, 아 윌터 경. 내 연설이 지루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니 너무 탓하지 말게." "크흠." "다음부터는 졸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알았나? 아크 경." "물론입니다." 대략 상황을 진정시킨 크론드는 교지를 읽었다. "아크 경. 그대는 뛰어난 전략으로 패색이 짙던 전세를 순식간에 역전시켜 지금의 승리의 영광을 있게 한 장본인이므로, 내 크게 치하하여 자작의 작위를 내리겠네. 하지만 그 전에. 아크 경. 용병기사로 우리 군에 들어왔다고 하던데. 나와 이 왕국에 충성을 맹세할 생각이 정녕 있는가?" 귀족자리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아크는 흔쾌히 대답했다. 충성 서약 같은 거야 말이면 몇 번을 못하겠는가? "옙!" "패기가 좋군. 그럼 이리 와서 혈인을 찍게." "예? 혈인?" "피로서 충절의 증거를 표시하는 거지. 여기에 혈인을 찍게나." 피까지 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못마땅했지만. 아크는 순순히 블레싱 소드를 풀어놓고, 회칼로 손가락을 그은 뒤 혈인을 찍었다. 혈인은 기사 급 이상 인물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는 의식적인 행사였다. 만약 한 기사가 배반을 했는데 이 혈인이 전 군주인 자에게 있다면 그 기사는 배신자라는 칭호가 평생 따라다니게 되는 수치를 당해야 했다. 그러니까 보통 충성의 증표보다 조금 더 강도가 높은 것이라 보면 되겠다. 그러나 그런 것은 기사도를 숭배하는 진짜 기사들에게나 통용되는 것. 이 바닥에서 가장 비열한 남자. 릭 플레어를 정신적 지주로 모시고 있는 아크는 모르기도 하고, 또 그런 것에 별 구애를 받지 않는 성격이라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궁정 마법사 막가이어가 아크의 왼손을 펴고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귀족의 증표일세." 막가이어가 그림에 마나를 불어넣자, 아크의 손바닥에 웬 문양이 빛을 내다가 스며들며 사라져 버렸다. "일종의 신분증서지. 손에 힘을 준다면 언제든지 나타나서 자네의 신분을 증명시켜 줄 걸세." '이런 걸로 사람 신분을 갈라놓는 건가? 사람에게는 천부 인권이 있는 법이거늘 어찌 이런 걸로.' 아크는 왼손에 문양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하. 내 가신이 돼 줘서 고맙네. 아크 경. 아니 이제 자작이란 칭호로 성을 불러야 하겠군. 자네 성이 뭔가? 없다면 내 멋진 걸로 하나 지어주겠네." "페인. 아크 페인입니다." "그래 페인 자작. 그대에게 폴티아의 자네멘 영지를 하사하겠네." '켁! 영지?' 예상대로 아크에게도 너무 뻔한 영지가 떨어졌다. '영지 관리라......너무 많이 봤던 패턴이라 지루한데?' 판타지 소설들의 주인공들을 보면, 그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세력을 키운다. 주인공 자신이 초강력 먼치킨으로 못 하는 게 없다면 혼자서 노는 스토리도 나오지만. 대개의 경우는 초강력 먼치킨일 지라도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패턴을 따른다. 하나는 용병단이다. 어느 나라에도 귀속되지 않는 자율성에 용병들답지 않은 엄청난 실력으로 대륙의 패권을 다루는 국가들의 주 영입대상이며 이들만 가지고도 드래곤 한 마리쯤은 우습게 잡거나, 마왕도 쉽게 때려잡는다. 둘은 귀족이다. 귀족이 되어 영지를 얻어 영지를 발전시키며 군사를 모으고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다. 아크가 추구하는 것은 대략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긴 삶을 때우기 위한 여러 가지 삶의 체험과 둘은 이 세계를 지구화 시키는 것. 그것들을 위해서라면 영지를 얻어 발전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자신의 영지에서 지구의 과학 문명의 유산을 상품화시키며, 인문, 사회적으로 자신의 영지를 지구처럼 만들어도 영지는 아크에게 소유권이 있기에 별 간섭도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지의 귀족이라는 것도 일종의 인생이니 체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과연 소설들처럼 아크의 영지관리도 하는 것마다 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난 경영시뮬레이션 게임은 작살난다고!' 그랬다. 아크는 심시티부터 시작해서 편의점, 삼국지, 롤러코스터 타이쿤 등 뭔가 경영하는 것마다 모두 죽을 쒔다. 스타크래프트도 보면 전략이나 컨트롤 같은 것은 좋은데, 물량을 뽑거나 인구수 조절하거나 멀티를 확장하거나 등의 경영적인 내용에서 밀려 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페인 자작. 어째 영 얼굴색이 안 좋군." "하핫. 글쎄요. 영지를 다스리는 것 같은 거는 영 젬병이라서." "음? 자네 영지 관리나 하면서 변방 귀족으로 살 생각이었나? 나는 그런 의미로 자네에게 영지를 내린 것이 아니네만." "예에?" "이런, 이런 내가 자네 정도의 두뇌를 가진 전략가를 변방에 둬서 영지나 발전시키라고 작위를 준 줄 알았나? 영지 관리야 전문가나 가족들에게 대리를 맡기고 중앙 정계에 포진하려는 것이 요즘 귀족들이거늘. 자네는 앞으로도 포르티아에 거주하면서 여러 행정 업무를 맡게나." "아 네." '나 참 팔자에도 없는 공무원 하게 생겼네. 권력이 다 뭐라고.' 아크는 특권의식과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그런 상류 계급을 싫어하는 전형적인 서민이었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상류층을 동경해오던 그였지만. 막상 그런 계급에 올라서니 그다지 기쁘거나 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천부 인권이 있는 법이거늘 어찌 이리 핏줄 하나만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건지.' 또 천부인권을 들먹이는 아크.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다 온 그는 이런 수직적인 사회 체계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내가 바꿔주마. 이 세계를 말야.' -쨍그렁 꽃병이 깨지고 그 조각이 대공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피를 냈다. 랜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으로 보고 중인 비서관을 노려보았다. "뭐야? 지금 장난해?" "사, 사실입니다. 대공 전하." "스타미노 후작! 그 녀석 어디 있어!" "그, 그게......전사하셨답니다." "도대체 어떻게 깨졌길래 사령관 놈까지 죽어!" "10만 전멸입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은 알퐁스 에렉 후작과, 세비어 프레슬더, 폴티아 공, 그리고 병사 둘 뿐입니다." "큭! 아이고 혈압 올라!" 랜도로스 대공은 뒷머리를 움켜쥐고 면상을 찌푸렸다. "어떻게 됐기에 10만이 2만한테 전멸 당해! 디그리스 놈들한테 드래곤이라도 있다던?" 그랬다. 소설 속처럼 드래곤이라도 도와 주지 않았다면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그게 소드 마스터도 하나 있었고......" "멍청하긴! 기사 수가 몇인데 소드 마스터하나를 못 잡아! 익스퍼트 급 녀석들을 한 이 삼십 명 붙이고 적들의 기사들은 병사 수로만 둘러쌓아도 이기겠다. 병법서는 찢어서 밑 닦으라고 있는 줄 알아!" "그것 보다 디그리스 놈들의 전략에 말렸답니다." "무슨 전략?" 대공의 되물음에 부하는 데일런스 성 전투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대공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전략을 세운 자가 누구라고 하던가?" "최근 자작의 작위를 받은 아크 페인이란 기사입니다." 그럼 6월 18일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복귀신고. 이틀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3일 빼먹은 것과 마찬가지의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핵폐기장 문제로 시끄러운 위도가 보이는 부안의 수련원에서 열심히 노를 저었죠. 덕분에 지금 타자도 못 칠만큼 근육이 완전 뭉쳐서 죽겠습니다. 유감스럽지만 쉬다 왔다고 해서 연참같은 것은 없습니다......(퍽! 잭해머를 맞고 쓰러진다) 이번 파트 폭풍 전야라는 이름답게 앞으로 일어날 비극(?)을 예고합니다. "뒷조사는 해 보았는가?" "그게 영 불분명합니다. 폴티아 공 녀석의 진술과 행로를 예측해 볼 때, 기사가 되기 전 엘프 마을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세비어 경과 알퐁스 경의 진술로는 하이 프리스트 급에 필적하는 신성력과, 오러 블레이드를 쓰지 않고도 검을 끊는 실력에 급소를 정확히 노려 적을 쓰러뜨리는 권법을 익히고 있다 합니다." "오러를 안 쓰고 검을 끊어? 외공의 고수인 모양이군." "그런 모양입니다. 마나가 겨우 일반 수련 기사 급에 수준이었다니까요." "뭐. 그런 것보다는 두뇌가 탐이 나는 인재로군. 앞으로 있을 대륙 통일 전쟁을 위해서는 그런 책략가가 꼭 필요해." "영입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지금 당장 팬크라트 기사단 1전대와 최동부 전선의 39사단과 40사단에 동원령을 내려라." "예? 그럼 폴티아를 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만큼 좋은 때는 없다. 아직 놈들의 군대가 재편성되지 않은 지금이 적기야." "하지만. 팬크라트 기사단과 두 개 사단만 보낸다면 전력이 비등비등합니다. 이긴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거기에 10만의 병력이나 전멸 당한 탓에 사기도 떨어져 있고......" "내가 가지." "예?" 부하는 뭔가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되물었다. "내가 지휘한다고." 재차 확인시켜 주는 대공의 대답에 비서관의 표정이 펴졌다. "뭐 그러시다면야." "이 기회에 폴티아 반도를 빼앗아 와야 겠다. 그리고 그 전략가라는 놈도 한 번 만나보도록 하지. 아군이 되지 않는다면 죽여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이로울 테니까." 팬크라프트 제국은 서방 세력을 통합하여 제 2의 서제국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산재해 왔던 대륙 자원의 지역 불균형으로 강대국을 이룬 그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동부를 호시탐탐 노렸다. 그러나 서와 동을 잇는 중앙 노른자위에 위치한 중도라는 막강 군사 연합 체제가 등장하자, 팬크라프트는 육로로 동부 지역을 칠 길이 없어져 버렸다. 동부를 얻기 위해서 국민 전원 무장병력화의 중도와 사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드 마스터가 다섯이나 되는 팬크라프트가 질 일은 없었지만. 그리 될 경우 피해가 너무나 컸다. 한마디로 중도 연합이란 먼저 때리지는 못해도 상대방이 때리면 사납게 반항할 수 있는 그런 막강함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다. 그 차선책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해상 경유론으로 해로로 동부와 서부를 잇는 또 다른 관문 폴티아 반도를 손에 넣는 것이다. 이번 10만 지원병의 파견은 사실, 원군의 목적이 아닌 폴티아에 제국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주둔군의 목적이 더 컸다. 그러나 그 병력은 궤멸했고, 폴티아는 디그리스에 떨어졌다. 때문에 제국의 제 1권력자 렌도로스 대공은 디그리스를 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결정은 이제 막 도약의 발걸음을 내 딛은 디그리스 왕국의 미래에 먹구름이 끼게 했다. "가방?" "아무래도 마법의 보고를 그냥 보내는 것은 차원의 균형을 흐트려 놓을 듯 해서, 물건화 해서 보낸다. 보고란 것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차원이니까." 아크는 전송된 가방을 보고 S패키지 게임 제작사의 A게임에 여자 같은 남자 주인공 'S'군이 맨 처음 매고 다니던 곰 인형 가방이 생각났다. "분실의 위험을 낯추려고 블레싱 소드 같은 원거리 소환 마법을 걸어 놓았다. 또 안에 있는 물건들은 가방이 있으면 다 소환 시킬 수 있지. 그 옆에 무엇 무엇이 들었는지 워드 출력한 것 있으니 읽어보도록!" "좋아. 고맙다 아크라우스. 비번은 *****이다." "Thank you." 아크는 비밀 번호를 불러 준 다음.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목록을 읽어보았다. "경 승용차 한 대, 스쿠터 한 대, 자전거 한 대, 휘발유 200L, 태양열 전기 건전지 혼용 노트북, PS2, TV......플스하고 티비는 전격 마법으로 돌리라고 되어 있군. 256MP3 두 개, 건전지용 미니 선풍기 한 개, 각종 게임 타이틀 CD와 성인 동영상 CD, 영화 구운 CD, 지식인 데이터 베이스 압축 CD2장, 지우개, 샤프, 샤프심, 각종 서적들, 베레타, 서브 머신 건, 소화기(?), 총알 엄청 많이(?) 뭐야 이 자식 드래곤이면서 개수도 못 세나? 초, 중, 고 교과서, 화투, 장기판, 장기알, 바둑판, 바둑알, 일반 건전지 1000개와 충전지 500개, 태양열 전지 10개, 레이저 포인트, 콘돔 100통(?) 이 씨 숫총각 놀리나? 감기약, 진통제, 물파스, 디지털 카메라, 그냥 카메라(?) 그냥 카메라는 또 뭐야? 얼레 목록에 필름은 또 없네? 인라인 스케이트, 라면 한 박스......우웩! 식품류는 상할 일이 없다? 때 타올 한 개, 김치 들어 있는 김치 냉장고 한 통 통째, 에 그리고......휠체어?" 아크는 목록 중에 휠체어가 있다는 점에 의문을 느꼈다. "어이 아크라우스. 휠체어는 왜 집어넣은 거냐?" "이전에 네놈이 유모차 타고 다닐 때, 어찌나 가엽던지 내 특별히 배려했다." "우쒸!" "어쨌든 진짜 10엑스칼리버가 있었군. 아이템 잘 쓰마." "어 그려. 나도 보내준 거 유용하게 쓰마." 아크는 아크라우스와 통신을 두절하고 노트북을 호명했다. 그러자 보고 안에서 노트북이 나왔다. "역시 과학문명과 마법 문명이 접합을 하니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나오는 군. 어쩌면 초고속 우주 왕복선이나 인간형 메이드 로봇도 가능할지 모른다." '메이드 로봇! 키메라 같은 것을 로봇 형식으로 만들어서......흐흐흐.' 음흉한 상상을 하는 아크였다. -똑똑 "들어와." 아크는 조심스럽게 총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총독실의 창가에 갑옷 차림으로 쌓인 서류를 읽고 있는 론이 보였다. "그래 무슨 일이야?" "그 갑옷 안 벗어요?" "무인에게 검과 갑옷은 필수품이야." "으휴. 이거 받아요." 아크는 잘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선물?" "예." "별일이네?" 론은 포장을 뜯고 상자를 열어보았다. "옷?" "항상 갑옷하고 도복만 입으시는 게 안쓰러워 보여서 샀어요." "......고마워 아크. 지금 입어봐도 돼?" "물론이요." 론은 갑옷을 벗었다. 갑옷이란 것이 원체 입고 벗기가 상당히 불편한 지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난 번 팬크라프트 군에 쫓길 때 갑옷을 거의 부수듯이 벗어버리던 때는 꽤나 신속했지만 지금 이 평화시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론은 아크가 보고 있음에도 별 신경 안 쓰면서 도복을 탈의했다. 그러자 상체에는 큰 가슴을 천으로 돌돌 묶은 천과 하체에는. '타이즈?' 론은 특이하게도 하반신에는 몸에 찰싹 달라붙은 검은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는지 굴곡이 그대로 드러났다. -꿀꺽 그러나 그런 눈요기도 잠시 후. 론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끝났다. 그러자 하반신의 자극은 수그라들었지만. 이제 아크의 심장이 폭발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떠니?" 론은 얼굴에 홍조를 머금으며 말했다. "예, 예뻐요." "정말? 헤." 론은 손을 한쪽 뺨에 대고 미소를 지었다. '으헉 심장이!' 아리따운 엘프들과 같이 살면서 어느 정도 미소녀에 익숙해진 아크였지만 론이 여장을 하자, 아크는 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래 사나이 김석진! 이대로 밀고 나가자! 지금이라면 할 수 있어!' "저, 저, 저, 저기 누님!" "응?" "오, 오늘 저, 저랑 데이트하지 않으실래요?" 더듬거리다가 '데'자부터 박력 있게 말하는 아크를 보고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던 론은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크 22세 그의 인생에 드디어 봄이 찾아오는 듯 했다. 시가지로 나가려던 론과 아크는 인파들에게 휩싸여 아직 관저를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레, 레이디는 누구십니까?" "이봐. 호킨 경. 상관 얼굴도 못 알아보나?" "하, 하지만!" 분명히 눈앞에 이 여성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풍기는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랐다. 이전에 풍기는 분위기가 여자 같은 미소년이었다면, 지금은 완전히 미소녀다. "공작 각하. 여장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공작님 체통을 지켜주십시오." 그론다이저 부자는 아직도 못 믿고 있는 눈치다. "후우. 모두 조용!" 론은 웅성거리는 인파들을 모두 조용히 세운 뒤. 변조 목소리가 아닌 원래 자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속여서 미안하군. 제군들. 난 여자가 맞아. 전쟁 때에는 지휘 체계에 위엄을 보이기 위해 남자 행세를 한 것 뿐이야. 그러니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말도록. 아! 그론다이저 후작. 어때? 정상적인 관계가 맞지? 나하고 아크 경 말야." 론은 멀뚱히 서 있던 아크와 팔짱을 꼈다. 그러자 아크의 심장은 펌프질의 폭주를 일으켰고, 이 광경을 보던 총각 기사들은 가슴에 불길이 이는 것이 느꼈다. "그럼 다녀올테니 그론다이저 자네가 오늘 좀 수고해 줘야겠어." 론과 아크가 나가자, 관저에는 가슴에 불질러진 늑대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폭풍 전야 사이 좋게 손을 잡고 시가지를 활보하는 아크와 론. '도대체 뭘 하지?' 시가지를 걸으며 손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 이상 할 거리가 없는 것이다. '에 지구 같으면 영화를 보거나, 놀이동산에 간 다음. 근사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분위기를 잡은 다음 호텔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데......여기에 영화관은 어딨고, 놀이동산은 또 어딨어!' 데이트 경험이 있을 리가 만무했던 아크는 이런 상황에서 미연시적 데이트 상황밖에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던 아크를 보던 론은 팔짱을 끼고 달렸다. "......!" '가슴이 닿았다앗! 크흐흑 이 부드러움!' "일단 우리 뭐 먹으러 갈래?" "예? 예예예." 론의 힘에 맥없이 끌려가는 아크. 데이트 신청은 아크가 먼저 했는데 어째 주객이 전도되어 거꾸로 아크가 끌려 다니고 있었다. 밥 먹고 나니 또 할 일이 없다. '노트북으로 CD나 돌려볼까?' 괜찮은 방법이기는 했지만 론은 지구의 언어를 모른다. 아니. 맹약의 반지를 론에게 빌려 준다면? 가능하겠다 싶은 아크는 론에게 말했다. "저기. 누님." "왜?" "여관방 하나 잡을까요?" 그 말을 들은 론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리고. -퍽 "커헉!" "대낮부터 무슨 여관이야!" 그러면 밤은 괜찮다는 소리? 엄한 오해를 한 모양이다. "이, 이상한 뜻으로 그런 말 한 게 아니라고요! 이런 밖에서 말고 조용한 방에서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조용한 데에서 보여줘야 할 게 뭔데? 설마?" "아니라니깐요!" "정말이지?" "진짜에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누님을 덮쳐요? 맞아 죽을 게 뻔한데." "하긴." 론은 숙박업소로 들어갔다. 그러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여관의 늙은 주인이 깨서 나왔다. "두 분이십니까?" "보고도 모르나?" "그럼 방 두 개를......" "아! 하나로 주시오." "예. 키 여기 있습니다." 열쇠를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는 론과 아크를 보고 노인은 안 들리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요새 젊은것들은 대낮부터 저런다니깐." 아크는 가방에서 노트북과 수십장의 CD가 든 케이스를 꺼냈다. 그것을 본. 론은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아크를 쳐다보았다. "그게 뭐야?" '아아 귀엽다아아아아!' 마치 어린아이 같은 론의 눈빛에 아크는 속에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지구에서 쓰는 물건들인데. 이걸로 영화란 것을 볼 수 있죠." "영화? 그건 또 뭐야?" "일단 보면서 얘기하죠." 아크는 노트북을 가동시키고 볼만한 최신영화 CD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모두 공유 프로그램으로 다운받은 것인지 이름 없는 공시디로 보이는 것들만 있었다. 돈으로 DVD를 사서 보내줄 것이지, 뭐 하러 이런 노가다를 했는지...... 아크라우스도 할 일 되게 없는 모양이다. 아크가 쓸만한 CD를 찾는 사이, 론은 윈도우 바탕화면이 뜨는 것을 보고는 신기롭다는 듯이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던 차에 아크는 CD케이스에 동봉된 아크라우스의 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CD케이스 칸 몇 번째 어떤 색깔의 CD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네 녀석 컴퓨터에 저장 되 있던 영화파일과 네 녀석은 못 본 신작 몇 개 집어넣었다.' "짜식이 그냥 CD에 네인 팬으로 써 주지. 찾기 힘들게 이게 뭐야? 누님! 싸우는 거 좋아하세요. 무서운 거 좋아하세요. 아님 러브스토리나 웃기는 거 좋아하세요." "나야 물론 싸우는 거지." 그 말에 아크는 배틀로얄이나 틀어주기로 했다. 친구들끼리 서로 죽여, 한 사람만 살아남는다란 룰만 알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총이나, 차, 컴퓨터, 헬기 등을 모르는 그녀에게는 문화적 차이에 어려워 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을 하나, 하나 설명해주며 친분을 다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마우스를 클릭 해 창을 여는 아크. 론은 그런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걸 두 번 누르니까 뭐가 뜨네? 그건 뭐야?" "마우스라고 하는 거죠. 저도 나중에 그 사부님처럼 살았던 시대를 얘기 해 드릴게요. 제가 왔을 때는 그 사부님이 온 지 약 1000년 가량 지난 후라. 많은 것이 바뀌었을 거에요." "사부님한테 들려드렸으면 좋아하셨을 텐데." "저기. 이거 끼세요." 아크는 반지를 빼서 론에게 주었다. 어눌하긴 했지만. 아크는 이제 웬만한 이 세계의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 통역 마법이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상대방이 하는 말의 뜻을 이해 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이었기에 네이티브 스피커들의 생생한 리스닝 체험을 했던 아크에게 언어 장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새삼 아크는 영어 유학 가 놓고는 코리아타운에서 한국인들하고만 살면서 영어는 쥐뿔도 사용 안 하고 괜히 시간 버리고 돈 버리는 유학생들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 맹약의 반지?" "예. 통역기능도 달려 있으니 제가 온 세계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아크는 맹약의 반지를 건네고, 파일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누른 플레이 버튼. 이제 곧 기타노 선생 상해사건과, 아버지 자살사건, 그리고 배틀로얄 전회 우승자가 처참한 몰골로 등장하는 것이 나오리라. 그런데. "아아! 아! 으하아! 아! 아악!" "하아. 하아 학! 학! 흐악." 신음소리를 신호로 액정에 뜬 화면은 노모, 고화질의 풀 버전 성인 동영상이었다. "으헉!" 당황한 아크는 급히 Alt+F4를 눌러 동영상을 종료시켰다. 생각해보니 아크는 이러한 성인 동영상을 가족들의 시선에서 위장시키기 위해 전부 영화 이름을 달아놓았다. 물론 영화 파일도 있으니 꼭 동영상이 분할된 것처럼 영화파일에는 예)영화제목(1)을 성인 동영상은 영화제목(2) 이런 식으로 말이다. "통역마법이 없어도 되겠구나?" 론은 비꼬는 투로 말했다. "다, 다른 걸로 틀어드릴게요!" 아크는 다급히 다른 CD를 집어넣고 돌렸다. 그러나 이번 것도 처음 오프닝부터 거시기한 장면은 나오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로 봐서는 완전 그거였다. 하지만 론은 처음 분위기만 보고 내용을 짐작할 만큼 내공이 높지 않았다. "음. 메모리즈 마법이 걸린 도구인가 보군." 메모리즈 마법은 벌어지는 상황을 매개물에 저장해 두고 영화처럼 보는 마법이었다. 다만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나 동영상은 테잎이나 파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볼 수 있지만. 마법은 한 번 보면 매개물이 파손되기에 영화 따윌 찍어 상업화 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학교에서 교복이란 걸 입나 보구나." "아. 예." 전형적인 학교물. 세라복과 숏팬츠형 체육복, 그리고 빵빵한 글래머 여교사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략 짐작이 갔다. "누님. 아무래도 다른 걸." "아냐. 그냥 둬 봐. 재밌는데 뭐." '으악! 이 아가씨가! 체육창고로 가는 걸 보니, 곧 나온단 말이다! 봐 놓고서 또 때리려고 이러나?' 일본어라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아크는 대략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직감했다. 체육복 입은 여학생과 무슨 사진을 들고 있으면서 음흉하게 웃는 대머리 중년 교사. 그리고 깔리는 구르기 용 매트. 그 매트 위에서 그 둘이 과연 무슨 짓을 할까? 매트가 깔리고 나자 드디어 시작되는 거시기(?)장면. "이! 이거 그냥 보실 생각이세요?" "놔 둬."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연인들끼리 비디오방에 가서 성인 비디오를 보며 접촉과 접속(?)을 가진다는 것은 경험은 없어도 대략 알고 있는 아크. 하지만 한국 비디오야 그게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이고, 중요 부위도 카메라의 농간으로 잘 안 나오지만. 이렇게 암암리에 입수한 일본 풀, 노모자이크 물은 상당히 강도가 높았다. 이런 걸 여자랑. 그것도 단 둘이서 보게 되다니! 그렇게 풀 버전 한 편을 다 보고 나니 철면피 아크도 상당히 낯이 뜨거워졌다. '더 이상 동영상 보다간 일낼지도 모르겠군.' 동영상을 감상하던 중. 아크는 옆의 론에게 충동을 느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덮칠 경우, 아크는 살해당하고 말 것이다. "저기요. 누님. 이제 좀 정상적인 거 볼까요?" 그러나 론은 아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그녀의 표정. 게다가 왠지 모르게 론은 시무룩해 보였다. "저기 누님?" "......" "왜 그렇게 시무룩해 하세요?" "......" 말이 없던 론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아크야." "넵." "저기 말야." 론의 얼굴이 묘하게 붉어졌다. "말하세요." "그거......해 볼래?" "그거? 그게 뭔데요?" "......아까 본 거." "예에에? 가, 갑자기 왜 그런!" "네가 그런 걸 좋아하잖아." '이젠 변태로 찍힌 모양이군.'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였지만. 아크는 옳다구나 하지 않고 최대한 신중함을 찾았다. "누님. 그렇게 충동으로 행동하시지 마세요. 그런 건 동영상 한 번 봤다고 그렇게 호기심에 할 게 못되요. 게다가 우린 의남매라지만 엄연히 남매지간 이라고요." 근친스러운 내용도 좋아하는 아크가 그의 사상과는 다른 말을 내뱉었다. -퍽 "커헉!" 론의 주먹에 맞고 나뒹구는 아크. "이, 이 바보야. 나, 난." 아크가 일어나자 론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뭐?' "아크 너를." '너를 뭐?' "조, 조......" 론은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조? 서, 설마 고백? 그럼 지금껏 때리고 괴롭힌 게 다 나에 대한 관심이었던 건가? 훗 역시 이놈의 인기는.' 아크는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론의 다음 대사를 기다렸다. "좋......" -콰과광! 론이 무언가 말한 찰나, 어디선가 굉장한 폭음이 들려 론의 말을 묻어버렸다.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다. 그리고 그때 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윽! 이런." "왜 그러세요?" "일이 터진 것 같아." "일이요?" "따라와! 빨리." "예, 옙." 아크는 물건들을 집어넣고 얼떨결에 론을 따라나갔다. 론은 허겁지겁 관저까지 달려왔다. 워낙 빠르다 보니 아크는 그녀를 따라잡지 못했다. 관저 앞에는 기사들이 모두 중무장을 하고 대기를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그론다이저." "예 공작각하. 팬크라프트의 군으로 보이는 많은 적들이 항구에 상륙했습니다. 현재 제 2기사단이 군대를 이끌고 적들을 막으러 갔습니다." "뭐야? 왜 그들만 보낸 거지?" "함선의 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 병력이 2만 이상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우리에겐 3만의 포르티아 방어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그렇게 까지 걱정하실 필요는......" "멍청하긴! 적에겐 나와 동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쯤 되는 막강한 검객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어. 그것도 둘씩이나." "예에? 설마 둘씩이나......" "만약 그 중 하나가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라면?" 그론다이저 후작의 얼굴이 흑빛으로 변했다. 지금의 전력이라면 소드 마스터 둘도 벅차다. 그런데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니! 그론다이저는 한 가닥의 희망을 걸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말야. 난 팬크라프트 대공의 기운에 어느 정도 익숙해. 아마 그가 맞을 거야." "그런!" "방법은 두 가지다. 포르티아 항을 포기하고 전면적인 후퇴를 감행하는 거지. 이 경우 우리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는 것과 동시에 지금 항구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병사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또 한 가지는 내가 렌도로스를 맡는 사이, 나머지인 너희들이 적들을 다 해치우는 거지. 기사의 수도 많고 병사수도 우리가 더 많으니까. 하지만 제 2기사단을 섣불리 보내 버렸으니......" "선택은 각하의 몫입니다. 저희는 그것에 따를 뿐입니다." "좋아. 그론다이저. 죽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때 론에게 뒤쳐져 따라오던 아크가 도착했다. "무슨 일입니까? 후작님." "상황이 안 좋네. 흠. 그래도 자네의 신성력에 도움을 받는 다면 승리할 확률이 조금은 높아 질 수 있겠군." "예?" "아크." "예 누님." "이제 각하라고 불러. 자 네 반지." 아크는 론이 던진 맹약의 반지를 받았다. "너한테는 그것의 도움이 꼭 필요할거야." "......" "그럼 출발하자! 우리의 땅을 침범하는 자들에게 지키려는 자들의 무서움을 보여 주자고." "가자!" 기사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촤아악 -푸슉 하늘에 피분수가 뿜어졌다. 디그리스 군 제 2기사단 단장 두프레 후작은 이것이 꿈이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 아니다. -챙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막아도 막은 것이 아니었다. 뒤로 밀려나는 두프레 후작. 검을 잡은 손에서 장갑을 꼈음에도 피가 났다. 처음에는 병사들 몇 명이 멋모르고 팬크라프트 대공에게 덤벼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한 채 후작을 엄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두프레는 다시 검을 바로 쥐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온몸에 경련이라도 난 듯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것을 본 팬크라프트 대공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떨고는 있지만 좋은 기개야. 일국의 기사란 자는 아무리 앞에 드래곤이 버티고 서 있다고는 해도 그런 당당함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아까 벤 한 녀석은 오줌까지 지리며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빌더군. 그런 놈을 베는 맛은 정말 더럽지. 하지만 자네는 다르군. 이 나를 앞에 두고도 그런 겨눔세를 아직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자네의 이름을 듣고 싶군." "르메 두프레." "흠 그래? 잠시만 기다리게. 설마 내가 잠시 싸움을 중단하고 있을 때 비겁하게 덤벼드는 건 아니겠지? 뭐 그렇게 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말야. 자네의 이름만큼은 남겨 두고 싶어." 두프레는 팬크라프트 대공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팬크라프트 대공은 품안에서 펜과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는 르메 두프레란 이름을 적었다. 전투 중에 메모라니, 긴장감이 없는 행동이기는 했지만 그는 이 대륙에서 루드비안 제국의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벤드 그레드릭이나 대륙 최강의 무사라는 진. 그리고 에인션트 드래곤밖에 이길 자가 없다는 실력자다. 그런 사람이니 메모 중에 어떤 놈이 달려든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 안 할 것이다. "자네 이름도 적었다네." "그게 대체 무슨 짓이오?" "난 내가 생각하기에 나름대로 멋있었다고 생각하는 적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 습관이 있네. 그리고 가끔씩 그들을 베던 때의 그 느낌을 회상하고는 하지. 자네는 운 좋은 줄 알라고. 여기에 적힌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쟁쟁한 실력자들이었으니까." 죽어서 베이는 그 감으로 회자되다니, 당사자가 기분 좋을 턱이 없다. "그럼 이제 자네의 목숨을 거두도록 하겠네. 날 너무 원망 말게 어차피 적으로 만난 이상 자네는 내 칼에 죽을 운명이었으니 말이야." "나도 죽을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소. 하지만 죽기 전에 당신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베는 것이 내 일생의 마지막 소원이 될 것 같군." "그럼 그리해 보게." 두프레도 자신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마지막 일격만은! "으랴아아압!" -챙 두프레 후작의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이 렌도로스의 검에 닿았다. 대공은 검이 닿자마자 몸을 뒤로 뺀 다음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달려 들어 두프레 후작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 두프레 후작은 죽기 직전 마지막의 검격을 날렸다. 하지만 팬크라프트 대공은 그것을 가볍게 피해냈다. 굴러내리는 두프레 후작이었던 사람의 머리. 그의 수급은 차가운 땅바닥에 그대로 굴렀다. 흔히들 목을 베면 사람이 바로 죽는 줄 아는데. 목이 잘린 사람이라도 약간의 의식이 남아 있는 찰나의 시간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동안 마지막으로 쳐다본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렌도로스는 하늘을 응시하며 굳어 버린 두프레 후작의 눈을 감겨 주고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축하하네. 소원은 이뤘구만." 대공의 오른쪽 소매에는 가위로 약간 자른 듯한 흠이 남아 있었다. 숫자는 디그리스 군이 1.5배 가량 월등했다. 하지만 엄청난 무용을 앞세운 팬크라프트 군대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 제 2기사단은 렌도로스 대공과 몇몇 기사들이 전멸시켜 버렸다. 그리고 지휘부를 잃은 병사들은 소드 마스터 프랑코 젤리커 공작과 나머지 기사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디그리스 병사들을 삽시간에 시체로 만들어 버리는 젤리커 공작. 소드 마스터급 검사인 자신이 겨우 일반 병사들이나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는 매우 기분이 상해 있었다. 병사들 정도는 그에게 유희거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팬크라프트 대공처럼 20여 명으로 구성된 적 기사단과 다 대 일로 싸우기엔 조금 위험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봐 젤리커! 메인 디쉬가 오기 전까지 전투는 부하들에게 맡기고 쉬는 건 어때?" "그러지. 내가 이런 병사들이나 베고 있다는 건 나부터가 수치스러워." 팬크라프트 대공과 젤리커 공작은 접전지에서 슬쩍 몸을 빼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어리버리 후방에서 놀고 있던 병사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제국의 실세인 팬크라프트 대공과 젤리커 공작. 이 둘은 또 다른 소드 마스터 루이스 델른버 공작과 함께 당시 약소국이었던 팬크라프트의 가장 뛰어난 기사였다. 서로를 견제하는 라이벌인 동시에 친구이기도 했던 그들은 이계의 검사 진에게 수련을 받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고, 진과 이들 삼총사가 나서면 못 이기는 전투가 없었다. 그들의 사부 진이 은거하고 난 뒤에 그들은 각자 왕족이자 검술실력이 가장 뛰어났던 렌도로스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대공이, 나머지 친구들은 공작에 소드 마스터 그렇게 실력으로 갈리고 직위로 갈리기는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병사가 가져다준 물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두 사람은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둘 다 별다른 갑옷을 입지 않은 점은 똑같았지만 팬크라프트 대공은 몸에 핏방울 하나 없이 깔끔한데 반해, 젤리커 공작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쓴 혈인이 되어 있었다. "쯧쯔. 넌 언제나 되야 피 안 묻히고 싸우는 경지에 오를래? 아들놈한테만 온갖 정신이 팔려 가지고는......팔불출 같으니." "뭐야? 난 적어도 네 녀석처럼 정력이 딸려서 그 시간에까지 검 잡고 있지는 않는다." "뭬라고? 이 자식이 증말!" 팬크라프트 대공은 슬하에 딸 하나 그것도 10살을 채 못 넘기고 죽어버린 딸 하나밖에는 자식이 없었다. 그것과는 또 정 반대로 젤리커 공작은 많은 자손을 남김과 동시에 선천적으로 뛰어난 무골이자, 검의 천재라 칭송 받는 아들 크리스 젤리커를 두었기에 항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정력이 딸려야 검술은 강해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체통이고 뭐고 다 집어 던진 채 옥신각신 서로 다투는 제국의 두 영웅들. 그런 그들에게 보고하러 왔던 한 병사는 차마 그들의 말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고 곤란하게 서 있다가, 맞아 죽을 작심하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큰 고함을 질렀다. "대공 전하!" "익!" 깜짝 놀란 대공과 공작은 엄청난 기세로 이 겁대가리를 상실한 병사를 째려보았다. 그 엄청난 압박감에 병사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한다. "왜 그러느냐?" 병사는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음을 편히 가진 뒤 차분히 말했다. "디그리스의 기사들이 몰려왔습니다." "오호? 그래? 젤리커 할 일이 생겼다 출동하자." "재밌는 놈들이었으면 좋겠군." 팬크라프트 대공과 젤리커 공작은 반색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팬크라트 기사단!" 앞서 가던 한 기사가 팬크라프트 기사의 갑옷 문양을 보고서는 기겁했다. 대제국 팬크라프트에서도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약 500여명의 기사로 이루어진 이른바 제국 최고의 전력 팬크라트 기사단이 이곳에 와 있었다. 다행히도 500명이 다 온 것은 아닌 모양이었지만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만 하더라도 엄연히 실력차가 존재했다. 별 볼일 없는 디그리스의 기사들과 마스터급에 근접한 팬크라트 기사단의 기사들이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 디그리스에는 보조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아크가 있었다. "빨리 가서 아군을 도와! 알았어?" "예! 각하." 아크의 신성 보조 마법을 풀로 받은 디그리스 기사들은 혼전의 상황으로 뛰어들어갔다. 론은 이 혼전 상황 속에서도 렌도로스를 찾아다녔다. 비록 팬크라프트의 대공과 그녀에게는 실력의 차이가 컸지만 론은 꼭 자신의 손으로 팬크라프트 대공을 죽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죽여야 한다. 그것이 지금껏 그녀가 살아온 이유이자 삶의 원동력이니까. 아크가 선물로 준 옷을 그대로 입고 전장을 누비는 론을 보고 여러 음흉한 생각을 가진 병사들이나 기사들이 론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목 떨어진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굴러야 했다. 화사한 옷을 입은 론에게는 자꾸만 적들이 달라붙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옷이 활동하기에 그다지 나쁜 구조 가 아니라는 점이다. 론은 제법 직위가 있어 보이는 기사의 검을 날려버리고 그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대공은 어디있나?" "자, 잘 모르오. 워낙 혼전이라." "그래?" 론은 기사의 목을 따서 고통 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주었다. -짝짝짝 어디선가 이런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박수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본 론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모습이었다. "훌륭하군 나를 찾고 있었나?" "렌도로스!" "그래 내가 바로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야. 아리따운 아가씨께서 날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었다니 나도 아직 쓸만한 모양이군." "농담은 집어 치워! 날 기억하고 있겠지?" "잠깐만 기다리게." 대공은 품안에 수첩을 꺼내 보았다. 그의 높은 지위에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수수한 싸구려 수첩이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흠 알겠군. 망국 루티안 루네아 공작가의 도리안 루네아 공작의 후손일테지. 남자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완벽한 여자로군. 그럼 본명은 론이 아니라 로니 정도가 맞겠지?" "그래. 당신이 죽인 도리안 루네아가 내 아버지야." "부녀의 이름이 내 수첩에 같이 적히게 되다니. 비극이군." "개소리 집어치워!" 론의 매서운 공격에 팬크라프트 대공은 그만 수첩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의 장난스러웠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역시......사부의 실종은 그대와 관련이 있겠군.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칼은 사부의 애검이고, 휘두르는 것을 보니 우리 제국검법이야,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 사부는 어디 있나?" "그건 왜 묻지?" "다시 한 번 우리 제국을 위해 일해 주시면 아니 되겠느냐고 해 볼 생각이다." "불가능한 이야기야. 사부는 이미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어." "애석하군. 그러면 자네는 어떤가?" "뭐?" "우리 제국을 위해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말일세." "닥쳐!" 론의 대답은 단호했다. "뭐 그대가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어쨌건 그대의 나라를 파멸로 이끈 것이 우리 제국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사부가 말씀하셨을 것이다. 복수는 다 부질 없는 거라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를 뿐이라고, 또 그 분의 제자인 우리들이 서로 싸워 어느 한 쪽이 죽게 된다면 사부께서도 원하시는 일이 아닐 것이야. 내가 제국을 대표하여 사죄할 테니 모두 잊고 우리를 위해 일해 주지 않겠나?" "당신의 목이라면." "젊은이여 어찌 그리 세상을 좁게 보는 것인가? 그대의 아버지와 나의 결투는 정당한 결투였고, 그대의 아버지가 패했기에 나는 그의 목숨을 거두었어. 내 수첩에 적혀 있는 기록으로 보자면 그는 내가 지금껏 상대한 이들 중 가장 멋진 상대였다고 메모되어 있지. 그대도 무인일 테니 그런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걸세. 만약 내가 그를 이긴 다음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게야. 그럴 바에야 내 손으로 직접 죽여 그의 명예를 지켜 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네만?" "그래 나도 아버지의 죽음을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아무 힘도 없던 내 가족들을 그렇게 처참히 유린해 놓고도......" "후? 후하하하하하." 팬크라프트 대공은 론의 말을 끊으며 호탕히 웃었다. "왜 웃는 거지?" "역시......여자를 비하할 생각은 없다만 정말 사고가 좁군. 망한 자신의 국가를 위한 복수도 아니고 고작 가족의 잃은 것 따위를 문제삼다니." "닥쳐! 소중한 것을 잃은 이의 슬픔을 당신 따위가 알아?" "조금 밖에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그대의 논리에 반박해 줄 수는 있지. 그대의 가문은 공작가. 망국의 귀족은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 정석이지. 내가 기억하기로는 도리안 루네아는 딸만 넷에 아들은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만약 그때 죽지 않았더라면 그대의 언니와 여동생들이 어떠한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 했을지 생각해 보았나? 고귀하게 자라오신 아가씨들이 말야." "내 눈앞에서 그렇게 유린하고 잔인하게 죽였으면서. 그 어린......" 대공은 또 론의 말을 끊었다. "어린 아이라 해도 여자다. 고귀하신 공작가 영애들. 그대를 보니 미모도 탁월했을 거라 생각되는 군. 나라와 가장이라는 보호해 줄 틀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들은 어딜 가도 무사하지 못한다. 차라리 그만한 모욕에서 끝나고 안식을 얻은 것이 낫지. 만약 그대가 아직도 가족의 복수 따위를 운운한다면 나는 그대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가족의 희생이 망국에서 비롯된 것이니 차라리 나에게 루티안을 멸망시킨 죄를 물어라. 목은 몰라도 내 무릎을 꿇고서라도 사죄하겠다." 렌도로스 대공의 말은 무엇 하나 틀린 점이 없었다. 하지만 론에게는 그와 싸워야 할 또 다른 명분이 있었다. "아니 당신은 틀렸어." "음?" "물론 난 내 가족을 해친 이들에게 복수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 없어. 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비록 복수의 도구로 한 약속이지만 난 대머리 국왕에게 충성의 맹세를 지켜야 하고, 지금 이 폴티아 땅과 내 부하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나는 그것을 위해 당신을 죽이려는 것이다. 뭐 당신을 처단하고 나면 먼저 간 내 가족들과 멸망한 내 모국에도 복수의 완성을 보여 줄 수는 있겠지, 그러나 지금의 난 디그리스의 루네아 공작으로서 디그리스의 영토를 빼앗으려는 당신을 맞아 싸우려는 것뿐이다." -피식 대공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좋아. 디그리스를 침범한 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서 그대를 꺾어 주지. 이름은 로니 루네아가 맞겠지? 수첩에 적어주지." 팬크라프트 대공은 수첩에 론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자신의 애검을 뽑았다. "내 수첩에 여자가 적힌 것은 처음이다. 부디 만족할만한 실력을 보여 주기 바란다." "덤벼." 렌도로스와 론은 검을 뽑아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프랑코 젤리커 공작은 레인하르트 후작과 게리슨이 맞상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만 가지고는 도저히 젤리커 공작을 이길 수가 없었다. "젠장!" 욕설을 내뱉는 호킨. 저들을 도와는 줘야 하는데 자신이 맞상대하고 있는 기사는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비록 신성마법의 영향으로 전세가 조금 자신에게 우세하다고는 하나, 팬크라프트의 기사는 쉽게 당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소드 마스터인 젤리커 공작만 어떻게라도 처리한다면, 그 다음부터 기사들은 모두 팬크라프트 대공에게 덤벼들고, 많이 당하기는 했어도 아직은 우월한 숫자의 병사들으로 팬크라트 기사단을 막는다면 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그래도 승산이 있었다. 그러자면 여럿이서 젤리커 공작을 쓰러뜨려야 했으나,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집요하게 디그리스 기사들을 놔두지 않았다. -푹 솟구치는 피. 젤리커는 게리슨의 배에 박힌 검을 그대로 수직으로 긋었다. "게리슨!" "으어억!" "아무리 약소국 기사단이라고는 해도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대로라니 너무 실망스럽군." "빌어먹을!" 그때 였다. "파이어 스톰!" 젤리커 공작은 사라만다가 내뿜는 뜨거운 화염의 폭풍에 휩싸였다. 그리고 기공이 실린 화살 여러 발이 연발로 화염 폭풍 속에서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골룸 경!" "하아. 이젠 다른 기사단이신 레인하르트 후작께서도 절 그 이름으로 부르시는 겁니까? 레골룸스라고 이름을 부르십시오! 풀네임을 그리고 긴장을 푸시지 마십시오. 저 정도 소드 마스터 급 검사가 이 정도에 당했을 리는 없습니다." "아, 미안하오." 곧 레골룸스의 말대로 연기가 걷히고 젤리커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옷만 너덜너덜해 졌지만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엘프 네놈이냐?" "그렇소." "죽여주겠다." 젤리커 공작의 맹공. 하지만 레골룸스는 그다지 녹녹한 상대가 아니었다. 레골룸스는 젤리커 공작의 공격을 위태롭기는 해도 그럭저럭 잘 막아낸 다음 운다이론을 소환했다. "불 다음에는 물! 워터 헤븐!" 강한 물살이 젤리커의 시야를 가렸다. "크 시원하군. 이 따위 물로 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럼 이건 어때요?" 어디서엔가 난입한 아크. 그리고 운다이론이 내뿜는 물줄기에 은빛의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물은 그대로 젤리커 공작의 상체를 속박하는 얼음이 되었다. "아크!" "나 부르지 말고 빨리 공격해! 소드 마스터라니 곧 얼음을 부수고 뛰쳐 나올 거야!" 아크는 이렇게 외친 후, 가까운 거리에서 호킨과 씨름을 하고 있던 기사의 뒤에 살금살금 다가갔다. 귀축 게임 '미행'시리즈를 하면서 익힌 스토킹 3단의 내공으로 들키지 않게 기사의 바로 뒤에까지 도달한 아크는 자신의 전매특허기술을 기사에게 작렬시켰다. "양촌리 딸딸이 권법 제 2장! 알깨기!" "크하아악!" 물컹이를 엄청난 악력으로 조물딱거리는 아크 덕에 빈틈이 생긴 팬크라프트의 기사에게 호킨은 때를 놓치지 않고 목에 칼을 박아 넣었다. "고마워 아크 경." "인사는 나중에 하고 일단 빨리 저 소드 마스터인가 뭔가 하는 놈 쳐 죽이러 갑시다." 아크와 호킨은 얼음의 속박에서 풀려 나와 레인하르트와 레골룸스를 상대하고 있는 중인 젤리커에게 덤벼들었다. 소드 마스터와 벌이는 4:1의 전투 원래 마스터급의 검객이라면 넷 정도의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야 가뿐했지만. 신성 마법의 보조를 받는 레골룸스는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커터!" 아크가 외치자 날카로운 수 십 개의 얼음 칼날이 젤리커를 난타했다. 얼음 칼날을 피하느라 젤리커가 주춤하는 사이, 레골룸스의 검격이 젤리커의 뺨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다. 젤리커 공작이 정말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피에 신경을 쓰는 사이, 어느덧 그의 배에는 레골룸스의 손이 닿아 있었다. "비켜요 호킨 경! 기공포!" -파핫! 젤리커는 강한 기의 힘에 밀쳐져 날아갔다. -욱씬 배가 욱신거리는 고통. 이것도 얼마 만에 겪어 보는 고통인가? 젤리커는 정말 오랜만에 생명의 위협과 전투의 긴장감을 느꼈다. "생각보다는 대단한 녀석들이군." "하핫. 뭐 그렇기는 하지." 프랑코의 말에는 아크가 답변했다. 답변을 한 아크를 쳐다본 젤리커는 아크의 외모가 이질적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죽습니다. 다 죽어요! "한 가지 묻지. 자네는 누군가?" "아크라고 하오만." "흐음.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우리의 10만 대군을 전멸시켰다는 자로군. 빙한 마법과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두 자루의 검이라......상당한 명검인가 보군. 게다가 그 피부로 보아하니 한 가지 묻겠네. 진 사부를 아나?" "모릅니다만? 아 헛소리 그만 하시고 보조마법빨 떨어지기 전에 빨리 덤비시죠." "그럴 참이야." 상황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디그리스에 불리해져만 갔다. 제 2기사단이 먼저 파견되어 전멸 당해 버린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실력은 조금 딸릴지 몰라도, 숫자에서만큼은 우세하던 디그리스 였으나 제 2기사단이 전멸 당하고 오히려 숫자에서 대 여섯 정도 딸리는 것을 보조 마법으로 간신히 수준을 맞춰 놨더니 프랑코 젤리커 공작에게만 넷이 달라붙어 있으니, 남아 있는 기사들이 수적으로 딸리는 것은 당연했다. 기사 수가 딸리면 병사 수로 그것을 때워야 했다. 그러나 병사들도 팬크라프트 병사들과 할당량이 없거나 없어진 팬크라트 기사단 기사들에 의해 위기를 맞고 있었다. 쿠퍼는 그의 선천적인 힘에다가 근력 증가와 민첩 증가까지 받아 실력면에서는 뛰어난 팬크라프트의 기사를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다. "헉, 헉, 헉." 팬크라프트의 기사는 이제 숨이 벅찬 듯 움직임이 상당부분 둔화되었다. -챙! 쿠퍼의 투핸드 소드의 무게와 힘에 못 이긴 기사는 기사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검을 놓쳐 버리고 코너로 몰렸다. 쿠퍼는 그런 기사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기 위해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나 단순한 쿠퍼는 기사의 표정이 죽음의 공포에 질린 표정에서 미소짓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의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다. -푹 "쿡!" 짙푸른 오러를 머금은 검이 쿠퍼의 배와 플레이트를 꿰뚫고 나왔다. 피가 솟았다. 흐릿해져 가는 의식에도 쿠퍼는 검이 박힌 배 근육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힘을 모았다. 그러자 검이 쉽게 뽑히지 않았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검에 당황하던 자신을 찌른 기사를 수직으로 베었다. 그리고 난 뒤 쿠퍼는 원래 자신이 베려 했던 기사의 목을 날려버렸다. "내, 내 몫은 곱빼기로 했다." -푸슉 또 다른 기사의 검이 이번에는 쿠퍼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러자 거대한 쿠퍼의 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검과 검이 허공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렸다. 그러다 한참을 겨루던 두 검 중 하나가 밀려났다. "대단하구만. 난 신성 마법이 그렇게까지 실력을 위력을 낼 수 있는지 미처 몰랐다네. 이거 괜히 교황청을 적대시했나?" 그랬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렌도로스 대공에게는 론 정도의 소드 마스터쯤은 몇 합만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보조 마법으로 뻥튀기 된 론의 민첩과 근력 덕에 론은 그럭저럭 대공의 공격을 잘 막아낼 수 있었다. "하압!" "흠!" -챙 다시 한 번 검으로 힘 겨루기에 돌입한 두 사람. 한참을 끌던 이 힘 겨루기는 또 다시 렌도로스 대공의 승리로 끝났다. 대공의 힘에 밀려 뒤로 밀려나던 론은 한 시체를 잘못 밟아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윽! 이런." 론이 넘어지자, 렌도로스 대공은 인정 사정 봐주지 않고 론에게 덤벼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적의 실수를 봐주는 사람이 아니라네." "제길." 론은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자세에서 힘겹게 대공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다. 그때 대공의 표정에 미묘한 미소가 어렸다. "푸흐. 다 큰 처자가 그게 뭔가?" "뭐?" "속옷이 다 보인단 말일세." "익!" 발끈하는 론의 모습에 대공은 죽어버린 딸이 생각났다. 살아만 있었으면 저 나이쯤은 괄괄한 아가씨가 되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감상적일 때가 아니다. 이어지는 대공의 공격. 론은 자세가 무너진 상황이라 상당히 위태롭게 대공의 공격을 막아냈다. 자세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팬크라프트 대공의 공격에는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결국 론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고야 말았다. "쯧쯔 이걸로 끝이라니 아쉽구만. 뭐 단칼에 목을 베어 고통은 못 느끼도록 해 주지." '끝이다.' 론은 눈을 감고 체념해버렸다. 곧 목이 베이는 소리와 함께 자신은 죽을 것이다. 아니 목이 베이는 소리도 못 듣고 죽을 공산이 더 컸다. 복수도 못해보고 죽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죽은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였다. 뭐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긴 했지만. '아크가 내 말을 다 들었을까? 그 녀석은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론이 눈을 감고 이런 망상들을 하는 중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고 대공이 자신을 죽이지 않자, 론은 눈을 뜨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론의 시야에는 배에 대공의 검이 박힌 채 피를 토하고 있는 필로스가 보였다. "필로스!" "크흐흑! 당신이 살려준 목숨. 당신을 위해서라면 버려도 아깝지 않다. 후후 이런 역은 정말 사양하고 싶었는데......컥! 대사까지 닭살 돋는 군. 단역이었지만 멋지게 죽었으니 여한은 없다." 그 말을 끝으로 필로스는 숨을 거두었다. 렌도로스 대공은 필로스의 시체에서 칼을 뽑으며 중얼거렸다. "멋진 녀석이군. 이름이 필로스라고 했나? 적어 둬야 겠어.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기사라......캬! 기사의 로망이로군. 아! 주군은 좀 아닌가? 상관을 위해 목숨을 바친 기사라고 해야 겠군." 론은 자세를 다시 잡고 일어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렌도로스 대공을 노려보며 투지를 불태웠다. "당신을 죽여야 할 명분이 조금 더 커졌군. 내 대신 죽은 부하를 위해 당신을 기필코 쓰러뜨리겠다." "그래, 그래 좋은 투지야." 렌도로스 대공은 메모를 끝내고 다시 검을 바로 잡았다. 최악의 전세였다. 디그리스 대부분의 기사들이 당하고 맡아서 싸울 기사들이 없어진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디그리스 군은 지휘체계부터 사기까지 완전히 무너져 내려 버렸다. 디그리스의 방패를 이용한 유명한 가전 검술을 지닌 그론다이저 가의 두 부자는 원체 방어에 대해서는 확실한 지라.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는 버텨 내며 팬크라프트 기사들의 발걸음을 묶어두고 있었다. "요? 꼰대 잘 싸우는데?" "헛소리말고 전투에나 집중하게! 정신 사납게 시리." 에르쿠스가 장난식으로 싸우며 조금씩 밀리고 있다면 그론다이저 후작은 원체 뛰어난 실력에 검에 대한 노련미가 있어, 팬크라프트의 새파랗게 젊은 기사를 마구 몰아붙이고 있었다. -퍽! "크윽." 그론다이저는 강력한 쉴드 차지로 상대하던 기사의 자세를 흩트려 놓은 다음. 그 빈틈을 노려 기사를 베어버렸다. "휴우. 두 놈째 잡았군." 그론다이저는 기사의 시체를 깔고 앉은 채. 휴식을 취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 그에게는 전투 시 체력 안배도 상당히 중요했다. 에르쿠스는 고전하고 있었지만. 그론다이저는 별다른 도와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론다이저는 아들의 실력만은 믿고 있었다. 그때 에르쿠스의 배후를 한 팬크라프트의 기사가 노리는 것이 그론다이저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론다이저 후작은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도와주는 거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론다이저는 방패를 부메랑처럼 날렸다. 원형 방패라 그럭저럭 잘 날아갔다. -퍽! 에르쿠스의 뒤를 노리던 기사의 면상을 정확히 갈겨버린 방패. 방패에 맞은 기사는 코에서 피를 쏟으며 기절했다. 그러던 사이 에르쿠스는 자신이 상대하고 있던 기사를 처리했다. '잘 하는 군.' 그론다이저 후작은 날렸던 방패를 주으러 에르쿠스에게 다가갔다. "왜 도와준 겁니까?" "시끄럽군. 동료라서 구해 준 것뿐이네." "젠장." 싫어하는 사람에게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분이 나쁜 듯 에르쿠스는 삐딱한 반응을 보였다. "아무튼 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빨리 다른 이들에게 합류하세나." "그러슈." 그론다이저는 여럿에게 다구리를 맞지 않기 위해 일부러 으슥한 곳을 전투지로 삼았고, 그 덕에 기사를 셋이나 유인해 모두 처리할 수 있었다. 막 떠나려던 때였다. 그때 방패에 맞고 기절한 줄 알았던 팬크라프트의 기사가 갑자기 일어나 무방비 상태인 에르쿠스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그론다이저는 자기도 모르게 에르쿠스의 앞을 막았다. -촤아악!" "......!" 그론다이저가 피를 뿌리며 쓰러지자, 에르쿠스는 팬크라프트의 기사가 그론다이저를 벤 틈을 타, 기사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쓰러져 있는 그론다이저에게 말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헛 짓거리요? 왜 날 감싸요?" "젠장. 내가 죽고 싶어서 너 같은 망나니놈을 감싼 줄 알아? 원통하군 정말. 내가 왜 그랬지? 진작 아들놈 하나 더 봐 놨어야 미련이라도 안 남을 것을...... 큭! 네 녀석 같은 놈이 남아 우리 가문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니 정말 걱정 되서 눈을 감을 수가 없군. 내 한 가지 부탁 하나 하마." "뭐요?" "가문을 이어받아 잘 이끌어 나가거라. 정말 짜증나는 현실이지만 그론다이저 성을 이어 받은 사내놈이라고는 네 녀석 밖에 없으니까." "싫소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오늘은 저녁식사시간 조금 시간이 남아서 이 시간대에 올립니다. 배구하다 손가락 다쳐서 타자치기 힘드네요 그래서 연중......안합니다.(퍽!) 하지만 요새 각종 수행평가 때문에 비축분이 조금씩 딸리는 군요. 7월 중에 한 일주일 가량 연중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다 죽는군요. 아크야 주인공이니 살 테고......과연? "이놈이 정말?" "진짜 칼 맞고 쓰러져 있는 사람 맞소? 다 죽어 가는 마당에 매우 팔팔하시구랴? 텔포니움에 그론다이저의 성을 이어 받은 또 다른 사내놈이 하나 있소. 지금은 비록 2살밖에 안 되지만 말요. 집사에게 말해 뒀으니 우리가 없어도 잘 해줄 거요. 꼰대 할배 손자!" 그론다이저는 기겁했다. "뭐, 뭣 손자? 네 녀석이 여자하고 잤다고?" "술 마시고 정신 없을 때 어꺠 딱 벌어진 덩치 좋은 여자를 실수로 건드렸지. 정말 남잔 줄 알았는데 말야." "크, 크하하하핫 네놈답구나! 그나저나 손자라니 하하하하하 내 네놈 하는 꼬라지 봐서는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하하하하하......" 한참을 호쾌히 웃던 그론다이저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그쳤다. "얼씨구. 손자라니까 또 좋댄다. 체통은 되게 따지면서 체통 없이, 아 빨랑 일어나쇼. 가자며?" ...... "나 참 전쟁터에서 낮잠이라니. 어이 일어나쇼 후작님." ...... "어, 어이 꼰대? 왜 안 일어나?" ...... 워낙 팔팔하게 말하기에 적에게 당한 상처가 별 것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이보쇼. 설마 죽은 거?" ......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르쿠스는 죽은 이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하지만 이미 그 몸에는 주인이 없었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야!" ...... "일어나라고요......제발!" 불효자는 그렇게 울었다. 그리고 에르쿠스의 뒤로 조용히 접근한 팬크라프트의 문장을 단 기사는 그런 불효자의 죄를 죽음으로서 치를 수 있게 해 주었다. -푸슉! 아비의 시신 앞에 아들의 피가 뿌려졌다. 젤리커 공작은 손에 식은땀이 나는 게 느껴졌다. 비록 적의 숫자가 많기는 했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죽음의 공포까지 각인시켜 준 이는 처음이었다. 검부터 마법까지 모두 뛰어난 엘븐 나이트부터, 비록 무기의 도움이기는 해도 신성력과 빙한마법, 그리고 빠른 쾌검으로 자신을 위협하는 이계의 전략가, 그리고 평범하지만 엘븐 나이트와 이계인에게 도움을 줘 가며 자신을 압박해 오는 두 익스퍼트 급 기사. 이 중 엘븐 나이트는 그에게 가장 큰 위협을 주었기에 젤리커 공작은 레골룸스를 주로 노렸다. 하지만 레골룸스가 만만히 당할 이는 절대 아니다. 젤리커 공작은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싸우다 보면 결국 죽는 것은 자신이었다. 그는 레골룸스를 주공격 대상으로 삼던 것을 맨 처음부터 자신과 붙어 온 레인하르트 주니어에게 공격 대상을 바꿨다. 확실히 레인하르트 주니어는 레골룸스보다 위기 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물론 주위의 세 동료들이 젤리커 공작을 견제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버틸 수까지야 있었지만. 젤리커의 맹공에 금방 허점이 드러나고야 말았다. 그리고 젤리커 공작의 검이 그 허점으로 예리하게 파고 들어갔다. "끄하아악!" "레인하르트!" 레인하르트 후작이 피를 뿜어대며 고꾸라지자, 아크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젤리커 공작을 공격하는 대열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그것은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아크와 레인하르트가 빠지고 4인 방어 체제가 흐트러지자, 젤리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레골룸스보다 만만한 호킨을 공격했다. 호킨은 몇 합 버티지 못하고 젤리커의 검에 당했다. -추아아악! 미남 기사 호킨의 얼굴이 온통 적색 피로 물들여진 채 땅바닥에 처박혔다. "정신 차려! 레인하르트!" ...... 레인하르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제기랄!" 아크는 이미 사망해 버린 레인하르트를 내버려두고 호킨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가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레이트 힐링!" 그러나 그것 뿐. 호킨의 상처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크는 호킨을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제외한 온갖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호킨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덕분에 1:1 상황이 된 레골룸스와 젤리커. 레골룸스는 운다이론과 사라만더로 당해버린 동료들을 대신하려 했지만. 정령들은 젤리커 공작에게 당해 정령계로 강제 송환 당했다. "대단하긴 하군. 엘븐 나이트. 하지만 그대 혼자서는 날 꺾기엔 무리인 듯 싶어." 레골룸스의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확실히 자신의 실력만 가지고는 소드 마스터 젤리커를 이길 수 없었다. 이럴 때는 인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아크의 도움이라도 구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아크는 호킨을 붙들고 치료 중이었다. "어쩔 수 없군." "훗? 이 정도로 체념하는 것인가? 엘븐 나이트." "아니. 나한테 아주 좋은 전략이 떠올랐거든." "좋은 전략? 궁금하군. 빨리 써 보는 게 좋을 거야. 쓰기도 전에 죽어버리지 말고." "그러지." 레골룸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젤리커 공작에게서 도망쳤다. 그런 레골룸스의 뒷모습을 보던 젤리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 도망? 어처구니가 없군. 아무리 도망 밖에는 선택할 길이 없다고는 하나. 기사가 될 자격은 없는 놈이로군. 비겁한 놈 거기 서라!" 레골룸스를 비웃은 뒤 그를 쫓으려던 젤리커 공작. 그런데 레골룸스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도망친다는 거냐? 이거나 먹어라!" 레골룸스는 신궁 루기아에 마나가 깃든 화살을 장전하여 날렸다. 젤리커 공작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위력 있는 화살을 간신히 스치듯이 피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살이 스친 왼쪽 팔뚝에는 칼로 벤 자리를 불로 지진 듯한 상처가 남았다. "얉은 꾀로군. 이런 활 장난 따위가 나에게 먹힐 것 같나? 죽을 준비나 해라." "훗." 레골룸스는 콧방귀를 뀐 다음 자신에게 달려오는 젤리커 공작을 피해 도망쳤다. 그러면서도 레골룸스는 화살을 빠르게 장전하여 젤리커 공작에게 위협적인 화살을 날렸다. 레골룸스 비장의 궁술 '무빙 샷'이었다. '이런 낭패다' 레골룸스의 발걸음이 매우 빠르기는 했지만, 경공을 익힌 소드 마스터 젤리커 공작이 못 따라잡을 정도의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젤리커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그는 레골룸스를 잡을 수 없었다. 특기인 궁술로 젤리커를 따돌린 레골룸스. 그러나 젤리커는 그리 순순히 당해주지 않았다. 화살을 맞은 듯 하면 몸을 살짝 틀어서 꼭 스치듯이 화실을 피했던 것이다. 다음 화살을 장전하려는 레골룸스. 그러나 이제 화살통에 잡히는 화살은 없었다. 다 떨어진 것이다. 그것을 본 젤리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화살이 방해하지 않자, 젤리커는 순식간에 레골룸스에게 근접했다. "이, 이런!" 레골룸스는 다시 검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젤리커의 검격이 먼저였다. "잘 가라. 엘븐 나이트. 오랜만에 유쾌한 상대였다." -푸슉 -푸슈슉! "커허억!" 레골룸스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레골룸스!" 아크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호킨을 놔두고 쓰러진 레골룸스에게 달려갔다. 그러면서 많은 허점과 기습할 틈이 생겨났지만, 젤리커는 아크를 공격할 마음이 없는 듯 했다. 엄청난 피를 흘리고 잇는 레골룸스에게 아크는 힐을 사용했다. 하지만 레골룸스도 호킨이나 레인하르트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야, 야 이 골룸 새꺄! 죽지마." "크, 크, 큭 나, 난 그, 글렀다. 마지막으로 부, 부탁 하, 한가지 들어 줄 수 있겠......냐?" "삽질하지마! 무슨 마지막 부탁이야! 마지막 부탁이!" "시, 신궁을......엘프 마을에 가져다 주, 주길......" 레골룸스의 고개가 떨궈졌다. "야......하하 이런데서 퍼 잘래? 일어나 이 자식아! 어허 엄살 피운다? 진동안마 들어갈까?:" 하루 전. 아니 방금 전에만 해도 살아서 대화를 나누고 티격태격하던 녀석이다. 이런 적은 레골룸스가 샌드백 역할을 할 때도 몇 번이나 있었다. 레골룸스는 조금만 아프다 싶은 기술을 맞으면 꼭 이렇게 가출한 척 하며 엄살을 피웠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골룸스의 눈은 두 번 다시 떠지질 않았다.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때는 정말 재수 없었다. 그러나 '네 죄를 시인하나?' '으아악! 200년간 길러오고 관리해 온 내 머리카락을!' '이봐 너무한 것 아냐? 난 부상자라고!' '샌드백이라 부르지 말랬지?' '쓸모 없는 아크는 구경이나 한다.' '네 녀석이 고마워 보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까 내 머리를 민 건 그 골룸이란 괴물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서 였구만?' '좀 닥쳐! 제발 그놈의 야설 좀 작작 얘기해!' '배신자는 죽인다. 그뿐이다.' '기분 풀어라. 내가 술 한잔 사마.' "......" 그래 그랬던 레골룸스가 이렇게 죽을 리 없다. 애니를 보면 죽은 사람도 맨날 살아서 나중에 결정적일 때마다 나타나지 않는가? GTO의 오니즈카 선생도 그랬다. 이럴 때는 패주면 일어날 것이다. 진동안마도 괜찮다.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레골룸스를 구타하는 아크. 그러나 레골룸스는 일어나지 못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할머니 상을 당했습니다. 별 필요는 없었다지만 조연들을 많이 죽인 것이 걸리네요. 오늘 올리고 대략 기약없는 연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7월 1일 되기 전에는 돌아올 테니 그렇게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가의 변 91회 비평이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지만 몇가지 다음편들 예고를 해야겠군요. 론은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비축분까지는 안 죽습니다. 그 뒤에는 모르고요 기사들을 다 죽인 것에 대한 비평이 많은데 원래 그들은 죽는 각본입니다. 전쟁에서 대패했으니 기사들도 당연히 죽는거죠. 물론 작가의 농간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후반 스토리가 짜여져 있던 호킨은 살려 볼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는 독자님들에게 핑계를 대고 싶군요. 저는 분명히 설문조사로 그를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를 설문했습니다. 거기서 죽여라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죽였습니다만 아쉬움이 남더군요. 그래서 91화를 다시 보시면 호킨의 죽음 만은 무슨 심장이 멈추었다거나 등의 묘사가 없습니다. 그저 가망없어 보이는 그를 내버려두고 라 처리했죠. 그리고 일단은 살려도 바로 등장시킬 계획이 없습니다. 이 다음 파트에서 아크와 론 단 둘이서 아주 찐한 스토리(아마 대략 억울했던 24시간 파트보다 조금 더 찐할겁니다)를 벌이기 때문에 끼어드는 것이 불필요하죠. 이 내용에 불만이 많으시다면 설문조사에 참가를 하십시오. 여론이 바뀐다면 저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편 "야......정말 죽은 거냐? 엉? 이 망할 골룸 새꺄? 왜 죽어 왜! 집에 네 마누라하고 레르가스가 기다리잖아!" 등뒤에 젤리커 공작이 뭐라고, 뭐라고 씨부렁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때? 생각이 있나?" 아크는 레골룸스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죽은 놈은 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인 놈에게 죄를 물어 친우의 원혼을 달래 주는 수밖에! 아크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땅바닥을 쓱 훑으며 한 움큼의 흙을 손에 쥐었다. 젤리커 공작은 아크가 검을 집어넣자,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알아들었다. "결정은 내렸나? 잘 생각했네." "이거나 먹어." 아크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었다. 오스틴처럼 두 손 손가락을 모두 들고 싶었지만 한 쪽 손에는 흙을 쥔 채라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가운데 손가락의 의미를 모르던 젤리커는 그것이 무슨 뜻인가 싶어 아크에게 되물었다. "뭐?" "눈에 흙이 들어가게 해 주지!" "억!" 아크는 젤리커 공작의 눈에 흙을 뿌렸다. 그런 다음 한 쪽 팔을 쫙 피고 젤리커 공작의 목을 쳤다. "크로스라인!" JBL(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의 마지막 기술 크로스라인 프롬 헬처럼 강력히 들어간 크로스라인에 젤리커 공작은 넘어지고 말았다. "골룸의 원수! 죽여주마!" 아크는 넘어진 젤리커 공작의 다리를 각각 자신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는 젤리커의 몸을 그대로 틀어 버렸다. 프로레슬링 서브 미션 기술 월스 오브 제리코(보스톤 크랩)이 작렬한 것이다. "으아아악!" "죽고 싶을 정도로 만들어주지. 내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젤리커 공작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아크와 붙어 왔던 이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아크는 정말 터무니없이 약했다. 블레싱 소드의 도움으로 소드 익스퍼트 급 이상의 실력을 내고 있기는 했지만. 블레싱 소드를 휘두르지 않는다면 아크는 그저 운동 좀 한 신관 정도의 수준이었다. 결코 소드 마스터를 제압할 만한 실력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먹히면 아픈 서브미션 기술이 제대로 성공한 이상. 젤리커 공작은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애초에 기술이 걸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걸리면 끝장인 기술이다. 그것도 앤클 락 등의 어딘가 모르게 느슨해서 힘만 좀 있으면 빠져 나올 수 있는 기술이 아닌, 상대를 로프를 잡지 않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물론 경기가 아닌 실전이기에 로프를 잡는다 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다)샤프 슈터류 기술이었기에 젤리커 공작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아크의 흙을 눈에 뿌리는 비겁함과 레슬링 기술 인용으로 이루어낸 약자의 쾌거였다. 그러나 아크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었다. "공작 각하!" 디그리스 군 대부분이 전멸한 이때 할 일없이 놀고 있던 기사들이 아크를 떼어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제길!' 역시 서브미션 기술은 1:1에 제격이다. 다 대 일에서의 서브미션의 경우 오히려 한 놈도 못 제압하고 죽는 어설픈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크의 잔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잠깐! 가까이 오지 마라. 지금 내가 이대로 이 공작인가 뭔가 하는 놈 허리에 앉아버리면 이 자식은 허리가 부러져 다시는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리니 알아서 해라." 그 말에 아크를 공작에게서 떼어내려고 오던 기사들이 흠칫하고 놀랐다. 이 월스 오브 제리코가 이 세계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인용한 아크의 잔머리가 먹혀 들어간 것이다. 물론 뻥이었다. 아크가 허리가 꺾이고 있는 젤리커 공작의 허리에 앉는다고 해도 허리가 부러진다는 등의 일은 일어날 확률이 적었다. "끄아아악!" 구원을 받지 못한 젤리커 공작의 비명이 전장을 뒤흔들었다. -챙, 챙 한참을 땀을 흘리며 열나게 싸우는 렌도로스 대공과 론. 그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어떤 자가 죽으면서 지른 비명이겠거니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동일한 목소리의 비명이 지나치게 길었다. 결국 궁금을 참다 못한 렌도로스 대공이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다. "젤리커? 그리고 저건 그 이계에서 온 전략가?" 마나의 양도 쥐꼬리만한, 사부와 비슷한 피부와 머리색의 전략가가 소드 마스터 젤리커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은 대공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자로군. 정말 탐나는 걸?" "아크......" 론도 자신과 동급 이상의 마나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소드 마스터가 아크에게 당하는 것을 보았다. 비록 지지는 않았지만 저것 엇비슷한 기술을 당해 봤던 론은 저 기술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론이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렌도로스 대공의 검이 론의 배를 노렸다. 잠시 정신을 다른 곳에 두었던 론은 급하게 그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이미 한 발 늦었다. -푸슉! "아악!" "이런, 이런 나는 한눈을 팔아도 별 상관없지만, 그대가 순간적인 집중력을 잃었다면 그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지." 렌도로스 대공은 론의 몸속에 박힌 검을 빼내었다. 그러자 찔렸던 상처 부위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제 2타가 들어갔다. "윽!" 피를 토하는 론. 그녀의 눈은 서서히 초점을 잃어갔다. "칼맛이 어떠한가? 이전에 내가 칼맛을 보여줬던 한 녀석은 피로 '잘 먹었습니다'란 글을 쓰고 죽더군. 참 멋있는 놈이었어." 렌도로스는 론의 몸에 박힌 자신의 애검을 뽑았다. 피가 용솟음쳤다. 사부의 검을 놓쳐버리고, 앞으로 쓰러지는 론. 바닥에 엎드린 그녀의 배에서 붉은 피가 땅바닥에 흘렀다. 쓰러진 그녀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흠? 이런! 아직 살아있었나? 이거 미안하군. 고통 없이 보내 주려고 했는데 말야. 정말 미안하이, 내 목숨을 거두어 주겠네." 렌도로스 대공은 쓰러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론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 도도하던 론의 눈에도 눈물이 맺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상당히 애처로워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대공은 그런 것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렌도로스 대공은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때였다. "안 되엣!" 아크는 론이 죽을 위기에 놓이자 젤리커 공작을 풀어주고 스피어 자세를 잡은 뒤 그대로 렌도로스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렌도로스는 스피어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아크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지 않고, 쓰러진 론에게 회복 마법을 쓴 뒤, 그녀를 부축했다. "누님! 정신 차려요!" "아, 아크. 너, 너라도 살아." "그딴 소리하지 마요! 살려면 같이 살아야죠!" "너......여관에서 내 말 들었어?" "잘은." "그럼 다시 얘기해 줄게. 내■■가 널 좋아하는 것 같아." 평상시에 이런 고백을 들었더라면 '이 세계에 오니 이런 행운이 이제 나도 하렘왕이 되는 건가'라며 신나 했을 아크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고백 받음의 두근거림이나 기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분위기 좋구만. 이거 늙은이가 방해나 하지 않는지 모르겠네?" 중상을 입은 론을 껴안고 있던 아크를 렌도로스 대공을 비롯한 팬크라프트의 기사와 병사들이 에워쌌다. 이미 디그리스의 기사단은 전멸했고, 병사들도 모두 죽거나 도망친 터인지라, 더 이상 병장기가 부딪히는 등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유감이로군. 그대들의 부대는 이미 전멸해 버렸어. 이제 멀쩡한 사람은 자네 뿐인 것 같군." "......" "후. 기술 하나는 괜찮군. 이 나에게 이 정도 아픔을 주다니." 젤리커 공작은 허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요?" 공허한 듯한 아크의 목소리. "아크 페인 자작. 출신지는 엘프 마을. 아마 1년 전쯤에 파푸치아 숲에 떨어 졌을 거라, 예상되는 중원인."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지?" "차원의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생기는 독특한 기운이 있지. 사부가 넘어올 때야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라 그렇다 치고 난 이런 기운을 자네가 넘어온 것까지 합쳐, 세 번 정도 느껴보았네. 그래서 대략 짐작했지." "왜 날 죽이지 않는지 본론이나 말해." 아크는 분노에 찬 눈초리로 렌도로스 대공을 노려보았다. 동료들과 친우를 죽이고 의매에게까지 이런 중상을 입힌 원흉이니 그의 이런 반응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잘은 모르고 있겠지만. 우리 팬크라프트는 동부를 쳐서 병합해 대륙의 일통을 꿈꾸고 있지.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다. 무력이야 이미 최강인 우리 팬크라프트이기에 굳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2만의 병사로 그 다섯 배를 이길 수 있는 지략가라면, 앞으로 꼭 필요한 인재지. 거기다 전투 능력은 검이 없으면 쥐뿔도 없는 이가 소드 마스터를 제압할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자네라면 탐이 나겠는가? 안 나겠는가?" "그래서?" "한 마디로 우리 제국을 위해 일해 줄 생각이 없느냐는 말일세. 어차피 디그리스 왕국에 겨우 몇 개월 있었던 것 가지고 그 촌구석 데기 왕국에 충성심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자네의 그런 능력은 큰 데서 발휘해야 더 빛이 나는 법이라네." "저, 저 사람 말 들어......" 아크는 애처롭게 말하는 론을 한 번 바라본 뒤 결정을 내렸다. "좋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아크라우스의 마지막 선물 식장에서 밤 새가며 유로 2004를 보고 있습니다. 후후후 독새정신으로 무장해 이곳에서 비축분 한 편을 완벽히 구현해 냈습니다.(생각해보니 연중한 의미가 없다는) 원래 4시에 투베를 하려고 했는데 손가락 부상때문에 치는 게 늦어졌네요. 메모장 쓰기 짜증난다는......웬만하면 한글 정도는 깔아놓을 것이지. 렌도로스 대공의 표정이 환하게 펴졌다. "허허허! 잘 생각했네......" 아크는 그런 대공의 말을 끊었다. "대신." "뭔가? 터무니없는 조건이 아니라면 뭐든지 들어 주겠네." "누님을 치료해 주시오." 그 말에 렌도로스 대공의 얼굴이 굳어졌다. "음......내 사실대로 얘기하지. 그녀는 이제 살 수 없어. 회복마법을 꾸준히 사용해 준다 면야 버틸 수는 있겠지만. 내 소드 오러에 장기가 파손된 이상, 아무리 치료해봤자 고작 몇 개월 더 버티는 것이 고작일 걸세. 뭐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죽고도 남았겠지만, 소드 마스터라는 강인한 체력을 갖춘 자이기에 그나마도 버틸 수 있는 거지, 현재로서는 그녀를 되살릴 방법이 없다네. 미안하군." "그렇소? 그렇다면 내 대답은 거절이오." "이...이 바보야!" "크흠. 고작 사랑이라는 불필요한 감정에 그렇게 용단을 내리는 것은 좋지 않네, 사랑하던 사람이란 죽고 나면 시간이 갈수록 기억도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그 존재조차도 잊혀지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자네와 대화를 나눠 볼 것을...... 재고해 볼 생각은 없나?" "아크......나, 난 괜찮으니까." 론과 렌도로스의 설득 하지만. "거절하겠소." "으음. 아쉽군. 그렇다면 제국의 미래를 위해 자네를 기필코 처단해야겠어. 아군이라면 든든하겠지만. 자네 같은 인물을 그냥 놔두었다가는 훗날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지." -스르릉 검집에서 수많은 이들의 혈흔이 남아 있는 대공의 애검이 뽑혔다. "잠깐!" "뭔가 생각이 바뀌었나?" "주먹으로 하자." "후? 후하하하하하! 어리석기는 내가 별 가당찮은 호승심에 대사를 그르칠 인물로 보이는가? 자네의 특기는 아마도 아까 젤리커 녀석에게 썼던 류의 기술로 보이는군. 자네의 특기가 격투기술이라면 내 특기는 검이니 나는 검을 쓰겠네. 됐나?" 렌도로스는 머리를 쓰는 수에서도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와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었다. 상대가 검이라면 레슬링 기술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한다. 빠른 속도로 쇄도해 오는 렌도로스 대공. 아크는 그 속도에 눌려 차마 피할 생각도 못하고 다급히 외쳤다. "솟아라! 얼음의 장벽! 아이스 월!" 얼음 기둥 덕에 길이 막혀 버린 렌도로스 대공. 하지만 그는 이런 것 가지고 허둥댈 사람이 아니다. 아이스 월을 부수고 뛰쳐 나오는 렌도로스 대공. 아크는 그를 막기 위해 수십개의 아이스 월을 깔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끌기 용일 뿐. 대공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새인가 아크의 뒷목덜미를 차가운 검이 노리고 있었다. 렌도로스 대공이 아이스 월을 부수거나 피하지 않고 그대로 건너 뛰어 아크의 후방을 노렸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이대로 죽겠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협조하겠는가?" 죽기에는 지금껏 살아 온 시간과 남은 시간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당장 살려만 주십시오 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아크의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비겁하고 비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아크였지만 무의식 속에 친구들의 죽음과 론의 커다란 부상이 아크에게 렌도로스 대공에 대한 강한 적대 의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아크가 대답이 없자, 렌도로스 대공은 그것을 부정의 의미로 알아들었다. "어리석은 젊은이여 잘 가게." 렌도로스 대공은 검을 치켜 든 뒤 아크의 목을 향해 날렸다. "안 돼!" 론의 절규가 들려왔다. 그리고 대공의 검이 아크의 목에 닿는 그 때 그 순간 아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맹약의 반지에서 새하얀 빛이 폭사되었다. 봄임에도 엄청난 한기가 포르티아 항을 완전히 덮쳤다. 그리고 수천개의 얼음의 칼날이 나약한 인간의 몸을 난도질하고 인체 내의 모든 열기를 빼앗아 사람의 몸을 얼려버렸다. 얼음덩이에 갇혀 버린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그대로 얼음인 채로 폭발해 몸뚱아리가 수백개의 얼음조각 속에 분할되었다. 아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질끈 감았었던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온통 얼음 투성이었다. 핵폭발이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엄청난 폭풍을 일으킨다면, 이 얼음의 폭발은 수분을 얼려 부피를 증가 시켜 폭발시키거나, 물분자가 상당히 견고하게 뭉친, 다이아보다 강도가 높은 얼음들을 이용해 모든 것을 파괴했다. 렌도로스 대공도 아크를 막 베려 하는 자세에서 얼음 속에 속박되어 있었다. 아크와 론을 제외한 몇몇 아군이라고 아크가 생각한 사체들까지 그 모든 것이 얼어버렸다. 항구 밖 바다까지도 일부분이 얼어있었다. 이 황량한 광경에 아크는 짚이는 것이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맹약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은빛을 뿜어대던 반지는 드래곤의 힘을 차원 너머 구현 시킨 대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크라우스?" 아크는 잊어먹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맹약의 반지는 착용자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결정적 위기에서 딱 한 번 드래곤의 힘을 이끌어 낸다는 것을. 반지가 박살나 버렸으니 이제는 아크라우스와도 연결 할 수가 없다. 지구와의 매개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아크는 또 하나의 친구를 잃게 되었다. "이제 또 외톨인가? 아! 누님!" 아크는 정신을 잃은 론에게 달려갔다. 렌도로스의 말에 따르면 회복 마법만 어떻게 지속적으로 써 준다면 몇 개월은 버틸 수 있을 거라 했다. 살아날 수 없을 거라고는 했지만, 아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드래곤들이나 알고 있을 만한 고위급 재생 마법이라거나, 엘프들의 어머니 나무의 잎과 열매로 만든 대단한 치료제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것들이라면 론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크는 론의 치마를 그녀의 배까지 걷어올렸다. 그녀의 배에는 두 군데의 커다란 검상이 남아있었다. 피도 멎고 외상도 대충은 아물었지만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내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일단 얼음도시가 되어 버린 포르티아를 떠나야 했다. 드래곤도, 엘프 마을도 모두 파푸치아 숲과 우라시드 산맥에 있다. 일단은 그곳으로 가야 했다. 마차 같은 거는 없고, 아크는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자가용을 꺼냈다. 운전 면허가 없는 아크지만 여기서 그런 것 단속할 사람은 없다. 그때 론이 신음소리를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하아, 아악." "누님. 괜찮으세요?" "미안해......이런 꼴이나 보이구." "걸으실 수는 있겠어요?" "한 번 해볼게." 론은 힘겹게 일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곧 힘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결국 아크는 론을 업고서 승용차까지 갔다. "이건......뭐야?" "자동으로 가는 차에요. 여기 누워 계세요." "알았어." 론을 뒷좌석에 눕힌 뒤, 아크는 레골룸스의 시체를 찾으러 갔다. 아크에게는 신궁과 함께 그의 시체를 엘프 마을에 넘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때 아크는 볼 수 있었다.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렌도로스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것을. "......!" 아크는 죽은 줄만 알았던 렌도로스가 눈을 굴리자, 블레싱 소드를 들고 그를 없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지금까지 얼어버렸던 적들과는 달리, 렌도로스는 얼음과 몸이 일체가 되어 잘리는 것이 아닌 얼음만 베고 그의 몸부터는 블레싱 소드로도 잘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렌도로스 대공의 한쪽 팔이 얼음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졌다. "제길!" 아크는 레골룸스의 시체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차로 돌아갔다. 만약 여기서 렌도로스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이제는 죽는 것이다. 아크는 급히 차를 몰아, 이 얼음의 도시에서 빠져나갔다. -챙그랑 얼음이 유리 조각처럼 깨지고, 그 안에 있던 렌도로스 대공이 빠져나왔다. "큭! 전멸 당할 줄이야. 그나저나 정말 정체가 궁금하군. 이건 뭐 완전히 실버 드래곤의 브래스를 맞은 것 같으니......차원을 넘어왔다니 드래곤은 아닐 테고......아니지 다른 차원에 드래곤이 안 산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고 보니 젤리커 이 녀석은 여태껏 이 따위 얼음하나 못 깨고 뭐 하는 거야?" 렌도로스 대공은 모든 기사와 병사들의 죽음은 인정하면서도 소드 마스터 젤리커 공작의 생사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렌도로스 대공은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젤리커를 발견해 조심스레 얼음을 깨 주려고 했다. 그런데 젤리커의 얼음상은 대공이 건드리자마자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 산산이 부서진 얼음 조각 속에 나누어진 인간의 살과 온갖 장기들. 그것은 분명 렌도로스 대공의 친구 젤리커 공작의 것들이었다. "젤리커!" 그러나 얼음이 되어 버린 친구는 말이 없었다. 항상 만면에 여유가 넘치던 렌도로스의 표정이 침음에 잠겼다. 렌도로스는 품안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그런 다음 그는 수정구에 대고 말했다. "지금 당장 3만의 병력과 펠릭스 기사단 전체를 폴티아로 보내라. 기한은 3일이다." 친구가 죽었다. 하지만 렌도로스는 그것에 슬퍼하지 않고, 소드 마스터인 젤리커와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을 전멸시킨 아크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놈을 없애야 한다. 아직 새싹이 자라기 전에! 만약 그놈을 살려놓는다면 훗날 제국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하다." 렌도로스는 이렇게 자신을 추스린 뒤 아크가 떠난 쪽 방향을 뒤쫓아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이번 파트...... 야합니다. 오직 그것 뿐. 어덜트란 갈 정도의 난이도만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닦아주기는 예사고......노골적인 유혹에......목욕씬까지...... 참고로 이 픽션의 장르는 미연시 퓨전 판타지입니다. H한 장면을 싫어하시는 이들도 많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지만......작가놈 취향이 H 쪽입니다.(퍽퍽퍽!)최대한 결정타(?)까지 가지는 않겠습니다. 성행위 묘사했다가는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혀 고등학생놈이 어덜트란으로 쫓겨납니다. 일본 미연시 회사 스토리 쓰라면 아주 잘 쓸 자신이 있다는. 누가 섭외 안 해가나?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장면을 자제해 볼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동정을 떼면 점점 거시기 쪽으로 갈 텐데 그거 다 묘사했다가는 진짜로 작살납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론이 죽기 전 마지막을 불태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설문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이번편은 약간 진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납치......하지만 악당들에게 납치당한 여주인공만큼 므흣한 장면을 연출해내기 좋은 것도 없죠. 크크크 이래뵈어도 전직 야설작가입니다. 어둑어둑해진 늦은 밤 무렵에 아크는 트로본 성에 도착했다. 원래 포르티아 항에서 3일 거리 가량 되는 곳이었지만 폭주 자동차가 있는 아크에게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트로본 성에 들어가기 전 아크는 차를 마법 가방에 집어넣고, 거동이 불편한 론을 휠체어에 태웠다. 아크라우스가 자신을 놀리려고 넣었던 휠체어가 의외로 쓸모가 있었다. 성문으로 들어가려는 아크, 그런 그를 두 명의 경비병이 막았다. "이 늦은 밤에 뭐냐?" "나는 디그리스의 아크 페인 자작이다. 그러니 통과시켜라." 특권의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크였지만, 이럴 때 쓰기에는 작위라는 것이 유용했다. "증표를 보여주시오." 아크는 왼손을 펴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의 왼손에 귀족임을 상징하는 문장이 빛을 뿜었다. "시, 실례했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경비병들은 대번에 대접이 달라졌다. 아크는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되도록 이 문장을 써서는 안 되었다. 어디까지나 도망치고 있는 몸. 최대한 정체를 숨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렌도로스가 제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혼자서는 자신들을 찾기가 힘들다. 제대로 수색을 하자면 본국에 원군을 요청해야 했고, 수색도 그때쯤 이루어 질 것이 뻔했다. 게다가 렌도로스가 아무리 빠르다손 쳐도 자동차의 속도를 따라오기는 좀 뭐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계산이었다. 모두가 죽어버린 얼음도시에 렌도로스가 뭐하러 재미없게 원군이 오기까지를 기다리겠는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자동차를 모르던 렌도로스가 트로본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주변 도시부터 탐색 중이라는 점이었다. 이렇게 몇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트로본은 며칠 간은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사이에 도피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거나 해야 했다. 가장 큰 전투 중 하나가 벌어졌던 곳인지라, 트로본 성의 곳곳에 보수 공사중인 건물이 보였다. 아크는 여관의 표식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업도 겸업을 하는 모양이지만, 늦은 시각인지라 식당은 어두컴컴했다. 토실토실하게 살이 찐 중년의 여인이 파자마를 입은 채 눈을 비비며 카운터로 걸어나왔다. "운이 좋으시군요. 곧 문닫을 시간이었는데, 방 하나 드릴까요?" "그래 주시죠." 열쇠를 넘겨주던 여관주인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새근새근 자고 있는 론을 보고 과장된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나! 상당한 미인이네? 혹시 부인인가?" "뭐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왜 그런 것에 앉아 있죠?" "거동이 불편하셔서......한 이틀 가량 머물다 갈 예정입니다. 숙박료가 얼마죠?" "2골드 되겠습니다." "여깄소." 아크는 대금을 지불하고 거동이 불편한 론에 대한 배려로 주어진 1층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아크와 론을 보는 여주인의 후덕한 미소가 음흉하게 바뀌었다. "괜찮은 물건이군." 아크와 론이 묶게 된 방은 거대한 더블 침대가 잇는 방이었다. 원래는 둘이 각방을 써야 했지만. 거동이 불편한 론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아크는 론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바닥에 누웠다. 치열한 전투에 생전 해 본적 없는 실제 운전을 네 다섯시간이 했더니, 무진장 피곤했다. 아크는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툭툭 아크는 무언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전히 어두운 밤. "아크. 바닥에서 자지말고 이리 올라와." "아. 전 괜찮아요." "부탁이야." 부탁이라고까지 말하는 데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음흉한 생각은 들었지만. 론은 병자였다. 그런 그녀를 덮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뭐 어차피 멀쩡해도 못 덮친다. 맞아 죽을 일 있는가? 여자와 한 이불을 덮자, 아크는 기분이 묘해졌다. 론은 어미젖을 찾는 새끼 고양이처럼 자꾸만 아크의 가슴팍으로 파고 들었다. 그리고는 아크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으헉! 시, 심장이.' "심장 소리가 들려......" 론은 아크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크는 가슴팍이 축축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침 흘리고 자나?' 그러나 그것은 침이 아니었다. 눈물이었다. "왜, 왜 그러세요?" "나......죽기 싫어. 아직 해 보고 싶은 것들도 많고......너하고도 이렇게 오래 같이 있고 싶어. 그런데...... 흐흑!" 그 도도하고 강한 여성이었던 론이 하루 사이 너무나도 유약해져 버렸다. 아크는 어둠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론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훔쳤다. 그리고는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전에 누님이 절 지켜주겠다고 하신 적 있죠? 이제부터는 제가 누님을 지켜드릴게요. 절대 이렇게 죽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 말을 들은 론은 큰 소리로 오열했다. 아크는 그런 그녀를 살포시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론의 신음소리에 잠에서 깬 아크. 창가로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날이 밝은 듯 했다. 아크는 신음소리를 내는 론을 바라보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론. "어디 안 좋아요?" 정신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론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아크는 침대에 붉은 얼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붉은 액체는 론의 하체에서 흘러나오는 듯 보였다. '생리 중이신가?'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던 아크는 피의 양이 그 날이라는 것치고는 너무나도 많다는 것에 놀랐다. 이 정도는 생리가 아니라, 하혈이라고 봐야 했다. "아프면 말을 해요! 그렇게 끙끙 앓지만 말고!" 아크는 론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그녀의 하반신을 가려주던 타이즈를 벗겨버렸다. 음흉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도 양심은 있는 놈이라 무념무상의 정신으로 론의 속옷을 벗겨 내렸다. "하, 하지마 아크!" "제길! 죽기 싫다면서요? 그럼 이런 거에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나도 아픈 누님 벗겨놓고 이상한 짓 할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다고요!" 론의 하체를 본 아크. 하혈이 맞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뭘 해야 하지? 일단은 렌도로스 대공의 말을 떠올리고 힐을 사용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치료 마법 등으로 꾸준히 치료하면 버틸 수는 있다고 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론의 하혈은 멎었다. 그런 다음 아크는 피범벅이 된 그녀의 하반신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제 아래옷을 갈아 입혀야 하는데...... 급히 도망쳐 다니는 그들에게 여분의 속옷이 있을 턱이 없었다. 아크는 겉옷을 챙겨 입었다. "저기 누님. 허전하시겠지만 조금만 그러고 계세요. 필요한 몇 가지 잡화들을 사러 갔다 올게요." "검도 하나 부탁해." "예? 검이요?" "날 우습게 보지마. 아직 칼 들고 싸울 수는 있어." "알았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아크는 다녀온다고 말하며 론에게 기습 키스를 가했다. 아무래도 이런 상황을 밀월여행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어차피 론의 고백도 들었고, 볼 것도 다 본 상황인지라. 아크에게 이런 대담한 행동을 가능케 했다. 시뻘건 홍당무가 된 론을 뒤로하고, 아크는 방문을 나갔다. 그가 문을 나서자, 중년의 여관주인이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호. 점심때가 다 돼서야 일어나다니, 어젯밤 꽤나 격렬했던 모양이지?" 아크는 애써 여관주인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식사도 안 하고 어딜?" "아 밀월여행을 할 때 몇 가지 필요한 게 있어서, 사러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제 누님 좀 잘 부탁드릴게요." "누님? 혹시 친누나?" "아뇨. 연인입니다. 한 살 많아서 누님이라고 부르지요." "호호호. 알았어요." "그럼." 아크가 여관 문을 나서자, 여주인은 사람 좋아 보이던 미소를 지우며 점심때가 되려면 아직 조금은 시간이 남았음에도, 테이블을 채우고 있던 험상궂은 사내들에게 말했다. "됐어. 남자가 나갔으니, 이 사이 빨리 데려가라고." "물건은 확실하겠지?" "그럼. 그냥 내놔도 500골드는 족히 받을 만한 물건이야. 남편 말로는 거동이 불편하다고 하던데. 오히려 잘됐지 뭐 도망은 못 칠테니, 게다가 외지인들이라 들킬 염려도 없고. 칼을 가지고는 있지만 둘이서만 다니는 걸 보니 용병도 아닌 것 같으니까. 뒤끝은 없을 거야." "그래 그럼 일단 물건을 보고서 판단하지."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있던 8인의 사내들은 론 혼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크?" 누워 있던 론은 갑작스레 방문이 열리자, 반가움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들어온 남자들은 아크가 아니었다. "이야~이거 잘하면 1500은 족히 받겠는걸?" 론은 수상한 기운을 풍기는 이들에게 싸늘하게 대꾸했다. "뭐야? 당신들." "후후후. 널 귀여워해 주실 분들이지." 론은 아픈 몸이지만 애써 몸을 일으켰다.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마나의 양으로 짐작해 봐서는 별 것 아닌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검도 없고 거동도 불편한 그녀로서는 조금 힘들지도 몰랐다. 론은 손바닥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맨 앞의 문신을 한 사내를 가격했다. -퍽 "컥!" "이년이!" 동료가 하나 쓰러지자, 일곱 놈들은 일제히 론에게 달려들었다. -퍽, 퍽 론의 주먹질에 둘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 다음 론은 턱수염을 기른 사내에게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속이 뒤틀어졌다. "윽!" 론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95화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했습니다. 원래 대략 론이 단체로 당하는 것을 아크는 단지 무력하게 제압 당해 바라보면서 자신의 무력함에 환멸을 느끼게 해서 강해진다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론이 순결을 잃고 능욕 당하는 꼴은 저도 보기가 싫군요. 때문에 완전히 얼버무려 놓았습니다. 읽으시는 분들도 순결 잃는 것까지는 보기 싫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 94화 때 띄워놓은 것 치고 허무하다 싶으시면 몇 편 더 기다리십시오 비축분 상으로 98에서 99화는 작살을 내 드리겠습니다. 기말고사에 수행평가가 넘치다 보니 집필 중단 사태로 비축분(한 때 편수로 24편 정도 되었던 것이 지금은 10편 남짓 합니다)이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중보다는 연재주기를 조금씩 늦추며 버텨 볼 생각입니다. "끄흠......" 아크는 여성용 속옷 가게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막 나가는 그라지만, 역시 맨 정신으로 이곳에 들어가기는 뭐했다. 가게 앞 만 몇 번씩 왕복하던 아크는 용단을 내리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아크는 론의 사이즈는 생각도 않고 닥치는 대로 속옷을 집었다. 그리고는 벌개진 얼굴로 계산대에 섰다. 그런 아크를 보며 여점원은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2골드 33실버입니다." 아크는 돈을 낸 뒤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마지막 코스로 여성 속옷 가게까지 갔다 온 아크는 론이 기다리고 있을 여관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수시로 속옷이 바뀌어 다양한 CG를 볼 수 있으리라 란 생각이 든 아크. 아직도 제정신 못 차린 모양이다. 여관에 도착한 아크. 그를 맞는 것은 울상이 된 여관주인이었다. "이를 어째." "왜 그러십니까? 아주머니." "어떤 불한당 같은 놈들이 처자를 잡아갔어." 여관주인은 정말 실감나게 연기를 했다. 론이 잡혀갔다는 말에 놀라는 아크. "예에? 그놈들 어딨습니까?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누님을 잡아가?" "그게......나는 잘 모르고 얘! 게덴." "예 아줌마." 여관주인의 부름에 게덴이란 이름의 사내가 주방에서 나왔다. "그 녀석들 잘 다니는데 안다고 했지?" "그놈들이 또 여자를 잡아갔습니까? 이런! 형씨. 따라오슈." "알겠습니다." 아크는 게덴이란 사내의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둘이 나가버리자, 여관주인은 안색을 싹 바꾸었다. "사내 녀석도 얼굴은 쓸만하니까. 가격은 좀 나오겠군." 애초에 이 모든 것이 여관주인과 불한당들의 흉계였다. 사실은 방금 전 아크를 데리고 나간 게덴도 불한당 중 한 명이었다. 여관주인이 론이 잡혀간 곳을 쉽게 알려 준 것은 동행을 조용히 처리해서 뒤끝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자를 잃어버린 사내놈이 모 여관에서 잃어버린 여자를 찾는다고 설치고 돌아다닌다면 사람 납치 당한 여관에 누가 숙박하러 오겠는가? 그러기에 그들은 아크까지 확실하게 처리하려 한 것이다. 아크는 그런 흉계도 모른 채 마냥 사내의 뒤를 따라가고만 있었다. "오우! 이것 봐! 안 입었어." "이거 꼴리는데? 지금 한 번씩 돌릴까?" 세모진 얼굴에 얍삽해 보이는 사내가 만류했다. "이봐. 혹시라도 처녀면 어쩌려고 그래? 값이 팍 떨어지잖아." "얌마! 남자랑 단둘이서 같은 침대 쓰고 팬티도 안 입은 년이 처녀일 리가 있겠냐? 이쁜 것들이 밝히기는 오히려 더 밝힌다고! 게다가 이 정도면 처녀가 아니더라도 초호화 프리미엄이라고!" 론은 자신을 앞에 두고 품평회를 하는 놈들에게 그 부위를 보이지 않기 위해 다리를 모았다. 다행히도 놈들은 론이 기절한 줄 알고, 아무런 속박의 조치를 취해 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평상시라면 상관없었겠지만 지금 속이 완전히 뒤틀린 상황에서는 묶인 것을 힘으로 풀 수가 없었다. "크아악! 난 더 이상 못 참아!" "야! 순서는 정해야지!" 대머리 문신의 사내가 론을 덮치려 했다. 그러자 론은 속이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뻗어 대머리의 턱을 날려버렸다. "뭐야?" 인신매매범들은 각자 흉기를 하나씩 꺼내들었다. 론은 기절한 척 하고 있을 때 감춰 놓았던 나뭇가지를 들고 힘겹게 일어났다. "이게!" 턱을 맞고 나가떨어졌던 대머리가 무기 없이 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론은 나뭇가지에 정신을 집중시켜 소드 오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무식하게 돌진해 오는 대머리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 썩어도 준치라고 다쳐서 거동이 불편하기는 해도 론은 소드 마스터였다. 렌도로스에게 찔린 부위에는 단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그녀는 아직 오러 블레이드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론은 동료의 갑작스런 죽음에 쫄아 있던 불한당들에게 덤벼들 수가 없었다. 제자리에서 다리 쪽은 거의 움직이지 않으며 싸우는 방어적 검술은 몰라도 보법을 이용한 적극적으로 검을 다루기에는 그녀가 당한 상처의 제약이 너무 컸다. 걸을 때마다 찔린 상처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 왔기 때문이다. 나뭇가지에 푸른 오러가 서리자. 불한당들은 론에게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하지만 론도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본 실력을 너무나 빨리 드러낸 것이 화근이었다. 저 불한당 놈들이 먼저 공격을 해 와야 최소동작으로 통증 없이 적을 벨 수 있는데 말이다. 놈들은 론이 섣불리 공격해오지 않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드래곤 문신의 털복숭이 사내가 몽둥이를 들고 론에게 달려들었다. 방금 전 동료의 죽음은 우연일 거라 생각하며. 하지만 두터운 몽둥이가 나뭇가지에 잘려나가 버리자, 사내는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바뀐 생각도 잠시. "커억!" 사내의 몸은 어깻죽지부터 시작해 대각선을 잘라져 버렸다. 피를 뿌리며 죽는 사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감히 날 팔아 넘기려고 해? 덤벼 죽여 줄 테니." 론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인신매매범들을 도발했다. 하지만 동료 둘의 처참한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그들은 감히 론에게 함부로 덤벼 들 생각을 못했다. 론은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또 힘을 잃고 쓰러져 버릴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덤벼들자면 상체가 더 엉망이 되어 죽음의 시간이 앞당겨 지거나, 건달들을 채 다 처리하기도 전에 고꾸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선택권은 남아있지 않았다. 론은 극심한 고통을 참아내며 놈들을 향해 쇄도했다. 남은 건달들은 총 다섯 명. 한 번에 처리하려면 큰 기술을 써야 했다. "월영......큭!" 나뭇가지에서 폭사되던 검기가 건달 둘밖에 베지 못하고 끊겼다. 마나 소모가 심한 기술을 아픈 몸으로 그것도 그냥 검도 아닌 나뭇가지로 시전을 했더니, 엄청난 마나의 소모로 인해 방대한 체내의 마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던 론에게 씻을 수 없는 내상을 입힌 것이다. 쓰러지는 론, 그리고 그런 그녀를 살아남은 건달들은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여기가 그놈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오." 어느 문앞에 다다선 게덴의 말에 아크는 급히 문을 열려 했다. 그러던 아크는 무언가가 자신의 옆구리를 쑤시고 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크의 옆구리에는 예리한 단검이 박혀 있었다. "뭐, 뭐요? 당신." "알 필요 없어. 죽어!" 게덴은 아크의 옆구리에서 칼을 뽑아낸 뒤, 아크의 목을 노렸다. 아크는 옆구리의 출혈을 손으로 막으며 단검을 피했다. 블레싱 소드의 오토 스펠 힐로도 치료가 안 될 만큼 상처가 깊었다. "그레이트 힐!"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아들고 외쳤다. 그러자 강력한 6서클의 그레이트 힐이 발동하여 아크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런 다음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게덴의 단검을 든 팔을 잘라버렸다. "크아악!" "빨리 꺼져라. 죽이기 전에." 한쪽 팔과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아크에게 덤비기란 무리였다고 생각했는지, 게덴은 피를 뚝뚝 흘리며 도망쳤다. '제발 별 일 없기를......' 아크는 이렇게 기원하며 평소 꼭 해 보고 싶었던 게임속 명대사를 날리며 문을 열고 뛰어들어갔다. "거기까지다. 범죄자!" 핏자국이 낭자하고 네 구의 처참한 시체. 그리고 핏자국이 없는 비교적 깨끗한 구석에 그것을 꺼내놓고 있는 세 놈들. 동료가 넷이나 죽었음에도 놈들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나눠먹을 몫이 많아졌다며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뭐야? 넌." 그나마 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있던 두 놈이 아크의 침입에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 둘이 비켜나자, 그들이 에워싸고 있던 곳에는 입과 그것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하얀 전라의 몸을 마찬가지로 전라의 사내에게 주물럭질(?)을 당하고 있는 론이 있었다. "......!" 론의 하혈. 하지만 아크는 그것을 그녀의 순결의 상실일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분노 순수한 살육의 충동이 일었다. 방금 전 자신에게 칼 맛을 보여준 게덴마저도 살려서 보내줬던 아크였다. 웬만한 이들은 정말 살려서 고이 보내 주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리엔느를 능욕했다던 폴티아 공 이후로는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분노였다.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를 뽑아 들었다. "운디네!" 아크는 운디네를 불러내어 여차하면 자신에게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던 세 놈에게 물을 뿌렸다. "뭐야? 저놈 꽃나무에 물주남? 죽여!" 각자 무기를 들고 덤비는 두 건달들. 아크는 그들을 스치듯이 베었다. 그러자 두 놈은 그대로 얼음 속에 갇혀 버렸다. 그러자 론의 몸을 마사지 중이던 뚱보가 일어났다. "아이스 미사일!" 아크는 뚱보가 일어나자, 그 즉시 아이스 미사일을 날렸다. 뚱보의 배때기에 박힌 얼음의 창은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인간의 육편과 피 그리고 장기가 터져 나가면서 분할되었다. 그리고 아크는 그 피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아크는 시선을 얼어서 굳은 두 놈에게로 돌렸다. "히이익 사, 살려주십시오!" 이제야 두 건달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본 아크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부처가 아니다." ---------------------- 지금은 사라진 원래의 95화 내용들 -이것도 삭제했습니다. 부작용이 너무 커서...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공지... 으아 정말 이렇게 공지하기는 싫지만...... 이 공지는 출판 삭제공지입니다......뻥입니다 믿지 마세요. 하지만!!! 오늘 학교를 하루 빠지고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서울에서 출판계약을 하고 왔습니다. 올때는 새마을호를 타고 왔는데 시간이 무궁화호 4시간 반 새마을호 4시간 10분이 걸리더군요. 그것도 새마을호는 영등포에서 출발했는데도 그럽디다. (학생 할인도 안되고 10000원 더 낸 것 아까워 죽겠음. 이런 망할 한국철도! 서비스라도 최상급이면 또 몰라! 새마을호 고작 발 디딤대하고 한 채널밖에 안나오는 티브이 밖에 없더이다. 우리 영세민 기차 비둘기와 통일호를 살려내라!!!) 약 8월 중으로 나올 것 같으니 빨리들 읽으십시오. 에 인간유희록 제목을 공모해 볼 생각입니다. 일단 출판사와 제가 몇가지 생각해 놓은 것과 독자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설문조사를 해서 결정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리플로들 많이 달아주십시오. 괜찮다 싶으면 설문조사 사항에 올리렵니다. 수정에 관한 것 말입니다. 어색한 것들이 많지만 연재분에는 그다지 큰 수정을 가하지 않을 생각입니다.(왜냐고요? 책 나오면 거기서 수정된 것 읽어보라는......잭 나이프 파워밤에 대가리가 깨진다 커헉!) 비평은 항시 받습니다. 기억해 뒀다가 비평리플 날린 분들에게 칼심을!(퍽! 꾸아악! 로블로를 맞고 쓰러진다)은 아니고 기억해 뒀다가 원고에 수정할겁니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들 현재 주인공 아크녀석 예전에 비겁함이 사라졌다? 당장 선작취소를 누르고 싶더라도 조금만 더 참아주십시오. 비겁함? 얍삽함? 아니지 이 자식 점점 더 막갑니다. 변호사(호모는 뺍시다 나머지 변과 사의 의미는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됩니다. 하지만 그런 녀석에게도 진지함이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되겠죠. 그러니 잠시 진지하게 해 놨습니다. (의외로 주인공이 진지한 영웅스타일인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작가! 너 이 쉑! 론 죽이면 뒈진다 하시는 분들 그건 모르죠......(퍽! 퍽! 퍽!) 설문조사로 조금 마음은 기울었습니다. 너무 야한 거 아니냐? 솔직히 이게 야합니까? 안 야하죠? 그렇죠? 그리고 성행위 묘사 일절 없습니다. 굳이 성행위를 하는 장면이라면 대충 얼버무릴겁니다. 비 수정판 어덜트란에서 보고 싶다. 저 가입 안됩니다. 그리고 차라리 성인사이트에서 야설을 보십시오. 야설은 잘 안 보지만 사이트 추천은 해 드릴 수 있습니다.(사실 추천할 것도 대부분 아실 만한 유명한 사이트들입니다)결정적으로 론이 능욕당하는 씬 자체를 애초에 제가 보기가 싫어서 지워버렸습니다(신빙성 17% 한 마디로 안 지웠다는 것을 믿으시는 게 좋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온갖 퇴폐적인 성인물이 깔린 제 컴퓨터 안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다는) 그럼 새꺄 궁금하게 밑부분은 왜 올렸어! 마음껏 상상에 나래를 펴시라고......(스윗친 뮤직에 이빨이 날아간다! 커허허헉!) 진부해지는 것 같은데? 으음 할 말 없습니다. 그저 참고 기다리시거나 정 그짓거리 하기 싫으시다는 분들은 연재분이 쌓일 때를 기다려 주십시오. 스토리상으로 이 부분 (약 3권 내용 즈음)이 약간 뻔하다 싶은 내용입니다. 처음의 뭔가 참신하다 싶은 내용을 갈망하신다면 연재분 100회가 넘어간 이후를 권해드립니다. (흠 맨 처음 질문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고등학생이라면서 야설 써도 되냐? 대한민국은 신체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 만쇠이!! 섬마을김씨. 섬마을 선생님 따라한 아이디 아니냐? 무슨 말씀을. 원조는 접니다. 제 초기작인 순수문학의 이단. 하렘 로리 귀축물 '섬마을김씨'에서 따온 것으로 제가 중 3때 집필한 소설입니다. 근친 아동 강간이라는 정말 엄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두 권의 노트 분량에서 집필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묻어버렸는데 최근 다시 찾아내었습니다. (모 야설사이트에서 섬마을김씨라는 야설이 나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같은 야설은 맞지만 저와는 무관합니다. 학교 친구들에게 니가 쓴 거 아니냐는 의심 정말 많이 받았다는.) 총 안쓰냐? 안쓰는 이유는......아직까지 설명할 만한 타당한 이유를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번 밝혀 두건데 총은 일반 병사들에게는 정말 수백대 일의 살상력을 발휘할지는 모르지만 기사급 인물들이나 원거리 공격 방어마법이 걸린 옷이나 갑옷을 입었다면 별 다른 타격이 없습니다라는 설정입니다. 미연시 어디서 받아요? 저 같은 경우는 웹하드 네오폴더를 씁니다. 지금껏 해오던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를 접고 나니 매달 내던 정액료 가지고 유료로 이것저것 빠르게 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너 변태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여러가지 의견은 유조아 메시지나 이메일 longlongcom@hanmail.net으로 보내주십시오. 다음 편 97회는 7월 2일 내에 올라올겁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아크는 얼어 있는 그들의 남성의 상징을 잘라내 버렸다. "내가......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두 건달의 양팔이 잘려나갔다. 얼음 속에 갇혀 얼어붙어 있던 부위인지라, 피가 솟지 않았다. 피 마저 얼어버린 것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 주는 것뿐이다." 어차피 얼음 속에 갇힌 것만으로도 얼음을 깨 주는 이가 없으면 동사해 죽을 운명이었다. 얼음 속에 갇히게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크였지만, 추위에 떨며 얼려 죽이는 것보다는 지금 그 구차한 생명을 거두어 주는 것이 나을 지도 몰랐다. 건달들의 양팔과 다리를 모조리 잘라 내 버린 아크. 맨 정신으로 자신의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봐야 했던 건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것을 본 아크는 계속해서 죄책감이 일었다. "미안하다. 하지만......이미 이렇게 된 이상 너희들도 죽는 것이 속 편할 거다. 날 용서하지 말아라." 두 건달의 목이 굴러 떨어졌다. 피는 나오지 않았다. 분명 그들을 죽이지 않고도 아크에게는 그들을 처분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분노에 휩싸이자 죽이겠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찝찝한 마음을 대충 가라앉히고 아크는 론에게 가서 그녀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 액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도 그 짓은 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크는 마법 보고가 형상화 된 가방에서 사왔던 속옷을 꺼내어 론에게 입혀주었다. 역시 이 세계에서 힘이나 사회적 배경이 약한 여성들에게는 아름다운 외모란 것은 오히려 저주였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슬프다. 그토록 강인하고 믿음직스러웠던 론이 이제는 자신이 없으면 혼자서 걷지도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살아만 준다면 오히려 고마울 것이다. 이미 그녀는 1년을 채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기에...... 대공의 주문보다 빠른 이틀만에 포르티아 항에 도착한 팬크라프트의 제 3차 폴티아 원정대. 바다의 거리야 팬크라프트에서 하루만 소모하면 닿는 가까운 폴티아 항이었지만. 비상 소집으로 단 하루만에 이 많은 병력이 집결. 선박을 타고 건너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준비기간도 길었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폴티아 반도에 대한 대대적인 점령 작업을 시작했다. 3만의 포르티아 주둔군과 기사단들이 모두 전멸하고 총독까지 회생 불가능한 부상을 입고 도주 중인 폴티아 반도의 도시들은 하나 같이, 성문을 열고 팬크라프트 군대를 반가이 맞아 들였다. 특히 렌도로스 대공이 동부를 치기 위한 전진 기지로 사용할 땅인 폴티아를 군수기지로 만들 계획을 전쟁에 대한 내용은 교묘히 빼고 집중 투자하겠다고 선전하자, 오히려 폴티아 반도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팬크라프트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을 반기는 눈치였다. 만약 이곳에 지구의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 같은 민족이 살았더라면 당장 의병 전쟁이 일어났겠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없었다. 아니 없을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팬크라프트 군은 폴티아 점령작업과 동시에 두 남녀를 전국적으로 공개 수배령을 내렸다. 이들을 신고하면 엄청난 상금과 함께 작위까지 내린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자, 폴티아에서는 용병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눈에 불을 켜고 이 두 남녀를 찾아다녔다. -푸슉 "끄아아악!" -뎅겅 "거, 검이!" 아크는 6명의 용벙들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번만 벌써 세 번째였다. 그리고 아크는 이런 용병들과 싸울 대마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살인을 꼭 해야만 했다. 살인멸구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과 론이 위험했다. 이곳은 폴티아의 북부 지역으로 아직 팬크라프트 군이 점령하지 못한 곳이었다. 하지만 중남부 쪽에서 아크와 론을 추격해 온 자들도 있었고, 그들 덕분에 소문이 퍼져 이곳 북부에서도 아크는 이렇게 용병들과 맞서야 했다. "크하악!" 마지막 남자를 반 토막내고서야 아크는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주변에는 아크 덕분에 시체가 된 이들이 아무렇게나 내장을 쏟으며 널려져 있었다. 그나마 일반 병사 급 정도 되는 이들만 공격해 왔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죽은 쪽은 아크와 론이 었을 것이다. 아크는 시체들을 수거해 내장은 집어넣어 주고 목은 다시 붙여 준 다음, 명복을 빌어 주었다. 언제 쫓길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라 삽이 있어도 묻어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 때문에 죄 없는 목숨을 잃었으니 최소한의 예는 지켜 주었다. 론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살인이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게임에서도 먼저 자신을 공격해 오는 플레이어는 공격해 죽여도 성향이 나빠지지는 않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버텼다. 하지만 팬크라프트 군이나 렌도로스 대공에게 따라잡힌다면? 게임 오버다. 원래 계속해서 차로 도주했다면 길이 좀 닦이지 않고 먼 거리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고는 쳐도, 벌써 파푸치아 숲으로 돌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신매매범들과의 싸움에서 더 망가져 버린 론은 길도 제대로 안 닦여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버티지를 못했다. 때문에 그 둘은 걸어서 도망칠 수밖에는 없었다. 이제 얼마 안 가 따라잡히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대규모적 전투도 늘 공산이 컸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액션 영화처럼 강행 돌파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처럼 아스팔트 도로가 잘 깔린 곳이 아니다. "서브 머신 건!" 아크는 배낭에서 서브 머신 건과 탄환들을 호출했다. 이것들이라면 어떻게 버틸 수는 있으리라. 아크는 기절한 듯이 자고 있는 론의 휠체어를 밀며 다시 길을 떠났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폴티아 북부의 제일 큰 도시 엑쿠스 성이 보였다. 아크는 엑쿠스에 있다는 주신의 성당을 찾아갔다. 일단 엘프들의 신목의 산물로 나온 포션을 사용해 보기로 했지만, 혹시라도 차선책이 있다면 그것도 사용해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 리저렉션 따위의 부활 마법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다행히도 여기에는 자신들의 초상화가 붙지 않아, 아크는 챙이 넓은 장의사 모자를 벗고 다닐 수 있었다. "여기는 장애인 보호도 모르나?" 성당은 100계단이 넘는 계단 위에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등을 위한 평평한 오르막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별 수 없군." 아크는 론을 두 팔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아크의 품에 안긴 론이 아크의 뒷목을 껴안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를 계속해서 볼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아크는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 도착한 성당에는 여러 수녀와 신관, 사제들이 나와 있었다. 그 중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흰 수염에 대머리의 신부가 뒤이어 나와 말했다. "하이 프리스트 님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로?" 이제는 아크도 신관 취급받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하이 프리스트 급 신성력을 가진 이'란 수배 타이틀이 붙은 아크가 나는 하이 프리스트라고 사기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크는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제가 아니라. 이것에서 나는 신성력일 겁니다." 론을 들고 있는 터라, 뭐라 가리키기가 뭐했던 아크는 고갯짓으로 블레싱 소드를 가리켰다. 그런 다음 다시 휠체어를 꺼내 론을 앉혔다. 신관들은 갑자기 나타난 휠체어보다는, 아크의 블레싱 소드에 더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 기대와 호기심에 부응해 주기 위하여,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꺼냈다. 그러자 한 수녀가 놀란 듯이 외쳤다. "저, 저건 주신의 성검!" "뭐라?" "혹시 교황 친위 성기사단 단장이십니까?" "아닙니다만." "그렇다면 성자? 오오! 주신의 성자가 이 세계에 구원을 주시러 왕림하셨도다." '당최 먼 뻘소리야?' 전설에 의하면 '주신의 성검'이라 불리는 이 블레싱 소드는 수 천년 전 한 신관 소녀에게 내린 신탁으로부터 알려져 왔다. 두 창조신 중 주신 아서스는 이 소녀로 하여금 세 자루의 성검에 대해 언급하였고, 이 중 두 자루는 세상에 내보내 자신을 따르는 이들의 증표로, 나머지 한 자루는 마왕의 강림 등 세계에 위협이 닥칠 때마다 선택한 성자에게 빌려 주었다고 한다. 지상에 내려온 두 자루의 블레싱 소드는 모두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신앙이 가장 깊은 동제국과 서제국의 기사에게 각각 수여되었다. 그러던 중 동제국의 블레싱 소드의 주인은 사악한 마룡 아크라우스의 사냥에 동원되었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그 검의 행방도 묘연해져 버렸다. 어쨌던 간에 블레싱 소드는 한 자루만이 남게 되었고, 교황 친위 기사단의 발족과 함께, 서 제국에 신앙이 높은 기사에게 내려지던 전통을 혁파하고 교황 친위 기사단장에게 대대로 물려져 내려오게 되었다. 물론 그런 것을 알 턱이 없던 아크는 맘대로 생각하란 식으로 신관들의 망상의 세계를 애써 짓밟지 않았다. "맘대로들 생각하슈. 그나저나 용건이 있는데." "아! 예. 어서 이리로." 아크는 신부의 안내에 따라 성당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흠 여기 이 아가씨를 치료해 줄 수 있겠습니까?" "멀쩡해 보이는데 어디가?" "외상은 제가 치료했습니다만 내상이 완치되지를 않았습니다." "으음. 마인드 아이!" 신부는 마법을 사용하여 론을 살폈다. 한참을 살펴보던 그는 곧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런 상처라면 제 능력 가지고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습니다." "역시......"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허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크에게는 용건이 남아 있었다. "혹시 리저렉션 마법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리저렉션!" 신부는 갑자기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다시 제대로 돌아왔다. 출판사에서 훔쳐(?)온 TGP 재밌더군요...기말이라 공부해야 하는데...... 여관주인년이 안 죽은 이유는 인신매매범들을 모두 죽여 버린 뒤인지라 배후를 캐지 못했고 캘 시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하긴 성자님이시라면 아실 수도 있겠군요. 리저렉션은 부활의 마법입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것은 주신뿐이지요. 전설로만 내려져 오는 데다가 실제 사례도 없어 저 정도의 직위가 아니면 신관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마법입니다." "으음." 이것도 역시 예상대로였다. 게임에나 전투 불능자를 부활시키지, 여기서는 죽으면 그대로 끝이다. 부활이고 뭐고 없는 것이다. 혹여나 창세기전 같은 게임에서 나왔던 달 등이 있을 리도 없고. "혹시 자기 희생 주문은?" "흠. 그것까지 알고 계시다니 의외로군요. 그것은 5서클 이상의 신성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신관이라면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입니다만 대가가 자신의 생명력이지요. 팍삭 늙어버리는 것은 예사고, 나이가 좀 먹은 신관이라면 심지어는 죽기까지 하니 누가 쓰려고 하겠습니까?" 아크는 눈이 번쩍 뜨여졌다. 생명이 아니라 조건이 생명력이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서 절대 늙지 않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늙지도 않고 론을 살릴 수 있거나, 설사 늙더라도 긴긴 삶이 있으니 열심히 무공을 쌓아 젊어지면 되지 않는가? 아크는 주저 없이 블레싱 소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새크리파이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성자님." "어라? 이게 왜 안 되지? 새크리파이스!" 그러나 여전히 블레싱 소드는 반응하지 않았다. 블레싱 소드는 엄청난 신성력이 깃든 검이다. 게다가 여러 신성 마법의 주문도 걸려 있어. 6,7서클의 고위급 회복마법까지 사용케 해 주는 그런 검이었다. 원래 신성마법이란 것이 신앙과 신성력에 밑바탕을 두고 있는 지라. 그다지 많은 마나의 소모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게다가 원체 마법이라는 것이 용언처럼 체내의 마나를 끄집어내는 것이 아닌, 외부의 마나를 이용하는 힘이고 또 그것을 다스리는 정신력의 힘이었기에 아크는 자동적으로 마법을 써 주는 블레싱 소드로 신성 마법을 남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새크라파이스(자기 희생 주문)의 경우는 이야기가 좀 틀리다. 다른 마법과는 다르게 이 기술은 생명력을 끄집어내 타인에게 주는 것이다. 하지만 마법을 쓰는 주체는 생명력이 존재하는 아크가 아닌 블레싱 소드다. 무생물인 검에 생명력 따위가 있을 턱이나 있겠는가? 마나와 신성력만을 이용하는 마법들은 블레싱 소드가 알아서 처리를 해 주었지만 생명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블레싱 소드로서는 도저히 새크리파이스를 시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애초에 이런 딜레마 덕분에 새크리파이스 주문조차도 걸려 있지 않았다. 만약 아크가 뱀파이어릭 세이버를 선택했다면, 말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생명력을 흡수해 버리는 그 검은 응용만 잘한다면 역으로 생명력을 뽑아낼 수 도 있었다. 뱀파이어릭 세이버라면 충분이 론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사악한 기가 몰린 생명력이라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론 정도라면 그 정도는 중화시킬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아크가 알 턱이나 있었을까? 신부는 이러한 딜레마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 새크리파이스를 쓸 정도의 수준에 오르려면 상당한 수련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한 마디로 론 대신 희생시킬 신관을 찾지 못한다면 신성력에는 기댈 것이 없다는 소리였다. '젠장. 이럴 줄 알았더라면 라이하르트 같은 어리버리한 신관 꼬맹이 하나 사귀어 두는 거였는데!' 아크는 R소설에서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전례가 있었음을 떠올리고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당시 주인공의 여인을 자기 희생 주문으로 살려 준 것은 주인공이 친하게 지내 놨었던 신관 꼬맹이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크는 간략한 인사를 남기고 론의 휠체어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저기 성자님!" 갑작스런 신부의 부름에 아크는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그 삽은 어디서 나신 겁니까?" 아크가 항상 등에 매고 다니는 8신기라는 미심쩍은 타이틀이 붙은 케인이 준 삽. 장의사 앤더가 가지고 있던 네크로맨서 시르옹이 썼다는 수식어도 참 많이 붙은 그 삽. "누가 줬습니다만." "으음 그 삽에 엄청난 사기가 몰려 있습니다. 성자님께서 가지고 계실 만한 물건이 아닌 것 같군요." 엄청난 사기가 있다는 말에 아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진짜 이 삽에 뭔가가 있나? "뭐 그렇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겁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아니 될 물건이지요." "그러시다면." "그럼 이만." "살펴 가십시오. 성자님." 끝까지 아크를 성자라 부르는 신부. 아크는 졸지에 성자가 되었다. 자네멘. 아크가 영지로 하사 받은 곳이자, 폴티아 반도와 우라시드 산맥, 파푸치아 숲을 잇는 관문도시이며 디그리스 원정대의 첫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제 이 도시를 지나면 아크의 판타지 세계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파푸치아 숲이 나온다. 이 숲에 들어가기 전에는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어야 했다. 숲은 이전에도 겪어보았듯이 상당히 넓었다. 행군도 약 한 달 반이 걸렸듯이 이번에도 그 미만의 시간이 걸리란 법은 없다. 때문에 여러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미리 구입해 둬야 했다. 여러 과일, 빵, 고기, 생선, 야채들을 구비해 놓고 파는 식료품점. 식료품점을 지키던 노파는 뭐 그리 할말이 많은지 아크와 론을 앞에 두고 재잘재잘 수다를 늘어놓았다. 그러다 론까지 어느덧 짝짜쿵이 되어 가지고 같이 수다를 떨어댔다......역시 여자의 본성은. "아니? 그런데 뭘 이렇게 많이 사가? 이걸 다 먹으려구?" "장기간 여행에 필요해서요." "장기간 여행? 참! 밀월여행 중이라고 했지? 어디로 가는데 그래?" "파푸치아 숲이에요." "뭐? 파푸치아? 이런......파푸치아 가는 쪽 방향은 어제부터 웬 무장한 병사들이 못 가게 막고 있던데?" "예에?" 뜻밖의 정보였다. 숲 쪽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니. "그 병사들은 어디 소속인지 아세요?" "사람들 말로는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이라고 하더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미 중 남부 쪽은 팬크라프트가 거의 다 차지했다는 구만. 뭐 우리 같은 무지렁이야 그저 나쁜 영주가 와서 너무 심하게 뜯어먹지만 않는다면 야 별 상관은 없지만." 팬크라프트 군은 미리 이곳 자네멘으로 와서 파푸치아 숲에 가는 길을 봉쇄하고 있었다. 뒤늦게 출발한 그들이 아크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한 이유는 포르티아 항에서 레니아 항을 잇는 지름길 항로를 타고 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팬크라프트 육군은 아크를 따라잡기에는 한참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병력의 일부를 해상 항로로 보내어 아크의 도주를 미연에 차단해 둔 것이다. 낭패였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로 그냥 돌진해서 뚫는 수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 방법은 성공확률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냥 잡혀버릴까?' 레골룸스나 기사단 동료들은 모두 잊고, 그냥 팬크라프트 쪽에 붙는 것도 고려해 보는 아크. 일단 붙고 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엘프 마을에 간다고 하면서 그대로 행방을 감춰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했다. 하지만 이제 렌도로스 대공은 아크에게 별 미련을 두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배 전단에는 보는 즉시 사살이란 문구가 있었다. 아직까지 마음을 두고 있었다면 가급적 생포란 문구가 씌여져 있었을 것이다. 도망 밖에는 길이 없다. "......" 론과 아크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어서......! 오! 성기사!" 카운터를 지키던 케인은 예의 그 썩은 미소로 손님을 맞다가 들어온 손님을 보고서는 반색하며 말했다. "안녕. 케인." "오 그래? 뭘 시키겠나?" "여관업도 개시했다고 하던데 방 하나 줘." "그 쪽 여자 분은?" "한 방으로 줘." 케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열쇠를 건넸다. "좋아. 209호로 가 특별히 싸게 해 주지." "어. 그전에 지난번 그 식사 좀 풀 코스로 내 주고, 환자에게 잘 맞는 죽 좀 끌여다 줘." "돈은 있겠지?" 케인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물론이다. 정 없으면 다시 싸울까?" "하하 농담이다. 농담. 식당 수리비가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뭐 음식값은 조금 깎아 주마." 무전취식으로 맺은 인연이지만, 아크와 케인은 마치 10년 지기라도 되는 듯한 친분을 과시했다. 문 닫기 바로 이전의 늦은 시각이라, 식당 테이블에는 단 한 사람의 손님도 보이지 않았다. "어이 늦은 시각이라고 다 쓰고 남은 떨거지 재료로 엉망진창을 해서 만들어 오는 것 아냐?" "그 대신 가격을 싸게 주는 것 아니냐?" 케인도 왠지 오르게 웃기는 놈이다. 지금껏 몇 마디 나누어 보지 않은 대화이지만 그의 말속에서 아크는 어딘가 모르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자 먹어라." 두 음식접시가 테이블에 놓여졌다. "이거 네가 만든 거냐?" "그럼. 물론이지."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어 보이는데?" "맞아. 코 판 손으로 저었고 밑 닦고 손도 안 씻었어." "뭐 비듬은 안 떨어졌겠지." 아크는 케인의 대머리를 훔쳐보며 조소를 흘렸다. 식당 하는 놈이 아무리 위생관념이 없어도 그런 손으로 음식을 만들었겠는가? 그것을 케인의 약점 대머리로 반박해주자, 케인의 웃는 낯짝이 조금은 이그러졌다. -끼이이익! 그때 식당 정문이 열리고 우중충한 검은 코트를 입은 한 거구의 사내가 삽과 관짝과 웬 종이를 한 장 들고 들어왔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기대하시던 장면 등장입니다...결정타는 100회특집으로...기말고사가 7월 5,6,7,8로 닥쳐 온 관계로 7월 7일 까지 연중하고 8일날 복귀하겠습니다. "나 왔다 케인." 굳고 묵직한 낮은 음성의 사내. "어 형 왔어?" 케인의 형인 장의사 앤더였다. 앤더는 들어오자마자 테이블에 앉고는 구겨진 종이 전단을 펼쳐보았다. "뭐야? 그게." "수배자 몽타주. 으음?" 앤더의 시선이 몽타주에서 식사 중인 아크와 론에게로 옮겨졌다. 몽타주를 본 케인 역시 아크와 론을 바라보았다. 앤더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케인에게 말했다. "죽이자." 그런 앤더의 제안에 케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왜냐?" "형이 시체독에 걸렸을 때, 치료해 준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야. 은인이 왔는데 은혜를 갚지는 못할망정 죽이면 안 되지." "으음." 앤더는 거대한 몸을 천천히 의자에서 일으켰다. 그리고는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아크에게 다가갔다. 테이블 앞에 당도한 앤더는 싸늘한 눈초리로 아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이에 질 세라 아크도 앤더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앤더는 입을 열었다. "감사한다." 앤더는 전혀 감사하다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체 앤더는 감정을 잘 표현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주름이 약간 풀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앤더의 쑥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한 가지 묻겠다." "뭐요?" 앤더는 말 없이 몽타주를 아크에게 건넸다. 몽타주를 건네 받은 아크는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유를 듣고 싶다." "긴데? 들으시려오?" "상관없다." 아크는 팬크라프트 군의 기습부터 시작된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아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자, 앤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뭐를?" "도와 주마." 케인도 아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분간 이곳에서 숨어 지내. 나중에 기회를 봐서 탈출 시켜 줄게. 형을 살려준 보답이다." "보답이라면 이 삽을 받았다만?" "입은 은혜는 뭘로 갚아도 모자란 법이다. 게다가 무슨 나쁜 짓을 해서 쫓겨다니는 것도 아니고 말야. 난 충분히 도와 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고맙다 케인." 아크는 케인과 앤더가 도와 준다는 말에 진심으로 감격했다. 아무 생각 없이 베푼 은혜 덕에 이런 외롭고 위험한 상황에서의 지지자가 생기다니...... 아크는 이 형제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단 말을 전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일단 여태껏 먼 길 도망치느라 고생했을 테니 푹 쉬고 있어. 방법은 우리들이 시간을 두고 구상해 볼께." 그렇게 아크와 론이 방으로 들어가자, 케인은 근심스러운 얼굴로 앤더에게 말했다. "어떻게 탈출시키지 형? 파푸치아 숲 가는 길은 완전히 막혔다고 하던데?" 장담을 해 놓고는 봤지만 케인에게도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앤더는 자신 만만한 표정(사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섭게 굳은 표정이지만 케인 만큼은 앤더의 굳은 표정에서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낼 수 있었다)을 짓고 있었다. "걱정 마라." "무슨 뾰족한 수라도?" "나 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뭔데?" "그건 나중에." 론을 데리고 들어온 방. 아크는 열쇠를 넘겨주던 케인이 짓던 음흉한 미소의 의미를 방에 들어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낯뜨거운 무늬의 이불과 벽지(우뚝 선 송이버섯이 조갯살에 박혀 있는 모습이라고만 해 두자. 더 이상은 묘사 불가) 거기다 밧줄에 채찍, 양초로 밝힌 불, 각종 기구들(?) 그리고 한켠에 놓여진 씻을 수 있는 공간. 이건 뭐 P테이프하고 CD(모 피임기구의 약자)만 없다 뿐이지, 완전 러브호텔 아닌가? 아크가 이런 호화찬란(?)한 분위기에 익숙해 하지 못하고 있을 때, 휠체어에 앉아 있던 론이 아크의 옷을 잡아당겼다. "왜 그러세요? 누님." 론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말했다. "......나 씻을래." "예? 아! 예." 잠시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던 아크는 론의 말뜻에 '나 씻을 테니 나가 있어'란 뜻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아채고 방문을 열고 나가려했다. 그런 아크의 뒤통수에 심장을 폭발시킬 만한 론의 대사가 들렸다. "씻겨 줘." '씻겨 줘? 뭘? 씻겨주라고? 뭘? 저 성숙한 여체를?' 아크의 전산처리망은 완전히 과열되어 폭주하기 시작했고, 그 여파가 말초 신경에 전달되었다. '치, 침착해라! 운디네로도 얼마 듣지 씻겨 줄 수 있지 않은가? 누님도 그걸 염두해 두고 한 말일 거야.' 이성의 속삭임. '다, 당연히 직접 씻겨 주길 원하는 것이겠지. 날 좋아한다고도 했고, 운디네로도 목욕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면 뭐 땜시 여태껏 말 안 하다가 씻는 시설에 와서야 말하겠어?' 본능의 부추김. 한참 이 두 가지 이념이 아크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던 중 간신히 한 가지 타협안을 찾아내었다. '그, 그래 씻겨는 주되. 같이 씻지는 말고,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덮치지 말자. 뭐 다섯 살 먹은 꼬맹이나, 양로원의 거동 불편하신 할머니 정도라고 생각하자고, 그럼 되는 거 아냐?' 그러나 론의 성숙하고도 탱탱한 나신을 보고도 그런 마음가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크는 론을 휠체어에서 들어 한 평 남짓한 배수 시설이 있는 욕실로 데려 갔다. "저기 혼자 옷 못 벗으세요?" -끄덕 거동을 못하는 누님 보살피는 일이지만. 이렇게 성적인 접촉이 많으면 당연히 사심이 생기는 법이다. 아크는 떨리는 손으로 론의 겉옷을 벗겼다. 여기까지는 어떻게 잘 했는데 속옷이 문제였다. 론의 가슴을 속박하고 있는 천을 풀어 헤치는 아크. 론이 가슴은 생각 외로 크긴 커도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이제 마지막 옷이다. 머뭇거려지는 손. 론의 하혈 때는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아크였지만 이렇게 겉은 멀쩡해 보일 때는 정말...... "......이건 어떻게 안 될까요?" "알았어." 론은 힘겹게 아래 속옷을 벗었다. 지난 번 납치 당했을 때 무리하게 무공을 남발한 대가로 론은 걷는 것도 더욱 힘들어졌고 그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팔 등의 상체까지도 불편해져 버렸다. 이제는 아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이 더욱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욕조에 물이 있기는 했지만 수도나 샤워기 같은 것은 없다. 한 마디로 한정된 물을 가지고 씻어야 한단 말이었다. 하지만 아크에게는 운디네가 있었다. 아크는 운디네를 불러내 론의 몸에 물기를 적셔주었다. 이 다음은 비누칠 그러나 이 세계에는 비누는 없고 슬라임 류 몬스터에게서 체취한 젤류의 세제를 쓰고 있었다. 성능은 좋지만 감촉이 미끈미끈 뭐시기한 것이 흡사 능욕 H물에서 가끔 나오는 그것 같았다(뭣하므로 대명사로만 밝혀 두겠다) 등부터 시작해서 하나 같이 비누칠하기 아니, 젤 칠하기 묘한 부위들이었다. 전철 치한들이 주로 주물러대며 느끼는 엉덩이, 목......도 왠지 모르게 위험하고, 팔은 좀 괜찮았다. 자 대충 됐다. "앞에." "푸헉!" 아크의 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랬다. 앞이 남아 있었다. 하나같이 자극적인 그 앞이. 아크는 코피를 대충 멎게 하고 젤을 론의 머리에 비볐다. 일단은 머리 감기기로 시간을 벌어보자. 어찌어찌해서 시간을 끌기는 했지만 앞은 칠해야 했다. 아크는 론의 뒤에서 손을 뻗어 젤칠을 했다. 일단은 배부터. "세심하게 해. 구석까지 잘 안 되잖아." '세, 세심?' 심장은 터질 듯이 쿵쿵거리고, 남성의 성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랐다. 별 수 없었다. 아크는 앞으로 돌았다.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촉촉하게 젖은 론의 남색 빛 긴 생머리는 그 나름대로 섹시함을 자랑하고 있었고, 지그시 감은 눈은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균형 있는 새하얀 나신에는 송골송골 물방울들이 맺혀 있었다. 대충 끝난 배는 그만두고 일단은 겨드랑이부터. "으음......간지러." "아! 네, 네, 넷!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었다. '다, 다리! 그래 일단 다리를.' 잘 빠진 새하얀 다리. 아크가 혐오하는 새다리류는 아니었다. 조그만 목욕의자에 다리를 모으고 있는 형태라 위부분과 배쪽 밖에는 칠하기가 뭐했다. '다리 안쪽도 해야 겠지?' 아무 생각 없이 모아진 론의 다리를 벌리는 아크. 그러자. "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복귀했습니다. ...... 시험은 끝났지만 앞으로 바쁠 것 같습니다. 줄어든 비축분 채워서 3권 분량 맞춰야 되고... 이것 저것 뜯어고쳐야 되고 처녀작 섬마을김씨도 리메해야 되고 7월 15일에는 또 모의고사까지...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 제목 공모합니다... 성행위 장면은 자진 검열로 얼버무려집니다. 하지만 애무는 별 상관 없겠지요. "커허억!" 그것이 보였다. 요새 들어 자주 보기는 했지만 성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인지라 볼수록 기분이 뭐했다. '무념무상, 무념무상.' 아크는 눈을 감고 안쪽 다리로 젤 칠을 해 주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는 부작용으로 정확한 위치를 재지 못한 아크의 손가락 끝이 그곳에 닿아 버렸다. "꺄아!" "컥! 죄, 죄송!" 대충 다리가 끝났다. '이제......가슴인가?' 타올도 수건도 없이 손으로 젤 칠을 하던 아크였다. 수건 같은 거라도 있으면 그것이 약간이나마 방어를 해 줄 수 있는데, 이건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수건이 한 장 있기는 했지만, 여기서 써버리면 나중에 물기를 못 닦아내지 않는가? 아크는 손이 가슴에서 가장 예민한 부위에 닿지 못하게 손바닥을 쫙 펴고 젤 칠을 했다. 그러다가 아크는 오른손의 중지와 무명지 사이에 론의 가슴에서 돌출 된 부분을 속박해 버리고 말았다. "거기도 칠해 줘." "푸웁!" 멎었던 코피가 다시 흘렀다. 그것도 이젠 쌍으로. 아크는 집게손가락으로 론의 가슴에 달린 그것을 칠해주었다. 이건 완전히 목욕을 핑계 댄 애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대충 젤 칠이 끝나자,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직 남았잖아!" "어디......떠헉!" 그랬다.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남아 있었다. 회음혈이 지나가는 바로 그 부위. "저기요. 이건 정말......힘겹더라도 누님이 좀 알아서 하시죠." "피 흘릴 때는 닦아 줬잖아?" "그거야! 수건이라는 방어막이라도 있었죠! 이건 완전히 애무라고요!" "......알았어 손에다 젤 좀 묻혀 줘." '진작 그럴 것이지.' 아크는 론의 손에 젤을 묻혀두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허 고놈의 목욕 한 번 시키기 더럽게 힘드네. 그때 아크의 귀에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흠......아아아! 음!" 무슨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본 아크는 정말 속옷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아크는 차마 론이 계속 그 짓을 하게 놔둘 수가 없어, 즉시 론의 행동 저지에 들어갔다. "아 그만 해요! 한 두 번 칠하면 됐지! 몇 번을 문질러대요!" "으응. 미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푸욱!" '기분이 좋아? 어디가? 기분이 좋아? 거기가?' 아크는 정말 쓰러질 것 같았다. 무슨 놈의 다 큰 여자 목욕시키기가 말 안 듣는 꼬맹이들보다 더 힘든지(사실 힘들기는 힘들다) 그래도 젤 칠까지 한 이상 대충은 끝났다. 욕조에서 몸을 담근 다음. 때밀이를 하는 것이 한국의 목욕 전통이지만 이 세계인인 론에게 까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으리라. "저기 아크." "넵." "넌 안 씻어?" "푸헉! 괘, 괜찮아요. 운디네로도 할 수 있고......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제가 옷까지 벗고 있으면 정말 누님 어떻게 해 버릴지 모른다고요." "그럼......그렇게 하면 되잖아." "커헉!" '이, 이 여자 대체 왜 이래?...아니? 가만. 지금까지 이렇게 엄한 짓거리를 유도해 낸 건...설마 유혹이었던 건가?' 일리가 있다. 방금 전 론의 젤 칠(이라기 보다는 어떠한 행위)을 봐서는 아무리 거동이 불편하다지만 그런 간단한 손놀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유도 충분했다. 론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고, 자신도 론에게 리엔느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그녀가 육체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라고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아크의 머릿속에는 음흉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후후. 그러십니까아? 방금 전 그 말은 덮쳐도 별 상관없다는 긍정적 의사표현으로 보이는데요?" 하체 출혈 등 론이 아픈 것이 걸리기는 했지만, 론 쪽에서 원하고 있었으니 아크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이제 부터는 그가 변태역할을 맡아 줄 때였다. 론은 아크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이 녀석이 옷에 막혀서 구부러지는 바람에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아크는 그것을 속박하던 옷들을 전부 벗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에게도 물을 뿌린 뒤 대충의 젤 칠을 마쳤다. 젤 칠을 마친 아크는 론을 욕탕 바닥에 눕히고 그녀의 양 다리를 잡아 벌렸다. "후우 처음이라 긴장되는군요." "나도."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다치신데는?" "별로 안 괜찮아." "예에? 그럼?" "죽기 전에 너하고 한 번쯤은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그 말을 들은 아크는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아크는 그대로 일어나 물기가 남아있음에도 옷을 그냥 주워 입었다. 그리고 정말 화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왜 그렇게 죽을 생각만 하는 겁니까? 예? 내가 친구들까지 죽여가면서 지키려고 하는 그 목숨을! 살려 준다잖아요! 아니 살려 낼 거라고요! 누가 죽게 내버려 둘 것 같아요? 사람이 칼에 찔렸을 때 왜 죽는 지 알아요? 그건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놓아버리기 때문이에요! 정신을 놓으면 몸이 살겠다는 의지 또한 약해지고 결국 죽어 버린다고요! 정신 차리고 살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면서 치료를 받으면 살수가 있다고요! 그런데 왜! 자꾸만 그렇게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요! 왜!" "......" "젠장! 누군 고자라서 여태껏 참고 있는 줄 압니까? 그놈의 내상만 다 낳으면 해달라는 대로 다 해 드릴게요! 아니 싫다고 해도 강제로라도 해 버릴 거에요! 그러니까 그딴 소리는 제발 지금 하지 말아요." 아크는 뭔가 상당히 엄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던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할 모양이다." "쩝 좋겠다. 해달라는 여자도 있고, 나 같으면 그냥!" 옆방에서는 두 형제가 추잡스럽게 벽에 달라붙어 아크와 론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준비 됐다." "음...벌써?" "성안 수색이 시작됐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야." "쩝. 이렇게 편히 뒹굴면서 공짜밥 먹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아크의 푸념에 케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빠져나가자는 거죠?" 론의 질문에 앤더의 얼굴에 부끄러움의 표정이 어렸다. 물론 아크와 론이 보기에는 변함 없이 무서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케인만은 그 표정의 변화를 알아챘다. "지금은 밤이다." "그래서 그냥 밤에 몰래 빠져나가자고? 저쪽에는 무뇌충만 있는 줄 아쇼? 밤에 어둡고 경계가 느슨할 때 도망치려 할 것쯤은 그쪽에서도 다 알고 대비를 세워 놨을 텐데?" "나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뭔데요?" "따라 와라." 앤더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아크와 론 그리고 케인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따라간 곳에 있는 물건과 앤더가 제시한 작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아암!" 팬크라프트의 신출내기 병사 폴렌덴 이병은 나오는 하품을 입으로 막았다. "졸리는가?" "예? 아닙니다. 두베르안 님." "사실대로 얘기하게. 나도 졸리니까 말이야. 제길 그 따위 년놈들 때문에 어쩌다 기사인 나까지 이 지랄을 해야 하는지 원." 자네멘 성의 동문을 지키는 두 인물. 이병 폴렌덴과 펠릭스 기사단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두베르안. 원래 성문지기 같은 일은 일반 병사들의 일이었지만 도주하는 인물이 병사들 쯤은 쉽게 죽이고 지나갈 수 있는 자였던지라, 기사 급의 인물들까지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기사와 병사가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검은 모자를 푹 눌러 어느 두 명의 거구가 성문 앞에 다가왔다. "뭐냐?" "이곳을 지나가야겠다." "로브를 벗어라!" 두베르안의 강압적인 명령에 두 거구는 모자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헉!" 폴렌덴 이병은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모자를 벗은 한 남자의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고, 또 한 남자는 얼굴에 숯검댕이가 묻은 것처럼 화상의 흔적이 있는데다가 눈깔이 회까닥 돈 것이 괴인의 전형이었다. 두베르안도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이 앞의 두 남자가 자신들이 찾던 남녀가 아니기에 긴장을 풀었다. 이 두 거구가 찾는 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이유 없이는 그 누구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령이 하달된 이상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이들이라고 보내 줄 수는 없었다. "숲으로 가는 길은 막혔다. 돌아가라!" 앤더는 눈동자를 정상으로 돌리고 음침하게 말했다. "가야 하오." 폴렌덴 이병은 눈동자가 없는 줄 알았던 사내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안도하다가 이 두 거구가 끌고 온 것을 보고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과, 과, 관!" "관?" 케인과 앤더의 덩치와 그림자에 가려졌던 두 개의 관이 달빛을 받아 그 모습을 드러냈다. "뭐냐? 너희들은?" 앤더는 말 없이 한 장의 종이서류를 두베르안에게 주었다. 그 종이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장의사 길드 공인 1급 장의사 성명 : 앤더 태이커 위 사람은 장의사 길드 공인 1급 장의사임을 증명함 장의사 길드 마스터 모데카이. "자, 장의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앤더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용건이 무엇이냐?" "시체 묻으러 가야 한다. 파푸치아 숲 깊숙한 곳에 공동 묘지가 있다." "무슨 숲에다 공동묘지를 만드는거냐? 숲에 있는 공동 묘지라면 구울들이 파먹을 텐데?" "우리 집 근처에는 공동 묘지를 만들지 말라는 님비 현상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음......관속을 한 번 볼 수 있겠나?" "망자를 모욕하고서도 오래 사는 놈 못 봤다. 볼 테면 봐라." 두베르안은 관을 살펴보다가 관속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좋다. 지나가라." 설마 싶었던 두베르안은 통행을 허가해 주고 말았다. 앤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폴렌덴 이병이나 두베르안이 보기에는 별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앤더와 케인은 관을 질질 끌고 성문을 지나갔다. "푸하! 정말 고맙다!" 아크는 관에서 뛰쳐나왔다. 그런 다음 앤더가 끌던 관에서 론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앤더가 장의사라는 것을 이용. 매장을 핑계로 관속에서 은신하고 있었던 론과 아크.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혹시라도 관을 열어볼까 싶어서 흰 천도 두르고 관속에 시체 썩는 냄새까지 나게 했더니 다행히도 경비들은 관속까지 열어서 확인하지는 않았다. "어서 도망가라." "알았어 케인. 이 은혜는 웬만하면 잊지 않을게." "무사히 도망쳐라."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불빛 삼아 휠체어를 밀며 파푸치아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앤더와 케인은 각자 관과 삽을 짊어지고 자네멘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형제는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새벽 나절. 자네멘 성문에 거의 당도한 앤더와 케인은 다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는 성문을 넘어가려 했다. 성문은 여전히 두베르안과 폴렌덴 이병이 지키고 있었다. "여 장의사! 잘 묻고 왔나?" -끄덕 "밤새 수고들이 많았겠군. 들어가게." -끄덕 앤더와 케인은 두베르안의 말에 고개를 한 번씩 끄덕거려 주고는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지나가고 시야에서 사라지자, 폴렌덴 이병은 두베르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두베르안 님." "왜 그러나?" "뭔가 좀 수상합니다." "수상? 뭐가?" "저들 분명 관을 가지고 갔다가 도로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두베르안님께서는 시신을 관에 넣어서 가져가 놓고 그냥 시체만 파묻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니 그랬다. 시신을 관까지 함께 파묻어야지. 어째서 관은 도로 끌고 왔나? "젠장! 이보게! 어서 병사들을 이끌고 저놈들을 잡아오게! 아 그리고 지금 즉시 병력을 숲으로 투입하라고 해. 아무래도 보기 좋게 당한 것 같다!" 급히 수색작업을 명하는 두베르안. 형제의 절약정신이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키고 말았다. 엘프 마을은 숲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크가 있는 파푸치아 숲 서쪽 끝은 군대의 빠른 행군 식 걸음으로 약 한 달 반 가량이 걸리는 거리였다. 물론 대충 잘 닦인 오크들 길로 갔을 경우이지만. 휠체어를 끌고, 그것도 무작정 수풀 속을 헤치고 간다면 도무지 며칠이 걸린다고 장담할 수조차 없다. 뭐 단 둘 뿐이니 소집 따위가 필요 없고, 자유로우니 빠를 수도 있을 테지만. 그것도 정상인한테나 해당하는 말이지, 론과 같은 병자가 있는 한은 결코 빠를 수가 없다. 길이 험하다 보니 휠체어가 튀어나온 나무 뿌리나 돌등에 부딪히면서 상당히 많이 흔들거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론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한참을 말없이 숲 속을 거닐었다. 그러다가 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크.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일단 엘프 마을로 가려고요. 그곳이라면 신변도 보호받을 수 있고, 또 엘프들의 신목에서 나는 치료제를 사용한다면 누님의 내상도 고칠 수 있을지 몰라요." "저기......" 론이 '저기'란 말을 내뱉고는 뒤끝을 흐리자, 아크는 상당히 불안해졌다. 저 소리나올 때마다 꼭 엄한 일이 터지고는 했다. "왜요?" "우라시드 산맥으로 가지 않을래?" "에? 산이요?" "응. 거기에 사부님도 계시고 사부님 친구 분이신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님도 계셔 어쩌면 이 내상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흐음."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기에 아크는 별 고민 없이 결론을 내렸다. "뭐 그럼 일단은 북쪽으로 가 보죠. 우라시드 산맥도 북쪽에 있고 엘프 마을도 북쪽에 있으니 둘 중 어느 것에 먼저 도착하느냐로 정해요." "그러자." 아크는 휠체어의 방향을 북방으로 돌렸다. "뭐? 숲으로 도망을 쳐?" "면목 없습니다." 3일 후 자네멘을 점령해 폴티아 반도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장악한 팬크라프트 제국. 그 선봉에 서서 자네멘으로 달려 온 렌도로스 대공은 아크와 론이 숲으로 도망쳤다는 말에 골머리가 아파왔다. 이것을 대비해서 미리 군사들을 보내 놨던 것인데 이 멍청한 놈들이 놓쳐 버린 것이다. 때문에 드넓은 파푸치아 숲을 샅샅이 뒤져야 하지 않는가? 정말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그래서 행방은 잡아 놨나?" "마법사들의 추적 결과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이동 속도가 매우 느려 한 사흘 정도 죽어라 뒤쫓으면 따라잡을 수는 있을 듯 합니다." "그런데 넌 여기서 뭐하고 있어?" "예?" "네놈도 찾아! 부대장이라고 부하들 숲 속에다 집어넣고 네 녀석은 놀고 있어? 대장이라는 놈이 모범을 보여야 군기가 서고 기강이 바로잡히는 것 아냐? 어서!" "예, 예!" 렌도로스의 신경질적인 호통에 기사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이러한 팬크라프트 군의 추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크와 론은 한가롭게 저녁 식사 중이었다. "자, 아 하세요." "아." 아크는 숟가락에 비비며 식혀 두었던 라면을 론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렇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먹여주는 것 받아먹는 것도 꽤 괜찮은데?" "나 참. 이 정도는 힘들어도 직접 움직이시라고요." 불평은 했지만 그래도 목욕시키는 것만큼이나 힘들랴? "그나저나 이거 맛있다." "맛은 있어도 1개월 내내 이것만 드셔 보시죠. 그래도 맛있단 소리가 나오나." "국물도 좀 떠 줘." "나 참! 알았어요. 입 벌리세요." 아크는 국물을 떠서 입으로 몇 번 호호 분 뒤 론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앗 뜨거!" 몇 번이나 불었음에도 뜨거웠던지, 론은 그것을 다 삼키지 못하고 옷에다 흘렸다. "나 참 완전히 애기라니깐 우리 애기 착하지! 가만있어." "맞는다!" "후후 이젠 때린다는 소리도 별로 안 무섭습니다만?" "이, 이!" 론은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아크는 능글맞은 태도를 고수하며 론을 놀렸다. "으이구 우리 애기 또 삐졌어? 응 착하지? 화 풀렴." "죽을래!" 론은 정말 화난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악!" 일어서자마자 배를 움켜쥐고 휠체어에 쓰러지듯이 앉는 론. 아크는 그런 론이 걱정되었다. "괜찮아요?" 아크가 론에 안부를 물으며 근접하자, 론은 아크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아직 이 루네아 공작님은 건재하시단 말씀이야." "후후 역시 이런 게 누님다워요." "치이. 그나저나 면 불잖아. 빨리 먹여 줘." "네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대략의 식사를 끝내고 아크는 론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잘 자요." "너도." 아크는 노숙스킬을 이용해 아무 땅바닥에나 자리를 잡고 누웠다. "별은 많은데 잠은 안 오고......" 병자인 론에게 필요한 최대의 휴식시간에 맞추다보니 당연히 일찍 자야 했다. 그러나 '밤새기'란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던 아크로서는 그러한 생활 리듬이 맞지가 않았다.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 때우기를 몇 시간. 피워 놓은 불이 태울 것이 없어서 진화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여기다!" "컹컹컹컹!" "......!"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소리와 개소리가 들리고 아크가 누워 있던 숲 속의 공터는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기사 복의 기사 4명, 10명 가량 되어 보이는 병사들, 그리고 지팡이를 든 마법사로 보이는 남녀 한 쌍. 그리고 두 마리의 군견들. 개들을 제외하고 그들 모두는 왼쪽 가슴에 팬크라프트의 불사조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 쥐새끼들!" "사람새끼다 이 멍청한 놈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므흣한 도피생활 크하하하하하하하! 비축분 고갈 2회 남았습니다......용량을 줄여서 버티는 수밖에는 이제 없나......노트에 써 둔 것을 옮긴다면 비축분이 약 106회까지 갈 분량이 되는데......이제 이것들이 올라가면 당분간 연중이라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됩니다. 탈고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원고 수정보다는 새로운 내용 쓰기에 주력해야 할 듯 싶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목 공모를 받습니다. 월요일 즈음부터 설문조사가 시작될 예정이오니 설문에도 많이 참가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연재분 내용은 엄청나게 엿 같은 내용을 제외하고는 별 다른 수정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수정 요청만을 받습니다. 아크는 자신과 론을 쥐새끼라 지칭한 기사에게 한 번 톡 쏘아준 뒤 프로즌 아이스와 블레싱 소드를 뽑아 양손에 들었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저 정도 적이라면 도저히 아크로서는 이길 수 없었다. 아크는 다리춤에 매어 놓았던 서브 머신 건과 베레타에 생각이 미쳤다. 이것들을 쓴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총소리가 난다면 모든 적들이 이곳으로 몰려 올 것이다. '일단 프로즌 아이스하고 블레싱 소드로만 싸워 보자.' "아이스 월!" 아크는 먼저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없는 론을 아이스 월로 감쌌다. 그러자 선두에 선 한 기사가 말했다. "호오? 이런 상황에서도 싸우겠다는 건가?" "덤벼 이 개쉐들아!" "훗! 공격! 죽여도 상관없다!" 기사와 병사들이 일제히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후방의 여마법사는 아크에게 슬로우 마법을 걸었다. 그러나 아크로니아표 브로치는 슬로우 마법을 가볍게 튕겨냈다. "아이스 월!" 아크는 병사들을 얼음 장벽 속에 가두었다. 기사들을 가두어 두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었지만. 기사들은 오러 블레이드로 너무 쉽게 얼음 장벽을 깨부술 수 있었다. "아이스 미사일!" 아크는 아이스 미사일을 기사들과 마법사들에게 날렸다. 마법사들은 매직 실드에 기사들은 대 마법 방어 갑옷 덕에 피해가 없었지만, 최소한의 시간 끌기 용은 될 수 있었다. 아크는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계속해서 빙한 계열 마법을 남발했다. "멜트!" 남자 마법사의 해동 주문이 발동되자, 얼음 장벽에 갇혀 있던 병사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지미!" 아크는 아이스 미사일의 방향을 병사들에게 돌렸다. 대 마법 방어 갑옷을 입지 않은 그들이라면 먹히리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챙, 챙! "뭐야?!" 병사들에게는 모두 매직 실드가 걸려 있었다. 때문에 병사들도 아이스 미사일에 꼼짝하지 않았다. "C8!"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높이 치켜들고 병사들에게로 돌진했다. "파이어 애로우!" 막 병사들에게 달려가던 아크는 다섯 발의 불꽃 화살이 일으킨 폭발에 휘말렸다. "잡았다!" 환호성을 지르는 마법사. 하지만 폭발의 먼지가 걷히고 나자, 아크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아크는 14명의 기사와 병사들에게 둘러 쌓여 버린 뒤였다. "지미럴!" 팬크라프트 군들의 맹공. 아크는 반격할 새도 없이 그들의 검에 여기저기를 베였다. 세 병사의 무기는 분질러 놨지만 블레싱 소드의 치료 속도가 못 따라갈 만큼 상처가 늘어났다. "프리징!" 아크가 발동시킨 프리징 마법. 프리징이 발동되자, 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병사들이 동태가 되어 사망해 버렸다. 하지만 마법을 너무 남발한 탓에 이제는 마나 고갈로 인한 체력의 부담이 느껴졌다. 4인의 기사들은 아크가 쉴틈도 없이 달려들었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간신히 그들의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푸슉! "끄악!" 옆구리가 깊게 베어졌다. 블레싱 소드로도 못 치료하는 부상이었다. 출혈이 생겼다. 안 그래도 어지러워지던 정신이 더 흐리멍텅해 졌다. 그나마 생존에의 본능이 아크를 계속해서 버틸 수 있게 했다. "지독한 놈!" 네 명의 익스퍼트 급 기사들의 맹공에도 블레싱 소드의 도움으로 아크는 제법 많은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컹컹컹!" "으르르르!" "으아악!" 두 마리의 군견이 갑자기 달려와 아크의 양팔을 이빨이 부러지도록 물어뜯었다. 덕분에 아크는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놓치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블레싱 소드가 없으니, 개들이 문 곳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 출혈이 심했다. 거기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나무에 세게 찧어 머리의 출혈도 있었다. "하아, 하아." 역시 블레싱 소드가 없으니 급격한 체력의 저하가 느껴졌다. 아크를 불운에서 구해 주던 맹약의 반지도 이제는 없다. '내가......이렇게나 무기력한 존재였던가?' 네 명의 기사와 두 명의 마법사는 아크가 완전히 다운되었다고 생각하고, 아크의 처분문제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환 블레싱 소드! 프로즌 아이스!" 적들이 한 눈을 팔고 있는 사이, 아크는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다시 불러내었다. 다친 곳이 회복되고 새 힘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아크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마자, 기사들의 공격에 또 다시 검들을 놓치고 쓰러져 버렸다. 한 기사가 그런 아크의 목에 검을 겨누고서는 말했다. "그 투지는 칭찬해 줄만 하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군. 제 분수를 모르는 죄 사형이다." "좃까!" -탕!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기사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구멍을 뚫은 총알은 그의 뒤통수에 거대한 구멍을 내며 그의 머릿속에 들었던 것들을 모두 꺼내어 놓았다. "꺄악!" 여마법사의 비명. 그리고 남은 이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아크에게 덤벼들었다. -탕! 두 번째 총알이 기사의 가슴에 맞았다. 하지만 총알은 철판 갑옷 외에는 뚫지 못했다. 팬크라프트야 총에 대해 생소했지만 동부의 루드비안 제국은 비밀리에 총기를 제작 보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와는 달리 총은 방어 마법 주문이 걸린 철판 갑옷이나, 미스릴, 드래곤 본 등으로 만든 고급 갑옷을 완전히 뚫지 못하거나 갑옷을 꿰뚫더라도 갑옷에 보호되고 있는 인간의 몸뚱아리에 타격을 주지 못하였다. 특히나 아크로니아표 브로치와 같은 원거리 공격 완전 무효화에 대해서는 아예 타격을 주지 못해, 그저 활 보다 조금 더 연사력과 파괴력이 좋은 원거리 무기 정도로 취급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오러 아머라는 오러 블레이드의 응용기술로도 충분히 총알을 막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갑옷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부위라면! -탕! 세 번째 총성은 정확히 기사의 볼을 맞추었다. 그 역시도 뇌수를 흘리며 쓰러져 죽었다. 기사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보고서는 아크의 총이 쏴지기 전에 아크를 베려 했다. -탕! 탕! 탕! 사격 실력이 부족했던 아크는 달려오는 표적을 정확히 맞추지 못하고, 한 발은 불발 두 발은 머리가 아닌 갑옷에 맞추었다. 이제는 총알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아크는 서브 머신 건을 갈겨대었다. 여러 발의 총알들 중 기어이 한 발 씩을 기사들의 머리에 명중시킬 수 있었다. "켓! 총으로 판타지 세계 제패하는 스토리만큼은 가기가 싫었는데 뭐 대략 쓸 만은 하군." 아크는 머신 건을 집어넣고 다시 블레싱 소드를 집었다. 남은 두 명의 마법사는 어쩔 줄을 모르고 아크에게 계속해서 마법을 날렸다. 하지만 적중되는 마법은 하나도 없었다. -푸슉! "으아아악!" 아크는 남자 마법사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난 원래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나를 죽이려고 작정한 놈들이라면 모르지만 이렇게 다리를 잘라 놨으니 더 이상 나를 추격하지는 못하겠지." 아크는 힐링으로 마법사의 잘려진 다리의 상처를 아물게 했다. 그 다음으로 아크는 여자 마법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얼굴은 그다지 미인이라고 볼 수는 없었지만. 겁을 집어먹은 모습이 꽤나 귀여워 보였다. "여자를 죽이고 싶은 생각도 없어. 하지만 어떻게라도 당신을 이곳에 속박해 두어야 정보가 새 나가지 않을 테지. 어떡할 거요? 살인멸구 당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그냥 입 다물래요?" 그런 아크에 말에 대한 여마법사의 대답은 매우 터프했다. "익스플로전!" 엄청난 화염이 숲을 뒤덮었다. "제길!" 안 그래도 총소리도 낸 터인데 불까지 일다니! 아크는 녹아 내리는 얼음벽 속에서 론을 구해낸 다음. 아직 어두운 숲 속을 향해 달려갔다. //////////////////////////// 왜 아크가 여마법사를 살려두었나? 사랑하는 여자와 소중한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었는데... 여기에 대한 작가의 변입니다. 아크는 인권을 매우 소중하게 여깁니다. 때문에 자유를 통제받는 군 생활을 매우 싫어했으며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한 마디로 내가 살려면 너를 죽여야 한다. 이런 상황이 아닐 시에서는 사람을 웬만하면 죽이려 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악당이더라도 인간의 목숨은 기본적으로 고귀한 것이며 누구도 함부로 심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러한 그의 신념은 아크가 강해지는 것에 대한 장애요소로도 작용하며 후반 내면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소지로 작용합니다. 왜 살인을 싫어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일단은 아크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를 이유로 들겠습니다. 온라인 게임들은 대체적으로 PK는 악한 행위로 규제하고 몬스터의 사냥은 권장하는 체제를 취합니다. 또한 배틀로얄의 광팬이었기에 죽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판타지와 무협소설을 거의 꿰뚫고 있어. 기존의 무조건적으로 죽이는 주인공들에 대한 반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외적인 이유이고 실제로는 지구에서의 삶 중에 아크가 무의식적으로 닫아 버린 기억에 진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후반에 드러납니다.(이 설정은 후반 은근슬쩍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만...) 하지만 기사들은 왜 싸그리 죽이고 마법사들은 살리는 조치를 취했나? 이것은 아크로니아표 브로치의 영향으로 마법에 타격을 받지 않는 아크가 마법사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으니 굳이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죠. 그리고 아무리 보아도 죽이려는 적이 미인이면 머뭇거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인간의 생명이란 것이 매우 고귀한 것이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빼앗아서도 안 되는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제 사상이 글에 녹아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겠지요. 살인을 우습게 보시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데 상당히 위험한 사상입니다. -마지막으로 므흣한 도피생활 파트는 이걸로 끝입니다. 앞으로는 성행위 장면도 조금씩 등장하는데 정밀묘사는 아쉽게도 없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102화의 반응...후...씁쓸했습니다. 살인을 절대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어떠한 이유에서든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물론 아크의 행동은 정당방위였지만 여마법사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마법으로는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법이 먹히지도 않는데 마법사를 죽일 필요가 없었죠. 이 다음화에서 사건이 벌어질 겁니다. 아마 이쪽에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교훈을 조금이나마 아크가 깨닫게 되는 사건 말입니다. "진진! 진조! 진호! 진영! 진기! 진위!" 청년은 목놓아 형제들을 불렀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이미 대답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불타는 사문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농담을 주고받았던 문파의 식구들의 시체가 처참한 몰골로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모두가 알아 볼 수조차 없게 갈가리 찢겨지고 훼손된 시신들 중 청년은 한 시신의 정체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사부님까지......" 그 모두가 죽어 있었다. 아니 살아 있는 이가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자는 자신에게 살기를 품고 있었다. 본능이 말했다. 도망치라고, 저자와 맞서지 말라고. 사문과 사부 사형제들의 복수도 생각나지 않았다. 살아야 했다. 살아서 저들의 비밀을 밝혀야 했다. 그래서 그는 도망쳤다. 네 명의 괴마인이 한 청년을 집요하게도 쫓아왔다. 경공술만큼은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사흘 밤낮을 쉴 새 없이 도망치는 것만큼은 무리였다. 그런 청년의 앞에 은백발의 머리를 휘날리는 노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노인은 청년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가 자네를 살려 줄 터이니.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 볼 텐가?" 청년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노인의 제안에 응했다. 이미 그에게는 선택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노인은 청년을 뒤쫓아오던 네 명의 괴마인의 앞길을 막아섰다. 그리고는 마인들에게 물줄기를 날렸다. 어디서 물줄기가 나가는 지는 몰랐지만 과연 저런 물줄기로 네 명의 괴마인들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청년의 오판이었다. 물줄기는 괴마인들의 몸을 관통하여 그들의 생명을 너무나도 쉽게 앗아가 버렸다. 정말 엄청난 고수였다. 물을 이용한 무공을 사용하는 노고수. "가, 감사합니다. 저 존함이......" "은룡선생 아크라우스라고 하지." "은룡선생 아구라우수?" "푸후 웃기는 놈이로고. 어찌되었건 나는 분명히 너의 목숨을 구원해 주었느니라."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은 선배." 청년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러나 노인은 청년의 진심 어린 포권지례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이런 자네의 운명을 바꿔 버릴 사람에게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뭐 쓸데없는 걱정인가? 어찌 됐건 자네와의 계약대로 이행하지." "새로운 세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자 이거 받게." "웬 반지입니까?" "항시 가지고 있게 불운으로부터 자네를 지켜 줄 것이야." 노인은 반지를 꺼내 청년에게 준 뒤. 괴상한 언어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년은 왠 빛무리가 자신의 몸을 감싸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수도가 함락되고 수 백 여년의 역사를 지닌 루티안이 멸망해 버렸다. 루티안의 마지막 실력자. 도리안 루네아 공작은 렌도로스에게 사망한 뒤였다. 왕궁이 파괴되었고 왕족과 귀족으로 분류되던 고귀한 여식들뿐만 아니라, 루티안의 수도 페투니아의 많은 죄 없는 백성들까지 성적으로 유린당하거나 재미를 위한 살육에 처참하게 죽어갔다. 최소한 약자였던 전례가 있었던 팬크라프트가 조금이라도 포용을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키운 제국은 이제 빼앗은 자가 되어 이전에 그들이 당했던 것들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역시 인간사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루티안에게 억압과 수탈을 당하던 팬크라프트를 보다 못해 한순간의 객기를 부린 것이 실수였다. 그런 상념에 빠져 불타는 도시를 거닐고 있을 때, 그는 어린아이의 시체를 안고 다니는 한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소녀는 팬크라프트의 기사 갑옷을 입은 그에게 경계의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 따위는 무시하고 소녀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난 널 해치지 않는단다."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 소녀의 눈빛에는 아이다운 순수함 따위는 추호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세상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 뿐. 그는 반강제적으로 소녀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몇 년간 소녀에게 검을 가르치며 같이 생활하자. 소녀는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그에 비례하여 소녀의 복수심은 커져만 갔고, 그가 소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여 란 말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부터 잘못되었다. 1000년을 수련했던 그가 스스로 사문의 원수를 잊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런 그가 복수는 부질없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봐야 얼마나 신빙성이 있었겠는가? 그리고 소녀는 결국 무의 경지를 이루었다. 그리고서는 복수의 길을 걸어갔다. 그는 그런 소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아야 했다. "으음. 또 이 꿈을." 3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40년 전 약소국이던 팬크라프트의 정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약소국 팬크라프트를 대륙 최강의 제국으로 만든 무신이라 불리는 사상 최강의 인간, 이계 검사, 지금은 자신이 이룩한 제국에 환멸을 느끼고 은거한 등의 각종 수식어가 붙은 대단한 남자였다. "으응 진 벌써 일어났어?" '......! 이 목소리는!' 그의 옆에서 알몸으로 자고 있는 짙은 적발의 묘령의 여인. "카인! 누구 맘대로 여기서 자는 거냐?" "우훗 진도 참!" 카인이라 불린 묘령의 여인은 그대로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뭐 하는 짓인가? 도대체! 그리고 내가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분명 얘기했을 텐데?" "쳇. 알았어 위진무씨. 나한테는 줄인말로 이름 불러주면서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돼나?" "그렇다고 다시 풀네임을 불러 주면 난리 칠 게 뻔하니까. 그리고 진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지워버리고 싶은 때다. 그러니 더 이상 언급하지 말아라." 카인이란 여인은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위진무는 애써 눈을 맞추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왜 네가 내 옆에 그 꼴로 누워 있는 건지나 들어보자." 카인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어젯밤......진이 날 덮쳤잖아?" "참고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아침으로 드래곤 구이를 해 먹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로니도 떠나고 진이 심심해 할 까봐." "브락라스노는?" "그런 인간은 드래곤이나 데리고 살아줘야 평생 안 심심할 거라던데?" "빌어먹을 놈." "그런데 왜 자면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이 가위 같은 거 눌릴 리도 없고." "오늘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요사이 숲쪽도 시끄럽고." 그 말에 카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 말야. 말해줄 게 있어." "무엇 말이냐?" "로니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왠 남자애가 끄는 바퀴의자에 타고 다니더군. 게다가 걔네들을 쫓는 병사들만 수백이 넘게 숲에 깔려 있었어." 위진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것 때문이었던가?' 위진무는 궁극의 경지를 깨달으면서 여러 신비한 능력들을 갖출 수가 있었다. 이번과 같은 경우는 예지몽으로서 내용은 다 똑같은 내용이지만 이런 꿈을 꿀 때마다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고는 했다. "내려가 봐야겠군." "역시 로니의 일이라면......혹시 제자를 남몰래 짝사랑?" "계속 떠들면 오늘 부로 넌 드래곤 본 갑옷으로 변할 것이다." "치! 따라는 가도 되겠지?" "그것까지 말리지는 않겠다." 위진무는 한 쪽 구석에 놓인 목검을 집어 들고는 방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뒤 따라나온 카인을 본 그는 예지몽이 예고한 안 좋은 일이 이 천덕꾸러기 드래곤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인은 마법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그러나 위진무의 관점에서 그것이 옷이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선정적인 차림이었다. 음욕 따위에 넘어가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만 선정적인 옷차림에는 남자로서 끌릴 수밖에 없다. 무공을 익히는데 여자는 필요 없다는 위진무의 생활 신조는 1000년의 세월 동안 그에게 동정을 잃지 않게 했었다. 그런데 로니를 데리고 우라시드에 은거하며 사귄 한 노출증 걸린 인간 여자로 주로 변신 취향을 지닌 레드 드래곤 덕분에 그의 결심이 흔들릴 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원체 카인카드가 여성형의 취향을 지닌데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래곤은 그야말로 완벽한 인간의 몸이었기에 덮쳐도 별 상관없고, 결정적으로 드래곤 중에서도 강함을 철저히 숭배하는 레드 일족의 이 천살짜리 드래곤은 드래곤 보다 강하고 드래곤보다 오래 사는 동갑내기(실제로 딱 동갑이다)인간 위진무를 완전히 배필감으로 보고 있었다. 배필 앞에서는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당연히 카인은 뭐한 유혹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위진무의 철벽같은 인내력을 뚫지는 못했다. "옷 좀 제발 제대로 입길 바란다." "헤에. 그럼 벗고 갈까?" "곧 드래곤 하트가 하나 생길 것 같군." "......" 여러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다행히도 눈치 채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한참 후에야 아크는 몸을 일으켰다. "휴우 갔다." 아크는 이마에 잔뜩 맺힌 땀을 대충 닦아내었다. "자. 일어나세요." 아크는 론을 부축해서 휠체어에 앉혔다. "콜록! 콜록! 카악!" 한참을 심하게 기침을 하던 론은 피를 토했다. '제길!' 팬크라프트 군의 추적이 시작되자. 아크는 론의 상태 악화를 각오하고, 오크들이 다니면서 저절로 생긴 오솔길을 오토바이로 질주했다. 덕분에 우라시드 산맥을 얼마 놔두지 않은 거리까지 올 수는 있었지만 어찌나 길이 험한지 덜컹거리고 넘어 지고를 반복하면서 론의 몸 상태는 최악이라 해도 될 정도로 안 좋아졌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사지 멀쩡히 추적을 멈추지 않았던 팬크라프트 군에게 이미 따라잡혀 버리고 숲의 나무들을 이용 몸을 숨기며 조금씩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아크는 서브 머신 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것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자신들은 잡혀 죽었을 것이다. 새삼 아크라우스 녀석이 너무도 고마웠다. 맹약의 반지부터 이 총, 그리고 휠체어까지, 별 반 중요히 생각지 않았던 아크라우스의 선물들이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아크." "에? 또 무슨 불편한 거 있어요?" "나 화장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살인...예 난리친 거 같습니다. 주인공 동료 기사들 싸그리 죽여 놓고 나서 살인은 나쁘네 어쩌네 운운하는 것이...그래도 아크가 기존의 아무나 그냥 막 죽이는 주인공들의 전례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욕은 저한테 하십시오. 저는 제 글을 저 스스로가 쓰레기로 비하할 만큼 겸손하지 않습니다. 글이 쓰레기라고 생각된다면 그 쓰레기를 쓴 작가를 욕하십시오. 전 제 자식같은 글이 쓰레기로 모욕받는 것은 못참습니다. ......돌겠군요. 비축분이 얼마 안 남아서......에휴우 "예에? 그건 혼자서도 잘 하셨잖아요?" "쪼그려 앉기도 힘들어졌어." "휴우 어쩔 수 없군." 별 수 없이 아크는 론의 아래 속옷을 벗겨 주었다. 아직 무념무상, 성욕 완전 억제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하도 요새 자주 보고 자주 닦아주다 보니 그러려니의 경지는 밟을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건데. 론의 그곳은 꼭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앙증맞고 귀여웠다. '헉!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성욕의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던 아크는 간신히 마음을 추스렸다. "그, 그만 봐! 뭘 그렇게 넋 놓고 보고 있어!" 론은 부끄러운 듯이 치맛자락을 내려 가렸다. "그때가 생각나서요." "그때?" "왜 처음 봤을 때 있잖아요. 누님이 보여주려고 하셨을 때. 그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자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피이." "자 치마 걷어올리시고." 아크는 론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론의 두 허벅지를 양손으로 받쳐주었다. 그리고 메마른 대지에 한 줄기의 물줄기가 뿌려졌다. "오? 오줌발이 세시네?" "죽어!" "하하하. 에구 귀여우셔라." 아크는 론의 볼을 콕콕 찔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 온 것은. "컹컹! 왈! 왈! 으르르르!" "저기다!" 암모니아 냄새를 맡은 군견이 아크와 론이 은신중인 수풀 속으로 뛰쳐나오자, 곧이어 다수의 병사들이 아크와 론을 포위하면서 뛰쳐나왔다. "찾았다!" "제길!" 아크는 급히 론의 치맛자락을 다시 내리고 서브 머신 건을 뽑아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두 쏴 죽여 버린다. 그러면 총소리를 들은 다른 추격꾼들이 몰려오겠지만. 렌도로스 대공이 없는 한 질 일은 없었다. "저걸 조심해요!" "......!" 익스플로전을 날리고 도주했던 그 여마법사가 팬크라프트 추격군에 끼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이 총에 대한 정보가 새 버렸으리라. 죽였어야 했나...... 아크는 여 마법사를 그냥 살려 보낸 것이 조금은 후회되었다. "아이스 월!" 일단 론을 얼음 장벽 속에 가두어 둔 아크. 추격군들은 전투에 론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굳이 저지하지는 않았다. "이제 죽어라!" -투두두두두 두두두두 머신건을 불꽃을 뿜으며 총알들을 토해냈다. 총알은 별 다른 보호장비가 없던 병사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병사들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죽어버리고, 갑옷에는 구멍이 뚫리자, 기사들은 넌지시 흘려 들었던 서브 머신 건의 위력을 실감하고는 숲의 곳곳에 있는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이번에는 공터가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완전한 숲 속이었다. 때문에 기사들이 나무 뒤에 숨으니 쉽게 맞출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아크는 나무의 뒤로 이동해 기사들을 맞추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섯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은 쉽게 등뒤를 허용하지 않았다. -탕! 운 좋게도 베레타에서 나간 총알이 한 기사의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크는 한참 동안이나 적을 맞추지 못했다. 사격훈련이라고는 1인칭 액션 게임만 했고, 거기다가 헤드 샷을 노리거나 갑옷의 구멍을 정확히 노려 쏴야 적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정확히 맞는 총알이 과연 몇 개나 될까?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무를 베어 낸 다음 당황한 기사의 면상에 갓 나온 따끈따끈한 총알을 먹여 주었다. 아크가 한 기사를 죽이는 와중을 틈타 아크의 목을 노리던 기사는 머신 건에 벌집이 되었고 운 좋게 총알 하나가 기사의 목을 뚫고 지나갔다. 이제 무용지물 마법사를 포함. 둘 남았다. 잽싸게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 다니던 기사들을 쏘기 위해 아크는 방아쇠를 당겼다. "......? 이런 총알이!" 마침 머신 건의 총알이 떨어져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아크는 탄창을 다른 것으로 교체했다. 그러는 사이 기사 하나가 달려왔다. "양촌리 딸딸이 권법!" "끄아악!" 물컹이 부위를 신경 쓰고 있지 않던 기사는 아크의 무릎 찍기에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 총알이 남아 있던 베레타가 불을 뿜었다. "후우. 이제 한 놈인가?" 1대 1이라면 굳이 총을 쏠 필요까지는 없었다. "나와라! 검으로 싸우자." "아니. 무기 모두 버려." "......!" 아크가 머신 건을 난사할 때부터 보이지 않던 마지막 기사는 어느새 론을 둘러쌓고 있던 아이스 월을 모두 잘라 부순 뒤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젠장. 버리마." 아크는 순순히 검과 두 총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론에게 다가갔다. "허튼 수작 할 생각 마라! 네 녀석의 주특기가 격투술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기사는 론에게서 검을 떼고 그 칼을 아크에게 겨누었다. 아무래도 론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아크를 견제하는 것이리라. 대략 상황이 끝난 듯이 보이자 후방에서 몸을 사리던 여마법사가 기사에게 다가왔다. "대충 끝난 듯이 보이는군요." "넷씩이나 당할 줄은...... 감사하오. 귀하의 도움이 컸소. 저 무기에 대해 귀뜸해 주지 않았다면 임무도 완수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을 뻔했소." "어이? 어째 다 끝난 것처럼 말한다?" 아크의 빈정거림에 기사는 아크를 쳐다보았다. 아크의 손에는 분명 멀찍이 버려져 있던 블레싱 소드가 자신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푸슉! "으아악!" 아크의 목을 날려버리려 했지만. 나뭇가지 정도 무게의 블레싱 소드가 더 빨랐다. "후우. 상황 종료. 미션 클리어." 아크는 상황 종료를 외치며 맺힌 땀을 닦았다. 하지만 그도 너무 상대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가 있으니 마법사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확신한 것이다. 그때였다. -푸슉! 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쇠조각이 아크이 심장을 뚫고 나왔다. "이, 이거 뭐야?" 여마법사가 항시 가지고 다니던 호신용의 단검이었다. 마법이 안 먹힌다고 너무 얕잡아보고 쉽게 뒤를 보인 것이 실수였다. '정신이......' "아크!" "하! 하하하하하 내가 먼저 죽나 보네......" -풀썩 아크가 땅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론은 지독한 복부 통증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휠체어 옆에 매두었던 검을 뽑아들었다. 아크의 피가 묻은 단검을 닦고 있던 여 마법사는 론이 일어서자 경악했다. "뭐, 뭐야? 못 움직이는 게 아니었어?" "아크의 원수." 론은 저항도 못하는 여 마법사의 사지를 절단해 버렸다. 하지만 무리하게 움직인 대가로 그녀의 내상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피가 쏟아졌다. 그리고 론도 아크의 옆쪽에 쓰러졌다. 소리를 듣고 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으로 달려 온 렌도로스 대공은 부하들이 하나같이 몸에 구멍이 난 채로 죽어 있는 모습이 의문스러웠다. 주변에 아크가 땅바닥에 놓은 베레타와 서브 머신 건이 있었지만 총알이 없었던지라 렌도로스는 그 두 물건이 부하들 사인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으흠. 동귀어진을 한 건가?" "아직 살아는 있는 듯 싶습니다." "살아 있어? 뭐 루네아 양은 내상의 악화로 쓰러진 것 같으니 그렇다손 치고, 이 이계의 전략가 녀석은 심장에 칼이 박히지 않았나?" "예 죽지 않았습니다. 약간 빗겨서 찔린 듯 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즉사했어야 정상입니다만 회복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찔렸을 바로 그 때 빠른 치료를 했던 모양입니다." "살릴 수는 없겠나?" "아니. 살리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뭐 젤리커를 죽인 것이 괘씸해서 죽이려고는 했었다만. 일단 이렇게라도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된 것도 다 하늘의 뜻. 정말 흥미가 가는 녀석이다. 치료해 주면서 계속해서 회유를 한다면 이 녀석도 언젠가는 마음을 열겠지. 어차피 이 녀석 때문에 입은 피해가 커서 통일 전쟁 계획도 미뤄진 마당에 그 정도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정 안되면 그냥 제국 내에 감금해 놓고 이 머리를 쓸데가 없이 만들어놔도 되고." "무리입니다. 이 정도 상처라면 이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아니 한 두시간 안에 숨지고 말 겁니다. 이곳에서 치료를 해 봐야 4,5서클 마법사들뿐이니 오래 버틸 수도 없고, 치료를 하려면 이 숲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최대한 빠르게 가 봐야 열흘이니 말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쩝. 할 수 없군. 그렇다면 더 고통스럽지 않게 구차한 목숨을 거두어 주는 수밖에. 이 녀석들의 목을 베어 적장의 우두머리를 처단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도록 하게." 렌도로스 대공은 너무도 쉽게 마음을 바꾸었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아크란 존재는 죽이거나 회유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위협적이었고, 일단 손아귀에 들어 온 이상 죽이든 말든 별 상관이 없는 그런 물품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아크와 론을 대공에게 피가 튀기지 않을 거리까지 끌고 간 후 도끼날을 갈았다. 옆의 나무를 찍어 도끼날이 잘 드는지를 실험해 본 병사는 누구의 목을 먼저 자를지 고민하다가, 미소녀인 론의 목보다는 아크의 목을 먼저 선택했다. "으랴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도끼를 내리찍던 병사는 도끼 끝이 왠지 모르게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발등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으아아악!" 도끼 자루에 달려 있어야 할 도끼날이 그의 발등에 떨어져 있었다. 믿는 도끼는 아니었지만 어찌되었든 도끼에 발등 찍힌 병사는 비명을 질러대며 뒹굴기 시작했다. 도끼에 발등 찍힌 병사를 치료하려고 다가가는 병사들. 그때였다. -퍼버벙! 발등 찍힌 병사가 갑자기 화염으로 화해 폭파되고, 그 불은 그를 도우려 했었던 병사들에게 옮겨 붙었다. "뭐냐?" 렌도로스는 이 불의의 화재가 사고가 아님을 직감했다. "내가 그렇게 궁금하다면 대답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오랜만이구나 진기야." "......! 사부! 사부이십니까?" 렌도로스 대공을 진기라 부르는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무신이라 불리우는 이계의 검사. 무신 위진무. "무신?" 렌도로스 대공이 사부란 말을 하자, 부하들은 모두 하나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카인카드 마법을 풀어라." 그리고 투명마법이 풀리고 아크와 론이 쓰러진 자리에 두 남녀가 나타났다. 붉게 물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찰싹 달라붙은 도발적인 타이즈를 입은 쉽게 보기 힘든 미모를 지닌 미녀 하지만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팬크라프트 군들은 그런 적발의 여인들보다는 이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청포의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흑발의 남자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 한 병사가 말했다. "당신이 무신 진?" "그렇게들 부르더군. 하지만 내 진짜 이름은 위진무다." "뭣들 하는 거냐? 저분이 국부 위진무 대공이시다. 인사 올려라!" 렌도로스의 호통에 병사들은 일제히 부복하며 외쳤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이런......나는 이제 팬크라프트의 대공이 아니야. 렌 머릿수가 많이 늘었구나. 이러면서 은근슬쩍 나를 대공으로 만들고 말야." 위진무가 자신을 별칭으로 부르자, 렌도로스 대공은 그 답지 않게 얼굴을 붉혔다. "큭! 차라리 진기라고 부르십시오." '렌'이란 이름은 이곳에서 주로 여자들에게 붙이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렌도로스 대공의 별칭 또한 그의 이름 앞 발음을 딴 렌이었고 그 때문에 렌도로스는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 "진! 이 애들 위급해 보여." "네가 좀 봐주고 있어라. 카인!" 위진무는 고개를 다시 렌도로스에게로 돌렸다. "누굽니까? 사부." "별 것 아니다. 몰라도 된다." "그 사람 마누라!" 위진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카인은 위진무를 가리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말을 들은 렌도로스는 실눈을 뜨고서 말했다. "호오? 의외로군요." "개소리다 신경 쓰지 말도록." "그런데 어쩐 일로 이 제자를 만나러 오셨습니까? 마침 드릴 말씀도 있었는데 나이스 타이밍이로군요." "저 아이들을 나에게 넘겨라." "음. 어려우신 부탁이군요. 하지만 제 조건을 들어주신다면 기꺼이 넘겨 드리겠습니다." "무엇이냐?" "제국으로 돌아와 주십시오." 위진무의 표정이 가볍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는 곧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언제부터 네 녀석이 나에게 조건을 걸 수 있게 되었지? 많이 컸구나 렌. 나는 다시는 세상사에 개입할 생각이 없느니라. 그리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이 자리에 있는 녀석들 정도는 다 죽이고 이 아이들을 데려 갈 수도 있다." "설마 제자를 죽이시기야 하겠습니까?" "하긴 네 말도 맞구나." "뭐 사부님께서 나서신 이상. 제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부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겠죠. 대신 늘 '복수는 부질없는 것이다' 란 말을 달고 사셨던 분이시니 만큼 저들이 강한 복수심을 가지지 않게 지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하마." "이만 철수하자!" 렌도로스는 쉽게 포기하고 철수를 선택했다. 지금껏 아크와 론을 추격하느라 소비한 시간과 노력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위진무를 적대시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군소리 없이 뒤돌아서 가던 렌도로스는 갑자기 몸을 돌려 다시 위진무에게로 돌아왔다. "뭐냐? 렌." "풀네임으로 불러주십시오." "알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시 돌아 온 것이냐?" "두 달 후쯤 제국에 한 번 들러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젤리커가 죽었습니다. 녀석의 시신이 두 달 후쯤 제국에 도착하고 그 때 장례를 치를 생각입니다. 적어도 장례식만큼은 와 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젤......리커가?" "그럼." 렌도로스는 다시 몸을 돌렸다. "잠깐!" 이번에는 위진무가 렌도로스를 불러 세웠다. "......?" "젤리커가 왜 죽었지? 설마 로니가 죽인 것이냐?" "아닙니다. 왜 죽었는지는 그 청년에게 물어보시죠. 그리고 아무래도 그 청년도 다른 차원에서 온 듯 보입니다." "......!" 위진무는 그제야 별 신경 쓰지 않았던 아크를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 희귀하지는 않아도 그다지 찾아보기 드문 흑발의 머리, 엎드린 채 쓰러져 확인할 수 없는 피부색깔. 하지만 복장만큼은 이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괴기한 복장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과 같은 차원에서 온 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진무는 약 1년 전쯤 파푸치아 숲 쪽에서 발생한 차원이동 게이트의 차원진동을 느꼈었다. 그리고 렌도로스가 이방인이라 보증까지 했다. 그렇다면? "카인! 그 아이는 괜찮나?" "위급해. 그렇지만 살릴 수는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로니야 당장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내상이 너무 심각해. 회복마법도 안 먹히고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죽을 거야." "......!" 위진무는 대략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니의 복수로 인해 제자였던 젤리커가 죽고, 그 반격으로 로니마저 저 지경이 된 것이리라. 애초에 로니의 하산을 말려야 했었다. 하지만 로니가 렌도로스를 이기지 못하고, 또 렌도로스는 로니를 살려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과 복수란 일념으로 칼을 갈아왔던 로니의 집념을 꺾어 놓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 "모든 게 내 업보로구나......" 같은 사부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서로 죽고 죽인다는 것은, 한 피를 나눈 형제들끼리 서로 싸워 죽이는 것과 별 반 다를 바가 없었다. "돌아가자. 카인." 위진무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왜 안 깨어나는 거냐?" "조금만 참아. 며칠 내로 일어날 거야. 그런데 로니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선약을 써야겠지." "하긴 그 방법뿐이겠지." 위진무는 도가의 무공을 대성하면서 익힌 선약의 제조술로 생명수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있었다. 상급의 맑은 물에 시술자의 생명의 기운을 집어 넣는, 단순하지만 생명력을 담보로 하는 기술. 그 덕에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이 세계로 넘어왔지만 선약을 제조한 탓에 나이를 먹어, 지금의 중년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상처가 구체적으로 어때?" "모르겠어. 소드 오러에 장기가 엉망이 된 데다가 그 상태에서 너무 무리하게 무공을 사용해서 약도 못 삼키는데 어떡하지?" "으음. 그렇다면 그냥 몸을 담궈 놓고 약 기운이 스며들도록 해야 겠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사내녀석은 어때?" "정신은 못 차리고 있는데 낫기는 다 나았어. 뭐 나 정도면 이런 건 별 것도 아니지." "수고했다. 카인." "그럼 여기 뽀뽀." "날씨가 좋군." 위진무는 딴청을 피웠다. "크흠!" 깨어난 아크의 눈에 집안의 천장이 보였다. '숲이 아닌가?' 아무도 없는 집안. "숲에서 은거하던 노고수가 날 구해 온 건가? 마침 '나는 죽기 직전의 몸이니 내 모든 내공과 무공을 너에게 전수해 주마' 하면서 무공 비급과 10갑자의 내공을 전달해 줄 리가 없지." 헛된 망상을 하는 아크. "특이한 집이군." 집안 구경을 하던 아크는 이 집이 이 세계의 여느 집들과는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아크는 문득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누님!" 아크는 방문을 거세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우와 경치 좋......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누님!" 한참을 론을 찾아다니던 아크는 평평한 바위 위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도복의 사내를 발견했다. "......!" 척 봐서 무림인 틱 해 보이는 외양. 많은 산지가 밀집한 경치. "이거......심장에 칼 맞고 우연히 차원 결계에 빠져 중원무림으로 온 건가? 아직 판타지 세계에서 다 놀지도 못했는데 무림이라니! 뭐 죽는 것보다는 낫지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그러던 와중에 명성 중이던 중년 남자가 깨어나더니 50년 만에 이산가족을 만나는 듯한 표정으로 아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 "???" 중년 남자가 하는 말이 중국어인 것 같았지만. 아크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최 중국어를 알 수가 있어야지. 아크는 알고 있던 사자성어 한 구절을 땅바닥에다 적었다. 일자무식(一子無食) 자신이 한자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자무식을 썼지만, 글자 자와 알 식을 모르던 아크는 아들 자와 먹을 식을 이용 일자무식을 썼다. 찝찝하기는 해도 이렇게 엉망인 한자성어라면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쯤은 알릴 수 있으리라. 중년인은 아크가 쓴 한문을 보고서는 처음에는 호탕하게 웃다가 곧 눈에서 눈물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한참을 고향의 문자를 보며 그리움의 눈물을 흘리던 위진무는 아크가 중원과 다른 곳에서 왔으리라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하층민의 까막눈인 줄로만 알고 계속해서 중국어로 지껄였다. "???" 그러나 당최 먼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아크를 보고 있던 위진무는 일단 이쪽 세계의 언어로 말해 보기로 했다. "중원의 언어를 모르나?" "......!" 얄짤 없이 중원무림으로 차원이동 한 줄 알았던 아크는 위진무가 판타지 세계의 언어로 말하자,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아크는 일단 물음에 답해주었다. "모릅니다만?" "으음. 그럼 자네는 중원인이 아니란 말이군. 그래도 한자를 알고는 있는 것을 보니 중원 근방에서 온 모양인데. 어디 출신인가?" 위진무의 말에서 아크는 그가 자신처럼 차원을 이동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대한민국? 생소한 이름이로군." "고려의 후손들이 한반도에 세운 나라입니다." "아아! 맞아! 그곳도 세월이 한참이나 지났을 테니 지금쯤 무언가가 많이 바뀌었겠지. 이거 은룡선생을 통해 그곳 정보라도 들어 두는 건데 말야. 내가 무지했군." "은룡선생?" "날 이곳으로 보내준 드래곤일세. 은룡선생 아구라우수라고 하더군." 은룡선생 아구라우수의 존함을 들은 아크는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하! 하하! 은룡선생 아구라우수? 그렇다면 댁이 그?" "그래. 내가 중원 무림에서 건너 온 위진무라고 하네. 반갑네." "아! 예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건너 온 김석진. 이곳 이름으로는 아크란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지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로니와 함께 쓰러져 있던 자네를 보았네." 낯설은 이름이었다. "에? 로니? 론 아닙니까?" "가명이군. 남자로 행세 할 때 그 아이가 지은 이름인가 보구만. 론은 원래 남자들이 쓰는 이름이야." "누님은 어떻게?" "누님이라 부를 정도면 꽤나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구만." 그 말에 아크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뭐......볼 건 다 본 사이입니다." "으음 그랬나? 로니는 언제 깨어날지 모를 잠을 자고 있네." "주, 죽었단 말입니까? 거짓말하지 마십쇼! 누님이......누님이 그렇게 쉽게 죽었을 리가 없어요!" 아크의 격한 반응에 위진무는 아크를 다독이며 말했다. "자, 자 침착하게 죽지는 않았네. 하지만 말 그대로 언제 깨어날지 모를 잠을 자고 있지." "무슨?" "따라오게나 보여 줄 것이 있네." 위진무는 아크를 데리고 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몇 걸음 걷자. 동굴 안에 왠 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샘물 안에는 알몸의 로니가 고개만 빼꼼히 내놓고는 자는 듯이 누워 있었다. "로니는 이 약수 안에서 치료를 받고 있네. 현재는 치료하기 편하도록 가사 상태로 자고 있는 상태이지. 하지만 상처가 워낙 깊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야만 한다네. 언제 깨어날 지는 기약이 없어. 언젠가는 깨어나겠지만. 그 언젠가가 언제 이느냐는 나도 모른다네......" "치료 효과는 확실한 겁니까?" "물론일세. 내 생명력을 담아 만든 생명수라 죽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이든 살릴 수가 있지." 아크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엘프들의 신약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는 장담이 없었는데. 마침 위진무에게 확실한 치료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로니와 이런 사이가 되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겠나?" "예?" "그리고 자네가 왜 이계의 전략가라 불리는 지도 듣고 싶네." 잠시 머뭇거리던 아크는 로니를 만난 것부터 폴티아 반도를 두고 벌였던 전쟁 속에 투신했을 때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친구와 동료를 잃고 의매 까지 잃을 뻔했던 이야기를 들은 위진무. "그렇다면 자네도 팬크라프트 제국에 원한을 가지고 있겠군." 그러나 아크의 대답은 위진무로서는 뜻밖이었다. "별로요. 론 아니 로니 누님이 죽기라도 했다면 원한이 뼈에 사무쳤겠지만. 친구와 동료를 죽인 이들에게는 다 복수를 했으니까요. 누님을 다치게 하고 결과적으로 친구들을 죽게 한 원인이었던 렌도로스 대공에게도 보복을 하고는 싶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는 진심으로 자신이 한 일에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저도 결과적으로 12만이 넘는 팬크라프트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죽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다지 뭐......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자에게 보복할 마음 따위는 들지 않는군요." "으음." 위진무는 턱을 괴고 한참을 무언가를 생각했다. "저기 말입니다. 위진무씨." "......?" "위진무씨는 엄청난 무공을 지녔다고 들었습니다. 그 무공을 저에게 좀 가르쳐 주실 수 없겠습니까?" 위진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째서 무공을 배워야 할 타당한 이유가 있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르쳐 주겠네." 위진무는 흔쾌히 대답했다. "저는 두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꿈? 무엇인지 알려 주겠나?" 흥미를 품은 듯한 말투였다. "드래곤의 유희를 알고 계시죠?" 위진무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같은 차원을 이동한 생명체에게 생명은 무한이라는 거도 아실 테고요." -끄덕 "드래곤들은 그 긴긴 삶을 때우기 위해 다른 생명체로 변해서 그 생명체의 삶을 체험해 보고는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 같은 경우는 드래곤보다 더 오래 살지요. 그리고 그 긴 삶을 권태감 없이 살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유희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생명체로의 삶을 살기는 조금 힘들고 적어도 인간들 속에서의 다양한 인간의 삶에 대한 직접 체험을 말입니다. 하지만 위진무씨 같이 무적의 무공 같은 것이 없이 보통의 약한 인간이라면 그 삶의 체험은 무엇이 될까요? 결국 하층민의 농노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그 긴긴 삶의 몇 퍼센트도 채 살아보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 뻔하지요. 물론 노예도 인간의 삶 중 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노예 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힘과 실력이 꼭 필요합니다. 평생을 노예만 하면서 살수는 없지요." "그러니까 인간인 자네가 드래곤과 같은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드래곤 같은 강함이 있어야 한다?" "아뇨. 드래곤과 같은 압도적 강함은 저로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강해 뭐든지 혼자서 할 수 있는, 예를 들어 인구 10만에 병력 3만 있는 영지를 하루만에 혼자서 시체로 만든다던가, 마음만 먹으면 제국 하나는 멸망시킬 수 있는 드래곤이나 마족들이 웬 인간 하나에게 작살나는 그런 강함은 원치 않습니다. 너무나 강해 버리면 위기나 극복해야 할 삶의 목표 따위가 생기지가 않으니까요. 지금 지구의 대한민국에서는 흔히들 이것을 먼치킨이라고 하죠." 위진무는 순간 먼치킨이라는 단어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럼 나도 먼치킨으로 분류가 되는 건가?" "한가지 묻죠. 위진무씨는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몇 년을 수련하셨습니까? 그 와중에 자신의 깨달음이 아닌 기연을 얻어서 강해지지는 않으셨습니까?" "약 900년 가량을 수련해 왔네. 그리고 그 와중에 무공과 마나의 이치를 거의 이해 할 수 있었지. 나에게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수련을 제외하고는 말할 수가 없으니까. 세상에 나가 보았던 것은 팬크라프트 제국 전쟁이 유일하다네." "그렇다면 아닙니다. 원래 먼치킨은 우연과 기연을 통한 어이없는 막강함을 말하는 단어였으니까요. 무슨 드래곤의 힘을 흡수한다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니 엄청난 무공의 비급이 있어 그것을 익혀 1년만에 1갑자의 내공을 쌓는다던가, 은거하고 있는 무림 제일인을 우연케 만나 무공을 배워 몇 년 안되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다던가 라는 것을 먼치킨이라고 했지만 요새는 그 뜻이 조금은 왜곡되어서 그저 무진장 강하면 먼치킨들이라고 하죠." -끄덕 끄덕 "그렇군 잘 알았네. 이제 자네의 두 번째 이유를 듣고 싶군." "음 뭐 이건 강해지려는 이유 라기 보다는 그냥 제 목표라고 하고 싶군요." "한 번 들어 보기나 하세." "흠. 흠." 아크는 헛기침을 두 번 한 뒤 말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두번째 제 목표는 하렘왕......아! 이게 아니지. 두 번째는 이 세계를 제가 살아왔던 지구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지구처럼? 이곳을 중원처럼 만들겠다는 말인가?" "아뇨. 모르시고 계시겠지만 현재의 지구는 엄청난 과학, 인문, 사회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비록 마법이나 내공심법을 이용한 무공이 전해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의 인류는 과학기술을 토대로 하늘을 날수 있는 철로 만든 비행기와 마법을 쓰지 않고도 수 만리 밖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을 이용하기도 하고 특히 무기로 따지자면 드래곤 브래스와 맞먹는, 아니 더 강할 지도 모르겠군요. 핵이란 무기를 수만개나 가지고 있습니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신데, 나중에 제가 현대 과학 문명의 유산을 보여 드리죠. 그런 과학 문명의 편이를 이곳의 마법문명에 도입했을 경우에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혼자의 힘으로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죽지도 않는 몸이니 수 천년 동안 노가다라도 한다면 어떻게 답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위진무는 아크의 말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일단 다른 것은 둘째치고 어떻게 인간이 드래곤 브래스에 맞먹는 무기를 대량 생산한다는 말인가? 만약 진짜로 그런 것이 있다면 드래곤에게 붙은 최강의 생명체라는 수식어는 사라질 것이다. "이런 현대 지구의 문화, 과학이라면 이쪽 세계에서도 충분히 권태롭지 않는 삶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은룡선생 아크라우스도 현대 지구의 문명에 푹 빠져서 13000년 삶의 권태감 따위는 잊은 지 오래입니다." "음......뭐 자네의 뜻은 잘 알았네. 내 내가 지금까지 성취한 무공을 자네에게 전수해 주도록 하지. 한 가지 말해 두겠는데 나한테 제대로 배우면 자네도 먼치킨이 된다네." "예?" "비정상 적으로 빠르게 강해질 테니 말일세. 내 10년 안에 자네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주지." 10년 안에 소드 마스터로 키워 준다고 자신하는 위진무의 모습은 흡사 무조건 서울대 보내 준다고 장담하는 족집게 과외 선생와 묘하게 닮아 보였다. 그러나 위진무는 자신이 한 장담이 괜한 객기였음을 깨닫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위진무는 아크와 사제의 연을 맺었다. "앞으로 자네는 내 제자이자. 진자 돌림 형제의 일원으로서 위진조라는 이름을 쓰게 될 것이야." "그럼 이제부터 사부라고 불러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는 사부 소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일세. 비록 사제지간의 연을 맺기는 하였으나 굳이 사부란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아, 그러니 내키는 대로 알아서 부르게." 나름대로 진지하던 아크의 표정이 다시 얍삽하게 바뀌었다. "그럴깝쇼? 진무 형님?" "하하하 형님 소리 참 오래간만에 들어보는구나 진조." 위진무는 멸문과 함께 괴마인들에게 살해당했던 진자 돌림의 사형제들 중 막내였던 진짜 '위진조'가 생각났다. "거 참. 누님의 사부를 형님이라 부르다니 어색하군요." "뭐 어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어차피 내가 가르친 제자들에게 내린 '위'자와 '진'자 돌림 이름들은 모두 죽은 내 사형제들 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럼 수련하기 전에 진조 너의 실력을 측정해 봐야겠다. 자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좋다. 날 공격해 보거라." '뭐든지라? 그럼 총으로 갈겨 봐야 겠다. 사상 최강의 남자라 불리는 사람이니까 죽지는 않겠지." 아크는 베레타에 총알을 장전하고 위진무에게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고요한 산 속에서 울리는 총성은 메아리가 되어 자고 있던 산새들의 잠을 깨웠다. "이것이 그 현대의 무기더냐?" "......!" 어느 새 위진무는 아크의 뒤에서 베레타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총알이 나간 뒤 채 1초나 지났나 싶은 시간이었다. 위진무는 천천히 걸어가 자기 대신 총알이 박힌 바위를 살펴보았다. "흐음 바위에 박힐 정도라니......확실히 위력은 화살보다 대단하군. 하지만!" 위진무는 검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총알이 뚫고 들어간 구멍을 찔렀다. 