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사이케델리아] 1.믿을 수 없는 일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15 게 시 일 :99/08/12 21:29:39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8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 믿을 수 없는 일 부우웅--- 마을버스가 출발했고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음악은 일본 만화 주제가. 왜 듣냐고? 그거야 내 맘이지. 오늘도 꾸역꾸역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 많이 타든 말든. 나야 이미 뒷자 리에 앉아있으니까 상관없지. 히히. 학교는 마을버스 종점에 위치해 있어서 내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다. 애들 다 내린 후에 내리면 되니까. 아~ 우리 학교는 위치 하나만 끝내준다니까. 음... 한시간 동안 버스를 탔더니 졸려웠다. 그래서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책상에 엎드려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방학때라면 지금쯤 자고 있을 시간인 데 그놈의 보충수업이 뭔지..... 딩띠리딩 딩딩딩.... 얼레? 어느새 수업시간이 됐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머리가 아 팠다. 난 짝인 떡근이를 깨운 후에 수업 준비를 했다. 오늘도 지겨운 여름방 학 보충수업이 시작됐다...... 어찌어찌 1,2,3 교시가 지나고 30분간의 점심시간이 지난뒤 -물론 난 그때 퍼질러 잤다- 4교시가 시작됐다. 4교시 수업을 한창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개 태우는 냄새가 풍겨왔다. 음.... 한동안 뜸하더니 또 개 잡은 모양이군. "이게 학교냐?" 내 뒤에 있던 경호가 투덜댔다. 수업을 하시던 국사 선생님이 웃으며 말하 셨다. "아, 이 얼마나 낭만적인 학교냐. 가끔씩 개가 깨갱대는 소리도 듣고, 개 태우는 냄새도 맡고, 게다가 쓰레기 태워 나오는 다이옥신도 듬뿍듬뿍 먹 여주고 말이야. 정말 최고의 환경이라니깐." 애들은 선생님의 말에 크게 웃었다. 우리 학교 운동장 바로 옆에는 소규모 의 쓰레기 소각장과 개 잡는 곳이 있다. 여름이면 개 태우는 냄새가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고, 쓰레기 소각장에서 나오는 다이옥신을 우리는 원없이 먹는 다. 곧 있으면 학교 뒤쪽에 대규모의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고 한다. 음,우리 학교가 남자들만 있는 고등학교라서 다행이지. 여학생들이 있었다면 당 장 난리날꺼다. 우리학교 아이들은 너무 순하다(?)니까. 개 태우는 냄새를 맡고 있으니까 초등학교 때 시골에서 돼지와 개를 잡던 생각이 났다. 물론 내가 잡았다는게 아니다. 구경했다는 거지. 우리 시골-전라남도-에서 돼지를 잡을 때 먼저 내 머리통만한 나무 망치로 돼지 머리를 가격한다. 돼지가 쓰러지면 부엌칼-정확히는 모르겠다-로 돼지 목을 찌른다. 그때 들을 수 있는 것은 전설적인 '돼지 멱따는 소리'. 무지하 게 톤이 높다. '꽤애액'하는 정도. 서울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직접 들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네..... 돼지의 목을 찌르면 피가 철철 흘러 넘친다. 완전히 '피의 홍수'다. 돼지가 뻗어버리면 주전자 뚜껑으로 돼지털을 민다. 거기까지 밖에 모른다. 구경하 다가 할아버지들에게 혼났으니까. 돼지잡은 다음날인가? 아니면 그 날 오후던가? 머리가 나빠서 모르겠다. 어 쨌든 개 잡는다고 해서 구경나갔다. 제일 먼저 본 것은 시골집 옆에 있던 큰 나무에 매달린 개 한마리였다. 개 앞발을 묶어서 나무에 매달아 놓고 어른들 이 굵은 쇠몽둥이로 개를 늘씬하게 두들겨 팼다. 어른들 중에서 우리 아버지 가 제일 힘이 좋으셨기 때문에 주로 아버지가 개를 죽도록 때렸다. 몽둥이로 몸을 때리는건 기본이고, 나무 위로 올라가 발로 개의 머리를 찍었다. 개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꿈틀댈 뿐이었다. 난 그 광경을 두눈을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았었다. 잔인하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왜 난 끝까지 다 봤을까? 역시 난 이상한 놈이야..... 개가 죽은 후에는 개를 통째로 태운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어른들이 즉석에서 개의 껍질을 칼로 떠서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나도 같이 먹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먹을만해서 계속 먹다가 뻑뻑한 털이 나 있는 부분을 먹 고 나서는 먹지 않았다. 정말 맛없었다. 그걸 먹지 않았다면 계속 먹었을텐 데..... 쩝. 딱! 웃! 머리야.... 누군가 내 머리를 때려서 쳐다봤더니 국사 선생님이었다. 수업시간에 계속 창밖을 바라봐서 맞은 것 같았다. 국사 선생님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건강한! 수업시간에 창밖 쳐다보지 마라!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건강한 지식을 축적해야지!" "푸하하하!!!!" 애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런~ 선생님, 하나도 안 웃겨요. 자꾸 '건강한' 하지 마세요. 제 이름은 '권강한'이라구요! 하여간 이놈의 이름때문에 웃음거리가 된다니깐. 개명을 하든지 해야지.... 딩동 딩동. 4,5교시를 얼렁뚱땅 보내고 6시까지의 자율학습을 대충대충 보냈다. 공부를 해도 머리에 하나도 남는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독서실 안을 둘러보니 6시까지 남아있는 인간들이 20명 안팎이다. 원래 몇 명이었더라? 50명은 넘는 것 같은데..... 뭐, 나하고는 상관없지. 어쨌거나 오늘도 6시까지 버텼다는데에 큰 의의가 있는 거니까. 교문을 나서니 버스 한 대가 지나가는게 보였다. 학교 바로 앞에 버스 두 대 지나갈 정도의 길이 있는데 그 길로 차들이 왔다갔다한다. 난 그 길 옆의 보도를 따라 걸었다. 하늘은 맑고 인간은 없다. 참 썰렁하군. 뭐, 버스 자리 쟁탈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지만. 반짝반짝-- 갑자기 내 앞에서 붉은 빛이 번쩍했다. 교복 상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던 안경을 꺼내 쓰고 자세히 바라보니 자두맛 사탕 크기의 붉은 구슬이었다. 난 그 구슬을 집어들었다. 아름다운 붉은 빛을 내뿜는 구슬. 정말 희한하군. 이 런게 왜 여기에 떨어져 있는 거지? 어쩔 수 없군. 떨어져 있었으니 주운 사람이 임자다. 난 그 붉은 구슬을 교 복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난 내 눈을 믿을 수 없 었다. 세상이 멈춰버린 것이다. 나 말고는 움직이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느낌은 너무나 섬뜩했다. "뭐, 뭐야 이거?" 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일부러 말을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상 황은 똑같았다. 날아가던 참새는 허공에 떠 있고, 버스도 서 있고, 그 안의 사람도 정지해 있었다. 이거 내가 꿈을 꾸고 있는건가.....? 쿠쿠쿠쿠--- 갑자기 들려온 굉음에 난 앞을 쳐다보았다. 내 눈앞에서 공간이 이지러졌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난 넋을 잃었다. 이지러졌던 공간이 원형의 암흑통 로를 만들었다. 하하, 이거 내가 진짜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인데? 우우웅--- 그 공간은 마치 나보고 들어오란 듯이 웅웅댔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 이 여전히 멈춰있었다. 어떻게 할까? 눈 딱 감고 그냥 들어가 버릴까? 아니 면 그냥 무시하고 가버릴까? 들어가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흠.... 그냥 들어가 봐야겠다.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좋은 거고. 나야 뭐 세상에 미련은 없으니까. 삶의 의욕도 없는데 갔다오고 나서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도 있고. 거기서 영원히 살 수도 있고. 부모님이 걱정하시겠지만 내가 언제 그런거에 신경썼나. 후후..... 난 천천히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너무나 단조로운 내 삶을 벗어나고 싶 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보다는 지금 이게 꿈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더 강했 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거다. 내가 완전히 들어가자마자 공간의 문.... 그게 멋있겠다. 공간의 문이 닫히 면서 난 무지하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우욱! 난 멀미에 약하단 말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내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은 울창한 나무 들이었다. 난 숲속에 있었던 것이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엘프의 마을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16 게 시 일 :99/08/12 21:30:56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6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 엘프의 마을 -1- 따뜻한 햇살이 내 머리 위를..... 이건 거짓말이다. 울창한 나무 때문에 햇 빛은 나한테 거의 오지도 않았다. 난 천천히 일어섰다. 내 옷은 그대로였다. 옷뿐만이 아니라 안경, 신발, 가방 모두 그대로였다.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어쨌거나 이 숲을 빠져나가야 될 것 같은데. 이런 숲에는 대개 사나운 맹수들이 우글우글~ 댈 확률이 거의 100%니까. 사 나운 맹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그들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내 모습이 눈에 선~ 하다. 난 무작정 숲을 헤치고 나갔다. 숲에서 길찾는 방법 같은 걸 내가 알 리가 없으니까.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이 멈춰있었다. 뭐냐 이건? 시계가 죽었나? 난 시계를 벗어 가방 속에 집어넣은 뒤 계속 숲속을 헤맸다. 땀이 줄줄 흘 러내렸다. 난 안경까지 벗어 교복 상의 주머니에 넣었다. 안경을 벗으니까 온 세상이 뿌옇게 보인다. 시력 검사대.... 맞나? 어쨌거나 시력 검사할 때 그 검사대 위에 적힌 숫자를 안경벗고 보면 하나도 안보인다. 가장 큰 숫자 인 4도. 두 눈을 뜨고 아무리 인상써도 5미터 이상되는 거리에서는 흐릿할 뿐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 흐릿하게 보이는 숲속을 헤매며 내 정신도 흐릿해져 갔다. 우.... 이건 모두 내 잘못이지. 뭐, 죽을 각오를 하고 그 공간 속에 발을 들여놓은 거니까..... 하지만.... 죽일려면 한방에 죽여줘!!! 얼마나 숲속을 헤맸는지 모르겠다. 난 시간 개념이 희박해서..... 10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거의 비몽사몽간을 헤매다가 난 어떤 공터에 발을 들여놓았다. 힘겹게 고개 를 들어 바라보니 몇개의 나무집들이 보였다. 집...? 그럼 사람이....! "음....." 엇! 이러면 안되는데.....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 데....... 우..... 머리 아퍼.....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어머, 깨어났군요!" 얼레? 왠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가? 난 천천히 눈을 떳다. 욱... 눈 뜨기가 왜이리 어려운 거야! 힘겹게 눈을 뜬 나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음.... 안경이 없으니 하나도 안보인다. 색깔밖에 안보이네? 옷은 녹색인것 같고.... 얼굴은 하얗 고.... 머리칼은 에메랄드색이고..... 뭐? 머리칼이 에메랄드색? 그런 색으 로 머리를 염색하는 인간이 있단 말이야? 드디어.... 갈데까지 가는군.... 갑자기 후각을 자극하는 향기. 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바나나 향기다! 우옷! 저 아가씨 마음에 드는데? 나 먹으라고 바나나를 준비하다니! 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이불이 신기하게도 나뭇잎을 수백 장 모아서 엮어 만든 것이었다. 이런 이불을 덮고 자는 인간 이 있다니. "괜찮아요?"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 목소리 진짜 예쁘다. 가까이 봐도 얼굴이 제대로 안보이네? 눈, 귀, 코, 입은 모두 있고..... 꽤 예쁜 얼굴 같기는 한데.... 모르지 뭐. 안경 쓰고 보면 별로일지도...... 그런데 귀가 좀 긴 것 같다? 드디어 내 눈이 삔건가? 우.... 배고파. "여기는 어디예요?" 내가 묻자 소녀-정확히는 모르지만 목소리나 풍기는 분위기로 봐서는 그럴 것 같아서-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 우리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여자가....? 그럼 내가 우리말도 못할 것..... 잠깐! 방금전에 내가 한 말은..... 한국말이 아니었잖아?! 어떻게 된거지? 저 소녀의 말도 생전 처음 듣는 말인데? 그런데 난 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게다가 그 말을 써서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욱....."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머리를 감싸자 소녀는 날 침대에 눕히며 말 했다. "당신의 몸상태는 그렇게 좋지 않아요. 치료 마법을 걸긴 했지만 휴식이 필 요해요. 제가 음식을 가져올테니 여기서 쉬고 있어요." 우.... 그래야겠다. 그런데 치료 마법이라니? 이 여자가 농담하나..... 게 다가 음식을 가져온다고? 그럼 이 바나나 향기는? 어, 얼레? 이 바나나 향기 는 저 소녀의 몸에서 나는 것 같은데? 바나나 향기를 풍기는 향수를 쓰나? 여긴 왜 이렇게 이상한 것만 쓰냐? 끼이-- 탁! 소녀가 나갔는지 문이 닫혔다. 갑자기 찾아오는 이 적막감. 많이 겪어봤지 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느낌. 언제나 익숙해질려나? 음... 그런데 옷이 어째 달라진 것 같다? 난 천천히 내 옷을 더듬어 보았다. 정말로 옷이 바뀌어져 있었다. 짙은 녹색의 반팔 상의에, 하의는 연두색의 긴 바지였다. 게다가 속옷까지 바뀌어져 있었다! 방금 그 소녀가 내 옷을 갈아입혔을 리는 없겠지. 아마 할아버지나 다른 누 군가가 내 옷을 갈아입혔을 것이다. 음... 침대가 두 개 붙어있는 걸로 봐서 는 이미 남자가 있는 모양이다. 억.... 젊은 나이에 벌써 결혼을 하다니! 갑 자기 맥 빠지네..... 그때 문이 열리고 그 소녀가 들어왔다. 안보여서 모르지만 느낌상 그렇단 소리다. 소녀는 옆의 침대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음식을 가져왔어요. 먹고 기운차리세요." "예... 감사합니다...." 난 상체를 일으키고 소녀가 가지고 온 음식을 먹었다. 음식은 모두 과일이 었다. 이거 먹고 어떻게 기운을 차리냐? 고기를 줘, 고기를! 난 그 소녀의 몸에서 나는 바나나 향기를 맡으며 사과, 감, 배, 바나나, 콩 등을 먹었다. 그런데.... 이 과일들 모두 계절이 다를때 나지 않나? 여기도 냉장 기술이 발전한 모양이지? 음.... 역시 바나나가 제일 맛있어. 소녀는 내가 과일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구경만 했다. 과일 먹는 모습이 그렇게 신기하냐? 하여간 뭔 향수는 이렇게 진하게 뿌려가지고.... 바나나 향수를 쓰다니 웃긴 여자라니깐. 난 과일을 다 먹고 소녀에게 물었다. "저.... 제 옷은 어디있어요?" "아, 옷이요? 땀에 흠뻑 젖어 있길래 빨아서 말려놨어요. 저기에 있어요." 소녀는 탁자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는 하늘색을 띈 물건과 검은색 물체가 있었는데 아마도 하늘색은 교복이고 검은색은 가방일 것이다. 역시 눈이 나쁘니까 하나도 안보여..... "그럼 이 옷으로 갈아입힌 분은....." "제가 갈아입혀 드렸어요. 마음에 드세요?" 소녀는 너무나 태연하게 말했다. 욱! 이 여자가 미쳤나? 생전 처음 본 남자 의 옷을 갈아입혔다고? 혹시 정신병자?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제가 직접 갈아입혀 드렸다는게 아니니까요." 그럼 그렇지. 괜히 놀랬잖아! "바람의 정령 실프를 불러서 옷을 갈아입혀 드렸어요." 엑? 바람의 정령? 지금 농담하냐? 음... 아무래도 이 여자는 미친 것 같다.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봐둘 필요가 있겠는데? 그런데 안경이..... "저, 제 안경은 어딨나요?" "안경? 그게 뭐지요?" 소녀는 이상하다는 눈으로-이건 순전히 내 짐작이다. 얼굴도 제대로 안보이 는데 내가 어떻게 아나- 물었다. 안경을 모른다라..... 도대체 여기는 어디 고 시대는 어느 시대인거야? "글쎄요.... 안경은 눈나쁜 사람들이 쓰는 건데....." "그런 것도 있나요? 전 처음 알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저 탁자 위에 모두 모아뒀어요." 소녀는 방금 전에 가리켰던 탁자를 다시 가리키며 말했다. 음... 설마 훔쳐 간건 없겠지? 뭐, 훔쳐갈 것도 없지만..... 아니, 있긴 있지. 워크맨이 있으 니까. 확인해봐야겠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엘프의 마을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23 게 시 일 :99/08/13 21:25:56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6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 엘프의 마을 -2- 난 탁자 있는 쪽으로 가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했다. 바닥이 어떤지 보려고 했지만 뭐가 보여야지.... 엉엉.... 역시 눈이 나쁘면 서럽다니까... "저.... 바닥은 뭘로 되어 있어요?" 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녀에게 물었다. 바닥 확인한다고 바닥에다 얼굴 바짝 갖다대는 건 더 쪽팔리는 일이니까.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눈이 나쁘세요?" "아, 예...." "그럼 제 얼굴은 보여요?" "정확하게는.... 안보여요....." 갑자기 소녀가 얼굴을 내 얼굴에 바싹 갖다대며 물었다. "이러면 제 얼굴이 보이나요?" 욱! 이 여자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면 어떡해? 게다가 얼굴에도 바나나 향수를 뿌렸냐? 하여간 정말로 이상한 여자라니깐. 어쨌거나 난 그 어색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무작정 바닥에 발을 내려놓 았다.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느낌으로 보건대.... 나무 판자였다. 음... 흙바닥이 아니라서 다행이군. 난 성큼성큼 걸어서 탁자로 갔다. 잘 개어져있는 교복을 들추며 안경을 찾 았다. 안경은 여전히 교복 상의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난 주저없이 안경 을 썼다. 욱....! 빌어먹을! 안경이 휘어져 있다니! 왜 휘어있는 거지? 아,그렇구나! 마을을 발견하 자마자 앞으로 쓰러졌었지! 그때 내몸에 깔려서 뭉 개진 거로구나! 으.... 어지러워서 못쓰겠다. 난 휘어진 안경을 다시 원상으로 돌려놓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잘못하면 부 러져 버리기 때문에 신중을 기했다. 그때 소녀가 내 옆으로 다가서며 호기심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게 안경이라는 건가요?" "예...." "그런데 뭐하시는 거예요?" "아.... 안경이 휘어져서요.... 제대로 맞추느라고....." "안경이 휘어지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나요?" "뭐, 그렇죠....." 소녀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안경의 균형을 맞추는데 정신을 쏟았다. 하지만 난 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본래대 로 돌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귀찮아서 그냥 썼다. 마치 안경을 처음 쓸때처럼 어지러웠다. 뭐, 내 눈이야 어떤 환경에서도 금방 적응을 하니까 곧 나아지겠지. 하여간 안경이 휘어져도 계속 쓰면 어지러움을 느끼지 못하 니..... 눈이 점점 나빠지는 건 당연한 건가? 난 안경을 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벽은 온통 통나무를 잘라다 세워놓은 것이었다. 지붕은 큰 나뭇잎들을 이어서 덮어두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나무로 만든 가구뿐. 집이 뭐이래? "잘 보이나요?" 소녀의 물음에 난 그녀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난 움직 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완벽하다고나 해야할까? 도저히 인간의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이다. "제 얼굴이 보여요?" 또다시 이어지는 소녀의 물음. 난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런~! 추한 모습을 보였군. 난 최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떨려나 왔다. "아... 네... 잘 보여요..." 그러자 소녀가 방긋 웃었다. 윽...! 쳐다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예쁘다... 난 고개를 돌리려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고 다시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 았다. 아니, 정확히는 귀였다. 역시였다.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다. 소녀의 귀는 보통 사람들의 귀보다 세 배 정도 길었던 것이다! "저.. 혹시... 엘프 아니세요?" 난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만약에 이 소녀가 엘프라면... "네. 하이엘프예요. 이름은 아세트 이소아밀이구요."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소녀, 아니 아세트 이소아밀. 이럴수가...! 엘프가 존 재한다면 도대체 여기는.....? "여기는 어디예요?" "카르본 컴파운드예요. 줄여서 카르본이라고 하죠." 카르본... 카르본(Carbon)... 얼레? 이 철자는 영어로 '탄소'라는 뜻인데? 그럼 컴파운드(Compound)... 욱... 이건 모르겠다. 영어 사전이 있다면 찾아 볼텐데..... 그러고 보니.... 저 소녀의 이름이 아세트 이소아밀이라고 했지? 아세트 이소아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뭐지.... 뭐지...? "당신은 저한테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을 건가요?" 아세트가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렇군... 저쪽에서 먼저 이름을 밝혔으니 나도 이름을 가르쳐 줘야지. 그런데 본명을 말해버릴까? 권강한이라고? 아니 면 외국식 이름으로 답할까? 난 내 이름 싫은데..... "혹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요?" 아세트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내가 계속 머뭇거리며 말 을 못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음... 그렇다고 할까? "글쎄요... 기억이 잘....." "어머! 불쌍하기도 해라! 그럼 제가 이름을 지어드릴까요?" 아세트가 불쌍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욱... 졸지에 난 기억상실증에 걸 린 녀석이 되어 버렸군. 뭐, 잘된 건지도 모르지. 이름이나 멋지게 지어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세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니트로 벤젠이 어때요? 줄여서 니트!" 니트로벤젠? 그거 화학 시간에 배운 용어인데? 그러고 보니... 아세트 이소 아밀도 화학 시간에 배웠던 거 아니었나? 아세트산이소아밀.... 맞아! 바나 나향을 내는 탄소화합물! 니트로벤젠도 탄소화합물이고! 그럼 카르본 컴파운 드라는게 탄소화합물이란 뜻이야? 여긴 도대체 왜이래? "마음에 들어요?" 아세트가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계속 대답을 안하니까 불안한 가보다. 미안해라..... "예.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 니트라고 부르세요." 내가 마음에 든다니까 굉장히 좋아하는 아세트.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 다. 난 역시 예쁜 여자에 너무 약해..... 그건 그렇고.... 앞으로 난 어디서 지내지? 설마 다 나았다고 내쫓는 건 아 니겠지? 난 갈데도 없는 불쌍한 놈인데..... 똑똑똑--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소아밀님, 긴히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목소리로 보아 분명히 나이든 할아버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존댓말을 쓸 정도라면 아세트의 신분은 어느 정도인거야? "알았어요. 곧 나갈께요!" 그렇게 대답한 아세트는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하는 말. "니트님도 같이 가요." "예? 저도요?" "그래요." 아세트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가겠다고 해도 억지로 끌고 갈 것 같은 느낌. 따라가는 수 밖에..... 나와 아세트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내 운동화는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신었다. 양말을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으니 좀 찜찜했지만 그냥 신는 수 밖에. 아세트를 바라보니 아세트는 무슨 장화 비슷한 신발을 신었다. 색 깔은 갈색인데 끈도 보이지 않았다. 저건 원래 끈없이 신는 건가? 우린 곧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얼굴에 주름이 많고 하얀 수 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리고 풍성한 연두색 옷을 입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서 있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엘프의 마을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24 게 시 일 :99/08/13 21:26:24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5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 엘프의 마을 -3- 밖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내가 아세트하고 같이 나오자 놀란 듯했다. "음... 정신이 든 모양이로군요." 그 말은 날보며 한게 아니라 아세트를 보면서 했다. 아세트는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네. 방금전에 깨어났어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 제가 니트로 벤젠이라 고 지었어요." "니트로 벤젠.... 에스테르 제도를 반대했던 엘프로군요..."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니트로 벤젠이란 엘 프가 있었나 보지? 그런데 에스테르 제도가 뭐냐? 에스테르는 알코올과 카르 복시산이 반응해서 나오는 탄소화합물 아니던가? 어두운 표정을 짓던 할아버지가 날 가리키며 아세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인간은 왜 불러내었습니까?" 이 인간? 어감이 안좋군. "앞으로 니트라고 부르세요. 니트님도 이번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있으니까 요." 아세트가 약간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왠만하면 님자는 빼고 부르지 그러니 ... 그런데 무슨 대화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거지? "저 인간.. 아니 니트는 엘프어를 할 줄 모르지 않습니까." "아니예요. 니트님은 엘프어를 할 줄 아세요." "그게... 정말인가?" 마지막 할아버지의 말은 나한테 물어보는 것이었다. 난 간단히 대답했다. "네." 당연히 엘프어였다. 사실 지금까지 아세트와 얘기를 주고 받던 그 언어가 엘프어였다는 것을 몰랐다. 할아버지는 비록 한마디였지만 너무나 능숙하게 엘프어를 구사한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자네, 엘프어를 배웠는가?"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엘프어를 할 줄 안단 말인가? 인간 중에서 엘프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나도 내가 엘프어를 할 수 있는 이 유를 알고 싶으니 제발 가르쳐줘......! 할아버지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오십시오." 나와 아세트는 할아버지를 따라 어떤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구조는 아세트의 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탁자가 조금 컸을 뿐인데, 그 원형 의 탁자에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할아버지 엘프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아 세트가 모습을 나타내자 앉아있던 할아버지 엘프들이 몸을 일으켰다. 앗! 할 머니 엘프도 있었군! 나와 아세트가 자리에 앉자 세 명의 할아버지 엘프와 한 명의 할머니 엘프,그리고 우리를 안내 했던 할아버지 엘프는 각기 자리에 앉았다. 원래 집안에 서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할아버지 엘프 중 긴 지팡이를 들고 있는 할아버 지 엘프가 입을 열었다. "이소아밀님, 어째서 인간을 참석시키는 겁니까?" "니트님은 엘프어를 할 줄 아시니까요." "......!" 아세트의 대답에 다들 놀란 듯했다. 물론 우리를 데려왔던 할아버지 엘프는 아니었지만. 자애로운 인상의 할머니 엘프가 나를 보며 물었다. "자네의 이름이 니트인가?" "아니요. 제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세트님이 대신 지어준 이 름입니다." 세 명의 할아버지 엘프와 한 명의 할머니 엘프는.... 윽! 이름을 모르니 이 렇게 말할 수 밖에! 어쨌거나 그들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엘프 어를 너무나 능숙하게, 마치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것 때문이겠지. 이마에 검은띠를 두른 할아버지 엘프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험험, 그럼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저 인간.... 아니, 니트 의 체류 문제입니다." 엑? 내가 불법 체류자냐? 설마.... 이 엘프들이 나를 쫓아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테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전 니트님이 카르본에 계속 지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당한 아세트에게 박수!!! "하지만 저 인간을 믿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엘프가 약간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머리에 녹색 두건을 둘러쓴 할아버지 엘프가 입을 열었다. "설마 1년전의 일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그런 가증스러운 인간을 믿으시는 겁니까?" 가증스러운 인간? 이 할아버지 엘프들은 인간에게 불만이 많나보네? 무슨 일이 있었나? 녹색 두건의 할아버지 엘프의 말에 아세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세트는 할아버지 엘프들과 할머니 엘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미 저희에겐 빼앗길 것도 없어요. 니트님이 옥신처럼 목적을 가지고 이 곳에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옥신? 그거 식물 호르몬 이름 아니야? 여긴 왜 이름이 다 이상한거야? "이소아밀님, 잠시 니트와 이야기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손에 내 머리통만한 수정구슬을 들고 있는 할머니 엘프가 아세트를 바라보 며 물었다. 아세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할머니 엘프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 기 시작했다.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 글쎄요,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태어난 곳은 있지 않은가?" "물론 있지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제 생각을 들으시면 아마 믿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구요." "그 생각이란 것을 들어봐도 되겠는가?" 할머니 엘프는 집요하게 물어왔다. 이런~! 나도 믿을까 말까 고민 중인데! "전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엘프가 물었다. "어떤 세계인가?" "글쎄요.... 편하기는 하지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랄까요? 그 정도 밖에 얘 기하지 못하겠군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요...." 우웃! 그건 거짓말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아주 생생한데! 하지만 더 얘기해주기도 귀찮아서... 얘기해봤자 믿겠냐? "편하기는 하지만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애매모호한 말이군. 그렇다면 어떻게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아니, 클로로! 저 인간의 말을 믿는건가?" 녹색 두건의 할아버지 엘프가 할머니 엘프를 보고 소리쳤다. 음... 할머니 엘프의 이름이 '클로로'였군. 갑자기 왜 클로로포름이 생각나지? 클로로포름 이 뭐냐구? 클로로포름은 마취제... 일거다. 클로로는 녹색 두건의 할아버지 엘프를 보며 말했다. "나일론, 성질 좀 죽이지 못하겠나? 우선 니트의 말을 들어봐야 될 것 아닌 가?" 클로로의 말에 '나일론'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할아버지 엘프는 곧 입을 다 물었다. 하지만 꽤나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름이 나일론이라.... 그거 합성 섬유 이름 아니던가? 클로로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아, 그렇군! 어떻게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됐 냐고 질문했었지!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공간이 이지러지고.... 전 멋도 모르 고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숲속에 있었어요. 숲속에서 오래 헤매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이곳에 와 있더군요." 난 솔직히 말했다. 그런데 뭔가 하나 빠트리고 말하지 않은게 있는 것 같은 데.... 뭐지.....? 클로로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무심히 말을 내뱉었다. "워프 게이트인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엘프의 마을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29 게 시 일 :99/08/14 15:19:11 수 정 일 : 크 기 :5.8K 조회횟수 :5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 엘프의 마을 -4- 워프 게이트? 그거 많이 듣던 말인데.... 아니, 많이 보던 말인데.... 공간 의 문을 말하는 건가? 환타지 소설을 별로 안봤더니 모르겠다.... 그런데 이곳은 진짜 어디일까? 엘프들이 있는 것을 보면... 정말로 환타지 세계인가? 아니면 같은 시대의 유럽일까? 중세 시대의 유럽? 까마득한 시대 의 유럽? 우.... 하나도 모르겠다!!! 잠깐! 아세트가 나한테 무슨 치료 마법을 걸었다고 했었지? 그 말이 사실이 라면... 마법이 있는 세계는... 환타지 세계.... 진짜일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음... 그것은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 다, 이소아밀님." "그게 뭐죠, 클로로?" "니트가 이곳에 살려면 잘 곳이 있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남아있 는 침대가 없습니다. 아니, 하나 있긴 하죠. 바로 에티르님이 쓰시던 침대 입니다. 그거 밖에는 없어요." 침대가 없다구? 그게 뭔소리여?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나? "그 문제에 대해선 이미 생각해 놓고 있었어요. 니트님이 에티르 언니의 침 대를 사용하는 것으로 말이예요." "그럼 침대를 다른 엘프의 집으로 옮겨야 되겠군요." "아니요. 그러실 필요없어요. 니트님과 같은 방을 쓰면 되니까요." 아세트의 말에 다섯 명의 노인 엘프들이 경악했다. "말도 안됩니다! 어떻게 인간하고... 더욱이 남자하고 어찌 같은 방을 쓰시 겠다고 하십니까?!" 녹색 두건의 할아버지 엘프, 나일론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다섯 명의 노 인 엘프들 중에서 저 나일론이라는 할아버지 엘프의 성격이 제일 급한 것 같 군. 저렇게 소리치면 고혈압 안걸리나? 그런데... 아세트하고 같은 방을 쓴다고? 아세트... 너 미쳤니? "괜찮겠죠, 니트님?" 아세트가 날보며 빙긋 웃었다.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쳐다보는 게 두려울 정도로군.... "예..." 이런! 무의식적으로 대답하고 말았잖아! 여자하고 같은 방을 쓰다니 그게 어디 될 법한 소리냐? 그런데 이거 마음이 들뜨네? 억... 나도 별 수 없는 놈인가 보다. 하긴 뭐, 그래봤자 다른 침대에서 서로 떨어져 잘텐데 별 문제 는 없겠구나. 쩝, 아쉬월~ "이런 무례한 녀석! 감히 이소아밀님과 같은 방을 쓰겠단 말이냐?" 성격 급한 나일론이 나를 보며 소리쳤다. 그렇게 소리치치 마쇼. 난 화나면 막 나가는 성격이라 자칫하면 일 저지를 수 있다고. "그만하세요, 나일론. 이건 제가 결정한 일이니 따라주셨으면 해요." 아세트가 위엄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와~ 금방 표정을 바꾸네? "하지만.....!" 끈질기게 반대하는 나일론 섬유... 우하하! 앞으로 할아버지는 나일론 섬유 라고 불러주지! 우쿠쿠....! 억! 내 웃음소리가 사악하게 변했다! "괜찮아요. 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으니까요." 아세트~, 그 말은 내가 불량배라는 소리냐? 내가 어딜봐서 불량배냐? 키도 너만하고 팔굵기도 너만한데.... 흑흑...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말랐어.... 으윽...! 살 좀 찌고 싶어......! "알겠습니다, 이소아밀님. 결정에 따르도록 하죠." 클로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할머니 엘프의 말에 다른 할아버지 엘프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음... 할머니 엘프의 권위가 막강한가 본데? "이것으로 회의를 마치도록 하죠. 그럼....." 아세트는 말을 마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덩달아 일어섰다. 그리고 아세트가 밖으로 나가자 나도 따라갔다. 윽...! 이건 여자 꽁무니를 졸졸 따 라다니는 것 같잖아! "저... 그런데 아세트님." 아세트의 집으로 향하는 도중 내가 부르자 아세트는 걸음을 멈추고 날 보며 말했다. "그냥 아세트라고 부르세요." "아세트... 도 그냥 니트라고 불러요." "네. 그런데 왜 부르셨어요?" "방금전에 만났던... 엘프님들은 누구세요?" 딱히 그 노인 엘프들을 부를 말이 없군. 내 생각이 맞다면 장로들일텐데? "모두 장로님들이세요."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군. 그럼 아세트는 엘프들의 여왕인가? "아세트는요?" "저요? 전 뭐랄까.... 상징적인 존재지요. 크레졸을 지키는 성녀라고나 할 까요?" 그렇게 말하는 아세트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음... 그래도 난 계속 물어본 다 이거야! "크레졸이 뭐예요?" "평화와 장수의 돌이예요. 1년전에 옥신이라는 인간이 훔쳐가 버렸죠." 억! 아세트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잖아? "그래서 장로님들이 절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는 거군요." "그래요... 하지만 전 니트님을... 아니, 니트를 믿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세트는 빙긋 웃었다. 그래, 믿을 만하겠지. 만만해보일 테니까. 만약 내 얼굴이 우락부락하고 덩치가 산(山)만하다면 그런 말을 할 까? 당연히 안하겠지. 이런! 또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해버렸다! 어느새 우리는 아세트의 집에 다다랐다. 아세트는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참 보기 민망하다~. 난 탁자 쪽으로 걸어가 내 물건을 살폈다. 모두 그대로 있었다. 난 워크맨을 꺼내들었다. 그때 아세트가 언제 왔는지 맞은편에 앉고서는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게 뭐예요?" 윽! 갑자기 몰려오는 바나나 향기. 정말로 아세트의 몸에서 바나나 향기가 나는 건가? "아세트, 바나나 향수를 써요?" "바나나 향수? 아, 제 몸에서 나는 바나나 향기를 말하는 거로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세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몸에서 바나나 향기가 났어요. 그래서 이름을 아세트 이소 아밀이라고 붙였지요." "......?" 내가 뭔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쳐다보자 아세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카르본의 엘프들 사이에서는 가끔 몸에서 특수한 향기를 내는 엘프들이 태 어나요. 그런 엘프들은 평화와 장수의 돌인 크레졸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믿어지죠. 그래서 몸에서 나는 향에 따라 이름을 붙여요. 사과향 은 아세트 에티르, 바나나향은 아세트 이소아밀, 오렌지향은 아세트 옥티르, 파인애플향은 부 틸 에티르....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죠." 그런가? 엘프들의 몸에서 향기가 난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신기한 엘프 들이야..... "그 이상한 것은 뭐예요?" 아세트가 워크맨을 보며 물었다. 난 '잠깐 기다려요'라고 말하고 이어폰을 귀에 끼고 음악을 들었다. 아세트는 내가 하는 짓을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잘 나오는군. 여전히 일본말은 알아들을 수가 없는걸? 난 잠시 음악을 듣다 가 이어폰을 아세트에게 주었다. "이걸 귀에 꽂으면 되나요?" "예. 그러면 음악이 들릴 거예요." 아세트는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귀가 긴 엘프라 소리도 잘 듣겠지? 난 소 리를 약간 줄였다. 아세트는 이어폰에서 소리가 나오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 다. 놀라는 표정을 보니 기분이 괜히 좋아지는데?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엘프의 마을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30 게 시 일 :99/08/14 15:19:47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5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 엘프의 마을 -5- "정말 신기해요! 이런 물건에서 음악소리가 나오다니!" 아세트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모두 처음 듣는 음악인데요? 조금 요란한 것 같아요. 가사도 처음 듣 는 말이구요." 아세트는 이어폰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난 워크맨을 가방 속에다 다시 넣었 다. 듣고는 싶었지만 건전지를 아껴야지~. 그때 아세트가 물었다. "그 물건에 어떤 마법이 걸려있길래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마법이 아니라.... 그냥 기계예요.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기계라구요? 어떻게 만드는 건데요?" "제가 살던 세계에 있던 건데.... 어떻게 만드는 지는 저도 잘 몰라요." 내 대답에 아세트는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기계 만드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그걸 알았다면 내가 이걸 돈주고 샀겠 냐? 차라리 부품 모아서 만들고 말지.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세 트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니트가 살던 세계는 어떤 곳이예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단지 굉장히 편하게 살 수는 있는 곳이지만... 그래서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곳이라고 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미안, 아세트. 기억은 아주 선명하지만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테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말하기가 귀찮다는 사실! 난 설명을 잘 못하니까. "빨리 니트가 기억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난 그렇게 말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아세트의 웃는 모습을 보는게 무서워서 말이야. 그런 내 눈에 띈 것이 한쪽 벽면 책장에 즐비한 책들이었다. "저 책들은 뭐예요?" "아, 저 책들은 마법서, 역사서, 병법서 그런 것들이예요. 모두 인간세계에 서 가져온 것들이죠." "아세트가 직접이요?" "아니요. 전 카르본을 벗어나면 안돼요. 장로님들이 인간세계에서 가져오신 것들이지요." "아세트는 왜 카르본을 벗어나면 안되는데요?" 내 질문에 아세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런! 해서는 안될 질문인가? "그건.... 에스테르 제도 때문이지요...." 에스테르 제도? 그 할아버지가 말했던 그 제도? 에스테르 제도가 뭐길래 저 런 표정을 짓는 거지? "에스테르 제도는... 몸에서 특수한 향기가 나는 엘프들은 오직 크레졸 수 호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엘프들은 카르본을 벗어 나서도 안되고 결혼해서도 안되지요... 죽을 때까지....." 아세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미안해지잖아! 그런데 에스테르 제도가 그런 이상한 제도였어? 맘에 안드는 제도인데? 그래서 그 에스테르 제도를 반대했던 니트로 벤젠이란 엘프의 이름을 나한테 붙인건가? 내가 그 제도를 깨주길 바라고 있는 걸까? 내가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아세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에티르 언니는... 옥신과 함께 크레졸을 가지고 도망친 거예요.... 에스테르 제도의 원인이 되는 크레졸을 가져감으로써.... 저 같은 엘프들 이 더이상 에스테르 제도에 묶이지 않도록 한거죠...." 그런가? 에티르라는 분은 참 위대한 일을 하신 거로군. 그런데 크레졸은 평 화와 장수의 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크레졸이 없으면....? "아세트, 크레졸은 평화와 장수의 돌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크레졸이 없으 면 어떻게 되지요?" ".... 사실 크레졸은 인간들로부터 이곳을 지켜주었어요. 그리고 엘프들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생명을 주었구요. 그런 크레졸이 없으니.... 인간들은 카르본을 금방 발견할 수 있고.... 엘프들은 500년의 삶을 다 살지 못하고 많아야 200년 밖에 살 수 없어요.... 이미 400살을 훨씬 넘게 살아온 장로 님들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상황이예요...." 그런 문제가 있군. 엘프들에게 평화와 장수를 약속하던 크레졸이 없으니... 하지만 크레졸이 있으면 에스테르 제도는 계속 될꺼고..... "에스테르 제도가 있어야만 크레졸이 평화와 장수를 약속하는 거예요?" "네... 오직 순결한 처녀 엘프만이 크레졸을 수호해야 돼요...." 나원... 이거 골치아프군. 이래도 안좋고 저래도 안좋으니.... 그냥 200년 만 살면 안되나? 인간에 비해선 그 정도도 많이 사는 거잖아? 이런 말을 엘 프들에게 하면 맞아 죽겠지? 아세트는 고개를 수그린 채로 있었다. 너무나 가녀린 모습. 이런,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할텐데 난 그런 재주가 없으니...... "아세트... 저 책들을 봐도 될까요?" "네? 아, 보세요. 니트도 이제 이 집 주인이니까요." 아세트는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책장으로 다가가서 책들의 이름을 살폈다. 엘프어에서부터 갖가지 언어로 기록된 제목들이 보였다. 생 전 처음 보는 글자인데도 난 모두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이 세계로 넘어와 서 생긴 능력인가? 학교로 돌아가서 이런 능력이 계속 남아있다면 좋을 텐데 .... 그럼 영어 점수는 항상 100점일테니까, 우하하! 쭉 제목을 훑어보던 나는 '마법론'이란 책을 꺼내 들었다. 책 표지는 짙은 갈색이었는데 뭘로 만들었는지 굉장히 두꺼웠다. 마법이론에 관한 책인가 보 지? 저자는 '코아세르 베이트'.... 왠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같은데.... 생물 시간에 들어봤던가? 아, 그렇지! 가방 속에 생물Ⅱ 문제집이 있었구나! 난 마법론이란 책을 탁자 위에 두고서 가방 속을 뒤졌다. 갑작스런 내 행동 에 아세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생물Ⅱ 문제집을 펼치고 코아세르베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우하하! 여기있다! 코아세르베이트... 단백질, 핵산, 당류 등의 고분자 화 합물이 콜로이드 상태를 이루면서 주위와 독립된 유기물 집합체를 형성한 것 .... 뭔 말이 이렇게 어려워? 엇, 옆 페이지에도 있네? 원시 생물의 출현에 관한 가설이라.... 코아세르베이트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오파린의 가설 .... 그 밑에 마이크로스피어설... 폭스가 단백질과 복잡한 유기물의 합성을 확인하고 원시 생명체의 기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음... 하나도 모르겠군! 어쨌거나 코아세르베이트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었나? 아세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아세트, 혹시 코아세르 베이트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코아세르 베이트말인가요? 그 사람은 2000년전의 대마법사예요! 마법을 완 성시킨 사람이죠! 니트도 그 사람을 알고 있었군요!" 엑? 2000년전? 그렇게나 오래된 사람이었어? 게다가 마법을 완성시킨 대마 법사? 생명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유기물 덩어리의 코아세르베이트가 대마법 사라구? 푸하하! 억... 그런데 코아세르베이트가 유기물 덩어리였나? 생물시간에 제대로 안 들어서리.... 아니지! 생물 선생님이 이런건 수능에 안나온다고 그냥 넘어갔 지! 그러니 내가 모르는 건 당연하지. 내가 코아세르 베이트란 이름을 알고 있자 기쁜 표정을 짓던 아세트가 무엇 에 놀랐는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니트... 그 코아세르 베이트란 이름.... 혹시 그 책을 보고.... 안 것인가 요.....?" 왜 저러지? 내가 뭘 잘못했나? "네. 그런데요?" 내가 태연스럽게 대답하자 아세트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건 고대문자로 씌여있는 책이예요! 저도 해석하지 못한 고대 마법서라구 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7.마법 입문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33 게 시 일 :99/08/15 08:22:12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6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 마법 입문 -1- 얼레? 고대문자로 기록되어진 고대 마법서라구? 아세트도 해석하지 못한? 그런데 내가 그런 책의 제목을 읽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거야? 아세트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며 나를 재촉했다. "읽어주세요! 그 고대 마법서를요!" 이런~! 아세트, 흥분하지 말라구. 읽을테니까. 난 맨 앞장을 펴고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강한 마족과 마수들.... 인간은 무기로 그들 을 누르려고 했다. 그리고 일부의 인간들은 흑마술을 익혀 마족과 마수들 을 쓰러뜨리려 했다.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인간들이 만든 그런 조잡한 무기로는 마족이나 마수에게 제대로 된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고, 흑마술 역시 제물 이 필요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마족과 마수들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신을 받드는 사제들뿐..... 마수들에게 부모 를 잃은 나는 내 힘으로 그 가증스런 무리들을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 거의 위력이 없던 백마법에 매달렸다. 백마법사들은 주변에 고루 분 포하고 있던 마나를 바로 변화시켜 마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위력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마나 축적이었다!" 뭐야, 이거. 자기 신세 타령이냐? 본론을 말해, 본론을! 그러나 약간 흥미 가 일어났기 때문에 계속 읽어나갔다. 사실 아세트의 저 빛나는 눈 때문이기 도 하지만.... "몸안에 마나를 축적하고.... 몸안의 마나와 외부의 마나를 서로 공명시키 면 엄청난 위력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낸 마법은 너무 위력이 강했다. 이런 마법을 인간들이 사사로이 쓰게 된다면.... 파 멸밖에 남지 않으리라.... 난 그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불완 전한 주문을 알려주었다. 몸안의 마나와 외부의 마나가 완전한 공명을 이 루지 못하도록 하는 불완전한 주문을." "뭐라구!!!" 거기까지 들은 아세트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아세트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 마법 주문이 불완전한 것이라구? 어떻게 그럴수가.....!" "자자, 진정해요, 아세트." 난 아세트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달랬다. 이건 꼭 애를 달래는 듯한 기 분이잖아? 아세트는 씩씩대다가 내 말에 얼굴을 붉히고는 자리에 앉았다. "미안해요, 니트. 저도 모르게 흥분이 돼서....." "아니예요. 그럼 계속 읽을께요." 난 다시 책을 펴들고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그들이 쓰는 마법은 본래 위력의 절반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졌 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마족이나 마수들을 상대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 다. 그리고 나서 난 내가 만들어낸 완전 주문을 어떻게 할까 고심했다. 처 음엔 완전 주문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완전 주문을 알아낸 만큼 다른 마법사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냥 남기기로 했다. 아니, 사실 난 아까웠다. 내가 힘들여 알아낸 완전 주문이 사라진다는 것이. 그 래서 이 책에 그 완전 주문을 남겼다. 이 책에 적혀있는 글은 지금 사용되 고 있는 글자를 내 마음대로 약간 변형시킨 것이다. 해석하기 까다로울 것 이다. 지금 여기까지 해석을 완전히 했다면 이 뒤의 글들도 무난히 해석할 수 있으리라. 인간의 무궁한 번영을 빌며, 코아세르 베이트가." 난 다 읽고나서 아세트를 쳐다보았다. 아세트도 날 쳐다보고 있어서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윽! 어색해라. 내가 눈길을 다시 책쪽으로 돌리려는데 아세트가 벌떡 일어나더니 문쪽으로 다가갔다. 얼레? 어딜 가는거지? 막 현관문을 열려던 아세트가 몸을 빙글 돌리며 날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디가냐고 묻지도 않아요?" ".... 어디가는데요?" 욱! 내가 말해놓고도 썰렁하다. 난 대체 왜 이럴까? 내 물음에 아세트는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대답했다. "장로님들에게 가려구요. 코아세르 베이트가 저술한 책을 해석할 수 있는 복덩어리 인간이 있다는 걸 알려야죠!" 그러고는 문도 닫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복덩어리 인간? 나원..... 난 잠시 아세트가 달려간 쪽을 쳐다보다가 다시 마법론이라는 책을 읽었다. - 마나를 축적하는 방법은 쓰지 않겠다. 다른 마법사들에게 배워도 되니까. 이런~! 가장 중요한 걸 쓰지 않다니! 이런 멍멍이 같은 인간을 보겠나! - 마법 주문은 이미지를 마나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의지로 마 나를 변화시켜 마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들에게 너무나 어 려운 일. 그래서 주문을 만든 것이다. 주문으로써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 를 변화시킨다. 즉, 주문은 인간의 정신력을 극도로 높여주는 역할을 하 는 것이다. 그 말은 정신 집중력이 높으면 주문없이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소리다. 오~ 그런가? 난 처음 듣는 소리인데? 어쨌거나 이해는 되는군. 나같은 초보 를 위해 이런 자세한 설명을 써놓다니.... 코아세르 베이트란 녀석, 마음에 드는걸? - 그럼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주문이 인간의 정신력을 극도로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면 어째서 마나의 공명을 운운하는가 하고. 어, 얼레? 난 그런 의문이 안들었는데? - 몸안의 마나와 외부에 있는 마나를 정신력으로 서로 공명시켜 행하는 것 이 마법이다. 즉, 주문은 인간의 정신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마나의 공명 을 유도하는 것이다. 내가 만든 불완전한 주문은 마나의 완전한 공명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정신력이 아주 뛰어난 마법사라면 불완전 한 주문으로도 마나의 완전 공명을 유도할 수 있다. 완전 주문이라면 쉽 게 마나의 완전 공명을 유도할 수 있고. 으... 어렵다... 이해가 갈똥말똥에서 말똥에 더 가까운.... - 불완전 주문은 위력이 약한 만큼 마나의 소모가 적지만, 완전 주문은 강 한 위력만큼이나 많은 마나를 소모한다. 따라서 완전 주문은 마나가 충분 할 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사물의 본질을 안다면..... 적은 마나로도 강한 위력을 지닌 마법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 사물의 본질? 본질이라.... 음.... 잘 모르겠네? 어쨌거나 나도 마법을 배 우고 싶은데.... 누구한테 배우지? 아세트한테? 안돼. 아세트한테 배우면 정 신 집중이 안될테니까. 그럼 장로님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할까? 장로님들 중 에서 그나마 날 덜 싫어하는 엘프가.... 클로로라는 할머니 엘프? 음.... 난 같은 남자로부터 배우고 싶은데.... 그렇다면....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가 낫겠군. 그런데 이름을 모르잖아? 아세트가 오면 물어봐야겠군. 그러나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아세트가 그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와 같이 온 것이었다.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가 마법론을 들고 있는 날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정말로 이 책을 해석할 수 있는 건가?" "네." "오~ 이럴수가! 이 소년은 우리 카르본 엘프들을 지키기 위해 신께서 보내 신 사자일 겁니다!" 할아버지.... 제가 왜 갑자기 신의 사자가 됐나요....? 이 책 하나 해석할 수 있다고 태도가 갑자기 정중해지시네요.... 속보여요....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는 나를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부탁이네, 니트! 부디 이 책의 내용을 해석해서 엘프어로 남겨주게!" ━━━━━━━━━━━━━━━━━━━━━━━━━━━━━━━━━━━제 목 :[사이케델 리아] 8.마법 입문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34 게 시 일 :99/08/15 08:22:47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4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 마법 입문 -2- 이 두꺼운 책을 해석해서 엘프어로 남기라구? 그런 어려운 부탁을....! 그 럼 나도 부탁이나 해볼까? "좋습니다. 그대신 장로님은 저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마법을? 마법을 배우고 싶은건가?" "네."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는 날 자세히 쳐다보았다. 난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할아버지 엘프를 마주 보았다.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는 고 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내가 자네에게 마법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해석해서 글로 남기려면 종이하고 펜 이 필요할텐데요?" "허허, 그건 걱정말게. 인간세계에서 가져온 종이와 펜이 있으니까."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는 다시 문밖으로 나가며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작업을 시작하게.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날 찾아오게. 아니, 내가 찾아가지. 일어나자마자 문밖으로 나오면 내가 있을걸세." 그러면서 껄껄대며 가버리는 할아버지 엘프. 이런! 그런 애매모호한 말을 하다니! 난 굉장히 일찍 일어난다구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난단 말입니다! 왜냐구? 학교갈 준비를 하려면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거든. 난 아침을 먹어 야하는 타입이라서 말이야. "정말 잘됐어요! 글리콜 장로님에게 마법을 배우게 돼서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아세트는 기뻐했다. 그 검은 머리띠의 할아버지 엘프의 이름이 글리콜인가? 그거 성이야, 이름이야? 뭐, 아세트도 그렇게 부르니 그 냥 글리콜 장로님이라고 부르면 되겠군.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벌써 밤인가? 저녁밥도 안먹었는데?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저녁을 준비하고 올테니까요." "매번 신세지면 미안하잖아요. 이번엔 제가 준비할께요." 뜨아~ 내가 미쳤다! 난 요리는 하나도 못하는데! 아세트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준비할 것도 없어요. 저장고에 있는 음식을 가져오는 것인데요, 뭘."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좋아요. 따라오세요!" 아세트는 웃으면서 서쪽으로-집안에 앉아있는 날 기준으로- 걸어갔다. 나도 아세트를 따라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나나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음.. 향기는 좋긴 한데.... 바나나 먹고 싶어져..... 우린 몇개의 나무를 거쳐 저장고에 도착했다. 저장고는 외부로 돌출된, 끝 이 막힌 커다란 동굴이었다. 동굴 입구의 크기는 내 키만큼이나 컸다. 그렇 다고 내 키가 큰 것은 아니다. 내 키는 172cm. 우리 학교 애들보다 작은 편 이지. 특히 1,2학년들.... 너무 커.... 엉엉..... 그런데 이렇게 큰 동굴 안에 음식을 넣는다고 음식이, 아니 정확히는 과일 이 안썩나? "아세트, 이곳에 음식을 넣어두면 썩지 않아요?" "아, 이 동굴엔 방부의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방부의 결계? 처음 듣는 말인데? 방부.... 아! 방부제할 때 방부로구나! 방 부의 결계란 부패를 방지하는 결계란 뜻이었군! 참 어려운 말 쓴다~ 이야~ 고놈들 참 방금 딴 것처럼 싱싱하구먼! 절로 침이 넘어가네? 그런데 야생 동물들이 이 맛있는 음식을 보고 그냥 놔둘까? "그런데 아세트, 동물들이 이 음식을 노리지 않아요?" 아세트는 동굴 안에 있던 바구니-나무껍질을 이어서 만든 듯했다-에 과일들 을 담다가 내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이 동굴 주변에는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결계가 쳐져 있거든요." 그랬나? 결계를 두 개나 치다니. 역시 엘프들도 음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나~ "뭐해요, 니트? 먹을만큼 이 바구니에 음식을 담아요." 난 아세트가 준 바구니를 받아 들고는 음식을 째려 보았다. 으.... 과일만 먹어야 하다니.... 이래가지곤 힘도 제대로 못쓰겠네.... 고기대신 콩을 집어넣고.... 사과, 배, 딸기.... 와, 딸기는 전혀 찌그러지 지 않았네? 그리고 바나나 왕창..... 이제 됐어! 아세트는 이미 바구니에 먹을만큼만 채워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조 금 먹는군. 저거 먹고 간에 기별이라도 가겠어? "다 넣었어요? 그럼 가요." 아세트가 앞장 섰고 난 그 뒤를 따랐다. 보이는 거라곤 나무 뿐. 그런데 길 을 잘도 알아낸단 말이야. 나 같으면 당장에 길 잃어 버릴텐데...... "저, 아세트." "네?" "이 과일들 다 먹고 나서 껍질은 어떻게 처리해요?" "땅속에다 묻어요." "땅을 직접 파서 묻어요?" "아니요, 땅의 정령들을 불러서 땅에 묻어요." 음... 그렇군. 우리 학교처럼 쓰레기를 태워봐. 그럼 다이옥신이 듬뿍듬뿍. 아, 과일들의 껍질은 태워도 다이옥신이 나오지는 않겠구나. 우리는 금세 집앞에 도달했고, 집안으로 들어가 가져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 다. 아세트가 나의 먹는 속도를 보고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를 좋아하시나 봐요....? 참 빨리 드시네요...." "아, 전 맛있는 건 나중에, 그리고 천천히 먹는 타입이거든요." 그 소리는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 하지만 이 사과는 꽤 맛있는 데? 역시 엘프들이 먹는 것은 다 맛있단 말이야.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바 나나가 제일 맛있지~. 난 일부러 아세트가 다 먹을 때와 맞추려고 무지하게 빨리 먹었다. 나의 그 피나는(?) 노력의 결과 아세트가 식사를 다 마쳤을 때 나도 식사를 끝냈다. 식사를 끝낸 아세트가 갑자기 생전 처음 듣는 말로 -여기 말은 다 처음 듣는 거였지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여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의 정령 운디네 소환." 그러자 아세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물의 정령 운디네. 이 곳에서는 운디네가 하급 정령이냐, 상급 정령이냐? 어쨌거나 모습은 엘프 소녀로군. 게다가 옷도 없구.... 우히히.... 그래봤자 물로 이루어져서 얼굴이나 몸 형 체가 뚜렷하지도 않지만. 아쉬월.... "운디네,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아세트는 입을 조금 벌렸다. 방금 아세트가 한 말은 정령어 같은데? 여기서는 정령을 불러낼 때에도 정령어를 써야 하나 보지? 그런데 아세트 지금 뭐하려는 거냐? 운디네랑 키스하려고 그러나? 그건 아닌 것 같 은데.....? 아세트의 말에 운디네는 방긋 웃고는 -순전히 내 느낌- 아세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럴수가! 아세트가 운디네를 먹어치우다니!!! 그러나 운디네는 곧 아세트의 입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열려있는 창 문을 통해서 밖으로 사라졌다. 난 궁금해서 아세트에게 물었다. "아세트, 방금 뭐한 거예요?" "아, 양치질한 거예요. 니트도 할래요?" 뭐? 양치질? 물의 정령으로 양치질을 한다구? 음... 엘프들은 정령으로 모 든 일을 해결하는구만. 불쌍한 정령들.... 엘프들의 시중이나 들어야 하다니 .... 나도 양치질이나 해야겠다! "부탁할게요, 아세트." 내 말에 아세트는 빙긋 웃고는 또다시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했다. 또 소 환한 걸로 봐서는 운디네는 분명 하급 정령일거다. 고급 정령이라면 저렇게 쉽게 소환이 가능하겠어? "입 벌리세요, 니트." 알았다구. 이거 치과에 온 듯한 기분인데? 내가 입을 벌리자 운디네가 즉시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음... 약간 차갑군. 운디네는 내 입을 휘휘 젓더니 곧 밖으로 나왔다. 야.... 입안이 상쾌한데? 운디네는 방금 전의 운디네처럼 곧 창밖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불쌍한 녀석 .... 입속에 있던 이물질을 버리러 가는 거겠지..... 미안해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9.마법 입문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38 게 시 일 :99/08/15 20:32:04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5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 마법 입문 -3- "전 자야겠어요. 니트도 잘건가요?" 아세트가 침대에 앉아 물었다. 나도 잘 생각이었지만 침대 두 개가 바싹 붙 어 있으니.... 떼어놓아야겠군. "침대를 옮겨야 하지 않아요?" 내가 묻자 아세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두고 자요." 으헥? 이 여자가 미쳤나? 그러다가 무슨 일 벌어지려구? 내가 놀라 아세트 를 바라보려는데 아세트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런~! 난 힘이 약해 서 이 무거운 침대를 옮길 수 없단 말이야!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자야지 뭐. 난 이상한 짓(?)을 할만큼 용기있는 놈이 아니니까. 아, 그럼 잠이나 자볼까? 아차, 안경을 벗어야 하는데.... 안경을 어디다 둔다냐.... 이런, 탁자에 두는 수 밖에 없네? 난 탁자에 안경을 벗어 두고는 다시 침대로 와서 드러누웠다. 시트가 없어 서 딱딱한 나무 침대에 드러눕는 거지만 항상 방바닥에서 잤으니 상관없지. 우리집에는 침대가 없걸랑. 앗! 불을 꺼야 하는데. 그러나 내가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불은 꺼졌다. 사 실 실내를 밝히고 있던 것은 아세트가 소환한 빛의 정령이었다. 아세트는 내 가 침대에 눕자마자 빛의 정령들을 돌려보낸 것이다. 나이스 타이밍! 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금방 잠에 골아 떨어질 수 없었다. 아세트의 체취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본래 난 금방 잠 에 골아떨어지는 녀석이 아니라서..... 30분 동안 뒤척이다가 잠을 자는 스 타일이거든. 잠들기 전에 잡생각을 많이 해서리.... 내일이면 드디어 마법을 배운다.... 내가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이거 마 구 가슴이 떨려오는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말 재미있을텐데. 고요한 정적이 방안을 감싸돌았다. 밖에서는 곤충들의 울음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 뿐. 그때 그 정적을 깨는 한마디. "니트, 자요....?" 으헉! 놀래라! 자고 있는 줄 알았잖아! 간 떨어질 뻔했네! "아니요.... 그런데 왜요?" 내 말에 아세트는 약간 놀란 듯했다. 그러나 이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예요. 잘자요....." 나원... 괜히 말시키고 그러네? 나한테 반한거야? 푸하하! 아세트가 나한테 반해?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이 얼굴이 아세트하고 어울리겠냐? 저언혀 안 어울리지. 그래도 보고 나서 '눈버렸다'할 정도의 얼굴은 아니지만.... 엘프 들에 비한다면 별로지....가 아니라 그들이 보면 못생겼다고 하겠지. 그러고 보니 장로님들과 아세트를 빼놓고 다른 엘프들은 만난 적이 없잖아? 그렇게 여러가지 잡생각을 하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난 잠이 들었다. 항상 그랬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러려나? 어쨌든 나는 꿈을 꾸었다. 바나나 먹 고 배 터져 죽는 악몽을..... 으윽! 난 천천히 눈을 떳다. 아직 새벽인지 밖은 어두웠다. 지금 일어난 것으로 봐서 4시 반일거다. 항상 그때 일어나니까. 여기서 눈붙이고 잠자면 일어나 는건 8시인데.... 더 잘까 말까? 그 글리콜이라는 검은 머리띠의 장로님은 몇시에나 오려는지..... 문밖에 나오면 서 있을 거라고? 없으면 어쩔건데? 내가 그렇게 글리콜 장로를 욕하면서 일어날까 말까를 망설이던 중, 난 누 군가 내 옆에 바싹 붙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 아니 그 정체는 바 로 아세트였다. 아세트는 내 왼쪽 팔을 감싸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아세트의 강렬한 체취인 이 바나나 향기.... 이 향기 때문에 내가 그 악몽을 꾼 모양이로군! 가슴이 마구 떨려왔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 하면 아세 트를 깨우지 않고 왼팔을 빼낼까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그냥 포기했다. 아세트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내 팔을 잡았을거다. 클로로 장로나 아세트의 말을 종합해볼 때 내가 지금 누워있는 침대의 원래 주인은 옥신과 함께 크레 졸을 가지고 도망간 에티르일 것이다. 아세트는 에티르와 친자매처럼 지냈겠 지. 아니면 진짜로 친자매던가. 침대를 이렇게 붙여놓은 이유도 에티르 옆에 붙어 자려는 아세트 때문일 것이다. 에티르가 옥신과 함께 카르본을 떠난 이 후, 아세트는 죽 혼자 지냈겠지. 그래서 함께 있을 누군가가 필요했겠고. 그 런 이유로 내가 이 집에 머물도록 한 것일테지. 난 만만해 보이는 녀석이니 까. 엉엉...... 그렇게 1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잠도 못자고 그냥 잡생각만 했다. 사실 글리콜 장로가 올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하도 누워있어서 몸이 굳어버린 나는 아세트가 깨든 말든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오옷! 글리콜 장로가 온 모양이로군! 난 최대한 조심스 로운 움직임으로 아세트에게서 팔을 빼낸 후 조용히 탁자로 걸어갔다. 다행 히 아세트는 몸을 약간 움직였을 뿐 계속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안경을 쓴 후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내 예상대로 글리콜 장로 가 서 있었다. 글리콜 장로는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내가 올때까지 잠자지 않고 기다린 건가?" "뭐, 조금은요." "허허, 미안하군. 헌데 이소아밀님께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겠지?" 이 할아버지가? 날 어떻게 보고? 이상한 짓을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세 트라구요. 너무 무서워, 아세트..... "걱정마세요. 전 이상한 짓을 할 인간이 아니니까요." "그런가? 어쨌건 이소아밀님에게 나쁜 물은 들이지 말게." "네." 싫은데? 아세트를 날라리로 만들어 버릴까? 그것도 재미있겠구만. "자, 따라오게. 오늘은 마나 축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네." 글리콜 장로는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나갔다. 우... 할아버지가 나보다 키 가 크잖아? 난 왜 이렇게 키가 작은거냐? 언제나 크려나..... 난 내 작은 키를 탓하며 글리콜 장로를 따라갔다. 조금 걸어서 도착한 곳은 유난히 푸른 나무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넓은 공터였다. 직경이 대략 20 미터쯤 되어 보이는 넓은 공터에는 여러가지 꽃들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공터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상쾌했다.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리로 데려온거지? 글리콜 장로는 공터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 공터는 마나를 축적하기 위한 장소라네. 마나가 다른 곳에 비해 더 많 기 때문에 마나를 느끼는 것이 쉽지. 물론 이 곳 이외에도 마나 축적을 위 한 장소가 카르본에는 있지만 이 공터는 장로와 에스테르님들만 사용할 수 있네." 에스테르님들? 아세트처럼 몸에서 특수한 향기가 나는 엘프들을 말하는 건 가? 글리콜 장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앞으로 자네도 이곳에서 마나 축적을 할 수 있네. 이 시간에는 아무도 이 곳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나 축적에 정신을 집중할 수 있지." 그거 반가운 소리이긴 하지만.... 이 시간에 계속 나오라구? 누구 죽일 일 있수? 글리콜 장로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터에 있는 편평한 돌 위 에 앉았다. 돌이 편평한 걸로 보아 인공으로 만든 듯했다. 그런 돌이 공터에 여기저기 분포해 있었다. 글리콜 장로는 앞에 있는 편평한 돌을 가리키며 말 했다. "자, 그럼 앉게. 이제부터 마나 축적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테니."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0.마법 입문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39 게 시 일 :99/08/15 20:32:40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4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 마법 입문 -4- 난 글리콜 장로 앞에 앉으며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하나 묻고 싶은게 있는데요, 왜 에티르님이 쓰던 침대를 제가 써야 하지요? 새로 침대를 만들면 되지 않아요?" "아, 그거 말인가? 카르본에서는 함부로 나무를 잘라 쓸 수 없네. 10년마다 10그루 이하의 나무를 베도록 되어 있지. 작년이 바로 나무를 잘라다 쓸 수 있는 해였네. 그러니 앞으로 10년동안은 나무를 잘라다 쓰지 못하지. 그것이 자네가 에티르님의 침대를 쓸 수 밖에 없는 이유라네." 그렇구나. 숲의 종족인데도 나무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군. "자네, 마나라고 들어봤나?" 글리콜 장로가 날 쳐다보며 물었다. "예. 온 세상에 고루 퍼져있는 기운.... 아닌가요?" 내 대답에 글리콜 장로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어느정도 마나에 대해서 알고 있었구먼! 그럼 설명하기가 쉽겠군. 그렇네. 마나는 이 세상에 고루 퍼져있지. 마법은 그 마나를 변화시켜 구 사하는 것이라네. 정확하게는 몸안에 축적시킨 마나와 외부의 마나를 서로 공명시키는 거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현재의 주문으로는 마나의 공명을 유 도할 수가 없어. 그냥 반응만 시킬 수 있을 뿐이라네. 그렇다고 실망말게 나. 그 정도의 위력으로도 마법을 당해낼 것은 거의 없으니까 말일세." 내가 언제 실망했다고 그래요? 이미 코아세르 베이트의 저서 마법록에서 알 고 있던 사실이라구요. 코아세르 베이트가 인간들에게 불완전한 주문을 알려 줬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요, 장로님? 참, 그런데 엘프들은 본래 마법을 쓰지 않나? 인간들에게 마법을 배운건가? 왜 엘프들도 불완전한 주문을 쓰고 있지? 글리콜 장로에게 물어볼까? 그러려 면 지금의 주문이 불완전 주문이라고 알려야 할텐데..... 에.... 귀찮다. 나 중에 아세트한테 물어보지 뭐. "자, 이제 마법을 쓰기 위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마나 축적에 대해 알려주겠네. 우선 눈을 감고 자연에 몸을 맡겨 보게나." 오홋! 이제야 마나 축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구나! 난 글리콜 장로의 말대로 눈을 감고 자연에 몸을 맡겼다. 한마디로 아무생 각없이 앉아 있었다. 글리콜 장로의 말이 들려왔다. "무리하게 마나를 느끼려고 하지 말게. 우선은 편안한 마음으로...." 음... 편안한 마음으로.... 이러다가 잠들지 않을까? 아차,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자연에 몸을 맡기고..... "......!" 갑자기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마치 바다 속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나의 바다.... 정지해 있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숲속에 들어섰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생명력들.... 그게 마나였다니..... "느껴지는가? 마나가?" 글리콜 장로의 약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마나를 계속 느끼고 싶 어서 대답하기 싫었지만 상대는 할아버지니.... 대답해야지. "네... 마치.... 바다 속에 잠겨있는 듯한 기분이예요...." "오... 확실하구먼! 자네는 마법사로서의 소질이 있는거야. 이제 그 마나를 피부 전체로 받아들이게. 몸안으로 흡수한다는 생각으로." 피부 전체로 받아들이라구? 내가 개구리냐? 피부 호흡을 하게? 어쨌든 나는 글리콜 장로의 말대로 몸 전체로 마나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 다. 들어와라, 귀여운 마나들아. "몸안으로 흡수한 마나를 심장 쪽으로 모으게. 심장은 생명의 근원. 심장 쪽으로 모으는 것이 쉽게 마나를 축적할 수 있네." 예, 예. 열심히 마나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장에다 마나를 축적하면 심장이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려나? 답답할 것 같은데..... "마나는 일종의 기운이라 심장에 축적해도 답답한 느낌같은 건 없네. 계속 마나를 축적하는 일에 전념하게." 얼레?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말하시네? 투심술을 배우셨나요? 존경스럽습니다! 그 기술, 저한테 가르쳐 주면 안될까요? 음... 내가 생각해도 난 잡생각이 너무 많아..... 오직 마나 축적에만 전력 을 기울이자! 아자, 아자!!!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해는 어느덧 중천에 떠 있 었다. 어헉! 시간이 이렇게 되었다니! 난 아침밥도 안먹었는데! "정말 대단한 집중력이구먼. 6시간 동안 꼼짝않고 있다니....." 글리콜 장로는 여전히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6시간 동안? 으흑! 허 리야, 팔다리, 몸이야..... 몸이 굳어버렸다!!! 우드득! 우득! 크윽! 죽을 맛이로군! 움직이자마자 뼈들이 비명을 지르누나! 차라리 날 죽 여라, 죽여! "허허, 6시간 동안 앉아있었으니 몸이 아픈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래, 마나 는 어느 정도 크기까지 축적했나?" "에.... 심장 크기보다 약간 작아요.... 6시간 동안 이정도 밖에 안되네요 ...." 허억! 그런데.... 어째서.... 기껏 모아두었던 마나들이 자꾸 조금씩 빠져 나가고 있느냔 말이야!!! "처음인데 그 정도까지 모을 수 있다니... 훌륭하구먼." 글리콜 장로는 기쁜지 껄껄 웃었다. 으윽! 난 지금 심각하다구요! 마나가 자꾸 빠져 나간단 말입니다! "저, 장로님. 지금 모아뒀던 마나가 자꾸 빠져나가고 있어요. 왜 그렇죠?" 나는 용기를 내서 글리콜 장로에게 물었다. 설마 뭐가 잘못된 것은 아니겠 지? 글리콜 장로는 그런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당연한 현상이라네. 본래 마나는 일정하게 분포하려는 성질이 있거든. 마법사가 마나를 축적하는 것은 본래 마나의 성질에 어긋나는 것이지. 그 래서 몸안에 축적된 마나는 자꾸 몸밖으로 빠져나가는 거라네." "그럼 계속 마나 축적을 해야한다는 말이군요." "바로 그거네. 끊임없는 마나 축적으로 클래스를 높여가는 거지." 클래스? 클래스가 단계던가? 어떻게 클래스를 나누는 거지? "저... 클래스는 어떻게 구분하는 건가요?" "클래스말인가? 축적된 마나의 양으로 구분하지." "하지만 마나는 계속 빠져나가잖아요? 어떻게 마나의 양을 측정할 수가 있 어요?" 내 물음에 글리콜 장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닐세. 마나는 항상 고루 분포해 있으려는 성질을 지니지만은 않네. 일정 한 정도의 마나가 서로 모이게 되면 안정한 상태를 이루지. 그러면 왠만해 선 흩어지려고 하지 않아. 클래스란 바로 그 상태를 뜻하는 거라네. 어느 정도 몸안에 마나를 축적하면 마나는 안정한 상태를 이루어 더이상 외부로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소리일세. 그 안정한 상태의 마나에다 다시 마나를 축적시키면 새로 축적된 마나는 계속 외부로 빠져나가려고 하지만 이미 안정한 상태를 이룬 마나는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그러다가 어느 정도 마나를 축적시키게 되면 새로 축적된 마나도 본래 안정한 상태를 이 루었던 마나와 동화되어 또다시 안정한 상태를 이루게 된다네. 그렇게 되 었을 때 우리는 클래스가 한단계 더 높아졌다고 말하지." 마나가 안정한 상태를 이룬다라.... 그건 꼭 원자 같잖아? 원자도 바깥 껍 질에 전자가 8개 모이면 안정한 상태를 이루어 거의 화학 반응을 하지 않는 데.... 그걸 옥텟 규칙이라고 하던가? 어쨌건.... 대충 이해가 간다. 오옷! 한번 듣고 이해를 하는 이 비상한 머리! 그런데.... 마법을 써서 몸안의 마나를 완전히 소모하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마나를 축적해야 되나? 그럼 힘들 것 같은데....? "장로님, 마법을 써서 몸안의 마나를 모두 소모한 뒤에는..... 처음부터 다 시 마나를 축적해야 되나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1.마법 입문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48 게 시 일 :99/08/16 21:08:09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4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 마법 입문 -5- "음, 예리한 질문이구먼! 답부터 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일세. 마나는 특 이하게 본래 상태를 기억하는 성질이 있어서 한번 몸안에서 안정한 상태를 이루면 마나를 다 소모했다 하더라도 저절로 외부의 마나가 몸안으로 흘러 들어온다네. 그래서 특별히 마나 축적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 르면 본래 마력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지." 아... 그랬군. 역시 난 훌륭한 학생이야~. 이런 예리한 질문을 던질 수 있 으니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질문 하나 더! "클래스는 몇단계까지 있나요?" "알려진 바에 따르면 8클래스까지 있다고 하더구나.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심장 크 기가 되면 마나는 최초로 안정한 상태를 이루는데 그것 을 1클래스라고 부른다. 계속 마나를 축적하여 허파까지 뒤덮는 크기가 되 어 안정해지면 2클래스, 허리까지 덮으면 3클래스, 엉덩이까지 덮으면 4클 래스, 무릎까지면 5클래스, 발까지면 6클래스, 팔까지는 7클래스, 마지막 으로 머리까지 마나가 뒤덮어 안정한 상태를 이루면 8클래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마나가 어디까지 뒤덮었느냐가 아니고 몇번이나 안정해졌느냐 이다. 알겠느냐?" "예.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장로님은 몇클래스세요?" "내 나이 이제 467살이지만.... 기껏 6클래스 밖에 이루지 못했단다." 억! 467년 동안 6클래스? 그럼 난 몇년을 해야 되는겨? "그렇다고 기죽지 말게. 사람마다 마나의 축적 속도는 다르니까 말이야." 글리콜 장로는 껄껄 웃었다. 물론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겠죠. 문제는 제 속 도가 다른 사람보다 느릴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어머! 깨어났군요, 니트!" 갑자기 숲속에서 아세트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마치 내가 지금까지 자고 있었다가 방금 깬 것처럼 말을 하네? 와! 바구니에 과일들을 듬뿍 넣어 가지 고 왔잖아? 오옷! 나를 위해 과일까지 준비해오다니! 감격! 아세트는 나와 글리콜 장로 사이에 들고 온 바구니를 놔두고는 내 옆에 와 서 앉았다. 역시 아세트는 날 좋아하나봐~ 으헐헐..... "마법 수련은 잘 돼요?" "아, 예... 그럭저럭...." 아직 초반이라 잘 모르지. 나도 노력하면 대마법사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 구. 우켈켈.... 윽! 자꾸 내 웃음소리가 사악하게 변해가는 듯한....! 아세트는 바나나를 하나 집어들며 나와 글리콜 장로에게 말했다. "드세요. 니트는 마법 수련을 했으니 배가 많이 고플거예요." 아세트~ 바나나를 먹으면 안되지~. 바나나는 네 동족이잖아~. 억! 내가 이 런 썰렁한 말을! 아니, 썰렁한 생각을! 나야 원래 이렇지만..... 나도 역시 바나나를 집어들고 맛있게 먹었다. 바구니에는 유난히 바나나가 많았다. 글리콜 장로를 보니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음.... 역시 아세 트는 날 위해 바나나를 이렇게 많이 가지고 온거야. 또다시 감격이다! "그런데 아세트는 어떻게 여길 찾아온 거예요?" 내가 묻자 아세트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일어나보니까 니트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글리콜 장로님과 함께 마법 수련 을 위해 이소메르에 있다고 생각했지요." 이소메르? 마법 수련을 위한 공터를 말하나 보지? 어쨌건 점심때가 되니까 정확히 찾아오는 아세트가 고맙군. 잠깐! 아침에도 아세트가 찾아오지 않았 을까? 그때 사과를 다 먹은 글리콜 장로가 입을 열었다. "이소아밀님은 아침에 음식을 들고 찾아왔었네만, 자네가 계속 마나 축적에 정신을 쏟고 있어서 나와 이소아밀님만 음식을 먹었네." "장로님! 그 얘긴 안하기로 했잖아요!!!" 아세트가 크게 당황하여 소리쳤다. 음, 그랬군. 아침에도 날 위해 음식거리 를 가져왔었구나. 굉장히 미안해지네? "고마워요, 아세트." "아, 아니예요... 고맙기는요...." 아세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걸? 억! 내가 지금 무슨 망상을.....!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글리콜 장로는 헛기침을 몇번 한 뒤에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꾸준히 마나 축적을 행하게. 1클래스에 도달하게 되면 내가 기초적 인 주문을 가르쳐 주겠네. 아니, 그럴 필요도 없겠군. 코아세르 베이트의 저서에 마법 주문이 있을테니까. 어쨌건 오늘부터 일을 시작하게." 일? 아! 마법론 해석 말이구나! "네, 빠른 시간 내에 끝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허허,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글리콜 장로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공터를 빠져나갔다. 얼굴이 빨개져 있 던 아세트가 탈출구를 찾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종이와 펜은 집안에 준비되어 있어요. 식사를 끝낸 후에 천천히 하세요." 고렇게는 못하지~. 난 빨리 해석을 끝내놓고 마법을 수련하고 싶거든. 난 최대한 빨리 과일들을 먹어치웠다. 나의 번개같은 속도에 아세트는 입만 벌린 채 할말을 잃고 말았다. 2분만에 바구니를 깨끗이 비워버린-껍질들이 남았으니 깨끗이 비운건 아니군....- 나는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빨리 가죠. 가서 열심히 일을 해야죠!" "네. 저도 도울께요." 아세트는 과일 껍질만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맞장구 쳤다. 엥? 뭘 어떻게 돕겠다는겨? 해석도 못하면서. 이, 이런! 감히 이런 생각을 하다니! 아세트 는 그냥 호의로 말한건데 말이야. 역시 난 문제야...... 나와 아세트는 곧장 집을 향해-원래 아세트의 집이지만 내 집도 되니까- 걸 어갔다. 이거 꼭 신혼부부같잖아? 으흐흐.... 역시 내 웃음소리는 점점 사악 해져 가는군..... 집으로 가는 길에 난 아세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세트, 엘프들은 인간에게서 마법 주문을 배운 건가요?" "네? 아.... 사실이예요. 엘프들은 본래 정령들을 다룰 줄만 알았거든요. 그러다가 1500년전 쯤에 인간들에게서 마법 주문을 배워왔어요. 그때부터 엘프들도 마법을 쓸 수 있게 된 거예요." 음... 그렇군. 엘프가 인간들에게서 마법 주문을 배웠다니 뜻밖인걸? 뭐,그랬으니까 엘프들도 불 완전 주문을 사용하고 있겠지만. ............... 주르륵--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우.... 덥다. 여기도 여름인가? 3시간 동안 꼼 짝않고 마법론의 내용을 종이에다 옮기는 일만 했는데도 덥군. 누가 선풍기,아니 에어콘 좀 틀어 줘!!! "실프 소환." 탁자 맞은편에서 번역(?)을 하고 있는 날 빤히 쳐다보던 아세트가 입을 열 었다. 그러자 실프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물의 정령 운디네와 마찬 가지로 벌거벗은 여성 엘프였는데, 반투명해서 뚜렷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너무 안타까월..... 흑흑..... 바람의 정령 실프는 나에게로 날아와서 내 얼굴에 있던 땀을 훔쳐주었다. 야... 굉장히 시원한데? 역시 정령들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단 말이야. 나도 정령을 부리고 싶어..... "고마워, 실프." 난 실프에게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실프도 마주 웃어주었다. 음.... 다행히 내 미소가 역겹지는 않은 모양이군. 내 말을 들은 아세트가 놀라 소 리쳤다. "방금 그 말은 정령어! 니트는 정령어도 할 줄 아는군요!" 그럼. 정령어가 아니면 어떻게 실프가 내 말을 알아듣겠어?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2.마법 입문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49 게 시 일 :99/08/16 21:08:36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2 마법 입문 -6- 아, 그래! 아세트한테 정령술이나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 "아세트, 정령술을 배워도 될까요?" "정령술? 아, 정령 마법말이군요." 정령술이 아니고 정령 마법? 원래 그렇게 부르나? 내가 뭘 아나..... 실프는 내 머리위를 빙빙 돌며 흐르는 땀방울을 계속 닦아 주었다. 실프를 부리는 건 아세트니까 아세트에게 고마워해야 겠구나. 아세트는 내가 정령 마법을 배우고 싶다는 말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제가 가르쳐 드릴께요. 정령 마법도 일반 마법과 마찬가지로 마나가 필요 해요." 오... 그랬군. 난 정령 마법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하하.... "하급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클래스 이상의 마력이 필요해요. 소환된 정령에게 계속 마력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정령을 물 질계에 머물게 할 수 있어요." 물질계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말하는 거겠지. 어쨌거나 난 1클래스 도 안되니까 정령 마법도 어림없겠네? 이런...... "우선 정령을 부리기 위해서는 정령과 계약을 맺어야 해요. 우선 정령어로 '정령계의 문이여, 열려라'라고 말해요. 그러면 눈앞에 정령계가 펼쳐지죠. 정령계의 수많은 정령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정령을 선택해서 계약을 맺으 면 돼요. 한번 계약을 맺은 정령과는 '소환'이라는 말만 해도 이 물질계로 불러올 수 있어요." 그래? 직접 해보지 않고는 잘 모르겠는걸? 나중에 1클래스에 도달하게 되면 한번 해봐야겠다. 난 정령어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하. "그런데, 아세트. 정령들도 생각을 할 수 있어요?" "네. 약간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아는 가지고 있어요. 깊은 사고 작용은 할 수 없지만 희노애락같은 감정은 있지요. 하지만 정령에게 는 소환주와의 계약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한번 계약을 맺은 소환주의 명령 은 싫든 좋든 무조건 따라야해요." 이를테면 물의 정령 운디네한테 입청소시키는 것도 그것에 포함되겠지? 우 히히.... 정령들은 참 불쌍하구만. "왜 소환주와의 계약이 절대적인데요?" "글쎄요.... 그것은 모르겠어요. 단지 정령신의 뜻이라고 할 수 밖에...." "정령신?" "정령들을 지배하는 신이죠. 자세히 알려진 건 없어요." 아세트는 모르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령신이라.... 나중에 생각하 지, 뭐. 지금은 오늘 목표치까지 작업을 끝내는게 중요하니까! 난 또다시 작업을 시작했고 아세트는 실프하고 놀면서 날 구경했다. 그리고 가끔 실프가 내 땀을 닦도록 부려먹으면서(?). 하여간 고마워, 아세트. 그로부터 2시간이 더 지났다. 1000장이 조금 넘는 내용 중에 겨우 100장까 지 밖에 옮기지 못했다. 크윽! 팔빠지겠다! 내 팔 돌리도~ "어머! 글씨를 참 잘쓰시네요!" 아세트가 내가 번역한 종이를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우하하! 내가 좀 글씨 를 잘 쓴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 아세트는 종이에 번역된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아... 졸려. 5시간 동안 꼼 짝않고 번역만 했더니 피곤해 죽겠다. 잠이나 자야지. "아세트, 전 잠시 눈 좀 붙여야겠어요." "네....." 아세트는 정신없이 번역글을 읽느라 건성으로 답했다. 억... 소외감 든다. 뭐, 항상 겪던 것이지만 말이야. 신경쓰지 말고 자자! .......... 아함, 잘잤다. 내가 얼마나 잔거지? 얼레? 초저녁 같다? 별로 많이 자지는 않은 모양이야. 아세트는 뭐하나? 아직도 번역글을 읽고 있는 모양이네? 난 안경을 쓰고 아세트 맞은편에 앉았다. 아세트는 내가 앉고 나서야 내가 깨어난 것을 알았는지 약간 놀란 어조로 말했다. "잘잤어요, 니트?" "예. 그런데 완전 주문과 불완전 주문의 차이점이 뭐 있나요?" 내 질문에 아세트는 종이를 순서대로 잘 정리하면서 대답했다. "완전 주문은 한마디로 너무 길어요. 아마 마나의 완전 공명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일테지만요. 그에 반해 불완전 주문은 짧죠. 제 생각엔...." 아세트는 잠시 말을 끊고 날 쳐다보았다. 왜 말을 끊고 그래? 무슨 엄청난 말을 할 것처럼 말이야. 그냥 하라구. "코아세르 베이트는 일부러 인간들에게 불완전 주문을 가르쳐 준 것 같아요. 불완전 주문은 짧아서 마족이나 마수들과의 빠른 대응이 가능할 테니까요. 그냥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예요." 아세트는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 렇다면 난 우선 불완전 주문부터 배울까? 불완전 주문은 마나의 소모가 완전 주문보다는 적다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난 탁자에서 일어서며 아세트에게 말했다. "아세트, 전 마법 수련을 하고 오겠어요. 거기 마나가 많은 공터....." "이소메르 말인가요?" "아, 예. 이소메르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올께요." "저녁식사도 안하고요?"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아요. 수련 끝나고 먹을께요." "그럼 저도 같이 가서 마법 수련 할래요." 아세트가 벌떡 일어서더니 말했다. 아세트하고 같이 하면 정신 집중이 안될 텐데.... 아니지. 그런 악조건 속에서 수련을 한다면 오히려 효과가 배가 될 지도 몰라. 우키키... 같이 가야겠다. 음... 내 웃음소리는 사악의 극을 향 해 치닫는군..... "그럼 같이 가죠." "네." 나와 아세트는 곧장 이소메르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소메르까지 가는 길 도 잘 모르면서 가겠다고 했었잖아!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이소메르에 도착하자마자 난 편평한 돌에 앉았다. 아세트는 내 맞은편에 앉 았다. 으... 신경쓰여.... 어쨌든 난 안경을 벗어 내 옆에 두고 눈을 감았다. 그때 아세트의 질문이 들려왔다. "안경은 왜 벗어요?" "정신 집중할 때 방해될까 봐서요. 얼굴에 아무것도 쓰지 않는게 정신 집중 이 더 잘되니까요." 아세트가 끄덕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았다면서 어떻게 알았냐구? 그 냥 느낌이지. 아세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것 같단 말이야..... 혹 시 이건 기(氣)를 감지하는 능력?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잡생각은 그만하고.... 마나를 느낍시다. 음.... 느껴진다. 마나의 바다에 둥둥 떠있는 기분.... 헐헐.... 귀여운 마나들아, 어서 내 몸속으로 들어오 려무나..... 어쩔시구? 아침에 모아두었던 마나들이 자꾸 빠져나가려구 그러네? 이노무 자슥들! 누가 고렇게 놔둘 것 같냐? 너희들은 절대 못빠져나가! ........... 음... 지금 시각이 몇시지? 억! 그새 이렇게 깜깜해지다니! "어머! 깨어났군요!" 얼레?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대사 같은데? 아... 아세트의 말이었군. 안경을 쓰고 앞을 쳐다보니 아세트가 웃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지금 몇시예요?" "10시쯤 됐어요. 정말 대단해요! 5시간 동안 꼼짝않고 마나 축적을 할 수 있다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런데 엘프는 시계도 없으면서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지? "그런데 아세트는 어떻게 지금이 10시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아, 그건 숲이기 때문이예요. 전 이래뵈도 이 숲에서 거의 100년 가까이 살았다구요. 해의 위치나 생물들의 동태만 살펴봐도 시간을 알 수 있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곳에서도 하루 시간을 24시간으로 나누나요?" "네. 하루는 24시간,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예요." 오옷! 다행히 시간 때문에 헷갈릴 일은 없겠군. 우캬캬... 꺽! 몸이 부서질 것 같다! 내가 5시간 동안이나 꼼짝않고 있었다니 기적이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3.마법 입문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56 게 시 일 :99/08/17 21:08:01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4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3 마법 입문 -7- "마나 축적은 많이 했나요?" 아세트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허리를 두드리다가 몸 을 바로하고 몸안에 축적해놓은 마나를 느껴보았다. 6시간에다 5시간, 총 11 시간 동안 꼼짝않고 모았으니 꽤 많이 모였겠지? ".....!" 억! 이럴수가? 마나의 유출이.... 없다?! "왜그래요, 니트? 뭐가 잘못됐어요?" 아세트가 굉장히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요... 잘못된 건 없는데.... 마나가 더이상.... 빠져나가지 않아요... 내 심장 주위에서 둥근 형태를 유지하면서.... 말이예요....." 그렇게 말하는 나도 믿을 수 없었다. 글리콜 장로의 말로는 마나의 유출이 최초로 사라진 상태가 1클래스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말이예요? 정말로 마나의 유출이 느껴지지 않아요?" "예." 난 좀더 분명히 대답했다. 확실했다. 이건 내가 1클래스에 도달했다는 증거 니까. 드디어... 내가 1클래스에 도달하다니! 이거 꿈은 아니겠지? "축하해요, 니트! 1클래스를 달성했군요! 이제부터 초급 주문을 배워도 되 겠어요!" 아세트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우하하! 기쁘다! 드디어 내가 뭔가 해냈구 나! 흑흑...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아세트, 전 먼저 정령 마법을 배우고 싶어요." "정령 마법이요? 좋아요! 제가 잘 지도해 드릴께요. 그런데 어떤 정령과 계 약을 맺으려구요?" "아, 물의 정령 운디네하구요." "하지만 여기엔 물이 없는걸요." 아세트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했다. 물이 없는 거랑 정령 소환이랑 무슨 상 관이 있다는겨? 혹시 물의 정령은 물이 없으면 소환할 수 없다는 소리야? "물의 정령은 물이 없으면 소환할 수 없어요?" "낮은 클래스의 마법사에게는 그래요. 물이 없는 상태에서 운디네를 소환하 려면 적어도 2클래스 이상의 마력을 가져야 가능해요." 어억! 그럴수가! 그럼 여기서는 운디네를 불러낼 수 없다는 소리잖아! 침울해 있는 날 보며 아세트가 한마디 했다. "우선 바람의 정령 실프를 소환해보도록 하세요. 바람은 어디에든지 있으니 까 1클래스의 마력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쩝! 어쩔 수 없이 운디네는 포기해야겠군. 운디네를 소환해서 양치질이나 시키려고 했는데..... 뭐, 이번에는 실프로 만족해야겠다. "좋아요, 그럼 실프를 소환하도록 할께요. 우선 어떻게 해야 하죠?" "먼저 눈을 감고 정령어로 '정령계의 문이여, 열려라'라고 말하세요. 건성 으로 하면 안돼요. 정신을 집중해서 해야해요." 음... 항상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네? 그러다가 정신력 소모되겠다. 어쨌든 난 눈을 감고 잡생각을 버린 후에 '정령계의 문이여, 열려라'라고 작은 목소 리로 말했다. 크게 말해봤자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쏴아아--- 얼레? 왠 빛이? 어두운 동굴 속에 있다가 밝은 외부로 나온 듯한 기분이네? 와.... 정말 정령들이 많군! 운디네도 있고, 실프도 있고.... 저건 불의 정 령이냐? 작은 도롱뇽 같은게 불을 뿜네? 얼씨구? 불새도 있어? 뭐야, 저 땅 딸보 할아버지는? 저 할아버지도 정령이야? 땅파서 뭐하냐? 혹시 땅의 정령? 음... 도대체 이 많은 정령들 중에 누구하고 계약을 맺지? 굉장히 당황스럽 군. 어쨌든 난 실프하고 계약 맺으러 왔으니까.... 그런데 실프도 굉장히 많 네? 으.... 누구하고 계약 맺냐고!!! 난 앞으로 나갔다. 물론 정령계에선 내 몸이 없다. 단지 내 의식만이 정령 계를 떠돌 뿐이다.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냥 투명인간이라고 하면 되려나? 아닌데.... 이런! 난 설명을 못하니 원..... 내가 다가가자 허공을 유유히 맴돌고 있던 바람의 정령들로 보이는 새들이 날 피해 더 높이 날았다. 그리고 꽤나 강해 보이는 다른 정령들도 날 피해서 다녔다. 내 주위에 있는건 별볼일 없어 보이는 하급 정령들 뿐이었다. 우욱! 저녀석들이 내 마력이 1클래스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상대도 안하다니! 이거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데? 저것들을 몽창 잡아서 밟아버려? 음... 어쩔 수 없지. 너희들은 나중에 손봐주도록 하마. 우선은 실프하고 계약부터 하고. 야! 거기 실프! 컴온! 내가 바라보자 하늘을 유유히 날던 실프 하나가 내 앞에 다가왔다. 그 실프 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와 계약을 맺길 원하십니까?" 와... 참 유창한 정령어다. 실프도 정령계에선 말을 하는구나. 그런데 그런 무표정한 얼굴 하지 말라구. 무서버~ 휭-- 갑자기 내 앞에 있던 실프가 하늘로 올라갔다. 어어, 이봐! 갑자기 그렇게 날아가는게 어딨어!!! 내가 잡생각했다고 삐진거야? 그러자 하늘로 올라갔던 그 실프가 다시 내려오더니 입을 열었다. "저와 계약을 맺길 원하십니까?" 윽... 기계적인 어조다. 아차차, 이럴때가 아니지. 그래그래! 계약 맺고 싶 어! 계약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당신은 저의 주인이 되실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당신이 저와의 계약을 파기할 때까지 전 당신을 주인으로 모실 것입니다." 그러면 좋고. 그런데 어투가 굉장히 사무적이다.... 무서버.... 그때 갑자기 나와 계약을 맺은 실프가 내 눈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눈앞이 번쩍해졌고 내 정신은 현실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 바람 의 정령 실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머! 성공했군요!" 아세트가 실프를 보고 놀라 소리쳤다. 아세트의 말에 멍하니 실프를 바라보 고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실프를 향해 손을 들어보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 었다. 실프가 나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을 때서야 난 내가 정령 소환에 성공 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 이 감격!!! 실프는 내 머리 주위를 날아다녔다. 난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실프만 쳐다보 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진짜로 정령을 소환하게 되다니....! 꼬르륵-- 얼레? 이게 무슨 소리다냐? 이거 배고플 때 나는 소리 아닌감? 내 배에서 난 것은 아닌데? 그럼.... 아세트? 난 아세트를 쳐다보았다. 아세트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채 배를 양팔로 감 싸고 있었다. 방금 그 꼬르륵 소리는 아세트의 배에서 난 소리겠군. "아세트, 저녁 안먹었어요?" "아... 네...." "왜 안먹었어요?" 아세트는 얼굴을 더욱 빨갛게 물들이고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니트가 계속 수련 중인데... 저 혼자 먹기 그렇잖아요....." "......" 오, 몰려오는 이 감동! 하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안먹으면 내가 더 미안하잖 아! 우선 저녁식사나 해야겠다! "어서 가서 저녁식사 하죠." "네...." 아세트는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는 날따라 일어섰다.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 요없다구. 배고픈건 사람이나 엘프나 마찬가지니까. 나와 아세트는 곧장 저장고로 향해서 과일들을 꺼내온 다음 집안으로 들어 가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나서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1클래스에 도달했다는 기쁨과 바람의 정령을 소환한 것 등으로 마음 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세트 때문이기도 하지만. 캬캬캬.... 드디 어 내 웃음소리는 사악함의 경지를 넘어 마(魔)의 경지로 들어서는군.... 그날밤 나는 실프와 함께 바나나를 먹다가 배터져 죽는 꿈을 꾸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4.마법의 본질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57 게 시 일 :99/08/17 21:08:34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3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4 마법의 본질 -1- 다음날부터 계획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5시~ 11시, 아침식사하고 이소메르에서 마법 수련. 오전 11시~ 12시, 약간의 휴식 후 점심식사. 오전 12시~ 오후 4시, 코아세르 베이트의 마법론 번역. 오후 4시~ 6시, 역시 약간의 휴식 후 저녁식사. 오후 6시~ 10시, 이소메르에서 마법 수련. 오후 10시~ 다음날 5시, 달콤한 수면. 크... 빡빡하다. 뭐, 내가 정한 계획표긴 하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마법 수 련 시간이 제일 많군. 10시간이라.... 이정도면 충분한 수련량이지? 그런데.... 체력이 못버텨주는군. 아... 힘들어라.... 과일만 먹으니.... 누군가 나에게 고기를 준다면.... 그 대가로 통구이를 만들어 주리라..... 얼레? 내가 지금 뭔소리 한다냐? 역시.... 난 미친거야..... "괜찮아요, 니트? 요즘 많이 피곤해 보여요." 아세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대에 누워있는 날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예요....." "아니긴요! 오늘은 해석하는 일 하지말고 쉬세요! 몸 생각도 하셔야죠!"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 하지만 그 해석하는 일이라도 안하면 그 노인 엘프들이 날 이곳에 계속 살게 할까? 괜히 음식만 축내는 날 뭐가 좋아서 이대로 두고 있겠어?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예요! 오늘은 쉬세요! 이건 에스테르로서의 명령이 예요!" 얼굴까지 붉히며 길길이 날뛰는 아세트. 에스테르로서의 명령이라.... 언제 는 에스테르 제도가 싫다더니.... 핫! 그런말 안했나? 어쨌든.... 에스테르 란 말을 들먹인건 오늘이 처음이로군.... 그만큼 날 걱정해준다는 뜻? 그렇게 해서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마법 수련도 할 수 없 었다. 너무나 피곤했다. 마법 수련은 많은 정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체력소 모가 장난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4, 6시간 동안 꼼짝않고 마법 수련을 하는 체질은 정신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그래서 그렇게 자빠진 날부터 체력단련을 시작했다. 체력단련은 기(氣) 수련을 위주로 했다. 우선 가볍게 맨손체조를 하고, 정 좌를 하고 앉아 일체의 모든 것을 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이게 기 수련하는 방법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앉 아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내 방식의 기 수련을 시작한 다음부터 마법 수련 시간이 줄어들고 마나 축 적 속도도 줄어들어 갔다. 그러나 내 몸은 오히려 건강해져 갔다. 이소메르 에는 마나뿐만 아니라 기도 훨씬 쉽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 수련이 쉬웠 다. 기란 일종의 생명력이니까.... 억? 그럼 마나와 같은 거 아니냐고? 글쎄 .... 뭐랄까.... 둘은 약간 다른데..... 어쨌든 가장 큰 차이점은 마나는 정 신력을 소모해서 축적한다는 것이고, 기는 아무생각없이 앉아서 느끼는 것이 다. 물론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거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난 모 름. ...... 그렇게 일주일 정도 흘렀다. 난 오늘 아침도 아세트에게서 왼팔을 빼낸 후에 저장고로 향했다. 아세트는 여전히 내 팔을 잡고 잔다. 그래서 아세트의 체취 때문에 매일 바나나 먹는 꿈을 꾼다. 그래도 오늘은 정령들이랑 맛있게 바나나를 먹었는데 배터져 죽 지는 않았다. 점점 꿈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잭 오 랜턴 소환." 정령어로 그렇게 말하자 빛의 정령인 잭 오 랜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큰 호박의 속을 파고 껍질에다가 사람 얼굴마냥 눈, 코, 입을 판 모습인데, 그 빈 호박 속에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같은 빛의 정령 윌 오 위스프 보다는 하급 정령으로 빛의 세기도 약하고 실전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아니구나! 깜깜할 때 저 호박머리 정령이 짠하고 나타나면 놀래겠구나! 난 잭 오 랜턴을 앞세우며 저장고에 도착했다. 저장고에는 음식이 거의 변 함없이 쌓여 있었다. 아세트에게 물어봤었는데 사흘에 한번씩 카르본의 엘프 들이 돌아가면서 각 저장고에 과일들을 넣어준다고 했다. 그래서 저장고의 과일의 양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저장고 안에서 바로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껍질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리고 나서 땅의 하급 정령인 노움을 소환했다. 노움은 땅딸보 할아버지의 모 습을 하고 있다. "노움, 이거 땅에 묻어라." 내가 과일 껍질들을 던져주자 노움은 그걸 받아다가 땅에 묻었다. 땅의 정 령이라 그런지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뒷처리를 하고 이소메르 로 갔다. 이소메르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맨손체조로 가볍게 몸을 푼 뒤, 정좌를 하고 앉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른바 무념무상(無念無想)! 그러다가 잠 든 적도 몇번 있었지만 확실히 그렇게 앉아 있으면 심신이 편해진다. 한시간 정도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 축적을 시작 했다. 지금 난 2클래스를 넘어 3클래스에 도전 중이다. 계속 이런 속도를 유 지한다면 3클래스도 조만간에 도달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마법 주문 은 별로 많이 알고 있지 않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마법 주문을 외우는 것보 다 마나 축적이기 때문에...... 충분한 마력이 있어야 고급 주문을 쓸거 아 니겠어? 마법 주문은 충분한 마력을 모은 후에 배워도 늦지 않으니까. ............ 눈을 떠보니 해는 벌써 중천에 걸려 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아세트가 내 앞에 앉아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다. 주변에는 장로님들이 앉아 마법 수련 중이다.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하면 4시간 동안 그렇게 꼼짝않고 앉아 있을 수 있 어요?" 아세트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쿠쿠.... 지난 번에는 '글쎄요....' 라고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생각해 놓은 대답이 있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마법 수련이 즐겁거든요." "즐겁다라....." 내 대답에 아세트는 생각에 잠겼다. 편평한 돌 위에 앉고서 무릎 위에 팔꿈 치를 갖다대고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내가 정신없이 아세트를 쳐다보고 있을 때 검은 머리띠를 한 글리콜 장로가 나에게 다가와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으헉! 놀래라! 갑자기 그렇게 와서 앉 으면 어떡해요? 간 떨어질 뻔했네! "어머, 장로님!" 아세트도 그제서야 글리콜 장로를 발견하고 놀란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글리 콜 장로는 나와 아세트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한 후에 말했다. "니트, 자네는 정말 열심이구먼." "아... 즐거우니까요." 이거 쑥스럽구만! 나야 뭐 항상 열심히 하니까, 푸하하...... "자네 덕분에 우리들도 이렇게 나와서 마법 수련을 하고 있다네." "저 때문에요?" "그렇네. 자네가 열심히 마법 수련을 하는 것에 영향을 받아 저 느림보들이 마법 수련을 하고 있지." 글리콜 장로는 우리하고 약간 떨어진 곳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있는 장로들 을 쳐다보았다. 음... 내가 열심히 하니까 저 장로들도 경쟁의식을 느끼고 마법 수련을 한다 이거로군! 우후후...... 글리콜 장로는 여전히 장로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외부와의 교류가 없는 평화.... 500년의 삶.... 그것이 과연 좋을까....?"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5.마법의 본질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67 게 시 일 :99/08/18 21:07:26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5 마법의 본질 -2-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장로님?" 글리콜 장로의 중얼거림 비슷한 말을 듣고 아세트가 놀라 물었다. 글리콜 장로는 나와 아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카르본의 엘프들은 다른 지역의 엘프들과는 다르게 크레졸에 의존함 으로써 평화와 장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걸까요? 다른 지역의 엘프들보다 안전하고, 그들보다 300년을 더 산다고 정말 좋은 것일까요?" "장로님....." 아세트는 글리콜 장로의 말에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다른 지역의 엘프들보다 안전하다고? 게다가 300년을 더 살아? 그럼 다른 지역의 엘프들은 여기보다 안전하지 않고, 수명이 200년이란 말이야? 엘프들의 수명 이 200년밖에 안돼? "1년전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500년을 살았습니다. 안전하게 말입니다. 그래 서.... 나태해졌습니다. 500년이나 살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남 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법 수련에 소홀했습니다. 아무도 조급하 게 마법 수련을 하려는 엘프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르본의 엘프들 중 누구도 8클래스에 이른 자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6클래스 마 스터밖에 없습니다.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에 정진하려는 생각보다는.....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에 천천히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크 레졸에 의한 평화와 장수가.... 오히려 카르본의 몰락을 가져오고 있는 겁 니다....." "장로님...." 아세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적당 한 변화가 없는 사회는 도태되기 마련이지. 카르본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 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곳도 변화가 필요할거다. 오히려 크레졸이 사라 진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물론 200살 이상의 엘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니트." 글리콜 장로의 부름에 난 아무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글리콜 장로가 말을 이었다. "자네 계속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인가?" "......!" 그렇군! 그것에 관한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 "만약 이곳을 떠나 자네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면.... 크레졸을 찾아주게나. 크레졸을 찾아서..... 그것을 부수어 버리게." ".....!" 에? 크레졸을 찾아서 부수라구? 그 말은 크레졸에 의한 평화와 장수를 버리 겠다는 뜻? 이 장로님은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거야? 글리콜 장로의 말에 아세트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 장로님! 왜 그런 말을.....!" "이소아밀님, 이건 꽤 많이 생각해보고 내린 결정입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결정이지만요. 크레졸이 없는 편이.... 카르본의 엘프들에게 더 좋다고 생 각합니다. 이제.... 에스테르 제도도 사라져야죠. 제 2의 에티르님을 만들 어서는 안되니까요." 글리콜 장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와 아세트는 아무말도 못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글리콜 장로는 몸을 돌리며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말했다. "저 보수적인 장로들에게는.... 제 이야기를 하지 마십시오." 사박사박-- 글리콜 장로는 발목까지 자란 풀들을 밟으며 이소메르 밖으로 나갔다. 나머 지 장로들은 여전히 마법 수련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글리콜 장로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고 있던 아세트가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니트는.... 크레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윽! 그런 어려운 질문을....! 글쎄.... 솔직하게 말할까? "전.... 크레졸이 없는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왜요?" "아까 글리콜 장로님의 말씀도 그렇고.... 너무 안정적인 사회는 금방 도태 되어 버리니까.... 변화가 필요할 거예요.... 엘프들도 너무 숲에 얽매여 사는 것보다.... 외부세계와 교류도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으... 어째 말이 안되는 것같다? 어쨌거나 확실한건 크레졸이 없어야 한다 는 것! 아세트도 결혼해야 될 것 아니겠어? 나하고 말이야. 크흐흐.... 이런 .... 이미 내 웃음소리는 마(魔)의 경지에 들어서 버렸군..... "하지만... 그렇게 인간들과 교류하는 길을 선택했던 엘프들은.... 모두 엘 프로서의 문화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어요. 그리고 인간과 엘프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엘프들은.... 엘프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인간으로도 인정 받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인간들과 교류를 해도 될까 요?" 이어지는 아세트의 물음. 크... 어렵다..... 인간들의 문화 속에 흡수되어 버린단 말이지? 하지만..... "그건 엘프들에게 달린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인간 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 어렵겠지만 그래야죠. 그래야 발전이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하프엘프에 대한 엘프와 인간들의 편견.... 그것은 조금씩 바꿔가야죠. 한번에 편견이 바뀔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 노력한다면 바뀔거예요. 미안해요. 이 정도밖에 대답을 못하겠네요." 푸후후.... 편견을 바꿔가자고?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들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문화를 지키면서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것....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 렇게 성공적으로 다른 문화를 수용한 나라는 거의 없는데 말이야..... "그렇군요.... 니트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억! 아세트!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거야? 그런 입발린 말이?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단지 행동이 어려울 뿐이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세트가 갑자기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니트는 여길 떠날 생각이예요?"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면 어떡해? 아직 생각해본 적도 없는 문제인데! "글쎄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나중에.... 말할께요." 난 그렇게 얼렁뚱땅 답을 회피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세트도 따라 일 어났다. 대답은 나중에 해주지 뭐.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점심식사하러 가죠." "네." 아세트는 순순히 날 따랐다. 다행이군. 끝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아서. 으다다다.... 점심먹고 바로 잤더니 머리가 띵~ 하네. 낮잠은 전혀 개운하 지가 않단 말이야. "잘잤어요, 니트?" "아, 네." 아세트의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난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이제 또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가.... 아직 500여장이나 남았는데.... 언제 하냐.... 하기 시려..... 난 탁자에 앉아 마법론을 펴놓고 펜을 들었다. 막 번역할 부분을 보려던 난 오늘 도전할 것이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좋아! 되든 안되든 한번 해봐야겠어! 코아세르 베이트가 말하길 마법은 마나를 통해 이미지를 실현시 키는 거라 했고..... 정신력만 높으면 주문없이도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 잘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도.....! 난 펜을 내려놓고 잉크 뚜껑을 덮었다. 내 행동에 아세트가 놀라 물었다. "왜그래요? 어디 아파요?" 역시 아세트는 내 걱정을 먼저 한단 말이야. 정말 날 좋아하는 건가? 아니 면 그냥 친구로 생각하는 걸까? 좋아하는 쪽이라면 좋겠는데.... 킬킬. "아니요. 잠시 해볼게 있어서요." ".....?" 아세트는 의아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다. 좋아! 이제 시작해볼까?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6.마법의 본질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68 게 시 일 :99/08/18 21:07:50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6 마법의 본질 -3- 난 안경을 벗어 탁자 위에 두었다. 그러자 아세트는 내 이마에 손을 짚으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안경까지 벗고....." "괜찮다니까요. 마법을 쓸려구요." "마법?" 아세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내 이마에 올려진 아세트의 손을 잡고 탁 자에 내려놓으며 -이럴때가 아니면 언제 아세트의 손을 잡냐? 으헐헐... 정 말 부드럽당.....- 아세트에게 말했다. "그냥 지켜보고 있어요. 실패할 확률이 높으니까요." "......?" 아세트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눈을 감고 정신을 집 중하였다. 먼저 생물 교과서에서 봤던 눈의 구조를 떠올렸다. 왜 그런걸 떠 올리냐구?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거야. 물론 어 떤 멍청한 마법사가 시도해봤을 수도 있겠지만. 난 근시(近視)다. 근시가 뭐냐구? 가까운 건 보이고 먼 건 잘 안보인다는 거다. 그 반대는 원시(遠視)로, 원시는 먼게 보이고 가까운게 안보인다. 근 시가 되는 이유는 수정체가 두꺼워졌기 때문이지. 수정체가 뭐냐구? 글쎄... 쉽게 말해 우리가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초점을 조절하는 기관이야. 내가 지금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그 수정체를 운동시킬 작정이거든. 그 래서 근시를 근원적으로 치료해보려고. 내 머리 속에 교과서에 그려져 있던 눈의 구조가 확연히 떠올랐다. 좋아... 수정체가 얇아지기 위해서는.... 모양체는 이완하고 진대는 수축한다..... 모양체하고 진대가 뭐냐구? 한마디로 말하면 수정체를 조절하는 기관들이야. 수정체의 위 아래로 진대가 붙어있고 진대는 모양체에 연결되어 있지. 모양 체가 이완하면 연결되어 있던 진대가 수축하고, 진대가 수축하면 그에 붙어 있던 수정체가 아래 위로 잡아당겨지기 때문에 얇아지지. 그런 상태가 되면 먼 곳의 사물을 볼 수 있어. 왜냐구? 그건.... 음.... 그걸 설명하려면 렌즈 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난 모양체를 운동시킬 작정이다. 그러면 자연히 수정체도 운동할 테 니까. 나는 몸안에 축적해놓은 마나를 내 눈쪽으로 보냈다. 마나는 무사히 눈까지 도달했다. 좋아.... 이제 모양체를 운동시키기 위해.... 마나를 에너 지 대신 주자..... 제발 움직여라...... 그러나 모양체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난 눈을 번쩍 뜨고 침대 쪽을 바라 보았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아세트가 놀라 물었다. "왜그래요, 니트?" 그러나 난 그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난 모든 정신을 눈의 구조를 떠올 리고 모양체를 움직이는 것에 쏟았다. 여전히 침대는 흐릿하게 보였다. 그러 나 난 계속 침대를 노려보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다! 난 반드시 성공하고 말테다! 아무리 무모한 도전 이라고 해도.... 반드시.....! ".....!"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난 끊임없이 마나를 내 눈에 보내면서 모양체가 움직이는 상상을 했다. 조금씩.... 침대의 윤곽선이 보이기 시작했 다. 드디어 굳어있던 수정체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흐릿해 보였던 모든 것이 점점 분명히 보였다. 난 책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였다. 책장에 줄 줄이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이..... 안경을 써도 잘 보이지 않던 그 작은 글 씨들이..... 너무나 생생히 잘 보였다...... 주르륵--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세트가 놀라 뭐라고 외친 것 같았지만 난 들 을 수 없었다. 눈을 한번도 깜빡이지 않아서 눈물이 흐른 건지, 아니면 기뻐 서 눈물이 흐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분명한 세계를 보며 난 웃었다. 멍청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난 그저 웃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허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하..... 안경없이도..... 모 든게 잘 보인다..... 하하하....... "니트!!!" 음... 머리가 아프군. 눈도 뜨기 싫다.... 등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과 앞 쪽에 느껴지는 나뭇잎들을 보건대.... 난 침대에 누워있는 모양이군. 그런데 내가 왜 침대에 누워있지? 난 마법을 쓰고 있었는.... 그렇군! 마법으로 내 눈을 잘 보이게 했었는데? 지금도 효력이 있을까? 눈을 뜨면 또다시 흐릿함 만이 보이지 않을까? 설마 시력을 잃은건? 난 두려웠지만 천천히 눈을 떳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지붕대신 덮은 커다란 나뭇잎들의 세세한 잎맥이었다.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다. 우하 하... 성공했구나!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잘 보이다니! 그래! 코아세 르 베이트의 말이 맞았던 거야! 사물의 본질을 알면 적은 마나로도 강한 위 력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사물의 본질, 즉 어떤 현상이나 구조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록 적은 마나로도 기적에 가까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이렇게 분명하게 보이다니.... 설마 이건 꿈 은 아니겠지? 꿈이라면 모두 부셔버릴껴! 응? 뭐지? 누가 내 옆에서 자고 있나? 누군가 내 왼쪽 어깨에 머리를 기대 고 자고 있었다. 바나나 향기가 나는데.... 아세트인가 보군. 벌써 저녁인가? 이런! 나 아직 저녁식사도 하지 않았는.... 잠깐! 저녁인데 이렇게 밝아? 난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햇살이 창가에 비치고 있었다. 아침인가? 아니면 아직도 대낮? 으.... 전혀 모르겠다. 아세트나 깨워서 물어봐야지. "아세트, 일어나봐요." 난 아세트를 흔들어 깨웠다. 아세트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어려 있었다. 운건가? 내가 갑자기 쓰러져서? 아니면 내가 죽지 않아서? 음... 난 생각이 왜 이런 쪽으로 가는 건지..... "음......" 내가 흔들어 깨우자 아세트가 눈을 뜨며 일어났다. 아세트는 내가 멀쩡히 있는 것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쏟으며 안겨왔다. "깨어났군요!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흑흑....." 에.... 이봐, 아세트..... 진정하라구..... 이렇게 안겨 있으면 내가 당황 스럽잖아..... 나 흥분할지도 모른다구!!! "나 때문에 걱정많이 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아세트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소리쳤다. 난 오른쪽 손가락으로 아 세트의 눈물을 살짝 훔친 후에 말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 안겨 있을 거예요?" "어마!!!" 내 말에 아세트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나한테서 떨어졌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 밖에. 클클클..... 억... 악마의 웃음소리다..... "아세트, 제가 얼마나 자고 있었어요?" "아... 5시간 동안이요.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랬다구요. 게다가 눈물 까지 흘리구.... 장로님들에게 급히 알렸어요.... 장로님들은 한번에 너무 많은 정신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쓰러진 거라고 하시고.... 니트가 깨어나 지 못할까봐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아세트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울지 말라구, 아세트. 자꾸 울면 안아 버 린다! 난 침대에서 내려와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안경을 집어들어 써 보았다. 크윽! 어지럽다! 퓨걀걀!!! 정말로 내 눈이 좋아진 모양이구나! 역 시 모양체를 운동시켜 두꺼워진 수정체가 얇아졌다 두꺼워졌다 할 수 있게 만드는 내 생각은 성공한 거야! 역시 난 천재인가봐......!!!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7.외출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79 게 시 일 :99/08/19 21:04:36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7 외출 -1- "왜그래요? 안경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세트가 내 옆에 앉으며 물었다. 억... 이제 노골적으로 나오네? "아니요. 이제 안경을 안써도 잘 보여서요." "예? 안경을 안써도 잘 보인다뇨? 전에는 안경을 안쓰면 아무것도 안보인다 고 했잖아요?" 그렇게는 말안했다! 그냥 흐릿하게 보일 뿐이라고.... 내가 어떻게 말했더 라....? 전혀 기억이 안나네? 음.... 역시 내 기억력은 문제가 있어..... "지금은 잘 보여요. 마법으로 제 눈을 치료했거든요." 내 말에 아세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법으로 눈을 치료했다구요? 어떻게 그런 일이....! 신력(神力)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 "반드시 불가능한 일도 아니예요. 마력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 산 증인이 바로 저잖아요." 난 살짝 웃어보였다. 설마 역겹다고 주먹 날라오는 것은 아니겠지? 아세트는 잠시 날 쳐다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제가 잘 보여요? 안경을 안쓰고도 제 얼굴이 잘 보여요?" "예." 난 아세트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음... 눈동자는 파란색이군. 머리칼은 에메랄드색이면서.... 크.... 더이상 못보겠다. 아세트는 날 멀쩡히 쳐다보 는데 난 왜 이렇게 얼굴이 화끈거린다냐? "정말 잘됐어요! 니트는 안경을 쓰면 현자(賢者)처럼 보이지만, 안경을 안 쓴 모습이 훨씬 멋져요!" 얼레? 갑자기 웬 칭찬이냐? 어째 그 말이 아부로 들린다? 난 지금까지 그런 말 들어본 적도 없었다! 거의 20년 동안 여자 친구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 실만 봐도 내 얼굴이 어떨 것이라는 걸 잘 알 수 있을텐데? 음... 그러고 보 니 여자애들과 거의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군.... 공부만 해서리.... 억! 저 기서 왠 큰 돌멩이가....!!! "고마워요." 난 그렇게 말하고 안경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제 안경 쓸 일은 없겠지. 자! 그럼 이제 못한 작업을 시작해볼까? 내가 안경의 속박(?)에서 벗어난 지 닷새가 지났다. 그동안 난 3클래스의 마력을 축적하는데 성공했다. 푸헐헐.... 난 역시 초고속의 마법사란 말이야 ..... 뭐, 매일 8시간 정도를 마나 축적에 투자하니까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 만. 닷새동안 열심히 작업을 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300여장이나 남았다. 그런데 종이와 잉크가 다 떨어져서 더이상 작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글리 콜 장로에게 종이와 잉크가 다 떨어졌다고 했더니 알았다면서 그냥 가라고 했다. 내 말을 듣고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끄응... 온몸이 찌뿌둥하군. 목욕이나 해야겠다! 난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집 뒤편에 있는 비교적 큰 시냇가로 갔다. 이곳은 나와 아세트의 전용 목욕탕이다. 엇!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말라구! 둘이 같이 한 적은 한번도 없으니까! 뭐? 아세 트가 목욕하는걸 훔쳐보지 않았냐구? 날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내가 그런 짓 을 할 사람으로 보이냐? 헉! 왜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난 결백하다 고!!! 난 걸치고 있는 옷을 모조리 벗고는 시냇가에 있는 큰 바위 위에 올려놓았 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카르본의 엘프들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거란다. 녹색 반팔 상의에 연두색 바지..... 다른 엘프들을 만난 적이 없으니 같은지 다른지 내가 어떻게 아나..... 내가 가는 데라고는 집, 저장고, 이소메르 밖 에 없어..... 역시 난 범생인가봐...... 허걱! 돌 던지지마!!! "웃차!" 풍덩-- 난 그대로 시냇물 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아니라 그냥 들어갔다. 시내의 폭은 2미터도 채 되지 않고 깊이도 내 허리까지 밖에 안오기 때문에 뛰어들 었다간 그대로 저승행이지...... "우웃! 시원하다! 음.... 옷도 빨아버릴까? 그거 좋겠다." 막 시내에서 헤엄치는 시늉을 하던 나는 -난 수영 못함- 바위 위에 놓은 옷 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난 혼자 있으면 말이 많아진단 말이야..... "실프 소환" 내 말이 끝나자 실프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실프는 내가 맨처음 계약을 맺은 그 바람의 정령이다. 다른 정령들과도 계약을 맺었지만 저 실프 는 나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다. 그래서 다른 실프들과는 아직 계약을 맺지 않았다. 그냥 바람의 하급 정령은 저 실프 하나다. 하나면 됐지 뭐. 여러 실 프들과 계약 맺어서 뭐하나. "실프, 내 옷 좀 갖다줘."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위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바람을 일으켜서 내 옷을 들고 나한테 날아왔다. 난 옷을 받아들고 그대로 다시 중얼거렸다. "운디네 소환" 운디네가 시냇물에서 나타났고 난 운디네에게 옷을 내밀며 말했다. "운디네, 이것 좀 빨아줘." 운디네는 군말없이 물로 화해서 내 옷을 빨기 시작했다. 난 왜 이렇게 정령 들을 부려먹을까? 하긴... 엘프들도 다 부려먹긴 마찬가지지만. "음... 됐어, 운디네. 사라만다 소환" 난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들고 불의 하급 정령인 사라만다를 소환했다. 온몸 이 빨간 작은 도롱뇽의 모습을 한 사라만다는 시냇물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 나타났다. 짜식! 물을 무서워하긴. 난 그대로 옷을 들고 물밖으로 나와 사라만다에게 다가갔다. 내가 물밖으로 나오자 실프와 운디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난 계속 실프와 운디네에게 마력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실프와 운디네가 아직도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고개를 돌리지? 내 알몸을 보고 그러나? 에... 그럴리가. "야, 사라만다! 적당히 불을 뿜어서 이 옷 좀 말려. 옷 태워버리면 죽는다!" 내 말에 사라만다는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순전히 내 짐작- 날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얌전히 온몸으로 뜨거운 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실프, 또 일시켜서 미안한데, 이 옷 좀 마를 때까지 들고 있어줘." 난 실프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실프는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날아 와 내 옷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옷들은 바람을 일으켜 허공에 띄웠다. "그럼 둘다 수고해줘!" 난 씨익 웃고는 그대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우웃! 시원하다! 시냇물 위에 서 있던 운디네는 어린애처럼 물장난 치고 있는 날 보며 어처 구니 없는 표정을 -이것도 내 짐작- 지었다. 와! 재밌다.....! 내가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을 때 실프가 내 옷을 바위 위에 두었다. 음... 다 마른 모양이군. "모두들 고마워.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난 실프, 운디네, 사라만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실프와 운디네는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지만 사라만다는 여전히 띠꺼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저 녀석은 흔들 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들에게 보내던 마력을 끊자 정령 셋은 곧 정령계로 돌아갔다. 난 아직 중 급 정령들과는 계약을 맺지 않았다. 왜냐구? 저 하급 정령들만으로도 생활하 는데는 별 지장이 없걸랑. 괜히 중급 정령 부르면 마력만 잡아먹지 뭐. 싸울 일도 없는데 불러서 뭐하나. 난 시냇물에서 나와 바위 쪽으로 걸어갔다. 흠.... 확실히 기 수련을 했더 니 몸이 조금 건강해진 것 같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보다 더 살이 붙었단 말이야.... 그렇다고 내가 살찐 건 아니라네. 난 좀더 살쪄야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8.외출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80 게 시 일 :99/08/19 21:05:02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4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8 외출 -2- 난 대충 몸에 있는 물기를 턴 후 옷을 걸쳤다. 후후... 역시 목욕을 하면 기분이 상쾌하단 말이야.... 다음에는 아세트랑 함께.....! 크흐흐.... 드디 어 내 웃음소리가 마의 경지까지 넘어서 버렸군.....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세트와 글리콜 장로가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 다. 웬일인지 아세트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다. 글리콜 장로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니트, 나와 같이 종이와 잉크를 구하러 가지 않겠나?" 얼레? 갑자기 뭔소리여? 왜 나하고 같이 가자고 그러는 거지? "갑자기 그게.....?" "한번쯤 인간들이 사는 세계로 나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자네는 고향 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그야 돌아가고 싶지만......"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아세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글리콜 장로는 계속 말을 이었다. "밖에 나간다면 고향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나하고 같이 가세." "지금이요?" "가능하다면 빨리 가려고 하네. 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이니까 말이야." 언제 죽을지 모르시는 분이 왜 위험하게 밖으로 나가시려고 하나요? 전 시 신 수습을 잘 못합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가죠." "고맙네. 자, 날 따라오게나." 글리콜 장로는 일어서며 밖으로 나갔다. 내가 막 글리콜 장로를 따라가려고 할 때 아세트가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꼭 돌아와야 해요......" "아, 네." 아세트~ 그렇게 울 듯한 표정 짓지 말라구. 그리고 여기말고 내가 갈데가 어디있다구 그래? 오기 싫어도 올 수 밖에 없어. 난 아세트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보인 뒤에 글리콜 장로를 따라갔다. 아세 트의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졌다. 잠시 나가는 것뿐인데 저런 과민반응을 보 이나....? 이건 분명히.... 아세트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하하하! 나와 글리콜 장로는 숲속을 가로질러 나갔다. 와.... 할아버지가 저렇게 빨 리 가다니! 헉헉.... 따라잡기도 힘드네..... "쯧쯧! 젊으면서 나도 따라잡지 못하나?" 앞서가던 글리콜 장로가 날 쳐다보며 혀를 찼다. 이런.... 저 장로님 일부 러 힘든 길로 가는 것 같단 말이야..... 왜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가 냐구...... 설마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려고.....! "정말... 이 숲은 넓군요..... 헉헉....." "그렇네. 다른 지역의 숲보다 카르본 컴파운드가 가장 크거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글리콜 장로. 왜 하필이면 이런 거대한 숲속에 떨어진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걸었다. 가는 동안 단 한명의 엘프도 만 나지 못했다. 글리콜 장로는 일부러 엘프들이 없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어쨌든 끝없는 행보 끝에 나는 숲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숲속을 빠져나오자마자 사방을 돌아본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사방에는 온통 산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크악! 또 걸어야 돼?! "우선 이곳에서 잠시 쉬도록 하세." 오홋!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난 풀밭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글리콜 장로는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앉았 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은 후, 난 글리콜 장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로님은 인간세계로 갈 때 항상 이렇게 걸어가시나요?" "아닐세. 텔레포트로 그냥 건너뛰어 버리지." "그런데 왜 텔레포트를 쓰지 않으세요?" "자네는 텔레포트를 쓰지 못하잖나." "장로님이 저까지 텔레포트 시키면 되잖아요?" "미안하지만 난 그런 위험한 일은 안한다네. 난 늙었기 때문에 마법을 제대 로 구사하기도 어렵거든." 그런가? 하긴... 늙으면 정신 집중이 그만큼 힘들어질테니까..... 잠깐 동안의 휴식 후, 나와 글리콜 장로는 또다시 산을 넘고 들을 건넜다. 그렇게 쉴새없이 걸은 끝에 우리는 별로 크지 않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 마을에 도착해서 좋긴 좋은데.... 돌아갈 일이 걱정이다...... "이 마을에서 종이와 잉크를 구해가세나." 글리콜 장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난 마을을 살펴보았다. 우선 저 멀 리에 성 하나가 보였다. 성밖은 모두 밭이었고,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 다. 집벽들은 카르본의 집들과는 달리 벽돌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마 을을 둘러보다가 문득 궁금해 했던 점이 떠올라 글리콜 장로에게 물었다. "장로님은 왜 절 데려오신 거예요?" 막 앞으로 나가려던 글리콜 장로는 내 물음에 고개를 돌려 날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인간세계의 적응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랄까? 자네는 언젠가 카르 본을 떠날걸세. 그때를 대비해서라 할 수 있겠지." 내가 카르본을 떠난다구? 글쎄.... 과연 그럴까? 아니, 어쩌면 떠날지도 모 르지. 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겠다. 나와 글리콜 장로는 마을로 내려갔다. 밭에서는 꼭 벼처럼 생긴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왠 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니 절대 벼는 아닐텐데? "장로님, 저 작물은 뭐예요?" "음, 저건 참밀이라고 하는 거라네. 5월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식물인데, 그 열매는 가루로 만들어서 먹지." "아, 그 가루가 밀가루예요?" "그렇네." 응, 그렇구나. 하긴, 여기는 서양 쪽일테니까 밀가루 먹는 건 당연하지. 안 타깝게도 쌀은 못먹겠군. 오랜동안 밥을 안먹었더니 그 싫은 밥이 먹고 싶다 ....... 글리콜 장로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이리 저리 둘러보더니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보석상으로 들어갔다. 보석상은 자 그마했다. 문이 나있는 벽을 유리로 대신하여 안쪽이 잘 보이게 해놓았다. 음... 장로님은 보석을 이곳 돈으로 바꿀 생각이신가 본데? "어서 오십시오." 들어가자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보석상 주인이 반사적으로 인사했다. 코 가 큰걸 빼면 비교적 온순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그런데 머리색깔이 주황색 이네? 이곳은 머리색깔도 다양한가 보군. 뭐? 내 머리색깔? 나야 당연히 검 은색이지. 그럼 글리콜 장로의 머리색은 어떠냐고? 아.... 그러고 보니 그건 전혀 신경쓰지 않았네? 보통 할아버지들처럼 하얀색이라서..... 카르본의 장 로님들은 모두 머리가 하얘. 아세트는 에메랄드색.... 이건 알고 있다구? 그 래 미안하다, 미안해. "이걸 돈으로 바꾸려고 왔소." 글리콜 장로는 보석상 주인에게 푸른 빛이 나는 보석을 내밀었다. 보석상 주인은 그 보석을 살펴보며 감탄어린 표정을 지었다. "오, 사파이어군요.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아 맑고 깨끗합니다. 이거라 면 높이 쳐드리죠. 500페리면 어떻습니까?" 저 아저씨는 왜 감정할 때 코를 벌렁벌렁 거리지? 코털 다 보여~ 그런데 500페리면 많은 거야 적은 거야? "좋소." 글리콜 장로는 짧게 대답했고 보석상 주인은 뒤에 있던 상자를 열쇠로 열고 나서 거기에 있던 돈을 꺼내 글리콜 장로에게 주었다. 보석상 주인이 준 돈 은 모두 지폐였는데 총 5장이었다. 저 지폐 1장당 100페리겠군. 그때 글리콜 장로가 100페리 지폐 한 장을 보석상 주인에게 주며 말했다. "이건 10페리로 주시오." "네. 그러죠." 보석상 주인은 그 상자에서 이번엔 500원만한 크기의 은으로 만든 듯한 동 전을 꺼냈다. 그 은전 10개를 글리콜 장로에게 주었다. 음, 10페리는 은전이 었군. ======================================================================= 앞으로는 이틀에 2편 정도만 올려야 될 것 같네엽. 글이 잘 안 써져서...ㅠㅠ ━━━━━━━━━━━━━━━━━━━━━━━━━━━━━━━━━━━제 목 :[사이케델 리아] 19.외출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84 게 시 일 :99/08/21 21:36:24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9 외출 -3- 나와 글리콜 장로는 돈을 받고 곧장 보석상 밖으로 나왔다. 이거 꼭 암거래 를 한 것 같잖아? 글리콜 장로는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번엔 인쇄소 비슷한 곳에 들렀 다. 인쇄소 나무 간판에는 '뭐든지 찍어내는 인쇄소'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 는데, 인쇄소는 보통 건물처럼 생겼고 비교적 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전~ 혀 들리지 않았다. 아래층은 비교적 조용했다. 위층에서는 금속을 두드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일하는 소리 가 조금씩 들려왔지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문 정면 쪽에 긴 책상이 하나 놓여져 있었고 그 책상에는 한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보석상 주인만큼 되어 보였는데 별 특징없는 얼굴이었다. 머 리색도 갈색이라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글리콜 장로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종이와 잉크를 구하러 왔소."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아저씨의 물음에 글리콜 장로는 날 쳐다보았다. 난 그냥 생각나는데로 말했 다. "종이는 한 400여장 있어야 되고..... 잉크는......" 헉! 당황스러워! 400여장의 종이에 글씨를 가득 쓰려면 잉크가 얼마나 필요 한거야? 전혀 모르겠다! 내가 당황해서 말을 못하자 글리콜 장로가 대신 말했다. "잉크는 5병만 주시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아저씨는 책상에서 일어나더니 캐비넷 비슷한 철제 장을 열고는 그 안에 있 던 종이를 꺼내어 세기 시작했다. 아주 날렵한 솜씨로 종이 수를 세던 아저 씨는 30초도 안되어 종이 뭉텅이를 내 앞에 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철제 장 안에서 잉크병을 꺼냈다. 잉크병은 한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다. 인쇄소 아저씨-종업원이겠지?-는 종이와 잉크병을 갖다놓고는 말했다. "종이 400장과 잉크 5병, 모두 합해서 9페리 되겠습니다." "여기 10페리오." 아저씨는 10페리를 받아들고는 책상 서랍에서 1페리짜리 동전을 주었다. 글 리콜 장로가 거스름돈을 받자 아저씨는 빵을 담는 종이 봉투에다 종이와 잉 크병을 집어넣었다. 그때 글리콜 장로는 날 빤히 쳐다보았다. 저 눈빛은...! 난 두말없이 아저씨가 내미는 종이 봉투를 받아들었다. 윽...! 무거워라... 나같이 허약한 소년을 부려먹어도 되는 거예요, 장로님?! 어쨌든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입한 우리는 곧장 여관으로 향했다. 왜냐구? 해가 저물고 있었걸랑. 엘프들이야 해가 저물든 말든 상관없지만 난 해가 저 물면 길찾기가 어렵거든. 글리콜 장로와 떨어질지도 모르고. 그래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지. 이미 글리콜 장로는 그것까지 다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 양이지만. 나와 글리콜 장로가 여관을 찾아 헤매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15살쯤으로 보이는 소년 하나가 빠르게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글리콜 장 로에게로 였다. 분홍머리의 소년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글리콜 장로는 피하 지도 못하고 그대로 소년과 부딪쳐 버렸다. "엇! 죄송합니다!" 소년은 무슨 급한 일이 있는지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이런 장면을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노움! 저 소년의 발목을 잡아!" 내 외침에 땅의 하급 정령 노움이 땅속에서 불쑥 나타나 소년의 발을 움직 이지 못하게 잡았다. "뭐, 뭐야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소년은 땅위로 드러난 노움의 손과 얼굴을 마구 내려쳤지만 정령인 노움이 아플 리가 없었다. 그렇게 소년을 꼼짝못하게 잡아놓은 후 난 글리콜 장로에 게 물었다. "돈은 그대로 있어요?" 내 물음에 글리콜 장로는 품속을 뒤져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아, 없구나! 그럼 저 소년이 우리 돈을 훔쳐갔단 말인가?" 이런~ 그걸 이제야 눈치채셨수? 오래 사셨다는 분이 이런 일반적인 수법을 모르면 어떡합니까? 난 글리콜 장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에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소년은 아직도 노움을 죽어라고 때리고 있었다. 쯧쯧, 아무리 때려도 헛수고라니까. 애가 어쩌면 저렇게 멍청하냐? "야, 꼬마야! 그런다고 노움이 놔줄 것 같냐? 그건 그렇고, 너 혹시 저 할 아버지의 돈을 슬쩍하지 않았니?" 내가 묻자 분홍머리의 소년은 고개를 흔들며 크게 소리쳤다. "훔치지 않았어! 난 절대 아니라구!!!" 음... 강력한 부인은 곧 긍정이다.... 누가 그랬더라? 어쨌건 직감적으로 보더라도 이 소년이 훔쳐갔을 것이다. "지금 네 수중에 돈이 얼마있냐?" "그, 그건....." 소년은 당황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클클.... 아직 훔친 돈이 얼마인지 보지 않았을테니까 대답을 못하겠지. 이제 뒤져볼 차례인가? "꼬마야, 순순히 우리 돈을 모두 돌려주면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해줄께." "난 꼬마가 아니야! 그리고 난 돈을 훔치지 않았어!!!" 얼씨구? 계속 부인하겠다 이거지? 그럼 나한테도 생각이 있지. "본래 저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돈은 모두 491페리였어. 그건 녹색의 작 은 주머니 안에 있지. 만약 네 몸에서 그게 나온다면 너 죽는다." "......." 소년은 약간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후후.... 이제 넌 끝이야. "실프 소환" 내 부름에 실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가 실프를 소환하는 광경을 소년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무엇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날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형, 마법사예요?" 얼레? 갑자기 웬 존댓말이야? 이 녀석이 위기를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 하던 짓을 하네? "그래, 나 마법사다. 그런데?" 난 약간 표정을 굳히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소년은 이상하게도 기쁜 표정을 띠며 갑자기 내 바지를 잡았다. "형! 제발 도와주세요! 우리 아빠를 치료해 주세요!" 억! 야, 그만 잡아당겨! 그런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아빠를 치료 해달라구? 다치셨으면 병원에 모시고 가야지! "야야, 이거 놓고 얘기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도와주세요, 형! 아니, 대마법사님!" 크헉! 갑자기 웬 대마법사님이야? 이녀석이 지금 아부하나? 내가 분홍머리 소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걸 지켜보던 글리콜 장로가 다 가와서 소년에게 물었다. "차근차근 말해보거라."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던 소년은 글리콜 장로의 말에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나에게 부탁했다. "이 이상하게 생긴 할아버지 좀 치워줘요." "임마! 그럼 먼저 돈부터 줘야지!" 내가 소리치자 소년은 즉시 품속에서 작은 녹색 주머니를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얼레? 이렇게 순순히 내주다니? 그럴리가.....? 난 녹색 주머니를 받아 즉시 확인해보았다. 다행히도 돈은 모두 그대로 있 었다. 정말 이상하네? 왜 기껏 훔친 걸 이렇게 쉽게 내주는 거지? 이미 포기 했나? 저 녀석의 얼굴을 보면 그건 아닌데..... 뭔가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본데? "수고했다, 노움. 그리고 괜히 불러서 미안해, 실프." 노움은 당연한 듯이 거만한 표정을 지었고, 실프는 나를 향해 고개를 저어 보였다. 하여간 저놈의 땅딸보 할아범은 거만하다니깐. 난 노움과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이거 쓸데없이 마력만 낭비했군. 뭐 별로 많은 마력이 쓰이지는 않았으니까 상관없어.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0.외출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85 게 시 일 :99/08/21 21:36:55 수 정 일 : 크 기 :5.7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0 외출 -4- 두 발이 자유로워진 분홍머리 소년은 갑자기 나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허 걱! 갑자기 얘가 왜이래? 설마 날 스승으로 모신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 겠지? "전 매르 사마리움이라고 합니다. 저에겐 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는 이곳 '아톰'의 병사였어요." 매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이 마을 이름이 아톰(Atom)이라구? 아톰이 '원자'라는 뜻이던가? 어쨌거나 이곳 마을 이름은 정말 최악이군. "석달전에 라이칸스로프가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을 습격했지요. 라이칸스로 프의 제거를 위해 병사들이 직접 나섰는데 그 중에는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아시겠지만 라이칸스로프는 은으로 코팅된 검이나 마법이 실린 검으로밖에 벨 수 없어요. 하지만 병사들 중 누구도 그런 검을 가지고 있 는 사람은 없었죠. 결국 라이칸스로프를 제거하러 간 병사들은 거의 전멸 하다시피 했죠.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라이칸스로프를 잡기 위해 검자 루로 라이칸스로프의 머리를 내리쳤어요. 하지만 라이칸스로프가 휘두른 팔에 허리를 맞아 척추가 부러지셨지요. 다행히 라이칸스로프는 아버지의 일격에 기절했고 살아남은 병사들이 라이칸스로프를 생포했어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마을을 구한 영웅이 되셨지만....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되 어 버렸죠..... 포상으로 받은 돈을 모두 치료하는데 사용했지만..... 아 무도 아버지의 허리를 치료하지 못했어요. 의사들은 마법사나 사제를 찾아 가 보라고 했지만.... 그들을 만난다는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그 리고 지금은 돈도 없구...... 이제는 먹고 살기도 어려워졌죠...... 그래 서..... 나쁜 짓이란 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한 거예요......" 말을 하는 매르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라이칸스로프(Lycanthrope).... 쉽게 말해 늑대인간인가....? 어쨌든 그런 위험한 녀석을 기절시키다니 정말 매르 의 아버지는 굉장한 분이시로군. 그런데 하반신을 쓸 수 없다라? 아버지가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가계도 기울고 매르는 이런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건가? 참 안됐군. 매르는 간절한 눈으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제발 제 아버지를 치료해 주세요. 형은 착한 분이니까..... 어려운 일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진 않겠죠?" 얼레? 이녀석이 갑자기 아부로 나오네? 이거 왠지 불안해 지는걸? "그, 글쎄....." "형! 제발 부탁이예요! 치료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한번만이라도 제 아 버지의 상태를 봐주세요! 마법사들이 치료할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거라도 알고 싶으니까요!" 이런~ 난 마음이 약한데(?)..... 차마 거절을 할 수가.....! 난 글리콜 장로를 바라보았다. 글리콜 장로는 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는 뜻이로군. 장로님도 굳이 반대를 안하니까 그냥 가보자. 되든 안되든 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좋아, 그대신 너희집에서 오늘 하루 신세지겠어!" "예! 정말 감사합니다!" 내 승낙이 떨어지자 매르는 쉴새없이 고개를 숙이며 호들갑을 떨었다. 난 매르를 진정시키면서 글리콜 장로와 함께 매르의 집으로 찾아갔다. 매르의 집은 성 근처에 있었는데 비교적 큰 집이었지만 왠지 썰렁했다. 난 매르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집 돈 없다며? 그런데 이렇게 집이 좋냐?" "사실... 아직까지는 버틸 만해요. 하지만.... 치료에 들어간 돈을 갚지 못 하면.... 이 집도 곧 사라지겠죠......" "치료 빚을 갚으려고 소매치기를 한거야?" "예....." 매르는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는 대문을 지나 정원을 가로질렀 다. 문은 잠겨있지도 않았다. 매르 말로는 본래 병사들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문단속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이라고. 잡풀만 무성한 정원을 지나 꽤 큰 저택 앞에 다다랐다. 그러나 여전히 썰렁 함만은 감출 수 없었다. 전체 3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 중에서 불이 켜져 있 는 곳이라곤 매르 부모님의 방이 있는 3층 하나 밖에 없었다. 나와 글리콜 장로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매르는 문을 걸어 잠갔다. 어헉! 설마 너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섬뜩한 것을 상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매르는 우리를 3층으로 데리고 올 라갔다. 꽤 고풍스러운 계단을 다 올라가자 3개의 방이 있는 3층이 눈에 들 어왔다. 3층은 한쪽 끝이 막힌 직사각형 구조였는데 우리가 서 있는 곳을 기 준으로 오른쪽에 두 개의 방이 있었고 왼쪽에는 방이 하나만 있었다. 그 중 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은 오른쪽 측면에 있는 첫번째 방이었다. "엄마! 마법사님을 데려왔어요!" 매르는 방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방안에서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이내 부 드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라고 해라." 으... 무서버.... 이 집은 왜이리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일까? 아무래 도 매르 가족이 수상한데 말이야.... 설마 유령? 나와 글리콜 장로는 매르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거의 장식이 없는 단순한 가구들만이 놓여 있었는데,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였다. 두 사람 이 잘 수 있는 큰 침대에는 한 건장한 아저씨가 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많 이 수척해 보이는 아줌마-라고 하기엔 너무 젊었다-가 앉아서 아저씨를 돌보 고 있었다. 매르의 어머니는 나와 글리콜 장로를 천천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마법사 분들이신가요?" "아, 예." 난 400장의 종이와 5병의 잉크가 넣어져 있는 종이 봉투를 들고 있었기 때 문에 그냥 고개만 살짝 숙였다. 글리콜 장로도 정중히 인사하자 매르가 우리 에 대해 설명했다. "이분들이 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할 거예요. 마법으로 치료가 가능한지 안한 지 말이예요." 매르 어머니는 잠시 나와 글리콜 장로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희 집에는 여러분들에게 드릴 치료비가 없어요....." 얼레? 그런 문제였어? 그건 문제가 안되지~.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하룻밤 묵 을 수 있는 방이니까 말이야. "괜찮습니다. 치료비를 받고 하려는게 아니니까요. 