그러자 바위는 여러 조각으로 부서졌다. "와우!" "아무리 무기가 좋다 한들 수련으로 강인해진 인간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지!" 아크는 바위를 부순 위진무를 향해 박수를 쳤다. "훌륭하십니다. 이제 그럼 제 2타 공격을 받아 보시죠." "얼마든지." 아크는 뒷춤에 차 놓은 서브 머신 건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서브 머신 건은 불꽃을 뿜으며 수십발의 총알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위진무는 그 많은 총알에 단 한 방도 맞지 않았다. '역시 강하군.' 아크가 더 이상 머신 건을 갈겨대는 것은 총알낭비라고 생각될 즈음에 갑자기 위진무는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날아오는 총알을 그대로 맞았다. 그러나 총알들은 모두 그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 나가버렸다. "헉!" "아무리 이런 원거리 무기라 한들 금강불괴인 내 몸을 뚫을 수는 없지. 하아압!" 위진무가 손바닥을 펴서 내밀자, 나머지 총알들은 공중에 멈춘 뒤 맥없이 굴러 떨어졌다. -짝짝짝짝 마냥 박수만치는 아크. 과연 무신이란 칭호다운 무용이다. 아크는 총기로는 위진무에게 타격을 줄 수 없음을 그제야 깨닫고는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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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들은 하나 같이 좋아 보이는군." "지금껏 이것들로 버텼습니다." 아크는 일단 프로즌 아이스로 3서클의 1인 타격 빙한마법 다이아몬드 커터를 날렸다. 그러나 다이아몬드 커터의 얼음 칼날도 위진무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걸로!' 아크는 몸에 부담이 갈 것을 각오하고는 6서클의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시전했다. 프로즌 아이스에서 제법 많은 마나를 빼 가자, 아크는 잠시 휘청거렸다. "하앗!" 위진무는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그냥 맞아 줄 생각이 없었는지 얼음 조각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왼손을 쫙 핀 채 뻗었다. 그러자 다이아몬드 더스트의 얼음 조각들은 서브 머신 건의 총알들처럼 멈춘 뒤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다행히도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 덕분에 별 피해는 없었다. "진조. 멀리서만 공격하지 말고 이제 직접 전투를 펼쳐 보거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만?"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를 집어넣고 블레싱 소드를 든 채 위진무를 공격했다. 한번 검을 휘두르자, 위진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야?" "난 네 뒤에 있느니라." 아크는 자신의 등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몸을 틀자마자 바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위진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크는 위진무를 맞추기 위해 쉴 틈 없이 검격을 가했지만 위진무의 옷자락 하나 닿게 하지 못했다. 쉴 새 없이 검을 휘두른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가 더위를 식혀 주는데도 불구하고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기초 체력이 부실하군. 이제 이 자리에 가만히 있을 터이니 그 검으로 날 베어 보거라." 위진무가 제자리에 멈춰 서자, 아크는 이때다 싶어 위진무를 공격했다. 금강 불괴라 하니 찔려 죽을 일은 없을 테지만. 위진무는 진짜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공격은 성공하지 못했다. 위진무는 정확히 손바닥으로 블레싱 소드의 검면을 쳐냈던 것이다. 아크는 2타 공격으로 검을 높이 들고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공격을 위진무는 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허리 위의 상체를 약간 뒤로 굽힌 뒤 손날로 검의 면을 쳐서 방향을 틀어 버리자, 아크는 맥없이 블레싱 소드를 놓쳐 버렸다. "검이 가벼워 공격은 상당히 빠르나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를 줄 밖에 모르는 모양이구나." "......" "이제 젤리커를 제압했다는 그 기술을 보고 싶다." 아크는 놓쳤던 블레싱 소드를 소환시켜 검집에 넣었다. "후우. 지금의 저로서는 그 기술을 상대가 방심을 하지 않는다면 성공시킬 자신이 없습니다. 그때 제가 그 젤리커 공작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방심한 틈을 타서 눈에다 흙을 뿌리고 달려들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럼 내가 기술에 그냥 걸려 주도록 하지." "음......고통은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고통? 하하하하 네가 날 웃기는 구나. 말해두지만 난 젤리커 녀석과는 레벨이 틀리다." 위진무는 고통을 준다는 아크의 말에 조소를 흘렸다. 금강불괴 만독불침등의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그에게 고통이란 단어는 별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크도 위진무라는 괴물 같은 남자에게 서브미션이 고통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바닥에 좀 누워주십시오." "그러마." 위진무는 순순히 땅바닥에 누웠다. 아크는 위진무의 다리를 자신의 다리와 교차시킨 뒤 4자로 만든 다음 자신도 누으면서 꺽었다. 아크가 대 두르툰 전에서 사용했던 피겨 포 레그락이었다. "......!" 위진무의 여유가 만만하던 표정이 이그러졌다. 그것을 본 아크는 기술이 제대로 먹혔음을 짐작했다. 위진무는 애써 아픈 얼굴색을 내비치지 않으며 어떻게든 기술에서 풀어 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4자꺽기는 쉽게 풀릴만한 기술이 절대 아니었다. 보스톤 크랩이나 샤프 슈터 같은 경우에는 한 번 걸리면 로프를 잡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간해서 풀릴 방법이 없었다. 지금 아크가 사용하는 이 피겨 포 레그락에 경우, 상대가 몸을 틀어 버리면 기술을 건 사람에게 충격이 오기에 풀려 날 수 있기는 했지만 프로 레슬링에 무지한 이곳의 사람들은 그러한 방법을 알 턱이 없었다. 조금식 벌개지는 위진무의 얼굴을 본 아크는 그만 기술을 풀어 주었다. 어차피 기필코 제압해야 할 철천지원수도 아니니 이쯤 하면 됐으리라. 아크는 기술을 풀어 준 뒤 위진무에게 소감을 물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107화 비평에 관하여... '일단은 설정상 어떠한 아무리 강한 이라도 레슬링의 서브미션기술은 먹힌다.' 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 때문에 위진무 군이라고 해도 고통을 느끼는 겁니다. 하지만 피겨 포 레그락 같은 경우에는 오늘 직접 실험을 해 봤는데 힘으로 풀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그러니 그 대목은 샤프 슈터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수정이 안 되어 있다면 출판본에서는 수정되겠구나 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레슬링의 서브미션 같은 경우는 제약이 많지만 아크의 필살기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나 판타지적으로나 이치에 안 맞는 내용이 있다고는 해도 누구에게나 먹힙니다. 그래야 그다지 강하지 못한 아크가 나중에 강력한 적들을 꺾죠. "어떻습니까?" "확실히 네 말대로 이 기술이 누구에게나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술이구나 하지만 애초에 걸기가 힘들고, 또 다 대 일 전투에서의 효용성이 없어 보인다." 위진무의 말은 사실이었지만 조금은 틀렸다. 지금까지 아크가 서브미션을 걸었던 상대들은 모두들 이 서브미션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힘을 줘 버티거나, 발버둥을 쳐 다리를 잡히지 않게 했으면 걸리지 않았을 서브미션 기술들을 너무나 쉽게 허용해 주었다. 그러니 정확히 서브미션이라는 것을 처음 걸리는 이 세계 사람들이라면 별 무리 없이 서브미션을 걸 수가 있었다. "일단 네 실력은 잘 알았다. 그럼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도록 하자." "예." "그리고 이건 네게 주는 선물이다. 받거라." 위진무는 아크에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던졌다. 그런데 너무 세게 던졌는지 반짝이는 무언가는 아크를 훌쩍 넘어 먼 곳에 떨어졌다. "홈런이네." "음?" 위진무는 아크가 홈런이 뭔가를 설명해 주기를 바랐지만 아크는 자신이 던진 것을 주으러 달려가고 있었다. 아크는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반짝이는 물건을 주웠다. "반지?" 은빛의 반지였다. "웬 반지입니까?" "맹약의 반지이니라. 나는 그것이 필요할 만큼 약하거나 은룡선생과 할 말이 많지 않으니 그것은 네가 가지도록 하거라." 아크는 그제야 자신말고도 다른 이들에게도 맹약의 반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금 지구와의 연결고리가 생긴 것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 아침나절부터 위진무의 방이 시끄러웠다. 그 덕에 아크는 아침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어나 무슨 일인가 싶어 졸린 눈을 비비고 방문을 열었다. "당장 떨어져!" "진무 형님 왜 그러......" 아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는 할말을 잊었다. 웬 전라의 여성이 위진무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속에 파묻은 광경이었다. "허걱! 시, 실례했습니다. 하던 거 마저 하시길!" -쾅 아크는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조금 더 볼걸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은 왜일까? 결국 아크는 그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방문을 열었다. "저기 그 여자 분 누구?" "꺄아! 살려 줘!" "떠헉!" 전라의 여인은 문을 열고 들어 온 아크에게 그대로 안겼다. 알몸의 여인이 안긴 그 감촉은......그야 말로 끝내줬다. "비켜라 진조." "......!" 여인의 나신 너머로 보이는 위진무는 검에 오러를 머금고는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지, 진무 형님! 왜 그러십니까 참으십시오!" 그 말에는 여인이 대신 대답했다. "저 사람이 밤새 날 겁탈하고 나서 죽이려고 해." "예에? 서, 설마 진무 형님께서 그러실 줄은!" "진조! 날 못 믿는 것이냐?"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하리? 아크는 당연히 울면서 애원하는 미소녀를 두둔했다. 상황 자체가 여자의 말대로 밤새 겁탈한 다음 죽이려는 장면이 아니던가? 아크는 여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만두십시오. 산 속에서 몇 년간 혼자 사시느라 많이 쌓이셨을 테니 한 순간의 실수를 한 것까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살인까지는 정말 안됩니다." "크흐음. 옷이나 제대로 입어라 카인." 위진무는 칼을 다시 벽면에 걸어두었다. "살려 줄 거야?" "말해 두건데 진조를 봐서 참는 거지. 결코 용서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자꾸 이런다면 나도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알았어. 대신 오늘 아침은 맛있는 걸로 해 줄게." 카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뒤 한참을 멍청히 서 있던 아크는 폭주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쏟아 내었다. "저, 저 여자 누굽니까? 설마 진짜 겁탈한 여자는 아닐 테고 혹시 형수님?" "그 무슨 끔찍한 소리더냐? 쩝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레드 드래곤 계집이다." "예? 드래곤이요? 드래곤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데 왜 그렇게 야박하게 대하세요? 죽지 않는 진무 형님과 만 년 넘게 사는 드래곤이라면 잘 맞을 것 같은데." "네 녀석이 한 일주일만 데리고 살아보거라." '드래곤을 데리고 산다라?'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죽지 않는 차원을 이동한 생명체인 아크로서는 평생의 반려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간이야 소드 마스터 정도의 무인이 아니라면 죄다 100년을 채 못 살 것이고 엘프들은 1천년 아니 그것보다 더 산 사례도 있었지만 그래 봤자 아크에게는 잽이 안 된다. 하지만 드래곤은 무려 1만년을 산다 뭐 포유류 인간형이 아닌 파충류(?)형이라는 것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들은 타 종족으로의 변신 시 타 종족의 생식기능까지 완벽히 구현시킬 수 있었다. 거! 기! 다! 드래곤이라면 외모와 복장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 매우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19금 미연시의 매니아였던 아크로서는 화면상으로만 존재했던 가상의 그녀들을 변신시킬 수도 있었고, 로리부터 가지가지 취향대로 안을 수도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눈독만 들일 수밖에 없었던 연예계 등의 여러 유명 미녀들로 변신시켜 즐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을 지구에 뿌리면? 킥킥 재밌겠다.' 아크는 드래곤의 구애를 받는 위진무가 부러워졌다. "자아 아침식사!" "쿠헉!" 온몸에 찰싹 달라붙은 도발적인 검은 타이즈를 입고 들어오는 카인. 아크는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유익한 조언을 해 주었다. "저기 말이에요 형수님." "형수? 아! 네 말씀하세요 도련님." 아크와 카인이 자신을 고립시키자. 위진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런 복장보다는 그 뭐시기랄까? 홀딱 벗고 겉에 앞치마만 걸치시는 게 어떻까요?" "후훗 그래요?" 카인은 그 자리에서 의복마법을 이용. 자신의 복장을 누드 에이프런으로 바꾸었다. 아크는 그런 카인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잘 어울리시는 데요? 형수님." "그래요? 도련님." "누가 형수님이고 누가 도련님이야!" 아크는 능청스럽게 위진무의 불평에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진무 형님 부인이신 카인님이 형수님이죠." "진 동생이니까 도련님이라고 불러야지." 이제는 쌍으로 염장질이다. 위진무는 문득 이 새로운 제자 덕에 자신의 인생이 더 피곤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첫 수련 시간. "윗옷을 벗거라." "예? 서, 설마 형님 그쪽이셨습니까? 그래서 형수님을 그렇게." -으득! 위진무는 이를 갈았다. 언제나 여유롭고 너그러웠던 자신이 최근 웬 년놈들에게 쌍으로 염장질을 당하다 보니 인내심이 많이 약해 진 모양이었다. 카인카드 같으면 맷집이라도 세니까 열 받으면 두드려 줄 수도 있었지만 이 제자 놈 같은 경우 잘못해서 탁! 치면 억! 하고 죽어 버릴 만큼 약했기에 차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다. "그쪽은 무슨. 너의 근골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군소리말고 벗거라." "크흑! 등짝을 보이다니!" "......?" 등짝의 숨은 의미를 모르던 위진무는 등짝을 보였다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위진무는 아크의 근골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참 뜨거운(?)시선으로 아크를 관찰하던 위진무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크흠!" "왜 그러십니까? 설마 제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엄청난 무골이라서 감탄을?" "아니. 그 반대다." 위진무는 아크에게 무공 비 적합 판정을 내렸다. 아크의 근골은 정말 상태가 안 좋았다. 무공을 가르치는 것의 적기는 어린이 시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았기에 나이 먹은 아크의 근골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폐인 생활로 굳어 버리고 굽혀진 척추로는 좋은 검세가 나오지 않을뿐더러 폐인 생활의 생활리듬 파괴와 피로 누적으로 곳곳에 안 좋은 혈이 뭉쳐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전해주려던 내공심법 또한 아크의 체내에 별 떨거지 같은 마나(블레싱 소드로 인한 신성의 마나)가 있어 전해주기가 뭣했다. 신성력을 가진 순수한 마나라 주화입마 따위가 걸리지는 않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야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심법이었기에 블레싱 소드의 마나가 방해가 되었다. "정말 막막하구나." 위진무는 일단 아크의 막힌 혈도를 뚫어 주고, 그가 말년에 개발해 낸 최강(最强)심법의 구결을 전해 주었다. "일단은 나로서도 뭐라고 장담할 수가 없다. 일단 진조 네가 이 심법으로 끈임 없이 내공의 수련을 하거라. 그 이후에 내 검술을 전해 주겠다." 위진무는 이 무공에 소질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아크를 가르쳐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한 단 말인가? '어라? 이게 왜 안 되지?'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운기 하던 아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분명 위진무가 하란 대로 따라는 했는데 도무지 마나의 흐름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진무 형님. 마나가 어떻게 도는 지 느껴지지가 않는데요?" "으음. 내가 마나를 불어넣어 줘 보마. 그것이 너의 몸을 흐르는 경로를 기억하고 심법으로 대기 내의 마나를 끌어들여 보거라." 위진무는 자신의 마나를 아크의 혈도 내로 흘려보냈다. "됐으니 한 번 다시 해 보거라." 아크는 다시 한 번 운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뭐야! 무협 소설 보면 운기 만 척척 잘 하는데 나는 왜 안 되냐고?' 그딴 잡녑 이나 가지고 있으니 안 되는 거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무신 위진무 이번 편으로 약 3권 분량이 끝이 납니다. 3권 분량...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요. 엄청난 비평이 쇄도를 했고 그것에 일일히 답변하고 독자님들의 코멘 읽는 맛에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면서도 꼭 유조아 사이트는 항시 켜 두고 NEW가 뜰때마다 눌러 봤던. 지금은 아니겠지만 이 3권 분량은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게 다 읽으시는 분들은 많아지는데 제가 그분들의 기대에 다 부응하지 못한 무능력 탓입니다. 아직 책도 안 나왔는데 이런 것을 걸기는 조금 뭐하지만 현재 제목 '인간유희록'이 오프라인 시장에 맞지 않다는 출판사 측의 조언에 제목을 구상중에 있습니다. 출판사 측에서 제시한 제목과 제가 몇 가지 생각해 둔 제목외에도 공모를 받고 있으니 설문조사에 오를 만한 참신한 제목을 공모해 주신 독자분께는 제 책이 나오면 보내드리겠습니다.(라면 한 박스도 가능합니다;; 폐인생활의 필수품) 설문조사는 이 소설의 향방을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지금 맨 처음에 있는 설문조사 같은 경우는 진 히로인의 결정을 유도해내고 표지에 관한 설문 같은 경우는 현재 이 표지를 계속 쓸 것인가? 아니면 책이 나올 것을 대비 그 겉표지를 쓸 것인가 에 대한 내용입니다.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현재 비축분이 완전 고갈 상태입니다. 한때 24회 정도 올릴 편수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고작 4회 아니 이편 올리면 3회 겠군요. 용량 줄이기로 버텨서 겨우 5회 나올 정도입니다. 지금 방학시즌이라 쓸 시간과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곧 시작되는 여름방학 보충수업에서는 저도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무기한 연중을 들어가야 할지...하지만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중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제 심정입니다. 지금은 하루 한 편도 벅찬 상황이기에 독자님들의 연참 요청이 버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에라 원하는 대로 해 주자! 하며 하루 내에 싸그리 올려버릴까도 하는데...그 후폭풍으로는 무기한 연중을 각오하셔야 할겁니다(협박이냐!) 여태껏 읽어주신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4권 분량으로 돌입하는 다음편부터는 초사이코 아크의 기행과 로니의 부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어째 드라마 광고같다?) - 여러 가지 소설 관련 이야기들. 로니에 관하여 그녀는 원래 죽는 각본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자님들의 요청으로 살려 놓고 아크의 성장 촉진제 요소로 쓸 예정입니다.(원래가 그런 역할. 죽어서 아크의 분노를 유도 성장을 촉진시키는)하지만 그 이후의 각본이 잡혀 있지 않아 조금 어설프게 떠나게 됩니다(나중에는 나옵니다) 야하다. 이 부분 상당히 문제가 많이 제시되는 부분입니다. 출판사 측에서도 자제를 요청하고 있고, 저도 자체 검열은 하지만 워낙 제가 그런 류를 좋아하다 보니 주체를 못하는 상황입니다. 위진무에 대하여 그는 아마 이번 파트 무신 위진무 다음부터는 출연이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사실상 그의 역할이 끝난데다가 원래 그는 전설의 존재일 뿐 세상사에는 관여를 시키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 글이 무진장 잘 나가 질질 늘려 써야 할 때가 생긴다면 그를 통해 무림과의 연결을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그것도 영. 하지만 '운수대통 삽후리기'라는 아크의 별명은 포기하기가 힘드네요. 잘 모르겠습니다. 4권 분량에 관하여 아마 수 많은 패러디가 들어갈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동료들을 얻는 과정에서 여러 유명작들의 패러디가 들어갈 것 같은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아크가 자신이 겪는 상황을 패러디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죠. 그 패러디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가 상당한 골칫거리입니다. 또한 원제 인간유희록에 맞게 주인공의 유희가 시작됩니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보면 어이가 없게 전개가 되는데 그것을 주인공이 그 삶을 유희로 생각해 체험을 하려 했다고 생각하신다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쓸데없이 서문이 길었군요. 본편 시작하겠습니다. -본편입니다. "못 느끼겠습니다." "크흠 다시 설명해 주마." 그러나 수십 번을 설명에 실습까지 시켜 주어도 아크는 여전히 내공을 운기 하지 못했다. 아무리 해도 대기 중의 마나를 느끼고 순환시킬 수가 없었다. 프로즌 아이스로 마법을 쓸 때나 블레싱 소드를 휘두를 때는 마나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지만. 가부좌를 틀고 하는 내공수련에서는 이상하게도 마나를 운기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가다만 수십번째 드디어 위진무가 두 손을 들었다. "이럴 정도라면 내가 더 이상 지도를 하는 것보다는 너 혼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포기하실 정도로 상태가 안 좋습니까?" "일단 해 보거라. 이 심법이 나중에 이 심법이 정히 안 되면 다른 것으로 해 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네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에휴 인생 참.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크의 생 노가다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꽝이다.' 아크는 가부좌를 튼 두 다리를 풀며 일어난 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내공심법 수련은 갈수록 개판이었다. 하도 안 되다 보니 조는 것은 물론이오. 눈감고 있는 동안에는 내공심법의 구결이 생각나는 게 아니라 온갖 야한 생각만 들었다. "오늘도 아니되더냐?" "예." "으음 거 큰일이로군." 아크의 옆에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 중이던 위진무가 몸을 일으켰다. "일단 며칠 만 더 그 심법을 운기 하거라. 그때까지 성과가 없으면 다른 심법으로 수련을 해 보자꾸나." "그런데 맨날 운기만 하면 안 심심하십니까? 전 좀이 쑤셔 죽겠던데." "특별히 할 일이 없지 않느냐? 너라도 가르친다면 모르겠지만." "흠......" 순간 아크의 머릿속에는 위진무 폐인 만들기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진무 형님!" "뭐냐?" "심심하실 텐데 재미있는 거 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재미있는 거?" 흥미를 보이는 위진무.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아크는 마법 배낭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건 무어냐?" "기다려 보십시오. 이게 바로 현대 지구인들의 최고의 발명품 컴퓨터라고 하는 것입니다." "컴퓨터?"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위진무는 신기롭다는 듯이 노트북의 액정 화면을 바라보았다. '음 뭘 해야 하나?' 둘이서 게임하기에는 대전 액션이나 아동용 아케이드 괜찮지만 위진무는 연세 지긋하신 노인에 게임이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게임에 친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익숙한 중원을 배경으로 한 삼국지가 가장 괜찮을 듯 보였다.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이거 받으십시오. 통역 마법이 필요할 겁니다." "......! 삼국지!" 위진무는 타이틀 화면의 한자를 읽은 다음 반지를 꼈다. "게임을 시작한다. 데이터를 로드한다. 신규장수를 등록한다. 무엇이냐? 이것이." "삼국지라고 하는 중국의 후한 말을 배경으로 한 게임입니다. 그 시대의 군주들을 선택해서 분할될 중원을 통일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죠." "게임?" "일단 제가 하는 것을 잘 보십시오." 아크는 유비가 신야에 있고 조조가 형주를 노리고 남하하는 시나리오에서 유비를 선택했다. 그 신야 땅에서 벌어진 전투가 지금의 아크를 있게 했다. "자 이렇게 요 버튼 두 개 달린 걸로 시설이나 장수를 누른 다음, 이러 저러한 것들을 시키는 겁니다. 일단 신야성에서 조조의 침략을 막으려면 징병을 해 놓고......" 아크의 게임설명을 들으면서도 위진무는 그 익숙한 지형들의 이름과 처음으로 제대로 본 중원의 자세한 전체지도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사천성은 어디 있느냐?" "익주 말이시죠? 이렇게 이걸 왼쪽으로 죽 이동시키면 유장이 차지한 여기 강 네 개. 성도 쪽의 사천성일 겁니다.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비슷했다. 산지로 둘러싸인 익주. 네 개의 강이 흐르는. "대충 아셨죠? 그럼 일단." 아크는 초기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신규장수 등록에 들어가 위진무란 장수를 등록시켰다. "무력은 당연히 높겠죠?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죠. 열전은 드래곤에게 넘어가게 된 이계의 검사 정도?" "신기하구나 어떻게 이런 것을......" "그건 앞으로 제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복잡해서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을 재밌게 즐기면 되는 것이죠. 자 그럼 뭘로 하실 겁니까?" 유비가 제갈량을 얻는, 방금 전 아크가 플레이했던 시나리오에서 위진무는 유비를 골랐다. 그것을 본 아크는 혀를 찼다. '쯧쯔 초보면서 유비라니. 일단 조조로 한 번 처참히 밟아 버려야 겠군.' 시작되는 게임. 위진무는 마우스 잡는 것부터가 어색했다. 아크는 시작하자마자 신야와 가까운 완에 수십만의 병력을 집결시켰다. 그런 다음 위진무를 공격했다. 그리고 1달도 채 지나지 않아. -208년 1월 유비군은 멸망했습니다. "......!" 위진무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이렇게 쉽게 털려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음 포로중에 위진무가 있군요? 십중팔구 성공한다고는 하는데 처단!" -조조군의 포로로 있던 위진무가 사망했습니다. "잔인한 놈! 초보를 상대로." "쯔쯔쯔 삼국지 처음 하는 생 초보가 뭐 하러 그 상황에서 유비를 고릅니까? 세력 자체에서 애초에 상대가 안 되잖아요? 나 참 이번에는 제가 유비를 할 테니 어떻게 하는 지 잘 보십시오. 조조로 해서 쳐들어와 보십쇼. 제가 어떻게 막는지." "어디 어떻게 하나 두고 보자." 위진무는 이를 갈며 다시 조조를 선택했다. 그리고 아크가 했던 대로 수십만의 병력을 완에 집결시켰다. 이에 대응해 아크는 꾸준히 병력을 모으고 초반 딸리는 금은 지속적인 탈취로 훔쳤다. 그리고 조조군이 쳐들어오는 길목에 토류를 세워 놓았다. 그리고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인 삼고초려 이벤트를 보았다. "이게 삼고지례인가? 이렇게 보는 것도 재밌군." "게임에나 신경을 쓰시죠. 작살을 내 드릴 테니까." 조조의 칠대장들이 이끌고 내려오는 약 10만의 대병력. 아크는 그 중 머리가 똑똑한 장료가 이끌고 오는 15000병력에는 관계가 호의적이었던 유표의 군사를, 하후형제가 이끌고 오던 군대는 직접 조운과 장비를, 그리고 허저 부대와 조인 부대에는 서서와 제갈량을 이용 허보를 걸어 후퇴시켰다. 그런 다음 다시 제갈량을 이용하여 하후 형제의 부대를 무진 상태로 만들어 궤멸시키고 유표를 도와 장료 부대도 패주 시켰다. 허보를 뒤 늦게서야 간파하고 재 진격 해 오던 조인과 허저 부대는 토류에 막혀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사기가 떨어져 자동 후퇴했다. "......" 위진무의 마우스를 쥔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푸헤헤! 역시 전략 게임에는 전략을 써야 한다니깐? 어디 보자 하후돈에 하후연에 서황에 우금이라? 거기 외교에 반환이라고 있죠? 그걸로 하시면 풀어드리죠. 일단 등용부터 해 볼까요? 오호 하후돈? 두 주군을 섬기는 자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서황도 그렇고 오호? 하후연이 조조를 배신 때렸네?" 위진무가 조종하던 조조의 신하 하후연을 등용하면서 은근슬쩍 염장을 지르는 아크. 그리고 위진무의 사자가 도착했다. "의천검하고 금 20000정도는 주셔야 겠소만?" 하후돈과 서황을 데려가려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는 위진무 그러나 20000이나 되는 금의 소모는 조조 진영에 재정난을 초래했다. "이런!" "푸헤헤! 그 많은 금을 진짜로 다 줍니까? 제가 약간은 증정해 드리죠." 아크의 증정 고작 금 1000 처먹은 것은 많은 놈이 겨우 그것을 주니 완벽한 염장 질이었지만 위진무로서는 그것만해도 감지 덕지였다. "어떻게 금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탈취를 하시거나 상인이 있는 도시에서 군량을 매각하시지요. 탐색을 시켜도 가끔 금 같은 것을 주워 옵니다." 가엾게도 위진무는 금을 구한답시고 군량을 팔아치웠다가 가을이 되기 전 군량이 바닥나 병사들이 도망가는 참사를 맞고야 말았다. 그러니 시세도 높은 군량을 사느라 바꿔 놓은 금 또한 다시 소모해야 했고 덕분에 위진무의 조조는 재정이 완전히 파탄 나서 가을이 될 때까지 그로기 상태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반면 하후돈 석방 조건으로 순진한 위진무의 많은 금을 뜯어 낸 아크는 이것저것 투자를 하고, 유표를 공격해 형주를 얻었다. "너는 어째 잘 나가는 것 같구나." "땅덩어리는 세 개뿐이지만 저 건드렸다가는 아까 처럼 당하십니다. 일단 저 위에 마등이나 익주의 유장. 강동의 손권을 먼저 치시는 게 이득일 겁니다. 킥킥 위진무가 또 배신을 했네요? 왜 그렇게 신의가 없으십니까?" 그렇게 위진무와 아크는 게임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후우 이렇게 된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구나." "에휴 인생 참." 아크 안의 블레싱 소드로 인한 정순한 마나와 충돌을 일으킬 염려가 있어 마지막까지 미뤄왔었던 마공 귀혼대심법까지 실패하자 위진무마저 체념해 버렸다. 반 년 이상을 내공심법 훈련을 시켜도 운기 조차 할 줄 모르는 아크. 이 정도까지 무공에 재능이 없다면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 네가 강해질 수 있는 길은 마법밖에 없는 듯이 보인다. 일단 카인에게서 기초적인 마법을 배우고,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다면 내 레드 일족의 수장 브락라스노를 소개 시켜 주도록 하마. 내가 천년을 수련하여 무신의 경지에 이르렀듯이 너도 드래곤들에게 속성의 코스로 마법을 배워 몇 백년 가량 수련하면 인간으로서는 밟은 적이 없는 불모의 영역인 9서클이나 10서클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강해지려 한다면 마법을 배우거라." "저기 말입니다. 진무 형님. 그냥 검술을 가르쳐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외공을 중시하려는 것이냐? 어리석은 생각이다. 쓸만한 내공이 뒷받침이 되어야 외공이 빛을 발하는 것이지 내공 없이는 결코 상승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지만 아크에게는 내공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 아직 남아 있었다. 위진무의 도움을 받아 내공심법으로 마나를 수련한다면 10년 속성 코스로 마스터가 된다기에 지금껏 묻어만 왔었던 30년 마스터 완성 코스인 블레싱 소드 노가다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실 아크가 위진무의 내공 수련법으로 마나를 쌓지 못한 이유는 이미 아크의 몸이 블레싱 소드를 휘두를 때마다 쌓이는 마나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성자. 즉 신을 따르는 이들을 위한 검이었던 지라. 블레싱 소드로의 수련이 아닌 다른 것 즉 귀혼대심법 같은 암흑의 마나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기 위한 시스템이기에 블레싱 소드가 아닌 다른 마나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반응했다. 그렇기에 아크는 여타 내공심법을 익히지 못한 것이었다. 위진무야 지고지순한 신성의 마나이니 다른 심법을 병행해도 상관없겠거니 했지만 여타 내공심법처럼 블레싱 소드로 쌓은 마나도 한 번 쌓은 것으로 계속 수련을 해야 하는 전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어 위진무에게 보여 주었다. "이 검의 효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엄청난 신성력의 부여로 인한 고위급의 신성마법과 지닌 자에게 각종 축복의 효과가 아닌가?" "예 맞습니다. 맞고요. 하지만 한 가지 모르시고 계신 것이 있습니다." "......?" "이 검은 휘두르기만 해도 검사의 몸에 신성의 마나를 자동적으로 쌓아 줍니다." "한 번 휘둘러 보겠느냐?" "옙." 아크가 블레싱 소드를 휘두르자, 위진무는 대기 중의 마나가 검에 흡수 신성력의 마나화 되어 아크의 몸으로 흡수되는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호오? 그래 그랬군. 네 몸 속에 미량의 신성의 마나가 어디서 난 것인가 했더니 그 칼에서 난 것이었어." "아크로니아의 말로는 꾸준히 한 30년만 휘두르면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조금 빡세게 열심히 휘두르고 진무 형님의 검법 수련을 받는다면 1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단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탁 위진무는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났다. "그래! 좋다 진조. 이제부터 검 수련에 들어가자! 내가 창시한 최강검법을 전수해 주마!" "최강? 검법이름이 최강입니까? 아니면 그 검법의 위력이 최강이란 말입니까?" "당연히 가장 최! 강할 강! 그야 말로 최강의 검법이란 뜻이다. 이 검법에는 이것 이외의 수식어 따위는 필요가 없다." 아크는 자신의 주위에 인물들은 정말 이름짓는 센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리콘 골렘에 최강검법......정말 한숨만 나오는 이름들이다. '하긴 이름 생각 안 나서 소설 같이 드래곤 이름 따서 이름지은 나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만.' "검은 자세에서 시작되는 것! 자세와 걸음걸이! 즉 스텝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좋은 검과 기술이 있다 한들 적을 쓰러뜨릴 수는 없다." 자세부터 시작하는 위진무의 검술 강의 그리고 본격적인 아크의 30년 마스터되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삼국지는 삼국지 9 파워업키트를 인용했습니다. 원래 진상은 10000금 밖에 안 되는 등 여러 게임과는 실제로 안 맞는 부분이 있지만 픽션이라고 생각해 주시고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은근슬쩍 얼버무리는 작가 SK)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긴급공지 긴급공지 인간유희록 제목 공모. 목요일 낮 12까지 제목을 공모합니다. 심사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제목을 올려주신 3~4분께 곧 나올 책 1,2권을 드리겠습니다. 유조아 메시지나 메일 longlongcom@hanmail.net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멘도 상관없지만 이상한 특수문자 아이디라면 유조아 메시지 등을 이용해 주십시오. 메시지나 메일이 답신을 하기가 편합니다. 두세번 복수 응모도 가능하니 최대한 독자님들의 아이디어를 짜 내 주십시오. 이번 것이 편수가 아니라서 실망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저로서는 급합니다. 109화에 본편과 같이 올렸더니 별 반응이 없더군요. 만약 별반 참여가 없다면 보름간 연중 들어갈테니 각오하시는게 좋을 겁니다(협박이냐!) 마지막 추신 아크전기와 더 아크 같은 제목은 출판사에서 제시한 내용이기에 심사하지 않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연중 협박 때문인지 상품 때문인지 제목 공모에 폭발적인 참가가 있었군요. 하지만 대부분 엇비슷한 제목들이 많았습니다. 뭔가 획기적인 내용이라거나 내용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거나 주인공이 떨어진 대륙의 이름을 멋지게 지어서 보내주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금껏 제가 마음으로 찍어둔 것은 일단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냥 원제 대로 가고 싶기는 하지만 오프라인 상의 시장성이 없다고 출판사 쪽에서 그러는 군요. 일단 그쪽 계열에서는 저보다 출판사가 더 잘 알 터이니 그대로 따라보기로 했습니다. 책 팔아야 돈 버는 것은 저나 출판사나 마찬가지이니 설마 그쪽에서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겠죠. 어쨌든 폭발적인 응모 덕분에 비축분을 조금 소모해 연참을 해볼까 합니다. 7월 22일 새벽 4시경 쯤에 이 편 다음 2편이 올라올 겁니다. 투데이 베스트를 의식한 연참입니다만 이벤트의 폭발적 참여에 대한 보상으로 변명해 보고 싶군요.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네 놈 정말! 검을 배울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 위진무는 그야 말로 대노하고 있었다. 그와 10여 년을 함께 살아 온 아크는 위진무가 저런 강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에 말없이 찌그러져 있었다. 아크도 자신이 발전이 느리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위진무의 말로는 로니는 10년 만에 최강검법의 10성을 마스터했고, 그 외 위진무의 제자였던 팬크라프트 세 명의 소드 마스터 들 중 렌도로스 대공은 9년 나머지 두 공작은 13년 만에 마스터 한 알기 쉽고 위력이 강한 그야말로 최강의 검술 최강검법을 아크는 10년이 다 되도록 겨우 4성의 경지 밖에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물론 10년 안에 최강심법으로 마나를 쌓은 그들과는 다르게 아크는 마나가 쌓이는 속도가 느렸고 그것 덕분에 상승의 경지를 이루기가 조금 더 힘들기는 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4성의 경지라는 것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노력은 많이 했다고 자부하고는 있었다. 아크의 체내에 쌓인 소드 익스퍼트 급의 마나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검술만큼은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서 아크의 띨한 머리에 일대 혼란을 주었다. 검술이란 것은 정말 우습게 알고 덤빌만한 처지가 못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쉽게 그리고 쇠막대기를 휘두르는 데 무슨 법칙 따위가 필요하겠냐 하며 무시해 왔었던 검술이 지금은 고등학교 수학 문제만큼이나 난해하고 어려웠다. 그나마 위진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성취한 경지도 어려웠을 것이다. "후우 진무 형님. 권이나 예전 제가 했던 살인 격투술로 종목을 바꾸면 안되겠습니까?" 사실 아크도 위진무도 서서히 검에 대해 지쳐가고 있던 중이었다. 도무지 발전이 보이지 않으니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이나 답답한 심정만큼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네놈은 '무'라는 것을 무슨 장난으로 알고 있는 거냐? 그리 쉽게 전공을 바꾸고 수련에 성의가 없어 가지고 네가 진정한 무를 이룰 수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 따위는 버려라!" "아뇨. 그 소리가 아니라 검은 계속 배우겠습니다. 빠른 몸놀림이나 마스터의 경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검은 필수적이니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생각해 와 본 바로는 저는 영 검에 소질이 없는 듯 싶습니다. 진무 형님도 봐와서 아실 겁니다. 제가 수련 받으면서 게으름 피운 적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아크의 체내 마나는 노가다는 많이 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모르지 않던 위진무는 조금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쩌겠다는 거냐? 내가 보기에 그 살인격투술은 실전용으로 쓰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기술이다. 그게 무엇이더냐? 한 놈 들어서 메치고, 던지고 시간이 배로 드는데다가 적이 잘 죽지도 않으니 검으로 적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확실히 비효율적이다. 또 서브미션이라는 것은 1대 1에서만 사용 가능한데다가 네 녀석이 이미 익히고 있지를 않느냐?" "살인격투술에도 엄연히 타격기가 존재합니다. 해머링 같은 전혀 쓸모 없는 기술도 있지만 슈퍼킥과 헤드벅, 빅 풋, 찹, 크로스라인 등의 때리는 기술이 엄연히 존재하죠. 하지만 그것들을 강력하게 하기 위해서는 근력 수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리석은 녀석. 근력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순간의 마나를 집어넣어야 하는 부위라면 열심히 노가다를 하는 수밖에 네가 조금 더 많은 마나가 쌓인다면 신체에 마나를 집중시켜 강화시키는 기술을 알려 주도록 하마." "......! 그런 기술도 있었습니까?" "검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보통의 검으로는 쉽게 벨 수 없는 것을 마나를 이용해 베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마나를 이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의 힘이다. 무언가를 베겠다는 의지의 마나가 검에 무엇이든지 벨 수 있는 마나를 덮어씌우는 거지 이런 것을 응용 자신의 의상에 무언가를 막아내겠다는 의지의 마나를 이용한다면 오러 블레이드의 응용기술 오러 아머가 탄생하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네 머리로 오우거의 머리빡을 깨 버리고 싶다 했을 때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싶다는 의지의 마나를 이용해 오러 헤드(?)음 이상하군. 그냥 오러 헤드로 해 두자. 오러 헤드를 이용한다면 네 머리는 바위보다도 더 단단해 질 것이다. 물론 지금의 너로서는 조금 난해한 주문이겠지. 무언가를 베겠다는 의지의 마나를 검이라는 도구에 형상화시키는 것보다 어려울 테니까. 일단 내가 그 비슷한 기술들을 연구해 보마. 그때까지는 헤드벅으로 바위를 부술 정도로 머리를 단련시키거나 그 스위친 뮤직인가 하는 것을 나무를 부러뜨릴 정도로 외공을 우선 연마하거라." "저기!" 아크는 손을 들었다. "또 무어냐?" "잡기를 좀 배워두었으면 합니다." "잡기?" "예." "음 그러니 몇 가지 쓸만한 것들이 있기는 있겠구나. 땅바닥에 주먹을 꽂아 지면을 흔들리게 하거나, 일시적으로 몸을 도검불침 금강불괴로 만들거나 손바닥으로 검의 면을 쳐내거나 어기 전음이라거나 기운을 역류시켜 독을 배출한다거나...... 좋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도록 하마." 긍정적인 답변에 아크는 포권지례를 취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오랜만에 한 판 뜰까요?" "......!" 한 판 뜨자는 말에 위진무는 귀가 솔깃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10여년 세월 동안 주야장창 해 오다가 결국엔 건전지가 바닥나서 못 했던 게임. PS2라면 전격의 마나 연료를 사용하게 되어 있기에 언제든 플레이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마나 연료의 구동 원리를 이해한 것은 드래곤 카인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핑계로 위진무에게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강요했고 자존심 드높은 위진무는 그런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그저 노트북에 태양열 전지가 전기가 다 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런 전지들이 마침 전기가 다 찬 모양이었다. 아크라우스는 아크의 대장장이 캐릭터 아이템 교환을 끝으로 더 이상의 지원이 없었다. 아무리 구걸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돈 없으면 즐!'이라는 때려죽이고 싶어지는 대답 뿐. 어찌됐건 위진무 게임 폐인 만들기 작전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무림 고수 위진무는 이제 게임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임 매니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위진무의 케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공격하는 장거한. "크하하하하! 철구 대회전!!" "크흑! 이놈이!" 그리고 제자가 사부에게 유일하게 하극상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이 시간 이었다. 사실 아크가 위진무의 이전 제자들보다 실력을 내지 못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검에 미쳐 수련 시간 이외에도 열심히 수련을 했던 이전 제자들에 비해 아크 같은 경우는 위진무가 훈련 시키는 시간 외에는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등의 여가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 성취가 늦을 수밖에 "하아 앗!" -쿵쿵쿵 나무는 처절한 시련을 맛보고 있었다. 아크는 말 못하는 나무를 상대로 열심히 박치기를 연습하고 있었다.(배경음악으로 영화 로키의 그 음악을 들으면 한층 더 실감이 날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강력하고 단단한 부위. 두개골. "헤드 벅!" -쿵쿵쿵쿵 나무에 머리를 찧을 때마다 이마에는 피가 맺혔지만 블레싱 소드는 그것을 즉각 치료해 주었다. 아크는 머리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으랴아아압! 필살 김일 헤드 벅!" -우지끈 믿기지는 않지만 박치기로 나무가 부러져 버렸다. "후우 머리 기술은 마스터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적의 목을 부러뜨리는 크로스 라인 프롬 헬과 발에 마나를 집중. 강화시킨 다음 턱을 노리는 스위친 뮤직, 무릎의 라이언 킥, 어깨치기, 그리고 결정타 찹이 남았다. 일단은 머리가 가장 단단하고 마나를 집중시켜 강화시키기가 편했기에 맨 처음 아크가 익힌 기술은 헤드벅이었다. "이제 검 수련 시간이군."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아들었다. 4성을 이룬 팬크라프트 제국 검법. 일명 최강검법을 연마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 수련 시간에는 위진무가 참관을 해야 했지만 그는 아크를 꺾을 초필살기 연마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크의 검 실력은 확실히 느는 속도가 늦었다. 이래가지고는 마스터 급의 마나가 쌓이는 30년 안에 최강검법의 10성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뭐 검은 그냥 세컨 무기로 쓰지 뭐." 속 편한 소리다. 애초부터 약하고 무딘 인간의 신체로 적을 상대하는 것은 금속이라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으로 적을 상대하는 것 보다 당연히 딸릴 수밖에 없다. "후아, 학, 학 오늘 끝!" 동쪽에 걸친 해가 붉은 노을을 머금으며 서쪽으로 사라질 즈음. 아크의 오늘 수련은 끝났다. 이제 오늘 남은 일정은 새 초필살기를 연마한 뒤 전의를 불태우고 있을 위진무를 처참히 꺾어 주는 것이다. 운디네로 몸 세척을 해 땀을 제거한 아크는 위진무의 초야로 여유롭게 걸어갔다. 경공술을 써도 되지만 굳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여유로이 걷고 있던 아크에게 한 동굴이 눈에 띄였다. 로니가 잠들어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흠. 오늘도 잠자는 동굴 속에 공주님이나 보고 갈까?" 아크는 수련이 끝나고 돌아 갈 즈음마다 로니가 잠들어 있는 동굴에 들리고는 했다. 오늘은 깨어났을까? 하는 기대감에 들러 보던 것이 어인 11년이 다 되었다. 이제는 별 다른 기대감 없이 그저 로니의 알몸 구경을 하러 가는 아크. 그는 요새 들어 자신이 정말 변태의 경지에 올랐음을 통감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그냥 보기만 해야겠다. 계속 이렇게 나가다가는 정말 자는 누나 X먹기처럼 되어 버릴 것 같으니......'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했길래? 그러나 막상 로니를 마주치고 보니 억제하려던 욕정이 또 일어났다. "그, 그냥 할까?" 애초엔 동화 속 백설공주처럼 혹시 이러면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하자." 결국 아크는 이전에 해 왔던 대로 자는 누나 건드리기 모드로 들어갔다. '에휴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누가 보면 다들 변태라고 하겠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크는 그 경지에 이르렀다. 아크는 로니의 몸에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그런데 언제나 싸늘하던 그 몸에서 왠지 모르게 온기가 느껴졌다. "......!" 그리고 굳어져 있던 로니의 양팔이 아크의 뒷목을 감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아......크." "저, 정말 깨어나신 거에요?" "응."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어요? 정말! 자그마치 11년이나 기다렸다고요!" "미안. 그런데." -퍽! 로니는 일어나자마자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왜?" 아크는 멍한 표정으로 로니를 쳐다보았다. "실은 얼마 전부터 정신은 들어 있었어. 몸이 굳어서 못 움직였을 뿐이지. 근데 그동안 하는 짓 정말 웃기데? 이상한 이야기나 알고 있었으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겠다만. 내 이럴 줄 알았어." "헤헤......" 아크는 맞은 데가 욱신거림에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었다. 이런 모습이 정말 그녀다웠다. "그런데 정말 11년이나 지났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너 칼맞지 않았니?" "진무 형님이 구해주셨죠. 그리고 누님이 살아나신 이유는 여기 이 물 때문이 라네요. 선약이라던가?" "그랬구나. 사부님이......진무 형님? 너 왜 사부님의 존함을 그렇게 함부로 불러?" "누님한테는 사부님 이실 지 몰라도 저한테는 형님입니다만. 그나저나 이제 나가 실까요?" 로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야 하반신은 아직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어." "오호? 그으 래애 요오? 오호호?" 아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론의 하체에 파고들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기억나시죠? 그 때 제 맘대로 하겠다는 엄포? 그러니 가만히 계시지요!" -퍽! 로니의 제 2타 "그 때야 내가 아플 때 얘기고 이제 부활했으니 얘기가 다르지." "후후 그런다고 가만있으리라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아크는 로니를 들어서 생명수 속에서 빼어 내 왔다. "아무리 하반신이 움직이기가 힘드시더라도 깨어나셨으면 응당 사부님을 만나러 가셔야죠. 그리고 그전에 옷부터 입어야 되고, 옷 입으려면 물기를 싹 닦아내야 겠지요." 아크는 마법 배낭 속에서 수건을 꺼내 로니의 젖은 몸을 닦아주었다. "너! 왜 자꾸 거기만 닦아!" "중요한 부위니 깨끗이 닦아야죠? 기억 안 나세요? 자주 닦아드렸잖아요?" "못 본 사이 많이 능글맞아진 것 같다?" "누님이 절 이렇게 만들었죠. 누가 그렇게 오래 자래요?" 아크는 옷까지 철저히 입혀 준 뒤 정말 오랜만에 휠체어를 꺼냈다. "이것도 정말 오랜만이군." "후후 어찌됐던 깨어나셔서 다행이군요. 이제야 총각 딱지 좀 떼 보나?" "누구 맘대로?" "제 맘대로." -퍽! "왜 때려요!" "헛소리하지 말고 지금껏 있었던 얘기들이나 해 봐." 아크와 로니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다정하게 산길을 걸었다. "로니!" "카인 님!" 위진무의 초야에 당도한 아크와 로니를 카인은 반갑게 맞이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오랜만이에요. 사부님은요?" "안에 들어가 봐. 할아버지랑 너무 재밌게 놀고 계셔서 부르기가 뭐해." "할아버지?" "도련님도 얘기 들었죠? 브락라스노라는 레드 일족의 수장 말이에요. 오랜만에 찾아오셨어요." "그래요? 진무 형님!" 아크는 위진무를 부르며 방문을 열었다. 방안에는 위진무와 브락라스노로 추정되는 붉은 머리의 청년이 TV앞에 앉아서 조이스틱을 갈겨대고 있었다. "으다다다다다! 폭탄을 날리란 말이다! 브락라스노!" "어떻게 날리는지 알아야 말이지!" 한참 난리를 피우는 둘. 그러다 캐릭들이 죽고 브라운관에는 아주 슬픈 문구가 떠올랐다. -GAME OVER "으아아! 또!" "브락라스노 자꾸 이럴 테냐?" 게임에 빠져 누가 왔는지도 모르는 두 사람. "사부님!" 로니의 고함에 그제 서야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 아니 정확히 말해 한 사람과 한 드래곤. "......! 깨어난 것이더냐?" "흐음. 자네가 바로 그......" "오랜만입니다. 사부님." "아! 예 제가 바로 그." 위진무는 로니에게, 브락라스노는 아크에게 용건이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런 꼴이더냐?" "아직 근육이 풀리지 않은 모양입니다." "음." 위진무는 검지손가락으로 로니는 몸 이곳 저곳을 찔렀다. "혈도가 뚫렸다. 이제 일어나거라." 로니는 약간은 힘에 겨운 듯 휠체어를 손으로 디디고 일어섰다. 다리에 힘은 없었지만 어찌어찌 해서 일어날 수는 있었다. 그러는 사이 브락라스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크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저런 것들은 어디서 난 건가?" "현대 지구에서 난 것들입니다." "그건 아네만 어떻게 구했냐는 말일세." "아크라우스가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재미있더군. 나도 이런 것들을 가지고 싶네. 어떻게 그 지구의 아크라우스와 연락을 할 수 있겠나? 위진무의 말로는 그쪽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 이상은 통신이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천 여년을 살면서 다친 적이 없는 위진무로서는 이쪽에서 먼저 아크라우스에게 연락할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오실 생각이십니까? 아크라우스는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절대 아이템을 넘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건 걱정 말게 예상해 두고 대책을 세워 놓았으니까." "그러면 아크라우스에게 지속적인 건전지 공급과 마나 연료를 사용하는 건전지를 제작해 보내 달라고도 좀 해주십시오." "그러지."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내려 놓은 뒤 벽에다 강력한 박치기를 가했다. -쾅 잠시 비틀거리던 아크는 정신을 차린 뒤 아크라우스를 불렀다. "은룡선생! 은룡선생! 여기는 폐인 1호기다 응답 바란다." 곧 아크의 머릿 속에 응답이 왔다. "여기는 은룡선생 무슨 일이냐? 변태 인간." "아 나는 별 볼일 없고 내 옆에 분이 볼일이 있으시다는군." 아크는 맹약의 반지를 브락라스노에게 넘겼다. "뭐냐? 넌?" 브락라스노의 머릿속으로 아크라우스의 음성이 들렸다. 그 음성에 브락라스노는 아주 사근하게 대답했다. "오랜만입니다. 전전대 로드이신 아크라우스님 저 아시죠? 브락라스노." "하늘 날다가 콧구멍에 새가 박혀서 추락했던 얼빠진 그 브락라스노라면 알고 있다." 브락라스노는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던 노인네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가 버린 뒤라, 안 들을 줄 알았던 치욕스런 과거의 이야기를 아크라우스라는 이 노룡에게 다시 들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네놈은 무슨 일이기에 날 찾느냐?" "아크란 인간에게 준 물건들을 저도 차원 택배로 좀 받았으면 합니다." "흐음? 네놈은 뭘 줄 수 있나? 의뢰비는 준비 해 두었겠지?" 역시 돈 밝히는 드래곤 아크라우스 다운 말이었다. "의뢰비? 아크라우스님은 지금 내게 의뢰비 받을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되오만?" "뭐?" "금지된 차원이동 마법을 사용하신 대가로 드래곤 징계 위원회에 회부시켜 도로 이곳으로 송환시키지 않는 대가로 지금 그 조건을 건 것입니다만? 어쩌시려고?" 아크라우스는 할 말이 없어졌다. 브락라스노는 지금 거래가 아닌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버릇없는 빨갱이족의 꼬맹이 녀석이 어딜!" "아크라우스님의 생사 여탈권은 제가 쥐고 있습니다. 순순히 굴복하시죠?" "크으......알았다. 노트북과 PS2, TV면 되겠냐?" "이 인간을 통한 지속적인 건전지 공급과 마나 연료를 이용한 건전지 개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케! 지미 원하는 건 더럽게도 많군. 좋아 그리 할 테니 내 존재에 대해서는 입다물고 있어라.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대가도 없는 일에 뛰어들게 된 아크라우스는 잔뜩 투덜거리며 차원간 통신을 끊어버렸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젠장 진작에 써먹을 것을 괜히 태양열 전지 노가다만 수 십일을 했잖아." "아크라고 했나? 내 부탁하나 들어주게." 말이 부탁이지 드래곤의 부탁 거절했다가는 식사거리가 되야 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인간 아크로서는 당연히 OK였다. "그러죠 그런데 무얼?" "날 가르쳐주게." "예에?" "자네는 저 게임이라는 것에 천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군. 그러니 내게 그 노하우를 전수해 주겠나?" 그제야 아크는 뭔 소리인지 알아듣고 긍정적입 답변을 해 주었다. "아! 예 뭐 그러도록 하지요." '얼씨구. 졸지에 드래곤 게임 스승 됐네.' "진조!" 옆에서 감격적인 사제 상봉을 끝낸 위진무가 아크를 불렀다. "예! 진무 형님." "덤벼라. 오늘 만큼은 자신있다." 투지에 불타는 위진무. 아크는 그런 위진무가 머리는 황금빛 뾰족 머리에 배경에 금빛 오오라가 타오르는 것을 집어넣었으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며 킥킥댔다. "킥킥 그래 봤자.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제가 하는 걸 일단 잘 보십시오. 브락라스노님." 태양열 전지의 전력이 다 떨어져 지금 할 수 있는 게임은 PS용 타이틀 뿐이었다. 마나 연료를 이용하도록 개조가 된 것이기에 TV나 PS2는 카인이 마나 연료만 충전해주면 별 무리 없이 구동이 가능했다. 조이스틱을 잡는 아크와 위진무. 갑작스런 브락라스노의 등장으로 10년만에 깨어난 로니에게는 별 관심이 쏠리지 않았다. 처음 시작은 위닝 일레븐. 자신을 애국자라 자부하던 아크는 능력치 딸리는 한국을 위진무는 프랑스를 골랐다. TV화면 상에 왠 축소화 된 폴리곤 인간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처음 본 로니. 아크와 영화를 함께 본 적은 있었지만 게임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경기는 전반에는 히딩크 스코어로 가다가 후반에서는 사우디 스코어로 질 뻔한 위진무가 간신히 한 골을 만회해 0패의 수치는 면했으나 며칠간 연습을 했음에도 이렇게 결과가 무참하자 그는 고개를 팍 떨구었다. 초보자 브락라스노를 몇 번씩 대파하며 얻었던 자존심이 팍 꺾여 버린 것이다. "푸히히히! 낄낄낄! 역시 형님은 형수님하고나 붙어야 맞는 수준이라니까요? 킬킬킬 그동안 연습한 거 다 어디다 팔아먹으셨습니까?" 이렇게 하극상을 부리는 아크가 조금은 못 마땅한 듯 로니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리고 브락라스노는 자신을 처절히 굴복시킨 위진무를 더 처절하게 부숴 버린 아크에게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저기! 누님. 한 번 해보실래요? 여기 같은 초보이신 브락라스노님하고 한 번 해 보시죠?" "으응 그럴까? 브락라스노와 맞붙은 로니는 처음에는 인터페이스 등에 익숙치가 않아 브락라스노에게 밀렸지만 점차 익숙해 지면서 게임 입문 처음인 브락라스노와 맞먹는 접전을 펼쳤다. 산중. 언제나 적적하고 고요하던 초야에 오랜만에 찾아온 왁자지껄한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슈퍼 킥!" -우지끈 "휴우 부러뜨렸다." 아크는 부러진 나무의 뾰족한 밑둥을 깔끔하게 잘라 낸 뒤, 땀을 닦고서 나무에 앉아 항시 대기 물통인 운디네를 이용해 마른 목을 적셨다. "호오? 대단한 걸? 많이 컸어." "아 누님!" 로니는 깨어나고 오랜만에 자신의 몸에 완벽히 적응이 되자, 아크의 수련에 게임에 빠진 위진무 대신 참관을 나왔다. "그런데 말야. 아크 너." "뭐가요?" "여태껏 최강검법을 4성까지 밖에 익히지 못했다면서?" "......예." 아크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띨띨하기는. 그래서 오늘부터는 내가 특단의 조치를 쓰기로 했어." "특단의 조치?" "내 발에 이거 보이지?" 아크는 로니의 발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발목에는 왠 거대한 철구가 묶여 있었다. "그건 왜 묶었어요?" "이전에 내가 그랬었지? 날 꺾으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물론 그 소원의 범주에는 네가 좋아하는 그런 일들도 포함되어 있고 말야. 그러니까 날 이겨 봐." "정말이십니까? 아무 걸로나 해도?" "아니. 검을 썼을 때의 얘기야. 아무래도 검 실력을 늘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네가 그 격투술로 전향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다 대 일 전투에서 불리하지 않기 위해서는 검도 어느 정도 익혀는 둬야 할 것 아냐? 자. 난 다리를 아주 못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스피드를 낼 수가 없어. 검술의 기초인 보법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소리지. 그러니 지금의 네 실력과 그 검이라면 날 이기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야. 아니 어쩌면 내가 널 이기는 것보다 쉬울 수도 있어." "오호? 한 마디로 자신이 질 것을 각오하고 발에 쇠구슬을 달아 놓으셨다는 소린데. 그렇게 안기고 싶으셨습니까? 진작 말을 하시지." 그 말에 로니의 얼굴에 새빨개졌다. "뭐 부정은 않겠어. 하지만 그런 얘기는 날 이기고 나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원하시는 대로." 아크는 자신감 있게 검을 뽑았다. 그는 이미 로니를 품을 상상을 하고 있었다. 전투 중 잡념은 금물이었지만 아크는 로니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이제 자신도 어느 정도 실력자가 된 데다가 블레싱 소드의 가벼운 무게와 각종 보조기능, 검술 훈련 남은 시간마다 연습했던 검으로 시전 할 수 있는 괴팍한 기술들 그리고 발목에 쇠구슬을 단 로니가 검술에서 가장 위력을 내게 하는 요소인 스텝을 스스로 봉해 버렸기에 이번만큼은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갑니다아!" 아크는 위진무의 최강검법에 자신의 게임 속 기사 캐릭터의 연속기 스킬을 도입한 초식으로 로니를 압박해왔다. 그에 맞서 로니도 검을 뽑아 아크의 초식을 하나 하나 막아냈다. 철구를 매달았다고 못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굼떠진 걸음걸이로 피하기에는 아크의 검술의 예리함을 피해내기 힘들었다. "제법인데?" "헤헤 그렇죠?" "그런데 방심하지는 마." "흐엑!" 발에 거대 쇠구슬이 달렸으면서도 로니는 어느새 아크의 코 앞에 다가와 검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크는 그 즉시 검이 휘둘러질 경로에 블레싱 소드를 가져다 대었다. 그러나 검끼리 부딪히는 손의 울림 대신, 목에 서늘함이 느껴졌다. "어이 상대의 공격을 끝까지 봐야지. 페이크 어택. 속임수도 모르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왜 검을 먼저 가져다 대? 이번 거는 봐 줄 테니까, 다시 해 봐." "......" 로니는 아크이 목에서 검을 거둔 뒤 다시 공격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아크는 반사적으로 검이 날아 오는 경로에 미리 블레싱 소드를 가져다 대었다. "또! 상대방의 검이 날아 올 경로를 미리 파악하고 막는 것까지는 좋았어. 예전에 네가 그 유약한 실력으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의 검을 막는 데에 유용했으니까, 하지만 정공법이 아니라 이렇게 갑자기 방향을 튼다거나 하면? 물론 이 정도의 빠르기야 마스터 급들이 아니면 내기 힘들지만 어쨌든 검의 움직임을 똑바로 보란 말야! 노련미 있는 경험 많은 검사들을 보면은 상대방의 걸음걸이나 움직임만을 보고서 다음에는 어떠한 방향으로, 어떠한 공격이, 얼마만큼의 강도일지 유추해 낼 정도가 되지. 물론 실전 경력도 얼마 없는 너 같은 경우에야 그러한 것을 미리 계산한다는 것이 힘들겠지만. 적어도 검의 방향을 끝까지 보는 선관과 검이 날아올 경로를 미리 차단해 막은 후 곧바로 이어지는 반격이나 기습에 대한 방어의 순발력을 길러야 해. 알았어?" "으아! 어려워! 젠장 내 평생 누님하고 자 보기는 글러먹었군. 보법이 봉쇄되었는데도 지다니......" "변태 녀석. 그렇게 하고 싶어?" "예!" '그럼 해 줄 거야?' 라는 듯한 눈빛으로 아크는 로니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런 아크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로니의 무심한 대답. "그럼 열심히 해. 날 이기면 해준댔잖아." "페널티를 가지고 시작해도 제가 딸리잖아요!" "......음. 그럼 한 주의 수련 결과를 평가해서, 열심히 했다고 생각되는 주마다 해 줄까? 어때? 나쁘진 않지? 물론 대련은 하루에 한 번씩. 이기면 네 맘대로. 응 괜찮지?" "에 뭐 나쁘진 않네요." 라고 대답은 했지만 아크는 자신이 로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 오늘은 특별히 기회를 한 번 더 줄게. 덤비렴." "후우. 기필코 이긴다! 으랴아아압! 필살! 버서커 질럿 검법!" 아크는 왼손에 프로즌 아이스, 오른손에 블레싱 소드를 쥐고 질럿이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가 되면 어떨까? 하는 영감에서 자신이 직접 고안해 낸. 버서커 질럿 검법을 사용했다. 거기에 총각 딱지 한 번 떼보겠다는 일념 하에 각성한 아크의 집념은 다리가 무거운 로니를 상당히 곤란스럽게 만들었다. 방패가 없다면 막아내기 힘들 정도로 버서커 질럿 검법은 예리하게 로니의 급소를 파고 들어왔다. 피하기는 쉬운 기술이었지만 현재 로니는 그것을 피할 만한 스피드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로니는 곧 버서커 질럿 검법의 단점을 찾아내어 그 취약부분을 노렸다. "아! 젠장!" 버서커 질럿 검법이 파해 당하자, 아크는 또 다른 필살기를 가동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긴급공지2 및 당첨자 발표 제목 공모 당선자 명단입니다. 노래하는방랑자 : 이세계 유희록 게인스빌 : 이계 유희록 골드제로 : 레슬 어드벤쳐 제목 후보에는 들지 않았지만 환룡 : 라이프 마스터 이분들이 10권 남짓 저한테 올 만한 작가 증정본용 책을 받으실 분들입니다. 유조아 메세지로 연락 주시면 답신드립니다. 제가 먼저 메세지를 보낼 터이니 7월 31일까지 답신이 없으시다면 당첨 취소이니 유념하시길... 공지사항입니다. 오늘 부터 내일 오전까지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합니다. 인간 유희록의 새로운 제목을 결정하는 설문조사이니 많은 참여가 요구됩니다. 1. 이세계 유희록 일단은 지금 인간 유희록의 뜻과 별 반 다를 바는 없습니다만 출판사 측에서 선정한 제목입니다. 큰 틀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선정된 제목으로 인간이라는 어감이 순수문학 계통 같다는 지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이계 유희록 위의 것과 같습니다만 어감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3. 플레이 그라운드 유희의 즐기다란 뜻을 부각한 '놀다'라는 뜻의 제목입니다. 4. 아크라우스 테일 서브 주인공 아크라우스를 부각시킨 이름입니다. 원래는 아크 테일이었지만 짧아 보인다는 지적에 서브 주인공 아크라우스를 제목에 내비쳤습니다. 대략 아크라우스가 맹약의 반지로 감찰한 아크의 이야기를 서술한다는 식으로 - 프롤로그 -가 바뀔 지 모릅니다. 5. 에볼루션 아직까지는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소설 전체의 중후반 스토리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름입니다. 레슬매니아 아크가 유명 레슬링 단체의 이름을 따서 자신이 만든 단체에 그 이름을 붙이죠. 이 에볼루션에는 진화의 뜻도 담겨 있어. 주인공의 목표 중 하나이자 주제인 판타지 세계의 발전 을 진화에 빗대어 인간의 유희와 함께 판타지 세상을 진화시키는 이 소설의 전체적 두 주제 중 한 내용을 부각시켰습니다. 6. 레슬 어드벤쳐 주인공 아크가 레슬링 기술을 주력기로 사용하는 것을 부각시킨 내용입니다. 검 및 여러 가지 무기를 쓰는 아크이지만 주로 레슬링 기술로 싸웁니다. 특히 한 녀석과 태그팀을 만들기도 하지요. 아마... ......이러고 싶진 않지만 조회수와 비례해서 설문조사 수가 적다 싶으면...... 무기한 연! 중! 들어갑니다. 대신 참여가 많으면 3연참 해 드리죠.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소설 본편 아니라고 너무 실망하지는 마십시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연중협박이 제대로 안 먹힌 탓인지 참여가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군요. 적어도 조회수에 반절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때문에 연참은 없습니다. 제목은 다득표를 차지한 에볼루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바꾸겠습니다. 제목이 생소하다 싶으시면 '헉 내가 폐인'이라는 매력적인(?) 표지를 보고 찾아오십시오. 이번 편에서는 아크 군이 드디어 총각 딱지를 뗍니다...만 자세한 묘사는 생략합니다. 왜냐? 어디까지나 3류 야설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라고나 할까요? 뭐 성행위 묘사는 하지 않겠다고 이전부터 공언했으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힐 윈드!" 아크는 쌍칼을 들고 그대로 빙글빙글 돌면서 로니에게 쇄도해 갔다. 디아블로2의 바바리안 캐릭터 스킬 힐 윈드를 흉내낸 것으로 아크의 어처구니 없는 검법 들 중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 그러나 이 기술은 부작용이 매우 심각한데다가 미스 확률이 높았다. 로니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그냥 아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갔다. 도느라 정신 없던 아크는 도저히 그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기술 시전 후에는 땅이 도는 관계로 현기증에 비틀거리는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 마디로 안 먹히면 바보 되는 기술이었다. 아마 힐 윈드나 버서커 질럿 검법. 이러한 별로 쓸데없는 기술을 연마한 것이 아크의 검술 성취가 늦게 한 또 다른 요인이리라. "아이고......지구가 도네. 누가 지구가 돈다고 했지? 다윈이었나? 아니 다윈은 만유인력의 법칙이고 뉴턴이 그런 것 같은데? 아니 코페르니쿠스가 그랬던가? 헤헤헤 세상이 돈다 돌아!" 아크는 힐 윈드의 후유증에 과학자들 이론을 짬뽕시키며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으휴 바보." 완전 정신 착란 증세에 빠져 버린 아크를 본 로니는 혀를 찼다.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이람? 아크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비틀거렸다. 이제는 아예 칼춤까지 추는 아크. 그리고 로니가 그런 아크의 모습에 방심하고 있을 때, 서늘한 프로즌 아이스의 검날이 그녀의 목에 근접해 있었다. "......너!" "후후후 방심은 금물이죠. 안 그래요?" "날 속인 거야?" "지구에서는 이러한 기술을 취권이라고 하죠. 술 취한 척 하면서 상대방을 방심하게 만든 다음. 배후를 노리는. 이거는 술은 안 마시고 현기증 환자 연기를 하니까, 현기증권이라고 해 두죠." 그랬다. 아크는 애초에 힐 윈드를 쓸 때부터 로니를 속이는 이 현기증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물론 좀 어지럽기는 했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노력한다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리고 그 작전은 멋들어지게 성공했다. 아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누님 벗어 주실 까요?" "여, 여기서?" 로니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감처럼 변했다. "뭐 어때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뭣하면 제가 벗겨 드릴까요?" 로니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크게 들어 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아크의 욕구를 불러 일으켜 수련의 효과를 높이려고 했던 것뿐이었고 거기다 이렇게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로니였기에 그녀에게는 숨을 돌리고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까지는 숫처녀였으니 처음 하기에는 머뭇거려지는 것도 당연하리라. 결국 한참 후에야 로니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가 해." -꿀꺽 아크는 고인 침을 삼키고 로니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져 김새게 중간에 그만두게 되는 신의 농간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론에는 박학다식한 아크. '정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랑이 있는 것, 또 하나는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것, 남성이 쾌락을 위한 행동을 한다면 여자는 사랑 위주로 움직이지. 그러니......' 어디서 주워 들은 건 많은 놈이다. 어쨌든 아크는 이론에 충실하게 곧바로 행동에 들어가기보다는 우회하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이번 한 번 만에 끝낼 것이 아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관계가 되어야만 나중에 로니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키스부터 시작한 혀굴림으로 아크는 로니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수풀 바닥에는 로니와 아크의 옷가지들이 하나씩 떨어졌다. 아크는 철저하게 로니의 몸 이곳저곳을 애무했다. 그리고 로니의 그곳이 상당량의 애액에 젖자, 아크는 실행에 옮겼다. "저 나무 잡으세요." "으 으응." 로니는 두 팔로 나무를 잡고 엉덩이를 아크 쪽으로 돌렸다. 곧 수풀 바닥에는 아크와 로니의 흠뻑 젖은 마지막 옷가지가 떨어졌다. 어느새 붉은 노을이 지는 저녁이었다. 아크와 로니는 여전히 몸을 섞은 채 누워 있었다. 하지만 둘 다 그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수풀 속에는 그들의 옷가지와 운동(?)을 하면서 생긴 액체, 그리고 처녀성의 증거였던 붉은 선혈이 뿌려져 있었다. 둘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몇 십 년 간 억눌려 지켜 왔던 동정과 처녀성이 동시에 깨지면서 진정한 정욕을 맛봄과 동시에 산 속에서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좋은 공기 맑은 물에 상당한 기간 동안의 수련으로 이룩한 강한 체력에서 비롯된 정력이 제대로 발휘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계속된 고요를 깬 것은 아크였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안에다 한 거 말이요. 생기면 어떡하죠? 전 아직......" "글세. 하지만 난 생겨도 별 상관없어 엄마가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아크." "예?" "만약 아이가 생가면 그 아이에게는 루네아의 성을 쓰게 해 줘." "가문의 맥을 이으시려고요?" "응. 가문에 남은 후손이라고는 나뿐이니까." 이곳에는 여자가 타 가문에 시집가지 않는 한은 모계로도 가문을 종속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경우는 대부분 제 3의 경로를 통해 태어난 아이이거나 양자를 들이는 경우였지만 부계 쪽에서의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에도 가능하기는 했다. "그러세요. 뭣하면 제가 그냥 루네아의 성을 쓰도록 하죠. 어차피 급조된 성씨니까 바꿔도 별로 상관은 없어요." "고마워." "그나저나 어때요? 할 만하죠?" 아크는 갑자기 실눈을 뜨고서 말했다. "모, 몰라." 로니는 붉어진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에이! 아까 전만 해도 좋아서 저보다 더 격렬하게 하셨으면서......그러니까 우리 자주 하죠?" "웃기지마. 앞으로도 날 이겼을 때 뿐이야. 앞으로는 페널티도 없앨 테니까 정 하고 싶으면 강해져." "우우우! 쩝 뭐 그렇다면야 오늘 뽕을 뽑아야 겠군." 아크는 허리를 움직였다. "......! 뭐 하는 거야? 또?"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을 테니까 기왕 오늘이라도 더 해 둬야겠군요. 각오하시죠." 아크는 폭주기관차의 시동처럼 점점 빠르게 로니를 공격해 들어갔다. -콰직! "이봐! 난 여기 있다고 애꿎은 나무는 왜 부러뜨려?" "쳇!" 혼신의 힘을 다한 박치기가 괜한 나무만 부러뜨리자, 아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헛방으로 먹힌 공격을 아쉬워 하기 보다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으랴아!" 아크는 부러진 나무를 고릴라 프레스로 들어서 로니에게 던졌다. "뭐야? 이걸 지금 맞으라고 던진 거야?" 느리게 날아오는 나무를 못 피할 이유가 없었던 로니는 아크를 한 번 비꼬아 준 뒤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다이아몬드 더스트!" 로니를 하얀빛의 빙무가 덮쳐왔다. 갑작 스런 마법 공격에 로니는 검막을 만들지 못하고, 효과가 조금 떨어지는 오러 아머를 사용해야만 했다. 오러 아머. 오러 블레이드가 베는 능력과 살상력을 강화시킨다면, 이 기술은 착의 한 옷의 방어 능력을 강화시켜 생존력을 높이는 기술이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검이 아닌 나뭇가지 따위의 기타 무기에서 발동되려면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하듯이 이 오러 아머 역시 갑옷과 보통 옷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러니 검막을 생성하지도 못한 시각에서 급히 쓴 기술이, 그것도 평상복에 썼으니 방어 효과가 낮은 것은 당연했다. "큭!" 아크는 경공을 써서 주춤거리는 로니에게 재빠르게 쇄도했다. 그리고 은빛과 금빛의 두 명검을 날렸다. -챙! 로니는 아크의 쌍칼을 막아 낸 다음 힘으로 아크를 밀쳐내었다. -스르릉 아크는 밀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소드 마스터인 로니와의 힘 차이는 극복하기가 힘들었다. "으학!" 결국 아크는 계속 질질 밀리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아크는 다시 잽싸게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이미 그는 자신이 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검면과 검등을 쳐서 검을 피하는 기술이 아직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나 결투에서의 암묵적인 규칙 상 놓쳐 버린 검은 소환해서 쓸 수도 없었으니......그래서 아크는 로니를 이기려는 생각은 접었다. "어라? 오늘은 포기 안 할거야? 너 저 칼 없으면 다칠 지도 모르잖아?" "쳇. 대한 건아의 패기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안 돼. 위험하다고, 보조마법이 사라져서 약해진 데다가 격투술로 강력한 기술 쓰려면 꼭 어디 하나는 부러지잖아...... 후 그래 알았어. 블레싱 소드는 가지고 있어. 단 사용은 금지야."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소환시켰다. 확실히 블레싱 소드를 가지고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심했다. 더구나 아크는 블레싱 소드의 보조로 강화된 신체 리듬에 맞게 수련을 했기에 블레싱 소드가 없다면 보조마법빨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큰 실력의 하락을 보였다. 그 때 갑자기 한 줄기 빛무리와 함께 브락라스노가 나타났다. "어이! 아크 군." "아! 브락 라스노님. 무슨 일이십니까? 수련장에를 다 오시고?" "자네 나와 함께 내 레어로 가세." "에? 그게 웬 아닌 밤중에 뚱딴지같은 소리십니까?" 정확히는 홍두깨다. "자네에게도 이득이 될 터이니 군소리말고 따라오게." 아크의 실력 가지고 어디 감히 드래곤에게 개길 수나 있겠는가? 어차피 안 가고는 못 배길 바에야 순순히 따라가는 것이 나았다. "로니." "네 브락라스노님." "위진무 놈에게 이 녀석은 잠시 내가 데려가겠노라고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가지." 브락라스노와 아크는 한 줄기 빛무리와 함께 사라졌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브락라스노의 레어에 도착한 아크. 브락라스노는 아크를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 여기 앉게." "아! 예." 브락라스노는 화려한 보석잔에 담긴 음료를 기품 있게 마셨다. "저기 무슨 일로 절 여기까지?" 아크의 질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락라스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음료를 한 잔 더 마시고 나서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고 길게 말하지. 자네 내 손주인 카인카드가 위진무 놈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걸세."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레드 일족은 강함을 철저히 숭배하는 종족. 그러니 상대가 인간이라고는 해도 그가 강하기만 한다면 굳이 문제삼지를 않네. 어차피 헤츨링은 혼자서도 낳을 수 있고 말이야. 그리고 자네가 준 소설들을 한 번 읽어보았네. 허 나 참. 우리 드래곤들이 하나같이 개판 5분전이더군. 인간과 사랑에 빠져? 인간의 부하가 돼? 인간에게 모든 힘을 넘겨? 인간에게 드래곤 하트를 반쪽이나 넘겨? 인간에게 잡아먹혀? 전부 개소리야. 인간과 드래곤이 사랑에 빠진 전례야 이곳에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드래곤들은 안간과의 불장난을 그저 유희로 밖에는 생각지 않아. 하지만 말야 자네의 사부라는 인간 놈은 달라. 평생 죽지도 않고 드래곤이 일곱 이상 덤벼들지 않는다면 살해를 당할 일도 전무하지. 앞서 말했듯이 나도 그 정도로 강한 인간이라면 절대 반대하지 않아.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아. 예. 예." "그런데 말야. 그 건방진 놈이 말야. 어디하나 빠질 데가 없는 내 손주를 돌같이 보고 있어. 내 웬만한 놈 같으면 조져 놓고 싶은데 어디 조질 수가 있어야지. 내 그래서......" 시뻘개진 얼굴에 격해지는 목소리. 아크는 그제야 브락라스노가 마신 음료가 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 위진무 놈하고 담판을 지었다." "그게 무슨?" "결투." "에에? 결투?" "그것도 7전 4선승제로." "무슨 결투를 7전 4선승제로 합니까? 게다가 그게 절 데리고 온 이유이십니까?" "게임이거든." "아하! 게임......엑! 게임? 혹시 지금 농담?" "게임 맞다네." "뭔 게임인데요?" 브락라스노는 게임 종목을 하나씩 불러주었다. "격투 부문 퀸 오브 화트 99,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스포츠 부문 WWE 스맥다운, 위닝 일레븐, 턴 RPG부문 창세기전 3, 전략 부문 삼국지, 스타크래프트." "뭡니까? 그 라인업은? 스타크는 넷플도 안되고 창세기전 3로는 어떻게 붙는 다는 말이냐고요?" "둘 다 미션을 하나 씩 골라 누가 먼저 클리어 하느냐로 정했다." "쩝." 아크는 씁쓸했다. 이쪽 세계에서는 온라인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패키지 게임들로 맞붙는 건데 한국 타이틀은 창세기전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의 시간도 제법 흘렀을 텐데 은룡선생 아크라우스의 말로는 여전히 패키지 시장이 불황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 참 대한민국 게임 사업 어떻게 될지 참 궁금하다 궁금해. "그러니까? 요는 저한테 특훈을 시켜 달란 소리십니까?" "그렇다네." "휴우 그럼 일단 전략을 세워 보도록 하죠. 제가 보기엔 위닝 일레븐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브락라스노 님이 다 딸립니다. 10년 경력의 진무 형님은 만만찮은 적수니까요. 일단 위닝은 진무 형님이 워낙 못하시니까 그렇다고 치고 나머지는......" 위진무에게 최악의 승률을 거둔 격투 부문과 스맥다운, 그리고 대전 형식으로 붙어 본 적은 없지만 나머지 것들도 결코 브락라스노가 잘한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엄두가 안 나네요." "부탁함세. 자네가 날 도와 이기게 된다면 자네가 로니를 꺾을 수 있도록 암암리에 도와 주겠네." "휴 뭐 일단 격투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죠. 말씀드리건대. 이길 것은 확실히 이기고 내줄 것은 그냥 내 주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뭔 말인지는 아시겠지요?" "대략."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리고 브락라스노의 게임 특훈이 시작되었다. "......" 아크는 위진무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브락라스노는 그야 말로 구제 불능이었다. 몇 가지 꽁수를 알려 주어도 도무지 익히지를 못했고 결국에는 아크의 가르침 포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질 수는 없었던지라. 결전의 날이 점점 가까워오자 결국 아크와 브락라스노는 작당을 시작했다. 과연 그 작당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결전의 날이 되었다. "오랜만이군. 브락라스노 연습은 많이 했나?" "잔소리말고 시작하자." "뭐 원한다면." 브락라스노와 위진무는 노트북이 놓여져 있는 책상 위에 앉았다. "힘내세요 할아버지!" "열심히들 하세요." 관중인 카인과 로니의 응원이 이어졌다. 제비뽑기로 1차전은 더 킹 오브 파이터즈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1차전은 위진무의 케이에 의하여 브락라스노의 이오리, 김갑환, 쿨라가 연달아 지면서 위진무의 승리로 끝났다. 다음 경기인 퀸오하 99에서는 브락라스노의 멀티가 위진무의 오니 치즈루 초필살기 '당신을 죽이겠습니다'를 연달아 맞고 속절없이 골로 가 버렸다. 제 3경기 위닝 일레븐은 컴퓨터가 아니 플스2에서 진행되었다. 위닝 일레븐에서는 브락라스노의 네덜란드가 반 니스텔 루이의 대활약으로 PK를 실축한 베컴의 잉글랜드를 침몰시켜 버렸다. 예상되었던 승리였다. 제 4경기 스타크래프트. 맵은 팀플맵의 대명사 Hunter였다. 인터넷이 안 되므로 대전 형식이 아닌 누가 먼저 PC를 제압해 미션 완수를 하느냐 하는 형식의 경기였다. 거기다 기본적으로 3:1의 페널티를 안고 시작을 해야 했다. 동시에 시작되는 게임. 위진무는 12시 테란이었고 브락라스노는 위치도 똑같이 12시 프로토스였다. 위진무는 안정된 테크를 타며 중 후반 쓸어버리기 전략을 택했다. 그리고 브락라스노는...... 그는 처음부터 주어지는 프로브 4마리 중 1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찰을 보냈다. 그리고 컴퓨터의 띨박한 인공지능을 이용, 상대 일꾼들을 한 대씩 툭툭 건드리고 프로브를 죽이기 위해 쫓아오는 컴퓨터의 일꾼들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 쌍칼의 제왕 질럿이 나오자마자 컴퓨터의 기지들을 초토화 시켰다. "브락라스노님 먼저 끝났습니다! 따라서 브락라스노님 승!" "뭐야?" 위진무는 못 믿겠다는 듯 브락라스노의 저장된 리플레이를 돌렸다. 그러다가 일꾼 돌리기 전략을 보고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아크의 꽁수 제 1탄이 먹혀 들어갔다. "그럼 다음 경기 시작하시죠?" 제 5경기는 애초에 포기한 WWE 스맥다운이었다. 사다리 매치로 위진무는 숀 마이클스를, 브락라스노는 에지를 선택했다. -땡땡땡! 위진무가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같이 에지는 처음부터 숀의 맹공에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에지는 에너지가 계속 줄어드는 이 상황을 파해하기 위해서 숀을 로프 밖으로 내던지고는 숀의 머리를 잡아 철제 계단에 찧었다. 그런 다음 에지는 철제 계단과 의자를 링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이어지는 에지의 철제 계단 공격! -쾅! 에지는 철제 계단에 쓰러진 숀을 계속해서 밟았다. 그런 다음 숀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월드 헤비웨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따내려고 했다. 하지만. "어라!" 위진무의 숀은 그대로 일어나 사다리를 밀어버렸다. 덕분에 에지는 저 멀리 관중석 버리케이트에 떨어져 타격을 입었다. 숀은 링 밖으로 나가 넘어진 사다리를 다시 링 안에 넣었다. 그리고 사다리를 벨트 밑에 잘 세워 놓은 다음. 한 계단씩 사다리에 올라갔다. 정신을 차린 에지는 숀을 방해하기 위해 철제 의자를 들고 사다리에 오르던 숀의 등에 체어 샷을 먹였다. -착! 체어샷에 사다리에 떨어진 숀. 에지는 사다리를 접어들고 코너에 세워 둔 뒤 숀을 던져버렸다. -쿠당탕 숀은 등을 만지며 아프다는 모습을 어필했다. 에지는 그렇게 사다리에 걸터 있는 숀에게 크로스 바디를 먹였다. 그러나 숀은 잽싸게 에지의 공격을 피했고 사다리에 부딪힌 것은 에지였다. 쓰러진 에지. 그리고 숀은 옆 쪽 코너에서 삼단 로프를 잡고 한 쪽 발을 쿵쿵 구르다가 그 다음으로 덜덜덜 떨었다. 그의 피니쉬 공격 스윗친 뮤직이 발동된다는 신호였다. 한참 후. 에지가 간신히 일어나자, 숀은 스텝을 밟으며 다리를 쭉 뻗어 에지의 턱을 강타했다. -짝! 쓰러지는 에지, 원래 보통 경기였다면 바로 커버를 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경기는 사다리 경기였다. 숀은 사다리를 벨트가 걸린 정 중앙에 가져간 다음 한 계단 씩 올라갔다. 숀이 대충 사다리에 다 오를 즈음 에지가 깨어났다. 사다리 꼭대기에서 벨트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숀. 에지는 급히 드롭킥으로 사다리를 걷어 차 버렸다. -우당탕 "와우!" 숀은 사다리와 함께 링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에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따라 나가 숀을 공격했다. 그러나 원체 조종하는 사람의 실력차가 현저한지라 지속적으로 해머링과 찹을 당하는 쪽은 에지였다. -쿠당 결국 수십번의 해머링에 뻗어 버린 에지를 숀은 스페인 아나운서 테이블에 눕혔다. 그런 다음 사다리를 가져와 에지의 위에 놓은 다음 링 밑에서 또 다른 사다리를 꺼내와 편 뒤, 그 위에 올라간 다음 그대로 사다리에 샌드위치처럼 눌린 에지에게 스플래쉬 자세로 뛰어내렸다 //////////// 개인적으로 플레이 한 게임만을 종목으로 선정했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레드 드래곤 브락라스노 -116화 스타크 넷플에 관하여...... 뭔가 타당하고 과학적이고 정보통신적인 이유를 준비해 놨었는데 생각이 안 나는군요......일단 설정으로 얼버무리겠습니다......가 아니고 아크의 노트북과 나중에 보내진 두 번째 노트북에는 11년 세월이 흐른 만큼 OS나 성능 등에 많은 차이가 나고 또한 호환성 문제등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스타크 넷플은 불가하다! 라는 설정입니다. -쿠당탕타당! 아나운서 테이블이 박살나면서 나는 소리와 사다리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소리, 해설자 JR과 King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을 포개져 일어날 생각을 못하는 숀과 에지 둘 다 매우 타격이 심했다. 그래도 맞은 에지 보다는 공격을 한 숀이 조금 더 회복이 빨랐다. 사다리를 링 안에 집어넣고 벨트 밑에 또 다시 펴놓은 숀. 그리고 그때 마침 일어난 에지. 둘은 동시에 사다리에 올랐다. 그리고 시작된 해머링 대결. 컨트롤 좋은 위진무의 숀이 훨씬 유리했다. 때리지는 못하고 계속 맞아서 비틀거리는 에지, 이제 몇 대만 더 맞으면 속절없이 링 바닥으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해 결국 패하게 될 것이다. '쩝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원래 이 경기는 내 주려고 했던 거였으니까. 그나저나 스맥다운은 연습할 때하고는 다르게 잘 하시네?' 게이머 브락라스노의 비공식 매니저 아크는 박빙의 승부가 기운 듯 보이자, 이미 마음 속으로 경기를 포기해 버렸다. 사실 격투부문의 더킹과 퀸오하, 스포츠 부문의 스맥다운은 애초에 질 것을 각오한 종목이라 아까울 것은 없었다. 다음 거에서 잘하면 된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 에지쿠션!" 한참 맞기만 하던 에지가 운 좋게 숀의 머리를 잡아서 겨드랑이에 끼웠다. 잡기 버튼만 주야장창 눌러대더니 드디어 한 번 성공한 것이다. 클로즈업되는 플레이 화면 에지는 숀의 머리를 겨드랑이 쪽에 압박한 뒤, 한 손으로 숀의 다리를 들고서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최근 잘 쓰지 않는 에지의 구 피니쉬 기술. '에지 쿠션'이 사다리 위란 높은 곳에서 사용이 된 것이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에지는 잽싸게 일어나서 사다리에 올랐다. 나중에서야 일어난 숀은 급히 사다리를 밀쳐 내려 했다. 그리고 사다리가 넘어지는 순간. 에지는 챔피언 타이틀을 간신히 잡아서 매달릴 수 있었다. -땡땡땡 타이틀을 잡은 채 링으로 떨어진 에지. 게임 화면 속 관중들은 에지를 연호했고, 에지의 등장음악이 그의 승리를 축하하며 흘러 나왔다. "이겼다아!" 브락라스노는 조이스틱을 내던지고 승리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와 정반대로 위진무는 게임 화면 속의 완전히 링에 축 쳐진 채 뻗어 있는 숀처럼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TV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스코어는 3:2 예상외의 결과였다. 원래의 실력대로라면 4:1로 위진무가 승리를 거두었어야 했는데 오히려 한 경기를 밀리고 있는 것이다. '방심했던 건가?' 위진무는 아크를 너무 쉽게 브락라스노에게 내 준 것이 조금은 후회되었다. 경력도 실력도 최고수급인 제자 녀석이 시키는 특훈의 위력을 너무 간과한 것이다. 평소 제자 녀석의 비겁함과 야비함을 봤을 때 방금 전 스타크래프트에서의 일꾼 돌리기 전략도 분명 제자 녀석의 비겁한 전략이었으리라. 위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남은 경기에서의 필승을 다짐했다. 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가장 긴 플레이 시간이 될 것이라 예상되는 6경기 삼국지였다. 버전은 아크가 이곳에 오기 전 출시되었던 삼국지 9 이었다. '어이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아크의 비겁한 꽁수작전 2단계. 바로 전음을 이용한 대리 플레이였다. 사실 브락라스노의 전략 가지고는 위진무에게 턱도 없는 경기가 바로 이 경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전략 지시는 아크가 하고 조종만 브락라스노가 알아서 한다면 승산이 있었다. "음?"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위진무는 어떠한 마나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크와 브락라스노의 작당이라는 것은 생각지 못한 듯 했다. 경기는 삼국정립의 219년 '한중왕 유비와 관우의 실책' 이었다. 조조 같은 경우에는 너무 세력이 강대했기에 선택에서 배제했고 인재면과 방어면에서 실력이 딸리는 브락라스노가 유리하도록 그 시나리오에서 강대한 촉의 유비, 수성을 위진무가 손권으로 공격을 하여 유비의 형주를 1년 안에 빼앗거나 지키는 쪽의 승리였다. 단연 유비가 유리했다. 오호대장군이 건재한 데다가 지력 100의 명군사 제갈량 게다가 도시 수와 인구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손권 같은 경우는 장수층은 두터워도 전체적으로 무력이 유비군의 오호대장군들 보다는 딸렸고 지략가라고 해봐야 지력 90의 여몽과 97의 육손이 전부였다. '영안 하고 강릉에 군사를 집결시키십시오.' 219년 시나리오이지만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것은 221년의 세이브 파일이었다. 아무래도 군사력 따위 등의 수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맞붙는 게 순서였기 때문이다. 위진무는 계양과 장사, 교지에 병력을 집결시켰다. 형주의 무릉과 영릉을 먼저 공략하겠다는 취지가 엿보였다. '항구를 빨리 차지하십시오. 그래야 무릉과 영릉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에 브락라스노는 병력을 보내 항구를 장악했다. 하지만 이미 영릉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한 개의 성으로 한 주인 교주를 차지해 버리는 도시 교지에서 나온 많은 병력의 우세는 순식간에 영릉을 함락시켰다. 이제 다음 공격은 무릉에 대한 공격이었다. 충차 전투로 성벽을 주로 깨부수는 전투를 했던 위진무 손권의 영릉 땅에는 원래 유비의 군사였던 많은 병력을 영입해 군사가 넘쳤다. 장사와 계양 영릉에서 진격해 오는 도합 16만의 대군. '젠장 무릉까지는 포기하십시오. 어차피 강릉성 하나만 지켜도 이깁니다. 그리고 지금 빨리 요새 같은 거 강릉성 옆에다 건축하십시오.' 석 달도 안 되어 형주의 두 도시를 빼앗기자 아크는 초조해 졌다. 명령으로만 조종하려니 정말 답답했다. 일단 형주 남부를 장악한 손권의 10만여 부대가 상륙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항구가 상당히 중요했다. '남쪽 항구의 병력을 공안항구로 빠르게 이동시키십시오.' 여기서부터 아크는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쳐들어오는 병력이 많아 아무리 많은 병력으로 항구를 사수해 봐야 내구력 약한 항구의 특성상 내구도가 떨어지게 되니 항구에 집결된 병력까지 고스란히 잃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오나라 군대는 대부분 수전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요격전으로 나가기도 무리였다. '꾸준히 교전을 하다가 내구도가 아슬아슬해지면 군사를 빼십시오. 그런 다음 바로 다시 공격해 항구를 재 탈취하는 겁니다.' 그러나 위진무는 공안항구로 진격하지 않고 무릉과 남도 항구에만 몇 만의 병력과 여몽과 장흠을 남겨 두고 나머지 전 병력을 시상의 육구항구에 집결 성채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이런!' 아크는 의외로 허를 찌르는 위진무의 움직임에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저렇게 잘하는 거지? 사실 위진무는 중원과 관련된 게임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운 고향을 가상으로 체험하며 살다 보니 어느덧 아크를 위협할 수준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무릉을!' 브락라스노는 공안 항구의 10만 병력을 출병시켰다. 수비하는 입장에 도시가 하나라도 더 많아야 확실히 유리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책이었다. 몽충, 투함 등을 비롯한 위진무의 수상 전법에 쪽도 못 쓰고 다시 후퇴했을 때에는 벌써 위진무의 병력이 육구항구를 출발한 뒤였다. '제길 이제는 요격전입니다. 조운과 마초를 필두로 봉시 진형으로 출진을 그리고 관우와 장비를 필두로 분신 병법과 어린 진형으로 출전하시지요. 황충은 연노를 사용할 수 있으니 성을 지키도록 놔두십시오.' 약 9만의 병력이 손권의 15만 부대를 요격하러 출진했다. 그러나 방어력 약한 공성진형인 정란이나 충차, 투석진형은 없고 나머지는 전부 방어력 괜찮고 공성에도 괜찮은 안행진이나 기형진을 펴고 왔다. '병력이 적다.' '걱정 마시고 조운을 병력 많은 여몽 부대에 붙이도록 하십시오.' 아크의 예상대로 조운과 여몽 마초와 한당 간의 일기토가 벌어졌다. 물론 총공검의 조운과 서량의 금마초 마초가 일기토에서 각각 승리하고 특히 조운은 여몽에게 중상을 입혀 사기를 팍 떨어뜨렸다. 그리고 사기 떨어진 부대는 전투력도 떨어지는 법. 관우, 장비, 관평, 유봉의 분신과 분투 공격에 거의 1만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위진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래도 주야장창 성채만 노린 끝에 피해는 있었지만 성채를 간신히 점령할 수는 있었다. 줄어든 병력은 유비군의 패잔병과 남도 항구의 병력을 끌어들여 메꿀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서서히 촉박해져 왔다. 병력은 약간 우세한 상황. 위진무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충차부대를 동원해 강릉에 쳐들어갔다. '저기에는 허보! 저긴 교란! 나머지는 요격하십시오. 분신 병법의 보병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아크는 위진무의 공세를 그럭저럭 잘 막아내었다. 이대로 버티기만 한다면 성을 지켜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컴퓨터의 메시지가 떴다. -지금부터 우리는 유비군과 다른 길을 걷기로 한다! 조조가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뇌물로 우호도를 호의로 만든 게 언젠데......어찌 되었건 간에 양양성의 조인 부대가 3만여 병력을 이끌고 강릉을 향해 공격해왔다. '이런 썅!' 거기다 더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남만대왕이 운남을 향해 진격 중이라는 짜증나는 소식이었다. '강주 성의 병력을 빼서 빨리 영릉까지 보내십시오. 강릉이 떨어지기 전 어떻게 육로의 교지를 통해 텅 빈 영릉을 되찾는다면 시간이 없기 때문에 승부는 브락라스노님 쪽으로 기울 것입니다.' 그러나 강주군이 채 교지를 지나치기도 전에 강릉은 손권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이겼군." "......" 꽁수 제 2탄은 의외로 막강한 위진무의 실력과 뜻하지 않았던 변수로 실패하고야 말았다. 3:3 카인과 브락라스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상당히 긴 경기를 치루었기에 약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놀랍군요. 진무 형님이 그 정도까지 하실 줄은." "후 이제 네 녀석하고 붙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나저나 브락라스노 자네도 놀랍군. 위닝 일레븐은 몰라도 다른 것은 내 쉽게 이기리라고 장담했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반드시 이길 것이다. 두고 보라."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출판 삭제 공지 드디어 운명의 날이 도래했습니다......모든 것이 파괴되고 소멸하는 운명의 그 날이(좀 오버군..) 이제 에볼루션의 운명은 내일까지 입니다. 7월 27일 밤 12시 부터 1시까지 삭제 작업 들어갑니다. 삭제되는 분량은 '트로본 성 전투'파트 까지입니다. 아! 하지만 지워 지는 것은 72화 까지입니다. 이점 유념하시길 원래 72화까지 트로본 성 전투 파트였는데 그냥 제국의 개입으로 대체했었습니다. 일단 바로 출판되는 것은 아니지만 8월 초로 일정이 잡혀 있고 벌써 모든 작업이 끝난 상태인데다가 출판사의 요청이 있었기에 조금 일찍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투베에 올라 있는데 선작 등록 해 놓고서 아직 못 읽으신 부분이 있다면 빨리 읽어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두 권 분량......저 같은 경우는 속독으로 2시간도 안 걸립니다.(자랑이냐! 퍽)뭐 굳이 연재분 안 보시고 책으로 보셔도 됩니다. 그 편이 저한테는 이득이니까요(...씨익! 왜 웃지???) 쩝 처음의 편수 잡아먹어 공지하지 않겠다는 초심의 마음은 어디에 가버리고 지금은 공지를 남발하고 있군요. ㅋ 아쉬우시겠지만 이번 편 역시 공지입니다... 하루의 말미 동안 마지막을 불태워 주십시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지략의 기사 이전 공지대로 밤 12시를 기해 72화 까지 삭제됩니다. 안 보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칼 같이 짜르도록 하겠습니다. 3권 분량도 빨리 읽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1,2권 출간 이후 바로 출간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 그 부분도 가까운 시일 내에 삭제 될 겁니다. 표지가 도착했습니다......내용과 전혀 맞아 보이지 않는 양아치 남자가 폼 잡고 있는 모습이더군요. 그것도 웃통 벗고 맨몸에 피문신하고...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야비 치사 처절한 아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4권 이후 부터는 조금 비슷해 집니다만 개그 캐릭터가 이렇게 생겨먹으면 안 되죠...제가 원래 구상을 해 놓은 것은 폐인 생활로 눈이 안 좋아 안경을 쓴 예리한 미소년(물론 매우 짙은 다크 서클 포함)풍이었는데 전혀 아닌 듯 싶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쓰긴 뭐하고...어쩔 수 없이 이것을 써야 할 듯 싶은데... 웃통 벗은 남자 표지... 거부감이 드느냐 안 드느냐...를 설문하도록 하겠습니다. -본편 마지막 경기는 유일한 롤플레잉이자 한국 게임 창세기전 3였다. 에피소드 1 시반 슈미터의 14번째 챕터 시지아 방어작전으로 마르자나와 발라 단 둘이서 수많은 마장기와 병력을 해결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미션이었다. 상당한 고난이도라 게임에는 이골난 아크로서도 쉬이 손대기가 겁나는 전투였다. 경기의 기준은 클리어 시를 가정. 누가 먼저 미션을 완수하나 였다. 실패하면 무승부로 재경기를 해야 했다. 아크로서도 클리어 하기 힘든 미션. 하지만 아크의 마지막 꽁수가 들키지만 않는다면! 게임이 시작되고 위진무는 일단 배치 용병들을 해산시켰다. 어차피 마장기 앞에서는 무색한 총알받이 들이니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어빌리티와 아이템을 위해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원체 경기의 난이도가 어려웠던지라 위진무는 제대로 공격도 못하고 아이템을 써 가며 근근히 버티다가 결국 게임오버가 되고 말았다. 미션이 실패한 위진무는 브락라스노는 어떻게 하고 있는 궁금하여 브락라스노의 모니터를 살펴보았다. "......!" 브락라스노 게임 화면의 적들은 이미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도 모두 도망다니면서 휴식하기에 바빴다. 아크는 위진무의 허탈한 듯한 표정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브락라스노가 이렇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치트키'였다. 적의 체력을 모두 1로 만드는 최강의 치트키를 암암리에 사용하자 적군 NPC들은 모두들 도망가 휴식하기에 바빴고 그런 그들을 추격하는 데에는 턴이 돌아오는 속도와 이동력이 좋은 마르자나와 발라가 크게 한 몫을 했다. 원래는 스타크래프트에서도 치트를 칠 생각이었지만 발각되었을 시 견제와 감시가 심해질 것을 예상 일부러 일꾼 돌리기 작전을 쓴 것이었다. "이겼어요!" "이겼다!" 레드 드래곤 일가는 서로를 부둥켜 앉으며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쯔쯔 진무 형님 실수하셨습니다. 절 적으로 삼으면 최악의 상황이 도래한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아크는 은근히 위진무의 염장을 질렀다. 위진무는 그런 아크를 무시하고 애써 담담한 얼굴로 저 높은 하늘만 쳐다보았다. "사부님......" 로니는 깐죽대는 아크를 한 번 쏘아본 뒤 처량해 보이는 위진무의 등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이보게 진무. 약속을 이행해야지? 싫은가?" "나는 내가 한 말에 대해서는 무조건 책임을 진다......나 위진무는 레드 드래곤 일족 카인 카드를......아.......내......로 맞이하겠다." 위진무는 정색한 표정에 싫은 듯한 말투로 대답했지만 카인은 그러한 말에도 크게 감동을 받은 듯 울먹이며 위진무를 덥석 껴안았다. 그러나 위진무는 껴안긴 상태에서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얼굴색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결국 보다 못한 아크가 한 마디 했다. "으이그 멋없는 남자의 교과서 같으니라고. 그럴 때는 말입니다. 상대의 허리를 감싸주고 상대의 귀에 대고 감미롭게 사랑을 속삭인 다음. 혀를 이용해서 목덜미를 부드럽게 핥아 주고 허리를 감싼 손으로는 치마를 걷어 올린 다음......" -퍽! 로니의 주먹에 나가떨어지는 아크. 이어질 아크의 이야기는 그의 무의식 속에서 듣기로 하자. "이번에는 제가 이겼군요." "후우 그래 내가졌어." 로니는 깨끗이 패배를 인정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크의 실력이 진전됨에 따라 로니와 아크의 대련에서 아크의 승률이 15%대로 뛰어올랐다. 물론 로니도 지속적인 실력의 향상이 있기는 했지만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앞에 둔 그녀의 발전이 더딘 반면 마스터를 앞에 둔 아크의 발전이 빠른 것은 당연지사. "자 그럼." "또 여기서?" "어쩔 수 없잖아요? 동굴은 바닥이 차갑고 집에서는 눈치 보이니까." "후우 알았어. 잠시만." 로니는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낸 다음 삼켰다. "뭐에요? 그게." "기억 안나? 그 약 말이야." 아크는 그제야 잊고 있었던 아크로니아표 최음제가 떠올랐다. "이리와." 로니는 어느새 탈의를 마치고 왼손의 검지와 중지를 '그것'의 가장 자리에 대 놓고 있었다. 음약의 영향인지 로니의 몸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랐다. 상당히 뜨겁고 몇 번씩 애무를 해야 했던 부분들이 확실히 발기되었으며 애액의 분비량이 보통 때의 두 배가 넘었다. 로니와 아크 모두 어언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나이를 먹지 않는 아크와 마스터라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로니는 언제나 파릇파릇한 젊음을 자랑했다. "안 자?" "먼저 주무세요." 늦은 밤. 아크는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어이 거기 성인잡지라고 한 놈 누구야? 성인잡지는 아니었다. 위진무와의 게임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잇게 도와 준 아크에게 브락라스노는 여러 가지 선물을 주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나 연료의 구동법과 에너지에 대한 책, 장거한의 쇠구슬 이라는 철구 였다. 위진무의 초야에 온 지도 어언 28주년을 맞이했다. 이제 아크는 위진무의 여러 기술들을 대부분 터득하고 무의 경지도 어느덧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 이르자, 아크는 지식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위진무의 품안에서 독립해야 할 시기가 가까워 졌기 때문이다. "흠 확실히 엄청난 죽음의 기운이 몰려 있군 그래. 어디." 브락라스노는 아크가 내민 삽을 이리 저리 살펴보았다. "뭐가 있기는 있습니까?" "흐음......글쎄?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군. 8신기라면 나도 몇 가지를 아는데 우리 드래곤들의 무기보다는 딸리더라도 이상한 효능들은 많이 지니고 있더군. 뭐 네크로맨서의 삽이라니 언제 무덤이라도 한 번 파헤쳐 보게 그래도 아무 효능이 없다면 그저 킹 네크로맨서의 삽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궁극의 삽질 아이템일지도 모르지." "가짜 아닐까요?" "나는 진짜라고 확신하네. 내 여태껏 이렇게 많은 죽음의 기운이 몰려 있는 물건은 처음 보았어." 브락라스노에게서도 애매모호한 답변이 나오자 아크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디다 쓰는 거야?' 그건 킹 네크로맨서와 섬에 사는 K모 인간만 알고 있었다. "저기 사부님." "무엇이냐?" "저 그만 내려가 볼까 합니다." "......!" 아크와 위진무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님. 왜 갑자기?" "왜? 안 돼?" "언젠가는 떠나리라고 생각했지만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듣고 싶구나. 또 복수니 뭐니 하는 이유에서더냐?"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보낸 시간만 무려 40년 가까이 되지요. 특별히 이곳에서의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도 아크 녀석처럼 복수도 뭐고 다 잊고, 그저 사람들과 부대끼며 한 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안 돼나요? 제가 무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거라면 저랑 같이 떠나도 되잖아요? 이제 마스터의 경지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로니는 말 없이 아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너 때문에 가는 거야." "예에?" "사부님 이 제자. 이만 하산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준비야 미리 해 두었고요." "하루만 더 머물다 가지 않겠느냐?" "떠날 결심이 섰을 때 가야지 안 그러면 마음이 계속 흔들립니다." "로니가 떠난다구?" 그때 카인이 부엌에서 누드 에이프런 차림으로 나왔다. "그놈의 복장 어떻게 해 볼 수 없나?" "좋으면서!" -빠득! 어디선가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니 말거니 카인은 자기 대사에 충실했다. "기특한 걸? 진이랑 단 둘이 있게 해 주려고 먼저 떠나고? 선물 하나 줄게 진이 쓰던 녹슨 검 보다는 좋을 거야." 카인은 붉은 빛을 띄는 검 한 자루를 로니에게 주었다. "고맙습니다. 카인 님. 그럼 전 이만. 사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못난 제자 비록 떠나지만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그러거라." "아크......내 사랑 잘 있어." "웁!" 로니의 기습 키스. "이제 가보겠습니다." "잘 가거라." "잘 가. 로니." 기습 키스에 넋을 놓고 있던 아크는 로니가 한참을 간 뒤에야 급히 달려갔다. "누님!" "왜 따라왔어? 배웅할 필요는 없는데." "저도 내려갈테니 같이 가요. 예? 이제 마스터의 경지도 얼마 안 남았고." "그래 주면 고맙지. 그런데 그럴 수 있어?" "예?" 로니는 뭔가 모르게 애매모호한 말만을 늘어놓았다. "아직도 몰라?" -끄덕 로니는 아크의 귀에 귓속말을 전했다. ///////////// 내용이 급하게 진행되는군요... 이럴 때 딸리는 필력을 통감합니다... 로니가 떠나는 이유는 다음 편에서 밝혀지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크를 로니란 한 여자(!)에 속박시키지 않기 위함입니다. 물론 나중에야 다시 만나겠지요. 설문조사에 따라 누가 히로인이 될 지가 정해집니다...(한 명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지략의 기사 음 이제 선작수는 떨어질 일만 남은 모양입니다...그동안 꾸준히 선작수 오르는 맛 + 코멘 읽는 맛에 연재를 했는데...조금 아쉽군요. 야한 장면이 잦다는 지적이 있었는데...이 에볼루션 자체가 원래 야한 소설입니다. 미연시 판타지를 표방하다 보니 당연히 응응 장면이 많을 수밖에요. 그나저나 그림 파일 크기 및 용량 줄이는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도착한 표지로 바꿔서 반응을 보고 싶은데 할 줄을 모르니 그것이 불가능하네요. 새로운 하렘 일대기의 시작입니다. "나. 네 아기 가졌어." "예? 아하! 아기……엑! 뭐라고요? 누구 애? 지금 혹시 장난? 아 아직은 솔로이고 싶은데?" "대충 짐작하고 있었지. 네가 애 만들기를 꺼려한다는 걸. 처음 할 때 빼고는 안에다 한 적도 없고……그래서 말해 두겠는데 이 아이는 내게 주길 바래. 루네아의 성을 갖게 해서 가문을 잇고 싶어. 너와는 달리 나하고 아이는 생명의 한계가 있으니까. 루네아의 성을 이으려면 아크 네가 있어서는 안 돼. 아무리 망국의 귀족이라지만 귀족의 성은 왕이 아니면 쉽게 바꿀 수 없는 거니까." "후우 어쩔 수 없군요. 나중에 다시 만날 수는 있겠죠.": "그래 그리고 바람 피우는 건 허락해 줄게." "엑?" "안녕 아크." "잘 가요." 아크는 계속해서 작아져 가는 로니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인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20대 청춘부터 중년의 나이까지 보통 사람 같으면 거의 인생의 반을 함께 살아 온 로니였다. 그런 그녀와 헤어진다……슬프지는 않았다 어차피 살아 있는 한은 언젠가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휴우. 이렇게 혼자 떠나 보내는 것이 이기적이라는 건 알지만. 쩝 아직 애 아빠가 되기는 싫으니까. 하긴 나도 아직 철이 안 들었지." 로니가 떠나고 아크에게도 이 드넓은 세상을 유람해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아직 마스터라는 강함의 기준에는 다다르지 못했지만 나머지는 세상을 떠돌며 서서히 강해지는 것도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이거 서운한데?" "뭐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세요. 방해꾼들이 없어졌으니 이제 카인님도 진무 형님과 단 둘이 있으실 수 있잖습니까?" "너도 갑작스럽구나. 로니가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아직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하지 않았느냐?" "이 정도만 해도 전 충분히 만족합니다." "쩝 뭐 그래 네가 만족한다면야. 하하 30년씩이나 내 밑에서 수련을 해 놓고도 여태껏 최강검법을 마스터하지 못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다." 그 말에 아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로니와는 달리 진조 넌 여전히 안심이 안 되는구나. 네 실력을 한 번 보여 주겠느냐?" "걱정 마십시오. 1대 1이라면 전 이제 소드 마스터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연마한 살인 격투술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크는 나무가 울창한 숲 속에서 찹을 날려대었다. 놀랍게도 나무들은 아크의 찹에 맥없이 부러져 나갔다. "흠 엘프들이 저 장면을 봤으면 죽이려 들겠군." "하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이제 내 검을 손바닥으로 쳐내며 피해보거라. 봐주면서 할 테니 긴장은 풀고." "예!" 위진무는 소드 마스터 급의 실력으로 힘과 스피드를 줄여 아크를 공격했다. 아크는 날쌔게 손바닥으로 위진무의 검면과 검등을 쳐내며 검을 피해냈다. '호오 이것 봐라? 제법인데? 하지만!' 위진무는 크게 다치지는 않게 약간만 스치도록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깡! 그러나 살이 베이는 느낌 대신 쇠덩어리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은 무엇일까? "허허. 금강불괴 술을 쓰다니." "뭐 그렇습니다만. 자주 쓸 게 못되는 군요. 이렇게 마나 소모가 많아서야……." "마스터가 되면 조금 더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을 한 번 돌려보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커져라 쌍방울!" 아크의 외침에 마법 배낭 속에서 나온 쇠사슬에 걸려 있던 검은 쇠구슬이 거대해졌다. 일명 장거한의 철구라 불리는 쇠구슬이었다. "흐아아압! 철구 대회전!" 아크는 철구를 돌리며 있는 대로 바위를 깨부쉈다. "후아. 이제 됐죠? 진무 형님." "네놈 어디 가서 나한테 무공 배웠다는 소리하지 말거라. 어허 어찌 이런 이단아 같은 놈이 나왔을꼬?" "하하하. 농담이시죠?" "그래. 잘 가거라 진조. 꼭 이 세계의 발전을 너의 손으로 이루도록 하거라. 네가 말해 준 그런 세계라면 나도 이 긴긴 삶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있잖아." "네년은 옷이나 제대로 입어라." 여전히 카인에 대한 위진무의 태도는 경상도 양반이 따로 없어 보였다. "진무 형님. 카인 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브락라스노 님께도 인사 전해주십시오." "잘 가거라." "안녕히 가세요. 도련님." "안녕히 계십쇼!" 아크는 뒷걸음질치면서 손을 흔들었다. 계속해서 위진무의 초야가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아크의 이계 깽판 스토리의 서막이 오르려 하고 있었다 닷새 동안 꼬박 경공을 써서 도착한 곳은 구 디그리스 왕국의 수도 텔포니움이었다. 폴티아 원정에서 거의 모든 병력과 기사를 잃고 희망마저 잃어버린 디그리스는 모반이 일어나 페티쉬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그 정당성을 문제삼은 남방 제국 루드비안의 침략으로 역사에서 막을 내렸다. 팬크라프트 제국은 폴티아 반도를 공략하다가 얻은 큰 피해로 인하여 몇 십 년 간 내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30여 년이 지나자 팬크라프트는 이전 보다 더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 호시탐탐 루드비안을 노리고 있었다. "여기 망국의 수도가 맞나?" 루드비안에 귀속된 뒤 망국의 수도였던 텔포니움은 더욱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폴티아 반도를 통한 서방 무역으로 인하여 대도시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루드비안의 막대한 자금력이 한 몫을 했다. 아크는 서점에서 산 '디그리스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는 어이가 없어 한참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디그리스 왕국 역사 후반부에 실린 데일런스 대첩의 영웅 포르티아에 잠들다란 내용이었는데 대충은 사실과 비슷했지만 엄청난 과장과 미사여구를 곁들여 아크를 신격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 참 나! 내가 그렇게 대단했었나?" 특히 렌도로스 대공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상관 루네아 공작(원래 여자인데도 상당한 호남으로 묘사되어 있다)과 함께 끝까지 저항하다가 '디그리스여 영원하라'란 말을 남기고 심장을 찔러 자살했다는 대목에서는 터져 나오는 폭소를 참지 못하고 사람들 많은 거리에서 웃다가 미친놈 취급까지 당했다. 이러한 책들 덕분에 아크는 구 디그리스 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 1위였고, 그 충절과 지략은 이 세계인들에게 본받아야 할 덕목으로 자리잡았으며 아크가 참전했던 폴티아 전쟁의 이야기는 소설, 희곡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무시 못할 엄청난 과장 왜곡 역사다. 아크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떠한 코미디가 되 있는지 궁금해서 '지략의 기사 아크'라는 연극이 공연중인 극장을 찾아갔다. 처음 부분인 루네아 후작과의 만남. "당신은 강해 보이는군. 난 당신 같은 강자와 붙어 보기를 원했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강한 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쿡!" 아크는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먹자와 스틸로 인해, 그것도 처참하게 맞다가 진 그 로니와의 첫 만남이 갑자기 나타나 사령관이 된 루네아 후작에게 실력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아크의 도전에서 시작되었고, 결국 아크가 졌지만 서로 검을 섞은 후작과 아크 두 사나이의 깊은 우정이 싹튼다는 내용으로 왜곡되었다. 그 다음 트롤에게 공격당하는 엘프 여성을 아크가 구해주는 장면이 나왔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레골룸스라고 합니다." "떠헉!" 볼수록 가관이었다. 레골룸스가 여자 엘프로 나와 아크와 루네아 후작의 삼각관계를 유도해 냈기 때문이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난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않소." "호오?" 아크는 자신이 인명을 경시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오자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트로본 성 전투. 이 장면에서 아크는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크, 크크크 미치겠네." 관객들의 따가운 시선이 아크에게 꽂혔다. 그제야 아크는 웃음을 멈추었다. 각자 병사들이 대립하여 지켜보는 가운데 일기토를 벌이는 아크와 필로스 물론 아크가 멋지게 승리하는 장면이었다. 그 이후 나오는 데일런스 전투나 작위를 받는 장면까지는 대략 비슷했다. 하지만 마지막 절정 코미디 장면인 포르티아 사수 전투에서는 아크는 진짜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동료들과 연인(?)레골룸스의 죽음에 분노한 아크는 딸리는 실력에도 불구하고 소드 마스터 젤리커 공작을 분노의 힘으로 죽인다. 모두가 죽고 마지막으로 남은 루네아 공작과 아크는 그만 팬크라프트 군에 사로잡히고 렌도로스 대공의 회유에 죽음이냐 삶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어떤가 협조하겠는가?" "디그리스여 영원하라!" "큽……푸……푸하하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저게 뭐야? 코미디냐! 낄낄낄낄낄. 아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결국 아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아이 저 새끼 뭐야?" "시끄러워!" "당장 꺼져!" "이런 미친!" 관객들은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아크를 쫓아냈다. 물론 그들은 관람 예절을 모르는 한 몰상식한 인간과 자신들이 신봉하는 역사 속의 명예로운 기사 아크가 동일인일 거라는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지략의 기사 솔직히 제가 생각하기에도 억지성이 있었습니다. 억지가 심하다라...통감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저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제 필력이 상당히 딸림을 느끼고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구상한 스토리 하나 멋지게 꾸며내지를 못하고 이렇게 억지성 섞인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아직은 여러 모로 부족하지만 이제 제 이름 석 자로 책까지 나오니 더더욱 무거운 압박감이 엄습해 오는 군요. 이럴 때는 여러분들의 예리한 비평 한 마디가 저를 각성시킵니다. 정확하고 예리한 비평만이 이 글과 제 필력의 발전을 유도합니다. "뭘 해야 한다나?" 도시 유람을 끝내고 아크는 앞으로의 자신의 행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판타지 소설의 대세를 보면 대부분 이럴 때쯤 용병 친구들을 만나 용병을 하고 논다. 나도 그럴까? 나쁘지는 않아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하기가 싫었다. 너무 뻔한 패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아크는 잠잘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뭔 날인지 이놈의 여관들이 전부 다 방이 없다고 버텼다. "지미 그런다고 내가 못 자냐?" 그러나 아크는 최고의 잠자기 기술 노숙 스킬이 있었다. 땅은 방바닥이요, 하늘은 천장이요, 산은 집을 받치는 기둥이라 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 못 자랴? 아크는 중앙분수대 옆 벤치에서 대충 옷가지를 벗어 덮고 누웠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오색 찬란한 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밤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그런 대로 잘만했다. 그러나 아크는 모르고 있었다. 한밤중에 시가지에서 널부러 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어나!" -촤악! 아크는 물벼락을 맞고서는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라 여긴 어디야?" "어디긴 어디야. 제국 치안대의 부랑자 수감 시설이지." "엥?" 아크는 양동이를 들고 있는 군인의 뒤를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냄새나는 거지들이 구석데기에서 식사 중이었다. "이봐! 내가 어딜 봐서 부랑자야! 여관방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잠 좀 잔 것뿐인데." "그렇다면 신분증을 제시해라. 노예의 낙인이 없으니 아무래도 일반인 같기는 하군. 신원이 확인된다면 즉시 풀어 주겠다." "으음……." "검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 용병인가? 용병이라면 용병 길드에 연락을 넣어주마." '신분증이라? 있을 턱이……없진 않군.' 아크에게는 디그리스의 아크 페인 자작임을 증명하는 귀족 인장이 있었기에 그걸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찝찝했다. 아크 페인이란 이름은 이미 죽은 걸로 소문이 나지 않았는가? "신분이 불명하다면?" "노예시장 직행이지. 안 그래도 내일 1년에 두 번 열리는 대대적인 노예 경매에서 노예들을 사기 위해 각지에서 귀족과 대상들이 모여들고 있어. 네가 여관을 잡지 못한 건 그 이유 때문일 거야. 그나저나 진짜 신분증이 없나?" 아크는 그냥 인장을 제시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아크 페인이라는 이름은 읽기가 힘들었다. 그냥 귀족이라는 것만 보여 주기만 하면 어떻게든 만사 OK가 되지 않겠는가? "뭐 있긴 하지만 보여 줄 수가 없어." "왜지?" "난 귀족이거든." "하! 고귀하신 귀족 나으리께서 길거리에서 주무시나?" 경비병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이래도?" 아크가 왼손에 힘을 주자 귀족의 상징인 귀족 인장이 손바닥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것을 본 경비병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몰라 뵈었습니다. 바로 꺼내 드리겠습니다." "아니. 됐어." "예?" "노예의 입장에서 그 노예시장인가 뭔가를 체험해 보고 싶군. 나 정도면 귀족부인의 상대 정도는 될 수 있겠지?" "예에?" "아무튼 그리 알고 날 노예시장으로 넘기게." 아크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노예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그와는 달리 지금의 아크는 언제든 노예란 직업에서 타 직업군으로 전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크는 첫 유희를 노예로 시작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노예의 입장에서 어떠한 취급을 당하는지 리얼한 삶의 체험을 원할 뿐이었다. 여차 하면 자신의 실력을 믿고 있으니 토끼거나 정 안되면 귀족인장도 있지 않은가? "야 이 새끼들 조용히들 못 있어?" 무장한 군병들이 외치자 웅성대는 소리가 뚝 그쳤다. 아크는 팔이 뒤로 묶인 채 수많은 노예 인파에 섞여 있었다. 뭐 이깟 쇠사슬이야 마음만 먹으면 못 푸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것도 재미있으리라. 노예 후보들은 대략 분류가 되고 있었다. 제법 미모가 있는 여자들은 한 쪽 구석에서 처녀막 검사 따위를 받았고, 나이가 좀 있는 여자들은 유모나 부엌데기로 쓸 모양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예쁘게 꽃단장을 시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로리콘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남자들도 여러 분류로 나뉘었는데 아마 막노동꾼이 될 힘깨나 쓰게 생긴 털복숭이들과 몸에 여기저기 검상이 있는 경호원 용 노예. 그리고 뽀샤시 한 미소년 노예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분류가 될 차례를 기다리는 아크. 그는 자신 정도 외모라면 미소년 노예 쪽으로 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흠 검은머리에 누런빛의 피부라? 흔치 않은 상품이로군. 저기로 데려가라!" 아크는 그의 예상대로 미소년 노예 쪽으로 끌려갔다. "그럼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를 시작한다는 장내 방송이 나가고 노예 후보들은 하나씩 대기실로 끌려 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아크도 대기실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실도 이미 만원이라 상당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이런 조금 짜증나네?' 아크는 경비들과 직원들의 노예를 다루는 모습에서 조금씩 분노가 느껴졌다. 이건 인간을 완전히 공장의 규격화 된 상품처럼 다루고 있지 않은가? 거기에 한 술 더 뜨는 것은 노예들이었다. 이 녀석들에게는 억압과 학대를 받는 것에 대한 분노 따위가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처지가 되려는 희망으로 좋은 주인을 기대하는 것 그뿐이었다. '신분제가 무섭긴 무섭군.' 한 때 아크는 이 세계에 민주주의를 도입해 볼까도 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또 무수한 피를 흘려야 하는 개혁의 진통이 예상되었다. 아크는 그런 일에 휘말려 골치 썩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신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소외 계층에게 민주주의 떠들어봐야 무슨 성과를 거둘 것인가? 일단 산업이 발달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계층이 늘어나면 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길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음!" "너 나와!" 드디어 아크의 차례였다. 아크가 출입구로 나가자 돔 형식의 장터에 수 많은 사람들이 아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회자의 소개가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것도 아닌데 그의 목소리는 전 장터의 웅성거림을 단번에 잠재울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이번 상품은 남자 노예들 가운데서도 상등품입니다. 이목구비 탄탄하고 상당히 잘 생긴 얼굴입니다. 거기다 좀처럼 찾기 힘든 검은머리와 약간 누런 듯한 피부까지 가졌지요. 자! 50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50골드!" 처음 한 금발머리의 아크와 비슷해 보이는(외양으로만)청년이 50골드를 불렀다. '뭐야? 저 시키? 설마 남색가는 아니겠지?' "60골드!" 그 때 젊어 보이는 한 미부인이 60 골드를 불렀다. 완숙미가 들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흠. 저 정도 아줌마한테 팔린다면 여기서 깽판 치지 말고 그냥 순순히 팔려가야 겠군. 훗! 이제 유부녀까지 섭렵이라니. 자 이제 하렘왕이 되는 건가?' "100골드!" 아크는 100골드를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몸무게가 족히 100kg은 나갈 것 같은 풍만한 아줌마가 있었다. '커헉! 젠장 저 여자한테 팔리느니 이쯤에서 체험이고 뭐고 다 때려 치는 것이 낫겠군.' "120골드!" 60골드를 불렀던 귀족부인이 120골드를 부르자 아크는 한숨을 놓았다. 그런데. "140골드!" 하마 아줌마가 그것보다 더 큰 금액을 부르자, 아크는 탈출할 준비를 서둘렀다. "150!" "170!" "200!" "300!" "350!" …… 한참 두 귀족부인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1000!" "오오!" 미모가 출중한 귀족부인은 1000골드를 불렀다. 쉽게 볼 수 없는 큰 액수인지라 장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1000! 1000! 더 이상 없습니까?" '예스!'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정도 미모라면 자원 봉사가 아깝지 않을 터였다. 하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럼 1000에 낙찰되는……." "1만!" "에에엑!"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튀어나왔다. 입찰자는 바로……하마였다. "1만! 1만! 더 없으시면 저분께로 낙찰되겠습니다.' '지미 좃됐군……즐이다.' 아크는 이쯤에서 노예 체험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리얼한 삶의 체험이라지만 하마에게 깔려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 바로 이 표지!가 아마 결정될 확률 90% 이상의 표지입니다. 재설문 들어가겠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지략의 기사 에 변변찮은 예고도 없이 무진장 늦었군요. 연중 사유는 이전 우는 소리 하던 대로 비축분 고갈입니다. 현재 보충수업 자율학습 시간까지 무시해가며 비축분을 만들려 하고는 있습니다만 상당히 힘드네요. 1일이나 2일 연재는 아무래도 당분간 힘들 것 같습니다. 로니가 떠나는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해 볼까 하는데 어렵습니다. 뭐라 특별히 혼자 떠나버리는 이유를 찾기가 힘듭니다. 그것 때문에 원래 사망각본이었는데 바꿔 놓고 보니 억지스럽네요. 어떻게 자연스럽게 떠나 버릴 수 있는 방법들을 독자님들이 제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크는 마법 배낭을 소환한 뒤 쇠사슬을 끊어버리고는 서브 머신 건을 꺼내 들고 소리쳤다. "전부 대가리 박어!" "뭐야?" 장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서브 머신 건이 뭐 하는데 쓰이는 것인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아크는 위협 사격을 가했다. -투두 투두 투두 그러자 한 귀족 남자가 일어서서 외쳤다. "초, 총이다!" "꺄아아아아!" 그 말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장터. '어라 총을 알고 있었나? 뭐 상관없지.' 서브 머신 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에 잠시 놀란 아크였지만 거기에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전부 대가리 박아! 지금부터 움직이는 새끼는 벌집이 될 줄 알아!" 비명소리가 컸지만 아크의 목소리는 더 컸다. 장터 내 모인 입찰자들은 모두 알아서 머리를 박았다. "야 이 새끼들아 니들이 뭐 잘난 게 있다고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거냐? 앙? 이것들이 귀족 부모 만나 핏줄 좋게 태어나면 장땡인 줄 아나? 네놈들은 모가지가 빠지도록 대가리 좀 박아 봐야 해!" 그때 어떤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난 평민이라고!" "맞아 나도 평민이야." "나도!" 한 번 평민 소리가 나오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평민들의 항의. 아크는 머신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두두두두두 머신건이 다시 불을 뿜자, 일어서서 항의하던 평민들이 잠잠해졌다. "이런 야 이 스벌놈의 새끼들아! 네놈들은 부르조아 아냐 부르조아! 이 자식들! 귀족 계급 없어진 다음 제일로 나쁜 짓 한 놈들이 네놈들이라고! 그리고 노예 사러 온 것을 피차 마찬가지 아니냐고! 썅! 잔소리말고 대가리 처박아라." 대충 잠잠해지자, 아크는 슬쩍 몸을 빼기로 했다. 그런데 그 때 돔 형 장터의 여덟 입구에서 무장한 경비병들이 뛰쳐나왔다. "저 놈 잡아!" "어라리?" 상당한 머릿수였다. 총으로 갈겨 버리거나 무차별 살인을 한다면 못 이길 것도 없겠지만 사실 자기가 괜한 객기를 부려 이 상황을 유도해 내지만 않았다면 죽거나 다칠 이유가 전혀 없던 놈들이었기에 아크는 안전 탈출을 위해 인질극을 벌이기로 했다. 일단 아크는 장거한의 철구를 크게 만든 뒤 스킬 '철구 대회전'을 사용했다. 그러자 다가오던 경비병들은 철구 덕분에 아크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아크는 관람석의 빈 한 켠에 철구를 던진 뒤 쇠사슬을 잡고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그런 다음 가까이 있는 꼬맹이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겨누고 소리쳤다. "움직이지마! 지금부터 움직이는 새끼가 있으면 이 꼬맹이 머리통이 날아 갈 줄 알아!" 아크는 꼬맹이 소녀를 한 팔로 감아 안았다. "엄마!" "유카나!" 소녀의 엄마로 보이는 귀족 부인이 아크에게 매달렸지만 아크는 냉정하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 "너희들 비켜!" 아크는 출구 쪽에 앉은 입찰자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자 홍해의 기적처럼 출구가 열렸다. '뭐 도망자 인생도 재밌지. 렌도로스 대공 같은 놈이 쫓아오지도 않는 이상.' 아크는 출구를 통해 나간 뒤 오토바이를 이용해 순식간에 경매장에서 달아났다. "어이 꼬맹아. 그만 울고 이것 좀 먹어봐." "훌쩍, 훌쩍." 아크가 꼬치구이를 내밀자 유카나란 이름의 소녀는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 쳤다. "이봐. 난 널 해칠 생각이 추호도 없다니깐?" "흐흐흑." '최악의 호감도로 시작하는 모양이군. 쩝 뭐 할 수 없나? 하긴 처음에 그 지랄을 떨었으니.' 역시 미연시의 폐인이었던 아크는 손대서는 안 될 로리에게 까지 호감도란 수치를 적용시키고 있었다. 호감도 오르면 뭐 할건데? 아무래도 첫 술에 친해지기란 조금 무리인 듯 싶다. 인질 극 사흘 째 소녀는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어. 그래 잘 생각했어. 뭐라도 먹어야 살 것아냐?" 사흘 동안 단식 농성을 하던 소녀는 드디어 아크가 준 음식을 받아 먹었다. 원래 아크는 이런 상황에서라면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M모 마교 교주님처럼 여자 괴롭히기를 할 생각이었지만 아크의 미연시 경험상 다 큰 여자는 조교에 능욕으로 괴롭혀 주면 호감도가 오르는 반면, 어린아이 같은 경우에는 소중히 다루어 주어야 탈이 안 났다. "어때 맛있지?" "……." "어이 꼬맹아. 지금 우리는 말야. 사람 걸음으로는 보름은 더 넘게 걸리는 거리에 와 있어. 계속 저 기계말을 타면 더 멀어질 거고, 그런데 심심하지도 않니? 이래 뵈어도 이 오빠는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다고." 재밌는 얘기라 하면……야설? 소녀는 한참 후에서야 입을 열었다. "절……돌려보내 주세요." "흠 그건 걱정 마. 한 두어 달 데리고 다니다가 잠잠해지면 알아서 보내 줄 테니까? 집이 어디 있는지 얘기하면 거기다 데려다 줄게." "정말……이요?" "그럼 기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게." "기사?" 소녀의 말에는 의심의 뜻이 담겨 있었다. "어라? 못 믿는 눈치네? 노예 시장에서 노예짓 해서 그런가?" -끄덕 "휴우 그러기도 하겠다." "이름……이 뭐에요?" "꼬마 아가씨 이름 먼저 밝히는 게 예의 아닐까?" 사실 소녀의 이름을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정식 소개로 듣는 것과는 틀리다. "……유카나, 유카나 엘레노어. 엘레노어 백작가 장녀." "난 멸망한 디그리스 왕국의 기사 아크 페인 자작이야." 유카나는 두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서는 아크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지략의 기사라 불리는 아크 페인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런 전설 속의 멋진 기사와 이 무지막지한 흑발 노예와의 연관성은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거짓말." 못 믿는 눈치였다. "진짠데?" "그 사람 죽었잖아요." "여기 살아 있잖아." "귀족 사칭 죄는 죄가 더 커요." "얘가 도무지 사람을 못 믿네?" "그럼 증거를 보여주세요." "아! 맞아. 그게 있었지. 후후 보고 놀라지나 말려무나." 아크는 왼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아크의 손에 붉은 빛의 문장이 나타났다. 유카나는 아크의 신분이 귀족이라는 걸 알자 제법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전설 속의 기사 아크 페인과의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아직 믿을 수 없었기에 귀족 인장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디그리스 왕국의 자작이자 신흥 귀족 페인 가문의 가주. 아크 페인.' "어, 어떻게? 죽은 거 아니었어요?" "아. 그놈의 역사책? 하긴 그때 내 동료들과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죽었으니까 역사가 왜곡되어서 전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뭐 그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는 건 나하고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 그리고 살아 있는 루네아 공작님 정도겠지." "루, 루네아 공작도 살아 있어요?" "그럼. 내가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려 줄까?" "네." 유카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크를 응시했다. '음 영웅적인 이야기는 그대로 두고 몇 가지만 바꾸어 놔야겠군. 추잡하게 이긴 이야기는 안 쓰는 게 낫겠지.' "맨 처음 루네아 공작과 맞붙은 이야기 있지?" "네." "그 전투는 사실 호각세가 아니라 내가 밀렸어. 그러다 나는 우연찮게 루네아 공작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 "예? 루네아 공작이 여자였어요?" "그럼. 하지만 나말고 다른 이들은 마지막에야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남자로 전해진 걸 거야." "그랬구나." 유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카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자 신이 난 아크는 입에서 침위 튀도록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퍼지는 것을 우려한 루네아 공작에게 등용되었고 그 다음은 잘 알 거야.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특히 팬크라프트 10만 대군을 불고기로 만들어 버린 거. 아! 그리고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레골룸스는 사실 남자야. 그 역사책 어떤 역사가가 써 놨는지 아주 소설을 서 놨더구만." "그럼 그 마지막 전투는?" "뭐 대충은 들어맞아. 틀린 점이 있다면 마지막에 나하고 루네아 공작이 죽지 않았다는 것 정도? 그땐 정말 죽을힘을 다 해서 포위망을 뚫은 다음. 저 기계 말을 타고 도망쳤지. 그런 다음 난 복수하기 위해서 산 속에서 수련을 했고 수련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지. 그러다가 여관방이 없어서 하게 된 노숙 때문에 부랑자로 몰려 노예 시장에 팔려 오게 된 거고." "파란만장하네요." "그러나 안심해도 돼. 난 뼛속까지 기사라 기사도에 어긋나는 그런 나쁜 짓은 하지 않아. 널 인질로 삼은 거야 빠져 나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말야. 기사 하나 따라서 여행한번 한다고 생각해." 개 뻥이다. 뼛속까지 기사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기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지략의 기사 예고했던 대로 연참입니다...용량은 좀 작을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아시죠?....(크...은근슬쩍 요구하는 김 작가...) "네 아크 아저씨." 순간 아크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 아저씨?" "네, 아 저 씨." 사실 아저씨 취급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철도 안 든 아크는 영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젠장! 내가 무슨 사쿠형제인 줄 알아! 아저씨 소리나 듣고.' "저기 유카나. 그냥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될까?" "오빠……요?" "그럼 난 아직 생생하다고 어딜 봐서 아저씨 같아 보이니?" "나이가……우리 할아버지랑 동갑이라." 할아버지! 그 말에 이 만년 청년의 억장은 두 번째로 무너져 내렸다. '내, 내가 할아버지? 벌써 그 소리들을 나이가 된 건가? 하하하 그래 늙으면 죽어야지.' 아크는 쪼그려 앉은 상태로 흙바닥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며 별 헤는 밤을 읊었다. 별 헤는 밤을 다 읊은 아크는 일단은 자학모드에서 벗어났다. "저기 말야 유카나. 사람의 정신은 육체의 영향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거란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냥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되겠어." "네 그렇게 할께요. 아저씨" -쿠궁! 엄청난 심리적 충격에 고개를 푹 숙이는 아크. 유카나의 압승이었다. 긴급수배! 몽타주(알아서 상상하시길 바람 그림 삽입 불가)성명 : 불명 인상착의 : 검은머리와 약간 누런 피부, 눈 밑에 짙은 다크 서클. 수준 급의 미남형 얼굴. 특 중요사항!! 앞니가 금니. 죄명 : 노예 탈출죄, 귀족 능멸죄, 엘레노어 백작가 영애 납치 죄 현상금 : 3000골드 "……." 매일 불편한 잠자리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던 유카나를 위해 마을로 진입하려던 아크는 곳곳에 붙어 있는 수배전단에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튀는 외모였나? 이거 이거 이거 미청년의 비애로구만." 아크는 자칭 '언더테이커의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이 모자라면 대충 머리색과 다크 서클은 가릴 수 있었다. "뭐 귀족 인장을 보여주면 다들 알아서 하겠지. 전부 노예로 소문나 있으니까." "제가 오빠라고 부르면 쉽게 대하지는 못할 거에요." "그래 들어가자. 하지만 말이야 이번 한 번 뿐이야. 귀족가 아가씨라 귀하게 자란 것은 알겠지만 이런 고생은 젊었을 때 사서도 하는 거야. 모험에서 어리광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네 아크 오빠." '크흑! 역시 오빠 소리가 최고지. 크흐흐 내 동생한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을! 아아 미연시여!' 유카나는 아크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난 이후부터 상당히 살갑게 아크를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납치한 무지막지한 노예가 사실 전설 속에 나오는 존경하는 기사였던 데다가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기사의 명예를 걸고 자신을 해치지 않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물론 아크에게 기사의 명예 따위가 있는 지나 의심스러웠지만. 아크는 그론다이저 영지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곳은 구 디그리스 왕국령으로 제 7기사단 동료였던 체제린 그론다이저 백작과 그의 아들 에르쿠스를 배출한 그론다이저 가의 영지로서 디그리스가 루드비안에 흡수될 때 항복하고 여전히 영지를 지키고 있었다. "흐음. 에르쿠스 경은 독자라고 한 것 같았는데?" 그러한 의문점을 뒤로하고 아크는 가장 중요한 검문 검색을 받아야 했다. 경비병은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와 연보랏빛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귀족가의 영애처럼 고귀해 보이는 소녀를 보고서는 지금 루드비안 제국을 들끓게 하고 있는 백작가 영애 납치 사건이 연상되었다. 게다가 저 모자를 푹 눌러 쓴 남자는 큰 현상금에 혹해 자세히 봤던 몽타주와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모자를 푹 눌러 쓰니 오히려 튀어 보인다. 경비병은 창을 아크에게 겨누며 소리쳤다. "꼼짝 마라! 이 더러운 노예 놈! 어디 내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의외로 단 한 번에 알아보자, 아크는 경비병의 눈썰미에 탄복했다. 하지만 이미 이럴 것을 예상했기에 아크는 겁먹지 않았다. "훗 무례한 놈이 로고." "뭐? 당장 제국 치안대에 넘길 테니 그리 알아라. 에 유카나 님이십니까? 제가 저 노예 놈을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경비병은 무슨 떡고물이라도 떨어질 까 싶어 유카나에게 잘 보이려는 눈치를 보였다. "유카나? 전 엘레나 입니다만." "예?" "전 엘레나에요. 그리고 요새 오해를 자주 받으시는데 이 분은 제 약혼자 오빠고요. 잘못 짚으신 것 같네요." 약혼자 오빠! 아크는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 드디어 로리 타입까지 섭렵하게 되었군. 이제 하렘왕이 되는 일만 남은 건가?' 잠시 망상에 빠져 있던 아크는 그래도 못 믿겠다는 표정의 경비병을 보고 위압감 있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놈. 감히 일개 병사 주제에 나를 능멸하려 들다니! 잘 보아라!" 아크의 왼손에 귀족의 상징인 귀족 인장이 뜨자, 경비병의 얼굴은 똥 씹은 듯이 변했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아 경비병에게 겨누었다. "귀족 능멸죄는 즉결 처분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히익! 죄, 죄송합니다. 몰라뵈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이번만은 봐줄 터이니 어서 비켜라." "예, 예." 신분제가 싫기는 했지만 막상 자신이 높은 위치에서 사람을 부리게 되자 아크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런 권력의 맛이란 이런 것이로군. 그래……젠장 신분제를 타파해야 할 민주주의자인 내가 이런 생각이나 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무리 민주주의 어쩌고 외치는 인간이라도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다면 과연 그 초심의 마음을 지킬 수나 있을까? "유카나." "네?" "유카나네 집이 어디라고 했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게펜하드 영지라는데 영지가 어디 있는 지는 저도……." "후우." 역시 이제 막 산에서 나온 아크와 집안에서 곱게만 자랐던 유카나가 무엇을 알겠는가? 아크는 지도 및 식량, 그리고 유카나에게 입힐 여분의 옷을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곳곳에서 납치범 노예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귀족 인장 하나로 그 모든 것을 무마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아크는 귀족 신분을 사용할수록 달콤한 권력의 맛에 빠져들었다. 유카나의 집이 있는 게펜하드 영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하지만 범죄자 신분인 아크로서는 잘 닦인 길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쩔 수 없이 산간 벽지 길을 택해야만 했다. "안 찝찝하세요? 아크 오빠." "음? 뭐가?" "목욕도 한 번 제대로 안 하셨잖아요?" "아 그거? 나와라! 운디네." 아크는 운디네를 불러 간단히 몸 세척을 끝냈다. "이렇게 물의 정령 운디네를 이용한다면 언제든지 간단히 씻을 수 있지." "우와! 귀엽네요. 그런데 이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거지? 아크 오빠도 아닌데?" "실례다 임마. 냄새난다니." -케케켁! 그때 어디선가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괴인이 나타났다. "욱! 뭐야 저거?" 아크는 코를 막으며 나타난 괴인을 향해 소리쳤다. -케케켁! 나타난 괴인은 똥내마타라는 몬스터였다. 인간형 몬스터로 번식기가 되면 짝을 찾으려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암내를 풍기는 괴물로 보기와는 달리 상당한 괴력과 지독한 가스를 내뿜기에 소드 익스퍼트급 기사들도 상대하기가 조금은 곤욕 스런 그런 녀석이었다. "쳇 냄새나는 녀석이군. 좋아 그럼 파이트를 시작해 볼까?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 됐군." 위진무의 초야에서 나와 처음으로 만나는 몬스터, 아크는 이 몬스터를 간단히 해치우고 유카나에게 전설 속의 기사 모습을 어필하려 했다. "아이스 미사일! 5연발!" 프로즌 아이스에서 다섯 발의 아이스 미사일이 날아가 똥내마타에게 박혔다. 똥내마타는 우억 소리를 지르며 축 늘어졌다. "헹. 별것도 아닌게 까불고 있어." -케케켁! -케케케켁! "어라?" "꺄!" 한 마리가 아니었다. /////////////// 똥내마타라는 몬스터는 제가 스스로 창조해 낸 몬스터로서 항상 몸에서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제 친구 녀석이 이 소설 출현을 강력하게 희망하길래 넣어줄 배역은 없고 해서 그 친구의 별명을 가져다 붙였습니다. 책에 보면 작가 서문에서 냄새나는 XX이 라고 되어 있는 그친구입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연참의 행진...... 다음 편은 로리귀축입니다......제 전공이죠. 중 3때 썼었던 바로 그 소설... 용량위장을 위해 계속해서 서두가 길겠군요......거기 사시미는 치워주시고요... 123화 필독입니다. 내용이 안 이어질 겁니다 아마도... 123화 공지 폭파되고 소설내용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런 염불할……. 이런 냄새나는 놈들이 수십 마리라니 좋아! 지략의 기사의 실력을 보여 주지!" 아크는 가장 근접한 괴물에게 달려 간 다음 폴짝 뛰어 무릎으로 괴물의 가슴팍을 찍어 버렸다. -빡!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똥내마타. 나머지 똥내마타들은 동료가 죽자 떼거지로 아크에게 덤볐다. -퍽! 아크의 강한 어깨치기 다음으로 이어지는 팔꿈치 공격. -콰직! "쿠우욱!" "스위친 뮤직!" "쿠와욱!" 턱 째로 날아가 버리는 괴물의 머리, 상당히 잔혹한 장면이었다. '흠 얼라가 보기에는 조금 잔인하겠군.' "프리징!"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로 모든 괴물을 얼려 버렸다. 그런 다음 블레싱 소드와 최강검법의 초식을 이용, 깔끔하게 괴수들을 끝장냈다. 이 정도면 거의 소드 마스터를 능가하는 실력이었다. 그 동안 로니에게 왜 졌는지 모를 정도로 아크는 발전해 있었다. 각종 보조 마법으로 소드 마스터급의 힘을 낼 수 있는데다 1대1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살인격투술, 그리고 다 대 일의 단점을 보완하는 장거한의 철구와 두 자루의 명검 그리고 두 자루의 총. "굳이 마스터가 되지 않아도 되겠군." 아크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아도취감에 빠져들었다. "어쨌든 상황 종료." 괴물들을 처리하고 바람에 앞머리를 가볍게 걷어올리며 유카나에게 다가가는 아크. 그런 아크를 본 유카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대, 대단하세요. 엘레노어 가 기사 아저씨들은 이 정도까지 강하지 못한데……." "괜히 지략의 기사라는 명성이 퍼진 건 아니거든. 그나저나 다른 곳으로 옮기자. 여긴 냄새가 심해서 더 못 있겠다." "저기 아크 오빠." "왜?" "저……무술을 가르쳐 주세요." "엥? 무술? 아 그래 심심할테니 검술이나 좀 배워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아뇨 검이 아니라 격투술이요." "아하~격투술……엥? 뭐라고 격투술? 지금 혹시 장난?" "격투술이요." "크흐음." 격투술이라니……무리였다. 여성이 무를 닦기 위해서는 유약한 신체의 힘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검이나 활 등의 무기를 사용한 무가 제격이었다. 그런데 외공의 힘이 많이 필요한 격투술이라니……배우기도 힘들고 설사 배운다 치더라도 이 귀여운 소녀가 격투술을 완성한다면 온몸이 근육질로 변할 것이다. "유카나. 격투술이라는 것은 말야 신체의 힘을 극대화 시켜 사용하는 무술이야. 여자아이의 유약한 몸으로 배울 것이 못 된다는 소리지. 유카나가 만약 격투술을 마스터하게 된다면 무지막지한 마초맨이 되고 말걸?" "그래도 상관 없어요." 의외로 단호한 유카나의 태도에 아크는 재고해 보기 시작했다. '음……아니? 가능할지도…….' 생각해 보니 로니는 특별한 격투술도 없이 맨손으로도 아크를 상대로 대 선전했었다. '내공의 힘이군. 하긴 어차피. 최강심법이라면 가능할지도.' "좋아 가르쳐 주지." "정말요?" "그럼 정말이고 말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가자." 제자……제자 키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B모 무협지 주인공 B모군은 제자를 하나라도 더 늘리려 난리를 치지 않았는가? '제자가 하나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그것도 이런 미소녀 제자라면……클클클 뭔가 싹트는 게 있는 것 아니겠어?' 아크류 살인격투술의 제 1전승자의 탄생이었다. "뭔 말인지 알아듣겠어?" "음 그러니까. 신체적 능력이 부족한 여성들에게는 근력 운동 같은 것 보다는 내력의 힘을 강하게 하는 기술로 마나를 쌓아야 한다는 거 아니에요?" '똑똑한 녀석이군.' 역시 가르치는 이 입장에서는 제자가 하나늘 듣고 열을 알며, 뭐든지 깨우친다면 기쁜 법이다. 아크는 자신이 운기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론만으로는 빠삭하게 내공 심법을 익혀 두고 있었다. 나중에 세력 따위를 키울 때 이 내공심법 하나만으로도 먹히는 것이 많으리라는 사심에서 익혀 둔 것이었다. "유카나." "네." "윗옷을 벗어봐." "네?" "네 신체의 상태를 살펴보고 마나가 통하는 구멍을 뚫기 위해서야 그러니 이상한 생각말고 벗어." "네에." 유카나는 순순히 웃옷을 벗었다. 순간 아크에게는 음흉한 생각이 들었다. '크흐. 그래 혈도를 뚫어준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주물러 대면서 조금씩 흥분을 시켜 놓고. 히히히.' 야 이 놈아 로리는 범죄다. "으음 상당히 좋은 몸상태로군." 무공 헛배운 아크가 봐도 유카나의 몸상태는 무공을 배우기에는 최적이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르겠군. 유카나. 지금 입고 있는 옷 다 벗어 주겠어?" "예." 순진한 유카나는 아크의 말대로 따랐다. '으헉! 코, 코피날 것 같다!' 아직은 어린 유카나 이지만 아크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늘부터 그를 초 사이코 변태 로리콘이라고 불러 주자. 뭐 정확히 말해서 아크는 로리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웬만한 연세에는 다 반응하는 멀티 플레이어 였고 그렇게 된 이유는 수많은 19금 미연시와 귀축 능욕 게임의 영향이었다. "자 이제부터 너의 혈도를 뚫어 주마. 이렇게 알몸으로 며칠 수련을 받으면 내공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한다면 너도 내 비전 절정기. 살인 격투술을 사용할 수 있겠지." 사실 한 번만 이렇게 혈도를 뚫어 주면 다음부터는 옷 벗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 남겨 둘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아크는 유카나의 몸 이곳저곳을 주물러 댔다. "으음." "잠깐 엉덩이 좀 들어 보렴." "네에." 유카나는 가부좌 자세에서 양손으로 바닥을 딛고 땅바닥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아크는 그 안에 손을 집어넣고 회음혈을 눌렀다. "……!" "여긴 회음혈 이라고 하지. 여성이 내공을 운용 할 때 가장 중요한 부위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렇게 자주 눌러 줘야 해." '오호 나름대로 부드러운데? 하긴 아이의 것이니까. 포실포실한 게 아주 죽인다.' 한참 혈도를 눌러(?)주던 아크는 최강심법의 구결을 알려 주고 유카나의 몸에 마나를 흘려 보냈다. 물론 회음혈로. "어때 느껴지는 것 같니?" "네. 피가 몸속을 도는 것 같은 게 느껴져요." "좋아. 성공이군. 이 수련을 매일 빠지지 않고 계속하렴. 마나가 체내에 어느 정도 쌓이고 그것을 무술에 응용시킬 수만 있다면 검이나 격투 어떠한 거라도 사용할 수 있을테니까." "네!" '크아악! 귀여버! 로니 누님이 딸 낳으면 이렇게 귀여울까?' "……?" 유카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크를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으흣!" 자그마한 소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자 이렇게 계속." "후우, 후우, 하아." 소녀의 조그마한 몸은 자꾸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크의 범죄를 저지르는 손에는 소녀의 타액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흠 이 이상 가면 위험할지도……로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니까.' "자 이제 됐어 옷 입어." 실컷 유카나를 능욕(?)한 아크는 오늘의 내공수련을 끝냈다. "후우, 하아아." 유카나는 큰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운디네로 절 좀 씻겨 주세요. 이상한 게 묻었어요." 뭐가??? "어. 응." 운디네가 유카나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후우." 유카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큰 한숨을 다시 한 번 내쉰 뒤 옷을 주워 입었다. 수련을 핑계로 온갖 짓거리를 즐기는 아크. 물론 마나의 흐름을 느끼게 해 주며 공기 중에 끌어 모은 내력을 투입시켜 주는 등 수련의 효과는 뛰어났지만 처음 한 번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런 번거로운 일을 자처한 속내는 결코 호기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어린애는 일정 선을 넘지 않는다란 신조를 가진 아크였던지라 몇 번 장난질은 쳐도 끝까지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저기 아크 오빠." "왜?" "이렇게 마나 수련만 해야 하나요? 기술은……?" "아! 아, 맞아 좋아. 내공도 어느 정도 쌓인 것 같고 오늘부터 가르쳐 줄게." 어차피 이렇게 데리고 몇 년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내공 수련은 좀 부족하더라도 기왕 아크류 살인 격투술의 제 1계승자가 된 이상 일단 살인 격투술의 몇 가지는 가르쳐 줘야 했다. "일단 이론 강의부터 하지. 내 격투술은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 머리나 주먹 다리 등을 이용한 직접 타격기와 들어서 던지거나 메치는 기술, 급소를 정확히 노리는 급소권법, 마지막으로 어떠한 강자라고 해도 1 대 1이라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서브미션. 이 중 직접 타격기와 들어서 던지거나 메치는 기술들은 아직 수련이 덜 된 유카나로서는 배울 수도 활용할 수도 없어. 그러니 일단 뒤에서 언급한 서브미션과 급소권법을 전수하도록 하지." "네!" "급소권법은 말 그대로 급소를 정확히 노려 단 한 번에 적을 쓰러뜨리는 기술이지. 특별한 힘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빠른 속도와 예리한 명중률이 필요하지." "어느 급소를?" "뭐 말하기는 좀 쪽팔리지만 유카나한테는 없고 남자들한테 주로 있는 거라고 해 두지. 이 기술은 특별히 배울 것은 없어. 정확히 물컹한 것을 노리고 발로 차거나 손가락으로 까 비틀어 부수기 등을 배워 두면 돼. 그러니 이것도 특별한 강의는 없어." "그럼?" "네가 일단 배울 것은 서브 미션이라는 기술의 분류야. 이 기술이 먹히기만 한다면 아무리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도 이 기술의 아픔에서 벗어나갈 수 없어. 내가 실력이 딸리면서도 젤리커 공작을 꺾은 것도 이 기술에 의해서였어." "뭔데요?" "일단 시범을 보여 주겠는데……후 일단 아프겠지만 유카나가 시범을 당해야 해. 팔을 뻗어 보겠니?" "여기." 아크는 유카나의 팔을 잡고 암바를 걸었다. "아아! 윽! 악! 아, 아파요. 오빠. 악!" "아! 미안." 아크는 눈물까지 글썽이는 유카나에게 차마 기술을 더 지속하지 못했다. 여자에겐 확실히 약한 아크였던지라 유카나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휴우 이 기술도 무린가? 쩝 어쩔 수 없다. 유카나. 실제 전투에 쓰는 걸 보여 주는 건 나중에 오크라도 만나면 그렇게 보여 줄게. 일단은 그림으로 그려 주고 말로만 설명해 줄 테니까. 최대한 어떻게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렴." 아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자 한 번 이대로 해 볼래?" "넵!" 유카나는 아크의 팔을 잡고 아크가 가르쳐 준 대로 암바를 걸었다. "……!" 아크는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크윽! 그만 그만." '후우 이 녀석 정말 이해가 빠른데? 어떻게 단 한 번에 성공을?' "아프셨어요?" "아. 그래 무진장 아프더군."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어차피 당해줄 각오를 하고 맞은 거니까. 제자를 키우는데 이 정도 고통쯤은 뭐. 감수할 수 있어. 다음 기술을 한 번 해 보렴." 아크는 그대로 땅바닥에 누웠다. 그런 아크의 다리를 양 겨드랑이에 끼우는 유카나. 하지만 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히, 힘들어요." "아! 참 내가 돌아줄게." 아크는 자기가 허리를 틀었다. 그러자 유카나는 완벽히 아크에게 보스톤 크랩을 걸 수 있었다. "그만!" "네, 넵 죄 죄송해요." "뭐 괜찮아." 보고서 따라해도 따라하기 쉽지 않은 기술들을 너무도 쉽게 소화해 버리는 유카나였다. '천재다. 이런! 정말 가르칠 의욕이 생기는군. 가만……흠 그 기술을 한 번 가르쳐 줘 볼까?' "자 유카나. 이번엔 이 기술을 한 번 써 볼래?" 아크는 유카나에게 간단한 서브미션 기술을 하나 알려 주었다. 그리고 유카나는 그 설명대로 아크에게 기술을 걸었다. 유카나는 양다리를 이용 아크의 목을 감싸고 나름대로 강하게 조였다. 그리고 아크의 얼굴은 유카나의 다리 사이에 완전히 파묻혔다. '푸웁! 오케이! 좋아! 이 파묻힘에 느낌이란……흐흐흐.' 순애물을 보면 주인공들이 매우 어리버리하고 착하며 이성에 둔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크의 행동을 보면 그것이 그 작품의 작가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임을 알 수 있다. 순애물에 주인공이 머리가 좋고 조금 사악하다면 그것은 순애물이 아닌 능욕물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크는 그의 그 잔머리를 십분 활용하여 미연시의 법칙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 부러운놈...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수십일 동안 도주를 했지만 아크는 별 다른 추격군들을 만나지 못했다. 대로가 아닌 산간 벽지의 몬스터가 출몰하는 길을 빙 돌아 그것도 경공이나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지구 과학 문명의 유산을 사용했기 때문에 끽해야 말을 타고 쫓아오는 수사관들을 따돌리기가 쉬웠다. "내일쯤이면 게펜하드 영지에 도착할거야." "……." "왜 그래? 이상하게 조용하네?" "……." 유카나는 말 없이 장작불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집에 간다는데 별로 안 좋아하네?" "……." "휴우." 아크는 더 이상 말 걸기를 포기하고 드러누웠다. 이제 유카나를 보내 주고 나면 자신은 또 다시 할 일 없는 거리의 부랑자가 될 것이다. 추격군들이야 따돌리고 다른 나라로 가도 되고 별 상관은 없지만 이제부터 뭘 해야 하는 가가 관건이었다. '젠장 나는 무슨 용병단도 못 만나고, 무투대회도 안 열리고 지나가는 마차 습격도 안 일어나고, 뭐야 이게 지금? 전혀 판타지 스토리 답지가 않잖아?'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심심할 줄은 몰랐다. 그때 장작불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유카나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기 아크 오빠." "음? 왜?" "이제부터 뭐 하실 거에요?" "글쎄다? 지금 생각 중인데 특별히 떠오르는 건 없는가 보다." "저기……그러면 그냥 정체를 밝히시고 게펜하드 영지에서 제 무술 사범님을 하시면 안될까요?" "그래." 아크는 쉽게 유카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망국이긴 해도 귀족 신분인 아크로서는 유카나가 변호만 해 준다면 사건을 잘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무엇 보다 그냥 귀족이 아닌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이지 않은가? 팬크라프트 일부 지역에서는 예전에 장난을 쳐 놓은 '묵시의 기사'로도 불리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것은 둘째치고 아크의 명성은 무시 못할 무기였다. "정말이요?" "물론." -덥썩! 아크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카나의 강한 포옹이 이어졌다. "고마워요 아크 오빠." '으하하! 이제 거의 넘어 온 모양이군. 포옹 씬 까지 나왔으면 이제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지. 히히히.' 이런 상황에서도 미연시 게임 같은 사고를 하는 아크. 역시 사이코다. 아크는 저택의 크기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 크다. 여기가 유카나네 집이야?" "네 제대로 도착한 거 같아요." "그럼 가볼까?" 아크와 유카나는 엘레노어 백작가 대문 앞으로 걸어가 경비병에게 말을 걸었다. "진드랙 아저씨!" 무뚝뚝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던 경비병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난 방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납치 당했었던 엘레노어가 장녀 유카나가 웬 남자와 함께 있었다. "아가씨! 무사 하셨군요." "네 돌아왔어요." "이런 신의 기적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아가씨! 영주님이 얼마나 걱정하셨다고요! 지금 까지……." 한참을 흥분한 듯 말하던 경비병은 유카나 옆에 서 있던 아크를 보더니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 "기다리십시오. 아가씨 곧 구해드리겠습니다." 급히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경비병. "흐음. 아무래도 날 보고 경계 하는 것 같은데?" "걱정 마세요. 아버지가 나오시면 제가 잘 말씀드려 볼게요." 잠시 후 금빛 콧수염을 짤막하게 기른 화려한 의복의 남자가 검을 든 기사와 창을 든 사병들을 거닐고 나왔다. "아버지!" "오오! 유카나!" 유카나는 쪼로로 달려가 아버지라 불린 엘레노어 백작에게 안겼다. 그 모습을 본 아크는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쩝. 내 얼라도 저럴까?' 문득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가 생각나는 아크였다. "그래 고생 많았다. 유카나. 참 네놈들은 뭣들 하느냐? 당장 저 더러운 노예 놈을 잡아 무릎 꿇리지 않고!" "옙!" 집에 돌아왔다는 기쁨에 잠시 아크를 잊고 있었던 유카나는 급히 아버지의 명령을 말리려 했다. "……! 잠깐만요 아버지! 저 분은……." "됐어 유카나." 아크는 엘레노어 백작을 말리려던 유카나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렸다. "아크 오……!" "모든 것은 실력으로 이야기하는 법이지. 그런 건 모두 멋지게 꺾어 준 다음 말해도 늦지 않다구. 헤이 컴온 일로와봐!" "건방진! 쳐라!" 각자 중장병기를 들고 아크에게 돌진해 오는 엘레노어가 사병들 그 중 최선두에 달려오는 한 병사에게 아크의 첫 공격이 들어갔다. "양촌리 딸딸이 권법 제 2장! 알 까 비틀어 부수기!" "뜨아아악!" 아크의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남성의 몸에서 가장 물컹한 그 부분을 꽈배기처럼 만 다음 강한 악력을 가했다. 공포의 낭심 공격. 현재의 아크라면 조금 힘만 준다면 나무에서 열매를 따듯이 쌍방울을 따 버릴 수도 있었다. 한동안 사용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클클클 내 걸 제외하고 이 세상 모든 남자의 거시기를 작살내주마! 양촌리 딸딸이 권법 제 7장! 쌍두마차!" "푸억!" "끄어억!" 이번에는 측면에서 달려오는 두 병사에게 정확히 작렬하는 급소 공격. 아크의 양촌리 딸딸이 권법에 직격당한 둘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눈에 흰자위만을 남긴 채 입에 게거품을 물고 낙법도 쓰지 않은 채 꼿꼿이 넘어갔다. 급소공격에 적중하고 쓰러진 병사들의 낭심 부위는 하나 같이 옷가지가 찢겨 나간 채 자랑스러운 남성의 양물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유카나의 눈에도 들어가자, 엘레노어 백작은 급히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딸내미한테 이러한 광경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이보게 집사! 유카나를 안으로 데려가게!" "난 안 가요!" "이런 장면은 아직 아가씨께서 보실 만한 장면이 아닙니다. 저 노예는 나중에 잡아서 대령하겠사오니 그만." "이거 놔요! 아크 오빠." 하지만 유카나는 집사의 손에 이끌려 전장에서 멀어졌다. -퍽! 아크의 정강이 차기가 그대로 병사의 배에 직격했다. 극심한 고통에 토사물을 뿌리며 허리를 굽히는 병사. 그런 그의 뒤통수를 아크의 뒤꿈치가 강타했다. "액스 킥(Axe kick)!" 병사는 그대로 자신이 부어 놓은 토사물에 얼굴을 처 박았다. "이런!" 아크는 날아오는 검날에 몸을 숙였다. 그런 다음 검을 날린 소드 유저급 수련 기사를 양손으로 든 다음 기사의 낭심이 떨어질 자리에 자신의 무릎을 가져다 놓았다. "인버티드 아토믹 드랍!" "크악!" "네 놈째……어이 한꺼번에 덤벼. 재미없게 시리 한 둘씩 오지말고 얼렁! 헤이 컴온!" 가운데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아크의 제스츄어에 발끈한 엘레노어 가 사병과 기사들은 다 대 일의 비겁함을 무릎 쓰고 건방진 노예에게 달려 들어왔다. "흥!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그러자 아크는 뒤로 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게 서지 못해!" 철깡통 뒤집어쓰고 잘도 쫓아오는 기사들과 사병들. 아크는 엘레노어 가 저택 정원의 나무를 왼손으로 꼭 잡은 뒤 한바퀴를 빙 돌면서 다리를 모은 다음 정강이 차기를 먹였다. "619!" -퍽! 앞에 한 기사가 맞고 균형을 잃고 넘어지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연쇄적으로 넘어지는 기사들이었다. 뒤늦게 쫓아오던 병사가 검격을 가했다. 아크는 병사의 검을 앞구르기로 가볍게 피한 뒤 더 뒤쪽에서 쫓아오던 중장갑의 기사 둘에게 양팔을 쫙 펴고서는 일명 '더블 크로스라인 프롬 헬'을 먹였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꽈당! "……!" 순식간에 일곱이나 당하자, 엘레노어 백작을 비롯한 기사와 병사들은 아크가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검을 두 자루나 가지고 있으면서 검을 쓰지 않는 이유는 또 뭐지?' 무엇보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고 단순 육탄 전투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콰직! "가, 갑옷이!" 아크의 스텝 후 옆차기(슈퍼킥 혹은 레슬러 숀마이클스가 붙인 이름을 따 스위친 뮤직이라 불린다)가 여러 번의 제련을 거친 강철 갑옷을 바스러뜨려 놓았다. 그 광경에 위축되기는 했지만 병사와 기사들은 아직은 쪽수를 믿고 있었고 그들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은빛 섬광과 함께 은빛의 검신들이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스릉! 그 때 아크의 블레싱 소드가 금빛 광채를 뿜으며 한 줄기 금빛 선을 가르며 검들을 부러뜨려 놓았다. "주먹 쓰는 사람에게 검을 겨누면 섭하지……그나저나 오러 블레이드도 발동 못하는 놈들이었나? 이런 것들을 상대로 내 실력을 실험해 보기란 조금 힘들겠군. 홀리 스타!" 블레싱 소드에서 눈부신 금빛 섬광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 빛은 아크를 제외한 이들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 놓았다. 퍽! "끄아아악!" 빡! "악 내 머리!" 콰직! "뜨아아악!" 빛의 장막이 걷히고 아직 무기를 제대로 들고 서 있는 자들은 몇 되지 않았다. 나머지들은 각자 거시기와 이마를 움켜쥐고 땅바닥을 뒹굴며 신음하고 있었다. "쩝. 역시 이건 너무 지속시간이 짧아."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엘레노어 백작이 소리쳤다. "도대체 네놈 정체가 뭐냐?" "더러운 노예라면서? 쩝 정 궁금하면 따님한테 직접 여쭤보고 그건 그렇고 이제 다섯 남았군. 좋아 간닷! 죽이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아크는 근거리에 있는 한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기사의 생명이라는 검을 잃은 그는 건틀릿을 찬 주먹을 휘둘렀지만 애석하게도 아크에게는 하나도 적중되지 않았다. 빡! "크윽!" 아크의 박치기가 투구에 먹히자, 철로 만든 단단한 헬름은 쩍 소리와 함께 갈라져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크는 비틀거리는 기사의 등뒤에서 기사의 양팔을 벌린 뒤 겨드랑이 부분을 그대로 잡아서 들어 올렸다. "이마를 맞았으면 뒤통수도 맞는 것이 순리겠지." "뭐, 뭐 하려는 거냐?" "하아! 아웃사이더 엣지!" 콰직! 아크는 허리를 숙이며 그대로 기사의 머리를 땅바닥에 처 박았다. "네 명 남았다." "무엇들을 하느냐! 전부 각개격파 당하고 있질 않느냐! 한꺼번에 힘을 모아서 덤벼라!" 겨우 네명이 남은 상태에서의 합공은 이미 늦긴 했지만 그래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야아아앗!" 창을 들고 돌진해오는 병사 셋과 기사 하나. 아크는 창의 칼날을 요리조리 피하며 한 손으로는 창의 나무 부분을 잡아 바스러뜨렸다. 촤악! "욱!" 기사의 칼이 아크의 옆구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하지만 은은한 빛무리가 어리며 아크의 검상은 곧바로 아물어 들었다. 그 장면을 본 엘레노어 백작은 아크의 정체를 대충은 짐작해 낼 수 있었다. '설마……몽크? 중도의 몽크가 무엇 때문에……? 하지만 저러한 능력으로 봐서는 몽크라고 밖에는…….' 몽크 주신을 섬기는 자들 중 강인한 육체에서 나오는 격투술로 신과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과 마물들을 처리한다는 주신교 한 유파의 성직자들로서 중도 교황청 5대 무력단체인 성기사단, 십자군단, 구마단, 전투 성직자단, 수도승단 중 수도승단의 일원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었다. 또한 신성력과 격투술을 동시에 갖춘 아크에게 너무나도 어울리는 클래스이기도 했다. "더블 디디티!" 아크는 양 겨드랑이 사이에 두 병사의 머리를 끼운 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둘!" 싸움은 아크의 승리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 급도 아닌 단순한 수련 기사와 병사들이었던지라 수십이 덤벼도 아크 하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제길 그렇다면!' 아크가 몽크라고는 해도 엘레노어 백작은 아크를 가만히 놔 둘 수는 없었다. 유카나를 납치한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현재 그다지 사이가 좋지는 않은 중도 연합과 루드비안 제국의 외교적 문제 상 중도의 교황청에만 존재하는 몽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충분한 나라간의 외교 분쟁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티컬 스플렉스!" 쿠당 "이제 하나!" 이제 남은 것은 엘레노어 백작과 병사 한 명뿐이었다. "히에엑!" 아크는 마지막 남은 병사를 두 팔로 높이 든 고릴라 프레스 자세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막 던지려는 순간이었다. 휙!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며 아크에게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그대로 아크의 등에 박혔다. "앗! 따거! 뭐야 이거?" 아크는 병사를 그냥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등을 만졌다. 그의 등에는 웬 바늘이 꽂혀 있었다. 아크는 바늘이 날아온 뒤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엘레노어 백작이 아크에게 총구 없는 총. 아니 정확히 말해 총구가 바늘구멍 만한 총을 겨누고 있었다. "리커버리!" 아크는 상태 이상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저런 총으로 날릴 것이 뭐가 있겠는가? 독침 밖에는 없었다. "이런 따갑잖아? 이제 당신뿐이군. 자 1대 1 대면을 했으니 심도 있는 대화나 좀 해 볼까? 유카나 건으로 내가 할말이 좀 있는……! 컥! 무슨 짓을 한 거냐? 왜 이렇게 졸리지? 리커버리로 치료된 것 아니었나?" "이제야 약효가 있는 모양이군. 그건 독침이 아니라 수면침이다. 수면의 경우는 생물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별 다른 피해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상태 이상 치료 마법이 먹히지 않지." "큭! 뭐야! 사기다! 롤플레잉에서 보면 수면상태도 엄연한 상태 이상이라고! 비, 빌어먹을……." 아크는 더 이상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졌다. "귀족 능멸 죄, 건물 파손 죄, 엘레노어 가 장녀 납치 및 성추행 죄……판결 사형!" 수면침을 맞고 제국 치안대로 넘겨진 아크는 철저한 고문 수사를 받았다. 중도의 스파이 혐의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지만 그 외의 항목만으로도 아크는 사형 감이었다. 특히 유카나가 아크를 변호하기 위해 무공 전수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 말해버리는 바람에 추가된 귀족, 그것도 아동 성추행 죄의 추가가 결정적이었다. 로리 귀축……죽어도 싸다. "취침!" 한 칸에 변소 하나 뿐인 독방. 창문도 없고 빛이 들어오는 유일한 경로는 쇠문에 달린 조그마한 쇠창살과 밥 들어오는 구멍뿐이었다. "……에휴 인생 참." 아이템은 모두 압수 당하고 남은 것은 딸랑 맹약의 반지뿐이었다. 모두 소환할 수 있기는 했지만 아크가 갇힌 독방과 수감소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마법장이 걸려 있어 아크가 내공을 운용한 강함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이전처럼 아템빨을 믿고 탈출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었다. 검 등 구식 무장이 아닌 여기 경비와 간수들은 모두 총기를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결정타로 마법 아이템인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나 블레싱 소드, 프로즌 아이스도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남은 베레타와 서브 머신 건. 하지만 사격술이라고는 1인칭 액션 게임 경력뿐인 아크와 총기류로 꾸준히 훈련받은 군인이 같을 리가 없었다. /////////////////// 이 밤을 강철의 연금술사를 보며 불태우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엘릭. 곧 등장할지도......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도대체 총은 어디서 난 거 길래? 여기 놈들은 전부 총이야?" 총만 없어도 어느 정도 탈출이 가능할 수 있을 텐데…… 총의 존재는 아크에게도 상당한 위협이었다. 물론 최신형 총기류인 아크와는 달리 이곳에 총들은 어딘지 모르게 허술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어쨌든 총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총기는 현재 이 세계에서 지금 아크가 있는 루드비안 제국을 제외하면 그 존재가 조금 알려진 것 외에는 보유국가가 없었다. 총기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이 루드비안 제국뿐이기도 했거니와 이러한 신무기의 등장을 예의 주시하던 팬크라프트의 렌도로스 대공이 그저 활보다 조금 더 좋을 뿐인 이 총기에 대한 경계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총기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갑옷이나 마나를 운용해 몸을 감싸는 기사들, 원거리 방어 마법이 걸린 옷가지 따위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나를 실었을 경우 위의 총기 방어 사례를 완전 무시하는 화살과 더욱 비교가 되었다. 총알에는 마나를 불어넣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으로 판정이 났기 때문이었다. 원거리 방어 마법은 3서클 급 마법으로서 마나를 실은 화살까지 막을 수 있는 6서클 급보다는 수준은 낮아도 낮은 수준 덕분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익히고 있었고 그들을 통한 원거리 방어 마법구가 쏟아져 나왔기에 더더욱 총기는 환영받지 못했다. 단지 정확한 사격술로 헤드 샷을 정확히 하거나 원거리 방어 마법구도 없는 강제 징병한 농민 떨거지 군 등에게 유용하고 화살보다는 좋은 성능이기에 활 대신 보급된 것이지 별 반 좋은 것은 없는 것이 총이었다. 그러나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가 무력화 된 아크로서는 특별히 총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제길 그때 브로치만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크는 원거리 공격인 수면침에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라는 철벽 방어 액세서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슬링 혈투의 과정에서 떨어뜨린 것을 그때 바로 인식치 못한 것이 그를 사형수가 되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귀족 인장도 먹히질 않았다. 고위층 수사관들은 인장의 빛깔만을 보고 대번에 아크가 망국의 귀족이란 것을 알고서는 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 수사관들이 인장을 자세히 들여다봐서 지략의 기사라는 아크 페인의 정확한 신분을 알아차렸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전설 속 지략의 기사가 어디 노예에 납치범, 성추행을 하겠나 라고 생각했던 수사관들은 가차없었다. 결국 현 루드비안의 귀족 작위를 새로이 받지 않는 이상. 디그리스의 자작이라는 신분은 별 다른 위세를 누릴 만한 것이 못 되는 것이다. 뭘 모르는 무지렁이 평민들이나 받들어 모실까,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쩝. 뻔한 스토리가 되더라도 용병단 같은 데에서 검 좀 휘두르며 소드 마스터급은 되어 놨어야 하는 건데." 아크는 이제 와서야 뒤늦은 후회를 했다. 괜히 망국 귀족 인장하고 얄팍한 실력 하나 믿고 노예로 한 번 놀아볼까 하고 있었던 첫 번째 유희의 대가로 맹약의 반지를 잃을 판에 놓인 것이다. '역시 유희는 드래곤들이나 가능한 것이었나…….' [위진무도 가능하지] 아크의 머릿 속에 울리는 목소리. 아크라우스였다. '장난치냐? 나 지금 그럴 기분 아니다.' [흥 센 척하기는 나 참. 내가 보낸 세 명의 이곳 인간 중에 네놈처럼 속 썩인 놈은 처음이다. 이거 저거 보내 달라고 하지를 않나, 엄청난 마나 소모를 필요로 하는 차원간 힘 끌어다 쓰기를 두 번이나 하게 만들고, 네놈은 왜 그따위로 사는 것이냐? 도대체 왜?] "얌마. 너는 뻔한 양산형이 재밌냐? 나처럼 이렇게 괴기하게 살아온 스토리도 있어야 뭔가 색다르지." [놀고 있군. 그런 스토리를 작가가 쓰려면 대가리가 남아나지를 않겠다.] "에휴우 제길. 이번 맹약의 반지도 작살나면 어떻게 다시 해서 보내 줄 수 없냐?" [불가능하다. 네놈의 좌표를 알 수가 없으니 맹약의 반지가 어디에 떨어질지 어떻게 아나? 굳이 나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내가 두 번째로 그곳에 보낸 인간을 찾아가라. 지금 네놈이 가지고 있는 위진무의 맹약의 반지가 파괴되고 나면 그쪽 세계에 남은 맹약의 물건은 그 애가 가진 맹약의 목걸이 뿐이다.] "그 애?" 문득 아크는 아크라우스가 자신처럼 이 세계로 보냈다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이봐 아크라우스. 진무 형님말고 내가 이곳에 보냈다는 나머지 두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그 질문을 그쪽 세계에 간 지 30년 만에 하다니 네놈도 참 대가리가 어지간히 안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인제사 생각났다 임마. 그리고 그동안 먹고살기도 힘들었는데 그런 것 신경 쓰고 살 여유가 어디 있냐?" [음 그 이야기는 글의 몰입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지금은 말하지 않겠다.] "얌마! 네가 무슨 소설작가냐? 몰입도 떨어뜨린다고 말 안 해주고?" [그냥 해 본 소리다. ……그러고 보니 지금 네놈의 상황이 그때의 나와 묘하게 닮아 보이는군.] "뭐?" 아크는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물었지만 한참동안 아크라우스의 대답은 없었다. '쩝 내가 그런 인간적인 감성에 젖다니…….' 아크라우스는 과거 회상에 자신도 모르게 감상적이 되어 버린 자신을 탓했다. 뭐 그 당시의 삶을 유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무언가를 인식하고 기억하면 잠시 까먹을 수는 있어도 잊어 버릴 수는 없는 드래곤이기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아크라우스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는 살벌한 욕설이 떠올랐다. "이런 미친 쓰레기 같은 변태 오타쿠 도마뱀아! 자꾸 씹을래?" [음? 아! 미안하군. 네놈을 깜박했었구나 잠시 생각할 것이 있었다.] "뭔데 그게?" [그건 나중에 맹약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녀석에게 물어라] "누군지나 알려 주고 그런 말을 하시지?" [그것은 너에게 남겨진 산의 정상이다. 알아서 찾아내라……흠 그건 그렇다치고 이제 어떡할 생각이냐? 사형날 기다리며 내 힘을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냐?] "탈출하고는 싶은데 뾰족한 수가 없잖아." [네놈 그 케인인가 뭔가 하는 놈한테 받은 8신기 삽이 있지?] "아 맞아! 삽." [그걸로 땅굴을 파면 될 것 아니냐? 잘 되면 반지의 파손 없이도 도망칠 수 있고, 안 돼도 반지 덕에 목숨은 구할 테니] "가르쳐 줘서 고마워 아크라우스." [후 그럼 열심히 삽질해 보거라] 아크라우스가 텔레파시를 끊자, 아크는 곧바로 조그마한 차원이 형상화 된 마법 배낭을 소환했다. 그런 다음 아크는 거기에서 킹 네크로맨서의 8신기 삽을 호출해냈다. 지금은 밤중. 아크의 사흘 교도소 경험 상. 간수들은 밤에는 별 다른 순찰 따위를 돌지 않았다. 거기에 아크가 보유한 폐인 클래스의 최강 패시브 스킬 밤새기로 삽질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좋아 시작하지!" 아크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블레싱 소드로 불빛을 내고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삽질을 했다. 파헤쳐진 흙은 똥 냄새나는 푸세식 변기에 퍼 넣었다. "어라? 한 시간도 안 판 거 같은데 벌써 구덩이가 여기까지야?" 겨우 한 시간 팔까 말까 했는데 어느덧 하나의 땅꿀 통로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뭐야? 혹시 이 삽에 삽질 능률 50% 상승 같은 옵션이 걸려 있는 건가? 뭐 이렇게 잘 파져?" 아크는 속으로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계속해서 땅굴을 팠다. 잠시 후, 아크는 삽이 흙에 걸리는 느낌이 아닌 뭔가를 뚫은 듯 쑥 들어가는 느낌에 의아해 했다. 걸리적거리는 흙벽을 치워 버린 아크는 웃옷을 벗은 흙투성이의 한 남자를 발견했다. "헉!" "으헉! 다, 당신 뭐야?" 서로 뒤로 엎어지며 엉덩방아를 찧는 아크와 흙투성이의 남자.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흙투성이 남자는 닳고닳은 숟가락을 들고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몽크 이전번에 띄웠지만 더 정확하게 수요일 전국 배본 목요일 수도권 및 서울 배본. 제목 에볼루션 출판사 : 파피루스(너무 욕하지는 마십시오...사실 제가 책임 전가한게 더 많습니다...) 가격 8000원으로 예상. 3권도 곧 출판을 앞두고 여러 가지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102화 여마법사에 관한 것 수정되었으며 91화 젤리커 공작에게 4명이 당하는 것 수정되었습니다. 보너스로 "그, 그건 어디서? 어떻게 칼하고 삽을?" "잠깐? 당신 옆방에서 맨날 머리 받던 그……1407호?" 아크는 이 흙투성이 남자의 정체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감방에 갇힐 때부터 자꾸 시끄럽게 굴던 옆 방 수감자였다. "어이 죄수번호 1407호씨. 나 옆방 264야." 아크는 자신의 죄수번호를 불러주었다. "264? 아 그 어린아이 그것도 귀족 가 영애를 성추행 했다는 죄로 붙들려 온 그 납치범?" "……별 걸 다 알고 있네. 음 그나저나 당신도 땅굴을 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고놈의 숟가락이 고생 좀 했겠어?" "벌써 1년째 파고 있소만. 여태 여기까지 밖에는……. 그나저나 264 당신 그 삽은 어디서 난거지?" "어?……음 글쎄? 말하자면 길어. 그건 그렇고 어이 1407호 어쨌든 당신도 탈옥할 생각이 있는 모양인데. 어때? 나랑 같이 도망치지 않겠어? 피차 마찬가지 사정인데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난 지금은 264라는 숫자로 불리지만 본명은 아크야. 만나서 반가워." "내 본명은 에르디. 이 망할 교도소 탈출 작전에 동지가 생기니 기쁘군 그래." 에르디는 경계를 풀고 아크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나저나 아크……뭐 말 놔도 되겠지. 설마 이 땅굴을 이틀 만에 다 판 건가? 아무리 삽이 있다지만 서도……." "아니. 오늘 밤에 다 판 건데?" "……그거 진담?" "진담." 에르디는 자신이 1년이나 들여 겨우 판 땅굴을 아크가 그 두 배가 넘는 길이를 단 하루만에 다 팠다고 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삽이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다니. 하지만 아크의 삽질을 살펴 본 에르디는 아크의 땅굴 파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 내 인생 25년 동안 저렇게 삽질 잘하는 놈은 처음이다.' "어이 이봐 에르디. 삽질만 하려니 지루하니까 뭐 신세 한탄 같은 거라도 한 번 해봐." "자, 자네처럼 삽질 잘하는 사람은 내 인생 살면서 처음일세." "에? 내가 삽질을 잘해?" 확실히 땅파는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군대도 안 간 아크가 삽질을 잘할 이유란 없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렇게나 많이 팠는데 하나도 안 힘드네? 마나도 운용 못하는데?' 아크는 삽질을 할 때마다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이 삽을 대신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멋대로 움직여 땅을 파는 삽이라니 아크는 어딘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봐 삽질 잘한다는 칭찬 하나도 안 반가우니까. 다른 얘기 좀 해 봐. 그래 여기엔 왜 잡혀 들어왔어?" "끄흠 그건 묻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뭐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마. 자 그럼 대신 내가 이야기를 해 주지." 그리고 오랜만에 시작되는 아크의 야설 정신 공격.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에르디는 실눈을 뜨고서 말했다. "……그런 쪽 업계에서 일하고 있었군. 나 참 그런 어린아이들 가지 잡혀 온 것도 싸다는 생각이들어?" "업계까지는……뭐. 그나저나 여기쯤이면 되었을라나?" 아크는 삽으로 땅굴의 천장을 쿡쿡 쑤셨다. 쑥! "됐어! 여기엔 돌 같은 게 걸리는 게 없군. 여기 위가 흙바닥일 확률은 80.5%야." "그런 확률은 어디서?" "아. 예전에 내 상관이 하던 걸 한번 따라해 봤어. 그나저나 에르디 간수들하고 맞딱뜨릴 때 싸울 수 있겠어?"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고. 이래 뵈도 최강의 비밀 무기를 숨겨두고 있으니까." "비밀 무기라……기대하지!" 그리고 땅굴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툭툭 "이제 대충 흙은 다 턴 것 같군." "방심하지 말라고. 자네 같은 경우는 이제 신참이니 여기 지리를 잘 모를테니까. 여기는 아직 S급 범죄자 특급 수감소로 제일 안 쪽에 있는 곳이야. 이 교도소의 마지막 외벽까지 가려면 여러 관문들을 거쳐야 하지. 1급 범죄자 수감소, 2급, 3급, 모범수 수감소 여길 다 지나고 마지막으로 이 교도소의 높은 담장을 넘어야 비로소 탈출이야. 거기서부터는 마나 운용도 가능해 질 테니까." "외벽 상당히 높던데?" "그건 걱정 마. 내가 틈틈이 뚫은 개구멍이 있으니까. 한 마디로! 아크 자네가 날 만난 건 땡 잡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참 나! 나 없으면 빠져 나오지도 못했을 녀석이 말은 많네. 이거 받아." 아크는 에르디에게 베레타를 내밀었다. "흠? 이건 총? 아크 자네 암거래 죄였나?" "여하튼 받아 둬.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탈출해야겠지만 위험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쏘라고." "마음은 고맙지만 됐어. 그런 것 없이도 난 충분하거든." 묘하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에르디였다. "이제 슬슬 가보자구. 나만 따라와." "좋아." 아크와 에르디는 어두운 벽에 착 달라붙어 게걸음으로 달아났다. "어이 거기 서치라이트 조심해." "누가 몰라?" 그렇게 두 사람의 탈출이 시작되었다. ////////////// 자 여기까지 오셨다면. 전편들도 한번 3권 분량이 곧 삭제됩니다. 수많은 비평을 받았던 부분도 수정되었습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과거의 인연 불펌 당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씁쓸하군요... 불펌은 저에게 연중을 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마십시오 please -출판 삭제 공지 1,2권 출판 후 그 리듬을 타고 3권도 곧 출판됩니다. 때문에 무신 위진무 파트까지 일괄삭제합니다. 책으로 보신 분들은 웬만하면 끝까지 책으로 봐주십시오. 책의 판매량과 연재 중단 그리고 조기 종결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3권에서 입니다. 때문에 1,2권 읽고 궁금하시더라도 조금 참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삭제시기는 8월 16일 0:00 까지입니다. 읽어두시려면 빨리 ‘하나, 둘…….’ “셋!” 아크는 간수 뒤에서 몰래 다가간 다음 달려들어 간수의 입을 막고 양촌리 딸딸이 권법을 시전 했다. “우으읍! 우읍!” 간수는 있는 대로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을 들은 사람은 10여 미터 가량 떨어져 있던 동료 간수 하나 뿐이었다. “뭔 소리…… 우웁! 우으으읍!” 간수의 입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양말을 씌운 손이 들어갔다. 그 향긋한 고린내에 간수는 곧 정신을 놓았다. “미, 미스터 삭스!” 아크는 에르디가 간수를 단 한 번에 처리한 기술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스터 삭스. 며칠 신어 고랑내 나는 양말을 손에다 씌우고 상대의 입에 넣어 후각과 미각, 그리고 호흡을 마비시키는 프로 레슬러 믹 폴리 최강의 기술 중 하나였다. “그게……비밀무기?” “이 날을 위해 1년 동안 신어 온 녀석이지. 사람 발에서 1년 이상 묵은 양말이 과연 얼마나 강한 위력을 발휘할지 궁금해 혼났어. 실험 결과는 성공인 모양이군. 놀란 건가? 기대하라고 더 강력한 게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거 보다 강력?’ “뭘 멍하니 서 있나? 빨리 가자고 이제 S급 수감소를 벗어 난 것 뿐이야.” “아, 알았어.” 아크는 에르디를 따라 계속해서 벽면으로 찰싹 달라 붙어 도망갔다. “이런! 에르디 엎드려!” “……!” 갑자기 일정한 경로를 왕복하던 서치라이트가 아크와 에르디가 붙어 있는 벽면을 비추었다. 다행히도 급히 알아차린 아크 덕에 간신히 서치라이트의 불빛을 피할 수는 있었다. 서치라이트의 불빛을 가까스로 피하고 1급 수감소의 서문 쪽에 당도한 아크와 에르디는 서문을 지키던 두 병사에게 슬금슬금 접근했다. 뎅! 아크의 삽후리기 이후에 이어지는 에르디의 공격! “아크. 녀석들에게서 열쇠를 찾아.” 열쇠를 찾기 위해 쓰러진 병사를 뒤지던 아크는 에르디가 처리한 병사의 입에 들어 있는 괴물체를 보았다. “이, 이봐 에르디. 저건 도대체 뭐야?” “이곳에서 처음으로 배식 받은 빵이지. 1년 2개월쯤 됐을걸?” ‘……뭐 이런 괴짜가족에나 나올 법한 놈이 다 있어?’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크의 시선을 에르디는 제대로 이해 했는지 자신의 기이한 기술들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우리 게이레로 가는 대대로 과학자 가문이지. 실험의 위대함이란 것을 자네는 아나? 나는 어렸을 적부터 실험을 좋아했지. 하지만 저 감옥 속에 갇혀서 아무런 실험도 하지 못해 괴로워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실험이라고는 묵히고 썩히는 발효 실험뿐이었어. 이건 그 부산물들이고.” “…….” 옛말은 뭐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사이코 아크에게는 괴상스런 친구들만 모여들었다. 에르디는 병사의 입에서 1년 2개월 동안 잘 발효(?)된 빵을 꺼냈다. 그 진동하는 썩은 냄새에 아크는 옷소매로 코를 막았다. “쿡! 냄새. 넌 냄새도 안 나냐?” “면역이 되면 이것도 맡을 만 해.” “우웨엑!”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지. 이것보다 강력한 것도 남았는데.” “집어 치워 새꺄!” 아크는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하면 다시는 이 냄새나는 놈과 상종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탕! 탕!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아크와 에르디는 마지막 모범수 수용소 부근에서 경비들의 맹렬한 총격을 받았다. 투두두두두두 아크는 서브 머신 건을 이용. 반격을 가했지만 어둠 덕에 맞추는 것은 한 발도 없었다. “빨랑 튀어! 에르디.” 사방에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이 깔려 있었다. 다행히도 어두운 덕분에 아크와 에르디는 총에 맞니는 않았지만 서치라이트의 불빛에 잡히기만 한다면 즉시 벌집이 될 것이다. “이리로!” 에르디의 외침에 아크는 사격을 중지하고 에르디를 따라 그가 뚫었다는 개구멍 쪽으로 달려갔다. “저기다!” “쫓아!” 탕, 탕, 타당 “젠장!” 투두두두두두두두 아크는 서브 머신 건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격으로 인한 불빛이 아크의 위치를 노출 시켰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때 수용소 전체에 절망의 불빛이 켜졌다. 소등되었던 마나 연료의 인공 불빛들이 환하게 켜진 것이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항복하라! 너희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소총을 든 병사들이 벽들 등진 아크와 에르디를 포위했다. 서치라이트는 그런 아크와 에르디를 정면으로 비추었다. “제기랄 여기 까지 와서 잡히다니.” “…….” “어이 거기 아동 치한! 총 내려놔.” 에르디 같은 경우에는 별 무장이 없었지만 아크는 서브 머신 건에 베레타, 삽까지 가지고 있었기에 병사들은 아크에게만 위협을 가했다. 그때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고개를 푹 떨구고 땅바닥만 보고 있던 에르디가 아크를 제치고 나선 것은. 에르디는 스티커 한 장을 아크에게 주었다. “코밑에 이걸 붙이고 있어라.” “뭐야? 이거.” “우리 가문의 후각 마비약이야.” 에르디가 무슨 짓거리를 할지 불안해진 아크는 에르디가 준 스티커를 코 밑에 붙였다. ‘호오? 화약 냄새가 이제 안 나네?’ 아크가 에르디가 준 후각차단제에 감탄하고 있을 때, 에르디는 최대한 병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뒤 품 안에서 콜라 빛의 액체가 든 병과 부채를 꺼냈다. “…….” 총이라도 꺼낼 줄 알고 긴장하던 병사들은 에르디가 꺼낸 것을 보고는 맥이 빠져 버렸다. “뭐냐?” “남성의 정액은 소량일 경우 굳어버리지만. 한 곳에 모아 둘 경우 액체의 상태를 유지하며 특유의 끈적거림이 사라지게 되지. 그곳에 삭힌 우유를 타 고인 채로 수십일 동안 놔두면 나 에르디가 개발한 최강에서 세 번째 악취를 만들 수 있지.” 그럼 두 개나 더 있다는 소린가? 느슨해 보이는 병의 마개가 풀렸다. 그런 다음 에르디는 그 병의 입구에 대고 부채질을 시작했다. “뭐야? 저 새끼 또라이 아냐?” “당장 포박해!” 포승줄을 들고 달려오던 병사들은 에르디의 반경 3미터 안에 들어오자마자 심한 헛구역질과 구토를 동반하며 하나 둘 씩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나머지들은 이 괴상한 상황에 아리송해 하다가 갑자기 코를 틀어막고 에르디에게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디가? 맛은 한 번 봐야지?” “끄아악!” “당장 저 새끼손에 든 거 쏴 버려!” 아크는 혼비백산에서 도망치는 병사들의 모습에 도대체 어떤 냄새일까? 하는 매우 어리석은 호기심을 갖고야 말았다. “……우웩!” 아크는 급히 에르디가 준 스티커를 도로 붙였다. ‘대단하군. 허우대는 멀쩡해 가지고 저런 거나 만든다는 것이 좀 그렇지만.’ “대충 됐군. 빨리 가자.” “OK." 그러나 도망치려던 그들은 곧이어 밀려온 코에 빨래집게를 단 진압군에 의해 체포되고 말았다. /////////////// 내용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간파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비축분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편법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군요... 불펌 kIN 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난번 제목공모 당첨자 분들 받으시는 분 이름을 보내주십시오. 제가 깜박했군요. 한 분은 받는 사람 이름까지 잘 받았는데 제가 당첨 메시지를 보낼 때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달라는 것을 깜박했습니다. 3권 출판 삭제합니다. 8월 16일자 1:00분을 기하여 삭제작업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정 연재로 보고 책 안빌려볼꺼다 하시는 나쁜(훗!) 분들은 드림워커 사이트에는 8월 17일까지 남겨 둘 생각이오니 거기서 보시길 바랍니다. “나와!” “…….” 두 명의 간수에게 양팔이 붙잡힌 채로 끌려나가는 아크. 그의 앞에는 왼쪽과 오른쪽의 갈림길이 있었다. 꿀꺽 왼쪽이라면 그것은 오늘도 하루를 더 살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오른쪽이라면 오늘로 인생 쫑 이라는 선고였다. “가자.” 병사가 아크를 끌고 간 방향은 오른쪽이었다. “오늘이 집행일이오?” “…….” 병사는 아무 말도 없었다. ‘뭐 까짓 거 집행일이면 어떠냐? 요놈의 맹약의 반지가 있는데. 그런데 그 힘 가져다 쓰면 에르디 녀석도 죽겠지?’ [아마도. 게임상과 실제는 엄연히 틀리다. 게임이야 전체마법도 피아구분을 할 수 있어서 아군도 맞는 게 있는 가 하면 아군은 안 맞는 마법이 각각 분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마법은 인간의 컨트롤로서는 피아구분이 불가능하다. 우리 드래곤들은 가능하지만 차원 너머에 마법을 구현시킬 때는 지정된 인간의 근처 몇 명의 아군만 가능하더군. 그래서 네놈과 로니인가 하는 계집만이 살아 남은 것이지. 네놈 편 병사들도 어느 정도는 살아 있었지만 그때 대부분 죽었을 거야. 그런데 그 냄새난다는 더러운 인간은 왜?] ‘좀 이상한 쪽이기는 해도 녀석 과학지식이나 실험정신이 풍부하고 투철한 녀석 같더군. 그런 녀석이라면 지구의 과학서적 따위를 재밌게 보고 연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 마지막으로 그 녀석 낯짝을 보고 싶다는 둥 그런 식으로 얘기해서 근거리에 둬라. 그럼 내가 그놈까지는 살려주마.] ‘그래야 겠군.’ 아크라우스와 잡담을 나누는 사이 어느새 아크와 두 병사들은 어떤 방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들어오게.”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두 병사는 아크를 방안에 놔두고 밖으로 나갔다. “어라? 사형장이 아닌가?” 방안에는 윗머리가 벗겨진 것을 옆머리로 길러 대체한 한 중년인이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크에가 나무 의자를 권했다. “거기 앉게.” “아. 예.” “일단 기다리라. 자네 친구 올 때까지.” “친구?” 똑 똑 “온 모양이군. 들여보내.” 곧이어 아크가 들어 온 것처럼 에르디 또한 방으로 들어왔다. “여! 냄새 대마왕 오랜만이다.” “그래 오랜만이야 아동 치한.” “자네도 앉게.” 에르디는 아크 옆의 의자를 빼서 앉았다. “저기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차 맛이 좋군.” 군복의 중년인은 한참 동안 뜸을 들인 다음. 찻잔이 비자 그제 서야 말을 꺼냈다. “아피스템므 대 혈투를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아크와 에르디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이 대륙의 역사에서 꽤나 비중을 차지하는 큰 전쟁이었기에 루드비안 제국의 역사 교육을 받은 에르디나 책으로 읽어 본 아크 모두 알고 있는 전쟁이었다. 두 개로 분열된 구 동제국의 세력이었던 루드비안과 캘더린. 이 두 국가는 서로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지금은 전쟁의 여파로 사막이 되어 버린 아피스템므 평원에서 무려 20여 년 간의 지겨운 전쟁을 치루었다.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두 국가는 물러났지만 그 길고 길었던 전쟁은 동포였던 두 국가의 관계에 매우 깊은 골을 만들어 놓았다. “약 1년 전 황제 폐하께서 시녀로 위장한 캘더린의 암살자들의 암살기도를 받았다. 다행히 폐하께서는 무사하셨지만 황태자 전하와 황후 폐하 그리고 황제 폐하의 막내딸이신 헬렌 공주님께서 처참하게 살해되셨지. 때문에 폐하께서는 지금까지 펼치시던 온건 햇빛 정책을 철회하시고 캘더린에 대해서 완전 적대 정책을 펴고 계시지.” “……!”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군.’ “폐하께서는 명령하셨다. 간악한 마녀 에스메랄다 에스첼 캘더린 여왕을 산채로 잡아오라고, 그리고 그것을 위한 특수부대의 결성을! 내가 자네들에게 제안하고픈 말은. 여기서 사형당할지, 아니면 그런 쓰레기 인생을 청산하고 나라를 위한 새 일꾼으로 태어날지. 결정은 지금 당장 내리게. 노라고 말하는 그 순간 자네들의 목숨은 없네.” 말이 제안이지 이건 완전 협박이었다. “저기 왜 하필 우리를?” “그건 자네들이 더 잘 알테지. 이 수감소를 탈출하려 했을 때 보여줬던 예리함과 침입능력을 생각한다면 적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자 저 바늘 시계의 초침이 12에 도달한다면 그대들의 시간은 거기서 끝이네. 빨리 결정하도록.” 중년인은 자꾸 은빛의 총신을 만지작거렸다. 생각할 것 따위도 없다. 죽게 생긴 판에 무슨. “하, 하겠습니다!” “저, 저도요!” “좋아 그럼 됐어. 내일 자네들의 짐 등을 돌려 줄 테니 간수들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게. 그럼.”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년인의 사무실을 나오는 아크와 에르디. 둘은 사형 면제 됐다고 좋아해야 할지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다고 한탄해야 할지 몰랐다. 끼룩 끼룩 “에헤야 노를 저어라 에헤야 에헤야 닻을 올려라~!” 조막만한 배에 약 30명 가량의 험상궂은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아크와 에르디도 끼어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혼자만 노래를 부르는 상황 파악 못하는 머저리 역할은 현재 아크가 맡아서 열연해 주고 있었다. 배 안의 모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나름대로의 기대와 불안.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아크는 여유롭다 못해 즐겁기만 했다. ‘각본대로 진행될까나? 나 참 무슨 섬 이름부터가…….’ 그랬다. 아크가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여유로운 이유는 그가 현재 이 상황에 너무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적대국의 수괴를 비밀리에 암살하는 임무를 맡은 범죄자 출신의 간첩들이 외딴 무인도에서 고된 훈련을 받는다.’ 모 영화의 스토리가 팍팍 떠올라 머리 속에 박히지 않는가? 물론 대륙의 정세나 현 황제의 분노를 떠올려 볼 때 적국의 수도 침투가 무산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훈련 등의 문제를 떠올린다면 많은 것에서 닮아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러한 상황에서 한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궁금해지는 군. 꼭 무슨 역사 소설 같기도 하구만. 어떠한 사건의 결과와 과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바꾸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제법 닮은 구석이 많구만.’ 그 때 아크의 앞에 앉은 한 빡빡머리가 소리쳤다. “이런 씨발. 존나 시끄럽게 구네. 조용히 못하냐?” 아크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의 여파는 옆에 있는 사람들과 각자 말을 조금씩 트고 대화 중이던 주변에 파졌고 결국 조그만 배 안에서는 패싸움이 일어났다. “잘 싸운다.” 원인 제공자는 아크였지만 그는 싸움에는 휘말리지 않고 현명하게 뒤편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들을 통솔해 온 군인이 휘어말렸지만 오히려 패싸움에 말려 얻어맞았다. “이 자식!” 퍽! 아크와 마찬가지로 얌전히 앉아서 응원하던 에르디에게 그 응원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든 듯 애꾸의 사내가 주먹을 날렸다. 벌떡! 에르디는 얻어맞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일어섰다. 그런 다음 아크에게 선물 받은 분무기 물을 패싸움패에 뿌렸다. “잠깐 에르…….” 아크가 급하게 말려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치익 치이익 “읍!” “쿠악! 무, 무슨 냄새야 이게!” “에르디! 야 이 병신아!” 급기야 에르디를 제외한 배 안 사람들 모두가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에르디를 향해 쏟아지는 욕설의 향연. 하지만 에르디는 그런 말에는 신경도 안 쓰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넓으니 좋군.” 결국 에르디를 제외한 모두는 목적지까지 헤엄을 쳐서 가거나 헤엄을 못치는 이들은 죽음의 냄새와 함께 배를 타야 했다. “너희들이 여기 모인 목적은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너희들이 받게 될 훈련은 매우 가혹하며 너희들의 생명을 지켜 줄 어떠한 안전 장치도 없다. 알았나?” “예!” “그럼 이상으로 우리 69특수 부대의 결성을 끝마친다. 해산. 아! 아크란 자가 누군가?” 뜻밖에 자신의 이름이 사령관에게 호명되자, 아크는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나갔다. 그것을 본 사령관은 다음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는 모두 안내에 따라 내무반으로 돌아간다. 실시!” “실시!” 그렇게 동료들이 모두 들어가고 혼자만 남은 아크에게 이 부대의 총 책임자이자 사령관인 대령 카시아스 백작이 말을 꺼냈다. “자네.” “무슨 일이신지?” “자네가 앞으로 이 부대의 대장이다.” “에에?” “우리가 조사해 본 바로는 자네는 소드 익스퍼트 급 중에서도 최상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더군.” “그렇습니다만.” “그 정도라면 우리 제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거기다 본 신분도 귀족이었다니 등용되기만 원했더라도 상당히 높은 작위를 받을 수 있었을테지. 그런 자네가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잡혀 왔다는 것은 우리들로서는 큰 행운이었지.” “게 무슨?” “아무리 우리가 이놈들을 단련시켜봐야. 암기술과 총술 등이 아니라면 절대 캘더린 여왕을 잡아올 수 없어. 때문에 이런 특수부대에도 오러 블레이드를 정통으로 다루는 한 둘의 실력자가 필요한 법이지. 하지만 안 그래도 직무네 뭐네 하면서 권력다툼에 바쁜 귀족계의 강한 기사들이 이런 작전에 동원되지 않으려 함 또한 당연하고, 그런데 운 좋게도 자네 같은 실력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이런 곳에 흘러 들어 왔으니 어찌 행운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아크는 이곳이 판타지 세계라는 것을 새삼 재인식했다. 그랬다. 아무리 여기 훈련병들이 지독한 훈련을 받아 봐야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 하는 기사들이 있는 왕궁을 돌파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루드비안 제국에서 제작해 낸 총이라는 신무기가 있기는 했지만 원거리 방어 마법이 걸린 옷이나 갑옷, 검막, 오러 아머라면 총은 절대 그들에게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없었다. 물론 훈련으로 익힌 예리한 사격술과 살수급의 암살기술 등을 지니게 하여 특공부대와 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한 둘의 기사가 동행해야 작전의 효율과 확률이 대폭 증가하는 것이다. “어차피 저놈들은 소모품이야. 침투해서 살아날 확률도 적고 살아온다 쳐도 세금을 낼 평민으로만 만들어 줘도 되는 단순한 놈들이지. 하지만 자네는 원래가 귀족이었던 데다가 상당한 실력까지 갖추고 있지. 자네라면 설사 그년을 죽이거나 잡아오지 못해도 무사귀환 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네. 실력이 뛰어나니 그놈들의 반발을 잘 다스리고 통제할 수 있겠지. 그래서 그 무지막지한 놈들의 통솔을 맡기려 하니 맡아 두게.” ‘소모품이라? 하! 노예 출신에 죄수들이라고 아주 개무시를 하는 구만. 역시 인간 세상이라고 해도 힘이 없다면 먹힐 수밖에 없지. 그나마 나는 강자로 분류되는 모양이군.’ 이런 불퉁불퉁한 생각과는 다르게 아크는 순순히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자 여기서 선택하십시오. 1. 쳇 뭐 그럼 이제 안 보지 뭐. 작가 즐......(사시미가 찾아감.) 2. 그러면 뭐 빌려서 보지 뭐......(당신 착한 사람) 3. 사서볼까?......(미연시 게임 보내달란 대로 다 주겠음) 마지막 선택지는 4번 8월 17일까지 드림워커에는 3권 연재분이 남아있습니다. 4. 그럼 그거 보고 안 보지 뭐. 작가 즐......(저주 조심하세요. 인형 준비되었답니다.) 131화 및 출판삭제 된 부분에 붙여 넣은 설문 선택지는 대략 리플을 늘리기 위한 일종의 꽁수였습니다......리플에 굶주리다 보니...예상 외로 3번이 많은 가운데. 미연시는 제 메신저와 제 메신저 접속시간을 알아내셔서 쪽지를 보내주는 분들께 선착순으로 선사하겠습니다...그게 뭐야! 하시는 분들 많은데 의외로 제 메신저 아이디 쉽습니다. 메신저는 일단 b모 메신저입니다. 제 본명을 아시는 분들 이제 꽤 되실 테니 본명으로 검색해보면 나올겁니다... 참고로 보유작은 like life, 마왕의 딸들, 텐아쿠, 누드 에이프런 학원, 인터렉트VR, 공주님은 특훈중R, 투하트, 코코로, 시즈쿠, 웃지 않는 에리카 외 일어라 이름을 알수 없었던 작품 3개입니다......다른거 요청 마시길...... 접속 시간은 평소에는 밤 11시 이후이며, 오늘은 보충을 땡땡이 친 상태입니다. 상규 선생이 5등급 위험제를 실시했는데 전 벌써 3등급인 위험 이군요. 오늘 땡땡이로 4등급 심각함 될 지 모르겠습니다. “좋아. 이봐 첼시 중위.” “예! 대령님.” “이 자를 69부대의 대장으로 임명한다. 하니 부대원 들에게 공표하라.” “예!” 남작의 신분을 지닌 첼시 중위는 아크를 내무반으로 데려갔다. 내무반에서는 훈련병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잡담 및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 주목!” 훈련병들은 아직도 별 다른 군기가 잡혀 있지 않았기에 한참 후에야 정렬하고 앉았다. “오늘부터 이 부대의 대장은 바로 이 자다. 너희들보다 높은 직위이니 알아서 모시도록!” “잘 부탁한다. 아크라고 한다.” 아크는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마쳤다. ‘음 이쯤 되면 덩치 좋고 힘 좀 쓰게 생긴 녀석들이 저딴 비리비리한 녀석이 대장? 이라며 시비를 걸겠군. 좋아 일단 내 실력을 보여 주고 휘어 잡아 놓자.’ 그러나 그런 아크의 생각과는 다르게 훈련병들은 별 다른 반응. 아니 오히려 여기 저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헤 용기가 가당 쿤. 잘 해 보시오. 고놈의 대장자리.” “……?” ‘뭐야? 이것들? 대장한테 자기가 대장 하려고 어쩌고저쩌고 시비를 걸어야 정상 아닌가?’ 그리고 아크는 며칠 지나지 않아 훈련병들이 대장자리에 미련을 갖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부터 이 섬의 해안가를 다섯 바퀴 돈다. 만약 교육병들에게 뒤쳐질 시에는 점심밥이 없는 것은 물론 가혹한 형벌이 내려질 터이니 각오하도록.” “그럼 출발!” 69부대의 훈련 총 책임자 카시아스 대령과 세 장교 첼시 루체른 남작과 기사 작위의 펜트, 매카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아크를 필두로 한 훈련병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그 뒤를 교육병들이 따랐다. “헹! 이런 것 따위야.” “가뿐하게 통과해주지.” 훈련병들은 자신 만만하게 빠른 속도로 달리며 앞에 달리던 장교들과 어깨를 나란히 달렸다. “어이 너무 앞서 나가지는 말라고.” 대장인 아크의 목소리는 쥐뿔도 안 먹힌 듯 훈련병들은 앞의 장교들을 앞지르며 달려나갔다. 예상외로 섬은 상당히 넓었다. 그리고 사람 죽이거나 땅 팔 줄은 알아도 이런 장거리 달리기 같은 것을 하기에는 체력이 딸렸던 훈련병들은 서서히 지쳐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뒤로 쳐지지 않은 훈련병은 아크와 에르디 뿐이었다. ‘어라? 에르디 이 녀석 제법 뛰는데?’ 지구력 있게 이 코스를 뛸 줄 아는 교육병들이나 장교들은 그렇다 치지만 에르디는 지친 기색도 없이 달리고 있었다. 아크는 에르디에게서 마나의 기운을 포착해냈다. 결과는 소드 익스퍼트 급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소드 익스퍼트 급에 다다른 제법 높은 수련을 쌓은 몸이었다. “호오? 냄새 대마왕씨가 제법인데?” “뭐 그럴 것까지야.”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글쎄올시다? 대장 나으리. 실험을 좋아하는 과학자 지망생이라고만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소.” “너한테 어울리는 직업은 변소 청소나 환경 미화부가 제격이다. 과학자 지망생 놈이 뭐 때문에 감옥에 처 박혀 그딴 거나 만들고 있었냐?” “어쩔 수 없었지. 뭐 실험할 것이 있어야지. 그때 보이는 거라고는 음식물들뿐이고 할 실험이라고는 발효 실험밖에 더 있나…….” “지랄.” 그렇게 잡담하는 사이 어느덧 아크와 에르디는 종착역에 도착해 있었다. “후우! 끝났다.” “수고했어. 대장. 자 이거라도 마셔.” 에르디는 갈색 빛깔의 액체가 든 병을 아크에게 내밀었다. “즐이다. 사람 잡을 일 있냐?” 그렇게 아크와 에르디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뒤쳐져 따라 오던 훈련병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병들에게 몽둥이로 구타를 당했다. “쯔쯔 내 괜히 앞으로 튀어나갈 때부터 알아봤다.” 구타당하던 부하들을 바라보며 혀만 쯔쯔 차던 아크는 갑자기 달려온 두 명의 교육병들에게 둘러 쌓였다. “어이 왜?” 퍽, 퍽, 퍽! “뭐야 이거? 왜 때려?” “부하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죄로 넌 두 배다.” 그랬다. 대장의 경우 통솔을 잘못했다는 죄로 갈굼의 강도와 횟수가 두 배나 많았다. 상당히 단련된 아크의 육체도 매에는 장사가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첼시 중위에게 오늘의 암호 등을 받아 남들보다 늦게 돌아온 아크. 훈련병들은 현재 모두 저녁 식사 중이었다. 제대로 들어먹지는 않았지만, 지시 사항들을 일러 준 아크는 자신의 배식판을 들고 준비된 음식이 있어야 할 배식대 앞으로 갔다. 그런데. “뭐야? 이거. 누가 이렇게 다 퍼갔어?” 음식 부스러기만 들어 있는 통을 발로 차며 아크는 부하들을 추궁했다. 하지만. “어이 대장. 그러니까 누가 늦으래? 미안하구만 그래. 남길래 그냥 다 퍼가 버렸지. 훈련받느라고 배고팠으니까 오늘은 대장의 아량으로 한 번 밥 굶고 넘어가라고.” 사각턱에 얼굴 여기저기에 흉터가 난 사내가 지깟 놈이 뭘 어쩔 거냐 하는 표정으로 아크를 꼴아보았다. “이런 지미럴.” 아크는 대장이라는 직위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요놈의 양아치, 범죄자 놈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어 통솔을 해야 하는데 요놈들이 당최 말을 들어먹지를 않는 것이다. 거기다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훈련병들의 대표를 해야 했기에 이렇게 밥을 못 먹는 등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또 뭐 하나 부하 놈이 잘못하면 책임은 다 아크가 져야 했다. ‘골칫거리 였었군. 젠장 진작 이럴 줄 알았다면 하지 말아야 했던 건데.’ 한 번씩 손 좀 봐주고 다시 시작해 볼까도 했지만 진정한 충성은 폭력과 억압이 아닌 이해와 마음에서 비롯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아무 트집이나 잡아 다짜고짜 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찌됐든 저녁을 굶고 있는 아크에게 에르디가 다가와 한 조각의 빵을 내밀었다. “배고픈데 이거라도 먹어.” “어 음. 고맙다 에르디.” 아크는 ‘역시 그래도 이 자식 밖에는 없어’라 생각하며 빵을 베어 물었다. 그런데……. 아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에서 씹던 빵조각을 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너 이거 며칠 삭혔어?” “햇볕에 일주일쯤?” -퍽! 그리고 에르디는 유통기한 불표기죄로 아크의 응징의 주먹을 맞고 밤하늘의 별이 되었다. “하이고 죽겠네.” “이런 개새끼들이 때린 데 또 때리고 지랄이야.” 고된 훈련 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를 흘리며 널부러져 있는 훈련병들. “하아, 이럴 땐 살갗 뽀얀 계집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콱!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히히히…….” 역시 냄새나는 사내놈들 속에서는 음담패설이 사라질 수가 없었다. “이보쇼 대장. 당신은 뭐 경험 같은 거 없어?‘ “경험? 말하자면 파란 만장하지 어때 한 번 들어 보겠나?” “호오 의왼데? 경험이 있었던 모양이군. 한 번 해 보쇼.” 아크는 오랜만에 실황 야설의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이전의 아크가 아직 미경험자라는 것에 조금 부족했던 묘사 부분은 경험자가 되니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이렇게. 됐지?” “키야! 어디서 그런 것들을 다? 대단하시구랴 대장 딴 거 없소?” “그래! 맞아. 다른 거.” “흠. 그 전에 재밌는 걸 하나 알려주지. 다들 팔뚝 한 번씩 걷어 봐.” 훈련병들은 무슨 얘긴가 싶어. 각자의 팔을 걷어 붙였다. “여기서 유독 한 쪽 팔만 굵은 놈들이 있어. 어! 거기 요한슨이라고 했나? 오른팔이 유독 굵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그걸 바로 딸근이라고 하지. 한 마디로 혼자서 즐긴 놈들이 발달하는 근육 말이야. 자네 욕구불만이 많이 쌓였나봐?” “푸하하하하!” 별 것도 없는 농담이었지만 ‘딸근’의 존재를 농담 등에 써먹은 전례가 여태껏 없었던 이쪽 세계에서 아크의 말은 하이 개그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무반 문이 열리고 매카더 소위가 들어왔다. 몇 주간의 맹훈련으로 군기가 바짝 든 훈련병들은 나태한 자세에서 급히 정 자세를 잡으며 앉았다. “충성!” 훈련병들의 인사에 소위도 손바닥을 이마에 올리며 답했다. “충성. 편히들 앉도록.” “무슨 일이십니까?” 발언권이 있는 아크가 물었다. “오늘 새로운 동료가 하나 늘었다. 어이 들여보내.” 공이어 한 교육병의 한쪽 팔에 17~18세 가량 되어 보이는 연갈색 머리의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앞으로 이 내무반에서 지내게 될 아이다. 배부르게만 하지 말도록!” 매카더는 소녀를 내무한 바닥에 던져 넘어뜨린 다음 밖으로 나갔다. ‘공중변소인 건가?’ 아마도 이 소녀를 이 남자 소굴에 보낸 목적은 여기 있는 훈련병들의 욕구 불만 해소일 것이 뻔했다. 소위의 말만 봐도 ‘배부르게만 하지 말라’이니 뭘 해도 상관없다는 소리 아닌가? 군대 내부 문제점 중 하나는 바로 이 ‘성 문제’였다. 한창일 때의 젊은 남성들이 여자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심리는 더더욱 인간의 자손을 남기고픈 욕구를 증폭시킨다. 때문에 군대에는 항상 창녀들이 따라 다녔고 조금 엄한 경우에는 남성을 상대하는 동성애와 성추행이 판을 쳤으며 군대가 지나가는 마을의 여자들은 적이나 아군이나 할 것 없이 겁탈의 대상이 되곤 했다. 또한 이러한 문제가 결정적으로 표출된 사례가 바로 일본군의 종군 위안부였다. “크흠.” 상부의 배려는 맘에 들었지만 이 소녀는 절대 닳고닳은 창부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 있는 훈련병들처럼 뭔가 죄를 저지르고 이런 곳에 온 것이 아닌가 싶었다. “헤헤 이리와 봐. 기분 좋게 해 줄게.” “이 자식! 내가 먼저야.” 아크와 에르디 그리고 두 명의 조용한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여린 소녀를 앞에 두고 옥신각신 다투었고 소녀는 자신의 몸을 부둥켜안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그러한 목적으로 보내진 소녀였기에 그 누구도 이들의 행동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크는 아리따운 미소녀가 저 험악한 놈들에게 단체로 당하는 CG(아크의 미연시적인 생각 원래대로라면 장면이란 단어를 써야 겠다)를 절대 보고픈 생각이 없었다. “비켜!” 이 중 제일 거대한 덩치를 지닌 척 보기에도 힘 좀 쓰게 생긴 드래곤 문신의 사내가 경쟁자들을 몸으로 모두 밀어버렸다. “어차피 할 것 좀 기다려도 되지 않겠어? 첫 사용은 이 가스통 님이 먼저 하겠다.” 어깨에 입은 군복을 확 내리는 가스통. 그의 돌출된 그것을 본 소녀는 계속해서 뒷걸음질 쳤다. “크흐흐 이봐 너무 겁먹지 말라고 순순히 맡기면 너도 즐거울 테니까.” 가스통은 소녀의 윗옷을 잡아 난폭하게 찢어버렸다. “잠깐!” 그때 아크가 가스통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뭐냐? 대장 넌 다음 순서나 기다려!” 그 뒤로 아크의 폭탄선언이 뒤따랐다. “이 아이는 내가 갖겠다.” “뭐?” “한 마디로 이 애를 네놈들과 공유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가스통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허! 대장이라고 혼자서 이 년을 먹겠다?” “하류층에서 살며 어떤 병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네 녀석들에게 저 애를 더럽힐 수는 없지.” 그 말에 가스통이 폭발했다. “뭐? 이게 얄팍한 대장자리 하나 믿고 까부네? 이 새끼! 너 오늘 한 번 죽어봐라.” 퍽! 퍽! 몸을 돌려 아크를 공격하는 가스통. 아크는 무릎으로는 남근 찍기를 먹인 다음 휘돌려차기로 가스통을 다운시켰다. 아크는 그렇게 가스통을 넉다운 시킨 뒤 다음 차례만을 기다리던 나머지 훈련병들에게 소리쳤다. “누구든지 날 이기면 이 아이를 소유해도 좋다. 아니 단체로 덤벼라. 단체로라도 이기면 이 애는 너희들의 공동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순순히 포기하고 딸근운동이나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훈련병들은 별 것도 아닌 대장이란 놈이 하는 말에 발끈했다. “전에 귀족이었다고 지금 대장자리 하나 맡았나 본데? 감히 여자를 혼자 먹으려고 해? 이런 썅!” “네놈이 무슨 권리로? 그 대장이란 직위로 그 년을 너 혼자 차지하려는 거냐?” “권리라면……강자의 권리겠지.” “개쉑! 죽여버려!” “훗!” 아크는 떼거리로 덤비는 부하들을 보고 코웃음쳤다. 에르디가 최강의 악취로 공격하지 않는 이상 여기 훈련병들을 떼거리로 덤벼들어도 아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래도 조금은 다칠지 몰랐기에 아크는 엘레노어 백작에게 압수 당했던 블레싱 소드를 소환했다. 그것을 본 훈련병들은 아크를 향한 공격을 잠시 멈췄다. “비겁한 새끼! 칼 쓰기냐?” “그냥 차고 만 있을 거다. 헛생각 하지마. 그럼 내가 먼저 패도 되겠지?” 한참 떡방아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린 뒤 내무반은 잠잠해졌다. 내무반에는 수십 구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서 있는 사람은 아크 혼자 뿐이었고 싸움에 끼어 들지 않았던 에르디와 중년의 훈련병 그리고 소녀만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아크를 쳐다보았다. “이야 대장 의왼데? 급소 공격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한가닥 하는 구만.” “뭐 겉으론 이래 뵈도 마스터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이런 것들 쯤이야.” “그나저나 아까 그 기술도 멋있었어. 가르쳐 주지 않겠어?” “그래? 나중에 시간 나면 너한테도 전수해 주지. 그럴테니 그놈의 양말 좀 내다버려.” 아크는 고개를 소녀에게 돌렸다. 소녀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런 것에는 둔한 아크도 소녀의 표정을 간파했다. “뭘 그렇게 못 믿겠다는 표정이지?” “*&*^$#@!!” “뭐야 그게?” 아크는 소녀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뭔 소리야 라고 따지려던 아크는 한참 후에야 소녀의 말뜻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당신 한국인?’ “……!” 아크는 소녀의 손목을 잡고 내무반 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분명 한동안 별로 쓸 일이 없었던 고향의 언어였다. 잊지는 않고 있었지만 게임 화면에서 밖에 접하지 못했던 모국어. 그런 모국어를 안다는 소리는 확실히 이 소녀과 차원이동과 뭔가 관련이 있다는 소리였다. 혹시 아크라우스를 아냐? 라고 물어보려던 아크는 새삼 소녀의 생김새가 한국인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소녀는 황인계가 아니었다. 전형적인 백인계였다. 아크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지만 일단 소녀의 질문에 답변을 하기로 했다. “맞아 난 한국인이야.” “……!” 이번에는 소녀가 놀랐다. 외모나 말씨를 보고 혹시나 알아들을까 해서 했던 한국말이 진짜로 먹힌 것이다. “저, 정말 한국인이신가요?” “이름은 김석진. 대학생이었어 여기서는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라 불리고 있지. 그나저나 그 외모는 도대체 뭐지? 혹시 귀화계나 혼혈이었나?” 아크의 본명을 들은 소녀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변했다. “정말 김석진?” “물론.” “혹시 사시미 가지고 고등학교 교복입고 다니면서 맨날 퍼질러 자던 그?” “……! 뭐야? 그걸 어떻게 알지?” 아크는 크게 놀랐다. 이 눈앞의 소녀가 어떻게 그런 세세한 자신의 내력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제 이름은 피리아. 이곳에 태어나기 이전 삶은 이수아라는 한국의 여대생이었어요.” “아 그래……뭐? 태어나기 이전 삶? 지금 혹시 장난?” “아뇨 정말이에요. 그리고……오랜만이에요. 석진 씨.” “오랜만? 무슨 오랜만? 당신 어떻게 날 알고 있지? 오랜만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제 이름 듣고도 생각 안나요? 전 처음보고 알았는데 설마 하긴 했지만.” 아크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다. “다, 당신 설마 그때 죽은 그 수아씨?” “맞아요.” 아크는 해머에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곳에서 아는 사람을 그것도 환생해서 새로 태어난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지금 다시 보니 그때의 연갈색의 염색하고 다니던 수아의 머리색을 비롯 대부분 한국의 ‘수아’일 때와 동일했다. 좀 어려 보인다는 것 빼고는. “환생이 실제 했었다니 진작 불교나 좀 믿을 걸 그랬나? 그런데 어떻게 전생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거지? 설마 그 뻔한 ‘저승사자의 실수로’는 아니겠지?” “실수라면 실수겠죠. 전생에 대한 부분적인 기억을 남겨서 전생을 궁금하게 했으니까. 어느 날 열병에 쓰러져 생사를 넘나들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든 것이 다 떠오르더군요.” “아크라우스 쪽이 아닌 환생계열에 전생 기억 보유로 인한 이계의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진짜 있었군.” “그런데 석진 씨는 어떻게 이곳으로 오신 거죠?” “얘기하자면 길지만 말해주지. 폐인 전대의 실버라고 불리던 그 일본 녀석 기억나?” 한참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하던 피리아의 머리 위에 있던 꺼진 전구에 빛이 들어왔다. “아! 무라카미 씨 말이군요. 그런데 그분이 왜?” “그 녀석이 사실은 이곳 세계의 실버 드래곤 아크라우스 였지. 그 녀석이 내 게임 아이템을 갈취하려고 날 이곳으로 보내버렸어. 그게 아마 30년 전쯤인가? 수아 씨 죽은 지 6개월 후쯤일걸? 음 지금 ‘그 얼굴로 50살’이라는 표정인데 차원이동을 한 생명체들은 나이를 먹지 않아.” 아크는 군대 가기 싫어서 이곳으로 왔다는 내용을 교묘하게 뺐다. 곧 항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자식! 내가 언제 네놈 게임 아이템 뺏으려고 이곳으로 보냈냐? 다 네놈이 군대가기 싫다고 해서 그런 거 잖아!] 아크는 아크라우스의 항의를 가볍게 씹어버렸다. “저, 저기 그럼 석진 씨. 결혼은?” “글세? 결혼은……안 했어.” 로니 누님이 있었지만 실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하렘왕의 원대한 꿈을 가진 아크로서는 굳이 여자가 있다고 말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여기에는 왜 잡혀 온 거지?” “여기서 전 왕궁의 시녀였어요. 그런데 공주님의 목걸이를 훔친 도둑으로 몰려 이곳으로 오게 됐죠……고마워요 석진 씨 구해줘서. 그때 생각나세요? 처음 봤을 때.” “그거야 뭐 제풀에 그놈들이 놀라 가지고 도망친 거지. 한 일도 별로 없었는데 뭘……그나저나 이제부터 어쩔 생각이야?” “네?” “내가 대충 방패막은 되어 주겠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보호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강해져.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야 여긴. 지구처럼 인권이고 법이고 다 필요 없어, 이곳에서는 오로지 힘만이 통용되는 세상이니까.” “…….” 아크는 베레타와 탄환 등을 꺼내어 피리아에게 주었다. “이걸로 몸은 스스로 지켜. 그리고 널 이 부대의 정식 대원으로 넣겠다. 가혹한 훈련이지만 이기고 버텨 내야 할 거야.” “……알았어요. 석진 씨.” “앞으로는 여기 이름인 아크나 대장이라고 부르도록 하고.” “네 대장.” “이제 약한 모습 따위는 버려. 알았어?” “후후 많이 멋있어 지셨내요. 사이코 폐인인줄만 알았는데.” “사이코 폐인이라……그리운 이름이군. 뭐 지금도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사람이란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럼 이만 들어가지.” “아이고오.” “으메 죽겄네.” 어느새 깨어나 통증을 호소하는 훈련병들. 그 중 몇몇은 여태껏 깨어나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쳇 낙하산이라고 생각했던 그 비리비리한 대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젠장. 교관놈들에게 맞은 것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프냐?” “그걸 말이라고 해!” 코뼈를 움켜 잡은 채 누워 있던 훈련병은 뻔한 것을 물어보는 녀석에게 화풀이라도 할 겸 발길질을 가했다. “어쭈?” “헉! 대, 대장.” “가만히들 있어봐. 치료해 줄 테니까. 힐링 필드!” 아크의 외침에 반응한 블레싱 소드는 내무반 바닥에 빛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그 마법진 안의 부상자들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회복마법?” 하류층의 쓰레기 인생을 살아오던 훈련병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의 축복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걸로 이제 아프지는 않겠지?” “예? 예. 대장.” “흠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으니 잘 들어라. 어쭈? 거기 너! 또 터지기 싫으면 주목해.” 한 번 평정을 하고 나니 부하 놈들은 알아서 기었다. “앞으로 여기 있는 피리아는 우리들과 똑같은 동료다. 같이 훈련받고 같이 생활한다. 특히 그 뭔가를 하고 싶다면 작업을 걸어 마음을 돌린 다음에 동의를 얻고 해라. 강제로 덮치거나 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구타당한 뒤에 군기가 잡힌 훈련병들이었다. “이상 소등! 내일 훈련도 빡셀테니까 일찍들 자 둬라.” “실시!” 평소 아크의 자란 소리는 한 귀로 흘려버리던 놈들이 즉시 취침자세를 취했다. ‘이런 것이 바로 상급자의 힘이로군. 진작 이렇게 좀 밟아 줄 것을.’ “저 석진……아니 대장님. 전 어디서?” ‘아무 빈자리에서’라고 말하려던 아크는 딱 하나 남은 빈자리가 위험인물 가스통의 옆자리 라 는 것을 보고는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거기 빈자리 하나씩 채우면서 옆으로 자리 옮긴다. 실시!” 그 말에 각자 자리를 옮기는 훈련병들. 아크는 왼쪽 맨 끝의 벽을 보는 자리였었다. 아크는 원래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옆에 새로 생긴 빈자리로 옮겼다. “여기서.” 아크가 자신의 옆자리가 되자, 피리아는 볼을 빨갛게 물들였다. “저, 저, 저, 저기…….” “동료가 되긴 했지만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내 소유라고.” “아, 알겠습니다 대장.” 피리아는 반쯤 찢어진 윗옷을 벗고 편한 차림으로 아크 옆에 누웠다. 불이 꺼지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아크는 피리아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부끄럽더라도 좀 참아. 수아 씨 아니 피리아 양 나도 어쩔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공중변소만큼은 막아 줄 테니까. 그리고 남의 눈앞에서는 이렇게 냉정하게 대할 테니 서운해하지는 말고.” “네 대장.” “그럼 잘 자고.” “대장.” “음?” 피리아는 무방비 상태의 아크를 껴안은 뒤 말했다. “헙!” “보고 싶었어요. 다시 만나서 기뻐요.” ‘뭐야? 이 여자 왜 이래? 아무리 위험에서 구해 준 데다가 전생에 알고 지낸 사이라지만 이건 좀 진도가 빠른 거 아냐? 하긴 이런 곳에서 의지할 사람은 나뿐이겠지.’ 이런 생각이 든 아크는 한참 후 잠꼬대인 척 코고는 소리를 내며 피리아를 자신의 품속에 파묻었다. 자정이 넘은 듯한 서울 시내의 밤거리. 가로수에 가로등 불빛이 가려져 완전히 어두컴컴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밝다고는 볼 수 없는 인적 드문 길거리에 남녀의 실랑이 소리가 들려 왔다. “어이 아가씨 우리랑 2차 가자니까?” “싫다는데 왜 이러세요!” “괜찮아, 괜찮아 돈은 우리가 낼 테니까.” 술에 완전히 취해 보이지는 않아도 술 덕에 왠지 모르게 들떠 보이는 두 헌팅족 남자들이 연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의 손을 잡고 자꾸만 2차를 권하는 어떠한 영상매체이든 꼭 한 번씩은 나오는 그러한 광경이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그들은 끝에 가서는 싫다는 여자를 강제로 팔목을 잡아끌고 가려 했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안간힘을 다 썼지만 남성의 완력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 가로수의 그림자 속 어둠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름기 절은 긴 앞머리에 눈은 흐리멍텅하고 눈 밑에 짙은 다크 서클에 왼손에 든 편의점 봉투 안의 컵라면. 그가 입은 정체 모를 정장 마이에는 왠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교복인 듯 보였다. 기본적으로는 제법 잘 생긴 상판떼기로 보였지만 위의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되니 흡사 서울역 노숙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숙자로 생각되는 남자는 말 없이 헌팅족들이 붙잡고 놓지 않던 여자의 손을 풀어준 뒤 헌팅족 사내들의 앞을 막고 왼손에 든 컵라면 봉투를 여자에게 넘겼다. “뭐야 너!” “안 꺼져 이 거지 새꺄!” “…….” 노숙자로 생각되는 남자는 의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걸 본 헌팅 족 남자들의 안색에서는 핏기가 가셨다.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는 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쳐지기 싫으면 당장 꺼져.” “아 하하하 죄, 죄송했습니다.” “그, 그럼 이만.” 순식간에 꽁무니를 빼는 헌팅족들 여자는 대체 무엇을 꺼냈길래 저러나 싶어 남자의 등에 가려졌던 앞을 바라보았다. “……!” 남자의 손에는 달빛에 반사된 은빛의 검신을 자랑하는 예리한 사시미가 들려 있었다. ‘조, 조폭이었나?’ 여자는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듯한 기분이 되었다. 음침해 보이는 조폭은 사시미를 다시 옷 속에 집어넣고 라면이 든 봉투를 받아 다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자는 조폭이 한참을 걸어 간 후에야 조폭이 입고 있던 웃옷에 붙은 이름표의 이름을 떠올렸다. “김석진!” 현재 모 대학 1학년에 재학 중인 신출내기 여대생 이수아. 인문계열 학과인 그녀가 받는 강의는 대체적으로 여성들이 많이 듣는 강의였고 그만큼 남자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 수아는 같은 강의를 듣는 남학생들의 얼굴쯤은 다 익혀 두고 있었다. 하지만 강의실의 모두는 맨날 엎드려 자는 한 남자의 얼굴을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김용준이라는 남자의 친구를 제외한다면. 남자의 이름은 김석진. 수아와는 같은 학번 같은 학년 같은 나이의 대학 1년생이었고 맨날 퍼질러 자는 것에 비하면 입학 성적과 학과 성적 모두가 제법 우수했다. 몇몇 정보에 따르면 그는 일명 ‘폐인’으로서 모 온라인 게임 상위 랭커이자 그 게임 속 길드전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빠져나가며 텅 비는 강의실. 수아는 짐을 싸서 나가려다가 텅 빈 강의실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 석진이 눈에 밟혔다. 항상 용준이라는 그의 친구가 이때쯤 그를 깨워 같이 나갔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석진 혼자뿐이었다. “후우.” 수아는 엎드린 채 잠들어 있는 석진의 등을 두드렸다. “이봐요 일어나요.” 툭툭툭 가볍게 두드리는 별 반응이 없었다. “강의 끝났어요!” 퍽퍽퍽 주먹질을 가해도 반응이 없다. “아~진짜!” 수아는 팔꿈치를 높이 들어올린 다음 석진의 등을 찍었다. 퍽! “커헉!” 이번 팔꿈치 공격은 얼마나 강력했던지 석진은 엎드린 자세에서 그대로 의자와 함께 넘어졌다. 쿠당! “어머 괜찮아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던 석진은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서, 설마 기절한 건가?” 수아는 차가운 강의실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을 못하는 석진이 기절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강력한 것을 맞았으니…….하지만 “드르렁 푸!” “으아아아아! 자고 있었잖아!” 학교에서 잠자기 최강의 내공을 지닌 석진은 이젠 웬만한 일이 터져도 잠을 자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깨지 않았다. 특히 어디에서든 잘 수 있는 폐인 클래스 최고의 패시브 스킬 ‘노숙’ 덕에 이렇게 바닥에서도 잠만 잘 잤다. 수아는 이 지독한 잠벌레는 어떻게 되는 그냥 내버려두고 나가려 했다. 하지만……. 수아는 마지막으로 정수기에서 찬물을 뽑아와 바닥에서 침흘리고 자던 석진에게 뿌렸다. 촤아악! “어푸!…….” 물을 맞은 석진의 몸은 서서히 일어났다. “어! 이제 일어……흐에엑!” 수아는 갑자기 최단거리까지 근접한 석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만상을 다 찌푸린 흉신악살의 표정을. “내가……제일 싫어하는 것 다섯 가지는 군대, 여성부, 수구 꼴통 보수 세력, 스틸 먹자 욕설 비매너 범 그리고 쓸데없이 남의 잠 깨우는 새끼다!” 죽일 듯한 표정으로 수아를 코너로 몰아붙이는 석진. 그때였다. 꾸르르르륵 그 소리와 함께 석진의 표정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깨워줘서 고맙군.” 석진은 걸치고 있던 웃옷을 머리에 써 얼굴을 다시 가리며 가방을 챙겼다. “에 용준이 녀석도 없고 오늘은 무라카미나 불러서 놀아야겠다.” 석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석진의 얼굴을 보기 힘든 이유는 그가 매일 엎드려 잠만 잔 탓도 있었지만 더 큰 사유는 바로 저 머리에 웃옷을 쓰고 다니는 기이한 행동이었다. 처음에는 어디 보이기 싫은 흉터나 화상자국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오늘 처음 본 석진의 얼굴은 의외로 정상이었다. 수아는 결국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던 석진을 불러 세웠다. “잠깐요!” “뭐야?” “왜 그건 쓰고 다니는 거에요?” 석진은 가만히 서 있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케인이……가면을 벗었다.” “에?” 석진은 그 알 수 없는 말 한 마디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수아는 나중에야 석진이 프로레슬러 케인이 가면을 벗은 뒤 일시적으로 얼굴을 가리기 위해 검은 수건을 쓰고 다니던 것을 석진이 따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수아가 맨 처음 뱉은 말은 바로 “사이코…….” 였다. “끄흠.” 며칠 전 헌팅족들의 위협에서 석진에게 구원을 받았던 수아는 보답으로 석진에게 밥이나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도 석진은 잠만 자느라 도저히 말을 걸 기회가 나질 않았다. 깨울까도 생각해 봤지만 지난번처럼 난리를 피울 것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용준이란 사람이 깨워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모두가 빠져나가고 단 둘이 남은 강의실. 여전히 석진은 자고 있었다. “저기요. 석진 씨.” “에 뭡니까?” 의외로 석진은 너무 쉽게 일어났다. “아, 안자고 있었어요?” “선택 기상 신공의 영향으로 깨어나도 득 될 것이 없다 싶을 때는 웬만해서는 안 일어나고 꼭 깨어나야 하거나 득 될 것이 있을 때는 잠이 저절로 깨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서입니다만.” ‘뭔 소리야 도대체?’ 속으로는 사이코라고 욕을 하면서도 수아는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넸다. “지난번에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아! 뭘 그런 걸 갖고……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식사라도 사 주면 되요.” ‘뭐 저런 뻔뻔……가만 저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탁! 수아는 갑자기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내리쳤다. “그거 창세기전 3 크리스티앙 대사 맞죠? 얘기하는 폼이 어째 영 그러더니…….” “하핫 아, 알고 있었나? 뭐 어때? 재밌잖아.” “알았어요. 식사라도 사 드릴 테니 따라와요.” “공짜라면야.” “그럼 돈 낼 생각이었어요?” “물론 안 낼 생각이었지.” 얼굴에 철판을 깐 듯한 뻔뻔함이었다. 이 정도면 가히 부침개 해 먹어도 되겠다. “뭐 먹고 싶은데요?” “여……아니지. 라면만 빼고 나머지 전부.” 석진은 무심코 언제나 먹기를 갈망해 오던 것을 말하려다가 급히 말을 바꿨다. 다행히도 수아는 그 앞의 말 줄임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라면 잘 먹게 생겼는데?” “하루 세끼 라면만 먹어봐. 맛있나. 어디든 상관없어 흙밭에 뒹군 아이스크림 물로 씻어 먹는 사람이니 아무거나 당신이 먹고 싶은 걸로 가라고!” ‘자랑이다.’ 수아가 석진을 데려 온 곳은 제법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요? 칼질하는데? 이런 데는 양이 적어서 좀 그런데?”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아, 아 발끈할 건 없어. 그냥 해 본 말이야. 자 아무데나 앉지.” 수아와 석진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그럼 물만 먹으로 온 줄 알았수?” “…….” 여종업원과 수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영업용 미소를 다시 지었다. “아 전 스테이크로.” “어린이 정식 2인분.” 수아와 여종업원이 석진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봐 왜 그런 눈이야? 어린이 정식은 어린이만 먹어? 싸고 맛있으면 됐지. 어린이 정식은 어린이만 먹는다는 그런 고정 관념을 버려!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그런 사고가 지금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시장을 사장시키고 있다고!” ‘거기서 애니메이션은 또 왜 나와? 여하튼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 이 사람이 말하니 궤변으로 밖에는 안 들리네?’ 여종업원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간 뒤 석진이 말을 꺼냈다. “이런 그러고 보니 난 귀하의 성명을 모르는데?” 반말과 존칭어가 섞인 괴상 쩍은 말투였다. “맨날 잠만 자니 알 수가 있나요? 이수아라고 해요. 잊어먹지 말아요.” “여자랑 통성명 해 본지도 6년이나 지났군. 알고 있겠지만 나 이런 사람이야.” 석진은 지갑에 든 민증을 수아에게 보여 준 뒤 재빨리 지갑을 닫았다. “됐지?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뭐에요? 그게.” “한 번 더 보여줄까?” “됐어요!” 때마침 종업원이 음식을 가지고 나왔다. “어린이 정식 2인분하고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요! 역시 양은 많은데?” 수아는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고기를 잘랐다. 그에 비해 석진은 코 처박고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먹는 속도는 수아가 늦었지만 워낙 양이 적다 보니 수아의 식사는 빠르게 끝났다. “어이 안 모자라? 좀 줄까?” “됐어요.” “이봐 이봐 아무리 지금이 평화시의 자유대한으로 먹을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난다고는 하지만 세상사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는거야. 이 레스토랑 있는 이 빌딩. 깔끔하게 잘 지어놨지? 그런데 이게 공사인부 하나가 철근 몇 개 빼돌려 팔아먹은 것 때문에 붕괴되서 콘크리트 더미에 조난된다고 생각해 봐. 그럼 이렇게 체지방을 축적해 놓은 내가 오래 버티겠어? 수아 씨가 오래 버티겠어?” “……그럴 확률 적으니까 조용히 밥이나 드시죠.” ‘뭐 이런 남자가 다 있담?’ 꾀죄죄하긴 하지만 그것으로도 가릴 수 없을 만큼 석진의 외모는 여성이 왠지 모르게 끌리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남자의 성격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괴짜랄까? 수아는 이런 모난 듯한 성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말은 어린이 정식이었지만 2인분.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덕분에 줄지 않는 석진의 그릇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수아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별로 먼저 말 걸고 싶지는 않았지만 석진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지난번 그 사시미 칼은 왜 가지고 다녔어요?” “아까 말했지.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러기에 들고 다니는 거야. 결과적으로 내게 그 칼이 있었기에 수아 씨를 귀찮게 구는 놈들을 쫓을 수 있었던 거고.” 정확한 사유는 1인칭 액션 게임 중독으로 인한 무기 비소지 불안증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이라 할 수 있겠다. “교복은 왜 입고 다녀요?” “옷이 없거든.” “에?” “뭐 집에서 밖으로 나가길 꺼려하는 성격인지라 집에서 입을 만한 편한 옷이라면 몰라도 외출복은 사는 타입이 아니야. 그러다 보니 외출할 때는 외출복이 없어서 그냥 학교 가는 것처럼 교복을 입고 다니지. 마이 같은 경우는 그냥 입기도 해.” “……매일 낮에 퍼 자는 이유가 뭐에요?” “왜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자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뜻밖의 역공을 맞은 수아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 그건…….” “그건 사람의 기준에 따라 각자 다른 거야. 밤에는 자야 한다고 강요하는 기준은 도대체 뭐지? 그 기준은 그 사람 스스로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게임하면서 밤새는 놈이 말은 잘한다. “쓸데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난 자유로운 게 좋다. 사회의 구조와 부모들의 기대로 인해 자유를 거세당한 채 살아온 중고등학교 6년이 내게는 정말 최악의 시간이었어. 하지만 말야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란 것이 있을까? 물론 법에 명시된 타인의 피해등을 제외하고서라도……인간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유로울 수 없어. 사회적 통념과 인식, 경제적 문제, 능력과 노력, 힘 그 어느 것에서도 말이지. 그래서 난 판타지 세계관의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부러워. 물론 그들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그 신적인 능력으로 매우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어. 모든 능력을 갖춘 아쉬울 거의 없는 존재들이니까.” “…….” “그리고 난 조금이라도 더 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남들과는 다르게 특이하게 살아보려 하고 있어. 이게 바로 수아씨가 했던 질문들에 궁극적인 답이야.” ‘……조, 조금 멋있잖아?’ 잘 짜인 궤변 같이 들리긴 했지만 석진에게는 그만의 사상과 그의 언행에 대한 이유가 분명했다. 수아는 석진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다. 연설 내용은 둘째 치고라도 안 그래도 상판떼기 잘 생긴 놈이 흐리멍텅하던 눈에서 강렬한 눈빛을 뿜으며 박력 있게 말하는데 그것에 설레지 않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석진은 그런 수아의 미묘한 변화를 알아챘다. “호오? 수아 씨 호감도 상승?” “에? 무, 무슨 소리에요!” “후후 이래뵈도 미연시를 근 10년 간 접해 온 본좌요. 비록 가상이긴 하나 가상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토대로 만드는 법. 지금 수아 씨의 상태로 봐서는 호감도 상승이 틀림없는 듯 싶구려.” “그, 그런.” 수아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감으로 변했다. “어라? 그냥 해 본 소린데 진짠가 보네?” 콰직! “끄아악!” 수아는 구둣굽으로 슬리퍼 신은 석진의 맨발을 밟아버렸다. ‘질색이야! 이런 만사에 장난인 남자.’ 수아는 석진에게 잠시 두근거렸던 마음을 접어버렸다. “먼저 갈게.” “잘 가.” 친구들과 헤어지고 계단을 내려오던 수아는 수건을 뒤집어 쓴 채 계단에 앉아 멍청히 하늘만 응시하는 석진을 볼 수 있었다. 그냥 무시하고도 갈 까 하던 수아지만 알고 지내는 예의상 말을 걸었다. “누구 기다리세요?” “아니 광합성 중이야.” “…….” 수아는 할 말을 잊었다. 광합성이라니 식물이나 하는 광합성을 인간이 왜 한단 말인가? “웃기려고 한 농담이죠?” “진짠데?”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석진의 대답. ‘……사이코.’ “어떻게 사람이 광합성을 한다고 그래요?” “물론 못하지.” “뭐예요! 그럼!” 한참을 가만히 있던 석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있으면서 나는 광합성을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식물의 마음을 알 수 있지. 시 쓰는 데도 꽤나 도움이 된다고.” 문학소녀였던 수아였기에 그녀는 석진의 입에서 시라는 말이 나오자 조금은 태도가 누그러졌다. “시……쓰세요?” “안 써.”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에 수아는 열이 받쳤다. 그럼 그렇지 저 인간이 시는 무슨. “지금 장난쳐요!” 이 앞의 남자의 태도는 수아가 생각하기로는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장난이었다. 수아는 이렇게 매사에 장난인 이 남자에게 정말로 화가 났다. “장난 아냐. 물론 지금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지루해 그래서 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라는 생각을 해 보고는 하지. 한 여름의 뜨거운 자외선만 아니라면 이렇게 햇빛을 정면으로 쐬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뭔가 명분이 있어야 햇빛을 쐬는 것도 즐겁지 않겠어? 짱구가 시체놀이를 하듯이 나는 광합성 놀이를 한다고 생각해. 식물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구.” “왜 그런 놀이를 하는 건데요?” “심심하니까.” “심심하면 다른 걸 해도 되잖아요?” “그것에 대한 질문은 이전에 했던 걸로 아는데?” 수아는 석진이 레스토랑에서 했던 말이 떠올라 더 이상 광합성에 대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럼 다른 거 하고 놀아요.” “놀아 줄 거야?” “에? 무슨……그건……좀.” 수아는 차마 ‘힘들겠는데요’라는 거절을 하지 못했다. 바로 석진의 무언가를 열렬히 갈망하는 초롱초롱한 어린이의 눈빛 공격에 휩싸이고 만 것이다. “뭐, 뭐 여기서 놀만한 게 없잖아요.” “그래서 광합성하고 있던 거잖아. 말동무만 되어 줘도 난 만족해. 그러니 특별히 바쁘지 않다면 저에게 시간을 잠시 내어 주시겠습니까? 레이디?” “휴우.” 수아는 체념한 듯 석진이 앉은 계단 바로 윗칸의 흙을 털어 내고 앉았다. 에...헤헤 늦었다...... 현재 귀차니즘과 게으르니즘의 압박에 전혀 진도가 안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좀 써 놓은 부분도 아 뭔가 아니다! 란 생각에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치다 보니 더더욱 그렇고요...... 앞으로 이런 극악연재 + 연중 사태는 잦을 듯(......죽여주시와요......) 그건 그렇고... 좀 무거운 말을 꺼내야 겠습니다. 3권 출간 이전부터 받아온 연재 중단 압박...물론 아직까지는 잘 버텨 5권 분량 연재권까지는 얻어 냈는데... 그 이후부터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유는...불펌문제죠. 예...불펌해서 가지고 계시는 것 까지는 저도 뭐라고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퍼뜨리지 말아주십시오. Please don't try this it home(여기서 이게 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불펌에 판매량이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데도 연중 안 할 겁니까?" 이 시나리오보다는. "이렇게 잘 팔리고 불펌 파일도 없는데 굳이 연중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 시나리오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출판업계에서 말하는 연중의 필요성은 저도 동감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초보 작가(야설은 처음이 아니지만)이다 보니 부족한 것이 많은데 그것을 독자분들의 비평으로 잡아낼 수 있는 포기하기 힘든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돈이 절실히 필요한 신세는 아니지만 철저히 상업적이 되야 한다는 충고가 귀에 울립니다... 원래는 한 3~4일 더 쉴까 했는데......오늘은 조금 기분이 좋아서 그냥 올려봅니다. 8월 31일...제 생일입니다. 자 이제 게으르니즘 극복 격려 겸 선물로 아래의 계좌로 1000원씩 입금을....(퍽!!!) 계좌는 안올립니다. 저용량 연재에 극악연재가 며칠간 지속되겠습니다. 하지만 마감이 9월 20일이다 보니 그 날 이전까지 4권 분량은 다 올라갑니다. 한 마디로 어느 날 갑작스런 폭연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소립니다. 마지막으로 사시미 좋아하십니까? 사시미로 위협은 저한테 전혀! 먹히질 않습니다. 후후후 설문조사의 정답은 과연??? “으음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수아씨는 무슨 게임 같은 거 하는 게 없어? 창세기전을 알 정도면 게임에 대한 조예가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게임이요? 석진 씨만큼은 아니지만 온라인 게임하고 패키지 게임 여러 가지를 해 봤거나 하는 건 있어요.” “어 그래? 이 게임 알아?” 석진은 자신이 방석 삼아 깔아뭉개던 공략집을 보여 주었다. “잠깐! 심심하면 그걸 보면 됐잖아요?” “수 백번도 넘게 본 거야. 내용 다 알고 있어서 이젠 안 봐. 그냥 들고 다니면서 노숙할 때 베개로 쓰는 거야.” “흠 그래요? 동생이 하는 거 보고 몇 번 해 봤죠. 캐릭은 있는데 잘은 안 해요.” “음 그럼…….” 대화가 트이자 석진과 수아는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던 수아는 석진의 눈을 보았다. 여느 때의 흐리멍텅함이나 무심한 듯한 눈빛은 사라지고 약간 물기를 머금은 듯한 눈망울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 게임 이야기가 즐거운 듯 입가에 약간 걸친 미소. 그 모습에서 이전의 폐인 석진은 온데간데없었다. 두근 ‘어? 뭐야?’ 두근 ‘뭐, 뭐야? 설마. 저 폐인한테? 번짓수가 틀려도 한참을 틀렸다고!’ 갑자기 나타난 몸의 이상한 반응을 수아는 곧 눈치 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심리 변화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겨놔 봤자 이런 괴팍스러운 남자 따위는 절대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이 든 수아는 일부러 표정을 굳히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봤자. 폐인이네.” “……!” 그러나 신나게 이야기하다 다시 굳어지는 석진의 표정을 본 수아는 방금 전 내뱉은 말이 후회되었다. ‘이, 이게 아니었는데.’ 석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그러자 그의 앞머리가 다시 눈을 가렸다. “맞아. 그런데 말야. 수아 씨는 아직 폐인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는 모양이군.” “……?” “폐인은 술에 빠지거나 몸의 건강을 잃어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못하는 이들을 부르지 요새 들어서는 어떠한 일에 너무도 심취한 나머지 삶을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넒은 의미가 되었고. 하지만 난 그 진정한 의미는 바로 ‘어떠한 한 가지 일에 대한 자유의지에 의한 강렬한 열정을 가진 이’라고 생각해. 거창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어떠한 한 가지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가며 열중한다는 것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 비록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인간다운 삶에서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는 연금술의 등가교환 비슷한 거라 생각한다면 마음에 편하지. 수아 씨 당신은 어떠한 한 가지 일에 이토록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어 본 적이 있나? 있다면 결코 폐인들을 비하하지는 못할 거야.” 진지 모드로 패기 롭게 외치는 석진. 그런 그를 본 수아는 뻔지르르한 말빨에 억지성이 섞인 듯한 연설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연설의 내용과 석진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긴 상!” “여! 무라카미, 장천! 늦었잖암마!” 그 때 마침 0.125톤은 나갈 만한 거구에 안경을 쓴 뚱보와 앞니가 약간 앞으로 돌출 되고 이목구비가 흐트러져 잘생긴 얼굴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은빛의 눈동자와 짙은 눈썹이 인상적인 남자가 나타났다. 석진은 그들을 따라 나섰다. 그러며 뭔가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서 있던 수아에게 인사를 한 뒤 점점 멀어져갔다. “어이! 오늘 고마웠어. 잘 있으라구.” “…….” 석진의 인사도 받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수아는 얼굴을 붉히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상한 사람.” “하!” 날이 밝아오고는 있었지만 아직 어두운 새벽녘이었다. “꿈이었구나…….” 나란히 누워서 자는 여러 남자들 속의 한 여린 소녀. 피리아는 자신을 부둥켜 앉은 채 자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이 이상한 남자에게 호감을 느꼈던 건. 하지만 갑작스런 사고와 함께 다른 세상으로 환생으로 다른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다시는 고백도 하지 못하고 다시는 못 볼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지금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꿈꾸던 멋진 남자(확실히 착각이다)가 되어서 말이다. 이 품안에서 조금만 더 잠들고 싶다. 탕! 탕! 불꽃을 뿜으며 과녁을 맞추는 총알들. “쳇!” C모 게임에서는 나름대로 한가닥한다고 자부하던 아크였지만 과녁에 정확히 명중하는 총알은 몇 개 되지 않았다. ‘크 딱총 하나로 셋을 때려잡은 그 무용담을 지닌 내가 겨우 이거라니.’ 하지만 부하들에 비해서는 아크는 정말 탁월한 사격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상과 실제의 차이가 있어도 시뮬레이션 훈련을 했던 경험이 발휘되는 것이다. 사격 훈련이 끝나고 이어지는 고되고 힘든 체력 훈련이 시작되었다. 오늘도 살기 품은 몽둥이로 군생활의 스트레스를 풀려던 교육병들. 그러나 오늘은 어쩐 일인지 모두가 훈련을 여유롭게 통과했다. 심지어 오늘 부로 부대원이 된 여성 대원까지. 이 의외의 사태에 교육병들은 교육이 먹혔다고 좋아해야 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반응들만을 나타냈다. 하루 훈련이 끝나기 전 마지막은 자율 체력 단련이었다. 각종 운동 기구등으로 근력과 지구력 등을 기르는 훈련. 이 훈련은 트레이닝 실에서 이루어졌지만 항상 꽉 차던 트레이닝 실이 오늘은 그다지 인원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가 모래사장 쪽에 모여 대장인 아크에게 반강제적으로 살인격투술의 기술들을 전수 받고 있었다. 훈련 때는 몰라도 이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부터 휴식시간 때 훈련병들의 통솔은 전적으로 아크에게 위임되어 있었기에 이러한 자율 행동이 가능했다. “힙 토스!” “어이쿠!” 모래사장은 별 다른 매트가 없는 이곳에서의 낙법에 만큼은 최적이었다. “간다!” “OK 대장!” 아크는 한 가엾은 실험용 샌드백 훈련병을 한 쪽 다리를 잡아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훈련병의 머리를 에르디가 잡은 뒤 그대로 낙법을 써서 땅바닥에 넘어졌다. 2인용 필살기이자 프로레슬링 태그 팀 더들리 보이스의 마지막 기술 3D였다. 에르디는 아크가 가르쳤던 유카나 만큼이나 빠르게 기술을 익혔다. 엘프들부터 여기 훈련병들까지 여럿에게 이 살인 격투술의 기술을 가르쳤지만 이렇게 잘 배우는 것은 최근에 얻은 제자 유카나나 에르디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후우. 이제 알아서들 훈련을 하든지 트레이닝 실에 가든지 하도록!” 그렇게 부하들에게 자율 수련을 명한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소환한 뒤 최강 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일단 소드 마스터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 블레싱 소드를 통한 마나 수련을 지속해야 했다. 아크는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해 바위등을 베었다. 원래 그냥 휘둘러도 바위 정도는 가뿐히 벨 수 있는 블레싱 소드이지만 오러가 씌어야 왠지 더 폼이 났다. 그러자 한 훈련병이 보고서는 놀라 외쳤다. “오, 오러 블레이드다!” 그 말에 모두는 검무를 펼치던 아크를 주목했다. “뭐야 왜 그리 호들갑이냐?” “대장 소드 익스퍼트 셨습니까?” “보다시피.” 그들은 대단할 줄은 대충 짐작은 했어도 아크가 소드 익스퍼트 급 검사라는 점에 크게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때마침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는 내무반에서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그 전에 의무적인 샤워를 거쳐야 했다. 아크는 이 샤워장의 수리 시설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곳에서의 물은 어디를 가나 맑고 깨끗했지만 이런 외딴 섬에서 이렇게 물을 펑펑 써대도 되는 데다가 수도꼭지까지 있어 물을 바가지로 퍼서 했었던 목욕보다는 빠른 샤워가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은 섬 내의 거대한 샘의 존재와 실용 과학을 크게 장려하는 루드비안 제국의 정책이 해결해 주었다. 아크는 운디네로도 간단한 씻기가 가능했지만 그동안 별 다른 힘을 과시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샤워장에서 대충 몸을 씻었다. 하지만 기왕 당금과 채찍주의로 힘을 과시하기로 한 이상 정령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전……어쩌죠?” “……!” 그랬다. 유일한 여성인 피리아의 존재가 밟히는 것이다. 운디네로 그녀를 씻겨 줄 수도 있는 아크였지만 그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샤워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아크는 오늘 훈련성과 등의 보고로 인하여 최대한 먼저 씻고 대령에게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늑대의 소굴에 알몸의 여성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 ‘흐흐흐.’ 이상한 쪽으로는 잘 돌아가는 아크의 머리는 이 와중에도 음흉한 생각을 떠올렸다. 아 이런...무리하는군요......이대로 연재하다간 한 2달정도 잠수를.... “어쩔 수 없어. 피리아. 이제 다 같은 동료인데 여자라고 혜택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야. 내가 싫어하던 여성부 꼴통 페미들 알지? 의무에는 불성실하고 여자라는 이유로 힘들고 궂은 일에는 요리조리 빠지면서 남자들의 권리만 빼앗아가는 똑같은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그, 그런!” “게다가 원래 그러한 목적으로 여기에 온 거 아니었어? 조금 출혈 서비스 해 준다고 해서 닳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내가 보호해 줄 테니 들어가자고.” 탈의실에서 최후의 보루만큼은 입어 두는 피리아. 아크는 그런 그녀에게 유익한(?)조언을 남겼다. “어차피 벗게 될 거야 마음에 준비나 단단히 해 두라고.” “네?” “여기서 빨래까지 다 해 둬야 해. 속옷이라고는 남자 군용. 그것도 아랫거 한 벌뿐이잖아. 대령한테 더 달라고 해 봤더니 한다는 말이 ‘아무것도 안 입혀도 될 거라 생각하는데’ 라더군. 그렇다고 남은 거 입고 빨래하다 물이라도 튀어서 그것도 버리면? 그 다음 날은 허전하게 훈련받을 거야?” “…….” 어차피 아무리 아크가 운디네로 씻겨 줘도 빨래를 한 때는 곤란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옷이라고 해봐야 입고 올 때의 옷과 군복 2벌뿐인데. 직접 빨래를 할때는 물이 튀어 젖어버리기에 어쩔 도리 없는 데다가 따로 이러한 수리 시설을 사용할 시간이 없기에 더욱 그랬다. “아, 알겠습니다. 대장.” 결국 피리아는 나신으로 샤워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둘이 들어가자마자 쏠리는 늑대의 눈. 아크는 그런 피리아를 껴안으며 그녀의 나신을 자기 몸으로 가렸다……라고는 하지만 맨살끼리 맞대어 놓으며 느끼는 아크의 고난이도 술수다. “어딜 보나? 맨 앞에만 쳐다 본다. 실시!” “궁시렁 궁시렁.” 부하들은 궁시렁대며 시선을 물로 옮겼다. 하지만 뭐가 그리도 아쉬운지 아크가 있는 쪽을 자꾸만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어, 어떡해?’ 두 생애 처음으로 알몸인 채 남자의 나신에, 그것도 좋아하던 남자의 나신에 안긴 피리아는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아크도 이러고 있는 것이 조금 머쓱하기는 했지만 워낙 하렘형 만화나 미연시, 실전경험까지 있었던 데다 피리아를 공략 대상으로 보기는 해도 지구에서부터 그다지 마음을 준 적은 없기에 로니를 목욕시키던 그 때 만큼 민감한 반응이 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저, 저, 저, 저기 대, 대장.” “음?” “다……닿았어요.” 아크는 그제야 그 무언가도 피리아의 몸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미안 그래도 저 녀석들 경운기 가동용 엔진이 되기 싫으면 이러고 있는 것이 좋을 거야.” 그럼에도 아크는 개의치 않았다. 이 얼마나 고대하던 순간인가? 미소녀와의 함께 목욕. 여자 씻겨 주기까지는 했어도 같이 씻어본 적은 없던 지라. 이런 새로운 미연시 상황 경험이 아크에게는 그저 감격스러웠다. “이걸로 내 등쪽을 칠해. 나도 칠해줄 테니.” 아크가 피리아를 품안에 안은 상태였던지라 서로 사용할 수 있는 손으로는 상대방을 씻겨 주는 것이 편했다. ‘자, 자극이 너무 심해.’ 알몸으로 붙은 것만 해도 머리가 핑 도는데 공략(?)까지 당하니 피리아는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제 됐다. 앞쪽은 알아서 하도록.” 아크는 피리아를 놓아주었다. 그 덕에 둘은 서로 안고 있어서 볼수 없었던 서로의 앞면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는 대략 익숙한 아크도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하물며……. “어라? 이봐! 정신차려!” 피리아는 코피를 흘리며 기절해 버렸다. “너희들 그럼 별 생각 없이 뛰고 있다 이 말이냐?” 아크의 물음에 부하들은 하나같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쩝 애국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녀석들이로구만 그래.” 서방 쪽이 개인주의 사회풍조가 팽배 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 모인 녀석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나라에 대한 애국심 따위가 아니 오히려 반감이 더욱 컸다. 최하층민으로 항상 국가의 수탈과 억압만 받아온 그들에게는 애초에 애국심 따위가 있을 턱이 없었다. “우리가 왜 황제를 위해 피를 흘려줘야 합니까? 황제가 우리한테 해 준게 뭐가 있다고? 우린 그저 죽을래? 좀 더 살래? 라는 협박이 어쩔 수 없이 온 것뿐입니다.” “제기랄 우리 같은 것들은 국민으로 인정해 주지도 않으면서 세금은 꼬박꼬박 다 걷어가면서 더러운 상것이라고 인간 취급도 안 해주고. 여기 여 덴 녀석은 영주놈한테 마누라하고 딸내미까지 뺐겼다고 합디다.” “먹고 살 것이 없으니 우리가 뭘 하겠어? 처자식은 뼈만 앙상하게 남긴 채 밥달라는 소릴 하며 우는데 굶어죽지 않으려면 도적질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하여간 어지간히 뜯어가야지.” “설사 우리가 그 캘더린 여왕년을 쳐죽이면 바로 전쟁 날 것이 뻔하지. 그러면 죽어나는 건 우리 하류층뿐이라고 최전방 레타오르에 있는 내 가족들은 또 어떡하라고!” 곳곳에서 정부와 나라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는 훈련병들의 모습에서 아크는 이 침투작전이 결코 순조롭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해안가에는 금빛의 도깨비불이 일정한 궤선을 그리며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이 섬에 온 뒤 꾸준한 수련 덕에 아크는 이제 마스터를 얼마 놔두지 않고 있었다. 곽 차다 못해 넘칠 것 같이 끓어오르는 마나의 힘 . 단전을 넘어 온 몸에 쌓이게 된 마나는 은은한 빛을 뿜으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이제 쌓일 만큼 다 쌓인 신성력의 마나는 마나를 담는 그릇을 더 크게 확장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용할 수 없었던 전신에 쌓인 마나가 커진 단전을 채우며 아크의 힘 또한 수 배로 증기 시킬 것이다. 소드 익스퍼트 라는 것을 나누는 기준은 보통 오러 블레이드의 사용여부로 가르지만. 더 파고 들어가면 단전에 마나가 꽉 찬 다음의 경지를 두고 말하기도 했다. 단전에 마나가 다 차면 더 이상 쌓일 데가 없어진 마나는 온몸 이곳저곳에 착실히 쌓이게 되고 마나 소모 기술로 단전이 빌 때 이 온몸에 퍼진 마나를 끌어 모아 단전을 채울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소드 익스퍼트 상, 중, 하를 갈랐다. 단전이 넘쳐 온몸에 쌓이게 된 마나는 활용도가 없는 쓰잘데기 없는 마나로서 오러 블레이드 등의 마나 소모기술 사용시 빈 단전을 채우는 역할 뿐인데 그렇게 전환하여 단전을 채울 수 있는 양은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실력과, 전신에 쌓인 마나의 양에 따라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겨우 전체의 5%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드 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은 이 온몸에 쌓는 마나를 끈임없이 쌓았다. 그러한 이유는 인간의 신체 곳곳에 마나가 다 차게 된다면 더 이상 마나를 쌓을 곳이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마나를 닿는 그릇인 단전의 용량이 전신의 마나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하면서 온몸에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쓸데는 없지만 단전의 수배가 넘는 방대한 마나를 단전에 보관하여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일명 ‘마스터’급이 되기 때문이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과 마스터의 수련의 차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실력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처럼 갭이 컸는데 그 차이가 큰 이유는 단전의 수 배가 넘는 온몸에 쌓인 마나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것 때문이었다. 마스터가 되는 것은 결단코 만만하지가 않았다. 소드 익스퍼트가 되려 쌓아야 하는 단전의 마나를 쌓는데만도 수십년이 걸리는 데다가 단전의 수배에 달하는 온몸의 마나 저장소를 꽉 채우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자명했다. 결정적으로 시간 노가다를 해서 마나를 쌓는다 하더라도 마지막 끝 부분에 깨달음이나 선지자의 지도가 없다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경지였다. 하지만 아크는 달랐다. 그에게는 마나를 빠르고 막힘없이 쌓아 주는 블레싱 소드가 있었다. 무신 위진무가 이끌어 주는 10년 속성 코스 ‘최강심법’에 비하면 세 배가 더 걸리는 험난한 코스이지만 그래도 소드 마스터에 이르지 못하고 늙어죽는 이들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그 끝을 보기 전 아크는 잠시 칼질을 멈췄다. “먼치킨은 싫지만……세상은 강자의 것이니까.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찾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 맘대로 어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은 필요할테지.” 아크는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블레싱 소드를 휘둘렀다. “크, 큭!” 그 마지막 칼부림 뒤에 아크는 속이 뒤틀리는 듯한 크디큰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크, 크아악!” 꽉 깨문 입술과 몸 안쪽에서 토해낸 피가 아크의 입가를 적시고 모래바닥에 흘렀다. “큭! 크! 크아아아 뭐야? 뭐 이렇게 아파? 주화입마인가? 끄아아아악!” 아크는 배를 감싸며 흙밭을 굴렀다. 곧이어 아크의 몸에서 블레싱 소드와 같은 찬란한 빛이 퍼져 나왔다. 어둑어둑한 밤이었지만 해라도 뜬 것처럼 주변은 환해졌다. 하지만 그 찬란한 빛도 곧 어둠에 먹히고 바닷가에는 고요한 파도 소리만이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진짜 햇볕이 들어올 즈음 지독한 고통에 혼절해 있었던 아크가 눈을 떴다. “윽! 뭐야 이 은은한 느낌은?” 아크는 평소 자각하지 못했던 신성력이 은연중에 자신에게까지 느껴지는 것을 눈치챘다. 아크에게 블레싱 소드로 인한 신성의 마나가 넘치도록 쌓이면서 가히 천사 급의 신성력이 퍼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젠장 안 그래도 하이프리스트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어왔는데 인제는 그것보다 더 높은 클래스냐?” 아크는 투덜거리며 자신의 마나의 기척을 모두 숨겨버렸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마나의 기척만 사라질 뿐 방대한 신성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넘쳤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이것이 마스터인가?” 아크는 약간의 마나를 실어 바위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과과광 “와우!” 놀랍게도 바위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서 박살났다. 나무까지는 그럭저럭 박살 냈어도 장거한의 철구 없이는 엄두도 못 냈던 바위가 주먹지르기 한 방에 박살날 정도라니. 오감도 매우 발달했는지 수평선 너머가 보이거나 내무반의 코고는 소리, 바다의 짙은 소금 냄새가 느껴질 정도었다 “큭! 뒷간 냄새까지 들어온다. 이것이 마스터로군 그래. 전 세계 통틀어 10명 가량 밖에 없다는 힘이 넘치니 좋기는 좋군. 이 정도라면 폐인 내공 10갑자는 되어야 쓸 수 있는 일주일간 잠 안자고 버티기 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굳이 마스터급이 아니더라도 아크는 충분히 소드 마스터 하나 쯤은 가벼이 처리할 수 있었다. 그를 받쳐주는 수많은 아이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딜 가나 변수는 존재하는 법. 그러한 녀석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마스터의 경지는 필수 불가결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굳게 쥔 아크의 주먹에 짙푸른 오러의 빛이 스며나왔다.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 엘프 마을 안 가냐? 갑니다 언젠가는. 안 가지는 않습니다. 4권 언제? 9월 20일 이후일겁니다. 그 전에 나올 일은 없습니다. 아크 그랜드 급 안되나? 절대로...본편에서 될 수가 없습니다. 아크의 성격은? 누굴까요??? 119화와 120화의 세상에 나오는 각본 수정을 위한 일시 삭제에 들어갔습니다. 작품 내 질문 답변 게시판 있으면 좋겠다는...... “오우!” 사격 훈련 중 옆을 바라본 아크는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쌍권총 연사의 4연발이 대부분 모두 정확히 표적의 머리 부분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체력 훈련은 아무래도 기본적인 힘이 딸리기에 아크의 신성 보조 마법으로 패스해 온 피리아였지만 사격 만큼은 달랐다. 그녀는 안 그래도 멀리 있는 표적 맞추기 힘든 권총을 그것도 쌍으로 들고 정확한 헤드샷만을 노렸다. “대단한데?” “고등학교 때 사격 특기생으로 대학 갈 뻔한 적도 있어요. 집안에서 반대해서 수능으로 인문계열 학과로 갔지만.” 퍽! “훈련 중에 누가 잡담하랬나? 당장 앞에 안 봐 이 새끼야?” 으득! 아크는 이를 갈았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담당 교육병 녀석이 자신과 맞먹을 수준의 욕설을 내뱉으며 사람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게 아닌가? ‘이 자식들도 언제 한 번 손을 봐 줘봐?’ 사실 아크는 어느 정도 훈련병과 교육병들간의 교감과 정 같은 게 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계급은 있어도 신분은 없던 자유대한과는 달리 엄연한 신분이 존재하는 이곳에서는 수탈 신분계급에 대한 반발과 하류 계층에 대한 무시가 서로 대립하면서 두 병사들의 사이는 좋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다. 물론 노예 계급과 평민 계급의 경우 똑같이 상층부의 억압과 수탈을 받는다는 점은 같았지만 여기 교육병들은 일반 평민이 아니었다. 루드비안 제국은 자원을 받는 상비군과 평소에는 보통 생업에 종사하는 군역인들로 군대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상비군은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최상층부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원한 평민들이었다. 상비군이 일은 힘들고 대우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상비군들은 자리가 부족해 못 들어갈 정도로 지원자가 많았다. 그러한 이유는 바로 이 군이라는 것은 실력과 노력이 있다면 평민이 귀족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유일하고도 합법적인 경로였기 때문이다. 평민들은 꿈도 못 꿀 마나를 쌓는 법 등을 배워 기사 작위를 받을 수도 있었고, 연줄과 돈을 써 가며 별을 높이면 자동 승격할 수도 있었으며 전쟁시 공훈을 세워 승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렇게 귀족이 되는 이들은 매우 소수였지만. 이러한 이유들 덕분에 평민들은 아들들 중 하나는 꼭 군인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군인 선호 현상이 나타났고 군 선발 시험문이 좁아짐에 따라 근래에는 평민들 중에서도 재력이 있는 부르조아 계층에서 군인들이 나왔다. 일반 평민이나 천민 계층이 보기에는 이들 부르조아 층들도 귀족들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부르조아 계층의 평민들도 자신들은 평민과는 뭔가 다르다는 우월 주의에 빠져 같은 계층 간에도 대립이 심했다. 서로가 서로를 탐탁치않게 여기고 있으니 영화와 같은 정이 싹트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아크는 뛰어난 실력으로 대령일 비롯한 상부에서는 쉽게 건드리지 못했지만 그러한 사실이 전달되지 않은 일반 교육병 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아크를 건드렸다. 주제에 대장하며 폼 잡는다에 잘생긴 외모, 항상 여자를 옆에 대동하고 다니는 점 등이 콧대 높은 부르조아 출신 병사들에게 찍힌 것이다. 그래도 괴롭힘을 받아도 보복할 힘이 있으니 아크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우습기만 했지만 힘없이 당하기만 하는 아크의 부하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자꾸만 쌓여갔다 지난 번 에르디가 자신을 괴롭히는 교육병들에게 죽음의 음료를 가져다 먹인 뒤 더 심해진 듯 했다. “투척!” 불꽃은 붙인 심지가 타 들어가는 병을 일제히 던지는 훈련병들. 에르디의 실험 결과와 아크의 조언으로 만들어진 이 화염병은 특별 암기로 매우 유용했다. 가끔 가다 하는 몇몇 특별훈련을 제외하고 훈련병들의 하루는 대부분 동일했다. 사격훈련, 체력훈련, 자율운동에 앞서 언급한대로 가끔 아크가 시키는 검술 및 격투술 훈련, 건물 내 잠입훈련, 수중훈련 등이 일주일에 두 세 번식 들었지만 오늘은 일반적인 일정대로 진행되었다. “합!” “차앗!” 각자 샌드백으로 치거나 체력단련 중인 훈련병들. 그리고 그 중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크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뒤 부하들을 가르칠 때를 제외하고는 빈둥대며 시간만 때웠다. “……음?” 윗몸 일으키기용 운동기구에 누워 낮잠을 즐기던 아크는 문득 있어야 할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에르디. 피리아 어디 갔냐?” “글쎄올시다 대장.” “화장실이라도 갔나?” 안일한 생각으로 의문을 너무 쉽게 풀어버린 아크는 낮잠이나 계속 자려다 자신처럼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훈련병에게 일침을 가했다. “야! 거기 똑바로 못해?” 지적에 플러스로 헤드락까지 당한 훈련병은 뭐가 불만인지 자꾸만 궁시렁 거렸다. “쳇. 대장은 놀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린 불평이었지만 마스터라 청각 좋은 아크가 그 소릴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이 짜식이! 내가 너 하고 같냐?” ‘가만. 나부터가 이러면 안 되지. 방금 전 내 행동과 발언은 대장으로서의 통솔을 잃음과 동시에 인간 차별적인 말이군.’ 이런 생각이 든 아크는 몸을 일으키며 윗몸 일으키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각이 밝아진 그에게 아주 작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 온 것이다. “이런 젠장! 야! 거기 둘. 빨랑 나 좀 따라와.” “예? 옛.” 아크는 입구 앞에 두 부하를 대동하고 산악 훈련을 하던 섬의 산길을 뛰어올라갔다 갈수록 확연히 들리는 목소리는 틀림없었다. “뭡니까?……지…….” 탕! 아크가 막 수풀을 헤치고 나오려는 찰나. 우레와 같은 총소리가 울렸다. “……!” 그곳에는 세 명의 교육병들과 옷가지가 흩트려 진 채 두 손으로 아크가 준 권총을 쥐고 있는 피리아가 주저앉아 있었다. 총소리에 잠시 놀라 멀뚱히 서 있던 교육병들은 방금 전 난입한 아크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뭐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보면 몰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그들이 왜 그랬는지는 아크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도덕적이나 군 기강으로 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렇게 몸 굴리는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 부대의 정식 대원입니다. 카시아스 백작님께서도 인준하신 일입니다.” “어쭈 이새끼 웃기네? 꼽냐?” “당신들은 2주에 한 번씩 외출이라도 할 수 있잖소! 우리도 못 건드리는 애란 말이요!” 이 말을 한 훈련병은 속으로 대장인 아크를 욕했다. 쩨쩨하게 혼자만 재미보고……. “어찌 됐건 이러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당신네들이 우리의 윗자리에 신분이 높다고는 해도. 지금 이 자율훈련 시간에는 훈련병들의 통제권은 대장인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니 물러가들 주시죠. 어이 피리아! 뭐하나 얼른 안 일어나고?” “예…….” 교육병 중 한 녀석이 아크에게 바짝 근접해 다가왔다. “야 이 자식 뻐기는 거 봐라?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니들 고년 잡아 놔. 어련히 잘 알아서 보낼 테니까. 꺼져 이 새끼들아.” “후.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실력행사를 할 수밖에.” “하! 실력행사? 어유! 이 새끼가 좋은 말 할 때 가라?” 교육병 놈은 기분 더럽게 아크의 뺨을 툭툭 쳐 댔다. ‘얼씨구? 하! 나 원 참 성질 많이 죽었다. 이것들이 아주 기어오르네? 이래 봐도 난 귀족이었단 말이다 이놈들아. 후. 요놈들부터 시작해서 요 싸가지 없는 교육병 놈들 버릇도 좀 잡아 놔야 겠군 그래.’ 기분은 좀 나빴지만 아크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당한 것 보다 수천배는 더 심하게 갚아 줄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아크가 계속 가만히 있자. 교육병 놈은 계속해서 아크의 따귀를 때려 대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아크의 입고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빠직! 아크는 계속해서 자신을 무시하는 교육병을 단단히 교육시켜 기게 만들 작정으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주먹이 명중한 교육병의 얼굴에서는 ‘퍽!’ 하는 둔탁한 소리 대신 흡사 수박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과 소리가 들려 왔다. “꺄아아아아!” “……!” 피가 튀었다. 아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았다. 아크의 주먹을 맞은 병사의 머리는 그야 말로 ‘깨져’ 버렸다. 곳곳에 흩어진 육편과 놔까지 터져 여기저기에 뇌조각이 흘러내렸고, 안구가 튀어나와 터진 채 유리체를 흘렸다. 머리를 잃어버린 교육병의 목에는 미쳐 박살나지 않은 아랫이빨과 목을 통해 끈임없이 붉은 혈액이 쏟아져 나왔다. “히에에에에엑!” 남은 두 교육병들은 정신 없이 산길을 뛰어내려가기 시작했고 아크의 옆에 있던 두 훈련병들도 이 처참한 광경에 할말을 잊었다. 아크는 피로 붉게 물든 자신의 오른주먹을 내려다 보았다. 단지 좀 패 놔서 군기나 잡으려 했던 것인데 마스터가 되어 수배나 강해진 힘을 미처 제어치 않고 익스퍼트 급일 때와 똑같이 운용한 것이 실수였다. “…….” 피에 물든 아크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렸다. ////////// 다음은 이번 편에서 지적 받은 내용들에 대한 답변입니다. 아크 자존심이 없다? 이 녀석은 약한 척 당해주다가 나중에 배로 갚아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녀석입니다. 그러니 이 질문은 패스. 익스퍼트 급일 때와 마스터일 때 차이가 있을 텐데 그걸 감안 못하는 건가? 생각 없이 팼을 때 잘못 팬 거지요. 익스퍼트 급일 때 안죽을 정도의 파워만 발휘되게 해 놨는데 마스터라 수 배는 더 세게 나갈 것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한 거지요. 군대가기 싫어서 왔는데 왜 군대서 노냐? 이곳 섬에서의 군생활은 수련을 위한 면이 강했습니다. 마스터 급에 대한. 처음에는 그냥 마스터 급만 되면 뜰 생각이었으나 부하들이 생기면서 차마 못 떠나는 겁니다. 찰싹! “끄아아아악!” 찰싹! “촤악!” 어두운 해안가에 모든 이들이 모여 있었다. 찰싹! “으아아악!” “끅…….” 처절한 비명소리. 현재 619부대 훈련병들 중. 대장 아크 외 2명은 묶인 채 가혹한 채찍질을 당했다. 죄명은 살인죄 및 살인방조죄. 피리아 같은 경우에는 일단 피해자 였기에 제외되었지만 얼떨결에 따라 올라온 두 훈련병들은 아크와 똑같은 처벌을 받았다. “그만! 저놈들을 독방에 가둬 두어라.” 수 십대를 맞아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양팔에 잡아끌고 가는 교육병들. “난 내 발로 걸어 갈 테니 가만히 있게.” 아크는 묶인 채로 자기 발로 걸어갔다. “크음…….” 그러한 모습을 바라본 619부대의 총 책임자인 대령 카시아스 백작은 골머리가 아파왔다. 오늘 부대에서 살인을 저지른 아크와 살해당한 교육병 모두 쉽게 건드릴 성격의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크야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무인이었고(현재 마스터 급이지만 이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오늘 죽은 교육병의 경우 루드비안 제국 내 최대 상단인 바레인 상단의 후계자이자 상단의 주인 자크 바레인의 외동아들이었다. 자크 바레인은 아들을 귀족으로 만들기 위해 군에 입대시키고 상부에 엄청난 뇌물을 대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상층부의 선택은 100% 아크를 사형시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 급인 대령 자신을 제외하고는 도무지 아크와 맞설만한 자가 없었다. 일단 가두어 놓기는 했지만 현재 훈련병들의 신임을 얻고 있는 아크를 쉽게 건드린다면 대규모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카시아스 백작은 마법 통신구를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나를 주입했다. 곧이어 한 남자의 목소리가 구슬 안에서 들려왔다. [어딘가?] “여기는 619 부대의 훈련장소인 세르미도입니다.” [직위는?] “대령 카시아스요.” [음? 아! 카시아스 무슨 일인가?] “방금 전 전보를 보냈던 바레인 후계자 살인 사건은 어떻게 되었소?” [뭐 결과는 자네도 잘 알고 있을 테지. 당연한 것 아닌가? 사형 집행일세] “크흠. 그는 대단한 실력자요. 마스터에도 오를 수 있는……그런 이를 천거하면 그레드릭 대공 전하의 눈에 들 수도 있을 텐데……?” [하긴…… 소드 마스터 후계를 보고 싶어서 안달을 하시는 분이시니까. 하지만 바레인 놈의 성화가 이만저만이 아니오. 잘못하면 나나 자네나 모두 옷을 벗게 될 지도 몰라. 어차피 귀족가 영애를 성추행하고 살인죄까지 저지른 악질이니 지금 죽이는 것이 이로울 수도 있을 것일세.] “별 수 없군. 그럼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2, 3명만 더 지원해 주시오. 검 뿐만 아니라 총기나 619 부대원들의 신망까지 얻고 있는 자라 우리들 만으로 처리하기가 조금 힘드오.” [알았네. 이틀 안으로 보내 주도록 하지.] “그럼.” 빛을 뿜던 구슬이 다시 새까매지고, 아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쾅! 쾅! 쾅! “이것들이! 당장 가서 자빠져 자지 못해!” “도대체! 저놈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잡아넣은 거요! 엉! 먼저 잘못한 놈이 있잖아!” “당장 석방하시오! 대령!” 사령부 실 앞에는 문신과 흉터가 돋보이는 몸매를 자랑하는 웃통 벗은 훈련병들이 단체로 농성을 하고 있었고 그들을 막느라 교육병들이 용을 쓰고 있었다. “대장이 무슨 죄가 있다고 잡아가!! 야 이 썅! 교육병 놈들 계급만 좀 높다고 이렇게 사람 차별해도 되는 거야? 앙! 애초에 아크 대장에게 개긴 놈이 잘못 아니냐고! 대장이 그놈보다 계급도 높은데!” “각성하라!” 그들은 대장인 아크를 구하기 위해 농성을 계속했다. 비록 공용으로 주어진 피리아를 혼자 독차지한 나쁜 놈(?)이기도 했지만 전직 귀족에 두 단계 높은 계급을 가진 대장임에도 전혀 권위주의적인 면이 없고 매일 회복마법을 써 주며 그 대단한 실력으로 상층부의 학대에 맞섬으로서 신망이 두터워 졌던 것이다. 이제 619 부대에는 아크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탕! 탕! “당장 들어가서 소등하지 못해! 재판 판결은 이틀 후다. 이놈들은 어차피 사형수다. 어떻게 죽여도 상관없는 판국에 재판까지 받게 해 준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야! 당장 못 들어가!” “대장을 석방하라!!!” 좀처럼 들어가 잘 생각을 하지 않는 훈련병들 덕에 상층부는 상당한 골머리를 앓았다. “경고한다.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무차별 발포하겠다.” “에라 18 쏴봐!” “큭!” 똥배를 총구 앞에 들이밀며 뻐기는 한 훈련병. 그때였다. 탕! 탕! 탕! “……!” 배를 앞으로 들이밀었던 훈련병의 미간과 양 볼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구멍 속을 뚫고 나온 총알들이 훈련병의 뇌를 끌고 나왔다. “이렇게 되고 싶은 놈은 어디 계속해 보도록.” “……이 이 이!!!” 동료의 시체를 보고 머리가 시뻘개진 한 대머리 훈련병은 막무가내로 뛰쳐나가려다가 한 동료의 제지를 받았다. “이봐 참아! 제길 돌아가자!” “이 자식! 너는 네 녀석이 대장하고 제일 친했잖아! 그리고 이런 놈들인데도 가만히 있을 거냐.” “저놈들 말대로 이건 좋은 방법이 아냐. 일단 돌아가자고. 저놈들은 우리를 맘대로 죽일 수 있어도 우리에게는 저들을 죽일 명분이 없어. 자자 철수합시다. 시체는 당신들이 알아서 치워 주시오.” 에르디는 동료들을 다독이며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대장에게 내려진 명분 없는 사형 선고와 동료의 죽음에 그들은 극도의 분노에 빠졌지만 차마 함부로 덤빌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일까? 그들은 힘 빠진 모습으로 각자 내무반으로 돌아갔다. “…….” 아크는 독방 안에서 들은 총소리와 느낀 죽음의 기운으로 뭔가 사단이 일어난 줄 눈치챘다. “멍청한 녀석들……내가 여기 잡혀오면 무슨 큰일이라도 당할 줄 아는 모양이네. 빌어먹을.” 실수였기는 했지만 아크는 안 죽여도 될 이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 그 교육병을 죽인 것은 그런가 보다 했지만 그 일 때문에 또 다른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그것에 대한 후회가 더 컸다. 내가 왜 내 힘을 완전히 계산하지 못했을까? “끄흐으으으으.” 옆에 있는 두 부하 녀석들은 워낙 심하게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저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이 녀석들에게도 미안했다. 자기 혼자만 가도 됐을 것을 괜히 데려가 이 꼴을 만든 것 아닌가? 소환한 블레싱 소드로 외상 치료를 해 놓기는 했지만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고 또 채찍으로 맞아 찢어진 부분에 무슨 병균이라도 들어갔는지 두 놈 모두 심각한 경련 및 발열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젠장! 질병 치료 마법이 당최 뭐냐고!!! 제길 이런 데에서 아무 일도 못하다니…….” 블레싱 소드에는 분명 질병을 치유하는 상당한 고위급 신성마법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신성마법에는 문외한인 아크로서는 그 마법의 명칭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침이었다. “아침인가? 내 목숨도 이제 하루 남았군……푸! 누가 그딴 거 신경 쓴데? 다 깽판 쳐 놓고 튀면 되지. 제길. 그럼 요 부하놈들은 어쩌냐고요? 고민이다.” 아크는 크게 기지개를 편 다음 같이 갇힌 부하들에게 말했다. “크 아프겠지만 너희도 그만 일어들 나라. 조금이라도 깨어서 빛을 좀 더 보라고.” ……. 응답이 없는 둘. 아크는 그 둘에게서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느낌이 없다는 것을 바로 눈치 챌 수 있었다. “…….” 콱!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난폭하게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런 다음 한참 벽면을 주먹으로 갈겼다. “후우. 후아.” 분노해 봐 봤자다. 어차피 결과적으로 이들을 죽인 원인이 된 것은 아크 그 자신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어두운 밤. 줄지어 이동하는 여러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사령부 쪽을 폭발시킬 테니. 너희들은 무기고를 털어 두라고.” “알았어.” 619 부대의 훈련병들. 그들은 거사 일을 잡고 드디어 실행에 나섰다. 대장을 감금하고 억울하게 동료를 죽인 이들에 대한 복수를. 에르디가 만든 폭약은 사령부와 교육병 내무반 쪽을 폭격하는 데 사용 될 것이고 나머지 이들은 쪽수를 믿고 무기고를 지키는 몇 안 되는 보초병을 없애 무기를 터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나서지 마세요. 제가 저격하겠습니다.” 피리아는 베레타와 또 한 자루의 피스톨을 꺼냈다. 다른 이들에게는 무기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피리아에게는 자기 보호의 목적으로 허락 받은 피스톨 한 자루와 아크에게 받아 비밀리에 감춰 두고 있던 베레타가 있었다. 사격에는 특출 난 실력을 가진 그녀였기에 굳이 말리려 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럼 갈라선다.” 아크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동 덕에 이곳 세르미도에서도 한국판 실미도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리아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비슷한 내용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절대 대장이 있는 그 독방 쪽에 화염병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내가 바보냐?” 한 줄로 사삭 사삭 움직이던 그들은 내무반이 보이는 수풀 속에 자세를 낮춘 채 숨어들었다. “하나, 둘, 셋. 하면 투척하도록 하지.” “이봐? 하나 둘 셋이면 너무 재미없고 식상하잖아. 좀 색다른 걸로 할 수 없냐? 창의력 있게.” “……너 아크 대장 닮아가냐? 뭐 이럴 때 그딴 헛소리야? 이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하면 어때. 그냥 던져 임마.” “조용히! 자 그럼 시작하자.” “하나, 둘, 셋!!!” 훈련병들의 손을 떠난 화염병 및 폭약들은 나무로 만든 내무반 건물에 직격했다. 콰과과광!! 폭발 후. 순식간에 번지는 불. “나이스!” “성공이야!” “자 그럼 이제 무기고 쪽으로 보낸 녀석들하고 합류하자.” 폭격이 성공하자, 훈련병들은 무기고 쪽으로 갔던 이들과 합류하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내무반과 사령부실이 불에 타면서 내비치는 불빛에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은 하나같이 군복과 무기를 갖춘 채 훈련병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 “흠 역시 예상대로군.” “큭! 제기랄!” “어차피 씻지 못할 죄를 범하고 온 놈들. 살 기회를 주려 이렇게 모아 놓고 훈련시킨 것인데……이제는 국왕폐하께 반역까지 꾀하다니. 죽어라.” 타다다당! 타당! 타당! “아무도 없는데?” “……!” 한편 무기고로 간 이들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문까지 열려 있어.” “일단 들어가 보죠.” 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 불빛을 킨 훈련병들. “……! 뭐야? 무기가 하나도 없잖아?” “제길. 당했다.” “뭔 소리야?” “빨랑 저쪽으로 간 놈들 데려와! 아무래도 말렸어.” “무슨…….” 콰과과광! 거대한 폭음이 들리고 섬 전체가 환해졌다. “저쪽은 성공한 모양인…….” 타다다당! 타당! 타당! “……!” “이런 병신 자식들!!!” 소드 마스터가 됨으로써 오감이 상당히 발달한 아크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완전히 병신 짓거리였다. 인원수도 만만한데다 밤에 급습을 한다는 작전이 완벽히 간파 당한 상태라 그야말로 불구덩이에 뛰어 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보들……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나…….” 아크로서는 부하들이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자신을 구하려 하는 것이 별반 반갑지가 않았다. 어차피 지금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수만의 군대나 수십명의 소드 익스퍼트 급의 기사들이 몰려오지 않는 이상으로는 마음만 먹으면 죽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고작 사형 선고 하나 받은 거 가지고 저 난리를 피우다니……. 타다다당! 타당! 타당! “……! 벌써 시작 됐나? 이런 제기랄! 피리아는? 에르디. 가스통! 네트만! 이 자식들이 정말!” 아크는 팔을 펴 자신을 속박하던 밧줄을 풀어버린 뒤 주먹으로 나무 벽을 가격했다. 물론 벽은 아주 쉽사리 박살났다. “읏!” 옆에 있던 건물인 사령부와 교육병 내무반에서는 엄청난 불길이 솟아 오르고 있었다. 그 열기 덕에 아크는 잠시 주춤거렸다.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를 소환해 블레싱 소드, 프로즌 아이스 이 두 칼을 등뒤에 교차해서 짊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연병장으로 뛰어내려갔다. 연병장 쪽에서는 불을 뿜는 총들과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망할……지구에 실미도하고 똑같이 되 버리면 어떡하냐……!!!” “적이다!” 아크는 뛰어내리면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한 교육병의 턱을 그대로 차 버렸다. 이 발차기를 맞은 병사의 턱은 목과 같이 끊어져 날아가 버렸다. 스르릉! 찰칵! 찰칵! “저자가 바로 그 소드 익스퍼트 인가 보군.” 카시아스 백작 뒤에 있던 갑옷을 입은 세 기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병사들도 새로이 총알을 장전했다. 하지만 아크는 그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신성 마법을 시전했다. “힐링 필드!” 아크가 있던 주변에 신성의 영역이 펼쳐지며 총을 맞은 채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훈련병 부하들의 상처가 아물어 들어갔다. 그런 다음 아크는 기척을 숨겼던 자신의 마나를 개방시켰다. “……!” “저, 저 정도 신성력이라니!” 문득 카시아스 백작은 619 부대 인적 사항 중에 아크의 이력서가 떠올랐다. 중도의 몽크 일 지도 모른다란 이력서. 아크가 뿜어대는 신성력에 주변 모든 이들은 그 은은한 느낌에 취해갔다. ‘저런 자가 진정 아동을 성추행하고 여럿을 죽였다는 변태 살인마란 말인가?’ 마치 천사라도 강림한 듯한 아크의 분위기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인은 겨우 한 건 저질렀지만 희대의 살인마라는 소문이 퍼진 이가 맞는지 정녕 의심스러웠다. 아크 마나의 원천인 블레싱 소드. 그것으로 쌓인 신성의 마나는 주신을 믿는 이들의 적의를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한 기사가 정신을 차렸는지 아크에 대한 전의를 새삼 일깨웠다. “진정해라! 저 자는 단순히 우리가 상대해야 할 죄수일 뿐이다!” 카시아스 백작은 아크를 향해 말했다. “그 정도 신성력을 지닐 정도라면 마음도 선할 테지. 순순히 항복하는 것이 좋다.” “삽질하네. 항복하면 죽고 싸우면 이길 상황에서 누가 미쳤다고 항복이냐?” 아크는 왼손으로 남겨 뒀었던 프로즌 아이스를 뽑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양손에는 금빛과 은빛을 내뿜는 두 자루의 검이 쥐어졌다. “쏴라! 변변찮은 갑옷도 없는 녀석이다!” 탕 타당 탕 타다다당! 아크를 향해 소총들이 불을 뿜으며 총알을 내뿜었다. “바보짓거리.” 팅 티딩 팅 팅팅 아크의 몸에 닿은 총알들은 모두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총알 들 중 몇몇은 그것을 쏜 병사들을 맞추었다. 아크는 옆에 쓰러져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몇몇은 이미 뇌수를 흘리고 죽어 있었지만 살아 남아 있는 놈들도 있었다. “아이스 아머!” 아크는 그들에게 마법으로 만들어 낸 얼음 갑옷을 입혔다. 그런 다음 프로즌 아이스를 치켜세운 뒤 크게 외쳤다. “아이스 스톰!” 아크의 음성에 프로즌 아이스는 아크의 마나를 흡수해 그것을 이용 7서클의 전체 공격 빙한 마법 아이스 스톰을 발동시켰다. “끄아아아악!” “아악!” 예리한 얼음조각들은 소용돌이치며 인간의 연약한 살갗을 마구 난타해가며 유린했다. 얼음의 폭풍이 싸늘한 한기를 남기고 잦아들자, 해안가에는 온몸에 얼음조각이 꽂힌 채 피를 흘리면서도 온몸이 얼어서 넘어지지 조차 못하는 꼿꼿이 선 시체들이 즐비했다. “기왕 죽이는 거. 한 번에 끝내버리는 게 낫겠지. 환생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터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마시오.” 마법 한 방에 끝나 버리자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아크는 전장에서 몸을 돌렸다. 무기고를 털러 갔던 훈련병들과 아이스 아머 덕분에 얼음 폭풍의 전장 속에서 무사했던 화염 투척 훈련병들은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멍청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피리아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조심해요!!!” “……!” 챙! 아크는 피리아의 외침에 급히 뒤를 돌아 프로즌 아이스로 기사의 검격을 받아냈다. “쳇!” 검을 뒤로 뺀 채 아크와 거리를 두는 기사. 냉기를 뿜어대던 하얀 연기가 다 걷히자 아직 살아 있는 카시아스 백작 외 세 명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오러 아머 따위를 쓴 건가? 갑옷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제길 마검사였나? 하지만 이 정도 마법을 쓸 수 있는 검사는 캘더린의 세실 엔테른 밖에는 없다고 들었는데?” “여기 하나 또 있지 않나?” “대단하군. 대단해. 하지만 이 정도 강력한 마법은 기껏해야 한 두 번이 고작일 터. 이제 죽어라!” “……지레 짐작 하기는. 못 믿겠다면 한 번 더 보여 주도록 하지. 아이스 스톰!” “이, 이럴 수가!” 또 한 번의 거대한 얼음 폭풍이 기사들을 덮쳤다. “큭! 크아아악!” 이번 마법의 여파에 기사들은 다행히도 무사하긴 했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낭패한 모습이었다. 옷가지는 다 찢어지고 갑옷 여기저기가 움폭 패였으며 추위에 콧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기왕 며칠 쉴 거 불태워 드리지요......이번 편은 용량도 많습니다. 좀 쉬자고요!!!!!!! 아 9월 16일 전국 모의고사가 참 걸리네에에......(10일 동안 연중한다는 소리로 알아들으시면 낭패. 9월 20일 마감이라 그 전 까지는 다 올려놓고 9월 21일 쯤에 출판삭제 해야 함 한 마디로 지금 좃빠지게 쓰고 있는 중이니 너무 압박을 주지 말라는 얘깁니다.) 리플 답변 일이 꼬일려고 작정했나? 맞습니다. 일이 꼬이고 꼬이고 자꾸 꼬이고 더럽게 꼬이죠. 결정판에 아크는 희대의 연쇄살인마 + 아동 성추행 범이 될 겁니다. 아니 더 심해지겠죠. 총에 대해서 총기류 같은 경우에는 어떠한 건지는 비밀입니다. 지금의 총기설정에 대한 비밀은 5권 초반부에 밝혀집니다. 리플을 뒤져 보시면 제가 답을 달아 놓은 것이 있는데 그 답을 여기다는 쓰지 않으렵니다. 결정적으로 아무리 고증을 거치고 백과사전을 찾아도 총기와는 별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제가 말하는 총기에 대한 설정은 어설플 수 있습니다. ‘오오? 이렇게 마법 쓰고 노는 것도 좀 재밌네? 쉽게 죽을 놈들도 아니니 좀 더 가지고 놀아볼까?’ “아이스 스톰!” “또?!” 기사들은 기겁하며 아이스 스톰의 반경범위에서 벗어나려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으아아아악!” “호? 마나가 없을 때는 몰랐는데 마나도 충분하겠다. 이런 거 100번은 족히 써도 별 문제가 없겠는데?” 그렇게 아크가 마법의 위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한 기사가 그 폭풍 속을 뚫고 나와 아크에게 기습을 가했다. “어라?” 아크는 급히 허리를 비틀며 기사의 검을 피해냈다. 그런 다음 조금 여유를 찾은 아크는 또 다른 마법을 발동했다. “아이스 랜스!” 고드름처럼 가늘고 기다란 물의 결정체가 아크를 공격한 기사에게 날아갔다. 기사는 검으로 아이스 랜스를 4등분하여 위력을 줄인 다음 방어 마법이 걸린 마법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이것도 막아보시지?” “……!” 수 십개의 얼음의 창이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몇 개는 피하고 몇 개는 파괴했지만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세 번의 아이스 스톰으로 갑옷을 강화시키는 데에 사용해야 할 마나가 바닥나 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아이스 랜스를 유도한 채 아크에게로 돌진해왔다. 푸슉, 푸슈슉, 푸슉! 여러 번 단단히 제련된 강철을 가볍게 뚫어 버리는 물의 고체화 결정체는 그 안에 감싸고 있던 인간의 연약한 육신은 꼬치처럼 꿰어 버렸다. 피를 쏟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기사는 길동무의 최후를 보기 위해 의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아다다다다다!” 아크는 태어나게(?)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효 막심(?)한 아이스 랜스의 얼음 창에게 하나 하나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자 그 얼음창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난 채 바닥에 떨어져 달빛을 반사하며 서서히 녹아 스며 들어갔다. “하악!” 그것이 못내 원통한지 그 기사는 눈도 못 감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원래 이렇게 죽으면 눈을 감겨 주는 것이 옳겠지만. 선택의 대가는 당신이 짊어 지는 것이오.” 아크는 세 방의 아이스 스톰을 고스란히 얻어맞은 남은 세 명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이미 온 몸에 얼음이 박힌 채 추한 모습의 동상이 되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와 카시아스 백작은 땅바닥에 칼을 꽂은 채 그것에 기대어 간신히 서 있으면서 숨을 헉헉거리며 가쁘게 내쉬었다. “휴우.” 아크는 한 얼음 조각 박힌 인간 동상(?)의 손에서 권총을 빼 내어 남은 둘의 미간에 겨누었다. 여기서 아크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 저항할 힘 마저 없는 데다 이들은 비록 아크와 훈련병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기는 했지만 악인이 아닌 단지 의무에 충실한 이들일 뿐이었다. 이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아크는 분명 귀족 영애 성추행 죄 및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이고 이들은 그런 아크를 처단하기 위한 임무를 받은 이들이었다. 그런데 살인자 사형수가 자신의 생명을 지킨답시고 망나니를 학살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다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세계의 사회적 관점으로 본 것이라, 아크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그가 이 세계를 바꾸지 못하는 이상. 아크는 이쪽 세계에 자신을 맞춰 놓아야 했다. ‘어차피 교육병 놈들도 싸그리 죽여 놨겠다. 이제 훈련병 녀석들은 전부 진짜 내 부하가 된 것이기도 할 테니 부하가 한 둘 쯤 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이봐 너희들. 이대로 죽을래.”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얘기가 있어. 지금 니들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너희는 살지 못해. 카시아스 백작. 마법 통신구로 맨날 연락하던 딸내미는 어떡할거야? 그렇게 사랑하는 딸내미. 당신 죽고 가세가 기울어 어느 유력한 늙은이 귀족 첩실로 들어가게 될지 어떻게 아냐고? 그리고 당신들 무인이지? 더 높은 경지를 보고 싶지 않아?” “지금 우리를 회유하는 것인가?” “잘 알아듣는군.” “우리는 기사다. 그런…….” “하이고? 고놈의 기사? 자네들은 지금 여기서 죽은 다음에 나중에 그걸 알게 된 고위층들이 자네들을 명예로운 기사도를 지키다 죽은 진짜 기사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고작 훈련병들 하나 못 잡아서 죽은 머저리들로 생각할까? 답은 뻐언 하지. 그리고 난 충성을 맹세 받고자 하는 것이 아냐. 너희들의 생명을 구제해 주기 위함이지. 어때?” “그럴 순 없…….” 탕! “……!” 카시아스 백작의 옆에 있던 기사의 미간이 뚫리며 뇌에 일부분이 날아갔다. 죽고 싶다는 데 굳이 살려줄 필요는 없었다. 멍청하게 적을 살려두었다 뒤통수를 맞은 적이 있는 아크로서는 이 문제에만큼은 민감했다. ‘복수를 못 하게 아주 병신을 만들어 놓거나, 그렇지 않으면 동료로 만들어라.’ 영화 속 대사가 자꾸만 아크의 머릿속에 울렸다. “당신은? 웬만하면 살려 줄 생각인데. 계속 이러면 재미없어.” “크흠……좋다. 협력하겠다.” “좋아. 이봐 너희들 어서 내려와서 여기 시체들 치워!” 아크는 얼음쇼(?) 관람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훈련병들은 그제야 뛰어나와 얼음 동상들을 치워갔다. “후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아크는 비정상적으로 강해 졌다. 검법은 터득하지 못했지만 마나를 다루는 법은 완전히 익혀 검술이나 격투술 모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한 강자가 되었고 블레싱 소드로 인한 신성력으로 성직자 계열의 최고 클래스인 ‘하이 프리스트’ 급 이상이 되었으며 프로즌 아이스로 인하여 7서클 마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빙한계 마법에서는 드래곤 외에 따라올 자가 없는 대 마법사 급. 그것도 캐스팅도 생략하는 마법이라 가히 드래곤의 용언과 필적하게 되었다. ‘그냥 확 여기서부터 반란이나 일으켜 왕이나 해 먹을까? 왕이면 하렘은 기본이고 루드비안 제국이라는 넓직한 곳에서 국가 발전이나 하면서 살 수 있지…….’ 그러나 이 경우 아무리 아크가 일당백이라고는 해도 고작 약 30명만으로 거대한 제국과 맞서 싸웠을 경우 승산은 소수점으로 내려간다. 더구나 루드비안 제국에는 루벤드 그레드릭이란 걸출한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국가였기에 그를 꺾지 못하는 이상 반란은 불가능했다. “다 치웠습니다. 대장.” “음 아 수고했다. 다들 여기로 집합시켜라.” 곧 피로 얼룩진 연병장 부지에 훈련병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오늘 부로 이 619 부대는 내가 접수하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해산령도 내리겠다. 비록 쫓기는 몸이 되긴 하겠지만 너희들은 이제 자유다. 이 섬에 남든지 제국으로 돌아가던지 다른 나라로 도망치던지는 스스로 결정해라. 약 1년 간 받았던 이곳에서의 훈련으로 너희는 어딜 가나 1급 용병은 될 만한 실력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 “대장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설마 이제 각자 찢어지자고요?” “그래.” “싫습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장을 따르겠습니다.” “못 갑니다. 살아도 같이 살자고요.” “뭐야?” “제발 데리고 가주십시오. 대장!” “저도요.” 훈련병들은 너나 나나 모두 필사적이었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성을 나가 봐야 죄만 더 커진 도망자 신세가 될 것은 뻔했다. 살아 남으려면 앞에서 보았듯이 혼자서 수 십명을 쓸어버리는 아크 같은 실력자 밑에서 부하 노릇이나 계속하는 것이 나았다. 아크는 아크대로 이놈들을 떼어 놔야 했다. 이렇게 딸린 군식구가 많으면 모든 행동을 하기에 앞서 이놈들을 모두 챙겨야 하지 않는가? 특히 미소녀도 아닌 이런 땀내 나는 놈들 데리고 다니고픈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어디선가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피리아가 부르는 것이었는데 모두들 생소한 노래에 알 수 없는 가사였지만 아크는 그 노래를 듣고 차마 혼자 떠날 수가 없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이 여자가! 내 걸 표절하고 앉았어! 썅!’ “크……그래 좋다. 하지만 이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면 더 의심 산다는 거 몰라? 뭐 할래 이렇게 단체로? 해적이라도 할……야 그래 해적이나 하자. 좀 작긴 하지만 배도 있으니 아무 큰배나 하나 털어서 해적이나 하자고, 귀족들이 놀러 다니는 초호화 유람선만 털어서 서민들한테 나눠주는. 어때?” “…….” “이의 없겠지.” “대장. 정말 우리가 해적질을 해야 합니까?” “얌마. 산적질에 살인 강도는 다 해본 녀석들이 새삼 그게 무슨 소리야? 물론 먹고살려고 그 짓거리 한 것은 이해한다만 한 1년 군인이었다고 니들이 완전히 개과 천선했냐? 가스통! 넌 해적이었다며? 그게 아니면 곧 토벌군이 몰려오거나 할 텐데. 이 인원으로 뭐 할래? 수도로 진격해서 전부 총 맞아 죽을래?” “…….” “이제 이 섬의 물자란 물자는 싹 빼돌려 논다. 무기 하고 식량 잘 챙겨놔 그런 다음 섬 전체에 불을 질러라. 알았나?” “아……여기도 이제 정들 었는 데 불까지.” “닥치고 질러! 이 냄새 대마왕아!” “자 알 탄다. 어이 거기 노 빨리 안 저어?” “대, 대장도 좀…….” 퍽! “얌마 선장이 노 젓는 거 봤냐? 노래 시작!” “에헤야~ 노를 저어라. 에헤야 에헤야 닻을 올려라.” 불길이 치솟는 섬을 뒤로하고 각종 무기와 식량 그리고 사람을 실은 여섯 대의 조각배가 드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너무 빨리 가는 거 아닙니까? 아직 이 섬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도 알려지지 않았고 토벌대가 편성된다 해도 한 수 십일은 족히 걸릴텐데요? 거기다 제 경험 상 얼마 안 가 폭풍우 따위가 닥칠 것 같은데……지금의 항해는 좀 위험합니다.” ‘……(뜨끔!)’ “아 아하하하 이 자식! 그냥 닥치고 가!” 딱! ‘나 뭔가 숨기고 있소’라는 표정을 짓는 아크. 몇몇은 그것을 수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노 젓는 데 바빠 별 신경을 쓰지는 못했다. 그런 의심의 눈초리를 애써 외면한 아크는 배 한 쪽 구석에서 머리에 검은 구름이 끼고 쪼그려 앉아 있으며 ‘고귀하신 이 내가 노나 젓게 되다니’라며 좌절 모드에 빠져 있는 카시아스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카시아스. 해적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지?” “동남부로 계속 가다 보면 해적들의 소굴인 테르마인이라는 섬에 도착할 수 있소. 하지만 최근 제국 최대의 거대 영지 티스버그 영지의 칸딘스키 공작이 테르마인을 정벌했다고 하더군.” “흠 그래? 그럼 우리가 재 정벌하고 아크 해적단 아지트로 삼을까?” “무…….” 무리라고 말하려던 카시아스는 안면에 여유가 넘치는 아크를 보고서는 별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아크란 남자는 판타지 세계의 대표적인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전사, 마법사, 성직자. 이 3클래스를 마스터한 희귀종이었던 것이다. 현재 이 대륙의 최강자들이라 하면 은거한 무신 위진무를 제외하고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팬크라프트의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과 루드비안의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을 최강자로 꼽는다. 이 아랫 단계인 그 다음 강자들로는 소드 마스터들을 꼽는데 아크와 로니 그리고 과거 4대 강국이었던 하인델의 비밀 소드 마스터 등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제외하면 총 9명의 소드 마스터가 공식 석상에 나와 있는데 이들 간의 검술은 대략 비등비등함에도 그들 중 가장 우위에 그랜드 마스터와 겨루어도 쉽게 지지 않는 두 명을 따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23세란 나이로 교황 친위 성기사단장이 된 신성 기사 화이트 로리엔과 소드 마스터이자 6서클의 마법을 마스터한 캘더린의 제 1기사 세실 엔테른 이었다. 이 둘이 소드 마스터 중 우위를 점한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각각 검 외에 마법과 신성력이라는 것들을 마스터하여 보통 소드 마스터들을 가볍게 압도하는 능력 덕분이었다. 하물며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라는 아이템의 덕이 크긴 해도 검, 마법, 신성력이라는 삼위일체를 마스터 한 아크는 대륙의 세 번째 강자라 불려 마땅하지 않은가? ‘어째서 이 정도의 강자가 이런 기이한 사건들을 자꾸만 일으키며 난리를 피우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어느 국가에 임관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은거하려는 모양새도 아니지 않은가.’ 뚝, 뚜둑 “으음?” 이슬처럼 떨어져 맺히며 옷가지와 먼지 찬 배에 물방울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거……?” 하늘에는 시꺼먼 구름 떼가 몰려 있었다. “아무래도 항해 날을 잘못 잡은 거 같은데요? 파도도 조금씩 거세지고 하는 것이 어째 영…….” 확실히 현재 날씨는 폭풍우가 몰아 치기 전에 폭풍 전야라고 하면 딱 맞을 정도였다. 그렇게 모두의 얼굴에 근심과 걱정이 어릴 때. 아크의 입가에는 ‘씨익’하고 미소가 걸렸다. “훗. 후후후후! 대자연은 도전하는 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법! 폭풍! 오라고 해! 그 따위 폭풍 정면으로 돌파해 인류의 힘과 도전 정신을 대자연에게 똑똑히 각인 시켜 주도록 하자! 나를 따르라.” 노를 높이 들어 구름 낀 하늘을 가리키는 아크. 완전히 헛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그의 통솔에 훈련병들은 하나 둘 씩 현혹되어 아크와 같이 노를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가자 대자연으로!” 아크의 궤변에 말려 들어간 우리 단순한 훈련병들. “사이코한테 말려든 바보들…….” 누군가가 그들에게 딱 맞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본편을 올리기에 앞서...... 나쁜 소식 하나. 연재 중단 결정이라네요... 후우 뭐 이유는 예전에도 우는 소리 했듯이 불펌문제 및 판매부수의 감소추세입니다. 지금 유조아 메인 타이틀 화면을 보셔도 알겠지만 파피루스 광고 배너에서 에볼루션은 고작 8일 개제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권왕무적이나 강철의 열제가 워낙 강력한 타이틀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속내를 따져 보면 판매량이 그럭저럭인 것보다는 확실한 거물들에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겠지요. 그래도 145회에서 끊어버리라는 것을 4권까지는 다 끝내죠 로 4권 분량 연재는 다 할 수 있고, 맛보기로 5권 분량도 올리면 안되겠냐고 사정해서 5권 분량 초중반부 까지는 연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한 165화를 기점으로 하지 않을까 합니다. 더 끌어보고는 싶었으나...조기종결의 무서움에 굴복해 버렸습니다. 연재는 계속 하고 싶은데... 글을 위해서는 접어야 하고...이 게시판을 잃는 것이 저로서는 매우 두렵습니다. 때문에 이전부터 기획해 온 비출판 외전을 연재가 중단된 후 해 보려 합니다. 몇 가지 기획안이 있는데요. 다는 무리입니다. 현재 지금 이 에볼루션과 미연시 소설까지 두 개를 쓰고 있는데 세 개 까지는 미연시를 접어가면서라도 할 수는 있지만 네 작품 동시 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첫번째 방안은 지금의 아크란 캐릭터의 무림기행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 글을 쓸때 무협으로 할지 판타지로 할 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이코 폐인+ 변태라는 이 캐릭터 상당히 매력적인 요소로 무협이나 판타지 모두에서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만 무협은 ...한자에 문외한인지라 일단은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쓸 것을 새로운 사이코 폐인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것보다는 지금의 아크란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 나온 방안입니다. 두번째는 서브 주인공인 아크라우스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금 후속작으로 기획해 놓은 게임소설의 초석을 까는 스토리로 아크라우스의 지구 유희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무림 쪽에서 부터 시작해 현세까지 그리고 판타지 계로 넘어간 이들의 서브 스토리까지. 그리고 본편에 궁금증을 풀어주는 그러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은 두 가지를 합친 것입니다. 아크도 무림에 있고 아크라우스도 무림에 있는 상황이니 위의 두가지를 합친 것으로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연재는 극악이 될 테고... 제가 쓰기도 어렵죠. 게다가 외전급으로 간단히 끝낼 것이 5~6편 가는 장편이 되어버립니다. 후우 뭐 이정도로 하고 밑은 본편입니다. 폭풍우가 언제 지나갔냐는 듯 잔잔히 요동치는 바다에는 환경이 깨끗한 곳이라 없어도 될 해양 쓰레기들이 물길 따라 항해하고 있었다. “대, 대자연은 정말 위대하구나!” 아크는 뒤집혀진 배 밑둥에 올라타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아크가 섬에서의 대 학살극이 있자 마자 바로 배를 몰아 바다로 나온 이유는 폭풍을 일부러 맞기 위해서였다. 거머리 같은 부하들을 떼 놓기 위해서 어느 정도 연극을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폭풍우가 덮칠 때. 아크는 난파된 배 덕분에 바다에 빠진 서른 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이름 모를 무인도에 처넣는 노가다를 했다. 프로즌 아이스로 얼음길을 만들고 혈을 찔러 전부 기절을 시켜 놓아 아크의 사악한 의도를 눈치챈 이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아크도 폭풍우와 소용돌이 속에서 그런 노가다를 하기에는 상당한 고충이 겪는 것은 자명했고, 지금의 낭패인 꼴과 ‘위대한 대자연’ 이라는 감탄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읏차!” 아크는 배를 똑바로 돌리고 데려가기로 결정한 동료 둘을 배 위로 올렸다. 그 둘은 피리아와 에르디였는데 피리아 같은 경우는 늑대 소굴에 남겨 둘 수가 없었고 미소녀와의 여행을 선호하는 아크로서는 필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에르디 같은 경우는 여러 잡다한 과학 상식에 능통한 에르디가 어딘가에는 꼭 필요할 것 같았기에 그 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이제야 좀 놀아보겠구나. 나 참 지명 수배자에 살인자, 사형수, 간첩, 안 좋은 건 다 하고 놀았 구만.” 아동 성추행 죄가 빠졌다. 아크는 피리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혈도 제압……. 이렇게 혈을 눌러 상대를 마비시키거나 기절시키면 무슨 짓거리를 한다 해도 깨어나지 못했다. 거기에 물에 젖어 찰싹 달라붙은 옷……. 그리고 아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택지. 1. 어차피 모른다. 해(?) 버리자…….(뭘?)2. 안된다. 하지 말자. 3. 욕구불만은 손장난(?)으로……. “1번……에라! 죽어랏! 2번……뭔가 아쉬운데? 3번? 이미 맛(?)을 알아버린 마당에 3번은 싫다.‘ 4. 어차피 검열된다. 적절한 선에서 끝내자. “맞아. 어차피 알아서 다 짤리게 되어 있어. 킥킥킥…… 뭐 별 상관없겠지.” 음흉한 상상중인 아크. 그리고 이 이후 장면은 검열상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폭풍우를 만나서 다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 둘만 구해 냈다. 이겁니까?” “그래.” “흠 폭풍우를 만난 것치고는 꽤나 배하고 물자들이 무사하군요. 노도 딱 잘 맞게 세 개에다 총기에 탄환, 용수와 식량까지. 계획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뜨끔! 에르디의 날카로운 지적에 아크는 바늘로 찔린 듯 뜨끔했다. “아하하 뭐 너희들이 안 깨어나는 동안 내가 노가다 좀 했지.” “나머지 분들은……죽었을까요?” 아크는 이 대목에서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뭐 몇몇은 살아 있겠지. 살아 있다면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전쟁터에서 적보다 무서운 건 멍청한 상관이라더니……대자연 체험 한 번 옹골지게 했구만 그래. 폭풍우 체험 즐거웠습니다. 대장.” ‘저 자식이 교도소 때부터 좀 알았다고 봐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나 보군. 언제 한 번 불알 주름 펴지도록 패 줘야 겠어.’ 아크가 이렇게 벼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에르디는 계속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대장. 이 인원으로 해적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데요?” “무슨 소릴. 네가 최강의 악취 공격만 한다면 해적들도 잘 알아서 배 버리고 도망칠 거다.” “…….” “하지만 이렇게 바다에서만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뭐 중간에 큰 배에 구조를 받거나 해 봐야지. 나침반하고 이 망원경 등을 이용해 보니 남서쪽으로만 계속 항해를 한다면 육지에는 도달할 수 있어. 그 다음부터는 아무 일이나 하면 되지 뭐. 정 안되면 우리 셋 만으로 해적선을 한 대 털자고.” “그게 가능해요?” 의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날 못 믿나. 아니 내 실력을 못 믿어? 굳이 내가 안 나서도 여기 에르디 녀석이 비밀무기를 꺼내기만 해도 해적단 하나쯤은 가뿐하다고.” “에르디 씨가요?” 피리아는 에르디를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최근 엄격한 훈련을 받아가며 조금씩 강함이 무엇인가를 알아 가는 그녀에게 수 십명을 가지고 노는 아크의 존재는 가히 충격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에르디가 해적단 하나를 가뿐히 상대해 낼 수 있다는 말을 듣자. 그의 능력이 궁금해 진 것이다. “그럼 강력하지. 마스터 급인 나도 못 이길 정도로.” “그렇게나요?” 에르디는 경외심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피리아의 눈빛을 받고서는 쓴웃음을 지었다. 강력하긴 하지……. “정말이지 강력해. 특히 그 신 우유에 정……웁!” 에르디는 아크가 최강 악취의 재료를 말하려 하자 급히 아크의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끝냅시다. 대장.” “왜?” “여자 앞에서 그 단어 대기가 뭐하잖습니까!” “뭐가? 알 만한 건 다 알 나이잖아.” “얼마면 되겠습니까?” “얼마?” “흠 아까 한 짓 눈감아 드릴 테니 말하지 마십시오.” “아까 한 짓?” “전 깨어 있었습니다.” 쿠궁! 아크는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떠올려냈다. 물먹고 기절한 상태였었던 에르디에게는 점혈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그래 눈감아 주마. 근데 그게 뭐 쪽 팔리다고 그런 두고두고 내 트집잡을 만한 일을 조건으로 거냐? 그 재료가 뭐 어때서? 아하! 혹시 너? 그런 거였구만?” “엑? 뭐, 뭘 생각하시는 겁니까?” “짜식 분위기가 어째 영 그렇다 싶더니.” “아닙니다.(단호)” 의외로 단호한 에르디의 답변에 아크는 더 이상 추궁할 심산이 들지 않았다. “그래. 뭐 그건 됐다 치고 일단 출항이나 해 보자고.” “여긴 항구가 아닌데요?” 퍽! “대충 살아! 그냥. 뭘 그런 걸 꼼꼼히 따져보고 앉았어. 자아 이제 노나 저어 보자고 출발 울트라 돌고래 호!” 망망 대해. 자그마한 조각배 울트라 돌고래호가 첫 항해를 시작했다. 꾸르르르륵. “지미럴! 고수는 밥 안 먹어도 버텨? 어떤 쉑이 그딴 소릴 했는지 걸리기만 해 봐라.” 넓은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울트라 돌고래호. 수 일동안 누벼도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정된 식량을 아끼기 위해 자칭 ‘고수’인 아크는 별 다른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운기 만으로 버틴다는 것은 순전히 개소리였고 항해가 예상 외로 끝을 보이지 않음으로서 아크는 하염없이 낚싯대의 찌만 바라보는 신세가 되었다. “어이! 거쪽.” ㄱㄷㅇ졏ㄷ “꽝입니다.” “젠장. 이것도 보통 일이 아이구만. 다랑어만 척척 잡아 대던 대물 낚시왕. 석진님이 다 어디로 갔누? 세월 참 처량하다.” 마우스 연타와 실제 낚시를 하는 감이 같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크는 한 때 모 낚시 게임에서 NPC들을 누르고 각종 물고기들을 다 섭렵하던 그 옛날 과거의 영광이 떠올라 애꿎은 낚싯대와 세월만 탓하고 있었다. “좀 잡혀라! 이놈의 생선들아.” 허나 바다는 여전히 고요하기만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여유로이 낚싯대를 잡으니 이것이 신선이지 신선이 따로 있으랴……어떤 쉐리가 이딴 소리를. 생존이 걸린 낚시를 해 봐라.” 계속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아크. 그럼에도 그의 주절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버터풀 야도란 피존투 또가스~.” 아크는 이제는 추억의 노래가 되어 버린 포켓몬스터의 엔딩곡을 흥얼거렸다. 에르디는 아크의 귀에 달린 괴상한 귀마개를 보고서는 그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장!” “…….” 응답이 없다. “대장!” 여전히 아크에게서 응답은 없었다. “야! 이 변태 로리콘 대마왕아!” 홧김에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그 이름’을 얘기해 버린 에르디. 실수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크는 의외로 별 반응이 없었다. “뭐냐? 냄새 대마왕?” “그건 뭡니까? 귀에 단 거.” “궁금하냐?” “예.” “귀에 껴 봐라.” 아크는 에르디가 귀마개라 착각한 이어폰 한 짝을 에르디에게 주었다. “……! 뭡니까? 이건.” “따라 불러봐.”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부기…….” 한국의 언어라 불안전하기는 했지만 에르디는 포켓몬스터 엔딩곡을 잘 따라 불렀다. 그리고 그런 아크와 에르디를 본 피리아는 어이가 없었다. ‘저건 그때 그 MP잖아? 세상에 아직도 저 음악을 안 바꿨어? 독하다 정말.’ 석진(아크)은 애니 및 게임, 프로레슬링에 푹 빠진 폐인답게 프로 레슬러 등장 테마음악이나 게임 속 전투 음악, 그리고 애니메이션 엔딩과 오프닝 음악만 MP속에 넣고 다녔다. 거기다 MP 용량이 충분해서 인지 어째서인지는 잘 몰라도 그 속에 든 음악을 죽어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도 30년 동안 이라니……피리아는 새삼 아크의 정신 상태를 재인식했다. 그때 아크의 찌가 움찔거렸다. 움찔! “……!” “왔다.” 아크는 낚싯대를 잡아끌었다. 생선의 힘이 제법 대단하긴 했지만 무슨 몇 천년 묶은 영물도 아닌 보통 물고기가 인간들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한 아크를 뛰어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월척이닷!” “우왓!” 족히 60cm는 되어 보이는 방추형의 등이 푸른 물고기. “다랑언가?” “아뇨 레피스라고 하는 물고기로 맛이 좋아서 식용으로 주 사용 하지만 산란기의 암놈은 맹독을 지니고 있어서 먹을 경우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레피스?” 생소한 이름이지만 지구에는 없는 생선일 수도 있고, 여기서는 이름을 다르게 부를 수도 있고, 워낙 많은 어종이 있어 모르고 있을 수도 있기에, 아크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럼 빨리 거시길(?)찾아 봐. 튀어나왔는지(?) 구멍(?)만 있는지.” 그걸(?) 또 열심히 찾는 에르디였다. “글쎄요? 안 보이는데? 자극(?)시켜 볼까요?” “됐어. 배 갈라서 알 보이면 안 먹으면 되지. 설사 독이라고 해도 해독마법이 있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자! 그럼 오랜만에 이 녀석으로 회를 쳐 볼까?” 아크는 마법 배낭을 불러와 인위적으로 만든 차원간의 문을 열어 회칼을 꺼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시미는 때깔 나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저게 그…….’ “좋아! 오랜만에 시체 해체나 해 볼까?” 숲 속 조난시절. 오크와 몇몇 짐승들 육회로 만들었던 그 사시미가 오늘 그 본연의 임무인 생선회를 뜨기 위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출력해 놓은 지식 사전에서 대략의 회뜨는 법을 암기한 아크는 그 지식 정보 대로 이 가엾은 물고기의 미끈하고 촉촉이 젖은 몸을 완전히 유린했다. 몸이 완전 분해된 채 아가미를 들석거리며 입만 뻥긋거리는 이 가엾은 물고기의 최후를 뒤로하고 울트라 돌핀 1호의 선원들은 해체된 물고기의 몸뚱아리를 손으로 하나씩 집어갔다. “초장! 초장도 있어야 겠지. 술도 있으면 더 좋고.” 아크는 고추장과 식초를 꺼내어 초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는 30년 숙성된 페트병 소주를 꺼냈다. 시간이 지나지 않는 차원에서의 음식물이라 발효가 되거나 썩지는 않지만 말이다. “별 게 다 들어있네요?” “아크라우스가 원래 할 일이 좀 없는 놈이야.” “잔은요?” “그냥 그릇으로 마시던지 입 대고 마셔. 자 한 잔 씩 하자고. 이런 재미도 없으면 뱃사람은 누가 해?” 소주를 대접에 부어 나눠 주는 아크. 피리아는 이걸 어떻게 다 마시냐고 불평을 했지만 소주의 강도를 모르던 에르디는 정말로 술 한 사발을 다 들이켜 버렸다. “요? 잘 마시는데? 한잔 더!” “크 죽이는군. 대장도 한 잔 받으쇼.” “어이 피리아 빨리 마셔.” “안주도 쥑이는구만.” 그렇게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울트라 돌고래호의 선원들. 어느덧 그 많던 살조각들이 다 사라지고 아가미가 더 이상 들썩거리지 않을 즈음. 아크는 술을 깨기 위해 풀어두고 마셨던 블레싱 소드를 잡았다. “으…… 골 아파. 에휴. 너무 많이 퍼 먹였나? 요놈들 완전히 제정신들이 아닌 걸?” 아크는 에르디가 담근 술을 여전히 주고 받으며 술판을 계속하는 부하 둘을 바라보았다. “어이. 그만들 마시라고. 과음은 몸에 안 좋아.” “석진 씨.” “우웁!” 갑작스런 피리아의 태클 + 포옹에 아크는 뒤로 넘어졌다. 덕분에 아크와 피리아는 묘한 자세로 있게 되었다. “이봐요. 석진 씨.” “윽! 왜?” “로니하고 리엔느가 누구야?” “엑?” 아크는 크게 놀랐다. 아니 왜 피리아가 로니와 리엔느를 알고 있단 말인가? 그건 말해 준 적도 없는데? “그건 어떻게……?” “당신이 내 옆에서 잘 때 맨날 그 소리하면서 나 더듬어 대잖아! 로니 누님 하면서 가슴 만지고 리엔느 하면서 하반신 더듬고.” ‘커헉! 나도 모르게 이 손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변태의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깨어 있을 때는 억압된 변태의 끼가 잠꼬대라는 매개체로 구현된. “그, 그럴 수도 있지!” 비겁한 자기 변명이었다. 그럴 수도 있기는 무슨. “난. 그거 뭐라고 한 적 없어.” “그럼 뭐야?” “왜 내 이름은 안 불러 주는데?” “에에?” “당신 여기 오기 전에 내가 당신 마음에 뒀다는 거 알았어? 몰랐어?” ‘……! 호오라? 역시 그랬군. 어째 낌새가 이상하다 하긴 했지만. 그때 신경을 좀 더 써줬어야 했나? 아! 그리고 그나저나 이젠 정말 하렘왕이 되는 일만 남았군 그래.’ 수아(피리아)가 죽은 날은 아크가 이쪽 세계로 오기 반 년 전쯤인 2월 달의 14일 이었다. 석진 같은 경우 학교도 남학교만 다녔고, 학창시절 여자와는 별 관련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발렌타인 데이 등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수아의 전화도 ‘귀찮아’로 일관하다가 그럼 ‘밥 사줄게요’ 에 마지못해 나가 기다리다가 바람맞고 신학기가 시작되어서야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자신을 부른 이유가 단순히 ‘밥’인 줄 알았지 초콜릿 따위를 주려 하는 지에 대해서는 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고 애초부터 수아를 말 좀 통하고 괴짜짓에 발끈하는 게 귀여운 정도로만 생각했기에 그녀의 속내나 죽음에 큰 의미를 둔 건 아니었다. ‘쩝 취중진담이라더니……일단 재우자.’ 아크는 혈도를 눌러 그녀를 재웠다. “크으 쩝. 이젠 저 녀석인가?” 아크는 혼자서 계속 술을 들이키는 에르디 마저 잠재우기 위해 에르디의 뒤로 다가갔다. “어이 대장. 나 아직 안 취했어.” “뭐?” “아까 피리아 양과 찐한 대화를 나누던데. 말투로 보니 이전에 알고 지내던 사이였소?” “에……뭐 그랬지.” “대장. 당신이란 삶 말야. 도대체 뭐 하다 이 꼬락서니가 된 거야? 그만한 실력에 진짜 아동 성추행이나 하고 다녔어?” 아크는 아동성추행이란 말에 발끈한 뻔한 성질 머리를 간신히 제어했다. ‘그나저나 이것들이 단체로 말을 놓네? 하긴 어차피 섬에서나 대장이었지 여기서까지 그렇게 주장하긴 좀 뭐하지. 저놈들이 따르겠다고는 했지만 뭐.’ “뭐 하고 다녔을 거 같나?” “글세. 그것마저 짐작 불가야. 도대체…….” “내 과거사가 듣고 싶나?” 끄덕 “어차피 한 때 야설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던 나니까 해줘도 별 상관 없겠지.” 아크의 이야기를 다 들은 에르디는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고서는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냄새 대마왕 씨 과거사도 들어 보실까?” “나?” “그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연금술의 기본 등가교환! 사람은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지. 내가 보기엔 에르디 네가 더 사연이 많을 것 같아 보이는데? 안 그래?” “후우.” 에르디는 크게 한숨을 쉬며 술 한 잔을 더 들이켰다. “내가 대장과 같이 그 교도소 특별 감옥에 있었던 이유는 연쇄 살인 때문이었지.” “뭣? 연쇄살인?” “정확히는 대량 학살이 맞겠지…….” 에르디는 말끝을 흐리며 술잔으로 쓰고 있는 대접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던 그는 품안 깊숙한 곳에서 괴상한 빛깔의 액체가 든 입구가 막힌 시험관을 꺼냈다. “이게 무언지 아시오?” “악취 나는 액체겠지.” “……! 그걸 어떻게? 아, 아 맞아. 제 3의 악취를 목격했었지. 이건 가장 무서운 제 1악취지.” “지독하겠군.” “엄청 지독하지.” 에르디는 액체가 든 시험관을 도로 숨겨두었다. “우리 게이레로 가는 몰락 귀족 가문이지. 영지도 없는. 하지만 가전으로 내려오는 화학 약품 제조술만은 타의 추종울 불허했고 그 중 최악의 살상력을 자랑하는 약품을 제국의 재력가인 레이필드 공작이 구입해 갔었지.” 레이필드 공작. 아크는 그 이름을 듣자 마자 뭔가 떠오른 것이 있었다. “자, 잠깐 레이필드 공작의 풀 네임이 뭔지 들을 수 있을까?” “존 브래드쇼.” OTL←아크의 현재 기분을 이모티콘 및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한 마디로 좌절.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공작? JBL?, JBL?히히히히.’ “레이필드 공작은 우리 가문에서 사간 약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어. 그리고는 그 증거를 없애기 위해 우리 가문까지 멸문시켜 버렸고, 기사 수행을 하던 나는 내가 개발한 최강의 악취를 들고 레이필드 가 저택으로 쳐들어 가 이 약을 뿌렸다. 결과는 레이필드 가 하인들이 무려 16명이 죽었지.” ‘도대체 무슨 냄새길래???’ 16명이나 사망할 정도라면 그건 악취가 아니라 독가스라고 봐야 옳았다. “호기심 갖지 마쇼. 대장. 죽는 수가 있어.” “주, 죽어?” “후아 감정이 북받쳐서 말 좀 놨소. 대장. 쪼잔하게 이거 가지고 패지는 않을 테지.” “그럴 리가. 자 너도 참 인생이 개판이구나. 술이나 한 잔 더 마시자.” “거 좋지.” 곧 잔과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는 낚시질. “은거해서 하염없이 낚시하는 강자아의 심정으로 있으면 못 버틸 것도 없도다! 지루함이야말로 낚시의 참맛이 아니겠느뇨? 하하하하하!” “…….” 에르디와 피리아는 ‘드디어 미쳤군’이란 표정으로 뭐가 그리 신나서 웃는 지 모를 아크를 흘겨보았다. “대장님. 그렇게 신나서 웃고 떠들시간 있으면 대장님이 그 강력함으로 고래라도 잡아 보시라고요.” “그래요 배고픕니다 대자아앙!” “이런 쯔쯔쯔 이 정도 배고픔을 못 참아서야 어찌 진정한 대한 건아라 할 수 있겠나?” 바로 태클 들어오는 아크의 대사. “전 여자에요.” “대한 건아가 뭡니까?” “…….” 그랬다. 대한 건아는 이 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이다. 뜻밖에 태클에 기가 죽어 버린 아크를 뒤로 하고 피리아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낚싯대의 찌만 바라보는 신세를 속으로 한탄했다. 움찔! “아!” 피리아의 낚시찌가 움찔 했다. “걸렸어요!” 피리아가 낚싯대를 잡아 당기자 미끼를 물은 희생물이 물 속에서 승천해 나왔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 희생물은 몸은 길어도 먹잘 것이 없이 가늘었다. 피리아의 외침에 점심밥 생겼다고 좋아하려던 아크와 에르디는 희생물의 크기를 보고서는 곧 실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뱀장어냐? “먹을 것도 없겠네.” “그낭 놔 줘.” “꺄아!” 갑작스런 피리아의 비명소리. “뭔 일 이……헉! 뱀?” 피리아의 바지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장어로 보이는 수중 생물은 놀랍게도 뱀이었다. “뱀? 이, 이것좀 어떻게 빼 줘요!! 뱀 싫어!!” “어? 아! 응.” 아크는 피리아의 옷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뱀을 잡기 위해 그녀의 옷 속에 손을 집어넣고 여기저기를 만져 대었다. ‘가만! 이건……맞아. 하렘형 벗어제치기 미소녀물에서 자주 나오는 그거잖아! 설마 팬티 속까지 들어가지는 않겠지 아무리…… 좀 아쉽군.’ 또 한 번의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스러운 경험을 갖는 아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손 쳐도 만화스럽게 뱀이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아쉬운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꺄아아아아악!” “왜 그래? 피리아?” “뱀이, 뱀이…….” 아크는 뱀의 머리가 튀어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뱀은 아크의 소원대로 그곳 안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아크는 뱀의 피부가 닿는 감촉에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는 피리아 대신 그녀의 바지를 약간 내린 뒤 손을 집어넣었다. ‘끄흐흐흐흐흐!!! 이런 행운이!!!’ 아크는 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일부러 못 잡는 척 하며 만져 대었던 다리와는 달리 여기부터는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변태 취급(이미 받고 있지만)을 받지 않았다. 아크는 뱀의 머리를 잡은 채 쑥 빼 올렸다. 그런 다음 악력을 가하자 뱀의 머리는 바스러져 버렸다. 아크는 운 좋은 경험을 할 계기를 만들어 준 뱀에게 명복을 빌어주었다. ‘극락왕생 하거라.’ “어이 괜찮아?” “저, 저기 대장.” 시뻘개진 얼굴로 말하는 피리아. “왜?” “뱀 한테…… 물렸어요.” “뭐! 그럼 빨리 말해야지! 독사면 어쩌려고 그래?”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뽑으려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하지만 아크는 곧 검을 뽑으려던 행위를 그만두었다. “그, 그게…… 속을.” “당장 빨아내야 해!” 그랬다. 아크는 이 와중에도 그 따위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빨아내기……. “어디야?” “거기……조금 위요.” 아크는 즉시 피리아의 하의를 벗겨 낸 뒤 뱀의 양 앞니가 꽂힌 자국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쭉쭉 빨아 대었다. ‘리커버리.’ 그러면서도 아크는 조용히 시동어를 말하며 피리아에게 상태 이상 회복마법을 걸었다. 빨아내기만으로 된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퉤! 됐어.” 대충 시술을 끝내고 아크는 그녀의 하의를 입혀주었다. 그리고 그것에 닿은 그 기분을 상기하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릴 때. 뒤에 서 있던 에르디가 수상하다는 눈초리를 아크에게 보내며 말했다. “대장 당신 상태 이상 회복마법 알고…….” “우워어어어!” 아크는 그 말을 듣자마다 괴성을 질러대며 에르디에게 주먹을 날렸다. 퍽! “커헉!” 풍덩! 그 반동에 에르디는 배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아크의 귀축 변태짓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던 유일한 증인은 원한을 품으며 깊은 심해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입막음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뒷일 생각도 못하고 에르디를 물 속에다 처넣은 아크는 뒤늦게서야 정신을 차리고 에르디를 건져내려고 했지만 그 어디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에르디란 남자였을 변사체 앞에서 아크는 죄책감에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전개는 아니었다. “야, 야 미안하다니까? 사내자식이 이런 거 가지고 꿍하기는.” “…….” 여전히 에르디의 화가 풀리지 않자, 아크는 슬슬 짜증이 났다. ‘이런 썅! 그냥 콱 물고문 몇 번 시켜 줘 봐? 에이 씨 나도 모르겠다. 낚시나 계속 해야지.’ 아크는 다시 ‘강자아 모드’로 돌입해서 낚시를 즐겼다. 에르디나 피리아 같은 경우는 이 ‘강자아 모드’ 무진장 지겨워했지만 아크에게는 이 지겨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이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이제는 Old가 되어 버린 30년 전 지구 음악 아크는 그것들 중에서도 HBK(Heart Break Kid)숀 마이클스의 등장 테마 음악을 들으며 한쪽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도 테마 음악의 음을 흥얼거렸다. “Sexy Boy!~" 그렇게 음악을 즐기며 맨날 똑같은 풍경 뿐인 바다를 감상하던 아크는 손에 집은 낚싯대에 감이 왔음을 느꼈다. “걸렸다!” 아크는 그 즉시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그런데 물고기가 따라나오지를 않았다. “음? 뭐야?” 지금껏 아크는 아무리 큰 월척감이라도 잡아당기면 무조건 낚시 성공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크가 잡아당겨도 안 나올 정도라니 이건……. “고래닷! 이건 분명 고래야! 크하하핫! 이놈을 잡으면 한 몇 개월 동안은 밥걱정 안 해도 되겠군.” 아크는 온힘을 다 해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뭔가가 계속 끌려오는 느낌이 있었다. 부러질 듯한 낚싯대. 아크는 낚싯대에 마나를 주입해 강도를 강하게 하여 간신히 낚싯대가 부러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제길! 낚싯줄도 있었지!” 아크는 끊어질까봐 낚싯줄에까지 마나를 주입했다. “대장?” 얼굴이 시뻘개진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낚싯대를 잡아당기고 있는 아크를 본 피리아와 에르디는 그를 도와 낚싯대를 잡아당겼다. “끄아악! 어디 누가 이기나 한 번 해 보자! 고래 한 번 잡아보자고!” 그렇게 낚싯대 줄다리기가 계속 되는 가운데, 아크가 고생한 보람도 없이 낚싯줄은 서서히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에이 썅! 야! 니들 포기해. 내가 물 속에서 직접 회를 떠서 가져오마.” 아크는 낚싯대를 던져 버리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곧이어 그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와 배 안으로 복귀했는데 그 표정엔 똥 마려운 사람 화장실 기다리는 듯한 다급함이 어려 있었다. “대장. 왜 이리 빨리?” “당장! 노 저어 최대한 여기서 멀리 도망 쳐야 해!” “예? 그게 무…….” 촤아아아악! 물이 사방으로 튀기면서 그 밑에 있던 괴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 여파로 울트라 돌고래 1호도 그 물살에 휩쓸려 상당한 거리를 밀려났다. “세……세상에.” “먹다가 늙어 죽게 생겨먹었지? 그나저나 젠장 너무 세 보이는데 그냥 도망가자.” “도망치게 놔 줄 생각은 아닌 모양입니다만…….” 아크가 내팽개친 낚싯대를 장식품인 마냥 머리맡에 꽂아 둔 거대한 몸체의 대왕오징어. 그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 되어 아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쩝 보아하니 자는 걸 깨운 것 같군. 그 심정 이해한다. 그러니 그냥 다시 가서 자면 안 되겠냐?” 물론 아크의 설득이 먹혀 들어갈 턱이 없었다. 거대한 오징어의 한 쪽 다리가 아크가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도끼날처럼 내리쳐졌다. “우왁! 피해!” 찰싹! 다행히 배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그 큰 오징어 다리가 내리친 수면에는 물이 튀어오르며 심한 파도를 일으켰다. “제기랄 별 수 없군. 좋은 말로 했을 때 들어가자면 좀 좋아? 미안하지만 영원히 잠재워주마. 너는 이제 오징어포 3000인분이 되어 배고픈 서민들의 한끼 식사가 되어 똥으로 나와 농민들의 땀의 결실인 여물어 가는 밀밭에 거름이 될 것이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뽑아들었고 에르디와 피리아도 각각 소총과 쌍권총을 꺼내 들었다. “부우우우우!” 또다시 날아오는 발판 달린 오징어의 다리. “차앗!” 아크는 그 다리가 배에 닿기 이전에 깔끔하게 절단해 버렸다. 그렇게 자라진 오징어 다리의 일부분이 물에 빠지며 조금씩 잠잠해 지던가 싶던 바다는 또 다시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때 장애 오징어. 웬만하면 그냥 들어가서 지금이라도 자는 것이 좋을 수도 있어. 이 몸은 생각 외로 강하거든?” “대장! 다리가.” “음?” 잘라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생성되는 대왕 오징어의 다리. 그걸 본 아크는 저 오징어의 상업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흠 그냥 생포해서 다리만 잘라다가 팔아도 밑천이 안 드는 완전 남는 장사로구만. 저 정도면 오징어 소비 시장의 30% 점유율을 먹고 들어갈 수도 있겠는데?” 점유율 30%가 어디서 나온 근가 있는 수치인지는 모르지만 그 만큼 이 오징어의 몸집은 거대했다. “대장 조심하세요!” “으음?” 대왕오징어는 이제 여러 개의 다리로 동시에 공격을 퍼부었다. “썅! 이기 어검술을 써야 하나? 쓸 줄도 모르는데. 할 수 없군. 아이스 랜스!” 얼음의 창들은 대왕 오징어의 다리를 행해 날아갔다. 푸슉! 푸슈슉! “으음…… 이 녀석 연체동물 이었지?” 창으로 찔러도 피 한방을 나오는 대왕오징어였다. 투두, 투두두두두 탕! 탕! 피리아와 에르디는 대왕 오징어의 몸체에 총알을 선사했다. 하지만 마나의 힘을 머금은 얼음창들로도 별 피해를 못 주는데 총이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대왕 오징어의 다리. “피리아! 에르디!” 피리아와 에르디는 오징어 다리에 둘둘 말린 채 대왕 오징어의 악력에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아악!” “쳇!” 아크는 그 둘을 구하기 위해 수상비를 사용했다. 산지만 있는 우라시드 산맥에서 위진무에게 강의로 물위를 뛰어다니는 기술 수상비에 대한 이론만 배웠던 아크였던지라 쓰기가 조금은 껄끄러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안 쓰고 배길 수가 없었다. “물 위를……뛰어다니다니!” 그 모습을 피리아와 에르디는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압력도 잊은 채 물위를 달리는 아크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블레싱 소드의 금빛이 한 번 번쩍 하자, 피리아을 속박하던 대왕 오징어의 다리가 절단되어 물 속에 빠졌다. “대, 대장! 나, 난.” 숨에 가쁜 듯이 힘겹게 말하는 에르디. 아크는 그런 그에게 아주 얄미운 투로 말했다. “너……이제부터 내가 하는 일에 딴지 건다? 안 건다?” “젠장 치사하게 이럴 겁니까?” “그럼 좀 더 버텨보든가.” “앞으로 대장을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크는 에르디를 속박하는 대왕오징어의 다리를 절단해 준 다음. 수상비로 대왕오징어의 몸체를 직접 노리고 달려 들어갔다. “후. 몸체를 직접 회칼로 썰어버리면 다리야 알아서 해결되겠지. 오징어 회나 되거라.” 그 때 대왕오징어에게서 검은 빛깔의 액체가 정면으로 돌진해오는 아크를 향해 분사되었다. “읏!” 오징어의 먹물을 맞은 아크. “대장! 그 먹물 좀 채취해 주쇼! 실험에 쓰게.” “야 이 미친 자식아 니가 해봐! 이런 상황에서 지랄하지말라고!” 대왕오징어의 먹물 물대포가 아크의 시야를 가리는 사이, 대왕오징어는 다섯 개의 다리를 사용. 아크의 양 손목과 발목. 그리고 목을 잡아 챈 다음 조이기 시작했다. “끅! 크아악!” 마치 능지처참을 당하는 듯한 자세로 오징어의 다섯 다리에 매달린 아크. 대왕오징어는 아크만 없애면 이 상황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아는 듯 아크를 처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부었다. “큭 제기랄 여자가 이러고 있으면 섹시해 보이기라도 하지. 윽 이거 상당히 아픈데?” 사지가 찢어져 나가려 하는 고통이 약할 턱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둘째 치더라도 마스터인 아크가 고통스러워 할 정도라는 것은 대왕오징어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거기에 목조르기의 고통. 버텨내기 힘들다. 탕 탕 두두두두두두 총이 불을 뿜으며 아크의 팔을 속박하는 대왕오징어의 다리를 맞추었지만 대왕오징어는 여전히 건재했다. 퍽! “큭!” 퍽! “악! 이 자식이 이제는 때리기까지 하네?” 대왕 오징어는 남은 다섯 개의 다리 중 두 개로 피리아와 에르디를 견제하는 한 편 나머지 다리들로는 완전 무방비 상태인 아크의 복부를 공격했다. 맞을 때마다 아크의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흘러 나왔다. 빌어먹을…… 예까지 와서 오징어한테 맞아 죽을 수는 없다. 그래 초심으로 돌아가자 초심으로. 내가 약할 때 나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었나? 그 때의 그 깡다구 정신으로 무장하면 못 이길 것이 무엇이랴. 하물며 지금은 힘까지 있는데.‘ 아크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대왕오징어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아크의 목사이즈에 맞추어 대왕오징어의 다리 끝 부분의 가는 부위가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후. 그래 회는 싱싱한게 제일이랜다. 배도 고픈데 어디 말랑말랑 한 오징어회나 잡숴 보자!’ 질겅! “…….” “저게 뭐 하는 짓이람?” 피리아와 에르디는 ‘대장이 진짜로 미쳤다’란 표정으로 아크의 비정상적인 행위를 넋을 놓고 보았다. 아크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오징어의 다리를 그야말로 ‘먹고’ 있었다. 워낙 굵고 긴 다리라 아크의 목뿐만 아니라 입까지 덮어 두어 씹어 먹는 데에는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말랑말랑 싱싱한 오징어회를 맛있는 표정은 아니더라도 우걱우걱 무식하게 씹어먹는 아크. 햇빛을 받아 유독 그의 황금 이빨이 더욱 더 빛났다. 아크는 고개까지 숙여가며 대왕오징어의 다리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을 조이는 대왕오징어의 다리 일부분을 다 먹어 버리면서 목조르기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에르디!” “예?” “지금 당장 내 팔이 있는 쪽에 화염병을 던져!” “예에? 그놈은 물에서 살던 놈이라 불이 잘 안 붙는 뎁쇼?” “지금 햇볕 때문에 대충 다 말랐다! 어여!” “알겠습니다.” 에르디는 화염병을 꺼내어 대왕 오징어의 다리에 던졌다. 화르륵 과연 아크를 묶어두느라 물 속에 들어가지 못했던 대왕 오징어의 한 쪽 다리는 말라 있었고 마른 오징어 다리는 불에 잘 탔다. 불에 타면서 대왕 오징어의 아크의 팔을 잡아당기던 다리는 아크의 몸이 버티려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다. “좋았어!”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놀려 순식간에 능지처참 자세에서 풀려 날 수 있었다. “이 대형 식량! 쌍 사시미로 완전히 회쳐주마!”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로 대왕 오징어의 다리를 잘랐다. 아니 정확히는 자르려고 했다. 그러나 프로즌 아이스가 닿자마자 대왕오징어는 체내의 수분이 모두 얼어 버린 채 꼿꼿이 얼어버렸다. “…….” 아크는 할말을 잃은 채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진작에 프로즌 아이스를 사용했다면 순식간에 ‘대형 냉동오징어’ 란 식용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이 대왕 오징어는 물속에서만 살던 완전 수중생물. 프로즌 아이스를 가져다 대기만 했어도 이겼을 것을…….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보다 블레싱 소드에 더 익숙했다. 이러한 사태가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가볍고, 안 차갑고, 신성의 마나를 쌓아주는 블레싱 소드는 아크가 약했을 때 사용하기에 최적이었던 데 반해. 프로즌 아이스는 마법을 쓸 때 이외에는 별 필요가 없었고(엄청난 명검임에도 여러 모로 쓸데가 많은 블레싱 소드에 밀려)자연 활용도에서 밀려 아크에게 단순히 ‘마법용 칼’이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에이 뭐 어때! 여! 한달은 족히 먹을 식량 잡았다.” 아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어 붙은 오징어를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처가 나 있던 대왕오징어의 한 쪽 다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으잉……힉! 야! 니들 빨리 바다로 뛰어내려!” 한참 꼿꼿이 얼어붙은 대왕오징어를 바라보던 피리아와 에르디는 아크의 외침에 자기들 머리 위에 있던 대왕 오징어의 얼어붙은 다리가 균열이 생긴 덕에 부러져 배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그제야 눈치챘다. “으아악!” 콰직! 얼어붙은 대왕 오징어의 다리는 그대로 울트라 돌고래호에 직격해 울트라 돌고래호를 박살내었다. 울트라 돌고래호의 완파를 지켜 본 아크는 미친 듯이 실소를 자아냈다. “하하하하하하하……이 정도 부숴진 것쯤이야 뭐. 야 걱정 마. 내가 고칠게.” 아크는 손뼉을 ‘짝’하고 친 뒤 부서진 배의 잔해에 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물론 고쳐질 턱이 없었다. “어라? 연성진 없이는 안 되는 건가? 좋아. 그럼.” 빡! 자신이 무슨 연금술사라도 되는 양 헛짓거리를 하는 아크에게 피리아는 부서진 배의 잔해로 머리를 갈겼다. “정신 차려요! 좀! 연금술사에요? 연성한다고 난리치게.” “큭! 젠장 쇼 한 번 해 봤다. 재밌으라고……그나저나 어쩌냐? 인자?” “에휴.” 울트라 돌고래호 선원 3명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여기부터 또 끊겼습니다.” “으으으 귀찮아 돌아가시겠네.” 아크는 에르디가 말한 곳으로 가 수면에 프로즌 아이스를 찔렀다. 그러자 바다의 일부분이 결빙되면서 얼음의 길이 생겨났다. “됐지? 계속 가자.” “나 참 이게 무슨 늦봄에 빙판길인지…….” “그래도 재밌잖아? 이 썰매 하나 만큼은.” “그렇긴 하죠…….” 배가 완파된 아크 일행은 별 수 없이 프로즌 아이스로 바다를 얼린 다음 부서진 배 파편으로 만든 썰매로 바다를 횡단하고 있었다. 물에 닿기만 하면 그 물을 모조리 얼려 버리는 프로즌 아이스이지만 드넓은 바다를 다 얼려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나마도 더운 날씨 덕에 다 녹아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 노가다를 지속해야 했다. “쩝 스케이트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계속 이렇게 무릎 꿇고 앉아 있어 놔서야 다리아파 죽겠구만.” “그런데 정말 그런 마찰력이란 것이 존재한다고요?” 에르디의 물음에 아크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마찰력이 존재하기에 구르는 바퀴가 지면에서 서는 거지. 하지만이런 빙판길 같은 경우에는 마찰력이 없어서 그냥 가기엔 곤란하다고.”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는지?” “이봐이봐. 난 여기 보다 적어도 수백년은 더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살다가 왔다고 무시하지……!” 아크는 갑자기 썰매 노를 집어 던진 채 벌떡 일어섰다. “왜 그러십니까? 대장.” “배다…….” “예?” 그 소리를 듣자 마자 에르디와 피리아도 벌떡 일어났다. “어디? 어디요?” “여기서 약 3에서 4킬로 가량 떨어진 곳 같다.” “그럼 어떻게 알리죠? 총을…….” “아니 기다려라.” 아크는 총을 쏘려는 피리아를 저지시켰다. “어느 배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니 함부로 총을 쏴서 우리에게 총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마라.” “그럼 어떻게……?” “내 7옥타브 고성으로 불러오지. 너희들은 귀를 막고 있어.” ‘7옥타브 고성???’ 에르디와 피리아가 귀를 단단히 막자. 아크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고서는 고함을 질렀다. “뷁!” 전장을 주름잡는 소드 마스터의 거대한 함성이 바다를 뒤흔들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크 일행이 구조된 것은 ‘샹 플라워’라는 초 호화 거대 유람선이었다. 승객들은 대다수가 귀족이거나 평민 상위 계급인 일명 부르조아 였고 일반인들은 단순 이동의 목적으로 배안 이면의 가장 더러운 곳에 묶고 있었다. “자네들은 어디서 왔나?” 선장 모자에 한 쪽 눈이 가려진 채 콧수염을 뭉특하게 기른 선장으로 보이는 사내는 아크들을 심문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아크와 피리아는 중간에 낀 에르디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래도 이계인인 아크와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피리아가 이 세계의 지리를 알 턱이 없었다. “티스버그에서 왔소.” “자네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과 선주, 그리고 항해 목적은?” “울트라 돌고래호, 항해 목적은 파리스 항으로의 물자 운반. 선주는 여기 계신 아크 씨로서 선장이시기도 했소.” “어떻게 난파당하게 되셨소?” 이 질문에는 아크가 나서서 대답했다. “폭풍우와 대왕오징어의 출현으로 첫 출항 시 30명의 인원이 이렇게 대폭 줄었고 배 파편에 의지해 이틀을 버티다가 이렇게 구조됐소이다.” 얼음판에서 썰매타고 왔다는 소리를 했다간 대번에 정신병자 취급 받으리라. “각각의 신상명세를 말하시오.” 선정은 한쪽 눈으로 아크들을 매우 무섭게 노려보았다. 워낙 대단한 위압감 이었던지라 피리아와 에르디는 약간 위축되었지만 아크가 별 것 없이 그 분위기를 넘기자, 선장은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크 페인. 망국 디그리스의 귀족가 출신으로 작위는 없고 뱃사람 일을 했었소.” ‘아크 페인?’ 선장은 아크가 말해 준 이름이 제법 귀에 익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영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에르디 게이레로. 평민으로 강등당한 몰락귀족 게이레로 남작가의 후손이요. 아크 씨를 보스로 모시고 있소.” “피리아. 성은 없고 왕궁 시녀였다가 해고 당했다 아크 씨의 하녀로 고용되었습니다.” “흠? 혹시 궁중음식을 할 줄 아시오?” “세레스 공주님의 식사를 담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선장은 턱을 괴고 한참을 고민하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서장은 고개를 든 채 굳었던 표정을 펴고 미소를 지었다. “뭐 바다에서 구해 줬는데 이 배에 태우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객실이 빈곳은 있어도 전부 귀족칸이고 또 목숨을 구해준 보답도 받아야 하는 법. 아크 군과 에르디 군은 뱃일을 맡고 피리아 양은 주방에 배치해 줄 테니 일을 마치도록 하게. 숙소는 직원 숙소를 쓰고. 배도 잃어버리고 물자도 잃어버렸다니 현재 알거지일 터 하는 걸 봐서 이 배의 정식직원으로의 채용도 생각해 보겠네.” ‘이젠 알바 인생이냐? 뭐 나쁘진 않아보이는군.’ “좋습니다.” 아크는 흔쾌히 선장의 제의를 수락했다. “어이 신참 오늘은 여기 이 갑판부터 깨끗이 닦아라 나머지 스케줄은 어제와 동일하니 알아서들 하고.” “여, 여길 다 닦으라고?” 물이 가득 든 양동이와 대걸레를 든 채 작업복을 입은 아크와 에르디는 드넓은 갑판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잊어버렸다. “아 젠장. 차라리 공사판에서 삽질을 하라고 하면 즐겁게 땅을 파 줄 텐데.……쩝! 어찌 되었든 간에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고.” “…….” 에르디는 도무지 아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륙에 몇 되지도 않는 강자인 마스터. 거기에 빙한마법과 신성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강자인 그가, 어느 나라로 가도 정계의 중심에 설 그가, 이 세상 어딜 가도 존경 받고 우러러 볼 그가 어찌하여 그 힘을 숨기고 이런 궂은 일과 기이한 일을 자처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드넓은 갑판은 그런 에르디의 잡생각을 잠들게 해 주었다. “이걸 둘이서 언제 다 닦앗!” 절규하는 에르디. 그가 그러는 와중에도 아크는 열심히 갑판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에르디는 열이 뼏쳤다. “뭡니까? 대장! 그게 걸레 가지고 장난도 아니고. 좀 제대로 닦으란 말입니다!” 아크는 대걸레질을 가로나 세로 면을 하나 잡고 꾸준히 왕복하며 닦을 생각은 안하고 대걸레로 갑판 바닥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글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오히려 에르디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게 뭐 어때서? 짜샤! 넌 아직도 청소내공이 부족해. 이 갑판 닦는 일은 말야 단순 노동인 청소라고 생각하지 말고. 대걸레란 붓과! 물이라는 물감과, 드넓은 갑판이란 종이를 사용하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을 하란 말야. 예술!” ‘정말로 대장. 당신이란 사람의 뇌구조가 의문스럽소.’ 이런 생각을 하며 에르디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아크는 에르디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뭐 여기 다 닦으려니 막막한 건 알겠는데. 너무 그렇게 신경질 부리진 마. 나도 이 넓이가 막막한 건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현실도피를 하고 있잖나? 하지만 좌절하고 짜증내봐야 갑판은 안 닦여. 이것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까 다 닦여 말끔해 질 갑판을 상상하며 걸레질 한 번 거나하게 해 보자고.” 아크는 그 말을 끝으로 복도 청소 5단 내공과 경공을 이용. 걸레를 쥐고 배의 넓은 갑판을 종횡무진 누비기 시작했다. “못말린다니깐.” 뒤질세라 에르디도 걸레를 앞에 세우고 달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없던 갑판 뒤쪽에 맹렬히 질주하는 아크를 주시하는 눈동자가 있었다. “거 참 나 이거 신참이라고 너무 많이 부려먹는 거 아냐?” “흠……뭣하면 내가 손 좀 봐줄까? 나야 뭐 청소해 보는 것도 근 30년 간 처음이라 신나지만 네가 그렇게 힘들다면야. 대장으로서 십자가를 뒤집어 쓸 용의가 있다만?” “그만 두십쇼. 또 사람 죽일라. 점심 만찬까지 얼른 청소나 마칩시다.” 아크는 객실을 한 번 빙 둘러 본 뒤 말했다. “좋아 넌 쉬고 있어. 내가 다 할 테니.” “예? 그래 주면야 고맙지만…….” “대신 요강은 네가 비워라.” “엑? 차라리 제가 다 할 테니. 대장이 그걸.” “이 짜식이!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이건 저도 양보 못합니다.” 첨예하게 맞선 아크와 에르디는 서로를 노려보며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구의 그림자도 있었다. 쾅! 퍽! 배의 부선장이었다. 부선장은 서로 대립한 아크와 에르디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이 자식들! 서로 일이나 미루다니! 어이 거기 황금니. 네가 비워 알았어?” “우워! 뭐어! 뭡니까? 부선장!!!” “안 하면 오늘 점심은 없다.” “…….” 밥 안 준다는 협박에 아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겉으로는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귀티 나는 단지를 집어 들었다. “……이런 건 냄새 대마왕이 제격인데.” “다녀오십쇼. 대장.” 아크는 계속해서 궁시렁대며 요강을 들고 갔다. 귀족 실에 있는 모든 요강을 비워야 하기에 빨랑 버려야 했다. 갑판의 후미진 이면에 도착한 아크는 뚜껑을 열고 그 다지 보고 싶지는 않은 그 갈색 물체를 봐야만 했다. “이 자식은 사람이야 토끼야? 맨날 고기만 처먹으니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만. 성인병 생각은 해야지.” 아크는 갈색 물체에 대한 비평 뒤 요강 단지를 뒤집어 그 물체를 바다에 빠뜨려 버렸다. “으휴휴휴휴 차라리 변소 청소가 더 낫지. 이거 이 드러븐 자식들 X은 변소에서 처 쌀 것이지 요강은 왜 쓰고 지랄이야? 수세식 변기를 빨리 도입해 주든가 해야지 원.” 이쪽 세계에서의 배설물 처리는 평민들은 주로 구덩이를 판 공중 변소를 이용했지만 귀족이란 자들은 배설 하나에도 차별화를 두어 꼭 요강을 썼다. 잔뜩 투덜거리는 아크.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여기까지는……. 아크는 세제가 묻은 누런 걸레를 집은 채 남의 것들과 묻은 것들을 깔끔이 처리 윤기로 광채가 나게 만들어 놓아야 했다. “미안하구나 운디네. 주인 잘못 만나서. 내 너의 희생은 결코 잊지 않으마.” 그것을 진짜로 손으로 닦을 수는 없는 노릇. 아크는 아들 전쟁터로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운디네를 소환. 요강을 청소했다. “……음?” 그러던 아크는 문득 운디네와 엇비슷한 정령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곳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정령사인가? 보기 드문 이가 타고 있군.” 정령의 기운을 포착하기는 했지만 할 일이 바빴던 아크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시 객실 쪽으로 달려갔다. “여기 나왔습니다. 그럼 즐거운 식사시간 되십시오.” 객실 청소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는 요강 비우기를 한 덕에 아크는 다음 일거리에 불려 갈 수 있었다. ‘띠발! 배고파 죽겠는데 저 쌓인 음식 앞에서 서빙이나 하라니. 이건 완전히 고문이야!’ 청소복에서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운디네로 쌈박하게 목욕까지 한 아크가 불려 간 곳은 만찬이 이루어지는 식당 안. 이 배의 직원인 남자들 중에서 보기 드문 외모를 가진 아크였기에 지금껏 여성들에게 맡겼던 얼굴 마담을 아크에게 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아크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귀족들을 접대하느니 만큼 격식을 갖추어 철저히 예절을 지키는 것은 아크의 ‘단순 노가다’와 ‘내맘대로’ 정신에 위배됨은 물론이요. 주방장이 내다 주는 초호화 레어 급 요리 아이템들은 새벽부터 중노동한 그의 식욕을 돋굴 대로 돋구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결정타는 이 귀족들의 만찬이 끝날 때까지 아크의 밥은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쯤 다른 선원들이 식사시간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아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런 비참한 마음가짐과는 달리 아크는 리엔느를 꼬시려 할 때부터 연마를 시작한 ‘살육 미소’로 귀족들을 접대했다. “즐거운 식사시간 되십시오. 그럼.” ‘끄응 여자들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이런 아줌마들만 아니면 어이 거기 가슴만 무진장 큰 아줌씨! 옆에 남편 있잖아! 남편! 큭. 거기 할머니 그쪽은 범죄야 범죄.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엔간한 영계를 밝히셔야지!’ 나잇살 먹은 놈이 말은 잘한다. “어이 신참! 뭘 그리 멀뚱히 서 있어! 음식 받아가.” “아. 예.” 아크는 주방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경망스럽다고 주방장이 난리치니 절대 뛰면 안 된단다. “이거 저쪽 테이블에 갔다 놓으라고.” “예 방장.” 때마침 아크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조리를 하는 피리아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피리아에게 맞미소로 대응하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풋! 사이코 모드하고 정상인 모드하고 저렇게 반응이 틀려서야……여하튼 귀엽군.’ 격식을 차리는 이 만찬장에서는 아크도 어쩔 수 없이 ‘정상인’으로 있어야 했다.(그럼 평상시는 정상인이 아니라는 소리?) ‘어디 보자 다음이 어디다냐?’ 아크는 이번에 받아든 요리를 부탁 받은 테이블을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저기.’ 번호를 찾은 아크는 음식을 들고 테이블 가까이로 갔다. 그리고 방금 전 요강 청소 할 때 느꼈던 물의 정령의 기운을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는 소녀에게 느낄 수 있었다. “……!” 미녀들을 여럿 알고 있는 아크조차 놀랄만한 미모였다. 엉덩이까지 늘어뜨린 눈부신 황금빛 머리카락과, 사람을 끌어들이는 듯한 심오한 은안(은빛의 눈)조금 창백한 듯 하긴 하지만 하얀 피부는 연약해 보여 보호 본능을 자극 시켰다. 눈부신 보석들이 달린 머리띠를 차고 있었지만 소녀의 미모에 가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한 소녀는 계속해서 아크를 한시도 떼지 않고 주시하고 있었다. 저 정도 미녀가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대개 남자들의 반응은 매한가지. ‘흐흐 저 아가씨가 나한테 관심이 있나?’ 이러한 생각을 하며 아크는 그 소녀가 있는 곳으로 음식을 날랐다. 관심을 살 만한 말을 하고는 싶었지만 아크는 임무에 따라 별 수 없이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음식 나왔습니다. 즐거운 식사시간 되시길.” “저기……이따가 저녁 즈음에 제 객실로 오시지 않으시겠어요?” 의외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소녀였다. ‘컥! 이렇게나 빨리? 한눈에 반했다. 이건가? 음하하하하하하! 하렘왕아 기다려라!’ 아크가 이런 미녀에게 애프터 신청을 받자, 옆 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들의 눈썹이 들썩거렸다. ‘뭐야 이 시키들? 감히 본좌에게 살기를 내뿜어?’ 아크가 남자들이 있는 테이블에서의 살기를 못 알아챌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녀의 선택을 받았다는 기쁨에 아크는 그 정도는 그냥 봐 주고 넘어가기로 했다. “자, 여기 317호.” 이 다음 음식은 방금 전 아크에게 살기를 뿜어대던 그 남자들의 테이블이었다. 아크는 자신이 갈 길목에 떡하니 발이 들이밀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가볍게 그것을 피해갔다. ‘어쭈? 발을 걸어? 내가 이딴 거에 걸려줄 것 같냐?’ 그러나 남자들은 치사하게 막 피한 아크의 발을 또 걸었다. “……!” 물론 걸려 넘어질 정도로 아크가 부주의하거나 힘이 없지는 않았지만 음식 접시를 들고 있던 자세가 흐트러져 음식 안의 소스가 약간 한 남자의 흰 셔츠에 튀었다. “이 자식이 어디서! 이 귀하신 몸에다 소스를 튀겨!” 남자는 좋은 트집이라도 잡은 듯 즉시 일어나 아크의 면상을 주먹으로 갈겼다. 깡! 그 순간 남자의 표정은 오만상이 다 찌푸려진 채 시뻘겋게 변했다. 그의 주먹은 껍질이 벗겨진 채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병신. 시비를 걸 사람한테 걸어야지.’ 아크는 자신을 건드린 남자에게 조소를 흘렸다. “그것 참 죄송하군요. 바닷물에 잘 빨아 말리십시오. 그리고 317호 분들이시죠? 건강에 신경 좀 쓰셔야 겠습니다. 어떤 분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피똥이더군요. 남자니 생리는 아닐 테고. 치질이시겠군요. 치질은 빨리 잡아야 낫습니다.” “저, 저 저 자식이!” 얼굴이 뻘개진 남자의 일행이 아크에게 주먹질을 가했지만 그들은 모두 깡 소리와 함께 각자 주먹과 발을 감싸며 고통을 호소해댔다. “강하다는 건……정말 편하군. 하하하하하.” 아크는 금강불괴의 술을 쓰느라 무거워 진 몸을 다시 풀고는 뒤에서 신음하는 남자들에 대한 조롱의 폭소를 터뜨린 후 서빙을 계속했다. 언제 바라보아도 풍경이 바뀔 리 없는 드넓은 바다. 처음 배에 승선할 때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바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배멀미의 한 요인이 되어 천대받게 된다. 배의 앞머리에서 그런 바다를 지켜보며 실실 쪼개고 있는 아크. 점심식사 서빙을 끝으로 오늘 그의 일은 다 끝났고, 주어진 자유시간에 그는 울트라 돌핀호 때 매일 봐 지겨운 바다를 또 보면서 웃고 있었다. “크크크크. 캬캬캬캬!” 미친 듯이 웃어대는 아크. 미소녀의 애프터 신청. 그것은 하렘왕을 꿈꾸는 아크에게는 그 이상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호재였다. “크하하하하! 바람 불어라! 내몸이 날려도!” 이렇듯 바다를 보며 미친 듯이 웃어대는 아크를 부며 엄마의 손을 잡고 갑판에 나온 한 꼬마가 외쳤다. “엄마. 저 아저씨 미쳤나봐.” “어머! 세상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재수 없어.” “…….” 털석. 아크는 기분을 완전히 잡쳤다. “아이고, 아이고 죽겠네. 대장 힐 좀 써주쇼.” “힐은 피곤한 것 따위는 못 고친다고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듣겠냐? 그러니 그런 힘든 일은 마스터 급 무인인 이몸에게 맡겨 두고 요강이나 비울 것이지.” 아크가 똥청소라는 조금은 더럽고 혐오스럽지만 그래도 편한 일을 한 반면. 에르디는 객실 전체 청소란 일을 맡아 하루 종일 고생하다가 녹초가 되어 있었다. “쿠쿠쿠 뭐 열심히 뒹굴어라. 이 몸은 심야 밀월 데이트 하러 간다.” “예?” “예는 무슨 예야? 잠이나 푹 자둬라. 피곤하다고 난리 치지 말고. 그럼 다녀오마.” 에르디를 남겨 두고 낮에 본 소녀의 거처를 찾아가는 아크. “에 321호가……여기군.” 아크는 문을 가볍게 두들겼다. 똑 똑. “들어오세요.” ‘음?’ 낮에 만난 소녀와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달랐다. ‘정령의 기운은 똑같은데? 기분 탓인가?’ “들어가겠습니다.” 아크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 문을 열자마자 날아오는 수십개의 얼음 화살. 잠시 놀라긴 했지만 아크는 그대로 얼음의 화살들을 맞았다. 마법 방어 브로치가 있으니 이 정도 아이스 미사일은 그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무슨!……어라?” 방안에는 낮에 그 소녀 대신 오만한 표정의 소년이 한 쪽 손을 아크에게 뻗은 자세로 서 있었다. “역시……합격이야.” “뭐?” 은발의 소년은 아크를 한 번 쑥 훑어보았다. “내가 지금껏 본 인간들 중 가장 강해 보이는군. 드래곤의 기운과, 신성의 기운, 그리고 신성력에 말리긴 했지만 사악한 마의 기운까지……기이하군. 네 정체가 뭐냐?” “나는 네 정체가 더 궁금한데? 이 정도 정령과의 친화력을 가진 이가 둘일 리도 없고, 소녀였다가 지금은 꼬맹이 소년이라? 네 정체는 뭐냐?” “내 이름은 쥬레이나란. 실버 일족의 드래곤이다.” 아크의 예상대로였다. 강한 정령과의 친화력에 마음대로 모습을 바꾼다면 아크의 판타지 상식으로는 뻔한 뻔 자 아닌가? ‘어라?’ 그러나 드래곤이라고 자신을 밝힌 소년에게서는 드래곤의 기운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크라우스가 만든 검 프로즌 아이스도 강하게 뿜어 대는 그 드래곤의 기운이. “그런데 왜 드래곤의 기운이 흘러나오질 않지? 혹시 그 힘을 숨겨두는 건가?” 그 말에 자신을 드래곤이라 밝힌 소년은 숨기고 있던 힘을 개방했다. “……!” “어때 믿겠나?” “음.” 아크는 눈앞에 있는 드래곤의 마나가 천 살짜리 레드 드래곤 카인카드 보다도 적다는 것을 눈치챘다. 거의 자신과 동급? 겨우 인간 소드 마스터 급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면 마스터 급이라면 혼자서도 잡을 수 있다는 헤츨링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아 챈 아크는 조심스레 나가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내게 무슨 용건이길래? 날 불러 낸 거지?” “알 필요는 없어.” 파칭! “큭!” 아크는 뇌를 수십개의 바늘이 찌르는 듯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뭐야? 너!” “……! 뭐야? 정신마법이 걸리지 않은 건가? 아무리 인간의 소드 마스터라도 9서클의 정신 마법을 버텨낼 수는 없는데?” 9서클의 정신 마법은 인간의 소드 마스터라도 사전 방비를 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당하는 마법이었다. 그래서 미리 캐스팅을 끝마쳐 놓고 아크를 기다린 것인데. 걸리지 않다니. 그 짧은 시간 안에 방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정신마법? 이 자식 뭐 하는 짓이야?” 아크도 정신마법의 그 무서움을 브락라스노의 서재에서 읽었던 책으로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저주류의 세뇌나 정신마법, 암흑마법류는 블레싱 소드를 소유함으로서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다 막을 수 있었다. “쳇. 어쩔 수 없나? 어이 인간. 내 부하가 되지 않겠나?” “뭐?” 아크는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날 따를 생각이 없냐고?” “글쎄다.” “어쩔 수 없군. 힘으로 굴복시키는 수밖에.” 피식! 아크는 쥬레이나란의 말에 폭소를 터뜨릴 뻔한 것을 간신히 피식 정도로 참아내었다. 이 어린 헤츨링은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듯 보였다. 일반적으로 봤을 때 헤츨링은 인간 소드마스터 급 정도라면 힘들긴 해도 혼자서 사냥이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이 꼬마 드래곤은 마스터 급 무인인 아크를 무슨 봉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이아 몬드 더스트!” 아크를 향해 수백개의 얼음의 칼날들이 날아왔다. 아이스 랜스나 아이스 미사일이 뾰족함으로 찌르는 것이라면 다이아몬드 커터나, 그 상위급의 다이아몬드 더스트는 예리한 얼음칼날로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한 기술이었다. 티딩 팅 티디딩. “어엇!” “이런이런. 꼬맹아 그 정도로 이 몸을 무릎 꿀릴 수 있겠냐?” 6서클의 대인공격마법이라면 마스터 급들도 상당히 막아내기 벅찬 마법이었지만 아이템 빨로 치장된 아크에게는 별 다른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제길! 그렇다면 아이스 스…….” 퍽! 아크의 오러가 실린 주먹이 쥬레이나란의 배를 강타했다. “커헉!” 와장창창. 쥬레이나란은 붕 나가떨어지며 배 안의 가구들을 박살내었다. “이 이 이!” 쥬레이나란은 이를 갈며 능히 사람 하나 죽일 듯한 눈빛으로 아크를 쏘아보며 다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아이스 랜…….” “어이 잠깐!” “뭐냐?” “너야 인간들이 버러지 같겠지만 난 인간이라 인간들 죽는 꼴은 못 보겠거든? 그러니 자리를 옮기자. 내가 듣기로는 현신을 해야 드래곤들은 본 실력의 100%를 다 활용할 수 있다고 하잖아.” 개소리로 듣고 넘기려던 쥬레이나란은 아크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흥. 멍청한 놈 같으니.” 쥬레이나란은 공간 이동 마법으로 자기 자신과 아크를 이동시켰다. 빛무리가 걷히며 아크는 주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나무 하나 없는 처량하고 황량한 돌섬이었다. “크크크 인간 죽이지는 않겠지만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작다.” 아크는 쥬레이나란의 현신한 본체를 보고서는 짧막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아크로니아나 브락라스노 등 에인션트 드래곤들의 거대한 몸체를 봐 왔던 아크에게 쥬레이나란의 모습은 가히 아기공룡 둘리의 수준이었다. 쥬레이나란은 그런 아크에게 경고도 하지 않은 채 즉시 마법을 날렸다. “파이어 블라스트!” “이건 반칙인데?” 쥬레이나란이 퍼붓는 불꽃에 휩싸이면서도 아크는 만면에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화염이 걷히자, 아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 바위가 불에 녹아 용암이 되었음에도 아크는 멀쩡했다. 다른 소드 마스터들 같으면 검막 등으로 막아내기는 한다 해도 마나의 소모가 심했어야 했지만 아크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 뭐야? 너. 인간 맞아?” “물론.” “아무리 마스터 급이라고는 해도 6, 7 서클 급 마법들을 이겨내다니…….” “아이템 빨의 위대함이라고나 할까?” “큭 헬파…….” 쥬레이나란은 8서클의 화염계 최고위급 마법 헬 파이어를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걸 놔둘 아크가 아니었다.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가 아무리 항마력이 상당하다고는 해도 7서클까지가 한계였다. 8서클 급은 아크라도 그대로 녹아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했기에. “쌍칼 사시미!” “우왓!” 쥬레이나란은 급히 캐스팅을 취소하고 실드를 사용 몸을 감쌌다. 하지만 실드는 너무나도 쉽게 블레싱 소드에 의해 뚫려 버렸다.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 블레싱 소드 두 칼을 X자 모양으로 교차시킨 다음 쥬레이나란의 길쭉한 목에 겨누었다. “이대로 싹둑 해 줄까? 꼬마 헤츨링 씨?” “…….” 쥬레이나란은 승기가 완전히 아크에게 넘어가 버리자. 아크를 회유하려던 생각도 잊어버린 채 숨을 크게 들이 쉰 다음 내뱉었다. “이거나 먹어라!” “……!” 쥬레이나란의 입에서 하얀 빛깔의 광선이 목에 칼을 대고 있던 아크를 덮쳤다. 실버 드래곤의 한기를 머금은 드래곤 브래스였다. 하얀빛의 한랭 광선은 외롭고 메마른 돌섬을 철저히 파괴시켰다. “후하! 어떠냐? 건방진 인간……헉! 아뿔사.” 쥬레이나란은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어떻게 해서든 이 강한 인간을 부하로 만들어야 했는데 브래스에 직격했으니 살려 놔야 했던 인간이 죽어버린 것이다. “이런 젠장! 야 인간 진짜 죽었냐?” 인간계에 이 정도 강자는 흔치 않았다. 찾기도 힘들고 있어봐야 대부분 국가란 틀 안에 처 박혀 있었던 것이 다였던지라 아직 헤츨링인 쥬레이나란으로서는 노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젠장! 어째서 죽여 버린 거지?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으……!” “누가 죽어?” 브래스에 맞고 산산조각이 났으리라 예상되던 아크는 아직 살아 있는 채로 쥬레이나란의 목에 블레싱 소드를 겨누고 있었다. 역시 주인공. 아무리 죽을 상황이라도 죽을 리가 없다. 이 상황에 쥬레이나란은 아크가 안 죽었다고 웃어야 할지, 덕분에 체내의 마나도 다 써버린 채 인간에게 완벽히 제압 당했다고 울어야 할지 몰랐다. “꼬마 드래곤. 날 왜 부하로 삼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몸속의 마나는 이제 다 바닥 난 것 같군. 부하가 대장보다 강해서야 재미가 없겠지?” “…….” “여기서 네 선택지는 두 개다. 이대로 죽어서 비싼 드래곤 하트와 드래곤 본을 내 놓을지. 아니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게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맹세하던지.” “닥치고 죽일 테면 죽여라. 인간에게 비록 지긴 했지만 무릎까지 꿇으며 굴복할 수는 없다.” 쥬레이나란이 단호하게 나오자. 당황한 것은 아크였다. ‘어라? 젠장. 헤츨링을 진짜로 죽였다가는 부모 드래곤에게 쫓김은 물론이오. 전 드래곤을 적으로 돌리는 일인데…… 이 자식 그걸 알고서 이러는 건가? 젠장 이 녀석을 꼬붕으로 두면서 유명 미녀로 변신시켜 즐기려던 것은 다 날아갔군.’ 그것이 못내 아쉽긴 했지만 아크는 일단 궁금한 것이나마 쥬레이나란에게 물어보았다. “어째서 날 부하로 만들려고 했지?” “내 부하가 되지 않는 이상 말해줄 이유나 필요는 없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얘기하는 게 좋아.” 죽일 수도 죽일 생각도 없던 아크이지만 이 헤츨링이 자신을 습격해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했던 이유만큼은 매우 궁금했다. 쥬레이나란은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블레싱 소드가 목을 스쳐 지나가며 피를 내자, 그제 서야 말을 꺼냈다. “난 강한 인간들이 여럿 필요해.” “왜? 세계 정복이라도 하려고?” “무슨 그따위 가당찮은 소리를……. 복수 할 게 있어서다.” “복수?”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아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드래곤이 복수할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무슨 복수?” “어머니의 원수.” “뭐? 드래곤이 살해당할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드래곤의 번식기는 약 3500~7000세. 그 나이 대 드래곤이라면 인간들은 절대……아니 한 사람 빼고는 절대 못 잡아.” 드래곤과 싸워 이길 수 위진무는 제외해야 겠다. “한 사람?” “아 그런 사람이 있어. 그건 그렇고 원수가 누구야? 마족?” “아니 에인션트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어머니의 원수?” “응.” “뭐야? 드래곤끼리 죽인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보는 군. 그리고 드래곤 사이에는 법률도 없냐? 죽인 놈 안 해?” “영역 분쟁과 유희중 분쟁에 대해서는 일족의 노룡들도 관여하지 않아.” 쥬레이나란은 갑자기 아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탁한다. 인간. 부하가 안 된다면 동료라도 되어 줘. 난, 난 반드시 원수를 갚고 싶다.” “목적이 그거였냐? 인간 강자들을 모아 드래곤을 쓰러뜨리겠다는? 아무리 인간 소드 마스터들이 있다고는 해도 에인션트 드래곤을 상대로 해서 승률은 소수점 아래라고. 차라리 동료 드래곤들에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지 않아?” “명분이 없어. 드래곤이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영역분쟁과, 유희 중 분쟁, 정당방위뿐이라고. 내가 도와 줄 수는 있지만 어쨌든 인간들을 앞세워 복수를 할 수밖에 없다고. 제발 부탁이다. 너 같은 인간은 찾아보기 힘들어. 여기 오기 전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 세비어 프레슬더를 만나 봤지만 거절당했다. 그 녀석의 말로는 나라를 버릴 자신이 있는 자들만이 날 도울 수 있을 거라 하더군. 하지만 너 같이 할 일 없어 보이는 인간들도 날 도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였어. 때문에 정신 마법으로 세뇌를 시도했던 거다.” ‘세비어…… 프레슬더?’ 아크는 30년 전 전쟁에서 만났던 한 기사의 이름을 떠올렸다. 전멸했다고 생각되던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살아 남았던 건가? 여하튼 이제는 추억 속으로 남아 있던 이름을 다시 듣게 되자 아크는 새삼 감회가 새로웠다. 쥬레이나란의 말을 들어 보니 사정은 딱했지만 아크는 쥬레이나란을 도와 줄 수 없었다. 드래곤을 같이 잡자니 될 법이나 할 소린가? 네 다섯 정도쯤 되는 다수의 그랜드 마스터가 덤벼들지 않는 이상 에인션트 드래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었다. 마법을 마스터한 헤츨링이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가만. 진무 형님을 이용하면……?’ 이 판타지 세계 최강의 생명체인 무신 위진무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얘기였다. 경로야 어찌됐든 그 원수 드래곤을 처리해 주면? 잘하면 이 꼬마 헤츨링을 아크의 원대한 하렘왕 계획 및 판타지계 지구화 계획에 동참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흥! 목숨 구걸이나 하는 주제에 부탁이라니……후 뭐 좋아. 도와 주지.” 아크의 승낙에 쥬레이나란의 표정이 펴졌다. “저, 정말인가?” “단 조건이 있다.” “뭔데? 보물이라면 레어를 털어서라도 주마.” “아니. 이 모습들 중. 하나를 골라 변해라.” “으응?” 쥬레이나란은 아크가 내민 그림과 사진들을 보았다. 애니의 유명 미소녀, 미연시의 미소녀, 한 미모 하는 연예인들의 그림과 사진들이었다. 레드 드래곤 카인카드를 볼 때부터 결심해 왔던 ‘드래곤 코스프레’를 드디어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쥬레이나란은 영 똥 씹은 표정이었다. “……이봐? 수컷은 없어?” “뭐? 남자? 얘가 누굴 호모 취향으로 아나?” “제길. 난 암컷은 질색이란 말이다!” “거부할 처지가 아닐 텐데? 그리고 아까는 여자 모습이지 않았냐?” “그거야! 네놈 같은 인간을 꼬시려고 변한 거지! 경계심을 낮춰야 정신마법을 걸기가 쉬우니까.” “흐음.” 어차피 지금 여성캐릭터여 봤자 어떻게 마음대로 이 헤츨링을 주무를 수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면……. “그럼 이 둘 중 하나는 어떠냐?” 아크가 새로이 제시한 캐릭터 사진은 수위복에 목에는 수건을 두른 중년의 남성(모작 미연시 시리즈에 나오신 그 분 형제들도 참 강력하다)과 키가 작고 금발을 땋았으며 한쪽 다리와 팔이 기계인 붉은 코트를 입고 허리춤에는 은시계를 찬 소년이었다. 미소녀 캐릭터를 신봉하는 아크가 유일하게 지지하는 두 남성 캐릭터이기도 했다. “이게 낫겠군.” 쥬레이나란의 몸체가 빛무리에 휩싸인 뒤. 그는 은시계를 찬 키 작은 금발의 소년으로 변해 있었다. “좋아. 이제부터 네 인간 이름은 에드워드 엘릭이다. 알았냐?” “쳇. 내가 인간한테 이름까지 하사 받는 신세가 되다니……,” “강자 우위의 법칙에 등가교환. 세계는 이 두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네 원수를 갚아주기 위해 동료가 되었으니 응당 대가를 치루어야 하고 네가 나한테 졌으니 목숨을 구걸하려면 이 정도 치욕은 감수하라고. 일단은 여자는 죽어도 싫다니 남자로 해 두고 부하가 싫다니 동료로 해 두지. 어이 정말 우리 둘 만으로 그 원수라는 드래곤한테 승산이 있겠어?” “글세…….” 이제는 에드워드가 된 쥬레이나란은 말끝을 흐렸다. “난 말이다. 그 원수란 드래곤을 확실히 잡을 방법이 있다.” “……! 정말이냐?” “그럼 한 마디로 날 동료로 얻은 것은 너로서는 땡 잡은 거라고 볼 수 있지. 그리고 그렇게 그 드래곤을 잡게 된다면 너는 그때 가서 대가를 다시 치루어야 한다. 알았나?” “무슨!” “등가교환.” “…….” 아크는 쥬레이나란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동료가 되어서 반갑다. 일단의 목적은 네 원수인 에인션트 드래곤 사냥이지만 동등한 관계의 동료인 만큼 너도 내가 하는 일을 충실히 도울 의무가 있다. 내 이름은 아크. 아크 페인. 아크라고 불러다.” “끄흠 나도 반갑다.” 쥬레이나란은 오른손을 내밀어 아크의 오른손을 잡았다. “음? 뭐야 강철 팔 안 달아?” “뭐? 그걸 꼭 달아야 해?” “이런! 네가 지금 변신한 인간 에드워드 엘릭은 강철 팔과 다리가 필수적이란 말이다!” “귀찮네.” 쥬레이나란은 소환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실제와 비슷한 건틀릿과 다리에 차는 기사들의 강철 신발인 그리브가 나왔다. 그것을 착용하자 조금은 어색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에드워드 엘릭의 모습이 되었다. “어이 앞으로 마법을 쓸 땐 말야. 박수를 친 다음에 쓰도록 하고.” 코스프레는 그 캐릭터와 행동까지 완벽하게 같게, 이것이 바로 아크의 신조였다. “뭐야? 일일이 뭐 그런 걸 다 시키고 난리야.” “흠. 아쉬운 건 내가 아니야. 너는 어머니의 원수를 갚은 일을 완수하려면 내가 꼭 필요하지만 내게는 네가 굳이 필요한데가 없다고. 이 정도도 들어주지 않겠다면야 뭐…….” “알았다. 젠장.” “좋아 마지막으로.” 아크는 이공간에서 A4와 필기구를 꺼냈다. 그런 다음 뭔가를 쓴 뒤 쥬레이나란에게 보여 주었다. “아크와 실버 일족의 쥬레이나란은 이제부터 동료로서 서로 도우며 아크의 도움으로 가장 중대한 목표인 복수를 완성한다면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아크의 소원이나 원대한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전심전력을 다 한다.……뭐야? 계약서냐?” “그래 서명해라.” 슥삭. 쥬레이나란은 서명을 마친 뒤 종이를 다시 아크에게 넘겼다. “좋아. 이 계약서는 내가 보관하겠다.” “잘해 보자고.” “그래 에드워드. 자 일단 들어가자고 나한텐 좀 약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동료들이 있거든. 약하다고 괴롭히거나 그러지 말고 특히 에르디라는 녀석은 드래곤도 기절시킬 수 있는 강력한 비밀무기를 숨겨 두고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아.” ‘흐 남성향이라는 게 조금 걸리지만 이 녀석만 잘 공략해 형수님처럼 만들면……크크크.’ ‘크음 어딘가 모르게 이상스런 인간이군. 제길 내가 이런 소드 마스터급 인간 하나 못 이길 정도였단 말인가? 별 수 없군. 그놈을 죽이려면 이런 녀석의 도움도 감지덕지일 판이니까. 일단 이놈에게 기대 봐야 겠군.’ 유희중인 드래곤과 복수를 꿈꾸는 인간이란 패턴의 정반대인 유희중인 인간과 복수를 꿈꾸는 드래곤. 이 둘이 만남으로서 이 세계의 미래는 큰 변동을 맞게 된다. 에드워드 엘릭 “푸! 젠장. 도대체 왜 배설물에서는 냄새가 날까?” “흠 메탄가스 등을 처리할 때나 썩을 때 나는 여러 요소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어제는 어딜 다녀오셨습니까? 대장.” “어 동료를 하나 만들어놨다. 이따가 오기로 했으니 소개시켜 줄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왜 맨날 똥 청소냐?” “그러게 말입니다.” 철퍽, 철퍽 아크는 대걸레에 가득 머금은 물을 발로 밟아 짜냈다. “흐…… 이 망할 자식들 조준을 어따 하고 싸길래 여기저기 다 튀기고 지랄이야.” “엉덩이 조준도 만만찮은데요? 여기 저기 늘러 붙은 것을 보아하니……토 나올 것 같네요.” “젠장. 밥맛 다 날아가네. 여기도 교육 좀 시켜 놔 볼까? 이 시키들이 신참이랍시고 이런 드러운 데만 시키고 앉았어.” 아크는 투덜거리면서 변기와 바닥을 닦았다. 오늘 아크와 에르디에게 주어진 청소는 바로 변소 청소. 그 향긋한 냄새와 청결도에 아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네놈하고 있으니 냄새 맡은 일만 몽땅 생기는군.” “면역되면 괜찮습니다.” “……. 난 절대 이런 거에는 면역되고 싶지 않아.” 이런저런 잡담에 그래도 똥 청소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후우 이 배 언제쯤 육지에 도착할까요?” “6일 후쯤이라고 하더라.” “커헉 6일 씩이나.” “6일 쯤이야. 그리고 좀 더럽긴 하지만 이 정도 고생은 젊어서 사서도 하는 거라더라.” 그 때 잡담 중인 아크와 에르디에게 엄청난 충돌음이 들려 옴과 동시에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쿠구궁! ‘어라? 뭐야?’ “호오? 에르디야 일 생겼다. 출동하자.” “무슨 일인데요?” “엄청난 살기를 머금은 것들이 배 째로 이 배에 충돌했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에르디는 곧 아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총 챙겨 와야지 않겠습니까? 무기가…….” “왜 없어?” “에?” “휘두를 수 있는 거면 뭐든 무기가 되는 법이다. 가기나 빨리 가자.” ‘이걸???’ 에르디는 황당함을 금치 못하며 아크가 집어들고 달려나가는 무기를 멍청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검은 바탕에 해골모양이 그려진 전형적인 해적선들. ‘샹 플라워’호의 거대한 몸집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여러 척의 해적기를 단 배들이 사다리나 건널판을 두고 거대 유람선에 해적들을 투입하고 있었다. “킹 블래드리.” 군인으로 변한 선원들을 지휘하던 선장은 해적선의 깃발을 보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귀족들이 타는 배였던 만큼. 웬만한 군함 못지 않은 화포와 최정예의 실력을 갖춘 선원들을 갖춘 샹 플라워 호 였으나 대륙 4방 바다들 중 남해 최대의 세력 남해 해적왕 킹 블래드리의 해적선에는 역부족이었다. 웬만한 해적들의 배였다면 접근 이전에 이미 화포에 접근조차 못 하고 박살이 났겠지만 남해 해적왕 킹 블래드리는 아니었다. 루드비안의 독점 영역인 대륙 동부 해안과는 달리 남부 해안은 루드비안과 캘더린의 접견 지대인 만큼 해적의 소탕이 어려웠다. 대륙 동부 해안이 루드비안의 영역내 존재해 지난 번 대대적인 토벌로 해적들이 씨가 마른데 반해, 남부해안은 루드비안이 토벌하려 하면 캘더린의 영해로, 캘더린이 토벌하려 하면 루드비안의 영해로 도망치는 바람에 해적이 극성을 부렸다. 두 나라가 연합하여 쓸어버리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지만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나라에서 연합을 한다는 일은 하늘이 두쪽 나도 없을 거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귀족들이 탄 배를 털다니……아무리 무지막지하고 멍청한 놈들이라 하나 지배층들이 탄 배를 털 경우 자기들에게도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은 자명할 터. 거기다 우리 배의 화포에도 끄떡을 않다니 이건 뒤를 봐주고 있는 세력이 있다는 건가?” 그랬다. 아무리 해적들이라고는 해도 귀족이 탄 배를 함부로 털지 못한다. 사회 지도층인 그들이 단 체로 살해당하거나 납치당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나서 대책마련에 나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전 몇몇 의적을 자칭하는 해적들이 귀족들을 공격의 대상에 넣긴 했지만 상선 습격이 전문이던 남부 해적왕이 갑작스레 의적이 되겠다고 선포한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으아악!” 샹 플라워 호의 선원들은 상당히 뛰어난 해양 용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약 4대 1 정도의 수적 약세는 도저히 메꿀 수가 없었다. “선원들아! 무기를 버리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은 전의를 상실시켰고, 끝가지 맞서 싸우면 해적들의 반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의 선원들이 하나 하나 무기를 놓아버렸다. “크크크크 귀족의 목숨을 빼곤 뭐든지 빼앗아도 된다. 이 킹 블래드리의 부하들아! 우리는 무적이다.” 샹 플라워 호에 올라탄 남부 해적왕 킹 블래드리와 그의 부하들은 배 안의 모든 것을 철저히 유린하기 시작했다. 몇몇 남자 귀족들은 꼴에 기사랍시고 검을 빼어 들고 달려들었지만 그들 모두 목과 몸통이 분리된 채 바닷속에 수장되었다. 배 안은 완전 아수라장이었다. 해적들은 닥치는 데로 약탈과 살인 강간을 일삼았다. 고귀한 신분의 여인을 능욕한다는 심리에 귀족부인들은 어린이까지 겁탈 당했다. 그 외 평민들도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위협에 승객들은 조금이나마 해적들의 손아귀에서 멀어지고자 도망쳤지만 도주의 끝은 이런 잔혹한 일이 벌어지는 것과는 안 어울리는 고요한 바다 뿐이었다. “이쪽이 귀족 객실이다!” 해적들은 귀족 객실을 마구 뒤졌다. 침대 밑에서, 옷장 안에서 숨어있던 이들이 튀어나왔다. “여긴 내 차지다.” 한 해적이 아직 아무도 열지 않았던 321호실을 열어제꼈다. 푸슉 푸슈슈슉! 문을 열자마자 날아오는 얼음의 화살들. 그 해적은 온몸에 고드름이 박힌 채 죽어버렸다. “뭐야?” 기괴한 모습으로 죽은 동료의 모습에 해적들은 조심스레 321호 실로 다가갔다. “살기를 뿜는 자는 살려두지 않는다.” 아직 변성기가 되지 않은 소년의 목소리와 함께 수백개의 얼음 조각이 해적들을 덮쳤다. “뭐, 뭐, 뭐야?” 동료들을 방패로 간신히 살아남은 한 해적은 박수소리와 함께 온몸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흐릿해져 가는 시야에는 금발 댕기머리의 키 작은 한 소년이 보였다. “귀찮게 됐군.” 짝! 박수소리와 함께 소년의 팔을 감싸고 있던 강철 장갑의 윗부분에서 은빛의 검날이 솟아나왔다. “하아 그 인간놈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다니……나도 참. 이 정도 일에 죽을 놈은 아니겠지만 혹시 모르니 나도 나서는 것이 좋겠군.” 소년. 에드워드 엘릭이란 만화 캐릭터의 외면을 뒤집어 쓴 실버 일족의 헤츨링 쥬레이나란은 은빛의 검날을 앞세우고 달려나갔다. 쨍그랑! “꺄아아.” “뭐야? 여긴 중늙은이들뿐이잖아?” 해적 둘이 주방에서 난리를 피우며 여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방의 특성상 연륜 있고 손맛 있는 나이 든 여자들이 대부분 음식을 맡기에 범할 만한 생각이 드는 여자가 없었다. 한 쪽 구석에 모여 앉아 떨고 있는 조리사들. “야 고개 좀 들어 봐.” “이것들이 고개 들란 말 안 들려?” 해적들의 호통에 여성들은 하나 둘 고개를 들었다 예상대로 아줌마들만 있었지만 두 명의 해적은 그리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는 왠지 모르게 더럽히고 싶은 청순함이 돋보이는 연갈색 머리의 소녀를 발견해 내었다. “너 나와.” “…….” 피리아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으로 용기 있게 일어났다. 감춰 두고 있는 8연발의 베레타와 6연발의 피스톨 총알은 모두 차 있었다. 예비 총탄은 두 총 모두 각각 두 발 씩 다 해서 18발로 많은 수를 상대하기는 힘들었다. 끽해야 18명 죽이는 것이다. 사람을 죽여 본 적이 없어 머뭇거려 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당할 상황. 별 수가 없었다. “벗어.” 일단은 순순히 칼자루를 쥔 쪽 말을 따라 주어야 했다. 총은 소리가 나는 데다 총알 개수 저항까지 걸려 있으니 쓰기가 뭐했다. ‘숨겨둔 단검뿐인가?’ 피리아는 윗옷을 벗어가며 속옷 주변에 숨겼던 단검을 손에 쥔 뒤 잽싸게 해적의 목으로 날려대었다. 휫! 푸슉! 목에 단검이 박히자 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아 주방을 적셨다. “이년이!” 남은 해적은 반월도를 휘두르며 피리아를 공격했다. 회피동작으로 그것을 피한 피리아는 주방에 있던 부엌칼을 꺼내 해적에게 겨눴다. 세르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대략의 몸싸움 정도는 익숙했다. 거기에 쥐꼬리 만큼이긴 하지만 아크가 전수해 준 내공심법으로 쌓인 운용할 수 있는 약간의 마나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완력에서 밀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큭 정말 이 기술만은 쓰기 정말 싫었지만…….’ 콰직! “끄아악!” 차마 쪽팔려서 기술 이름은 외치지 않았지만 아크의 최강의 권각법 ‘양촌리 딸딸이 권법’ 알 깨부수기가 해적에게 작렬했다. 여자로서 정말 힘든 선택이었지만 계속해서 허점이 보이는 남성의 급소를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자신이 당할 수도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허억!” 반월도를 떨어뜨리며 무릎을 꿇는 해적의 눈물이 찔금 맺힌 고통의 표정에 피리아는 새삼 아크가 전수해 준 이 권법에 고강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약간의 망설임의 시간이 있긴 했지만 곧 해적의 목에 일직선의 핏줄이 그어지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아주머니들 일단 여기에 가만히 계세요. 제가 어느 정도는 해적들을 막을 수 있으니 제가 지키는 한은 안전할 거에요.” 피리아는 뛰쳐나가지 않았다. 다 대 일의 전투에서 그녀는 총알이 떨어질 경우 그 즉시 사망이다. 지금으로서는 인간답지 않은 힘을 가진 대장을 믿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그라면 지금의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조심하세요. 석진씨.’ 피리아는 속으로 아크의 무사안위를 기원했다. 어디 보자. 그럼 주인공이자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아크는 뭘 하고 있나? “똥걸레 부비부비!!!” “우워억!” 한 해적의 얼굴에 각종 오물이 묻은 대걸레가 춤을 추고 있었다. 철푸덕 얼굴에 똥칠한 해적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섯 명 째.” “…….” 에르디는 정말 이 앞의 대장이란 남자의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똥걸레 부비부비’ 이게 과연 정상적인 기술이란 말인가? “죽엇!” 갑작스런 뒤에서의 습격. 그러나 그 공격은 아크가 내민 양동이에 막혔다. 아크는 양동이를 기습한 해적의 머리에 씌운 뒤 그대로 박치기를 가했다. “우웨엑!” 박치기의 진동에 안에 든 해적은 먹은 걸 모두 게워내었다. “야 에르디. 위액은 실험에 안 필요하냐?” “……좀 싸우려면 제대로 싸우십시오. 충분한 능력도 있는 분이 대체 왜 그리 매사에 장난질입니까?” “썩은 빵에 고랑내 양말, 정액 악취로 싸우는 네 녀석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 정말 슬프다.” “저도 한 때는 수련기사였습니다.” “그럼 지금은……?” “아동 성추행범을 섬기는 연쇄 살인범 정도? 더 이상은 관둡시다.” “후. 제대로 싸워라? 이런 것 말이냐?” 아크는 반월도를 들고 달려오던 해적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콰직! “흐억!” 첫 타는 오른 다리 무릎에 의한 급소타격(일명 양촌리 딸딸이 권법) 2타는 왼발로 배 타격. 3타는 왼발을 발판으로 디딘 채 급소를 공격했던 오른발로 명치 타격. “헙!” 숨막히는 소리가 들리고. 퍽! 마지막 제 4타는 다시 왼발 뒤꿈치를 이용한 턱의 타격이었다. 아크의 4연타에 맞은 해적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아랫 이빨도 상당수가 나간 듯 했다. “그럼 여기서 문제. 방금 전 똥걸레 부비부비에 맞고 기절한 놈 신세가 나을까? 이제는 돌아올 수 없게 골로 가버린 이 녀석이 나을까?” “…….” “방금 전의 행동은 적들에 대한 내 마지막 자비다. 혹자는 죽음보다 더 한 치욕이네 어쩌네 지랄염병을 떨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특히 여기 이 해적녀석들은 적에게 당한 치욕보다는 당장의 목숨을 더 귀중히 여기는 놈들이지. 이 4연타를 맞고 내장과 뼈란 뼈는 다 박살난 채 고통스럽게 죽는 게 나을까? 조금은 더럽더라도 살아 남는 게 좋을까?” ‘흐음……가끔가다 정상인처럼 보일 때가 있단 말야?’ “의외로 정상이군……이란 표정인데? 좀 맞을래?” “헉! 아 그 그게 저기.” 아크의 관심법에 말려든 에르디는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일단은 바쁘니까 봐 주도록 하지. 일단 객실들보다는 갑판 쪽을 처리하자고.” 아크와 에르디는 객실 출구를 찾아 달렸다. 그리고 곧 객실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4층 객실을 빠져 나온 터라 해적들이 몰려 있는 갑판과는 상당한 높이가 존재했다. 위에서 바라본 갑판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해적들은 저항하는 이들과 저항을 하지 않더라도 맘에 안 드는 이들을 학살하고 있었고 각종 보물들과 여자들을 보쌈해서 자기네 배로 운반하기도 했다. “이거 난입이 시급하군요.” “그래 슬슬 난입해 볼까? 넌 위험하니 잠시 빠져 있든지 하도록.” 그 때였다 거대한 폭음이 들린 것은. 퍼버버벙! 밀집해 있던 해적들에게 불꽃이 폭발했다. 그들은 폭발의 반동에 사망하거나 온몸에 불이 붙어 아우성치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쳇 역시 인간은 몇몇 빼고는 정말 별 볼일 없다니깐.” 폭발의 연기가 걷히고 그 폭발현장 속에서는 냉소적인 미소를 달고 있는 키가 작은 한 소년이 강철의 검날이 달린 강철 팔장갑을 끼고 있었다. 소년은 먼지가 걷히자 마자 팔에 강철 검날으로 해적들을 하나 하나 베어 넘겼다. “호오? 얼음칼날에 색상마법을 걸어 강철처럼 보이게 만든 건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군 에드워드 군.” 그랬다. 쥬레이나란의 강철 팔에 솟은 검날은 연금술로 연성 변형된 강철의 팔이 아니라 얼음의 검날에 색상 변환 마법 따위를 걸어 강철의 팔과 동일한 색처럼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짝! 여러 해적에게 포위된 급박한 상황에서 소년은 갑작스레 박수를 쳤다. 뭐 하는 짓인가? 하고 소년을 바라보던 해적들은 뒤 늦게서야 자신들의 몸뚱이가 어디서 났는지 모를 얼음조각에 난도질당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 모두 숨을 거둬버렸다. “으하핫! 내가 지시해 준 대로 잘하고 있어! 이제 땅꼬마라고 할 때 민감하게 반응만 한다면 완벽하다고!” “아는 애 입니까?” “내가 말한 새로운 동료다. 어때? 상당한 실력이지?” “흐음 마법의 적절한 사용에 움직임 또한 예삿 움직임이 아니군요. 저런 어린 나이에 비하면 대단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실력이군요.” 쥬레이나란은 검술 따위를 배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신체의 능력과 스피드 업 마법들의 적절한 조화로 본능적인 몸놀림만으로도 수십에 달하는 해적들을 처리하기엔 무리가 없었다 거기다 저런 몸놀림을 보이면서도 주변으로는 서서히 마법을 캐스팅하며 적절한 마법 공격을 퍼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우~ 나도 슬슬 합류해 볼까? 에르디 지금부터 내 모습을 잘 봐 두어라.” “에?” “수퍼 플라이. 지미 스누커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하고야 말겠다.” “???” 도대체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아크의 특기이긴 했지만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 에르디였다. “대체 그건 무슨 소리이신지?” “먼저 내려가마.” 아크는 4층 객실 베란다의 맨 끝으로 걸어간 다음 갑판 아래를 자세히 살폈다. 거대한 해골 표시의 모자를 쓰고 다른 일반 해적들과는 다른 거대한 언월도를 쥔 해적이 뭐라뭐라 다른 해적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가 바로 남부 해적왕 킹 블래드리였다. “대어를 낚아주지.” 아크는 매우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친 뒤 그대로 뛰어내렸다. “파이브 스타 프로그 스플래쉬!!!”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에드워드 엘릭 “……허거걱! 대장! 이건 미친 짓이라고요!!!” 3단 로프도 사다리도 스틸케이지 위도 아닌 4층 높이에서의 스플래쉬 공격. 정말 무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행위였다. 배의 윗부분에서 들린 정체 모를 고함소리에 해적선장 킹 블래드리는 위쪽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정체 모를 검은 물체가 자신을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익!” 급히 피하려 했지만 이미 그 물체는 킹 블래드리의 몸체를 덮친 뒤였다. 쿠당탕탕! “컥!” 킹 블래드리는 피를 토해냈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와 정면으로 부딪히면서 그는 갈비뼈 쪽을 크게 다쳤다. 뼈가 몇 개 부러져 나가 내장기관을 찌른 모양이었다. 그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자신을 덮친 그 물체를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인간의 육신이었다. 인간의 육신. 4층 높이에서 그것도 몸체로 떨어진 아크도 무사하지는 않았다. 마나를 끌어 모아 최대한 몸을 방비했건만. 부딪힐 때의 충격만큼은 은근히 남아서 아크를 괴롭혔다. 그런 아크를 보며 옆에서 전투 중이던 에드워드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미친 짓도 엔간치 해라.” “구하러 온 사람한테 할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만?” “도와주라고 한 적 없다.” 냉소적이기는……. 아크는 배를 움켜쥔 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그의 특기인 레슬링 기술과 성기 타격기 기술로 해적들을 하나 하나 상대해 나갔다. “저건…… 그 신참!” 샹 플라워 호의 승객과 선원들은 갑자기 나타나 실력을 뽐내는 둘 덕분에 해적들에게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찹! “끄허억!” 손바닥에 가슴을 맞은 한 해적이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인간 흉기의 무서움을 보여주지.” 아크의 신체가 닿는 곳에 무사한 이들은 없었다. 치이익! “으악! 이 이게 뭐야?” 치익 치이익! 한참 뒤 내려온 에르디는 분무기 안에 든 죽음의 액체를 여러 해적들의 얼굴에 뿌렸다. 그 강렬한 자극에 누구 하나 버티고 서 있는 이가 없었다. 객실에 침입했던 해적들이 속속 튀어나옴에도 불구하고 해적들의 숫자는 하나 둘 씩 줄어만 들어갔다. 보스인 블래드리가 쓰러졌음에도 용맹히 싸우던 해적들이었지만 세 명의 실력자들에 의해 싹쓸이를 당하는 것이다. “후퇴해라! 후퇴! 전원 후퇴다!” 드디어 후퇴란 말이 나왔지만 그때까지 도망 안 치고 있는 해적은 몇 되지 않았다. “흥 놔 줄 수는 없지.” “물론.” 아크와 에드워드는 동시에 동일한 빙한계의 마법을 사용했다. “아이스 트랩!” 얼음은 도주하는 해적들의 다리를 얼음 속에 속박해 그들을 도보 능력을 사용치 못하게 만들었다. “끄악!” “으아악!” 에드워드는 날쌘 몸놀림을 이용하여 발목이 묶인 이들을 가차없이 베어 갔다.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리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자비는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것뿐이다.” 아크는 묶인 이들의 뒷목을 하나 하나 손날로 쳐주었다. 뇌가 신체에 명령을 전달하는 신경 및 심장이 뇌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만 적절이 끊어준다면 별 고통도 없고 신체도 온전하니 편하게 죽을 수 있었다. 일방적인 해적들의 학살극이 될 줄 알았던 습격이 오히려 해적들을 대 학살한 학살극으로 변모했다. 남부 해적을 주름 잡던 블래드리 해적단이 단 둘에 의해(에르디의 경우는 후반부에 참가하여 전공이 적었다)괴멸 당한 것이다. 물론 본거지인 해적 아지트에 두고 온 소수의 병력이 있긴 했지만 이런 큰배를 털려 대부분의 병력을 이끌고 나왔기에 괴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았다. 풍덩, 풍덩 해적들의 시신이 선원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지고 있었다. 범죄자이자 사악한 해적들에게 장례가 있을 턱이 없다. 몇 죽지도 않았지만 몇몇 귀족들의 시체를 제외한 나머지 시신들도 바다에 버려졌다. 썩어서 냄새가 나는 시신들을 태우고 같이 항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고맙네. 정말 고마워.” 선장은 아크와 에드워드의 손을 꼭 잡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둘이 없었다면 지금 이 배 안의 모두는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갈 신세가 되었으리라. “뭐 그 대가는 이 해적들이 약탈해 놓은 이 귀금속 및 돈 되는 물건들로 받겠습니다만. 이의 있으신 분?” “목숨에 비하면 싼 대가다. 자네들이 모두 가져가게.” 목숨을 구원해 준 대가로 아크는 해적들이 약탈해 그들의 배에 옮겨 두었던 온갖 귀금속들을 받을 수 있었다. “안 돼요! 저게 얼마짜린데!” “절대로 안 돼. 차라리 내가 팔려 가겠어!” 그러나 그것은 몇몇 귀부인들의 막강한 반대에 즉각 부딪혔다. 시대와 차원이 달라도 빠순이들은 어딜 가나 염병이다. “귀찮다. 줘 버려.” “이봐. 사람 목숨이 중요해 이깟 보석이 중요해? 이런 빠순이들이 노예로 팔려 가면 다신 보지도 못했을 보석들 가지고 되게 뭐라고 해대고 난리네. 어쨌든 이건 우리 몫이니 챙겨 둬.” 아크는 막강한 방해에도 개의치 않고 귀금속들을 도로 가져다 배에다 실었다. 그러자 열성적인 보석 빠순이 아줌마가 하나 튀어나와 아크에게 막말을 내뱉었다. “뭐 하는 거야! 너 이 녀석 이런 천한 것 따위가 어디서! 고귀하신 귀족들을 구했다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어디서 대가 따위를 바라는 거냐?” 빠득! 아크의 성질도 한계가 있다. 그가 한국에서 빠순이 동생을 잡들이느라 얼마나 개 고생을 해 댔던가? 덕분에 아크는 여동생과의 사이가 무척이나 안 좋았고 폐인이라며 개 무시를 당했었던 뼈아픈 기억이 있었다. 아크는 숨겼던 마나의 기척을 모두 개방시켰다. 엄청난 기운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신성력에 기초를 둔 기운이라 전혀 무섭거나 위압적이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제기랄!’ 마나를 완전개방 해도 별 차도가 없자, 아크는 이 빠순이 아줌마의 목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눈동자를 뒤집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적으로 돌아선다면 이 배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죽기 싫으면 닥치고 가만있어.” 초크 슬램을 쓰려는 자세에서 아크는 그냥 빠순이 아줌마의 목을 놓아주었다. 괜히 사고 더 쳐서 좋을 일은 없다. “가자. 에드, 에르디, 피리아. 여하튼 간 계급이 왕이로소이다구먼. 이거 짜증나서 나도 빨랑 귀족자리 하나 꿰차든 지 해야지 원.” 아크와 피리아, 에르디, 에드워드는 킹 블래드리의 해적선에 올라탔다. 큼지막한 배도 한 척 생겼고 새로이 생긴 목표에 아크의 눈깔이 뒤집어 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남부 해적왕 킹 블래드리가 아지트에 쌓아 놓은 지금껏 약탈 및 노예장사로 모아 둔 수많은 금은 보화들이 이제 주인이 없어진 일 때문이었다. ‘여자와 돈은 많을수록 좋다.’ 란 사상을 가진 아크로서는 당연히 가봐야 할 수순이었고, 아직 어리지만 탐욕스런 드래곤 종족의 핏줄을 이어받은 쥬레이나란 역시 현재 원수인 드래곤의 행방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아크의 의견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흔쾌히 찬성했다. “그럼 출발하자고.” “저기 노꾼도 없는데. 설마 이 큰배를 4명이서 노 저어 가자는 소리는 아니겠죠?” “걱정 말아. 어이 에드.” “실피드여. 내 의지대로 바람을 일으켜 이 배를 움직여라!” 소년의 외침에 세찬 바람이 불어와 아크가 칭한 일명 ‘울트라 돌고래 2호’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NovelExtra(novel@quickskill.com)=+= 에드워드 엘릭 아크는 시원한 바닷바람(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인공의 바람이지만)을 맞으며 푸른 하늘 저 멀리를 바라보다가 배 끝에 달린 깃발이 눈에 거슬렸다. “저 해적기가 눈에 걸리는데?” 짝! 화르륵! 에드워드의 박수소리와 함께 남부 해적왕의 표식인 해적기가 불타버렸다. “브라보!” “그건 좀 오버다.” 과장된 언사를 내뱉은 아크와 한심하다는 듯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에드워드. “후 이제 항해도 시작했고 하고 기본적인 4인 동료 체제도 이루었으니 자 서로 통성명이나 하자고. 어이 에르디, 피리아 여기 에드워드군하고 통성명들 나누라고.” 아직까지 서로 통성명이 없었던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내 이름은 에드워드 엘릭. 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가까이 지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이는군. 반갑다.” “난 에르디 게이레로.” “피, 피리아야.” 에르디는 이 새로운 동료를 꽤나 맘에 들어하는 모양이었지만 피리아는 이 눈앞에 에드워드란 소년을 두고선 자꾸만 말을 더듬거렸다. “저, 저기 에드워드. 그 팔하고 다리는 어떻게 된 거야?” “강철 의수와 의족이야.” 이 질문에 대한 에드워드의 답변을 들으면서 피리아는 확신했다. 이건 분명 그거다. “……대장. 잠깐 저 좀 봐요.” “어? 그래.” 피리아는 아크를 끌고 에르디와 에드워드가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데려갔다. “도대체 누구에요?” “소개했잖아. 에드워드 엘릭이라고.” “저도 그 애니 봤어요.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얘기해요. 왜 그 ‘강철의 연금술사’가 여기 있는 거에요?” “닮은 사람인가 보지. 나도 처음에 놀랐는걸?” “자꾸 이럴거에요! 그래요. 닮았다고 까지 치자고요. 아무리 얼굴이 닮았다고는 해도 저 팔하고 다리에 입고 있는 옷. 거기다 그 문양까지 똑같은 은시계. 마법을 쓴답시고 박수치는 것까지. 이건 단순히 닮은 정도가 아니잖아요!” 아크는 그제야 더 이상 피리아를 속일 수 없음을 눈치채고는 진실을 털어놓았다. “쩝. 저 녀석은 헤츨링 이라고도 하는 유아기의 드래곤이야. 나와 동료가 되고 싶다길래 조건으로 내가 보여준 만화 캐릭터대로 변하라는 조건을 걸었지. 지금 모습이 바로 내가 보여준 만화 캐릭터.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이지.” “……악취미로군요. 그렇게 만화 캐릭터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원래는 여자로 변신시키려고 했다고 근데 워낙 여자는 싫다고 난리 길래 울며 겨자 먹기로 변신시킨 거야.” “…….” 피리아는 할말을 잊었다. 세르미도 섬의 대학살. 이 천인공노할 사건이 상층부에 알려진 것은 이때쯤이었다. 아크가 저지른 대학살에서 운좋게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2명의 교육병. 그러나 배도, 통신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그 일대에 몰아친 폭풍우 덕에 이 대학살극의 참상은 벌어진 뒤 수십일 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초유의 대 유혈 사태에 제국은 발칵 뒤집혔다. 주동자는 아크라는 이미 세상을 한 번 떠들썩하게 했던 유명한 아동 성추행범. 이미 사망했다고 알려진 디그리스 왕국의 ‘지략의 기사’를 사칭하여 노예 주제에 귀족 행세를 하며 백작가의 영애를 수련이란 명목으로 능욕한 희대의 변태였다. 그런 그가 황명으로 창설된 특수부대 619에 차출되었다가 혼자서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넷과 40여 교육병들을 살해한 이야기는 제국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제국 내 가장 뜨거운 화두는 희대의 대학살자 ‘아크’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였다. 아크가 처음 체포되었을 당시 그의 귀족인장을 확인한 수사관들이 디그리스의 귀족 인장 색인 선홍빛만을 보고 섣불리 판단했기에 진자 그가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란 것을 확인한 이는 엘레노어 백작가의 영애 유카나 엘레노어 뿐이었다. 하지만 역사서에 서술된 인상착의나 금빛과 은빛의 광채를 뿜는 두 자루의 검을 가지고 있다는 정황증거, 기사 넷을 혼자서 죽인 실력은 그를 진짜 지략의 기사란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거짓 역사 속 미사여구로 치장되긴 했지만 세간에는 일명 ‘영웅 아크’가 그러한 사악한 짓을 저질렀다고 믿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한 번 주입된 선입관이 참으로 무서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이래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막아야 한다) 마법 현장 검증과 증언에 따라 학살의 도구가 7서클의 전체 마법 ‘아이스 스톰’이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마검사’아크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마검사들을 보유한 루드비안 제국의 적대국 캘더린의 비밀 마검사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렇듯 아크의 정체는 미궁에 빠진 채. 얼마 전 유람을 끝내고 도착한 ‘샹 플라워’호 에서의 승객들의 증언에 제국에는 그 대학살자 아크가 남부 해적왕 킹 블래드리의 해적단을 동료로 보이는 한 소년과 함께 단 둘이서 궤멸시켜 버렸다는 신빙성이 확실한 무용담까지 떠돌면서 상부나, 하층민이나 온 국민의 관심이 아크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그 아크란 자를 잡아 오라?” “그런 모양입니다.” “허허 거 참. 권력이 싫어서 영지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뭐 그리 위험하다고 자구만 그렇게들 날 경계하며 내 힘을 줄이려 하는 지 모르겠군.” “일단은 황명입니다. 따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알았네. 나가 보게.” 루드비안 제국 최남단에 위치한 최대의 영지 티스버그. 이 영지의 주인은 지구에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과학이 가장 발달한 현 루드비안의 과학력을 발전시키고, 총이라는 살상무기를 만들어 보급시킨 현재 나이 120세의 현자. 코프하겐 칸딘스키 공작이었다. 56세의 나이로 자신의 발명품들을 선보이며 전 황제의 눈에 들어 지위가 급상승한 인물로 애초부터 권력싸움에는 무심하여 수도에서 가장 말리 떨어진 영지에서 자기 연구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끄흠…….” 그는 중앙에서 내려온 전보에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았다. 그 골치를 썩이던 킹 블래드리 해적단이 궤멸되었다는 소식에 좋아지려던 기분은 그 해적단을 단 둘이서 궤멸시킨 이들을 잡아오라니 이건 뭐……. “후우.” 칸딘스키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영주 집무실 앞에는 총을 든 늠름한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총……총이라.” 문득 그는 이 영주 관저 지하실에 숨겨 둔 ‘그것’에 생각이 미쳤다. 만약 그것을 완성시킨다면 자신은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만들어져서는 안 되었다. 총기와 기타 등등 여러 실용 과학으로 기이한 것이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지식을 끌어다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적이 너무 많았다. 이기적이지만 그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아니 꼭 그런 목적이 아니더라도 마왕이 강림한다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을 쓴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권총을 꺼냈다. 이 녀석이 있었기에 그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차라리 그때 이것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버렸다면……. “공작 각하. 출정 준비 끝마쳤습니다.” “으음 벌써?”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준비를 다 끝마친 것을 보니 보고하기 전에 이미 준비를 마쳐 둔 모양이었다. “그럼 출정토록 하겠습니다.” “그래? 흠……나도 출정할 터이니 잠시만 기다려주게.” “아니? 가실 생각이십니까?” “만나 보고 싶은 자라서 말이야. 그 아크라는 자 말이야.” “알겠습니다.” 칸딘스키 공작은 단단히 무장을 갖추고 나가는 가신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집무실 책장으로 옮겼다.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라…….” 사실 지략의 기사의 진짜 정체는 팬크라프트 상층부를 비롯한. 조사를 조금만 한다면 대충 다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워낙 왜곡이 심하게 되기도 했고 지략을 써서 팬크라프트의 10만 대군을 전멸시키거나 소드 마스터 젤리커를 꺾은 등의 굵직한 사건들은 진실이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굳이 캐지는 않지만 말이다. 칸딘스키 공작과는 별 관련이 없었지만 그는 문득 전해들은 지략의 기사가 전사했다고 알려진 그 포르티아 시가전에서의 이상한 점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실버 드래곤의 브래스가 직격한 그 흔적과 지략의 기사의 기이한 피부색과 흔치 않은 머리색. 그것은 이계의 검사였다는 팬크라프트의 국부 진. 이후 또 다른 황색인종이었다. 이 세계에 있는 나머지 대륙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대륙만큼은 황색 인종이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무신 진과 같은 이계인들이나 혹시나 존재할지 모를 타 대륙의 인간들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항이지만 실제 이런 이계의 사람을 아는 팬크라프트의 렌도로스 대공이라든지 하는 사람들은 이 사항에만큼은 민감했다. “아크라……한 번 만나 보고 싶군. 시기상으로 봤을 때는 나 이후의 인간일 것 같은데. 무라카미……도대체 몇이나 더 차원의 희생자로 만들 셈인가? 응? 후후후후후. 하하하하하.” 칸딘스키 공작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또 다른 희생자에 대한 동정에서 나오는 광소였다. “자네만큼은 나나 진처럼 실수하지 않기를 빌겠네. 지략의 기사여. 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공작의 광소가 온 저택 안을 뒤흔들었다. 울트라 돌고래 2호의 항해는 매우 순조로웠다. 노젓이 꾼 없이 물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여 모터라도 달린 듯 빠른 속도로 남부 해적들의 본거지 트윈 섬으로 향했다. “저기 보입니다.” 에르디의 삿대질에 아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오호 저기로구만.” 두 개의 독같이 움푹 튀어나온 섬. “쌍둥이 섬이라 불릴 만 하군요.” “납작가슴섬이 더 어울리는데?” ‘이런 변태 같으니라구. 그런 소릴 여자 앞에서 꼭 해야 돼?’ 아크는 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피리아의 호감도가 하락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해적들의 아지트라 그런 지 배를 댈 선착장까지 아주 잘 마련되어 있군. 그래.” “아직 해적 잔당들이 제법 남은 것 같으니까 에르디하고 피리아는 조심하라고.” 아크 일행은 배를 잘 정착해 두고 섬의 모래사장에 내렸다. 킹 블래드리 해적단이 궤멸한지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곳에 남아 있던 해적들은 아직 그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아크의 손에는 남부 해적왕이라 불리던 남자의 수급이 들려 있었다. 되도록 평화적으로 해결하고는 싶었지만 지금 아크들의 입장은 해적들의 보물을 빼앗으러 온 강도였다. 그렇다고 아크의 성격상 해적들을 먼저 공격하기는 뭐했으므로 해적들에게 자극제가 될 만한 것을 들고 온 것이다. “어이 되도록 죽이지 말도록 해. 여기 놈들은 기사들과는 달라서 적이 강하다 싶으면 알아서 기어줄 거야.” 아크 일행은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상륙을 시작했다. “뭐냐? 너희들?” 남부 해적왕의 표식이 있는 철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두 명의 해적이 무기를 꺼내 겨누고는 말했다. “우리? 오늘 부로 이 구역을 접수하게 되실 새 남부 해적왕이다.” “뭐? 이 년놈들이 돌았군.” 보초 해적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대부분이 일하러 나가긴 했지만 아직 병력도 건재하고 각종 트랩이 설치된 해적 아지트를 단 넷이서 접수하겠다니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런 개그를 할 턱이 없다. “역시 못 믿네. 야 이거 봐봐.” 아크는 손에 쥐고 있던 수급을 해적들에게 던졌다. 살짝 냉동시켜 놓아 핏기가 없고 지나칠 정도로 창백하고 차갑다는 것 빼고는 생전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머리였다. “……!” “보, 보스!” 해적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 굴러다니는 목의 주인이 며칠 전 한탕하러 나갔던 보스인 남부 해적왕 킹 블래드리란 것을 한 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자의 목을 벤 게 바로 나다.” 에드워드가 거들먹거리며 앞으로 나가자, 보스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한 해적이 반월도를 휘두르며 달려왔다. 깡! 반월도는 에드워드의 강철 팔둑에 그대로 막혔다. 소년은 칼에 닿은 오른팔과 몸을 동시에 뒤로 물린 뒤 박수를 쳤다. 그러자 소년의 오른팔에서는 탁한 회색 빛의 강철 검날이 솟아 나왔다. 해적은 그틈을 이용해 에드워드를 공격했다. 그러나 소년은 피할 생각도 않고 솟아난 강철 검날을 해적을 향해 겨누었다. 푸슉! “끄억!” 강철의 검날은 여의봉처럼 길어져 해적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짝! 다시 한 번 박수를 치자 검날은 원래의 크기로 줄어들었다. “어이 너 살아남은 놈.” “뭐이?” “덤빌 생각 하지 말고 친구들 데려와. 안 그럼 재미없을 줄 알아.” 소년의 건방진 말투에 살아 남은 해적은 발끈했지만 어느새 다시 길어져 자신의 목을 노리는 강철 검날에 기겁해 아지트 안으로 도망쳤다. 그 해적은 패배자가 도망치면서 꼭 한마디씩 하는 패장의 불후의 명대사를 날리며 여운을 남겼다. “두고 보자!” “뭘 두고 봐? 야동? 짜식들 어딜 가나 저 대사를 하는 놈들이 꼭 하나씩 있어요.”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튀어 나올 것 같다. 에르디.” “옙. 대장.” “던질 준비하고 에드하고 피리아는 뒤로 물러나 있어.” “예? 화염병은 피해가 여기까지 오지는 않을텐데요?” “그게 아니니까 떨어지라고 하는 거다. 잠자코 물러나……죽기 싫으면.” 아크가 ‘죽기 싫으면’에 임팩트를 둬서 음침하게 말하자, 에드워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 설마 그 때 그?” “아마도.” “……!” “……?” 피리아야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샹 플라워의 갑판에서 에르디와 함께 싸웠었던 에드워드는 당시 그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죽음의 악치를 맡아 본 경험이 있었던지라 아크와 함께 잽싸게 도망쳤다. “본인은 자각이 없는거냐? 저렇게 가까이 있게?” “익숙해지면 잊어버린다고 하더군.” “처음에는?” “처음에도 괜찮았었대. 가문이 멸문하고 도망다니면서 거름장이를 했다나봐.” “거 참 너 못지 않은 신기한 인간이로구만.” “칭찬으로 알겠다.” 아크가 에드워드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반경에서 벗어나자, 곧 문안에서 열댓명의 해적들이 뛰쳐나왔다. “투척해라 에르디.” 아크의 외침에 에르디는 황갈색의 액체가 든 병을 있는 힘껏 던지고 아크가 있는 쪽으로 달려나왔다. 쨍강. 병이 깨지고 액체가 흘러나오자 맹렬히 돌진해 오던 해적들은 하나 둘씩 코를 틀어막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 시작했다. “쿠웩!” 오바이트까지 가미해가며 니코틴 먹인 실험관 속 흰쥐처럼 그들은 쓰러져 갔다. “욱!” 그 강렬함은 바닷바람을 타고 미세하게나마 멀리까지 전송되었다. 그러자 헛구역질을 하는 피리아. 그런 그녀를 에드워드와 아크가 각각 위로했다. “처음이었다면 좀 더 떨어지는 것이 좋았을 것을……실수했다. 여자.” “혹시 임신?” 퍽! “꾸엑!” 부하와 대장의 현 신분이었지만 그 이전 신분은 일단 친구였던 피리아는 순간 발끈하여 아크에게 그 강력한 팔꿈치 어택을 먹였다. 다행인 것은 아크에겐 하극상을 당해도 별 신경 안 쓰고 넘어가는 관대함이 있다는 것쯤이랄까? “컥……농담이었다구. 이렇게 세게 때릴 필요까지는 없잖아?” “제발 그런 소리 좀 하지 말아요! 경험도 없는 숫처녀한테 임신이 뭐에요! 임신이!” “그럼……상대해줄까?” “예에? 장난 하지 마요.” “아니라면?” “예?” “장, 난, 이 아니라면? 자넨 내 소유라고 했지? 원래대로라면 자네는 그곳에서 공중변소가 될 운명이었어. 그런데 왜? 싫어? 한 사람 보단 여럿이 좋다는 건가? 음란하군.” 아크는 서서히 피리아에게 접근해 갔다. 그 위세에 밀려 피리아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충분히 뒤로 물러나 도망칠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 버렸다. “자, 장난하지 마세요. 다들 보고 있다고요.” “어 장난이야.” “뭐……라고요?” “장난이었다고.” 뚝 이성을 간신히 잡아두던 인내의 끈이 마침내 끊어져 버렸다. 찰칵. “다음 생에 또 다시 만나길 빌게요. 대장…… 잘 가세요.” 탕! 탕! “어이. 진짜 쏠 건 없었잖아? 으걋!” 날아오는 총알에 기겁한 아크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교훈 : 헛소리는 죽음의 지름길이다 ……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노움! 이 액체를 대지에 스며들게 해라! 실프! 바람으로 이 냄새를 날려보내라!” 에드워드가 불러낸 두 속성의 정령이 에르디가 던진 최악의 악취를 어느 정도 가라 앉게 해 주었다. “총 15명이로군 나머지는 없거나 더 깊숙한 데 처 박혀서 안나온단 얘기가 되겠군.” “생명의 기운으로 봐서는 안에 제법 있어 보인다. 그런데 안 나온다는 건 겁먹고 숨었거나 우릴 유인하는 것일 테지.” 아크와 쥬레이나란은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이 15명을 끝으로 해적들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쳐들어가야 겠지?” “그래야겠지.”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둘의 의견은 이걸로 모아졌다. “어이 에르디하고 피리아. 너희 둘은 여기서 대기해라.” “예에? 저희도 따라 가겠습니다.” “안에 어떤 함정이나 꽁수가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너희 둘을 지켜줄 수는 없다. 대장으로서 명령이다. 여기 기절한 놈들은 알아서 처리하고 이곳에서 대기해라. 나를 돕겠다 라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것이 역으로 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유념해 두도록. 가자 에드워드.” 어떠한 함정이나 매복이 있을지 모르는 곳에 에르디나 피리아는 데려 갈 수 없었다. 총과 괴상한 약품들을 이용한 공격력은 쓸만한 둘이었지만 함정 같은 게 있으면 이 둘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 가지.” 아크는 에드워드와 함께 해적 소굴 안으로 들어갔다. “판타지에 꽃! 던전 탐사라……던전의 끝에는 탐욕스런 보스 드래곤과 수없이 쌓인 보물의 산더미와 납치 당한 아리따운 공주가 있겠지. 여긴 해적 소굴이긴 해도 해적왕이 보물이라……이거야말로 불후의 명작 보물섬부터 시작되어 원피스를 찾아 헤매는 루피까지 그 모든 사나이가 꿈꾸는 로망이 아닌가!” “헛소리좀 엔간히 지껄여라. 내가 살던 해저 레어 같은 경우에는 음성만으로도 바닷물이 차오르는 트랩도 있었다. “저급한 인간들이 그걸 따라할 수 있겠냐? 지구만 해도 음성 인식 시스템이 이제야 체계화 상업화 됐는데. 아무리 마법이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 문명의 진척 단계에서 인간이 그 정도까지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을 저급하다고 하는 건 처음 본다.” 해적소굴은 지금까지는 일방통행로 였다. 회갈색의 벽에는 횃불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고 때때로 해골로 만든 장식도 있어 음침함이 더했다. 횃불이 있긴 해도 완전히 환한 것은 아니었던지라,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꺼내어 던전의 암흑 속을 밝게 비추었다. “누구냐!” 갑자기 해라도 뜬 듯 아지트 내가 환해지자 태양을 피하고 싶었던 몇몇 해적들이 아크와 에드워드를 향해 다가왔다. “어라? 못 보던 녀석들인데? 어이 거기 땅꼬마. 넌 누구냐?” “…….” “엥? 너 발끈 안 하냐?‘ 아크는 에드워드 엘릭이란 캐릭터로 변신한 쥬레이나란이 에드워드의 작다는 소리에 발끈! 이란 특유의 퍼포먼스를 안 하냐고 물었다. “아! 맞아. 작다 작다 하지 말라고!” 퍽! 소년의 강철팔에 적중한 해적은 원 펀치 쓰리 강냉이로 세 개의 누런 이빨이 날아갔다. 여하튼간에 시키는 놈이나 하라고 해서 하는 놈이나 정신머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원 킥! 투 메추리알 박살!” 콰직 “끄아아악!” “원 헤드 벅! 대가리 박살!” 빡! 아크는 순식간에 남근 찍기와 김일의 초필살기인 박치기로 나머지 두 해적을 제압했다. “브라보 그래 이놈들은 어떡한다?” “일시 냉동 보관.” “좋은 생각이군.” 탁! 탁 소리와 함께 세 해적은 사이 좋은 냉동 갈치로 변했다. “흠 그나저나 이렇게 소수 단위로 덤비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가 들어 온 걸 모르는 모양인데?” “그도 그렇군. 그치만 지금은 일단 앞만 보고 가자.” 어두운 일방통행로는 끝없이 지속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무심하게 걷기만 하던 아크는 그야 말로 무심결에 벽에다 왼손을 대었다. 구르르르르 “엥?” 천장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곧 이어 대가리만 있는 모닝스타 여러 개가 아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아악!” 갑작스런 함정 발동에 아크와 에드워드는 기겁하며 괴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이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보기 힘든 실감나는 오버액션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닝스타가 밤송이 마냥 둘의 머리에서 퉁퉁 튕겨나갔기 때문이다. “괜히 쫄았네.” “크하핫! 방금 전 비명소리는 아주 굿이었어!” 아크는 에르디와 피리아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자신과 쥬레이나란이었기에 멀쩡하지, 그 둘이 이 트랩에 걸려 모닝스타를 머리에 얻어맞았다면 속절 없이 머리가 깨지고 뇌수가 흘러나온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조잡한 함정쯤이야.” “으음? 저기 뭔가 있는데?” 에드워드가 삿대질을 한 곳에는 웬 나무상자가 하나 떡하니 놓여있었다. “저, 저건 RPG게임 모든 레어 아이템이 살아 숨쉬는 그곳! 상자가 아닌가!” 아크는 그 즉시 달려가 상자를 열었다. “잠깐! 조심하는 게 좋을…….” “뜨아악!” 에드워드가 조심하라는 말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상자를 열었던 아크는 손에 쥐덫이 걸린 채 아프답시고 빽빽 소리지르고 있었다. “쥐만도 못한 인간이로군. 상자 뒤에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에 덫에다 미끼까지 넣어 놓은 걸 잡으려다 쥐덫에 걸려? 지능지수가 의심스럽군.” “큭……젠장 이제는 쥐 취급까지 받다니……내 명운도 이걸로 끝인가 보오이다.” “명운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아크는 쥐덫을 부숴버렸다. 그런 아크의 손목에는 누가 물기라도 한 듯 뻘건 자국이 남아있었다. 사람이 걸리라고 놓은 것도 아닌 고작 쥐를 잡으려고 놓은 덫에 걸려들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또 없었다. 물론 아크야 이런 망신 따위는 신경도 안 썼지만 말이다. 아크는 은근한 통증이 남아 있는 오른팔을 만지작거리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트랩 하나와 쥐 잡이 용 트랩이 있긴 했지만 이 해적 아지트는 별 다른 위험이 없었다. 해적들이야 수백이 덤벼들어도 아크들에겐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까닭 없는 평화는 더 불안한 법. 웬만한 트랩이야 밟고도 웃어넘길 수 있는 아크와 에드워드지만서도 어둠 속 횃불의 불빛만 은은한 폐쇄된 공간이 주는 공포는……. “후아아암……졸려.” 별 것 아닌가 보다. 하긴 아크에게 뭘 더 바라겠나? “이거야 뭔 함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끈한 전투가 있는 것도 아니고……쥐덫이나 한 번 더 밟아볼까?” 방금 전 쥐덫 밟고 생난리 지랄을 피운 놈이 또 밟아서 뭐하게? “함정속이 안 위험하다고 불만 갖는 인간도 처음 보는 군. 혹시 내 레어에 가보지 않겠나? 마스터도 풀려날 수 없는 9서클의 석화마법을 맞아도 그 소리가 나오나 보자고.” “…….” 그 말에는 낯짝에 3단 철판 합금을 깐 아크도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 한참을 더 가자 드디어 문이 나왔다. “호오? 이 안에 뭐가 있을까?” “인간으로 측정되는 생물 다섯에서 여섯 마리.” ‘……냉소적인 녀석 같으니.’ 애니메이션과 만화 속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도 어딘가 모르게 뾰루퉁하고 냉소적인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이 녀석은 어딘가 한 술 더떴다. ‘하긴 어렸을 적 조실부모하고 복수란 일념으로 살아온 놈이니 그럴 수도. 하아~진무 형님처럼 복수는 부질없는 짓이다라고 했다간 개 난리 깽판을 치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크는 문짝을 똑똑 두드렸다. “여보세요. 안에 계십니까?” “뭐 하는 거냐? 그냥 쳐부수고 들어가지?” “이봐 손님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네가 손님이냐?” “……초대받지 못한 손님도 있는 법이야.” “개소리.”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고 해적 두건을 두른 해적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넌 뭐야?” “신문 보지 않으시려오?” 갑자기 웬 신문? 하지만 아크는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었던 외판원 놀이를 지금 이 해적에게 하는 거였다. 남들은 생계를 위해 남의 욕 들어가면서 하는 외판원을 놀이로 생각하고 하다니……참 소갈머리 없는 놈이다. “신문 그게 뭐야?” 더군다나 이곳에 신문이란 것이 있을 턱이 어디있고 또 그걸 알 턱이 어디있나? 때문에 아크는 외판의 방향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그럼 보험 들지 않으시려오?” “보험은 또 뭐야?” “흠……지금 들어 놓는 것이 좋소이다. 설명해 드리지요. 보험은 말이오. 자신의 신체나 재산에 이상이 생길 때 그것을 보상해 주는 것이라오. 매달 보험료를 납부했을 때 이야기지만.” 확실히 이제부터 시작될 아크와 에드워드의 깽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제안이었지만 해적이 그걸 알 리가 있나. “필요 없어. 꺼져.” “어허 지금 들어 놓는 것이 이롭다니깐!!!” “이 자식이 필요 없다니까!!!”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해 드리지요.” 퍽! 아크는 해적에게 유로피언 어퍼컷을 먹인 뒤 반쯤 열린 문을 마저 열고 당당히 들어갔다. 거품을 물고 기절한 해적에게 아크는 연민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거봐. 보험 들어놓으면 좋잖아. 이빨도 제법 많이 나갔으면서.” 동료가 갑자기 쓰러지고 웬 이상한 놈이 들어오자, 도박을 하며 놀고 있던 해적들이 옆에 놔두었던 반월도를 잡고 하나 둘 씩 일어났다. “뭐야 네놈?” “나?” “그래 너!” “목마른 사슴!” “뭐라는 거야?” 또 시작된 아크의 헛소리 페스티벌. 어디 한 번 두고보며 천천히 감상해 보도록 하자.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해적의 보물을 노리는 이가 해적소굴에 굴러들어온 것이 게 무엇이 이상한가? 허헛.” “뭐야? 이 자식이!” 해적들은 반월도를 들어올리며 아크를 향해 쇄도해 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반월도가 일제히 아크에게 날아오자, 아크는 일단 그것을 피한 뒤 그 해적의 다리 밑에 팔을 집어넣고 그 해적을 들어올렸다. “에프 파이브!” 아크는 들어올린 해적을 한 바퀴 돌리면서 뒤에 다가오는 해적들에게 던져 버렸다. 한 때 WWE(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의 차세대 최고 거물로 불리던 챔피언 브록 레스나의 피니쉬를 아크가 약간 변형시켜 사용한 것이다. “침입자다!” 해적의 외침과 함께 해적들의 휴게실로 보이는 방의 사면에서 해적들이 개떼같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그것도 꼬맹이까지 달고 들어오다니 간뎅이가 물 좀 먹은 모양이구나.” “어이 달고 온 게 아니라 오히려 나보다 더 잔인하다고 그러니까 말야 최대한 내 선에서 당하고 누워 쉬어라. 어이 보험 들 놈? 없냐? 없으면 말고. 자 내가 상대를 해주도록 하마.” 아크는 자신의 몸에 신의 가호를 걸었다. 아크가 익혀 둔 다 대 일 전투 최강의 공격기술을 사용하려면 무기류 등에 대한 위협을 사전에 원천봉쇄 해 두어야 했다. 아크는 양팔을 쫙 폈다. 그리고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더블 연타 크로스라인을 받아 보아라!” 퍼버버버버벅! 양 팔을 펴고 달리는 아크의 모습은 인간 흉기 그 자체였다. 해적들은 아크의 크로스라인에 목을 맞고 하나 둘 씩 청소되었다. 잠시 후. 아직 죽지 않은 시신더미 들 중에서 아크는 제법 멀쩡한 놈을 골라 일으켜 세웠다. “야 보물창고 어딨냐?” “그런 걸 알려줄 성싶으…….” “스톤 콜드 스터너!” 아크는 부정의 의사를 듣자마자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편 다음 해적의 배를 발로 차고 해적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올린 뒤 스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그대로 턱을 자기 어깨에다 찍어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해적을 일으켜 세웠다. “야. 너 보물 어딨어?” “모 모른다!” “그래? 이 짜식이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불독!” 아크는 그 해적의 뒤통수를 오른손으로 잡고 자신은 낙법을 사용해 낙하하면서 그대로 해적의 면상을 땅바닥에다 박아버렸다. 그 다음 타겟은 한 누워 있는 놈이었다. “야 보물 어딨는지 아냐?” “모른다.” “오호? 그러세요?” 아크는 해적의 다리를 벌리고 발은 가랑이 사이에 댄 뒤 마구 밟았다. “진 동 안 마!” “흐아아아악!” “고자될래 말할래?” “…….” 그러나 이번 것은 너무 고통이 심했는지 해적은 금새 기절해 버렸다. “……흐음. 야 느그들 기절한 척 하지 말고 일어나라?” 해적들은 멀쩡한 놈들만 골라 패는 아크에게서 벗어나기 위하여 기절한 척 하면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 때 멀뚱히 서서 구경만 하던 에드워드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멍청한 녀석. 저리로 가자.” “어?” “저 쪽에서 아티팩트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 그럼 가자.” 아크와 에드워드는 여기 저기 널려진 해적들을 밟고서 계속해서 걸어갔다. “꾸헉!” “으아악!” 그리고 발판이 되어 버린 해적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동굴 안을 뒤흔들었다. 약간을 걷자, 나온 거대한 돌문에는 석판으로 된 퍼즐이 존재하고 있었다. “오호!” 관심을 가지고 문에 다가서는 아크. 어드벤처 게임의 단골 메뉴 퍼즐 열쇠라……. 퍼즐 열쇠. 퍼즐을 맞추면 문이 열리는 롤플레잉 게임 도중 던전 탐사나, 어드벤처 게임에는 단골 메뉴인 퍼즐 열쇠. 사실 열쇠로 문을 잠궈 두는 것이 더 나을진대 어떤 멍청한 놈이 문을 아무나 열게끔 퍼즐로 열쇠를 만드는 지 의문이었지만 아크는 마냥 실전 게임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비켜라 아크.” “응?” 막 퍼즐을 풀려고 하던 아크는 에드워드의 싸늘한 말에 몸을 비켜주었다. 그리고. 퍼버버벙! “……!” 마법과 함께 퍼즐이 있던 돌문은 완전히 작살나 거대한 구멍이 나 있었다. 확실히 빠른 방법이긴 했지만 퍼즐을 최단시간 내에 풀어내어 자기 두뇌의 우수성을 뽐내려 했던 아크는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자. 째려보지마라. 난 잘못한 거 없다.” ‘망할놈의 드래곤 새끼!’ 퍼즐로 된 문을 열어 보려던 게임 폐인의 꿈은 날아가 버렸다. 작살 난 퍼즐을 애처로운 듯 응시하던 아크는 그만 포기하고 폭발로 난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공간 안에서 조금 더 들어가자 하나의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아크는 이 안의 광경에 정말 이곳 해적들이 고마워졌다. “너희들 뭐야?” 날카로운 목소리의 여자 해적 둘이 반월도를 들고 아크와 에드워드에게 겨누었다. “에드.” “왜?” “죽이지 말고 재워라.” “귀찮군.” 탁! 에드워드의 수면마법에 기세 좋게 말하던 여 해적 둘은 풀썩 하고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그러자 한 여성이 말했다. “다, 당신들 누구에요?” “예? 정의의 보험설계사입니다. 흠 여하튼 보기 좋군요.” “…….” 이 거대한 공간에는 많은 여성들이 벽에 나신으로 묶인 채 있었다. 노예로 팔아 넘기기 전 보스인 킹 블래드리와 해적들 몇몇이 맛을 본 후. 노예상이 찾아오기 전까지 억류해 두는 곳이었는데 해적두목이 변태였는지 여자들은 모두 매우 미묘하게 묶여 있었던 것이다. ‘천국이로다 허허허!’란 표정의 아크를 보며 에드워드는 나지막하게 미친놈이란 욕을 했다. “암컷한테 그만 관심 두고 여기 있는 보물이나 가져갈 생각해라.” 그러나 그 말은 여체감상중인 아크에게 들리지 않았다. 산더미 같이 쌓인 보물과 나체의 여성. 이 두 가지 중에서 아크에게 더 비중이 있는 것은 아무래도 후자 쪽인가 보다. “크……야 이 변태 수놈아!!! 보는 건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이놈의 보물 좀 가져다가 마법 아공간에 집어넣으란 말이다!!! 10서클 차원 만들기 마법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아, 알았어 임마.” 못내 아쉬운 듯 고개를 돌린 아크는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아공간을 열어 산더미같이 쌓인 보물들을 집어넣었다. “후우. 자 그럼 이 여인네들을 해방시켜 줘 보실까?” 둘 정도의 여성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기절한 듯 잠들어 있었다. 보기에도 여기저기 채찍자국이 나 있는 것이 애처로워 보였다. 킹 블래드리……대총통 이름하고 같은 놈이 하는 짓거리는 변태짓거리냐???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쇠사슬을 하나 하나 절단해 주었다. 그러던 아크는 한 여성에게서 소드 익스퍼트 급이 넘는 마나 보유량을 느낄 수 있었다. “흠? 어이 당신. 보통 사람이 아닌 듯 한데?” “…….” “이 정도면 소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이다. 기사였나?” “……그렇다.” 몸매를 보나 마나로 보나 말투로 보나 기사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는 여성이었다. 얼굴은……앳되어 보이는 것이 20대 중반은 넘지 않을 듯 보인다. 가슴이 빈약해서 그다지 좋아 보이는 몸매는 아니지만 운동을 했다는 것과 마나를 보유하여 피부 등의 관리가 자동적으로 된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그만큼 탄탄하고 뽀얀 몸이다. 상체에 비하여 하체는 뭉특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섹시함을 가졌고 외모는 기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숙한 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몸이 나신이 아닌 드레스였으면 기사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아크는 여자라면 눈이 돌아간다. 위진무의 초야를 떠나온 뒤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을 참았었기에 더욱 그랬다. 거기에 완전 나신에 변태적으로 묶여 있다. 몇몇 여성들은 치부에 이상한 물체가 박혀 있기도 하다. ‘완전 변태소굴이로구만.’ 너나 잘해라 너나. “풀 힐!” 아크는 일단 이 눈앞에 여기사를 블레싱 소드로 치료해 주었다. “어디에 기사인가?” “……캘더린 마법기사단.” “캘더린?” 캘더린 왕국은 약 2세기 동안 남자 왕이 10년간 재위한 것 외에는 여왕들이 나라를 통치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여성들의 세가 불어나고 커진 것은 당연한 것. 때문에 여성 기사를 보기 힘든 기사단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5할에 가까울 정도로 여자들이 당당히 기를 펴고 다녔고, 특히 마법사는 여성이 7~8할에 육박할 정도로 많아 여권신장이 된 나라였다. 캘더린의 제 1기사이자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 또한 여성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벽에 묶여 있던 여기사의 쇠사슬을 잘라 주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이렇게 서 있었던지 그녀는 체력이 다해 고꾸라졌다. “이름은?” “샤트란 틸레도.” “기사라면서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 말못할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봐 인간! 재밌는 걸 하나 발견했다.” “어?” 에드워드의 부름에 아크는 그가 보여주는 종이뭉치를 펴 보았다. “……! 오호? 역시 이 해적들에게는 배후가 있었군. 그런데……저 여자는 어떻게 된 거야?” “토사구팽 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 말 취소해!” “뭐?” 샤트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고 일어서며 이글거리는 눈으로 토사구팽이란 말을 꺼낸 에드워드를 노려보았다.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비록 헤츨링이라는 어린 드래곤의 단계이지만 그래도 드래곤인 쥬레이나란에게는 가소로울 뿐이었고 그는 샤트란을 개무시하며 고개를 돌렸다. 아크는 이 괴상 쩍은 분위기에 킹 블래드리의 책상 위에 있던 여러 서류들을 더 훑어보았다. 서류들에는 이럴 수도 있을까 싶은 정말 믿기 힘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캘더린 여왕이 잔혹 무도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냉정할 줄은 몰랐다. “정말……믿기 힘들군. 그래. 주군의 배신을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나? 흥 역시 기사라는 것들은……난 흘려들었었는데 왜들 그리 제국에서 캘더린 여왕을 마녀라고 불러대는 줄 알겠다.” “닥쳐!” “흥. 지랄 염병 꼴값을 떨고 앉아놨네. 주군을 위해 그렇게 남자들한테 당하니 기분이 좋든? 그렇다면 네년은 음란한 계집이다. 미친……내가 웬만해선 그런 소리 안 하는데 네년을 보니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빠순이 같은 년. 한 가지만 묻자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거냐? 아니면 모르고 당했는데 지금 옹호하는 거냐? 두 가지다 미친 짓거리지만 네가 알고 이 짓을 했다면 정말 그 여왕 아줌마 나쁜 년이다.” “…….” 잠시간 말소리가 없는 것을 보니 긍정이었다. “미친년. 머리에 똥만 가득 찬 무뇌충 신봉년 같으니라고.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라 주군을 위해 몸을 팔았구나? 창녀 같은 년.” 아크는 차마 참기 힘들 정도의 욕설을 퍼부었다. 그로서는 이 여기사의 행동이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주군의 명령이라는 맹목적으로 따라 이곳의 더러운 해적사내들에게 몸을 더럽히다니……. 기사로서 주군을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는 좋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명령에는 반항도 좀 하고 주군을 원망하는 기색이라도 보여야 한다. 그런데 그저 주군의 명령이란 것 하나만으로 그리 험한 꼴을 당하고도 아직도 그 주군을 옹호하다니 이것이 자기네 오빠들 다치게 했다고 죽은 사람 욕하는 대한민국 빠순이와 그 무엇이 다른가? “주군? 염병하고 앉아놨네. 부하한테 몸 팔고 오라는 것이 주군이냐? 흥 빠순이들도 미친 것들이지만 그 빠순이들이 신봉하는 것도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지. 이럴 줄 알았으면 반란 안 일으키고 진짜 캘더린에 쳐들어가서 그년 잡아다가 XX에 쇠파이프를 박아놓고 능욕해 주는 것인데…….” “그만해! 더 이상! 여왕폐하를 욕되게 하지 마라!” 자신에 대한 욕은 다 듣고도 넘어가던 샤트란은 아크의 욕이 여왕에게 쏠리자, 정녕 분노한 눈빛으로 아크에게 살기를 품었다. “왜? 듣기 싫으냐? 기사 아가씨?” “네놈이 기사도가 무언지 알기나 하나!” ‘염병 나왔다. 그놈의 잘난 기사도.’ 아크는 저 소리들을 때마다 짜증이 밀려왔다. 목숨보다 소중한 신념?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놈이 네놈 따위가 뭐길래! 나와 내 주군을 그토록 능멸하는 게냐?” 정말 심각하다. 이건 완전히 빠순이 정도가 아니라 세뇌가 되었다고 봐야 옳았다. “……내 이름은 아크 페인.” “…….” “망국 디그리스의 지략의 기사다.” “……! 거……짓말.” 샤트란. 그녀 역시 지략의 기사에 대한 전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알려진 그가 그야말로 진정한 기사였다고 알려진 그가 어찌 저런 망언을 한단 말인가? 아크는 샤트란에게 왼손의 귀족인장을 보여 주었다. 선홍빛의 디그리스를 상징하는 문장에는 아크 페인이라는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 “내가 왜 살아 있느냐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만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기사이지만 기사를 버렸다. 팬크라프트에 항복하지 않은 것은 기사도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였다. 결국 난 기사도며 뭐며 다 버려가며 결국엔 살아남았고 지금 다시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네년은 뭐지? 주군의 명령이란 명목 아래 왜 꽃다운 청춘을 해적들의 성노리개가 되어 이 음습한 아지트에서 늙어 죽을 생각이었나? 미친……이 세상에 자기 목숨과 삶의 자유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그건 내 자유의지에 따른 의사결정이었다. 당신이 뭐라고 할 것이 못 돼. 순결과 인생 따위는 내 주군과 나라를 위해서라면 버릴 수 있다.” 심각했다. 고지식에 융통성 없는 것은 물론이오. 아크의 화려한 말빨도 먹히질 않는다. 철저한 쾌락과 자유주의자인 아크와 신념주의자인 샤트란의 이견은 도저히 맞아떨어질 관점을 보이지 않았다. “후우. 별 수 없군.” 사실 멍청한 짓거리로 인생을 말아먹긴 했지만 어쩌면 이토록이나 한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니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으로는 가여운 이 여자를 이용해먹은 그 여왕년에게 죽일 듯한 분노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런 미인을 단체능욕에 SM플레이의 희생양으로 만들다니 …….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샤트란에게 겨누었다. “그래도 남자들한테 당한 것이 좋기는 했으니 여왕한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안 그래? 