그냥 순수한 마음에서 매르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싶은 것뿐이예요." 내 말에 매르 어머니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할께요....." "네." 난 나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매르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 정말 살맛 안나는군. 그런 표정을 지으면 분위기가 무 거워지잖아요! 에휴.... 어쩔 수 없지 뭐..... 기분 전환을 위해서 잠깐 문제! 식인종들이 가장 싫어하고 끔찍스럽게 생각하는 말이 뭘까요? 답: 아... 살맛 안나.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1.외출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88 게 시 일 :99/08/22 16:21:35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1 외출 -5- 나와 글리콜 장로는 침대 위에 올라가 앉았다. 매르 어머니는 우리 반대쪽 에서 의자를 갖다놓고 앉아 우리를 주시했다. 매르는 내 옆에 앉았다. 매르의 아버지는 우리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눈에는 별로 기대하는 빛 이 없었다. 석달 동안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었야 했기 때문에 희망을 상실 한 듯이 보였다. 글리콜 장로는 매르의 아버지를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은 치료 마법으로 회복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네. 웬만한 신력을 가진 사제가 아니고는 치료할 방법이 없구먼." "아....." 매르는 절망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매르의 어머니도 고개를 떨구었다. 치료 마법은 피시술자의 생명 활동을 일시적으로 높여 상처 등을 치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척수의 신경은 생명 활동을 높인다고 해도 절대 치료가 되지 않는다. 신경은 한번 끊어지면 다시 재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억지로 연결하지 않 는 한 치료는 절대 불가능하다. 방안은 침묵 속에 휩싸였다.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들리는 것이 라곤 조용한 숨소리 뿐. 난 그 침묵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먼저 이렇게 하고 나중에는 저렇게 하고..... 좋아, 이제 실행할 차례로군! "저, 장로님.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게 있습니다." 갑자기 내가 입을 열자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허걱! 방안이 조용하 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윽... 쪽팔려..... "그래, 무엇인가?" "되든 안되든 제가 생각한 방법대로 치료를 해볼까 하구요." ".... 어떻게 치료를 하겠단 말인가?" 모두들 기대어린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억... 부담스러워라..... "먼저 탐지 마법과 투시 마법을 이용해서 끊어진 신경을 찾아낸 뒤에, 마나 로 그 끊어진 신경을 연결하는 겁니다." "마나로 끊어진 신경을 연결한다? 그게 가능하나?"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해볼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탐지 마법과 투시 마법으로 끊어진 신경을 찾기란 어려울텐데?" "보통 마법이라면 어렵지요. 하지만 코아세르 베이트의 마법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내 말에 글리콜 장로는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자네는 그 주문을 외웠는가?" "아니요." 난 당연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번역하는데도 바쁜데 언제 주문을 다 외 우나? 내가 아는 주문은 거의 없는데 말이야...... "그럼 그 책이 필요하겠군. 자네의 부탁이란 그 책을 가지고 와달라는 건 가?" "예." ".... 알겠네. 내일 내가 직접 가지고 오지." 글리콜 장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승낙했다. 난 멍청히 앉아 우리만 뚫 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매르를 보며 말했다. "치료는 내일 시도해볼께. 오늘은 쉬고 싶은데....." "매르. 이분들을 2층방으로 모시거라." 매르 어머니의 말에 매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나와 글리콜 장로를 데리고 방 밖으로 나왔다. 매르는 우리를 2층으로 안내했다. 2층에는 방들이 즐비했 다. 매르의 말로는 2층의 방들은 대부분 손님 접대용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런지 복도는 화려했고 방도 넓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제일 넓은 방으로 안 내되었다. 방안에 들어선 순간 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안이 썰렁했던 것이다. 있는 거라고 침대 두 개와 탁자 등 몇 안되는 가구들이었다. 너무나 썰렁하고 적막해서 찬바람이 쌩쌩 부는 듯했다. "죄송해요, 침대가 있는 방이 여기밖에 없거든요. 나머지는 모두 팔아버렸 으니까요. 오늘은 그냥 여기서 쉬세요." 매르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고맙다고 말한 뒤 침대에 걸터앉 았다. 푹신푹신한 침대였다. 음.... 자고 일어나서 허리 아프지 않을까? 매르가 나간 뒤 글리콜 장로는 그대로 몸을 침대에 누이며 잠을 청했다. 난 잠시 기 수련과 마법 수련을 한 후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에 드러누워서도 난 내 계획을 검토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코아세르 베이트의 투시 마법이 어느정도인가 하는 점인 데..... 그리고 마나로 신경을 연결하는 것도...... 잠깐! 마나는 자꾸 흩어 지려는 성질이 있는데? 신경을 마나로 연결해도 그 마나는 곧 흩어져 버릴 지도? 이거.... 어떡하지? 무슨 좋은 수가..... 아! 그렇군! 마나는 고루 분 포하려는 성질도 있지만 일정한 양이 모이면 안정해지지! 1클래스에 해당하 는 마력으로 신경을 연결하면 되겠군! 그럼 마나가 흩어질 염려가 없으니까! 푸하하! 난 왜이리 머리가 좋을까? 다음날 새벽. 글리콜 장로는 부스스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방 밖으로 나갔다. 음... 카르 본으로 가서 마법론을 가져올 생각이시로군. 그럼 난 오늘 치료를 위해 마나 나 축적해 놓아야겠다. 내가 마법 수련에 들어간 지 2시간 정도 지났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저, 매르예요. 아침식사를 가져왔어요." 오홋! 아침식사? 이거 슬며시 기대되는걸? 고기가 들어있을라나? "들어와." 내 말에 매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둥근 뚜껑 으로 뒤덮인 큰 접시가 들려있었다. 매르는 글리콜 장로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다. "그 할아버지는 어디 가셨어요?" "응, 필요한게 있어서 먼저 가셨어. 아마 오전 중으로 돌아오실거야." 매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탁자 위에 접시를 올려놓았다. 난 즉시 의자에 앉아 매르가 뚜껑을 열길 기다렸다. "집안 사정상 별로 준비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매르는 뚜껑을 열었다. 순간 맛있는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흐 음... 냄새로 봐서는..... 하나도 모르겠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잘 훈제된 돼지 고기를 먹기 좋게 알맞은 크기 로 썰어놓은 것이었다. 고기에는 갈색 빛을 내는 소스가 발라져 있었고 다른 음식은 샐러드 비슷하게 생긴 야채 뿐이었다. "그럼 잘 먹을께." 내가 막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요리를 먹으려는 순간 매르가 의미심장한 말 을 던졌다. "이건 저희집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돼지 고기예요. 맛있게 드세요." 커허헉! 매르 녀석, 엄청나게 고단수로 나오는데? 이 요리먹고 치료를 잘 해달라는 뜻이로군. 엄청난 부담감이 내 머리를 짓누른다아.....! 그러나 난 맛있게 요리를 먹었다. 매르는 아까운 표정으로 내가 돼지 요리 를 먹는걸 쳐다보았다. 짜식, 입맛까지 다시기는...... 난 돼지 요리의 1/3을 매르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이건 그 할아버지 몫인데 네가 먹어라." "와! 정말이죠?" 매르는 내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얼른 포크를 집어들더니 먹기 좋게 썰어놓 은 돼지 고기를 날름 찍어 먹었다. 야.... 동작 하나 빠른데? 나와 매르는 맛있게 돼지 요리를 먹었다. 매르는 순식간에 내가 주었던 양 을 다 먹고는 가증스럽게도 내 몫까지 손을 댔다. 나와 매르 사이에서 음식 쟁탈전이 벌어졌고 난 꽤 많은 양의 돼지 고기를 빼앗겼다. 매르의 동작이 굉장히 빨랐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이라도 지키기 위해서, 난 어쩔 수 없이 양손으로 돼지 고기를 집어들고 우악스럽게 먹었다. 상상을 초절하는 나의 행동에 매르는 넋을 잃어 버렸다. 쿠하하! 드디어 맘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 게 됐구나! 손으로 집어먹는 맛도 괜찮은데? "그렇게 먹으면 손이 더러워지잖아요?" 내가 남은 요리를 모두 먹어치우자 매르가 내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소스 가 발라진 돼지 고기를 손으로 집어먹었기 때문에 손에 소스가 잔뜩 묻어 있 었다. 난 씨익 웃은 다음에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2.외출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89 게 시 일 :99/08/22 16:22:01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2 외출 -6- 소환된 운디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난 운디네에게 양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 소스 좀 처리해줘." 운디네는 머리를 약간 갸웃하더니 이내 내 손을 몸으로 휘감았다. 순식간에 내 손에 묻어있던 소스가 운디네의 몸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곧이어 운디 네의 몸에서 정화되기 시작했다. 몇번 운디네의 몸을 빙빙 돌던 소스는 이내 완전히 깨끗해져서 사라져 버렸다. 운디네는 몸속에 미생물들을 가지고 있는 가 보다. 미생물이 있어야 물이 오염물을 정화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고마워, 운디네." 내 말에 운디네는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정령들의 저런 모습이 정 말 좋다. 실프와 운디네는 항상 내 말에 잘 따라준다. 물론 내가 소환주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왠지 그것만으로 실프와 운디네가 행동하는 것같지는 않다. 땅의 정령 노움은 꽤 거만하게 군다. 물론 표정만 거만하다는 거지 내 말은 잘 따른다. 땅딸보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항상 웃기다. 불의 정령 사라만다는 항상 띠꺼운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하지만 난 사라만다의 그 띠꺼운 표정을 좋아한다. 사라만다가 웃으면 정말 못봐줄 테니까. 난 운디네를 정령계로 돌려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매르는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거참, 부끄럽군..... 어쨌든 글리콜 장로가 마법론을 갖고 돌아올 때까지 마법 수련이나 해야겠다. 글리콜 장로가 돌아온 것은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때였다. 난 글리콜 장로에게서 마법론을 받아들고 탐지 마법과 투시 마법 주문을 뒤지기 시작했 다. 번역한 주문들 중에서 탐지 마법과 투시 마법은 없었기 때문에 번역을 하지 않은 부분을 중심으로 뒤져 보았다. 그렇게 책과 30분 가량을 씨름한 끝에 탐지 마법과 투시 마법 주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주문을 잊어먹지 않게 잘 외운 후, 난 곧바로 매르 아버지의 척추 신경 연 결에 들어갔다. 매르와 매르 어머니는 긴장된 표정으로 나와 글리콜 장로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와 글리콜 장로는 매르 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그럼 시작하겠네." 글리콜 장로는 그렇게 말한 뒤, 내 등 한복판에 왼손을 올려놓고 중얼거리 기 시작했다. "나의 몸에 머물고 있는 마나여, 다른 사물에 흘러들어 그 위대한 힘을 발 하라." 그러자 글리콜 장로의 왼손을 타고 다량의 마나가 내 몸으로 넘어오기 시작 했다. 지금 글리콜 장로가 쓰고 있는 주문은 마나 전송 마법이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마나를 전송하는 주문으로, 마나의 소모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주문만 알고 있으면 1클래스 미만의 마법사도 쓸 수 있는 아주 초 보적인 기술이라는 거다. 물론 굳이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왠만한 정신력만 있으면 행할 수 있는 마법이다. 하지만 글리콜 장로는 노쇠하기 때문에 정신 력을 쓰지 않으려고 주문을 외운 거다. 그래서 왼손으로 마나를 전송하고 있 는 것이고. 왜냐구? 심장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마나도 주로 왼쪽에 분포하거든. 마나가 왼쪽에 분포하기 때문에 왼손으로 마나를 전송하 는 것이 오른손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정신력이 덜 드니까. 그럼 왜 등에다 손을 대고 있냐구? 그건 심장 쪽으로 마나를 전송하는게 훨 씬 쉽기 때문이지. 가슴에다 손을 얹고 하면 가장 좋지만 지금같이 내가 앉 아있는 상황에서는 등에다 손을 대는 것이 편하거든. 글리콜 장로는 5클래스의 마력을 나에게 전송했다. 우하하, 미안해라. 장로 님은 이제 1클래스의 마력밖에 남지 않으셨네요. 이 은혜는 나중에 갚지 않 도록 할께요. 어허허허허...... 난 글리콜 장로에게서 전송받은 마나를 그냥 뒤죽박죽인 상태 그대로 두었 다. 여기서 섣불리 전송받은 마나를 내 마나와 융합시키려고 했다간 큰일난 다. 그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지. 단백질에 비유해서 말이야.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그 수가 굉장히 많다. 지구상의 모든 사 람들의 단백질 성분은 거의 다 다르다. 지문과도 같다는 말이다. 단백질 성 분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장기를 이식할 때 문제가 생긴다. 우리의 혈액에는 식균작용(병균먹는 작용)을 하는 백혈구가 있다. 만약 신 장 이식 수술을 할 때 자신의 단백질 구조와 전혀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 받게 되면 백혈구가 그 이식받은 신장의 단백질을 병균으로 파악하여 공격을 가한다. 그것을 거부 반응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위험하다. 그래서 이식 수술 을 할 때는 장기를 이식받는 사람과 장기를 제공하는 사람의 단백질 구조가 유사해야 한다. 안그러면 그 이식받은 장기가 모두 파괴되고 마니까. 마나도 그와 같다. 왜그런지는 모르지만 마법사마다 축적해 놓은 마나의 성 질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다른 마법사의 마나를 받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 들려고 하면 두 마나가 서로 충돌하고 만다. 그렇게 되면 마나의 폭주가 일 어나 몸이 망가지게 된다. 만약 두 마나의 성질이 유사하다면 폭주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랬다는 기록은 없다. 지금 나는 단지 마나를 받아들였을 뿐, 내 마나는 그대로 두고 있는 상태이 다. 본래의 마나와 동화시키지 않은 채 내 몸에 모인 마나는 한번 쓰면 다시 모아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일용품인 것이다. 참고로 다른 마나를 받아들인 상태에서는 마나 축적을 할 수가 없다. 잘못 하면 성질이 다른 두 마나가 충돌하여 폭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나 전송을 끝낸 글리콜 장로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내 등에서 손을 뗐다. 난 천천히, 정신을 집중하여 탐지 마법 주문을 외웠다. "어둠에 묻혀 알 수 없는 것이여, 너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라. 깊은 바다의 밑바닥에서 나를 향해 찬란한 빛을 쏟으라. '끊어진 척수 신경'이여, 그 깊은 바다의 어둠을 꿰뚫어 나에게 영광을." 음... 주문이 어째 구린 것 같아..... 참고로 ' '안에 있는 것은 탐지를 원 하는 사물이다. 방금 내가 외운 주문은 완전 주문이다. 불완전 주문은 나도 몰라. 난 곧 끊어진 신경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으.... 탐지 마법 쓰는데만 도 2클래스의 마력이 날아가 버렸군..... 뭐, 내 마력은 아니니까. 우하하.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볼 수 없는 것이여, 어두움의 그늘이여. 이제 그 안 개를 걷고 그늘을 지우라. 차가운 밤안개의 어두움 속에 그대의 모습을 나에게 보이라." 난 그대로 투시 마법 주문을 외웠다. 코아세르 베이트는 어둠을 굉장히 좋 아했었나보다. 투시 마법에다 짙은 안개니, 어두움의 그늘이니 하는 말을 집 어넣은 걸 보면. 혹시 코아세르 베이트는 마족이 아니었을까? 하하. 주문을 완성하고 눈을 뜨자 내 눈앞에 척추가 보이기 시작했다. 난 마법의 강도를 더욱 높여 척추 속에 들어있는 신경을 살펴보았다. 이미 탐지 마법으 로 위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허걱! 투시 마법이 더 많은 마력을 소모하고 있네? 벌써 2클래스의 마력이 날아가고 마지막 남은 1클래스 마력도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뜨아~ 빨리 끝내야 겠다! "나의 몸에 머물고 있는 마나여, 다른 사물에 흘러들어 그 위대한 힘을 발 하라." 난 마나 전송 마법으로 내가 축적해 놓은 마나를 매르 아버지의 복부를 통 해 끊어진 신경 쪽으로 보냈다. 이제부터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끊어진 신 경을 마나로 잇는 것! 반드시.... 성공해 보이고 말겠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3.외출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94 게 시 일 :99/08/23 21:56:37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3 외출 -7- 난 한꺼번에 1클래스의 마력을 끊어진 신경 쪽에 보냈다. 그리고 끊어진 신경을 마나로 잇기 시작했다. 눈으로는 끊어진 신경을 주시하고, 몸으로 는 마법 유지를 위해 마나를 소모하고, 머리로는 끊임없이 마나로 신경을 연결하는 상상을 했다. 난 내 모든 정신을 쏟으며 집중했다. 반드시 성공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글리콜 장로가 전송해준 마력과 내가 축적해 놓은 마력이 거의 바닥났을 때, 난 신경 연결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마나로 연결된 신경이 제대로 활동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난 쓰러져 자 고 싶었지만 내 치료 결과를 보기 위해 두 눈을 크게 떳다. "일어나 보세요." 내 말에 매르 아버지는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려 했다. 처음에는 상체 만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매르 아버지의 하반신이 움직 이기 시작했다. 성공인 것이다! 매르와 매르 어머니, 그리고 매르 아버지 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석달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절망 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매르 아버지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매르 아버지가 부자연스럽지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몰려 오는 피로감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후후.... 이번에도 성공했군. 역 시 나는 마법의 소질을 타고 났다니까....... 난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켰다. 내 옆에는 아세트가 아닌 글리콜 장로가 앉아 있었다. 아세트면 더 좋은데...... 그런데 지금 몇시지? "오, 이제 깨어났구먼. 그래, 몸은 어떤가?" "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몇시예요?" "오후 5시라네. 많은 정신력을 소모해서인지 꽤 오래 자더구먼. 어쨌든 신력으로도 어려운 일을 마법으로 해결하다니 놀랍네." 글리콜 장로는 정말로 감탄어린 시선으로 날 쳐다보았다. 에.... 쑥스러 워라. 장로님의 마력을 몽땅 써버렸는데도 화가 안나시나봐? .... 아세트가 보고 싶다.... 카르본이 어느새 내 고향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야..... 빨리 돌아가서 싱싱한 과일들을 먹고 싶다..... "장로님, 이제 돌아가야죠." 난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글리콜 장로에게 말했다. 글리콜 장로는 껄껄 웃었다. "빨리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구먼. 좋네, 어서 떠나도록 하지." 와~ 이제 돌아가는구나! 허걱! 그런데 돌아가려면 그 긴 길을 또 걸어야 되잖아? 으으윽...... 나와 글리콜 장로는 매르의 가족과 인사를 나누었다. 매르 아버지는 자연 스럽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난 매르 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 마법은 배우지 마세요. 마나끼리 서로 충돌할 수 있으니까요." "아, 알겠다. 정말 고맙구나." "뭘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글리콜 장로는 다시 카르본으로 돌아갔다. 매르 가족은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들어 배웅을 해주었다. 저 가족이 앞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치료해준 보람이 있지 않겠어? 하하,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 나와 글리콜 장로가 카르본에 도착했을 때에는 거의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아세트의 집 근처에서 글리콜 장로는 나와 헤어져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나는 400장의 종이와 5병의 잉크, 그리고 코아세르 베이트의 마법 론이 들어있는 종이 봉투를 든 채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세트가 탁자에 앉아있었다. 난 탁자 위에다 무거운 종이 봉투를 올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아세트가 약간 쌀쌀한 어투로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에... 약간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서요......" "그게 뭔데요? 왜 마법론을 가져갔었던 거죠?" 억... 무서워라..... 저런 살벌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은 처음이야..... 난 약간 당황스러워서 말을 더듬었다. "그게... 마법으로 치료를 하느라고....." "누구를요?" "매르라는 녀석의 아버지예요..... 허리를 다치셨기 때문에..... 제가 치 료를 해드렸어요......" "그럼 그 매르라는 사람은...... 아, 아니예요." 아세트는 말을 얼버무리며 탁자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걸어갔다. 도대체 왜 화가 난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함부로 귀중한 마법론을 인간세계에 가져가서? "전 이소메르에 가서 마법 수련이나 하고 오겠어요." 아세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 밖으로 나가버렸다. 엉엉.... 나 아세트한 테 찍혔나봐...... 앞으로의 삶이 고단해지겠구나...... 아... 배고프다. 아세트는 저녁 먹었을까? 눈치로 봐선 먹지 않은 것 같 은데.... 아세트 몫까지 가져가서 이소메르에서 아세트랑 같이 먹을까? 그 랬다가 먹었다고 하면 어쩌지....? 뭐, 그때는 다시 가져와서 집에서 먹으 면 되지. 우선 아세트 꺼까지 가져가 보자. 난 저장고에서 아세트의 몫까지 챙겨서 이소메르로 향했다. 카르본에서 지낸 지도 거의 2주일이 다 되어 갔기 때문에 이소메르로 가는 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길은 어디로 향해 있는지 전혀 모른다.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니까. 아세트는 편평한 돌 위에 두 눈을 멀뚱멀뚱 뜨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에 취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세트의 생각을 방해할까봐 약간 망설이던 나는 용기를 내어 아세트에게 다가갔다. 생각에 잠겨있던 아세트가 날 발견하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왜 왔어요?" 으... 썰렁하군..... 다음부턴 함부로 코아세르 베이트의 마법을 쓰지 않 을테니까 그렇게 차갑게 대해주지 말아주...... ".... 저녁 먹었어요?" 내 물음에 아세트는 날 쳐다보았다. 정확히는 내가 들고 있는 바구니였 다. 아세트는 약간 누그러진 어조로 답했다.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그렇지! 내 눈치가 워낙 빠르거든! 저녁 식사를 가져다 주었으니 아 세트도 이제 화가 좀 풀렸겠지? 푸파파파..... "잘됐네요. 아세트가 저녁을 아직 먹지 않았을 것 같아서 과일을 가져왔 어요." 난 아세트의 맞은편에 앉고 아세트와 나 사이에 가져온 바구니를 두었다. 그리고는 바나나 하나를 집어들었다. 내가 바나나를 집어들자 아세트도 바 나나를 집었다. "......" "......" 우리는 서로 아무말없이 과일만 먹었다. 그러다가 아세트가 나에게 질문 을 던졌다. "니트는 인간들과도 얘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예." "그 인간들의 말이 니트의 모국어는 아니죠?" "예." 어헉! 이거 대답이 너무 획일적이다..... 하지만 달리 대답할 것도 없으 니......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세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니트에게는 제노글로시아의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제노, 뭐? 그거 처음 듣는 말인데? "아세트, 그게 뭔데요?" "제노글로시아 말인가요?" "예." "쉽게 말해 배우지 않은 언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예요. 니트 가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그런 능력을 얻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가? 하긴...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지. 확실히 이 세계로 넘어오 면서 나에게 그런 능력이 생겼으니까. 어쨌든 정말 편한 능력이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4.여행의 시작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095 게 시 일 :99/08/23 21:57:07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4 여행의 시작 -1- 다음날부터 변함없는 일상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세트도 더이상 날 쌀쌀 하게 대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아세트가 계속 날 차갑게 대할까봐 걱정했으니까. 내가 외출하고 돌아온 날로부터 사흘 후, 유일한 여성 장로였던 클로로가 죽음을 맞이했다. 크레졸이 사라지고 나서 최초의 사망자였다. 난 아세트와 함께 클로로 장로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례식은 에쿠아트 라는 마을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그때 난 처음으로 다른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엘프들도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는데 옷이 거의 대부분 똑같았다. 그리고 에쿠아트 가까이에 엘프들의 집이 많이 보였다. 집 구조 역시 아세트의 집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너무나 획일화되어 있다는 느낌 을 지울 수가 없었다. 클로로 장로의 시신은 보통 어른 크기만한 크기의 비교적 얇은 나무판 위 에 올려졌고 네 명의 청년 엘프들이 그 나무판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줄을 잡고는 나무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에쿠아트 근처에 있는, 유난히 나 무가 울창한 낮은 언덕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많은 엘프들이 '솔베이트'라 불리는 언덕 바로 앞까지 따라갔다. 분위기 는 굉장히 조용하고 엄숙했다. 아무도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대부분의 엘 프들은 무표정하게 따르고 있었지만 클로로 장로와 평소 친분이 있던 몇몇 엘프들은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세트, 다른 네 명의 장로들을 따라 솔베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보 통 엘프들은 솔베이트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솔베이트는 특정한 사람들만 들어가는 장소일 것이다. 클로로 장로의 시신을 들고 있는 청년 엘프들은 솔베이트 깊숙히 들어갔 다. 솔베이트의 거의 끝부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그 청년 엘프들이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나무판을 땅 위에 올려놓았다. 난 무심히 청년 엘프들의 앞쪽을 쳐다보았다. 앞에는 꽤 많은 수의 엘프들이 조용히 죽은 채로 누워있었다. 생전에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누워있는 모습. 바로 말 로만 듣던 풍장(風葬)이었다. 풍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시체를 태워서 뼈를 추려 가루로 만든 것을 바람에 날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체를 그대로 버려 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것이다. 엘프들의 장사(葬事) 방식은 물론 후자였다. 그렇게 많은 시체들이 있는데도 이상하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어떤 엘프의 시체는 거의 다 썩어 없어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솔 베이트의 울창한 나무들이 시체에서 풍겨나오는 냄새까지 제거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솔베이트의 나무들은 카르본에서도 처음 보는 종류였 다. 클로로 장로의 시신 역시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있는 엘프들의 옆에 놓여졌다. 염(殮)같은 것은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는 곧장 발길을 돌 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의 말도 없는 장례였다. 장례가 모두 끝나고 아세트가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니트... 전 장로님들과 잠시 의논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겠어요..." 그러면서 장로들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에쿠아트라는 넓은 광장에는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물론 엘프들이 지나다니긴 했지만 다 처 음보는 얼굴이라 혼자 남겨졌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런.... 나 혼자 재 주껏 집을 찾아가란 소리잖아..... 뭐, 바람의 정령 실프를 불러 찾아가면 별 상관없지만. 내가 집이 있는 방향이라 짐작되는 곳을 향하고 힘찬 걸음을 내딛으려 하 는 순간 누군가가 날 불렀다. "이봐, 인간!" 목소리로 보아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다. 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내 또래인 듯한 소년 엘프 하나가 서 있었다. 물 론 나보다 수십 년은 더 오래 살았겠지만. 그 소년 엘프의 말투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왜?" "네가 이소아밀님과 같은 방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냐?" "그렇다면?" 소년 엘프는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소아밀님에게 이상한 짓 하지마! 이소아밀님은 카르본의 엘프들을 지 켜주시는 성녀니까!" 뭐야, 이 미친 녀석은? 혼자 남겨져서 은근히 열받는 참이었는데 이 녀석 이 화를 돋구네?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야?" 난 그 소년 엘프를 노려보았다. 노란 머리의 귀여운 얼굴을 가진 소년 엘 프였지만 지금의 나에겐 아주 기분나쁘게 보였다. 내가 노려보자 그 소년 엘프는 기분나쁜 얼굴을 하고는 소리쳤다. "그게 왜 상관이 없어?! 너도 인간이니까 인간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 을 져야할 것 아니야! 당장 이곳을 떠나서 크레졸이나 찾아오라고!" 저녀석, 뭐라고 씨부렁대는 거야? 점점 열받게 만드는데? 저걸 죽여, 살 려? 난 목소리를 잔뜩 깔고 소년 엘프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 책임을 져야하지? 내가 한 일도 아닌데." "흥! 같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아니야?" 소년 엘프는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난 그 소년 엘프에 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 녀석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난 그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싹 갖다대며 말했다. "크레졸을 훔쳐간 놈은 그 놈이고, 난 나야. 나한테 괜한 덤태기 씌우지 마. 그리고 어린 녀석이......" 계속 말을 이어가려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적어도 이 소년 엘프는 나보 다 나이가 많을 것이기 때문에. 크.... 얼굴이나 몸은 어려보이는데 나이 는 나보다 많다니..... 다르게 돌려서 말해야 되잖아? "아니, 처음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함부로 반말쓰지 마라. 듣기 안 좋으니 까." 난 소년 엘프의 멱살을 놔주고 무작정 걸었다. 방향을 봐뒀었는데 저 녀 석과 말다툼하다보니 어디인지 까먹어버렸다. 으아.... 열받어!!! "거기서, 인간! 감히 내 멱살을 잡았단 말이지?" 소년 엘프는 씩씩거리며 날 노려보았다. 어쭈? 노려보면 어쩔건데?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너 같은 녀석은 하나도 안 무섭......! "불의 중급 정령 페아 소환!" 소년 엘프의 정령어에 의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의 중급 정령 인 페아였다. 페아는 온몸이 불로 이루어진 불새이다. 중급 정령인만큼 파 워가 막강하다. 그런데 저 엘프 녀석, 페아를 불러서 어쩌겠다는 거야?! "페아! 저 인간을 공격해!" 뭐? 공격하라구? 저 미친놈! 날 죽일 생각이냐?! 소년 엘프의 명령에 페아는 곧장 나에게 날아왔다. 난 몸을 굴려 페아의 뜨거운 몸과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페아는 빙글 허공을 돌더니 다시 공격할 준비를 했다. 난 재빨리 소년 엘프에게로 달려갔다. 저 녀석 을 쓰러뜨려야만 페아가 날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어엇! 페아, 어서 공격을.....!" 내가 달려가자 소년 엘프는 굉장히 당황했다. 저 녀석은 아마 내가 마법 을 쓰거나 정령을 소환해서 페아와 싸울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중급 정 령와 계약을 맺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하급 정령들과 계 약을 맺었을 뿐이다. 하급 정령으로는 중급 정령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 고 질게 뻔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페아의 소환주를 쓰러뜨리는 것!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5.여행의 시작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02 게 시 일 :99/08/24 21:20:51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4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5 여행의 시작 -2- 난 소년 엘프를 내 몸으로 들이받아 버렸다. 소년 엘프는 컥하는 신음을 내지르며 땅바닥을 나뒹굴었고, 그와 동시에 막 나를 향해 날아오던 페아 는 정령계로 사라졌다. 휴~ 아슬아슬했다! 감히 날 공격했겠다? 이게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커억, 컥!" 내가 다시 멱살을 움켜쥐고 치켜올리자 그 녀석은 숨이 막히는지 컥컥대 었다. "함부로 사람을 공격하지마. 알았어?!" 그렇게 살벌한 어조로 경고를 준 후에 난 소년 엘프의 멱살을 놓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 엘프 녀석은 공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의 중급 정령 페아 소환!" 페아는 나타나자마자 나한테 불을 뿜었다. 난 가까스로 그 불길을 피할 수 있었다. 피하지 못했다면 난 큰 화상을 입었으리라. "이 미친 새끼! 죽고 싶냐, 앙?!" 난 열받아서 욕설을 내뱉었다. 페아는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했다.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내 몸을 엄습해왔다. 그리고 그 공포를 억누르 고 피어오른 감정은 분노였다. "노움! 저 새끼 넘어뜨려!" 난 페아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몸을 옮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소년 엘프가 서 있던 곳에서 노움이 불쑥 나타나 그의 다리를 걸어 버렸다. "어엇!" 녀석은 휘청했고 그에 따라 페아의 모습도 흐릿해졌다. 지금이 기회다! 난 그대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내 생애 최초로 남에게 날린 주 먹이었다. 내 주먹은 힘차게 날아가 그 녀석의 콧잔등을 가격했다. "아악!" 소년 엘프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는 풀썩 쓰러져 버렸다. 난 주먹이 으 스러질 것 같은 아픔을 참고서 발로 그 녀석의 복부를 걷어찼다. 녀석은 복부를 걷어차이자 배를 움켜쥐며 고통스런 신음을 내질렀다. 난 거의 반 미치다시피 했다. 계속 녀석을 밟아버리고 싶었다. 공포를 느꼈다. 이 녀 석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간 계속 날 공격할 것이라는. 다시는 날 공격하지 못하게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던 것이다. "후우....." 그 충동을 참기위해 난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어느정도 기분이 가라앉았 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엘프 녀석을 보자 굉 장히 미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너무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난 그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는 무작정 걸었다. 주위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엘프들이 날 향해 뭐라뭐라 했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싸움을 구경만 하고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 녀석들의 말 따위는 신경쓸 필요가 없 는 것이다. 푸후후..... 그러고 보니 나도 싸움을 구경만 하는 놈이었는데 ...... 약간 헤맨 끝에 아세트의 집에 무사히 도착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마음이 심하게 떨려왔다. 처음으로 사람을 -엘프였지만-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었다. 이대로 엘 프들이 넘어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으.... 갑자기 짜증난다....... 난 실프를 소환했다. 짜증이 나서 덥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프는 말없 이 바람을 일으켜 내 분노를 식혀주었다. 아... 시원하다. 역시 바람은 좋 단 말이야...... 이제야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군.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대낮이었지만 자고 싶었 다. 깨어있으면 소년 엘프를 구타한 것이 생각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있을 엘프들의 반발도. 에구... 귀찮아. 모두 잊고 그냥 자자! "니트, 니트! 일어나봐요!" 내가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아세트가 갑자기 날 흔들어 깨웠다. 끄아....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깨우냐고...... 아흠. "왜요....?" 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크.... 낮잠을 잤더니 머리가 띵~ 하다...... 머리 뽀개질 것 같애...... "니트가 톨루엔을 때렸다는게 정말이예요?" 아세트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톨루엔? 그게 누군데? 내가 띨빵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아세트가 말했다. "오늘 낮에 톨루엔이 에쿠아트에서 니트에게 맞아서 코뼈가 부러졌다는데 사실이예요?" 음.... 그 엘프 녀석이 톨루엔이었나 보군. 톨루엔도 당연히 탄소화합물 이름이겠지? 이제 이름에 신경쓰기도 귀찮다...... "그런데요?"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아세트는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이었군요..... 도대체 왜 그런 거예요?" 아세트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녀석이 먼저 공격했거든요." "하지만 톨루엔의 말로는 니트가 먼저 멱살을 움켜잡았다고 하던데요?" "그야 그 녀석이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까 그렇죠!" 난 나도 모르게 거친 음성으로 말했다. 이런! 아세트한테까지 이렇게 말 할 필요는 없는데! "도대체 무슨 시비를 걸었길래.....?" 다행히 아세트는 내 거칠어진 음성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은 것 같았다.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로 답했다. "당장 크레졸을 찾으러 나가라고 하더라구요. 같은 인간으로서 인간이 저 지른 일을 책임지라면서......" "아....." 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세트의 표정을 볼 순 없었다. 하지 만 아세트가 굉장히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다. "그랬었군요. 장로님들이 톨루엔과의 일로 니트를 부르고 있어요." 장로들이 날? 불러서 책임 추궁하려고? "아세트, 장로님들에게 전 가지 않겠다고 전해주세요. 앞으로 다른 엘프 들과 일체 만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졸을 찾기 위한 여행을 할 것이라고요." 퓨.... 내가 미쳤군...... 전자의 얘기는 지킬 수 있지만 후자는..... 내 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지? 여기를 떠나면 고생문이 훤~ 한데. 하 긴, 이곳에 있어도 엘프들의 시선이 신경쓰이지만. "네? 여행을 한다구요?" 아세트가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내가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굉장히 놀란 듯했다. 아세트가 저렇게 놀라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왜 이렇게 기쁠까? 그만큼 아세트가 날 생각해주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그 렇겠지? 아세트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말을......?" "계속 카르본에 머물 수는 없잖아요. 전 인간이니까요. 그리고 제 세계로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야 하구요." "......." 아세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난 고개를 돌려 슬쩍 아세트를 쳐다보았 다. 아세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대 위에 걸터 앉아 있었다. 아세트의 풀이 죽은 모습에 난 당황했다. 내 말에 아세트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세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장로님들께 그렇게 전할께요......" 그리고는 거의 뛰다시피 밖으로 나갔다. 난 그런 아세트를 멀뚱멀뚱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쫓아가서 아세트에게 '여기에서 계속 살도록 할 께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냥 앉아 있었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었으니까. 마 법론의 번역을 모두 끝내면 곧 떠날 것이다. 마법론 번역 하나만으로도 충 분히 카르본의 엘프들에게 빚은 갚았다고 생각하니까.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6.여행의 시작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03 게 시 일 :99/08/24 21:21:17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4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6 여행의 시작 -3- 톨루엔을 구타한 다음에도 난 평상시와 전혀 다른게 없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내가 카르본에서 살게 된지도 어느새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법론 번역은 이미 5일전에 다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지금 나는 카르본 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첫번째 준비는 4클래스의 마력 축적 이었는데 그것은 3일전에 완료했다. 그리고 두번째 준비는 불완전 주문의 암기. 그 많은 불완전 주문을 외운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필요하다 고 생각되는 수십 개의 주문들을 내가 가지고 있던 연습장에 옮겨 적었다. 또한 마법론에 적혀있던 완전 주문도 적었다. 나중에 필요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번째의 준비는 정령들의 단련이다. 내가 지금 부리고 있는 다섯 마리(?)의 하급 정령, 불의 정령 사라만다, 물의 정령 운디네, 바람의 정 령 실프, 땅의 정령 노움, 빛의 정령 잭 오 랜턴. 모두 별볼일 없는 녀석 들이기 때문에 조금 강도높은 훈련을 시켰다. 그것은 정령들끼리의 협동 작전, 그리고..... 정령들의 마법 사용. "실프, 사라만다! 합동 공격이다!" 난 집 뒤쪽에 있는 시냇가에 서서 실프와 사라만다에게 소리쳤다. 실프는 곧 바람을 일으켰고 사라만다는 실프가 일으킨 바람에다 불꽃을 토해냈다. 그 불꽃 어린 바람은 곧장 시냇가의 큰 바위 위에 놓여있는 돌멩이를 덮쳤 다. 불바람(?)에 휩쓸린 돌멩이는 검게 그을린 채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좋아, 합동 공격은 어느정도 된 것 같다. 이번에는 어제 배운 마법 연습 이다." 난 내가 부릴 수 있는 다섯 정령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먼저 빛의 하급 정령인 잭 오 랜턴을 쳐다보았다. 호박머리 모양의 잭 오 랜턴은 지난 주 에 비해 상당히 커져 있다. 처음에는 내 머리통만한 했던 녀석이 지금은 내 머리와 가슴까지의 크기만하다. 특히 그 호박머리 속에서 나오는 빛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대낮이라 전혀 빛을 느낄 수 없다. "잭! 햇빛이 무색해질 정도로 강한 빛을 내뿜는다. 주문은 당연히 발광 (發光) 마법이고. 시작해." 내 말에 잭 오 랜턴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손발이 없으니 당연한 거지 만. 하여간 움직이지 않으니 지금 마법을 쓰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내가 정령들에게 가르쳐준 마법은 코아세르 베이트가 마나 축적을 생각하 기 이전의 마법, 즉 거의 원시시대의 백마법이다. 그 마법들은 외부의 마 나를 바로 변화시켜 마법을 구사하게 된다. 몸안에 마나를 축적할 수 없는 정령들이 쓸 수 있는 마법인 것이다. 파아앗--! 갑자기 강렬한 빛이 잭 오 랜턴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잭 오 랜턴이 발광 마법, 이른바 라이트(Light)를 사용한 것이다. 야... 이정도 빛이면 빛의 중급 정령인 윌 오 위스프와 맞먹겠는데? 난 잠시 눈을 가리고 있다가 빛이 사라진 뒤에 잭 오 랜턴에게 말했다. "좋아, 이정도면 합격이다." 그러자 잭 오 랜턴의 호박머리가 약간 띨빵하게 웃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 었다. 난 잭 오 랜턴 옆에 있는 땅의 하급 정령 노움을 쳐다보았다. 노움 은 여전히 거만한 표정이다. 키는 내 허리에 못미치고 통이 넓은 흰옷을 입고 있는데, 이 녀석이 5일전부터 갑자기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정 령이 콧수염을 기르다니..... 정말 웃긴다니깐. "노움은 토창(土創) 마법이다." 노움은 두 손을 뒷짐지고는 뭐라뭐라 중얼대기 시작했다. 입모양으로 보 아 내 욕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움은 토창 마법, 즉 그라운드 스피어 (Ground Spear)의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물질계에서 정령들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소리를 난 못듣는다. 쿠쿠쿠--- 땅이 조금 심하게 흔들리며 노움의 뒷쪽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창이 빠르 게 솟아올랐다. 토창(土創)의 크기는 대략 30센티미터 정도였는데, 끝은 그렇게 날카롭지 않았다. 외부 마나의 변화만으로 행한 마법이니 당연한 결과지만. 게다가 마법을 사용한 녀석이 정령이니까 이정도도 꽤 잘한 거 다. 노움은 어떠냐라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 보았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 했다. "너한테는 이정도도 잘한거야. 물론 다른 정령들에게는 기본이겠지만." 그러자 노움은 사나운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푸효효... 드디어 한방 먹였다! 난 재빨리 노움의 시선을 피해 물의 하급 정령 운디네를 쳐다보았 다. 운디네는 전보다 키가 꽤 커서 내 상체만하다. 그리고 반투명하던 파 란색 몸은 조금씩 색이 진해졌다. 얼굴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해졌 고, 몸의 윤곽선도 뚜렷해졌다. 그래서 요즘 운디네는 중요한 부위를 물로 가리고 있다. 수영복을 입은 것처럼. 쩝...... "운디네는 분수(噴水) 마법이야." 운디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소리는 들 리지 않는다. 캐스팅이 끝나자 운디네는 땅위에 불쑥 솟아있는 토창들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손짓했다. 그러자 운디네의 오른손 검지에서 한 개의 물줄기가 날카롭게 뻗어나왔다. 그 물줄기는 토창들을 여지없이 격파해 버 렸다. 파운테인(Fountain)을 잘쓰는데? 역시 물의 정령이야. "훌륭해, 운디네! 아주 좋았어!" 내가 박수까지 치며 칭찬하자 운디네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정령들 이 희노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아세트에게서 들었지만 그 말이 정말 인 것 같다. 운디네가 내 말에 저렇게 부끄러워하니까 말이야. 난 다시 고개를 돌려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를 쳐다보았다. 실프도 운디 네만큼이나 커진 상태로,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다. 반투명했 던 몸은 연두색을 띤다. 아쉽게도 짙은 녹색의 바람으로 몸을 가렸기 때문 에 알몸은 볼 수 없었다. 어흑...... "실프는 폭풍 마법!" 내 말에 실프는 주문을 외우며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실프의 입이 다물어진 순간, 나선형의 바람이 앞으로 나아가며 아직도 땅위에 솟아올라 있는 토창들을 휩쓸어 버렸다. 순식간에 남아있던 십여 개의 토창들이 박 살났다. 스파이럴 게일(Spiral Gale)을 무리해서 사용했는지 실프는 잠시 비틀거렸다. "괜찮아, 실프?" 내가 묻자 실프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정령들은 마나를 축적할 수 없으니 마법을 사용했다고 지치는 건 없지. 아! 정신력이 소모 되는구나! 그래서 실프가 비틀거린 모양이야. "아주 잘했어, 실프! 하지만 다음부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알았 지?" 실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귀엽다. 실프와 운디네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괜히 좋아진다니깐. 역시 난 여자를 너무 밝혀..... 마지막으로 불의 하급 정령 사라만다를 내려다 보았다. 처음의 사라만다 는 30센티미터도 채 안되는 작은 붉은 도롱뇽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이구 아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단지 이구아나보다는 피부가 약간 매끄럽 다는게 다르지만. "사라만다! 넌 화구(火球) 마법이다. 해봐." 사라만다는 고개를 쳐들고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 보았다. 그 리고는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고 있는 동안 사라만다의 얼굴 앞에 직경 30센티미터의 불덩어 리가 형성되었다. 1클래스급의 파이어 볼(Fire Ball)이었다. 사라만다가 고개를 다시 앞으로 향하자 파이어 볼이 그대로 토창들이 있 던 곳에 떨어졌다. 콰앙---! 비교적 강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이야... 사라만다 녀석 굉장한데? 검 게 그을린 범위가 어림잡아도 반경 2미터는 될꺼다. 정말 대단하다.... 하 급 정령이 인간의 초보 마법사와 비슷한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다니. 아니,그 이상인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7.여행의 시작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15 게 시 일 :99/08/26 22:34:44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7 여행의 시작 -4- 난 사라만다의 머리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짜식! 꽤 하는데? 합격이다." 내가 머리를 탁탁 두드리자 사라만다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땅바닥을 향 해 불을 내뿜었다. 짜식, 귀여워 해주니까 삐지긴. 하여간 정령들에게 마법을 가르친다는 내 생각은 들어맞았다. 정령들은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힘을 이용해 쉽게 마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바람의 정령은 바람의 마법, 불의 정령은 불의 마법..... 그런 식으로 말이다. "모두들 수고했어. 그럼 정령계에서 잠시 쉬어. 나중에 보자." 난 다섯 정령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도 역시 실프와 운 디네만이 같이 손을 흔들었을 뿐, 나머지 녀석들은 '어서 돌려보내라'하는 표정이었다. 사라만다와 잭 오 랜턴은 본래 손이 없으니 어쩔 수 없고.... 땅딸보 할아버지가 어린애처럼 손을 흔드는 건 보기 별로 안좋으니.... 그 냥 봐줘야지. 다섯 정령들을 모두 정령계로 돌려보냈을 때 누군가가 집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아세트였다. 아세트는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정말 대단해요. 정령들에게 마법을 가르칠 생각을 하다니요." "보고 있었어요?" "네."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하긴, 숨어서 보는 사 람을 내가 어떻게 느끼냐. "니트....." 내가 쳐다보자 아세트는 긴장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니트는 정말 카르본을 떠날 생각인가요?" 떠날 생각이니까 이런 준비들을 하지..... "네." 난 일부러 뜸들이지 않고 말했다. 아세트에게 내 의지를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로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꼭.... 떠나야 하나요....? 그냥 여기서 살면 안돼요......?" 아세트는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거의 울먹이는 듯한 모습에 내 마음이 또 흔들렸다. "제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요..... 부모님들도 제가 돌아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실테고......" 쿠후후....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전혀 아니지. 난 전혀 돌아 갈 생각이 없어. 이곳이 더 좋거든. 내가 살던 세계를 현실 세계라고 한다 면, 현실 세계에서 난 보잘것 없는 한 인간일 뿐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마법을 쓸 수 있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거야. 난 그것이 좋아. 그리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고. 엄마, 아빠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 이 세계에 실망하는 일이 생기기 전까지 말이야! "... 그렇군요..... 알았어요....." 아세트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몸을 돌려 집쪽으로 걸어갔다. 힘이 없어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내가 떠난다는 사실이 아세트에게 마음의 상처 를 주고 있는 건가? 아세트는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을까? .... 나는 아세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친구? 아니면 연인? ..... 정 확히는 모르겠다. 일부러 아세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으니까. 괜 한 기대감을 갖다가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실망감이 두려웠으니. 하지 만 확실한 건 난 아세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난 아세트가 사라진 쪽을 쳐다보았다.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한다. 가능 한한 빨리 이곳을 떠야한다. 계속 내가 이곳에 남아있으면 엘프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날 바라볼테고, 그러면 아세트마저도 그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정말 싫다. 차라리 내가 피해를 당하는게 마음 편하다. 물론 그것은 기분이 최악일 때를 제외한 말 이지만. .... 우선 글리콜 장로를 찾아가봐야 겠다. 글리콜 장로는 인간세계에 많 이 가봤으니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테니까. 나에게 가장 호의적인 장 로는 글리콜 장로밖에 없다. 다른 장로들은 날 경멸하고 있다. 특히 톨루 엔과의 싸움으로 더욱 그렇다. 이소메르에서 마법 수련을 할 때 그들이 보 내는 따가운 시선에 정신 집중이 잘 안됐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 마법 수 련을 할 것이다.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똑똑똑-- 난 글리콜 장로가 살고 있는 집의 문을 두드렸다. 글리콜 장로의 집도 여 느 엘프들처럼 통나무로 벽을 세운 나무집이었다. 노크를 하자 집안에서 글리콜 장로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신가?" "저 니트입니다." "니트? 무슨 일로 내 집에.....?" 글리콜 장로는 전혀 뜻밖의 인물이 찾아온 듯 놀랬다. 곧 문이 열렸고 나 는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글리콜 장로는 나에게 앉으라고 권했고 난 탁자에 앉았다. 글리콜 장로가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왔는가?" "네, 곧 카르본을 떠날 생각이라고 말씀드리려구요." 내 대답에 글리콜 장로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르본을 떠난다고? 갑자기 왜?" "여행하고 싶어서요. 이곳 엘프들의 시선도 신경쓰이구요." "음... 그런가. 그래서 나한테 조언을 들으려고 온 것이로군." "네." 이야... 눈치 한번 빠르시네요. 그럼 조언을 부탁합니다! 글리콜 장로는 내 맞은편에 앉고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카르본의 장로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바깥세계를 돌아다녔다네. 그럼에 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어. 사실 알 필요도 없었지. 난 주로 카 르본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해오는 일을 맡았으니까. 하지만 내가 자네 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것일세." 이런~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구요. 사실 내게 필요한 건 그런 말이 아 니라 실질적인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돈이죠. 후후. "사실 제가 장로님을 찾아온 이유는..... 보석 좀 얻으려고요." 내 말에 글리콜 장로는 약간 당황하는 눈치였다. "음... 보석을 얻으려고 왔단 말인가?" "네. 돈 한푼없이 생활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 하지만 돈이 있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네. 자네는 어려보이기 때 문에 인간들이 속이려고 들지 모르니까." "괜찮습니다. 제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요." 내 확고한 대답에 글리콜 장로는 잠시 날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작 은 나무 상자에서 보석들을 꺼내왔다. 보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보기 에도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글리콜 장로는 집어든 보석들을 전부 내 앞에 두었다.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등등..... 모두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들이었다. "이것들이면 생활하는데에 아무 지장이 없을 거네. 물론 도둑맞지 않는다 는 전제하에서지만." 하하, 걱정마십쇼! 도둑맞을 리는 절대 없을 테니까요. 전 그렇게 어리숙 한 녀석이 아니니까요. 푸헐헐...... "감사합니다, 장로님." 난 보석들을 집고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다. 글리콜 장로가 나를 바라보 며 물었다. "그래, 언제 떠날 생각인가?" "..... 가능한 빠를 수록 좋겠죠.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생각입니다." "내일 아침이라.... 섭섭하구먼. 그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말이야." 글리콜 장로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난 웃어보인 다음에 짧은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글리콜 장로가 다가와서 말했다. "니트, 인간세계로 나가서 혹시 크레졸을 찾게 된다면..... 꼭 카르본으 로 가져왔으면 좋겠네." 얼레? 전에는 크레졸을 찾는 즉시 부수라고 해놓고는? 도대체 무슨 생각 을 하시는 거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8.여행의 시작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16 게 시 일 :99/08/26 22:35:09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8 여행의 시작 -5- 내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글리콜 장로가 말을 덧붙였다. "크레졸을 카르본으로 가져와 준다면..... 내가 직접 엘프들 앞에서 크레 졸을 부수어 버릴 생각이네." 엑? 장로님이 직접? 뜻밖의 말에 놀란 내가 글리콜 장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가 크레졸을 찾을 수 있을 지도 알 수 없고..... 그리고 다시 카르본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물론이네. 반드시 크레졸을 찾아서 카르본으로 와 달라는 소리는 아니야 .... 단지 나에게 크레졸의 행방만을 어떻게든 알려주면 되네." ".... 그렇지만 그것을 알릴 방법도 잘 떠오르지 않구요.... 게다가 그때 장로님이 돌아가셨으면 어떡해요?" 내 물음에 글리콜 장로는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었던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자네가 크레졸을 찾았을 때 내가 죽었다면..... 이소아밀님께 알려 드리 게나. 크레졸에 대한 처리는 이소아밀님의 몫이니까." 아세트에게? 아세트는 크레졸을 어떻게 처리할까? 음.... 모르겠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할께요.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난 글리콜 장로에게 인사를 하고 집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내 집으 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세트는 집 에 없었다. 어디갔을까? 이소메르에? .... 차라리 잘됐다. 지금은 혼자 있 고 싶으니까. 내일 아침이면 카르본을 떠난다.... 가슴이 마구 떨려온다. 카르본 밖으 로 나가면 분명 고생할 것은 뻔하다. 그런데도 나가려고 하는 나는 미친 놈일까? 으아.... 기분이 착잡하네. 잠이나 자야겄다~. 끄응~ 아고고, 몸이야.... 내가 얼마나 잔거지? 얼레? 새벽녘인 것 같은 데? 아세트가 옆침대에서 자고 있으니 확실히 지금은 취침시간..... 허걱! 난 저녁밥도 안먹었는데! 난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옷장에서 교복을 꺼내들고 나서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왜 갈아입느냐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카르본 엘프들의 옷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쪽팔려. 우키키. 물론 교복을 입으면 이 세계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겠지만, 나는 교복이 편하니까. 솔직히 말하라구? 음... 사실 언제 내 세계로 돌아갈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교복은 가져가야 하는데.... 가방에다 넣어두면 부피가 커져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입는 거지 뭐. 난 옷을 벗어서 탁자 위에 잘 개어놓은 후,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었다. 억... 이러니까 꼭 학교가는 것 같잖아? 어허, 이거 참.... 무심코 손을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 넣었던 나는 무엇인가를 만질 수 있 었다. 난 즉시 그 물건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그것은 붉은 구슬이었다. 그 것을 보고 난 깨달았다. 그 구슬을 줍고 나서 공간의 문이 생겼다는 것을! 그렇다면.... 이 붉은 구슬을 주웠기 때문에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된 건가? 만약 그때 이 구슬을 줍지 않고 그냥 갔었다면? 아니, 공간의 문이 생겼을 때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면? ..... 물론 이 세계로 넘어오 는 일은 없었겠지. 모두 각오하고 그런 것이니까 누구를 탓하랴. 사실 난 이 세계가 마음에 드는걸. 난 붉은 구슬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살짝 집안을 들여다보니 아세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음.... 앞으로 다시 만 나기는 어려울꺼야.... 이거 마음이 착잡하군.....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문을 닫고 나서 난 무작정 발가는 데로 걸었다. 물 론 가능한 아톰이라는 마을 쪽으로 갈 생각이지만.... 내가 한번밖에 가본 적이 없는 곳을 어떻게 아나. 어떻게든 이 숲을 나 혼자 힘으로 빠져나가 면 그만인거야. 주위가 약간 어두웠기 때문에 빛의 하급 정령 잭 오 랜턴을 소환하여 등 불로 삼았다. 그리고는 무조건 앞을 향해 걸었다. 주위는 너무나 고요했 다. 들리는 것이라곤 내가 풀들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뿐이었다. 가끔 곤충 이나 동물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는데 난 그 소리를 듣고 깜짝깜 짝 놀랬다. 하여간 음침한 분위기야...... 난 무서움을 잊기 위해 가방에서 워크맨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그러자 한결 공포심이 누그러졌다. 그리고 지겹지가 않았다. 계속 그게 그거 같은 길을 가도 음악을 들으면서 가니까 지겹지가 않은 것이다. 끝부분의 음악을 두 번 들었을 때 난 숲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으아.... 두 시간만에 빠져나왔군. 어떻게 아냐고? 지금 내가 듣고 있는 테이프는 한시간 짜리거든. 얼레? 이곳은 왠지 낯이 익은 곳 같은데? 아, 그렇다! 이곳이 바로 내가 글리콜 장로와 아톰이라는 마을로 갈 때 지나가야 했던 산이구나! 푸하하! 제대로 걸어왔다! 길을 제대로 찾아서 기분이 좋은 나는 알지도 못하는 노래 가사를 흥얼거 리며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왠 실프 하나가 내 앞을 가로 막고는 고개를 막 젓는 것이었다. 얼레? 저 실프는 나하고 계약을 맺은 실 프가 아닌데? 그런데 아무 상관없는 내 앞을 왜 막는 거지? 난 처음엔 실프의 행동대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5분 정도가 지 나자 더이상 참을 수 없어 그냥 가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자마자 실프는 갑자기 바람을 일으켜 날 가지 못하게 했다. 어쭈? 지금 나하고 해 보겠다는 거야? 도대체 널 소환한 사람이 누구길래 나같은 착한 아이(?)의 앞길을 막느냔 말이야! 열받은 나는 실프를 소환해서 내 앞을 가로막는 실프를 날려버리려고 했 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뒤에서 많이 듣던 외침이 들려왔다. "니트---!" 허걱! 이 목소린.... 아세트?! 난 놀라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돌렸다. 내 생각대로 뒤에는 뛰어왔는지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는 아세트가 있었다. 설마 날 쫓아온거야? 실프를 소환해서 날 못가게 해놓고? 내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아세트는 무엇인가 결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날 가지 못하게 막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니트, 전 니트를 따라가겠어요!" "......!" 아세트의 전혀 뜻밖의 말에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날 따라가겠다고? 엘 프가 함부로 인간세계에 갔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아세트, 그건....." "그만하세요! 전 이미 결정했으니까요. 누가 뭐래도 전 니트를 따라갈거 예요!" 딱 잘라 말하는 아세트. 이런..... 결국 같이 가야 되나? 음.... 그런데 기분이 묘하네? 기분은 분명히 좋은데 걱정이 된다...... 앞으로 내가 아 세트를 지켜야 하니까..... 이거 꼭 1억원을 들고 도둑 소굴로 들어가는 기분인걸? 불안해라...... "알았어요. 어쨌든 조심해야해요. 위험할테니까요." "걱정말아요." 아세트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렇게 말하니까 더 불안해..... 그렇게 해서 나와 아세트는 같이 아톰으로 가게 되었다. 차라리 나 혼자 간다면 마음 편할텐데..... 아세트도 이곳 인간세계에 대해 나보다 많이는 알고 있지 않을 테니까 모든 걸 내가 처리해야 한다는..... 크.... 앞날이 걱정된다! 처음 여행을 떠나는 나는 호기심 1/3, 두려움 2/3를 가지고 걸어갔다. 아 세트는 정말로 처음 카르본을 벗어나는지 굉장히 신기한 표정으로 산과 강 을 둘러보고 있었다. 여기나 카르본이나 별 차이없는데 뭐가 신기하지? 약 1시간 가량을 더 걷자 우리의 눈앞에 아톰 마을의 정경이 비쳤다. 으.... 무지하게 떨리는군. 난 떨리는 마음을 안고 아톰 마을로 내려갔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29.용병 유스타키오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26 게 시 일 :99/08/28 15:27:15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29 용병 유스타키오 -1- 우선 제일 먼저 할 일은 보석을 이곳 돈으로 바꾸는 일. 그래서 전에 글리콜 장로와 갔었던 보석상에 들렀다. 여전히 간판은 '아 름다운 보석'이군. 주인이 그대로면 좋은데. 나와 아세트는 곧장 보석상 안으로 들어갔다. 보석상 안에는 전에 보았던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아저씨는 이번에도 반사적으로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보석을 돈으로 바꾸려고 왔습니다." 난 아저씨에게 붉은 빛이 감도는 보석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는 아무 의심없이 보석을 집어들고 감정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 "루비군요. 품질이 아주 좋아요. 600페리면 어떻습니까?" 얼레? 나처럼 어린 놈이 보석을 들고 왔는데도 전혀 의심을 안하네? 그런 인간들이 많나? 아니면 내 얼굴이 늙어 보이나?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내가 답하자 아저씨는 사람좋게 웃으며 뒤에 있던 상자를 열쇠로 열고는 100페리짜리 지폐 6장을 꺼냈다. 그때 내가 아저씨에게 말했다. "100페리는 10페리 10장으로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아저씨는 나에게 존댓말을 쓰며 내 말대로 100페리를 10페리 10장으로 바 꾸었다. 난 아저씨가 주는 돈을 받아서 보석이 들어있는 작은 녹색 주머니 에 넣었다. 한번 털리면 거지되기 딱 좋다..... 나와 아세트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보석상 밖으로 나왔다. 너무나 쉽 게 일이 풀렸다. 최소한 저 아저씨가 내가 어린 것을 보고 가격을 낮게 부 르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너무 잘 풀리니까 더 불안해...... 이제 어디로 가지? 아! 매르가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가볼까? "아세트, 잠시 가볼 데가 있어요." "어딘데요?" "따라와요." 난 아세트를 데리고 매르의 집으로 찾아갔다. 약간 헤맸지만 매르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여전히 웅장한 위용을 뽐내고 있는 매르의 집. 정문 앞에 는 두 명의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음... 사람이 들어온 모양이야. 매르의 사병들일까, 아니면 다른 집주인의 사병들일까? 난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아세트도 나를 따라왔다. 두 병사는 내가 다가 오자 손에 들고 있던 할버드(Halberd)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할버드는 창 에다 도끼날을 달아놓은 것 같은 무기이다. 찌르기와 베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무기인 것이다. "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뭐냐?" 내 말에 왼쪽에 있던 병사가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띠 껍게 쳐다보는군. 저걸 죽여? "이 집 주인님의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네녀석이 그걸 알아서 뭐하게?" "그냥 궁금해서요." "너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려는 거지?" 오른쪽에 있던 병사가 갑자기 내 얼굴 앞에 할버드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그때 내 뒤에 있던 아세트가 입을 열었다. "니트는 단순히 주인의 성함을 물었을 뿐인데 무기를 들이대나요?" 아세트의 말에 두 병사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아세트를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분명히 아세트의 미모에 반한 거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뜨아~ 저 눈 풀어지는 거 봐라! "하하, 아름다운 숙녀 분이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나에게 할버드를 들이댔던 병사가 급히 할버드를 치우며 말했다. 갑자기 저 병사를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걸? "이 집의 주인님 성함은 샘 사마리움이십니다." 왼쪽에 있던 병사가 급히 주인의 이름을 밝혔다. 하여간 예쁜 여자가 물 으니 금방 대답하는군. 뭐, 나도 그러지만. 그나저나 샘 사마리움이라고? 매르의 성이 뭐였더라? 전혀 기억이 안나네 ? 또 물어봐야 하잖아? "그런데 샘 사마리움님의 아드님 이름이 매르인가요?" "너도 알고 있었냐? 그래, 사마리움님의 아드님이 바로 매르 사마리움이 다." 그렇게 말한 오른쪽에 있던 병사가 마치 옛날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하 기 시작했다. "정말 기적이지. 라이칸스로프와의 싸움에서 허리를 다치시고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는데 말이야. 갑자기 일주일 전에 사마리움님의 허리가 낳았지. 그 분 말씀으로는 어떤 노인과 한 소년 마법사가 치료를 했다고 하시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이건 분명히 우리 마을을 구한 사마 리움님을 안타깝게 여긴 신들이 기적을 일으킨 거라구." 얼레? 신들이 기적을 일으켜? 그렇게 자기 집 주인의 말도 못믿냐? 그리 고 당신들은 주인이 거동을 못하니까 훌쩍 떠났다가 주인이 다시 움직일 수 있으니까 돌아온 주제에 무슨 사마리움님이야? 웃겨. 어쨌거나 잘됐군. 매르 집안이 다시 옛날로 돌아온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그럼 가볼께요." 전혀 인사하기 싫었지만 예의상 감사의 인사를 하고 아세트와 같이 아무 곳이나 걸어갔다. 아세트가 나를 따라오자 병사들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 다. 푸하하, 부럽냐? 너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여자와 같이 다닐 수 없을걸? 그때 아세트가 나에게 물었다. "니트, 방금 전에 저 병사가 말했던 어떤 노인과 한 소년 마법사 말이예 요, 그거 글리콜 장로님과 니트를 말하는 것 아닌가요?" 허걱! 어떻게 그런 말만 듣고 그렇게 잘 알아맞출 수가 있지? 엄청난 추 리력이다! "어떻게 알았어요?" "전에 글리콜 장로님과 니트가 같이 외출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리고 어 떤 마을에서 마법을 썼구요. 게다가 니트는 저 집 주인의 아들을 알고 있었으니 그 정도 추리는 간단해요." 음... 나한테는 간단한 추리가 아니라네. 난 추리같은 건 못하거든. 그렇게 말한 아세트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왜 그냥 가는 거예요? 그 매르라는 사람을 안 보고 갈 거예요?" "그냥 소식만 알면 돼요. 굳이 만날 필요는 없어요." "......?" 아세트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만나서 얘기를 나눌 지도 모르지만 난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특 히 내가 매르 아버지의 허리를 치료했으니 분명히 귀한 손님이 왔다고 야 단법석을 떨 것 아니겠어? 난 그런게 싫어. "아세트, 다음 마을까지 가서 여관을 잡도록 할래요?" "니트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전 잘 모르니까요." 헹~ 모르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이 마을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는 혹시나 매르가 날 발견할까봐서지. 난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이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어디냐고 물 었다. 그러자 그 사람-나이는 대략 40대 초반같았다-은 처음엔 냉랭하게 대하다가 아세트가 묻자 친절하게도 마차가 있는 곳까지 우리를 안내해주 었다. 정말 속보이는 인간이야. 마차가 줄줄이 대기해 있는 곳은 마을 중앙에 있는 성 뒤쪽이었다. 이른 바 마차 대기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북적북적 댔다. 나는 타고 갈 마차를 구하러 다녔다. 태양이 중천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마차를 타지 않으면 해 가 지기 전에 다음 마을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대기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 남녀노소 모두 불문하고 아세트를 보더니 감 탄사를 내뱉었다. 어떤 인간들은 아세트 옆에 붙어다니는 날 이상한 눈으 로 쳐다보기도 했다. 끄응... 정말 기분 나쁜데? 역시 사람은 자기와 어울 리는 인물과 같이 다녀야 한다니까.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0.용병 유스타키오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27 게 시 일 :99/08/28 15:27:39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0 용병 유스타키오 -2- "어이, 거기 이상한 옷 입은 소년!" 에? 이상한 옷을 입은 소년? 나인가? 난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방금 말을 했던 사람은 20대 중반으 로 보이는 잘생긴 청년이었다. 허리에는 굉장히 날이 긴 검을 차고 있었는 데 저 정도 길이면 롱소드(Long Sword)일 것이다. 그리고 어깨와 가슴, 팔 꿈치에서 손목, 무릎부터 발목까지에만 철판을 덮어씌웠다. 복부와 하반신 은 갑옷이 없기 때문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였다. 사실 그 갑옷들도 별로 단단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썹을 지닌 그 청년은 내 쪽으로 뛰어왔다. 나와 그 청년의 거리는 대략 20미터쯤이었다. 청년은 가볍게 뛰어왔는데 3초도 안 되어 내 앞에 도달했다. 청년은 숨하나 헐떡이지 않고 평상시와 같은 호흡 을 하며 나에게 물었다. "너 어디서 왔냐? 이곳 사람은 아니지?" 뭐지, 이 사람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아는 척 하네? 혹시 이 사람도 아세트에게 접근하기 위해 날 이용하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아세트가 입을 열었다. "누구시죠?" "아, 아름다운 숙녀분이시군요. 전 유스타키오라고 하는 떠돌이 용병입니 다." 그렇게 자신의 소개를 한 유스타키오라는 청년은 다시 날 쳐다보았다. 유 스타키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아! 유스타키오관! 그게 뭐냐구? 입하 고 귓구멍하고 연결된 긴 관처럼 생긴 기관인데, 귓속과 바깥 기압을 조절 하는 작용을 하지. 그게 뭔소리냐구? 글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귓속의 기압이 외부의 기압보다 높거나 낮을 때 입을 벌리면 유스타키오관 을 통해서 공기가 나가거나 들어와서 외부와의 기압과 같도록 한다는 소리 ..... 그게 더 이해하기 어렵다구? 으... 난 설명을 잘 못해..... "네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얼레? 이 사람은 아세트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인데? 혹시 호모가 아 닐까? "니트라고 하는데요." "니트? 음.... 혹시 너 마법사 아니냐?" 억?! 그걸 어떻게 알았지? 그렇다고 대답할까 아니라고 대답할까? 유스타 키오라는 청년의 얼굴을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별볼일 없는 마법사이긴 하지만... 왜요?" 내가 마법사란 말에 유스타키오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 손으 로 움켜쥐었다. 허걱! 힘이 장난이 아닌데? 어깨 빠지겠다! "그럼 네가 샘 사마리움이라는 사람의 허리를 치료했다는 그 소년 마법사 냐?" 얼레? 도대체 이 유스타키오라는 인간의 정체는 뭐냐? 설마 매르와 관련 된 사람은 아니겠지? 난 막 그렇다라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다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을 보게 되었다. 샘 사마리움은 라이칸스로프로부터 이 마을을 구한 영웅. 여기서 내가 그 사람을 치료했다라고 한다면....? 난 주목을 받겠지? 그리 고 심하면 환자를 데려다가 '이 사람 좀 치료해 주세요'라고 할 수도 있고 ..... 귀찮아 지겠군.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허리를 치료해요? 전 1클래스 마법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구요."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미안해지네? 저 얼 굴은 뭔가 큰 희망을 품었다가 그것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이다..... "하긴... 매르라는 녀석의 말로는 녹색 상의에 연두색 바지를 입고 있었 다고 했는데..... 하지만 검은 머리칼과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 그리고 34케미의 키는 딱 들어맞는데 말이야....." 유스타키오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34케미? 길이 단위인 것 같은데..... 모르겠는걸? 도대체 내가 알 수 있는 언어와 알 수 없는 언어는 어떤거야? 그런데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 매르 녀석.... 담에 만나면 다리를 분질러 버려야 겠군..... 그저 그렇게 생긴 얼굴이라니! 평범한 얼굴이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냐?! "저, 유스타키오관... 아니, 유스타키오는 용병이라고 그랬죠?" "그냥 편히 유스라고 불러." "알았어요. 유스는 용병이죠?" "응." "지금 해야하는 일거리 있어요?" 내 질문에 유스타키오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 "너도 용병하려고? 너 같은 체격으론 용병일 같은 건 못해." 이런.... 난 지금 용병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라니깐! "그게 아니라 유스말이예요. 뭐 특별히 해야할 일 있어요?" "응? 아... 아니 없어. 사실 있긴 있지만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야.... 나한테는 아주 중요하지만.... 남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뭐야? 중요하다는 거야,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굉장히 헷갈리게 만드는 사람이네? "그럼 나와 아세트의 경호원 역할을 할래요?" "응? 경호원?" 뜻밖의 말이었던지 유스타키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묻는 말. "아세트가 누군데?" 난 눈짓으로 아세트를 가리켰다. 유스타키오는 아세트를 보고 크게 놀랬 다. 아세트의 귀가 길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숙녀분은 엘프시군요." 유스타키오는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곧장 고 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이야... 아세트의 미모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저 태도! 굉장한데? "너 어떻게 엘프하고 같이 다니냐? 보통 소년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나중에 가르쳐 드릴께요. 경호원 할거예요, 말거예요?" 유스타키오는 잠시 생각하더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단, 숙식은 네가 제공해야 한다!" 결국은 그걸 노린 거였수? 뭐, 가지고 있는 보석이 있으니까 상관없지. "좋아요. 그럼 마차나 한대 골라 타죠." "갈 데는 있는 거냐?" "아니요. 그냥 목적지없이 가는 거예요." 그러자 유스타키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더니 내 어깨를 감싸안고는 내 귀에다 대고 말했다. "너 저 엘프하고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거지?" 커억! 무슨 사랑의 도피야! 이 아저씨는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하하, 농담이야, 농담. 목적지가 없으면 '센세'에 가지 않을래? 그곳에 가면 내 아름다운 아내의 식사를 맛볼 수 있는데." 허걱! 아름다운 아내? 그럼 유스타키오는 결혼했단 말이야? "유스는 결혼했어요?" 내가 묻자 유스타키오는 갑자기 들뜬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그럼. 팀파니하고 5년전에 결혼했지. 얼굴도 예쁘고 요리도 잘하고...." 그렇게 들뜬 표정으로 말하던 유스타키오는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었 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혼한지 5년이나 지났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그래서 용병일을 하면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노력했 지만.... 아무도 모르더라구.... 마법사들은 전혀 손을 쓸 생각을 못하 고.... 사제들도 고개를 젓더라구.... 신이 아닌 이상 인위적으로 아이 가 생기도록 할 수는 없다라고....." 음.... 참 안됐수다.... 굉장히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눈치인데.... 차 라리 양자를 들이지 그래요? 난 결혼하지 못하고 노총각으로 늙으면 양자 나 하나 들일 생각인데. "하하, 내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상한 말을 해버렸네?" 유스타키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난 그런 유스타키 오가 마음에 들어 말했다. "그럼 센세로 가도록 하죠."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1.용병 유스타키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31 게 시 일 :99/08/29 20:20:03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4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1 용병 유스타키오 -3- 나와 아세트, 그리고 유스타키오는 마차를 타고 센세로 향했다. 센세는 이 나라 '케미컬' 옆에 있는 '바이올로'라는 나라에 있다고 한다. 케미컬 (Chemical)은 '화학'이라는 뜻이던가? 그런데 바이올로는 뭐지? 차라리 바 이올린이 낫겠다! 따그닥 따그닥-- 덜컹덜컹--- 말발굽 소리와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마차는 인위 적으로 만들어진 산길을 따라 산속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와 아세트, 유스 타키오는 마차 안에 앉았고 마차는 마부가 몰고 있다. 유스타키오는 내 옆 에 앉아 이것저것 물었다. "그 옷 어디서 난거냐? 처음보는데?" "제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다들 입는 옷이예요." "세계? 꼭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들린다?" "사실 전 다른 세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거든요." "뭐? 그게 정말이야?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구?" "믿든 안믿든 그건 유스 맘이구요." 잠시 못믿겠다는 표정을 짓던 유스타키오가 또 물었다. "너 애인은 있냐?" 유스타키오의 질문에 지금까지 소외되어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세 트가 눈을 빛냈다. "아뇨, 아직...."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세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어두 워졌다. 뭐야? 표정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고? 왜 저러지?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좀더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할 때 다시 유스타키오의 질문이 들어왔다. "니트, 혹시 샘 사마리움의 허리를 치료한 소년 마법사를 알고 있냐?" 음... 이제 솔직히 말할까? 듣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알고 있어요." "그래? 가르쳐줘! 그 소년 마법사가 누군지!" 유스타키오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데? 이거 괜히 말한게 아닐까? "사실 그 소년 마법사가 저예요." ".....?" 유스타키오는 선뜻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니라메?" "그건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거구요. 전 주목 받는게 싫거든요." "그거... 정말이지?" "네." 분명한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갑자기 날 껴안더니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렇지! 내가 사람을 잘못 볼 리가 없지!" 그러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센세에 가서 아내를 살펴봐주지 않을래? 왜 아이를 못갖는지 말이야. 난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어." 헉! 매르가 했던 말하고 비슷하잖아? "저도 알아내지 못할 건 뻔해요. 기대걸지 마세요." "상관없어. 어쨌든 꼭 센세까지 가는거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어렵지 않으니까. 어차피 갈 데도 없는 걸. 그때였다. 갑자기 마차가 급정거를 했다. 방심(?)하고 있던 나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유스타키오가 날 잡아주지 않았다면 난 마차 바닥에 머리를 박아버렸을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유스타키오가 마차 문을 열고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전면을 가리켰다. 나와 유스타키오는 마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정면을 쳐다보았다. 그런 우리의 눈에 잡힌 것은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었 다. 온몸이 시커먼 짧은 털로 덮혀있고 인간의 몸에 돼지 머리를 한 괴물. 저게 뭐더라? 이거 떨려서 이름이 기억 안나네? "오크!" 아, 맞아! 오크였지! 역시 유스타키오는 용병이라 괴물 이름도 잘아네? 우리 앞을 가로막은 오크들의 수는 모두 다섯 마리. 손에는 쇠로 만들어 진 도끼와 검이 들려 있었다. 오크들의 키는 나와 비슷비슷했다. 유스타키 오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사람들이 산속으로 잘 다니지 않으니까 백주 대낮에 길 한가운데에 나타 나는군!" 그리고는 마차 밖으로 뛰어나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검신이 굉장히 길었지만 키가 180정도 되는 유스타키오에겐 잘 어울리는 검이었 다. 이야... 검에 은코팅을 했나 본데? 은색으로 번쩍번쩍하군! 유스타키오가 마차에서 내려 검을 뽑자 막 마차를 향해 돌진하려던 오크 들이 경계하기 시작했다. 5 대 1의 싸움. 유스타키오의 실력이 어느정도인 지 볼까? 설마 저 정도 상대에 맥없이 꼬꾸라지는 건 아니겠지? "제가 도와드릴께요!" 아세트가 혼자 밖에 나간 유스타키오를 보고 소리쳤다. 그러나 유스타키 오는 고개를 저었다. "안에 있어요! 저 녀석들은 나 혼자 처리해도 충분하니까!" 자신있게 소리치는 유스타키오. 그럼 믿고 맡겨볼까? "꾸르륵 꾸르륵!" 다섯 마리의 오크들 중에서 유난히 긴 검을 들고 있는 오크가 돼지 울음 소리 비슷하게 울었다. 우습게도 난 그 울음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일제히 공격!" 그 오크의 말(?)대로 4마리의 오크가 일제히 유스타키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명령을 내렸던 오크는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저런 싸 가지없는 놈! 부하들을 부려먹어? "좋아, 와라! 이 오크놈들아!" 유스타키오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마주 달려갔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난 유스타키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한 오크의 도끼가 유스타키오의 허리를 베어들어왔고 유스타키오는 그 오 크보다 훨씬 빠른 속력으로 목을 베어버리고는 재빨리 오른쪽으로 몸을 피 했다. 유스타키오에 의해 잘린 오크의 머리가 목과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오크의 쇼트 소드(Short Sword)가 유스타키오의 가슴을 찔러들어갔다. 그 와 동시에 반대쪽에서는 오크가 도끼로 유스타키오의 등을 찍으려고 했다. 유스타키오는 찔러들어오는 쇼트 소드를 검으로 쳐낸 뒤 땅을 박차고 가 슴을 노렸던 오크의 얼굴에 왼주먹을 꽂았다. 유스타키오의 주먹에 맞은 오크가 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졌다. 그때 난 똑똑히 보았다. 유스타키오가 주먹을 내지를 때 그의 팔이 한번 틀어졌다가 목표물에 격중할 때 빠르게 회전했음을. 그리고 오크의 얼굴에 주먹이 닿자마자 주먹을 바로 회수했다 는 것도. 유스타키오가 땅을 박차고 앞에 있던 오크를 쓰러뜨리자 뒤에서 내리쳐지 던 도끼가 목표를 잃고 기우뚱 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스타키오는 주먹에 맞아 쓰러지려는 오크의 가슴을 딛고 몸을 돌려 도끼를 휘두르다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는 오크의 목을 내리쳤다.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솜씨였다. 그러나 유스타키오의 발이 채 땅에 닿기도 전에 오크의 검이 완전히 비 어있는 유스타키오의 오른쪽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검은 이미 휘둘렀 고 몸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유스타키오가 피한다는 것은 불 가능했다. 유스타키오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면서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 한순간이기 때문에 내가 도와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다. 난 반사적으로 유스타키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이하게도 유스타키오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예리함만이 빛나고 있을 뿐. 까앙--! 갑자기 들려온 기음(奇音). 그러나 그 소리가 내 귀에 도달하기 전에 난 보았다. 유스타키오가 허공에서 오크의 검을 걷어차 버린 것을.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2.용병 유스타키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32 게 시 일 :99/08/29 20:20:52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2 용병 유스타키오 -4- "타핫!" 허공에서 오크의 검을 걷어차버린 유스타키오는 왼발이 땅에 닿자마자 검 을 휘둘러 그 오크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말도 안돼..... 어떻게 저렇게 정확히 날아오는 검을 걷어찰 수 있냐고! 거의 순식간에 4마리의 오크를 처치한 유스타키오는 오크들의 피에 젖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옛날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어쭈? 대장 오크가 도망치려고 그러내? 누가 도망치게 놔둘 줄 알고? "노움! 저 녀석 다리 잡아!" 내 명령에 노움이 산길바닥에서 불쑥 나와 도망가려던 오크의 다리를 붙 잡았다. 놀란 오크가 들고 있던 검으로 노움의 머리를 마구 베었다. 그러 나 보통 검으로는 정령에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기 때문에 헛수고였다. 나의 외침소리에 유스타키오는 정신이 들었는지 노움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오크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힘차게 소리쳤다. "감히 혼자 도망치려고 하다니! 내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 유스타키오는 검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검에서 푸른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유스타키오는 푸른 빛이 감도는 검을 그 자리에서 오크를 향해 휘둘렀다. 뭐야? 저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휘두르면 어쩌겠다는 거 야? 저래 가지고는 오크를 어떻게 맞......! 슈웃---! 유스타키오의 검에 맺혀있던 푸른 빛들은 하나의 부메랑 모양을 형성하여 오크에게로 날아갔다. 저게 말로만 들었던 검기(劍氣)라는 것인가? 노움을 죽어라고 찌르고 있던 오크는 검기가 날아오자 멍한 표정을 지었 다. 검기가 날아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지만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꽤애애액---!" 검기에 가슴을 뚫린 오크는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질렀다. 이야.... 저 끔찍한 소리는 오랜만에 들어보는군. 한 7, 8년 되었나? 오크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노움의 머리를 적셨다. 푸핫~ 피를 뒤 집어쓴 맛이 어떠냐? 우킬킬킬. 노움은 사나운 시선으로 날 째려보았다. 난 미안하다는 뜻으로 손을 한번 흔들어준 뒤 노움을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노움에게 묻어있던 피가 철퍽철퍽 땅에 떨어졌다. 에... 왠만하면 피도 같이 정령계로 가야 하는데 .... 그래야 노움이 정령들에게 놀림감이 되지 않겠어? 우하하! 다섯 마리의 오크를 손쉽게 해치운 유스타키오는 검을 검집에 넣었다. 난 유스타키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오크들의 피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으 윽... 피냄새는 역시 역겹다니까..... 목이 잘리고 가슴이 뚫리고..... 그 런데 유스타키오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은 오크 녀석도 죽어버렸네? 주먹 한방에 오크를 저승으로 보내다니? 정말 굉장한 힘이다! "방금 유스가 보여준건 검기라는 거예요?" 내 질문에 유스타키오는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응. 검기에 대해 들었던 것 같구나. 별로 자랑할만한 수준은 아니야." 그렇게 겸손떨지 마쇼.... 누가 보더래도 놀란만한 수준인데. "유스, 보기보단 힘이 꽤 세내요. 주먹 한방에 오크를 황천길로 보낸 걸 보면." "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약간의 요령만 알면 되는 거야. 우선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팔을 한번 비틀어. 목표물을 향해 주먹을 날릴 때 비틀었 던 팔을 빠르게 회전시키면서 회전이 끝남과 동시에 목표물에 정확히 맞 출 수 있도록 해야해. 그러면 그냥 주먹을 내질렀을 때보다 힘이 더 증 가하게 되거든. 또, 목표물을 맞추자마자 주먹을 바로 회수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목표물은 더 강한 충격을 받게 돼. 난 그런 요령들을 알고 공격했기 때문에 오크를 주먹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었던 거야." 음, 그렇구나. 팔을 비틀었다가 내지르면 힘이 증가된다..... 이유는 모 르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맞추자마자 주먹을 회수한다.... 그 건 알지. 충격을 주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 수록 그 물체가 받는 힘은 더 증가하게 된다는 것! 예를 들어 야구에서 포수가 공을 잡을 때 손을 뒤로 빼서 잡으면 공의 힘이 훨씬 약해져 있지. 만약 투수가 던진 공을 바로 앞 에서 받는다면 손이 굉장히 아플걸? 그것과 마찬가지로 주먹으로 목표물을 맞추고 그대로 밀어버리면 목표물이 받는 충격은 감소하게 돼. 대신 맞추 자마자 주먹을 바로 회수하면 목표물이 받는 충격은 훨씬 증가하게 되고. 이해가 가냐? 이 해[年]가 가면 난 대학생이 되겠구나..... 억! 썰렁~! 내가 유스타키오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유스타키오는 놀란 표 정을 지었다. "너 내가 방금 했던 말들을 이해한거야?" "예." 분명한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용병 생활을 하면서 무수한 싸움 끝에 알아낸 것들이었는 데..... 그런 걸 너는 한번 듣고 이해하다니.... 게다가 넌 싸움을 많이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아.... 허망하다....." 헉! 그런 일로 허망하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럴 수도 있는거지! 그건 학 교에서 배웠으니까 알고 있는 건데 뭘. "모두들 괜찮아요?" 마차에서 내려선 아세트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그러나 오크들의 시체를 보고 즉시 고개를 돌렸다. 징그럽나봐.... 난 전혀 안 징그러운데. 역시 폭력물을 많이 봐서 이런 건 아주 평범하게 느껴진다. 심각해~ "우선 이 시체들부터 처리해야겠네요. 사라만다 소환!" 내 부름에 사라만다가 목없는 오크 시체 위에 나타났다. 유스타키오는 사 라만다를 보고 놀랬다. "니트, 너 정령 마법사였냐? 저거 정령 아니야?" "예. 불의 하급 정령인 사라만다라고 하는 거예요. 야, 사라만다! 이 시 체들을 불로 태워버려." 내 명령에 잠시 날 띠꺼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사라만다는 입에서 불을 뿜 어 오크 시체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살이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 가 코를 찔렀다. 난 즉시 바람의 정령 실프를 불러 그 냄새를 나무 숲으로 몰아넣었다. "니트, 사라만다와 실프는 본래 조금 작지 않냐? 저것들은 내가 전에 봤 던 정령들보다 훨씬 큰데?" "글쎄요. 커진 이유는 저도 잘 몰라요. 어쨌든 커지니까 정령들의 힘이 강해지더라구요. 정령들이 꼭 성장하는 것 같아요." 유스타키오는 내 말을 듣고 '그런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정령 들이 성장한다라..... 내가 말해놓고도 이상하다. 하지만 저렇게 커진 사 라만다와 실프를 보면 성장한 것도 같은데 뭘. 사라만다는 오크의 시체들을 말끔히 태워버렸다. 남은 건 검게 그을린 뼈 조각들 뿐이었다. 왠만하면 그 뼈들도 태우지 그러니 응? 그러나 사라만다는 더이상 불을 뿜지 않고 날 쳐다보기만 했다. 어쭈? 할 일 다했으니 돌려보내 달라는 거냐? 아주 소환주를 기어올라라, 기어올라! 난 사라만다를 정령계로 돌려보낸 뒤 실프를 시켜 오크들의 뼈를 길 밖으 로 치웠다. 음... 실프만 너무 부려먹는 것 같다..... 하지만 바람의 정령 이라 쓸 일이 많은 걸 어떡하나..... 미안하지만 계속 부려먹어야지..... 일을 다 마친 실프는 웃으면서 나한테 날아왔고 난 미안하다는 뜻으로 마 주 웃어 주었다. 그리고는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계속 남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내 마력이 계속 빠져나가서 말이야..... 하하.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3.새로운 동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33 게 시 일 :99/08/31 21:39:58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3 새로운 동료 -1- 오크들의 시체를 처리한 우리는 -내가 다 했지만- 곧장 다음 마을을 향해 마차를 타고 갔다. 마부는 기분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몰았다. 든든한 용병에다 나 같은 마법사도 있으니 안전함을 느끼는가 보다. 오후 4시쯤 되어서 우리는 '오비탈'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오비탈은 도 시 전체를 성으로 두른 곳이었는데 규모가 컸다. 큰 성문이 활짝 열려진 도시 입구에서는 무장을 한 병사들이 도시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살펴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형식적이었을 뿐 일일이 신원 확인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있었다. 저런 많은 사람들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려면 많은 병 사들이 필요할테니까. 어쨌든 우리도 별 어려움없이 도시 안에 들어갈 수 있겠군. 우리가 탄 마차는 성문 앞에 이르렀고 한 병사가 마차에 난 창틈으로 마 차 안을 살펴보고는 그냥 통과시켰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유유히 도시 안 으로 들어갔다. 여관을 찾기 위해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마부는 요금(?)을 받자 도시 안에 있는 마차 대기소로 갔다. 우리는 성문을 따라 길게 나 있는 대로를 따라 걸었다. 대로 양쪽에는 가게들이 진을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 하고 있었다. 야채 가게를 비롯하여 신발 가게, 생선 가게 등등.... 구경 만 한다고 해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가게들이 많았다. 특히 아세트는 그 가게들이 신기한지 계속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그 천진(?)한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내가 아세트처럼 저렇게 구경하면 난 틀림없이 촌 놈으로 낙인찍힐텐데..... 하여간 인물에 따라서 같은 행동이라도 다른 느 낌이 든다니까. 그런데.... 왜 여관이 안보이는겨? 가게들만 줄줄이 있고 여관이나 식당 같은데가 없잖아? 이런... 언제까지 걸어가야 하나.... 내가 그렇게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우리의 앞을 막아 섰다. 제일 먼저 본 것은 넓고 풍성한 검은 옷이었다. 저게 로브(Robe)라 는 건가? 그나저나 얼굴에 왠 검은 두건을 쓰고 있지? 얼굴 중에 보이는 부분은 눈밖에 없군. 게다가 손에도 검은 장갑을 꼈고.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것 같은데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왼손을 등 뒤에 올려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나이 먹은 노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분위 기 한번 굉장히 음침한 사람이구만. 그 검은 로브에 검은 두건을 뒤집어쓴 사람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점을 보고 싶지 않나?" 얼레? 할머니 목소리네? 그런데 왜 저렇게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있는 거 지? 드러나서는 안되는 얼굴인가? "죄송합니다만 저희는 여관을 먼저 찾아야 하기 때문에....." 유스타키오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 정체불명의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때 아세트가 불쑥 끼어들었다. "점이 뭐지요?" 아세트를 잠시 바라보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가르쳐주는 것이라네." "미래요?" "그래. 점을 보겠는가 아니면 그냥 가겠는가? 미래를 굳이 알 필요가 없 다고 생각하면 보지 말게나." 그러면서 할머니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아세트가 할머니를 불러 세우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니트, 점을 보는게 어때요? 점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요." 이런... 점을 보려면 돈을 내야하는데... 쓸데없이 돈만 낭비되잖아.... 하지만 아세트의 저 기대에 찬 얼굴을 무시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여려... 허걱! 바윗돌은 왜 들어?! 그 바윗돌로 날 쳐죽이려고?! "알았어요. 그럼 보도록 하죠." 내 대답에 아세트는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으...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아까워... 그렇죠 유스타키오? 얼레? 유스타키오도 은근히 점 보길 바랬었다는 표정이잖아? 이런이런.... 나쁜 미래에 대해 들으면 어쩌려고 저러는 거지? 나야 그런거엔 신경을 안쓰니까 상관없지만..... "그럼 따라들 오게나." 할머니는 작은 건물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건물은 전체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방들이 몇개 있었는데 1층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숙식 장소 같았다. 그 중에서 할머니는 2층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맨처음 들어갔을 때 본 것은 방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검은 천이었 다. 검은 천 앞에는 약간 작은 탁자가 놓여져 있었고 그 탁자 위엔 두 손 으로 감싸쥘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작은 수정 구슬이 은은한 핑크빛을 발하 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정 구슬을 받치고 있는 것은 작은 방석처럼 생긴 것이었다. 검은 천으로 가린 뒤쪽에는 무엇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할머니에 지 시에 따라 수정 구슬이 놓인 탁자 앞쪽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았다. 할머니 는 탁자에 앉더니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복채는 한사람당 5페리라네. 누가 먼저 보겠는가?" 5페리? 그 정도면 많은 건가 적은 건가? 아직도 페리라는 화폐 단위에 익 숙해지지 않아서 모르겠다...... "제가 먼저 보겠어요." 우리들 중에 아세트가 일어서며 말했다. 할머니는 맞은편에 앉으라고 손 짓했고 아세트는 할머니가 앉은 탁자 맞은편에 앉았다. 아세트가 앉자 할 머니는 수정 구슬에 두 손을 가까이대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여, 그대의 무한한 능력으로 앞에 앉아있는 자의 미래를 보여주소서." 얼레? 멘델레예프? 그 이름을 어디서 봤더라? 분명히 교과서였는데..... 으... 기억이 안나..... 어쨌건 분명 옛날 사람 이름인데 말이야. 그런데 저 할머니는 예언의 신인가 뭔가의 힘으로 점을 치는 모양인데? 사제인가? 아니면 무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도 같고..... 혹시 마녀? 할머니는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다가 아세트에게 말했다.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하고 있구먼. 음.... 엘프 아가씨는 꽤 어 려운 선택을 해야할 것이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전혀 바뀔 수도 있어." 아세트는 마치 중요한 것을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원... 저 정도의 예언이라면 나도 하겠다! 저런 애매모호한 예언을 하다니. 말을 마친 할머니는 수정 구슬에서 손을 떼었다. 아세트가 자리에서 일어 나 나와 유스타키오를 쳐다보았다. 난 유스타키오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유스 먼저 점 봐요." "그럴까?" 유스타키오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할머니 앞에 앉았다. 할머니는 유 스타키오를 잠시 들여다 보고는 이번에도 수정 구슬에 손을 가까이 대고 중얼거렸다. 얼마동안 수정 구슬을 내려다보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는 아내가 있구먼." "아, 예!" 유스타키오는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오... 아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맞 추다니.... 저 할머니 제법 하는데? 사기꾼 같지는 않아. "자네의 아내에게는 무엇인가 문제가 있군. 그 문제는 어쩌면 평생 해결 되지 않을 수도 있어." "네....." 아내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에 유스타키오는 굉장히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단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에.... 조 금 잘 맞추는 것 같다.... 왠만하면 그 문제가 뭔지도 말해주면 할머니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말이 너무 추상적 이라서 원.....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4.새로운 동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34 게 시 일 :99/08/31 21:40:30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3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4 새로운 동료 -2- 할머니는 다시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지도 모르겠군. 이상하구먼.... 기적이라면 신에 의한 것일텐데.... 그건 아니야.... 어쨌든 아내의 일은 크게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아...!" 유스타키오는 뭔가 희망이 생겼다는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는 수정 구슬 에서 눈을 거두어 들였고 유스타키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내 차례 네? 에... 난 굳이 점 같은 거 볼 필요없는데. 최악의 점괘가 나와도 상관 없지. 그냥 참고만 할테니까. 내가 앉자 할머니는 똑같이 말을 읊으며 수정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마 동안 말이 없었다. 지금쯤이면 점괘도 나왔을텐데?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는거지? 나뿐만 아니라 아세트와 유스타키오도 이상함을 느끼고 할머니를 바라보 았다. 할머니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군.... 어째서 앞일을 쉽게 보여주시지 않는 거지? 음... 기 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자네는 어떤 이유에 의해 이곳으로 흘러들어왔구 먼. 그리고.... 신변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앞일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내가 워낙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 한 사람이라서 그러나? 음... 그런데 '어떤 이유'를 가르쳐 줄 수는 없나? 난 그걸 알고 싶은데 말이야. 그리고 신변이 조금 위험해? 그거야 항상 그 런 것 아니겠어? 일전에 오크들을 만난 것도 신변이 조금 위험한 거였지. 할머니는 계속해서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을 두건으로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드러나 있는 눈은 조금 찌푸려져 있 었다. 참 오래도 끄는군. 아직 예언할 게 더 남아있나? 나도 모르게 하품을 하려는 순간, 할머니는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 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자.... 세상을 파괴할 지도 모르는 자.... 선과 악이 뒤엉켜 있는 자..... 도대체 이게....!" 그렇게 주절대듯이 중얼거렸던 할머니가 날카로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넌 누구냐? 인간에게 이런 점괘가 나올 리 없어!" 뭐야? 갑자기 왜 사납게 노려보냐구! 내가 지금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저 할머니 혹시 미친거 아니야? "전 인간입니다." 내 짧은 대답에 할머니는 항의하듯이 소리쳤다. "인간? 그렇다면 어째서 신이 너를 그렇게 거부하는 것이냐?!" ".....!" ".....!" 아세트와 유스타키오가 놀란 눈으로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니 그렇다고 느꼈다. 난 지금 그들을 등지고 앉아있기 때문에 아세트와 유스타키오의 행동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이 나를 거부한다고? 왜지? 내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기 때 문인가? 아니면 내가 본래 사악해서 그런가? 신이 나를 거부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네? 나야 신 같은 건 믿지 않으니까. "신이 저를 싫어하나보죠." 난 약간 쌀쌀한 어투로 답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신은 사사로운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아!" 거참 되게 꽥꽥거리네. 나 점점 기분 나빠지고 있수.... 조심하는게 좋을 껄?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신은 완벽하단 말입니까?" "물론이다!" "그럼 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정의와 평화가 아닌가!" 난 웃었다. 아니 비웃었다. 이 음침한 방안의 분위기... 그리고 꽥꽥대는 저 할머니.... 내 기분은 점점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나갈테다! "신이 바라는 것이 정의와 평화라면.... 어째서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들 의 범죄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입니까?" "그건..... 신에 대항하는 악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을 찾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었다. 난 주저없이 말을 내뱉었다. "신은 악마들을 제거할 수 없는 겁니까? 신은 그렇게 약합니까? 자신들에 게 대항하는 존재를 살려둘만큼? 정말 약해 빠진 놈들이군요." "다, 닥쳐라! 네가 무엇을 안다고! 악마는 그렇게 약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신은 인간들 스스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란 말이다!" ..... 할말이 없군. 그런데 내가 왜 저 할머니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감정에 치우쳐서 쓸데없는 말을 하고 말았군. 난 주머니에서 15페리를 꺼내 할머니에게 주었다. 날 막 노려보고 있던 할머니는 나의 행동에 잠시 주춤거렸다. 할머니가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자 나는 탁자 위에 돈을 놔두고 일어섰다. "인정하긴 싫지만 할머니 말씀을 반박할 말이 없네요. 그럼 전 그만 가볼 께요." 난 그대로 몸을 돌려 문쪽으로 향했다. 아세트와 유스타키오가 놀라 급히 날 따랐다. 우하하! 내가 꼭 일행의 리더가 된 듯한 기분인데? "잠깐, 젊은이!" 멍하니 앉아있던 할머니가 날 불러 세웠다. 내가 쳐다보자 할머니는 이상 한 물음을 던졌다. "자네는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얼레? 갑자기 왠 고차원적인 질문을? 난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하려다가 포기하고 말했다. "글쎄요... 뭐, 운명은 있고... 그 운명에서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다라 고 생각하는데요." "인간의 미래가 운명에 의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왜 살고 있는 건가?" 할머니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난 얘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아 몸 을 할머니 쪽으로 돌렸다. "그냥... 존재하고 있으니까 사는 거죠." ".... 그럼 질문을 바꾸지. 운명은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저만의 생각을 말하자면, 절대로 운명은 바꿀 수 없습니다." ".....!" 내 말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앞으로 걸어왔다. 허걱! 설마 날 때려 죽일려고?! "운명을 개척한 사람이 있을 텐데?" 휴... 다행이다. 난 할머니가 지팡이로 날 후려 갈기는 줄 알았어..... "전 운명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운명을 다르게 해석한다고? 어떻게 말인가?" "운명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요. 신조차도 모르는." "신조차 운명을 알 수 없다?" "제 말대로 운명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운명을 개척했다느니 하는 말은 성립이 안됩니다. 운명을 개척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운명 이니까요." "....." 할머니는 잠시 동안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도 질세라 뚫어져라 할머 니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날 쳐다보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운명이란 것을 굉장히 넓은 의미로 이해하는군. 보통 사람들은 운명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잖는가." "그렇죠. 보통 사람들은 운명을 시대적 상황에 따른 행동 양식이라고 생 각하죠. 그러니까 여성은 집에서 가사일만 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남자들의 일에 도전해서 성공한 것을 운명을 개척했다라고들 합니다. 전 그 여성의 그런 행동들이 모두 운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까지의 말을 정리한다면 운명은 신조차도 알 수 없고, 신들도 운명에 예 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특이한 생각이로군. 그럼 신들이 가르쳐주는 계시나 예언들은 무엇이라 고 설명할텐가?" "그건 신들이 그런 계시나 예언을 할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죠." 할머니는 내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는 할머니의 그것이 아니었다. 기분 탓인가.....? "자네의 말은 뭔가 모순이 있는 것 같군. 운명을 아무도 알 수 없다면 굳 이 운명 운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5.새로운 동료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54 게 시 일 :99/09/02 22:29:33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3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5 새로운 동료 -3-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래요. 운명을 아무도 알 수 없다라고 한다면 운명 운운한다는 것 자체 가 이상한 일이죠. 전 그냥 사는 겁니다. 제 운명을 모르니까요. 나 아 닌 다른 사람이 내 운명에 대해 알고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아무도 제 운명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 열심히 사는 겁니다. 제 운명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할머니는 날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자네의 표정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데?" 헉... 그건 운명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런게 아닌데. 대학 입시, 수능 시 험, 현재의 학교 교육.... 그런 것들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어서...... "뭐 전 삶에 대한 애착 같은게 없는 상태라...." "운명을 아무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럴 일이 있어서요....." 운명에 대한 것은 그냥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지금 내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은 앞서 말한 것들 때문인데.... 저 할머닌 내가 말했 던 것으로 연관시키려고 하네? 여기 있다간 머리 쪼개지겠다! 빨리빨리 사 라지는 게 상책! "그럼 전 가볼께요. 할머니가 쳐주신 점괘는 참고하죠." 난 몸을 돌려 문을 막 열려고 했다. 그때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따라가면 안될까요?" 아니, 할머니 왜 우릴 따라오겠다는.... 얼레? 이 목소린 할머니 목소리 가 아닌데?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 설마....! 난 즉시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건 유스타키오나 아세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쳐다보자 할머니는 두건을 벗었다. ".....!" ".....!" ".....!" 우리 셋은 모두 놀라 할말을 잃었다. 두건 속에 감춰져 있던 얼굴은 할머 니의 얼굴이 아니라 17세 정도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커트한 핑크빛 머리칼이 목덜미까지 내려온 모습이었는데 눈동자 도 머리색과 같은 핑크색이었다. 소녀는 빙긋 웃고는 입을 열었다. "놀라셨죠? 이게 제 본모습이랍니다." "그, 그럼 할머니 목소리는?" 유스타키오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더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렇다고 이상한 상상하지 말라고. 유스타키오가 저렇게 더듬는 이유는 너무나 당황 스럽기 때문이지 소녀에게 반해서 그런게 아니니까. 뭐, 저 소녀가 예쁘긴 하지만. "신력으로 제 목소리를 변화시킨 것이예요. 전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의 사제거든요. 이름은 '인티그랄 시그마'고요. 인티라고 부르세요." 신력으로 목소리를 변화시킬 수도 있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이름이 인티그랄 시그마? 인티그랄은 적분 기호고 시그마는 수열에서 합의 기호인 데.... 어떻게 이곳은 제대로 된 이름이 없지? 이곳은 그런 이름들이 정상 인가? "그런데 왜 할머니 흉내를 냈어요?" 내가 묻자 인티그랄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 "경어쓰지 마세요. 전 나이도 어린걸요. 그냥 편하게 말하세요." 그러더니 내 물음에 대한 답을 했다. "제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구요... 할머니 행세를 하는 이유는 제가 어리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이 업신여길까봐....." "혼자사는 거야?" "네. 부모님은 전쟁 때 모두 돌아가셨어요." 전쟁이라.... 이곳도 그렇게 평화스러운 곳은 아니군. 그나저나 혼자 살 아왔다니 굉장히 힘들었겠네. 나야 지금까지 편하게 살아왔지만. "여러분들을 따라가고 싶어요. 전 신력을 조금 다룰 줄 아니 약간의 도움 은 될 거예요." 인티그랄... 그냥 인티라고 해야겠다. 그게 더 여자 이름다우니까. 인티 는 간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유스타키오를 쳐다보았고 유스타키 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세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세트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 쳐다보았다. 모두 괜찮다는 뜻이로군. 나야 예쁜 여자와 같 이 가는 건데 싫을 이유가 없지. 키키키. "좋아. 같이 가지 뭐. 그런데 이 집은 어떡할거야?" "제가 알아서 할께요." 인티는 그렇게 말하며 방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던 검은 천을 걷어내었다. 그러자 침대 하나와 옷장 등이 드러났다. 방을 검은 천으로 나누고 한쪽은 작업실(?), 다른 한쪽은 침실로 사용했었군. 알뜰한 성격같다. 중요한 이 유는 돈이 없어서였을 테지만. 인티는 옷장 속에서 어깨에 멜 수 있는 손가방을 꺼냈다. 손가방 끈을 목 에 두르고 손가방을 오른쪽으로 두고는 탁자 위에 놓인 수정 구슬을 집어 들었다. 다시 두건을 뒤집어 쓴 인티는 우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는 어딘가로 뛰어갔다. 우리는 방밖으로 나와 인티를 기다렸다. 잠시 후,인티는 헐레벌떡 우리에 게로 뛰어왔다. "집주인에게 오늘 떠난다고 말하고 왔어요. 그동안 제가 모아둔 돈이 있 으니 앞으로 제 몫은 제가 내도록 할께요." 이런, 그럴 필요없는데. 글리콜 장로에게서 받은 보석이 있어서 괜찮다구 ... 물론 낭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지만. 그렇게 할머니인 줄 알았던 인티와 합류하게 된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와 여관을 찾아다녔다. 이 곳에서 두 달동안 살았다는 인티가 여관 있는 데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인티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 걸었다. 설마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는 아무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게 썰렁했던지 유스타키오가 인티에게 말을 걸었다. "인티, 왜 우리를 따라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야?" "그건... 니트 오빠 때문이예요." 야... 이름 한번 잘 외우네? 인티가 살던 건물에서 나올 때 서로 소개를 했었지만 한번에 세 명이 다 이름을 대서 헷갈릴텐데? 머리도 좋아..... 그런데 오빠라는 소리를 들으니까 묘하다. 중학생... 아니 그 이전도 그 랬던가? 어쨌든 오빠라는 소리를 들은지 엄청 오래되었으니.... 거의 집안 에 틀어박혀 지냈으니 사람들과의 접촉이 없어서 그랬지만. 그나저나 나 때문에 따라왔다니? 나한테 반했나? 푸하하..... 인티는 몸을 빙글 돌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지만 예쁜 모습이다. 검은 장갑을 벗은 손은 그동안 햇빛을 쏘이지 않 은 듯 유난히 하얗다. 뭐, 얼굴도 하얗지만. 그런데 왜 수정 구슬은 계속 들고 다니는 건지....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전 '매쓰'라는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어요." 매쓰(Math)... 수학.... 그래서 이름도 수학 기호였던 거야? "작지만 평화스러운 나라였죠. 전 어렸을 때부터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를 모셨지요. 그래서 15살때 사제가 될 수 있었어요. 하지만 1년전에 전쟁 이 났어요. 강대국이었던 에틱스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으로 왕권을 장악한 마르크스가 쳐들어온 것이지요. 전 멘델레예프가 전쟁의 승패를 예언해 주길 바랬답니다. 하지만 신은 아무런 예언도 해주지 않았어요. 결국 매쓰는 에틱스에 의해 멸망해버렸고 전 할머니로 위장해 겨우 포로 가 되는 걸 면하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떠돌아 다녔어요. 신의 힘을 사 용해 돈을 벌면서 말이예요...." 인티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그냥 아무말없이 듣기만 했다. "전 신에 대한 회의가 들었어요. 왜 신은 그때 아무런 계시를 주지 않았 을까 하고요. 그리고 신의 힘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도 그 힘을 빌 려주는 신을 이해할 수도 없었구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니트 오 빠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거예요." 마지막 말을 할때 인티는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대체 내 말이 뭐가 충 격이었다는 거야? 신을 모독한 것 밖에 더 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6.새로운 동료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55 게 시 일 :99/09/02 22:30:02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4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6 새로운 동료 -4- 인티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왜 악마를 제거하지 않는가.... 그것에 대한 물 음을 던진 사람은 없었어요. 하지만 니트 오빠는 주저없이 물었죠. 사실 그 물음에 대해 제가 대답한 건 제 생각일 뿐이예요. 신이 무엇을 원하 는지, 악마를 제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리고 .... 운명에 대한 니트 오빠의 생각.... 처음이었어요. 운명에 대해 그 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래서 결심했지요. 니트 오빠를 따라다니다 보 면 제가 원하는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서요." 에... 쑥스럽군. 답을 찾으려고 날 따라다닐 생각을 했다니.... 하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데? 난 진지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인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티, 네가 잘못 생각하는게 하나 있어." "네? 그게 뭔데요?" 인티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 이 얘길 할까말까? 하 면 또 길어질 거 같고 골치 아플텐데.... 이미 말은 꺼냈으니 해야겠군... "나를 따라다닌다고 네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 말이야. 아마 넌 평생 네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거야. 아니 없어. 아무도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올바른 답이란 존재하지 않거든." "올바른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구요?" "그래. 이것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것 그른 것은 없어. 있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운명 정도겠지. 인간들이 옳다라고 생 각하는 것은 모두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들이야. 예를 들어볼까?" 난 내 교복을 가리키며 인티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 색깔은 뭐지?" "음... 하얀색 바탕에 하늘색 줄무늬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하늘색 같아 요." "그래. 그럼 어두운 밤에 이 옷은 어떤 색일까?" "그거야.... 어두우니까 하얗게 보이지 않나요?" 이야... 그걸 알다니! 어두운 밤에는 색깔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검은 색과 흰색 밖에 보이지 않지. 난 생물Ⅱ 시간에 배워서야 알게 된 내용인 데 말이야. "잘 아는구나. 맞아, 하얗게만 보이지. 그럼 질문하나 할께. 본래 이 옷 색깔은 무엇일까?" "그거야 하늘색이죠." "그럴까? 왜 하늘색이라고 생각하지?" "그야 하늘색이니까 그렇죠." 인티는 자기가 대답해놓고도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살짝 웃 으며 말했다. "밤에는 하얗게 보이잖아. 그럼 이 옷은 본래 흰색이 아닐까?" "네?" "왜 꼭 낮에 보았던 그 색이 이 옷의 색깔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밤에 보 이는 색은 왜 그 본래의 색깔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그건....." 인티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하, 이거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꽤 재미있는데? "이 옷의 본래의 색이 하늘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빛이 있을 때를 기준으로 설정한거야. 만약 저 햇빛이 붉은 빛을 내게 된다면 이 옷의 색깔은 또 바뀌겠지. 결국 색은 인간들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설정 한 것에 불과해.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은 인간들 이 임의로 설정한 것들이지. 그래서 절대적으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은 없 는거야." 하... 이거 얘기가 딴 데로 샌 것 같아.... 완전 횡설수설이로군.... "내가 인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올바른 답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라 는 거야. 그냥 네 생각을 정리하면 되는 거지. 답을 얻지 못했다고 좌절 할 필요도 없고. 여행을 다니면서 네가 생각하는 올바른 것을 행동하면 돼. 그런데 이해가 가? 난 잘 말을 못해서 말이야...." "글쎄요.... 오빠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순 없지만... 뭔가 느껴지는 것은 있어요. 답을 구하기 보다는 저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그러면 마 음 편히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니트 오빠." 인티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으... 내가 말해놓고도 뭔 소린지 헷갈리는 데... 정말로 이해했을까? 아닌 것 같은데.... 나와 인티의 얘길 듣고만 있는 아세트와 유스타키오는 모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히히, 이런 이상한 소리를 들으니까 헷갈리는 모양이군. 이해하려고 했다간 머리 뽀개질걸? 그냥 흘려보내는 게 나을 거야.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스타키오가 날 쳐다보며 말했다. "니트, 너 방금 무슨 얘길 한거야? 이해하기가 힘든데?" "그냥 잊어버려요. 저도 헷갈리니까요. 빨리 여관을 잡고 쉬자구요. 인티 부탁해!" 난 대충 얼버무리고 인티를 바라보았다. 인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 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대로와 이어져 있는 어느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눈앞에 여관 하나가 잡혔다.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었구 나! 여관 이름은 '오늘밤에는....'이었다. 이거 이름이 너무 외설적인걸? 뭐? 내가 문제라구? 난 건전한 생각을 하는 청소년이라구.... 으흑! 식칼은 왜 들고들 그래? "방 2개 주시오." 유스타키오가 여관 주인에게 무게를 잡고 말했다. 여관 주인은 전혀 쫄지 않고 물었다. "이름이....?" "유스타키오." 여관 주인은 장부 비슷한 것에다 뭘 열심히 적더니 열쇠 두 개를 내밀며 말했다. "방은 2층에 있는 203, 204호실입니다. 선불로 하시겠습니까 후불로 하시 겠습니까?" "후불로 하지." "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오늘 저녁 8시에 1층으로 내려오시면 간단한 식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알겠소." 유스타키오는 짧게 답하고는 우리에게 올라가자고 손짓했다. 우리는 계단 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아직 6시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1층에는 사 람들이 거의 없었다. 모두들 나간 모양이야. 아니면 방에서 쉬고 있거나. 우리들은 2층으로 올라가서 방을 찾았다. 203호실과 204호실은 붙어 있었 다. 유스타키오는 아세트에게 204호실 열쇠를 주며 말했다. "아세트와 인티는 204호실을 쓰도록 해요. 나와 니트가 203호실을 쓸테니 까." 아세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받자 유스타키오는 203호실 문을 따고 안으로 침투(?)했다. 방에는 침대 두 개가 약간 떨어져서 놓여져 있었다. 방은 그다지 넓지 않았고 있는 것이라곤 탁자 하나와 옷장 하나가 전부였 다. 이 여관도 썰렁하군. 원래 이렇게 썰렁한가? 난 현관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우훗! 이 푹신푹신한 감촉! 자고 일어나면 허리 아프겠지만 푹신푹신하다..... 침대에서 뒹굴던 나는 유스타키오를 쳐다보았다. 유스타키오는 입고 있던 갑옷을 끌르고 있었다. 문득 심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난 침대에서 일어서 며 말했다. "전 잠깐 나갔다 올께요." "그래? 그럼 8시 되기 전에 들어와. 다함께 식사해야 하니까." "예." 그렇게 유스타키오의 허락을 맡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향했다. 시장이나 쏘다니다가 살만한 물건이 있으면 사야지. 없으면 그냥 구경하다 가 오면 되고. 하하하, 이거 괜히 마음이 들뜨는걸? 여관 밖으로 나온 나는 발가는 데로 향했다. 길을 잃어버려도 실프가 다 알아서 찾아줄 테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거든. 우하하, 역시 정령들은 여러 모로 쓸모가 많단 말이야. 정령 마법 배우기 정말 잘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7.의문의 흑기사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68 게 시 일 :99/09/04 20:42:16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2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7 의문의 흑기사 -1- 난 유유히 시장 거리를 거닐었다. 이 세계나 우리 나라의 시장 광경이나 모두 똑같군. 참 시끌벅적하다..... "아악! 잘못했어요! 그러니 제발....!" 얼레? 이게 왠 비명소리지? 목소리로 보면 예쁜 소녀의 비명은 아닌데? 난 비명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포장마차 비슷하게 생긴 이 동 수레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는 30대의 비교적 호리호리한 아줌마와 온몸이 온통 근육으로 뒤덮힌 무지막지하게 생긴 남자 3명이 내 시야에 들 어왔다. 주변에는 식기와 아줌마가 만든 듯한 음식이 여기저기에 널려져 있었고 아줌마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거 봐, 예쁜 아줌마. 우린 그렇게 한가한 분들이 아니라고. 여기서 안 전하게 일하는 것을 지켜주니까 어느 정도 보답을 해야지. 내일까지 50 페리를 준비하라구." "하지만 전 그런 많은 돈이 없는 걸요....." 아줌마의 눈물 어린 말에 깡패같은 그 남자는 화를 내며 손으로 수레 위 를 쓸어버렸다. 또다시 흩어지는 음식과 식기들. 와장창--! "아악! 그만해요! 내일까지 준비할께요!" 내동댕이쳐 깨져버리는 식기들을 보고 아줌마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깡 패들은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잘 생각했수다. 그럼 내일 50페리를 준비하쇼." 음... 저런 놈들이 이 세계에도 있다니. 한번 골려줘 볼까? "사라만다 소환." 난 정령어로 조용히 말했고 불의 하급 정령 사라만다가 깡패들과 얼마 떨 어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시장에 있던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 라만다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꺄악!" "으악! 몬스터다!" 사람들의 비명소리에 막 자리를 뜨려던 깡패들도 사라만다를 보게 되었 다. 사라만다는 곧장 깡패들에게 향했다. 그다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깡패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라만다를 멀뚱멀뚱 쳐다보기 만 했다. 쯧쯧~ 저런 둔한 녀석들...... 화아악---! 사라만다는 깡패들 앞에 이르자마자 불을 내뿜었다. 그제서야 깡패들은 기겁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들었다. "이런 개같은 몬스터가!" 아줌마의 식기를 날려보냈던 그 깡패가 날렵한 솜씨로 사라만다를 마구 찔렀다. 그러나 보통 검이라 전혀 통하지 않았다. 사라만다는 가볍게 그 녀석을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끄악! 뜨거---!" 사라만다의 불꽃에 휩싸인 그 깡패는 바닥을 마구 뒹굴며 소리쳤다. 난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사라만다를 조종하고 있었다. '사라만다, 가능하다면 저 녀석들을 죽여!' 내 마음속의 명령을 알아들었는지 사라만다는 점점 강한 불꽃을 내며 깡 패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물리력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깡패들은 속수무책으로 사라만다에게 당했다. 몸에 크고 작은 화상을 입은 세 깡패 들은 도저히 사라만다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꼴좋다!" "그러게! 지금까지 우리들이나 등쳐먹은 버러지같은 놈들!" "천벌이야!" 사람들은 무작정 도망치는 깡패들을 보고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난 사라 만다가 다른 사람들을 놀래주기 전에 급히 사라만다를 정령계로 보냈다. 사라만다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아줌마 는 흩어진 식기들을 보고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실프, 운디네. 저 아줌마를 도와줘." 내 명령에 실프와 운디네는 각각 바람과 물로 화하여 바닥에 흩어져 있는 식기들을 나르고 씻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식기들 이 제멋대로 하늘을 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깨지지 않은 식기들만 대충 정리한 실프와 운디네를 돌려 보내고, 난 그 아줌마에게로 갔다. 아줌마는 거의 넋나간 표정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식기 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돈을 집어넣은 녹색 주머니에서 30페리를 꺼내 아줌마 앞에 놓았다. 아이구 아까워라..... "아줌마, 얼마 안되지만 받으세요. 그 깡패들에 의한 손해 배상비라고 생 각하시면 되요. 그럼." 난 아줌마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서둘러 그 자리를 떳다. 우웃~ 쪽팔려. 바람처럼 사라져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 "저기, 잠깐만요!" 아줌마가 그제서야 상황을 눈치채고 날 불렀다. 그러나 난 이미 골목 속 으로 사라졌다. 우캬캬, 진작 골목으로 숨어들껄. 그러면 부르지도 못했을 것 아니야. 역시 난 바보인가? 난 아줌마가 혹시나 쫓아올까봐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완전 뒷골목이군. 이런데에 주로 깡패들의 소굴이 있을 텐데. 발견되는 즉시 마법으로 몽땅 날려버릴 꺼다, 으하하! 내가 좋은 일을 한건가? 깡패들을 소탕하지 않는 한 근원적인 해결은 어 려운데.... 괜히 깡패들 열받게 해서 앞으로의 수탈이 더 심해질 지도 모 르고..... 에잉, 난 몰라. 잊어버리자! 그런 생각들을 하며 무작정 걸어서인지 난 길을 잃어버렸다. 뜨아~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군. 뭐, 실프를 시키면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 내 스스로 한번 찾아가 볼까? 난 골목을 빠져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로가 있긴 했지만 시장은 아니 었다. 그냥 마차가 지나가기 위한 길인 것 같았다. 확실히 잘못 들어온 것 이다. 크... 역시 난 방향감각이 없어..... 길찾기를 포기한 나는 실프를 소환하려고 했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후, 드디어 찾았군." 얼레? 이 음침한 분위기는 뭐다냐? 전신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냉기.... 난 몸을 돌려 내 뒤쪽을 쳐다보았다. 내 뒤에는 완전 무장을 한 사람 하 나가 서 있었다. 검은 투구에 검은 갑옷, 특히 갑옷은 손가락 끝까지 뒤덮 고 있어서 피부는 물론이고 옷자락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 곤 붉은 빛이 어린 두 눈 뿐이었다. 흑기사라고 하면 딱 어울릴 것 같았 다. 그 흑기사의 오른손에는 검 한자루가 들려 있었는데 검신은 단순한 다 이아몬드형이었고 손잡이는 조금 화려했다. 특히 검신과 손잡이 가운데 부 분-그걸 가드라고 하나?-에 박혀 빛을 내고 있는 청록색의 보석이 인상적 이었다. 흑기사가 나에게 가까이 올수록 그 보석은 더 강한 빛을 뿜고 있 었다. "소년, 네가 붉은 구슬을 가지고 있지?" 얼레? 왠 붉은 구슬.... 아! 혹시 내 교복 속에 있는 구슬을 말하는 것 아닐까? 난 즉시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구슬을 꺼내들었다. 놀랍게도 그 붉 은 구슬은 찬란한 붉은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구슬을 본 흑기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이렇게 빨리 찾게 될 줄이야!" 그러더니 날 똑바로 쳐다보며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 "소년, 나에게 그 붉은 구슬을 넘겨라." 으... 무시무시한 분위기다.... 잘못하면 뼈도 못추릴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달라고 줄 인간이냐? 그렇게 말하면 더 안주지. 난 붉은 구슬을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다 집어넣었다. 그러자 흑기사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듯했다. 흑기사는 화를 참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좋은 말할 때 어서 내놓아라. 안 그러면 널 죽이겠다." "미안하지만 아저씨한테는 못주겠네요. 붉은 구슬은 내꺼니까요." 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도주할 준비를 했다. 참, 난 달리기를 못하 는데.... 100미터 뛰는데 18초나 걸린단 말이야.... 난 죽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8.의문의 흑기사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69 게 시 일 :99/09/04 20:42:40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3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8 의문의 흑기사 -2- 내가 도망칠 준비를 하자 흑기사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꼭 쓴맛을 봐야겠냐?!" 파앗--! 갑자기 흑기사가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엄청나게 빨라서 난 보 지도 못했다. 내가 느낀 것은 불에 대인 통증이었다. "아악!" 난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어깨가 너무나 아팠다. 어깨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팔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지만 뼈가 드 러날 정도로 큰 상처였다. 끄아.... 무지하게 아프다.....! "이제야 내가 너 정도는 가볍게 저승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느냐?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어서 그 붉은 구슬을 넘겨라." 난 통증에 눈물을 흘리며 흑기사를 노려보았다. 감히 내 어깨를 베? 절대 로 안 넘겨 줄테다! "사라만다, 공격해!" 난 즉시 사라만다를 소환했다. 사라만다는 소환되자마자 흑기사의 면상을 향해 불줄기를 내뿜었다. 흑기사는 놀라며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사라만다의 불꽃이 흑기사의 몸을 뒤덮었지만 흑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오히려 흑기사는 검을 들어 사라만다를 치려고 했다. 그의 검 에는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저건.... 검기?! 파악--! 흑기사의 검이 사라만다가 있던 자리를 내려쳤다. 그러나 흑기사의 검에 검기가 어린 것을 본 즉시 사라만다를 정령계로 돌려보냈기 때문에 흑기사 는 애꿎은 길바닥만 두쪽 내고 말았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사라만다를 죽 일 뻔했잖아? 정령들이 검기에 당하는 지 안 당하는 지는 확실히 모른다. 그러나 저 흑 기사가 사라만다에게 괜히 검기를 사용할 리 없다. 검기에 대해 잘 모르지 만 검기는 일종의 기운일 테니 사라만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키운 녀석인데 여기서 죽이냐? 본전 뽑을 때까지는 살려둬야 지~ 끄아.... 어깨 무지하게 아프다..... 어서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여, 나에게 공간의 길을 열어달라!" 난 최대한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이게 무슨 주문이냐고? 텔레포트의 주 문이야. 내가 외운, 얼마되지 않는 주문 중에 하나지. "엇! 그건 텔레포트?!" 흑기사는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리고는 검으로 냅다 날 내려쳤다. 그러나 그 전에 난 이미 사라졌다. 어깨의 통증만이 있는 걸로 봐서는 텔 레포트 도중 흑기사의 검에 맞지 않은 것 같다. 다행이군. 어쨌거나 도망 은 성공한 거니까. 하지만 텔레포트가 제대로 됐을려나? 공간이 마구 뒤틀리고 있는 곳을 빛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고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웃~ 정신없이 어지럽네.... 역시 처음 텔레포트 를 써서 그러나? 무사히 텔레포트에 성공한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침대, 옷장,사방으로 막힌 벽, 그리 고 천장.... 얼레? 이거 다른 여관으로 텔레포트한 것 같은데? 크윽.... 어깨가.....! "치유의 손이여, 그대의 힘으로 상처를 낫게 하라." 난 즉시 치유 마법을 어깨에 걸었다. 그러나 치유 마법을 건다고 상처가 금방 낫지는 않는다. 시간이 조금 걸리며,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어도 통 증은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치유 마법은 생명 활동을 일시적으로 높여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체력도 조금 소모된다. 치유 마법을 걸어주자 어깨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고 상처가 조금씩 아물 기 시작했다. 그러나 통증은 여전했다. 끄아... 너무 아프당..... 난 침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다.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사 과해야겠다. 지금은 어깨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 쏴아아--- "룰룰루~" 갑자기 내 귀에 물소리와 함께 왠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성으 로 보건대 여자였다. 그런데 이 물소리는....? 끼이--- 내가 앉아있는 곳에서 왼쪽 벽에 나 있는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물소리 가 나는 것으로 보아 화장실 아니면 목욕탕일 것이다. 난 주인을 확인해볼 생각으로 고개를 들어 문쪽을 쳐다보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20살이 채 못된 소녀의 나체였다..... 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소녀였는데 막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것 같았 다. 목욕탕에서 나온 소녀는 손에 들고 있던 큰 수건으로 몸을 가리려다가 날 발견했다. 그때 난 아무 생각없이 소녀의 나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깨의 통증 때문에 그런 것에 신경쓸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워.... 여자의 몸을 실제로 자세히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 "꺄아악--!" 날 발견한 소녀가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제서야 상황이 이상하 게 돌아감을 느꼈지만 방법이 없어서 난 그냥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붉은 머리의 소녀는 즉시 수건으로 몸을 감싸안고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당신 누구야?!" 어깨가 아파서 대답하기 귀찮아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옷이나 입어!" 난 침대에 그대로 드러누우며 벽쪽으로 몸을 돌렸다. 억... 이거 너무했 나? 갑자기 들어와서는 옷 입으라고 소리를 쳤으니..... 그런데 하필이면 소녀가 목욕하고 있는 방으로 텔레포트를 해버리다니.... 난 그냥 흑기사 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는데..... 사락-- 사락-- 옷 입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질였다. 말은 잘 듣네. 으아... 그 다음 일이 걱정되는구나..... "이봐! 당신!" 소녀가 옷을 다 입었는지 날 향해 소리쳤다. 난 어깨의 통증 때문에 천천 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어깨를 잡고 상체를 일으키자 소녀가 놀란 눈을 했다. "당신, 어깨 다친거야?" 이런, 보면 모르냐? 교복 찢어진 거 보면 몰라? 허걱! 그러고 보니 교복 이 찢어졌잖아? 만약 이 상태로 내 세계에 돌아가게 된다면 난 엄마한테 맞아 죽겠다..... 교복이 얼마 짜린데.... 소녀는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야, 나하고 거의 비슷한 나이같은데? 그런데 너 어떻게 이 방에 들어 온거야? 문 걸어 잠갔는데!" "텔레포트." 길게 대답하기 싫어서 난 짧게 답했다. 내 대답에 소녀는 놀란 표정을 지 었다. "텔레포트? 그럼 너 마법사야?" "그래...." "그런데 어쩌다가 어깨를 다친거야?" "그런 일이 있어.... 함부로 들어와서 미안해....." 난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소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너 내 몸 봤지?!" "......" 난 어떻게 대답할 줄 몰라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소녀는 발을 동동 구르 며 말했다. "절대 이 일을 다른 사람들한테 알리지 마! 알았지?!"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어깨의 통증이 가라앉자 나는 자 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보니 소녀의 키는 나보다 약간 컸다. 끄악! 어 째서 모두들 나보다 키가 크냔 말이야!!! 소녀는 활동하기 편한 셔츠와 갈색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몸에 물기가 묻 어 있었기 때문에 옷이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보기 민망하군..... "너 어디가는 거야?" "내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지." "동료? 동료가 있다면서 왜 혼자 다니는 거야?" "그렇게 됐어. 어쨌거나 내가 있으면 위험하니까 난 갈께." 난 소녀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문쪽으로 걸어갔다. 소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멍청히 서 있었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권강한! 푸하하! 빨리 이 자리를 뜨는 게 내 신상에 이롭겠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39.의문의 흑기사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85 게 시 일 :99/09/05 20:48:04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3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39 의문의 흑기사 -3- "크크크크...." 갑자기 문 밖에서 들려오는 음침한 웃음 소리. 그 웃음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재빨리 뒤로 몸을 피했다. 소녀가 갑작스런 내 행동에 어리둥절하여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물으려고 할 때 방문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갔다. 콰앙---! 약간 일어났던 먼지가 가라앉자 어떤 물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180이상 의 키를 지닌, 온몸을 검은 갑옷으로 가린 인간. 바로 만나자마자 붉은 구 슬을 내놓으라고 내 목숨을 위협했던 흑기사였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흑 기사를 노려보며 소녀가 소리쳤다. "당신은 또 누구지?!" 그러나 흑기사는 소녀를 완전히 무시하고는 날 쳐다보았다. "크크... 겨우 이곳으로밖에 도망치지 못했는가? 좋은 말할 때 어서 붉은 구슬을 내놓아라." "하나 물어보자. 너는 왜 내가 가지고 있는 붉은 구슬을 얻으려고 하지?" "넌 알 필요없다. 난 그냥 붉은 구슬을 회수하라는 임무를 맡았을 뿐!" 내 질문에 흑기사는 딱 잘라 말했다. 임무라구? 그럼 저 흑기사는 누구한 테 지시를 받아 붉은 구슬을 찾고 있었단 말이야? "자, 소년. 어서 붉은 구슬을 넘겨라. 더 손을 쓰기 전에." 흑기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소녀가 흑 기사에게 소리쳤다. "잠깐! 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는 모르겠지만, 방문을 부수 고 들어온 사람은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흑기사처럼 생긴 아저씨, 당장 나가는 게 좋을 거야." "크크... 맹랑한 녀석이군. 나를 나가게 해 보시지?" 흑기사는 명백한 비웃음을 흘리며 소녀를 무시했다. 그 말에 화가 난 듯 한 소녀는 갑자기 오른손으로 허공에다 대고 복잡한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 다. 신기하게도 허공에다 대고 막 이상한 도형을 그리는데 그 도형이 황금 색을 띠며 허공에 남아 있었다. 그것을 보고 흑기사가 놀라 소리쳤다. "헉! 그건 원진(圓陳) 마법?" 흑기사가 놀라는 사이, 소녀는 꽤 복잡한 도형을 빠른 속도로 그린 후에 그 마법원 한가운데를 손바닥으로 쳤다. "간다! 파이어 볼!" 그러자 마법원에서 비교적 큰 불덩어리가 튀어나오더니 흑기사에게로 날 아갔다. 흑기사는 손으로 얼굴, 정확히는 눈 부분을 가렸고, 소녀의 파이 어 볼이 흑기사의 몸에 격중했다. 파이어 볼을 날린 직후, 소녀는 다시 뒤 에다 이상한 도형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손길로 마법진을 완성한 소녀는 내 손을 잡더니 말했다. "어서 뛰어!" 얼레? 어디로 뛰란 말이야? 문 쪽에는 저 흑기사가 버티고 서 있는데. 내가 멍청히 서 있자 소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잡아 끌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놓치 않고 그대로 허공에다 그려놓은 마법진에 뛰어 들 었다. 허억! 너 지금 무슨 짓.....! "이 녀석들! 감히 도망을 치려고.....!" 흑기사는 분노 어린 목소리를 토해내며 우리 뒤를 쫓아 오려고 했다. 그 러나 나와 소녀가 마법진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마법진은 곧바로 사라졌 고 나는 텔레포트를 했을 때의 공간처럼 생긴 곳을 빠르게 지나갔다. 설마 소녀가 방금 그렸던 마법진이 텔레포트를 하기 위한 것?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약간의 어지 러움을 느끼며 주위를 살펴보니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이었다. 소녀 는 멍청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날 툭치며 말했다. "뭐해? 어서 뛰어! 그 흑기사한테 붙잡힐 생각이야?" 그러더니 자기 먼저 앞서 달리기 시작했다. 난 즉시 소녀의 뒤를 따라가 며 물었다. "너 그 흑기사 알아?" "아니." "그런데 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거야?" "그 흑기사의 갑옷에는 실드(Shield) 마법이 걸려 있어. 그래서 왠만한 마법은 그 자에게 안 통해. 그리고 한눈에 봐도 검술을 꽤 하는 것 같 고. 그러니 도망치는 수 밖에." 굉장하다. 그렇게 짧은 순간에 그런 것들을 다 파악하다니. 이 소녀도 보 통 소녀는 아니겠는걸? 나와 소녀는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뛰었다. 소녀의 달리는 속도는 나보다 훨씬 빨랐다. 내가 계속 뒤쳐지자 소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자가 그렇게 약해서야 어디다 써먹어?" 그래, 약해서 미안하다.... 에구 힘들어..... 한참을 달린 우리는 흑기사가 더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한숨을 돌 렸다. 이렇게 죽도록 뛰어보긴 처음이다.... 숨차라..... "내 이름은 아드레날린. 아린이라고 불러. 너는?" "후우... 니트." 음... 계속 니트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니트라는 말이 나오는군. 이러다가 내 본명을 까먹지 않을까? 그런데 이름이 아드레날린.... 크... 이 세계에서 이름에 신경쓰다간 머 리 뽀개지겠다..... 그냥 넘어가자..... "야, 니트!" ".....?" 내가 쳐다보자 아린은 내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네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 여관에 검을 놔두고 왔으니 네가 내 검 을 사줘야지." "에? 너 검을 갖고 다녀?" "물론이지! 난 마법검사니까!" 마법이라면 마법진을 그려서 하는 거? 난 그런 마법은 처음 보는데..... "네가 쓰는 것은 마법진을 이용하는 마법이야?" "그래. 원진 마법이란 건데 주문을 외울 필요가 없지. 마법진을 그림으로 써 마나를 변화시키니까." 아린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카르본의 많은 책들 중에서 원 진 마법을 다룬 책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마법론 번역하느라고 전혀 보 지 못해서 모르겠다. 어쨌든 원진 마법이란 것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 둬야 지. 음.... 우선 '오늘밤에는....'이란 여관을 찾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실프를 불러야 겠군. "실프 소환" 내가 실프를 소환하자 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정령 마법사였어?" "응. 실프, 이름이 '오늘밤에는....'이란 여관을 찾아줘." 난 실프에게 지시를 내렸고 실프는 곧 바람으로 화해서 사라졌다. 실프가 사라진 직후, 아린이 나에게 물었다. "니트, 너 몇 클래스까지 마스터했어?" "에... 마나 축적한 것만 따지면 4클래스." "그래? 나도 4클래스인데. 몇 년 동안 마법을 배웠어?" 헉! 아린이 4클래스라구? 이런... 그래도 난 같은 나이 또래의 마법사보 다 마나 축적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흑흑..... "한달...." 왠지 맥이 빠지는 것 같아서 난 힘없이 대답했다. '그렇구나'하는 표정을 짓던 아린이 갑자기 내 멱살을 움켜쥐더니 소리쳤다. "뭐? 한달? 너 거짓말 할래? 내가 4클래스를 마스터하는 데 3년이나 걸렸 단 말이야! 그런데 한달이라니?!" 억... 여자가 왜이리 힘이 세다냐.... 숨막혀.... "야, 이거 좀 놓고 말해! 숨막혀!" 내 외침에 아린은 급히 손을 풀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 몇 년 걸렸어?" 뭐야?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자기가 3년 걸렸다고 남도 그 정도의 시 간이 걸릴 줄 아나? 생각이 참 편협하군. "맘대로 생각해." 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뭔일인가 하여 계속 쳐다보았다. 