오히려 감사해 했겠지. 이렇게 남자들한테 마구 당할 수 있게 해 주신 여왕님께 말야. 킹 블래드리도 죽은 마당에 여기 있는 보물과 여자들도 모두 내 소유가 된 걸테고. 어디 나한테도 한 번 녹초가 될 때까지 당해 볼 텐가? 어이 에드워드 육수 쇼 보여줄 테니까. 거기 서류들 챙겨 놓고 여자들도 알아서 치료도 좀 해 주고 나갈 준비 해 두고 있어. 그리고 재밌는 거 보라고.” 아크는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제친 뒤 알몸인 샤트란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흠 처음부터 하기는 뭐하니까. 이걸 넣어주지.” 아크는 주변에 떨어져 있던 막대기를 주은 다음 강제로 샤트란에게 삽입시키려 했다. “시, 싫어어어엇!” “호오? 싫어?” “하, 하지마.” “그렇게 싫은데 왜 지금껏 참고 살았어? 주군을 위해서?” “…….” “자아 여기서 문제. 지금은 말야 내가 이 해적단을 완전히 궤멸시켜 버린 뒤야. 여왕한테 돌아갈 수 있어. 자 여왕폐하께서 이미 버린 패인 너를 다시 중용하실까? 아니면 또 이런데에 사용하실까?” “…….” “당분간은 말이야.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보도록 해. 누군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와 희생을 하지만 말고. 유희를 즐기는 날 따라다니다 보면 재밌는 일도 많을테니까.” “…….” 긍정의 표시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아크는 강제로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대충 몸을 가릴 수 있는 옷가지와, 이전 디그리스의 기사단에 가입할 때 받아서 아공간에 보관해 두고 있던 검을 꺼내 주었다. “이건 내 선물이다.” 아크는 몸을 돌려 에드워드의 일처리를 도우러 갔다. 그리고 그 때 뒤에서 샤트란이 아크를 공격해왔다. 퍽, 퍽! “윽!” 물론 아크가 당할 일은 없었다. 두 번의 발차기로 그녀는 붕 나가 떨어져 벽에 부딪혔다. “난 소드 마스터다. 네 주군을 욕했다고 열 좀 받았나 본데. 그 따위 기습에 죽을 사람은 절대 아니라는 거지. 네 목숨은 앞으로 내가 잡아둔다. 어이 에드워드 이만 나가자.” “흥……정말 멍청한 암놈이로군. 그래 근데 그 육수 쇼 안 보여 줄 꺼야?” “나중에 보여줄게. 일단 다들 데리고 나가자고.” “알았다.” 에드워드는 캐스팅을 마쳐 둔 공간이동 마법을 실행했다. 그리고 넓은 곳에 쌓여 있었던 보물들과 노예 여성들을 비롯한 해적 소굴 중심지에 있던 킹 블래드리의 집무실에 있던 모든 것들이 섬의 해안가로 옮겨갔다. 빛무리가 걷히고 모래사장과 배가 보이는 해안가로 나온 아크와 에드워드. 그러나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피리아와 에르디가 아닌 루드비안 해군 제복을 입은 이들이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꽁꽁 묶인 피리아와 에르디가 머리에는 총구가 겨누어진 채 인질로 잡혀 있었다. “……!” “대장! 에드워드. 도망치십쇼! 지금 당장.” 에르디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반역자 아크는 순순히 오랏줄을 받으라! 거기 소년 그대에게도 죄인을 도왔다는 혐의가 있다. 순순히 잡힌다면 이 반역자들에게 재판을 받게 해 주겠다.” 황제가 보낸 이들과 맞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반역으로 통했다. 비록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리진 않았지만 황제의 이름을 단 기사들과 군사들을 죽였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 반역죄였다. 물론 그 반역자의 뒤를 따르는 피리아와 에르디 역시 반역을 저지를 역도로 속했다. “……이익!” 에르디와 피리아가 저 쪽에 떨어진 이상. 아크는 별 수가 없었다. 인질극을 벌이는 적을 만났을 때에는 인질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작정한 아크였지만 인질이 둘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어떻게 하나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야말로 둘 다 살릴 수 잇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에르디는 자꾸만 아크 혼자서라도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도저히 저들 둘에게만 자신의 죄를 뒤집어씌울 수는 없었다. ‘제길 별 수 없군. 일단 잡혀 준 다음. 국왕을 인질로 잡아 탈출을 하던지 해야겠군.“ “이봐 에드워드. 탈출 시켜줄 수 있지?” “흥 병신. 탈출할 생각이었냐?” “응?” 탁! 에드워드가 박수를 치자, 피리아와 에르디가 묶인 채 무릎 꿇려져 있던 모래사장에 마법진이 생겼다. 그리고 그 둘은 해적소굴에서 데리고 나온 여성들이 있는 쪽으로 떨어졌다. “……!” “크 이제 됐냐? 그럼 오늘도 인간 고기 한 번 썰어 볼까?” 짝! 에드워드의 강철 건틀릿에서 검날이 솟아 나왔다. “후 인간 고기 썰기는 좀 뭐하지만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이것들을 싸그리 쓸어버리자고!” 아크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당황한 것을 루드비안 해군들이었다. 대학살자 아크의 명성을 미처 잘 알고 있던 터라 섣불리 덤벼들기가 뭐했던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주게.” 그 때 해군들에게 둘러 쌓여 있어서 보이지 않던 60대 가량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해군들의 맨 앞으로 걸어나왔다. “뭐야 노인네?” “내가 이들에 총 책임자일세. 폭력을 사용하거나 자네들을 잡아가 신고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게.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네.” 노인은 아크를 유심히 살폈다. “역시……이계인이로군. 일본인인가?” “……! 뭐야? 당신.” 아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중원에서 온 이계인이라고 하면 몰랐다. 위진무라는 전례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을 알고 있다니……. 피리아 역시 노인이 일본이란 단어를 입에 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글쎄? 누굴까?” 노인은 중후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매우 장난스럽게 응수했다. “혹시……환생한 인간인가?” 이 앞에 노인의 모습은 도저히 이계의 황인계라는 생각이 드는 외양이 아니었다. 금발의 푸른 눈과 하얀 피부, 그런 노인의 외모에 연상이 되는 것은 피리아와 같은 환생계였다. “환생? 아닐세. 난 불교를 믿지 않아.” 불교까지 알고 있다니……거기에 환생을 부정하는 것을 보니 확실했다. 이 노인은 아크라우스 패밀리와 뭔가 연관이 있다는 것을……그런데 어째서 이쪽 세계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단 말인가? 환생은 아니라고 하고…….“ “그럼 그 피부색과 머리색은 뭐요?” “음? 아! 자네 사고력이 좁구만.” “뭐?” “어째서 이계인들이라 하면 황인계만 생각하는 겐가?” “……!” 그랬다. 지구에도 백인들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아크는 그것을 간과하고 이계인은 자신과 같은 황인계라고만 생각해 온 것이다. “내 이름은 코프하겐 칸딘스키. 소비에트 연방에 무기 공학자이자, 핵 물리학자였네. 무라카미의 말로는 내가 이 세계로 넘어 온 세 번째 지구인 이라더군.” “……!”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 번째라……이제 남은 건 하나 뿐인가? “내가 아무리 황명을 받아 반역자라 불리는 자네를 잡으러 왔다지만 같은 고향에서 온 이를 매정하게 내칠 정도는 아닐세. 어떤가? 일단 내 영지로 가서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으련가?” “뭐 좋소. 거짓을 말하거나 장난질을 치려 한다면 무사하지 못할 테지만. 뭐 일단 아크라우스 패밀리를 만나니 좋군요. 좋아 갑시다. 대신 죄인 취급하며 잡아갈 생각은 마시오.” “물론이네. 아니 나는 자네만 원한다면 죄인신분에서 벗어나게 해 줌은 물론이오. 새로운 귀족작위를 주게 해 줄 수도 있다네.” “……! 그게 무슨?” “내가 자네에게 할 이야기에는 이 나라의 귀족이 되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도 포함되어 있다네. 내 작위는 현재 공작. 비록 변방 영지로 쫓겨 나와 있는 상태이긴 하나 황제파의 수장급으로 통하고 있으니 남작, 자작은 가뿐하거니와 조금 무리한다면 백작, 후작도 가능하다네. 뭐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하도록 하고. 바렌스! 어서 이들을 데리고 재 출항 준비를 서두르게나.” 귀족이 되지 않겠냐는 칸딘스키 공작의 제안은 실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아동성추행 및 살인죄를 저지르고 여기저기 쫓겨다니면서 아크가 느낀 것은 바로 힘의 필요성이었다. 귀족. 이 세계는 귀족이란 수식어 하나면 먹고 들어가는 이득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아크가 추구하는 쾌락과 자유,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도 별 무리가 없는 귀족작위라는 것이 필수 불가결 적인 요소였다. 평민의 여자는 누구를 어떤 이유로 취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잖은가?(이 녀석 결국 이게 목적이었군). 대한민국에서 서민으로 살아오면서 실컷 게임을 하는 것 외에는 재력과 권력을 통한 어떠한 자유도 누려 보지 못했던 아크였던지라 상류층 진입에 대한 욕구는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왜 그리도 학교와 집안에서 공부, 대학 난리를 쳐 대었던가? 그 잘난 상류계급에 진입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렇게 시킨 것 아닌가? 더구나 아크가 꿈꾸는 하렘왕이나 이 세계의 발전과 진화를 위해서는 이렇게 높은 계급에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신분이 되어야만 했다. 비록 아크가 싫어하는 주군에 대한 충성 따위를 강요한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얻을 수 있는 특권에 비한다면 웃어넘길 수 있는 내용들이다. ‘나쁘지 않아……나도 한 번은 이렇게 높은 곳에서 아랫사람을 부리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귀족이라……나쁘지 않은 제안이로군요. 하지만 어떻게?” “그 이야기는 일단 내 영지인 티스버그에 가서 천천히 하도록 하세. 그런데 저기 저 여자들은 뭔가?” “해적왕의 노예들입니다. 제가 이곳을 궤멸시킨 대가로 이제는 제 노예들이기도 하죠.” “흠……이거 낭패로군. 배에 저들을 다 싣기도 힘들고…….” “멍청하군. 늙은 놈.” 갑작스레 끼어 든 에드워드. “배고 뭐고 싸그리 한 군데에다 모아 놔. 티스버그 영지라고 했나? 내가 가본 적이 있으니 전체 이동마법으로 싹 쓸어서 보내 주지.” “전체 이동마법? 그 8서클 급 마법을?” “난 8서클의 마법사다. 꼬맹이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말야. 다들 모아놓으라고. 단번에 보내 줄 테니까.” “8서클!!!” 에드워드의 8서클 발언에 주변은 상당히 시끄러워졌다. 지금껏 8서클에 도달한 인간 마법사는 대마법사 간달포와 흑마법사 살로만. 흑마법이 마왕과 계약을 맺을 때 1서클이 공짜로 올라간다는 것을 감안해 봤을 때 지금껏 8서클 인간마법사는 단 하나라고 봐야 옳았다. 8서클 마스터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못지 않은 인재로 통했다. 상당한 반경을 파괴하는 헬파이어 등을 날려 댈 수도 있고, 각종 유니크 마법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으며 유사시의 전쟁에서 약 1천 가량 병사라도 전체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해 이동 마법진 없이도 수시로 이리빼고 저리빼고 하면서 상대편을 농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7서클의 마법사도 전 대륙을 통틀어 캘더린에만 다섯 중도에 둘만 있을 뿐이라 더더욱 희소가치가 높았다. 에드워드의 말에 칸딘스키 공작의 가신들과 아크 일행, 그리고 구출해 나온 여성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에드워드는 손바닥을 짝 친 뒤 상당히 긴 캐스팅을 마치자, 이 자리의 모두는 빛무리에 휩싸이며 모두 사라졌다. 아크의 깽판에 당하지 않은 해적들이 뒤늦게 뛰쳐나왔지만 남은 것은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들뿐이었다. “자. 앉게.” “이야아아.” 칸딘스키 공작의 저녁신사에 초대된 아크 일행 죄수인 그들 그것도 반역혐의의 그들에게 공작이 이런 접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중대한 범법행위였지만 지금 이렇게 대접하는 이들을 만약 진짜 반역죄로 처형하거나 죄인으로 놔 두어 이 나라 밖으로 도망치거나 한다는 것은 루드비안 제국으로 보았을 때 절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7서클의 빙한마법 마스터에 하이 프리스트를 능가하는 신성력, 그리고 소드 마스터 이만한 인재를 얻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거기에 8서클의 대마법사가 추가 옵션으로 달려 있다면……어떠한 국가더라도 무리를 해서라도 잡고 싶은 엄청난 인재들이 아닌가? 만약 아크가 범법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정말 순식간에 공작의 작위를 받을 수도 있었을 지도 몰랐다. 아니 이 상황에서 캘더린이나 팬크라프트 같은 타국으로만 간다고 해도 정말 엄청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칸딘스키 공작은 더더욱 아크에 대해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현재 자신이 귀족파의 견제로 중앙정계에서 쫓겨난 것도 모자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자신을 대신해서 황제파를 뒷받침할, 아니 중립파라도 좋으니 귀족파를 견제할 만한 방패막이가 하나 꼭 필요했기 때문인데 어딜 가나 공작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대단한 인재인 소드 마스터를 발굴해 내었잖은가? 엄청나게 화려한 만찬에 눈이 휘둥그레진 아크 일행. 에드워드 같은 경우야 여전히 냉소적인 모습이었지만. “이런 음식들을 앞에 두고 심각한 이야기나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지. 자 아크 군. 지금은 자네가 알고 있는 정도 지구의 정세와 무라카미를 알게 되고 이곳으로 넘어 온 경위를 얘기해 주지 않겠나?” 밥 먹는 데에서 확실히 썩은 정치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서로 골치 아프고 밥맛 떨어지게 한다는 것을 공작은 잘 알고 있었다. 아크 역시도 대한민국의 난투극 국회에서 겪어본 점이 많은지라 별 이견을 갖진 않았다. 아크는 자기가 넘어오게 된 경위와 현재까지의 일대기 그리고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지구의 역사를 말해 주었다. 맹약의 반지가 없는 칸딘스키 공작이나, 환생계열인 피리아는 이 이야기를 경청했다. “소련 붕괴라……결국 그렇게 되었군. 애초부터 사회주의란 실패한 사상이었어. 그나저나 지구력 2020년에 대재해가 일어나고 이차원의 문이 열리면서 몬스터라는 존재들이 지구를 침공하고 있다니……지구에도 참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구만 그래. 그걸 또 막아내기 위해 국가를 초월한 대 몬스터 특무기관인 피스메이커란 곳이 결성되고 허허 미국과 러시아가 연합을 하다니 놀라운 일이야. 하긴 우리가 드래곤이란 존재를 만나 이렇게 다른 차원으로 떨어지게 된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겠군.” “아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아크는 아크라우스를 통해 지구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듣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각종 사회의 문제점이 난립하고 개판된 나라꼴을 듣기 싫었고 또 지구에 대해 너무 깊은 향수에 빠질 때는 검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았기에 수련을 위해서 일부러 지구의 정세에 대한 것을 무시해왔다. 그러다 보니 이리도 궁금해하는 칸딘스키 공작과 피리아를 상대로는 여러 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 내서 얘기해 줄 수밖에 없었고 그 각본은 A모 전대 판타지 소설의 메인 스토리 라인에서 따 왔다. 혹시라도 피리아가 눈치 챌 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피리아는 그것까지 알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너무나 허무맹랑하고 이전의 그녀도 알고 있던 전대물의 스토리 등 어째 영 만화 스토리 같긴 했지만 지금 이 상황만 해도 만화 같은데 그런 일이 실제 벌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굳이 아크에게 바가지를 긁거나 진위여부를 파헤치지는 않았다. “이 정도로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저도 공작님의 과거를 듣고 싶군요.” “허허 늙으면 손주들에게 이야기 해주는 것이 삶에 낙이지 그 말 나오기를 기대했네 기꺼이 얘기해 주지.” 공작이 입을 열자 눈물 없이도 들을 수(?)있는 그의 과거사가 드러났다. 1968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 소련의 무기공학자이자 핵 물리학자였던 코프하겐 칸딘스키 박사. 그는 2차 세계 대전과 한국전쟁 때 소련에 우수한 무기를 생산해 내면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 과학자로서 핵무기 생산에도 참여해 소련의 핵 무장화를 앞당긴 인물이었다. 열성적으로 자신의 일에 임하던 그는 냉전체제가 심화되고 그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 낸 핵무기가 인류에게 독이 될 것이란 사실을 예순이 넘어서야 깨닫고는 더 이상 핵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은퇴하였다. 그러자 그에게는 핵을 보유 하고자 하는 여러 국가들의 유혹이 쏟아졌고 그것을 간파한 정부 당국은 칸딘스키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칸딘스키는 비밀리에 일본으로 망명. 일본 당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미국에게 패망한 뒤 얼마나 되었다고 아직도 아시아 제패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일본 국수우익 주의자들에게 핵을 제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핵이 싫어 망명을 했는데 다시 핵을 만들라니. 그러던 그에게 태평양전쟁에서 엄청난 전공으로 한 때 국민영웅으로 추앙 받던 참전 군인 무라카미 히데오가 찾아오고 신세계에서 살지 않겠냐는 무라카미의 솔깃한 제안에 칸딘스키는 응했다. 그리고 그는 이계로 오게 되었다. 홀홀단신으로 이계에 떨어진 칸딘스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개인 소지 권총과 맹약의 반지 하나 뿐이었다. 결국 그는 이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지식을 팔았다. 젤류의 세제가 존재하던 이곳에 귀족들만의 사치품인 비누를 만들고 또한 새로운 교통수단 자전거 등을 만들어 그를 토대로 상단을 조직. 부를 쌓다가 총기 제작 및 화포 제작을 시작하고 발표하자 국가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작위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후 이전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칸딘스키는 여러 무기들을 생산해 내었고, 기사가 적고 마법사도 그리 많지 않은 루드비안 제국의 전력을 과학력으로 보충해 놓는 큰 공을 세우며 작위가 급상승. 황제의 황제파 세력을 뒷받침하는 중요 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황제의 세력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다른 귀족파들의 암수를 받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 결국 칸딘스키는 귀족파의 습격에 맹약의 반지를 잃고 말았다. 거듭되는 귀족파의 위협에 칸딘스키 공작은 결국 제국 최남부의 영지에 피신하듯이 낙향하고야 말았고 지금껏 쥐 죽은 듯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게 된 것이라네.” “흐음.” 코프하겐 칸딘스키 공작. 이 사람의 인생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치적인 이유로 지구에서나 이곳에서나 여기저기서 물먹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에서는 간략하게 소개가 되었지만 원래 길고 긴 너무나도 긴 이야기였기에 어느덧 식사는 끝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식사가 끝나갈 즈음되자, 아크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어떻게 정계에 진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전에 루드비안 제국의 현 정치 상황을 알고는 있나?” “이전에 살던 곳 국회가 어찌나 개판 5분전이던지 지금은 거의 관심 끊은 상태입니다만.” “후. 여기도 개판이라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지구에서 모 사상가가 한 말이다. 어딜 가나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그것이 민중의 감시를 받지 않는 완전 지배 정권을 경우 더 심각하다. “이 루드비안 제국은 약 200년 전 황가의 핏줄이 끊기고 나서부터 왕중의 왕이라는 황제의 권위는 땅바닥으로 떨어졌지. 황가의 유일한 혈육인 마틸다 공주와 포레스티에 공작 사이에서 난 외가계의 인물이 제위를 물려받으면서. 황가의 성이 바뀌어 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라네. 그 이후 이 제국은 수없이 내전에 시달려 왔네. 황제파와 귀족파의.” 정통성이 사라진 왕권은 어디서든 안전할 수가 없었다. 200년 전만 해도 황제라는 이름 아래 절대왕권을 자랑하며 대륙 4강 중 으뜸을 차지했던 과거의 제국은 황가의 핏줄이 끊어짐으로서 현재는 대륙 4강 중에서도 이름뿐인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그래서요?” “그 덕분에 이 나라는 루벤드 그레드릭이란 걸출한 무인을 보유하고도 그 아래 경지인 소드 마스터가 탄생한 적이 없었네. 이유는 내전과 궁중의 권력 암투로 유망주들이 이리저리 휘말려 사망했기 때문이지. 이러다 보니 올해로 422세가 되시는 그레드릭 대공은 더 이상의 정치 싸움 일선에서 물러나셔서 지금은 군부를 이끄는 대표적인 중립파가 되셨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여 년간 소드 마스터는 탄생하지 않았어. 이대로 그랜드 마스터들의 수명 한계선이라는 500세 즈음이 되어 그분께서 돌아가시게 된다면 약체화 된 제국을 남방 캘더린이나 서방 팬크라프트가 노리지 않을 리가 없지. 하기야 뭐 지금도 팬크라프트나 캘더린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지만. 때문에 현재 군부에는 대공을 이을 새로운 무인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네.” “그럼?” “이런 상황에서 팬크라프트의 대 폴티아 전쟁에서 지략으로 큰 전공을 세우고, 팬크라프트의 세 기둥 중 하나라 불려지던 프랑코 젤리커를 죽였으며 현재 소드 마스터인 지략의 기사가 이 나라에서 일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황제야 지난 번 암살사건으로 인하여 강자를 탐내고 계실 터이고, 중립파의 그레드릭 대공은 아주 열성적으로 자네를 밀 걸세. 자네가 아직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 망국 디그리스의 국민이라고 주장한다면 귀족파들 쪽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반대도 무마시킬 수 있지. 그리고 귀족파의 수장인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공작은 자네를 굳이 반대하지 않을 걸세. 그는 자기의 이득만 차리는 소인배들과는 다르니까.” “……!”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공작의 이름이 언급되자, 조용히 식사를 하던 에르디의 포크를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니까. 이 정도 실력에 명성이면 죄가 면해진다는 겁니까?” “물론이네. 그 죄로 인한 반대명분이 있긴 하지만 명분과 실리를 들었을 때 이만한 실리를 얻기는 매우 힘드니까.” “흠…….” “현재 이 제국의 정국은 매우 혼란하다네. 2년 전만 해도 현 황제 하이데른이 제법 강한 왕권을 휘두르면서 내정을 착실히 안정시켜 갔으나 캘더린의 암살자가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를 살해하자, 현명하던 황제는 몸져누워 골골하면서도 괜한 복수심으로 쓸데없는 정책을 펼치며 나라를 말아 먹어가고 있어. 때문에 2황후를 기반으로 둔 귀족파들이 신권주의를 주장하는 레이필드 공작에게 붙어 우둔한 제펠 왕자를 다음 왕으로 추대하고 있지. 신권정치……나쁜 것은 아니지만 국민의 이득을 대변하는 신하들이 아닌 자신의 이득만을 내세우는 신하들의 신권정치란 나라를 말아먹는 길 밖에는 되지 않는다네.” “골 때리는 군요. 사탐과목으로 정치를 택하긴 했는데……그걸 저더러 때려고치라니 무립니다. 전 그저 귀족자리 하나 얻어 상류 신분을 누리고 싶을 뿐이라고요.” 정치판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머리가 땡겨 오는 아크였다. “후우 나도 자네에게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네. 그저 이 나라의 버팀목이 되어 주기만 한다면 고맙게 생각하네. 지략의 기사란 그 이름, 소드 마스터란 그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기만 하여도 외세는 이 제국을 그리 쉽게 보지 않을 걸세. 내가 비록 황제파이기는 하나 자네가 귀족파의 일원이 된다 하더라도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겠네. 귀족파든 황제파든 중립파든 자네란 존재는 이 나라에 큰 도움을 주니까.” 정치에 대해서는 제법 빠삭한 아크였지만 그 골치아픔에 대해서는 절대로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귀족이란 상류계급이 되고 싶기도 하고, 칸딘스키 공작의 말로는 자신이 루드비안 제국이라는 국적만 달아 놓아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허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좋습니다. 해 보도록 하죠. 어이 너희들 내가 귀족 하겠다는데에 이의 있는 사람?” “대장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세요.” “얌마! 약속 안 지킬래? 드래곤 안 잡을 거야?” 동료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아크. 예상대로 쥬레이나란은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봐 에드워드. 너 그 드래곤 어디 사는 지 알아?” “…….” 에드워드는 말문이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원수를 갚겠다는 의욕만 넘쳤지 아직 복수를 할 만한 어떠한 준비도 된 것이 없는 것이다. “거봐. 모르면서 난리 피우지 마. 알아야 뭘 잡으러 가든지 말든지 하지. 걱정 마 나한테 확실한 정보통이 하나 있으니까. 그 정보통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거야. 단! 당분간은 내가 하는 일에 협조해. 안 그럼 복수는 꿈도 못 꿀 줄 알아.” “……쓰읍 알았다.” 에드워드는 영 못마땅한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지만 사실 뻥이든 아니든 지금은 정보통을 쥐고 있다는 저 인간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절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배워 온 드래곤 일족의 전통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별 수 있나? 지금은 벙어리 냉가슴이나 앓고 있어야지. 에드워드 앞에 놓은 더럽게 독한 브랜디가 병째로 사라졌다. 루드비안 제국. 구 동제국의 북부지대와 현재는 디그리스 왕국까지 병합한 대륙 최대의 영토를 가진 제국. 제국이라는 이름답게 황권이 매우 강력한 나라였으나 지금으로부터 2백여 년 전 황가의 핏줄이 끊기면서 끈임없는 권력 암투와 내전에 시달려 많은 기사들이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사망하여 기사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마스터 그레드릭 대공 혼자서 무려 300여년을 지켜 온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랜드 마스터를 하나 보유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륙 4대 강국 중 가장 딸리는 군사력을 보유. 호전적인 이웃 캘더린의 잦은 침략을 받았다. 그런 루드비안에 혜성같이 등장한 최고의 과학자라 칭송받는 무기공학자 코프하겐 칸딘스키 공작. 그는 각종 실용과학과 전쟁무기를 개발 기사의 수에서 가장 밀린다는 단점을 첨단 무기로 보완해 놓은 루드비안의 큰 인재였다. 서방 초거대 제국 팬크라프트가 30년 전 폴티아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가 재부활해 대륙 통일을 외치는 지금. 현황제 하이데른 포레스티에가 나라에 이로운 정책을 펼쳐 제법 구축한 황권으로 안정을 찾으며 발전의 기회를 맞았던 루드비안은 2년 전 벌어진 어쌔신 사건 덕에 황위 계승자인 제 1태자가 사망하자 후계자 문제와 캘더린 원정 문제로 인한 정치적 싸움과 권력 투쟁이 또다시 붉어지고 말았다. 여자이지만 뛰어난 군왕의 자질을 지닌 제 1황후 소생인 세레스티나 공주와 그를 밀어주는 황제파, 귀족파의 실세인 쿠르드 후작의 누이인 제 2황후 소생의 우둔한 제펠 왕자와 당연히 그를 미는 귀족파 이 둘이 왕권 싸움을 벌이는 동안 사랑하던 부인과 막내딸 그리고 나름대로 성군이 될 자질이 보이던 큰아들을 잃은 황제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원래 황제파는 200년 전 전례를 봐서 여성인 공주를 미는 것보다는 1황후의 소생으로 아직은 어린 8세의 아툰 왕자를 추대할 생각이었으나 황제가 앓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고 공주를 일단 여제로 세운 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그 후계자로 아툰 왕자를 내세우는 그러한 후계자 정책을 취했다. 이렇게 되자, 경쟁자가 여자이기에 안심하던 귀족파는 또 다시 여러 가지 명분을 들어 반대를 외치며 제펠을 내세웠고 이러한 정국이 계속되면서 나라는 점점 개판이 되어갔다. 외세의 침략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지배층들이 서로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이 때 제국에는 세르미도 섬의 대학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황제파의 일원이던 카시아스 백작 및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4명과 40에 달하는 병사들이 단 한 사람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그 학살자의 이름은 아크. 자신을 망국 디그리스의 전설적인 영웅 지략의 기사라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 남부의 티스버그 영지에서 도착한 전보를 읽은 황제 하이데른은 놀란 표정으로 전보의 내용을 또박또박 신료들에게 읽어 주었다. “대학살의 주범인 역도 아크는 확인 결과 실제로 죽었다 알려진 디그리스 왕국의 지략의 기사임이 귀족인장을 통해 증명되었다.” 웅성웅성 혹시나 했던 것이 사실로 들어나자 귀족 관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현재 그는 소드 마스터 급 무위를 가지고 있으며 중도의 신성기사 화이트 로리엔이 가진 것과 같은 주신의 성검에 힘을 받아 하이 프리스트를 능가하는 신성력. 그리고 7서클의 빙한마법을 노 캐스팅으로 시전할 수 있는 삼위일체의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그를 따르는 가신 중에는 8서클의 대마법사가 존재한다.” 웅성웅성웅성 이 대목에서 황제의 용상 아래 바로 왼쪽에 서 있던 노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략의 기사 아크는 지금 티스버그 영지에 구금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현재 루드비안 제국에의 등용을 청하고 있다.” 웅성웅성웅성웅성 “……이에 귀공들은 어찌 생각하시오?” 실제 눈으로 위의 사항들을 확인할 수 없긴 했고 충성을 확인할 수가 없긴 했지만 인재 그 자체는 탐이 나는 게 틀림없었다. 귀족가 영애 성추행 죄야 황제와는 별 관련이 없었고 세르미도에서 황제파의 열렬한 추종자 카시아스 백작과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셋을 잃었지만 소드 마스터와 급수가 같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에 명성이 자자한 지략의 기사라고는 하나 충성을 믿을 수 없는 자입니다. 30년 전 모습을 감춘 이후. 최근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도 모를 노릇입니다. 혹시라도 캘더린에 매수되어 우리들 안에서부터 침투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크에게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엘레노어 백작이 가장 먼저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 “맞습니다. 더구나 그런 흉악범 인간 말종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몇몇이 그에 동조해 반대의 기색을 내 비추었다. 그런데 의외로 반대하는 귀족의 수가 몇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던 지라 두 파로 갈린 귀족들의 뜻이 모이지 않았고 각 파의 수장격인 레이필드 공작이나 황제가 특별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아서였는지 앞서 말한 한 둘의 귀족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침묵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그 때 황제와 가까운 곳에 서 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인간 말종이라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지략의 기사 전설을 믿고 싶네. 그 지략의 기사가 그러한 일을 했을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실용도로 따진다면 그 만한 인재가 또 어딨는 게요? 지금 이 노부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을 이 때 소드 마스터 급 무인은 어떠한 결점이 있더라도 나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은 자요.” 제국 최고령자 아니 이계인을 제외한 전 세계 최고령자이자 루드비안 제국 군부의 수장인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의 발언은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제국 안건에는 수수방관만 하던 그가 이렇게 나설 정도라면 황제파와 귀족파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 이상 뜻을 꺾기가 힘들었다. 더욱이 제국을 뒷받침해온 기둥인 그레드릭 대공의 노령화를 귀족파나 황제파 모두 걱정하고 있던 상황이었던지라 몇몇을 제외한 모두는 제국의 부국강병을 위해 지략의 기사를 영입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귀족파와 황제파의 견해가 일치하는 것이다. 칸딘스키 공작이 그 뒷배경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머리를 싸매고 농성을 할 귀족파들이었지만 아직 그 사실을 모르기도 했고 다른 이도 아니고 무인인 지략의 기사라면 중립세력인 그레드릭 대공의 군부에 속했다. 때문에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계산한 것이다. 게다가 칸딘스키 공작처럼 평민을 등용하는 것이 아닌 병합한 망국의 귀족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칸딘스키 공작이 평민에서부터 시작했기에 얼마나 귀족들에게 많은 경계를 받았던가? 하지만 그의 능력을 높이 사 공작으로 중책을 맡긴 전례가 있었다. 하물며 망국의 귀족이긴 하지만 일단 귀족이었고 망국의 귀족도 항복한 이들은 포용하는 것이 대부분 국가들의 정책이었고 사고를 친 것이 좀 있긴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높이 사는 것이다. 귀족파의 수장이자 약자 이름 JBL로 더 유명한 레이필드 공작이 쓰고 있던 챙이 넓은 흰 모자를 벗은 뒤 황제 앞에서 말했다. “그가 진짜 지략의 기사라면 이 제국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인물을 보지도 않고서 등용을 결정한다는 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그가 저지른 죄를 해명하고 그에 대한 의문스러운 점 예를 들자면 그가 역사에서 모습을 감춘 그 30년 동안의 행적 등을 알지 못하고서 그를 쉽사리 등용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때문에 저는 인사 청문회를 제안합니다.” “인사 청문회?”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직 지략의 기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보고 그가 전설 속의 그 충절을 지키던 충의와 지략의 기사인지. 아니면 소문대로 살인과 강간을 즐기는 대학살자에 성추행범인지. 실제 우리 제국에 충절을 다 바칠 것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지 말입니다. 직접 보고 결정하자는 말입니다.” “흠……거 일리 있는 말씀이오 레이필드 공작.” “거 오랜만에 맘에 드는 의견이로군. 좋소. 일단 그 자를 수도로 부르게. 그자가 도착하는 즉시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겠다.” 말로만 듣고 그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 아무리 심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지략의 기사라는 명성수치와 소드 마스터라는 레벨수치는 놓치기에는 너무도 아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인재에 대한 철저한 감독과 정보의 파악이 중요했다. 만약 뒤통수를 맞을 경우 이만큼 더 치명적일 수도 없을 테니까. “일단 와 보라는 전보일세.” “혹시 함정 같은 건 아닐까요?” “황제 폐하는 그런 암수 따위를 쓰시는 분이 아니시라네. 아마도 말로만 듣고는 못 믿겠다. 이런 이야기겠지. 인사 청문회를 개최할 모양일세.” “인사 청문회?” 인사 청문회라면 대한민국의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총리 등을 임명할 때. 국회에서 그 인사에 대해 얼마나 총리직에 적절한 인물인지 국회에서 심사하는 것으로 거대 야당이 정부 여당과 행정부를 흔들어 놓는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이용되는 바가 있었다. 그런 인사청문회를 판타지세계에서 받게 되다니……참 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긴다. “수도에 있는 내 심복의 이야기로는 황제파도 중립파인 그레드릭 대공도, 심지어 귀족파의 수장인 레이필드 공작까지 찬성의 의견을 보였다고 하더군. 엘레노어 백작이 귀족파 중 일부를 이끌고 반대의 여론을 조성하고는 있는 모양이네만. 지난번 샹 플라워 호 귀족 구출 사건으로 귀족들 사이에서도 자네 이미지가 악인보다는 정의의 지략의 기사로 많이들 인식되어서 대부분의 귀족들도 찬성하고 있어. 반대 의견이 많이 먹히질 않는다는군.” “하하하하…….”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략의 기사라는 타이틀은 역시 이로운 점이 많았다. 게임으로 따지면 명성수치랄까? 기왕 이렇게 된 거 후반부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 자살 시나리오만 빼고 나머지는 진실로 만들어 행동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대장……당신이 바로 그 지략의 기사였다니…….” “정말이에요? 이랬던 거?” 항상 지략의 기사였다는 말을 달고는 살았지만 하는 짓거리를 봐서 ‘에이 그럴 리가 있겠나’라고 생각했던 에르디와 지략의 기사가 뭔지를 몰랐던 피리아. 그 둘은 칸딘스키 공작을 비롯 그의 가신들이 모두 아크를 지략의 기사라 부르며 존경을 표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지략의 기사 전설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제발 아니길 빌며……하지만 정말이었다. 인상착의부터 그 모든 것이 아크를 그 전설 속 지략의 기사라 말하고 있었다. 당연히 경악할 수밖에……초 사이코 변태 폐인 아크가 명예와 기사도를 지킨 영예로운 기사였다는 것이. “정말이라니까.” “세상에…….” “오 주신이여!” 둘은 그 이야기를 정말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 지략의 기사와 이 사이코 폐인이 동일인물이라고? 맙소사. 입을 떡 하니 벌린 채 닫을 줄 모르는 피리아와 하늘에 기도하는 에르디. “흠 뭐가 어쨌다고 난리들이야? 이 자식이 지략의 기사인 게 뭐가 어때서? 안 그렇게 보이는데 의외로군 네놈. 혹시라도 배신하고 내 뒤통수라도 치면 어쩔까 했는데 이 정도라면 안심이야.” 단지 아직 아크와 같이 지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에드워드만이 아크를 옹호해 주었다……하지만 그도 곧 역사서를 불신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몇 번을 얘기했냐? 짜식들이 안 믿다가 인제 와서 난리네.” “그럼 그 귀족가 영애 성추행도 사실이었겠군요?” 피리아는 매서운 눈초리로 아크를 쏘아보았다. 그동안 하는 짓을 봐서 어느 정도 밝히는 인간이란 건 알았지만 어린애까지……. “어이 이봐. 그건 수련이었다고 수련! 회음혈을 뚫어준 게 잘못 와전돼서 성추행이 된 거지! 그럴 생각은 없었다고! 지난번 내가 심법 가르쳐 줄때 너한테도 그렇게 회음혈 눌러 줬잖아!!!” 그럴 의도로 했으면서 발뺌하기는……. “그, 그걸 왜 여기서 얘기하고 난리에요!” 여하튼간 남자에게 그곳이 만져졌다는 얘기가 나오자 피리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흠 그럼 둘이서 육수쇼 했다는 거야?” “…….” 에드워드가 무심코 한 한 마디에 피리아는 극도로 달아올랐다. 만화였다면 코와 귀에서 수증기가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아크는 오히려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뭐 할 수도 있지. 에드 보여줄까?” “어 보고 싶어. 한 번 해봐.” “뭐예요 지금!!!” “어이 암컷. 한다고 육수가 닳는 것도 아니잖아. 해 보라고.” “이봐 에드워드 보는 것도 재밌지만 하는 것도 즐겁다고. 너도 어차피 남성형이니까.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 말에 에드워드는 턱을 괴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흠 그럴까? 책에서 보니 유희 중 별미는 인간류의 종으로 변해서 육수 쇼를 한다는 거라던데……? 재밌을 것 같군. 어이 암컷 해 볼래?” “싫어요!” “이봐 에드 앙탈을 부리는 여자와 강제로 하는 ‘강제 육수쇼’ 나 여럿이서 한 여자와 하는 ‘단체 육수쇼’도 상당히 할만하다고. 어때?” 첫 유희라고도 할 수 있는 복수행을 나선 헤츨링에게 참 좋은 거 가르치는 아크였다. “그것도 괜찮겠군.” “크으으 당신들 정말 이럴거야!!!” 결국 피리아의 화가 폭발했다. 그리고 그녀의 총이 불을 뿜었다. 탕 탕 탕! 물론 아크와 에드워드가 그 총에 맞거나 할 일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그 둘은 총알을 가볍게 피해내고서 능글맞게 피리아의 염장에 불을 질렀다. “성질 고약한 암컷이군.” “아서라 줘도 안 가져. 나 육수쇼 해줄 여자 많아.” “이것들이 사람을 갖고 놀아!!!” 그리고 칸딘스키 공작가 내에는 누군가가 달리는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경쾌한 총성이 퓨전이 되어 스테레오로 울려 퍼졌다. 아크와 그 일행인 에르디, 피리아, 에드워드. 그리고 칸딘스키 공작과 그의 가신인 몇몇 기사들이 가도를 걷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루드비안 제국의 수도 레트비아나 그리고 이곳은 레트비아나에서 도보로 약 사흘 이상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는 이동마법진이었다. 남부의 티스버그 영지를 직항으로 잇는 이 마법진은 수도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유사시 적군이나 반란군의 수도 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말을 타면 하루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기에 이곳에서는 지방 영주가 군사를 동원할 수 없었다. “칸딘스키 공작 각하이십니까? 대동할 수 있는 가신은 열 명 이하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귀족들과 황명을 받은 이들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진 이었던 지라, 이곳에는 항상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고 그들은 의무적으로 영주가 데려운 인원을 감축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훗 놀고있네 내가 수도에 가기만 하면 1,2천명쯤은 가뿐히 데려올 수 있다고 어이 거기 철갑옷 세트! 니들은 남아 있어.” 어딜가나 건방진 면이 사라지지 않는 에드워드였다. 8서클의 마법인 다수 공간이동 마법. 고작 몇 명만 그것도 가능거리도 짧은 6서클의 워프보다 강력한 그 다수 공간이동 마법을 익히고 있으니 제 잘난 맛에 사는 드래곤 종족의 쥬레이나란이 저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어찌 됐건 아크 일행은 칸딘스키 공작의 가신 신분으로 왔기에 칸딘스키 공작은 자신의 가신들 중 다섯만 데리고 수도를 향해 출발했다. 말이 없는 대신 이들은 겉보기에는 초등학교 꼬마 정도로 보이지만 사실은 8서클이라는 인간 한계에 다다른 대마법사 ‘에드워드 엘릭’ 덕에 매우 빠른 속도로 수도를 향해 갈 수 있었다. 아크는 그것이 무색하게 보법을 통한 매우 빠른 속도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섬에 있느라 또 바다위에 있느라 상당한 시간 동안 드넓은 대지를 밟아보지 못했던 터라 그의 발걸음은 매우 가뿐했다. “엥? 이거 너무 멀리 왔나?” 경공에 플러스로 에드워드가 걸어준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키는 마법에 걸린 아크는 어느덧 일행과 너무도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이 방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곳의 지리를 알 턱이 없는 아크. 거기에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수도를 향해 잘 닦여 있던 대로에서 엄한 샛길로 오고야 만 것이다. 긁적.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을 만끽하며 하는 산행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수도로 향하는 대로로 가는 도로에 나온 아크. 그곳에는 시골에서 수도로 향하는 상인들과 인근 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들이 흔히 눈에 띄었다. “평화롭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야 그리고 그 들녘을 비추는 황금빛 태양과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들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이 평화를 망치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대의 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 자그마한 평화를 완전히 짓밟고 지나갔다. 잘 닦인 길이긴 했지만 요새 세상에 신호등이나 차선 따위가 있을 턱이 없는 상황. 때문에 마차가 저렇게 달려오면 아무리 길이 널찍하다고는 해도 사고가 잦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 아크를 지나쳐갔던 마차가 방향을 틀어 주체 못할 속도로 다시 오고 있었다. 끼이이익! 아스팔트 도로에 고무 타이어 바퀴도 아닐진대 뭐 때문에 효과음이 ‘끼이이익’으로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둘째치고 마차는 아크의 앞에서 떡 하고 멈춰섰다. “뭐야?” 고급스러운 마차 문양에 철갑옷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호위하고 있는 마차. 척 보기에도 귀족들이나 타고 다닐 만한 그런 마차였다. 길이 막히자 아크는 돌아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아크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엥? 웬 오빠? 헛걸 들었나? 여기에 날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어디 있어? 잘못 들은 거겠지.’ 자기 외에도 길가에는 남자들이 여럿 있었기에 아크는 설마 하고 제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에 들린 말소리에는 아크도 더 이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크 오빠!” “……!” 아크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마차에서는 갑옷을 입은 이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드레스를 입은 채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연보랏빛 머리칼의 소녀가 있었다. 아크는 소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유카나!” 그랬다 소녀는 아크류 살인격투술 제 1전승자인 유카나 엘레노어였다. 아크는 드레스를 입고도 잘 달려와 자신의 허리를 껴안는 유카나를 맞 껴안았다. 자신에게 아동성추행범이란 자랑스런 타이틀을 달아준 유카나.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이토록 반가운 일도 없었다. “오랜만이에요. 아크 오빠.” “음 한 1년 좀 더 지났나? 오랜만이긴 하지.” 1년 가량 지났을 뿐인데 소녀는 많이 자라 있었다. 키도 많이 컸고 밋밋했던 가슴은 여전히 밋밋해 보였지만 드레스에 약간의 굴곡이 생겨 있는 것이 앙증맞았다. 유카나를 호위하던 엘레노어 가의 가신들은 아가씨가 갑자기 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포옹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던 한 병사는 유카나가 안겨 있는 사내의 얼굴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저, 저놈이 대학살자 아크닷!” “뭐이?” 대학살자 아크. 어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으리? 아가씨를 납치해 성추행 한 것도 모자라 저택에서 깽판을 치며 혼자서 자신들을 요리한 거기에 사형 감면 조건으로 갔었던 세르미도 섬에서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넷과 40여 무장병사들을 혼자서 죽인 그를. 몇몇은 그때 자신을 불구자로 만들어 버린 아크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 이성을 잃고 덤벼들려 했지만 상대는 그 악명 높은 대학살자 아크였다 이들이 모두 덤빈다고 해도 눈 하나 깜박 안 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그놈에게서 떨어지십시오!” 가신들은 주군의 딸을 위해 아크를 나쁜놈 죽일놈으로 매도했지만 콩깍지가 쌓인 유카나에게 그런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가신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유카나였다. “아크 오빠를 그런 식으로 흉보지 마세요! 계속 그러면 저한테 혼날 줄 알아요!” 흰 면장갑을 낀 유카나의 오른손에는 푸른 오러가 서려 있었다. 그것을 본 아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오러 핸드를? 벌서 익스퍼트 급 마나를 쌓았단 말인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자. 최강심법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하지만 난 권기 쓰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는데?’ “유카나……그건 어떻게 된 거야?” 유카나는 대명사조의 물음을 용케 잘 이해하고서 제대로 답했다. “마나는 얼마 전 소드 익스퍼트급이라고 판정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건 권기를 일으키게 해 주는 장갑이에요. 아버지가 선물로 주셨어요.” 정말 놀랍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결과였다. 최강심법이 속성 내공심법이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빠른 성장은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과 맞먹는 속도였기 때문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청출어람도 몇 년 안 가 이루어질 만큼 빠르디 빠른 성장이었다. 물론 소드 마스터를 눈앞에 둔 경지 즈음에 이르러 놓고 주저앉아 버릴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하다는 감탄 외에는 나오지 않았다. 팬크라프트 제국 마나 수련법이라고도 불리는 위진무의 이 최강심법은 무에 열의가 있는 무인이라면 누구든 빠른 시간 내에 오러를 다룰 수 있는 익스퍼트 급으로 만들어주는 대단한 심법이었다. 하지만 웬만한 검들의 천재가 아니라면 익스퍼트 급까지는 몰라도 마스터급 까지는 힘들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나 힘든 것이지. 타국의 여타 마나 수련법에 비해서 본다면 이 심법은 정말 무시무시한 효과를 자랑했다. 현재 이 심법을 주로 사용하는 팬크라프트 제국의 소드 마스터는 그랜드 급 마스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을 포함 모두 일곱 명. 사망하긴 했지만 이 심법으로 마스터에 오른 프랑코 젤리커까지 포함한다면 총 8명이나 배출한 셈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팬크라프트 출신은 아니더라도 같은 심법으로 수련한 로니 루네아까지 합한다면 무려 9명이었다. 다른 국가들을 보면 캘더린 왕국은 마법을 6서클까지 마스터해 마나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한 덕분에 마스터 급을 깨달은 세실 엔테른 하나. 중도를 보면 막히는 검술에서 창술로 전환해 깨달음을 얻은 칸트 앵걸과 주신의 성검에 도움으로 마스터가 된 화이트 로리엔까지 해서 둘. 루드비안 제국은 대기만성형인 심법으로 어쩌다 마스터의 벽을 간신히 뚫고 그랜드 급까지는 그래도 수월히 오른 루벤드 그레드릭 하나로 이 세나라가 연합을 한다 해도 결코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 전력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때문에 팬크라프트가 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웬만한 천재들은 마스터가 되기 힘든 반면 팬크라프트는 쉽지는 않아도 그 벽을 넘는 이들이 꾸준히 있었다. 유카나는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무재였다. 거기에다 아크의 수련을 가장한 성추행이 실제 효과를 발휘해 유카나의 발전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음 그래? 그건 그렇고 지금 어디를 가는 거야? 그런 옷까지 차려 입고.” “아. 얼마 안 있어 왕궁무도회하고 대 연회 등이 열리거든요. 제펠 왕자님의 신부감과 메리사 공주님의 신랑감이 결정될지도 모르는 그런 행사라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은 귀족들 모두가 참가해야 해요.” “흠 황태자비가 되고 싶어? 유카나.” “아뇨……전 어차피 시집도 못 가잖아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어머니한테 들었어요. 여자는 소중한 곳을 보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전 그걸 믿을 만큼 아둔하진 않아요. 그런데 아크 오빠가 마나 수련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만진 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니까 모두는 제가 더럽혀 졌다면서 외면하더군요.”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크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생각해 봐도 그때 그렇게 유카나를 주물러 댄 것이 잘못이었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생각해보자. 비록 만지기만 했지만 부풀려진 소문에 유카나는 완전히 순결을 잃은 것이 되어버렸고 노예에게 능욕 당했다는 소문이 퍼진 유카나를 누가 데려가려 하겠는가? 그것도 그 보수적인 귀족사회에서? “미안하다 유카나.” 아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유카나에게 사과했다. 그런 아크에게 유카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사실 걱정도 좀 했었는데 아크 오빠가 이렇게 다시 나타나 주셨잖아요. 결혼은……음……아크 오빠랑 하죠 뭐.” “음……그래? 결혼……뭐? 결혼? 나, 나하고?” “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이 자리의 모두는 얼어 붙었다. 아니 돌이 된 이도 있었다. 유카나는 석상이 된 아크의 팔짱을 잡아 끼우며 연신 싱글벙글 거렸다. 그런 유카나를 본 아크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갔다. ‘겨, 결혼? 이 이 꼬맹이랑? 아무리 키워먹기가 남자의 로망이라지만……이건 범죄잖아!’ 하지만 이미 책임지지 않으면 안될 짓을 유카나에게 해 버렸던 아크에게 선택분기란 없었다. ‘크크크 그래 로리 타입부터 섭렵을 시작하자. 뭐니뭐니 해도 하렘왕의 첫걸음이 아닌가? 좋아! 아주 좋아. 크하핫! 범죄? 웃기지마. 여긴 로리 귀축법이 상관 없는 판타지 세계라고 크하하핫! 판타지 세계 만쉐이! 대한민국 만쉐이!’ 표정이 시시각각 이상스레 변하는 아크를 본 유카나는 혹시라도 아크가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세간에는 성추행으로 알려졌지만 그것은 마나 수련법의 전수였기에(효과는 있었으나 그것을 해 준 사람의 의도는 사악했다는 게 문제다)사실 상 아크가 잘못한 건 아니었단 말이다.(이건 유카나만의 생각이다.)그러니 아크에게는 유카나를 책임 질 의무가 없는 것이다.(이것 역시 유카나만의 생각이다) “안……되나요? 아크 오빠.” 몰래 키워 온 사랑이었다. 검술에 재능이 있고 또한 흥미도 있어 기사가 되고 싶었던 소녀 유카나. 하지만 기술적으로 뛰어남에도 체력이 더 나은 남자들에게 밀리고, 자신을 보통의 귀족가 영애로 곱게 키워 황태자비 등을 만들려고 했던 아버지에 의해 재능을 거세당한 채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어야 했던 그녀에게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을 납치 한 검은머리 노예. 하지만 그는 자신이 동경하던 기사들 중 기사중의 기사라는 지략의 기사였고 나이 차가 좀 심하게 나긴 했지만 소녀는 강하고 친절하며 특히나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어 높은 경지를 깨닫게 하여 기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지략의 기사 아크 오빠를 항상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 그리고 잡으려 했다. 항간에 나쁜 소문이 나돌았고 그 소문이 실제였지만 소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고 소녀는 영악하게도 아크의 약점을 잡고 어려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어린애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한테나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아크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초조해졌다. 어린애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 것처럼 말해 놓았더니 정말 그렇게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하고. 그러나 우리의 아크는 가는 여자는 무조건 잡고, 오는 여자 막지 않는 주의다. 결혼이라는 굴레가 조금은 걸리긴 하지만 여긴 일부다처제가 인정된다. 구운몽의 양소유 정도는 해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카나.” “네?” 꿀꺽. 하고 침이 넘어간다. “결혼하자. 우리.” 유카나의 꿈을 이루어주는 말이 떨어졌다. 그리고……주변 석상들은 서서히 부식돼 가루가 되어 날리기 시작했다. “오빠!” 유카나는 다시 한 번 아크를 꼭 껴안았다. 아크는 그런 유카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훗날 이 이야기는 밀밭의 고백이라 하여 로리의 꿈을 갈망하는 이들의 모든 부러움을 샀음은 물론이오. 지략의 기사 전설에 한 단면을 차지하는 중요한 에피소드가 되었다. 또한 후에 루드비안 제국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두 기사가 맺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아크 오빠.” “그래.” 유카나의 마차에 타고 편히 수도에 도착한 아크는 기사 아카데미 안으로 떠나는 마차를 배웅해 주었다. 아카데미와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은 루드비안의 황궁. 아크의 목적은 일단 황제를 알현하는 것이었다. 황궁이라서 그런지 정문의 경비도 소드 익스퍼트급으로 보이는 두 기사들이었다. “무슨 일이냐? 여기는 황궁이다. 용무가 없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사라져라.” 한 기사가 아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아크는 이에 응수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내 이름은 아크 페인. 망국 디그리스의 자작으로 지략의 기사라 불리고 있다. 황제를 알현하고자 하니 길을 비켜라.” “뭣?” 그 소리를 듣자마자 기겁을 하는 두 기사. 잠시 후 왼편의 기사가 증거를 요구했다. “증거를 보여라!” 그 말에 아크는 왼손의 선홍빛 문장을 제시했다. “……!” “지, 진짜잖아!” “됐나?” “잠깐만 기다려라. 보고하고 오겠다.” 오른편의 기사가 황성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한참 후 그는 여러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대동하고 아크를 둘러 쌓았다. “뭐야? 체포하려는 거냐?” “아니 경비하는 것이다. 소드 마스터 급 무인을 단신으로 황제 폐하와 알현 시킬 것 같은가? 들어가라 안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좋다.” 기사들에게 둘러 쌓인 채 아크는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황제와 대소 신료들이 모여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국무회의실 원형으로 된 건물의 단상의 고품격스러운 의자에는 제국의 황제 하이데른 포레스티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황제의 양옆에는 황제를 바로 옆에 두고도 검을 가지고 있는 왜소한 체격의 노인과, 그에 비교되는 큰 키에 챙이 넓은 흰 모자를 쓴 중년의 사내가 자리했다. 단상의 밑. 원형 회의실 바닥의 정 중앙에는 두 명의 기사에게 둘러 쌓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아크가 있었다. TV로는 가끔 보았지만 실제로 당사자가 되어 보기는 처음인 인사 청문회. 인재 등용시 청문회를 열다니 제법 정치적인 수준은 있는 모양이었다. “에 그럼 지금부터 대학살자 아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국민의례는 생략하고 각자 질의해 주십시오.” 사회자까지 있었다. 사회자의 시작을 알리는 말과 동시에 둥그런 좌석에 앉아 있던 한 귀족이 손을 들고 일어섰다. “당신이 진짜 지략의 기사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시오.” 유카나의 증언과, 칸딘스키 공작의 전보, 경비 기사들의 증언으로만 해도 충분히 여러번 검증되고 증명된 것이지만 아직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긴가민가 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확실히 해 두자는 취지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아크는 왼손에 선홍빛의 문장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자 황제는 고갯짓으로 시종을 보내 아크의 귀족 인장을 확인케 했다. “확실합니다. 이 자는 디그리스 신흥 귀족 페인 가문의 가주이자 지략의 기사란 명호를 지닌 아크 페인입니다.” 이걸로 확실해 졌다. 지략의 기사에 대한 진짜, 가짜 논쟁이 진짜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역사서에는 죽었다 기록이 되어있는 지략의 기사가 어떻게 살아서 나타났는지. “역사서에는 죽었다고 나오는데 그건 어찌 된 건가?” “그게 역사서요? 소설이지.” 아크는 매우 불퉁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오?” “뭐 일단 전반적인 이야기들은 들어맞소. 하지만 포르티아 시가전에서 내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오. 난 그곳에서 루네아 공작과 함께 탈출했고 살아남았소. 팬크라프트의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나 몇몇 폴티아 반도인들은 진실을 알고 있소. 역사학자들에게 조금만 더 꼼꼼한 검증을 시킨다면 알 수 있을 것이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아크의 답변이 끝나자 황제의 오른 쪽에 있던 챙 넓은 흰 모자를 쓴 중년인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탈출한 뒤 최근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기까지 약 30년 간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혹 팬크라프트나 캘더린에 회유되어 첩자 훈련을 받은 것은 아닌가?” “……!” 흰 모자의 중년인 레이필드 공작은 정말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가장 의심하고 추궁해야 할 부분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30년 동안 흔적이 없는 아크의 행적인 것이다. 혹시나 루드비안을 노리는 적국에서 회유해 루드비안에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기 위해 몰래 보낸 첩자는 아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크는 잠시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곤란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의 말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나는 루네아 공작과 함께 팬크라프트의 추격군을 피해 우라시드 산맥으로 달아났소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루네아 공작의 사부이자 은거한 무인 무신 위진무. 여기 이름으로는 무신 진을 만났소 그리고 나도 그의 제자로 들어가 복수의 일념으로 무술을 수련하고 일정 경지에 오르자, 세상으로 나왔지 그러던 중 부랑자로 찍혀 노예시장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탈출키 위해 귀족가 영애를 납치했지 그 이후는 말 안 해도 잘 알 것이외다.” “진실로 하는 이야기인가?” “내 사부인 무신에겐 친분이 두터운 레드 드래곤이 둘 있소. 비록 이 자리에서 증명할 수는 없으나 거짓을 모르는 드래곤 종족이라면 진실을 말해 줄 거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분을 데려와 증명할 수도 있소.” 무신과 레드 드래곤 둘을 알고 있다니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사실이라면 놀랄 수밖에 없는 뒷배경이었다. “그런데. 그런 뒷배경이 있다는 거하고 자네의 행적하고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기왕 뻥치는 거 더 크게 치는 것인지 누가 아느냔 말일세?” “정히 의심이 간다면 내게 첩자를 붙여 두시오. 하지만 진정한 첩자는 음지에서 살지 멍청하게 이 사고 저 사고 다 치고 다니진 않소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진짜 첩자라면 대학살에 아동 성추행 등 여러 굵직굵직한 대형사고를 터뜨려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대형사고를 쳐서 일부러 자신이 첩자가 아니라는 걸 알리려 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난 충절로 이름이 높은 지략의 기사요. 내가 이 나라의 중책이 되려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 친우들을 죽게 하고 조국을 멸망에 기로에 서게 한 팬크라프트에 대한 복수의 일념도 크오. 그리고 캘더린은 그 우방이지. 그런데 내가 그런 곳에 별 같잖은 돈이나 목숨을 아까워해 충성을 돌렸으리라 생각하시오? 하!” 아크는 현재 국제 정세와 충절을 지킨 기사로 더 잘 알려진 자신의 이름값을 이용해 뻥을 쳤다. 거기에 원체 좋은 연기력으로 강렬한 눈빛까지 내뿜자. 여전히 의심의 기색을 보이기는 하면서도 더 이상 추궁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후우 진땀 뺐다.’ 대부분의 질문을 예상하고 나온 아크였지만 이 질문만은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대답하기가 힘들었다. 여차하면 첩자로 몰려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잘 넘어간 듯 보였다. “자네의 무위를 들었네. 그것을 지금 여기서 증명해 주지 않겠나? 마법, 신성력, 검술 삼위일체를 합했다는 실력을 보고 싶네.” 검을 차고 있는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질문을 던졌다. 나올 줄 알았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크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소드 마스터나 신성력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렇게 사람이 밀집한 곳에서 마법을 증명하라는 것은 상당히 난해한 주문이었던 것이다. “흠…… 7서클을 증명하려면 전체 마법을 써야 할 터인데 어찌 이곳에서 쓸 수 있겠소이까?” “그런가? 그렇다면 그건 나중에 보도록 하지.” 대답이 떨어지자 아크는 옆에 있던 기사가 들고 있던 블레싱 소드를 돌려 받았다. 그리고 감춰 둔 마나를 개방하기에 앞서 말했다. “내가 만약 딴맘을 먹고 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무사치 못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소?” 그러자 노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걱정 말게 그렇게 된다면 자네의 목은 이 자리에 굴러다니게 될 테니까.”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노인의 기백은 체격이 왜소하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내를 완전히 압도했다. 말 한마디마다 무거움이 실려 있었다. ‘대단하군. 저 노인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인 모양이야.’ 아크는 이에 질세라 잘 숨겨 두었던 신성의 마나를 완전 개방시켰다. 그 소드 마스터급이 넘는 엄청난 신성력에 국무 회의장에 신관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크는 잘 쓰지 않던 소드 오러를 사용했다. 그러자 검신 자체에서 은은한 금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푸른 마나의 기운이 검에 어렸다. 흐트러짐 하나 없이 반듯하고 잘 자리잡은 오러 블레이드 그것은 소드 마스터의 소드 오러였다. “저, 정말이었군.” “어, 엄청난 신성력이다. 이 정도라면 페르젠하워 대신관을 능가하는 수준이 아닌가?” “이제 되었으리라 봅니다.” 아크는 소드 오러를 해제하고 마나의 기척도 다시 숨긴 채 의자에 앉았다. “다음 아크 자네의 실력과 실제 자네가 지략의 기사임은 잘 알았다. 그 정도라면 오히려 황제인 내가 우리 제국에서 제발 일해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부탁할 일이지만 그대에게는 ‘죄’가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번에는 하이데른황제가 직접 질문에 나섰다. “죄 하고 공이 동시에 있다면 죄는 공 덕분에 가벼워지고 공 역시 죄 덕분에 잊혀지고 말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나는 해적들의 습격에서 이 나라의 많은 귀족들을 구해 낸 공이 있소.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해적기지에 쳐들어 갔을 때 나는 그 해적들의 귀족 탑승 유람선 습격 사건에 배후를 알아내었소. 자 여기 그 증거 문건이 있소이다!” 아크는 킹 블래드리의 책상과 서류함에서 얻은 서류들을 꺼내어 놓았다. 그 문건에는 캘더린과 해적들이 서로 결탁하여 루드비안을 괴롭힌다는 증거가 명백했다. 이 서류는 국왕을 거쳐 고위 귀족들에게 한번씩 돌려가며 읽혀졌다. 이 문서를 읽은 그들은 표정에 분노의 기색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해적들까지 끌어들여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다니!” “정말 악독한 년이군 그년은 마녀야!” “자, 자, 자 그 이야기는 나중에 새로 논의하도록 하고 지금은 심문을 우선으로 합시다. 아크 씨 하지만 공적이 있다고는 하나 죄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외다.” “흠. 그거라면 나도 할 말 있소.” “뭡니까?” “난 망국 디그리스의 기사였소. 허나 디그리스는 이미 망했고 때문에 나는 다시 무국적자가 되었지. 때문에 나는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이들을 죽인 것뿐이외다. 한 마디로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 나는 황제에게 반역자가 될 수 없으며 살인에 대한 동기 또한 거물들을 죽여서 그렇지 엄연한 정당방위였소이다.” 그렇다. 국적이 없는 자가 국가 배신 행위인 반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거기에 지금껏 아크가 죽인 이들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자기를 죽이려 하는 이들이었기에 정당방위란 것이 성립되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웃기지마라! 내 딸을 성추행해 놓고도 발뺌하기냐!” 엘레노어 백작이 벌떡 일어서 아크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그로서는 다른 건 둘째 치고서라도 사랑하는 딸에게 엣찌한 지을 한 아크를 가만히 놔 둘 수 없었다. “맞네 위의 반역죄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에겐 아동 그것도 귀족 영애 성추행 혐의가 추가로 걸려 있네. 이건 반역죄만큼은 아니더라도 살인죄 이상 해당하는 중죄야. 그것은 어찌할 것인가?” 사실 이 부분도 대답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 유카나를 만났던 아크에게는 명분이 생겨나 있었다. “흥! 엘레노어 백작! 내가 유카나에게 한 것은 마나 수련법을 전수해 주기 위해 몸의 막힌 마나가 흐르는 구멍을 뚫어준 것뿐이오. 어쩌다 보니 그 뚫어야 할 막힌 구멍이 회음혈이기에 그곳을 누른 것이고!” “닥쳐라! 내가 그런 것도 모르고 지금 네놈을 추궁하는 줄 아느냐?” 당장 뛰쳐나가 아크를 팰 기색의 엘레노어 백작을 주변 여러 귀족들이 말렸다. 그러자 그도 조금은 잠잠해진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네놈이 내 딸에게 마나 수련법을 전수해 준 것은 그렇다 치자. 그것도 마나 수련법 중 가장 속성의 효과가 크다는 팬크라프트 제국 심법인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네놈이 팬크라프트 제국 심법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러운 일이지만 그 팬크라프트 제국 심법이 무신 진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무신을 만나 수련을 했다는 네놈의 말을 일단은 믿겠다. 허나! 그 아무리 여성을 수련시킨다 해도 그 심법은 회음혈을 처음 한 번 이상 뚫지 않는다! 그런데 네놈은 내 딸을 납치한 기간 동안 수차례나 그곳을 누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만져댔다고 들었다. 자 이래도 발뺌할 테냐?” 웅성 웅성 웅성 ‘커헉 좃됐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버렸다. 마나 수련법 전수란 명목으로 한 변태 짓이, 계속된 엘레노어 백작의 탐문수사에 걸려 아크가 실제 음흉한 의도로 유카나를 능욕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로 밝혀져 버린 것이다. 이럴 때는 사실대로 말하고 유카나와의 약혼에 대한 이야기를 밝히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그건……후우 죄송하오. 엘레노어 백작. 맞소이다. 나는 30여 년 동안 산속에서 여색을 금하고 수련을 했기에 그 당시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눈이 돌아가는 판국이었소.” “뭐, 뭐야! 이 죽일 놈이! 이…….” “그건……내가 이 나라에 등용이 된다면 그래서 귀족이 된다면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나는 엘레노어 백작가의 딸을 책임지기 위해. 내가 저지른 일을 책임지기 위해 유카나 엘레노어. 그녀를 내 신부로 맞이하겠소!” 쿠궁! “뭐, 뭐, 뭐야?” 아크의 폭탄선언에 엘레노어 백작을 비롯 대소신료들은 모두 석화되어 버렸다. 젊은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나이는 이미 오십줄이 넘은 지략의 기사가 12살의 새파랗게 어린 엘레노어 백작가의 영애를 신부로 맞겠다니. 이건 무슨……. 그 와중에 그랜드 마스터 급 무인이어서 그런지 석화가 풀리는 것이 빨랐던 그레드릭 대공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허허허허허허. 영웅호색이라 하더니 자네도 그런 모양이로구만. 하긴 어린 계집아이의 매력도 부인할 수는 없지. 그래 영애와 합의가 된 사항인가?” “뭔가를 아시는군요. 제가 여기 오기 전 아카데미로 향하는 유카나를 만나 언약했습니다. 때문에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지요.” “허허허. 그렇다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구려? 아니 그렇소? 서로 결혼할 사이인데 부끄러운 곳이 보이고 만져진 것이 무엇이 어떠하오? 또한 지금 상황으로 봐서도 여기 아크 군이 우리나라에 등용이 되는 것도 거의 굳어져 가는 마당에 신분도 문제될 것이 없겠다.” 그 말에 황제도 동의했다. “그렇군. 둘이 서로 결혼하게 된다면 별 문제거리가 되지 않겠어. 소드 마스터의 수명은 약 160년. 거기다 말년이 될 때까지는 늙지도 않지. 그렇다면 12살의 어린 나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반려가 되어 줄 수 있겠구려.” “그렇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장. 인. 어. 른.” 아크는 엘레노어 백작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장인어른이란 말까지 첨부해서. “뭐, 뭣! 누, 누가 네놈 따위에게 내 딸을 줄 줄 아느냐!!! 장인이라니! 장인이라니!” “허허 엘레노어 백작. 소드 마스터 사위가 뭐 어떻다고 그러시오? 아직 확정이 나진 않았으나 메리사 공주를 주고 싶을 만큼 대단한 이 인데.” 황제의 너털웃음에 귀족파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현재 시집갈 나이가 다 찬 19세의 세레스티나 공주를 언급하지 않고 어린 메리사 공주를 언급한다는 것은 황위를 세레스티나 공주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가 표명된 것이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법에도 보면 명백히 남편이 있는 공주는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고 쓰여 있었기에 황제는 세레스티나 공주를 시집보내려 하지 않고 여제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아크는 인사청문회에서 쏟아질 비평들을 잘 집어 넘기고 있었다. “자네 옆에는 8서클의 대마법사가 있다고 들었네. 사실인가?” “그렇소 사실입니다.” “허어!” “허나 그는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제 가신이 아닌 동등한 관계의 동료입니다. 그가 어떻게 행동할 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를 회유해서 제국의 일원이 되게 해 달라고 하신다면 상당히 난감합니다.” 아크의 말투는 어느덧 하오체에서 조금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대충 힘든 고비를 다 넘기고 이제부터는 별 같잖은 질문들만 오갔기에 더 이상 긴장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략의 기사 전설은 어떻게 된 거요?” “그 책은 뭐 사건들에 대해선 내가 죽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었습니다. 허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상당히 틀린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성격이라던가 동료 기사들이라던가. 뭐 그런 거겠지요.”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상당히 많은 질문이 끝났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을 하겠네.”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이 제국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하는가?” “…….” 여기서 아크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거짓으로 충성을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사항을 말빨로 치장해 납득시킬 것인가? 전자보다 후자가 실패확률이 컸지만 아크는 후자를 택했다. “장담 못합니다.” “……!” “그게 무슨!” 웅성 웅성 웅성 아크의 입이 떨어지자 마자 국무회의장은 다시 시끄럽게 변했다. 대부분 납득하고 지략의 기사에 대한 찬성표를 던지려던 대소 신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건 무진장 중요한 요소였다. 충성. 그 충성을 하지 않겠다면 이 자를 어찌 믿고 중책을 맡긴단 말인가? “그 말은 내게 충성을 다 하지 않겠다 그 말인가?” 황제가 물었다. 그의 이마엔 주름이 유독 깊게 파여 들어갔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배신하진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저는 주군을 쉽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전 아직 황제 폐하와 이 나라에 대한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진실된 충성이 우러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황제 폐하.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된 충성입니다. 주군을 섬기면 부록으로 생기는 돈과 권력에 대한 충성일 뿐 그것이 진정한 충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으음.” “전 아직 당신을 제 주군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절 믿고 의지하신다면야 주군의 충실한 개는 못 될 지언정 나라의 배신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믿어 주신만큼 이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이며 군왕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신뢰하지는 마시고 다만 신용해 주십시오. 저는 이 나라가 먼저 내치지 않는 이상은 설사 충성을 할 군주가 없다 하더라도 이 나라를 기필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략의 기사라는 제 이름과 목숨을 걸고서 맹세하겠습니다” 역시 말빨 하나는 탁월한 녀석이다. 보라 저 납득하는 이들을. 아크의 말을 들은 이들은 아크의 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충성은 우러나서 하는 것이지 누군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제야 막 이 제국에 등용되려는 자가 입에 담는다면 오히려 의심해봐야 정상인 것이다. 오히려 말로만 충성 충성 찾는 이들보다 더 진실해 보이지 않는가? 황제 역시 말로는 충성 충성하면서 뒷 콩깍지나 까 대는 귀족파들 보다는 애초부터 저렇게 까고 나오는 아크에게 더 믿음이 갔다. 어차피 자신 주위에는 진실한 충성을 바치는 이는 눈꼽만큼도 없었다. 황제파라며 떠받드는 놈들도 결국 자신의 이권을 위해서 그리고 현 황가가 무너질 경우 생길 나라의 문제에만 민감할 뿐이다. 그레드릭 대공은 수백년동안 나라를 지켜온 충신 중의 충신이라고 하지만 그는 나라에 충성할 뿐이다. 이 제국에. 짐이 곧 국가다란 말이 있긴 하지만 그레드릭 대공은 대의명분과 나라를 위한 힘이 황제가 아닌 다른 이에게 있다면 주저 없이 그쪽을 택할 사람이었다. 어차피 똑같다. 또한 충성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확실히 믿어주겠다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래 좋아. 이만 청문회를 끝마친다.” 아크의 마지막 답변을 들은 황제는 청문회를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제의 등용결정 및 작위결정 뿐이었다. “시종장. 교지를 가져오라. 마법사. 마법 인장의 준비를 시작해라.” “옙.” 황제는 옆에 갑옷에 있던 검을 빼내었다. “아크 무릎을 꿇어라.” “…….” 아크가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자. 황제는 검을 아크의 어깨에 올린 뒤 말했다. “디그리스의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그대는 오늘 부로 대 루드비안 제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대의 능력을 크게 사 후작의 작위를 내리겠노라. 또한 카프레이 영지를 하사하니 그곳을 잘 다스리도록 하라.” 원래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드 마스터 급 무인들에게는 공작위의 높은 작위를 내리는 것에 비하면 약소한 작위인 후작이었다. 하지만 후작은 결코 낮은 작위가 아니었다. 제국 내 하나 있는 대공과 셋 있는 공작, 그 뒤 열 둘 밖에 안 되는 후작의 작위였다. “왼손을 펴라.” 마법사가 마법을 쓰자 디그리스의 선홍빛 귀족인장은 사라지고 대신 보랏빛의 루드비안의 후작임을 증명하는 마법 인장이 새로이 아크의 왼손바닥에 새겨졌다. “그대에게 수도 내 대저택과 금일봉을 하사한다.” “망극하옵니다.” 귀족 작위 수여식. 이 수여식 중에 아크의 머리는 이상한 데 흘러가 있었다. ‘크크크크 드디어 하렘을 꾸민다. 당장 가서 저택에 메이드부터 고용해야 겠군. 크하하하 남자의 3대 로망. 오빠를 이성으로 보는 착한 여동생!……은 무리로군 후 이 빠순이 동생년도 두고 오니 보고는 싶군. 로리 키워먹기 달성에 이제 메이드만 달성한다면 푸흐흐흐흐 크하하하하하하!!!’ 결국엔 진짜로 귀족이 되어 버린 아크. 과연 이 제국의 여성들은 씨가 안 마르고 남아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 중간고사 관계로 공부하다보니 많이 늦었군요. 복귀는 했지만 성실연재는 장담 못합니다. 약 열흘간을 쉰 바람에 비축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죠. 지략의 기사 임관. 이 세계에 방송사와 신문사가 있었다면 연일 1면에 대서특필 될 만한 빅뉴스였다. 사망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멀쩡히 살아 있었던 지략의 기사는 굵직굵직한 사건 사고를 터뜨리고도 후작의 작위를 얻었다. 원래 소드 마스터의 경우. 팬크라프트 제국 같은 소드 마스터가 넘치는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락에서 공작위 정도를 내렸다. 하지만 이번 지략의 기사의 경우 저지른 죄가 있고 논란도 컸기에 일단 후작위에 제수되었다. 추문이 되었던 반역죄는 황제가 직접 죄를 사해 주었고 성추행 사건은 결혼발표와 함께 그 시절부터 열애를 해 왔다고 소문이 나 수다떨기 좋아하는 사교계에서 부인들의 입에 오르락거렸다. 하지만 원체 명예로운 기사로 소문이 난 데다가 상당한 미모, 그리고 해적 소탕 등의 영웅적인 공로에 어린아이를 탐했다는 둥의 이야기들은 뒷전으로 밀려들어갔다. 굉장한 미모와 엄청난 실력 그리고 후작이라는 작위, 사교계에서는 얼마 안 가 열릴 대연회에 나올 페인 후작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재잘대고 있었다. 허나 전설속의 기사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 귀부인들의 기대에 걸맞는 이는 절대 아니었다. “집 좋네요.” “귀족가 저택이 다 그렇지 뭐.” 나중에서야 도착한 에드워드 일행은 많은 시간을 헤매다가 한참 후에서야 페인 후작의 저택을 찾을 수 있었다. 수도의 저택. 이곳은 아크가 그다지 신경을 쓸 일이 없었다. 원래부터 이 저택을 지키던 집사와 경비, 식모, 그리고 하인 둘. 원래 저택을 새로 가지게 되면 대대적으로 하인들을 모집하는 타 귀족들에 비해 중앙귀족으로 있을 생각이 없던 아크는 대연회가 끝나고 곧 내려가게 될 영지의 영주 저택을 어찌 꾸밀지에 대한 계획 구상으로 바빴다. 메이드로 가득 찬 저택. 그것이 아크가 그토록 염원해 오던 하렘이었다. 수도의 저택도 그렇게 해 두고는 싶었지만 지방의 영지보다 수도는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다 보니 퇴폐형 하렘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집들이를 해야겠는데. 쓸만한 음식이 없다.” “언제는 밥 먹으러 왔냐? 신경쓰지마.” “아! 재료만 있다면 제가 할게요.” “그래 주겠어? 고마워 피리아.” “뭘요.” 피리아가 주방으로 떠나고 아크와 에드워드, 에르디는 소파에 앉았다. “칸딘스키 공작은?” “그 늙은 놈은 자기네 집으로 갔어.” “늙은 놈이라니……네 녀석 말투도 참.” “내 기준으로 그럴 뿐이야.” 아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을 부르는 에드워드의 호칭은 무조건 암컷, 수컷, 새끼, 늙은 놈이었다. 아무리 유희는 아니라 해도 드래곤이라는 게 발각된다면 상당히 골치 아플 텐데 저렇게 대놓고 티를 내면 어쩌자는 것인가? 막가자는 얘기냐? “휴우 네 맘대로 해라. 그나저나 에드. 네 녀석한테도 상당한 관심이 쏠리고 있던데 어때? 너도 귀족해 볼 생각 없어?” “귀찮아. 싫어.” 에드워드는 단호히 거절했다. “흠 뭐 강요는 않겠다만 유희로도 즐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웃기지마. 난 유희를 나온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나온 거야. 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어이 누누이 말했지만 복수할 상대의 행방도 모르면서 이러기냐? 원수라는 드래곤의 행방을 알 때까지라도 조금 노는 건 나쁘지 않다고.” “어쨌든 난 그놈을 죽일 때까지는 그럴 수 없어. 네 녀석 장단을 조금 맞춰는 주겠지만 더 이상은 바라지 마.” 에드워드의 매몰찬 거절에 아크는 옆에서 차를 홀짝이는 에르디에게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레이필드 공작이란 사람 네 얘기만큼 나빠 보이지는 않던데?” “…….” 에르디는 고개를 팍 숙였다. 귀족파의 수장인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공작은 에르디의 철천지 원수였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레이필드 공작을 안 좋게 봤던 아크는 생각 외로 레이필드 공작이 나쁜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적 제거와 권모술수에는 무서울 정도로 냉혹하고 능한 인물이었지만 어렸을 적부터 대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 서민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컸고, 경제 원리를 잘 파악해 큰돈을 번 경제 전문가로 루드비안 제국 경재계 최고의 거물이었다. 또한 현 재무부의 수장으로 정말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잘 쓰는 내정 부분 최고의 수재로 나라 살림을 잘 이끌어 나가다가 최근 황제의 무리한 군사력 확충과 쓸데없는 정책에 반발하여 귀족파의 수장이 되었다. “휴우. 이젠 뭐 별 상관없습니다. 그저 지난 번 죽음의 악취 사건 때 공작의 막내아들 목숨을 앗은 것으로 족해요. 복수하고는 싶지만 내겐 힘이 없고 힘이 되어 줄 세력도 없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그런 인물을 죽인다는 건 이 제국에 큰 타격을 주겠지요.” “쩝. 그래 복수는 부질없는 것이니 다 용서하고 받아들여라. 그것이 바로 내 사부였던 무신님의 말씀이시다.” 아크는 침울한 표정의 에르디를 등을 두드려 주며 위로해 주었다. “뭐 복수네 뭐네 이런 이야기들은 제쳐 두고 에드워드. 에르디 내가 너희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뭔데?” “이제 며칠 후면 대연회가 열리고 그날이 내가 이 나라 사교계에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어떤 퍼포먼스 영상을 하나 보여 주겠다. 이걸 보고 한 번 연구해 보도록 하라고. 최대한 강렬한 임팩트로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알았나?” 아크는 아공간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액정화면을 본 에드워드와 에르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이건 강한 임팩트 정도가 아니다……대박이야……정말 미치겠군.’ “이봐 그 소문 들었어?” “무슨?” “디그리스의 그 지략의 기사가 나타났대.” “아하 그거. 참 시끄러운 일이지.” “그 자가 우리 제국에 대한 복수를 공포했다던데? 아무래도 몇 년 안 가 있을 대륙 통일 전쟁이 조금 힘들어 지겠더군.” “뭐가 그리 걱정이야. 아무리 대가리 좋고 쌈 잘하는 놈이 있으면 뭐해? 기사 수에서 상대가 되질 않는데.” “그건 아닐세.” 갑자기 대화중인 두 기사의 사이로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아무리 그래도 국력과 군사력의 차이는……헉! 세비어 경!” 기사는 자신의 의견의 반대의견을 낸 목소리에 한심하다는 투로 자기의 주장을 표명하려 하다가 반대의견을 달았던 기사를 보고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그는 바로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인 세비어 프레슬더 후작이었기 때문이다. 두 기사는 즉시 기립해 경례했다. “프레슬더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아 쉬고 있던 터인 거 알고 있으니 편히들 앉아 있게. 그나저나 자네 지략의 기사의 진짜 능력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로구만.” “소드 마스터라는 것. 그리고 프랑코 젤리커 각하를 쓰러뜨렸다는 것. 우리 군 10만을 2만의 병사로 전멸 시켰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해도 대공전하나 다른 소드 마스터 분들 여럿이서 나가시면 밀릴 것이 뻔하고 아무리 지략이 뛰어나다 하나 국력의 차이에서 나는 압도적 우세를 그리 쉽게 극복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후 자네는 그의 저력을 우습게 보고 있군. 최근 파푸치아 숲 길 뚫기 공사를 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잇지. 들어보겠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지략의 기사. 그는 엘프들을 도와 고작 700의 병력으로 무려 그 백 배가 넘는 8만의 오크들을 전멸시켰다네 단 한 명의 피해도 없이. 심지어 드래곤이 유희의 목적으로 변신해 있던 오크족의 로드를 체내에 단 한 방울의 마나도 없는 상태에서 꺾었었지.” “……그게 사실입니까?” 두 기사는 크게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네 지금 그 때문에 군부회의가 소집돼서 그곳에 가는 길이네. 사기 진작 차원에서 되도록 비밀시 하라는 명이 있었으니 함부로 입을 놀려 경을 치는 일이 없도록 하게.” “예. 옛.” “그럼 수고들 하게.” 세비어가 지나가고 내무반에는 얼빠진 표정의 두 기사만이 남아 있었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군부 회의실. 이곳엔 대공을 비롯한 다섯의 기사가 무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세비어 경이 도착하셨습니다.”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다섯이 기다리던 마지막 인물이 들어왔다. 원래 한 명이 더 있어야 하겠지만 그는 현 제국의 황제 대리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에 항상 바빴다. “늦었군. 세비어 경.” “하핫 죄송합니다.” 방금 전 기사들에게 보였던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렌. 왜 우리를 호출한 거냐?” “……루이.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둘이 서로 언쟁을 벌였다. 제국 3인방이라 불리던 무신 진의 직계 제자, 루이스 델른버 공작과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었다. “자, 자 싸우지들 마십시오. 늙어서 추태 부리시는 거 보기 안 좋습…….” 퍽! 쾅! 둘을 말리던 산발한 금발머리의 젊은이가 두 노인의 연환격에 맞고 나가 떨어졌다. “젠장 이럴 겁니까?” “난 네놈을 볼 때마다 패고 싶어져!” “이 노친네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대공과 델른버 공작. 그리고 거기에 끼어 들어 언쟁에 동참한 젊은이. 누가 이들을 제국의 실세인 공작들이라고 하겠는가? 크리스 젤리커 사망한 소드 마스터 프랑코 젤리커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작위를 물려받고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친구들이었던 두 원로들에 의해 그저 아버지 어릴적과 닮았다는 이유로 갈굼과 괴롭힘을 당하는 가엾은 인생이기도 했다. 덕분에 처음엔 연배를 따져가며 존중해주던 두 원로들에게 젤리커는 아주 제대로 개기고 있었다. 맨날 두들겨 패는 선배 검사들에게 무슨 존경심이 그리 들겠는가? “그만들 두시오. 크리스 경이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렌도로스와 루이스를 제지했다. redwuce 그제야 대공과 델른버 공작은 젤리커 갈구기를 그만두었다. 대머리 콧수염 남자의 이름은 스턴컬트 오스틴. 얼핏보면 지구의 모 프로레슬러와 닮은 외모에 닮은 이름으로 아크가 봤다면 기겁할 만한 그런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루네아 공작과 함께 루티안 제국의 두 소드 마스터 중 한 사람이었으나 국가 멸망 후 투항하여 지금의 자리에 와 있었다. “흠……무슨 일로 우리를 호출했는지 용건을 말해주시죠. 대공.” 군부의 수장들을 모은 회의의 목적을 물은 이는 여기 있는 이들 중 가장 체구가 작고 상당한 미색을 자랑하는 미청년이었다. 허나 보이기만 그리 보일 뿐 사실 그는 팬크라프트 제국의 유일한 여성 소드 마스터 케레스 카르넨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대공은 품속에서 수첩을 꺼내며 보고는 말을 꺼냈다. “다들 들으셨을 게요. 지략의 기사 전설과 그 지략의 기사의 재등장을.” “예. 알고 있습니다. 꽤나 시끄럽더군요. 그런데 그게 뭐?” “그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목표를 우리 제국에 대한 복수로 삼았소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목표로군.” 광오한 발언이었지만 실제로도 대부분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장본인인 지략의 기사 아크마저도 사실 아크는 충절을 지켰다는 자신이 제국에 임관할 명분을 대기 위해 복수를 표명한 것뿐이지 실제로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허나 우리가 루드비안을 치기로 마음먹은 이 때. 루드비안에 지략의 기사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오. 루드비안 공략이 상당히 까다로워지는 것 아니오?” “하긴 백배의 군세와 싸워 이기기도 한 그이니까요. 그래서 설마 루드비안 공략을 미루자는 얘긴가요? 중도를 먼저 치자는 소린 아니시겠죠?” “그게 무슨……그 반대올시다.” “반대?” “분명 지략의 기사를 상대한다는 건 크나큰 위험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지 허나 지금의 군사력과 국력이라면 못할 것도 없소. 문제는……그 지략의 기사에게 시간을 주는 것이지.” “……?” “그는 우리 제국 마나 수련법을 익혀 두었을 가능성이 크오. 그의 사부도 국부 위진무 대공이시니까. 그가 만약 그 마나 수련법을 이용해 기사들을 양성한다면.” “큰일이로군요.” 그제야 이 자리에 모인 마스터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달았다. 문제는 지략의 기사가 아닌 지략의 기사가 가진 팬크라프트 제국의 제 1 기밀인 마나 수련법이 유출된 것이 문제였다. 물론 현 루드비안의 기사들은 루드비안 제국 공식 마나 수련법으로 수련을 했고 그 수련법은 다른 심법과 병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 기사들을 뽑아 가르치기만 해도 루드비안의 군사력은 급성장 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10년 뒤로 잡아둔 대륙 통일 전쟁을 잡아둔 대륙 통일 전쟁을 앞당겨야 겠소. 파푸치아 숲 도로 공사도 최대한 빨리 앞당기도록 하시오. 도로 공사가 다 끝난다면 그날이 바로 우리의 개전일이 될 것이오.” 회의라고는 하지만 결국엔 대공이 말하고 대공이 결정한 꼴이 나 버렸다. 뭐 어차피 회의로 이 안건을 결정하기보다는 소드 마스터들에 대한 통보의 의도가 더 컸으니 무리도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지략의 기사의 재등장은 대륙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어서 오게.” 아크의 첫 출근. 아무래도 소드 마스터인 무인의 부류에 속하던 아크의 집무실은 단연 수도 방위 사령부가 있는 중앙사령부였다. 길쭉한 직사각형의 테이블의 맨 앞좌석에는 화려한 별들을 달고 있는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이 자리했고 그 좌우로 해서 쭈욱 갑옷이나 군복을 입은 이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레드릭 대공의 좌측 자리만이 유일하게 비워져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새로운 군부의 요인 아크 페인 후작의 자리였다. 아크가 자리에 가 앉자, 대공은 조회를 시작했다. “오늘 안건은 그다지 특별한 건 없네 뭐 굳이 있다면 여기 아크 페인 후작에게 몇 가지 군부의 권한과 해야 할 일을 부여하는 것뿐이지. 자 일단 앞으로 군부에서 대원수인 나 다음의 직책인 부원수의 직책을 맡기니 나의 부재 시 여기 이 지략의 기사를 믿고 따르도록 하게. 알겠나?” “옛! 대공.” “그리고 아크 경.” “예.” “일일이 소개하기가 뭣하니 수하들의 신상명세 쯤은 알아서 파악해 두도록 하게. 그리고 중앙에 남을지 지방에 틀어박혀 있을지는 상관하지 않겠네만. 당분간 왕국 아카데미에서 유망주들의 양성을 부탁하겠네. 자네가 키워 낸 엘레노어 백작가 영애를 봐서 하는 말일세.”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권기를 다룰 수 있는 경지에 그것도 여자아이의 몸으로 오른 유카나는 이곳 군부에서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기사의 칭호를 받기 위해서는 아직 3년 가량을 더 기다려야 하긴 했지만 어찌 됐든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 참 아크 경 저기 저 쪽 구석에 앉은 기사가 누군지 아는가?” 그레드릭 대공은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가량에 자리한 기사를 가리켰다. 그 기사를 본 아크는 그가 자신이 알던 그 누군가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였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는 얼굴이긴 한데……모르겠군요. 누굽니까?” “헨트리 경 지략의 기사에게 신분을 밝히게.” 헨트리라 이름을 불린 사내는 불쑥 일어나 아크에게 경의를 표했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지략의 기사님. 제 이름은 헨트리 그론다이저. 지략의 기사 전설에서 나온 대로라면 지략의 기사님의 친구로 나온 에르쿠스 경이 제 아버지이고 상관으로 나온 체제린 그론다이저 후작께서 제 조부가 되십니다.” 아크는 그제야 그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략의 기사 전설에 기록된 바로는 부자 검객으로 나온 그 두 그론다이저의 성을 쓰는 동료 기사들을 말이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아크가 알고 있던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여자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아! 그……가만? 에르쿠스 경은 지독한 남성향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아들이 있는 거지?” 헨트리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사실……아버지께서 어머님을 남자로 착각하시고 실수를 하셨습니다. 뭐 그 덕분에 제가 태어났지만요.” 술 먹고 실수. 아 이게 얼마나 잦은 원하지 않는 임신의 명분이란 말인가? 구멍난 콘돔과 함께 실수 임신의 쌍두마차를 내달리는. 뭐 덕분에 가문의 맥을 이었으니 잘 된 일이라고 축하를 해야 하는 건가? “허허허 우스운 사연이로구만 그래. 자 오늘 조례는 이걸로 끝이오. 이보게 아크 경. 잠시 날 따라오게나.” 기사들이 군부회의장을 나가고 그레드릭 대공은 아크를 따로 남겼다. “어인 일로?” 먼저 용건을 물은 것은 아크였다. 그레드릭 대공은 그런 아크를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들어서 알겠지만 내 한계 수명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예.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내전과 암투 덕분에 이 나라는 지금 껏 소드 마스터가 탄생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갑자기 대공은 아크의 손을 꽉 잡았다. ‘큭! 뭐야? 이 할배. 미소년 밝히는 변탠가?’ “부탁함세. 부디 내 뒤를 이어 이 제국을 이끌어 가 주게나. 자네는 이 제국에 남은 마지막 희망일세.” 아크의 짐작과는 다르게(만약 짐작대로 미소년 밝히는 변태였으면?)대공은 자신의 뒤를 이어 달라는 후계 부탁을 하고 있었다. ‘훗 말이면 무엇을 못 하겠느뇨?’ “후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으니 너무 그렇게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주겠나?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단순한 겉치레의 아크가 무안할 정도로 대공은 진짜 아크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어차피 대공이자 대원수인 그가 죽으면 그 다음 직위인 아크에게 자연스레 넘어오게 될 군사 전권인데 뭐 그리 부탁가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그때 군부회의실 안으로 한 노인이 들어왔다. 아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공!” “오오 칸딘스키 공작. 오셨구려.” “칸딘스키 공작님!” “아크 경도 여기 있었군.” “목숨을 노리는 자가 많아 위험하시다면서 잘도 오셨군요.” “왕궁 한가운데서 습격을 할 만한 바보들은 없다네 그것도 그레드릭 대공의 집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제국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주요 인물들이 다 모인 군부회의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칸딘스키 공작님.” “그레드릭 대공 전하와 나눌 말이 있어서라네.” “호오? 혹시 그것이 다 되었소?” “예. 대공 그것은 일단 완성이 다 되었습니다. 실험만을 놔 둔 상태입니다.” 그러자 그레드릭 대공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허허! 허허허허 수고했소이다. 칸딘스키 공작. 후. 이 나라는 어째 이계인인 두 분 덕분에 굴러가고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구려. 원래는 이 나라와 하등의 관계가 없었던 두 분이 말이오.” “팬크라프트의 무신 진도 팬크라프트를 크게 발전 시켰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 이 제국을 크게 발전시키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맞습니다. 대공 전하. 열심히 한 번 해 보도록 하죠.” “……정말로 고맙소이다. 지략의 기사. 그리고 강철의 현자.” 서방 팬크라프트 제국과 남방 캘더린이 호시탐탐 제국을 노리고 있음에도 수뇌부는 둘로 갈라져 한 시가 바쁘게 정권 싸움만 일삼고 있는 이 때. 원래 자신들과는 큰 관련도 없는 두 명의 이계인들이 이 나라를 위해 일해준다는 것. 그레드릭 대공이 생각키로서는 주신이 이 제국에 내려준 최고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과연 아크가 축복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인재일지는 심히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두 명의 공작과 점심 만찬을 나눈 아크는 그레드릭 대공이 부탁한 황궁 아카데미 시찰에 나섰다. 황궁 아카데미 검술 부문 최고의 수재 유카나. 아크가 보기에는 어쩌면 그녀도 로니와 같이 20대의 나이에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였다. 노예 체험 중이던 아크와의 만남이란 기연. 그것은 보통의 귀족 부인으로 늙어 죽을 뻔했던 소녀의 운명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지금 그녀는 무에 관해서는 아카데미 내 최고위급 실력자로 바로 기사가 되어도 이상이 없었다만 아직 어리단 이유로 발목을 잡히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황궁 아카데미가 어디 있는지 알 턱이 없던 우리의 아크는 황궁 내를 빙빙 돌며 헤매이고 있었다. “니미럴 이건 무슨 숲보다 더 복잡하니 원 도저히 이걸 어떻게 다녀? 염병할 황궁에 딸린 땅덩이가 얼마나 크길래 이 모양이야?” 아크는 궁시렁대며 황궁 내에 있는 아카데미를 찾아 헤맸다. 무슨 시녀라도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하겠는데 군부 회의실 부군에는 흔히 보이던 시종들도 황궁 깊숙이 들어오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누구냐?” 그 때 경계심 가득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크는 여자(!)의 목소리에 즉각 반응했다. “그러는 그 쪽은 누구요?”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 명령조의 말투를 사용한다면 높은 신분일 가능성이 많았다. 때문에 아크의 말투도 어느 정도는 존대체가 섞여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여자. 그녀의 모습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된 말들을 가져다 붙여도 어딘가 약간 모자란 듯한 미인이었다. 엉덩이까지 기른 윤기 있는 은발에 채워져 있는 각종 비싸 보이는 보석 장식과, 화려하지만 실용성 있게 개발된 드레스와 오만함이 배어 있는 표정은 그녀의 신분을 가히 짐작케 했다. ‘혹시 이 여자가……세레스티나 공주?’ 아마 이 여자가 황제파에서 그토록 밀고 있는 여황제감 세레스티나 공주일 공산이 컸다. ‘흠 캘더린 여왕에 못지않는 수재라…… 어디 확인해 볼까?’ 아크도 정치라면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수능 사탐 과목 중 정치과는 항상 1등급이었을 정도로. “혹시 세레스티나 공주님이십니까?” 괜히 삽질하면 안 되기에 일단 아크는 신원 확인 작업 먼저 실시했다. “그렇다. 넌 누구냐?” “이런 이런 이래뵈도 꽤 유명한데 몰라보시다니 유감이로군요. 하지만 공주님께서 막 하대를 하실 만큼 낮은 신분은 아니오이다.” “흥 그렇다곤 해도 외간 남자로 이 백악궁에 들어오다니 간덩이가 여간 큰 게 아닌 모양이구나.” “간보다는 아래의 분신이 더 크지요.” “아래의 분신?” 세레스티나 공주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그제야 아크가 말한 아래의 분신이 무엇인지 눈치 채고는 노한 기색을 띄었다. 사실 이건 완벽한 성희롱이었다. “네 이놈 나를 능멸하려 하느냐?” “본좌는 장난을 즐기지요.” 오만한 표정만 사라진다면 순진무구한 얼굴로 보이는 공주 그러나 고작 19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런 순진한 얼굴을 가지고 잇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딘가 모르게 위압감과 기품이 넘치는 여장부였다. ‘대단하군. 디그리스 군을 통솔하던 로니 루네아 공작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야. 정말 한 나라에 어울리는 군왕의 자질이 보인다.’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지난 번 해적소탕전에서 맹목적인 주군의 신봉자인 여성 기사를 만나 보았던 아크는 훌륭한 왕이라면 존경과 충성을 바쳐도 나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안 그래도 앞에 붙은 타이틀이 충절을 지킨 명예로운 지략의 기사 아닌가? “이보시오 공주. 내 이야기를 듣고 대답 한 가지 해 주실 수 있겠소?” “무어냐?” 아크는 세레스티나 공주에게 여러 정치적인 상황과 그에 맞는 해결책 등을 물어보았다. 물어보는 정치적 상황은 주로 지구에서 실제로 있었던 여러 가지 사례들이었고 특히 싸움판 국회인 대한민국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엄연한 권위주의 정치 태세가 존재하는 곳이라 무언가 이견이 있는 문제에는 서로 침을 튀기며 주장을 내세운 토론을 벌였다. 결과는 정말 이 여자가 나라 하나는 잘 다스려먹게 생겼다란 결론이었다. “대단하시오. 공주.” “무슨 이런 걸 가지고.” 여전히 오만한 표정에 오만한 대사이지만 창찬에 조금은 쑥스러워 하는 순진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던 아크는 음흉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흐. 공주조교. 크흐흐흐 판타지 세계 남자의 로망 아닌가? ……쩝 이 여자가 황제가 되어야 할 책임만 없었다면…….’ 공주 능욕이란 키워드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그림의 떡일 뿐이다. 세레스티나 공주는 황위를 이어야 할 후계자.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란 존재는 있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기에. 아크는 세레스티나 공주의 손을 잡았다. “뭐 하는 거냐? 지금!” 공주는 아크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곧이어 이어진 아크의 행동에 차마 손을 빼지 못했다. 아크는 영화 등에서 본 대로 고귀한 신분의 여인들에게 하는 인사를 건넸다. 바로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공주의 손에다 입을 맞추는 인사를 말이다. “그대는 나 지략의 기사가 섬길 만한 군주요. 부디 더욱 정진하여 참된 군왕이 되시오.” 볼장 다 본 아크는 그만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멍한 표정의 공주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날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논쟁 재미있었소. 나중에 다시 한 번 치열한 토론을 나눠 봅시다.” 그렇게 아크가 사라지고 나자 공주는 여전히 멍한 눈빛을 지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략의 기사였나?”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략의 기사의 정치 및 지식의 수준은 매우 깊고 고명(이것이 다 대한민국의 주입식 구겨 넣기 교육으로 쌓인 쓸데없는 지식에 아크의 잔대가리가 결합된 결과였다)했다. 대한민국 교육제도 하에 배운 것들만 있어도 이쪽에서는 충분히 현자로 통할만한 것들이 많았다. 지구가 과학적인 여러 이론과 사회적인 발달상황에서 이곳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인재다. 기필코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겠어.” 아크를 자신의 신봉자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공주. 그녀도 결국 궤변 말빨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여기가 황궁 아카데미로군 그래.” 황궁 안에 학교가 존재했다. 본관과 후관 그리고 넓은 운동장과 연무장, 그리고 체육관. 교육기관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판타지 세계로서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마법틱한 배경을 상상해 오던 아크에게는 실망스러운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귀족 학교답게 풍기는 분위기는 매우 부자틱했고, 여기저기 처바른 돈지랄은 재무대신 레이필드 공작뿐만 아니라 아크에게도 이럴 데에 쓸 돈 있으면 총알 막는 마법 갑옷을 한 개 더 만들지 하는 말이 튀어나오게 했다. 사립이면 그나마 이해라도 간다. 그러나 이건 국민의 혈세로 만든 국립 아닌가? 국립. 못 사는 백성들한테 세금 뜯어서 만든. 아니 그 돈으로 이런 쓸데없는 분수대나, 대리석, 은 계단, 온갖 명화들 걸어 놓지 말고 진정 국민을 위한 국가 전담 서비스인 국방 및 치안 서비스는 나몰라라 하고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정말 절로 미친놈 소리 튀어나온다. 하여간 정부는 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몇몇 소수 있는 놈들을 위한 대변기관일 뿐이라는 것이 동감이 간다. 정책에 대한 불만은 이쯤에서 대충 접어두고 아크는 안내에 따라 검술 훈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검술 훈련장에는 초등학생 급의 아이들부터 스무살 가량의 젊은이까지 다양하게 목검을 들고 허수아비를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흡사 온라인 게임 초보자 수련장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저기로군. 어이 유카나!” 홍일점까지는 아니더라도 드문 여학생들 중에서도 연보랏빛의 독특한 머리색을 지닌 유카나는 눈에 쉽게 띄었다. 평상시의 드레스 차림이 아니라 이마에는 헤어 밴드를 두르고 편하게 보이는 티셔츠. 그리고 찰싹 달라붙은 반바지에 묶은 머리의 유카나는 지금까지 보아 오던 얌전해 보이는 귀족 영애가 아닌 활달한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다른 이들이 목검을 이용해 연습을 하고 있다면 유카나는 흰 면장갑을 낀 채 손날과 권으로 수련을 하고 있는 것 정도랄까? 제법 큰 소리로 불렀지만 목검으로 두드리는 소리에 막혀 멀찍이 떨어져 있던 유카나에게까지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고 때문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만이 아크의 등장에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인가?” 주로 아카데미 내에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학생들의 신변 보호를 담당하는 기사 가신들이 돌아다녔다. 때문에 검을 가지고 있는 아크에게는 당연 하대가 이루어졌다. “주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버릇이 없구나. 이놈.” “……놀고 있군. 어이 유카나!” “뭣!” 아크는 자신을 졸로 보고 있는 귀족가 자제들을 무시하고 유카나만을 찾았다. 당연 씹히고 무시당한 놈들이 가만 있을리 만무했다. “이 무례한 놈 같으니라고. 어디서 그런 망발을 늘어놓는 게냐?” “어서 무릎 꿇고 사과하지 못 할까?” 잽도 안 되는 놈들이 개겨 대는 꼬라지를 가만히 보고 있을 아크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잘못 건드렸다가는 어떤 탈이 날 줄 몰랐다. 이럴 때는 그냥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이 기고만장한 놈들의 꼬랑지를 스스로 내리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내 이름은 아크 페인. 후작의 작위와 지략의 기사라는 명호를 가지고 있다.” “뭐, 뭣?” “무엇들하고 있나? 잠자코 수련이나 계속하도록.” 역시 직위가 최고다. 보라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잠잠해 진 이 꼬마들을. 아크는 새삼 작위를 얻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크가 신분까지 밝히자, 어느새 소문이 뒤쪽까지 전달되었는지 유카나가 허수아비들을 제치고 달려오고 있었다. “오빠!” “유카나.” 아직도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크를 바라보던 수련생들은 눈앞에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자 고개를 돌리고 수련에 전념했다. 그런데 그 중 사내 놈 몇몇은 질투와 증오의 눈초리로 아크를 쏘아보고 있었다. 뭐야? 이 놈들. “무슨 일이세요. 아크 오빠. 이런 시간에.” “응 유카나가 보고 싶어서 온 것도 있긴 하지만 원래는 여기 학생들의 검술 시찰과 수련 담당으로 온 거야. 그런데 이렇게 선생도 못 알아보는 놈들이 많아서야 원. 열의를 가지고 한 번 가르쳐 줘 볼까 했는데 김이 팍 새는군.” “그러세요…….” “그래서 말인데 유카나. 오늘은 나랑 놀러 가지 않을래? 맨날 수련만 하다 보면 질릴 것 아냐?” 잠시 고민하는 유카나 그래서 결론은……. “네! 가요.” 아크에게 콩깍지가 쓰인 유카나가 아크의 제안을 거절 할 리가 있겠는가? 둘은 서로 손을 잡고 검술 수련장을 빠져나왔다. “학교 생활은 할 만 해?” “네! 처음에는 노예한테 겁탈 당한 더러운 계집이라면서 모두들 따돌리길래 조금 마음 상하기는 했는데. 힘이 생기니까 더는 안 그러고 있어요.” 말하면서 자신의 양손을 서로 맞잡으며 만지작거리는 유카나. 아크는 그런 유카나가 낀 흰 면장갑을 보았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영감. ‘마법진……연성진 저걸로 잘 하면 강하게 마찰할 때마다 불꽃이 폭발하는 머스탱 대령의 장갑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화염 마법을 시전하는 마법진을 그려 놓고 손가락을 퉁기는 등의 시동 동작을 지정. 그 동작을 행하면 불꽃이 이는. 발화성 직물에 산소농도 조절 연성진이 달린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의 그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 대령의 그 장갑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연금술과 마법이라는 점에서 틀리긴 하지만 연출효과 만큼은 동일하니 굳이 진자 가짜 신경 쓸 필요도 없고. ‘크 머스탱 대령은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언제 한 번 쥬레이나란한테 변신해 보라고 해 봐야겠군. 재밌을 것 같으니.’ “오빠!” 약간은 심통 섞인 유카나의 고함에 그제야 아크는 자신이 망상에 빠져 유카나를 씹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아. 미안 유카나.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말야.” 아크는 유카나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유카나는 그다지 화가 난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빠 우리 저거 먹어요.” “응? 아. 그래.” 아크는 유카나가 데려가는데로 끌려갔다. 어린애가 무슨 힘이 그리도 센 지……. 유카나가 아크를 끌고 간 곳은……놀랍게도 빙과류 판매상. 아이스 크림이라니 어찌 이런 근 30년간 맛도 못 본 것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굳이 놀랄 것도 없는 것이 이쪽 세계에는 빙한 마법이란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한 냉장 보관쯤은 일도 아닌 것이다. 거기에 몇몇 돈 있는 이들은 알맞은 냉기를 뿜는 빙한마법이 걸린 냉장고까지 사용하고 있었고 프레온 가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 청정 냉장고는 오존층을 파괴할 일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무진장 좋은 거로구만.’ 현재 지구의 아크라우스도 전력 필요 전무에 프레온 가스도 내뿜지 않는 이 마법 냉장고를 만들어 대 특허를 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김석진 사장이란 아크라우스의 겉모습은 경재계에 커다란 파장과 이슈를 만들어냈고 전 세계에 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 그룹 실버드래곤의 출범을 알리는 첫걸음이기도 했다. 물론 아크는 그것을 알 턱이 없었지만. “아이구 오빠가 동생 데리고 놀러 나온 건가?” 푸근한 인상의 아이스크림 상점 노인은 둘 다 화려한 외모인 유카나와 아크를 남매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크와 유카나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이 앤 내 약혼자요.” “우린 정혼자 사이에요!” “허허 그러십니까? 신부가 참 어리군요.” 상점 노인은 문득 이 앞의 커플이 최근 소문이 떠들썩한 그 커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혹시 지략의 기사님 아니십니까?” “그렇소만.” “허허 정말 그러셨군요. 이거 영광입니다. 지략의 기사님. 소문이 무성하기에 어떤 분이신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젊으신 분이었다니. 나이가 오십줄에 들었다기에 전 그저 설익은 미색을 탐하는 변태 중년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젊은 한 쌍 이었군요.” 나이가 오십줄, 변태 중년. 이 두 마디가 아크를 함락시켜 무너뜨려 버렸다. 이 노인네는 도대체 칭찬으로 그 소릴 한 건지 사람 억장을 뒤집어 놓으려고 한 소린지…….너그러운 미소 속에 숨겨진 사악함을 봐서는 아마도 후자 쪽이 더 가까운 모양이었다. 처절히 무너져 가는 아크. 하지만 유카나가 그런 아크를 부활 시켜 주었다. “전 그래도 아크 오빠를 사랑해요.” 강하닷! 유카나는 역시 강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린아이를 탐한 변태 중년에서 능력이 있으면 이 나이에도 파릇한 아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로 변해버렸다. 콰과과광! 로리의 마신은 그런 아크를 질투하듯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떨어뜨렸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아 재밌었어. 그치?” “네!” 사실 수십년 세월을 살았지만 데이트 경험이랍시고는 단 한 번 그것도 끝장을 볼려다가 제국의 침략에 방해를 받은 로니와의 데이트 하나 뿐이었다. 거기에 이렇게 도시를 누비며 놀아 본 것은 폴티아 점령 때 동료 기사들 몇 하고 술 마시러 간 것이 다였다. 여자애랑 이렇게 놀아 본 것은 정말 처음이었던 것이다. 밤은 이제 막 어두워지는 분위기였지만 수풀이 우거진 공원은 유독 어둠이 더 빨리 찾아왔다. 가로등은 있었지만 행정 당국의 늦장인지 모두 고장이 나 있었다.(실은 마나 연료를 쓰는 마법의 불빛으로 만들어 놓긴 했어도 유지비가 많이 들어 사실상 포기 상태지만) 그래서인지 밤이면 므흣한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있기 마련임에도 공원 안에는 아크와 유카나 뿐이었다. 하기야 어두워서 아예 보이는 것도 없는데 뭘 하겠나? 하지만 이 둘은 굳이 조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황금빛 불빛을 뿜는 천연 조명 블레싱 소드 덕분이었다. 원래는 시간이 되자 유카나를 데려다 주려 했던 아크. 그러나 수도의 지리를 모르던 아크는 그저 유카나에게 끌려만 다녔고, 집으로 가자 라고 했는데 유카나는 아크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원래 커플 중 한 명이 이런 으슥한 곳으로 데려온다는 것은 무언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단 둘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뜻으로 봐야 했다. 허다 어린 유카나가 뭘 알고 이리 데려왔겠는가? 기껏해야 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은 거겠지 란 순진한 의도로 알아들은 아크였다. “저기. 아크 오빠.” “음?” “고마웠어요.” “뭐가?” “청문회 장에서 절 신부로 맞아들이겠다고 공표 하신 거 말이에요.” “아~그거? 뭐 약속도 그렇게 했고 당연히 그렇게 말할 상황이었어.” 벤치에서 약간 떨어져 앉아 있던 유카나가 엉덩이를 질질 끌며 다가와 아크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했어요. 아크 오빠도 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요. 하지만 아직도 불안해요. 뭔가 몸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확인해 보고 싶어요.” ‘엥? 가, 가만. 이 대사는 주로 미연시 순애물에서 나오는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다며 옷을 벗는 뭐 그렇고 그런 대사 아냐? 서, 설마???’ 지그시 눈을 감은 유카나. 그런 유카나를 본 아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설마 이런 어린애가 그것까지 알고 있겠어? 기껏해야 뽀뽀 정도겠지.’ 쪽 아크는 유카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웁! 뭐야? 이 녀석 혀까지?’ 혀까지 들이미는 유카나. 아크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녀에 맞추어 같이 혀를 굴렸다. 쩝 한참의 입맞춤 뒤에 입을 뗀 아크와 유카나 그리고 아크의 꼭지가 돌만한 일이 벌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유카나!” 유카나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 하나 풀어헤치고 있었다. 블레싱 소드의 불빛이 소녀의 상체를 비추었다. 약간 솟은 봉긋한 가슴이 인상적인 몸이었다. “이 다음엔……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누가! 어떤 쉑이! 이런 어린애한테 이딴 걸 가르친 거야!!’ 엘프 마을 리에나를 생각해 본다면 아크. 네놈이 할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만……. 유카나는 알고 있는 것도 많았고 또 조숙했다. 아크는 몸에 걸친 것을 거의 모두 벗어가는 유카나를 마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 이건 아냐. 하지만…….’ 그리고 또 다시 떠오르는 선택지. 1. 로리는 범죄다. 2. 여기서는 합법이다. ‘당연 1번! 로리는 엄연히 범죄라고. 내가 무슨 K모 소아과 원장 K씨도 아니고.’ ……라고 생각은 했지만 전라인 채 애처로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유카나를 본 아크는 또 다시 갈등하기 시작했다. 유카나는 그런 아크를 올려다보며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의……마음을 확인해 보고 싶어요.” 이 대사에 아크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 2번! 여기는 아무리 어린아이더라도 합의 하 관계는 엄연히 인정된다고. 어리면 어때? 여잔데. 기능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다 아직 생리도 안 할 테니 피임한답시고 골치 아프게 신경 쓸 필요도 없잖아?’ 하지만 지구에서 살다 온 아크의 윤리의식은 소녀를 쉽게 덮칠 수 없게 했다. ‘로리는 범죄다. 로리는 범죄다. 로리는 범죄다. 로리는 범죄다. 로리는 범죄 다.’ ‘여기는 합법이다. 여기는 합법이다. 여기는 합법이다. 여기는 합법이다. 여기는 합법이다.’ 두 가지 이념이 아크의 머릿속에서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결국. ‘……지난번에는 수련이란 명목으로 심하게 능욕까지 했으면서 지금 와서 범죄를 찾는다는 것도 우습지. 어차피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라면 확실히 해 두고 책임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드디어 범죄자의 길을 택한 아크. 어차피 아내로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본인이 원한다면 혼전순결이라도 깨뜨려 주리라.(과연 그런 순수한 의도였을까나?) “유카나…….” 아크는 유카나를 벤치에 눕혔다. 그리고 그의 두 손은 왼손은 상체의 봉긋한 곳을 오른손은 회음혈이 지나가는 아래의 뭉특한 곳을 향했다. “아!…….” “괜찮겠어?” “네.” “이번엔 수련이 아니야. 진짜라구.” “알아요.” 아크의 손은 진정한 의미의 애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로리의 마신께서 가만히 놔 둘 수는 없는 노릇. 로리의 마신은 아크를 범죄의 길에서 빼내오기 위하여 암흑의 사도를 내려보냈다. “뭣들 하는 거야!!!” 분노가 가득 찬 고성. 아크는 불빛과 함께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사내를 발견했다. “엘레노어 백작!” “아버지.” 엘레노어 백작은 코에서 콧김을 뿜으며 달려와 아크의 멱살을 잡아챘다. “이노옴! 어째 안 온다 하더니 이런 으슥한 곳으로 내 딸을 꼬여내 범하려고 해!” 그러자 아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례하군 백작. 감히 내 멱살을 잡은 건가?” “……! 큭!” 아크가 위압감 있게 말하자, 백작은 그제야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다. 그랬다. 아크는 후작 급수로 따져 봐서 절대 이렇게 멱살을 잡아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백작의 말투는 경어체로 바뀌었다. “허나! 제 딸을 꼬여내어 강간하려 하신 것만큼은 용서치 못하겠소이다. 페인 후작!” “강간? 누가? 내가? 훗! 누누이 말했을 텐데? 유카나와 난 결혼을 약조한 사이라고. 그런 남녀가 합의 하에 사랑을 나누겠다는데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소?” “누가 고이 기른 딸내미를 당신 첩실로 줄 줄 알앗!” “난 부인이 없소. 정실이외다.” 엘레노어 백작은 더 이상 말이 안 통하는 아크를 제쳐 두고 딸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더냐? 어서 옷 입고 가자꾸나. 아무리 지략의 기사고 후작이라고는 하나 추잡한 변태성욕자일 뿐이다.” 그러나 유카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익스퍼트 급의 무인의 경지에 도달한 유카나를 그저 일반인보다 조금 더 힘이 셀 뿐이었던 엘레노어 백작이 마음대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뭐 하는 거냐? 어서 가자니깐?” “싫어요.” “뭐?” “이번 일은 제가 먼저 시작한 거에요. 아크 오빠는 끝까지 고민하다가 제 강요에 못 이겨 이런 것뿐이라고요. 전 누가 뭐래도 오빠랑 결혼할 거에요!” “이 녀석! 아비 말을 거역할 참이냐?” “아무리 제국의 황후라도 저 하기 싫으면 싫은 거라구요. 더 이상 강요하지 마세요.” 이 광경을 보고 딸자식 다 소용없다는 옛말이 뭐 하나 틀린 것 없다는 생각이 드는 아크였다. 유카나는 대충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아크에게로 달라붙었다. “가요. 오빠. 먼저 가 있을게요. 아버진 알아서 하세요.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전 그 사람 싫어요!” 유카나는 아크의 팔을 잡고 공원쪽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두운 공원 속에는 엘레노어 백작이 혼자 남아 있었다. 그는 시종들을 돌려보내며 아크와 유카나를 미행시켰다. 그리고 혼자 남게 되자,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아무래도 빨리 실행에 옮기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대로라면 유카나가 저 남자에게…….” [일단 다음 대연회 까지 미루어 두게] “예? 그러다가 혹시 둘이 사고라도 치면?” [그것은 자네가 잘 처신해야 할 문제야. 성인이 될 때까지 관계하는 것을 불허한다든지 하며 일단은 떼어놓도록 하게. 지금은 거의 모두들 그 지략의 기사 놈과 결혼한다고 알고 있으니 일을 처리하기가 골치 아프네 그 이야기가 좀 수그러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 수정구로의 통신이 끊기고 엘레노어 백작의 독백이 이어졌다. “흥 그까짓 후작? 웃기는군. 크크크 황후가 되실 내 딸을 감히 후작 따위가 넘보려 하다니. 두고 보자 내 지금은 작위가 법이니 참는다만 얼마 안 있어 네놈을 끝장내 주도록 하마. 클클클클클클.” 간악한 웃음을 터뜨리는 엘레노어 백작. 유카나에게 팔이 잡힌 채 끌려가던 아크는 백작의 말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다. ‘에라 띨띨하기는. 소드 마스터의 청력은 엘프와 맞먹을 정도인데 말을 해도 좀 더 떨어지고 난 뒤에 해야지. 반경 범위에서 하고 난리냐? 다 들키게. 그나저나 이 아저씨가 뭔가를 꾸미고 있구만.’ 백작이 대화하는 상대의 말소리는 잘 들을 수 없었지만 유카나와의 대화나 독백을 들어 봤을 때 아마도 유카나를 자기가 아닌 다른 곳에 시집보내려고 술수를 쓰는 것 같았다. ‘이 정도 배경에 성추행 추문도 덮어버릴 수 있는 나 정도 신랑감을 마다할 정도라면 엄청난 녀석이겠군. 황후가 될 내 딸이라……설마 황제 그 노땅은 아닐 테고. 후처 소생이라는 19세와 7세의 왕자 놈들인가? 나이가 좀 안 맞는 듯 싶지만 둘 중 하나겠군.’ 결론은 아마도 황제나 황자들일 것이라는 답이었다. 아크는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끌고 가는 유카나를 보며 생각을 다졌다. ‘내가 좋다는 여자를 다른 놈한테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흐 누구든 상관없다. 내 여자를 뺏어 가는 놈에게는 처절한 응징만이 있을 것이야.’ 유카나를 지키겠다는 멋진 마음 속 다짐을 한 아크. 비록 여욕에 빠져 한 다짐이지만 이번 다짐만큼은 조금 멋졌다. ‘일단 가장 좋은 방법은 사고를 치는 거지. 흐 안 그래도 백작 아저씨 방해로 하지도 못했는데 여기서라도 해 버려?’ ……결국 이게 목적이었구만? “오빠.” “응?” “대연회 때 나오실 거죠?” 그러고 보니 대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귀족들이 참가해야 하는 1년에 두 번 열리는 축제. 신년과 추수절 이렇게 두 명절에 걸쳐 열리는 이 축제가 다가오는 것이다. 이 축제 덕분에 아크는 황제로부터 받은 영지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 모든 영주들이 영지를 비우고 올라오는 마당에 내려가서 일하기가 어설펐던 것이다. 아크는 이 대연회 때 아주 강력한 포스를 느끼게 할 만한 전율의 퍼포먼스를 비밀리에 준비해 두고 있었다. 아마 이 퍼포먼스를 본다면 누구든 아크 페인 그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아. 나가봐야지. 아! 그리고 유카나 무도회 때 내가 출연하는 특별 이벤트가 있을 거야.” “특별 이벤트?” “기대하라고 아크 페인 후작이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걸 말야.” “네! 기대할게요!” 기대라고는 하지만 혹시 울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특집 호감도 탐방. 음 현 등장한 캐릭터들과 아크와의 상관관계 및 호감도를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1~10 증오, 죽이고픈 난이도. 11~20 증오 21~30 경멸 31~40 만나기 싫음, 면상보기 짜증남 40~49 그냥 싫음 50-보통 51~60 왠지 모를 호감 61~70 정말 친한 친구 71~80 친구 이상의 난이도 81~90 사랑함 91~100 간이랑 쓸개를 빼줘도 될 난이도 100~말할 거 없음 1. 리엔느 초반 경멸로 시작한 호감도는 조금씩 상승곡선을 탐. 하지만 이전에 당한 상처 덕분에 마음은 품고 있으나 높은 정도는 아님. 중후반 재등장 시 갑작스레 호감도가 뚝 떨어진다는데... 수치는 얄짤없는 71 2. 루리엘 초반 왠지 모를 호감으로 시작함.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이 친구 이상의 난이도라 보기는 힘듬. 수치는 65 3. 리에나 그저 그렇게 시작해서 오우거 사건 이후 아크를 따르게 됨. 하지만 그것은 여보 라기 보다는 아빠 쪽의 관점으로 봐야겠다. 수치는 60 4. 로니 현 히로인(? 더 있다는 소리?)처음부터 귀엽게 보다가 동생처럼 따르는 모습에 자꾸만 끌림. 전쟁을 겪으며 볼 장 다 보고 살면서 호감도는 극도로 오름. 현재 그랜드 마스터가 되기 위한 수련중 수치는 99 5. 유카나 극 로리가 아닌 로리캐릭터. 처음 호감도 최악으로 시작하다가 지략의 기사의 명성을 듣고 나서부터 상승. 헤어질 당시만 해도 70대의 호감도였으나 아크가 가르쳐 준 것 덕분에 강해지면서 점점 더 호감도가 상승함. 현 수치 93 6. 피리아 사이코 폐인틱한 모습에 끌린 괴상한 취향의 아가씨. 처음 호감도와 이 세계에서의 만남시 의지할 곳이 아크밖에 없었기에 꽤나 높았던 호감도지만 아크의 최측근에서 살다보니 서서히 호감도 하락중. 다만 원래 그런 인간인 줄 알고 있었기에 하락폭이 그다지 크진 않고 하락세가 주춤하다. 현 수치 80 7. 샤트란 성노를 구해줄 당시만 해도 약간의 호감을 지녔으나 빠순이 틱한 성격덕에 주군을 모욕하는 아크를 절대 용서할수 없는 정도로 변함 에볼루션 등장인물 중 아크에게 최고의 적의를 나타낸다 현 수치 3 8. 세레스티나 공주 오늘 처음 나왔으므로 잘은 모르지만 대담한 행동과 지략의 기사라는 점에 탐을 내는 중 현 수치 54 9. 에드워드 엘릭군 드래곤 쥬레이나란. 암컷을 경멸하지만 조만간 아크의 술수에 빠져 암컷의 모습으로 변할 날이 있을 듯... 단순 계약관계로 그다지. 뭐... 쥬레이나란의 여성 캐릭터 모습 공모받습니다. 현 수치 50 10. 에르디...(이봐 이놈은 남자라고!!!) 뭐 게이 시나리오는 절대 가지 않을 예정이니 일단은 안심하시길. 처음에는 단순 동료관계에서 상하관계로 바뀜. 현재 아크의 가신이자 기사이지만 충성심은 그다지. 현 수치 60 11. 아크라우스...(할말 없음) 겉으로는 무뚝뚝 하고 아크를 싸이코 폐인으로 무시하지만 그가 아크에게 해 주는 배려를 본다면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녀석 그래. 남성캐릭터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실 이 녀석도 양성이다. 실제로 어떤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힘든 차원이동게이트를 아크를 위해 열어준다는 걸 보면 단순 친구관계는 아닌 듯 싶다. 속으론 사랑의 감정을 부정하고 있을지도...(퍽!) 현 수치 = 측정 불가능 대연회 앞서 말했듯이 추수절과 신년절에 열리는 루드비안 제국 최대의 축제이자 연휴로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추석과 설 명절이었다. 왕족의 결혼 등의 경사가 열리기도 하고 평상시 무도회에 잘 참가하지 않는 지방귀족들 모두가 중앙에 모이는 날이기도 했다. 특히 이번 대연회에는 제국의 새로운 기둥이라 불리는 지략의 기사가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여 더욱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아크는 그런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강한 임팩트의 퍼포먼스를 준비해 두었다. 에드워드 엘릭의 모습을 하고 있는 쥬레이나란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크에게 말했다. “야 정말 할거냐?” “당연하지. 안 그럼 뭐 하러 이렇게 준비했냐?” “이런 쓰벌! 더블 캐스팅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아니. 이건 더블도 아니지. 도대체 그놈의 특수효과 만드는 데 마법을 동시에 몇 개를 써야 하는데!” “임마 그러니까 드래곤인 네가 좀 힘을 써 주라고.” 그 퍼포먼스는 상당히 많은 특수효과를 필요로 했다. 때문에 특수효과팀이 필요했는데 특수효과는 전적으로 에드워드군이 맡게 되었다. 연회장에는 이미 많은 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술잔을 기울이며 춤을 추는 등 상류계급의 고상한 취미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연회장의 입구에는 새로운 귀족들이 입장할 때마다 큰 소리로 ‘XX자작’께서 입장하십니다. 등을 말하는 사회자가 끈임 없이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막 시종이 지략의 기사의 등장을 알렸다. 소개글을 받아 든 사회자는 잠시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곧 임무대로 아크의 등장을 알렸다. “에……죽음의 계곡에서 온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후작께서 입장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재잘대고 웅성거려 안 들릴 것 같은 소리였지만 마법의 힘을 타고 그 소리는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죽음의 계곡?” “풋 죽음의 계곡이라니 그건 또 뭐야?” “기대 되는데.” 귀족들은 죽음의 계곡에서 왔다는 괴상한 수식어에 재미있어 하며 입구 부분을 주시했다. 원래 등장 시 영지 이름을 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지략의 기사 페인 후작은 아직 영지에 부임하지도 않았기에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연회장의 화려한 불빛들이 모두 꺼졌다. “뭐야?” 불이 꺼지니 당연 당황하는 이들이 속출하였다. 몇몇 영애들은 어둠이 무서운 듯 몸서리를 치거나 소리를 질렀지만. 대부분은 침착하게 불이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단 조명책임자인 마법사는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렵겠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조명이 꺼지다니. 대체 자네는 무얼 한 겐가?” “그, 그것이 불빛을 내고 있던 마나가 방해 마법을 받은 듯 합니다.” “방해 마법?” “예. 대단한 서클의 방해 마법이라 저로서는 그것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조명담당 마법사의 변명이었다.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인 그였지만 그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잘못이 있다면 출입구 부근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에게 있다고나 할까? “제기랄 도대체 마법을 몇 개를 캐스팅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이 별 미친 인간을 만나 이고생을 한다니깐!” “아아. 미안, 미안 이제 다음 것 준비해줘.” “알았다. 이 망할 놈아.” 에드워드는 투덜거리며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그로서는 이 미친 인간 때문에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마법 다중 동시 캐스팅을 하게 된 것이 못내 못마땅했다. 그래도 그것이 어떤 퍼포먼스였는지 모르는 에르디나 에드워드 였기에 그나마 지금 아크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피리아 같은 경우 대번에 ‘미친 짓’으로 치부하고 무시했으니 말이다. 콰광! “꺄아아아아!” 어둠에 물들어 있던 연회장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암전이 될 때까지만 해도 의연하던 이들은 이 벼락 한 방에 크게 놀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금방 아수라장이 될 뻔한 것은 남자들이 뜯어 말려가며 간신히 저지시켰다. “에르디. 음악 틀어! 에드 음성 증폭 마법 시전해 줘.” “알았다.” “알겠습니다.” 뎅~ 그리고 연회장에는 어디서 나는 지 모를 종소리가 울렸다. “뭐, 뭐야? 대체 이 상황은.”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은 이 일련의 상황에 대부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페인 후작이 등장한다고 하면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좋아 이제 들어갈 준비한다. 에드! 이 다음에 할 일 정도는 외워 두고 있겠지.” “그래 빨랑 들어가. 이제 곧 두 번째 종소리가 울릴 거야.” “아. 수고해 줘 가자 에르디.” 뎅~ 두 번째 종소리가 울리고 암흑이었던 연회장은 어느 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어둑어둑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뎅~ 세 번째 종소리가 울리고 연회장 전체에는 음산한 하얀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음산한 음악이 서서히 연주되기 시작했다. “이건?” 흡사 어느 사이비교의 찬송가 같은 멜로디였다. 뎅~ 네 번째 종소리와 함께 음악이 본격적으로 연주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조용하고도 장엄한 것이 연회장 내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콰광~ 콰과광! 입구 부근에 두 차례에 걸쳐 벼락이 떨어지자, 모두의 시선은 입구 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출입구에서 중앙까지 들어오는 입구의 복도에 일정한 간격으로 불빛이 켜졌다. 그러자 모두는 볼 수 있었다. 푹 눌러 쓴 검은 모자와 음침한 검은 롱코트. 거기에 한쪽 손에는 한 자루의 삽을 든 흡사 동화책에 자주 나오는 사신 같은 남자를 그리고 그 옆에 납골단지에 괴상한 옷과 가면을 뒤집어 쓴 이를. 그 둘은 음산한 연기를 뚫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복도와 가까이 있던 이들은 서로가 먼저 뒤로 물러나려 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악마다.” “사신!” 몇몇은 성물이라 생각되는 물건들을 꺼내놓으며 그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 둘에게는 별 반응이 없었다. 어느 덧 중앙 단상 쪽에 도착한 두 명의 사신. 그 중 검은 코트의 삽을 든 남자는 옆의 사신에게 삽을 맡긴 뒤 귀족 영애들이 드레스를 들어올리며 인사의 예를 취하는 포즈처럼 코트를 잡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아직도 어두운 가운데 약간은 밝은 듯한 조명이 비추는 중앙 단상에 코트의 남자가 올라갔다. 그는 양팔을 펴고 푹 눌러 쓴 모자를 약간 들어올려 눈을 노출 시킨 뒤 눈동자를 그대로 뒤집었다. “꺄아악!” “으아아악! 귀신이다.” “……!” 그런 다음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단상에 앉았다. 그런 다음 모자를 벗고 한손을 쫙 펴고는 그 손을 쳐다보며 다시 눈을 뒤집었다. “아크……오빠?” “아크 경?” “페인 후작!” “지략의 기사!” 모자를 벗어 얼굴이 드러나자 곳곳에서 아크를 알아보는 이들의 외침이 있었다. 이제 대부분의 쇼가 끝나가고 있었다. 아크는 옆에 가면 남자(에르디)를 거꾸로 들어 잡았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으면서 그의 정수리를 바닥에 찍어버리는 무서운 기술.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사용했다. 기술은 안 아프게 썼지만 엔터테인먼트인 만큼 에르디는 축 쳐지는 연기를 훌륭히 해 냈다. 아크는 에르디의 팔을 접고는 다시 한 번 눈을 뒤집었다. 그리고는 혀를 쭉 내밀고 널름거렸다. 이제 마지막 대사. “데드맨이 돌아왔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알겠지만 이 장면은 WWE(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프로레슬러 언더테이커가 등장할 때 나오는 퍼포먼스로 조금 각색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훌륭히 연기해 내었다. 자 여기서 출연진 및 스태프들을 살펴보자. 주연 : ‘언더테이커’역 - 아크 페인 후작. 언더테이커의 매니저 ‘폴 베어러’역 - 에르디 게이레로 조명 - 에드워드 엘릭 특수효과 - 에드워드 엘릭 의상협찬 - 폴티아의 한 옷 상점. 음악 - Theme Undertaker 28th 출처 : WWE 스맥다운. 도구협찬 - 앤더 형제. 원작 - WWE 각본 및 특수효과팀 및 레슬러 언더테이커. 로열티 - 땡전 한 푼 없음. 총감독 - 아크 페인 후작. MVP - 킹 네크로맨서 시르옹의 삽. 팟! 조명이 다시 들어오고 연기가 걷혔다. 이곳에 들어올 신분이 안 되는 에르디는 급히 연회장을 뛰쳐나갔고, 아크는 모자와 롱코트를 벗어서 가지런히 포개 놓았다. 그런 다음 가슴팍에 넣어 둔.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 나서 여러 귀족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예를 표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고향에서는 이렇게 어딘가 등장할 때는 음악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에 고향의 풍습을 한 번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바로 지략의 기사로 불리는 아크 페인입니다.” 패닉 상태에 빠져 있던 귀족들. 하지만 곧 이 일련의 사태가, 지략의 기사가 보여 준 쇼였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들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갔다. 그들은 방금 전 눈을 뒤집고 검은 코트를 쓴 음침한 사내가 갑자기 지적인 귀공자풍으로 변해 있자, 상당히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방금 전의 사신과 매치업이 안 되는 샤프한 미청년. 특히 안경을 쓰자 왠지 모르게 지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것이 평소의 아크와는 무언가가 달라 보였다. 거기다 왠지 모를 뺨에 홍조는 쑥스러움을 타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때문에 언더테이커 코스프레 퍼포먼스로 이 장터 여성들의 호감도가 유카나를 제외하고 공동으로 10%하락한 것이 갑자기 다시 상승하고 있었다. “화려한 등장이로군. 아크 경.” “아! 황제 폐하. 그것이 칭찬이든 아니든 영광입니다.” 아크는 황제에게 배우지도 않았던 귀족의 예법으로 공손히 예를 표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상당히 이질적이었다. “……오빠?” “유카나. 간만이구나.” 아크는 유카나를 향해 매우 부드러운 성자의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천사의 미소처럼 성스럽고도 은은해 보였다. 유카나는 아크가 어딘가 모르게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약간은 눈치를 챘다. 유카나 앞에서는 원래가 저렇게 자상하고 그러긴 했지만 저토록 예의바르고 조용한 분위기 등은 아크의 본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봐. 냄새나는 녀석. 저 인간 그 인간 맞냐?” “그, 글쎄? 저 모습은 나도 처음인데.” 입구 뒤쪽에서 연회장을 훔쳐보던 에르디와 에드워드. 그 둘도 지금 아크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아크가 저럴 인간이 아니다. 어디서 쑥스러워 하고 볼에 홍조를 머금으며 여성스러운 말투에 천사처럼 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단 말인가? “놀라게 해 드린 점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 드리겠습니다.” 너무나 공손한 태도다. 역시 아크라고는 믿겨 지지 않는다. 안경 하나 쓰고 나더니 사람이 바뀌었다. 인상부터 바뀐 데다가 사람 자체가 바뀌었다. 미남형이기는 하지만 눈에 다크 서클이 짙고 진지한 표정이 잘 나오지 않아 장난스럽고도 어딘가 모르게 조금 음침해 보이는 인상이 안경을 쓰고 나니 전형적인 지적이고 멋진 모범생 스타일의 미남으로 변했다. 사이코 폐인의 이미지가 얌전하고 어딘가 모르게 여린 듯한 인상으로 변했다. 또한 태도 역시 평소의 아크라면 그저 머리 슥슥 긁으며 약간 건방진 듯한 털털한 태도로 ‘놀라게 해서 미안하오이다.’ 이 정도로 끝났어야 했다. 거기에 갑자기 예절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인간이 저토록 예법을 잘 갖춘단 말인가? 게다가 미소라고 하면 음흉한 생각에 짓는 변태끼가 그대로 드러나는 조금은 저급한 미소가 항상 붙어 있는 데. 저건 또 무어란 말인가? “혹시……저 안경에 무슨 비밀이……?” “아냐. 저건 그냥 보통 안경이야. 그것보다는 놈의 심리 상태가 안경을 쓸 때와 안 쓸 때마다 바뀌는 이중인격 같은 게 있는 것 아닐까?” 변해버린 아크를 보며 토론을 나누는 에드워드와 에르디. 여하튼간에 몇몇 주변인물들은 이렇게 달라져 버린 아크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데에 반해. 아크를 처음 본 귀족들이나, 대부분 아크의 성격을 샤프하고 얌전한 귀공자 정도로 인식하고 넘어갔다. 지난 번 샹 플라워 호 사건 때 구출 받은 귀족들이나 한 두 번 정도 아크를 본 귀족들은 원래가 저런 성격이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흐 정상인 모드를 오랜만에 발동시켰더니 재밌구만. 하긴 여자를 꼬이게 하려면 이 정상인 모드 버전 1.0이 최고지, 자 아리따우신 귀부인들이여 이 몸에게로 꼬이라!’ 지금의 아크는 그가 자랑하는 일종의 성격 변환술인 ‘정상인 모드’를 가동하고 있었다. 이 정상인 모드는 평소의 변태끼와 폐인의 모습을 어둠의 이면으로 감추고 성격 또한 최대한 예의바르고 조용히 행동하여 아크의 본 성격을 감추는 모드로서 가끔가다 무의식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아크 스스로가 의도해 남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사용하기도 했다. 언더테이커 등장 퍼포먼스로 시선집중을 시켜 놓고 관심을 산 다음, 그와 상반된 예의바른 모습으로 단번에 호감도를 띄운다. 뭐 그다지 좋은 작전이라고 보기는 뭐했지만 아크 그 스스로는 제법 만족한 듯이 보였다. “허! 거 참. 사람 놀래 키는 구만. 자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특수효과나 캐스팅 방해 마법을 사용해서 이렇게 만든 건가?” 그레드릭 대공이 걸어나와 아크에게 말을 걸었다. 마나에 민감한 그랜드 마스터인 그는 방금 전의 상황이 대략 마법으로 꾸며 졌다는 것을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아, 이거 말입니까? 어이 에드워드 이리 나와 봐!” 아크가 입구 쪽을 향해 외치자, 모두의 시선은 입구로 향해 졌다. “큭! 저 미친 새끼가, 나오라고 지랄이얏! 어떡하냐? 냄새 대마왕.” “일단 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크극! 두고보자 이 망할 놈. 내가 500살만 넘으면 아주 그냥 콱!” 그러면서도 옷깃을 바로 하면서 입구로 들어가는 쥬레이나란이었다. “저 꼬마가 겉으로 봐서는 믿기지 않지만 8서클의 대마법사, 에드워드 엘릭 군입니다.” “8서클?” 갑자기 웬 꼬마가 등장하기에 뭔가 했던 귀족들은 그가 8서클의 대마법사라는 말에 놀라움의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그 시선을 받은 주인공은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길거리에 개똥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에 답례했다. 그리고서는 사람 하나 거뜬히 죽일 듯한 기색으로 아크를 쏘아봤다. “너 이새끼! 무슨 생각으로 날 여기까지 불러 온 거냣! 내가 분명 지들만 고귀한척 하는 이런 인간들 부류에 끼고 싶지 않다고 했을텐데?” 소년의 그 눈빛은 실제로도 잘 하면 인간 하나 쯤은 가볍게 죽일 수 잇고 오크는 아예 설서 기게 만들 수 있는 드래곤의 기세가 물씬 풍기는 강렬한 눈빛이었지만 아크에게는 별 해당사항이 없었다. “왜 불렀냐고?” “그래!” “그냥.” “……. 시선이 완전히 이쪽으로 몰려 있어서인지, 아크는 여전히 정상인 모드를 풀지 않고서 말했다. 그러자 원래대로라면 아주 짜증스럽게 들려야 할 아크의 대꾸가 무슨 정말 선의의 농담처럼 들린다. “너……죽을래?” “죽일 수 있으면.” “…….” 소년은 할말을 잊었다. 이 자식 정말……. 하지만 그때 그에게 아크의 전음이 들려왔다. ‘쯧쯔 이백살이나 너게 먹은 녀석이 그렇게 생각이 없어서야 원 너 바보지?’ ‘뭣?’ ‘내 옆에 이 노인네 보이지?’ ‘그래 근데 그게 뭐?’ ‘이 노인네가 바로 이 대륙에 단 둘밖에 없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이야.’ ‘……!’ ‘너 임마 강한 인간들을 모아 원수 드래곤을 잡겠다면서? 그렇다믄 이런 사람들과 만나 친분을 쌓고 환심을 사 두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내가 보기엔 이 할배. 네가 이 제국을 돕겠다는 말 한 마디면 별 망설임 없이 널 도와 드래곤 전투에 앞장 서 줄 거다.’ ‘그, 그런 거였나?’ ‘그래! 이 무식한 놈아. 자, 잘해보라고 난 다리를 놔 줬으니.’ 아크는 소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중앙복도에서 귀족들이 있는 무리로 걸어들어가며 말했다. “대공 전하. 그 녀석과 심도 있는 대화를 부탁드려 보겠습니다. 제국을 위해서 이 녀석을 회유할 기회라고요.” 나머지 일은 대공과 쥬레이나란에게 맡겨 두면 되었다. 서로의 이해 관계가 미묘하게 일치하니 대화가 잘 풀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크는 본격적으로 연회장에 뛰어들어가 축제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춤을 잘 출 줄 몰라서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아크의 모습에 귀부인들은 얼굴을 붉혔다. 아크는 정상인 모드에서 약간 슬픈 듯한 눈을 하고서는 한쪽 면을 응시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앞서 축제를 즐긴다는 서술이 있긴 했지만 어디 폐인이 밝은 양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놀던가? 한쪽 구석탱이에서 음침하게 게임이나 하거나 처박혀서는 사람들과의 왕래를 끊고 살지. 아크 역시도 그 ‘폐인’ 클래스 였기에 춤을 추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화려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과 좀처럼 보기 힘든 고급 술에 혹해 음식 테이블에 앉아 음식맛을 보고 있었다. ‘크하악! 무진장 맛있다앗! 내 평생 이런 요리를 맛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정상인 모드에서 그것도 보는 눈이 있는데 와구와구 게걸스럽게 코 처박고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아크는 슬픈 듯한 눈으로 먼곳을 응시하며 술을 주로 마시고 음식은 안주처럼 찔끔찔끔 가져다 먹었다. 그래도 첫 계획은 유카나와 함께 못 추는 춤이나마 춰 볼 생각이었는데 엘레노어 백작의 술수인지, 유카나는 아크에게 오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손에서 맴돌고 있었다. “춤 안 추시나요?” “아, 예 죄송합니다. 제가 춤 같은 데에는 그다지 익숙치가 못해서…….” 이번 춤 제의 역시 거절하려던 아크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버리는 여성을 보고선 약간 놀랐다. “……공주.” “후 당신이 정말 지략의 기사였군요.” 그랬다. 그녀는 지난 번 궁성에서 만났던 세레스티나 공주였다. “그런데 새삼 내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뭡니까? 공주.” “진짜 신분을 확인했으니 무조건 하대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미소짓는 아름다운 공주의 얼굴.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본성이 아님을 아크는 알아챘다. 지난번 만났을 때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가식적이군.” “훗 지략의 기사 당신이야말로.”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크의 정상인 모드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생활을 같이 해 온 에르디나 쥬레이나란도 알아채지 못한. “용건이 뭡니까? 술친구라면 환영입니다만.” “아~그러세요 지략의 기사님?” 공주는 앞에 놓인 술잔을 가볍게 들이켰다. “……아무래도 술친구만이 목적은 아닌 듯 싶군.” “잘 아시네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 주시면 좋겠소이다.” “지난 번에 날 섬길 만한 군주라 하셨지요?” “그랬습니다만.” “그럼 날 섬기세요.” “…….” 술 한 잔을 가볍게 비우는 아크. 하지만 이번 술맛은 유독 썼다. ‘귀찮게 됐군. 이렇게 바로 나올 줄이야. 그냥 해 본 소린데……쩝 일단은 넘겨보자.’ 남아일언 중천금이란 고사의 충고가 이제야 생각나는 아크였다. 이래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해서는 절대 안 된다. “인간은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소.” “대가를 원한다는 소린가요? 권력?” “대가를 바라는 충성은 충성이 아니오.” “그런데 왜 대가를 바라시나요?” “그런 대가가 아니오.” “그럼?” 아크는 투명한 호수와도 같은 공주의 눈동자가 매우 귀엽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군왕의 자질.” “군왕의 자질?” “난 지난번 당신에게서 패왕의 기질을 보았소. 하지만 그 자질이란 것이 말 그대로 패왕의 기질이기는 하나, 덕을 쌓는 성군. 백성을 사랑하고 부하를 아끼는 그러한 성군의 모습이 당신에게는 결여되어 있소.” 아크는 그 특유의 화랴한 말빨 스킬을 사용했다. 과연 그것이 먹힐 것인가? “성군과 패왕의 자질. 그 두 가지를 갖추기란 매우 힘들어요. 물론 그런 군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두 자질을 모두 요구할 만큼 당신의 눈이 높은가요? 그리고 지난 번 당신은 나의 국민을 위한 정책과 포부를 들었습니다.” ‘거 참 나……괜한 소릴 해 가지고 내가 이 고생이로군. 말이면 뭘 못하니? 그땐 그냥 호감이나 한 번 사볼려고 했던 소린데……에휴 공주 능욕의 꿈은 접어야겠군.’ “내가 있던 곳에는 가상으로 군주가 되어서 백성들을 다스리고 천하를 통일시키는 놀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 어쨌다는 거죠?” “그것에서는 그 가상의 백성들을 위해 착실한 선정을 펼쳐야 합니다. 천하통일을 위해서 백성의 민심을 돌려 놓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요. 만약 폭정을 일삼는다면 백성들은 자주 폭동을 일으키고 세금을 내는 것을 거부하여 놀이를 진행시키는 것이 상당히 골치아파 집니다.” 아크는 코에이사의 삼국지 시리즈의 예를 들고 있었다. “그 놀이는 가상의 부하들의 관리도 중요합니다. 높은 작위를 주고 포상을 해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너무 쉽게 다른 군주에게로 가 버릴 테니까요.” “그래서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죠?” “당신은 군왕의 자리를 그런 놀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 “가상의 데이터. 가상의 상대. 실제 그들의 마음을 느끼고 깨우치지 못한 채 그저 천하통일을 이루는 놀이의 변수로만 생각하고 관리하는 것. 그것이 당신의 한계입니다.” 공주의 표정이 흔들렸다. 그것을 본 아크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당신의 그런 점은 전 세계를 자신의 발 아래에 두는 패왕에 적합합니다. 전 그런 군주를 하나 알고 있죠. 그 군주는 바로 여기 이 제국에서 마녀라 불리는 캘더린 여왕입니다.” “…….” “그녀는 신료들과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와 충성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남부 해적왕과 손을 잡아 이 루드비안을 괴롭히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며 자신을 섬기는 기사를 해적들의 성노예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게 과연 군왕이 할 짓일까요?” “…….” “조금 더 당신을 따르는 부하와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일종의 수단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하신다면 공주님께선 진정으로 위대한 군주가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저는 알아서 당신께 고개를 조아리겠습니다.” 아크는 할 말을 다 마친 뒤 술 한잔을 더 따라 마셨다. 멍한 표정의 공주를 보니 이번에도 말빨스킬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이…사람은…어떻게 날 이렇게 완벽히 꿰뚫고 있는 거지?’ 공주는 다시 한 번 이 지략의 기사에게 놀랐다. 아크는 그녀 자신도 몰랐었던 부족한 점만을 완벽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능력과 식견, 그리고 실력과 세력까지, 정말 어디하나 빠지는 데 없는 꼭 필요한 문무겸비의 만능형 인재, 탐욕에만 가득 찬 황제파의 아첨꾼들과는 확실히 다른, 공주에게는 꼭 필요한 인재였다. 이 지략의 기사라는 남자는. 한참을 멍히 아크를 응시하던 공주는 술 한잔을 따른 체 그대로 원샷했다. 그리고는 상기된 얼굴로 아크를 마주보았다. “당신을 왜 그리 지략의 기사, 지략의 기사 하며 칭송하는 지 이제야 알겠군요. 단순한 무인들과는 달리 당신은 정말 지략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 해요.” 아크는 자신의 말빨이 완벽히 먹혀들어감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본인 스스로도 과분하지 않은 칭호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지략이라는 칭호를 과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아크. 자만하는 광오한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공주는 생각했다. “후훗 한 잔 받으시겠어요?” “공주님의 술 접대라니……영광입니다.” 아크는 공손히 공주의 술을 받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술이 오갔고, 한 쪽 구석데기에 있어서 잠시 잊혀졌던 아크는 공주와 함께 있는 광경이 목격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략의 기사. 아니 아크 경.” 술에 한껏 취했는지 얼굴이 완전 새빨개진 공주. 지금까지의 완벽했던 자기 절제의 모습은 사라진 모양이다. “왜 그러시죠?” “아크 경……그대를 반드시 내 사람으로 만들고 말겠어요.” “에에에에에엑!!!” 아크는 ‘그러시든지요’라고 말하려다가 곳곳에서 터진 비명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귀족파 황제파 할 것 없이 경악한 표정으로 아크와 세레스티나 공주를 응시하고 있었다. “고, 공주님……서, 설마 지략의 기사에게…….” 한 귀족의 더듬거리는 말을 들은 아크는 상황이 어떤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공주의 말이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내 사람이라는 뜻을 주군과 신하의 뜻이 아닌 낭군.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알아들었단 얘기다. “아. 이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아크는 해명해 보려 했지만 웅성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오, 오빠.” “어이 유카나 그런 뜻이 아냐!!” 유카나까지 오해의 눈물을 보이자, 아크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구원해 줄 공주를 찾았다. 하지만 모든 일의 근본이 된 공주는 술에 취해 곱게 자고 있었다. “어허 어찌 황위를 이어야 할 공주가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지략의 기사여 이 일의 진상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응?” 황제까지 내려와서는 무서운 얼굴로 아크를 추궁했고, 결국 그는 황제와의 단독면담회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훗.” 황성을 나서면서 아크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일이 재밌게 되어버렸다. 황제는 아크에게 공주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다시는 그녀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아크는 공주의 말뜻이 자신을 신하로 맞아들이려는 그런 얘기였다고 말하자, 지략의 기사란 인재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황제의 툭 튀어나온 입은 쑥 들어갔다. 하지만 황제는 마지막 경고를 잊지 않았다. 주군으로는 섬기되 절대 남녀의 감정을 갖지 말라는. 그러나 아크가 누구인가? 아크는 대성한 말빨신공으로 결혼은 모르나, 캘더린 여왕의 소문처럼 엄연히 애인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하여 황제의 ‘경의 뜻대로 하라’라는 하명까지 얻어 낼 수 있었다. 공주는 반드시 아크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반드시. 그만큼 각오가 되었고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몸으로 꼬여 낼 수도 있다는 미연시적 상황이 아닌가? 판타지계 모든 남성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남자의 로망. 그것은 바로 고귀하신 신분인 공주님을 잘 조교시켜 확실한 개처럼 만드는 공주능욕과, 엄청난 미모를 소유한 초 미녀들에다 인간과는 약간 다른 이형을 지닌 엘프마누라. 지금 세레스티나 공주는 잘하면 진짜로 공주능욕이 가능할 정도로 아크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물론 인재를 얻겠다는 취지에서였지만 아크가 이것을 잘만 이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크크크 좋아 공주. 다음 공략 대상은 바로 당신이야.’ 웬만하면 한둘에서 만족하고 그냥 살아라 이눔아. .///////////////////////////// 폐인대전 개시!!! 지금까지 꿍쳐놨던 비축분을 모두 품과 동시에 무조건 하루 4시간 이상 집필 체제로 돌입하겠습니다. 일일연재를 기대하십시오...(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뭐 실은 마감하고 겹치길래 마감날짜 맞출 때 글 쓸 의욕과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참가하긴 했지만.... 해리와 몬스터 읽기는 싫다고요... 루드비안 제국 남서부에 위치한 영지. 카프레이. 원래는 카르테라 라는 백작가문이 맡아 다스리던 곳이었지만 백작가문의 핏줄이 끊기고 나서는 몇 년간 버려졌던 영지였다. 면적도 넓고 땅도 비옥한데다가 강이 흐르고 있어, 교통 및 상업, 농업 등 모든 산업이 상당히 발전하여 인구수가 많은 영지였다. 대부분의 공작가나 후작가문이 가문의 당주 외 친척들까지 영지를 소유,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데에 반해 이계인인 코프하겐 칸딘스키 공작이나, 아크 페인 후작의 경우 가문이 그다지 크지 않기에 황제는 이들에게는 제법 거대하고 비옥한 영지를 하사해 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카프레이 영지 영내에는 신임 영주인 지략의 기사가 영주 저택을 향해 행차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 행차지 영주인 지략의 기사와 그의 축근 세명이 거리를 거닐고 있는 곳에 수비병 몇 명이 호위하며 영주님 행차시다 라며 소리지르는 것 외에는 별 것도 없었다. “젠장 쪽팔리게 이것도 행차랍시고…….” 영주인 아크의 불평이 터졌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의외라는 듯이 아크를 빤히 바라보았다. “네놈이 쪽팔린다니 안 믿겨진다.” “아 걍 해 본 소리야.” “…….” 그럼 애초에 쪽팔린다는 소리를 하지 말던가 하지 이게 무슨. “그런데 에드 어때 대공하고는 말이 통하데?” “그럭저럭.” “그래? 그럼 도와주겠다고 했단 말야?” “내가 당분간 이 나라를 돕겠다고 했더니 기꺼이 대 드래곤 전투의 선봉에 서겠다는데?” 아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나였다. 대공이 그런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흠……그런데 부유한 영지라더니 그렇지만도 않아보이는데요?” “정말이군.” 피리아의 지적에 에드워드는 맞장구를 쳤다. 들어오던 정보에 비해 카프레이 영지는 그다지 잘 사는 동네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현 영지 관리인이란 놈이 학정을 펼친 것 아닐까?” 팍ʼn?봤던 소설들에는 이런 일들이 잦았다. 귀족이 없이 비어 있던 영지에 임시 관리인이 부정을 저지르는 사례가, 하지만 그런 아크의 추측은 뭔가 좀 알고 있던 에르디에 의해 무너졌다. “아뇨 귀족이 없는 영지의 관리 대리인은 그저 세금만 모아다 정부에 바칠 뿐 실권은 없습니다. 딴 주머니를 차서 비자금을 조성한다거나 하는 건 몰라도 이전 귀족 영주가 정해놓은 세금률을 인상치도 인하하지도 못하지요. 거기에다 앞서 말했듯이 세금을 걷어서 낼 의무만 있을 뿐. 그에겐 영지를 통치할 권리가 없습니다. 때문에 이 영지는 아무 발전도 없었고 이 주변 테트리스 강은 수차례 범람을 하는 수해 위험지역인데다가 최근 3년간 폭우도 잦고 태풍도 많아 이곳도 수해가 컸을 텐데 영주가 없으니 보수나 민생 안정, 망쳐버린 토지 재 개간등이 전혀 안 되어 있었겠지요. 아마 그런 이유 덕분에 부유했던 영지가 평균 이하가 된 것일 겁니다.” “이해는 잘 안 가지만 대충 내 말이 틀렸단 소리로 들으면 되겠냐?” “아마도요.” “쩝 너 할 일 또 늘겠다. 에드워드.” “……둑 만드는 것쯤은 별로 안 어려우니 괜찮다.” 그레드릭 대공을 편으로 얻었다는 것 때문인지 쥬레이나란은 평소의 그 불퉁스러운 면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쯧쯔 드래곤이란 놈이 이렇게 단순해서야 원.’ 아크는 혀를 끌끌 차며 속으로 쥬레이나란을 비웃었다. 얼마 정도를 걷자, 영주관저와 겸한 영주의 저택이 나타났다. 여태껏 집 없이 살았던 아크의 집이었다. 규모가 그다지 거대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잘 가꾼 정원과 건물의 외형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어서 오시지요. 후작 각하.” 백발이 성한 노인이 저택 앞에서 아크를 맞이했다. “노인장은 누구요?” “카르테라 백작가 시절부터 이 영지를 지켜 온 관리인 루스벨트라고 합니다. 각하의 명령에 따라 여러 일을 수행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하명하시지요.” “흠…….” 겉모습에서는 그다지 인간성 따위를 짐작하기가 힘든 노인이었다. 무슨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지 청렴한지는 모르지만 이전 귀족가문부터 이 영지를 지키고 있다면 정보면에서는 따라갈 이가 없을 것이다. 만약 딴주머니 따위를 차고 있다면 나중에 친히 네크로맨서의 삽으로 파묻어 주리라. 루스벨트의 안내에 따라 아크는 영주 집무실로 들어갔다. 말끔히 정리는 되어 있었지만 책꽂이의 책들 윗부분에는 시커먼 먼지가 여전한 것이 지금까지 주인이 없다는 것의 증거가 되고 있었다. “루스벨트. 저택의 인원은 몇인가?” “저와 주방 담당인 요리사와 하인 하나, 그리고 수비병 넷이 전부입니다.” “흐음 주방담당과 하인은 여자인가?” “둘 다 남자입니다.” “해고시켜. 퇴직금 줘서. 수비병들은 앞으로 저택 외곽만은 수비시켜라.” 아크는 남자라는 말에 가차없었다. 앞으로 미소녀 하렘이 될 이 저택에 남자라는 생물은 자신과 몇몇 안 위험한 놈들로만 채워 넣어야 했다. 요리사의 경우는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피리아라는 궁중요리사가 있었다. 세레스티나 공주의 식사를 책임지던 하녀였던지라 실력은 믿을 만 했다. “알겠사옵니다.” 루스벨트는 공손히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베테랑 하인들을 해고하는 신임영주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안 가기는 했지만 어차피 모든 것은 영주의 뜻대로였다. 그는 그저 해고되거나 죽을 때까지 영주를 섬기며 영주를 보좌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 그리고 루스벨트.” “말씀하십시오. 각하.” “지금 당장 영지 주민들을 마을 앞 광장으로 모이게 할 수 있겠나?” “어렵지 않습니다만. 무슨 연유로?” “앞으로 이 영지를 어떻게 다스려 가겠다는 연설을 하겠다. 최단시간 내에 사람들을 모아라.” “알겠습니다.” 루스벨트가 나가고 집무실에는 아크와 그의 최 측근들만이 남았다. “흐음 기왕 이렇게 영지도 얻고 했으니 판타지에서라면 빠지지 않는 영지 발전물 시나리오나 한 번 가볼까? 피리아.” “알아서 하세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이봐 섭섭하게 같은 곳에서 와서 같은 걸 공유하고 있으면 이럴 때 맞장구도 좀 쳐주고 그래봐.” 같은 걸 공유.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기억이란 얘기니 이상하게 알아듣진 말자. “흠 영지 발전이라……나쁘진 않겠죠. 강한 군대와 기사들을 기르고, 착실히 농지를 개간하며, 세금을 적당히 받으면서 영지민들의 존경을 받는 것. 지구에서 가져온 지식 정보로 공업계와 상계를 장악하는 선정을 펼치는 영주로 널리 알려져 영지에는 사람들이 자꾸만 모여들고……괜찮을 것 같네요.” “어이 그런 뻔한 스토리가 재밌어?” “소설에서 맨날 그렇게 나온다고 그것이 과연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이야기들은 가상의 이야기이고 여긴 실제에요. 그 이야기들은 영지민들을 위한 영주의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나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장은 그런 걸 간접체험으로 보기만 했지 실제로 체험해 본 적은 없잖아요? 간접 체험만 했던 걸 실제로 해 볼 생각은 없어요?” 말빨신공의 아크와 따라다니다 보니 피리아도 말빨이 많이 는 모양이었다. 아크가 쉬이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그치만 나는 나 나름대로 이곳을 발전시킬 거야. 이전 전례를 그대로 따라갈 생각은 없다고.” “그건 모험이죠. 성공하면 좋긴 한데. 실패하면 알거지 되는. 조금은 안전한 경로로 이전의 이들이 남겼던 안전하다고 보장된 경로로 가 볼 생각은 없나요?” “크크크 그건 걱정 말라고. 여기 이 에드워드군과 나라는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존재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크크크크.” 아크는 자꾸만 실소를 흘렸다. 앞으로 자신이 만들어 갈 이 영지의 미래상을 생각하니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그야 마로 대박 중의 초대박이다. 영지를 발전시키려면 정말 피리아 말대로 공업이나 농업 등의 산업을 선택하여 그 분야에 전문 투자를 해서 발전시키거나 지구에서 가져온 지식을 통해 칸딘스키 공작처럼 상계에 뛰어드는 것도 큰 수익을 남길 수단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아크가 계획해 둔 왕국 건설 방법은 그 누구도 쉬이 생각해 내지 못할 강력한 방법이었다. 물론 장애점이 있기야 하겠지만 아크에게는 힘과 재력 그리고 쥬레이나란이라는 먼치킨 인재가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라면 실패를 굳이 겁낼 필요가 없었다. “한국 여성부……이건 네년들에게 보내는 내 조롱이다. 엿먹어라.” “그건 또 뭔 소리에요?” “아, 아니 그런 게 있어.” 심히 수상쩍은 발언이었다. 왜 마지막에 한국 여성부가 나온단 말인가? 어쨌든 두고 보도록 하자. 영지 중앙 광장에는 많은 영지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분수대 옆 우뚝 솟은 단상에는 아크와 그의 가신 세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신임 영주의 연설. 신분계급이 존재하는 이쪽 세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소드 마스터급 무인 아크, 허나 몇 천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과 그들의 재잘거리는 소리탓에 아크는 마나를 이용한 음성전달을 사용했다. 아크라우스에게 받은 확성기도 있었지만 마지막 포즈를 잡을 때 거추장스럽기에 아크는 미리 확성기를 빼 버렸다. “백성들이여. 그대들은 행복한가? 살림살이 좀 나아 졌는가?” “……별 걸 다 따라 해요. 하여간.” 대한민국 모 정당 대표의 말투를 따라한 아크의 대사를 들은 피리아는 정말 아크의 머리뚜껑을 열어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었다. “아마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국의 알짜배기 영지였던 이곳은 현재 영주의 긴 부재와 잦은 재해로 인한 황무지가 늘어나고 수확량이 대폭 감소, 그 덕에 세금을 내고도 곳간에 가득찬 곡식에 느긋해 하던 과거는 지나가고 어느새 뼈가 앙상한 처자식들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확실히 이 카프레이 영지는 땅은 좋아 농사짓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기에 영주가 가혹하게 수탈해 가지만 않는다면 먹을 것 걱정은 아니해도 되었다. 하지만 기후조건에 의하여 단번에 농사를 망치게 되는 천재지변이 잦은 곳이기도 했다. “매년 언제 닥칠지 모를 천재지변 그것은 대자연의 힘이기에 마스터라 불리는 나도 막을 수 없다. 농업이 비록 식량을 생산하는 중요한 산업이라고는 하나, 이러한 환경에서는 농업보다는 3차 산업인 서비스 산업을 육성시키는 것이 이곳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무지한 농노들은 아크의 말이 뭔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시 상인들은 서비스업을 육성시키겠다는 말에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어느덧 몇 마디 되지 않았던 연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크의 체질상 질질 끄는 이야기는 말빨신공을 사용하지 않으면 하기가 힘들었고, 학창시절 교장선생의 그 길고 긴 연설신공에 몸서리를 떨었던 기억 덕에 아크는 긴 연설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할 말만 하기로 결심했다. 아크는 잠시 침묵한 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지금 해야 할 이 대사가 아크의 영국(영주가 다스리는 영지를 말한다)인 이곳에 운명을 결정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아크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며 주먹을 굳건히 쥐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부연설명을 하자면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13화의 머스탱 대령의 대총통이 되겠다고 외치며 잡는 그런 포즈라고 보면 되겠다. 인터넷 등의 경로로 강철의 연금술사를 접하지 못한 이들은 한국 방영예정이니 케이블로 한 번 보기 바란다. 충분히 상상이 될 것이다) “섹스 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 “…….” 그 대사에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황당함 및 좌절천사 OTL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크는 제 할말을 계속했다. “공포한다. 일단 처음 실시할 정책은 영지를 누드 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5세부터 40세의 여자는 신발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벗고 지낸다. 또한 남자들의 경우 마찬가지로 15세부터 40세 사이 중에 자신의 몸과 거시기에 자신 있는 자들은 의무적으로 벗어라.” “…….” “끔찍하군 정말…….” “돌았어……완전히….” “미친놈.” 아크의 뒤편에 서 있던 에르디와 피리아 그리고 쥬레이나란은 어이없단 투로 한 마디씩 내뱉었다. “이상이다. 일주일간의 여유기간을 줄 테니 알아서들 따라 주길 바란다. 일주일 후에는 이 영지가 온통 살색이어야 한다. 그럼.” 아크는 할말 다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갔다. 영지민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유독 더 크게 들린다. 이 정책에 반대할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크가 왕이다. 반발하는 놈이 있어도 찍어누르면 되고 누드 마을에 대한 관광효과 등을 봤을 때 장기적으로는 좀 거시기한 방법이긴 해도 돈 벌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정말 미쳤어요!!” 피리아는 새빨개진 얼굴로 노호성을 질렀다. “이봐 난 평상시가 원래 이래.” 피리아는 잊어먹고 있었지만 아크는 진짜 그의 말대로 평상시에도 이랬다. “그래도……그래도 누드 마을이 뭐에요! 그렇게까지 해서 뭘 어쩌겠다고요?” “걱정마. 넌 안 벗어도 되니까. B컵도 안 되는 빈약 가슴 보고픈 생각은 없어.” “그런게 문제가 아니잖아욧!” “그럼 뭐가 문제인데? 여긴 내 왕국. 백성들을 홀라당 벗기든 말든 간에 전적으로 내 권한이야. 거기에 누드 마을로 만들면 당연히 관광객들이 생길 테고 그렇게 되면 영지내 상업 경기가 살아나고 결과적으로는 영지민들 모두가 잘 살 수 있게 된다고. 관광업이라는 이 3차 산업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거야? 단순히 옷만 벗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관광자원이 되는 거야. 지구에 누드비치 몰라? 다들 한 번이라도 가고 싶어서 난리잖아. 거기는 되고 여기는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데?” 동물의 세 가지 기본 욕구. 식욕, 수면욕, 성욕 이 중 성욕을 자극하는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아크. 특히 맨 처음 실시한 이 누드촌은 영지민들을 단순히 벗겨 놓는 것만으로도 서비스 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관광업을 크게 발전시킴으로서 상업 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흠……뭐 영지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성범죄 증가와 겨울철 영지민들의 건강 문제 등을 따져 봤을 때 생기는 역효과도 감안해 봐야겠는데요?” 그나마 이 중 에르디는 아크의 정책에 조금은 호의적이었다. 짜식 역시 꼴에 남자라고. “그건 걱정 마. 에르디 에드워드가 온도 조절 마법장을 쳐준다고 했으니까. 그리고 성범죄 문제는 공창촌을 만들거나, 강력한 규제를 가해 놓는다면 굳이 문제될 것은 없다. 난 오히려 출산율 하락이라는 문제가 나타날까봐 두렵다. 하루종일 여자 나체만 보고 지내서 밤에는 잘 흥분 못하게되는 건 아닐지…….” “큭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나 했더니…….뭐 그것도 건설해주지.” “어쨌거나 에드워드 넌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아. 고생 좀 해 줘야 겠다.” 쥬레이나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과 만난 이후 이 녀석 많이 착해졌다. “루스벨트!” “예 각하.” “현재 몇 할의 세율이지?” “약 2할 5푼 가량입니다.” “1할 5푼으로 낮추시오.” 루스벨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예에? 하오나 후작각하의 정책인 누드촌 등을 시행키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할 터인데 그것은…….” “걱정말고 시행하게. 자비를 털 테니까.” “괜찮으시렵니까?” “걱정 말라니까. 성공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그 정도 투자가 아깝지는 않아.” 아크는 해적 아지트에서 루드비안 제국 1년 중 4분의 1분기인 3개월 가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을 손에 넣었었다. 특히 처분하지는 않았지만 팬크라프트 제국 산 최고급 포도주 로얄 럼블과 캘더린 여왕이 애용한다는 노머시 등의 비싼 술 여러 상자와 여러 귀금속 및 보석, 마법 아이템, 무기 등을 합산한다면 이 드넓은 제국을 반 년 정도는 별 무리 없이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그런 큰돈이었다. 그런 돈이 있으니 아크가 굳이 세금 따위에 신경 안 쓰고 마음껏 여러 정책들을 실행할 수 있었다. 투자는 자비로 하란 부동산 및 주식 투자 지침도 있지 않던가? “에 또 루스벨트. 영지 내 재단사들을 모두 불러모아주시오.” “재단사들을 말입니까?” “그렇소. 누드 촌이 된다면 가장 먼저 망하게 될 이들이지. 하지만 그들도 쓸데가 있소.” “알겠사옵니다. 각하.” ‘흐흐흐 교복! 메이드 복! 간호사 복! 수녀 복! 경찰 복! 크크크.’ 역시 아크. 이것이 목적이었다. /////////////////////////////// 5권 권제가 아마 막가는 후작이 될 겁니다. 확실히 막 가는 스토리죠. 조금 심하게 맛이 가긴 하지만 지금이 최고조입니다. 너무 심해서 위화감을 느끼실 것 같긴 한데...기획안 자체를 바꿔버리자니 폐인대전 참가 및 연재에 심대한 타격을 입힐 것 같습니다.(이 녀석 치한소 덕에 맛이 갔어...) 이번 편 정도는 그저 '이 녀석 갈대로 갔구나'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이 9권 완결 예정인 에볼루션/인간유희록의 딱 반절 분량입니다. 원고지 500매. ////////////////////////// “에르디.” “옙 대장.” “너는 화류계의 유명한 여자들이나 노예들을 물색해 와라. 그리고 저택 뒤쪽에 거처를 마련해 줄 테니까 냄새 실험말고 좀 정상적인 실험을 하도록 하고, 그리고 인제부터는 주군이라고 불러라. 넌 엄연한 가신이자 날 섬기는 기사니까.” “옙. 주군.” 주군 소리를 듣자, 아크는 문득 자신이 삼국지 등에 나오는 진짜 군주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어? 왜?” “너는 일단 온도 마법진 구축과 홍수 범람 대비책을 뒤로 미뤄 두고 티스버그 영지에 있는 내 소유의 여자 노예들하고 음…….” 아크는 루드비안 제국의 지도를 펼쳐 쥬레이나란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한 섬을 가리켰다. “여기 이 무인도에 냄새나는 사내놈들 스물 댓명 가량 있을 거야. 이 놈들도 좀 데려와 줘.” “이놈들은 누군데?” “내 충실한 기사들이지. 부탁해.” “가만 그 사람들 설마?” 에르디와 피리아는 아크가 가리킨 섬과 남자들이란 이야기에 감잡히는 게 있었다. “맞아. 그 녀석들이지. 폭풍을 만났을 대 배가 다 아작이 나서 녀석들은 별 수 없이 인근 섬에다 버려 두고 왔지. 뭐 잘 있을려나 모르겠네?” “살아는 있었군요.” “어쨌든 부탁한다. 에드워드.” “알았어 온도 조절 마법장보다 쉬운 일인 걸 뭐.” 영주의 밑에는 당연히 가신인 기사들이 있어야 하는 법.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온 그들이라면 충분히 기사 못지않은 실력으로 이곳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만이군. 샤트란 경.” 아크는 여기사의 목덜미를 오른손으로 스치듯이 비비면서 말했다. 매우 느끼한 목소리였다. 성희롱 당하고 있던 여기사. 샤트란은 불같은 분노의 눈빛으로 아크를 노려보았다. “네놈도 남자라면 더 이상 모욕을 주지말고 나를 죽여라.” “훗 먹지도 않을 가축을 내가 왜 죽이나?” 아크의 손이 샤트塚?몸을 쭈르르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새 그 손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있었다. “……!” “왜? 싫은가? 성욕 해소용 가축인 주제에?” “언젠간……기필코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이런 이런 벌써부터 육수나 흘리면서 그런 말하긴가? 음란한 계집. 발정 난 암캐년. 역시 네가 자처한 거겠지? 여왕폐하 저는 남자의 그것이 좋아요. 마구 당하고 싶어요. 하며 가놓고선 아아 더, 더 해줘 굉장해……뭐 이런 소릴 내면서 즐겼겠지.” “이!” “치욕스럽나? 여왕을 버려라 그렇다면 널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거나 소원대로 죽여주겠다.” 그 말을 들은 샤트란은 주저 없이 하의를 벗고서는 다리를 벌렸다. 그리고는 약간 눈물을 머금긴 했지만 변함 없는 분노의 눈초리로 아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의 변소가 될지 언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정말 꽉 막혀도 이렇게 막힌 케이스는 처음이었다. 그야 말로 고지식 꼴통 보수의 진수다. 아직까지는 아크도 짜증을 삭힐 수 있었다. 그는 샤트란의 그것을 한 번 바라보고서는 이죽거렸다. “후 역시 음란하긴. 하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하다니. 길거리의 싸구려 창녀도 네년보다는 낫겠다. “맘대로 생각해라. 음란한 계집이든 무어든 간에 할테면 해라.” 이제는 음란한 계집이라 놀리는 것도 효과가 없었다. 이거 무슨……도대체 어떤 교육을 시켰길래 이렇게 완벽하고 고지식한 빠순이가 되었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 아크였다. 격장지계도 폭력도 안 먹힌다면 남은 건 말빨신공을 이용한 타이르기뿐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크는 샤트란의 하의를 올려 입혀 주었다. 꼴리긴 해도 이런 빠순이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그대는 정녕 그대를 이용해먹은 여왕에게 한치의 분노나 원망도 들지 않는가?” 아크의 어조가 부드러워지지, 샤트란 역시 분노의 눈빛을 거두었다. 지금의 아크의 기색은 경멸이나 놀림조가 아닌 정녕 불쌍하다는 연민의 뜻을 내포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없다.” “왜지? 기사의 의무 중에는 주군의 명에 따른다는 조항도 있지만 주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도 잇다. 해적이란 그깟 천한 범죄자의 무리가 힘이 조금 세다고 너처럼 온몸을 바쳐 충성하는 기사를 성노로 주는 주군의 행동에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는 낫겠다 생각하여 나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돌아버린다. 아크의 빠순이 여동생은 그나마 노력과 고생을 통해 잡들일 수라도 있었지만 이 여자는 그저 막무가내다. “휴우 그래, 그래 명색이 지략의 기사인 내가 그 충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그토록 너 스스로의 행동에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니 내가 뭐라고 왈가왈부 할 바는 아닌 듯 싶구나. 아무리 멍청한 군주라고는 해도 그에 대한 변치 않을 충성은 기사에게는 필수인 법. 더 이상 네게 주군을 버리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다만 난 너희들의 적국인 루드비안의 후작이니 너의 주군에 대해서 욕을 하든 무얼 하든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며, 해적들에게 노예로 갔다가 내 손에 구출되었으니 마음은 네가 언제나 그 주군에게 가 있다고 할 지언정 몸은 내 소유이니 당분간은 나의 명령에 따라라.” 아크도 결국엔 이 고집불통을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주거나 하기엔 아까웠다. 익스퍼트 급 기사에 3서클의 마법사. 그런 그녀를 놀려 놓기는 인적자원의 비효율적인 활용이다. “왜? 그것조차 불만인가? 해적들 밑에서는 성노예로도 잘 버티지 않았나? 그대의 목숨을 가진 자가 나라는 게 싫은가?” “…….” “그대가 하는 것을 봐서 그대를 캘더린에 돌려 보내 주겠다.” “……! 정말인가?” 대번에 샤트란의 안색이 펴지고 목소리에 활기가 넘쳤다. 아크는 속으로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겉으로는 점잖게 말했다. “지략의 기사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그대가 몇 년간 내 명에 충실히 따르는 로봇이 된다면 그대를 반드시 캘더린에 돌려보내 주겠다. 뭐 충실히 따른다는 말은 별 거 없이 그저 너를 구해준 대가를 너의 봉사로 받겠다는 등가교환의 원칙으로 생각하면 된다. 당분간만 너의 은인을 위해 봉사해라. 어떤가? 나와 계약하겠는가?” 잠시 머뭇거리던 샤트란은 아크가 내민 손을 잡았다. “당신은 내 왕국과 주군의 적이고 나 또한 당신이 싫고 증오스럽다. 하지만 엄연히 날 구해 주었고 또 지략의 기사라는 당신의 이름값을 믿고 따르겠다.” “좋아. 오늘부터 그대는 이 저택의 메이드장이다.” 아크는 샤트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몸을 돌려 거실의 나머지 여자들을 내려보았다. 하나 같이 앞으로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대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대들의 소유권은 남부 해적왕에게서 내게로 이전되었다. 앞으로 그대들이 할 일은 남부 해적왕 아래에 있던 것보다야 덜하겠지만 힘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내 명을 충실히 따르고 이행한다면 그때는 그대들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 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나서 아크는 루스벨트를 불렀다. “루스벨트!” “예. 무엇이든 하명하소서.” “이 여자들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도록. 그리고 마을 서 아직 열 살이 넘지 않은 귀여운 계집아이들도 한 둘 정도만 고용하라.” 루스벨트는 유카나 사건도 그렇고 지금 아크의 명령을 감안해 볼 때 주인인 지략의 기사가 심각한 로리콘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아크의 의도는 다양한 메이드 연령대를 갖추려 한 정말 순수한(?)의도였는데도 말이다. “후작 각하. 재단사들을 불러모았사옵니다.” “들여보내라.” 곧 다양한 연령대의 재단사들이 영주 집무실로 들어왔다. 옷의 경우 대부분의 서민들이 자급자족하는 공급 형태였기에 인구가 약 5만 가량이나 된다고 알려진 이 카프레이 영지에도 인구대비로 옷 만드는 재단사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각하. 저희들을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재단사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뚱뚱한 노파가 건방기게도 영주인 아크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나섰다. 몸체만큼은 간뎅이도 큼직하니 밥줄을 끊어놓은 영주에게 개기는 모습이었는데 아크가 어디 귀족 예절을 알기나 하든? “내가 친히 내린 명령 덕에 장사가 잘 안 되고 있겠지?” 당연히 그랬다. 아크가 누드 마을 정책을 공포하고 아직 준비 기가임에도 불구하고 옷가게와 재단사들은 급감하는 매출에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 옷 입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재단사들이 무엇을 위해 옷을 만들겠나? “그렇습니다. 물론 저희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각하의 깊으신 심중에 이견들 달 수도 없고 오히려 세금을 깎아 주시고 둑을 새로 지어주시는 등 부임 처음부터 선정을 베푸시는 영주님을 무어라 할 수는 없사오나, 우리 의류업계 종사자들에게는 심대한 타격을 주고, 고대로부터 신이 우리 인간에게 내려 주신 옷 입는 권리를 박탈한 누드 마을 정책에는 이 자리를 빌어 감히 반대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확실히 아크가 첫 목표로 내세운 누드 마을 정책은 아직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반대에 부딪혔다. 세금도 깎아주고 잘 살게 해준다고 꼬셔도 조금 완화되는 기미 뿐이지 반발은 여전했다. 몇몇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부르주아 계층은 조금 부끄럽고 쪽팔리긴 해도 영주의 정책에 지지를 보냈지만 나머지 계층들은 대부분이 정책에 반대 의견을 던졌다. 그 중 이런 옷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이들이나 종교계 관련자들 등 직접 타격을 받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옷을 벗어 나체를 보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반 민중들이 다였다. 종교계 쪽은 수녀들을 차마 벗겨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예외를 인정해 주었고, 의류계 업자들은 지금 설득하려고 불렀지만 나머지 배운 것 없는 무지렁이들은 결국 그 효과를 볼 때까지 자꾸만 딴지를 걸어 댈 것이다. “훗. 반대하면 무엇하나? 내 맘대로 다 진행되는 일인 것을? 누드 마을이란 것은 인식을 조금만 전환하여 넓게 본다면 분명 이 영지와 백성들에게 큰 이익을 남겨 줄 사업이다. 그런 것을 고작 옷 벗기 부끄럽다고 반대하는 멍청이는 내 친히 작살내 줄 테니 그리 알도록. 그리고 난 자네들의 먹고 살 길을 하나 마련해주기 위해 부른 거야.” 그 말에 재단사들의 세상 다 산 듯 하던 암울한 표정이 활짝 펴졌다. "하오시면…….“ “너희들 대표가 누구야? 나와 봐.” 대표는 의외로 뚱뚱한 할매가 아닌 그 옆의 키 큰 노신사였다. 아크는 그에게 종이 몇 장을 넘겼다. 노신사가 본 종이에는 하나같이 괴상쩍은 옷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세라복, 교복, 경찰복, 메이드 복, 수녀 복, 바니걸 옷, 모 게임 노출 심한 여자 캐릭터 옷, 일본 숏팬츠 형 여학생 체육복, 고양이 옷, 개 옷, 스튜디어스 옷, 천사복(이라고는 하지만 최고로 노출이 심한 단순 천조가리에 불과하다)한국 한복 등. 그야말로 페티쉬즘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각각의 전문 직업 복장들이 그려져 있었다. “사이즈는 거기 적힌 대로다. 일단 각각 50벌씩만 만들어라 수고료는 나중에 납품 받고 지불하겠다. 그리고 여기 귀족이나 거물급 거상들이 입는 고급스러운 옷을 짓는 자 누군가?” 그러자 40대는 넘어 보이는 비쩍 마른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아크는 그녀에게 종이 한 장과 함께 세 개의 보석을 넘겼다. “그 종이대로 옷을 만들어 바쳐라. 알겠느냐?” “…….” 재단사 여자는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 할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종이에는 나신의 여자의 양쪽 가슴과 중요 부위가 딱 보석으로 가려진 그야 말로 노출의 진수라 할 수 있는 수영복이었다. “저……일자리를 주시는 건 감사하오나 이것은 근본적인 생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그건 걱정 말도록 일단 내가 너희들이 직종을 전환할 수 있는 지원금을 지급하겠다. 하지만 만약 내 사업 계획이 성공한다면 분명 너희들이 쓰일 데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먹고 살 것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다.” 지원금이란 말에 재단사들은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을 지었다. ‘후우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공업화야 티스버그의 칸딘스키 공작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제껴 둬도 상관없을테고, 나는 문화 컨텐츠 사업으로 이 세계를 장악한다. 지금이야 권력과 돈으로 간신히 찍어누른 상태겠지만 곧 그 효과를 알아채고 내 앞에 알아서들 머리를 숙이겠지. 크흐흐.“ “여기는 폐인 1호 은룡선생 대답하라.” [여기는 은룡선생 무슨 일이냐?] “내가 널 보고 싶어 불렀겠냐?” [하긴…….] 말끝을 흐리는 아크라우스. 그런데 왜 묘하게 서운한 듯한 투인 걸까나? “뭐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또 뭣좀 보내 주어야 쓰겄다.” [보수는?] “내 아이템 다 털어가 놓고 또 뭘 바래?” [등가교환도 모르나?] “얌마! 그거 방영 종료에 원작만화 완결. 극장판 완결까지 다 난 마당에 여태 그놈의 등가교환이냐?” [등가교환은 경제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그리고 네놈은 나보다 더 잘 써먹으면서 무슨 헛소리야! 쥬레이나란이란 꼬맹이를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새끼……어디서 남몰래 남의 생각을 읽고 있어…….” [후우 뭐 요새 바쁘지만 네놈 하는 짓거리 구경하는 것도 재밌으니 네놈의 유희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적절한 선에서 보내 주마. 뭘 원하나?]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에 아크는 필요한 것들을 입에서 나열해 놓았다. “인쇄소 같은 데서 쓰는 대형 인쇄기와, 월드컵 거리 응원용 대형 전광판, 방송용 장비, 최신형 PC, 그리고 학교 같은 데서 쓰는 TV와 PC를 연결해주는 그런 것들 정도?” 아크의 생각을 읽을 수 있던 아크라우스는 아크가 그것들을 어느 용도로 사용하게 될 줄 알고서는 기가 찼다. [……돌았군. 도대체 그쪽 세계를 얼마나 더 더럽힐 생각이냐?] “이 정도에선 안 끝낼 거야.” [이거……에휴 그따위 일에다 쓰라고 보내 줘서는 안 되지만 최대한 빨리 보내 주지. 과연 그런 것들을 접했을 때 그쪽 세계 인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군] “어때 강력하지?” [나가 뒤져라.] 아크라우스의 냉소적인 말투가 아크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드워의 수장격이신 아크 님과 본 소설의 아크는 절대 동일인물이 아닙니다. 이 점 유념하시길 //////////////////////////////// 영지발전으로 크게 돈 버는 스토리를 생각하다가 떠오른 건 바로 성 산업... 왜 그런 것만 떠오를까요? 기존과는 다른 뭔가 색다른 것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 크게 저지른 것 같긴 한데... 뭐 어차피 영지발전물도 아니니 대충 얼버무릴 계획으로 가닥은 잡았습니다. 일단은 이상하더라도 써 놓고 봐야 하니까요. 86화 이후의 수정에 관하여...... 제가 생각해도 각본이 어설펐던 것 같아 고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은령님 비평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사실주의적 보다는 환상적인 면이 많은 판타지 장르인 글에다가 쥬레이나란이라는 확실한 먼치킨 인재와 아크라우스라는 현대와의 연결 고리가 있으며 아크(절대 마검의 아크님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의 변태적 이상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이상. 성 산업의 메카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관광업은 은령님의 말씀대로 솔직히 여러 모로 따져 보아도 그다지 잘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아크가 차지한 영지는 원래부터 교통의 요지인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왕래를 한다는 설정입니다.(86화 참조) 그러니 굳이 새로운 사람들을 유치하기 보다는 왕래하는 사람들이 돈을 쓰고 가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그렇기에 굳이 전면삭제화는 필요가 없을 듯 싶습니다. 누드 마을 각본은 출판본에서는 아마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습니다만...상당히 약화시켜 약간의 명맥만 남겨 둘 생각입니다. 영지 전체의 누드화 보다는 노예 여성들을 구매하여 영지 내 작은 시골 마을 한 군데에서만 실시하거나 아니면 영지부근 강변을 누드 강변 등으로 만들어 입장시키는 등의 그런 소극적인 정책으로 바꿀 예정이며 아크가 돈을 만지는 쪽은 주로 인쇄 및 출판산업 쪽에서 라고 바꾸려 합니다. 완전 독점 산업에 뛰어들어 폭리를 취하는 형식으로 돈을 몽땅 벌어 나중에 있을 그의 개혁에 기반을 닦아두자는 취지입니다. 다만. 연재본 비수정주의에 의해서 연재만 보시는 얌체(훗~)분들은 억지스토리로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부터 수정에 들어가서 싸그리 내용을 바꾸는 것이 작가의 도리겠지만......폴라리스 랩소디가 걸려 있습니다.(사실 이거 보다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재한 작가한테 주는 드림워커 작가님 책을 더 노리고 있지만)지금은 일단 폐인대전에 혼신의 힘을 다 할 생각입니다. 또한 현재 비축분 이후의 지금 집필 부분들은 현 부분들이 수정되었다는 전제 하에서 진행되기에 약간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마검의 작가님인 아크 이도경님과 본 소설의 아크는 동음이의어일 뿐입니다. 꼭 물어보시는 분들 있는데 아니라고 확실히 밝혀둡니다. (으핫 아크님이 보고계셔...) /////////////////////////// “학, 학, 학, 학, 학.” “요놈의 수컷들이 왜 이리 못 걸어!”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온몸에는 누더기를 걸친 때 탄 거지떼들을 단체로 끌고 영지를 거닐었다. 머리는 산발에 수염도 덕수룩한 삐쩍 마른 거지들. 하지만 그런 거지들의 모습에 안 어울리게 그들은 오른 쪽 어깨에 소총 한 자루씩을 메고 있었다. “소년이여 여기는 어디인가?” 금발 댕기머리 소년의 바로 뒤에서 걷던 그나마 좀 깔끔하고 다른 거지들과는 다르게 검을든 거지가 주변 광경을 살피다가 도무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신들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매우 귀찮은 듯이 대꾸했다. “말했지 않나? 네놈들을 찾는 녀석이 있다고. 이제 다 왔으니 곧 볼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물어보면 죽여버리겠다 같은 소년의 표정에 거지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거지떼를 이끌고 걷던 소년이 도착한 곳은 제법 큼지막한 대저택이었다. “아. 에드워드 님.” “주인 놈한테 거지떼들 데려왔다고 전해.” “예 알겠습니다.” 저택 외곽을 지키던 수비병이 안으로 뛰어들어가 집사 루스벨트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루스벨트는 아군에게로 이 소식을 전달함과 동시에 출입 허가를 받아냈다. “들어 오시랍니다.” “들어가자 거지들아.” 거지들이 떼를 지어 문을 통과하자 정문 수비병들은 그들 쯤에서 나는 암내와 악취에 코를 쥐었다. 소년을 따라 들어간 저택에는 저것이 과연 옷인지 싶을 노출 난이도의 여자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소년은 자신의 이마를 툭 쳤다. “역시 이 짓거리 할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데리고 오는 것인데 실수해버렸군.” 일주일 안에 주문옷들이 다 만들어 질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옷들 중에 천사복 만큼은 그저 흰색 천쪼가리를 대충 몸에다 걸칠 수 있게만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제일 먼저 생산되어 납품되었다. 참고로 속옷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는 컨셉이다. 힘이 남아돌 때였다면 저 여자들 모두 자기 것인 마냥 추파를 던지고, 심지어 강제로 덮치기까지 하던 거지패들었지만 먹을 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극심한 다이어트를 경험했던 그들에게는 음흉한 상상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들어와.” 거지들은 여차하면 이 저택을 뒤 짚어 엎을 심산으로 어깨에 건 소총을 다잡았다. 여기 영주는 무슨 배짱인지 무장 상태인 그들의 무장해제를 명하지 않았다. 긴장하며 들어가는 거지 떼거리들. 영주의 집무실에는 영주로 보이는 안락의자에 앉은 자와 그 옆을 보좌하는 남녀, 그리고 백발이 성한 노인이 있었다. 곧 거지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안락의자를 뒤로 돌려 뒤통수만을 보이고 있는, 영주로 생각되는 남자의 양 옆 사이드에 있는 남녀가 익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너, 넌 냄새 대마왕.” “피리아 양!” 냄새 대마왕이란 말에 얼굴이 약간 찡그려 지긴 했지만 에르디는 웃는 낯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어 으 으응.” 어째서 저 둘이 이런 데에 있는 거지 란 의문중이던 그들은 안락의자를 돌리며 코를 막은 영주의 거친 입담을 들을 수 있었다. “욱! 이 썩은내. 이 시키들 무인도면은 사방이 바단데 씻기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이 상거지들아!” 거지떼들은 영주의 얼굴을 보고서는 놀라 외쳤다. “대장!!!” “그래 오랜만이다. 이놈들아 그나저나 꼬라지들이 말이 아니구만. 에드워드. 물의 정령으로 저놈들 좀 씻겨 가지고 데려오지. 지금이라도 좀 씻겨 줘라, 냄새나니 당최 얘기할 맛이 안 나네. 피리아는 저 녀석들 뭣 좀 가져다 먹여주도록 해. 좀 있다가 보자 냄새 나서 지금 당장은 뭐라고 못하겠다.” 아크의 축객령에 거지떼들은 단체로 영주 집무실에서 쫓겨 났다. 그들은 얼빠진 표정을 전혀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제야 좀 꼬라지가 제대로구먼.” 말끔히 씻기고 옷까지 갈아 입혀 놓으니 거지꼴은 사라지고 이제야 좀 군대다워 보였다.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특수부대 619 그들은 배가 주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놓인 식사보다는 폭주하는 의문을 주체하지 못했다. “도, 도대체 지금 모습은 뭡니까? 대장.” “보면 몰라 임마? 루드비안 제국의 후작 아크 페인. 군부의 부원수이자 이 영지의 책임자.” 말이 안 나오는 직위였다. 왕자급인 공작 다음 가는 대 귀족인 후작에 군부의 부원수,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맞아가며 같이 훈련받던 꾀죄죄한 동료가 저리 되었다는 것이 전혀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카시아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당신의 실력이라면 오히려 모자란 듯한 작위로군. 소드 마스터를 천대할 만큼 이 나라는 인재가 많지 않으니까.” “카시아스 경은 이해가 빠르군. 뭐 어쨌든 간에 난 출세했고, 부원수라는 직위로 군 소속인 네 녀석들을 내 밑으로 편입했다. 폭풍우를 만났을 때 배가 다 작살났기에 부득이하게 너희들을 무인도에 남겨 놓았던 거다. 자 그동안 못 먹었을테니 많이 들 먹어라. 다만 너무 급하게 먹지는 말고.” 음식들을 놔두고 참을 만큼 그들은 배부르지 않았다. 후작 저택에 초대받은 손님치고는 예의없게 처먹기는 했지만 주인인 후작도 예의란 것을 모르고 먹었기에 크게 눈치받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냈다. “뭐 다들 먹었으면 일어나라. 네놈들도 할 일이 많으니까.” 아크는 부하들을 데리고 집무실로 되돌아갔다. 4열 종대로 부하들을 세워보니 얄쨜없는 24명이었다. “카시아스.” “말하시오. 대장.” “자네는 빠져.” “그게 무슨?” “영국을 가진 백작이 내 밑에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상부에 복귀신고를 해 두었으니 원래의 직위대로 복귀나 해 둬. 애초에 난 자네를 부하로 거둘 생각은 없었어. 그저 거기서 죽이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다 하는 생각에 부하란 명목으로 거두어 들인 거지. 난 이미 백작이 복귀한다고 상부와 황제에게 싹 보고 해 놨으니까 멀쩡한 놈 사기꾼 마들지 말고 가서 황제에게 충성하고 자네 영지나 잘 지켜.” “……고맙소이다. 후작.” 기사의 예를 취하며 상급자에 대한 경례를 하는 백작이 맘에 들었는지 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 참 자네 황제파였지?” “에에?” 카시아스는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두 파가 심각한 양면대립을 벌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아크가 어느 파벌인지도 모른 채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쪽 파벌을 밝히기가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다는 것을 아크도 눈치챘다. “걱정 마. 난 중립이니까 망설이지 말고 밝혀도 돼.” “황제 폐하를 조금 더 극진히 모시고 있소이다.” “그래 잘 됐군. 자네에게 부탁할 게 한가지 있었거든.” “그것이 무엇인지?” “귀족파의 열성적인 추종자. 엘레노어 백작을 항시 감시해 주게. 그가 내 약혼자를 다른 데에 팔아넘기려 하고 있네. 수도에 있으면서 수상한 점을 항상 내게 보고하도록.” “알겠소이다.” 약혼자를 챙기는 아크의 모습에 옆에서 보좌하던 피리아의 눈빛이 약간은 침음해졌다. “야 그리고 나머지 가스통하고 동키를 기준으로 헤쳐 모여. 실시!” 그 즉시 2열로 서는 부하들. 군기가 바싹 잡힌 그들을 보며 아크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어이 니들 출생신분과 지금까지 뭘 하며 살았는지 왼쪽부터 차례대로 댄다. 실시!” 아크는 자신의 기준으로 왼쪽을 얘기했다가 오른쪽부터 얘기하는 부하들의 모습에 이마를 툭 쳤다. 자신의 관점과 부하들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뭐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니 그냥 그대로 실행하는 걸 놔두었다. “농노로 태어나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날 팔았수다.” “농노로 태어나 열 살 때 아버지가 영주놈 채찍 맞아 죽고 울 엄니는 창녀촌에 가서 몸 팔았수. 그런데 포주 년이 내 여동생도 팔려고 하길래 도끼로 세토막 내고 이렇게 되었지.” “어부짓 하다가 어떤 썩을 상인 놈이 누나를 변태 짓하며 가지고 놀다가 X에 꼬챙이 박혀 꼬치처럼 뒈진 거 복수하려고 해적 되어 가지고 그놈 상선 습격해 눈깔을 뽑아줬수.” “남작가 하인 짓 하다가 그집 과부년이 참 맛있게 생겼길래…… 잡숴줬지. 처음엔 앙탈을 좀 부리더니만 신고도 안 하길래 계속 흐흐…….” 퍽! 아크는 음담패설을 늘어놓던 벤테라는 이름의 부하에게 옆에 놓여져 있던 책을 날렸다. 앞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 불쌍한 인생에 사고치고 온 놈들이 있는가 하면 진짜 죽여버렸어야 할 흉악범 놈들도 한 놈씩 꼭 있었다. “다음 놈.” “그런데 그 년 딸년도 참 맛있게 생겼더라구 그래서…….” 어느새 부활한 벤테는 자랑스럽지도 않은 강간경력을 계속해서 늘어놓았다. 아크는 골이 쑤시는 듯 검지 손가락을 미간에 대고 말했다. “저 새끼 밟아.” 퍽 퍼벅 퍽 퍽 퍽 퍽 다른 녀석들도 자기들은 생계가 걸려서, 또는 복수하기 위해서 저지른 죄 때문에 왔는데 상습 강간범으로 잡혀와서는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운지 강간 경력을 내뱉는 벤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참을 밟자, 벤테는 잠잠해졌다. “다음.” 막 다음 부하가 사연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또 다시 들려오는 음담패설. “고년이 또 알맞게 익었더라고 그래서 고년 대가리를 잡고…….” “죽여.” 퍽 퍼벅 퍽 퍽 퍽 퍽 퍽 이번에 밟힌 벤테는 도로 일어서지 못했다. “흐유 이제야 좀 조용하네. 다음.” “용병일 하다가 살인현장에서 살인자 누명쓰고 잡혀 왔습니다.” 쭈욱 이어지는 신세 타령들 벤테같은 마냥 돈을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녀석도 있었지만 모두가 힘이 없고 빽이 없어 사형을 선고받고 살아온 가엾은 놈들이었다. “한 마디로 너희들은 낮은 신분 덕분에 억울하게, 또는 복수하기 위해서 이토록 젊음을 감옥과 살인기계 육성 프로그램을 수련 받는 데에 보냈단 말이군. 벤테 너 빼고.” “대장은 어린애까지 따먹었으면서 이러지 맙시다. 아동 성추행범으로 잡혀 온 거 모를 줄 아쇼?” 어느샌가 다시 부활해서 불퉁거리는 벤테였다. 그리고 아크는 아동성추행범이란 말에 또다시 발끈했다. “새꺄! 넌 강간이고 난 합의하야 이눔아야. 조또 모르는 새끼가 설치고 앉았어 이 책 읽어봐. 내가 어디 그럴 놈인지.” 아크는 ‘지략의 기사 전설’을 던져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부하들의 반응은 영 시큰둥했다. “에이 뭐야? 이거 읽어 본 책이잖아. 이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소 대장.” “읽은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 참 많이 들었지.” “내가 대가리에 든 것은 없고 책가방 끈은 짧소만 이런 건 참 재밌게 읽었수다.” 전대미문의 베스트 셀러였던 ‘지략의 기사 전설’ 이었던지라 책 접하기 힘들었던 놈들도 입으로 구전된 것을 들어 다들 알고는 있었다. “자 그럼 문제. 지략의 기사 전설의 주인공은 누구?” “아크 페인 디그리스 자작!” 유치원의 꼬마들처럼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619부대원들. “나는 누구?” “아크……페인?” 그들은 곧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경악의 표정으로 아크를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의 아크가 내민 손바닥에는 문자.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란 보랏빛 문장이 유독 빛났다. ‘대장이 지략의 기사? 대장이 지략의 기사? 저 인간이 지략의 기사???’ 결론! 이건 꿈이다. 맞다. 자신들이 무인도에서 웬 꼬맹이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것부터 대장이 후작이 된 것 까지 모두 꿈이었던 거다. 그런 거였구나. 그들은 곧 이 꿈에서 깨기 위해 머리로 벽을 들이받는 등의 자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체 감각은 이 상황이 꿈이란 것을 부정했다. 에르디와 피리아는 그들을 동정했다. 그래 자기들도 저랬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익숙해 졌을 뿐이지 여전히 안 믿겨 지는 건 사실이지만. 카시아스 백작은 체통을 지키느라 저 지랄병을 떨지는 않았지만 믿을 수 없는 기색은 다른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엇다. “이것이……정말입니까?” “수도로 가서 아무나 잡고 물어보시게 내가 누군지. 난 날 사형시키기 위해 보낸 황제의 기사 셋을 죽였지. 그런 죄가 있음에도 후작의 작위까지 받은 이유는 무엇일지도 한 번 생각해 보시고.” “…….” “야 믿거나 말거나 미친 짓들 그만 하고 다시 모엿!” 그래도 군기는 잘 들어 있었던지라 즉각 다시 모이는 놈들이었다. “어쨌거나 너희들은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녀석들이다. 하지만 후작인 나의 가신이 된 이상. 네놈들은 귀족은 아니지만 귀족 만한 대우는 받는 기사다!” “기사!!!”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와 대장과 부하의 관계가 아닌 주군과 신하의 관계다. 앞으로는 나를 주군이라고 부를 것이며 기사도 정신에 입각. 군주에게 충성하고 약자에게는 관용을 보여라. 이제 너희들은 더 이상 천한 범죄자 따위가 아닌 이 카프레이 영지를 수호하고 주군이 나를 섬기는 영예로운 기사가 된 것이다! 그동안 받아왔던 수탈과 억압의 과거는 이제 모두 잊어 버려라!” 몇몇 놈들의 눈에 눈물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천한 신분이기에 받아왔던 억울함과 천대. 백 없고 힘 없어 당면할 수밖에 없었던 배고픔.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직위에 그들은 오른 것이다. 아크는 검과 갑옷을 한 세트씩 가신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안 그래도 처절했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면서 북돋았던 약자의 설움이 갑작스레 씻겨 나가게 되자, 다 큰 놈들인 주제에 끝내 맺힌 눈물을 쏟아 내는 놈들도 있었다. “야 꼴 뵈기 싫어. 쳐 울지 마. 우는 새끼는 기사 계급장 안 준다.” “아, 아닙니다. 대장.” 어떤 멍청이가 방금 한 말을 까먹자. 아크는 순간 발끈했다. 퍽! 그 즉시 날아가 꽂히는 아크의 주먹. “내가 누구라고?” “대장 아닙니까?……헉!” 맞고도 멍청하게 자꾸 대장이라고 아크를 부르던 녀석은 그제서야 뭔가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크는 가차없었다. “RKO!!!" “주, 주군! 억!!!” 수정 방안 제안 하나. 성 산업의 메카 선언을 하고 돌아온 아크. 그에게 동료들은 딴지를 건다. 피리아 : 도대체 무슨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건데요? 아크 : 후후 그건 바로... 에르디 : 바로? 아크 : 영지의 전면 누드화!!! 에드워드 : ....... 에르디 : 나쁘진 않은데... 피리아 : 미쳤군요. 아크 : 뭐가 어때서 그래 누드마을은 어쩌구 저쩌구 이래서 꼭 실행시켜야 된다고! 말빨스킬에 막무가내 조지 부시 처럼 밀어붙이는 아크에게 거의 굴복해가려는 찰나 딴지를 거는 이가 있었으니. 에르디 : 저기 말입니다. 아크 : 뭔데? 에르디 :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크 : 왜? 에르디 : 독자들이 안 된다고 하잖습니까? 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고. 아크 : 빨랑 얘기해봐. 에르디 : 루드비안 제국 헌법 제 69조에 보면 아크 : 보면? 에르디 : 오랜 옛적부터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에 대한 것은 쉽게 바꿀 수가 없습니다. 즉 고대로부터 옷을 입고 살아온 것은 관습이기에 헌법상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군요. 예를 들어 현 루드비안의 수도 레트비아나는 약 1000년 전부터 수도였기 때문에 그 법으로 따진다면 수도는 절대로 옮길 수가 없습니다. 왜냐? 1000년 전부터 수도는 레트비아나 니까. 그렇기 때문에 누드 마을 정책도 밀고 나가려 해봤자. 누가 헌법재판소에 꼰지르기만 하면 즉각 짤리는 정책입니다. 아크 : 그거...어째...영 걸린다 법 이름이 뭔데? 에르디 : 관습헌법입니다. 헌법을 고치지 않는 이상. 누드 마을 정책은 실현 불가능 하다고 봐야겠죠. 아크 : 쳇 별 수 없군. 좋아 좋아. 뭐 누드는 그냥 저택 내 메이드들만 시키지. ......... 이렇게 바꾸면 패러디도 되고 괜찮지 않습니까??? ........거참 OTL스럽네. //////////////////////// 대충 대략의 기사 임명식이 끝나고 이제는 기사가 된 벤테가 손을 들었다. “뭐야? 벤테.” “아까 어느 마을에서 보니까 웬 여자들이 홀라당 벗고 있던데 그건 왜 그런답니까?” 네놈이 할만한 질문이다 라고 생각하며 나머지 놈들도 말했다. “맞아! 아까부터 나도 그거 물어보려고 했었는데.” 이놈들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되니 대번에 찾는 게 바로 여자였다. 아크는 이놈들을 자신의 하렘저택에 웬만하면 절대 발을 들여놓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주군.” “누드 마을 정책이다.” “누드 마을 정책? 그게 무슨?” 아크는 잠시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곧 피식 웃으면서 오른 팔을 불끈 쥐며 큰 소리로 외쳤다. “훗 어리석은 질문이군. 나는 이 도시를 아니, 이 세계의 모든 여자들이 알몸 앞치마 하나만 입고 지내도록 하기 위해 내 영지의 조그마한 마을에서부터 옷 안 입기 정책을 실시했다. 이 세상을 살색 풍경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끈임 없이 노력할 것이다! 자 날 따라 오겠느냐?” “우어어어어어!!!! 평생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아크의 하렘왕 포부를 들은 부하들은 괴성을 지르며 즉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은 모두 평생 이 주군을 따르겠다고 속으로 결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면천시켜 준 고마움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라고 생각으로는 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이유는 그들이 따를 주군이야말로 남자들의 로망을 이루어 줄 우상이었던 것이다. “일어나라. 너희들에게 맡길 임무가 있다.” “말씀만 하십시오 주군!!!” “지금 선 줄로……벤테 너네 줄은 지금 당장 카리비온 해안가로 가서 몬스터 하이드라와 숲에 사는 꽃봉오리 넝쿨을 산 채로 잡아온다. 알겠냐? 최대한 많을수록 좋다.” “에에? 그놈들을 어디다 쓰시게요?” “벤테가 알고 있을 거다.” “흐 대장도 촉수의 맛을 아시는구려. 흐흐” 아크가 말한 몬스터들은 벤테의 말대로 모두 촉수형 몬스터였다. 하이드라는 8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전설의 몬스터에서 이름을 본 따서 붙인 촉수형 괴물이었고, 꽃봉오리 넝쿨은 식물형으로 몸에서 축 늘어나는 여러 넝쿨들이 말랑말랑하면서도 단단하고 넝쿨의 끝이 꽃을 피우기 전 꽃봉오리로 되어 있는데 수컷 동물들의 모 부위와 미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최대한 많이 생포해 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어이 그리고 나머지.” “말씀하십시오. 주군.” “너희들은 영지 방범 및 수비병 육성을 맡는다. 또 몇가지 일들이 있는데 여기 루스벨트 옹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줄 거다. 앞으로 웬만한 일은 이 영감 지시를 따르도록!” 대가리에 든 건 없는 놈들이지만 그런 놈들도 여기저기 써먹을 데는 많았다. 특히 행정업무는 루스벨트 이외에는 많이 부족한 터라. 아크는 나머지 놈들을 루스벨트에게 맡겼다. 이제는 기사가 된 부하 놈들도 면천이 된 데다가 할 일이 생겼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아! 한 가지만 말해두건데. 이 저택의 여자들 건드리는 날에는 니들은 즉각 내 손에 죽도록 터짐은 물론이오. 기사 작위 도로 몰수한다. 특히 너! 벤테, 가스통 알았어? 저택 메이드들은 전부 내 거니까 알아서들 처신 잘해.” “에엑?” 저택 내 그 많은 여자들이 다 아크의 소유라는 말에 기사들은 인간 세계도 동물들처럼 서열 높은 수컷이 암컷을 몽땅 차지한다는 만고불변의 법칙을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흠 준비 다 됐다.] “늦었다. 임마.” 오늘은 아크라우스가 아크가 주문한 지구 문명의 물건들을 차원 택배로 보내주기로 한 날이었다. 시간 약속을 잡지는 않았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아크로서는 불평 한 마디가 빠질 수가 없었다. [전부 마나연료화 되어 있으니 강철의 연금술사에게 물어 보고 돌리도록 해라. 잉크 같은 경우는 그 세계에서도 쉬이 구할 수 있으니 기본 용량 빼고는 집어넣지 않았다.] “언제나 신세만 지는 구나. 고맙다.” [흠 흠 어려운 게 있으면 얘기해라. 웬만한 건 다 보내 줄 테니까. 그럼 난 차원이동 마법을 시전할 테니. 말 걸지 마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아크의 넓은 집무실에는 거대한 몇 가지 물건들이 소환되었다. 그것들을 바라본 아크는 자신의 왼손에 든 CD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부르몬 상단의 총 책임자. 부르몬은 지금 상당히 분주했다. “거기 먼지 안 보이나! 깨끗이 치워!” 신임 영주의 갑작스런 방문 통보. 비록 영주는 바빠서 일단 부하들만 보내겠다고는 했지만 후작의 대리인이라는 거물급의 방문에 상단 지부를 청소해 둬야 하는 것이다. 부르몬은 안주머니에 넣어둔 금화 자루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신임 영주의 방문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개혁이다 뭐다 하며 돈을 물 쓰듯 쓰는 영주가 상단에 찾아와 한 다는 소리래봐야 ‘돈 좀 내놔라’이지 않겠는가? “단주님! 영주의 가신들이 도착했습니다.” “오 어서 뫼셔라.” 일단 최대한 친절하게 대하면서 적은 액수로도 끝낼 수 있는 선에서 타협을 봐야 햇다. 안 그래도 어려운 상단인데 권력자들에게까지 몽땅 뜯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디 기업과 기업이 밀접하게 연관된 경제라는 것에는 권력자의 심한 간섭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망가진 공산주의 경제 체제나 대한민국의 정경유착 비리 사례에서 봐도 알 수 있듯이, 경제라는 자율 경쟁의 세계에서 그 주체라 할 수 있는 기업에게 정치자금을 요구하며 뇌물 안 주는 기업들은 각종 규제와 세무조사 등으로 기업 이미지의 타격을 주는 등의 정치권의 경제계에 대한 압박은 결과적으로 나라의 경제를 퇴보시키는 꼴 밖에 나지 않는다.(뭔 소린지 통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은 조금 더 시사쪽에 관심들을 두길 바란다) 부르몬 상단주의 집무실로 들어온 영주의 가신들은 이목구비 뚜렷하니 남자답게 생겼지만 어딘가 모르게 이상스런 냄새가 나는 젊은 남자와 금발을 땋은 키 작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부르몬은 그들의 외양보다 소년이 들고 있는 가방에 눈길이 갔다. 저 정도 가방 용량이면 족히 5천 골드는 들어갈 크기다. ‘저, 저 정도나 바라고 왔단 말인가?’ 5천 골드쯤의 여유자금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은 나름대로 꼭 써야 할 곳이 있었다. 그걸 다 줘버리고 나면 물건 대금을 치르지 못하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수도 없게 된다. 인격자인 지략의 기사라고 하더니 소문은 믿을게 못된다고 짐작하는 부르몬이었다. “반갑습니다. 이 상단의 주인인 부르몬이라고 합니다.” 속으로는 칼 안든 강도놈들이라며 욕을 퍼부어 댔지만 겉으로 그렇게 표현했다가는 돈을 주고 안 주고의 문제를 떠나서 괘씸죄에 걸려 상단 문을 닫아야 할 지도 몰랐다. “영주의 기사인 에르디 게이레로입니다.” “영주놈 친구인 에드워드 엘릭이요.” ‘어린놈이 말 한 번 싸가지 없게 하는 군.’ 거만한 말투에 부르몬은 속으로 욕을 바가지로 퍼부어댔다. 돈 뜯으러 온 놈들이라 안 그래도 좋게 봐 줄 수가 없는데 땅꼬마 녀석이 자신을 빳빳히 올려다보며 경멸하는 눈초리로 싸가지 없게 말하니 이 영주의 부하들에 대한 호감도(?)가 더더욱 떨어지는 건 당연한 법 하지만 잔뼈 굵은 상인인 부르몬은 열이 극도로 뻗쳤음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자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부르몬의 안내에 따라 에르디와 에드워드는 자리에 앉았다. “거기 차 좀 내와라.” “아. 그럴 필요 없어 차나 마시면서 길게 할 얘기는 아니니까.” 에드워드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하긴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10만 골드 정도 투자하실 생각 없습니까?” 공손한 에르디의 말투였지만 부르몬의 입장에서는 사람 진짜 미치게 하는 발언이었다. ‘시, 십만? 그게 뉘집 개 이름이야? 여유자금도 겨우 5천이나 될까 말까 한데 10만이라니 이놈들이 누굴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이번만큼은 부르몬도 결코 겉까지 호기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10만 골드를 달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고성을 지르는 부르몬을 에르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르몬은 기왕 폭주한 것 할말은 다 하려는 듯했다. “솔직히 뭐 영주님께 어느 정도 상납을 하는 것이 관례이니 어느 정도 준비는 해 뒀습니다.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군요. 지금 이 상단의 여유자금은 다 털어 봐야 3천 골드뿐입니다. 지금 누구 망하는 꼴보고 싶으신 겁니까?” 부르몬은 흥분해서 외치면서도 은근슬쩍 여유자금을 줄여서 얘기하는 술수까지 부렸다. 그렇게 발광하는 부르몬을 보며 에드워드는 한 마디 했다. “흠……그래? 그럼 일단 6개만 사. 삭은 놈아.” “……여섯 개?” 그제야 부르몬은 버서커 상태에서 해제되었다. 여섯 개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무슨 오해를 하셨는지는 이해가 갑니다. 다짜고짜 10만 골드를 투자하라고 하니 뇌물을 그렇게 바치라고 알아들으신 거겠지요. 하지만 우린 뇌물을 달라고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부르몬 상단과 거래를 하고자 이겁니다.” “거, 거래요?” 그러자 부르몬은 자신이 지레짐작하고 흥분한 게 무안해졌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벌떡 일어나면서 넘어진 의자를 다시 일으켜 세운 뒤 앉았다. 그리고는 정중히 사과를 건넸다. “아 죄송합니다. 잘못 알아듣고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군요. 그런데 거래할 물건이 무엇이길래 한 개 당 500골드나 한 다는 것입니까?” 어느새 계산까지 다 끝낸 부르몬. 역시 잔뼈 굵은 상인다웠다. “꺼내봐.” 에르디는 부르몬이 돈을 담을 가방이라 짐작했던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서는 부르몬에게 그 책을 주었다. “이건……!” 부르몬은 책의 겉 표지를 보고서는 놀라서 손에 쥐고 잇던 그 책을 떨어뜨렸다. 그 책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초호화 칼라판 누드 사진집이었다. 이 세계에는 사진이란 게 없었다. 또한 이런 풀 칼라로 나오는 책도 없었다. 당연히 누드 사진도 없고 사진집도 있을 턱이 없었다. “이런……어떻게 이런 것이…….” 부르몬은 떨리는 손으로 접대용 테이블에 떨어뜨린 그 사진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사진집에는 이쁜 처자들이 아주 므흣한 포즈를 잡은 채 실오라기 하나도 안 걸치거나 걸치더라도 아주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게 많았다. 그리고 그 사진집의 곳곳에는 카프레이 영지에 대한 광고가 실려 있었다. “어때? 이곳 영주인 지략의 기사만이 제조법을 알고 있는 완전 독점 상품이야. 현 수량은 200권이 있고 하나 당 500골드에 넘기도록 하지. 나머지 가격 측정은 자네들이 알아서 하고. 그 수익 중 50%를 우리에게 양도하는 조건이다.” 500골드라면 일반 5인 서민 가족 기준으로 10년을 풍족히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 결코 만만찮은 가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정판 200부에 제조 방법 또한 완전 독점이기에 희소가치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상인들이나 귀족들에게 꽤나 값나가는 비싼 레어급 아이템으로 어필 할 수 있었다. “말씀드리신 것과 같이 이 책은 한정판 200권 밖에는 없습니다. 생산 및 생산 방법은 이곳 영주님 외에는 모르고요. 또한 성적인 요소라면 환장하는 남성들을 봤을 때 뭔가의 세 배 이상의 가격을 측정해도 별 상관은 없을 겁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쪽에서 자체적으로 판매를 하려고 했지만 유통망 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서 말이죠. 판매를 이쪽에 위임할 까 하는 겁니다.” ‘이건 정말 대박일지도 모른다.’ 독점에 한정공급. 희소가치가 크고 여성들이 꼭 가지고 싶어하는 보석류들처럼 이 책은 희소가치도 큰 데다가 남성들의 구매 욕구를 최대한 자극했다. 안 그래도 제국의 바레인 상회와 JBL상회 이 초 거대 상단들이 경쟁적으로 중소 상단들을 흡수해 가는 이 때 카프레이라는 상업에 유리한 지역에 입지한 부르몬 상단은 그 지리적 이점 덕에 카프레이 영지에서만큼은 한 가닥 하는 상단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허나 그런 지리적 이점도 거대 자본과 권력을 내세운 바레인과 JBL상회에 밀려 서서히 빛을 퇴색해 가고 있을 때 영주가 내세운 신상품은 실로 탐이 아니 날 수 없었다. “어쩔 건가? 사겠나?” “20부 파실 수 있겠습니까? 5000골드 먼저 드리고 나서 나머지는 어음으로 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에르디는 에드워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 계약서가 있으니 서명하라고. 계약 조건은 20부에 1만 골드. 5천 골드 선불에 모 월 모 일까지 어음 대금 납부 및 수익금 중 5할 납부. 참고로 카프레이 영지 내 판매권과 수출권은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흐음? 어째서 영지 내 판매권을…….” “당연한 거 아냐? 자네가 겨우 20권 밖에 안 샀는데 나머지는 우리가 팔아먹어야지.. 당신이 무지 비싼 값에 팔면 그 가격에 맞춰 원산지에서는 조금 싸게 파는 거지. 그리고 수출은 우리가 알아서 담당할 거고 제국 내 지방 판매는 앞으로도 계속 위임하도록 하지 20권 다 팔고 나서 자금이 생기면 더 사도록 해.“ “으음 알겠소이다.” “아. 그리고 말야.” 에드워드는 가방 속에서 종이 하나를 더 꺼내어 놓았다. “이건 카프레이 영지 홍보용 광고전단이지. 자네들의 그 유통경로 쪽으로 해서 부리고 다니도록. 이 영지가 관광객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고 여행객들이 많아져 활성화되면 네 녀석들도 제법 짭짤하게 벌 수 있을 터. 이것만큼은 무보수 노동으로 하라고 영주가 말했다.” A4용지로 출력된 종이에는 흡사 아크가 원래 살았던 지구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전화방 및 안마방 등의 나신의 여자들이 있고 그 옆에는 카프레이 영지에 대한 광고가 있는 그런 전단이었다. “허허 처음 영주가 이 영지를 성 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말에 반신반의했는데 다 계획이 짜여져 있었군요. 좋습니다. 협력하도록 하지요.” 부르몬이 처음에 가졌던 나쁜 인상은 많이 해소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야. 앞으로도 이런 상품은 계속해서 만들어 낼 거야. 상당히 비싼 독과점 상품이니까. 자네들이 유통망만 잘 빌려주라고.” 기왕 이렇게 된 것. 확실하게 영주를 도와 상단의 기반인 이 카프레이 영지를 성 산업의 메카로 발전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단으로 봤을 때는 상당한 호재였다. 부르몬은 영주의 도장 옆 사명 칸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좋아. 계약 성립이다.” 도장이 찍히는 것을 본 에드워드는 손뼉을 탁 쳤다. 그러자 협상 테이블에는 샘플용 외에 19권의 책들이 소환되어 쌓이기 시작했다. ‘살빛의 향연.’ 극악 네이밍 센스의 아크가 직접 이름 붙인 이 사진집 ‘살빛의 향연’은 앞으로 수백년간 대륙 성인지의 최고봉을 독점하게 된다. 영주의 휴게실. 이곳에서는 아크와 피리아가 열심히 마우스를 눌러대며 컴퓨터 작업에 한참이었다. 이 세계에서 컴퓨터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이는 아크와 피리아 뿐. 우라시드 산맥의 드래곤 가족들은 게임 밖에 할 줄 모르니 논외 토록 하고 어쨌던 좀 컴퓨터 좀 만진다 싶은 이들은 이 둘 뿐이었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란 것은 기껏 해야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수천장의 CD와 DVD뿐. 그것들에 담겨 진 수많은 성인정보를 종류별로 가려내고 간추리는 작업이 지금 그들의 할 일이었다. “……누가 변태 아니랄까봐 정말 많이도 모았네요?” 피리아는 뒤에 쌓인 수천장의 CD를 보며 빈정거렸다. 이건 뭐 몇 년은 꼬박 투자해야 다 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다. “뭐 내일부터 전광판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별 수 없지 뭐. 일단 언어의 이해 없이도 볼 수 있는 것은 성인 동영상들 분이잖아? 통역마법 스피커는 에드워드 녀석도 수십일 정도 투자해야 된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그런 것도 만들 수 있다니……마법과 과학의 조합이라는 건 정말 무섭네요. 그런데 말이죠.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뭐가?” “누드 마을에 사진집 유포까지는……그래요 후작님께서 하시겠다는데 무슨 딴지를 그리 걸겠어요. 뭐 성인 애니 및 동영상 방영도 그렇다 치자고요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피리아. 하지만 아크는 그녀가 말하고픈 이야기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라이브 쇼는 정말 안 된다. 이거지?” “네……여기 쌓인 CD들만 해도 충분히 몇 달은 방송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아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 내가 장천이나 동훈이 녀석처럼 테라바이트급 야동을 쌓아 놓은 줄 알아? 나는 좀 모으기는 했어도 그래봐야 10기가도 안 넘는다고. 나머지는 대부분 WWE 프로레슬링 동영상, 각종 애니들하고, 미연시 게임들, 일본 동인지들, 야 애니들……뭐 성인 애니는 성인 동영상 등으로 쳐 두자. 여하튼 그런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10기가? 많아 보이지? 그래봐야 한 일 이주일 풀로 돌리면 바로 쫑이야. 알아듣겠어? 그러자면 어쩔 수 없다고. 라이브 밖에는 무엇보다 언어적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잖아. 아무리 방에서 몰래 소리 끄고 보는 맛에 보는 거라지만 소비자들은 좀 더 좋은 서비스를 원한다고.” “여기가 포르노물이 판을 치는 지구인 줄 알아요? 그냥 있는 동영상들만 틀어 줘도 미칠 듯이 발광할 테고 재탕에, 삼탕, 사탕을 해 줘도 뭐라고 할 사람들 없어요. 그러니까! 그 애들까지 동원해서 그런 이상한 라이브 쇼를 벌일 생각은 제발 그만 둬 주세요. 그 망할 해적들한테 몹쓸 짓 당하고 남자를 불신하고 무서워하는 애들한테 차마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다고요! 차라리 아크라우스 씨한테 이런 걸 더 보내 달라고 하세요. 석진 씨 안 그랬는데 요새 정말 왜 그러세요!” 피리아의 마지막 호소가 아크의 가슴속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래 요새 너무 막나가기야 했지. 뭐 작가가 의도한 대로긴 하지만 진짜 귀축 하렘왕은 여자 스스로가 벗게 만들어야지 강제로 하면 쓰나?’ 결국 아크는 강제동원 라이브 쇼는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참고로 강제동원이다.(그 뜻은 결국 돈 등으로 꼬시기는 하겠다는 소리다) “뭐 그러지. 아무래도 아픈 기억들이 있을 녀석들을 노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 하부를 벌린 채 남자와 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순 없겠지? 아무리 계급이 있는 사회라지만 학교 사회 시간에 귀가 닳도록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내가 그러면 안 되겠고. 네 말대로 할게. 수아 씨.” 옛날 이름으로 불리자. 그녀는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고마워요. 후작……아니 석진 씨.” 옛 이름으로 불러 준 것을 보답이라도 하듯 그녀도 아크를 옛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훗. 그리운 이름이로구만.” “그러네요.” “참 재밌게 놀았었는데…….” “광합성이요?” 아크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피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나? “……그게 기억 나?” “당연하죠.” 대화가 많지는 않았지만 고향이 같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묘한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끼는 그들이었다. “저기 말야.” “네.” “라이브가 안 되면 몰카는 어떨까?” 몰카라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에라 나가 죽어랏! 퍽! 피리아. 그녀의 최강 타격기인 팔꿈치 찍기가 아크의 명치에 직격했다. “쿠헥!” 마나로 몸을 보호하고 일부러 그냥 맞아 준 것이었지만 역시 이 기술은 강했다. 수면모드에 선택 기상 신공을 발동시킨 아크를 단번에 깨워버릴 정도의 기술이니 오죽하겠나. “좀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살 순 없어요? 생각하는 거 하고는……무조건 노는 거 아니면 여자야.” “인간으로 태어나 색과 유희를 즐기지 않는다면 그런 삶 따위는 의미가 없지. 안 그래도 짧은 생 놀다가 죽어야지. 뭐 하겠어? 짧다고는 하지만 지루한 삶인데.” “그건 뭐라고 안 하겠다만 그 잘생긴 얼굴에 그런 이상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나 보여서 사람 인상 다 버리는 거 알고나 있어요?” “음 그래? 그럼 이건 어때?” 아크는 버전 업 된 정상인 모드 ver 1.01을 발동시켰다. 거기에 안주머니에 놔 두었던 안경까지 꺼내어 쓰자. 완벽한 정상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성자의 미소까지 지어 보이는 아크였다. 그의 신성의 마나와 잘 조합되는 그런 미소다. ‘사람이 바뀌었어?’ 피리아는 아크에게서 풍겨지는 묘한 위화감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응? 왜 그래 피리아?”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다. 흐리멍텅한 폐인의 눈빛은 사라지고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처럼 검지만 투명하고 맑았다. 거기에 쑥스러운 듯 볼에 머금은 홍조까지. 그야말로 동인녀들에게 먹히는 최고의 미소년이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습이 초 사이코 폐인 아크 페인 후작 각하라는 건 전혀 믿겨지지가 않는다. “어디 아픈거야?” 아크의 손이 피리아의 이마에 닿았다. 그러자 그녀는 없던 두통이 갑자기 생긴 것 같았다. 정말 꿈꿔오던 왕자님의 모습이긴 하지만 문제는……. 결국 그녀는 바보취급을 각오하고 말했다. “당신……지략의 기사. 내가 아는 아크 페인 맞아?” 피식 ‘이 대답 나오기를 기대했다. 킥킥킥’ 아크는 새삼 자신의 연기력에 감탄했다. 정상인 모드 버전이 또 레벨 업 되었다고 신호를 보냈다. “물론이야. 왜? 이런 모습인 것도 불만이야?” “저, 저, 저, 그, 그, 그게.” “인간에게서 놀이라는 것을 빼면 단순한 생체 기계가 되어 버리는 것. 어때 나와 함께 색을 즐겨 보지 않겠어?”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크가 확실하다고 피리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평상시의 아크가 저리 말하며 이렇게 자기 몸을 여기저기 쓰다듬어 댄다면 나쁘진 않아도 부끄러움에 완강히 거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크의 손길은 도무지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옷가지의 단추가 하나씩 끌러지고 속옷에까지 남자의 손길이 닿았다. 그리고 그 손길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살포시 주물러 댔다. ‘이거 재밌군. 오랜만에 회포나 풀어 볼까?’ 하지만 곧 피리아의 가슴에 댄 아크의 손에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여자도 흥분하면 코피를 흘리며 기절하는구만. 쩝.” 기절한 여자와의 관계는 혼자 하는 거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여자 쪽에서도 뭔가 반응이 와야 재밌지 인형잡고 하면 무슨 재민가? 특히나 시간(시체와 성행위를 가짐)등의 비이상적인 것이 연상되어 더더욱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뭐 오늘은 이 정상인 모드의 능욕 시 활용도 및 사용 시 여성의 호감도 증가 등의 효능을 점검해 봤으니 유사시에 잘 써먹어야 겠다. 공주여 기다리쇼!” 그랬다. 아크는 성격 전환술 정상인 모드를 여성과의 실전에 사용하기 이전 임상실험을 했던 것이다. 물론 도도한 공주가 쉬이 넘어오리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겠지만 공략 난이도가 높은 여자를 쓰러뜨릴수록 H씬(일명 헨타이. 일어로 변태, 야한 것 등을 가리킨다. H씬이라 하는 것은 일종의 성행위 장면이라 볼 수 있겠다)은 더욱 근사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 법이다. 아크는 다음에는 저택 안 메이드들에게 임상실험을 해 보기로 작정하며 작업실을 빠져나왔다. 교복에 걸레를 든 메이드가 코를 쥐었다. “으 냄새.” “저 사람이지?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왜 저럴까?” 후작가 저택 복도를 걷고 있는 에르디의 이마에는 메이드들의 수근거림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마에 실핏줄이 하나 씩 늘어났다. 그도 자신의 몸에 쩔은 냄새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대한 청결하게 살아오면서 그 냄새의 강도를 최대한 낮추어 근접거리, 아니 근접거리에서도 아주 미미할 정도로 낮추어 놓았다. 그런데 자기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저 딴 소리를 내뱉다니. 혹시 모르지만 배후에는 자신을 기사로 만들어 준 지략의 기사가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번 만큼은 결코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상관 능멸죄? 조금 걱정은 되지만 후작은 그런 것 따질 만큼 형식적인 인물은 아니다. 개겼을 때 두들겨 패는 건 봤어도 기타의 형벌을 내리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후작 집무실에 도착하자 문 밖을 지키던 메이드가 에르디에게 말했다. “후작각하 께서는 지금 작업 중이십니다.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기를 권장해 드립니다.” 사무적인 말투 후 그녀 역시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코를 막고 싶다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것을 본 에르디의 실핏줄 하나가 더 튀어나왔다. “들어가지 말라는 소립니까?” “후작각하 께서도 그런 것을 그다지 신경 쓰시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 동료는 부끄러워 할 테니까요. 그리고 외람된 말씀이지만 1층에 욕실이 있으니 좀 씻고 들어가는 것이…….” “됐수다. 주군 먼저 만나고 씻을 테니까.” 에르디는 퉁명스레 대꾸하고 후작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은 의자에 앉아 있는 후작의 위에 앉은 메이드 하나가 열심히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장면으로 책상에 가려지고 메이드 여성이 윗옷은 잘 챙겨 입은 상태라, 보이지는 않지만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그럼 광경이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메이드 여성은 환락을 느끼는 신음소리를 내며 에르디를 의식하지 않았고 지략의 기사 역시 조금도 놀라거나 쪽팔려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얌마. 에르디 작업중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 좀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냐?” “아, 앗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고 따질 거리가 많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할 상대가 생명 생성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말 할 수 있겠는가? 에르디는 문 밖 시녀의 말을 들을 걸 이라고 크게 후회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등뒤에서 생명 생성 작업 혹은 육수쇼 중인 에르디의 주군은 그를 불러 세웠다. “할 말 있으면 해라. 별로 실례 될 것은 없으니까. 보통 사람이었으면 엄청난 결례였겠지만 나니까 봐 준 줄 알아.” “가, 감사합니다. 주군.” 보통사람이었으면 정말 크게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함이 정상일 터인데……뭐 대충 얼버무려주고 넘어가는 그 관대함에 감탄을 해야 하나? 어쨌든 간에 보통의 군신관계였다면 바로 모가지일 상황에서 큰 문제를 삼지 않는 게 고맙지 않을 수는 없었다. “빨랑 말이나 해 임마.” “그, 그럼 말씀드리죠. 제 거처 옆 쓰레기장은 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온갖 쓰레기더미가 제 집 옆에 저도 모르게 쌓여 있다고요.” “그래? 그게 뭐?” 에르디는 아크가 신기할 나름이었다. 아무리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메이드 여성이 알아서 움직이는 자세라지만 한 번에 자신과 메이드 둘을 상대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나 주군께서 그리로 쓰레기장을 만들라고 명하셨습니까?” “얌마! 안 그래도 영지일 바빠서 생명 생성 작업 중에도 이렇게 일하는 판인데 사소한 집안일까지 언제 내가 신경쓰고 살아 임마! 그건 메이드 장인 샤트란한테 물어봐. 저택 뒤지다 보면 칼 든 메이드 하나 있는데 그 여자한테 연유를 물어보라고 알았냐? 그럼 나가봐라 슬슬 나올 것 같으니까.” 자세히 보니 진짜로 아크는 메이드가 위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서류를 읽고 있었다. 바쁘긴 바쁜가 본데…… 그냥 저 짓을 안 하면서 일 하면 더 능률이 오르지 않을라나? 하기사 저렇게 바쁜 아크가 쓰레기장 같은 사소한 문제에 신경을 쓸 리도 없다. 그렇다면 후작의 말대로 시녀장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 그, 그럼 실례 하겠습니다.” 에르디는 나름대로 납득하고서 후작의 집무실을 빠져 나왔다. 계속되는 육수쇼를 보고 있었더니 상당히 멋쩍다. 그리고 나서 저택 안을 샅샅히 뒤져나가는 에르디였다. 쿵쿵쿵. 유독 발소리도 더 컸다. 열 좀 받았다는 소리다. “저기 메이드 장이 어디 있는…….” “꺄아~!” 황당했다.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말을 걸자마자 도망가는가?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꺄아~!’라는 비명 뒤에 ‘냄새’라는 단어가 붙었기 때문이다. 부글부글부글 에르디의 머리에서 찌개가 끓었다. 그리고 그는 다짐했다. 자신을 이렇게 처량한 신세로 전락시킨 게 년이든 놈이든 아주 요절을 내 주겠다고. “무슨 일입니까?”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영주인 지략의 기사의 부하가 온몸에서 악취를 풍기면서 흡사 108번뇌를 다 짊어진 것 같은 인상이란 인상은 다 쓰고 들이닥치자. 메이드 장 샤트란은 허리에 차 둔 검의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상황상 좋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할말이 있소.” “뭡니……까?” 냉정하게 맞이하려던 에르디의 몸에서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역겨운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 덕에 그녀 역시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절로 코에 손이 갔다. 에르디는 그 나름대로 열 받았다. 아니 이 고약스러운 악취를 풍기게 만든 원흉이 누군데 코를 쥐어 막아? 소드 익스퍼트 급 검사에 마법도 4서클까지 쓴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자신에게는 최강의 필살기가 있었다. 실험은 안 해 보았지만 드래곤도 쉽게 이겨 내지 못할 최고의 최루탄이. 여차 해서 반성의 기미 따위가 없다면 죽음의 악취를 한 번 맛보여주고 그 뒤에 대화를 트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내 거처 옆 쓰레기장에 대해 묻고 싶소이다만?” “거처 옆 쓰레기장?” 샤트란은 뭔 소린가 하고 잠시 생각하다 한참 뒤에야 생각이 난 듯 엄지와 중지를 마찰시켜 소리를 냈다. “아하~저택 뒤편 구석진 그 판자집 말이로군요. 맞습니까?” “그렇소. 거기는 내가 영주님의 허락을 받아 살고 있었는데 그곳에 쓰레기를 투하한 게 누구인지 알고 싶소.” “접니다.” 너무 당당히 자기라고 밝히고 나오니 에르디는 잠깐 주춤했지만 곧 다시 무게를 잡았다. “누구 맘대로 거기다 쓰레기를 버렸소? 거긴 엄연히…….” “하도 냄새가 나길래 거기가 쓰레기장인 줄 알았습니다.” 에르디는 뜻밖의 일격에 할말을 다 까먹어 버렸다. 최근 카프레이 영지 발전의 일환으로 여기저기 동원되느라 바쁘게 지냈던 에르디는 저택 한 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외딴 건물에서 준비된 자신의 거처에서 쓰러지듯 잠들었다. 그러다 평소 이 건물에서 나는 악취를 맡아 오던 샤트란은 이곳에 에르디가 사는 것을 모르고 바로 버려야 할 쓰레기들을 쌓아 놓았으니……일어나서 무심결에 문을 열었다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쓰레기 더미에 파묻혔던 그가 화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문제는 쓰레기 더미 속 조난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에르디에게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맨날 고약스런 실험만 해 대니 메이드양들이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여하튼간 그곳은 제가 주군께 허락을 받아 최강의 악취 실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나는 냄새를 오해하셨다니 유감이로군요. 지금이라도 빨리 치워주십시오.” “싫다면요?” “예?” 의외의 답변이 튀어나왔기에 에르디는 폐에 헛바람이 들어갔다. “전 바쁩니다. 그리고 애초에 그쪽에서도 원인을 제공한 일이고 제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 또한 지금은 노예로 저를 묶어 둔 지략의 기사와 제 주군 뿐입니다.” 도덕적인 관념으로 봤을 때 당연히 치워 줘야 했지만 그녀로서는 자신이 이런 하녀로나 일하는 상황, 그것도 주군을 모욕하는 적국의 후작 밑에서 일하는 상황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영주의 최측근인 이 남자에게도 왠지 모르게 시비가 걸고 싶어지는 것이다. 거절의 의사를 들은 에르디는 드디어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지금 막가자는 거지요? 한 번 해보자 이겁니까? 좋은 말 할 때 치워주십시오.” “싫습니다. 본인께서 알아서 치우시지요. 현 지략의 기사 밑에서 일하는 것도 거의 억지로 일하고 있는데 아무리 제가 실수한 일이라지만 적국의 기사에게 호의를 베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몸을 돌리는 샤트란. 에르디는 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정 그렇다면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아줌씨!” “후후훗. 당신 따위가?” 에르디가 위협을 가했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소드 익스퍼트 급 검사에 4서클의 마법사인 자신에게 덤벼드는 에르디의 실력은 기껏해 봐야 수련 기사. 거기에 어깨에 느껴지는 손의 감촉 역시 검을 많이 쥐어 본 손이 아니었다. 흠씬 두들겨 패. 영주의 최측근 기사를 굴복시키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인인 그녀의 끓는 피는 이런 지루한 하녀 생활 따위에 잠재워질 것이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이런 기분. 그리고 그 꼴 뵈기 싫은 지략의 기사의 부하라면…….’ 샤트란은 다시 뒤로 돌아 에르디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심히 위압감 있는 강자의 눈빛에 에르디는 밀릴 뻔하기도 했지만 다시금 분노의 힘으로 그녀를 맞노려 보았다. “어이 뭣들해?” 그렇게 눈싸움이 지속되고 있을 때 주방에 영주인 지략의 기사가 걸어 내려왔다. 오전 내내 생명 생성 작업을 하더니만 이제야 좀 질리고 힘이 빠져 배가 고픈 모양이다. “아 주군.” “주방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샤트란과 에르디는 갑자기 나타난 아크를 보자, 눈싸움을 그치고 그를 맞이했다. “배고프다. 먹을 것 좀 내와봐라.” “훗 하루 종일 여자만 상대하셨으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샤트란의 말투는 겉으로는 공손해 보이지만 비꼬는 투가 역력했다. 하지만 아크는 그것을 잘 받아 넘겼다. “입과 양손 성기와 항문. 다섯 군데로 한 번에 다섯 명씩 상대하는 거에 비하면 덜 피곤하다네. 나중에는 자네한테도 정규 1:1의 즐거움을 보여 주도록 하지. 여러 명 상대도 좋지만 한 사람에게서 철저히 봉사를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네.” “큭!” 그녀에게는 엄청난 모욕이었다. 아크는 역시 웬만한 말로는 상대하기가 힘들다. “그나저나 에르디. 너 내 메이드랑 뭐 하고 있었냐? 눈빛 교환하는 게 아주 뜨겁던데. 혹시 눈 맞았냐?” “그것이…….” 에르디는 중재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상급자인 아크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그 말을 들은 아크가 당연히 자기편을 들어 줄 줄 알고 안심하던 에르디. 하지만……. “쨔샤! 그러니까. 내가 냄새 실험 엔간치 하랬잖아. 따지고 보니 네 녀석이 자초한 거로구만.” “아니 그래도! 그건 에드워드가 특별히 주문한 드래곤에게도 먹히는 악취 연구였단 말입니다. 어찌 됐건 이 여자한테도 과실이 있는 거잖아요!” “전 이 남자의 명령까지 받을 수 없습니다.” “뭐야? 누가 명령이래. 이 여자가 증말!” “냄새나니 가까이 좀 안 와주었으면 좋겠군.” “이게 누구 때문인데!” 티격태격하는 둘을 바라보던 아크는 뭔가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엄지와 중지를 퉁기면서 ‘딱’소리를 냈다. “흠 어이 둘 싸움 들 멈춰 봐.” “……?” “그렇게 싸우지 말고 서로 결투로서 결정을 내는 게 어때?” “에엣?” “뭐 어때 재미있겠잖아. 샤트란은 오랜만에 몸도 풀 수 있겠고 말야. 거기에 상품도 걸면 더 재밌겠군. 샤트란. 네가 이기면 너는 오늘 당장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지.” “정말입니까?” 대번에 눈빛이 반짝거리는 샤트란이었다. “물론. 다만 지면 에르디 녀석의 소원을 그대가 때울 수 있는 걸로 서너 가지 들어주기. 어때? 뭐 소원이래봐야. 쓰레기 치우는 거하고 저 녀석의 몇 년간 쌓인 욕구불만 정도나 해소해 주면 되겠지만. 어때? 실력도 월등하니 절대로 손해 볼 장사는 아니라고 본다.” “당연히 하겠습니다.” 아크의 갑작스런 엉뚱한 제안에 에르디는 뭔가가 불안해 주춤하긴 했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결투였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좋아. 그럼 저택 밖으로 집합이닷!” 중간에서 불똥이 튈 것 같은 에르디와 샤트란의 눈싸움을 바라보면서 아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영주 저택 내 넓직한 정원. 그곳에는 의자에 앉은 아크와 그 시종을 드는 메이드 소녀 그리고 서로 첨예하게 대치 중인 에르디와 샤트란이 있었다. “어째서 무기를 쓰지 않는 거지? 그러고 있으면 검을 든 내가 무안해지지 않나?” “내비두쇼. 그깟 검 없이도 아줌마 정도는 충분히 제압 가능하니까.” “자만인가? 자신인가?” “자신이지 내가 이길 수도 없는 싸움에 응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 좋소이다.” 사실 객관적인 실력으로는 당연히 에르디가 밀렸지만 그렇다고 그가 꼭 진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에게는 최강의 암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이 그만들 대화 나누고 떨어져. 경기 시작해야 할 것 아냐?” 아크는 메이드가 들고 있는 과일음료를 한 모금 마시고서는 말했다. “어떤 무기나 암수도 상관없다. 그저 상대방을 전투 불능 상태로만 만들면 된다. 단 죽이는 것은 안되고, 시간은 상대방을 쓰러뜨릴 때까지 무제한. 시합 개시!” 시합 개시 벨(사실 그런 것은 없고 그냥 아크가 외치자)이 울리자 마자 샤트란은 곧바로 에르디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검을 뽑음과 동시에 그를 공격했다. “흐앗!” 에르디의 경우 아무런 무기가 없었다. 아니 주무기를 가지고는 있으나 바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검의 끝부분이 에르디의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차했으면 베일 뻔했다. 에르디는 연속해서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 끝을 지그재그로 피해냈다. 하지만 너무 아슬아슬했다. 이미 팔 한 쪽에는 깊은 검상이 남았다. ‘이, 이런 틈이 없잖아?’ 안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낼 수만 있다면 승부는 즉각 종료가 난다. 하지만 이 메이드 아줌마는 그럴 틈 조차 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검 등의 무기를 쥐지 않았기에 피하기에는 용의했지만 에르디는 자신의 딸리는 실력을 통감해야 했다. ‘이것만 뿌리면!’ 에르디는 그녀의 검 공격에 대해 일단 거리를 벌리기 위해 등을 돌리고 달렸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져야만 그것을 쓸 수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하지만 샤트란 역시 여간 빠른 걸음이 아니었다. “……뭐야? 결투하라니까 술래잡기를 하고 앉았네?” 느긋이 관전 중이던 아크도 에르디가 상당히 고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약간은 낭패라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것을 미끼로 저 빠순이 여기사의 발을 좀 더 묶어 둘 계획 등이 있었는데 에르디가 지게 된다면 그 계획들이 모조리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에르디. 다행히도 샤트란은 아크가 지정해 준 뛰기 불편한 복장에 신발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에르디와의 격차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꺼내 뿌리기만 하면……!’ 에르디는 품 속에서 분무기를 꺼냈다. 항시 대기 중인 최강의 악취 액체였다. 그리고 나서 에르디는 몸을 돌려 틈과 동시에 딱 타이밍 알맞게 도착할 샤트란에게 이것을 부칠 계획이었다. 그러나 뒤돌아 본 곳에는 샤트란 대신 두 구의 불덩이가 날아들고 있었다. “으걋!” 에르디는 하나는 몸을 틀며, 또 하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면서 불덩이들을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바로 앞에서 폭발한 불덩이 덕에 시야는 완전히 흐려져 버렸다. 얼마 안 가 연기는 걷혔지만 에르디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 해야만 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에르디의 머리 위로 검이 휘둘러졌다. 급히 자세를 낮춘 덕에 살았지만 실전에 조금만 더 늦었으면 모가지가 날아갔을 것이다. 피했다고 안심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검은 곧바로 쭈그려 앉은 에르디에게 수직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몸을 굴렸다. 간신히 이번 것도 피할 수는 있었다. ‘제기랄 도무지 뿌릴 틈이 보이지를 않는군.’ 한 방이면, 딱 한 방이면 끝이다. 하지만 그 한 방을 날릴 틈 조차 허용하지를 않았다. 하지만 이러다간 정말 필패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기에 에르디는 별 수 없이 분무기를 꺼내어 여기 저기에 마구 뿌려대기 시작했다. “……!” 막 검을 들고 에르디를 찌르려던 샤트란은 갑작스레 생긴 주변의 악취에 그 즉시 몸을 뒤로 뺐다. 오래 맡았다가는 정신까지 혼미해 질 것 같은 정말 고약한 냄새였다. 그리고는 후방에서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악취 덕에 도저히 근접거리에서 싸울 수가 없었다. 검으로 싸울 때보다 승률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에르디 정도는 꺾을 자신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에르디는 자신이 필패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느꼈다. 분무기로 냄새공격을 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마법은 냄새를 맡지 못하니 무차별적으로 날아올 것이다. ‘던질 수 있는 화염병을 가져 올 것을…….’ 후회가 들긴 했지만 이미 늦었다. 단지 저 콧대 높은 메이드 아줌씨의 자존심을 꺾어 보려고 임했던 전투였으니 큰 후회는 들지 않았다. 다만 그놈의 쓰레기들은 어떻게 다 치우냐 하는 걱정이 들 뿐. 그 때였다. “얌마! 에르디! 분무기 꼭지를 느슨하게 풀어! 빨랑!” 아크가 소리쳤다. 에르디는 영문을 모른 채 아크의 호통에 눌려 분무기의 꼭지 부분을 느슨하게 풀어두었다. “방아쇠를 당겨라!” 에르디는 아크의 말 마따라 분무기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분무기는 수많은 물방을 입자를 뿌리던 안의 액체를 일직선으로 길게 뿜어댔다. “……!” 항상 여러 물방울화 되어 퍼지게 나가던 액체가 상당한 거리까지 나가다니……몰랐던 기능을 알게 된 에르디는 캐스팅 중인 샤트란의 근접거리로 접근해 들어갔다. 사정거리가 대폭 상승한 분무기를 들고서. 찌익! 죽음의 액체가 일직선을 타고 샤트란의 앞에 뿌려졌다. 피했기에 직접 맞거나 하진 않았지만 냄새가 퍼지는 반경에는 충분히 들었다. “큭……! 이, 이건 무슨.” 샤트란은 냄새도 냄새지만 그 고약한 향에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캐스팅이 취소된 마법들이 마나가 흩어지면서 공중분해 되고 그녀는 마비되어 가는 손에서 검을 떨구었다. 그리고는 서서히 몸체를 바닥에 눕혔다. 에르디의 승리였다. 딱! “잘했어! 에르디.” 아크는 옷이 여기저기 찢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에르디를 치료해 주었다. 잠시 밀리긴 했지만 짐작대로 녀석은 자기보다 강한 강자를 충분히 누를 수 있었다. 그런 녀석을 보니 한 때 레슬링 기술로 처절하게 자기보다 더 강한 강자들을 꺾었던 기억들이 새삼 떠올랐다. “어이 그런데 그건 무슨 액체냐? 보통 맡으면 구역질 등을 동반하며 그냥 뻗어버리지 않았냐?” “하아, 하아 계속적인 연구와 기술 개발의 결과로 마취 효과 동반 하는 걸 하나 만들었수다. 주군.” “호오? 그래. 그럼 최음향 효과가 나는 것도 만들 수 있겠냐?” 왜 여태 그 소리 안 나오나 했다. 라고 생각하며 에르디는 대답했다. “뭐 만들어 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할 것 같기는 합니다. 일반 시중에 나오는 효력 약한 가짜 최음향을 써서 실험을 해 봤는데 효력이 강할 듯 하더군요. 완성단계인데 임상실험이 필요합니다.” 아크는 쓰러진 샤트란을 내려보며 말했다. “이 여자 가져다 써. 이럴 줄 알고 일부러 네 녀석하고 싸움을 붙였지. 네 녀석도 욕구가 제법 쌓인 것 같은데 실컷 안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예에? 아 그, 그게.” 에르디는 시집와서 방귀 뀐 새색시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뭐 어때. 임마 충실한 기사에게 영주가 미인을 하사하는데. 사실 내가 한 번 맛 좀 볼까 했는데 워낙 날 싫어하더라고. 알아서 데리고 살아. 그리고 네 녀석한테 의뢰할 것이 있다.” “뭡니까?” “실은 이전부터 네 녀석에게 최음향을 만들라고 하고는 싶었느데 네 녀석이 대충 괜찮은 것을 만들어 놨다니 됐다. 성 산업의 메카라 하면 필요한 것 중 하나니까. 그렇지만 인간과 드래곤의 차이가 엄연히 있는 법.” “……?” 아크는 안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러면서 아크는 꺼낸 자그마한 주머니에서 작은 알약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서는 한 개는 에르디에게 던졌다. 그것을 잡은 에르디가 물었다. “이건 뭡니까?” “드래곤이 만든 극상의 최음약이다.” “예에?” 에르디는 경악했다. 아니 드래곤이 만든 극상의 최음약이라니 그런 게 실제한단 말인가? “그런 게 있어 임마. 드래곤들이 인간류의 생물로 변해서 유희를 즐길 대 쓰는 거라고 하더군. 효능은 네가 새로이 개발했다는 최음향보다 수십배는 좋은 거다. 그 성분을 연구해서 적어도 그것에 버금가는 약을 만들어 봐라. 성공만 한다면 정말 큰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거야.” 에르디는 아크가 준 아크로니아 표 최음약을 유심히 살폈다. 만약 진짜라면 그리고 이 약을 정말로 대량 생산하게 된다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살빛의 향연에 맞먹을 것이다. “열심히 해 보도록. 그리고 임마 분무기 사용법을 제대로 익혀 놔라 자식아. 애초부터 머릴 쐈으면 별 것 없이 이길 수 있었잖아?” “진작에 알려 주셨어야지요. 이걸 선물 받은지가 언젠데 그걸 지금 얘기 하십니까?” “그 정도는 알아서 알아내야지. 최대한 빠르게 연구해서 성과를 보고하도록 해라. 인쇄 산업 외에도 제약 산업도 큰 도움이 되니까. 그럼.” 음약 하나가 무진장 아깝기는 했지만 아크는 에르디의 재능을 믿고 있었다. 저 녀석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저 약에 버금가는 효능의 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후우 다 됐다.” 소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옷자락으로 훔쳤다. 웬만해서는 땀 훔칠 일이 별로 없는 그도 이토록 많은 마나를 사용하는 것은 어지간히 힘들었다. 그는 자신이 완성시킨 통역 스피커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흐 이런 일도 보람이 느껴지기는 하는 구만. 재미는 있어.” 이제 남은 것은 실험. 소년은 이 일을 시킨 동료가 실험 때 쓰라고 준 빛에 반짝이는 구멍 둘린 원형의 거울을 동료가 이전에 설명해 준 대로 돌렸다. 곧 화면에는 무언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이건…….” 소년은 크게 놀랐다. 어떻게 이런 것이 실제할 수가 있는 거지? 처음에는 놀라움에 화면만을 보았다. 하지만 소년의 역작인 통역 마법 스피커를 통하여 내용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소년의 눈동자는 점점 더 화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뭐? 에드워드가 행방 불명이라고?” “그렇습니다. 각하. 주로 가시는 곳과 거처 등 여러 군데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데도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디 가셨나 하여 기다려 보았으나 벌써 이틀 째 돌아오시지 않고 계십니다.” “……알았다. 나가 보고 찾는 데 총력을 기울여라.” 아크는 그답지 않게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현 개발에 가장 필요한 존재인 쥬레이나란이 사라져 버리다니 이건 보통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온도 조절 마법장. 둑 재구축, 통역 마법 스피커 등의 당장 시급한 것은 어떻게든 해결을 해 주었고 살빛의 향연 등의 인쇄업은 피리아가, 신약 개발은 에르디가 담당해 주고 있어 큰 타격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산재한 문제들과 아크의 드래곤 공략 계획등을 따져 보았을 때 쥬레이나란의 실종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녀석……내가 원수를 갚아 주지 않아서 실망을 한 건가?’ 드래곤. 비록 어리긴 하지만 드래곤씩이나 되는 녀석을 누가 쉬이 납치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납치가 나은 것이, 만약 자의로 모습을 감춘 것이라면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외양만 바꿔서 튄 것이라면 영지 내를 샅샅이 뒤져봐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혹시……팬크라프트에서 데려 간 것은 아닐까?’ 쥬레이나란 녀석은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 세비어 프레슬더와 접촉한 경력이 있었다. 거기에 대연회에도 참가한 8서클 대마법사의 소문이 팬크라프트까지 안 퍼졌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렇다 봤을 때 녀석은 소드 마스터도 기사의 수도 월등한 팬크라프트가 훨씬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계산하에 떠나버린 건지도 모른다. “멍청한 녀석!” 아크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려다 그만두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박살날 우려가 있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아크가 조금 꾸물대고 시간을 끌면서 이용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그에게는 쥬레이나란의 염원을 이루어 줄 넓은 인맥이 있었다. 정보를 제공해 줄 레드 일족의 수장과 발 벗고 나서 줄 사부가 있었다. 팬크라프트에 많은 기사들이 있다고는 하나 그들이 모두 동원된다 해도 에인션트 드래곤을 잡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잡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팬크라프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턱대고 기사들을 잃는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결국 쥬레이나란은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거나, 큰 쓸모가 없어졌을 경우 불순한 씨앗을 미리 제거해 두려는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들에게 긴 세월 동안의 감금이나 살해를 당할 수도 잇었다. “제길!” 아크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혹시 쥬레이나란이 아직 영지 내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드래곤의 기운을 포확해 낼 자신은 없지만 아크 자신도 정령사이기에 정령의 기운만큼은 포착해 낼 수 있었다. 아직 영지 내에 있기만 한다면 반드시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아크는 쥬레이나란을 찾아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한 걱정이 괜한 것이었음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 영주님.” 한 병사가 아크를 보자. 예를 갖췄다. “그래 에드워드는 찾았나?” “그게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그럴 수밖에.” “예?” “아닐세. 수고해 주게.” 이제는 열심히 찾아다니는 병사들과 루스벨트가 불쌍해 질 정도였다. 아크는 한 부근에서 원형으로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인파 속으로 끼어들었다. 그 안에서는 한 남자의 차력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근육질에 앙증스러운 초승달 형 앞머리 한 가닥을 남긴 대머리. 좌우가 멋스럽게 치켜 올라간 금발 수염의 차력사. 그의 양손에는 괴상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너클이 채워져 있었으며 청색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스러운 사내였다. 그가 돌벽을 주먹으로 가격하자 돌벽은 그대로 무너졌다. 그런데 무너질 때 생긴 여러 파편들은 빛을 뿜으며 우스꽝스런 석상으로 변했다. “우와!” 곳곳에서 탄성과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러자 차력사는 웃옷을 벗어젖히며 근육질의 몸을 과시했다. 어디 하나 근육이 아닌 데가 없는 그의 몸은 거의 하나의 흉기였지만 그것보다 더 시선을 끄는 것은 남자의 몸에서 나는 반짝이 빛이었다. “미치겠구만.” 아크는 너무나도 완벽한 그 모습에 미간을 지압했다. 보고 재미있어할 줄은 예상했지만 저 난리를 피울 줄은 미처 그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자의로 모습을 감추거나 팬크라프트에 간 것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 됐든 쥬레이나란은 다른 이들은 몰라도 피리아나 아크만큼은 쉽게 찾아 낼 수 있는 모습으로 영지 내에 있었다. 차력쇼가 끝나고 사람들이 해산할 즈음 아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키가 너무 커서 위압감이 느껴진다. “이보쇼. 쥬레이나란 군. 이만 돌아가시지?” “음? 본좌는 알렉…….” “알아. 아니까. 코스프레 좀 엔간치 하고 도로 강철로 변해. 알았냐? 꼬마 헤츨링한테는 그에 걸맞는 어린이 코스프레가 어울리는 거야.” “애초에 시킨 게 누군데 이러시나?” 쥬레이나란도 오랫동안 그 모습으로 있을 생각은 없었는지 사람들이 없어지자, 곧 다른 모습으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 모습 역시 에드워드의 모습은 아니었다. 방금 전과 같은 청색의 군복에는 화려한 문양이 훨씬 많았으며 짙은 흑발에 흰 피부를 지닌 미청년이었는데 그는 양쪽 주머니에서 마법진이 그려진 흰 장갑을 꺼내어 착용했다. “……그 장갑 좀 만들어 달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자동이어서 좋네. 근데 왜 그 애니 인물로만 변신하는 거냐?” “그것 밖에는 안 봤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 “돌겠군……. 네 녀석이 뭐라 변하든 상관할 바는 아니다만 기왕지사 맨 처음 계약할 때 내가 변하라고 지정해 둔 원형 이외에는 다른 걸로 변하는 것은 삼가 해 주길 바란다. 뭐 여성 캐릭터들이라면 봐주겠지만 말야.” “난 이게 더 마음에 드는데……뭐 알았다. 그나저나 이렇게 그림 속의 인물이 되어 보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군. 이런 거 몇 개나 더 있냐? 좀 더 보여 줘 봐.” 아크는 자신이 또 다른 오타쿠 드래곤을 탄생시켰다는 것에 탄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성 캐릭터들이 뜨는 애니를 보여 주며 코스튬 플레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이 녀석을 여자 캐릭터화 시키려는 계략을 잊지 않았다. 카프레이 영지 성 산업 메카화 3개월 째. 종교적 관념과 관습법 덕에 전면 실행이 불가능했던 누드 마을 정책은 누드 에이프런 마을로 이름만 바꿔 카프레이 영지 내의 인구 300의 작은 시골 마을 밀러에서 실행되었다. 온도 조절 마법진의 가동으로 추운 겨울에도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신기함과 영주 아크가 자비를 털어 대량 구매한 여성 노예들 덕에 밀러 마을의 입장수익은 서민들도 가끔은 기분으로 무리할 수 있는 1골드 선의 저렴한 가격으로 해서 매일 천 골드 이상이었다. 먹고살기도 바빠서 관광업에 대한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대였지만 카프레이라는 교통의 요지에 입지한 영지에는 항상 여행이나 상업 등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고 그들의 주머니를 주공략 한 것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둔 것이다.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2030년도의 신 기술력으로 만든 초대형 브라운관에서는 쥬레이나란이 죽어라 연구해 달아 놓은 통역 스피커에 의한 지구의 문물들이 오픈 베타로 무료 서비스되고 있었다. 조만간 유료화 예정으로 가격은 누드 마을 입장료과 같은 1골드 선에서 정했다. 그러면서도 아크는 비밀리에 입소문을 듣고 가끔씩 찾아오는 귀족들이나 평민 상류계층들을 위한 라이브 쇼에 쓸 출연자들을 비밀리에 양성시키고 있었다. 어쨌거나 위의 일련의 정책들은 당장의 경기부양 목적과 동시에 산업과 경제가 크게 발달할 후세에까지 맞춰 둔 정책으로 큰 돈은 되지 않는 사업이었다. 주력은 바로 인쇄(?)와 제약(?)업종 약 개발은 현재로서는 불투명했지만 인쇄 산업 ‘살빛의 향연’만큼은 그야 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수요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부르몬 상단에 공급한 총 공급량은 180부 처음 공급한 20부가 1200이라는 웬만한 보석 하나에 맞먹는 가격에 팔렸고 그 이후의 주문에는 1500이라는 상당한 가격에 판매해도 팔리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180부가 다 나가자 아크는 더 이상 남은 20부를 다 풀지 않고 암시장에 은근히 한 권 씩을 공급했다. 그러자 다 매진 된 줄 알았던 이들은 3~4000이 넘는 고가에도 구매를 서둘러 최고 8000골드까지 받고 팔 수 있었다. 그렇게 살빛의 향연1 초판 200부는 무려 20만 골드 가까이 되는 경이적인 수익을 남겨 주었다. 밀러 마을이 하루 천 명씩 200일 동안 관광객을 받아야 얻을 수 있는 엄청난 수익이었다. 본디 서적류가 불티나게 팔려 품절되면 재판을 어느 정도 찍는 것이 정상이지만 아크는 그리 하지 않았다. 대신 암시장에 풀었던 20부를 다 팔자 마자. ‘살빛의 향연 2호’의 제작을 공식발표하고 인쇄작업에 돌입했다. 1호 구매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수집욕구를 불러일으키고 비 구매자들에게도 위안을 주며, 절판된 것들에 대한 프리미엄을 붙여 몰래 한 권 한 권 찍은 것을 초 고가에 팔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렇지만 재판을 아예 찍지 않으려는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 제국 내에서 유명하게 되면 재판에 들어가 수출용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가격은 웬만한 A급 노예 한 명에 맞먹는 가격이긴 했지만 제국에는 의외로 돈이 썩어 나는 놈들이 아주 많았다. 일정 분기점까지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만 날 것이다. 그에 비례해 가격은 자꾸만 비싸질 것이고 수익도 엄청나게 증가할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 다만 상품 자체가 소모품이 아니다 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비싼 값으로 오르는 것만큼은 적절히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시장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변수에 적절한 대처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어찌 되었건 또 다른 대형 그것도 칼라 인쇄. 또한 사진과 카메라 따위가 발명되지 않는 이상 독점과 그에 따른 폭리는 계속될 것이다. “역시 이계인이란 건가?” 역사 상 현재 셋이라고 알려진 이계인들은 이곳에서 너무도 큰 활약상을 보였다. 무신은 말할 것도 없고 루드비안의 칸딘스키 공작은 과학, 군사적 문물을. 그리고 지략의 기사 또한 전쟁 등에서 큰 활약을 펼침과 동시에 최근에는 이계의 신문물을 내놓아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루드비안의 황궁 내 공주의 주거지인 백악궁. 열린 창문을 통해 달빛이 은은히 비추는 곳에는 원피스형의 잠옷만을 입고 눈이라도 쌓인 듯한 하얗고 매끈한 다리를 아무렇게나 달빛에 노출시킨 채 술잔에서 요동치는 백색의 포도주를 마시며 응접용 탁자 위에 놓인 책을 주시하는 세레스티나 공주가 있었다. ‘살빛의 향연’ 그녀가 보고 있는 책은 현재 돈 좀 있다 하는 제국의 부호들 사이 명성이 자자한 지략의 기사가 발행인으로 있는 카프레이 영지 산 사진집이었다. “그대를 얻어야 할 명분이 또 하나 늘었군요. 지략의 기사.”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사내들이 환장하는 이유가 짐작이 갔다. “흥. 벗은 모습 보여 주는 게 뭐가 그리 좋다고 이 따위 표정들인지.” 공주는 사진 속 그녀들에게 경멸의 눈빛을 지어 보였다. 옷을 벗고 굳은 곳을 보이고 있는 주제에 여인들은 하나같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결혼과 남자를 완전히 멀리 하기로 한 공주에게는 그런 모습이 한심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20만 이라고 했던가? 총 수입이…….” 그녀 개인적인 뒷조사로 알게 된 수익은 무려 20만 골드. 그 추세대로라면 수출 등이 제대로 되기만 한다면 수배는 더 늘 수도 있었다. 원가가 얼마나 드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국 최고 상단 JBL상회를 적으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 정도 수익이라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바레인 녀석의 탐욕스런 낯짝을 짓밟아 줄 수도 있었다. “무섭군. 절대 적으로 놔 둘 수는 없는 상대야. 하지만 너무 콧대 높은 미인이라 자신이 없어지는걸.” 처음 영지에서 40명이 넘는 하녀들을 탐하고 영지 내 마을 한 곳을 누드화 시키고 여자 노예들을 대량 구매 해 가는 등 주지육림에 빠졌다는 보고는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귀족 가문의 영애를 국적도 없는 떠돌이 신분에서 탐했다는 일화와 여성관계에 대해서는 별 다른 서술이 없었던 지략의 기사 전설에 영웅은 역시 색을 밝히는 군. 했던 것이 최근 그 성적인 면을 최대한 이용해 큰돈을 벌고 있다는 보고에 공주는 더욱 지략의 기사에 대해 놀랐다. “하지만……그럴수록 얻었을 때의 쾌감은 더욱 큰 법이지.” 순진 스런 얼굴에 걸맞지 않게 눈빛만큼은 마치 한 마리의 매를 보는 듯 매우 날카로웠다. 똑똑똑똑 4회의 노크. 거기에 궁 안에서도 아는 이가 극소수인 이 방을 알고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면……아마도. “들어와.” “들어가겠습니다.” 곧 한 명의 하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녀는 공주가 매끄러운 다리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원래의 임무가 아닌 본연의 의무를 수행했다. “공주님! 아무리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계신다지만 의관은 좀 제대로 갖추셔야 할 것 아닙니까!” 자신을 꾸짖는 하녀에게 공주는 우습다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네가 진짜 하녀냐?” 그제 서야 하녀도 실수하고야 말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마마 하지만 하녀일과 병행하다보니 몸에 배는 것을 어떡해요?” “뭐 알았으니 이번에는 또 무슨 일 인지나 말해 봐.” “노란 돼지가 미끼를 아주 잘 물어 삼켰습니다.” “호홋. 노란 돼지 녀석 예상대로군.” “뭐 노란 돼지가 아니었더라도 엘레노어 백작의 영애는 어린아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이들이라면 모두들 한 번씩 품어1보고 싶어할 만한 경국지색의 미녀니까요. 앞으로 자라서 성숙해진다면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가 될 것 같습니다만. 노란 돼지 같은 아동취향자는 가만히 앉아서 자라는 꼴을 볼 수 없었겠지요. 백작과 노란 돼지 둘 다 달콤한 꿈에 빠져 있으니 잘 될 거라고 봅니다.” “나보다 더?” “공주님이 훨씬 아름답다라고 했다간 아부하냐고 문책하실 테고, 영애가 훨씬 아름답다고라고 했다가는 그깟 귀족의 딸이 더 예쁘냐고 따지실 테죠. 대답 보류합니다.” “영악해졌구나?” “공주님 덕분에.” 이제는 말대꾸까지 자연스러운 하녀를 보며 공주는 하녀를 너무 풀어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삭막한 궁 안에서 유일하게 말을 놓고 지낼 수 있는 존재인 이 하녀에게 굳이 위압감 있는 군주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의 진척도는 어느 정도?” “노란 돼지 쪽은 완벽합니다. 엘레노어 백작이야. 노란 돼지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요.” “좋아 그럼 남은 건 다음 대연회 때 지략의 기사 쪽 반응이로군. 약혼녀를 빼앗기고서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해지는 걸?” 요염스런 미소를 짓는 공주의 눈빛은 창문 너머 카프레이 영지가 있는 쪽 방향인 남서쪽으로 향해 있었다. “지략의 기사……당신은 내게 참된 군주의 상을 원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해요. 하지만 그런 것 외에도 당신을 잡는 것 정도는 쉽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죠. 후후훗.” 정말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공주. 하지만 노력이 가상하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하자. 아하하하하하...... 조기종결의 꿈! 크크크크 아무래도 조기종결나게 생겼습니다. 9권 예상인데 아무래도 7,8권 정도로 줄여야 겠군요. 원래대로라면 3권 출간 후 결정이 나는 것인데 우습게도 5권이 출간될 즈음에 와서야 결단이 났구만요. 6권에서 끝내라는 것을...벌려논 스토리가 있는데 그렇게 끝낼 수가 없지요. 암...간신히 8권까지라고 우기긴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판매량이 감소추세라면 7권에서 끝맺어야 될 듯 합니다. 여러분! 제가 구걸하겠습니다. 4권 5권 한권씩만 사서 읽어주세요!!!!!!!!!! ......라고는 해봤자...죠(암울... 인터넷 독자들의 대부분이 출판량에는 걸림돌이 된다고 합디다. 불펌에 책도 잘 안 빌려다보고...) 스토리를 줄이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될 듯 싶습니다. 일단 써 놓은 것은 그대로 올리겠지만 부분부분 자를 것은 다 잘라야겠군요. 흠......어쨌거나 출간량이 줄기는 했지만 그렇게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모의고사를 개판으로 쳐 놔서리...공부해야 겠다는 자각이 확 들더군요. 공부 공부 공부...짜증나 돌아가시겠습니다. 아무래도 집안 성화나 대학 기대치를 감안해 보았을 때 고 3 때는 정말 틈틈이 쓰는 치한소 외에는 모든 글을 접어야 되는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서 걱정됩니다. 그 대안으로 눈을 돌린 것이 수시 및 특별전형이죠. 11월 13일 부터 신인 문학인들의 꽃이라 불리는 메이저 급 신문사 신춘문예!!! 등단만 된다면 그저 수도권에서 알아주는 문학계열 학교와 학과에 진학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신춘문예. 거 무진장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사법고시보다도 더 어렵다는 군요. 사법고시야 공부만 해서 구겨넣은 지식으로 보는 거라지만 이것은 문학적인 재능이 없다면 애초에 안 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 역시도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스토리는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스토리를 가지고는 있지만 표현력 구성력 문장력 등이 전체적으로 딸립니다. 삼다(다독 다작 다상량)은 어느 정도 많이 했다고는 자부하나, 바로 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바로 도둑놈이지요. 어쨌거나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한 번 공모해 보려고는 합니다. 되면 좋겠지만 제 수준 가지고는 택도 없겠죠. 다만 언젠가는 기필코 문학계에 등단해서 쓰레기라고 분류되는 판타지 장르 글이나 쓴다고 무시해 준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해 줄 겁니다. 푸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출판본에서는 짤릴 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계속하겠습니다. “그러니까 함부로 힘쓰지 말랬잖암마.” [그러게 말이다. 어찌나 만화 같은 일이길래 무슨 용자물 촬영하나 싶어서 한 번 깝쳐봤더니 이리 시달리고 있다. 오늘도 녹색 타이즈 마초놈하고 코스프레 마니아 계집년이 찾아와서 가입하라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가더라.] 아크라우스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아크는 왠지 모르게 아크라우스가 애니 등에 미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말이 너무나도 진실해서 차마 씹고 넘겨버리지를 못했다. “그나저나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만든다는 것은 잘 되어가냐?” [후 뛰어난 이 몸의 두뇌로 못 할게 무엇이겠느냐? 기술력에서는 은룡그룹이 단연 세계 톱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곧 국방부에 시범 공급 될 예정이다.] “그래 잘났다.” 아크라우스도 지구에서는 상당히 잘 나가고 있었다. 마나 연료를 고체화한 새로운 대안 에너지를 발견하고 마법을 통한 수질 정화 및 환경오염도가 떨어지는 제품들. 거기에 키메라와 고렘 이론에 충실히 한 결과의 부산물인 직립보행 인간형 로봇과 각종 병의 치료제, 가상 현실 시뮬레이션 개척 등으로 아크라우스의 SD(실버 드래곤)은 이미 MS(마이크로 소프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실제로 보지는 못하지만 어찌 됐든 아크라우스가 그렇게 말하는 내용들을 듣다 보니 아크는 지금 자신이 벌려 놓은 일들에 생각이 미쳤다. 살빛의 향연이야 완전 초대박이고 방송 서비스 따위등은 어느 정도 일정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 뿐. 현 개발 중인 음약은 잘 될 것으로 믿고는 있지만 개발 전이니 뭐라고 말 할 수도 없고 기타로는 누드 에이프런화 된 밀러 마을. 뿐이다. 이러고 있는데 현재 세계 정세가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긴다면 그것들로 일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을지 약간은 의문스러웠다. “흠…….” 성 산업의 메카화 물건들 외에도 뭔가 다른 상품을 고민 중이던 아크의 머릿속에 아크라우스의 조언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담배는 어떠냐?} “담배?” [그래 그 족 세계에서는 아직 담배의 제조법 따위를 모르고 있다. 그저 담배란 식물을 약용으로 소량 재배하고 있지. 마약보다는 부작용이 조금 덜 심하고 중독성은 심한 기호식품이니 유사시 지구의 아편 전쟁처럼 무기화 할 수도 있겠기에 가르쳐 주는 것이다.] “나쁘진 않겠군. 하지만 그런 안 좋은 물건까지 퍼뜨려 가면서 돈 벌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아. 뭐 일단 조언은 고맙게 듣도록 하지.” 폐인 클래스의 아크가 유일하게 익히지 못한 스킬이라면 바로 담배 피우기 가 있었다. 폐인이라지만 일명 PC방 폐인이 아닌 학생 폐인으로서 주로 집안에 처박혀 살아 온 데다가 나름대로 모범생(?)이라고 자부하던 아크는 고교 시절 담배 피우다가 마타 선생한테 걸려서 혹독한 형벌을 받던 소위 노는 애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호기심에 빨아 본 경험이야 있었다. 집과 학교 외에는 외출이래봐야 이 근방 책 대여점이 다였던 아크는 어느 날 대여점에 책 빌리러 가던 중. 새 것 같은 담배갑이 버려져 있는 것을, 먹자의 본능으로 주웠고 마침 담배갑에는 한 개피의 담배가 남아 있었다. 그다지 피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왕 하나 주은 거 버리기는 아까워서 피워는 보았는데 그 독한 연기에 질려버렸고 그 이후로 다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거기에 아크라우스가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담배 제조는 이미 러시아에서 건너 온 칸딘스키 공작이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칸딘스키 공작의 맹약의 증표는 불의의 사고로 이미 파괴되어 버린 터라. 그쪽의 사정에 무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복권은 어떠냐?] “복권? 호오?” 복권은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 같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실행하려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그저 괜찮겠다 싶으면 무조건 실행하려고 했던 석 달 전과는 달리 영지를 몇 개월 정도 경영하다 보니 무턱대로 아무 정책이나 실행하기보다는 시장 파악 및 파급 효과등을 미리 연구하고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던 아크로서는 조금은 태도가 조심스러워 진 것이 사실이었다. “흠 나쁘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그걸 하려면 기반 산업들이 제법 갖추어 져야 할 것 같다. 영지 내에서만 실행할 것도 아니고 복권 산업으로 돈을 만질라면 제국 전체를 상대해야 할 것 같은데 당첨 사실을 알릴 수 있는 것이라거나 하는 것들이 없다고. 충분히 고려는 해 보겠지만 안 그래도 배고픈 서민들의 주머니를 턴다는 것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투정을 하지 마라. 내가 보기에는 인쇄와 제약 이 두 가지만 어떻게 파고들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은 벌 수 있으리라고 본다. 거기다 내가 보내준 지구 문물들만 어떻게 강철의 연금술사와 연구해 보아도 100년 안에 거의 엇비슷한 가전제품들을 생산해 낼 수 있고,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 역시 상당히 발전해 있으니 송전시스템만 잘 구축한다면 지구 못지 않은 전기 문명 시대를 이룩할 수 있다. 석유 같은 게 없다는 게 문제긴 하겠지만 그쪽에서는 마나를 연료화하는 기술이 있고 정령을 통한 발전 등도 가능하니까.] “골머리 땡긴다. 일단은 성 산업의 메카화로 돈 좀 많이 벌어두고 난 다음에 생각해야겠어.” [돈 벌면 뭐 할건데?] “일단 꽤나 유능한 대가리들을 섭외해야지. 지구 문명 등을 가르칠 학교나 하나 세워 볼 까 한다. 거기서 나온 인재들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이 세상을 진화시키는 거야.” [재밌냐? 네놈은 무조건 재미로 살잖아?] “어느 정도는. 좀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는데. 나중을 위해서 이 정도 투자쯤이야.” [크악! 또 왔다. 이런 미친! 걍 콱 다 죽여버리고 끝내버려?] “죽이지는 말고. 잘 해봐라 새꺄. 크크크 그래서 그 지랄 할 때부터 알아봤다.” 저 난리를 피우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도저히 믿기지는 않는다. 아크라우스더러 몬스터들의 침공에서부터 인류를 지키라니. 배때기만 아파오는 일이다. 아크는 영지의 중심지가 보이는 4층의 방에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중심지의 시장들은 사람들이 오가며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사람은 있었으나 저토록 밝고 활기찬 모습은 없었다. 저렇게 된 것이 자기 탓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크는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영지 관리도 재미는 있군. 뭔가 색다른 일이 하나 씩 터져 준다면 더더욱 재미있겠는데 말야.” 중앙 정계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지만 영지를 하루 종일 지키고 있는 것도 가히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진정한 육림을 맛보고는 있지만 그것 외에 뭔가 자극을 줄 만한 것이 필요했다. “조만간 드래곤이나 잡으러 가보든지 어디로 여행을 떠나든지 해야겠군. 이거 이리 좀이 쑤셔서야 원.” “각하. 루스벨트 집사님께서 오셨습니다.” 문 앞에 세워 둔 메이드의 방문신고. 루스벨트의 원래 직함은 영주 바로 밑의 행정가였지만 저택 안에서 생활하는 만큼 집사일까지 겸하고 있었다. “들어오게.” “예 각하.” 귀족 접대 예절이 몸에 완전히 배어서인지 루스벨트는 영주인 아크보다 더욱 품위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인가?” “몇 가지 서신들이 도착했습니다. 읽어보시지요.” 아크는 루스벨트가 전달해 준 몇 장의 편지들을 하나 씩 읽어보았다. “호오? 벌써 대연회 기간이 가까워져 왔네?” 첫 번째 서신은 귀족들을 초청하는 대연회 초청회였다. 아직 한 달 반 가량 남은 신년절임에도 이렇게 미리 미리 서신이 도착하는 것은 제국이 워낙 넓고 귀부인이란 작자들이 워낙 준비할 것들이 많다보니 시간이 제법 걸리기 때문이었다. 서신에는 대연회 때 열릴 장남 제펠 왕자와 둘째 딸 메리사 공주의 배필감을 찾는 왕궁무도회 등의 개최도 적혀 있었다. “흠 이번에는 또 무슨 퍼포먼스로 난장판을 쳐줄까? JBL이 최고이긴 한데. 리무진이 없으니 별 수 없겠고.” 대연회가 다가온다고 하니 대번에 아크의 머릿속에는 여러 레슬링 선수들의 등장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존 브레드쇼 레이필드 공작과 무진장 닮은 모 레슬러가 생각이 났지만 준비물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지구에서의 시간은 여기보다 약간은 느린 감이 있지만 대체로 비슷했다. 아크가 여기서 지낸 시간이 약 30여 년 가량인데 지구에서 지난 시간은 약 29년 가량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29년 동안 어떤 레슬러가 새로이 나왔는지 알 턱이 없는 아크로서는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몇몇 레슬러들의 퍼포먼스만을 기획하고 있었다. 두 번째 서신을 펼쳐본 아크. 그레드릭 대공이 보낸 것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쥬레이나란에게 전하는 말도 들어 있었다.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긴 했지만 별 다를 것 없는 안부편지였다. 찍 세 번째 서신은 엘레나 라는 여자에게서 온 서신이었다. “엘레나?” 뭔가 싶어 뜯어 본 아크는 글의 첫머리를 읽고 웃음을 터뜨렸다. 약혼녀가 쓴 글을 읽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엘레나는 유카나가 자주 가명으로 사용하는 이름으로 저택의 하녀라고 했다. 백작의 감시가 하도 심해서 별 수가 없다는 내용과 어린아이 스러운 사랑 고백 문장에 아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유카나의 편지를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둔 아크는 마지막 편지를 꺼내 보았다. “엥?” 전혀 알 수 없는 수신자. 레든레트 하르마니아? 사실 아크가 세상사에 무지해서 그렇지 이 이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도 편지가 워낙 금박에 치장이 잘 되어 있어서 아크도 대략 제법 하는 인물에게서 왔구나 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친애하는 아크 경에게로 시작된 편지는 워낙 어쩌고저쩌고 별 걸로 다 치장되어 있었지만 대략 요약해서 언제 한 번 만나보세. 란 결말로 귀결되어 있었다. “……내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모양이군. 별 데에서 다 섭외신청이 오고. 별로 가고 싶지는 않으니 패스.” 아크는 편지를 그대로 쓰레기통에다 던져버렸다. 송신인의 신원을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는 못할 편지였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아크가 그 사람의 신원을 알고 무심코 편지에 대해 언급했을 때 그는 무심코 한 지금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한다. “날 부른 이유가 뭡니까?” 일하기에 바쁜 데 갑작스런 에르디의 호출에 샤트란은 상당히 불손한 자세와 말투로 대꾸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여전히 힘의 관계에서는 그녀가 우위였기에 귀속된 상태에서도 말투는 자유로웠다. 거기에 에르디도 굳이 그녀에게 존대 등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아 그것이 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입니다.” “해 줘야 하는 일? 전 바쁩니다만.” “별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냄새 한 가지만 맡아 주시면 됩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샤트란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거절의 뜻을 전했다. 한 번 맡아 본 경력이 있는 지라 결코 다시 경험해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약 하나만 복용해 주시겠습니까?” “약이요?” “아 예 제가 개발한 신약인데 잠을 안 자도 피곤하지 않게 하는 약입니다. 임상실험을 해야 하는데 실험대상이 없어서…….” “그다지 기분 좋은 제안은 아니군요. 허나 설사 독약일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당신의 일을 몇 가지 도와줘야 하는 처지이니 기꺼이 먹지요.” “그러십니까? 감사합니다. 자 그럼.” 에르디는 알약 한 개를 샤트란에게 내밀었다. 샤트란은 그것을 단번에 꿀떡 삼켰다. /////////////////////////////// “…….” 쥬레이나란에게 업혀서 온 에르디를 본 아크는 정말로 할말이 없었다. “너 스켈레톤이냐 좀비냐?” “……” 정작 본인은 말 할 기운조차 없는 듯 하다. “하이고……로이 이 녀석 어떻게 치료할 방법이 없냐?” “이런 경우 턴 언데드라는 신성 마법이 주효하지.” “장난? 아무리 이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놈은 인간이라고” “농담이다.” 청색 군복에 마법진 장갑을 낀 검은머리의 미남자. 현재 쥬레이나란의 코스프레 모습인 불꽃의 연금술사였다. 루스벨트나 에르디 등. 기타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좀 말하기가 난감했다.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리기도 그렇고 하지만 8서클의 마법사란 변명이 이들에게는 모두 먹혀 들어갔다. 때문에 요새 들어 쥬레이나란은 여러 가지 캐릭터로 자유변신을 하고 다니는 상태였다만 아크가 마음에 들어하는 여성 캐릭터로는 단 한 번도 변신한 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입을 우물거리는 것을 보니 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본데. 어떻게 회복시킬 방법 없냐?” 쥬레이나란은 에르디를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흠 원인은 정력 고갈이다.” “뭐? 정력 고갈?” “일반적인 회복마법으로는 별 수가 없고 그저 회복될 때까지 잘 먹이고 쉬게 하는 것이 좋은데 신성마법류의 블레싱이 약간의 효과는 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또 다시 육수쇼 따위를 한다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태로군. 흔히들 몽마에 홀렸을 때 이런 증상을 나타내는데……이거 요새 또 마왕이 강림하려고 하나? 서큐버스는 다크로드 부근이 아니면 잘 안 나오던데?” 어찌 되었든 블레싱이 먹힌다고 하니, 아크는 에르디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러자 에르디의 입이 조금씩 열렸다. “주, 주군.” “얌마. 왜 좀비가 되어서 온 거여! 손장난 좀 어지간히 했어야지!!!” “와, 완성했습니다.” “완성?……아! 설마 너?” “……예 맞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패작입니다.” “뭐?” 에르디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주신 드래곤의 음약은 여성뿐만 아니라 결합 시 남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약입니다. 하지만 이번 것은 남성에게만 큰 효과를 발휘하더군요. 큭! 결국 임상실험결과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 왜 에르디가 저리 되었는지 충분한 이해가 가는 아크였다. “휴 그래 수고했다. 가서 쉬어라. 어이! 밖에. 이 녀석 데리고 나가!” 곧이어 두 명의 여자 메이드가 들어와 에르디를 들쳐업었다. 덩치가 크지는 않지만 남자로서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에르디였는데도 지금은 여자 혼자서 들어도 큰 무리가 없을 만큼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시켰길래 저 모양이 된 거냐?” “하하하 뭐 제약업이라고나 할까?” 쥬레이나란의 의심의 눈초리를 애써 받아넘기는 아크였다.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하등동물이 뭘 하든 별 상관할 바 아니지. 그런데 넌 또 무슨 일로 날 불렀냐?” “이거 읽어봐라.” 아크는 그레드릭 대공에게서 온 편지를 쥬레이나란에게 툭 던져 주었다. “……흠.” “아무래도 대공은 내가 구두로 도와주겠다고 한 것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첫 머리와 서문은 잘 있었나? 등이었지만 서서히 편지가 기승전결의 곡선을 타더니 결말에는 결국 대공이 말하고파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쥬레이나란에게도 귀족이 되어 주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는데 편지에는 별 쓸데없는 인사글 및 친교를 다지는 글들을 잔뜩 집어넣은 것과는 다르게 결과론적으로 숨은 뜻은. 자네가 도와주겠다고는 하나 왠지 모르게 불안하니 이 나라의 소속이 되어달란 소리였다. “어쩔래?” “그런 자리 필요 없다고 전해 줘. 정히 주고 싶으면 그냥 알아서 귀족인명부에 이름 하나만 달아달라고 해.” “그래? 귀족인명부에 올릴 이름은?” “로이 머스탱.” “……에드워드 엘릭이 더 낫지 않냐?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그 이름인데.” “그럼 니놈이 알아서 해.” “흐 그래? 좋아. 죽이는 이름으로 하나 만들어서 답장을 띄워주지.” 귀찮아서 아크에게 위임하기는 했지만 아크의 간악한 미소에 쥬레이나란은 이름을 잘못 맡겼다고 속으로 후회했다. 그러한 불만과 후회가 그에게는 다른 방향으로 터졌다. “야! 그나저나 드래곤은 언제 잡으러 갈 꺼야!” 쥬레이나란은 당연히 아크가 이리 빼고 저리 빼면서 답변을 회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봐 온 아크란 놈은 그 계약 하나 가지고 자신을 부려먹을 생각만 하는 녀석이었고 계약의 원래 목적인 드래곤 사냥은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하기사 엄청 어려운 목적이기에 저렇게 은근슬쩍 빼는 것도 이해는 갔고 또한 저 괴팍한 인간과 같이 노는 것도 꽤나 재미는 있었기에 답변을 회피하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는 줘도 몰아붙일 때까지는 끝까지 몰아붙여 울궈먹을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답변은 전혀 뜻밖이었다. “걱정 말라고 이번에 돌아오는 대연회가 끝나고 한 두 달 정도 준비한 뒤 슬슬 움직일 계획이니까. 영지에서 영지 관리만 하는 것도 조금은 지루하니 휴가라도 떠나는 겸 갔다 오지 뭐. 그동안 너도 준비나 잘 해둬. 원수 갚겠다고 덤볐다가 부모 만나러 황천가지 말고.” “어 으응.” 의외로 계획까지 짜 두고 있다는 말에 약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크로서는 드래곤 사냥 계획을 하루바삐 성사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가 모 애니메이션에서 얻은 이념인 등가교환을 따져 보았을 때도 쥬레이나란의 철천지원수를 갚아 주어야만 편한 만능 인재를 무보수로 가져다 씀은 물론이오. 드래곤 미소녀화 계획 역시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대연회에도 수고 좀 해 줘야겠다.” “응?” “특수효과 말이야.” 대번에 쥬레이나란의 인상이 험상궂어졌다. “……! 크 또 할 생각이냐?” “물론. 그런데 지난번 같이 그렇게 여러 개까지 할 필요는 없어. 쉬운 거니까.” “그래도 마. 미친 짓 좀 그만 해라. 너는 그것을 쇼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보는 놈들은 저게 무슨 미친 짓이야 라고 생각하는 놈들도 더러 있단 말이다.” “뭐 난 굳이 남의 눈 따위 생각하진 않아. 내가 무슨 짓을 하던 내 성격이 어떻든 능력이 있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야. 미친놈이라고 생각? 하라고 해. 나중에 결국은 그 미친놈 앞에 애걸복걸 안달을 할 정도로 성장해 줄 테니까. 아니 이미 그 정도는 되어 있지?” “너 잘났다.” 광오한 발언에 냉소적으로 답변하는 쥬레이나란이었다. 몸을 절로 비틀고 싶어질 듯한 경쾌한 음악과 폭죽소리 퍼벙 퍼벙 퍼버버벙!!! 현란한 여러 색깔의 조명은 추운 겨울임에도 수많은 이들이 모여 내뿜는 열기를 더욱 더해주고 있었다. 어느 곳의 언어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래 가사. 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남성이었지만 간헐적으로 여성 합창의 후렴구가 반복되었다. ‘섹시 보이’ 라고. 공중에서 줄을 타고 나타난 사내는 매력적인 상체를 노출시키며 왼 다리를 굽히고 오른 다리를 쫙 편 채 양 팔을 어깨 위로 올리며 물기를 머금은 팔 근육을 부각시켰다. 빛이 반사되는 사슬형 판금이 조명을 받아 번쩍번쩍 빛이 났다. 화려한 입장식이 끝이 나고 이어서 들어온 청색 군복의 사내는 아크에게 옷가지를 건넸다. “수고했다. 로이.” “옷이나 제대로 입으시지.” 반짝이 판금 사슬 갑옷(?)을 제외하고는 아크가 입고 있는 옷은 하트 무늬가 박혀 있는 촌티의 극치인 타이즈 바지였다. 귀족들이 모이는 고풍스러운 자리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다. 쥬레이나란이 건넨 옷도 귀족의 정복이나 턱시도 등 이 자리와 그다지 어울리는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벗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아크는 얼른 그 옷들을 주워 입었다. “로이 너 춤 출줄 모르지?” “당연한 소리를.” “그러믄 한 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자고 할 일도 없으니까.” “그러지.” 아크의 의견대로 쥬레이나란은 한쪽 구석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로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지만 좀처럼 보기 드문 검은색 머리의 미남자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은 구석진 자리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하기엔 충분했다. 덕분에 아크와 쥬레이나란은 춤 신청을 청해 오는 여성들을 거절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지난번과 조금 달라진 점이라면 여자들만이 접근해 오는 것이 아닌 것이 랄까? “지략의 기사!” “에~무슨 일이십니까? 남성분들이 제게 춤 신청을 하실 리는 없으실 테고.” 갑작스레 중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중견의 귀족들이 아크를 둘러쌓았다. 고급스런 정장에 불뚝 튀어나온 똥배.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낯짝들은 ‘옷이 날개다’란 속담이 일부에게는 전혀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살빛의 향연 1호 혹시 남은 것 없습니까? 구하고 싶습니다.” 예상치는 못했지만 이해는 갔다. 살빛의 향연 1호는 전 세계에서 딱 200권 뿐. 명성이 널리 퍼지고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 난 것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공급이었다. “2호는 아직 풀지 않은 재고가 있습니다만 1호는 소장분 2권뿐입니다. 그건 말 그대로 영지에 놔 둔 채 소장해야 하는 것이기에 팔 수는 없습니다.” “그럼 더 찍어내면 되지 않소?” 역시 적게 찍어내다 보니 그만큼이나 더 많은 이들이 목을 매고 절실히 갈망하고 있었다. “유감입니다만 특수한 염료 등을 제작하는 데 사용하기에 어느 일정한 양을 찍어낸 이후에 더 찍어내기가 조금 난감합니다. 곧 수출본을 찍을 예전이긴 하지만 그것들은 국내에서 판매가 불가능하고요. 살빛의 향연은 기간은 불투명하지만 연결편이 꾸준히 생산될 터이니 너무 1호에 연연해 하지는 마십시오.” “저기 그러면 혹시 그 그림 속 모델들을 안아 볼 수는 없겠소?” 사진 속 미녀들을 찾는 것은 이해가 되나 불가능한 일인 것을 어찌하리요? 실제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인쇄한 게 아니라 지구에서 가져 온 파일들을 그저 인쇄한 터라. 저 먼 차원 너머에 있을 여성들을 무슨 수로 데려온다는 말인가? “모델들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쌓여져 있습니다. 게다가 쉬이 몸을 파는 그런 여자들도 아니니 그건 안됩니다.” 모든 부탁을 지략의 기사가 거절하자 중년의 그들은 시무룩해진 모습이었다. 아크는 그런 그들에게 귀가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혹시 이 약 복용해 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지금은 판촉상 공짜로 나눠드리고 있는데 이 약의 효과는…….” “…… 에이 설마.”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에 중년의 기수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약빨이 좋다 한들 기본적인 인간의 능력이 있기 마련인데 어찌 그렇게 된단 말인가? 중년의 기수들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자, 아크는 옆에 앉아 있던 쥬레이나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못 믿으시겠습니까? 이 약은 제 옆에 있는 8서클의 대마법사인 엘릭 님께서 만든 효능을 보장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리고 판촉용이라 했습니다. 공짜로 그냥 드릴 터이니 실험은 알아서 해 보시지요.” 8서클 대마법사의 이름을 들먹이자 중년의 귀족 엑스트라 1,2,3,4는 약을 안주머니에 고이 모셔 두고 떠났다. 쥬레이나란은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하여간 인간 수컷들이란.” “그런 인간 수컷으로 변해 있는 놈이 말이 많다.” “곧이어 황자비와 메리사 공주님의 부군을 선발하는 간택 무도회가 이어지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소리와 함께 각자 친교를 나누던 귀족들이 몇몇 젊은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뒤편 좌석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다. 많은 이들이 저리 한꺼번에 움직이면 혼잡할 법도 한데 차분하고 정숙하게 자리에 착석하는 것을 보니 귀족은 뻘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오빠!” “유카나!” 드레스를 잘 차려입은 유카나가 사람들이 움직이는 조금은 혼잡한 이 틈을 타 아크에게 다가왔다. 안 봐도 비디오인 것이 아마 엘레노어 백작이 유카나를 아크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만나는 것도 이렇게 늦어진 것이고. “편지 받았어요?” “응 유카나 글쓰는 것도 귀엽던데?” “에헷!” 혓바닥을 약간 내밀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아크를 로리주의자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귀엽다~’를 마음속으로 외치던 아크는 재수없는 엘레노어 백작의 눈총이 이어졌다. 어느 새 자신과 유카나가 있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 눈총을 못 이긴 유카나가 얼마 안 있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지금은 일단 가 볼게요. 무도회에 참가해야 되거든요. 나중에 봐요.” “그러렴.” 유카나가 뛰어나가고 중앙 홀에는 황자와 황녀를 얻으려는 선남 선녀들로 가득 찼다. “제펠 황자님께서 들어오십니다.” 황궁과 연결된 황족 전용 입구에서 드럼통이 하나 굴러들어 왔다. 눈부신 금발과 잘 생긴 얼굴이긴 했지만 몸에 디룩 디룩 붙은 살 덕에 잘 생겨 보인다는 인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인간 맞냐?” “인간은 맞는 거 같다.” 쥬레이나란과 아크의 감상평이 이어졌다. 무도회라고는 하지만 도저히 저 몸뚱이로 춤이나 출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파티의 주인공이 나오고 남녀가 춤추기 좋은 은은한 음악이 깔렸다. 하지만 춤추는 이들도 아닌 구경꾼의 입장인 아크에게는 은은한 음악이라는 것은 단순한 자장가에 불과했다. 술도 어느 정도 들어갔겠다. 아크의 정신이 서서히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얌마! 일어나 봐! 쨔샤!” “어? 음. 흐아아아암!” 다급히 자신을 깨우는 쥬레이나란의 목소리에 식탁 앞에서 엎드려 자던 아크는 흐르는 침을 스윽 닦고 입을 짝 벌린 채 크게 하품을 쉬었다. 그러자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리고나서 아크는 별 생각 없이 몸을 돌렸다. “세상에 울었나 봐. 지략의 기사가.” “어유 두 눈 똑바로 뜬 곳에서 약혼녀를 빼앗겼으니 오죽 하겠어?” “어머 가엾어라.” 곳곳에서 동정이 쏟아지고 있었다. 측은한 듯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귀부인들.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잠만 잔 아크는 알 수가 없었다. 아크는 멋쩍게 웃은 뒤 옆의 쥬레이나란에게 시선을 옮겼다. 등뒤에서는 여전히 ‘억지로 웃으려고 하는 거 봤어? 어으 정말 불쌍해’ 등 동정의 멘트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었다. “야. 당최 뭔 소리들이냐?” “그러니 어지간히 퍼 자야지.” “야 말이나 해 봐. 뭔 일 났어?” “아까 그 돼지가 네 암컷을 먹겠다고 선언했어.” “응?” 통 쥬레이나란이 뭔 소리를 하는 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돼지가 암컷을 먹어? 거 참 비유 한 번 오묘하다. “제대로 풀어서 얘기해 봐!” “으이고 답답하기는. 방금 전 황자인가 뭔가 하는 놈이 아까 그 보라머리 네 녀석 암컷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단 말야.” “그래? 뭐 별 거 없겠네 유카나는 당연히 거절 했을테고 말야. 아. 엘레노어 백작이 문제인가?” 쥬레이나란도 생각해 보니 아크의 말이 맞는 듯 싶었다. “어라? 그런가? 하긴 인간사회는 오크 같은 약탈혼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겠는데?” “별 것도 아이구만 술이나 마시자. 잘 되겠지 뭐.” 아크나 쥬레이나란이나 귀족의 전통이라든지 예절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했다. 덕분에 지금 상황이 무진장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별 것도 아니진 않아요.” 막 술을 따라 놓은 잔이 갑자기 왠 여자의 손에 가로채어져 갔고 아크는 그 손이 이동한 경로를 쭈욱 훑어보았다. “세레스티나 공주.” “오랜만이군요. 지략의 기사.” 순진한 표정. 하지만 눈빛만큼은 결코 순수한 10대 여성의 그것이 아닌. 공주였다. “또 무슨 말을 하시려고?” “이번엔 등용권유가 아니에요. 사태의 심각성을 좀 일깨워 드릴까 해서 왔어요.” “사태의 심각성?” “당신은 약혼녀인 유카나 양이 잘 풀려나올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건 오산입니다.” “오산이라니요?” “황자비 무도회에서 춤을 추었다는 것은 자신이 황자의 청혼을 받았을 때 거절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인식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카나양이 아버지의 강요로 원하지 않게 무도회에 출석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황자가 청혼을 한다면 거절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한 마디로 그 상황에서는 유카나양이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당신을 버리고 황자를 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물론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동정여론이 일기야 하겠지요. 그러나 명분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녀의 의사 따위는 황자란 권력과 힘. 그리고 법률에 눌려 버릴 것이고요. 한 마디로 당신은 두 눈 똑바로 뜨고서 약혼녀를 강탈당한 셈이 됩니다.” 공주의 말대로였다. 아크는 조는 사이에 눈을 뜨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간에 약혼녀를 강탈당한 셈이 되어버렸다. “크흠!” 이제야 사태가 제대로 파악이 되는 아크였다. 여자를 빼앗기다니, 그것도 강제로. 거기에 손도 못 쓰고 당해버렸다. 아크는 술을 잔에다 가득 따랐다. 그리고는 원 샷 했다. 아니 이제는 잔에 따르는 것도 감질난다는 듯 술병을 있는 대로 입에다 대고 퍼 마셨다. 쾅! 술병을 내려놓자 식탁이 크게 흔들렸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 컸다. 지난 번 엘레노어 백작이 누군가와 술수를 벌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임한 영지에만 신경을 쓰면서 유카나에게 무심했던 것이 실수였다.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자신만을 믿고 따르던 유카나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것이……. “제펠은 상당한 아동향입니다. 거기에 남을 괴롭히면서 느끼는 변태적인 성향도 있고요. 유카나양이 그에게 순종하며 따른다면 모를까. 거의 약탈혼처럼 이루어진 이런 결혼을 그녀 역시도 인정하지 못하고 반항을 할 것이 뻔합니다. 그럴 경우 제펠은 거의 매일 같이 잠자리에서 그녀를 학대하겠지요. 실제로 제펠의 주변 시녀들 중 변태 플레이에 반항했다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쫓겨나 결국 그 상처가 도져 죽은 시녀도 있었습니다.” 세레스티나 공주는 아크가 상당히 열 받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를 자극했다. 확실히 현 상황에서 아크 혼자서 다시 유카나를 찾아 올 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허나 황제파의 수장격인 그녀가 나선다면 확실치는 않아도 유카나를 찾아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점을 노려 아크에게 제펠에 대한 분노치를 최대한 상승시킨 다음 자신의 휘하로 오게끔 유도할 생각이었다. 허나 자신의 휘하로 오게 된 다음에는 유카나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쓸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오히려 제펠에게 당하는 약혼녀의 모습만을 각인시켜 주며 아크에게 제펠과 엘레노어 백작이 속한 귀족파에 대한 분노를 더더욱 끌어올리게 할 계획이었다. 그럴 경우 공동의 적을 두게 된 공주와 아크는 자연스레 협력관계가 될 것이다. ‘후후훗 지략의 기사. 그대가 아무리 콧대가 높아봐야 내 손바닥 안에 있지.’ 공주는 스스로가 짠 계략에 상당히 만족하며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에게 귀족파의 영애 하나쯤은 제펠에게 희생당하든 말든 별 상관없는 패였다. 오직 그것을 계기로 해서 지략의 기사 아크만 끌어들이면 된다. 우둔한 제펠에게 미인계를 성공시킴으로서 정국의 주도권은 자신이 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이상하게 공주의 말을 듣고는 조금 심정이 안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한 왠지 모르게 삼국지의 커다란 사건 중 하나 연환의 계가 떠오르고 있었다. 후한의 충신 왕윤이 의붓딸이자 중국 4대 미인 중 하나로도 손꼽히는 초선을 이용 여포와 동탁의 사이를 이간질시켜 결국 역적 동탁을 주살 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생각나는 것이다. 괜히 흥분해 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함을 찾고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현 상황은 약혼녀 유카나를 방금 전 황자라는 돼지에게 빼앗긴 것. 예서 선택사항은 두 가지다. 그냥 뺏긴 채로 백년해로를 기원해 주는 것과 도로 되찾아 오는 것. 당연히 선택은 도로 되찾아 오는 것. 무슨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더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해! 라며 물러나 주는 것은 영 성질에 안 맞았으며 절대 보내주고픈 생각 따위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라는 새로운 의문이 든다. 무도회에 참가만 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 속에서 단순히 약혼자란 신분은 사람들에게나 동정을 얻을 뿐 결과론적으로는 유카나를 되찾아 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골머리 땡기는 군.” 명분이 없었다. 명분이 그레드릭 대공 등을 움직여 귀족파가 밀고 있는 그 돼지를 고립시키는 등의 전략도 괜찮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돼지가 먼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유카나를 되찾아 올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술만 들어갔다. 그리고 아크는 자신의 머리를 탓했다. 지략의 기사라 불리고는 있지만 정작 이럴 때에는 아무런 좋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다. “어떡한다?” “…….” 수도에 있는 저택에 돌아온 아크는 쥬레이나란, 에르디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그냥 공주님이 말씀 하신대로 따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흐음 아냐. 그 여자가 하란 대로한다면 결국 난 약점을 잡히게 되고 공주한테 이용당할 거야. 황제파에서 귀족파를 공격하고 논쟁 등을 벌이는 것은 영 내 체질에 안 맞아.” 연회장에서 고민하는 아크에게 공주는 해답을 한 가지 알려 주었다. 그것은 바로 내 밑으로 들어오라고. 그렇게 한다면 여전히 힘들기야 하겠지만 황제파의 세력을 이끌고 유카나를 되찾는 일을 도와 주겠다고. 그녀의 말은 아크에게 여러 도움이 되었다. 귀족파 측에서도 지략의 기사의 약혼녀를 빼앗아 온 사태에 지략의 기사가 황제파로 가 버릴 수도 있다는 것 덕분에 황자의 행위를 성토하는 분위기라는 것 또한 세력을 거의 똑같이 3등분하고 있는 세력들 중에서 중립파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아크를 공주가 직접 도와준다면 여론을 충분히 이 쪽으로 끌고 올 수 있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몸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올랐다. “야. 에르디. 혹시 황족과 결혼할 여자는 무조건 순결해야 한다는 것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냐?” “아. 예 법으로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관습법 상 그럴 겁니다.” 아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흐 그럼 됐군.” “에?” “지금 당장 유카나 랑 거시기를!!!” 곧바로 뛰쳐나가려는 아크. “잠깐!” 에르디는 필사적으로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왜 그래? 빨랑 녀석의 처녀딱지를 떼 줘야지. 그럼 할 말 없을 거 아냐?” “미쳤습니까! 지금은 주군의 약혼녀가 아니라 황자의 약혼녀라고요! 지금 가서 유카나양과 거시기를 하면 주군뿐만 아니라 유카나 양도 간통죄로 즉결 처형입니다! 아시겠어요?” “그, 그래?” 아크는 다리의 힘이 쫙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다시 소파에 풀썩 쓰러져 앉았다. “어쩌냐 그럼?” “그래서 지금 생각중이지 않습니까?” “흐아. 공주한테 그냥 머리 숙이고 들어가야 하나?” 공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제펠 황자의 변태스러움을 걱정하고들 있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리는 없고 한 마디로 진짜라는 소리인데 유카나를 그런 변태놈에게 보내기는 공주의 개가되는 것보다 싫었다. 그러던 아크는 문득 쥬레이나란에게로 눈길이 갔다. “뭐냐?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아냐.” 대충 얼버무리고 고개를 돌리던 아크는 순간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 그거야!!!” “……?” 뭔가 싶어 두 눈을 크게 뜨고 아크를 바라보던 쥬레이나란. 아크는 쥬레이나란의 군복 입은 어깨를 잡았다. “네가 필요해.” “뭐?” 어리둥절해 하는 쥬레이나란. 아크는 이번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잘해보자. 유카나.” “……!” 쥬레이나란은 갑작스런 아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너! 설마!” “그래. 네가 유카나가 되는 거다.” “고렇겐 못해!!!” 딱! 퍼버버벙! 손가락에서 일어난 불꽃이 아크를 덮쳤다. 하지만 아크의 몸에는 그을음만이 남았다. 그 모습을 본 쥬레이나란은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에르디!” “예!” 그 즉시 분무기에서 원거리 포 두 방이 뿜어져 나갔다. “여기가 백작의 저택이지?” “문패 보면 몰라!” 앳된 목소리로 퉁명스레 쏘아붙이는 유카나를 보며 아크는 슬며시 웃음 지었다. 에르디의 마취 액체 냄새에 도망도 못 치고 쓰러져 버린 쥬레이나란. 하지만 드래곤이라는 것 덕분인지 얼마 안 가 깨어나기야 했지만 아크를 못 당하고 도로 붙잡혀 버렸다. 유카나로 변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했지만 결국 그를 변하게 한 것은 유카나의 얼굴을 한 소년이라는 조건이었다. ‘그렇게나 암컷이 싫은가?’ 왜 그리도 여자로 변하려 하지 않는지 의문스러웠지만 그것은 일단 패스하고 감금되어 있을 유카나부터 빼내오는 것이 먼저였다. “자 캐스팅 하라고.” “크윽.”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볼때기에 바람을 개구리 마냥 집어넣고 입을 빼꼼 내놓은 쥬레이나란. 하지만 곧 본연의 임무대로 투명마법 캐스팅을 시작했다. “좋아. 가자.” 아크와 쥬레이나란은 저택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곳곳에 경비병들과 하인들이 눈에 띄였지만 그들은 침입자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저택은 제법 넓었다. 유카나를 찾아 뛰어다니던 아크와 쥬레이나란. 그러던 아크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엘레노어 백작을 발견했다. ‘에라!’ 퍽! “윽?” 백작은 갑작스레 볼때기가 아파오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퍽! “쿡!” 이번엔 배가 무진장 아파왔다. 두려운 눈으로 여기저기를 살피는 엘레노어 백작. 아크는 그의 발을 슬쩍 걸어 넘어뜨렸다. “어이쿠!” 그는 그대로 계단에서 데구르르 굴렀다. 쿠당탕탕! “쌤통이군 크. 가자.” 엎어진 백작을 뒤로하고 아크는 계속해서 유카나를 찾아다녔다. 저택이 워낙 넓어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그러다 2층의 한 방문을 슬쩍 열어 본 아크.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얌마. 뭐 하는 거야?” 쥬레이나란은 아크가 무엇을 보길래? 하며 자신도 그 방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대번에 싸늘한 대사 한 마디를 날렸다. “미친놈. 이 상황에서 보고 싶냐? 빨랑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유카나의 방이었다. 아크는 본분을 잊고 그 상황에서 훔쳐보기의 본능을 먼저 발동시킨 것이다. 고왔던 유카나의 얼굴은 어찌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눈 밑 부분에는 눈물이 흐른 자국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도 원판이 이쁜지라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눈빛 역시 흐리멍텅한 것이 공허해 보였다. 흡사 폐인시절의 아크를 보는 듯 했다. 그것을 본 아크는 속이 쓰렸지만 이제부터는 웃게 만들어주리라 다짐하며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웃옷 미 착용 중인 유카나의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 “나야 유카나.” “……오빠?” 딱!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아크와 쥬레이나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빠! 헉!” 아크는 급히 유카나의 입을 막았다. 소리라도 내면 모든 게 허사가 된다. “쉿! 구하러 왔어. 유카나 그러니까 소리 내지 마.” “오빠…….” 정말 무슨 꼭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있지 않은가? 영주에게 빼앗길 연인을 남몰래 빼돌려 야반도주하는 그런 류의.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닭살이 돋는 아크였지만 정작 자신이 그러한 영화의 주인공이 되자 그런 상상 따위는 들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아크가 자기를 구하러 오자. 감격한 유카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를 보고서는 우는 것도 잊어버린 채 크게 놀랐다. “……! 너, 너 누구야?” “네 년 대역.” 간략한 대답이었다. 거기에 아크의 보충설명이 이어졌다. “유카나도 알고 있는 녀석이야. 지난번에 내 옆에서 술 마시던 검은머리 노총각 아저씨 있지? 그 분 께서 지금 네 모습으로 변신하고 일을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셨단다.” “아아 그래 알아들었든 못 알아들었든 이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놈 둘은 가서 육수쇼나 열심히 하라고. 그 돼지는 내가 알아서 불고기를 만들어 놓지.” 쥬레이나란은 아무래도 아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제펠에게 몽땅 풀 계획을 세운 듯 했다. “가자 유카나.” “아 네.” 유카나 그녀도 두말할 필요 없이 아크를 따랐다. 아버지를 배신하는 결과가 되긴 하지만 자기 몸무게의 세 배는 나갈 듯한 노란 머리 돼지하고 결혼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는 극단적이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책임져 주겠다고 한 약혼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웃기네. 니들이 가냐? 내가 보내는 거지? 어여 꺼져.” “알았어. 결혼식은 꼭 보러 갈게.” “뒈진다!” 아크는 쥬레이나란의 염장 반응을 즐기며 곧이어 이어지는 은은한 빛에 몸을 맡겼다. 이제 남은 것은 처절한 복수 뿐. 감히 지략의 기사님의 여자를 빼앗으려 한 대가를 제펠은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결혼의 기쁨을 만끽하는 그 날. “유카나야 준비는 되었느냐? 입궁날이 내일이니라.” “알았수.” ‘엥? 알았수?’ 엘레노어 백작은 퉁명스러운 유카나의 대답에 어리둥절해 했다. 목소리는 같았으나 절대 유카나의 말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곧 딸의 대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강제적으로 지략의 기사와 떼어 논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상해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목소리가 퉁명스러울 밖에. “얘야. 그런 남자쯤은 잊어버리거라. 제펠 황자님이 겉은 저래 보이셔도 널 아주 아끼고 계신단다. 지금이야 힘들지 모르겠지만 아들 딸 낳고 살다 보면 절로 정이 드는 법이란다.” “알았다고 몇 번 얘기했소? 그만 하시지?” ‘이런 이런 쯔쯔쯔.’ 제국의 황후가 그리도 싫단 말인가? 여전히 퉁명스러운 유카나의 말투에 백작은 혀를 차며 나갔다. 그 뒤로 쥬레이나란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저 새끼도 날 이꼴로 만든 데 상당한 기여를 한 주범이란 말이지? 어디 두고 보자. 똥배가 터지도록 갈겨 줄 테다.” 살기가 가득한 목소리에 눈에는 먹이 사슬 최고봉에 있는 드래곤의 먹이를 제압할 때의 생물을 굳게 만드는 눈빛이 어려 있는 쥬레이나란이었다. ‘어째서지? 엘레노어 백작 영애와 약혼하겠다는 것은 단순히 제국에 등용될 때의 약점을 없애기 위해서였나?’ 성대한 결혼식을 앞두고 공주는 자신의 예상외로 지략의 기사의 반응이 별로 탐탁치 않자 제자리에 앉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약혼자 승낙 이후 귀족파와 엘레노어 백작, 그리고 제펠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 듯 빠른 결혼을 진행시켰다. 대연회의 황자비 무도회가 있은 지 겨우 열흘 가량 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이렇게 결혼식이 진행되는 것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원래는 상당한 기간을 두고 국혼을 진행시키는 것이 순리였지만 제펠과 엘레노어 백작은 지략의 기사의 방해를 염두에 두고서는 ‘귀족들이 모두 수도에 올라와 있을 대연회 시기에 빠른 국혼을 치르는 것이 좋다고 황제에게 진언했고, 황제 역시 지략의 기사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공주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공주를 위해 최대한 빠른 국혼을 진행시켰다. 공주는 그렇게 해 다급해진 지략의 기사가 당장이라도 찾아와 국혼을 미루어 달라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아니했다. 신뢰도가 제법 높은 정보통에 따르면 지략의 기사와 엘레노어 백작가의 영애는 대외적으로 알려 진 것처럼 제법 깊이 사귀었다고 들어. 이 계획을 진행시킨 것인데 반응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여긴 비 마마의 처소입니다.” “시누이가 찾아왔다고 전해.” “예? 아! 예.” 엘레노어 백작가에서 온 시녀들은 시누이란 말에 기겁하여 길을 열어 주었다. 황자의 비가 될 여성에게 시누이라면 어디 공주 밖에 더 있겠는가? 비의 거처에는 꽃단장을 화려히 하고 비싼 보석들이 주렁주렁 달린 맨살의 감촉이 느껴질 듯한 살구빛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유카나가 있었다. “누구야?” ‘……이건? 지난번의 그 눈빛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슬픔의 눈빛이 아닌 역전의 용사의 눈에서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 같은 불길을 머금고 있는 무서운 눈이었다. 평범한 12세 여아의 눈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공주는 그레드릭 대공과 마주 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언변이 무인인 대공보다 한 수위인 공주였지만 무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이런 강렬하고도 위압감 있는 눈빛은 그녀를 얼리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그런 눈빛을 이 아이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곧 가슴을 쓸어 내리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어린아이일 뿐이잖아. 어린아이. 눈빛이 아무리 살아 있다고는 해도 고작해야 이런 상황에 빠뜨리게 한 아버지와 황자에 대한 분노로서 저런 눈빛이 나온 거겠지.“ 애써 자위하며 그녀는 유카나에게 말을 걸었다. “시누이에요.” “그 녀석이 먹고 싶어하던 암컷이로군.” “네?” “별 거 아냐.” 아니 무슨 소녀의 말투가 저리도 독하단 말인가? 저런 성격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특히나 암컷이란 말은 마녀 등과 함께 공주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순간 발끈할 뻔했지만 그녀의 인내심은 겨우 이런 곳에서 무너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말투가 영 괄괄하네요? 지금 심정은 어떤가요?” “X같아. 빨랑 끝내버렸으면 좋겠어.” 이번엔 남성의 성기에 관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도대체 저것이 엘레노어 백작이 고이 잘 키웠다는 영애가 맞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여자애가 그것도 이제는 한 남자의 부인이자 황실의 일원이 될 영애치고는 말버릇이 영 안 좋군요?” “……당신 수놈의 냄새가 안 나는군.” “네?” “처녀라는 소리야. 그나저나 더 용건 없으면 빨리 꺼져. 상대하기 귀찮아.” 정말 말투 한 번 싸가지 없다라고 생각하며 공주는 말을 이었다. “지략의 기사가 이 결혼을 깨뜨리고 구해 줄 거란 생각 같은 걸하고 있나요? 그가 보고 싶거나 그러진 않아요?” “미쳤냐? 보고 싶게. 구해 주는 거 바라지도 않아. 뭐 어차피 이따가 만나기로 했으니까. 별 상관없어.” “이따가 만나다니요?” “더 이상은 말해주고 싶지 않아. 귀찮으니 저리 꺼져.” 공주가 숙이고 들어가는데도 여전히 욕설이다. 공주는 궁금한 것이 더 많았지만 유카나의 축객령에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냥 쫓겨날 공주는 아니었다. “잘 감시해. 잘 하면 지략의 기사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어.” “네.” 공주는 미리 잠복시켜 둔 하녀를 유카나의 옆에 붙였다. ‘있다가 만난다니……. 어쩔지 두고 볼까? 훗.’ 하지만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고야 말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주례의 길고 긴 연설. “니미 졸려. 엔간치 하고 끝내.” “예?” 주례사를 맡던 페르젠하워 대신관은 신부의 욕설에 당황 스러운 표정을 금치 못했다. 뜻밖의 카운터 펀치를 먹고 나자, 잘 준비해 온 연설문이 자꾸만 어긋나고 삑사리가 났다. 그래도 수십, 수백번 이런 주례사를 맡아 오던 그였던지라 어느 정도 잘 수습하고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를 사랑하시겠습니까?” “너나 해.” “…….” 뒤이어 이어진 서약식 역시 개판이었다. 슬픈 듯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아크도 쥬레이나란의 깽판에 웃음을 참느라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한다. ‘유카나아앗!’ 뒤에서 속 태우는 백작과 옆에서 황당해 하는 제펠을 두고도 쥬레이나란은 제 할 말만하고 끝냈다. “허허 참 황가에 당찬 아가씨가 들어왔구려. 엘레노어 백작.” “아 예 폐, 폐하 영광이옵니다.” 하이데른 황제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의 뒤엔 저런 개망나니 딸을 잘도 팔아넘겼구나 하는 문책성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것을 모를 백작은 아니었다. ‘저, 저 녀석이! 애빌 저리도 망신을 주다니!!!’ 이를 갈았지만 이제는 황자비가 된 몸. 쉽게 꾸짖거나 할 수도 없었다. “쯧쯔 유카나양이 어긋나기 시작하는군.” “오죽하면 저럴까?” 관객으로 참석한 많은 귀족들 중에는 평소의 유카나를 잘 알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강제로 결혼시키려 하자 유카나가 저토록 어긋난 길을 걷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평소의 그녀와는 너무나도 거리감이 컸다. 물론 껍데기만 유카나란 것을 알고 있는 이는 이 자리에서 아크뿐이 없었지만. ‘크크크크크크 푸하하하하하. 새끼. 어지간히 티내야지. 아무리 그래도 연기는 좀 제대로 해 줘야 될 것 아니냐고? 푸하하하하하. 돌겠구만 진짜. 저러는데도 눈치 못 채는 인간들이 더 불쌍하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난리 발광을 하는 아크. 몸을 부르르 떨며 웃음을 참는 모습이 흡사 눈물을 참으려고 하는 듯 보였다. 어찌 되었든 개판이었던 결혼식은 무사히 막을 내렸다. 노란 머리의 돼지가 가운을 입고 나왔다. “씻으려무나.” “네놈이나 씻어.” “흐 괜찮아. 난 적당히 냄새가 나는 것도 좋아하니까.” ‘돌겠군.’ 딱! 쥬레이나란은 물의 정령을 호출 순식간에 몸을 청결하게 만들었다. 하긴 어차피 바로 지옥을 보여 줄 마당인데 이 정도 부탁을 못 들어주리? “오홋! 그런 것도 쓸 줄 알았나?” “…….” “그래 그 얼굴에는 오만한 표정도 어울리지. 흐 하지만 곧 무너지게 될 거야. 너의 철옹성도.” “미친놈.” “크크크 그래 계속 그렇게 반항하라고.” 제펠은 가운의 웃옷을 벗어서 걸쳤다. 그 모습은 흡사 씨름선수가 샅바를 맨 모양이었다. 쥬레이나란은 그 사겹 배때기에 정권을 찔러 넣고 싶다는 충동이 절로 일었다. 지금이라도 당장에 그래버리고는 싶었으나 저놈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한 번 보고 싶다는 것. 그것이 지금 쥬레이나란에게 간신히 참을성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자. 그럼.” 제펠은 허리 뒷춤에서 허리띠를 풀어제쳤다. 그러자……꼴 뵈기 싫은 물건이 툭 튀어나왔다. 거기에 제펠은 한 손에 수갑까지 가지고 있었다. “……뭐야 그건?” “아. 도망치지 말라고.” “미친 새끼.” 쥬레이나란은 욕을 하면서도 순순히 제펠이 하는 변태짓거리에 응해 주었다. 이따위 철로 만든 것쯤이야. 침대 머리에 수갑이 묶인 채 누워 있는 쥬레이나란. 제펠은 침을 흘리며 그가 입고 있는 드레스와 속옷을 하나 하나 벗겨 내렸다. “흐.”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꼬라지가 도저히 정감이 안 간다. 곧이어 제펠의 살찐 투박한 손에 쥬레이나란이 걸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제펠은 그 마지막 것을 벗기고 나서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 이, 이, 이, 이건!!!” “훗!” 콰직! 수갑이 아주 가볍게 끊어져 버렸다. 쥬레이나란은 수갑을 끊은 다음 오른 다리로 제펠의 명치를 걷어 차 버렸다. 퍽! “꾸웨엑!”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그 거대한 덩치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먼 거리를 날아가 버렸다. “헤에 진작 이렇게 좀 패 주고 싶었는데. 말야. 크크크 오늘 돼지 한 번 잡아보자.” 쥬레이나란은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그는 맨 처음의 코스프레 형태인 에드워드 엘릭으로 변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마법진을 그렸다. 아무 도구 없이 그저 손가락으로 쓱쓱 그린 마법진이었던지라 표시도 안 났지만 곧이어 소년이 박수를 치자. 그곳에서는 한 명의 인간이 불쑥 솟았다. 아크였다. “여 수고했다. 에드워드.” “이제 돼지 잡을 일만 남았냐?” 아크와 쥬레이나란은 손가락의 뼈마디를 뚜둑 거리며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기절해 있는 제펠에게 다가갔다. “흐흐 글쎄 그런 셈이겠지? 방어는 튼튼히 되어 있으니 어디 원 없이 한 번 패보자고.” 퍽, 퍼벅, 쿵 퍽, 퍽, 퍼버벅! 곧이어 돼지 멱따는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 퍼졌지만 음성차단 마법에 막혀 그 처절한 비명은 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빡! “쿠웩!” 비대한 몸매의 돼지는 주먹 한 방에 수풀 속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 이놈들! 날 이렇게 때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푸에! 애초에 황제니 뭐니 무서워했다면 이러지도 않았어? 이거 왜 이러시나?” 퍽! “네놈이 날 비린내나는 암컷으로 변하게 한 장본인이렷다? 죽어랏!” 퍽! “끄아아악!” 그가 언제 이렇게 맞아보았겠는가? 몸의 지방질들이 조금은 충격을 완화해 주고 있을 뿐. 처음 맞는 매는 너무나도 매웠다. 그러나 황족의 위엄을 여전히 잃지는 않고 있었다. “기필코 네놈들을 잡아…….” “뭘?” 퍽! “으윽!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몰라서 묻는 구만. 에드 더 패.” “알았스! 크. 이럴 줄 알았으면 오크들도 마법보다는 패 죽이는 게 더 재밌었을 텐데 말야. 후회되네.” 빡! 나가떨어진 제펠을 아크는 가슴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살이 무슨 멱살처럼 잡혔다. “내가 누구라고?” “지, 지략의 기사.” “님!” “지, 지략의 기사님!” 역시 매에는 장사 없다. 서서히 맞는 것이 이골이 났는지 그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네가 빼앗았던 여자는 누구?” “다, 당신 약혼자.” “그래. 그게 지금 네놈이 맞는 이유다!” 퍽! “으그극! 당신에게만 그 여자를 소유할 권리가 있었나? 나도 얻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함으로 권력이란 것을 사용했을 뿐. 어찌 되었든 합법적으로 나는 그 여자를 데려온 것이다.” 이제는 제법 논리적인 발언을 했지만 아크에겐 소귀에 경 읽기였다. “그래. 그건 그렇겠지. 근데…… 데려갔다는 게 내 여자였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퍽! 이미 유카나를 빼돌리면서 아크는 범법자가 되어버렸다. 지금 이 돼지 녀석을 패는 것 정도야 보는 사람도 없으니 쥬레이나란이 적절히 정신만 조절하면 되지만. 쥬레이나란이 더 여기서 유카나 노릇을 할 수도 없고, 결국에는 황자비를 빼돌렸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유카나를 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노릇인지라 결과적으로 아크는 자신을 또 다시 범법자로 만들어 버린 제펠이란 미련한 놈에게 있는 대로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에겐 황제도 신도 없었다. 그저 자신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미 귀족의 꼬리표도 꿰찼고 지략의 기사라고 충분히 인정을 받은 마당에 아쉬울 것은 카프레이 영지뿐이 없었다. 누드 마을 및 여러 시설화를 해 놓은 것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도로 차원 속에 집어 넣고 아무데나 가서 살빛의 향연만 찍어내도 돈은 금새 다시 벌 수 있다. 아 영지의 메이드들도 조금은 아쉽긴 했다. 그러한 것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자. 아크는 또 다시 구타를 계속했다. “에드워드. 계속 패고 있어라.” 아크는 킹 네크로맨서의 삽을 꺼냈다. 그리고는 땅에 꽂고 삽질을 시작했다. 역시 무슨 삽질 특화 기술이라도 걸려 있는지. 구덩이 하나 파헤쳐 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퍽! 아크는 제펠을 발로 차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 정말 드럼통이 굴러다니는 것 같았다. “으, 으, 으 뭐, 뭐하려는 거냐?” 아크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땅 파놓은 거 안 보이냐? 당연히 생매장이지.” “으어! 사람 살려!” “소리질러봐야 소용없다. 그리고 내가 꼭 생매장시킨다고 한 적은 없어. 직접 그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면 살려 주지.” 고귀한 사람 추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목숨이 달리자. 그는 필사적으로 구덩이 벽을 타고 올랐고. 생존 본능의 힘으로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잔인했다. 퍽! 삽자루에 머리를 맞은 제펠은 또 다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흙투성이가 된 꼬라지가 조금 전만 해도 황자였던 이미지를 완전히 구겨 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는지 잘 기어오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갑작스레 쥬레이나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거기 누구냐!” 움찔! 어둠 속의 한 인영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인영은 급히 궁성 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크가 쫓으라고 하지 않아도 쥬레이나란은 자동적으로 그 인영을 쫓아 달려갔다. 그가 갔으니 잘 해결해 줄 것이라고 아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으어! 으어! 제발 살려 줘! 사실은 나도 유카나를 처음부터 얻을 생각은 아니었단 말야!” “음? 그럼 이런 술수를 부리지 말지 그랬냐? 그냥 처음부터 다른 여자나 찾았어야지. 왜 건드려서는 안 될 여자를 건드렸냐? 이 말이다.” 그때 제펠은 한 가지 살 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 맞아. 누님이, 누님이 부추겼어. 처음 소개해 준 것도 누님이었고 일을 추진한 것도 누님하고 백작이었어.” “누님? 그게 누구야.” “세레스티나 공주.” “진짜로?” “그, 그래 그렇다니깐! 누님이 나는 지략의 기사를 사모해서 얻고 싶은데 그에게는 약혼녀가 있어서 별 수가 없다고 한 다음. 약혼녀는 내가 가지고 그 상심한 틈을 타 당신은 자기가 가지겠다고 했어. 그리고 당신과 결혼한 뒤 정계를 떠날 생각이니 뒷일을 내게 맡긴다고 했고.” “진짜로?” “그래 정말이라니깐!” “호오? 좋은 정보다. 고맙다.” 퍽! 아크는 다시 한 번 제펠을 구덩이로 밀어 넣은 다음 파 놓은 흙을 옅게 뿌렸다. 완전히 묻어버릴 경우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숨구멍을 일부 뚫어 준 것이다. “만약 오늘 일을 누군가에게 불 경우. 그 다음 날 너는 죽는다. 알았나? 또한 대지의 정령의 은총이 없다 해도 충분히 빠져나올 정도로만 흙을 덮었으니 그 정도는 네가 알아서 빠져나오길 비마.” 아크는 제펠을 묻고 쥬레이나란이 어떤 인영을 쫓아 간 곳을 추적해 갔다. 그러면서 제펠의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재 루드비안의 정부는 극한의 대립상황. 황제파와 귀족파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두 파 중 한 파와 맞먹는 힘을 가진 중립파가 어디로 붙느냐가 관건인 상태였다. 아크는 그레드릭 대공이 이끄는 군부 중립파의 부수장인 부원수급의 인물로 세레스티나 공주의 발언처럼 그녀가 반드시 등용하겠다고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지난번 대연회에 러브콜까지 받았듯이. 제펠은 상당히 우둔했다. 하지만 그의 뒷세력인 귀족파들까지 우매하지는 않았다. 지략의 기사가 어느 한 쪽에 붙는다면 시소가 기울 것이 뻔한데 굳이 그의 약혼녀를 빼앗아 자극 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허나 앞서 말한대로라면 엘레노어 백작과 제펠 등 몇몇 중견 귀족파들이 유카나를 제펠과 혼인시키는 계책을 밀어붙인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황제파가 내세우는 황위 계승자인 공주가 사랑에 빠져 지략의 기사를 배필로 얻겠다고 한다면? 그렇게 되면 황위 계승권은 제펠에게 넘어올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 당연스레 현 아크의 약혼녀인 유카나를 빼앗고 그 빈틈이 생긴 자리를 공주가 채우겠다는 전략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몇몇 머리 좋은 이들은 그것이 공주의 계략임을 간파한 이들도 있기야 하겠으나 공주는 치밀하게도 지난번 대연회에서 술에 취한 척 일부러 아크를 내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발언 및 아크가 영지로 내려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크를 사모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소문을 퍼뜨려 몇몇 중견들을 속이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귀족파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머리인 레이필드 공작은 공주를 수상하다고 생각하여 공주를 믿지 않았다. 허나 철저히 중립을 지키는 그레드릭 대공의 밑에 있는 아크를 빼내오기는 쉽지가 않다고 믿었다. 대공은 권력 싸움 덕에 유능한 부하들을 상당히 많이 잃었던 기억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자신 밑의 부하들이 권력 싸움에 뛰어드려는 것을 극구 막았던 전례가 몇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이 계획을 반대하지 않았다. 귀족파의 중견급 귀족의 딸이자 군부의 최고 유망주를 황자와 이어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고 부원수라고는 하지만 중앙 정계에 별 관심도 없고 영지에서만 노는 군부 장악력이 미약한 지략의 기사가 황제파 쪽으로 붙어봐야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그가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등의 시나리오도 있기는 했으나 레이필드 공작은 충절을 지켰다는 지략의 기사의 명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양 파 최고의 머리라는 두 명의 지략의 기사에 대한 평가는 이토록이나 어긋나고 있었다. 공주는 노쇠한 그레드릭 대공이 아크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한다는 것과 능력을 믿고 이러는 것이고 레이필드 공작은 아직은 그레드릭 대공의 힘이 남아있고 거기에 아크의 세속성을 잘 파악해 아크가 쉬이 정계에 뛰어들지 않으려는 점을 간파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크는 실제로 그녀가 진짜 자신을 사모해서 그렇게 했다고 믿고는 싶었으나 세레스티나 공주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환의 계가 맞았군. 자칫하면 홀려 들어갈 뻔했어. 이거 사람이 조용히 살겠다는데 왜 여기저기서 난리를 치는 지 몰라.’ 공주에게 멋지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을 깨달은 아크는 공주에게도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 에드.” 쥬레이나란이 암흑 속의 인영을 쫓아간 방향으로 걸어가던 아크는 가만히 서서 자신을 기다리는 쥬레이나란을 발견했다. “놓친 거냐?” “아니 공주의 거처라 들어가기가 좀 꺼려진다.” “뭐 어때. 들어가자.” “뭐?” “공주도 조금 맛을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겠어. 가자 에드워드.” 아크의 안주머니에 넣은 손이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 공주의 연환의 계에 대한 설명은 다 되었습니다. 어째서 귀족파들이 속아넘어갔는지, 안 속아넘어간 레이필드 공작이 어째서 굳이 공주의 계략을 파헤치고 증명하지 않았는지 위에 다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럼. 이제 공주를 혼내는 일만 남았죠??? “그래서?” “예 추격은 포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여튼 간이 큰 사람이더군요. 어떻게 일국의 왕자를 그렇게 돼지 패듯이 팰 수가 있는지…….” “후후훗. 그 돼지 녀석이 맞는 모습이라. 꽤나 재미있었겠군. 황자의 약혼녀를 빼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황자를 폭행까지 하다니. 이거 확실히 약점이 잡혔군. 지략의 기사.” 공주는 지금의 이 상황이 유쾌해 죽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꼴 보기 싫은 이복동생은 죽도록 얻어맞았고, 지략의 기사는 완벽한 약점을 잡혔다. 양손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과 그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때였다. 쨍그랑! “누구냐!” 금발의 소년과 흑발의 청년이 창문을 깨면서 뛰어들어왔다. 아크는 한 바퀴 구르기까지 하면서 스턴트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몸에 묻은 유리를 털며 일어선 아크와 쥬레이나란. 그것을 본 하녀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경비병! 침…….” 그러나 뒷말은 어느새인가 근접거리까지 다가와 자신을 노려보는 금발의 소년의 무서운 눈빛에 끊어져 버렸다. “소리 질러 봐야 소용없다. 다 잠재워 버렸거든.” 짝! 그가 박수를 치자 하녀 역시 몰려오는 지독한 수면욕구에 고꾸라져 버렸다. “잘했어. 에드워드. 공주하고 담판 지을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좀 나가줄……아니다. 남아 있어도 상관없어.” 아크는 쥬레이나란을 내보내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있어도 별 상관없었고 오히려 도움이 될지 몰랐다. “무슨 일인가요? 이 오밤중에 제 처소에 다 찾아오시고?” “아 재밌는 사실을 한 가지 들어서 말이요.” “뭐죠?” 다 알면서 시치미 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날 얻기 위해서 돼지 군과 손을 잡으셨다고요?” “언제요?” “시치미 떼지 마시오. 다 듣고 왔소이다.” “흥 그 녀석이 헛소리를 한 모양이군요. 살아남으려고.” “불지 못하시겠소?” 아크가 무서운 목소리로 협박하자. 공주는 그제야 죄를 시인했다. “……훗. 그래요. 맞아요. 하지만 그다지 잘못한 건 없다고 보는데요? 당신이란 인재를 갈망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요. 당신이 콧대만 높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요. 아~맞아. 그러고 보니 당신이 제펠에게 들은 것은 그 내용이었겠군요? 제펠의 말대로라면 제가 당신을 사모해서 이 일을 꾸몄다는 결론인데. 어째서 제게 그런 무서운 눈으로 말하시나요?” 피식. 이 여자가 무덤을 팠군. 아크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것이었다. 사실 원래의 의도였던 자신을 ‘한 사람의 인재’로서 얻고자 했다고 고백했다면 아크는 더 이상 난리를 칠 명분을 일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공주가 표면적으로 내세워 제펠과 엘레노어 백작등을 속였던 아크 자신을 ‘사모하는 남자’로서 얻고자 했다라고 지금 공주는 말하고 있었다. “그래요? 뭐 그럼 날 사모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시오.” “증거라면…….” 그녀는 귀족파들에게 자신이 지략의 기사를 사모하고 있다라고 속였을 때 써먹었었던 물건들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크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증거는 몸으로 확인했으면 좋겠소이다.” “네에?” 그제야 변함없던 표정이었던 공주의 눈썹이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아크는 공주를 그대로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풀썩. “이게 뭐하는 짓이죠?” “날 사모한다고 하셨죠?” “……그랬습니다만.” “그럼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뿐입니다.” “증거…….” “다른 증거는 필요 없습니다. 단지 그것으로서 확인시켜 주시면 됩니다.” 그 말을 들은 공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 지금 그 말은?” “못 알아 들으셨나요?” “이, 이러지 말아주십시오. 그래요. 정정하겠습니다. 당신을 한 사람의 인재로서 얻길 원했던 겁니다. 그러니 이만 물러나 주십시오.” 공주가 드디어 본심을 불자, 아크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짜 둔 제 3의 시나리오 분기를 선택했다. “그럼……당신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절 굴복시키기 위해, 제 약혼녀를 변태돼지에게 보내려는 파렴치한 짓을 하셨다는 말이 되는 군요.” “그래요. 그러니까 이만 나가주세요.” “흠……그렇게는 안 되지요. 전 당신에게 그것에 대한 징계를 내리려 온 겁니다.” “징계?” “그렇죠. 노란 변태돼지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징계를 말입니다.” 제펠에게 아크가 가했다는 가혹한 구타 보고를 떠올리자 아크가 몸을 떼자 조금씩 나아지던 안색이 다시 새하얘졌다. “서, 설마 절 때리실…….” “물론이지.” 아크는 공주를 잡아다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리고 엉덩이를 때렸다. 찰싹! “뭐, 뭐 하는 겁니까! 이것 놓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아크의 구타는 계속되었다. “황족의 자존심? 오늘 다 뭉개주도록 하지.” 공주 역시 이렇게 맞아본 적은 처음인데다 수치심에 독기가 올랐다. 때문에 아직까지 존대를 해 주던 것이 쌍욕으로 변했다. “네 이놈! 이것 그만 두지 못해? 아바마마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알면 어쩔 건데? 엉덩일 완전히 까고 때리지 않는 것이나 다행인 줄 알아.” 하지만 역시 매에는 장사 없다. 공주는 그래도 여자인 데다가 제펠처럼 죽음의 공포까지는 느끼게 하지 않아서인지. 조금 반응이 틀렸다. “그만하란 말야! 흐흑 그만해!” 공주 능욕의 참맛이 나오고 있었다. 도도함 속에 감춰진 여성의 연약한 면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공주를 다루는 법칙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좋아요. 다른 벌을 받으신다면 때리는 것을 그만 두겠습니다.” 아크는 잠시 엉덩이 구타를 멈추며 공주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던 공주는 그제야 자신이 어릴 적 이후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단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금새 울음을 그쳤다. “다른 벌이 뭐죠?” “간단합니다. 제가 영지에서 요새 어떤 치료제를 만들고 있는데 임상실험을 할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약을 복용해 주시면 됩니다. 부작용이 조금 있기야 하겠지만 기껏해야 가려움증과 배가 뜨거워지는 등일 겁니다.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 맞으시겠습니까? 여기서 계속 맞겠다를 선택하신다면 이번에는 엉덩이를 완전히 까고 때리겠습니다.” 수상해서 거절하려던 공주는 엉덩이를 완전히 노출시킨다는 말에 약을 복용하는 것을 택했다. 만약 공주가 조금 더 성적인 곳에 지식이 많았더라면 이 상황에서 절대 이런 약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공주는 유감스럽게도 성교육을 본격적으로 받을 시기에서부터 군왕교육 등을 받느라 성에 대해 그다지 밝지는 못했다. 결혼도 안 시킬 공주에게 성교육이 뭐에 필요하겠는가? “……주세요.” ‘걸렸다!’ “여기 있습니다.” 공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약을 삼켰다. “감사합니다. 후우 무례에 대한 용서를 빌겠고, 어이 에드워드 여기 유리창이나 청소하고 가자.” “뭐야? 지금껏 청소나 시킬라고 잡아둔 거였냐?” 쥬레이나란은 투덜거리며 손뼉을 쳤다. 그러자 파손된 유리조각들이 다시 하나 하나 붙으면서 창문이 제 모습을 찾았다. “휴우 다 끝났군. 공주님 목을 축일 만한 것 있으면 좀 주시겠습니까?” 창문 청소로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벌려던 계획은 무산되었고, 아크는 다른 핑계를 대어 공주의 방에 조금 더 머물렀다. “여기요. 약한 와인이에요. 살면서 맞아 본 건 처음이네요. 엉덩이가 아직도 화끈거리는군요. 뭐 이번엔 제가 잘못했어요. 안 들키게 했어야 하는 건데.” 자신의 엉덩이를 때렸다는 사실은 매우 수치스러웠지만 그래도 공주는 군왕의 자질을 가진 군주감 답게 대담했다. 방금 전만 해도 죽일 듯 하던 아크에게 다시 친근하게 말을 거는 것을 보아하니 그런 과거의 일보다 지략의 기사를 어떻게 하면 부하로 거둘 수 있는 가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당신이 이번에 새로 백작이 된 엘릭 백작인가요?” “아마도.” 쥬레이나란도 어느 새 합석하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주는 아크와 쥬레이나란을 모두 회유하려는 듯 친근하게 정치와 그런 쪽의 얘기들을 나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얼굴을 빨개졌으며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것을 본 아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공주님.” “아, 아뇨. 저, 저기 이제 슬슬 가시지 않으시겠어요? 밤도 깊었는데.” 아크는 놀란 듯. 양 손을 공주의 양 뺨에다 가져다 대었다. 외간 남자의 손이 닿아서는 안 되었지만 공주는 왠지 그 손길이 싫지가 않았다. “……가만! 지금 공주님의 상태를 보니 이건 부작용인 듯 싶군요. 이런……. 너무 부작용이 큰데요?” “그, 그런가요?” “저기 잠깐 공주님을 진찰해 보겠습니다. 침대에 가서 누으시지요.” ……(중략)……어떻게 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기려고 했으나 맛보기는 보여 주도록 하겠다. “저, 저, 저, 저기…….” “왜 그러시죠?” “부탁합니다. 제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만.” “빨리요!” “……휴우 알겠습니다. 이거 공주님 간통죄까지 추가로군요.” 이 이상은 비하인드 스토리 레드 어덜트 에볼루션(19)에서 감상하도록 하자. “으흠.” 아침의 햇살이 뽀얀 나신을 비추었다. 온몸이 기진맥진했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하부에서는 남자의 체취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침대에는 피자 한 판 정도는 될 것 같은 원형의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고, 공주님!” 하녀는 그런 공주의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지키지 못했기에 공주는 어제 밤새도록 당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황제폐하께 아뢰어 이 파렴치한 놈들의 사지를 반드시 찢어놓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주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놈들을 용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길로 황제의 처소로 달려갔다. 그런 하녀를 보며 공주는 생각했다. 비록 완전히 능욕 당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때만큼은 자신이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 얼굴이 절로 붉어졌다. 비록 신나게 당하긴 했지만 지략의 기사라는 인재는 이걸로 완벽히 손안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뭣이라고!!!” 황제는 크게 노했다. 어제 저녁에만 벌써 대형 사건이 두 건이나 터졌다. 하나는 제펠 황자 구타 및 생매장 사건과 또 하나는 세레스티나 공주 강간사건. 고귀한 황족들이 지략의 기사라는 무뢰배에게 완벽히 농락 당한 것이다. 사실 황제는 제펠 황자 구타 사건보고만 해도 지략의 기사를 황제파 쪽에서 잡을 명분이 확실히 생겼다고 좋아했다. 정략적으로 얻게 된 2황후의 소생인 데다가 2황후도 제펠도 워낙 몹쓸 짓거리를 많이 하고 다녀 아들과 아내로 거의 인정하지도 않고 있는 상태였던지라 제펠이 맞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언제 한 번 엄하게 혼낼 생각이었는데 지략의 기사가 잘 혼냈다고 내심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레스티나 공주의 직속 하녀가 아침부터 버선발로 달려와 말한 보고는 그야 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제위를 물려받아야 할 공주가 밤새도록 강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재수 없게 공주가 임신이라도 한다면 제위를 물려 줄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했다. “……가자.” 황제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직접 백악궁을 찾았다. “…….” 공주는 나신의 몸을 그대로 노출시키고도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기진맥진해 진 탓이다. “이게 무슨 꼴이더냐?” “……죄송합니다. 아바마마.” “편히 쉬거라.” 황제는 몸소 공주에게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 원한은 꼭 갚아주겠다. 내 그 자를 네가 보는 앞에서 참혹히 처단해 주겠느니라. 그러니 지금은 그저 마음을 편히 가지고 푹 쉬거라.” “저 아바…….” 공주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는 하였으나 황제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는 듯 했다. “크흐으음.” 그레드릭 대공은 오늘 아침 들어온 보고에 침음했다. “이 사람, 이거 제 정신인가? 아무리……약혼녀를 빼앗겼다고는 하지만 명색이 황가의 핏줄인데. 생매장이라니…….” 차라리 자신에게 도움을 달라고 했으면 어떻게든 약혼녀를 되찾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크는 자기 혼자서 모든 일을 저질러버렸다. 황자의 비를 빼돌리고 황자를 무차별 폭행한 것도 모자라 묻어버리려고 까지 했다니……. 정말 오랜만에 제국에 등장한 소드마스터였다. 거기에 부록으로 8서클의 대마법사까지 딸려 있었다. 어떤 패든지 쉬이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제에게 탄원하러 갈 생각이었다. 지략의 기사가 공주에게 붙어 협력하겠다는 말 한 마디라면 황제는 아크의 손을 들어 줄 것이다. 황제와 대공이 방패막이가 되어 준다면 그다지 큰 징계 없이 이 일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대공 전하. 황제 폐하께서 급히 찾으시고 계시옵니다.” “음 알았다. 바로 입궁하겠다고 먼저 가서 전해드려라.” 황제가 급히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아마도 지략의 기사의 처리문제일 공산이 컸다. 자신이 먼저 찾아가려 했는데 황제 쪽에서 먼저 찾다니……황제도 이 문제에 대해서 덮고 싶어 한다고 짐작하는 대공이었다. 황제도 그런 인재를 쉬이 버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희망이 더 생겼다. 레이필드 공작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적절한 선에서 보상만을 받고 끝내려 할 것이다. 그토록 아크란 인재는 이 제국에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궁성에 도착해 조례장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화제는 하나같이 어젯밤 벌어진 황자 폭행 밑 생매장 사건이었고 각자 의견들이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대공 황제 폐하께서 개인 응접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음. 그래.” 시종의 속삭임에 대공은 그를 따라 황제와 1대 1 면담을 가질 수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황제 폐하. 그레드릭 대공께서 들어가십니다.” “들어오시라 해라.” “예.” 대공은 시종이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부르셨사옵니까?” “앉으시오.” “예.” 황제는 목소리는 묘하게 무거운 데가 있었다. 응접실에 테이블에는 술병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도수가 50도가 넘어가는 무진장 독한 술이었다. 그 옆에 놓인 약간의 술이 남아있는 술잔은 그 술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짐작케 했다. “폐하 아침부터 술은 몸에 좋지 않습니다. 속이 상하신 것은 이해하나 자제하십시오.” “크크크 대공은 무엇 때문에 내가 속이 상했을 거라 생각하나?” “아마 어젯밤 벌어진 사건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잘 알고 있군.” 대공은 조심스레 조언했다. “하지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끌고 있는 군부세력으로 공주님을 돕는다면 충분히 공주님으로 하여금 후계를 이을 수 있으실 겁니다. 폐하께서는 그를 옹호해 주십시오. 제국을 위해서라면 그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군부세력을 지금껏 절대 권력다툼에 사용하지 않았던 대공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토록 그는 지략의 기사를 아꼈던 것이다. “훗.” 그런 대공의 모습에 황제는 코웃음을 쳤다. “과연 그러겠소?” “그럴 수 있습니다.” “푸흐흐흐흐.” 계속해서 웃음만 터뜨리는 황제를 대공은 긴장하며 쳐다보았다. 이건 뭔가 이상했다. 한참을 웃던 황제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어제 지략의 기사가…… 아니지 그 파렴치한이 한 짓은 제펠의 폭행뿐이 아니라오.” “그게 무슨……?” “어젯밤 제펠을 구타한 놈은 그 길로 백악궁에 침입해 세레스티나 공주를 실신할 때까지 강간했소.” “예에???” 대공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강간? “대공이 그놈을 감싸려는 의도는 이해가 가오. 나도 이 보고를 듣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놈은 황가를 완전히 능멸했소. 황제가 무시당하는 제국. 그것이 온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것뿐만 아니라 공주를 강제로 범했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이지. 만약 공주가 임신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 나라는 그 멍청한 제펠과 탐욕스런 귀족파들에게 넘어가겠지…….” “…….” “그래서 대공을 이리 불렀소. 공공 장소에서 공주가 강제로 범해졌다는 사실을 발표할 수는 없는 일. 입이 무거우신 분이니 잘 알아서 해결해 주시리라 믿소이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지략의 기사와 소드 마스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코 용서받지 못할 중죄를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 대공은 그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건……도무지 어떻게……. “들어주시리라 믿소이다 대공.” “무엇을…… 말이옵니까?” “지략의 기사의……목을 가져오시오 대공.” 그레드릭 대공은 지금 무진장 황당했다. 분명 영지나 어느 먼 곳으로 도망쳤으리라 생각했던 아크가 자택에서 버젓이 얼굴을 내밀고 자신을 맞이했던 것이다. ‘……역시 머리 수가 비상하군. 모두가 도망쳤으리라 생각할 상황에 느긋이 자택에서 지내고 있다니 하긴 8서클의 대마법사가 있다면 도망쯤은 무리도 아니겠지.’ 거기에 밝은 얼굴로 인사까지 건넨다. “안녕하세요. 대공. 오늘따라 젊어 보이시네요.” 그러자 아크의 옆에 있던 두 명의 남자 역시 대공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약속은 잊지 않으셨으리라 믿소이다.” 아크의 왼편에 있는 사내야 지난 번 대연회에서 아크와 함께 등장했던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청색 군복의 검은머리 사내는 초면임에도 별 거리낌 없이 말을 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현재 지략의 기사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대공은 아크에게만 신경을 집중했다. “자네 너무 큰 사고를 쳤더군.” “예? 누구요? 에르디 너냐?” 아크는 진정 모른다는 듯 연기하며 에르디를 추궁했다. 하지만 에르디가 무슨 잘못이 있을 리가 없다. 그 딴청에 대공은 이마에 주름이 하나 더 늘어났다. “정녕 몰라서 묻는 겐가?” “변태 돼지를 생매장 한 사건 말씀이신가 보죠?” 변태 돼지란 비유가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대공은 말을 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흐음 이럴 줄 알았으면 죽여서 입을 막아버리는 건데 실수해 버렸군요. 그랬다면 공주님에게도 조금 더 이익이 되었을 테고.” “그것도 이유가 되지만 내가 자네를 찾아온 용건은 조금 다른 것일세.” “뭐죠?” “공주님을 강제로 범했다면서?” “예에?” 아크는 뭔 소리를 하냐는 듯한 투로 대답했다. 대공에게는 그것이 고차원적인 발뺌 수법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황제 폐하께 다 들었네. 순순히 靡하?황제 폐하와 공주님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게, 그렇다면 혹시 용서해 주실 지도 모르네.” “왜요?”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아뇨 알고는 있는 데. 왜 제가 황제 폐하와 공주님 앞에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 궁금하군요.” “장난할 기분 아닐세. 자꾸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자 가세.” 대공의 분위기는 지금 장난이 아니었다. 그 압도적인 기세에 소드 마스터라 분류되는 강자. 아크도 몸을 추스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제가 공주님을 강제로 범했기 때문에 일이 커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겠죠?” “그렇지.” “그렇다면 전 갈 수 없습니다.” “지략의 기사!!!” “그건 강제가 아니라 공주님의 의사에 의한 관계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그런 죄값을 치룰 이유가 없어요.” “뭐……라고? 그럼 설마하니 황제 폐하께서 거짓말을 하셨다는 겐가!” “하 참 이거 못 믿으시네? 좋아요. 그럼 증거를 보여드리도록 하죠.” 아크는 안주머니에서 몇 가지 기기들을 꺼냈다. 디지털 카메라, 카세트 테잎, 워크맨, 캠코더 등. 도무지 안주머니에 다 들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큼직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건 무언가?” “아. 이것들은 제가 살았던 지구란 곳에서 사용하던 최신식 문물들입니다. 특히 이 카세트 테잎과 워크맨이라고 불리는 것은 칸딘스키 공작께서도 어느 정도 익숙한 물건이시기에 증인이 되어 주실 겁니다. 한 마디로 조작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 말씀이죠. 이건 어젯밤 저와 공주님과의 관계를 영상으로 담은 것이고, 이것은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들입니다.” 아크는 카세트 테잎을 돌렸다. 그러자 녹음되어 있던 공주와 아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을 들은 대공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크의 말대로 아크는 끝까지 거절하려 했으나 공주가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했다는 것이 진실이었던 것이다. “자 이건 조금 쪽팔리기는 하지만 실제 정사 장면까지 확실히 나온 것입니다. 로이. 마나 연료 가동 부탁한다.” 이공간에서 가전 제품 몇 개를 꺼내자, 쥬레이나란은 그것을 마나 연료로 구동시켰다. 그리고 그것에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넣자, 공주님과의 하룻밤이란 셀프 카메라가 화면에 떴다. 음성과 실제상황 모두 아크의 잘못이란 건 없었다. 처음 진찰을 한다면서 공주의 여기저기를 만지고 주물러 대긴 했지만 저 정도로 저렇게 흥분해서 아크를 재촉한 공주가 오히려 품위가 없어 보였다. 물론 음약을 먹였다는 이야기는 교묘히 빼고. “이렇게 된 겁니다. 공주님도 저걸 아니 굳이 절 죽이라거나 등의 죄를 묻지는 않으려 하실 텐데……아마도 황제 폐하께서 호들갑을 떠시고 계신다거나 그런 등의 이유일 것 같군요.” “으흠.” 대공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의 영상물들을 보니 지략의 기사에게는 그렇게까지 큰 잘못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런 대공의 고민을 아크는 간파했다. “감사합니다. 대공 전하. 별 것도 없는 저를 그토록이나 아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은혜는 몇 번을 갚아도 모자랄 듯합니다. 지금 전 확실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황자를 구타 폭행 뒤 생매장하고 강간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되도록 처녀지신을 지켜야 하는 공주님을 범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위기를 넘어 갈 방법이 있습니다.” “뭔가?” “첫째는 조금 안 좋은 방법이기는 하나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증거들로 하여금 공주님과 황제 폐하를 고립시키는 방법입니다. 이걸 공개한다면 황가와 공주님에 대한 이미지는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말겠지요. 그럴 경우 그 분 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제 죄를 사해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럼 두 번째는 무언가?” “두번째는 대공께서 도와주시는 방법입니다.” “내가?” “지금 팬크라프트가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이 때 저와 대공은 나라의 군사적인 면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둥들입니다. 대공이 도와만 주신다면 확실히 저도 살고 모두가 해피하게 끝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레드릭 대공은 아크의 언변에 귀가 솔깃해졌다. 아크의 말대로만 된다면 그야 말로 모두에게 해피엔드로 끝날 수 있었다. 하긴 영악한 지략의 기사가 별 생각도 안 하고 일을 저질렀을리도 만무하다. 아무리 호색한이라고는 해도 정도가 있는데. “그래 내가 뭘 도와 주면 되겠나?” 하이데른 황제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놈!” 그는 뒷목을 잡고 용상 뒤에 놓인 용상으로 쓰러졌다. “폐하!” “으윽. 괜찮소이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러시나이까?” “아, 아무것도 아니오이다. 크음.” 아니라고는 하지만 황제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소 신료들은 갑자기 황제를 저리 노하게 한 저 서신의 내용이 무진장 궁금해졌다. 허나 황제는 절대 그것을 남에게 보여서는 아니 되었다. 중요한 사실 하나는 자기 입으로 말하면 되겠지만 서신에는 또 다른 비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서신과 서신에 동봉된 이상한 그림의 내용은 이랬다. From.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친애하옵고 존경하는 황제 폐하 안녕하셨습니까? 아하! 안녕 못하시겠군요. 안 그래도 안 좋으신 건강. 혈압 오르게 해서 거 무진장, 좆나게, 허벌나게 죄송스럽습니다. 어제 절 잡으러 그레드릭 대공을 보내셨더군요? 그런데 실수하셨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명색이 소드 마스터가 아닌 상태에서도 마스터급 무인 젤리커 공작을 꺾었던 놈입니다. 아무리 대공이 그랜드 마스터라 하나 제 옆에는 드래곤조차 이겨 낼 수 없는 암기의 대가와 8서클의 대마법사가 있습니다. 그런 절 잡으려면 제국 기사단 전체를 동원하셨어야죠? 안 그래요? 현재 그레드릭 대공은 제게 억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기절시켜 놓으니 정신마법도 잘 먹히더군요. 제가 완벽한 지략의 기사의 신봉자로 정신 조작을 좀 가했습니다. 하긴 뭐 그런 것과 관계없이 제국의 기둥인 그레드릭 대공을 제가 인질로 잡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절 몰아붙이신다면……막나갈지도 모릅니다. 그레드릭 대공이 사라진 제국. 땅 덩이만 클 뿐 금새 팬크라프트 대공에게 먹히겠죠? 그럼 그 잘나신 황족들은 모조리 노예가 되거나 살해당하겠지요. 거기에 모르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폐하께서는 분명 공주님과의 관계에 대해 ‘알아서’라고 하명하셨습니다. 공주님과의 정사는 공주님이 먼저 요구하셨으며 전 이계에서 들여 온 신진 문물로 그 장면들을 전부 증거로 보관해 두었습니다. 살빛의 향연. 아시죠? 유명한 건데 모르시면 부하들에게 물어보시고 거기에 그 중 일부인 사진 몇 장 보냅니다. 만약 그 공주님의 성관계 사진들을 실어 잡지를 만들어 팔면 재밌겠군요. ‘루드비안 황녀의 XX~’ 우와! 대박이겠는데요? 아마 한 권당 1~2만 골드는 가볍게 넘는 가격에 팔 수도 있겠습니다. 뭐 이렇게까지 했는데 제 말뜻의 의도는 대략 아시겠죠? 제 요구조건은 유카나와 제펠의 정식 이혼, 구타 사건과 정사 사건의 너그러운 선처입니다. 거시기물을 전부 공주님의 안에다 뿌려버린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설사 임신하신다고 하더라도 저와 군부가 열렬히 지지한다면 공주님의 제위 계승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저는 당분간 대공을 데리고 놀다오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누가 더 답답한지. 혹시나 해서 제가 놔두고 떠난 제 측근이나 영지를 위협하거나 할 생각은 마십시오. 그럴 경우 대공은 그 즉시 캘더린이나 팬크라프트에 양도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봄에는 꽃가루 여름엔 일사병 환절기엔 감기 가을엔 배탈 겨울엔 뇌졸증 잠자리엔 복상사 민물고기는 간디스토마 바닷고기는 비브리오 패혈증 쥐똥은 유행성 출혈열, 페스트 모기는 말라리아 잠자리 2엔 매독 변소에선 치질 조심하세요. 추신 : 그럼 안녕하시길 빕니다. 혈압 오를테니까 짜게 드시지 마시고요. ……이런 편지를 받고 열이 안 받으면 그 사람에게는 성인군자라는 칭호가 붙을 것이다. 위의 편지대로라면 제국은 큰 별을 하나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에 진실로 공주가 그리하였다면 황가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황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로 했다. 지략의 기사를 잃는 것도 크나큰 타격이지만 그레드릭 대공을 잃는다면 약체화 된 제국은 남방 캘더린과 서방 팬크라프트에게 찢겨먹힐 것이다. “잠시 쉬고 오겠네. 으흠.” 지략의 기사 놈은 대담하게도 몇몇 증거품들을 보내어 협박까지 하고 있었다. 황제의 안주머니에 든 사진이 그러했다. 그것에 들에는 아크와 공주와의 정사장면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아크에게 더 있다면 그야 말로 황가는 약점을 잡히게 된다. “공주야.” “아바마마 오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겠느냐?” 황제는 편지와 사진을 공주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공주는 붉어진 얼굴에 차가운 양손을 대며 수줍게 말했다. “……사실입니다.” 황제는 신음했다. “끄흐으음.” 그런 황제를 공주는 차분히 설득했다. “너무 그리 상심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가 도리 수 있습니다. 저와 관련된 사항을 철저히 숨기고 대공이 납치되었다는 사실만 신료들에게 알리십시오. 그리고 지략의 기사에게는 모든 죄를 사해 주신다고 한다면 그는 다시 와 줄 겁니다. 그것도 제 충실한 신봉자라요.”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편지의 문장은 건방지지만 그도 어느 정도는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는 표가 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지략의 기사라는 명성을 가진 그가 쉬이 배반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정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티나야 널 그렇게 한 자를 용서하겠다는 뜻이더냐?” “아뇨. 어설픈 꾀로 그를 얻으려 한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는 이미 제가 유카나양을 통한 이간책을 펼쳤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납치까지 해 가며 지키려 했던 그녀를 더욱 쉽게 구할 방법을 찾아 제게 무릎을 꿇었겠지요. 처음부터 그가 말한대로 참된 군왕의 모습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후 까다롭기는 하지만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진심으로 따르게 만든다면 천군만마가 뭐에 그리 부럽겠습니까?”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가 간다지만 사랑하는 딸이 순결을 잃게 되었다면 폭주하는 게 아비의 심정일 것이다. 황제는 그렇게 순간 노하면서 그레드릭 대공까지 잃을 뻔한 위기에 놓였다. 그 덕에 분노는 더욱 급상승했지만 하지만 의외로 담담한 당사자 공주의 반응에 황제도 분노가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좋다 다시 한 번 지략의 기사를 믿어보겠다.” //////////////////// 5권 분량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수정작업에 들어가 마감하는 일만 남았군요. 그리고... //////////////////////// 6권 분량 예고 아크 : 우와 드래곤이다. 루벤드 그레드릭 : 그렇게 넋놓고 있을 때가 아닐세!!! 쥬레이나란의 원수 광룡 갈란드그렌과 마주친 아크 일행. 아크의 마지막 필살기는? 아크 :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그리고 다시 찾은 엘프 마을... 리엔느 : 네놈 따위 꼴도 보기 싫어. 당장 사라져. 아크 : 리, 리엔느??? 중도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 그리고 성녀 로리엔 : 그 검은? 아크 : 당신은...이계인입니까? 오라전대의 다이제스트식 예고를 따라해 봤습니다. 구 디그리스 수도 텔포니움의 한 여관. 이른 아침의 식당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투숙객들이 테이블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테이블 중 한 곳에는 백발이 성한 노인과 이상한 냄새가 날 듯 말 듯 하는 청년. 그리고 강철 의수를 드러낸 금발의 댕기머리 소년이 아침부터 위가 부담될 정도의 화려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먹기는 젊은 청년이 가장 많이 먹을 것 같은데 쌓인 접시의 숫자는 소년과 노인이 더 많았다. 중간의 청년도 이렇게나 몽땅 먹으리라고는 예측을 못 했는지 그저 입만 쩍 벌리고 노인을 주시했다. 결국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저기 대공 전하…….” “어허! 에르디 군. 루벤 할아버님이라고 부르랬잖은가?” “아. 예 루벤 할아버님. 저 너무 과식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실 먹기는 옆의 쥬레이나란이 더 많이 먹었지만 이미 쥬레이나란이 많이 먹는 것을 알고 있던 에르디였기에 관심사는 그레드릭 대공이었다 “허험. 인간이 나 정도 경지에 오른다면 식사를 며칠 동안 안 해도 별 반 무리가 없다네. 그러다 보니 한 번 먹다 보면 끝이 없지. 왜냐? 몸이 언제 다시 들어올지 모를 음식물들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이니까 말일세.” 보통 사람들이 그따위 식생활을 한다면 이 세계에서는 몇 되지도 않는 자랑스러운 비만인구 분류가 되거나 거식증에 걸리겠지만 그레드릭 대공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나저나 변태 인간하고 꼬맹이가 안 내려오네?” “허헛. 내버려두게. 남녀가 한 방을 썼다면 뻔하지 않은가?” 너털웃음을 짓는 대공에게 쥬레이나란은 질문을 던졌다. “루벤 할아버지. 그 육수쇼라는 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인간에 대한 호칭은 늙은, 젊은, 암컷, 수컷 등이 다였던 쥬레이나란이었지만 자기보다 연장자인데다가 확실히 강하기까지 한 그레드릭 대공에게만큼은 정상적인 호칭을 사용했다. “허허헛. 에드워드야 사내로 태어난 진정한 즐거움이라 함은 술과 여자를 탐하는 것이니라. 그것이 재밌지 아니하면 어찌 이토록 인간들이 번식을 했겠느냐?” “그런데 암컷 쪽에서의 반응이 이상하던데요? 지난번에 변태인간하고 공주인가 하고 그걸 하는데 처음에는 무진장 아파하다가 갈수록 좋아하던데요? 거기서 육수말고 피도 나오던데 그게 안 아플까요?” 쥬레이나란은 아크의 공주능욕 사건에서 그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야 말았다. 하느라 정신없었던 아크 대신 광경을 찍고 녹화한 것 역시 그였다.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바로 앞에서 인간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어린 헤츨링에게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무럭무럭 일고 있었다. “허허 앞서 말하지 않았느냐? 여자들도 그것이 좋기에 하는 것이지. 그것이 싫어서 거부한다면 인간이 어찌 번식을 하겠느냐? 뭐 처음 하는 경우에는 피도 나고 아픈 법이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피도 안 난단다. 내가 여자는 아니지만 들은 바로는 여자가 더 재미를 많이 본다고 하더구나.” 대화 내용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궁금한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가족애가 넘치는 단란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있을 때 2층에서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유카나가 아크의 팔짱을 끼고 그를 질질 끌면서 내려왔다. 아크는 눈을 반쯤 감은, 졸린 기색이 만연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유카나도 잘 잤느냐?” 대공은 인자한 미소로 유카나를 맞이했다. “흐아암 좋은 아침…….” 풀썩. 6인용 테이블. 아크는 의자를 꺼내고 앉자 마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에르디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주군께서 힘이 없으시네요.” 그러자 유카나는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숙였다. “그게……어젯밤에 제가 어른이 되는 의식을 치루어 주시느라고…….” “어, 어른의 의식?” 에르디와 루벤드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어른의 의식이라니……아크 이 사람 설마? 그때 쥬레이나란이 물었다. “그거 뭔소리야? 어른의 의식이 뭔데?” “응……그게 오빠하고 내가 하나가 되는 거.” 풉! 에르디는 후식 삼아 마시고 있던 물을 코로 뿜으며 자고 있는 아크를 보았다. 이, 이 인간 어제 2인실을 둘이서 쓰더니 결국엔 사고를 쳤군. 하지만 그레드릭 대공은 달랐다. 서로가 사랑한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법적으로도 전혀 하자가 없는 관계인데? 그런 마음가짐은 진심 어린 축하를 가능하게 했다. “축하한다. 유카나.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에헷!” 부끄러운 듯 혀를 내미는 유카나에게 쥬레이나란은 사심 없는 질문을 했다. “좋았냐?” “으, 으응?” “처음에 아프거나 그러지는 않았어?” “자, 잘은 모르겠어. 에드.” 유카나는 쥬레이나란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쥬레이나란의 변신한 모습은 15세의 소년이기는 했지만 키가 너무 작은지라 동갑내기라고 아크가 소개한 것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300세가 넘은 헤츨링이지만. 유카나는 쥬레이나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지난 번 자신의 대역을 해 준 게 눈앞의 소년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에드워드야. 유카나도 이제 처음이란다. 그래서 그다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단다. 너도 이제 다 컸으니 나중에 한 번 해 보거라.” 대공의 말대로 언제 한 번 실습해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쥬레이나란이었다. “흠 일단 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이목을 속인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허헛. 무엇을 에드워드군도 유카나양도 전부 내 손주들 같던데 오랜만에 내가 백 몇 살 때로 돌아간 것 같았어. 지금은 뭐 현손주들도 전부 죽고 후손들이 워낙 많아서 특별히 귀여워 해 줄 녀석도 없었는데 귀여운 손자들이 생긴 것 같아 좋았네.” 이미 황제 측에서는 용서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그레드릭 대공의 납치 소식에 제펠 폭행 사건으로 지략의 기사를 벌하라고 난리를 피우던 귀족파들 역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레드릭 대공을 회유하자마자 쥬레이나란의 숙원인 원수 드래곤을 잡기 위해 우라시드 산맥을 향해 여행을 떠났던 아크들은 그것을 알 턱이 없었고 설사 안 다고 하더라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지라 가족 행세를 하며 다니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대공은 한 나라의 대공작이자 군부의 수장, 그랜드 마스터란 타이틀에서 벗어나 손주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팔불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을 하기에 앞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아크는 우라시드 산맥의 지도를 펼쳤다. “야 그런데 그 놈이 누군지 알고 여기서 찾겠다는 거야? 거기다 여기에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있어?” “물론 장담 못하지.” “지금 장난치냐? 앙! 그럼 어느 세월에 여기를 다 뒤져! 네가 어딘지 알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새꺄! 닥치고 좀 들어 봐! 누가 미쳤다고 여기를 다 뒤진데?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내가 잘 아는 드래곤을 만나서 네 녀석의 원수가 정확히 누구이며 어디 사는 지 알아내기 위해서란 말이다!” “호오? 자네가 알고 있다던 레드 일족의 수장 말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동료가 되어 싸워 줄 제 사부이자 형님이신 무신과 그 밑에서 수련 중인 소드 마스터가 있습니다. 거기서 유카나를 잠시 맡기고 전력이 되는 이들만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겁니다.” “무신이라…….” 그레드릭 대공은 허리춤에 찬 검을 만지작거렸다. 무신이라는 이름을 듣자 호승심이 일어난 것이다. 본디 무신과 팬크라프트 대공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륙 최강자는 그레드릭 대공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타난 무신이란 이계인이 대륙 최강이라는 명성을 날리고 자신은 그 뒤의 강자로 주저앉았다. 400년 수련의 결과 그레드릭 대공은 그랜드 마스터 위의 단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틀린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 좌절한 뒤 얻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신도 기껏해야 그랜드 마스터. 그를 이겨 다시 최강자의 자리를 되찾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갑자기 나타난 자이기 때문에 필시 기연 등을 얻어서 강해진 것일 공산이 컸다. 그렇다면 꾸준히 검을 연마해 이 위치에 오른 자신이 못 이길 이유는 없었다. ……라고 대공은 생각했지만 과연 그럴까? “정말 브락라스노 님하고 네가 알고 지내는 사이야?” 못 믿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말투였다. “어. 그분이 사돈어른 되셔. 내가 그분의 스승이었던 적도 있었고.” “뭐어? 뻥도 어지간히 쳐라.” “어라……진짠데.” “주군. 솔직히 그건 좀 심했습니다. 믿을 만한 거짓말을 하셔야죠.” 다들 안 믿는 눈치다.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진실만을 얘기하는 아크가 왜 이렇게 천대받는 것일까? “……안 믿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 그래 안 믿는 것도 이해는 다 간다. 자 일단 무신의 은거지까지 가자고!” 아크를 선두로 일행은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산행이라 만반의 준비는 끝마친 상태였다. 유카나도 오러를 다룰 줄 아는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고 신체적 능력이 약한 에르디도 619부대에서의 근성만 살아난다면 크게 신경 슬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가 어디있느냐는 점이었다. 드래곤의 은폐 마법에다가 어지간히 깊숙이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헤맬 가능성이 매우 컸다. 나올 때야 좋다고 뛰쳐나왔지만 돌아가 본 적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허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으응?” 위진무는 보통 동물들이나 오크들이 뿜어내는 것보다 더 방대한 마나가 새어나오는 기운에 눈을 찡그렸다. “왜 그래?” “침입자다.” “어? 마나 트랩은 작동이 없었는데?”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랜드 급으로 보이는 거대한 마나를 지닌 이와 마스터급의 마나를 지닌 이 둘, 그리고 익스퍼트 급 하나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하나. 이 다섯 명이 이 근방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의 전력을 갖출 만한 나라는 팬크라프트밖에 없을 것이다.” 정확히는 루드비안에서 온 이들이었지만. “그래? 요새 밑에가 팬크라프튼가 뭔가 해서 시끄럽더니만 결국 여기까지 온 건가?” “아마 날 또 회유하러 올 공산이 크겠지. 밑에서 일을 벌이고 있다면 숲에 길을 내는 일일 테니까. 곧 전쟁이 벌어질 것 같으니 나를 데려가려 온 것 같다. 렌도로스 녀석……언제까지 날 이렇게 귀찮게 할 셈이지…….” “그럼 내가 가서 쫓아버리고 올게. 그럼 됐지?” “알아서 처리해 준다면 고맙겠군.”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위진무는 표현이 없었다. ‘하긴 조금 더 노력하면 저 철면피도 좀 더 나아지겠지.’ 카인은 그렇게 희망을 가지며 남편이 껄끄러워하는 남편의 제자들을 쫓아내러 산지를 내려갔다. “……조심해라.” 이 말 한 마디 하는 데에도 상당한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자 더더욱 그가 귀여워 보인다. “그럼 다녀올게.” 산길을 내려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조심햇!” 퍼벙! 퍼버벙! “6서클 전체마법 파이어 샤워다! 애써 피하려고 해 봐야 피할 데가 없어! 막아!” 쥬레이나란의 외침에 놀라서 뛰어다니던 에르디와 아크는 제 자리에서 멈추었다. “오, 오빠!” “유카나!” 아크는 유카나에게 명중하려는 불덩이를 자기 몸으로 막았다. “괜찮아?” “네.” 아크나 그레드릭 대공, 쥬레이나란의 경우에야 그다지 큰 위협은 아니었지만 유카나나 에르디는 이 공격에 취약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에드워드 군. 에르디 군을 보호해주게.” 그레드릭 대공은 마나의 흐름을 포착해 내고는 그곳으로 달렸다. 아무래도 드래곤의 습격같은데 이런 숲 속에서 본체를 드러내고 있지는 않을 테고 폴리모프의 모습이라면 충분히 검으로 끝장을 볼 수 있었다. ‘저기다.’ 대공의 애검 카이나드 세이버에서 흰 마나의 뭉치가 뿜어져 나갔다. 콰광 콰과과광! 땅이 파이고 나무가 날아갔다. 숨어 있던 인영은 이미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다행히 파이어 샤워의 캐스팅은 더 이상 되지 않았다. “유카나 이거 가지고 있어. 알았지? 그리고 쉽게 움직이면 안 돼.” 아크는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를 유카나에게 맡기고 대공이 뛰어간 쪽으로 달려갔다. 그 때 옆의 숲을 스쳐지나가는 인영이 일으키는 바람에 아크는 즉시 마법을 날렸다. “다이아몬드 더스트!!!” 수많은 얼음 조각들이 날아갔으나 적으로 예상되는 인영의 몸놀림은 너무나도 빨랐다. 얼음의 조각들은 죄 없는 나무들에게 박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뭐야? 어디갔지?” 아크는 그 인영의 사라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 때 거대한 불꽃의 구가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흐앗!” 아크는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로 대부분의 마법을 막았기에 마법을 막아내는 기술에 익숙치가 않았다. 때문에 불꽃의 구가 근접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도망치는 일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망치려는 방향에서도 또 다시 거대한 불꽃의 구가 날아왔다. “쌍방향이냐!” 몸놀림은 잽쌌기에 두 개 정도는 피해 낼 수 있었다. 아크는 머리를 써서 불꽃의 구들을 나무로 유인해 제거했다. “후우. 진땀 뺐다? 으아악!” 허나 이번에는 열 개가 넘는 불꽃의 구가 날아왔다. 이것만큼은 아크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크윽! 죽는 건가?’ 그래도 실전에서 거의 쓴 적이 없지만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검막을 만들기 위해 아크는 방금 전 다이아몬드 더스트를 썼을 때 뽑아 들었었던 프로즌 아이스를 전방에 겨누었다. 그러나 불꽃은 검막을 생성할 틈도 없이 아크를 덮쳤다. “흐아아아악!”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뜨거워야 하는데……? 뜨거워야 할 텐데……? 프로즌 아이스는 엄청난 연기를 뿜고 있었다. 때마침 마지막 한 개의 불꽃의 구가 날아왔다. 치이이익! “헉……뭐냐? 신급 아이템의 위력이었나?” 프로즌 아이스의 강렬한 냉기 덕에 불꽃들은 자진 진화되었던 것이다. 신급 아이템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조금 여유가 생기자 아크는 호기롭게 소리쳤다. “야! 너 누구야! 빨랑 나와!” 그러자 진짜로 숲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아크는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춘 뒤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 이 쌍칼을 앞세우고 인영을 향해 돌격했다. 하지만 곧 그는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튀어나온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어라…… 형수님?” ///////////////////////////////// 마츠시마 카에데!!!!!!!!!! 노모자이크 풀버전 출연작 가지고 계신 분!!! 하세가와 이즈미양 노모버전도 구합니다!!! .........(드디어 미쳤군. 여기서 성인자료를 구하려고 하고) 오랜만에 다시 일본 AV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한 가지 느낀 점은. 왜? 일본은 미인들만 에로비디오를 찍을까요??? 그녀들의 벗은 모습 므흣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좋지만 한떨기 꽃처럼 순수함을 지키는 것도 보기 좋은데....(뭐라는거냐? 도대체) 위진무는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저 정도 전력이라면 카인 정도 드래곤은 조금 힘들긴 하나 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쉬이 패배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랜드 마스터의 마나를 지닌 이들과 함께 카인이 다시 이 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렌도로스……이 녀석.” 그러나 나타난 이들은 팬크라프트의 제자들과 그 부하들이 아니었다. “다녀왔어.” “오랜만입니다. 형님.” “네 녀석!” 그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받아들였던 제자이자, 의제 그리고 그의 일행들이었다. 위진무는 평소에는 잘 나오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아크를 맞이했다. “오랜만이구나. 그래 뒤에는?” “아 제 동료이자 친구이자 상관이자 애인……입니다. 저기 로니 누님은요?” 아크는 데리고 온 동료들을 소개했다. 유카나를 소개할 때는 아크는 조금은 머뭇거렸다. 여기에는 본 부인이 있는 것이다. 설마 어린애를 박대하지는 않겠지만 꼬장 부릴 것을 생각하니 약간은 두렵다. 유카나에게는 이미 얘기를 해 두었다. 하지만 로니의 경우……무서웠다. “하하하 어린 애인이구나 여하튼 애인이라. 어지간히…… 깨지겠군.” “으헉! 사, 살려주십시오. 형님. 절 마수에서 구해주실 분은 사부님 뿐이 없어요!” “다 네 업보이니라. 로니야!!!” 위진무가 큰 소리로 로니를 불렀다. 그리고 저 멀리서 사부의 호출에 걸어서 오던 그녀는 전방에 낯선 인물들과 함께 있는 아크를 발견하고서는 사바나의 성난 코뿔소처럼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그녀를 껴안으려 했던 아크.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로니의 무릎찍기에 그대로 명치를 허용하고야 말았다. 퍽! “크하악!!!” 자세가 무너진 아크를 로니는 건틀릿을 찬 손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으헉! 왜, 왜 때려요!” “네 녀석 그럴 줄…….” 아크는 왜 맞는지도 모르고 계속 얻어맞았다. 하도 맞다 못해 아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는 맞을 이유도 없었고 반항할 힘도 있었다. “왜 때려요!!!” “너! 어디서 어린 여자애를 데려다가 수련이랍시고 그런 짓을 해! 어! 뭐? 수련? 속에까지 벌려 보면서 손가락으로 비벼대는 게 수련이야?” “그, 그걸 어떻게……?” “수상해서 달아 달라고 했지. 뭐 중간에 감옥에 들어가면서 끊겨버리기는 했지만. 너 아주 여기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어린 여자애를 갔다가 그런 짓이나 하고……어유 너 오늘 한 번 죽어봐.” “으악!!!” 그랬다. 아크가 이곳을 떠날 때 로니는 노파심에 카인에게 아크를 남몰래 추적하고 행적을 알려 주는 마법 생물을 딸려 보내도록 부탁했다. 그리고 그 생물은 수정구를 통해 아크의 일거수일투족을 이곳에 전달했다. 다행히 아크가 마법이 금지된 감옥에 붙들려 가면서 아크에 대한 도촬은 끝을 맺었지만 그 전에 했던 나쁜 짓(?)인 유카나 능욕사건은 고스란히 로니에게 전해졌던 것이다. “어유 죽어라 죽어!” 방금 전에는 반항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명분을 잡힌 이상. 이제는 화가 풀릴 때까지 맞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크가 몸을 웅크렸을 때 갑작스레 로니의 구타가 멈췄다. “그만 하세요!!!” “넌 누구야?” 눈을 뜨자 아크 앞에는 유카나가 버티고 로니를 막고 있었다. “왜 우리 오빠 못 살게 구는 거에요!! 그만 하세요.” “……아! 너 이 변태녀석한테 당했던 꼬마애구나. 얘 이런 변태 치한은 언니가 알아서 잘 해결해 줄 테니까 비키렴.” 로니는 유카나를 알아보았다. 이 어린 여자애는 아직 이 인간의 본성을 잘 모르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아크가 이 여자애에게 손을 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를 패야 한다는 명분이 생겼다. 그때 로니의 귀에 ‘약혼녀’란 단어가 들려왔다. “자, 잠깐? 꼬마야. 뭐……라고? 약혼녀? 누, 누가?” “오빤 제 약혼자에요! 그만 하세요.” 쿠구구궁 로니의 뒷배경으로 날벼락이 떨어졌다. 야, 약혼자? 이런 어린애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세상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딴 여자를? “……너, 너, 너! 여기서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첩질이야! 엉! 이게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자자자자자 잠깐만요! 누님! 그랜드 마스터가 되려면 40년은 족히 걸린다면서 바람 피우는 건 봐준댔잖아요! 아니 그리고 솔직히 그 시간 동안 혈기 왕성해 죽겠는데 고자로 살란 말입니까?” “죽을래? 데리고 놀 여자 정도여야지. 뭐? 결혼약속까지 해? 오호 단물 쓴물 다 빨아먹고 나니까 이제 질린다 이거지?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그만하세요! 오빨 더 이상 때리지 말라고요!” 유카나는 아크를 감싸며 소리쳤다. 그녀의 조그마한 몸체로는 아크를 다 보호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로니는 더 이상 아크를 구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토록이나 아크를 옹호하는 유카나를 보며 이 철없는 여자애에게 아크란 인간의 사악한 마수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이 얘. 네가 그토록 지키려는 이 오빠란 사람은 말이야…….” 온갖 안 좋은 수식어는 다 가져다 붙이면서 아크를 흠잡았지만 유카나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알아요! 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단점쯤은 받아들이고 수용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에 절 우롱할 생각은 마세요!” “…….” 어떻게나 이렇게 완벽한 신봉자로 만들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로니였다. 이러면……유치하지만 본부인 티를 내면서 세컨일 수밖에 없는 신세를 강조해서……. “꼬마야 난 말야. 30년 전에 이 인간이~(중략) 이렇게 해서 같이 살았고 ~삐리리리 한 삐리리 도 해봤고 삐리리 삐리리 이런 것도 해 봤단다. 응?” “저는요 오빠가 익스퍼트 급 기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 그것 외에도 정략혼에 당할 뻔했던 것을 오빠는 지위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구해주셨어요! 그리고……그렇게 심하진 않지만 저도 해 봤다고요!!!” “해, 해봐? 저, 정말?” “삐리리 하고 삐리리 해서 삐리리 해 봤어요!” 실로 당황스러운 유카나의 대답이었다. 설마 진짜로 그런 단계까지 건드렸겠느냐고 아크를 믿었던 로니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난이도다. “죽어엇!” “으아아악!” 빡! 역시 유카나의 작은 몸체로 아크를 다 가리기란 불가능했다. 비어 있는 틈 사이로 그녀의 정권이 아주 제대로 먹혔다. 그 모습을 보던 쥬레이나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식으로 한 마디 뱉었다. “……이 동네는 저런 식으로 인사를 하나 보네.” “허허허…… 지략의 기사를 저렇게 다루는 이는 처음 보는 군.” “저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아크가 로니에게 얻어맞는 장면을 보던 그들에게 위진무는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네. 내 이름은 위진무. 가당찮지만 무신이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네.” “무신!!!” 에르디와 루벤드에게는 무신이란 이름이 갖는 의미가 각별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경지인 것이다. 특히 그레드릭 대공은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는 기도의 압박이 상당함을 느끼며 자신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는 믿고 싶지 않은 짐작이 들었다. “나는 루드비안 제국의 대공인 루벤드 그레드릭이요.” “오호 기도가 상당하시다 했는데 그곳의 그랜드 마스터라시는 그레드릭 대공이구려. 반갑소이다.” “아 저는 지략의 기사이신 아크 페인 후작님의 가신인 에르디 게이레로라고 합니다.” “……저 녀석이 후작이 되었소?” “그렇습니다. 루드비안의 후작입니다.” 위진무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결국엔 아크도 그 힘을 세상에 부질없이 쓰게 되었다. 거기다 팬크라프트가 노리고 있는 루드비안의 귀족이 되었다는 소리는 아마도 지난 번 로니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자신의 제자들과 부딪히게 될 공산이 컸다. “내 인간 이름은 에드워드 엘릭. 이곳에 계시다고 하는 레드 일족의 수장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혹시 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설마 저기 저 레드 분을 수장이랍시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브락라스노 말이로군. 지금은 없지만 가끔 찾아오지. 만나고 싶다면 레어 정도는 안내해 줄 수 있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 될 듯 싶군. 로니가 아크 녀석이 오기를 학수고대 하고 있어서 바로 놔 줄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야. 자네들의 용건은 그것인가?” “아크 경이 우리를 데려 온 이유는 어떤 드래곤을 잡기 위해서요. 하지만 행방도 이름도 모르죠. 그 때문에 정보에 밝은 레드 일족의 수장을 만나려 온 것이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아도 되겠소이까?” “그러시오.” “저 여자 분은 누구기에 저토록이나 아크 경을 구타하고 있는 것이오?” “아 저 아이는 내 제자이자 저 녀석과는 부인이나 마찬가지인 사이이지요. 론 이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아크 녀석과 폴티아 전쟁에서 활약했던 적이 있었소.” “서, 설마 충혼의 기사라 불리던 론 루네아???”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로군요. 맞소이다.” 지략의 기사 전설에 나오는 두 영웅 아크 페인과 론 루네아. 이 두 전설의 인물들이 한 편에서 때리고 맞는 장면은 정말 안 어울렸다. 그런 부부의 정겨운(?) 모습을 바라보던 대공은 위진무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저기 이보시오. 무신.” “왜 그러시오?” 대공은 눈에서 불을 뿜으며 말했다. “나와 한 번 겨루어 주지 않겠소?” “호오 호승심이 일어나시는 모양이시구려 대공. 내 그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 나 역시 상대해 줄 의향이 있소이다. 하지만 여기서보다는 장소를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으시겠소?” “그럽시다.” 그 둘은 자리를 옮겼다. 운동장 넓이는 가벼이 넘는 거대한 공터의 정 중앙에서는 그레드릭 대공과 위진무가 서로를 대치하고 서 있었다. 그 무서운 기세에 시끄럽게 울어대던 산새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괜찮아요? 오빠.” “하하 괜찮다니깐. 여기 누님도 날 진짜 죽이려고 팬 것도 아니고 설사 그렇게 죽이려고 팼다고 하더라도 맞아 죽을 나도 아니라고.” 유카나는 물수건으로 아크가 집중적으로 얻어맞았던 곳들을 닦아주었다. 아크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대공과 위진무 쪽으로 돌리고 자신을 모른 척 하는 로니에게 가볍게 대화를 걸었다. “저기 머리는 왜 잘랐어요? 긴게 더 보기 좋았는데?” “내 맘이야 묻지 마.” 토라진 목소리이긴 했지만 그래도 반응이 오는 것을 보니 삐져도 그렇게까지 단단히 삐진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충분히 파고 들어갈 틈은 있었다. 말로는 오랜 시간동안 못 만나게 될 테니 다른 여자를 사귀는 것도 굳이 반대하지는 않겠다고 하나, 속으로는 내심 혼자의 몸이길 바랬을 것이다. 그런데 버젓이 그것도 어린애를 하나 꼬셔서 데리고 오니 속에서 불이 안 날 리가 있나? 이럴 경우에 대비한 하렘형 스토리도 미연시에서 영감을 받아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그대로만 한다면 별 무리 없이 2:1의 꿈도 이룰 수 있을지 몰랐다. 처첩들의 질투와 시기만큼이나 사람 골머리 아프게 하는 것도 없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서로 친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시작한다.” 에르디의 긴장된 목소리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 검수들이 서서히 검을 뽑아 들고 있었다. 대공의 검은 카이나드 세이버라는 미스릴로 제작된 명검. 그에 비해 위진무는 초라하게 녹이 슬어 바람에 녹가루가 날리는 검으로 무기 급수에는 위진무가 단연 압도당했다. ‘실력을 측정할 수가 없다니……이 자는 나보다 훨씬 강하다는 말인가?’ 그레드릭 대공은 앞서 펼쳐진 염탐전에서 위진무의 실력을 아무 것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 급 정도 되는 그가 못 알아볼 실력이라는 것은 그를 상회하는 엄청난 실력자뿐이 없었다. 각자의 검에 오러가 어렸다. 검은 대공의 검이 확실히 좋았지만 오러 대결이 주를 이루는 강자들의 결투에서는 검의 질은 그다지 따질만한 것이 못 되었다. 오리하르콘으로 제작된 아크의 블레싱 소드 같은 경우나 오러를 쓰지 않아도 그다지 어렵잖게 오러 블레이드를 막을 수 있으니 모르겠지만 미스릴급만 해도 오러를 씌운 목검에 잘려나가는 마당인데 그 무엇을 신경쓰겠는가? 검을 뽑았으면 마땅히 공격과 방어가 시작되며 결투가 벌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둘은 검만 뽑아든 채 서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빈틈이 없으니 공격할 곳도 쉬이 찾지를 못하는 것이다. “빈틈이 없으면 만들어야겠지.” 위진무는 검을 들어 올린 다음 그대로 허공에 내던졌다. 허공에 내던져진 그의 검은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져야 하는 만유 인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그대로 날아가 대공을 노렸다. “……!” 유카나와 쥬레이나란 그리고 에르디는 검이 자기 멋대로 날아가 대공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카나는 검이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저 놀라운 광경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아크를 흔들었다. “뭐야?” 그러자 싸늘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카나가 건드린 것은 아크가 아닌 로니였던 것이다. 조금 눌리기는 했지만 유카나는 그래도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게 뭐예요?” 로니는 싸늘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이기 어검이란 거야. 의지만으로 검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지.” “이기 어검이요? 저렇게 되려면 얼마나 더 수련해야 하나요?” “그랜드 급 마스터. 정도는 되어야 겠지.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라 하더라도 지속시간은 그리 길지가 못해.” “그럼 저분은……?” “그야 말로 무신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은, 아니 오히려 아까운 분이야. 내 사부님이시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이 대공은 제 맘대로 자신을 공격해 오는 검에 대해서 상당히 당황했지만 곧 침착해 질 수 있었다. 데스 소드 라는 검에 원혼이 씌인 몬스터를 상대한다고 생각하자. 그리고 자세히 살피다 보니 이 불가사이한 기술을 자신도 사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원리로 검이 날아다니는 지 이해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팟! 그 순간 대공의 카이나드 세이버 역시 허공으로 띄워진 뒤, 위진무의 검과 맞부딪혔다. 챙! “호오? 렌도로스에게도 가르치지 않았던 어검술을 사용하는 이가 있을 줄이야. 대단하시구려.” 하지만 그것을 유지시키고 있는 대공의 표정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승부는 나 버렸군.” 하기야 이미 끝난 싸움이었고 애초에 이기지 못할 싸움이었다. 대공이 자신을 가지고 있는 기술들을 펼치기도 전에 기량의 차이가 워낙 컸다. 이대로라면 어검술을 유지하지 못하고 끝나 버릴 것이다. “포기하시구려. 그 기술은 어지간한 마나로 유지시킬 수 있는 기술이 아니외다. 오히려 들고 싸우는 것이 조금이나마 내게 승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오이다.” “크흣.” 대공은 어설프게 흉내내던 어검술을 포기해 버렸다. 솔직히 그의 말대로 그 기술을 더 이상 유지시킬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다시 검을 잡고 날아다니는 상대의 검을 막기 시작했다. 그때 위진무는 승부수를 날렸다. 날아다니는 검을 막느라 정신이 없던 대공은 어느 순간 근접거리에까지 다가온 무신을 보고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퍽! 대공의 배에 정권이 찔렸다. “쿠허억!!!” 상당한 반경을 나가떨어진 그레드릭 대공은 그대로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는 먼지를 날리면서 파괴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승부가 허무하자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하던 아크에게 위진무가 말했다. “아크! 당장 가서 치료해 드려라.” “아. 예 형님.” 아크는 곧바로 달려가 대공을 부축함과 동시에 블레싱 소드로 그를 치료했다. 큰 내상 등은 없는 듯 싶었다. 고수간의 싸움도 고수들이 서로 막상막하일때나 재미있는 것이지.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무신에게로의 도전은 정말 너무나도 허무하게 대공의 패배로 끝나 버렸다. 이러한 패배를 겪으며 그레드릭 대공은 무신이란 남자가 보통의 실력을 가진 평범한 그랜드 마스터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인간으로서 그랜드 마스터 급 이상의 경지를 성취한 가공할 만한 인간. 그가 바로 무신이었다. //////////////////////////////// 100회 특집 연참!!!! 은 없습니다.(죽어랏! 퍽!) 대신 오늘 내로 레드 어덜트 에볼루션이라거나 아크라우스와 피스메이커의 만남 등의 외전이 완성된다면 100회 특집이란 이름을 달고 올라올 것입니다. “최근에 드래곤 살해를 한 드래곤이라면…… 골드 드래곤 갈란드그렌이로군. 실버 드래곤인 쥬로미네인과 그린 드래곤 지룬시아를 죽였지.” “……!” 쥬레이나란의 표정이 심하게 흔들렸다. 죽은 어미의 이름과 그 원수의 이름을 드디어 듣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건 왜 묻나? 어린 헤츨링이여. 아직 부모의 보호가 필요할 그대가 어찌 나를 찾아왔는지도 궁금하군.” 브락라스노는 눈앞의 실버일족의 꼬맹이를 씁쓸한 눈초리로 보았다. 헤츨링 가출사건은 흔히 일어나는 잦은 일이었다만 그 뒤처리는 그 헤츨링을 처음 발견한 고룡이 알아서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는 골칫덩이를 맡게 되었군. 이란 생각 중이었다. “그것이……갈란드그렌이 죽인 쥬로미네인이 바로 제 어머님이십니다.” “……흠.” 하지만 쥬레이나란의 슬픔에 잠긴 듯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브락라스노는 이 헤츨링이 단순히 수련이 지겨워 뛰쳐나온 한심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보통 부모를 잃은 헤츨링은 일족의 다른 고룡에게 맡겨져 양육되게 되어 있지만 애 기르기 귀찮다며 애도 잘 안 낳는 드래곤들도 많았고, 이미 한 번 키워봐서 지겹다고 느끼는 드래곤들도 많았다. 하기야 성룡이 될 때까지의 500년이란 세월 동안 얼라를 기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이해가 갔다. 실버 일족의 일에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 헤츨링은 부모나 다른 고룡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테고 당연히 이런 자유 행동도 가능했을 것이다. “저기 브락라스노님. 갈란드그렌의 레어가 어디 있는 지 알고 계십니까?” “음? 알고는 있네만. 무엇 때문에 그건 묻는가?” “그를……죽이겠습니다.” “……!” 헤츨링이 에인션트 드래곤을 죽인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헤츨링이니 명분 없이 먼저 공격한 것이 드래곤일 경우 정당방위 원칙에 의해 상대를 죽여도 된다. 라는 규율에 적용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 수가 없었다. “허튼 소리 말게. 어찌 헤츨링의 몸으로 에인션트 드래곤을 죽이겠다는 말인가? 부모를 잃은 원한은 내 충분히 이해하나. 무리일세. 명분도 없지 않나?” “저 혼자서 죽이겠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그 말을 듣자 브락라스노는 갑작스레 위진무의 제자인 아크가 동료들과 같이 이 초야를 찾은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인간의 힘을 빌려 처단하겠다는 소리인가?” 그 물음에는 아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브락라스노 님.” “허, 허허 미친 소리. 그랜드 마스터 하나와 소드 마스터 하나 거기에 헤츨링 하나……하! 지금 제정신인가? 에인션트 드래곤이라 함은 인간 그랜드 마스터 다섯 정도는 달라붙어야 이길 수 있는 난적이야. 그런데 고작 이 정도 전력으로 덤비겠다니…….” “후후후 제가 미쳤습니까? 이 정도 전력만으로 도전하게? 제가 여길 온 이유는 정확한 적을 알아내기 위한 것도 있기야 합니다만은 또 다른 의도는 바로……이분이십니다!!!” 아크는 위진무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자 대공을 비롯한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기타 모두는 위진무를 주시했다. 그랬다. 저 사람만 있으면! 그러나 곧이어 이어진 브락라스노의 말에 모든 희망은 무너져 버렸다. “허험. 그래 위진무가 있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혼자서도 두 셋은 상대하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카인과의 결혼으로 저 녀석은 이미 인간이 아닌 드래곤 일족으로 인정을 받았다. 인간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찌 드래곤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다른 일족 녀석들의 태클이 있기야 했지만 강함을 숭배하는 우리 레드 일족의 전통에 따라 늙어 죽지도 않는 수명 무한대에 드래곤보다 강한 그를 추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저 녀석은 이제 드래곤이야. 드래곤끼리는 영역분쟁 따위가 아닌 경우 서로를 죽일 수가 없어.” “……그런!!!” 모두는 허무해졌다. 이 전력을 가지고 부딪힌다는 건 도저히 무리다. 그런데 위진무 역시 도울 수 없다니……. 이 비장의 수를 들고 쥬레이나란을 도와주겠다고 한 아크가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다네. 실버 일족의 헤츨링이여. 방법이라 하면 갈란드그렌이 광룡으로 지목되는 것과, 그가 다 늙어 죽어 갈 때 즈음 마나 분산증이 시작될 때 뿐이라네. 이미 7000살이 넘었으니 자네가 3000년 가량만 더 기다린다면 충분히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걸세.” “저기 근데 광룡으로 지목되다니 그건 무슨 뜻이죠?” “말 그대로 광룡으로 찍히게 된다면. 드래곤들이 죽일 수 있는 명분이 부여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럴 경우는 이유 없이 드래곤을 둘 이상 죽였다거나 마왕에게 협조했다거나 등의 사례가 없는 이상은 광룡으로 지정되지 않아. 그러니 어지간하면 포기하도록 하게. 아무리 갈란드그렌이 드래곤을 둘이나 죽였다지만 두 상황 모두 정당방위라는…….” “아닙니다!!! 그 녀석이 먼저 제 어머니를 도발했다고요! 그래놓고 영역분쟁이란 걸 뒤집어 씌운 겁니다!” “애석하나. 그랬다면 이미 증명이 다 되어있을 것일세. 드래곤 사이의 규칙에도 파고들어갈 틈새가 엄연히 있어.” “크흑!” 쥬레이나란은 굳게 쥔 주먹을 아래로 떨궜다. 아크란 변태 인간을 만나 못 미덥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그랜드 마스터라는 인간의 강자와, 원수의 행방과, 거기에 확실히 원수를 죽여 줄 수 있는 더 강한 무신이라는 인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여 버렸다. “흐, 흐흑!” 결국에는 마음에 쌓아둬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쥬레이나란의 눈에서는 분노의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순간. 그것을 본 아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울기까지 한다는 것은……그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일! 그렇다는 것은 해결만 해 준다면 호감도를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소리! 그렇게 된다면?’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승산 있는 방법 또한 떠올랐다. 아크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우는 쥬레이나란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 마.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까. 대공! 우리가 이 친구를 사귀어 지금까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전부 그의 간절한 소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아무리 어렵다곤 하나 포기해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에르디. 너도 그렇고. 그것이 꼭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녀석을 도와 줄 의무가 있습니다.” “흐으음……그렇긴 하네만은 방법이 없잖은가?” “아뇨. 진무 형님이 도와 주시기만 한다면 가능하기야 합니다.” “……유감이지만 나는 도와 줄 수가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그러기야 하지요. 하지만 그 갈란드그렌인가 하는 놈도 드래곤의 규약을 교묘히 이용해 두 드래곤을 해쳤습니다. 형님이라고 그것을 못하실 이유는 전혀 없지요. 또한 형님은 원래 무림의 인간이셨으니 강한 적을 여럿이서 꺾을 수 있는 진법을 알고 계시다든지 그럴 것 아닙니까? 거기에 직접적인 증거를 남기지 않고, 피해는 형님께서 주시되 결정적으로 죽이는 것만은 우리가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흐음…….” 맞는 말이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죽이지만. 진법 등을 펼쳐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죽지 않게 퇴로를 확보해 줄 수도 있다. 여차하면 브레스 등이 나갈 상황에서 앞장 서 브레스를 막아 주어도 되고. 세상사에 다시 뛰어들어 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단순히 살육을 즐기는 한 광룡을 잡아 달라는 부탁이다. 비록 지금 신분으로는 온전히 행하기 힘드나 도움을 주는 것 정도도 안 될 것은 없다. “좋아! 도와 주도록 하마. 직접적으로 죽이지야 않겠지만 전투와 도주에 도움을 주도록 하지.” 위진무가 결정을 내리자 모두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정말 이십니까?” “그래. 친애하는 제자의 부탁인데 못 들어줄 것이 무어가 있겠느냐? 좋다. 브락라스노. 자네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갑옷 등의 장비들을 조금 빌려 줄 수 있겠나? 그것들이라면 이들만으로도 승률이 상승할 수 있을 것일세.” “하하하 그럼 난 이만…….” 마법 아이템을 빌려 달라는 소리에 브락라스노는 몸을 뒤로 뺐다. “콧구멍!!!” 움찔! 콧구멍이라는 소리에 브락라스노는 몸을 움찔 했다. 그래 그 약점을 위진무는 알고 있었다. “그래! 도와 주도록 하지! 말만 하라고!!! 하하하하.” 속으로는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호쾌히 웃는 브락라스노였다. 갈란드그렌. 그는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생각했다. 헤츨링 시절. 어미가 잡아와 자신이 쓸 아이템을 만들던 노쇠한 드워프의 왕에게서 들은 대장장이의 혼은 그를 감복시켰고 그것을 계기로 그의 삶과 유희는 모두 어떠한 물건을 만들어 내느냐 에 달려 있었다. 보통 마법 물품들을 만들어내길 좋아하는 드래곤 종족이긴 하였으나 그는 남달랐다. 다른 드래곤들이 보기에는 상당한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걸 다시 녹여 최강의 작품을 갈구했고, 신의 금속 오리하르콘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등 수많은 세월을 제작욕에 빠진 채 살아온 드래곤이었다. 수천년의 세월 동안 만들어 볼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어 보았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그러나 아직도 미지의 금속은 있었고 그가 바라는 최고의 제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 하트 등의 도저히 미치지 않고서는 손 댈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재료를 구하려면 드래곤의 몸뚱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룡들을 찾아가 마나 분산증으로 사망하기 전의 육신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그토록이나 애원했지만 노룡들은 자신의 몸뚱이가 검 따위가 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다. 결국 그는 무서운 결단을 내렸다. 합법을 가장하여 드래곤을 죽여 그의 몸체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4~5000살 급의 다 자랐지만 조금은 만만한 두 드래곤을 죽였다. 조금은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창조혼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업보는 그의 목숨을 거둬갈 거라는 것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갈란드그렌의 영역인 모양이로군.” 위진무는 마법 트랩을 일부러 하나 밟으면서 말했다. 마법 트랩을 밟은 채 자신의 마나를 몽땅 개방했으니 놈은 드래곤이 온 줄 알고 뛰쳐나올 것이다. 몬스터나 나약한 인간이 밟았다면야 그냥 씹고 잘 지내겠지만 자신 정도라면 안 나오고 배길 리가 없다. “그나저나 거기 그 청년은 어째서 데려 온 거냐? 오히려 그 여자애보다 약해보인다만.” 위진무는 온갖 마법 장비로 보호받고 있는 에르디를 가리켰다. 소드 익스퍼트 급 정도인 어린애도 두고 올 정도면서 어째서 유약한 청년을 데려 온 것일까? “아 아마도 저 녀석이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큰 역할이라……두고 보도록 하지. 다만 그 청년만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듯 싶다.” 현재 드래곤 사냥에 동원된 정규 멤버는 위진무와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 아크, 쥬레이나란, 에르디, 로니, 그리고 후방지원의 명목으로 뒤로 빠져 있는 카인과 유카나였다. 아크들은 모두 옷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마법 속성 저항 악세서리 등과 빠른 발놀림을 가능하게 하는 부츠 등. 정말 웬만한 마법 공격은 웃으며 씹을 수 있는 드래곤의 물품들을 잔뜩 착용하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 아이템만 차도 굳이 위진무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10서클이나 브레스가 아닌 이상. 마법으로는 결코 피해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외라는 게 있었다. 브레스 조차 그대로 먹어버릴 수 있는 마법의 발동 스크롤이 하나 있긴 했지만 브레스를 맞거나, 육탄공격만으로도 드래곤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쥬레이나란과 카인이 공동으로 쳐 놓은 속박진. 일단 그곳에 걸려들기를 바래야 했다. “앗! 저기!” 에르디가 외친 하늘에는 황금빛 찬란한 거대한 새가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본디 드워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하고 살아오던 갈란드그렌이었지만 살기를 품고 있는, 그것도 드래곤을 능가할 것 같은 마나의 소유자에 차마 변신체의 모습으로 나올 수는 없었다. “우와!” 완전 골드. 황금빛 찬란한 그 모습에 아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닐세! 준비하게!” 골드 드래곤 갈란드그렌은 날개짓을 서서히 줄여가며 하강했다. 그 거대한 날개 짓 한 번에 거대한 바람이 일어 모두는 날아가지 않으려 애썼다. 다행히도 놈이 내려앉는 곳은 쥬레이나란이 쳐 놓았던 속박진이었다. 마나를 모으기 어렵게 하는 효능이 있는 진으로서 깨기야 어렵지 않지만 제법 시간이 걸리는 진이었기에 걸린다면 가장 대비해야 할 불시에 튀어나오는 용언의 10서클 마법의 캐스팅을 늦추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거기다 드래곤의 걷는 이동력을 감안해 본다면 빠져나갈 가능성 역시 희박했다. 모래 먼지를 날리며 갈란드그렌은 쿵! 소리와 함께 대지로 착륙했다. “하나같이 맹렬한 살기를 뿜고 있군. 거기다 내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드래곤들이나 만들 수 있는 악세서리들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왔다니. 그것은 날 죽이겠다는 뜻으로 알아들어도 되겠나?” 갈란드그렌은 아크 일행을 드래곤 슬레이어로 단정했다. 저 정도 실력과 아이템이라면 드래곤을 잡고 다닌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쥬레이나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드래곤 슬레이어 무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겠지만 모두들 드래곤의 악세서리 덕에 드래곤의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쥬레이나란이 헤츨링이란 사실을 갈란드그렌은 인식하지 못했다. “네가 갈란드그렌이란 놈이냐?” 아크는 드래곤 앞에서 매우 건방지게 삿대질을 하면서 물었다. 갈란드그렌의 영역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일단은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좋았다. “건방지군. 그렇다.” “그렇다는데?” “그럼 죽여줄 일만 남았군.” 쥬레이나란은 붉은 코트를 벗었다. 그러자 강철의수의 한쪽 팔이 유독 튀어 보인다. 에르디는 소총을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그레드릭 대공은 카이나드 세이버를 꺼내 드는 등 각자는 무기를 꺼내 들고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했다. “그럼 잘 해 보거라.” 그런데 가장 강한 실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위진무는 아무 것도 꺼내들지 않고 한 발자국 물러나며 살기를 거두었다. ‘음? 저건?’ 갈란드그렌은 아크가 들고 있는 검의 재료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황금빛 광채를 뿌리고 있는 그 검의 검신은 놀랍게도 신의 금속인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리하르콘은 인간계에는 몇 킬로그램 있을까 말까한 정말 극도로 희귀한 금속이었다. 갈란드그렌도 간신히 얻어 사용해 보았을 때, 이것이 왜 신의 금속인가 하고 감탄했을 정도로 엄청난 내구도등을 가진 그야말로 최고의 금속이었다. 드래곤은 죽여서 얻을 수 있었지만 저 금속은 도저히 많이는 구할 수 없음을 알고 포기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검신이라는 커다란 형태의 오리하르콘이 존재할 줄이야! 때문에 그는 브레스나 10서클급 전체마법으로 한 번에 드래곤 슬레이어 무리들을 쓸어버릴 계획을 수정했다. 어쩌면 드래곤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위진무 때문이더라도 무조건 한 방 먹일까 했지만 그런 위진무는 전투에 참가할 의사가 전혀 없는 듯이 보였다. 거기다 꿈에도 그리던 오리하르콘이 나타났는데 브레스 등에 작살나 버리거나 하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때 오리하르콘이 아깝더라도 강력한 전체마법으로 한 번에 적들을 쓸어버렸어야 했다. 갈란드그렌은 일단 한 번 아크를 회유해 보기 시작했다. 오리하르콘이라면 웬만한 마법에 파손될 염려가 없긴 하지만 마법에 격중한다면 흠이 날지도 모르고, 만에 하나라도 진짜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길거리에 개똥신세 되는 것이다. “그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보물인가? 아니면 드래곤을 잡았다는 명성인가? 혹시 자네, 그 검을 내게 양도할 생각은 없나? 그렇다면 드래곤의 사체와 내가 만들어 둔 온갖 보물을 다 주도록 하지. 어떤가? 그렇게 된다면 굳이 나와 싸우지 않고도 부와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가? 목숨을 내놓고 나와 싸우려는가? 아니면 그 검을 양도하고 실리를 얻으려는가?” “으응? 이 칼?”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달라는 말에 잠시 그 덕에 생길 이득에 대해 계산이 되기 시작했지만 쥬레이나란의 매서운 눈빛에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표시했다. “싫다. 이게 얼마짜린데 그 정도에 넘기냐? 이건 주신께서 직접 내리신 천하 제일 명검이란 말이다!” “어리석군. 죽음을 택하겠다는 건가? 그럼 죽도록!” /////////////////////// 쿨럭, 쿨럭 감기에 걸려버린 듯 싶습니다. 아침부터 수능보는 형들 응원한답시고 절대 폐인의 기상시간이라 볼수 없는 오전 6시에 일어나 학교로 가서 아침부터 힘내라고 소리를 빽빽 질러댔더니 목도 아프네요. 그래서 당분간 연중을...(퍽!) 할 이유는 없죠. 비축분이 제법 있는데. 어쨌거나 컨디션이 무진장 안 좋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갈란드그렌은 8서클의 헬 파이어를 캐스팅했다. 헬 파이어를 그대로 날린다면 숲 전체가 작살이 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파트 컨트롤을 통해 위력은 조금 낮아지지만 한 곳에 집중을 시키면서 오히려 대인전 등에서 효과가 크도록 신경 써서 캐스팅을 시작했다. “캐스팅이 좀 늦군……으응?”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들어온 지대가 마법 캐스팅을 늦추는 마법진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간파해냈다. “그렇다면 용언으로!” 체내의 마나를 꺼내 쓴다는 것은 조금 꺼려지는 행위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제법 많은 시간을 휴식에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진해 오는 인간 강자들을 본 그는 다급하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러나 그것마저 즉시 모여야 될 마나가 상당히 느리게 모아졌다. 이것은 인간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수준의 마법진이 아니었다. 드래곤이 개입된 마법진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 사이 아크들은 상당한 근접거리까지 접근해 왔다. 그래도 용언인지라 어느 정도 빠르게 마나를 모을 수야 있었지만 이 부근에서 헬 파이어를 터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전신에 실드 마법장을 쳤다. 퉁! 보통의 실드라 하면 오러 블레이드는 막을 수 없거나 한 두 번 맞으면 뚫려버리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 드래곤의 실드 마법장은 틀렸다. 보통의 그냥 검은 뚫고 들어올지 몰라도 마나가 씌인 오러 블레이드는 마법의 반탄력을 이용해 튕겨내는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공격이 실패하는 가운데 에르디의 총탄만큼은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저 정도 무기로 드래곤의 외갑에 상처를 줄 수는 없다. 푸슉! ‘응?’ 바늘에 찔리는 듯한 느낌에 갈란드그렌은 옆구리를 살폈다. 그곳에는 예의 오리하르콘 검신의 블레싱 소드를 든 아크가 있었다. ‘저걸 예상하지 못했군! 드래곤의 외갑을 뚫을 정도라니!’ 오러를 사용치 않고도 블레싱 소드는 실드도 뚫고 드래곤의 외갑까?뚫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트롤만큼은 아니더라도 재생력이 제법 뛰어난 편이었고 거기에 회복마법까지 사용하니 상처는 금새 멎었다. 실드 마법장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은 갈란드그렌은 거의 무적이었다. 위진무야 저 기술을 가볍게 뚫는 방법을 알고 있긴 했지만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그저 이 실드 마법장이 자동해제되는 시간을 노려 공격을 가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노가다 중인 인간들. 그 중 아크에게 쥬레이나란은 말했다. “드래곤의 외갑을 그런 바늘로 찔러봐야 전혀 소용없어! 머리 부분이나, 드래곤 하트가 있는 곳을 노려 목을 잘라도 상관없어!!!” “소용없다!” 갈란드그렌은 느리게 진행되는 캐스팅이라도 하면서 바람의 정령왕 실피드를 불러내어 고속 풍압의 바람을 가했다. 정령 소환만큼은 그 어떤 금제도 가해져 있지 않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마스터급으로 분류되는 강자들은 쉬이 날아가지 않았다. 브락라스노가 준 갑옷에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기능도 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아크는 자신의 머리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워낙 몸체가 큰 지라 목이 있는데까지만 하더라도 한참의 시간이 걸려 일단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에어 커터! 마법으로 만들어진 공기의 칼날이 아크를 향해 날아갔다. 마스터 급 강자들이라면 피할 수도 있는 마법이었으나 소리만 날 뿐 이 공기의 칼날들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에 목 등을 노리며 날아갈 경우 대부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마법이었다. “어라?” 그러나 아크는 뭔가가 부딪히는 느낌만 받았을 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갈란드그렌은 그것이 항마 아이템의 작용임을 눈치챘다. 이렇게 된다면 전체마법을 제외하면 효용성이 전혀 없지 않은가? 전체마법을 쓸 경우 자신도 타격을 입게 된다. 만약 그렇게 타격을 입었을 때 저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인간이 가세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드 마법장을 뚫고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저 오리하르콘 소드의 주인이 자신의 목을 베거나 할 경우가 온다고 해도 난감하다, 마법은 먹히지 않고, 육탄전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나쁘진 않았지만 드래곤의 육신중에서 육탄전을 벌일 수 있을 만한 곳은 꼬리 뿐이다. 육탄전투의 제약이 매우 심한 것이다. 머리도 쓸 수는 있었지만 머리로 들이받았다가 여차해서 찔리기라도 하면 죽고……그렇다면 답은 브레스 뿐이다. 체내의 마나가 좀 비기는 하지만 자신에게 피해도 없고 이 놈들을 싸그리 쓸어버릴 수 있을 만한 기술은 그것뿐이 없는 것이다. 흐아아아압! 갈란드그렌은 그대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자 공기의 기류가 그의 입으로 쏠리면서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갈란드그렌의 입으로 몰렸다. 쥬레이나란은 기겁했다. “모, 모두 피해! 드래곤 브레스야!!!” 쥬레이나란의 외침에 모두는 공격을 그만두고 뒤로 돌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브레스에 직격할 경우 그랜드 마스터고 뭐고 즉각 사망이었다. 골드 드래곤의 브레스는 바람의 속성을 띈다. 보통 속성 마법 공격의 경우. 일정한 속성을 방어해주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피해를 줄이거나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드래곤 브레스 만큼은 달랐다. 아무리 바람의 속성을 0으로 상쇄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맞으면 타격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래서 드래곤의 브레스는 현 세계에서는 최강의 절대기술로 통했다. 다행인 것은 드래곤 브레스 역시 마법진이 뿜어져 나가는 속력을 매우 줄여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이 그레드릭 대공은 마법 스크롤을 들고서 갈란드그렌의 입으로 뛰어들어갔다. 갈란드그렌의 입에는 거대한 황금빛 마나의 구체가 생성되고 있었다. 대공은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거대 황금빛 마나의 구체는 광선이 되어 뿜어졌다. 갈란드그렌은 한바탕 숨결을 토해내고서 브레스를 뿜을 때 습관적으로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한바탕 먼지가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그러나 아무 이상도 없었다. 놀란 그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입 앞에 생겨난 블랙홀을 검기만 해야 할 블랙홀에는 황금빛의 광채로 가득했다. 곧이어 블랙홀이 닫히고 갈란드그렌은 허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 놈들은 드래곤 사냥 경험이 풍부한 게 틀림없었다. 드래곤 최후의 무기인 브레스를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다니. 블랙홀 마법의 경우 9서클로서 인간 마법사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마법이다. 그런 마법이 스크롤로 존재한다면 적어도 10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만든 것. 그런 것을 드래곤이 협찬해 줄 리가(사실 협찬해 주었다)없으니 아마 이전에 이 드래곤 슬레이어 무리들에게 잡힌 어떤 멍청한 드래곤을 갈란드그렌은 욕할 수밖에 없었다. 브레스를 무사히 막아낸 아크 일행들은 다시 갈란드그렌에게 붙었다. 브레스를 두 세 번 정도는 더 뿜어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 한 번이 한계였다. 이 이상 사용할 경우 후방에 있는 무서운 인간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한 번 역시 뿜어내기란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었다. 블랙홀 마법을 쓸 수 있는 스크롤이 저들에게 또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위진무는 싸움에 참가는 하지 않았지만 갈란드그렌에게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였다.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한 번에 불과한 블랙홀 마법사용을 할 수가 없어 더 이상의 브레스를 맞게 된다면 필패였다. 어쨌거나 갈란드그렌은 육탄전 밖에는 길이 없었다. 이미 달라붙은 마당에 전체마법 사용은 불가능했고 그나마도 캐스팅이 느려서 써먹기가 여간 곤란하지 않았다. 마법진 파훼는 어렵지는 않을지 모르겠지만 영악하게도 참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게 하는 설계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캐스팅이 빠른 일인 마법이 먹히냐? 그것도 아니니 참으로 드래곤 환장하겠는 것이다. ‘……! 그래! 가디언!’ 그는 이제야 자신의 레어에서 잠자고 있을 가디언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키메라와 골렘들로 이루어진 가디언부대만 불러도 이런 인간들 정도는 처리해 버릴 수 있었다. 가디언 소환은 굳이 마나의 캐스팅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가디언의 맹약을 맺은 피조물들에게 맨 처음 심어 둔 마나가 있어 블레싱 소드와 같은 의지소환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진작 그럴 걸. 이라 생각하며 갈란드그렌은 가디언들을 모조리 소환했다. “헉! 이, 이건 또 뭐야?” 후방에서 사격 중이던 에르디가 기겁해서 외쳤다. 몬스터들은 물론이오 여러 생물을 이어 놓은 듯한 기괴한 키메라와, 잘 만들어진 거대한 돌인형들이 갑작스레 소환되어 이 좁은 공터를 완전히 메꿔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곳의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라!” 형세 역전. 그레드릭 대공은 침착하게 동료들을 지휘했다. “아크 경! 그대는 계속 이 드래곤을 견제하시고! 로니 경과 에드워드 군은 여기 있는 놈들을 쓸어버리는 데 동참해 주시오! 그리고 에르디 군! 어서 피하게! 자네가 상대할 놈들이 아닐세!!!” 현 전력으로는 못 이길 상대들은 절대 아니었다만. 드래곤이 육탄전을 실행한다면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콰직! 퍼벙! 푸슈슉! 마나의 그물이 퍼지면서 골렘들이 파괴되는 소리와 키메라들이 터지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게 들려왔다. 거기에 하얀 검강이 다발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파가강! 파강! “익! 저, 저놈이 나서다니!!!” 갈란드그렌의 가디언 부대가 나타나자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위진무가 드디어 나섰다. 그는 신위적인 무용을 자랑하며 가디언 부대를 섬멸해가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신경 쓰지 말고 용을 잡는데에만 집중해라!” 그의 말대로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위진무가 일검을 날릴 때마다 가디언들은 수 십기 씩 죽어나갔다. 위진무도 드래곤과 전투중인 제자의 일행들을 보고는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정말 맘에 들지 않는 결혼으로 얻게 된 그다지 탐탁치않은 드래곤이란 신분으로 대 드래곤 전투에 방관만 하고 있을 때마침 나타난 가디언들은 그의 지루함을 달래 주었다. 숨겨둔 수였던 가디언 부대가 막강한 인간에 의해 박살나자, 갈란드그렌은 정말 마지막 수인 육탄전에 돌입했다. 그는 꼬리를 화살 모양의 창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마구 휘둘러댔다. 캉!!! 그레드릭 대공은 갈란드그렌의 꼬리창을 카이나드 세이버로 막아냈다. 그러나 인간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계속해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으억!” 대공은 그대로 멀리 밀려 날아갔다. 그 다음 공격은 쥬레이나란이었다. 쥬레이나란은 강철 의수로 갈란드그렌의 꼬리창을 막아냈다. 그 역시 드래곤이었기에 신체적 능력은 매우 우수했다. 그러나 꼬리창이 찔린 강철 의수는 손바닥부터 균열이 가더니 박살이 나 버렸다. “……!” 이 강철 의수는 쥬레이나란의 역작이었다. 갈란드그렌만큼은 아니었더라도 드래곤이 만든 제법 강력한 무기가 이토록 가볍게 박살이 날 줄은 몰랐기에 쥬레이나란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무기로 쓰던 강철 의수가 박살났으니 이제는 더 이상 이 모습으로 싸우기도 뭣했다. 때문에 쥬레이나란은 강철 팔 에드워드 엘릭의 모습을 버리고 불꽃을 주 사용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현재 실드 마법장을 치고 있는 갈란드그렌이었지만 마법은 완전 방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쥬레이나란은 마법 공격을 택했다. 그다지 소용은 없겠지만 어느 정도 피해를 줘서 아크를 갈란드그렌의 머리까지 유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딱! 화염의 농도를 강하게 조절했다. 순수한 마나의 폭발로서 서클을 따질 수는 없는 기술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는 있는 모양이었다. 모습을 변환하는 쥬레이나란을 보면서 갈란드그렌은 그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것은 한 마디로 현재 자신을 묶어두고 있는 이 마법진의 출처와 브레스를 막은 블랙홀 스크롤의 출처가 저 녀석일 거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런 상황까지 몰고 와 치욕을 준 같은 종족에게 증오가 몰렸다. “너! 이 녀석! 누구길래 드래곤 슬레이어 무리와 한패가 되어 날 죽이려 하는 것이냐? 알고는 있겠지? 네놈은 이제 죽어도 할말이 없다는 것을?” “흥! 나는 헤츨링이다. 죽일 테면 죽여봐라. 아무리 정당방위의 원칙이 있다고는 해도 헤츨링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뭐야? 그래도 드래곤 슬레이어 무리와 합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네놈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쥬레이나란의 눈에는 불길이 일었다. “닥쳐! 내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네 녀석이 별 같잖은 이유를 들어 살해한 쥬로미네인이 바로 내 어머니란 말이다!” “……!” 갈란드그렌은 잠시 주춤거렸다. 놀라운 사실을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랬다. 저 녀석에게는 분명 자신을 죽일 이유가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정당하게 저 꼬마의 어미를 죽였지만 속을 따져 본다면 자신의 분명 의도한 살육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퍽! “끄하아악!” 쥬레이나란의 배를 찌른 꼬리창. 쥬레이나란은 마나를 이용하여 배갑의 강도를 최대한 높여 간신히 뚫리지는 않게 했지만 그 역시도 멀찍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이고 이 자식 대단한데?” 순식간에 두 명이 넉다운 되어 버렸다. 죽을 만한 상처는 아닐 것 같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지만 당분간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갈란드그렌의 머리를 노리고 그의 몸체에 올라 탄 아크는 별 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꼬리에 견제를 당함은 물론이오. 머리나 목쪽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경사가 너무나도 심한 오르막이라 오르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크는 허리춤에 매단 장거한의 철구에 생각이 미쳤다. 길이를 마음껏 줄이고 늘일 수 있는 이 마법 아이템이라면 저 멀리 있는 갈란드그렌의 뿔이란 고지에 쇠사슬을 던져 매달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젓는 아크였다. 아무리 던져 봐야 고개만 끄덕 피해버리면 허사다. 지금도 간신히 갈란드그렌의 몸체에 있는 상태였는데 철구를 던진답시고 헛짓거리를 하다 보면, 블레싱 소드 덕에 그나마 견제하고 있는 그의 꼬리 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던 그는 후방에 있는 에르디에게 생각이 미쳤다. “얌마! 너 그 기술 안 쓰고 뭐해!!!” ////////////////////////////////// 쿨럭, 쿨럭.... 으아아 죽겠습니다... 폐인대전의 노리는 순위는 12위 이긴 하지만 되도록 완주해 보려고 했는데...이거 레이스를 중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축제 준비에 공모전 준비까지 겹쳐서 더더욱... 비축분은 어느 정도 있으나 11kb이상 연재하기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잡담을 길게...(퍽!) 그래도 잡담만 써놓기는 뭐하므로...앞으로 등장할 캐릭터 한 명 소개같은 걸로 때우길... /////////////////////////// 화이트 로리엔(23) 교황 친위 성기사단의 단장이자 중도의 소드 마스터. 세 자루 존재하는 블레싱 소드 중 한 자루의 주인이다. 본명은 따로 있으나 눈 같은 백발을 탐스럽게 길러 교황으로부터 화이트 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딱딱한 성격이지만 여자같다는 말만 들으면 발끈하는 귀여운 면도 있다. 대륙의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될 로리엔가의 첫번째 가주가 된다. 사실 에르디는 후방에 있다가 가디언 부대에 포위되어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지금 막 위진무의 구원에 탈출해 나온 참이었다. “아아악!!” 로니는 갈란드그렌의 꼬리창의 뾰족한 곳에 배를 찔렸다. 이전에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에게도 입었던 적이 있는 상처였다. 반사신경으로 몸을 빼면서 뚫고 나올 정도 등의 깊숙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찔린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누니임!!!” “로니!!” 아크는 절실히 그녀를 불렀지만 위진무처럼 내려가서 간호해 줄 상황은 아니었다. “그레이트 힐!!!” 반경범위에서 좀 벗어나 있는 듯 했지만 아크는 회복마법을 시전했다. 다행히도 회복마법은 아크의 바람을 들었는지 로니의 부상은 곧 치유되었다. “괜찮느냐?” 위진무는 쓰러진 로니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그 때 마침 회복의 빛 덕분에 그녀의 부상은 곧 완치되었다. ‘기회다!’ 갈란드그렌은 완전 무방비상태인 위진무를 보내버리기 위해 꼬리를 날렸다. 저 막강한 인간만 쓰러뜨린다면 그 다음은 브레스로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었다. “호오?” 위진무는 불시에 날아온 갈란드그렌의 꼬리를 너무나도 가볍게 잡아냈다. 그리고는 그의 꼬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레드 드래곤 카인카드의 남편이자 레드 드래곤 일족의 하나로 인정을 받은 내게 먼저 공격을 하다니……. 정당방위의 원칙에 따져도 되겠지?” “뭐라고?” “내 이름은 위진무. 새로 드래곤의 칭호를 받은 인간이다!!!” 그제야 갈란드그렌은 위진무가 누군지와 왜 뒤에서 구경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최근 드래곤 언론계에 논란을 일으키던 인간을 드래곤으로 받아들이냐 논쟁에 주 화제거리였던 무신 위진무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다른 일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레드 일족의 전면적인 찬성으로 그는 레드 일족의 드래곤이 되었고 드래곤의 규율을 따르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을 처음부터 공격하지 않고 자기가 먼저 도발하기를 바란 것이다. “네, 네놈이 무신이라고 하는 인간이라고???” “그래. 네놈이 두 드래곤을 살해했을 때 써먹었던 방법을 나도 한 번 써 보았다. 그럼 이제 죽을 일만 남았군. 노란도마뱀.” 갈란드그렌은 무신의 전설을 거짓으로만 치부했었다. 인간이 세 마리의 드래곤을 상대로 싸워 이기고 레드 일족 최강의 브락라스노를 꺾었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앞에다 두고 보니 완전 거짓말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위진무는 갈란드그렌의 꼬리를 양손으로 잡은 뒤 잡아 당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갈란드그렌의 꼬리가 고작 인간의 손에 찢겨져 나갔던 것이다. 갈란드그렌의 꼬리는 꼬리창 부분이 완전히 찢겨나간 채 뼈를 드러내고 피를 줄줄 흘리며 처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는 새삼 무신의 강력함에 다시 놀랐다. “도마뱀들은 위기가 닥치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더군. 물론 그 꼬리는 다시 자라고. 어디 한 번 그런가 볼까?” 위진무는 드디어 검을 뽑아들고 본격적으로 검강을 날리기 시작했다. 실드 마법장이 쳐 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검강은 마법장을 뚫고 완벽하게 갈란드그렌에게 명중했다. “기운이 강하면 밀어내려는 성질 따위는 무시할 수 있는 법.” 갈란드그렌은 입에서 피를 토했다. 그는 방금 전 자신이 했던 행위를 뼈저리게 후회했다. 아 왜 저런 인간을 도발했을까 하고. 그렇게 당황해 하는 사이 결정적으로 그를 패인에 이르게 하는 공격들이 명중했다. 투두두두두두 “크아아악!!!” 갈란드그렌의 왼쪽 눈에 에르디의 소총에서 나온 총알이 속속들이 박히기 시작했다. 워낙 큰 눈이라 표적이 되기도 쉬웠고 실드 마법장역시 뚫을 수 있는 단순 무기였던 데다가 눈 만큼은 드래곤에게 있어 외갑이 아닌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기에 에르디의 공격이 상당히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모두 빨래집게를 착용하세요!!!” 에르디가 외쳤다. 이제부터가 가장 약한 그가 활약할 시기였다. 에르디는 한쪽 눈과 꼬리를 잃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갈란드그렌에게 달려가 갈색 빛깔의 액체가 담긴 병을 던졌다. 그것은 눈을 잃었던 갈란드그렌의 머리에 그대로 명중했다. 액체가 깨지면서 흘렀다. 그리고 그 고약스런 냄새가 갈란드그렌의 코에 그대로 들어갔다. “쿠오오오 이건 또 뭐야???” 냄새는 무진장 지독했다.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드래곤의 강한 정신력은 어디로 간 것이 절대 아니었기에 냄새 정도로 쓰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냄새는 서서히 몸을 굳게 만듬과 동시에 눈에 뵈는 것이 두 개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대로라면 죽고야 말았다. 굳이 이 몸을 굳게 만드는 냄새가 아니더라도 무신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뛰어든다면 곧바로 사망일 것이다. 자존심 따위를 지키기엔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다. 그는 서서히 날개 짓을 시작했다. “도망간다!” 위진무는 날개 짓을 해서 도망치려는 갈란드그렌의 날개에 검강을 뿌려댔다. 찢어져 피가 나는 날개였지만 그래도 그의 거대한 몸체는 날아올랐다. “어딜 도망가!!” 어느새 달려온 쥬레이나란이 마법을 퍼부어 대었지만 갈란드그렌은 회복마법을 써 대면서 몸체를 거대한 상공으로 띄웠다. “어, 어, 어 어랍쇼!!!” 갈란드그렌이 하늘로 떠오르자 아크는 그의 등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이대로라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위진무는 허공답보를 사용할 줄 알았지만 그것은 하늘에서 걸어다니기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을 계단처럼 걸어오르는 것은 불가능했다. 쥬레이나란이 현신해서 같이 날아올라 공격하는 수도 있겠지만 몸이 마비되어 가려고 하고 꼬리와 날개 그리고 눈이 다친 상태의 갈란드그렌이지만 쥬레이나란이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결국 공중에서의 끝은 매달려 탄 아크가 내야 했다. 아크는 손에 쥐고 있던 블레싱 소드를 버리고 장거한의 철구를 크게 만든 뒤 갈란드그렌의 목에 던져 감았다. 그리고 철구의 양쪽 쇠사슬을 양손으로 잡았다. 그렇게 아크는 갈란드그렌의 목에 매달린 채 난생 처음으로 하늘을 날아보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갈란드그렌은 목에 묵직한 물건을 떼내기 위해 목을 크게 흔들었다. “으아악!” 아크는 흔들리면서도 쇠사슬을 줄여가며 갈란드그렌의 목에 최대한 다가갔다. 그런 다음 오른손을 쇠사슬에서 놓은 채 블레싱 소드를 소환하려 했다. 그러나 오른손에서 가해지던 무게가 줄어들자 목에 감긴 철구는 풀리기 시작했다. “흐억!” 아크는 기겁을 하며 다시 쇠사슬의 한 쪽을 잡았다. 여차하다가 저 세상 갈 뻔하고야 말았다. 이 상황에서는 블레싱 소드를 소환해 갈란드그렌의 목을 찌르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목조르기?’ 아크는 대 오우거전에서 사용했던 목조르기가 생각났다. 숨통이 막히면 어떤 생물이든가 기절을 하는 법이다. 드래곤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보통 쇠로는 드래곤의 목뼈나 외갑을 짓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아크는 장거한의 철구 쇠사슬에 오러를 집어넣었다. “크오오오오!!!” 갈란드그렌은 크게 울부짖었다. 드래곤 피어. 아크는 간신히 고막이 터질 듯한 그 고통을 이겨 낼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마비되고 있는 몸이 숨통이 막히자 더욱 정신이 몽롱해졌다. 갈란드그렌은 마지막 수단으로 텔레포트 마법을 생각했다. 워낙 큰 몸체라 상당한 마나가 필요해서 그 전에 쓰러져 버릴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수란 건 없었다. “스펠 브레이커!!” 그러나 어느새 뒤쫓아 온 쥬레이나란이 갈란드그렌의 마법을 파훼해 버렸다. 비록 별 다른 마법 공격은 갈란드그렌에게 효과가 없긴 했지만 그의 마법을 막는 데에는 지대한 공언을 했다. ‘이, 이제 더 이상…….’ 갈란드그렌은 정신이 희미해졌다. 그와 동시에 날개짓을 하고 있던 그의 몸체도 가동을 멈췄다. 기절해 버린 것이다. “우와악!” 이제는 또 급강하였다. 아크는 무게를 마음대로 늘릴 수 있는 장거한의 철구를 이용해 무거운 몸체가 아닌 머리부터 떨어지게 그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는 필사적으로 드래곤의 머리에 올라 탄 다음 꽉 껴안았다. 아크의 노력 덕에 갈란드그렌은 머리부터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크는 갈란드그렌의 목을 다리와 팔로 꼭 껴안은 채 외쳤다. “창공!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는 상대를 거꾸로 잡고 허리를 껴안은 뒤 무릎을 꿇으면서 상대의 목과 정수리를 그대로 찍어버려 심대한 타격을 주는 레슬링 기술로서 워낙 부상이 많아서 금지기술이 되기도 하였던 기술이었다. 현재 아크와 갈란드그렌의 모습은 개미만한 아크가 갈란드그렌의 목을 껴안고 그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버리려 하는 것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바닥에 드래곤의 머리가 닿았다. 콰직! 아크가 껴안고 있던 부근의 목뼈가 부러지면서 갈란드그렌은 직각으로 목이 꺾인 기이한 모습으로 즉사했다. 그의 목을 껴안고 있던 아크는 직각으로 꺾인 그의 목이라는 쿠션에 앉아있으면서 엉덩이의 타격을 거의 입지 않았다. “에구구.” 아크는 엉덩이를 털면서 블레싱 소드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확인사살 차 갈란드그렌의 머리를 갈랐다. 쩍 수박이 갈리듯 갈린 드래곤의 머리에서는 거대한 뇌가 튀어나왔다. “편히 잠드십시오. 어머님.” 쥬레이나란은 갈란드그렌의 거대한 시체를 그의 레어에서 찾아낸 은빛의 드래곤 하트 앞에 두고 일종의 제사를 지냈다. 경건한 모습이었던 지라 누구도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차에 호쾌히 웃으며 분위기를 깨뜨리는 자가 있었다. “크하하핫! 이게 도대체 얼마야 크하핫!!!” 