아린이 내 뒤를 따라와서 뭐라 말하려고 할 때 실 프가 돌아왔다. 길거리를 지나가고 있던 사람들이 실프를 보고 감탄을 터 트렸다. 난 실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고, 아린은 뾰로통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날 따라왔다. 나와 아린은 입을 다문 채 실프의 뒤만 따랐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0.의문의 흑기사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86 게 시 일 :99/09/05 20:48:31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3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0 의문의 흑기사 -4- 그렇게 아무말없이 걷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네 동료들은 누구누구야?" 고개를 돌려 아린을 보니 아린의 표정은 '대답 안 하면 죽인다!'였기 때 문에 난 고분고분 대답했다. "우선 아세트라는 소녀 엘프가 있고, 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티라 는 소녀도 있어. 그리고 용병인 유스가 있지. 그렇게 3명이야." "용병... 유스?" 아린은 그렇게 말을 뇌까리다가 또 물었다. "그 용병이라는 사람.... 혹시 이름이 유스타키오 아니야?" 얼레? 유스타키오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가? 이런 말괄량이도 알고 있다 니? 유스타키오는 용병이라서 여기저기 많이 싸돌아 다녔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많겠지만..... "맞아." 내 대답에 아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붉은 전사' 유스타키오가 정말 네 동료야?" 붉은 전사? 그런 소리는 못 들었는데..... 뭐 머리카락이 붉은 색이니까 붉은 전사라고 불릴 수도 있겠군. 나중에 유스타키오에게 물어봐야 겠다. "붉은 전사라는 건 모르지만 어쨌든 이름은 분명히 유스타키오니까." "아....!" 아린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표정은 누 군가를 짝사랑할 때 짓는 것 같은데? 난 아린을 떠보기 위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유스타키오를 만나고 싶은 거야?" "물론이지!" ".... 왜 만나려고 하는데?" "당연히 사랑을 고백.... 아니, 그런 건 묻지마!" 아린은 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지만 난 이미 파악했다. 아린이 유스타키오 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어쩌나? 유스타키오는 이미 결혼했는 데.... 우하하! "아린, 너도 우리랑 센세에 가지 않을래?" "센세? 거긴 유스타키오님의 고향 아니야? 유스타키오님이 고향으로 돌아 간다고 그랬어?" "응. 형수님이 보고 싶다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거든." "그래? 형수님이.... 뭐? 형수님?!" 아린은 그제서야 내 말뜻을 알아듣고는 놀라 물었다. "유스타키오님이 결혼했단 말이야?!" "그래, 몰랐어?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는데." 예전에 유스타키오에게서 들은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이 천재성! 그 런데 5년이 맞을라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리..... "5, 5년씩이나....?" 아린은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홋! 재밌다!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 "모르고 있었구나. 뭐 나도 형수님은 처음 뵈러 가니까." 난 모르는 척 앞장 서서 걸어나갔다. 아린이 따라올려나? 유스타키오를 만나려고 따라오려고 했던 것일 텐데. 이제 유스타키오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굳이 따라올 이유도 없을 테니까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겠지? 우 하하, 그럼 아린의 검을 사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아린은 아무말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이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잖아? 검 한 자루 값이 날아가는구나.... 나와 아린은 실프의 뒤를 따라 무사히 동료들이 묵고 있는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 흑기사의 공격은 없었다. 그 놈의 흑기사만 생각하 면 왼쪽 어깨가 절로 아파온다니까. 사실 아직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지 만. 그나저나 찢어진 교복은 어떡한다냐..... 난 아린을 데리고 203호실 문 앞에 섰다. 평소 습관대로 무작정 들어가려 다가 문득 노크를 해야한다는 생각이 떠올라 생전 안 하던 노크를 했다. 똑똑똑-- "유스, 저 니트예요. 들어갈게요." 난 그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노크했나? 들어오라는 말을 듣기도 전에 들어왔으니..... 유스타키오는 가벼운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가 부시시 일어나며 입 을 열었다. "니트 왔냐? 응? 네 뒤에 있는 소녀는 누구야?" 내 뒤에 서 있는 아린을 보고 유스타키오가 물었다. 그러자 아린이 앞으 로 나서며 유스타키오에게 말했다. "전 아드레날린이예요. 아린이라고 부르세요.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소개한 아린은 유스타키오에게 바싹 다가가더니 물었다. "유스타키오님은... 정말로 결혼했어요?" ".....?" 느닷없는 질문에 유스타키오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질문을 알아들었는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5년 전에 팀파니하고 결혼했어.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 아니예요...." 아린은 힘없는 모습으로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팔팔하던 애가 저렇게 기 운없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조금 안쓰러운데? 우선 기분 전환이라도 시켜 줘야 겠어. "유스, 전 아린을 아세트와 인티에게 소개시키고 올게요." "응, 그래라. 엇.... 니트, 어깨 어떻게 된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유스타키오는 내 어깨에 난 상처를 보고 놀라 물었다. 이제야 알게 되다니 참 반응도 느려... 저 사람이 붉은 전사라니.... 붉은 전사보다는 붉은 악마가 어떨까? 유스타키오가 축구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모습...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전혀 알지도 못 하는 흑기사가 갑자기 공격하는 바람에 어깨를 조금 다 쳤어요." "흑기사?" 유스타키오의 반문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보통 흑기사가 아니예요. 온몸을 갑옷으로 철저히 가리고 있는데, 그 갑 옷에는 실드 마법이 걸려 있어요." "실드 마법이라... 그런데 그 흑기사는 니트를 왜 노리는 거야?" 저 질문에는 내가 대답해야 겠군. 아니, 내가 해야되는구나.... "제가 가지고 있는 붉은 구슬을 빼앗으려고요." "붉은 구슬?" 난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구슬을 꺼내 유스타키오에게 내밀었다. 유 스타키오는 붉은 구슬을 받아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 었다. "뭐 그리 특별한 구슬 같지는 않은데?" 음... 용병인 유스타키오도 알지 못하는 것이라.... 그런데 그 흑기사는 어떻게 붉은 구슬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지? 붉은 구슬은 내가 살았던 세 계에서 가져온 건데? 붉은 구슬과 이 세계로 내가 오게 된 것이 어떤 연관 관계를 갖고 있는 걸까? 내가 유스타키오에게서 붉은 구슬을 넘겨 받았을 때, 갑자기 붉은 구슬에 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난 놀라 붉은 구슬을 살펴보았다. 붉은 구슬은 전처럼 빛을 뿜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세기가 점점 커졌다. 이것은....! "그 흑기사가 오고 있어요! 흑기사가 가지고 있던 검과 이 구슬은 가까이 있으면 서로 반응해요!" 난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방안은 조용했기 때문에 크게 소 리칠 필요가 없었지만 흑기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크게 외치고 말았다. 아 린도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유스타키오를 쳐다보았다. 유스타키오는 잠시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음... 그 흑기사가 오고 있다면.... 기다리자. 도망쳐 봐야 어차피 계속 쫓아올 테고.... 그리고 왜 니트의 붉은 구슬을 노리고 있는 지도 알아 봐야 하니까. 모두 불청객을 맞을 준비를 하자고." 유스타키오는 그렇게 말하며 벗어놓았던 갑옷들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음 ... 그렇군. 기다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단지 우리가 그 흑기사의 상대 가 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겠지만. 유스타키오가 막 갑옷들을 모두 착용했을 때, 갑자기 방문이 거친 음을 내며 박살나 버렸다. 유스타키오는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고 침입자를 경 계했다. 그 침입자는 당연히 붉은 구슬을 노리는 그 흑기사였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1.의문의 흑기사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97 게 시 일 :99/09/07 22:28:48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2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1 의문의 흑기사 -5- 흑기사는 우리들을 죽 훑어 보더니 말했다. "날 기다린 모양이군. 그래, 검은 머리 소년. 이제 붉은 구슬을 순순히 넘겨줄 텐가?" "대답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난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붉은 구슬을 교복 바지 주머니 속에 넣 었다. 그러자 흑기사의 두 눈이 뒤틀렸다. 이제는 살려달라고 빌어도 살려 주지 않겠군. 흑기사가 음침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크... 그렇게도 죽고 싶나? 그럼 소원대로 죽여주지!" "다 큰 어른이 청소년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되지." 그의 말에 응한 건 유스타키오였다. 유스타키오의 말에 흑기사는 유스타 키오를 향해 파리 쫓듯이 검을 떨쳤다. 흑기사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뻗어 나오며 유스타키오를 노렸다. 유스타키오도 검에 검기를 일으키고는 흑기 사가 떨친 검기를 막아냈다. 파악--!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흑기사의 검기가 소멸되었다. 유스타키오가 자 신의 검기를 막아내자 흑기사는 그제서야 유스타키오를 경계했다. 유스타 키오는 왼손을 검신에 살짝 댄 채로 말했다.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야겠지? 그럼 밖으로 나가서 한 번 제대로 싸 워볼까?" "크크... 나도 그러고 싶지만 난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이 안에서 싸우 는 게 나에게는 유리하지. 반대로 너희에게는 불리하고. 여관이 부서지 면 수리비는 너희가 내야 하니까. 이런 좋은 조건을 내가 포기할 것 같 나?" ".... 넌 기사로서의 자존심도 없나?" "난 흑기사다. 기사도 같은 건 벗어 던진 지 오래됐어. 나에게는 강한 힘 만 있으면 되는 거다. 나에게 강한 힘을 주신 그 분을 위해서 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임무를 달성하겠다." 얼레? 그 분? 대부분의 악당들은 자신들의 두목을 흔히 '그 분'이라고들 하는데.... 그런 전형적인 인간을 만나게 되는군. 그나저나 그 분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강한 힘을 줬다는 거지? 흑기사는 친절하게도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을 말해 주었다. "이 검이 무엇인 줄 아나?" 유스타키오는 흑기사가 가슴까지 들어올린 검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스타키오가 고개를 갸웃하자 흑기사는 비웃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당연히 모르겠지. 이 검은 바로 세 가지의 성스러운 물건 가운데 하나인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이다!"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 리소좀은 가수 분해 효소를 내는 세포 내 기관인 데? 그게 힘과 파괴의 검이라구? 그럼 저 검 리소좀은 생명체를 막 소화시 켜서 흡수하나? 얼레? 유스타키오와 아린의 표정이 가관이네? 저렇게 놀란 표정들을 짓다 니. 도대체 리소좀이 어떤 물건이길래 저런 표정들을 짓는 거야?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던 유스타키오가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이라구? 전설 속에나 있다고 생각했던 검 이... 실제로 있었단 말이야?" "물론이다. 그리고 다른 두 개의 성스러운 물건도 존재한다. 카르본 컴파 운드에 있던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지혜의 마법서 티탄. 그 두 개의 성물(聖物)도 지금 우리의 수중에 있다. 크크.... 전설로만 알려져 왔던 삼성물(三聖物)이 우리 손에 있단 말이다!" 흑기사는 통쾌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크레졸, 티탄, 리소좀.... 그 게 세 개의 성스러운 물건이라구? 그런데... 왜 붉은 구슬을 노리는 거지? "이봐, 흑기사 아저씨. 그 삼성물을 모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내가 묻자 흑기사는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크크... 내가 그걸 말할 것 같으냐? 붉은 구슬은 우리의 대업에 없어서 는 안될 중요한 물건이다. 그러니 좋은 말할 때 어서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힘과 파괴의 검 아래 죽을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 뭐야? 검 아래 죽는 게 뭐가 영광이야? 구슬을 내줘도 증거 인멸을 위해 우리를 죽일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인간의 말을 내가 듣겠니? "크레졸을.... 당신들이 가지고 있다구요?" 갑자기 흑기사의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 바로 아세 트였다. 이런! 얌전히 방안에 있었어야지! 그러다가 흑기사에게 잡히면 어 쩌려고! 흑기사는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는데도 재빠른 동작으로 아세트의 입을 틀어 막았다. 아세트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흑기사에게 붙잡히고 말았 다. 아세트가 붙잡히는 것과 동시에 인티가 재빨리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흑기사는 인티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직 아세트만을 붙잡고 있었다. "비겁한 녀석! 여자를 인질로 삼아서 붉은 구슬을 요구할 생각이냐?!" 유스타키오의 외침에 흑기사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크크... 잘 아는군. 이 예쁜 엘프 소녀의 목이 꺽이기 전에 어서 구슬을 내놓거라." "읍....!" 아세트는 괴로운 표정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흑기사가 목에 검을 들이대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아세트의 눈은 무엇인가를 간절히 알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크레졸의 행방을 알았으니.... 여러 가지로 물어볼 것이 많겠 지.... 하지만 상대는 인정이라곤 발바닥에 때만큼도 없는 흑기사라구. 우리와 흑기사는 그렇게 얼마 동안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대치하 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아세트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을까? 기다리기가 지루해 졌는지 흑기사가 귀찮다는 어투로 말했다. "빨리 결정해라! 붉은 구슬을 넘길 지, 아니면 이 엘프 소녀를 죽일 지!" 유스타키오와 인티, 그리고 아린은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커억... 부담 스러워....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어떻게..... 난 붉은 구슬이 들어 있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마치 무 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 모두들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때다! 실프, 제발 내 부 름에 대답해줘! 저 흑기사의 눈에다 강한 바람을 날리는 거야! "무슨 일이냐, 소년? 어서 구슬을 넘겨라!" 실프! 제발.....! 슈악---! 갑자기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난 흑기사가 참지 못하고 날 향해 검을 날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검이 허공을 가르는 게 아니었 다. 실프가 흑기사의 눈을 향해 날카로운 바람을 쏘아보낸 소리였던 것이 다. "크윽!" 눈에 강한 충격을 받은 흑기사는 비틀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났다. 그 사이 아세트는 흑기사의 손에서 빠져나와 내 옆에 섰다. 푸하하, 성공 이다! 마음의 외침으로도 정령들을 소환할 수 있었던 거야! "원검술(圓劍術) 이검회결(二劍回訣)!" 유스타키오가 한발 앞으로 나가서 거의 원을 그리며 검을 비교적 크게 휘 둘렀다. 검이 위로 치켜올려질 때, 또 거의 한 바퀴를 돌아 내려올 때에 검기가 뻗어 나갔다. 두 줄기의 검기는 곧장 흑기사에게로 날아갔는데, 하 나는 아래로 볼록한 포물선을 그리며 흑기사의 왼쪽 겨드랑이를 노렸고,다른 하나는 위로 볼록한 포물선을 그리며 흑기사의 오른쪽 목덜미를 노렸 다. 흑기사는 갑작스런 실프의 공격으로 눈에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 문에 유스타키오의 검기를 피할 수 없었다. 두 줄기의 검기는 여지없이 흑 기사의 몸에 격중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2.의문의 흑기사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198 게 시 일 :99/09/07 22:29:13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2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2 의문의 흑기사 -6- 파악--! 팍--! 두 줄기의 검기는 흑기사의 갑옷에 닿자마자 폭발하듯 사라졌다. 검기가 흑기사의 갑옷을 뚫지 못 하자 유스타키오는 얼굴을 찌푸렸다. 큰일이군. 유스타키오조차 상대를 할 수 없다면 우린 여기서 끝이야.....! "크으... 갑자기 실프로 날 공격하다니....! 여기서 네 목숨을 끊어 주겠 다, 소년!" 흑기사는 화가 났는지 날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검기가 곧장 나 에게 날아왔다. 어헉! 너무 빠르다....! 파악! 흑기사의 검기를 막은 사람은 유스타키오였다. 우웃! 하마터면 저승으로 직행할 뻔했네. 저런 싸가지 없는 놈! 감히 날 공격해? 그때였다. 내 옆에 서 있던 인티가 중얼거렸다. "멘델레예프여 저에게 힘을....!" 인티의 수정 구슬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수정 구슬에서 강렬 한 빛이 쏟아져 나오며 그 빛들은 모두 흑기사에게 날아갔다. "크윽!" 인티의 공격에 흑기사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역시 신력은 다르다니까! 가능하다면 흑기사에게 큰 타격을 줬으면 하는데.... 이런.... 부시시 일 어나는군. 그다지 큰 타격은 아닌 모양이야. "크크... 사제까지 있었다니.... 붉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 소년과 붉은 머리의 용병, 그리고 엘프 소녀와 사제.... 게다가 원진 마법사.... 아 주 가지가지로군. 크크크...." 흑기사는 정말로 화가 났는지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거 왠지 엄 청난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분위기....! "좋아... 오늘은 그냥 물러나겠다. 하지만 너희들이 붉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 동안 우리의 공격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는 내 동료들을 데 리고 와 주지. 아주... 멋진 싸움이 될거야. 크크크....." 그렇게 말한 흑기사는 검을 검집에 넣더니 몸을 돌려 걸어 나가기 시작했 다. 얼레? 이렇게 쉽게 물러서다니? 정말 엄청난 일이 터졌네? 철컹철컹철컹--- 흑기사의 걷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내 귀를 울렸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여 관 주인이 올라오더니 비명을 질렀다. "끄악! 방문이....!" 에... 이건 우리가 한 게 아닌데... 결국 우리가 손해 배상을 해야 하나? 너무 억울.... 그 놈의 흑기사! 다음에는 목을 꺽어 버리겠어! 나는 여관 주인에게 수리비 명목으로 10페리를 지불했고, 또 205호실에서 묵기로 했다. 문없는 방에서 어떻게 자냐. 여자애들에게 겁탈을 당할 지도 모르는데. 우하하하하하! 그렇게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원진 마법사 아린은 우리를 따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바로 센세로 출발하기로 했다. 언제 흑기사가 공격해 올 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여관에서 나와 시장을 거닐었다. 유스타키오는 우리에게 알맞는 무기를 사준다면서 우리 를 무기점으로 데리고 갔다. 무기점은 비교적 컸다. 많은 무기들이 주욱 진열되어 있었다. 유스타키오 는 하하 웃으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아무 무기나 하나 고르라고. 오늘은 내가 다 사줄 테니까." 그러자 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제 무기는 니트가 사줄 거예요. 그치, 니트?" "으응... 그래."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 묵고 있었던 여관만 알아낸다 면 일은 간단하지만.... 난 그 여관이 어디 있는 지 모르고.... 또 아린도 여관 이름을 모른다고 했으니.... 왠지 새 검을 장만하기 위해 아린이 거 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아린은 휘파람을 불며 검이 진열되어 있는 쪽으로 가서 검을 살펴보기 시 작했다. 난 뭘 고르지? 음... 나도 검이나 사야겠다. 아, 그리고 난 지금 교복을 입고 있지 않다. 어제 흑기사 때문에 어깨 부분이 찢어져서.... 유 스타키오와 같이 옷가게에서 산 옷을 입고 있지. 유스타키오는 마법사답게 로브를 입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너무 풍성한 옷은 안 좋아 하거든. 그 래서 보통 사람들이 입는 평범한 옷으로 샀지. 갈색 긴팔 상의에 검은색 바지.... 너무 어두운 분위기인가? 뭐 어때, 누가 신경쓴다고..... "어때요, 유스! 이 검 저한테 잘 어울리지 않아요?" 아린이 검 한 자루를 들고 유스타키오에게 물었다. 얼레? 굉장히 가는 검 이네? 저거 혹시 레이피어(Rapier) 아니야? 저렇게 가는 검으로 어떻게 큰 검을 상대하려고? 유스타키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울린다고 했다. 유스타키오의 말 을 들은 아린은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 이 검으로 할꺼야. 괜찮지?" 윽... 괜찮지 않다라고 말하면 죽일 듯한 표정은 짓지 말고 그런 말을 해 라.... 그다지 가격은 높지 않은 검같다..... 아린이 검을 선택하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주인이 조금 간사해 보이는 표 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주 잘 선택하셨습니다. 정말 숙녀분께 딱 어울리는 군요!" .... 아주 아첨을 잘 하는군. 저 아린 입 찢어지는 것 봐라.... 저런 전 형적인 상술에 넘어가 버리다니.... 한심하군. 난 검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코너를 둘러보았다. 난 힘이 없으니까 우선 검은 어느 정도 가벼워야 되겠고.... 게다가 검을 전혀 못 쓰니.... 가드 부분은 넓어야지..... 후후. 난 눈에 띄는 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잡이 부분은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었지만 손잡이와 검신을 연결하는 가드 부분은 철로 되어 있었다. 가드 부분은 다른 검들에 비해 단순하면서도 큰 편이었다. 그리고 검신은 대략 70~ 80cm정도 되고 검폭은 비교적 넓었는데 특이하게 검신에 구멍을 숭숭 뚫어 놓아 무게가 굉장히 가벼웠다. 꽤 괜찮군. 그럼 이 검으로 할까? "뭐야, 너 그 괴상하게 생긴 검으로 할꺼야?" 아린이 내가 들고 있는 검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괴상하든 말든. 어차 피 거의 쓸 일도 없을 텐데 뭘. 그런데 왜 사냐구? 그야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백병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지.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나와 아린은 그렇게 검을 고르고 무기점을 나왔다. 내 검값은 유스타키오 가 대신 내주었고, 난 아린의 검값을 냈다. 아린의 레이피어는 10페리, 내 쇼트 소드는 7페리. 윽... 손해봤다. 인티와 아세트는 무기를 사지 않았다. 인티는 수정 구슬만 있으면 된다고 그랬고 아세트는 정령들이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어쨌든 이것으로 우리는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마차를 한 대 빌려 센세로 가기로 했다. 빌린 마차는 아톰에서 이곳으로 올 때 탔던 바로 그 마차였다. 마부는 우리를 보더니 굉장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아! 전에 오크들을 처리하셨던 분들이시군요. 마차를 빌리러 오셨습니까 ?" "네. 이번엔 케미컬의 국경 지대인 '콜로이드'까지 직행으로 가려고 합니 다. 지금 출발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유스타키오의 질문에 마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대답했다. "음... 쉬는 시간까지 합하면... 대략 10시간 정도 걸리겠는데요." "좋습니다. 그럼 도착 시간은 저녁 7시나 8시쯤이 되겠군요. 지금 출발하 도록 하죠." 억... 10시간? 그렇게 오래 마차를 타야 한다고? 10시간 동안 덜컹거리는 마차를 타고 난 다음 내리면 가만히 있어도 몸이 절로 덜컹거리는 느낌을 받는데. 버스 탈 때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그 마부의 마차를 빌려 타고 콜로이드라는 도시로 향했다. 장장 10시간에 걸친 대여정이 끝나고 우리는 무사히 콜로이드에 도착했다. 가는 동안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나 따분했기 때문에 덜컹거리 는 마차 안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연습장에 적어놓은 마법 주문을 외웠다. 아린은 마차 안에서 마법 수련을 하는 날 보고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원... 누가 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 마법 수련을 할 생각을 했겠어? 정말 따분해..... 제 목 :[사이케델리아] 43.센세로 가다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08 게 시 일 :99/09/09 22:47:35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7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3 센세로 가다 -1- 콜로이드 도시 안으로 들어간 우리들은 마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눈에 제일 먼저 띄는 여관을 잡고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끄아... 몸이 막 덜컹 거린다.... 누가 나 좀 말려줘~ 콜로이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는 다시 다른 마차를 빌려타고 센세로 출발했다. 마부는 바이올로어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뭐, 콜로이드 시는 주로 바이올로로 가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마부들이 바이올로어를 잘 하는 것은 기본이겠지. 센세로 가는 길은 비교적 평탄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탓인지 길이 잘 나있었기 때문이다. 길 양 옆으로는 키큰 나무들이 따뜻한 햇살에 반짝 이고 있다. 야... 이거 만화에서나 보던 장면 같은데? 정말 평온하군. "니트, 너 바이올로말 할 줄 알아?" 마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유스타키오가 물었다. "글쎄요, 한 번 바이올로말을 해 보세요." "그래? 그럼 한다. 니트 바보." 유스타키오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난 그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알아 들을 수 있었다. 아린과 아세트, 그리고 인티가 유스타키 오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쿡 하고 웃었다. 이런! 날 웃음 거리로 만들다니 .... 처절한 응징! 난 손가락을 빳빳이 세워 유스타키오의 몸을 마구 찔렀다. 유스타키오는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파트 아머(Part Armor)였기 때문에 빈틈은 많았다. "억! 그만해! 너 내 말 알아들은 거야?" "알아듣지 못했으면 이럴 것 같아요?" 유스타키오는 처절한 몸부림을 쳤지만 난 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우 하하,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유스타키오를 골려 보겠어? 화풀이다! 이정도면 됐다 싶을 때 난 공격을 멈췄다. 유스타키오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비겁한 녀석! 이런 얍삽한 공격을 하다니!" 난 유스타키오의 말을 무시하며 아세트에게 물었다. "아세트는 바이올로어를 할 줄 알아요?" "네. 카르본에서 인간의 언어를 배웠거든요. 바이올로어 뿐만 아니라 케 미컬어, 에틱스어, 그리고 올림포스어 등등.... 조금 알고 있어요." 윽... 도대체 몇 개 국어를 알고 있는 거야? 역시 엘프라 다르군. "그럼 인티는?" "전 바이올로어는 잘 못하지만 어느 정도 알아 들을 수는 있어요." "아린도 알아 듣는 거야?" "물론이지! 바이올로는 내 조국이라고!" 내 물음에 아린은 펄쩍 뛰며 말했다. 에... 그랬나? "모두 바이올로어를 알고 있다니 잘됐군!" 유스타키오는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바이올로어를 몰라서 고생할 일은 없겠어. 나에게 제노.... 뭐라고 하는 능력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약 4시간 정도를 달리자 큰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는 별 까다로운 절차 없이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는 곧장 유스타키오 의 집으로 향했다. 아하하하.... 이곳 센세의 사람들은 참 많이도 애완 동물을 기르는군. 개 를 비롯해서 고양이, 너구리, 스컹크, 여우, 사자..... 아예 동물원을 차 려라 차려! "유스, 센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동물을 많이 키워요?" "응? 그거야 동물을 사랑하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사자나 곰, 늑대같은 맹수들도 키우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 취미지 낸들 아니?" 유스타키오는 그런 걸 왜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하고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를 비롯한 3명의 여인들은 동물들의 날카로운 시선에 온몸 을 떨며 유스타키오를 따라갔다. 으.... 여긴 최악이야! 유스타키오는 이곳 센세에서 부유한 층에 속한다고 한다. 그의 아내인 팀 파니도 마찬가지로 부유층이고. 두 부유한 사람들이 결혼했으니 재산이 빵 빵하단다. 문제는 지금까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어때, 모두들? 집 넓지?" 유스타키오가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무심코 쳐다보던 나는 입을 크게 벌 릴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저기에 왠 성이 하나 있는 거야? 성 바깥은 푸 르게 조성된 정원.... 그 정원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담장.... 이거 크기만 해도 우리 학교의 10배 정도는 되겠는걸? "정말 저게 유스의 집이라구요?" 아린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유스타키오에게 물었다. 유스타키오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응. 내 아버지가 센세의 시장이거든." ".....!" 아버지가 시장이라구? 뜨아.... 정말 부럽다.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가지 고 있잖아?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유스타키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왜 저런 표 정을 짓고 있는 거지? 혹시 아버지가 비리를 저지르면서 재산을 모은건가? 아니면 이렇게 많은 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싫은 걸까? 우리는 유스타키오의 집 앞에 도달했다. 정문 앞에는 두 명의 무장된 병 사가 서 있었다. 두 병사들은 유스타키오를 보더니 황급히 앞으로 뛰어나 오며 소리쳤다. "유스타키오님! 다섯 달만에 돌아오셨군요!" "하하, 잘들 있었나?" 유스타키오는 병사들과 나란히 포옹하며 말했다. 병사들과도 친하게 노는 군. 전혀 위엄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어.... 역시 유스타키오는 용병이 어 울린다니까. "뒤에 계신 분들은 손님들이십니까?" 한 병사가 나와 3명의 여인들을 보고는 물었다. 유스타키오가 고개를 끄 덕이자 두 병사들은 우리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어서 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가시면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유스타키오는 빙그레 웃고는 우리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 은 마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 거대한 정문이 열리고 들어가니 내가 꼭 개선 장군이나 된 것처럼 흥분됐다. 아니, 솔직히 말하 면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이렇게 큰 정문은 별로란 말이야. 안으로 들어선 우리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 의 정원이었다. 정원 정말 넓군.... 축구장 5개는 거뜬히 만들고도 남겠 다. 정원 곳곳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직사각형 구조의 건물들이 여러 개 세워 져 있었는데 그곳을 병사들이 출입하는 것으로 봐서는 병사들의 주거지 같 았다. 우리가 정원에 나 있는 길을 따라 걷자 어디선가 병사 두 명이 튀어 나와 우리를 호위했다. 에... 전혀 그럴 필요 없는데.... 유스타키오란 든 든한 보디가드가 있잖아. 그리고 나도 왠만큼 하지. 킬킬. 대략 10여분 정도를 걷고 나서야 성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렇게 넓은 건물에 어떻게 자동차도 없냐? 적어도 말 같은 것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물론 나야 말은 저언~혀 못 타지만. 성문 앞에도 역시 병사 두 명이 서 있었다. 그들도 유스타키오를 알아보 고 깍듯이 대했다. 유스타키오가 있어서 인지 우리는 곧바로 성 안으로 들 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성 안의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대리석으로 쫙 깔린 복도를 지나서 어떤 방 앞에 도달했다. 유스타키오가 이 방은 자신의 아버지 마이스너 시 장이 외부인들을 접견할 때 쓰는 곳이라고 했다. 접견실 안에는 커다란 원형 탁자와 여러 개의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유 스타키오는 망설임없이 탁자에 앉았고 우리도 유스타키오를 따라 탁자에 둘러 앉았다. 에.... 이거 괜히 긴장되는걸? 난 이런 분위기 안 좋아 하는 데... 그냥 빨리빨리 끝내고 식사나 하자고. 점심도 안 먹고 콜로이드에서 직행으로 와서 배고프단 말이여..... 밥줘....!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4.센세로 가다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09 게 시 일 :99/09/09 22:47:58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8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4 센세로 가다 -2- 뚜벅뚜벅-- 조용한 접견실의 내부를 진동시키는 음향이 들려왔다. 곧이어 이어지는 병사의 외침소리. "마이스너 시장님께서 오셨습니다!" 그 말에 우리는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이스너 시장은 성큼성큼 걸 어와서 우리 앞에 섰다. 그때서야 난 마이스너 시장을 자세히 볼 수 있었 다. 우선 유스타키오의 아버지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비슷한 얼굴에다 가 붉은 장발이었다. 옷이 고급스러웠기 때문에 마이스너 시장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되 청렴결백하지도 않다라는 느낌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 그다 지 호감은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네들이 유스의 동료인가 보군. 자리에 앉게." 마이스너 시장의 손짓에 따라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마이스너 시장 은 우리를 죽 둘러본 뒤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 물음의 대부분은 누구 돈 많이 가진 사람 있느냐 였다. 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물어보는 것이 결국 모두 돈에 관한 것이었다. 마이스너 시장은 우리들 중 누구도 부유층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고 친근하게 대했 다.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라니깐. 속으로는 '이런 떨거지들이 유 스타키오의 동료라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유스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친척들에게 알렸으니 오늘 저녁 7시쯤에 모 두 도착할거네. 그때는 파티를 열 생각이니 빠짐없이 참석해 주면 고맙 겠구먼. 거기 누구 없느냐!" 마이스너 시장의 외침에 세 명의 시녀가 쪼르륵 달려왔다. 마이스너 시장 은 위엄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분들을 특실로 안내하거라." "네." 우리는 시녀들을 따라 접견실을 나왔고 유스타키오는 마이스너 시장과 같 이 남았다. 둘이 무슨 얘기를 주고 받을 모양이로군. 뭐, '저런 녀석들과 왜 쏘다니다 들어온 거냐'하는 비슷한 질문을 마이스너 시장이 하지 않을 까? 유스타키오는 '모두 좋은 녀석들이예요'란 식으로 대답하겠고. 부자지 간에 열심히들 논쟁을 벌여보라구. 그 사이에 난 배를 채워야겠어. 우리는 2층에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특실처럼 생긴 방은 모두 10개였 기 때문에 한 사람이 방 하나를 쓸 수 있었다. 난 문에 7이라는 숫자가 적 혀있는 방을 골랐다. 아세트와 아린, 인티도 자신들의 방을 선택했다. 시 녀들은 우리가 선택한 특실 번호를 잊어먹지 않게 잘 외우고는 점심 식사 를 가져온다고 하면서 총총히 사라졌다. 방안은 내 생각대로 고급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런... 이 가구들 에 흠집이라도 냈다간 엄청난 손해 배상을 해야할 것 같은데? 난 조심스럽게 침대에 드러누웠다. 으아... 불안해서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잖아? 처절하군. 차라리 싸구려 여관 침대가 훨씬 편하다..... 그렇게 내가 고급 가구들에 대한 적응을 하고 있을 때쯤 시녀 하나가 음 식을 가져왔다. 오홋! 드디어 점심을 먹겠구나! 음식은 탕수육과 비슷했다. 내가 열심히 요리를 먹고 있는 동안 시녀는 저만큼 물러서서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먹고 싶다' 라는 팻말을 붙여놓은 채 시녀는 시선을 최대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 썼다. 젊은 시녀라 그런지 아직 표정 관리에 익숙하지 않은가 보군. "이리와서 같이 먹어요." 난 시녀를 불렀다. 내 말에 시녀는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예요...." "얼굴에 배고프다고 써 있는데요 뭘. 내가 다 먹기 전에 와서 먹어요." 시녀는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내 옆에 와서 앉았다. 포크와 나이프가 여분으로 하나 더 준비되어 있었기 때 문에 시녀는 그것을 썼다. 나와 시녀는 맛있게 요리를 먹었다. 식사를 다 끝내고 시녀가 그릇을 들고 나갔을 때 유스타키오가 찾아왔다. 유스타키오는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한 질문들 때문에 화 많이 났지?" "아니요. 그거야 어른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들이니까요." "그렇게 이해해주니 고맙다. 그나저나 팀파니를 만나러 가자." "형수님이요?" "그래. 센세에 가면 팀파니의 상태를 살펴봐 준다고 했잖아. 설마 그 약 속 잊어 버린 것은 아니겠지?" 유스타키오는 갑자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에게는 하나도 위 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유스타키오가 그런 표정을 짓자 웃겼다. 그런데 .... 내가 형수님의 상태를 살펴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알았어요. 하지만 큰 기대는 걸지 마세요." "그래그래, 빨리 가보자." 유스타키오는 날 재촉했다. 난 들고 왔던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유스타키오가 내 연습장을 보고 물었다. "아직도 다 외우지 못한거야?" "이거 다 외우면 천재죠. 전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요."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못미더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그런 표정 지 으면 그냥 가버린다!!! 유스타키오는 아세트, 아린, 인티도 불러내었다. 그렇게 우리 5명은 팀파 니가 있다는 3층으로 향했다. 3층은 2층보다 더 호화스러웠다. 유스타키오 의 말로는 3층에 가족들이 산다고 한다. 음... 확실히 엄청나게 호화로운 삶을 사는 가족들이로군. 유스타키오는 새와 나무의 문양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문 앞에 다가 가서 노크를 했다. 똑똑똑-- "팀파니, 나야 유스. 내 동료들을 데려왔어." 유스타키오의 말에 방안에서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요, 유스." .... 목소리가 장난 아니게 곱네? 얼굴은 어떨까? 갑자기 궁금해 진다... 끼이--- 유스타키오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방안 은 역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단지 장식들이 보석들이나 비싼 가구 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린 그림이나 화분에 심어져 있는 나무와 꽃 들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이 성의 여느 방과는 달랐다. "어서들 오세요." 유스타키오의 아내인 팀파니가 우리 앞에 서서 말했다. 팀파니의 얼굴을 본 우리는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못 생겨서 그런게 아니라.... 꾀꼬리 같은 목소리와 이미지가 너무 딱 들어맞아서 말이야.... 팀파니는 굉장히 청초한 느낌이 들어.... 갑자기 유스타키오가 부러워 진다..... "하하, 니트 어때? 팀파니 예쁘지?" 유스타키오가 장난 섞인 물음을 던졌고 난 최대한 능청스럽게 굴려고 노 력했다. "형수님은 정말 아름다워요. 유스에게는 과분할 정돈데요?" 억... 내가 이런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다니.... 얼굴이 다 화끈거리려고 하네. 내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로 인해 방안의 분위기는 굉장히 화 기애애해 졌다. 오... 나에게 분위기 메이커로서의 능력이 있었다니.... 새로운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큰 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팀파니는 우리에게 차례로 질문을 던졌다. "도련님은 고향이 어디예요?" 허걱... 도련님.... 이거 듣기 거북한데? "편하게 니트라고 부르세요." "그럼 도련님도 절 팀파니라 불러요." 에... 그래야 되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알았어요. 그럼 앞으로 팀파니라 부를께요. 괜찮죠?" 난 모두를 보며 물었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팀파니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전 다른 세계에서 이리로 넘어오게 됐어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5.센세로 가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19 게 시 일 :99/09/11 20:17:47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7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5 센세로 가다 -3- "다른 세계에서....?" 팀파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또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린 과 인티도 크게 놀랬다. 팀파니가 또다시 물음을 던졌다. "부모님들은 그 세계에 계시나요?" "네." "안됐군요....." 팀파니는 날 가련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난 전혀 안 되지 않았는데. 내 가 워낙 불효자이기 때문에 엄마, 아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그러 고 보니 내가 사라진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군. 난 실종처리 됐겠지? 엄 마, 아빠는 날 찾으려고 신문 광고를 내고 있을 지도 모르고. 푸하하, 골 치 아프다, 잊어 버리자. 눈물마저 글썽이던 팀파니는 또 나에게 질문했다. "니트는 마법사인가요?" "네. 정령들도 다루고 있어요." 내 말에 팀파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엔 아세트에게 질문했다. "아세트는 카르본에서 왔다고 그랬죠?" 아세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파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엘프분은 처음 만나요. 아세트는 어떤 일 때문에 여행을 하고 있겠죠? 꼭 그 일을 잘 해결했으면 좋겠어요." 아세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흑기사에게 크레졸의 행방을 들은 후 줄곧 저런 표정이다. 기운을 차려야 할텐데..... "인티라고 했지요? 사제라고 들었는데?" 팀파니의 질문에 인티가 답했다. "네. 전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를 모시고 있어요." "고향은.....?" "이미 멸망하고 없어요. 에틱스에게 점령당했거든요." 인티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보기에도 즐거운 웃음은 아니었다. 팀파 니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며 인티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금방 눈길을 거두고 아린에게 질문했다. "아린은 바이올로가 조국이라고 했죠?" "네! '호르몬'이라는 큰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저는 15살 때 유스타키오 처럼 훌륭한 용병이 되고 싶어서 용병일을 시작했지요. 그래서 용병계에 선 '붉은 소녀 전사'라고 알려져 있어요. 전 검술 뿐만 아니라 원진 마 법도 쓴답니다." 아린은 전혀 묻지 않은 내용을 술술 말했다. 자기 자랑을 엄청 하고 싶었 나 보군. '붉은 소녀 전사'가 아니라 '말괄량이 소녀 전사' 같은데? 아린의 약간 오버하는 대답에 팀파니는 미소를 지었다. 아린의 영향이 컸 던지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활기에 찼다. 아린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 해 저렇게 오버했을까? 하늘에 맹세컨대 절대 아니다! 대강 모두의 소개가 끝난 후, 유스타키오가 입을 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일에 들어가자구. 니트, 준비됐지?" "예, 얼마든지." "좋아, 그럼 저기로 가자." 유스타키오는 침대를 가리켰다. 우리는 모두 일어나 침대 쪽으로 걸어갔 다. 침대는 두 사람이 충분히 누워 잘 수 있는 정도였다. 당연히 그 정도 의 크기여야 겠지만. 그래야 그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 으흐흐..... 팀파니가 침대 가운데에 앉았고 난 팀파니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른 사람 들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았다. 모두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날 보고 있 었다. 이런... 난 구경거리가 아닌데. 난 연습장을 펼쳐 투시 마법 주문을 찾았다. 그런 날 보고 아린이 한심하 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가 마법 주문도 외우지 않고 있다니.... 너 마법사 맞아?" 뭣하러 무식하게 주문을 외우냐. 마법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마나 축적이라고. 아무리 많은 주문을 알아도 마력이 부족하면 헛일이잖아. 난 코아세르 베이트의 투시 마법 주문을 찾아서 외웠다. 전에 한 번 써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외우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주문을 완전히 외우고 나서 연습장을 덮었다. "이제 시작합니다. 팀파니는 그냥 그렇게 앉아 있으면 돼요." 팀파니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정신을 집중하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볼 수 없는 것이여, 어두움의 그늘이여. 이제 그 안개를 걷고 그늘을 지우라. 차가운 밤안개의 어두움 속에 그대의 모습 을 나에게 보이라." 주문을 완성하고 팀파니의 가슴 아래를 쳐다보았다. 난 교과서에서 보았 던 여성의 생식 기관 구조를 떠올리며 시력을 돋우었다. 가장 먼저 난소로 생각되어지는 것이 보였다. 헉... 마력이 마구 빠져 나간다.... 빨리 원인 을 찾아내야 겠는걸? 난 난소의 윗부분을 쳐다보았다. 난소에서 배란된 난자가 이동하는 통로 인 수란관이 보였다. 수란관을 살펴보던 나는 쉽게 팀파니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수란관에는 이미 배란된 난자가 수란관 쪽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소와 맞닿아 있는 수란관 입구가 완전히 막혀 있었다. 반대편 수란관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수란관 입구가 막혀 있기 때문에 난 자가 정자와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난 마법을 거두고 잠시 심호흡을 했다. 수란관이 양쪽 다 막혀 있다니... 그런 일도 있나? 어쨌거나 난자는 제대로 배란이 되는 것 같은데..... 결 국 수정을 시키려면 수란관을 뚫는 수 밖에 없군.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특히 이 시대의 의술로? "음... 대충 원인은 알아냈는데....." "그래? 원인이 뭔데?" 유스타키오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난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이다가 먼저 유스타키오에게 질문했다. "정자와 난자에 대해 알고 있어요?" "정자와 난자? 그게 뭔데? 사람 이름이야?" 컥... 역시 모르는군. 이런.... 모두들 그게 뭐냐는 표정이잖아? 이래 가 지고 무슨 설명이 되겠어? 뜨아... 골치 아파온다..... "우선은 아이를 가지지 못한 원인은 묻지 마세요.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요. 그리고 사실 설명하기도 힘들어요." "응... 그래....."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실망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 진 내 말을 듣더니 그 표정을 싹 바꾸었다. "오늘 저녁에 치료... 치료라고 할께요. 치료에 들어갑니다. 치료 장소는 바로 이 방입니다. 한... 7시쯤에 치료를 시작하죠." "고맙다, 니트!" 유스타키오는 날 얼싸 안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우악! 나 죽어! 뭔 힘 이 이렇게 센 거야? 날 죽여라, 죽여! 내가 간신히 유스타키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을 때 생각에 잠겨 있던 팀 파니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7시는 안 될 거예요. 유스가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파티가 있 으니까요. 그 이전 시간으로 하면 안 될까요?" "그런가요? 그럼... 5시쯤으로 하죠." 난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들 날 따라 일어섰다. 허걱. ... 왜 모두들 날 따라하는겨? 이러고 보니 내가 꼭 주인 같잖아. "그럼 전 먼저 갈게요. 마법 수련을 좀 해야 겠어요." "그래. 너만 믿는다, 니트!" 유스타키오는 절대적으로 날 믿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물론 유스타 키오가 일부러 저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워. 치료가 실패하면 유스타키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 난 모두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투시 마법을 써서 약간 피곤했지만 자세를 바로하고 명상에 잠기자 피로는 곧 사라졌다. 어느 정도 피로가 풀리자 나는 마법 수련에 들어갔다. 마나 축 적을 하면서 치료 방법을 생각했다. 본래 마나 축적할 때는 아무런 생각도 해서는 안 되지만 난 지금 거의 본능적으로 마나 축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그다지 큰 영향은 없다. 역시 한 달 동안 죽어라고 마나 축적만 했더니 거의 달인의 경지까지 이른 것 같아.....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6.센세로 가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20 게 시 일 :99/09/11 20:18:22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8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6 센세로 가다 -4- 뎅뎅뎅뎅뎅-- 저녁 5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난 마음을 가다듬고는 팀파니의 방으로 찾아갔다. 방안에는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를 비롯하여 아 세트, 인티, 아린이 앉아 있었다. 허걱... 내가 제일 늦었잖아? "벌써들 나와 계셨네요. 그럼... 치료를 시작할게요." 난 침대로 걸어가 팀파니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역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고 나를 쳐다보았다. 으... 괜히 긴장되네? 이러면 안 되지... 정신차리자.....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볼 수 없는 것이여, 어두움의 그늘이여. 이제 그 안개를 걷고 그늘을 지우라. 차가운 밤안개의 어두움 속에 그대의 모습 을 나에게 보이라." 난 투시 마법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완성되고 팀파니의 수란관을 찾아서 살펴보았다. 막힌 수란관 입구에 난자 하나가 머물러 있었다. 난자는 인간 의 세포 중에서 가장 부피가 크다. 맞나? 난 그렇게 배웠는데.... 어쨌거 나 가장 커봤자 크기는 0.2mm도 채 안 된다. 너무 작어.... 난자를 보는데 만도 굉장한 마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난 팀파니에게 그렇게 말하고 팀파니의 난소가 있는 쪽에 왼쪽 집게 손가 락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통해 마나를 전송하였다. 지금 뭐하 려고 하냐구? 후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하려고 그런다. 마나가 난자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순간, 난 주문을 외웠다.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여, 다른 이에게 공간의 문을 열어달라." 텔레포트의 주문이 완성되고 난자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주 잠시 후 난자는 다시 수란관 상단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후...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 난 난자를 텔레포트 시켰다구. 푸하하, 난자를 텔레 포트... 아니 작은 세포 하나를 텔레포트 시킨 마법사는 이 세계에서 나 밖에 없을 거다. 역시 난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이야! 무사히 난자를 텔레포트 시킨 나는 마법을 거두어 들였다. 수란관 상단부 에 난자를 놔 뒀으니 이제 정자만 오면 되지. 이제 남은 것은 유스타키오 와 팀파니의 뜨거운..... 으흐흐흐흐..... "제 할 일은 다 끝났어요. 이제부터는 유스타키오에게 달려 있으니까 잘 해봐요." "응? 나한테 달려 있다니?" 유스타키오는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이런.... 내가 꼭 말 을 해줘야 되겠냐..... 난 유스타키오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뜨거운 사랑을 나눠야죠." "아... 그거였어? 그렇다면 문제없지!" 내 말에 유스타키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왜 저런 자 신감에 찬 표정을 짓는거야? 흑흑.... 유스타키오가 부러워..... "야, 니트. 도대체 어떤 일을 한거야? 전혀 달라진 점이 없잖아?" 아린이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난 친절히(?) 설명했다. "결과는 2개월이나 3개월 후에 나타날거야. 그러니 더 이상 묻지마." "흥! 너 아무 것도 못해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맘대로 생각해라." 난 그렇게 성의없이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마력이 3클래 스나 소모됐잖아..... 이제부터라도 마나 축적을 해야겠다. 마법 하나 쓰 고 나면 남는 마력이 없어.... "조금 피곤해서 쉬어야 겠어요." 내 말에 유스타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7시에는 파티가 있으니까 자면 안 된다." "예, 그럼 가볼께요." 난 빨리 쉬고 싶어서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누가 날 부 를세라 뛰듯이 내 방으로 향했다. 내 방에 도착한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픽 쓰러졌다. 끄아... 요즘 들어 마법 수련을 게을리 했더니 마 법을 약간 썼는데도 많이 지친다.... 이런이런.... ....... 똑똑똑--- "니트님, 니트님!"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날 불렀다. 한창 달콤한 잠에 젖어 있던 난 대답하 기 귀찮아서 무시했다. 그러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들어 와 내 가까이에서 소리를 빽 질렀다. "지금 7시 10분전이예요! 곧 파티가 시작한다구요! 그러니 어서 이 옷으 로 갈아입고 4층에 있는 홀로 나오세요!" 으윽! 남 잘 자고 있는데 왜 깨워.... 잠 좀 자자..... 난 눈을 비비며 부시시 일어났다. 목소리를 들어보아 점심 때 같이 식사 를 했던 그 시녀였다. 시녀는 나에게 옷을 내밀었고 난 두말없이 옷을 받 았다. 아함.... 옷 촉감은 좋군..... 뜨아아아.... 졸려라. "운디네, 내 얼굴 좀 차가운 물로 씻어줘." 소환된 운디네는 물로 화하여 내 얼굴을 뒤덮었다. 읏... 차거.... 정신 이 번쩍 드는군! 그렇게 정신을 차린 나는 받은 옷을 살펴보았다. 억... 뭐야? 바지가 왜 이래? 이거 완전히 쫄바지 아니야? 난 쫄바지를 싫어 한다고! 나 같이 빼 빼 마른 인간이 이런 거 입으면 최악이야. 어느 정도 몸매가 되는 인간들 이 입어야지.... 난 옛날(?)에 유행했던 힙합 바지 쪽이 더 좋다고.... 난 옷을 도로 시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난 그냥 이 옷 입고 나갈래요." "예? 하지만.....!" "그 옷 입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냥 갈테니까 신경쓰지 말아요."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곧장 4층에 있다는 홀로 향했다. 4층에 올라가자 제일 먼저 분주히 움직이는 하인과 시녀들이 보였다. 홀은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처럼 되어 있었는데 한쪽 벽면 쪽에 음악을 연 주하는 사람들이 악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저녁 7시라 약간 어두워서 인지 등불이 홀에 많이 걸려 있어 실내는 밝았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홀에 있었다. 좋은 옷들을 입고 있기 때문인지 모 두들 귀품스럽게 보였다. 얼굴은 각양각색이지만. 난 홀 가장자리에 놓여진 기다란 식탁을 따라 홀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 에는 아직 음식들이 없었다. 파티가 시작되기 직전이나 시작하고 나서 음 식이 나오겠지. 음... 음식들이 맛있을까? 아니... 맛있을 건 당연하고... 어떤 것들이 나올까? 아... 갑자기 배고파 진다..... "니트!" 누군가 날 불렀고 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날 부른 사람 은 아세트였다. 아세트를 본 순간 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아세트는 머리색과 똑같은 에메랄드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가슴 쪽 이 깊게 파이고 어깨는 풍성했으며 치마는 발끝까지 내려왔다. 팔에는 팔 꿈치까지 오는 하얀 장갑을 끼고 있었고, 귀걸이와 목걸이까지 하고 있었 다. 그 모든 것이 아세트와 잘 어울렸다. 허걱.... 아세트를 보자니 내가 엄청나게 위축된다..... 끄아... 쪽팔려라..... 내 쪽으로 다가온 아세트가 내 옷을 보더니 물었다. "왜 그 옷을 입고 있어요? 마이스너 시장님이 보낸 옷이 있잖아요?" 에... 그 옷이 마이스너 시장이 보낸 거라구? 이런.... 그런 옷을 도대체 어떻게 입으라구!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을 보내야 할 거 아니야! 괜시리 화가 난 나는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전 이 옷이 편해요." 그때 또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난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 거야? "야, 니트!" 목소리만 들어봐도 알겠군. 유스타키오잖아. 얼레? 갑옷을 벗고 귀족들이 입는 옷을 입은 유스타키오는 전혀 용병같지 않네? 옷 바꿔 입는다고 사람 이 저렇게 달라져 보일 수 있을까? 정말 귀족같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7.센세로 가다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29 게 시 일 :99/09/12 21:45:37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7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7 센세로 가다 -5- 유스타키오는 내 쪽으로 다가오다가 내 옷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엉? 옷 안 갈아 입었네?" 그러나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스타키오는 내 어깨 를 토닥이며 말했다. "파티가 꽤 길어. 워낙 놀고 먹길 좋아하는 귀족들이 모이는 것이기 때문 에.... 만약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도 돼. 아, 그리고 저녁 식사는 파티 음식으로 해결하라구. 따로 저녁 식사는 안 나온다." 유스타키오는 친절히 나에게 설명해 주었다. 난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유스타키오는 씩 웃더니 귀족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니, 귀족 들이 유스타키오에게 다가와 질문을 퍼부었다. 용병 생활이 어땠냐는 둥 왜 용병같은 위험한 일을 하냐는 둥.... 유스타키오는 그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음... 힘들겠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팀파니와 아린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 는 것을 보았다. 둘 다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잘 어울렸다. 머리 색깔과 거의 비슷한 계통의 드레스로, 팀파니는 금발과 비슷한 은은 한 노란색의 드레스를, 아린은 붉은 머리칼과 같은 붉은색의 드레스를 입 고 있었다. 쩝... 나만 이 모양이군. 가만, 그런데 인티는 어딨지? "마이스너 시장님께서 오셨습니다!" 갑자기 4층 홀 내로 한 병사의 외침이 날아들었다. 그 병사의 말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귀족들이 일제히 한쪽을 쳐다보았고, 그 곳에는 마 이스너 시장이 더욱 귀품있는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음... 검소함과는 거 리가 먼 인물이야..... 마이스너 시장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사랑스런 내 아들이 돌아왔소. 그의 무사 도착을 기념하여 파티를 즐깁시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 있던 악사들이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 작했다. 마이스너 시장은 즉시 귀족들 사이에 꼽사리 껴서 얘기를 나누었 다. 에... 난 뭐하지? 아! 그렇지! 파티 음식이나 먹어야 겠다! 난 길게 놓인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식탁 위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맛있 게 보이는 요리들이 잔뜩 놓여져 있었다. 난 준비하는 거 보지도 못했는데 .... 순발력 하난 기가 막히군. 식탁에 모인 일부 귀족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요리를 먹기 좋게 자 르고 앞에 놓인 개인 접시에다가 덜어 먹고 있었다. 귀찮게 저렇게 먹어야 하다니.... 어쩔 수 없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니.... 귀족들은 날 '왠 떨거지가 여기에 있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내 기분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그에 따라 나는 전혀 위축함이 없이 당당 하게 요리를 먹어댔다. 난 왜 이렇게 막 나가는 성격일까... 빨리 고쳐야 할텐데.... 나에게 다가와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요리를 맛보았다. 그때 내 눈에 아세트가 다른 남자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 는 모습이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남자는 굉장한 미남이었다. 어떤 귀족의 자제인 모양으로, 옷이 굉장히 세련되었다. 빛나는 금발을 가진 그 남자는 대략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웃고 있는 아세트를 보면서 내 기분 은 최악을 향해 치달렸다. 먹을 기분도 아니어서 홀에 나 있는 발코니로 나가버렸다. 발코니는 여러 개 있었는데 발코니와 홀 사이를 유리로 만든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난 불량스럽게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그 유리문을 열고는 발코니로 갔다. 발코니에 가서 서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다. 음.. ... 시원하군. 역시 바람은 차가워야 한다니까. 물론 겨울에는 아니지만. .... 하늘에 별도 참 많군. 환경 오염과는 담 쌓은 곳이니 그렇겠지. 운치 있게 보름달도 떴네? 환하구나, 환해. "니트 오빠예요?" 허억! 뭐야? 누가 먼저 발코니에 나와 있었어? 간 떨어질 뻔 했잖아! 발코니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나를 니트 오 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인티밖에 없지. 그런데 왜 여기에 나와 있는 거지? "인티구나. 그런데 왜 여기있는 거야?" "네... 제가 사제라서 그런지 파티같은 것은 좋아하지 않거든요." 음... 그런가? 얼레? 인티는 드레스를 안 입었네? 검은 로브에 옅은 분홍 색의 수정 구슬.... 그다지 눈에 확 띄는 색은 아니라서 내가 발견하지 못 했었군. 우하하, 나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니 기쁘다! 인티가 날 쳐다보더니 물었다. "오빠는 왜 나왔어요?" "응, 나도 파티는 싫거든. 특히 귀족들 말이야." "귀족들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나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농민들과는 달리 호화롭게 사는 그들이 마음 에 안 든다는 거지." 인티는 유리문을 통해서 홀 안을 쳐다보았다. 잠시 그렇게 홀 안의 사람 들을 바라보던 인티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아세트 언니는 팀파니 언니의 남동생이라는 '루피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네요. 루피니는 굉장히 잘생겼어요. 안 그래요?" "그... 그래." 으윽... 차라리 내 심장을 긁어라....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 는 거야? 나 자꾸 열받게 할래? "니트 오빠는 아세트 언니를 좋아하지 않아요?" 엑?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인티는 계속 말을 이 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이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솔직히 기분 나쁘지 않아요?" "뭐... 그건 그렇지." "니트 오빠는 아세트 언니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기분 나 쁘지 않나요?" "....." 난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당연히 기분 나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하지만 뭐 어떡하냐. 그렇다고 '다른 남자와 얘기하면 죽어!'라고 말하리? "만약... 아세트 언니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니트 오빠 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익! 왜 생각하기도 싫은 문제를 끄집어 내는 거야? "글쎄... 아세트가 좋아한다면.... 어쩔 수 없지...." "오빠는 참 소심하군요. 그렇게 행동하다간 정말로 아세트 언니가 다른 사람에게 가버릴 지도 모른다구요." "....."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말도 없었다. 인티의 말은 당연한 것 이었으니까. 그런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됐어. 난 가는 사람 안 붙잡어."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한 나는 홀 안을 쳐다보았다. 아세트는 그 루피니라 는 남자와 춤을 추고 있었다.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면서. 제길.... "난 가서 쉬어야 겠다. 안녕." 나는 인티에게 일방적인 작별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있기가 싫었다. 흥겹게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내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홀 안을 밝게 비춰주는 등불도 다 꺼버리고 싶었다. 아니, 이 홀 전체를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 .... 훗, 내가 또 미쳐가는군. 이놈의 성격 빨리 고쳐야 할텐데. 난 내 방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아세트의 웃는 모습이 떠 올랐다. 나만을 위해 웃어줄 줄 알았던 아세트가.... 내게 보여주었던 그 미소를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준다는 것이.... 왜 이렇게 착잡하지? 아세트 가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빌어먹을. 어차피 얻지 못할 상대라면.... 차라리 잊어버리자. 그게 속 편하다..... 항상... 그랬듯이.....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8.오크의 마법사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30 게 시 일 :99/09/12 21:46:09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8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8 오크의 마법사 -1- 태양이 산봉우리 사이로 고개를 빠꼼히 내민 시각, 나는 마이스너 시장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정원 한가운데 섰다. 내 주위에는 실프, 운 디네, 노움, 사라만다, 잭 오 랜턴이 도열해 있다. 지금 뭐하려고 하냐구? 그거야 당연히 정령들 훈련시키려고 그러지. "자, 모두 앉아." 내 말에 다섯 정령들은 풀이 무성히 나 있는 정원에 앉았다. 나는 가지고 나온 연습장을 펼치고 정령들에게 마법 주문을 가르쳐 주었다. 저번에 가 르쳐 준 것들보다 수준이 높은 것이다. 과연 소화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 지만.... 뭐, 잘들 하겠지. 정령들 중에 실프와 운디네, 사라만다가 마법 습득률이 빠르다. 그 중에 서 실프와 사라만다의 마법 습득률은 대단하다. 왠만한 마법사 수준이니까 . 만약 실프와 사라만다가 마나 축적을 할 수만 있다면 단번에 중급 마법 사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거다. "다 외웠냐?" 난 열등생(?)인 노움과 잭 오 랜턴에게 주문을 가르쳐 준 뒤 물었다. 두 녀석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이 두 녀석들에게 주문 을 가르친다는 건 어렵다니까. 선생님들의 고통을 알 것 같아.... 특히 잭 오 랜턴 녀석! 학업 성취도(?)가 제일 떨어져! 역시 호박 머리라서 그런 가? 도대체 저 호박 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노움과 잭 오 랜턴이 마법 주문을 다 외울 때까지 난 반복해서 마법 주문 을 들려 주었다. 약 10분만에 그 녀석들은 겨우 주문을 외울 수 있게 되었 다. 물론 난 정령들이 주문 외우는 것은 들을 수 없어. 그런데 어떻게 주 문을 외웠는지 안 외웠는지 아냐고? 그거야 정령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거 지. 정령들은 거짓말 안 하니까. 실프와 운디네, 그리고 사라만다는 두 눈을 감고 마법 구현에 정신을 집 중하고 있었다. 에... 이제 나도 마나 축적이나 해야겠군. "저게 정령이라는 거구나." "저 정령은 굉장히 예쁜데? 사람이라면 내가 꼬셔 볼텐데." "정령들이 꼭 살아있는 것 같다." 언제 몰려 들었는지 병사들이 신기한 눈으로 정령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거참... 신경쓰이네.... 뭐 어쩔 수 없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마법 수 련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항상 조용한 곳에서 마법 수련을 할 수는 없지 않겠어? 난 제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뭐? 딴 데다 신경쓰면 정령들이 정령계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글쎄... 확 실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큰 정신적 충격을 받지 않는 한 정령에게는 별 영 향이 없더라구. 그래서 지금 나는 마법 수련을 하면서 정령들에게 마력을 공급해 줄 수 있지. 나 굉장하지? 응? 정령들에게 마력을 공급하면서 마나 축적을 하는 게 무슨 소용 있냐 구? 있으니까 하지. 이상하게도 내 정령들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물질계 에 존재하는데 점점 마력이 필요치 않게 되더라구. 예전에 실프를 머물게 하는데 드는 마력과 지금 다섯 정령들을 한꺼번에 물질계에 머물게 하는데 드는 마력에 거의 차이가 없어. 아무래도 정령들 스스로 물질계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 같애. 하여간 웃기겠군. 아침부터 소년 하나와 다섯 정령들이 마법 수련을 하는 모습은. 기념 촬영을 해야 할텐데 사진이 없어서 아쉬워.... 쩝. 내가 마이스너 시장 저택에 들어온 다음날부터 난 거의 미치다시피 마법 수련에 매달렸다. 내 스스로는 그 동안 마법 수련을 게을리 해서 이번에 열심히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아세트를 잊으려고 마법 수련에 매달린 것이었다. 난 용기가 없다. 아세트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방해할 용기가. 한심하지만.... 난 그런 놈이다. 밥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에 마법 수련에 매달리는 날 보고 아린은 '너 돌았지?'라고 묻는 둥.... 유스타키오는 '너 혹시 죽을 병 걸린 것 아니냐?'라고 하지 않나.... 인티는 '쉬면서 해요.'라고 하고 .... 내가 마법 수련한다는 데 모두들 불만있는 것 같애. 뭐... 정령들이 마법 연습한답시고 정원을 불태우고 파헤쳐 버리기는 했지만.... 하하.... 그렇게 2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나와 정령들이 정원에서 마법 수련을 하고 있을 때, 한 병사가 다른 병사 들과 함께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가운데 있던 병사는 갑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에... 내가 신경쓰면 뭐하냐. 그냥 마법 수련이나 해야지..... 점심 식사를 하고 역시 또 정원에 나와 마법 수련을 하고 있을 때, '크라 우제' 집사가 찾아왔다. 나이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데 냉막한 인상의 소유자이다. 가끔씩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깍듯이 인사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사무적이라는 말이다. "시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얼레? 마이스너 시장이 날 찾는다구? 왜 찾지? 설마... 내가 정원 몇 번 훼손시킨 일을 따지려고....? 지금까지 잘 참다가 갑자기 왜..... "아, 예...." 난 힘없이 대답하고는 크라우제 집사의 뒤를 따라갔다. 크라우제 집사는 나를 마이스너 시장의 집무실로 데려갔다. 집무실은 처음 가 보는군. 집무실이라고 써 있는 문 앞에 이르자 크라우제 집사가 조금 큰소리로 말 했다. "시장님, 니트님을 데려왔습니다." 그러자 안에서 마이스너 시장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해." "네. 들어가시죠." 난 크라우제 집사의 말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크라우제 집사는 내 뒤를 조용히 따라들어 왔다. 집무실에는 마치 회사의 사장이 사용하는 것 같은 길고 커다란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책상의 앞엔 역시 길쭉한 책 상이 놓여져 있었다. 즉, 책상은 내 앞에서 T자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가로 놓인 책상에는 마이스너 시장이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세로로 놓인 책상에는 유스타키오와 마이스너 시장의 직속 기사단장인 '랑비에'가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랑비에 옆에는 아세트와 아주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는 루피니라는 팀파니의 남동생이 웃으면서 날 보고 있었 다. 욱... 저 면상에 주먹을 선사해 주고 싶어..... 유스타키오가 날 보며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고 난 유스타키오의 옆에 가 서 앉았다. 크라우제 집사는 루피니 옆에 조용히 앉았다. 모두들 앉자 마 이스너 시장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모였으니 얘기하지. 거의 연례 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네 . 바로 오크들의 침공이지." 얼레? 오크? 그 돼지 인간이 침공한다고? 이게 무슨 화성 침공이냐? 마이스너 시장은 두 손을 깍지끼고 얼굴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이번에도 오크들이 센세 가까이에 있는 작은 마을 '에너지'를 습격했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모양이야. 에너지에선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 네. 자네들의 의견을 듣고 싶구만." 에너지(Energy)? 차라리 에네르기가 어떨까? 그 마을은 에너지가 많나보 지? 그런데 왜 오크들한테 당한다냐? 기사단장인 랑비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 기회에 오크 놈들을 싹 쓸어버리는 게 좋을 성 싶습니다. 언제까지 미적미적한 대응만을 하실 겁니까?" 그러자 옆에 있던 루피니가 말했다. "글쎄요, 오크들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잖습니까. 전에도 한 번 토 벌한다고 20여 명의 병사들을 보냈다가 단 3명만이 살아 돌아오지 않았 나요?" 루피니의 말에 랑비에의 표정이 뭣 씹은 표정이 되었다. 하하, 웃기다. 그런데 20여 명의 병사들이 졌다구? 도대체 그 오크들은 얼마나 강하길래 17명의 병사들을 죽일 수 있는 거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49.오크의 마법사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48 게 시 일 :99/09/14 22:39:06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7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49 오크의 마법사 -2- 랑비에는 루피니의 말에 화가 났는지 큰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그 녀석들이 또다시 꼬리를 감추기 전 에 확실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거의 발악적으로 소리치는군. 귀청 떨어지겠다. 랑비에의 목소리에 잠시 눈쌀을 찌푸렸던 루피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몇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가실 겁니까?" "병사들은 필요없습니다! 제가 데리고 있는 '뉴런 기사단'으로도 충분 합니다!" 뉴런 기사단? 아, 저택 1층에 머물고 있는 기사들을 말하는 것이로군. 가만히 앉아 있던 유스타키오가 말을 꺼냈다.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번 일은 저희 뉴런 기사단만으로 처리하고 싶습니다." 유스타키오의 말에 랑비에가 딱 잘라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이스 너 시장도 거들었다. "그래, 유스. 넌 용병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지 겨우 1주일 밖에 안 되지 않았느냐. 이번 일은 뉴런 기사단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 헹~ 이미 결론났군. 그런데 난 왜 불러 온거야? 웃긴 인간들 아니야? 그때 마이스너 시장이 날 쳐다보더니 물었다. "니트군은 어떻게 생각하나?" 얼레? 나한테 물어보다니? 하하, 날 인정해 준다는 건가? "그런데... 그 오크들이 그렇게 강한가요?" "그렇네. 수가 어느 정도 되는 지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린 그 오 크들을 특별히 '크레아틴 오크'라고 부르지. 크레아틴 오크 중에는 오크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도 끼어있다네." "그 크레아틴 오크들이 원하는 것이 뭔데요?" "모르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배고파서 마을을 습격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람 죽이는 게 좋아서 그러는 것.... 뭐, 전자의 가능성이 가장 크 지만." 배고파서 마을을 습격한다라... 완전 산적들 수준이군. 배고파서 그런 것 이라면 다른 방도가 있지 않을까? "오크들과 협상을 벌이면 안 되나요?" "....." 갑자기 모두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집무실 안은 잠시 동안의 침묵으로 가 득찼다. 이윽고 마이스너 시장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니트군. 정말 황당하구만! 도대체 오크들과 어떻게 협상을 벌인 단 말인가? 오크들의 언어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 랑비에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웃었고, 루피니는 조용히 미소지을 뿐이 었다. 어째 저 미소가 더 날 비웃는 것 같애.... 유스타키오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좋은 생각이지만 협상은 불가능해. 오크들의 언어를 아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설령 오크 언어를 알아도 오크들이 협상에 응할 정도의 지식 수 준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도 모르고." 나원, 전에 아톰에서 오비탈이라는 도시로 가는 도중 만난 오크들의 말을 난 알아들었단 말입니다. 그 녀석들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것 같던데. "전 오크말을 할 줄 알아요." "하하, 그런가..... 뭐, 뭣?! 오크말을 할 줄 안다고?!" 낄낄대던 마이스너 시장이 내 말을 알아듣고는 경악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놀란 표정들을 짓다니. 아주 재밌는데? "네. 저번에 유스타키오와 마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 오크들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유스타키오가 오크들과 싸울 때 전 분명히 오크들이 말 하는 것을 듣고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대답에 마이스너 시장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이스너 시장은 마치 내 말을 시험이라도 하려는 듯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나도 같이 마주 보았다. 윽.... 이거 눈싸움 하자는 거야 뭐야 ?! 이윽고 마이스너 시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믿을 수는 없지만.... 왠지 니트군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 군. 그럼 부탁 한 가지만 함세. 크레아틴 오크들의 대장을 만나서 이야 기를 나눠보지 않겠나?" 허걱! 뭐야? 나보고 오크들의 소굴로 들어가라구? 날 죽이려고 작정했수? "아버지!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니트는 검을 쓸 줄도 모른다구요!" 잘한다! 유스타키오! 역시 믿을 사람은 유스타키오 밖에 없다니까. 그러나 마이스너 시장은 유스타키오를 무시하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정원은... 잘 관리해야 하지 않겠나, 니트군?" 헉! 그 눈빛은....!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치사하게 노는군! 내가 정 원 훼손한 것으로 날 함정으로 밀어넣으려 하다니! "뭐... 그렇죠. 그런데... 저 혼자 크레아틴 오크의 대장을 만나야 하나 요?" 흑... 어쩔 수 없이 함정에 걸려줘야 겠군.... 뭐? 그런데 속으로는 왜 웃고 있냐구? 참 눈치도 빠르군. 사실... 오크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내 주위에는 막강한 다섯 정령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평화 로운 해결이 좋지 않겠어? 뉴런 기사단의 기사들에게도 가족이 있을 텐데 말이야. 죽으면 가족들이 슬퍼하지. 뭐 나하고는 상관없지만... 어차피 갈 꺼 좋은 뜻을 품고 가는 것처럼 해야지..... "니트! 너 정말 갈 생각이야?!" 유스타키오가 날 쳐다보며 놀라 물었다.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에 마이스너 시장을 쳐다보았다. 마이스너 시장이 입을 열었다. "니트군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 얼레? 표정은 '병사 희생시키고 싶지 않으니까 너 혼자 가라'라는 것 같 은데? 얼굴로 말을 하다니.... 정말 대단한 얼굴이다. "저 혼자 가는 게 편합니다. 오크들과 협상 하다가 안 되면 혼자인 쪽이 도망치기도 좋구요." "흠, 알겠네. 그럼 언제 출발할 생각인가?" 어쭈? 그것부터 물어보다니.... 역시 저 인간은 내가 어서 가주기를 바라 고 있었던 거야! "여기에서 크레아틴 오크가 있는 곳까지 얼마나 걸리는 데요?" "말을 타고 간다면 다섯 시간도 채 안 걸리지만.... 걸어간다면 하루는 꼬박 걸릴 걸세." 에... 그럼 어쩌지? 난 말을 못 타는데.... 마차를 타고 갈 수는 없나? "마차를 타고 가도 될까요?" "물론이네. 내가 마차를 하나 예약해 두지. 내일 아침 9시에 출발하는 것 이 어떻겠나?" 뭐야, 이 인간? 자기 멋대로 가는 시간을 정해버리네? 아무리 유스타키오 의 아버지라지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러죠, 뭐. 내일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난 바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쿠하하, 시장 당신이 날 기분나쁘 게 했기 때문에 이렇게 버릇없이 군 거라구.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역시 재미있단 말이야~ "야, 니트!" 뒤따라 온 유스타키오가 날 불러 세웠다. "왜요?" "너 정말 혼자 갈꺼야?" "말했잖아요. 혼자 갈꺼라고." "얼마나 위험한 지 알고 하는 소리야?" "모르고 하는 소린데요." 내 말에 유스타키오의 상체가 휘청거렸다. 유스타키오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임마! 이게 장난할 일이냐?!" 난 실프를 소환하여 유스타키오의 입을 막았다. 유스타키오가 읍읍거리는 사이 난 할 말을 했다. "전 장난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오크들과의 협상은 가능한 성공시킬 테 니까요. 오크들 쯤이야 정령 마법으로 가볍게 날릴 수 있어요. 너무 걱 정하지 마세요. 아, 그리고 이 사실을 인티나 아린, 그리고 아세트에게 는 알리지 말아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갔다 조용히 돌아올 테니까." 할 말을 다한 나는 다시 정원으로 향했다. 하던 마법 수련을 다시 하기 위해서였다. 하... 내일이면 에너지라는 마을로 가야하는군. 내가 오크들 과 제대로 협상을 벌일 수 있을까? 설마 오크들이 마법을 쓰진 않겠지? 그 녀석들이 마법을 쓴다면 난 죽음인데.... 걱정되는군......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0.오크의 마법사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49 게 시 일 :99/09/14 22:39:33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8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0 오크의 마법사 -3- 다음날 아침, 난 마이스너 시장이 준비해 놓은 마차를 타고 에너지로 향 했다. 마이스너 시장은 에너지에 도착하여 촌장에게 보여주면 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서 자신이 직접 쓴 문서를 내게 주었다. 난 마이스너 시장 에게서 받은 종이 쪽지를 잘 접어 가슴에 잘 갈무리했다. 가방을 가져가면 간단하겠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따그닥 따그닥--- 마차는 말발굽 소리를 내며 대로를 따라 달렸다. 센세의 사람들은 아침부 터 자신의 애완 동물들을 데리고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크... 흑곰까지 데리고 있다니.... 저러다 흑곰한테 잡아먹히면 어쩌려구..... 센세를 빠져나오고 산길을 따라 마차는 이동했다. 가는 길에 다행히 몬스 터들의 습격은 없었다. 다섯 시간을 내리 달려 에너지라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난 마차에서 내려 마부에게 말했다. "당연히 여기에서 기다려야죠?" "아, 네. 물론입죠." 마부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뭐야, 내가 그런 말을 안 했다면 당장 돌아갔을 거란 소리로 들리잖아! 마이스너 시장.... 설마 날 아예 못 돌아 오게 하려는 수작을 부리는 건.....? 난 마부를 한 번 째려봐준 다음에 에너지 마을로 들어갔다. 에너지 마을 은 비교적 평탄한 구릉 지대에 있었는데 크레아틴 오크의 습격으로 농작물 들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부서진 집도 눈에 띄었다. 집이야 대부분 나 무로 만들었으니 쉽게 부서지겠지만. 마을 사람들은 분주히 피해 복구를 하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난 마을 사람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저... 촌장님을 뵙고 싶은데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날 살펴보더니 별 의심없이 말했다. "촌장님은 지금 마을 긴급 회의를 하고 계십니다. 저기 보이는 신전이 있 죠? 저 신전은 본래 힘의 신 '로렌츠'를 모시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제들 도 없어서 지금은 마을 회의 장소로 쓰고 있지요." 나는 마을 한가운데의 언덕 위에 웅장히 세워져 있는 신전을 보았다. 사 진 등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었다. 기둥도 참 많군. "감사합니다." 난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신전 쪽으로 걸어갔다. 에너지란 마을은 생 각보다 커서 신전까지 가는데 20분 걸렸다. 어휴... 멀어라.... 신전의 한쪽 옆에는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시체 위 에는 흰 천을 덮어 놓았다. 이야... 도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야? 하나,둘, 셋, 넷.... 삼십 오. 35명? 참 많이도 죽었군. 시체 주위에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찾기 위해 몰려 있었다. 시 신을 확인하고 기절하는 사람, 우는 사람....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있었다. 에... 만약 내가 오크들과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한다면 저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과연....? 그런 걱정을 안고 나는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나에게 제재를 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신전 중앙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쥐어 짜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둥근 탁자에는 모두 4명의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촌장인 듯 보이는 노인 한 명, 갑옷으로 온 몸을 무장한 기사 한 명, 그다지 특별한 점이 눈에 띄 지 않는 두 사람. 그 중에서 그다지 특별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 두 사람 중 30대 후반의 남자가 날 발견하고는 물었다. "넌 누구냐? 왜 여기에 와 있지?" 그의 말에 다른 세 사람도 날 쳐다보았다. 난 촌장에게 다가가 마이스너 시장이 준 종이 쪽지를 내밀었다. 모두들 내가 무슨 수작을 부리나 살펴보 다가 종이 쪽지를 내밀자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촌장은 종이 쪽지를 받고 서 읽어내려갔다. 잠시 후, 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덥썩 잡더니 말했다. "잘 오셨소. 그런데... 혼자 오신거요?" "네. 전 오크와 싸우러 온 게 아니라 협상을 하려고 왔으니까요." ".....?" 내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사 차림의 남자-우락부락하게 생 긴 게 꼭 랑비에처럼 생겼다-가 종이 쪽지를 읽고 날 쳐다보며 소리쳤다. "센세에서 오신 분 같은데, 어째서 비열한 오크들과 협상을 벌이겠다고 찾아온 겁니까?" 얼레? 난 반말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군. "저도 이 마을이 오크들에게 입은 피해가 얼마나 큰 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싸우기만 한다면 사상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그 래서 저 혼자 크레아틴 오크와 협상을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은 그냥 크레아틴 오크의 출몰지가 어디인지 가르쳐 주시면 됩니다." 할 말을 다한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촌장이 입 을 열었다. "알겠소. 그런데 정말로 혼자 가도 되겠소?" "네. 전 마법사거든요." 마법사란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날 샅샅이 훑어 보았다. 그들의 얼 굴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하긴.... 지금 갈색 긴팔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으니.... 전혀 마법사답지 않지. "흠흠... 좋소. 날 따라오시오." 촌장은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체들 이 있는 반대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촌장을 따라 갔고 다른 사람 들도 따라왔다. 신전 밖으로 나온 촌장은 유난히 푸르른 숲을 가리키며 말 했다. "저기가 크레아틴 오크의 근거지라고 알고 있소. 전에 센세에서 보내준 병사 20명이 돌격해 들어갔지만 살아돌아온 사람은 3명 뿐이었다오. 그 녀석들은 자신들을 철저히 감추면서 습격만 한다오. 조심하시오." 억... 그렇게 겁주지 마요. 갑자기 무서워지잖아요..... "그럼 지금 가보겠습니다. 성공할 지는 모르겠네요. 제가 만약 오늘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전 죽었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난 그렇게 모두에게 말하고 촌장이 가리킨 숲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촌장 이 날 불렀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중에 제가 멀쩡히 살아돌아오면 그때 가르쳐 드리지요." 야... 명언이다! 그래그래, 이름 알려주고 죽으면 뭐하냐. 기억도 안 해 줄텐데. 살아 있어야 내 이름도 기억해 주는 것 아니겠어? 난 그들의 시선을 등뒤로 받으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대낮인데도 숲속은 어두웠다. 난 실프와 운디네, 그리고 잭 오 랜턴을 소환했다. 잭 오 랜턴 은 어두운 숲속을 밝혀 주었고, 실프와 운디네는 내 양 옆에 서서 내 보디 가드 역할을 했다. 역시 난 정령들만 부려먹는 인간이라니깐. 풀벌레들의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오크들의 행동은 없었다. 빨리빨리 나와라.... 내가 소리쳐야 하나? "야! 돼지 인간아! 할말 있으니까 당장 나와!" 난 될 수 있는 한 크게 소리쳤다. 내 외침에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하늘 위로 날았다. 오홋!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죽인다! 내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새들에게 정신을 팔고 있을 때 내 앞에 10마리 정도의 오크들이 나타났다. 난 겨우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급히 자세 를 바로했다.(여차하면 튈 자세) "꾸륵! 감히 신성한 숲에 와서 시끄럽게 떠들어?" 여러 오크들 중 손에 긴 창의 끝부분에 도(刀)같은 것을 단 무기를 든 오 크가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의 말을 듣자 갑자기 내 머리에서 오크들이 쓰 는 언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협상을 시작해야 겠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1.오크의 마법사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62 게 시 일 :99/09/16 22:15:08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7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1 오크의 마법사 -4- 난 앞에 서 있는 오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난 니트다. 너희들의 대장을 만나고 싶다." ".....!" 오크들이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중 맨 처음 말을 했던 그 오크 가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너는 우리말을 할 수 있는 거냐?!" 거 나도 모르는 질문을 하면 어떡해? 저게 죽을라구..... "할 수 있든 말든 뭔 상관이야. 난 너희 대장하고 할 말이 있다니까!" "시끄럽다! 두목님이 너 같은 애송이를 만나줄 것 같으냐?!" 오크들이 일제히 무기를 내 앞에 겨누었다. 이런.... 결국 싸움으로 번지 는군. 뭐, 어쩔 수 없지. 적당히 주물러 준 다음에 협박해야 겠다. "돌격!" 오크들이 소리치며 공격해 들어왔다. 쯧... 쟤들은 내 옆에 서 있는 실프 와 운디네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군. 불쌍한 것들.... 쉬이잉--- 촤아악--- 실프가 일으킨 강한 바람과 운디네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물줄기에 오크 몇 마리가 나동그라졌다.-죽지는 않았다. 단지 피하다가 넘어졌을 뿐- 실프와 운디네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한 듯 오크들은 주춤거렸고, 그 사이 난 노움과 사라만다를 소환했다. 노움은 사라만다를 번쩍 들고 오크들 앞 에 섰다. 사라만다는 그대로 오크들을 향해 불꽃을 내뿜었다. 화아악--- "꽤액!" 오크들은 돼지 비명 소리를 지르며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노움은 사라만 다를 마치 화염 방사기처럼 사용했다. 뭐 내가 그렇게 시켰지만. "이 돼지 인간들아! 난 너희같은 것은 눈 감고도 죽일 수 있단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 대장과의 대화야! 난 너희와 싸우지 않는다!" 난 겁에 질린 오크들을 향해 소리쳤고 오크들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 었다. 우선 정령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난 그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내 행동에 오크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더니 창 같은 것을 든 오크가 나 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다, 잠시 기다려라." 그러더니 동료들은 냅두고 자기 혼자 어딘가로 사라졌다. 설마 저 녀석 대장 불러오겠다고 해놓고 혼자 도망치는 거 아니야? 난 별 수 없이 기다렸다. 남은 오크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날 경계했다. 다친 오크들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날 그렇게 적대시하지 않는 듯 했다. 무료한 시간이 덧없이 흐른 뒤, 내 앞에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나타났다. 제일 선두에는 대장 데려온다고 간 녀석이 있었고, 그 뒤에 철판 갑옷을 입고 있는 오크 한 마리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억... 저 녀석들이 한꺼번에 덤빈다면 승산이 없겠는데.....? 몸에 철판 갑옷을 입은-대장인 듯한- 오크가 날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우리말을 할 줄 안다고?" "할 줄 아니까 이렇게 협상을 하려고 찾아온 거지." 나의 능숙한 오크어에 오크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런 말을 주 고 받고 있었다. '어느 오크가 인간과 결혼했냐?', '저 녀석은 인간과 오 크의 혼혈이 아닐까?'..... 저것들이 죽을라구 리허설을 하는군. 대장 오크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무슨 협상을 하려고 찾아왔는가?" "좋아, 그럼 말하지. 너희들은 무엇때문에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하나?" "끌끌... 당연히 먹을 게 없어서 그렇다. 인간들은 농사를 짓기 때문에 먹을 게 많거든." 결국 배고파서 였다로군.... 그럼 협상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너희들은 농사를 못 짓는 거야?" "클클... 지을 수 있었다면 우리가 마을을 습격할 것 같나?" 대장 오크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자꾸 그렇게 띠껍게 굴 면 모두 날려버린다! "좋아, 그렇다면... 농사법을 배워보지 않겠어?" ".....!" 주위에 있던 오크들이 모두 놀랬다. 대장 오크도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농사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이냐?" "그래. 난 농사법은 모르지만 농부들은 알고 있으니 그들에게서 배우면 될거야." "하지만 그 농부들은 우리말을 모르잖나?" "내가 통역하면 되지." 내 말을 듣고 대장 오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 생각엔 거절하진 않을 것 같지만.... 모르지, 갑자기 '죽어!'라면서 공격할 지도.... "...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원하는 거? 그거야 너희들이 인간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거지. 그 정도면 돼." "그것 뿐이라면.... 좋아, 너의 협상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대장 오크의 결정에 오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잘됐다고 좋아하는 오크들이 있는 반면, 인간과는 교류를 해선 안된다는 오크들도 있었다. 그 러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갔다. 역시 정말로 배가 고 팠던 모양이야. "너의 이름은 뭔가, 인간?" "니트. 너는?" "난 헤모글로빈이다." 컥! 헤모글로빈? 적혈구 속에 들어있는 그거? 이곳에 와서 이름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내색 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두 시간 후에 이곳으로 농부들을 데리고 오겠다. 두 시간 후 에 보자." 난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뒤로 돌아서야 오크들이 나를 완전히 포 위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앞으로 가자 오크들은 길을 내주었다. 으.. .. 살 떨려.... 여기서 공격을 받는다면 살아 돌아가기는 힘들겠군..... 난 무사히 숲속을 빠져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즉시 로렌츠의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에는 촌장을 비롯한 4사람이 여전히 앉아 있었다. 촌장이 다가오는 날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무사히 돌아왔구만!" 다른 세 사람들도 멀쩡히 돌아온 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 다. 난 그들에게 다가가 오크들과의 협상 결과를 알려주었다. 얘기를 다 들은 그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기사 차림을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 오크들의 말을 믿는 거요?" "전 믿습니다." "그들이 농부들을 죽이지 않을 거라 어떻게 장담하오?" "제 목숨을 걸고 보장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농부들이 순순히 오크들의 소굴로 갈 것 같소?" 얼레? 그런 문제가 있었군! 농부들이 따라올 리가 없지.... 어떡한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 대답에 할말이 없는지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촌장이 침묵을 깨고 말 했다. "그럼 부탁하오. 그런데 이름이....?" "니트입니다. 전 농부들을 모아야 하니까 먼저 가볼께요. 그럼...." 난 급히 신전 밖으로 나왔다. 빨리 농부들을 모아야 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두 시간이니까. 그런데 몇 명이나 모으지? 한두 명이면 되려나? 난 마을을 열심히 뛰어다니며 농부들을 포섭(?)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응해 주지 않았다. 오크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그들이 쉽게 승낙할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이런..... 그렇게 덧없이 한 시간이 흘렀다. 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농부들을 포 섭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나 보통 방법으로는 불가능이었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하면 반발만을 살테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은..... 탁탁탁-- 난 급히 신전으로 돌아갔다. 탁자에는 여전히 네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 었다. 뭐냐? 저렇게 앉아 있으면 뭘 어쩌겠다는 거야? 몸으로 뛰어야 할 거 아니야? "무슨 일입니까, 니트님?" 촌장이 갑자기 뛰어들어온 날 보고 물었다. 난 촌장에게 급히 물었다. "힘의 신 로렌츠의 신상이 어딨어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2.오크의 마법사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63 게 시 일 :99/09/16 22:15:36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7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2 오크의 마법사 -5- 느닷없는 나의 질문에 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로렌츠의 신상이요?" "네." "그건 왜....?" "잠시 신상을 빌리려구요." 나의 뜬금없는 말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촌장은 곧 나를 신상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신상은 어떤 방안에 모셔져 있었는데 새것처럼 깨 끗했다. 사제들은 없지만 잘 손질했던 모양이다. 로렌츠의 신상은 젊은 근육질의 남자가 팬티 비슷한 것 하나만 달랑 입고 근육을 과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근육이 많으면 생활하는데 불편 할텐데..... 좋아, 그럼 이제 작전을 시작해 볼까? "실프, 이 신상 들어줘." 내 명령에 실프는 바람을 일으켜 로렌츠의 신상을 들어올렸다. 굉장히 무 거워 보였는데도 실프는 가볍게 신상을 들어올린 것이다. 굉장해.... 이제 는 중급 정령이라도 무섭지 않겠는걸? "니, 니트님! 지금 뭘 하려고?" 촌장은 로렌츠의 신상을 가지고 가려는 날 보고 놀란 어조로 물었다. 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10분 후, 갑자기 하늘에서 로렌츠의 신상이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한복판 에 떨어졌다. 신상은 단 하나의 집도 부수지 않고 절묘하게 땅 위로 떨어 졌는데, 신상이 떨어진 자리에서 글씨가 나타났다. 그 내용은 '싸우지 말 고 교류하라'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괴현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 때 내가 나서서 '이건 오크들과 싸우지 말고 교류를 하라는 신의 계시입니 다'라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 다행히 설득은 먹혀 들어갔고, 나는 몇 명의 농부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그 괴현상은 내가 꾸민 짓이다. 먼저 실프가 하늘 높이 신상을 가지 고 갔다가 하늘에서 떨어뜨린다. 실프는 신상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지 않 게 공기 저항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신상이 무사히 땅에 떨어지면 노움이 글씨를 만든다. 내가 가장 불안했던 부분이 바로 노움에게 글씨를 쓰게 하 는 것이었다. 노움이 워낙 머리가 딸리는 녀석이라..... 다행히 성공했지 만. 촌장에게 말을 들어보니 에너지에서 마법사 보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 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계획 을 꾸몄는데 잘 먹혀들었다. 난 나중에 천벌 받을 거야. 신상을 그런 용도 로 사용했으니. 우하하. 나를 따라 크레아틴 오크의 근거지로 들어온 5명의 마을 농부들은 두려운 표정이었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난 용기있는 척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갔 다. 두 시간 전에 오크들과 떼거지로 만났던 장소에 도착했고, 그 곳에는 20마리도 족히 넘는 오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오크들의 손에는 곡괭이 같은 농기구들이 들려있었다. 야... 녀석들, 배울 자세가 됐는데? 내가 그 오크들에게 다가가자 그 중에서 철판 갑옷을 입은 대장 오크가 앞으로 나왔다. 대장 오크는 날 보더니 웃었다.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군. 아주 마음에 드는 인간이야." "나도 너희들의 배우려는 자세가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동시에 웃어 제꼈다. "꿀꿀꿀!!!" "하하하!!!" 우리는 서로 어깨 동무까지 하며 웃다가 어리둥절한 오크와 농부들의 눈 초리에 급히 자세를 바로했다. 난 대장 오크에게 말했다. "그럼 시작할까?" "좋지." 대장 오크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여 오크와 인간의 교류의 길이 농경쪽에서부터 열리게 되었다. * * * * * * 나는 대장 오크인 헤모글로빈과 같이 오크들과 농부들이 땅을 일구는 것 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오크들과 농부들은 친숙해져 있었다. 아직 말뜻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몸짓을 통해 어느정도 서로의 뜻을 전달하였다. 물론 저 정도까지 가는데에도 내가 통역을 다 해줘야 했지만. 통역하는 일도 장 난이 아니더군. 특히 통역할 사람은 하나고 말이 통하지 않은 사람은 대다 수니까....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고.... 처절하지 뭐. "고맙다, 니트." 헤모글로빈은 밭을 일구고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기는. 서로 싸우지 않으니까 좋지." "그래.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군.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글쎄... 뭐, 너희들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에게 도 너희 마음이 전달되겠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있으니까." 내 말에 헤모글로빈은 씨익 웃었다. 푸핫핫! 돼지가 웃으니 정말 웃기다! 그런데... 지금 이것이 잘하는 일일까? 오크들에게 농사법을 가르치면 오 크들의 숫자가 불어날텐데.... 그렇게 되면 인간과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 을까? 정말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 것인가? .... 후후, 올바른 것은 없다라고 인티에게 말한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 역시 난 말 따로 몸 따로인 녀석이야..... 그냥 생각하지 말자. 어떻 게든 되겠지 뭐. "니트,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겠나?" 헤모글로빈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헤모 글로빈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크들은 한번에 5~6마리의 오크들을 낳지. 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중 1마리만 키우고 나머지는 버려. 나도 그 버림받은 새끼 중 에 하나였지. 난 어릴 때부터 내 스스로 숲속의 동물들을 사냥하고 먹으 면서 자랐어. 그래서 결국 지금의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게 된거지. 난 말이야... 나처럼 부모에게서 버림받는 오크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 그러려면 먹을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인간들의 마을을 습격해 서 식량을 탈취했던 거야. 이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그 일도 필요없어.... 모든 게 다 네 덕분이야." 헤모글로빈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헉... 오크가 왜 울어? 전혀 안 어울린다, 쨔샤! "울지마, 울지마. 그렇게 약한 모습 보이면 어떡하냐. 넌 오크들의 대장 이라고. 대장은 항상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오 크들이 널 따르지 않는다구. 알았냐?" "그렇군. 좋은 충고 고맙다." 우리는 또 어깨 동무하고 크게 웃었다. 즐거웠다. 이렇게 터놓고 말할 상 대가 있다는 것이. 그 상대가 비록 사람이 아닌 오크일지라도..... 나에게 는 사람보다 더 좋은 친구였다. 흘.... 난 정말 이상한 녀석인 것 같다.... 오크와 이렇게 말을 놓고 지 내다니.... 그런데 같은 인간에게는 왜 그게 잘 안 될까? 혹시 난 정말로 오크의 피를 타고 난건가? 그럼 엄마, 아빠 중에 한 사람이 오크? 푸하하! 오크들에게 농사법을 전수한 지 한 달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오크들과 농부들의 통역 역할을 했다. 그리고 농부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에게도 오크어를 가르쳤고, 반대로 오크들에게는 인간들의 언어, 즉 바이올로어를 가르쳤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오크어를 배우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오 크에게 당했던 사람들이 오크어를 배우지 말자고 떠들어 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오크어를 배우는 사람 수는 늘어났다. 그건 오크들이 사람들에게 전혀 위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 끔 마을을 둘러보면 오크 새끼들과 같이 어울려 노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 다. 그럴 때마다 난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 지게 되었다. 후후... 누가 뭐라고 해도 말이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3.오크의 마법사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74 게 시 일 :99/09/18 15:02:41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7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3 오크의 마법사 -6- 나는 인티와 아린, 그리고 유스타키오와 같이 탁자에 둘러앉았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헤모글로빈이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 준 집 안이 다. 헤모글로빈의 아내가 우리들을 위해 차를 가지고 왔다. 녹차 비슷한 것으로 맛을 쓰지만 먹을만 하다. 헤모글로빈의 아내가 나간 후, 인티가 날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 며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예요? 니트 오빠는 사람들이 오빠 를 어떻게 부르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예요?" "알아. '오크의 마법사'라던가?" 내 대답에 인티는 더욱 발끈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어째서 여기에 있어요?!" "당연히 이곳이 더 편하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빠를 '오크의 마법사'라고 부르잖아요!" 인티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난 덤덤히 입을 열었다. "난 그 말이 좋은데?" "......" 모두들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난 녹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을 이 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난 지금의 오크들이 마음에 들 어. 그리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그런데 꼭 센세로 돌아갈 필 요가 있을까?" "......" "난 이곳에서 친구 하나를 사귀었어.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 는 친구를 말이야. 그러니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둬." 난 다시 찻잔을 들어 녹차를 마셨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런.. ...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군. 누가 아무말이나 좀 해봐! 나의 그런 바램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인티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니트 오빠가 계속 여기에 있으면.... 아세트 언니는 루피니에 게 마음이 기울어질 지도 몰라요...." "이미...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기울어진 것 같던데?" "......" 인티는 할 말이 없어진 듯 입을 다물었다. 난 녹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목구멍에다 들이부운 다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유스타키오와 아린, 인티 가 날 쳐다보았다. 나는 유스타키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크들이 완전히 자립할 수 있게 되면.... 그때 센세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여기서 살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하... 이거 어째 모두를 무시하는 행동 같은데? 하지만 계속 있기도 뭐하니.... 이해해 주겠지 뭐. * * * * * * 유스타키오와 아린, 인티가 돌아가고 나서 두 달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통역일을 하면서 마법 수련을 했다. 숲속에서 수련을 했기 때문에 수련의 진척 속도는 빨랐다. 두 달 동안 2클래스의 마력을 더 쌓아 서 마침내 6클래스의 마력을 획득한 것이다. 오크들은 거의 완전한 자립을 한 상태였다. 숲속에서 밭을 일구면서 작물 을 재배했다. 수확까지는 더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이 구호 물자(?)를 보내 주기 때문에 생활하는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과 오크들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다. 아, 그렇다고 오크들이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사는 건 아니라구. 오크들은 숲속에서 따로 살고 있어. 뭐니뭐니해도 오크들은 숲속에서 사는 것이 어울리니까. 이것도 편견인가? 음.... 마을 사람들은 아니지만 외부의 사람들은 날 '오크의 마법사'라고 깔보았 다. 물론 내 앞에선 그런 얘길 하지 않지만 뒤에서 그렇게들 말한다. 심지 어 어떤 이는 나를 '오크의 앞잡이'라고도 했다. 일제의 앞잡이는 들어봤 어도 오크의 앞잡이라니? 차라리 오크의 뒷잡이가 낫겠다..... 허걱! 컴퓨 터를 집어 던지면 어떡해? "니트 대마법사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방안에 앉아 센세에서 가져온 연습장에 적힌 마법 주문을 훑어보고 있을 때 밖에 있던 오크 하나가 날 불렀다. 여기 오크들은 날 대마법사라 고 부른다. 왜냐구? 한 달 전쯤에 오크들이 밭을 넓힌다고 나무들을 일일 이 다 베어내려 했었어. 그때 내가 4클래스급짜리 파이어 볼로 수십 그루 의 나무들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거든. 덕분에 오크들은 힘들이지 않고 밭을 만들 수 있었고. 그때부터 날 대마법사라고 부르더군. 하하. "누군데요?" "인티그랄 시그마라는 소녀분이신데요." 얼레? 인티가? 무슨 일이지? "들어오라고 해요." 난 연습장을 덮으며 말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로브 에 분홍색 수정 구슬을 든 인티가 들어왔다. 인티는 문도 안 닫고 나한테 달려왔다. 그녀의 표정은 굉장히 들떠 있었다. ".....?" 난 묻지 않고 인티를 빤히 쳐다보았다. 인티는 숨을 차분히 고른 뒤에 말 했다. "니트 오빠! 팀파니가 임신을 했다는 거 알아요?!" 얼레? 갑자기 그게 뭔소리여? 팀파니가 임신을 했다구? 팀파니가 누군데? 아... 유스타키오의 아내구나. 하도 안 봐서 잊어버릴 뻔했네. 뭐, 뭣?! 팀파니가 임신을?! "그게 정말이야?" 난 놀라서 인티에게 되물었다. 인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의사가 와서 진찰했는데 임신 3개월이래요. 3개월 전이라면 오 빠가 팀파니에게 어떤 마법을 걸었을 때잖아요? 오빠가 기적을 일으킨 거라구요!" 임신 3개월... 내 치료가 성공했던 건가? 하하, 다행이군. 드디어 유스타 키오도 아빠가 되는구나. 인티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쉴새없이 떠들어 대었다. "팀파니의 임신을 오빠가 도왔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빠를 뭐라고 부르는 지 알아요? '기적의 마법사'래요. 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오빠가 정말로 그런 기적의 마법을 사용했다는 거 말이예요." 좀 쉬면서 말해라... 평상시엔 안 그러더니 왜 이러니.... 그나저나 기적 의 마법사? 웃기는군. 언제는 오크의 마법사라더니. 사람들이란 본래 그런 존재인가? 후후, 기분 더럽군. "오빠, 빨리 가요. 유스가 오빠를 만나보고 싶어해요. 본래 같이 올 생각 이었는데 팀파니의 입덧 때문에 못 온 거예요." 하하, 입덧이라.... 정말 임신인가 보구나. 뭐 이제 오크들도 자립할 능 력이 있으니까 센세로 가도 되겠지? 기뻐하는 유스타키오의 모습이 보고 싶군. "좋아. 잠시 기다려. 오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하니까." 한 시간 후, 나는 인티와 함께 마차를 타고 센세로 향했다. 떠나는 날 향 해 오크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특히 대장 오크인 헤모글로빈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후.... 아마 잊지 못할 거다. 오크들과의 석 달을. 그 석 달은 내 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될 테니까. 다섯 시간 후에 센세에 도착했다. 센세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 사람 들은 보기에도 살벌한 애완 동물들을 데리고 다녔다. 마치 애완 동물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전통인 양..... 마이스너 시장의 저택에 도착한 나와 인티는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규모의 정원을 지나가는 도중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저 소년이 기적의 마법사라지?" "전에 이곳에서 마법 수련을 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정말로 저 소년 때문에 팀파니님이 임신을 한 건가?" 그런 여러가지 소리를 들으며 나와 인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곧장 3층에 있는 팀파니의 방으로 올라갔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4.원치 않은 재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75 게 시 일 :99/09/18 15:03:09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7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4 원치 않은 재회 -1- 팀파니의 방 앞에 다다른 인티가 노크를 했다. 똑똑똑-- "팀파니, 저 인티예요! 니트 오빠를 데려왔어요!" 그러자 안에서 팀파니의 고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와." 나와 인티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방 안에 있던 유스타키오가 갑자기 날 껴안으며 소리쳤다. "니트! 정말 고맙다!" 컥.... 나 죽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안으면 어떡해? 자신의 힘이 어 느 정도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니야.... 윽... 숨도 못 쉬겠다.... "유, 유스... 이것 좀 놓고... 얘기하죠...." 난 떠듬거리며 유스타키오에게 요청했고 유스타키오는 내가 고통받은(?)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팔을 풀었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 다. "역시 넌 대단한 녀석이야." 이런... 내가 멍멍이유? 그만 좀 쓰다듬으라구.... 난 유스타키오의 마수에서 벗어나서 팀파니 쪽을 쳐다보았다. 팀파니는 품이 넉넉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불러오는 배를 가리기 위한 것 같았다. 옆에서는 아린이 팀파니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내가 들어오자 둘 다 나 를 쳐다보았다. 난 팀파니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며 물었다. "건강은 어떠세요?" "좋아요. 모두 니트 덕이예요." 팀파니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하하... 내 덕이라기 보다는.... 유스 타키오의 정자들의 공이 컸지.... 쿠쿠쿠..... 억... 웃음 소리가 또 사악 해졌다..... 아린은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 줄게." 나원.... 여자애가 남자처럼 행동하는군..... 그리고 내가 너한테 인정받 을 필요는 없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단 말이야? 어쨌든 그렇게 난 센세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과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얘기를 주고 받았지만 아세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이 빈 듯한 공 허감.... 아세트가 없어서 인지 얘기를 나누어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점점 몰려오는 공허감을 참을 수 없어서 난 쉬겠다면서 먼저 나왔다. 그 리고 곧장 예전의 내 방으로 향했다. 2층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 내 방문 앞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을 확인한 순간 내 몸은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방문에 서 있던 사람은 아세트였기 때문이다. "니트...." 아세트가 조용히 내 이름... 아니, 이곳에서의 내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얼굴은 약간 초췌해 있었다. 내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날 기다린 건 가? 아세트는.... 아직도 날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세트는 약간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니트에게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내 마음을 엄습했다. 왜지? 왜 이렇게 불안 한 거지? 아세트가 나한테 '전 니트를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도 있잖아! 그런데 왜....? "그럼... 들어가서 얘기하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세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세트는 잠시동안 날 쳐다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제... 루피니가 저에게 청혼을 해 왔어요....." .... 청혼.... 팀파니의 남동생이라는 그 남자가.... 청혼? 난 아세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아세트도 곧 말을 이었다. "루피니에게 청혼을 받고... 어제 많이 고민했어요.... 니트가 없는 동안 ... 루피니는 제게 잘 대해 주었죠....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전.... 루피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벼락.... 내 머리 속에 벼락이 쳤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루피니 를 사랑한다.... 하하하.... 그럼 난 뭐지? 그 동안 아세트가 내게 보여줬 던 그 행동과 마음은 도대체....? 아세트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지금까지 니트에게 품어왔던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는 것을 .... 루피니와 있으면서 깨달았어요..... 그래서... 전 루피니의 청혼을 받아들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니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또 마음이 흔들렸죠.... 니트가 보고 싶었거든요..... 전 제 마음을 확실히 모르겠어요.... 루피니를 사랑하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세트의 조그마한 어깨가 들썩였다.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머리 속이 복잡하게 엉켜왔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아무리 풀어 헤치려 해도 머 리 속은 점점 더 엉켜만 갔다. 잠시 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세트는 굉장히 혼란스러 워하고 있었다. 난 내 마음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나 때문에 아세트가 괴로워 하는 모습.... 처음이었다. 아세트에게 죄를 짓고 있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아세트...." 내가 부르자 아세트는 눈물 젖은 눈을 들어 날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파 란색의 눈동자.... 앞으로 저 파란 눈동자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기회는 없겠군..... "단순히 내 생각이지만.... 아세트는 루피니를 더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요.... 루피니와 함께 있을 때 아세트는 더 즐거워 보였으니까.... 그냥 ... 아세트 마음가는 대로 행동해요. 다른 사람의 눈치는 보지 말고." 본래는 '루피니의 청혼을 받아들여요'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난 말을 돌리고 말았다. 후후... 어리석게도 난 아직 아세트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멍청한 녀석.... 차라리 마음을 밝히라구! 그렇게 미적미 적 행동하지 말고!!! "그럼 전 먼저 들어갈께요. 요즘 피곤해서요...." 난 아세트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내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서 난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아세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아세 트가 천천히 걸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세트의 발자국 소리가 완 전히 사라졌을 때, 난 그대로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천장이 보였다. 천장은 굉장히 낯설어 보였다. 분명히 내 방이었건만 난 내 방이 아닌 듯한 생각이 들었다.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도 안 된 시각이었지만 난 자고 싶었다. 아니, 자야 했다. 그래 야만 내 복잡하게 엉킨 마음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 다음날.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너무 많이 잤다. 무려 14시간을 잤던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 진짜 잠든 시간은 2시간도 채 안 되었지만..... 머리가 너무 지끈거렸다. 두개골을 갈라 뇌를 꺼내어 차가운 물 속에 쳐 박고 싶을 정도로.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모양이군. 기수련이나 해 야겠다. 난 눈을 감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모든 사념을 훌훌 털어버렸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 졌다. 무념무상(無念無想)... 그리고 무욕(無欲).... 역시... 욕심을 버리 니까 마음이 편안하군..... 후후.... 대략 2시간 정도를 그렇게 하고 나자 지끈거렸던 머리는 어느덧 나아 있 었다. 난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마법 수련을 해야지. 정령들도 단련시켜야 하고, 하하. "니트 오빠!" 내가 막 2층 계단을 내려가려 할 때 위층에서 인티가 뛰어내려 오다가 날 발견하고는 날 불렀다. 인티는 헐레벌떡 나에게 오더니 소리쳤다. "오빠! 오빠는 알고 있어요? 아세트 언니가 루피니와 결혼하기로 한 거 말이에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5.원치 않은 재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84 게 시 일 :99/09/19 14:45:14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8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5 원치 않은 재회 -2- 갑자기 날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별반 동요가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인가....? "그래...? 잘... 됐네." 난 그렇게 말하고 계단을 내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인티가 내 앞을 가로 막더니 소리쳤다. "오빠!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한 거예요? 아세트 언니가 루피니랑 결혼한다 고 했다니까요!!!" "그래서?" 내 대답에 인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래서라뇨? 오빠는 화나지도 않아요?"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는데?" "그거야.....!" 인티는 막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아세트에게는 아세트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가 있어. 내가 이래라 저 래라 간섭할 수 없다고. 아세트가 루피니와 결혼하는데... 내가 화낼 이 유는 없지." 분명히 화낼 이유는 없다. 하지만... 화가 난다. 결국 아세트는 루피니를 선택한 것이다. 빌어먹을... 이게 첫 실연인가? "하지만.... 하지만 니트 오빠는 아세트 언니를 좋아하잖아요!" 인티의 말이 내 가슴을 마구 후벼팠다. 난 계단을 내려가며 최대한 매몰 차게 대답했다. "아니." "......" 인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할 말이 없겠지. 하하. 난 유유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 아래층에서 유스타키오의 다급한 목소 리가 들려왔다. "니트! 니트!" 왜 저렇게 날 부르는 거야? 유스타키오도 아세트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그러나? 겨우 인티를 따돌렸는데(?).... 에휴..... 쿵쿵쿵-- 계단이 소리나도록 올라온 유스타키오는 계단에 서 있는 날 발견하고는 급히 입을 열었다. "니트! 지금 흑기사가 쳐들어 왔어!" ".....?" 뭔소리여? 흑기사라니? 흑... 기사?! 그 붉은 구슬을 노리는 녀석이 쳐들 어 왔다구? 거의 해가 중천에 가까워지는 이런 화창한 오전에? "무슨 소리예요? 흑기사가 왜 이런 시각에 쳐들어와요?" "몰라. 어쨌거나 지금 병사들이 그들을 막고 있지만 역부족이야! 어떡할 거야, 니트? 도망칠거야, 아니면 싸울거야?" 유스타키오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물론 답은 금방 나왔다. "당연히 싸워야죠."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피식 웃더니 다시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 유스타키오는 즉시 1층으로 내려갔고 나도 유스타키오의 뒤를 따랐다. 우 리는 곧장 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에는 뉴런 기사단이 저택 앞에 도열해 있었다. 그들 앞에서는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의 비명 소리 가 들렸다. 뉴런 기사단장 랑비에가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아들고 외쳤다. "시장님의 저택에 무단 침입한 저 괴한들을 응징하라!" 그의 말에 20여 명의 뉴런 기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뛰어 나갔다. 랑비에 도 곧 그들의 뒤를 따랐다. 나와 유스타키오는 그저 앞으로 뛰어나가는 그 들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괴한들? 그럼 흑기사가 부하들을 데리고 쳐들어 온거야? 전에 자 기 동료들을 데려온다고 하더니.... 결국 이런 식으로 일을 저지르는군. 나한테 붉은 구슬이 있어서 내 위치를 쉽게 파악했다 이건가? 난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붉은 구슬은 흑기사가 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바지 주머니에서 꺼 낸 붉은 구슬을 살펴 보니 붉은 빛이 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쳐들어온 녀석들 중에 흑기사가 있군. 이거 재회인가? 난 싫은데. 탁탁탁--- 갑자기 저택 안에서 다급히 달리는 소리가 나더니 저택 문이 열리며 인티 와 아린, 아세트와 루피니가 나왔다. 인티는 여전히 검은 로브에 분홍 수 정 구슬을 지니고 있었지만 아린은 레이피어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루피 니 역시 롱소드 하나를 뽑아 들고 아세트를 지켜주겠다는 듯 아세트 옆에 찰싹 붙어 있었다. 아세트는 루피니의 왼팔을 감싼 상태였다. 내가 그 모 습에 대해 어떤 느낌도 갖기 전에 아린이 유스타키오에게 물었다. "유스! 정말 저들이 니트를 노리는 자들이예요?" 야야... 날 노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붉은 구슬을 노리는 거라 니까. 알려면 좀 제대로 알아라. "그래... 엇?!" 아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유스타키오는 전면을 바라보다가 헛바람 을 토해냈다. 난 뭔일인가 하여 전면을 쳐다보았다. 전면에는 뉴런 기사단 이 무참히 박살나고 있는 장면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검은 갑옷을 착용한 적(敵)은 모두 7명이었다. 그에 비해 뉴런 기사단은 모두 20여 명. 하지만 저쪽이 1명 죽을 때마다 우리쪽은 5명씩 쓰러져 갔다. 그렇게 뉴런 기사단이 전멸했을 때 살아있는 흑기사들은 모두 3명이었다. "끄아악--!" 뉴런 기사단장인 랑비에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허공을 찢어 발겼다. 랑비 에는 한 흑기사의 검풍(劍風)에 사지가 완전히 절단되어 날아가 버렸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던 정원은 이제 검붉은 피로 물들고 말았다. 나를 비롯한 우리들은 우리 눈앞에 다다른 세 명의 흑기사를 노려보았다. 셋 중 에서 가장 키가 크고 가장 화려한 검을 들고 있는 흑기사가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소년! 그때 실프에게서 받은 은혜를 갚으려고 왔다." 어쩔시구리... 반어(反語)적 표현을 쓴다 이거지.... 하하, 누가 들으면 진짜로 은혜 갚으러 온 인간인 줄 알겠다. 흑기사는 날 싸늘히 노려보더니 말했다. "어서 붉은 구슬을 내놓아라. 그럼 고통없이 죽여주겠다." 푸하하! 그렇게 말하면 누가 내놓냐? 저거 완전 바보 아니야? "재주 있으면 뺏어가 보시지?" 나의 비꼬는 말에 흑기사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키가 제일 큰 흑기사 가 날 향해 검을 휘둘렀을 때 유스타키오는 즉시 내 앞을 가로막고 흑기사 의 검을 받아냈다. 난 유스타키오가 방해받지 않도록 뒤로 빠졌고, 흑기사 의 공격을 선두로 다른 두 흑기사도 우리를 공격했다. 아린과 루피니가 한 명의 흑기사와 상대했고, 나는 혼자서 흑기사 하나와 싸우게 되었다. 이런... 뉴런 기사를 가볍게 물리친 녀석을 나 혼자 어떻 게 막으란 말이야? "실프! 사라만다!" 난 제일 믿음직한 실프와 사라만다를 소환했다. 실프와 사라만다는 소환 되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오는 흑기사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실프의 날카로 운 바람은 사라만다의 뜨거운 불꽃을 싣고 흑기사에게 날아갔고 흑기사는 이리저리 공격을 피해냈다. 흠.... 공격을 피하는 것을 보니 저 갑옷에는 실드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모양이야. 좋아, 그럼 해볼만 하겠는걸? "노움! 운디네! 잭 오 랜턴! 모두 공격이다!" 난 다른 세 정령들도 소환하여 흑기사를 공격했다. 노움은 땅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어 흑기사의 하체를 공략했고, 잭 오 랜턴은 빛을 하나로 모아 흑기사의 눈에다가 쏘아댔으며, 운디네는 강한 수압의 물로 흑기사의 갑옷을 뚫으려 했다. 붉은 구슬을 노리는 흑기사의 동료인 흑기 사는 다섯 정령의 공격에 열이 받았는지 검에 검기를 일으켰다. 이런! 저 흑기사도 검기를 쓸 줄 알다니! 흑기사가 막 검기 실린 검으로 정령들을 공격하려고 할 때 난 흑기사와 가장 가까이 있던 노움과 사라만다를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목표물을 잃은 흑기사는 잠시 주춤거렸는데, 그 순간 내 뒤에 서 있던 인티가 신력을 발 휘했다.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여, 저에게 힘을!"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6.원치 않은 재회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85 게 시 일 :99/09/19 14:45:39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8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6 원치 않은 재회 -3- 파아앗--! 인티의 수정 구슬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와 흑기사의 갑옷을 가격했 다. 그러자 흑기사의 갑옷이 여지없이 박살났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난 실프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실프! 어서 마법을!" 실프는 빠르게 입을 놀리며 주문을 외더니 이내 나선 폭풍(螺旋 暴風) 마 법인 스파이럴 블래스트(Spiral Blast)를 일으켰다. 나선형의 날카로운 바 람이 흑기사의 몸을 그대로 관통했고, 흑기사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가슴 이 뻥 뚫린 채로 날아갔다. 으윽... 잔인하군..... 난 그 흑기사의 시체를 쳐다보기가 두려워 얼른 고개를 돌려 다른 동료들 의 상황을 확인했다. 유스타키오는 키 큰 흑기사와 팽팽히 잘 맞서고 있었 고, 아린과 루피니는 다른 한 명의 흑기사와 아슬아슬하게 싸우고 있었다. 아린과 루피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인티에게 '유스를 도와줘' 라고 말하고는 즉시 그들에게 뛰어갔다. 루피니의 검술은 유스타키오와 같은 원검술이란 것이었다. 원검술은 전에 유스타키오가 한 번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검이 주로 원을 그리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루피니의 원검술은 약간 부자연스러웠지만 그 런대로 훌륭한 편이었다. 옆에 있는 아린은 오른손에는 레이피어를 들고, 왼손에는 마법진을 방패 삼아 들고 있었다. 엇? 허공에다 그려놓은 마법진을 이동시키면서 움직인 다? 원진 마법에서 저런 것도 가능하다니.... 아린도 꽤 하는데? 까강--! 루피니의 검과 흑기사의 검이 서로 부딪쳤다. 서로의 검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아린은 왼손으로 들고 있던(?) 마법진의 한가운데를 손바닥으로 치 며 소리쳤다. "간다!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아린의 마법진에서 한 줄기의 번개가 곧장 흑기사에게로 날아갔다. 흑기 사는 루피니의 검을 막느라 아린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크윽!" 아린의 라이트닝 볼트를 옆구리에 얻어 맞은 흑기사는 나직한 신음과 함 께 급히 뒤로 물러났다. 루피니가 그 틈을 노려 흑기사의 손에 들려있는 검을 쳐냈고, 흑기사는 그대로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만 항복해라." 루피니는 흑기사의 눈앞에 검끝을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흑기사는 가만 히 서 있었다. 왠지... 불안한데? 난 운디네를 소환하여 운디네에게 마법 주문을 외우라고 지시했다. 내 예 감대로 흑기사는 나직한 웃음을 흘리더니 그대로 살짝 몸을 오른쪽으로 틀 어서 루피니에게 주먹을 날렸다. 루피니는 놀라 급히 검으로 흑기사의 어 깨를 내리쳤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흑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없었다. 퍼억! "으윽--!" 흑기사의 주먹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은 루피니는 그대로 자빠지고 말았 다. 저런 멍청이! 나 같으면 흑기사가 검을 놓쳤을 때 바로 찔러 죽여버리 겠다! 쐐애액--! 대기하고 있던 운디네는 내가 명령도 하기 전에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흑기사에게 분수 마법인 파운테인(Fountain)을 날렸다. 날카로운 물줄기가 루피니를 쓰러뜨리고 방심하고 있던 흑기사의 양미간으로 날아갔다. 퍼억--! 수박터지는 소리와 함께 흑기사의 뇌가 그대로 파열되고 말았다. 뚫린 양 미간 사이에서 피와 허연 뇌수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얼레? 왜 전혀 잔인 하단 생각이 안 들지?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도 없고. 정령을 이용했기 때 문인가? 음... 역시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을 받으려면 직접 칼로 쑤시는 게 제일 확실하지. 피가 터지고 뼈가 부러지는 느낌.... 이런... 내가 미 쳐가는군... "으악--!" 갑자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흠칫하여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 개를 돌렸다. 비명 소리의 주인공은 유스타키오였다. 유스타키오는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채 흑기사에게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설마.... 흑기사의 검풍에 날아가 버린 건가? "괜찮아요, 유스?" 난 즉시 유스타키오에게 달려갔다. 유스타키오는 힘없이 씩 웃더니 말했 다. "이런... 당하고 말았어....." 아린도 유스타키오의 옆에 다가왔다. 아세트는 막 일어서고 있는 루피니 를 부축하고 있었다. 그때 진짜 흑기사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크크... 내 부하들을 죽이다니 제법이군, 소년! 정령들을 그렇게 잘 다 루다니. 놀라운 수준이야. 하지만 내 리소좀을 당해낼 수 있을까?" 리소좀? 그게... 아, 저 녀석 손에 들린 검을 말하는 것이었군! 리소좀이라는 검의 가드 부분에 박힌 청록색 보석은 강렬한 청록빛을 발 하고 있었다. 난 실프와 운디네를 다시 소환하여 흑기사의 공격에 대비했 다. 흑기사는 실프와 운디네를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크크... 내 갑옷에는 실드 마법이 걸려있다. 정령들의 공격은 나에게 먹 혀들지 않아!" 시끄러, 이 녀석아! 전에 그렇게 자신하다가 실프의 공격에 당한 주제에! 이번에도 반드시 눈탱이 공격을 성공시킬 테니까 두고 보라고! "호호호! 아저씨의 눈엔 니트만 보이는 모양이지? 여기 원진 마법의 대가 아드레날린이 있다구!" 옆에 있던 아린이 소름끼치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으헉... 역겨워. 제발 그런 웃음 소리 내지마! 듣는 사람도 생각해 줘야할 거 아니야?! 휘리릭-- 아린이 허공에다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레이피어는 허리 춤에 꽂아 넣고 양 손으로 그리고 있었다. 우와... 똑같이 그리네? 합쳐 놓으면 완전 히 포개지겠는걸? 저렇게 똑같이 그리는 거 힘들텐데. "호오... 양 손으로 마법진을 그린다? 제법 한다만.... 그런 수준의 마법 으론 내 갑옷을 뚫을 수 없다!" 흑기사는 아린이 마법진을 다 완성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다. 자신의 갑옷에 대해 아주 자신하는 모양이군. 저러다가 큰코 다치지.... 저 흑기 사의 코가 큰 지 작은 지는 모르지만. 아린은 마법진을 그리는데 무려 10여 초를 소모했다. 도대체 어떤 마법이 길래 저렇게 마법진이 복잡한 거야? 무슨 엄청난 마법을 쓰려고? 양 손에 마법진을 완성한 아린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아저씨는 끝난 거야! 아드레날린 최고 비기 양진합일(兩陳合一)!" 그렇게 외친 아린은 갑자기 양 손을 하나로 모았다. 그에 따라 아린의 손 에 형성되어 있던 마법진이 이동하더니 하나로 포개졌다. 그리고 마법사라 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기운.... 마나의 완전 공명! "가랏! 더블 스크류 라이트닝(Duble Screw Lightning)!" 아린은 힘차게 소리치며 포개진 마법진의 중앙 부분을 두 손바닥으로 강 타했다. 순간, 마법진에서 두 줄기의 번개가 나사처럼 엉키며 뻗어 나와 흑기사에게 날아갔다. 실로 번개같은 속도였다. ...... 부서졌다. 흑기사의 갑옷이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흑기사의 놀란 표정 이 그대로 드러났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굉음.... 콰르릉---! 파아악--! 하나는 아린의 마법진에서 난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흑기사의 갑옷이 부 서지는 소리였다. 더블 스크류 라이트닝의 속도가 빛의 속도만큼이나 빨랐 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속도가 느린 소리가 나중에 들린 것이다. 마지막으 로 흑기사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커억---!"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7.원치 않은 재회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07 게 시 일 :99/09/21 22:30:33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6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7 원치 않은 재회 -4- 흑기사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고, 그 순간 쓰러져 있던 유스타키오 가 재빨리 일어나 그의 목에 검을 들이대며 그의 손을 걷어찼다. 인상이 날카롭고 험악해 보이는 흑기사는 검을 놓쳤고 난 즉시 달려가 리소좀이라 는 검을 집어들었다. 완전히 포로가 된 흑기사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렸다. "크크크... 날 죽여라." "이봐, 죽이는 건 우리 맘이라구.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내가 막 질문을 하려고 할 때 흑기사는 싸늘히 웃었다. "크크... 내가 대답할 것 같나?" 어쭈구리? 흐흐흐... 네가 대답 안 하고 배길 수 있을까? 난 리소좀을 단단히 쥐고 흑기사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타이르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 "왜 붉은 구슬을 노리는지 말해 주겠니~?" "퉤!" 철퍽... 흑기사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난 그 흑기사의 침을 그대로 맞고 말았 다. 음... 허허허.... 어처구니가 없군.... 운디네를 불러 침을 닦은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흑기사의 오른쪽 허벅다 리를 찔렀다. "끄악--!" 이번에는 왼쪽 다리도 가벼운 마음으로 찔렀다. 또다시 들려오는 비명 소 리. 후후... 이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감히 나한테 더러운 침을 뱉어?! 이 빌어먹을 새끼! 난 또다시 흑기사를 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날 말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튀어오르는 피와 흑기사의 비명 소리. 우하하하, 아 주 재미있는데? 흑기사를 완전히 피떡으로 만든 뒤에 난 손을 멈추었다. 흑기사의 두 팔 과 두 다리는 거의 절단된 상태였다. 난 그의 목에 다시 칼을 들이대며 낮 게 물었다. "자~ 붉은 구슬을 왜 노리지?" "끄으으...." "대답 안 하면 또 찌른다?" "차라리... 날 죽여라.... 끄으...." 흑기사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다가 고통에 이내 고개를 돌렸다. 난 흑기사의 목에 조그만 상처를 내며 말했다. "넌 죽을 권리도 없어. 말하면 고통없이 죽여주지." 에... 이건 전에 흑기사가 나한테 했던 말 같은데? 이번엔 주객이 전도되 었군. 역시 사람의 앞날이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럼그럼. "난... 절대로... 말... 하지 않는다...." "그래? 몰라서 그런가 보지? 하긴 너같은 쫄따구에게 누가 그런 걸 가르 쳐 주겠냐... 기대한 내가 잘못이군." "....." 흑기사는 내 유도 심문에 넘어가지 않았다. 조금 노련한데? 그럼 하는 수 없군. 또다시 협박을 가하는 수 밖에. 난 또다시 흑기사를 가볍게 찔렀고 흑기사는 비명을 발했다. 옆에 있던 유스타키오가 내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만해, 니트! 왜 이러는 거야?" "이건 제 일입니다." 난 그렇게 말하고 유스타키오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흑기 사에게 고통을 가했다. 고통을 가하면서 빨리 말하라고 했지만 흑기사는 신음만 낼 뿐 전혀 말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귀찮은 녀석! 푹---! 난 마지막으로 흑기사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검을 통해 살을 뚫는 느낌이 생생히 전해졌다. 오호... 사람을 죽이는 느낌이 팍팍 와 닿는군! 가볍게 흑기사를 저승으로 보낸 나는 노움을 불렀다. 노움은 내 마음을 읽고는 흑기사의 시체를 땅속으로 끌고 갔다. 흑기사의 시체가 완전히 땅 속으로 사라진 후, 난 운디네를 불러 리소좀과 내 몸에 묻은 피를 닦아 내 었다. 모든 일이 끝나자 갑자기 무서운 느낌이 찾아들었다. 빌어먹을... 토할 것 같군.... 기분 정말 더러운데? 흑기사 녀석이 침만 뱉지 않았어도 이렇 게까진 하지 않았을 텐데.... 으... 생각할 수록 더 열받잖아? 좀더 고통 을 줘서 죽였어야 했는데! "니, 니트...." 유스타키오가 이상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하하, 내가 이렇게 잔인하게 논 것을 본 적이 없을 테니 놀랐겠군. 뭐 사람을 찔러보기는 이 번이 처음이지만. 처음 찔러보는데 너무 능숙했나? 후후후. "이것으로 적은 모두 섬멸했습니다. 전 먼저 올라갈게요." 난 유유히 리소좀을 들고 내 방으로 올라갔다. 모두들 공포의 질린 얼굴 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아린은 제자리에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표정 을 짓고 있었다. 마법을 무리해서 썼기 때문인가? 하긴, 마나의 완전 공명 을 일으켜서 마법을 구사했으니.... 그나저나 대단하다. 양진합일이라고 했던가? 나도 그거 배워보고 싶은데.... 표정을 보아하니 안 되겠군. 2층에 있는 내 방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 누웠다. 가만히 누워있으려니까 갑자기 공포가 엄습해왔다. 흑기사를 찌를 때의 그 느낌... 흑기사의 비명 소리..... 으윽... 손이 마구 떨린다.... 큭... 내가 그런 잔인한 짓을 하다니.... 만약 흑기사가 나였다면.... 으 으... 내가 사람을 찌르다니.... 사람을....! "으아아아---!" 난 마구 비명을 질렀다. 흑기사의 피에 젖은 모습이 자꾸 내 눈앞에 떠올 랐다. 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영상은 지워지지 않았다. 흑기사의 비 명 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아무리 귀를 막으려 해도 그 소리는 계속 들렸 다. 온몸이 칼에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흑 기사가 나한테 당할 때도 이런 고통이었을까....? "음...." 난 신음과 함께 눈을 떳다. 주위는 조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밤인가? 내가 도대체 얼마동안을 잔거지? 흑기사를 죽였을 때가 12시쯤이었으니까 ...... 흑기사... 이런.... 잊어버리자. 이미 지난 일이니까..... 난 밖으로 나갔다. 주위는 너무나 고요했다. 병사들과 기사들이 죽어서 그런 것인가? 이런... 나 때문에.... 내가 붉은 구슬을 가지고 있기 때문 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 떠날까? 흑기사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녀석들이 또 나를 노 리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계속 이곳에 있다간..... "후...." 난 심호흡을 했다. 마음의 결정을 보았다. 몸을 돌려 다시 내 방으로 올 라간 나는 가방과 리소좀을 집어들었다. 전에 무기점에서 산 이상하게 생 긴 검은 놔두고 가야겠군. 뭐 내 돈으로 산 게 아니니까 아깝진 않다. 설 령 내 돈으로 샀더라도 필요가 없으면 난 가져가지 않는다. 역시 난 낭비 벽이 심한 인간이야.... 리소좀을 검집에 넣고, 검집을 허리에 둘렀다. 리소좀이 검집에 들어가서 다행이군. 안 들어갔다면 들고 갈 뻔했다. 생각보다 리소좀이 가볍군. 잘 됐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겠는걸? 난 연습장을 찢어 글을 썼다. 내용은....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나 홀로 여행을 떠날테니까 찾지 마십시오.- 하하하, 간단하다. 돈이냐 넉넉하니까 두려울 것도 없고.... 이제 가자. ..... 운동화를 신고 있기 때문에 전혀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난 누구에 게도 들키지 않고 정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또한 무사히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병사들은 흑기사들과의 전투로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현 재는 병사들이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치안이 걱정이군. 뭐 알아서 하겠지 .... 내가 신경쓴다고 될 일인가.....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었 네? 이런... 배고파라. 우선 음식점에 들러서 식사라도 해결해야 겠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한 나는 마차를 빌려타고 케미컬국에 있는 '오비탈'로 향했다. 왜 그리로 가냐구? 응... 전에 내가 도와줬던 아줌마가 잘 살고 있는지 궁 금해서. 어차피 갈 곳도 없는데 뭘. 뭐? 그 아줌마가 누구냐구? 있잖아,전에 흑기사와 처음 만났 던 곳 말이야. 그 전에 깡패들을 쫓아낸 적이 있 었잖아. 그때 내가 돈을 주고 갔던 그 아줌마. 기억나냐? 안 난다구? 그럼 기억력이 나쁘군. 나도 기억하는데. 기억력 좀 길러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8.크레졸의 행방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08 게 시 일 :99/09/21 22:30:59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6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8 크레졸의 행방 -1- 마차를 타고 하루 정도 걸려 '오비탈'에 도착하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 도착해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난 기억을 더듬으며 아줌 마가 일하고 있는 거리를 찾았다. 약간 헤맸지만 길거리에서 포장마차 비 슷한 이동 수레에서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는 그 아줌마를 찾을 수 있었 다. 아직도 일하고 있었군. 다른 데로 갈 줄 알았는데. 난 그 아줌마에게로 갔다. 거리가 한산해서 인지 찾는 사람이 없었다. 아 줌마는 의자에 앉아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아줌마!" "아, 네!"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던 아줌마는 내 부름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러다가 상대가 나라는 것을 보고 약간 마음을 놓으며 말했다. "무엇을 드릴까요?" "음... 여기 뭐뭐 파는데요?" "스테이크, 햄버거, 샌드위치 등등." 아줌마는-아줌마라 하기엔 너무 젊지만 부를 말이 없어...- 비교적 아름 다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레? 이런 시대에 햄버거나 샌드위치가 있다 구? 샌드위치는 적어도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졌던 것 같은데. 아닌가? 뭐 어쨌든 여기는 판타지 세계니까 상관없겠지. 그나저나 이 아줌마는 날 못 알아보는 것 같군. 하긴 그때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지금은 갈색 상의에 검은 바지니까 기억할 리가 없지. 난 내 얼굴 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잘됐다. 부담없이 먹을 수 있겠는걸? "그럼 햄버거 하나만 주세요." "네, 잠시 기다리세요!" 아줌마는 힘차게 대답하며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두고 있던 빵에 고기와 야채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만든 햄버거를 은박지 비슷 한 것으로 싼 후에 어떤 기구 속에 집어넣고 불을 붙였다. 기구는 둥근 구 모양이었는데 구 중앙에는 작은 선반이 있었고 햄버거는 그 선반 위에 놓 여졌다. 지펴진 불은 그 기구를 달구기 시작했다. 꼭 전자 레인지같군. 저 렇게 햄버거를 익히나 보지? "그 기구 신기하네요. 그걸로 햄버거를 익혀요?" 내가 묻자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한 석 달 전에 어떤 분이 30페리를 주고 가셨는데 그 돈으로 산 거 예요. 그래서 햄버거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가? 잠깐! 석 달 전이라면.... 그리고 30페리를 주고 갔다면.... 나? "그 어떤 분이 누군데요?" "글쎄... 특이한 옷을 입은 소년이었는데.... 잘 모르겠네요. 손님과 나 이가 비슷할 거예요." 역시.... 나였군. 내가 준 돈으로 저 기구를 샀단 말이지? 내 돈이 좋은 데에 쓰였군. 하하하.... 그런데 깡패들은 어떻지? "다 됐습니다, 손님!" 아줌마는 웃으면서 나에게 햄버거와 들고 먹을 수 있도록 종이 쪼가리를 건네 주었다. "잘 먹을게요." 난 햄버거를 덥썩 깨물었다. 그리고 우적우적 씹었다. 헉... 이러니 꼭 내가 괴물같잖아? 어쨌든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라구. 내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줌마는 몇 번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날 알아본 것은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 없어.... 다행히 아줌마는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난 급히 햄버거를 다 먹고 나서 물었다. "얼마죠?" "우선 물 드세요." 아줌마는 물을 건넸고 난 물을 마셨다. 내가 물을 다 마시자 아줌마는 입 을 열었다. "1페리 되겠습니다." 1페리... 비싼 건지 싼 건지.... 에... 귀찮아. 싸다고 생각하자. "여기있습니다." 난 아줌마에게 돈을 내밀었다. 돈을 받아든 아줌마는 기겁했다. "이, 이건 100페리?!" 하하, 재밌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 그래도 난 지금 무려 400페리나 가지 고 있다구요. 돈이 남아돌아서 문제야. 허허허, 이런 얘기를 우리나라에서 하면 난 맞아 죽겠지? "제가 돈이 조금 많아서요. 좋은 일에 쓰세요. 그럼...." 난 그렇게 말하고 또 사라지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아 줌마는 100페리를 보고 정신이 거의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날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안 가냐구? 저길 봐. 그 깡패들이 오잖아. "오랜만에 일을 시작하는군!" "빌어먹을 그 괴물 때문에 석 달 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아우!" "그러게 말이야. 그동안 몸이 근질거려 미치는 줄 알았다구!" 험악하게 생긴 남자 세 명이 그런 시덥지 않은 말을 나누며 점점 이리로 오고 있었다. 음... 마침 기분도 그런데 잘됐군. 이번 기회에 깡패들의 뿌 리를 완전히 뽑아 주겠어! "어이, 거기 깡패 아저씨들!" ".....?" 깡패들은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 다. "그 동안 사라만다 때문에 전혀 직업에 종사하지 못한 것 같은데.... 좋 게 말할 때 본거지를 말하시지?" "뭐야, 넌?" 깡패들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난 즉시 사라만 다와 실프를 불렀다. 사라만다를 본 그들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허억! 또 그 괴물?!" "그럼 저 녀석이 저 괴물을 다루고 있단 말이야?!" 깡패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쿠쿠쿠... 출근 첫날부터 날 만나다니 당신들은 참 운도 없군. 우선 가볍게 요리해 줘야 겠지?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실프는 강한 바람을 일으켜 깡패들을 위로 들어 올렸다. 깡패들은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고 실프는 그대로 그들을 내팽개쳤 다. "커억!" 깡패들은 동시에 신음을 발하며 땅바닥에 쳐박혔다. 사라만다는 그들 주 위를 뜨거운 불로 둘러쌌다. 졸지에 뜨거운 불 속에 갇혀 옴짝달싹도 못 하게 된 깡패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불꽃은 비교적 투명했 기 때문에 난 그런 그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본거지가 어디있지? 죽기 싫으면 말해!" 내 위협에 깡패들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알코올의 술집'입니다!" 하하, 바로 대답하는군. 그런데 '알코올의 술집'? 이름하나 끝내주는데? 난 사라만다에게 불꽃을 거두어 들이라고 명령했고 사라만다는 잠시 띠꺼 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불길을 사그라뜨렸다. 불길이 완전히 사라진 후,나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안내해!" "예, 예!" 세 명의 깡패들은 황급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내 눈치를 보며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난 실프만을 데리고 천천히 그들을 따라갔다. 