갈란드그렌이 죽은 뒤 그의 레어를 털은 아크 일행은 갈란드그렌이 숨겨 놓은 수많은 보물들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나 드래곤의 사체를 두 구나 얻을 수 있었다. 쥬레이나란의 부모같은 경우는 드래곤 하트만 빼 갔기에 찾을 수 없었지만 갈란드그렌과 그가 죽였다는 또 다른 드래곤 지룬시아의 사체. 이 두 사체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는 엄청날 것이다. 드래곤의 뼈는 무기의 재료로, 살 역시 진귀한 고기이자 강력한 키메라의 재료로. 물론 그 부가가치에 추가로 갈란드그렌의 레어에서 나온 엄청난 금은 보화와 각종 무기류들은 더더욱 큰 이익을 남겨 줄 것이 분명했다. 브락라스노에게 어느 정도 대여료를 내야 하긴 했지만 갈란드그렌은 스스로를 대장장이라 자처한 드래곤답게 상당히 많은 마법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었다. “죽였다는 건 둘이라더니 어째서 드래곤 하트는 3개나 되는 지 모르겠군.” 위진무는 다른 것들보다 가장 먼저 드래곤 하트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갈란드그렌의 레어에서 찾아낸 드래곤 하트는 무려 3개. 두 마리를 죽였으니 두 개는 이해가 가지만 3개라니 도대체 하나는 어디서 난 것일까? 드래곤의 행적은 같은 드래곤이라고 해서 파악하기가 여간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또 한 마리의 드래곤을 죽였다거나 암흑의 루트를 통해 구한 것이리라. 위진무는 갈란드그렌을 해부하여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 이로서 드래곤 하트는 무려 4개나 되었다. “드래곤 하트는 왜 그리 많이 모으시는 겁니까?” 그레드릭 대공이 물었다. 드래곤 하트는 마법 검 등에 사용되는 최고의 재료로 알려져 있었고 그 영롱한 마나의 빛과 희귀성에 보석 중 최고로 쳐주기도 했다. “영물의 내단은 즉시 복용해야지.” “영물의 내단?” “그래 흔히들 드래곤 하트는 보석이나, 마법 아이템의 재료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이 드래곤 하트는 수천년의 마나가 집중된 그야 말로 최고의 묘약. 먹을 경우 상당한 내공증진의 효과가 있다.” “그렇습니까?” “그런 것을 네 개나 얻다니. 허허.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두 개를 제외하고는 각자 다른 빛깔의 하트로군. 같은 일족의 드래곤을 잡아 나온 드래곤 하트면 중복 섭취가 가능하나, 한 사람 당 하나씩 만 먹어야 될 것 같구만. 어디 보자. 그래! 유카나라고 했나?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어린이 시절에 먹는 내단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아마 한 개를 섭취한다면 유카나 양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사람과 비슷한 내력을 소유할 수 있을 걸세. 물론 검술 실력 등은 딸리니 소드 마스터니 하는 칭호는 생략해야겠지만.” “그, 그게 정말입니까?” 유카나와 모두의 눈이 크게 떠졌다. 12세의 나이에 마스터 급의 마나라니. 기연도 이런 기연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럼 드래곤 하트를 분배해 보도록 하세나. 아크. 네 녀석이 아무래도 이 일행의 대장이자 가장 공이 큰 듯 싶으니 네가 알아서 분배하거라. 단 네 녀석이 다 갖겠다 등의 헛소리는 용납 못한다.” “아 그럼 저기 저 은빛의 드래곤 하트는 쥬레이나란에게 주도록 하죠. 부모의 유품인데 그런 걸 먹어버리면 안 되죠.” 모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것을 뺏아서 먹기란 여간 양심에 찔리는 것이 아니다. “음 이 골드 드래곤의 하트는 대공께서 드시겠습니까?” “나 말인가?” 그레드릭 대공은 기쁜 듯한 기색을 보였지만 위진무는 그런 그에게 찬물을 뿌렸다. “그랜드 마스터 급에 오른 무인에게는 내단이 그다지 효용성이 없소. 오히려 기존의 마나와 부딪힐 뿐이지. 본인도 이 경지에 오른 뒤 이걸 먹어보았으나 별 쓸모가 없었소이다.” “흐음……무신님의 말대로 죽을 날도 머지 않은 내가 이런 것을 먹는다는 건 사치일세.” 대공은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무신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수련보다는 수 십 번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자신은 이 이상 강해질 생각도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유카나나 에르디, 그리고 아크 같은 루드비안 소속의 후기지수들에게 주는 것이 훨씬 이득일 것이다. “그럼 유카나 네가 이건 가지도록 하렴.” “저, 정말이요?” “물론. 네게 가장 큰 효과가 있는데다가 넌 루드비안 제국의 최고 유망주이자 희망이잖아? 검술이나 권술 등의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지만 일단 먹어두렴.” “저 그런데 이 딱딱한 걸 어떻게 먹지요?” 그랬다. 드래곤 하트는 보석류로 더 이용될 만큼 크고 딱딱했다. 입안에 들어갈 정도는 되지만 도저히 씹고 삼킬 수가 없는 것이다. “사탕처럼 쪽쪽 빨다가 깨물거라 그러면 되느니라.” 위진무의 지도에 유카나는 그대로 따랐다. 그러자 곧 그녀의 몸에서 금빛 마나의 기운이 새로이 감돌기 시작했다. “여기서가 중요하다.” 위진무는 유카나의 혈 이곳저곳을 찔렀다. 마나가 통하는 통로를 열어 방대한 마나를 통하게 했다. 엄청난 힘을 대가 없이 얻은 등가교환으로 생기는 혹시라도 모를 제어 미스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꺄아아악!” 유카나는 비명을 질렀다. 저것이 마지막 단계이다. 저 단계가 끝나면 소녀는 한층 성숙해 져 있을 것이다. 유카나의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멎었을 때 유카나 역시 비명을 멈췄다. “히, 힘이 넘쳐요!” “잘 됐군. 허허허 드디어 우리 제국도 마스터를 셋이나 보유할 수 있게 되었구만.” 대공은 자신이 그 내단을 먹은 것보다 더 통쾌하고 기쁜 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국은 이 후지기수들에게 맡겨도 되겠다는 안심이 든 것이다. 12세의 최연소 마스터의 탄생. 이제 군부와 제국은 한층 더 강한 힘을 업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린다면 지략의 기사가 저지른 잘못쯤은 가벼이 상쇄될 것이다. 아크는 그 외 하트는 에르디에게 하나 주었고 로니에게 하나 주었다. “너……안 먹어?” “됐어요. 누님이 드시고 어서 그랜드 마스터 급 경지에 오르시라고요. 빨리 본부인 자리 꿰차야 할 것 아니에요?” “으응……고마워.” “저 감사합니다 주군.” “새꺄. 넌 먹어봐야 소드 익스퍼트 상급 정도라며! 웬만하면 거절할 줄 알았더니만 좋다고 넙죽 받아먹네.” “하하……공짠데 받아야죠.” 로니는 얼굴을 붉혔고, 에르디는 상당히 기쁜 듯 만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럴 즈음 쥬레이나란이 제사를 마치고 돌아와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그레드릭 대공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무신님, 로니 루네아님, 에르디 모두에게 감사드리겠습니다. 특히 아크. 고마웠다. 네가 아니었더라면 원수는 도저히 갚지 못할 뻔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영 못 미더웠었는데 너의 도움으로 원한을 갚을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흠 태도가 그게 뭐냐? 평상시에 오만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돌아와라. 그 따위로 하려면 여자로 변하든지. 아니지 그게 아니라 너와의 계약에 따라 난 요구조건을 완벽히 이행해 주었으니 이제부터 넌 여자로 변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뭐, 뭣?” 쥬레이나란은 기겁했다. 그랬다. 분명히 써 둔 계약서가 있었다. 그대로라면 지금은 얄짤없이 아크놈의 술수에 말려 암컷이 되야 할 운명이었다. “지능지수 높은 드래곤님께서 왜 이러시나? 분명 여기! 써 있잖느냐? 응? 푸하하하하하! 변해라. 어서! 여자로 변한 다음 내 화려한 테크닉으로 암컷이 된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해 주마!” 퍽! 뒤통수에 거대한 혹이 생긴 채 혹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쓰러져 있는 아크의 등을 로니는 지긋이 밟으며 붉어진 주먹을 쓰다듬었다. “어지간히 해 먹어. 더 이상은 용납 못해.” 로니는 아크가 가지고 있던 계약서를 쫙쫙 찢어버렸다. 그렇게 드래곤 마누라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오오 대공!” 하이데른 황제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돌아온 그레드릭 대공을 맞이했다. 약 한 달 가량 있었던 대공의 부재기간 동안 팬크라프트는 파푸치아 숲. 대로 공사를 서둘렀고, 남방 캘더린은 국경선 부근에서 지속적인 도발을 가했다. 팬크라프트야 속으로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어도 겉으로는 루드비안과 친선관계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레드릭 대공이 사라졌다고 해서 대놓고 도발하지는 않았지만 남방 캘더린은 대규모 군대를 국경선에 밀집시켜놓고 국경마을 여러 곳을 이미 불법점령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그레드릭 대공이라는 제국의 큰 기둥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던 결과였다. 그 덕에 루드비안의 모든 이들은 새삼 군부와 대공의 힘을 실감했다. 비록 권력의 구심점에는 없는 이들이지만 정말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무력을 가진 군인세력이라는 것을. “신 루벤드 그레드릭.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 점을 사죄 드립니다.” “그럴 필요 없소이다. 일어나시오. 대공.” 꼭 유비가 제갈량을 대하는 모습이랄까? 황제의 그레드릭 대공에 대한 대접은 그에 못지않았다. “폐하! 이제 대공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황가를 능멸한 지략의 기사에 대한 처벌을 본격화해야 할 적기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그를 사사해 후환을 없애야 하옵니다.” 대공이 돌아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지금껏 잠자고 있던 아크 처벌론자들이 들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황제는 골머리가 땡겨왔다. 이 고지식한 귀족들을 어떻게 잘 타일러야 하나. 그러나 그런 무리들에게 대공이 일침을 가했다. “웃기는 소리하지 마시오. 캘더린이 국경에 대군을 포진해 놓았다고 들었소. 지금 분열된 국론과 그로 인해 약화된 국력으로 캘더린의 마법기사단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오? 우리에게는 지략의 기사가 절실히 필요하오. 특히 내가 직접 그와 한달 간 동행하면서 나는 그를 절대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소이다.” 대공의 위압감 있는 외침에 아무도 이견을 달지 못하는 새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지략의 기사의 스승은 무신이라 불리는 팬크라프트의 국부 진으로서 그는 드래곤을 가볍게 사냥할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아 레드 드래곤 일족의 수장으로부터 손녀와의 결혼과 드래곤의 칭호를 획득했소. 그는 제자인 지략의 기사에 말에 따라 대 드래곤 전투에 나서 줄 정도였지. 현재 지략의 기사는 두 구의 드래곤 사체를 가지고 있소이다.” “두 구의 드래곤 사체!!!” 놀랄 노 자가 신료들의 표정에 어렸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드래곤의 사체를 두 구나 가지고 있다니. 그 두 드래곤 사체에서 나올 수 있는 드래곤 본 검은 5백 자루가 넘었으며 드래곤의 고기는 정력 증강, 수명 연장 등에 막대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그야 말로 버릴 데 하나 없는 초 고가품이 아니던가? 만약 그 두 구를 모두 팔아 돈을 챙긴다면 제국 최고의 상회라는 바레인 상회나 JBL상회에 맞먹는 재력을 쌓을 수도 있었다. “거기에 그의 한 기사는 엄청난 암기술로 드래곤을 마비시키는 데 지대한 공언을 했으며 군부에도 몇 안 되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무인이오. 뭐 이거야 그다지 놀랄 만한 얘기는 아니었는 듯 싶구려. 하지만 들어두셔야 할 것이오. 지략의 기사는 과거 충혼의 기사라 불렸던 디그리스의 론 루네아 공작을 마음만 먹으면 동원할 수 있으며, 그의 휘하엔 앞서 말한 암기술의 대가와 8서클의 대마법사. 그리고 또 한 명의 마스터급 무인이 있소이다.” 마스터 급 무인이 셋에 8서클 급 대마법사 하나. 거기에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무인. 웬만한 나라 하나 쯤은 전복시킬 수 있는 무서운 전력이었다. “다들 놀라실 거외다. 론 루네아 공작이야 우리나라 소속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새로이 탄생한 한 명의 마스터 급 무인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는 분일 테니까.” “그럼……? 설마 제국에 또 다른 마스터가 탄생했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는 바로 엘레노어 백작의 딸인 유카나 엘레노어 양이외다.” “……예에?” 자리의 모두는 경악했다. 12살의 꼬맹이가 벌써 마스터 급? 아무리 군부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는 강한 여아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한 달만에 그 경지에 오른다는 것인가? “놀라는 것들도 이해는 가오. 하지만 사실이외다. 비록 검술 등 본격적인 무술은 그다지 크게 익히지는 못하였으나 그녀는 체내의 마나 양만 따지면 마스터 급수의 무인이라는 칭호를 내릴 수 있소. 드래곤을 사냥해서 얻은 드래곤 하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제국 최고의 축복이었소.” 정말 꿈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드래곤과 대륙 최고의 강자들을 등에 업었다니……이건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난이도였다. 만약 정말로 그가 딴마음이라도 먹는다면 제국은 곧바로 멸망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인은 그가 아무리 죄를 저질렀어도 다시 포용하고 받아들어야 한다고 보오이다. 이 정도 전력을 버린다는 것은 제국의 가장 큰 실책이 될 것입니다.” 그때 공주도 끼어들었다. “그는 지략으로도 유명하지만 충절로도 유명한 기사입니다. 그 정도라면 주군을 더 이상 바꿀 생각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전설로 더 유명한 그런 기사가 쉬이 주군을 바꾼다면 그는 세상의 비웃음 사게 될 것이고 그런 짓을 자초할 정도로 멍청한 이가 아닙니다. 아마도 그는 제국에서 용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황제가 나섰다. “대공과 공주의 의견에 동의하오. 앞으로 이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참할 것이오. 아무리 그가 성격이 욱하는 게 있어 황족을 우습게 본다고는 하나 이 나라는 황족의 나라가 아닌 백성의 나라요. 그들을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지략의 기사의 도움이 너무나도 절실하다고 판단되는 바이오. 그러니 지략의 기사를 내칠 생각은 용납지 않겠소!” 하이데른 황제가 오랜만에 강력한 모습으로 대부분의 귀족들을 압도했다. 외세가 침략해 오는 지금은 내부의 싸움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적들에게 신경 써야 할 시기였다. 귀족파의 다수인 제펠 옹호자들은 이 판결에 불만을 표했지만 레이필드 공작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황제의 말대로 지금은 외부의 적에 맞서 내부 단결을 요할 때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이군. 폴티아.’ 아크는 자신을 용서한다는 황제의 서신에 잠시 휴양을 청했다. 그리고는 우라시드 산맥을 경유하여 초창기의 추억이 어려 있고 지금의 지략의 기사란 명성을 있게 해 주었으며 약소국 디그리스가 팬크라프트에 맞붙어 싸웠던 동부와 서부의 거점지 폴티아 반도에 와 있었다. 적진 한 가운데는 아니지만 적진의 변방인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간단했다. 상업의 최대 거점지인 폴티아 반도에서 살빛의 향연 수출 계약 및, 드래곤의 사체를 살 사람을 구하려고 했던 것이다. 팬크라프트로의 살빛의 향연 수출 계약은 잘 이루어졌다. 현금으로 모두 받고 살빛의 향연 1권 2쇄를 전부 양도했다. 드래곤의 사체는 워낙 가격이 비싸 국가 간의 거래가 아닌 이상은 팔기가 모호했다. 그래서 아크는 드래곤의 사체는 아공간속에 집어넣어 두고 내놓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략의 기사가 드래곤을 잡았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간 상태에서 아직까지는 야욕을 드러내지 않았어도 잠재적 적국인 팬크라프트에서 드래곤 사체를 팔기란 여간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항구도시의 바람은 아주 시원했다. 이전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과의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던 곳. 여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아크와 로니 뿐이었다. 그때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에 모조리 박살났던 도시는 30년이 지난 지금 그 폐허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시 번성해 있었다. 반도란 것은 전쟁은 잦아도 이렇게 지리적 이점을 잘 이용한다면 큰돈을 벌 수도 있고 발전도 용이한 법이다. 대륙과 해양 두 곳 모두 진출이 가능한 이점으로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하지 않았던가? 아크는 일행들을 데리고 포르티아 시를 거닐었다. 그러면서 그때 자신이 싸웠던 장소와 묵었었던 대공관저 등을 동료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랬구나 여기서 로니 언니랑 같이 포위되었다고요?” “그래 저기는 내가 젤리커 공작을 꺾었던 곳이지.” 유카나는 그녀 특유의 친화력으로 위진무의 초야에서 지냈던 며칠 동안 로니를 회유하는 데에 성공했다. 때문에 유카나가 로니를 부르는 칭호도 언니로 변했다. 아크로서는 바라마다하지 않은 일이었다. 덮밥플레이도 이제 꿈이 아니다.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군.” 감회가 새로웠다. 동료들이 모두 죽어버린 비극의 장소이지만 또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한참 도시를 살피던 아크는 갑자기 머리통을 슬레지 해머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과 함께 누군가의 당부가 떠올랐다. ‘시, 신궁을 엘프 마을에 가, 가져다 주길……부탁…….’ “레골룸스!!!” 갑작스레 사람들 오가는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의 이름을 크게 부르다니, 행인들은 그런 아크를 이상한 듯한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간혹가다 저런 미친놈들이 있다면서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크는 이제야 생각난 자신의 퀘스트를 떠올렸다. 퀘스트 : 레골룸스의 유언을 받들어라. 내용 : 아이템 신궁 루기아를 엘프 마을에 전달해라. 기한 : 안정해져 있음. 그나마 기한이 안정해져 있는 부탁이란 것을 생각해내니 한층 마음이 편해졌다. 그치만 허허 2~3년 안에 도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나온 지 30년이 넘어서야 도로 기억이 나다니. 2년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었던 로니와 위진무 등 드래곤 일가도 다시 만나니 그토록 반가울 수가 없었다. 하물며 30년이면. 만약 아크에게 로니와 같은 여자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아크는 위의 퀘스트 사항을 상기하고 신궁을 전달함과 동시에 엘프 마을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알콩달콩 살다 보니 이전의 인연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크는 생각난 김에 바로 일을 해치워 버리려 했다. “어이 로이. 다음 행선지는 파푸치아 숲.” “뭐야? 임마. 가 본데를 가자고 해라. 거기다 파푸치아 숲이라고만 하면 내가 어디로 공간이동을 시키냐? 그 넓은 데를.” “아 쓰읍. 글고 너 어디서 강철 의수 하나 더 못 만드냐? 거 차라리 쇼타가 낫지 그 꼬라지 되게 못 봐 주겠네. 다른 걸로 좀 변해 봐!” “내 맘이야.” 아크는 진작 계약서를 하나 더 복사해 둘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 자식이 계약서가 파기된 이후로 아주 기고만장이다. 드래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어느 정도 따르려는 모양이었지만 계약서에는 여자로 변해야 한다는 말이 없이 그저 은혜는 은혜로 갚는 등가교환만 써 놓았기에 쥬레이나란은 아크를 지속적으로 돕겠다고는 해도 여자로 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모양이었다. “저기 주군!” “왜 임마.” “혹시 엘프 노예 필요 없으십니까?” “뭐?” 에르디의 말에 아크는 도시 게시판에 붙어 있는 문구를 읽어보았다. “……특급품 미소녀 엘프 노예 매매?” “살빛의 향연 등에 이런 걸 찍어서 팔면 대박이지 않을까요?” “으, 으흠.” 아크의 성격으로는 일을 바로 추진하고도 모자랐다. 그러나 아크에게는 엘프들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위진무가 드래곤들과 지내며 드래곤으로 인정을 받았듯이 아크는 엘프들과 지내며 엘프로는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배타적인 엘프들에게 믿을 수 있는 인간으로 인정받으면서 아무 연줄도 없는 이 세계에 첫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아크가 별 변태스럽고 음흉한 짓거리를 좋아한다고는 해도 엘프들을 동원하기는 꺼려지는 게 사실이었다. 거기다 폴티아의 엘프 노예라면 가까운 파푸치아 숲에서 잡아왔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다만……노예로 잡혀 온 것을 구해주고 난 다음 호감을 얻는 일이라면 충분하리라. “가자 에르디. 어디냐?” “폴티아 지하 노예시장이라고 합니다.” “로이!” “어 왜?” “탈출 준비 따위를 해 둬라. 알았냐?” “응?”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쥬레이나란은 제쳐 두고 아크는 일행을 데리고 폴티아 지하 노예시장으로 향했다. ///////////////////////////////////// 비축분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습니다. 피곤하고 감기에 두통덕에 체력이 많이 딸립니다. 오늘은 푹 잠이나. ////////////////////////////////////// 에볼루션을 7권 완결로 계획을 잡아 놓고 현재 폐인대전의 페이스대로 가다 보니 벌써 6권의 중반부까지 진도가 나갔습니다. 시험과 축제와 신춘문예 공모로 한달간 쉴 예정이긴 하지만 쉰 다음에도 이 페이스대로라면 올해 안에 완결권까지 쓸 수 있을 듯 합니다. 폐인대전 덕에 20일만에 한 권 분량을 완성이 되더군요. 그러다 보니 자꾸 후속작이 쓰고 싶어지네요. 물론 학업에 전념해야 할 고3이라는 직함 아래 많이 쓰지는 못할 듯 싶지만. 갑각나비급의 계간연재는.....(죽어! 퍽!) 치한소아과가 있기는 하지만 치한소아과는 기껏해야 원고지나 용량을 따져서 2권 분량을 넘지 않고 끝날 것이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짤릴 가능성도 다분해서 문제죠. 에볼루션의 세계관을 그대로 잇는 후속작이 될 듯 합니다. 아크라는 사이코 폐인 캐릭터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타 작에서 새로운 사이코 캐릭터를 창조하기보다는 이 시대에서 먼 훗날의 이야기를 다루죠. 정통 미연시 판타지 학원물로 아크군은 조연으로 등장하는...그런 스토리가 될 듯 합니다. 연재분에서 곧 나올 화이트 로리엔군을 주목하십시오. 그가 후속작 세계관의 주연이 될 듯 합니다. //////////////////////////////////////// 이제 남은 건 엘프마을로 가는 것과 팬크라프트, 캘더린과의 일전이 남아있습니다. 지략의 기사가 어떻게 활약할 지 지켜봐 주시죠. “귀족이십니까?” “루드비안의 후작일세. 여기 이 여자분은 내 약혼녀이고, 여긴 내 가신. 그리고 여긴 루드비안의 백작이고.” “루드비안에서 오신 분들이로군요. 인장을 확인시켜 주시겠습니까?” 에르디를 제외한 모두는 각자 손바닥을 내밀었다. 반 지하 은밀한 곳에서 문을 지키던 문지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들어가시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런 조그마한 입구를 사용하는가?” “은밀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로 남성 귀족분들이 애첩으로 쓸 여자들을 사러 온 것을 부인들이 몰래 미행을 붙이기도 하고 여하튼간 여기 드나드는 분들의 신상을 비밀로 붙여야 할 이유가 있어서지요.” 작은 문을 열자 두 사람이 겨우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협소한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조금 내려가자 아래 끝에는 불빛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불빛이 비치는 통로로 오자. 또 다른 문지기가 아크 일행을 안내했다. “따라오십시오.” 어두운 복도를 걸으며 문지기를 따라간 아크 일행은 몇 분 가량을 걷자 등장한 거대한 문과 여기저기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가 경매장인 모양이군.’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자 제법 널직한 공터에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다. “흐음. 텔포니움의 노예 경매장보다는 협소하구만.” “거기는 공식적이지만 여기는 비공식입니다. 그러니 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긴.” 흡사 스트립 바 같은 분위기의 노예 경매장이었다. 중앙 높은 단상에 노예와 사회자가 있고 주변에 놓인 의자들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노예를 파는 곳치고는 분위기가 정숙한 것이 우스웠다. “앉자고.” 아크 일행은 각자 자리에 착석했다. 뒷좌석에 네 개가 연달아 빈자리가 하나 있어 모두 앉을 수 있었다. 노예 매매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상당히 진행되었는지 노예들의 급수가 제법 빼어났다. 심지어 아크가 여기 온 목적을 망각하고 노예 가격을 부를 뻔했으니 말이다. 옆에 마누라가 멀쩡히 눈뜨고 있는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은 아마도 매음굴용 노예들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귀족들도 있기는 하였으나 주로 살찐 업주들이 더 많았고, 하나 같이 젊은 노예들만 나오는 데다가 가끔은 스트립쇼 따위를 시키기도 하였다. “자 다음은. 기대하셔도 좋을 미모의 엘프들입니다! 수량은 셋! 먼저 깜찍한 꼬마 엘프를 불러들이겠습니다.” 뚜둑. 아크는 손가락뼈를 뚜둑거렸다. 엘프들이 나온다 이거지? 좋아 깽판으로 작살내주마. 곧이어 노예들이 입장하는 곳에서는 양손에 쇠사슬이 묶인 어린 엘프가 묶여진 채 끌려 나왔다. 인간의 나이로는 채 9살이나 먹었나 싶은 어린이였다. “보십시오! 하프 엘프들이나 기타 엘프의 피를 받지 않았다면 보기가 아주 드문 연두빛 머리카락입니다. 미모는 뭐 할 말 없죠. 엘프라 하면 다 예쁜 것 아니겠습니까? 자 좀 어리긴 한데 몸매를 한 번 볼까요?” 사회자의 말에 옆의 우락부락한 사내가 소녀의 옷을 찢어버렸다. “꺄아!” 볼 것도 없는 밋밋한 가슴팍이지만 몇몇 사내들은 환호했다. 역시 이곳에도 로리마교는 존재하는가 보다. “예 역시 위에는 별 볼일 없군요. 하지만 40년만 자라면 조금 솟아오를 테고 100년만 지나면 완벽히 성숙해 질 겁니다. 뭐니뭐니 해도 엘프의 매력이라 함은 변치 않는 미모라 볼 수 있겠죠. 자 그럼 아래를 보실까요?” 꿀꺽. 어떤 놈이 침 삼켰는지는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찍! “우오오옷!” 소녀는 묶은 손으로 급히 그 부분을 가렸지만 이미 보일 대로 다 보인 상태였다. 저런 아리따운 어린 소녀가 나신으로 묶여 있는 모습은 변태들의 성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윽! 이런 너 미쳤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저거 감상해서 뭘 어쩌겠다고? 너한텐 유카나가 있잖아! 로리는 더 이상 빠지면 안 돼. 자 슬슬 쓸어볼까?’ 아크는 쥬레이나란과 에르디에게 눈짓을 날렸다. “알았지 로이? 넌 정령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찾아 나머지 엘프들을 데려와. 유카나는 날 따르고 에르디 넌 죽음의 액체를 뿌린다. 그럼 시작해!” 모두는 에르디가 준 후각마비제를 이미 사용한 상태였다. 무리는 없었다. 에르디는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액체를 밑바닥에다가 부었다. “으윽!” “이건 무슨 냄새야!” “컥, 컥, 컥!” 밀폐된 공간에서 퍼져 나가는 냄새. 그 역겨움에 사람들은 구토와 헛구역질을 일삼다가 밖으로 나감이 유일한 살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문을 향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장내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퍽! 콰직! 에르디는 노예 경매장에 질서를 다잡거나 문지기 등을 하는 암흑가의 놈들을 하나 둘 씩 쓰러뜨렸다. “뭐하는 짓이냐?” “내 주군의 명으로 이곳을 초토화시키겠다!” 에르디는 갈란드그렌의 레어에서 얻은 미스릴로 만든 롱소드를 꺼내 들고 휘둘렀다. 기사 수업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터라 검놀림이 제법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드래곤 내단의 힘으로 강화된 육신이 그의 몸을 받쳐주고 있었다. 딱! 퍼벙! “크아악! 불이다!” 노예들이 대기하던 곳에서는 이유 모를 폭발이 일었다. 그러자 안 그래도 아수라장인 장내는 체통을 지키느라고 냄새를 참아가며 여유 있게 움직이던 귀족들의 움직임마저 빠르게 만들었다. 아크와 유카나는 그 틈을 타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들을 본 사회자 놈과 지금까지 여성들의 옷을 찢어 오던 사내가 말했다. “어서 피하십시오. 왠 놈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난 이 엘프를 사고 싶네. 얼마인가?” “크흐음. 경매 가는 원래 8백 골드에서 시작해서 한 2천은 받을 거라 예상했는데 1천에 넘기도록 하지요.” “여기 있네.” 아크는 흔쾌히 돈을 넘겼다. 1천 골드쯤이야 부자인 아크에게는 별 것 아니었다. “자 그럼.” 콱! 콰직! “뜨아아아악!” 아크와 유카나는 각자 발끝으로 사회자와 거구 사내의 거시기를 걷어 차 버렸다. 양촌리 딸딸이 각법이 명중한 것이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꺼내들고 엘프 소녀의 속박된 손과 발에 쇠사슬을 풀어 그녀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때였다. “……아크?” “응? 내 이름은 어떻게 알지?” “나 몰라? 나 리에나야! 엘프 마을 리에나.” “……!” 아크의 돌고래 급 기억력에 리에나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엘프 마을에 유일한 자기 나이대의 친구이자 리엔느의 딸. 그래 맞다. 딱! 그때 마침 쥬레이나란이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엘프 여성을 허리에 끼고 아크 옆으로 나타났다. “탈출하자.” “그, 그래.” 리에나를 만나게 되어 약간은 얼떨떨한 기분의 아크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곧 불타는 지하 노예 경매장을 뒤로하고 아크 일행은 지상으로 빠져 나왔다. “빨리 이모를 구해 줘!” “응?” 투숙 중이던 고급 여관방에 도착한 아크 일행. 리에나는 오랜만에 만나 친교의 정을 다지기보다는 아크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이모를 구해달라고 사정했다. 리에나의 이모라면 그토록 아크를 괴롭혔던 루리엘이다. 하지만 방금 전 노예 경매장에서는 루리엘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어쨌거나 무슨 일이 벌어진 건 틀림없었다. “리에나. 차분하게 얘기를 해 봐. 루리엘이 어쨌다고?” 그 대답은 옆에 구원받은 다른 여성 엘프가 대신해 주었다. “60년전에 우리 엘프들을 능멸했던 그 자가 루리엘을 잡아갔습니다.” “뭐 뭐라고요?” 그때는 30년 전 이었지만 거기서 또 세월이 지났으니 60년이 맞다. 엘프족의 원수라면 폴티아 공. 세프가 포르티아 아닌가?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모조리 몰살 시켜 버린 줄 알았던 놈이 살아있었다니. “어떻게 된 겁니까? 엘프들이 이렇게 잡혀 오는 일도 별로 없었고 갑작스레 죽은 줄 알았던 폴티아 공이 다시 살아 나오다니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겁니까?” 아크의 물음에 연약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강인한 엘프족 처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아크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 여성이 울먹이면서 아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5년 전쯤이었습니다. 팬크라프트라는 인간들의 제국이 우리 엘프들의 고향인 숲에 길을 뚫기 시작한 것이요. 그 당시 인간들은 우리에게 숲을 일부만 사용할 권한을 준다면 결코 우리의 삶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조했습니다. 숲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젊은이들의 의견도 있었으나 팬크라프트는 워낙 강한 기사들로 즐비한 곳이라 전투를 벌이게 된다면 파푸치아의 엘프종족은 씨가 마를 것이기에 촌장님은 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숲의 영역을 너무 많이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길을 뚫으라고요.” “…….” 안 들어봐도 비디오였지만 아크는 계속해서 엘프 여성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런데 일은 1년 전쯤부터 터졌습니다. 갑자기 팬크라프트는 공사를 서둘렀고 그 때문에 애초에 규약된 권역에서 인간들은 자꾸만 우리의 영역을 잠식해 들어왔지요. 그래도 피해는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싫어도 계속해서 버텼습니다. 그러나 길 공사 중이던 팬크라프트의 사내들이 이제 겨우 40살 난 엘프족 여자아이를 윤간했고 그 여자아이는 성기가 파열된 채 끔찍하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전쟁을 선언했지요. 숲을 이용한 유격전으로 우리는 상당한 전과를 거두어 그들의 발을 묶어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인간계의 소드 마스터가 참가하면서부터 전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유능한 부하들을 이끌고 유격전이 아닌 우리 마을을 급습.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많은 노예들을 잡아갔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팬크라프트는 루드비안을 치기 위한 초석으로 파푸치아 숲길을 뚫기 위한 공사를 시작했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처음에는 숲의 종족들이 유격전을 펼치며 괴롭혀 올 것에 대비. 이종족 회유책을 써 가며 천천히 공사를 진행시켰다. 그러나 루드비안에 소드 마스터가 된 지략의 기사가 재등장하면서부터 그의 행보는 달라졌다. 지략의 기사가 팬크라프트 제국 마나 수련법을 보급하기 이전에 루드비안을 치기 위해 최단거리 내 길공사를 마치려다 보니 엘프족의 영역에 자꾸만 침범하게 되었고 그렇게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한 악감정이 숲속에서 욕정을 풀지 못했던 몇몇 병사들에 의한 강간 살해 사건으로 폭발한 것이다. 처음에는 분노로 사기가 높고 숲의 지형에 능했던 엘프들이 상당히 유리했으나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백전 노장. 소드 마스터 루이스 델른버 공작과 펠릭스 기사단을 투입하여 엘프족의 본거지를 급습하는 데에 성공. 현재 이렇게 많은 엘프 여성들을 포로로 끌고 올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것을 운 좋게 아크가 구해낸 것이다. “몇 명이나 잡혀간 거고 어디로 잡혀간 겁니까? 자세히 좀 이야기 해 주시죠.” “대부분은 숲 속 팬크라프트 군의 본거지에 있으며 우리를 비롯한 열 명 가량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루리엘 같은 경우는 이곳의 총독인 세프가 포르티아 백작이 끌려 온 것을 보자마자 직접 데려갔습니다.” 팬크라프트에 투항한 폴티아 공은 다시금 이곳의 총독자리를 맡게 되었다. 비록 공작에서 백작으로 급수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디그리스 같은 소국의 대공과 팬크라프트의 백작이 같은 급수일 리 없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꼭 죽여주겠다고 다짐한 놈이 아직도 여기에 살아서 있었다니……거기다 루리엘까지. 아크는 주먹이 근질근질했다. “가자 로이. 변태 돼지 이후 또 손봐줄 놈이 생겼다. 유카나하고 에르디 너희들은 언제 추격 등이 있을지 모르니까 여기를 좀 지켜.” 아크는 쥬레이나란을 이끌고 달려나갔다. 총독관저 아니면 저택. 둘 중 한 곳에 놈은 있을 것이다. 뻔뻔하게도 놈은 이전의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뒤뜰에 놈의 부인과 아들을 묻었던 그 저택에 말이다. 아주 잘 되었다. 기왕에 놈까지 여기서 묻어주마. “웬 놈이냐?” 딱! 경비들은 침입자들을 보고 외치는 동시에 손가락이 퉁기는 소리와 함께 불꽃에 휩싸여 녹아내려갔다. “크아아악!” “로이. 저택 한 귀퉁이를 박살내. 놈. 아무래도 또 다른 마누라질에다가 아주 잘 번성하며 살 것 같군. 오랜만에 살육을 좀 해야겠어.” “알았다.” 콰과과광! 손가락을 퉁길 때마다 불꽃이 일면서 여기저기가 폭발했다. 그 폭음에 하녀들의 고함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바퀴벌레 같은 놈. 60년 전에 그렇게도 엘프족에게 상처를 줬으면서도 또 지랄을 해? 레골룸스 네 유지를 받들어 놈을 처단해 주겠다.” 아크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저택 안으로 난입했다. “으응?”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에서 판타지 쪽을 배경으로 한다면 가끔 볼 수 있는 장면. 그것은 바로 나신의 엘프 여성을 묶어 놓고 변태들이 여기저기 주물러 대는 그런 광경이라 할 수 있겠다. 백작 저택의 호화로운 방에는 현재 그러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제는 80대의 나이인 세프가였지만 그도 기사였던 지라 수련에 열중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50대 후반쯤은 노장부로만 보였다. 그 덕에 아직까지 몸은 탄탄했고 수려했던 외모 역시 주름살이 조금 늘긴 했지만 그야말로 미중년이란 칭호가 붙을 만 했다. 갑작스런 폭음에 그는 루리엘의 얼굴에 대었던 손을 떼고 침상 옆에 걸어 둔 검을 뽑아들었다. 그러자 뒤에서는 괄괄한 그녀의 폭언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가만히 있으면 그렇게 묶어둘 필요도 없었잖아? 왜 그래? 너도 제법 날 많이 따랐던 걸로 기억하는데…….” “닥쳐! 너 같은 놈이 무슨!” “뭐 기왕이면 모녀도 나쁘진 않았지만 세 자매를 모두 취할 수 있다는 것도 묘한 흥분이 되거든. 사실 말야 난 얌전했던 네 언니들보다는 괄괄한 네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 퍼버벙! 문짝이 화염과 함께 폭발하며 연기와 먼지를 날려대었다. 곧이어 연기가 걷히자 파괴된 문의 대로를 당당히 열고 들어온 짙은 흑발의 두 남자가 있었다. 그 중 피부가 약간 누런빛을 띄는 남자가 방안의 광경을 보고서는 비꼬는 투로 말했다. “개새끼. 도저히 못 들어 주겠네. 세 자매 덮밥? 하이고 고것이 얼마나 힘든데. 하겄다고? 나잇살 먹은 할아버지 주제에. 뒤질라고 환장을 했구만.” 아크는 그에 대한 적의를 있는 대로 모두 발산했다.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수장시켜 버렸다고 믿고 있었는데 살아 있는 꼬라지도 별 반 좋게 보이지 않았고 자매를 완전히 속여서 마음을 가지고 농락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자매의 막내마저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도둑놈 심보를 가만히 둘 수 없었다.(넌 안 그러냐?) “네놈들은 누구냐?” 루리엘은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세프가의 등판에 가려진 시야로는 그게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누구냐? 크크크 네놈을 조지러 온 고문관이지. 지략의 기사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뭐? 지, 지략의 기사?” “역시 이 명성은 대단하구만 오랜만이다 폴티아 공. 그랑데 평원 전투와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로군. 진작 죽여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그때 싹 휩쓸려 갔기에 안 죽은 줄 알았지. 이제……죽여주마.” 아크는 달려가면서 권기를 머금은 주먹을 날렸다. “읏!” 세프가는 간신히 피했지만 권기가 스치고 지나간 왼팔은 무사하지 못했다. 불로 지진 듯 칼에 찢긴 듯한 상처에서는 피가 주르르 쏟아져 내렸다. 주먹을 날리면서 세프가를 지나친 아크는 묶여 있는 루리엘을 볼 수 있었다. 장난끼 넘치던 귀여운 소녀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제법 성숙한 여고생 티가 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많이 길었다. 그렇게 잠시 한눈을 팔자 세프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크를 찔러 들어왔다. 딱! 파지지지직! “끄아아악!” 쥬레이나란이 장갑을 낀 왼손가락을 퉁기자 그의 몸에서는 푸른 전류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흘렀다. 검을 떨어뜨리며 무릎을 굽히는 그를 아크는 사정없이 발로 배를 가격했다. “커헉!” 이전의 아크였다면 결코 그를 이렇게까지 가지고 놀 수는 없었다. 고작 해야 얄팍한 전략 베껴오기 식 방법으로 화장에 수장시킬 수는 있었으나 그마저도 세프가는 피하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힘이 생긴 이상 모두가 위임했던 복수는 충분히 실행해 줄 수 있었다. ‘가만. 저건…….’ 갑자기 문을 박살내고 나타나서 이 저택의 주인을 아주 쉽게 제압함과 동시에 구타를 가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묘하게 낯이 익었다. 하지만 누구였더라 고민은 하면서도 누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쥬레이나란의 전격 마법 다음에는 모든 일이 구타로 직결되었다. 마스터 급 무인과 드래곤의 육체가 가하는 타격은 고통이 가해지기에 충분했다. 쥬레이나란은 이 방에 있던 제법 품질이 좋아보이는 건틀릿을 찾아내고서는 그것을 착용했다. 그렇지만 변신하지는 않고 쇠갑의 주먹을 이용 놈의 턱을 부숴놓았다. “크학!” 턱뼈가 부러진 이후에도 무자비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아크는 놈의 입을 때렸다. 그의 돌주먹에 놈은 앞니가 모두 나감은 물론이오. 입술이 터져 하염없이 입에서 피를 흘렸다. “……지, 지랴그 기사여. 왜 이어는 거인가? 내가 그대에게 무슨 자모한 게 이는가?” 이빨이 나가고 턱이 나가서 그런지 발음이 상당히 알아듣기가 애매했다. 애처로운 모습이긴 했으나 죽여야 될 놈의 사정을 봐주고 싶은 생각 따위는 없었다. “레골룸스의 염원이자 내가 한때 몸담았던 엘프족의 염원이다. 그들의 염원이 네놈의 목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네놈을 이 자리에서 처단한다.” “어째서……그러는 거인가? 다신이 에프조그 소원으 이루어주 피요가 이나? 나르 주인다면 다자에 팬크라프트와 루드비안의 전재이 이러나네. 왜 구이 며분으 만드러 주려 하는가?” “어차피 전쟁하려고 마음먹은 주제에 그런 말 해봐야 소용없어. 내가 먼저 도발해서 상대방에게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준 게 조금 걸릴지 모르지만 굳이 내가 명분을 주지 않았더라도 그쪽에서는 억지로라도 명분을 만들어 내었겠지. 그저 엘프족을 건드린 것. 특히 너는 좀 심하게 건드렸던 것. 그게 네놈이 죽을 이유다.” 아크는 여기저기 맞아서 만신창이가 된 놈의 목을 강하게 조였다. 그냥 깔끔하게 목을 베어 죽이기에는 왠지 고통이 심하지 않을 듯 싶었다. 고통스럽게 죽여주마. “끅 크 끅.” 눈알이 돌아가고 혈색이 창백해졌다. 입에는 피 거품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보던 루리엘은 뒷모습밖에는 보지 않았지만 지금 폴티아 공을 죽이려 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였다. 자그마치 30년. 엘프족의 시간으로 본다면 그렇게까지 긴 시간은 아니라고는 해도 아크가 없어지고 나서 제일 심심했던 그녀로서는 지금에서야 나타나긴 했지만 그가 정말 반가웠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구해주러 온 왕자님 아닌가? 그러니 더더욱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잘 가라. 네놈의 머리는 신궁과 함께 엘프 마을로 가져가겠다.” 아크는 네크로맨서의 삽의 날 부분으로 놈의 목을 찍어버렸다. 삽이란 것이 원체 날이 무디기에 단번에 목을 벨 수는 없었지만 찍힌 다음 놈이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서야 진정한 복수를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삽에서 발로 밟아가며 땅바닥에 꽂는 힘을 가하게 하는 부분에 아크는 발을 대고 삽을 밟았다. 그러자 목이 완전히 몸에서 분리되었다. 콰직! 피가 분수처럼 솟더니 아크의 얼굴에까지 튀었다. “이제 신궁만 가져다 주면 되겠구나. 레골룸스.” 아크는 얼굴에 묻은 채 주르르 흐르는 피가 입에 들어가자 기분 나쁜 표정으로 침을 뱉었다. 비릿한 맛이다. 60년 전의 엘프족의 원한은 이제 갚았다. 하지만 남은 게 있었다. 또 다시 생긴 원한. 이번에는 한 인간에 대한 원한 같은 게 아닌 국가적 차원이 달린 일이다. 어차피 루드비안 제국에 임관하면서 한 번은 충돌할 것이라 생각했던 팬크라프트 제국과의 충돌. 오늘 폴티아 백작을 죽이면서 아마 발화점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어쨌든 엘프 마을에 한 번을 들려야 될 듯 했다. 신궁을 가져다 주기 위해, 다시 오겠다는 약조를 지키기 위해,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져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파악하기 위해 행선지는 그쪽으로 정해졌다. “야 저 엘프 암컷 안 구하냐?” “아. 어 그래.”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루리엘을 속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주었다. 보통 밧줄도 아니고 쇠사슬이라니 살갗이 쇠사슬에 눌린 태가 나는 것이 여간 소름 돋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아크를 보며 루리엘은 그의 얼굴에 손을 댄 채 말했다. “……아크? 아크 맞지?” “그래 망할 지지배야. 많이 컸구나. 묶으니까 튀어나오기까지 하고.” 아크는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묶이니까 튀어나온 루리엘의 가슴을 보고서 한 농담이었다. 루리엘은 속박되어 있던 쇠사슬에서 벗어나자 아크에게 뛰어들어 그를 껴안았다. “바보! 왜 이제야 온 거야! 기다렸잖아!” “아하하 미안해 일이 바쁘다 보니 늦었네. 이제라도 봤으니 됐잖아. 자 가자. 병사들이 몰려오기 전에 일단 빠져나가고 보자. 리에나가 기다리고 있어.” “리에나도 구했어?” “그래. 여하튼간 오랜만이다. 납작가슴에 어린애티가 너무 많이 났었는데 지금은 아니네? 여자다워졌어.” “피~.” 루리엘은 칭찬에 부끄러운 듯 얼굴은 붉히면서도 혀를 내밀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디서 뭘 했던 거야? 인간들이 보통 30년을 살면 팍삭 늙어야 정상인데……?” 그녀는 아크의 현재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상당히 강해진 듯한 걸로 봐서는 마스터라는 무의 경지에 올라 노화가 멈췄을 수도 있지만 헤어질 당시 아크는 1,2년 수련 정도로는 마스터에 오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신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로이. 건틀릿도 하나 얻었으면 도로 꼬맹이로 변해라. 좀. 쩝 가자. 여기는 완전히 폭파한다. 알았냐?” 딱! 세 명의 인영과 한 시체의 목이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마나의 빛무리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곧이어 폴티아 백작의 저택은 거대한 폭음과 함께 화염에 휩싸여 사라졌다. 새들이 마냥 평화로이 지저귀는 숲 속. 활엽수들이 모두 나뭇잎들을 떨어뜨리고 새하얀 알몸만 남겨 뒀다면 침엽수림들은 여태껏 남아 숲의 푸르름을 잃지 않게 했다. 그 숲 한 가운데 즈음 있는 흙으로 만든 담. 엘프족의 토성이다. 대지의 정령 노움의 도움을 받아서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환경 친화적으로 잘 만든 토성. 그러나 대부분이 무너져 지금은 단순히 벽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란 힘들었다. 불과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부 오크들의 지배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숲의 남부 엘프들을 수용해 인구가 늘어났던 파푸치아의 북부 엘프들. 그러나 지금은 두르툰 오크 부족이 그들을 압박할 때만큼이나 인구가 다시 줄었고 오크들의 위협보다 더 큰 위기에 놓여 있었다. 오크들은 두르툰이라는 드래곤 유희 지도자를 제외하고는 종족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벌였고 두르툰을 제외하면 머리도 딸리며 실력도 그다지 탁월하지 않아 영웅적인 지도자 하나를 제거한 이후에는 너무도 쉽게 그들을 몰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달랐다. 인간들 중에서도 팬크라프트라는 대륙 최강의 무력과 국력을 소유한 국가에서 머리 좋은 지도자와 강력한 무력을 지닌 많은 기사들을 앞세워 유격전에서 앞서던 엘프들의 본거지를 급습해 거의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큰 타격을 주었다. 수백의 엘프 전사들이 지키고 있었으나 소드 마스터 루이스 델른버와 100명의 소드 익스퍼트 급으로 이루어진 펠릭스 기사단의 한 개 전대는 큰 사상자를 내지 않고 수많은 엘프들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다. 그나마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였던 엘프족의 여촌장이 목숨을 희생해서까지 나서지 않았다면 급습일 당시 파푸치아의 엘프족은 멸족당할 뻔했을 것이다. 현재 엘프족의 여촌장은 하반신을 잃어버리는 부상으로 도저히 일족을 이끌 상태가 못 되었다. 때문에 엘프족의 수장은 검과 무예에 상당한 조예가 있으며 지휘력이 탁월해 오크와 이번 인간들과의 유격전에서 큰 전공을 세웠던 아테라인이 계승했다. 그러나 그가 계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얌체 같은 팬크라프트 측은 엘프들에게 굴욕적인 항복 권고를 보내왔다. ‘사내들이 숲 속에서 공사만 죽어라 하다가 잠시 욕정을 이기지 못했던 것을 너그러이 이해하지 못하고 먼저 우리를 도발했으므로 당연한 처사였다. 지금이라도 우리측 기사들과 엘프족 여성들의 자유연애 조건과 시녀로 쓸 몇몇을 공납하는 조건으로 항복한다면 더 이상의 공격은 삼가겠다. 기한은 일주일이다. 그때까지 답변이 없거나 거절의 답변이라면 그 즉시 다시 군대를 몰아 엘프족을 멸족시키겠다.’ 말은 자유연애라고는 하지만 엘프족 마을을 사창촌으로 만들라는 것과 다름없는 권고조건이었다. 파푸치아 숲길을 통해 전쟁이 지속될 터. 전쟁에 참여하는 사내놈들의 욕정을 아름다운 엘프들을 통해 풀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우리더러 노예가 되라는 소리로군.” 하지만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시에는 즉각 멸족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이었다. “싸웁시다.” “하아~.” 엘프족 여성들을 성노로 내놓으라는 조건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차라리 모두 죽을 때까지라도 싸우는 것이 나았다. 항복권고를 받아들인다면 마을에는 인간들이 차지하고 들어와서 거부하는 엘프족 여성들을 무차별 강간하고 반항하면 살해하는 등 그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을 것이다. 엘프족 여성들은 하루 종일 더러운 인간들의 거시기 끝에 농락당할테고 그럴 경우 생길 다량의 하프 엘프들 덕에 결국 몇 십 년 후에는 간신히 이어 온 엘프 일족의 순수혈통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대륙에 엘프족이 파푸치아 숲 한군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파푸치아에서 나름대로의 전통을 이어 온 자신들의 종족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만도 끔찍했다. “차라리 본거지를 버리고 우라시드 산맥으로 피신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한 엘프의 의견이 나왔지만 모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웬만해서는 숲을 버리지 않는 그들도 지금은 숲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피신할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 파푸치아 숲이 넓긴 했지만 이미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이 서서히 진채 등을 세워가며 주둔하고 있어 금새 옮긴 본거지는 들통이 날 것이 분명했고 우라시드 산으로 도망쳤을 경우. 척박한 땅에 강력한 몬스터들이 주 서식하는 그런 곳에서 살아남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미 엘프들을 성노로 획득하기로 마음먹은 팬크라프트측에서는 기필코 거기까지 쫓아와서 여자들을 잡아갈 것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거의 다 작살난 성벽에 의존해 조금이라도 더 저항하는 게 낫다. “알았소. 모두들 최후의 전투를 준비하시오.” 아테라인은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몸을 돌렸다. 어차피 싸우나 안 싸우나 결과는 똑같았다. 항복을 했다가는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빼앗기고 인간들의 횡포에 못 이겨 결국에는 또다시 반기를 들어 모두 죽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후방을 걱정한 군대에 의해 남자들은 몰살당할 수도 있다. 싸울 경우. 남자들은 대부분 죽이고 여자들은 되도록 포로로 잡아가 성노로 써먹을 것이 자명했다. 자신의 죽음은 슬퍼하지 않는 엘프들이지만 일족 자체가 멸족하고 여자들은 성노가 될 운명이 슬프지 않을 리가 없다. “후우우.”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나온다. 막내딸과 손녀는 이미 잡혀가 인간들의 손에 더럽혀 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분노할 여력도 없다. 가끔 아크라고 하던 인간 청년이 생각났다. 오크의 수장 두르툰 덕에 지금과 같은 절망감을 맛보고 있을 때. 그 유쾌한 인간 청년은 과거의 인간에 대한 짙은 불신에 빠져 있던 엘프들에게 다시 한 번 인간만의 매력을 마음껏 어필했고 또 여러 활약을 펼치며 그들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조금 음흉스러운 면도 없잖아 있었으나 노골적으로 성노로 달라고 하는 낯짝 두꺼운 인간들에 비하면 거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수준이었다. 리엔느가 생각났다. 녀석은 그가 떠나간 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가 떠난 동쪽 방향을 생각 없이 바라볼 때가 많았다. 가끔은 동쪽 입구에 서서 하루 종일 서성이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진작 그렇게 좀 잘해주지 그랬느냐? 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2~3년 안에 돌아오겠다고 나갔던 그는 어언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와 같이 나간 레골룸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 둘이 이곳에 있었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는 건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다시 만난다면 아마 지금 자신보다 더 나이 든 모습일 것이다. 인간의 수명은 그만큼 짧다. 그래도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게 많은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이런 쓸데없는 상념에 빠지다니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군.’ 확실히 죽을 날은 머지 않았다. 남은 것은 지구 종말이 와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정신으로 마지막 그 날까지 싸우는 것 그것뿐이었다. “촌장니임!!!” “무슨 일인가?” 최후 통첩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오는 날 밤이었다. 촌장 아테라인의 집에는 다급한 엘프 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났습니다. 완전 무장을 한 네 명의 인간이 우리 엘프족 여성 셋을 이끌고 마을로 오고 있습니다. 마나의 양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 봐서 소드 마스터 급 기사일 거라고 예상됩니다.” “뭐?” 소드 마스터의 무서움은 지난 번 습격에서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다른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은 조금 힘들긴 하나 활과 정령들을 이용해서 상대할 수 있었으나 소드 마스터 루이스 델른버의 경우에는 그에게 달라붙었던 엘프 전사들이 가장 많이 죽었으며 검에서 나오는 빛무리 등으로 성벽을 순식간에 박살내 무너뜨리는 등 도저히 상대할 의기가 들지 않는 강적이었다. 그런 강적이 둘씩이라니.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여럿에 비해서 무게는 조금 낮을지 모르지만 무서운 적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 다급한 보고에 어두웠던 마을에는 속속들이 횃불이 켜 졌다. 모두는 완전 무장을 갖추고 입구에서 화살을 겨눈 채 서 있었다. 그리고 당당하게도 입구로 들어오는 남자를 벌집으로 만들 계획으로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뭐야 이 동네는 인사를 이렇게 하네?” “대접이 융숭하구만.” 선두에 서서 들어오던 두 남자는 화살을 전혀 겁내지 않았다. 화살은 대부분 그들의 몸에 닿자마자 튕겨나갔다. 모두들 그 광경에 놀라며 다시 한 번 화살을 장전했다. 그때 이들이 잘 알고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들 두세요!” “루리엘?” 화살을 날리던 리엔느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말하자. 모두들은 화살을 쏘려던 활을 내려놓았다. 루리엘이 누군지 알았던 것이다. “아 씁. 어두워. 로이.” “귀찮구만.”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밤하늘은 형광등을 켜 놓은 것처럼 밝아졌다. 그렇게 아크가 보이게 되자 몇몇이 그를 알아보았다. “아, 아크……?” “호오 알아들 보시네? 월남에서 금의환향한 아크올시다.” 능청스런 인사소리. 3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이 놀랍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분명 엘프족의 인간 영웅이었던 아크였다. “폴티아 놈을 죽이고 신궁을 되찾아 왔습니다.” “……!” 하루 묵은 다음날의 아침. 오랜만에 엘프족 회의장에 오게 된 아크는 세프가 포르티아 의 목과 신궁 루기아를 내어놓았다. “놈이 맞습니다!” 엘프들은 흥분해서 소리쳤다. 철천지원수라 할 수 있었던 놈의 목이 확실했던 것이다. 더구나 신궁의 재등장은 그들은 더더욱 그들의 환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신이 천사에서 본을 따 만든 엘프족들에게 선물로 내린 신궁 루기아. 특히 파푸치아의 엘프 부족은 그 신궁을 받들어 신을 섬기는 소위 선택받은 일족이었고 신궁은 그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신궁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팬크라프트의 공격 선언에 침울해져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다 죽은 듯 조용하던 엘프 마을에는 다시금 활기가 돌았다. 아크와 신궁이 복귀함으로서 생긴 시너지 효과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다 죽어 가는 분위기입니까? 루리엘한테 들어서 대략 짐작은 가지만 한 번 졌다고 이렇게 침울한 겁니까?” 아크는 아직 팬크라프트의 항복 권고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 아크에게 아테라인은 항복 권고 서신을 보여 주었다. “얼라리요. 허 참 나. 어이가 없네.” 아크는 팬크라프트가 하려는 짓이 일제가 식민지인 조선에 했던 것과 똑같은 짓거리라는 것을 알고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잘 살고 있는 엘프족에 트집을 잡아 무력으로 쳐서는 여자들을 군의 성욕 해소용으로 사용하려는 행위를 팬크라프트가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루드비안 제국에 몸담고 있는 이상 한 번은 맞붙어야 할 상대가 팬크라프트였다. 폴티아 전쟁에서의 복수를 하고픈 마음은 없지만 자신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엘프족의 비극을 보니 한 번쯤 그 강자의 오만함을 꺾어 주어야 겠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아크 군. 우리는 싸우기로 마음을 굳혔네만 이대로 싸운다면 전멸을 면하지 못할 것일세. 자네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고 싶군.”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에르디가 괜한 쓸데없는 사족을 가져다 붙였다. “주군은 대륙에서 지략의 기사라 불리고 있으신 분입니다. 특히 팬크라프트의 10만 대군을 2만의 병사로 전멸시켜 버린 데일런스 성 전투는 아주 유명하지요. 뭔가 수가 있을 것입니다.” ‘켁! 이 새끼가! 헛소리를!’ 엘프들은 아직 자신의 정확한 신분 등을 모르고 있었다. 솔직히 계략이나 책략을 어느 정도 세울 줄은 아는 아크였지만 그것이 제갈량처럼 반드시 성공하리라고는 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대번에 털어놓아 버리면 어쩌라는 말인가? 지략의 기사라는 게 들통났으니 성공할지 불투명한 계략이라도 반드시 성공할 것처럼 내놓아야 되 버리지 않는가? “오오! 팬크라프트의 10만 대군을 말살시켰다 이 말인가?” “그럼 이놈 아주 유명한 놈이야. 지략의 기사 전설이란 책이 있는데 이 녀석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특히 그 10만명을 불구덩이에다 몰았다가 나중에는 물로 휩쓸어 버린 그 전투만큼은 나도 참 재미있게 읽었어.” 쥬레이나란까지 일어나서 거든다. 이거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겨먹었다. 일단은 자신이 보유한 무력을 공개하는 게 나을지 몰랐다. 어설픈 계략을 세우느니 웬만하면 압도적인 전력의 우세로 쓸어버리는 게 나았다. “예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전 팬크라프트의 잠재적 적국인 루드비안 제국에 소드 마스터이자 지략의 기사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레골룸스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우리는 폴티아 반도를 치려는 인간 군대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 군대는 팬크라프트와 맞붙어 궤주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제 얄팍한 계략이 멋들어지게 성공하여 10만이 팬크라프트 병사를 화장에 수장시켜 버렸죠. 때문에 지략이라는 호칭이 붙었습니다.” “소드 마스터! 자네가 그 경지에?” “예. 여기 제 부하인 이 친구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전사이고 이쪽은 제 약혼녀로 역시 마스터급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 이 친구는 8서클의 대마법사이자 검까지 수준급으로 다루는 마검사로 폴리모프로 모습 바꾸는 걸 즐기는 녀석이지요. 제가 이 일행의 리더격이니 이 전력으로 마을을 돕겠습니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팬크라프트의 기사단 전대 하나 쯤은 별 무리 없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엘프들은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인격투술 외에는 별 볼일 없었던 허약해 빠진 인간 아크가 완전히 용이 되어서 재림한 것이다. 그것도 강력한 동료들을 이끌고. “못 믿으시나 본데. 마나를 한번 완전히 개방할 터이니 어느 정도인지는 마나 체크 마법을 사용해서 알아보십시오.” 너무나 성스럽고 은은하고 자비로워서 평소에는 기척을 숨겨서 다니던 체내의 마나를 아크는 완벽하게 공개했다. 그 기운은 신과 가장 가깝다는 엘프들에게 주신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쨌거나 아크의 마스터 발언은 사실이었다. 아테라인을 비롯한 엘프들은 새로이 희망이 샘솟는 것이 느껴졌다. 성벽을 둘러보던 아크가 한마디했다. “성벽이 개판이네요.” 팬크라프트 기사단의 습격 시 토성은 상당부분이 파손되어 있었다. 대지의 정령을 이용하면 금새 다시 쌓을 수는 있었으나 오크와는 달리 영악한 인간들에게는 성벽이 그렇게까지 필요가 있지 않았다. “그렇다네.” “물을 뿌리고 추운 날씨에 놔두면 멋진 얼음 성벽이 될 텐데 쓸데가 없어서 아쉽군요. 만약 기사단의 습격이 아닌 병사들까지 동원한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온다면 이 벽에 물을 뿌리고 결빙 마법을 이용해서 성벽을 만드십시오. 미끄러운 얼음 덕에 적군들은 제대로 올라오지도 못하고 당할 테고 얼음의 고강함에 쉽게 뚫고 오지도 못할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네와 자네의 동료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팬크라프트는 무시 못할 전력일세.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도 많고 마스터 급 기사도 하나 있어. 정말 정공법으로 맞부딪힐 생각인가?” 지략의 기사란 것이 알려지자 어느새 아크는 정식으로 엘프들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마법 소차원 아공간 속에 집어넣고 다니던 지략의 기사 전설을 몇 권 풀자 반신반의하던 레르가스 같은 놈들마저도 아크의 대단함(?)을 신뢰할 수 있었다. “정공법으로 맞부딪혀도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만 유카나는 숨겨야 할 제국의 전력이라 동원할 수가 없으니 일단은 계략이란 것을 한 번 써 봐도 되겠지요.”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녀석들은 엘프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복하든지 아니면 쳐들어와서 모두 죽이고 여자들을 포로로 잡아가든지. 여하튼간 승리할 것으로만 예상하고 허리운동들이나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걸 역으로 이용해 항복하겠다는 뜻을 거짓으로 전달한 뒤 성벽 안으로 몰아 넣고 포위한 다음 섬멸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것을 하려면 성을 보수해야 겠군요. 앞서 제가 말한 대로 물을 뿌려 얼음성벽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노움으로 다시 성을 보수해도 좋습니다 그건 알아서 선택하시길.” 그럴 듯한 꾀였다. 이미 승리했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놈들을 본거지로 끌어들인 다음 포위해서 공격해 섬멸하는. “역시 자네가 왜 지략의 기사라 불리는 지 알겠군.” “아하하하 글쎄요?” 아크는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대답했다. 솔직히 책략이나 계략을 짜라면 못 짤 것은 없었다. 상대 장수, 지형, 군의 사기와 분위기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에 맞게 정공법, 기습, 도주 등의 한 가지를 선택하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갈량만큼은 아니더라도 아크는 그만의 엉뚱함에서 얻어낸 창의력(?)으로 제법 책사로서 쓸만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역사상 유명한 책사들처럼 한 계책을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계략 따위가 성공할까? 라는 노파심에서 제대로 된 계략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레골룸스는 어떻게 했나? 잘 묻어 주었나?” “……후우 디그리스 병사들의 시체와 함께 동시에 화장되었을 겁니다. 그 상황에서는 녀석이 시체를 도저히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고작 신궁을 들고 튀는 게 다였죠.” 레골룸스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떤 역사 소설가가 썼는 지 모를 ‘지략의 기사 전설’에는 레골룸스의 사망장면이 서술되어 있었다. 대략 진실을 기반으로 써 진 책이라 엘프들은 레골룸스의 죽음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듯 했다. 레골룸스를 알고 있던 가족들 등은 슬프겠지만 수 십명이 죽어 주신의 품으로 돌아간 마당에 새삼 레골룸스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다지 엘프들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저기 팬크라프트 놈들이 어느 정도 납치를 해 갔습니까?” “1293명의 인구 중 377명이 줄었네. 그 중 184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모두는 노예로 끌려 간 것 같더군. 부상자는 현재 싸울 수 없는 부상자까지 제한다면 현 전투 동원 가능 인력은 기껏해야 600가량 될까 말까 한다네.” 루리엘에게 들은 말로는 폴티아 쪽으로 팔려온 엘프들은 자신들을 합쳐 고작 8명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나머지는 위안부를 삼으려 숲에다 놔 둔 것이리라. 이미 실컷 몸이 더럽혀 진 이들이 태반이겠지만 그래도 엘프족의 인구이자 인력이다. 팬크라프트 군에 성 노리개나 되게 놔 둘 생각은 없었다. ‘정보가 없으니.’ 일단은 유인책을 사용하여 몇 명 정도 사로잡아 캐내야 할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스터가 된 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은 뒤에 되어도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뭐 그건 말하자면 복잡하니 그냥 마스터가 되었고 안 늙었다라고만 기억해 주십시오.” “쩝. 그래.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식사나 같이 하지 않겠나?” “그럴까요?” 아크는 아테라인의 뒤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유카나가 자리하고 앉아 루리엘에게 아크의 옛날 행적을 듣고 있었다. “……오우거를 목을 졸라서 잡았다?” “하, 하, 하, 하 주군 정말 인생 파란만장하셨군요.” “멋져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에르디와 쥬레이나란을 보며 아크는 루리엘. 이 입 싼 가시내를 추궁했다. “마! 다 지난 얘기를 왜 해 주고 난리야?” “호오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닐 텐데? 여기 이 여자애가 약혼녀라며? 히히 역시 리에나 건드릴 때부터 알아봤어. 이 인간이 리에나 있지. 얘한테 이상한 걸 가르쳐 주고…….” “왁!” 아크는 급히 루리엘의 입을 막았다. 더 이상 과거의 행적이 동료들에게 드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유카나가 아무리 착하고 포용력이 있다고는 해도 더 이상 과거의 행적들이 드러나면 매우 난감했다. “그런데 리엔느는 어딜 가서 안 오는 게냐?” “엄마는 아까부터 신목 앞에서 자꾸만 서성이던데요?” “흠 그래?” 아테라인은 아크의 옆구리를 살살 찔렀다. “왜 그러십니까?” “가 보고 오게.” “에?” 아테라인은 아크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녀석은 겉으로는 여전히 무뚝뚝한 척 하고 있지만 자네가 없는 30년 동안 항상 자네가 떠났던 동쪽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동문 부근에서 서성이는 등 수상한 짓을 많이 했다네. 자네가 이미 약혼녀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 인간들이 한 여자만 데리고 살던가?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면 수명도 길어졌을 테니 한 번 다시 작업해 보게나.” “아하하 그렇습니까? 그럼 한 번 가보고 오지요.” 비록 차이긴 했지만 리엔느는 아크가 먼저 사모했던 여자였다. 로니 같은 경우에야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애정이 싹튼 케이스라면 그녀는 애초부터 좋아하다가 차이고 떠난 뒤 다른 여자하고 잘 살다 보니까 어느 새 어릴 적 첫사랑의 추억처럼 가물가물 잊게 된 그런 타입이었다. 그렇지만 자기를 좋아하기만 해 준다면 거의 모든 여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아 리엔느가 틈만 보인다면 이미 두 명의 여성이 속해 있는 아크의 하렘에 그녀 역시 추가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크는 엘프족의 신목 제단에 놓인 신궁과 포르티아 백작의 머리를 감흥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리엔느를 발견했다. “어이 뭐해?” “…….” “이놈의 모가지를 보니까 새삼 옛날이 생각나?” 끄덕.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리엔느. 아크는 자신이 한 질문이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팔 수 있는 듯한 질문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무안해졌다. “어째서 우리들은 주신이 가장 사랑한다는 천사족의 피를 잇고도 인간들보다 소외 받는 걸까?” 리엔느는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하늘에 물음을 던졌지만 그 질문은 듣고 있는 이가 있었다. “아마 선한 이들은 빨리 옆에 두고 싶으셨겠지. 이놈을 보면 알아. 악하게 산 녀석이었던 지라 거의 천수를 누리고 죽었어. 모르긴 몰라도 엘프족을 건드리고 상처 준 대가로 지옥불의 불구덩이 속에서 고생 좀 하고 있을 걸.” “그럴까…….” 그녀의 대답은 자조적이었다. 신은 아직도 엘프들을 총애하기는 하는 걸까? 엘프족의 기원은 천족의 대표적인 전사들이자 주신의 직속부하들인 천사들에서 비롯된다. 주신과 암흑신이 서로 연합하여 세계를 창조할 때 주신은 엘프와 드워프, 정령들의 때묻지 않는 순수함을 지닌 이들을, 암흑신은 오크 등의 몬스터들을 창조하였고 마지막으로 둘이서 힘을 연합하여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존재인 인간과 주신의 천계와 암흑신의 마계가 서로 간섭하지 못하도록 세계를 조율하는 용족을 만들어 하계를 완성했다. 엘프들은 단연 주신에게 가장 선택받은 종족으로 본디부터 빠른 발과 수려한 외모 긴 수명 타고난 정령과의 친화력, 무소유욕 등 주신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러나 선천적인 탐욕으로 가득 찬 인간들에게 속고 이용당하고 터전을 빼앗기며 그들의 역사는 항상 수난의 역사였다. 암흑신의 몬스터들이 욕구로만 움직여 명맥을 유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번성하는 것에 비해 엘프족은 주신이 선택한 종족이기는 하나 선천적으로 욕구가 없어 갈수록 수는 줄어갔고 결국 주신은 중립적인 인간들에게 자신의 성검을 세 자루 내리며 자신을 추종하도록 유도했다. 주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지만 신은 계속해서 신자를 불려가며 자신의 입지를 다져 주는 인간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선택받은 종족에게 내려지는 시련은 너무나도 컸다. 그래도 결코 주신을 버릴 수 없는 것이 선택받은 종족 엘프들이다. 주신이 내린 신궁과 신목을 모두 잃었을 때. 그들은 신과의 고리를 잃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불안해했다. 이 이후 평화로이 살던 그들은 오크와 인간에게 나란히 생존의 시험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 시련은 너무나도 컸다. 그 시련을 못 이기고 무릎 꿇을 때. 아크가 나타났다. 그가 나타나 엘프족을 구원해 주었다. 주신의 성력이 넘치는 마나와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봐서는 정말 신의 사자일지도 모른다. 그가 멸족 당할 지 모를 이런 큰 위기에 다시 나타났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덥썩! 아크는 갑작스런 포옹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 어, 어, 어 왜, 왜 이래?” “잘 왔어. 다시 와 줘서 고마워…….” 구원자로 온 것이 고마운지, 그저 다시 볼 수 있게 와 준 것이 고마운지 헷갈렸지만 어쨌든 그녀는 아크가 다시 온 것이 그저 고마웠다. 팬크라프트의 루이스 델른버 공작과 펠릭스 기사단의 익스퍼트 급 기사 100여명은 오랜만에 휴가를 가질 수 있다고 좋아하며 엘프족의 마을까지 왔다. 그들의 본거지에는 잡아온 수십의 미녀 엘프 노예들이 있긴 했지만 엘프 마을에는 그들이 담궈 둔 술도 있고 미녀들도 훨씬 많다. 토성 앞에 도착하자 몇몇 엘프들이 길을 깨끗이 쓸고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엘프족의 새로운 수장이 나타나 그들을 접대했다. 그다지 탐탁치 못하게 생각하는 안색이었지만 공작은 억지 웃음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그의 접대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나 암습일 가능성도 있다고 참모가 조언했지만 이미 패색이 짙은 엘프들이다. 전력 자체에서 상대가 안 된다. 파푸치아 숲길 공사에 동원된 인력은 펠릭스 기사단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 400여 명과 2만의 정예병력 그리고 나머지는 길 공사를 하는 노예들. 설사 여기서 기사 100명을 잃는다 하더라도 병력 자체에서 애초에 상대가 안 된다. 그러니 괜히 쫄아 붙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조언은 받아들여 이에 대비해 숲속에 1000여 병사들을 매복시켜 두었다. 기사 하나만 당해도 그들은 곧바로 이 안으로 난입할 것이다. 암습 따위는 웃으며 넘겨버릴 자신이 충분히 있었다. 공격을 할 의사가 있다면 미세한 살기가 나온다. 그 살기만 감지해 낸다면 “이야!” 엘프족 마을 중앙에는 거대한 테이블과 화려한 음식들. 그리고 허술하게 옷을 입은 엘프 여성들이 앉아 있었다. 기사들은 좋다구나 하고 달려갔지만 델른버 공작은 미세하게 풍겨 나오는 살기를 느낌과 동시에 눈앞의 광경이 환영인 것을 눈치챘다. “흐 역시 암습이었군. 모두 검을 뽑아 들어라!” 삐익! 델른버 공작은 숲속에 매복중인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는 나서 자신도 검을 뽑아 들고 오러 소드를 사용했다. 이걸 막을 수 있는 놈이 이곳에는 없다. 이번에야말로 씨를 말려주겠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마법진!” 웬만한 마법은 통하지도 않는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이 모두들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런 마법진을 치려면 상당한 서클의 마법사가 꼬박 며칠을 투자해야 되는데……8서클의 마법사는 지난 번 전투에서 이미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이건 도대체……. 사방에서 엘프들이 쏟아져 나와 오러가 실린 화살을 날려대었다. 당했나 싶었다. 하지만 숨겨 둔 병사들이 곧 난입해 온다면 이놈들 모두는 끝장이다. “침착해라! 숲에는 매복해 둔 병사들이 있다. 여기서 조금만 버틴다면 이런 것들 쯤은 쓸어버릴 수도 있다! 방패 기사들 앞으로!” 델른버 공작은 한손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기사들을 앞 열로 내보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화살들이라 조금은 막기가 난해하긴 했지만 공작은 명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고 기사들 역시 그의 지휘에 잘 따라 원형의 방원진을 펼치고 화살 공격에 대비했다. 오러가 깃든 방패로는 웬만한 마법까지 가볍게 막아 낼 수 있었다. 물론 한계가 있기야 하지만 숨겨둔 아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기에는 최적이었다. 화살과 마법들이 지속적으로 날아와 기사들을 타격했다. 사방에서 공격이 쏟아지다 보니 버티기가 조금 힘든 면이 있었다. “돌격 기사들 앞으로! 그리고 나머지 모두는 원형을 그대로 갖춘 뒤 남쪽으로 서서히 움직인다! 화살을 조심하도록!” 델른버 공작은 양손검이나 창 등을 사용하는 기사들을 이끌고 남쪽 원을 뚫고 나왔다. 매복 병사들이 바로 올 수 있는 남쪽 문의 적들을 섬멸하고 그 쪽을 차지하면 공격을 받는 방위가 줄어들어 조금 더 많은 인원이 전투에 참여할 수 있어 대열과 진형을 짜기가 편했다. 그는 앞장서서 달려나가 남쪽에 밀집한 엘프들에게 흰 빛의 검강을 날려 대었다. 화살이 집중되었지만 저 정도 화살이 무서울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 엘프들을 한 번에 토막 낼 거라고 생각했던 검강들이 다른 빛의 흰 빛에 막혀 공중폭발을 일으켰다. “……! 소드 마스터!” 저렇게 공격을 상쇄시킨다는 것은 소드 마스터가 있다는 소리였다. 엘프족에 그런 이가 있었나? 곧 어둠 속에서 황금빛과 은빛의 두 화려한 빛깔을 뿌리며 두 자루의 검이 델른버 공작의 애병기에 부딪혔다. ‘검기가 어려 있지가 않다?’ 두 자루의 검은 오러를 머금고 있지 않으면서도 파손되지 않았다. 거기다 상당한 충격파로 공작을 뒤로 몇 걸음을 물러나야 했다. 엘프족에 이런 실력자가 있었나! “누구냐!” “글쎄요? 누굴까나?” 델른버 공작은 황금빛 검신이 뿜어대는 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를 보았다. 칠흑 같은 머리색과 금과 은이 잘 조화된 두 자루의 검. 그는 남자의 정체가 무언지 기억해냈다. “너, 너는! 루드비안의…….” “지략의 기사죠. 안녕하십니까? 만나서 거 무진장 반갑습니다.” 델른버 공작은 엘프족과 지략의 기사간의 관계가 떠올랐다. 파푸치아 길공사를 하면서 듣게 된 바로는 지략의 기사는 폴티아 전쟁에 뛰어들기 이전에 엘프 족의 위기를 지략과 살인격투술로서 구해 낸 전적이 있다는 사실을. 어디서 소식을 들어 여기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편은 아니라는 것이다. “말려들으셨죠? 그럼 이제 여기서 뼈를 묻는 일만 남았네요?” 아크는 웃으면서 말했다. 확실히 지금 상황이라면 뼈를 묻어야겠지만 공작은 이 다음수를 이미 둔 뒤였다. “흥! 남쪽 숲 속에는 매복시켜 둔 우리 병사들이 있다. 그럴 경우 네놈도 이 엘프들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네놈을 죽여 젤리커의 원수를 갚겠다.” “피식. 그 떨거지들은 제 친구가 알아서 다 처리했을 것입니다. 마법 트랩을 밟게 하시면 안 되죠. 그리고 저도 당신을 죽여 엘프들의 원수를 갚겠습니다.” “뭐, 뭐엇?” 그러고 보니 부른지 한참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버린 것만은 확실했다. “쿠억!” “우웨엑!” 갑자기 후미에 원형의 방어진을 펼치고 있던 방패 기사들이 하나같이 코를 틀어막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 왜들 그러느냐! 당장 다시……!” 델른버 공작 역시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향에 잠시 주춤 거렸다. “수고했다. 에르디! 자 모두들 전면 돌격해 원수들을 짓밟아 줍시다!” 쓰러져 가고 있는 기사들이란 별반 무서운 존재들이 아니었다. 엘프들은 모두들 검을 뽑아들고 병기를 떨어뜨리며 쓰러진 기사들의 목을 가차 없이 날리기 시작했다. “큭!” 델른버 공작은 일이 틀어졌다고 직감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느라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지략의 기사에게 다발의 검강을 날렸다. “어라?” 아크는 피하고 상쇄시키며 공격들을 막아냈다. 그 중 한 발의 검강은 명중은 아니더라도 빗겨 맞아 아크는 어느 정도 심한 통증을 받았다. 그렇게 그가 주춤거리는 사이 델른버는 낮은 토성 성벽을 뛰어 넘어 도주했다. 수많은 동료들을 잃었던 그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생포한 기사들은 대부분 가죽이 벗겨져 내장이 파헤쳐 진 채로 성문 앞에 축 처진 시체가 되어 너덜너덜 걸려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적의 수괴인 루이스 델른버가 살아서 도망쳤다는 것이다. “욱!” 유카나는 저런 처참한 모습에 헛구역질을 해 대었다. 그녀로서는 이렇게 사람이 처참하게 죽는 광경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유카나. 앞으로 기사로 산다 함은 사람을 직접 저렇게 죽여야 되고 또 사람들이 저렇게 죽는 모습을 봐야 한단다. 저런 거에 익숙해지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하고 이해해야 해.” 그나저나 순하게만 살아 온 엘프들이 저토록이나 잔혹해 질 줄은 아크도 정녕 몰랐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동료들과 친지, 가족들을 잃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너무 잔인하군요. 아테라인 님.”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심하게 하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도 이렇게 만든 것이 나쁘진 않군. 이러고도 부족한 놈들이야.” “하아~” 엘프들은 팬크라프트에 대한 복수심이 상당했다. 무서웠다. “어쨌든 자네 덕에 이겼네.” “인사는 이쪽에 이 청년한테 하시라니까요? 이 녀석이 매복되어 있던 병사들을 쓸어버리지 못했다면 이기긴 이기더라도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 겁니다. 그쪽에서 미리 예측하고 매복까지 해 뒀을 줄은 예상치 못했거든요.” 본진으로 끌어들여 섬멸하는 작전은 성공했지만 상대편에서 대략 간파하고 병사들을 숨겨 놓은 것은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쥬레이나란의 민감한 신경이 숨어 있는 그들을 전체마법으로 쓸어버렸지만 아크가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의 한계란 게 이런 것이었다. “이제 적들의 본진을 습격해서 빼앗긴 여성들을 되찾아 올 때입니다.” “흐음 그들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듯 하네. 놈들의 전력은 막강해. 수성을 한다면 몰라도 먼저 하는 공격은 헛수고야.” “그러나 이번에 패배하고 돌아간 분풀이로 그들은 여성들을 더욱 학대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하게 놔두실 생각입니까?” “크음.” 고민하는 투가 역력했다. 하지만 이미 그쪽은 포기한 패였다. 하지만 아크는 엘프들을 동원할 생각이 없었다. 쥬레이나란만 알아서 잘 해준다면 그녀들을 충분히 빼 내올 수 있었다. “하기야 뭐 일부러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겠지요. 이미 저질렀으니까.” “뭐?” “기다려 보십시오. 얼마 안 있어 포로로 잡혀갔던 엘프족 여성들을 모조리 구해 올 영웅이 있을 테니까.” 아크의 발언이 있은 지 하루가 지나자 쥬레이나란은 포로로 잡혀갔던 엘프족 여성들을 모조리 구해서 돌아왔다. 델른버 공작에게 걸려 팔 하나를 잃긴 했지만 어차피 잃은 팔은 드래곤의 육신이 아닌 인간의 육체로 재구성되어 있었던 마나의 일부분일 뿐이었고 거기엔 폴티아 백작에게서 얻은 강철의수를 다시 붙여 에드워드란 캐릭터로 변하면 그만이었다. 엘프들은 오랜만에 크게 기뻐하고 환호했다. 다 죽어가던 분위기에서 세상을 향해 떠났던 아크가 일행들을 데리고 오자, 전투에서 승리하고 포기해 버렸던 포로들을 다시 찾는 등의 호재가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대단하이! 어떻게……?” “그건 이 친구한테 고맙다고 하십시오. 본거지를 쓸어버린 것도, 공간이동 마법으로 여성들을 구출해 온 것도 여기 이 녀석의 원맨쇼입니다.” “이 애는 누군가?” “지난번에 검은머리에 장갑 낀 청년 있죠? 그 녀석의 원래 모습입니다. 마법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죠.” “그런가? 고맙네.” 아테라인은 쥬레이나란의 강철 오른손과 악수했다. “너무 좋아하지는 않는 게 좋아. 정찰 결과 녀석들의 세력은 상당했어. 소드 익스퍼트인가? 그렇게 분류해 놓는 녀석들도 수백이 넘었고, 잘 훈련된 병력도 몇 만 가량 되는 거 같더군. 거기에 노예들까지 동원한다면 족히 5~6만은 되는 대 인원이야.” “……그렇게나 많은가?” 역시 좋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100명에 가까운 기사들을 전멸시키고 포로들을 전부 구출해 왔지만 여전히 팬크라프트의 진채에는 수많은 병력과 기사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전부 몰아쳐 쳐들어온다면 지략의 기사인 아크와 8서클 대마법사, 그리고 마취향을 사용하는 에르디가 있다 해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아크 역시 그 정도까지나 있을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나 많이 있단 말이야?” “그래. 아마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해 온다면 힘들지도 모르겠어.” “불이라도 싸질러 볼까?” “숲을 전부 태울 생각인가? 그것만은 안 되네.” 화공은 수많은 적들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엘프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숲이 파괴되는 것을 그들의 죽음보다도 더 싫어했다. “하지만 말이야. 이런 깊숙한 곳까지 공사를 해서 들어와 있다면 식량 보급이 상당히 딸릴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 여기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좋아! 보급선을 끊어 놓고 녀석들이 뚫어 놓은 길을 남몰래 도로 작살내놓자.” 보급과 군량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전투보다도 전쟁에 더 큰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런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전쟁을 해도 성욕이나 식욕등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전쟁터에는 식량과 욕구 배출구의 보급 문제가 항상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좋은 생각이군.” “그럼 당장 실행하십시오. 보급선만 끊어 놓는다면 그냥 자멸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실행하겠네.” 아테라인은 밖으로 나가고. 그의 집에는 아크와 쥬레이나란만이 남았다. “흠 여러모로 활약해 줘서 고맙지만 또 다시 부탁할 일이 있다.” “뭔데?” “너 오크들이나 기타 중대형 몬스터들을 부릴 줄 아냐?” “눈빛 한 방이면 끝나……흠 뭐라고 하려는 줄 알겠군. 좋아. 그렇게 해 주지.” “당장 부탁해.” “급하기는.” 역시 쥬레이나란이란 인재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존재였다. 비록 헤츨링이라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는 못하지만 용언으로는 8서클, 주문으로는 10서클까지 완전 마스터한 마법사이자,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이점으로 머리가 좋아 여러 모로 써먹을 데가 많았다. 정면 승부는 지금으로서는 피하는 게 좋았다. 대신 이렇게 게릴라전을 지속적으로 펼쳐 간다면 지구의 월남전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압도적인 화력을 지닌 미국을 쓰러뜨린 것은 숲을 이용한 지속적인 베트콩들의 게릴라 전법이었다. 자신의 고향인 엘프족을 위해서나 현 소속 국가인 루드비안을 위해서나 지금의 전투는 기필코 승리로 이끌어야만 했다. 지략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마당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지속적인 계략을 걸어 한 번 싸워 보리라. “뭐라고! 마법진이 박살나?”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엘프놈들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거기에 또 뭐?” “어제부터 오크들과 중대형 몬스터들이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막기는 막았으나 일반 병사들과 노예들의 피해가 심각합니다.” “큭! 나가 보라.” 델른버 공작은 파푸치아 숲의 진채에서 머리를 짓누르며 두통을 다스렸다. 갑작스런 몬스터들의 공격과, 지금까지 잘 닦아 놓은 길의 파손 및 보급을 담당하던 마법진의 파괴, 거기에 엘프들의 유인책에 걸려 백 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잃었음은 물론이오. 엘프 포로들의 탈출로 인한 성욕 억제책이 어긋나 버리면서 몇 명 안 되는 여기사와 여군들이 추행 당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엘프족에 지략의 기사가 협력하면서부터 생긴 일이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 이거……식량을 어떻게 한다?” 몬스터들의 습격이야 피해가 있고 노예들의 동요가 있긴 했지만 기사들이 있는 한 그다지 큰 위협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식량이다. 보급을 주 담당하던 마법진이 박살이나고, 길이 끊겨 보급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 비축 식량은 있지만은 몇 주 안 지나 그것마저 바닥나게 된다면 모두는 여기서 굶어죽을 노릇이다. 똑똑. “누구냐?” “팬크라프트 대공 전하의 연락입니다.” “가지고 와라.” 연락책인 여 마법사는 델른버 공작의 집무실에 들어와 수정구를 놓고 나갔다. 수정구 안에는 공작보다 많은 나이임에도 젊어 보이는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수첩을 보고 있었다. “뭐야? 렌. 또 무슨 할말이 있어서? 보급부대나 빨리 보낼 것이지.” [공사는 잘 되어 가고 있나?] “한 1년 정도만 더 투자한다면 완벽해 진다. 하지만 지금은 보급이 더 시급해.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일단은 보내 주겠다만은 계속해서 마법진을 파괴하고 보급부대를 끊어 놓는다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기사들로 보급부대를 보호시킬 생각이다.” [……조심하는 게 좋아.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는 8서클의 대마법사가 있다고 한다. 그쪽의 기밀은 너무도 쉽게 빠져나가게 될 테고 정보가 주어진다면 지략의 기사의 지략을 감당해 내기란 쉽지 않을 거야. 보급에 신경을 쓰다가 본진이 습격 당할 수도 있고]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 델른버 공작은 짜증이 났다. 무슨 중요한 말이나 할 것 같이 얘기하더니만은 다 알고 있는 사실들만 나열하고 있지 않은가? 안 그래도 그것들로 신경쓰이는데. 렌도로스는 그런 친구의 말투를 눈치채고는 중요한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략의 기사 놈이 폴티아 백작을 죽였네] “……! 그래? 그럼 드디어 루드비안을 칠 명분을 얻었다는 소리로군.” [그렇지. 그럼 본론을 얘기하겠네. 현재 엘프들은 하나 같이 전사급의 인물들이 많기는 하나 병력이 몇 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 “그래.” [그럼 지금 있는 병력을 모두 몰아 엘프들을 쓸어버리게.] “……!” [지금 있는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모두를 몰아 쳐 놈들의 성을 함락시키고 지략의 기사와 8서클의 대마법사를 죽이게. 전력은 확실한 우세가 점쳐지니 지략의 기사의 계략만 조심한다면 충분히 놈들을 죽일 수 있을 걸세. 이건 절호의 기회야. 만약 놈들이 전쟁이 일어날 때 루드비안 제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등에 업고 있었더라면 죽일 기회가 쉽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고작 엘프 몇 백 명하고 같이 있네. 지금만큼 좋은 기회는 없어. 길을 뚫는 공사를 잠시 중단하더라도 상관없네. 정히 안 되면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해로로 가면 되니까] “크크크 그렇군. 좋아. 안 그래도 몸이 근질 했는데 말야.” [크리스 녀석을 보내 놨네. 그놈도 제 아버지 원수를 갚는답시고 투지에 불타고 있으니까. 크리스 녀석과 팬크라트 기사단 50명을 보내 놨으니 잘 해보도록.] 대공의 지시에 델른버는 주먹을 꽉 쥐었다. 투지가 샘솟았다. 하인델 정벌 이후 40년만에 겪게 되는 전쟁이었다. 또한 친우였던 젤리커의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좋아! 출진한다!” 계속되는 전투의 승리에 아크는 엘프들 사이에서 주신이 엘프들을 위해 보낸 신의 사자라 불릴 정도로 추앙 받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크는 딸리는 자신의 능력에 고민했다. 사실 저렇게까지 영웅 대접을 받을 처지가 아니다. 그 어떤 지휘관들이라도 생각해 봄 직한 작전들을 구사해 큰 효과를 본 것에 쥬레이나란이라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존재를 이용한 전술들을 써 보았을 뿐인데 저렇게들 기대치가 높아버리면 나중에 진짜 대가리 좋은 놈이 있는 적들은 어떻게 깨부순단 말인가? 거기다가 한창 몰아붙이기는 했지만 팬크라프트 측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전군을 이끌고 진격해 온다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대가리에 똥 든 오크부대도 아니고 인간들에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만 300명이 넘는데다가 소드 마스터도 한 명 있다. 사기가 높고 냄새 암기 등 제법 전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고작 몇 백의 인원을 가지고 몇 만의 대군을 상대로 싸우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수성만 하면 또 모르나 물리쳐서 격퇴시켜야 한다면 더더욱. 일단은 빠른 발과 엄청난 청력을 지닌 엘프들을 이용한 정보의 수집과, 쥬레이나란을 이용한 염탐 등을 사용해서 정보력의 우위를 두는 수를 택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란 말도 있듯이 적을 알고 미연에 대비를 한다면 그다지 좋지 않은 머릿수로도 팬크라프트 군과 맞서 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크는 제법 상세히 그려진 파푸치아 숲 전체의 지도를 펴고서는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작전구상 중이던 아크가 머물던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 “누구야?” 리엔느 였는데 그녀의 양 뺨은 묘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아크는 파푸치아 숲의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그녀를 대강 상대했다. 만약 대군을 이끌고 온다면 어떤 지형에서 야전을 펼쳐야 할까 심각히 고민함과 동시에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는 곳에 있는 강을 이용한 수계가 효용성이 있을 것인가를 생각 중이었다. ‘팬크라프트의 대군을 상대하려면 역시 공성전이다. 추운 겨울이니 아니 겨울이 아니더라도 토성에 물을 뿌린 뒤 프로즌 아이스로 얼리면 견고한 성곽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수많은 적들을 견고한 성벽 하나로 막을 수 있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어. 그러자면 매복과 강을 이용한 수계 등으로 지속적인 게릴라 작전을 펼쳐야 해. 하지만 키 큰 침엽수림을 빼고는 전부들 이파리가 떨어져서 잘 숨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니 낙엽을 사용하면 더 나은…….’ 아크는 더 이상 전략을 구상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는 광경이 그의 머리꼭지를 완전히 돌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 무슨 짓이야!” “왜? 벗으면 안 되나?” 스르르륵. 리엔느가 걸친 옷가지들이 하나 둘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왜 갑자기 그러느냔 말이다!” “조용히 해라. 리에나 깨겠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확실히 아크가 머물면서 전략을 짜고 있던 방은 리에나 방이었고 리에나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헉! 내, 내가 그때 이 예지몽을 꾼 건가? 아님 지금도 꿈인 건가?’ 그랬다. 이 장면은 아크가 루리엘에게 뒤지게 얻어맞았던 예전의 그 사건의 원인이었던 꿈과 유사했다. 그때 밤에 욕지기를 하다가 이런 꿈을 꾸었었다. 리엔느의 대사나 그런 것은 약간 틀리고 아크가 잠을 자는 것이 아닌 작전구상중이라는 게 좀 걸렸지만 어쨌거나 리에나와 함께 있는 방에 들어와서 조용히 하라고 한 다음 막무가내로 옷을 벗는……. 꿀꺽. 고인 침은 넘기려고 용을 써야 넘어갔다. “저기 지금 이렇게 벗었다는 얘기는 내가 뭘 해도 상관없다는 소리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는 지 이유를 듣고 싶다.” 좋기야 했지만 아크는 일단 최대한 침착해 지려고 노력했다. 이런 돌발행동을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잘은 모르겠다. 네가 돌아왔을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다. 그치만 네게 약혼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왠지 모르게 초조해졌다. 이대로 가면 다시는 내게 마음을 주지 않을 것 같아 불안했고 또 넌 돌아와서 내게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해서라도 널 붙잡아 두고 싶었다.” 무미건조한 말투였다. 역시 리엔느에게는 다정다감함이란 것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무뚝뚝하고 딱딱한. 하지만 그런 대답도 부끄러움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아보기는 쉬웠다. 리엔느는 아크의 옷가지를 하나씩 벗겨갔다. 그러면서 그의 몸을 혀로 이곳저곳을 핥았다. 아크는 굳이 그런 리엔느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호색한 이상의 경지에 오른 게 언젠데 이런 것에 당황하겠나? 이제야 말로 판타지계 남성의 로망 엘프마누라 역시 이룰 수 있게 된 것이 마냥 기뻤다. 새삼 둘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만약 그때 아크가 일을 저질렀거나 리엔느가 그대로 아크를 쏴 죽였더라면 지금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리엔느는 다시 한 번 아크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지속적인 구애와 몇 번에 걸쳐 자신과 동족과 딸과 동생을 구해 준 일 덕에 좋아는 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아직 인간에 대해 생겼던 지독한 불신감이 아직 치유되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고백까지 했음에도 차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리웠고 기다려왔다. 소식이 늦어 죽었을 거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마냥 기다렸다. 그러다가 다시 돌아왔다. 한 때 사랑했고 아직도 쉬이 잊지 못하는 남자의 목을 들고서 그 남자의 목을 보는 순간 다시 오면 반드시 다가가 마음을 주겠다는 생각이 왠지 모르게 주춤거려졌다. 그리고 약혼녀가 생겼다는 말과 자신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으며 오로지 전쟁에만 몰두하는 모습에 초조해졌다. 이대로 놓치는 건 아닐까 하고. 결국 아크가 먼저 행동해주기를 기다렸던 리엔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구애를 해 온 것이다. ‘……감격스럽군. 얼마나 갈망해 오던 일이냐?’ ////////////////////////// 기억하십니까? 1권의 7장 억울한 하루 부근 파트에 있던 장면. 그것이 바로 예지몽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전 화에서 밀리터리 논쟁이 벌어졌던데. 현 에볼루션에는 그런 중화기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공작 각하는 지휘나 하시죠.” 델른버 공작은 젤리커가 짓는 승자의 미소에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기왕 진 것은 진 것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제 다른 것이었다. “이보게 알퐁스.” “예.” “총 지휘는 자네가 맡게.” “예에?” 강철 갑옷을 뒤집어 쓴 거구의 기사는 의외라는 듯한 말투로 되물었다. “저곳에는 8서클의 마법사가 있네. 거기다가 검도 마스터 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다룰 줄 아는 자이지. 내가 그 자의 캐스팅을 방해할 것이야. 그리고! 보통 병사들이 있는 곳에는 기사들을 두지 말고 후방으로 배치하든지 성의 측면을 공격하게 해라. 아마 한 두 방 정도의 전체마법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할 텐데 그런 쓰잘데기 없는 피해를 기사들에게 당하게 할 수는 없다.” “알겠습니다.” “자네의 능력을 믿고 있네. 수고해 주게나.” 알퐁스 에렉 후작. 그는 디그리스와 폴티아 반도를 놓고 겨뤘던 폴티아 전쟁의 부사령관으로서 지금 소드 마스터가 된 세비어 프레슬더 후작과, 세프가 포르티아 백작과 함께 지략의 기사의 화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처참히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우 뛰어난 실력과 디그리스를 궁지로 몰았던 그랑데 평원 전투에서 매복작전을 성공시켜 디그리스 군을 궤주시켰던 등의 지휘능력 만큼은 탁월한 장군 중 하나였다. “…….” 알퐁스는 끄덕여지지 않는 고개를 애써 밑으로 내리며 델른버 공작의 지시에 답했다. 델른버 공작은 일부 병력과 기사들을 거닐고는 숲 속을 향하여 성의 면을 우회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하긴 했지만 1천도 안 되는 병력으로 이 성을 다 지켜내기란 무리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팬크라프트의 대군은 어느새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와 있었다. 지략의 기사라 불리는 아크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수 십 배가 넘는 적을 상대로 계략보다는 농성을 택했다. 사실 계략을 쓴다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머리를 가진 그였지만 계략 실패의 위험성과 자신감의 결여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수많은 아이디어를 공으로 날려버렸다. 다만 공성용 전법은 여러 가지 구상해 둔 것이 많았고 어느 정도 살길은 마련해 둔 터였다. 이제는 별 피해 없게 화끈하게 한 판 붙는 것만이 남았을 뿐이다. “후우~” 전공과 작위 신망도 무력 이 모든 것을 따져 본 결과 총 지휘 역시 아크가 맡게 되었지만 맨 앞에 서 있는 것은 일단은 들러리였다. 루이스 델른버라는 소드 마스터 급 무인이 있는 팬크라프트와의 접전에서 아크가 단순 지휘만을 맡을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확실히 폼은 났다. 삐끄덕. “어이쿠!” 한 발자국을 내딛던 아크는 성벽의 미끄러움에 자칫하면 엎어질 뻔했다. 전투를 총 지휘하는 사령관인 주제에 얼빠지게 넘어진다면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얼음의 성벽. 병법서라고는 읽어본 적 없는 아크지만 딱 하나 병법서에 맞먹는 좋은 책을 암기해 둔 것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삼국지연의. 유교문화권 최대의 베스트 셀러이며 온갖 매체로 미디어화 된 삼국지에 수록된 수많은 전략과 병법. 지략들은 아크를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1등 공신이라 할 만 했다. 돌로 쌓은 성벽보다 단순 흙으로 쌓은 성벽이 당연히 방어력에서 엄청나게 떨어지는 법. 그것을 돌만큼이나 완고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얼음성벽이었다. 조조가 마초를 상대로 했을 때 서량의 철기병 들을 막았던 그 얼음성벽이 말이다. 아크는 후방에 대기하고 있는 전우들에게 말했다. “에드. 준비는 다 되었겠지?” “말 만 해라.” “에르디.” “준비되었습니다.” “아테라인 님.” “이쪽도 완벽하네.” 팬크라프트 군이 진형을 갖추고 덤벼 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먼저 쥬레이나란을 이용해 선공을 날려야 했다. 병력 수에서 밀리는 엘프족의 유일한 무기는 고 서클의 마법사들과 견고한 성벽뿐. 이 잇점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 “그럼 부탁한다. 에드. 먼저 한 방 날려라.” “좋아.” 마법진으로 바로 캐스팅 되게 해 놓은 지계마법도 있기는 하였지만 일단은 헬 파이어 한 방을 먹이고 시작하려는 차였다. 우와아아아아아!!!! 쿵! 쿵! 쿵! 쿵! 쥬레이나란이 마법 캐스팅을 시작하려 하자, 지축을 뒤흔드는 땅울림이 들려왔다. 수만의 발자국 소리와 함성은 소수에 목청도 그다지 크지 않은 엘프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먼 후방에서 모래 먼지가 자욱히 일어났다. 나무들을 베어 만들어 둔 거대 공터는 사막화 까지는 아니지만 안 그래도 겨울의 건조한 날씨까지 합해져 누런 먼지를 몽땅 일으켰다. 멀리서 보는 이들이야 단순히 먼 곳이 안 보이는 것뿐이겠지만 아마 저 쪽에서 달려오는 이들은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소리만 듣고 앞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쥬레이나란의 오른팔 강철 의수에서는 시뻘건 화염의 구가 생성되고 있었다. 파이어 볼과 비교해 봤을 때 열 배는 족히 커 보이는 거대한 화염의 덩어리. 그 붉은 화염의 속에는 지옥의 불이라는 명칭답게 악마의 불이라는 푸른색이 섞인 연보랏빛의 불꽃이 시뻘건 화염의 구를 계속해서 잠식해 갔다. 붉은 화염이 연보랏빛으로 거의 변환되고, 불꽃의 덩어리는 먼지투성이의 대지를 향해 날아갔다. 쿠콰콰콰콰콰콰!!!! 광범위 한 지역이 폭발했다. “와우!” 폭발로 인한 먼지가 어느 정도 걷히자, 그곳에는 얼빠진 모습을 한 수만의 병력이 제 자리에 서 있었다. 폭발의 반경이었던 부근에는 그저 움푹 패인 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그 경계선에 서 있었던 몇몇 병사들은 몸의 일부분이 녹은 채로 처참하게 죽어있었다. 족히 1,2천은 넘게 병력의 수를 줄인 것 같았다. “좋았어! 이대로만 해!”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불구경을 하는 사이 만들었는지 쥬레이나란은 어느새 한 개의 불꽃 덩어리를 더 들고 있었다. “간다앗!” 콰과과과과과광!!!! 이번 역시 방금 전 헬파이어와 마찬가지로 팬크라프트 진영에 수천의 사상자를 냈다. 이대로만 몇 방 더 날리면 승리는 기울었다. 그렇게 쥬레이나란이 마법을 또 하나 캐스팅 하려는 찰나에 큰 소음이 들려왔다. 소음이 들려오는 아래에는 헬 파이어로 인하여 움푹 패인 땅에 산발한 금발머리를 날리는 청년이 말을 탄 채 검 한 자루를 들고 성벽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나와라! 지략의 기사! 이 크리스 젤리커가 상대해 주겠다!!!” “……저 새끼 뭐라고 지껄이는데?” “……흐음.” “나와라!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아크는 크리스의 일기토 요청에 잠시 고민했다. 루이스 델른버라는 팬크라프트의 또 다른 소드 마스터가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아크가 이겨서 적의 수장을 쓰러뜨린다면 머리를 잃은 부대는 크게 동요할 것이 분명했다. “야. 그냥 저 새끼도 헬파이어로 쓸어버릴까?” “아니 좋은 기회다. 여러분. 제가 나가서 저 자를 상대하겠습니다. 저 자를 쓰러뜨린다면 적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드 마스터 전력에서도 우세를 점할 수 있습니다.” 아크는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소드 마스터의 착지 능력이라면 높은 성벽에서 떨어지는 것을 그다지 위험하게 느낄 필요는 없었다. 아크가 내려오자, 크리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이 없나?” “있으면 서 있겠냐?” 말 탈 줄 모르는 아크라면 있어도 서 있었겠지만 엘프 마을에는 말이 없었다. “기사들의 정식 일기토는 역시 마상 전투다. 비록 급수가 높아진다면 말보다 빨라진다고 해서 말을 타지 않지만. 말야. 조금은 실망이로군. 뭐 어차피 죽을 놈이니. 배려를 해 주지.” 크리스는 말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은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검집에 든 붉은 루비가 검잡이에 달린 그의 애병기 ‘라이언 설트’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얼음성벽과 수만의 병력이 대치한 가운데 헬파이어로 인하여 움푹 패인 땅에는 한 마리의 말과 산발한 금발머리에 턱수염을 묶은 크리스 젤리커와 흑발의 머리를 기르는 거에 신경 안 쓰고 그저 부스스 하게 길러놓은 지략의 기사가 대치하고 마주 섰다. 전장의 모두는 이 강자들의 대결에 눈을 집중했다. 이 일기토의 결과로 이 전투가 단순히 끝나 버릴 수도 있었다. 크리스는 검을 뽑아 아크에게 겨누며 말했다. “검을 뽑아라 지략의 기사. 네놈을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 “서두가 길다. 씹새야.” “뭐, 뭣!” 뜻밖의 욕설을 들은 크리스는 말을 더듬었다. 아버지의 원수이기는 했지만 분명 인격자인 데다가 숭고한 충절을 지닌 지략의 기사라는 말을 들어 나름대로 존중을 해주며 상대를 하고 있었는데 아크는 대번에 욕설부터 하고 나왔기 때문이다. ‘침착해라! 젤리커! 이건 명백한 도발이다.’ 하지만 크리스 젤리커 역시 겉으론 젊어 보여도 마흔이 넘은 노련한 검사였기에 아크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 여기서 괜히 도발해서 적에게 유리한 꼴을 보여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열이 조금 받친 것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인지 그의 목소리 톤은 약간 올라갔다. “어서 검을 뽑아라! 지략의 기사!” “이런 불알에 털도 안 난 어린놈의 새끼가, 누구보고 검을 뽑으라 마라야?” 울컥! 나이는 분명 아크가 조금 더 많았다. 그러나 겨우 다섯 살 가량 차이가 날 뿐이었다. “네놈이 나이가 많으면 많았지. 그딴 소리를 내뱉는 이유가 뭐냐!” ‘큭큭큭 화났다. 화났어.’ 조금씩 붉어지는 젤리커의 얼굴을 보고 아크는 속으로 미소지었다. 도발작전이 조금씩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아크는 새끼손가락을 쭈뼛 세웠다. “니 X. 커지면……커져도 이거.” 부들 부들 부들 젤리커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거기에 스피드도 아주 빠르지……읏, 읏, 으어……어허, 헉.” 아크는 허리를 흔들어가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무언가를 형상화 한 욕이었다. 그런 다음 아크는 젤리커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3초에 끝!” “끄아아악! 개소리 집어치고 어서 검이나 뽑아앗!” 발끈하는 것을 보니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아크였다. “……저게 뭐 하는 짓 이람?” 팬크라프트 측 인간 병사들은 아크와 크리스의 대화를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성을 지키던 엘프들은 아크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도발의 효과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지만 저건 도무지……. 크리스는 계속해서 아크에게 검을 뽑으라고 종용했지만 아크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았다. “검을 뽑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 “……한 가지 말해 두건 데 내가 검을 뽑으면 네 녀석의 승률은 1% 이하로 떨어진다. 알았냐? 콧구멍에나 딱 맞는 사이즈 씨! 사람의 구멍 및 접촉 부위는 몇 군데 안 되는데 다른 어떤 이도 하기 힘든 콧구멍에 맞다니……부러운데? 색다른 플레이라 좋겠어?” 부들부들부들. 크리스는 열이 받칠 대로 뻗쳤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기사도를 지킬 수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수련과 함께 콧구멍에 들어갈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발작전이 성공하고, 아크는 금빛의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었다. 크리스의 아버지였던 프랑코 젤리커처럼 레슬링 기술과 주먹으로 상대해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들긴 했지만 약해 빠졌었던 그때와는 달리 어느 정도 강해진 이 시점에서는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싸워볼까?” 아크가 검을 뽑아 들자, 그제야 크리스도 치솟아 오르는 열화를 조금씩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전투의 긴장감이 분노의 수치를 약간 감소시켜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도발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었다. 둘은 서로 검을 겨누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탐색전이 시작된 것이다. 아크는 로니와의 대련 경험을 되살렸다. 죽음을 각오하고 살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 정도의 긴장감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나오는 인간의 잠재력을 불러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승리 후 크디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욕구에서 승화된 힘 역시 쾌락을 중시하는 아크에게 있어서는 무시 못할 효능을 발휘했다. “흐아앗!” “차앗!” 아크가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자, 젤리커도 그에 맞게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챙! 둘은 서로 검을 맞댄 채 변비환자가 화장실에서 힘쓰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블레싱 소드로 인하여 강화된 힘을 지닌 아크가 블레싱 소드를 밀며 크리스의 라이언 설트를 크리스의 얼굴에 가까이 밀어 넣자, 크리스는 두 손으로 검을 잡아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크가 밀렸다. 아크는 밀리는 몸을 뒤로 뺀 다음 그 즉시 뒷발로 스텝을 밟은 뒤 다시 달려가 날을 곧바로 세우고 젤리커의 빈틈을 노려 찔렀다. 하지만 크리스가 잽싸게 피해냄으로서 블레싱 소드는 그의 몸이 아닌 허공을 찔렀다. 그 틈을 타 크리스의 검격이 아크의 옆구리를 노려왔다. 매우 빠른 일격이었지만 블레싱 소드로 강화된 육체는 그것보다 더 빠른 반응속도로 검을 막아냈다. 아크는 오른손으로 블레싱 소드를 잡아 크리스의 힘이 실린 검격을 막아냈다. 그러면서 크게 외쳤다. “프로즌 아이스!” 곧바로 아크의 왼손에는 한랭검 프로즌 아이스가 잡혔다. 은빛의 프로즌 아이스가 옆구리를 노려 오자 이번에는 크리스가 몸을 뒤로 뺐다. 같은 마스터급임에도 불구하고 신성마법의 보조를 받는 아크는 크리스보다 더 강한 힘과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다. 그렇게 강자들의 대결에 수많은 이들이 모인 공터에는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검이 부딪히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너무나도 조용해졌다. 쥬레이나란도 캐스팅을 취소하고 두 인간 강자들의 대결을 흥미로운 눈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묘한 감이 느껴지고 있었다……그것은 살기였다. 모두들 아크와 크리스의 일기토에 정신이 팔린 새였다. 그렇기에 쥬레이나란의 옆에 뒹굴고 있는 두 구의 엘프 시체 역시 이제야 알아 챈 몇몇 엘프들과 쥬레이나란 외에는 몰랐다. “……!” “오랜만이군. 금발 꼬마.” 쥬레이나란이 뒤돌아 본 곳에는 미세한 살기를 뿜으며 웃고 있는 인간 검사가 있었다. 촤아악! 쥬레이나란의 왼쪽 팔이 날아갔다. “크흑!” 폴리모프 상태의 몸은 완전히 죽지 않는 이상. 본체로 돌아갔다가 재 변신을 하거나,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마법으로 재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날아간 팔에 신경을 쓸 새 따위는 없었다. 캉!!! 쥬레이나란은 강철 의수를 착용한 나머지 한 쪽 팔로 델른버 공작의 오러 블레이드를 막았다. 오러가 씌인 검에는 강철 의수도 잘라져 나가야 옳겠지만 지난 번 죽였던 갈란드그렌처럼 쥬레이나란도 마나의 반탄력을 이용해 오러 블레이드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잔재주를 부리는 군.” 빈틈을 타 성벽으로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 난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저 아래에까지 미쳤다. “적들의 침입이다!!!” “뭐?” 아크와 크리스의 일기토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엘프들은 난데없는 기사들의 난입에 전선으로 하나 둘 씩 몰려나갔다. 그리고 성내가 혼란해지는 기미가 보이자, 그것을 눈치 챈 알퐁스 에렉 후작은 전면 돌격 명령을 내렸다. “전원 돌격!!!” 우와아아아아아!!!! 함성소리와 함께 몇 천의 병력을 단 두 방의 헬 파이어로 잃었지만 여전히 건재한 팬크라프트의 2만여 병력이 엘프성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크는 그제야 당했음을 간파하고 그답지 않게 분노한 표정으로 크리스에게 말했다. “이런 비겁한……!” 아크가 할 말은 아니었다만 어쨌든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계략의 하나라고 생각하시지, 그나저나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팬크라프트 제국의 원동력 중의 하나는 바로 이 기사도에 있었다. 기사가 많으면서도 이 제국의 기사도는 기본적인 도덕에 대한 것은 보통 나라들의 기사도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나머지 사항들에서는 철저히 실리를 따져, 허례 허식과 명분에 치우친 바보짓을 하지 않게 하는 기사도가 일반적으로 자리잡아 있었다. 때문에 기사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인 일 대 일 대결에서의 뒤통수치기 같은 비열한 전략도 그들은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용했다. 일기토로 적은 수의 병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놓은 다음 취약지점을 소수정예로 침투한다……완벽히 당해버렸다. 쥬레이나란이 근접전 모드로 돌입한다면 적어도 1만 이하로 병력을 감소시킨 뒤 농성으로 상대한다는 전략이 완전히 어긋나 버리는 데다가, 내부의 적들로 인하여 성벽을 지킬 인원도 부족해질 터였다. “빌어먹을!!!” 아크는 도로 성으로 올라가, 합류하려 했지만 크리스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어딜!” 아크가 몸을 뺀 사이 크리스의 검에서 나오는 은빛이 반짝이며 스쳐갔다. “큭!” 오히려 왼팔에 깊은 검상을 입었다. 곧 치료될 부상이었으나 잠시 움찔거리면서 아크는 더더욱 위험해졌다. “모두 지략의 기사에게 붙어라!!!” 그리고 빠른 속력을 낼 수 있는 알퐁스 에렉 후작이 이끄는 기사들이 병사들의 지휘를 미뤄 둔 채 앞서 달려와 아크를 둘러쌓았다. 족히 100은 되어 보이는 엄청난 숫자였다. 그렇게 부하들이 오자, 크리스가 말했다. “죽이는 건 내가 한다. 다만……너희들은 죽이지는 말고 사지를 한 두 개 정도만 절단해 놓아라.” “예!” 아크는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를 다시 느끼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수많은 검날들에게 몸을 날렸다. 성벽이 아닌 곳에서 기사들과 정면으로 맞붙게 된 엘프들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테라인이 검과 궁을 나누어 성벽과 성 안 침입자들을 소탕하는 조로 나누었지만 애초에 강한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당해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휘를 맡고 있던 아테라인에게 루리엘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버지! 아크가!” 거기다 쥬레이나란이나 아크는 팬크라프트 군의 소드 마스터에게 발목을 붙잡힌 채 위기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저 상황에서는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아크가 그저 오래 버티면서 저 많은 기사들을 좀 더 오래 붙들어 두길 바랄 뿐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아크 군을 구하기란 이미 늦었어.” “……!” “모두들 적군이 못 들어오게 대형을 갖춰라!!!” 아크가 오래만 버텨 주고, 후방이 빠르게 정리되고 쥬레이나란만 무사하다면 승산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소드 마스터가 낀 후방과 수만의 병력이 있는 전방을 모두 막기에는 인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팬크라프트 진영에서 마법사들의 불꽃이 날아왔다. 차가운 냉기를 풍기는 얼음 성벽에 대부분 소화되는 불덩이들이었지만 그런 불덩이들이 날아올수록 성벽은 조금씩 녹아 가는 기미를 보였다. “이대로 끝인가…….” 지휘관인 그에게 망연자실한 표정이 어렸다. 복귀한 아크 덕분에 나아지던 전황이 적들의 기습에 당하면서 이제 마지막 희망마져 사라진 듯 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 진군해 오던 팬크라프트의 군대가 주춤거렸다. 그들이 달려오던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쿠와아아아! 화산이라도 폭발한 듯. 시뻘건 용암이 갈라진 땅바닥에서 솟구쳐 나왔다. 그리고 그 빨간 용암들은 몰려오던 병사들에게 직격해 그들의 몸을 용암처럼 녹여갔다. “으아아악!” “아악!” 이전의 헬 파이어가 한 번에 그야 말로 증발을 시켜 버렸다면 대지계열과 화염계열. 두 가지 속성을 지닌 용암 소환은 전장을 당하는 이들의 처절한 비명소리로 가득 채웠다. 루이스 델른버 등 성에서 직접 전투를 벌이던 이들은 그 광경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런. 저 정도 마법사가 또 하나 있었던가? 그때 그 여자가 아직 살아 있었던 모양이군.” “여유부리지 마라!” 쥬레이나란의 강철 검날이 길쭉 솟아나 델른버 공작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델른버 공작이 잠시 주춤이는 새. 실버 일족인 쥬레이나란의 특기. 빙한계 마법이 그의 몸체에 직격했다. 촤, 좌장 촤! 얼음이 박살나는 사이, 쥬레이나란은 자신이 부릴 줄 아는 가장 강력한 정령인 물의 정령왕 엘라임을 소환했다. 다른 정령들과는 다르게 4속성의 정령왕의 경우. 단 하나의 개체만 존재하므로 다른 소환자가 소환했을 시에는 불러 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엘라임은 쥬레이나란의 요청에 즉각 반응하여 공기 중의 수증기가 모여 가며 그 커다란 몸체를 드러냈다. 여성체를 하고 있는 정령왕 엘라임은 쥬레이나란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 불렀나요. 실버 일족의 어린 드래곤이여? “저 인간을 공격해 줘!” - 어리석은 자군요. 위대한 일족의 어린이를 죽이려 함이 무엇을 뜻하는 지 잘 모르는 건가요? “그걸 모르고 있어. 어서!” - 알겠습니다. 빙무의 공격에 잠시 정신을 놓았던 델른버 공작은 쥬레이나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물의 결정체로 이루어진 여성을 볼 수 있었다. “정령인가?” 정령왕을 보기란 인간인 델른버 공작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정령왕이 지닌 그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저 정령이 정령왕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정령왕 엘라임의 손에서 수십개가 넘는 물줄기가 델른버 공작을 향해 날아갔다. “후아…….” 쥬레이나란은 엘라임에게 전투를 맡기고 자신은 잠시 몸을 쉬었다. 아직 헤츨링인 쥬레이나란으로서는 정령왕 소환은 엄청난 무리였다. 거의 대부분의 체내의 마나를 소모한 것이다. 엘라임의 파상공세에 델른버 공작은 속수무책으로 강철도 꿰뚫는 물줄기를 피하지도 못한 채 사부에게서 배운 호신강기를 사용하여 간신히 버티기만 하고 있었다. “크윽 뭐지?” 정령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물을 가지고 이 정도의 공격을 해 오다니 만약 공작이 저까짓 물줄기! 라며 엘라임의 수공격을 무시했다가는 이미 온몸이 물줄기에 뚫려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무, 물의 정령왕!” 그런 공작의 의문은 적인 엘프가 내뱉은 놀라움의 탄성이 가르쳐 주었다. 그 소리를 들은 공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물의 정령왕? 인간은 절대, 그리고 엘프는 무진장 힘들게, 오직 드래곤만이 마음대로 소환할 수 있다는 물의 정령왕을 저 꼬맹이가?’ 정령왕의 모습은 몰라도 명성만큼은 들어 익숙한 공작이었다. 그는 지금 단순 마법검사였던 줄로만 알았던 적군의 꼬마가 정령계 최고위급 정령을 소환할 수 있다는 점에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쥬레이나란이 정령왕을 불러내느라 워낙 무리를 하다 보니 정령왕과 함께 공세를 펼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쥬레이나란의 인간 전환 능력치는 소드 익스퍼트 급 최상급의 무사를 윗돌지만 마스터 급에는 못 미치는 애매한 수치로서 마스터 급 한 둘 정도 당해낼 수 있는 힘을 인간계에서 발휘하는 정령왕과의 연계 공격을 가했다면 벌써 델른버 공작은 죽어 나자빠졌을 것이다. “공작 각하를 도와라!” 엘프들과 맞상대하던 공작이 이끌고 온 기사들이 공작을 도와 대 정령왕 전투에 합세했다. 광범위 전체마법이 성 밑에서 터지긴 했지만 그래도 팬크라프트의 그 많은 군세는 여전히 크게 줄지는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지략의 기사 아크만 크리스가 상대해서 없앤다면 더 이상의 거리낄 것은 없었다. 쥬레이나란이 묶인 상황에서 엘프족이 보유한 대마법사의 전체마법은 전황을 약간이나마 좋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크는 완전 포위당한 상태로 그가 당해 버릴 경우. 희망은 없었다. 촤아악! 옷과 살이 찢어지면서 피가 솟았다. “하아, 하아, 하아.” 그것을 할 때도 잘 내지 않던 신음소리를 불규칙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아니 이대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전투였다. 아크의 몸은 완전 피투성이였다. 옷은 여기 저기 찢어져, 수련을 통해 제법 붙은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났지만 붉은 피로 범벅되어 속살은 보이지 않았다. 블레싱 소드의 자연 치유가 되기도 전에 상처는 계속해서만 늘어났고 새로 생긴 상처들과 치유는 되었지만 이미 흘러내린 피들이 누런빛의 메마른 땅바닥에 한 방울씩의 물기를 제공했다. 엄청난 다 대 일의 전투에 소드 마스터 젤리커 공작까지 끼어 있는 불리한 전투. 프로즌 아이스를 통한 전체마법으로 시간을 끌 여유조차 없었다. 에르디 등 다른 동료들이 도움을 준다면 모르겠으나, 그들도 아크를 도와 줄 여력이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아크라우스 뿐이었다. 다만. [네놈이라면 몰라도 드래곤 브레스가 작렬할 때. 다른 놈들의 목숨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다.] 맹약의 반지를 통한 드래곤 브레스의 소환. 그것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아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무분별한 파괴 공격인 아크라우스의 드래곤 브레스의 경우. 같은 속성을 지닌 일족 쥬레이나란을 제외하고는 같은 편인 동료들을 살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 죽는 수밖에 없나…….” 아크는 블레싱 소드로 세 명의 검을 동시에 막았다. 그나마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블레싱 소드가 존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칼이 없었더라면 오러 블레이드로 소모해야 할 마나의 양 덕분에 더더욱 전투가 힘들어짐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검상들로 인해 이미 출혈 과다로 사망해 버렸을 것이다. 허나 달의 그림자를 베다. 라는 뜻을 지닌 로니의 필살기 검술 월영참 따위의 전체 타격 기술이 없는 아크는 결과적으로 블레싱 소드로 절약되는 마나를 써먹을 데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신의 가호!” 아크는 약발이 떨어진 신의 가호를 다시 걸었다. 신성력의 마나로서 살기를 지닌 공격을 신의 능력으로 튕겨내는 이 기술은 아크를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순수 블레싱 소드의 마나만을 이용하는 기술이었던 지라 검막이나 호신 강기들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물론 신의 가호 역시 수십번의 칼질에는 무력화되기 십상이나 잠시 동안의 공격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푸슉! 블레싱 소드가 한 기사의 몸을 그대로 꿰뚫었다. 이제 세 명째 였다. 크리스 젤리커라는 소드 마스터 적만 없었으면 더욱 선전했을 것을……. 크리스 젤리커의 검강이 신의 가호가 쳐 져 있는 아크의 몸체에 직격했다. 그런 다음 베이자, 또 다시 상처가 생겼다. 크리스의 공격만 없었더라면 신의 가호의 비호를 받으며 조금이나마 더 많은 적들을 벨 수 있었지만 같은 레벨의 복수하려는 강자가 문제였다. “제기라알!” 망할 눔들. 1대 1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일기토에 난입을 하다니 이런 기사도라고는 엿바꿔 먹은 비겁한 놈들이라고 속으로는 이를 갈았지만 사실. 아크도 기사도라는 것에 대해서 충실히 지키고 착실히 생활한 적 없으니 팬크라프트의 얕은꾀만 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녀석들을 믿어봐야 겠군. 내가 여기서 이 강자들을 최대한 오래 붙들어 준다면 나도 뭔가 살 길이 보일 것이다.’ 게임 같으면 전체 타격 필살기를 써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상황은 게임이 아니었다. 그저 절망적일 뿐이다. 많은 실프들이 전장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눈에 확연히 보이는 바람이 진격해 오는 병사들을 휩쓸었다. 곧이어 병사들은 몹쓸 병이라도 걸린 듯 기침과 구토를 하며 제 자리에서 쓰러지기 일수였다. 조금 수준이 높다는 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람을 타고 온 고약한 냄새에 반응한 그들의 후각이 뇌에 전달한 신호는 병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구토하라. 그리고 후각을 멎게 하라. “무, 무슨 일이냐!” 지략의 기사를 잡으러 간 크리스 젤리커 공작과 배후를 급습하러 간 루이스 델른버 공작이 빠진 병사들은 알퐁스 에렉 후작이 지휘하고 있었다. 허나 명 지휘관으로 유명한 그조차도 이 기이한 현상에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팬크라프트 군의 진영이 갑작스레 교란에 무진 상태에 빠지게 되자, 엘프들은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덕분에 합심해서 후방의 침입자들을 물리칠 방도를 찾아낸 그들이었다. - 괜찮아요? 엘라임의 걱정스런 목소리를 들은 쥬레이나란은 애써 힘차게 소리쳤다. “괜찮아! 어서 더!” 그러나 그것이 허장성세임을 엘라임은 알고 있었다. - 안 돼요. 더 이상 당신의 마나를 제가 소모하게 된다면 당신은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요. 아직 막강한 적이 남아 있잖아요. “큭! 당신이 가버리면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정령왕의 힘. 분명 위력적인 힘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을 사용한 대가는 어린 헤츨링 쥬레이나란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대가였다. 소환 할 때 뿐만이 아니라 장시간 유지하면서 이미 쥬레이나란의 체내의 마나는 파이어 볼도 겨우 만들어 낼 정도로 급락해 버렸다. -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저는 이만 가겠어요. 미안해요. 물의 정령왕은 조그마한 물방울들이 되어 수증기로 사라졌다. “뭐지?” 한참 엘라임의 공세를 받아내던 델른버 공작은 갑자기 사라지는 엘라임의 모습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자신과 함께 싸우던 많은 기사들이 물방울에 온몸이 뚫린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수십이 덤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자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며 그나마도 모두 낭패한 모습이었다. 델른버 공작 자신도 더 이상 그 공격을 당했더라면 위험했을 뻔 했다. 성벽에 배치되었던 병력이 갑자기 후방으로 몰려온데다가 물의 정령왕으로 인하여 델른버 공작과 많은 기사들이 쥬레이나란에게 집중한 틈을 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기사들도 많이 위험한 상태였다. “제기랄 멋지게 당했군.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안 될 거다.” 척 보니 쥬레이나란은 거의 움직일 힘조차 없는 듯 했다. 그만 완벽히 처리하고 나면 이제는 더 이상 델른버 공작의 발걸음을 잡을 이는 없었다. 쥬레이나란은 델른버 공작이 다가오는 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일어설 기력은 있었다. 싸울 기력도 조금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용을 쓴다고 해봐야 남은 것은 처참한 죽음뿐이리라. 그러자 제압이 되었다고 생각했던지, 그는 제국을 위한 포섭을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텐가?” “……무슨 소리지 그건?” “이대로 죽이기에는 자네의 재주는 너무 아까워. 뭐 때문에 루드비안 제국 같은 곳에 몸을 담고 있지? 우리 군에 들어와 대륙 통일의 위업에 앞장서지 않으련가?” “드래곤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지 않는다.” 쥬레이나란은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델른버 공작이 알아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쥬레이나란이 자신을 드래곤에 비유하며 충성을 배신할 수 없다는 등의 이야기 투로 들은 것이다. “잘 가라.” 델른버 공작은 높이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던 찰나였다. 퍽! “쿠욱!?” 옆구리를 푹 쑤시는 느낌과 강한 밀쳐내는 힘. 무언가 둔탁한 것에 맞은 것 같은 그 반동과 느낌에 델른버 공작은 붕 나가 떨어졌다. “뭐, 뭐냐!” 애써 자세를 다잡고 검을 바로 잡았을 때. 그는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옆구리를 강하게 때린 타격의 근원이 누구였는지. “……꼬맹이?” 쥬레이나란이 꼬맹이의 모습이었던 것도 꽤나 충격이었지만 이번에는 더 놀라는 공작이었다. 주먹을 지른 상태로 있는 타격의 근원은 놀랍게도 어린 소녀였던 것이다. 어여쁜 얼굴과 좀처럼 보기 드문 머리 빛을 지닌 탓에 엘프로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소녀의 귀는 뾰족하지 않았다. 더구나 저 나이에 자신이 기척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빨랐으며 주먹도 여간 매서운 게 아니었다. 거기에 소녀의 양손에는 권강이라고도 불리는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은연중에 느껴지는 마나의 기척은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조금은 딸린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강자에게서 느껴지는 그 방대한 마나의 기척을. ‘어째서 저런 꼬마애, 그것도 여자애한테서 저 정도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말인가? 저 나이에 저 정도 성취를 거둔다는 게 가능키나 하다는 소린가? 믿을 수 없다. 성취를 거두면 젊어진다고는 하나……기연 외에는 답이 없군. 어떤 기연인지는 모르나 여하튼 부럽구나.’ 잠시 놀라긴 했지만 백전노장답게 델른버 공작은 상대에 대한 계산을 해 두었다. 기연으로 얻은 힘은 제대로 수련을 해서 얻은 힘보다 활용도에서 떨어지는 법. 거기다 검을 가지고는 있으되, 그다지 길지 못한 쇼트 소드에, 전체적으로 성인 남성 등에 비해 완력도 딸리고, 다리나 손이 닿는 범위도 짧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렇게 발목이 잡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일당백으로 적들을 죽일 수 있는 막강한 실력자가 발목이 묶여 있다면 아군의 피해가 커질 것은 자명한 일. 델른버 공작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쥬레이나란을 구해 준 소녀를 향해 물었다. “넌 누구냐.” “유카나 엘레노어.” “으흠…….”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루드비안 군부의 최고 유망주라 불리던 소녀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했었을 줄이야. 이건 유망주 수준이 아니라 당장 군부의 중요 장교 작위를 주어도 될 정도로 강하지 않은가? “왜 여기 있지?” “오빠를 따라 왔어요.” “지략의 기사를 말하는가 보군. 그러고 보니 약혼자라고 했었던가?” “그래요.” “그럼 왜 미리 튀어나와 싸우지 않았나? 지략의 기사는……뭐 아직 죽지는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우리 측 기사 수십명과 소드 마스터 젤리커에게 포위되어 죽기 직전이다. 너 정도의 실력이면 전투에 앞장서서 싸워도 되지 않느냐?" "…….“ 유카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과 끔찍한 광경들에 겁을 먹어 차마 전투에 앞장서 나서지 못했던 것이다. 소녀다운 마음을 잊지 않은 것은 귀여워해 줄 만 했지만 이곳은 전장이었다.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는 것이다. 그것이 전사가 되기로 한 소녀가 겪는 마음 속 고민이었다. 머리로는 싸워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휘두르기에는 그 여린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쥬레이나란의 위기가 닥치자 뛰어 들어 어떻게 그를 구하는데는 성공했다. “역시 전장에 있기는 너무 어린 것인가? 소녀여. 그대의 목숨과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들과 맞서 싸워라.” 이렇게 말하고 멋있게 검을 뽑아 덤벼 들려 했던 델른버 공작은 어떻게 검은 뽑았지만 막상 공격을 하려고 보니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저런 어린애를 그것도 여자애를 죽여 놓고도 꿈자리가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렌 녀석의 죽은 딸내미와 닮은 것도 같긴 하군. 보랏빛 머리카락에 귀여운 얼굴이었으니까, 후우……죽이지는 말고 생포해서 렌 녀석한테 입양하라고 해 볼까?’ 수많은 사람을 죽여 온 델른버 공작도 차마 유카나를 죽이기는 뭐했던 모양이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 같은 냉혈한은 제국에 위험이 된다면 어린애라도 서슴없이 죽이지만 루이스 델른버, 그는 아직도 마음을 완전히 다스리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듯 했다. 그때 쥬레이나란도 어느 정도 몸을 회복했는지 힘겹게나마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철의 검날을 길게 쭉 빼어 들었다. “이봐 어린 암컷. 부탁하건데. 네 녀석도 싸움에 임해주길 바란다. 이 자를 빨리 없애 놔야 그 변태 인간 놈도 구할 수 있다. 같은 동족을 죽이는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이곳은 네가 죽게 되는 곳이다.” “으, 응.” 유카나는 허리 뒤에 매어 두었던 짧은 숏 소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미리 배워 두웠던 소드 오러를 사용했다. 아크로부터 몸으로 싸우는 방법을 배웠다지만 확실히 여자의 몸은 쇠막대기의 도움을 받아야 더욱 효율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 있었다. 그녀는 빠른 발을 이용해 달려나갔다. 그런 다음 델른버 공작의 하반신을 공격했다. 상당한 스피드였다. “……!” 델른버 공작은 급히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그의 점프력 역시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여차 하면 다리가 잘릴 수도 있었던 위기를 위태롭기는 해도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검에 살의는 담겨 있으나 아직도 머뭇거림이 남았구나!” 빠른 공격이었지만 검법을 정식으로 배운 예리한 솜씨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저 엄청난 신체의 능력을 이용한 빠르기로 공격한 것일 뿐. 거기다 끝에 가서는 속력이 줄어드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머뭇거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초식이 단순하니 반격하기도 쉬웠다. 팬크라프트 제국 검법의 초식을 간단히 사용해 덤비니 금새 막기에 급급해서 뒤로 밀려나는 유카나였다. 막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 망설임이 없어 그런지 몸놀림이 예리했다. 슈우욱! 그 사이를 노리고 멀리 떨어져 있던 쥬레이나란의 강철 검날이 길어져서 델른버 공작의 목을 노렸다. 델른버 공작이 목을 틀어서 강철의 검날을 피하자 이번에는 그 빈틈을 틈타 유카나가 검격을 가해 왔다. 중간에 느려져서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델른버 공작은 그녀의 검격을 막을 수 있었다. ‘싸움을 즐길 때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죽지는 않더라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상처로 제압해 놓고 마법사 놈을 죽이자.’ 아크가 어느 정도 버텨 주고, 에르디의 최루탄 투하로 인하여 많은 기사들이 묶이고 진군해 오던 병사들이 지독한 냄새로 인하여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자, 여러 방향으로 침투해 적들을 내부에서부터 박살내려는 작전은 조금씩 어긋나고 있었다. 오히려 안으로 침투한 것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이제는 각개격파 당할 위기에 처인 팬크라프트 군이었다. 푹! “크억!” 델른버 공작이 싸우는 옆에서 엘프 전사와 검을 맞대던 또 한 명의 기사가 죽어나갔다. 사실 엘프 전사들과 기사들이 맞붙을 경우.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도달한 질 높은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라면 충분히 엘프 전사 둘을 맞상대 할 수 있었지만 상황은 의외의 결과를 맞이하고 있었다. 처음에 그래도 200이 넘는 기사들을 데리고 침입했을 때만 해도 엘프들은 쪽도 못 써보고 죽어나갔다. 그러나 엘라임을 상대하기 위해 기사들이 반반씩 갈리고 엘라임의 엄청난 위력에 수십명이 넘는 기사들이 죽고 나자, 수가 줄어버린 데다가 군대와 나머지 기사들의 진군이 늦춰짐으로서 성벽을 지키던 엘프 궁수들이 높은 곳에서 원형으로 포위한 형태로 화살을 쏘아 대자, 당하는 쪽은 오히려 기사들이었다. 그러나 사실 오러를 씌운 중갑옷 들이라면 공격하지는 못해도 충분히 막아가며 버틸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하나, 하나 죽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궁 루기아가 엘프들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신궁의 화살은 신궁이 외부의 마나를 신성화시키고 고체화 시켜 저절로 생기는 화살이었다. 그 화살은 피하지 않는 이상. 신의 축복을 받은 갑옷 등이 아니고서야 뚫지 못하는 것이란 없었다. 그러한 신궁이 엘프족의 손에 들려 있으니 화살이 생성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나 생성되는 족족 한 명의 기사들이 화살에 맞고 죽어나갔다. 물론 신궁에 만들어 진 화살을 장전해 날릴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조금 더 멀리 날아가는 사거리와 명중률, 파괴력이 높은 활로서의 사용법일 뿐 진정한 신궁의 위력은 마나로서 생성되는 마나가 고체가 된 무엇이든 뚫는 화살을 자동 생성시켜 날리는 데에 있었다. 덕분에 어느새 안으로 침입한 적군들은 대부분 소탕한 지 오래였다. 성의 내부에서 화살세례를 받던 기사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델른버 공작과 함께 엘라임과 전투를 벌였던 이들만이 몇몇 살아남아서 성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휘릿! 델른버 공작은 화살의 소리를 듣고는 급히 몸을 숙였다. 신성의 속성을 띈 금빛의 화살은 델른버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가 얼음 성벽에 그대로 꽂혔다. ‘큭……위험했군.’ 엄호하던 기사들이 줄다 보니 델른버 공작 역시 신궁 화살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다행히도 여타 기사들과는 달리 그는 마스터답게 반사신경이 매우 뛰어나 직감적으로 화살을 피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쥬레이나란과 유카나가 연합으로 공격해 오자, 세 군데에 동시에 신경을 쓰다 보니 서서히 위험해 지고 있었다. 한참 쥬레이나란과 유카나의 공격을 막아내던 델른버 공작은 또 다시 날아오는 화살 소리에 몸을 틀었다. 다행히도 화살은 피해냈지만 유카나의 검격에 자칫 목을 내 줄 뻔 한 위급한 위기를 넘기고 다시 공격을 하려했다. 하지만 쥬레이나란의 강철 검날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결국 델른버 공작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쥬레이나란의 검에 왼팔에 깊은 검상을 입었다. “크흑! 이놈이……!” 그러나 델른버 공작은 화를 낼 틈이 없었다. 깊게 베인 왼팔이 감각기 없어져가면서 새파랗게 얼어붙고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철의 검날이지만 속은 얼음마법 아이스 소드였던 쥬레이나란의 오른팔은 베는 것을 얼리는 효과가 존재하고 있었다. 얼어붙어 오는 왼팔을 보자 델른버 공작은 고육계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냈다. 검을 잡는 팔도 아니었던 지라 죽음과 맞대어 비교해 보았을 때 그다지 아깝지는 않았다. 소드 마스터 급은 아니지만 드래곤의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마스터 급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는 쥬레이나란과 마스터 급이긴 하지만 기술은 조금 딸리는 유카나. 하지만 이 둘이 연합하여 공격을 해 오자, 델른버 공작은 그의 사전에는 없었던 도망까지 생각해 볼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다. ‘제기랄. 이대로는 안 되겠군. 일단 군대에 합류하든지 해야 겠다.’ 결국 델른버 공작은 도주를 선택했다. 그는 단순히 신체의 능력만에 의지하고 있던 유카나를 기술로서 밀친 뒤 도약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뛰어오르지 못했다. 원래는 그의 머리를 노렸던 신궁의 화살이 델른버 공작이 뛰어 오르자 그의 다리에 박혀 버린 것이다. “크흑!” 신궁의 화살의 파괴력은 그의 오른다리를 그대로 그의 몸에서 분리시켜 놓았다. “공작 각하!!!” 델른버 공작은 이제 최후를 예감했다. 기사들 몇 명이 그를 엄호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공작에게 달려가느라고 방비가 허술해 진 기사들이 빈틈을 노려 보통 화살들이 날아와 그들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쓰러진 델른버 공작에게 쥬레이나란이 다가와 바지를 걷어올렸다. 쥬레이나란의 한쪽 다리는 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강철로 이루어진 강철의족이었다. 그러면서 쥬레이나란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이렇게 되었군?” “…….” 쿵! 볼링공의 중량과 비슷한 인간의 머리는 툭 떨어지자마자 큰 소리를 냈다. 그러나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목숨을 걱정해 전투에서 몸을 빼 뒤에서 놀고 있던 한 기사는 허공에서 떨어진 머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었다. “데, 델른버 공작!” “뭐어?” 아크를 둘러 싼 포위망 뒤쪽에 동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델른버 공작 각하께서 돌아가셨다.” 한 멍청한 기사가 큰 소리로 지휘관의 죽음을 알리는 바보짓을 저질렀다. 그 유명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총탄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겼다. 그것은 지휘관을 잃은 부하들의 동요를 막아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대로 죽음을 알려 버리니 당장 생기는 부하들의 동요를 막을 수가 없었다. 후방부터 퍼진 소문은 아크를 둘러싸고 있던 기사들 전체에 퍼졌다. ‘큭! 정말 죽은 건가?’ 젤리커는 사라진 마나의 감각에 델른버 공작이 사망했음을 직감했다. 어떻게 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의 죽음이 알려져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거기다 델른버가 죽었으니 여기 있는 아크라도 쌤쌤으로 없애야 할 판국이었다. 그런 생각에 젤리커는 잠시 몸을 빼서 부하들에게 외쳤다. “동요하지마라! 지금은 당장은 지략의 기사를 죽이는 데에 집중하라! 이대로 이 놈을 죽이면 공작 각하의 복수를 할 수 있다. 어서 전투에 임하라!” 하지만 그럴 사이 아크에게는 약간의 틈이 생겼다. 콰직! “끄, 끄우우우!” 아크는 앞에 기사의 남근을 무릎으로 찍은 뒤 그를 밟고서 포위망에서도 기사들이 제법 적은 쪽으로 달려갔다. 잘하면 뚫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는 거의 고갈되어 가는 마나를 쥐어짜내어 프로즌 아이스를 휘둘렀다. 만약 이것이 실패할 경우 마법사용 딜레이로 인하여 적에게 틈을 줌과 동시에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 뻔했다. “아이스……스톰!” 완벽한 컨디션이었을 때였으면 수십방을 먹여도 상관없었겠지만 마나가 거의 고갈되어 가는 이 상황에서는 이 한 방으로도 휘청거릴 만큼 힘이 몽땅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얼음의 폭풍이 포위망의 한 쪽을 덮쳤다. 그 틈을 타 아크는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큭 잡아라!” 젤리커의 하얀 빛무리 여러 개가 아크의 등 뒤를 쫓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정면은 아니더라도 꽤나 치명적인 부위 여러 군데에 맞았다. “커헉!” 포위망을 뚫고 어느 정도 도망쳐 나오기는 했지만 방금 사망한 델른버와 마찬가지로 도망치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블레싱 소드의 치유력으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입과 코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나왔다. 이미 피투성이인 몸이었지만 이번에는 외상이 아닌 내상이었다. “쿨럭! 쿨럭!” 결국 아크는 얼마 도망치지도 못한 채 성벽 밑에서 쓰러졌다. 젤리커와 기사들이 아크의 뒤를 쫓아왔다. 하지만 그래도 성벽까지 도착하자, 성위의 궁수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신궁의 화살과 기타 화살들이 아크를 엄호했다. 젤리커는 화살도 무시한 채 달려왔지만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 신궁의 마법화살에는 흠칫 할 수밖에 없었다. “빨리! 아크 군을 구해라!” 화살의 엄호 속에 특전사들 몇 명이 쓰러진 아크를 데려 가기 위해 성 밑으로 뛰어내렸다. 본디 보통 이들이 이렇게 뛰어 내렸을 경우 십중팔구는 추락사를 면치 못하겠지만 실프를 이용하여 하강 속도를 줄이자 무사히 착지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내려와서까지 무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필코 지략의 기사를 죽이겠다는 젤리커의 폭주에서 아크를 엄호하다 보니 여럿이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도 원래의 목표였던 아크만큼은 어떻게 구해서 도망친 엘프들이었다. “쿨럭, 쿨럭, 쿨럭!” 살았기는 했지만 아크는 계속해서 피를 토해냈다. 온몸이 다치다 보니 블레싱 소드의 치유력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상처야 치료를 시켜 준다지만 수십명의 기사들에게 다굴을 맞다 보니 상처는 여기저기 몽땅 생겼고, 채 치료도 하기 전에 또 상처가 생기고 어느 한 곳 때우고 나면 또 피나고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아크는 별로 잘 써먹지도 못하는 호신강기라든지 검막이라든지 신의 가호 등의 온갖 마나를 사용하는 기술을 써서 버텼고, 그러다 보니 마스터 급의 방대한 마나도 금새 고갈되었으며, 피를 몽땅 흘리다 보니 혈액도 부족해졌다. 수혈을 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과학적인 의학은 발달하지 않은 이곳에서 혈액의 과다 출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요소였다. 단 블레싱 소드의 자양강장 효과로 영양소의 대부분을 혈액을만드는 데에 빠르게 사용하는 아크의 경우에는 예외였다. 그러나 흘린 피가 워낙 많은데다가 마나도 고갈된 지라 더 이상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어서! 아크 군을 옮기게!” “자, 잠깐만요! 제 동료들을 좀 불러와 주시겠습니까?” 아크는 피가 흐르는 입을 애써 떼고 말했다. “어서 가서 쉬도록 하게. 더 이상 움직이면 위급해.” “……크, 으윽 저쪽에는 아직 마스터 급 무인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를 제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제압당한 상태나 마찬가지이니 그를 막지 못한다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서 제 동료들을 좀 불러다 주십시오.” “알았네.” 아크는 성벽에 누운 채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공성전을 바라보았다. 에르디의 악취로 선봉부대를 일거에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기는 했지만 어느새 그들은 전열을 가다듬은 뒤 후군이 선봉에 서고 악취에 질려 버린 선봉 부대를 후군으로 집어넣은 뒤 재 진격을 해 오고 있었다. 거기에 젤리커와 나머지 기사들까지 합세한 엄청난 대군이었다. 후방의 침입을 적의 수뇌를 목 베고 큰 피해까지는 입지 않은 채 전멸시킬 수 있었지만 애초에 승리 공식은 전체 마법을 10회 이상 먹여, 수를 크게 줄인 뒤 농성을 펼친다는 작전이었는데 그것이 불가능해 진 것이다. 보험을 하나 들어놓기는 했지만 만약 팬크라프트 측에서 죽자 살자로 덤벼들며 단번에 승부를 보려 한다면 끝이었다. 그런데 아크가 전투 불능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아마도 팬크라프트 측에서는 그것을 노리고 아크가 회복되기 이전에 몰아쳐 끝내 버리려 할 것이다. ‘일단 본거지를 버리고 숲속으로 잠깐 숨어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수만의 병력이 있는 성을 몇 백으로 뚫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만다. “왜……찾냐?”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새에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유카나가 아크의 옆으로 다가왔다. “오빠!” “주군!” 피투성이인 아크를 보고 에르디와 유카나는 대번에 아크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쥬레이나란의 경우 그다지 심각한 상처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는지 여전히 뚱 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야……너 왜 전체마법 안 써?” “……델른번가 뭔가 하는 놈하고 싸우다 보니 마나를 다 써버렸다. 캐스팅으로 날릴 수도 있기는 한데……. 아무리 외부의 마나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이상은 위험해 그래서 안 쓴다.” “……뭐 그럼 됐고, 유카나, 에르디.” “네.” “예 주군.” “이제 난 틀린 거 같다.” 여기서 말하는 틀린 거 같다는 ‘전투에 참가하긴’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지만 무심결에 생략을 하고 말하자, 안 그래도 피투성이의 몸뚱이에 입과 코에서 자꾸만 피가 흘러나오는 아크를 에르디와 유카나는 죽는 다는 그런 차원으로 생각해 버렸다. “너희들에게 맡기마. 저쪽의 소드 마스터 젤리커. 유카나 혼자만으로는 부족하지만 에르디 너까지 합세한다면 충분히 그를 막을 수 있을 거다.”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를 유카나에게 내밀었다. 유카나처럼 기술은 없이 순수 힘만 강력하다면 프로즌 아이스가 많은 도움이 될 터였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아크는 더 이상 정신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입에서는 피를 토한 채 아크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빠!” “주군!” “……바보들.” 아크가 죽은 줄 알고 통곡하는 유카나와 에르디를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가볍게 비꼬는 쥬레이나란이었다. 농성은 계속되었다. 엄청난 숫자의 병력을 지닌 팬크라프트 군은 엘프들의 뛰어난 활솜씨와 각종 마법, 그리고 올라가기가 보통 난해한 것이 아닌 얼음의 성벽 덕분에 고전하고 피해가 속출했다. 발석거 등의 공격이 계속해서 있어왔지만 다이아몬드를 이루는 탄소분자 만큼이나 단단하게 뭉친 물의 견고함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마나가 실린 화살은 사다리를 타고 줄줄이 올라오는 병사들 여럿을 단번에 뚫고 지나가면서 원 샷 투 킬 이상의 효과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각성한 두 실력자들이 내부에서 깽판을 치던 젤리커를 완벽히 묶어두면서 피해는 자꾸만 팬크라프트 측에 커져만 갔다. “사령관님! 더 이상 밀어붙이면 피해만 커질 뿐입니다. 일단 잠시 후퇴한 다음을 노리는 것이…….” “지략의 기사가 움직이지 못할 때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이다. 비록 전멸을 하더라도 지금 몰아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별 수 없군.” 현재 총 지휘를 하고 있던 알퐁스 에렉 후작은 자꾸만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결심했다. “기사들. 나를 따라 온다. 앞으로 지휘는 노포크 백작이 맡는다.” “제, 제가 말입니까?” “그래. 대공 전하께서는 자네를 높게 평가하더군. 그럼 우리는 젤리커 공작님을 돕겠다.” 알퐁스 에렉 후작이 몸소 무거운 전체 갑옷 몸을 이끌고 지휘봉을 놓은 채 기사들을 데리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병사들로 가득 찬 성벽 밑을 지나간 그는 느리고 둔중한 무거운 갑옷 몸뚱이를 이끌고 사다리에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내 뒤를 따라 온다.” 알퐁스가 사다리를 타기 시작하자, 기사들은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그런 알퐁스에게 화살 세례와 돌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갑옷으로 몸을 완전히 감싼 터라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급습 작전과 아크를 상대하면서 많이 잃긴 했지만 그래도 팬크라프트의 기사단은 건재했다. 그리고 그들과 엘프들이 정면 대결을 벌였다면 결코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지지 않았다. 허나 문제는 높은 성곽. 성곽에서는 마나가 실린 화살로부터 몸을 지킬 방도가 만무했던 기사들은 일반 병사들과 같이 허무하게 죽어나갔고, 결국 마스터 급인 젤리커 공작만이 성을 뚫고 올라가 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지략의 기사가 전투 불능이 되었기에 손쉽게 난입해서 훼방을 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공작은 그 생각을 수정해야만 했다. 미모는 뛰어나지만 도저히 엘프로 볼 수 없는 소녀 검사와 악취를 사용하는 기사에 의해 오히려 밀렸기 때문이다. 특히 유카나는 아크가 죽은 줄 알고는 거의 이성을 잃고 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기에 더욱 무서웠다. 분노의 힘이랄까? 그런데 알퐁스 에렉 후작이 지휘를 포기한 채 성벽을 타고 오르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가 앞장서서 성벽을 오르니 화살도 돌도 마법도 안 먹히는 그를 방패삼아 오르는 기사들이 결국 사다리를 올라, 성에 난입한 것이다. 신궁의 화살로 기사들을 요격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방금 전처럼 악취 공격으로 군대가 완전 혼란 상태였을 때에 난입한 기사들에게나 주효했지 밑에서도 꾸역꾸역 몰려오는 적들을 동시에 상대할 때에는 도무지 정신이 없어 그리 할 수가 없었다. “사다리를 맡고 있는 놈들을 최우선적으로 척결한다!” “예!” 알퐁스 에렉 후작의 명령에 기사들은 각자 민첩하게 움직였다. 더러는 엘프들에게 죽기도 했지만 그들은 공성사다리 쪽에 모여 있는 엘프들에게 덤벼들어, 밑에서 올라오는 병사들의 활로를 뚫어 주었다. 그리고 물고가 터지듯 한 번 터지기 시작한 둑은 계속해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혼전 양상이 벌어졌다. “성공이군.” 군을 뒤로 뺀 다음 계략을 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 붙인 것이 주효했다. 병력은 수만에서 수천으로 줄은 상태였지만 한 번 물고가 트이고 병력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이상.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공적을 세운 알퐁스 에렉. 그는 철퇴와 도끼를 휘두르며 부하들을 지휘했다. 촤아악! 그때 마침 마나는 고갈되었지만 육탄 전투에서는 아직까지 쓸만한 쥬레이나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건!” //////////////////////////////// 코피를 네 번이나 쏟았습니다.. 코딱지 파다가...어딜 건드린 모양인데. 시간마다 줄줄이 나오는군요. 죽을 때가 된 모양입니다. ..... 그나저나 마감이 코앞에 닥쳤군요. 분량은 얼마 안 되는데.... 사실 최근에 연재가 늦어지고 주춤하며 미연시 루시페리아R 이 탄생한 것은 이 전쟁파트에서 막힌 것이 주 원인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생각 안 나고……그러다 보니 자연 외도를 하게 되고, 그런데도 여전히 쓸만한 아이디어는 생각 안 나고, 하지만 마감이 코앞인지라 일단은 대충 이곳을 넘어가야 겠습니다. 지휘자가 갑작스레 지휘봉을 떨어뜨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서,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형은 죽었어…… 분명히……. 그럴 리가,” 갑자기 상관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의아해 하던 기사들은 덤벼드는 적들을 맞아 그런 그의 모습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알퐁스 에렉 후작은 한쪽 팔에 강철 건틀릿을 찬 쥬레이나란을 보고서는 자꾸만 속으로 되뇌었다. 분명히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그날의 사고 이후 자신은 갑옷 몸이, 그의 형은 팔과 다리를 잃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되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다 괴상한 일에 말려들어 그의 형은 목숨마저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죽었던, 아니 설사 기억이 잘못되어 살아있다고는 하더라도 수백년이 지난 지금 살아 있어서는 안 될 그가 살아있다니……. ‘뭐야? 저거는? 저 놈도 코스튬인가를 한 건가?’ 쥬레이나란도 알퐁스 에렉 후작을 보자, 아크가 보여줬었던 게 떠올랐다. 저거 아마 지금 자신이 변신하고 있던 캐릭터 동생이 빙의한 갑옷 이었겠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 쓰고 있을 새는 없었다. 둑이 터지듯 밀려오는 물살에 이미 휩싸이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지만 모두의 표정에 절망이 어릴 때, 쥬레이나란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그들이 들어 두었던 보험에서 보험금이 나올 차례가 임박해 왔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통해 병사들이 물 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개개인의 능력은 매우 우수하지만 수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인 엘프들은 일단 뚫리고 나자, 하나, 하나 허물어져 갔다. ‘이제 끝인가?’ 자꾸만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엘프들은 절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성벽을 버리고 뒤로 전면적인 후퇴를 감행했다. 기사들을 필두로 엘프들은 죽어나가고 있었다. 정면으로 성문이 뚫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사다리를 통해 올라오는 병력을 견제할 만한 이가 없었다. 상당한 미모를 지닌 엘프들이 고깃덩어리로 변하는 모습은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특히 병사들이 여자 엘프는 참으로 잔인하게도 하부나 뒤쪽을 노리는 등의 변태적인 짓거리도 서슴치 않으며 죽였다. 물론 미모의 효과로 인하여 남자들이 대부분인 인간 병력들은 제대로 덤비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소위 변태들이나, 살인을 많이 겪어 자비심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진 이들의 경우 여자 엘프라도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되도록이면 여자들은 포로로 잡아라!” 전투가 승기를 잡게 되면서 여유가 생기자, 병사들은 살육보다는 변태적인 장난질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아직 뚫리지 않은 성벽 쪽으로 도망가거나 성 내 마을로 도망쳐 시가전을 벌이고 있었지만 접전 중이었던 대부분의 이들은 남자는 죽고 나머지들은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 추잡한 광기가 여자들을 유린했다. 적을 앞에 놔두고 저런 짓을 즐기는 것은 금물이었지만 이미 승기를 잡았기에 지휘관들은 여자들에게 붙은 이들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무기에 맞은 채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여성들마저 한 없이 유린당하는 그럼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아…….” 젤리커를 패퇴시켰던 유카나는 지옥도와 같은 풍경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유카나와 에르디에게 낭패를 당하던 젤리커는 알퐁스 에렉 후작이 밀고 들어올 때 도주했다, 상냥하게 대해 주던 엘프 언니들이 끔찍하게 능욕당하고 있었다. 젤리커마저 패퇴시킨 지금 유카나를 따라 잡을 실력의 적은 없었다. 다만 팬크라프트의 많은 기사들이 문제였다. “……아!” 그러던 중 유카나의 시야에는 한 명의 죽어가는 여자 엘프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분명 알고 있던 그녀였다. 혼전 속에서 전사들은 거의 뚫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성문을 포기하고 목책이 세워져 있는 신목의 옆으로 몰려갔다. 신목의 신비로운 힘은 부상을 회복시켜 주었고, 궁지에 몰렸음에도 그들의 사기를 신앙심으로서 충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접전 중이었거나, 부상으로 뒤쳐진 이들은 꼼짝없이 팬크라프트 군에 살해되거나 붙잡혀서 더럽힘을 당했다. 전면적인 후퇴를 감행할 때, 목책으로 병력이 몰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몇 명의 전사들은 화살을 날려 추격을 늦추는 역할을 맡았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리엔느가 끼어 있었다. 몰려오는 군사들은 성벽 쪽에서 마음껏 즐기고 있는 동료들을 본 이들. 군사들은 여자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군대에서 참았던 욕정을 풀고 있던 동료들을 보고서는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구로 충만해 있었고, ‘자 여자들을 사로잡는 이는 그 엘프 여자를 첩으로 주겠다! 마음껏 가서 남자들은 죽이고 여자들을 사로잡아 즐기자!’ 란 말에 기세가 등등해져 화살에 머리가 날아가는 동료들을 보고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채 무섭게 돌격해 오고 있었다. “스톤 파이크!” 대지의 정령 노움이 저 먼 지하에서 끌어 온 날카로운 돌벽이 땅바닥에서 솟아나 군사들의 진군을 잠시 저지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는 무차별적인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금새 죽어나가는 이들이 태반이었지만 쪽수는 정말 무서웠다. 픽픽 쓰러지는 시체들을 밟고 그들은 계속해서 진격해 왔다. 빠른 발로 몸을 뒤로 빼고, 장애물을 설치해 달려오기 힘들게 만든 다음. 화살과 마법으로 상대하는 엘프들의 전법. 원거리 공격수들의 기본 전법이라 할 수 있는 이 전법 덕에 저지대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허름한 복장에 날이 나가고 녹슨 창들이 대부분이었던 병사들의 앞에 피로 물들어 빛이 바래긴 했지만 그래도 햇빛에 반사되어 광채를 뿌리는 은빛 갑옷에 망토를 휘날리며 흠집하나 나지 않은 깔끔한 검을 든 이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모두들 땅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라!”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있는 동료 병사들의 창을 살아남은 이들이 주워들었다. “투창!” 병사들의 투창 솜씨는 정말 형편없었지만 날아오는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푹! “크억!” 한 명은 가슴 정 중앙에 박혀 그대로 즉사했고 한 명은 다리에 찔려 그대로 넘어졌다. 날아온 창들에 비하면 경미한 피해였지만 수천 마리의 개미 중 수십 마리가 죽는 것과 멸종 위기의 수달들 중 한 두 개체가 죽는 것이 같은 급수일 리가 없었다. “투창!” 궁병들이 없는지, 지휘관은 연속해서 투창을 외쳐댔다. 그리고 병사들이 일제히 창을 던지자, 외쳤다. “돌격하라!” 창과 동시에 이번에는 창을 세운 뒤 병사들은 달려오기 시작했다. 투척된 창들이 엘프 전사들의 퇴로에 박히자, 어느새 팔을 뻗으면 잡힐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익!” 각자들 정령들을 소환해 대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 하급 정령들로는 그다지 많은 적을 없앨 수 없었다. 정령으로 시간을 번 뒤 투창되어 막힌 길을 뚫고 그들은 자신들도 달려갔다. 최대한 이리저리 도망다니면서 시간을 끌어 나머지 동료들이 전부 퇴각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준 다음 엄호해 줄 목책 뒤에 숨은 동료들 쪽으로만 따라잡히지 않고 도주한다면 생존과 동시에 미션까지 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시 닥쳐왔다. 화살을 쏘기 위해 화살통에 손을 대자,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당황하는 사이 어느새 성안을 꽉 채운 팬크라프트의 군사들의 포위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끌기는 어느 정도 끌어 주었으되. 생환을 기약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뼈를 묻을 터. 먼저 죽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몇몇은 검을 빼어 들고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빠른 몸놀림으로 두 셋 정도는 죽일 수 있었지만 사방에서 찔러 오는 창들을 막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리엔느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에게 덤벼들었다. 예리한 세검으로 목을 찌르고 배를 찌르고 목을 갈랐다. 하지만 여성이어서 그런지 창대는 들이대어도 병사들은 쉽게 그녀를 찌르지 않았다. 창을 버리고 양손을 뻗친 채 발정난 개처럼 침을 흘렸다. 리엔느는 그런 병사들을 가차 없이 베어 넘겼다. 사로잡을 목적으로 무기를 버리고 덤벼드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목숨을 재촉한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 싶었다. “큭!” 하지만 완전 바보들만 있는 건 아니었던지 하단으로 다리를 찔러 오는 창대가 있었다. 종아리를 찔린 리엔느의 왼쪽 무릎이 자동으로 꿇어졌다. “케헤헤헤!” 그 틈을 탄 병사들 중 하나가 그녀의 몸을 밀쳤다. 밀쳐지면서도 리엔느는 검을 놓지 않고 자신을 민 병사의 목을 찔렀다. 넘어지긴 했지만 아직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욕정에 사로잡혀 아무 생각 없이 달려드는 놈들에게 한 방씩 칼맛을 선사해 줄 검이. 검을 제거하지도 앉은 채 가장 먼저 차지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놈들은 그녀의 칼에 피를 쏟고 죽어나갔다. “이게 어딜!” 그러나 한 병사가 그녀의 오른팔을 밟아버리면서 리엔느는 더 이상 검을 놀릴 수가 없었다. 허리를 무거운 돌이 짓누르듯 한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깔고 앉았다. 그런 다음 억센 손이 옷을 찢어……버리려고는 했는데 질긴 나무줄기 성분이 있는 옷이 찢어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역시……벌써 세 번째 당해보는 일이다. 처음 당했을 때 인간을 불신하게 되었고 두 번째 당했을 때는 인간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당하기 싫었다. 자신의 죽음은 아쉬워하지 않는 엘프족. 하지만 주신을 가장 숭배하는 종족인 만큼 자살을 하지 않기에 엘프족 여성들은 속수무책으로 이런 강간에 당해야만 했다. 그녀는 제압당하지 않은 왼손으로 숨겨둔 단검을 남몰래 꺼내어 멍청하게 그 질긴 옷을 찢으려는 병사의 목을 찌른 뒤 오른팔을 속박하는 다리에 찔렀다. 그런 다음 가까스로 일어서서 그녀는 갑주를 풀어 제친 놈들을 하나 둘씩 베었다. 다리가 온전치 못했지만 남자라도 무기도 없는 일반 병사들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계속해서 반항하자, 병사들은 창을 들고 리엔느에게 위협을 가했다. “운다이론!” 정령을 소환하여 계속해서 대항하자, 일반 병사들은 모두들 창대를 거두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덕에 마음이 약하고 계급이 낮아서 참여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구경이나 할까 하던 병사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졌다. 그러던 차에 포위망이 한 줄이 모세의 기적처럼 갈리고 그 뒤로 망토를 날리는 기사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서 검이 뽑혀져 나오고 그 은빛을 띄던 검이 번쩍였다. “아윽!” “멍청한 놈들. 계집 엘프 하나를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열 명이 넘게 당하다니……. 네놈들은 할 자격도 없다. 따라와!” 기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리엔느를 쳐다보는 병사들을 이끌고 엘프들이 최후의 전투를 벌이려는 목책 쪽으로 달려갔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지만 성 내부를 거의 장악하고 백 명이 넘는 여성 엘프 포로들을 포획하는 바람에 병사들이 저마다 엘프 여성들을 범하거나, 범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원래는 남아 있는 엘프들을 노획하자, 라는 명분으로 공격을 주도했었지만 여기저기서 포로들을 노획하자, 한 명당 수십 명 씩 병사들이 붙다 보니 한 구석에 몰린 병사들을 공격하는 병사들이 적어져 지휘부의 명령이 일단은 전투에 집중하라고 바뀐 것이다. 검에 가슴이 뚫린 그녀가 누워 있는 땅바닥에는 분수처럼 솟던 피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붉은 피는 메마른 땅바닥을 적시는 것으로 모자라 그녀 주위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눈에 초점은 사라져갔다. 임시로 신목이 있는 마을 구역에 만들어 둔 목책. 이미 마을은 유린당했고 성은 함락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그냥 버티기일 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약 800여 명 가량 되었던 전투 인원은 200여명으로 줄어 있었다. 목책 내 구역에는 300이 넘는 엘프들이 있었지만 그 100여명의 인원들은 전투인원이 아닌 아이들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죽거나 현재 포로가 된 상태였다. 여자 엘프들을 포로로 얻고서 능욕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방비할 태세가 갖춰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병력이 이 최후의 거점을 빼앗기 위해 오고 있었다. 유카나와 에르디 쥬레이나란 역시 기절한 아크를 들처업고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참. 냄새 대마왕아. 약병 몇 개 남았냐?” “이제 두 개 뿐이다.” 남자들은 많이 죽었지만 여자들은 대다수가 포로로 잡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조금만 버텨내면 들어놓은 보험이 효력을 발휘할 터였다. 쥬레이나란만은 그들이 어느 정도 근접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봐 꼬맹이.” “으, 응.” “그만 쳐 울고. 그 칼 똑바로 잡아라. 그리고 내가 말해 주는 주문들을 외쳐라. 알았냐?” 이길 수는 없겠지만 이 조악한 내부 요새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열쇠는 유카나였다. 아크가 맡긴 프로즌 아이스. 비록 주인이 아닌 경우에는 잘 말을 듣지 않지만 실버 일족의 쥬레이나란이 컨트롤하고 유카나가 그 많은 마나로 7서클 급 마법만 지속적으로 날려댄다면, 이쪽 인원의 50배가량 되는 팬크라프트 군과 맞서 싸울 수 있었다. 여자를 마음껏 해도 좋다는 실책 성 지휘를 한 노포크 백작은 간신히 병력을 추슬러 목책 앞에까지 진군해 올 수 있었다. 병사들의 전의는 끌어올릴 수 있었으나, 여자에게 정신이 팔린 병사들이 제대로 싸움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시작된 전투는 어느새 밤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공성이 수십일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건만 그만큼 전투가 치열했고, 지휘부는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무조건 밀어붙이기를 택했던 것이 그 규모 큰 전투를 하루 만에 거의 승패를 갈라 두었다. 성내 일부 구역으로 숨어 든 엘프들과 굳이 밤에까지 전투를 펼쳐야 겠느냐는 간언에 델른버 공작이 죽고, 알퐁스 에렉 후작도 뭔가 큰 충격을 받은 듯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총지휘권을 가진 젤리커는 빨리 끝내버리라고 노포크 백작에게 명령했다. 하기야 이제 남은 것도 얼마 되지 않는 병력이니 거의 끝났다고 봐야 옳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드잡이질을 하기에는 병사들의 피로도가 쌓인 것을 심각하게 본 노포크 백작은 먼저 항복하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물었다. 대답은 당연히 NO였다. 그리하여 횃불들이 켜지고 야전이 벌어지려는 찰나였다. “백작님! 저기서 웬 여자애가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여자애?” 갑자기 무슨 일일까? 생각하던 노포크 백작은 팬크라프트 진영에 가까이 다가 온 소녀의 외침을 듣고는 어이가 없어 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하였다. “……쟤가 지금 뭐라 하든?” “……적장은 나와서 나와 한 판 붙자……라고 한 것 같습니다만…….” “미쳤대니?” “제가 보기엔 정상이던 것 같습니다만…….” “하긴 엘프라면 어려 보여도 100살은 족히 먹었겠지, 그만큼 검 수련도 많이 쌓았을 테고…….” “귀가 안 뾰족하던데요?” “그럼 뭐야! 도대체!” 그러나 팬크라프트 측에는 지금 부상을 입고 후방에서 누워 있는 젤리커를 제외하고는 소녀의 정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는데 전부 죽었다. “얘 돌아가서 잠이나 자거라. 좀 더 크면 아저씨가 이뻐해 주마. 너희 어린애들까지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응?” “저, 적장은 어서 나, 나오라니까!” 다른 이들에게는 유카나의 외침이 허세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카나 자신도 전장이 처음인지라 이런 데서 호기롭게 외치는 것에 익숙치않았다. 그것이 기세가 대단함에도 팬크라프트 측에서 유카나를 무시하는 이유였다. “참 살아남으려고 별 수를 다쓰는구만. 어린애 내보내서 시간 좀 끌겠다 이거지?” 한 병사가 툭 내뱉은 소리에 노포크 백작은 동감했다. 저런 어린 여자애 내보낸 이유가 무언가? 어린애는 쉽게 못 죽이리라 생각하고 시간을 끌어 보겠다는 의도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방패수들! 저쪽에서 날아올 화살에 유의하여 진군한다. 그리고 몇 명은 저 꼬맹이를 책임지고 포로수용소까지 데리고 가라. 알았나? 조그맣다고 밟지 마라.” 결국 팬크라프트 측은 유카나를 신경 쓰지 않고 진군을 시작했다. “주, 죽고 싶으면 오지 마아!” “에구 귀여워라. 이따가 아저씨가 귀여워해 주마! 킬킬킬!” 정말 죽을 지도 모르고 병사들은 유카나를 놀리며 계속해서 진군했다. 그리고 유카나가 들고 있던 은빛의 검이 빛났다. 곧이어 진군중이던 병사들에게 빙한의 폭풍이 몰아닥쳤고 얼마 안 가 폭풍이 걷히고 그들은 모두 몸에 얼음조각이 박힌 채 얼어죽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 유카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으로 인하여 죽은 모습을 보자,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쳇. 어려도 너무 어리군. 어째서 암컷들은 저런 걸 보기 싫어하는 지 모르겠다니깐.” 쥬레이나란이 투덜거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소모하여 유카나에게 환영마법을 건 뒤 전음을 이용해 말했다. ‘꼬맹아. 네가 죽이지 않으면 네 오빠도 죽고, 에르디도 죽고, 나도 죽고, 여기 엘프들도 모두 죽는다. 너도 죽……지는 않겠군. 그치만 너는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오빠한테만 허락한 그곳을 빼앗기며 노예로 살아야 하고. 그런데도 죽이지 않을래? 내가 환영을 걸어 놓았으니 죽는 모습이 더 이상 끔찍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공격해 오는 적은 무조건 죽여라…… 알았냐! 그 따위로 사람 하나 죽이지 않을 거면 기사니 뭐니 다 때려치우고 돼지랑 같이 살면서 황후나 해 먹어라!’ 쥬레이나란의 협박에 유카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인이 되기로 했다면 살육의 경험은 당연한 것. 살인을 할 수 없는 무인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나 다름없었다. 유카나로 인해 선발로 진군하던 이들이 전멸하고 몇몇 기사들만 남자, 팬크라프트 군에서는 그로 인한 동요를 막을 수 없었다. “저, 저 꼬맹이는 뭐야?” “그, 글쎄다.” 팬크라프트 군이 잠시 멈춰 서자, 쥬레이나란은 본격적으로 유카나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꼬맹아! 내가 하는 대로 잘 따라해라. 알았냐?’ ‘으응.’ ‘자! 더 이상 부하들을 희생시키지 말고 나와 1대 1로 승부를 내자.’ “……자! 더, 더 이상 부, 부하들을 희생시키지 마시고 나와 1대 1로 승부를 내자!” 왠 마시고? 쥬레이나란은 유카나가 더듬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녀가 해야 할 대사들을 일러 주었다. ‘팬크라프트의 겁쟁이들아. 어린 여자애가 무서워서 설마 나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패, 팬크라프트트의 거, 겁쟁……이들아 어린 여자애가 무, 무, 무, 무서워서 설마 나, 나오지 못하……는 건 아, 아니겠죠?” 끝내 마지막에 존대말을 써 버리는 유카나를 보며 쥬레이나란은 터지는 속을 참지 못했다. ‘잘 나가다가 뭔 아니겠죠야 이 멍청아!’ “자, 잘 나가다가 뭔 아니겠죠야 이 머, 멍청아!” ‘으이구 답답해 미치겠네!!! 너 바보냐! 그것까지 따라하면 어떡해!’ “으이구 다, 다, 답답해 미치겠네! 너, 바, 바보야? 그것까지 따, 따라하면 어, 어떡해?” 전장의 모두는 유카나를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적을 앞에 두고 저게 무슨 원맨쇼란 말인가? 쥬레이나란은 유카나가 완전히 얼어붙었음을 그제야 알아채고 더 이상 답답하다는 소리는 표현하지 않기로 했다. ‘야 너 이제 말 하지 마! 알았어! 음성변조로 내가 할 테니까!’ “……야! 너, 너 이제 말 하지……마세요. 아셨어요. 음성변조로 내, 내가 할게요.” ‘흐미 빡돌아!’ “흐미 빠, 빠……(뭐였지?)빡!” 쥬레이나란은 바로 뛰쳐나가 유카나의 입을 틀어막고는 그녀의 뒤에 서서 말했다. “이제 따라하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마. 알았어.” “이제 따라하지……아 알았어.” 팬크라프트도 엘프측도 이 어처구니없는 원맨쇼에 할말을 잃고 있었다. 곧이어 유카나는 입도 뻥긋 않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유카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팬크라프튼지 팬프라이팬인지 콘크리튼지 팬티라이팬인지 팽킹라이킹인지 하는 대가리에 똥 든 새끼들아! 사내새끼로 태어났으면 쪽팔린 줄을 알아야지 여자애 하나한테 쫄아서 그 지랄이냐. 달고 있는 게 아깝다. 달고 있는 게 아까워! 나한테 덤비지도 못할 거면 그거 떼 버려라! X만한 것들아!” 머뭇거리며 귀엽게 말하던 유카나의 입에서 갑자기 매우 험한 욕설들이 튀어나왔다. 정작 본인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유카나였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팬크라프트 측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뛰쳐나온 소년과 뭔가 모종의 썸씽이 있었으려니 생각하고 유카나를 의심치는 않았다. “어쩝니까? 대단한 마법사인거 같은데? 캐스팅도 없이 저런 마법을 쓰다니…….” “누가 나가 보겠는가?” 어린 여자애를 그것도 하는 짓거리도 얼굴도 모두 귀여운 여자애를 쉬이 죽이겠다고 나서는 기사는 없었다. 그때 한 명의 기사가 몸을 일으켰다. “흐흐 전우들! 저런 어린 계집애 따위한테 쩔절매다니 남자답지 못하군. 내가 당장 가서 보쌈하고 오지.” ‘……저 새끼 또 시작이다.’ 기사들은 몸을 일으킨 한 기사를 보고는 모두들 공통으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같은 기사단의 동료이자, 검술 실력이 기사단 내에서도 정평이 난 그의 이름은 러리타 코프렉스 자신의 저택에 어린 메이드들만 두고 즐긴다는 음흉한 소문이 자자한 어린 여아를 탐하는 독특한 색골이었고 실제로도 어린 여자애들을 밝혔다. 특히 어린 황녀의 호위를 자처했다가 황녀에게 뺨맞고 쫓겨났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거기다 방금 전 포로수용소에 갔다 온 그는 ‘어린 애가 없어~’ 라며 어린 엘프들이 붙잡히지 않은 사실에 한탄하다가 동료들에게 밟힌 전과까지 있었다. “이봐 러리타 어지간히 하지 그래?” “음? 내가 뭘?” “이상한 생각하고 나가는 거. 모를 줄 알아?”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어린애 밝히는 변태.” “……흠흠 다녀오마!” 러리타는 부정하지 않은 채 앞장서서 나섰다. “팬크라트 기사단의 러리타 코프렉스가 그대의 결투 신청을 받아들이겠다! 그대의 이름을 밝혀라!” “루, 루드비안 제국의 엘레노어 백작가 영애, 유, 유카나 입……니다.” 쥬레이나란은 못 봐주겠다는 듯 강철팔로 자신의 얼굴을 팍 내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게 뭐야? 도대체. ‘야 그따위로 말하지 말랬지! 으휴휴휴휴휴……죽이는 거나 똑바로 해. 이제 네 눈에는 저 인간이 동물로 보일 거야. 닭 목 딴다. 하는 셈 치고 죽여 알았어!’ ‘어, 어떻게……나 닭 목 따 본적 없어…….’ ‘으이그! 알았어 인형으로 바꿔줄께!’ ‘저, 저렇게 귀여운 걸?’ ‘니가 지금 나한테 맞고 싶어서 환장했지? 내가 꼬맹이고 여자면 못 때릴 줄 알아! 그냥 인형에 솜이 빠져서 다시 꼬맬라고 배를 가른다고 상상하든지, 인형에 바늘을 쑤신다고 생각해 알았냐!’ ‘아, 알았어.’ 인형에 바늘을 꽂는다는 생각을 갖자, 유카나의 눈에는 러리타가 곰돌이 인형으로, 그녀의 손에 있던 프로즌 아이스는 바늘로 보이기 시작했다. ‘바늘을 꽂는다. 바늘을 꽂는다.’ 곰돌이 인형은 파리채를 들고 유카나를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유카나는 파리채를 잽싸게 피한 뒤 곰돌이 인형에 바늘을 꽂아 넣었다. 바늘에 찔린 인형의 뱃속에서 솜이 튀어 나왔다. ‘잘했어!’ ‘으, 응.’ 인형에서 튀어나온 솜털들이 유카나의 몸 여기저기에 묻었다. 그러나 유카나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달랐다. “어, 어떻게 러리타를……!” 유카나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싸움에서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특히 팬크라트 기사단 출신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인 러리타가 별 힘도 못 써본 채 단 1합 만에 당했다는 것이 더더욱 믿겨지지 않았다. “제길 뭔가 속임수가 있는 게 틀림없어! 이번에는 내가 나가 싸우겠다!” 다른 한 명의 기사가 검을 잡고 달려 나가 유카나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 역시 채 3합을 견디지 못하고 유카나의 프로즌 아이스에 찔려 얼어붙어 버렸다. “속임수 따위가 아니다! 저 꼬맹인 진짜 강해!” 그 뒤로 몇 명의 기사들이 더 뛰쳐나가 유카나와 검을 나눴으나 모두 돌아오지 못하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당장 젤리커 공작 각하에게 다녀와라 어서!” 당황한 노포크 백작은 혹시라도 깨어났을지 모를 젤리커 공작을 찾았다. 곧이어 다녀온 병사의 보고는 실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저, 절대 저 여자애와는 1대 1로 맞상대 하지 말라고 합니다.” “뭐? 왜냐?” “놀랍게도 저 여자애는 소드 마스터 급 무인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그 말을 들은 노포크 백작은 유카나와 맞서 싸우고 있는 기사를 바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 역시 돌아오지 못하고 시체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라고 하시던가?” “합공으로 없애버리라고 하십니다.” “……알았다.” 유카나의 주위에는 찢어진 인형이 열 개가 넘었다. 모두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인형들이다 보니 그다지 끔찍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곧이어 유카나는 수십개의 인형들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법을 날려라! 알았냐! 그 칼은 널 주인으로 대충 인정한 듯 하다. 그러니 어서!’ “으, 응.” 유카나는 프로즌 아이스에 마나를 주입해 거의 없는 딜레이를 이용 아이스 스톰 연발을 먹였다. 그 얼음 폭풍에 휩싸인 팬크라프트 군들의 수는 자꾸만 줄어갔다. “전원 활시위를 당겨라!” 그리고 각종 마법들이 난무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마나의 창고라고도 할 수 있는 유카나는 정말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사용자를 빙한마법에 대해서만큼은 대마법사 급을 만들어 주는 아크라우스의 검 프로즌 아이스를 이용한 7서클 전체마법은 수십 방을 날려 대었음에도 불구하고 체내의 마나가 제법 남아 있었다. 그녀의 활약에 힘입어, 반수가 넘는 팬크라프트 군을 제거할 수 있었다. 낮쯤에 나왔어야 할 전체마법을 주로 하는 전투 방식이 지금에서야 나온 것이다. 아이스 스톰 한 방에는 잘 죽지 않는 기사들은 어느새 유카나를 돌파해 엘프들과 치열한 일전을 벌이고 있었다. 에르디와 쥬레이나란이 분전해 주었지만 근접전투가 벌어지자 엘프들 역시 피해는 자꾸 생겨나고 있었고 유카나에게도 근접해 온 적들이 있어 막무가내로 마법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날은 어느새 밝아오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잠도 안 자고 싸움으로 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힘은 좀 떨어졌을지 몰라도 전혀 피곤한 기색도 없이 싸우는 쥬레이나란에게 아테라인이 다가가 말했다. “에드워드 군이라고 했나?” “그렇소만.” “부탁건데 인간인 자네들은 이제 이만 빠져주게.” “왜?” “아크 군. 에르디 군. 에드워드 군 그리고 저기 유카나 양. 우리 엘프족을 도와 준 것은 감사하나 이제는 틀린 듯 싶네. 자네들까지 사로잡혀 욕을 볼 수는 없는 노릇이야. 그러니 우리들이 적들을 막고 있는 틈을 타 도망치도록 하게나.” 여기는 우리가 막을 테니 너희들이라도 도망치라는 권유. 하지만 쥬레이나란은 삐딱한 말투로 그의 말을 씹었다. “흥! 감히 엘프 따위가 위대한 일족의 뜻을 막는 이유는 무엇이냐?” “에?” “우리만 도망치면 그 변태 인간 놈을 무슨 낯으로 봐! 그러니 도망 못 가. 놈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나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니 닥치고 싸움에나 신경 써라.” “하지만!” “걱정 마. 이겨. 수만에 달하던 적병도 이제 겨우 수천이야. 거의 반에 반이 준 셈이지. 거기다 우리가 든 마지막 보험이 곧 오고 있으니 괜찮아.” “아까부터 보험보험 하는데 그것이 도대체……?” “아따! 그 길쭉한 귀때기는 장식이야! 한떼의 군마 소리가 들리지도 않아?” “그것이……보험이었나? 나는 저쪽의…….” “어쨌든 조금만 더 버텨. 그리고 적을 죽이기보다는 우리편이 죽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알았네.” 목책이 거의 뚫렸다. 그것을 보고 유카나는 칼에 맞을 각오를 하고서 아이스 스톰을 또다시 발동시켰다. 간신히 상대하던 기사의 검을 피하고 진군하던 병사들을 얼려 잠시 동안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유카나도 이제 점점 싸우기에 체력이 딸려왔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드래곤 하트를 섭취하는 기연으로 간신히 마나의 힘으로 버틸 뿐이지, 어린 소녀의 몸으로는 장시간을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자명했다. 선봉의 유카나가 휘청거리자, 해일처럼 몰려오던 파도는 더더욱 높아졌다. 지금까지는 1대 1이나 오히려 이쪽에서 많은 수로 상대할 수 있었던 엘프들도 앞에서 침입을 막아주던 유카나가 힘을 다하자, 상황이 급반전되어 점점 한 사람당 상대해야 하는 수가 늘어났다. “이, 이제 끝이로구나!” 피를 뿌리며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며 그들은 절규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쥬레이나란의 입가의 미소는 점점 짙어져만 갔다. 지금은 비록 저들에게 살육자의 권리를 주었지만 곧이어 살육당하는 것은 저들이 될 것이기에……. “……왔다.” 성벽 밖에서 우레와 같은 총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 무슨 일이냐!” “루드비안의 총병대입니다!” “뭐, 뭐이!” 총의 경우 전투에 앞장서서 달리는 기사들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고 비싼 무장을 갖춘 병사들에게도 그다지 효용성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병사들의 주가 되는 이들은 주로 노역병들. 파푸치아 숲 길 공사에 동원된 병력들에게 지원되는 이들에게 방탄마법용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그나마도 전투를 거치며 죽어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병력의 수는!” “약 1천 정도로 보입니다!” 그 보고에 당황하던 기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 거리를 이렇게 빨리 당도할 수 있는 것은 소수정예 부대 뿐. 일단 엘프들부터 소탕하고 성을 방패삼아 농성을 하면 1천의 총병대 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성벽이 무너져 내리자 그들은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린 성벽에는 하얗게 센 수염을 휘날리는 왜소한 체구의 노장이 서 있었다. 비쩍 마르고 주름진 얼굴을 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위를 지닌 루드비안의 수호신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달려 온 것이다. 기사들 몇이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빛나는 그의 무위에는 추풍낙엽과도 같이 쓰러져 나갔고 머리가 꺾여 버린 병사들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한 무인의 등장에 허둥지둥하다 총병대의 총알에 몸이 뚫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후퇴! 후퇴하라!” 결국 쌍방 합격. 특히 그레드릭 대공의 무위를 이겨내지 못한 팬크라프트 군은 전면 퇴각을 감행했다. 루드비안 제국의 총병대는 굳이 그들을 쫓지 않고 멀리서 사격으로 수만 줄일 뿐 더 이상 그들을 쫓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는 팬크라프트 측의 큰 피해로 끝났다. ‘부탁한다…….’ “으으음.”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저녁나절 즈음에 아크는 정신을 차렸다. “무슨 꿈이었더라?” 뭔가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은데 깊은 수면에 빠져 있어서 였는지 생각나는 것은 부탁한다. 한 마디 뿐이었다. “흐아아암! 개꿈이겠지……헉!” 몸을 일으키자 옆의 침상에는 쥬레이나란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누워 있었다. 톡 튀어나온 눈에 잠시 놀란 아크는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병장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어떤 결과로든 결판이 난 것이리라. “어떻게 됐냐?” “이겼다. 쩝 노친네가 지 혼자 먼저 달려 왔었으면 전투가 더 빨리 끝났을 텐데 아쉽구만.” 쥬레이나란은 마나가 거의 고갈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싸움에 임하다 결국 전투가 끝나자 그 역시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서너시간 가량 푹 쉬면 나을 수 있었던 그가 여태 아픈 척 누워 있는 이유는 괴상한 찰거머리 하나가 생겼기 때문이다. “유카나는?” “그레드릭 대공한테 정식으로 기사 작위를 받고 나서 지금 전쟁의 영웅이 되어서 불려나갔다. 나만큼이나 걔가 전공이 컸거든.” “에르디는?” “멀쩡해.” “다행이군.” “엘프들은 많이 죽었냐?” “남자들은 대부분 죽어버렸고 남은 건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이다. 성비가 엄청난 여초현상으로 변해버렸더군.” “아테라인 일가의 희생자는 없겠지? 여자들이 대부분 살아남았다면?” “그건 모르겠다. 여자도 몇 명 죽기는 죽었으니까. 욕보인 녀석들이 많긴 하지만.” 욕보였다라……. 아크는 대충 나아가는 몸을 일으켰다. 추운 겨울이라 시체 썩어가는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고 지금 지금 그의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향긋한 청포도주의 냄새였다. “웬 술 냄새?” “개코같은 놈. 애도와 대승의 자축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하암 술이나 마실까? 나가자.” “……웬 미친놈이 하나 있어서 나가기가 뭐하다.” “미친놈? 누군데?” “날 보고 형이란다.” “널 보고?” “그려 팬크라프트 쪽의 기사인 모양인데……꼭 거기에 나오는 놈하고 비슷한 갑옷을 쳐 입어 놓고서는……포로로 잡혀 있는데 나더러 형이래.” 그제야 아크는 이전에 맞상대 해 보았던 갑옷을 뒤집어 쓴 기사를 떠올려냈다. “푸, 푸하하하하하! 그거 참 걸작이네! 기왕 그렇게 된 거 네가 형 해줘라.” “……변신이나 하고 나가야겠다. 쓰뎅.” “여자로……하는 건 어때?” “닥쳐 새꺄. 한 번으로 족해.” “하긴 네가 새삼 변신하고 나가면 널 이 모습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이 놀랄 거다. 그러니 그냥 나가는 게 낫겠다.” “휴우……이미 처형시켰거나 가둬 놓기만을 바래야겠군.” 쥬레이나란은 한숨을 쉬며 아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무너지고 파괴되고 피범벅에 시체들이 나뒹구는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에서 그들은 죽은 이들의 애도와 함께 승전을 자축하고 있었다. “대공 전하! 유카나! 에르디! 아테라인 님!” 주역들이 모여 있는 중앙에 나간 아크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들을 불렀다. “아 어서 오도록 하게나! 이 승전의 기쁨을 나눠야지.” 모두들 웃고 있었다. 하지만 엘프들의 눈 밑에는 눈물자국이 아직 남아 있었다. 오직 그레드릭 대공이 데리고 온 정예병들만이 겉과 속 모두 웃을 수 있었다. 수가 팍 줄어서 그런지 아크는 쉽게 나머지 엘프 일족 역시 찾아낼 수 있었다. 쥬레이나란의 말대로 여자들은 대부분 살아 있었다. 아마 이제 대부분 남편과 짝을 잃은 미망인 들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다지 기분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크 역시도 억지로나마 웃는 이들을 위해 웃어 주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을 위해 애도의 잔을 올렸다. 아테라인의 거처는 파괴되지 않았다. 촌장의 집인데다가 아직 파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루드비안 제국의 일행들은 그의 집에서 묵었다. 특히 아크는 리에나와 유카나 두 어린 소녀들을 데리고 잠자리에 듬으로서 로리의 마신의 질투를 샀다.(오해하지 말자 믿기지는 않지만 피곤해서 그냥 잤다고 한다) ‘부탁한다…….’ “헉!” 아크는 또 부탁한다로 끝나는 꿈을 꾸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햇빛의 강도로 보니 아마 해는 이미 중천에 뜬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부지런한 엘프들도 대부분 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피곤한 탓이리라. 그러던 아크는 윗도리가 축축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겨울이라 땀 흘릴 일은 없었고……설마 이 둘 중 하나가 지린 게 아닐까 싶었지만 흔적이 없었다. “침 흘렸나?” 입을 슥 닦았지만 침이 말라붙은 흔적 같은 것도 없었다. 혹시나 리에나나 유카나가 흘린 침일지도 몰라 녀석들의 이부자리를 들춰 보았다. 유카나의 자리는 멀쩡했지만 리에나가 누웠던 자리에는 축축한 기운이 남아있었다. “이 녀석이 나이가 몇 살인데 여태껏 침을 흘리고 자나?” 그러나 몸을 떨며 눈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리에나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듣자, 더 이상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다. “엄마……가지마…….” 그 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웠는지 꼭 리엔느가 죽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뭐야 리엔느가 죽기라도 했나? 체……가만……!’ 평상시 같았으면 단순 잠꼬대로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하는 잠꼬대는 의미가 틀렸다. 어딘가 모르게 불안하고 몸이 떨리는 것이……. 그러고 보니 꿈속에서 귀가 뾰족한 엘프가 나왔었던 것 같았다. 그 엘프가 한 말은……. “리에나를……부탁 한다?” 아크의 눈에서도 이유 모를 눈물이 떨어졌다. ///////////////////////////////////////////////// 드디어 중요 캐릭터를 한 명 죽여버렸습……(퍽! 살려내 씹숄래야!) 그렇지만 6권 예고를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리엔느의 모 대사를. 현재 그 대사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죠.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작가의 억지스러울지도 모를 짜집기를 기대하세요...(푸슉 푸슉 푸슉 커헉 고마하쇼 마이 묵었소! 푸슉 커허어억!) ///////////////////////// 연참은 아니지만 3일 동안 연재할 분량 하루에 쏟아부었습니다. 잘했죠???(쿠엑 바, 밟지 마세요!!!) “……그래……죽었네.” “……!”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었지만 아테라인은 별 표정의 변화 없이 딸의 죽음을 입에 담았다. “……거짓말 이죠?” “따라오게.” 못 믿을 걸 예상했다는 듯. 그는 묵묵히 아크를 데리고 백색의 천을 두른 시체들이 놓인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서는 한 명 한 명씩 벗겨 확인해 보더니 말했다. “여기네.” “……!” 자신의 죽음을 아쉬워하지 않고 신을 섬기기 위해 간다고 믿는 엘프들은 죽을 때의 표정 만큼은 마치 자는 듯이 포근했다. “자, 자는 거 아닙니까?” “현실도피 따위는 하지 말게……리엔느는……죽었어.” “……크, 크, 크, 크, 크…….” 고개를 숙여 앞머리가 눈을 가려버린 아크가 괴성을 내기 시작했다. “……?”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곧이어 그는 죽은 사람 앞에서 폭소를 터뜨렸다. 장례식 같은 분위기에 뺨 싸대기 얻어맞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낄낄낄낄 키키키키키키 캬캬캬캬캬캬! 푸하하하하! 크캬캬캬캬캬!” 그러나 누구도 함부로 그를 말리거나 달래지 못했다. 울음을 터뜨린다면 등이라도 두들겨 줄 수 있지만 갑작스레 웃다니……충격 받아 정신이 나간 건가? 원래부터 어딘가 정신을 팔아먹고 다니는 것 같은 인간인지라……. “크크크크크크크크 으하하하하하……으흐흐흐흐……제기랄! 왜 죽어 왜! 빌어먹을!” 눈에는 눈물이 잔뜩 맺혀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에서는 험한 욕설만이 쏟아져 나왔다. “애비도 없는 딸내미 놔두고 죽으니 좋냐! 앙! 그래서 편히 죽었냐! 그러면서 부탁한다고! 뭘 부탁해! 뭘! 왜 쳐 죽고 지랄이야! 왜! 1000년 넘게 사는 걸 왜 죽어 왜!” 그러더니 대번에 시체를 붙들고 흔들어댔다. “일어나! 어여! 자지마! 왜 자! 이런 데서 자지 말라고! 눈깔은 장식으로 달아놨어! 왜 쳐다보도 못하고 있어!” 온기가 있던 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무슨 나무인형을 만지는 것 같았다. 리엔느의 시신이 입고 있던 옷자락을 붙잡고 흔들어 대는 아크를 보고 쥬레이나란이 보다 못해 한 마디 했다. “야 저 새끼 미쳤냐? 노인장! 빨랑 끌어내! 저러다가 시체잡고 육수쇼라도 하겠어!” 쥬레이나란이 아크를 어떻게 보고 있는 지 드러나는 대사였다. 놈의 본성은 확실히 이런 상황에서도 방심할 수가 없다. 저러다가 옷자락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해 버리기 전에 일어나!’ 까지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군! 그만하십시오! 이미 죽었습니다!” 에르디가 아크를 잡아 말렸다. 그러나 에르디의 힘으로는 아크를 이길 수가 없었다. “이거 못 놔!” 있는 힘껏 밀쳐버리자, 에르디는 나가떨어지는 수준으로도 부족해 몇 미터 가량을 붕 날아갔다. 그러자 뒤에서 보고 있던 그레드릭 대공이 나섰다. “그만 하게! 이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오나!” 그레드릭 대공의 힘은 아크로서도 이겨 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녀의 시신을 잡고 놓지 않았다. “이것 놔요! 때리면 살아날지도 몰라요! 전기 충격이나! 기타 그런…….”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봤군. “이런 제기라알! 누가 너보고 죽으래! 엉!” 그때 아크의 앞으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짝! 역시 시체를 모욕하고서 싸대기 안 맞는 놈은 없는 법. “이제 그만해! 너만 슬픈 줄 알아! 그 따위로 발광해봐야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더 이상 언니 시신 가지고 헛짓거리 하지 마!” 루리엘이 끼어들어 싸대기를 날렸지만. 보통 맞고 나서 조금 잠잠해지는 평상의 패턴과는 다르게 아크는 오히려 더 발광했다. “시끄러! 웃기지마! 살아나 분명히 살아나!” 그 고성에 그레드릭 대공을 비롯한 모두는 귀를 틀어막았다. 내공이 실린 경천동지할 외침이었기에 몇몇은 고막이 터지기도 했다. 결국 그 난동을 참지 못한 이가 있었으니……. “야 이 미친 새끼야! 고만 하고 안 닥치냐! 이런 병신 또라이 같은 새끼가 어지간히 지랄을 떨어야지!” 그러자, 아크는 그레드릭 대공마저 뿌리치고 쥬레이나란에게 다가갔다. “야 니가 살려봐! 살려보라고! 위대한 일족이라며! 드래곤이라며! 네가 한 번 살려봐!” “하~ 이 새끼 진짜 말이 안 통하네……방법이 하나 있으니까! 닥치고 들어나 봐!” “뭐어?” 자리의 모두는 쥬레이나란의 발언에 놀람을 금치 못했다. 살려낼 방법이 있다고? 미친 듯이 날뛰던 아크도 귀가 솔깃했는지, 더 이상 날뛰지는 않았다. “뭐, 뭔데.” “……체……좋아 얘기해주지. 아주 간단해.” “그, 그게 뭐냐니까?” “언데드.” 그 말에 더더욱 심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뭐, 뭣!” “그건 안 되네!” “그것만큼은 안 돼!” “죽은이를 욕보일 참인가!” 아크는 몰라도 나머지 이들의 맹렬한 반대가 이어졌다. 저주받은 존재인 언데드로 되살리라니 그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던가? 언데드로 되살아날 경우 이미 생명이 다한 육체는 움직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도 없고, 서서히 부패하여 결국에는 뼈다귀밖에 남지 않는 그래서 어지간하면 절대 그 방법만큼은 쓰지 않는 최악의 술수였다. 모두의 격한 반응에 쥬레이나란은 진정하라는 듯 양손을 뻗었다. “아, 아 너무 그렇게 반응하지만은 말라고. 내가 말하는 언데드는 그런 저급 언데드 좀비 같은 게 아니니까.” “……그럼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 그레드릭 대공이 묻자, 쥬레이나란이 대답했다. “서두가 기니까 똑바로 들어. 엘프족은 주신이 만들어 낸 가장 신에 가까운 천사족의 인간계의 개체야. 주신의 축복을 받은 만큼 긴 수명과 아름다운 외모, 거의 없는 욕심, 선천적인 정령과의 친화력을 타고 태어난 것이 바로 그들이지.” “그래서 그게 뭐?” “새꺄! 지금 말하고 있으니 닥치고 듣고나 있어! 천사족의 아름다움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사실. 그렇기에 암흑신은 그런 주신의 천사들을 부러워하여 그 자신도 그와 비슷한 종족을 탄생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왜냐? 그가 창조해 낸 암흑의 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마족들은 거의 모두가 괴수의 모습이고 설사 서큐버스 같은 아리따운 존재가 있다 해도 그들에게는 천사와 같은 성스러움 초췌함 고귀함 등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신화에서 보면 주신을 배신한 하급 천사인 아리엘을 암흑신은 별 볼일 없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마계에서 중용했다는 기록도 있고. 지금부터가 중요하니 잘 들어. 내가 이전에 읽었던 일족의 고서에는 어떤 특이 종족에 대한 소개가 있었어. 고대에 인간족들과의 전쟁에서 도덕적 규범을 만들기 위해 주로 주신을 섬기던 인간들을 예뻐하여 그들에게 주신의 성검이라는 신물을 내려 주는 등으로 인간들을 지원해 엘프들을 숲으로 쫓겨나게 한 주신을 원망하며 죽어가던 한 엘프들의 일족이 있었어. 그때 평소부터 천사족들을 탐내던 암흑신이 그들을 유혹했다. 주신을 버리고 자신을 섬기면 되살려 주겠다고. 주신이 이미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한 그들은 그 제안에 응했지. 그러자 죽어가는 자들뿐만 아니라 이미 죽었던 엘프들 모두는 살아났다.“ 아테라인이 놀란 듯 외쳤다. “……다크 엘프!!!” “그래. 다크 엘프로. 그런 전설상에서만 알려져 온 종족이긴 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우리 일족의 고서에는 실제 그들을 만났던 기록 등이 남아 있었다. 다크 엘프들은 성에 대해 문란하고 욕정이 강하고 육수쇼를 할 수는 있지만 생식 능력은 없다고 하더군. 대신 한 번 죽었다가 마의 힘으로 되살아난 만큼 엘프들보다 더 오랜 수명. 그러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는 등. 온갖 암흑신의 축복을 받게 되지. 허나 생식 능력이 없는 만큼 불의의 사고로 죽는 다크 엘프들도 분명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그들의 수는 거의 줄지 않았어. 왜 그럴까?” 지략의 기사라 그런 지 머리 회전이 빨랐던 아크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죽은 엘프들이 다크 엘프로 다시 태어났다는 말인가?” “정답이다.” “그런! 말도 안 되네! 내 딸을 그런 암흑의 존재로 만들 수는 없어! 아테라인이 소리쳤다. “우리 종족의 특성답게 욕심이 없고, 주신의 곁으로 갈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런데 주신을 배신하고 그런 암흑의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일세! 리엔느도 그렇게 살아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거야! 다신 그런 생각 따위 하지 말게!” 죽은 이의 아버지가 저토록이나 반대하면 살려낼 방법이라도 강행하기 힘들었다. 아크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아테라인에게 외쳤다. “당신은! 친 딸을 잃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예! 나 같으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설사 언데드가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살리겠습니다!” “그것이 그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는가!” “그거야 살려봐야 아는 것이죠! 살아나길 바라는지 이대로 죽어버리는 것을 바라는지 어떻게 압니까! 아직 어린 리에나를 위해서라도 또 저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살아나 주어야 합니다.” “편히 안식을 찾아 떠난 아이를 그 따위로 되살리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후회하게 될 걸세! 절대 안 되네!” 말빨이라면 뒤지지 않는 아크와 노련한 아테라인의 말싸움이 계속되는 가운데. 아테라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는 것이 있었다. “뭐냐? 리에나.” 흥분한 기색으로는 어린 리에나에게도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았기에 그는 한 번 호흡을 길게 하고 차분해진 마음으로 말했다. “할아버지……전……엄마가 죽는 게 싫어요…….” “네 엄마는 좋은 곳으로 갔다. 어찌 이러느냐.” 아테라인도 울음을 터뜨리며 애원하는 손녀에게는 차마 모질게 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손녀의 애원도 그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별 수 없군.’ 그러자 아크는 최후의 방법으로 블레싱 소드를 꺼내 들고 모든 힘을 개방한 채 살기를 가득 채워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리엔느가 외로워하지 않게 모두들 주신의 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주신이 만든 이 검으로.” 실제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런 협박까지 할 만큼 리엔느의 부활을 원하는 아크였다. 그러다 보니 많이 쌓인 연기력을 이용해 아크는 정녕 죽일 듯한 기세로 아테라인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뒤에서 그레드릭 대공이 그를 말렸다. “왜 이러는가! 이런 방법은 좋지 못하네.” “……흥. 어차피 우리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살아남지도 못했을 겁니다. 아니 차라리 우리들이 없었더라면 리엔느는 노예가 되더라도 살아남았겠죠. 대공은 제 부탁으로 오신 것이지 이 엘프들과는 전혀 관계없으신 분입니다. 끼어들지 마십시오. 아니 혹시 제가 위급할지 모르니 같은 국적의 군부의 윗분으로서 병력을 이끌고 도와주십시오. 아테라인 님. 이제 더 이상 리엔느의 아버지의 위치로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멸망 위기를 구해 준 메시아이자, 지금 당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의 위치에서 명령하겠습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일족의 수장으로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아크가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아테라인은 결국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예전에는 자신들이 아크에게 보호할 근거지를 제공해 주었다면 지금은 아크가 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싸워 준 은인이자, 확실히 현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격으로 봐서 리엔느 하나를 살린다고 모두를 죽일 인물은 아니었다만. 저토록이나 강한 의사를 표할 줄은 몰랐다. “……후회할 걸세.” “리엔느가 되살아난다면 후회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에르디! 리엔느의 시신을 수습해 둬라!” 아크는 아테라인의 체념을 긍정의 의미로 알아듣고 프로즌 아이스를 리엔느의 시신 위에 올려 두어 그녀의 부패를 막았다. 그런 다음 쥬레이나란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 “다크 엘프는 일반 흑마법사들이 좀비를 만드는 것처럼 해서는 안 돼. 그렇게 했다가는 진짜 좀비가 되어 버리고 말지. 일단 영혼을 담보로 해서 고위마족을 불러 내 암흑신과 직접 연결을 꾀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고위 마족을 만날 수 있는 높은 서클의 흑마법사를 찾아내거나, 아니면 마족의 땅 다크로드에 가서 고위 마족과의 접선을 가져야 하지. 그런 다음 영혼을 팔아야 하는데……. 당연히 네가 팔아야겠지?” “물론이다.” 아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영혼을 판다는 것은 죽음 후의 세계를 걱정해야 한다는 소리였지만 칼 맞지 않는 한은 죽을 염려가 없는 아크는 조금 꺼림칙하기는 해도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라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임마. 영혼을 판다는 건 그렇게 장난식으로 얘기하는 게 아냐. 자칫하다가는 마왕한테 자아를 빼앗겨 버릴 수도 있다고.” “그것도 걱정 마라. 이 칼이 있는 이상 마왕에게 자아를 뺏기는 등의 일은 없다.” “그렇게 까지라면 더 할 말은 없다만……뭐 그래. 그렇다 치고. 흑마법사를 찾아갈 거냐? 다크로드로 갈 거냐? 내 레어에서 배 타고 일주일 간 항해할 경우 도착할 수 있는 곳이 다크로드이긴 하지만 그곳은 위험부담이 너무도 커. 흑마법사는 찾아내기가 난해하고. 어쩔 거냐?” 아크의 머릿속에는 선택분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1. 시간은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흑마법사를 찾자. 2. 그럴 시간 없다. 다크로드로 가자. “자네가 벌집을 들쑤셔 놓았으니 이제 곧 팬크라프트와의 전쟁이 발발할 걸세. 그러니 오래 끌지 말게나.” 그레드릭 대공의 말은 다크로드로 가란 말과 똑같았다. “좋아. 그리로 가자고!” “영지에 두고 온 암컷도 데려가자. 맛없는 밥만 먹느라 입맛 써서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그들은 버려진 마족의 땅으로 향했다. “뭬, 뭬라고!!!” 뜻밖의 패전소식은 렌도로스의 혈압을 급상승시켰다. “아고, 아고, 아고 혈압 올라!” “괘, 괜찮으십니까! 대공 전하!” “그, 그래 괜찮으니 어서 말해 봐! 의료진들 대기는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루드비안 군에 의해 파푸치아 숲의 도로는 전부 파괴되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공은 옆에 놓여 있던 책을 비서에게 집어던지며 외쳤다. 던진 책은 정확히 비서의 머리에 명중했지만 비서는 죽지 않고 용케 살아났다. “아까 들었잖아! 재방송 하지 말라고 그랬지!” “아, 예예 죄, 죄송합니다.” “빨랑. 다른 거.” “그리고 공성전에서도 패배. 400여 명의 기사 중 팬크라트 기사단 15명. 펠릭스 기사단 89명이 살아서 복귀했고 병력은 노역병들까지 동원한 결과 3만여 병력 중 약 5000여 명이 생존해 돌아왔는데 대부분 부상병입니다.” “젤리커하고 델른버 녀석을 문책 좀 해야 겠군. 지략의 기사가 별 다른 수도 안 썼다는 데 어떻게 그렇게 깨질 수가 있나? 바보 같은 놈들.” “저 그리고…….” 비서가 머뭇거리자, 대공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뭐야? 빨랑 말해봐!” “루이스 델른버 공작 각하께서 전사하셨습니다.” “아 루이스 델른버가 전사했다고……뭐이? 누, 누가 전사했다고?” “……루, 루이스 델른버 공작 각하께서…….” 대공의 뒤로 갑자기 암흑의 세상이 펼쳐지며 한 방의 벼락이 떨어졌다. “……허! 허허허허 녀석까지 가버렸나…….” 전장에 명성을 떨치던 팬크라프트의 제국 3인방. 프랑코 젤리커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났고, 남은 이들은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과 루이스 델른버 공작이었는데 그 델른버 공작마저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누구냐? 지략이냐?” “……아닙니다. 루드비안 제국의 대마법사 엘릭 백작의 손에 당하셨답니다.” “병신 같은 놈. 마법사 따위에게 당하다니…….” 대공은 자리에 놓여진 슬병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화는 잘 내도 그는 결코 슬픔을 감정을 남 앞에서 나타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정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뭔데?” “믿기지 않지만 기사들과 젤리커 공작님의 증언으로는 루드비안 제국의 유망주라 불리던 유카나 엘레노어 백작 영애가 마스터 급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 대공은 병째로 마시던 술을 입에서 도로 술병으로 뱉어냈다. 비서는 더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 가능하긴 한 거냐? 그 나이에?”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국부이신 진님도 불가능하셨던 일이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했다는 말이냐?” ‘그러니 그랜드 마스터이신 대공도 모르시는 걸 제가 어떻게 알겠냐고요!’ 비서의 마음 속 외침을 듣기라도 한 듯. 대공은 서서히 잠잠해졌다. “……으휴후우우우. 그래 알았다. 지금 당장 전 해군에 동원령을 내려라. 그리고 캘더린과의 접선을 가져 보아라. 놈들이 먼저 도발한 이상 이제 죽어지낼 필요는 없겠지. 특히 모든 일에 초를 치고 다니는 지략의 기사 그놈만큼은 가만히 놔 둘 수 없다.” “하지만 해전으로는…….” 우수한 기사들을 대량 보유한 팬크라프트 제국이지만 해전의 경우에는 화포와 함선 그리고 마법사의 질이 전쟁의 향방을 가른다. 대륙 동부 해안을 끼고서 해적들에 항상 시달려 온 루드비안 제국의 해군력은 해군의 수에서는 딸리나, 칸딘스키 공작이 만들어 낸 화포와 8서클의 대마법사까지 보유한 쉽게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폴티아를 거쳐 육로 원정을 계획했었던 것인데, 루드비안은 눈치 빠르게도 팬크라프트가 동부의 첫 거점지로 삼으려 했던 디그리스 왕국을 병합해 버리고, 팬크라프트가 심혈을 들여 뚫어 오던 도로를 파괴해 버렸다. “아니. 캘더린을 경유해 루드비안을 친다. 그놈들도 루드비안의 곡창지대를 노리고 있으니 우리가 손을 내밀면 쉽게 길을 내어 줄 것이다. 만약 수틀리면 먼저 캘더린부터 작살을 내버리면 된다. 어서 에스메랄다 에스첼에게 사신을 보내라.” “저……누구를.” “지금 무관한테 외교사신 물어보는 건가? 이 술병이 어디로 날아가나 보고 싶나? 외교 통상부는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월급 주는 데가 아냐! 그리로 가 봐!” “아,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후우…….” 비서가 나가고 혼자 남자, 그는 술을 잔에 따르기 시작했다. “복수는 전혀 부질없는 짓이다……. 라고 사부가 얘기했지. 하긴 맞는 말이야. 젤리커의 죽음을 복수하겠단 놈이 오히려 죽어왔으니……. 큭큭큭. 잘 가라 친우여. 네놈의 수배는 더 살아서 네놈들이 염원해오던 꿈을 내가 이뤄 줄 테니. 사후의 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 똑똑히 보고 있으라.” 대공 관저의 창문이 열리고 술잔에 담겨 있던 술이 관저의 풀밭으로 쏟아졌다. 그리고 한 방울의 물방울이 대공의 뺨을 타고 흘렀다. “음? 이런 술이 튀었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소매로 물을 닦아내는 대공. 그러나 대공의 뺨에 묻은 것은 붉은 포도주 자국이 아니었다. “신의 종. 화이트 로리엔이 레든레트 교황 성하의 존안을 뵙습니다.” 검을 내려놓은 채 한쪽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는 기사를 보고서 기사와 같은 백발의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어나도록 하세요. 로리엔 경.” “예.” 몸 하나 하나에 기품이 배인 고귀한 모습의 기사는 몸을 일으킨 다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어인 일로 저를 부르셨사옵니까? 성하.” “손녀 같은 로리엔 경이 보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성하!!!” 굳은 의지가 돋보이던 얼굴이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의 약점이 정확히 정곡을 찔린 탓이다. 흡사 소녀에게 사랑에 대해 물었을 때 얼굴이 빨개지는 듯한 로리엔의 모습에 교황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설마 그런 이유로 바쁜 로리엔 경을 불렀겠습니까?” ‘지난번에는 그렇게 불렀잖아!’ 란 말이 입까지 차오를 상황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성검의 후계자로 선택받아 수련과 교양을 쌓아 온 그는 자신의 외모를 가지고 놀리는 것이 아닐 경우. 이런 일로 쉬이 발끈하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하명만 하시옵소서. 명령에 따르겠나이다.” “……다크 로드에 사람들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 “로리엔 경도 알고 계시다시피 다크 로드는 마계와의 접선지, 그곳에 들어간 인간 치고 사악한 의도를 갖지 않은 인간은 얼마 없었습니다. 간혹 죽은 이를 언데드로 살리려는 어리석은 이들과 호기심에 들어가려는 드래곤들뿐이었지요.” “……그렇다면?” “십자군단 1전대와 휘하의 성기사들 30명을 선발해 갈 권한을 주겠습니다. 다크 로드로 들어 간 이들의 사악한 의도를 파훼하도록 하십시오. 로리엔.” “명령에 따르겠사옵니다.” 로리엔은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성큼 성큼 교황실을 걸어 나왔다. “아! 로리엔 경.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말씀만 내리십시오.” 교황의 다급한 부름에 로리엔은 부드러운 동작으로 몸을 돌려 교황에게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나미에르 성녀님을 데려가십시오. 그 험한 다크로드에서 생존하셨던 분이니 그곳의 지리에는 익숙하실 겁니다.” “성녀님을 말입니까? 하지만 그 분을 그런 위험한 곳에…….” “그건 성녀님이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예스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교황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로리엔이었다. 중도 연맹정부부처 군부. 그 무거운 전신 플레이트를 입고서도 한 걸음 한 걸음을 내걸을 때마다 전혀 무거움의 기색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백발의 기사가 군부 앞에 섰다. “아! 로리엔 경 오셨습니까?” “칸트는?” “안에 계십니다.” 정부의 온갖 기밀이 있는 부처인 군부에 외부인을 함부로 들여보내지 말라는 엄명을 받은 호위병들. 협력 관계이자, 유사시 한 개로 통합되는 중도 교황청의 십자가 문장을 단 기사들이 왔다 하더라도 일단 소속 등 신원을 엄하게 따져야 할 것이었지만 긴 백발을 엉덩이 밑까지 늘어트린 미소년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로리엔의 얼굴만큼은 기억하기가 쉬워, 굳이 복잡하게 검문을 하지 않았다. 로리엔이 군부의 입구를 통과하고 본부실로 가기 전에 지나치게 되는 기사들의 숙소를 지나자, 곳곳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휘이익! 우리 아가씨 오셨네!” “내 사랑을 받아주오!” - 빠득! 일단은 기사들도 군인이고 군부 내에는 여성 기사들을 제외하고는 여자라고는 눈을 씻고서라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더구나 이곳 숙소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대부분 처자식이 딸린 이들이 아니었던 지라 미소녀(?)의 등장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환호하기보다는 고지식 그 자체인 성기사들 중 최강의 고지식함을 자랑하는 위엄 있고 기품 넘치는 중도 최고의 기사가 망가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일런지도 몰랐다. 무시하는 척 하기는 했지만 저절로 이가 갈리는 것을 애써 참아가며 로리엔은 만나러 온 친구를 찾아 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그런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 있었으니. “무슨 일입니까?”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지만 몸에 밴 기품은 눈앞의 여기사를 자연스럽게 접대하고 있었다. 만약 호스트바에 취직했더라면 대륙 최고의 여성들과 전부 친하게 지내고 사랑받던 A모 기사처럼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저……이것 받아주세요.” 단발의 귀여워 보이는 인상의 그녀는 로리엔에게 소위 러브레터라 불리는 편지를 건넸다. 곧이어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오오오! 드디어 르펠리가!” “……으윽 제기랄! 어째서 저런 계집애 같은 놈을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냐고!” “백합이라……좋구나.” 그 자리에서 편지를 읽어 본 로리엔.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별 변화가 없었다. 그의 눈이 마지막 문장을 훑고 내려간 뒤, 그는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눈앞의 기사에게 인사했다. “죄송하군요. 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당연 솔로부대 일색인 군부 내의 기사들이 그들과 같은 솔로부대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로리엔을 씹지 않을 리 없었다. 로리엔은 그런 것은 모조리 무시하고 원래 목적인 군부의 대장을 찾아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 ‘본부장 실.’ 그런 팻말이 걸려 있는 방문 앞에 도착한 로리엔. 원래대로라면 노크를 하고 정중히 들어가야 옳겠지만. 어쩐 일인지 본부장 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진동 그리고 누군가의 비명. 너무도 미세했지만 오감이 뛰어난 로리엔이 못 알아챌 수가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누군가 땅바닥을 발로 둥둥 구르는 것 같군. 그리고 미세하지만 이건 분명 비명이다. 또 이 냄새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블레싱 소드를 뽑아 들은 그는 약간 열려 있는 본부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를 붙잡고 물어 보았을 때 대장이 이곳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것이 거짓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여전히 바닥의 진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로리엔은 넓은 대장실 이곳저곳을 살폈다. 그러던 중 한 모서리 틈새에서 홀라당 벗은 채 밑에 무언가의 살색 물체를 자꾸만 땅바닥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를 발견했다. “……! 칸트!” “누구! 허, 헉! 로, 로리엔!” “너……!” 어째서 진동이 계속되나 했더니……. 로리엔이 찾아온 중도 연맹정부군 수장인 파이크 마스터 칸트 앵걸은 밑에 여자를 하나 깔고 허리를 움직이며 자꾸만 그녀를 바닥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순진하게 자라왔지만 저것이 무얼 하는 지 정도는 모를 이가 아니었던 로리엔은 즉시 빼어든 칼을 칸트에게 겨눴다. 본부에서 이런 짓거리나 하고 있다니 아무리 대장이라 하나 영창갈 것을 각오해야 하는 짓을 눈앞에서……. 그러던 로리엔은 한 쪽에 속옷과 함께 가지런히 포개어 진 수녀복을 발견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교황이 다스리는 신성한 이 곳에서……그것도 금녀구역인 이곳에서, 그것도……열 몇 살 되지도 않은 어린 소녀를……추행한 죄……그것도 수녀를 추행한 죄……궁형이다.” 장난이 아니었다. 진짜 살기를 팍팍 뿜어대는 로리엔을 보고 칸트는 쉽게 참지 못하고 폭주하는 죄 밖에 없었던 자신의 그것을 가린 채 도망쳐야만 했다. “구, 궁형은 절대 안 돼!!!” “……별 수 없군. 중도 연맹정부에서 아무리 보호해 준다고 해 봐야. 교황 성하가 직접 나선다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이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야, 임마! 팬크라프트의 위협이 루드비안만을 향한 것이 아닐 진대 나 같이 유능한 기사를 그렇게 죽여버리게 놔 둘 것 같냐!” “적어도 30년 간 정화수도는 시킬 수 있겠지.” 모든 잡욕(물론 성욕 포함)을 금하고 하루 24시간 중 12시간을 기도해야 하는 정화수도를 하라는 말은 30년 동안 고자로 지내라는 소리나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저 고지식한 로리엔이 정화수도 급으로 형벌의 난이도를 낮추자, 칸트는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하고 의자에 앉았다. “……차라리 고자를 만들어라. 그나저나 무슨 일로…….” “얼버무릴 생각은 하지 마라.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정화수도 이상의 형벌을 시키고 말 테다.” 그냥 봐 주고 넘어가지는 않을 모양이다. “……알았으니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나 얘기해 봐.” “다크로드에 한 일행이 들어갔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알고 있던 칸트도 격한 반응을 나타냈다. 만약 어떤 또라이들이 마왕 부활 프로젝트라도 실행한다면 자칫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뭐! 어떤 또라이들이! 또 그런 짓을!” “여러 말 하지 않겠다. 따라 와 줄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교황청 병력 낭비하지 말라고 하디? 왜 만날 만만한 게 우리야!” “애초에 수녀를 건드린 것이 잘못한 거다.” 불평해 보았지만 지은 죄가 있었던 지라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망할 놈 같으니……그래 간다 가!” 미묘한 경쟁의식을 지니고 있는 중도의 두 무력단체인 중도 연맹정부군과 교황친위 무력단체들. 다크로드에 인간이 들어가는 등의 마의 세력이 늘어나는 일에는 당연 교황친위대 측의 무력 단체가 나서야 옳았지만 대장이 수녀를 건드린 죄로 인하여 중도 연맹정부군은 그런 일에 교황친위 무력 단체보다 앞장서서 나가야 하였으니 이 또한 아무 여색이나 탐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의 교훈을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대륙 4강 중 가장 강한 무력과 국력을 보유한 두 강대국 팬크라프트와 중도 연합. 그 중 중도 연합의 기사들이 마족의 땅의 침입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성녀님.” 끄덕. 방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녀의 모습에 로리엔은 안심하며 그녀가 앉아 있는 휠체어를 직접 끌고 다크 로드에 상륙했다. 그를 따라 군기가 바싹 잡힌 십자군단의 병사들과 성기사들. 그리고 안 그래도 큰 키인 칸트의 키를 훌쩍 넘은 거대한 할버드를 든 파이크 마스터 칸트 앵걸과 그를 따르는 로리엔 팬클럽의 기사들 몇 명이 암흑의 대지에 상륙했다. 다크로드는 중도와 팬크라프트에게 멸망 직전까지 갔었던 전 4대 강국 하인델의 영토 중간에 걸쳐 있는 거대한 섬이었는데, 하인델 왕국은 줄어든 영토로 인하여 경작지 면적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하여 다크 로드의 일부 지역을 개척하는 모험을 펼쳤다. 마족들의 집중 포화를 받는 것은 당연했으나, 그들은 망국의 의지력으로 끝내는 다크로드의 일부 구역을 영토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그 새로운 영토에서 나오는 마족의 아이템들은 하인델 왕국의 엄청난 전쟁배상금을 갚을 수 있게 했다. “커리스 항 쪽으로 갔다고 했나?” “아닙니다. 루드비안 쪽에서 온 인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마 곧바로 상륙해 마족의 땅으로 들어갔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상륙할 수 있는 부지는 이곳뿐인데 배가 보이지 않질 않나?”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흙이 파헤친 흔적 같은 것은 보입니다.” “……비행 마법인가? 그렇다면 흑마법사의 소행일 가능성이 더욱 높겠군. 자 빨리 가도록 한다!” 로리엔이 들고 있던 금빛의 주신의 성검이 자꾸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뭐지?” 주신의 성검은 원래 빛이 나기는 했으나, 이토록 빛이 꺼졌다가 밝게 다시 들어오는 등의 무슨 고장난 형광등 같은 기능은 없었다. 그것도 너무 밝게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이 다크로드를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밝고 큰 빛이 들어올 때는 사용자가 다쳐서 자동 치유 기능이 발동되거나, 주인이 신성 마법의 매개체로 쓸 때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가장 가까운 암흑의 제단이 어딘가?” “아 얼마 안 됩니다. 해안가에서 네 다섯 시간 정도 걸으면 나오는 곳입니다.” “놈들은 그것을 알고 있을까?” “이곳에 들어온 이유가 사악하다면 분명히 바로 눈치를 챌 것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라 하던가?” “여섯 명 정도라고 합니다.” “여섯 명? 