꾸불꾸불한 골목을 지나 어떤 큰 술집에 도착했다. 간판에는 '알코올의 술집'이란 글씨가 엉성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여기가 이곳 깡패들의 본거 지인 모양이군. 긴장되는걸? "들어가!" 난 세 깡패들에게 명령했고 그들은 엉거주춤하며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들어가자 우선 술냄새가 내 후각을 마구 자극했다. 술 자체의 냄새는 향긋하지만 술 취한 인간에게서 나는 냄새는 정말 지독하다. 이곳 은 완전 술 취한 인간들의 입냄새로 가득차 있었다. 최악이군. 실프는 바람으로 화하여 내 몸을 둘러쌌다. 그러자 냄새들이 사라졌다. 이제야 살 것 같군. 좋아, 이제 시작해 볼까? "여기가 깡패들 소굴인가? 깡패들이라 그런지 정말 지저분하군!" 내 말에 모두들 날 노려보았다. 난 씨익 웃은 후에 말했다. "너희들이 깡패라는 걸 알고 왔다. 그러니 두목이나 불러라." "후후후, 왠 꼬맹이가 시끄럽게 짖는군. 좋게 말할 때 꺼져!"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전형적인 깡패 하나가 내 앞에 섰다. 난 허리에 차 고 있는 리소좀을 뽑아들었다. 순간 내 앞에 서 있던 깡패는 흠칫하여 뒤 로 물러났다. 난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저승 구경할 준비나 하라고." ━━━━━━━━━━━━━━━━━━━━━━━━━━━━━━━━━━━제 목 :[사이케델 리아] 59.크레졸의 행방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18 게 시 일 :99/09/23 13:02:07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7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59 크레졸의 행방 -2- "쿠하하! 웃긴 녀석이군! 어디 우리를 저승에 보내 보시지?" 깡패들이 내 말에 껄껄 웃었다.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뿐이었다. 이곳에 술 마시러 온 보통사람들은 없는 모양이야. 하긴... 이런 곳에 왔다간 깡패들에게 돈 털리기 딱 좋지..... 좋아, 부담 없이 싸울 수 있겠는걸? "후후... 모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라고!" 난 리소좀을 움켜쥐며 휘두를 것처럼 폼을 잡았다. 그러나 난 실프와 사 라만다로 공격할 생각이었다. 리소좀이 힘과 파괴의 검이라지만 내가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할 리가 없으니까. 우하하, 한 마디로 훼이크(Fake)지. 내가 막 사라만다를 소환하려고 할 때, 갑자기 뒤에서 낭랑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기다려, 소년!" 으다닷---! 뭐야? 막 공격을 할 참이었는데.....! 난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깡패들도 시선을 모두 내 뒤쪽으로 돌렸다. 내 뒤에는 녹색의 로브를 입은 잘생긴 청년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청년은 손에 이상한 돌멩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 돌멩이에서 녹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뭐냐, 저 돌멩이는? 돌멩이에서 빛이 나다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초록색 머리칼의 청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했다. "넌 어디서 그 검을 얻은 거냐?" "에... 어떤 흑기사에게서 얻었는데요." "그래? 그 흑기사가 순순히 검을 줄 리 없을 텐데?" 얼레? 저 사람은 그 흑기사에 대해 아는 모양인데? 뭐라고 대답하지? 으 으... 사실대로 말해? 아니면 거짓말을 해? 갈등 생긴다...... 내가 그렇게 갈등하고 있을 때 깡패들 중에 하나가 청년을 향해 소리쳤 다. "넌 뭐야?!" 청년은 소리친 깡패를 힐끗 쳐다보더니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희같은 녀석들에게 내 존귀한 이름을 알릴 필요성을 못 느낀다." "뭐, 뭐야?! 저 싸가지 없는 녀석!" 청년의 겁대가리를 상실한 말에 깡패 몇 명이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여전히 오른손에 녹색빛이 나는 돌멩이를 든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깡패 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청년 가까이 다가간 깡패 중 하나가 입에 담을 수 있는(?) 욕과 함께 청년의 따귀를 갈겼다. 순간, "으아악--!" 청년의 따귀를 갈긴 깡패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뺨 을 감싸쥐고 있었다. 얼레? 난 저 청년이 손을 움직이는 걸 전혀 보지 못 했는데? 엄청 빠르다..... "이, 이 녀석! 감히....!" 보이지도 않게 손을 휘두른 청년에게 두려움을 느낀 모양인지 깡패들이 한꺼번에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청년은 여전히 비웃음을 머금으며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깡패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청년의 몸에 닿은 순간, "끄악!" "커억!" 청년이 아닌 깡패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에...? 뭔가 이상 하다.... 아무리 봐도 저 청년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저 많은 깡 패들을 쓰러뜨린 것 같진 않은데.... 왜 깡패들이 쓰러진 거지?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동안 청년은 쓰러져 있는 깡패들을 경멸의 눈초 리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녀석들, 나에게는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이 있다. 내가 이 크 레졸을 꺼내면 그 누구도 싸워서는 안 되지. 폭력을 쓰는 자는 자신이 도리어 당하게 된다.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너희들은 깡패로서의 자격도 없는 거야." 뭐?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저 청년이 들고 있는 돌멩이가 크레졸? 그, 그럴 리가.....? 그럼 저 청년은 도대체 누구......? "우욱! 개소리마라! 모두 덤벼!" 쓰러져 있던 깡패 하나가 그렇게 소리치며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청년은 계속 가만히 있었고 깡패들은 탁자를 뽀개 탁자 다리로 청년을 내려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비명을 지르고 나가떨어지는 것은 깡패들이었다. "마, 말도 안돼....!" 깡패들의 두목인 듯한 자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청년에 게 덤비지 않았던 깡패들은 주춤주춤하며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 었다. 청년은 손에 들고 있던 돌멩이, 아니 크레졸을 소매 속에 집어 넣고 는 입을 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주지. 불의 중급 정령 페아 소환!" 그의 외침과 동시에 청년의 앞에 한 마리의 페아가 소환되었다. 불의 중 급 정령 페아는 불타는 듯한 빨간 날개를 펄럭이며 청년의 명령을 기다렸 다. 청년은 깡패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들을 모두 태워버리도록!" 끼악--! 페아는 그의 말에 대답하듯 한 번 울어제낀 뒤, 깡패들을 향해 날아갔다. 페아가 날아오자 깡패들은 혼비백산하여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페아는 강력한 불꽃을 내뿜으며 그들 모두를 태우기 시작했다. "우아악---!" "사람 살려---!" 여기저기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깡패들은 페아가 내뿜은 불 꽃에 휩싸여 죽어갔다.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불길은 깡패들 뿐만 아니라 술집에도 옮겨 붙어 건물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런! 여기에 있다간 인간 통구이가 되겠다! 난 즉시 술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청년은 어느새 술집 밖에 나와 있었다. 술집 안에선 여전히 깡패들의 비명소리가 처절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건 물은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고, 더이상 깡패들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타닥타닥-- 나무 탈 때 나는 소리만이 내 귀를 간질였다. 청년은 다시 크레졸을 꺼내 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은 네가 흑기사를 죽여 얻은 것이겠지?" 뭐야? 저 사람 다 알고 있잖아? 속여도 소용없겠군. "그렇다면?" "후후, 어서 그 두 개의 성물을 내놓아라. 리소좀과 붉은 구슬 말이다." 청년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이 나에게는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도 대체 누구길래 붉은 구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거야? 설마.... 이 사람도 흑기사와 같은 패인가? "한 가지 물어보자." "응? 후후, 질문이라. 좋아, 한 번 해봐." 내 말에 그 청년은 약간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너.... 한 1년 전인가 2년 전에.... 카르본에서 크레졸을 뽀렸지?" "뽀려? 아... 훔쳤다는 말이로군. 쯧쯧, 그런 속어를 쓰면 안 되지." "시꺼! 답이나 하라고!" "후후, 좋아. 그랬다. 됐냐?" 청년의 대답에 난 그가 아세트의 언니와 함께 카르본에서 사라진 '옥신' 이라는 인간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난 또다시 질문했다. "아세트의 언니.... 그러니까 에티르.... 는 어떻게 했지?" "에티르말인가? 그야 당연히 저 세상으로 보냈지. 그녀는 우리의 계획을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청년은 음침하게 웃었다. 아세트의 언니를 죽였단 말이지.... 빌어먹을 녀석! 여자를 이용만 하는 저 극악무도한! 나도 청년처럼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에티르의 원수를 갚아보기로 할까?" 난 정령을 소환하려고 했다. 그때 청년의 말이 들려왔다. "공격할 생각인가? 어리석은 녀석! 아직 크레졸의 힘을 잘 모르나 보군!" 엥? 크레졸의 힘? 아... 아까 깡패들을 날려보냈던? 그런데 그게 뭐 어쨌 다구? 잠깐! 저 녀석이 깡패들에게 뭐라고 말했었던 것 같은데.... 자기가 크레졸을 꺼내면 모두들 싸워서는 안 된다라고 했던가? 폭력을 쓰는 사람 이 당한다라고.... 그럼.... 저 녀석이 크레졸을 들고 있을 때 내가 공격 하면 내가 당한다는 소리?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0.크레졸의 행방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19 게 시 일 :99/09/23 13:02:31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7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0 크레졸의 행방 -3- 난 정령을 소환하여 공격하려는 생각을 그만두고 청년, 즉 옥신을 노려보 았다. 옥신은 여전히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군. 후후, 크레졸을 꺼냈을 때는 나도 다른 사람 을 공격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공격한 만큼 내가 당할 테니까. 어쨌든 이제 대화로써 얘기를 풀어나가자고." 대화 좋아하시네.... 안되면 당장 크레졸을 집어넣고 공격할 녀석이....! "네 이름은 뭐지?" 옥신은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지만 이미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 친근한 표정이 가식임을 느꼈다. "너같은 녀석에게 알려줄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 옥신의 이마에 힘줄이 몇 개 생겨나는 듯 했다. 옥신은 일순간 표정이 변 했다가 다시 친근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좋아, 그럼 하나 묻자. 넌 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나?" ".....!" 내가 살고 있는 곳? 설마...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이야? "난 네가 다른 차원에서 왔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그 차 원과 관련이 있지. 우리의 계획을 조금 들려주기로 할까?" 난 가만히 그의 말을 들었고 옥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는 삼성물, 그러니까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힘과 파괴의 검 리 소좀,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모았다. 처음에는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얻 은 한 마법사가 우리를 찾아왔었다. 삼성물을 모으자고. 왜 모으냐는 그 분의 질문에 그 마법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더군. '삼성물을 모으게 되면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라고." "다른... 차원....." "그래. 그 분께서는 흥미를 가지시고 나머지 두 개의 성물을 회수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난 카르본에 있다고 알려진 크레졸을 얻기 위해 카르본 에 위장 잠입했던 거다. 그때 에스테르였던 에티르를 꼬셔서 크레졸을 가져오는데 성공했지. 내가 돌아갔을 때 쯤에는 리소좀도 회수해 놓은 상태더군. 어쨌든 그렇게 삼성물을 회수한 우리는 차원을 열기 위해 의 식을 치루었다. 결과는 실패였어. 나중에 원인을 분석하던 그 마법사가 차원을 완전히 열기 위해서는 하나의 성물이 더 필요하다고 하더군. 그 게 바로 네가 가지고 있는 붉은 구슬이다. 붉은 구슬은 처음부터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하더군. 우리가 치른 의식으로 붉은 구슬은 이미 이 세계로 넘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붉은 구슬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옥신은 한번에 엿가락처럼 주르르륵 말을 내뱉었다. 몇 가지 의문점이 든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삼성물을 모으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후후,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분의 밑에는 수없이 많은 수하들이 있다. 그러니 그들을 다 풀면 삼성물 쯤이야 별 어려움없이 찾을 수 있지."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분이라는 사람은 왜 다른 차원으로 가려고 하 는 거야?" "후후... 너 같은 꼬마는 알 필요없다. 그 분 나름대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러시는 거야." 어쭈? 나보고 꼬마? 키도 나하고 비슷한 주제에 꼬마라니? 물론 나보다 아주 아주 약간 크지만..... 옥신은 타이르듯이 날 보며 말했다. "너도 네 세계로 돌아가고 싶을 거 아닌가? 네가 만약 붉은 구슬과 리소 좀을 준다면 우리는 너를 네 세계까지 무사히 보내줄 것을 약속하마." 푸하하! 도대체 그 말을 누가 믿는다고 그래? 나 같이 의심많은 인간은 그런 말 절대 안 믿는다고!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군. 힘으로라도 빼앗는 수 밖에." 옥신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 연기가 죽이는 구 만! 그러니 아세트의 언니가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겠지. 저런 녀석은 빨 리 염라대왕을 만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옥신은 크레졸을 소매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을 열어 외쳤다. "불의 중급 정령 페아 소환!" 끼악--! 아주 잠시 후, 옥신의 앞에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불새인 페아가 소환 되었다. 나는 바람이 되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실프를 대기시켰다. 이윽 고 옥신의 명령이 떨어졌다. "저 소년을 태워버리도록!" 끼악--! 페아는 울부짖으며 나에게 불꽃을 내뿜었다. 내 앞에 있던 실프가 즉시 바람을 일으켜 그 불꽃을 막아냈다. 그것을 보고 옥신이 크게 놀랬다. "바람의 하급 정령이 불의 중급 정령의 공격을 막아?!" 페아는 실프가 자신의 불꽃을 막아내자 기분 나쁜 듯이 날카로운 울음소 리를 내고는 육탄 공격으로 들어왔다. 실프는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우며 바람의 장벽을 쳤고, 페아는 그 바람 장벽에 튕겨져 나갔다. 그 사이, 나 는 불에 반대되는 속성인 물의 정령 운디네를 소환했다. 그리고 운디네에 게 마법 주문을 외우라고 지시했다. 한편 옥신은 페아가 튕겨져 나가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이었다. 말도 안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젓던 옥신은 다시 페아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페 아도 화가 났는지 더욱 강한 기세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 순간, 마법 주문 을 외우고 있던 운디네가 분수 마법인 파운테인을 전개했다. 파아앗--! 날카로운 다섯 줄기의 물줄기가 페아의 몸을 관통했다. 페아는 처절한 비 명을 지르며 소멸하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데? 파운테인을 다섯 손가락으 로 펼칠 수 있다니 말이야. 그리고 하급 정령이 중급 정령을 소멸시키다니 ..... 정말 키운 보람이 있었구나..... "이, 이건 말도 안돼! 어떻게 하급 정령이 중급 정령을....!" 옥신은 거의 미쳐버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하하! 이거 통쾌해지는데? 누가 하급 정령을 성장시키려는 생각을 하겠어? 모두들 마력이 되면 고위 정령들만 소환하려고 하지. 후후... 역시 난 훌륭한 인간이야..... "감히... 페아를 소멸시키다니....! 좋아! 그럼 나도 마지막 수단이다!" 옥신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마지막 수단? 크레졸을 꺼내서 도망치려고? 얼레? 행동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이때 공격해야겠다! "실프! 어서 공격....!"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옥신의 입에서 한 마디의 외침이 터져 나왔 다. "불의 상급 정령 갈리노 소환!" 뭐, 뭣?! 불의 상급 정령? 이런 빌어먹을....! 옥신의 앞에 거대한 모습의 갈리노가 나타났다. 키는 나의 세 배 쯤 되어 보였는데 온몸이 불타는 듯한 붉은색이었다. 첫눈에 티라노 사우루스같다 는 느낌이 드는 정령이다. 불의 상급 정령 갈리노는 콧구멍에서 불꽃을 내 뿜으며 날 노려보았다. 으윽.... 내 정령들이 저 상급 정령을 물리칠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진다..... "사라만다, 노움, 잭 오 랜턴!" 난 내가 부릴 수 있는 정령을 모두 소환했다. 다섯 정령은 자신의 앞에 있는 불의 상급 정령을 보고 위축된 듯했다. 난 그들의 용기를 북돋기 위 해 힘차게 소리쳤다. "상대는 하나뿐이야! 아무리 상급 정령이라 하더라도 너희들이 한꺼번에 공격하면 막을 수 있어! 나도 지원을 할테니까 걱정하지마! 모두들 자신 의 최강 주문을 외우라구!" 내 외침소리를 들은 옥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들이 마법을 쓴다? 정말 웃기는 일이로군. 그래봤자 갈리노에게는 못당한다! 갈리노, 저 재수없는 녀석들을 쓸어버려!" 갈리노는 옥신의 명령에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난 운디네에게 가르 쳐서 잘 알고 있는 분수 마법 파운테인(Fountain)을 캐스팅했다. 저 갈리 노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난 죽는다! 좋아.... 한 번 해보는 거야!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1.크레졸의 행방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33 게 시 일 :99/09/25 10:00:51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7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1 크레졸의 행방 -4- 내가 주문을 외우는 동안 다섯 정령들도 주문을 완성했다. 갈리노가 우리 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을 때 난 정령들에게 소리쳤다. "공격!" 노움이 제일 먼저 공격했다. 노움은 토창 마법인 그라운드 스피어(Ground Spear)를 사용하여 갈리노의 몸통을 토창으로 뚫어버렸다. 물론 그 정도로 는 갈리노가 죽지 않는다. 몸을 관통당하여 화가 난 갈리노가 노움을 향해 불을 내뿜으려고 할 때 잭 오 랜턴이 발광 마법 라이트(Light)를 최대한 발휘하여 갈리노의 눈을 노렸다. 보라색의 빛이 그대로 갈리노의 눈을 향 해 날아갔다. 보라색 빛은 가시 광선 중에서 가장 파장이 짧기 때문에 에 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보라색 바깥쪽에 위치한 자외선이 우리 몸에 해 로운 이유는 바로 파장이 짧아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서 그런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해 주는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는 것을 걱정 하는 것 아니겠어? 억... 왜 얘기가 이쪽으로 넘어오게 됐지.....? 잭 오 랜턴의 보라색 빛은 갈리노의 눈을 정통으로 맞혔고 갈리노는 고통 을 느꼈는지 눈을 감으며 울부짖었다. 그 순간을 노려 사라만다가 갈리노 에게 2클래스급의 파이어 볼을 날렸고 갈리노는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불 의 상급 정령을 불로 상대한다.... 뭔가 모순인 것 같은데? 하지만 더 강 한 불이 약한 불을 누르는 것 아니겠어? 사라만다의 파이어 볼이 갈리노보 다 강하기를 바래야지..... 그러나 갈리노는 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우리를 노려보았다. 역시... 무 리였어.... 좋아, 이젠 내가 나서볼까? 이미 마나의 변화를 유도해 놓았기 때문에 난 바로 마법을 구사했다. "파운테인!"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운디네도 파운테인을 전개했다. 합하여 일곱 개의 날 카로운 물줄기가 갈리노에게 날아갔다(운디네는 페아를 소멸시키느라 정신 력을 많이 낭비했기 때문에 물줄기를 2개 밖에 생성시키지 못했다). 거대 한 덩치의 갈리노는 그 일곱 개의 물줄기를 그대로 맞았고 물줄기가 닿은 곳의 불꽃이 픽하고 꺼졌다. 갈리노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고 사방으로 불 똥이 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실프가 나선 폭풍 마법인 스파이럴 블래 스트(Spiral Blast)를 일으켜 갈리노를 공격했다. 두 줄기의 바람이 나사 모양으로 휘감기며 갈리노의 몸을 찢어발겼다. 쿠아악----! 갈리노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나왔다. 갈리노는 제대로 된 공격 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정령계로 사라졌다. 믿었던 갈리노가 어이없이 당하자 옥신은 경악을 넘어 불신에 찬 얼굴을 했다. "갈리노가... 불의 상급 정령이.... 하급 정령들에게 당하다니....!" 난 마법을 사용하느라 지친 실프와 운디네를 정령계로 돌려보내고 옥신을 쳐다보았다. 옥신도 날 보고 있었다. 시선이 닿자 옥신은 -내가 보기에- 음흉하게 웃으며 소매 속에서 크레졸을 꺼내들었다. 저럴 줄 알았다..... "정말 대단하군... 하급 정령들을 그렇게나 성장시키다니. 이번엔 내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하지만.... 이것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 중에 다시 대결해 줄테니까." 옥신은 패배자로서의 얼굴은 전혀 짓지 않고 당당히 말했다. 역시 저 인 간은 낯짝이 두꺼워. 이중적인 성격의 영화 배우를 하면 딱이겠는데?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옥신의 말을 듣기만 했다. 옥신은 계속 득의의 웃 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후후... 지금 우리 에틱스는 전쟁 중이다. 상대국은 올림포스지. 올림포 스 연합국으로 가라. 이런 곳에 네가 계속 남아있다면 우리는 네가 있는 나라도 쓸어버릴 것이다. 알았나?" 뭐야, 저 태도는? 지금 나한테 명령이냐? "전쟁 중에 다른 나라를 쓸어버릴 정도로 여유있지는 않을 텐데?" "후후... 그거야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 분이 바라는 것은 에틱스가 이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옥신은 마치 그것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난 재차 물었 다. "그럼 왜 전쟁을 하는데?" "전쟁을 하는 이유는... 에틱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지!" 옥신은 특히 '멸망'을 강조했다. 에틱스를 멸망시키려고? 그럼 그 분이라 는 작자는 에틱스 출신이 아니라는 소린감? "네가 말하는 그 분이라는 사람은 에틱스인이 아닌가?" "후후... 물론 그 분은 에틱스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그리고 반란을 통해 왕위에 오른 분이시다." "그런데 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후후후..." 나의 모르겠다는 표정에 옥신은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기분 나쁘게 노는군. 복수를 이런 식으로 하는 거야? 나원... 수준 낮아서..... "그건 나중에 가르쳐 주겠다. 올림포스로 가라. 그렇지 않았다간 네가 있 는 나라도 전쟁에 휘말릴 것이다. 우리는 에틱스의 승패에는 관심이 없 으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붉은 구슬을 포함한 네 개의 성물뿐!" 옥신은 손에 여전히 크레졸을 들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날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전장에서 보자, 소년." 뚜벅뚜벅-- 옥신은 당당한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난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사 라지는 옥신을 쳐다만 보았다. 이거 꼭 옥신이 승리자고 내가 패배자인 것 같잖아? 진 녀석이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냐.... 놀랍다.... 옥신이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진 후 난 사라만다와 노움, 잭 오 랜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짜식들, 수고했다. 좀더 마법 수련 해야겠어. 실프와 운디네만한 실력이 안 나오잖아. 상급 정령쯤은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실력이 되야지! 어쨌든 오늘은 정령계에서 푹 쉬라고. 그럼 나중에 보자." 내 말에 세 정령은 날 노려 보았다. 난 재빨리 그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낸 후에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날 불렀다. "잠깐만요!" 얼레? 이 목소리는 포장마차 아줌마? 이쪽까지 날 따라온거야? 포장마차 는 어떡하고? 난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내 예상대로 그 아줌마가 나에게 달려 왔다. 아줌마는 불타는 술집을 잠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전에 나한테 30페리를 주고 간 소년이 바로 손님이죠?" 이런... 결국 알아버렸군. 하여간 눈치는 빨라가지구.... ".... 네." "역시... 그럼 이 돈 받으세요." 아줌마는 내게 100페리를 내밀었다. 도로 가져가라는 건가? 나원, 받은 걸 왜 돌려줘? 그냥 꿀꺽하면 되지. "아줌마가 가지고 있어요." "예? 하지만....!" "좋은 일에 쓰시면 되잖아요. 전 돈이 많아서 상관없어요. 그럼 전 가야 겠네요. 이곳의 일은 잊으세요. 잘못하면 아줌마가 이 사건에 말려들지 도 모르니까요." "사건...?" 아줌마는 여전히 100페리를 손에 들고 나에게 물었다. 난 불량스럽게 바 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말했다. "깡패들이 모두 전멸한 것 말이예요. 이곳에서 기생하던 깡패들이 모두 죽었으니 장사 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아줌마는 그저 아무것 도 보지 못했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난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다. 뒤에서 아줌마가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정말 고마워요!" 으윽... 쪽팔려.... 좋은 일을 했는데도 왜 이렇게 쪽팔린다냐.... 그런 데 내가 한 일이 좋은 일인가? 전혀 아닌 것도 같고.... 헷갈리는군. 어쨌거나... 이제 올림포스라는 나라로 가는 수 밖에 없군. 내가 이 나라 에 남아있으면 이곳도 전쟁에 휘말릴 테니까. 에휴.....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2.헤라클레스와 만나다-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34 게 시 일 :99/09/25 10:01:14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7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2 헤라클레스와 만나다 -1- 따그닥 따그닥--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난 아무도 없는 마차에 앉 아서 마법 주문을 외우고 있다. 지금 어디가냐구? 올림포스 연합국의 하나 인 테베로 가는 길이야. 사실 난 올림포스 연합국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마부한테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물어봤었거든. 마부는 에틱스와의 전쟁 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테베가 좋겠다고 해서 테베로 가기로 했지. 삼일 밤낮을 달려 마차는 테베에 당도했다. 다른 마부들에 비해 20대 후 반으로 젊어보이는 그 마부는 힘차게 외쳤다. "다 왔습니다, 손님!" 에? 다 왔나? 음... 테베나 다른 곳이나 별반 다른 점은 없군. 이곳 말도 알아들을 수 있겠지? 없으면 큰일나는데.... 내가 가방과 리소좀을 챙기고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는 감개무량(?)한 표 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미컬에서 테베까지 직행으로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예요. 처음 와보는 거라 다른 마부들에 비해 늦은 것 같은데... 괜찮죠?" 마부는 별로 특징없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웠다. 나도 이곳에 처음 와 보는 건 마찬가진데 뭘. 그렇게 미안한 표정 지을 것 없다구. "10페리 받으세요." 내가 10페리짜리 지폐를 내밀자 마부는 경악하는 표정이었다. "이, 이렇게나 많이요?" "다시 케미컬로 돌아가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냥 받아요, 맘 변하기 전에." "아, 네! 감사합니다!" 마부는 기쁜 표정으로 돈을 받았다. 하하, 역시 돈이 많으면 여러모로 좋 다니까. 돈 받으니까 기뻐하잖아? 우캬캬... 그러고 보니 남은 돈은 400페 리 정도.... 이 돈을 이곳 돈으로 바꿔야 겠군. "그럼 돈 많이 버세요." 난 마부에게 그렇게 말하고 테베의 거리를 거닐었다. 마부는 내가 시야에 서 사라질 때까지 고맙다는 말을 몇 번씩 했다. 윽.... 쪽팔려.... 그냥 조용히 사라지면 안되냐....? 사람들이 다 날 쳐다보잖아..... 난 돈을 바꾸기 위해 물어볼 사람을 찾았다. 그런 내 눈에 기골이 장대하 고 온몸이 근육 덩어리인 한 청년이 잡혔다. 키가 180정도로 유스타키오만 한 체격의 남자는 몸과는 달리 얼굴은 잘생긴 편이었다. 갈색의 긴 머리를 그냥 늘어뜨렸는데 갈색의 상의와 바지를 입고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 러나 이상하게도 표정은 슬픔에 가득 차 있었고 걷는 것도 힘이 없었다. 호기심이 동한 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내가 가까이 온 것도 모르는지 계속해서 걸어갔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걷는 것 같았다. 인상이 순박하게 생겼기 때문에 난 별 부담없이 물음을 던졌다. "저... 하나 질문해도 될까요?" "....." 청년은 힘없이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거의 풀려있는 상 태였다. 도대체 이 사람 왜이래? 뭐 잘못 먹었나? "무슨 일 있으세요?" 억... 물어보려던 건 이게 아닌데.... 말이 헛나왔어...! 청년은 잠시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 날.... 델포이 신전까지... 데려다 주겠니....?" 에? 델포이 신전? 그런 부탁을 왜 나한테 하는.... 어엇! 털썩! 청년은 그대로 그 자리에 꼬꾸라져 버렸다. 으아악! 내가 한 게 아니라구 ! 난 결백해! 난 오늘 이 사람 처음 봤단 말이야!!! "이봐요! 정신 차려요!" 난 쓰러진 그 청년을 마구 흔들며 깨우려고 했지만 청년은 전혀 동요없이 깨어날 줄을 몰랐다. 급히 코에 손가락을 대보니 미약하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이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난 가방을 열어 연습장을 꺼내 마법 주문을 뒤적였다. 이윽고 회복 마법 주문을 찾아낸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주문을 외웠다. "회복의 손이여, 그대의 힘으로 체력을 되찾게 하라." 내 손에선 곧 빛이 흘러나왔고 난 손을 청년의 심장에 대었다. 청년은 곧 빛으로 둘러싸였다. 2클래스의 마력을 쏟아부은 결과 청년은 정신을 차리 게 되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웅성대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낸 건가?" "설마... 아마 치유 마법을 썼겠지." "저 소년, 마법사인 모양인데?" "그런데 마법사가 검을 차고 있냐?" "마법검사 아닐까?" 윽... 지들끼리 말만 주고 받고 전혀 도움은 안 주는군. 뭐 나래도 나서 지는 않았겠지만. 모두들 내가 알아서 잘 하겠지란 표정이다.... 흘.... "정신 들어요?" 난 청년의 뺨을 툭툭치며 물었다. 청년은 잠시 눈을 꿈뻑꿈뻑하더니 날 쳐다보고는 물었다. "넌... 누구지?" "그냥 지나가던 사람인데요." "그래...? 그럼 계속 지나가렴...." "....." 지금 이 사람이 농담하나? 나하고 농담 따먹기 할일있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모양인데? 늘씬하게 두들겨 패면 정신이 들려나? 청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청년이 멀쩡한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제각기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거리는 다시 방금전의 활기로 뒤덮였고 청년은 이 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정신이 말짱한거지? 방금 전까지는 굉장히 괴로웠는데..."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묻자 청년은 날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표정이 다시 어둠에 휩싸였 다. "그래... 있었지.... 난... 죄인이란다...." "그래요? 어떤 죄를 지었는데요?" "... 내 아내와 내 자식들을 이 손으로 죽였지..... 내 손으로....." 말을 하는 청년은 자신의 두 손을 저주하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몸은 가 늘게 떨렸다. 아내와 자식들을 죽였다고? 으헥! 그럼 나도....?! "왜, 왜요...?" 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윽... 묻지 말고 그냥 도망쳐야 안전할텐데 ....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했지? 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까.... 청년은 머리를 감싸쥐고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어... 내가 미쳐서 날뛰었다는 기억이 드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와 자식들이 죽어있었어... 난 그들의 피 묻은 칼을 들고 있었 고...." 미쳐서 날뛰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혹시 정신병자? 허걱! 그럼 지금 당장 미쳐서 날뛸 수도 있다는 소리? 사람살려!!! 번쩍! 청년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난 그가 또 미친 줄 알고 기겁했다. 그 러나 청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난 반드시 내 죄를 씻고 말겠다! 델포이의 신전으로 가면 내 죄를 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거야! 그리고 어째서 내가 그런 죄를 지었는지도 알 수 있겠지! 나 헤라클레스, 지은 죄는 반드시 씻는다!" 휴... 난 또 미쳐버린 줄 알았잖아.... 에엑? 헤라클레스? 이름이 헤라클 레스라고? 설마... 이 사람이 헤라클레스일 리가 없어.... 이름만 헤라클 레스겠지.... 자칭 헤라클레스라고 하는 그 청년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고맙다! 네 덕분에 난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난 꼭 내 죄를 씻고 말겠 다! 그런 의미에서 네 부탁을 하나 들어주마!" 하하하.... 뭐냐...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네? 도대체 내가 무슨 한 일이 있다고..... 어쨌거나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했으니 잘됐군. 그런데 무슨 부탁을 하지?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쳐버릴 것 같다..... "저... 정말 이름이 헤라클레스예요?" "응? 그래. 내 이름은 분명히 헤라클레스다. 내 아버지는 암피트리온이고 내 어머니는 알크메네란다. 나에게는 형인 이피클레스도 있지.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니?" 암피트리온... 알크메네... 이피클레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름 들인데.... 어디서 봤더라? 그래....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본 이름! 그 럼 이 청년이 진짜 헤라클레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제우스 신을 아시나요?"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3.헤라클레스와 만나다-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48 게 시 일 :99/09/26 10:34:03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6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3 헤라클레스와 만나다 -2- 내 질문에 헤라클레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알지. 그 분은 이 올림포스의 최고신이란다. 넌 그것도 몰랐단 말이냐?" 억... 정말로 제우스라는 신이 있는거야? "정말이예요? 그럼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포세이돈, 아폴론, 헤르메스도 있어 요?" 내가 정신없이 아는 신들의 이름을 들먹이자 헤라클레스는 눈을 동그랗게 떳다. "뭐야? 너 올림포스 신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잖아? 그런데 그런 걸 왜 물어봐?" 허억.... 정말 있었군.... 그럼 정말로 이 청년이 헤라클레스? 내가 그리 스·로마 신화에 출현하는 건가? 윽... 머리가 복잡해져 온다..... "하나 더 질문해도 되요?" "응? 얼마든지."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노역을 거쳤나요?" "열두 가지 노역? 그게 뭔데?" 헤라클레스는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엥? 아닌가? 내가 읽어본 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노역을 치르게 된다고.... 엇! 그러 고 보니.... 헤라클레스가 열두 가지 노역을 치르게 된 원인은.... 헤라클 레스가 제우스의 아들이란 것을 알고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헤라가 헤라 클레스를 미치게 해서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도록 했기 때문에.... 그 렇다면.....! "헤라클레스는 어디로 가겠다고 했죠?" "델포이 신전. 거기 가서 내 죄를 씻어야지."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툭툭치며 말했다. "어서 소원을 말해. 들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탁을 들어줄 테니까." .... 확인해 봐야겠다. 이 청년이 정말 헤라클레스인지... 아니, 정말로 헤라클레스처럼 힘이 장사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겠어! "헤라클레스를 따라가면 안 될까요?" "뭐? 날 따라오겠다고?" 내 말에 헤라클레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라클레스는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며 재차 물었다. "그 말 진심이냐? 난 살인을 한 죄인이라고. 내가 언제 미쳐 날뛸지 모르 는데.... 그래도 괜찮겠어?" "상관없어요. 전 마법사니까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마법사?" "네. 그리고 제 이름은 니트예요. 잘 부탁합니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라클레스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내 손을 맞잡고 또 물었다. "그런데 왜 날 따라오겠다는 거야?" "그냥요. 전 이곳에 처음 와서 지리를 잘 모르거든요. 헤라클레스라면 지 리를 잘 알테니까 도움 좀 받으려구요." "그래? 별 수 없구나. 그럼 델포이의 신전에 같이 갈꺼니?" "물론이죠." 내 분명한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힘차게 악수를 나눈 뒤에 델포이 신전으로 향했다. 델포이 신전으로 가는 길에 난 헤라클레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헤라클레스!" "헬이라고 불러." "아, 예. 그런데 테베는 나라 이름이예요, 도시 이름이예요?" 헤라클레스는 걸어가면서 날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정말 너 올림포스 연합국에 대해서 모르는 거야? 테베는 도시이자 나라 라고. 올림포스 연합국은 여러 개의 도시 국가가 모여있는 거고." 억... 그런가? 이건 완전히 옛날의 그리스잖아? "저기 델포이 신전이 보인다!" 앞서 가던 헤라클레스가 나에게 말했다. 난 그가 가리킨 곳을 쳐다보았 다. 기둥을 수십 개 박아넣은 전형적인 그리스식의 신전이었다. 나와 헤라 클레스가 신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제 하나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로 본 신전을 찾아오셨습니까?" "네, 제 죄를 씻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말에 비교적 젊어보이는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장서 서 걸으며 말했다. "절 따라오십시오." 우리는 아무 말없이 그 사제의 뒤를 따라갔다. 신전을 참배하러 온 사람 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제는 우리를 신전 옆에 있는 약간 작은 건물로 데려갔다. 건물은 기둥이 여러 개 세워져 있는 둥근 모 양이었는데 그 안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사제는 그 방 앞으로 우리 를 안내했다. 똑똑똑-- 사제는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약간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무슨 일로 날 찾아왔나요?" "이 분이 죄를 씻기 위해 찾아오셨소." "그럼 그 분만 들어오게 하세요." 안에 있는 여성의 말에 사제가 우리에게 말했다. "청년은 들어가시고 소년은 저기서 기다리시지요." 얼레? 난 따라 들어가면 안되나? 이런. 난 사제의 말대로 사제가 가리킨 곳에서 기다렸다. 헤라클레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제는 방문 옆에 서서 혹시나 내가 들어가 지 않을까 감시하는 듯했다. 물론 날 한번도 쳐다 보지 않았지만. 이런.... 기다리라고 했으면 당연히 의자 같은 게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언제까지 서 있으라는 겨? 누구 골다공증에 걸리게 할일 있어? 끼이-- 1분도 채 안되어 헤라클레스가 방밖으로 나왔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급히 다가가 물었다. "뭐래요?" "잠시 기다리라는데? 신의 뜻을 알아야 한다면서." 에엑? 그럼 또 기다리라구? 무려 1분씩이나 기다렸는데 이번엔 몇 분이나 걸리려고..... 헤라클레스가 나오자 방문 옆에 서 있던 사제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라 고 말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억... 자기 혼자만 들어가다니! 우리는 그냥 방문 앞에서 서성였다. 꽤 시간이 흘렀다. 한 10분쯤 흘렀겠 지. 으윽... 지겨워.... 빨리빨리 끝낼 수 없나? "들어오십시오." 갑자기 방 안에서 사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횃불로 밝혀져 있었는데 방 한쪽 구석에는 신상 하나와 제단 비슷한 것이 있었다. 횃불로 인해 방 안이 붉 게 보여 내부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무녀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사제는 그 뒤에서 종이 쪼가리를 들고 있었다. 우리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사제가 우리에게 말했다. "신탁이 나왔습니다. 청년의 이름이 헤라클레스 맞죠?" "아, 네!" 헤라클레스는 말하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을 사제가 알자 놀란 표정을 지 었다. 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사이비 사제는 아닌 것 같은데? 사제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힐끗 보며 말을 계속했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참살한 죄를 지었군요. 죄를 씻기 위해서는 티린 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신하가 되어 12달 동안 그의 모든 명령을 수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탁의 내용입니다." 티린스의 왕 에우... 뭔 이름이 그렇게 길어? 어쨌든 12달 동안의 명령 수행이라... 잠깐! 원래 12년 동안의 노역 아니었어? 난 분명히 12년이라 고 알고 있는데 12달? 뭐야, 이거? 제멋대로 돌아가잖아? 어쨌든 열두 가지 노역은 맞겠지. 12달 동안 열두 가지 일을 시킬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럼그럼..... "알겠습니다. 신탁에 따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섰다. 얼레? 돈 같은 건 안줘도 되나 보지? 하긴... 사제가 무슨 돈을 받겠어. 하지만 그러면 신전의 수입원은 뭐야? 돈 없이 신전 운영하는 것도 힘들텐데? 어엇! 같이 가자구! 난 급히 헤라클레스를 따라가 물었다. "헬헬헬! 신전에서는 어떻게 돈을 모아요?" "너 그거 날 부른 거냐, 웃은 거냐?" "당연히 부른 거죠. 그나저나 신전의 수입원은 뭐예요?" "신전? 그거야 사람들의 기부금이지. 매달 말일이 기부금 내는 날이거든. 그리고 신전 자체에서도 물건을 만들어서 팔고." 음... 그런가? 기부금을 꼭 내야 하는 거야? 얼마나 내려나? 뭐 나하고는 상관없으니까 신경끊자. "헬헬헬! 티린스가 어디 있어요?" 내 물음에 헤라클레스가 날 날카롭게 째려봤다. "그냥 '헬'이라고 부르면 안되냐? 왜 꼭 '헬헬헬'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게 편하잖아요. 티린스가 어디예요?" 헤라클레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테베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국가야.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는 내 사촌이고."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4.헤라클레스와 만나다-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49 게 시 일 :99/09/26 10:34:28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7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4 헤라클레스와 만나다 -3- 얼레? 티린스의 왕이 헤라클레스의 사촌이라구? 그랬던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지 꽤 오래됐더니 기억이 안나..... 우리는 마차를 하나 빌려타고 티린스라는 도시로 향했다. 보기보다 헤라 클레스는 돈이 많았다. 우하하, 앞으로 내 돈 쓸일은 없겠다! 6시간을 달린 끝에 티린스에 도착한 우리는 곧장 티린스의 왕이 살고 있 는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은 뾰족뾰족한 첨탑이 세워져 있는 전형적인 고 딕식이었다. 나원... 그리스식과 고딕식이 함께 공존하는 거냐? 궁전 앞에는 완전 무장을 한 병사 둘이 지키고 서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그들에게 다가가자 병사 하나가 질문을 던졌다. "누구요?"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온 거요?" "사촌인 헤라클레스가 찾아왔다고 하면 알 겁니다." 사촌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잠시 주춤했다. 그러더니 한 병사는 안으로 들 어갔고 남은 병사는 우리를 감시하듯 서서 말했다. "잠시 기다리시오." 으윽... 또 기다려? 이번에는 시간이 장난 아니게 걸릴 것 같은데..... 제발 빨리 끝내라.... 짜증나게 하면 4클래스급의 파이어 볼을 궁전 한가 운데 떨어뜨려 버린다..... 째깍째깍째깍-- 내 머리 속의 시계가 덧없이 흘러갔다. 으윽! 무려 20여 분을 기다렸어! 도대체 언제까지 더 기다리라는 거야?! 앞으로 열 셀 때까지 안나오면 모 두 죽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철컥철컥철컥-- 궁전 안에서 그 병사가 걸어나왔다. 운이 좋았어! 앞으로 하나만 더 셌으 면 너흰 끝장이었으니까! 하늘에 감사해라! "절 따라오십시오." 병사 뒤를 졸졸 따라오던 한 노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50대 중반으로 보 이는 그 노인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고 옷도 지극히 비평범(?)한 것이 었다. 양복 비슷한 것을 입은 노인은 앞장서서 걸었고 우리는 그 뒤를 따 랐다. 우리는 궁전 한가운데에 세워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을 수십 번 만났지만 모두들 노인을 보고는 그냥 통과시켰다. 그렇게 편하게 우리는 알현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에우리스테우스님, 헤라클레스님께서 오셨습니다." 노인이 알현실 안에다 대고 외치자 안에서 비교적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라고 하라." "들어가시지요." 노인은 알현실 문 양옆에 서 있는 병사들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한 뒤 우 리에게 말했다. 문이 열리고 우리는 곧장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노 인도 우리를 따라 들어왔다. 알현실 문이 닫히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알현실을 둘러보았다. 알현실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옥좌가 보이는 전형적인 구조였고, 양 옆에 는 문무백관들이 하나도 없었다. 허걱... 썰렁하군. 이거 알현실에 나와 헤라클레스, 노인, 그리고 에우... 뭐라고 하는 티린스의 왕 밖에 없군. 아, 또 있구나. 옥좌 옆에 서 있는 병사 둘!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들어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한 에우... 뭐란 사람을 쳐다보았다. 나도 에우... 뭐란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헤라클레 스와 비슷해 보였지만 왠지 호감은 전혀 가지 않았다. 그 에우... 뭐란 사 람은 헤라클레스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내 사촌인 헤라클레스가 맞군. 그래, 헤라클레스. 무슨 일로 나 를 찾아온거냐?" "신탁에 따라 당신의 신하가 되어 12달 동안 당신의 모든 명령을 수행해 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갑작스런 헤라클레스의 말에 에우... 뭐란 사람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신탁?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신탁이라면 따라야지. 좋다, 그럼 오늘부터 12달 동안 만 너를 내 신하로 인정하겠다!" "감사합니다." 헤라클레스는 에우... 뭐란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나원 , 뭐가 감사해? 감사할 사람은 저 에우... 뭐란 사람이지. 저 사람이 거절 할 이유가 뭐가 있어? 아... 있구나. 먹여주고 재워줘야 하니까..... 에우... 뭐란 사람은 날 쳐다보더니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저 소년은 누구인가?" "제 친구입니다. 이 녀석은 신탁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당장 내보내도록 해!" 허걱! 뭐야? 필요없다고 바로 내치냐? 저런 싸가지 없는 녀석! 난 내쫓김을 당하기 전에 급히 입을 열었다. "전 헤라클레스의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가 당신의 신하가 된다면 저도 당신의 신하입니다." "음... 듣고 보니 그렇군. 좋아, 그럼 너도 내 신하로 인정해 주지. 오늘 은 쉬도록 하라. 일이 있을 때 명령을 전달하겠다." "네. 그럼...."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말하고 물러났다. 난 속으로 에우... 뭐란 녀석을 저주한 후에 헤라클레스를 따라갔다. 으으윽... 기분 나뻐! 완전 멍멍이처 럼 놀고 있어.... (울릉도 호박)Ⅹ이나 먹어라! 우리를 알현실로 안내했던 노인이 우리를 1층으로 데려갔다. 1층은 하인 들이 살고 있는 듯 보였다. 하인들은 새로운 동료가 들어오자 자기들끼리 수근덕댔다. 노인은 하인들이 묵고 있는 방들을 지나 마굿간에 도착했다. 왜 하필이면 이곳으로? 서, 설마.....! 노인은 나와 헤라클레스를 보며 말했다. "이 마굿간이 자네들의 침실이네. 밥은 끼니 때마다 줄터이니 너무 걱정 하지 말고. 그럼 나중에 보세." 그러면서 노인은 훌쩍 가버렸다. 우아악! 지금 날 우롱하는 거냐?! 하인 도 아니고 신하인데 이딴 대우밖에 못해줘?! 이 Baby들! 가만두지 않겠어! "들어가자, 니트." 헤라클레스는 순순히 마굿간 안으로 들어갔다. 헤라클레스야 속죄한다고 치고 살면 되지만... 난 뭐냐고! 에우... 뭐라고 하는 녀석.... 절대로 용 서하지 않겠어! 나중에 두고 보자! 마굿간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말똥 냄새가 나를 반겼다. 우욱.... 냄새 한 번 끝내주는데?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마굿간은 비교적 컸는데 말 머릿수를 세어보니 모두 19마리였다. 그리고 말 하나가 있던 자리는 비워져 있는 상태였다. 음... 병들어서 도살장에 끌고가 냠냠했나 보지? 어쨌든 저 자리에서 자야겠군. 처절해.... 말똥도 치우지 않다니.... Babies of Dog(맘대로 해석^^).... "운디네, 저 말똥 좀 치워줘." 소환된 운디네는 말똥을 보고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도 냄새는 못맡 는 모양이군. 냄새까지 맡았다간 기절해 버리겠는걸? "와... 너 정말 마법사였구나!" 헤라클레스는 내가 소환한 운디네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씨구... 그럼 지금까지 내 말을 못 믿었다는 소리? 이거 내 편 맞어? 운디네는 물을 일으켜 말똥과 그 자리를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아, 저 자리에서 자려면 뭔가 깔 것이 필요한데.... "야, 노움! 어서 가서 깔 것 좀 가져와." 노움은 '도대체 날 보고 뭘 가져오라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 다. 으윽.... 그러고 보니 뭘 가져오라고 하지? "에... 우선 흙이나 퍼와서 이 자리 좀 덮어." 노움은 '진작 그렇게 말하지'란 표정을 지으며 땅속으로 사라졌다. 운디 네와 노움의 도움으로 말끔히 잘 곳을 청소한 나는 무엇을 까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좀처럼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깔 것을 찾아보고 올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난 잠자리를 말끔히 청소한 것을 보고 넋이 빠져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말 하고 마굿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하인들이 살고 있는 1층에 들어 갔다. 하인들은 내 몸에서 나는 말똥 냄새에 코를 막고 물러났다. "야! 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오는 거야?!" 한 건장한 체격의 하인이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난 아직도 가방과 검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리소좀을 들이대며 말했다. "이불 3개와 베개 2개를 가져와. 안 가져오면 죽여버린다. 알았나?" 리소좀의 가드 부분에 박힌 보석이 빛을 발하면서 내 얼굴을 비추자 그게 공포스러웠던지 하인은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다. 그가 이불과 베개를 가 져오자 난 실프에게 명했다. "실프, 저것들을 들고 가져와줘." 소환된 실프는 하인에게서 이불과 베개를 뺏어(?) 들고 날 따랐다. 그 광 경을 보는 하인들은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다. 하긴... 이 녀석들이 언제 정령을 볼 기회나 있었겠어? 후후... 이제 앞으로는 나나 헤라클레스에게 서튼 짓은 못하겠지.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5.네메아 숲의 사자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70 게 시 일 :99/09/28 21:18:52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6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5 네메아 숲의 사자 -1- 촤아악--! 쓱싹쓱싹-- 나와 헤라클레스는 마굿간을 청소했다. 왠만하면 그냥 지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구. 차라리 청소해 버리는 게 건강에 좋을 것 같아. 장장 2시간에 걸친 사투(?) 끝에 마굿간을 깨끗이 청소한 우리는 통쾌하 게 웃어제꼈다. 끄아... 온몸이 다 쑤셔.... 그래도 정령들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이 넓은 마굿간을 둘이서 청소했다면 하루 종일 걸려도 모자 랄껄? 사실 길이는 40미터 밖에 되지 않는 비교적 작은(?) 마굿간이지만. 이히히힝-- 말들도 마굿간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은지 울어댔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피곤해서 이불을 펴논 잠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베개를 각각 베 고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음... 천국이 따로 없어..... "이봐! 너희 둘! 어서 일어나!" 응...? 누가 깨우냐? 졸려 죽겠는데 왜 깨워? 예쁜 소녀라면 몰라도 같은 남자면 죽인다..... 난 힘겹게 눈을 뜨고 날 깨운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인으로 보이는 녀석 이었다. 이런... 얼굴도 못생긴게 지금 날 깨운거냐? 나이도 내 또래만한 녀석이....! "뭐야, 임마!" 난 기분나빠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 하인 녀석은 못생긴 얼굴을 더욱 일그러 뜨리며 소리쳤다. "당장 일어나, 이 새꺄! 에우리스테우스님이 찾으신다!" 퍽--! "으악!" 하인 녀석은 내 주먹에 코를 정통으로 맞고 나가 떨어졌다. 난 옆에 놓아 둔 리소좀을 뽑아들고 그 녀석의 얼굴 앞에 갖다대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닥쳐. 다음부턴 그렇게 싸가지없게 말하지 마라. 요즘 기분이 안 좋아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 알아서 행동해." 하인 녀석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난 리소좀을 거두어 들인 후 헤라클레스를 깨웠다. "일어나요, 헬! 에우리스... 뭐란 인간이 부른데요!" "음냐...." 헤라클레스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이런... 어떻게 깨우지? 얼레? 저 하인 녀석은 참 잽싸게도 도망가네? 정신 좀 차렸을라나? 처음 보는 사 람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했다간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우쳤 으면 좋겠군.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좋은 말은 하지 않았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사악해져 갈까..... 걱정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헤라클레스를 깨운다냐.... 그렇지! 그 방법을 한 번 써 볼까? "헬헬헬! 일어나요! 헬헬헬헬헬헬헬....!" "으악!" 헤라클레스는 벌떡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홋! 이 거 효과만점인데? 다음부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우하하! 헤라클레스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말했다. "아주 끔찍한 소리를 들었는데.... 뭐였지?" "아, 신경쓰지 말고 어서 에우리스... 뭐란 사람을 만나보러 가죠." "에우리스테우스? 왜?" "우리를 만나고 싶다고 하던데요?" 내 말에 헤라클레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일을 시킬 모양이야. 어서 가보자!" 에... 일을 시킨다는데 저렇게 기운이 넘치냐.... 난 아직도 피곤하구만. 난 사라만다를 불러 신신당부했다. "사라만다, 리소좀하고 내 가방, 그리고 이 자리 좀 지켜줘. 너만 믿고 갈테니까 잘 지켜. 하나라도 없어졌다간 계약 파기다. 알지?" 사라만다는 띠꺼운 표정으로 잠시 날 쳐다보다가 잠자리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헤라클레스는 몸길이가 1미터나 되고 높이도 30센티미터의 거대한 사라만다를 보고 놀란 표정이었다. "정말... 너 대단하구나.....!" "대단하기는요. 여기는 사라만다에게 맡기고 빨리 가죠." 우리는 사라만다를 뒤로 하고 마굿간을 나왔다. 마굿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노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양복 차림을 한, 맨 처음 만났던 노인이었다. 노인은 우리를 보고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말했다. "따라와라." 얼씨구? 이제 신하가 됐다고 반말쓰는거냐?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거참 듣기 그렇군. 이것도 헤라클레스가 겪어야 할 시련이겠지만.... 난 단지 헤라클레스의 친구일 뿐이라구! 어흑... 내가 어쩌다가 신하가 되겠단 말 을 해가지고..... 자신을 에우리스테우스-드디어 다 외웠다!-의 심복이라고 밝힌 노인은 시 종일관 우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를 안내했다. 분명 말똥냄새 때문이겠지. 마굿간도 청소했으니 말똥냄새도 곧 사라지겠지만... 그동안 냄새가 배어서 말이야.... 에우리스테우스라는 작자가 냄새 때문에 당장 나가라고 하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은데..... 알현실에 도착한 우리는 에우리스테우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신하가 됐 으니까. 에우리스테우스는 코를 막았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크으... 이게 무슨 냄새지?" "말똥 냄샌데요." 내 대답에 에우리스테우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나가! 이런 지저분한 냄새를 풍기며 나타나다니! 고얀 것들!" 그럴 줄 알았다. 네까짓게 하는 짓이 다 그렇지.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알현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날 붙잡더니 에우리스테우스에게 사과의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무 슨 일로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헤라클레스의 엄청난 힘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난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깨끗한 옷이 어딨다구.... 새로 사야하는데..... 하여간 헤라클레 스는 전혀 화를 안 내는군. 인내심이 강한 건지 둔한 건지..... 에우리스테우스는 여전히 코를 막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한 가지 일을 시키기 위해서다. 지금 즉시 네메아 숲으로 가라. 그곳에 굉장히 흉폭한 사자가 살고 있는데 그 사자 의 가죽을 벗겨오는 것이 너희들의 첫번째 임무다. 알겠나?" 엑? 사자의 가죽을 벗겨오라구? 팔아먹으려고? 내가 그 이유를 막 물어보려고 할 때 헤라클레스가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곧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끌고 그대로 알현실 밖으로 나왔다. 이런... 이유도 안 묻 고 그냥 가자는 뜻이유? 난 궁금하단 말이야! 도대체 사자의 가죽이 왜 필 요한데! 이번에도 우리를 따라 나온 에우리스테우스의 심복 노인이 말했다. "네메아 숲으로 가는 마차는 내가 마련해 줄테니 감사히 여겨라. 오늘 오 후 9시에 출발이다. 시간에 늦지 않도록!" 뭐뭣? 밤 9시? 지금 저녁 7시인데? 설마 밤잠을 설치면서 네메아 숲으로 가란 소리는 아니겠지? 심복 노인이 사라지고 난 뒤, 난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여기서 네메아 숲까지 얼마나 걸려요?" "음... 전쟁때문에 돌아가야하니까... 한 5일 넘게 걸릴껄?" 으헉! 5일이 넘는다고라고라? 그렇게 멀리까지 가라구? 나의 경악하는 표정을 봤는지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마차타고 가니까. 그나저나 빨리 갈 준비해야지. 2시간 밖에 안 남았어." 나원... 참 태평하시군. 마차타고 가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라구. 덜커덩 거리는 마차 안에서 어떻게 편할 수 있겠어?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다... 덜컹덜컹-- 마차는 지금까지 탔던 것보다 더욱 덜컹거리며 네메아 숲으로 향했다. 이 런 빌어먹을 늙은이! 이딴 마차를 빌려주다니! 나중에 처절한 복수를 해주 지! 으다다다닷--! 덜컹이는 마차 안에서 겨우 중심을 잡아 마차 바닥에 헤딩하는 것을 면한 나는 심복 노인에 대한 욕을 바가지로 해댔다. 헤라클레스는 내 욕을 듣고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우하하, 내가 좀 심하게 했나? 난 그냥 Baby씨리즈 로 욕했을 뿐인데.... Ⅹ(=Penis) 같은 Baby, 18 Baby, 10 Baby.....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6.네메아 숲의 사자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71 게 시 일 :99/09/28 21:19:24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6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6 네메아 숲의 사자 -2- "일어나, 니트! 다 왔어!" 헤라클레스가 얼핏 잠이 든 나를 깨웠다. 음... 도착했나? 으으윽.... 몸 이 뻐근하다.... 거의 하루에 14시간을 마차 안에 있었더니.... 크윽! 5일 동안의 강행군 끝에 나와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숲에 도착할 수 있었 다. 헤라클레스는 마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리가 왔던 길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놈의 전쟁 때문에 이렇게 돌아와야 하다니." "그런데 왜 테베는 전쟁에 참여를 안하는 거예요?" "글쎄. 올림포스 연합국이 지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서로 자기들 안전만 도모하거든. 도와줄 생각은 안해. 다행히 지금 에틱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스파르타는 군사 강국이니까 잘 버티겠지." 올림포스 연합국이 흔들린다라.... 쪼그만 도시 국가들이 미쳤군. 그렇게 따로 놀다간 망하고 말지. 내가 저주를 내려줄까? 에틱스여, 우선 티린스 로 쳐들어가서 에우리스테우스를 죽여 주소서! 그래야 12달 동안의 노역을 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사방은 어둑어둑 해가 저물고 있었다. 우선 오늘은 쉬어야 겠어. 내일 그 흉폭하다는 사자를 잡아야지. 그나저나 사라만다는 내 물건들 잘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네? 마력이 계속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는 걸 보면 아직도 그 곳에 있겠군. 믿어야지..... 으... 불안해.... 사라만다 녀석, 설마 내 가 방 태우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랬다간 물을 끼얹어 버릴테다! 우리는 네메아 숲 앞에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서서 여관을 찾았다. 눈에 띄는 여관 하나를 잡은 후 마차를 여관 옆에 두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 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우리는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마부는 마차에서 잔다고 했기 때문에 그의 여관비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었다. "끄아.....!" 난 기지개를 한껏 켜고 일어났다. 옆침대를 살펴보니 헤라클레스는 일어 나고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9시였다. 시계가 어떻게 생겼냐구? 시계는 태엽시계인데.... 말이 안돼.... 어떻게 이런 시대에 태엽시계가 존재하느냔 말이야! 여긴 완전히 뒤죽박죽이라니까! 그나저나 헤라클레스는 어딜 간겨? 이런.... 난 뭐한다냐? 우선 밥부터 먹어야 할텐데..... 혼자 먹으면 헤라클레스가 섭섭해 하겠지? 그럼 마법 수련이나 해야겄다..... ...... 한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트, 너 뭐하냐?" 으윽... 마법 수련하는 거 안보여? 마법사를 만난 적이 없는 모양이네? "마법 수련 중이었어요." "마법 수련? 그럼 내가 방해한거야?" 잘 아시네. "아니요. 막 그만하려던 참이었거든요." 뭘 막 그만해. 이제 본격적으로 마법 수련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헤라클레스는 하하 웃으며 나에게 활을 보여 주었다. "어때? 사자 잡으려고 샀는데." "그래요? 활을 다뤄본 적은 있는 거예요?" "그럼. 없으면 내가 왜 활을 샀겠니." 난 헤라클레스의 활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결론을 내렸다. 이 활은 지극히 평범한 활이라는 것! 헤라클레스는 등에 맨 화살통을 끌러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음... 화살 도 지극히 평범하군. 그 사자는 평범한 사자가 아닐 텐데.... 그나저나 그 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그 사자를 잡았었지? 기억이 안 나네? 이런.... 책이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야. "아침 먹었니?" "아뇨." 헤라클레스의 물음에 난 바로 대답했다. 헤라클레스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따라와. 아침 먹어야지." 나와 헤라클레스는 여관 아래층으로 내려가 테이블에 앉았다. 아직도 아 침을 먹지 않은 사람들도 내려와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여관이라 아 침메뉴는 모두 동일했다. 그걸 먹기 싫으면 음식점까지 가서 식사해야 한 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그저 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렇게 아침을 다 먹고 빈둥빈둥 대다가 11시쯤에 네메아 숲으로 걸어갔 다. 마부는 분명히 무서워서 따라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리소좀만을 차고, 헤라클레스는 활과 화살을 준비했다. 마을에서 네메아 숲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네메아 숲 근처에 다다 랐을 때 근방에서 사냥을 해서 먹고 살고 있는 사냥꾼 하나가 네메아 숲으 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발견하고 놀라 소리쳤다. "어이! 이보시오! 거기는 무서운 사자가 살고 있는 숲이오! 죽기 싫으면 어서 나와요!" 그의 외침에 헤라클레스도 소리쳐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 무서운 사자를 잡으려고 왔거든요!" "사자 잡으려고 온 사람들 중에서 살아돌아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오! 그 사자는 보통 무기로는 잡을 수도 없어요! 전에 마법사가 들어간 일이 있 었는데 겨우 목숨을 부지한 그의 말로는 그 사자에게는 마법도 통하지 않는댔소! 그런 사자를 잡을 자신이 있소?!" 사냥꾼의 말에 난 가슴이 덜컥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구? 그럼 난 위 험하다는 소리? 어어억! 그러한 사냥꾼의 말에도 헤라클레스는 호쾌하게 웃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하하하! 걱정마세요! 안 되면 맨손으로라도 때려잡을 테니까!" 사냥꾼은 헤라클레스의 말을 듣고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맨손으로 사자를 때려잡겠다는 말을 누가 믿냐. 어쨌든 우리는 걱정하는 사냥꾼을 뒤로 하고 네메아 숲으로 들어갔다. 숲 은 굉장히 넓었기 때문에 사자를 만나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난 실프를 불러 사자를 직접 찾기로 했다. "실프, 사자가 있는 곳을 찾아줘." 실프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하늘 위로 올라갔다. 헤라클레스는 신기한 듯 한 표정을 지었다. "니트, 정령에게 명령하려면 정령어로 해야하니?" "예. 정령어밖에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응... 정령 마법사는 정령어를 반드시 알아야 겠구나." 헤라클레스는 정령 마법사가 어려운 직업이라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야 제노글로시아인가 뭐인가 하는 능력이 있어서 정령어도 알 수 있었고 굳이 정령어를 몰라도 소질을 타고 났으면 마음으로도 정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하니까.... 그다지 어려운 직업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에 게는 정령어를 새로 알아야 하니까 까다롭지. 나와 헤라클레스가 정령에 대해 실없는 말을 주고 받을 때 사자를 찾으러 갔던 실프가 돌아왔다. 실프는 사자를 찾았는지 우리를 어떤 곳으로 안내 했고, 우리는 그런 실프의 뒤를 따라갔다. 난 리소좀을 뽑아들었고 헤라클 레스는 화살 하나를 꺼내 활에 장전한 채로 걸어갔다. 사자의 기습에 대비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드득 쩝쩝 빠각 쩝쩝.... 얼렐레? 이게 뭔소리냐? 뭔가 먹는 소리같은데... 으드득은 뭐고 빠각은 무엇? 뭘 부러뜨리나? 나와 헤라클레스는 조심히 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곳을 살펴보았다. 그 소리는 수풀 사이에서 들려왔는데 수풀을 헤집고 보니 사자 하나가 사슴 한 마리를 통째로 으득으득 씹어 먹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가죽과 뼈조차 씹어먹는 그 모습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 다가 난 정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그 사자와 내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 다. 난 당황해서 시선은 계속 사자에게 향한 채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헤, 헬... 사자가 날 봤어요...." "응? 그렇구나. 사자가 아까부터 널 계속 쳐다보고 있어." "구경만 하지말고 어떻게 좀 해봐요...." "좋아, 내가 저 녀석의 눈에다가 화살을 쏴주지!" 그렇게 말한 헤라클레스는 즉시 활시위를 잡아당겨 활을 쏘았다. 피잉- 하고 화살 나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화살이 사자의 눈으로 정확히 날 아갔을 때 사자는 가볍게 눈을 감았다. 그런 사자의 눈꺼풀에 맞고 어이없 이 튕겨져 나가는 화살. 으헉! 역시 이런 화살로는 어림없는 거였어!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7.네메아 숲의 사자-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76 게 시 일 :99/09/30 06:33:24 수 정 일 : 크 기 :6.7K 조회횟수 :4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7 네메아 숲의 사자 -3- 크르르르... 공격을 받은 사자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자의 눈빛에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사자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사자가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도 난 움직이지 못했다. 그만큼 내 운동 신경은 둔했던 것이다. "이 녀석! 어딜!" 헤라클레스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사자 앞에 섰다. 활과 화살통은 집어던 져 버린 상태였다. 있어봤자 소용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난 헤라 클레스의 큰 덩치 때문에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커엉!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자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뒤로 물러났 다. 상황으로 미루어 봐선 헤라클레스가 사자를 주먹으로 쳐낸 것 같은데. ... 그게 말이 되나.... 어쨌든 사자가 물러서자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사 자에게 달려들었다. "맨손으로 때려잡아 주마!" 퍼억--!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사자의 주둥이를 정확히 가격했다. 그러자 사자의 얼굴이 뒤로 팍 밀리며 피가 터져 나왔다. 헤라클레스는 거기서 공격을 멈 추지 않고 즉시 사자의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사자의 목을 졸라 죽 이려는 생각인 듯했다. 사자는 살려고 마구 발버둥을 쳤지만 헤라클레스는 사자를 무슨 인형이나 되는 것처럼 이리 메치고 저리 메치고 해서 사자가 발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사자의 거대한 몸뚱이가 땅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쿵쿵하는 굉음 이 울려 퍼졌다. 정말 할말없다.... 사자를 저렇게 가볍게 다루다니..... 헤라클레스가 맞 긴 맞나 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심하잖아? 수십 번 땅바닥에 부딪히자 사자는 그대로 뻗어버렸다. 아마 내장이 상했 겠지. 그런데 가죽은 아주 말짱하네? 그래서 에우리스테우스가 저 사자의 가죽을 가지고 오라고 한건가? 팔면 꽤 비싸게 받을 것 같다..... "후....." 헤라클레스는 길게 한숨을 쉬며 사자의 목을 놓았다. 사자는 힘없이 쿵하 고 쓰러졌다.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낸 헤라클레스가 날 보며 말했다. "이것으로 첫번째 임무는 끝!" 끝은 뭐가 끝이야. 가죽을 벗겨야지. "헬, 가죽 벗겨야죠." "아, 그렇군! 괜찮아, 그냥 통째로 가져가지 뭐. 고기가 아깝잖냐." "누가 들고 갈 건데요?" "당연히 내가 들고 가야지." 그렇게 말한 헤라클레스는 그 큰 사자를 어깨에 짊었다. 저 괴력에는 내 가 할말이 없다..... 그리고 저 무식함도. 나와 헤라클레스는 별 어려움없이 사자를 때려잡고 -난 아니지만- 네메아 숲을 빠져나왔다. 마을로 가자 헤라클레스가 짊어진 사자를 보고 사람들이 경악했다. "저건 네메아 숲에 사는 사나운 사자잖아?" "세상에! 이런 믿지 못할 일이!" 사람들은 한 청년이 거대한 사자를 어깨에 짊어진 진기한 광경을 보기 위 해 꾸역꾸역 몰려들어 우리 뒤를 졸졸 따랐다. 우리를 칭송하는 마을 사람 들을 바라보며 헤라클레스는 하하 웃었다. 으윽.... 왜 내가 이런 인간과 같이 다녀서 이런 쪽팔림을 당해야 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나도 헤라클 레스와 같은 부류로 생각하잖아..... 무식하게 힘만 쌘 녀석으로..... 우리는 곧 우리가 묵는 여관에 도착했다. 먼저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왔던 마부에게로 갔다. 마차에다 사자를 실어야 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스가 거대한 사자를 짊어지고 다가오는 것을 본 마부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그, 그게 네메아 숲의 사자... 꺽! 그 사납다는.... 꺽!" 얼레? 저 마부 왜 저래? 딸꾹질하는 것 같은데? 너무 놀래서 그러나? "괜찮아요?" 내가 묻자 마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괜찮습.... 꺽! 조금 놀래서... 꺽! 죄, 죄송... 꺽!" .... 심각하군. 딸꾹질하다 죽을 것 같다..... 마부가 계속해서 딸꾹질을 하자 헤라클레스도 사자를 내려놓고 걱정스러 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를 어쩌지? 니트, 딸꾹질 멈추게 할 방법 없는 거야?" 얼렐레? 딸꾹질 멈추게 하는 방법을 모른단 말이야? 이거 의외인데? "그야 간단하죠. 숨만 참으면 되요." "숨을 참으라고? 그러면 숨막히잖아?"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다가 숨쉬면 되죠." 내 말을 들은 마부는 즉시 숨을 참았다. 난 그에게 한 마디 했다. "숨을 깊이 들이쉰 다음에 숨을 참으세요. 그게 효과가 더 좋아요." "예, 알겠습... 꺽!" 말하다가 또 딸꾹질을 한 마부는 곧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코를 막았다. .... 꼭 코를 막아야 되냐? 그냥 숨만 참으면 되지..... 아무래도 이 마부 역시 무식이 철철 넘치는 것 같아. 약 1분간 숨을 참은 마부의 얼굴이 벌개졌다. 이제 숨 쉬어도 될텐데. 정 말 못참을 때까지 숨을 참을 생각인가 보네? 역시 무식해..... "푸아!" 더이상 못참겠는지 마부는 숨을 내뱉었다. 숨을 씩씩 몰아쉬던 마부는 딸 꾹질이 멈춘 것을 알고 놀라 소리쳤다. "와! 정말 딸꾹질이 멈췄다! 정말 고맙습니다!" "뭐 이 정도 갖고.... 우선 저 사자를 마차 안에 넣어야 되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마부는 즉시 마차의 문을 열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시 사자를 번쩍 들어 마차 안에다 집어넣다. 허걱! 마차 안이 사자로 꽉 찼잖아? 그럼 갈 때는 마부석에 앉아야 되는 거야?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쩐다냐..... 사자를 마차 안에 집어넣은 헤라클레스는 멀쩡해진 마부를 보고 내 어깨 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정말 넌 굉장하구나. 딸꾹질을 치료하는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니." 음... 생각보다 사람들이 딸꾹질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애. 딸꾹질의 주 요 원인은 횡격막의 경련인데 말이야. 숨을 참으면 횡격막이 움직이지 않 기 때문에 경련을 진정시킬 수 있는 거고. 어떤 사람들은 딸꾹질을 멈추게 하려고 물을 한번에 벌컥벌컥 마신다던가 딸꾹질하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던가 하는 방법을 쓰지만 그것들은 별 효과 가 없어. 숨만 참으면 된다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굳이 그런 방법 들을 쓸 필요는 없지. 아, 그러고 보니까 생각나네? 어떤 녀석은 오징어 먹다가 딸꾹질했다고 오징어는 절대 안 먹겠다고 했었지. 걔한테 이 사실 을 알려줘야 할텐데. 불쌍한 녀석, 아직도 오징어를 안 먹으려고 하나? "자, 그만 가자." 헤라클레스는 날 번쩍 들어 마부석에 앉힌 뒤 자신은 마차 지붕 위로 올 라갔다. 어억... 나도 혼자 마부석에 올라갈 수 있다고. 쪽팔리게 들어서 앉히냐..... 그리고 난 마차 지붕 쪽이 더 좋단 말이야! 덜컹덜컹-- 마차는 덜컹거리며 티린스로 향했고 난 마부석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으윽... 여기서 떨어졌다간....! 네메아 숲의 사자를 들고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에게로 갔다. 물론 나도 뒤따랐다. 양복 차림의 노인의 안내를 받아 -실제로는 감시- 우리는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자를 잡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표정을 짓 고 있던 에우리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거대한 덩치의 사자를 어깨에 메 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경악했다. 그는 목소리까지 떨며 말했다. "그, 그게 네, 네메아 숲의 사, 사자인가?" "네, 에우리스테우스님." "조, 좋아. 다음부터는 알현실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앞으로는 내 심복 을 시켜 명령을 전달하도록 하겠다. 사자를 궁전 밖으로 가지고 가서 가 죽을 벗기도록!" 말을 하는 에우리스테우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헤라클레스의 무지막지 한 힘에 굉장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일 거다. 알현실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어쨌거나 편하게 됐군. 굳이 알현실까지 올라오지 않아도 되니까. 차라리 잘됐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대로 사자를 궁전 밖으로 가지고 가 서 가죽을 벗겼다. 사자의 가죽을 다 벗기고 난 후, 사자의 육질은 궁전 요리사에게 주었다. 궁전 요리사는 나의 반(半) 협박성 말에 사자 요리를 해주었고, 우리는 맛있게 사자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8.레드네 늪지의 히드라-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77 게 시 일 :99/09/30 06:34:08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5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8 레드네 늪지의 히드라 -1- 네메아 숲의 사자를 때려잡고 나서 약 일주일이 흘렀다. 그 동안 나는 에 우리스테우스의 궁전에서 일하는 하인들을 완전히 굴복시켰다. 물론 정령 들을 이용해서. 그렇게 한 이유는 하인들이 나와 헤라클레스를 깔보는 것 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고, 또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에우리 스테우스는 우리가 식사를 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궁전 요리사가 나와 헤라클레스에게 식사를 제공한 적이 단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하인 들을 굴복시키기 전까지는 궁전에서 먹다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지만 지금 은 하인들의 음식을 빼앗아 먹고 있다. 후후... 그래도 공평하게 1/5씩만 뺏어먹으니까 괜찮지.... 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겠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을 하인들에게서 뺏어와서 헤라클레스와 마굿간에서 맛있게 냠냠하고 있을 때 한 하인 녀석이 들어왔다. 전에 나한테 욕했다가 내 주먹에 얼굴을 맞은 녀석이다. "저... 에우리스테우스님의 심복 노인이 찾아왔는데요...." "그래? 그럼 나가야 겠군." 난 헤라클레스와 함께 마굿간 밖으로 나갔다. 마굿간 밖에는 양복 비슷한 옷을 걸쳐입은 심복 노인이 서 있었다. 항상 저 거리를 유지하는군. 이곳 으로 온 이유는 뭔가 시킬 일이 있어서 겠지? "무슨 일입니까?" 내 질문에 심복 노인은 내 몸에 배인 가축 냄새에 눈쌀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에우리스테우스님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이번에는 레드네 늪지에 사는 히드라를 처단하는 것이다. 그 근방의 사람들이 히드라 때문에 우리 티 린스와 교역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히드라를 처치한 후에는 히드라 의 머리 하나를 가져오면 된다. 출발은 지금 당장이다." 할말을 다한 심복 노인은 급히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가축 냄새 때문이 겠지. 난 이미 코가 마비되서 맡을 수도 없어. 뭐, 밖에 나갔다가 마굿간 안으로 들어가면 말똥 냄새를 맡을 수 있게 되지만 말이야. "출발할 준비하자, 니트."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마굿간 안으로 들어갔다. 끄아... 바로 출발이라니.... 또 그 마차를 타야되잖아..... 처절하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각각 무기를 챙기고 그 마부가 모는 그 마차에 타서 레드네 늪지로 향했다. 일주일 만에 맛보는 덜컹덜컹한 느낌.... 아무리 이 마차를 수십 번 타도 이 느낌은 절대 적응이 안 될 것 같다..... 레드네 늪지는 비교적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10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사 위는 어둑어둑해졌다. 역시 이번에도 내일 히드라를 잡아야 겠군. 그런데 히드라? 히드라 하니까 게임하나가 생각나는군. 그리고 생물 시간에 배운 괴상한 동물도. 이 지역의 히드라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밤이 빠르게 지나가고 아침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나와 헤라클레스 는 레드네 늪지로 향했다. 빨리 잡고 빨리 돌아가야 하니까. 하하. 레드네 늪지 주변은 기괴한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지들이 거의 기하학적으로 꺽여져 자란다. 꽈배기형도 있고, 나선형도 있고.... 별의별게 다 있군. 어쨌거나 정말 음침한 곳이야. 우리는 그 기괴한 나무들을 지나 레드네 늪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레드 네 늪지는 초록색 풀들로 잔뜩 덮여 있었는데 습기가 장난 아니었다. 그리 고 얼핏 보기에도 깊이도 상당한 듯 보인다. 뭐 그래야 히드라가 살 수 있 겠지. 얕으면 어떻게 사냐. 그런데 이놈의 히드라는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야이 빌어먹을 히드라 녀석아! 당장 나와!" 난 최대한 목청을 높혀 힘껏 소리질렀다. 갑자기 소리지르는 날 보고 헤 라클레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내가 조금 심했나? 꾸아아악--! 레드네 늪지에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거대한 크기의 물 뱀이었는데 머리가 무려 9개였다. 저게 히드라인가? 으아... 무섭다..... "나타났군! 좋아, 간닷!" 헤라클레스는 즉시 활을 장전하여 화살을 쏘았다. 히드라는 늪지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화살을 모두 피해냈다. 이런, 이래가지고는 안되겠는걸? "헬! 우선 저 히드라를 늪지 밖으로 유인해야되요! 그리고 나서 싸워보자 구요!" 내 말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히드라에게 소리쳤다. "이 괴물아! 날 잡아 먹어보라구!" 나원...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히드라는 따라올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난 이때 재빨리 튀어야지! 달리기가 느리니까. 내가 뛰자 헤라클레스도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히드라도 우리의 뒤 를 쫓았다. 난 죽어라고 달렸지만 헤라클레스보다 느렸고, 또 히드라보다 도 느렸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날 번쩍 들고서는 발바닥에 땀띠나도록 뛰었다. 촤아악-- 히드라는 수풀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레드네 늪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난 헤라클레스에게 소리쳤다. "이제 싸워요!" 헤라클레스는 내 외침에 발을 멈추고는 내가 차고 있던 리소좀을 뽑아들 었다. 허걱! 남의 무기를 그렇게 함부로 빼가면 어떡해? "좋아, 와라!" 헤라클레스는 히드라가 다가오자 활과 화살통을 던져버리며 리소좀만을 들고 히드라에게 달려갔다. 히드라는 날카로운 이빨과 긴 꼬리로 헤라클레 스를 공격했지만 헤라클레스는 잘 막아내었다. 정말 할말이 없게 만드는군 .... 히드라의 꼬리를 주먹으로 쳐내다니.... 힘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앞서 는 것 같아...... "타핫!" 짧은 기합과 함께 헤라클레스는 높이 뛰어올라 히드라의 머리 하나를 자 르는데 성공했다. 오홋! 역시 헤라클레스!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겠는 걸? 그래봤자 난 별 도움도 안될 테지만. 뿌드드득-- 얼레? 이게 뭔 소리다냐? 허걱! 잘린 히드라의 머리에서 다시 머리가 생 겨나잖아? 그것도 둘씩이나! 이런! 이제야 생각이 난다! 히드라의 머리를 자르면 자른 부위에서 새로운 머리가 두 개 생겨난다는 것! 으... 어떻게 해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를 죽였지? 음.... 아, 그래! 잘 린 부위를 불로 지져버렸지! 그런데 어떻게 불로 지지지? 헤라클레스는 히 드라랑 싸우느라 정신없을 테고.... 결국 내가 해야 한다는 소린데..... 어떻게 한다냐.... 으윽! 머리가 안돌아가! "이 괴물! 죽어!" 헤라클레스는 계속 히드라의 머리를 잘라냈지만 잘릴 때마다 히드라의 머 리에선 새로운 머리가 두 개씩 더 생겨났다. 그래서 오히려 헤라클레스가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 차근히 생각해보자. 우선 불로 지지려면 사라만다가 있어야 겠고 .... 사라만다는 빨리 움직일 수 없는데.... 그렇다면 실프가 사라만다의 불꽃을 바람으로 실어서 날려보내야 하나? 그 수 밖엔 없는 것 같은데? 어 쨌든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 "실프, 사라만다! 전에 했던 합동 공격이다!" 소환된 사라만다는 '뭔 합동 공격?'하는 표정으로 날 띠껍게 쳐다봤다. 이 녀석! 곧 말해줄 테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좀 마라! "우선 사라만다는 허공에다 불꽃을 왕창 내뿜고 실프는 바람에 그 불꽃을 실어서 저 히드라의 잘린 목 부위를 태우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라만다는 여전히 띠꺼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말없이 -원래 말은 못하지만- 다량의 불꽃을 허공에 방출하기 시작했다. 실프는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바람에다 실었다. 그리고는 곧장 히드라에게로 불꽃 실린 바람을 날려보냈다. ━━━━━━━━━━━━━━━━━━━━━━━━━━━━━━━━━━━제 목 :[사이케델 리아] 69.레드네 늪지의 히드라-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90 게 시 일 :99/10/02 17:22:03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69 레드네 늪지의 히드라 -2- 헤라클레스가 이번에도 히드라의 머리 두 개를 한꺼번에 잘라냈을 때, 사 라만다의 불꽃이 실린 바람이 히드라의 머리가 잘린 부분을 감쌌다. 순간 불꽃이 잘린 부위를 태우며 검은 연기를 발생시켰다. 그러자 히드라의 머 리들이 일제히 괴성을 질러댔다. 꾸아아아악--! 윽, 정말 시끄럽군. 어쨌거나 성공한 것 같은데? 더 이상 히드라의 머리 가 생겨나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가만있자.... 머리가 몇 개냐? 하나,둘, 셋..... 허걱! 22개? 도대 체 얼마나 잘랐기에 저렇게 많이 생긴겨? 저 렇게 머리가 늘어나다간 몸통이 지탱을 못하겠다! 털썩털썩-- 갑자기 히드라의 머리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얼레? 왜 저러지? 죽어버 린 건가? 한 번 불로 지졌다고 죽을 녀석이 아닐텐데? 헤라클레스도 그 기현상에 놀라 손을 멈추었다. 이윽고 머리가 떨어지는 현상은 멈췄다. 남은 히드라의 머리는 정확히 9개. 그렇군! 저 녀석은 필 요없는 머리를 일부러 떨궈낸 거였어! 머릿수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래서 히드라의 머리는 항상 9개였던 거야! 히드라 주변은 떨어진 머리들로 가득 찼다. 히드라는 꼬리로 떨어진 머리 를 쳐서 우리에게 날려보내는 고난이도의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어쭈? 머 리 좀 쓰는데? 퍼퍼퍽--! 헤라클레스는 날아오는 머리들을 주먹으로 쳐내며 히드라의 머리 높이까 지 뛰어올랐다. "받아랏!" 리소좀을 한 번 크게 휘두르자 엄청난 검풍이 몰아치며 히드라의 머리를 일제히 잘라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실프는 사라만다의 불꽃을 잘 린 부위에 놓았다. 치지지직---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잘린 부위는 완전히 변성되고 말았다. 히드라의 머리는 이제 하나도 없게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마음을 놓고 히드라의 행 동을 주시했다. 머리를 완전히 잃은 히드라는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 나 곧 엄청난 발악을 해대기 시작했다. 쾅쾅쾅--! 히드라의 꼬리가 땅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에 따라 흙과 돌멩이가 튀었 고 나와 헤라클레스는 열심히 피해다녀야 했다. 헤라클레스는 말도 안된다 는 듯이 소리쳤다. "머리가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그건 나도 묻고 싶어....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얼레? 흙먼지 들이 히드라의 목 속으로 들어가잖아? 그렇다면.... 저 히드라는 지금 숨 을 쉬고 있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군. 숨은 어차피 늑골과 횡격막의 기복 운동으로 쉬는 거 니까. 길고 좁은 구멍만 있다면 코가 없어도 숨은 쉴 수 있지. 코는 단순 히 공기가 지나가는 통로니까. 그렇다면 결국 심장을 작살내거나 가슴에 구멍을 뚫어버려야 한다는 결론 밖에 안 나오는군. "헬! 히드라의 심장을 노려요!" "심장? 그럼 저 머리없는 히드라가 숨을 쉬고 있다는 소리야?" "예! 아예 숨통을 끊어놔야 되요!" "나원! 코도 없는데 어떻게 숨을....!" 헤라클레스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말대로 히드라의 심장을 노리고 리 소좀을 던졌다. 검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가 히드라의 심장이 있다고 생각 되는 부분을 뚫고 지나갔다. 검이 뚫고 지나간 자리에서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지는 것으로 봐선 확실히 심장 같다. 심장을 꿰뚫린 히드라는 곧 쿵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몸을 쳐박았다. 휴 .... 이제 끝난 건가? 하여간 조금 고생했다. 어차피 죽을 놈이 뭔 발악을 그렇게 심하게 하는지 원..... 헤라클레스는 히드라가 완전히 뻗어버렸음을 확인하고는 주변에 떨어져 흩어진 머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머리들은 히드라의 몸통이 발악할 때 망가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중에 그나마 꽤 온전한 형태로 남 아있던 머리가 있어서 그걸 히드라 퇴치의 증거물로 가져가기로 했다. 사람 상체만한 히드라의 머리를 보고 마부는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딸꾹질은 하지 않았다. 그 동안 담력을 조금 길렀나 보다. 그런데 내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은 바로는.... 히드라의 아홉 머리 중에 하나는 불사의 머리라고 알고 있는데.... 그래서 여덟 개의 머리를 제거하고 나서 남은 불사의 머리를 바위 밑에 파묻었다고..... 우리가 싸 웠던 히드라는 불사의 머리가 없었는데 말이야. 도대체 뭐가 맞는 건지... 하긴... 전설이나 신화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 틀리니까..... 굳이 따질 필요는 없겠지. 히드라를 퇴치하고 나서 마굿간으로 돌아온 지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들 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히드라가 퇴치된 이후 티린스의 교역 도시가 더 늘 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에우리스테우스는 우리에게 포상 하나 주지 않았 다. 하여간 인정이라곤 손톱의 때만큼도 없는 인간이야. 적어도 식사는 제 공해야 할 것 아니냐구! 언제까지 하인들의 음식을 뺏어먹으라는 거야? "헬은 억울하다는 생각 안 들어요?" 난 내 자리에 드러누워서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헤라클레스도 자리에 드러누우며 입을 열었다. "글쎄, 이건 내 죄를 씻기 위한 과정이니까 억울하진 않아. 하지만 넌 억 울하겠구나." 드디어 내가 억울하다는 사실을 느꼈수? 눈치도 참 없구만. "그다지 억울하지는 않아요. 이 생활도 나름대로 재미있고. 물론 말똥 냄 새가 없다면 더 좋겠지만요." 내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하하 웃으며 잠이 들었다. 허걱.... 놀랍다. 웃 다가 자다니. 이건 연구 대상 감이야. 연기 대상도 줄까? 우어억!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 말란 말이야! 나도 잠이나 자야겠다. 할일도 없으니. 아흠~ "저... 심복 노인이 찾아왔는데요...." 갑자기 들려오는 말소리. 목소리를 들어봐선 전에 나한테 맞았던 그 녀석 이다. 뭐 그 녀석이 계속 심복 노인이 올 때마다 알려주지만. 그런데 그 노인 또 온거야? 지겨워.... 잠 좀 자려고 했더니만. "알았어." 난 그렇게 대답하고 마굿간 밖으로 나왔다. 자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굳이 깨울 필요는 없겠지. 밖에는 역시 심복 노인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서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명령이 떨어졌다.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생포해 오는 것!" 아르테미스의 사슴? 아르테미스라면 사냥의 여신 같은데? "아르테미스의 사슴이란 게 어떻게 생겼는데요?" "황금 뿔에 청동 발을 가진 사슴이다.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사람들의 말로는 미케네 시 부근의 숲속에서 살고 있다고들 하더군. 재 주껏 생포해 와라. 중요한 점은 사슴에 조그마한 상처라도 내서는 안된 다는 것이다. 출발은 역시 두 시간 후다. 준비하도록!" 할말을 다한 노인은 황급히 사라졌다. 아르테미스의 사슴이라... 황금 뿔 에 청동 발.... 그나저나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생포해 오라고? 아주 사 악하게 노는구만. 어쨌거나 갈 준비나 해야지. 난 마굿간으로 들어가서 헤라클레스를 깨웠다. "헬헬헬! 명령 떨어졌어요! 일어나라구요!" "..... 음냐." 역시 꿈쩍도 안하는 헤라클레스. 또 그 방법을 써야겠군. "헤, 헤, 헬헬헬헬헬헬헬.....!" 벌떡--! 곤히 자고 있던 헤라클레스는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그의 표정은 새 파랗게 질려있었다. 와... 정말 효과가 끝내주는데? 헤라클레스는 식은땀마저 흘리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혹시 이상한 소리 듣지 못했니?" "아뇨. 그나저나 에우리스테우스가 명령을 전달했어요." "며, 명령? 이번엔 뭔데?" 명령이란 말에 헤라클레스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물었다. 난 짧게 답했다. "아르테미스의 사슴 생포." ━━━━━━━━━━━━━━━━━━━━━━━━━━━━━━━━━━━제 목 :[사이케델 리아] 70.아르테미스의 사슴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91 게 시 일 :99/10/02 17:22:48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0 아르테미스의 사슴 -1- 나와 헤라클레스는 곧장 미케네 시로 갔다. 미케네 시라면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없으면 둘이서 발바닥에 땀띠나도록 찾아다녀야 하고. 미케네 시는 티린스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는데 만도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하여간 에우리스테우스는 기한 제한을 하지 않는다니까. 언제까지 잡아오라고 하지 않고 언제든지 잡아와라 하는 식이니. 뭐 우리 야 편하지만. 그런데 사슴 잡아서 뭐에 쓰려고 그러지? 사슴 잡아먹어서 몸보신하려고 그러나? 아니면 기르려고? 음... 아무래도 비싼 값에 팔아버릴 것 같다. 마차는 도시 밖에 정차(?)시켜 놓고, 나와 헤라클레스만 미케네 시 안으 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케네 시 사람들에게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물었으나 아무도 딱 부러진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아니,일부러 감추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휴....." 헤라클레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힘이 빠져서 사람들에게 물어보 기를 포기했다. 정말 힘들다. 차라리 둘이서 찾는 쪽이 더 낫겠어. "헬, 그냥 우리끼리 찾죠.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찾을까?" "네." 우리는 의견의 합치를 본 후 여관을 찾기 위해 미케네 시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여관도 참 많았다. 그 중에서 '아르테미스의 안식처'라는 이름의 여관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와 헤라클레스가 막 여 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저쪽에서 누군가 쫓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 "거기서!"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손에 빵을 들고 우리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비교적 날쌔 보이는 한 아저씨가 소년을 쫓고 있 었다. 음... 상황을 보니 저 소년이 저 아저씨의 빵을 훔친 것 같은데? 저 아저씨는 빵집 주인인가? "노움, 우리한테 달려오고 있는 저 소년의 다리를 걸어." 난 덤덤히 노움에게 지시를 내렸고 노움은 땅속에 숨어있다가 소년이 가 까이 다가오자 땅 위로 다리를 뻗어 소년의 다리를 걸어버렸다. "으아악!" 소년은 앞으로 마구 뒹굴었다. 그러나 손에 든 빵-길고 큰 빵-을 절대 놓 치 않았다. 앞으로 구르면서도 빵이 땅에 닿지 않도록 했으니까. 거의 신 의 경지에 다다른 낙법이야~ "이 녀석! 드디어 걸렸구나!" 빵집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아저씨는 엎어져 있는 소년에게 달려들어 소년 을 걷어차려고 했다. 어이구... 굉장히들 살벌하게 노는데? "실프, 저 아저씨 붙잡아." 내 지시에 실프는 바람을 일으켜 빵집 주인에게 바람의 올가미를 씌웠다. 아저씨는 뜻밖의 상황에 놀란 듯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저 씨 발 아래 있던 소년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기 두 분. 무조건 폭력을 쓰려고 하지는 마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근히 말해보세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날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은 사람이 너냐?" 어유.... 제법 이 아저씨도 띠껍게 노는데? 왠지 전혀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은 타입이야. 얼굴도 못생겼고, 성격도 더럽고. "당연한 걸 왜 물어보시나? 어서 이유를 대라고, 이 아저씨야." 화가 나서 그런지 내 말투도 상당히 띠꺼워졌다. 내 어투에 아저씨는 불 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가 사라만다를 소환하자 이내 고분고분해졌 다. "그거야 저 녀석이 빵을 훔쳤기 때문입죠....." 하... 정말 역겹군. 뭐 내가 이 아저씨의 입장이라면 나도 똑같이 행동할 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녀석이 빵을 훔쳤다고? "넌 왜 빵을 훔쳤지?" 빵을 들고 있던 소년은 여유롭게 길바닥에 앉아 까친 상처를 호호 불고 있다가 내 질문에 당연한 듯한 어투로 답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봐? 배고프니까 뽀렸지." 와... '뽀리다'라는 표현을 쓰다니. 오랜만에 내 동료를 만난 듯한.... 어쨌거나 당당하게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짓을 상당히 오랫동안 한 것 같 다.....? "뭐야, 이 녀석아?! 배고프면 돈 주고 사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아저씨는 소년의 말에 발끈하며 화를 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태 세였지만 바람의 올가미에 걸려 꼼짝도 못했기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만 질 렀을 뿐이었다. 하여간 정말 시끄러운 인간이야. 그리고 배고프면 돈 주고 사 먹어? 이런 거지 깡깽이 같은 인간을 보겠나..... "미친 놈. 내가 돈이 있다면 이런 짓을 하겠냐?" 소년은 아저씨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더욱 발끈하여 뭐라뭐라 소리쳤지만 발음도 부정확하게 했기 때문에 알아먹기도 힘들었 다. 난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실프는 바람 을 일으켜 아저씨의 목소리를 차단했다. 음... 이제야 조용해졌군. 아저씨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 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제서야 내가 무서운 존재라는 걸 인식한 듯이 보였다. "이봐, 아저씨.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잖아. 좋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안 그러면 주둥이를 비틀어 버릴 테니까." 아저씨가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자 실프는 공기가 다시 흐르도록 했고 난 아저씨에게 싸늘한 말투로 내 마음을 전달했다. 잘못 행동했다간 크게 다 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 를 살폈다. "저 녀석이 들고 있는 빵은 얼마지?" 기분이 나쁜 상태였기 때문에 난 반말로 나갔다. 아저씨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20렙톤... 인데요...." 20렙톤.... 도대체 얼마지? 나야 이 곳 돈은 전혀 모르고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헤라클레스의 신세를 져야겠군. 아무래도 내 돈 을 이 곳 화폐로 바꿔야겠어. "헬, 대신 내 줄거죠?" 내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2개의 동전을 꺼내며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여기 20렙톤입니다." 난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냈고, 그에 따라 아저씨의 몸을 묶고 있던 바 람의 올가미도 사라졌다. 아저씨는 거대한 덩치의 헤라클레스를 보고 더욱 쫄며 사양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전 먼저 실례.....!" 주는 돈을 사양한 띨빵한 아저씨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도망가 버렸다. 허허, 이러니 꼭 우리가 저 아저씨를 협박한 것 같잖아. 뭐? 협박하지 않 았냐구? 이런, 난 협박하지 않았어. 단지 위협했을 뿐이지. "야, 너 마법사야?" 땅바닥을 뒹굴어서 흙이 진창 묻은 얼굴로 소년이 물었다. 난 그 녀석의 얍삽하게 생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야, 그럼 나한테 마법이나 가르쳐줘라." 얼씨구?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이냐? 그건 그렇고, 마법을 가르쳐 달라 니? 웃긴 놈 아니야? "마법은 배워서 뭐하게?"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냥이라면 사양한다. 난 바쁜 몸이라서." 난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여관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이 녀석이라면 알지 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년에게 물었다. "야, 너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있는지 아냐?" 내 물음에 소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얍삽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 알고 있지." ㅜㄱ 3757-3842 [번 호] 3757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7일 22:32 Page : 1 / 40 [등록자] THEBUR [조 회] 12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0~72 아르테미스의 사슴 -1~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0.아르테미스의 사슴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91 게 시 일 :99/10/02 17:22:48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0 아르테미스의 사슴 -1- 나와 헤라클레스는 곧장 미케네 시로 갔다. 미케네 시라면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없으면 둘이서 발바닥에 땀띠나도록 찾아다녀야 하고. 미케네 시는 티린스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는데 만도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 하여간 에우리스테우스는 기한 제한을 하지 않는다니까. 언제까지 잡아오라고 하지 않고 언제든지 잡아와라 하는 식이니. 뭐 우리 야 편하지만. 그런데 사슴 잡아서 뭐에 쓰려고 그러지? 사슴 잡아먹어서 몸보신하려고 그러나? 아니면 기르려고? 음... 아무래도 비싼 값에 팔아버릴 것 같다. 마차는 도시 밖에 정차(?)시켜 놓고, 나와 헤라클레스만 미케네 시 안으 로 들어갔다. 우리는 미케네 시 사람들에게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물었으나 아무도 딱 부러진 대답을 하지는 못했다. 아니,일부러 감추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휴....." 헤라클레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힘이 빠져서 사람들에게 물어보 기를 포기했다. 정말 힘들다. 차라리 둘이서 찾는 쪽이 더 낫겠어. "헬, 그냥 우리끼리 찾죠.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음...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찾을까?" "네." 우리는 의견의 합치를 본 후 여관을 찾기 위해 미케네 시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여관도 참 많았다. 그 중에서 '아르테미스의 안식처'라는 이름의 여관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와 헤라클레스가 막 여 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저쪽에서 누군가 쫓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탁탁탁-- "거기서!" 내 나이 또래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손에 빵을 들고 우리쪽으로 달려 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비교적 날쌔 보이는 한 아저씨가 소년을 쫓고 있 었다. 음... 상황을 보니 저 소년이 저 아저씨의 빵을 훔친 것 같은데? 저 아저씨는 빵집 주인인가? "노움, 우리한테 달려오고 있는 저 소년의 다리를 걸어." 난 덤덤히 노움에게 지시를 내렸고 노움은 땅속에 숨어있다가 소년이 가 까이 다가오자 땅 위로 다리를 뻗어 소년의 다리를 걸어버렸다. "으아악!" 소년은 앞으로 마구 뒹굴었다. 그러나 손에 든 빵-길고 큰 빵-을 절대 놓 치 않았다. 앞으로 구르면서도 빵이 땅에 닿지 않도록 했으니까. 거의 신 의 경지에 다다른 낙법이야~ "이 녀석! 드디어 걸렸구나!" 빵집 주인이라고 생각되는 아저씨는 엎어져 있는 소년에게 달려들어 소년 을 걷어차려고 했다. 어이구... 굉장히들 살벌하게 노는데? "실프, 저 아저씨 붙잡아." 내 지시에 실프는 바람을 일으켜 빵집 주인에게 바람의 올가미를 씌웠다. 아저씨는 뜻밖의 상황에 놀란 듯 굉장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저 씨 발 아래 있던 소년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거기 두 분. 무조건 폭력을 쓰려고 하지는 마시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근히 말해보세요." 내 물음에 아저씨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날 이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해 놓은 사람이 너냐?" 어유.... 제법 이 아저씨도 띠껍게 노는데? 왠지 전혀 도움을 주고 싶지 않은 타입이야. 얼굴도 못생겼고, 성격도 더럽고. "당연한 걸 왜 물어보시나? 어서 이유를 대라고, 이 아저씨야." 화가 나서 그런지 내 말투도 상당히 띠꺼워졌다. 내 어투에 아저씨는 불 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가 사라만다를 소환하자 이내 고분고분해졌 다. "그거야 저 녀석이 빵을 훔쳤기 때문입죠....." 하... 정말 역겹군. 뭐 내가 이 아저씨의 입장이라면 나도 똑같이 행동할 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 녀석이 빵을 훔쳤다고? "넌 왜 빵을 훔쳤지?" 빵을 들고 있던 소년은 여유롭게 길바닥에 앉아 까친 상처를 호호 불고 있다가 내 질문에 당연한 듯한 어투로 답했다. "당연한 걸 왜 물어봐? 배고프니까 뽀렸지." 와... '뽀리다'라는 표현을 쓰다니. 오랜만에 내 동료를 만난 듯한.... 어쨌거나 당당하게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짓을 상당히 오랫동안 한 것 같 다.....? "뭐야, 이 녀석아?! 배고프면 돈 주고 사 먹으면 될 거 아니야?!" 아저씨는 소년의 말에 발끈하며 화를 냈다.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태 세였지만 바람의 올가미에 걸려 꼼짝도 못했기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만 질 렀을 뿐이었다. 하여간 정말 시끄러운 인간이야. 그리고 배고프면 돈 주고 사 먹어? 이런 거지 깡깽이 같은 인간을 보겠나..... "미친 놈. 내가 돈이 있다면 이런 짓을 하겠냐?" 소년은 아저씨를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아저씨는 더욱 발끈하여 뭐라뭐라 소리쳤지만 발음도 부정확하게 했기 때문에 알아먹기도 힘들었 다. 난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런 내 마음을 느꼈는지 실프는 바람 을 일으켜 아저씨의 목소리를 차단했다. 음... 이제야 조용해졌군. 아저씨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 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제서야 내가 무서운 존재라는 걸 인식한 듯이 보였다. "이봐, 아저씨.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잖아. 좋게 대화로 해결하자고. 안 그러면 주둥이를 비틀어 버릴 테니까." 아저씨가 소리지르는 것을 멈추자 실프는 공기가 다시 흐르도록 했고 난 아저씨에게 싸늘한 말투로 내 마음을 전달했다. 잘못 행동했다간 크게 다 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아저씨는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 를 살폈다. "저 녀석이 들고 있는 빵은 얼마지?" 기분이 나쁜 상태였기 때문에 난 반말로 나갔다. 아저씨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20렙톤... 인데요...." 20렙톤.... 도대체 얼마지? 나야 이 곳 돈은 전혀 모르고 가지고 있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이 헤라클레스의 신세를 져야겠군. 아무래도 내 돈 을 이 곳 화폐로 바꿔야겠어. "헬, 대신 내 줄거죠?" 내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에서 2개의 동전을 꺼내며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여기 20렙톤입니다." 난 실프를 정령계로 돌려보냈고, 그에 따라 아저씨의 몸을 묶고 있던 바 람의 올가미도 사라졌다. 아저씨는 거대한 덩치의 헤라클레스를 보고 더욱 쫄며 사양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전 먼저 실례.....!" 주는 돈을 사양한 띨빵한 아저씨는 걸음아 날 살려라하며 도망가 버렸다. 허허, 이러니 꼭 우리가 저 아저씨를 협박한 것 같잖아. 뭐? 협박하지 않 았냐구? 이런, 난 협박하지 않았어. 단지 위협했을 뿐이지. "야, 너 마법사야?" 땅바닥을 뒹굴어서 흙이 진창 묻은 얼굴로 소년이 물었다. 난 그 녀석의 얍삽하게 생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야, 그럼 나한테 마법이나 가르쳐줘라." 얼씨구?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이냐? 그건 그렇고, 마법을 가르쳐 달라 니? 웃긴 놈 아니야? "마법은 배워서 뭐하게?" "그냥.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단 낫잖아." "그냥이라면 사양한다. 난 바쁜 몸이라서." 난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여관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이 녀석이라면 알지 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년에게 물었다. "야, 너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어디있는지 아냐?" 내 물음에 소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얍삽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물론 알고 있지."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1.아르테미스의 사슴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98 게 시 일 :99/10/04 21:26:37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1 아르테미스의 사슴 -2- "알고 있다고?" 소년의 대답에 헤라클레스가 놀라 되물었다. 소년은 여전히 얍삽한 미소 를 입가에 걸며 말했다.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다 아는 사실을 내가 모를 것 같수?" 뭐? 다 안다고? 그런데 어째서 다들 모른다고 한거지? "그런데 왜 다들 물어보면 모른다고 하지?" "그야 당연히 그 사슴은 신성하다고 생각해서 잡기를 꺼려하니까. 오죽하 면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의 사슴이라고까지 하겠냐. 그런 사슴을 외 부인들이 잡아가게 할 것 같아?" 소년은 한심하다는 투로 답했다. 음... 그렇군. 그래서 모두들 모른다고 대답했던 것이구나. 저 녀석은 말투는 싸가지없지만 왠지 마음에 드는데? "그러는 너는 왜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는 거야?" "그야 그 사슴이 어떻게 되는 나하고는 상관없으니까. 잡아서 끓여먹든 삶아먹든 내 알 바 아니야." 소년은 빵을 뜯어먹으며 빈정댔다. 역시 이 녀석은 이곳에 불만이 많군. 뭐 돈이 없기 때문에 불만 많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너 이름이 뭐냐?" 내 물음에 소년은 빵 먹다가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 "그럼 계속 '야'라고 불러줄까?" "... 이카로스." 뭐? 이카로스? 인공 날개를 만들어서 날다가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는 바 람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은 녀석? 이름을 들어보니 그 앞날이 훤히 보이는 듯하다~ "난 니트다. 그리고 저 사람은 헬이고." "하하, 안녕?" 헤라클레스는 웃으면서 인사를 했지만 이카로스는 그의 인사를 빵과 함께 씹었다. 난 이카로스에게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내일 그 사슴을 잡으러 가야 하니까 네가 길 안내해." "훗, 내가 왜 그런 일을 해야하지?" "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시키는 대로 해." "마법 좀 쓸 줄 안다고 사람을 위협하는 거냐?" "당연하지. 지금 난 기분이 안 좋거든. 고분고분 말 듣는게 좋을 꺼야. 안 그랬다간 화장을 시켜줄 테니까." 이카로스는 내 말에도 여유롭게 빵을 뜯었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저 녀석의 방까지 잡죠. 데려가야 하니까." "그러지 뭐." 헤라클레스는 약간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 때 이 카로스가 나에게 물었다. "식사는 제공하는 거야?" "... 빵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빵만 제공해 주지." 난 그렇게 대답하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헤라클레스는 이카로스를 번 쩍 들어 내 뒤를 따랐다. 이카로스는 내려달라고 발버둥쳤지만 헤라클레스 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방을 예약한 뒤 이 카로스를 끌고 방으로 올라갔다. "우웅.... 배고파....." 이카로스는 배를 움켜쥐고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난 이 카로스의 말을 무시하며 재촉했다. "빨리빨리 가자고. 어서 앞장 서." "우씨...." 이카로스는 투덜대며 길 안내를 시작했고 나와 헤라클레스는 이카로스의 뒤를 따랐다. 이카로스는 미케네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난에 찌들어 서 도둑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근방에서 이카로스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는 유명인(?)이 되었다. 단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다나? 그런데 이번에 나한테 잡혀서 자기 명예가 실추됐다며 어 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조금 손을 봐주었다. 그랬더니 지금은 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어떻게 했냐구? 뭐 리소좀으로 피부를 가볍게 긁어주고,팔 몇 번 비틀어 준 다음 에 불로 지졌다가 물 끼얹고, 실프로 숨 못쉬게 도 하고.... 그 정도 밖에 안했어. 나중에 다 치료해 줬는데 뭘. 사박사박-- 우리 셋은 미케네 시 근처의 숲을 헤쳐나갔다. 이카로스는 망설임없이 길 을 잘 찾으면서 입을 놀렸다. "뽀리칠 때마다 이 길로 다니지. 일루 토까면 못 찾거든." 그러냐? 마치 그게 대단한 것처럼 말을 하는구나. 역시 넌 또라이였어. "자, 여기야!" 이카로스는 전면을 가리켰다. 그 곳을 보니 왠 동굴 하나가 있었다. 동굴 주변에는 키큰 풀들이 자라고 있어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동굴이었다. 이카로스는 동굴을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여기가 내 아지트야. 어때? 멋있지?" "멋있긴 뭐가 멋있어? 아르테미스의 사슴이나 찾아!" 내 말에 이카로스는 삐진 표정을 짓고는 다시 길을 뚫었다. "얼마나 더 가야되지?" "조금만 가면 돼. 자꾸 묻지 좀 마!" "난 이번에 처음 물은 거야!" "어쨌든! 귀찮게 하지 말고 사슴새끼 보고 싶으면 잠자코 따라오라고!" 이카로스는 짜증어린 어투로 소리쳤다. 난 가볍게 그의 팔을 리소좀으로 그었다. "으악!" 이카로스는 비명을 지르며 살짝 베인 왼팔을 움켜쥐었다. 난 싸늘한 어투 로 입을 열었다. "닥치고 길이나 제대로 안내해. 안 그랬다간 다음번엔 네 머리통을 꿰뚫 어 버릴 테니까." "크윽...." 이카로스는 사나운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없이 걸어갔다. 나와 헤라클 레스도 묵묵히 이카로스의 뒤를 따랐다. 얼마쯤 더 걸어간 후, 이카로스는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여기가 아르테미스의 사슴이 활동하는 곳이야. 알아서들 하라고." 그곳은 작은 나무들이 자라서 빛이 지면을 내리쬐고 있는 곳이었다. 사슴 이 뛰어놀기엔 충분한 공간이 있었는데, 사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이카로스가 입을 열었다. "협상 하나 할까?" 얼레? 갑자기 왠 협상? "뭔데?" "내가 사슴이 자주 다니는 곳을 아는데, 그 곳을 가르쳐주면 나한테 500 드라크마를 주는거야. 어때?" 이카로스의 말에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확 변했다. 음... 굉장히 큰 돈인 가 본데? 그럼 허락하면 안되겠지? "싫다면?" "그럼 없던 걸로 하지 뭐. 열심히들 찾아보라고." 그렇게 말한 이카로스는 즉시 그 자리를 피했다. 에? 왜 저런다냐? 뭐 잘 못 먹었나?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자 이카로스는 눈을 동그랗게 떳다. "어? 검으로 찌를 줄 알았는데?" 어쭈? 내가 그렇게 사악한 놈으로 보인단 말이야? 저걸 찔러버려? "필요없으니까 사라져라. 헬, 사슴이나 찾죠." 난 사슴이 있을 만한 곳을 물색했다. 헤라클레스도 같이 찾았다. 이카로 스는 별 희한한 표정을 짓더니 나한테 왔다. "야, 그러지 말고 돈 좀 주라." "싫어, 임마." "야야, 치사하게 놀래?" "넌 더 치사해." "우씨...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도 못들어주냐?" 난 이카로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카로스는 순간 쫄았는지 몸을 움찔 댔다. 저게 바로 조건 반사인가? 하하, 재밌는데? "살았으니까 소원을 안 들어주는거야." "에?" "죽은 사람은 그 소원을 이룰 기회가 없잖아. 산 사람에게는 조금이라도 남아있고. 그러니 죽은 사람 소원을 들어주지. 그 소원을 이룰 기회가 있는 산 사람의 소원을 왜 들어주냐고. 그러니까 넌 또라이인 거야." "우씨...." 내 말에 할말이 없는지 이카로스는 '우씨'만 반복했다. 이카로스의 성은 '우'였군. 새로운 사실이야~ "니트! 저기 사슴이다!" 헤라클레스가 최대한 조그만 목소리로 날 불렀다. 난 급히 헤라클레스 쪽 으로 갔고 이카로스도 따라왔다. 저 녀석은 왜 따라오는겨? 돈 줄 때까지 안 가려나? 난 이카로스를 무시하고 헤라클레스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작은 연못이 있는 곳이었는데 사슴 한 마리가 연못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 었다. 그 사슴의 뿔은 빛나는 황금색이었고, 발은 푸른색의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누가 보더래도 보통 사슴은 아니었다. "저게 바로 아르테미스의 사슴이야. 정확히는 숫사슴이지." 이카로스가 사슴을 보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하하, 이렇게 쉽게 찾다니.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일이 쉽게 잘 풀리는구나~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2.아르테미스의 사슴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399 게 시 일 :99/10/04 21:27:03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2 아르테미스의 사슴 -3- "어떻게 하죠, 헬?" 내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이건 내 임무니까 내가 어떻게든 잡을께. 넌 그냥 정령을 불러서 저 사 슴이 도망치지 못하게만 해줘." 별로 어려운 부탁도 아니로군. 그러지 뭐. "알았어요. 그럼 잘 해봐요." "그래." 헤라클레스는 조심스럽게 사슴이 있는 곳에 다가갔다. 사슴은 아직 헤라 클레스의 기척을 못 느꼈는지 계속 물만 핥아대고 있었다. 이카로스는 빈 손으로 다가가는 헤라클레스를 비웃으며 말했다. "저 사슴을 맨손으로 잡으려고 하다니. 완전 바보로군. 저 사슴의 청동 발에 한 번 채이면 바위조차 박살나는데." "......" "황금뿔에 한 번 받혀도 최하 죽음이지." "......" 내가 계속 말없이 헤라클레스를 지켜보자 이카로스가 날 흔들며 말했다. "야야, 저 사슴 위험하다니까. 저 아저씨에게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됐어, 임마. 잠자코 구경이나 해." "저 사슴 잘못 건드렸다간 황천행이라고!" "황천행을 하든 말든 나하곤 상관없어." "너 저 사람하고 같은 동료 아니야?" "동료긴 동료지. 위험에 처하면 혼자 냅다 튀는 동료." 내 대답에 이카로스는 할말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난 정령을 부르지 않 고 헤라클레스만 주시했다. 왠지 저 사슴은 도망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저봐, 저봐. 헤라클레스를 발견하고도 저렇게 빳빳이 고개를 들어 헤라클 레스를 쳐다보잖아. 오만함이 극에 달한 사슴이야~ 헤라클레스는 사슴이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재빨리 사슴에게 달려들었다. 사슴은 헤라클레스가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가 날카로운 황금 뿔로 헤라클레스를 들이받으려고 했다. 헤라클레스는 급히 손으로 뿔을 잡 고는 그대로 뿔을 부러뜨렸다. "마, 말도 안돼!" 헤라클레스가 사슴의 황금 뿔을 부러뜨리는 것을 본 이카로스가 놀라 소 리쳤다. 역시, 헤라클레스! 힘 빼면 시체야! 뿔이 부러져 나가자 사슴은 당황해서 앞발로 헤라클레스의 가슴팍을 찍어 버렸다. 쾅--! 가슴팍을 맞았는데 굉음이 울렸다. 헤라클레스는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와~ 멋있다! 쓰러지지도 않고 뒤로 주르륵 밀려나다니! "오~ 제법 쎈데? 좋아, 한번 해보자!" 헤라클레스는 가슴을 툭툭 털고는 다시 사슴에게 달려들었다. 사슴도 앞 발로 헤라클레스를 공격했다. 굉장한 난타전이 시작됐다. 퍼퍼퍽! 헤라클레스는 사슴의 청동 발을 주먹으로 일일이 쳐내며 기회를 노렸다. 사슴은 뒷발로 몸을 지탱하여 앞발로만 헤라클레스를 공격했는데 그 자세 가 꽤 불안해 보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사슴은 그 자세를 오래 지탱하 지 못하고 앞발을 땅위에 내렸다. 그 순간을 놓칠 헤라클레스가 아니었다. "넌 끝이야!" 헤라클레스는 사슴의 긴 목을 움켜잡고 사슴을 번쩍 들어 빙글빙글 돌렸 다. 사슴은 아무 반항도 못하고 허공을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 난 급히 헤 라클레스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사슴을 다친 곳 없이 데려 가야 돼요!" "앗차! 그렇구나!"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헤라클레스는 손을 멈추었다. 그 결과, 빙글빙글 허공을 돌던 사슴은 구심력이었던 헤라클레스의 손힘이 사라지자 원심력에 의해 꽤 멀리 날아가 버렸다. "으악! 이를 어떡하냐!!!" 헤라클레스는 사슴이 휭하니 허공을 날자 경악하고 말았다. 쿵 하는 사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헤라클레스는 급히 사슴이 날아간 쪽으로 달려갔 다. 난 부러진 황금 뿔을 들고 헤라클레스를 쫓았다. "정신차려, 사슴아....." 도착해 보니 헤라클레스는 땅위에 완전 뻗어버린 사슴을 흔들며 깨우려고 하고 있었다. 푸하하, 정말 웃기다! 사슴이 그런다고 깨어나냐..... 난 급히 들고 있던 뿔을 부러진 자리에 갖다 놓고 치료 주문을 외워 뿔을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코에 손가락을 대어보니 숨은 쉬고 있었다. "괜찮아요, 살아있으니까. 깨어나기 전에 데리고 나가자구요." 내 말에 이카로스가 한마디했다. "그 사슴을 들고 미케네 시로 갔다간 사형감이야." 에... 그렇겠네? 미케네 사람들은 이 사슴을 신성시하니까. 그럼 다른 곳 으로 돌아가야겠군. 아! 마차를 도시 밖에다 세워놨지! 그리로 가면 되겠 다! "이카로스, 미케네 시 성문 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되지?" 내 물음에 이카로스는 얍삽한 표정을 지었다. "돈 얼마 줄건데?" "됐어, 임마. 그냥 혼자 찾지 뭐." "잠깐! 이 숲은 넓어서 혼자 찾기 어렵다구!" "바람의 정령을 이용하면 찾을 수 있어." "야야,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돈 좀 주라~" 이카로스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내 동정을 얻으려 했지만 보기 에 전혀 불쌍하지 않아서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난 돈을 넣은 주머니에서 100페리짜리 지폐를 꺼내어 이카로스에게 주었다. 100페리를 본 이카로스 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이, 이게 뭐냐?" "보면 몰라? 케미컬에서 쓰는 돈이잖아." "여기서는 이런 돈 안 쓴다구." "이곳 돈으로 바꾸면 되지." "이 돈 얼마나 하는데?" "몰라. 네가 재주껏 받으라고." 이카로스는 100페리 지폐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내 바지 주머니 속에 지폐를 집어넣었다. "뭐 아예 없는 것보단 낫겠지. 좋아, 날 따라와." 이카로스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르테미스의 사슴은 헤라클레스가 들었다. 가는 길에 덩쿨을 발견해서 그 덩쿨로 사슴의 앞뒷다리를 모두 꽁꽁 묶었다. 깨어나더라도 발버둥을 못치게 하려는 것이다. 마차를 세워 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사슴을 마차 안에다 실었 다. 그러는 사이에 사슴은 깨어나 마구 발버둥을 쳤지만 헤라클레스가 한 대 가볍게 치자 또 정신을 잃고 자빠졌다. 저러다가 죽는 건 아닐지..... 그 때 이카로스는 얍삽한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다가왔다. "야, 돈 좀 더 주라~" "없어." "그러지 말고 쪼금만....." "조금도 없다. 그럼 재주껏 살아라." 난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마부석 위에 올랐다. 헤라클레스는 사슴이 깨어 나면 또 기절시키려고 마차 안에 탔다. 모두 마차에 타자, 마부는 곧 마차 를 출발시켰다. 이카로스는 그런 나에게 마구 소리질렀다. "에이, 치사한 새꺄! 이 돈 짝퉁이면 죽을 줄 알어?!" .... 굉장히 시끄럽군. 100페리면 꽤 되는 돈인데 말이야. 저 촌놈이 그 런 사실을 알 리가 없지.... 아... 100페리가 아깝다..... 무사히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생포한 우리는 편히 쉬었다. 역시나 에우리 스테우스는 우리에게 아무런 포상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노역이라지만 그 래도 밥은 줘야지! 이젠 하인들 음식 뺏어먹는 것도 지겹다! "으라차차차차....." 난 한껏 기지개를 켜고 몸을 푼 후, 잠자리에 들었다. 왜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보는 거야들? 잘 때 기지개 켜면 안돼? 그래야 잠이 잘 오던데. 헤라클레스는 이미 골아 떨어져 있었다. 하여간 금방도 자는군. 하긴, 웃 다가 자는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나도 이제 자야지. 얼마 후에 또 일을 시킬 테니까 말이야. 실프를 소환하여 촛불을 끈 다음 이불을 덮고 잠을 청했다. 말들은 계속 푸르릉 푸르릉 댔지만 이미 면역이 된 나는 쉽게 잠에 빠질 수 있었다. -------------------------------------------------------------------------- ------ 삽질꾼입니다. 그동안 몇몇 분께서 사.케의 모음집을 요청하셨었는데요. 오늘 드뎌 사.케 모음집을 올리게 ㄷ습니다.(허락 받았쪄요~~) 1~42,43~70 까지 올립니다. 100회가 넘어가면 다시 모음집을 올립지요...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감상은 작가분께 보내셔도 되고 저한테 보내셔도 됩니다. 추천 올려주신 두 분, 감사드립니다 ^_^ [번 호] 3789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8일 20:44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2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3.에리만토스 산의 멧돼지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3.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07 게 시 일 :99/10/06 21:28:52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3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 내가 밖에다 내다버리려고 말똥을 모은 통을 들고 나왔을 때 에우리스테 우스의 심복 노인이 역시 정장 비슷한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이런, 또 무 슨 일을 시키려고 온 모양이군.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잡은지 이제 8일 밖 에 안지났는데. 심복 노인은 말똥이 담긴 통을 보고 눈쌀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이번 네 번째 명령은 에리만토스산에 사는 흉폭한 멧돼지를 잡아오는 것 이다. 이번에도 역시 생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상처 정도는 괜찮다. 그럼 2시간 후에 출발해라." "저.... 이걸 버리고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데요...." "그래? 그럼 3시간 후로 하지. 준비하도록!" 그리고는 심복 노인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원, 시간을 달라니까 기껏 1시간이냐? 쪼잔하다 쪼잔해..... 난 궁전 근처의 땅에다 말똥을 묻어버리고 다시 돌아왔다. 처리하는 방법 을 몰라서 그냥 땅에다 버리는 거지. 거름도 되고 좋~ 잖아?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 에리만토스산... 멧돼지...." 잊어먹지 않게 계속 읊으면서 마굿간으로 들어갔다. 헤라클레스는 마굿간 청소를 다 했는지 자고 있었다. 하여간 뭘 했다하면 잔다니까. "헬헬헬! 일어나요!" "응? 으... 니트구나."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무렵이었던지 헤라클레스는 금방 깨어났다. 난 헤라 클레스에게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을 전달했다.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인데요, 에리만토스산에 가서 멧돼지를 잡아오래 요. 멀쩡하게." "에리만토스산.... 멧돼지? 그 멧돼지 괴물이야?" "흉폭하다고 하던데요." "그래? 그럼 잡아야지." 헤라클레스는 기지개를 크게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리소좀을 챙 겨들었다. 가볍게 준비를 마친 우리들은 곧 궁전 밖에 세워져 있는 마차쪽 으로 갔다.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맨 처음 만났던 마부의 마차였다. 마부는 일찍 나오는 우리들을 보고 반갑게 말했다. "일찍 나오시네요. 바로 가시게요?" "그래요. 빨리 가고 빨리 끝내는 게 좋으니까." 내 대답에 마부는 웃으며 마부석에 올랐고, 나와 헤라클레스는 마차 안에 탔다. 마차는 곧 에리만토스산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도중 헤라클레스는 큰 그물을 하나 샀다. 그걸로 멧돼지를 생포하겠다나? 그러다가 그물 찢어 지는건 아닐지..... 하루 만에 에리만토스산에 도착한 우리는 어떻게 맷돼지를 잡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가 헤라클레스가 내놓은 방법은..... "내가 고함을 질러서 멧돼지를 보금자리에서 몰아낸 후에, 지칠 때까지 쫓아다니다가 지치면 그물로 생포하는거야, 어때?" .... 정말 할말없어.... 어떻게 하면 저런 무식한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 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헤라클레스는 힘 빼면 시체였어...... "뭐... 그렇게 하죠. 그런데 자신 있어요?" "물론이지! 반드시 잡아올 테니까 기다려!" 헤라클레스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어깨에 멧돼지를 잡을 그물을 메고 에리만토스산 위로 올라갔다. 에리만토스는 높은 산이라 제일 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내려앉아 있었다. 난 그냥 마차 지붕 위에 앉아 헤라클레스가 돌 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내 할일이 없는 것 같다. 이럴 때 쉬자~ 그 때 엄청난 고함이 산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 흉폭한 멧돼지야! 당장 나와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목소리를 들어보아 헤라클레스로군. 목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정말 놀 랬다.... 저러다가 산사태가 나는건 아닐지 걱정이야..... "야, 멧돼지 녀석아! 어딜 도망가?!" 또다시 산 위에서 들려오는 고함소리. 상황을 보건대 멧돼지는 도망가고 헤라클레스가 그 뒤를 쫓고 있겠군. 인간의 체력이 멧돼지보다 좋을 리는 없지만... 헤라클레스는 신과 인간의 자식이니까.... 그러고 보니 저 헤라 클레스는 신의 아들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사자나 사슴을 번쩍 들 수 있는 괴력을 지닐 리는 없을텐데..... 궁금해지긴 하지만 헤라클레스에게 물어 봤자 모르겠지.... 그냥 모른 채로 사는 수 밖에..... 아... 할일없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거지?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에.... 이렇게 가만히 마차 지붕 위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니 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군. 학교에서 놀던 추억, 또 집에서도 놀던 추 억.... 그리고 이 세계로 오게 됐을 때.... 처음 만난 아세트..... 카르본 에서의 생활.... 마법을 배우고..... 여행을 하다가 유스타키오와 만나... 센세로 가서 흑기사와 싸우고..... 아세트는 떠나고..... 으윽...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진다..... 이러면 안되는데. 빨리 낮잠이나 자야겠군.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사위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얼레?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잔건가? 그런데 아직도 헤라클레스는 돌아오지 않았네? 설마 멧돼지에게 공격을 받아서 저 세상으로 가버린건? "아! 저기 헤라클레스님이 오시네요!" 마부석에 앉아 에리만토스산의 경치를 감상하던 마부가 소리쳤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헤라클레스가 멧돼지를 그물로 잡아놓고 어깨에 메고 천천 히 걸어오고 있었다. 멧돼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보통 야생 멧 돼지보다 적어도 덩치가 세 배 이상되는 거대한 녀석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 덩치의 멧돼지를 어깨에 메고도 전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하, 오래기다렸지? 이 녀석이 생각보다 체력이 좋더라고. 8시간을 쫓 아다니니까 그 때서야 지쳐서 말이야, 그물로 잡아왔지. 멧돼지도 잡았 으니 빨리 가자." 윽... 정말로 지칠 때까지 멧돼지를 쫓아다닌거야? 그 지칠 줄 모르는 체 력에 찬사를 보낸다..... 쉽다면 쉽게, 어렵다면 어렵게 임무를 완수한 우리는 지쳐서 입에 게거품 을 물고 있는 멧돼지를 마차 안에 실어놓고 티린스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멧돼지와의 추격전을 신나게 떠들어 댔다. 멧돼지가 동굴로 도망칠 때는 어떻게 했다는 둥... 덩쿨 속으로 도망칠 때는 또 어떻게 했 다는 둥... 하여간 잘난 건지 무식한 건지..... 쓱쓱쓱-- 오늘도 변함없이 말들의 배설물을 빗자루로 쓸며 통에다 담았다. 우우... 아무리 맡아도 이 냄새는 익숙해지지 않는군..... 냄새 죽이는 구나! 그 때 갑자기 내 얼굴 주위로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얼레? 마굿간은 출입구 외엔 막혀 있어서 바람이 들어올 리가....? 난 고개를 들어 마굿간을 살폈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는 실프..... 말도 안돼! 난 실프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너 어떻게 온거야?" 내 물음에 실프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앗차, 실프는 대답을 못하지. 그 나저나 정령이 멋대로 물질계로 올 수 있다니. 그것도 하급 정령이. 성장 해서 그러나? 하긴, 처음에는 30cm도 안되던 실프가 지금은 내 키만 해졌 으니.... 다른 정령들도 다 커졌고.... 그런데 난 왜 안 자랄까..... "다른 녀석들도 내가 부르지 않아도 올 수 있어?" 난 실프에게 정령어로 물었고, 실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엥? 못 온다고? 그런데 실프는 어떻게 왔지? 누가 소환했나? 그럴리가? "누가 널 소환한거야?" 실프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그럼 도대체 어떻게 온거지? 내 머리론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 '.... 당신의 마음.....' 얼레? 갑자기 이게 뭔 소리지? 굉장히 예쁜 목소리였던 것 같은데? 여기 엔 실프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허걱! 그렇다면 방금 그 말은 실프가 나한테 한 말?! "방금 그 말, 네가 한거야?" 내 물음에 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억, 정말로 실프가 말을 했단 말이야 ? 아니지... 그건 말이라 할 수 없고.... 뭐랄까.... 그렇게 느꼈다고 해 야하나? 하여간 그런 느낌이었는데..... 실프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허허 , 이거 참....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군..... [번 호] 3790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8일 20:44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1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4.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4.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08 게 시 일 :99/10/06 21:29:37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4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실프는 멍해있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실프의 마음이 전해졌다. '당신의... 마음이.... 날.... 소환... 한 거예요.....' 에? 내 마음이 실프를 소환했다구? 난 그런 마음 먹은 적 없는디? '냄새를... 맡기 싫다는... 마음.....' 냄새? 아, 말똥 냄새~ 그건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할껄? 냄새 한 번 맡아 봐, 장난 아니야~ 얼씨구? 내 마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네? 실프가 자기 멋대로 내 마력을 빼 가서 물질계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건가? 이거 영 기분 나쁜데? '죄송... 해요....' 실프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런이런, 그런 일로 죄송 씩이나.... 마력 도 별로 안드는걸 뭐.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여자에 약해.... "그런데 넌 네 맘대로 정령계로 돌아갈 수도 있는거야?"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실프. 허허, 그럼 소환주가 굳이 부를 필요도 없단 말이 네? 소환주의 마력만을 멋대로 사용해서 물질계로 온다? 대단하군. 실프는 약간 기분이 가라앉은 날 달래려는 듯 부드러운 바람으로 날 감쌌 다. 음... 바람이 부드러워서 좋긴 좋은데.... 기왕이면 뽀뽀를 해주지... 왠지 실프가 나한테 아첨을 하는 듯한... 정령이 아첨을 한다.... 그렇게 되면 안되는데..... ".....!"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 입에 닿음을 느끼 고 크게 놀랐다. 그 무엇인가는 실프의 입술이었다. 실프는 바람으로 이루 어져 있기 때문에 입술에 느껴지는 건 분명한 바람이었지만, 시각적으로는 마치 사람과 한 듯했다. 실프는 그렇게 내 입술을 뺏어간 다음 빙긋 웃으 며 유유히 정령계로 사라졌다. 억... 정령한테 당하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야, 니트!" 마굿간 출입구 쪽에서 헤라클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실프에 대한 생각을 모두 접고 헤라클레스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요?" "명령이야. 이번엔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래." 얼라리여? 외양간 청소? 그런 것도 시킨단 말이야? 그게 뭐 어려운 일이 라고.... 정말 한심하다..... "알았어요. 출발은 2시간 후겠죠? 청소마저 끝내고 준비할게요."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오물을 모은 통을 들고 밖으로 나 갔다. 난 마굿간 청소-정확히는 배설물 청소-를 계속했다. 아우게이아스는 엘리스 시의 왕으로서 큰 외양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단 한번도 외양간을 청소해본 적이 없었다나? 나원, 그렇게 게을러 터져서야 뭘 제대로 하겠어? 어쨌든 마차 타고 2시간 밖에 안 걸리는 가까 운 곳이라 기분이 좋구나~ 2시간 만에 엘리스에 도착한 나와 헤라클레스는 곧장 아우게이아스의 궁 전으로 갔다. 병사들에게 에우리스테우스가 적어보내준 문서를 보여주자 우리는 바로 아우게이아스를 만날 수 있었다. 아우게이아스는 40대 중반쯤 으로 나이들어 보였는데, 에우리스테우스보단 온화해 보였다. 솔직하게 말 하면 약간 멍청해 보이는 듯한.....! "오, 잘왔네. 그대들이 내 외양간 청소를 해준다기에 얼마나 기쁜지 모른 다네. 부디 외양간을 깨끗이 청소하길 바라네." 아우게이아스는 우리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를 만나 자마자 다시 그 문제의 외양간으로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빨리 가서 청소 해!'라는 눈빛을 마구 보내는데 어떻게 그 자리에 있을 수 있겠냐..... 문제의 외양간에 도착한 나와 헤라클레스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외양간 의 규모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으니까. 우선 소는 어림잡아도 족히 5천 마리쯤은 되어보였다. 그런 소들을 기르는 외양간이니 그 규모는 한 아파트 단지만한 것이었다. "큭... 이 외양간 냄새도 장난이 아니구나. 이젠 소똥 냄새까지 맡아야 하는 거냐.... 감회가 어떠니, 니트?" 헤라클레스는 외양간에서 나오는 수십 년 묵은 악취에 코를 막으며 나에 게 물었다. 그 공기를 한 모금 마셨다가 열심히 기침을 한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답했다. "아주... 감격적이네요.... 켁켁!" 우... 이곳 냄새는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도대체 이런 곳에서 소가 어떻게 살 수 있는 거야? 소고기에 그 냄새가 베어들지 않을까? "그럼 부탁합니다." 우리를 외양간까지 안내해줬던 하인이 급히 코를 막고 저멀리 달아났다. 우선 나는 실프를 불러-사실 내가 정령어로 부르기 전에 나타났다- 외양간 의 악취들을 우리가 맡을 수 없도록 차단시켰다. 그리고는 헤라클레스와 함께 외양간 안으로 들어갔다. 음메.... 음머..... 소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울렸다. 그런데 내 귀에는 그 울음소리 들이 마치 '살려줘', '여기서 우리를 나가게 해줘'로 들렸다. 소들의 눈빛 은 거의 썩은 동태눈깔이었다. 이렇게 악취가 나는 곳에서 어떻게 저 녀석 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겠냐.... 불쌍한 것들..... 외양간이 너무 넓어서 둘이서 청소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게다 가 아우게이아스는 하루만에 이 외양간을 청소하라고 했기 때문에 시간도 없었다. 뜨아... 어떻게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동안 헤라클레스가 의견을 냈다. "니트, 이 근처를 흐르고 있는 알페이오스 강물을 끌어다 이곳을 한번에 청소하는게 어떨까?" 얼레? 강물을 끌어다 청소한다구? 하지만 그게 가능해? 펌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 나한테는 물의 정령인 운디네가 있었구나! "좋은 생각이네요. 물의 정령인 운디네가 그 강물을 끌어다 이곳을 한번 에 쓸어버릴 수 있을 거예요. 그 강은 어딨죠?" 헤라클레스는 내가 칭찬하자 입이 헤벌레 해졌다. 역시 사람은 칭찬에 약 하다니까. 겨우 그 정도 칭찬에 저렇게 좋아하다니.... "따라와." 헤라클레스는 앞장서서 걸어갔고 난 그 뒤를 따랐다. 10분 정도 걸으니 비교적 넓은 강줄기가 보였다. 저게 알페이오스라는 강인가? 궁전에서 조 금 멀리 떨어져 있네? 운디네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난 운디네를 소환하여 지시했다. "운디네, 저 강물을 왕창 끌어다가 저기 보이는 외양간을 휩쓸어버리는 거야. 할 수 있겠어?" 내 물음에 운디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헤라클 레스는 운디네만 믿기로 하고 먼저 외양간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 엄청 난 양의 물줄기가 알페이오스 강에서 외양간까지 곧바로 날아왔다. 촤아악--! 강렬한 물줄기가 일시에 외양간을 덮쳐버렸다. 난 실프에게 물줄기가 외 양간 내부만을 휩쓸도록 지시했고, 실프는 바람으로 물줄기를 통제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몇몇 소들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갔고 헤라클레스 는 재빨리 헤엄쳐 가서 소들을 건져(?) 내었다. 그렇게 하여 그 넓은 외양간을 불과 30분만에 청소할 수 있었다. 운디네 는 엄청나게 무리를 했는지 거의 기절 상태여서 바로 정령계로 돌려보냈고 실프 역시 물길을 통제하느라 지쳐있었기 때문에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헤 라클레스는 소를 모두 제자리에 들어서 놔둔 뒤 손을 탁탁 털었다. "야, 정말 물살에 오물하고 냄새가 싹 사라졌는데? 내 마음도 개운하다!" 음머~ 음머~ 소들도 외양간이 깨끗해져서 기분이 좋은지 경쾌하게 울어댔다. 이것으로 다섯 번째 임무도 끝인가? 별거 아니였어. 단지 정령들만 죽도록 고생했을 뿐. 아, 헤라클레스도 실종될 뻔한 소들을 구했으니 고생했구나. 헉, 그러 고 보니 나만 아무 일도 안했잖아? 이런..... "오, 정말 놀랍군요! 이렇게 깨끗해지다니!" 우리를 외양간으로 데려왔던 하인이 깨끗해진 외양간을 보고 크게 놀랐 다. 그 소식을 들은 아우게이아스는 우리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우하 하, 드디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되었구나! 이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 가! 오호~ 쾌재라! -------------------------------------------------------------------------- ------ [번 호] 3791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8일 20:45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1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5.스팀팔로스 숲의 새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5.스팀팔로스 숲의 새들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16 게 시 일 :99/10/08 21:22:58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5 스팀팔로스 숲의 새들 따그닥 따그닥-- 덜컹 덜컹-- 나와 헤라클레스는 지금 스팀팔로스 숲으로 가는 중이다. 왜 가냐구? 그 거야 당연히 에우리스테우스가 가라고 했으니까 그렇지. 이번 명령은 스팀 팔로스 숲의 새들을 모두 죽이는 것! 새 소리 때문에 주민들이 골치를 앓 고 있대나? 쯧, 그렇다고 새들을 모두 죽이라니... 그러다가 숲의 생태계 가 파괴되고 말지..... 약 7시간 후에 스팀팔로스 숲에 도착한 우리는 이 숲에 도대체 새가 얼마 나 많은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스팀팔로스 숲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소음이 귀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짹짹짹-- 뾰로로롱-- 까악까악-- 뻐꾹뻐꾹-- 부우부우-- 허걱! 이거 새소리가 장난 아닌데? 도대체 새가 얼마나 되길래 이렇게 시 끄러운 거야? 윽, 귀청 떨어지겠다! "헬! 우선 조금 조용한 곳으로 가서 대책을 강구해봐요!" 난 옆에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소리쳤지만 헤라클레스는 잘 안들린다는 표 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바로 옆에서 말하는데도 못듣다니! 정말 소음공해 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 근방에서 조용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새들이 시끄 럽게 지저귀니... 어쩔 수 없이 실프가 또 수고해줘야 겠어.... 이번에도 실프는 부르기도 전에 나타나서 우리의 귀를 강타하고 있는 새 들의 울음소리를 차단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듯했다. 헤 라클레스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실프가 소리를 차단한 것을 알고 나에게 물었다. "니트, 이제 어떡하지? 새가 엄청나게 많은 것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화살로는 어림없겠어." 하, 이거 참 걱정이군. 어떻게 한다? "그래서 말인데, 니트. 우선 저 새들을 놀래켜서 모두 날게 한 뒤에 마법 으로 일시에 쓸어버리는 게 어떨까?" 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 헤라클레스가 요즘들어 제법 머리를 쓰는 것 같 애~ 역시 이 천재랑 같이 있으니까 머리가 좋아진건가? 앗! 그렇게 때리지 들 말라구~~ "좋은 방법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새들을 놀래킬 건데요?" "커다란 징을 쳐서 모두 날려보내는 거야." 징을 쳐서 놀래킨다? 그런 징을 언제 만드려고? 그것보다는 차라리 음성 증폭 마법으로 헤라클레스가 고함지르는 게 더 효과적이겠다! "그러지 말고 제가 헬에게 음성 증폭 마법을 걸어줄 테니까 헬은 크게 고 함을 질러요. 그럼 충분할 거예요." "그래? 그럼 그러지 뭐. 그런데 무슨 마법으로 새들을 일시에 쓸어버릴 거야?" 으... 어떤 마법을 써야 하나.... 역시 가져온 연습장을 보는 수 밖에... 난 연습장을 펼치고는 날아오른 새들을 일시에 쓸어버릴 만한 마법을 찾 았다. 그런 내 눈에 띈 것은 전격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 였다. 새들을 일시에 쓸어버리려면 보통 라이트닝 볼트로는 안될테고.... 온 마력을 집중해서 전격 마법을 써야겠지? 그러려면 헤라클레스에게 음성 증폭 마법을 걸어줄 수 없겠는걸? 이를 어쩐다? 아! 그렇지! 실프가 있었 구나! 우선 음성 증폭 마법 주문을 찾아낸 나는 곧바로 실프에게 그 주문을 가 르쳐 주었다. 실프는 내가 부릴 수 있는 다섯 정령 중에서 습득률이 제일 높으니까 금방 주문을 외울 수 있을 거다. 그 사이 나는 전력으로 전격 마 법을 펼친다.... 이런 작전이면 충분하겠지? 실프에게 주문을 가르쳐 주고 나서 나는 헤라클레스에게 당부했다. "제가 소리지르라고 할 때까지는 소리지르지 마세요. 마법 구현까지 시간 이 꽤 많이 걸릴 테니까 기다려요." "그러지 뭐."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전격 마법 주문을 외웠다. 수십 번 되풀이하고 나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 다. 물론 그 주문은 코아세르 베이트의 완전 주문이다. "하늘 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이여 구름과 함께 나타나라. 무(無)에서 탄 생하는 강한 번쩍임, 쾌속한 빠름, 강력한 힘이여. 그 앞에서 모든 것은 한 줌의 잿덩이로 변하리라." 라이트닝 볼트는 전위차를 발생시켜 원하는 곳으로 번개가 치게 하는 것 인데, 난 숲 위 허공의 양 끝쪽에 전위차를 걸었다. 아무리 완전판 주문이 라도 한 번 캐스팅한 것 가지고는 새들을 일시에 죽일만한 위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또다시 여러 번 주문을 반복했다. 한 5번 정도 주문을 반복했을까? 숲의 양 끝부분에 엄청난 전위차가 걸리 게 되었다. 이제 단 한마디의 말로써 방전만 시키면 된다. 그럼 엄청난 전 위차에 의해 번개가 칠 테니까. "헬, 이제 소리쳐요....." 난 숲에 걸린 엄청난 전위차를 유지시키며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실프 는 헤라클레스에게 음성 증폭 마법을 걸어주었고 헤라클레스는 이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날아올라라---!" 윽... 날아오르라니.... 그냥 '야'라고 소리지르면 될 것을.... 그나저나 목소리 한 번 엄청 크군. 귀청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마터면 숲의 전위차 를 유지 못하고 방전시킬 뻔했잖아! 푸드득--! 헤라클레스의 고함 소리에 놀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하늘이 일시 에 새들의 시커먼 그림자로 덮여버렸다. 지금은 낮이었는데도 새들이 태양 빛을 모두 가려서 어둑어둑해지고 말았다. 새들이 내가 전위차를 걸어놓은 곳까지 다다랐을 때, 난 그대로 방전시켰다. "라이트닝 기가볼트(Lightning Gigabolt)--!" 내 외침과 함께 숲 위의 허공에서 엄청난 양의 번개가 숲 위를 수평으로 가로질렀다. 번개는 일종의 전류의 흐름이기 때문에, 번개에 맞은 새들은 몸 속에 고전류가 흐르게 되자 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번개는 대략 10 초간 발생했고 이내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번개에 의해 시커멓게 타 버린 새들의 주검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털썩털썩-- 무수한 양의 사체들이 숲 속에 떨어졌다. 일시에 날아올랐던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새들 중에서 살아남은 건 고작 수십 마리에 불과했다. 숲에는 무수한 새들의 사체가 쌓이게 되었다. "그 많은 새들이 한꺼번에.....!" 헤라클레스의 놀람에 찬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난 그대로 그 자리에 드러 누웠다. 엄청난 피로가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마법에 5클래스를 소모했 더니 장난이 아니야..... 앞으로 마력을 좀 더 모아야 겠어.... 이 정도에 쓰러지다니..... 졸려..... 아흠..... 깨어보니 난 마차 안에 있었다. 얼레? 티린스로 돌아온 건가? 난 마차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폈다. 보이는 것은 숲, 그리고 시커먼 새 들의 주검.... 어억? 그럼 여기는 스팀팔로스 숲? 지금까지 안가고 뭐했었 던 거야? 그 때 내 시야에 헤라클레스와 마부가 힘없는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헬! 뭐하고 있었어요?" "응? 아, 니트 깨어났구나. 뭘하긴, 오랫만에 새고기가 먹고 싶어서 번개 맞아 죽은 새들을 먹으려고 했는데.... 모두들 살까지 시커멓게 타버려 서 못 먹겠더라구.... 이리저리 멀쩡한 놈들 찾아다니다가 실패만 하고 돌아왔지 뭐....." 헤라클레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억... 그럼 지금까지 새고기 먹으려고 안 가고 있었단 말이야? 할말이 없다..... 얼마나 굶주렸길래..... 결국 우리는 새고기는 먹지도 못하고 티린스로 돌아와야 했다. 에우리스 테우스는 스팀팔로스 숲의 새들을 모두 죽이라고 했지만, 그랬다간 숲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것 같아서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대로 살려줬다. 설마 남은 녀석들이 엄청나게 번식하지는 않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숲 속 에 그렇게 많은 새들이 있었던 거야? 정말 희한한 일이군. ? [번 호] 3792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8일 20:46 Page : 1 / 47 [등록자] THEBUR [조 회] 13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6~79 히폴리테의 허 리띠-1~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6.히폴리테의 허리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17 게 시 일 :99/10/08 21:24:22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6 히폴리테의 허리띠 -1- 스팀팔로스 숲의 새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고 나서 연이어 두 개의 명 령이 내려졌다. 크레타 섬에 살고 있는 미친 황소를 잡아오고, 또 트라키 아의 왕 디오메데스의 식인마(食人馬)를 잡아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의 노역은 모두 헤라클레스가 잘 처리하였다. 아무리 미쳐 날뛰는 황소라도,사람을 잡아먹는 말이라 고 해도 헤라클레스의 힘 앞에서는 조그만 강아지 일 뿐이었다. 그 두 가지의 노역에서 내가 한 일은 없었다. 난 그냥 헤라클레스가 임무 를 완수하는 동안 마법 수련이나 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돌아 마법 수련을 열심히 한 덕인지 마력은 7클래스의 안정권에 서서히 접어들었다. 앞으로 대략 일주일만 열심히 마력 축적에 전념하면 7클래스도 꿈은 아니리라. 오늘따라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얼레? 무슨 일 있나? 뭣 때문에 저 렇게 호들갑들을 떠는 거지? "야, 무슨 일 있냐?" 난 전에 나한테 맞은 하인 녀석에게 물어보았고, 그는 순순히 대답했다. "오늘 에우리스테우스님의 딸인 아드메테님이 방학을 맞이해서 이곳으로 오신다고 했거든요." "에우리스테우스의 딸?" "네. 굉장히 예뻐요~" 그렇게 말하는 하인 녀석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우웨엑... 그런 표정 짓지마라. 갑자기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그나저나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딸이 있었다니 처음 들어보는데? 헤라클레 스도 아무 말 없었고. 얼마나 예쁠까? 그 아버지를 닮아서 성격이 더럽지 않을까? 하여간 궁금해지는군. 그 때 에우리스테우스의 심복 노인이 하인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근 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아드메테님이 오시는 날이다. 그러니 모두들 옷을 깨끗하게 차려 입고 위생에 신경쓰도록! 만약 아드메테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 으면 너희들은 무사하지 못한다, 알겠나? 이상이다!" 심복 노인은 역시나 하인들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휭하니 위층으로 올라 갔다. 하인들은 두려움에 찬 얼굴로 또다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분위기를 보니 아드메테는 굉장히 까다로운 애같은데? 왠지 골치 아파질 것 같다..... 그 날 저녁, 에우리스테우스의 딸이라는 아드메테가 도착했다. 나와 헤라 클레스는 아드메테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구경나갔다. 정문을 통해 마차가 정원을 가로질러 들어왔고, 내성(內城) 앞에 이르자 한 소녀가 마 차에서 내렸다. 갈색 머리를 하나로 땋아내린 모습이었는데 입고 있는 옷 도 굉장히 고급이었고, 그 얼굴도 예뻤다. 남자라면 충분히 첫눈에 반할 정도의 여러가지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소녀의 인상이 좋지 않았다. 왜 괜히 저 소녀가 오만하고 방자하다는 생각이 들까 .....? 지금 난 선입견을 가지고 저 소녀를 보고 있는건가? 재수없는 에우 리스테우스의 딸이라는 이유로? "니트, 아드메테 정말 예쁘지?" 헤라클레스는 아드메테를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했다. 난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만하고 방자해 보인다고 해도 예쁜 건 예쁜 거니까..... "아빠--!" "잘 지냈느냐, 아드메테?" 에우리스테우스는 아드메테를 안아주며 안부를 물었다. 아드메테는 잘 지 낸다고 하며 옆에 있던 여자와 또 포옹했다. 얼레? 에우리스테우스 옆에 서 있는 여자가 아내인가? 처음으로 얼굴을 보게 되는군. 젊었을 때는 미 인소리 들었을 만한 얼굴이다. 지금이야 주름살이 좀 많지만. 