겨우 그걸로?” “하지만 마의 기운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곳의 몬스터들은 반응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마의 힘을 얻어서 공격해 온다면 힘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군. 칸트.” “왜?” “성기사들과 칸트. 그리고 성녀님과 나만 먼저 가도록 한다. 되도록이면 빨리 가서 막는 것이 좋겠어.” “알아서 하셔~” “그럼 성녀님. 죄송하지만 조금 빨리 몰겠습니다.” 끄덕. 휠체어에 앉은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계의 성녀가 나타날 것이다!’ 란 신탁과 함께 다크로드 부근에서 발견된 성녀 나미에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녀는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하나의 다리를 잃은데다가 또한 말 조차 잊은 심각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화상으로 인한 외상은 신성 치유 마법의 힘으로 가라앉히고 난 뒤,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그녀는 놀랍게도 신성 마법을 갓 배웠음에도 주교 급의 성력을 발휘함은 물론이오. 신탁의 성녀들의 특징인 늙지 않는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성녀로 인정받았으며 자비의 성녀로 추앙받아 왔으며 약 90여 세를 살았음에도 늙지 않은 채 멀쩡히 살아. 현 교황 레든레트 하르마니아보다도 높은 중도 교황청 최고의 배분을 지닌 중도인들의 우상이었다. 사실 로리엔은 어째서 나미에르 성녀가 그토록이나 이곳에 오겠다고 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크로드 부근에서 처음 발견되었다지만 교황청의 기사들은 대부분 이렇게 다크로드로 와서 암흑신과의 접선을 하려는 이들을 막아왔기에 굳이 성녀라는 길잡이가 필요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교황에게 그런 청을 넣었을까? 슥삭 슥삭.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로리엔에게 성녀는 무언가를 쓰더니 그 종이를 펼쳤다. “……두 양극이 대표들이 만나고 비극일지 희극일지 모를 희곡의 막이 오른다…….” 끄덕. “……사라져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세 친구 중 한 명이 다시 하나를 만나러 온다…….” 끄덕. “……어리석은 등가교환은 큰 피해를 불러 올 것이다…….” 끄덕. “……그리고 그렇게 되면 주신을 떠받들던 한 기둥은 인간을 위해 주신을 배반한다…….” 끄덕. “……주신을 무시하던 선택 받은 이는 마왕과 타협한다……예언 하시는 것입니까?” 끄덕. 성녀가 추앙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예언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예언은 결과적으로 들어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일이 그토록이나 중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슥삭 슥삭. ‘지금 당신의 행동이 아마 그 예언이 정확히 맞게 될지 아니면 다른 운명을 부를 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나미에르 성녀의 예언은 쉬이 듣고 넘길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주신을 떠받들던 기둥이 인간을 위해 주신을 배반하고 신을 무시하던 선택 받은 이가 마왕과 타협한다. 등의 이야기들은 마치 또 다른 마도 전쟁의 서곡이 닥쳐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했다. “이 예언을 주시려고 이곳까지 따라오신 겁니까?” ‘……이 예언에는 로리엔 경과 이 섬의 침입자가 주로 관련이 되어 있으니까요. 나중이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내가……?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좀 더 힌트를 주시면 안 되겠는지요?” 계속해서 끄덕이기만 하던 나미에르 성녀는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신경이 쓰였지만 로리엔은 갈 길을 재촉했다. 다크로드의 중심부에 사는 고급 마족들이라면 몰라도 성력이 충만한 성기사들이 지나가자 하급 몬스터들은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들을 피해갔다. “으아! 지루하군. 이거 뭔가 화끈한 전투가 있을 것 같았는데 말야. 이 정도라면 우리 아가씨 혼자서 와도 되었을 텐데 말야!” 칸트는 숲속의 어두침침한 녹빛의 나무들을 할버드로 하나 씩 베어가며 말했다. 로리엔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마족의 섬이란 곳에서 화끈한 전투를 펼쳐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만큼은 맘에 들었었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마냥 지루했던 것이다. “단장님! 저기 몬스터들의 시체가 있습니다!” “……! 드디어 흔적이 남았군 살펴 봐!” 로리엔의 명령에 다크로드 길잡이부터 검시까지 맡아 하던 기사가 앞으로 나가 몬스터들의 시체를 조사한 뒤 말했다. “예.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얼어 죽었습니다. 아마도 빙한 마법을 사용하는 흑마법사가 단체로 쓸어버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검을 사용한 흔적도 보입니다……검 자국이 각각 세 개가 다른데, 이런 골갑의 몬스터들을 단번에 벤 흔적으로 봐서는 오러 급 기사가 최소 셋은 되는 모양입니다 아! 루드비안의 신무기인 총탄도 있습니다. 그리고 얼어 죽은 덕분에 언제 죽었는지 계산은 불투명합니다.” “여기 인간의 것처럼 보이는 발자국도 있는데요! 여자 발자국으로 협소한 발자국……그리고 어린애 둘 정도? 나머지는 성인 남자. 이거 조합이 영 이상한데요? 성인 남자 둘은 이해가 가지만 어린애 둘이 왜 있을까요?” “그건 쫓아가 보면 알겠지. 발자국의 방향은?” “예! 우리가 가려 하던 암흑신 제단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어서 가자!” 배가 있지 않아서 긴가민가했던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이 확실히 나타나자 성기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미 앞서 갔다는 소리가 되는데 만약 리치가 되는 시술이라도 실행하거나 했더라면 상대하기가 여간 골치 아파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애 둘이 왜?” “……제물이라도 되는지 모른다. 어린 아이의 피가 필요한 주술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어쨌든 빨리 가야 한다.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앗! 저기 하늘이 완벽히 검어졌습니다!” “뭐이!” 어둑어둑한 구름이 낀 그다지 좋지 않은 다크로드의 날씨. 그런데 어떤 일부 지역에서는 하늘에 시커먼 암흑의 기운이 펴지고 있었다. “제길 이미 늦었나!” 고위 마족을 부르자, 제단에는 시커먼 구슬 같은 것이 생겨나더니 점점 시커먼 기운이 허공을 메워 가기 시작했다. “……!” 엘프 마을을 나서며 본거지의 동료와 파티를 교체한 아크 일행은 아크와 에르디 쥬레이나란 등의 멤버와 피리아 그리고 리엔느의 부활을 보러 온 루리엘과 리에나로 이루어져 있었다. 엄청난 마의 기운이 몰려오자, 신성의 속성을 띤 리에나와 루리엘은 몸을 움츠렸다. 다만 마스터로 분류될 정도의 강자인 아크만큼은 블레싱 소드로 쌓인 신성력이 있음에도 그다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얼마 안 가 모이던 어두운 구름들이 하나의 홀로그램 형상을 만들어내었다. “……뭔가? 주신의 위선자여! 당장 그 칼자루를 치워라!” 영상을 통해 나타난 갈색의 피부에 뿔을 단 상체누드의 남자는 나타나자마자 노한 표정을 드러내며 아크에게 외쳤다. 그의 상극인 신성력의 결정체 블레싱 소드의 영향이었다. 그러나 아크에게서 나온 것은 걸출한 욕설이었다. “어디 다가 치워 병신아! 치울 데가 있어야 치우든 말든 하지!” 갑작스런 욕설에 뿔달린 마족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새꺄. 대가리에 똥 들었냐? 어디 치울 데가 있다고 칼을 치우냐? 땅바닥에 버려? 이 비싼 걸 미쳤다고 버리냐? 영혼 팔러 왔으니 이딴 거 신경 쓰지 말고 개소리 닥쳐라.” “이 허접스러운 인간이 어디서…….” “미친 새끼. 만물의 영장한테 허접? 지랄하고 앉았네? 닥치라면 닥쳐라. 할 말만 간단히 하고 끝낼란다.” “…….” 뿔을 단 마족은 더 이상 할 말을 잊은 듯 했다. 욕설에서부터 기선을 제압당한 것이다. 사실 이곳에 찾아온 인간들의 주 패턴은 무릎 꿇고 빌거나, 애써 용기있게 말한다 하더라도 그의 기세에는 나름대로 겁을 먹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주신의 사자라 불리는 성검을 지닌 이 답게 당당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성검을 지닌 주신의 사자답지 않게 예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처음부터 마족의 골머리를 땡기게 하는 아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그 제단에 누워 있는 엘프를 좀 살려줬으면 쓰겄다.” “건방진 놈 같으니! 내가 본신으로 현신만 한다면 네놈 따위는…….” “못하잖아?” “그, 그건…….” “못하면 잔말 말고 하란 거나 해!” ‘내,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마족 청년은 어쩐지 억울한 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껏 인간들에게는 숭배받는 공포의 존재였던 그가 웬 괴상 쩍은 인간에게는 개무시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뭐냐 미개한 인간아?” “대가리에 뿔은 장식으로 달고 댕기냐 멍청아! 아까 말했잖아! 귓구녕에 고로케 박았냐! 거기 눕혀 논 엘프 좀 살려내라고 했잖아 병신아! 아이큐가 코뿔소 수준이냐!” ‘미개’라는 말로 분한 마음을 표현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신공의 매서운 공격뿐이었다. 결국 그는 말에서 철저히 밀린 채 위엄 있는 기세도 어디로 팔아먹고서는 마누라와 하면서 3초 만에 끝낸 남편의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 엘프를 살려내라고?” 기세가 확실히 준 마족의 모습을 보자, 그런 둘의 설전을 보던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피리아 등 동료들은 할 말을 잊었다. 저렇게 저 무서운 마족을 잠재우다니 참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려. 다크엘프인가 뭔가로 살려 낼 수 있다고 들었다.” “대가가 뭔 줄은 알겠지?” “영혼 아닌가?” “……그래 영혼. 하지만 신성의 가호를 받는 네놈의 영혼과 저 두 엘프의 영혼은 받을 수가 없다. 암흑신 님과 주신의 조약에 따라 별 수가 없다. 다른 놈들의 영혼이라면 받는다. 어찌 하겠느냐?” “뭐어?” 리엔느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영혼은 받지 않겠다니…….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소린가? 리에나와 아크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다. 아크의 절망한 모습을 보자, 마족 청년은 조금 기분이 나아졌는 듯 다시 무게를 잡고서 아크와 엘프 일가를 제외한 영혼상납이 가능한 나머지 동료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영혼을 바치겠느냐?” 그러자 쥬레이나란부터 무시하기 스킬이 발동되었다. “캭! 새꺄 어딜 야려! 눈 안 깔아!” 아크에게서 좋은 입담을 배운 쥬레이나란은 방금 전 아크와 같이 마족 청년을 개무시했다. 그리고 에르디와 피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날씨 차암 좋구나.” “나도 별로…….” 모두들 거절 했지만 아크로서는 딱히 그들에게 영혼을 바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리엔느를 살리는 것은 포기해야만 하는 건가? 마지막 남은 희망은 마족을 한 번 찔러 보는 것 뿐이었다. “야 네놈이 어떻게 못 해 보냐?” “……못한다.” “피식. 하긴 그러겠지. 안 그래도 별 볼일 없어 보였엄마.” “이 자식이!……아니……잠깐. 네놈……어떻게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발끈하던 마족 청년은 신성력으로 가득 치장된 아크의 몸에서 신성력에 눌려 제대로 펼쳐지지는 못하지만 아주 미세한 암흑의 기운과 수많은 영혼의 기운을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네놈. 영혼이 빙의된 아이템을 가지고 있나?” “뭐? 영혼이 빙의된 아이템? 그딴…….” 아니.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활용도를 전혀 알 수 없이 그저 땅 파면 땅 하나는 정말 잘 파지는 장의사 앤더에게 받은 삽 하나. 아마 킹 네크로맨서의 삽이라고 했었던 것 같다. “……이거 말이냐?” 아크는 네크로맨서의 삽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족 청년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다. “……이, 이런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니! 수많은 영혼들. 그것도 원념이 매우 큰 영혼들이 대부분……좋아! 이 삽을 넘겨라. 그럼 이 엘프를 살려 줄 수 있다.” “정말이냐?” “그래! 하지만 선택은 네 자유다. 보통 인간의 영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이렇게 큰 대가를 걸고 겨우 이 엘프 하나를 다크 엘프로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는 특히 우리 마족과의 거래는 거래 대상자에게 큰 후회를 낳게 하지. 내가 마족이지만 나와의 거래를 그다지 권하지는 않는다. 어쩔 것이냐? 후회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 엘프를 살리겠나?” 삽질하는 데 외에는 별 쓸모도 없던 삽을 이렇게나 높게 평가하는 것이 조금은 찝찝했지만 삽 하나와 목숨이라면 전혀 거절할 것이 없었다. “좋아.” “나중에 후회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마족 청년의 손에서 암흑의 기운이 뻗어져 나가더니 아크가 잡고 있던 네크로맨서의 삽을 그대로 어둠 안으로 삼켜 들었다. 그런 뒤 마족 청년은 손에서 생성한 암흑의 구름을 제단 위에 놓여져 있던 시신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피를 많이 흘려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완전히 창백해 진 시신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마치 불에 굽는 듯이 색깔이 변해갔다. 흡사 익어가는 바비큐 고기 같았다. 정녕 불에 타는 듯 머리색마저 잿빛과 동일한 회색빛으로 변했다. 암흑의 기운의 주입이 끝나고 나자, 지금까지 죽어 있었던 시신에 약간의 온기가 돌았다. 그리고 감겨져 있던 눈이 떠졌다. 초점이 사라져 있던 푸른 빛의 눈동자는 미묘한 붉은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상당히 요사스러웠다. “……살아난 거냐?” “그렇다.” 일어나자마자 싸늘한 표정이었지만 언제나 보던 표정과 흡사했다. 비록 몸은 검어지고 머리색은 빠졌으며 눈은 빨개졌지만 리엔느가 맞았다. 그녀가 다시 일어나자 엘프 일가와 아크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리엔느가 괴성을 질렀다. 그 괴성에 놀란 아크와 리에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리엔느는 머리를 잡고서 쥐어뜯으며 고함을 빽빽 지르는 광녀의 행동을 자행하고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마족 청년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미쳐버린 건지도.” “……!” 아크는 그 말에 마구 날뛰고 있는 리엔느의 어깨를 잡고서 흔들었다. 그래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힘을 줘서 그녀를 땅에 고정시켰다. “이봐! 정신 차려! 왜 그래!” 그러자 리엔느가 소리쳤다. “당장 꺼져…….” “뭐?” “네놈 따위 꼴도 보기 싫어……당장 사라져! 나한테 붙지 마!” “리, 리엔느?”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보는 듯한 반응에 아크는 그녀에게서 떨어져야 했다.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을 욕설로 밀어붙이던 아크의 그런 당혹스런 표정을 보자 마족 청년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후회할 거라고 했지? 특히 네놈은 더더욱! 어둠의 존재인 다크 엘프가 성검을 지닌 존재나, 주신의 축복을 받은 엘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뭐?” “다크 엘프는 완벽하게 암흑신의 은혜로서 다시 태어난 존재다. 그러므로 너희 엘프들과는 함께 할 수가 없으며 또한 이전의 기억 따위는 모두 잊게 된다. 그리고 이곳 다크로드가 아닌 주신교가 통치하는 세상으로 나간다면 주신의 이름으로 처단 받게 되므로 마도 천하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이 섬에서 나갈 수도 없지. 자 새로운 다크 엘프의 일족이여. 이리 오너라.” 마족 청년이 리엔느를 부르자, 그녀는 발광을 멈추고는 얌전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너를 새로운 삶과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도록 하마. 가자.” 그렇게 리엔느를 데리고 사라지려는 마족 청년을 아크는 급하게 불러 세웠다. “잠깐! 기다려!” “크크크크 어리석은 놈. 나는 분명히 최후통첩으로 마족을 믿지 않는다는 게 좋다고 얘기까지 했었다. 결국 수고는 네놈들이 다 하고 암흑신께서 총애하시는 다크 엘프 일족에 또 한 명의 일원이 늘게 되었군. 그리고 이 삽. 잘 받았다. 크크크크크 크하하하하!” “언니!” “엄마~!” 아크와 엘프 일가가 불러 세우건 말건 마족 청년은 제 할말만 다 한 채 리엔느를 데리고서 암흑의 홀로 사라져갔다. 마지막에 리엔느가 자신을 부르는 루리엘과 리에나를 한 번 물끔 쳐다보았지만 금세 제 일이 아니라는 듯 홀 안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계와의 연결로는 닫혀버렸다. 아크와 루리엘. 리에나는 맥없이 리엔느가 사라져 버린 통로가 있었던 허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살려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던 아테라인과 방금 전 청년 마족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살리긴 살렸으되,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기억하지 못하는……어찌 보면 안식을 얻어 평온히 죽은 것보다 못한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애초에 다크 엘프에 대한 제안을 했었던 쥬레이나란이 아크를 다독였다. “마의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죽지 않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네놈도 영원토록 죽지 않는 몸이면서 뭘 그리 고민하냐? 다크로드를 샅샅이 뒤지다 보면 다크 엘프들의 마을도 분명 있을 거다. 비록 맺어지거나 하지는 못할지 몰라도 네가 무슨 육수쇼의 대상으로 그녀를 되살린 것이 아니라면 다시 살아서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과 만나고 싶다면 조금 힘들긴 해도 분명히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 두어라. 분명히 말해두겠지만 늙지 않는 인간에게는 이별이라는 것은 감수를 해야 하는 고통인 거다. 다른 이들은 영원히 다시 찾아볼 수도 없는 몸이 된다 하더라도 다크 엘프가 된 저 리엔느인가 하는 엘프는 다르니 그렇게까지 상심할 필요는 없어. 사랑해 주는 여자도 많은 놈이 한 여자에게 그렇게나 얽매일 필요도 없고.” “……그러냐?” “그러니 힘내라. 그 로닌가 하는 여자도 있고, 유카나인가 하는 약혼녀도 있지 않았냐? 저기 저 성질 고약한 암컷도……뭐 좀 거시기 하고 있는 듯싶으니까.” “……후우. 여자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해 본 여자였다. 인간에게 상처받은 것을 내 옆에 두고 평생 치유해 주고 싶었는데 말야…… 그래 네 말대로다. 착잡하긴 하지만 이젠 죽은 것도 아니고. 보고 싶을 때는 만날 수 있겠지. 다시 살아났다는 그 자체로 만족한다.” 이계에 처음 떨어져서 만난 여인으로 연정을 품었으나 헤어져 수십 년간 만나지 못했었다. 이미 다른 여성들과의 언약을 해 둔 상태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호감을 지녔던 마음조차 조금씩 씻겨져 나갔다. 그렇지만 오히려 전세가 역전되어 차가웁기만 했던 그녀에게서 구애를 받아가던 찰나 다신 못 만나는 신세가 된 것이 믿을 수 없었던 것 뿐. 상실감이 크긴 해도 아크는 리엔느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의 격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크크크 그래 어쩜 이게 진정한 히로인으로의 발돋움을 할 수 있게 되는 복선이었을런지도 모르지. 내 평생 반려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이 뿐이니까.” 아직까지는 짧은 세월이었지만 정말 오랜 세월을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아크에게 진정한 히로인이란 생겨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간의 수명은 짧고, 엘프의 수명은 길어도 그래봤자며, 드래곤의 수명은 길지만 시간의 흐름이 멈춰 버린 이에 비하면 거기서 거기이다. 드래곤들이 유희를 하면서는 인간이나 친하게 지낸 이들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다. 그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함께 하는 시간은 너무 짧고 잃은 후의 상실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망각의 축복마저 주어지지 않은 종족에게는 그 상실감이라는 것은 너무도 뼈저렸다. 그렇기에 아크도 그런 것을 감안하여 지나가 버린 이에게는 그다지 정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해도 이번 이별은 제법 뼈아팠다. ‘그래 하렘왕. 한 여자에게 얽매이지 말아라. 비록 가는 여자도 잡고 오는 여자는 막지 않는다는 주의이지만 다시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리엔느를 구해냈으니 거기서 만족하자. 무슨 수가 있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거고. 죽지만 않으면 됐지 뭐.’ 아크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크와는 다르게 루리엘과 리에나는 이제는 한 형제였다가 갈라져 헤어진 남북 이산가족들 처럼. 살아는 있으나 다시 만나기 힘들게 되어버린 혈육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리에나를 부탁한다.’ “자기한테 못한 건 딸한테 풀라는 소리로 하고 간 건 아닐테지.” 문득 꿈에서 꾸었던 리엔느의 당부가 떠오른 아크는 리에나를 자신이 떠맡기로 결심했다. 리엔느와 닮은 그녀의 딸을 잘 키워서 잡아 먹……으려는 의도도 없잖아 있을지 모르나, 겉으로 표명된 의사는 그녀의 딸을 잘 키워 비록 기억은 못하더라도 나중을 기약하자는 명분하에서 였다. “……!” 그러나 울고 있던 리에나에게 다가가던 아크는 하얀 빛의 강기가 이쪽으로 날라오는 것을 보고는 급히 몸을 날렸다. 그러면서 중간에 낀 루리엘을 발판으로 밟고 뛰어올라 애매하게 배워 둔 권강을 생성시켜 정면으로 강기를 막았다. 쿠콰콰콰! 거대한 마나의 집결체가 공중에서 서로 부딪혀 상쇄되자, 폭발은 그리 크지 않으나 폭음만큼은 크게 울렸다. “뭐지?” 뭔가의 습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아크의 동료들도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쥬레이나란은 강철의 팔을 검으로 만들었고 에르디는 오른손으로 검을 뽑아 든 뒤 왼손으로는 품속에 감춰 둔 약병을 꺼내어 잡았다. 피리아는 총들 중에서도 가장 성능이 좋은 아크의 베레타와 칸딘스키 형 소총을 꺼내어 쥐었다. 그리고 숲속에서 거대한 창을 든 갑옷의 대머리 남자가 뛰쳐나와 막 권으로 강기를 막아낸 아크에게 덤벼들었다. 부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도끼날이 아크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뭐, 뭐야! 이 자식!” “악마와 타협한 저주받은 놈들! 모두 죽어랏!” 할버드를 든 거구의 기사가 창을 반월형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그 주위이 땅이 파헤쳐지면서 대지가 진동하며 아크 일행을 덮쳤다. “큭 모두 조심해!” 쥬레이나란은 급히 뛰쳐나가 그 진동을 매직 실드로 막아냈다. 그렇지만 그가 입고 잇던 붉은 코트의 복장은 너덜너덜 엉망으로 변해 버렸다. “전원 공격 준비!” 창을 든 기사의 습격 이후에 뛰쳐나온 십자의 표시를 단 성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백발을 휘날리는 기사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손가락으로 기사들을 지휘했다. “공격 개시! 악마의 꾀임에 넘어간 주신의 배신자들을 처단하라!” 수십에 달하는 오러 급의 기사들이 아크 일행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 수에 놀란 에르디가 급히 약병을 던졌다. 퍼버벙! “이런 제길! 폭약병이었나?” 품속에서 잡히는 대로 던지다 보니 멍청하게도 대량 살상 무기인 악취 액체 병을 사용하지 못하고 공사용 폭약병을 던져버리고야 말았다. “에르디 씨! 앞을 막아 주세요! 저격해 보겠습니다.”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잖아!!!” 일반 병사들도 아니고 갑옷을 두른 기사들을 총으로 상대할 수는 없었다. 오직 노출된 눈 부위만을 노려서 쏠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 덕분에 피리아는 전투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야! 네가 이 창 든 대머리 맡아라!” 아크는 뒤로 빠지면서 쥬레이나란에게 창을 든 기사를 맡겼다. 그리고는 에르디 쪽으로 가 프로즌 아이스를 들고 소리쳤다. “아이스 스톰!” 7서클의 전체 마법이 시전되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백발의 기사가 외쳤다. “방원성진을 펼쳐라! 어서!” 그의 외침에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성기사들은 원형으로 진형을 펼쳤다. 중도 최고의 진형 중 하나인 이 진법은 신의 가호를 사용하기로 한 신성마법을 쓰는 기사들과 검막 등으로 마법을 막기로 한 기사들 그리고 마법 방어 갑옷에 마나를 주입하여 마법을 앞장서서 막기로 한 기사들. 이렇게 3가지 분류로 나누워 각각의 역할에 충실함과 동시에 자신만 방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 붙은 동료까지도 마법의 방어 효과를 중복시키는 마법 공격에 대해서만큼은 거의 무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진법이었다. 마도 전쟁 시 마족들의 대단위 전체 마법을 막아내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효능은 마스터 급 기사가 있을 시에는 9서클의 마법까지 별 피해 없이 막아낸다고 한다. “……! 이, 이럴 수가!” 잘 놀라지 않는 아크 역시 전혀 피해 없이 7서클 급 마법을 막아내어 버리는 성기사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승부에 집착한 이상 놀라고 있을 새만은 없었다. 아크는 아이스 스톰을 연달아서 사용했지만 방원성진을 펼친 채로 진격해 오는 기사들을 보고서는 더 이상 전체 공격 마법 따위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전투의 방식을 바꾸었다. “아이스 트랩!” 얼음을 이용해 상대방의 발을 묶는 기술이 적중하자 느릿느릿 진군해 오던 성기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지휘관의 명령으로 조금은 아크에게 유리해 질 것만도 같았던 상황은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오러 파이어를 사용한다!” 오러 라는 명칭이 붙기는 하지만 신체의 기를 사용하는 기술이 아닌 오러 파이어는 성기사들이 배우는 기본 마법 중 하나였다. 신성마법으로 성스러운 주신의 불꽃을 소환해 내는 마법으로 흡사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때의 검의 형태와 비슷하게 모양이 나온다 하여 오러 파이어라는 명칭이 붙었다. 오러 파이어로 인하여 순식간에 녹아 버린 얼음들. 그리고 이제 아크에게 밑천이 바닥났음을 눈치채고 빠르게 진격해 오는 기사들. ‘제기랄! 이대로는 100% 진다!’ 그렇지만 아크에게는 동료가 있었다. 그다지 강하지는 않지만 여러 인간에게 막을 방법 없이 피해를 주는 동료가. “비켜요 주군!” 에르디의 왼팔에 들린 병이 날아가더니 선봉의 한 기사의 투구에 그대로 맞아 깨지며 안의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나이스!” 갑작스레 병 하나 맞은 것을 가지고 되게 좋아하는 적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달리던 성기사들은 곧이어 맡을 수 있게 된 고약한 악취에 각자 구역질을 하거나 코를 틀어쥐었다. 심지어 이 지독한 냄새를 더 이상 맡게 되었다가는 몸에 이상이 갈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뇌가 몸에 기절의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렇게 되자, 후방에서 구경하고 있던 긴 백발의 지휘관은 분노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먼저 뛰어나왔다.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이냐! 결코 네놈들을 살려 보내지 않겠다!” 그리고서는 약병을 던진 에르디에게 그는 먼저 덤벼들었다. 한 번에 그 먼 거리를 주파하는 그의 속도는 번개와도 같았다. ‘헉! 빠르다!’ 에르디는 급히 검을 들이대었다. 그러나 에르디의 검도 제법 좋은 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스피드로 다가온 백발의 기사는 순식간에 에르디의 검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백발 기사의 금빛을 자랑하는 날렵한 검신의 검이 에르디의 복부를 꿰뚫었다. “……큭!” “에르디!” 다행히도 심장이 정확히 꿰뚫린 모양은 아니었지만 위급한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이는지라,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꺼내들고 원거리에 있는 에르디를 치료했다. 에르디를 찌른 뒤 결판을 내기 위해 그의 목을 노리고 있던 백발의 기사는 에르디의 상처가 치료되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다크 힐링. 역시 암흑의 존재들 답군.” 블레싱 소드의 신성의 기운으로 전개된 마법인 만큼 신성력이 느껴져야 했지만 백발의 기사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검에서 나는 엄청난 신성력으로 인하여 그것을 묵과하고 주신의 치료마법을 암흑신이 따라한 다크 힐링으로 착각했다. 그리고는 다크 힐링을 사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마족의 머리색이라 주로 알려진 검은 머리의 흑마법사를 향해 그 빠른 발을 내딛었다. “읏!” 아크는 잽싸게 그의 검을 피해냈지만 그 엄청난 스피드에 감탄했다. ‘이 자식 보통 빠르기가 아니다!’ 피하거나 막기에는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결국 아크는 뒤로 물러 선 채 신의 가호를 걸고 바로 이어져 오는 백발 기사의 공격을 검으로 막아냈다. 캉! 검과 검끼리 맞댄 채 힘겨루기가 지속되었다……라는 전개로 될 줄 알았던 전투는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백발 기사와 아크 모두가 상대의 검을 보고서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그 검은……?” ////////////////////////////////// 해명글. 에볼루션이 7권에서 끝난다는 것쯤은 대부분 알고들 계실거라고 봅니다. 본디 약 9권 예정이었지만 판매량 부진으로 조기 종결. 그리고 그 덕에 후반부의 굵직한 스토리 몇 개가 빠집니다. 리엔느와 애매하게 되어 버린 관계 때문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욕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본디 제가 스토리를 구상하기를 2권의 네크로맨서의 삽이 등장할 때부터 구상해 온 것입니다. 궁극의 삽질 아이템인 줄 알았던 그 삽에는 암흑신의 힘을 늘려주는 주신을 믿던 수많은 영혼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마왕은 주신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간계에 강림할 채비를 갖추게 되고. 그것이 마침 대륙 전쟁과 맞물리면서 복잡하게 되어가는 시나리오였습니다. 그리고 네크로맨서의 삽이 마왕에게 넘어가는 것을 쓰기 위해 다크 엘프의 각본을 사용했습니다. 엘프족의 비극 시나리오로 세계 대 전쟁의 명분을 부여함과 동시에 중요 엘프 인물 하나를 죽여 되살리면서 삽이 마왕에게 넘어가고 그것을 토대로 마왕이 강림하는 이런 시나리오로 말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죽음을 당한 뒤 아크가 되살리고 싶어할 만한 엘프족 인물은 리엔느 외에는 없었고, 그 때문에 그녀가 죽게되었습니다. 이 편에서 리엔느는 마족들에게 가게 됩니다. 그런 뒤 원래는 8권 이후에 마도 전쟁에서 재등장하여 엘프들과 적대관계를 형성시킬 예정이었죠. 허나 분량이 줄어든 이상 더욱 그렇게 가기는 힘들어졌고, 조금은 억지스러울 지도 모르나, 에볼루션의 원래 장르인 색욕계 하렘형 판타지 답게 순애 요소는 구성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려면 뭐 하러 1권부터 질질 그렇게 끌었냐? 라고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겁니다. 그것 때문에 일말의 희망. 그러니까 본문에서 "진 히로인은 아크처럼 늙어 죽지 않는 이다.' 라는 문구도 삽입했습니다. 그러나 진 히로인도 에볼루션에서는 밝혀지지 않을 겁니다. 완결 뒤. 언제 본격적으로 쓸 지는 모르나, 이 세계관에서 수백년이 지난 진퉁 하렘물 후속작에서나 볼 수 있을 듯.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면 부족으로 인한 얼버무리기 식 마무리라고 변명하겠습니다... “너야 말로.” “당신이 왜 그 검을 지니고 있습니까?” “너는?” “저는 교황 성하로부터 이 검을 다루는 자로 선택받았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설마 신의 성자를 죽이고 얻은 검입니까? 그렇다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암흑신의 신봉자여.” 백발 기사의 물음에 아크는 딱히 대답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한다? 날 이곳으로 보낸 드래곤 아크라우스의 아들에게서 게임 아이템을 가지고 교환했다라고 말할 수는 없고. 바로 대지 않으면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의심할 것이 뻔했기에 아크는 장난으로 대답했다. “길가다 주웠다.” “……정말 이십니까?” 당연히 헛소리로 치부할 줄 알았는데 백발의 기사는 심각히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크는 그냥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래. 그냥 길가다 주웠다고.” 그러자 그 즉시 백발의 기사는 아크에게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했다. “……주신께서 보내신 성자시여. 저는 교황의 검인 화이트 로리엔이라 하옵니다. 무례를 보인 점 용서하옵소서.” ‘에에? 이건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래?’ 길가다 주웠단 말을 믿는 다는 것도 의문스러웠지만 아까는 죽일 듯이 덤벼들더니만 갑작스레 무릎을 꿇는 건 또 뭐 하는 짓거리라니? “당최 먼 소린지를 모르겠네? 길 가다 주운 검을 가지고 주신께서 보낸 성자니 어쩌니. 뭐라는 거야?” “당신의 그 검은 주신께서 딱 세 자루 만드신 주신의 성검. 그 중 한 자루는 제가 교황 성하께 물려받았으며, 한 자루는 사악한 마룡 아크라우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건 주신께서 직접 소유하시다가 세상에 마가 퍼질 때마다 세상을 구할 성자에게 내려 보내는 한 자루. 길을 가다가 주웠다는 건 아마 주신께서 당신을 성자로 선택하고 이 검을 내렸다는 뜻이 되겠지요.” “…….” 로리엔의 말대로라면 아크는 성자와 거리가 멀었다. 말은 길에 가다가 주웠다고 했지만 사실 아크라우스의 재산을 물려받은 아크로니아가 준 검이 아닌가? ‘마룡이라니……이 자식은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산거야? 하긴 말로는 유희라고 했지만 지구로 온 것도 사실은 여기서 마룡으로 찍혔다거나 해서 도망친 건지도 몰라.’ 맹약의 반지를 통해 아크라우스에게 다 들린다는 것도 잊은 건지. 아크는 마음껏 아크라우스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데 성자님께서 이곳에는 웬일이십니까? 루드비안 제국의 후작으로서 언제 팬크라프트와의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나?” “물론입니다. 성자님. 이계의 검사이자, 루드비안의 후작인 아크 페인에게 주신의 성검이 있다는 소리를 이미 듣고 있었습니다. 마룡을 쓰러뜨리고 얻은 것이 아니시라면 분명 주신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번에 교황 성하께서 서신을 보내셨는데 보셨는지요?” 아크에게 블레싱 소드가 있다는 얘기는 이미 유명했기에 로리엔이 아크를 알아보는 것도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로리엔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아크를 성자로 대접하자, 전투중이던 쥬레이나란과 칸트, 그리고 기타 성기사들과 에르디도 모두 행동을 멈췄다. 로리엔은 일어서서 그들에게 외쳤다. “이분이 주신께서 세상에 보낸 성자이신 루드비안의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후작님이시다! 모두 예의를 표하라!” 그러자 마계와의 접선 제단이 있는 곳은 흡사 사이비교주의 연설장처럼 변하였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성자라는 소리에 아크는 당황스러웠지만 곧 이런 대접에 익숙해졌다. 이전 로니를 데리고 간 신전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았지 않은가? “성자라는 칭호는 부담스럽습니다. 내가 무슨 성자라고 불릴 만큼 착한 일만 하고 산 것도 아니고…….” 아크가 겸손하게 말하자, 로리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솔직히 지략의 기사님께서 보여 주신 행동은 성자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일들뿐이었습니다.” “에?” 잘 나가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인간족과 엘프족 등 주신께서 허락한 옷을 걸쳐야 할 의무를 정면으로 개무시 하셨다죠?” “그, 그건…….” “또한 저택에 고용한 하녀들에게 수녀복을 입히고 범하셨다는 불충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 “거기에 신께서 금하시는 것들 중 하나인 어린 아이와 정을 통하셨다는 말도 들었고요.” “…….” 아크는 할 말을 잊었다. 대꾸할 수 없는 결정적인 망나니 짓거리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위의 죄를 따져 보았을 때. 아무리 성자님이라 하셔도 이단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로리엔은 굳은 얼굴로 아크를 노려보았다. 아리따운 얼굴로 노려보는 것이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되었지만. “그, 그래서?” “적어도 궁형이나, 정화수도 50년 가량을 받아야 마땅하지요.” “정화수도?” “정화수도란 모든 욕구를 억제하고 신께 용서를 비는 기도를 말합니다. 물론 성욕도 엄격히 억제되지요.” 아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그럼 수도원으로 가실까요?” “……미친 쉑! 웃기고 앉아놨네! 결판을 내자!” 50년 동안 고자로 살라니……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흡연자에게 담배를 50년간 못 피우게는 할 수 있어도 아크에게 여자를 50년 동안 끊으라는 얘기는 죽으란 말과 일맥상통했다. 당장 검을 뽑아드는 아크와 다시금 긴장 상태에 빠진 아크 일행과 중도의 성기사 일행들 로리엔은 발끈하는 아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오! 아가씨 모드!” “드디어 나왔다!” 칸트가 외치고 로리엔의 부하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로리엔의 아가씨 모드가 발동되었던 것이다. ‘저것들 뭐하는 짓거리야?’ 갑작스레 환호성을 내뱉는 성기사들을 보고 미쳤다고 생각하던 아크는 로리엔의 얼굴을 보고는 할말을 잊었다. ‘커허억! 그러고 보니 퀸카 중에 초 퀸카 잖아? 곱상하게 생겼지만 말투나 입은 갑옷, 골격 등을 보아서는 여자 같지는 않았는데…….’ 미소가 그야 말로 천사의 미소와도 같았다. 미녀들이 즐비한 엘프들 속에서도 이런 미모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부드럽고 왠지 쑥쓰러운 듯 볼에 머금은 약간의 홍조까지! 물론 그 홍조는 부하들의 헛소리에 열이 받은 거라지만 그를 잘 모르던 아크에게는 부끄러워서 생긴 듯한 홍조로만 보였다. “성자님. 너무 그렇게 절망적으로만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비록 지은 죄는 씻기 힘든 중죄이지만. 주신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팬크라프트의 간악한 자들과 맞서 싸우신 공적으로 인하여 더 이상 주신의 의사를 거스르지만 않으신다면 굳이 그 형벌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자리가 이런 마의 땅이라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반갑습니다. 성자님.” “아 예. 저기 근데 혹시…….” “뭐죠?” “당신 여잡니까?” “…….” 미소 어린 표정에 실핏줄이 돋았다. 그리고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검집에 집어넣은 블레싱 소드도 약간 뽑혀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미소는 잃지 않는다. “하긴 처음이시니 착각 하셨겠군요. 자주 오해를 듣긴 하지만 전 남자입니다.” “……체.” 잠시나마 떨었던 게 바보 같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긴가민가하기는 했지만 남자라니 더 이상 아크가 찝적거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갑작스레 반응이 달라지는 아크를 보며 로리엔은 묘하게 열이 받았다. 왜 남자라고 말하니 반응이 틀려지냐! 난 남잔데! “저기 주군.” 아크는 등 뒤를 두들기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피리아.” “저 사람……혹시 그거 아닐까요?” “그거? 그거라고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아! 일단 저 쪽 한 번 봐욧!” 아크는 피리아가 가리킨 곳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윤기있는 흑발을 길게 기른 소녀가 옆에서 호위하는 기사들이 끌고 있는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채 흰색의 담요를 덮고는 숲의 이곳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이쁜데?” 단순히 아름다움을 보고 평가하는 아크에게 피리아가 단죄의 철퇴를 날렸다. 퍽! “쿠엑! 뭐, 뭐야! 이쁜 애 보고 이쁘다고 하는데?” “그런 거 말고! 뭔가 떠오르는 거 없어요!” “응?” 아크는 다시 한 번 소녀를 보았다. 이쪽 세계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검은 빛의 머리색과 하얀 피부지만 그래도 약간은 혈색이 짙은 피부. “설마……?” 아크는 로리엔을 지나쳐 의자에 앉은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아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본 소녀가 아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이계인입니까?” 끄덕. “저, 정말?” 끄덕. “어디에서 왔습니까?” “…….” 대답이 없자, 아크는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말 못해요?” 끄덕.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로리엔에게 전했던 예언을 썼던 종이에 글자를 적었다. ‘무라카미 님께서 보내신 분이겠죠?’ “아. 예…….” 자신보다 어려보이기는 했지만 산 걸로 따지면 더 오래 살았을 소녀에게 아크는 자연스레 존칭어를 사용했다. ‘이전부터 들었답니다. 당신이 이계인이라는 사실을요. 무라카미 님은 당신이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하시더군요.’ “아 그래요?” ‘맹약의 증표를 가지고 계신가요?’ “예.” 아크는 그의 사부가 준 맹약의 반지를 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소녀는 입고 있던 드레스의 별로 튀어나오지도 않은 가슴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호박으로 된 데다 금속이 아닌 줄로 되어 있는 소박한 목걸이였다. ‘이게 그분이 주신 맹약의 증표랍니다.’ “그때 말하던 맹약의 목걸이의 주인이시군요.” 아크와 성녀가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 로리엔은 역시 성녀와 성자가 만나니 뭔가 통하나 보다고 지레짐작했다. “저기 혹시 이름이?” ‘나미에르 성녀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뇨 그거 말고 고향에서 쓰던 이름말입니다.” ‘나미에 라고 불렸지요.’ “아 일본인이셨습니까?” “그렇지만 원래 이름은 보영. 진보영입니다.” “……!” 말을 못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갑작스레 성녀가 말하자,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등을 제외하고 주변의 모두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한 말은 아크와 피리아 외에 다른 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마, 말 할 줄 아셨습니까?” “네. 고향의 언어로 말할 수밖에는 없지만요.” “그런데 나미에라는 이름은 뭡니까?” “무라카미 님이 붙여 주셨습니다.” 아크와 나미에르 성녀가 서로 괴상쩍은 언어로 대화하자, 성기사들은 그들의 대화가 천계에서 쓰는 신의 언어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흠 그래요. 아크라우스와 많이 친하셨나 보군요?” 아크라우스는 무라카미 히데오라는 일본인으로 생활했었다. 언어를 봐도 한국 여성일 것이 뻔한 성녀가 아크라우스에게 받은 이름을 이곳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거기에 말끝마다 무라카미 님 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거니와, 지난 번 그녀의 정체가 언급 되었을 때 아크라우스의 반응까지 보아하니 뭔가 있는 모양이다. “어느 시대에서 오셨습니까?” “왜정(일제 강점기)때였습니다.” ‘왜정 때라……. 무라카미 이 놈이 조선 처녀들을 데려다가 메이드로 쓰면서 만나거나 그런 건가?’ 그런 생각 중에 아크의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딴 짓 안 했어! 임마!] ‘어랍쇼? 자식 듣고 있었네?’ [더 이상 그 여자한테 과거에 대한 건 묻지 마라.] ‘어? 왜?’ [묻지 말라면 묻지 마 이눔아!] ‘이런 썅 눈앞에 나타나는 마족도 안 무서워하는 내가 네놈 협박 따위가 먹힐 것 같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지 않은 거에 대답해 줄 이유는 없다 이눔아야!’ 마음속으로 얘기한다고는 하지만 흥분하다보니 말로 튀어나오지는 않았어도 아크의 몸은 마치 누군가와 맞짱을 뜨려는 듯한 자세로 저절로 바뀌었다. “……지금 무라카미씨와 얘기하시는 거 맞죠?” “……어, 어떻게 아는 거죠?” “저도 그 분과 대화할 때면 절로 몸짓이 바뀌는 일이 잦습니다. 그래서죠.” “그렇군요. 저기 그럼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요?” 아크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크라우스가 저렇게까지 민감히 반응하는 사실에 대해 파헤치려는 것이다. “무라카미와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그분하고 어떻게 만났냐……그걸 물으시는 건가요?” “아 그리고 어떻게 넘어오시게 되었고 그런 등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그러자 성녀는 갑자기 담요를 걷은 뒤 입고 있던 드레스 같은 성의의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성의를 벗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 “성녀님!” “저 미친 새끼! 그새 또 여자 꼬셨네. 허 참 저 암컷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참 대담하네? 사람들 보고 있는 데에서 옷을 벗고 말야.” 아크를 비롯하여 이 자리의 모두는 갑작스레 옷을 벗는 성녀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쥬레이나란은 아크가 또 여자를 꼬셔서 저렇게 하게 했는 줄 알고 험한 욕설을 내뱉었다. 성의가 반쯤 걷어지고 성녀는 안에 입고 있던 내의마저 벗어버렸다. 그러자, 아직 여물지 않은 자그마한 가슴이 드러났다. 작아서 브래지어의 착용은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뒤 성녀는 몸을 뒤로 돌렸다. “보세요.” 겉으로는 눈을 가리고 애써 순진한 척 하던 아크는 보라는 말에 눈을 가린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성녀의 나신을 보았다. “……!” 그녀의 등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불에 타버린 화상자국에 문드러진 살갗은 인간의 피부가 아니었다. 좀비의 피부였다. 나미에르 성녀는 곧이어 밑으로 내려간 성의의 치마를 걷어올렸다. 그러자 다리 하나가 뭉텅 베어져 나간 휑한 모습이 보였다. “여긴 좀 뭐하지만……보세요.” 이번에는 성의의 치마를 끝까지 걷어 올린 채 아랫도리에 입고 있던 속옷을 벗는 그녀였다. 아크는 은근슬쩍 다 벗기를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다 벗지는 않았다. 속옷이 약간 내려가고 속옷으로 가리는 부위의 윗부분에는 일본어로 무언가가 글자가 써진 흉터가 보였다. 글자가 써진 흉터라니……. “사실 성직에 있으면서 치료할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몇 군데는 남겨놨지요. 등의 화상과 낙서, 뭐 다리는 다시 붙일 수도 없는 거였지만요.” “…….” “이 상처는 전쟁터에서 입은 겁니다. 그 와중에 무라카미 씨에 의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죠. 폭탄 파편에 맞은 저를 그곳에서는 버렸습니다.” 아크는 뭔가 감이 잡히는 것이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의 치욕스러운 기록인 일제 강점기 시대가 종말을 맞이하려는 부분에는 전쟁사에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여자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었다.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기록은 얼마 되지 않는 여성 군인들에 대한 기록과, 2차 대전사의 여성 스파이들의 기록들도 드물게나마 실려 있었으나, 전쟁에서의 여성이 적혀 있는 기록은 대부분이 다 약탈당하는 부분에서나, 남자들만 모여 있는 군대의 성문제였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면 당시 한반도에 존재하던 국가 일제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면서 생겨날 군인들의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식민지의 처녀들을 강제적으로 납치하여 데려가 능욕하고 심지어 잔혹하게 학살까지 한 일제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다. 그 뒤 현대사에서 나오는 한일협정에 의해 그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일본에게 더 이상 따지기조차 애매하게 된 친일파 청산 문제와 함께 과거사 문제로 인하여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고 보니……내가 여기에 온 지도 30년이 넘게 지났을 테니 그 할머니들도 이제는 다 돌아 가셨겠군. 어떻게 되었을라나?’ 아마 이 성녀도 민족 수난사의 인물답게 그 몹쓸 전쟁에 강제로 동원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아크는 더 이상 그녀에게 질문을 하지 않았다. 더 물었다가는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한테는 할머니뻘이 되시는 군요.” “그렇게 되나요? 전 아직 젊은데…….” “피리아! 이리 와 봐.” 아크는 성녀에게 피리아를 소개했다. 환생계열. 그러니 정확히 말해서는 이계인은 아니고 과거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았고 특히 같은 처지가 될 뻔했던 그녀와 성녀는 대화의 논점이 묘하게 잘 맞는 듯한 모습이었다. 팬크라프트 황성. 렌도로스 대공은 오랜만에 집무실에서 나와 황제가 주거하는 황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풍으로 쓰러진 황제는 이제 더 이상 가망 없는 벽에 똥칠이나 하는 추레한 늙은이로 전락했고, 그런 황권은 군사, 외교 등에 관한 것은 군부의 수장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에게, 나머지 내정의 황권은 황제 대리인 황태자 리안 팬크라프트에게로 넘어갔다. 군부에 대한 것들은 전체적으로 렌도로스 대공이 알아서 맡아 처리한 다음 나중에 황제 대리에게 승인을 받는 선조치 후보고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이번 사항은 달랐다. 황성 내 거대한 문에 대공이 도착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시종들은 자연스레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둥근 원탁의 회의장에는 황태자와 군부의 수장들. 그리고 여러 장군들과 군량등을 담당하는 농림부 장관과 실용마법과 치유에 전념하던 의료청등의 마법사들을 통제하는 실력자들과, 영지의 병력을 동원하게 되어 있는 대영주들. 등 여러 부문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여하튼 군사와 관련된 여러 직종의 최고위층 인사들이 모였다. “오셨습니까? 대공.” 푸른 머리를 기른 순진해 보이는 중앙의 청년. 팬크라프트의 황태자이자, 황족에서는 유일하게 마스터 급에 오른 현 황제 대리 리안 팬크라프트였다. 그의 인사를 필두로 여러 귀족들과 군부의 인사들은 렌도로스 대공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대공은 그런 그들의 인사를 건성으로 흘려듣고는 리안의 오른쪽 빈 자리에 앉았다. 리안 팬크라프트의 왼쪽 좌석도 비어 있었지만 그곳은 채울 사람이 죽은 상태였다. 렌도로스 대공은 대충 사람이 다 모인 듯 보이자,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게 된 것쯤은 다들 아시고 계실 거요.” “…….” 모르는 이는 역시 없다. 수천년 동안을 이어져 내려온 두 앙숙. 동제국과 서제국의 후예들이 벌이는 대 전쟁을 말이다. 이 전쟁은 30여 년 전부터 기획되어 오다가, 루드비안의 지략의 기사의 도발로 인하여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팬크라프트에 명분을 주면서 시작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문신 여러분들은 이미 전보로서 해야 할 일을 보냈을 거요. 각자들 식량 보급 등에 신경 써 주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대공.” “여기서 할 말은 일단 기사들에게 치중되어 있소이다. 그러니 각 기사단 담당자들과 병력 담당 장군들은 내 말을 잊지 않고 똑똑히 들어야 할 것이오.” “말씀하시지요.” “지도.” “예!” 시종이 브리핑 용 지도를 꺼내고 대공은 지휘봉을 뽑아 든 채 지도를 한 군데 한 군데 씩 집어가면서 말했다. “먼저 태자 저하께서는 임페리얼 나이트들과 남부군. 그리고 황실 직할군들을 그대로 보유하신 뒤 유사시 남쪽에서 이를 가는 하인델 놈들을 견제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공.” “케레스!” 턱을 갠 체 지도를 유심히 쳐다보던 짧은 커트 머리의 여기사가 대답했다. “뭐죠? 대공 전하?” “그대는 엘시노어 기사단과 폴티아 주둔 병력 20만. 그리고 쿨르다 후작이 이끄는 마법사 부대와 공병대를 모두 데리고 루드비안의 디그리스 항을 정면으로 공략하도록 한다. 단 결판을 내려 하지 말고 치고 빠지는 형식으로 전투를 가지도록 하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자네의 임무일세. 전력을 최상으로 유지시켜 루드비안의 본토가 짓밟혀질 때 디그리스 항을 빼앗고 밀고 들어오게나.”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던 중대임무네요?” “……잔말 말고 알아서 해!” “네, 네 자알 알았습니다.” “다음은 스턴컬트 공작과 세비어!” “예.” “그대들은 국경군 40만을 직접 이끌고 카스피 왕국으로 진군한다.” “……! 카스피 왕국이라면!” “그래. 그곳을 경유하여 루드비안을 친다. 비록 그 중간에 캘더린이 있어 문제겠지만. 여차하여 캘더린 여왕이 길을 내어 주지 않을 경우. 그 병력을 가지고 캘더린을 먼저 공격할 예정이다. 케레스! 그대는 만약 캘더린을 먼저 공격했다는 전보를 들으면 무조건 카겐 항으로 밀고 들어와야 한다. 알았나?” “캘더린이 그리 쉽게 길을 빌려줄까요?” 리안이 걱정스러운 듯한 말투로 물었다. “걱정마십시오. 캘더린 역시 루드비안을 적대시 하고 있으니 조건은 까다로울지 몰라도 분명히 우리를 도와 줄 것입니다.” 팬크라프트와 루드비안 제국을 잇는 길은 폴티아 반도 외에 대륙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팬크라프트의 바로 옆에는 중도가 떡하니 붙어 있었고, 신을 배척하는 팬크라프트의 행동에 중도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팬크라프트는 육로로는 파푸치아 숲의 길 공사를 하는 방법만을 계산해야 했다. 중도가 대륙의 중앙을 떡 하니 가로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육로는 존재했다. 바로 카스피라는 약소왕국으로 지구의 칠레처럼 면적이 위아래로는 매우 협소하면서도 동서로는 상당히 긴 국가였다. 이 약소국 카스피 왕국은 당연 팬크라프트의 길을 빌려 달라는 협박에 응했다. 그리하여 팬크라프트의 국경군 40만은 어느새 이동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다만 그들 앞에는 카스피 왕국 바로 앞에 루드비안과의 관문 역할을 자처하는 캘더린의 아스멜란 시가 존재했다. 그 곳을 통과할 허락을 얻기 위해 현재 팬크라프트의 외교부는 캘더린의 여왕과 동맹 체제를 갖추자는 제안을 하러 떠난 상태였다. “……젤리커 공작은 기사들과 특공부대들로 이루어진 별동대를 이끌고 숲을 돌파하게나. 그런 다음. 도적떼처럼 활동하며 루드비안의 내부를 휘저어 주게.” 군대의 지휘를 맡아도 부족할 젤리커 공작이었으나, 지난 번 패전의 책임을 지고 지금은 게릴라 부대를 이끄는 중요할 지도 모르지만 약소한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였다. “나는 팬크라트 기사단의 일부 전대와 귀족병력을 이끌고 국경 지대에 머물겠다. 구원을 요청하면 즉시 달려갈 수 있도록.” “대공께서 선봉을 서지 않으시렵니까?” “……이제 나의 시대는 지났지. 후지기수들이 힘써줘야 할 때요. 그리고 외교부는 또 한 가지 일을 성사시켜 주어야 겠소.” “뭡니까?” “저쪽이 우리의 델른버 공작을 죽였소. 우리도 저쪽의 한 기둥을 무너뜨려야 되지 않겠소?” “……!” “저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시오. 우리 쪽에서는 내가 나가도록 하지. 내가 나가면 지략의 기사나 그레드릭 대공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테지.” 암습의 선언 렌도로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상이오.” 한참 브리핑을 하던 대공이 지휘봉을 놓자, 회의실의 모두는 곧 닥쳐 올 대 전쟁에 대비하여 전쟁 준비를 서둘렀다. 성기사단들과 마족의 섬을 빠져 나온 아크 앞에 도착한 것은 루드비안의 국기를 가슴에 단 한 연락병이었다. 그는 성기사단과 십자군단의 사이에 있는 아크에게 다가와 무릎 꿇으며 말했다. “아크 페인 후작 각하를 뵙습니다!” “무슨 일이야?” 한참 말이 잘 맞는 성녀와의 담소를 나누고 있던 아크는 조금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레드릭 대공 전하의 전보입니다.” “대공 전하의……?” 아크는 병사가 건넨 전보를 펴서 읽어 보았다. - 친애하는 부하인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경에게. 다크 로드에 가신 일은 잘 되었을는지 모르겠소. 하지만 잘 되지 않았더라도 지금 당장 그 섬에서 나와 주기를 부탁하오. 현재 팬크라프트의 국경 전대의 40여 만 군대가 펠릭스 기사단 전체와 함께 카스피 왕국으로 진군했소. 카스피 놈들은 강화협정을 맺고 길을 내 준 모양이오. 또한 폴티아 항에서 20만의 군대가 케레스 카르넨이 이끄는 엘시노아 기사단의 기사 500여 명을 대동하고 디그리스 항을 향해 진군을 계획 중이라는 전보에 팬크라프트의 예비군들 또한 전투 준비를 마쳤다 하오. 그리고 내일 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정식으로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할 것 같소. 당장 돌아와서 전투에 투입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다크 로드는 너무 머니 엘릭 백작을 귀환시키고 그대는 지금 당장 캘더린과 중도에 가 보시오. 중도를 설득하여 팬크라프트를 견제하거나, 캘더린이 팬크라프트와 동맹을 맺지 않게 해야 하오. 현재 팬크라프트와 캘더린이 동맹 협상을 맺고 있는데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카스피에 집결중인 팬크라프트의 대병력이 육로를 통해 국경을 침범할 수 있는데다가 캘더린의 공세까지 막아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오. 부디 그대는 그 뛰어난 머리를 이용하여 팬크라프트의 진군을 멈출 수 있게 캘더린을 우방으로 끌어들이거나, 팬크라프트를 견제할 만한 힘을 갖춘 중도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길 바라오. 이건 명령이오이다. “무슨 편지입니까? 저도 좀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로리엔은 아크가 보고 있는 서신을 같이 읽었다. 그리고는 얼굴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드디어 팬크라프트가 움직이기 시작했군요.” “중도와 동맹을 맺으라고 하는데……. 이봐 로리엔. 날 도와줄 수 있겠나?” 그러자 로리엔은 믿음직스럽게 답했다. “물론이지요. 신을 배척하는 팬크라프트의 간악한 적들이 그들 멋대로 활개를 치는 것은 묵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자님은 주신교의 희망이십니다. 제가 옆에서 성자님을 온갖 마와 타락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는 동료인 칸트에게 말했다. “너는 성녀님과 기사들을 데리고 이 섬을 빠져나가 군부로 복귀해서 팬크라프트의 전면 진군에 대비책을 세워라. 알았냐?” 명령을 받을 만한 낮은 직위는 아니었지만……역시 거시기 끝대가리를 잘못 놀린 탓에 칸트는 로리엔에게 철저히 부려 먹혔다. “알았다.” “잠깐! 날 따라올 생각이야?” “물론입니다. 성자님. 이미 사악함이 뇌수까지 침투한 당신을 정화시켜 본분에 걸맞는 성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제 보호가 절실히 필요할 듯 합니다.” 아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이 완전 수구꼴통 강경보수파 종교인 녀석이 따라붙다니……. 이렇게 되면 아크의 애욕 하렘 전선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니……굳이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로리엔 경은 바쁘잖아? 교황 성하를 보필하느라고.” “성자님을 보필하는 것도 제 임무입니다.” 행운만을 불러와 주던 블레싱 소드가 최초로 아크를 배신하는 순간이었다. “에드.” “왜?” “넌 가서 대공을 도와 전쟁을 수행하도록 해. 나는 캘더린에 가서 캘더린 여왕을 설득하겠다. 에르디는 나를 따르도록 하고, 피리아는 혹시라도 팬크라프트 군에 영지가 뚫릴 지도 모르고 혹시 모르니 영지에서 병력을 좀 차출해 둬.” “알겠습니다. 주군.” “……이제부터는 전쟁이다.” 7권 예고. 시작된 대륙 전쟁. 지략의 기사의 본격적인 활약 펼쳐지다? 아크 : 이런 변태 마녀!!! 에스메랄다 : 호호호홋! 귀여운 걸? 불타는 제국의 수도.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 공주 : 이제……대원군(왕의 아버지)이 되실 겁니다. 아크 : 으윽……예에??? 대륙 전쟁의 끝을 맺을 최후의 일전. 렌도로스 : 오랜만이군. 아크 : 반갑군요. 아직까지 안 돌아가시고 살아계시다니. 렌도로스 : 그 입담은 여전하군. 하지만 다시는 들을 수 없겠지. 여기서 죽을 테니까. 아크 : 그러겠죠. 죽어서 묻힐 분이니 다시는 제 입담을 들을 수 없으실 겁니다. //////////////////// 분량 완성 끝. 그러나 황금빛이 되지 않은 저 가련한 용량....(...) 때문에 잡담 몇 가지 늘어놓죠. 요새 일하느라 바빠서 미연시를 많이 못했습니다... 세 개를 연작하자니 학업에 플러스로 받는 스트레스까지 밀려오고... 그렇지만 2006학년도 수능을 대비하여 공부에 힘쓸 때인지라.... 에볼루션은 3월달 이전에 완결이 날 겁니다... 루시페리아 R은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여하튼 그나마 조금 쉴 수 있는 방학기간 동안 최대한 많이 써 놓을 생각입니다. 치한소아과는 현재 투표로 결정된 캐서린의 각본을 짜고 있는 상황이라 연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숨겨진 캐릭터로 나중에 등장하기에 구체적인 각본이 없었는데 이렇게 선택될 줄은 몰랐군요...다른 캐릭터였으면 벌써 연재가 들어갔을지도...(뻥 99%) 에볼루션의 정식 후속작은...에 그러니까...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군요. 원고지 약 300매 가량 써 둔 것은 있는데...미연시 소설들인 치한소나 루시페리아와 비슷한 류라 연재를 몇 년 후로 늦추렵니다...그때쯤이면 다 까먹으시겠죠...새로운 작품인 척 치장하고 나올 겁니다.(쿠엑!) 미연시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기는 하지만 현 대한민국의 꼴통 영등위와 유교사상적인 면 꼴통 여성부 등이 존재하는 한 제가 구상한 수많은 미연시 시나리오는 단순히 소설로밖에는 표현되지 않을 듯 합니다. 그에 붙는 야설작가라는 영예로운 칭호 역시 그런 요소가 없는 글이 나올 때까지 평생 따라다니겠지요. 피곤합니다...며칠간 졸라 노가다를 했더니...잠와 미치겠습니다... 그렇지만 수정 및 교정도 해야 되고...큰일났네... 며칠 안 나오는 코피는 줄줄줄... 죽을 때가 다 되었나...아직 응응응 도 안 해 봤는데...죽을 수는 없지... 수능 사탐 보신 분들...경제 교과 표준점수 높습니까?? 공부에 치이고 글에 치이고... 아 쉬고 싶습니다. 미연시라도 하나 받아 놓고서 오니짜앙 소리를 들으면 피곤한 마음이 정화될 것만 같은데... 내일부터는 또다시 11시까지 지속되는 학교 수업과 자율학습에 치여야 겠지요... 힘들 내십쇼...엿 같은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좋은 학력으로 치장된 고급인력이 되어 모두들 살아남읍시다. 대륙에 전쟁의 포화가 울렸다. 팬크라프트 제국은 제국의 귀족 폴티아 백작과 군부의 수장격인 소드 마스터 루이스 델른버 공작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군 20만과 육군 40만을 일으키고 루드비안 제국과의 중간 길목을 막고 있던 카스피 왕국과 캘더린 왕국에게 길과 병력을 빌려 달라는 동맹 협상을 제의했다. 그런 다음 팬크라프트에서는 대륙의 두 그랜드 마스터 루벤드 그레드릭과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단독 면담 협상을 제시했고 국가 존폐에 놓인 루드비안 제국의 대공 루벤드는 순순히 협상 테이블에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암습이었고 그레드릭 대공은 그 무력으로 간신히 팬크라프트의 암수에서 빠져 나올 수는 있었으나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과 루드비안 제국의 황제는 팬크라프트와의 협상 전 군부의 부원수이자 후작이며 지략의 기사로 이름이 높은 아크 페인 후작에게 그동안 적대시하고 지냈던 서방 캘더린 왕국에게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달라는 협상을 제안하라 명하였다. 그리하여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족의 땅에 가 있던 아크는 그곳에서 만난 중도의 성기사단장 화이트 로리엔과 함께 캘더린 왕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루드비안 제국의 군부 부원수인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과 중도 교황청의 성기사단장 화이트 로리엔이 알현을 청하고 있습니다.” “음 그래.” 용상에 앉아 있던 여왕은 한참 손톱을 다듬던 시녀에게 고갯짓 했다. 그러자 시녀는 군소리 없이 매니큐어 도구를 가지고 나갔다. “베스비오!” “예 폐하.” 여왕의 부름에 많은 여자 대신들 중 보기 드물게 남성으로 여왕과 제일 근접한 자리에 위치해 있던 신하가 고개를 조아렸다. “그 둘이 무엇 때문에 왔을까?” “뻔한 이야기겠지요. 중도의 성기사까지 함께 왔다면 아마 기껏해야 한다는 소리래봐야 주신을 부정하는 암흑의 제국과 손을 잡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럴 테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왕은 열심히 배우려는 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 같은 투로 되물었다. “사실 지금 카스피 왕국에 집결한 팬크라프트의 군대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오히려 루드비안에게만 좋은 꼴이겠죠. 팬크라프트가 대륙 통일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야 예전부터 알려진 일이고 현재는 명분을 얻은 루드비안을 먼저 치려 하는 것 뿐이니 우리 측에서는 루드비안으로 통하는 북방 도시 세 곳을 자유로이 사용하게 놔 주고 이전부터 적대시하던 루드비안으로 군사를 일으켜 루드비안의 동부 평원을 최대한 많이 차지하여 국력을 기르고 그 다음에 중도와 손을 잡은 뒤 팬크라프트와 대항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사료되옵니다.” “그래. 내 생각도 같아. 지금 당장 팬크라프트의 사절단에게 동맹의 의사를 전달해. 그리고 지략의 기사라고 했지?” “예. 그레드릭 대공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가 현재 루드비안 군부의 실세라 할 수 있습니다.” 여왕의 입에 묘한 미소가 어렸다. “세실.” “네.” 이번에는 남자 신하 대신 왼편의 검을 든 여성 기사가 답했다. “……기사단을 준비시켜라. 마스터 급 무인이 둘이니 혹시라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알겠습니다. 여왕 폐하.” 루드비안 제국의 모든 외교권을 쥐고 온 아크는 캘더린을 지배하는 여왕 에스메랄다 에스첼을 알현할 수 있었다. 마흔 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캘더린의 여왕은 마법을 통하여 소녀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온몸에 치장한 보석들이 여왕의 미모와 동화되어 상승 분위기를 내는 매혹적인 여성이었다. 잔혹하고 괴팍하며 권모술수에 뛰어나 마녀라고도 불리는 여자지만 적어도 외모만큼은 그 소문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다. ‘외교사절은 먼저 인사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알현 전 에르디의 말을 들었지만 아크는……나름대로의 인사법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암살의 위협을 미연에 예방키 위해 외교 사절 뿐만 아니라 왕에게 접근할 때에는 일정한 선을 두고 있었다. 외교사절로 온 아크와 로리엔 그리고 에르디는 그 선에 정확히 멈춰 서 여왕에게 인사했다. “중도 교황청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이 캘더린의 여왕 폐하를 뵙습니다.” 에르디는 작위가 없으니 그저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만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둘과는 다르게 아크는 고개를 빳빳히 세운 채 거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 지금 뭐하는 겁니까 주군! 인사해야지요!’ 옆에서 에르디가 아크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그 의문은 캘더린의 신하들과 여왕도 마찬가지였는지 여왕은 미간을 찌푸렸고 여왕의 오른쪽 옆 자리에 바로 서 있던 좀처럼 보기 드문 남성 대신이 소리쳤다. “무례하오! 어찌하여 우리 여왕께 인사를 하지 않으시오?” “큰 나라의 사신은 작은 나라의 왕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이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크의 그 기개에 놀랐다……라기 보다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온 탄성이었다. 이전 동제국 서제국 양분의 시절에서 군소 국가들에게나 저런 말이 통했지 요새처럼 4대 열강이 확연히 나눠진 때에 황제라는 이름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는 아크를 비웃는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 그때 웃음소리가 터졌다. “호호호호. 재밌는 분이로군요. 좋습니다. 그럼 귀족의 자격으로 따져 볼까요? 그래봐야 당신은 후작이고 나는 일국을 통치하는 왕입니다. 그런 내게 인사 한 마디 없다는 것은 너무 무례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현 대륙의 정세를 따져 보았을 때 당신이 할 말은 아쉬운 소리일텐데 아쉬운 소리하러 와서 너무 당당한 것은 독이 됩니다.” “맞습니다. 성자님. 당당한 것은 좋으나 예의를 갖추시지요.” 로리엔까지 나서서 거들자, 그제야 아크는 뭔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루드비안 제국의 후작. 아크 페인이 캘더린의 여왕 폐하를 뵈게 되었습니다. 듣기로는 온갖 흉악한 형용사가 곁들여져 제 생각에는 쭈글쭈글한 코쟁이 할멈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예상외의 미인이셔서 차마 붉어지는 얼굴을 어디다 치울 줄 모르고 정신을 못 차리다 보니 굳어가는 머리가 망발을 내뱉었습니다. 너그러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호호호 정말 재밌는 분이시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국과 왕국의 개념을 가지고 한 번 당당하게 나가 본 것이 비웃음을 사게 되자, 아크는 바로 여왕의 미모를 말빨로 치장해 칭찬함으로서 대충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여왕의 첫인상은 듣던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지독한 마녀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는데 지금의 모습으로는 그런 악독한 마녀가 연상되지 않았다. 얼굴이 예쁘니 무죄라는 것인가……그러나 외모와는 다르게 속에는 커다란 구렁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는지라 아크는 경계심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선전 포고의 사절인가요? 우리 쪽에서 먼저 할 생각이었는데?” 여왕은 초장부터 선전 포고라는 말로 루드비안의 목적을 일축했다. 이렇게 하면 동맹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전쟁 개입을 삼가라는 말을 꺼내기가 상당히 어색해지는 것이다. 외교는 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말빨 하나는 끝내 주는 아크도 할 말을 찾지 못하다가 간신히 용건을 꺼냈다. “팬크라프트의 개가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말씀이 지나치시군요……흠 개라고 하면 개겠지요. 그렇지만 그 개는 꼬리를 흔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주인의 뒤통수를 물어뜯을 겁니다. 또 이전까지 적대하던 죽어가는 나라보다는 그다지 척을지지 않았던 나라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완곡한 거절이었다. 아크는 용건도 꺼내지 않았지만 여왕은 이미 아크가 할 말과 국제 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모두 꿰차고 있었다. “……팬크라프트는 주신을 거부한 이단의 나라입니다. 어찌…….” “훗. 이봐요 중도의 고지식한 기사여. 아무리 이단 이단 하더라도 힘이 있는 나라를 중도분들이 건드릴 수 있습니까? 교황청이 이전에 있었던 루티안만 하더라도 교황의 심기를 약간만 거스리는 나라들을 핍박했지요. 그건 그들에게는 힘이 있고 타국에는 힘이 없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당신네들 중도는 팬크라프트를 주신의 힘 앞에 무릎 꿇릴 수 있습니까? 힘이 없는 논리는 먹히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팬크라프트는 루드비안 다음에는 당신네 캘더린을 노릴 것입니다. 쉽게 손을 잡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물론 길을 빌려 주신다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다고 생각하지만 캘더린 측의 군사 행동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리 말하는 것입니다.” “어리석군요. 우리는 팬크라프트에 편승하여 루드비안의 동부 평원을 최대한 많이 차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국력을 키운 뒤……중도와 손을 잡고 팬크라프트에 대항하기로 말입니다. 천하 삼분의 계. 한 강국을 막기 위해 두 나라가 연합한다면 충분히 국가의 안위를 보전할 수 있지요. 로리엔 경이라고 하셨나요? 비록 지금은 그리 나오시겠지만 루드비안이 멸망하고 대륙에 세 나라만 남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우리와 손을 잡으셔야 할 겁니다.” “그러시다면 군사를 일으키지 않으시겠다면 동부 평원을 떼어 드린다는 조건은 어떻습니까?” 그레드릭 대공이 말한 대로 아크는 최후의 조건을 제시했다. 동부 평원은 중북부 평원 다음가는 루드비안 제국 식량생산지. 그곳을 잃는다면 국력은 급감하겠지만 중북부 평원과 기타의 대지만 가지고도 4대 열강의 직위를 잃지 않을 만큼 제국은 땅덩이가 넓었다. 분열된 국가의 국론만 하나로 모아 일심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지략의 기사라는 인재를 보유한 제국은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로군요. 동부 평원의 양도라…… 허나 전황은 팬크라프트에게 너무도 유리하지요. 만약 우리가 군사를 내지 않는다면 루드비안에게도 희망적이겠지만 팬크라프트가 이기게 된다면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그리고 나는 루드비안 제국의 멸망을 원합니다.” 여왕의 얼굴 표정이 ‘그리고’에서부터 미묘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아크는 생각했다. ‘적대심이 대단하다고 했었지? 하긴 그랬으니 암살자를 보내 황가의 핏줄들을 죽이겠지.’ 아무래도 캘더린의 전쟁 개입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레드릭 대공의 서신에는 중도와 손을 잡을 수만 있다면 캘더린에게는 그렇게까지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언급이 되어 있었다. 중도는 로리엔의 요청으로 일단 교황청의 병력만 일차적으로 움직이기로 했으나, 종교국가에 시민국가 다운지라 교황청이 움직인다면 주신을 믿는 독실한 신자들인 중도 주민들이 전쟁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교황청과 중도 연맹정부로 알게 모르게 세력이 나눠져 있다고는 해도 시민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렇게 거부한다면 더 이상 설득할 생각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제국의 저력을 몸소 체험 시켜 드리는 수밖에 없지요. 가지.” 아크는 에르디와 로리엔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별 성과를 얻지 못했으니 중도의 기둥인 로리엔을 얻었으니 굳이 캘더린의 힘까지 필요하진 않았다. 팬크라프트와 맞먹는 군사력의 중도가 나서 주면 비록 루드비안이 모든 면에서 열세라지만 한 판 해 볼만 했다. 그렇게 아크는 캘더린 궁성을 나서려 했다. “그렇지만……가란 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크는 뜻밖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여왕은 지금까지는 보여준 적이 없는 사악한 미소를 입에 띄고 있었다. “에?” “지략의 기사……당신은 여기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야!” “중도의 신성기사 로리엔 경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미 중도가 루드비안과 손을 잡기로 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죠. 그렇게 된다면 전쟁이 조금은 골치가 아파질 터. 루드비안 군부의 인물이자 마스터인 당신은 여기 남아주셔야 겠습니다.” “웃기지 마시오! 사신을 이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국제법상 어긋나는 일이고 왕국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죠. 다만……루드비안은 곧 멸망할 나라이니 신경쓰지 않습니다.” 짝! 박수소리와 함께 대소 신료들과 아크 일행이 있는 알현실의 왼쪽 오른쪽의 양 입구에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와 아크 일행을 포위했다. 이 광경에 로리엔이 노한 듯 소리쳤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이분은 주신의 성자님이십니다! 더 이상의 행동은…….” “로리엔 경은 고이 돌려보내 드려라. 괜히 중도의 신망을 쌓고 있는 기사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웃기지 마시오! 나는 이곳에서 성자님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오.” 그러나 승산이 없었다. 캘더린의 홈구장에서 그것도 이리도 많은 기사들에게 둘러 쌓였다. 도망칠 수도 없고 이길 수는 더더욱 없었다. “……가라 로리엔.” “……! 성자님!” 싸운다면 죽는 상황. 아크는 정말 이렇게 하기는 싫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일단 에르디와 로리엔이라도 보내 놓고 나중에 치맛자락이라도 잡으며 통사정이라도 해 보는 수밖에. 그리고 정 안 될 경우를 대비하여 맹약의 반지를 통한 아크라우스의 브레스 공격이라도 이끌어 내려면 이 둘은 기필코 떼어놓아야 했다. “이 둘은 중도의 기사들이오. 고이 보내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아크는 루드비안 소속의 기사인 에르디마저 중도인으로 속였다. “어서 가라. 난 죽지 않는다. 그러니 빨리 가!” “안 됩니다 성자님! 여기서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서 가라. 로리엔 여기서 싸우면 우리 모두 죽는다. 나는 네가 여기서 죽기보다는 나중에 내가 죽는 상황이 왔을 때 복수를 해 주길 원한다. 그러니 어서 가도록 해라.” “주…….” 아크는 주군이라고 부르려고 하던 에르디의 입을 막았다. “날 어서 포박하시오.” “묶어라!” 곧이어 기사들이 아크를 눌러 꿇어앉힌 뒤 쇠사슬로 아크의 몸을 묶었다. 뒤로는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족쇄를 채웠다. 그리고 마력 제어 팔찌까지 채워졌다. “…….” “끌고 가라. 그리고 저기 중도의 기사분들을 어서 모셔가 드려라.” 아크의 묶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저지하려던 로리엔과 에르디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많은 기사들에게 제압당하여 바깥으로 쫓겨나고 있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들어온 지라 에르디에게는 약품도 로리엔에게는 검도 없었다. 아크라우스가 자동 소환 마법을 걸어 놓은 아크의 블레싱 소드와는 다르게 로리엔의 블레싱 소드는 자동 소환 기능이 없어 검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크는 캘더린 왕국의 포로가 되었다. 에르디와 로리엔을 보낸 아크는 다 속셈이 있었다. 그 둘만 멀리 떼어 놓으면 아크라우스의 맹약의 반지를 통하여 생명을 구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곧바로 참수형 따위를 시킬 줄 알았던 여왕은 아크의 예상 외로 그를 가둬 둔 채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흐아아아암~” 덕분에 적진 한 가운데에 잡혀있는 주제에 긴장감이 풀려서 하품까지 나오는 아크였다. 그런 아크를 앞에서 감시하던 간수는 한심하다는 듯이 보았다. “캭! 누굴 야려 임마! 내가 지금 갇혀 있다고 개무시 하나 본데 나 지략의 기사야 지략의 기사. 너 따위가 야려도 되는 인물인 줄 아냐?” 귀족이 되더니 건방짐이 심히 심해진 그였다. 끼이이익! 덜컹 그 때 지상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고, 기사들 몇이 들어 온 다음 그 뒤로 에스메랄다 여왕과 캘더린의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 그리고 여왕의 참모이자 7서클의 마법사 베수비오가 연달아 들어왔다. 여왕은 간수한테 괄괄한 욕설을 퍼붓는 아크를 보며 말했다. “갇혀 있는 기분이 어쩐가 물어볼까 했는데 긴장감이 없으시군요.” “하하 그게 제 장점이죠. 그런데 죽이지도 않을 거면서 전 왜 붙잡아 두고 계신 겁니까?” “당신이라면 적국의 군부의 2인자를 전쟁 중에 생포하고도 가만히 놔 둘 겁니까?” 아크는 그제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 아크는 루드비안 제국의 후작이자 소드 마스터로 군부에서는 그레드릭 대공 다음가는 권력자이다. 군부 부원수라는 직위를 가진 그를 가만히 놔 둘 여왕네가 아닌 것이다. “……그 말은?” “당신에게서 루드비안의 정보를 얻겠다는 이야기죠. 순순히 분다면 그다지 고통스럽지는 않을 거에요.” “피식. 일제 강점하 순사들의 고문과 민주화 운동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내게 고문 따위는 우습소.” 지랄한다. 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렸다. 80년대 태생인 놈이 어디 민주화 운동이며 독립운동을 입에다 담는다는 말인가? 만약 진짜로 민주화 운동한 운동가들이 들었다면 당장 싸대기 날라 올만한 일이다. 더군다나 여왕을 비롯한 이곳 세계의 인간들은 아크가 살았던 곳에 그러한 민중 항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고문 따위는 우습다니 유감이군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강도는 심해질 테니까요.” “마음대로.” “저 자를 꺼내라!”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가 마나 제어 수갑을 찬 아크를 연행해 나왔다. 그리고서 여왕이 가는 걷는 쪽으로 아크를 데리고 갔다. 얼마 안 가 의자 하나와 밧줄 및 온갖 고문 도구가 즐비한 방에 도착한 아크는 강제로 의자에 앉혀졌다. ‘이런 미친년!’ ‘당신도 참 불쌍하게 되었군. 당신은 살아나가길 빌겠네.’ ‘크크크 팔이 떨어져 나갔다 차라리 죽었으면 이 꼴은 안 보는 것인데.’ 의자의 뒷벽에는 이전에 다녀간 죄수들의 처절한 다음 사람에게 남기는 메시지가 쓰여져 있었다. 필기구가 없었는지 대부분 이제는 굳어서 시커매진 피로 쓰여진 메시지였다. 하나 하나 뭔가 처절한 원한이 느껴지는 것이 섬뜩함 그 자체였다. “질문에만 제대로 답한다면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 은근슬쩍 긴장되는 아크였다. 충성심 따위는 추호도 없는 그에게 루드비안의 극비 비밀 따위를 묻는다면 아크는 아는 한도 내에서 조금씩 튕기다가 다 말해 버릴 계획이었다. “현재 루드비안 제국의 병력은?” “……글쎄요?” 여왕은 대번에 고개를 까닥였다. 곧이어 아크의 목에 밧줄이 매어지고 힘 센 장정 여럿이 우물에 사용하는 도르래로 아크의 몸을 들어올렸다. “쿡!” 숨이 꽉 막혀 오는 듯한 고통에 아크의 얼굴은 금세 시뻘개졌다. 머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머리까지 아파왔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마나가 폐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고통을 주는 관절기나 숨통 끊기 기술. 지금까지 써오기만 해왔던 아크도 그 고통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만!” 중요한 정보를 줄 적의 수뇌를 쉽게 죽일 수는 없었기에 여왕은 손을 들어 형을 중지시켰다. “조금은 말 할 생각이 드셨습니까?” “모릅니다.” “계속해.” “쿡! 끄우우욱!" 얼굴이 새뻘개진 채 입이 돌아가는 등 온갖 고통스러운 증상은 다 나타났다. 여왕은 아크가 입에 게거품을 물 때 즈음 되자, 여왕은 손짓을 하여 밧줄을 풀어 주었다. “순순히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정신 마법을 걸어서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게!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깐!” 몇 번 당해보니 고통이 뭔지 알았던 아크는 정말 아는 게 있으면 불고 싶었다. 그러나 맨날 영지에서 엄한 짓거리나 했던 그가 군부의 자세한 정보 따위를 알고 있을 턱이 만무하다. 모르는 것을 물으니 미칠 지경인 것이다. “흠 아직은 약했나 보군요. 이봐!” 그녀의 부름에 얼굴에 복면을 뒤집어 쓴 거한이 큼지막한 주전자를 하나 들고 나타났다. “지략의 기사를 단단히 묶도록.” “예!” 병사들은 아크의 몸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마스터 급 무인이 몸을 흔들어 대는 데에 버티기는 조금 힘들었지만 베수비오의 파워 다운 마법이 먹히자 아크도 곧 잠잠해졌다. 여왕이 거한에게 고갯짓을 하자, 그는 주전자의 물을 그대로 아크의 코에다 처 박았다. 특이하게도 주전자의 물이 나오는 것이 딱 코의 사이즈에 맞게 양갈래로 뚫려 있는 것을 보니 정식 물고문 도구인 듯 했다. 코로 물이 역류하는 그 미칠 듯한 느낌에 아크의 눈은 저절로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입에서는 코로 들어간 물이 둑이 터진 듯 마구 흘러나와 아크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주전자의 물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받은 물고문에 아크는 정신이 완전히 해이해졌다. “이제 말해보시겠나요?” “아 진짜 모른다고!!!” “뭐 이 정도에 불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체면도 서지요. 다음.” “뭐, 뭐 하려는 거야!” “무서우시면 부세요.” “풍선 줘!” 고통이 사라지자 호기롭게 외치는 아크. 하지만 그 따위 농담이 먹힐 턱이 없었다. 병사들 몇 명이 면도기를 가지고 나타났다. 물론 아크의 수북이 자란 털을 면도해주는 고마운 용도였으면 엎드려 절을 했겠지만 그런 용도일 턱이 없잖은가? “면도해 드려라.” 그들은 묶인 아크의 다리털과 팔 등에 면도를 가했다. 야성미 있는 것처럼 보이려……라기 보다는 폐인 시절 버릇인 귀찮아서 가만히 놔 뒀던 털이 한 가닥 한 가닥씩 떨어져 나갔다. “큭!” 하지만 역시 처음 예상대로 단순 면도해 주러 온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면도기를 아크의 살에 댄 채 피부까지 벗겨 내렸다. “크아아아악!!!” 어지간한 칼에도 몇 번 맞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극심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야이 새끼들아! 내가 과일이냐! 껍질을 벗기게 끄아아아악!!!” 각질 같은 게 아니라 살점이 그대로 베어져 나갔다. 온몸에서는 피가 줄줄줄 흘러내린다. “그만!” 더 이상 했다가는 출혈 과다로 죽을 지도 몰랐다. “살점을 다시 붙여라.” “예!” 병사들은 면도기에 말려들어간 살점들을 여기저기 뭉텅 베어진 아크의 피부에 다시 붙였다. 그리고 여왕의 고갯짓에 베스비오가 마법을 시전했다. “퍼펙트 힐링!” 신성계열이 아닌 단순 마법계열 최고의 회복마법 퍼펙트 힐링을 맞자, 아크는 베여져 나갔던 살점들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아크 좋으라고 한 건 아니었다. “다시!” “야 이 미친 X아! 고만해! 모른다고 했잖아!” “루드비안 군부의 부원수이자 후작에게 그 정도 정보가 없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이런 신발! 정말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지! 너 같으면 알면서 이 상황에서 모른다고 하겠냐!” “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당신도 그들 중 하나일 테지요. 이건 아직 3단계에 불과합니다. 풀코스는 20단계에요.” 앞으로 이 풀코스가 17가지나 남았다는 것에 아크는 경악했다. “2, 20단계? 야 이 놈들아! 몰라! 모른다고!!!” “어디 20단계까지 가면서도 안 부나 보도록 하죠.” “끄아아아아아악!!” 당장 아는 대로 다 얘기하고 싶었다만 뭘 아는 게 있어야 불 게 아닌가? 그리고 여기서 20단계까지 버텼다는 놈들은 도대체 뭐야!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명색이 지략의 기사이자 잔머리의 황제라 불리는 그다. 살이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아크는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허억, 허억, 허억.”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부시겠습니까?” “허억, 허억, 질문해라.” “흐음 별로 오래 버티시질 못하시는군요. 정말 이십니까?” “빨리 물어 볼 걸 물어봐!” “현 루드비안 병력은 약 얼마나 되는지요?” “총 병력은 약 80만 정도.” “그 중 황제 직할 수도방위군은?” “약 10만 가량?” 안색 하나도 바뀌지 않고 뻥을 쳐대는 아크였다. “흐음 우리가 조사한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는군요? 사실인가요?” “타국인인 네놈들이 조사한 것과 내가 말하는 것 중 뭐가 더 신빙성이 있으리라고 보나?” “음 일단 넘어가지요.” 여왕은 의심쩍다는 눈빛을 보내면서도 다음 질문들을 늘어놓았다. 그 질문들에 답하는 아크의 답변은 그야말로 청산 유수였다. 온갖 허위정보를 꾸며내어 부니 이리도 속 편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현재의 조국인데 막 정보를 가져다 붙이면 어쩐지 속이 캥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들로 이놈들에게 허위정보를 유포할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일석이조였다. “아르민 요새를 지키는 지휘관과 그 병력은 어느 정도죠?” “아마……라이스 버거 장군일 테지. 병력은 한 4000가량으로 그다지 많지 않아.” “역시 그랬군요.” 역시 라는 말을 들은 아크는 헛소리로 얘기해 본 게 정말 들어맞았나 싶어 약간은 놀랐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었다. “4단계 준비하세요.” “무, 무슨!” “이보세요. 지략의 기사님. 거짓을 고하려면 좀 제대로 고하세요. 아르민 요새는 팬크라프트에 있는 군사요새고 버거 가라는 귀족은 이 대륙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게 뭐시냐! 버거 가는 우리 루드비안에서 스펙터 기사단으로 키운 인재야! 또한 아르민 요새는 우리 칼데안 요새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고!” 아주 거짓말이 입에 붙었다. “스펙터 기사단?” 그걸 또 믿는 듯이 되묻는 캘더린 여왕. “그래! 특수임무를 지향하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기사들이 귀족의 행적을 파고 몰래 조직된 약 70여 명으로 이루어진 기사단이지. 비밀 임무를 맡고 현재는 팬크라프트에…….” “스펙터 기사단장의 이름은요?” “포카리 스웻 경이었나 아마?” “정말 장난 치고 계신 거죠? 지략의 기사님. 루드비안에 스펙터 기사단은 이미 파악해 둔 상태.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는 고작 12명이고 단장의 이름은 라몬 에이저 경이에요. 라이스 버거나 포카리 스웨트라는 기사는 없답니다.” “…….” “끌고 가라. 아무래도 제 정신을 못 차리신 듯 싶구나.” “어이 잠깐 잠까아아아안!!!” 결국 제 무덤을 판 아크는 더더욱 심한 고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정말 지독하시군요. 아크 경. 그 20단계 고문을 거치고도 아직까지 입을 틀어막고 계시다니 대단하군요. 대부분은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지치고 마는데 말이죠.” “……니미 지랄하지마라.” 아크는 정신이고 육체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거꾸로 묶인 채 강제로 물 속에 처넣어진 고급형 물고문은 물론, 주리, 채찍, 손톱 꺾기, 전기고문, 인두 지지기, 몽둥이찜질, 심지어는 온통 가시로 둘러놓은 원통에 거시기를 집어 놓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시녀들의 스트립쇼에 거시기를 찔리지 않게 조절까지 해야 했다. 진작 불었어도 불었을 충성심 없는 아크라지만 뭘 아는 게 있어야 불지? 허위정보 유포했다가 두 번이나 코스를 리셋해서 밟아야 했고, 결국 지금은 독기만이 남았다. “호호홋! 귀여운걸요 아크 경. 그 위기에서 아직 거시기도 멀쩡하시고?” “이런 변태 마녀 같으니라고.” 이를 갈았지만 포로가 된 이상 별 수 없는 대가. 민주화 운동 놀이라고 애써 생각하며 고통을 버텼기에 미쳐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정말 무서운 고문들이었다. “여하튼 정말 몰라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한 걸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아크는 짜증을 냈다. 이제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마음대로 하란 투였다. “흠 사실 잘 때 드림 리딩 마법으로 기억을 읽어들였는데 정말 그런 건 없더군요. 지금까지 미안했어요.” “……지금 장난?” 진작 그렇게 했음 이렇게 당할 일 없었잖아! “아하하 미안해요. 그런데 말이죠. 이제는 당신이 쓸모가 없어졌거든요?” “그렇겠지. 그럼 어서 나의 목을 베어라.” 형주를 빼앗기고 여몽에게 잡힌 관우 마냥 처연히 죽음을 요청하는 아크. 긴긴 삶을 놔두고서 죽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으나, 말로는 폼을 잃지 않았다. 어차피 맹약의 반지……. 어라? 이거 어디 갔어? 아크는 묶인 손을 바라보다 맹약의 반지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당황하는 아크의 모습을 본 여왕은 소녀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찾아요? 아! 그 반지는 워낙 재밌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실험용으로 보냈어요.” ‘완전 낙동강 오리알, 변기통 구더기 알, 태풍에 날아간 팬티 됐다!!!’ 이제야 아크는 슬슬 죽음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크라우스라는 든든한 백이 있을 때는 그래도 당당했는데 이젠 목숨을 구걸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이런 병신! 내가 왜 그딴 말을!’ 폼 잡고 ‘어서 내 목을 베어라’ 라고 말한 것이 무진장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치맛자락이라도 붙잡고 뭐든지 하겠으니 살려만 달라고 빌었어야 했는데 욕하고 목 자르라고 하고! 완전 제 무덤을 판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치만 지금껏 접해왔던 영상매체에서 보았을 때. 맨 처음에는 당당히 죽음을 요구해야만 상대편의 군주가 오히려 그 점을 높게 사고 오히려 그 장수에게 더더욱 매달리지 않는가! 그렇다고 너무 많이 튕기면 진짜 죽을 수가 있기에 이렇게 처음 한 번 튕기는 정도가 딱 알맞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에스메랄다 여왕의 발언은 뜻밖이었다. 아크의 평안해진 모습을 세상 해탈의 그것으로 본 탓이다. “역시 초연하군요. 당신같이 명예로운 이름을 지닌 기사에게 더 이상 항복을 권유한다는 것은 치욕을 주는 일이죠. 좋아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죠.” ‘아니 그게 그냥 치욕을 줘도 돼! 그냥 나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어요! 한 마디면 된다니깐!!!’ 완전히 길바닥에 붙은 먼지 묻은 껌이 되어버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데리고 가세요.” 그 말에 기사들이 아크의 양팔을 끌고 캘더린 수도 중앙광장에 존재하는 사형대 앞으로 데려갔다. 아크는 끌려가지 않으려 땅바닥에 발을 질질 끌었지만 그런다고 봐 줄 이들은 절대 아니었다. 마지막 보는 궁성의 광경. 그리고 궁성과 연결된 수도 중앙광장의 사형대. 정말 마지막으로 보게 될 지도 모를 하늘도 새삼 쳐다보니 맑고 푸르렀다. 강제적으로 무릎이 꿇려졌다. 그리고는 역시 강제적으로 목이 땅바닥에 닿았다. 그렇게 아크는 한 나무 밑둥에 강제로 목이 눕혀진 채. 자신의 목을 몸에서 달아나게 할 도끼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죽여라! 죽여라!” 지략의 기사의 사형식이 널리 알려져서인지, 광장에는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 하나같이 아크의 죽음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크는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잃지 않았다. 혹시 아나? 아직이라도 날 섬길 생각이 없냐? 라고 넌지시 물어 볼 지? “마지막으로 할 말은?” 마지막이란다. 아크는 혹시 이런 상황에서 나올지 모를 동료들의 구원을 기다리며 잠시 대답에 뜸을 들이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허나 살려 보내 준 에르디나 로리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 말하세요. 비록 그대는 처형되지만 당신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역사의 기록에 남을 겁니다.” 결국 할 말은 그것뿐이었다. 살려달라! 이 한 마디. 그러나 차마 처음부터 비굴모드로 나갔으면 그나마도 치맛자락 붙들고 애원하기가 쉬웠을 텐데 괜한 똥폼을 잡아놔서 이제와서 치맛자락 붙들고 애원하기도 힘들게 생겼다. 아크는 자신의 등을 밟아 무게로 속박하는 망나니를 밀쳐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공이 마나 제어 쇠팔찌로 인하여 쓸 수 없게 폐해졌다지만 애초에 내공심법 수련보다는 단순 칼 들고 노가다로 마나를 쌓았던 그였던지라 완력도 무시못할 수준이었다. 사형수가 망나니를 밀쳐 내고 일어서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왕을 보호하기 위해 병사들이 그녀를 겹겹이 감쌌다. 그리고 성벽에는 궁수대가 준비 하는 등 뜻밖의 난동에 대비들을 시작하는 병사들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로 아크는 큰 소리로 외쳤다. “……씨이바아아알!!!. 죽기 전에 여자라도 안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그냥 나 살려줘! 사신을 죽이는 개 똥덩이 같은 법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 살려 달라고 이 신발 것들아!!! 사람 죽는 꼬라지가 그렇게 재밌냐!!! 앙!!!” “…….” 지략의 기사라 불리는 이의 처절한 절규에 광장에 모인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 흐음 아무래도 완결권이다 보니까. 이것저것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하다보니 연재를 여기서 그칠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뭐 일단은 마감때까지 버닝을 해 보도록 하지요. 쿠쿠쿠쿠쿠 쿠쿠쿠쿠 “아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 아하하하하! 정말 재밌어! 당신이란 사람!” 모두가 할 말을 잊으면서 고요해 졌던 수도 내 광장에 고성인 여왕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명색이 이름값 높고 전 대륙에 명성이 자자한 지략의 기사 아닌가? 보통 적장을 생포해 이렇게 처형해 본 적은 몇 번 있었으나 이토록 사형장에서 쇼를 해 가며 사람을 웃기는 이는 처음이었다. 그것이 지략의 기사라는 것이 더더욱 아이러니했다. “사신을 죽이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그런 국제법보다 역사는 전쟁의 승리자만을 강자로 남기는 법이죠. 사신으로 온 적군의 수괴를 처단한다면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기야 하겠죠. 그치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제제를 가할 자가 누가 있을가요? 후후후후후.” 한참을 폭소하던 여왕은 어찌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것을 슥 닦으며 무슨 헐크로 변신만을 남겨 둔 것 같은 광견이 되어 버린 아크에게 말했다. “자. 그래. 살려주면 당신은 뭘 할 건가요? 나를 섬길건가요?” “…….” 솔직히 살려달라고는 했지만 섬기라는 대답에는 쉽게 답을 하기가 뭐했다. 충성심은 없다곤 하지만 지금까지 일구어 놓은 영지가 아까웠고, 또 루드비안에 있을 이들이 걱정되었다. 일단 섬겼다가 목숨만을 건지기 위해 일시적인 협력을 한 것처럼 나중에 또 다시 뒤통수를 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세상의 비난은 엄청나겠지만 욕 듣고도 별로 기분 상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좋아요. 살려주지는 않겠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은 주도록 하죠.” “무슨 소리요?”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아크의 반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에스메랄다는 그녀를 옆에서 수호하는 여기사 세실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세실은 여자답지 않게 우렁찬 그녀의 목소리로 서서히 웅성대는 기미가 보이던 사형장면 시청자들에게 외쳤다. “지금부터 사형 장소를 무투장으로 옮기겠다! 병사들은 당장 가 무투장을 개방하고 굶긴 맹수를 풀어라!” “…….” 아크는 대충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책을 많이 읽어놨다 보니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빠삭하지 않은가? 로마시대 콜로세움 같은 무투장으로 사형 장소를 옮겨, 분명 굶주린 몬스터와 싸우게 해 이길 경우 살려 주고 질 경우 그대로 잡아먹히게 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아하하……잘 된 건지, 꼬인 건지.’ 일단 살기는 했고, 살 길도 트였다. 하지만 살 길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 그래도 뭐 이렇게 주인공이 콜로세움에서 사자들에게 물어 뜯겨 먹힐 즈음 되면 동료들이 나타나 희생하며 사람 구해내는 게 정석 아니겠어? 일단 시간 번 것으로 만족하자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아크. 여기서 살면서 은혜를 베푼 이들이 많으니 분명 누군가가 최후의 순간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에이 제기랄! 그냥 내버려 두자. 저깟 쪽팔림도 모르는 놈 살려서 뭐해!” 쥬레이나란은 마법 공식 파훼법을 적고 있던 종이와 펜을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마구 헝클어뜨렸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전만 하더라도 자신감이 넘치셨던 모습으로 기억중입니다만.” “니기미! 지랄! 뭐 이렇게 복잡하게 마법을 중첩으로 깔아놨어! 앙! 이런 데에서 텔레포트를 어떻게 쓰란 소리야! 미쳐부리겠구만 대가리도 별로 안 돌아가는 인간 놈들이 하여간 이렇게 복잡한 건 더럽게 좋아한다니깐.” 쥬레이나란이 발광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구해주러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아크를 가장 안전히 빼 내오는 방법은 텔레포트의 이용이다. 그런데 8서클의 대마법사를 배출한 경력이 있는 마법국가 캘더린의 수도에는 혹시나 모를 적의 기습이나 대단위 마법공격에 대비하여 방어마법진과 공간의 문을 열리지 않게 하는 마법진 등을 수도 전체에 설치해 놓았는데, 인간 따위가 만든 마법진 쯤이야! 라고 큰소리를 쳤던 쥬레이나란도 인간들의 집요하리만치 치밀하고 중복된 마법진을 뚫지 못하고 기어이 수학적인 공식에까지 파고들었다가 결국엔 때려친 것이다. “다시 한 번…….” “이런 제기랄! 무슨 얼어 죽을 다시 한 번이얏!!! 때려 죽여도 못해! 다 자란 에인션트 급 성룡의 드래곤 브레스를 먹여도 안 뚫리는 걸 내가 무슨 수로 풀어내!!! 정 구하고 싶으면 군대를 데려와서 총 공격을 하던지, 아님 몸빵으로 뚫든지 햇!!!” 히스테리컬한 광기에 찬 쥬레이나란의 외침에 로리엔과 에르디는 한숨만 쉴 뿐이었다. 아무리 강자들이 모였다고는 하지만 저 많은 병사들과 군중을 뚫고 사람 구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를 쥐어뜯어며 자해를 하던 쥬레이나란은 나무판자에 쇠사슬로 양 손이 묶인 채 얼빵하게 격투기장 한 가운데에서 서 있는 아크를 보며 말했다. “야 냄새 대마왕. 이 많은 인간들을 단 한 번에 보내버릴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 못 만들어?” “만들 수야 있다지만……시간이…….” “끄흐으음. 어쩐다?” “…….”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은 지켜보다가 가장 좋은 순간에 난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두 쪽으로 나눠서 한 명은 인질극을 자처하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인질범은 저?” “여기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이신 로리엔 경이 하셔야죠.” 신의 뜻에 맞게 도덕적으로 살아온 로리엔에게 인질범이 될 것을 요구하는 에르디였다. 학교 운동장과 비슷한 노란 모래가 날리는 무투장 한 가운데에 서 있게 된 아크. 출구에는 모두 쟁쟁한 기사들이 대기하며 족쇄를 풀어준 지략의 기사의 혹시 모를 도주를 대비하고 있었다. 마나를 억제하는 팔찌를 찬 아크는 더 이상 마스터 급의 무위를 떨칠 수가 없었다. 외공 수련에도 제법 많이 투자를 했기에 아주 실력이 없는 건 아니었고, 텔레포트 금지 등의 것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블레싱 소드를 소환해 낼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몬스터를 때려잡을 실력은 발휘를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무기는 무얼 쓰실 겁니까?” “이거.” 압류해 봤자, 다시 돌아오는 무기라는 사실은 이미 대륙에 널리 알려진 사실. 그렇기에 여왕과 기타 캘더린 측 관계자들은 블레싱 소드를 빼앗거나 사용에 제지를 가하지는 않았다. 마나를 잃어버린 기사가 얼마나 빈약한 지 잘 알고 있어, 굳이 저런 검 한 자루 쥐어준다고 해도 뭐가 크게 변할 리도 없고 말이다. “앞으로 10일 동안 20단계의 상대와 싸우셔서 살아남게 되신다면 당신을 곱게 돌려보내드리지요.” “……아줌씨. 20에 무슨 원한 진 거 있어? 고문할 때부터 20, 20 난리야!!! 20마리라니 어쩌자는 거야 지금? 장난해?” 살려달라고 빌었을 때도 당당했던 아크다. 건방진 모습으로 다리를 떨며 일국의 국왕에게 삿대질을 하는 모습은 정말 품위라고는 별나라로 여행 보낸 사람 같았다. 정녕 대제국이라 불리는 제국의 후작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질문에는 스무고개로 답해 드리지요.” “……또 20이냐.” 아크는 몰랐지만 실제 캘더린은 군대도 10단위로 나누지 않고 20인 단위로 나누며, 여왕 밑의 신하들의 정치 결정 단체인 귀족회의의 일원도 20명이었으며 다른 국가들에서는 10대로 잡아두고 있는 법정 성인연령도 20세인 등 온갖 수리 계산이 20과 맞닿아 있었다. 장난식으로 대화하며 긴장을 풀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죽음을 눈앞에 둔 싸움을 하게 되자, 떨리는 것은 당연했다. 이건 완전히 디그리스의 폴티아 전쟁 때와 별 반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순전히 얄팍한 레슬링 기술 하나 가지고서 소드 마스터 프랑코 젤리커 공작을 제압했었던. 물론 젤리커 급의 강자가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만 20단계의 압박은 장난이 아니었다. 죽을 고비를 스무 고개나 넘어야 한다는 소리다. 떡 팔다 호랑이한테 잡혀먹힌 아주머니도 12고개인데 이건 무슨……. 초조하게 기다리던 찰나, 여왕이 앉아 있는 쪽의 쇠철창이 열리고 그 안에서 묶여 있던 오크들 세 마리가 인간 기사들에 의해 밀려 나왔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날카로워 보이는 배틀 액스가 들려있었다. 보통 야생 오크들이 쓰는 돌도끼와는 무장부터가 천지차이다. 나름대로 1단계인 것 같았지만 1단계부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질 순 없다! 선전포고로 인한 전쟁 초반. 루드비안 제국에는 연이은 악재가 터졌다. 팬크라프트 제국에서 루드비안으로 올 수 있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폴티아 반도를 통한 구 디그리스 땅을 통한 침입이요, 또 다른 하나는 폴티아 반도에서 해로를 통해 텔포니움 항에 도착하는 것이오, 마지막으로는 중간에 끼인 중도와 캘더린을 거쳐서 가는 방법이 있었다. 종교배척으로 중도와는 사이가 좋지 못한 팬크라프트. 거기다 중도와 캘더린 모두 무시 못할 강국이었기에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그토록이나 디그리스 쪽으로 우회하는 길을 택하기 위해 폴티아 반도를 얻어 수십년의 길공사에 치중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 아침에 박살나고 육로 원정의 꿈이 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폴티아 반도는 정말 유용한 땅이었다. 캘더린 북쪽의 가로로 길다란 국경을 지닌 카스피 왕국이라는 약소국으로 갈 수 있는 영해를 마련해 준 폴티아 반도 덕에 팬크라프트의 대군은 루드비안과 근접해 있는 카스피 왕국의 길을 빌릴 수 있었다. 물론 카스피 국경에서도 캘더린 영토를 몇 군데 지나가야만 루드비안 제국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루드비안을 호시탐탐 노리던 캘더린도 변방 도시만을 길로 빌리자는 제안에 순순히 응했다. 그렇게 완벽히 국경 지방을 침투한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강화 협정을 미끼로 같은 그랜드 마스터 루드비안의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에게 암습을 가해 전장에서 패퇴시켰고, 얼마 안 있어 제국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지략의 기사마저 캘더린에 화친을 청하러 갔다가 억류당해 버렸다. 현재 물밀 듯이 진격해 오는 팬크라프트의 기세에 루드비안 제국은 비옥한 서부 평야를 이미 반절 이상 잃은 상태였다. 더구나 파괴가 되긴 되었 되, 완파되지 않은 파푸치아 숲을 통한 길이 험하긴 해도 다닐 만 하여, 별동대를 이끌고 있던 젤리커 공작의 텅 빈 수도 기습공격이 가해졌다. 그 결과 전쟁 개전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루드비안 제국의 수도가 불타오르는 국가 존폐 위기의 사태가 벌어졌다. 다행히 황제와 차기 황위 계승자로 거론되던 황녀가 탈출하긴 했지만 제펠을 비롯한 몇 명의 왕족과 많은 귀족들이 포로가 되었다. 그 와중에 해로로 침입해 오던 팬크라프트의 20만 병력의 함선을 2만 가량의 적은 병력으로 단 한 차례의 전투로 괴멸시킨 코프하겐 칸딘스키 공작만이 유일한 희망을 던져 주고 있었다. 중도라는 벽에 막혀 보급을 해상으로 담당하던 팬크라프트의 보급선을 끊어 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최첨단 화포부대 빼서 영토 방위를 해야 할 만큼 루드비안은 다급했다. 워낙 땅덩이가 넓고, 서부 평원을 하나 하나 확실히 점령하며 늦은 진군을 하고 있어 시간을 벌 수는 있었지만. 만약 팬크라프트에서 서부 평원의 대병력을 빠르게 진격시켜 구심점이 되는 고위급 귀족들과, 황족 피신처가 겹쳐 있는 동남부 쪽으로 쳐들어 올 경우에는 전쟁은 곧바로 패배로 직결되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자금에서 따져 보나 병사 수로 따져 보나 칸딘스키 공작령이 가장 안전하기는 합니다만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영지이다 보니 아무래도 갈 길이 멀고 험합니다. 지금은 가까운 카시아스 백작령에 일단 머무르시는 게 좋겠습니다.” “후우.” 꼴이 말이 아니었다. 불타는 궁성을 빠져 나올 때 드레스 자락이 불에 타 급한 대로 남자 옷을 주워 입고 생전 남 앞에서는 타 본적 없는 말을 타고 달렸다. 항상 뽀얗던 얼굴에는 숯쟁이마냥 검댕이 가득했다. “본국에 남은 정규군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시는지?” “캘더린 국경부대는 괴멸당하고 약 1, 2만 가량이 살아남아 듀링 요새에서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수도 직할군 3만 역시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과의 접전 끝에 드뵈른 영지를 내주고 후퇴중이라고 하며 나머지 긁어모아 중앙에 포진시켰던 병력은 렌도로스 대공에 의해 전멸당했습니다.” “으으음.” 서부 평원을 빼앗기면 제국의 3분의 1을 잃는 것이었다. 디그리스의 영토가 포함된 북부 지방은 원래 거의 쓸모가 없는 땅이니 없어져도 상관없지만 곡창지대인 서부 평원만은 아쉬웠다. 그렇지만 고맙게도 황녀 세레스티나를 제외한 황족들이 모두 억류되었고 후방에서 제 안위를 챙기던 귀족파 쪽 귀족들이 포로로 잡혔다. 그들이 없다면 서부 평원을 빼앗기더라도 다시 4대 강국의 면모를 갖추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녀에겐 그럴 만한 능력이 있었다. “우욱!” “어디 편찮으신 데라도?” 우습게도 병든 황제는 마차에 공주는 말에 타서 가고 있다. 멀미를 한다면 마차에 탄 이가 더 심하게 할 테지만 아까부터 공주는 연신 헛구역질을 계속 해대고 있었다. “아니오 괜찮……우욱!” ///////////////////////////// 자꾸만 집필 의욕 상실...이유야 뭐 복합적... 외도하고 싶어라... “뭐, 뭐야? 이건 반칙 아냐?” 아크는 당혹스러운 듯 단상 위에 있는 여왕을 향해 외쳤다. “여왕 폐하께 함부로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랏!” 매서운 호통이었다. 기세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단계라고 했지. 몬스터들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후훗. 자 열심히 싸우세요. 그녀의 경우 죽이는 것이 아닌 제압하는 것으로 승부를 점치겠습니다.” “이봐! 그럼 이 팔찌라도 좀 풀어 주라고!!! 지금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돼?” “이기면 살지 않겠습니까? 그럼 열심히 싸워주세요. 지략의 기사. 호호호홋.” 아크는 살아 나갈 경우 기필코 저 아줌마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살아 나갈 수 있을지나 의문스러웠다. 지금까지 몬스터들과 싸우며 구원의 손길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구원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했다. 상대는 캘더린의 마검사이자 여성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 이전 젤리커 공작을 꺾은 전력도 있다지만 그건 솔직히 운빨에 방심한 틈을 노린 것이었고, 이 여자의 경우 이기리라 도저히 장담할 수 없었다. ‘망할 년 같으니 끝까지 사람 바보 만들어 놓고 결국은 죽이겠다 이거군.’ 아크는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 파워가 있어봐야 마스터 급 무인 앞에서는 허점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세요.” 그 소리가 이제 죽도록 하세요로 들리는 건 왜일까? 시작과 동시에 여성 소드 마스터 세실의 검에서는 하얀 강기가 반월형으로 변하여 아크를 향해 날아왔다. 저것을 맞을 경우 몸의 허리는 완벽하게 날아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이런 신발!!!” 아크는 빠르게 날아오는 강기를 얍삽 빠르게 피해냈다. 대신 강기를 맞이한 땅바닥에 크게 패였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강기는 제 2, 제 3의 것들이 연달아 날아왔다. 아크는 대책 없이 그것들에서 도망쳐야 했다. ‘제기랄! 정보가 너무 널리 퍼졌나?’ 아크가 강자를 제압할 수 있었을 때는 근접거리에서 방심을 틈타, 걸리면 끝인 관절기를 걸을 수 있었을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미 그 사실은 대륙의 수뇌부들에겐 유명했고, 세실은 그런 아크의 약점을 잘 알고 전혀 빈틈 따위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런 젠장! 야 빨리 가서 인질극 벌이라니깐!” 쥬레이나란은 로리엔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닥쳐! 언제 죽을지도 모르게 생겼는데 태평하게 그 꼬라지야!” “그렇지만 전!” “네 녀석이 가야 인질극의 효과가 가장 좋다고! 저 여왕인가 뭐시긴가 하는 암컷 옆에 저 암컷은 저 변태 인간이랑 싸우고 있는 중이니까 더 쉬울 것 아냐!” “조금만 더 고민할 시간을 주십시오.” “미치겠군! 바보냐! 그냥 가서 위협만 하면 되잖아!” 역시 성직자란 인간들은! 쥬레이나란은 뭐가 그리도 불만인지 계단에 한쪽 다리를 올린 뒤 침을 찍찍 뱉었다 전형적인 불량 양아치의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커허어억!” 연속적인 강기를 피하지 못하고 아크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 다행히 허리가 잘려나가거나 하진 않았지만 입에선 연신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내상이 심각한 것이다. 블레싱 소드의 치유력으로 간신히 죽지는 않았지만 일어서서 버틸 도리가 없었다. 아크는 블레싱 소드에 몸을 지탱에 간신히 바닥에 눕는 것은 막았다. 하지만 이렇게 버틴다 하더라도 이미 공격할 힘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입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에 고였다. 마치 체했을 때 손을 따면 나오는 것 같은 검고도 붉은 피였다. 한 손에 검으로 간신히 지탱해 서서 한 쪽 무릎을 꿇은 전형적인 패장의 모습. 지금의 아크가 그러했다. “끝났군.” 세실은 무미건조한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아크에게 다가갔다. 망설이지 않고 숨통을 끊어놓기 위함이었다. 강철. 아니 최고급 미스릴 갑옷의 하단 신발 그리브가 땅과 부딪히며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아크도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다 보니 확연히 느껴진다. 관중들은 모두 숨 죽이고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질 줄도 몰랐고 한 편으로는 최고의 몬스터 격투 엔터테인먼트를 보여 준 지략의 기사의 자극적인 죽음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한켠에서 욕지거리를 하며 싸우고 있는 세 남자가 곱게 들어올 리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로브를 뒤집어 쓴 백발의 아가씨를 욕하는 한 꼬마였지만. “야 꼬마 조용히 좀 못해!” “시끄러워!”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저 모양이람?” “새끼 거 그 아가씨한테 뭐하는 거야!” 그런 비난 중 어지간하면 참아 넘기려는 사람 빡돌게 하는 그런 비난이 들렸다. 로리엔과 쥬레이나란은 각자 신경 거슬리게 한 대사를 되새겼다. “가정교유우욱?” “아아~가아~씨이?” 로리엔은 얼굴이 팔렸기에 일부러 로브까지 뒤집어썼지만 오히려 그 로브가 몸매를 가려 버렸기에 그 청순한 외모가 반쯤 가려졌어도 사람들은 아가씨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또한 쥬레이나란은 가장 민감한 어머니의 부분을 건드렸기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이 아까 가정교육 어쩌고 한 새끼 누구야?” “누가 아가씨라고요?” “저기 잠…….” 에르디가 말릴 새도 없이 쥬레이나란은 발언을 한 사람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철의 팔을 가지고 달려들었고 로리엔은 폭력으로 나가지는 않았지만 아가씨라고 말한 남자에게 다가가 은근한 살기를 내뿜었다. 그렇게 경기장 한켠이 시끄러워지자, 상황은 서서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관중 난동. 난투극이 벌어져 경기장이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작점 한 곳이 시끄러워지자 싸움구경 난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온갖 욕설과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세실은 아크의 목을 베려다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릴까 하다. 일단 아크의 목부터 확실히 베기로 했다. 하지만 때마침 그 때 아크가 조금이라도 늦게 죽어보자는 심산으로 블레싱 소드에 지탱해서 버티는 것을 그만두고 땅바닥에 누워버리자, 그제 서야 세실은 약간 방심하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진 한쪽 구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크가 가장 좋아하는 방심 타이밍을 모른 채. ‘기회닷!’ 누가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고맙다고 생각하며 아크는 살며시 블레싱 소드를 집었다. 그리고는 살기를 최대한 억제한 채 허리를 일으킴과 동시에 세실의 허리춤을 공격했다. “읏!” 그녀는 예기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다. 하지만 명색이 소드 마스터. 비록 마스터의 전적이 있기는 하나 지금은 힘을 못 쓰는 아크에게 당해줄 정도로 반사신경이 느리진 않았다. ‘뭔가 베었다.’ 비록 뒤늦게 알아채고 세실이 몸을 빼긴 했지만 아크의 손에는 무언가를 벴다는 감각이 여실히 전해져 오고 있었다. 분명 어딘가 부상을 입히기는 입혔다. 허나 그런 아크의 기대와는 달리 세실은 멀쩡했다. 다만. 텅. 신의 금속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뭐든지 벨 수 있는 검 블레싱 소드에 의해 지상계 최고의 금속 미스릴 갑옷의 하체 보호 부위가 그대로 베어져 나갔다. 세실은 간신히 살갗을 닿지 않고 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스르륵. 갑옷과 속에 입었던 옷가지가 그대로 베이면서 그녀의 하반신은 속옷 한 장만을 남긴 채 스르륵 흘러내렸다. 속옷도 반절 쯤 베어져 안의 살갗이 드러나 보이는 뭔가 아주 음란한 복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위에는 번쩍이는 갑옷. 아래는 뽀얀 다리와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저쪽 구석의 패싸움 패를 제외한 이들의 시선은 세실에게로 하나 둘 씩 쏠리기 시작했다. 보통 여자들 같았다면 꺄앗!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 게 정상이지만 세실은 그러면서도 무표정이었다. 다만 이마에 실핏줄이 조금 솟고 볼이 약간 붉어졌을 뿐. 아니, 검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한 20cm 정도는 더 는 것 같았다. “죽어라.” 또 한 가지 달라졌다. 강기만 날려 대다가 이제는 직접 검을 쓰는 형태로. “으갸아앗!” 내상을 입긴 했지만 누워 있는 시간 동안 블레싱 소드로 어느 정도 치유가 된 마당이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그녀의 공격에서 도망쳤다. 등을 보인다는 것은 기사로서의 실격을 의미하긴 아크는 그런 것 따위 따지지 않고 마냥 도망쳤다. 그러다 보니 무슨 검을 통한 전투가 아닌 추격전으로 싸움의 성격이 변모했다. ‘제기랄 이대로라면 90%는 죽는다.’ 그래도 죽기는 싫었는지 거의 100%의 확률을 아크는 낮춰서 계산했다. 육상 트랙을 돌듯이 돌던 아크는 아직도 패싸움이 한창인 관중석 즈음을 지나쳤다. 그때 때마침 관중석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쨍그랑! 아크는 뒤로 고개를 잠시 젖혔다. 무신의 신법을 배웠다지만 마나를 완벽히 사용할 수 없어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도 위험했지만 궁금함의 본능을 참아 넘기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떨어지자 쫓아오던 세실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패싸움 중이던 무리에서 결국 누군가가 검투장으로 떨어졌다. “안녕히.” 그 떨어진 누군가는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괴상한 스프레이를 쥐고 있었는데 떨어지며 마침 눈에 띈 세실의 얼굴에 무언가를 발사했다. “읍!” 그녀는 즉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이어지는 괴상스런 악취에 혼미해져 결국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에르디!” 방독면을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스프레이를 들고 나타난 남자는 분명 에르디였다. “구하러 왔습니다. 주군.” 에르디는 정신을 잃은 세실을 급히 들쳐 업었다. 그러자, 패싸움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갑자기 관중석에서 떨어진 남자가 갑자기 기절한 세실을 들처 업고서 아크와 접선하자 그제야 여왕은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고 판단하고 외쳤다. “저자를 잡아라!” 소드 마스터와 드래곤 마법사란 실력자들은 한심하게 관중들과 패싸움이나 하고 있었지만 정말 충성심 있게 주군을 구해 낸 에르디는 그들이 요청하던 인질극도 완벽하게 해 냈다. 하지만 패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아크가 죽게 되었을 지도 모르고 세실도 갑자기 관중석에서 떨어지는 남자를 경계했을 것이다. 거기다 캘더린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여기사를 수중에 넣었기에 오히려 탈출하기는 더 쉬워졌다. 에르디는 악취를 맡고 쓰러진 세실에게 단검을 겨눈 채 소리쳤다. “움직이지마랏!!! 한 발자국이라도 더 다가온다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다!” 아크라우스가 의경부대에서 훔쳐다 준 방독면의 본 목적은 자기가 뿌린 악취에 기절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막기 위해 착용한 것이지만 현 돌아가는 판국에서는 완벽한 복면 인질강도범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외치자 즉각 달려 나오던 기사들과 병사들이 움찔하고 멈추었다. 아크는 인질범이 에르디에게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에르디의 뒤로 가서 같이 인질극에 참여했다. “어이 어이 아줌씨. 가장 아끼던 부하가 내 손에 있소이다.” 아크는 헤벌쭉 입을 벌린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나 여왕은 침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서는 재상 베스비오가 눈을 감고 무언가를 중얼대고 있었다. “원격 소환!!!” “어라?” 베스비오가 무언가를 외치자, 녹색 찬란히 빛나는 빛이 세실을 감쌌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사라져 여왕 옆에서 구경하던 재상 베스비오가 앉아 있던 귀빈석에 얌전히 누웠다. “어서 저 자들을 체포해! 죽여도 상관없다!” ‘좃됐다!’ 순식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열쇠를 잃어버린 아크. 남은 방법은 단 하나. “튀어!” 하지만 나갈 곳은 모두 봉쇄되고 병사들이 깔린 상황. 별 수 없이 아크와 에르디는 관중석 철조망을 타고 올라갔다. 검투장이 워낙 넓어서 바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철조장 바로 밑에까지 병사들이 빠르게 도착했다. 다행인 것은 그들에게는 궁수가 없어,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는 아크와 에르디를 추격할 방법도 역시 같이 철조망을 타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거나 먹어랏!” 에르디는 악취 액체 병을 아래에 던졌다. 몇 명의 병사가 구역질을 하며 철조망에서 떨어졌다. “투창!”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외침에 창대들이 아크와 에르디를 향해 날아왔다. 그때 철조망의 아래쪽이 검에 베인 듯 잘라져 나가고 틈새가 생겼으며 밑에서 따라 올라오던 병사들이 하나씩 칼에 맞고 피를 흘린 채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서 이쪽으로!” 철조망이 잘라진 곳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아크와 에르디. 관중들에 섞여 철조망을 타는 병사들을 하나씩 찔러서 낙하시키던 로리엔이 그들을 안내했다. “어여 가자!” 그러면서 쥬레이나란은 에르디에게 미리 받아두었던 가스 폭탄을 여기저기에 던졌다. 아수라장이 되어야 빠져나가기 편했다. 검투장 내에 독가스가 퍼지고 관중들은 대부분 구토 증세를 보이면서 서로 냄새의 진원지에서 멀어지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밀치고 넘어지고 밟히는 등의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런 인파들 사이에 끼어서 로리엔이 건넨 로브를 뒤집어 쓴 아크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생각하여 불평을 늘어놓았다. “제기랄 것들! 빨랑 좀 구하러 오지! 지금까지 뭐했어!” “혹시라도 20단계 다 넘어갈 지도 모를까 싶어서 말이야. 그리고 혹시 모르니 이 팔찌는 지금 파괴해 두도록 하지. 잠시만 기다려.” 쥬레이나란은 재빠르게 아크의 마나 제어 팔찌를 분해해 그것을 풀어냈다. 착용자의 마나를 제어하는 동시에 착용자의 마나로 자기 보호를 하는 팔찌였기에 블레싱 소드로도 풀지 못했던 것을 쥬레이나란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어 낸 것이다. 아수라장 속을 빠져 나오기는 힘들었지만 인파가 혼란스러운 곳에 있다 보니 쉬이 들키지는 않았다. 독가스가 퍼지는 것을 사람들이 피하기 위해 검투장 나가는 문에는 병사들이 지키고 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검투장을 빠져 나온 아크. 그러나 수도에 경계령이 떨어지고 그들은 이제 곳곳에서 몰려드는 병사들과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러나 일반 병사를 비롯한 캘더린의 기사들조차 네 명의 도망자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허리가 잘리고 목이 베인 채 싸늘한 시신이 되어 쓰러져 나갔다. 명색이 그들은 마스터 급 무인과 기타 약골이긴 해도 원 샷으로 누군가를 보내버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야 너 마법 안 쓰냐? 한 번에 밀어버리면 되잖아!” “빌어먹을! 그 소린 지껄이지 맛!” 아크의 물음에 쥬레이나란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안 그래도 인간 따위가 만든 마법 방해장을 풀지 못한 것도 뻘쭘한데 자꾸만 마법을 쓰라고 하니 열이 아니 받칠 수가 없다. “쏴라!” 마법과 화살들이 날아와 도망치는 그들에게 직격했다. 다행히 마법 아이템들과 블레싱 소드로 무장한 이들이 있어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온몸에 화살이 고슴도치처럼 꽂히고 온갖 불덩이와 번개에 맞은 이들이 멀쩡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그들은 누구하나 죽지 않고 살아서 수도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블레싱 소드로 상처가 다 치유가 된다고는 하지만 상처의 아픔과 고통까지 가져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위적으로 상처를 낫게 하였지만 통각은 그대로 남아 치유를 받은 이를 괴롭히는 것이다. “하아, 하아, 하아.” 완벽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땅바닥에 뻗은 채 누워 있는 네 남자. 아직은 캘더린의 땅을 벗어나진 못햇지만 그래도 어찌해서 마법 방해 장벽의 영향이 끼치지 않는 곳까지는 도망 칠 수 있었다. 이제 공간이동 마법으로 즉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추격이 그친 곳에서 그들은 일단 쉬었다. 편히 쉴 수 있는 여관은 아니었지만 돌부리에 먼지가 묻는 땅바닥이 아닌 풀숲이라고만 해도 그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주로 여성형 하렘 순정만화에서 볼 수 있는 미소년들이 풀숲에 누워 있는 듯한 모습 에르디의 경우는 그다지 생긴 얼굴이 아니니 제외하더라도 이 들 모두는 원판이 꽤나 받쳐주면서도 온갖 숯검댕에 핏자국이 묻어 외모가 완전히 파묻혔다. 오죽하면 로리엔이 남! 자!로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야 전황은 어떻게 돌아가냐?” 그제야 아크는 뭔가 지략의 기사로서 필요한 것을 물어보았다. 지금까지는 도망치면서 그다지 할 말도 없었거니와 꺼내 놓는 말이라고는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귀때기가 썩어 들어가는 성인 소설 이야기만 했는데 이제야 좀 일국의 기사이자 명성에 걸맞는 질문을 한 것이다. 그 질문에 그동안 귀를 막고 있던 로리엔이 대답했다. “루드비안에는 굉장히 안 좋습니다. 며칠 전에는 수도가 불타고 왕자님들이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으음. 그래도 그레드릭 대공이 있었다면 그리 쉽게 당하진 않았을 텐데.” “그레드릭 대공은 협상 테이블에서 놈들이 비겁한 암습을 당하셨습니다.” “……렌도로스인지 렌드로바인지 이 노인네 하여간 별 꽁수는 다 쓰고 앉았네.” 라고 말은 했지만 속이 철렁 내려앉는 것은 별 수가 없었다. 그레드릭 대공이 쓰러졌다는 것은 이제 루드비안의 군권은 다 2인자인 자신에게 온 다는 말이 아니던가? ‘니미 제기랄!!!’ 아크의 스타일은 뒤에서 일급자를 보좌하며 조언을 하는 군사 스타일이지 지휘관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병법서라고는 읽어보지도 못하고 단지 삼국지 등지에서 읽어 모은 잡다한 상식 그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선이다, 라거나 불리할 땐 도망가라 뭐 이런 것 외엔 없었고, 기병, 보병, 궁병의 배치나 적 기병의 돌격을 막는 방법, 적들의 기사가 후미를 공격해 왔을 때 어떻게 방어를 해야 하나 등의 지휘능력은 매우 떨어졌다. 잠시 삼국지식 데이터 수치 환산을 해 보도록 하자. 아크 페인(옆의 캐릭터 얼굴은 알아서 상상) 열전 : 디그리스의 폴티아 전쟁 당시의 용병기사,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전략을 간언. 큰 공을 세우고 귀족이 되어 ‘지략’이란 명호로 불린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 프랑코 젤리커를 죽인 뒤 행방불명되었다가, 30년 후 복귀 마스터 급 무위를 자랑하며 제국의 군부 부원수가 되었다. 무력 : 120(+25) 보물 : 블레싱 소드, 프로즌 아이스 등 보유 지력 : 97(+8) 보물 : 맹약의 반지 정치 : 93(+20) 보물 : 대한민국 사회탐구 정치, 경제과 영역 교과서 기타 각종 교과서 매력 : 76(+5) 보물 : 미연시 게임(성별에 따라 다름) 통솔 : 35(+5) 보물 : 삼국지연의 ※ 참고 : 위의 수치는 보물 플러스 수치임. 원래 능력치는 옆의 플러스를 없애놓으면 정상. 보다 시피 데이터 수치로 환산해도 통솔능력이 가장 낮았다. 일 대 일 전투능력도 아니고 이렇게 통솔수치가 떨어지는 놈을 어디다 전장 앞에다 내세워 군사들을 지휘하게 한다는 말인가? 더구나 무력수치가 높다 한들 그랜드 마스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과 맞서 싸우게 한다면 금방 시체로 변할 것이오. 써먹을 수 있는 건 그나마 높은 지력. 그러나 그 지력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이전 디그리스의 폴티아 전쟁 결과로 평가한 것이기에 사실은 별볼일없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정치력과 매력이야 전쟁에서는 별 쓸모가 없으니 패스하도록 하고. 여하튼 간에 아크는 전쟁 총 지휘관이 되어 전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별 수 없이 그놈의 총 지휘관 자리를 맡아버려야 할 때다. ‘제길 그냥 전쟁 끝날 때까지 어딘가 좀 숨어있을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본적과 고향은 대한민국이라는 멀고 먼 갈 수 없는 곳이지만 현재 살고 있는 고장은 루드비안 제국이라는 이계의 땅. 그리고 애국심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쪽 세계의 삶에 별다른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고향은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고 지금 그가 이룩하려는 목표 외엔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팬크라프트에 짓밟히면 대륙이 4나라로 분할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크는 갈 곳이 없다. 무신처럼 산속에 은거하거나, 자신을 성자로 떠받들어 주는 호의적인 중도로 가면 완벽한 수도승이 되어 고자처럼 참고 살아야 한다. 한 마디로 나라가 망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럼 뭐하냐고! 내가 군대를 이끌고 가면 전부 박살날 것이 뻔한데!’ 그러자고 군대를 총 지휘해 전쟁에 나간다 해도 뾰족한 수가 보이는 건 아니었다. 그때 로리엔이 등에 묻은 흙과 풀쪼가리를 털어 내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난데없는 간다는 소리에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아크가 목을 돌렸다. “뭐? 어디가는데?” “성자님의 중개로 우리 중도는 루드비안과의 동맹을 맺기로 했습니다. 칸트 앵걸이, 팬크라프트가 길로 사용하는 카스피 왕국을 치기 위해 약 15만의 군대를 일으켰으며, 저는 지금 바로 돌아가 교황청 크루세이더 부대를 이끌고 루드비안 제국의 군대를 돕기로 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성자님.” “그렇지만 중도에서 루드비안으로 오려면 중간에 캘더린을 거쳐야 할 텐데?” 한두명이라면 그냥 배를 타고 바다로 올 수도 있었지만 한 부대가 구원을 온다면 해상로를 거쳐서 올 수도 없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긴 했으나 아크는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조력을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 쥬레이나란 님께서 공간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주기로 하셨으니 걱정 없습니다.” ‘……맞아! 캘더린도 현재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 국경지방이 팬크라프트, 캘더린 군의 연합으로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수도가 불타기도 했지만 현재의 루드비안 제국의 위기라는 것은 왕자가 포로로 잡히고 서부 평원의 반 이상을 빼앗겼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나라의 큰 인재 그레드릭 대공이 부상을 입고 쓰러진데다가 또한 군의 한 축이었던 지략의 기사마저 억류되자, 군 내부가 극도로 혼란해진 탓이 컸다. 아크에게는 공을 세울 수 있을 만한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자신을 수십일 동안 몬스터와 전투와 고문으로 괴롭혔던 여왕을 혼내 줄 수 있고 거기에 더블로 큰 공을 세움과 동시에 캘더린이란 큰 적을 하나 괴멸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지금 자신들이 당한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되갚아 주고 일단 나중에 어찌 되든 자신의 귀환을 화려히 알리면서 군의 지휘권을 일단은 잡아 두어야 했다. 아크의 입가에는 음흉스런 미소가 걸렸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영지에 복귀한 아크가 처음 내뱉은 한 마디는 이거였다. “야 애들 전부 불러 모아!!” “각하. 현재 병사들은 모두 출격 준비를…….” “누가 병사들이래?” “그러면?” “내가 데리고 온 그 불한당 놈들 끌고 오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지나치게 흥분해서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아크의 말에 루스벨트는 즉각 따랐다. 얼마 안 가 24명의 사내들이 모여 들었다. “주군 무슨 일…….” 뭔가 물으려는 부하의 물음도 무시한 채 아크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또다시 외쳤다. “에르디랑 피리아도 데려와!” “예, 옛!” 나이든 노인네 이렇게 똥개훈련 시키지 말고 처음부터 그들까지 데려오라고 하지! 라며 속으로 불평하던 루스벨트였지만 정말 빠르게 에르디와 피리아까지 동원해 데려왔다. “저 무슨 일이에요?” “전원 전투 준비한다.” “네?” “지금부터 우리는 본연의 직종으로 전환한다.” “……?” “테러하러 가자.” 배운 것이라고는 살인기술밖에 없어서 영지에서 써먹으려고 해도 별 도움이 아니 되었던 이들이다. 기사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그들이 태어난 목적은 성전을 위한 테러범(?)이 아니던가? 실패확률은 높았다. 그렇지만 단 넷이서 포위망을 돌파해 온 전력이 있을 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였다. 거기에 가장 큰 비밀병기인 화학무기 에르디가 있다. “이거 하나면 직빵입니다. 주군.” “결국엔 만들어 낸 거냐?” “물론입죠.” “수고했다! 에르디. 장하다!” 아크는 칭찬을 아니 해 줄 수가 없었다. 에르디가 이 가스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의 성취를 이루어 낸 것이다. 현대 미국에서나 만들어 낼 법한 생화학 무기를 발명해 낸 에르디. 물론 드래곤의 기술을 훔친 거나 다름없게 특허료도 주지 않고 사용해 이러한 결과를 얻어 내었지만 무슨 특허 따지는 시대도 아니고 그런 것은 무시하고서라도 성능이 그렇게까지 뛰어나진 않았지만 이렇게 1인 타격이 아닌 확산형의 것을 만들어 내었다니 실로 대단하다 감탄할 밖에. “나머지 무기들은 충분히 완성 되었냐?” “며칠만 시간을 더 주시면 완성 될 것 같습니다.” “으음.” 계속해서 영토가 줄어드는 한 시가 급박한 상황이라지만 여기서는 여유를 부릴 필요가 있었다. 희생을 각오한 작전이니 동료들의 죽음은 두렵지가 않다. 다만 희생으로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으면 좋은데 한 왕국의 수도에, 그것도 궁성에 침입해 최고위급 직위인 왕을 납치해 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군. 이봐! 너희들.” “예 주군!” 어느새 군기가 잡혔는지 오른발로는 땅을 강하게 구르며 거수경례를 하는 이들이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이전의 그 감을 되살리기 위해서 며칠간 맹훈련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루스벨트!” 곧바로 노년의 집사 루스벨트가 안 그래도 굽어진 허리를 더욱 깊이 숙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말씀만 하시옵소서.” “칸딘스키 공작에게 연락해서 최신 화약과 무기들을 보내 달라고 해. 수량은 약 30개 정도면 된다고 하고. 알았나?” “바로 시행하겠습니다.” 한 왕국의 왕성을 돌파하고 군주를 납치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칸딘스키 공작의 폭약이나 에르디의 신식 가스라면 먹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지략의 기사 전설의 가장 큰 축이 되는 중간 전개. 제국 전쟁에서의 지략의 기사의 활약상이 시작되었다. 지략의 기사 전설 일부 발췌. 루드비안 제국을 최악의 상태로 몰아세우던 캘더린, 팬크라프트 쌍방 공격 중 캘더린을 잠재워 희망을 생성시킨 대 테러 작전의 성공은 흔히 지략의 기사의 결단력으로도 크게 위명을 떨치지만 그보다는 그의 직속부하인 에르디 게이레로의 공이 크다. 칸딘스키 공작을 잇는 대륙 최고의 과학자로도 이름을 남긴 그는 화학무기 방면에 뛰어난 공을 세워 후에 있을 마도 전쟁에서도 그의 화학 무기는 마법도 어지간한 무기도 통하지 않는 마족들을 섬멸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특히 본디 색욕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주군 지략의 기사의 욕구를 채워 주기 위한 도구로 제작되었던 최음 가스는 고위직과 호위에 남녀가 반반인 캘더린의 방어를 속수무책화 시켰다……(이하 생략) 복면, 아니 방독면을 쓴 이들이 캘더린의 궁성 및 수풀 속에 하나같이 잠복을 하고 숨어 있었다. 아크라우스에게 부탁 의경부대를 완전히 털어서 가져온 방독면은 생화학 테러에 대비한 방어구도 되었지만 이런 잠입작전에 필요한 복면의 역할도 도맡아 주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아크라우스가 턴 의경부대는 모두 영창에 갈 뻔한 큰 위기를 맞았으나 ‘의경부대에서 단체로 방독면을 도둑맞다’란 어처구니없는 신문 기사를 본 아크라우스도 차마 불쌍했던지 군 상부에 돈을 넣어줘 얼차려로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군용으로 구하기가 힘들다곤 하나 아크라우스는 방독면 30여개 구입하는 데에 지나치게 많은 돈을 소모해 버렸다. 어찌 되었든 모두 방독면을 단단히 착용하여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 없을 때, 금빛으로 빛나는 검을 들고 있는 사내가 손짓했다. 그러자 앞의 열일곱을 남겨 둔 나머지 열 명이 뱀처럼 일렬로 해 궁성 안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초가 없을 리가 없었다. 보초뿐만 아니라 순찰하는 기사들과 밤에는 시녀들과 시종들조차 검을 차고 다닐 정도로 삼엄했다. 의문의 방독면 인간들은 밤에도 훤한 왕궁의 사각인 담벼락 밑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지만 사이트(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불꽃 마법)의 범위에 찔끔찔끔 잡히는 것을 숨기려 불빛이 올 때마다 몸을 비틀고 뒤틀었다. 열일곱이 대기하고 나머지 열 명 중 맨 앞을 점거한 다른 이와는 다르게 검을 들고 있는 남자는 벽면에 찰싹 달라붙은 채 보초에 가까이 이동했다. 남은 열일곱 명의 무리에 금빛 검을 들고 있던 자가 고갯짓을 했다. 맨 뒤쪽의 세 명이 몸을 일으켜 열 명이 숨어 있는 쪽의 정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좋아.” 그런 채 그들은 상당시간 숨을 죽인 채 수풀과 벽면에 붙어 가만히 있었다. 암살자들이 주로 입는 어둑어둑한 밤의 색깔인 검은색 복장. 그들 역시 어둠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 검은 옷으로 통일한 복장이었다. 콰과광! 퍼버벙! 쿠오오오오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궁성의 뒤쪽에서는 조명이 불꽃이 타오르며 밤하늘을 비추었다. “무, 무슨 일이냐!” “궁성 뒤쪽 마구간이 타고 있습니다.” 마구간은 말들에게 먹일 건초를 잔뜩 마련해 두는 곳. 그런 곳에서 불길이 일어났다면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마련이다. 퍼버벙! 콰과과광! 제 2차 폭음이 들렸다. “자하궁이 붕괴되었습니다!” “제기랄 적의 습격인가? 수도 한 가운데까지 오다니! 수도방위군은 무얼 했길래!!” 뭘 하긴, 지금 대로 한 가운데에서 남자들끼리 벗고 뒹굴고 있을 거다.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지만 방독면 덕분에 그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내부인의 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내부인?” “베스비오 님이 만드신 마법 금제 방어막이 있는 우리 궁성에 누가 저 정도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단 말입니까?” “흠……. 맞는 얘기로군. 샅샅이 뒤져서 테러범들을 찾아내라!” 마법 대신 과학의 발전은 매우 늦었던 캘더린이었던 지라 그들은 다이너마이트나 수류탄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발휘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고위층의 지혜가 있는 이들이었다면 현재 적대국인 루드비안의 과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란 것을 알고 루드비안 제국의 급습이라 계산해 낼 수 있었겠지만 안 그래도 무식하게 근육질만 많아 보이는 갑옷의 기사는 사고가 그리 깊지 못했다. 연속적인 폭음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다 보니 궁성 호위대나, 시종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시종장과, 호위기사가 지휘 체계를 잡아나가고 있어 조금씩 사그라들긴 했지만 그들도 폭음의 현장으로 가, 적의 공격을 막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다급했다. 콰과광! 세 번째 폭음이 들리고 나자, 10명을 이끌던 남자가 그림자 속에서 나와 밝은 궁성 쪽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앗 저……!” 일제히 한국산 최고급(역시 의경부대 도난품)최루탄과 에르디가 만든 오리지널 악취탄들이 떨어지자, 방독면 부대 이외의 이들은 코를 잡고 기침을 해 대는 것으로 모자라 구토까지 해 대었다. 악취탄의 단점이라 함은, 처음에는 그 지독함에 저렇게 전투능력을 상실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각이 마비되어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타다당! 쓰러진 이들에게는 가차 없이 총격이 이어졌다. 몇몇 기사들은 오러를 운용할 새도 없이 빠른 속사에 속절없이 쓰러져 버렸다. ‘음 역시 지옥훈련을 받은 특수부대답군.’ 10명이 들어가 최루탄을 던지고 온통 궁성 내를 휘저어 놓는 가운데, 드디어 나머지 14명이 일어났다. “우리는 궁내로 진입한다. 가자!” 금빛 찬란한 검 한 자루를 앞에 내세우며 지휘자. 그의 뒤를 따라 나머지 이들은 뱀처럼 이동하기 시작했다. ‘허 참 이거 무슨 내가 국모 시해범 따위가 된 것 같군.’ 아크는 모국에서 백여년전쯤 있었던 수치스러운 사건이 떠올랐다. 묘하게 상황이 비슷한 것이다. 물론 반항은 이쪽이 더 거세고, 인원수는 오히려 적지만 최첨단, 아니 최첨단이라기보다는 반항할 수 없는 무기들을 들고 테러를 가하니 전투가 쉬웠다. 바깥의 소동 덕에 호위기사들과 병사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 거기에 마법왕국 답게 하나같이 원거리 공격을 봉쇄하는 갑옷들이었다. 그러나 최음가스에 맞으면서 정신이 온통 욕정에 휩싸인 그들은 쉬이 검을 휘두르지 못하고 명사수들의 총에 머리를 맞고 즉사했다. 물론 그들 앞에는 금빛과 은빛의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휘두르는 아크가 있었다. 마나를 속박 받지 않는 아크는 호위기사들이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마나로만 따진다면 아크는 유카나에게도 조금은 밀리는 실력이다. 하지만 오리하르콘 신검과 드래곤의 마법검이 있는 한 그는 거의 무적이었다. 그가 앞장서서 길을 뚫자, 뒤따라오는 동료들도 사격이 쉬웠다. 갑옷이 박살나게 베어진 곳에만 총알을 박아 넣어도 되었다. ‘젠장 여자들은 죽이기 참 뭐하단 말야.’ 살인에 대해서는 이미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각 해진 아크였다만 여전히 여자를 죽이는 것은 조금은 머뭇거려졌다. 특히 기사수련을 받으면서 몸은 조금 두꺼워 질지 모르지만 마나를 수련함으로서 고와진 피부 등을 지닌 여기사들을 베기란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 ‘저것들을 그냥 데려다가 하렘에 가져다 놓으면! 크.’ 블레싱 소드의 정신정화 능력은 아크에겐 해당이 없는 모양이다. 회의장으로 보이는 구역을 싸그리 정리하고 나자, 아크는 곧바로 달렸다. 최음, 최루, 악취 가스를 적극 이용함으로서 승부는 이미 났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허나 일이 이렇게 될 정도면 분명 여왕인가 하는 새디스트 변태 마녀는 도망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그 여자가 도망을 쳐 버리면 인질을 잡을 만한 게 없어서 일은 이렇게 벌려 놓고도 빠져나가지 못해 죽게 되는 상황이 될 지도 몰랐다. 지난번에야 강자들만 셋이었으니 몰라도 이번에는 칼 한 번 베이면 죽는 놈들이다. 공격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수도방위군들이 궁성을 포위하고 있으면 가스탄이 아무리 많이 남았다 하더라도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전쟁중이라 수도군도 일부는 빠져나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쥬레이나란이 마법 방해 장벽을 약간이나마 뚫고서 마법을 방해하지 않는 곳에서 순간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으니 거기까지만 빠져나간다면. ‘아뿔사!’ 그러나 그때쯤에야 아크는 뭔가 깜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7서클 급 마법이 하나 있다. 원격 소환. 자신과 자신 주위의 사람이나 물건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닌 원거리의 물체를 소환해 오는 마법. 그것을 사용한다면 여왕을 인질로 삼으나 마나 아니던가? 이전에 에르디와 피리아가 칸딘스키 공작군에 잡혔을 때 쥬레이나란이 썼던 적이 있고, 지난 번 에르디가 자기를 구하러 올 때 캘더린의 소드마스터를 포로로 잡았다가 여왕 옆에 항시 붙어다는 창부인지, 정부인지 아니면 그냥 하수꾼인지 하는 놈이 그 마법을 사용해서 인질을 단숨에 뺐어간 적이 있다. ‘이거 어떻게 하나?’ 달려가며 덤벼드는 시종을 베면서도 아크는 그 고민이었다. 그렇게 되면 별 수 없이 여왕의 모가지만 따 가는 수 외에는 없다. 허나 그 경우 자신 외의 생사는 장담할 수 없다. 최대 반절 이상까지 죽을지 모른다는 계산을 하고 왔고, 그 정도는 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 죽는다는 건 틀리다. ‘에라 모르겠다.’ 궁성 밖에서는 에르디가 이끄는 놈들이 휘저으면서 척살을 하고 있으니 혹시 여기서 놓쳐도 잡히겠지 라고 애써 낙천적으로 생각한 아크는 여왕을 찾아 온갖 군데를 다 돌아다니며 시종들을 베었다. 그러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여왕은커녕 여왕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벌써 도망친 건가? 그때였다. “주군. 뭐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요?” “이상한 거?” 부하가 가리킨 곳은 궁성의 취사장이었다. 조리대가 불에 타서 소거되자 그 안에 무언가가 나온 것이다. 궁성의 취사장에는 동그랗게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 별이 그려지고 이 세계의 문자와 기이한 상형글자가 별 주변 원 밖에 쓰여져 있으며 기묘한 보랏빛을 선 안에 머금은 마법진이 있었다. 취사장에 있으니 취사용 마법진인가? 그런 것을 쓴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크는 마법진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부하 하나를 위로 올려보냈다. 딱 사람 하나 올라갈 크기였다. 아크도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그럼……이건?” 그때 보랏빛이 천장으로 솟으며 위로 올려보냈던 부하의 모습이 사라졌다. “역시! 좋아. 나는 이리로 들어가겠다. 셋 만 따라오고 나머지는 가스통이 지휘를 맡아 계속 캘더린의 여왕을 찾아라.” 분명 조리대가 있었던 곳이었다. 조리대가 불에 타 소거될 즈음 부하 한 명이 발견해 낸 것인데 아크의 계산대로라면 이것은 비상시 탈출을 위한 마법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아크가 그 위에 서자, 곧 보랏빛이 그의 몸을 감싸, 시야가 어두워졌다. 얼마 안 가 시야가 다시 밝아졌을 때 은빛이 번쩍였다. 급히 뒤로 몸을 뺐지만 가슴팍이 베어져 피가 새어나왔다. 다행히 블레싱 소드로 치유는 될 정도였다. 눈앞에는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과 그들에 보호되어 있는 용상에 앉은 캘더린 국의 여왕. 그리고 로브와 지팡이 등을 착용하고 있는 마법사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는 아크가 현재 밟고 서 있는 것과 같은 마법진과 그 앞에 검을 들고 버티는 기사들, 마지막으로 방독면을 쓰고 굴러다는 사람 대가리와 목이 없어진 채 원래의 머리가 있어야 할 연결부분에서 피를 콸콸 흘리는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안녕하신가요? 요새 자주 보는 군요. 지략의 기사님.” 여왕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가려진 아크의 얼굴이지만 금빛과 은빛의 쌍칼 하면 전 대륙에 유명하지 않은가? 마법진 앞에 서 있던 기사를 밀쳐낸 아크는 애써 긴장되는 가슴을 짓누르고 냉정한 목소리 투로 물었다. “뭐요? 이건.” “아 이거 말이군요? 어디긴 어디에요? 지난번에 오지 않았나요? 궁성 회의실에?” “……이런 데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분명 지난 번 사자로 왔을 때의 그곳이었다. 하지만 양쪽의 커텐이 걷히자, 그곳에는 취사실에서 보았던 마법진들이 여러 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곳이라면 아크가 못 찾을 이유가 없었다. 궁성 내를 샅샅이 뒤지고 돌아다녔는데 어찌 이리 들어오기 쉬운 곳을 모르겠는가? 그렇게 아크의 표정에 드러난 의문을 에스메랄다가 가르쳐 주었다. “아마 이곳은 못 봤겠죠. 그럴 수밖에요. 외부인들은 사신 등을 제외하고 당신 같은 불법 침입자들은 이리로 들어오는 문을 절대 찾을 수 없게 되어 있죠. 물론 방금 전 올라왔던 취사장과 왕궁 내 지하감옥 고문실에 존재하는 마법진 외에 나머지 마법진들은 수도방위군과, 우리 마법기사단, 에스첼 기사단 및 마법사 협회 단장 등 지방의 유력한 영주들 및 가신들의 저택과 연결이 되어 있죠. 이런 시급 사태에서 빠른 군사행동을 하기 위해 마련된 거지요. 이해가 가시나요? 덕분에 이렇게 많은 기사들이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지략의 기사님.” ‘X됐군.’ 속속들이 도착하는 세 명의 부하들. 그들도 이 광경에 쫄아 붙은 듯 말이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기사들이……. 단 넷이서 내부를 가득 채운 기사들을 상대하라니 실로 골치 아픈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최루, 최음가스를 쓴다면야 약간이라도 승산은 있겠지만 여왕의 모가지를 따가든 통째로 업어가든 그런 임무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크는 잠시의 틈을 벌 겸 여왕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국가 반역 사태 등. 지방 영주의 반란은 어찌 처리하려고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 놓으셨는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불순한 의도로 군대를 몰고 온다거나 암살자를 들여보내지 못하도록 내가 이 마법진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것도 계산하지 못할 줄 아는 건가요? 충분히 도망칠 길은 마련해 두…….” 여왕이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아크는 방금 전 왔던 취사장 마법진으로 뛰어들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지만 마법진은 발동하지 않았다. “호호홋. 도망치려고 하셨나 본데. 내 말을 헛것으로 들었군요. 그 마법진은 제가 조종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후훗. 자 그럼……처치해!” 미소를 짓다가 갑자기 표정을 무섭게 짓고 표독스럽게 돌변한 캘더린 여왕 에스메랄다 에스첼.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와 남자의 배율이 절묘히 혼합된 기사들이 지략의 기사와 그 부하들 셋에게 덤벼들었다. “제기랄! 모두 투척!!!” 아크는 먼저 수류탄을 던져 기사들의 돌진을 잠시 막았다. 그런 뒤 뒤에서 부하들이 최음, 최루, 악취 가스를 각각 그들 앞으로 던졌다. “갈겨버려!!!” 아크는 앞으로 뛰어들면서 프로즌 아이스로 온갖 빙한계 마법을 시전했다. 궁성 회의실은 어지간한 학교 강당의 반절 정도 될 만큼 거대했지만 전체마법이 먹히자 얼음조각과 총알들이 이리저리 튀고 난리가 났다. 앞에서 최루, 최음, 악취 가스를 맞은 기사들은 역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공기 정화!!!” “바람의 정령 실프여!!” 캘더린 왕국의 재상 베스비오와 다른 한 명의 노인네 마법사가 정령과 공기 정화 마법을 이용하여 최루탄 및 기타 가스들을 날려 보냈다. 그러자 기사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이미 자신들에게 붙은 아크와 맨 뒤에서 테러를 하던 아크의 부하들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앗!” 아크야 특유의 무용을 선보이며 기사 여럿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아니었다. 에르디가 준 가스탄과 칸딘스키 공작에게서 지급받은 수류탄을 쓰다가 그마저도 떨어지자 막무가내로 소총을 갈겼다. 사격 솜씨가 뛰어난 그들이었지만 엄청난 기세로 다가오는 기사들 앞에서는 쫄아붙어 그렇게 갈기면서도 한 명의 기사의 미간을 꿰뚫었을 뿐 결국은 접근을 허용하고 그들의 오러가 씌인 검에 처참히 베어졌다. “제기라알!!! 아이스 스톰!!” “매직 브레이크!!!” 뒤에서 구경하던 두 마법사가 동시에 외치자 프로즌 아이스에서 막 나가려 하던 얼음조각들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좁은 공간에서 전체마법 몇 방이면 이 기사들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었으나 어처구니없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법사들의 간계에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아크는 의외로 전투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전번 젤리커 공작과 수십의 소드 익스퍼트들에게 쌓였을 때는 지금쯤 만신창이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가장 실력 있어 보이는 뒤편의 기사들과 캘더린의 여성 소드마스터 세실 엔테른이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기 정화와 바람의 정령으로 최루탄에서 나온 가스와, 악취는 날아갔을지언정 최음가스는 날아가기 전 약간이나마 스며들어 이 기사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상대를 해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최음가스를 먹인 기사들을 상대할 때와 비슷했다. 초식에 맞지 않게 검이 이상한 경로로 날아오는 것. 분명 이들은 욕정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면서 자신을 상대하는 것이다. ‘오호 아주 좋앗!!!’ 그리고 좁은 장소에서 격투를 벌이다 보니 오히려 아크에게 유리했다. 촤아앗! 촤앗! 블레싱 소드와 프로즌 아이스를 양손에 들고 회전하자 세 명의 기사가 몸이 베인 채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기사들이 시체가 되어 움직임을 방해함으로서 더욱 더 아크는 활개를 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여왕은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세실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세실과 그녀가 데리고 있던 최음가스에 영향을 받지 않은 기사들이 전투에 동원되었다. “모두 물러섯!” 세실의 여자이면서도 강한 통솔력이 담긴 음성에 기사들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라이트닝 볼트!!!” 천장에 전격의 구체가 생긴 뒤 그 바로 밑에 있는 아크에게 뇌전을 뿜어댔다. “흐갸아아아앗!!!” 아크로니아 표 브로치를 미처 착용하지 않은 아크는 번개를 맞고서 몸을 바르르르 떨었다. 7서클 급의 마나가 담긴 강력한 전격이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소드 마스터 세실이 달려들었다. 수직으로 오는 검. 아크는 블레싱 소드의 회복력으로 금방 정신을 차리고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베인 코끝에서 떨어지는 피맛을 보아야만 했다. 덕분에 아크의 방독면이 반쪽으로 갈려 벗겨졌다. 시야는 조금 더 확보가 되었지만 멀쩡한 기사와 소드 마스터가 합류하자, 상황은 이전 젤리커 공작을 상대할 때나 별 반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렸다. 심지어 같은 편도 없어 구원의 희망조차 받을 수 없는. ‘제기랄! 뒈지는 건가?’ 혹시라도 방독면을 찬 채 남은 최음가스탄을 모두 터뜨리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 희망마저 사라졌다. 여기서 최음가스를 쓰면 효과야 있을지 몰라도 자신도 그 가스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동귀어진?’ 마침 동귀어진의 생각이 나는 아크. 최후의 순간에 쓰는 동귀어진. 현 상황을 보아할 때 동귀어진은 적격이었다. 최음가스를 터뜨리고 저들보다 오래 버티면 분명 마지막 희망이 생겼다. “제기랄!”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를 던져버린 뒤 급히 왼손으로 허리 벨트에 달아 둔 가방에서 남은 최음가스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는 블레싱 소드로 공격을 막으며 최음가스탄을 던졌다. 물론 한 번의 허초도 용납되지 않는 강자의 대결에서 던질 타이밍을 잡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하나는 검격이 날아오는 곳에 내밀어 탄을 그대로 반절로 베어버리게 했고, 하나는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떨어뜨린 최음가스도 예상대로 누군가가 밟아 터뜨림으로서 가스가 아래에서 새어왔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지만 가스의 침투를 막을 수 없었다. 가스가 퍼지는 것을 보고 기겁해서 뒤로 몸을 빼려던 캘더린의 기사들은 이 가스가 별 냄새가 나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숨을 참으며 허점이 보이기 시작한 아크를 무차별 공격해댔다. 피하기에 특기가 있는 아크도 막기 힘든 일격이었다. 옆구리가 패이고, 왼팔이 반쯤 잘리고, 허벅지가 그대로 뚫렸다. 신성력의 힘을 빌어 풀 힐 등을 써서 치유를 해가며 싸워도 금방 때워야 할 정도로 동시다발적 게릴라처럼 당했다. ‘젠장! 정신이 희미해진닷!!’ 가스를 뿌려 놓은 이상 저놈들보다는 오래 버텨야 했다. 그래야 산다! 한창 싸우고 있는 이들과 정신력이 강인한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의 경우 신경을 전투에만 쓰고 있었기에 늦었지만 이미 뒤쪽에서 어리버리하는 자들에게는 최음성분의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이 하나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기사 몇이 무릎을 꿇으며 털썩 쓰러졌다.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 것이다. “무슨! 읏?” 드래곤이 만든 지상 최고의 음약성분을 추출하여 만든 최음가스. 비록 인간의 손에서 약효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기술력이 받쳐주는 인간의 손에서 재탄생한 최음가스는 정신력이 높은 기사들마저 함락시킬 정도로 약효가 뛰어났다. 더구나 여성기사의 비율이 높은 캘더린의 경우 거의 여기사와 남기사의 비율이 반반이기에 이전에 싸웠던 단일성을 지닌 기사들이 음약을 먹었을 때와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다 욕정을 풀 때가 없어 참고서 싸우다가 죽었던 것이고, 이곳에는 여기사의 비율이 조금 적긴 해도 남여 성비가 그럭저럭 맞았기에 그들은 서로 이성을 찾았다. 물론 정신력이 약해서 참지 못하는 이들은 동성들끼리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전장에서 멀어진 기사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풀려 있었다. ‘이거 무슨 마약 아냐?’ 그랬다. 최음약이라고는 하나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마약류 비슷한 것. 정신을 잃고 성을 탐하는 기사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약물중독자처럼 초점이 없었다. 쓰러져 가는 기사들을 보며 여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어나 보라고 소리쳐 보아도 그들은 정신이 없었다. 하나같이 저 모양이니 누구 하나가 때려서 깨우지도 않고 있다. “저게 무엇하는 거지?” “아무래도 최음의 성분의 가스였나 봅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다고는 하나 약간만 맡아도 뇌수에 침투하는 성질이기에 미쳐 손을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략의 기사도 저 가스를 들이마셨으니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남은 건!” 기사들이 모두 죽지는 않았어도 기묘한 정신이상 상태에 빠져 여왕도 조금은 불안해졌다. 지략의 기사도 가스를 들이마셨다지만 아직도 쓰러질 듯 말 듯 버티고 있었다. 안 쓰러지고 남아서 싸우는 이는 마스터인 세실과 아크 뿐. 둘 모두 헤롱거리며 솟구치는 욕정을 잠재우며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저희들이 손을 쓰겠습니다. 폐하.” 두 소드 마스터의 격투는 마치 취권을 보는 듯 했다. ‘이 여자보다 먼저 쓰러지면 X됀다!!’ 세실이 먼저 쓰러진다 하더라도 아크는 두 명의 7서클 마법사와 맞서 싸운 뒤에야 여왕을 인질로 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눈앞에서 싸우고 있는 저 여자를 안고 싶어, 몸은 자꾸만 달아오르고 있었다. ‘효과는 죽이는구만!’ 콰지지지직!!! 때마침 아크에게는 세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마법사가 사용한 체인 라이트닝이 떨어졌다. “으걋!!!” 하지만 그것이 행운이었다. 음약성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허나 몸은 다쳐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게 해 준 것이다. 정신적으로 우위에 선 아크는 세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벼락을 한 번 맞고 나니 욕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만 지금까지 자신의 행적이 떠올랐다. 분명 자신은 정사를 나누면서도 일을 할 수 있었다. 후작이 되고 영지를 받으면서 상당히 오랜 차례 시험해 본 것이다. 아무리 욕망의 바다에 몸을 담구고 있었다곤 해도 냉정히 행정 사무를 본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 그걸 생각해 본다면 여기서 버티는 것도 가능할지 몰랐다. “으아아아아앗!!!” 괴성을 지르며 아크는 세실을 밀쳤다. 헤롱헤롱 대는 그녀를 검으로 찌를 새도 있었지만 자신도 벼락을 맞고서 약간이나마 정신을 차렸던 이상 고통을 주면 이 여자도 다시 깨어날지 몰랐다. 자세가 무너지고 넘어져 버린 세실은 이내 정신을 잃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외에도 주변에는 화끈한 단체정사 장면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크는 즉각 거기에서 눈을 돌렸다. 안 그래도 끓어오르는 것을 참기 힘들어 미칠 지경인데 저런 것을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크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아크는 자꾸 정신을 되새겼다. “파이어 스톰!” “콜 라이트닝!” 남은 건 두 7서클 급 마법사와 여왕. 어차피 블레싱 소드로 회복될 바에야 정신이 조금이라도 더 깨어 있을 수 있도록 아크는 날아오는 마법을 그대로 맞았다. 확실히 맞을 때마다 고통으로 인하여 잠시나마 욕정을 잊을 수 있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걸었다. 음약성분은 자꾸만 온몸에 퍼지고 말초신경을 건드려 정신을 흐트렸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칼에 찔린 고통과, 항상 적당히 정사를 가져 채우고 다니지 않는 생활습관과, 일하면서 정사를 나누다가 어느새 기술로 익혀버린 욕정에 빠진 상황에서의 두 가지 행동 병행 스킬로 두 마법사에게 달려나갔다. 연속적인 전격과 불의 마법이 격중했다. 블레싱 소드로 치유는 되어도 온몸이 그을음과 짓이겨진 화상자국으로 가득해도 오히려 아크에게 한 발자국 더 갈 수 있는 힘을 마련해 주는 고통이다. 푸슉! 푸슉! 신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뛰어 들어 두 마법사의 배때기에 각자 칼 한 방씩 먹인 아크. 캘더린의 재상이자 7서클 마법사 베스비오는 프로즌 아이스에 찔려 얼음덩이가 되었다. “끝났군.” “…….” 모두가 쓰러졌다. 아니 뒤편의 기사들은 쓰러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본연의 임무보다 생명체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었다. 에스메랄다 여왕은 굳은 표정이면서도 어느새 용상 앞에 도달한 아크를 피하지 않았다. “가 주셔야 겠소.” “그러지요.” 말은 그렇게 여왕은 용상의 팔걸이 앞에 달린 스위치를 눌렀다. 빛무리가 그녀를 감쌌다. 얼마 안 가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게 사라졌다. “이런! 씨버럴!!” 어처구니가 없었다. 조금 정신이 희미해지긴 했어도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여자는 기어이 또 순간이동으로 톡껴버린 것이다. 허탈감이 밀려왔고, 음약성분에 의해 더 이상은 아크도 버틸 수가 없었다. 절망감 따윈 사라지고 아크는 어느새 기사들의 난교파티에 뛰어들고 있었다. 아마도 정신도 차리지 못한 채 먼저 정신을 차린 누군가에 의해 죽거나, 또 다시 포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정신이 드냐?” 눈앞에는 캘더린 여왕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아크를 보고 있었다. ‘하아~ 또 잡혔구나.’ 이번에는 어떻게 살아나야 할지 골머리가 다 아파왔다. 이대로 죽어야 하나……. 이번엔 왕궁 내에 침입해서 잡힌 것이니 사신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별 수 없이 지난번처럼 누군가 구해주러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애써 비굴하게 나갈 필요 없었다. “죽여라.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무슨 소리야?” 여왕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크는 여왕이 왜 저런 표정을 짓는 지 의문스러웠다. “그럼 또 20단계 씩 돌릴 생각인가? 차라리 그냥 죽여라.” “미치셨나?” “훗 내가 미쳤다고? 마음대로 생각하고 죽일 테면 빨리 죽여라.” 여왕의 눈썹이 들썩였다. “오호라. 그래 죽고 싶다 이거지? 좋아 죽여주마.” 여왕은 그대로 아크의 목을 양손으로 짓눌렀다. 가녀린 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악력이었다. "큭, 캑, 캑 이 이것 좀 놔……아니 훗. 죽일 테면 죽여라." 이것 좀 놓아 달라고 부탁하려던 아크는 급하게 말을 바꾸었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럼 죽어라. 그럼 나야 좋지 뭐. 네놈한테 휘둘릴 필요도 없고, 잘 생각했어. 너 같은 다른 수컷의 몫인 암컷까지 차지해 버리는 사회악은 사라져 버리는 게 나아. 그냥 죽어." "커커커커컥!" 가래가 끌어올랐다. 여왕은 웃고 있었다. 너무나도 좋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무서운 미소라니. 아크는 오한이 들었다. "왜 죽여달라며? 죽기 싫으냐? 응?" "크극! 누, 누가!" "꼴값떨지 말고……당장 일어낫!!!" 콰당! 여왕이 아크를 그대로 들어다 던졌다. 쿵! 무언가에 부딪힌 느낌이 들고 나서야, 아크는 이곳이 감옥 속이 아닌 집안. 그것도 카프레이 영지의 자신의 집인 것을 알았다. "휴우 꿈이었나?" "꿈? 지랄!" 이 괄괄한 목소리는 당연 쥬레이나란이었지만 아크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자, 잠깐 당신?" "이 자식은 아직도 환각증상이 덜 가셨나? 몇 대 더 맞을래?" 밀짚모자를 쓰고 눈 밑에 흉터가 있으며 붉은 상의에 짧은 청바지를 입은 청년. 쥬레이나란인 건 확실했지만……조금 틀렸다. "이번엔 루피냐?" "이거 다 네놈이 가르친 거다. 한심하다는 듯 한숨쉬지마라." "하긴……." 할 말은 없었다. 가르쳐 준 건 아크였으니까. 하지만 원래 목적이 미소녀 캐릭터로 변신시키려는 것이었다면 지금 쥬레이나란의 저 모습은 자신이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된 거냐? 분명 꿈은 아닌데?" "아 그거?" 아크가 생각나는 것으로는 분명 자신은 정신을 잃었고, 쥬레이나란은 먼 거리에서 동료들이 도망쳐 왔을 때를 대비해 이동마법진을 가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일까? "갑자기 마법장 제어 마법진이 힘을 잃었더라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것을 제어하던 마법사가 죽은 것 같더군. 그래서 나도 궁성으로 뛰어들어갔지. 그러다가 마법으로 안 보이게 해 둔 방이 있는데 훗 뭐 그까짓 거 못 뚫을 나도 아니고 그 방에 들어가 보니까 네놈이 암컷들하고 그 단체육수쇼를 하고 있더군. 그래서 빼내왔지." "그랬군……." 마법사 둘을 죽인 것이 그나마 자신을 살렸다. "아 그리고 그 여왕인가 하는 여자랑 소드 마스터 여자를 잡아왔어." "정말이냐?" "물론이야. 중앙에 무슨 순간이동 장치가 하나 있더군. 인정받은 사람 외에는 못 쓰게 되어 있는 건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충분히 뚫을 수 있었어. 뚫고 나서는 뭐 일사천리지. 그 뒤로 순간이동 한 두 세번 정도 했더니 어떤 영지의 저택이더군. 박살을 내 주고 그 안에 있던 여왕년도 들쳐 업고 도망왔어." “오옷! 잘했어. 쥬레이나란!” 아크는 밀짚모자 채로 쥬레이나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피해는?” “냄새 대마왕하고 널 이겨먹는 암컷은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는 왔다.” “나머진……?” “7명 살아남았다. 맨 처음에 시선을 끌려고 갔던 세 놈은 전부 죽었고, 궁성 안에서도 나머지 놈들이 다 죽어 있더군. 냄새 대마왕이 이끄는 놈들이 군대가 들이닥칠 때 눈치를 잘 봐서 빠져가지고 거기서만 냄새 대마왕, 그 암컷 해가지고 전부 일곱 살았다.” “하하하…….” 아크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죽을 뻔 했다지만 스물일곱이 갔다가 스무 명이 죽은 것이다. 마침 죽은 이도 20명이라니…… 요새 20에 무슨 마라도 낀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암습이라는 비열한 수를 쓰긴 했지만 이전에 루드비안도 그런 수에 당했었다. 아직까지 후사가 없는 캘더린 왕국의 여왕과 기사단의 마스터를 잡아왔으니 서부 평원에서 캘더린 세력을 몰아내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문제는 팬크라프트의 군대. 중도의 군대가 뒤를 치겠다고는 하지만 해상보급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팬크라프트. 거기에 수십만의 군대와, 이제는 어지간해서 잡을 수도 없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 그레드릭 대공이 누워있지만 않는다면 그를 보내어 막을 수 있을지 몰랐으나 그레드릭 대공이 몸져누운 지금. 그가 이끄는 군대를 막기란 힘들어 보였다. “후우. 젠장. 야 그 여자들 어디다 뒀냐? 한 번 보러 가봐야겠다.” 아크는 동료들이 몽땅 죽고 전쟁에 별 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잡친 기분이나 풀까 하여 쥬레이나란을 따라 캘더린의 소드 마스터와 여왕을 가두어 두었다는 곳으로 향했다. 서부 평원의 헤닌 성. 이 성의 주인인 마르코 헤닌 자작과, 이 성을 빼앗길 경우 서부 평원의 중앙과 동남부 평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내어 줄 수밖에 없어, 군부에서 군대와 함께 파견한 크리샤 백작은 오랜만에 고기를 풀어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성벽 아래에는 미처 수거해 가지 못한 팬크라프트 군의 시체가 즐비했다. 병장기로 베이거나 찔린 흔적이 아닌 무언가에 몸이 뚫린 듯한 시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칼과 창을 쓰던 병사들을 겨우 며칠 총을 훈련시킨 것에 불과했지만 위력은 제대로 였다. 예비군 징집으로 데려 온 병력들에게, 아무리 국력이 강성해 자금이 많다고는 해도 본대 70만에 다 주기도 모자란 원거리 공격 방어 갑옷을 입힐 수는 없는 노릇. 그리하여 총은 대활약을 펼쳤고, 5000이나 되는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보유한 나라답게 한 부대당 20명 이상 참전한 기사들도 칸딘스키 공작이 만든 수류탄 폭격에는 차마 버티지 못하고 꽁무니를 뺐다. 약 열흘 가량 동안 일곱 차례의 교전이 있었다. 그 때마다 승리했다. 치열한 교전이어서 병사들의 체력은 떨어졌지만 사기는 충천해 있었다. 싸우는 게 신이 나면 피로함 따위는 잊는 법. 거기다 술은 아니 되어도, 잘 꺼내지 않던 고기까지 풀어 치하하자 군사들은 신바람이 나, 저마다의 축제를 즐겼다. 대략 병사들의 점심식사가 끝나 갈 무렵. 칸딘스키 공작이 만든 망원경으로 팬크라프트 군진지를 살펴보던 병사가 다가왔다. “적군 쪽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습니다.” “밥도 먹지 않고 튀어나오는 건가?” 야습이야 계략의 하나로 인정받는 모양이지만 밥 먹을 때의 기습공격은 비겁한 짓으로 통했다. 뭐 원체 치졸함이란 것을 모르는 팬크라프트 군에서 그런 것을 지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이 시간엔 적들도 밥을 먹을 시간일 터인데 병력들에게 밥도 먹이지 않고 진군해 온다는 말인가? 궁금해 진 크리샤 백작은 병사에게서 망원경을 빼앗아 팬크라프트 진지 쪽을 바라보았다. 먼지가 일긴 하였지만 병력의 이동은 없었다. 단 한 명이 성벽 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오고 있을 뿐이다. “소드 마스터??” 인간이 저 정도 속력으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마나를 사용해 달린다는 뜻. 마스터 급 무인이거나 아니면 외부의 마나로 몸을 가볍게 해 달리는 마법사거나, 팬크라프트의 전력을 생각해 보았을 때는 소드 마스터일 확률이 높았다. 흔히들 소드마스터 한 명이 병사 1만 명과 필적한다고 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실제로 오러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 병사들만 있다면 한 급 낮은 오러 블레이드를 거의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마스터 급의 무인을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만은 조금 과장된 면이 없잖아 있지만 소드 마스터가 이끄는 1천의 군대와 단순 병사 1만이 맞붙는다면 근소한 차이로 소드 마스터가 이끄는 군대가 승리했던 적이 역사상 네 차례나 있었을 정도로. 소드 마스터의 강함은 정평이 나 있었다. 실제 소드 마스터 단신과 1만 5천의 병력이 맞붙은 사례는 있었다. 몇천년 전 동서 양 제국의 시절 있었던 전쟁인데, 보급 군량이 쌓여 있던 한 성에 미처 군대는 도착하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마스터 급 무인이 혼자 달려가 엄청난 군량이 쌓여 있는 그곳을 단신으로 막았다는 전설. 비록 그 마스터는 2천명도 채 베지 못한 채 적진 한가운데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그가 최대한 시간을 끌어 준 덕에 군대가 성을 차지하여 수성을 통해 적을 무찔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 마스터가 루드비안의 전 황제가문이었던 엘브리언 가의 수장이었다거나 하는 것은 나중 얘기고 마스터 혼자서 2천 가량이나 되는 병사를 베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레스 엘브리언이 어지간한 검격은 그냥 막아주는 훌륭한 갑옷을 입고,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빠르게 달려 마나를 소모해 적들을 유인하지 않고 맞섰더라면 죽음은 피할 수 없었겠으나 적어도 5천 이상의 병력을 벨 수 있었을 거라고 평가되고 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투창과 화살을 막아낼 갑옷이 없으니 마나를 검에만 집중시키지 못하고 몸의 방어에도 치중을 해야 하는 등의 고역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가 열 명만 있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게된다. 소드 익스퍼트 급 열 명은 마스터 급 기사로서는 충분히 상대해 낼 수 있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상대다. 허나 혼자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 있는 수천의 군대를 상대해 낼 수는 없다. 이럴 때에는 동수의 군대로 맞붙을 경우에나 간신히 이길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한 마디로 저 미쳤다고 달려오는 소드 마스터의 기습을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루드비안 제국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가 열다섯이 파견되어 있으며 갑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아 보이는 저 마스터에게 먹힐 효율적인 최신식 무기로 장비한 2만의 정병이 있다. 거기다 두터운 성까지. 마스터를 앞세워 쳐들어오고 밑에서 공격을 할 생각인가 본데 큰 오산이다. 검이나 창 등을 든 보병으로 마스터를 막고 총병들을 성벽에 배치시키면 이전의 전투처럼 큰 피해를 주고 끝낼 수 있었다. ‘정보로는 스턴컬트 어스틴이나 세비어 프레슬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크리스 젤리커는 북부 디그리스에 주둔 중이고, 리안 팬크라프트가 여기까지 올 이유 따윈 없고, 케레스 카르넨도 세바 섬에 있고,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도 카스피의 국경지대에 있으니…….’ 현재 팬크라프트의 진격부대는 각각의 소드 마스터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과 세비어 프레슬더 후작이 각각 10만 씩을 나누어서 진격 중이었다. 물론 10만이 한꺼번에 움직이지는 않고 부사령관을 맡은 기사들이 분대를 전담하여 루드비안의 서부 평원을 하나 하나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헤닌 성만 지켜낸다면 서부 평야를 내주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팬크라프트의 진격을 원천봉쇄 할 수 있다. 서부 평야의 남쪽으로 진격해 오는 캘더린의 군세가 조금은 걸리지만. “모두 전투 준비하라! 보병대 앞으로!” 소드 마스터 정도라면 성벽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뛰어 넘을 수 있다. 일기토를 요청하러 온 것일 수도 있지만 소드 마스터한테 상대로 내보낼 만한 기사는 없었다. 팬크라프트 쪽의 소드 마스터도 애초에 일기토를 할 생각 따위는 없었는지. 매서운 속도로 먼지를 일으키며 돌진해 오는 팬크라프트 측의 소드 마스터. 그가 땅바닥을 딛고 힘차게 도약했다. 마나를 땅으로 뿜으며 발동이 된 그가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헤닌 성의 성벽으로 떨어졌다. 헤닌 성에 주둔 중인 기사들이 쇠소리를 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기사들이 달라붙고 병사들이 지원한다면 큰 피해 없이 소드 마스터를 내쫓을 수 있었다. 마음먹고 죽이거나 사로잡기는 피해가 크겠지만 소드 마스터 하나를 없애는 것이 몇 천의 병사를 얻는 것보다는 낫다. 맹수 사자도 하이에나 무리에겐 이길 수 없다. 크리샤 백작은 병사들을 지휘해 진을 치고 투구를 뒤집어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히 팬크라프트 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으며 이쪽의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오러 블레이드를 보고서는 그가 소드 마스터가 맞음을 알아챘다. 아무리 땅을 빠르게 걷고 날아온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5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유인을 해야 했다. 총병들로 무차별 총기를 난사하여 넓은 곳으로 끌어내야 싸우기가 편했다. 성벽 위 같은 좁은 곳에서 전투를 해 봐야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드 마스터는 유인책에 쉽게 걸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크리샤 백작은 속으로 조소했다. ‘흥 역시 검에 미친놈들은 단순하다니깐.’ 소드 익스퍼트급 무인이긴 하나 무가인 가문을 이어받기 위해 억지로 검술을 수련해 왔던 크리샤 백작은 본래 지휘나 계략에 능한 사람으로 무를 닦으면서도 학문을 닦지 않는 돌머리들을 경멸해 왔다. 저 소드 마스터도 검에만 미친 세월을 보내어 한 분야에서 성공한 것은 좋으나, 너무나도 멍청하고 저돌적이다. 그런 크리샤 백작이 가장 존경하는 기사의 표본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지략의 기사라 칭송받는 아크 였다. 지략의 기사가 제국에 임관을 청했을 때 군부에서 가장 먼저 찬성한 사람이 그일 정도로. 총으로 조준하기 좋고 싸우기 좋게 성 안의 넓은 쪽에 들어와 포위당한 소드 마스터 그를 둘러싸고 병사들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저 자의 목을 베는 자에겐 작위와 영지, 그리고 살빛의 향연 1,2,3권을 내리겠노라!” 병사들의 전의를 상승시킨 크리샤 백작은 병법서에 나온 대로 강자 한 명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진법을 짜고서 소드 마스터 침입자에게 맞섰다. 하지만 압도적인 쪽수로 이기는 상황에서 그런 것이 굳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였다. 병사들은 마스터에게 계속해서 죽어 나갔지만 무거운 갑옷을 입지 않은 마스터의 마나를 지속적으로 소모시켰다. “공적을 세울 수 있겠군.” 총병들에게는 내부가 혼란스러울 때 급습할지 모를 팬크라프트 군대의 진격에 유의하라 전하고 수백대 1의 전투를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크리샤 백작. 적진의 한가운데로 돌격해 포위나 당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며 다시 한 번 저 머리 쓸 줄 모르는 소드 마스터를 경멸해 주었다. 그러나 곧 놀라운 장면이 벌어졌다. 기사 하나를 죽였다. 기사의 피해도 어느 정도 각오는 했으니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소드 마스터는 기사 하나를 죽이고 그에게서 검을 빼앗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검과 쌍칼로 검을 쥐고서는 검에 무언가를 불어넣었다. 길고 화려한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 급이 뿜어내는 검강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자리잡고 화려한 빛깔과 길이를 자랑하는 오러. 그레드릭 대공의 측근이었던 크리샤 백작은 그레드릭 대공의 소드 오러와 저것이 비슷함을 눈치챘다. 그것도 저 자는 쌍칼이었다. 두 자루에 오러를 충분히 불어 넣은 소드 마스터는 빙글빙글 회전시켰다. 형형색색 빛나는 오러가 씌인 검을 쥔 자가 몸을 팽이처럼 돌리자, 매우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바람개비 외곽에는 몸뚱이가 작살나서 핏빛을 뿌리며 죽어가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어찌 여기에…….” 앞서 소드 마스터와 일개 병사의 비교를 했었다. 소드 마스터는 적은 수의 병력에 조합되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며 1대 엄청난 다수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힘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몇 천을 벨 수 있어도 결국 그 소드 마스터는 그 몇 천에게 죽게 된다. 이전부터 흔히 쓰여 온 소드 마스터 없는 아군으로 고육책을 감수하며 마스터를 잡아 온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드 마스터에게나 해당하는 일. 그 위의 경지를 깨달아 버린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강의 경지(루드비안 제국에서는 무신을 단순히 그랜드 마스터로만 생각한다)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개 병사로는 10만이 덤벼들어도 저 마스터 하나를 이길 수 없다. 전례는 없지만 몇 만대 일의 전투에서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나가는 전투가 패배한 적이 없다고 인류 전쟁사에 씌여 있을 정도로. 약 4000여 년의 대륙의 역사에 단 일곱만이 나타났다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 그들은 전장에서 죽은 이가 없었다. 모두들 500세가 넘는 수명을 누리다. 편안히 갔으며, 단 한 명만이 권력을 넘볼 것을 우려한 왕이 독약으로 암살했다. 그레드릭 대공이 암습으로 위급하긴 하지만 아직은 죽거나 하지 않았고 어디까지나 방심한 틈을 타 암습을 당한 것이기에 그를 제외한다면. 그랜드 마스터가 나서 패퇴한 전투는 있긴 했다. 그 경우 대부분 상대측에는 소드 마스터가 한 둘은 섞여 있었으며, 그랜드 마스터를 자꾸 마나를 쓰게 만들도록 마법사들이 방해공작을 주로 펼쳐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는 적의 예봉을 꺾어 이긴 경우가 고작이었다. 그만큼 무서운 인간 흉기. 그랜드 마스터. 그런 그랜드 마스터가 지금 성 한가운데에서 무차별로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싸우는 것처럼 보였으나 저건 일방적인 학살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저 선풍기 같은 검의 반경으로 도무지 접근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는 족족 단백질로 이루어진 몸이 작살나는 건 문제도 아니오 철로 만든 검도 끊어지는 마당에 누가 자처하여 죽으러 가겠는가? “모두 물러서라! 총병대! 앞으로!” 크리샤 백작은 첩보능력도 매우 우수했다. 그리고 그 정보의 신뢰도도 매우 높았다. 그가 가진 정보로 보았을 때 분명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맨 후방에서 중도의 선봉군과 맞서 싸우고 있어야 했다. 마법진으로 단번에 이동해 왔을 것도 생각을 해 보아야겠지만 팬크라프트의 마법사들은 대부분 해전에 동원되었다가 수장되어 마법진 건설도 개인적인 이동도 거의 불가능했다. 정보가 빈 날은 겨우 이틀. 설마 이틀 만에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전투에 참가한다는 것인가? 병사들은 일제히 하나의 형광팽이가 된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에게 사격을 실시했다. 허나 총으로 쏴 대어도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총알이 마치 쇠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튕겨나가 다른 병사들에게 피해만 줄 뿐이었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더 이상 팽이처럼 돌아봐야 헛수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들의 병력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가 도는 것과 같이 자전을 하면서 공전을 시도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검이 회전하는 반경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성내는 그렇게 완벽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돌만큼 돌았다고 생각한 렌도로스는 검을 멈추었다. 허나 살육은 끝나지 않았다. 촤악! “커어억!” 그가 빠른 속도로 한 번 달리자, 형광색 오러의 잔상이 일직선으로 남은 뒤 그가 달린 곳 반경 몇 미터 안의 모든 이의 몸체가 반절로 나뉘었다. 그저 검을 들고 달리기만 해도 그 주위에는 시체가 터져나왔다. 병사들은 모두 전의를 잃었고 기사들은 대부분 사망한 상태였다. “흥 오합지졸들이로군. 내 칼에 피를 묻히기가 아까워.” 그러면서 렌도로스는 자신이 원래 들고 왔던 검은 검집에 집어넣고 다른 검을 주워서 마구 베어대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강기가 날아와 몸체를 갈랐다. 한 명의 신체를 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기들은 이리저리 퍼지면서 지속적으로 살육을 자행했다. 사기충천한 2만의 정병이 지키던 성 내부는 순식간에 피가 개울을 이루고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크리샤 백작은 결단을 내렸다. 단 한 명에게 이리 처참한 꼴을 당했다는 게 믿기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의 희생이 커지기 전에 몸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이 헤닌 성을 빼앗기고 나면 전황이 어려워질 것이 자명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저 남자를 막을 이가 이곳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후퇴! 전원 후퇴다!!” 적진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도 성문이 내려갔다. 병사들과 집안에서 조용히 있었던 성내의 주민들도 처참한 살육극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지휘부를 따라 도주했다. 그러나 막강하고 잔인한 살육자는 살육을 그치지 않았다. 도주하는 쪽으로 강기를 날려 도주하는 병력의 후미를 완전히 케찹으로 만들어 놓았다. 크리샤 백작은 가슴이 철렁거렸다. 방금 전에는 강기가 날아와 바로 옆에서 도주하던 성주 헤닌 자작을 케찹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저 각도가 조금만 더 어긋났으면 헤닌 자작과 함께 죽게 되었으리라. 다행히도 렌도로스는 성 안에서 미처 도망가지 못하거나 도망치려는 이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덕분에 희생을 바탕으로 살아난 크리샤 백작과 몇 천 가량의 병사들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한숨 돌린 것도 잠시였다. 도주로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복병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적들을 모두 섬멸하라!” 짙푸른 오러가 깃든 검을 전면에 내세운 젊은 모습의 기사. 오러의 길이는 소드 마스터 급. 그가 앞장서서 병력을 이끌고 오자, 이미 패잔병이 되어 겁이 질릴 때로 질린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기에 바빴다. 크리샤 백작이 지휘를 해 보려 했지만 주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이미 모두 흩어져 버린 뒤였다. 간신히 크리샤 백작은 몸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처참할 정도로 패해 버렸다. 참패였다. 일곱 번의 교전에서 모두 대승을 거두고 사기가 충만했던 2만의 정병이 단 한 사람에 의해 모두 케찹 소스가 되어 뿌려졌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는 단 한 가지였다. 패전 소식이나마 본부에 알리고 패전 책임을 짐과 동시에 다음 대비를 준비케 하는 것. 크리샤 백작은 끈임없이 말에게 채찍을 휘둘렀다. 세비어는 성 안의 핏빛 풍경에 할 말을 잊었다. “왔는가?” 자상하고 인자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인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 그러나 온통 피를 뒤집어써, 하얗게 샌 머리가 검붉은 색으로 변한 채 짓는 미소는 괴기스러워 보였다. 제법 넓은 성 내에는 진짜로 피가 비오는 날의 개울처럼 흐르고 있었다. 성 중앙에 있는 시체들은 그래도 온전했다. 렌도로스가 일직선으로 베거나 팽이처럼 베었던 이들이 대부분인지라 그들은 허리가 잘리고 목이 잘렸을 지언정 시체는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기에 맞은 성 외곽의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인체가 완전히 분해되어 살점 몇 가지와 신체 기관 몇 군데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세비어가 이끄는 팬크라프트 군은 예비군과 상비군이 합쳐진 군대였지만 실전 경험은 이번 전쟁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여러 살육 장면을 보아가며 어느 정도 살육의 장면에 익숙해졌으나 이 성 안의 광경을 보고서는 할말을 잊고, 마치 에르디의 악취가스라도 들이 마신 듯 구토를 지속했으며 심지어는 쓰러지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팬크라프트 대공은 수첩을 꺼내어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의 취미인 메모. 전투 후엔 꼭 메모를 해 두는 괴상쩍은 습관. 그러다 머리에 엉겨붙은 핏자국이 수첩에 떨어지자, 렌도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 장을 찢어 바닥에 버렸다. 핏자국 묻은 수첩 종이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고인 피에 묻어 붉은 단풍잎처럼 변했다. “제길 오랜만에 회포는 풀었는데 너무 싱겁군. 그레드릭 대공에 비해서 너무 재미없어.” 온몸의 핏자국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 피 한 방울 아니 묻히고 싸울 수도 있는 그였다. 하지만 피 한 방울 안 묻힌다고 자랑할 친구들은 모두 죽었다. 퉤! 옷에만 피가 묻은 건 아니다. 입에도 죽은 이들의 피가 조금씩 들어간다. 그 비릿한 맛과 향에 대공은 침을 뱉었다. 헤닌 성으로 진군한 부대가 루드비안의 총병대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말에 최대 속력으로 뛰어와 부대에 합류했다. 총. 위력적인 무기이긴 하나 기사들에게 먹히지 않는 다는 점으로 무시해 왔었는데 오늘 보니 확실히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기사들에겐 별 것 아니었다. 기사 수에서 확실히 유리하고 특히 마스터 급을 여섯이나 보유한 팬크라프트를 막을 것은 이제 아무 것도 없었다. 지략의 기사가 복귀하고, 중도가 참전했다고는 해도 마찬가지이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렌도로스 팬크라프트를 막을 이가 없는 한! 승리는 팬크라프트에게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명 돌림빵 당하기 싫으면 좀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20말이요. 20.” 그 말에야 여왕은 입을 다물었다. 포로로 잡았다만 역시 왕이란 직위에 있는 여자를 쉽게 다룰 수는 없었다. 혹시라도 진짜 죽이거나 했을 경우. 캘더린은 구심점을 잃고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이 있는 인물이 하나만 있어도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는 즉시 여왕의 2인자가 되어 여왕을 되찾자 란 명분으로 왕국을 합심하여 루드비안을 공격할 것이다. 지금으로선 포로로 잡은 채 군대를 빼는 등의 협상을 잘 진행시켜야 했다. ‘아니 그냥 진짜 돌림빵을 해버린 다음 누구 씨인지 모를 얼라를 배게 해?’ 여왕이 적국의 포로가 되어 적국의 아이를 낳게 된다면 왕위를 내어 놓아야 할 만큼 큰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역시 그것을 명분으로 왕국이 합심하여 전쟁을 벌일 지도 몰랐다. ‘아니지 첨단 장비는 뻘로 있남? 그냥 홀라당 벗겨 놓고 살빛의 향연에 출연시켜도 되고, 음약을 먹인 뒤 돌리고 애원하는 모습을 찍어도 되잖아?’ 그러나 아크가 아는 한 캘더린 여왕은 아무리 음약을 먹는다 해도 그리 쉽게 조교될 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여자니까, 잘못 다뤘다가는……. 어쨌든 아크는 이 여자를 처리했을 경우 생길 일들에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후계자는 없다. 그러면 왕국이 구심점을 잃고 무너져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데, 영웅이 하나 등장해서 국가 원수 처단의 분노를 적국에게 돌리고 국가를 부흥시킬 수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다 우리 새로운 여제 폐하께서 알아서 하겠지.’ 그레드릭 대공이 쓰러지고 아크가 정식으로 군부의 통수권을 쥐었듯이 황제가 쓰러지고 황녀 세레스티나는 정식으로 황위 섭정을 인정받았다. 이런 거에는 수가 비상한 여자이니 그녀에게 맡겨 둬 보기로 하고 아크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짓눌렀다. 철창에 캘더린 여왕과 여기사 세실을 싣고서 카프레이 영지에서 약 이틀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제국의 임시수도 엘그란에 도착한 아크. 쥬레이나란이 마지못해 검은 색 천막을 가렸지만 정말 철창은 심각할 정도로 작살이 나 있었다. 지나쳐 오는 곳마다 루드비안의 민중들이 그녀들을 향해 돌과 계란을 던지는 등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덤터기로 썩은 계란에 인분을 맞은 쥬레이나란이 팔뚝을 늘여 사람을 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졌었다. 엘그란은 제국 내에서 4번째로 큰 도시며 그레드릭 대공의 영지이기도 했다. 엘그란 외에 그레드릭 가문의 영지는 거의 제국 내 5분의 1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넓었지만 엘그란은 그 중에서도 그레드릭 공국이라 불리는 대공의 영지들 중 최 중심지로 많은 병력과 물자가 모여 있는 요충지였다. 거기에 수도 파괴로 인한 피난민들 덕에 영지 내는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아크는 일단 철창을 기사들에게 양도하고서 현재 임시 궁성으로 사용되는 그레드릭 대공 관저로 들어갔다. 병사와 기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그곳에 들어가자, 높은 직위인 아크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지나쳐가는 이들이 많았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 인사하는 것은 조금은 뻘쭘하긴 했으나 떠받들어 지는 것에 익숙해지니 별 반 이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궁성보다 건물은 작았지만 보통 큰 건물이 아니었던지라 깊숙이 들어있는 임시 국가원수의 방을 찾아가기엔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렇다고 보는 눈 많은 곳에서 뛰어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크는 좀이 쑤셨다. 특권을 누리는 것이야 좋다만 이렇게 좀 쑤시는 짓은 정말 질색이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탁한 갈색의 나무 문짝. 왕궁에는 이런 문에 하얀 페인트칠을 해 둔 다음 왕가의 문장과 주변에 온갖 문양을 조각해 새겨 넣고 그 안에 금박을 입힌, 문 한 짝만 떼어가도 장물업자에게서 엄청난 착수금을 받을 만한 귀족들이 그 썩어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만든 문이 있는 것에 반해 너무 투박하고 칙칙한 원목의 색깔이 드러나는 문짝이었다. 아크야 신경은 안 썼지만 자신의 저택 문짝도 문양은 황제의 문양이 아니지만 때 탄 금박이었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레드릭 대공이 검소한 건지, 아님 돈이 없는 건지 고민했다. 이내 곧 쓸데없는 고민이란 것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종이 대신하던 가신의 알현 요청을 외치는 이는 그레드릭 대공가의 하인. 어찌 되었든 아크는 대저택에 어울리지 않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시지요.” 용상 따위는 없었다. 그저 대형 소파 하나에 그 맨 중앙 앞자리에 공주가 앉아 있을 뿐. 그리고 그녀 아래로 몇 명의 중신들만이 소파에 앉고, 그 밑으로 몇 명은 급조된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수도 잃고 쫓겨난 임시정부처의 꼴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만 어쩐지 처량한 것이……. “이쪽으로.” 마침 소파의 한 귀족의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공주 바로 옆의 왼쪽에 위치한 레이필드 공작의 바로 앞이었다. 아크는 타 귀족들처럼 귀족들의 이름이나 기타의 것들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자기 옆자리의 인물이 제국의 공작 중 하나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칩거중인 공작이라고 들었는데 역시 이름은 몰랐다. 후작인 주제에 그런 공작보다 앞자리에 앉는 것이 조금은 뻘쭘할 수도 있었겠으나, 아크는 현재 군사의 전권을 쥐고 있는 막강한 권위의 사람이다. 대공이 자신의 뒤를 이어 군부를 맡을 정식 후계자로 아크를 지목했고, 원래부터 군부의 부원수였기에 대원수가 쓰러진 마당에 그가 권력 승계를 받는 것이 마땅했다. “캘더린의 여왕과 소드마스터를 포로로 잡아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큰 활약을 하셨더군.” 황녀, 아니 이제는 황위 섭정자인 공주의 말투는 하오체로 바뀌었다. 이전처럼 자신을 꼬박꼬박 받들어 주는 존대체보다는 약간 어색하게 들렸다. 위엄있어 보이자고 하는 말투겠지만 전형적인 지도자의 핏줄을 탄 그녀는 처음에 보았을 때부터 온몸에 위엄과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다만. “피식.” 갑자기 아크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그마한 소리였지만 황녀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서 고개를 돌리며 웃다니, 이것은 황실불경죄에 국가원수 모독죄로 즉결처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중범죄였다.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지만 아크가 어디 그런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던가? 저렇게 기품이 넘치고 위엄있는 지도자가 자기 밑에 깔려서,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아랫도리를 벌린 채 온갖 부끄러운 말들을 늘어놓는 것을 보았던지라 그 때가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남들은 우러러 볼 수밖에 없는 사람의 그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았다는 것. 참으로 다신 겪어볼 수 없을 특별한 기억이다. 물론 아크는 그로 인해 제가 오히려 코가 꿰였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황녀는 아크가 대략 그 일로 인해 웃음을 터뜨렸다는 것을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모일 사람은 다 모인 것 같구려. 아니 애초에 아크 경만 오기를 기다려 모인 것이니 주역이 온 거로군. 자, 여러 사안이 밀려 있소. 일단 첫 번째는 포로로 잡힌 황가의 식솔들을 어찌 해야 할지 좋은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말씀해 보시오. 팬크라프트는 우리의 북부 지역과 서부 평야를 요구했소.” “미친 소리입니다. 설사 그들을 처형하는 한이 있다곤 하더라도 그 조건에는 따를 수 없습니다.” 루드비안 제국은 제국을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고 있었다. 곡창지인 서부 평야와, 남동부 평원. 제국의 중심에 있어, 수도와 각종 거대 영지가 몰려 있으며 인구가 많은 북부 지역. 그리고 디그리스를 흡수하면서 생긴 구 디그리스 영토인 최북단 지역. 이 중 구 디그리스의 영토는 광물자원 몇 가지를 제외하면 그다지 큰 쓸모는 없는 땅인지라 이미 대부분 점거 당한 것이 상관없지만 나머지 지역들은 다르다. 루드비안의 영토는 제국이라 칭함이 옳을 만큼 광대했다. 구역 두 곳을 잃는다고 쳐도 현재 왕국과 공화정인 중도와 캘더린 만큼의 국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 개는 다르다. 이미 디그리스 지구는 빼앗긴 것이나 상관없으니 신경쓰지 않지만 최소한 이 전쟁의 피해를 한 지구에서 마무리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레이필드 공작은 대번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만약 어지간한 조건이었다면 그대로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제국의 4구역 아니 실제로는 3구역 중 한 곳을 달라 하면서 군대 철수 의사라도 밝혔으면 응했을 것이다. 허나 전황은 그리 나쁘지도 않았고, 그들이 달라 하는 북부지구 엘브리언은 귀족파의 영지가 밀집한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잡혀간 제펠과 그의 동생을 지지하던 귀족파가 더욱 더 강하게 반대를 했다. 더 많은 권력을 위해 욕심을 내기보단 당장 제 것 챙기기도 급급했던 것이다. 황녀는 그런 것을 잘 이용하여 상당수의 귀족파를 자신의 세력으로 편입했다. 이제 정녕 이 제국의 전권은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귀족들은 처음에는 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아크를 다그치려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레드릭 대공이 암습을 당해 골골한데다, 중도와의 동맹을 성사시키고 캘더린에서 여왕과 소드 마스터를 포로로 잡아 온 막대한 전공을 세운 그에게 할 말이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권력의 중점에 서게 될 그에게 은근히 아부하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더구나 서부 평원의 중앙에선 아크가 이끌게 된 군부의 기사가 엄청난 전공을 세우고 있지 않았던가? 칸딘스키 공작의 해전의 대승과, 서부 평원에서의 팬크라프트 군의 진격을 막고 있는 크리샤 백작까지. 누구 하나 아크와 연관이 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아크가 별로 이 세계의 것들에 관심을 두지는 않았어도 두 구역이 얼마나 중요한 줄은 알고 있었고 캘더린의 진군을 늦추는 결정적인 전공을 자신이 세우면서 전황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역시도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 오히려 그 노란돼지가 살아남아 황위와 유카나에 탐을 내는 것보다는 그대로 적지에서 죽어버리는 게 속편했다. 첫 번째 안건은 그냥 죽이든 말든 내버려 두자, 로 모아졌다. 어차피 또라이 왕자 하나 죽어서 제국에 크게 손해 볼 건 없었다. “다음은 아크 경이 잡아 온 캘더린 여왕의 처리문제요.” “마땅히 목을 쳐 효수해 지르완 황후님과 레온 황태자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우두머리가 사라진 국가는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캘더린에는 별다른 정식 후계자가 없습니다. 그 계집이 죽는다면 캘더린은 극도로 혼란해 질 것이 자명합니다.” 대부분 죽이자는 의견이었다. 그 와중에 황녀와 몇몇 귀족들은 그 명성이 드높은 지략의 기사가 내놓을 의견을 궁금해 했다. 명성이 명성이니만큼 묘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눈빛을 본 아크. 생각해 본 건 있었지만 그 기대에 부응을 할 만한 묘안이라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헛 명성이 퍼진 건 이래서 괴롭다. “음……누군가 방중술 높으신 귀족분께서 철저히 SM으로 조교해서 성의 노예로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면 단체로 돌림빵을 한 뒤 누구 씨인지 모를 애를 배게 하면…….” “…….” 별 반대 의견이 나오지 않자, 아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굳어 버린 것이라는 건 잘 알겠는데 지들이 말을 안 끊을 때 결정적인 의견을 얘기해 두어야 했다. “거기에 그런 모습을 제가 살빛의 향연에 찍어서 대량살포를 하는 겁니다. 군사들에게 뿌리면 나름대로 충성심을 잃게 할 수 있고 큰 파문으로 번지게 될 것입니다. 그 철혈의 여왕님이 온갖 남자에게 당해서 저 모양이 되었다는 것은. 특히 루드비안 제국의 씨를 가지게 된다면 더욱 그렇지요. 나쁘진 않은 의견입니다. 단순히 죽이는 것보다 더 캘더린의 사기를 낮추고 국론을 분열시킬 수 있습니다.” “음!” “사악한 수법이긴 하나 나쁘진 않아 보이는군요. 다만 역효과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국민들의 여왕님에 대한 충성이 강한 나라이다보니 아크 경의 말처럼 국민들의 실망이 높아질 수도 있지만 역으로 오히려 우리국가에 강한 적대감을 표출할 수 있습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레이필드 공작이 은근한 지지를 표명했다. 확실히 그냥 죽이는 것보다는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국론 분열과, 왕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거기다 지략의 기사가 알고 있는 그 신기의 인쇄술을 통해 그것을 대량 살포 유통시킨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저 사람의 머릿속엔 저런 생각뿐인 건가?’ 자기도 당할 뻔한 일이었다. 좋은 생각이고 아이디어이긴 했으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음 지략의 기사의 의견이 나쁘진 않군. 그의 의견을 채택하는데 이견이 있소?” “캘더린의 여왕은 속에 능구렁이가 나앉은 여인입니다. 혹시 모를 일에 만반의 대비를 꾀하셔야 합니다.” “맞는 말이오. 그럼 그의 의견을 채택하겠소. 그런데 누가 캘더린 여왕을 능욕하고 조교하겠소?” “지략의 기사님이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사는 아크 경만이 맡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저, 잠깐 왜, 왜 납니까?” 아크는 당황하여 자신을 지목하는 귀족들을 바라보았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 그러니까 왜 당연하냐고!!! 아크가 자신의 저택을 육림으로 꾸며 놓은 것이야 유명하긴 해도, 어지간한 귀족들이 대부분 하는 짓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열렬한 지지를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핫! 색욕이란 명호를 별칭으로 달고 계신 지략의 기사께서 어찌 그걸 자기가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까?” “아아~ 아마 약혼녀이신 유카나 양을 보아할 때 나이가 있는 캘더린 여왕은 맞지 않는다 하는 거겠지요.” “그래봐야 지략의 기사보다는 어리지 않습니까. 하하하.” 내가 그렇게 살았었나……. 아무리 다른 귀족들 다 하는 짓이라고는 해도 그들은 사생활 관리가 철저한 반면. 아크는 달랐다. 별 쪽팔림을 모르다 보니 숨길만한 게 없었고 이 짓, 저 짓 다 한 게 다 소문나는 것이다. 실제 루드비안의 사교계에 지략의 기사의 호색함은 유명했다. “뭐 유카나 양에게선 당장 후사를 보기가 어려울 터이니 캘더린이라는 국가의 왕이 될 씨앗을 미리 뿌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허허헛.” 쓰읍. 세레스티나 황위 섭정 대리는 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크 경은 이제 군부를 책임지셔야 할 테니 바쁘실 것 같군. 자메린 후작께서, 잘 물색해 보시고 작전을 실행하시오.” 황위 섭정 대리 황녀는 캘더린 여왕 능욕의 임무를 다른 이에게 넘겼다. 홀가분하게 짐덩이를 없애긴 했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남았다. 시원섭섭의 감정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캘더린 군의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은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음……그녀의 입장은 다른 것 아니겠소. 좋은 의견 있으면 얘기해 보시오.” “주군을 살려주는 대가로 충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런 기사의 충성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왕과는 다르게 소드 마스터는 인재다. 만약 그녀를 가신으로 얻는다면 팬크라프트의 전쟁에서 소드 마스터의 수에서 그리 크게 딸리지 않는다. 황제가 될 황태자이자 황위 섭정 대리 리안 팬크라프트는 전쟁에 나오진 않을 터이고, 기타 마스터의 숫자를 따져 본다면 동맹군인 중도를 합치고 세실 엔테른을 받아들일 경우 팬크라프트와 동일 전력을 맞출 수 있었다. 거기에 그레드릭 대공이 회복되어 참전한다면 더더욱. 그녀의 문제는 뒤로 밀린 채. 황녀는 마지막 안건은 꺼냈다. 그런데 그 때 아크가 손을 들었다. “뭐요. 지략의 기사?” “그 하오체가 꽤나 어색한데 그냥 평상시대로 말투를 쓰시면 안 되겠습니까? 딴에는 위엄을 잡으려 그런 말투를 쓰시나 본데 조금은 누그러진 말투를 써도 뭐라 할 사람 없고, 위엄과 기품이 넘치십니다.” 이 역시 불경죄에 속할지 모를 대죄나,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흠 내 말투가 이상하오?” “약간은 듣기에 이상했습니다.” 지략의 기사와 레이필드 공작이 동시에 말하자, 황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평소 말투대로 하지요. 사실 이렇게 말하려면 꽤나 말투에 신경을 써야 해서 골치아프기도 했습니다. 좋은 걸 지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아뇨. 뭘.” “뭐 다음 안건은 모두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음.” 귀족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크는 그게 무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뭘 말이죠?” 아크가 묻자, 황녀는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팬크라프트의 군대는 서부 평원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 헤닌 성에서 10일이넘게 발을 잡히고 있는 상태입니다. 명 지휘관으로 이름난 크리샤 백작이 여러 번의 교전에서 팬크라프트 군대를 수차례 격퇴해 냈으며, 적의 피해는 1만 5천이 넘는데 반해 우리 측의 피해는 몇 백 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죠. 다만 헤닌 성을 피해서 진격해 올 수 있는 캘더린의 군세가 문제가 되었지만 아크 경이 캘더린의 약점을 잡게 되면서 그 부대는 어떻게든 물리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국경 방위군 10만이 거의 괴멸하고 캘더린의 진격로에 있는 스메론 요새에 고작 몇 천 남아 있는 상황. 나머지 상비군을 총 동원 1만 가량을 헤닌 성에 보냈고 나머지 군대는 혹시 모를 임시수도에 대한 기동게릴라 공격에 대비하여 남겨두었습니다.” “음.” “이제 군부를 통솔할 지략의 기사님이 등장하셨으니 임무를 맡기도록 하지요. 헤닌 성이 의외로 오래 버텨주고는 있다지만 수십만의 병력이 쏟아져 온다면 더 이상 지키기는 힘듭니다. 일단 수도군 5만을 그대가 통솔하여 외세의 침략에서 서부 평원을, 아니 남동부 지대와 북부 지대라도 지켜 주십시오. 지략의 기사. 그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상대로 자신에게 수만의 군대 통솔권이 쥐어졌다. 단순 공성전이라면야 꽤나 경험이 있으니, 아크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전을 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그때는 그저 막무가내로 덤비는 것을 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고민스러웠다. ‘제길 그때는 별 수 없이 들러리를 내세워야겠구만. 방금 전 크리샤 백작이라고 했나? 그런 놈 하나 내세우고 나는 앞에 나가서 마법이나 주야장창 써대야 겠군. 뭐 그럼 어떻게라도 되겠지.’ “레이필드 공작께선 귀족병력 6만을 이끌고 어느 곳이 침략 받아도 즉시 구원을 할 수 있는 가르시안 요새에서 보급과 방어에 주력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병력 배치가 한창일 때였다. 귀족들이 한참 회의하시고 계신데 웬 상거지 한 명이 문을 강하게 열고 들어 온 것은. 시종들이 그를 막아섰지만 강하게 밀쳐내는 상거지에게 오히려 밀려, 붕 날아서 벽에 부딪혔다. 온몸에 먼지가 가득 묻고 옷은 너덜너덜한 걸레짝,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썩어가는 깊은 상처와 그 주변에 묻은 굳어버리고 색이 변한 검은 색의 혈흔. 등과 어깨에 박힌 세 대의 화살. “크리샤 백작!” 몇몇 그와 친숙한 이들은 거지꼴을 한 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명 지휘관 크리샤 백작이었다. “이게 무슨 꼴인가!!!” 갑작스레 완전히 시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사람이 들어오자, 귀족 회의실에도 무서운 적막이 흘렀다. “잠시 비켜봐 주시죠.” 아크는 귀족들을 비키게 한 뒤 블레싱 소드를 소환하여 최고의 힐링마법을 시전했다. 썩어 들어가는 상처마저 아물 만큼 강대한 신성력이었다. 그러자 크리샤 백작의 상처가 나았고, 그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크으윽! 헤, 헤닌 성이……함락되었습니다.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혼자서 병사들을 학살하고, 그 때문에 도주하려다가 팬크라프트 군대의 복병을 당해 내려 주신 병사들과 기사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뭣이!?” 방금 전만 해도 그의 선전으로 전황이 좋아져 가는 것에 안색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귀족들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패전보고에 그들은 할 말을 잊었다. 그 이후 크리샤 백작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자리의 모두를 충분히 경악하게 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저지른 일들은 대충 묘사하여 표현해도 절로 온몸에 오한이 들만큼 소름끼쳤다. 2만 정병을 그 혼자서 모두 벤 것은 아니다. 병력의 반절 가량은 살려서 크리샤 백작은 성에서 탈출했다. 허나 가는 길에는 복병이 있었고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루드비안 군들은 무차별 적으로 학살당했다. 막심하고도 뼈아픈 패배였다. 국경군이 전멸하고 수도가 불타올랐을 때보다 더욱 암울했다. 그곳을 빼앗겼다면 이제 서부 평원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 였던 것이다. 케레스 카르넨과 크리스 젤리커의 북부 공격과 해상공격은 칸딘스키 공작이 길러온 그의 정예병들과 몇 만의 상비군만으로도 충분히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서부평원 ‘발렌시아’ 가 뚫리면 남동부 지역 ‘레인카드네’ 도 안전할 수 없었다. “큰일이군요. 으음.” “…….” 그리고 바뀐 상황에 대한 새로운 작전 회의가 벌어졌다. 헤닌 성이 돌파당한 이상 이제는 서부 평야는 반절도 채 지키기 힘들었다. 결론이란 게 뾰족한 게 없었다. 그래도 귀족들끼리 쑥덕쑥덕 탁상공론을 해서 나온 결론은 아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어느 요새로 가서 최대한 방어에 신경쓰라, 그런 소리였다. 귀족회의가 그렇게 끝나고, 모두가 나가는 상황에서 아크는 공주의 부름을 받고 본래는 공작집무실에 남아 있었다. 가장 할 일이 많고 먼저 나가야 할 사람이 아크였다. 그러나 만인지상의 자리인 절대지존은 황제의 권한을 쥐고 있는 사람을 무시할 만큼 아크의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니니, 아크는 가만히 남아서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참동안 창문 바깥을 바라보며 말이 없던 세레스티나 공주. 아크는 바쁜 사람 붙잡아 놓고서 쓸데없이 뜸만 들이는 황녀가 별로 마음에 들거나 하진 않았다. 그 불만이 노골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저 어지간하면 빨리 보내주시죠. 시키신 것도 많으면서 이렇게 붙들어 두는 건 어느 나라 법도랍디까?” “불만이십니까?” “당연한 거 아닌지?” 황가를 협박할 정도로 깡 좋고 간 큰 사람이니 저런 노골적인 불만의 표정이 나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라서요.” “뭔데요?” 주위를 살피던 황녀는 아크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여자가 그렇게 가까이 다가오자 아크는 약간 당황했다. ‘호, 혹시 나한테 당했던 것을 못 잊고, 삐리리 하고 삐리리 한 짓을 하려고 하는 건가? 으메 좋은 거. 내가 교육 한 번 잘 시켜놓았구만. 좋아, 좋아! 이런 여자 안아보기 어디 쉬운가?’ 황녀는 아크의 귀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역시 그런 것이었어! 라고 착각한 아크는 마냥 가만히 기다렸다. 황녀는 귓속말로 무언가를 얘기했다. “에? 뭐라고요?” “이제 곧 대원군이 되실 겁니다.” “대원군?” “그러니까……왕의 아버지란 뜻이지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아직도 뭐가 뭔지 파악하지 못한 아크였다. “무슨 얘기인지 모르십니까?” 최대한 소리를 죽여 말하는 황녀. 하기야 누가 들으면 큰일 나는 소리인 것이 틀림없을진대 시끄럽게 떠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왜 왕의 아버지가 되냐고요?” “씨앗을 뿌리고 발뺌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응?” “제 배에 당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제야 뭔가 알아들은 아크였다. “으윽? 예에???” “물론 누구의 아이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백작 영애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남편 따위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고 말입니다.” “…….” 아직도 얼떨떨한 아크를 앞에 두며 공주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나는 이 아이를 내 다음 후계자로 만들 계획입니다. 여자 아이든 남자 아이든. 설마 자신의 씨앗도 외면하는 전형적인 나몰라라 식의 책임 없는 남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란 사람.” ‘제기랄 나는 철저히 바깥에다 했단 말이다! 어째서어엇!!!’ 이제와서 절규해 봐야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만. “당신은 그저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 방패막이만 되어 주시면 되는 겁니다. 이번 전쟁을 꼭 당신의 손에서 종결시켜 제국의 정권을 장악하십시오. 그리고 군부세력과 합산하여 나와 아이를 지켜만 주신다면 그걸로 됩니다. 그 사이 나는 다른 황가의 핏줄들을 없애거나 철저히 타락시키지요.”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다는 실로 무서운 권모술수였지만 아크는 이런 것 저런 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 칩시다. 그치만 저와 결합한 아이라면 분명 제 피도 물려받았겠죠. 그럼 누구나 나온 아이를 보면. 저와 닮았다는 것쯤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외모. 이 대륙에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걸 어떻게 숨기시려고요?” “당신 친구인 대마법사에게 부탁하면 별 것도 아니겠지요?” “……그러면 어찌되었든 공주가 불륜을 저질러 애를 가졌는데 그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런 아이 따위 나라에서 인정해 주겠습니까?” “훗. 아직 당신은 이 바닥에 대해서는 잘 모르십니다.” “……?” “이미 아버님과 이야기를 다 맞추었습니다. 이 아이는 황가 쪽의 순수혈통만 받아들인 아이라는 증거 날조 또한 다 해두었지요. 1천년 전만 해도 왕가나 황가, 그리고 귀족가에서도 잦았던 일이고, 비록 멸망하긴 했지만 루티안 제국의 마지막 황제도 이런 방법으로 태어난 순수혈통 이니까요?” 대륙의 역사 중 아크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대륙의 황제와 국왕들의 성생활 부분. 그쪽은 아주 재밌고, 열심히 읽었을 뿐만 아니라 기억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아크는 그게 무엇인지 즉각 알아차렸다. 황가의 순수혈통을 유지한다면서 몇 천년 전과 루티안 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하면 공주와 왕자 사이, 혹은 왕과 공주 사이에서 일어났던 근친혼이었다. “설마……근친혼?” “어려울 건 없지요. 7서클의 마법이라면 황가의 사람들과 닮아 보이게 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한 8서클의 마법사가 외양을 바꾼 것을 범인들이 알아내기란 여간 힘든 것도 아닐 테고요.” “……아하하 뭐. 그렇게 하시든가…….” 거기까지 생각해 두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확실히 쥬레이나란이 나서서 아이의 모습을 바꾸어 준다면야 굳이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근친혼까지 내세울 정도라면 의지가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무서울 정도의 권모술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좋습니다. 어차피 이겨야 할 전쟁. 제 손으로 끝을 내서 황녀님께 힘을 불어넣어 드리죠. 아이에게 물려 줄 제국을 유지시키는 것. 또 하나의 임무가 생겼군요.” 얼떨떨했다. 나름대로 철저히 피임을 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겨버렸다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고 생긴 만큼 저질러 놓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했다. 특히 결혼할 여자도 아니고 사랑 따위로 얽매이지도 않은 공주였기에 더더욱. 그래도 궁금한 게 한 가지 있긴 했다. “그런데 어째서 저 같은 놈의 씨앗을 그런 저항과 온갖 것들을 감수하고서 그렇게 하려는 겁니까? 사실 따지고 보자면 저는 공주님을 강제로 범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딴에는 저주스러운 아이일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황가의 핏줄이 끊길…….” “제 피를 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공주님의 핏줄을 이었으니 황가의 핏줄이 끊긴 것은 아니겠죠. 여왕이 낳은 아들이 대를 잇는 거야 조금 저항은 있을지 몰라도 어색한 사례는 아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어지간한 게 아닙니다. 뭐……사실 군대나가 전쟁터 가서 자유를 속박 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낙태 시술이야 없다만 쥬레이나란에게 부탁하면 쉽게 제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 황가의 남자들은 아바마마 같은 경우에는 몸져누워 있고, 제겐 고모님들은 있을지 몰라도 숙부나, 백부는 없습니다. 제 남자형제라고는 제펠, 리헨, 아툰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억류되어 있고, 포로를 되찾으려면 팬크라프트의 어처구니없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그들은 아마 죽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경우 황가의 핏줄을 이을 이는 현재 제 뱃속에 들어 있는 당신의 씨앗 뿐. 그 외 선황제이신 증조부 쪽으로 올라가면야 몇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미 황위계승권에서는 멀어졌습니다. 그러니 선택한 것입니다. 지략의 기사와 제국의 황제라는 방패라면 반대세력 따위도 충분히 잠재울 수 있을 테고요. 그러니 기왕에 이 아이를 낳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음약을 먹인 채 반 강제적으로 하신 지략의 기사의 테크닉이 마음에 들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니 그런 생각이라면 집어 치우도록 하세요.” “아하하하…….” 은근히 나올 답변에 ‘당신을 잊지 못해.’ 나 ‘절 여자로 만들어 주신 지략의 기사님의 아이니까요’ 등을 기대하고 있던 아크의 망상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는 황녀였다. 그 덕에 아크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정한 노인장. 벽에 똥칠 치매노인 되는 건 순식간이다. 벽에 똥칠까지 가진 않았지만 오늘 내일 골골한 그레드릭 대공과 황제. 아무리 임시정부처로 써먹기에 대공 관저 겸 저택이 좁다지만 일국의 황제와 대공이 2인용 병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우스웠다. 나이는 분명 그레드릭 대공이 한 350살은 더 많았다. 그렇지만 황제는 대공보다 열 살은 더 늙어 보였다. 둘 다 의식은 있었으나 창백한 안색은 병자라는 사실을 너무 직접적으로 어필하고 있었다. “왔나? 지략의 기사.” 우스웠다. 황제야 원래부터 골골했다지만 무력을 뽐내며 정정 노인의 표본을 보여주던 그레드릭 대공이 몸져누운 채 힘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모습이. “상처는 대공이 더 심하다 들었는데 어째 폐하께서 더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물어보았지만 답은 뻔했다. 대공이야 평생 수련을 거친 무인이고, 황제는 이전부터 갈 듯 말 듯 골골하던 노인네이다. 아니 고작 예순의 나이에 노인네 어쩌고 하기엔 민폐가 있을지 몰라도 황태자와 부인이 죽고 나서 너무 팍삭 늙어 버렸다. 어쩌다 생긴 상처로 누운 대공과는 다르게 황제는 팬크라프트 제국군의 수도 급습으로 평생 가꾸어 온 수도가 불타는 것을 보고 어지간한 정신적 피해를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수도가 불탔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레드릭 대공도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몸이 어쩌고 한다 해도 인간의 정신에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다면 병은 쉬이 치유된다. 정신적 면은 그 어떤 것보다 중시해야 할 치유의 한 방법일진대 깊은 상처를 입고 편히 요양해야 할 판국에 수도가 불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복장이 터지질 않고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지략의 기사의 캘더린 여왕 납치와 크리샤 백작의 선전, 칸딘스키 공작의 해협 대첩까지 좋은 소식만 들었는지 노인네들의 병세는 그렇게까지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뭐 그렇게 믿던 크리샤 백작이 지키던 헤닌 성이 뚫렸다는 소릴 들으면 이 노인네들이 어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당분간은 숨겨야 했다. “캘더린에 잡혀가 죽을 뻔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하지만 역으로 그 특공부대원들을 이용해서 그년을 잡아왔다면서?” “아하하 고생 좀 했죠.” “수고했네. 장하네 지략의 기사.” 마치 명문대에 합격한 손주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레드릭 대공은 아크를 보고 있었다. 묘하게 부담되는 눈빛이었다. 어린이한테서 나오면 맑고 순수하게 귀여운 눈빛이고 미소녀에게 나오면 무언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지만 이 노인들에게서 나오니 왠지 모르게 궁상맞고 닭살이 돋는다. “뭐 내가 일어나게 된다 해도 그때까지 우리 제국이 망하지 않고 버틴다면 그것은 다 지략의 기사 자네의 공이겠지. 나는 그때가 되면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은거할 예정이라네. 이제 제국은 자네가 이끌어 나가야 해. 알았는가?” 대공과 황제는 차례로 제국을 아크에게 부탁했다. 행실은 항상 못 미더웠지만 그는 이번에 결정적인 공을 세워 돌아왔다. 가장 사랑하던 아내와 든든한 후계자를 죽인 적국의 여왕에게 큰 치욕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황제는 병이 일거에 나은 것 같을 정도로 통쾌함을 느꼈다. 비록 가장 믿고 있는 딸을 범하고 애까지 들어서게 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정말 지략의 기사라는 이를 잡아 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레드릭 대공이 쓰러졌을 때 지략의 기사라는 이가 없었더라면 제국은 순식간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군부의 구심점 그가 바로 아크였다. 아크는 캘더린 여왕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며 말하는 황제를 보며 뭔가를 떠올렸다. “저기 말이죠 황제 폐하?” “뭔가? 아크 경.” “루드비안 황가와 캘더린 왕가의 여왕의 결합 멋지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는 듯한 말투로 되묻는 황제. “그건 무슨?” “아직 돌아가실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폐하.” “죽을 때가 머지않았어.” “그러니 더욱 더 종용해 보는 겁니다.” “……?” “황제 폐하. 지금 정식으로 황후가 없으시죠?” “그러네.” “잘 됐군요. 물건만 멀쩡하시다면 이 기회에 아직 독신인 캘더린 여왕을 아내로 삼아버리십시오.” “뭬?” 그레드릭 대공과 황제의 눈이 야구공만큼이나 커져서 튀어나왔다. “자메린 후작님인가가 그 임무를 맡아서 수행하기로 했는데 말이죠. 아예 이 기회에 황제폐하께서 확 결혼해 버리시고. 전 대륙에 그걸 선포하시면 캘더린 땅을 거저먹을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얼라라도 임신시키면 그만한 게 또 없죠.” “허…….” “왕자님들이 전부 포로라서 귀족회의 때는 꺼내지 않았던 안건인데, 의외로 황제 폐하께서 정정해 보이셔서 하는 말씀입니다. 무리하시면 좋지야 않겠지만. 캘더린의 기세를 확실히 꺾어 놓을 방법입니다.” “영웅처럼 추앙받는 위대한 여왕에게 엄청난 수치를 입혀 국민들의 희망을 잃게 한다. 좋은 방법이네. 역시 지략의 기사 답군. 그렇지만 또다른 명호인 색욕의 기사 다운 발언이기도 하구만 허허.” “색욕……이란 명호가 뭐 듣기에 나쁜 건 아니다만 그래도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 소망이 있군요.” “한 번 생각해 보겠네. 지략의 기사.” “그럼 이만 문병은 끝내고 나가보겠습니다. 