아드메테 가족이 내성으로 들어간 후, 심복 노인이 몰려 있는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곧 파티가 있을 거니까 모두들 빨리 움직이도록!" 그의 말에 하인들은 분주히 파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와 헤라클레스 도 그들의 일을 거들었다. 어쨌거나 우리도 이곳에 눌러 살고 있으니까 약 간의 도움은 줘야지. 물론 먹을 건 제대로 안 주지만. 파티를 하니까 먹을 게 많겠지? 흐흐... 내가 야금야금 다 먹어주지..... 파티 준비가 끝나고 심복 노인은 하인들에게 비교적 깔끔한 옷을 제공했 다. 그러고는 하는 말, "아드메테님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옷을 입고 생활해라. 안 그랬다간 아드메테님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그 옷은 곧 회수할 것이니까 소중히 다루도록! 흠집이 나면 너희들이 배상해야 한다!" 하인들은 늘상 이런 일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난 심복 노인이 준 옷을 살펴보았다. 지금 입는 옷보다는 깨끗하고 세련되었다. 물론 하인들의 옷 으로 적합하다는 소리이지 귀족들이 입기에 적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나저나 아드메테는 굉장히 까다로운 애인가 보다. 하인들이 이런 옷을 입어야 하는 걸 보면. 혹시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하인들이 모두 제공받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 아드메테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근처에 살고 있던 귀족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하인들은 물론 이고, 나와 헤라클레스도 귀족들을 맞이하느라 바빴다. 귀족들은 모두 3층 에 있는 무도회장으로 올라갔고 나와 헤라클레스도 따라올라갔다. 왜 따라 올라가느냐구? 그거야 파티 음식을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에우리스테우스는 무도회장 한쪽에 놓여진 단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오늘은 내 딸 아드메테가 방학을 맞이하여 집에 왔소. 그런 의미에서 이 번 파티를 개최하는 것이니 모두들 즐겁게 즐기기 바라오." 그의 말이 끝나자 곧 초청된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했고, 귀족들은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귀족 자제들은 대부분 아드메테에게 다가갔다. 나와 헤 라클레스는 귀족들의 동향을 살펴보다가 대부분 파티 음식에는 별로 손대 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우선 제일 구석 식탁에 놓인 음식부터 먹기로 했 다. 죽치고 앉아 먹기만 하면 걸릴 것 같아서 서빙하는 하인들처럼 행세하 면서 음식들을 야금야금 먹었다. 음식 먹으러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안 나는 귀족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물론 일부러 들을 생각은 없었어. 들리는 걸 나보고 어쩌라구.... "이번 스파르타와 에틱스의 전쟁에 칼리돈이 참가하기로 했다죠?" "그렇다고 하더군요." "뻔한 수작 아닙니까? 스파르타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 같으니까 스파르타 의 관심 좀 끌어보겠다는 것이겠죠." "지당하신 말씀. 그나저나 스파르타가 이기면 올림포스 연합국의 주도권 이 스파르타 쪽으로 넘어가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허참... 스파르타는 군사력 증대에만 국력을 쏟아서 문화는 발전하지 못 한 야만인들인데.... 이거 심히 걱정되는군요." 귀족들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현 상황을 걱정했다. 물론 모두 쓸모없는 얘기들이었다. 대안이라곤 하나도 내놓지 않은 채 그냥 상황 설명에 불과 했으니까. 완전 탁상공론(卓上空論)... 아니, 입상공론(立像空論)인가? 하 여간 저런 대화를 들으면 괜히 화가 난단 말이야..... 그나저나 스파르타가 에틱스를 이기고 있다라.... 옥신이란 녀석은 지금 뭐하고 있지? 전장에서 만나자고 해놓곤.... 뭐 만나지 않는게 더 좋지만 말이야. 하지만 크레졸은 회수해야 할텐데.... 카르본의 글.. 글리... 아! 글리콜이었지! 카르본의 글리콜 장로가 크레졸을 박살내든 말든 어쨌든 처 리하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가? 억... 기억이 안나.... 역시 난 아이큐가 두 자리야.....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노역이 모두 끝나면... 한 번 옥신을 만나러 에 틱스로 가야겠다. 만나서 그 동안의 회포(?)를 풀어야지. 그리고 흑기사나 옥신이 말했던 '그 분'이라는 작자도 만나보고 싶고.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7.히폴리테의 허리띠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19 게 시 일 :99/10/10 10:03:36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1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7 히폴리테의 허리띠 -2-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음식들을 집어먹고 있을 때, 누군가 내 뒤에서 여성적인 평어였지만 약간 화가 난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봐, 너! 왜 여기서 알짱거리는 거야?" 얼레? 나보고 하는 소린가? 벌써 제재를 받는 건가? 이러면 안되는데... 난 아직 파티 음식의 1/3밖에 맛보지 못했단 말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상대를 확인했다. 나에게 말했던 사람은 바로 에우리스 테우스의 딸인 아드메테였다. 아드메테는 두 눈을 치켜떳다. "하인 주제에 음식이나 축내다니! 너 이름이 뭐야?" 주변을 의식해선지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 화난 어조였다.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는 아드메테의 태도에 나의 기분은 곤두박질쳤다. 얼굴이 예 뻐서 봐주려고 했더니 안되겠군.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드메테 옆에 있던 한 귀족 자제가 나를 힐책 했다. "아드메테님이 이름을 물으시잖아!" 얼씨구? 저 녀석은 아드메테의 쫄따구냐? 아드메테의 관심을 끌려고 별 이상한 짓을 다 하는군. 나가 죽어라, 나가 죽어! 난 그 둘의 말을 깨끗이 무시하며 맛있어 보이는 음식 몇 개를 개인접시 에 담아 자리를 옮겼다.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또 씩씩거리는 숨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어유~ 화가 났나 본데? 무서워라~ 탁탁-- 갑자기 아드메테가 달려와 내 앞을 가로막고는 씩씩댔다. "감히 날 무시해? 한낱 하인 주제에.....!" 아드메테의 예쁜 얼굴은 순간 표독스럽게 변했다. 어이구, 제법 무섭게 노는데? 지금 나한테 사과를 바라는 거냐? 사과 줄까? 여전히 난 아드메테를 무시하며 다른 식탁으로 갔다. 아드메테의 숨소리 는 더욱 거칠어졌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낭랑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뜨거운 지옥의 불꽃이여.....!" 허걱! 마법을?! 그럼 아드메테가 다닌다는 학교가 마법 학교였어?! "내 앞에서 뜨겁게 타올....!"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귀족들은 아드메테의 주문 외우는 소리에 눈 만 둥그렇게 뜨다가 아드메테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자 의아한 표정들이었 다. 아드메테는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크게 놀라고 있었다. 하하, 이제 됐군. 실프가 아드메테 주위의 공기를 차단시켜서 소리가 안 들린다. 보통 마법사가 어떻게 정령 마법사를 당하겠어. 푸!하!하! 아드메테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마구 소리를 질렀지만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여기 계속 있다간 쟤랑 싸울지도 모르겠다... 빨 리 나가서 음식이나 먹어야지~ 난 접시에 몇개의 음식을 담고 유유히 아래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아드메테는 실프를 떨쳐버리고 뛰어오더니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 너 정령 마법사야?" 난 푸딩 하나를 입안에 털어넣고 아드메테의 물음과 함께 씹었다. 아드메 테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어째 화내는 표정이 귀엽다....? "너... 지금 내 말 씹고 있는 거야.....?" 아드메테의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잘 알면서 왜 물어보는지 모르 겠네? 그 말도 푸딩과 함께 같이 씹어주지~ 냠냠. "도대체.... 넌... 누구야.....?" 이보라구, 그렇게 목소리까지 떨면서 말할 필요는 없잖아. 무서버~ "야, 니트!" 갑자기 계단 위쪽에서 헤라클레스가 날 불렀다. 순간 아드메테의 눈이 번 뜩였다. "니트... 라구?" 억... 그렇게 음산한 웃음 좀 짓지 마라. 난 보기보다 담력이 약하다구~ 탁탁탁-- 헤라클레스는 내 앞으로 달려와서 아드메테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는 날 끌고 1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 때 아드메테가 한마디 내 뱉었다. "기다려." "......" 그 말에 헤라클레스는 동작을 멈추고 아드메테를 쳐다보았다. 난 마지막 남은 케익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아드메테는 표독스러운 표정 을 지으며 나한테 다가오더니 내 뺨을 향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익....!" 아쉽게도 쫘악 소리는 나지 않고 아드메테의 익익대는 소리만 들렸다. 실 프가 아드메테의 손을 막았기 때문이었다. 난 여유만만하게 케익의 맛을 감상했다. 아드메테는 내 뺨 바로 근처에서 멈춘 손을 다시 회수하며 날카 롭게 소리쳤다. "너! 오늘부로 당장 해고야!" 얼씨구? 놀구 있네. 냠... 케익 맛있는데? 더 먹고 싶지만 다른 귀족들을 위해서 참아야지.... 난 역시 너무 착해.... 으흐흐..... "해고라니까!!!" 아드메테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나원, 귀청 떨어지겠다.... 나 귀 안 먹었어, 임마. 내가 노인네인 줄 아나봐? 난 아무 말없이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지. 오늘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먹었다. 이런 파티를 자주해야 할텐데. 그래야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야!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대답해 보란 말이야!!!" 아드메테는 내 뒤에서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나참... 쪽팔리게 왜 소 리지르고 난리야..... 춤추던 귀족들이 놀라 쳐다보잖아.... 하여간 저런 애랑 놀면 나만 손해라니깐. 유유히 1층으로 내려온 나는 또 유유히 마굿간으로 향했다. 헤라클레스도 급히 날 따라왔다. 마굿간에 들어와서 헤라클레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쩌려고 그래?" "어쩌긴 뭘 어째요. 그냥 배 째라고 그래요. 알아서들 하겠죠, 뭐." "하... 참 태평하구나....." 헤라클레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대로 잠자리에 드러누 웠다. 차라리 날 해고했으면 좋겠다. 여기 있는 것도 지겹고, 또 에틱스에 도 가고 싶으니까. 설마 날 사형시키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한다면? 물론 도망쳐야겠지. 나한테는 정령들이 있으니까 도망치기도 쉽고. 하하, 걱정 할 필요가 하나도 없잖아? 맘 편히 잠이나 자야겠다! 다음날 나와 헤라클레스는 에우리스테우스에게 불려갔다. 알현실까지 직 접 오라는 것으로 봐서는 굉장히 화난 모양이야. 약간... 걱정되는군.... 나와 헤라클레스는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알현실에는 에우리스테우스 외에도 두 병사와, 심복 노인, 그리고 아드메테가 있었다. 아드메테의 얼 굴에는 득의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우리가 무릎을 꿇자 에우리스테우스 가 입을 열었다. "이번이 아홉번째의 명령이 되는군. 이번에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아마 존족의 여왕 히폴리테에게서 허리띠를 얻어오는 것이다. 그 허리띠는 여 자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보물이라 아드메테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옆에서 득의의 웃음을 짓고 앉아있던 아드메테도 입을 열었다. "아마존족은 여자들만 사는 곳이야. 아마존족의 여자들은 전쟁과 사냥을 일삼고 여자 아이들만 기르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여 버린다 고 하더군.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아드메테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 음... 아무래도 나한테 복수하려고 아마존족의 허리띠를 가져오라고 하는 것 같다.... 뭐 이것도 명령이니까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여자들만 산다구? 그게 가능해? 남자가 있어야 아새끼들을 낳을 거 아니야? 아마존족의 여성들은 암수 한몸인가.....? "네. 그럼 곧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난 그저 묵묵히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왠지 아드메테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헐... 무서워.....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8.히폴리테의 허리띠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20 게 시 일 :99/10/10 10:04:15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8 히폴리테의 허리띠 -3- 나와 헤라클레스는 마차를 타고 곧장 아마존 숲을 향해 출발했다. 이틀을 달려 아마존 숲에 도착한 우리는 숲 속을 걸어서 가야 했다. 숲 속에 들어 가기 전에 마부가 우리에게 충고 한 마디 해주었다. "이 숲에는 몬스터들이 많대요. 조심하세요." 별 도움이 안되는 충고다..... 뭐 그래도 괴물 많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 나마 나은 건가? 어쨌든 조심해야지..... 헤라클레스는 내가 준 리소좀으로 풀과 나무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난 강아지처럼 헤라클레스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아마존 숲은 카르 본 컴파운드만큼 큰 숲이었다. 우선 아마존족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 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마존 강을 찾기로 했다. 강을 찾는 것은 물의 정령 인 운디네가 잘 하겠지? 하하, 이래서 정령들이 편하다니까. 난 운디네를 불러 아마존 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한 무리의 괴물들이 나타났다. 느물느물 기어다니는 괴물... 저것들 어째 아 메바처럼 생겼다? 하지만 너무 큰데? 단세포 생물 같은데 크기가 어른만 하다니.... 그리고 움직임도 꽤 빠른 편이고..... 신기해라..... 아메바들은 우리 주위로 속속 몰려들었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이십여 마 리. 꽤 많은 숫자였다. 난 그 녀석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먼저 둥글고 커다란 핵이 보였다. 핵 크기는 자그만치 머리통만 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보이는 건 둥근 형태의 물체였다. 저게 가수분해 효소를 가 지고 있는 리소좀인가? 뭐 소화를 하려면 리소좀이 많이 필요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이 놈 하나를 잡아다가 우리 세계로 가져가서 연구를 하 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세포막 구조라든가, 다른 여러가지의 세포 특성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이런! 그런 중요한 녀석을 여기서 죽여 야 하다니! 이건 생물학에 있어서 엄청난 손실이야!!! "어떡하지, 니트?" 헤라클레스는 거대 아메바들을 경계하며 나한테 물었다. 난 대답 대신 사 라만다를 소환해서 명령했다. "태워버려." 사라만다는 주위로 몰려드는 거대 아메바들을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바 라보다가 이내 입에서 불꽃을 내뿜었다. 불꽃은 곧장 한 마리의 아메바에 게 닿았고, 그 아메바는 갑자기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단백질이 고열로 인해 변성됐기 때문이다. 앞쪽은 사라만다에게 맡겨놓고 뒤쪽은 운디네가 맡도록 지시했다. 운디네 는 분수 마법으로 아메바들을 처리하려 했지만 난 운디네를 말렸다.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순수한 물에 저 녀석들을 담그면 돼." 운디네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땅속에서 물을 뽑아 아메바들을 물기둥 속에 가두어 버렸다. 잠시 후 물기둥 속에 갇힌 아메바들의 몸이 일제히 터져나갔다. 푸하하, 역시 저 녀석들은 확실히 세포였어. 나도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어쨌든 세포를 순수한 물에다 넣으면 물이 세 포 안으로 기어들어가서 세포가 터지고, 세포를 농도가 아주 진한 물에다 넣으면 세포 안에 있던 물이 밖으로 빠져나와서 세포는 쭈글쭈글해진다. 그걸 삼투 현상이라고 하던가? 하여튼 정말 아까워.... 저 녀석들의 몸을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하는데.... 크... 생물학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아메바들은 순식간에 십여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 중 몇마리가 나와 헤라 클레스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난 실프를 불러 아메바를 날려버리려 했 다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에게서 리소 좀을 뺏어들어 아메바에게 던졌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헤라클레스는 경악 했다. "야, 니트! 검을 저 녀석들한테 던지면 어떡해?" "궁금해서요. 저 리소좀이라는 검이 진짜 리소좀인지 확인하고 싶거든 요." "......?" 헤라클레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만약을 대비해 실프를 소환 해 놓고 검을 집어 삼킨 아메바를 쳐다보았다. 리소좀은 얇은 막에 싸여 아메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메바 몸속에 있던 리소좀들이 리소좀에 달려들어 가수분해 효소를 방출했다. 리소좀이 리소좀에 달려든다.... 말 이 어째 이상하다. 그나저나 과연 어떻게 될까? 설마 검이 녹아버리는 것 은 아니겠지? 삼성물 중에 하나인데 이름값은 하겠지..... 잠시 후 내가 예상하던 일이 벌어졌다. 아메바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검에서는 이상한 빛같은 것이 방출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아메바 의 몸이 녹아내렸다. 와... 저 리소좀이라는 검, 정말로 가수분해 효소를 가지고 있는 리소좀인가 본데? 아메바를 가수분해 시키고 있는 것 같다. 잠깐 사이에 아메바는 완전히 녹아 땅속으로 사라졌다. 검은 멀쩡했다. 난 실프에게 명해 그 검을 다른 아메바에게 던졌고, 멋도 모르고 검을 받 아 소화시키려던 아메바는 도리어 검에 의해 가수분해되어 땅속으로 사라 졌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 아메바를 물리칠 수 있었다. 대략 10분 만에 아메바 소탕 작전이 완료되었다. 난 입만 떡하니 벌린 채 서 있는 헤라클레스는 내버려 두고 운디네에게 아마존 강을 찾으라고 명했 다. 운디네는 곧 숲 속으로 사라졌고 난 바위 위에 앉아 운디네를 기다렸 다. 헤라클레스는 날 보며 경탄어린 어조로 말했다. "정말 대단하다.... 20마리나 되는 아메바들을 그렇게 간단하게 물리치다 니...." "그렇게 감탄하지 말고 헬도 운디네가 돌아올 때까지 쉬어요." "응, 그래." 헤라클레스도 내 옆에 드러누우며 휴식을 취했다. 사라만다는 땅위를 걸 어다니다가 나무 타기를 시도했다. 커다란 도마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열심히 박수쳤다. "잘한다! 거기서 재주 부려봐!" "....." 사라만다는 우리를 띠꺼운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이내 땅으로 내려왔다. 실프는 내 옆에 앉아 내 머리를 바람으로 빗어주었다. 헐~ 이거 천국에 온 기분인데? 룰룰루~ 기분 최고다. 그 때 아마존 강을 발견한 운디네가 우리에게 날아왔다. 계속 쉬고 싶었 지만 빨리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운디네의 뒤를 따라 아마 존 강으로 갔다. 그리고는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마존족은 아마 존 강 상류에 살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대략 2시간을 올라간 끝에 우리는 마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더운 지역이 라 그런지 집들은 거의 움막 수준이었다. 난 최대한 소리를 크게 질렀다. "여기가 아마존족의 마을 맞아요?!" ...... 정적. 얼레? 아무도 없나? 참 이상한 일.....! 우르르---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앞에 나타났다. 모두 피부가 검은 여성들 이었다. 그들은 나와 헤라클레스를 자세히 뜯어보더니 이내 기쁜 듯한 소 리를 내질렀다. "남자다---!" 허걱! 뭐야 이거? 왜들 저렇게 기쁜 표정을 짓는 거지? 허참.... 왠지 모 르게 불안해지는 이유는 뭘까..... 여자들이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을 때 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머리에는 추장처럼 깃털장식을 단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였다. 이 사람이 아마존족의 여왕인가? 피부는 까무잡잡하지만 얼굴은 봐줄만 하군.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네, 이곳에 있다는 허리띠를 얻어가려고 왔습니다." 헤라클레스의 대답에도 여자 추장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십니까?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를 나누지요."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79.히폴리테의 허리띠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28 게 시 일 :99/10/12 21:18:16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1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79 히폴리테의 허리띠 -4- 나와 헤라클레스, 그리고 자신을 히폴리테라 밝힌 여자 추장은 한 움막 안에 둘러앉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히폴리테였다. "제 허리띠를 얻으려 오셨다구요?" "네. 무례한 부탁인 줄은 압니다만, 저희는 명령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헤라클레스는 히폴리테에게 정중히 말했다. 히폴리테는 그런 헤라클레스 를 바라보며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누가 제 허리띠를 원하는 거죠?"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의 따님인 아드메테님께서 원하십니다." "음.... 알겠어요. 그럼 허리띠를 드리기로 하죠." 에? 어째 일이 순순히 잘 풀린다? 뭔가 요구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대로 히폴리테는 우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 대신 이곳에 삼일 간만 머무세요." 얼레? 삼일을 머무르라고? 그 동안에 무슨 흉계를 꾸밀려고 그러는거 아 니야? 불안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냉큼 대답했다. 이런... 어쩔 수 없이 이 더운 곳에서 삼일을 지내야 하는구나.... 모기도 많을 텐데..... 난 모기는 딱 질색이란 말이다!!! 히폴리테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무 집에서나 자면 됩니다." 얼라리여? 아무 집에서나 자라구?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럼 전 여기서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니트, 너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히폴리테를 바라보며 대답하던 헤라클레스는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흘.... 아무래도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저 둘이서 저 렇게 뜨거운 시선을 주고 받으니..... "전 다른 집에 들어갈게요. 그럼...." 난 그렇게 대답하고 히폴리테의 움집을 나왔다. 움집 밖에는 중요한 곳만 가린 아마존족 여성들이 나와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들 뭔가 갈망하 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뭐야 이거? 움집마다 여자들이 다 있잖아? 그런 데 어떻게 아무 집에서나 자라는 거야? 그렇다면.... 설마......! 어떤 생각이 든 나는 그냥 제자리에 서 있었다. 밖에 있는 여자들이 모두 뜨거운 시선으로 날 쳐다보는데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하라구...... 누가 이 상황에서 나 좀 구해줘.....! "오늘... 내 집에서 머물러요." 한 여자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손을 가슴으로 가 져가더니 이내 가슴을 묶고 있던 천을 끌어내렸다. 당연히 그 여자의 가슴 이 완전히 노출되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오늘... 잊지 못할 날이 될 거예요....." 우웨엑... 역겨움의 극을 치달린다.... 혹시나 했던게 역시나 였다니.... 이런 빌어먹을! 이 아마존족들은 외부에서 오는 남자들과 관계를 가져서 태어나는 아이들 중에 여자 아이만 기르는 거였어! 히폴리테가 이 곳에서 삼일 간을 머무르라고 한 이유는.... 이 곳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라는 것.... 나원... 이 상황을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 난 급히 히폴리테의 방으로 들어갔다. 우선 헤라클레스와 의논하기 위해 서이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헉헉...." "아흑...." 히폴리테의 몸 위에서 열심히 허리운동하고 있는 헤라클레스. 이것들이 지금 날 놀리냐? 내가 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짓거리들을.....! "헤라클레스!" 난 큰소리로 소리쳤다. 헤라클레스는 화들짝 놀라서 급히 히폴리테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히폴리테의 나체가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 도 히폴리테는 그 자세 그대로 날 쳐다보았다. "무슨 일로 이 집에 다시 들렀나요? 내가 그리워서예요?" 헤라클레스는 황급히 옷을 줏어 입었다. 난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날 올려 다보고 있는 히폴리테에게 물었다. "왜 당신들은 여자끼리 모여사는 거지?" 자연스럽게 반말이 나갔다. 히폴리테는 훗하고 웃더니 대답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지배하려고만 하니까요." ".... 어쨌든 허리띠나 내놔." "말씀드렸잖아요? 삼일 간 머무르면 주겠다고." "시끄러. 이곳 여자들을 싸그리 죽이기 전에 내놔." "당신에게 그럴 능력이 있을까요?" "물론이지. 난 마법사거든. 그것도 정령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 "......!" 마법사란 말에 히폴리테의 표정이 변했다. 난 움집 안을 살펴보았다. 그 런 내 눈에 유난히 화려한 허리띠가 잡혔다. 저게 바로 그 허리띠인가 본 데? 히폴리테의 허락 맡을 필요없이 그냥 강탈해가야 겠다. 난 허리띠를 집어들고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분위기 망쳐서 미안하지만 빨리 가죠." "으응, 그래....." 헤라클레스는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히폴리테를 쳐다보았다. 나원, 아직 도 미련을 못버린 건가? 한 번 결혼했었으니까 여자맛 좀 봤겠지. 그래서 저런 유혹에 그냥 넘어가 버린 거고. 난 허리띠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움집 주위에는 아직도 여자들이 득실대 었다. 내가 나오자 나한테 맨 처음 접근했던 그 여자가 이번엔 하체를 가 린 옷까지 벗어버릴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귀찮아진 나는 실프를 소환했다. "길 뚫어." 실프는 강한 바람을 일으켜 앞에 서 있던 여자들을 날려버렸다. 난 다섯 정령들을 모두 소환하여 실프가 뚫어놓은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헤라클레 스는 헐레벌떡 내 뒤를 쫓았다. 그 때 뒤에서 히폴리테의 외침이 들렸다. "언제라도 우리가 보고 싶으면 와요!" 나와 헤라클레스는 정령들의 호위를 받으며 아마존족의 마을을 빠져나왔 다. 헤라클레스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나한테 말을 걸었다. "니트, 왜 그냥 가는 거야? 우리를 해치려는 것도 아닌데." "그거야 그렇겠지만, 난 그런 곳에다 내 씨를 뿌리기 싫어요." "뭐 어때서? 그들은 애 데리고 우릴 찾아올 생각도 하지 않을텐데." "......" 대답하기 귀찮은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체적으로 그리스·로마 신 화에 나오는 영웅들을 보면 여행을 다니면서 씨를 뿌리고 다닌다. 물론 최 고의 신인 제우스가 여자를 엄청나게 밝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모른다 구? 모르면 그리스·로마 신화 한 번 읽어봐. 제우스가 건드린 여자만 해 도 수십 명에 이르니까. 그것도 아주 얍삽한 수법으로. 우리는 아무 말없이 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고, 역시 아무 말없이 마 차를 타고 티린스로 돌아갔다. 굉장히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헤라클레 스는 그 침묵에 안절부절하지 못했지만, 그런 침묵에 익숙한 나는 그냥 앉 아서 마법 수련이나 했다. 헤라클레스는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아드메테에게 전해 주었다. 아드메테 는 우리가 허리띠를 구해오자 굉장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복수가 실패해서 그러겠지. 적어도 고생하고 올 줄 알았을 테니까. 뭐 약간은 고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야. 에우리스테우스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훌륭하군. 좋아, 그럼 가서 쉬어라." 나와 헤라클레스는 알현실을 빠져나와 마굿간으로 향했다. 역시 저 에우 리스테우스는 아무런 상도 주지 않는군. 이제는 기대도 하지 않지만. "니트, 아직도 화난 거야?" 헤라클레스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천하의 헤라클레스가 내 눈치를 살피다니.... 내가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었나? 우하하. "우선 하인들의 음식이나 뺏어먹으러 가죠." "그, 그래! 어서 가자!" 내가 대답하자 헤라클레스는 뛸듯이 기뻐했다. 대답한 걸 가지고 저렇게 기뻐하다니.... 정신 수준이 의심스럽다...... 그렇게 화해(?)를 한 우리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하인들의 음식을 뺏어 먹으며 배를 채웠다. 냠냠... 뺏어먹는게 더 맛있군..... 쩝쩝. q [번 호] 3839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9일 22:07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0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80.게리오네스의 소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0.게리오네스의 소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29 게 시 일 :99/10/12 21:18:51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1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0 게리오네스의 소 일주일 후, 에우리스테우스는 나와 헤라클레스에게 열번째 노역을 부과했 다. 그것은 엘리테이아섬의 왕인 게리오네스의 소를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 다. 당연히 우리는 대답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내가 마차에 막 오르려고 할 때, 갑자기 회색 로브를 입고 나타난 아드메테가 나한테 소리쳤다. "나도 가겠어!" 얼레? "나도 가겠다니까!!!" 얼렐레? "나도 가겠다는데 왜 대답이 없어?!" 얼라리여? "뭐라고 대답해 보라구!!!" 왜 저렇게 흥분하는 거지? 뭐라고 말해줘야 겠는걸? "집에나 가." 내가 대답하자 처음에는 득의의 웃음을 짓던 아드메테는 내 대답이 반말 이라는 것을 알고 또 화를 냈다. "이게? 나한테 반말을 써?!" "반말 듣기 싫으면 사라져." "사... 사라지라구?" 그 말에 충격 먹었는지 아드메테는 멍한 표정이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지? 뭐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니까. 빨리 가야겠다~ 내가 마차 안에 들어갔을 때 충격 먹고 정신 나간 줄 알았던 아드메테가 따라들어왔다. 아드메테를 본 헤라클레스는 경악했다. "아가씨... 왜 여기에....?" "흥! 나도 따라갈테니까 잔소리말고 출발해!" 아드메테는 매몰차게 소리쳤다.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날 쳐 다보았고 난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아드메테가 합 류한 우리는 곧 엘리테이아섬으로 가기 위해 '오케아노스'라는 곳으로 향 했다. 가는 동안 아드메테는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나의 '제발 좀 닥쳐줄래?'하는 말에 충격먹고 '너, 너...!'란 말만 되풀이하며 떠듬거렸 다. 덕분에 난 마법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다. 약 5시간 후에 오케아노스란 곳에 도착한 우리는 그 사이 잠든 아드메테 를 들고 작은 통나무 배를 얻어 엘리테이아섬으로 향했다. 아드메테는 실 프가 들고 왔다. 나나 헤라클레스가 들면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몸에 손을 대다니!'라고 말할 것 같아서였다. 아드메테는 차라리 잠든 모습이 더 나 아..... 통나무 배는 운디네의 도움을 받아 쾌속하게 앞으로 나갔다. 언제 깨어났 는지 아드메테가 기겁하며 소리질렀다. "너희들 뭐야? 날 납치하겠다는 거야?!" ... 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목적지도 모른다는 거야? "납치하긴 뭘 납치해? 엘리테이아섬으로 가고 있는 거야, 임마." "임...마? 너 정말.....!" 아드메테는 발끈하여 주먹을 휘둘렀지만 실프가 바람으로 행동을 제약하 는 바람에 뜻을 이루진 못했다. 아드메테는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야! 치사하게 정령 이용하지 말고 나하고 승부를 내자구!!!" "임무 마치면." ".... 좋아. 고귀한 내가 참아주지. 흥!" 아드메테는 배 한쪽에 주저앉고는 삐진 얼굴을 했다. 나원, 쟤 나 좋아하 는거야? 왜 나만 못살게 구냐구..... 약 1시간 후에 우리는 엘리테이아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운디네가 도와주니까 금방 오는군. 정령들은 여러가지로 쓸모가 많단 말이야~ 섬 해안가에 내려섰을 때 아드메테가 입을 열었다. "이곳은 게리오네스가 통치하고 있어. 게리오네스는 몸뚱이가 세 개 달린 괴물이지. 그는 붉은 소를 한 마리 가지고 있는데, 머리가 두 개인 개가 그 소를 지키고 있어. 붉은 소를 데려가기 위해서는 먼저 머리 두 개인 개를 쓰러뜨려야 해." 얼레? 많이도 아네? 그런데 왜 이런 걸 우리한테 가르쳐 주는 거지? 아,얘도 지금 우리와 동행 하고 있는 거구나~ 몰랐어요~~~ 섬은 그다지 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성을 찾는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성 앞에는 비교적 넓은 풀밭이 있었는데 그곳에 붉은 소 한 마리 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그 옆에는 머리 둘 달린 개가 네 개의 큰 눈을 번뜩이며 붉은 소를 지키고 있었다. 게리오네스라는 괴물이 적어도 붉은 소 근처에는 없는 것을 확인한 우리 -아드메테 제외-는 곧장 머리 둘 달린 개에게 달려들었다. 개는 마구 컹컹 거리며 우리를 위협했지만 헤라클레스가 한쪽 머리를 주먹으로 으깨버리고 내가 나머지 머리에 3클래스급의 라이트닝 볼트를 맞추었기 때문에 금방 뻗어버리고 말았다. 개가 너무 시끄럽게 짖어댔기 때문에 들켰을 거라고 생각해서 헤라클레스는 붉은 소를 번쩍 들고 해안가로 줄달음질쳤다. 아드 메테도 우리를 뒤따라 왔다. 아드메테는 놀란 표정으로 헤라클레스를 가리 키며 나한테 물었다. "저 사람, 인간 맞아?" "......" "어떻게 인간이 저런 괴력을.....!" "......" "야! 뭐라고 대답 좀 해봐!!!" "......" 난 뒤쫓아 가느라 힘들었기 때문에 아드메테의 말은 무시했다. 아드메테 가 막 발작을 시작하려는 순간, 갑자기 우리 뒤에서 야수의 울음소리가 들 려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세 개의 몸뚱이와 하나의 늑대 머리를 가 진 괴물이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게리오네스? "이런! 게리오네스가 알아챘어!" 아드메테는 그렇게 소리치며 죽어라고 달렸다. 헤라클레스, 아드메테와의 거리가 나하고 점점 멀어졌다. 이런! 난 달리기를 못한단 말이다!!! 게리오네스는 괴성을 지르며 내 뒤 10미터까지 접근했다. 도망가기는 글 렀음을 느낀 난 그 녀석을 처치하기로 했다. "모두들 저 녀석 죽여!!!" 내 외침에 일제히 나타난 다섯 정령들은 게리오네스를 향해 공격을 퍼부 었다. 우선 빛의 정령 잭 오 랜턴은 게리오네스의 눈에다 보라색 광선을 쏘아 시력을 잃게 만들었고, 땅의 정령 노움은 게리오네스의 여섯 개의 다 리를 땅으로 잡아서 게리오네스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그 사이, 물의 정령 운디네는 다섯 줄기의 분수 마법을, 바람의 정령 실프는 스파이럴 블 래스트를, 불의 정령 사라만다는 파이어 볼을 각각의 몸뚱이에 날렸다. 꾸아악---! 게리오네스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세 개의 몸뚱이는 각기 상태가 달랐다. 운디네의 분수 마법은 한 몸뚱이의 심장 주위만을 꿰뚫었 고, 실프의 스파이럴 블래스트는 다른 몸뚱이의 가슴을 완전히 뚫어버렸으 며, 사라만다의 파이어 볼은 마지막 몸뚱이를 태워버렸다. 그럼에도 게리오네스는 죽지 않았다. 어기적 어기적 거리며 내 쪽으로 다 가왔던 것이다. 난 전격 마법인 라이트닝 볼트로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다. 그러나 난 내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 파이어 스톰(Fire Storm)--!" 언제 주문을 외웠는지 아드메테가 게리오네스를 향해 파이어 스톰을 일으 켰다. 거대한 불꽃의 폭풍이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게리오네스를 덮 쳤고, 게리오네스는 잠시 후에 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드메테는 득 의의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소리쳤다. "어때? 내가 너보다 마법을 더 잘쓰지?" .... 잘쓰긴 뭘 잘써. 정령들의 거의 반 죽여놨었으니까 저 정도 마법에 죽어버린 거지. 마법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 "헬. 어서 가요." 난 아드메테를 무시하고 해안가로 가서 통나무 배에 올라탔다. 헤라클레 스는 붉은 소를 기절시켜서 배에 태운 후에 나한테 물었다. "니트, 게리오네스의 성에 보물이 많을 것 같은데 가지 않을래?" "됐어요. 전 빨리 돌아가고 싶으니까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헤라클레스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배에 올랐다. 아드메테는 기절한 소 를 보고 질겁하며 나한테 들러붙었다. 이런! 얘가 또 왜 이래? 정말로 나 한테 반한거야? 이러면 곤란하지~ 난 너같은 무지막지한 여자애는 싫어~ -------------------------------------------------------------------------- ------ [번 호] 3840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9일 22:08 Page : 1 / 26 [등록자] THEBUR [조 회] 9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81~82 황금 사과 -1~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1.황금 사과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31 게 시 일 :99/10/14 21:20:36 수 정 일 : 크 기 :6.7K 조회횟수 :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1 황금 사과 -1- 티린스에 머문 지도 벌써 8개월이 지나갔다. 게리오네스의 소를 잡아온 이후, 2달 동안은 아무런 명령도 없었다. 그래서 난 마법 수련에 많은 시 간을 쏟아부었다. 일주일 만에 7클래스를 이룩한 나는 8클래스에 도전했고 현재는 절반가량 이룬 상태다. 아... 힘들어.... 하루 10시간씩 마법 수련 했더니 피곤해 죽겠다..... 한 달 전에 에우리스테우스의 딸인 아드메테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떠 나기 전 아드메테는 나한테 이런 말을 남겼다. "반드시 네가 넘볼 수 없는 위대한 마법사가 되겠어!" ... 내가 도대체 뭘 넘보는 건지..... 역시 머리가 어떻게 된 얘였어~ 궁전 정원 한가운데 앉아 2시간 동안 마법 수련 하다가 일어났을 때 내 앞에 에우리스테우스의 심복 노인이 서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심복 노인 이 말을 꺼냈다. "에우리스테우스님의 명령이다." 오... 두 달 만의 명령이다..... 어떤 명령일지 궁금한데? "황금 사과를 따와라." 얼레? 황금 사과를 따오라구? 어디서? 난 심복 노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 쳐다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그 황금 사과는 어디있는데요?" "모른다." 으헥? 모른다구? 그런데 어떻게 따 가지고 오란 말이야? "그럼 어떻게 따 가지고 와요?" "그건 너희들 능력껏 하는 것이다. 그럼 알아서 출발해라. 마차는 이미 대기시켜 놨으니." 심복 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휭하니 사라졌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있는지라도 가르쳐줘야 할 것 아니야?! 이 넓은 올림포스에서 어떻게 황금 사과를 찾냐구!!! 난 터덜터덜 마굿간으로 돌아왔다. 황금 사과를 찾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음... 황금 사과... 황금 사과....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그걸 어떻게 찾았더라? 그러니까..... 프로메테우스를 만났던가? 그래,프로메테우스를 구해주고 그 에게서 황금 사과의 위치를 알아냈는데..... 프로메테우스가 어디에서 벌받고 있었지? 음... 아! 코카서스! 내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헤라클레스가 날 툭치며 물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 "헬, 혹시 코카서스란 곳이 있어요?" "코카서스? 당연히 있지. 거긴 산 꼭대기에 있는 가파른 절벽으로 유명한 곳이야.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 헤라클레스는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고, 난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을 말했 다. "에우리스테우스가 황금 사과를 찾아오래요." "그래? 그럼 찾아오면 되지." "문제는 그 사과가 어디있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내 말에 헤라클레스의 표정이 변했다. "뭐? 어디있는지도 모르면서 찾아오라는 거야?" "예. 그래서 황금 사과가 있을 법한 장소로 코카서스가 유력하게 생각되 어서요, 그리로 가려구요." "코카서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냥 느낌이죠." 난 그냥 그렇게 얼버무린 후에 리소좀과 가방을 챙겨들었다. 헤라클레스 는 어깨를 으쓱하며 전에 샀던 활과 화살통을 챙겼다. 준비를 마친 우리는 곧 마차가 대기하고 있는 궁전 밖으로 나갔고, 역시나 기다리고 있는 사람 은 그 마부였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군. 뭐 물을 필요는 없겠 지. 어차피 넉 달 후에는 이 생활도 끝이니까. 우리는 목적지를 코카서스로 정하고 그리로 향했다. 난 내 생각이 맞기를 바랬다. 만약 틀리다면.... 올림포스 전체를 뒤져야겠지..... 으.... 아마 내 생각이 맞을 거야.... 지금까지 잘 맞아떨어졌잖아..... 믿어보자..... "여기가 코카서스입니다!" 마부가 마차 안에 있던 우리에게 소리쳤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곧 마차 밖으로 나왔다. 우리의 앞에는 거대한 산 하나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 다. 여기저기에 기암괴석들이 널려 있었고, 산도 굉장히 가파랐다. 이 산 에는 정말 사람 하나 못살 것 같다..... "올라가죠." "그래." 나와 헤라클레스는 산악 등정에 올랐다. 난 등산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데 .... 특히나 이런 가파른 산은 말이야. 설마 암벽 타기를 해야 하는 건 아 니겠지.....? 무려 3시간을 올라간 끝에 산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정령들 이 도와줬기 때문에 3시간 만에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령들이 없었 다면 아마 난 죽었겠지. 발을 헛디뎌서 굴렀는데 다행히 실프가 구해주더 라구. 부르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이번에도 내 마음을 느껴서 왔다라나? 어쨌든 구조를 받았으니 다행이지 뭐~ 나는 산 꼭대기를 자세히 살폈다. 분명 여기 어딘가에 사람이 결박당할 만한 절벽이 있을텐데.... 어딨냐..... "엇, 니트! 저기 봐! 저 절벽에 뭔가 매달려 있어!"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헤라클레스가 날 불렀다. 난 기대를 가지고 즉시 뛰 어가서 헤라클레스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높은 절벽이 하나 있었는데 절벽 한가운데에 온몸이 쇠사슬로 감겨있는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독수리 하나가 그의 배, 좀더 정확히 말하면 배 속 에 들어있는 간을 쪼아먹고 있었다. 그 광경에 헤라클레스가 경악했다. "독수리가 살아있는 사람을 먹으려 하다니!" 헤라클레스는 즉시 화살을 꺼내 독수리에게 쏘았다. 화살은 곧장 독수리 에게 날아갔고 독수리는 정확히 가슴을 뚫리고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탁탁탁-- 우리는 급히 프로메테우스라고 짐작되는 사람이 묶여있는 절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난 노움을 소환하여 절벽을 부수어 버렸고, 실프가 안전하게 그 사람을 받아내어 나한테 건네주었다(?). 꽤나 잘생긴 얼굴을 한 20대 중반 의 청년이었다. 난 그 사람의 따귀를 몇번 때리며 흔들었다. "일어나쇼! 물어볼게 있으니까!" "음....." 청년은 내 공격(?)에 눈을 떳다가 갑자기 배를 움켜잡았다. 아차, 지금 이 사람은 간을 독수리에게 쪼아먹혔지! "치유의 손이여, 그대의 힘으로 상처를 낫게 하라." 난 그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러자 상처는 곧 아물기 시작했고 그의 표정도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내가 또 질문하려고 했을 때 청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프로메테우스라고 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 역시 프로메테우스였군. 내가 알기론 프로메테우스는 신일텐데? 여 기서는 아닌감? "전 니트고 저쪽은 헤라클레스예요. 그런데 무슨 일로 이런 절벽에 묶여 있었어요?" "....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더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얼씨구?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겠다는 것? 난 이 프로메테우스가 신인지 인간인지 알고 싶단 말이다! .... 진정하고... 내가 알아야 하는 건 그게 아니라 황금 사과에 대한 건 데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정신 차리자!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혹시 황금 사과가 어디있는지 아세요?" "황금 사과 말입니까?" "네." 프로메테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대답했다. "황금 사과를 찾고 싶으시다면 이 산 절벽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에게 찾아달라고 하십시오." "예? 이 산 절벽을 떠받치다뇨?" "내려가 보시면 알게 됩니다. 아틀라스는 어떤 이유로 이 산 절벽을 떠받 치게 되었는데, 아틀라스 대신 산을 떠받치면서 그에게 황금 사과를 찾 아달라고 하십시오. 그럼 아틀라스는 황금 사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문 제는 그 다음이죠. 우둔한 아틀라스는 또다시 절벽을 떠받치러 이곳으로 올텐데, 이곳에 오고 나면 생각을 바꿀 것입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이 알 아서 잘 처신하십시오. 그럼 전 이만." 말을 마친 프로메테우스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나의 공명이 일어난 것으로 봐서는 텔레포트한 것 같은데.... 그럼 이곳의 프로메테우스는 인 간인가? 헷갈리는군. 그런데 아틀라스가 이 산 절벽을 떠받치고 있다고? 내가 알기론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았다는 것 같은데? 뭐, 여기야 워낙 이상한 동네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가보면 알겠지.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2.황금 사과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32 게 시 일 :99/10/14 21:21:00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2 황금 사과 -2- 우리는 그 프로메테우스라는 청년의 말대로 절벽 밑으로 내려갔다. 시간 을 절약하기 위해서 실프의 도움을 받아 절벽 아래로 향했다. 그래서 금방 절벽 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가 묶여있었던 절벽 아래에는 한 거인이 절벽을 떠받치고 있 었다. 으헉!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저 거인이 받치고 있던 절벽 위에 있었 던 거잖아? "너희들은 뭐냐?" 그 거인이 우리를 보고 으르렁거리듯이 물었다. 얼굴은 우락부락하게 생 겼고 키는 가볍게 2미터를 넘어보이는 그 모습에 난 약간 위축되었다. 그 러나 거인이 절벽을 떠받치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침착하게 우리의 용건을 말했다. "당신은 아틀라스죠? 우린 당신이 황금 사과를 찾아줬으면 하는데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지?" "다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당신이 황금 사과를 찾아오는 동안 우리가 그 무거운 절벽을 떠받치고 있겠습니다. 어때요?" 내 말에 귀가 번쩍 뜨이는지 아틀라스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저, 정말이냐?" "예." ".... 좋아. 그럼 내가 황금 사과를 찾아오겠다. 너희들은 이 절벽이나 떠받치고 있으라구." 아틀라스는 우리를 재촉했다. 난 헤라클레스를 바라보았고, 헤라클레스는 팔을 걷어붙이더니 이내 아틀라스 옆에 서서 절벽을 떠받쳤다. 홀가분해진 아틀라스는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며 자유를 만끽했다. "10년만에 이 절벽의 무거움에서 풀려나는구나! 날아갈 것 같다!" "그런데 왜 10년 동안이나 이 절벽을 들어올려야 했어요?" 내 물음에 아틀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마라. 그럼 난 황금 사과나 찾으러 가야 겠다." 그러면서 휘파람까지 불며 산을 내려갔다. 억... 어째 불안해..... 저 녀 석을 정말 믿을 수 있을까? 나 같으면 냅다 튀겠는데. 그나저나 왜 절벽을 떠받치고 있었던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거야? 궁금하단 말이다!!! "으윽.....!" 갑자기 내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 도 없이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절벽을 떠받치는데 온힘을 쏟아붇 고 있었다. 어유... 무겁겠군. 그럼 열심히 수고 좀 해줘요~ "야, 니트! 넌 이거 안 들어?!" 멀뚱멀뚱 서 있는 날 보고 헤라클레스가 소리쳤다. 난 얍삽한-내가 생각 하기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힘이 없다구요. 그리고 이건 헤라클레스의 노역이니까 그런 말하지 마시라구요. 전 단지 약간의 도움을 주는 사람일 뿐이죠." "치사한 녀석!" "치사한게 아니라 공사(公私)를 엄격히 구분한다죠." 나와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티격태격 말싸움을 했다. 무료한 시간이 흘러 갔다. 아틀라스는 거의 4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뭐 황금 사과 찾 아오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난 빨리 마굿간에 가서 이불 덮고 자고 싶어...... "하하하, 이 아틀라스님이 오셨다!" 갑자기 왠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강타했다. 목소리나 그 말로 봐서 분명 한 아틀라스였다. 와, 정말 황금 사과를 찾아 온 건가? 아틀라스는 손에 황금 사과 하나를 들고 우리 앞으로 왔다. 그런 아틀라 스의 표정은 너무나 즐거워보였다. "역시 자유란 좋은 것이구나. 우하하!" .... 이제 그 자유도 사라질텐데..... 또 절벽을 떠받쳐야 하니까. 하지 만 막상 떠받치라면 거절할 스타일일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하지? "이봐, 아틀라스.... 이제 이 절벽 좀 떠받치라고....." 헤라클레스가 힘에 겨운 목소리로 아틀라스에게 말했다. 얼굴에 웃음을 띄우던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했다. "잠깐! 여기서 내가 그냥 가도 너희는 날 잡을 수 없구나! 그럼 난 자유 의 몸? 우하하!" .... 하는 짓을 보니 완전 또라이로군. 바보의 극을 치달린다..... "자, 잠깐! 그건 약속이 틀리잖아? 우린 너 대신 이 절벽을 들어준다는 조건으로 넌 우리에게 황금 사과를 가져다 준다.... 그런데 절벽을 안 들겠다니?" 헤라클레스는 당황했다. 뭐 계속 저 절벽을 떠받치고 있으라면 처절한 거 지. 그나저나 헤라클레스나 아틀라스 둘다 괴력의 소유자들이야. 저런 큰 절벽을 떠받치고 있을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틀라스는 나에게 황금 사과를 넘겨주며 말했다. "너희한테 황금 사과 가져다 줬지? 그럼 난 간다~" "이, 이봐! 부탁이 하나 있어!" 헤라클레스의 다급한 외침에 아틀라스는 빈정댔다. "내가 그 부탁을 들어줄 것 같냐?" "어려운 건 아니야. 단지 내가 지금 자세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힘들거 든. 그러니까 내가 자세를 바로잡는 동안 어깨받이 좀 해줘." "어깨받이? 뭐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미련한 아틀라스는 헤라클레스의 말을 그대로 믿고 헤라클레스 옆에 서서 절벽을 떠받쳤다. 덕분에 헤라클레스는 절벽의 억눌림에서 해방될 수 있었 다. 그러자 당황한 건 아틀라스였다. "야! 이건 약속이 틀리잖아?" "난 원래 약은 놈이거든. 가자, 니트." 헤라클레스는 날 끌고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뒤에서 아틀라스의 저주가 퍼부어졌다. "이 죽일 놈들! 내가 이 절벽에서 해방되는 날 너희들이 제일 먼저 죽을 것이다! 이 더러운 인간놈들!!!" 거 꽤나 시끄럽군. 그나저나 인간놈들? 어째 자기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말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질 않으니 알 길이 없어.... 궁금해라..... 근데 왜 계속 절벽을 떠받치려는 거지? 감시자도 없는 것 같은데. 나 같 으면 절벽이 어떻게 되든 말든 도망치겠다. "헬, 그런 거짓말까지 하다니 놀랐어요~" "뭘 그 정도 가지고. 절벽이 하도 무거워서 그랬어." "잘만 들던데요? 그냥 그 길로 계속 나가죠?" "... 너 나한테 한 번 죽고 싶니?" 우리는 친근한(?) 말을 주고 받으며 산을 내려왔고 곧장 마차를 타고 티 린스로 향했다. 하하, 이렇게 간단히 일이 해결될 줄이야.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길 잘했어. 우리는 에우리스테우스에게 황금 사과를 전해주었다. 황금 사과를 가져왔 단 소식에 에우리스테우스는 궁전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 사과를 받아든 그는 입이 째져라 웃었다. 그리고는 황금 사과를 이리 저리 살펴보며 하는 말. "정말 황금으로 되어있구나. 못 먹겠는걸?" ..... 에우리스테우스도 바보였어..... 다음날 하인들에게서 얘기를 들어보니 에우리스테우스는 황금 사과를 다 른 사람에게 주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 귀한 걸 그냥 주다니? 쪼잔한 에우리스테우스가 그럴 리 없을 텐데..... 궁전 하인들 사이에서 나도는 소문에 의하면 에우리스테우스는 스파르타 와 모종의 계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나와 헤라클레스에게 시킨 일들이 대부분 스파르타에게 잘보이기 위한 것이라나? 네메아 숲에 살던 사자, 아르테미스의 사슴, 에리만토스산의 멧돼지, 크레타섬의 황소, 디오 메데스의 식인마, 그리고 황금 사과..... 그것들을 모두 스파르타에게 선 물로 주었다는 소문.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속셈이야 뻔하다. 에틱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 고 있는 스파르타에게 잘보여서 뭔가 얻어내려고 하는 짓이리라. 전에 아 드메테가 이곳에 왔을 때 열린 파티에서, 귀족들은 스파르타가 올림포스 연합국의 주도 세력이 되는 걸 걱정하던데..... 에우리스테우스는 오히려 그런 스파르타에게 달라붙으려 하고..... 쩝. 다른 나라 몰래 그런 모종의 계약을 맺은 에우리스테우스를 아버지로 둔 아드메테가 불쌍하다.... 자신의 아버지의 참된 모습을 알게 되면 어떤 마 음이 들까? 쯧쯧. ? [번 호] 3841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9일 22:09 Page : 1 / 24 [등록자] THEBUR [조 회] 9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83~84 케르베로스 -1~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3.케르베로스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39 게 시 일 :99/10/16 19:53:21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3 케르베로스 -1- 델포이 신전에서 사제가 얘기했던 12달 중에 10달이 지났다. 그 동안 에 우리스테우스가 나와 헤라클레스에게 내린 명령은 모두 11개. 신화의 내용 그대로라면 하나 더 남은 셈이다. 그냥 이대로 끝나면 더 좋겠지만. 황금 사과를 가져온 후 2달. 난 내 목표인 8클래스를 위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마법 수련에 쏟아부었다. 어차피 난 친구도 없었고 할일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인지 마침내 8클래스 마력 축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내 몸 구석구석에 퍼져 안정한 상태를 이루고 있는 마나. 이제 더이상 마나를 모을 공간도 없다. 전에 카르본의 글리콜 장로는 8클래스까 지 마나를 축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럼 이제 더이상 마나는 모을 수 없는 건가?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야, 니트! 마법 수련 질리지도 않냐?" 헤라클레스가 내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난 그저 씩 웃었다. 헤라클레스 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짓다가 말을 이었다. "에우리스테우스님이 우리보고 알현실로 오랜다." "알현실로요?" "그래. 뭔가 명령을 내릴 것 같아. 가자." "네." 헤라클레스는 먼저 마굿간 밖으로 나갔고 난 사라만다에게 집(?) 잘 지키 라고 당부한 뒤에 헤라클레스를 따라갔다. 그런데 무슨 일로 알현실까지 오란 거지? 설마 벌을 내리려고 하는건 아니겠지? 벌을 내리면 벌한테 쏘 일지도 모를텐데..... 억... 왜 그런 살기를 내뿜는거야들? 알현실로 들어서니 에우리스테우스와 뒤에 서 있는 두 병사들, 그리고 심 복 노인이 보였다. 다른 이들은 역시 하나도 없었다. 나와 헤라클레스가 무릎을 꿇자 에우리스테우스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 너희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겠다." 마지막? 와... 드디어 마지막이구나. 이 생활도 곧 끝난다! "명부(冥府)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잡아와라!" 하하, 그 정도 쯤이야.... 그런데 명부? 명부라면 저승? 저승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잡아오라구? 그럼 그 말은 우리보고 죽으라는 뜻? "잠깐만요!" 난 다급히 소리쳤다. 에우리스테우스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 다. 그 미소 한 번 참 역겹군. "그래, 뭐냐?" "명부라면 저승 아닌가요? 어떻게 저승으로 가죠?" "그거야 낸들 아나? 너희가 알아서 가야지." 그렇게 말하는 에우리스테우스의 표정은 무언가 굉장히 즐거운 듯 보였 다.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나와 헤라클레스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속셈같 다.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낀건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그만 출발하도록 해라." "네." 헤라클레스는 바로 대답하고는 일어섰다. 하여간 헤라클레스는 대답만 잘 한다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나와 헤라클레스는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왠지 에우리스테우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억... 정말 기분나뻐.... 그나저나 어떻게 명 부로 가지? 걱정이군. "헬,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우선.... 아테네 신전에 가 볼 생각이야. 거기가면 뭔가 알아낼 수 있겠 지." 아테네라면...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니던가? 어쨌든 아예 안 하는 것보 다 낫겠지. 그거에 기대를 걸 수 밖에. 마굿간으로 돌아와서 갈 채비를 마친 우리는 궁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올라탔다. 마부가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아테네 신전." "네, 그럼 갑니다!" .... 이거 꼭 택시타는 것 같잖아? 설마 요금을 받는 건 아니겠지? 뭐 지 금까지 저 마부에게 돈낸 적은 없지만. 쪼잔한 에우리스테우스가 저 마부 에게 돈을 얼마나 주고 있을까? 하여간 저 마부도 불쌍해~ 아테네 신전은 티린스 내에 있었기 때문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신전 안은 아테네 여신의 은총을 받기 위한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윽... 난 사 람들 많은 건 싫단 말이다..... "들어가자, 니트." "아뇨, 전 여기 있을게요. 헬이 들어가서 알아보세요." "그래? 그럼 기다려."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난 마차 지붕 위에 올라가서 드러누웠다. 그 때 마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올라가겠습니다." 그러더니 마부가 마차 지붕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명령을 수 행하고 나면 저 마부와 더이상 볼 일이 없어지는군. 12달 가까이 지냈는데 도 이름도 안 물어봤다. 심심한데 물어볼까? "이름이 뭐예요?" "아, 저요? 이름은 몰라요. 어렸을 때 버려졌다고 했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마부는 별로 슬픈 표정이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 다른 인간이라면 괜히 슬픈 척 했을 텐데. 어렸을 때 버려졌다는 것이 왜 나에겐 전혀 슬프게 느껴지지 않을까? 내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는건가 ? 하지만 버려지는 아이들이야 많으니까... 그 정도로 슬퍼해선 안되지. "얼마동안 마부 생활을 했어요?" "음... 한 15년 됐을 거예요. 15살 때부터 이 일을 시작했거든요. 물론 처음엔 마부 보조였죠." 마부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15살 때부터 15년이라.... 그럼 나이 가 30살이라는 말이네? 나이보다 얼굴이 조금 삭은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그렇게 우리는 말을 주고 받았다. 주로 내가 묻는 편이었고 마부는 대답 만 했다. 마부는 나에 대해 거의 묻지 않았다. 그것만 봐도 상당히 노련한 마부란 걸 알 수 있다. 손님에게 실례되는 질문을 하지 않으니까. 약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헤라클레스가 신전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헤라클레스는 기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아테네 여신님이 나에게 일러주셨어. 명부의 입구는 아베르누스 호수 근 처에 있다고. 그곳에 가면 명부로 들어갈 수 있대." 호... 바로 가르쳐주는군. 여기는 신들이 인간의 일에 직접 개입하나봐?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더라도 신들이 엄청나게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만. 어쨌거나 명부의 입구 위치를 알아냈으니 잘된 거지~ 우리는 곧장 아베르누스 호수로 향했다. 아베르누스 호수는 어떤 도시 국 가에도 속하지 않은 변두리 지역에 있었다. 이틀 정도 달리자 아베르누스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베르누스 호수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이었 다. 호수물 자체에서 유독한 증기가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수 주변에도 생명체가 전혀 살지 못했다. 난 실프를 소환하여 그 유독한 증기를 차단하며 아베르누스 호수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명부의 입구 비슷한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번에도 찾은 사람은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어떤 동굴을 가리키 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꽤나 깊은 동굴 같았다. 하여간 헤라클레스는 귀신 같이 찾아낸단 말이야~ 우리는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난 리소좀을 뽑아들었고, 헤라 클레스는 활시위에 화살을 매겨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동굴은 아래쪽으 로 길게 나 있었다. 으... 정말로 저승을 향해 들어가는 것 같다..... 컹컹컹! 얼마쯤 들어갔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개 짖는 소리가 아니라 동굴을 쩌렁쩌렁 울리는 정도였다. 그것도 허스키하 게. 저 소리가 명부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의 울음소리인가?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동굴이 환해지며 동굴의 크기가 엄청 커 졌다. 좁은 동굴은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지며 끝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공간에는 거대한 문이 하나 세워져 있었고, 그 문 앞에는 머리가 셋 달린 거대한 개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4.케르베로스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40 게 시 일 :99/10/16 19:54:02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1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4 케르베로스 -2- 케르베로스는 무단 침입(?)한 우리를 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머리가 셋 이나 달려 있었기 때문에 으르렁 소리가 입체 음향처럼 들렸다. 스피커가 세 개나 있는 셈이군. 저 개 속에다 음악을 입력하고 틀면 사운드가 죽일 것 같은데? 피잉--! 갑자기 들려오는 파공음.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를 향해 화살을 날린 소리였다.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머리 중 가운데 있던 머리가 입에서 불꽃 을 토해냈다. 불꽃은 화살을 집어삼켰고, 화살은 쇠로 만들어진 화살촉조 차 녹아버렸다. 억... 저 불꽃에 맞았다간 바로 저승행이다.... 명부도 아 주 가까이 있으니 제일 빨리 저승에 도착한 인간이 되겠는데? "이런! 니트, 나한테 방어 마법을 걸어줘." 헤라클레스는 활과 화살을 내던지며 날 향해 말했다. 바, 방어 마법? "전 그 주문 모르는데요." "마법사라면서 그것도 몰라?" "기다려봐요, 찾아볼 테니까." 난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냈다. 헤라클레스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다가 공격 받아 죽겠다!" 크르르릉--- 케르베로스는 우리끼리 말을 주고 받자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으르렁거렸다. 억... 마법 주문 찾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겠는 걸? 우선 저 케르베로스의 관심을 딴데로 돌려야겠다. "모두 나와서 교란 작전을 펼쳐." 난 정령어로 입을 열었고 곧이어 다섯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두 들 '교란 작전이 뭐냐?'라는 표정들이었다. 이런...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다니....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깨우쳐야 할 것 아니야..... "먼거리에서 공격하면서 저 개 녀석의 관심을 나한테서 돌리란 말이야. 난 마법 주문을 찾아야 하니까. 대신 저 개의 불꽃을 조심해. 너희들을 소멸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럼 잘들해봐." 내 말에 다섯 정령들은 곧장 케르베로스에게 다가갔다. 케르베로스는 자 신에게 다가오는 다섯 정령들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좋아, 이제 저 녀석들이 어떻게든 하겠지. 그 사이에 난 마법 주문을.....! 컹컹! 케르베로스의 울부짖음과 별의별 음향효과가 내 귀를 때렸다. 공격을 시 작한건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마법 주문 찾는게 더 급해..... "니트, 아직 멀은거야? 정령들이 밀리고 있어." 헤라클레스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기억을 더듬어 연습장을 뒤 졌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방어 마법 주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완전 주문과 불완전 주문이 다 있군. 저 케르베로스의 불꽃을 막을 정도 의 방어막이라면 완전 주문으로 해야겠지? 좋아. "보이지 않는 구름, 보이지 않는 안개. 그의 몸을 감싸니 그 무엇도 뚫을 수 없으리라. 무(無)에서 유(有)로 변하여 받은만큼 되돌리라." 주문은 완성되었고 헤라클레스의 온몸에 희미한 마법의 방어막이 형성되 었다. 헤라클레스는 다짐을 받듯이 물었다. "이거 정말 확실한 거지?" "그럴껄요? 직접 실험해 봐요." ".... 좋아, 믿어보겠어!" 그러나 헤라클레스의 얼굴은 믿겠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음... 나도 확실 히 모르겠다. 이번 마법에 7클래스를 쏟아부었는데.... 잘 될려나? 억... 너무 무리했더니 피로가 몰려와..... "간다---!" 헤라클레스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케르베로스에게 달려들었다. 정령들 을 향해 불꽃을 뿜고 있던 케르베로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불꽃을 뿜어냈다. 불꽃은 그대로 헤라클레스를 집어삼켰고 헤라클레스는 비명을 질렀다. "야아---!" 얼레? 이건 비명 소리가 아닌데? 기합 소리잖아? 그럼 아직 죽지는 않았 다는 뜻? 불꽃은 마법 방어막에 닿자마자 소멸해버렸고, 헤라클레스는 곧장 케르베 로스에게 주먹을 선사했다. 순간, 헤라클레스의 주먹에서 불똥이 튀었다. 커엉-- 헤라클레스의 주먹에 맞은 케르베로스의 오른쪽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주먹에 맞은 부위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얼랄라? 어떻게 된거 지? 헤라클레스가 불주먹일 리 없을텐데? 그럼 내가 걸어준 마법 때문인 가? 저 마법 방어막이 케르베로스의 불꽃을 흡수해서 헤라클레스가 주먹으 로 칠 때 불꽃을 방출한 것? 헤라클레스는 두 팔을 한껏 벌려 케르베로스의 세 개의 목을 껴안았다. 한마디로 목조르기였다. 케르베로스는 헤라클레스가 가까이 붙어서 목을 졸랐기 때문에 불꽃은 내뱉지 못하고 긴 꼬리로 헤라클레스를 때렸다. 억? 꼬리에 비늘이 박혀 있잖아? 꼭 용 꼬리같다.....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가 꼬리로 사정없이 내리치는데도 죽어라고 목만 부둥켜 안고 있었다. 내가 걸어준 마법 방어막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거의 충격을 받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케르베로스의 관심이 온통 헤라클레스에 게 쏠리자 다섯 정령들이 케르베로스를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다. 난 그런 그들을 즉시 정령계로 돌려보냈다. 케르베로스가 죽어선 안되니까 말이야. 헤라클레스와 케르베로스의 사투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헤라클레스의 마 법 방어막을 이루고 있는 마나가 흐트러지려고 할 때쯤, 마침내 케르베로 스가 뻗어버렸다. 숨막혀서 졸도한 것 같지는 않고 기운이 빠져서 뻗어버 린 것 같다..... 하여간 헤라클레스의 힘은 알아줘야 해. "됐어, 니트! 어서 가자!"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케르베로스를 짊어지고 지나왔던 동굴로 다시 들어 갔다. 나도 따라갔다. 잠시 후 아베르누스 호수를 보게 되었고, 우리는 호 수를 빠져나와서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부는 거대한 케르베로스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제 적응이 된 모양이지? 앞으로는 왠만한 걸 봐도 눈 하나 꿈쩍 안하겠는걸? 우리는 마차 안에다 케르베로스를 싣고 티린스로 출발했다. 만약을 위해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 옆에 탔다. 당연히 나는 마부석에 앉았다. 하여 간 다행한 일이야, 마차가 비교적 크니까. 쪼잔한 에우리스테우스가 이런 넓은 마차를 준 것은 물론 이런 어려운 일을 시키려고 한 것일 테지만. 우리가 알현실 안에 들어갔을 때, 에우리스테우스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 었다. 마치 '녀석들, 살아돌아왔군....'인 것 같은 표정이다. 헤라클레스 가 기절한 케르베로스를 그의 앞에 내려놓아도 에우리스테우스는 겁도 안 내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다가 쓰러진 케르베로스를 한번 쓰윽 훑어보더니 하는 말. "이 괴물, 있던 곳에 갖다 놔라." .... 지금 저 인간이 장난하나? 힘들게 잡은 걸 갖다놓으라구? "예, 알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냉큼 대답하고 케르베로스를 다시 짊어졌다. 그리고는 알현 실 밖으로 나갔다. 이런... 또 명부로 가야하는 거냐? 뒤돌아 나갈 때 난 에우리스테우스가 사악한 미소를 띄웠다는 것을 발견 했다. 물론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는 않고 그냥 걸어나왔지만. 하여간 찝찝하군. 에우리스테우스 녀석, 뭔가 일을 꾸미려고 하는 것 같단 말이야 ...... 헤라클레스는 곧장 마차가 대기해 있는 궁전 밖으로 향했다. 나도 아무 말없이 뒤따랐다. 온몸이 피곤했지만 쉬고 있다간 에우리스테우스가 어떤 불호령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역시 하인들은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니까..... 으... 졸려. -------------------------------------------------------------------------- ------ [번 호] 3842 / 3878 [등록일] 1999년 11월 09일 22:10 Page : 1 / 24 [등록자] THEBUR [조 회] 10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85~86 에우리스테우 스의 음모 -1~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5.에우리스테우스의 음모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47 게 시 일 :99/10/18 21:48:20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1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5 에우리스테우스의 음모 -1- 나와 헤라클레스는 또다시 아베르누스 호수로 향했다. 가는 동안 케르베 로스가 몇번 깨어났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가볍게 안마(?)해 주어야 했 다. 무사히 아베르누스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명부로 이어지는 동굴을 찾 아내어 안으로 들어갔다... 가 아니라 케르베로스를 그 동굴 안에 밀어넣 었다. 쿵쿵쿵 콰당-- 몇번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케르베로스의 험 난한 여정(?)이 끝난 모양이야.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군. 명부의 문 을 지키는 케르베로스를 잡아갔는데도 명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니? 약한 케르베로스는 필요없다 이건가? 음... 모르겠군. 어쨌든 이걸로 12개의 노역이 끝난거군. 이제 마굿간 생활도 끝이구나! 이렇게 기쁠수가! 룰룰루~ 우리는 곧장 마차를 타고 티린스로 향했다. 마차가 출발한지 대략 4시간 이 지났다. 난 노역 생활이 끝나면 뭘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마차 가 멈췄다. "무슨 일입니까?" 헤라클레스가 마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마부에게 물었다. 마부는 담담하게 정면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어떤 거인이 길을 가로막고 있어서요." 얼레? 거인? 난 마차에서 내려 앞쪽을 확인했다. 우리가 멈춘 곳은 드넓은 평야 지대 여서 사방이 확 트였다. 그러나 길은 하나 밖에 없었다. 물론 길은 마차 2대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지만 우리 마차가 다른 마차에 비해 크 기 때문에 반대편에서 마차가 온다면 길을 통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런 길 한가운데에 마차도 아니고 2미터가 훨씬 넘는 인간 하나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부드럽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물론 그 덩치에 쫄아버린 것- 정중하게 부탁했다. "죄송하지만 길 좀 비켜주세요. 저희는 이 길을 지나가야 하거든요." 그러나 거인은 코웃음을 치더니 답했다. "절대 못 지나간다. 난 부탁을 받고 너희들을 죽이러 왔으니까." 거인은 못생긴 얼굴 가득히 사악한 미소를 띄웠다. 얼렐레? 우릴 죽이러 왔다구? 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암살자를 만난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없는데? "말이 지나치군!" 거인의 말을 들었는지 헤라클레스가 소리쳤다. 그러자 거인이 입을 열었 다. "나 안타이오스의 말이 지나치다고?!" ... 자기 신분을 밝히다니.... 저거 암살자 맞냐? 유도 심문에 그냥 넘어 갈 것 같다..... 한 번 시도해 보자. "당연히 말이 지나치지. 우리의 암살을 의뢰한 사람을 밝혀야 우리가 당 신의 말에 수긍할 것 아니야?" 내 말에 안타이오스라는 거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의 암살을 의뢰한 사람은 너희들의 주인인 에우리스테우스다! 이 제 내가 너희들을 죽이러 왔다는 걸 믿겠냐?!" "......!" 나와 헤라클레스는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우리의 암살 의뢰자가 에우리스 테우스였다니!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흠. 이제 믿는 모양이군. 좋아, 그럼 죽어!" 안타이오스는 곧장 내 쪽으로 뛰어왔다. 허걱! 왜 하필 나야? 내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헤라클레스가 안타이오스에게 주먹을 선 사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안타이오스는 헤라클레스의 주먹에 가슴을 얻어 맞고 날아가 버렸다. 분명히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쩝, 저 인간 , 헤라클레스의 한주먹 감도 못되는구만. "후후... 꽤 힘이 쎈데? 의외야...." 쓰러졌던 안타이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얼레? 분명히 뼈부러 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이 거인 녀석! 내 힘이 훨씬 월등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마!" 헤라클레스는 안타이오스에게 달려들어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놀랍게 도 안타이오스는 단 하나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헤라클레스의 폭격을 맞 았다. 퍼퍼퍼퍼퍽--! 엄청난 격타음이 내 귀를 때렸다. 여기저기서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안타이오스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금 아픈걸? 하지만 대지는 나의 근원이다. 대지 위에선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어." 안타이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멀쩡히 일어났다. 그 광경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분명히 뼈가 탈골되어 손이 비틀어지고 다리가 꺽이는 것을 봤 는데도 멀쩡히 일어났으니까. 헤라클레스도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었다. 때려서 쓰러지지 않은 인간은 저 안타이오스란 녀석이 처음이니.... 잠깐. 저 녀석이 뭐라고 했더라? 대 지 위에선 자기를 죽일 수 없다라고 했던가? 퍼억! 안타이오스의 주먹이 헤라클레스를 가격했다. 헤라클레스는 팔로 막았으 나 충격으로 날아가 버렸다. 내가 달려가서 보니 팔은 다행히 부러지지 않 은 것 같았다. 헤라클레스는 옷을 툭툭털며 일어났다. "제법 아픈걸?" 헤라클레스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한 대 맞더니 표정이 달라지는군. "헬, 저 거인을 허공에 번쩍 들어서 목을 졸라요." "응? 들어서 목조르기 하라고?" "네." 내 말에 헤라클레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저 녀석이 방금 전에 대지 위에 있으면 자기를 죽일 수 없다고 했잖아 요? 그렇게 얻어맞았는데도 쓰러졌다 일어나면 멀쩡하구요. 그러니 제 말대로 한 번 해봐요." 헤라클레스는 갸웃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장 안타이오 스에게 달려들었다. 안타이오스는 느긋하게 헤라클레스를 기다렸다. 스피드는 헤라클레스 쪽이 훨씬 빠르군. 뭐 대체적으로 쪼만한 사람이 키 큰 사람보다 빠르지. 헤라클레스도 큰 편이지만 저 안타이오스는 괴물 수준의 키니까 당연히 헤라클레스가 더 빠른 것. 안타이오스의 주먹을 이리저리 피한 헤라클레스는 몸을 바짝 붙여 그의 목을 움켜잡고 허공에 번쩍 들었다. 그러나 키 차이로 인해 목에 손만 갖 다댄 꼴이었다. 그러자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안타이오스의 목을 잡고 돌리 기 시작했다. 돌리는 방법이 참 희한했다. 헤라클레스도 같이 돌았던 것이 다. 그건 목조르기를 위해서였다. "어어엇! 이 녀석, 날 내려놔!" 안타이오스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헤라클레스가 목을 조르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는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보는 내가 다 어지럽군~ 자기보다 큰 사람을 저렇게 가볍게 돌리다니.... 뭐 자신도 함께 돌고 있지만.... 엄청난 힘이야..... 그렇게 10분 정도 돌았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있는 힘껏 안타이오스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파학-- 맨땅에 헤딩한 안타이오스의 머리가 으깨져 버렸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 다. 으갹! 피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는단 말이다!!! 안타이오스의 죽음을 확인한 헤라클레스는 날 쳐다보며 말했다. "어때? 이겼.... 지?" 쿵-- 헤라클레스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어... 어지러워.... 토할 것 같다....." 거의 정신을 못차리는군. 뭐 10분 동안 계속 돌았으니 머리가 돌아버리겠 지.... 그나저나 저런 피바닥에서 드러눕다니.... 내가 돌겠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준 뒤에 실프를 동원해 마차로 옮겼 고, 운디네에게 묻은 피를 닦게 했다. 그리고 노움을 불러 안타이오스의 시체를 땅속에 묻어버렸다.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길은 깨끗해 졌다. 이거야말로 완전 범죄로군. 이 길로 나가봐?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6.에우리스테우스의 음모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48 게 시 일 :99/10/18 21:49:04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1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6 에우리스테우스의 음모 -2- 안타이오스를 만난 이후로는 더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에우 리스테우스가 우리의 암살을 의뢰했을까? 만약 그렇다면 왜일까....? 그 대답을 듣기위해 우리는 티린스로 직행했다. 그래서 예정보다 10시간 일찍 티린스에 당도할 수 있었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알현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에우리스테우스는 우리의 귀환 소식을 들었는지 침착한 얼굴로 왕좌에 앉아 있었다. "... 멀쩡히 살아돌아왔군 그래." 에우리스테우스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그가 나와 헤라클레 스를 암살하려 했음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가 소리쳤다.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거지?!" 에우리스테우스는 한쪽 팔에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너희들의 능력이 엄청나기 때문이야." 우리의 능력? 지금 우리를 추켜세우는 건가? "구체적으로 말해보시지?" 내 싸늘한 말에 에우리스테우스는 피식 웃었다. "이젠 아예 주인을 기어오르는군. 뭐 좋아,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 나와 헤라클레스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에우리스테우스는 뒤에 서 있던 두 병사보고 나가라고 손짓했고, 잠시 의아해하던 병사들은 곧 알현실 밖 으로 나갔다. 알현실 문이 닫히고 알현실 안에는 나와 헤라클레스, 에우리 스테우스와 그의 심복 노인만이 남게 되었다. 에우리스테우스가 입을 열었다. "난 스파르타와 계약 중이다. 알고 있겠지만 스파르타는 강적 에틱스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지. 곧 있으면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 갈거야. 그러면 스파르타는 당연히 이 올림포스 연합국의 주도국이 되겠 지. 그 때를 위해 난 스파르타에게 선물을 바쳐왔다. 모두 너희 둘이 잡 아온 괴물과 보물이었지." "그건 이미 알고 있었고,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냐고." 난 그의 말을 끊었다. 에우리스테우스는 중간에서 말이 끊기자 볼썽 사나 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교활한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스파르타 쪽에서 너희들이 그 선물들을 모두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알았다간 그들은 우리 티린스와 손잡지 않고 너희들을 스카웃하려고 할테니까. 그럼 나만 손해거든? 그래서 너희들은 죽어줘야 하는 것이야." "그렇다면 우리가 조용히 사라져주면 되잖아?" "그게 어디 생각처럼 되나? 난 혹시라도 있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서 확실하게 해두려고 했을 뿐이야." 에우리스테우스와 우리들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나원... 난 에우리스 테우스가 이런 일을 꾸민다는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없단 말이다! 왜 갑 자기 내 예상을 빗나가고 있는 거야! "그럼 이렇게 하자." 가만히 침묵을 지키던 헤라클레스가 입을 열었다. 에우리스테우스와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우린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에 내려가겠다. 스파르타가 남쪽까지 내 려오지는 않을테니까. 그곳에서 살면 우리의 이름이 이곳까지 알려질 일 은 없을거다." "글쎄... 못 미더운걸?" 에우리스테우스는 입가에 교활한 웃음을 머금었다. 윽... 저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다..... 내가 단단히 못을 박아야겠어. "못 미덥더라도 그렇게 하는게 좋을거야. 안 그랬다간 너희들을 저승으로 보내줄 테니까." 내 위협에 에우리스테우스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좋아, 좋아. 그렇게 하지. 무적불패를 자랑하던 안타이오스도 패배한 이 마당에 내가 너희들을 무슨 수로 당하겠나. 조용히 사라져 준다면 나도 더이상 너희들을 괴롭히지 않겠다." 그렇게 약속을 한 우리는 에우리스테우스의 궁전에서 잠시 머물렀다. 신 탁에서 12달 동안 노역을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에우리스테우스 는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고, 이곳에 온지 12달이 되던 날 나와 헤라 클레스는 12달 동안의 노역을 마치고 티린스를 떠났다. 나와 헤라클레스는 남쪽에 있는 이올코스라는 도시로 향했다. 본래 난 헤 라클레스와 헤어져 에틱스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에우리스테우스 와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를 따라 이올코스로 가려는 것이다. ... 솔직히 말하면 에틱스로 가는게 무서워서였다.... 우리는 이올코스 시내로 들어섰다. 이올코스는 항구 도시라서 외부에서 배타고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할일없이 항구를 거닐던 헤라클레스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날 불렀다. "니트! 이것 좀 봐봐!" 가서 보니 항구 곳곳에 이런 내용의 방문이 붙여져 있었다. ┏━━━━━━━━━━━━━━━━━━━━━━━━━━━━━━━━┓┃ 모험을 좋아하는 젊 은이들이여 ┃┃ 아르고선을 타고 험난한 모험을 해보자. ┃┃ 이번 원정의 목표는 코르키스 왕국의 황금 양피를 가져오는 것이다. ┃┃ 패기와 정열을 가진 자, 도전하라! ┃┃ ┃┃ 장소: 이올코스 항구 동쪽의 '아름다운 배' 조선소 ┃┃ 모집인원: 최대 20명 ┃┃ 마감일: 6월 12일 ┃┗━━━━━━━━━ ━━━━━━━━━━━━━━━━━━━━━━━┛ 얼레? 아르고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데.....? "니트, 우리 이 원정에 참가하지 않을래?" 에엑?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유? "참가하자구요?" "그래. 어차피 할일도 없는데 뭐. 먹여주고 재워줄 지도 모르잖아." "부려먹기만 하면요?" "12달이나 노역일을 했는데 그 정도도 못 참니?" 헤라클레스는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허허.... 이거 거 절할 수도 없고..... 할일도 없는데 원정에나 참가해봐? "... 그러죠 뭐." "고맙다, 니트!" 내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기뻐했다. 기뻐하는 건 좋은 데.... 어깨 부러질 것 같아!!! 그 때였다. 누군가 내 이름... 아니, 이곳에서의 내 이름을 불렀다. "야, 너 니트 아니야?" 얼레? 누구지? 여자 목소리같은데? 이곳에서 날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텐 데.... 이상한 일이군. 난 고개를 돌려 날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목소리대로 젊은 여자였다. 머리카락은 길고 붉은색이었으며 허리에는 레이피어를 차고 활동하기 편한 셔츠와 갈색 바지를 입고 있는 소녀... 보다는 성숙해 보이는 여자. 얼라 리여?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소녀는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너, 나 기억 못해? 1년 지났다고 그새 까먹냐?" 으.... 분명히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인데.... 이 목소리도 들어봤고.... 도대체 누구지? 이런... 난 기억력이 나쁘단 말이다! 소녀는 화가 났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니트! 이 붉은 미소녀 전사를 모르겠다는 거야?!" 에? 붉은 미소녀 전사? 그거 누가 쓰던 말인데.... 허걱! 그, 그럼?! "아린?" "그래, 이제 기억나냐? 정확히 아드레날린이다!" 아린은 내 등을 세게 치며 말했다. 으악, 따거.... 이게 오랜만에 본 사 람의 등을 쳐? 죽고 싶어 환장했나..... 하여간 1년이나 지났는데 거의 달라진 점이 없군. 과격한 성격도 똑같다. 그런데 얘가 왜 여기있지? 바이올로 국에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 ▶ 번 호 : 0/3884 ▶ 등록자 : THEBUR ││ ▶ 등록일 : 1999년 11월 10 일 23:10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87~89 뜻밖의 재회 -1~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7.뜻밖의 재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55 게 시 일 :99/10/20 21:48:10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2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7 뜻밖의 재회 -1- 궁금해진 나는 아린에게 물었다. "너 왜 여기 있는거야?" "그거야 용병일 찾으려고 온거지." "용병일이라면 바이올로에 있어도 충분할텐데?" "이 붉은 미소녀 전사께서 좁은 곳에서 계속 살아야겠니? 이런 넓은 곳에 서도 이름을 날려야지~" 아린은 아주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할말이 없군. 하긴, 아린을 처음 만난 곳도 바이올로가 아닌 케미컬 국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이런 곳 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까 반가운걸? "누구야? 아는 사이야?" 내가 아린과 얘기를 주고 받는 것을 보고 헤라클레스가 다가와 물었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아린을 소개했다. "아린이예요. 아린, 이쪽은 헤라클레스야." "호호, 만나서 반가워요." "나도 반가워." 헤라클레스는 입이 째져라 웃었다. 하여간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 저러다가 큰코 다치지..... 아린은 뒤를 돌아보더니 누군가에게 손짓했다. "뭐해, 이리로 와!" 그러자 한 소녀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소녀였 는데, 어깨에 걸치는 손가방 같은 걸 메고 있었다. 분홍빛의 긴 머리칼이 참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얼굴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호... 아린이 이 런 소녀와 함께 다니다니.... 아린과 함께 다닐려면 이 소녀도 피곤하겠 다..... 얼레? 이 소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저 기억하세요? 니트 오빠.....?" 쿠엑... 니트 오빠?! 이곳에서 그런 말 할 사람은.....! "인티?" "네!" 내가 이름을 맞추자 인티는 얼굴에 하나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얘 가 인티라구? 못본 지 1년이 넘었지만.... 너무 변했다..... 키도 상당히 커진 것 같고, 더 성숙해 보이고.... 무엇보다 컷트형이었던 머리를 길게 기른 것이 변했어.... 그리고 수정 구슬도 어디다 내팽개치고..... 잠깐? 인티가 꽤 키가 큰 것 같은데.... 아직도 나보다 키가 조금 작잖아? 어엇? 그러고보니 예전엔 아린이 나보다 컸었는데 지금은 내가 더 크다....? 그 렇다면.... 내 키가 커진 것이구나! 우하하하하!!! "야야, 니트! 나한테도 소개시켜 줘야지!" 헤라클레스는 날 쿡쿡 찔렀다. 왜 이렇게 밝히시나? 남자가 체통이 있어 야지, 체통이.....! "이쪽은 인티, 이쪽은 헤라클레스." "안녕하세요?" "아, 안녕!" 입 찢어진다.... 저렇게 밝히다간 큰코 뿐만이 아니라 뒷통수도 깨지겠 군. 그런데.... 왜 아린과 인티가 함께 다니는 거지? "아린, 인티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야? 인티는 사제잖아?" "쯧쯧...." 갑자기 아린은 혀를 찼다. 얼씨구? 왜이래? 내가 뭐 잘못 물어봤냐? "됐어. 인티도 이제 어엿한 용병이 되었으니까." 얼라리여? 인티가 용병이 되었다구? 사제가? 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인티는 고개를 수그렸다. 그 때 아린이 내 등 을 빡 치며 말했다. "내가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까?" 커윽... 등 따거워.... 남의 등은 왜 때려..... "뭔데?" "유스타키오에 대한 거야." 유스타키오.... 하... 갑자기 옛날 생각이 떠오르는군. 보고 싶어진다... 참, 유스타키오의 아내 팀파니가 임신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린은 뜸을 들이려고 하다가 내 날카로운 눈총을 받자 마침내 입을 열었 다. "유스타키오가 아빠가 됐어. 남자 아이야." 유스타키오가 아빠가 됐다라.... 하하, 기쁘군. 내 실험(?)이 성공적이었 다는 뜻이니까..... 나 그냥 의료계로 진출할까? 그 때 내 뇌리로 갑자기 아세트의 영상이 떠올랐다. 제길... 아는 사람을 만나니까 생각이 나게 되는군.... 잊은 줄 알았는데..... "그런데... 아세트는 어떻게 됐어?" 난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아린에게 물었다. 아린은 괜시리 머리카락을 매 만지며 대답했다. "응... 루피니와 결혼했는데.... 지금 임신 중이야....." "그래...." 결국 그렇게 되었나? 뭐... 잘된 일이군..... 잘... 됐어..... 갑자기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침묵이 이어지자 헤라클레스는 당 황한 표정을 지었다. 침묵에 적응을 못하는군. 하하, 내가 지금 뭐하고 있 지? 분위기나 잡고 있고....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꺼야?" "뭐?" 갑작스런 내 물음에 아린이 반문했다. 난 다시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곳에서 뭐할꺼냐구." "응... 이 항구 곳곳에 원정 참가 모집을 하던데.... 그 원정에 참여할까 말까 생각 중이었어." 아린의 대답을 들은 헤라클레스가 굉장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잘됐네! 우리랑 같이 원정에 참가하자!" 그의 말에 아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너, 그 원정에 참가하려구?" "할일도 없는데 뭐." "그래? 음... 그럼 나와 인티도 참가하지. 좋아, 이것으로 결정!" 아린은 인티 쪽을 돌아보았고 인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좋다 는 뜻이군. 동료가 두 명 더 늘어서 기분이 좋구나! 헤라클레스, 아린, 인티, 그리고 나. 이렇게 네 명은 이올코스 항구 동쪽 에 있는 '아름다운 배'라는 조선소를 찾았다. '아름다운 배' 조선소 앞에 거대한 선박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큰 돛도 달려 있고 노도 있네? 뱃머 리에 이상한 나무가지가 꽂혀져 있군. 저게 뭐지? "헬, 저 나무가지는 왜 꽂아놓은 거예요?" "응, 그건 향나무 가진데, 장래의 일을 예언하고 사람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꽂아놓는거야." 그런가? 나무가지가 사람 목소리를 내? 믿을만한 얘기야? 그 때 한 노인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네, 이번에 원정을 나간다고 해서 참가하려구요." 내 대답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선소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 했다. "그럼 저 안으로 들어가게나. 그곳에 원정 주최인이 있으니." "네, 그럼." 나는 간단히 할아버지에게 인사하고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날 쫄래쫄래 따라왔다. 푸하하, 드디어 내가 리더가 된건가? 건물 자체는 일반 건물들과 다른 점이 없지만 내부의 가구들이 몽땅 치워 져 있고 방 한가운데에 큰 원탁이 하나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그 원 탁의 한쪽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20대의 잘생긴 청년. 윽... 여긴 왜 다 잘생긴거야.... 내가 위축되잖아!!! 그 청년은 방안으로 들어온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서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에... 원정에 참가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네 분이십니까?" "예." 청년은 우리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전 이번 원정의 주최자인 '이아손'입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아손이라.... 확실히 책에서 읽어본 이름이다..... 뭐하는 인간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읽은지 꽤 되서 말이야.... "전 니트구요, 이쪽은 헤라클레스, 그리고 옆에는 아린과 인티예요." "모두들 반갑습니다. 우선 테이블에 앉으십시오. 커피를 대접해 드리겠습 니다." 이아손이 가볍게 손뼉을 치자 벽에 나 있는 쪽문을 통해 한 시녀가 들어 왔다. 이아손은 시녀에게 당부했다. "커피 5잔을 가져오거라." 시녀는 조용히 고개를 수그리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근데 그리스 사람 들이 커피를 마셨었나? 뭐 내가 그런거 신경쓸 필요는 없지..... 기왕이면 밀크커피가 좋은데.... 아님 프림커피라도.....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8.뜻밖의 재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56 게 시 일 :99/10/20 21:48:51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3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8 뜻밖의 재회 -2- 우리 모두가 테이블에 앉자 이아손이 입을 열었다. "이번 원정의 목적은 알고 계십니까?" "아뇨. 정확한 것은 몰라요." 난 솔직히 답했다. 이아손은 별 반응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번 원정의 목적은 코르키스 왕국의 황금 양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황금 양피라면... 황금으로 된 양가죽인가요?" "그렇습니다. 황금 양피의 기원에 대해 아십니까?" 이아손은 날 쳐다보며 물었고 난 당연히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어보 였다. 이아손은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득한 옛날 테살리아에 아타마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 내에 대한 사랑이 식어 이혼을 하고, 이노라는 여인을 새 왕비로 맞아들 였죠. 전처 네펠레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는데, 새 왕비는 이 아이들을 미워하여 살해할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녀는 남편 몰래 곡 식의 씨앗을 모아서 불에 볶은 다음 농부들에게 건네주었죠. 농부들은 이 씨앗을 땅에 뿌렸는데, 싹이 트지 않아 온 나라에 흉년이 들었습니 다. 깜짝 놀란 왕은 사람을 보내 흉년이 든 원인이 무엇인지 무녀에게 가서 알아오도록 했죠. 왕비는 그 사람을 매수하여 왕에게 이렇게 말하 도록 했습니다. '왕자 프릭소스와 그 누이동생을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기근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라는 신탁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왕자와 그 누이동생이 희생의 제물로 제단 위에 뉘어지게 되었죠. 그 때 갑자기 금빛 털을 가진 양이 나타나 두 아이를 등에 업고 동쪽 하늘로 날아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 누이동생은 해협을 건널 때 양의 등에서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떨어져 버렸고, 왕자는 무사히 코 르키스 왕국에 도착하게 되었죠. 코르키스의 왕 아이에테스는 그를 반갑 게 맞이하고, 그 딸 중의 하나와 결혼시켰습니다. 프릭소스 왕자는 제우 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금빛 나는 양을 제물로 바쳤고 세상에 보기 드 문 황금빛 양피를 아이에테스에게 주었죠. 왕은 그것을 신에게 바친 숲 속에 보관하고, 잠을 모르는 용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지키게 하고 있습 나다.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 놀라워. 그 긴 내용을 막힘없이 술술 내뱉다니. "어느 정도 이해되긴 한데요, 왜 그 황금 양피를 얻으려고 하는 거죠?" 내 물음에 이아손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전 본래 이 이올코스의 왕위 계승자입니다. 그러나 숙부 펠리아스가 모 략으로 어릴 때 저를 산속에 버렸죠. 다행히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전 숙부에게 왕위 반환을 요 구할 생각으로 그를 찾아갔고, 그는 제가 황금 양피를 가져오면 왕위를 돌려줄 것이라 하더군요. 그렇게 된겁니다." "아... 그래서 왕위를 되찾기 위해서 황금 양피가 필요하단 거군요?" "그렇습니다." 기억이 날듯 말듯 하군. 이아손의 아르고선 원정인 것 같은데.... 구체적 인 내용은 모르겠다.... 역시 난 머리가 나쁜 건가.....? 그 때 시녀가 커피를 가져왔고 우리는 그 커피를 마셨다. 무지하게 썼다. 설탕이나 프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였던 것이다. 아린과 인티 는 그 커피를 맛보고 살짝 표정을 찡그렸지만 헤라클레스는 잘만 마셨다. 많이 마셔본 모양이군. 뭐 나도 이걸 계속 마시다보면 익숙해지겠지만.... 도저히 못 마시겠다..... 최악이야. 헤라클레스는 이아손과 한가한 잡담을 주고 받았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인티가 나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니트 오빠는 그동안 뭐했어요?" ".... 묻지마, 괴로워." 그러자 인티 옆에 앉아있던 아린이 끼어들었다. "뭐했길래 괴롭다는 거야?" "... 마굿간에서 잤다. 됐냐?" "뭐? 마굿간에서 왜 자?" "이유는 묻지마. 어쨌든 어렵게 살았다고 생각하면 돼." 내 대답에 인티와 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헤라클레스는 커피 에 취해서(?) 크게 떠들어댔다. 점잖아 보이던 이아손도 같이 떠들었다. 할말이 없군. 둘 다 똑같다..... 그 날 몇명의 사람들이 아르고선 원정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왔다. 아테네 에서 왔다는 테세우스, 스파르타의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 북풍의 아들 로 몸에 날개가 달린 제테스와 칼라이스 형제, 뛰어난 하프 음악가인 오르 테우스 등등.... 특히 스파르타에서 왔다는 카스토르와 폴룩스 형제에게 난 전쟁의 상황을 물었고, 그들은 스파르타의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상하게 에틱스는 전략을 세워 공격하지 않아. 무작정 공격만 하지. 그래서 우리 나라의 전략에 많이 당했지." .... 전략적 공격을 하지 않는다라.... 옥신의 말대로 에틱스의 국왕은 에틱스의 멸망을 바라고 있는걸까? 승산이 없는 싸움을 계속 하는 이유는 뭘까.... 알 수 없는 인간이야..... 그날 저녁, 소규모의 파티가 열렸다. 새로운 동료의 우의를 다지기 위한 거라나....? 어쨌든 모두들 술먹고 놀았다.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나와 인티 뿐이었다. 인티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물었다. "니트 오빠는 술을 못 마시나요?" "못 마신다기 보다는... 안 마시는 거지." "왜요?" "글쎄... 난 술먹고 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인간이라.... 그리고 술 마시고 주정부리는 모습도 싫고." "하지만 저 사람들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잖아요?" 난 아린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린은 술병을 들고 노래 부르고 있었다. 용병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술을 배우게 되겠지.... 저 정도의 술주정이면 봐줄만 하지. 하지만 난... 술을 마시고 이성이라는 제어장치가 사라지게 되면 어떤 행동을 할까..... "저들이야 신경쓰지 않겠지만 난 신경써. 그리고 술 마시면 건강에 나쁘 잖아.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병에 걸려서 고통스럽게 죽고 싶진 않거든." 인티는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윽... 얜 왜 내가 말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거야.... 주체성 좀 가져라, 주체성! "그런데 왜 머리를 기른 거야?" 난 인티의 핑크빛의 긴 머리칼을 가리키며 물었고, 인티는 자신의 머리카 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왜요? 머리 기르니까 이상한가요?" "아니, 잘 어울려. 머리를 기른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아뇨. 예전의 머리 스타일은 너무 어려보이는 것 같아서요." 인티는 어색한지 싱긋 웃었다. .... 정말 예쁘군. 1년전만 해도 조금 어 려보였는데 말이야. 쳐다보기가 겁난다..... "아, 하나 또 물어볼게. 왜 아린을 따라나선거야?" ".... 그냥.... 강해지고 싶어서요.... 전투에서 별 도움도 되지 못하는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었거든요...." 에... 그건 사제라서 그런 거 아닌가? 사제가 무슨 싸움을 하냐.... 그 때였다. 세 명의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중앙에 있는 사람은 키가 180정도 되어 보였는데 얼굴에 짧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 다. 수염만 아니라면 상당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허리에 검신의 길이 가 150cm정도 되는 긴 검을 차고 있었고 30대 중반의 나이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의 오른쪽에는 붉은색의 로브를 걸친 30대 초반의 남자가 손에 꽤 두꺼워 보이는 책을 들고 서 있었다. 겉표지 색깔이 갈색인 책이었는데 놀 랍게도 책 자체에서 빛이 발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난 숨을 멈추었다. 녹색의 로브를 입은 20대 후반의 청년. 초록색의 머리칼이 인상적이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크레졸을 가지고 있는 옥신이었던 것이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9. 뜻밖의 재회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62 게 시 일 :99/10/22 21:17:25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5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89 뜻밖의 재회 -3- 옥신은 날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이런... 그렇다면 일부러 찾아왔다는 소리인데..... 술에 취해 떠들며 놀고 있던 이아손이 그들 세 명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러분도 원정..에 참가하려고.. 꺽! 오셨습니까?" 추하군. 역시 난 술은 안 마실란다. 고상한 척 해야지~ 들어온 세 사람 중에서 옥신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파티 중인 것 같군요." "네.. 꺽! 죄송... 소개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러죠. 전 옥신입니다." 옥신의 대답에 뒤이어 빛나는 갈색 표지의 책을 들고 있는 붉은 로브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전 '플라톤'이라고 합니다." 얼레? 플라톤이라면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닌가? 이데아론을 주장했던? 세 남자 중에 가운데 있던 긴 장검의 검사가 말했다. "난 '마르크스'요." 커허헉! 마르크스? 사회주의 이론을 제시했던 인간? 내가 놀라는 사이 옆에 있던 인티가 내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마르크스라면 에틱스의 국왕 아닌가요? 제 조국을 멸망시킨 사람...." 그런가? 인티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것도 같은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군. 옥신이란 녀석이 같이 있으니까. 하지만 만약 저 마르크스라는 인간이 에틱스의 국왕이라면.... 자기 나라가 전쟁 중인데 왜 이리로 오겠 냐.... 헷갈리는군. 이아손은 세 명의 소개를 다 듣고 다른 동료들에게 그들을 소개시켜 주고 있었다. 옥신, 플라톤, 마르크스 세 사람은 술은 전혀 마시지 않고 소개가 다 끝나자 곧장 나한테 다가왔다. 윽.... 무서워..... 세 남자는 나와 인티 앞에 섰다. 옥신은 소매 속에서 크레졸을 꺼내들었 다. 어쭈? 평화와 장수의 돌을 이용해서 평화적으로 대화를 하시겠다? 또 치사하게 노는군. 붉은 로브를 입고 손에 빛나는 갈색 책을 든 플라톤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니트인가?" ... 어떻게 대답하지? 존댓말을 써야하나 반말을 써야하나? 갑자기 그게 신경쓰이네? 음...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니까 존댓말로 나가자. "그런데요." "그럼 붉은 구슬을 꺼내보겠나?" 플라톤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확실히... 이 인간들은 내 붉은 구 슬을 노리고 온 것이로군..... 개겨봤자 얻을 건 없을 것 같아서 순순히 바지 주머니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붉은 구슬은 계속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건 리소좀과의 반 응 때문이었다. 리소좀도 성물이니까. 붉은 구슬을 본 플라톤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확실한 성물이군. 그렇다면 자넨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이 뭔지 아는가?" "모르는데요." "이 책은 삼성물 중에 하나인 지혜의 마법서 '티탄'이라네." 지혜의 마법서 티탄? 저 빛나는 갈색 표지의 책이 마법서? 내가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살펴보고 있을 때 마르크스라는 남자가 목소 리를 쫙 깔고 물었다. "넌 정령 마법사라면서?" ... 옥신에게 들은 모양이군. "네. 그런데.... 당신이 정말 에틱스의 국왕 마르크스인가요?" 내 질문에 마르크스는 훗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렇다. 내가 에틱스의 국왕 마르크스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낮았기 때문에 나와 인티, 그리고 플라톤과 옥신 이 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난 또 질문했다. "국왕이 이런 데에 와도 되나요?" "그게 뭐 어떤가? 에틱스가 전쟁에서 이기든 말든 나하곤 상관없는데." "그럼 왜 전쟁을 하는데요?" "알고 싶은가?" "네." 마르크스는 이아손 등을 힐끗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와라." 그렇게 말한 마르크스는 조용히 건물 밖으로 나갔고, 플라톤과 옥신도 따 라 나갔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그러자 인티도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인티의 조국이 에틱스에 의해 멸망당했으니 전쟁을 벌인 이유를 듣고 싶은 거겠지..... 밖으로 나가자 '아름다운 배' 조선소 앞에 마르크스 등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도 무서워 보였다. 난 두려움 을 억누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마르크스는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다보 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전쟁을 벌인 이유는.... 에틱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다." 그건 옥신에게서 들은 거구.... 왜 멸망시키려고 하는지를 말하라구. 마르크스는 여전히 바다를 바라본 체로 말을 이었다. "5년전만해도 난 에틱스의 근위 기사였다. 에틱스의 키레네 공주를 가장 가까이서 보호했지. 공주는 날 사랑했고 나도 공주를 사랑했다. 그래서 깊은 관계까지 나눴다." 어유... 부러워라...... "하지만... 그녀는 곧 부유하고 권력이 강한 한 귀족 자제와 결혼했다. 결혼이 결정되던 날, 난 그녀에게 왜 결혼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멋지 게 살고 싶다고 말하더군. 나에게는 아무런 돈도, 권력도 없다면서. 난 또 물었다. 날 사랑하지 않았느냐고. 공주는 그 당시에는 날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귀족 자제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더군." 쩝... 여자에게 차인 건가? 불쌍하다면 불쌍한 인간이군. "그래서... 난 왕궁을 뒤집어 엎었다. 반란이었지. 날 따르던 녀석들과 함께 국왕을 몰아내고 내가 왕이 되었다. 그리고 키레네 공주에게 말했 지. 나와 결혼하자고. 하지만... 그녀는 코웃음을 치더군. 반란을 일으 킨 사람은 반란으로 망한다면서. 결국... 난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에틱스를 멸망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에틱스가 싫었으니까. 아니 , 정확히는 키레네 공주의 조상들이 세운 나라가 싫은 것이었다. 이제 내가 왜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겠나?" "뭐... 대충 알 것 같네요. 근데 왜 삼성물은 모으려는 거예요?" 내 질문에 마르크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날 쳐다보았다. "이 세계를 떠나기 위해서다." "왜요?" "공주가 살았던 이 공간도 싫으니까. 그녀와 전혀 무관한 곳에서 살고 싶 은 거다. 그래서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는 신비한 힘을 지닌 삼성물 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나원... 공주가 싫다고 이 세계도 싫다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나봐? 나와 마르크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마르크스 옆에 서 있는 플라톤과 옥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인티도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든 나는 마르크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지금 날 공격하지 않죠?" "후후... 옥신에게서 너에 대한 말을 듣고 널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지 금 붉은 구슬을 뺏을 생각도 없다. 내가 직접 나섰으니 언제라도 빼앗을 수 있으니까. 지금은 아르고선 원정에 참가해서 너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 날 무시하는군. 언제라도 빼앗을 수 있다 이거지? 그게 맘대로 될 것 같냐? 그리고 내 실력을 보면 아마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할걸? 난 그 유명한 8클래스 마스터란 말이다! .... 찔린다. 내가 무슨 8클래스 마스터냐.... 마력만 8클래스지.... 마 법 주문은 아는게 없어.... 아무래도 마법 주문 좀 많이 외워야겠다..... 그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크스 등은 전혀 수상한 짓을 하 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이아손 등과 친하게 굴었다. 처음엔 그들을 경계 하던 나는 그것이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느꼈고, 그래서 그들에 대한 경계 를 풀었다. 솔직히 붉은 구슬을 뺏기든 말든 나한테는 아무런 손해도 없었 으니까. ┌───────────────────────────────────┐│ ▶ 번 호 : 0/3884 ▶ 등록자 : THEBUR ││ ▶ 등록일 : 1999년 11월 10 일 23:11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0~93 아르고 선 원정 -1~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0.아르고선 원정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63 게 시 일 :99/10/22 21:18:09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0 아르고선 원정 -1- 6월 13일 아침, 마침내 아르고선이 출항했다. 목적지는 코르키스 왕국. 이올코스의 왕위를 되찾기 위한 이아손의 여정이었다. 난 생전 처음으로 배를 탔다. 그래서 당연히 배멀미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배멀미는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만 약간 어지러울 뿐이 었다. 아르고선에 탄 사람들 중에서 배멀미를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 었다. 모두들 배를 여러번 타본 모양이야..... 돈도 많어..... 맨 먼저 도착한 곳은 렘노스라는 섬이었다. 렘노스 섬에는 온통 여자만 살고 있었다. 원래는 남자들도 살고 있었는데, 그곳 여자들이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아서 남자들에게 버림을 받았고,그래서 반란을 일으켜 남자들을 몰살시켰다고 한다. 전에 에우리스테우스의 명령으로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구하러 갔을 때가 생각나는군. 아마존족도 여자들만 살고 있었지. 으... 끔찍해라..... 설마 여기도 아마존족처럼 남자만 보면 달려드는 곳은 아니겠지? 우리는 렘노스 섬에서 이틀 정도를 쉬었다. 렘노스 섬의 여자들은 아마존 족처럼 적극적으로 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아르고선의 대원들 중 상당수가 그 여자들과 관계를 맺은 것 같았다. 사실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렘노스 섬의 여자들과 같은 방을 썼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난 어떻게 했냐구? 설마 날 아르고선의 대원들하고 같이 취급하는건 아니 겠지? 난 이래뵈도 건전한 청소년이라구. 그래서 땅바닥에서 잤어. 노움이 흙과 돌을 모두 치우고, 사라만다가 옆에서 모닥불 역할을 하고, 나뭇잎들 을 이불 대신 덮었지. 꽤 잠잘만 하던걸?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어. 그렇게 렘노스 섬에서 이틀을 머무른 우리는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도중 에 거센 폭풍우를 만나 12일 동안 표류하게 되었다. 다행히 배는 크게 부 서진 데가 없었지만 식수가 동이 나버렸다. 폭풍우가 걷힌 뒤에 아르고선 은 트로야 부근에 있는 뮈시아라는 곳에 정박했다. 이아손은 아르고선 대원들에게 긴 나무통으로 만들어진 식수통을 주며 말 했다. "각자 그 식수통에 물을 담아 오십시오. 앞으로의 항해에서 그 식수통의 물로 각자가 갈증을 해결해야 하니까 알아서들 하십시오. 해지기 전에는 모두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아르고선은 해지기 전에 출발합니다. 늦게 오시면 못 타게 되니 시간을 지키십시오." 대원들은 알았다는 듯이 뿔뿔이 흩어졌다. 나원... 늦게 오면 못 탄다고? 정말 사악하군.... 기다리려는 생각도 하지 않다니...... "야, 니트! 같이 가자!" 아린이 인티를 데리고 나한테 왔다. 헤라클레스도 식수통을 들고 내 쪽으 로 걸어왔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거예요?" "음... 그냥 아무데나 가보자." "그러다가 길 잃어버리면요?" "넌 정령을 다룰 수 있잖아." 헤라클레스는 '너만 믿는다'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원... 내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지..... 헤라클레스는 울창한 숲 안으로 들어섰고 나와 아린, 인티가 뒤를 따랐 다. 숲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나는 헤라클레스만 믿고 졸졸 쫓아갔다. 하지만 샘이나 개울 같은, 물이 있는 곳은 나오지 않고 나무만 울창한 곳 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 헤라클레스만 믿다간 안되겠는걸? 차라리 내가 운디네를 불러서 물을 찾도록 하는게 낫겠다..... 헤라클레스에게 내 생각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아주 끈적끈적한 실 같은 것이 내 몸을 묶어버렸다. 난 비명지를 새도 없이 실에 의해 하늘 로 들어올려졌다. 헤라클레스와 인티, 아린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난 무엇 인가가 내 뒷통수를 강타함을 느끼고 정신을 잃었다. 으....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 거지? 머리가 아프다.... 난 눈을 떳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어둑어둑해진 저녁 하늘이었다.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내가 하늘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거 미줄 같은 것에 걸려 반듯하게 누워 허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허걱! 그럼 내가 거미들의 먹이가 되는 것?! 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나를 둘러싼 다섯 마리의 거대한 거미들 이 '맛있겠다'란 표정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 러나 그 녀석들은 쉽사리 접근하지 않았다. 내가 좀더 마음을 가다듬고 살 펴보니 내 주위에 세 정령들이 있었다. 실프, 운디네, 잭 오 랜턴.... 얼 레? 얘들이 왜 여기있지? 난 부른 적도 없는데?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몸의 감각이 점차 살아나자 내 가슴 위에 무엇인가가 올라가 있음을 느끼고 기겁하여 쳐다보았다. 그 무엇인가는 사 라만다였다. 사라만다가 가슴 위에 올라가 있음에도 그다지 무게가 느껴지 지 않았다. 사라만다는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내 얼굴 가까이 자기 얼굴 을 들이대었다. - 이제 깨어났냐? 얼렐레? 방금 이 녀석이 나한테 말을 걸은 거냐....? - 6시간이나 잤다. 위급 상황이니까 일어나. 허... 이거 내가 정신이 나갔나봐.... 사라만다가 나한테 말을 걸다니. "너 지금 나한테 반말이냐?" - 그럼 존댓말쓰리? "당연하지, 마!" - ...... 얼씨구? 대답을 안하시겠다? 그럼 정령계로 돌려보낸다!!! "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설명 좀 해봐." - 멍청하군. 보면 모르냐? 넌 지금 저 거대한 거미들의 먹이감으로 찍혔 다고. "그건 이미 알고 있고, 어째서 내가 이 거미줄 위에 걸려 있냐고." - 난 잘 몰라. 실프에게 물어봐. 난 그냥 실프가 도와달라고 해서 정령계 에서 네 마력을 이용해 이 세계에 있는 거니까. "그럼 너도 네 마음대로 정령계에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소리?" - 그렇게 되는군. 우씨~ 정령들이 제 마음대로 정령계에서 이 세계까지 드나들 수 있다면 난 도대체 뭐냐구..... 소환주로서의 역할이 없잖아..... - 마력을 빌려주잖냐. 사라만다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말했다. 물론 사라만다의 목소리는 육성 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신을 통해서 들려온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거였다.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자구." -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라만다는 내 가슴 위에서 내려오더니 불꽃을 내뿜었다. 사라만다가 내 뿜은 불꽃은 거미줄을 순식간에 태워버렸고, 나는 그대로 추락했다. 실프가 바람으로 날 안전하게 받아낸 순간, 기회를 노리고 있던 거대한 거미들이 일제히 배 부분에서 거미줄을 발사했다. 운디네는 물로 그 거미 줄을 차단했고, 잭 오 랜턴은 빛을 발사해 거미줄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내가 안전하게 땅위에 내려섰을 때 사라만다는 허공에서 떨어지다가 사라 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불꽃을 일으켜 내 몸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불꽃은 내 몸에 전혀 닿지 않고 내 몸을 묶고 있던 거 미줄만 태웠다. 홀가분해진 나는 주위를 경계했다. 다섯 마리의 거대 거미들이 땅위에 내 려와 나와 정령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쉽사리 덤벼들지 않는 걸로 봐 서는 내 정령들에게 많이 당한 듯 보였다. "실프, 어떻게 된거야? 설명 좀 해줘." 실프는 지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 주인님은 거대 거미의 거미줄에 붙잡혀 거미들의 소굴인 이곳으로 끌려 왔어요. 그 때 주인님은 거미의 공격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구요. 전 거미들로부터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다른 정령들을 불렀어요. 그리고 6시간 동안 거미들과 싸웠죠.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1.아르고선 원정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70 게 시 일 :99/10/24 07:48:25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2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1 아르고선 원정 -2- 허... 6시간 동안 거미들과 싸웠다구? 처절하네? "지쳐보이는구나, 실프." - 영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그래요..... 실프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정령계로 돌아가 쉬도록 해. 이제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 네. 그럼 몸조심하세요.....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정령계로 되돌아갔다. 난 노움을 불렀다. 노움은 날 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 허허, 네가 허공에 있어서 난 도와주지 못했다. 괜찮지? 얼라리? 이 녀석도 말을 하네? 실프만 그런 줄 알았더니 모두들 자기 마 음대로 이 세계를 드나들고 말도 할 수 있는 거야? - 그만큼 우리들이 성장했다는 소리지. 기분나뻐하지 말라구. 노움은 '성장했다'라고 말할 때 상당히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음... 왠 지 저 면상을 박살내고 싶군..... 어떻게 보면 귀엽지만. "어쨌든 저 거미를 물리칠 방법은 없냐?" - 글쎄.... 그건 주인인 네가 알아서 해야지. 어쭈? 네가 언제 날 주인으로 인정이나 해줬냐? 결정적일 때 주인 타령을 하다니.... 죽을려고 숨고르기하냐? 그러는 사이에 거미들은 서서히 접근해왔다. 주위가 어두웠기 때문에 확 실한 식별이 불가능했다. 으... 어떡하지? 검도 못다루는 내가 거대 거미 다섯 마리를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역시 이 자리를 피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비행 마법을 써야..... 근데... 난 그 주문을 몰라.... 이런... 다음부터는 불완전 주문이라도 외워야겠다.... 그 전에 우선 살 아남아야 하겠지만...... 난 리소좀을 빼들고 네 정령들에게 당부했다. "난 무조건 뛸테니까 너희들이 날 엄호해. 알았지?" 내 말에 사라만다가 띠꺼운 표정으로 날 올려다 보았다. - 그게 작전이냐? - 한심하군. 옆에 있던 노움이 맞장구쳤다. 이것들이....? "시키는 대로 해, 임마! 자꾸 엥기면 계약 파기해버린다!" 내 말에 사라만다와 노움은 저희끼리 수군댔다. - 치사하고 드러운 녀석 - 저게 주인이라니...... .... 내가 정말 쟤들의 주인일까.....? 아무래도 종 같아..... "간닷!" 난 힘껏 소리친 후에 아무 방향이나 잡고 무작정 뛰었다. 내가 뛰자 거미 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뭔가 희끗한 것이 나에게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거미줄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몸은 생각보다 반응이 느렸다. 촤악-- 작은 물의 기둥이 거미줄을 막아내었다. 운디네로군. 거미들이 다시 공격 하기 전에 어서 뛰어야겠다! 타타탁--! 난 열심히 뛰었다. 내 앞을 가로막는 나무가지들을 리소좀으로 쳐내면서 최대한 빨리 달렸다. 그러나 달리기 실력이 형편없는 난 거미들의 무수한 공격을 막았고, 정령들이 공격로에 갑자기 나타나 공격을 차단함으로써 난 무사할 수 있었다. 이 세계로 맘대로 올 수 있으니 얘들이 수시로 드나들 면서 상대를 공격하는군..... 무시무시한 넘들..... 한참을 달렸을 것이다. 주위는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 르고선이 먼저 출발했으면 어쩌지? 날이 어두워지면 떠난다고 했는데..... "죽어랏!" "타핫!" 갑자기 들려오는 기합소리. 엇... 그렇다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열심히 달려간 끝에 마침내 숲을 벗어날 수 있었 다. 내가 도착한 곳은 아르고선이 정박해있는 곳. 다행히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깐, 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절할 뻔했 다. 엄청난 수의 거대 거미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십수 마리에 불과했 지만 그 덩치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수로 보였다. 그 거대 거미들이 아르고 선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고선의 대원들이 그 거대 거미들과 싸 우고 있었다. 그 중엔 아린과 인티의 모습도 보였다. "키에엑--" 거미들은 괴성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그러나 숲에서 거미들이 하나둘씩 기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거미의 수는 거의 일정한 상태였다. 난 아르고 선 대원들을 상대하느라 뒤가 허술해진 거미 녀석들을 리소좀으로 쑤셔버 렸다. "키에에엑---" 거미 녀석이 배 쪽에서 녹색 피를 뿜으며 괴성을 질렀다. 그 녀석이 나한 테 공격을 가하기 전에 난 재빨리 대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내가 간 쪽은 아린과 인티가 있는 곳이었다. "아! 니트 오빠!" 인티가 날 알아보고 소리쳤다. 인티는 손에 이상한 하얀 구슬을 생성시켜 거미들에게 던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 구슬에 맞은 거미들은 검은 재를 내 며 타들어갔다. 옆에 있던 아린은 마법원진을 왼손에 그려놓고 오른손에는 레이피어를 든채 거미와 싸우고 있었다. 내가 아린과 인티에게 다가갔을 때, 아르고선의 선장격인 이아손이 큰 목 소리로 외쳤다. "모두 떠납시다! 더이상 버틸 힘도 없소!" 그렇게 말한 이아손은 거미 한 마리를 가볍게 죽인 후에 아르고선에 올랐 다. 그러자 다른 대원들도 그를 따라 배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인티,아린도 곧장 배 위에 올랐 다. 먹이감(?)들이 도망가자 거미들은 필사적으 로 배 위로 오르려 했다. 우린 그런 거미들을 막으며 배를 출발시켰다. 촤아아-- 배는 파도를 가르며 출발했다. 아르고선에 매달렸던 거미들이 바다에 퐁 당퐁당 빠졌다. 배 위에 오른 마지막 거미 한 마리를 제거했을 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쉴 수 있었다. 배가 해안가에서 꽤 떨어졌을 때, 갑자기 아 린이 비명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악! 그러고보니 헤라클레스가 타지 않았어!" 에? 헤라클레스가 안 탔다구? 난 아린을 쳐다보았고 아린은 날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거미들에게 잡혀간 후에 우리도 공격을 받았어. 너무 많은 수라 상 대할 수가 없어서 우선 아르고선으로 피하기로 했지. 하지만 아르고선도 거미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고, 물을 뜨러 갔던 대원들도 거미들의 공격 을 받고 모두 돌아와 있는 상태였어. 처음에 이아손은 거미들을 몰살시 키라고 말했어. 아직 물을 뜨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까. 헤라클레스는 널 찾겠다고 혼자서 숲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한참 후에 네가 온거고." 그런데 이아손이 배를 출발시킨 지금 헤라클레스는 배를 탈 수 없다? 이 런! 헤라클레스는 왜 숲에 들어간거야! 내가 그렇게 쉽게 죽을 인간이야? 난 이아손에게 뛰어가 소리쳤다. "아직 헤라클레스가 못 탔어요!" 그러나 이아손은 냉담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란 소립니까?" "그게....." "그는 시간에 늦은 것입니다. 당신도 늦게 왔다면 이 배를 못 탔을 겁니 다. 헤라클레스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위험한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 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난 할말이 없었다. 그저 헤라클레스가 아직 있을 숲 쪽을 쳐다보았을 뿐. 그런 내 뇌리에 불현듯 이런 구절이 떠올랐다. - 아르고선의 대원들 중에는 헤라클레스를 따라온 휠라스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원정대가 트로야 부근에 있는 뮈시아라는 곳에 당도했을 때 휠 라스는 식수를 구하기 위해 단지를 들고 뭍으로 올라갔다. 그가 숲속의 샘터에 이르러 물을 뜨려고 엎드린 순간 물속에서 손 하나가 나와 소년 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소년의 아름다움에 반한 샘의 님프들이 그를 잡 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한참을 기다려도 소년이 돌아오지 않자 숲속으로 그를 찾 아나섰다. 그는 애타게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숲속을 헤매고 다녔지만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자연히 배의 출발은 늦어지고 대원들이 그만 떠나자고 재촉했지만 헤라클레스는 조금도 단념할 기색을 보이지 않았 다. 결국 아르고선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헤라클레스와 소년을 남겨둔 채 출범하고 말았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2.아르고선 원정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71 게 시 일 :99/10/24 07:49:03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2 아르고선 원정 -3- 이런.... 그렇다면 헤라클레스를 따라갔던 휠라스라는 미소년이 '나'고,소년의 미모에 반해 그를 잡은 샘의 님프들이 '거대 거미'.....? 내용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 난 정령을 불러 헤라클레스의 위치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나 정령들 중 누구도 내 부름에 응답해 주지 않았다. 정령계에서 노움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 네가 하도 부려먹어서 모두들 자고 있다. 졸리니까 깨우지 마라. 아흠~ .... 전혀 도움이 안되는 녀석들..... 촤아아-- 아르고선은 경쾌하게 바다를 가르며 전진했지만 내 마음은 결코 경쾌하지 못했다. 아린과 인티도 아무 말없이 헤라클레스가 있는 뮈시아 쪽을 쳐다 보았다. 제길.... 결국 이렇게 헤라클레스와 헤어지는 건가...... 부족한 식수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얻었다. 그러나 그 양은 지극히 적었 기 때문에 나와 옥신이 물의 정령을 이용해서 바닷물의 불순물들을 걸러 증류수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아르고선의 대원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수 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어려운 항해 도중 아르고선은 트라키아 지방에 닿았다. 해안가에 서 한 노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원들이 모두 내리자 꾀죄죄한 옷 을 입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잘왔소, 날 구원해줄 분들이여." 얼레? 그게 뭔소리여? 저 영감 혹시 노망든거 아냐? 이아손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희가 노인장을 구원하다니요? 무슨 소립니까?" 꾀죄죄한 노인은 고개를 들어 이아손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꺼풀은 닫혀있었다. 얼라리? 눈을 왜 감고 있지? "난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부터 예언하는 능력을 받아 태어났소. 그러나 그 능력을 남용한 까닭에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시력을 잃어버렸다오. 또 괴조(怪鳥) 하르피이에게 매일 시달리고 있소. 하르피이를 제거해 준 다면 그대들의 앞날을 예언해 주겠소." 노인은 간절한 표정으로 이아손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 바보 아니야? 예언 능력을 남용해서 그런 벌을 받았다면서 하르피이를 제거해 주는 조건으로 장래를 예언해 주겠다고? 쯧... 그러니까 벌받지..... 이아손은 노인의 처지에 동정을 느끼는지 이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하르피이들은 어딨습니까?" "나도 모르오. 단지 내가 식사를 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음식을 채간다 오. 여러분들은 그 순간을 노려 하르피이들을 공격하면 되오." 노인의 말에 이아손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곧이어 간이 식탁이 준비되고 그 위에 음식 몇 개를 마련했다. 자신을 피네우스라 밝힌 노인은 천천히 식탁에 앉았다. 이아손과 그 대원들은 긴장하며 하르피이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저 그런 그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피네우스 노인이 막 음식을 집어들고 먹으려는 순간, 하늘 위에서 대여섯 마리의 하르피이들이 갑자기 나타나 음식을 채갔다. 대기하고 있던 북풍의 아들 제테스와 칼라이스 형제가 하르피이들을 쫓아갔다. 하르피이들이 빨 리 날아가서 정확히는 보지 못했지만 생김새는 대충 알아보았다. 여자 얼 굴에 새의 몸집을 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하르피이들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뒤를 쫓아간 두 형제를 제외하고 다른 대원들은 넋놓고 둘이 하르피이들을 처리하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었다. 잠시후 제테스와 칼라이스 형제가 돌아와 이아손과 피네우스 노인에게 상 황을 설명했다. "우리가 하르피이들을 죽이려는 순간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나타나 '그 하르피이들은 제우스신이 길들였기 때문에 죽이지 마시오'라고 했습니 다. 대신 피네우스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맹세했구요." 그의 말을 들은 피네우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소. 이제부터는 편히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구먼." 피네우스 노인은 기분이 좋은지 잠시 껄껄 웃다가 이아손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지나게 될 흑해 어귀에는 두 개의 커다란 암석이 있 소. 그 두 암석은 수면에 떠서 동요하다가 그 사이로 배가 지나가려고 하면 서로 맞부딪쳐서 배를 박살낸다오. 그 곳을 무사히 통과하려면 비 둘기를 먼저 그 암석 사이에 날려보내 비둘기가 암석 사이를 무사히 빠 져 나가고 난 후, 암석과 암석이 떨어지는 기회를 포착하여 힘껏 노를 저어 지나가면 괜찮소. 그럼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노인장도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피네우스 노인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아르고선은 코르키스 왕국을 향해 출발했다. 코르키스 왕국에 가기 위해서는 흑해 어귀를 지나쳐야 했 다. 피네우스 노인의 말대로 흑해 어귀에는 두 개의 커다란 암석이 떠 있 었다. 저 사이로 뭔가가 지나가면 암석이 맞부딪친단 말이지? 이아손은 피네우스 노인의 말대로, 잡아온 비둘기를 암석 사이로 날려보 냈다. 비둘기는 약간 휘청이는 듯한 포즈를 취하면서 날아갔다. 어째 저 비둘기 불안하다....? 왜 저렇게 엉성하게 날지? 오랜동안 날지 못하도록 잡아놔서 그런가? 비둘기가 암석 사이를 날아갈 때, 두 암석이 굉장한 속도로 맞부딪쳤다. 콰앙--! 굉장한 충돌음이 발생한 후에 이아손은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힘껏 노를 저어라--!" 그의 말대로 대원들은 힘껏 노를 저었다. 아니, 저으려고 했다. 인티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비둘기가.....!" 나를 비롯한 아르고선 대원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막 떨어지려고 하는 암 석을 쳐다보았다. 그런 우리의 눈에 완전히 피떡이 되버린 비둘기가 바닷 속으로 추락하는 장면이 들어왔다. 비둘기의 피가 바닷물을 적셨다. 그 광 경에 대원들은 노 젓는 것을 멈추고 말았다. "어, 어떻게 된거지? 피네우스 노인의 말대로라면 비둘기가 무사히 빠져 나가고 난 다음에 노를 저어 나가라고 했는데......?" 이아손은 멍청한 표정으로 비둘기의 핏자국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마르 크스, 옥신, 플라톤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으... 역시 비둘기가 비틀거리며 난 것이 문제였어..... 그런데 어째 얘기 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알기로는 비둘기가 무사히 빠져나가고, 아르고선 도 그 암석 사이를 잘 빠져나갔는데? 대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완전히 벌어진 암석 두 개를 바라보고 있을 때,붉은 로브를 입은 플라 톤이 이아손에게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내가 마법으로 저 암석 중 하나를 부수어 버리겠습니다. 대원들 중에서 마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남은 하나의 암석을 부수어 주길 바랍니다." 그의 말에 대원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중에 아테네에서 온 테세우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마법사가 또 누가 있단 말이오?" 얼씨구? 마법사가 없긴 왜 없어. 내가 있잖아? 플라톤은 테세우스의 질문에 미소를 띠더니 나와 아린을 쳐다보며 말했 다. "저기 두 분이 계시잖습니까." "......?" 대원들은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세우스가 또 입을 열었다. "저 소녀가 마법사? 그런데 왜 레이피어 들고 설치지? 게다가 저 약해 보 이는 소년이 마법사라구? 정령 마법사 아니었어?" '왜 레이피어 들고 설치지?'란 말을 들은 아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열 받은 아린은 허공에다 마법원진을 빠르게 그렸고, 그 중앙을 손바닥으로 강타하며 소리쳤다. "파이어 볼(Fire Ball)!" 제 목 :[사이케델리아] 93.아르고선 원정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79 게 시 일 :99/10/26 21:33:58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1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3 아르고선 원정 -4- 아린의 마법원진에서 사람 얼굴만한 크기의 불덩어리가 발사되었다. 불덩 어리는 테세우스의 머리를 넘어 암석 사이에 떨어졌다. 쾅--! 물 속에 떨어진 파이어 볼은 그대로 폭발했다. 그 여파로 배는 암석에서 조금 멀리 밀려났다. 멍청히 서 있던 나는 하마터면 배 바닥에 드러누울 뻔했다. 휴~ 요즘들어 순발력이 좋아진 것 같다..... 위험했어~ 그나저나 암석 사이로 파이어 볼이 떨어졌는데도 암석들은 움직이지도 않 는군. 도대체 어떤 것이 지나가야 저 암석들이 맞부딪치는 거야? "이제 내가 마법사란 것을 알았겠죠?!" 아린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대원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여전히 날 의심하며 물었다. "하지만 저 소년은 정령 마법사......"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플라톤이 테세우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렇게 잡담할 시간 없으니 제가 먼저 암석을 박살내겠습니다." 플라톤은 손에 들고 있던 빛나는 갈색 표지의 책,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펼쳤다. 오... 저 녀석도 마법 주문을 외우지 못한 모양이군. 나와 비슷한 녀석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원하는 주문을 찾아냈는지 플라톤은 몇번 입을 웅얼거린 후에 책을 덮었 다. 그리고는 왼쪽 암석을 향해 섰다. "빛과 어둠의 창조자, 소멸의 주관자여. 그대가 궁극으로 추구하는 뜻을 내가 받드노니..... 나에게 힘을 빌려주소서.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 리는 그 위대한 힘을!" 플라톤은 왼손을 들어 왼쪽의 암석을 향해 뻗었다. 그 순간, ........ 그 어떤 소리도, 그 어떤 파장 도 없었다. 너무나 완벽하게, 너무나 자연 스럽게, 암석은 천천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 플라톤은 길게 한숨을 쉬며 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옥신이 그를 부축하며 말했다. "너무 무리하셨군요. 상당히 많은 마력을 소모한 것 같은데요?" "후... 그렇네. 7클래스를 소모했지......" 플라톤은 배 난간에 기대어 힘겹게 일어났다. 아르고선 대원들은 모두 넋 나간 표정으로 암석이 있던 자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 암석이 깨끗하게 박살나 버리다니..... 아무래도.... 저 암석을 이루고 있던 원소들의 결합을 끊어버린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말끔히 처리하냐구..... "이제... 네 차례다...." 플라톤이 날 보며 말했다. 얼라리? 나보고 저 암석을 부수라구? 나에겐 그런 엄청난 마법이 없는데..... 어쩌지? 그냥 파이어 볼 하나 날릴까? 음... 한 번 시도라도 해보지 뭐. 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내가 선실 안으로 들어가자 인간들이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설마 내가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하는건 아 니겠지? 배정받은 방안에 있던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든 나는 곧장 갑판 위로 나 왔다. 대원들이 전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난 그들의 눈빛을 무 시하며 연습장을 펼치고 화구 마법인 파이어 볼의 주문을 찾았다. 완전 주 문이 아니면 저 암석이 박살날 리가 없으므로 완전 주문을 찾았다. 이런... 역시 마법 주문 좀 외워야지 안되겠어.... 일일이 찾는거 귀찮다 .... 하지만 외우는 것도 귀찮구..... 우씨..... 30초 정도 걸려 주문을 찾아낸 나는 뛰어난 머리를 이용해서 10초만에 주 문을 외웠다. 마법 쓰고 나면 잊어먹겠지만 중요한 건 지금이니까~ "어둠을 밝히는 절대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자, 그 양면 성을 지닌 불이여. 그대의 힘을 나의 손 끝에 모아 찬란한 불의 공으로 타오르라." 화르르륵---! 내 오른손끝에 주먹만한 파이어 볼이 형성되었다. 파이어 볼은 맹렬한 불 꽃을 내며 마구 요동하고 있었다. 그 때 내 귀로 이런 말이 들려왔다. "뭐야, 저 불꽃은? 저렇게 작아서 뭘 하겠어?" 어쩔시구리.... 날 무시하는 거냐? 파이어 볼 완전판을 본 적이 없나봐? "파이어 볼." 난 그렇게 작게 말하며 남은 암석을 향해 손을 떨쳤다. 그러자 내 5클래 스의 마력을 담은 파이어 볼이 빠른 속도로 물살을 가르며 암석을 향해 날 아갔다. 와.... 멋지다! 이걸 사진으로 찍어야 하는데! 아차차! 저 파이어 볼이 터지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텐데! "옥신, 정령으로 이 배를 보호해요. 폭발이 클테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파이어 볼은 암석에 닿았고, 아주 잠시후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아앙--! 암석 전체가 파이어 볼의 폭발 범위에 들어갔다. 그리고 폭발의 영향으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아르고선을 집어삼키려 했다. 옥신은 크게 놀라 급 히 물의 중급 정령인 일란을 소환했다. 갈매기 모양으로 생긴 일란은 물로 이루어진 푸른 날개를 퍼덕였고, 그러자 일란 앞에 거대한 물의 장벽이 솟 아올랐다. 웃... 저 물의 장벽 때문에 앞이 안 보여!!! 물의 장벽이 없는 옆쪽으로 상당히 거대한 파도가 지나갔다. 일란은 꽤나 오랜동안 물의 장벽을 유지시켰다. 대략 1분여 쯤 지났을 때, 물의 장벽이 거두어졌고 일란은 곧장 사라졌다. 그래서 앞을 살펴볼 수 있었다. 허걱.... 반쪽만 박살나다니.... 아직도 절반이나 남았잖아? 5클래스로는 어림없다는 소린가? 남은 마력은 3클래스.... 3클래스로 저 절반만 남은 암석을 박살낼 수 있을까? 걱정되네.....? "호호호! 역시 넌 안돼! 이제는 이 몸이 나설 차례다!" 아린이 호쾌(?)하게 웃으며 내 앞으로 나섰다. 아린은 날 향해 고개를 돌 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내가 피땀흘려 노력한 결과를 보여주겠어! 5클래스를 마스터한 붉은 미소녀 전사 아드레날린님의 실력을!" 오... 그새 5클래스를 마스터한 모양인데? 맨처음 케미컬 국에서 만났을 때는 아린이나 나나 4클래스였는데 말이야. 얼레? 그러고 보니 난 그동안 4클래스를 더 마스터한 거잖아? 오... 내가 아린보다 더 뛰어나다니! 우캬 캬.... 역시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수련한 보람이 있었어. 아린은 절반밖에 안 남은 암석을 향해 섰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허공에다 마법진을 그렸다. 음... 전에 흑기사에게 선물했던 양진합일인가 뭔가하는 기술인가? 그러나 아린은 허공에다 그린 두 개의 마법진 위에 또 하나의 마법진을 그렸다. 그래서 세 개의 마법진은 삼각형을 이루게 되었다. 얼라리? 마법 진을 세 개나? 도대체 어떤 기술이길래.....? "삼원진 합일(三圓陳 合一)!" 아린은 밑에 있던 두 마법진을 포개고 난 뒤, 남은 하나의 마법진을 다시 그 위에 포갰다. 그 순간 엄청난 마나의 공명이 느껴졌다. 어... 이건 일 전의 양진합일보다 훨씬 공명 정도가 강한데? 세 개의 마법진을 포갠 아린은 양손바닥으로 포개진 마법진 정가운데를 강타하며 소리쳤다. "간닷! 트리플 스크류 라이트닝(Triple Screw Lightning)!" 눈앞이 번쩍했다. 세 줄기의 번개가 서로 마구 뒤엉키며 암석을 향해 날 아갔다. 세 줄기의 번개가 바다를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 다. 번개가 암석에 닿는 순간, 강렬한 빛이 우리의 시야를 차단했다. 난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이 내 귀를 강타했다. 콰아앙---! 빛이 사라지자마자 난 고개를 들어 암석을 확인했다. 암석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웃... 정말 대단하다.... 얼라리여? 그런데 폭발의 여파가 거의 없네? 전격 마법이라 그런가? 어쨌든... 부럽다..... 나두 괜 히 원진 마법을 배우고 싶어진다..... ┌───────────────────────────────────┐│ ▶ 번 호 : 0/3884 ▶ 등록자 : THEBUR ││ ▶ 등록일 : 1999년 11월 10 일 23:13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4~100 마녀 메디아 -1~7-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4.마녀 메디아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80 게 시 일 :99/10/26 21:34:37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1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4 마녀 메디아 -1- 쿠당! 갑자기 아린이 갑판에 드러누웠다. 아린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학학... 나 죽네....." ... 이번에도 뻗어버리냐.... 하여간 양진합일이든 삼원진 합일이든 쓰러 지기는 마찬가지로군. 왠만하면 마력 좀 남겨라..... 난 연습장을 뒤적이며 회복 마법 주문을 찾았다. 아니, 주문을 찾기 전에 주문이 떠올라서 연습장을 덮고 아린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회복의 손이여, 그대의 힘으로 체력을 되찾게 하라." 잠시 후, 회복 마법을 받은 아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음... 멀쩡 히 일어나는군. 뭐 2클래스를 퍼다 줬으니 멀쩡해야지.... 에... 이제 1클 래스의 마력밖에 안남은 건가? 쩝... 8클래스나 마력을 축적해도 완전 마 법 몇 개 쓰면 남는게 없어..... 8클래스 이상의 마력을 모으는 방법이 정 말 없을까? 분명히 있을텐데..... "야, 니트!" 아린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야리꾸리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얘가 갑자기 왜이래? 뭐 잘못 먹었냐? 마력을 너무 공급해줘서 정신 착란을 일 으킨 겨? "너... 도대체 몇 클래스까지 마스터한거야? 방금 전에 네가 쓴 파이어 볼은 거의 5클래스 수준이었다구.... 그런데.... 회복 마법까지 쓰고... 말해봐... 어서....." 허걱...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말해보라구? 제발 얼굴 좀 풀어라. "에... 마력만 8클래스야." "8... 클래스?"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린의 표정이 더욱 기묘해졌다. 억... 충격먹었 나봐... 이를 어쩐다냐..... "아아악!!!" 갑자기 아린이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이건 말도 안돼! 내가 5클래슨데, 네가 8클래스라니!!! 으아아아악!!!" ... 누가 얘 좀 말려줘..... "아린 언니, 진정해요, 진정!" 아린이 폭주(?)하자 인티가 아린을 말리느라 진땀뺐다. 흘... 저런 애랑 같이 여행 다녔다니.... 인티도 참 불쌍타..... 한동안 폭주하던 아린은 기운이 다 빠졌는지 갑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리고는 무릎을 모아 머리를 파묻었다. 어억.... 설마.....? "이잉... 8클래스라니.... 난 5클래스 밖에 안되는데.... 흑흑..." 아린은 머리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흐느꼈다. 뭐 저렇게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냐.... 화내다가 울다니..... 당황스러워..... 설마 진짜로 우는건 아니겠지? 난 아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열었다. "야, 아린. 난 하루에 10시간씩 마법 수련해서 그런거야. 넌 용병일 하느 라 마법 수련할 시간이 거의 없잖아? 그런데도 5클래스를 마스터했으니 대단한거지." "... 정말?" 아린은 눈물젖은 눈을 들어 날 쳐다보며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고 그 순간 아린은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웃어제꼈다. "호호호! 그럼 그렇지! 이건 단순히 수련시간이 부족해서 였다구!" ... 울다가 웃다니.... 실로 가공할 성격이다..... "출발!" 이아손의 외침에 아르고선의 돛이 올려졌고, 바람이 흑해 쪽으로 불고 있 었기 때문에 배는 흑해 어귀를 지나 흑해로 들어섰다. 에틱스의 국왕인 마 르크스가 나한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놀랍군. 어린 녀석이 벌써 8클래스 마스터라니. 플라톤도 아직 7클래스 밖에 이루지 못했는데. 하여간 네 실력 구경 잘했다. 후후." 얼레? 일부러 내가 실력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준 듯한 느낌이 드는데? "혹시... 비둘기에게 무슨 짓을 했어요?" 내 물음에 마르크스는 가식적으로 '아'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비둘기 날개에 조금 손을 봐줬지. 비틀비틀 잘 날았잖아? 후후." ... 역시 저 인간 짓이었군. 이유는 내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어서일테지? 내가 띠꺼운 눈으로 올려다보자 마르크스는 말머리를 돌렸다. "흑해 어귀에 있던 암석을 박살내 버렸으니 앞으로 코르키스 왕국도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겠군. 코르키스 왕국은 물자도 풍부하고 보석들도 많으 니까 말이야. 거의 수백년 간을 흑해 연안에서 안전하게 살아왔던 코르 키스 왕국의 군사력은 거의 형편없겠지. 후후. 재미있을 것 같군." 그 때 아린도 마르크스의 얘기를 들었는지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뻔뻔스럽군!" "그런가? 후후, 난 그냥 즐기고 싶을 뿐." 마르크스는 사악한 미소를 띠우며 옥신과 플라톤에게로 향했다. 우리는 그냥 잠자코 있었다. 다른 대원들에게 알려봤자 헛수고라는 느낌이 들어서 였다. 그리고 사실 알리는 것도 귀찮아...... 순풍이 불었기 때문에 아르고선은 금방 흑해 연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배에서 내린 대원들은 코르키스 시 안으로 들어가 아이에테스 국왕의 알현 을 신청했고, 국왕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르고선의 대원들 중에서 이아손만이 알현실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궁전 밖에서 노닥거리며 이아손을 기다렸다. 인티는 궁전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을 터트렸고, 아린은 길거리에 나가 열심히 사먹었다. 난 움직이기 싫 었기 때문에 궁전 성문에 등을 기대고 마법 주문을 외웠다. 음... 역시 난 모범적인 마법사야.... 약 5분 후에 이아손이 궁전 밖으로 걸어나왔다. 전에 나와 아린의 실력을 의심했던 테세우스가 급히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했소?" "음... 황금 양피를 가져가려면 먼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로부터 받은 두 마리 황소에 멍에를 씌워서 땅을 간 다음, 그 위에다 용의 이빨을 뿌 리고 그 땅에서 튀어나오는 군사들을 모두 베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꽤나 까다롭겠군....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황소라면 결코 만만치 않 을테고.... 게다가 용의 이빨로 이루어진 군사들을 베라니....." 테세우스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황소들 이 까다로운 상대인가? 그런데 용의 이빨로 이루어진 군사들? 그걸 한문으 로 풀이하면 용아병(龍牙兵)?! "그래, 이제 어떻게 할거요 이아손?" "아무리 어렵더라도 황금 양피를 가져갈 생각입니다. 그러니 아이에테스 의 제안을 받아들여야죠." 이아손은 제안을 수락했다고 말하며 대원들을 전부 모았다. 대원들이 전 부 모이자 이아손은 아이에테스 국왕이 내세운 조건을 들려주며 말했다. "날짜는 내일 모레입니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라 생각되므로 자신의 안전 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분들은 아르고선에서 기다리십시오." .... 이아손도 아주 사악하게 노는데? 저런 걸 원천봉쇄의 오류라고 하던 가? .... 아닌가....?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발을 빼면 '자신의 안전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거지..... 아무도 발을 빼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아손의 그런 말이 아니더라 도 그들은 모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을 빼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을 뭉게버리는 것이니까. 대원들은 궁전에서 가까운 여관을 잡아놓고 휴식을 취했다. 난 옥신과 같 은 방을 쓰게 됐다. 옥신은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친한 척 굴었다. "하하, 걱정 말라구. 붉은 구슬과 리소좀은 뺏지 않을 테니까. 그건 마르 크스님이 바라시는게 아니거든. 그 분의 실력이면 언제든지 뺏을 수 있 는데 내가 뭣하러 그런 짓을 하겠냐. 맘 푹놓고 쉬어라." ... 저렇게 말하는게 더 수상해.... 못믿겠어..... 어쨌든 그렇게 여관에서 쉬게 된 나는 마법 주문 외우는 것도 지겨워져서 여관 밖으로 나갔다. 내가 막 여관문을 나섰을 때 내 눈앞에 누군가 서 있 었다. 상당히 뛰어난 미모를 소유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였는데 머리 카락은 길고 검었으며 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5.마녀 메디아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140 게 시 일 :99/10/28 21:51:29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5 마녀 메디아 -2- 여자는 여관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내가 문을 열고 나서자 당황 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한테 질문을 했다. "혹시... 아르고선 대원 아니세요?" 얼라리?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여자는 누구다냐? "그런데요?" 내 대답에 여자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코르키스 왕국의 공주인 '메디아'예요. 이아손님에게 오늘밤 10시에 저기 보이는 작은 언덕 위로 올라오시라고 전해주세요. 부탁입니다." "네... 그러죠." 난 멋도 모르고 그냥 대답해버렸고 여자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런데 코르 키스 왕국의 공주 메디아? 공주라구? 으....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뭐지? 메디아, 메디아.... 그래! 메디 아는 주로 마녀로 묘사되는 사람이구나. 아르고선 원정 때는 이아손을 도 와주었고. 음... 어쨌거나 이아손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니 빨리 알려야 겠 다. 난 다시 여관 안으로 들어가 이아손에게 메디아의 전갈을 들려주었다. 이 아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시를 해보였다. 음... 나도 따라가볼 까?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엿들어야지~ 그날밤, 이아손은 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난 연 습장 하나만 들고 조심조심 들키지 않게 그를 따라갔다. 물론 실프로 내 발자국 소리를 차단한 상태로 말이다. 근데 연습장은 왜 들고 가냐구? 당 연히 마법 주문이 필요해서 그러지~ 달빛이 비추는 언덕 위에는 회색 로브를 입은 메디아가 이아손을 기다리 고 있었다. 난 주변에 있는 풀숲에 몸을 숨기고는 연습장을 뒤져 청력 증 폭 마법 주문을 찾았다. 그 때 이아손은 메디아에게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 는 중이었다. 금방 주문을 찾은-사실 반쯤 외우고 있었지만- 나는 곧장 조 용히 주문을 외웠다. "소리를 듣게 하는 청력, 귀 속의 외침이여 증폭하라." 뭐? 주문이 너무 짧다구? 그거야 불완전 주문이니까 그렇지. 하여간 내가 청력 증폭 마법을 걸었을 때, 이아손과 메디아는 서로 마주 본 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이아손이 먼저 입 을 열었다.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옷~ 잘 들린다! 메디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이아손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시게 되면 저도 함께 데리고 가 주 세요. 그러면 기꺼이 당신을 도와 드리겠어요." 오... 역시 메디아는 이아손을 사랑하고 있었군. 흘... 왠 잡음이 이렇게 많아? 풀벌레 소리, 바람 소리.... 뜨아~ 시끄럽다..... 이아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의 대답을 듣고 메디아는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이아손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그 상자에는 제가 마력으로 키워낸 신비한 약초가 들어있어요. 그 약초 를 으깨어 몸에 바르면 마력에 의해 하루동안 상처를 입지 않지요. 또 왠만한 무기로 공격받아도 다치지 않아요." 이아손은 상자를 열고 신기한 듯이 상자 안을 구경했다. 이런... 안보인 다.... 나한테도 좀 보여달란 말이야! 이아손이 상자 뚜껑을 닫자 메디아는 자신의 아버지 아이에테스 국왕이 내세운 조건을 무사히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도 그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가 바로 옆에서 조그만 청개구리가 느닷없이 개굴하며 우는 바람에 마법을 해제해 버렸다. 평소라면 꽤나 운치있는 개구리 울음 소리 였을 테지만, 청력 증폭 마법으로 모든 소리가 평소보다 잘 들리는 상태에 서 바로 옆에서 난 '개굴' 소리는 청천벽력처럼 들려왔다. 내가 개구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에는 이아손과 메디아가 이미 말을 다 마치고 언덕을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저놈의 개구락 지 때문에 얘기를 못들었잖아! 황소 개구리한테나 먹혀버려라!!! 이틀 후 아침, 아르고선 대원들은 아이에테스 국왕이 정해준 '군신(軍神) 아레스에게 바쳐진 숲'으로 갔다. 이름도 참 길다.... 앞으로는 줄여서 그 냥 '아바숲'이라고 하지 뭐. 아바숲 한가운데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 주위로 구경꾼인 듯한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아이에테스 국왕은 준비된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 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앞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이아손이 맨먼저 입을 열었다. "전하의 제안을 받아들이러 왔습니다." "좋네. 그럼 시작하지." 아이에테스는 가볍게 손짓했고, 그러자 두 명의 하인이 이아손과 테세우 스에게 멍에를 주었다.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두 마리 황소에 멍에를 씌워 밭을 가는 것. 이아손과 테세우스가 멍에를 받아 들자 이번엔 사납게 생긴 황소 두 마리가 공터 안으로 끌려왔다. 우리는 공터 한가운데로 떠밀려 졌고, 우리를 본 황소들은 코에 불을 내뿜으며 돌 격해 들어왔다. 모두들 겁에 질린 가운데-나두...- 이아손이 용감히 나아가 두 마리의 황 소를 붙잡았다. 황소들은 이아손을 향해 불길을 내뿜었지만 이아손의 몸과 옷은 아주 멀쩡했다. 음... 그저께 메디아가 준 그 약초 때문인가? 효능이 상당히 좋은데? "테세우스, 어서!" 황소 한 마리에게 멍에를 씌우는데 성공한 이아손은 나머지 멍에를 가지 고 있는 테세우스에게 외쳤다. 테세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아가 이아손 이 잡고 있는 남은 황소 한 마리에게 멍에를 씌웠다. 멍에를 씌우자 황소들은 상당히 얌전해졌다. 굴복의 뜻인가? 어쨌든 이아 손과 테세우스는 황소들에게 쟁기를 끌게 하여 빈 공터를 갈기 시작했다. 인티가 불길에 노출되고도 멀쩡한 이아손을 보며 나한테 물었다. "어떻게 저 뜨거운 황소의 불길을 견딜 수 있죠? 니트 오빠가 그에게 마 법을 걸어줬나요?" "아니. 메디아라는 여자가 이아손에게 도움을 준거야." "메디아?" "저기 아이에테스 국왕 옆에 서 있는 공주 말이야." 내 말에 인티는 고개를 돌려 메디아를 쳐다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주가 이아손을 도와준다구요? 왜요?" "그거야 메디아가 이아손을 사랑하니까 그렇지. 아니면 왜 도와주겠냐." "......" 인티는 어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 난 고개를 돌려 이아손과 테 세우스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어느새 땅을 다 갈고 하인에게서 받은 용의 이빨을 뿌리고 있었다. 흠... 도대체 저 용의 이빨은 어디서 얻은거지? 용 이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닐텐데..... 용의 이빨이 뿌려진 자리에서 창과 방패를 든 전사들이 유령처럼 솟아나 왔다. 모두 멀쩡하게 생긴 사람의 모습이었다. 흠... 여기는 해골 전사... 그러니까 스켈레톤 워리어(Skeleton Warrior)던가? 어쨌건 그거하고는 틀 리구나..... 같은 용아병인데 말이야. 아, 이제야 생각난다. 저 전사들이 나온 후에 이아손이 어떤 행동을 하는 지. 큰 돌을 들어 전사들 한복판에 던졌지 아마? 그래서 전사들끼리 서로 싸워서 전멸하고. 그래, 그랬어. 난 기억력이 좋은가봐~ 그러나 이아손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행동했다. 멍에를 씌운 황소를 번쩍 집어들더니 땅에서 솟아나온 전사들 한복판에 집어던져 버린 것이다. 쿵- 하고 황소가 땅바닥에 떨어지자 막 이아손을 공격하려고 폼잡던 전사들은 갑자기 황소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황소는 순식간에 난자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황소를 난자한 전사들은 이번엔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싸 움은 처절했다. 상대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창으로 찔러댔던 것이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땅은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들은 최 후의 승자 한 명만이 남게 되었다. 수많은 싸움을 치르느라 그의 전신은 이미 회생 불능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이아손은 동료에게 검을 빌려 남은 한 명의 전사의 심장에 던졌고, 심장을 꿰뚫린 전사는 피를 쏟으며 그 자 리에 쓰러졌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6.마녀 메디아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2142 게 시 일 :99/10/28 21:52:11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6 마녀 메디아 -3- 내 옆에 서 있던 인티는 전사들이 싸울 때부터 고개를 돌렸다. 피가 난무 하고 신체 일부가 잘려나가는 광경은 결코 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난 강한 척하며 끝까지 지켜봤지만 다리가 절로 후들거렸다. 마지막 전사 한 명을 간단히 쓰러뜨린 이아손은 자랑스런 표정으로 아이 에테스 국왕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전하의 제안을 완벽히 이행했습니다. 약속대로 황금 양피를 주셨으면 합 니다." 아이에테스 국왕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음... 저 국 왕도 황금 양피 주기 싫은가 보다..... 또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잠시 망설이던 아이에테스 국왕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 알겠네. 약속대로 황금 양피를 주지. 우선 오늘은 쉬도록 하게. 황 금 양피를 가져오려면 약간 시간이 걸려서 말이야. 내일 황금 양피를 주 겠네." "알겠습니다, 전하." 이아손은 아무 의심없이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르 고선 대원들을 이끌고 아바숲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원... 이아손도 사람 을 너무 쉽게 믿는 것 같다? 저 아이에테스 국왕을 보고 있노라면 티린스 의 에우리스테우스가 생각나.... 그러고 보니 이아손은 헤라클레스랑 비슷 한 것 같은데? 자기 동료를 버리고 가는 냉정함만 빼면..... 아르고선 대원들은 여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한 일이 아무것도 없 지만 나도 방에 올라가 침대에 드러누웠다. 옥신은 날 뒤따라 방에 올라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에테스라는 작자가 황금 양피를 줄지 의문이군. 얼굴을 보건대 전혀 줄 생각이 없던 것 같은데." 오... 옥신 녀석도 그렇게 생각하다니. 짜식, 눈치 한 번 빠르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옥신은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아이에테스가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하면 넌 어떻게 할거지? 싸울 건가, 도망갈 건가?" "몰라. 자야 되니까 말 시키지 마." 최대한 퉁명스럽게 말한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 자꾸 용 아병들의 처절한 싸움 장면이 떠올라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옥신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옥신도 자고 있는 건 가? 에... 어쨌든 잠이나 자자. "일어나라. 긴급 소집이다." 누군가가 날 흔들어 깨웠다. 그렇게 깊은 잠이 든 건 아니었지만 자다 일 어나니 눈이 상당히 뻑뻑했다. 눈을 비비고 바라보니 날 깨운 사람은 옥신 이었다. 옥신은 방문을 열면서 말했다. "빨리 내려와." 으... 갑자기 왠 긴급 소집이라냐.... 졸려 미치겠다..... 역시 낮에 잠 을 자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애..... 쿵쿵-- 일부러 여관벽에 몇번 머리를 박고 난 뒤에 정신이 들자 난 급히 아래층 으로 내려갔다. 몇몇 대원들이 위층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꼴 찌는 아니었군! 우하하! 1층에는 이아손을 비롯한 아르고선 대원들이 한 테이블 주위에 몰려 앉아 있었고, 그들에게 둘러싸인 테이블에는 코르키스 왕국의 공주인 메디아가 앉아 있었다. 얼라리? 저 여자가 여긴 왜 왔지? 이아손 보려고 왔나? 나를 비롯하여 늦장을 부린 대원들이 모두 모이자 이아손이 메디아에게 말했다. "도움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모두 모이라고 한 겁니까?" "그건... 제 아버님인 아이에테스 국왕이 여러분들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예요. 내일 어떤 조치가 취해질 지 몰라요. 그러니 어서 이 곳을 나가야 해요." 메디아의 말에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아손도 놀란 표정으로 잠 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 황금 양피를 꼭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그 황금 양피가 있는 곳으로 당신을 안내하려고 해요." "황금 양피가 있는 곳?" "네. 황금 양피는 성스러운 숲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리고 잠을 모르는 용이 항상 지키고 있지요." 잠을 모르는 용? 그럼 불면룡(不眠龍)이냐? 용이 지키고 있다는 말에 대원들의 표정이 공포에 질렸다. 메디아는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나직히 한숨을 쉬고는 이아손에게 말했다. "너무 많은 인원이 가면 들킬 염려가 있으니 저까지 포함해서 6명만 가는 것으로 하죠. 먼저 이아손님이 포함되구요, 그리고 음악가인 오르페우스 님도 같이 가셔야 해요." "저 말입니까?" 손에 하프를 든 오르페우스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전 그냥 평범한 음유시인입니다. 제가 용과 어떻게 맞서겠습니까?" 그의 말에도 메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당신은 하프를 연주하면 길가의 나무들도 정신을 잃고 듣는다 는 신의 음악가라고 알고 있어요. 용을 상대로 육체적인 싸움은 무의미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역할은 그 용을 음악으로써 잠재우는 거예요." "그게... 가능할까요?" 오르페우스는 자신없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메디아는 강한 어조로 또박 또박 말했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오르페우스의 승낙이 떨어지자 메디아는 다른 대원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메디아와 눈이 마주친 대원들은 찔끔하며 고개를 돌렸다. 확실 히 용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군. 모험하러 온 녀석들이 두려워하는걸 보면 말이야. 난 용을 본 적이 없어서 무서움을 못느끼겠다. "나와 플라톤이 따라가면 안 되겠소?" 말을 한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메디아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검사인가요?" "그렇소. 대륙 최고의 검사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오. 그리고 플라톤도 대 륙에서 둘째가는 마법사지." 그의 자신만만한 말에 메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당신들도 포함하겠어요. 그러면 이제 한 명 남은 건가요?" 메디아는 다시 대원들을 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려는 사람이 없 었다. 난 그냥 잠자코 있었다. 거기 갔다가 용의 밥이 되면 어떡하냐. 난 달리기가 느려서 분명히 제일 먼저 잡아먹힐 텐데 말이야. "내가 한 명을 추천해도 되겠소?" 마르크스의 말에 메디아는 반가운 얼굴을 했다. "좋아요. 그는 어떤 사람이죠?" "대륙에서 첫째라고 불리울만한 마법사요." "대륙에서 첫째?" 메디아는 상당히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마르크스는 대원들을 스윽 훑어보더니 나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하면서 말했다. "바로 저 소년이오." 허거걱! 지금 날 보고 하는 말이냐? 마르크스의 말에 모두들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메디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마르크스에게 물었다. "왜 저 소년이 대륙에서 첫째라 불리울만하죠?" "이유는 간단하오. 저 소년은 8클래스 마스터이기 때문이오." 마르크스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아르고선 대원들은 그 말을 듣고도 별 반 반응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법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러나 메디아는 마법을 아는지 8클래스 마스터란 말에 크게 놀란 표정이었 다. "저, 정말인가요? 당신이 8클래스 마스터란 것이?" 메디아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한테 다가오더니 대뜸 그렇게 물 었다. 난 당황해서 떠듬떠듬 대답했다. "아... 네...." 메디아는 내 심장에 손을 갖다 대더니 나지막히 무슨 주문을 외웠다. 그 러자 내 몸속에 자리잡고 있던 마나들이 일제히 반응을 일으켰다. 단지 반 응만을 일으켰을 뿐 폭주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쉽게 말하면, 마나들이 선생님의 출석 부르는 소리에 손만 든 꼴이었다. 이거... 마나 측정 마법 인가? 이런 마법 처음 본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7.마녀 메디아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91 게 시 일 :99/10/30 16:51:23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3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7 마녀 메디아 -4- 마나들이 다시 잠잠해졌을 때, 메디아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이군요.... 어떻게 그렇게 젊은 나이에 8클래스를 마스터할 수 있 죠?" "그게... 열심히 하다보니....." "그건 말이 안돼요. 보통 1클래스 후에 1클래스씩 마력을 축적하는데에 몇년씩 걸리는걸요." 나참... 왜 말이 안된다는 거야? 여기 산 증인이 있는데. "그럴까요?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몇시간이나 마법 수련을 하죠?" 내 질문이 뜻밖인 듯 메디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대략 1시간 쯤이예요. 마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새벽에 주로 하죠. 그런데 그건 왜 물어봐요?" "그래요? 전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마법 수련을 했는데요?" "10시간 이상?" 내 말에 메디아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며 약간 화난 듯이 소리쳤다. "그건 말도 안돼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마법 수련에 전념할 수는 없 다구요! 정신이 지쳐버려요!" 그런가? 뭐 그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난 그 정도 해도 별로 지치지 않 는다구. 그 이유라면.... 역시 학교 수업때문이지. 아침 보충, 오후 보충 합해서 학교 수업이 8시간, 거기다 자율학습 4시간까지 더하면 하루에 12 시간씩 책상에 앉아 책과 씨름하니까. 10시간의 마법 수련쯤이야.... 게다 가 난 마법 수련이 좋구 말이야. "전 10시간 마법 수련한 걸로 지치지는 않아요. 보통 마법사들이 어떤지 는 잘 모르지만, 전 마법 수련을 좋아해서 열심히 한 것 뿐입니다." "......" 할말이 없는지 메디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도 포함시키겠어요." 얼렐레? 그렇다고 날 그 불면룡하고 싸우게 만든다구? "잠깐만요! 저도 따라가겠어요!" 인티가 내 옆에 서더니 그렇게 소리쳤다. 메디아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해 보이며 인티에게 물었다. "아가씨는 누구죠?" "니트 오빠의 동료예요." "어떤 부류의 사람이죠?" "사제예요." 인티의 말에 메디아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승낙했다. "좋아요. 7은 행운의 숫자니까." "잠깐! 그럼 나도 갈래요!" 그 때 아린이 끼어들었다. 메디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용과 싸우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나요? 상당히 위험하다구요." "그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동료를 혼자 가게 내버려둘 수 없잖아요. 누 구는 그냥 동료 버리고 떠났지만." 말을 하면서 아린은 이아손을 쳐다봤지만 이아손이나 메디아나 그 말속에 담긴 뜻을 모르는 것 같았다. 메디아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당신까지 합류하면 8명이나 되요. 너무 많아집니다. 죄송하지만 아르고선에서 기다리세요." 아린이 메디아에게 따지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난 아린이 무엇인가 말하기 전에 재빨리 메디아에게 질문했다. "메디아, 그럼 어떤 작전으로 황금 양피를 가져올 거예요?" 덕분에 아린은 입을 다물었고 메디아는 내 질문에 대답했다. "우선 성스러운 숲까지 가서 용과 맞섭니다. 물론 싸우는 건 아니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수면 방지 마법을 걸거예요. 그리고 나서 오르페우스님이 하프를 연주해서 용을 잠재우는 거죠. 용을 잠재운 뒤에는 황금 양피를 들고 이 나라를 떠나는 거구요." 말만 들으면 굉장히 쉬울 것 같은 작전이지만.... 문제는 용이 오르페우 스 하프 소리에 잠을 자겠느냐 이거지..... "그 밖의 다른 작전은 없어요?" "음....." 내 물음에 메디아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흠칫했다. "그렇군요.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제가 어떻게든 해볼께요." 그렇게 말한 메디아는 아르고선 대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들 준비해 주세요. 저를 포함한 7명은 여기에서 기다리시고, 나머지 분들께서는 아르고선에 승선하세요. 황금 양피를 탈취한 후에 바로 떠나 야 하니까요." 대원들은 선장격인 이아손을 쳐다보았고 이아손은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 여보였다. 그래서 7인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떠날 채비를 하러 방으로 올라갔다. 메디아는 우리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한 뒤에 여관 밖 으로 나갔다. 흠... 그나저나 메디아가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한 것 같은 데.... 왠지 모르게 불안한걸? 내가 읽은 기억으로는 메디아가 어떤 짓을 저지르는데? 으... 기억이 안나..... 이아손, 오르페우스, 마르크스, 플라톤, 인티, 그리고 나, 6명은 대충 떠 날 채비를 마치고 여관 테이블에 앉아 메디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다른 대원들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아르고선이 있는 항구로 향했다. 아린은 내 앞을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조심하는게 좋을꺼야." .... 아주 날 무시해라, 무시해! 대략 20여분 후에 메디아가 돌아왔다. 그녀의 옆에는 왠 어린 아이 하나 가 있었다. 의아해하는 대원들에게 메디아는 그 아이를 소개시켰다. "얘는 제 동생인 암시르토스예요. 인사해, 시르." "안녕하세요. 올해로 7살이예요." 약간 부정확한 발음이었지만 암시르토스는 자신을 소개했다. 메디아와 같 은 흑발을 지닌 남자 아이인 암시르토스는 상당히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이런 녀석이 크면 미남되겠지? 부러워..... 모두들 암시르토스에게 자신을 소개했고, 난 그냥 간단히 '난 니트'라고 만 말함으로써 인간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우씨... 간단히 인사하면 안되냐? 마르크스도 간단히 말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나를 위시하여 6명의 쫄따구들은 황금 양피를 보관하고 있다는 성스러운 숲으로 향했다. 성스러운 숲이 아르고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에서 얼마 떨 어지지 않았다고 하지만 여관에서 성스러운 숲까지는 상당한 거리였다. 그 런데도 마차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걸었다. 마차를 이용하면 왕의 이목에 노출될 수 있다나? 하여간 여러가지로 골치아퍼..... 뭐 지금은 어둑어둑 한 초저녁이라 불빛도 없는 길을 마차로 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저, 메디아. 메디아는 마법사예요?" 할일도 없어서 난 메디아에게 질문을 던졌고, 메디아는 친절히 대답했다. "그래요. 정확히 말하자면 흑마법사지요." 얼라리? 흑마법사? 오옷! 흑마법사를 만나게 되다니! "흑마법사는 어떤 마법을 써요?" 메디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마법이라뇨?" "그러니까.... 백마법사들은 주위의 마나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공명시켜서 마법을 사용하구요... 흑마법사는 어떤 식으로 마법을 쓰는 지 궁금해서...." "아...." 내 말을 이해했는지 메디아는 탄성을 터트렸다. "흑마법은 백마법과 약간 다르죠. 흑마법은 마신(魔神)에게서 힘을 빌리 는 것이니까요. 대마법사 코아세르 베이트가 마나 축적의 방법을 생각해 내기 전까지는 흑마법은 단지 흑마술일 뿐이었어요. 제물을 바쳐야만 마 신의 힘을 빌릴 수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나 축적의 방법이 널리 보 급되면서 흑마술에도 변화가 생겼죠. 제물 대신 자신이 모은 마나를 바 치는 거예요. 그때부터 흑마술은 흑마법으로 발전해 왔답니다." "그럼 메디아도 마나를 축적하고 있겠네요?" "그래요. 현재 6클래스 반까지 축적했죠." 6클래스 반이라.... 흠... 난 8클래슨데.... 내가 너무 앞서나간 건가? 난 그냥 열심히 마나 축적만 했을 뿐인데. 그렇게 메디아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성스러운 숲에 도착했다. 전 혀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숲이었다. 황금 양 피가 있어서 성스러운 숲이라고 하는건가? 실망이군. "그럼 들어가요." 메디아는 자신의 동생 암시르토스를 데리고 숲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들 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흘... 이제 용을 볼 수 있겠군. 아니, 드래곤인 가? 하여튼 보면 알겠지 뭐.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98.마녀 메디아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92 게 시 일 :99/10/30 16:52:04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3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8 마녀 메디아 -5- 성스러운 숲을 어느정도 들어갔을 때, 앞서 걷던 메디아가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가까이에 용이 있어요. 용과 만나기 전에 우선 제가 여러분께 수면 방지 마법을 걸어드릴께요. 모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세요." 메디아는 무슨 말을 중얼거리더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동생에게는 마법을 걸어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 들이 그것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메디아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왜 저 러지? 뭐 찔리는 거라도 있나? 얼마를 더 걷자, 커다란 공터가 드러났고 그 공터 한가운데에 황금 양피 가 걸린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리고 그 나무 옆에는 나무보다도 더 큰 어떤 물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저게... 용? 자는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물체를 보고 메디아가 입을 열었다. "용이예요. 자는 척하며 우리가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런가? 음... 하긴 잠을 모르는 용이니 잘 리가 없지. 메디아는 하프를 들고 있는 오르페우스에게 지시했다. "이제 하프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세요." 오르페우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프를 한손으로 튕기며 부드럽고 낮은 목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이여, 내 눈으로 찾아들라. 내가 부르는 대로─ 잠이여, 피로한 마음으로 찾아들라, 내가 부르는 대로─ 고통과 슬픔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치유해 주는 잠이여, 내가 부르는 대로 찾아들라." 한마디로 지루하고 지겨운 노래. 박자도 더럽게 느리고 음악도 무지하게 단조로웠다. 자장가 삼기 딱 좋은 노래였던 것이다. 오르페우스가 그 노래 를 부르자마자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도 모두 멎었다. 숲은 삽시간에 정적 에 휩싸여 버렸다. 메디아의 동생 암시르토스는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잠들었다. 그러나 메디 아가 마법을 걸어준 우리들은 모두 두 눈 멀쩡히 뜨고 있었다. 오르페우스 는 그 지겨운 노래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크... 메디아의 마법이 아니었다 면 나도 지금쯤 이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자고 있겠군. 정말 듣기 짜증나 ..... "이아손님, 어서 황금 양피를 가지고 오세요. 이미 용은 깊이 잠들었으니 까요." 메디아의 말에 이아손은 황금 양피가 걸린 나무로 다가갔다. 이아손이 가 까이 다가가도 용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이아손은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황금 양피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조심 조심 나무 위에서 내려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아손이 임무(?)를 완수하자 메디아는 주문 비슷한 말을 읊었다. "지하의 암흑계에 사는 자여, 꿈과 잠을 주관하는 자여! 나에게 그대의 힘을 빌려주소서! 모든 생명을 꿈속으로 인도하는 그 힘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디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요. 이제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요." "그런데 지금 무엇을 한 겁니까?" 이아손이 메디아에게 물었다. 메디아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 용에게 잠의 신 히프노스의 힘을 빌려 달콤한 잠을 뿌렸지요. 한동안 은 깨어나지 못할 거예요." 흠... 일종의 수면 마법인가? 근데 그게 저 용한테 먹혀들까? 어쨌든 우리는 잠든 암시르토스를 깨우고 즉시 공터를 빠져나왔다. 최대 한 빠른 걸음으로 아르고선이 정박해 있는 항구 쪽으로 향했다. 성스러운 숲을 거의 다 빠져나왔을 때쯤, 갑자기 거대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밤의 정적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는 소음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메디아가 하얗 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저 소리는 황금 양피를 지키는 용의 울부짖음....! 말도 안돼! 이렇게 빨리 깨어나다니!" 우리 모두는 흠칫했다. 어두운 하늘을 꽉 메우며 무엇인가가 우리쪽으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개까지 합친 길이가 적어도 20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용. 아니, 저건 드래곤이다. 동양에서 생각하는 용하고는 완 전히 다르게 생겼으니까. 동양의 용은 쉽게 말하면 뱀이고, 서양의 드래곤 은 도마뱀을 뻥튀기한 거라고나 할까? "쿠쿠. 드디어 용하고 싸우게 되는군." 마르크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말은 저 드래곤과 싸우겠 다는 뜻? 메디아가 마르크스의 말을 듣고 놀라 소리쳤다. "당신은 저 용하고 싸울 생각이예요?" "그럼 가만히 앉아서 죽으라는 건가? 어차피 저 용에게서 달아난다는 것 은 불가능해." 마르크스는 검집에서 검을 빼내며 싸울 준비를 했다. 메디아는 한숨을 쉬 었지만 그의 말이 맞다고 느꼈는지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있었던 드 래곤은 거의 우리 머리 위까지 다다라 있었다. 숲 속에서는 나무 그림자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충 몸 색깔을 알아볼 수 있었다. 황금 양피를 지키는 용이라 그런지 몸 색깔이 황금색이었다. 오... 골드 드래곤인가? 와... 허공에서 우리쪽으로 입을 벌리네? 브레스라도 쏠 생각 인가? 허걱! 지금 이렇게 구경할 때가 아니잖아? 난 놀라 급히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마르크스가 기합 과 함께 허공 높이 떠 있는 골드 드래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 른 검기가 초승달 모양을 이루며 날아가 골드 드래곤을 덮쳤다. 골드 드래 곤은 놀랐는지 급히 입을 다물고는 날개를 펄럭였다. 강맹한 바람에 의해 검기가 와해되고, 바람의 여파가 우리를 휩쓸었다. "으악!" 난 바람에 의해 날아가 나무 등걸에 부딪쳤다. 크억...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애.... 저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 메디아와 인티도 내 근처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암시르토스는 메디아가 감싸줘서 그다지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메디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 로 중얼거렸다. "틀렸어.... 저 용을 쓰러뜨리려면 보통의 마력 가지고는 안돼.... 신력 과 마력을 융합시켜야만.....!" 신력과 마력을 융합? 그게 가능한가? 내가 알기로는 신력과 마력은 서로 반발하는데? 으윽... 등껍질이 벗겨진 것 같다.... 무지 쓰려..... 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르페우스는 바위 뒤에 숨어 있었고 이아손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서 있는 사람은 오직 마르크스와 플 라톤 뿐이었다. 그리고 골드 드래곤에게 계속 검기를 날리고 있는 사람은 마르크스 밖에 없었다. 슈욱-- 슈욱-- 검기가 허공을 가르는 파공음이 내 귀를 간질였다. 마르크스가 날려대는 검기에 골드 드래곤은 허공만 맴돌뿐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저 인 간 대단한데? 저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다니..... "메디아! 방금 전에 저 용을 쓰러뜨리려면 신력과 마력을 융합시켜야 한 다고 했죠?" 난 메디아에게 소리쳐 물었다. 메디아는 나한테 다가오더니 대답했다. "그래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신력과 마력은 서로 반발하니까요." "융합은 아니더래도 마력을 바탕으로 신력을 곁들여서 저 용에게 마법을 쓰면 되지 않아요?" "신력을 곁들이는 것도 안되요. 신력과 마력은 만나자마자 반발해버리거 든요." 메디아는 계속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 가능 을 따지게 생겼냐? 아무것도 안하다간 죽는다고! 콰앙--! 갑자기 우리 근처에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고, 가까 이 있던 나는 불꽃에 의해 여러군데 화상을 입고 말았다. 이것은 분명히 저 골드 드래곤이 파이어 볼 비슷한 걸 날린 것이겠지. 빌어먹을 녀석! 감 히 나한테 화상을 입혀? 죽여버리겠어! 제 목 :[사이케델리아] 99.마녀 메디아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95 게 시 일 :99/11/01 21:34:13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2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99 마녀 메디아 -6- "인티! 네가 가지고 있는 신력을 나한테 몽땅 전송해줘!" 난 인티에게 소리쳤고, 그 말을 들은 인티는 나한테 다가오더니 놀란 어 조로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니트 오빠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구요! 제 신력이 전송되 면 반발력에 의해 오빠 몸이 망가진다구요!" 쿠쿠... 내 몸이 망가진다고? "이 화상 안 보여? 난 이미 망가졌다고. 어서 전송해." 난 목소리를 깔았다. 거의 협박조, 아니 명령조였다. 인티는 두려운 얼굴 을 했다. "니트 오빠....." "어서. 지금 난 저 새끼를 죽이고 싶으니까." 콰앙--! 이번엔 얼음덩이가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떨어진 얼음의 파편이 내 몸을 긁고 지나갔다. 긁힌 곳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인티도 그 파편에 자잘한 상처를 입었다. 크크... 아주 재미있게 노는데, 저 드래곤? "인티, 빨리해. 시간없어." 난 인티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인티는 계속 안된다고 했다. 열받은 나 는 인티의 따귀를 그대로 갈겨버렸다. 짜악--! "아악!" 인티는 뺨을 감싸쥐고 쓰러졌다. 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신력을 전송해. 안그랬다간 너부터 죽이겠어." "오빠....." 인티는 울먹였다. 그러나 내가 계속 싸늘히 내려다보자 비틀비틀 일어나 더니 말했다. "알았어요.... 흑....." 인티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 모습은 너무나 처량 했다. 인티에게 크게 소리칠 때부터 미안했지만 지금은 당장이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저 골드 드래곤에 대한 분노가 그 마음을 그대로 눌러버렸다. 인티는 뭐라고 중얼거렸고, 그에 따라 인티의 몸에 있던 신력이 내 몸으 로 전송되었다. 신력이 전송되자마자 마나들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신 력 전송이 완전히 끝났을 때, 내 몸에 축적되어 있던 마나들이 모두 격렬 한 반응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력과 마력의 반발력에 의해 난 엄청난 고통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것은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내 몸속으로 들어가 내부 장기들을 물어뜯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티와 메디아의 목소리 가 들려왔지만 난 그것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 몸의 모든 기관이 마비 되었다. 들을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아니, 느낄 수는 있었다. 온몸이 망가지는 고통을.....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난 항상 혼 자 집에서 지내야 했다. 집이라고 해봐야 전세방이었다. 내가 사는 주변에 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도 후미진 곳에 살았 기 때문이다. 학교는 꼬박꼬박 다녔지만 집이 다른 애들에 비해 멀었기 때 문에 친구들과 같이 집에서는 놀지도 못했다. 그리고 내 성격도 친구들과 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 항상 따돌림을 당 했다. 물론 나에게 잘 대해주는 애들도 있지만 그것은 내가 공부를 조금 잘했기 때문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난 있어 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집은 나에게 편안함을 제공해 주지 않았다. 아빠는 항상 술먹고 늦게 들 어왔다. 그리고는 엄마와 맨날 싸웠다. 아빠와 엄마가 같이 있을 때의 집 안 분위기는 시한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난 아빠와 엄마가 싸울 때마다 방에 틀혀박혀 놀았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고등학생이 되고, 아파트로 이사했어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버 스를 타고 다녀서인지 성격은 오히려 불같이 변했다. 사람많은 버스에 타 는 것 자체가 날 항상 열받게 했고, 그래서 워크맨을 들을 때도 시끄럽든 말든 음량을 크게 해서 들었다. '내 귀가 망가지지 너희들 귀가 망가지냐' 라는 생각을 하면서. 친구는 여전히 없다. 이제는 바라지도 않는다. 친구 사귀는 것도 귀찮을 뿐. 날 기억하든 말든 상관없다. 오히려 기억하지 않는게 더 좋을지도 모 르지. 아는 친구를 만났을 때 아는 척 하는 것도 귀찮아. 아빠와 엄마는 여전히 싸운다. 싸우든 말든 상관 안한다. 이혼하라면 이 혼하라구 그래. 그럼 문제아 하나 생기는 거니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이 름 나올거야.「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란 제목으 로. 자기들 알아서 하겠지. 빌어먹을.... 왜 갑자기 이딴 생각이 드는거지? 그래.... 이건 모두 저 골드 드래곤 녀석 때문이야. 크크... 아주 짜증나게 만드는군.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끄집어 내게 하다니. 크크크....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크스는 계속 골드 드래곤에게 검기를 날리고 있었지만 상당히 지쳐보였다. 옆에 있던 플라톤은 간간히 골드 드 래곤에게 마법을 날리고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었다. 이아손과 오르페우스는 마르크스만 쳐다볼 뿐 도움도 주지 않았다. 뭐 도움 줄 수도 없겠지만. "니트 오빠! 괜찮아요?" 인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대답할 기분이 아니라 난 인티를 무시하고 마 르크스에게 다가갔다. 플라톤이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고개를 들어 골드 드래곤을 쳐다보았다. 골드 드래곤은 마르크스의 검기를 이리저 리 피하며 여차하면 브레스를 날리려 했다. 빌어먹을 드래곤 새끼.... 뭐 저리 어지럽게 지랄하고 난리야? 난 골드 드래곤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문을 외웠 다. 아니, 그건 주문이 아니었다. 그 주문은 플라톤이 썼던 소멸 마법을 본따 읊은 것이지만 본래 주문과는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난 생각나는 이미지대로 나불댄 것이었다. "절대의 파멸, 파괴, 소멸. 나의 의지대로 명하노니.... 사라져라."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어느새 융합한 마력과 신력이 썰물빠지듯 사라졌 다. 그렇게 내 몸안의 모든 마력과 신력이 빠져나갔을 때, ....... 사방이 고요해졌다. 골드 드래곤이 산산히 조각났기 때문이다. 피가 사방 으로 퍼지기 직전, 그 핏방울 조차도 분해되어 사라졌다. 한마디로 완전한 소멸. 흔적도 남지 않은 완벽한 소멸이었다. 크크크... 이제야 조용하군. 아주 짜증나게 하는 녀석이었어. 감히 나한 테 화상을 입히다니 말이야. 게다가 찰과상까지 입히고. 크크... 아주 통 쾌하군. 아주....... "니트 오빠, 정신 차려요! 오빠!!!" 큭.... 머리 작살난다..... 날 죽여라..... 난 머리가 깨질듯한 아픔을 느끼며 눈을 떳다.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울고 있는 인티의 얼굴이었다. 그 다음에는 인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트 오빠! 이제 정신이 들어요?" 우... 머리 아파라.... 정신이 하나도 없네..... 난 머리를 부여잡고 상체를 일으켰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아르고선의 갑 판 위였다. 얼씨구? 환자를 이런데다 눕혀놔? 당연히 선실에 눕혀놔야 될 거 아니야? "빨리, 노를 좀더 빨리 저어요!" 메디아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갑판 위에는 아르고선의 대원들이 각기 노를 움켜쥐고 열심히 노질을 해대고 있었다. 얼라리? 뭐에 쫓기나? 난 무심히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눈에 거대한 범선 한 척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아르고선과 그 거대 범선과의 거리는 대략 200여 미터, 그러나 점점 그 차이는 줄어들고 있었다. "니트 오빠!" 내 옆에 앉아있던 인티가 날 불렀다. 난 고개를 돌려 인티를 바라보았다. 인티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얼레? 얘는 또 왜 울지? 아차 .... 내가 뺨을 때렸구나.... 어허... 무지 미안하네.... "안돼! 이러다간 잡히고 말겠어!" 메디아의 절망어린 외침이 들려왔다. 아까부터 그 거대 범선의 정체가 궁 금했던 나는 인티에게 물었다. "인티, 저 범선은 뭐야?" 내가 물음을 던지자 인티는 기쁜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왕국의 추격대예요."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0.마녀 메디아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496 게 시 일 :99/11/01 21:36:47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0 마녀 메디아 -7- 왕궁 추격대? 음... 왕궁 추격대라..... 허걱! 그럼 우리가 황금 양피를 탈취했다는 것을 알고 아이에테스가 추격 대를 보냈다는 말이잖아?! 그런 말을 웃으면서 하다니! 인티 너도 상당히 이상한 성격이야!!! 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갑판의 한가운데였는데 메디아는 나한테서 1미터 정도 떨어져서 대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 메디아의 표정은 무엇인가 결심한 것이 있는 듯 보였다. 내가 메디아에게 지금 상황을 물어보려 했을 때, 메디아는 갑자기 옆에 놓여있던 -대원들이 노를 젓느라 갑판 위에 놔두었던- 검 한 자루를 빼어 들고 갑판 끝에서 거대 범선을 바라보고 있는 암시르토스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내 뇌리로 불길한 생각, 아니 거의 확실한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메디아는......! "메디아!" 난 나도 모르게 메디아를 불렀다. 그러나 메디아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 지 않았다. 단지 노를 젓던 아르고선 대원들이 나와 메디아를 쳐다보았을 뿐. 암시르토스는 검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메디아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제길... 그렇게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어서 피 해!!! 그러나 그 말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메디아는 어느새 암시르토스 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암시르토스의 심장을 검으로 꿰뚫었다. 암시르토스 의 눈이 커졌다. "누... 나.....?" 노를 젓던 대원들은 노를 놓고 메디아가 자신의 어린 동생을 검으로 찌르 는 장면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메디아는 암시르토스의 가슴에서 검을 뽑고는 다시 그의 사지를 자르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암시르토스의 피 로 갑판이 물들기 시작했다. "무슨 짓이예요, 메디아!!!" 대원들과 함께 노를 젓고 있던 아린이 메디아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메디 아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묵묵히 암시르토스의 사지를 절단할 뿐. 잔인한 그 장면에 인티는 얼굴을 내 어깨에 묻었다. 난 그저 인티를 다독 여주는 수 밖에 없었다. 메디아가 이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이미 책을 통 해서 알고 있다. 제길... 그게 지금에서야 생각나다니..... 휙- 풍덩! 내 생각대로 메디아는 암시르토스의 잘려진 손발을 바다에 던지기 시작했 다. 푸르렇던 바닷물은 점점 붉은 핏빛으로 변해갔다. 대원들은 노 젓는 것도 잊고 경악하고 있었다. 휙- 풍덩! 마지막으로 암시르토스의 머리를 바다에 던져버린 메디아는 대원들을 향 해 돌아서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어서 노를 저어요! 모두 잡혀서 죽고 싶은 거예요?!" 메디아의 전신에서 푸르댕댕한 살기가 느껴졌다. 대원들이 모두 놀라 그 녀의 말대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를 추격하던 거대 범선은 암 시르토스의 사지가 뿌려진 바다 근처에 멈추어 그 시신을 하나하나 건져올 렸다. 자신의 아들이 딸에게 죽임을 당하는 광경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봐야하는 아이에테스 국왕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르고선과 범선 사이의 거리는 급격히 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범선의 추격권 밖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아르고선의 안전이 확보되자 메디아는 아 무 말없이 선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찾아오는 허탈감 때문에 나는 상체를 휘청였다. 놀란 인티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들어가서 쉬어요. 왕궁 추격대에 쫓기느라 오빠를 선실 안으로 옮기지 못했으니까요." 난 인티의 부축을 받으며 내가 배정받은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실 안 침대에 걸터앉은 나는 인티를 향해 입을 열었다. "뺨 때린거... 미안해." "... 아니예요. 그때 오빠가 다급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아니까요.... 오 히려 제가 미안해요....." 인티는 도리어 내게 사과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해졌다. 그러나 사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그냥 말머리를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니야.... 그런데 메디아가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인티도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선실 안으로 들어왔다. 붉은색 의 로브를 걸치고 손에는 갈색 표지의 빛나는 책을 들고 있는 사람. 바로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문이 열려있길래. 아가씨, 난 저 소년과 할말이 있는데 잠시 자리 를 비켜주지 않겠나?" 그의 말에 인티는 날 쳐다보았고 난 그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인티가 나가고 난 선실 안에는 나와 플라톤만이 마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성스러운 숲에서의 일, 정말 놀라웠네." 성스러운 숲? 아, 내가 골드 드래곤 한 마리를 제거한 것 말인가? "자네는 신력과 마력을 융합시켜 용을 쓰러뜨렸더군. 게다가 소멸 마법을 다른 주문으로도 사용했고 말이야." 그거야... 어찌어찌 되다보니 어찌어찌 되었던 건데..... 플라톤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본래 신력과 마력은 서로 극성이라네. 그 둘을 융합시켰다는 예는 극히 드물지. 물론 있긴 있었지. 신력과 마력을 융합시킨 마법사들.... 그들 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수? 내가 빤히 쳐다보자 플라톤이 말했다. "그것은... 바로 정신 이상자들이었네. 선과 악을 둘다 갖추고 있는 정신 이상자들.... 그렇게 볼 때 자네가 신력과 마력을 융합시켰다는 뜻은... 자네가 정신 이상자이거나....." 얼씨구? 내가 정신병자라구? 누구 장가 못가게 할일있어?! "자아가 순간적으로 분열되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 얼렐레? 자아가 분열된다구? 뭔소리래? 난 멀뚱멀뚱 앉아서 플라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신 이상자들은 계속 성격이 변하지. 하지만.... 자네는 그 이후로 성 격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어. 그것은 자네가 정신 이상자는 아니라는 반 증이겠지." 나원... 날 잠시나마 정신 이상자로 생각했었다는 뜻? "그래서.... 자아의 분열을 생각했지. 내가 듣기론 자네는 사제에게서 신 력을 전송받았다고 하더군. 왜 그런 미친 짓을 생각해낸 건가?" "그게... 그 용이 절 열받게 해서....." "그런가? 어쨌든 그렇게 신력을 전송받은 뒤에 신력과 마력이 충돌했겠지 . 그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가?" 음... 말해? 말어? 에라... 귀찮은데 말해버리자..... "안좋았던 기억들이요.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들." "그래... 그래서 화가 났던 거겠지? 그 용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네." "역시... 그런데 그 당시 자네는 두 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두 가지 생각이요?" "그래. 하나는 용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두려워하는 또다 른 마음." 잠깐... 내가 그랬던가? 음... 그랬군. 확실히 당시에 내 마음은 두 개였 지. 골드 드래곤을 죽이려는 분노와.... 그것을 담담히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또다른 나..... "음... 그랬던 것 같네요." 내 말에 플라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당시 자네의 자아는 분열되어 있었구먼. 하긴, 그렇기 때문에 신력과 마력을 융합시킬 수 있었던 거겠지. 신력과 마력은 오직 선과 악 을 다 가지고 있어야만 융합시킬 수 있는 거니까." 말을 마친 플라톤은 내 옆에 앉았다. 얼레? 아직 할말이 더 남아있나? 왠만하면 그냥 가라.... 난 쉬어야 한다구...... 그러나 플라톤은 그런 나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 다. "자네는 메디아가 저지른 짓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ㅜㄱ 3873-3995 [번 호] 3873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1일 23:24 Page : 1 / 25 [등록자] THEBUR [조 회] 17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1~102 헤라클레스 와의 재회 -1~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1.헤라클레스와의 재회-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01 게 시 일 :99/11/03 21:34:37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1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1 헤라클레스와의 재회 -1- 메디아가 저지른 짓? 아... 자신의 동생인 암시르토스를 찔러죽인 일을 말하는 거구나. 음...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할까? 말까? "글쎄요... 당연히 잘못된 일이지만.... 만약 메디아가 그렇게 하지 않았 으면 우리는 왕궁 추격대랑 한바탕 싸웠겠지요."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암시르토스 자신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다행한 일이라고 할까요? 그의 희생으로 인해 우리의 목숨을 건졌으니까요." 플라톤은 내 대답에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역시 자네는 선과 악 양측면을 극단적으로 갖추었군. 선하게 생겼 는데 마음 속은 시커멓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착한 것도 같고. 자네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것 같구먼." 오옷? 내가 착하게 생겼다구?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 내가 보기엔 난 굉장히 얍삽해 보이던데? 플라톤은 계속 질문했다. "그럼 자네도 그런 상황에 처해있을 때 메디아처럼 자신의 혈육마저 무참 히 살해할 수 있는가?" 흘... 왜 그딴 질문을 던져.... 생각하기 귀찮아..... "글쎄요, 그때 가보면 알겠죠. 기분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후후, 그렇군. 역시 자네는 문제아야." 플라톤은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막 방문을 열고 나갈 때 나를 향해 한마디 했다. "아르고선 원정이 끝나면 자네는 우리와 적일세. 우리는 잠시 할일이 있 어 원정이 끝나면 에틱스로 돌아갈거네. 그동안 힘이나 비축하고 있게나 . 허허." 탁! 문이 닫히고 방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그 정적도 오래가지 않았 다. 플라톤이 나가자마자 인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무슨 얘기 했어요?" "뭐 별로. 특별한 건 아니야." "그래요....." 내 대답에 인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흘... 얜 또 왜 이래.... 내가 플 라톤과 무슨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하니? 자꾸 그런 표정 지으니까 뺨 때린 거 더 미안해지잖아..... "인티, 나 쉬고 싶은데....." "아, 미안해요. 그럼 편히 쉬세요." 인티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방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또다시 정적 이 흘렀다. 뭐 배 흔들리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 정도는 항상 들어왔으 니까 소리라고 할 수도 없지. 아... 조용하다..... 난 침대에 누워 눈을 붙였다. 골드 드래곤을 쓰러뜨릴 때 상당한 정신력 을 소비했었는데, 메디아의 행동에 충격받고, 게다가 플라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나자 머리가 박살날 듯했다. 끄... 역시 머리는 적당히 써 야해..... 그래야 오래 살지..... 아르고선은 무사히 이올코스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아 린은 나한테 무지하게 투덜댔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내 몸상태가 좋지 못 해서 노를 저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린이 내 대신 노를 저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팔뚝에 알통 생겼다나? 알통 생기면 뭐 어때.... 본래 남자같 은 애인데. 아르고선이 선착장에 정박한 후, 대원들은 차례로 배에서 내렸다. 거의 2주일 간의 여행이 끝난 것이다. 흠... 내가 알기로는 아르고선 원정은 더 길었는데.... 하여간 빨리도 끝나는군. 이아손은 대원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저와 같이 모험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원정이 여 러분들께 많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이제 해산합니다. 그동 안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원 하나하나와 악수를 했다. 나도 얼떨결에 악수했는데 이아 손은 나와 악수할 때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드래곤 슬레이어 소년. 훌륭했습니다." 커헉... 드래곤 슬레이어? 그게 내 힘으로 된거냐? 인티의 신력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것도 거의 강제로 빼앗다시피 한거구. 그나저나 왜 손에 힘을 주는 거야? 내 손 부러져!!! 이아손은 그렇게 우리들과 악수를 주고 받은 뒤에 말했다. "그럼 전 이올코스 궁전으로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그는 황금 양피를 든 메디아와 함께 이올코스 궁전 쪽으로 향했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씁쓸해졌다. 그건 저들이 부러워서가 아니 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이아손은 이올코스의 왕이 되지 못하고 쫓겨나고,메디아를 버린다. 그에 격분한 메디아는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난 두 아이 들을 죽이고 날라버린다. 이아손은 여기저기 헤매다가 결국 아르고선 옆에 서 허망하게 죽는다..... 후후. 그 사람의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도 괴롭 군. 맞을지 틀릴지 모르지만. "야, 니트! 이제 어디로 갈꺼야?" 아린이 내 등을 툭치며 물었다. 음... 그러고 보니 그거에 대해 생각을 안했었군. 본래는 에틱스로 가볼까 생각 중이었는데..... 얼레? 마르크스 , 플라톤, 옥신이 어디갔지? 안 보이네? 에틱스로 간다고 하더니 배에 내 리자마자 가버린 건가? 쩝... 적이었지만 아쉽군. "뭐... 오랜동안 유스타키오를 보지 못했으니까...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 지 구경이나 가볼까.....?" "호호! 잘 생각했어!" 아린은 내 머리를 토닥였다. 이런... 얘는 날 어린애 취급하네? 내 키가 더 크다는 것도 모르냐? 나원... 게다가 난 누가 내 머리 만지는 거 싫어 한다구.... 팔 비틀어 버린다..... "......" 좋아하는 아린과 달리 인티의 표정은 어두웠다. 인티만 보면 자꾸 뺨 때 린게 생각나서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냥 인티 스스로 저 어두운 표정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랬다. 그동안 별로 정이 안들었던 아르고선을 뒤로 하고 나와 아린, 인티는 마 차를 찾아다녔다. 마차를 한 대 빌려타고 -물론 마부가 마차를 몬다- 올림 포스 연합국의 국경지대로 향했다. 따그닥 따그닥-- 덜컹덜컹-- 규칙적인 마차 소리를 들으며 난 눈을 감았다. 신력과 마력의 충돌로 인 해 내 몸이 꽤 망가졌기 때문이다. 물론 메디아와 플라톤이 나한테 치유 마법을 걸어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프다. 게다가 머리도 띵~하고. 쏴아아-- 얼레? 이게 뭔소리냐? 누가 지금 마차에 물 뿌리냐? "어머, 비가 오네?" 인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라구? 갑자기 왠 비? 눈을 뜨기는 싫었지만 비가 얼마나 오는지 보려고 고개를 들어 마차 밖 을 바라보았다. 누가 하늘 위에서 양동이에 가득 든 물을 뿌리고 있는 듯 엄청나게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이래가지고는 말들이 제 대로 달릴 수 없겠는걸? 우선 여관이라도 잡아야겠어. "아저씨! 이 근처에 여관 없어요?!" 난 최대한 크게 소리질러 마부에게 물었고, 그걸 들었는지 마부는 씨익 웃으며 앞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그리 고 마차는 이미 그 마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얼씨구? 난 저 마을로 가라 고 한 적도 없는데 자기 멋대로 간단 말이지? 저 마부 해고해버려? 마을로 들어선 우리는 곧장 여관 하나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는 정 말 억수같이 퍼부어 내렸다. 마치 세상을 물속에 잠기게 하려는 듯이. 비는 며칠동안 계속 내렸다. 처음엔 소나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장마 수 준이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여관 지붕에서 빗물이 흘 러내리기도 했다. 이러다가 여관 무너지는건 아닌지 몰라... 불안해.....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2.헤라클레스와의 재회-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02 게 시 일 :99/11/03 21:35:13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20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2 헤라클레스와의 재회 -2- 며칠동안 쏟아져내리던 비는 마침내 그쳤다. 사방은 온통 물바다였다. 폭 우에 의해 무너진 축대와 집을 세우는 사람들, 집밖으로 물을 퍼내는 사람 들, 지붕을 수리하는 사람들....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와 아린, 인티도 마차를 타고 올림포스 연합국 국경 지대인 테사리아 지방으로 향했다. 길이 질퍽질퍽했기 때문에 마차의 진행 속도는 느려졌 다. 또 마차 안의 습도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높은 편이었 다. 그래서 우리들 중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할일없이 앉아있던 나는 -평소라면 마법 수련이라도 했겠지만 몸상태가 여전히 안좋아서- 문득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마차는 폭이 10미터 정도되 는 강을 따라 달리고 있었는데, 강의 물이 상당히 불어 있었다. 여차하면 강물이 범람해서 길쪽으로 넘칠 듯했다. 그 강물은 거의 흙탕물 수준이었 다. 어쨌든 테사리아 지방으로 가려면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아무래도 돌아가야 되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아저씨! 강을 돌아가면 시간이 얼마 정도 걸려요?" 진흙에 의해 마차 바퀴 소리나 말발굽 소리가 그다지 발생하지 않았기 때 문에 거의 평상시의 어투로 물었다. 마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대략 30분 쯤 걸릴 겁니다." 음... 30분이라.... 조그만 강이 참 길기도 하군. 마차타고 30분이나 걸 리다니 말이야. 저 강을 메워버려? 그때였다. 몇명의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강을 건너려고 하고 있었다. 건 장하게 생긴 긴 갈색 머리의 청년과,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말인 켄타우 로스족 청년, 아름답게 생긴 금발의 여성, 그렇게 세 명이었다. 그 중에 금발의 여자는 켄타우로스족 청년의 등에 업혀 강을 막 건너려고 하고 있 었다. 무심코 그들을 쳐다보던 나는 긴 갈색 머리의 청년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의 모습은 내가 아는 헤라클레스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난 급 히 마차를 세우게 했다. 이히히잉--! 마부가 갑자기 고삐를 잡아당기자 말들이 기분 나쁜 듯이 울어댔다. 마차 가 멈추고 나는 급히 마차에서 내려 그 세 명의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진 흙이 마구 튀어 바지에 묻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뛰어가자 갈색 머리의 청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도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확실했다. 그는 분명히 헤라클레스 였다. 하지만... 난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가 내가 알던 헤 라클레스인지 아닌지 장담은 하지 못했다. 헤라클레스의 친척일 수도 있으 니까. "니트?" 갈색 머리의 청년이 날보고 놀란 어조로 입을 열었다. 방금 니트라고 했 지? 그렇다면.... 역시 이 청년은 헤라클레스인 거야! "헬 맞죠?" 난 확실히 하기 위해 그에게 물었다. 헤라클레스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 다가 내 물음에 정신을 차렸는지 한걸음에 도약해서 날 강하게 껴안았다. "정말 니트로구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냐?" 커어억... 온몸이 으스러지겠다....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이거 예상외의 재회로군. 강가에서 이런 어설픈 재회를 하다니.... 좀 그 럴 듯한 재회여야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텐데. 쩝, 아쉽군. "도대체 어디있었어? 뮈시아를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는데!" 헤라클레스는 내 어깨를 움켜잡으며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뮈시아라 는 곳에서 거대 거미의 공격으로 나와 헤라클레스가 떨어진 거였지.... 난 역시 기억력이 나뻐..... "헤라클레스가 절 찾으러 숲속으로 들어간 후에 아르고선으로 갔었거든 요. 이아손은 헤라클레스를 내버려두고 그냥 출항했지만요." "그랬구나. 어쨌든 무사해서 다행이다. 난 네가 죽은 줄 알고 그 거미 녀 석들의 씨를 말려버렸는데." 허걱... 거대 거미의 씨를 말려버렸다구? 그런 엄청난 일을 혼자서 했단 말이야? ... 역시 인간이 아니야.... 분명히 신(神)의 피가 섞여 있을꺼야 .... 제우스 신의 피가. "무사했었군요!" 어느새 달려온 아린이 헤라클레스를 보고 기뻐했다. 인티도 반가운 표정 으로 헤라클레스에게 인사했다. 동료들을 만나자 헤라클레스는 함박 웃음 을 지었다. "모두들 괜찮아 보이는구나!" 난 그동안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려다가 반인반마(半人半 馬)의 켄타우로스족 청년이 아름다운 금발의 여자를 태우고 강을 건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헬, 저기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헤라클레스는 내가 가리키는 사람들을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응, 저 여자는 내 아내 '데이아네라'야. 그리고 저 청년은 데이아를 강 건너편까지 업어다 주겠다고 한 '네소스'고. 참 착한 켄타우로스같아." 네...소스? 어디서 들어본... 아니, 읽어본 이름인데.....? 아린이 한심하다는 듯이 헤라클레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자기 아내를 그렇게 다른 남자에게 맡겨도 되는 거예요?" "아, 뭐 어때서. 나쁜 사람 같지도 않구만." 헤라클레스는 전혀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인티가 강을 건너고 있는 네소스를 힐끗 쳐다보고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강을 건너려는 거예요?" "응. 테베로 돌아가는 중이었어. 테베로 가려면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물이 넘쳐서 다리가 무너져 버렸거든. 돌아서 갈까 생각해 봤는데 그 럼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그냥 강을 건너려고. 보시다시피 난 활을 가지고 있고 짐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데이아를 업 어줄 수 없거든." 헤라클레스는 손에 든 짐과 활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나원... 나 같으면 차라리 돌아가겠다. 저러다가 무슨 일나지... 엇.... 이제 생각났다! 저 네소스라는 켄타우로스는....! "꺄아악--!" 갑자기 강 반대편에서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헤 라클레스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데이아!!!" 헤라클레스는 즉시 강을 건너려고 했다. 제길! 그 네소스라는 켄타우로스 는 헤라클레스의 아내를 어떻게 해볼 생각으로 도움을 준 것이었는데! 그 걸 이제서야 기억해 내다니! "헬! 강 건너지 말고 활을 쏴요!" 난 헤라클레스에게 소리쳤고, 내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즉시 등에 맨 화살통에서 화살을 하나 꺼내 활시위에 매겼다. 또다시 데이아의 비명소리 가 들려왔을 때, 헤라클레스는 즉시 비명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활을 쏘았 다. 피잉-- 화살은 허공을 꿰뚫으며 강 건너편으로 날아갔고, 곧이어 남자의 비명소 리가 들려왔다. 명중이었던 것이다. 난 운디네와 실프를 불렀다. 실프는 바람을 일으켜 내가 강을 건너도록 했고, 운디네는 물살을 일으켜 헤라클레스를 도왔다. 우리는 약 30초 후에 강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데이아!" 강기슭에 도착하자마자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라를 찾았다. 데이아네라는 강기슭의 풀숲에 앉아있었는데 그녀의 앞에는 정확히 화살에 심장이 꿰뚫 린 네소스가 쓰러져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라를 깊이 포옹하며 다 독였다. 데이아네라는 그저 헤라클레스의 품에서 울 뿐이었다. 둘을 부러운 마음으로 쳐다보던 나는 데이아네라의 손에 작은 병 하나가 들려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 병에는 붉은 액체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그것 을 품속에 소중히 집어넣었다. 저건... 혹시 네소스의 피? 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네소스가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아 죽기 직전에 데이아네라에게 '내 피를 받아 잘 간직해 두었다 가 남편의 사랑이 식었을 때 사용하면 다시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말해서 그녀가 자신의 피를 받아두도록 했는데? -------------------------------------------------------------------------- ------ *저 삽질꾼인데요... 어제 하나올린다 해놓고 왜 두개냐 하면요.. 101화가 오늘분이고 102화가 내일(금요일)분이거든요. 더불어 모레(토요일)분은 일요일에......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요.....(간만에 집에 가요..) 그럼 일요일에 또 올리겠습니다. **상규님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물론 감상 제게 주셔도 배달 됩니다... 즐통하세요. [번 호] 3953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4일 21:00 Page : 1 / 25 [등록자] THEBUR [조 회] 14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3. 헤라클레스와의 재회-3- 104.대 기간테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3.헤라클레스와의 재회-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07 게 시 일 :99/11/05 21:26:31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18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3 헤라클레스와의 재회 -3- 네소스의 피... 거기에는 독이 들어 있어서 그로 인해 헤라클레스가 죽게 된다고.... 이 사실을 말해야 하나? "야! 니트! 치사하게 너 혼자 가냐!!!" 마차가 세워진 강 반대편에서 아린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덕분에 난 모든 생각을 접어버리고 아린에게 소리쳤다. "갈테니까 걱정말어!!!" 난 다시 실프와 운디네를 불러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와 함께 강을 건 넜다. 아린과 인티가 있는 쪽에 도착했을 때, 인티가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예요?" 헤라클레스가 대답하기 전에 내가 모든 질문을 차단시켰다. "아무것도 아니니까 어서 테베로 출발하자." 내 말에 아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테베로? 테사리아 지방에 안 갈거야?" "그거는 테베에 간 다음에 가도 되잖아. 우선 헤라클레스를 테베까지 태 워다 줘야지." 난 아린과 인티의 등을 떠밀며 마차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헤라클 레스와 데이아네라도 마차 안에 태우고 난 마부석으로 올라갔다. 헤라클레 스가 고마움을 표했다. "고맙다, 니트." "아니예요." 난 간단히 대답한 후에 마부에게 출발하자고 했다. 마차는 곧 테베를 향 해 출발했고, 난 덜컹거리는 마부석에 앉아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했다. 우리가 테베에 거의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들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전쟁으로 피난가는 것처럼 보였다. 난 지나가 던 40줄에 들어선 아줌마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 있나요?" "전쟁이 나서 모두 피난가는 거란다. 테베 쪽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 거야. 에틱스 놈들은 민간인이든 군인들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여버리니까." 내가 그 말을 듣고 헤라클레스에게 전했더니 헤라클레스가 걱정어린 목소 리로 말했다. "이거 큰일인데?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야겠어. 니트, 너 테사리아 지 방에 간다고 했지? 우리 그리로 가자." 결국 우리는 목적지를 바꾸어 테사리아 지방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말로 는 에틱스는 거의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가고 있다고 한다. 에틱스의 1차 침입을 잘 막아냈던 스파르타는 이번 2차 침입에 의해 무너졌고, 지금은 아테네가 올림포스 연합국의 맹주로써 에틱스와 싸우고 있다. 마르크스는 정말로 에틱스를 멸망시킬 생각인가? 나원... 애인이 배신 때 렸다고 그 나라까지 미워하다니. 정신에 문제가 있는 녀석이야~ 거의 일주일만에 테사리아 지방에 도착한 우리는 '트라키아'라는 도시로 향했다. 헤라클레스가 그 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 일없 이 트라키아에 도착했고, 나는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를 따라갔다. 사실 바로 바이올로로 갈 생각이었지만 헤라클레스가 집 마련하는 걸 도와달라 고 해서 따라간 것이었다. 아린과 인티도 덩달아 남아서 집 고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여기저기 탐문 한 결과 3층짜리 저택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 기념으로 헤라클레스는 저 택 앞 정원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한마디로 저녁 파티. "하하하! 모두 너희들 덕분에 집을 쉽게 얻을 수 있었어. 고맙다!" 헤라클레스는 기뻐하며 나와 아린, 인티에게 술잔을 주었다. 그러나 나와 인티는 술을 못마시기 때문에 데이아네라가 차를 가져다 주었다. 하인이나 병사들은 내일 쯤에나 올 것이기 때문에 데이아네라가 파티 준비를 해야했 고 하녀 역할을 해야했다. 헤라클레스는 전혀 돕지 않았다. 데이아네라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헤라클레스가 술 한 잔을 입에 막 대려는 순간 , 갑자기 하늘에서 무엇인가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하얀 빛에 싸인 것이 었는데 꼭 사람같았다. 우리 모두는 놀라 그 물체가 땅 위에 착지할 때까 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땅 위에 착지하자마자 물체를 감싸고 있던 빛이 엷어지며 물체의 모습이 드러났다. 갑옷을 입고 손에는 긴 창과 방패를 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그 뜻밖의 모습에 우리는 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여자는 우리를 천천히 돌아보다가 헤라클레스를 보고 입을 열었다. "네가 헤라클레스인가?" 어떻게 들으면 꽤나 오만한 말투였다. 그러나 그 여자가 풍기는 분위기는 보통 여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 말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헤라클레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만.... 그 쪽은 누구신지....?" "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이다." 얼라?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네? 여신이라구? 저 여자가? 헤라클레스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테네 여신님이라구요? 정말입니까?" "그렇다. 내가 이곳 현상계(現象界)에 내려온 이유는 헤라클레스, 너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당연히 우리 모두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아테네 여신-믿어도 될려 나?-은 우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데아(Idea)에서 기간테스족의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힘이 필요하다는 신탁이 내려져 있는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중에서도 신의 피가 섞여있는 헤라클레스, 네가 필요한 것 이다." "제 몸에... 신의 피가 섞여있다구요?" 헤라클레스는 크게 놀랬다. 아테네 여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그 이상은 묻지 마라. 그 이상 아는 것은 너에게도 좋지 않다." 그렇게 말한 아테네 여신은 이번엔 나와 아린, 인티, 데이아네라를 쳐다 보았다. 먼저 그녀의 눈길이 닿은 사람은 데이아네라였다. "넌 평범한 인간이구나. 헤라클레스가 네 남편인 모양이다만, 집에서 기 다리거라. 이데아에서의 전쟁은 상당히 위험하니까." 데이아네라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승복했다. 그녀의 표정은 경외감 같 은 것이 실려 있었다. 아테네 여신은 이번엔 인티를 쳐다보았다. "음... 넌 사제로구나. 너의 힘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군. 헤라클레스와 함께 아테네 신전으로 오거라." 인티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나 아테네 여신은 대답같은 것은 들을 생각 도 않고 아린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넌 원진 마법사구나. 5클래스 정도의 수준 같군. 그런 마력을 지니고 이 데아계에 갔다간 신력과의 충돌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넌 이곳에 남아 데이아네라를 보살펴 주거라." 인티와는 다르게 남으라고 하자 아린이 반항했다. "말도 안되요! 이데아계에서 신력이 이곳의 마나처럼 고루 퍼져 있지는 않잖아요!" "아니, 퍼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넌 갈 수 없는 것이다." 아테네 여신의 말에 아린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데아계에서 신력 이 마나처럼 고루 퍼져 있다면 마력을 지닌 자가 그곳으로 간다는 것은 상 당한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저번에 내가 겪었던 것같은 마나의 폭주가 일 어날테니까. 그나저나 이데아계라니.... 그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 톤이 제시한 이상적인 세계 아닌가? 갑자기 마르크스와 함께 있는 플라톤 이 생각나는군. 아테네 여신은 마지막으로 날 쳐다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넌... 8클래스의 마력을 가지고 있구나.... 게다가 신력과 융합한 적도 있었고. 음... 너라면 이데아계에 가도 괜찮겠구나. 좋아, 너도 헤라클 레스와 저 분홍머리의 소녀 인티와 함께 아테네 신전으로 찾아오거라. 이건 모두 최고신 제우스의 뜻이니 거부는 곧 죽음이다." 그렇게 협박조로 말한 아테네 여신은 이내 표표히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런... 왜 나도 가라는 거야.... 하여간 이쪽은 왜 신들이 인간들이 사는 세계에 내려와 설치는 건지.... 맘에 안 들어.....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4.대 기간테스 전쟁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08 게 시 일 :99/11/05 21:27:07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2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4 대(對) 기간테스 전쟁 -1-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는 거의 넋나간 표정으로 아테네 여신이 올라간 하늘 쪽을 올려다 보았다. 난 멍해 있는 헤라클레스의 옆구리를 푹푹 찌르 며 물었다. "헬헬헬, 어떻게 할거예요? 아테네 신전으로 갈거예요?" "응... 가야지. 여신님이 직접 내려오셨는데." "헬은 그 여자가 아테네 여신이라고 생각해요?" 내 물음에 헤라클레스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테네 여신님에게 그런 말을 하다가 걸리면 너 죽어! 여신님을 척 보면 모르냐? 엄청난 신력이 느껴지잖아!" 뭐... 그야 그렇지만.... 왜 신이 인간의 힘을 빌리러 오냐구.... 그렇게 신들의 힘이 약한가? 쯧쯧. 내가 입을 다물자 헤라클레스는 분위기를 딱 잡더니 데이아네라의 손을 잡고 말했다. "데이아, 신의 부름으로 신들의 세계에 가게 됐어. 기다려 줄거지?" "네... 무사히 돌아오시기만을 빌게요....." 우어억! 닭살 돋아! 누가 대패 좀 갖다줘! 그렇게 바싹 붙은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는 곧이어 열정적인 키스를 해 댔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우씨... 갑자기 저 둘에게 핵폭탄 수천 개를 떨어뜨리고 싶어진다.....! 보기 민망해서 나는 아린과 인티를 쳐다보았다. 인티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아린은 황홀한 표정으로 둘의 키스 장면 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인티야 사제니까 그렇겠지만... 아린은 문 제군. 간접 경험이라도 쌓으려고 그러나? 나중에 실전(?)에서 써먹으려고? ... 아린은 역시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어.... 아니지, 남자로 태어났으면 바람둥이가 될지도 모르니... 차라리 여자가 낫겠구나.....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의 이별의 키스는 길었다. 꼭 키스에 굶주린 인 간들처럼 해댔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차단해야 했다. "헬! 언제 아테네 신전으로 출발할 거예요?" 헤라클레스는 그제야 주위의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데이아네라에게서 떨어졌다. "아, 미안. 빨리 갔다오는게 좋겠지. 지금 출발하자!" 말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라를 한번 그윽하게(?) 쳐다보고는 천천 히 정원 밖으로 걸어나갔다. 나와 인티가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가려고 할 때, 아린이 나한테 소리쳤다. "야, 니트! 이번엔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네 실력껏 살아남아라!" .... 아주 날 무시해라.... 아테네 신전은 트라키아 내에 있었기 때문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아 테네 신전에 거의 다 왔을 때에야 난 리소좀과 마법을 적은 연습장을 가져 오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헤라클레스와 인티도 빈손으로 아테네 신전으로 가고 있었다. "헬! 무기 안 가져가도 되요?" "응? 아... 뭐 신들의 세계에 가면 우리한테 무기를 주겠지. 설마 맨손으 로 싸우라고 하겠어?" 헤라클레스는 넉살좋게 웃었다. 나원... 전혀 걱정하지 않는군. 만약 무 기를 안주면 어떻게 하실라우? 저녁 9시였기 때문에 아테네 신전은 한산했다. 우리가 신전 안으로 들어 가자 어디선가 40대로 보이는 남자 사제가 튀어나오더니 질문을 했다. "아테네 여신님의 부름을 받고 오셨습니까?" 얼레? 이미 사제들하고 연락이 되어 있었던 거야? 헐... 아테네 여신, 준 비성이 대단한데?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사제는 우리를 어떤 건물로 안내했다.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든 아테네의 신상이 세워져 있는 건물이었는데 안에는 여러 명의 늙은 사제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 하얀 수염이 허 리까지 내려오고 눈은 눈썹에 가려 보이지도 않으며 머리는 번들번들한 대 머리인 노인 사제가 우리를 보고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아테네 여신님이 선택한 사람들이로군. 어서 이리로 오게. 자 네들을 이데아계로 보내주겠네." 얼렐레? 저 사제들이 보내준다구? 난 아테네 여신이 직접 와서 우리를 데 려갈 줄 알았는데? 헤라클레스와 인티가 아무 말없이 그들 앞에 섰기 때문에 나도 그 옆에 섰다. 맨 먼저 입을 열었던 긴 수염, 긴 눈썹의 노인 사제가 우리를 찬찬 히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최고위 사제들의 역할은 자네들이 이데아계로 갈 수 있게 차원의 문을 만드는 거라네.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아테네 여신님이 인도해 주 실걸세. 자네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여신님의 명령을 잘 수행해 주길 바라네." 말을 마친 노인 사제는 다른 사제들을 쳐다보았고 7명 정도의 최고위 사 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눈짓을 교환한 그들은 이내 두 손을 맞잡 고 기도 같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웅얼댔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기도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난 하품을 쩍쩍 하며 그들의 기도가 빨리 끝나기를 기도했다. 대략 5분 정도 흐르자 주변의 공기가 이상하게 변하더니 우리들 앞에 차원의 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내가 이 세계로 오기 전에 길거리에 서 보았던 공간의 문과는 약간 틀렸다. 차원의 문 안에서 하얀 빛이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긴 눈썹의 노인 사제가 번들번들한 대머리를 땀으로 적시며 입을 열었다. "어서 들어가게. 그럼 아테네 여신의 가호가 있기를." 헤라클레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에 주저없이 그 차원의 문 안 으로 들어갔다. 나와 인티도 뒤를 따랐다. 들어가자마자 눈부신 빛이 몸을 휘감았고,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느 순간 눈을 번쩍 떳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꽃들이 만발한 넓은 언덕이었다. 가지각색의 꽃밭에는 여러 곤충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에서야 헤라클레스와 인티가 내 옆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들 옆에는 무장을 하고 창과 방 패를 손에 든 아테네 여신이 서 있었다. "이데아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나를 따라오거라." 아테네 여신은 곧장 어딘가로 향했다. 나나 헤라클레스, 인티는 약간 어 벙한 상태에서 그녀를 따라갔다. 얼마 정도 무의적으로 따라갔을 때에야 이데아계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이데아계는 내가 사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내가 건너온 이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게 더 정확하다.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산도 있고 강도 있으니까. 단지 틀린 점은 이 이데아계에는 마나대신 신력 이 고루 퍼져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느낄 수 없었지만 지금은 느낄 수 있다. 주변에 고루 퍼져있는 신 력이 내 몸 속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뜨거운 물에 소금이 녹는 것처럼 마나라는 뜨거운 물에 신력이라는 소금이 녹아들어갔다. 한 번 신 력과 융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인가? 신력이 마나처럼 저절로 모여들다니. 난 무의식적으로 인티를 쳐다보았는데, 인티도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처럼 인티에게도 신력이 모아지는 건가? "인티, 신력이 몸속으로 흡수되지 않아?" 내가 묻자 인티는 놀라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니트 오빠도 그래요?"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티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예요. 전 저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인티는 꽤나 소심하군. 뭐 나도 옛날엔 그랬지만. 하여튼 인티의 신력도 증가하겠군. 헤라클레스도 신력이 흡수되고 있을까? 하긴, 헤라클레스는 신력을 접해본 적이 없으니 그러지는 않겠군. 표정에 별 차이가 없는 걸로 봐서는 확실하겠다. 아테네 여신의 뒤를 따라서 걷는 동안 난 약간 정신을 집중해서 신력을 마나와 융합시켜 나갔다. 신력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마나에 융합되었다. 아테네 여신이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난 8클래스의 마력을 신력과 완전히 융합시킬 수 있었다. -------------------------------------------------------------------------- ------ 저 삽질꾼입니다. 내일부터는 하루 1개!입니다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감상은 작가분에게로... (혹은 저에게로 보내셔도 배달은 당연히 됩니다 ^_^) [번 호] 3980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5일 23:18 Page : 1 / 78 [등록자] THEBUR [조 회] 10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5~110 대 기간테스 전쟁 -2~7-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5.대 기간테스 전쟁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14 게 시 일 :99/11/07 10:04:14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5 대(對) 기간테스 전쟁 -2- 걸음을 멈추었던 아테네 여신이 입을 열었다. "이 성이 바로 최고신 제우스의 거처이자 올림포스 신들의 집결 장소이 다. 심신을 경건히 하고 나를 따라오거라." 아테네 여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은 인간들이 만든 것과 틀린 점이 거의 없었다. 단지 성벽이 삐까번쩍한 대리석으로 되 어있다는 점은 빼고. 거의 10미터는 될듯한 거대한 성문을 지나자 성 내부에서 엄청나게 강한 신력이 느껴졌다. 성 안에 있는 여러 개의 건물을 지나 아테네 여신은 무 슨 강당처럼 생긴 건물로 우리를 데려갔다. 강당 한쪽에는 높은 단상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단상에는 호화롭게 치장 된 의자가 두 개 있었고 그 의자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와 아줌마가 나 란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양 옆에 마련된 의자에 여러 명의 사람 들이 앉아 들어오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아테네 여신은 그들 사이를 당당 히 걸어가 단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최고신 제우스여, 대(對) 기간테스 전쟁에 참전할 인간들을 데려왔습니 다." 난 아테네 여신이 제우스라고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제우스는 턱수염 과 콧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모습이었는데, 대머리는 아니었다. 입고 있 는 옷도 옛날 그리스인들이 입었을 만한 것이었다. 제우스는 아테네의 보고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했도다, 내 딸 아테네여. 난 저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구나." "네." 아테네는 조용히 한쪽 의자에 가서 앉았다. 졸지에 나와 헤라클레스, 인 티 이렇게 셋만 서 있게 된 우리는 어저쩡한 자세로 제우스를 올려다 보았 다. 제우스는 우리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놀란 표정을 짓고는 아테네를 쳐 다보았다. "저 분홍머리 소녀와 검은 머리의 소년은 신력을 얻을 수 있는 자들인데 어째서 저들을 데려온 것이냐?" 제우스의 힐책어린 물음에 아테네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지금은 기간테스족과 전쟁 중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간의 힘을 빌려야 만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신탁이 내려져 있구요. 그래서 보통 인간들 의 힘으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신의 피를 이어받은 헤라클레스 외에도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더 데려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현상계로 돌아갈 경우 너무 강한 힘을 지니고 가게 되지 않느냐?" "어차피 현상계에는 신력이 존재치 않기 때문에 한번 신력을 소모하면 다 시 모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기간테스족과의 전쟁이 더 중요하 지 않습니까." 아테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제우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 를 끄덕이고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대답한 사람은 헤라클레스였다. "전 헤라클레스이고, 이 소년은 니트, 그리고 옆에 있는 소녀는 인티입니 다, 전능하신 제우스 신이시여." 얼레? 전능하신 제우스 신? 그런 말까지 하다니... 헤라클레스의 신앙심 은 꽤나 두텁군. 두터우면 두꺼비가 되지 않을까.....?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부드러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옆에 앉아 있던 아줌 마가 날카롭게 쏘아보자 다시 근엄한 얼굴을 지었다. 흠... 확실히 헤라클 레스는 제우스의 아들이겠군. 제우스 옆에 앉아 있는 아줌마는 당연히 그 의 아내인 '헤라'겠지? 근데 어째 늙었다? 신들도 늙나? 제우스는 의자에 앉아 있는 어떤 사람을 쳐다보며 말했다. "전쟁의 신 아레스여, 전쟁 상황을 소상히 보고하라." "예." 우리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일어섰다. 제우스의 말로 미루어 보아 전쟁의 신 아레스인 것 같았다.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 아레스는 은색의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레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전 쟁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기간테스족의 5차 침입으로 인해 건물 12채가 무너졌으며 신족의 사상자 가 24명 발생했습니다. 태양신 아폴론과 폭력의 신 비아, 바다의 신 포 세이돈의 활약으로 그들을 퇴각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언제 또다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음...." 아레스의 보고를 들은 제우스는 침음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제우스가 우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언제 기간테스족이 침입할지 모르니 이번엔 우리가 공격을 감행한다. 10시간 이후에 공격을 시작할테니 모두들 전투 준비를 하고 공격 1시간 전에 이곳에 다시 모이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아레스가 대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다른 신들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제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날 따라오거라." 그리고는 단상에서 내려와 단상 뒤쪽으로 걸어갔다. 제우스가 일어나자 다른 신들도 몸을 일으켜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우리 셋은 잠시 서로의 얼 굴을 바라보다가 제우스의 말대로 그를 따라갔다. 제우스는 우리를 어떤 방 안으로 데려갔다. 벽이 모두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 방이었는데 안에는 둥근 테이블과 의자 몇 개만 달랑 있고 다른 장식 물들은 전혀 없었다. 그야말로 썰렁 그 자체였다. 제우스는 테이블에 앉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모두들 앉아라." 난 제우스와 마주보는 위치에 앉았고 내 오른쪽에는 헤라클레스가, 왼쪽 에는 인티가 앉았다. 제우스는 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그대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현재 우리 신족들은 같은 이데아계 에 사는 거인족 기간테스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현상계로 내려 가 살길 원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목적은 현상계의 정복이다. 그 래서 우리 신족이 그들을 막아야 하지.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렇다할 공 격을 하지 못했다. 인간의 힘을 빌어야만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탁이 내려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대들을 이데아계로 불러 온 것이다." 에...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기간테스족이 공격하고 있고 우리는 신족 들을 도와 그들을 쳐부수어야 한다는 거로군. 쩝...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제우스 신이시여. 저 사악한 기간테스족을 반드시 물리치겠 습니다." 헤라클레스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얼레? 기간테스족이 사악한지 사악 하지 않은지 보지도 않았으면서 말하네? 쩝... 신을 너무 믿는 것 같다? 헤라클레스의 대답에 제우스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들이 쉴 방을 주겠다. 날 따라오라." 윽... 또 걸으라구? 왜 이렇게 많이 걷는 거야..... 우리는 또 제우스를 따라 그 썰렁한 방을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제 우스를 따라 도착한 곳은 꽤나 널찍한 방이었다. 그러나 방이 하나에 침대 는 세 개. 음... 사악한 녀석들. 10시간 후면 공격나간다고 방을 하나만 주다니.... 그냥 방 3개 주면 어디 덧나냐?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제우스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9시간 후에 작전 회의가 있을 테니 모이도록 하라. 필요한 것은 시녀들 을 시키거라." 그리고는 방문을 닫고 나갔다. 제우스가 나가자마자 한 시녀가 들어오더 니 우리에게 물었다. "필요한 것은 없으십니까?" "배고픈데 먹을 것 없습니까?" 헤라클레스가 대뜸 먹을 거 달라고 말했다. 시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는 방 밖으로 나갔다. 음... 신들의 세계에도 시녀가 존재하는군. 완전히 인간들과 똑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구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6.대 기간테스 전쟁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15 게 시 일 :99/11/07 10:05:57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2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6 대(對) 기간테스 전쟁 -3- 침대는 각각 벽에 붙여져 있어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 삼각형의 무 게 중심에는 사람 5명 정도가 충분히 앉을 만한 둥근 테이블이 놓여져 있 었다. 헤라클레스는 문과 마주보는 위치에 놓인 침대를 차지했고, 난 오른 쪽의 침대를, 인티는 왼쪽의 침대를 쓰기로 했다. 잠시후 시녀 하나가 큰 그릇에 음식을 들고 왔고, 그 뒤에는 개인 접시나 나이프, 포크 같은 것들을 들고 다른 시녀들이 따랐다. 그녀들은 중앙에 놓인 테이블 위에 음식을 놓고 가만히 서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나와 인티 에게 말했다. "어서 먹자구!" 헤라클레스가 테이블에 앉자 뒤에 서 있던 시녀가 그의 목에 냅킨을 걸어 주었다. 얼레? 신들이 저렇게 식사를 하나? 정말 이상한 일이군. 나와 인티가 테이블에 앉자 역시 시녀들이 목에 냅킨을 걸어주었다. 음식 은 거대한 양고기였는데 향료를 뿌린 듯 양고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난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양의 뱃살을 잘라 접시에 담고 먹었다. 맛이 좋았기 때문에 나의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고, 헤라클레스와 인티의 눈은 그에 비 레하여 커졌다. 우파파... 난 먹는 거에 환장한 녀석이라 남한테 절대로 나눠주지 않지... 나 먹기도 바쁜데 왜 주나? 헤라클레스도 나를 따라 허겁지겁 양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인티는 조금 씩 먹었다. 시녀들은 우리가 먹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흘... 신경쓰지 말고 먹자. 양고기를 맘껏 포식한 후, 난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곧 있으면 싸워야 하니까 소화를 시켜야지. 소화시키는데는 잠 자는게 최고다. 잠을 자게 되면 신체의 에너지가 소화시키는데 쓰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밥먹고 소화시키려고 가볍게 운동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소화에 별로 도움 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지방 많은 음식을 먹고 잠자면 살찌겠지만 난 아무 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타입이라 상관없다. 헤라클레스와 인티도 할일이 없자 침대에 누웠다. 방안에는 시계가 없었 기 때문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시녀들이 1시간마 다 들어와 '회의 몇시간 전입니다'란 말을 해주었다. 하도 할일이 없었기 때문에 정령들을 부르기로 했다. 난 조용히 실프의 이름을 불렀지만 실프는 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얼렐레? 갑자기 실프가 내 말을 무시하다니? 설마 이건 소환주가 우습게 보인다는 뜻? 실프를 부르기 위해 난 누운 채로 정신을 집중하고 '정령계의 문이여 열 려라'를 작게 말했다. 맨처음 정령과 계약을 맺기 위해 정령계를 찾아갔던 일이 떠올랐다. 잠시 떠오른 상념에서 깨어나자 내 정신은 이미 정령계 내 에 들어가 있었다. 정령계는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여기저기에 정령들이 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하급 정령들이 마구 몰려들었다. 그러다가 중급 정령들이 나한테 다가오자 하급 정령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하급 정령들을 몰아냈던 중급 정령들도 상급 정령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나원... 맨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하급 정령들만 내 주위에서 기웃 거렸는데, 지금은 상급 정령들이 몰려들다니.... 정말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야..... 난 마음속으로 실프를 불렀다. 그러자 하늘 높이 떠다니던 사람 크기의 실프 하나가 나한테 다가왔다. 실프는 반가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주인님. 전혀 안 안녕하다, 임마! 왜 내 부름에 응하지 않았는지 이유를 대. - 그건... 주인님이 계셨던 곳이 신력이 가득한 천계였기 때문이예요.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거야? - 네. 정령들은 마력에 의해 물질계에 머무를 수 있는 존재들이죠. 때문 에 마력과 상극인 신력이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것이예요. 사제들이 정 령을 부릴 수 없는 이유도 신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구요. 그런가? 그럼 기간테스족과의 전쟁에서 정령들의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거네? 이런... 그럼 난 별볼일 없는 마법사인데..... - 하지만 방법은 있어요. 얼라리? - 주인님의 마력은 신력과 융합해 있기 때문에 신력과 융합한 마력을 보 내주면 천계에서도 머물 수가 있어요. 물론 천계에 적응하는데 조금 시 간이 걸리지만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 - 하지만..... 윽, 갑자기 뭐가 또 하지만이야? - 천계에는 마나가 없어요. 그 말은 천계에서 마나를 한 번 쓰면 다시 모 을 수가 없다는 뜻이죠. 물질계로 내려와야 마나를 보충할 수 있어요. 주인님은 곧 전쟁을 치루셔야 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희가 그런 귀한 마나를 소모하게 하실 건가요? 글쎄... 하지만 너희들이 없으면 난 별볼일없는 인간이라구. 지금까지 너 희들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고. 너희들은 마나를 별로 잡아먹지 않으니까 상관없잖아. 알았지? - ... 알았어요. 좋아, 그럼 난 그만 간다. 천계에서 보자. 난 곧장 정령계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실프에게 신력과 융합한 마력을 보 내주며 실프를 불렀다. 잠시후 실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환된 실프는 약간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흠... 괜히 불렀나? 하지만... 도움은 필 요하니까 어쩔 수 없지 뭐.... 실프가 천계의 신력에 빨리 적응하기를 바 랄 수 밖에. 난 실프 뿐만 아니라 다른 네 정령들도 소환했다. 모두들 조금씩 괴로워 하는 표정이었다. 그 중에 노움이 불만어린 표정으로 날 째려보았다. - 사악한 녀석, 정령들을 천계로 소환하다니... 아예 죽여라. "시끄러. 적응이나 빨리 하라고." 옆에 있던 사라만다도 불만을 토로했다. - 정말 죽겠군. 이러다가 마력과 신력이 충돌하면 난 그대로 저승행인데. 저걸 주인이라고 따라야 하다니....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은 입을 다물고 천계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불평하 는 것처럼 굴었던 노움과 사라만다도 입으로는 계속 씨부렁대고 있었지만 천계에의 적응을 시도하고 있었다. 내가 갑자기 정령들을 한꺼번에 소환하자 인티가 놀라 물었다. "니트 오빠, 갑자기 왜 정령들을 소환한 거예요?" "응, 정령들에게 특별 훈련을 시키는 거야." "특별 훈련?" 인티가 내 말에 어리둥절할 때, 헤라클레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렁... 쿨..." 쩝... 코 고는 소리 한번 우렁차군. 하여간 전혀 진지한 기색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어. 싸움을 앞둔 상황에서 저렇게 편하게 잘 수 있다니 말이야.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시녀들이 들어오더니 말했다. "회의 시간 되었습니다. 모두 따라오세요." "드르렁... 쿨..." 헤라클레스의 코 고는 소리에 시녀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헐... 표 정에 변화가 있군. 난 저 시녀들이 계속 무표정한 얼굴을 하길래 유령인 줄 알았는데. 근데 저 시녀들도 신일까? 난 헤라클레스에게 다가가 심호흡을 했다. 헤라클레스는 한 번 잠들면 스 스로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리 깨워도 꿈쩍도 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헬헬헬 헬헬, 헬헬! 헬헬헬헬헬헬, 헬헬!" 난 리듬에 맞추어 헤라클레스의 귀에다 대고 그의 애칭을 불렀다. 그 리 듬은 '띵띠리 띵띵 띵띵, 띠리디리띵띵 띵띵'이다. 나원... 내가 왜 이런 쪽팔리는 짓을 하는지.... 내 성격도 많이 변했다.... 벌떡--! 역시나 헤라클레스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헤라클레스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으... 이번엔 정말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는데.... 넌 못들었어?" "아뇨. 못들었는데요. 그나저나 지금 회의 시간이라 모이래요." "그, 그래? 흠흠. 그럼 가자." 헤라클레스는 정신을 추스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이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고, 우리는 그녀들을 따라 여러 신들이 모여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 연재 속도를 조금 늦춰야 할 것 같네요. 점점 날림이 되버려서...-_-;;아마 3일이나 4일에 두 편씩 올라갈 겁니다. 그럼~^^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7.대 기간테스 전쟁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27 게 시 일 :99/11/10 05:00:12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7 대(對) 기간테스 전쟁 -4- 강당에는 여러 신들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제우스와 헤라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리를 강당으로 안내한 시녀들은 단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의자에 앉으라고 했고, 우리는 시녀들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 다. 지각을 한 다른 신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었다. 잠시 후 제우스와 헤라가 단상 뒤에서 걸어나와 단상으로 올라가 앉았다. 제우스는 여러 신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1시간 후면 기간테스족을 공격한다. 우선 본 신이 천둥과 번개로 기간테스족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그 때 그대들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몰아쳐 그들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한다. 본 신과 군신 아레스는 동서남 북군이 위험에 처하면 가담하는 형태로 공격한다." 여러 신들은 제우스의 말을 경청했다. 제우스는 금색의 화려한 신복을 입 은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여, 그대가 동군(東軍)의 지휘를 맡는다." "네, 제우스여." 화려한 금색 신복의 아폴론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한 뒤, 다시 자 리에 앉았다. 제우스는 계속해서 다른 신들을 호명했다. "서군(西軍)의 지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맡고, 북군(北軍)의 지휘는 폭력의 신 비아가 맡도록 하라." "네."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른 신복을 입은 포세이돈과 섬뜩한 붉은색의 신복을 입은 비아가 자리 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둘 다 40대 초반의 중년 남자들로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남군(南軍)의 지휘는....." 제우스는 신들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헤라클레스에게 눈길을 고정시키며 말했다. "헤라클레스, 그대에게 맡긴다!" "......!" 제우스의 말에 우리 셋을 비롯하여 다른 신들도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 러나 그들이 놀라든 말든 제우스는 자기 할 말만 했다. "알겠는가?" "아, 옛!" 헤라클레스는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대부분의 신들은 못마땅한 눈초리 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흘... 역시 헤라클레스가 자기 아들이니까 대뜸 남 군의 지휘를 맡겨버리는구만.... 이게 바로 혈연에 의한 지위 상승인가? 제우스는 동요하는 신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단상에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은빛 갑옷을 입은 군신 아레스에게 말했다. "아레스여, 군 편성을 알려 주거라." "네." 아레스는 손에 두루마리를 펼치더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동군. 태양의 신 아폴론을 위시하여 아프로디테, 헤파이스토스, ..... 서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위시하여 아르테미스, 티베리누스, ..... 북군. 폭력의 신 비아를 위시하여 아이올로스, 히프노스, ..... 남군. 헤라클레스를 위시하여 니트, 인티, 아테네, ..... 중앙군. 최고신 제우스, 헤라, 아레스, 아스클레피오스, ...... 이상입니다." 엄청나게 호명했기 때문에 내가 들은 것은 이 정도 밖에 없었다. 그 밖의 신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신들도 참 많아..... 어쨌거나 나와 인티,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남군이로군. 우리를 데려왔던 아테네도 같은 군 소속이니까 잘됐어. 아레스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제우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궁전 앞에 대열을 갖추고 대기하라!" 그의 말에 신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당을 빠져나갔다. 우리도 그들의 뒤 를 따라 강당을 나갔다. 우리들이 궁전 앞에 도착했을 때, 군단장 역할을 맡은 아폴론, 포세이돈, 비아가 모두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동군은 내 뒤로 모이라!" "서군은 이쪽이다!" "북군은 본 신의 뒤에 집합!" 허걱... 헤라클레스만 늦었잖아? 어억... 쪽팔려....! 헤라클레스는 허겁지겁 폭력의 신 비아 옆에 서더니 소리쳤다. "남군은 여기요!" 크윽... 더 쪽팔려.....! 어쨌든 신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어 일정한 대열을 이루었다. 잡담을 나누 는 신들은 거의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질서 정연한 모습들이었다. 신들이 모두 모이자, 제우스가 신선처럼 구름을 타고 하늘에 뜬 상태로 모두에게 소리쳤다. "이제부터 대(對) 기간테스 전쟁을 선포한다! 모두들 저 사악한 기간테스 족을 응징하라!" "와---!" 신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나와 인티는 급히 귀를 막아야 할 정도 로 큰 소리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들처럼 정신없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역시... 신의 피가 섞여있기 때문이야..... "공격은 정확히 오후 3시에 시작한다! 모두 진군하라!" 제우스의 외침에 동서남북군은 일제히 진군을 시작했다. 헤라클레스는 머 뭇머뭇하다가 아테네가 이끌자 겨우 움직였다. 헤라클레스가 군단장인 남 군은 사실상 아테네의 리드를 받으며 기간테스족이 살고 있는 지역의 남쪽 으로 향했다. 기간테스족은 넓은 평야 지역에 살고 있었다. 평야 곳곳에 성벽만 10미터 인 거대한 성이 포진되어 그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고보니 기간테스족이 거인족이라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얼마나 큰지 들어본 적이 없네? "아테네 여신님, 기간테스족은 키가 얼마나 해요?" 내 질문에 아테네는 여전히 바삐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너의 세 배는 족히 된다." 엑? 내 키의 세 배? 내 키를 170으로 잡아도.... 곱하기 3하면.... 칠삼 이십 일.... 2에다 3 더하면.... 허걱! 5미터 10센티? 남군은 평야 주위의 산을 돌아가며 기간테스의 눈을 피해 남쪽으로 향했 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맡은 위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테 네가 헤라클레스에게 말했다. "앞으로 10분 후면 공격이 시작될 겁니다. 그 때 우렁찬 소리로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면서 공격하세요." 얼라? 헤라클레스가 군단장이 되니까 존댓말을 쓰네? 헤라클레스는 아테네가 존댓말을 쓰자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들의 움직임이 멈추자 주위는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 다. 큭.... 너무 조용하니까 움직이는게 부담스럽잖아.....! 난 아직도 궁전 방 안에 남아있는 다섯 정령 중에서 실프를 마음 속으로 불렀다. '실프, 아직 천계의 신력에 적응 안 됐어?' - 죄송해요...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마. 알았지?' - 네..... 난 실프와의 대화를 끊고 이번엔 신력을 느껴보기로 했다. 천계에는 마나 가 존재하지 않아 함부로 마나를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는 정령들이 써야 하니까. 마력 대신 신력을 쓸 수 있도록 노력 해 봐야지. 10분 밖에 안 남았지만. 신력이나 마력이나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서 난 정신을 집중해서 신력을 느끼도록 노력했다. 신력을 느끼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신력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을 뿐. 마나를 같이 사용할 때에만 신 력이 움직여 주었다. 흘... 제발 좀 혼자 움직여 주..... 그 때, 누가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한 명당 무기 하나가 배급되었다. 무 기는 모두 검이었다. 그것도 신력에 의해 사물을 벨 수 있는 검. 난 어처 구니가 없었다. 난 신력을 쓰지도 못하는데 나보고 어떻게 이 검을 쓰라는 거냐 이거야! 봐봐, 아무리 나무를 베어도 검날이 나무를 통과만 하지, 전 혀 털끝만큼의 상처도 주지 못하잖아! 내가 띠꺼운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자 옆에 있던 인티가 말했다. "신력을 느끼면서 검을 휘둘러 봐요." 그걸 누가 모르니? 쉽게 신력이 내 맘대로 움직여지면 신력을 이용한 마 법을 쓰지, 이런 검을 쓰겠냐? 으아... 제발 좀 베어지란 말이야!!!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8.대 기간테스 전쟁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28 게 시 일 :99/11/10 05:00:53 수 정 일 : 크 기 :6.7K 조회횟수 :2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8 대(對) 기간테스 전쟁 -5- 아테네가 그런 날 보더니 한마디 했다. "너무 조급히 생각마라. 천천히 신력을 느껴보거라." 나원, 그게 어디 말처럼 쉽수? 게다가 지금 공격 개시 몇분 전인데 조급 하지 않으면 사람이야? 빨리 신력을 다루지 못하면 난 전쟁터에서 어처구 니없이 죽을텐데! 그 때였다. 갑자기 기간테스족 영토에서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 고, 그 이전에 번쩍하는 섬광이 기간테스족 성 안으로 떨어졌다. 꽈릉-- 전형적인 천둥 소리.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졌다는 것은 .... 제우스가 기간테스족에게 공격을 개시했다는 뜻? 제우스가 천둥과 번개로 기간테스족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숨어있던 아군 이 일제히 함성을 내지르며 공격해 들어갔다. "죽여라!" "사악한 기간테스족을 물리쳐라!" 헤라클레스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아테네가 옆구리를 찌르며 돌격하라 고 하자, 그때서야 검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가자!" ... 왜 헤라클레스가 외칠 때마다 난 쪽팔림을 느끼는 것일까..... 대기해 있던 남군은 곧장 함성을 내지르며 제일 가까이 세워져 있는 기간 테스족의 성으로 쳐들어갔다. 그들이 진격할 때, 난 뒤로 슬쩍 빠졌다. 내 가 나서면 오히려 아군에게 방해만 될 것 같아서 였다. 신력도 쓰지 못하 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겠어. 우선 뒤에서 신력 다루는 연습이나 열심히 해 야지~ 우켈켈. 내가 뒤로 빠지자 인티도 같이 남았다. 난 인티에게 물었다. "왜 안가?" "그러는 오빠는요?" "난... 가봤자 도움이 안 되니까."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구....." 인티는 뭔가 더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다물 었다. 얼레? 얘 또 왜 이러냐.... 혹시 날 좋아하고 있는거 아냐?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신력을 마음대로 다루어서 전쟁에 참가해야 하는 것이니까.... 근데... 참가할까? 참가하자 마자 운명을 달리할 것 같은데... 무서워..... 챙챙! "으악!" 여기저기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렸다. 기간테스족은 아테네의 말처럼 5미터는 족히 넘는 키를 가진 거인들이었다. 기간테스족 하나를 쓰러뜨리려고 대여섯 명의 신들이 달라붙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난 전쟁터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서 신력으로 움직이는 검을 들고 조 용히 서 있었다.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이상하게 나하고는 전혀 상 관없다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괴리감이 들자 오히려 내 마음은 너무나 차 분해졌고, 난 들고 있던 검으로 옆에서 잘 자라고 있던 작은 나무 하나를 베었다. 슈욱-- 쏴아-- 나무에 달린 나뭇잎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잘린 나무 줄기와 함께 땅 위에 나뒹굴었다. 난 떨어진 나무 줄기를 주워들고 다시 검으로 동강내었 다. 나무 줄기는 너무나 쉽게 검에 의해 잘려 나갔다. "아, 오빠! 드디어 신력을 다룰 수 있게 됐군요!" 인티가 그 광경을 보고 기뻐하며 소리쳤다. 난 나뭇잎을 들고 검으로 잘 라봄으로써 확실히 내가 신력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음을 확인했다. 헐.. ...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바로 되네? 아테네에게 할말이 없다..... 그나저나... 이제 전쟁에 참가해야 하나? 으아... 참가해, 말어? 참가하 면 바로 저승으로 갈텐데.... 그렇다고 여기서 쥐죽은 듯이 숨어있는 것도 양심상 찔리구.... 어억.... 어떡하지? 어떡하지? 내가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자 인티가 나한테 한가지 제안을 했다. "오빠, 검으로 싸우지 말고 기간테스족에게 화살을 날려 원거리 공격을 하는게 어때요?" 얼라? 원거리 공격?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좋은 생각이야, 인티." 내가 인티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보이며 칭찬하자, 인티는 어린애처럼 굉장히 좋아했다. 난 즉시 언덕 위에 서서 전쟁터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 리서 한 기간테스족이 신들을 거대한 곤봉으로 날려버리고 있는 모습이 눈 에 들어왔다. 좋아, 널 첫번째 제물로 삼겠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신력을 느끼자, 내 의지대로 신력이 움직여 주 기 시작했다. 난 신력을 오른손에 모아 하나의 빛화살을 만들었다. 신력은 마력과는 달리 공명 같은 것을 일으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쉽게 공격을 할 수 있는 점이 아주 편했다. 난 바닷물에서 소금을 뽑아내듯, 마력과 융합한 신력을 뽑아내어 내가 만 든 빛화살에 50% 정도 집적시켰다. 그러자 빛의 화살은 찬란한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난 목표물을 확인하고, 그 기간테스족에게 빛화살을 날려 보냈다. 슈우욱--! 빛화살은 허공을 가르며 신들을 곤봉으로 요리하고 있던 기간테스족에게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거인은 빛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이마 한가운데에 맞고 말았다. "으아아악--!" 거인은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을 노려 그 거인에게 밀리고 있던 신들이 일제히 신력을 사용해 공격을 퍼부었고, 거인은 그 공 격을 견디지 못하고 입으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휴... 성공이군. 좋아,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되겠는데? 난 다시 신력을 모아 빛화살을 만들었다. 그러나 남은 신력이 별로 없어 서 앞서 날렸던 빛화살만큼의 위력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자 인티 가 내 등에 손바닥을 갖다대며 말했다. "제가 신력을 전송할테니까 사용하세요." 하하,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다시 공격이다! 빛의 화살에 인티의 신력까지 집적시킨 후, 그것을 강해 보이는 기간테스 족에게 그대로 날렸다. 빛화살은 여지없이 그 기간테스족의 이마를 꿰뚫었 고, 그 틈을 타 신들이 일제히 공격을 퍼부음으로써 그 거인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소모한 신력은 빠른 속도로 다시 모이고 있었다. 제우스 등이 이데아계라 고 부르는 천계에는 신력이 아주 고밀도로 농축(?)되어 있어서 많은 신력 을 소모해도 금방 채워졌다. 약 1분이 지나자, 내 신력은 다시 완전히 보충되었다. 인티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전쟁은 서서히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부상을 당한 신들이 속출했고, 기간테스족들도 죽어갔다. 헤라클레스는 아테네와 함께 기간테스족을 무찌르는데 상당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흘... 정신없군. 저렇게 싸우다보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별이 되려나? 난 전혀 안될 것 같은데.... 뭐 기간테스족이야 키가 무지하게 크 니까 금방 식별이 되지만. 난 신들을 곤봉으로 물리치고 있는 한 기간테스족을 목표로 삼고 다시 빛 의 화살을 만들었다. 신력을 10% 정도 화살에 집적시켰을 때, 전쟁에 참가 하지 않고 성 위에서 전쟁의 동태를 살피던, 유난히 덩치가 큰 기간테스족 하나가 갑자기 날 노려보았다. 나와 그 기간테스족과의 거리는 어림잡아 100여 미터. 그 거인은 날 쳐다보더니 씨익 웃었다. 얼라? 나 들킨거냐? "악!" 인티가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터트렸다. 날 보고 씩 웃은 그 거인 이 우리쪽으로 몸을 날렸기 때문이다. 성 위에서 한 번 발을 구르자, 그 거인은 순식간에 100여 미터를 가로질렀다. 실로 엄청난 도약 능력이었다. "멘델레예프여, 저에게 힘을...!" 인티는 급히 신력을 사용하여 머리 위에다 반원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 와 거의 동시에 거인은 방어막 위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아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인티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방어막이 순식간에 깨어졌다. 난 10%의 신력으로 만든 빛의 화살을 거인에게 날렸다. 거인은 두팔을 X자로 교차시키며 빛화살을 막았지만, 뒤로 튕겨졌다. 탁! 뒤로 튕겨진 거인은 가볍게 허공에서 한바퀴 돌더니 안전하게 언덕 위에 착지했다. 인티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난 다시 신력을 모으며 거인의 공격에 대비했다. 빛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거인의 팔은 멀 쩡했다. 이거... 왠지 불안해지는데....?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9.대 기간테스 전쟁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33 게 시 일 :99/11/11 22:45:01 수 정 일 : 크 기 :7.6K 조회횟수 :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09 대(對) 기간테스 전쟁 -6- 다른 기간테스족에 비해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생긴 그 거인이 날 향해 사 악한 -내가 보기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가장 아끼던 부하 둘을 죽인 자가 누굴까 살펴보고 있었는데, 너 같은 애송이가 그런 일을 하다니. 놀라웠다." 허... 그러셔? 그럼 계속 놀라워 하면서 성 위로 돌아가라! 그러나 거인은 돌아가지 않고 날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난 쓰러진 인티 를 힐끗 쳐다보았다. 부상이 심했는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상 태였다. 이런... 큰일났군. "내 이름은 알키오네우스! 내 부하 둘을 죽인 죄값을 치뤄라!" 거인은 내 머리 위를 향해 주먹을 내리꽂았다. 난 급히 인티처럼 신력으 로 방어막을 쳤다. 주먹이 방어막에 닿은 순간, 견딜 수 없는 충격이 내 몸을 뒤흔들었다. "컥!"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알키오네우스라고 이름을 밝힌 거인은 양손을 사용해 내가 쳐놓은 방어막을 내리쳤다. 쾅쾅쾅--! 연달아 몰려오는 충격에 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방어막은 사라지 지 않았다. 그러나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고 통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그런 방어막으로 내 주먹을 막을 수 있나 보겠다!" 알키오네우스는 신들린 듯이 마구 주먹을 내리꽂았다. 내 몸에 고통이 더 욱 가중되어갈 때마다 갑자기 내 머리 속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난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일년 중 거의 열달을 감기와 함께 생활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가 맑은 날이 거의 없었다. 조금 머리를 쓰 고 나면 항상 두통이 찾아왔다. 그러나 두통약은 먹어본 적이 없다. 약 먹 는 걸 싫어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두통약을 매일 사먹을 정도로 돈이 남아돌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복통도 두통 못지 않게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설사를 했다. 음식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탄 순두부를 먹고 잠을 잔 적이 있 었다. 한밤중에 속이 울렁거려서 눈을 떳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정말로 천장이 돌았다. 시계 방향인지 반시계 방향인지는 기억 안난다. 당 시 난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생각해 보라. 눈을 떳는데 천장이 빙글 빙글 돌고 있다면 믿겠는가? 난 내 눈이 잘못된 줄 알고 열심히 비비고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러 자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빙글빙글 돌던 천장이 그 속도를 늦추며 서 서히 멈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얼마 있으니 천장은 마침내 멈추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갑자기 구토가 몰려왔다. 식중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가 준 약을 먹고 잠을 잤더니 다음날 멀쩡해졌다. 그러나 그 후부터는 순두부만 보면 천장이 빙글빙글 돌던 기억이 떠올라 순두부를 기 피하게 되었다. 나원... 왜 이런 쓸데없는 기억이 떠오른 거지...? 모두 아팠던 기억이군 ... 몸이 아프니까 생각난 것인가? 그런데 왜 몸이 아프지? 아... 그렇군. 저 알키오네우스라는 거인 녀석이 나한테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 난 알키오네우스를 향해 천천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이상하리만큼 내 정 신은 맑았다. 그러나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또다른 내가 아프다고 절규하 고 있었다. 난 그런 나를 무시하며 왼손에 신력을 모았다. 아니, 모았다기 보다는 알키오네우스 주변에 있는 신력을 움직였다. 정신없이 주먹으로 방 어막을 내리치고 있던 알키오네우스가 내 표정을 보고 놀란 듯했다. 난 신 경쓰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력에 의한 소멸." 그리고 나서 알키오네우스 주변의 신력을 그대로 그 거인의 몸속에 쑤셔 박았다. 엄청난 양의 신력이 그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어 세포를 구 성하고 있던 분자들의 결합을 끊어버렸다. 알키오네우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의 몸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 기 때문이다. 아르고선 원정 때, 골드 드래곤이 피 한방울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듯이. 알키오네우스가 사라지자 내 머리에 떠올랐던 어릴 적 기억이 서서히 흐 릿해지면서 몸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으윽..." 난 바닥을 뒹굴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알키오네우스의 공격에 몸 이 망가져 버린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땅바닥을 뒹굴고 있던 날 잡았다. 그리고는 하얀 빛이 감 도는 손을 내 가슴 위에 대었다. 그러자 따뜻한 느낌이 드는 빛이 내 몸을 감쌌고, 날 괴롭히던 그 끔찍한 고통이 빠른 속도로 잠잠해졌다. "이제 괜찮으냐?" 말투는 노인네였지만 젊게 들리는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난 고개를 들어 말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얀 신복을 입은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는 데, 고아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청년은 내가 쳐다보자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다. 태양의 신 아폴론의 아들이지. 이번 전쟁에서 군의(軍醫) 역할을 맡았다. 그래, 몸은 이제 괜찮으냐?" "예...." "잠시만 기다리거라. 옆의 아가씨도 치료해야 하니까." 그렇게 말한 아스클레피오스는 쓰러져 있는 인티에게 다가가 몸을 낮추며 인티의 몸 위쪽에 손을 놓았다. 잠시후 그의 손에서 따뜻한 느낌이 드는 빛이 감돌았고, 그 빛은 곧 인티의 전신을 덮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치료를 다 했는지 아스클레피오스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말했다. "너나 저 소녀나 많이 다친 상태이니 무리하게 전쟁에 참가하지 말거라. 지금 내 신력이 너희들의 몸을 치유시켜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네." 아스클레피오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나저나 네가 소멸시킨 자가 누군지 아느냐?" 허걱! 그 거인 이름이 기억 안난다! 역시 난 아이큐가 두 자리인가.....? "아니요...." "후후, 넌 기간테스족의 우두머리인 알키오네우스를 제거한 것이다. 봐라 , 그가 죽으니 기간테스족이 저렇게 당황하고 있잖느냐." 난 성 쪽을 쳐다보았다. 알키오네우스가 서 있었던 성은 이미 아군의 손 에 떨어진 상태였고, 헤라클레스를 선두로 한 남군은 점점 북쪽으로 진격 하고 있었다. 헐... 전쟁이 하루만에 끝날 것 같은데? 아스클레피오스는 허공에 몸을 둥실 띄우며 입을 열었다. "난 부상자를 치료하러 가야 한다. 나중에 보자, 용감한 소년!" 그러면서 휭하니 싸움터로 날아가버렸다. 이런... 용감하긴 뭐가 용감하 다는 거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언덕 뒤에서 화살만 날리고 있었는데. 적군의 대장을 쓰러뜨렸더니 엄청 추켜세워 주는구만.... 그때였다. 갑자기 실프를 비롯한 다섯 정령들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 다. 멍청히 앉아 있는 나를 향해 실프가 입을 열었다. - 천계의 신력에 적응했어요. 주인님의 신력을 마력 삼아 천계에서도 활 동할 수 있게 됐지요. 하지만.... 지금은 주인님을 도와드릴 수가 없어 요. 정령신께서... 지금 저희를 부르시거든요.... 얼레? 정령신? - 정말 죄송해요. 겨우 신력에 적응했는데 도움도 못되어 드리고.... 실프는 얼굴에 하나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다섯 정령 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끌려가듯 일순간에 정령계로 사라졌다. 바람처럼 왔 다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정령들 때문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원.. ... 뭐가 뭔지 모르겠군. 정령신이 불러? 정령신이라면 정령들을 다스리는 신인가? 흠... 내 정령들이 뭘 잘못했나? 왜 억지로 정령계로 끌고 가버린 거지? 왠지 불안해지는데? 쩝... 내가 생각해봤자 뭐하냐... 나중에 정령 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그보다는 우선 인티의 상태나 살펴야 겠다~ 난 쓰러져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인티에게 다가가 인티 옆에 주저 앉았 다. 인티는 땅바닥에 쓰러져 편안히(?) 호흡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 땅 바닥에 놔두기 뭐해서 인티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인티." "으음...." 몇번 흔들자 인티는 신음과 함께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땅바닥에 쓰러 졌기 때문에 인티의 핑크빛 머리칼에는 흙이 많이 묻었다. 인티는 그것도 모르고 깨어나자마자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나한테 물었다. "우리를 공격했던 그 거인은....?" "아, 죽었어." "어떻게요? 누가 그 거인을 죽인거죠?" ... 사실대로 말해? 으... 왜 이렇게 대답하기가 귀찮다냐.... "내가." 난 최대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인티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가요? 정말이예요?" "그래. 그보다 머리카락에 묻은 흙이나 털어." 다음에 이어질 인티의 질문을 막기 위해 난 화제를 돌렸고, 그제서야 머 리가 더러워졌다는 것을 안 인티는 급히 머리를 정돈하였다. 하하, 역시 난 말돌리기 천재야! 그러고보니... 인티의 옷은 검은색 로브라서 땅위에 엎어져도 별로 더러 워짐을 못느끼겠군. 평상시에는 옷이 어떤 색인지, 무엇인지조차도 신경쓰 지 않았는데.... 갑자기 생각나네? 헐... 난 갈색 상의에 검은색 바지... 인티나 나나 검은색 계통이군. 쩝, 둘 다 어둠의 자식인가?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0.대 기간테스 전쟁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34 게 시 일 :99/11/11 22:45:40 수 정 일 : 크 기 :6.9K 조회횟수 :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0 대(對) 기간테스 전쟁 -7- 머리칼을 정돈하던 인티가 어느새 머리 정돈을 다 끝내고 나한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말해줘요. 어떻게 거인을 죽인거예요?" 나원... 꼬치꼬치 캐묻기는... 그냥 넘어가면 어디 덧나냐? "나도 몰라. 아르고선 원정 때하고 상황이 비슷할걸?" "아르고선 원정.... 그럼 골드 드래곤과 싸울 때 말인가요?"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인티는 몸을 바로하고 내 옆에 앉더니 물었다. "어디 다치진 않았어요?" "어... 다쳤는데 의술의 신이 나하고 인티를 치료해 주고 갔어. 그 신의 말로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았다고 쉬래." "네....." 인티는 아무 말없이 전쟁터를 바라보았다. 전선은 이미 북쪽으로 이동했 기 때문에 아군과 적군이 싸우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단지 북쪽에서 여 러가지 굉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 "......" 나와 인티는 그렇게 침묵을 지키며 앉아 있었다. 북쪽에서 들리던 굉음도 점점 작아지고 서서히 노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때쯤, 인티가 침묵을 깨트리며 나한테 물었다. "니트 오빠는... 아직도 아세트 언니를 사랑하나요....?" 뜻밖의 질문에 난 인티를 쳐다보았다. 인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난 잠시 당황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담담히 말했다. "아니. 이제는 별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 정말이예요...?" "왜? 아닌 것 같아보여?" "사실... 그래요...." 인티는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난 웃어보이며 말했다. "난 기억력이 나빠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방 잊어먹거든. 게다가 가장 중요한건... 난 사랑같은 건 못느낀다는 거야." "네? 사랑을 못느끼다뇨?" 인티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난 고개를 기간테스족의 성쪽으로 돌리 며 답했다. "난 사랑같은 건 못느껴. 단지 정(精)을 느낄 뿐이지." "정....?" "오랜시간을 같이 있으면 정이 싹트고, 그 사람이 이성일 경우에는 정이 사랑으로 바뀌지. 난 그런 타입이거든. 어떤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하는 일은... 장담하건대 절대 없어." "어떻게 장담할 수 있죠?" "응... 난 그런 사랑은 일부러 피하거든.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를 봐도 그냥 아름답다라고만 느끼는 거야. 그 여자를 내 애인으로 만들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러니까... 난 아세트를 사랑하지는 않아. 단지 정 이 들었을 뿐이거든. 뭐... 꽤 오래 같이 있었으니까 정이 사랑으로 변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세트는 이미 결혼했으니까... 내가 옛 정 때 문에 방황할 필요는 없지. 사실 아세트와 같이 있으면서도 마음 한쪽 구 석에서는 아세트가 날 떠났을 때를 대비하면서 생활했거든." 이런... 이거 완전 횡설수설이 되버렸다? 내가 말해놓고도 뭐가 뭔지 모 르겠어.... 이건 내가 지금 당황하고 있다는 증거인가? 이런이런..... 인티는 나직히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오빠는... 소심하군요...." 얼렐레? 그 말, 지금 내 횡설수설을 이해하고 던진 질문...? 어억... 정 말 엄청난 이해력이다.... 놀라워..... "내가 왜 소심한데?" "... 오빠는 일부러 사랑을 피하고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면 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사람이 떠날 때를 대비하니까요...." .... 정말로 내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니.... 인티의 아이큐는 분명히 200 을 넘을꺼야..... 어쩌면 300일지도..... 인티는 내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오빠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자신감없게 살아가는 거예요? 사랑하 는 사람을 붙잡지 않을 정도로?" 난 잠시 인티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보다가 석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 자신이 싫거든." "......" 인티는 잠시 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자신이 싫은거예요?" "그냥. 내 성격도 싫고, 내 주위 환경도 싫고. 그 모든 것들이 날 자신감 없게 만들지. 지금은 성격이 많이 거칠어졌지만 말이야."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북쪽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아름다운 무지개 를 타고 날아오고 있었는데, 빨주노초파남보의 일곱 가지 색이 절묘하게 배치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자였다. "전쟁이 끝났으니 속히 날 따라오라." 여자는 대뜸 그렇게 말하며 나와 인티 앞에 무지개를 만들어 주었다. 저 여자... 무지개의 여신인가? 무지개를 자유자재로 다루니 무지개의 여신이 맞겠지.... 아니면 말구. 마침 인티가 계속 질문할까봐 걱정하던 나는 급히 무지개 위로 올라섰다. 인티도 조용히 무지개에 올라탔다. 무지개의 여신은 우리 둘이 탄 무지개 를 동반하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가는 동안에 난 그 여신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말했다." 무지개의 여신은 필요한 대답만 했다. 쩝... 굉장히 쌀쌀하군. 뭐, 얼굴 이 예쁘니까 봐준다. 예쁜 여자는 뭘해도 예뻐보이니까. 헉... 뭐야? 그 무시무시한 살기가 어린 눈빛들은....? 무지개의 여신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제우스의 성이었다. 전쟁은 이미 끝 났다. 동서남북군의 군단장들이 제우스 성에 모여 제우스에게 상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나와 인티는 뒤늦게 도착한 쪽팔림을 무릅쓰며 헤라클레스가 앉아 있는 옆자리에 앉았다. 나와 인티가 들어왔을 때에는 헤라클레스가 마지막으로 보고하고 있었다. 보고가 모두 끝나자, 군신 아레스가 일어나 보고 상황을 정리했다. "동서남북군의 사망자는 총 32명, 부상자는 19명입니다. 그에 비해 기간 테스족은 전멸했습니다. 완전한 아군의 승리입니다." 얼레? 사망자가 더 많잖아? 그만큼 기간테스족에게 당한 신들은 대부분 죽었다는 뜻? 쩝. 기간테스족이 무섭긴 무섭군. 아레스의 말을 들은 제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두들 수고했다. 이것으로 이데아계의 평화는 지속될 것이다. 동서남북 군 군단장에게는 특별한 포상이 주어질 것이다." 앉아있는 신들을 죽 둘러보던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눈길을 멈추며 입 을 열었다. "헤라클레스, 그대는 인간으로서 이번 전쟁에서 많은 공적을 올렸다. 신 들과 함께 이데아계에 머무르는 것이 어떻겠느냐?" 뜻밖의 제안에 모든 신들이 크게 놀랐다. 붉은색의 신복을 입은 폭력의 신 비아가 즉시 일어나 말했다. "안됩니다! 어찌 인간을 이데아계에 두려 하십니까? 재고해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이곳은 이데아계! 결코 다른 존재가 들어와서는 안되는 신 성한 세계입니다!" 태양의 신 아폴론도 비아의 말에 동조했다. 다른 신들은 말은 안했지만 모두 둘의 생각에 동의하는 듯했다. 특히 제우스 옆에 앉아있던 헤라는 제 우스에게 살기어린 눈빛을 줄기줄기 토해내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제우스에게 말했다. "전 제가 사는 곳이 좋습니다. 그곳에는 제 아내 데이아네라가 있으니까 요. 전쟁도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가.... 알겠다. 아테네!" 제우스는 아테네를 불렀고 아테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우스는 약간 아쉬워하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헤라클레스 일행을 현상계까지 무사히 안내하거라." "네." 짧게 대답한 아테네는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날 따라오거라." 그리고는 혼자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헤라클레스는 나와 인티를 데리고 아테네의 뒤를 따라갔다. 제우스의 성을 나온 우리는 아테네가 만들어놓은 차원의 문 앞에 섰다. 아테네가 우리를 보며 한마디했다. "현상계에서는 아직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얼레? 이곳에서 거의 하루를 보냈는데 현상계는 1시간도 안 지났다구?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헤라클레스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인티를 끌고 차원의 문 안으로 들어갔 다. 들어가자마자 역시 눈부신 빛이 온몸을 감쌌고, 순간적으로 정신은 아 득해졌다. 음... 이제 돌아가는군. 그나저나 전쟁이 하루만에 끝나다니... 천계에서의 전투라서 그런가? 하여간 빨리 돌아가서 자야지~ -------------------------------------------------------------------------- ------ [번 호] 3982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5일 23:19 Page : 1 / 62 [등록자] THEBUR [조 회] 10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1~115 거역할 수 없는 운명 -1~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1.거역할 수 없는 운명-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37 게 시 일 :99/11/12 21:58:35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46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1 거역할 수 없는 운명 -1- 눈을 떠보니 나와 인티, 헤라클레스는 아테네의 신전 안에 있었다. 게다 가 우리 앞에는 우리에게 차원의 문을 만들어 주었던 8명의 최고위 사제들 이 서 있었다. 그들은 무사히 돌아온 우리를 보더니 굉장히 반가워했다. "이데아계는 어떻게 생겼나?" "아테네 여신님은 정말 신상과 똑같이 생겼나?" "최고신 제우스도 뵈었겠군!" 그들은 우리들에게 무지막지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나원... 이데아계 에 들어갔다 나온 인간은 우리가 처음인가? 엄청 시끄럽군. 난 빨리 가서 쉬고 싶었기 때문에 인티와 헤라클레스를 이끌고 급히 신전 을 나왔다. 물론 그들은 우리를 쉽게 보내주려 하지 않았지만 '이데아계의 일은 누설해서는 안됩니다'라는 내 말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푸하하,역시 난 천재인가? 아테네 신전을 빠져나온 우리는 곧장 헤라클레스의 집으로 향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정도였기 때문에 거리를 정말 한산했다. 나와 인티는 피곤 한 몸을 이끌며 헤라클레스를 따라갔다. 헤라클레스는 전쟁을 치르고도 별 피곤한 기색이 아니었다. 역시 신의 피가 섞여있어서 그러나? 부럽군. 우리가 대략 집까지의 거리의 1/3 정도 걸었을 때, 한 여자가 미친듯이 웃으며 밤길을 혼자 걷고 있었다. 먼지에 찌든 회색 로브를 입고 있는 여 자였는데, 그 얼굴과 검은 머리칼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을 심어주었 다. 근데 여자가 왜 소름끼치게 웃으며 밤길을 걷는 거지? 혹시 귀신? "메디아!" 인티가 그 여자를 알아보았는지 그렇게 소리쳤다. 메디아... 저 여자가 메디아? 흑마법사 메디아라구? 분명... 인상착의는 비슷하지만..... 왜 메 디아가 이곳에 있지? 이아손과 짝자꿍하면서 이올코스로 갔는데? 인티의 외침을 듣고 메디아-라고 짐작되는 여자-가 고개를 돌려 우리쪽을 바라보았다. 헤라클레스나 인티를 보고는 머리를 갸웃하던 그녀는, 날 쳐 다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메디아는 즉시 나한테 다가오더니 말했다. "넌 코르키스의 잠을 모르는 용을 소멸시켰던 소년 아니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메디아의 말투가 많이 변했음을 느끼면서. 아르고선 원정 때에도 자신의 동생의 사지를 잘라 왕궁의 추격대를 뿌리친 적이 있 긴 했지만 메디아의 말투는 대체로 온순했다. 그러나... 지금의 메디아의 말투는 완전히 사람을 깔보는 듯했다. 전혀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자기 편한대로 부르는 말 투. 왜 이렇게 메디아가 변했지? 설마.....? "저, 메디아. 왜 이곳에 있어요? 이올코스에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내 물음에 메디아는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듣기 아주 거북한 웃음 소리. 메디아는 잠시 그렇게 웃더니 허탈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르고선 원정이 끝난 후, 난 이아손과 함께 이올코스 궁전으로 갔지. 우리가 황금 양피를 가져왔음에도 이아손의 숙부 펠리아스는 왕위를 내 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숙부가 자신의 부모를 죽였다는 것을 안 이아손 은 나에게 펠리아스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했고, 난 흑마법으로 펠리아스 를 간단히 제거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우리를 추방시켰지. 결국 우 리는 코린토스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아손은 코린 토스 왕의 딸과 결혼해 버렸지. 히히... 우리 사이에 자식 둘이 있었는 데도 말이야....." 메디아의 표정이 표독스럽게 변했다. 그녀는 살기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 었다. 광기조차 어려있는 얼굴로. "그래서 어떻게 했는지 알아? 히히... 죽여버렸어.... 지옥의 불꽃을 봉 인시킨 옷을 그 공주에게 보냈거든. 그 옷을 입은 공주는 불꽃에 휩싸여 죽어버렸지. 히히.... 그 다음에 내가 낳은 아이들도 모두 죽인 후에 코 린토스를 떠나 이곳에 이르게 된거야. 이제 알겠어? 히히...." 메디아는 계속 듣기 거북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메디아의 말은 내가 예 상했던 일이 벌어졌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아손에게 버림받은 메디아가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사라진다.... 제길... 신화의 내용과 거의 들어맞 다니..... 메디아의 말을 들은 헤라클레스와 인티는 놀란 표정이었다. 자신의 자식 들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야 이미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고 있지만. 소름끼치게 웃던 메디아는 헤라클레스를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청년은 누구지?" 그 말에 대답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였다. "전 헤라클레스라고 합니다. 아르고선 원정 때 참가하기는 했었지만 도중 에 일이 생겨 니트와는 헤어지게 되었죠. 원정이 끝난 후에 다시 만난 겁니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거리는 이제 10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 로 어두워졌다. 난 헤라클레스에게 제안했다. "헬, 우선 오늘밤은 여관에서 지내는 게 어때요? 메디아를 저런 모습으로 집까지 데려가기는 그렇잖아요?" "음... 그건 그렇구나." 헤라클레스는 먼지에 의해 더러워진 메디아의 회색 로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리를 이끌고 제일 가까운 여관으로 향했다. 하룻밤만 묵 을 것이었기 때문에 돈 아끼는 차원에서 나와 헤라클레스가 같은 방을 쓰 고, 인티와 메디아가 같은 방을 쓰기로 했다. 쩝... 저런 무시무시한 여자 와 같은 방을 쓰게 되다니.... 인티가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으려나?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가면서, 메디아가 헤라클레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헤라클레스님은 결혼했나요?" 얼레? 말투가 또 바뀌었네? "아, 네." "행복하시겠어요?" "물론이죠. 하루 떨어져 있었는데도 마치 10년을 떨어져 있는 것처럼 느 껴지네요. 하하." 헤라클레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런 헤라클레스를 바라보는 메디 아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뭐, 뭐야? 메디아의 저런 표정은? 헤라클레스와 이야기를 마친 메디아가 나한테 다가오더니 귓속말로 속닥 였다. "오늘 밤 11시에 여관 밖으로 나와. 물론 혼자 나와야 되고, 다른 사람들 에게는 절대 알리지 마라. 할 얘기기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메디아는 우리 모두에게 '잠시 나갈 데가 있으니 먼저들 주 무세요'라면서 여관 밖으로 나갔다. 인티가 나한테 다가와 물었다. "메디아가 오빠에게 뭐라고 했죠?" "응... 아무것도 아니야." 난 대답을 회피하며 급히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그대로 드러 누웠다. 메디아는 왜 날 11시에 보자고 한 것일까.... 설마 날 잡아먹으려 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흠... 아무래도 헤라클레스를 바라보던 메디 아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아....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듯한.... 난 메디아의 말대로 밤 11시가 되어서 여관 밖으로 나갔다. 헤라클레스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혼자 나오는 것은 아주 쉬웠다. 여관 밖으로 나가자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메디아가 묘한 웃음을 짓더니 말 했다. "역시 말을 잘 듣는구나. 날 따라와." 메디아는 날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잠시 후에 나와 메디아가 도착한 곳 은 뒷산의 작은 언덕이었다. 메디아는 수풀이 우거진 쪽으로 날 데려가더 니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 두 명이 쓰러져 잘만한 공터가 있었다.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메디아는 득의에 찬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호호, 넌 용을 순식간에 소멸시켜버릴 정도로 강한 마법사지. 하지만, 너의 약점은 아직 세상 의 험함을 잘 모른다는 거야!"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2.거역할 수 없는 운명-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38 게 시 일 :99/11/12 21:59:17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4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2 거역할 수 없는 운명 -2- 얼레? 내가 세상의 험함을 잘 모른다구? 그거야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을 지금 꺼내는 의도는 무엇? 메디아는 내 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잘봐. 네 발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난 메디아가 말한 대로 발 아래를 쳐다보았다. 발 아래에는 그냥 작은 풀 들만이 자라고 있을 뿐, 특이한 것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메디아가 뭐 라고 중얼거리자 내 발 아래에 하나의 마법진이 붉은 빛을 발하며 나타났 기 때문이었다. 난 정확히 그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호호, 그건 움직임을 봉쇄시키는 흑마법의 마법진이야. 그 안에서는 그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어!" 뭐야, 이거? 정말 움직일 수가 없잖아? 그런데 이런 걸 왜 나한테 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왜 나한테 이런 결계를 치는 거지? 이유가 뭐야?" "이유를 알고 싶겠지? 물론 가르쳐 줘야지. 그럴려고 널 부른 것이니까." "....." 난 아무말없이 메디아만 쏘아보았다. 메디아는 그런 내 표정이 재미있는 지 깔깔대면서 말했다. "내 동료인 헤라클레스 말이야,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지? 호호... 그렇 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그 행복을 철저히 파괴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서 말이야, 호호." "그럼... 넌 헤라클레스의 행복을 파괴하려고 하는 거냐?" 메디아는 광기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난 이아손을 위해 조국을 버렸고, 내 동생도 죽였 고, 펠리아스도 죽여줬어! 하지만 이아손은 끝내 날 버렸지! 난 그런 불 행을 겪고 있는데 남들은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어! 난 그런 그들이 가 증스럽단 말이야!" "겨우 그 정도로 사람들의 행복을 짓밟겠다고? 너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자식까지 죽이 는 넌 뭐지? 네가 사람을 죽일 때, 남들이 널 어떻게 보는지 아냐구!" "닥쳐!" 메디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경멸어린 표정으로 메디아를 노려보았 다. 내가 할 수 일이라고는 메디아를 노려보며 입만 나불대는 것이었다. "호호, 그래도 난 내 신념대로 밀고 나갈 뿐이야. 내가 불행함을 느끼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불행을 느끼게 해 주겠어. 그 첫번째 대상으로 헤 라클레스가 뽑혔을 뿐!" "......" 난 입을 다물고 메디아만 노려보았다. 어떤 말을 해도 저 여자를 막을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메디아는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를 내며 말했다. "히히, 넌 이곳에서 잠이나 자라구. 그리고 추위에 떨면서 서서히 죽어가 는 거야. 분홍머리 사제 계집이 널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으니, 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 굉장히 슬퍼할꺼야. 안그래? 이히히...." ... 완전 미쳐버린 것 같다. 재주 있으면 날 죽여보시지? 메디아는 미친듯이 웃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는 중얼대기 시작했다. 마법 을 쓰려는 것 같았다. 난 정령들을 부르려 했지만 정령들은 내 마음 속 외 침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메디아에게 타 격을 줄 수 있는 파이어 볼의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잠들어라, 소년!" 내가 채 주문을 외우기도 전에 메디아의 주문은 이미 끝나버렸다. 제길! 정령을 부르지 말고 먼저 마법부터 사용했더라면 됐을텐데! 그 동안 너무 정령들에게 의지했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면 항상 정령부터 부르는게 습관 이 되어버렸어! "음...."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눈꺼풀이 자꾸 자유낙하를 시도했다. 난 졸음을 몰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뜨려 했지만 허사였다. 눈꺼풀 뿐만 아니 라 내 몸도 땅바닥에 처박혔다. 메디아가 움직임 봉쇄 마법을 거두어 들인 듯했다. 너무... 졸려. 빌어먹을... 여기서 자게 되면 난 얼어 죽는 수 밖에 없어 ... 지금이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제길... 더이상 생각이.... 이 어지지 않아.... 이런... 누가.... 나 좀... 도와줘...... "니트 오빠는 어디 갔죠?" 아침 8시. 헤라클레스, 인티, 메디아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고, 인티 가 헤라클레스와 메디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헤라클레스는 모르겠다는 듯 이 메디아를 쳐다보았고, 메디아는 평소와 같은, 별 의미없는 미소를 지으 며 답했다. "어디 갈데가 있다고 하면서 아침 일찍 먼저 갔어요. 어젯밤에 저에게 그 렇게 말했죠. 참, 그리고 헤라클레스에게 전해달랬어요. 헤라클레스의 집에 저를 잠시 머물게 해달라구요." 빌어먹을... 뻔뻔스럽군.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 날 뒷산 언덕으로 끌 고가서 잠재워 버렸으면서! 그곳에 엎어져 있는 날 생각하면....! 얼레? 근데 내가 지금 어떻게 된거지? 난 분명히 뒷산 언덕에 쓰러져 있 을텐데.... 어째서 인티와 헤라클레스, 메디아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게다 가 그들의 말까지도 들을 수 있는거지? 이게 도대체....? "정말로... 니트 오빠가 그렇게 말했나요?" 인티는 미심쩍은 얼굴로 메디아에게 물었다. 메디아는 능글맞은 -내가 보 기에. 남들에게는 보통 미소로 보인다- 웃음을 흘렸다. "호호, 똑똑히 그렇게 들었어요. 절 못 믿나요?" "아니요... 단지 오빠가 먼저 말없이 떠났다는게...." "왜요? 니트가 인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난게 속상한가요?" 메디아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인티는 황급히 고개를 흔 들었다. 그런 인티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메디아와 인티에게 말했다. "어서 갑시다. 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으니까요." "네." 메디아는 기쁨에 찬 얼굴로 대답하며 일어섰다. 인티도 아무 말없이 자리 에서 일어났다. 헤라클레스가 여관 주인에게 내 몫까지 여관비를 지불했고 , 그리고 나서 메디아, 인티와 함께 여관 밖으로 나갔다. 난 그들을 따라갔다. 허공을 날면서. 아무리 살펴봐도 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마치 정신만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 금 내가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헤 라클레스 일행을 따라갔다. 그때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내 정신을 두드렸다. - 주인님... 얼레? 이건 실프의 목소리? - 지금 주인님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많이 당황하실 거예요.... 당연히 당황스럽지. 정신만 둥둥 허공에 떠다니고 있는데 당황하지 않으 면 그게 사람이냐? - 현재 주인님은 제가 보낸 실프와 정신이 융합되어 있는 상태예요. 실프하고 정신이 융합되어 있다구? - 네. 주인님이 정신을 잃기 직전에 제가 주인님의 정신을 다른 실프의 정신과 융합시킨 거예요. 제가 직접 가서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정령신에 의해 정령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다른 정령과의 정신 융합을 시도한 것이구요. 다른 정령과의 정신 융합이 가능한거야? - 본래 그건 정령 마법사들이 하는 것이지만... 정령인 제가 주인님을 도 와드리고 싶어서 시도해본 것이예요. 그리고... 현재 주인님의 육체는 그 언덕에 그대로 있어요. 그래서 주인님의 정령인 사라만다, 노움 등 이 하급 정령을 그 언덕으로 보내어 주인님을 지켜드리고 있구요. 에? 너희들이 하급 정령을 보냈다구? 하급 정령인 너희들이 그렇게 할 수 도 있는 거야? - 저희는 주인님이 성장시킨 하급 정령이니까요. 지금의 저희들은 상급 정령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예요. 거의 정령왕의 능력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정령신께서 저희를 못 나가게 하시는 거예요. 하지 만... 꼭 정령신을 설득해 보겠어요. 그때까지 건강히 계세요.... 실프의 음성은 곧 끊어졌다. 난 잠시 멍한 상태로 허공에 떠 있었다. 정 령신이 내 정령들을 못 나가게 한다구? 너무 강해서? 나원... 감히 소환주 의 동의없이 내 정령들을 억압하는 거야? 정령신이라고 하는 녀석... 아주 기분 나쁘게 노는데? 아차!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헤라클레스의 뒤를 쫓아가야 해! 메디아가 무슨 일을 벌일 지 모르니까!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3.거역할 수 없는 운명-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40 게 시 일 :99/11/13 16:00:40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3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3 거역할 수 없는 운명 -3- 헤라클레스, 인티, 메디아는 곧 헤라클레스의 집에 당도했다. 정문 앞에 는 할버드를 든 두 명의 병사들이 서 있었다. 헤라클레스 등이 다가가자 두 병사는 할버드로 정문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난 이 집 주인인 헤라클레스다. 내 아내는 데이아네라이고. 헤라클레스 가 왔다고 그녀에게 전해주면 될거다." 헤라클레스의 당당한 말에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헤라클레스님이라구요?" 얼레? 왜들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짓지?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주인마님께 알려드리고 오겠습니다!" 병사 중 한 명이 그렇게 말하며 즉시 정문 안으로 뛰어갔다. 남은 병사는 할버드를 헤라클레스 앞에서 치우며 말했다. "어제 주인마님께서는 헤라클레스라는 분이 찾아오면 즉시 안으로 들이시 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주인마님께 알리는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다." 헤라클레스는 병사들의 태도가 흡족한지 연신 빙글빙글 웃었다. 흠... 데 이아네라가 병사들 교육을 잘시킨 것인가? 병사들도 있으니 하인들도 들어 왔겠네? 잠시후 안으로 들어갔던 병사가 두 명의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한 명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가벼운 옷차림 을 하고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였다. 둘은 다름아닌 데이아네라와 아린이 었다. 데이아네라는 헤라클레스를 보자마자 그에게 뛰어들어 입맞춤을 퍼부었 다. 둘은 열렬한 키스를 해댔다. 인티는 민망한지 고개를 돌렸고, 아린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흥미있게 바라보았다. 메디아는 헤라클레스와 데이아 네라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라의 열정적인 재회를 감상하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왜 벌써 왔어요? 이데아계에 무슨 전쟁이 일어났다면서요?" 아린의 질문에 인티가 대답했다. "전쟁이 있었긴 했지만 하루만에 끝났어요." "그래? 겨우 하루 싸울려고 인간들을 데려간거야? 나참...." 한심한 듯이 혀를 차던 아린은 내가 없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다. "어? 근데 니트는 어디갔어?" "그게... 먼저 갈데가 있다고...." "그래? 그 녀석... 혹시 딴 길로 샌거 아니야? 사창가 쪽으로...." 얼씨구? 내가 그런 인간으로밖에 안보이냐? 내가 없다고 막 말하네? "그럴리 없어요! 니트 오빠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구요! 오빠가 없다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요!" 인티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그런 인티를 보며 아린이 의미심장한 표 정을 지어보였다. "왜 그렇게 흥분해? 아무리 니트가 좋다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 티내지 말라구." "아린 언니!!!" 인티는 얼굴을 또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그런 인티를 보며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물론 메디아도 웃고 있었지만 눈은 살기로 뒤덮혀 있었다. 인티가 날 좋아한다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후후. 지금 내 가 뭔 생각을 하지? 인티가 날 좋아하든 말든 그게 중요한가? 어차피 아세 트처럼 어렸을 때의 호기심일 뿐이지.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다보면 아세트 처럼 날 떠날 테니까. 하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군. 누군가 날 좋아한다는게 기분 나쁠리는 없으니까. 특히 인티처럼 예쁜 여자애라면 더욱 좋지~ 퓨걀걀. 내가 쓸데없는 잡생각을 하는 동안 헤라클레스 등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언제 들어갔지? 하여간 난 너무 잡생각이 많아... 지금은 메디아가 무슨 짓을 하는지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는데 말이야. 헤라클레스 등은 거실에 마련된 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데이아네 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헤라클레스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가 메디아를 발견하고는 놀라 물었다. "저 여자분은 누구세요?" 다른 사람이 대답하기 전에 메디아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 메디아라고 해요. 갈곳이 없어서 잠시 이 집에 머물렀으면 한데, 허 락해 주시겠죠?" 데이아네라는 자신의 남편인 헤라클레스를 쳐다보았고, 헤라클레스는 그 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서 데이아네라도 메디아가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모두 고마워요. 거의 폐는 끼치지 않을 거예요." 메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헤라클레스에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졌다. 메디아 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나에게는 그 미소가 가식임을 금방 알아냈지 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메디아가 정말로 헤라클레스에게 어떤 딴 마음이 있다고 느낄 정도의 시선일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바로 데이아네라일테고. 역시나 데이아네라는 그런 메디아의 시선을 보고 얼굴빛이 변했다. 헤라 클레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데이아네라만 쳐다보며 싱글벙글했다. 이런... 메디아는 이런 방법으로 헤라클레스의 행복을 짓밟으려는 건가? 데이아네라는 정색을 하며 헤라클레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보, 무사히 집에 도착했으니 신들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때요?" "음... 역시 그래야겠지? 그럼 제사 준비를 해 주겠어?" 잠시 생각하던 헤라클레스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 데이아네라를 보며 말했 다. 