병력 편제 밑 부관들 선정하려면 할 일이 장난이 아니라서요.” 아크는 할말만을 끝내고 바깥으로 나섰다. “이봐!” “뭡니까? 대공?” “지고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게.” “……물론입니다.” 자신은 없었지만 싸워보기도 전에 진다는 생각을 지니면 정말로 지게 된다.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이 약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바이에른 요새로 진격중입니다.” “중도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이 8천의 크루세이더 군단을 이끌고 해로를 통해 루드비안의 남부 해안가로 가고 있습니다. 하인델 왕국의 다크로드를 통해 배를 이끄는 지라 뭐라 간섭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스메론 요새에 서부 평원의 귀족 연합 부대가 모여 약 3만의 대병력을 보유했다 합니다.” “캘더린의 군대가 진격을 멈추고 다시 국경지대로 되돌아갔습니다. 지략의 기사가 캘더린 여왕과 소드 마스터 세실 엔테른을 납치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칸딘스키 공작군이 젤리커 공작군을 무찔렀다고 합니다.” “음……확실히 전황이 좋지는 못하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연이은 보고에 미간을 짓눌렀다. 우군 캘더린이 군사를 철수하고 중도에서 뒤를 공격해왔다. 서부 평야를 채 얻기도 전에 전쟁의 승기가 자꾸 루드비안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병력과 기사 수에서 상대가 안 되는 루드비안이다. 귀족병력을 끌어모아 간신히 군사 수를 맞추고는 있으나 팬크라프트의 훈련이 잘 된 70만 군대와 120만의 예비군대. 그리고 황실 기사단까지 동원한 4000명이 넘는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동원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일단은 화이트 로리엔의 크루세이더 군단의 합류를 방해한다. 그리고 젤리커에게는 본국 귀환령을 내리고 대신 다른 기사를 보내 기동대를 이끌게 하라. 케레스 카르넨은 농성으로 칸딘스키 공작에게 맞서라 전하고 유사시 서부 평원으로 진격할 수 있게 뮌 성에서 대기라하 일러라.” “예!” “세비어 프레슬더에게는 화이트 로리엔의 크루세이더 군단의 섬멸을 명하고 스턴컬트에게는 지략의 기사의 진격을 막으라 일러라. 마지막으로 제르난드에게 병력 5만을 주고 카스피 왕국군과 함께 스메론 요새의 공략을 명하라. 별 볼일 없는 어중이떠중이 군대이지만 지략의 기사의 군대에 합류한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지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알겠습니다.” 현재 팬크라프트의 루드비안 침공군은 약 40만. 그 중 각각 10만을 소드 마스터 세비어 프레슬더와 스턴컬트 어스틴에게 내려 루드비안 서부 평원의 병합을 명하고 있었다. 카스피 왕국의 주둔지에 있는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은 보급 및 기타 점령지 관리나 기타 등등의 사유로 20만의 군대를 이끌고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전쟁 와중에 세비어와 스턴컬트에게 내린 군사가 줄어들면 그들의 병력을 채워 주고 방금 전 다른 지휘관에게 군대를 나눠 주어 이제 10만의 군대만이 남았지만 예비군들이 속속 충원되고 있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지난 번 헤닌 성을 함락시킬 때 너무 무리를 했었다. 원래 그는 주로 앞에 나가서 싸우기 보다는 뒤에서 전쟁을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쟁이 고착 상태에 빠지자 적들에게 정보가 새지 않게 그 먼거리를 이틀 만에 주파하여 헤닌 성을 단번에 함락시켰다. 화이트 로리엔과 지략의 기사 등 본격적으로 루드비안 군의 소드 마스터들이 나서기는 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이 있고, 젤리커 공작과 케레스 카르넨까지 투입한다면 실력자의 숫자나, 병력의 숫자에서 전부 우위에 서는 것이다. 그러니 그레드릭 대공이 회복하고 다시 전장에 나선다면 모를까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다시 병력을 이끌거나 단독행동으로 전쟁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드물어 보였다. “지략의 기사 놈만은 필히 내 손으로 없애버리고 싶군.” 지략의 기사는 벌써 자신의 동기이자, 제국 3인방이었던 프랑코 젤리커와 루이스 델른버를 죽였다. 루이스는 아크에게 직접적으로 죽거나 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크가 죽인 셈이 아니던가? “놈을 오래 놔둘 수는 없지. 필히 그랜드 마스터 오를 만한 자이니까.” 렌도로스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크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적으로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이들을 보면 단순히 무에 치중하지 않고 문을 병행한 이가 아주 많았다. 이유는 실력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막힘의 경지를 마나와 무기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와 독창적인 생각으로 풀어내어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팬크라프트야 무신의 내공심법을 지닌 만큼 지략이 뛰어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검법과 마나에 대한 공부를 해 둔 이들이 많았다. 또 그런 이들이 어느 정도 내정 및 기타 부분에서도 활약할 줄 알았다. 그러니 지략의 기사의 경우 경계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훗. 그것도 참 질긴 인연이군.” 문득 30년 전의 일이 떠오르는 렌도로스. 그는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는 수첩을 펼쳤다. “이곳이 바이에른 요새?” “중요한 곳은 아니지만 서부 평원 발렌시아 지구에서도 동부 쪽에 몰려 있는 영지와 요새 성을 포괄해서 지키기 수월한 곳입니다. 군시 비축 물량도 제법 됩니다.” 상처에서 치유를 받자마자, 크리샤 백작은 지략의 기사의 요청으로 그가 이끄는 군에서 종군하게 되었다. 비록 별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치료 후 바로 투입된 전장이지만 백작은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 기사인 지략의 기사가 나선 전쟁에 참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 중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다 지략의 기사는 자신에게 참모직까지 내려 주었다. 아크가 그다지 밝지 못한 제국 지리 정보라든지, 온갖 자신이 가진 정보로서 지략의 기사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올랐다. 그는 앞으로 이 군대를 지휘하게 될 자가 자신이 될 거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아크가 데려 온 가신들은 비밀병기이자 특수병기랍시고 데려온 쥬레이나란과 에르디, 그리고 군부의 책략가 크리샤 백작과 제법 뛰어난 검수 카시아스 백작, 가다듬어지지 않은 마스터 유카나 및 기타 귀족 수뇌부 십여명과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 180명과 정예병 5만여 명으로 앞으로 맞서 싸워야 할 10만 씩 나뉜 팬크라프트의 군대에 비하면 기사 수나 병력이 반 수 가량 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 임무는 서부 평원의 반절이나마 지켜 내고 정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최소 서부 평원 발렌시아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팬크라프트 군을 그 이상 진격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서부 평원을 완벽히 내어 준다 할 경우 캘더린의 그 중간에 끼인 캘더린의 영토가 당연히 아니 밟힐 수가 없다. 여왕을 잃고 지금 구심점이 사라져 혼란스럽다지만 캘더린의 저력은 대단할 터였다. 언젠가 캘더린과 팬크라프트가 서로 싸우게 될 때. 그 뒤를 쳐서 잃은 서부 평원을 수복하겠다는 게 황녀의 입장이었다.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으나 전쟁에서는 점점 밀리니 당연한 것일지도. 만약 지략의 기사가 그 디그리스 데일런스 성 전투와 같은 대박을 터뜨려 준다면야 서부 평원의 수복도 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크에게 거는 제국의 기대는 더욱 더 컸다. 관청을 차지하고 들어가 나 앉은 아크. 지휘관의 위엄이 없게 말 대신 마차를 타고 왔을 때부터 아크는 한 책을 열심히 독파중이었다. “야 또 성인소설 읽냐?” 전쟁 총 사령관한테 찍찍 반말을 갈기는 청년. 그 자리에 모인 기타 군부의 인물들은 저 청년이 못마땅한 듯 헛기침을 하거나 은근히 검을 뽑으려는 기세도 보였다. 그렇지만 그레드릭 대공과는 다르게 권위적이지 않은 사령관이다 보니 저럴 수도 있지, 하고 납득하는 이들도 있었다. “질리게 봐 온 걸 뭐 하러 또 읽어? 독서중이니 일단 가만히 있어. 아 그리고 제군들은 여기까지 행군하느라 지쳤으니 오늘은 편히들 쉬도록.” “예.” 기사들이 모두 나가 각자 진을 치고 저녁을 짓는 때였다. 크리샤 백작은 평소 존경해오던 지략의 기사가 읽는 책이 뭔지 궁금했다. ‘엘브리언 병법?’ 루드비안 제국의 구 황제가문인 엘브리언 가의 초대 당주였던 동제국의 소드 마스터 레스 엘브리언 공작. 그가 쓴 전쟁 시 써 먹을 수 있는 전법과 전략, 군사와 병기를 다루는 방법등이 상세히 적힌 엘브리언 병법서를 읽고 있는 아크. 가장 기본적인 전략서적으로 단순 기사가 아닌, 전쟁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읽는 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음 기본기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엿보이는 군. 하긴 복잡한 전략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충실히 하는 것이 전쟁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역시 비상한 사람이다.’ 착각을 하다 못해 아주 삽으로 땅을 파는 크리샤 백작이었다. 기본기에 충실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저것은 기본이 없어서 기초부터 시작 하는 것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뭔가? 책을 읽는 도중에는 방해해 주지 않았으면 좋겠네.” “옛!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백작이 나가자, 아크는 아크라우스가 보내 준 각종 서적류를 꺼냈다. 삼국지를 통해 보는 전략 전술, 손자병법을 응용한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손자병법 쉽게 보기, 등 기본적인 병법서를 한글로 잘 풀어 쓴 책들이었다. 거기에 마법을 쓰는 세계에 잘 맞는 엘브리언의 병법서와 최근에 국경군을 이끌다가 전사한 모스엔 후작이 남긴 루드비안의 최신 화포에 맞는 병법까지 온갖 병법에 대한 책들은 다 쌓아 놓고 줄줄이 외는 아크였다. 대충 크리샤 백작에게 떠넘긴다곤 해도 어느 정도 티는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일단 기본적인 지식이라도 쌓기 위해 전장에서 틈틈이 책을 읽기로 한 아크였다. “흐아아암 되게 재미없네.” 군사학에 대한 것들만 다룬 것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것도 한국에 나온 손자병법 처세술, 삼국지를 통해 보는 전략 전술, 2차 세계 대전사 같은 쉽게 풀어쓰고 또한 무언가 사례를 비유해 실생활에서도 쓰게 하는 그런 책이야 쉽게 읽히지만. 정작 루드비안 제국에서 써먹을 만한 엘브리언 병법이나 모스엔 후작의 저서는 읽기가 여간 난해한 게 아니었다. 아크는 새삼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문자인지를 깨달았다. 이쪽 세계의 문자로는 표현력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 거기에 배우기 어렵고 문맹률도 높다. 플러스로 하자면 이런 책 내용 이해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문맹률을 극복하자고 한글 보급을 한 번 건의해 봐야겠군. 쉽고 쓰기 좋으면 장땡 아니겠어? 별로 어려울 일도 아닐 테지. 이제 뭐 황제의 아버지가 될 몸인데 뭘. 엣헴.’ 실감은 안 나지만 아크는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젊은 모습을 하고 있어 늙은이의 사고가 들거나 하진 않아도 이제 나이가 어언 50줄이 넘지 않았던가? 어차피 죽지 않는 몸이니 평생 젊게 살고는 싶어도 어느 정도 생각의 깊이라는 것이 필요한 법이다. “오랜만에 유카나나 찾아가 봐야 겠다.” 아크는 책을 그만 덮고, 바깥으로 나갔다. 밤하늘의 정경은 멋졌다. 삼국지를 보면 제갈량, 사마의 같은 이들은 천문을 보고 적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알아맞히기도 하는데 아크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남쪽에 있던 별들이 흐릿하고 서쪽에 있는 별들은 뚜렷이 빛이 나는 것을 보고서 대략 남방의 기운은 좋지가 못하고 서방의 기운이 흥하다는 것쯤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스메론 요새하고, 로리엔이 데리고 온다는 부대가 있다고 했었지?” 그리고 팬크라프트 군은 루드비안 제국에서는 서부 평원이라고 부르지만 그 서부 평원에서도 서쪽에 주둔하고 있었다. “어째……불길하네?” 전쟁사를 보면 이쪽 세계에서는 별을 보고 전쟁의 향방이나, 장수의 죽음 따위를 계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크는 달랐다. 객성, 주성 북두, 남두의 이야기 정도는 익히 들어서 자세히는 몰라도 알고는 있는 것이다. 만약 저 천문이 상징하는 대로라면……. ‘혹시라도 팬크라프트 군이 로리엔이나 스메론 요새를 공격하여 박살낸다면 큰일이다!’ 신무기로 무장하고 지략으로 그 이름 높은 소드 마스터 아크가 이끄는 부대에 박치기 하는 것보다는, 그 부대에 힘을 줄 수 있고 보탬이 되는 소규모 부대들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이 뭐 별일이야 있겠어? 그치만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고 무슨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까.’ 볼 줄도 모르는 별을 보고 미래를 점칠 수는 없는 법. 아크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발걸음을 유카나의 처소로 옮겼다. “출진준비를 하시오.” “예에?” 아침부터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아크에게 몇몇 기사들이 전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뭣들 그리들 있으시오. 병사들에게 일러 이곳을 비울 채비를 하라고 이르시오.” “허나……이곳에 온 목적은 수성입니다. 강행군으로 병사들도 지친 상태이고 말입니다.” “카시아스 백작.” “예!” “레이필드 공작에게 일러 요새를 지킬 병력을 몇 만 정도만 보내달라고 하시오. 우리는 즉각 남부로 향하여 중도의 지원군과, 스메론 요새의 병력을 합산하겠소. 이대로 가다가는 그들이 각개격파 당할 우려가 매우 크오.” 결국 불안함이 아크의 발걸음을 남쪽으로 향하게 했다. 사실 이 요새를 빼앗긴다고 해도 스메론 요새에 입성한다면 서부 평원의 남부 지대를 탈환할 길이 생긴다. 받아 온 임무는 수성을 통한 휴전협상을 맺는 것이라지만 만약 어제 별을 본 대로 남부군과 중도 지원군이 박살난다면 버틸 가능성이 있으리라고 보긴 힘들다. 단지 기우에 전쟁의 지휘를 맡긴 다는 것은 지휘관으로서 실격점을 받을 만했지만 깃발이 부러지거나, 나가기 전 낙마를 한다거나 하는 일 이후에는 꼭 불길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어쩐지 모르지만 여기에 이대로 처박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우려가 몇 만의 군대를 움직이게 된 것이다. 그래도 겨우 하루 쉬고 다시 행군하는 것이 병사들에게 좋게 먹힐 리가 없다. 반대의견이 쏟아져 나온다. 그 덕에 아크는 그 온갖 문제점들을 호미로 막으랴 가래로 막으랴 개고생을 한 뒤에야 요새에서 나와 진군을 시작했다. 그래도 차마 요새를 놔두기엔 아쉬운 마음에 시한폭탄을 하나 설치해 놓아, 이 요새를 차지할 팬크라프트의 군대에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해 두었다. 병사들의 불만과 지휘관들의 탄원이 쏟아지자, 아크는 쥬레이나란을 한강 굴다리로 몰래 불러내 말했다. “알았지?” “으음……너무 많이 부려먹는 것 같아? 방금 전에도 힘들었다고!” 분명 쥬레이나란은 이렇게 출진하기 전 온갖 마법을 써서 정신력이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렇지만 드래곤의 정신력이 그리 약할 리도 없고, 약점을 잡아놓은 것도 있었던 아크였던지라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쥬레이나란을 꾸짖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싸가지 없는 드래곤 새끼 같으니! 좀 도와주면 어디가 덧나냐!” “……칫. 알았다.” 평소 은혜를 입어 둔 것이 많았던 쥬레이나란이 대열 중 지쳐 있는 병사들을 상대로 피로 억제 마법을 걸었다. 그다지 어려울 것은 없는 마법이지만. 무려 총 5만이나 되는 대병력을 상대로 쓰자면 여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피로 억제 마법에 걸린 병사들은 일정 시간 동안 피로를 잊고 팔팔하게 활동할 수 있지만 나중에 일정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음 역시 쥬레이나란과 에르디라는 절대 인재가 두 명 있으니 그다지 어렵진 않군.’ 만약 서부 평원을 되찾기 위해 싸운다면 맞서야 할 팬크라프트의 병력은 무려 40만. 중도 지원군. 스메론 요새 방어군. 본토 수비군. 칸딘스키 공작군을 전부 합친다 해도 두 배나 되는 엄청난 병력에 소드 마스터만 해도 네 명에 그랜드가 한 명이다. 거기에 아크가 지휘할 수 있는 부대라고는 해 봐야 많이 쳐줘도 10만을 넘지 못하는 처절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전투 이외에 온갖 정보전이나 게릴라전에 써먹을 수 있는 쥬레이나란이 있다보니 크게 꿀리지만도 않을 것 같았다. 아크가 멍청한 지휘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피로가 사라지자, 병사들의 불만은 날아갔지만 그들을 챙기는 기사들과 지휘 귀족들의 우려는 계속되었다. 천해의 요새이자, 적군이 서부 평원을 완전히 집어먹을 수 있게 할 수 있는 거점을 놔두고 뜻밖의 남정이라니. 스메론 요새의 병력은 버텨 주기만 하면 될 병력이었고 중도 성기사단은 어차피 타국의 군대 아니던가? 지휘쪽이 불안해하는 가운데 아크의 열혈 신봉자 크리샤 백작만은 아크의 의견에 동의했다. 다른 귀족들이 어차피 뺐긴 서부 평원을 나중에 도모하고 자신들의 안위를 챙기려는 안일한 생각이라면, 지략의 기사는 진정으로 서부 평원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빼앗긴 땅들을 수복하려 하고 있다고. “남정을 나가시려는 목적이라 함은. 병력을 최대한 규합하고 보존해서 서부 평원을 도모하시려는 목적이 아니신지?” “아……뭐 그럴거야.” 차마 서쪽별은 기세가 등등하고 남쪽별은 풀이 죽어 있어서 간다고 말은 못하겠다. 별을 보고 적군의 동태를 예상하는 것 따위가 있을 턱이 없는 이 세계 사람들한테 별 보고 남쪽으로 가 본다. 라고 얘기하는 것은 대번에 미친놈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크는 크리샤 백작이 알아서 소설을 써 주니 매우 반가웠다. 애써 좋은 의도로 봐 주는 놈도 있었군. 그렇게 어쩌고 보면 우둔하고 멍청하다 싶은 지휘관에 의해 훗날 지략의 기사 불패부대라 불리는 전설의 군대가 탄생하니 인생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볼 수 있겠다. 지략의 기사 전설 발췌 ……(중략)……실로 즉흥적이고 어처구니없이 이루어진 남부 진격 작전. 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바이에른 요새를 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스메론 요새의 병력과 중도 연합군의 1만여 병력과 치유신관들을 받아들이면서 9만의 대병력과 소드 마스터 세 명이 주둔한 부대라는 최강의 군대가 탄생하게 되었고, 거기에 스턴컬트 공작의 병력을 바이에른 요새에 묶어놓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섣불리 돌격하지 말고 철저히 방어하라!!!” 십자 마크의 은빛 타워 실드를 지닌 중장갑 보병들. 중도의 가장 큰 자랑이자 팬크라프트가 중도 침략을 꺼리게 만들었던 요소 중 하나인 무적 부대 크루세이더 군단. 마나와 외공 모두에 신경을 썼으며, 신의 가호를 받은 거대한 타워 실드 방어막은 그 어떤 기마대도, 소드 마스터도 뚫을 수 없는 철벽방어를 자랑한다. 최후방에서는 중도 교황청의 무력단체는 아니지만 치유와 신의 가호를 내려 안 그래도 최정예 부대인 크루세이더 군단의 무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신관들이 꾸준히 마법을 써서 십자군단들을 강화시켜 주고 있었다. 총 병력은 1만에 불과하지만 10만에 필적하는 최강의 군대. 그러나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을 다량으로 보유한 팬크라프트의 파상공세는 여간 무서운 게 아니었다. 기마대의 무서운 돌격도, 소드 마스터의 난입도 잘 막아내고 있는 크루세이더 군단. 그러나 이렇게 1면 방어에 치중했을 때 소드 마스터 등을 막기는 편할지 몰라도 측면 방어에 취약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기마대는 측면으로 돌파한다!” 몇 십명의 정식 소드 익스퍼트 기사가 이끄는 기병대가 중도군의 정면을 빙 돌아 측면을 노렸다. “즉시 진형을 방원진으로 해체한다!” 전장에 선 화이트 로리엔의 목소리는 이전에 들을 수 있던 부드러운 미성에서 그야 말로 전쟁을 지휘하기에 알맞은 굵고 탁하면서도 높고 큰 목소리로 변모해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크루세이더 부대들. 후방의 신관들은 즉시 중갑보병들이 빠져나간 중앙으로 파고들었으며 방패병 크루세이더들은 정확히 2천씩 나뉘어 사방을 막았다. “얇아진 틈을 파고들어라!!!” 그러자 이제 팬크라프트의 보병들이 땅을 밟는 보병기사들을 필두로 돌격해 들어왔다. 8천의 방패 방어막보다 2천으로 줄어든 방패 방어막을 막기가 훨씬 수월한 것은 당연한 이치. “신의 이름으로 이단자들을 처단하자! 이탈은 용서치 않겠다!” 신의 이름으로 단합된 극도의 신앙심으로 뭉친 훈련도, 사기 최강의 부대 크루세이더가 쉽게 이탈할 이들은 아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다지 좋지가 못했다. 팬크라프트의 부대가 이 최강의 부대를 뚫으려면 적어도 병력 3~4만의 피해는 감수해야 할 테지만 결국의 승자는 팬크라프트로 돌아갈 터였다. 또한 중도 최강의 부대를 잃은 중도의 군사력은 급감하지는 않을 지라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은 자명했다. 총 2만의 크루세이더 군단과 성기사단을 모두 이끌고 왔다면 10만의 병사도 두려울 것이 없었을 테지만 로리엔이 허락받은 병력은 고작 4할인 8천. 물론 그 뿐만으로도 충분히 맞서 싸울 수도 있지만 팬크라프트의 군대도 결코 오합지졸들만이 모인 건 아니다. 크루세이더가 성전을 준비해 왔다면, 그들은 대륙 통일을 30년 전부터 준비해 온 용맹한 부대다. “기사들! 돌진!” 로리엔은 방원진형의 앞면에 생긴 틈으로 중도의 소드 익스퍼트 기사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적장 세비어 프레슬더는 소드 마스터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인물. 비록 소드 익스퍼트의 수에서는 중도가 딸렸지만 그를 쓰러뜨린다면 적어도 지지는 않았다. 백발을 바람에 날리며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와 팬크라프트의 선봉 기사 진영을 휘저어 놓는 로리엔. 곧이어 그를 뒤따라 온 기사들도 팬크라프트의 기사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또한 그런 기사들을 적군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이게 해 다굴을 맞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에 크루세이더 부대는 대열을 천천히 유지하며 진격했다. 신의 은혜를 받아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대한 방패의 대열의 진군은 경이로울 정도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냈다. 로리엔은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을 하나씩 베어가며 신적인 무용을 자랑했다. 몸에서 금빛의 마나가 솟아나오며 타워 실드의 은빛과 함께 어우러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광채가 중도군 진영에서 퍼져나왔다. 그렇게 한바탕 교전이 이루어졌다. 앞의 기사들은 신성마법의 보조와 가호를 받으며 소드 마스터 로리엔의 돌격으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크루세이더 군단은 방어진을 최대한 갖추며 지키려다 보니 많은 살상력을 보이지 못했다. “쳇 별 수 없나?” 로리엔을 막지 못하면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혹시라도 모를 일기토 패배를 우려해 후방에서 사태를 관망하며 지휘를 맡고 있던 세비어 프레슬더가 기사들의 앞으로 튀어나가 로리엔과 검을 섞었다. 둘 다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지는 각각 3년과 6년차로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이들. 다만 로리엔이 18세라는 세계 최연소(공식적인 기록. 이미 깬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알고 있을거라 예상. 더 이상 언급하진 않겠다)나이로 올라, 6년간 마스터의 위치에서 수련을 했고, 또한 깊은 신앙으로 신검의 위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어, 세비어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기토로 양쪽 군세가 대치하는 것이 아닌 혼전양상에서, 숫자적으로 중도군을 압도하는 팬크라프트 쪽의 기사나 병사들이 하나 둘 씩 도움을 주어 둘은 정말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대단하군. 중도의 기사.” “말 시키지 마랏!” 두 마스터의 치열한 접전 뒤 크루세이더 군단의 방원진. 쾅! 크루세이더들은 타워 실드를 이용한 실드 차징으로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을 살상하는 무식한 전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무식해 보이는 공격법이 단번에 수십의 병사를 죽이는 무서운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철벽의 방어를 돌파하려던 팬크라프트 군들의 시체가 쌓이고 쌓일 무렵 즈음 되자, 타워 실드 방어막을 시체를 밟고 돌파하는 이가 하나 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방원진 안에는 전투능력이 미미한 신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여성들이. 결국 크루세이더 군단의 방패진이 난입자들을 막기 위해 조금씩 뒤로 빠져나갔고, 그 사이 방어막에는 커다란 결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치잇!” 별 수 없이 로리엔은 기사들을 이끌고 크루세이더 군단이 있는 곳으로 물러섰다.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를 잡는다 하더라도 이미 허점이 드러난 이상. 별 도리가 없었다. “몰아붙여라!” 병력의 피해가 심하긴 했지만 둑이 터지듯, 한 번 샌 물은 곳곳에서 새면서 중도군을 혼란케 만들었다. 밀집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중장갑 밀집보병 부대인 크루세이더 군단. 그러나 기어이 한 곳이 기마대에 뚫리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쉽게 당황하지 않고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지만 진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측면 한 곳이 돌파당하자, 진은 어설픈 학익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적을 상대로 학익진이 효율성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크루세이더 군단들은 다시 겹겹이 방패로 벽을 쌓았지만 밀리고 밀려, 끝내는 하나 둘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끝인가…….’ 포기하기엔 아직 일렀으나 적들의 수는 엄청났다. 여기서 대충 막아서 진을 다시 세운다 하더라도 수에서 밀리니 이런 공격을 수차례나 더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일반 병사쯤은 혼자서도 여럿을 상대할 수 있는 크루세이더라 해도 다굴에는 장사가 없다. 타워실드를 부메랑처럼 날린 뒤 등에 있는 각자의 병기로 맞서 싸웠지만 그들 특유의 장점인 철벽방어가 실종된 이상 절대 다수의 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렇게 한 기 한 기의 크루세이더가 쓰러져 가며 중도군의 패색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몇 만이 방패에 부딪혀 죽었다지만 여전히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팬크라프트 군의 함성 소리 덕분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팬크라프트 군 후미에서부터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일제 사격!!!” 거대한 총성이 울리고 후방에 커다란 동요가 생겼다. “무슨?”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 세비어 프레슬더의 진영 난입을 막기 위해 분투하던 로리엔이 총성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리자, 세비어 역시 잠시 긴장을 늦추고 후방을 보았다. 누구 한 명이 한눈을 팔면 즉시 상대의 검에 쓰러지는 쟁쟁한 실력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암묵적인 맹약이라도 한 듯. 둘 다 한눈을 팔면서도 상대방을 공격하려 들지 않았다. “루드비안 제국군입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어떤 병사의 보고대로 루드비안의 군복과 깃발을 든 한 무리의 병력이었다. 얼핏 보아 수만이 넘는 병력인 듯 했다. 그들은 근접하지 않고 총병대를 앞에 세우며 팬크라프트 군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깃발 중에는 루드비안의 대원수를 상징하는 문장에 신흥귀족 페인 가의 가주이자 전 대륙에 명성이 드높은 지략의 기사 아크의 귀족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지략의 기사의 문장은 너무 기억하기 쉬웠다. 워낙 독특했기 때문이다. 이계인이라는 것을 티내듯, 이 세계의 문장이 아닌 괴상한 언어를 쓴 채 그 위의 그림에는 주먹에 가운데 손가락이 우쑥 튀어나온 이 세계인들이 아닌 아크가 살다 온 세계에서 만국 공통 욕설로 통하는 일명 Fuck 삐리리 였다. 거기에 한켠에는 실버 드래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실버 드래곤과 그 문장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결과적으로 어디어디 사시는 실버 일족의 고룡 아크XX스 엿 먹으라는 얘기다) “제길! 언제 루드비안의 지원군이!!!” 이번엔 세비어가 군을 돌렸다. 뒤통수를 맞은데다, 쌍방향 공격까지 당할 판이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여기서 전멸할 수도 있었다. “전원 후퇴닷! 모두 좌측으로 빠져라!!!” 앞뒤가 막힌 상황. 앞과 뒤 모두 돌파하기는 힘들 때 남은 선택은 당연히 측면돌파 뿐. “음……퇴로를 놔두고 적을 쫓아라.” 후방에서 책을 보며 목소리만 크게 내서 지휘하던 아크가 말했다. 병법서를 읽고 있다 보니, 책을 읽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 지휘하는 건지는 몰라도 전쟁터 한 가운데에서 책을 읽고 있으니 약간 어이가 없다. 그래도 크리샤 백작과 카시아스 백작은 그런 아크의 명령에 따라 썰물처럼 빠지는 팬크라프트 군을 쫓았다. “전쟁에서 적에게 가장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퇴각할 때다.” 전장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책만 읽으면서 말하니 도저히 아래의 지휘관들에게 조언을 하는 건지 그냥 책을 읽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거기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저렇게 새삼 언급하여 말하니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기본을 잊지 말라는 조언이시로군! 역시 지략의 기사답다!’ 물론 모 빠돌이 지휘관님은 그것 역시 자기 멋대로 아름답게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루드비안의 군대가 도착해 후방을 공격해 주자, 혼전 양상에 빠져 있던 중도군과 팬크라프트 군의 접전지는 무너진 크루세이더 군의 진영에 난입했다가 빠져나가려는 병사들과 그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학살극으로 변모했다. “저쪽에 성자이신 지략의 기사께서 나서셨다! 모두들 신의 뜻을 거역하는 암흑의 군대를 무찌르자!” 일명 ‘고무’ 스킬을 통해 크루세이더 군들의 사기가 올랐다. 측면을 통해 군대를 돌리는 팬크라프트 군. 비록 크루세이더들은 중장비를 갖추느라 기동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지만 루드비안의 기병대나, 총병대는 충분히 퇴각중인 팬크라프트의 군세를 무찌를 수 있었다. “퇴각하는 적을 쫓을 때는 매복을 조심하라.”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아크. 그렇지만 이번 명령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크리샤 백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예? 하지만 사령관 각하. 주변에는 매복을 할 만한 지형도 없고, 지금 저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결코 주위에 매복을 해 두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허술한 군대로 유인한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어쩔 수 없이 도주하는 것에는 매복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 뜻밖의 태클에 무식이 탄로난 것 같아 식은땀을 흘리는 아크. 그러나 그의 뛰어난 임기응변술이 어디로 사라진 건 아니다. “흠흠. 책을 소리 내어서 한 번 읽어 본 것뿐이네. 무엇을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전장에 병법서를 들고 나온 것은 이런 태클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여차하면 책 보고 그냥 읽은 건데 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냐고 역태클을 걸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아크는 크리샤 백작 및 지휘관들에게 고개를 돌려 쥬레이나란에게 고갯짓을 했다. “알았어.” 말 위에 타고 있던 쥬레이나란의 몸체가 공중으로 부양했다. 그런 그의 주위에는 전격의 구체와 화염의 구체 여러 개가 그의 몸을 휩싸고 있었다. 쥬레이나란의 기합과 함께 구체는 저 멀리 도주중인 팬크라프트 군 진영에 차례로 한 방씩 떨어졌다. 맞서 싸웠다면 이런 처참한 결과가 아닌 치열한 야전 전투가 벌어졌을 판이지만 퇴각하는 적을 상대로 하자 일방적인 대학살이 벌어졌다. 그렇게 지략의 기사의 대륙전쟁 첫 승리가 대승으로 장식되었다.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이 이끄는 10만의 군대는 아무런 저항 없이 비어있는 바이에른 요새를 점령했다. 흔적을 보아하니 루드비안의 군세가 남부 측으로 향한 것 같았다. “음……남부를 구원하러 간 모양이군.” 루드비안 측이 수성으로 나올 줄 알고 스메론 요새의 병력과, 중도의 지원군을 쓸어 버린 뒤 병력을 총 동원하여 지략의 기사가 지키는 이 바이에른 요새에 총공격을 가할 예상이었는데 의외로 요새를 텅텅 비우고 지원병력들을 구하러 갔을 줄은 몰랐다. “요새 안으로 진을 옮겨라!” 공작의 명령에 따라 10만의 병사는 일사분란하게 요새로 진입했다. 그렇게 병사들이 요새 안으로 들어왔을 무렵이었다. 우르릉. 쾅쾅!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거대한 괴성 이후. 요새의 벽들이 팍삭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새가 붕괴된다!!!” 요새의 벽들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들이 떨어지며 박살나 진을 치고 있었던 병사들을 덮쳤다. 돌덩이에 맞아 죽어가는 병사들. 붕괴지역에서 도망치다 보니 서로 밟고 밟히는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요새가 지붕이 있고 그런 곳이 아니고, 견고한 성벽만이 존재하는 건물이다 보니 성벽 부근의 병사들이 주로 죽었다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이 참극에 스턴컬트 공작은 할 말을 잊었다. 중간에서 합류한 루드비안과 중도의 군대가 합류한 뒤 그들은 곧바로 스메론 요새를 공격하던 팬크라프트 군의 후미를 공격했다. 거의 뚫리기 직전이던 스메론 요새는 루드비안 지원군에 의하여 팬크라프트의 약 5만 가량의 군대를 괴멸시키며 남부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가 끝난 후 요새에서 멀쩡한 이는 3만 중 고작 7000여 명. 그렇지만 중도에서 지원을 온 성직자들과 두 블레싱 소드의 치유로 1만에 달하던 생사가 오락가락하거나, 싸울 수 없는 상태였던 병사들도 다시 회생하여 아주 죽은 이를 제외하고는 고스란히 전력으로 포함되었다. 중도군, 스메론 요새군, 루드비안 정예군까지 합쳐 총 8만의 부대. 루드비안 소속의 군대는 자신들을 이끄는 것이 그 유명한 지략의 기사라는 것에, 중도군들은 지상에 왕림한 성자라는 것에 대해 열광하고 있었다. “이야 인기 좋네.” 마치 대통령 선거에라도 출마한 듯 한 손을 펴 군사들에게 흔들고 있는 아크를 보며 쥬레이나란이 톡 쏘아 붙였다. 비록 최고의 요새를 적에게 그대로 내 줘 버렸지만 쥬레이나란이 자동적으로 폭발하게 조치를 취해 둔 데다, 두 번의 전투에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힘으로서 군사들의 사기는 최고조로 올라 있었다.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전략실로 들어간 아크. 그 뒤로 로리엔, 쥬레이나란, 크리샤 백작, 카시아스 백작 등이 따랐다. 사각형 길쭉한 탁자의 정 중앙에 앉은 아크. 그리고 아크의 시야가 잘 보이는 곳에 지도를 펼치고 현 상황을 보고하는 크리샤 백작. “현재 전황을 자세히 살펴 보면은, 서부 평원 북쪽에 위치하는 카스피 왕국의 국경도시 니테키르에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이끄는 10만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이 군대의 경우 주로 보급과 기타의 것들을 신경쓰는 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관하지만 가끔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개인적으로 전투에 개입하곤 합니다.” 크리샤 백작은 지휘봉을 지도의 아래로 내렸다. “여기가 서부 평원의 극서부. 그러니 캘더린 국경지대인데 이곳은 캘더린 군대가 주둔중입니다. 수는 약 15만. 솔직히 이 서부 평원 국경지대는 우리로서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는 땅이니 제외하고, 국경지대 안 쪽 서부 지역. 이곳에는 각각 팬크라트 기사단의 기사들이 몇 천 씩의 병력을 이끌고 각자 성과 요새에 상주중입니다. 만약 이곳을 공격한다면 즉각 북쪽 국경 지대에 주둔하는 렌도로스의 부대가 구원을 올 것이라 예상됩니다.” 다시 지휘봉은 지도의 오른쪽을 향해 있었다. “일단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부대는 바이에른 요새를 차지한 스턴컬트 공작과, 지난 번 큰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7만 이상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생각되는 세비어 프레슬더의 부대입니다. 세비어 프레슬더의 퇴각 경로는 우리가 바이에른 요새 쪽 동부 지역에 주둔 중일 것으로 예상되며,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의 경우 바이에른 요새가 작살났다면 아마 약간 물러선 데르네 성에 주둔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먼저 이 두 부대를 각개격파 한 뒤 마지막으로 북으로 치고 올라가, 렌도로스 대공의 부대를 쳐부수면 서부 평원은 저절로 다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거의 세 배 차이가 나는 전력. 쥬레이나란이과 에르디의 악취라는 특수무기에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루드비안 군이지만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의 수, 기타 병사들의 숫자에서도 상대가 안 되다 보니 각개격파라 할지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음……특수무기는 특수할 때 쓰라고 있는 법. 여기 있는 무려 8서클 마법을 사용할 줄 아시는 대마법사. 엘렉 백작께서 정보를 구해오고 게릴라전을 수행하거나 성벽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등의 역할을 해 줄 테니 그다지 수를 두려워 할만한 일은 아니야. 거기에 팬크라프트에는 마법사들 뿐이 없지만 여기에는 치유의 전문인들인 중도의 신관들이 즐비하다고. 다친 병사를 즉각 전쟁에 다시 투입할 수 있으니 불리한 것만은 아니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바이에른 요새가 무너졌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부 평원에서 남동부 평야와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내어 준 셈이다. “그렇지만 뭐 일단은 병사들을 쉬게 하는 게 좋겠지. 마법을 걸어 온 것도 그렇고, 나머지 병사들도 접전을 하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 연신 옳으신 말씀입니다. 만 지속하는 크리샤 백작. 아크는 약간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추종자 하나가 생긴 건 좋은데, 자기가 할 헛소리나 기타 것들에 대한 적절한 태클을 걸어 주는 이가 있어야 엉뚱한 명령을 내렸을 때 적절히 시정을 할 수 있는데, 휘하 장수들이 전부 지략의 기사라고 헛명성만 퍼진 자신한테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실로 고민이 아니 될 수 없었다. 그나마 스메론 요새 전투나, 중도군을 구원했던 렉트 항구 전투에서는 아크가 특별히 지휘할 것이 없이 적의 뒤통수를 공격하라! 한 마디로 그냥 마구잡이로 뛰어나가 말 그대로 적들의 뒤통수를 쳐 큰 전과를 올린 것에 불과하지, 지략의 기사라는 명성에 기대하는 지휘력이나 지력이 아직 발휘되지 않으니 다행이었다. 일단 스메론 요새에서 군을 주둔시키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자로 끝난, 군사회의 후 아크는 지휘관 막사에서 병법서 및 전략 서적을 펴 놓은 채 책들을 독파했다. ‘젠장 다시는 안 할 줄 알았던 벼락치기 공부를 여기서 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죽어라고 공부해 본 적은 고3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러나 동서고금, 고금동서에 아크가 있었던 지구와 이쪽 세계를 모두 포함해서 공부는 정말 하기 싫고 재미없다. 특히 공부도 전쟁, 무기 꼭 뭐 이런 것만 다룬 것을 주야장창 보자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으아아아앗! 제기랄!” 아크는 머리를 박박 긁은 뒤 책상으로 대가리를 박았다. 폭삭. “…….” 학생 때 잘하던 짓인 공부하기 싫고 잠올 때 대가리 박기를 시도한 아크는 그때와 지금 자신의 차이를 까먹고 죄 없는 책상을 박살내는 헛짓거리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 덕에 마스터니 뭐니 해도 이겨낼 수 없는 중력의 힘에 의하여 아크도 박살난 책상과 함께 차가운 흙바닥에 얼굴을 맞대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책상이 반쪽나고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들이 쏟아져 소리가 나자, 경비병들이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웬걸. 그곳에는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는 지략의 기사님이 반으로 박살난 책상에 머리를 댄 채, 책들과 함께 쓰러져 있었다. 차마 철면피의 대왕 아크도 쪽팔려서 일어나지 못하는 새, 진지 내에는 사령관님이 쓰러지셨다는 급보로 소란스러워 졌다. “좁은 길에서는 화공을 조심하라……음. 삼국지 이릉전투에서 유비가 그 짓거리를 했다가 개쪽박을 찼지, 아마.” 응용학습에 들어간 아크. 쥬레이나란이 건. 피로를 잊게 해 주는 마법의 후유증을 씻을 시간 동안 그가 이끄는 군은 며칠간 요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응용학습 이랍시고 고서의 전투실적에 병법을 대입해서 익혔지만 딱히 하루아침에 실력이 느는 건 아니었다. 그저 책상에 머리를 들이받고, 그 책상이 안 부숴지게 하는 기술만 늘었을 뿐. 현재 지휘관 막사의 탁상은 재질이 철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이것도 벌써 움푹 파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화공은 한 군데 밀집한 많은 적들을 상대할 때 효과적……에 그래 효과적, 연환계는 그런 화공의 특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작전. 좁은 길로 가는 병력을 상대할 때 화공을 펼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또한 바람을 타고 옮겨 붙는 화공의 특성상 적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전공을 세우기 쉬워진다. 이거군.” 그렇게 한 가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자. 아크는 손가락을 강하게 퉁기며 혼자서 중얼거렸다. “오홋! 이해가 되니 이렇게 쉽구나.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긴 개뿔. 지루해 죽겠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가 제일 재미있어요. 이 따위 식으로 말하는 학습지 광고의 꼬맹이들을 삽으로 묻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아크였다. “제기랄. 그냥 때려 쳐 버려? 쥬레이나란 동원해서 헬파이어 몇 방으로 그냥 쓸어버려도 되고 말야.” 말이 쉽지, 이미 8서클이 넘는 대마법사가 있다는 것이나 괴상한 악취를 사용한다는 것은 팬크라프트의 진영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비책이 없으리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바이에른 요새에서 수성만 고집했다면야 이렇게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서부 평원의 70% 이상을 내주고 국가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미 그 요새를 버리고 남부 쪽으로 내려 온 이상. 아크는 최소 헤닌 성까지는 진군하거나 팬크라프트의 군세를 모조리 몰아내거나 하여 어떻게든 서부 평원을 일부나마 수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렇지 못하면 서부 평원 뿐만 아니라 나머지 루드비안의 영토가 팬크라프트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성전 경험은 그래도 몇 번 있으나, 그렇게 평원을 수복하기 위한 전투를 벌인다면 수성이 아닌 공성, 혹은 야전이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는데 거기서 이길 가능성. 솔직히 계산하기 힘들었다. 이쪽에 첨단 기술과 각종 꽁수가 존재한다면 팬크라프트에는 많은 기사의 수로 평수를 맞추고 있어, 현재 세 갈래로 나눠진 군세 하나를 격파하기도 힘들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사의 수도, 사기도, 유능한 지휘관도, 강한 화포도, 두터운 요새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급이다……하긴 전략시뮬레이션의 기초와도 같은 말이군. 물자와 군량이 없으면 작살나니까…….” 그러나 보급부대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없고, 급습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무리 보급이 그렇게 여의치는 않다고 해도 팬크라프트를 쉽게 건드리기엔 애매했다. 결국 많은 수의 팬크라프트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상대해 한 번에 괴멸시키는 대승을 거둬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첩을 거둘 수 있는 뛰어난 전략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 루드비안에서 가장 그런 계략을 잘 사용한다고 알려진 이가 바로 표절용 계략 사용자인 지략의 기사. 아크다. 그러니 공부를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다들 자기만 믿고 뭔가 한탕 터뜨려 주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통솔의 문제야 크리샤 백작이나 카시아스 백작 같은 장군들에게 맡겨 논 다고 치더라도 적을 단번에 격파할 계략은 결국 자신이 내야 하는 것이다. “때려칠까? 그냥 콱 군대 가지고 막무가내로 밀어 붙여 봐?” 팬크라프트 측에도 특별히 군략을 사용할 만한 명 지략가는 없으니 그래도 먹힐 수는 있을지 몰랐다. 다만 한 군세와의 전투에서 적을 괴멸시키는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피해를 입을 경우 각개격파도 할 수 없도록 수에서 밀려버리게 된다. 뭐 지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 혼자만 살아남기만 하면 되겠지. 라던 생각 따위는 버렸다. 조국은 저 멀리 갈 수도 없는 대한민국이라지만 현재 몸담고 있는 곳은 루드비안이라는 이계의 제국. 아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의 터전을 적대적인 팬크라프트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크아아악! 나도 모르겠다!!!” 아크는 책을 전부 집어던지고 머리를 심하게 헝클었다. 잘 씻지 않는 버릇을 고치지 않고 살다보니 머리에서 비듬이 떨어진다. 그렇게 개판이 된 몰골로 막사 밖으로 난폭하게 나갔다. 바깥에는 병사들이 나름대로들 풀어진 모습으로 저마다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주변에서 사냥한 멧돼지를 구워 먹기도 하고 공 따위를 만들어 차고 노는 이도 있었다. 아크는 마냥 그곳을 그냥 걸었다. 인사를 건네는 이도 간혹 있었지만 씹었다. 병법만 파고들어 수를 구하기보다는 그저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 한 번 전쟁을 풀어보려, 상념에 젖어 있었다. 요새 내를 걸으며 뭔가 기상천외한 전략을 독자적으로 생각해 내려던 아크는 주변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에 코를 쥐었다. 에르디가 묶는 막사는 정 반대 쪽이었기에 그 녀석이 실험할 이유는 없을 테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니 수만이 넘는 병사들의 배설물을 매각하는 용변 매각장이 눈에 띄었다. 8만 가량이나 되는 병사들이 매일 싸다시피 해서 모아진 저 많은 인분에는 엄청난 파리떼가 꼬여 있는 것이 밤임에도 확실히 보일 정도였다. “저거 어디다 안 치우나?” 에르디의 악취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혐오 시설물이 성내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사령관으로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걸 뭐에 쓰려고 저렇게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는지 원. 마스터로서 밤눈도 좋고 시야도 좋은 아크는 그 인분더미에 다가서는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요새 내 주민이 기르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떠돌이 개는 인분더미를 먹고 있었고, 도둑고양이들은 혹여나 털에 고약한 냄새가 날까 인분을 피해서 나다니고 있었다. “……이 동네는 고양이들 식성이 고급인가보네. 원래 저런데도 다 뒤지고 다니지 않던가? 하긴 음식물 쓰레기는 뒤져도 변소 뒤지는 건 못 봤군. 저놈들이 조금 상했다 싶은 건 주워먹어도 어디 개처럼 완전 찌꺼기를 주워 먹겠어?” 아크는 별 감흥 없이 인분더미에서 고개를 돌려 산책을 계속했다. 사령관 막사와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어 바람 타고 냄새가 풍겨 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만 요새 내에 이런 혐오시설을 놔두는 것은 좋지 못했다. 돌아가서 피로 회복을 굳이 할 필요 없는 원래 요새 내의 귀족병사들을 동원하여 치우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산책을 마치고 사령관 막사로 돌아온 아크. 제법 긴 시간을 걸어 초저녁의 보랏빛 하늘이 어느새 검어지고 달이 중천에 떠올랐으며 병사들이 취침을 위해 막사 안으로 들어가 화로의 불빛만이 삭막함을 달래 주고 있을 시간이 되었음에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사령관 각하! 정보원에게서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크리샤 백작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가?” “세비어 프레슬더와 크리스 젤리커가 이끄는 도합 10만의 군사가 이곳 스메론 요새를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 병력으로 이곳을 뚫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아마 그 군세로 우리를 이곳에 묶어 놓고 스턴컬트 공작의 군세로 하여금 서부 평원의 마지막 동부 쪽을 완벽히 공략하려 할 셈인 듯싶습니다.” “음.” 크리샤 백작은 역시 쓸만한 인재였다. 그 군세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파악해 아크가 판단을 도왔다. 병사들의 피로는 대충 풀린 상태. 그러나 다른 군세로 영토를 노리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발길을 묶어 놓는 용도로 온 군대라면 공성을 하되, 질질 끄는 접전을 펼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서부 평원 전체와 나아가 루드비안 제국 전체 영토 방위를 위해서 스턴컬트 공작의 군세를 막아야 했지만 여기서 발목이 잡혀 버리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적은 피해로 젤리커 공작의 군세를 격파하고 스턴컬트 공작을 막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아크가 고민해 오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화공. 좁은 곳에서 쓸 경우 효과 만점. 많은 수의 적에게 효과 만점…….”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사령관 각하.” “음……스메론 요새 주변에 쓸만한 매복 장소가 있나?” “숨기에는 좋으나 적들이 침입하는 경로가 넓은 대로이기에 매복 공격이나 화공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측에는 별 피해 없이 적에게는 약간의 타격을 입힐 수 있겠지요. 적들의 수를 약간이라도 줄이시려면…….” “적들이 오는 경로가 넓은 대로라고?” “그렇습니다. 북쪽에서 스메론 요새를 공격할 경우 길은 그 길 뿐이 없습니다.” 아크의 머릿속 전구에 불이 켜졌다. 연환계처럼 좁은 곳에 병력을 밀어넣고 화염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이 지금 막 떠오른 것이다. 아크는 벌떡 일어나 크리샤 백작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에르디 경 에드워드 경을 부르고 병사들에게 삽자루를 준비시켜라.” “예! 함정을 파려 하시는 거로군요.” 피식. 함정이긴 했다. “지레짐작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지. 아. 잠깐 확실히 해 두지. 정말 이쪽으로 오는 길이 한 곳 뿐인가?” “그렇습니다. 길도 없는 산 속 수풀을 헤치고 10만의 군사를 끌고 오는 멍청한 군세가 아니라면야.” “적들의 요새 도착 시기는 언제쯤인가?” “아마 강행한다면 사나흘이고 보통 진군을 해 온다면 일주일일 겁니다. 우리를 묶어 두려는 의도하에서 진군해 온다면 진군을 강행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대박이닷! 일타십득의 대박을 거둘 수 있을 만한 작전이 아크에게 떠올랐다. 이대로 실행한다면 10만 군세를 처리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좋아! 지략의 기사님께서 또 크게 한 탕 하는구나. 이건 대박이 안 날 수가 없다고! 크크큭!’ 아크가 다가오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다다 달려와 금방 아크의 멱살을 잡아채는 소년이 있었다. “너 이 자식 죽을래! 왜 자꾸 이 따위 헛짓거리를 시키고 지랄이얏! 앙! 저 냄새나는 인간. 그래 그렇다 치자. 이제는 아주 동물들의 찌꺼기에 날 파묻을 셈이냐! 이 망할 자식아!!” 사령관에게 걸걸한 욕을 내뱉고 있는 쥬레이나란. 그의 표정에는 이번에야 말로 결판을 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크의 얼굴은 더욱 더 험악한 조폭 인상 그 자체였다. 아크는 목소리를 굵게 깔고서 눈을 부라리며 쥬레이나란을 협박했다. “……이런 은혜를 개 똥덩이 같이 알아먹는 성질 더러운 드래곤 새끼 같으니……네가 그렇게 죽이고 싶어 하던 갈란드그렌을 목숨을 걸고 잡아 주었더니 뭐가 어째?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망정. 계집으로 변하기도 그리 싫어하고, 그렇다고 이런 일 좀 시키면 한 번을 알았어 하고 군소리 없이 해결한 적 있냐? 앙? 인간 삶. 그랜드 마스터인가 뭔가 되어 봐야 기껏해야 500년이다. 1만년 사는 놈이 그 세월 정도는 염원하던 소원을 이루어 준 동료를 기쁜 마음으로 돕지는 못할망정. 뭐? 죽을래? 누가? 네가? 허이고 개소리 집어치우고 가서 일이나 해!!! 드래곤이 평생 싸는 것 보다 적은 양일 텐데 그것을 가지고 하기 싫다 어쩌다…….” 구구절절 옳은 말에 차마 대꾸하지 못하던 쥬레이나란이 마지막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이봐 우린 섭취한 음식물 찌꺼기는 배출하지 않고 체내에서 연소시킨다고.” “어쨌든. 좋은 말로 할 때 군말 없이 그냥 해라?” “크으으으!” 쥬레이나란은 이빨을 갈며 다시 요새 한 주변에 쌓아 둔 똥무더기로 달려가, 실버 드래곤의 특징인 날씨 조절을 이용 똥무더기 주변의 수증기를 흡수해 습도를 낮추고 기온을 높였다. 수없이 쌓인 변들을 말리기 위함으로. 그러나 수증기를 빨아들일 때 그 무더기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가스가 쥬레이나란에게 몽땅 유입되고 있기에 그는 연신 투덜거리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방금 전만 해도 아주 죽일 듯이 달려들기도 했지만 염원하던 복수를 갚아 준 인간의 부탁이 그 어떤 것이든 차마 거절하기가 뭐했던 것이다. “어이 거기들 빨랑빨랑 움직여!” 또 한 편에서는 병사들이 이전 스메론 요새를 침공하던 팬크라프트의 병사들 시체와, 그때 전사한 아군의 시체를 통합해 매장해 놓은 곳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렇게 파헤친 시체들을 어디론가 들것에 매고 가는 병사들. 그들 역시 차마 상관에게 걸릴까 무서워 대놓고 하지는 않아도 속으로는 편히 쉬게 해야 할 망자들을 꺼내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왜 이런 노가다를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령관 각하!” “성자님!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법석입니까?” 작업 현장을 둘러보던 아크에게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현재 루드비안 군에 합류한 중도의 동맹군을 이끄는 로리엔이 다가왔다. 그들로서는 얼떨결에 벌어진 이 인분말리기 작업과 시체 배달 작업이라는 전투와는 전혀 상관없을 듯한 전쟁 준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죽은 이를 다시 파헤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로리엔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처음에는 지략의 기사가 하는 일이니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하면서 떨떠름하면서도 받아들이던 루드비안의 지휘부들이 로리엔이 내뱉은 ‘언데드!’ 한 마디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묻기 위해 몰려왔던 것이다. “보면 몰라? 시체 파내고, 응가 말리잖아.”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묻는 겁니다! 성자님을 믿고는 있습니다만. 지난 번 다크로드 사건에서 어둠의 존재와 접선한 사례도 있고 하여 자꾸만 불안합니다. 설마 진짜로 저 시체들을 언데드로 만들어 전장에 투입할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언데드로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만들어?” “그러면 도대체 왜! 신의 품으로 돌아간 이들을 다시 모욕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이들이 신을 배격하는 이단의 국가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땅에 남겨 두고 간 육신만큼은 잘 보존해야 마의 기운이 감히 이들을 노리지 않습니다!” “어이 이단은 아예 죽여버리는 게 교황청 순리잖아? 얘네들 전부 이단아고.” “비록 팬크라프트가 주신교를 금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교단 형성과 교황청의 주신교 전파를 금지할 뿐이지 민간의 자율적인 주신 숭배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신의 세계로 들어간 이들도 있을 터인데 어찌!” ‘크아! 제기랄! 저 꽉 막힌 놈을 어떻게 처리한담?’ 사사건건 개입해서 성자에 대한 정숙함과 예의범절을 늘어놓는 로리엔 덕분에 대가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세계에서 지구와는 달리 주신이란 존재는 실재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믿음을 지니게 했다. 그러나 주신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그를 믿고 따르는 것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이 세계에는 주신뿐만 아니라 엄연히 암흑신도 존재하였기에 유일신 사상에 의한 이 신만 믿어라. 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고 주신도, 암흑신도 따르지 않는 중립적 사상의 존재들에 대하여 주신도 암흑신도 섣불리 관여를 할 수 없었다. 아크의 경우 지구에서는 증거를 꼬박꼬박 따져 가며 무신론을 주장했지만 이쪽에 와서 신이 실재한다는 것은 믿었다. 그렇지만 신에게 의지한 적은 없었다. 가끔 뭔가를 간절히 빌 때만 몇 번 찾았지, 신을 믿고 따르며 그의 종이 되겠다는 맹세 따위 해보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나 블레싱 소드를 지녔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는 무조건적인 주신교 신자, 그것도 가장 도덕적이며 고귀한 존재여야 하는 성자로 추앙받았다. 그러니 그런 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아크만 미칠 수밖에, 그래도 간섭 안 받을 수 있으며 살 때는 성자라는 타이틀이 편했는데, 웬 떨거지가 하나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 해대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떽! 그렇다고 네 부하들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이 지략의 기사님의 계략을 묻어두자는 얘기냐?” “……전장에서 신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 “에이 쓰버럴! 이 군을 총 지휘하는 건 나니까. 더 이상의 토를 다는 것은 삼가키 바란다. 중도의 성기사! 시체는 여기 다른 친구들이 치워 줄 테니 고만 좀 해!” 결국 할말이 없어진 아크는 직위를 이용한 권위주의로 로리엔을 물리쳤다. 역시 직위를 들먹거리자 할말이 없어진 로리엔 역시 순순히 물러났다. 몸을 빼는 로리엔과 그를 노려보는 아크. 중간에서 그 둘의 눈빛이 맞았다. ‘성자님. 기필코 당신을 좀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만들겠습니다.’ ‘……너 이 자식. 기필코 내가 타락시켜주마.’ 철저한 금욕, 도덕, 윤리, 신앙주의자와 철저한 쾌락, 자유, 무신론자의 눈빛 교환이 끝나고 자리에는 나머지 지휘관들이 남아, 아크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서, 설마 정말 언데드를 만드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절대…….” “그럼 무슨 연유로 저리 시체들을 파헤치고, 인분을 나르는 노역을 지시하신 겁니까? 사령관 각하께서 다 생각이 있으신 것이겠지만은 아무래도 괴이쩍습니다. 어떤 흑마법을 시전할 때 필요한 재료 중에 시체와 인분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정녕 흑마법을 사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라니깐!!! 지휘관의 명령이니 좀 닥치고 들어주도록 하지? 게다가 막사 안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어디에 첩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을지 모를 이 바깥에서 작전을 얘기하라는 것은 어느 나라 군법이야?” 결국 참다못해 아크가 발악을 하며 외쳤다. 안 그래도 지금까지 계략 구상하느라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인 것이 대박전략 하나를 구상해 냄으로서 날아가 버린 것 같았는데, 쥬레이나란의 똥퍼일 못한다는 시위에, 로리엔이 스트레스를 주더니 이제는 나머지 부하들까지 짜증을 돋우어서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한 것이다. “앗! 죄송합니다. 사령관 각하.” 머리를 쥐어뜯으며 날뛰는 모습은 전혀 일군의 사령관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무슨 작전인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극도로 기밀을 요하는 작전이 아니라면 사령관 각하의 그 신기의 전략을 듣고 싶습니다.” “지략의 기사님이 내놓으신 기상천외한 전략이 무엇일지 정녕 궁금합니다.” 아부성 멘트들이 쏟아졌다. 아부나 뇌물에 약한 아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하들이 자기를 띄워 주자, 알려줘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조금은 괴상한 기물들을 사용하는 전략의 경우. 즉각 쏟아지는 이런 태클들 덕분에 나중에 전투 효과를 보여주며 놀라게 하려던 계획을 수정하고, 아크는 그들을 사령관 막사로 데려갔다. “그럼 지금부터 본인이 직접 작전의 개요를 설명하겠네. 잘들 듣도록. 또한 혹시나 모를 첩자에 대비하여 발설하지 말도록.” “예!” 지휘부들이 알고 있는 작전을 발설하지 않는 것은 전쟁의 기본 중에 기본. 안 그래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회의 때마다 사용하는 방음 마법도 시전된 상태였다. “북쪽에서 밀려오는 팬크라프트 군이 이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서 지나쳐야 할 길이 어느 곳일까? 당연 이 북부대로 외에는 없다. 뭐 서쪽을 통해 빙 돌아서 간다면야 동쪽 통로로도 올 수 있다지만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별 무리 없이 진군해 올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이다.” 아크의 블레싱 소드가 요새의 그림이 그려진 지도의 위쪽을 가리켰다. “이 길은 넓고 평평하여 많은 수의 병력이 이동하기에 적합하여 공격측에 유리하다. 주변에 숨을 수 있는 산 지형과 숲 지형이 존재하긴 하지만 길이 하나뿐이고, 또 넓은 만큼 매복에 대한 준비는 철저하거나 철저하지 않더라도 그다지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 죽어라 병법서만 판 효과가 그래도 어느 정도 있었는지, 아크의 작전에 대한 설명은 그 특유의 막무가내 밀어붙이기 식이 아닌 교과서식의 정형을 따르고 있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무엇 하나 틀리거나 오류가 난 곳이 없었다. “많은 적을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화공입니다.” 이제는 질문까지 던져가며 설명을 계속하는 아크. 마치 한 명의 교사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공을 펼치려면 좁은 지형이어야 하지. 아무리 불을 싸지른다고 해 봐야 넓은 지형에서 도망칠 곳이 많아버리면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 지형은 말야. 이쪽에 숨어서 화살 같은 것은 날려 댈 수 있어도 불이 붙으면 몽땅 도망쳐 버리면 그만인 지형이기에 화공이 먹힐 수가 없지.” “그렇습니다.” “허나 지금 우리의 상황으로 봐서 저들 병력을 궤멸시키고 스턴컬트 공작의 군세를 저지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렇기에……화공을 쓴다.” “그러나 방금 말씀 하신대로 이 지형은…….” “길이 넓으면 좁게 만들면 되는 거야.” “……?” “……!” 그 말에 조금 머리가 있다 하는 지휘관들은 아크의 말을 알아들었고, 무력만을 주로 자랑하는 기사들은 여전히 뭐가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옆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소리요? 라고 묻고 있었다. “뭐 이해한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어쨌든 이유를 얘기했으니 이제 군소리 없이 명령에 따라 주길 바라네. 크리샤 백작은 시체를 나르는 부대를 지휘하며 적들의 선봉대가 나타나 주변을 탐색하기 이전에 길의 초입에 시체들을 가져다 나르도록. 몇 만 병사를 동원하면 한 3일 이내로는 끝낼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카시아스 백작은……엘렉 백작과 내 부하 에르디가 만들어 놓은 마른 응가들을 나르라고 부하들에게 명하도록. 단 시체로 만들어 진 길이 어느 정도 끝난 뒤에 인분을 사용하도록. 나머지 부장들은 병사들의 불만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불을 붙일 만한 마른 풀 등을 잔뜩 준비해 놓도록 하게.” 아크는 작전을 설명한 김에 시키려고 벼르고 있었던 명령들을 내렸다. 상당한 시간의 사전 준비를 통해 성립될 수 있는 계략이기에 보기만 해도 섬뜩한 온몸에 창칼에 훼손되어 썩어가는 시체들을 파헤쳐서 팬크라프트 군이 스메론 요새 북쪽 대로로 오기 전에 그 먼 거리를 오가며 시체를 날라야 했고, 또한 고약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인분 또한 먹은 것을 토해내며 옮겨야 할 정도로 병사들의 노가다가 심한 계책이었다. “대장이란 건……뭐 편하구만.” 모든 명령을 내린 뒤 다시 막사를 나와 병사들의 노가다를 구경하던 아크. 불만 가득스런 표정의 병사들을 보아하니 과연 높은 자리에 있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승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자기가 일반 병사인데 갑자기 지휘관이 웬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서 몇 킬로를 걸어서 나르라고 하면 어이없고, 또 열이 안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시체야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에게는 크게 섬뜩한 것은 아니라지만 죽은 이에 대한 안식만큼은 귀중히 따지는 이들인 만큼 시체를 옮기는 것도 어째 께름직할 판이다. 반면 대장의 자리에 있으니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놈이 있을지 몰라도 정작 몸은 편하고 좋았다. 하위 신분의 세계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상위 신분으로 진입하고 나니 특권이 이렇게 좋은 것들인 줄을 깨달았다. “쥬레이나란 녀석이 있으니 확실히 편하구만.” 화공을 사용하는 데에는 지형도, 전략도 중요하지만 뭐니 뭐니 한다 해도 하늘의 도움이 필요했다. 바람이 상대편 진형 쪽으로 불어야 하며, 또한 비가 내리거나 너무 습기가 많은 날에는 또 불이 잘 안 붙는다. 그러나 기후를 조절하는 능력자인 실버 드래곤 쥬레이나란이 있으니 그런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바람의 정령왕을 소환해서 바람방향을 바꾸고, 실버 일족 특유의 능력으로 습기를 빨아들여버리면 끝이다. 물론……인분의 냄새마저 습기와 함께 빨려들어오니 녀석이 차마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난리 발광을 하는 거겠지만. 먼 훗날 나올 패키지 게임 대륙 영웅전에서 데일런스 성 전투와 함께 지략의 기사의 지력을 유명한 루티안 제국의 전략가 데이브 그랜든과 함께 탑으로 올려놓는 소위 말하는 인분대첩은 그렇게 그 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팬크라프트 제국의 두 후지기수. 크리스 젤리커 공작과 세비어 프레슬더 후작. 30년 전 폴티아 전쟁에서 프랑코 젤리커가 지략의 기사의 손에 죽은 뒤, 지금에 까지 이르는 동안 팬크라프트 제국에서는 마치 혜성이 주기대로 지나가는 것처럼 10년을 주기로 한 명의 마스터 급 무인이 탄생했다. 맨 처음에는 당시 촉망받던 무인이자, 젤리커 가의 가전 검술을 이어받은 천재 검사 크리스 젤리커가, 그 뒤에는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 이후 황제의 성씨인 팬크라프트에서 나온 황태자이자 현 황제 대리 리안 팬크라프트, 마지막으로 데일런스 성 전투에서 폴티아 공과 함께 살아남은 세비어 프레슬더. 이 중 리안 팬크라프트의 경우. 전장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제국의 내정에 치중하는 스타일이기에 소드 마스터라는 장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크리스 젤리커와 세비어 프레슬더의 경우에는 죽은 프랑코 젤리커와, 상당한 나이의 루이스 델른버 공작을 이을 인재로 촉망받았다. 현재 그 둘은 스메론 요새에서 지략의 기사가 이끄는 루드비안의 최정예 부대를 묶어 놓는 역할을 맡은 부대를 이끌고 남하하는 중이었다. 이 두 명의 소드 마스터는 각기 지략의 기사와의 인연이 있었다. 젤리커 공작은 아버지가 지략의 기사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세비어는 전쟁터에서 그에게 동정을 받아 살아남았으며 지략의 기사의 전략에 의해 통구이가 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고 살아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그리하여 그 둘은 반드시 지략의 기사를 쓰러뜨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이 맡은 임무는 단순히 적의 발을 스메론 요새에 묶어 두는 것. 비등비등한 전력을 지닌 양측 군대가 맞붙을 경우 승패를 쉬이 장담하기란 힘들었고, 만약 크리스 젤리커가 복수심을 못 이겨 요새에 틀어박힌 적을 공격한다면 수성의 이점을 지닌 루드비안 군이 이기게 될 것은 뻔했다. 하지만 요새 가까운 곳에서 진을 치고 나오지 못하게만 막아 둔 다면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군세와,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의 군세가 알아서 서부 평원뿐만 아니라 루드비안 제국 전역을 뒤흔들고 끝내는 멸망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군세를 이끌고 스메론 요새에 근접해 온 젤리커 공작과 프레슬더 후작. 은빛 플레이트 갑옷이 빛나는 마상기사들을 이끄는 젤리커 공작의 최선두 뒤에 말을 타지 않아 기사(騎士)라 불릴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기사라 불리는 보행기사들을 이끄는 세비어. 그리고 그 뒤로도 루드비안의 총기에 대비한 마법 무구와 철모를 착용한 늠름한 병사들 10여 만이 뒤따르고 있었다. 서부 평원이라는 이름답게 넓고 푸른 초원을 지나, 이제 스메론 요새 쪽으로 진입하는 북부 대로변에 도착한 팬크라프트의 군세. 이 북부 대로변은 길이 상당히 넓으면서 좌우로는 수풀이 우거진 동산이 있어 매복이 가능하지만 지형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매복공격에 대비하기 쉬운 구조였다. 선봉으로 탐색을 보냈던 기병들이 전방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그들은 사령관 젤리커 공작이 보이는 곳 십여 미터 바깥에서 말을 세우고 걸어와 창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무릎을 꿇은 채 외쳤다. “보고드립니다! 현재 진군할 곳에는 스메론 요새를 공격하다 전멸당한 본국의 군사들의 시신과 오물이 뒤섞여져 엉망진창입니다. 특별한 매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적은 수의 적군이 숨어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젤리커는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본국 군사들의 시체?” “그렇습니다. 엉망으로 훼손되어서 대로변에 가지런히 널려 있습니다.” “가지런히?” 젤리커가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시체가 널려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이 접전지역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전투가 벌어져 죽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면 시체가 가지런히 놓여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 그렇습니다. 마치 일부러 놓아 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 그 외 별 이상한 점은 없나?” “오물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긴 했습니다만 더 이상 들어갔다가는 루드비안 군에게 들킬 수도 있겠다 싶어 곧바로 복귀했습니다.” “수고했다. 그럼. 전군 계속 진격하라!” 전장에서 시체는 흔히 볼 수 있다. 내장이 튀어나오고, 뇌수가 흘러나오고, 살점이 이리저리 찢기고 머리가 박살나는 등의 잔인한 장면을. 별로 놀라울 것도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진군하던 젤리커는 낮은 산지형이 좌우로 펼쳐진 대로로 진입하면서 풍겨오는 지독한 악취에 코를 쥐었다. “욱……!” 지략의 기사의 가신이 쓴다는 최루가스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지만 젤리커 공작이 이 광경을 보고 처음 느낀 것은 왠지 모를 분노였다. 날이 덥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묻거나 태우지도 않고 길가에다 버려둔 아군의 시체에는 까마귀들이 늘러 붙어 살점을 파헤쳐 먹고 있었다. 또한 파리들이 알을 까려 윙윙 날아다님은 물론이오. 하얀 구더기들이 스멀스멀 기어서 인간의 시체를 활보했다. 그 시체들이 썩어가면서 나는 악취는 병사들의 코를 찔렀다. 에르디의 악취처럼 인간을 기절시키는 효과는 없지만 보통 역겨운 냄새가 아니었던지라 병사들은 나름대로 갑옷을 약간 끌어 올려 입으며 마스크처럼 활용했다. 확실히 의도적으로 시체를 보란 듯이 늘어놓은 테가 역력했다. 시체들은 나름대로 가지런히 길 양 옆에 누워 있었고, 또한 시체들에 묻어 있는 흙을 보아서는 한 번 묻은 것을 파헤쳐서 이리 내다 놓은 것이라는 걸 짐작케 했다. “이런 간악한 것들!” “허……아무리 적병이더라도 시신 만큼은 수습해 주는 것이 예의일진대 어찌…….” 거기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훼손되어 있었다. 창칼에 맞은 시체들이 훼손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만은 적어도 눈이 파헤쳐지거나 하는 흔적은 고의로 칼질을 했거나 하지 않고서는 쉬이 나올 수 없었다. 거기에 온갖 까마귀며, 개미며, 독수리 등 여러 시체를 좋아하는 동물들이 뜯어 놨으니 이미 이전에 인간이라는 생각 보다는 썩은 고깃덩이라는 연상이 되었다. 그 처참한 모습에 병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기사들도 저마다 욕설을 내뱉으며 루드비안 군을 성토함은 물론 분함을 감추지 못하고 뛰쳐나가려는 이들도 있었다. 젤리커와 세비어 역시 아군의 시체를 이토록이나 멋대로 방치하고 훼손시켰다는 것에 대해서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이런 몹쓸 짓을 한 지략의 기사를 당장에 깨부수고 싶었다. 그러나 총 지휘관을 맡은 젤리커는 병사들의 동요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동요에 팬크라프트 대공이 했던 신신당부와 이전 지략의 기사와 맞붙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결코! 요새를 먼저 공격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라!’ ‘콧구멍에 딱 맞는 X!' 그 생각이 들자, 분노가 조소로 바뀌었다. “그랬군.” “예?” “동요하지 마라! 이건 적의 술책이다! 아군의 시신으로 우리를 도발시켜 먼저 요새를 공격하게 만들려는! 모두 전열을 다시 갖추고 계속 진격한다!” 젤리커는 속으로 이런 계략을 내세운 아크를 비웃었다. 잠시나마 분노하고 열 받았던 것이 이제는 우스웠다. 만약 자신이 원래 도발에 잘 걸리지 않는(그러나 지난 번 아크에게는 걸렸었다)침착한 성격을 지니지 않았거나 먼저 공격하지 않고 발만 묶어 놓으라는 대공의 충고를 되새기지 않았더라면 걸릴 뻔한 도발작전이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끌게 되면 불리한 쪽은 루드비안 군. 자신들이 이곳에서 질질 시간을 끌면 서부 평원 뿐 아니라 제국 전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요새를 버리고 뛰쳐나와 맞붙으려 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시체를 파헤치고 훼손하는 악마들이나 할 짓이라고 배척받는 극단적인 방법까지 써서 자신들을 도발. 요새의 두터운 성벽에 부딪히게 해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젤리커는 생각했다. 물론. 완전히 헛다리짚은 거였지만. 젤리커는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외쳤다. 그러자, 아군의 처참한 시체를 본 뒤의 동요가 잠잠해졌다. “후발대에게 일러 시신들을 수습하라고 전해라. 나머지 전군! 계속 진격한다! 우리 제국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전우들의 시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진군한다!” 넓은 평원을 진군하느라 넓게 퍼졌던 진형이 좁은 길을 지나가는 대형으로 신속하게 바뀌었다. 전우의 시체를 밟을 수는 없는 노릇에다, 비록 며칠 전까지는 인간이었다지만 지금은 썩은 고깃덩이로 바뀌어 버린 냄새나는 단백질 덩어리를 밟기도 꺼림칙했다. 거기다 시체들이 걸리적거리니 그쪽으로는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진군은 계속되었다. 가면 갈수록 냄새는 심해졌지만 이미 후각이 대충 마비될 대로 마비된 병사들은 별로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시체로 장식된 길을 지나갈 수 있었다. 인간들이 지나가자, 시체를 뜯어먹던 까마귀들은 저마다 좀 더 안쪽에 있는 시체들 쪽을이동해 가며 식사를 계속했다. 그 집요한 면에 병사들은 까마귀 쪽을 향해 창을 휘둘러 새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왔을 때, 까마귀나 기타 동물들은 시체를 뜯어먹고 있지 않았다. 중간쯤에 놓인 시체들은 그렇게 훼손되지 않아 제법 깨끗했다. 5만 구가 넘는 시체의 길은 정말 길었다. 거의 꼬박 며칠을 별 할일도 없이 행군만 해야 했던 병사들은 어느새 시체 구경에 전념했다. 악취와 마찬가지로 잔혹한 장면 역시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일종의 구경거리 이상 되지 않았다. 10만 군사가 모두 대로변으로 들어가고 그 후발대에서 시체 수습에 들어갈 즈음 젤리커 공작은 또다시 나타난 괴상쩍은 광경에 혀를 차야 했다. “이번에는……인분인가?” 시체로 이루어진 줄이 끝날 즈음. 길에는 건조한 날씨에 수분이 싹 날아가 말라비틀어지긴 했지만 역시 고의적으로 뿌려놓은 것이 보이는 인분더미가 좌우로 나란히 깔려 있는 것을 보며 젤리커 공작은 어이가 없었다. “우리 군을 아주 무시하는 것 같군요.” “음.” 젤리커와 세비어는 이것이 또 다른 유인책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군의 시체보다는 도발의 정도가 약하긴 하지만 고귀한 귀족들이 앞장서서 오는데 깔아놓은 인분이라면 그 역시 모욕의 용도로 써먹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게 아니라면 단순히 냄새로 사기를 꺾어놓으려는 것도 아닐테고, 밟고 미끄러지라는 것도 아닐진대 말이다. “유치한 짓거리를 해 놓았군 지략의 기사.” 대로 좌우변에 깔린 인분들은 하나같이 잘 숙성시킨 거름처럼 메말라 있었다. 후각은 이미 대충 마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체 썩는 냄새와 인분 썩는 냄새는 엄연히 달랐기에 병사들은 새로운 냄새에 적응을 해야 했다. “신경 쓸 것 없다. 냄새에 취해 구토를 하는 멍청이 따위는 없길 바라며 진군을 계속한다.” 시체라면 몰라도 인분까지 신경 쓸 생각은 없었는지 젤리커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검을 스메론 요새가 있는 남쪽으로 겨눴다. 병사들은 알아서 인분을 피해 걸었다. 말라버려서 질척한 느낌이 나는 건 아니지만 냄새는 여전하고 인분은 원래 더러운 것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기도 하였기에 병사들은 혹여나 인분을 밟을까봐 신경쓰면서 걸었다. 시체로 장식된 길보다 인분으로 장식된 길이 더욱 좁았기에 그들은 대형을 길고 가늘게 맞추고는 진격을 계속했다. 그렇게 앞장서서 진군하던 젤리커는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자각이 들었다. 아군의 시체를 쌓아 놓은 앞의 길의 경우야, 충분한 도발효과가 있었지만 인분은 아니었다. 단지 혐오감을 심어 줄 뿐. 아무 역할도 못하는 것이다. 진군을 늦추려고? 늦추려 할 이유도 없거니와, 늦추려면 시체와 인분을 이용해서 길을 막으면 막았지 이렇게 기이하게 좌우로 깔아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거지?’ 바보가 아닌 이상 도발책을 그것도 이렇게 무식하게 쓰지는 않는다. 시체로 도발을 할 거였으면 몇 백구만 깔아 놓아도 충분했다. 그런데 시체는 이곳을 공격하다 전멸했을 거라 여겨지는 5만구가 훨씬 넘어 보였다. 십만 가량의 군사가 하면 못할 것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시체를 길가에 쌓아두는 그런 먹히면 좋고 안 먹혀도 그만일 계책에 편히 쉬게 해야 할 병사들을 동원하여 강제노역을 시킨다는 건 뭔가 좀 맞지 않았다. 고민 중이던 젤리커 공작. 그러던 그는 앞에서 달려오는 말들을 보았다. 탐색대가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말들은 병사들에게 부딪힐 때까지 다가와서야 멈추었다. 그리고 그 말들에는 사람 대신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머리였던 단백질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 그런 다음 전방에서는 흑발의 사내가 전장에 나온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든 편한 체육복 복장을 한 채 뒤에 엄청난 무리를 데리고 어슬렁 어슬렁 나타났다. 주머니에 손까지 집어넣은 채로. 누가 보면 껄렁한 깡패로 보이겠지만 그 사내의 신분은 대륙 4강이라 불리는 대제국 루드비안의 지고한 후작이며, 현재 그 넓은 제국의 군권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대원수였다. 그 살기등등한 모습은 가히 군대라 할 만 했지만 앞에서 쌈박질을 하는 이들은 달랐다. “그게 뭡니까! 도대체 좀 더 사령관으로서의 위엄과 자질을 갖추실 수는 없습니까?” “하따 말 많네! 사령관이면 군사들의 눈에 잘 띄게 뭔가 화려한 옷을 입어야 한다며! 그럼 너는 여장이라도 하고 나오지 그랬냐!” “큭 거기서 여장은 왜 나오는 겁니까!” 전혀 긴장감 없는 모습. 누가 저들이 대륙 전체를 통틀어 열 몇 명뿐이라는 소드 마스터 급의 무사이며, 세계 전체를 통틀어 단 세 자루 밖에 없다는 신검의 주인이며 각자 군대의 사령관이자 후작 및 최고위 성직에 종사하는 이들이라고 믿겠는가? 그러나 군기가 바싹 잡힌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그들을 보고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서 각자 검을 빼어들었다. 그러자 아크도 로리엔과의 실랑이를 멈추고 앞으로 나왔다. “오랜만이군. 콧구멍.” “…….” 젤리커의 얼굴이 곧바로 시뻘개졌다. ‘진정, 진정!’ 이전에도 저 도발작전에 넘어가 낭패를 본 적이 있었던 젤리커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이번에도 말려들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래 오랜만이군 색욕의 기사.” 자기도 그에 못지않은 욕설을 퍼부어 주고는 싶었지만 그런 쪽에는 또 자신이 없는 그였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도발에 넘어가지 않으려 힘썼다. “음 안녕했냐? 전장에 너무 오래 나와서 돌아다니는 거 아냐? 지난 번 엘프 숲 때부터?” 아랫사람을 대하듯이 하대를 하는 아크. 나이야 조금 더 많았지만 친한 사이도 아닌 원수지간끼리의 대화치고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훗. 뭐 그동안 귀하 덕분에 한 나라의 수도도 불태워보고 적국의 고위급 귀족들도 생포하는 재미가 쏠쏠했소.” “음 하긴. 집에 가 봐야 마누라가 좋아하지도 않을텐데 일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어쩌겠냐? 언제 한 번 전장에 나간다고 한 다음에 불시에 집에 들어가 봐. 혹시 아냐? 마누라가 따른 놈들하고 놀아나고 있을지. 워낙 크기에 실망을 할 테니까. 아무리 크기가 다는 아니라지만 콧구멍 사이즈에나 맞는 걸 누가 좋아하겠냐?” “뭐, 뭣!” 안 그래도 공작부인인 아내의 스캔들 설에 시달리고 있던 젤리커 공작이 저 말에 발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아크는 결정타를 먹였다. “야 혹시 몰라. 어디서 봤는데 나이가 먹어가면 이전에 사랑했던 남편의 젊었을 적 모습 그대로인 아들한테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간혹 있다더라. 조심해야 할 거야.” “이, 이놈 가만두지 않겠다.” 젤리커는 그대로 말에서 뛰어내려 뛰쳐나가려 했다. 그런 그를 세비어가 급히 어깨를 잡았다. “참으십시오. 공작 각하. 지략의 기사의 술책에 빠져들면 안 됩니다.” “크으으으으윽!!!” 세비어가 죽자고 말리면 젤리커도 차마 그를 뿌리칠 수 없었다. 젤리커는 세비어의 충고에 화를 삭이며 다시금 본진으로 돌아갔다. 그 대신 이번에는 세비어가 나섰다.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아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30년 전 이후 처음입니다. 오랜만입니다.” “30년 전이라……누군데?” 세비어야 아크를 기억하고 있다지만 아크는 세비어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모르시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전 당신이 이전에 자기 스스로 붙이고 다니던 기사의 명호도 알고 있습니다.” “잘났다.” 공손하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세비어에게는 아크도 도발작전을 쓰기가 머뭇거려졌다. 저런 타입의 경우 무슨 말을 해도 웃으면서 말을 씹어버리기 때문이다 . 고작해야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게 고작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서로 적대적 관계로 만났는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내 마누라 속옷색깔 알고 싶냐?” “후후. 어린아이 속옷색깔 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대치한 상황에서 군대의 지휘관들끼리의 대화 치고는 뭔가 좀 이상했다. 물론 이 이상한 대화의 내역은 전부 아크가 이끌어 내는 것이었지만. “나 마누라 하나 아냐. 여럿이야.” “예, 예 잘 알았으니 그런 쪽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제가 묻고 싶은 건 어째서 길가에 이런 오물들과 본국 군사들의 시체를 쌓아두셨는지에 대해서입니다.” 세비어는 더 이상 삼천포로 빠져가는 이야기를 끊고 용건을 말했다. “시체치우기 귀찮아서.” “그것은 누가 봐도 인위적으로 놓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마 우리에게 아군의 시체를 보여주고 분노케 해서 요새로 부딪히는 것을 노리신 것 같은데 뒤에 있는 인분들을 보니 꼭 그런 것 만은 아닐 것 같더군요. 지략이 뛰어난 당신이 하신 일이시니 뭔가 다른 뜻이 있거나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어이. 세비언가 캐비언가 캐리언가 하는 아저씨. 전략을 함부로 적에게 얘기해주는 지휘관 봤어?” “물론 이야기 해 주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전쟁이 끝나고 매장한 시체를 파헤쳐서까지 한 것이라면 뭔가 큰 것을 노리고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음……그러고 보니 자네가 그때 그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하나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아크는 그 대답을 듣고서는 한참 말이 없었다. 턱을 괴고 손목에 찬 시계를 쳐다보았다가 산위를 살피는 등의 행동을 계속하더니 한참 후에서야 말했다. “이번에도 살아남아봐.” “……?” 콰과과과과광!!! 거대한 폭음에 후방을 바라본 세비어는 공중에 떠 있는 자그마한 소년과 그의 손에 들린 붉은 불덩이, 그리고 중간 대열이 흐트러진 것을 발견했다. “이, 이건!” “저 마법사를 노려라!” 공중에 떠 있는 쥬레이나란을 향해 화살 세례가 쏟아졌다. 궁에 마나를 실어 날릴 수 있는 궁술에 능한 기사들이 쏘는 오러가 실린 화살과 기타 강기들에 쥬레이나란은 급히 한 방을 더 날린 뒤 텔레포트를 쓰고 사라졌다. 중간 대열이 무너져 당황하는 새. 아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깐. 매복군을 쓸 필요 없이 저 녀석으로 한 방만 갈기면 되겠더라고.” “뭐……?” “그치만 저렇게 집중 견제를 받게 되니 어쩔 수 없군.” 아크는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보통 최후방에 대기하거나 요새에 대기하는 궁병들이 앞으로 나왔다. “굿바이.” 아크는 세비어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불화살이 쏟아짐과 동시에 좌우로 깔아놓은 인분들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곧 헬파이어의 여운으로 인하여 중간에서도 불이 붙기 시작하여 좌우로 놓여진 인분더미들에 팬크라프트 군을 좌우로 감쌌다. “이, 이건!” “미리 기름을 좀 뿌려두었지. 기름이 좀 부족해서 시체들은 중간 것부터 뿌렸지만. 워낙 인분 냄새와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해서 기름 냄새는 맡지도 못한 모양이지? 아니 조금 나긴 했지만 내 부하 중에 그런 냄새 없애는 방법 잘 아는 놈이 하나 있거든. 시체들은 자체적으로 기름이 나오니까 안 그래도 잘 탈 테고, 동반 화장한 번 당해보도록. 바람도 잘 불고 날씨도 아주 건조하니 좋구만. 그럼. 안녕히.” 아크는 말을 마친 뒤 기사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불길은 치솟아 올랐다. “어서 불을 꺼라!!” 시체와 인분으로 인하여 넓은 길을 좁은 길처럼 사용해서 밀려왔었던 팬크라프트 군은 좌우에서 치솟는 불길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특히 거의 반절 즈음의 앞 군사들은 중간마저 헬파이어로 인한 불길이 치솟고 있어 도망칠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삼방의 불. 그리고 전방에는 수만의 적병. 아니 최강 방어 보병대인 크루세이더 군단으로 꽉 막힌 스메론 요새 가는 길. 처음에는 이렇게 되면 별 수 없다. 전진 돌격을 외치던 젤리커는 지금 목이 터져라 불을 끄라고만 외치고 있었다. 차마 후퇴하라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크루세이더 군단의 강한 방패 방어력을 뚫을 수도 없는 사면초가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 밖에는 없었다. “이것이었군…….” 세비어는 불에 타 싸워보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 죽어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이번에도 지략의 기사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았다. 만약 길이 온전했으면 좌우에서 불길이 치솟아도 그 넓은 길 덕분에 불도 쉽게 붙지 않고 그나마도 금방 끌 수 있었다. 헬파이어 공격은 감수해야 했었을지 모르지만 대마법사는 기사 몇으로 충분히 대비를 세울 수 있었다. 이 정도 피해까지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인분과 시체를 깔아놓은 목적을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더러운 것을 피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심리를 이용하여 길을 좁게 해 병사들을 한 곳에 밀집하게 만들고 도망칠 곳도 없게 해 화공에 최적인 조건을 만듬과 동시에 도발책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고의적으로 길을 좁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적에게 심지 않았다. 거기에 나름대로 후각을 크게 자극하는 물질들로 기름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고, 또 미세한 냄새조차 맡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처음 길목에는 기름을 뿌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맨 처음의 그 아찔한 시체 썩는 냄새에 후각이 적응해 버렸고 마비된 후각은 에르디에 의해서 최대한 가려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가솔린 향마저 맡게 하지 못하게 했다. 아크의 머리에서 자발적으로 나왔다곤 생각할 수 없는 지략의 기사다운 계책이었다. 쥬레이나란이 인분을 말려주고 습기를 없애주는 등의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조금은 효과가 가감되었을 지도 모르고 에르디가 가솔린 냄새를 숨기지 않았더라면 들켰을 수도 있었지만 기름 부족으로 길의 도입부분에 배치한 시체들에게는 기름을 끼얹지 않은 것 덕분에 이미 후각이 마비될 대로 마비된 병사들은 후각도 마비되고, 안 그래도 후각을 어느 정도 옷가지 등으로 차단했기에 기름 냄새가 미세하게 난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헬파이어로 인해 중간이 끊기자 중군 이후의 군사들은 지휘관이 없어 더욱 더 당황하고 있었다. 거기에 쥬레이나란이 텔레포트 한 곳은 팬크라프트 진영의 맨 후미였고, 그는 거기서 땅바닥을 솟게 해 원천적으로 길을 봉쇄해 버렸다. 파이어 월을 깔아보기도 했지만 후방에는 마법사들이 어느 정도 있어서 마법사들이 불을 대충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후방에는 지휘관이 없었고, 땅바닥 덕분에 완전히 갇혀 버린 셈이 된 그들은 전방에서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불길에 필사적으로 솟은 흙의 장벽을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다. 서로 맞붙는 전투라면 함성소리와 창칼소리가 울리는 전장다운 소리가 나겠지만 일방적으로 불구덩이에 빠진 채 타 죽어 가는 이들에게는 고통에 가득 찬 비명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비규환 그 자체인 스메론 요새 북부대로 길. “후후 멋있지 않은가?” 아크는 어느새 요새의 가장 높은 북부대로가 잘 보이는 전망대에서 지휘부들과 함께 불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 따로 없었다. 어느 새 불길은 팬크라프트의 병사들뿐만 아니라 북부대로변의 옆 동산에까지 옮겨 붙어 훨훨 타오르고 있었다. 루드비안 군의 병사들도 대부분 요새의 성벽에 올라 타오르는 불길을 입이 벌어지는 것도 모른 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타 죽어가는 병사들의 비명소리는 하나의 지옥도를 연상시킨다. 특히 시력이 좋은 기사들의 경우에는 불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처절히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도 있어 더욱 불구경의 흥미가 더해진다. 예로부터 구경이라 하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을 제일로 치지 않던가? 그렇게 승자들은 여유있는 구경을 하는 반면 패자들은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가는 동료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통스레 죽어갔다. 단백질이 타는 냄새가 전역에 퍼졌다. 병사들은 쉬이들 불에 타 죽어가는 데에 반해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그래도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편이었다. 불이 붙지 않은 루드비안 군의 진형으로 달려들어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 크루세이더 군단을 이끄는 중도의 성기사들에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들 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불에 타들어가는 몸으로 크루세이더 군단에게 부딪혀 그들 주변에 불길을 일으키게 했지만 바람은 팬크라프트의 편이 아니었다. 중간열의 기사들의 경우 최대한 마나로 몸을 보호하고 불길 사이를 헤쳐나갔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불이라 오래 버티지 못하고 끝내는 일반 병사들과 비슷한 최후를 맞았다. 조금만 더 후방에 있었더라면 전력을 다하여 달릴 때 살아날 확률이 있었겠지만 맨 앞에 선 기사들이 불속의 병사들이 걸리적거리는 마당에 살아남을 확률은 차라리 전방의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에게 부딪히는 것이 오히려 나을 정도였다. 후방에는 몇몇 살아서 도망치는 이들이 나왔지만 후방에 실력자들이 없던 탓에, 쥬레이나란 혼자서 지키고 있는 것도 피하지 못하고 쓰러져 가는 이들이 속출했다. 그래도 10만 중에 도망치는 이들이라 쥬레이나란의 검에서 피해 도망치는 이들도 제법 많았다. 어차피 길에 불을 싸질러 놓아서 추격할 수도 없어, 아크는 그들에 대한 대비를 취하지 않았다. 쥬레이나란이 솟게 한 토벽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는 병사들. 그것을 기어오른다 해도 그 앞에 보이는 족족 살육을 자행하는 쥬레이나란이 있기는 하였지만. 바람을 타고 전방에서 불길이 다가오는 마당에 지체할 여력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전방에서 대부분 타 죽은 병사들에 비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허나 기름칠을 해놓지 않았던 시체들에게도 불이 붙고 불길이 밀려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미약한 힘이지만 아크도 엘프들에게 배웠던 바람의 정령술을 이용하여 실프를 통해 쥬레이나란이 소환해 낸 바람에 보태었다. 원래 이 날 바람의 풍향은 북부에서 내려오는 이들에게 화공을 가하기 좋은 남서풍의 바람이었다만 바람이 세차지는 않았다. 그것을 정령술로 조작하여 매우 큰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크크크 쥐새끼처럼 어딜 가느냐!” 살인에 맛들인 폭주 드래곤이 되어 버린 쥬레이나란은 강철의 의수(사실은 얼음칼날)을 다양한 방향으로 솟게 하여 생명을 찾아 벽을 타고 뛰어나온 병사들을 학살했다. 다만 워낙 그 수가 많았던지라 그도 차마 모두 죽이지는 못하고 몇몇은 정말 운 좋게 뛰쳐나갔다. 그렇지만 그도 오래 할 짓은 못 되었다. 무서운 기세를 뿜고 있는 두 명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쳇. 운 좋은 줄 알라고.” 쥬레이나란은 그만 검을 거둔 채 텔레포트를 이용하여 요새로 사라졌다. 병사들이면 몰라도 필사적일 그 두 명을 상대로는 맞서 싸울 자신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해일로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인간을 잡아먹으며 오는 불길을 보며 병사들은 앞에서 뭉그적거리는 동료들을 밀어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머나 기타 메이스류 무기가 있으면 저놈의 벽을 부숴서라도 탈출하는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후발대에는 그 흔한 망치하나 없이 활과 창, 그리고 그나마 쓸만한 삽(후발대에는 복구조 및 시체 처리반이 상당수 포함)으로 밑으로 구멍 파서 하나 둘 씩 나가는 놈들도 있긴 했으나 상당히 더딘 탈출임에는 이견이 없을 듯 했다. 그런데 마침 불길과 함께 온몸이 불덩이에 휩싸인 두 명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와 병사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덕에 그들 몸에 붙은 불이 옆으로 퍼지면서 아직 불길에서 무사하던 후발대 병사들마저 화마의 지옥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밟지 말라던 시체들까지 밟아가며 파이어 맨(소방수 아님)두 명을 피해 갈라서는 병사들. 그 사이 밑에 있던 아군의 시체들과 같이 깔리고 압사당하는 이가 속출했다. 그들의 손에는 보통 기사들도 만져보기 힘든 빛나는 명검들이 들려 있었는데, 마법 파이어 블레이드를 씌운 듯 검에는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달리는 속도도 무서운 그들은 얼마 안 가 후방의 토벽에까지 도착했다. 아직 안전한 후방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 그들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도 몇 있었지만 불만은 곧 사라졌다. 콰과광! 불과 섞여 잘 보이지는 않아도 하얀 빛무리가 미세한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벽은 박살났다. 물론 불쌍하게도 그때 마침 개구멍으로 지나가던 병사는 아군의 강기에 맞아 죽고 마는 가엾은 신세였지만. “전군 후퇴하라!!” 이미 10만 군세는 몇 천으로 줄어 있었지만 젤리커 공작은 그래도 나머지 병사들이나마 지휘하여 화염의 지옥을 빠져나갔다. 아비규환 상태에서 벗어나 그런 지휘관을 따라 준비성 있게 퇴각을 시작했다. 그래 봐야 뒤에서 밀려오는 불길에 꽁지 빠져라 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지만. “저건 그냥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팬크라프트의 소드 마스터를 둘이나 없앨 기회입니다.” “그건……인간사냥 하는데 맛들인 바보 꼬맹이한테 맡겨 두도록 하지.” “예?” 하지만 의문을 표시하던 지휘관도 곧 아크의 말을 알아들었다. 다시 공중으로 올라간 쥬레이나란이 마법으로 도주하는 병력들에게 폭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불길 속에서 몸을 보호하느라 과다한 마나를 쓴 앞의 두 사내에게 공격은 집중되었다. 그렇게 도망가는 이들도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보이지 않을 때 즈음. 총 지휘관 아크는 자신이 직접 북을 울리며 큰 목소리로 승전을 외쳤다. 그에 호응하여 병사들도 커다란 함성을 질러댔다. “축하드립니다. 사령관 각하.” “역시 지략의 기사라는 명성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명 전략이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이기는 것은 좋지만……다음부터 이런 작전은 조금 자제해 주십시오.” “켁. 냄새는 기분 안 좋지만 이기는 것은 괜찮군. 잘했다. 변태인간.” 각자 승리를 자축하는 분위기에서 부하들의 승전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지략의 기사 4대 대첩 중 하나인 스메론 요새 방어전은 그렇게 화려한 승리로 장식되었다. 또한 이 전쟁은 가장 치밀한 작전의 승리로 평가받는 대륙 전쟁사에 길이 남는 전투가 되었고, 아크 스스로가 혼자서 짜낸 작전으로 대승을 거둔 그의 능력이 실제로 있기는 있었음을 증명한 전투이기도 했다. 물론……후세에 길이길이 인분냄새 위장작전이라는 비아냥을 사기도 했지만. 실효면에서 있어서는 길이길이 남을 대첩인 것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루드비안 서부 평원 남부 전선에서 들려 온 전투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10만의 군세 중 단 5천 가량이 살아남고 그나마 300명이 넘게 딸려 갔던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은 전멸. 다행인 것은 팬크라프트의 두 소드 마스터는 살았으나, 불길에서 몸을 지키기 위해 과도한 마나를 소모하고 전력으로 도주한 탓에 젤리커 공작의 경우 몇 년은 꼬박 쉬어야 할 마나 고갈증세를 보였고, 프레슬더 후작의 경우에는 그 생명이 위독할 정도라 급히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에 비해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의 피해는 크루세이더 4기가 다치고, 루드비안의 궁병대 3십여 명 정도가 죽자사자 불을 뒤집어쓰고 달려든 팬크라프트의 동귀어진대와 함께 전사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대로변의 양 옆에 기름을 뿌리고 그 냄새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썩은 시체와 고약한 인분을 뿌려 기름이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거기에 길을 좁게 만드는 효과까지 있어 팬크라프트의 병사들을 한 군데에 모아 둔 뒤 사용한 화공작전. 지략의 기사 본인은 밤에 산책하다 인분더미를 비켜 가던 고양이를 보고 영감을 받은 거라고는 하지만 대륙의 모두는 그의 전략에 다시 한 번 감탄하기를 마지않았다. 그리고 그 승전은 서부 평원을 거의 점령하고 막 나머지 루드비안의 구역으로 진입하려던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의 군세가 방향을 바꾸어 후퇴하기 시작했음은 물론 거기에 여왕 구출이란 명목으로 군사를 재 진격시키려던 캘더린 원로회의 결정을 바꿔놓기에도 충분했다. 특히 재밌는 것은 대륙의 두 그랜드 마스터의 반응이었다. 들리는 풍문으로는 승자 측인 루벤드 그레드릭 대공은 골골하게 누워 있다가 승전 소식을 듣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찢어진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오히려 증세가 안 좋아졌다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이 전해졌고, 패자 측인 팬크라프트 대공의 경우 그렇게 좋아하던 수첩을 입으로 물어뜯을 정도로 광기에 찬 모습을 대공이 보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퍼져나왔다. 전 대륙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진 제국 간 전쟁에서의 대 승전보. 그것은 우라시드 산맥의 한 낡은 초야에까지 흘러들어갔다. “호오? 그게 정말인거냐?” “그렇다니깐! 정말.” 적색머리의 고혹적인 여인의 말을 들으며 흥미를 보이는 흑발의 남자. 결과적으로 자신이 키운 제자들의 전쟁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던 그는 뜻밖의 소식에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라지만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팬크라프트가 이렇게 고전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여차하면 은근히 마지막 제자의 손을 들어 주어 수세에 몰릴 막내 제자를 구해낼까도 생각해 봤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가르쳐 준 무예가 아닌 전 대륙에 자자하게 퍼진 명성인 그 ‘지략’ 으로. 무력으로는 이기지 못하지만 지력으로 마지막 제자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형이라 부르는 제자가 자신이 만들어 낸 과오라 할 수 있는 팬크라프트에게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흥미로웠다. 그 때. 청색 머리를 엉덩이까지 다시 기른 소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저기 그런데……이것도 어디서 베껴 온 것 아닐까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적색머리 여인과 흑발 도복 중년인은 각자 아하 그랬구나! 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음……하긴 지난 번 그 전투도 처음에는 되게 감탄했었지만 알고 보니 베낀 전략이었지. 그것도 책을 잘 안 읽는 나조차 알 정도로.” “그러네……뭐 도련님한테서 그런 게 나올 리가 없지. 내가 봐도 한숨이 나오는 둔재였는데.” “뭐 녀석이 하는 짓이 다 그렇죠. 뭐. 또 무슨 자기 머리에서 나온 것인 양 사기를 쳐서 지략인가 뭔가 하는 걸로 칭송받는 걸 즐기고 있겠죠.” “음.” 소녀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중년인. 그동안 어떻게 살았길래. 정작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진위여부를 의심당하는 아크였다. “제에기이라아알! 제발 한 번만 변해 주라? 응?” “미쳤냐!!! 다신 안 한다니깐!!” 쥬레이나란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면서 얼굴을 비벼대는 아크를 밀어내려 온갖 고생을 다 했다. “그래 나 미쳤다! 그러니까? 응?” “어휴 증말 이 맛 간 새끼. 이거……어쩐다냐?” 조금 누그러진 듯한 말투에 아크는 희망을 느꼈다. “그, 그럼 변해 줄 거야?” “즐.” 쥬레이나란은 더 이상 상대하기 피곤한지 가운데 손가락을 한 번 내민 뒤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도망쳤다. 그렇게 허무하게 쥬레이나란이 사라지자, 아크는 분노를 다른 이에게 돌렸다. “로리엔! 이 주욱이일노오오옴!!!” 광기에 어린 눈동자에서 파란 안광이 빛난다. 그리고 머리에서는 뼈아픈 기억이 더더욱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아크는 현재 쥬레이나란에게 애걸복걸할 만큼 굶주려 있었다. 주로 남자들만이 있는 전쟁터에서 욕구불만 해소 문제는 거의 모든 병사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지휘부는 달랐다. 평원 한 가운데에 진지를 구성하고 있어도 주변에서 여자 하나 구해오는 것쯤은 일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아크는 그러할 필요 없이 여유로웠다. 그에게는 합법 정당관계가 성립되는 마누라가 전쟁에 참전 중이었기에 언제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거였다. 아크는 실전경험을 키우기 위해 전장에 투입된 유카나를 로리엔에게 맡겼다. 실전경험도 부족하지만 유카나는 아직 검술도 많이 부족했는데, 아무래도 총 지휘관이라서 시간도 많이 안 나고, 무신이 전수해 준 검술이랍시고 휘두를 줄 밖에 몰랐던지라, 성검의 도움을 얻었으면서도 상당한 검술을 자랑하는 로리엔에게 교육을 맡겼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언급하지 않아도 비디오다만 그것도 모를 이들을 위해 대화내용을 조금만 공개한다. “이봐! 쟤랑 나는 서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해도 그러네!” “15세 이하와 관계를 갖는 것은 크나큰 죄악입니다.” “그거 주신이란 신께서 직접 얘기한 거냐? 전부 그냥 그 교황청인가 뭔가에서 성경에다가 도덕적으로 지켜야 할 것! 이라며 적어 둔 게 다잖아! 내가 신의 대리인인 성자라며? 그러니까 즉! 내 뜻은 신의 뜻이나 마찬가지라고. 신은 현재 나와 유카나와의 위대한 결합을 명하셨으니 좋은 말로 할 때 비켜.” “……정말 정화수도 100년 정도 하시고 싶으시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 그렇게 태클을 걸기에 아크도 별 수 없이 부하 하나를 시켜 여자 하나를 구해오도록 했다. 그러나 로리엔은 그것마저 훼방을 놓았다. “부부의 연을 맺지 않은 이들끼리의 혼외정사는 악습입니다.” “야……그래서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끼리 할려고 하는 것도 못하게 했잖아! 그리고 저기 다른 기사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가지고 이 지랄이야!” “저들과 성자님은 근본적으로 다르십니다. 성자님은 언제나 주신의 뜻에 어긋나는 법이 없으셔야 합니다.” “아 씨발 나 성자 안 해.” “신의 선택은 함부로 내팽개칠 수 없습니다.” “지랄! 그러면 둘 중 하나만 하라고 해! 부부관계냐? 아니면 나이에 맞는 관계냐? 그것 중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뭔데?” “유카나 양이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아니면 주신께서도 인정하시는 핸드 플레이를 하시던지요. 그럼 되지 않겠습니까?” “…….” 아크의 공공연한 또 다른 명호는 ‘색욕’ 그런 그에게 장기간의 단식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기라아알!!!” 확 때려죽이고는 싶은데 진짜로 죽일 수도 없으니 더욱 더 미칠 지경이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굶어야 하는 이 심정. “사령관 각하!” 그때 마침 크리샤 백작이 지휘관 막사 안으로 돌아왔다. 쥬레이나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다가 넘어진 상태에서 주먹을 꽉 다 쥐고서 살육의 맹세중이던 아크는 급히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았다. “뭔가?” “창녀 무리가 거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찌 하시렵니까?” 군대는 창녀들의 최대 시장이라 할 수 있는 곳. 하물며 전쟁터의 군대는 더더욱 여성에 대한 총수요가 높은 곳이다. 그렇기에 경제원리를 따져 보나, 사회학적 관점에서 따져 보나 군대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집창촌이 머물고, 여기저기 이동하는 군세에는 당연스럽게 방랑 창녀집단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군내 사기짐작 문제를 따져 봤을 때에 사령관으로서는 당연히 예스를 해야 하겠지만 지금의 아크는 달랐다. 그 빌어먹을 성자라는 직위 덕에 아마 창녀들을 받아들였다가는 로리엔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 뻔했다. “제기랄. 그냥 보내.” “하지만 병사들이 많이 굶주려 있습니다.” “성직자들 가서 덮치라고 해.” “가당치 않으십니다. 만약 병사들이 중도군의 성직자들에게 손을 댄다면 중도군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그리하면 전쟁에서의 단합이 잘 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제기랄! 그럼 네가 그 계집애 같은 자식한테 다섯 시간 동안 잔소리 한 번 들어볼래? 으그그그그극! 엘렉 백작에게 부탁해서 내 영지의 그것들을 가지고 오라고 전해라. 병사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실제 여자보다는 안주거리만 대 주고 혼자서들 하도록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몸을 돌려서 나가는 크리샤 백작. 그 때 아크는 뭔가 하나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아! 잠깐!” “왜 그러십니까? 사령관 각하.” “에르디를 불러라, 그리고 지금 당장 카시아스 백작에게 5천의 병사를 주어 서부 평원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젊은 여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전하고, 레이필드 공작에게 연락을 넣어 창녀들을 소집하여 이리로 보내라고 해라.” “여자들은 어디다 쓰려고 그러십니까?” “다 이 형이 생각이 있고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 “예 알겠습니다.” 크리샤 백작이 나가고 나자, 아크는 입가에 걸리는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아~ 나 진짜 천재였나 보네. 도대체 이런 작전들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자화자찬. 누가 보면 잘난 척, 미친놈 소리 나올테지만 지휘관 사령부에는 아크 외에는 없었다. 현재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은 스메론 요새에서 나와, 바이에른 요새가 있었던 터 즈음에 진을 치고 대기 중인 팬크라프트 스턴컬트 공작군에 거의 근접해 와 있었다. 그들을 꺾고 헤닌 성을 되찾는다면 이제 애초의 목적이었던 수성전만 감행한다고 해도 서부 평원의 반절을 지킬 수 있었다. 더구나 중도의 칸트 앵걸이 부대를 이끌고 팬크라프트와 카스피 왕국을 잇는 가도를 공격중이라 더 이상의 팬크라프트 군의 지원도 없었고 해상지원군은 이미 루드비안의 칸딘스키 공작군에 의해 괴멸된 상태였기에 약 20여만 가량의 두 군세로 나뉜 팬크라프트 군만 격파한다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턴컬트 공작군을 별 피해 없이 격퇴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팬크라프트는 현재 스턴컬트 공작군을 통해 아크가 이끄는 루드비안의 마지막 정예부대를 요격하고 난 다음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이 나머지 부대를 이끌고 직접 진군을 시도할 예정이었다. 아크가 이끄는 군대가 격파당한다면 나머지 부대는 레이필드 공작이 이끄는 어중이떠중이 귀족연합군과 정예이긴 하지만 수가 많지 않은 칸딘스키 공작군 밖에 남지 않게 되기에 최정예에 기사들을 대량 보유한 렌도로스 대공의 군세를 루드비안으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황제 섭정 대리 황녀 세레스티나는 되도록이면 지략의 기사 군세가 수성을 통한 버티기 작전을 펼쳐 주길 원했지만 8만이 넘는 군사가 주둔할 만한 견고한 성곽을 지닌 성은 이미 다 넘어가거나 작살난 뒤였다. 설사 스턴컬트 어스틴의 군대를 박살낸다고 하더라도 정면 대결 등을 통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 이후에 공격해 올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을 막을 길이 전무해지는 이 상황에서는 지난 번 인분대첩과 같이 소위 ‘대박작전’ 이 필요한 때였다. 산 넘어 산이라고 고민하던 아크였지만 별 고민 없이 이번에는 꽤나 괜찮은 작전을 떠올려 낼 수 있었다. 인분대첩 때와는 다르게 완전 전멸을 시킬 수 있는 전략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작전이었다. “좋군! 이길 수 있어 충분히! 그치만……지휘관 사기부터 올려야 겠다. 제기랄.” 의욕이 마구 솟아오르다가 갑자기 곤두박질쳤다. 생과부 신세가 너무나도 한심해졌다. “에휴우우우~~~” 땅이 꺼져라 한숨이 나왔다. 그 때 아크는 자신의 한숨에 뭔가가 바람에 날려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이건……?” 하얀 색의 끈. 아니 하얀 색 머리카락으로 매우 긴 것을 보아하니 로리엔의 머리카락이 확실했다. “머리카락 하고는……빡빡 밀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 따위로 치렁치렁. 에이! 여자가 잔소리 해 주면 듣기에라도 좋지. 망할 자식.” 머리카락. 특히 로리엔의 머리카락은 상당히 여러 곳에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지휘관 막사 내에서 아크에게 잔소리를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주로 여기서 많이 머리카락이 빠진 듯 했다. “음…….” 아크의 입가에는 사악한 미소가 걸쳐졌다. 그는 주머니 춤에서 에르디 표 양산형 드래곤 음약을 꺼냈다. 늦은 밤.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 중도 성직자들의 숙소. “꺄앗!” 여성의 비명소리와 함께 한 그림자가 막사를 뛰쳐나와 무서운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성직자들을 지키던 크루세이더들이 급히 무장을 챙겨 입고(사실 그들은 잘때도 쉽게 몸에서 갑옷을 벗지 않는다 한다)달려 나왔다. 보통 군대라면 이럴 때에는 횃불들이 켜지겠지만 성직자들이 있는 곳이다 보니 즉시 라이팅 마법으로 주변이 환해졌다. “쳇 이미 도망쳤군.” 크루세이더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침입자에 대해서 포기할 때, 소리의 진원지였던 막사에서는 커다란 소동이 벌어졌다. “네인 자매님……!” “자매님이…….” “무슨 일입니까?” 보고를 받고 곧바로 출동한 로리엔. 그는 막사 안에서 온통 하얀 색 액체가 철벅이 된 채 처녀성 파괴의 증거인 하혈을 하고 있는 여신관을 볼 수 있었다. “강간인가……?” 그러나 강제로 당했다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눈은 반쯤 풀려 있었고 반항한 흔적이나 기타 다른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신관 쪽에서 쾌락을 완전히 풀지 못했는지, 그녀는 남자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고 로리엔에게로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입에서는 주위의 신관들과 크루세이더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왔다. “로리엔 님……제발 아까처럼 더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 “예에?”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네인 자매님!” 눈빛이 풀린 것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한 옆의 수녀들이 네인이라는 수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러면서 네인 수녀의 손에서는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밤이었지만 신의 빛으로 낮처럼 밝았기에 주변의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렸다. 하얀 색의 길고 긴 머리카락 여러 가닥이었다. “로리엔 님. 제발. 소녀는 아직 느끼지 못했어요. 더, 더 저를 괴롭혀 주세요. 네?” 그것들이 결정타였다. 저렇게 길고 흰 머리카락은 로리엔 외에는 없다시피했다. 수녀들 중에 두 명인가가 로리엔과 같은 은발의 긴 머리를 길렀지만 척 보았을 때 남자에게 당한 흔적이 아니던가? “로, 로리엔 님…….” “저, 저, 저 아닙니다!” 로리엔도 황당했는지 여자라고 놀릴 때 외에는 무너지지 않던 포커페이스가 사라지고 당황한 표정으로 변명을 해 보려 했으나 계속해서 달라붙으면서 로리엔의 아랫도리로 파고 드는 네인 수녀 덕에 변명도 먹히지 않았다. “사악한 새끼.” 쥬레이나란이 으르렁거렸다. “뭐가?” “목적이 그거였구만. 왜 그딴 걸 저 암컷 같은 자식 막사에다 두고 오라고 했는지. 허 참 나. 너 성자 맞냐?” “맞을걸. 근데 하기는 싫어.” “저 자식만 불쌍하게 됐군. 쯧쯔쯔.” 쥬레이나란은 석고대죄를 한 채 결백을 주장하는 로리엔을 보며 혀를 찼다. 막사에서 나온 음약 덕분에 완벽한 용의자로 몰려 버린 로리엔. 한 밤의 수녀 성추행 사건. 블레싱 소드를 가진 성자에게 붙어서는 안 될 치욕이자 오점이었다. 아크는 적절할 때에 난입하여 그 막사 안의 수녀와 크루세이더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딴에는 로리엔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 낭패한 꼬락서니를 보고 싶어서였다. 그런 다음 증거를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다며 로리엔의 막사를 뒤지게 했다. 물론 그곳에는 아크가 미리 쥬레이나란을 시켜 숨겨 둔 음약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군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아크는 철저히 함구령을 내렸다. 뭐 그래도 로리엔이 평소에 워낙 착하게 살아서인지 그 광경을 본 수녀와 크루세이더들은 이야기들을 죽어도 입 밖에 내지 않겠다고 다짐해 주었다. 물론 로리엔 경도 정말 남자이긴 했다라는 소문이 퍼지긴 했지만. 사실 신관들끼리의 이런 썸씽은 공공연히 인정되는 비밀 중 하나였다. 주신교는 그다지 성에 대해서 금기적이고 감추는 곳이 아니었다. 특히 신관들의 경우는 서로의 결혼을 장려하기도 했다. 그래야 주신을 따르는 인간 인구가 많아지고 그럴 수록 주신은 더욱 더 암흑신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신관과 일반인의 결합은 엄격히 금지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사건을 무마시키긴 했어도 원칙주의자 로리엔에게는 결코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그는 사령관 막사 앞에서 석고대죄를 한 채 결백 주장 및 이런 시련을 주신 신에게 더욱 더 열심히 기도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크는 배를 잡고 뒹굴었다. “일석이조였어. 크크크.” 다들 짐작했겠지만 그때의 침입자는 당연 아크였다. 그는 음약으로서 수녀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든 뒤 손에다가는 로리엔의 머리카락을 쥐어 주고 그녀를 탐했다. 물론 복면을 한 채 자신의 신분을 로리엔이라고 속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소리 변조는 불가능 했지만 로리엔에게서 나오는 그 신성력을 믿은 수녀는 아크의 의도대로 아크를 로리엔으로 믿었다. “자 한 잔 받아.” “헤. 뭐 나도 저 자식 하는 짓이 가히 마음에는 안 들었는데 잘 됐군. 불쌍하긴 해도 말이야.” 욕정해소와 정적제거. 두 가지 목표를 하나로 이룬 아크는 승리의 축배를 쥬레이나란과 함께 했다. 그렇게 아크는 음모와 권모술수에도 능해져가고 있었다. 아크와 쥬레이나란, 그리고 에르디는 헤닌 성 부근의 고지대에 올라 있었다.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은 헤닌 성 부근에서 전면 철수했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다. 원래는 다른 물을 보급할 만한 강가로 옮기려 했으나, 쥬레이나란이 만류했다. ‘바보냐? 내가 있는데 그렇게 멀리 옮길 필요가 어딨어? 수맥을 알아서 이쪽으로 끌고 올 테니 기다려.’ 오랜만에 협조적인 모습에 아크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은 새로운 물길을 텄고 현재 헤닌 성의 주요 수자원 보급줄인 르네오 강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았다. 아크 일행이 이 고지대에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풀어라.” “예 주군.” 르네오 강의 상류지점. 에르디는 그 맑은 물에 병에 있던 액체를 모두 퍼부었고, 그 다음으로는 알약들을 모두 꺼내 알맞게 빻은 뒤 가루로 만들어 그 역시 물에다 풀었다. “이 정도면 양이 꽤 되는 거냐?” “강이 넓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위험하지만 성내의 우물에도 푸는 것이 효과를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수량은 확실해.” “예 있긴 있습니다. 가스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있어서 조금 문제이긴 한데 그건 통째로 물에다 던져 버리면 되겠지요.” “좋아 이제 철수하자.” 아크들은 은밀하게 행동하며 산지에서 뛰어내렸다. 둘은 고개를 저었다. “못 합니다.” “나도 못해. 개쉑아.” 부들부들부들 “사령관의 명령이라는 데두! 이것들이!” “저는 동맹군의 사령관입니다.” “즐.” 아크가 보여준 현대의 문명을 많이 접했던 쥬레이나란은 자연스럽게 무적초딩체를 사용하여 아크를 압박했다. 찰칵! 아크는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둘에게 겨누었다. “명령은 복종하라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즉결처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가라.” “못 갑니다.” “안 간데두! 그것만큼은 안 한다고 했잖아!” 후우~ 아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작전에 가장 큰 핵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두 명이 저렇게 작전참가를 완강히 반대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총사령관이라는 직함도 로리엔과 쥬레이나란에게는 쉬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아크는 두 손을 들었다. “별 수 없군. 좋아 너희들은 빠지고 크리샤 백작을 불러와, 나와 나머지 지휘부가 그 역할을 맡겠다.” “흠 뭐 그러겠다면야.” 쥬레이나란과 로리엔은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얼마 안 가 다시 작전회의실로 돌아온 아크와 기타 지휘부의 기사들. 그들을 보자마자, 쥬레이나란과 로리엔의 반응은 대번에 달라졌다. “푸웁! 에, 에라! 차라리 내가 할께! 제기랄!” “……가겠습니다.” 아크를 비롯한 지휘부 기사들은 모두 갑옷을 벗은 채 짙은 화장에 여성용 드레스를 입고서 가슴에는 거대한 뽕을 집어넣은 채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나마 아크는 마스터라 근육도 많이 없고 좀 상판이 받쳐 주다 보니 구역질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남자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고, 기타 기사들은 콧수염도 밀지 않은 채 여장을 한데다가 근육질의 몸매가 드러나 그 행색이라 함이 실로 보는 이의 구토를 불러일으켰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걸 기어이 보려고 그렇게 버텼냐? 어이 들어와!” 곧이어 기사들의 여장 코디를 맡았던 여성들이 드레스를 들고 들어왔다. 쥬레이나란은 곧바로 여성으로(얼굴만) 변했지만 로리엔은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직접 코디를 해야만 했다. “크윽!” 우락부락한 기사들의 그 볼썽사나운 모습에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로리엔은 여장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여전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얼마나 외모 덕분에 놀림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완벽히 여자로 불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못마땅한 모습에 아크가 말했다. “로리엔.” “뭡니까?” 그 때문인지 로리엔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져 있었다. 성자님이라고 아크를 부를 때마다 붙이던 수식어 역시 붙이지 않았다. “한 번의 여장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너의 부하들의 상당수가 죽음을 면치 못할 거야. 만약 네가 죽어 수만의 군사를 살릴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하겠냐?” “제가 희생할 겁니다.”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단순히 화장을 하고 여자 행세를 하는 것 뭐가 더 쉬운가?” “……그렇군요. 하지만 목숨을 내놓는 것이 더 하기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증이구만. 하긴 쥬레이나란처럼 별 이유도 없이 그저 암컷이 싫어서가 아니고 워낙 저것에 콤플렉스가 심해서겠지.’ 우여곡절 끝에 여장을 마친 로리엔, 머리에는 그의 하얀 백발에 잘 어울리도록 보랏빛의 꽃을 하나 꽂고 에메랄드 머리장식을 해 놓은 등. 나름대로 신경을 쓴 여장이 끝나자, 곳곳에서 기사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물론 그 탄성 한 마디마다 로리엔의 주름살은 늘어났지만 피부가 찡그려진 것도 별 흠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그였다. “하……참 아깝다.” 아크는 입맛을 다셨다. 투박한 갑옷만 입고 다녀도 가끔 여자로 착각할 만큼 엄청난 미모인데 저렇게 여자로 꾸며놓으니 왠지 모를 헨타이 맨의 기질이 발동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소문으로 익히 듣고 자주 봐 왔지만……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로리엔 경.” “저한테는 칭찬이 아니니 그렇게 얘기하시지 말아주십시오.” 은근한 살기가 담긴 그 대사에 카시아스 백작은 입을 다물었다. “자자, 그럼 이제 됐군. 만약 이번에도 대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그 1등 공신은 여기 이 로리엔 경이 될 것이야! 그럼 모두 전투 준비를 갖추라 이른 뒤 카시아스 백작은 병사 몇몇을 데리고 헤닌 성으로 먼저 가도록.”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거시기 잘못 놀린 놈은 거시기 때문에 망한다 라는 먼 훗날의 고사가 탄생할 대 전투가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로군.” 빛나는 대머리의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은 안 그래도 없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모습을 보며 왜소한 체구의 커트머리 청년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역시 남자들이란.” 겉모습은 남자였지만 목소리는 의외로 새침했다. “케레스 그렇게 말할 때가 아니네.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하긴 그렇죠. 어제는 어떤 멍청이가 엘시노아 기사단의 여기사를 덮치려다가 죽기까지 했으니 말이죠.” 팬크라프트의 여섯 소드 마스터 중 이 군세를 이끄는 두 명의 마스터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과 최초의 여성 후작 케레스 카르넨. 그들은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하여 떨어지는 군사들의 사기에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젤리커 공작과 세비어 프레슬더가 이끄는 병력이 괴멸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5천여의 병력이 이 부대에 합류하면서부터 퍼진 지략의 기사에 대한 공포에 가까울 정도의 소문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기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갑작스런 군부대 내의 성욕 문제로 인하여 동성끼리의 관계나, 심지어 고귀한 신분으로 전쟁에 참가한 케레스 카르넨의 여성 기사 부대에까지 병사들이 찝적거리는 등의 사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선봉에 서서 루드비안 서부 평원을 공격하던 스턴컬트 공작의 부대는 이 외지 땅에서 약 1년 가량을 주둔해왔다. 맨 처음에는 여러 루드비안의 마을과 도시에서 약탈로 크게 문제점이 되지는 않았다지만 지략의 기사가 군대를 이끌고 나온 뒤부터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또한 더 이상 진격이 불가능해 짐으로서 더 이상의 약탈을 통한 병사들의 성욕 해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요새 들어 너무 갑작스럽게 이런 일련의 사태들이 터지니 지휘부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지휘부들도 그 끓어오르는 성적 욕구로 인하여 몇몇 작위를 지닌 고위급 기사들이 승진 등을 미끼로 여기사들이 모인 엘시노아 기사단에를 찝적거리는 등. 싸움을 하기도 전에 군 내부의 기강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또한 말들도 발정기를 맞았는지 콧김을 뿜어대며 암말을 찾아 난리를 피워 대는 등 헤닌 성 내의 팬크라프트 군 전체는 성문제로 인하여 크나큰 위기를 맞고 있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들이 터진 거지?” “……혹시 지략의 기사 밑에 있다는 그 최음술사의 농간이 아닐지 모르겠군요.” 캘더린 왕성 습격 사건 이후로 에르디의 명성도 상당히 드높아졌다. 지략의 기사의 가신이자, 금세기 최고의 제약사 혹은 최음술사로 불리고 있었다. 그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루드비안 카프레이 영지 산 최고의 음약은 드래곤이나 알고 있을 법한 난해한 배합으로 인하여 혹시 그가 드래곤이 아니냐는 억지스러운 추측까지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는 쳐도 이 사태의 해결방법이란 그 방법뿐이지. 않은가?” “그래서 설마 우리 기사단의 여기사들을 전부 창녀로 만들 생각은 아니시겠죠. 공작?” “으으음.” 아무래도 그런 극단의 수라도 고려해 본 듯 공작은 있지도 않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만약 그런 극단의 수를 사용한다고 해 봐야 근본적 원인이 물에다 푼 음약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무서운 전염병과도 같은 음약효과였다. 뾰족한 수 없이 고뇌하던 공작. 그때 아주 활기차고 신이 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공작 각하! 떠돌이 창녀들이 찾아와 거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공작의 귀도 번쩍 뜨였다. 사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인 여성들이 공급되었다는 소리가 아니던가? “뭐? 그게 정말인가?” “예! 그 수만도 몇 백이나 됩니다.” “잘 됐군요. 당장 거래를 하도록 하세요.” 마치 마른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 듯한 소식이었다. 공작은 별 의심 없이 그녀들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불러 올 것이란 것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여기있소.” “오호! 역시 통이 크시구랴!” 산적두목으로 변장한 카시아스 백작은 팬크라프트 군으로부터 돈을 받고는 매우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간 머물면서 수많은 남성들을 상대하게 된 창녀들. 그렇지만 국가에게서 상당한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받고 온 경험 풍부한 프로들이었던지라 한 번에 여럿 상대를 마다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모를 의심에 대비하여 카시아스 백작과 몇몇 따라온 병사들은 모두 뒷골목의 깡패같은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마치 서부 평원을 주름잡는 모 폭력조직에서 큰 돈을 벌기 위해 여자들을 동원해 온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 참! 여기 대장님 좀 소개해 주시오!” 여자들을 5일간 임대해 주는 조건으로 큰 돈을 받아 챙긴 카시아스는 본격적인 작전을 위해 팬크라프트 군의 대장을 찾았다. “사령관님은 왜 찾으시오?” “그런 분들은 저런 뒷골목 싸구려 창녀들이나 밥 좀 얻어먹자고 나선 천것의 여자들을 상대하지 않는 법. 나가 점령당한 서부 평원 쪽의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귀부인들 몇 명을 데리고 왔소. 사령관께 좀 안내해 주시오.” “음. 그렇소? 어디 그럼 그 귀부인들 얼굴 한 번 봅시다.” 창녀들을 인솔해 온 건달집단에 웬 마차가 하나 있나 했던 부관은 카시아스 백작에게 마차를 열게 했다. “거 내리소!” 죽음의 섬에서 온갖 하류인생들과 어울렸던 카시아스 백작에게서는 천한 쌍것들의 말투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어 팬크라프트 군의 의심을 덜고 있었다. 곧이어 마차 안에서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가 좀 크고 면사로 얼굴이 가려지긴 했지만 면사 사이로만 힐끔힐끔 보이는 모습은 마치 천사가 강림한 듯한 초췌하고 고귀한 미모였다. 그 옆으로 따라 나온 여자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회색에 가까운 은발을 기른 고혹적인 미소녀. 옆의 여인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미모. 싸늘해 보이는 표정이 조금은 문제였지만 아담한 체구가 남성들로 하여금 욕정을 불러 일으켰다. “어떻소?” 입이 벌어져 침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부관은 소리쳤다. “다, 당장 공작 각하를 불러 오겠소!” 사실 자기한테 넘기는 것은 어떻냐고 해 볼 참이었지만 부관은 저 정도 미모의 여성들을 자신의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사기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됐습니다. 로리엔 경.” 부관이 공작을 부르러 가자, 카시아스는 나지막하게 로리엔에게 속삭였다. “이제 알아서 스턴컬트 공작을 처리하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디서든 불러 낼 수 있는 신검을 이용하신다면 쉬울 겁니다.” “……알겠습니다.” “엘렉 백작께서는 요인 암살 이후에 성문을 열고 곧바로 텔레포트로 본진에 신호를 보내주십시오.” “알았어.” 그렇게 남몰래 작당을 하는 사이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과 지휘부들이 창녀들을 데리고 온 건달들이 머무는 곳으로 몸소 찾아왔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두 명의 좀처럼 보기 드문 미녀들을 보고서는 할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음약을 푼물을 마신 이상 그들도 최음의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차마 고위직이라는 것이 싸구려 창녀들을 범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게 했는데 정말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미모에 신분을 지닌 여성들에게 라면은 그 신분 때문에 참을 필요도 없었다. 어스틴 공작은 별 말도 없이 대번에 물었다. “얼마면 되겠는가?” “구매 기간에 따라 틀리겠지만 대략 이 정도는 될 겁니다.” “당장 가져다주어라!” ‘추잡해 죽겠군. 한 나라의 공작이며 일군의 사령관이라는 자가 계집을 보고 저리 허둥대는 꼴이라니.’ 호색함으로 따지면 아크에 맞먹는다고 알려진 어스틴 공작이니 만큼 효과는 더욱 컸다. “그럼 먼저 데려 가도 되겠는가?” “아 예 물론입니다.” “가자.” 공작은 가장 미모가 뛰어나 보이는 로리엔의 손을 잡아끌었다. 로리엔은 일부러 손이 아닌 손목을 대 주었다. 혹시라도 손을 잡았다가는 평생 검을 잡고 살아온 무인들이니 만큼 서로간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아무리 로리엔이 이쁘다 한들 쥬레이나란이 맘먹고 변신하면 그 외양을 따라올 이는 인간 중에는 없었다. 하지만 암습을 가해야 하는데 무기를 숨기기가 가장 좋고 실력도 뛰어난 로리엔이 튀어 보이게 하기 위해서 쥬레이나란은 일부러 로리엔 보다는 조금 몸매도 안 좋고 얼굴도 약간은 별로인 여성으로 변한 채 싸늘한 표정으로 은근히 드래곤의 살기를 풍겼다. 덕분에 암살성공률이 낮은 쥬레이나란은 저절로 다른 이에게 배치되었다. 전형적인 대머리 노인네인 스턴컬트 어스틴 공작의 그 메마른 손길에 닿아서 끌려가던 로리엔은 정말 그 섬뜩한 감촉에 당장 주신의 성검을 소환하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는 주변에 적군의 병사들이 널려 있어 참았다. ‘윽……정말 역겹군.’ 한몸으로 받는 저 엄청난 관심과 음흉한 눈빛. 어렸을 적 옷이 없어 수녀인 누나의 옷을 빌려 입고 나왔을 때 받았던 그런 끔찍한 기억이 떠오른 로리엔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로리엔을 데려가던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후. 처음인거냐? 너무 걱정 말거라. 내가 너 같은 아이들은 많이 다뤄 봤느니라. 최대한 안 아프게 해 주마.” ‘변태 영감.’ 어찌 보면 할아버지의 손녀를 보는 그런 인자한 모습처럼 보일지도 몰랐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변태 노인네 외의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지휘부가 묵는 건물 안으로 로리엔을 데려간 스턴컬트는 로리엔이 쓰고 있는 면사를 걷었다. “오옷!”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마스터의 뛰어난 시각으로 하얀 면사로 가려진 속의 얼굴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보니 더더욱 아름다웠다. 거기에 은은히 흘러나오는 고귀한 기품. 정말로 하늘에서 천사가 강림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아리따움이었다. “아름답구나.” ‘당신한테 그 소리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만……제길 왜 못 알아보는 거야! 도대체! 일부러 마나까지 개방했는데.’ 로리엔의 속에서는 그가 평생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욕설들이 마구 떠올랐다. 아크를 만나기 이전에 라면 몰라서라도 그렇게 욕설이 나오지 않았을 테지만 아크와 함께 다니다 보니 저절로 옮았다. 공작은 로리엔이 걸친 새하얀 드레스의 어깨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공작이 생명을 만드는 아주 존귀한 작업을 하려는 것을 배려해 병사들의 기척은 없었다. ‘지금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그것조차 못했다. 가슴이 노출될 경우. 그 안에 집어넣은 빵이 드러나 곧바로 남자라는 것이 들통나지 않겠는가? 로리엔은 속으로 주신의 성검을 호출하는 문구를 외웠다. 본디 아크같은 경우에는 그 검을 지칭하는 명사인 ‘블레싱 소드!’ 라는 간편한 대사 만으로 불러낼 수 있었지만 주신의 신물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뜻에서 그는 제법 긴 주기도문으로 주신의 성검을 불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로리엔이 차고 있던 가슴가리개가 해제되고 그 안에서는 두 개의 빵이 굴러떨어졌다. ‘이런! 벌써?’ 로리엔은 크게 당황했다. 아직 주기도문을 다 외워 성검을 불러내지도 못했는데 남자라는 것을 들키고 만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남자였느냐? 뭐 상관없다.” 조금은 아쉬운 티가 나는 듯한 말투였으나,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의 공작. ‘미치겠군. 이 변태 영감. 주신께서 금지하신 동성과의 관계를 하려 하다니!’ 마침 주기도문은 다 끝나가고 있었다. 로리엔은 새삼 이 주기도문을 짧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른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그리고 드레스를 벗기는 데에 여념이 없던 스턴컬트의 목을 별 망설임 없이 그어 버렸다. 도리안 루네아와 함께 루티안 최고의 무인으로 칭송받으며 수많은 전공을 세우다. 팬크라프트로 전향해 제국 3인방과 함께 팬크라프트의 최고 전성기를 열었던 노장 스턴컬트의 정말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빛이 반사되었다. “……음!” 원거리에서 망원경으로 헤닌 성의 동태를 살피던 아크는 쥬레이나란이 보낸 신호를 포착했다. 완벽한 성공의 신호였다. “적군엔 지휘관이 없다! 전군 돌격이다!” 아크는 햇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찬란한 금빛을 내뿜는 블레싱 소드를 전방의 성에 겨누었다. 한 명의 소드 마스터를 죽이고, 쥬레이나란에게는 지휘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부관을 없애게 했다. 또한 잠입시킨 카시아스 백작 및 몇 십의 병사들에게는 성 안 병사들이 여자들을 탐하느라 정신없을 사이 성문을 파괴시켜 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척후병들은 쥬레이나란이 하나도 남김없이 처리했고, 로리엔은 스턴컬트를 죽인 뒤 드레스를 다시 챙겨 입고서 스턴컬트의 머리를 상자 안에 넣고서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의 그런 여장한 모습에 찝적거리는 지휘부의 기사들을 하나 씩 조용히 처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지휘부의 붕괴와, 성적 욕구 해소로 정신이 없을 팬크라프트 군을 박살내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각종 공성 병기를 내세우고 그 옆을 방어력 최강 보병 부대 크루세이더로 채운 부대가 헤닌 성을 향하여 돌격을 감행했다. 지축이 울리고, 먼지가 일었다. 일부러 함성은 지르게 하지 않았지만 몇몇 병사들은 급히 뛰어나와 성벽에서 화살을 준비하는 등의 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들뿐이었다. 병사들은 지금 대부분 아랫도리를 풀고서 수 십 대 1의 플레이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들을 총 지휘할 대장은 이미 죽고 없었다. 여기사 케레스 카르넨이 있다고는 허나, 그녀는 본디 무인의 성향이 강하여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었고 은근한 차별이 있는 팬크라프트 군 남자 기사들을 완벽히 휘어잡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직 숙소에서 이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여자들을 건드리지 마라! 비록 창녀들이라 하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위험한 전장에 나온 여성들이다. 알았느냐!” 기병대들은 이미 쥬레이나란이 열어 둔 성문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별 다른 저항 없이 나머지 병사들도 성문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뒤늦게서야 루드비안 군의 공격 사실을 안 병사들은 바지를 추스르고 무기를 찾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이었다. 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총 지휘관 스턴컬트 공작을 찾았다. 그러나 그의 처소에는 머리는 오간데 없는 시체 한 구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부사령관실을 찾아가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부사령관의 시체는 목이 잘리지는 않았지만 얼음상이 된 채 빳빳이 선 채 죽어 있어 깔끔하게 목이 잘린 것보다 더욱 섬뜩했다. 케레스 카르넨은 뒤늦게 군사를 통솔하려 했으나 갑작스레 나타난 중도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에 의해 저지당하고 그와 일기토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 신검의 도움을 받는 로리엔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는 몸을 돌려 달아나야만 했다. 아크는 오랜만에 뒤에서 통솔하는 것이 아닌 전장 한 가운데에 난입하여 아직도 아랫도리를 추스르지 못하고 고함만 질러대고 있는 팬크라프트의 군사들을 학살했다. 최음약의 효과 덕분인지 어쩌다 무기를 쥐었어도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쓰러져갔다. 수뇌부가 없는 군대의 선택은 맞서 싸우기보다는 도망이었다. 몇몇 기사들이 죽어라고 외쳐대었지만 그들은 루드비안 군의 집요한 일점사에 살아남지 못하여 그나마 있는 하위지휘체계마저 흐트려 지는 결과를 낳았다. 솔직히 싸우겠다고 나섰으면 성 안에서의 숫자는 우월한 팬크라프트 군이 최소한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에게 제법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을 잃은 부대는 아무리 잘 훈련받았다 하더라도 오합지졸의 레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쥬레이나란과 로리엔은 각자 혼자였지만 여장을 하고 남자를 꼬셔야 했다는 울분이라도 풀듯이 소규모로 덤벼드는 적들을 철저히 분쇄했다. 쥬레이나란 같은 경우는 강철의 팔을 무슨 전기톱과 분쇄기 등으로 바꾸어 병사들을 요리했는데, 정말로 사람이 인육국수가 되어 나오는 잔혹한 장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성 안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이 아닌 평원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으로 변모했다. 모두가 도망나가는 것을 추격하며 섬멸하는 가장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그런 전투가 된 것이다. 후사가들은 대륙 전쟁을 종결시킨 마지막 전투보다 이 헤닌 성 전투가 결과적으로 팬크라프트를 패배시킨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또한 인분대첩이나 데일런스 성 전투와 같은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이긴 것은 아니지만 이 전투가 지략의 기사의 변태적 성향을 가장 잘 반영한 그런 전투였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또다시 대륙은 루드비안의 대승에 경악했다. 국지적인 전투에서 이겨가며 결과적으로 승기를 잡는 것이 아닌 단 한 번의 전투로 적에게 전멸에 가까운 엄청난 피해를 주는 대승이 벌써 두 번이나 나온 것이다. 최음약으로 적들의 식수를 오염시킨 뒤 각지에서 끌어 모은 여자들을 적진에 투입하면서 미모로 이름이 높은 중도의 성기사를 여장시켜 지휘관을 암살. 통솔력을 낮춘 뒤, 성의 방어를 낮추고 음약과 여자들을 통해 병사들이 본분인 전투를 잊고서 성욕을 해소하려 난리가 난 틈을 타 성을 급습해 얻어 낸 승리. 전략을 이끌어 낼 재료가 좋았다고 지략의 기사를 폄하하는 이들은 말하곤 했으나, 결과는 대단했다. 살아서 돌아간 적들도 많고, 루드비안 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헤닌 성을 차지하고 팬크라프트 군을 무려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며, 백전의 노장 스턴컬트까지 사망시킨 전투라 이전의 인분대첩에 못지않은 대승으로 평가받았다. 여담으로 초야에 있던 지략의 기사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식구들도 이번 전투의 승리만큼은 인정해 주었다는 후문이 있었다. ‘그 녀석이 쓸만한 작전’ 이래나 뭐래나? 그 전투로 인하여 확실히 전쟁은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에게 승기가 기울었다. 아직 카스피 왕국에 주둔중인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팬크라프트 군 12만 가량이 있었지만 팬크라프트와 카스피 왕국의 육로에서 농성을 벌이는 중도의 소드 마스터 칸트 앵걸이 이끄는 군세가 팬크라프트의 지원군을 차단하고 있었고, 두 명의 소드마스터가 큰 부상을 입고, 한 명이 죽었으며, 무려 20만 가까이 되던 병력이 단 두 번의 전투로 괴멸해 버린 점 덕분에 팬크라프트 군의 사기는 최저였다. 또한 지금은 소국으로 전락한 하인델 왕국에서 팬크라프트의 이런 시기를 틈타 잃어버린 영토를 찾기 위해 북상하고 있어 전쟁을 더 이상 지속할 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반면 헤닌 성을 차지한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은. 다시금 서부 평원의 대부분을 모두 수복하면서 국지적인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여 사기가 충만할 뿐 아니라, 루드비안 본국에서 충원된 병력과,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칸딘스키 공작의 기갑부대 2만이 합류함으로서 숫자로도 이미 팬크라프트 군의 수를 압도하는 15만의 병력에다, 비록 국력은 최저로 떨어졌지만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한 구 4대 열강 하인델의 합류로 더더욱 사기가 높아져만 갔다. “크으윽! 크아아악!” 좀처럼 화를 잘 내지 않는 팬크라프트 대공이 광기를 드러내며 장식과 술병을 집어 던지는 등의 폭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부하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주눅이 든 채 그저 대공의 분노가 자기에게 떨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지략의 기사, 지략의 기사, 지략의 기사!!! 크으으윽!!!” 보잘 것 없는 군사 전략가에서 이제는 숙적이 되어 버린 아크의 이름을 대공은 연신 불러댔다.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다! 그 때!!! 으그그그그그극!” 이미 렌도로스는 그 당시 아크와 로니의 추격을 맡았다가 결국 그를 잡지 못한 이들을 모두 투옥시키거나 처형한 뒤였다. 만약 그때 그들이 관에 숨어서 탈출한 아크를 잡았거나 숲에서 그를 죽였다면 지금의 이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전황이 비틀어져 버린 것은 순전히 지략의 기사 탓이었다. 초반 해전에서 칸딘스키 공작군에게 대패를 당하긴 했으나, 수도를 박살내고 그레드릭 대공을 전장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으며 서부 평원의 반절을 집어 삼키며 승기가 확실할 때, 캘더린에서 탈출한 지략의 기사가 중도와의 동맹을 체결시키고, 또한 캘더린의 여왕을 납치하는 대담무쌍한 행동으로 우군인 캘더린의 군사 개입을 전면 저지시켰다. 그 뒤 바이에른 요새에서 수성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부군의 뒤를 쳐서 전공을 거두더니 그의 명호이기도 한 ‘지략’ 으로 고작 두 번의 전투에서 소드 마스터 둘을 무력화 시키고 하나를 죽였으며 500여 기사와 20만 가량의 정예병력을 괴멸. 승기를 완전히 제 쪽으로 돌려 버렸다.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자 렌도로스가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근의 씨앗이라고 생각해 놓고서는 압도적 전력의 차이면 제깟 놈이 날고 긴 들 뭘 하겠냐는 생각으로 전쟁을 시작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전력마저 밀리게 되고 말았다. 들려온 전보에 의하면 역으로 지략의 기사 측에서 군대를 몰아 팬크라프트 대공이 있는 이곳으로 진격해 온다 하였다. 이미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부대로 뭘 할 수 있을까? 기사의 수는 제법 우위에 있다지만, 루드비안 측에는 칸딘스키 공작군이라는 최첨단 정예부대와 그랜드 마스터도 막을 수 있다는 중도의 무적부대 크루세이더 군까지 있었으며 마법화력도 월등했다. 거기에 이제는 신화가 되어 버린 지략의 기사의 전략에 맞서 싸우는 것조차도 두려워진다. “저, 저 대, 대공 전하.” “……뭐냐?”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정보담당 비서관. 대공은 으르렁대는 표정 그대로 그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죄일 듯한 고통. 비서관은 그것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대공의 분노에 차마 얘기하지 못했던 전보를 꺼냈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 내놓지 않고 무얼 했느냐!” 대공은 다시 한 번 비서관을 노려 본 뒤, 전보를 읽었다. 전보를 쭈욱 읽어 내려가던 대공. 그의 표정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이게 사실인가?” “루드비안 측에서는 극구 숨기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신뢰도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으음…….” 전보는 루드비안의 대공 루벤드 그레드릭의 서거를 알리고 있었다. 렌도로스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미 이 전쟁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본국에는 아직도 2500명 가까이 되는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와 회복되면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마스터 두 명과 40만이 넘는 대병력이 건재했다. 즉 이번에 패배하더라도 루드비안 정도는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는 전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원래는 이대로 군대를 철수하려 했지만 그레드릭 대공의 서거 소식을 본 렌도로스는 마음이 달라졌다. 전력에서는 상대가 아니 된다 하지만 마스터 전력을 보면 그랜드 마스터인 자신이 있는 팬크라프트가 여전히 우세했다. 이 마지막 전력으로 최대한 지략의 기사만을 노려 그를 죽일 수만 있다면 이 다음 전쟁에서 팬크라프트의 발걸음을 막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막을 수 있는 그랜드 마스터도, 압도적인 적의 대병력을 막아 낼 수 있는 천재 지략가(?)도 루드비안에는 남아있지 않게 된다. 거기에 솔직히 후퇴한다고 해도 추격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후퇴하는 길목에는 중도의 군세가 버티고 있었고 해상으로 간다 해도 루드비안의 최신 함대가 추격해 온다면 별 힘도 못써보고 바다에서 수장당할 수 있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전멸을 감수하더라도 훗날을 위해 아크를 제거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가능성은 낮지만 자신이 적진으로 뛰어들어 지략의 기사에게만 집중공격을 가하여 전투 초반에 그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지휘관을 잃은 루드비안의 군세를 섬멸하고 다시금 전세를 되돌릴 수도 있지 않던가. 판단을 내린 대공은 전보에서 눈을 떼, 아직도 겁에 질린 부하들을 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최후의 일전을 벌이겠다. 모두들 전투 준비를 서둘러라. 설사 지더라도 반드시 지략의 기사만큼은 제거하도록 하자.” 대공의 눈은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으음……할아버지 결국 가셨구나. 증세가 좋아지셨다고 들었는데…….” 렌도로스처럼 그레드릭 대공의 서거 전보를 받은 아크는 입맛을 씁쓸하게 다셨다. 이제 정말로 이 드넓은 제국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와 버렸다. 솔직히 권력이 귀찮기는 해도 여러모로 편한 것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래도 제국의 노장이자, 좋은 선구자이자, 최강자로 제국의 정신적 기둥이던 분이 돌아가셨으니 뭔가 서운하고 허전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그레드릭 대공은 인분대첩의 대승리 소식을 듣고 벌떡 일어나 난리를 피우다가 상처가 도졌고, 헤닌 성 탈환작전 소식을 들은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난리를 피우다가 상처가 심하게 도져서 그렇게 갔는지, 아니면 400년간 지탱해 왔던 제국을 아크에게 믿고 맡길 만하다고 생각해서 생명의 끈을 놓아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참으로 어울리는 사건이었다. 아크는 그레드릭 대공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와 당부의 말을 낭독했다. 지휘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침통해졌고, 카시아스 백작 같은 경우는 다 큰 중년인 주제에 눈물까지 머금었다. “뭐 다들 알겠지만 결코 이 사실을 병사들에게 알리는 일은 없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사실 지휘부들에게도 그레드릭 대공의 서거 소식은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혼자 아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 공개했는데 반응들이 워낙 안 좋은 것이 차라리 숨기고 있는 게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 자 돌아가신 대공을 위해서라도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팬크라프트의 그랜드 마스터 노인네를 잡아서 팬크라프트의 야욕을 무너뜨리도록 하자! 모두 검을 뽑아라!” 렌도로스가 다음 전쟁에 대비하여 아크를 제거하려 최후의 일전을 벌이려 하고 있다면 아크는 언제 다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를 싹을 제거하기 위해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팬크라프트의 구심점이었던 노익장들은 모두 죽고 이제 남은 제국의 기둥은 그랜드 마스터인 팬크라프트 대공. 그를 처리할 수 있다면 굳이 병법서 들고 와서 이 전쟁터에서 난리를 피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일전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소규모 부대들이 점령한 서부 평원의 여러 성들을 다시 탈환하고 헤닌 성에 집결한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은 아직 수복하지 못한 서부 평원의 북부로 전면 진격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팬크라프트의 군세 역시 국경지대에서 출발하여 남하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얼마 안 가 두 부대는 선발대의 마주침과 함께 서로를 마주보는 대평원에서 진을 쳤다. 루드비안 서부 평원 지구의 이름인 발렌시아에서도 가장 드넓은 대평원 질데란트 평원. 그 이름이 단순한 지도나 지리서적에 실리지 않고, 대륙 전쟁을 끝맺음 지은 대 전투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되어 역사서에 남게 될 전투가 벌어질 때가 되었다. 양측 도합 27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내딛어 진군해 오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라 할만했다. 팬크라프트 측은 렌도로스 대공을 필두로 은빛 찬란한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기사들을 세우고 진군해 왔다.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들이라는 이들이 모인 만큼 그 늠름한 모습은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할만했다.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 측은 총사령관 지략의 기사 대신 중도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과 루드비안의 두 부관 크리샤 백작과 카시아스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아무래도 아크는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의 많은 수의 병력을 총 지휘하기에는 결점이 많았기에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최전방 지휘를 맡지 않았다. 하지만 명색이 총사령관이기에 마치 신변을 보호받기라도 하는 듯이 로리엔과 두 백작의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갔다. 솔직히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처럼 대륙 최고의 장인들이 모여 만든 화려한 지휘관 복장이자, 방어효과도 탁월한 옷을 입고 있으면 저렇게 나올 폼이라도 나는데, 껄렁한 체육복 하나 걸치고서 주머니에 손 넣은 복장으로 앞에다 지휘관이라고 내세우면 군대의 체면이 설 턱이 없었다. 그래서 성기사들의 십자형을 형상화하여 만든 중도 최고 기사에게 주어지는 은빛 갑옷을 입은 로리엔이 대신 앞으로 나간 것이다. 그 뒤로는 최강의 방어부대인 크루세이더 군과 루드비안과 중도의 기사들이 위치했고 그들 바로 뒤에는 칸딘스키 공작이 키운 기관총수들과 그의 기갑부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철전차 두 대가 자리했다. 칸딘스키 공작군의 연전연승을 도운 최강의 무기라 할 수 있는 이 철전차들은 기술력과 마나 연료를 써야 하는 등의 여러 허점이 존재했지만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나 여러 명의 마법사들이 전격 마법을 쓰지 않는 한은 파괴할 수 없는 최신 과학력의 산물이었다. 생산된 6대 중 초기 캘더린 전선에서 마법사단에게 4대가 순식간에 작살났지만 젤리커 공작이 이끄는 부대와의 북부 산악지역 디그리스 지구에서의 전투에서는 단 두 대 만으로도 팬크라프트의 군세를 철저히 요리한 무서운 전투무기였다. 거기에 지금은 최고의 마법사의 방어 마법과 연료 마법으로 가동되고 있어, 한계 시간 1시간을 훨씬 넘어서 활약할 수 있었다. 가장 취약한 약점이었던 짧은 구동시간을 비약적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아크는 렌도로스 대공의 얼굴을 새삼 다시 보게 되자, 30여 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어이 나와 봐,.” 아크는 로리엔을 밀치고 자신이 가장 앞으로 나섰다. “커억 퉤!” 마치 양아치처럼 가래침을 뱉은 뒤 아크는 렌도로스의 앞에 섰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렌도로스였다. “오랬만이군.” “반갑군요. 아직까지 안 돌아가시고 살아계셨다니. 벽에다 똥칠하는 치매 노인이나 되어서 봤으면 불쌍하기라도 할 텐데.” 대공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 입담은 여전하군. 하지만 다시는 듣지 못하게 되겠지……여기서 죽을 테니까.” “그렇겠죠. 곧 죽어서 묻힐 분이니……다시는 제 입담을 들으실 수 없으실 겁니다.” “파격적인 의상이군. 일군의 전투 지휘관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나이에 반짝이 옷 입으면 창피하지도 않수?” “훗. 그런가?” 렌도로스는 잠시 눈을 감았다. 튀어 나온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전쟁을 하러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허점이 가득했다. 아무리 아무데서나 소환해 낼 수 있다지만 소환 때의 딜레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신검도 쥐지 않았고, 그나마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다. 그가 이 전투에서 추구하던 지략의 기사 제거의 목표를 이루기 아주 수월한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렌도로스는 눈을 뜨고 난 뒤 곧바로 아크에게 달려들었다. 제법 떨어진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쇄도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차!’ 렌도로스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아크도 그제야 자신이 방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히 주머니에서 손을 뺀 뒤 몸을 뒤로 물리고 블레싱 소드를 호출했다. 챙! 간신히 타이밍에 맞춰 블레싱 소드로 렌도로스의 검을 막아내긴 했지만 이미 자세가 무너져 버린 뒤로 아크는 렌도로스의 위협적인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성자님!” 아크의 뒤에 서 있던 로리엔이 블레싱 소드를 들고 위기에 빠진 그를 구원하려 렌도로스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들 뒤로는 양측의 군대가 지휘부의 싸움에 서로 상대방 진영으로의 진격을 시작했다. 단 두 명이서 싸우는 격투라면 일기토였지만 이것은 렌도로스가 먼저 기습적으로 공격해 왔으며 전투에 참가하는 인원은 2대 1이었다. 카시아스 백작은 렌도로스를 공격하는 데에 동참했고, 크리샤 백작은 칸딘스키 공작과 함께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뒤로 빠졌다. “프로즌 아이스!” 로리엔과 카시아스 백작의 전투 참가로 약간의 여유가 생긴 아크는 프로즌 아이스까지 소환하여 쌍검술을 구사했다. 무신에게 정식으로 배운 검술은 아니지만 로니와의 수련에서 나름대로 영감을 얻은 검법으로 효과는 그녀와의 대련에서 승률 80%로 나타났던 적이 있었다. 초식 같은 것이 따로 없이 허점을 노리고, 빈 곳이 생기면 막는 단순한 검법이었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구석이 있었다. 소드 마스터들 중에서도 주신의 성검으로 인한 보조능력과 무기의 뛰어난 점 덕분에 상위로 평가받는 아크와 로리엔. 이 둘이 달려들자, 어지간한 마스터 서너명은 혼자서도 충분히 당해내는 렌도로스 대공도 쉽게 그들을 죽이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크루세이더 군단과 루드비안의 기사들이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에게 맞섰다. 기사의 질이나 수에서는 팬크라프트가 앞섰지만 그랜드 마스터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최강 진법을 갖춘 최정예 보병대 크루세이더가 합류하자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이 밀렸다. 기사들과 크루세이더 등이 맞붙는 전선은 좁았다. 수십만의 병력들은 각자 적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기사들이 맞붙는 전투지역을 동그랗게 감싸며 서로 적진으로 달렸다. 그 두 측면에는 루드비안의 철전차가 앞장서고 그 뒤로 기관총수대와 소총대들이 별 무장이 되어 있지 않은 팬크라프트 군에게 화포를 난사했다. 보통의 병사들이라면 죽어 나자빠져야 옳았지만 팬크라프트의 강한 국력으로 맞춘 원거리 공격 방어 마법 갑주를 반수 이상 착용하고 있던 팬크라프트의 군사들은 쉬이 죽지 않고 총을 든 병사들에게로 달려들어왔다. 그 사이 갑주로 가리지 못하는 곳에 총알을 맞은 이들은 부상을 당해 쓰러지거나, 머리 등에 총을 맞고 즉사했지만 워낙 많은 수인지라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루드비안에는 총수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병사들이 근접해 오자, 창병과 기타의 무기들로 그들과 맞서 싸웠다. 또한 철전차는 화포를 한 방씩 후방에 날리면서 뒤에 있는 동료들 덕에 쉬이 물러나지 못하는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갰다. 그런 철전차들에 맞서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온갖 전격 마법을 날렸지만 강력한 마법 방해 장벽으로 보호 받고 있는 철전차들을 서클이 낮은 그들로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저 듣고 있던 약점대로 구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중앙에서는 기사들이, 가장 중심에서는 소드 마스터 둘과 그랜드 마스터의 대결이, 양 측면에서는 병사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기사 다섯과 한 소년은 전장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로 술래잡기(?)를 하는 중이었다. “얼음장벽!” 칼날처럼 생긴 날카로운 얼음의 장벽이 물이라고는 없는 메마른 황무지에 솟았다. 그 장벽에 기사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지만 곧 장벽의 옆과, 얼음장벽을 오러로 부수며 소년을 계속해서 추격했다. “아이스 미사일!” 그렇게 뚫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사들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얼음의 폭격을 이겨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마냥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꼬마를 쫓아야 했다. 만약 자신들이 저 꼬마 마법사의 추격을 중지한다면 곧바로 7~8서클의 전체마법이 본진의 후방에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패배는 확실해진다. “제기랄! 이 망할 것들아 좀 죽어라!” 쥬레이나란은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오는 기사들에게 걸한 욕설을 퍼부었다. 후방에 헬 파이어 한 방을 먹이려다가 엄청난 마나가 요동치는 것을 느낀 기사들이 달려들어 결과적으로는 별 마법 캐스팅도 못하고 이렇게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드래곤의 뛰어난 신체 능력에 마나를 사용하여 육체를 강화한다면 육탄전에서도 밀리지 않을 자신은 있었지만 5명이나 되는 상급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과 싸워 이기긴 힘들었다. 쥬레이나란의 능력은 서로 상당한 차이가 나는 마스터와 최상급 익스퍼트 기사의 중간 단계 부근. 한두 명 정도는 쉬이 압도할 수 있어도 다섯이 동시라면 꽤나 힘든 전투가 될 것이 뻔했기에 이렇게 마냥 도망다니며 마법을 통해 체력만 깎아 놓으며 나중을 기약하는 수밖에는 없다. 촤아아악! 옷과 살이 동시에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몸이 무너졌다. “카시아스!” 마지막 남기는 유언 한 마디도 없이 카시아스 백작은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남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신이야 말로!” 중앙에서 벌어지는 기사들의 치열한 혈투. 크루세이더 군단의 가세로 전체적인 흐름은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에게로 흘렀지만 적어도 그 가장 중심에서 벌어지는 격투에서 만큼은 아니었다. 가장 실력이 떨어지던 카시아스 백작이 대공의 오러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렌도로스 대공을 맡아 싸우는 이는 아크와 로리엔 둘 뿐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 둘도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무서운 파상공세에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방어하는 데만 급급했다. 특히 로리엔은 더욱 답답했다. ‘아니 이 인간은 둘이서 강자를 상대할 때 써 먹는 진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건가?’ 로리엔은 렌도로스의 공격을 막아내면서도 두 명이서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할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진을 잡으려 연신 아크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한 축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크는 그 어떤 진형에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칼만 휘둘렀다. ‘눈치를 못 챈 건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가?’ 지략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고 또한 이전번에 보여 준 뛰어난 전략들을 생각해 볼 때 아크가 모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로리엔은 아크가 눈치를 못 챈다고 생각하고 외쳤다. “성자님! 2명이서 강자를 상대하는 진을 칩시다!” “어? 뭐?” 알 턱이 있나……. ‘호오?’ 진법을 구상하고 덤벼들 줄 알고 내심 기대하던 렌도로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삽질만 해대는 아크를 보며 약간은 어이가 없었다. 아크를 기필코 죽이겠다는 목적은 가지고 있었지만 내심 이렇게 전력을 내보일 수 있는 상대들을 만나 재미를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나 어딘가 역부족인 것처럼 느껴졌는데 진법으로 자신을 조금 더 몰아붙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로리엔이 자세를 잡을 때마다 아크는 못 알아들은 척 그저 칼만 휘둘렀다. ‘야 이 새끼야! 할 줄도 모르는데 하라고 지랄이야! 네가 말거는 바람에 방어하기만 더 힘들어 졌잖아!’ 그렇다고 나 할 줄 몰라! 라고 외치기도 뭐한 것이……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렌도로스 같은 아차 하는 순간 목이 달아나는 무서운 상대를 앞에 두고 자꾸 저런 모션 취하다가 괜히 칼 맞아 죽을 수는 없으니까. “야 이 새꺄! 나 그딴 거 조또 모르니까. 그냥 싸워!” 순간 렌도로스와 로리엔은 황당함에 그대로 몸이 굳었다. 일반 병사가 아닌 기사라면 전투법 교본에서 기초적으로 한 번 쯤은 꼭 배우게 되어 있는 가장 기본적인 2대 1에서의 진법도 모른다니, 그것도 일반 병사쯤이나 하는 사람이 모른다면 이해나 간다. 그러나 일군의 총사령관이자, 지략의 기사라 이름이 높은 사람이 모른다고 하니 이 어찌 황당하지 아니하리. 기초 중의 기초인데. “아, 알겠습니다. 성자님.” 로리엔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다는 데 뭘 더 어쩔 것인가? “하, 하하하! 자네 정말 지략의 기사가 맞나?” 렌도로스는 그런 아크를 비웃었다. 그러자 아크는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럼 그냥 색욕의 기사라고 부르쇼.” 방심하는 틈새를 보이던 렌도로스는 곧 검에 오러를 씌운 뒤 몸을 한바퀴 돌면서 원형의 검기를 만들어 냈다. “위험합니다. 물러서십시오!” “웃?” 오러를 씌운 방패가 없는 한은 기필코 막을 수 없는 렌도로스의 원형강기가 순식간에 아크와 로리엔에게 퍼져나갔다. 로리엔은 검막을 이용하여 어느 정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아크는 아니었다. 검막 같은 기초적인 기술도 쓸 줄 몰랐다. 무신에게 배운 호신강기도 제대로 써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블레싱 소드가 부여하는 신의 가호를 치고 멀리 갈수록 위력이 격감하는 원형강기의 범위에서 최대한 벗어나는 것이 아크가 살아남을 길이다. 원형강기는 퍼져 나오는 속도가 늦었기에 그래도 아크는 어느 정도 몸을 물린 상태에서 신의 가호로 강기를 막아 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피해는 제법 컸다. 배때기에 블레싱 소드로 막힌 쪽을 제외하고 기묘한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큭!” 잠시 흔들렸지만 블레싱 소드는 곧바로 그런 아크의 부상을 치유해 주었다. 거기에 마찬가지로 뒤로 빠져 있던 로리엔의 최고위급 회복마법까지 씌워지자, 상처는 급속히 아물었다. ‘저놈의 검이 문제로군.’ 상처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둔해져 가는 이들을 참살하는 가장 쉬운 전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것이었다. 다치면 몸놀림이 둔해지고, 피가 부족해져 머리에 산소공급이 되지 못하여 점점 실력이 떨어져야 정상이지만 신검을 지닌 아크와 로리엔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리고 오러를 굳이 쓰지 않아도 오러 블레이드에 검이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검이다 보니 마나가 바닥나 헉헉거리지도 않았다. 검술이 조금 부족하고 실전경험도 렌도로스에 비해 모자라고 신체적 능력이 딸리긴 해도 신성마법의 비호를 받아 그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만약 지략의 기사가 정말로 2명이서 강자를 상대하는 전법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밀릴 지도 몰랐다. 지금 렌도로스가 우세한 듯이 보이는 것은 오러를 사용한 다양한 기술로서 상대를 하고 있는 것 외에는 없었다. 쉽게 밀리지 않는 상대들과 싸우다 보니 신이 나긴 하지만 지금도 병사들은 루드비안 군의 철전차에 깔려 죽고, 원거리 공격 방어구를 지급받지 않은 후방의 군사들은 측면을 공격하는 화포부대에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판이었다. 그가 소기의 목적인 아크의 주살을 실행하기만 하면 전세를 뒤집어 엎을 수 있다. 냉정한 판단이 든 렌도로스는 원형강기에 잠시 주춤하는 로리엔과 아크를 공격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쳤다. “케레스!!!”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의 제 3의 소드 마스터 유카나. 살육에 익숙치 못하고, 검술이 뛰어나지 못하며 키가 작아서 급소 공격에 단점이 있는 그녀는 쥬레이나란이 걸어 준 검열마법으로 기사들 사이에서 싸우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꼬마야.” 이번에 그녀가 상대해야 할 이는 팬크라프트의 유일한 여성 소드 마스터 케레스 카르넨. 남장에 머리도 짧으며 가슴은 뭉텅 잘라내 버렸지만 수십 년 전의 원판은 아리따움으로 칭송받던 귀족 가 영애로 그 당시 약소국 팬크라프트에서 루티안의 망나니 공작 아들의 노리갯감 이던 것을 무신이 구원해 주었고 그 뒤로 검에 정진하여 지금의 성취를 이룬 보기 드문 여검객이다. 케레스는 여기저기 허점이 드러나는 유카나를 상대로 진심으로 싸우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 여자라고 받았던 차별에 대한 서러움 등이 떠올라 충분히 유카나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 대련을 하는 듯이 이렇게 지도하고 저렇게 가르쳤다. 적국의 소녀이지만 이전부터 꽤나 관심을 두었었고, 여자로서 남자들의 노리갯감이나 정략결혼의 피해자가 될 뻔한 아이 였다는 것에 대해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찌르기를 시도하면 어쩌자는 거야!” “익!” 발끈한 듯 다시금 그 짧은 다리로 도약하는 유카나. ‘정말 자질이 뛰어난 아이로군. 만약 결혼을 하지 않고 수련을 계속한다면 정말 이른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도 있을 텐데 말야. 탐나는 걸?’ 그때였다. “케레스!!!” 그랜드 마스터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고함소리. 병장기들이 부딪히고 패자의 비명과 승자의 함성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마나가 실린 그 거대한 고함소리는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하아~ 알았다고요. 대공.” 케레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유카나를 뒤로 하고 그 빠른 발로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뜻밖의 기습을 당한 로리엔은 자신에게 덤비는 케레스를 맞상대하다가 어느 새 아크와 렌도로스의 전투장에서 멀어졌다. “성자님!!!” 렌도로스는 둘이서 상대하기도 벅찼다. 그런데 케레스가 난입하는 바람에 이제는 아크가 혼자서 렌도로스와 맞서 싸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 “으갸아앗!” “사령관이라는 자가 어디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가!” “니기미 안 뒈질라면 등짝 좀 보일 수도 있는 거지!” 렌도로스의 강기다발을 피해 뒤도 안 돌아보고 기사들 사이를 이리저리 도망치는 아크. 그런 한심한 사령관을 위해 기사들은 렌도로스의 앞길을 막기도 했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크루세이더 군단 덕에 열세인 기사 수를 메꾸고 유리한 전황이던 중앙 전투. 그러나 양 사령관의 상반된 모습에 사기가 오른 팬크라프트와 전쟁터에서 등을 보이고 도망이나 치는 한심한 사령관을 그래도 끝까지 지키며 죽어나가는 루드비안의 기사들 덕에 전황은 조금씩 안 좋아지고 있었다. 아크도 잘 만들 줄도 모르는 강기 몇 방을 날렸지만 헛방. 프로즌 아이스로 마법을 쓸래도 크루세이더 군단들 덕에 주변에는 아군이 훨씬 많아 오히려 제무덤 파는 짓거리. 그렇다고 맞서 싸우면 살아남느냐? 그건 또 아니다. “에라!” 폭음과 함께 사령관에게 주어지는 권총이 불을 뿜었다. 혹시라도 머리통 맞고 뒈져달라는 염원과 함께 주신께 간절히 빌기까지 했다. 그러나 쉽게 총 맞아 죽을 사람은 절대 아니다. 크루세이더들을 엄호물 혹은 방패삼아 도망치던 아크. 그러나 갈수록 거리는 좁혀져만 왔다. 그렇게 도망치던 아크는 방금 전 지나쳐 온 곳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도주를 포기하고 렌도로스에게로 달려들어야 했다. 유카나가 뛰쳐나와 렌도로스 팬크라프트의 앞을 가로막은 탓이다. “유카나앗!” 케레스 같이 여자. 그것도 어린 아이라고 봐주는 법 절대 없는 렌도로스다. 유카나는 조금 버틸 수 있을 지도 몰랐지만 유카나를 미끼로 도망칠 수는 없다. 아크는 곧바로 달려 유카나를 감싸 안고서 몸을 굴렸다. 아슬아슬하게 오러가 씌인 검이 지나갔다. 워낙 크고 넓게 퍼지는 오러 형태를 지닌 터라 불에 데인 것처럼 등에 상처가 남았다. “흐 색욕의 기사답군. 볼 때마다 여자는 바뀌는구만.” “큭 젠장!” 유카나를 껴안은 채 땅바닥에 구른. 도저히 피하기 힘든 상태. 푸슉! “끄아아아악!” “오빠앗!” 오른쪽 어깨를 그대로 찔려 버린 아크. 팔이 그대로 어깨 째 잘려 나가 버릴 수도 있는 큰 부상이었다. ‘큭 끝인가?’ 과거의 일들이 아련하게나마 기억될 때였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사령관 각하! 사령관 각하를 지켜라!” “주군!” 크리샤 백작과 에르디가 그 광경에 반응하여 기사들을 몰고 달려왔다. 부족한 자리는 크루세이더 군단이 메꾸고 기사들은 질 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렌도로스에게로 달려왔다. 이미 그들에게는 적을 두고도 도망이나 치는 한심한 사령관도 지략으로 진정 나라를 구한 충신이오, 영웅이자 제국에 남은 마지막 정신적 지주였다. 렌도로스는 어깨에서 가슴팍까지 칼을 그어 내리다가, 덤벼드는 루드비안의 기사들에 맞서 싸웠다. 원 샷 원 킬은 아니었지만 기사들은 채 3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어서 사령관 각하를 모셔라!” 그 틈을 타 다가온 에르디와 크리샤 백작은 아크를 렌도로스에게서 멀찍이 떼어놓았다. 너무 깊은 상처라 아물어 가면서도 극심한 고통을 주고 있었다. 아크는 필사적으로 렌도로스에게 덤비는 얼굴도 모르는 부하 기사들을 보며 묘한 감동이 들었다. 자기라면 어지간한 사이가 아니라면 저렇듯 목숨을 걸고 싸우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위엄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신의 목숨과 영달을 챙기는 사령관을 위해 저렇듯 무의미하게 죽어갔다. ‘…….’ 다치긴 했지만 렌도로스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건 현재로서는 자신뿐이었다. 그렇기에 아크는 더 이상의 희생이 생기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로리엔 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드 익스퍼트 급 기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유카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라.” “사령관 각하! 잠시 쉬심이…….”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서 아크는 무감각해진 오른손 대신에 왼손에 블레싱 소드를 집었다. 프로즌 아이스는 유카나에게 맡긴 채 기사들에게 둘러쌓였으면서도 학살을 계속하는 렌도로스에게로 걸어갔다. 승산이 없을 지도 모르는 싸움. 아크는 맹약의 반지를 한 번 바라보았다. 죽음의 위기를 맞으면 보내는 아크라우스의 브레스. 그것이 이전 렌도로스와 맞붙었을 때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 “부탁한다 아크라우스. 설사 내가 죽어도 브레스를 이쪽으로 보내지는 말아 다오.” 아크의 위기에 민감히 반응하던 아크라우스는 예상외의 부탁에 되물었다. [뭐? 제대로 얘기해라. 한 둘은 내가 살려 줄 수 있다. 그 바보 꼬맹이 헤츨링이야 속성이 같으니 살아남을 테고, 그 네 약혼녀라는 계집과 냄새 대마왕 놈 하나 정도라면야……] “아니 저들은 모두 내 부하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도저히 아크의 입에서 나올만한 대사가 아니었기에 아크라우스는 한 마디 했다. [……드디어 미쳤구나] “이 새끼가…….” [그냥 애초에 그 힘을 안 불러내면 되지 않겠냐?] “지금 상황에서?” [흠……네놈은 온고지신이라는 말도 모르냐?] “알아 임마. 그런데 그걸 지금 꺼내는 이유는 뭐냐?” [네놈의 과거 행적을 떠올려봐라. 나는 지금도 그 따위 짓거리를 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검과 마법에 익숙해 졌다고, 지금은 조금 강해졌다고 잊어먹은 모양인데. 그것들이라면 분명 그랜드 마스터도 통증을 느낀다.] 아! 아크는 그제야 강해지면서, 그리고 검과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면서 잊었던 것들이 기억났다. 거기에 애초에 30여 년간 뼈가 빠지도록 수련한 것도 그 기술들이 아니던가? 강자들에게 그 기술을 써서 이겼다. 비록 한동안 지금의 강함을 이길 만한 상대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자신보다 강한 이가 눈앞에 서 있다. 순간 지략의 기사라 불릴 만큼 뛰어난 아크의 잔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아크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훑어서 입에 머금었다. 그런 다음 큰 소리로 외치며 렌도로스에게로 달려들었다. 입가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지만 그 피를 최대한 흘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야! 이 미친 발기부전에 조루증 영감탱이! 네 상대는 나다!” “훗. 하긴 그대로 죽어버리면 곤란하지 지략의 기사.” 렌도로스 대공은 주변의 루드비안 기사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서 아크의 말을 받았다. 아크는 그들 사이로 걸어갔다. 어깨가 다쳤지만 은근슬쩍 다리도 절면서 고교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합법적으로 빠지기 위해 지었던 창백한 안색 모드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렌도로스 대공에게 다가선 아크가 외쳤다. “각오해……컥!!” 아크는 달려가다 중간쯤에서 입에 머금어 둔 피를 뱉어내면서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피가 양이 적다 싶자, 아랫입술을 몰래 깨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크는 리얼하게 무릎을 꿇은 채 블레싱 소드를 떨구고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려 누웠다. 뭔가 해볼 것 마냥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더만 피를 토하고 쓰러져 버리니 약간은 허망해 진 렌도로스와 기타 기사들. 루드비안의 기사들은 쓰러진 사령관을 렌도로스에게 죽게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에게 달라붙었다. “빨리 사령관님을 옮겨…….” 크리샤 백작은 또다시 쓰러진 아크를 구하기 위해 기사들을 보내려다가 자신의 어깨를 잡는 에르디를 보았다. “뭔가? 어서…….” “저길 보십시오.” 크리샤 백작은 엎드린 채 굼벵이 마냥 기어서 기사들과 맞서 싸우는 렌도로스에게 조금씩 근접하는 아크를 볼 수 있었다. 렌도로스가 약간이라도 움찔 하면 도로 땅바닥에 철썩 누운 채 죽은 척 하다가 다른 쪽을 보며 싸울 때는 찔끔찔끔 기어가는 처절한 모습을. “…….” 어느 새 아크는 기사들에게 밟힐 정도로 격투가 벌어지는 곳에 가까워져 있었다. 기사들과 렌도로스는 싸우다가 이쪽까지 왔나 하고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렌도로스는 이미 뻗어버렸다고 생각한 아크보다는 나름대로 자신의 목숨을 거둬 갈 수 있는 기사들에게 집중했고, 기사들 역시 사령관을 밟지만 않으려 노력할 뿐 목숨이 달린 전투에서 아크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렌도로스가 아크가 쓰러진 그 정반대에서 한 기사와 검을 겨룰 때, 아크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무신의 무공의 기초가 되는 보법. 검법을 펼칠 때 다리가 벌어지는 그 타이밍. “으랴아아아압!” 그 타이밍을 바퀴벌레 마냥 절묘하게 노려 아크의 손이 올라갔다. 콰직! 남자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양촌리 딸딸이 권법의 최종오의가 그대로 작렬했다. “크으으으윽!” 덤비는 기사들을 원형강기로 모두 베어 넘기며 렌도로스는 최대한 성기 부근 쪽에 마나를 집중시켜 고통을 막아냈다. 색공류를 배우지 않으면 쉽게 마나를 불어넣을 수 없는 부분이 성기 쪽이지만 마나를 다루는 법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그랜드 마스터이니 만큼 버텨낼 수는 있었다. 아크는 거의 누워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원형강기의 피해반경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단번에 죽어 나자빠지는 부하들을 보아하니 열이 치받았다. 아크는 팔 전체에 스트랭스를 걸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오른팔은 겁나게 아팠지만 왼팔보다는 큰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대로 아크는 렌도로스를 잡아 넘겼다. 허리 부근에서 밀리자 렌도로스는 어처구니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렌도로스도 바닥을 뒹굴자, 아크는 그의 두 다리를 잽싸게 양 옆구리로 끼웠다. 젤리커를 무찔렀던 월스 오브 제리코, 혹은 보스턴 크랩(새우꺾기)기술을 실행하려 함이었다. ‘이건! 젤리커를 제압했던!’ 렌도로스는 아크가 걸려는 기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친우 젤리커 공작을 제압했던 그 기술이었다. 쉽게 빠져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렌도로스는 급한 대로 들고 있던 검을 아크에게 던졌다. “헛!” 아크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면서 렌도로스의 다리를 놓아야만 했는데 기필코 한쪽 다리만큼은 잡고 늘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서브미션 세트 메뉴를 지속하려면 한 쪽 다리라도 잡고 있어야만 했다. 몸을 일으키려던 렌도로스는 자신의 한쪽 발을 잡고 있는 아크 덕분에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아크는 그 사이 렌도로스 대공의 신발을 벗겨 내 버린 뒤 손가락으로 간지럼을 태웠다. “큭, 크크크크!” 이런 사투에서 나온 웃음. 어이가 없었다. 간질이는 사람이나 웃는 사람이나. 간지럼으로 잠시 렌도로스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 아크는 이종격투기에서 자주 보았던 대로 렌도로스의 발목을 옆구리에 끼우고 팔의 뼈로 강하게 조였다. 그러나 힘이 약한 이에게나 오래 버티는 법. 렌도로스가 발을 끌어당기자마자 아크는 그대로 붕 나가 떨어져야 했다. 천근추 등의 수법을 서로 알지는 못하고 힘들은 강하니 서브미션이 쉽게 걸리고 풀렸다. 아크는 다시 벌떡 일어나 몸을 일으키려는 렌도로스 대공에게 그대로 라이언 킥을 먹이며 다시 그를 바닥에 눕혔다. 렌도로스의 허리에 올라탄 아크는 그대로 그의 면상에 오러를 머금은 주먹을 박아 넣었다. 퍽! “크윽!” 퍽! 콧뼈를 부러트린 듯 렌도로스의 코에서는 쌍코피가 줄줄 흘렀다. 아크가 제 3타를 먹이려고 할 때, 렌도로스는 팔을 뻗어 아크의 옷을 잡은 뒤 그대로 빙글 돌려 아크를 바닥에 눕힌 뒤 이번에는 자신이 올라타 아크를 구타했다. 오러가 실린 주먹은 렌도로스가 훨씬 강했다. 아크는 추하게 앞니가 날아갔다. 더 이상 맞고 있을 수는 없었던 아크는 방금 전 렌도로스가 한 것처럼 그의 멱살을 잡아서 굴렸다. 그 이후로는 정말 일군의 사령관과 후작, 대공이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것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개싸움이 벌어졌다. 검과 검으로 붙으면 블레싱 소드로 간신히 실력을 조금 채우는 것 외에는 못하는 아크다. 하지만 이런류의 개싸움에서는 달랐다. 피해는 아크가 조금 더 많이 봤지만 아크보다 주먹에 오러를 불어넣는 데에 익숙하지 못한 렌도로스의 주먹공격은 머리를 한 방에 터뜨리거나 할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으아아앗!” 퍽! “크윽!” 흙바닥에 뒹굴면서 먼지투성이가 된데다가 눈탱이는 서로 부어있다. 이빨도 앞니는 나간 지 오래였으며 코뼈도 부러져 코피가 줄줄줄 흐른다. 입술도 부르텄으며 볼은 어느 새 부어 있고, 아크는 광대뼈도 부러졌다. 아크는 어느 정도 맞다가 서브미션으로 대항했다. 블레싱 소드를 소환했다가 던져버렸다가 하면서 상처를 회복시켜가며 싸웠다. 암바가 들어가고, 목을 조이고, 드래곤 슬리퍼가 작렬했다. 이대로는 정말 개싸움 밖에 되지 않았고 승부도 쉽게 나지 않을 듯 했다. ‘검을……검을 주워야 한다!’ 주변에는 죽은 기사들이 떨군 검들이 여러 군데 나뒹굴고 있었다. 블레싱 소드를 자유자재로 소환해 하는 공격을 당하는 등 누워서 벌이는 개싸움이 벌어지자 서브미션을 모르는 그는 조금씩 자신이 불리해져 감을 느꼈다. 렌도로스는 몸을 굴리며 검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런 다음 멱살을 잡아 아크를 집어 던진 뒤 급히 검을 잡았다. “잇!” 바로 일어서서 렌도로스에게 다시 달려들려던 아크는 그가 검을 줍는 모습을 보며 개싸움 상황에서 차마 꺼내 쓸 수 없었던 사령관에게 주어지는 권총을 꺼내들어 난사했다. 운 좋게도 총탄 중 한 발이 아직 미처 오러를 불어넣지 않은 검을 두동강냈다. 오히려 무기가 없어져 곤란하게 된 렌도로스는 총을 쥐고 있는 아크에게 급히 달려갔다. 근거리에서 렌도로스의 머리를 노리던 총은 곧바로 달려 온 그에 의하여 방향이 틀어졌다. 머리는 아니 날아갔지만 대공의 귓불 일부분이 찢겨져 나갔다. 아크는 렌도로스의 뒤로 가 그를 껴안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렌도로스의 목과 머리에 타격을 입혔다. 일명 저먼 스플렉스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주먹 공격 주고받기 식으로 싸울 경우 피해가 큰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기에 선택한 궁여지책이었지만 효과는 오히려 뛰어났다. 한 번 그를 뒤로 날린 아크는 논개처럼 깍지를 꽉 조인 채 몸을 비틀면서 계속해서 저먼 스플렉스를 대공에게 먹였다. 몇 번 맞던 렌도로스는 팔꿈치로 아크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손으로는 아크의 깍지를 낀 손을 해제시켰다. 퍽, 퍽, 퍽! 그 다음에 터지는 것은 아크였다. 명치에 한 방 턱에 한 방 옆구리에 한 방 씩 정말 맞으면 끔찍하게 아픈 곳의 급소만 골라서 때리는 렌도로스. 특히 턱에 맞은 것이 주효했다. 뇌가 울리는 듯한 느낌. 한 대를 더 맞게 된다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듯 했다. 명치를 맞아서 이번에는 진짜로 내장기관이 상했는지 피가 튀어나왔다. “허억, 허억.” 만신창이가 다 된 아크는 술에라도 취한 듯 심하게 비틀거렸다. 방어의 자세도 취할 수 없는 허점투성이. “크 지독하군……하지만 이제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 지략의 기사.” 앞니가 빠져서 발음이 조금 이상한 렌도로스. 그는 다급히 오러를 불어넣어 생성했던 권강이 아닌 서서히 기를 모아 결정타를 먹일 만한 주먹을 만들어냈다. “잘 가게.” “……!” 아크는 다시금 날아오는 그의 주먹을 가까스로 잡아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쭉 잡아당긴 뒤 팔을 꺾으며 그를 다시 앞으로 넘어트렸다. 그러면서 필사적으로 양쪽 다리로 렌도로스의 꺾은 팔을 속박했다. 그리고 팔로는 렌도로스의 무너진 콧뼈를 강하게 압박했다. “크윽! 크으으윽!” 크리플로 크로스 페이스라 불리는 이 서브미션 기술은 캐나다 테크니션 레슬러 크리스 벤와의 피니쉬 기술로 어디서든 쉽게 들어가고 풀기는 매우 힘든 그런 기술로 마땅히 피니쉬 필살기술이라고 할 만 했다. 렌도로스는 코 부근에 오러를 불어 넣어 고통을 방어했다. 아크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이던 팔이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팔은 대공의 목을 그대로 조였다. ‘느낌이 좋다!’ 격투를 벌이면서도 제대로 걸리지 않는 서브미션과 불리한 개싸움에 불안해하던 아크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걸렸다는 감이 들었다. “크으으윽!” 렌도로스는 숨이 막혀가는 것을 느꼈다. 새우꺾기나 샤프 슈터류의 풀리기 힘든 기술은 아니지만 목을 직접적으로 좋이면서도 헤드락 같은 것보다는 풀리기가 힘들어 호흡곤란으로 기절시키기에는 이만큼이나 좋은 것이 없었다. 원래는 콧뼈를 조여 통증을 주는 기술이라지만 목을 조이는 것도 가능했다. ‘이대론 진다!’ 마스터의 힘은 보통 인간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천근추 등의 수법을 사용하지 못함으로서 무게를 늘릴 수는 없는 노릇. 렌도로스는 남은 한쪽 팔로 땅바닥을 밀치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아크를 업은 채 그대로 일어나, 뒤로 넘어졌다. 쿵! 렌도로스의 등에 올라 탄 것이나 다름없는 아크는 그가 뒤로 넘어지자 뒤통수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끝까지 한쪽 팔을 속박한 다리와 목을 속박한 팔을 풀지 않았다. 충격책이 먹히지 않자, 렌도로스는 몸을 굴리면서 아크를 떼어내려 힘썼다. 그러나 아크는 기어이 그의 목과 팔을 놔 주지 않았다. 주변에서 전투를 멈추지 않고 있던 기사들도 서서히 사태가 재밌게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서로 얼굴에는 엄청난 피를 묻히며 한 쪽은 고통에, 한 쪽은 이를 악물며 목을 조이는 모습. “대공 전하!” 팬크라프트의 기사들은 렌도로스 대공을 구하려 했으나 크루세이더 군단은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렌도로스는 점점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이런 품위없는 짓을 하기에는 귀족의 자부심이 너무나도 컸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깨물기라도 하는 수밖에. ‘이럴 수가!’ 그러나 그의 이빨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였다. 어금니로 깨물기에는 인간의 구강구조상 불가능했고, 결국 아크의 팔꿈치를 물어뜯은 것은 윗잇몸과 송곳니뿐이었다. 자신의 팔에 입을 들이대는 것을 보며 아크의 얼굴에는 희열과 승리감이 어렸다. 정말로 이 기술로 이 괴물 같던 그랜드 마스터를 꺾을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걸기가 힘들지만 걸리면 끝이라는! “끝이다아아아! 죽어라! 이 영감탱이야!!!!”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인가?’ 허탈했다. 이렇게 죽는 것이, 제국을 호령하던, 아니 전 대륙을 호령하던 자신이 진정한 실력을 펼쳐가며 전력으로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계의 마스터의 목조르기 하나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정신을 잃는다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의 강한 정신력으로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으나,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눈앞이 깜깜해 졌는데 뭔가가 보였다. 제국 3인방이라 불리던 동료들과 지금까지 그가 죽였던 수많은 적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요절한 어린 딸아이의 모습까지. 하늘을 향해 뻗고 있던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의 피에 젖은 팔이 땅바닥으로 떨구어졌다. 대공의 숨이 가늘어지자, 아크는 그제야 조심스레 조르던 목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블레싱 소드를 소환했다. 아직 죽지 않은 그를 보내 주기 위해. 아크는 엎드려 쓰러진 렌도로스의 가슴팍에 블레싱 소드를 박아 넣었다. 그렇게 피분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제국의 최고위 사령관의 죽음과 함께 팬크라프트 군의 대다수는 사기가 충천한 루드비안 중도 연합군에 의하여 대부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지략의 기사 4대첩 중 하나인 질데란츠 평원의 대전투로 역사에는 기록되었다. 성마전쟁과 함께 대륙의 근대사로 접어드는 중요한 거점인 역사의 큰 축 대륙전쟁(혹은 제국전쟁)은 이계의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에 의하여 그렇게 종결되었다. 대륙력 1840년 대륙전쟁. 당시 대륙에 존재하던 4개의 초강국 팬크라프트, 중도, 루드비안, 캘더린 이 네 국가가 모두 참전하여 벌인 최대 규모의 전쟁. 대륙 통일을 주장하던 팬크라프트의 팬크라프트 대공에 의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폴티아 전쟁 시에 얻은 파푸치아 숲의 길공사를 통해 노골적인 침략의사를 드러내던 팬크라프트의 파푸치아 숲 주둔군을 숲의 종족 엘프연합군과 함께 공격한 루드비안의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 후작에 의해 명분이 선 팬크라프트는 파푸치아 숲 주둔군과 폴티아 반도 주둔군 약 5만과 해군력 10만 육군 40만을 동원. 약소국 카스피와 루드비안을 적대시 하던 캘더린의 도움을 받아 루드비안을 전면 공격한다. 초반 서부 평원의 반절을 순식간에 차지하고, 루드비안의 수도 함락, 그레드릭 대공의 암습 등 팬크라프트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던 전황은 칸딘스키 공작군의 해전 대승리와, 크리샤 백작의 헤닌 성 수성으로 잠시 주춤해졌으나 헤닌 성이 뚫리고 난 이후부터 다시금 팬크라프트의 일방적인 진격이 계속되었다. 이 때 캘더린에 억류되었던 지략의 기사 아크 페인은 중도군과의 동맹을 체결하고 결사대를 이끌어 캘더린 여왕을 납치, 캘더린의 군세를 퇴각시키고, 스메론 요새에서 팬크라프트 군 5만을 격파 뒤, 인분대첩과 음약대첩 질데란츠 평원 전투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팬크라프트의 마스터 하나와 렌도로스 팬크라프트 대공을 전사시킴으로서 팬크라프트의 야욕을 잠재워, 대륙 전쟁 종결자라는 명호를 따로 얻게 되었다……. //////////////////////////////////// 마지막 화이지만... 아직 에필로그 및 외전이 남았습니다. 고로 완결공지는 다음에 때립니다. “풋. 푸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회장님 무슨……?” 조용한 회의실에서 터진 갑작스런 폭소. 김석진 회장은 자신을 마치 미친 사람 보는 듯이 쳐다보는 이사들의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넘겼다. “아아. 별 것 아닐세. 그럼 계속 보고하도록.” 김석진 회장은 부하 직원들의 동요를 잠재운 뒤 회의를 계속 진행시켰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회장의 웃음은 또 다시 터졌다. 레이저 포인트로 화상을 가리키던 직원은 애써 보고서 써 와서 브리핑 실에서 보고하고 있는데 저렇게 자꾸만 웃으면서 회의의 흐름을 끊어놓으니 아무리 회장이라지만 너무 체통이 없는 것 같아 회장에게 한 마디를 하는 놀라운 깡을 보여주고 말았다. “회장님. 회의실입니다. 좀 조용히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히 해 달라?” 김석진 회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특유의 은빛의 눈동자로 보고하던 직원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윽!” “커억!” “으으읍!” 기타 원탁에 둘러 앉아 있던 직원들이 각자 왼쪽 가슴을 쥐었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고통. 김석진 회장의 특기인 살기발출으로 이것을 혼자서 정면으로 받아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 직원이 한 둘이 아니라는 그 무서운 전설의 스킬이다. 김석진 회장은 까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와 비슷한 협박을 가한 뒤, 브리핑을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그는 연신 괜시리 키득거리며 전혀 브리핑을 듣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머지 부하 직원들은 방금 전과 같은 살기를 맞는 것도 무섭거니와, 그나마 광소를 하며 브리핑 실을 시끄럽게 하지는 않기에 그런 그를 무시하고 브리핑을 들었다. 마침내 브리핑이 끝나고, 한참 키득거리기만 하던 김석진 회장이 말했다. “그러니까……이러저러 해서 이렇고, 이리저리 해서 그렇다. 이 말인가?” 계속 미친 인간처럼 혼자서 실실 쪼개며 전혀 듣던 모습이 아니던 김석진 회장은 브리핑의 요점을 정확히 꼬집어 내고 있었다. 내심 자세히 들어야 할 회장이 헛짓거리를 한다며 불평하던 브리핑 담당 직원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예,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회의를…….” “이렇게, 저렇게, 요러쿵 저러쿵 하면 될 것 아닌가?” 무심한 말투로 말하는 김석진 회장.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는 정확한 문제점을 꼬집어 내고 그 누구도 생각해 내기 힘든 묘안으로 회의가 필요 없을 정도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뭐 그럼 그렇게 진행시키도록 하게. 그럼 이만.” 전 세계 최고의 기업이자, 통일한국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초거대 그룹 은룡그룹 SD(실버 드래곤)그들이 그렇게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요인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친환경 신기술을 꼽지만 그 외에도 거의 신적인 경영을 보여주는 최고의 CEO 김석진 회장 덕분이었다. 뭐 다들 알고 있겠지만 사실 그 초인적인 능력의 사업가 김석진 회장은 인간이 아닌 이쪽 세계로 놀러 온 판타지 세계의 실버 드래곤 아크라우스로 현재는 판타지 계로 보내 버린 김석진의 역할을 대행하여 현세 지구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예순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20대의 젊음을 유지하고, 살기만으로 인간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등의 신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회의실에서 나온 김석진 회장은 아직 실용화 시키지 않고 군사목적화로만 정부에 판매하는 순간이동 시스템을 이용.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곳은 어느 소년의 방. 의자 앞에 앉아서 컴퓨터 마우스를 연신 두들기는 소년. 김석진 회장은 기척을 죽이고 은밀하게 소년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 그는 할 말을 잊었다. 아무리 변태 폐인 인간으로 유희를 해서 탄생한 후손이라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닮아 놓으면 어쩌자는 건지 도대체……. 김석진 회장은 드래곤 피어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고막 정도는 쉽게 파손할 수 있는 괴성을 질렀다. “떽기놈!” “허, 헉 하, 할아버지!!!” 고작해야 형이라 부를 수 있는 난이도의 청년으로만 보이는 김석진 회장에게 할아버지라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았지만 소년의 입에서는 그것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네 이놈! 어디서 이런 거 하고 놀라더냐! 맨 처음 오프닝에서 뜨는 19세 경고는 뻘로 보이더냐! 당장 못 꺼! 어리면 어린이답게 놀 것이지 어데서…….” 그러던 김석진 회장은 손주가 하던 게임 타이틀 및 이름을 보고서는 할 말을 잊었다. ‘변태 쇼타 마법 선생 니김희’ 라는 마우스 미연시 타이틀로 10살짜리 어린이 선생이 파트너를 찾아 31명의 14살 여자 중학생들과 성적 결합을 통한 가계약을 맺는 엄한 게임이었는데, 주인공 연령대가 손주놈하고 완벽히 일치하지 않은가……. “할아버지! 이 게임은 저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성적인 유희를 제공하는 최고의 게임입니다. 그동안의 미연시 게임들의 주인공이 대부분 고교생 이상으로 성인들의 성적 유희를 제공했다면 이 게임은 말이죠. 저와 같은 나이의 어린…….” 쾅! “개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끄지 못해!” 폴리모프로 드래곤의 유전자가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최고의 유전자를 지닌 완벽한 인간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인지 아크라우스의 인간 손주는 어릴 때부터 영재 소리를 들어왔다. 지금은……이상한 쪽으로 많이 발달을 해서 문제지만. 커다란 혹이 하나 달린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찔끔 흘리던 소년은 한참 잘 나가던 차에 훼방을 놓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불충한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그런데 왜 오셨습니까? 할아버님.” “흠흠. 네가 좋아하는 변태 기사 아크의 이야기가 새로 갱신되었더구나.” “정말이요?” 어른을 불신하는 불충스런 눈빛이 비로소 아이다운 반짝임을 머금으며 맑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김석진 회장은 역시 애는 애군 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자기도 지켜보고 있는 아크 놈의 행적이 워낙 웃겨서 기업의 가장 높은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폭소가 터질 정도였는데 재미가 없을 턱이 있나. 더구나 손주놈의 가장 큰 취미인 미연시 계열의 이야기가 많았던지라 녀석은 정말 그 옛날 할머니가 동화책 읽어주는 것만큼이나 김석진 회장이 이야기 해 주는 변태 기사 아크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오늘은 말이다. 변태 기사 아크가…….” 할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소년. 소년은 할아버지의 마치 직접 현장을 보고 온 듯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언젠가는 자신도 그런 미연시 스러운 모험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년은 훗날 ‘가상현실 미연시’ 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는 데의 주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 에필로그 1 아크라우스 테일 끝 3월 20일자로 올라오게 될 에필로그 2 아크 종결부를 기다려 주십시오. 대륙력(칸딘스키 공작이 확립했기에 칸딘스키 력이라고도 불린다)1840년 대륙 전쟁의 지략의 기사 아크에 의하여 끝을 맺었다. 그 뒤 중도와 루드비안(최고 군의 통솔권자가 성자)이라는 대표적인 두 주신교의 세력에 의해 큰 타격을 입고 대륙 최강의 자리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된 팬크라프트에는 암흑신교의 세력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대륙 서부에서 크게 발달한 암흑신교의 세력은 대륙에서 주신교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전쟁을 시작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성마전쟁이다. 중도와 팬크라프트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성마전쟁은 암흑신의 유지를 이어받은 마왕 키르넨시스의 강림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중도의 성기사 로리엔과 성자라 불리는 지략의 기사 아크가 나서(아크는 사실 억지로 끌려갔다는 속설이 있다)마왕을 없애고(공공연한 비밀로 마왕이 인간계에 눌러 살기로 했다는 설이 있다)대륙의 평화를 가져왔다. 대륙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또한 성마전쟁마저 종결시킨 아크는 안 그래도 대공이라는 작위를 하사받고 제국 최고의 권력자로 자리 잡던 것이 대륙 최고의 영웅이 되어서 더더욱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아크는 그 막강한 권력으로 근대적인 개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시켰고 개화를 추진할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최고의 강사진들이 모인 학교를 세우며 기업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지속하여 현재는 이계에서 문화를 전파해 온 문화 전파왕으로도 불리우고 있다. 이대륙 침공과, 로리엔 가의 폭주 등 성마전쟁 이후에도 대륙의 위기를 끈임 없이 구해 온 그는 현재는 여러 직함들을 모두 버리고 그가 세웠고 현재는 전 세계 최고의 학교라 불리는 아르델린(별 뜻 없이 어감이 좋아서 붙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연이 있다)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여학생들과 여교사들과의 스캔들 설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드르렁 푸우~.” 아침 출근 시간대가 약간 지난 지하철. 허전히 비어 있는 좌석에는 편한 츄리닝 차림의 남자가 이불까지 덮은 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동부 대륙의 인종인 검은 머리에 황색 피부를 가진 사내. 하지만 세계가 글로벌화 되고 이대륙 침공 시 여기저기 섞인 피 덕분에 그의 외모가 특별히 튀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저 노숙자처럼 생긴 사람의 정체가 사실은 세계 최고 명문이라는 학교의 주인이자, 근 수백 년 동안 활약해 온 영웅. 지략의 기사, 문화 전파왕 아크라는 것을. 한때는 잘 나갔다지만 현재의 그는 다시금 그가 창조해 낸 세계 속에서 게임에 도로 빠져듬으로서 이전 폐인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크 서클은 다시 생겨났고, 늘상 퍼 자면서 아침에 보면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다행인 것은 냄새나는 것을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깨닫고 매일 몸은 씻는다고 한다. “으으 춥다.” 지하철에서 내린 아크는 들고 온 이불을 망토처럼 감싼 채 역에서 나와 한창 개학식이 벌어져야 하지만 제일 중요한 교장의 불참석으로 지연되고 있을 자신의 학교로 향했다. 워낙 급하게(?)일어나서 나오다 보니 옷 갈아입을 새도 없이 그냥 추울까봐 잘 때 입던 옷에 덮고 자던 이불만 들고 나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교문 앞에 당도하자 청색 수위 복에 노란 수건을 걸친 중년의 사내가 아크를 반갑게 맞이했다. 한 때 모 여학교에서 색마로 이름을 떨치던 사내로 작년 로리엔 가 후계자들의 입학으로 아크가 특별히 수위로 스카웃했다. 궁형을 당해 남자 구실은 못하게 되었다지만 그 막강 테크닉이라면 도움이 될 것이다. “흐음. 그럼 올해도…….” 자다가 옷 갈아입기 귀찮고 밖은 추워서 이불을 두르고 나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아크는 즐기고 있었다. 지략의 기사, 문화 전파왕 등의 온갖 명성을 다 듣고 기대에 차 있을 신입들의 표정이 황당하게 일그러질 그 모습을. 워낙 학교가 넓다 보니 빠르게 달려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어느 새 웅성거리는 대강당에 도착하자, 입구에는 마법사이자 최고위급 과학자로서 이름을 날린 쥬레이나란과 엘프로 보이는 자그마한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치겠군.” 쥬레이나란은 미리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도 변함없는 기상천외 의상을 갖추고 온 아크를 보며 못 봐주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크는 그런 쥬레이나란은 개의치 않으며 초등학생이나 될까 말까 한 어린 소녀 엘프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소녀를 향해서 한 인사는 묘하게 조심스러웠다. “안녕?” 휙. 꼴 뵈기 싫다는 듯 엘프 소녀는 고개를 돌렸다. 하기야 엄청나게 미움을 사고 있으니 저런 차가운 반응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크로서는 소녀를 교사라는 직책으로 이곳에 붙들어 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빨랑 들어나 가! 이 멍청아!” “자식이 그러니까 그냥 네가 변신해서 하랬잖아! 오히려 정상적인 내 모습을 보면 신입들은 몰라도 재학생 놈들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것 같은데.” “그래서 안 했다. 사이코 같은 놈아. 어여 들어나 가.” 아크는 떠밀리듯이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지체가 될 대로 된 지라 일반 교직원들이 재촉하기에 빠르게 단상 위로 올라갔다. 웅성웅성 시끄럽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웬 싸구려 체육복에다 이불을 망토처럼 두르고 흙밭에 질질 끄시면서 들어 온 남자를 본 탓이다. 마이크 앞에 서자, 아크는 늘어지게 하품 한 방을 내쉬었다. “흐아아아암! 수업료 납부 잘 하고, 교내정사 하지 말고, 그렇다고 교외정사를 하려면 철저히 피임을 할 것이며 여자들 교복……뭐 줄여 입든지 팬티 앤 브라로 개조해서 입든지 마음대로 하고 인생 오래 살면 지루하니까 적당히 살고 죽을 수 있도록 사후 준비는 철저히 하도록. 그럼. 흐아아암.” 예상대로 모두들 굳어버린 모습에 아크는 속으로 흐뭇함을 느끼며 단상을 내려갔다. 그러자 그의 앞을 한 여성이 뭔가 편지를 하나 가져와 내밀었다. “저기! 이거.” “러브레터?” 그러나 여성의 대답은 단호했다. “미쳤어요?” “어이 그렇게 딱 부러지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아크는 심드렁하게 대꾸한 뒤, 편지의 발송자와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오호! 드디어 하는 군.” 로리엔 가에서 발송된 편지 내용에는 정기적으로 대륙 전체를 들끓게 만드는 초인들의 대결 행사를 알리는 내용이 있었다. “어디 보자……내가 맡을 놈은…….” 아크의 표정이 약간 찌푸려졌다. 그가 맡아야 할 이가 가장 가능성이 희박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가장 가까운 놈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가장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해 낸다면 성취감과 재미는 더욱 큰 법. 어차피 굳이 이기게 만들 필요도 없고 그저 폭주하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 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이자, 로리엔 가와 마왕 키르넨시스와 약조한 맹약이기도 했다. 그것뿐이다. 하지만 왠지 이번 녀석은 이전 초대 가주 화이트 로리엔처럼 쉽게 놀려 먹을 만한 재미가 있을 것도 같았다. 아크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어디론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수화기를 들자마자 아크는 다짜고짜 제 이야기부터 꺼냈다. “듣고 있나? 지금 당장 기숙사 재편성하도록. 르네아드 공작 가의 여식하고 그 어쌔신 길드 쪽에 관련이 있는 녀석. 그리고 브로베리를 빼도록 해. 여자가 좀 부족하지 않냐고? 걱정 마. 이번에 맡은 놈은 이복여동생에 피 안 섞인 젊은 어머니까지 있으니까 말야. 어 그래, 그래. 그럼 수고해.” 뭔가 할 이야기가 조금 더 있었지만 아크는 전화를 빠르게 끊었다. 앞으로 봉이 될 목표인 녀석이 방금 막 자신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제기랄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이놈의 가문에서는 왜 꼭 저런 잘생겨 먹은 놈들만 쳐 나오는 거야?” 어딘가 유약해 보이고 로리엔 가의 핏줄답게 여장시키면 못 알아 볼 미소년. 다만 그래도 선이 굵고 머리를 길게 기르지 않으니 남자처럼 보이기는 했다. 뭐 저렇게 생겨먹은 자식이 아직도 동정딱지도 못 떼본 완전 쑥맥이라니 조금은 믿기지 않았다. 저 정도 외모에 선천적인 강력한 정력이라면 아무리 로리엔 가의 핏줄이라고는 해도 건드리는 이가 한 둘은 있는 법인데……. 그렇게 빠져나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아크는 넌지시 한 마디 했다. “색마로 만들어 주지. 소년. 어차피 너희 일족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수백 년 피의 역사. 자칫 잘못 하면 언제 터질 핵폭탄. 그걸 막아야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임무이기도 하다. /////////////////////////// 에필로그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음 작 예고나 다름없죠. 루시페리아와는 달리 아크 종결부에서 이어지는 것은 언제 쓸 지 기약을 못합니다. 아마도 학원 + 하렘물에 이 역시 정통 미연시 부류를 따라 갈 듯 합니다. 흥미로운 기록이 하나 있다. 지략의 기사와 중도의 성기사 화이트 로리엔이 종결지은 성마전쟁. 그 종결점은 그 둘이 암흑신의 유지를 이어받은 마왕 키르넨시스를 무찌르면서 끝났다. 허나 무찔렀다고 알려진 키르넨시스는 죽거나 마계로 소환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인간계에 남아 더 큰 불운의 씨앗을 남겼다. 혹자는 색욕이라는 명호를 따로 지니고 있을 정도로 호색한 지략의 기사가 인간의 몸을 구성해 인간계에 존재하고 있던 마왕의 몸을 차지한 소녀에게 혹하여 죽이지 않고 첩실을 삼으려고 살려두어 데려왔다는 속설이 있는데 확실히 가능성은 높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은 달랐다. 잠시 그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커허어어억!”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몸이 엎어졌다. 주변에는 중도의 성기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로리엔은 다행히 죽음의 상황에서 블레싱 소드로 간신히 생명을 건졌고, 쥬레이나란은 헤츨링이라서 그런 지 키르넨시스가 전투 불능 상태에서 더 이상 공격하지는 않았다. “오호호홋! 주신의 졸개들이 나에게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거냐? 아하하하하!” 아크가 마족에게 상납한 네크로맨서의 삽에, 팬크라프트에 급속도로 퍼진 암흑신교로 인하여 인간계에 강림할 힘을 얻은 암흑신의 대리자 마계 삼마왕 중 하나인 음마왕 키르넨시스. 보통 마왕 하면 그저 무섭게 생기고 덩치가 거대한 남성형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음마왕 키르넨시스의 경우에는 중성을 지녔다. 그러면서 여성향 쪽을 조금 더 선호하여 인큐버스들의 봉사를 주로 받음과 동시에 인간계에서도 소녀의 몸을 빌려 강림했다. 겉보기에는 연약한 소녀로만 보인다. 그러나 그 소녀가 내뿜는 힘은 마왕답게 에인션트 드래곤을 능가했다. 단 한 방의 암흑기 발출로 성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으며 블레싱 소드로 간신히 버티던 로리엔이 쓰러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아크마저 보랏빛을 띄는 마계의 푸른 불꽃에 연달아 맞고서는 버텨 낼 힘이 없었다. ‘정말 죽겠군. 제기랄.’ 아크라우스의 말로는 자신의 브레스로도 강림 마신을 당해 낼 수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제 자신의 목숨을 구원해 줄 이는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크가 쓰러진 상태에서도 헉헉거리며 숨을 내쉬는 것을 본 키르넨시스는 다시 한 번 보랏빛의 마계의 불꽃덩이를 소환했다. “끄아아아아아악!!!” 마계의 푸른 불꽃은 몸이 타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영혼이 연소되는 듯한 극심한 고통을 가져왔다. 실제로 로리엔이 죽음에 이를 정도의 타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쓰러진 이유는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 컸다. 뱃속을 인두로 지지는 듯한 느낌. 아크의 코와 입, 귀, 눈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제, 죽는 건가……. 정말로. 60년 정도 살았으면 천수를 누렸다지만……더 살고 싶다.’ 움직일 힘은 남지 않았다. 근접거리에서 특기인 서브미션으로 보내 버릴 수조차 없다. 그렇게 의식의 끈을 놓아가던 아크는 문득 이상한 생각 하나가 들었다. ‘가만 있자……마왕들이 인간계를 정벌하는 이유가 뭐였더라?’ 몇 가지 접해 본 소설이나 만화 게임 등에서의 마왕의 강림 이유. 그 중에 하나 얼토당토 않은 것은 바로 ‘심심해서’ 아크가 접해본 적이 있었던 모 게임에서는 마왕이 세계정복을 하다가 다른 유희거리를 주겠다는 말에 쉬이 아이들 양육을 맡아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스토리가 존재하기도 했다. 물론 마왕의 진짜 목적은 아이들을 잘 키워 나중에 잡아먹겠다는 전형적인 미연시 시나리오이긴 했지만 말이다. 기타 그 외에도 대략의 이유를 보면 마계에서의 지루하고 오랜 삶을 인간계의 정벌과 인간 학살로 푸는 성질 거지같은 마왕들이 몇 있었다. 따지고 보면 별 이유도 아닌 것에 인간들은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가 마족들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에라 진짜 마왕이 그러겠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때가 아니던가? 아크는 있는 힘을 다 해 블레싱 소드로 땅바닥을 지탱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호? 아직도 서 있을 힘이 남은 거냐?” 아크는 조금씩 키르넨시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키르넨시스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릴 푸른 불꽃을 손에 생성시켰다. “의지는 좋다만 이걸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정말로 칭찬해 주마.” “잠까아아안!” “뭐냐?” 아크는 블레싱 소드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마법 아공간에서 현대의 문물들을 꺼내들었다. 노트북, 게임기, 기타 온갖 서적류였다. 그리고 나서 아크가 말했다. “당신 인간계 정벌하면 재밌습니까?” “뭐?”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키르넨시스는 잠시 고민했다. 인간계 정벌. 해야겠다. 해야한다. 소리는 자주 들었고 그것이 진짜 마계의 존재들이 추구해야 할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솔직히 재미있는지 없는지는 잘 몰랐다. “뭐 재밌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군.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그럼 인간계 왜 먹으려고 합니까?” “그건 암흑신의 유지를 이어서……였던가?” 아크의 질문에 키르넨시스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마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의문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째서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인간계를 정벌해야 하는 거였지? “글쎄다?” 어째서 인간과 이런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건지도 잊은 채 키르넨시스는 아크의 물음에 대답했다. “솔직히 왜 하는지도 모를 것 하는 거 별로 재미없죠?” “음……아! 생각났다. 우리를 배신하고 어두운 마계로 집어넣은 주신에게 보복하고 천상계를 되찾기 위한 위대한 성전이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놈이 어디서 감히 날 우롱하는가?” 키르넨시스는 다시 손에 보랏빛의 불꽃을 생성시켰다. 아크는 기겁하여 말렸다. “자, 자, 자, 자, 잠깐만요! 누님! 잠시만 참고 제 얘기 좀 들어 보시라고요!” “뭐냐?” “에이 스벌!” 아크는 주신의 상징이라는 블레싱 소드를 아무렇게나 집어던졌다. ‘호오?’ 그 모습에 키르넨시스는 흥미가 동했다. 주신의 성자라는 놈이 신이 내린 신물을 저렇게나 함부로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뭐 하는 짓거리지?” “젠장. 내 신세가 짜증나서 그렇소.” “왜?” “니기미. 저거 말이지. 사실 저 칼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거든. 그런데 저 칼 한 자루 가지고 있다고 저놈의 성기사 놈들은 나를 성자니 뭐니 하면서 떠받들어. 웃기고 앉았네. 맨날 정화수도 시킨다고 협박하면서 내 마누라한테도 손도 못 대게 하고 영지에 하녀들은 신의 뜻에 어긋나니 하지 말라고 협박하고 천사들. 뭐 그거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고 구멍도 없고 거시기도 없소! 에이 제기랄 이 놈의 주신인가 뭔가 하는 쉐리 그 신성한 남녀의 결합을 그 따위로 개무시 하면서 규제해도 되는 거야 앙!” 평소 당해왔던 것이 있었던지라 진정한 분노에서 나오는 신에 대한 모독이 쏟아지는 아크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장난하나?” “…….” 애써 잘 떠들기는 했는데 별 효과가 없다. 손에서 보랏빛이 은은하게 어리는 모습을 본 아크는 즉각 키르넨시스에게 붙어서 현대 문명의 이기를 내보였다. “잠깐! 이것 한 번 해 보시겠소?” “뭐야?” 움직이는 그림이 나오는 괴상한 물체에 마왕은 관심이 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저기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한 다음 요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음 줘 보도록.” 아크는 아크라우스의 SD에서 만든 최고급 휴대용 게임기를 마왕에게 넘기며 속으로 빌었다. ‘제발 먹혀라!’ “오호?” 삑, 삑 삐빅. 시큰둥해 하던 마왕은 점차 액정화면에 몰입했다. 표정도 풀리고 옆에 마족 부하들과 아크가 있는 것도 잊은 채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했다. ‘……먹혔다!’ 드래곤을, 무의 신이라 불리는 무인을 굴복시킨 현대 문명의 오락이다. 마계에서 고작 성적 유희를 제외하고는 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던 마왕도 쓰러뜨리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저기……할 만 하죠?” “음.” 드래곤과 같이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마족 그 중에서도 왕급인 마왕! 이기에 게임기에 집중하면서도 아크를 동시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아크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왕을 꼬시기 시작했다. “혹시 인간계에서 이런 것들을 즐기며 살아보실 생각 없습니까?” “무슨 헛소리냐?” “제가 마계에 가 보지는 않았지만 수천 년을 살아오신 마왕님이 마계에서 너무도 지루한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크는 전설상의 문헌에서 읽었던 마계의 삶을 대략 짐작해서 말했지만 그것이 정말이었는지 마왕은 침묵하여 대꾸하지 않았다. “인간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높은 서열을 위해 싸우고 죽일 뿐인 마계와는 다릅니다. 여러 가지 인간의 군상이 존재하며 그 삶에서 각기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드래곤의 유희를 아시고 계실 테죠? 긴긴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그들이 선택하는 놀이는 바로 인간놀이입니다.” “으으음.” 마왕은 조금은 마음이 흔들렸다. 인간계에서의 삶 아크가 말해 주지 않더라도 그가 지켜 보는 인간계의 삶은 전투와 살육으로 얼룩진 마계의 삶보다는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나 어찌 마계지존인 마왕이 일개 인간처럼 살아간다는 말인가? 고민하는 마왕에게 아크는 현대문명 러시를 계속했다. “자, 자 생각은 조금 나중에 하셔도 됩니다. 그거 자주 죽으시는군요. 자 이거랑 이것도 해 보시고 이거도 한 번 보십쇼.” “음 어떻게 하는 거지?” 마왕의 나뉜 정신은 아크와 게임기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기에 그것에 흥미가 동한 마왕은 아크가 건넨 것들을 연신 재미있게 플레이 했다. “……하아 인간이 되면 더 재밌는 것들도 많을 텐데.” 움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리고 말입니다. 인간처럼 살면서 즐긴다고 해도 근본이 마왕인 것은 바뀌지 않습니다.” 천족보다 욕구라는 것이 인간만큼이나 매우 강한 마족의 왕인 마왕이기에 아크의 회유는 마치 며칠 굶은 아이들의 눈앞에 보이는 과자로 만든 집과 같이 절실히 다가왔다. 길고 긴 시간동안의 정말 지독한 설득. 아크는 결국 최후의 무기를 꺼냈다. 아크가 꺼내는 것들마다 재밌는 것들이기에 주위를 기울이던 마왕.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영상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무어냐?” 진동을 보이며 흔들리는 괴물체. 곧이어 아크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건 이러쿵 저러쿵 해서 저렇게 하고 이렇게 하는 물건으로 주로 여성이 거시기를 할 때 사용합니다.” “뭣!” 마왕의 표정에 큰 동요가 생겼다. 단순 교접만을 나누는 마계에서는 전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행위. 거기에 진동으로 자극하는 각종 기구들.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를 창조해 낼 만큼 욕구가 강한 마왕이었던 키르넨시스는 인간들이 만들어 내어 아크가 항시 들고 다니는(……)기구들과 그가 말해준 인간의 체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오히려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꼬시기보다 이쪽 진동 기구 하나 꺼내는 것의 효과가 더 컸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 관계를 갖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듣자 마왕은 마음이 기울었다. 여차 해서 재미없으면 언제라도 다시 인간계 정벌 프로젝트를 실행해도 되지 않던가? 하지만 지금 인간계를 괴멸시켜 버린다면 앞서 아크가 말했던 귀가 솔깃한 온갖 문명의 이기와 인간의 성문화를 체험해 볼 수 없었다. “정말이겠지?” “아! 물론입니다. 이거 한 번 보시겠습니까?” 이번에 아크가 꺼낸 것은 영지에서 방영하던 성인용 동영상. 마왕은 실사와 거의 똑같은 그림이 평면 화면 안에서 보이는 모습들에 또다시 놀랐다. 그것을 보던 마왕은 결심을 굳혔다. “좋아. 한 번 내 말대로 해 보도록 하지. 만약 재미가 없다거나 할 시에는……네놈은 죽는다.” ‘살았다!’ 재미가 없다면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아크는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설사 재미가 없다 하더라도 일단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 무신을 동원할 수 있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계의 지루한 삶은 이제 가라! 기왕 인간계에 강림하셨으니 마음껏 즐기고 놀아 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아크 최대의 위기이자 훗날도 끝까지 얽매이게 되는 마왕 조교가 시작되었다. ///////////////////////////// 원래 실릴 예정이었던 본 엔딩 성마전쟁의 마지막 장을 잠시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