그것을 들은 메디아가 한마디 했다. "그런데 그 옷을 입고 제사를 진행하실 건가요?" "예.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뇨. 문제라기 보다는 헤라클레스님이 더 훌륭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제가 그 옷을 마련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메디아는 입가에 매혹적인 미소를 달며 물었다. 헤라클레스는 헐렐레 하 면서 멍청하게 대답했다. "아, 그러죠." 그러자 옆에 있던 데이아네라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다른 여자가 자신의 남편의 옷을 마련해 준다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드디어 메디아가 본 격적인 행복 파괴 전략을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으로 합의본 헤라클레스는 병사들과 하인들 에게 제사 준비를 시켰고, 메디아는 헤라클레스가 제사 때 입을 옷을 준비 하기 시작했다. 난 우선 메디아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보기로 했다. 메디아는 제사복을 준비한답시고 밖으로 나가더니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샀다. 그리고는 헤라클레스의 집으로 돌아가 배정받은 자기 방에 콕 틀어박혔다. 난 문틈 을 통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난 정신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바람이니까. 아니, 정신 에너지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문을 연다든지 하 는 물리력이 필요한 일은 할 수 없어. 방 안으로 들어가니 메디아는 손으로 방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지나간 곳은 섬뜩한 핏빛을 발했다. 이윽고 마법진을 다 그린 메디아는 밖에서 사들고 온 옷을 마법진 중앙에 놓더니 거의 알아들 을 수 없게 뭐라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 ...." 이런...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저거 아무래도 흑마법 같은데? 메디아는 흑마법사니까. 그런데 도대체 옷에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르자 메디아는 중얼거림을 멈추고 나지막히 외쳤다. "지옥의 불꽃!" 화르륵--! 갑자기 옷이 붉은 불꽃에 휩싸였다. 불꽃은 마치 살아있는 듯 춤을 추더 니 이내 옷 안으로 스며들었다. 얼레? 불꽃이 옷에 스며들다니? 불꽃이 모두 옷 안으로 스며들자 붉은 빛을 뿌리던 마법진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메디아는 득의의 웃음을 발했다. "히히히, 헤라클레스! 너도 코린토스의 공주처럼 지옥의 불꽃에 의해 타 죽을 것이다! 이히히히!" 으윽... 웃음 소리 하나 끝내주는구나. 저 주둥아리를 막아버리고 싶어! 지금 그런 거에 신경쓸 때가 아닌데 자꾸 왜 이러지? 빨리 메디아를 막지 않으면 헤라클레스가 죽게 될지도 모르는데!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4.거역할 수 없는 운명-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41 게 시 일 :99/11/13 16:01:29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31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4 거역할 수 없는 운명 -4- 메디아는 지옥의 불꽃인가 뭔가가 스며든 옷을 들고 여유롭게 방 밖으로 나갔다. 난 즉시 메디아의 뒤를 따랐다. 메디아를 어떻게 막을지 생각하면 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메디아!" 메디아의 방 앞에서 데이아네라가 메디아를 불렀다. 메디아는 살랑살랑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데이아네라는 메디아의 웃음이 역겨운지 잠시 눈쌀을 찌푸렸다가 말했다. "그 옷... 제가 헤라클레스에게 직접 가져다 드릴께요." "음... 좋아요. 받으세요." 잠시 생각하던 메디아는 이내 웃음을 띠며 옷을 데이아네라에게 건네 주 었다. 데이아네라는 메디아가 너무 쉽게 옷을 건네주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더이상 신경쓰지 않고 그 옷을 들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 갔다. 얼라리? 데이아네라는 또 왜 방으로 올라간다냐? 궁금해진 나는 급히 데이아네라를 따라갔다. 자기 방으로 올라간 데이아 네라는 옷장을 열어 무엇인가를 찾았다. 잠시후 그녀는 어떤 작은 약병을 꺼내들었다. 그 약병 속에는 피처럼 붉은 액체가 들어 있었다. 데이아네라 는 그 약병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 네소스라는 켄타우로스가 남편의 사랑이 식었을 때 이 피를 사용하면 될거라고 했었지? 그래, 거짓말인지도 모르지만 사용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그 메디아라는 기분나쁜 여자로부터 헤라클레스를 지켜야 해!" 그러면서 헤라클레스가 입을 제사복 안에다 그 약병 속의 피를 바르기 시 작했다. 네소스의 피는 쉽게 옷 안으로 스며들었고, 이상하게도 전혀 엉기 지 않았다. 이런... 막아야 해.... 신화에서도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피를 바른 옷 을 입고 죽었는데.... 이 사실을 어서 알려야.....! 난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메디아의 지옥의 불꽃과 데이아네라가 바른 네소스의 피가 스며들어 있는 저 옷을 입었다간 신의 피를 이어받은 헤라 클레스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급히 내 육체가 쓰러져 있는 어떤 여관의 뒷산 언덕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 언덕을 금방 찾을 수는 없었다. 난 정확히 그 위치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바람의 정령처럼 허공을 빠른 속도로 날 수 있어서 온 도시 안을 뒤져 마침내 내 육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육체는 메디아에게 당했던 그 언덕 위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하급 정령인 사라만다와 노움이 내 육체를 지키듯 서 있었다. 물론 그 정령들은 내가 키운 정령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내 정령들이 소환 한 하급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음... 밤새도록 저 둘이 내 육체를 지켰나 보군.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지 만, 지금은 빨리 내 육체 안으로 들어가서 메디아의 마법을 깨버려야 해. 난 서둘러 내 머리 속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건 아주 쉬웠다. 그러나 내 몸을 느낄 수는 없었다. 내 머리는 메디아의 마법에 의해 퍼질러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마법을 풀 수 있지? 마력을 이용해야 하나? 하지만 난 마법 해제 주문 같은 건 모르는데..... 음... 정령들을 이용할까? .... 그것도 별 소용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남은 건.... 신력? 난 내 몸속에 있는 신력을 일제히 일으켰다. 축적되어 있는 신력의 10%를 사용하자 메디아의 마법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메디아의 마법이 신력에 의해 박살나자마자 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몸이 완전히 굳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난 욕을 바가지로 하며 몸을 꼼지락거렸다. 그러자 서서히 몸에 감각이 살아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여를 소비하자 마침내 난 예전처럼 몸 을 움직일 수 있었다. "제길!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잖아?!" 평소라면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았을 테지만 화가 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로 튀어나왔다. 내가 일어나자 내 옆에 있던 하급 정령인 노움과 사라만다는 정령계로 사라졌다. 내 정령들이 그 하급 정령 둘을 정령계로 데려가 버린 듯했다. 난 내 정령들을 불렀다. 그러나 전혀 무응답이었다. 이런... 아직도 정령 신에게 묶여 있는 건가? 그 녀석들이 없으면 난 별볼일 없는 인간인데.... 정령들의 도움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뛰어가기로 했다. 대충 방 향을 잡고 무작정 뛰었다. 다행히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지 별 어려움 없이 헤라클레스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정문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 길한 느낌이 든 나는 급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크으으윽....!" "이히히히!!!" 누군가의 고통에 찬 신음 소리, 그리고 미친 듯이 들리는 웃음 소리. 난 그 소리들을 듣고 내가 우려했고, 그래서 막으려 했던 일이 터져버렸음을 알았다. 모두들 정원에 나와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투명하지만 핏빛의 불꽃에 휩 싸여 정원에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으며, 인티와 아린은 살기어린 눈으로 그들의 앞에 서 있는 메디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방은 온통 불바다였다. 메디아의 마법에 당했는지 불에 그을린 시체 여러 구가 여기저기에 나뒹굴 고 있었다. 메디아는 널려있는 병사들과 하인들의 시체를 한번 쓱 훑어보 고는 입을 열었다. "히히, 멋지지 않아? 모두들 죽어가는 모습이!" "닥쳐! 도대체 저 옷에 무슨 마법을 쓴거야?" 아린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메디아는 막 대답하려다가 멍청히 서 있는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는거냐?!" 그제서야 인티와 아린도 날 발견하고는 놀랬다. 평소라면 반가워 했겠지 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러지는 않았다. 난 즉시 인티와 아린 옆에 서며 메디아에게 소리쳤다. "네가 병사들과 하인들을 모두 죽인거냐?" "히히, 그렇다! 내가 아니면 이 인간들을 누가 죽이겠어? 이히히!" 메디아는 광기어린 웃음을 내뱉었다. 불꽃에 휩싸인 헤라클레스는 오열했 다. "데이아.... 크으윽...." 그의 손에는 아름다운 드레스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데이아네라 의 옷이었다. 그렇다면... 데이아네라가.....? "데이아네라는... 불꽃에 휩싸인 헤라클레스에게 손을 댔다가.... 흔적도 없이 타버렸어요.... 흔적도 없이....." 인티가 울먹이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불꽃은 인간의 육체만을 태워버 린 듯, 헤라클레스의 손에 들린 드레스는 타지 않고 있었다. 제길... 늦었 어.... 결국 막지 못하다니..... "이히히, 어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분이?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한 줌의 재로 변한 기분이? 이히히히!" 메디아는 미친 듯이 웃었다. 난... 죽이고 싶어졌다. 저 광기어린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어졌다. 자신의 불행을 남도 겪게 하려는 저 가증 스러운 얼굴을.... 남의 불행을 보고 미친 듯이 웃는 저 얼굴을..... "야, 니트!" 메디아에게로 천천히 다가가는 내 귀에 아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 은 다급한 목소리로 나한테 외치고 있었다. "너 설마 메디아를 공격하려는 거야? 메디아를 죽이면 헤라클레스를 구할 수 없다구! 헤라클레스를 구해야지!" 난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 대신 신력을 일으켜 검을 만들었다. 신력만으로 이루어진 검을. 내 몸에 남아있던 모든 신력으로. "히히, 신력을 가지고 있었다니 놀라운데? 하지만 날 죽이면 헤라클레스 는 저대로 죽게 될껄?" 메디아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런 말이 오히려 나의 분 노를 부채질했다. 내 손에 들린 검은 내 마음속의 살기가 강해지자 더욱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정원을 태우던 불꽃도 점점 기승을 부렸다. 헤라클레스의 고통에 찬 울음, 아린의 외침, 메디아의 광소, 정원을 태우 는 불꽃 소리.... 그리고... 내 마음 속에 떠오르는 단어 하나. ..... 살(殺)!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5.거역할 수 없는 운명-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51 게 시 일 :99/11/14 11:28:41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1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5 거역할 수 없는 운명 -5- 난 천천히 손에 들린 검을 들어올렸다. 내 귀로는 더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메디아를 죽이겠다는 외침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 들었던 검을 그대로 내리쳤다. 검은 찬란한 빛을 뿌렸다. 메디아와 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절대로 검이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러나 난 느 꼈다. 손에 들린 검을 통해서... 무엇인가가 베어졌음을. .... 광기어린 메디아의 얼굴에 금이 갔다. 머리 꼭대기에서 턱 밑까지 정확히 반으로 그어진 미세한 균열. 아주 짧은 순간, 메디아의 표정이 변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피가 터져 나왔다. 피는 나한테까지 날아오지 못했다. 메디아는 정확히 얼굴이 두 쪽으로 쪼 개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부분은 멀쩡하고 얼굴만 두 쪽난 시체. 목 을 통해 피가 철철 흘러넘쳐 정원의 풀들을 물들였다. 난 그런 메디아를 담담히 내려다보았다. 나조차 놀랄 정도로 담담히. "크으윽....!" 헤라클레스의 신음소리가 내 정신을 들게 했다. 헤라클레스의 목숨이 위 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급히 헤라클레스에게 뛰어갔다. 헤라클레스는 투명한 붉은 불꽃에 휩싸인 채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화상 을 입은 듯 붉게 변해갔지만 피부가 타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헤라 클레스의 몸에는 온통 검은 반점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네소스의 피 에 의한 중독 현상일 것이다. 네소스의 저주가 깃든 피. "니.. 니트..." 헤라클레스가 힘겹게 입을 열어 날 불렀다. 뭔가 할말이 있는 듯한 표정. 난 말없이 헤라클레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헤라클레스는 자조적인 웃음 을 띄며 말했다. "창고에서... 나무 장작을 가져다 줘.... 내 몸이 완전히 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불길을 만들 나무 장작을....." "헤라클레스!" 그 말을 들은 아린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헤라클레스의 말은 자신 스스 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뜻이었으니까. 헤라클레스는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데이아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살아서 뭐하겠어.... 날... 그냥 편히 죽게 해줘....." "......" 난 헤라클레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소스의 피에 의해 검은 반 점이 생겨난 얼굴. 피부를 점점 태워가는 지옥의 불꽃. 그 속에서 헤라클 레스는 웃고 있었다. '치료 마법을 걸어줄께요. 아니면 인티의 신력으로 치료를 해줄께요.' 그 말은 내 입가에서만 맴돌 뿐 말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내 몸은 저절 로 창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인티와 아린이 나에게 뭐라고 말했지만 난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듣고는 있었지만 내 머리는 그것을 거부했 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난 헤라클레스의 말대로 나무 장작을 가지고 나 왔다. 마력이 마음대로 움직였고, 마력으로 인해 형성된 바람이 많은 나무 장작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내가 헤라클레스에게 다시 돌아왔을 때, 인티는 신력으로 치료해주겠다고 헤라클레스를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전혀 치료받을 마음 이 없어보였다. 오히려 내가 나무 장작을 잔뜩 가지고 나오자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주르륵... 헤라클레스의 피부가 갈라졌고, 그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 했다. 그럼에도 헤라클레스는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제단 위에.... 그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줘.... 내가 누울 수 있게...." "......" 난 아무 말없이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만든 제단 위에다 나무 장작 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러자 아린이 내 앞을 막으며 외쳤다. "이 바보야! 지금이라도 헤라클레스에게 치료마법을 걸면 살릴 수 있잖 아! 왜 이러는 거야?!" 그러나 난 텔레포트로 가볍게 아린을 건너뛰었다. 그 어떤 주문 없이 텔 레포트를 썼던 것이다. 아린이 크게 놀랐다. "너....!" 장작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내가 직접 쌓은 게 아니라, 마력으로 거의 한 꺼번에 쌓아올린 것이었다. 내 몸 속의 마나는 마치 또다른 생명처럼 움직 이고 있었다. 장작이 모두 쌓이자, 이번엔 인티까지 합세하여 내 앞을 막았다. "니트 오빠! 정신 차려요! 지금의 오빠는 오빠 자신이 아니라구요!" 응...? 내 자신이 아니라고? 내 자신이.... 아니야.....? - 신력을 지닌 소년이여 얼레? 이 목소린.... 최고신 제우스? - 그렇다. 난 올림포스의 최고신 제우스다. 근데 지금 내 머리 속에 들어와서 뭣하는 짓이야? - 헤라클레스를 데려가기 위해 그대의 육체를 잠시 빌리는 것 뿐. 헤라클레스를 데려간다고? 그건 헤라클레스를 죽이겠다는 뜻이냐? - 쉽게 말해 그렇다. 헤라클레스는 지금 죽을 운명이니까. 운명? 그럼... 지금의 내 행동은 모두 네 녀석 짓이냐? - 그렇다. 너의 몸은 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신이 직접 내려와 무엇인가 를 하는 것은 허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신력을 지닌 자의 몸 을 빌어 할일을 하게 되지. 신력을 지닌 자....? 다른 인간은 안되나? - 그렇다. 오직 신력을 지닌 자만이 신의 강림을 받을 수 있다. 신의 강 림을 받은 자는 오직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되지. 그래? 그럼 당장 나오시지? 왜 내 몸속에 들어와 지랄이야? - 말했잖는가. 헤라클레스를 데려가기 위해서라고. 이런, 앞의 두 소녀가 자꾸 걸리적 거리는군. 잠시 네 마력을 써볼까? 갑자기 내 몸속의 마나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마나의 공명이 발생 했고, 아린과 인티는 어떤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풀썩하고 쓰러졌다. 뭐야? 이 자식! 너 지금 무슨 짓을 한거야?! - 잠시 저들을 재웠을 뿐이다. 누가 그러라고 했어? 앙?! - 그건 나의 의지. 넌 나의 종일 뿐. 시끄러! 당장 꺼지란 말이야!!! 차곡차곡 쌓여진 나무 장작 위로 헤라클레스가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담담했다. 전혀 생의 미련이 없는 듯했다. 장작 위로 올라간 헤라클레스는 장작 위에 드러누웠다. 갈라진 피부 사이로 피가 흘 러 나와 장작을 붉게 물들였다. "니트... 이제 불을 붙여....." 헤라클레스는 누운 채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내 머리 속에 갑자기 파 이어 월(Fire Wall)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곧이어 마나의 공명이 일어났고 장작 주위에 강력한 파이어 월이 형성되었다. 파이어 월의 불꽃이 나무 장 작에 옮겨 붙었고, 장작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또 네 놈 짓이냐? 주문도 모르는 파이어 월을 쓴 녀석이? - 당연하지 않은가. 신이 아니면 누가 주문도 모르는 마법을 쓰겠는가. 닥쳐! 남의 몸을 빌려 쓰고 있는 주제에 뭐가 그렇게 말이 많아?! - 후후. 꽤나 시끄러운 인간이군. 신이 강림했으면 경건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할 것 아닌가? 무슨 얼어죽을 경건한 마음이야? 남이 내 몸을 지배하고 있는데 뭘 받아 들이라는 거야, 이 미친 녀석아! - 후후. 제우스는 웃었다. 득의에 찬 웃음. 젠장... 빌어먹을!!! 불꽃은 활활 타올라 헤라클레스의 근처까지 그 영역을 넓혀갔다. 불꽃이 그의 몸을 뒤덮기 직전, 헤라클레스는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보였 다. 그의 눈에서 눈물 하나가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화르륵-- 마침내 불꽃은 헤라클레스의 전신을 완전히 뒤덮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무 장작 타는 소리밖에 없었다. 잠시 후, 헤라클레스가 누워 있던 자리로부터 하나의 둥근 빛이 형성되더 니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제우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이것으로 헤라클레스는 이데아계에서 살게 되었다. 후후. 수고했다, 소년. 이제 네 몸에는 신 력이 없으니 앞으로는 못 만나겠구나. 후후.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제우스는 내 몸 속에서 빠져나갔다. 그러자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난 제우스를 향해 마구 욕설을 내뱉으며... 정신을 잃었다..... [번 호] 3983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5일 23:20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0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6.악마의 땅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6.악마의 땅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52 게 시 일 :99/11/14 11:29:26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1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6 악마의 땅 -1- 따그닥 따그닥-- 음... 왠 마차 소리가 들리는 거지? .... 이 덜컹거리는 느낌.... 얼레? 이건 마차 안에 탔을 때의 덜컹거림인데? 그럼 내가 마차 안에 타고 있다 는 말? 얼렐레? 근데 머리에 느껴지는 이 부드러운 감촉은 뭐지? 음... 따뜻하고 부드럽고.... 마치 엄마의 품같은.... 후후. 또 거짓말을 했군. 엄마의 품 같아? 난 엄마의 품이 따뜻한지 편안한지 느껴보질 못했어. 어렸을 때의 기억을 지금까지 기억할 리 없을 뿐더러..... 엄마도 일하러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나와 놀아줄 시간이 없었으니까.... 엄마의 품이 어떤지는 전혀 몰 라. 그리고 알 생각도 없고.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접어버리고 난 눈을 떳다. 처음엔 흐릿하 던 시야가 차츰 맑아졌다. 그런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인티의 맑 은 두 눈동자였다. 흠... 인티의 눈동자는 초록색이었군. 머리칼은 핑크색이고 눈동자는 초 록색이라.... 뭔가 맞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쁘군. 뭐? 눈동자 색을 왜 이제야 알았냐구?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평상시에 남의 눈동자 색깔에 신경쓰는 인간이 어디있어? 눈동자 색깔 알아보려고 남의 눈을 자세히 들 여다 보면 '미친 놈'이라는 소릴 듣지. "아! 이제 깨어났군요!" 인티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내 잡념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헐렐레?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인티의 무릎 위에 누워 있잖아? 허걱! 난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아니, 이번에도 일으키려고만 했을 뿐, 일어 나지는 못했다. 몸이 몸 같지가 않았다. 제길... 또 이런 현상이군..... "왜요? 움직일 수 없어요?" 인티가 잔뜩 인상쓰고 있는 날 향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난 그저 고개 만 끄덕여 준 뒤, 손을 움직여 보았다. 처음엔 잘 움직이지 않았지만 약간 의 시간이 지나자 내 맘대로 움직였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흘러서야 난 예전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내가 몸을 일 으켜 앉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린이 물었다. "몸은 괜찮은 거야?" "응. 그럭저럭. 근데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어디긴 어디야, 바이올로지. 유스타키오의 집으로 가고 있어." 유스타키오의 집... 흠... 오랜만에 찾아가는 건가? 본래는 헤라클레스의 집에 잠깐 들른 다음에 바로 가려고 했는데.... 잠깐, 헤라클레스는....! "헬은... 어떻게 됐어....?" 힘없이 물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묻기가 그랬다. 아린은 나직히 한숨 을 쉬며 대답했다. "죽었어. 뼈만 남았지. 집은 모두 타버렸고." "그래...?" 난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 헤라클레스가 웃는 모습이 보였다. 허 걱...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난 호모가 아니란 말이다!!! 흠흠... 기분 전환도 좀 할겸 물어나 봐야겠군. "그런데... 집이 불탔는데 불도 안 꺼주고 나왔어?" 내 질문이 뜻밖인 듯 인티와 아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폼잡고 마차 밖 을 바라보다가 그런 질문을 받으니 헷갈리는 모양이다. 후후, 재미있네? 아린은 잠시 정신을 가다듬더니 이내 대답했다. "그게... 너 데려나오기도 벅차서 말이야.... 불 꺼줄 시간이 어딨어." ".... 화재는 국가적 손실인데.... 돈이라도 들고 나오지 그랬어?"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아린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날 쏘아보았다. 난 담담히 말했다. "진심이야." "......" 아린의 표정이 변했다. 뭔가가 폭발할 듯한 표정. 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내 모습에 아린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 듯 보였다. 대신 인티의 목 소리가 들렸다. "다행이예요. 기운을 차리셔서...." "다행은 뭐가 다행이야!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저 사악한 녀석이!" "그러지 마세요, 아린 언니. 니트 오빠는 나름대로 슬픔을 떨쳐버리려는 거니까요." 쩝... 난 멀쩡히 있는데 왜들 저런다냐.... 뭐... 나도 조금은 마음이 그 렇지만... 그다지 슬프지는 않군. 단지 나를 화나게 하는 건.... 그 제우 스라는 녀석이 내 몸을 빌어 헤라클레스를 죽여버렸다는 것. 제길... 신이 면 다야? 왜 남의 몸을 빌려쓰냐구! 난 눈을 뜨고 인티를 바라보았다. 인티는 아린과 말을 주고 받다가 내 시 선을 느끼고는 물었다. "왜 그러세요?" "... 인티도 신의 강림을 받은 적이 있어?" "신의 강림이요?"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응... 내 몸 속에 신이 들어왔었거든. 최고신 제우스가." "......!" 내 말에 아린과 인티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아린과 인티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헬의 말대로 장작을 가져다 쌓아놓은 건... 내 의지가 아니야. 제우스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자기 멋대로 한 일이지. 헬은 이미 죽을 운명이라면 서. 그때 내가 사용한 마법은 모두 제우스의 작품이고. 신력을 가진 자 만이 신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나 뭐라나." "어떻게 그럴 수가......!" 제일 놀란 사람은 사제인 인티였다. 인티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침중 히 입을 열었다. "그랬어... 역시...." "응? 뭐가?" 아린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인티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니트 오빠를 만나기 전, 신력을 사적으로 쓰고, 돈벌이를 위해 썼을 때 왜 신이 계속 신력을 보내주었는지... 이제야 알았어요. 그건... 신력을 가진 자만이 신의 지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물질계에서 활동할 필 요가 생기면.... 그들을 이용하기 위함이라는 걸....." "......!" 나와 아린은 크게 놀랐다. 그 말은 언제라도 사제를 통해 신들이 물질계 에 힘을 뻗칠 수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설마... 너무 지나친 추측 아니야?" 아린의 물음에 인티는 힘없이 대답했다. "저의 지나친 추측이라면... 좋겠어요....."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기분도 우울해졌다. 마차 만이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대략 일주일 정도 마차를 타고 간 끝에 유스타키오의 집, 정확히 말하면 유스타키오의 아버지이자 센세의 시장인 마이스너의 성에 도착했다. 성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 넓은 정원, 높은 담장, 큰 정문, 그리고 두 명 의 문지기 병사. 갑자기 유스타키오랑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나는군. 우리는 마부에게 돈을 지불하고 나서 천천히 성 앞으로 걸어갔다. 두 명 의 문지기 병사는 성 앞으로 다가오는 우리를 발견하고 거의 반사적으로 우리 앞을 막으려다 인티와 아린을 발견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꽤나 놀 란 것 같았다. 그 중에 한 병사가 소리쳤다. "유스타키오님의 동료분들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러고는 성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남은 병사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엔 거의 3달만에 돌아오셨군요. 근데... 저 소년은.....?" 얼씨구? 날 모른다 이거야? ... 뭐 나도 병사들은 아무도 기억 안 나지만 말이야.... 피장파장이군..... 인티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바로 팀파니의 불임을 치료한 '기적의 마법사'라구요!" "기적의 마법사!" 병사는 무지하게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기적의 마법사... 그 말도 참 오랜만에 듣는군. 그러고 보니 '오크의 마법사'란 말도 떠오르는데.... 그 리고 에너지라는 마을이었던가? 거기서 살고 있는 크... 아, 크레아틴 오 크들도 생각나는군. 그 오크들의 대장인 헤모글로빈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 어쨌든 따라잡았습니다. -양치기 소녀 삽질꾼 백- [번 호] 3995 / 4025 [등록일] 1999년 11월 16일 12:51 Page : 1 / 23 [등록자] THEBUR [조 회] 7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7~118. 악마의 땅 -2~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7.악마의 땅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61 게 시 일 :99/11/15 21:44:27 수 정 일 : 크 기 :6.2K 조회횟수 :5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7 악마의 땅 -2- "저, 정말 이 분이 기적의 마법사란 말입니까?"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물었다. 그런 병사를 보며 인티 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가 신기한 물건을 볼 때처 럼 야리꾸리한 시선으로 날 살펴보고 있을 때, 성 안으로 들어갔던 다른 병사가 사람 하나를 데려왔다. 180정도 되는 훤칠한 키에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썹을 가진 20대 중반 의 청년. 입고 있는 옷은 귀족들의 옷이었지만, 그는 분명 용병이었으며 나의 동료였던 유스타키오였다. "니트!" 유스타키오가 날 발견하고 기쁜 듯이 소리쳤다. 그는 제일 먼저 나한테 달려와 날 강하게 껴안으며 말했다. "돌아왔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다구!" 컥컥... 유스타키오의 힘도 장난이 아닌데? 이러다가 어깨뼈고 가슴뼈고 모조리 다 부서지겠다! "흥! 유스 눈엔 니트만 보이는 모양이죠? 우린 신경도 안쓰구!" 아린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유스타키오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유스타키오 의 말. "너흰 넉달 전에 봤잖아." "......" 헐... 갑자기 찬바람이 부는군. 하긴... 나와 유스타키오는 거의 일년만 의 재회니까. 흠... 유스타키오의 아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도깨비 얼굴? "자자, 우선 안으로 들어가자!" 유스타키오는 우리를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정령들과 마법 수 련을 했던 정원을 지나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실로 향하는 동안 여기저기 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소년이 팀파니 마님의 불임을 치료했다는 기적의 마법사?" "어려보이는데 그런 엄청난 일을 하다니....." "정령도 다룬다지 아마?" "소문엔 에너지 마을의 크레아틴 오크들을 회개시킨 사람도 저 소년이라 는데?" "그래?" ... 쩝. 내 소문이 무성하군. 난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가 아닌데.... 헐. .. 그런 살기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지 말아주.... 나와 유스타키오, 아린, 인티는 접견실 안으로 들어갔다. 접견실 안의 커 다란 원형 탁자에는 고급 옷을 입은 마이스너 시장이 앉아 있었다. 마이스 너 시장은 가식적인 웃음을 띄우며 우리를 맞았다. "어서들 오게. 두 숙녀분은 넉달만이고, 니트군은 일년만이로군." 난 그냥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솔직히 마이스너 시장에게 입을 열어 인사하기 귀찮았다. 그렇게 해봤자 반겨줄 인간이 아니니까. 며느리의 불 임을 치료해줬으면 어느 정도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지... 전혀 고마워할 줄 몰라.... 날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저 눈빛을 보라구.... 우리가 자리에 앉자 마이스너 시장이 날 보며 말했다. "니트군, 앞으로 이 성에서 지낼건가?" 어쭈구리.... 처음부터 본론으로 나가시겠다? "네." "그럼 예전에 니트군이 썼던 방을 쓰도록 하게. 2층에 있는 7번 방이네. 난 바쁜 일이 있으니 이만 가보겠네." 마이스너 시장은 자기 할말만 하고 휭하니 접견실을 나갔다. 그런 그의 태도에 모두들 말은 안 했지만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그의 아들인 유스타키오는 우리에게 상당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너희들이 이해해 줘." "괜찮아요. 그나저나 유스의 아들을 봐도 되요?" 내 말에 유스타키오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물론 되지! 모두 날 따라와!" 유스타키오는 싱글벙글 거리며 우리를 3층으로 안내했다. 아... 유스타키 오의 가족은 모두 3층에 살고 있었지.... 역시 일년이나 지나다보니 거의 잊어먹어 버렸어..... 우리는 팀파니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유스타키오가 노크를 하자 안에 서 팀파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스인가요?" 헐... 여전히 목소리는 곱군. 애까지 낳았으면서 말이야. 근데 목소리하 고 애 낳은 거하고는 아무 상관없나? "응. 아린과 인티, 그리고 니트가 돌아왔어." 그렇게 말한 뒤, 유스타키오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보니 팀파니는 비교적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침대 옆에 놓인 유아용 침대 속의 아기를 재우고 있었다. 나와 아린, 인티를 본 팀파니가 반가운 표정 을 지었다. "모두 오랜만에 보는군요. 특히 니트는요." "안녕하세요." 내 입에서 절로 인삿말이 튀어나왔다. 인사하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마이스너 시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내는 팀파니. 하여간 팀파니도 그런 시아버지 밑에서 생활하려니 힘들꺼야.... 유아용 침대에는 귀엽게 생긴 아기가 조용히 잠자고 있었다. 나와 아린,인티가 아기를 쳐다보자 팀파니가 입을 열었다. "이제 5개월 되었답니다." 헐... 이제 5개월.... 아기들을 보면서 귀엽다는 생각은 별로 안들었었는 데.... 이 녀석은 꽤 귀여워 보이는군. 크면 미남되겠어.... 부러워.... 그때였다.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매형, 친구분들이 돌아오셨다구요?" 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을 한 사람은 팀파니의 남 동생인 루피니였다. 그리고... 아세트의 남편이기도 하고..... 루피니는 나한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다. 흑기사와의 싸움 이후 벌써 일년 넘게 지났으니까." ... 그렇군. 루피니와 아세트가 결혼한다고 알린 날, 흑기사가 자기 동료 들을 데리고 내 붉은 구슬을 얻으려고 쳐들어 왔었지..... 벌써 일년이나 지난 얘기로군. 세월도 참 빨라. 허걱! 그러고 보니.....!!! 난 급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에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 었다. 잡혔다. 내 바지 주머니 속엔 붉은 구슬이 아직 들어 있었던 것이다. 하 지만... 흑기사에게서 뺏었던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은.... 헤라클레스의 집에 그대로 두고 와 버렸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왜 그래요?" 인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난 힘없이 대답했다. "리소좀을 놔두고 와서...." "......!" 내 말에 아린과 인티는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듯 보였다. 하지만 리소 좀을 잃어버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 법이 적힌 연습장과, 교복을 넣어 놓은 가방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 제길... 불길 속에 완전히 타버렸겠군. 교복도 타버렸을 테니 만약 본래 세계로 돌아가더라도 걱정이다..... 문제집도 태워먹고..... 으..... "죄송해요... 불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인티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사과했다. 인티와 아린이 내 물건을 챙길 수 없었던 이유는 물론 알고 있다. 당시 난 불타는 정원에 쓰러져 있 었으니까. 제우스가 내 몸속에서 빠져나간 후에 아마 인티와 아린은 제 정 신을 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불타는 정원 속에서 날 구하느라 다른 것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테고. 쩝...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으아... 이제 앞으로 주문을 외워 마법을 사용하기는 글렀구나.... '기적 의 마법사'가 '이름만 마법사'로 추락하는 소리가 들린다아..... 난 힘없이 붉은 구슬을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때 루피니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민 손 무안하게 할거야?" 그 말에 난 루피니가 나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서 급히 손을 마주 잡았다. 쩝... 악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내가 마음이 넓어서 봐준다. 역시 난 신사적이야~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8.악마의 땅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62 게 시 일 :99/11/15 21:45:10 수 정 일 : 크 기 :5.7K 조회횟수 :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8 악마의 땅 -3- 나와 아린, 인티, 유스타키오, 루피니는 서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 다. 그러나 아세트를 찾아가지는 않았다. 루피니의 얘기로는 아세트가 현 재 임신 8개월이라고 했다. 그래서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고. 나원... 아세트가 무슨 환자냐?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게. 그냥 솔직히 내가 가면 아세트의 심리에 뭔가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그런 거라고 말 하는게 나을 텐데? 어쨌든 그 날은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난 내일부터 마법 수련이나 하 려고 했다. 아니, 그보다는 마나 축적 방법 연구라고 해야하나? 지금의 나 는 인간이 최대로 모을 수 있는 마력인 8클래스에 도달한 상태다. 더이상 몸안에 마나를 축적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마나 사이사이에 빈 공간이 있긴 했지만, 그 곳에다 마나를 꾸역꾸역 밀어넣게 되면 마나끼리 반발하게 되고, 심하면 안정한 상태를 이룬 마나의 결합이 박살날 우려가 있다. 마치 원자 내의 전자가 서로 반발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하여튼 어딘가에 더 많은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마 법 주문을 적은 연습장을 잃어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 나 축적 밖에 없으니까. 뭐, 마법책을 구해서 마법 주문을 외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8클래스 이상의 마나 축적에 성공하는 것이 내 꿈 이야. 그러나... 나는 8클래스 이상의 마나 축적에 도전도 해보지 못하게 됐다. 그 다음날 마이스너 시장이 날 불렀기 때문이다. 예전에 크레아틴 오크들 에 대해 토의했던 바로 그 집무실로. 난 이 집의 집사인 크라우제의 뒤를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T자형 의 테이블에는 마이스너 시장을 비롯하여 유스타키오, 루피니, 그리고 정 체를 알 수 없는 한 명의 기사가 앉아 있었다. 음... 전에는 저 정체모를 기사 자리에 뉴런 기사단장 랑비에.... 맞나? 하여간 그 기사가 앉아 있었 는데. 물론 흑기사에 의해 뉴런 기사단은 모두 전멸했지만. 그렇다면... 저 기사는 새로 채용된 사람인가? 내가 유스타키오 옆에 앉자 마이스너 시장이 그 정체모를 기사를 나한테 소개했다. "니트군은 보먼을 처음 보겠군. 인사하게. 이쪽은 네프론 기사단장 보먼 이라네." "네프론 기사단장 보먼입니다."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네프론 기사단장 보먼은 나에게 깍듯이 인사 했다. 난 당황하여 마주 고개를 숙였다. 허참... 나같은 소년에게 저런 인 사를 하다니.... 성격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나저나... 네프론이라면 신장의 기본 단위 아닌가? 보먼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보먼 주머니'가 생각나는군. 혈액 속의 노폐물을 여과하는 작용을 하는 조직... 뭐, 포도당이나 아미노산 같은 필수 영양분도 분별없이 여과 하지만..... "자, 그럼 본격적인 논의를 하세나." 마이스너 시장은 두 손을 깍지끼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시장에게로 향 했고, 마이스너 시장은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 센세에게 많은 가축과 목재를 제공하는 '에볼루트'가 악마의 땅으로 인해 전혀 우리와 교역을 할 수 없게 되었네. 사람들은 악마의 땅 밖에 모여 살고 있지만, 악마의 땅 내에는 수많은 동물과 질좋은 목 재들이 있어 그것들을 얻을 수 없는 상태지. 그래서 말인데... 자네들이 악마의 땅이 생긴 원인을 알아내고, 가능하면 악마의 땅을 제거해 주게. 그래야 우리가 다시 에볼루트와 교역할 수 있으니까." 흠... 그런 이유로 날 불렀던 것이군. 티린스에 있을 때도 에우리스테우 스에게 이런 비슷한 명령을 받았던 것 같은데? 레드네 늪지의 히드라를 물 리쳤을 때였나? 하여튼.... 악마의 땅이라.... 처음 듣는 소리로군. "알겠습니다, 시장님. 네프론 기사단 중에서는 제가 대표로 가겠습니다." 보먼 기사단장은 자신있는 어투로 말했다. 마이스너 시장은 고개를 끄덕 인 후, 루피니를 쳐다보았다. 루피니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전에 크레아틴 오크와의 일에는 빠졌지만, 이번에는 가겠습니다." 그러자 유스타키오도 입을 열었다. "저도 물론 가겠습니다. 저와 루피니, 그리고 보먼 기사단장이라면 충분 히 악마의 땅에 가서도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니트까지 갈 필 요는....." 그러나 유스타키오의 말은 중간에서 끊어졌다. 마이스너 시장이 그의 말 을 끊고 나에게 물음을 던졌기 때문이다. "검사들만 가면 위험할테니 마법사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거네. 그렇지 않나, 니트군?" "... 그렇죠." 이미 마이스너 시장의 속셈을 안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는 내가 이들 을 따라가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악마의 땅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하고. 내 대답에 마이스너 시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쭉 폈다. "이것으로 결정됐군. 니트, 유스타키오, 루피니, 보먼이 악마의 땅 탐사 작전을 수행하기로. 출발은 지금 당장하게. 그럼 이만." 그러고는 황급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쩝... 난 승낙한 적도 없는데 자 기 맘대로 결정해버리는군. 뭐 악마의 땅에 갈 생각이긴 하지만.... 역시 나 기분은 더러워..... 유스타키오는 날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갈 생각이야? 마법 주문 적은 종이를 잃어버렸다면서?" "괜찮아요. 파이어 볼 같은 기본적인 주문은 외우고 있으니까요." ".... 알았어. 하지만 조심해야 된다." "네." 나와 유스타키오, 루피니, 보먼은 즉시 악마의 땅이 있는 에볼루트로 갈 준비를 했다. 성 밖에는 이미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갈 준비를 다 하고 마차에 타려했다. 그때 언제 소식을 들었는지 아린과 인티가 막 마차에 오르려는 우리를 불러 세웠다. "잠깐! 우리도 따라갈래요!" ... 얼레?... 얘들은 도대체 누구한테서 우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거 지? 아무래도 물어봐야 겠는걸? 궁금해. "아린,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나 있는거야?" "알아. 악마의 땅으로 간다며?" "얼레? 어떻게 알았어?" "마이스너 시장이 가르쳐 주던데?" 아린은 별걸 다 물어본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얼씨구.... 우리 네 명만 보낸다고 해놓고는 아린과 인티에게 말하다니.... 생각할수록 점점 마음에 안드는 인간이야..... "잘됐군요. 원진 마법사와 사제가 합류하면 굉장한 힘이 될테니까요." 루피니는 아린과 인티에게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쩝... 그건 그렇지만.. ... 아무래도 위험하지 않을까? 이름하여 '악마의 땅'인데 말이야. 결국 우리는 아린과 인티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같이 악마의 땅에 가기로 했다. 나나 유스타키오, 루피니, 보먼 기사단장은 모두 여자한테 약한 불 쌍한 남자들이었으니까..... 에휴..... ㅜㄱ 4019-4413 [번 호] 4019 / 4448 [등록일] 1999년 11월 19일 01:53 Page : 1 / 24 [등록자] THEBUR [조 회] 26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119.악마의 땅 -4- 120.연구하는 자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9.악마의 땅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71 게 시 일 :99/11/18 21:40:22 수 정 일 : 크 기 :6.3K 조회횟수 :2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19 악마의 땅 -4- 에볼루트까지 가는데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차타고 7시간 거리 니까... 에... 7시간이면 많이 걸린건가? 쩝... 마차타는 일이 굉장히 많 아서 7시간은 아주 적게 걸리는 것 같단 말이야.... 에볼루트는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의 생활은 그다지 좋 아보이지 않았다. 유스타키오의 말에 따르면, 에볼루트 마을의 사람들은 마을의 2/3 이상을 뒤덮고 있는 '축복의 숲'에서 나는 동물과 나무를 팔아 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축복의 숲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하루아침 에 악마의 땅으로 돌변하자 그들의 수입원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우린 에볼루트의 마을 사람 하나를 붙잡아서 악마의 땅이 왜 그렇게 불리 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조금 늙어보이는 그 마을 사람 왈, "악마의 땅에는 생전 보지도 들어보 지도 못한 동물과 식물들이 엄청나게 많다오. 그것들 중에는 식인 동물과 식인 식물도 있으니 조심해야 할거 요." 마을 사람의 말을 들은 유스타키오가 나름대로 추측했다. "혹시... 마족이 축복의 숲에다 마수들을 풀어놓거 아닐까? 그 마수들 때 문에 축복의 숲이 악마의 땅으로 돌변해버린 걸지도....." "제 생각에는 어떤 흑마법사가 악마의 땅에서 키메라같은 합성 괴물을 만 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아린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유 스타키오의 추측이 맞든 아린의 추측이 맞든 들어가보면 알테니까. 우리는 곧장 악마의 땅이라 불리워지는 숲에 가까이 다가갔다. 근데 왜 악마의 숲이라 하지 않고 악마의 땅이라 하는 거지? 웃긴 사람들이야.... 얼라...? 뭐지? 이 기분나쁜 기운은? 난 숲을 쳐다보았다. 숲은 다른 숲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나무가 하늘 을 찌를 듯이 울창했다. 그러나... 뭔가 사악한 기운이 숲 전체에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숲 안쪽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나의 공명..... "역시... 이 마나의 기운으로 봐서 틀림없이 어떤 흑마법사가 키메라를 합성하고 있는 거라구!" 아린이 숲을 한번 쳐다보더니 확신하며 말했다. 우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악마의 땅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데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단지 엄청난 마나의 공명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주위를 둘러보던 루피니가 입을 열었다. "기분나쁜 곳이군요... 뭔가 튀어나올 듯한데요?" 사삭-- 루피니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의 왼쪽 풀숲에서 뭔가 움직였다. 모두들 살벌한 눈초리로 루피니를 째려봐준 다음, 풀숲 쪽을 경계했다. 파앗! 풀숲에서 괴물체가 튀어나오며 제일 앞에 있던 유스타키오를 덮쳤다. 유 스타키오는 침착하게 검으로 그 괴물체를 내리쳤다. 따악하는 소리와 함께 유스타키오의 검에 맞은 괴물체는 그대로 땅에 쳐박혔다. 그 순간을 노려 옆에 있던 루피니가 괴물체의 몸에 검을 꽂아넣었다. "끼이엑!" 원숭이의 울음소리 비슷한 비명이었다. 키큰 나무들이 햇빛을 대부분 가 리고 있어서 숲속은 어두운 편이었지만 물체 식별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죽은 그 괴물체를 자세히 들여다 봤다가 무지하게 놀라고 말았다. 그 괴물체는 원숭이였는데, 등에 박쥐 날개가 달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거? 원숭이 등에 날개가 달려있다니?" 유스타키오는 검끝으로 날개 달린 원숭이의 시체를 들춰보며 말했다. 루 피니의 검에 의해 가슴을 꿰뚫린 원숭이는 입을 쩍 벌린 채 죽어 있었다. 죽은 원숭이의 모습을 본 인티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내 팔을 잡은 인티의 손은 조금씩 떨렸다. 인티의 표정은 겁에 질린 듯했다. 반면 아린은 그 원숭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원숭이의 시체를 맨손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기도 하고, 등에 붙은 날개가 진 짜인지 잡아당겨 보기도 했다. 그런 아린을 모두들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 다. 한동안 원숭이 시체를 살피던 아린이 입을 열었다. "이 원숭이 녀석, 키메라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서야 등에 날개가 달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만약 어떤 흑마법사가 정말로 합성 괴물을 만들고 있다면, 숲 안에 서 살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갑자기 조금 떨어진 쪽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나무들을 마구 태워버렸다. 분명 흑마법사의 짓이라고 생각한 우리는 곧장 불이 난 쪽으로 달려갔다. 불길이 막 꺼질 무렵, 우리는 그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불길은 거의 반경 100미터를 태워버린 상태였다. 매캐한 연기만이 우리의 후각을 자극 했다. 흠... 이 광경을 엘프들이 봤다면 기절했겠지? "아무것도... 없잖아?" 유스타키오가 타버린 구역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특별한 것은 없었다. 루피니가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자연 현상이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단 말이야...." 그건 그래... 불이 저절로 꺼져버리다니.... 불길은 정확히 일정 구역만 태워버린 상태... 누군가 일부러 불을 놓았을 수도.... "앗! 저걸 봐요!" 아린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난 뭔가하여 아 린이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큰 바위였다. 모두들 이상한 눈으 로 아린을 째려보았다. "뭘 보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잖아?" 내 말에 아린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바위를 잘봐! 바위가 부서지고 있잖아!" 얼레? 바위가 부서진다니? 왠 헛소리람? 난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잠시 바위를 바라보던 나는 크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린의 말대로 바위가 점점 부서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위 위에는 이끼라고 착각하기 쉬운 작고 푸른 지의류(地衣類)가 덕지덕 지 붙어 있었다. 바위나 나무껍질에 살 수 있는 생물은 지의류 뿐이다. 이 끼는 토양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지의류가 하는 일은 여러 환경적인 요인 과 함께 암석을 풍화시켜 흙으로 만드는 일이다. 근데... 이 암석은 지금 지의류에 의해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풍화되어 흙이 되고 있었다. "어? 바위가 없어지잖아?" 유스타키오가 바위의 풍화를 보고 놀라 말했다. 그때였다. 이번엔 인티가 우리의 발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밑을 봐요!" 난 인티의 말대로 내 발 아래를 쳐다보았다. 내 발 아래에는 작은 이끼가 자라나고 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마치 저속 촬영된 식물의 성장을 보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잡초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고, 곧이어 작은 나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나무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 라나 불길에 의해 타버린 구역을 모조리 채워버렸다. 너무나 황당한 일에 우리는 할말을 잃고 말았다. "이번에도 똑같군. 역시 숲의 생성은 일정한 규칙이 있었어!" ".....?" 우리 모두는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크게 놀랐다.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였다. 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았다. 한 남자가 막 생성된 숲 안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회색의 로브를 걸친 남자였는데, 두 눈 은 움푹 들어갔고, 광대뼈가 불쑥 튀어나왔으며 볼은 쑥 들어가 있었다. 한마디로 완전 말라깽이였다. 그 남자는 기분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다가 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다듬 었는지 음침한 인상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무슨 일로 이 신성한 땅에 들어왔느냐?"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0.연구하는 자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72 게 시 일 :99/11/18 21:41:03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19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20 연구하는 자 -1- 신성한 땅?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악마의 땅이라 부르는 줄 모르나? "당신은 누구요?" 유스타키오가 그 남자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남자는 여전히 음침한 미소 를 띄우며 말했다. "난 대현자 '뉴클레오티드'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분이지!" 쩝... 대현자 좋아하시네.... 그나저나 뉴클레오티드? 그거... DNA를 이 루고 있는 기본 단위 물질 아닌가? "당신, 여기서 뭐하는 겁니까?" 죽 우리 뒤만 따라왔던 네프론 기사단장 보먼이 뉴클레오티드라는 음침한 인상의 남자에게 물었다. 뉴클레오티드는 더욱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크큭, 연구 중이다." "연구? 무슨 연구?" "후후, 너희처럼 무식한 녀석들에게 말해봤자 이해도 못할껄? 그냥 조용 히 꺼져준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뭐?" 뉴클레오티드의 말에 보먼이 발끈했다. 뉴클레오티드에게 달려들려는 보 먼을 유스타키오와 루피니가 말렸다. 난 음침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뉴클 레오티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연구길래 그러지? 키메라 연구인가?" "푸하하하하!" 내 말에 뉴클레오티드는 목까지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내가 겨우 키메라 따위를 연구하려고 이런 일을 하는 줄 아나? 난 아무 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뉴클레오티드의 표정은 거의 광기에 차 있었다. 그는 그 연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숲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는가? 이 세상의 생물은 신에 의해 창조된 것 이 아님을 아는가? 생물의 자손이 어떻게 어버이의 형질을 그대로 물려 받고 태어나는지 아는가?" "......" 나를 제외한 모두는 뉴클레오티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뉴클레 오티드는 기분에 취해서 계속 주절대었다. "황무지에 있는 바위에 작은 생물이 붙어 살게 된다. 그후에 이끼가 자라 고 잡초가 자라며, 나중에는 큰 나무들이 자라게 되지. 그게 바로 숲의 생성 원리다! 그리고 각각의 생물은 달라보이지만 몸의 구조를 보면 상 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물론 그것을 신이 그렇게 생명을 창조했기 때문 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난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였 다! 동물들 중에는 간혹 자신의 종족과 다른 특징을 지닌 동물이 태어 나곤 하지. 난 그것을 '돌연변이'라고 부른다. 그 돌연변이들은 잘 살지 못하고 대부분 죽더군. 그래서 내가 환경을 바꿔보았다." "......" 나를 제외한 모두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가는 뉴클레오티 드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난 뉴클레오티드의 말에 흥미가 당겼기 때문 에 집중해서 들었다. "예를 들어주지. 본래 이곳에 사는 쥐는 검은색이다. 근데 우연히 하얀털 을 가진 쥐가 태어나더군. 보다시피 여기는 어두운 숲속이다. 하얀털을 가진 쥐는 맹수들의 눈에 잘 띄어 바로 잡아먹히지. 그래서 흙의 색깔과 나무의 색깔을 모두 흰색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검은색의 쥐들은 그 환경에서 눈에 잘 띄기 때문에 다 잡아먹히더군. 흰색 쥐는 살아남고. 결국 나중에는 흰색 쥐만 남게 되었지. 본래 살고 있던 검은색 쥐들은 사라졌고 말이야. 놀랍지 않나? 환경이 변하면 그에 따라 생물의 형질도 변한다는 것이?" "근데 말이야, 어떻게 흙의 색과 나무의 색을 하얗게 바꿀 수 있지?" 내가 질문하자 뉴클레오티드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넌 내 말을 이해하는 거냐?" "뭐... 대충. 그나저나 어떻게 환경을 바꿀 수 있지?" 뉴클레오티드는 잠시 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했다. "후후, 이 세상에 너같은 녀석이 있었다니.... 하긴, 나도 있지..... 어떻게 환경을 바꿨냐구? 그거야 간단하다. 색(色)의 마신 프리즘의 힘 을 빌렸으니까." 얼라리? 색의 마신 프리즘? 프리즘은 빛을 여러개의 색으로 분리시키는 도구인데... 이름도 구려... 근데 마신의 힘을 빌렸다면... 흑마법사인가? 뉴클레오티드는 떠벌떠벌 말을 이었다. "환경에 따라 생물의 형질은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도 옛날에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과 다른 동물이 같은 조상에서 갈 라져 나왔을 지도 모른다!" "무슨 헛소리냐! 그런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려 들다니!" 유스타키오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난 그런 유스타키오를 말리며 다시 뉴 클레오티드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럼 어버이의 형질을 자손이 어떻게 물려받는지 알아냈냐?" ".... 호... 놀라지도 않는군. 다른 이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신을 모 독한다고 몰아붙였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군!" 뉴클레오티드는 얼굴에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뭐... 내가 알 기론 이 세계는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라고 하는 것 같으니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말하면 당연히 신성 모독죄가 되겠지. 아니지... 그것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자존심이 크게 뭉게지는 일 일거다. 자신의 조상이 하등한 동물의 조상과 같다라고 한다면 말이야. "좋아, 네 질문에 답해주마! 아직 완벽히 밝혀낸 것은 아니다. 나도 어떻 게 어버이의 형질이 자손에게 그대로 전해지는지는 확실히 모른다. 단지 인간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면 환경에 의해 변화된 개체가 그 형질을 어떤 특수한 물질을 이용해서 전해줄 거라고 추측할 뿐이지." 쩝... 결론은 유전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는 거잖아.... 마치 자신이 엄 청나게 똑똑한 줄 아는군. 역시 정신이 어떻게 된 녀석이야. "뉴클레오티드, 넌 왜 그런 것을 알려고 하는 거지? 알아서 뭐하려고?" "크크...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알아내고 싶었으 니까. 그래서 시간의 마신 아인슈타인의 힘을 빌리는 대신 내 생명을 바 쳤다.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이제 5년. 그 안에 충분히 내가 알고 싶 은 것을 모두 알아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얼라리여? 시간의 마신이 아인슈타인? 게다가 생명을 바치면서 연구한다 구?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잠자코 나와 뉴클레오티드의 말을 듣고 있던 아린이 놀라 소리쳤다. "그럼 넌 네 목숨을 바치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이냐?" "그렇다! 남들이 악마의 땅이라 부르는 이곳은 내가 흑마술로 변화시킨 나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환경 도 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그런 변화를 줄 때마다 내 생명 은 점점 짧아지지만 말이야. 크크." 뉴클레오티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큭큭댔다. 유스타키오가 그런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쓸데없는 짓은 그만둬! 네 녀석 때문에 에볼루트의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단 말이다!" 유스타키오의 말에 뉴클레오티드의 눈썹이 꿈틀댔다. "쓸데없는 짓?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쓸데없다고? 크크...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네 녀석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단순히 신이 모든 것 을 창조했다고 믿는 네 녀석들이!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머저리들이!" "이, 이 녀석....!" 유스타키오가 막 달려들려고 했다. 난 그런 유스타키오를 간신히 말렸다. 유스타키오가 나에게 소리쳤다. "왜 막는거야, 니트? 저런 녀석은 당장에....!" "여긴 저 사람의 공간이라구요! 잘못하면 바로 저승행이예요!!!" 내 말에 유스타키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이곳은 뉴클레오티 드가 자신의 생명력을 바치는 대신 얻어낸 공간. 그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이 공간에서, 그에게 개겼다간 가볍게 저승으로 떠날 테니까. -------------------------------------------------------------------------- ------ [번 호] 4049 / 4448 [등록일] 1999년 11월 20일 00:08 Page : 1 / 25 [등록자] THEBUR [조 회] 25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121~122 연구하는 자 -2~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1.연구하는 자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73 게 시 일 :99/11/19 21:16:10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3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21 연구하는 자 -2- "크크.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멍청하군. 이곳은 나의 공간. 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난 시간을 빨리해서 너희를 순식간에 폭삭 늙어버리게 할 수 있다. 아니면 너희가 서 있는 자리를 그대로 폭발시킬 수도 있고.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라. 난 저 소년에게 관심이 많으니 까." 그렇게 말한 뉴클레오티드가 날 쳐다보았다. 그가 물었다. "넌 내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 괜찮은 연구라고 생각은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 "방법?"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는 연구는 바람직하지 못해.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신속한 결과를 얻으려는 것도 문제있고." 뉴클레오티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제? 그게 왜 문제라는 거냐?" "네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앞서가는 생각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너를 이해하지 못해. 진실은 나중에 밝혀져. 천천히, 그리고 오랜 시간 이 흐르는 동안 진리는 드러나고 사람들도 그 진리를 이해하기 시작하 지. 지금의 네 연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야." "네가 너무 앞서 있다고? 그럼 넌 지금의 내 연구를 모두 이해하고 있는 거냐?" "뭐... 그렇지. 오히려 너보다 많이 안다고 해야할까?" "......!" 뉴클레오티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넌... 도대체 누구냐? 신이냐? 아니면 마족이냐?" 얼라리? 날 신이나 마족으로 매도하네? 저게 죽을라구..... "난 그냥 다른 세계에서 실수로 건너온 인간일 뿐이야." "다른... 세계?" "그 세계는 많은 과학적 연구가 이루어졌지. 네가 알고 싶어하는 것도 조 금씩 밝혀졌고 말이야." 뉴클레오티드는 갑자기 눈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 아니 뭔가를 더 알아야겠다는 의지. 뉴클레오티드는 급히 나에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경계태세를 취했지만 난 유유히 앞 으로 걸어나갔다. 어차피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를 가볍게 죽일 수 있 을텐데 뭣하러 날 죽이려고 귀찮게 움직이겠어? "네 이름은 뭐냐?" "니트. 물론 이건 이곳에서의 이름이야. 본래 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자구." "뭐 그거야 나하고는 상관없지. 자, 나에게 말해줘라. 내가 지금까지 연 구하고 있던 것들이 너희 세계에서는 어디까지 밝혀졌는지 말이야!" 뉴클레오티드는 마치 먹을 것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날 재촉했다. 꽤 이야 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그에게 한마디했다. "얘기가 길어질텐데, 우선 앉을데 없냐?" "아, 그렇군! 자, 앉아라!" 뉴클레오티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내 뒤에서 나무 하나가 잘려져 나가고,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가공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 이 흐르자, 나무로 만든 의자 하나가 내 뒤에 놓여졌다. 난 망설임없이 그 의자에 털썩 앉았다. 뉴클레오티드도 언제 만들었는지 한 의자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앉게 해주고 싶었지만 뉴클레오티드가 들 어줄 것 같지 않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뭐, 이제 얘기를 시작하지. 우선 숲의 생성 원리는 네 말이 맞아. 그러 니까 그건 넘어가고... 그 다음, 인간은 한 공통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 온 동물이지. 한마디로 처음엔 원숭이나 인간이나 다 똑같았다는 거야. 그러던 것이 세월이 수없이 흐르면서 인간은 인간대로, 원숭이는 원숭이 대로 진화한 거지." "진화? 진화가 뭐냐?" "글쎄... 진화는... 생명체의 형질이 옛모습에 비해 달라진 것을 말할껄? 확실하지는 않아. 아, 좀더 덧붙이자면 환경에 의해 달라진 생명체의 특 성이 후손에게 유전되는 것을 뜻할거야. 난 개념적인 설명은 못하니까 하나 예를 들도록 하지." 뉴클레오티드는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피골이 상접한 얼굴 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뉴클레오티드의 모습은 꽤나 공포스러웠다. 지금이 라도 목이 꺽어져 머리가 툭하고 떨어질 것 같았다. "기린의 예를 들게. 본래 기린은 목이 짧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낮은 높 이의 식물을 먹고 살았지. 근데 우연히 목이 긴 기린이 태어났어. 우리 도 그 녀석을 '돌연변이'라 부르지. 보통 돌연변이는 다른 동료들에게 배척받아. 그래서 살아남기 어렵고. 하지만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낮은 높이의 식물들이 싸그리 죽어버리게 되면, 목이 짧은 기린은 굶어죽게 되지. 반면에 돌연변이로 태어난 목이 긴 기린은 높은 나무의 이파리를 먹을 수 있어서 살아남고. 그 환경적 요인이 지속되다보면 목이 긴 기린 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트리게 되지. 그게 진화의 기본 모델이야." "그런데 기린이 뭐지?" "......" 이런... 이 녀석은 기린을 모르잖아? 괜한 말만 했네... 아... 입아퍼... "초원지대에 사는 목이 긴 동물이야." "그런가? 처음 들어보는 동물 이름이라.... 근데, 지금의 기린은 목이 모두 기냐?" "그래." "그럼 어떻게 옛날에 기린의 목이 짧았다는 걸 아는거지?" "그건 화석을 통해서지. 땅 속에 묻힌 동물뼈 말이야." 그래도 뉴클레오티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건 최근에 묻힌 동물의 뼈일수도 있잖는가? 게다가 그 동물이 옛날 기린이 아닌, 다른 형태의 동물일수도 있고." "뭐... 그거야 골격 구조를 비교해보면 알지. 최근 것인지 아닌지는 연대 를 추적하면 되고." "연대를 추적한다고? 어떻게?" .... 우씨... 왜 이렇게 물어보는게 많아? "방사성 동위 원소를 이용할껄?" "방사... 뭐?" "방사성 동위 원소. 방사성 동위 원소는 일정한 시간마다 절반씩 붕괴해 서 다른 물질로 되거든? 그러니 그 방사성 동위 원소의 양과 그 물질이 변해 생성된 물질의 양을 비교하여 반감기를 따지면 그 동물이 살았던 때를 대략 알 수 있다고 하더라고." "... 어렵군." 당연하지, 임마! 모든 물질이 원소로 되어 있다는 것도 모르는데 방사성 동위 원소를 알 턱이 있나.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그런 고차적인 것을 알 려고 했다간 머리 작살난다..... 뉴클레오티드는 잠시 머리를 젓다가 다시 물었다. "난 궁금한게 많다. 왜 모든 물체는 아래로 떨어지는 거지?" 허걱... 자기가 뉴턴인 줄 아나봐.... "그거야 지구가 모든 물체를 지구 중심 쪽으로 잡아당기니까 그렇지." "지구 중심? 지구가 뭐지?" 커커컥... "이 세계를 말하는 거야. 이곳이나 내가 살던 곳이나 별 차이 없어보이니 까 이 세계도 지구 위에 존재할걸?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니까 아마 맞을 거야. 아,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존재하겠지?" "물론이지." "그럼 이 세계가 둥글다는 거고, 그건 지구이기 때문에 그럴거야. 지구는 둥근 구의 형태를 하고 있고, 모든 물체는 그 구의 중심으로 끌려가려고 하지.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 모든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이 보이 는 거야." 뉴클레오티드는 뭐가 또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말대로 지구가 둥글다면 구 밑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말 아닌가? 자칫하면 지구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고." 푸하하하, 역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생각이 단순해... 그런 머리로 이런 연구를 하고 있었다니 놀랄 뿐이다..... "말했잖아. 지구는 모든 물체를 지구 중심 쪽으로 끌어당긴다고. 사람도 그 지구 중심의 중력에 묶여서, 구 밑에 매달려 있어도 그 사실을 전혀 느낄 수 없어." 난 땅위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뉴클레오티드는 계속 고개를 갸 웃하면서도 내 말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뉴클레오티드는 끊임 없이 지구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난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상세히 가르쳐 주려고 노력했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2.연구하는 자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2574 게 시 일 :99/11/19 21:16:37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4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1 부 - 환상대륙 탐험기 #122 연구하는 자 -3- 이것저것 뉴클레오티드의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지구의 자전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뉴클레오티드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자전하고 있 고, 또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나? 지구가 돌고 있다니! 거기다가 저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돈다고?!" 루피니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난 그런 그들을 싸그리 무시하며 놀란 표정 을 하고 있는 뉴클레오티드에게 말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태양은 작아보이지만, 그건 태양과 지구가 멀리 떨어 져 있기 때문에 그런거야. 실제로 태양은 지구보다 훨씬 커. 태양이 주 먹만하다면 지구는 먼지만 하니까. 태양은 지구보다 크기도 크고 질량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태양의 인력이 미치는 공간에 있는 행성들은 모두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 지구는 그 행성 중에 하나일 뿐이지." "도대체 이 지구 밖에는 뭐가 있는거냐?" "뭐가 있긴 뭐가 있어. 우주가 있지." "우주?" "우리가 밝혀낸 것은 우주까지야. 지구가 속해있는 태양계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모여있는 '우리 은하'의 한 부분일 뿐이고, 우주에는 지구에서 보이는 별보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지. 게다가 우주는 현재도 계속 팽창하고 있고." "......" 뉴클레오티드의 표정은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거야 당연했다. 내 말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있는 사실들은 수 백년에 걸쳐서 밝혀진 것. 아직 기초적인 것도 모르고 있는 이 시대 사람 들이 단시간에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뉴클레오티드는 자신의 머리에 한계를 느끼는 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난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내가 말한 것을 하나도 모르겠지? 남들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연구를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잘 지어질 수 있는 법.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런 연구를 들려줘봤자 소용없다구." 내 말에 뉴클레오티드가 반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구를 하지 않으면 누가 그걸 밝혀내겠느냐?" "누가 연구하지 말래? 내가 말하는 건 세월을 기다리라는 거야." "세월을 기다리라고....?" "사람들이 너의 연구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물론 아마 네가 죽고 나 서도 이해 못할껄? 하지만 네가 정당한 방법으로 연구를 해서 책에다 남 기면, 후세의 사람이 그걸 보고 네 연구를 증명해줄 수 있을 거야. 네가 살아있을 때 모든 것을 밝히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라고. 진리는 그렇게 쉽게 밝혀지는 것이 아니야." "......" 뉴클레오티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의 표정은 우울해보였다. 난 그저 뉴클레오티드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뉴클레오티드는 이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후... 난 그저 알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궁금해 하던 것을....." "그 기분 나도 알아. 다른 과학자들도 그럴거야. 하지만 이런 부당한 방 법으로 진리를 밝혀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좋아. 적어도 난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난 의자에서 일어났다. 더이상 할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뉴클레오 티드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를 없애든지, 악마의 땅을 없애든지. 뉴클레오티드는 여전히 머리를 감싸쥔채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에 그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시간은 5년... 그 동안에 난 무엇을 해야하지....?" "뭐... 네가 원하는 걸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네가 지금까지 연구하고 궁금해하던 것을 책으로 남기던가. 그래서 후세의 사람이 그 책을 읽고 네 연구를 입증할 수 있도록." "......" 뉴클레오티드는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무시무시한 침묵이 흘렀다. 악마 의 땅 내에서 그를 당해낼 방법이 없는 것을 생각하자 더욱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나빠지는 날엔....! "......" 뉴클레오티드가 부스스 일어났다. 그는 날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책을 쓰도록 하겠다. 세상을 너무 앞서 나가 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겠다. 사람들의 의식이 지금보 다 더욱 성장했을 때, 내가 남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뉴클레오티드는 등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악마의 땅을 뒤덮고 있던 어떤 이상한 기운이 사라져 버렸다. 그에 따라 숲속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 던 마나의 공명도 없어졌다. 숲은 다시 예전의 생명력을 되찾았다. "이대로 저 사람을 내버려둬도 될까요?" 보먼 기사단장이 유스타키오에게 물었다. 유스타키오는 어벙한 표정을 지 어보일 뿐이었다. 난 멍하니 뉴클레오티드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는 일행 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죠. 악마의 땅은 없어졌으니까." "으, 으응..." 내가 앞서 걷자 유스타키오와 그 일행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날 따 라왔다. 지금 뉴클레오티드를 쫓아가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뉴클레오티드는... 그렇게 알고 싶었을까? 자신의 생명까지 마신에게 바 치면서 연구를 하고 싶었을까? 모든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할 생각 이었을까? 사람이 단순히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 결론은 하나다. 뉴클레오티드는.... 완.전.히. 미.쳤.다. "크르릉...." 얼라리여? 갑자기 이게 뭔소리다냐....? "크르르...." 뭔가가 낮게 울부짖는 소리. 소리가 들려온 쪽은 내 앞이었다. 난 놀라 뒷걸음질치며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는데 정신을 집중했다. 나무의 그림 자 때문에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커다란 동물이었다. "니트, 물러서!" 유스타키오가 재빨리 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그 동물이 천천히 나 무 그늘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동물을 보고 우리는 경악했다. 머 리는 분명히 곰이었는데, 몸통과 다리는 완전한 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분명히 뉴... 뭐라고 하는 작자가 악마의 땅을 제 거했잖아?" 유스타키오의 말에 루피니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은 악마의 땅만 제거하고, 그 전에 형성되었던 키메 라는 내버려둔 것 같은데요?" "크르르르...." 곰인지 사자인지 분간이 안되는 그 이상한 녀석은 자기가 마치 사자라도 되는 양 으르렁거렸다. 그런 곰사자-이렇게 부르는게 낫겠지?-를 보면서 나는 뉴클레오티드를 욕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히 뉴클레오티드는 연구랍시고 여러 동물들을 멋대로 교배시켰을 것 이다. 그래서 날개달린 원숭이나 저 곰사자같은 변태적(?)인 녀석들이 탄 생한 것이고. 뉴클레오티드.... 나중에 만나면 뼈를 으스러뜨려 버리겠어! 고난의 연속이었다. 유스타키오가 그 곰사자를 단칼에 베어버렸지만, 주 위에는 더 희한하게 생긴 녀석들이 우리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유스타키오 와 루피니, 보먼 기사단장이 가장 많은 활약을 했고, 아린과 인티는 날 지 키는 경호원 역할을 했다. 난 그저 다른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마법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정령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투에서 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쩝... 손놓고 구경만 하니 굉장히 미안하구먼.... 하지만 어쩌나... 이게 내 현실인걸.... 흑흑.... 무사히 이 '축복의 숲'... 아니지, 아직도 괴수 들이 날뛰고 있으니 이제는 '악마의 숲'이라 부르자. 어쨌든 악마의 숲을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모두들 잘 싸워줘요~ -------------------------------------------------------------------------- ------ 번 호 : 6684 / 6714 등록일 : 2000년 02월 16일 06:08 등록자 : THEBUR 조 회 : 13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0.귀가(歸家)-1~3- 제 목 :[사이케델리아] 00.귀가(歸家)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03 게 시 일 :00/02/14 13:36:09 수 정 일 : 크 기 :10.9K 조회횟수 :62 지금 사이케델리아 1부 완결편을 새로 쓰고 있는데... 3권 마지막 장부터 올립니다.(아직 2권밖에 안 나왔지만...ㅡㅡ;) 집에서 계속 글만 쓰자니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사실 글 진도가 안 나가서지만...ㅡㅡ;;) 통신판 끝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쓰고 있죠... 다 올리고 나면 예고없이 삭제할 겁니다.(저번에 그랬던 것처럼...ㅡㅡ;) 심심하실 때 읽으세요...ㅡㅡ;;; -----------------------------------------------------------------------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 제 1 부- 환상 대륙 탐험기 -상 략- <제 22 장> 귀가(歸家) “흠... 한 흑마법사의 짓이었단 말이지...” 마이스너 시장은 두 손을 깍지끼며 중얼거렸다. 집무실에는 나와 유스타키 오, 루피니, 보먼 기사단장이 앉아 있었다. 마이스너 시장이 생각에 잠겨있 자 보먼 기사단장이 입을 열었다. “시장님, 에볼루트에는 아직도 그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키메라들이 우글대 고 있습니다. 속히 키메라 토벌군을 보내셔야 합니다.” 쩝... 키메라가 아니라니까. 이것저것 멋대로 강제 교배시켜 얻은 잡종 동 물일 확률이 제일 크다구... “흠...” 마이스너 시장은 계속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좋은 생 각이 났는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마이스너 시장은 사악해 보이는 표정 을 지으며 말했다. “에볼루트에 키메라 토벌군을 보내는 대신 그들로부터 좋은 목재를 공짜로 얻어내는 거야! 에볼루트 사람들은 키메라 때문에 숲의 나무를 벨 수 없으 니까 분명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우핫핫!” ... 사악함의 극을 치달리는군. 뭐, 실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유스타키오는 거의 안 들리게 한숨을 쉬었다. 기회만 있으면 이익을 취하려 는 자신의 아버지가 한심스러울테니까. 유스타키오도 불쌍타... 마이스너 시장은 통쾌하게 웃어제치고는 보먼 기사단장에게 말했다. “보먼! 즉시 키메라 토벌군을 모집하게!” “옛!” “좋아, 그럼 회의 끝!” 말을 마친 마이스너 시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집무실을 빠져나갔 다. 그에게서 임무를 부여받은 보먼 기사단장도 급히 집무실을 나섰다. 유스 타키오도 나직히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루피니가 그런 유스타키오 에게 제안 한 가지를 했다. “매형, 오랜만에 검술 대련이나 해볼까요?” “음... 그것도 좋겠구나. 네 실력이 어느 정도 진전됐는지도 궁금하고.” 유스타키오는 웃으며 루피니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난 검술 구경이나 하려 고 둘을 따라나섰다. 유스타키오가 집무실 문을 열었을 때, 인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트 오빠는요...?” “인티로구나. 니트는 뒤에 있어. 나와 루피니는 검술 대련하러 뒷뜰로 나갈 생각이야.” “네... 열심히 하세요.” “그래.” 유스타키오와 루피니가 뒷뜰 복도 쪽으로 걸어가자 나도 둘의 뒤를 따랐다. 그때 집무실 문 앞에 서 있던 인티가 날 불러세웠다. “오빠!” ... 그렇게 생글생글 웃지마라... 정든다... “오늘 제가 케이크 만들었는데, 같이 먹어요!” 얼레? 케이크? 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인티는 기뻐하면서 날 주방으로 끌고 갔다.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은 오후 4시이기 때문이다. 주방에 서 일하는 하인이나 하녀들은 대부분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하고 있을 것이 다. 오후 5시가 되면 다시 저녁 준비를 해야하니까. 주방 안에는 작은 식탁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엔 먹음직스런 케이크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인티가 나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할일이 없길래 한 번 만들어 봤어요. 먹어보세요.” 난 자리에 앉아 케이크를 쳐다보았다. 흠... 왠지 정성을 쏟아부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뭐, 맛을 보면 알겠지. 쩝... 이거 불안해진다? 설마 이 케 이크에 독이 든 것은 아니겠지? 아니면 벌레가 빠져 죽어있거나... 난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포크로 케이크를 찍어먹었다. 생각 외로 상당히 맛있었다. 인티는 불안한 눈초리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인티의 얼 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맛있는데? 인티는 안 먹어?” “정말 맛있어요? 정말요?” “응.” “아...!” 인티는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띄우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때 누군가 주방 안 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그 누군가는 바로 아린이었다. 아린은 얼굴 가득 교활한 웃음을 띄우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호호, 내가 둘의 데이트를 방해한 모양이네?” “아, 아니예요...” 인티는 그렇게 말했지만 얼굴은 침울해 보였다. 아린은 나와 인티 사이에 앉으며 말했다. “인티,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데이트 기회야 얼마든지 있는데 뭘. 정 안되면 내가 결정적인 기회 하나 만들어 줄테니 걱정말어.” “아린 언니!!!” 인티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난 그냥 인티가 만든 케이크만 푹푹 찍어 먹었다. 그걸 본 아린이 입에 군침을 흘리며 포크를 집어들었다. “호호, 인티의 요리실력이 어느 정도되는지 확인해볼까?” 아린은 케이크를 한입 떠먹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정말 맛있는데? 니트는 차~암 좋겠어~” “아린 언니!!!” 인티가 또 소리쳤다. 아린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킥킥대며 케이크를 먹 었다. 인티는 불안한 눈초리로 내 얼굴을 살폈다. 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케 이크만 떠먹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인티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니트님 계십니까?” 갑자기 주방 밖에서 누가 날 불렀다. 목소리로 보아 이곳 집사인 크라우제 가 분명했다. 난 무슨 일인가 하여 주방 밖으로 나갔다. 주방 밖에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냉막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중년 남자가 바 로 크라우제 집사이다. “무슨 일로...?” “네, 니트님을 초대하려는 학교가 있습니다.” “학교?” “그렇습니다. 근처에 있는‘호르몬’마법 학교죠.” 크라우제는 표정의 변화없이 정확하게 말했다. 아린과 인티도 크라우제 집 사의 말을 들었는지 놀란 표정이었다. “호르몬 마법 학교에서 니트를 초대한다구?” “정말 굉장해요!” 헐... 그 학교가 그렇게 대단한 학교야? 학교 이름이 호르몬이라니... 왠지 구린 냄새가 풀풀 풍기는 걸? “지금 가야 하나요?” 내 물음에 크라우제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밖에서 호르몬 마법 학교 선생 한 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옷을 입고 가면...” “괜찮습니다. 학교에 가면 옷을 줄 겁니다.” 에? 학교에서 옷을 제공한다고? 설마... 아주 구린 옷은 아니겠지? “알았어요. 그럼 가죠.” “잠깐! 나도 갈래!” 아린이 갑자기 끼어들며 소리쳤다. 크라우제 집사는 그런 아린을 향해 담담 히 말했다. “호르몬에서는 니트님 한 분만 초대하셨습니다.” “호호, 전‘붉은 미소녀 마법검사’라구요! 그러니 니트보다 더욱 뛰어난 마법사지요! 호호호!” ...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소리 해라... 크라우제 집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럼 그 선생에게 직접 말씀해 보십시오. 선생은 지금 저택 밖에 있습니 다.” “좋아요! 어서 가자, 니트! 아, 그리고 인티도 따라와!” 아린은 나와 인티를 끌고 성 밖으로 나갔다. 성 밖에는 화려한 마차 한 대 가 대기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차 옆에는 흰색의 로브를 입은 젊은 마법사 한 명이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적의 마법사님.” 허거걱... 기적의 마법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호르몬 마법 학교의 3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글루카곤’입니다. 어서 마차에 오르시지요.” 글루카곤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내가 무슨 엄청난 마법사라도 되는 양 아 주 정중한 태도였다. 난 굉장히 불안해져서 한 가지를 물었다. “학교에 가서 뭘 하는데요?” “아, 일종의 명예 교사입니다. 전교 학생들이 마법에 대해 궁금한 사항을 니트님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쿠에에엑! 내가 명예 교사라구? 마법 주문도 모르는 내가 학생들에게 도대 체 뭘 가르친다는 거야! 날 쪽팔려 죽게 하려는 사악한...!!! “잠깐만요! 저도 따라가면 안되나요?” 아린이 글루카곤에게 물었다. 글루카곤은 고개를 갸웃했다. “소녀 분은 누구신지?” “전 용병계에서 아주 잘 알려진‘붉은 미소녀 마법검사 아드레날린’이예 요! 마법 중에서도 특히 원진 마법을 쓰죠!” 원진 마법이란 말에 글루카곤이 흥미로운 표정의 띠었다. “원진 마법이라... 그다지 많이 알려진 마법은 아니니 학생들에게 보여주 는 것도 좋겠군요. 좋습니다. 타십시오.” “호호호! 아참, 그리고 얘는 인티라고 예언의 신 멘델레예프의 사제예요. 신성 마법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아린 언니...” 인티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글루카곤은 놀란 표정이었다. “기적의 마법사에 원진 마법사, 그리고 사제님도 있었다니! 정말 굉장하군 요! 좋습니다, 학생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같군요! 모두들 타십시오!” ... 결국 그렇게 해서 나와 아린, 인티는 호르몬이라는 마법 학교로 가게 되었다. 미치겠네... 내가 도대체 뭘 가르친다는 거야... 누가 제발 날 납치 해 줘... 대략 20분 정도 마차를 타고 가자 어떤 큰 도시에 도착했다. 글루카곤의 말 로는 도시 이름도 호르몬이란다. 학교 이름은 도시 이름을 땄다고 하던가? 아린은 자신의 고향 도시에 왔다고 굉장히 좋아했다. 아린이 그렇게 말했을 때에서야 난 전에 아린이‘호르몬’이 고향이라고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 다. 도시 안으로 얼마쯤 더 들어가자 큰 학교 건물이 보였다. 전체 5층으로 된 건물이었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곧장 호르몬 마법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본관 이외에도 몇 개의 별관이 있었고, 운동장 대신 넓은 정원이 펼쳐 져 있었다. 15~ 17세 정도의 아이들이 정원에서 마구 뛰놀았다. 그러고 보니 ... 내가 이 세계로 건너온 지... 대략 1년 4개월인가? 꽤 많이도 지났군. 내가 살던 곳이 8월이었을 때 이 세계에 떨어졌으니까... 정확하게 따지면 내 나이도 인제 21살이군. 쩝쩝... 늙어가는 구나... 글루카곤은 우리를 본관에 있는 어떤 방으로 데려갔다. 선생들의 숙식실인 듯 보였다. 글루카곤은 우리에게 옷을 나눠주며 말했다. “그 옷을 입으십시오.” 난 글루카곤이 준 옷을 살펴보았다. 흰색의 로브였다. 팔 소매나 가슴 부근 에 별 희한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헐... 이 옷이 나한테 어울리려나? 인티와 아린도 나와 비슷한 옷을 받았다. 글루카곤이 인티와 아린에게 한쪽 방을 가리켜 주며 말했다. “저 방에서 갈아입도록 하십시오. 니트님은 여기서 갈아입으시구요.” 그 말에 아린과 인티는 곧장 그 방으로 들어갔다. 난 옷을 갈아입으려고 입 고 있던 옷을 벗으려다가 갑자기 붉은 구슬이 생각났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 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붉은 구슬은 보통 구슬처럼 아무런 빛도 내지 않 았다. 음... 삼성물이 근처에 없다는 뜻이로군. 난 그 흰 로브로 갈아입은 후에 로브 속 주머니에 붉은 구슬을 넣었다. 헐 ... 이러다가 까먹고 붉은 구슬을 계속 이 로브 속에 넣어 두지 않을까? 난 기억력이 나빠서 전혀 기억을 못할텐데... 불안해... “잘 어울리는군요!” 글루카곤이 옷을 갈아입은 날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흘... 저건 분명히 100% 입발린 소리다. 어울리긴 뭐가 어울려? 솔직히 말해, 솔직히! 끼이ㅡ 옷을 다 갈아입은 아린과 인티가 방에서 나왔다. 모두 흰색의 로브였는데 둘다 얼굴이 받쳐주었기 때문에 잘 어울렸다. 이런... 이 중에서 내 얼굴이 제일 떨어지는 것 같군... “자, 그럼 교장 선생님께 가 볼까요?” 그렇게 말한 글루카곤은 우리를 교장실로 데려갔다. 교장실에는 한 명의 중 년인이 서 있었다. 조금 마른 체격에 인자한 얼굴을 지닌 교장은 우리를 보 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난 호르몬 마법 학교의 교장‘알도스테론’일세.” “전 니트라고 합니다.” “붉은 미소녀 마법검사 아드레날린이예요! 아린이라고 부르세요.” “멘델레예프 신의 사제 인티그랄이예요.” 우리들이 각자의 소개를 끝내자 교장 알도스테론은 놀란 표정이었다. “마법검사와 사제분도 오다니, 놀랐네. 글루카곤 선생, 즉시 학생들은 소집 시켜 주기 바라네.”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힘차게 대답한 글루카곤은 교장실 밖으로 나갔다. 교장 알도스테론은 우리 를 훑어보며 말했다. “귀찮더라도 학생들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게나. 마이스너 시장에게 초청비를 지불했으니 그 정도는 해야지.” 얼씨구? 마이스너 시장에게 초청비를 지불했다구? 마이스너 시장 녀석... 자기 혼자만 그 돈을 다 먹었단 말이지...? 유스타키오의 아버지만 아니라면 그냥 작살을 내는 건데!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0.귀가(歸家)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04 게 시 일 :00/02/14 13:36:56 수 정 일 : 크 기 :10.4K 조회횟수 :14 우리는 교장실에서 학생들이 다 정원 앞에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대략 10 여 분이 흐르자 글루카곤 선생이 들어오더니 교장에게 말했다. “학생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나오시지요.” “알겠네. 그럼 나가세나.” 교장 알도스테론은 우리를 이끌고 학교 내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는 적어 도 300여 명은 될듯한 아이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들 주위엔 마이크 같은 것을 들고 서 있는 선생들도 보였다. 교장은 정원에 마련된 단 위로 올라갔다. 나와 인티, 아린도 그냥 따라올라갔다. 한 선생에게서 마이 크 비슷한 것을 건네 받은 교장이 그 물건에 입을 가까이 가져가대며 말했다. “오늘은 호르몬 마법 학교의 30번째 생일이다!” 얼라리? 저거 정말 마이크인가 본데? 소리가 멀리까지 퍼진다. 음... 저 마 이크에서 마나의 공명이 느껴지는 걸로 봐선 음성 증폭 마법 비슷한 것이 걸 려있겠군. 근데... 호르몬 마법 학교의 30번째 생일? 그건 즉 개교 기념일이 란 말? 근데 이 학교 학생들은 개교 기념일에도 학교에 나와? 불쌍한 것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모셔왔다! 어서 이리로 오게!” 교장은 우릴 보며 말했고, 우리는 교장 옆에 섰다. 교장은 먼저 나에게 마 이크를 건네 주었다. 으윽... 나보고 내 소개를 하라구? 난 많은 사람들 앞 에 서면 입이 굳어진단 말이야... 난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학생들은 모두 나와 비슷한 흰색의 로브를 입고 있었다. 흰색의 로브는 이 학교의 교복인 듯했다. 어떤 학생들 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날 보고 있었고, 어떤 학생들은 날 존경하는 눈빛으 로 쳐다보고, 또 어떤 학생들은 딴짓을 하고 있었다. 막상 마이크를 받아들 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딴짓을 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 문에 마음이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흠... 저 녀석들이 전부 날 쳐다보았다 면 큰일날 뻔했다... “난 니트. 마법사야.” 난 짧게 말하고 나서 마이크를 인티에게 넘겨주었다. 인티는 마이크를 받아 들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떠듬떠듬 자신을 소개했다. “저, 전... 멘델레예프의 사제... 인티예요...” 그리고는 급히 마이크를 아린에게 건넸다. 아린은 마이크를 받자마자 큰소 리로 외쳤다. “난 용병계의 일인자인‘붉은 미소녀 마법검사 아드레날린’이야! 주로 쓰 는 검은 레이피어이고, 마법은 원진 마법계열을 쓰지!” 원진 마법이란 말에 딴짓하던 학생들도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아린을 쳐다보 았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자 아린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뭐든지 물어보라구! 이 천재적인 미소녀 마법검사 아드레날린님이 다 대답 해 줄테니까 말이야!” ... 엄청난 수다로군. 쟨 전형적인 연예인 스타일이야... 아니지, 그것보단 개그맨이 어울리겠다. 아차, 여자니까 개그우먼인가? 그때 한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선생 하나가 그 남학생 에게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마이크를 받은 남학생이 아린에게 질문했다. “제가 듣기론 원진 마법은 주문이 필요없다고 하던데, 맞나요?” “물론이지! 원진 마법은 주문을 외워 마나의 공명을 유도하지 않고, 허공에 원진을 그림으로써 마나의 공명을 유도하니까!” “원진 그리는데 시간이 많이 안 걸려요?” 연이은 남학생의 질문에 아린은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지! 숙련도에 따라 원진 그리는 속도에 굉장한 차이 가 나거든!” 학생들은‘응, 그렇구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에게 질문했던 남 학생이 자리에 앉자, 이번엔 한 여학생이 인티를 쳐다보며 물었다. “신성마법은 모두 치유 계열밖에 없어요?” “응, 그게...” 질문을 받자 인티가 굉장히 당황했다. 그러자 아린이 조언했다. “그냥 평소대로 자연스럽게 얘기하라구.” 하지만 계속 당황하길래 내가 한마디 했다. “긴장풀어. 지나가다가 동네 아이에게 질문받았다고 생각하라구.” “네...” 인티는 아린에게서 넘겨받은 마이크를 고쳐잡으며 말했다. “대부분의 신성마법은 다친 사람을 치유하는데 쓰여요. 하지만 그렇다고 신 성마법에 공격형이 없는 건 아니예요. 사제가 믿는 신이 허락한다면 신력 을 이용해 공격할 수도 있고, 아니면 신력을 모아 구슬처럼 생긴 신력탄을 사용할 수도 있죠. 물론 이 모든 건 신이 허락해주었을 때 가능한 얘기예 요. 사제들이 가지고 있는 신력은 모두 신께서 받은 것이니까요.” 헐... 처음 질문받았을 때는 떨더니 한 번 입을 여니까 말이 폭포수처럼 흘 러나오는 구만. 전혀 예측이 안되는 여자야... 그 여학생이 자리에 앉자마자 이번엔 다른 남학생이 일어서더니 나에게 질 문했다. “니트님은 어떻게 기적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게 됐어요?” “그거? 뭐... 어떤 여성의 불임을 치료해 줬더니 그렇게 부르더라구.” “에? 불임 치료? 마법으로 불임을 치료했다구요?” “물론. 난 사제가 아닌 마법사니까.” 내 말에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에 다른 남학생이 마이크를 받 아들며 내가 예상하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마법으로 불임을 치료하죠?” “그건...” 난 말하기가 곤란함을 느꼈다. 우선 신체 구조를 알고 있어서 완전 마법을 통해 치료했다고 해야하는데, 정자와 난자에 대한 개념도 잡혀있지 않은 이 사람들에게 그런 설명을 해줘봐야 알아먹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날 미친 사람 취급할 지도 몰랐다. 게다가 완전 마법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하 는데, 불완전 마법이 마법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말 해줬다간...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말해줬다간 아마 당장 엘프들이 살고 있는 카르본 숲으로 쳐들어가서 코아세르 베이트의 저서인 마법론을 탈취해 올지도 모른다. 그런 우려가 있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어쩌다보니 우연히 그렇게 된거야.” “에이~ 그런 대답이 어딨어요?” 학생들이 모두 실망한 눈초리를 보냈다. 어떤 녀석들은 날 사기꾼이라고 소 리치기도 했다. 그 말에 화가 치민 난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다음 질문 없냐? 없으면 이곳에다 5클래스 급의 파이어 볼을 떨어뜨려 주 겠어.” 학생들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날 사기꾼이라고 했던 녀석들도 내 위협에 입 을 다물었다. 쩝... 역시 아이들은 겁을 줘야 한다니까. 계속 열받게 하면 진짜로 파이어 볼을 날릴 생각이었는데 참아야겠군. 모두가 조용해진 가운데 한 여학생이 쭈삣쭈삣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 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그 여학생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음 ... 진짜 쪽팔리겠군. 내가 한마디 해야겠는걸? “예쁜 여학생분, 뭐 물어볼 것 있습니까?” “아... 네. 니트님은...” 내가 입을 열어 분위기를 유도하자 그 여학생은 용기를 내어 말하기 시작했 다. 그런데... 나한테 하는 질문이네? “니트님은... 정령 마법도 쓸 수 있나요?” 호... 정령 마법! 그게 내 주특기지! “쓸 수 있어. 난 백마법보다는 주로 정령 마법을 쓰거든.” “아...!” 그 여학생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재차 무엇인가를 물어보려했 다. 그러나 그때 왠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 선생에게서 마이크를 빼앗고는 나 에게 질문했다. “어떤 정령 계급까지 소환할 수 있어요? 중급 정령? 상급 정령? 아니면 정 령왕?” 막 질문하려던 여학생은 그 남학생을 힐끗 보더니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고 개를 숙이며 앉으려 했다. 그래서 난 그 남학생에게 한마디했다. “아직 저 여학생의 질문이 안 끝났어. 자리에 앉아.” 내가 목소리를 깔고 말하자 남학생은 열받은 듯 털썩 주저앉았다. 난 엉거 주춤 서 있는 여학생에게 말했다. “질문할 게 있던 것 같은데, 해봐.” “네! 우선 정령은 어느 계급까지 소환할 수 있어요?” 여학생의 질문에 그 남학생이‘그건 내가 물었던 거잖아!’하며 투덜댔다. 그 투덜소리가 나한테 들릴 정도로 컸기 때문에 난 그 남학생을 향해 말했다. “거기 못생긴 학생, 조용히 앉아 있어!” “우하하하!” 그러자 터져나오는 다른 학생들의 웃음소리. 흠... 저 녀석은 평소에도 다 른 학생들에게 안 좋은 행동을 한 것 같군. 애들 좋아하는 것 봐라~ 난 여학생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현재 계약맺은 정령들은 모두 하급 정 령이야.” “예? 실례지만... 마나가 몇 클래스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렇게 존댓말 쓸 필요없어. 너희들이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마력은 현재 8클래스야.” “......!” 학생들의 표정이 경악의 수준을 넘어 경련을 일으켰다. 하긴, 코아세르 베 이트가 인간이 모을 수 있는 최대 마력을 8클래스라 정의한 이후, 8클래스의 마력에 도달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하... 아마 그럴껄? “8... 8클래스인데... 왜 하급 정령하고만 계약을 한 거예요?” “응. 그냥. 왠지 그 녀석들이 좋아서 말이야.” “하급 정령들이 좋아서...” 여학생은 들릴락 말락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이크를 대고 있었기 때문 에 난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언이 필요할 것 같아 난 다시 말을 이 었다. “대부분의 정령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력이 향상되면 더 높은 단계의 정령을 소환하는데 노력하지. 하지만 난 그러기 싫었어. 내가 2클래스 마력을 얻 었을 때 맨 처음 계약했던 하급 정령들 외에 다른 정령과 계약 맺는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거든. 그래서 정령들을 훈련시켰어. 상위 단계의 정령 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말이야.” “훈련...?” 뜻밖의 말인 듯 모두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인티와 아린도 두 눈을 둥그렇 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계속 말을 이었다. “정령 훈련을 위한 첫번째는 정령들과 친하게 지내는 거야. 그리고 나서 정 령들끼리 합동 공격을 하게 훈련시켜. 그 다음에는 정령들에게 마법을 가 르치는 거야. 마나 축적법이 알려지기 이전의 마법, 즉 초기의 백마법을 가르친 거지. 그랬더니 녀석들이 많이 크더라구.” 학생들이 전혀 뭔소리인지 알아듣질 못했다. 특히 백마법을 가르친다고 했 을 때는 왠 헛소리냐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질문을 하는 여학생만 은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정령들에게 백마법을 가르칠 수 있나요?” 여학생의 질문에 난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야. 사실 그 정령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걸? 그 녀석들은 모두 내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이지.” “친구... 생명의 은인...” 그렇게 중얼거리던 여학생이 날 보며 말했다. “저도... 실프, 운디네랑 계약을 맺었어요. 그들에게 마법을 가르칠 수 있 을까요?” “네가 정령들을 진심으로 대해주면서 가르쳐준다면 충분히 가능해.” “네! 감사합니다!” 여학생은 굉장히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여학생이 자리 에 앉자마자 나한테‘못생긴 학생’이라고 쪽을 당했던 남학생이 일어서더니 소리쳤다. “그럼 지금 그 하급 정령들을 소환해 봐요!” 다른 학생들도 그 남학생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정령들을 부를 수가 없어.” “왜요? 혹시 정령들이 컸다는 말... 거짓말 아니예요?” “아니, 그건 진짜야. 단지...” “단지 뭔데요?” 그 남학생을 위시하여 전 학생들이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내 하급 정령들은 지금 정령신에 의해 정령계에 묶여있는 상태거든.” “......!” 학생들이 완전히 뒤집어지려고 했다. 그건 인티와 아린도 마찬가지였다. 인 티가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급히 물었다. “정말이예요? 정령들을 소환할 수 없다는 게?” 난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린은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 다. “그래서 네가 악마의 땅에서 정령들을 부르지 않았던 거구나...” 내가 한 말에 학생들을 비롯하여 선생들까지 술렁였다. 전혀 믿지 못하는 표정들. 아니, 한 명은 날 믿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한테 질문했던 그 여학 생만. 모두들 날 사기꾼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 다. 만약 내가 저들이라도 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정령들이 성장했다 는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믿겠는가.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0.귀가(歸家)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05 게 시 일 :00/02/14 13:37:23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12 짝짝짝ㅡ 갑자기 학생들의 뒤쪽에서 왠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놀라 박수 소 리의 주인공을 쳐다보았다. 그 주인공을 확인한 순간, 난 뒤집어질 뻔했다. 손에 찬란한 빛을 내뿜는 갈색 표지의 두꺼운 책을 들고 붉은색 로브를 입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 에틱스로 돌아갔다던 플라톤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 다. 게다가 그의 옆에는 녹색의 로브를 입고 초록색 머리칼을 가진 20대 후 반의 청년과 얼굴에 짧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허리에 빛나는 검을 차 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도 서 있었다. 그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옥신과 마 르크스였다. 그 세 명 중에서 옥신이 한 선생에게서 마이크를 빼앗아 들고 입을 열었다. “훌륭한 발언이었다. 하급 정령이 정령신에게 묶여 있다니. 헛소리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정신 차리도록 내가 볼기짝을 두드려 줄까?” 옥신은 아주 기분 나쁜 미소를 흘렸다. 그때 한 학교 선생이 그들에게 다가 가 소리쳤다. “당신들은 누구요? 이 학교에 멋대로 들어온 이유는 뭐요?” 옥신은 마이크를 플라톤에게 넘겼다. 플라톤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답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니트라는 저 소년에게 볼일이 있어서라오. 학생 들에게 피해줄 생각은 없으니 우리를 방해하지 말아주면 고맙겠소.” “무슨 헛소리요! 당장 나가시오!” 그 선생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플라톤이 옥신에게 조용히 말했다. 물 론 마이크를 대고 말했기 때문에 다 들렸다. “옥신, 네가 처리해라. 단, 살살해.” 옥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중얼댔다. 잠시 후, 옥신의 앞에 거대한 불 의 상급 정령 갈리노가 나타났다. 전에 케미컬에서 옥신과 싸울 때 본 적이 있었던 갈리노. 한마디로 생김새를 정의하자면 티라노 사우루스의 모습을 하 고 있다. 온몸이 온통 시뻘건 불꽃으로 뒤덮혀 있고. “으악! 불의 상급 정령이다!” “저 사람, 정령 마법사였어! 그것도 아주 높은 수준이야!” 학생들이 기겁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학교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 다. 선생들은 그런 학생들을 통제하려 했지만, 선생들조차 겁을 집어먹은 상 황에서는 그 어떤 질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학생들과 선생들이 정원에서 사라질 때까지 옥신과 플라톤, 마르크스는 여 유있는 표정으로 단상에 있는 우리를 쳐다보았다. 정원에 몇몇 선생들만이 남게 되자 플라톤이 마이크를 대고 입을 열었다. “피래미들이 사라졌군. 이제 진지한 대화를 나눠볼까, 니트군?” “무슨 대화를 나누겠다는 거야?” 나도 마이크를 대고 말했다. 나와 마르크스 일행의 거리는 대략 50여 미터. 육성이 들리기엔 조금 먼 거리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이크를 대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 저 말은 내 붉은 구슬을 노리고 왔다는 뜻? “그럼 말이야, 질문 하나 하자.” 내 말에 플라톤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질문 해보게.” “아르고선 원정이 끝난 뒤에 에틱스로 돌아가서 전쟁을 다시 일으켰다고 하 던데, 어떻게 됐지?” 질문을 다 들은 플라톤이 마이크를 마르크스에게 넘겨 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마이크를 신기한 듯이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아직 소문을 못 들었나 보군. 에틱스는 이미 올림포스 연합국에 의해 멸망 해버렸다. 아주 철저히 괴멸당했지. 뭐, 뒤에서 내가 멸망당하도록 무식하 게 군대를 지휘했기 때문이지만 말이야.” 결국 에틱스를 멸망시켜 버린 건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의 나라를 멸망시 켜 버리다니... 역시 저 인간의 정신 구조는 조사해 볼 가치가 있어... “야, 니트! 저 사람들은 우리와 같이 아르고선 원정에 참가했던 사람들이잖 아? 저 사람들이 너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야?” 아린이 인상을 팍팍쓰며 나한테 물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들 을 수 없다는 듯이. 음... 그렇군. 그러고 보니 아린에게는 저들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구나 ... 인티는 알고 있지만. “저 사람들이 바로 내 붉은 구슬을 노리는 자들이야.” “뭐? 붉은 구슬을 노려? ... 근데 붉은 구슬이 뭐야?” 아린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쩝... 저번에 흑기사가 쳐들어왔을 때 그 흑기사 녀석이 다 설명해 줬잖아... 역시 너도 기억력이 나쁘구나~ “공간의 문을 여는데 필요한 물건이야. 저들이 날 찾아온 이유는 그 붉은 구슬을 뺏어가기 위해서고.” “그래? 근데 왜 아르고선 원정 때는 아무 일 없었던 거야? 충분히 그 붉은 구슬을 저들이 빼앗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저 인간들 맘이지, 낸들 아나.” 내가 아린과 대화를 주고받자 마르크스가 입을 열었다. “어이, 이봐! 거기 둘만 얘기하지 말라구. 무슨 작전 회의하는 것 같은데 그래봤자 소용없으니까 어서 붉은 구슬이나 내놔.” 흠... 어떡한다? 순순히 붉은 구슬을 내놓기는 뭐하고... 음... 얼레? 그러 고보니 삼성물 중의 하나인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은 헤라클레스의 집에 있 잖아? 그렇다면...! “근데 너희들은 리소좀을 가지고 있는 거냐?” 내 질문에 마르크스가 목젖이 다 보이도록 웃어 제쳤다. “하하하! 너의 눈은 정말 나쁘군! 내 허리를 봐라! 어떤 검인지!” 난 마르크스의 말대로 그의 허리를 쳐다보았다. 그의 허리에는 손잡이 부분 은 화려하고, 가드 부분에는 청록색의 보석이 아름다운 빛을 내며 박혀있는 검이 매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이었다. 뭐, 뭐야? 리소좀이 어째서 마르크스에게 있는 거지? 분명히 리소좀은 헤라 클레스의 집에 얌전히 있어야 할텐데? “어떻게... 그 리소좀을 얻은 거냐?” “후후, 궁금한가? 그거야 모두 플라톤이 찾아낸 거지.” 마르크스가 플라톤을 쳐다보자 플라톤은 그에게서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입 을 열었다. “에틱스를 멸망시킨 후, 우리는 너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하지만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내가 탐지 마법을 사용했지. 우선 탐지 마 법으로 리소좀의 위치를 알아냈다. 물론 붉은 구슬부터 탐지해도 됐겠지만 혹시라도 네 녀석이 리소좀을 다른 녀석에게 줘버렸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 문에 리소좀 먼저 탐지했지. 그랬더니 올림포스 연합국 테사리아 지방에 있더군. 물론 그리로 갔다. 그리고 불타버린 집에서 거의 다 타버린 가방 과 그 옆에 있는 리소좀을 발견했다. 가방을 뒤져보니 별의별 게 다 있더 군. 무슨 이상한 기계도 있었고, 엘프어와 별 괴상한 문자가 적힌 책도 있 었고 말이야.” 커커컥... 이상한 기계라 함은 내 워크맨... 엘프어와 별 괴상한 문자가 적 힌 책은 내 연습장... 으아아아... 아까운 내 워크맨...!!! 플라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리소좀을 왜 그곳에 그냥 둔거지?” “...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어. 그 이상 물어보지마.” “그래? 흠... 혹시 네 녀석이 그 집을 모두 태워먹은 것 아니냐?”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분으로 보이냐?” “전에 자아 분열을 했던 적이 있으니 미친 짓도 충분히 할 가능성이 있지. 안 그러나?” 골드 드래곤을 죽인 일을 말하는 건가? 어쨌든... 이건 중요한 일이 아니니 까 넘어가고... “그 후에 붉은 구슬을 탐지해서 내 위치를 알아냈겠지?” 나의 추측에 플라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이제 붉은 구슬을 넘겨줄 마음이 생겼나?” 흘... 갈등 생기네... 정령들도 부를 수 없는 지금의 내가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아린과 인티가 저들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 이런...! “이봐, 당신들! 여기 내가 있다는 걸 잊어버리지 말라구!” 아린이 갑자기 마르크스 일행에게 소리쳤다. 플라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누구지?” “... 이이익! 난‘붉은 미소녀 마법검사 아드레날린’이다! 너희들이 무엇 때문에 니트를 노리는 지는 모르지만, 내가 너희들의 야욕을 철저히 분쇄 시켜 주겠다!” ... 아린아... 저들이 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붉은 구슬이라니까... 게다가 저들이 왜 붉은 구슬을 노리는 지는 방금 설명했었잖아... 너 도대체 아이큐 가 몇자리냐...? “허허, 당돌한 아가씨군.” 플라톤이 어이없는지 허허 웃었다. 그러자 열받은 아린은 허공에다 마법원 진을 그렸다. 그런 와중에서도 플라톤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옥신을 쳐다보았 고, 옥신은 자신이 소환해 놓은 불의 상급 정령 갈리노를 이동시켰다. “간다! 파이어 볼ㅡ!” 아린은 마법원진의 한가운데를 손바닥으로 강타하며 소리쳤다. 마법원진에 서 발사된 머리만한 불의 공이 곧장 불의 상급 정령 갈리노에게 날아갔다. 갈리노는 그대로 파이어 볼에 맞았다. “어...?” 아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갈리노에 의해 파이어 볼이 흔적도 없이 사 라졌기 때문이었다. 옥신이 플라톤에게서 마이크를 뺏어들며 소리쳤다. “이봐, 아가씨! 좀더 강한 걸로 하라구!” “이이익! 그럼 이번엔 양진합일이다!” 옥신의 말에 흥분한 아린이 즉시 허공에다 마법원진을 두 개 그리기 시작했 다. 그때 플라톤은 무슨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마이크를 옥신이 들고 있었 기 때문에 어떤 주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양진합일!” 아린은 허공에다 그려놓은 두 개의 마법원진을 하나로 포갰다. 그러자 마나 의 완전 공명이 일어났다. 아린은 그 포개진 마법원진의 한가운데를 두 손바 닥으로 강타하며 힘차게 소리쳤다. “간닷! 더블 스크류 라이트닝!” 아린의 외침과 함께 마법원진에서 두 줄기의 번개가 튀어나갔다. 두 번개는 서로 뒤엉키며 곧장 갈리노에게 날아갔지만, 갈리노는 어느새 정령계로 돌아 가버렸고 대신 플라톤이 어떤 마법을 가동시켰다. “실드(Shield)!” 옥신이 들고 있는 마이크를 통해 들려온 플라톤의 외침. 아린의 더블 스크 류 라이트닝은 플라톤의 실드에 가로막혀 사라졌다. 예전에 실드 마법이 걸 려있는 흑기사의 갑옷을 박살냈던 그 기술이 플라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 이다. “이, 이럴수가...!” 아린은 경악했다. 그러나 아린이 플라톤의 마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안다면 결코 경악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아린의 마력은 5클래스이고, 플라톤의 마력은 7클래스다. 즉, 마법으로 아린이 플라톤을 누르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담 이번에는 삼원진 합일...!” 아린이 지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계속 공격하려 하자 난 아린의 손을 잡았 다. 아린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난 한마디했다. “됐어, 그만해. 삼원진 합일까지 썼다간 네가 위험하다구. 지금의 우리는 저 녀석들을 당해낼 방법이 없으니까 그냥 항복하자.” “뭐? 항복하자구? 그런 말도 안되는 법이 어디있어?” 길길이 날뛰는 아린을 무시하며 난 단상에서 내려가 마르크스 일행에게 향 했다. 아린과 인티가 놀라 날 불렀지만 난 그냥 계속 걸어갔다. 나와 마르크 스 일행과의 거리가 3미터도 채 못 되었을 때, 플라톤이 입을 열었다. “결국 내놓을 것이면서 꽤나 시간을 끄는군. 하긴, 쉽게 얻은 물건은 쉽게 잃는 법이니까 이렇게 약간의 시간이 걸리는 것도 괜찮겠지.” ... 왠 헛소리야? 역시 저 녀석도 정신에 문제가 있어... 난 멈춰서서 플라톤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봐, 다른 세계로 가면 뭐할 생각이야?” 마이크가 필요없기 때문에 옥신은 마이크를 멀리 집어던졌다. 쩝... 학교기 물을 저렇게 다루다니... 저러다가 맞아죽지... 플라톤은 별 이상한 질문을 한다는 듯 날 쳐다보았다. “후후, 그냥 가보는 거야. 다른 세계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잖아?” “그 다른 세계가 이곳보다 살기 어려운 곳이라면 어떡할거지?” “그럼 다시 공간의 문을 만들어 여기로 돌아오면 되지.” 얼레? 여기로... 돌아온다고? “잠깐. 그럼 그 삼성물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문은 이 세계와 내가 살던 세 계 밖에 연결하지 못하는 거야?” 내 질문에 플라톤이 교활한 웃음을 띠었다. “이 지혜의 마법서 티탄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이론상 그렇다고 하더군. 하 지만 차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으로 떨어질 가능성 도 크다고 했어. 어떻게 될지는 직접 공간의 문 안으로 들어가봐야 알아.” “그럼 너희들은... 확실하지도 않은 곳을 가려는 거냐?” “물론이다. 그래야 더 재미있지 않나?” ... 완전 돌았군. 죽으려고 작정한 놈들 같다...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닌 다 른 세계, 예를 들면 드넓은 우주 공간으로 떨어진다던가, 아니면 거인족이 사는 세계, 그것도 아니면 육지도 생성되지 않은 원시 지구에 떨어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저 녀석들의 정신 구조는 모두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어...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0.귀가(歸家)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06 게 시 일 :00/02/14 13:38:00 수 정 일 : 크 기 :9.8K 조회횟수 :24 내가 플라톤의 대답에 어이없어 할 때 인티와 아린이 내 옆에 다가왔다. 인 티와 아린, 마르크스 일행은 전혀 공격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흘... 아무 래도 대화로 풀어갈 생각인가 보다. 뭐 그것보다는 우리 쪽에서 그냥 항복한 거지만... “자, 니트군. 어서 붉은 구슬을 넘기게.” 플라톤이 한쪽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 손을 보고 있자니 내주기가 싫었지 만 분을 삭이며 로브 주머니 속에서 붉은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주저없이 플라톤에게 붉은 구슬을 넘겨 주었다. “호, 드디어 공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얻게 되는군.” 플라톤은 붉은 구슬을 이리저리 살피며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 옆에서 있던 마르크스가 플라톤에게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을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플라톤, 이제 공간의 문을 만들도록 해라.” “네.” 플라톤은 리소좀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뒤로 조금 물러나라. 지금부터 공간의 문 소환 작업을 해야하니까.” 얼렐레? 지금 하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난 플라톤의 말대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플라톤이 어떻게 공간의 문을 소환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플라톤은 검집에서 리소좀을 뽑아들고 천 천히 큰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원 안쪽에 다시 또 원을 그렸다. 흠... 저 형식은 만화에서 자주 보던 건데... 설마 저 안쪽 원에 삼각형 두 개를 엇갈려서 그리는 건 아니겠지...? 허거거걱... 삼각형을 그리잖아? 할 말이 없군. 저런 유치한 그림을 그리다니... 좀더 복잡해야 멋있지... 얼라? 그냥 삼각형 하나만 그렸네? 그림을 다 그렸는지 플라톤은 허리를 펴며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안쪽 원에다 그린 삼각형의 각 꼭지점에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각각 놓았다. 그러자, 지잉ㅡ 무슨 레이저빔 쏠 때 나는 소리와 함께 삼성물이 반응하여 청록색, 녹색, 붉은색의 빛이 삼각형의 무게중심을 향하여 천천히 날아갔다. 그 세 개의 빛 은 서로 만나자 하나로 섞이며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후후.” 플라톤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옥신과 마르크스도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 었다. 세 빛이 하나로 만난 지점으로 걸어간 플라톤이 나를 보며 물었다. “이제 곧 자네 세계로 돌아갈텐데, 감회가 어떤가?” 얼레? 저 말투는 내가 살고 있던 세계로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 은데?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지 이상한 데로 갈지 어떻게 알아?” “후후, 그래도 이론상 그리로 갈 확률이 가장 높으니까.” 확률... 수학 중에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분야... 나와 플라톤이 한가한 잡담을 주고 받자 뒤에 있던 마르크스가 플라톤을 재 촉했다. “어서 공간의 문을 소환해라.” “알겠습니다.” 플라톤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달며 대답했다. 그의 미소는 오직 나와 인티, 그리고 아린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미묘한 미소를 짓던 플라톤은 손에 든 붉은 구슬을 세 개의 빛이 하나로 만난 지점에 올려 놓았다. 순간, 삐ㅡ 하는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머리속이 갑자기 하얗게 텅 비어버린 듯 했다. 또한 붉은 구슬에서 찬란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세상을 뒤덮기 시작했다. 점점 정신이 흐릿해져 갈 때 내가 들은 것이라고는 플라톤의 통쾌 한 웃음 소리 밖에 없었다. 부우웅ㅡ 버스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난 학교 앞 보도에 서서 지나가 는 버스를 쳐다보았다. 한여름이라 뜨거운 햇살이 내 머리를 따끈따끈하게 달구고 있었다. 난 학교 가까이 있는 마을 버스 종점으로 걸어갔다. 종점에는 마을 버스 하 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버스 안에는 운전기사를 빼면 한 사람도 타고 있지 않았다. 헐... 역시 여름방학 보충수업 끝난 뒤에 자율학습까지 하고 나니까 마을 버스에 타는 인간이 하나도 없구만. 오늘도 편하게 집에 갈 수 있겠구 나~ 쨍그랑ㅡ 난 동전을 낸 뒤 제일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가방에서 워크맨을 꺼내 들었 다. 6시까지 자율학습을 한 탓인지 꽤 피곤해서 난 세수하듯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어, 얼레?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안경이 없는 거지?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잘 보이는 거야? 부우웅ㅡ 이윽고 마을 버스가 출발했다. 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난 고개 를 이리저리 돌리며 창 밖의 풍경을 미친 듯이 쳐다보았다. 허허... 이거 참...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상점 간판이랑 벽에 붙은 광고 지의 조그마한 글씨들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불가사리가 허공을 날 정도로 불가사의한 일이야... “으다다다닷...!” 굉장히 피곤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고 나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거실에 누 워버렸다. 거실이라고 해도 20평 남짓한 아파트이기 때문에 쇼파같은 것은 없다. 거실에 텔레비전이 하나 있고, 누워서 TV를 시청해야 한다. 베란다의 창문을 통해 노란 햇살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지금은 저녁 7시이지만 한여름이라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만약 겨울이었다 면 지금쯤 어두컴컴해졌을 것이다. 티잉ㅡ TV를 켜고 리모콘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리모콘을 놓고 그냥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시력이 갑자 기 좋아진 일이 떠올랐다. 헐...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학교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안경을 벗으 면 사물이 희미하게 보였었는데... 갑자기 왜 시력이 좋아진거지? 그것도 거 의 2.0 수준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띵동띵동ㅡ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난 인터폰의 화면을 통해 그 누군가가 어머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었다. 손에 채소나 과일같은 음식 거리를 들고 들어온 어머니는 날 쳐다보더니 크게 놀랬다. “왜 이렇게 키가 컸어?” 얼레? 내 키가 커졌다구? “에...?” 난 즉시 거실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섰다. “얼레?” 그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키가 커진 것이다. 어제까 지만 해도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몸을 낮춰야 만 얼굴이 보였다. 하룻만에 키가 5cm 정도 커 버린 것이었다. 허참... 이거 또하나의 불가사리가 생겼구만... 키가 하룻만에 커지다니? 특히 하루 중 가장 키가 작아있을 저녁 시간에? 이런 말도 안되는...! “안경은 왜 안써?” 어머니가 날 쳐다보며 또 물었다. 나도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대충 얼버 무렸다. “안경 계속 쓰면 눈이 더 나빠질 것 같아서...” “허구헌날 안경쓰니 눈이 더 나빠지지...” 그렇게 트집을 잡은 어머니는 사들고 온 음식 거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잠시 거울을 바라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의 습관대로 컴 퓨터를 켰다. “또 컴퓨터 하냐? 좀 작작해라.” 어머니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려보내며 난 PC통신에 접속했다. 그리고 역시 평소 습관대로 환타지 동호회에 들렀다. 자유 게시판의 여러 글들을 쭉 읽고 나서 동호회 사람들이 써놓은 소설란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내가 전에 썼던 소설들을 검색했다. 조회수는 평균 30 정도. 어떤 것은 10도 채 안되었다. 현재 내가 쓴 환타지 소설은 모두 4개. 4개 모두 분량 면에서는 적었지만 내게는 모두 소중한 것들이다. 내 완결작들이니까. 지금까지 올린 소설은 모 두 완결한 상태. 아무리 조회수가 낮더라도 기필코 완결은 했다. 완결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으니까. “엘프...” 어떤 사람의 소설 제목에서‘엘프’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는‘오크’란 단어도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졌 다. 나와 관계깊은 단어란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우씨... 갑자기 기분 더러워지네...?” 난 그대로 통신 접속을 끊었다. 뭔가 떠오를 듯 하면서 떠오르지 않는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분을 망쳐버려서 난 컴퓨터마저 끄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때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나나 먹어라.” 오옷! 바나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 난 즉시 거실로 나가 어머니가 식탁에 놓아둔 바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바나나 껍질을 벗겨 바나나를 한 입 깨물려고 했다. 그런 내 코로 스며드는 바나나 향기. “......” 갑자기 또 기분이 우울해졌다. 왠지 모를 우울함. 도대체... 오늘따라 왜 이러지? 엘프하고 오크란 단어가 이상하게 내 기분 을 잡치더니 이젠 바나나마저 날 우울하게 만들다니... 왜 이런 기분나쁜 느 낌이 드는 거야? 으아... 짜증나!!! 난 바나나를 덥썩 깨물고 아작아작 씹어먹었다. 이미 까놓은 바나나를 안 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이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바나나하고 왠수졌냐?” 내가 바나나를 우악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한마디했다. 난 최대 한 빠른 속도로 바나나를 다 먹은 뒤에 내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만 먹을래요.” “네가 왠일이냐? 바나나를 마다하고?” “배불러요.” 그렇게 대충 둘러댄 후 방문을 닫았다. 난 잠시 방문을 닫은 채 그냥 서 있 었다. 그렇게 서 있자 역시 기분이 더없이 우울해졌다. 난 내 책상을 바라보 았다. 치우지 않아서 어지럽게 널려있는 문제집과 교과서가 보였다. 난 책상 쪽으로 걸어가 교과서 하나를 집어들었다. 생물Ⅱ 교과서였다. 우울해진 기 분이 떨치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교과서를 펼쳤다. “......!” 가장 먼저 보인 단어는‘헤모글로빈’이었다. 난 다시 다른 페이지를 펼쳤 다. 그러자‘아드레날린’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다른 페이지 를 펼치니 이번에는‘옥신’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다시 페이지를 펼쳐보았 다.‘유스타키오관’이 눈에 띄었다. 퍽ㅡ! 난 그대로 생물Ⅱ 교과서를 책상 위에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화 학Ⅱ 교과서를 집어들고 방금 전처럼 멋대로 페이지를 펼치며 가장 먼저 눈 에 들어오는 단어를 살폈다. “아세트산이소아밀... 에스테르... 콜로이드... 니트로벤젠...” 퍽ㅡ! 난 이번에도 화학Ⅱ 교과서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쳐 다보았다. 수학 교과서가 눈에 들어왔다. 수학 교과서를 보자마자‘인티그랄 ... 시그마...’가 떠올랐다.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본 것은 윤리 교과서였 다. “마르크스... 플라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머리 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뭔가 계속 떠오를 듯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소리를 질렀다. “젠장, 빌어먹을!!!” “시끄러!!!”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난 내 방 창문을 열어제쳤다. 그러나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책상 위에 있던 부채를 들고 마구 부채질을 했다. 열을 받아서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기분은 굉장히 불쾌했다. “우아, 짜증나... 빌어먹을...” 부채질을 해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더 일어났다. 그래서 부 채를 집어던졌다. 부채는 벽에 맞고 부러져 버렸다. 난 그대로 방바닥에 드 러누웠다. 그리고 방바닥을 주먹으로 한 번 강하게 내리쳤다. 쿵ㅡ “......” 천장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낯설어 보이는 천장. 분명 어제도 보았던 천장 이었건만, 마치 아주 오랜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처럼 천장은 낯설었다. 제길... 기분 더럽군...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두통도 아닌데 머리가 아프고... 젠장... 괜히 열받네? 끄아... 짜증나!!! ----------------------------------------------------------------------- 여기까지가 3권이구요, 다음 편부터는 1부 완결편입니다. ━━━━━━━━━━━━━━━━━━━━━━━━━━━━━━━━━━━ 번 호 : 6685 / 6714 등록일 : 2000년 02월 16일 06:11 등록자 : THEBUR 조 회 : 9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1~02 잃어버린 기억 제 목 :[사이케델리아] 01.잃어버린 기억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15 게 시 일 :00/02/15 08:49:11 수 정 일 : 크 기 :8.3K 조회횟수 :37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 제 1 부 - 완결편 <제 1 장> 잃어버린 기억 부우웅ㅡ 빵빵! 버스 밖에서 들리는 소음이 잠시 졸던 나를 깨웠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는 여전히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버스 창을 통해 밖을 살폈 다. 대략 10분 후면 종점에 도착할 것 같았다. “아... 흠.” 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가 난 제일 뒷좌석에 타기 때문에 누가 날 볼 염려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뒷자리 를 선호하는 것이다. 끄아... 머리가 띵하구만.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제길... 왜 어제 그렇게 기분이 나빴던 것일까... 역시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점점 끝나가니까 그런가? 에... 그렇다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왜 이러냐구... 그러니까 그 건 아니고... 으... 전혀 모르겠다!!! “야!” 누군가 날 불렀다. 난 고개를 들어 말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여드름 이 하나 가득 피어있는 우리 학교 학생, 바로 나와 친한‘이형도’였다. “아, 안녕.” 내가 인사하자 형도는 내 옆에 앉더니 일부러 놀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 짜식, 날라리 다됐어~ 팔짱끼고 음악이나 듣고 말이야~” ... 그게 날라리하고 뭔 상관이야... 형도는 한쪽 이어폰을 빼가더니 자기 귀에 꽂았다. “어? 이거 뭔 노래냐? 처음... 에? 처음듣는 말인데? 외국 노래냐?” 난 형도에게서 이어폰을 뺏어들어 다시 내 귀에 꽂았다. 그러자 형도가 날 쿡쿡 찔렀다. “야, 친구를 무시하냐? 빨리 말해, 그거 뭔 노래야?” “... 일본 만화 주제가.” “......?” 내 말을 이해 못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형도가 다시 물었다. “일본 가요가 아니구?” “전혀 아니다.” “그래? 그럼 가사는 알아듣는거야?” “아니.” 내 대답에 형도는 황당해했다. “가사도 모르는데 들어? 그럼 안 지겹냐?” “전혀 안 지겨워. 가사를 알아듣는 게 더 지겨워.” “뭔 소리야?” 형도는 재차 물었다. 대답하기 귀찮아서 난 간단히 말했다. “난 가사보다는 반주 듣는 걸 좋아하니까.” “이상한 놈일쎄...?” 형도는 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형 도의 질문이 들려왔다. “너 시력 몇이냐?” “... 마이너스일걸?” “마이너스? 그럼 시력 검사할 때 거기 쓰여있는 글자 하나도 안 보이냐?” “어.” 내가 대답하자 형도는 갑자기 내 눈앞에 손가락 두 개를 펴보이며 물었다. “이거 몇 개?” ... 이 녀석이 지금 날 놀리냐...? “......” 난 대답하지 않고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형도는 계속 손가락을 펴 보이며‘몇 개?’를 연발했다. 그러다가 여자 애들이 타자 곧 얌전해졌다. 잠시후 마을버스는 종점에 도착했고, 나와 형도는 곧장 학교로 향했다. 학교 담장은 긴 쇠막대기를 박아놓고 그 위에 날카롭게 꽈서 만든 철사줄을 둘둘 말아 얹은 형태였기 때문에 인도 쪽에서 운동장이 잘 보였다. 운동장에는 태 권도부가 열심히 훈련하고 있었다. “저 태권도부 여자하고 결혼하면 부부싸움할 때 무진장 맞는다~” 형도는 학교 본관에 들어갈 때까지 그런 시덥지 않은 농담을 했다. 난 그저 고개만 끄덕여줬다. 내 반은 4층이고 형도 반은 5층이었기 때문에 4층 계단 에서 헤어진 후 난 교실로 들어갔다. 일찍 나왔기 때문에 교실에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몇 명 있긴 했지만 모두 퍼질러 자고 있었다. 철컥ㅡ 교실 뒤에 있는 사물함에서 오늘 수업할 문제집들을 꺼내어 책상 속에 정리 했다. 그리고 나서 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수면을 취했다. 어제 거 의 잠을 못 잔 탓인지 금방 골아떨어졌다. “야, 강한아. 일어나.” 음냐... 누가 날 깨우냐... 졸리단 말이야... “선생님 오셨어.” 음냐... 선생님 오셨다구... 선생님... 으헉! 선생님?! 난 재빨리 정신을 추스리고 일어났다. 교탁 쪽을 바라보니 나이는 50대이지 만 겉보기에는 40대 아저씨 정도로 보이는 윤리 선생이 서 있었다. 이번엔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은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 느새 1교시 시작 시간이 된 것이었다. “......!” 허걱! 침을 흘리면서 잤잖아? 이런 쪽팔리는 일이!!! 난 급히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휴지를 꺼내 아무도 몰래 흘린 침을 닦 아냈다. 난 운동장 창가 3번째 줄 안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내 짝이 모르 면 다른 아이들은 내가 침흘린 것을 볼 수 없었다. 내 짝인 떡근이ㅡ당연히 별명ㅡ는 윤리 선생을 쳐다보고 있어서 날 보지 않고 있었다. 흘흘...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가는군. 역시 사람은 자리를 잘 골라야 한다 니까. 뭐 내가 워낙 제비뽑기를 잘하다보니까 이 자리를 얻게 됐지만. 그러 고 보니 개학하면 또 자리 바꾸겠네?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또 제비뽑기로 자리를 선정하겠지? 우허허... 내 뛰어난 제비뽑기 실력을 또 발휘해야겠군!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반장... 아, 지금은 학급 회장이라고 하지 참. 어쨌든 학급 회장이 인사한 후 윤리 선생은 우리들을 쭉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50명 중에서 30명만 앉아있냐? 20명은 아직 안 온 거냐?” “그런 것 같습니다.” 학급 회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윤리 선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것들이 고3이라는 걸 아직 실감을 못하네?” 그리고는 일일이 이름을 불러 출석을 확인했다. 난 4번이었기 때문에 금방 대답하고 창 밖을 쳐다보았다. 창가 쪽에서 교문이 잘 보였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오는 아이들을 여러 명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옆에 만들어진 교 사용 주차장에서 담임이 느긋하게 걸어오는 것도 보았다. 흘... 학교 제일의 젠틀맨(Gentleman)이 지각을 하셨구만. 오늘도 깔끔한 정장 차림인걸? 흠... 안경을 조금 작은 걸 쓰면 더 좋을텐데. 뭐 저런 안경 을 쓰고도 학생 어머니들에게‘멋지다’란 소리를 들으니 상관없겠군. 어쨌 든 지난 1학기 동안 담임이 뛰어가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역 시 느긋해... 지각해도 걸어오고... “자, 오늘은 서양 윤리에 대해 정리하겠다.” 꿈결처럼 들려오는 윤리 선생의 목소리.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있으면 걸리 기 때문에 난 윤리 문제집을 들여다 보았다. 윤리 선생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서양 윤리 사상의 계보를 살펴보면, 크게 경험을 중시하는 상대론적 윤리 설과 이성을 중시하는 절대론적 윤리설로 나뉜다. 상대론적 윤리설은 소피 스트(Sophist)를 시작으로 에피쿠로스(Epicouros) 학파, 영국의 경험론, 공리주의, 실용주의 등으로 이어지고, 절대론적 윤리설은 소크라테스를 시 작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Stoa) 학파, 중세 크리스트교 사 상, 대륙의 합리론, 칸트의 관념론 등으로 이어진다.” ‘플라톤...’ 갑자기 뇌리를 강타하는 그 단어. 평상시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그 단 어가 지금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윤리 선 생의 설명 중에서 또 유난히 신경쓰이는 구절이 있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펼쳤는데, 참다운 세계는 오 직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이데아 세계뿐이고 감각적으로 경험되는 현상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플라톤... 이데아... 어째서 이런 단어가 신경쓰이는 거지? 나하고는 아무 런 상관도 없는데! “......” 기분이 또다시 우울해졌다. 어제 느꼈던 바로 그 기분이었다. 그래서 윤리 선생의 설명이 머리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 한 단어가 내 귀를 잡아끌었을 뿐이었다. “19세기 말에 팽배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려고 생겨난 사상 이 유물론인데, 마르크스에 의해 체계화되었고...” 마르크스... 제길... 또 기분이 더러워지는군. 도대체 마르크스라는 말을 들었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거냐구! 으윽! 평소부터 마르크스 사상은 싫어했지만... 괜히 열받네 이거?! 띵동띵동ㅡ 1교시 끝남을 알리는 반가운 종소리. 윤리 선생이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책 상에 일제히 엎드렸다. 난 잠잘 기분이 아니라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 쪽에 난 창을 통해 높은 언덕이 보였고, 그 언덕 위에 세워진 실수여고도 보 였다. 하여간 우리 학교나 저기나 이름 구리기는 마찬가지라니까. 저쪽은 실수여 고, 우리는 정수고등학교. 실수하고 정수라니... 차라리 분수나 자연수, 무 리수, 유리수, 복소수가 낫겠다! 뿌우ㅡ 덜컹덜컹ㅡ 우리 학교와 실수여고 사이를 가로질러 놓여진 철도 위를 기차 한 대가 요 란스럽게 지나갔다. 물론 철도는 언덕을 깎아서 높은 곳에 만들어 놓았기 때 문에 굴다리를 통해 실수여고 쪽으로 갈 수 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가면 상당히 시끄럽다. 방음벽도 없기 때문에 기차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그 기차 소리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때가 바로 모의고사 치를 때이다. 수업 시 간은 어차피 듣지 않기 때문에 기차가 지나가도 상관없지만, 모의고사 볼 때 , 특히 4교시 외국어 영역 듣기할 때 지나가면 굉장한 방해를 받는다. 그 기 차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집중이 안되니까. “......!” 실수여고의 복도 창문 쪽에서 한 여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150미터 가량 떨 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실히 그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예뻐보이는 애였다. 마침 그 여학생도 날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있었 음에도 시선이 마주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 여학생이 닫힌 창문 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 순간 다음 교시 시 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나는 약간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그 여학생을 언젠가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었 다는 느낌이 들었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2.잃어버린 기억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16 게 시 일 :00/02/15 08:49:50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24 띵동띵동ㅡ 5교시 수업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종 소리가 나기 무섭게 담임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고 있던 아이들을 모두 깨우고 나서 담임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4일 남았다. 4일만 잘 버티면 되니까 열심히 들 해라. 음... 뭐 특별한 말은 없고... 자, 그럼 가자!” 담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우루루 몰려나갔다. 나도 가방을 챙기 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 했다. 그때 얼굴이 길어서 ‘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병서가 나한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래.” 얼레? 담임이 날 부른다구? 뭔일이지? 난 워크맨을 가방 속에 넣고 곧장 3층에 있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담임 자리를 쳐다보았다. 담임은 다행히 자리에 앉 아 있었다. 그래서 난 담임에게 걸어갔다. “저... 선생님.” “아, 강한이구나.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어.” 그렇게 말한 담임은 책상 서랍에서 커다란 하얀 종이를 꺼내어 펼쳐 들었 다. 그 하얀 종이에는 우리반 아이들의 모의고사 성적이 1학년 때부터 3학년 1학기까지 나와 있었다. 담임은 그 중에서 내 성적을 살펴보면서 말했다. “강한이 너 말이야, 1, 2학년 때는 전교 1등 몇 번 했는데... 3학년 들어와 서 전교 5등 내에도 못 들고 있어... 무슨 문제라도 있는거냐?” “... 아니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문제가 없을 리 없었다. 확실히 내 성적은 2학년 2학 기를 고비로 점점 추락하고 있었다. 고3이 되었다는 중압감 때문에 성적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 던 것이다. “고3 생활에 적응이 안되니?” “아니요.” 쯧쯧, 그건 아니라우. “그럼 가정에 문제가 있어?” “아니요.” 가정 문제야 내가 철들었을 때부터 있었는걸 뭐. “그래? 흠... 공부 더 열심히 해. 수능이 이제 석 달도 채 안 남았잖아. 목 숨 걸고 한 번 해봐.” 담임은 그것이 마치 굉장한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나에게는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난 목숨 걸고 공부해야 할 정도로 수능에 가치를 두고 있 지는 않았으니까. 아무리 사고력 측정, 자료 해석 능력 측정 운운한다 하더 라도 결국은 모조리 외워야 풀 수 있는 문제들... 그런 문제만 보면 짜증이 나고 공부하기가 싫었다. 수능이 쉬워졌다는 뜻은 누가 많이 출제 유형을 외 우고 파악하느냐 하는 것. 결국 눈치로 맞추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해 회의가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지?” 담임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했고, 난 그저 간단히 대답했다. “예...” “좋아, 그럼 가봐.” “안녕히 계세요...” 난 담임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그리고 가방에서 워크맨을 꺼내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계단 쪽으로 향했다. 담임의 말 때문인지 자율학습을 하 기가 싫었기 때문에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어차피 자율학습해봤자 건지는 건 거의 없었으니까. 그 시간에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는 게 나에게는 더욱 득이 되는 일이다. “강한아!” 누가 날 불렀다. 아침에 들었던 목소리. 바로 여드름 인간인 형도였다. 내 가 뒤돌아보자 형도는 나한테 뛰어오더니 물음을 던졌다. “야! 너 자율학습 안해?” “어... 몸이 안 좋아서...” “그래? 그럼 집에서 푹 쉬어라. 건강이 최고잖냐.” 형도는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이더니 이내 2층에 있는 독서실로 내려 갔다. 난 줄였던 음량을 높이고 다시 유유히 계단을 통해 학교 본관을 빠져 나와 교문으로 향했다. 많은 아이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흠... 과연 저 중에서 과연 집에 바로 들어가는 아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 대부분 PC방이나 오락실에 들르겠지? 그러고 보니 난 한번도 PC방에 가 본 적이 없잖아? 흘... 오락실 가본 지도 한 3년 됐나? “......!” 교문을 나와 마을버스 종점을 쳐다보다가 크게 놀랐다. 인간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바로 나온 결과였다. 보충수업이 거의 같은 시간에 끝나기 때문에 실수여고 학생들이 대거 몰려나 온 것이다. 이런... 그럼 오늘은 서서 가야겠구만.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자율학습 약간 만 하고 얼른 집에 가야겠어. 자율학습을 아예 안 하고 가니까 인간들이 저 렇게 많구... 으으으... 담임이 날 부르지만 않았어도 자율학습 하려고 했는 데...!!! 난 일부러 종점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수많은 아이들이 버스를 타려고 아둥 바둥 거리고 있었다. 난 종점에 도착하고 나서 일부러 마을버스를 3대 정도 그냥 보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이 탔기 때문이었다. 종점에서 기다린지 30여 분이 지났고, 곧 4번째 차량이 기어나왔다. 버스에 타려는 아이들의 수는 많 이 줄어 있었지만 여전히 자리에 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더이상 기다리기도 지루해져서 그냥 타기로 했다. 쨍그랑ㅡ 쨍그랑ㅡ 버스에 돈 넣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렸고, 난 제일 뒷자리로 갔다. 뒷자리 에는 이미 여학생들이 쫘악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난 뒷자리 바로 앞에 서서 좌석 손잡이를 잡았다.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은 모두 4명이었는데 그 중에 3명은 친구인 듯 서로 떠들고 있었고, 버스의 오른쪽 제일 뒷자리에 앉은 여 학생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얼레? 창밖을 보고 있는 저 애는... 오늘 봤던 것 같은데? 1교시 끝나고 복 도 창문으로 실수여고를 보고 있을 때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았던가? 흠... 뭐 신경끊자. 눈[雪]이 마주치면 얼어붙겠지... “야, 나 오늘 기분 이상했다~” “뭐가?” “응. 오늘 생물Ⅱ 시간에 말이야...”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여학생이 다른 두 여학생에게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 다. 난 그냥 창밖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의 말은 내 귀를 잡아끌었 다. “아드레날린이란 말을 듣고 기분이 이상해졌어.” “왜?” “몰라. 왠지 아드레날린에서 자꾸‘아린’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더라.” “아린? 그게 뭔데?” “알면 내가 지금 이 말을 하고 있겠냐?” 까르르 웃으며 떠드는 뒷자리의 삼총사. 그 중에서 아린이라고 말한 여학생 이 자꾸 신경 쓰였다. 고개를 돌려 그 여학생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 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난 그냥 창밖만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무엇인가를 잊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기 위해 저렇게 바쁘 게 걸음을 옮기는 것일까... 자동차를 몰고 가는 저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 버스를 탄 것일까 ... 헐... 내가 또 왜 이러냐. 하여간 기분만 나빠졌다하면 이상한 생각만 든다 니까. 골치 아퍼~ 삐이이ㅡ 누군가 버스의 벨을 눌렀다. 그리고 뒷자리에 탔던 여자 삼총사들이 모두 내리려고 버스 뒷문에 가서 섰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았던 그 여 학생도 이번 정거장에서 내리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끼이익ㅡ! 갑자기 마을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서 있던 많은 아이들이 비틀거렸다. 사 람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에 넘어진 사람은 없었다. 나도 왼손으로 위에 있던 버스 손잡이를 잡았기 때문에 버스 바닥에 드러눕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막 몸을 일으키려 했던 그 여학생은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위치는 바로 내가 서 있는 곳이 었다. “아!” 그 여학생이 놀란 탄성을 내뱉었다. 그건 당연했다. 내 가슴팍에 안긴 꼴이 됐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여학생은 급히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구했다. 난 괜히 멋쩍어져서 간단히 대답했다. “괜찮아요.” “......” 그 여학생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급히 버스 뒷문으로 갔다. 그동안 버 스 안의 아이들은 운전기사에게 혼잣말로 열심히 투덜대고 있었다. 앞쪽에 사람들이 워낙 많이 탔기 때문에 버스가 무엇 때문에 급정거를 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난 그냥 그 여학생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슬쩍 그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 “......!” 또다시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난 그 여학생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목 언저리에서 커트한 머리였는데, 얼굴은 상당히 예뻤다. 거의 연 예인을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헐... 무지하게 예쁜데? 내 생전 저렇게 예쁜 여자애는 두번째로 본다... 얼레? 두번째? 어째서 두번째지? 확실히 내가 보기에 저 여자애보다 예쁜 탤 런트는 없는데? 어째서 두번째로 봤다는 생각이 드는거지? 그럼 그 첫번째로 예쁜 사람은 누구지? 이상하네? 기억이 전혀 없는데 어째서...? ━━━━━━━━━━━━━━━━━━━━━━━━━━━━━━━━━━━ 출처는 유니, 작가분의 주소는 unitel.co.kr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길... 번 호 : 6712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7일 01:06 등록자 : THEBUR 조 회 : 24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3.잃어버린 기억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03.잃어버린 기억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34 게 시 일 :00/02/16 10:51:36 수 정 일 : 크 기 :9.7K 조회횟수 :18 치이이ㅡ 버스 뒷문이 열리고 뒷자리에 앉았던 여자 삼총사와 그 여학생이 모두 내렸 다. 왠지 그들에게 시선이 절로 갔다. 그 삼총사 중에서도 유난히 한 여자애 가 눈에 띄었다. 활달해 보이는 인상의 여자애였는데 정말 예쁜 얼굴이었다. 그 활달해 보이는 여학생과 수줍음을 많이 타는 듯한 커트머리의 여학생은 노루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집이 노루 아파트인 듯했다. “......!” 그 둘을 쳐다보다가 난 놀라 자빠질 뻔했다. 커트머리의 여학생이 노루 아 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기 전에 날 쳐다보았기 때문이었다. 세번째로 눈이 마 주쳤다. 이번에도 역시 먼저 고개를 돌린 사람은 그 여학생이었다. 난 아파 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는 그 커트머리의 여학생을 계속 쳐다보았다. 헐... 내가 왜 이러지? 이상하게 저 애를 언젠가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꽤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던 것도 같고... 정말 이상하구만. 분명히 처음 보는 애인데 말이야. 혹시... 내 전생의 애인?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마을버스는 반대편 종점까지 왔다. 난 버스에서 내려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두 번 타야했기 때문에 하루의 교통비는 회수권 2장과 500원. 에휴... 고등학교 때 드는 교통비가 너무 많아... 멀리 있는 대학에 가면 교통비가 더 들텐데 걱 정이구만... 집 앞에서 내린 나는 곧장 내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은 아파트 12층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전에 12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단지 빨리 올라가려다 보니 거의 빙글빙 글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을 뿐이었다. “......?”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집 쪽을 쳐다봤을 때 어떤 사람이 우리집 문 앞에 서 있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였는데 007 비슷한 가방 을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걸어갔다. 내 가 걸어오자 그 남자는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란 표정을 얼굴 가득히 떠 올렸다. “오랜만이군!” 날 보자마자 그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난 그 남자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그런 나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 기 할말만 했다. “자넨 그대로구만. 역시 자네가 살던 세계라 그런가?” 자네? 아저씨... 언제 날 본 적 있수? 왜 처음보는 사람에게 자네, 자네 그 러슈? “응? 설마 날 아직도 기억 못하는 건가?” 그 남자는 내가 계속 멀뚱멀뚱 쳐다보자 그제서야 놀라 물었다. 당연히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허허... 이거 의외로군. 아직 기억이 돌아올 시간이 안됐단 말인가?” 얼레? 기억이 돌아와? 뭔 헛소리야? “흠... 그럼 내가 기억을 되찾게 해주지.” 그 남자는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들고 있던 007 가방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 다. 갈색 표지의 책이었는데 왠지 요즘의 책과는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손으로 그 책을 들고는 나에게 물었다. “이렇게 있으면 날 기억하겠는가?” “아니요.” 난 바로 대답했다. 그 남자는 머리를 갸웃하더니 이번엔 작은 구슬을 꺼냈 다. 전체가 붉은색으로 되어 있는 구슬이었는데, 크기는 자두맛 사탕 정도였 다. “이 붉은 구슬을 보면 기억이 떠오르겠지?” “......?” 완전 미친 아저씨로구만. 지금 무슨 해괴한 짓거리를 하는거야? “흠... 기억을 못하는가 보군. 그럼 어쩔 수 없지. 설득이라도 해보려고 했 는데.” 그 남자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무엇이 떠올랐는지 급히 내 가슴에 손을 대고는 조그맣게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난 그저 멍청히 서 있었다. 그러자, “......!” 내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일제히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인가가 내 몸 속에 가득 들어차 있음을 그제서야 느낄 수 있었다. “흠... 마나는 아직 가지고 있군. 단지 기억만 잃었을 뿐이구만.” 그 남자는 실실 쪼개며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나서 말을 계속 이었다. “내 이름은‘이종성’이네. 직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지. 내일 출장 때문에 지방에 가야 하네. 뭐, 내 원대한 계획의 시작을 위해 가는 것이지만 말이 야. 참, 이곳에서의 내 이름은 잘 모르겠구만. 다른 세계에서의 내 이름, 즉 환타지 세계에서의 내 이름은‘플라톤’이네.” 플... 라... 톤...? “붉은 구슬의 매개체인 자네가 아직 기억을 못하고 있으니 옥신이나 마르크 스도 아직까지는 기억 융합이 일어나지는 않았겠군. 뭐, 시간이 지나면 기 억은 돌아올 테니까 너무 걱정말게. 자네는 붉은 구슬의 매개체이기 때문 에 나 다음으로 기억 융합이 될거야. 그럼 나중에 보세.”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말만 지껄이고는 유유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나중에 기억 융합이 된 후에 날 방해하면 안되네! 지금 이 순간부터 자네 와 나는 적이니까 말이야!” “......?” 지금 뭔소리 하는 거야, 저 아저씨? 정신병자 아니야? 난 그 남자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굉장 한 경계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라졌을 때에서 야 난 우리집 문을 열쇠로 열었다. 철컥ㅡ “......”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도둑이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오직 적막 만이 감돌고 있을 뿐. 턱ㅡ 가방을 책상 위에 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서 컴퓨터를 부팅하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습장 생각이 났다. 연습장을 봐야한다는 기묘한 강 박관념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가방 속에서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연 습장을 꺼내들었다. “......” 흘... 왜지? 왜 이 연습장을 봐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요즘들어 이 상한 생각만 든단 말이야...? 뭐, 연습장 본다고 큰일날 일은 없겠지. 내가 공부한 흔적이나 구경해볼까나~ 난 연습장을 펼치고 살펴보았다. 여기저기에 낙서한 흔적이 보였다. 공부할 때 거의 연습장을 사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낙서로 가득 차 있는 연습장을 보자 왠지 내 앞날이 걱정되었다. 난 연습장의 제일 뒤쪽을 펼쳤다. 거기에는 정성들여 쓴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얼레? 내가 언제 이런 글씨를 썼나? 연습장에다 이렇게 정성들여 쓰다니? 거참 이상하구만. 난 전혀 연습장에 이런 것 쓴 기억이 없는데. “공격형 마법... 파이어 볼(Fire Ball)... 완전 주문... 어둠을 밝히는 절 대자, 모든 것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자, 그 양면성을 지닌 불이여... 그대의 힘을 나의 손끝에 모아 찬란한 불의 공으로 타오르라...”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 글자를 읽어내려가던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연습장에 적혀있는 글귀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헐... 공격형 마법 파이어 볼? 이거 내가 환타지 글을 쓸 때 설정했던 마법 주문인가? 하지만 난 글쓸 때 연습장에다 이렇게 자세히 무엇인가를 쓴 적이 없는데? 그리고 내가 완전 주문과 불완전 주문을 설정한 적도 없고. 정말 이 상해... 이가 점점 상하니까 치과를 가야하나? 흘... 난 계속 그 글귀들을 읽었다. 1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난 열심히 그 글귀를 쓴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를 떠올리려 했지만 모두 소용없었다. 그 래서 그냥 연습장을 덮어버리고 거실로 나갔다. 본래는 컴퓨터를 하려고 했 지만 왠지 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거실에 드러누워 TV를 켰다. 티잉ㅡ TV를 켠 후 리모콘으로 열심히 채널을 돌려봤지만 볼만한 프로그램은 없었 다. 그래서 다시 TV를 꺼버리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누워있자니 오늘 보았 던 두 여학생이 떠올랐다.‘아린’이라는 말을 했던 활달한 인상의 여학생과 수줍음을 많이 타는 커트머리의 여학생. 왠일인지 그 두 여학생을 언젠가 만 났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둘다 확실히 처음 보는 얼굴들. “끄아아아...!” 왠지 짜증이 나서 기지개를 쭉 켰다. 기지개를 키니 온몸이 나른해졌다. 심 신도 편안해졌다. 그러자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 정신이 반쯤 잠에 골아떨어졌을 때, 어떤 기억이 마치 꿈처럼 내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맨처음 본 것은 붉은 구슬이었다. 반짝이는 붉은 빛을 내는 이상한 구슬. 난 아무 생각없이 그 구슬을 집었고, 내 몸은 이상한 통로를 지나갔다. 그리 고 숲속에서 만난 에메랄드색 머리칼을 지닌 엘프 소녀의 모습도 보였다. ㅡ 니트... 그 엘프 소녀가 날 쳐다보며 그렇게 불렀다. 그러는 사이 갑자기 장면이 전 환되어 이번엔 파트 아머를 입은 붉은 장발의 청년이 보였다. 그 청년의 옆 에는 수수한 옷차림을 한 금발의 여성이 10개월가량 된 사내 아이를 안고 행 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년의 아내인 듯했다. 다음으로 보인 사람은 검은 로브를 입은 분홍색의 커트머리 소녀였다. 손에 는 엷은 분홍빛이 감도는 수정 구슬을 들고 있었다. 소녀는 귀여운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날 불렀다. ㅡ 니트 오빠! 갑자기 화면은 전환되어 붉은 머리칼의 소녀가 나타났다. 허리에는 레이피 어를 차고 두 손으로 허공에다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소녀. 허공에 그려진 세 개의 마법진이 포개지고 그 마법진에서 강력한 세 줄기의 번개가 뻗어나 갔다. 내 몸에서 느낄 수 있는 마나의 완전 공명. ㅡ 꽈릉ㅡ! 지축을 울리는 굉음. 그 굉음과 함께 내가 서 있던 공간이 산산조각났고, 온몸을 검은 갑옷으로 가린 흑기사와 녹색의 로브를 입은 초록머리의 청년, 붉은 로브를 입고 손에 두꺼운 책을 든 남자와 허리에 긴 검을 차고 짧은 턱 수염과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날 보고 음흉하게 웃었다. ㅡ 크흐흐흐... 웃음 소리가 계속될 때 그들 네 명 중에서 흑기사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 러졌다. 그런데도 나머지 셋은 웃기만 했다. 오히려 흑기사의 죽음을 즐거워 하는 듯했다. ㅡ 우하하하! 셋은 통쾌하게 웃어제쳤다. 갑자기 혈우(血雨)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혈우 속에서 한 명의 청년이 나타났다. 갈색 머리의 청년이었는데 그의 머리 위에 는‘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제목의 책이 둥둥 떠 있었다. 그 책이 펼쳐졌고 , 그 책에 적혀있던 글이 하나하나씩 떠오르면서 내 머리 속에 박혀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헤라클레스의 열두 가지 노역이었다. 그리고 다음에 는 이아손의 아르고선 원정이 떠올랐다. 혈우는 계속 내렸고, 제우스와 그 외의 신들의 모습이 언뜻 보였을 때 헤라클레스가 쓰러졌다. 강한 불꽃에 온 몸을 휩싸인 채. ‘......’ 내 머리 속에 있던 그 모든 기억들... 그 기억들은 어떤 작은 끈들로 이어 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작은 끈들이 내 머리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내 머리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기억의 파 편들이 완전히 내 머리 속에서 하나가 되었을 때, 난 눈을 떳다. “.......” 눈을 뜨니 우리집 거실 천장이 보였다. 굉장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천장 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떠올릴 수 있었다. 1년 4개월의 시간... 그 시간에 있었던 일들이 모조리 떠올랐던 것이다. 허허... 이거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인가? 후후... 안경을 쓰지 않고도 잘 보이고, 키가 5cm나 컸다는 사실이 있으니 꿈을 꾸고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 역시 1년 4개월의 시간동안 환타지 세계에서의 경험을 했다는 것이 진짜였나? 이거...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고... ━━━━━━━━━━━━━━━━━━━━━━━━━━━━━━━━━━━ Y1 번 호 : 6713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7일 01:07 등록자 : THEBUR 조 회 : 272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4.정령성장의 마지막 단계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04.정령성장의...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35 게 시 일 :00/02/16 10:52:17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18 <제 2 장> 정령 성장의 마지막 단계 방금 전에 만났던 007 가방을 든 아저씨... 그 인간이 플라톤이었어... 플 라톤이 나한테 뭐라고 말했더라? 으으... 기억이 전혀 안나. 신경쓰지 않고 들었더니... 아주 중요한 말을 했던 것 같았는데... 이런!!! 플라톤은 자신의 기억을 되찾은 후에 날 찾아온 것이겠지? 도대체 내가 여 기에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플라톤이 계획하고 있는 일은 무 엇일까? 전혀... 전혀... 알 수가 없어!!! 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플라톤에 대한 생각은 잊기로 하고 지금 마 법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내 몸속의 마나를 느껴보았다. 그러나 마나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플 라톤이 내 가슴에다 손을 대고 뭐라뭐라 중얼거렸을 때 내 몸속에서 느껴졌 던 그 느낌은 분명한 마나의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상하게 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헐... 왜지? 플라톤이 내 몸에다 무슨 마법을 걸었던 것 같지는 않았는데... 이상하게 마나를 느낄 수 없네? 뭔가 마나를 느끼게 할만한 방법이 있지 않 을까? 에... 에... 에... 아, 마법을 한 번 써보자! 쿵쿵쿵ㅡ 난 급히 내 방으로 뛰어가서 연습장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나서 다시 거 실에 앉아 마법 주문을 뒤적였다. 내가 찾은 주문은 청력 증폭 마법이었다. “소리를 듣게 하는 청력, 귀 속의 외침이여 증폭하라.” ... 얼레? 전혀 달라진 점이 없네? 뭐가 잘못됐나? “소리를 듣게 하는 청력, 귀 속의 외침이여 증폭하라.” 난 다시 한 번 청력 증폭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라지 지 않았다. 마법이 발동되지 않은 것이다. 이상한데? 왜 이러지? 설마 내가 여기서는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소리인가? 그럴... 리가? 플라톤 녀석은 마법을 잘만 쓰고 있었잖아? 왜 나는 쓸 수 없 는거냔 말이야! “후...” 난 깊히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연습장에 적 힌 마법 주문을 아무 생각없이 들여다 보다가 문득 완전 주문이면 어떨까하 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내가 주절댔던 그 주문은 청력 증폭 마법의 불완전 판이었다. 파라락ㅡ 난 적당한 완전 주문을 찾기 위해 연습장을 뒤졌다. 청력 증폭 마법의 완전 주문은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아세르 베이트가 쓴 마법론에서 내가 받아적은 완전 주문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공격형 마법이었고 그 밖의 마법 은 그 수가 적었다. 그러나 열심히 뒤진 끝에 적당한 완전 주문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투시 마법 주문이었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볼 수 없는 것이여, 어두움의 그늘이여. 이제 그 안 개를 걷고 그늘을 지우라. 차가운 밤안개의 어두움 속에 그대의 모습을 나 에게 보이라.” 주문을 완성하자 갑자기 몸속에서 이상한 반응이 시작됐다. 내 몸속을 가득 채우는 그 무엇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나의 느낌이 었다. 하지만 마나의 존재감만 느껴질 뿐, 마법이 발동되지는 않았다. 그래 서 이번엔 청력 증폭 마법 주문을 외워보았다. “소리를 듣게 하는 청력, 귀 속의 외침이여 증폭하라.” 주문을 외운 순간, 내 몸속의 마나가 움직였다. 그리고 집 안에 있던 마나 가 내 몸속의 마나와 반응했고, 그리고는 내 고막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째깍째깍ㅡ 내 고막을 크게 울리며 들려오는 시계의 초침 소리. 시계에다 귀를 가까이 대고 듣는 것처럼 초침 소리가 굉장히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마법이 성공한 것이었다. ㅡ 주인님. 갑자기 내 머리 속을 울려오는 아름다운 목소리. 그것은 내가 익히 들어 알 고 있는 목소리였다. 바로 실프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ㅡ 잠시만 기다리세요. 곧 가겠습니다. 실프의 목소리가 끊어진 직후, 거실바닥에 앉아있는 내 앞에 하급 정령 다 섯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연두색 피부를 지닌 엘프 소녀의 실프, 파란색 몸 의 엘프 소녀 운디네, 키 작은 땅딸보 할아버지 노움, 도마뱀처럼 생긴 사라 만다, 호박 머리의 잭 오 랜턴이었다. 실프와 운디네는 다리를 한쪽에 가지 런히 모으고 얌전히 앉았다. 노움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책상 다리를 하고 앉았고, 사라만다는 악어만큼이나 거대해진 자신의 몸을 약간 옆으로 구부린 상태로 서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의 모니터 크기만큼 커진 호박 머리의 잭 오 랜턴은 그저 허공에 둥둥 떠있는 상태였다. “너희들 돌아온거야?” 난 아무 생각없이 우리말로 물었다. 그러다가 정령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 실이 떠올라 당황했다. 머리 속에 정령어가 어떤 것인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 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당황하자 실프가 훗 하고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ㅡ 방금 전에 제가 했던 말도 한국어잖아요. 얼... 레? 그렇잖아? 정령들은 정령어밖에 모르지 않나? 어떻게 한국어를 알고 있는 거지? 난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ㅡ 그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예요. 실프도 확실히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신으로 대화하는 것보 다는 육성 대화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나는 직접 물어보았다. “근데 너희들 정령계에 묶여있지 않았어?” 이번에도 대답은 실프가 했다. ㅡ 네. 지금은 그 금족령이 풀린 상태예요. 정확히는 어제였죠. 그래서 금 족령이 풀리자마자 주인님께 알려 드리려고 했어요. 근데... “근데?” ㅡ 주인님의 마나가 움직여주질 않았어요. 그래서 이곳에 올 수가 없었던 거예요. “내 마나가 움직여주지 않았다구?” ㅡ 네. 저희 다섯이 그 이유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본 결과... 난 그저 조용히 실프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지금은 마나가 내 마음대로 움 직이고 있지만, 처음에는 전혀 꿈쩍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실프는 진 지한 표정을 짓는 날 보고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ㅡ 그건 모두 주인님의 마나 축적량 때문이라는 것이죠. 얼렐레? 내 마나 축적량 때문이라구? ㅡ 네. 주인님의 마력은 현재 8클래스. 인간의 몸으로는 더이상 도달할 수 없는 최고의 마나 축적 단계죠. 그리고 그 상태는 마나의 절대적 안정을 가져오게 되요. 클래스마다 마나는 안정한 상태를 이루어 더이상 흩어지 려 하지 않잖아요? 바로 그 점 때문에 주인님의 마나가 처음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예요. “... 그래? 전혀 이해가 안되는데, 좀더 쉽게 설명해줘.” 내가 모르겠다고 말하자 실프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ㅡ 알았어요. 주인님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사용해서 설명하는 게 더 쉬울 거예요. 그래도 되나요? 에? 내 머리 속의 지식을 사용한다고? 어떻게? ㅡ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한 실프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멀뚱멀 뚱 쳐다보는 동안 실프는 내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더니 가슴으로 안았다. 자연히 내 머리는 실프의 품 속에 파묻혀 버렸다. “......!” 이상한 촉감에 내가 놀라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실프는 대략 10여 초 동안을 그런 자세로 있었다. 난 아무 행동도 못하고 머리를 실프의 가슴 에 파묻은 채로 있어야 했다. 잠시후, 실프는 나에게서 떨어지더니 다시 제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입을 열었다. ㅡ 음... 원자와 관련시켜 설명하면 될 것 같군요. “......” 난 멍청히 실프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실프가 지금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는 지 잊어먹었기 때문이었다. 실프의 돌연한 행동이 말짱했던 내 정신을 흐릿 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마디로 난 지금 당황한 상태인 것이다. ㅡ 지금 전 주인님이 어째서 처음에 마나를 움직일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해요. 아... 그랬었지... 너무 당황해서 잊어먹고 있었어... 헐... 심장 떨려... ㅡ 그럼 설명할게요. 8클래스의 마력은 18족의 원소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18족... 원소?” ㅡ 네. 헬륨(He), 네온(Ne), 아르곤(Ar) 등등이요. 헐... 8클래스의 마력이 18족 원소와 같다니... 그게 뭔소리냐? ㅡ 제가 방금 전에 말했던 그 원소들은 다른 원소들에 비해 굉장히 안정한 상태잖아요. 그 원소들을 이온화시키려면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구요. “자, 잠깐! 뭔가 이해가려고 하는데... 잠깐 기다려. 생각 좀 해보고.” 난 실프의 말을 끊고 실프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흠... 그러니까... 8클래스의 마력이 18족 원소와 같다는 뜻은... 반응시키 는데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18족 원소들은 안정한 상태를 이 루고 있기 때문에 그 원소가 가진 전자를 하나 떼어내려면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것을 마나에 적용시키면... 8클래스의 마력은 굉장히 안정한 상태를 이루고 있으므로 그 마력을 반응시켜 마법을 구사하려면 상당한 에너 지, 즉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뜻? ━━━━━━━━━━━━━━━━━━━━━━━━━━━━━━━━━━━ 출처는 유니 환동,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재밌게 읽으세요 ^^ 번 호 : 6769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8일 22:09 등록자 : THEBUR 조 회 : 16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5.정령성장의 마지막 단계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05.정령성장의...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48 게 시 일 :00/02/17 18:38:45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33 ㅡ 그래요. 실프의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궁금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실 프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내가 환타지 세계에 있을 때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안 썼잖아. 왜 이곳에 와서 그런 것에 신경쓰게 된거야?” ㅡ 그동안 주인님은 환타지 세계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려서 마나의 운 용방법까지 잊은 거예요. 음... 쉽게 말하면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군에 입대한 다음 제대해서 다시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요? 군대에서의 생활 동안 머리가 굳어져서 대학 공부하는데 많은 어려 움이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래서 저희들도 주인님의 마력을 빼내어 사용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당시 주인님의 마력은 단단한 암석처럼 뭉 쳐 있었거든요. 그런가? 역시 마나도 꾸준히 다루어야 된다는 소리로구만. 그나저나 대단한 걸? 내 머리속에 들어있던 지식을 빼가서 이런 설명을 하다니. 소환주를 능 가해버리는 그 무서움에 놀랄 뿐이다... ㅡ 화나셨어요? 실프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일로 화낼 리가 없지.” ㅡ 당연하시겠지. 실프가 안아줬으니. 사라만다가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움이 맞장구쳤다. ㅡ 하여간 소환주라는 녀석이 여자만 밝히고 말이야... 저런 변태 녀석을 주인으로 모셔야 하다니... 이것들이? 소환주를 능멸해? 퍼퍽! ㅡ 우욱! ㅡ 윽! 사라만다와 노움은 내 발길질에 부엌 쪽으로 나가떨어졌다. 왕도마뱀과 땅 딸보 할아버지가 부엌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는 모습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 었다. 노움은 부엌 바닥에 쫙 뻗은 채로 날 쳐다보며 소리쳤다. ㅡ 지금 우리 힘은 약해져 있는데 치면 어떻게? 그러다가 소멸하면 책임질 껴? 얼라? 힘이 약해져 있다고? 내가 놀라 쳐다보자 노움과 함께 바닥을 뒹굴었던 사라만다가 입을 열었다. ㅡ 당연하지. 이곳은 오염된 세계. 자연의 힘으로 태어난 정령들의 힘이 약 화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렇게 말한 사라만다는 다시 어기적어기적 기어왔다. 난 실프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이야, 실프?” ㅡ 네. 이곳에서 정령들은 물리력을 통과시킬 수 없어요. 물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정령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방어해야 해요. 이곳에서 하급정 령들은 주먹에 한 대 맞는 것으로도 소멸해버릴 정도니까요. 헐... 그 정도까지 심하단 말이야? 큰일인걸? “그럼 여기있으면 위험하겠다. 정령계로 돌아가도록 해.” 난 다섯 정령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령계로 돌아가 지 않았다. 이미 내 마력을 맘대로 빼내어 쓰고 있는 정령들을 내 의지로 돌 려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그저 정령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ㅡ 주인님. 실프가 조용히 날 불렀다. 내가 쳐다보자 실프는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ㅡ 정령신에 의해 정령계에 묶여있는 동안... 저희는 정령신을 설득했어요. 나가게 해달라구요. 그리고 마침내 이런 약속을 한 후에 다시 나올 수 있었죠. 약속? ㅡ 그것은‘우리와 계약을 맺은 소환주가 죽을 경우, 우리는 다른 소환주와 절대 계약을 맺지 않는다’예요. 그 약속을 하고 나서야 이렇게 나올 수 있었죠. 그때 옆에 있던 사라만다가 하품을 쩍 하더니 말했다. ㅡ 자꾸 말 돌리지 말라구. ㅡ ... 알았어. 사라만다의 말에 실프가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해진 내가 쳐다보자 실프가 입을 열었다. ㅡ 주인님은 정령 성장의 마지막 단계를 알고 계시나요? “정령 성장의 마지막 단계? 모르겠는데...?” 내가 고개를 젓자 실프가 얼굴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ㅡ 저희는 그 마지막 성장 단계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찾아온 거예요. 바로 정령신께 들은 얘기죠. “......?” ㅡ 주인님은 마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라리? 갑자기 왠 마나? 정령들은 일제히 어서 대답하라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무시무시한 무언의 압력에 난 입을 나불거려야 했다. “마나라면... 이 세상에 고루 퍼져 있는 기운 아닌가?” ㅡ 그것말고 또요. 또? 또 뭐가 있을까... 마법을 쓸 때 꼭 필요한 필수품! ㅡ 또요. 허걱...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라... 머리 뽀개진다... 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자 실프가 입을 열었다. ㅡ 마나는 물질계에서만 존재하는 기운이예요. 신력이 천계에만 존재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오직 물질계의 생명체만이 마나를 몸안에 축적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ㅡ 만약... 정령들이 마나를 축적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에엥? 정령들이 마나를 축적한다구? 정령들은 원래 마나 축적이 불가능하지 않아? ㅡ 물론 그래요.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죠. 흠... 그런가? 만약 정령들이 마나를 축적할 수 있게 된다면... 마법을 좀 더 강한 위력으로 펼칠 수 있겠지. 안그래? ㅡ 네. 하지만 그것말고 또 다른 변화가 있어요. 또 다른 변화? 쩝... 내 머리로는 도저히 모르겠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노움이 한마디 했다. ㅡ 당연하지. 언제 머리를 쓴 적이나 있겠어? 어쩔씨구리... 지금 소환주한테 기어오르려는 거냐? ㅡ 기어오른다기 보다는 무시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노움은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난 그런 그 녀석에게 이 번엔 스트레이트 주먹을 날렸다. ㅡ 꽥! 내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노움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리고 잠 시후 노움은 코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ㅡ 아고고... 노인을 이렇게 폭행하다니... 사악 그 자체다! 그러게 누가 개기랬냐? 물리력을 통과시킬 수도 없으면서 화를 자초하지 말 아라... ㅡ 주인님. 실프가 정색을 하며 날 쳐다보았다. 내가 시선을 주자 실프는 말을 이었다. ㅡ 정령이 마나를 축적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헐...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마... ㅡ 풋. 내 마음 속 말이 우스웠던지 실프가 풋하며 웃었다. 다른 녀석들이 저렇게 웃었다면 비웃은 것처럼 보일테지만... 실프가 웃으니 굉장히 예뻤다. 흘... 역시 난 속이 시커먼 녀석이야... 잠시 웃던 실프는 다시 정색을 하며 말했다. ㅡ 오직 물질계의 생명체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나를 정령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있게 되면...? 실프는 일부러 뜸을 들이려는 듯 잠시 숨을 고르고는 또박또박 말했다. ㅡ 물질계에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가 됩니다. 얼... 렐... 레? 마나를 축적하면 생명체가 된다구? ㅡ 네. 실프의 분명한 대답. 하지만 난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이야?” ㅡ 네. 정령신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령신이? 그 정령신은 믿을 만한거야?” 내 물음에 실프가 약간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ㅡ 정령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래?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남의 정령들을 정령계에 묶어두냐? 내 허락도 없이?” ㅡ 그건... 실프는 할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실프를 곤란하게 하기는 싫었기 때문 에 난 다른 질문을 했다. “근데 마나를 축적하면 생명체가 된다는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거야?” ㅡ ...... 실프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움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 다. ㅡ 그거야 당연히 생명체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거지. 얼레? 생명체가 되고 싶어서? 정령이? ㅡ 정령이라고 항상 정령인 상태로 살고 싶은 줄 아냐? 노움이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나불댔다. 난 노움을 무시하고 다른 정령들 을 둘러보며 물었다. “너희들 정말 생명체가 되고 싶은 거야?” ㅡ .......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러나 머리 속으로 그들이 그러고 싶다는 마음을 느 낄 수 있었다. 생명체가 된다는 말에 대해 궁금한 점이 떠오른 난 실프에게 물었다. “근데 마나를 축적하면 그 모습 그대로 생명체가 되는 거야?” ㅡ 아니예요. 자신의 정령력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어요. 헐... 그거 굉장히 편리하구만. 하긴, 왕도마뱀처럼 생긴 사라만다가 저 모 습 그대로 생명체가 되면 동물원에 가야될테니까 좋을 리 없겠지. ━━━━━━━━━━━━━━━━━━━━━━━━━━━━━━━━━━━ 번 호 : 6770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8일 22:09 등록자 : THEBUR 조 회 : 176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6.정령성장의 마지막 단계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06.정령성장의...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49 게 시 일 :00/02/17 18:39:11 수 정 일 : 크 기 :6.7K 조회횟수 :28 “생명체가 되면 뭐할건데?” 난 정령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장 먼저 대답한 정령은 노움이었다. ㅡ 당연히 잘생긴 청년이 되서 예쁜 여자를 꼬셔야지~ 나원... 참 단순한 녀석이야... “이곳은 환타지 세계하고는 다르다구. 주민등록증도 없고, 부모도 없고, 널 증명해줄 서류가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살려구 그래?” 내 말에 노움이 고개를 갸웃했다. ㅡ 뭔소리여? “한마디로 이곳에서 정상적으로 살려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되고, 집 이나 그런 것들도 있어야 되는데 지금 너에게는 그런 것들이 전혀 없잖아. 가장 필요한 돈도 없고.” ㅡ 그건 네가 주면 되잖아? “내가 그렇게 부자인 줄 알어? 난 널 도와줄 생각이 벼룩의 눈꼽만큼도 없 어.” ㅡ 치사한 녀석... 노움은 삐져서 날 노려보았다. 그때 실프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ㅡ 그럼 저희들이 이곳에서 살 방법은 없는 건가요? “글쎄... 우선 집이 없잖아. 우리집에서 재워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ㅡ 그렇군요... 내 대답에 실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른 정령들도 마찬가지였다. 환타지 세계였다면 정령들이 생명체가 되어 살아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 냥 집 하나 지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통용되기 힘 들다. 신분을 증명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는 직업을 구하기도, 배우자를 구하기도 어려우니까. ㅡ ...... 정령들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다지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사 이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방 안에는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 릴 뿐이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서로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질 것 같 아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난 말이야...” 내가 입을 열자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집 중되자 갑자기 입이 굳어버리려 했다. 그래서 헛기침으로 긴장을 털어버린 후, 정령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난 너희들이 지금 그대로 있어줬으면 좋겠어.” ㅡ ...... 정령들의 표정은 실망으로 가득찼다. 자신들이 이 세계에 살 수 있도록 내 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기다린 듯했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 생각을 확실히 전달하기로 했다. “우선 난 너희들이 이 세계에 살 수 있게 도와줄 능력이 없어. 어쩌면 그것 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어.” ㅡ ...... “만약 너희들이 생명체가 된다면 너희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게 돼.” ㅡ 그게 뭔소리여? 노움이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다른 정령들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부연 설명을 하려 했던 나는 정령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를 들어 너희들이 인간이 되었다고 하자. 그럼 인간들처럼 생활하겠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자고. 뭐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식의 생활을 할거야. 그럼 너희들은 약속된 시각에 일하러 가야하고 지정 된 장소로 가야해. 일하러 가야할 시각에 누구를 만난다면 회사에서 짤리 겠지. 또 지정된 장소, 즉 일터로 가지 않고 이상한 곳으로 가도 짤릴거야. 그게 바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뜻이지.” ㅡ 그래서 요지는 뭐냐? 사라만다가 띠꺼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나불댔다. 난 잠시 사라만다를 매섭 게 째려봐준 다음 내 말의 본질을 요약했다. “결국 너희들을 보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너희 들도 날 보고 싶을 때 너희들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는거고.” ㅡ ......! 실프와 운디네, 그리고 잭 오 랜턴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사실 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듯했다. 그러나 사라만다와 노움은 놀라지 않고 오 히려‘그게 뭐 어때서?’란 반응이었다. ㅡ 난 널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 ㅡ 네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사라만다의 얼굴을 보겠다! 사라만다와 노움이 차례로 입을 열었다. 난 그 둘에게 가볍게 발길질을 했 고, 둘은 또다시 부엌까지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사라만다와 노움에게 가벼운 응징을 가하고 나서 난 실프, 운디네, 잭 오 랜턴을 쳐다보았다. 그 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느끼고 실프가 입 을 열었다. ㅡ 전혀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정령으로서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잡혀있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령일 때는 소환주가 부르면 언제든지 물질계로 가고, 또 지금 내 정령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정령계와 물질계 사이를 왔다갔다할 수 있으니까. 생명체가 되어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적응을 하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거야. ㅡ 저... “응?” ㅡ 그냥 이대로 있겠어요. 정령인 상태로요. 실프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있던 사라만 다가 크게 놀랬다. ㅡ 생명체를 포기하자고? 네가 제일 생명체 되기를 바랬잖아? 얼레? 실프가 제일 원했다구? ㅡ ...... 실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름 다운 실프의 얼굴이 잘 보였다. 실프는 그렇게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 보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ㅡ 전 주인님을 옆에서 지켜드리고 싶어요. 얼렐레? ㅡ 그래서 인간이 되어 주인님을 옆에서 지켜드릴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주 인님의 말을 듣고 깨달았어요. 그러기가 어렵다는 것을요.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너도 걱정이다... ㅡ 전 정령의 상태로 주인님을 언제 어디서든 도와드리겠어요. 주인님의 곁 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하기 싫으니까요... 실프의 눈빛은 뜨거움을 담고 있었다. 실프의 눈을 마주보기가 어색해져서 난 급히 시선을 다른 정령들에게 돌리며 물음을 던졌다. “너희들은?” ㅡ ...... 다른 정령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분위기 상으로는 실프의 말 에 긍정하는 쪽이었다. 불만어린 표정을 짓던 사라만다와 노움도 반대는 하 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ㅡ 네 얼굴을 계속 봐야겠군. ㅡ 저런 얼굴을 봐야하다니... 내 눈이 썩어버리겠다... ... 저 두 녀석들... 단단히 손좀 봐야겠어... ㅡ 그럼 잘 있어라. ㅡ 보고 싶지는 않지만 나중에 보자. 내가 손을 휘두르려는 기미를 보이자 사라만다와 노움은 그런 말을 남기며 냉큼 정령계로 돌아가버렸다. 사라만다와 노움이 돌아가자 운디네와 잭 오 랜턴도 곧 정령계로 돌아갔다. 실프는 정령계로 돌아가기 전에 나를 향해 입 을 열었다. ㅡ 저희들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르세요. 저희들도 주인님이 위기에 처하 면 바로 오겠어요. 그리구... 지금까지 입을 열어 내 머리 속으로 말을 전달하던 실프가 갑자기 입만 뻥 긋했다. 머리 속에는 어떤 의미도 전달되지 않았다. 그렇게 입만 뻥긋한 뒤 실프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는 정령계로 돌아갔다. 난 실프가 무슨 말을 했었 는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흠... 분명히 네 마디였는데... 뭐였더라? 그러니까... 아라애오... 던가? 흘... 전혀 모르겠다... 입만 뻥긋하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알아들으라는 거 야? 에잉, 그냥 잊어버리자! 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12층이었기 때문 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그맣게 보였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대지를 달구 고 있었다. 한여름이라 날씨는 무더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절로 날 정 도였다. “......” 시원한 바람이 내 주변에서 맴돌았다. 실프의 바람인 듯했다. 무더운 여름 이었지만 실프의 바람 덕분에 덥지 않았다. 마음 속으로 실프에게 무언의 감 사를 보낸 후 난 한껏 기지개를 켰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에게 아직도 마법의 힘과 정령의 힘이 남아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에게 는 없는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니까. ━━━━━━━━━━━━━━━━━━━━━━━━━━━━━━━━━━━ 출처는 유니 환동.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시기를.... 번 호 : 6778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9일 07:03 등록자 : THEBUR 조 회 : 13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7.연속된 만남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07.연속된 만남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55 게 시 일 :00/02/18 19:03:17 수 정 일 : 크 기 :7.6K 조회횟수 :16 <제 3 장> 연속된 만남 “......” 난 마을버스 뒷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일찍 나온 탓인지 버스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길도 막히지 않아 버스는 신나 게 차도를 달렸다. 흠... 그러고 보니 어제 만났던 그 두 여학생... 활달해 보이는 여학생하고 커트머리의 여학생... 걔들... 혹시 아린과 인티 아닐까? 활달해 보이는 여 학생은 분명히‘아린’이란 말을 했었으니 맞겠지... 커트머리의 여학생이 인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 이거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지는구만. 어제 플라톤이 무슨 기억 융합인가 뭔가하는 말을 했는데... 전혀 알 수가 없어... 끼이익ㅡ! 내가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마을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방심하던 나는 잘못하면 그대로 꼬꾸라질 뻔했다. 앞에 있던 의자 손잡이를 잡아서 겨우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치이이ㅡ 운전기사는 앞문을 열더니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잠시후 왠 아저씨를 데 리고 들어왔다. 얼굴에 약간의 타박상이 있고 다리를 조금 절뚝거리는 것으 로 봐서 버스에 치인 듯했다. 운전기사는 그 아저씨를 앞좌석에 태우고 말했 다. “아니,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떡합니까?” 그러나 그 아저씨도 지지 않았다. “아, 사람도 보지 않고 운전해?” “이것 보세요. 길가에 세워져 있는 차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걸 내가 어떻게 봅니까?” “좁은 길에서는 서행을 해야지!” 그런 식으로 운전기사와 그 아저씨는 말다툼을 했다. 그러다가 운전기사가 먼저 말을 끊었다. “우선 종점가서 얘기합시다.” 부웅ㅡ 마을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다친 아저씨는 아무말없이 그냥 다리만 주물렀 다. 헐... 내 생애 처음으로 사고난 것을 보게 되는군. 사고 당시의 상황을 보 지 못한 게 아쉽지만... 에... 나중에 리얼한 사고 장면을 목격하면 좋겠군. 특히 사람들이 수십 명 죽는 대형사고라면 더욱 좋고. 아니지, 내가 그 사고 를 직접 겪는 것도 재미있을거야. 사고 한 방에 저승 여행가면 좋겠구만. 우 켈켈. 치이이ㅡ 버스 뒷문이 열리고 난 유유히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향했다. 운전기사와 사고당한 아저씨는 같이 종점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마 합의 를 볼 것이다. 괜히 경찰에 연락하면 둘다 골치 아파질테니까. 하여간 둘다 불쌍하다니까. 운전기사는 적어도 오늘은 버스 운전하기 어려 울테고, 아저씨는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니 얼마나 기분 더럽겠어. 둘다 기분 잡치는 날이야... 나야 재미있지만. “......?” 아무 생각없이 학교 정문으로 향하던 난 정문 앞에 한 여학생이 서 있음을 보았다. 실수여고의 교복이었는데, 키는 나보다 약간 작았고 머리는 커트형 이었다. 그 여학생은 정문 한가운데에 서서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있 었다. 헐... 남학교에 왠 여자냐...? 누구 기다리나 보지? 누군지 몰라도 참 부러 워... 여자가 정문에서 기다릴 정도라니... 그나저나 저 애 어디서 본 것 같 은데...? 아닌가? 뭐, 내가 신경쓸 필요는 없지. 나와 그 여학생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반대쪽을 살펴보던 그 여학생은 내 가 다가오자 즉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그 여학생의 시선을 피해 조 금 빠른 걸음으로 정문에 들어섰다. 내가 막 정문을 돌아 학교 운동장 쪽으 로 들어서려는 순간, 그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얼레? 날 부른건가? 왜 부르지? 그나저나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적 이 있는 것 같은...? “......?” 난 아무 말없이 그 여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여학생은 날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난 그 여학생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어제 마 을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내 품에 안겼던 바로 그 커트머리의 여학생이었 다. 그리고 그 얼굴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인티그랄 시그마, 즉 인티의 모 습이었다. “니트... 오빠죠?” 그 여학생이 날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 하나로 모든 것이 증명되어 버렸다. 그 여학생은 확실히 인티였던 것이다. “......” “니트 오빠... 아니예요?”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인티는 불안한 얼굴로 다시 한 번 물었다. 잠 시 할말을 찾고 있던 나는 인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인티가 여기는 왠일이야?” “아...!” 내 말에 인티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한달음에 내 앞으로 달려 오고는 기쁜 듯이 말했다. “다행이예요! 정수고에 다니고 계셨군요!” “어... 응.” “몇 학년이예요?” “3학년.” “그래요? 전 실수여고 2학년이예요. 이곳에서의 이름은‘한미영’이구요. 오빠는요?” 얼레? 인티의 이름이 한미영? 인티도 플라톤처럼 무슨 기억 융합이란 것이 일어났나? 하긴...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물어보는 거겠지... 하여튼 인티의 머리색깔이 검으니까 사람이 조금 달라보이는구만. 인티는 확실히 분홍색 머 리가 어울리는데 말이야. 헐헐. “내 이름? 에... 좀 이상한 이름인데...” “뭔데 그래요?” 인티가 날 재촉했다. 말하기 싫었지만 평생 가지고 다녀야 할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냥 말했다. “권강한.” “권강한? 멋진 이름이네요!” 인티는 정말로 내 이름이 멋지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가 고개 를 갸웃했다. “음... 그럼 앞으로 강한 오빠라고 불러야 하나?” 커커컥... 강한 오빠? 내가 강하다구? 내 이름이 이렇게 구렸다니... “음... 아무래도 그냥 한 오빠라고 불러야겠죠?” 커윽... 한 오빠? 오빠 한 명이냐? 으으... 내 이름 정말 최악이야!!! 인티는 한 오빠라는 말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듯 생각하는지 활짝 미소 를 지었다. 머리칼이 분홍색이었던 때나 지금처럼 머리칼이 검은색일 때나 인티의 미소는 예뻤다. 난 슬쩍 정문 밖으로 돌렸다.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 에 아직 우리 학교 애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오빠, 오빠는 언제 기억이 되돌아왔어요?” 인티가 다른 곳을 쳐다보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다시 인티 쪽으로 시 선을 돌려 대답했다. “어제 낮에. 인티, 아니 미영이라고 했던가? 미영이는 언제 기억이 돌아왔 어?” “저도 어제 낮이예요. 마을 버스에서 오빠를 만난 직후죠.” 헐... 그렇군. 난 플라톤 녀석을 보고 나서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가 생각났 는데. “근데 아린은 만났어?” “아린 언니요?” “응.” “아니요,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어제 버스 안에서‘아린’이라는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아린 언니 아닐까요?” 흠... 인티도 그 활달해 보이는 여학생을 아린이라고 생각하고 있군. “그 애도 너희 학교 같은데, 한 번 알아봐.” 내 말에 인티는 손뼉을 쳤다. “아, 그렇군요. 오늘 알아봐야겠어요!” 그때 한 남학생이 지나갔다.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하복 상의에 이름표가 새 겨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2학년이었다. 3학년은 그냥 달고 다니는 명찰이니 까. “인... 아니, 미영아. 학교 안가?” “괜찮아요. 오늘은 일찍 나왔으니까요. 아직 30분이나 남은 걸요.” 흘... 난 안 괜찮단다... 날 아는 녀석이 내가 너하고 같이 있는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분명히 소문날 거라구... 난 스캔들 나는 거 싫단 말 여... 게다가 이 사실이 선생들 귀에 들어가면... 성적 떨어진 것을 너 만나 러 다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냐구...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티는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그 러다가 문득 무엇인가 생각났는지 가방 속에서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그리 고는 전화번호 적는 곳에다 내 이름을 적더니 나에게 물었다. “오빠 전화번호가 뭐예요?” 헐... 내 전화번호를 적으려 하다니... 가르쳐 줘야겠군... “이리 줘.” 난 인티에게서 다이어리와 볼펜을 받아들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 리고 나서 인티에게 다시 다이어리와 볼펜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인티는 다 이어리에서 종이 한 장을 찢고는 거기에다 무엇인가를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 었다. “그건 제 휴대폰 번호하고 주소예요.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요.” 헐... 휴대폰 갖고 있었네? 부럽구만... 난 삐삐 한 번 사용해 본 적이 없 는데. “그리구 저 오늘 자율학습 안해요. 오빠는 자율학습 해요?” “어? 어... 아니.” “잘됐다. 그럼 집에 도착하자마자 연락줘요. 알았죠?” 인티는 거의 반 협박조로 말했고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응... 알았어...” 내게서 대답을 받아낸 인티는 빙긋 웃더니 실수여고 쪽으로 뛰어가며 소리 쳤다. “꼭 전화줘야해요!” “......” 난 뛰어가는 인티의 뒷모습을 잠시 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반대쪽에서 우리 학교 애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급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누가 볼새라 급히 교실 쪽으로 달려갔다. 가슴이 괜히 떨려왔다. 아는 사람, 그것도 아주 예쁜 인티를 만났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았다. 오늘 하루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 호 : 6779 / 6809 등록일 : 2000년 02월 19일 07:04 등록자 : THEBUR 조 회 : 13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8.연속된 만남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8.연속된 만남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56 게 시 일 :00/02/18 19:03:39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15 띵동띵동ㅡ 수업이 모두 끝났다는 종이 울렸다. 이것으로 이제 여름방학 보충수업은 이 틀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다음주 수요일에 개학식이 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청소 좀 해야겠다. 그동안 안 했더니 너무 지저분해. 3조 가 청소하고 나서 나한테 검사 맡아라. 자, 가자!” 담임은 말을 마치고 교실을 나갔고, 아이들도 가방을 싸들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난 남아 있어야 했다. 난 3조였으니까. 우리 담임은 우리가 3학년이 라고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시킨다. 그래서 교실은 항상 지저분하다. 어쨌 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청소이기 때문에 제대로 해야했다. 그그그그ㅡ 책상을 뒤로 미는 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다. 교실 바닥은 시멘트 비슷한 단단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책상과의 마찰에서 나는 소리가 굉장히 컸 다. 쓱쓱ㅡ 난 쓸기였기 때문에 교실 바닥을 빗자루로 쓸었다. 청소하는 애들은 본래 12명이건만 지금 청소하고 있는 사람 수는 모두 6명이었다. 나머지는 집으로 날라버린 것이 분명했다. ‘우... 먼지...’ 빗자루로 쓸다보니 자연히 먼지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창문을 있는대 로 열어놔도 먼지는 전혀 빠져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미 약한 바람이 불어와 먼지를 창문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잘 몰랐겠지만 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바람은 실프가 일으킨 것임을. “야, 걸레 어딨어?!” 같은 청소 3조인 광석이가 걸레로 교실 바닥 닦는 아이들을 불렀다. 그러자 한 명이 급히 대걸레를 들고 교실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걸레는 달랑 그 녀 석 하나였다. 날라버린 녀석들 중에서 교실바닥 닦는 녀석들이 제일 많은 모 양이었다. ‘운디네, 저 대걸레 마르지 않게 해줘.’ 난 마음 속으로 운디네를 불렀다. 운디네는 내 명령을 알아듣고 모습을 드 러내지 않은 채 대걸레 속으로 스며 들었다. 그리고 대기 중에 떠다니는 수 증기를 액화시켜 물로 만들었다. “......?” 대걸레로 바닥을 닦던 충학이는 약간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대걸레로 교 실 바닥을 닦아도 대걸레의 물기는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고 닦는 것에만 열중했다. 난 충학이가 운디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음 을 확인한 뒤 다시 교실을 쓸었다. 그렇게 해서 10분 정도에 교실 청소가 완료되었다. 우리는 담임을 불렀고 담임은 교실을 살펴보더니 이내‘가라’라고 말했다. 모두들 재빨리 교실 밖 으로 사라졌고, 난 일부러 천천히 움직였다. 지금 버스 정류장에 가면 사람 들이 미어터지니까. 내가 막 교실 앞문을 나섰을 때 누군가 그 앞을 지나갔고, 자연히 나와 그 사람은 부딪쳤다. 살짝 부딪친 정도라 난 별 불쾌감은 없었지만 상대방은 그 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사과하려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이름표 가 없는 하복을 입은 것으로 봐서 3학년인 듯했다. 그렇게 학년을 확인한 뒤 난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도 날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얼 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난 크게 놀랐고, 그 사람도 크게 놀란 눈치였다. “넌... 니트...?” 그 사람이 입을 열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도 맞대응했다. “옥신이지?” “......!” 옥신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지 못했다. 옥신의 손에는 대걸레가 들려 있었는데 청소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우선 청소 끝나고 얘기하자. 내가 기다려줄테니까.” “아... 좋아. 그렇게 하지.” 옥신은 기분 나쁘게 씨익 웃더니 이내 대걸레를 빨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 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 젖은 대걸레를 들고 3학년 9반에 들어가 대걸레 청 소를 시작했다. 옥신은 우리 교실 바로 옆이었던 것이다. “......” 난 옥신이 청소를 다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늦게 갈 생각이었기 때 문에 잘된 일이었다. 5분 후에 청소를 마친 옥신은 가방을 들고 나한테로 다 가왔다. 우리는 약간의 상의를 하여 복도 바로 옆에 있는 학생 휴게실로 갔 다. 학생 휴게실은 베란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복도 쪽만 빼면 벽이 없기 때문에 삼면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물론 겨울에는 추워서 가지도 않지 만. 학생 휴게실에는 몇몇 아이들이 마련되어 있는 통나무 의자에 앉아 친구들 을 기다리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나와 옥신은 학생 휴게실 끝쪽으로 가서 학 교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실수여고가 잘 보였다. 문득 인티가 지금쯤 집 에서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옥신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것은 잠시 잊기로 했다. “네가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니 놀랐다.” 맨처음 입을 연 사람은 옥신이었다. 옥신은 학생 휴게실 밖으로 보이는 산 과 나무를 쳐다보다가 나를 돌아보며 물음을 던졌다. “이곳에서의 네 이름은 뭐냐?” “너부터 밝혀.” “허... 그럼 내가 먼저 가르쳐주지. 내 이름은‘박세철’. 이제 됐냐?” 박세철? 이름 한 번 구리구만. 물론 내 이름도 만만치 않지만... “난 권강한.” “뭐? 건강한?” “... 건강한이 아니라 권강한이다.” 잠시 내 이름을 되뇌이던 옥신이 킥킥하고 웃었다. “권강한이라... 이름 아주 멋지군. 역시 넌 건강하고 강한 녀석이야. 우킥 킥.” ... 이 녀석이 지금 죽을려고 호흡 조절하나? 그렇게 킥킥대며 웃던 옥신이 표정을 확 바꾸어 나에게 물었다. “넌 언제 기억이 돌아왔지?” “나? 에... 어제 낮에.” “그래? 난 오늘 아침에서야 기억이 돌아왔다. 꽤 당황스럽더군. 내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 말이야.” 허... 그러셔? 하긴 옥신은 환타지 세계에서보다 더 어려진 거니까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난 환타지 세계에서 보낸 시간만큼 자라있던데... “......” 옥신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마르크스와 플라톤의 소식을 알고 있냐?” “아니, 몰라.” 물어보기 무섭게 옥신의 대답이 들려왔다. 모른다는 말에 물어볼 말이 없어 진 난 그냥 옥신처럼 바깥 경치나 구경했다. 그러다가 다시 옥신에게 물었다. “넌 뭐할거냐?” “나 말인가? 그건 알아서 뭐하게?” “이상한 짓 할까봐 걱정되서 그런다.” “후후...” 옥신은 묘한 웃음만을 흘린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옥신이 걱 정되었지만 그냥 잊기로 했다. 그러다가 인티 생각이 떠올랐고,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지금쯤 버스에 타는 인원은 팍 줄어들 시간이었다. 그래서 옥신 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나쁜 짓 하지 마라. 나중에 보자.” 그렇게 옥신에게 말한 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본관 밖으로 나갔다. 옥신은 그런 나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나도 옥신에게 신경 쓰지 않고 마을버스 종점으로 걸어갔다. 종점에서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버스타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 번 호 : 6815 / 6833 등록일 : 2000년 02월 20일 12:26 등록자 : DSORYK 조 회 : 73 건 제 목 : [사이케 델리아] 9.연속된 만남 3 뚜루루루ㅡ 뚜루루루ㅡ 전화 신호음이 두 번 울리자마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한 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인티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난 부담없이 말했다. “나야.” 《아, 한 오빠죠?》 크... 한 오빠... 아무리 들어도 어감이 이상해... “어.” 《오빠 오늘 시간 있어요?》 “남아도는 게 시간이야.” 《그럼 오늘 만나요!》 얼레? “오늘? 어디서?” 《구내동에 있는 영광교회 알아요?》 “알아.” 《거기서 3시에 만나요!》 흠... 3시라... 거기까지 가려면 넉넉잡아 한 시간 정도... 지금 2시 반이 니까... 적어도 3시 반으로 약속시간을 잡아야 늦지 않겠군... “3시 반으로 하자.” 《음... 알았어요. 그럼 3시 반에 영광교회 앞에서 만나요!》 “어.” 《먼저 끊으세요.》 헐... 내가 먼저 끊으라구? 난 상대방이 끊기 전엔 잘 안 끊는데... 뭐 어 쩔 수 없지. “알았어. 그럼 있다가 보자. 끊는다.” 달칵ㅡ 수화기를 내려놓은 후, 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아무 리 살펴봐도 입고 갈만한 옷이 없었다. 평상시에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아서 옷을 사두지 않은 것이다. 쩝... 그냥 가볍게 입고 가면 되겠지 뭐. 여름이니까 하얀 티셔츠를 입고... 바지는 그냥 남색 긴바지로 해야겠다. 부담없이 입고 가는 거야~ 난 차비와 비상금 오천원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가지고 있는 돈이 오천 원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준비하고 곧장 구내동에 있는 영광교회로 향했다. 대략 1시간 후에 영광교회에 도착한 나는 영광교회 앞에 서 기다리고 있는 인티를 발견했다. 인티는 분홍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녕.” “아, 오빠.” 내가 다가가 인사하자 인티가 방긋 웃었다. 그러다가 내 옷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오빠 멋있어요.” “... 너도.” 흘... 내가 멋지긴 뭐가 멋져... 얼굴이 안되는데. 하여간 저런 입발린 소 리를 들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니까... 남들은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좋 아진다는데 말이야... 역시 난 성격이 이상해... “오빠, 우선 저기에 들어가요.” 인티는 한 패스트 푸드점을 가리켰고, 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나 와 인티는 그 안으로 들어가 제일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오빠는 뭐 먹을 거예요?” 흘... 뭘 먹지? 내가 언제 이런 데에 와본 적이 있어야지... 이곳은 역시 중국집하고는 분위기가 틀리구만... 으...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처럼 괜히 부담스러워... “오빠! 말해봐요. 오늘은 제가 살테니까요.” 인티는 날 재촉했고, 난 그냥 이렇게 말했다. “미영이하고 똑같은 걸로 먹지 뭐.” “음...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인티는 주문대 쪽으로 뛰어갔고 난 느긋하게 기다렸다. 잠시후 인티는 햄버 거와 그 외의 먹을 것이 있는 쟁반 두 개를 들고 왔다. 난 인티에게서 쟁반 하나를 받고 햄버거를 집었다. 햄버거는 꽤 큰 것이었다. 과연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햄버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미영아, 너 지금 신력을 쓸 수 있어?” 난 막 햄버거를 싼 종이를 벗기려는 인티에게 물었다. 인티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쓸 수 있어요. 기억이 돌아온 뒤부터는 신력이 느껴져요.” “음... 근데 부모님은 계셔?” “네. 환타지 세계에서는 전쟁으로 돌아가셨지만, 이곳에서는 두 분 모두 살 아계시죠.” 인티는 환하게 웃었다. 상당히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난 그저‘그렇구나’ 라고만 말하고 햄버거를 한입 먹었다. 내가 더이상 질문을 하지 않자 이번엔 인티가 나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오빠 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시죠?” “어.” 흘... 어머니나 아버지가 건강한지 안 한지 난 신경 안 써. 난 남의 건강을 신경쓸만큼 한가한 인간이 아니니까. 나 자신조차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 “오빠는 동생이나 형이 있어요?” “아니, 없어. 너는?” “저도 없어요. 파출부 아줌마가 있기는 하지만요.” 허걱... 파출부? 도대체 집이 얼마나 크길래 파출부가 있는거냐...? “오빠!” 인티가 조금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날 불렀다. 막 햄버거를 한쪽 더 먹으려 던 나는 인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인티는 긴장감 흐르는 얼굴로 나에게 조 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여자 친구 있어요...?” “......” 흘... 그런 가슴 아픈 질문을 하다니... 여자 친구가 있었으면 내가 지금 너하고 이렇게 햄버거 먹고 앉아 있겠니? 여자 친구랑 같이 놀러가고 말지... “없어.” “정말이요?” 인티가 갑자기 눈을 빛내며 재차 물었다. 난 인티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다. 그러자 인티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나에게는 귀여워보였다. “그러는 인티는 남자 친구 없어?” “없어요...” 인티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난 다시 햄버거를 덥썩 물었다. 인티도 조 심스럽게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절반쯤 먹었을 때, 문득 궁금증 이 일어난 난 인티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린 만났어?” “아린 언니요? 아뇨, 못 만났어요... 이름을 모르니까 못 찾겠더라구요...” 뭐 그렇겠지. 3학년만 해도 몇 백 명은 될테니까. 하여튼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인티하고 옥신을 만난 나는 운이 억세게 좋은 녀석인가? 아니지, 인 티는 그렇다 치더라도 옥신 녀석을 만난 걸 운이 좋다라고 할 수는 없지... 운이 드럽게 없는 거라고 할 수밖에 없어... “......” “......” 나와 인티는 말없이 햄버거를 먹었다. 햄버거를 먹고 푸드점을 나오니 시간 은 벌써 오후 5시였다. 우워억!!! 만화 녹화하는 걸 잊어먹었다! 지금 하고 있을텐데! 이런 어처구 니 없는 일이!!! “왜 그래요?” “아, 아니야...” 내가 가만히 가게 앞에 서 있자 인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아니었다. 내가 TV에 서 보는 거라곤 일부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만화밖에 없었으니까. 흘... 오 늘 재미있는 거 하는데... 흑흑... “자주... 연락해도 돼요?” 인티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난 잠시 인티를 쳐다보았다. 인티는 불 안한 눈초리로 날 보는 중이었다. 어떻게 대답할까 갈등하던 나는 마침내 결 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수능 공부 때문에... 자주 만날 수는 없어...” “그렇군요...” 내 예상대로 인티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인티가 무엇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면 둔한 인간일 것이다. 지금까지 인티의 행동 이나 말을 종합해볼 때 인티가 나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확 했다. 나도 인티를 좋아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한가하게 여자와 만나고 싶 지는 않았다. 그래서 수능 공부를 핑계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수 능 공부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플라톤과 옥신, 그리고 아직 만나지 않은 마 르크스 등과 관련된 일에 인티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나 혼 자 그들의 야심이나 계획을 저지시킬 생각이었다. “그럼... 수능이 끝나고서야 만날 수 있겠군요...” “뭐 그렇겠지만... 그때는 미영이가 고3이 되잖아.” “.......” 인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3이 된다라는 것이 인티에게 많은 압박을 주는 것 같았다. 고3의 중압감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지내온 나는 그저 입 을 다물고 있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인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그럼 저 먼저... 가 볼게요...” 인티는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왠지 이대로 인티를 그냥 보냈다간 크게 후회할 것 같아서 난 인티를 불러 세웠다. “미영아.” “.......” 인티가 날 돌아보았다. 인티의 눈가에 눈물이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인티에게 물었다. “내가 공부하다가 힘들 때... 연락하면 날 만나줄 수 있겠어?” “......!” 인티의 눈에서 뭔가가 굴러떨어졌다. 그것을 미처 확인하기도 전에 인티가 내 품에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의 시선 이 신경쓰이지 않았다. 잠시 내 품에서 소리없이 울던 인티가 눈물을 훔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갑자기 울어서...” “아니, 뭐 별로...” 그럼그럼. 예쁜 여자가 안겨 오는데 기분 나빠할 남자가 어디있겠니~ “연락 올 때를 기다릴게요. 그럼 먼저 갈게요.” 인티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급하게 버스 정류장 쪽 으로 뛰어갔다. 사람들은 잠깐 동안만 시선을 보내다가 이내 각각 제 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인티가 마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 것을 보고 나서 인티가 마을 버스를 탔던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나도 집에 가려면 마을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마을 버스가 왔고, 난 그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착잡했다. 그나저나... 내가 과연 먼저 인티에게 연락을 할까? 흘흘... 그 사이에 인 티를 잊을 확률이 더 클 것 같은데 말이야... 난... 기억력이 나쁜 녀석이니 까... 좋아하는 감정도 잊을 만큼... 기억력이 나쁘니까... 번 호 : 6816 / 6833 등록일 : 2000년 02월 20일 12:29 등록자 : DSORYK 조 회 : 102 건 제 목 : [사이케델리아/퍼옴]10. 옥신의 최후1 <제 4 장> 옥신의 최후 “......” 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옥신의 뒤를 밟았다. 어제는 인티 때문 에 그냥 보내버렸지만, 오늘은 옥신의 집이나 가족 관계, 혹은 무슨 짓을 하 고 다니는지에 대해 알아볼 생각이었다. 물론 자율학습하기 싫어서 옥신을 미행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옥신은 실수여고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실수여고 앞에 있는 마을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타려고 바글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마치 형사가 범인을 찾아내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람들, 특히 여학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러다가 누군가를 찾아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굴다리를 지나 언덕으로 올 라갔다. 나도 옥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따라갔다. “......!” 갑자기 앞서가던 옥신이 우뚝 섰다. 난 급히 언덕에 세워진, 즉 실수여고 앞에 있는 구멍가게의 측면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 밀어 옥신을 살폈다. 옥신은 나에게 등을 보인 채로 서 있었다. 난 옥신이 무엇을 할지 궁금해져서 그냥 지켜보았다. 그때 갑자기 옥신의 앞에 거대한 익룡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바람의 상급 정령 라노스였다. 실수여고 바로 옆에서 라노스를 소환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문을 나서던 여학 생들이 라노스를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옥신은 그런 여학생들에게 는 신경쓰지 않고 라노스에게 뭐라고 지시를 내렸고, 지시를 받은 라노스는 곧장 그 거대한 몸을 바람화하여 마을버스 종점 쪽으로 날아갔다. “꺄악ㅡ!”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종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여학생이 라노스의 바람에 의해 하늘로 높이 들어올려졌기 때문이었다. 여학생 한 명을 허공에 띄운 라노스는 곧장 옥신에게 날아왔고, 이내 옥신을 바람으로 들어올려 어디론가로 날아가버렸다. ‘실프!’ 난 마음 속으로 실프를 불렀고, 실프는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람 으로 화하여 날 들어올렸다. 난 그런 실프에게 마음 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옥신을 쫓아간다.’ ㅡ 네. 그렇게 대답한 실프는 날 데리고 옥신의 뒤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등 뒤로 여학생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으니 놀라 는 것은 당연했다. 어쩌면 내일 이 사건이 뉴스에 보도될지도 모른다. 만약 보도된다면...? 내가 TV에 나온다는 뜻? 허걱! 그건 최악이야!!! “......!” 옥신과 한 여학생은 실수여고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으로 향했다. 난 옥신에 게 들키지 않게끔 그들보다 더 높이 날았다. 잠시후 한 야산 위로 옥신과 여 학생이 내려섰다. 난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수풀 사이에 내려 몸을 숨겼다. 위치는 옥신과 여학생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수풀 때문에 옥신과 그 여학생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 위가 조용해서 말소리는 잘 들린다는 것이었다. “넌 뭐야?” 여학생이 화난 듯 소리쳤다. 목소리로 보건대 성깔이 굉장히 사나울 것 같 았다. 그러나 옥신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후후, 조금 즐겨보자고 데려온 거니까 그러지 말라고.” “무, 무슨 짓을 하려고?” 옥신의 음침한 말에 그제서야 낌새를 눈치챘는지 여학생의 목소리가 떨려나 왔다. 그러다가 옥신의 뒤에 모습을 드러낸 바람의 상급 정령 라노스를 보고 그 여학생이 소스라치게 놀랬다. “그, 그건 뭐야?!” “아, 바람의 상급 정령 라노스라고 한다. 내 종이지.” 옥신의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학생이 무서움에 조금씩 뒷걸음질 치 고 있는 모습이 수풀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나 그 순간 라노스가 여 학생을 움직이지 못하게 바람의 올가미로 덮어씌워 버렸기 때문에 그 여학생 은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나, 날 나줘...!” 여학생은 애원조로 말했지만 옥신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음흉하게 웃으며 여학생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여학생의 코 앞까지 다가간 옥신은 그 여학생의 턱을 손으로 잡고는 음흉한 어조로 말했다. “후후, 정말 예쁘군. 내가 그동안 많은 여자를 접해봤지만 너같은 미모는 처음 본다. 아, 환타지 세계에서는 한 명 있었군. 뭐, 그 계집은 엘프라 예쁜 것은 당연하지만 말이야.” “제발... 날 보내줘...!” 여학생은 우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옥신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옥신은 자 기 할말만 할 뿐이었다. “각선미도 죽이는군. 어제 만났던 날라리 계집들하곤 질이 틀려. 후후.” 흘... 옥신이 무엇 때문에 저 여학생을 데려왔는지 알겠구만. 혼자 재미를 보려고 하다니... 저런 녀석은 저승행 총알 택시를 태워서 황천길로 보내는 게 제격이야! 사사삭ㅡ 난 망설이지 않고 수풀 밖으로 나갔다. 막 여학생의 교복을 벗기려고 했던 옥신은 갑작스런 나의 등장에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엇... 네가 어떻게 여기에...?” “내가 못 올 데 왔냐?” 난 최대한 퉁명스럽게 말한 다음 바람의 올가미에 씌여 꼼짝도 못하는 여학 생을 쳐다보았다. 그 여학생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라 얼굴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얼굴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바로 자칭‘ 붉은 미소녀 마법 검사’라고 떠벌리는 아드레날린, 즉 아린이었던 것이다. “아...!” 그 여학생이 날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처럼 아미를 찌푸렸다. 그러다가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넌 니트?!” 얼레? 니트? 쟤가 지금 날 그렇게 불렀나? 헐... 확실히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린처럼 생긴 저 여학생이 정말 아린이란 말인가? “너 니트 맞지?” 그 여학생이 날 다그쳤다. 난 그저 간단하게 답했다. “맞아.” “이제야 기억났어... 이제야... 모두...” 아린은 자신의 처지가 지금 어떤지도 잊은 채 멍청히 중얼거리기만 했다. 그때 옥신이 끼어들었다.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던 거야? 이거 의외인데?” 나원... 옥신 녀석은 전혀 기억을 못하는구만. 전에 만난 적이 있었으면서. 뭐 저 녀석 머리가 나쁜 것이니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야! 당장 풀어! 안 그러면 원진 마법으로 날려주겠어!” 아린이 옥신에게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그러나 옥신은 사악하게 웃을 뿐이 었다. “후후, 넌 지금 포로다. 닥치고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라노스, 이 계 집이 소리치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려.” 쉬이익ㅡ 옥신의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라노스가 바람으로 화하여 아린의 입을 틀어막 았다. 아린은 마구 반항을 했지만 바람의 상급 정령을 당할 수는 없었다. “......” 난 그저 그런 옥신을 쳐다보기만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결정을 내 릴 수가 없었다. 우선 옥신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보고 나서 행동을 개시하기 로 했다. 옥신은 아린이 저항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언제 내 뒤를 미행했지?” “학교에서부터.” “그런가? 참 할일도 없는 모양이군.” “요즘 난 한가하거든.” 내 대답에 옥신은 후후 하고 웃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 나빠지는 웃음 소리 였다. 그렇게 잠시 웃던 옥신은 갑자기 아린의 목 부근을 손날로 내리쳤다. 아린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후후, 이제 너와 나만의 일대일 대결이다. 라노스.” 스스스스ㅡ 아린을 바람의 올가미로 묶고 있던 바람의 정령 라노스가 옥신의 옆에 모습 을 드러내었다. 몸이 연두색이란 것만 빼면 완전한 익룡의 모습이었다. 옥신 이 라노스로 공격해 올 것임을 느낀 나는 내 주위에서 바람으로 화해있는 실 프를 불렀다. 내가 실프를 부르자 옥신이 비웃음을 흘렸다. “후후, 이번에도 실프냐? 하급 정령으로 과연 상급 정령을 당할 수 있을까?” “저번에 그런 말하다가 나한테 깨졌잖아?” “......” 환타지 세계에서의 패배가 생각났는지 옥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당시에 내가 상급 정령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 황이 틀려!” “웃기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내 욕에 옥신은 얼굴 표정을 확 바꾸었다. 살기가 어린 표정이었다. 옥신의 입에서 냉혹한 일갈이 터져나왔다. “라노스, 공격해라!” 휘이잉ㅡ! 라노스가 날개짓을 하자 거대한 소용돌이가 내 몸을 엄습해왔다. 그러자 실 프가 바람의 장벽을 일으켜 라노스의 소용돌이에 맞섰고, 그 잠깐 동안의 대 결 결과는 실프가 라노스의 소용돌이를 와해시키면서 실프의 승리로 돌아갔 다. 그 결과를 보고 옥신이 놀라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돼! 한낱 실프가 라노스의 공격을 와해시키다니!” 흘... 환타지 세계에서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었지 아마? “으... 라노스! 설마 실프에게 지진 않겠지?” 옥신은 라노스를 노려보며 말했고, 라노스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실 프를 쏘아보았다. 옥신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았다. ㅡ 꾸아악ㅡ! 라노스는 하늘을 향해 한껏 울어제쳤다. 실프는 마법을 쓰려는지 주문을 외 우기 시작했다. 정령 마법사들 밖에 듣지 못하는 울음을 발한 라노스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 사이 실프는 주문을 완성하고 라노스가 공격하기를 기 다리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노스는 실프를 향해 거친 날개짓 을 했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다른 날카로움을 지닌 바람이 실프에게 불어닥 쳤다. 라노스가 공격을 가하자마자 실프는 마법을 구사했다. 쐐애액ㅡ! 실프의 손에서 나선형 돌개바람인 스파이럴 블래스트(Spiral Blast)가 허공 을 가르며 뻗어나갔다. 실프가 일으킨 바람은 라노스의 바람보다 더욱 날카 로운 소리를 내었다. “......!” “......!” 나와 옥신은 서로 긴장했다. 실프의 바람과 라노스의 바람이 맞부딪치자 이 상하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눈으로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실프의 마음을 통해 지금 실프의 바람이 라노스의 바람을 와해시키고 라노스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번 호 : 6817 / 6833 등록일 : 2000년 02월 20일 12:30 등록자 : DSORYK 조 회 : 91 건 제 목 : [사이케델리아/퍼옴]11. 옥신의 최후2 “엇!” 라노스가 실프의 공격을 받고 휘청거리자 옥신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실 프의 공격에 부상을 입었는지 라노스는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그런 라 노스를 향해 실프가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하자 옥신이 급히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잠깐! 넌 너의 그 힘이 아깝지도 않은거냐?!” 얼레? 뭔소리래? 난 손을 들어 실프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옥신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부상입은 라노스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해 서일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실프의 공격을 막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 공 격으로 인해 실프도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이 아깝다니 뭔말이냐?” 난 옥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급히 마음 속으로 노움을 불렀다. ‘노움, 넌 땅 속에 잠복해 있다가 내가 지시하면 토창 마법 같은 걸로 옥신 을 공격해. 알았지?’ ㅡ 아, 그래그래. 그렇게 하지 뭐. 주인 말인데 들어야지~ 노움은 비꼬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지만 난 그런 노움을 무시하고 옥신을 쳐 다보았다. 옥신은 내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정령 마법사로서의 힘 말이다. 그 힘이 아깝지 않냐? 이곳에서는 그 힘을 쓸 곳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게 뭐?” “... 그게 뭐라니? 넌 그 힘을 그대로 썩힐 셈이냐?” 내 대답을 듣고 옥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난 담담하게 내 입장을 밝혔 다. “쓸 일이 없으면 안 쓰면 되는 거야.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다면 넌 정령과의 계약을 파기할 생각이냐?” 얼레? 그건 또 무슨 소리다냐? “내가 왜 정령과의 계약을 파기해?” “정령을 쓸 일이 없는데 정령과 계약 맺어서 뭘하겠다는 거냐?” “......” 옥신의 말에 오히려 내가 어처구니없었다. 옥신은 지금 정령들을 단순히 싸 움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령들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가를 옥신은 따지지 않고 있었다. “정령쓸 일이 없긴 왜 없어? 정 시킬 일이 없으면 친구 삼으면 되는거야.” “친구? 푸하하하하!!!” 옥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웃던 옥신은 겨우 웃음을 수습하며 말했다. “푸후후, 정령들을 친구로 삼다니... 너의 그 놀라운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 다!” 뭐냐... 아주 띠껍게 노는데...? 똥 밟은 구두로 자근자근 밟아주고 싶어...! “니트, 아니 권강한! 나와 동업하는 게 어떠냐?” 얼레? 이번엔 동업? 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동업이라니?” “나와 함께 세계를 정복하는 거다!” “......” 난 옥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마구 웃었다. “우하하하하!!! 세계 정복? 아하하하하!!!” “......” 내가 웃자 옥신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그래서 난 방금 전 에 당한 비웃음의 복수 차원에서 옥신에게 말했다. “세계 정복? 차라리 우주 정복이라고 하지 그러냐? 네가 세계 정복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고 볶아버린다!” “......” 옥신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 큰 모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으으... 감히 내 원대한 계획을 비웃다니...!” 헐... 세계 정복이 원대한 계획이라구? 지나가던 개가 배꼽잡고 웃을 일이 다... “도대체 세계 정복해서 뭐할건데?” “...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거냐? 당연히 하고 싶은 일을 하지!” “그러니까 그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후후.” 옥신은 기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에는 광기조차 어려있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여자들을 마음껏 품에 안는 것이다!” ... 할말이 없다... 세계 정복의 이유가 기껏 그거라니... 에이즈 걸려 죽 을 인간이야... “세계 정복의 이유가 참 유치찬란하다. 놀랐다, 놀랐어!” 난 느린 템포의 박수를 하며 옥신을 비웃어 주었다. 그러자 옥신의 얼굴이 더더욱 구겨졌다. 옥신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넌 나처럼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는거냐?” “뭐...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난 너처럼 그런 미친 생각은 안한다. 설령 세계 정복을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이 그런 억압을 견디 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킬거야. 반란이 여기저기서, 특히 조직적으로 일어 나면 반란을 다 진압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겠지. 또 운좋게 반란을 모두 진압한다고 해서 세상 여자를 다 안아볼 수도 없어. 넌 변강쇠도 아니잖아.” “시끄러! 그건 네 녀석이 신경쓸 일이 아니야!” “얼~ 뭔가 찔리는 모양인데? 너 조루지?” “이, 이 녀석!!!” 옥신이 갑자기 화를 벌컥 내었다. 그리고는 라노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라노스, 저 녀석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ㅡ ...... 그러나 라노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실프에게 입은 부상이 아직 다 낫지 않 은 모양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노움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노움! 토창 마법이다!” 우르릉ㅡ! 옥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날카로운 토창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옥신은 기 겁하여 즉시 라노스의 등 위로 올라탔다. 그러나 라노스는 날지 못했다. 토 창이 라노스의 몸을 여지없이 꿰뚫었고, 라노스는 긴 울음소리를 발하며 정 령계로 사라져 버렸다. “이, 이런! 라노스가!!!” 옥신은 토창 사이에 서서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난 노움을 정령계로 돌려 보낸 뒤 여유로운 표정으로 옥신을 바라보았다. 옥신이 멍청히 서 있는 사이, 내 명령을 받은 실프가 쓰러져 있던 아린을 안고 나한테 날아왔다. 실프가 아린을 데려오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은 채, 옥신은 날 노려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대로... 네 녀석을 살려두지 않겠다! 내가 훨씬 강한 정령 마법사임을 증명해 주겠단 말이다!!!” 그렇게 소리를 바락바락 내지른 옥신은 두 손을 모으더니 중얼거리기 시작 했다. “불의 정령왕이여... 나에게 그대의 찬란한 위용을 보여주시오...” “......!” 그 말을 듣고 난 크게 놀랐다.‘정령왕’이라는 말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말에 놀라 어떤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사이, 옥신의 부름을 받고 정 령계로부터 불의 정령왕이 소환되었다. 온몸이 새빨간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 는 인간 형상의 정령. 바로 불의 정령왕이라 불리는‘블라레임’이었다. “크윽...!” 옥신이 괴로운 듯 신음을 내질렀다. 무리하게 정령왕을 소환해서인 듯했다. 그러나 불의 정령왕 블라레임이 아직 물질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옥신에게는 정령왕을 유지시킬만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았다. 《소환주여, 내가 무엇을 하길 바라는가?》 불의 정령왕 블라레임은 옥신을 뒤로 한 채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옥신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옥신은 괴로운 표정으로 날 가리키 며 말했다. “저 녀석을 죽이시오!” 《알았다.》 블라레임은 날 똑바로 쳐다보았다. 블라레임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블라레임의 붉은 눈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순간, 그의 손에 불꽃의 긴 채찍이 만들어졌다. 분위기상 그 채찍으로 날 안마해 줄 것 같았다. ‘운디네!’ 난 마음 속으로 다급히 운디네를 불렀다. 운디네가 소환되는 것과 동시에 블라레임의 채찍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다. 운디네는 급히 물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블라레임의 채찍을 쳐내었다. 치이이익ㅡ! 물이 기화하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순간적이긴 했지만 블라레임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지나갔고 블라레임의 공격 실패를 목격한 옥신의 표정 이 더 일그러졌다. “말도 안돼! 어떻게 하급 정령이 정령왕의 공격을 막아낸단 말이야!!!” 소리를 지르던 옥신은 나직한 신음과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블라레임을 유지시키는 데에도 굉장한 정신력과 마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블 라레임은 옥신이 괴로워하든 말든 쳐다보지조차 않고 운디네를 향해 물음을 던졌다. 《그대가 정령계의 위계 질서를 파괴시킨 정령인가?》 운디네는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ㅡ 전 위계 질서를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강해졌을 뿐이지요. 《하급 정령에겐 강함은 필요없다. 오직 순응만이 있을 뿐.》 블라레임의 눈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운디네는 그런 블라레임을 똑바 로 쳐다보며 말했다. ㅡ 언제나 하급 정령이 고위 정령의 지배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정령들도 자신의 실력에 따라 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그 것보다는 차라리 정령의 등급을 없애는 편이 좋겠군요. 《무슨 헛소리인가!!!》 블라레임의 목소리에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정령왕이기 때문에 물질계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같았다. 상당히 우렁찬 목소리를 터트린 블라레임은 살기가 가득 담긴 얼굴로 운디네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정령계의 질서를 파괴하려는 자, 용서치 않으리라!》 블라레임은 불꽃의 채찍을 거두어 들이고 손에 구슬 모양의 불꽃을 모았다. 크기는 작아보였지만 많은 정령력이 응집되어 있는 것 같았다. “크악! 블라레임! 날 죽일 셈이냐?!” 옥신이 블라레임에게 소리쳤다. 블라레임이 갑자기 많은 정령력을 모았기 때문에 마력이 고갈된 듯했다. 그러나 블라레임은 그런 옥신에게 냉혹한 한 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약한 소환주는 나에게 명령을 내릴 자격이 없다.》 “뭐?!” 옥신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블라레임의 말에 운디네가 지금까지 들을 수 없던 반말로 입을 열었다. ㅡ 소환주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당신이 정령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당신이나 다른 정령왕들은 태어날 때 자연의 정기를 다른 정령보다 많이 받아서 정령왕이 된 것일 뿐이야. 정령왕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당신들 이 과연 진정 정령왕으로서의 자격이 있을까? 그런 정령의 출생 등급이 정령들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어! 《닥쳐라, 하급 정령!》 운디네의 반말에 블라레임이 우렁찬 일갈을 토해냈다. 산이 울리고 땅이 흔 들릴 정도의 외침이었다. 그럼에도 운디네는 전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 고 블라레임을 노려보고 있었다. 블라레임이 공격을 가할 것 같은 생각이 든 나는 즉시 나머지 정령들도 모두 불렀다. 소환된 사라만다가 불의 정령왕 블 라레임을 보고 띠꺼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ㅡ 내가 내 상관인 블라레임과 싸우게 될 줄이야. 역시 정령은 오래 살고 봐야해. ㅡ 허허, 이거 괜히 흥분되는걸? 노움도 실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불안함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불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령왕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 지고 있는지, 얼마나 강력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불안 한 모습을 보이면 정령들이 흔들릴 것 같아서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블라레임이 공격하면 방어 마법을 치는거야. 우선 날 지켜야지.” 그러한 내 말을 그냥 넘어갈 사라만다와 노움이 아니었다. ㅡ 치사하고 드럽고 야비한 녀석. ㅡ 자기만 살겠다고 우리보고 방어벽을 치라니... 사라만다와 노움이 날 보고 투덜댔다. 난 화내지 않았다. 그들이 그렇게라 도 자신감을 찾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때 블라레임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 다. 《정령계를 파괴하는 너희 다섯 정령들을 완전히 소멸시켜 주겠다!》 블라레임은 손에 들고 있던 불꽃의 구슬을 내 쪽으로 날려보냈다. 내 다섯 정령들은 오직 정령력만을 이용하여 우리 앞에 정령 장벽을 쳤다. 방어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한 정령력이 느껴지는 블 라레임의 불꽃이 정령 장벽에 닿자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난 눈 을 감지 않았다. 결과를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싶었다. 번 호 : 6818 / 6833 등록일 : 2000년 02월 20일 12:31 등록자 : DSORYK 조 회 : 91 건 제 목 : [사이케델리아/퍼옴] 12.옥시의 최후3 콰앙ㅡ!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허공을 찢어발겼다. 정령 장벽과 불꽃 구슬의 마찰 때문에 생긴 굉음같았다. 잠시후 정령 장벽과 마찰을 일으킨 불꽃 구슬 은 되튕겨지며 곧장 블라레임에게 날아갔다. 블라레임은 그 뜻밖의 상황에 놀라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자신이 날렸던 불꽃 구슬에 맞고 말았다. 《크아악!》 블라레임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잠시후 옥신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비 명을 질러댔다. 소환한 정령이 당하더라도 소환주는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 런데도 옥신이 저렇게 괴로워한다는 것은 블라레임이 자신의 부상을 치유하 기 위해 옥신의 생명력을 마음대로 빼가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었다. “크으으... 블라레임...!” 옥신은 블라레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블라레임은 불꽃으로 이루어진 얼굴 근육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불꽃으로 당했는데도 꽤 타격이 있는 듯했다. 그 사이, 운디네와 실프, 그리고 노움이 일제히 공 격을 가했다. 운디네는 분수 마법으로 블라레임의 머리를 공격했고, 실프는 바람으로 불꽃을 꺼트렸다. 그리고 노움은 흙먼지를 일으켜 블라레임의 불꽃 을 덮어버렸다. 《크아아아악!!!》 블라레임의 입에서 아까보다 더 큰 비명이 터져나왔다. 블라레임의 몸을 이 루고 있던 불꽃이 급격히 꺼져가기 시작했다. 불꽃이 절반 정도 꺼졌을 때, 블라레임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령계로 돌아가버린 듯했다. “이긴... 거지?” 난 떠듬거리며 내 앞에 서 있는 정령들에게 물어보았다. 사라만다가 띠꺼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답했다. ㅡ 보면 모르냐?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녀? ㅡ 원래 안경쓰고 다녔잖냐. 그러니 눈이 나쁜 것은 당연한 거야. 사라만다, 네가 이해해라. 노움이 내 화를 더욱 돋구었다. 그래서 난 노움의 머리에 폭격을 가했다. 그러자 노움 왈, ㅡ 어억! 젊은 놈이 노인을 구타한다! 세상 말세다, 말세! “말세는 뭐가 말세야!” 난 노움에게 다시 한 번 꿀밤 폭격을 가하려고 했다. 그때 옥신의 신음소리 가 들려왔다. “크으으으...” 아차차... 그러고 보니 아직 옥신 녀석이 남아 있었군. 지금 이렇게 노움과 노닥거리면 옥신이 정신을 차리고 공격할지 모르니까 빨리 처리해야겠다! “많이 다친 것 같구만.” 난 옥신에게 다가가 담담히 말했다. 옥신은 그런 나를 일그러진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날... 죽여라...” 얼레? 죽여달라구? 흘...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아차, 이 녀 석은 여자를 겁탈하려고 했었군! 만약 이대로 살려둔다면? 정령의 힘을 사용 해 많은 여자들을 건드리겠지? “옥신, 아니 박세철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렇게 죽고 싶냐?” “크으... 널 죽여버리겠다...” 뭐냐... 언제는 자기를 죽여달라고 해놓고선 지금은 날 죽이겠다고? 우헐헐, 어처구니가 없군. “야, 노움. 이 녀석 생매장 해버려.” ㅡ 생매장하라구?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산 채로 묻으라니까.” ㅡ 얼마나 깊이 묻을 건데? “최소한 10미터 이상 아래로 내려가서 묻어버려.” ㅡ ... 알았다. 노움은 옥신을 붙잡고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옥신은 자신의 몸이 서서히 땅 속으로 끌려가는 것을 알고 기겁했다. “이, 이녀석! 날 정말로 죽일 셈이냐?!” “나원, 죽여달라며?” “싫어! 난 죽기 싫다구! 당장 풀어줘!” 옥신은 마구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욕을 바락바락해댔다. 그런 욕을 먹고 풀어줄 내가 아닌데다가, 본래부터 풀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옥신 의 말은 무시해버렸다. “절대로 네 녀석을 살려두지 않겠어! 죽어서라도 널 괴롭혀 주겠...!” 더이상 옥신의 외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노움이 흙으로 옥신을 묻기 시 작했기 때문이었다. 대략 5분여의 시간이 흐르자 옥신 생매장 작업은 끝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린이 길게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아~흠... 어? 내가 왜 여기에 있지? 아, 그 변태 녀석에게 잡혀왔었는데?” 아린은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난 그런 아린에게 확인 차원 에서 물어보았다. “너 아린이냐?” “어? 니트? 너 왜 이곳에... 아, 네가 날 구해준거야?” “그걸 이제 알았냐?” “그랬구나! 짜식, 고맙다!” 아린은 고맙다면서 나한테 다가와 내 등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난 아린을 무섭게 째려봐준 다음에 아린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아린, 여기 이름은 뭐야?” “나? 이름은 왜 물어봐? 나한테 프로포즈할려구?” “헛소리말고, 이름이나 대.” “정예희다. 됐냐? 그러는 넌?” 흠... 정예희라... 인티는 뭐였더라? 아, 한미영이라고 했었지... 흘... 이 곳 이름 외우는 것도 골치 아프구만. “야! 넌 왜 안 가르쳐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린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난 역시 간단히 대답했다. “권강한.” “권강한? 오호호호!” 으어억... 닭살 돋는 저 웃음을 또 듣게 되다니!!! “이름 정말 웃긴다! 권강한? 건강한이 더 낫지 않아? 오호호호!” 아린은 눈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 령들을 정령계로 돌려보낸 후 산 아래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린이 급히 따라오며 나한테 물었다. “근데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생매장 됐어.” “뭔소리야?” “말 그대로야. 땅 속에 묻어버렸다구.” “......!” 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 앞을 가로막고 다시 물었다. “정말 네가 그 녀석을 죽인거야?” “뭐... 그렇게 되겠지.” “히익! 그럼 뒷처리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경찰에서 수사하면 큰일나잖아!” 흠... 그렇군. “하지만 경찰에서는 증거를 못 찾을걸? 난 옥신의 몸에 손을 대지도 않아서 내 지문이 없을테니까. 그리고 옥신의 시체는 찾지도 못할거야. 그러니 아 무 걱정할 것 없어. 경찰에서는 너나 나를 용의자로 지목하지도 않을테니 까.” “음...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러나 아린은 혹시나 뭔가 증거가 남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런 아린의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기 위해 난 인티를 들먹였다. “인티가 노루 아파트에 산다는 거 아냐?” “뭐? 인티가 나하고 같은 아파트에 산다고? 인티 만났었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린이 얼굴 표정을 확 바꾸어 급히 물었다. 난 산을 내려오면서 아린에게 인티와 만났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들 은 아린은 이번엔 나에게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 이름은 정예희고, 실수여고 3학년이야. 집은 네가 알 다시피 노루 아파트고. 음... 이곳에는 부모님이 둘다 살아계셔서 참 좋아. 환타지 세계에서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용병일을 했는데 말이야.”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마을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여학생 하나가 하 늘을 날아 어디론가 사라졌는데도 주위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평상시의 모 습이었다. 그것을 보고 아린이 불평을 터트렸다. “사람이 잡혀갔는데 전혀 신경도 안쓰고! 인간들이 왜이래?” “야야, 그런 걸 누가 믿어. 모두 자기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겠지. 너 같으 면 사람이 하늘을 날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걸 믿겠냐?” “당연히 안 믿지! 그런 걸 왜 믿어?” ... 믿지도 않는다면서 그런 얘기를 왜 꺼냈니... 난 투덜대는 아린을 데리고 마을버스에 탔다. 시간이 많이 지난 상태라 버 스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난 평상시처럼 제일 뒷좌석에 앉았고, 아린은 내가 앉은 바로 앞좌석에 앉았다. 우리가 타자마자 마을버스는 출발했고, 난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때 아린이 고개를 뒤로 돌려 날 보며 물었다. “사람을 죽였는데 아주 태연하네?” “그렇게 보이냐?” “그래. 역시 넌 아주 사악한 녀석이야~” 아린은 날 비꼬듯이 말했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옥신이 완전히 죽 었을까 하는 걱정만 들 뿐이었다. 혹시라도 옥신 녀석이 살아나오는 불상사 가 없기를 바랬다. 만약 살아나온다면 그때는 내 손으로 확실히 죽여야 할테 니까. “야, 권씨!” 권씨? 아주 띠껍게 부르는데? “왜?” “인티, 아니 미영이 전화번호 좀 가르쳐줘.” 아린은 나에게 인티의 전화번호를 요구했고, 난 인티의 휴대폰 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물론 덤으로 내 전화번호도 적어 주었다. 그 대가로 아린 역 시 자신의 휴대폰 전화 번호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흘... 아린도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니... 나만 없잖아? 어흑흑... 삐ㅡ 아린은 버스 벨을 눌렀다. 창밖을 보니 벌써 노루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 었다. 버스가 멈추고 차문이 열리자 아린은 이 한마디를 던지고 곧장 버스에 서 내렸다. “공부하지 말고 놀아라!” ... 아린은 역시 사악해... 자기도 3학년이라고 날 경쟁자로 생각하고 말이 야...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지원하지 않으면 경쟁할 이유가 없는데. 쯧쯧~ 마을버스는 다시 출발했고, 난 아린이 유유히 노루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 가는 것을 보다가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내 정령들이 불의 정령왕 블라레임을 상대하느라 내 마력을 많이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오늘 하루를 별탈없이 넘긴 것을 내 자신에게 감사하며 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번 호 : 6876 / 6880 등록일 : 2000년 02월 21일 22:13 등록자 : THEBUR 조 회 : 1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 또 한번의 치료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또 한번의 치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94 게 시 일 :00/02/21 21:03:58 수 정 일 : 크 기 :15.1K 조회횟수 :3 <제 5 장> 또 한 번의 치료 “야, 소식 들었냐?” “뭐?” “9반 박세철이 가출했대.” “진짜? 언제?” “어제 안 들어왔대.” “분명히 또 여자애들하고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거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의 마지막 날 점심시간, 아이들은 내 뒤에서 서로 옥신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 난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면서 그들의 얘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아이들의 얘기로 미루어봐서는 아직 옥신이 생매장 당해 죽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 얘기를 나누던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러나간 뒤, 난 고개를 들었다. 교실에 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놀러나갔고, 몇몇의 아이들만이 책상에 엎 드려 자거나 의자를 몇개 붙여서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아 이들만이 책 펴놓고 공부할 뿐이었다. 난 창 밖을 쳐다보았다. 많은 아이들이 축구와 농구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옥신을 생매장 시켰다는 생 각을 떠올려도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사람을 죽였는데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것도 없었다. 단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옥신을 잘 죽였다고 느껴질 뿐 이었다. 흠... 역시 난 살인자로서의 소질이 있는거야. 이제 남은 적은 마르크스하 고 플라톤인가? 플라톤은 지방에 내려갔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볼 수가 없고. .. 마르크스는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뭐, 그 녀석들이 아주 나쁜 짓만 하 지 않으면 내가 신경쓸 필요는 없겠지. 제발 둘다 조용히 살아라... 툭툭ㅡ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난 고개를 돌려 내 어깨를 두드린 사람을 쳐다 보았다. “......?”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것 같았고, 포동포동 살이 쪄 있었다. 하복 상의에 이름표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같은 3학년인 것 같았다. 내가 쳐다보자 약간 살찐 그 남학생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니트지?” “......!” 허걱! 니트? 어떻게 이 녀석이 그 이름을 알고 있는거지? 도대체 이 녀석은 누구...? “그걸 어떻게...?” “하하, 날 기억 못하는 거야?” “모르겠는데...” 내 말에 그 남학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긴, 내가 봐도 나라고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얼레? 자기가 봐도 자기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니? 얘 지금 뭔소리하는 거야? 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 통통한 남학생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네가 환타지 세계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 이 녀석 지금 개그하나? “아, 미안미안. 썰렁했지?” 잘 아는구만. “크레아틴 오크 기억해?” “......!” 그 통통한 남학생의 물음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크레아틴 오크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 남학생도 환타지 세계와 관련된 사람임을 말해주는 것 이기 때문이었다. 그 남학생은 씨익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 크레아틴 오크의 대장인 헤모글로빈이 바로 나야.” “......!” 허거거걱! 이 녀석이 헤모글로빈이라고?! 말도 안돼! 헤모글로빈은 분명히 오크였는데 지금 이 녀석은 사람이잖아!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거라구!!! “못 믿는거야?” 자칭 헤모글로빈이라는 남학생이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난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네가 헤모글로빈이라면... 어째서 오크가 아닌거야?” “그거? 나도 몰라. 어쨌든 오늘 아침 학교 정문에서 등교하는 널 보고 환타 지 세계에서의 기억이 떠올라서 말이야. 쉬는 시간마다 너 찾으려고 얼마 나 고생한 줄 아냐?” 그 남학생은 실실 웃었다. 갑자기 그 남학생과 오크대장인 헤모글로빈의 모 습이 겹쳐졌다. 어쩐지 웃는 모습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우선 그 남학생을 헤모글로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네 이름은 뭐냐?” “신정민이다.” “신정민?” “그래. 니트, 너는?” 흘... 말하기 싫은데... “권강한.” “권강한? 좋은 이름인데?” 헤모글로빈은 그렇게 말하며 내 바로 앞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된거야?” 얼레? “어? 뭐가?”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냐구.” 흠... 그러고 보니 헤모글로빈에게는 내가 이 세계 사람이란 것을 말해주지 않았군. “어... 본래 이 세계가 내가 살던 곳이거든.” “그랬냐?” 헤모글로빈이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떡하다가 환타지 세계로 넘어가게 된거야?” “나도 잘 몰라. 어쩌다가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어.” “너 뭐 숨기고 있지?” “없어.” 난 딱 잡아 땠다. 헤모글로빈에게 붉은 구슬과 삼성물, 또 마르크스 일행과 의 일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표정이 너무 리얼했는지 헤모 글로빈은 더이상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화제를 다른 것으로 돌렸다. “근데 어떻게 돌아온거야?” “나도 잘 몰라.” “또 모른다? 너 죽을리?” “정말이야.” “......” 헤모글로빈은 날 이상한 눈초리로 째려보았지만 난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맞대응했다. 그러자 헤모글로빈은 머리를 감싸쥐며 입을 열었다. “정말 이상해. 왜 난 헤모글로빈과 신정민의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거 지?” “......” “분명히 헤모글로빈은 크레아틴 오크들을 지휘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어 느 순간 갑자기 신정민이 되어버리다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얼레? 이해가 안 되는데? “잠깐, 그것에 대해 조금 자세히 설명해줘.” 내 요청에 헤모글로빈은 머리를 두드렸다. “나도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 어쨌든 난 환타지 세계에서 크레아틴 오 크들과 같이 농사를 짓고 있었거든? 그때까지는 신정민에 대한 기억이 전 혀 없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신정민이 되어버린 거야. 신정민이 된 순간부터 널 오늘 아침에 만날 때까지는 헤모글로빈으로서의 기억이 없 었고. 그리고 널 만난 후부터는 헤모글로빈과 신정민의 기억이 동시에 공 존하고 말이야.” 헐... 쉽게 이해는 안되지만 어쨌든 나하고 거의 비슷한 것 같은데? 난 환 타지 세계로 넘어온 다음 열심히 활동하다가 이곳에 다시 왔고, 처음엔 아무 기억도 없이 살다가 플라톤을 만난 이후로 잊혀졌던 기억이 떠올랐으니까... 비슷한 거겠지. 이런 현상이 플라톤이 말했던 기억 융합이라는 건가? “나하고 비슷한데?” 내 말에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헤모글로빈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너도 그래?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괜히 걱정했네!” 흘... 이건 걱정해야할 일이란다... 이건 분명히 플라톤이 무슨 일을 꾸몄 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말이야... 그 녀석이 공간의 문을 소환한답시고 붉 은 구슬을 어떻게 했는데 갑자기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됐으니까. 플라톤만 찾 으면 모든 의문이 풀리겠지만... 지방에 갔다는 그 놈을 어떻게 찾누... “야, 강한아. 우리 말고 환타지 세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냐?” 헤모글로빈은 기대어린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난 잠시 갈등했다. 진실을 말하느냐 거짓말을 하느냐를. 결국 난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아니. 잘 모르겠어. 난 나만 그런 기억이 있는 줄 알았거든.” “그랬구나. 어쨌든 이렇게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반갑다.” 헤모글로빈은 씨익 웃었다. 그때 종이 울렸다. 그래서 헤모글로빈은 내 연 습장을 부욱 찢고는 반으로 자른 다음 자기 전화번호를 적고 나한테 준 후, 내 전화번호를 남은 종이에 적었다.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라.” “어.” 헤모글로빈은 통통한 몸을 이끌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난 그런 헤모글로빈 이 웃겨서 계속 쳐다보다가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했다. 이제 앞으로 두 시 간만 지나면 이 지겨운 여름방학 보충수업도 끝난다. 다음주부터는 더 지겨 운 2학기가 시작되겠지만. 띵동띵동ㅡ “예~! 끝났다!!!” 마지막 5교시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마지막으로 수학 선생이 빠져 나가자 아이들이 환호했다. 종이 울리자마자 들어온 담임은 우리들을 죽 둘 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드디어 여름방학 보충수업도 끝났다. 그래도 곧 수능이 있으니까 놀지만 말고 공부 좀 해라. 다음주부터 수능 원서 작성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아두 고. 자, 집에 가자!” “와~!” 아이들은 환호를 지르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난 오늘도 느긋하게 책가방을 챙겼다. 그때 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던 병서가 나한테 오더니 말했다. “강한아, 담임 선생님이 부르신다.” “어, 알았어.” “그럼 다음주에 보자.” “어.” 병서는 씨익 웃고는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갔다. 난 최대한 빠르게 가방을 챙긴 후, 담임이 있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내가 교무실 앞에 섰을 때 내 뒤 에서 누가 날 불렀다. “야, 권강한!” “... 헤모, 아니 정민이지?” 날 부른 사람은 신정민이라는 이름을 가진 헤모글로빈이었다. 통통한 몸으 로 날렵하게 교무실 앞에 있는 중앙 계단에서 내려온 헤모글로빈이 나에게 물었다. “교무실에 무슨 볼일있냐?” “어... 담임 선생님이 부르시거든.” “그래?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전화번호 적은 것 있지? 잊어먹지 말고 잘 간 수해라. 알았냐?” “어.” “잘 있어라. 나중에 보자.” 헤모글로빈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기다리고 있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계 단을 걸어내려갔다. 난 잠시 심호흡을 하고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 다. 교무실에는 선생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직 종례를 하고 있는 선생 들이 많았으니까. 난 교무 주임 선생님 앞자리에 앉아있는 담임에게 다가갔다. 담임은 열심히 윈도우 95에 깔려있는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흘... 선생이 저렇게 놀아도 되는지... 저것보다는 프리셀이 더 재미있는데... “선생님.” “아, 강한이냐?” 내가 부르자 담임은 마우스를 놓고 서랍에서 넘기는 문제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그 문제집을 넘겨보이며 나한테 말했다. “이건 수능 예상 문제집인데, 한 번 풀어봐. 총정리하는 셈치고.” 얼레? 문제집 줄려고 날 부른 거였어? 헐... 꽤 비싸보일 것 같은데? 우하 하, 돈 벌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난 냉큼 담임이 건네준 문제집을 받아들었다. 그때 내 뒤에서 꾀꼬리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선생님, 이 앤 누구예요?” 남학교에서 여선생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서 난 고개를 돌려 그 선생 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 여선생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담임이 자리에 앉 은 채로 그 여선생에게 날 소개해 주었다. “권강한이라고, 지금은 성적이 많이 떨어진 녀석이야.” “아, 안녕.” 그 여선생이 나한테 인사를 건넸기 때문에 난 얼굴도 못본 채 인사를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여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난 후, 난 고개를 돌려 담임에게 작별인사 를 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그래.” 담임은 고개를 끄덕였고 난 내 뒤에 서 있는 여선생에게도 간단한 목례를 한 뒤 걸음을 옮겼다. 그 여선생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는 했지 만 내가 그런 걸 알아볼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여선생의 말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잠깐, 나하고 언제 만난 적 없니?” “......?” 난 그 여선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여선생의 얼굴을 확인했다. 확인한 순간,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20대 후반 정도의 긴 검은 머리 여선생이었는 데, 그 얼굴은 바로 환타지 세계에서 보았던 유스타키오의 아내 팀파니였다. 여선생도 내 얼굴을 보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니트...?” “......” 난 아무 대답도 못했다. 팀파니가 우리 학교 선생이었다는 사실이 뜻밖이었 기 때문이었다. 나와 팀파니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하자 담임이 팀파 니에게 물었다. “서로 아는 사이야?” “아, 네. 전에 만난 적이 있어요.” 팀파니는 담임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권강한이라고 했지?” “예...” “내 이름은 강지연. 문학 선생이야.” 팀파니는 살짝 웃었다. 난 팀파니에게 뭐라고 할말이 없어서 그저 멍청히 고개만 끄덕였다. 날 잠시 쳐다보던 팀파니는 담임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전 먼저 가볼게요. 강한이와 할 얘기가 있거든요.” “나한테 무슨 허락을 받나. 그냥 그렇게 해.” 담임은 웃었고, 팀파니는 자신의 자리에 들고 있던 교과서와 문제집을 놓고 교무실을 나섰다. 내가 멍청히 서 있자 팀파니가 날 불렀다. “뭐해? 따라와.” “예...” 난 얼떨떨한 상태에서 팀파니를 따라갔다. 팀파니는 날 교사 주차장으로 데 려갔다. 아무래도 차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대로 팀파니는 붉은색의 차 문을 열쇠로 열고는 나에게 손짓했다. “어서 타.” 팀파니가 문을 열어준 곳은 운전석 옆이었다. 내가 들어가 앉자 팀파니는 운전석에 앉더니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시동 소리가 들리고 나서 팀파니가 나 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급한 일 있니?” “아니요.” “그럼 성일씨 만나러 갈래?” “......?” 내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팀파니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유스타키오말이야.” 헐... 유스타키오의 이름이 성일? 근데 팀파니는 여기서도 유스타키오와 부 부일까? 자식은 있으려나? 부르릉ㅡ 팀파니는 서서히 차를 몰았다. 팀파니에게 물어볼 것은 많았지만 팀파니가 운전하는데 방해될까봐 난 입을 다물었다. 차는 교문을 빠져나가고 이내 큰 도로에 들어섰다. 큰 도로에는 차들이 많았기 때문에 길이 조금 막혔다. 그 래서 그 틈을 타서 난 팀파니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팀파... 아니, 이름이... 에...” 허걱... 방금 전에 가르쳐 줬는데도 까먹었다! “강지연이야.”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당히 불쾌한 일임에도 팀파니는 부드럽게 웃었다.‘강지연’이라는 이름을 외우던 나는 문득 팀파 니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갈등했다. 그러다가 이내 결정을 내리고 팀파 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이곳에서도 유스타키오... 씨하고 부부예요?” 흘... 이거 유스타키오도 그냥 부를 수도 없고... 여러 가지로 어려워... “응. 여기서도 성일씨하고는 부부야. 그리고 유스타키오를 앞으로 유선생님 이라고 부르면 돼.” “유... 선생님?” “응. 의사거든.” 허거걱! 유스타키오가 의사라구?! “왜? 아닌 것 같아?” 팀파니가 웃으면서 나한테 물었다. 난 솔직하게 말했다. “용병에서 의사가 되어있다니까 조금 뜻밖이네요...” “그렇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나도 그래.” 흠...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다는 건 예전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 다는 뜻이겠군. 팀파니는 과연 언제 기억이 돌아왔을까? 역시 물어봐야겠지? “선생님은 언제 그 기억을 할 수 있었어요?” “응. 강한이를 본 순간부터.” 얼레? 날 본 순간부터? 그 전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다가? 아, 그리고보니 헤 모글로빈 녀석도 오늘 아침에 등교하는 날 보고 기억이 돌아왔다고 했지... 또 인티나 아린도 날 본 후에 기억이 돌아왔고. 난 플라톤을 만나고 나서 기 억이 돌아왔던가? 그렇다면 이상한 녀석은 옥신이구만. 그 녀석은 혼자 기억 을 되찾았으니... 흠... 혹시 이 모든 것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아 닐까? “선생님.” “왜?” 팀파니는 운전하느라 정면을 쳐다보며 물었다. 운전에 방해되는 줄은 알지 만 궁금했기 때문에 난 팀파니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지금 아들 있어요?” “응. 있어. 10개월이야. 모두 강한이의 치료 덕분이지.” 얼레? 내 치료? 그렇다면...? “그럼 선생님은 본래 불임이세요?” 허걱! 실수다! 이런 실례되는 질문을 하다니! 역시 난 멍청한 녀석이야!!! “응. 난 수란관 입구가 막혀서 아이를 가질 수 없어. 그래서 수술을 하려고 했거든? 근데 갑자기 임신이 된거야. 난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강 한이를 보고 나서 그것이 모두 강한이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한이 덕분이라는 것은 확실하니 까.” 팀파니는 내 질문에도 불쾌한 기색을 떠올리지 않고 친절히 답해주었다. 난 멋쩍어져서 그냥 머리만 긁적였다. 대략 20여 분 후에 팀파니는 차를 어떤 큰 병원 앞에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여기가 성일씨의 일터야.” 웃으며 그렇게 말한 팀파니는 병원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난 가방은 차 안에 두고 팀파니의 뒤를 따라가면서 병원 안을 구경했다. 간호사들을 비롯 해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 평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와 팀파 니는 간호사들이 서 있는 카운터 비슷한 곳으로 향했다. 그때 1층에 있던 응 급실에서 키가 굉장히 큰 의사와 보통 간호사 둘이 걸어나왔다. 의사는 두 간호사에게 몇 가지를 지시했고, 간호사들은 곧 어딘가로 흩어졌다. “성일씨!” 팀파니가 응급실에서 걸어나온 키 큰 의사를 불렀다. 그 의사는 팀파니를 발견하고 이리로 걸어왔다. 검은 머리와 흰 가운, 그리고 30대 초반같아 보 이는 외모만 아니라면 영락없는 유스타키오였다. “지연이가 여기는 왠일이야?” 유스타키오는 우리 앞에 다가와서 팀파니에게 물었다. 옆에 서 있는 나에게 는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팀파니가 유스타키오에게 나를 소개 시켜 주었다. “이 애는 권강한이라고,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오... 권강한? 처음 보는 구...!” 유스타키오는 처음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난 그저 유스타키오가 무슨 말을 할 때까지 기 다리기로 했다. 유스타키오는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마침내 유스타키오의 입에서 한마디가 흘 러나왔다. “니트?” ━━━━━━━━━━━━━━━━━━━━━━━━━━━━━━━━━━━ 번 호 : 6877 / 6880 등록일 : 2000년 02월 21일 22:14 등록자 : THEBUR 조 회 : 1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 또 한번의 치료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또 한번의 치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495 게 시 일 :00/02/21 21:04:23 수 정 일 : 크 기 :12.1K 조회횟수 :5 “예.” 난 주저없이 대답했다. 유스타키오가 팀파니처럼 날 보자마자 기억을 되찾 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유스타키오는 내 대답을 듣고서도 잠시 두 눈만 꿈뻑꿈뻑하다가 갑자기 날 거세게 껴안으며 소리쳤다. “야! 너도 여기 있었구나!” 커억... 유스타키오의 힘은 여전하구만... 그나저나 그렇게 소리치면 어떡 해? 병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참, 이름이 권강한이라고 했던가?” 유스타키오는 내 어깨를 잡고 물어보았다. 난 고개만 끄덕거렸다. 옆에서 조용히 우리의 해후(?)를 감상하던 팀파니가 입을 열었다. “오늘 강한이를 만난 후에 그 세계에서 살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성 일씨도 강한이를 보면 그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 이렇게 강한이를 데려온 거예요.” “음, 그렇군. 고마워, 지연.” “아니예요, 성일씨.”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그런 말을 주고 받았다. 자기들끼리는 사랑이 듬뿍 담긴 말이라고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닭살 그 자체였다. 계속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간 닭이 되버릴 것 같아서 난 끼어들기를 시도했다. “저... 근데...” “응?” 다행히 유스타키오가 나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순순히 응해주었다. 난 유스타키오에게 질문하려다가 유스타키오를 부를 말이 없어서 질문을 바꿔야 했다. “앞으로 유스를 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그거? 그러지 말고 그냥 형이라 불러.” 허걱? 형? 나이가 거의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데 형이라고 부르라구? “그럼 성일형이라 부르죠, 뭐.” “그렇게 해.” 유스타키오는 싱글벙글 웃었다. 호칭 문제를 대충 해결한 나는 유스타키오 에게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왜 형은 의사예요?” “의사가 하고 싶었으니까 의사가 됐지.” “거기에서는 용병이었잖아요.” “거긴 거기고, 여긴 여기고.” 흘... 할말이 없군. 하여튼 용병이 의사가 되다니 전혀 안 어울려... “아, 그렇다!” 갑자기 유스타키오가 무엇이 생각난 듯 이마를 쳤다. 그리고는 내 어깨를 세게 붙잡더니 급히 나에게 물었다. “강한아, 너 마법 쓸 수 있지?” 얼레? “예...” “지금 척추 부상자가 있는데, 네가 치료 좀 해주라.” 허거걱?! “제발 부탁이야!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데 척수 신경이 끊어져서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렸어. 그러니 제발 도와줘!” 유스타키오는 거의 애원의 눈빛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병원 안에 있던 일부 사람들이 유스타키오의 말을 듣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귀에 들 리지 않게 하려고 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요.” “정말?!” 그러나 유스타키오의 목소리는 여전히 컸다. 상당히 쪽팔렸지만 유스타키오 가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전 마법 주문을 적은 연습장을 가지고 올 테니까 기다리세요.” “어? 아직도 못 외웠어?”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그거 다 외우면 천재예요.” 그렇게 유스타키오의 말을 반박하고 나서 난 팀파니의 차 쪽으로 향했다. 팀파니가 차문을 잠그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차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 안에 있던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내든 나는 다시 유스타키오와 팀파니 쪽 으로 걸어갔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유스타키오는 내 손을 잡고 2층에 있는 중환자실로 날 끌고 갔다. 팀파니도 조용한 걸음으로 우리 뒤를 따라왔다. “......” 중환자실은 조용했다. 심장 박동 측정기만이 삐삐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유스타키오는 한 환자 옆으로 나를 데려갔다. 40대 중반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지금은 곤히 자고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이야. 교통 사고를 당해서 척수 신경이 끊어졌지. 이 사람 가 족 형편이 좋지 못해서 내일 퇴원하게 돼. 병원비를 감당 못한다고 하더라 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어. 그러다가 널 보고 나서 네게 치료를 부탁할 생각을 한거야.” 유스타키오는 알게 모르게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그런 유스타키오의 모 습은 꽤 신선한 것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 유스타키오는 돈보다 치료가 우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난 그 아저씨가 누워있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유스타키오를 돌아보며 물었다. “X-ray 사진 같은 거 없어요?” “X-ray 사진? 왜?” “어디 신경이 끊어졌는지 알아야죠.”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는 고개를 흔들며 아저씨가 다친 곳을 손가락으로 직 접 지적해주었다. “바로 여기야.” 유스타키오가 가리킨 곳은 배꼽 바로 아래였다. 위치는 대충 알았기 때문에 굳이 탐지 마법은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우선 투시 마법부터 찾았다. 별 어려움없이 금방 투시 마법 주문을 찾아내고 나서 열심히 주문을 외웠다. 문 득 환타지 세계에서 누군가의 허리를 치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 누 구인지는 기억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당시 성공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조용히 날 지켜보기만 했다. 난 최대한 편한 마음가 짐으로 주문을 완전히 외운 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주문을 읊었다.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볼 수 없는 것이여, 어두움의 그늘이여. 이제 그 안 개를 걷고 그늘을 지우라. 차가운 밤안개의 어두움 속에 그대의 모습을 나 에게 보이라.” 주문을 완성하고 나서 자고 있는 아저씨의 배꼽 아래를 쳐다보았다. 척추 신경에 대한 생각만을 떠올렸기 때문에 다른 장기들은 보이지 않고 오직 척 추 신경만이 보였다. 척추를 하나하나 살펴본 끝에 마침내 끊어져 있는 척수 신경을 찾아낼 수 있었다. 헐... 이거 마력이 상당히 소모되는군. 순식간에 2클래스가 날아가버렸어... 역시 탐지 마법 쓰지 않길 잘했어~ 탐지 마법도 투시 마법 못지 않게 많은 마력을 잡아먹으니까. 끊어진 신경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 난 왼손을 아저씨의 배꼽 아랫부분에 다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아저씨는 몸도 꿈틀거리지 않고 잘만 자고 있었 다. 그렇게 올려놓은 왼손을 통해 몸속에 있던 마나를 그 아저씨의 끊어진 신경 쪽으로 전송했다. 마나는 아무런 문제없이 끊어진 신경까지 도달했다. “......”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환타지 세계에서 허리를 치료했을 때보다 더 많 은 정신력이 소모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살 랑 불어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어가 주었다. 실프인 듯했다. 어쨌든 땀이 씻 겨지는 시원한 느낌이 내 정신을 다시 맑게 해주었다. “아직 안 끝났어?” 유스타키오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에 대답했다간 마나가 흐트 러질 것 같아 그냥 치료에만 정신을 집중시켰다. 난 끊어진 신경을 마나로 연결했다. 물론 1클래스의 안정한 상태를 이룬 마 나를 사용했다.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마나는 항상 고루 분포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안정한 상태를 이루었을 때 무엇인가를 해야 마나가 흩어지지 않는다. 1클래스 이하의 마나로 신경을 연결하면 마나가 곧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끊어진 신경을 마나로 연결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에 한 번 해본 적이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었다. “후...” 난 길게 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시술에 4클래스 밖에 소모하 지 않았지만 많이 피곤했다. 난 유스타키오에게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어요.” “그래? 성공이야?” 유스타키오가 기대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저 아저씨한테 물어봐야죠.” 내 말을 들은 유스타키오는 즉시 곤히 자고 있던 그 아저씨를 조용히 흔들 어 깨웠다. “김상태씨, 일어나 보세요.” 얼레? 김상태? 김 빠진 상태? “으음...” 유스타키오가 깨우자 김상태라는 이름의 그 아저씨가 눈을 떳다. 잠시 눈을 꿈뻑거리던 아저씨는 유스타키오를 보고 물음을 던졌다. “왜 그러십니까, 의사 선생님?” “지금 한 번 일어나 보세요.” 유스타키오는 본론만 말했다. 아저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어나 보라뇨?” “일어나 보시라니까요.” 유스타키오는 무작정 일어나란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그냥 놔뒀다간 아 저씨가 유스타키오의 말을 오해해서 자칫 잘못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방금 허리 치료를 대강 했거든요. 치료 결과를 보려구요.” “치료...?” 아저씨는 더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저씨가 전혀 일어날 기 미를 보이지 않자 이번엔 팀파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요. 한 번 천천히 일어나 보세요.” “아... 예...” 팀파니가 미소를 띄며 얘기를 하자 그제서야 아저씨가 손으로 침대를 집고 몸을 일으켰다. 하반신만 마비되었기 때문에 상체를 일으키는 데에는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 나를 비롯하여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긴장된 표정으로 상체를 일으킨 아저 씨를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그런 우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헛기침을 조금 했다. 그리고 나서 하체를 움직였다. “어...?” 아저씨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이불로 덮혀있던 다리가 조금씩 꿈 틀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보고 유스타키오가 날 끌어안으 며 소리쳤다. “성공이구나!” 으윽... 여긴 중환자실이라구! 그렇게 소리치면 어떡해? “아저씨, 다리가 움직여요?” 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점점 큰 움 직임을 보이는 다리를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급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섰다. “어엇!”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아저씨의 몸이 휘청였다. 유스타키오가 놀라 아저씨 를 잡아주려고 했다. 난 그런 유스타키오를 막았다. 성공인지 아닌지 내 눈 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쓰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몸을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불안정한 자세였으나 아저씨가 걸을 수 있 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스타키오가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리누르고는 아저 씨를 쳐다보며 나에게 말했다. “너... 정말 대단하구나...” 흘... 이거 가지고 대단하다니... 이미 성공 사례가 있었는데 뭘. “저, 이제 집에 가고 싶은데요.” 난 팀파니를 돌아보고 말했다. 팀파니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거 렸을 때 아저씨는 유스타키오를 붙잡고 울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그게...” 울음을 터트린 아저씨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리는 유스타키오를 뒤로 하고 난 중환자실을 나섰다. 그다지 기쁜 마음도, 억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마 치 해야할 일을 한 것처럼 담담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강한아!” 내가 막 1층으로 가기 위해 2층 복도를 걸으려고 할 때, 중환자실을 나선 팀파니가 날 불렀다. 팀파니는 나에게 달려와 말했다. “내가 바래다 줘야지.” 헐...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 날 데려온 사람이 날 데려다 줘야하는 게 정상 아니겠수? 나와 팀파니는 유유히 병원 앞에 무단 주차시킨 차 쪽으로 걸어갔다. 팀파 니는 운전석에 앉아 차에 시동을 걸었고 난 그 옆에 앉아 연습장을 가방 안 에다 집어넣었다. 그때 팀파니가 나에게 말했다. “억울하지 않니?” 얼레? 갑자기 왠 귀신 땅콩 까먹는 소리를? “뭐가요?” “치료는 네가 했는데 그 사람은 성일씨가 치료한 것으로 알고 있잖아.” 아... 그거였나? 뭐가 억울해? 오히려 잘된 거지. 아니지, 억울한 게 있구 나! “그 때문에 억울하기 보다는 돈을 못받고 일해서 억울해요.” “훗!” 내 말에 팀파니가 웃었다. 팀파니는 손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면서 나에게 물 었다. “얼마줄까?” 오옷! 이거 아르바이트 일당인가? 내가 몇 시간 일한 거지? 에... 한 시간 도 채 안되잖아? 이런!!! “많을수록 좋죠.” 난 최대한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굳이 돈 받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팀파니는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 수고비야.” “.......!” 허거거걱! 하루에 5만원?! 이거 돈되는 아르바이트인데? “아뇨, 만원만 받을래요. 이건 도로 넣으세요.” 난 팀파니에게 4만원을 돌려주었다. 5만원 다 돌려주면 착한 사람이겠지만 난 약간만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만원은 꿀꺽했다. 팀파니는 사악한 사람인 모양이었는지 사양 한 마디 하지 않고 냉큼 4만원을 돌려받고 나서 차를 출 발시켰다. 갑자기 2만원만 꿀꺽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집이 어디니?” “그냥 학교에 데려다 주세요.” 내 대답에 팀파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집이 멀어서 차 타고 다니거든요.” “그래? 얼마나 걸리는데?” “1시간 넘어요.” “......!” 팀파니는 꽤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멀리 다니는구나.” 헐... 별로 먼 것도 아닌데 왜 이러시나... 어떤 녀석은 학교 오는데 2시간 이 걸린다더구만. 그에 비하면 난 양호한 편이지~ “참, 성현이 보러 가지 않을래?” 얼레? 성현이? “성현이라뇨?” “응, 우리 아들이야.” 팀파니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문득 환타지 세계에서 잠시 만났던 유스타 키오의 아들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는 어떤 모습인지 보고는 싶었지만 치 료를 하느라 피곤했기 때문에 집에 먼저 가고 싶었다. “그러고 싶지만 오늘은 집에 가서 쉬고 싶어요.” “응, 알았어. 그럼 언제고 우리집에 찾아와. 참, 집 전화번호 받아적어.” “네.” 난 연습장과 볼펜을 꺼내들었다. 팀파니는 차를 운전하면서 전화번호를 알 려주었고, 난 그것을 연습장에 받아적었다. 그리고 나서 난 내 전화번호를 적어서 팀파니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내 전화번호를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묘해졌다. 유명인이 된듯한 느낌이 랄까...? 팀파니는 나를 학교 앞에 데려다 주었다. 여름방학 보충수업이 끝났기 때문 인지 학교는 썰렁했다. 난 팀파니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마을 버스를 탔다.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르바이트(?)로 번 만원의 뻣뻣한 감각을 느끼며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 번 호 : 6868 / 6871 등록일 : 2000년 02월 22일 22:11 등록자 : THEBUR 조 회 : 1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5.인연의 끈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인연의 끈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05 게 시 일 :00/02/22 13:45:31 수 정 일 : 크 기 :8.6K 조회횟수 :21 <제 6 장> 인연의 끈 김상태라는 아저씨의 하반신 마비를 치료하고 나서 번 돈을 비상금으로 숨 겨놓은 후, PC통신에 접속했다. 새로운 애니메이션 음악을 공테이프에 녹음 시키기 위해 만화 동호회에 들어가 여러 음악 파일 자료를 받는 도중 갑자기 이런 메세지가 떳다. 《idea[이종성]님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ID가 idea? 이름은 이종성? 처음 듣는데? 이 사람이 뭣 때문에 편지를 날린 거지? 혹시‘오천원으로 3억을 번다!’라는 식의 광고 편지가 아닐까? 난 편지를 클릭해 도착한 편지를 읽어보았다. 내용은 너무 간단했다. [난 플라톤이다. 네가 니트라면 바로 답장 보내라] 얼레? 플라톤? 플라톤? 허걱! 이거 플라톤 녀석이 나한테 보낸 거란 말이야?! 난 급히 이용자 조회를 해서 idea라는 ID를 가진 녀석을 찾았다. 프로필을 보니 아직 접속 중이었기 때문에 즉시 일대일 대화를 때렸다. [☞너 플라톤이냐?] 일대일 대화창이 뜨자마자 난 바로 써 갈겼다. 그러자 상대 쪽이 글을 썼다. [그렇다] 헐... 플라톤이라 이건가? 혹시 이 녀석 장난치는 게 아닐까? [☞나 니트다. 모 때메 편지 써ㅅ냐] 그러자 플라톤 왈, [철자가 틀렸군. 제대로 써라.] ... 이 녀석 확실히 장난치고 있는 게 분명해... [☞내가 틀리든 말든 뭔 상관이야] [이제 제대로 쓰는군] 흘... 플라톤 녀석 정말 열받게 하네? [☞플라톤 너 지금 어딨어?] [지방에 있다.] 지방에 있다고?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이 아니고? [☞지방 어디냐?] [마음대로 생각하게나.] 어쩔시구리... 안 가르쳐준다 이거지? 할 수 없군. 가르쳐주질 않으니 모르 는 채로 사는 수밖에... [☞근데 내 아뒤를 어떻게 알아냈냐?] [아뒤가 뭔가! ID나 아이디라고 해야지!] 헐... 상당히 골치 아프게 사는구만... [☞아뒤면 어떻고 아이디면 어때] [표준어를 지켜야지.] 표준어 좋아하시네. 1초가 아까운 채팅 시간에 표준어 지키고 앉아있다간 못 따라간다고.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넌 채팅하면서 표준어 지키냐?] [난 채팅 안한다.] 크... 할말없게 만드는군. [☞왜 나한테 멜 보낸거냐?] [멜? 메일 말인가? 줄여쓰지 마라.] ... 나 돌아버릴 것 같아...! [☞너 도대체 통신 경력 얼마야?] [일주일이다.] 커커컥... [☞아, 좋아좋아. 최대한 표준어를 써주지.] [진작 그럴 것이지.] 으으... 플라톤 녀석... 계속 내 화를 돋우는구만... [☞어떻게 내 아이디를 알았냐?] [몰랐다. 그냥 네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냈을 뿐이다.] 흘... 그런 짓하면 지겹지도 않냐...? [권강한이라는 이름은 이 통신에서는 달랑 한 사람 밖에 없더군.] 허... 그러셔? 그래, 내 이름 특이하다. 내 이름 특이한 거에 뭐 보태준 것 있냐? [☞야, 플라톤.] [뭐냐?] [☞너 지금 뭐하고 있냐?] [내 대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 얼레? 대계획? 옥신 녀석은 세계 정복이란 말도 안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 던데... 플라톤은 도대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거지? [☞무슨 대계획?] 내 물음에 플라톤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그건......] [그것은.....] [그것이 뭐냐 하면......] [☞계속 뜸들이면 죽인다?] 내가 협박을 하자 플라톤이 마침내 그 계획이란 것을 말했다. [비밀이다.] ... 갑자기 플라톤 녀석을 수천 토막으로 짤라서 개미들 먹이로 주고 싶어 지는군... [☞너 죽을리?] [썰렁했나? 미안하군.] [☞....ㅡㅡ;] [그건 뭔뜻인가?] 커커컥... 일주일 밖에 통신을 하지 않아서 모른다는 건가? [☞척보면 모르냐? ㅡㅡ는 눈이고 ;는 땀이다. 그러니까 ㅡㅡ; 는 땀을 삐 질삐질 흘리는 모습이란 말이야.] [그랬군. 통신을 하다보면 별 이상한 문자들이 난무하던데...] [☞^-^ $.$ @.@ =.= ㅠ.ㅠ 이런거?] [그래.] [☞통신을 조금하다보면 자연히 알게 돼.] [그런가? 꽤 어렵군.] 흘... 이런 것도 어려워하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 [☞그건 그렇고 네가 전에 말했던 기억 융합이란 게 뭐냐?] [기억 융합...] 어쭈구리... 또 뜸들인다 이거냐? [나중에 가르쳐주겠다.] 나중에 가르쳐주겠다고라고라? 이게 누구 지금 놀리나...? [☞너 지금 죽으려고 리허설 하지?] [허허, 그나저나 옥신이나 마르크스를 보지 못했나?] 옥신과 마르크스라... 이미 옥신 녀석하고는 만나서 친절히 저승행 버스를 태워주고 왔지. 아직 마르크스는 만나지 못했고. [☞옥신은 만났다.] [그런가? 어떻게 했는가?] [☞그건 알아서 뭐하게?] [죽인건가?] 허걱! [☞......] [역시 죽였군. 하긴, 옥신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겠지. 필시 옥신 녀 석이 먼저 자네에게 덤벼들었을 거네. 경찰엔 알리지 않을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흘... 네 녀석이 경찰에 알려도 하나도 안 무서워. 증거가 없는데 날 잡아 가겠냐? [한 가지 질문을 하겠네.] 나원... 그럼 방금 전에 물어본 것은 질문이 아니었단 소리냐? [☞맘대로] [옥신은 자네를 보고 나서 기억을 되찾은 건가?] 얼레? 그게 그렇게 중요한 질문인가? [☞아니.] [역시 그렇군. 나와 옥신의 인연의 끈은 굵었어.] 뭔 헛소리를 하는거야? 인연의 끈이 굵다니? 드디어 플라톤이 미쳐버린 건 가? [자네는 지금 그 환타지 세계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이곳에서도 만났 겠지?] [☞그런데?] [모두 자네를 보고 나서 기억을 되찾은 것 아닌가?] 플라톤 녀석... 잘 아는데? 그런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아니 면 그 대계획이라는 것의 일부분? [☞그래] [역시 붉은 구슬의 매개체인 자네의 인연의 끈은 그렇게 굵지 않구만.]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왜 갑자기 인연의 끈이 굵지 않다라는 소리가 나 오는 거야? [☞인연의 끈이 굵지 않다라는 것이 뭔 뜻이야?] [인연의 끈... 그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네.] 인연의 끈이 중요하다구? [자네는 초끈 이론을 알고 있는가?] 얼렐레? 초끈 이론? 그게 뭐여? [☞초끈 이론????] [모르는 모양이구만. 하긴, 고등학생이니까 아직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 역 학도 배우지 않았겠지.] 갑자기 여기에서 왜 상대성 이론이 나오는 거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상대성 이론을, 미시적 세계에서는 양자 역학을 사용 하네. 그러나 그 두 이론을 하나로 합할 경우 모순점이 발생하지. 그 모순 점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초끈 이론이라네.] 얼라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초끈 이론에 대해 공부해 보게. 그래야 나중에 내 계 획을 설명할 때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질 테니까.] [☞그게 네 계획하고 관련있는거냐?] [그렇네. 조금 유사한 부분이 있지. 세상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끈으 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말일세.] 세상이 작은 끈으로 연결돼...? [흠. 이제 내 일을 할 시간이로군. 나중에 보세.] 《일대일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얼씨구... 난 아직 물어볼 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먼저 가버려? 사악 의 극을 치달려라... 그나저나 초끈 이론이라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물리 이론인가? 흠... 물리 동호회를 찾아보면 알겠지? 난 동호회를 검색해서 물리 동호회에 들어갔다. 물리 동호회 내에 있는‘물 리학 강좌란’에서 초끈 이론이라는 제목의 글을 찾아낼 수 있었다. “.......” 난 초끈 이론이라는 그 글을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으으... 하나도 모르겄다...!!!” 말 그대로였다.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수식 같은 것이 없이 그냥 초끈 이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었기 때문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설명 한 책을 읽어도 이해 못할 것이 분명했지만. 허... 머리 뽀개지겠다... 10차원은 뭐고 차원이 말린다는 소리는 또 뭐냐. .. 도대체 플라톤 녀석은 이런 걸 어디서 배워가지고 사람 열받게 하고 있는 건지... 뚝! 《접속이 끊겼습니다. 재접속하시겠습니까?》 허거걱! 또 끊겼잖아? 우아악! 한동안 안 그러더니 또 왜이래?! 난 재접속하지 않고 그냥 컴퓨터를 꺼버렸다. 플라톤과 대화를 해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접속해서 통신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 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플라톤의 대계획이란 것을 생각해 보려고 애썼다. 물 론 얻은 것은 전혀 없었다. 플라톤이 말해줄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 같 았다. 끄아... 머리가 복잡하구만. 만화책이나 빌려보러 가야겠다~ 따르릉ㅡ 허걱! 컴퓨터를 끄자마자 전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통신을 하는 동 안에도 전화가 왔었다는 뜻? 으으... 아버지나 어머니가 또 뭐라고 하겠군... 이래서 내가 전용선을 깔고 싶다니까...! 딸칵ㅡ “여보세요.” 《거기 강한이네 집이죠?》 얼레? 이 목소리는... 유스타키오? “예.” 《강한이 있나요?》 “전데요.” 내 대답에 유스타키오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강한이냐? 나 성일이 형인데 내일 우리집에 올 수 있겠어?》 에? 유스타키오네 집에 오라구? 집 위치를 알아야 가지... “위치를 모르는데요.” 《내가 가르쳐줄게.》 “잠깐만요.” 난 즉시 종이를 준비했고, 유스타키오는 집 위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난 거의 밖으로 나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위치를 정확히 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었다. 어쨌든 어떤 교통편을 이용해야 할지를 대충 듣고나서 유스타키오에게 말했다. “한 번 찾아가 볼게요.”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딸칵ㅡ 뚜우뚜우ㅡ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야 유스타키오에게 초대 이유를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난 그냥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초대 이유 같은 것은 직접 유스타키오의 집에 가서 들으면 되니까. 흘... 나 혼자 남의 집에 가본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걱정되는군. 제대 로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고. 엇... 그러고 보니 몇 시에 갈지도 안 정했잖아? 이거 최악인데? 음... 뭐,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걸 보면 아무 때나 가도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우헐헐. ━━━━━━━━━━━━━━━━━━━━━━━━━━━━━━━━━━━ 번 호 : 6869 / 6871 등록일 : 2000년 02월 22일 22:12 등록자 : THEBUR 조 회 : 9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6.인연의 끈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인연의 끈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06 게 시 일 :00/02/22 13:45:56 수 정 일 : 크 기 :14.4K 조회횟수 :23 다음날, 난 유스타키오가 가르쳐준 교통편을 통해서 유스타키오의 집을 찾 아갔다. 다행히 헤매지 않고 단 한 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한테는 그 냥‘어디 갔다 올게요’라고만 말하고 나온 상태였다. 어머니는 유스타키오 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유스타키오의 집에 간다고 말해봤자 의심만 살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렇게 건성으로 말한 것이다. 난 평상시에도 아버지나 어 머니에게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항상 얼버무려 말한다. 아니, 거 의 입을 닫아버린다.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귀찮으 니까. 띵동띵동ㅡ 난 검은색의 큰 철문이 있는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초인종의 스피 커에서 40대 정도의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음... 파출부인가? 왠지 유스타키오는 여기서도 갑부일 듯한 느낌이...! “에... 전 권강한이라고 하는데요... 여기 유스...” 허걱! 유스타키오의 이름이 뭐였더라? 유... 뭐였는데? 아, 유성일! “유성일씨가 초대해서 왔는데요.” 《아, 들어오세요.》 삐이ㅡ 철컹ㅡ 아줌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열린 듯한 음향 이 들려왔다. 난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보았다. 문은 그다지 큰 마찰음도 내 지 않고 잘 열렸다. 그래서 주저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놀라고 말았다.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원 은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원을 가지고 있다는 건 돈이 많다 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유스타키오가 부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었 다. 정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20미터 정도였다. 정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와 꽃 이 심어져 있었다. 집 뒤쪽에는 야외 식탁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먼저 집 안에 들어가기로 했다. 집 문에는 유리창이 있었는데 유리가 불투명 해서 집 안을 엿볼 수는 없었다. 난 잠시 심호흡을 하고 나서 문을 열었다. ...... 문은 거의 소음을 발하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난 내가 왔음을 알리려고 입을 열었다. “저...” “니트, 아니 강한이 왔구나!” 내가 입을 열자마자 거실에 나와 있던 유스타키오가 반갑게 소리쳤다. 그래 서 난 유스타키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들어와.” 유스타키오는 싱글벙글 웃으며 거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난 신발을 현관에 벗어놓고 유스타키오에게 다가갔다. 거실은 상당히 넓었다.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구조였다. 소파에 앉아있던 유스타키오가 나에게 말했 다. “여기 와서 앉아.” “예.” 내가 유스타키오의 옆에 앉으려고 할 때 2층에서 팀파니가 걸어내려오다가 날 보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 강한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나서 난 그냥 자리에 서 있었다. 팀파니가 소파에 와서 앉기 전에 내가 먼저 앉기가 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스타키오가 앉으라고 손짓하는 바람에 그냥 유스타키오 옆에 앉았다. “강한이는 여자 친구 없니? 일요일인데.” 팀파니는 유스타키오 옆에 앉으며 나에게 물었다. 난 별 생각없이 대답했다. “없어요.” “그래? 강한이는 너무 공부만 할 것 같은 타입으로 보여.” 흘... 내가 공부만 한다고라? 그렇게 한다면 지금처럼 성적이 떨어지겠수? “근데 유스, 아니... 에... 성일이 형은 절 왜 불렀어요?” “응, 그게...” 유스타키오가 막 대답하려고 할 때 팀파니가 그의 말을 끊었다. “형 말고 선생님!” 얼레? 유스타키오를 선생님이라 부르라구? 팀파니도 선생님이잖아? 둘다 선 생님인데 그냥‘선생님’이라 부르면 어색하고. “뭐 어때? 그냥 형이라 부르면 되지.” 유스타키오는 별 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지만 팀파니는 고개를 살 레살레 흔들었다. “벌써 30 넘은 사람이 이제 곧 20되는 사람에게 형이라 불리면 이상하잖아 요.” “아니, 내가 그렇게 늙어 보이나? 밖에 나가면 아가씨들이 날 오빠라고 부 른다구.” “나이에 맞게 처신을 해야죠.”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호칭 문제로 그렇게 약간의 실랑이를 벌였다. 난 뭐 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둘의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파출부 로 일하고 있는 아줌마가 커피를 타와서 유스타키오와 팀파니의 실랑이는 일 단락되었다. “후... 난 억울하다구. 저쪽 세계에서는 26살이었는데 여기에서는 32살이잖 아. 6살이나 더 먹었단 말이야. 니트, 아니 강한이는 거의 변화가 없는데!” 유스타키오는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그렇게 투덜댔다. 그러자 팀파니가 또 다시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친척들 모두 나이가 그만큼 더 먹었잖아요.” “근데 왜 강한이는 변화가 없느냔 말이야.” 유스타키오는 날 무시무시한 눈으로 째려봤다. 난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어설프게 웃는 날 보고 유스타키오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마법으로 젊어진 거지?” 흘... 상상력이 참 풍부하구만... “그런 마법은 들어본 적 없어요.” “흑마법 중에 그런 거 있지 않아?” “전 흑마법사가 아닌데요.” “그래? 근데 왜 넌 그대로인거야?” 유스타키오는 정말로 이상하다는 듯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그대 로 두면 계속 이상한 질문만 할 것 같아서 난 유스타키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근데 왜 불렀어요?” “아... 너한테 줄 게 있어서.” 오옷! 나한테 줄 거? 혹시 아르바이트한 값? 으흐흐, 기왕이면 세종대왕님 이 그려진 배추잎 수십 장을...! “뭔데요?”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말한 유스타키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유스타 키오가 올라가고 나서 팀파니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그쪽 세계에서의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니?” 그쪽 세계라면 환타지 세계를 말하는 건가? 흠... 사소한 것은 전혀 기억이 안 나는구만. 큼지막한 사건들만 기억나고 말이야. 내 기억력은 본래 형편없 었지만... 이건 왠지 아예 그런 기억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억 의 끈이 완전히 사라진 듯한 느낌... “뭐... 대충 기억은 나요.” 난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팀파니는 재차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세계에서 그쪽 세계의 사람들을 만난 적 있니?” “... 없었어요.” 이번에는 아예 부인했다. 이미 여러 명의 환타지 세계 사람을 만났지만 유 스타키오나 팀파니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알려줘봤 자 기억의 혼동만이 있을 뿐, 얻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두 세계에서 있었 던 일을 동시에 기억한다는 것,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이어지는 기억이 아니고 전혀 관계없던 기억이 하나로 합쳐진 현상은 자칫 잘못하면 기억을 뒤엉키게 할 것 같았다. 그 기억의 혼재가 심하면 정신 분열에까지 이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스타키오나 팀파니에게 아린 또는 인티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휴...” 팀파니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쳐다보자 팀파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밖에 그 세계에서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왠지 한숨이 나와서. 우리들만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흘... 이상한 사람은 맞지... 난 마법을 쓰고, 불임이었던 팀파니는 수술도 안 받고 아이를 낳았으니까. 의사인 유스타키오가 깡패들보다 강한 힘을 가 지고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지. 모두 이상한 사람들이니까 언 제 한 번 치과에 들러야겠어... 쿵쿵쿵ㅡ 2층에 올라갔던 유스타키오가 네모 모양의 상자를 들고 쿵쾅거리며 내려왔 다. 겉면에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상자는 조금 납작하고 길쭉했다. 유스타키 오는 그 상자를 들고 내 옆에 앉아 그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자, 받아라.” “이게 뭔데요?” “나도 보지 않아서 몰라.” 얼레? 근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지? “지금 풀어도 돼요?” “물론.” 내 물음에 유스타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포장을 뜯었다. 상자 속에는 화장품이 들어있었다. 목병이 있는 화장품이었는데 목병은 둥글고 몸 은 네모였다. 언뜻 보기에는 남성용 화장품인 것 같았다. “어? 화장품이네?” 화장품을 보고 유스타키오가 놀란 어조로 말했다. 그것으로 이 화장품은 유 스타키오가 나한테 사다 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팀파니 역시 화장품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표정은 일부러 지은 게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팀파니가 산 화장품도 아니라고 확신했다. “왜 이걸 저한테 주는 거예요?” 난 유스타키오에게 물었고 유스타키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응, 어제 네가 치료해준 그 아저씨가 고맙다고 나한테 준거야. 하지만 그 선물은 너한테 주는 게 맞는 거 같아서.” 얼레? 그 김상태ㅡ이름이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ㅡ라는 아저씨 가 준 선물? 헐... 난 화장품 안 쓰는데... 차라리 이 상자에다 화장품값 만 큼의 푸른 배추잎을 잔뜩 집어넣어 줄 것이지... “전 화장품 안 써요. 이건 성일형이 가지세요.” 내가 화장품을 유스타키오에게 주자 유스타키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 아저씨가 준 건데.” “그 아저씨는 형에게 준 거잖아요. 그러니 형이 가져야죠.” “하지만...” “괜찮아요. 전 선물 받으려고 치료한 게 아니니까요.” 흘흘... 이러니 내가 꼭 착한 녀석처럼 보이는구만. 솔직히 말하면 화장품 들고 집에 가기 싫어서인데 말이야. 그리고 내가 화장품을 들고 가면 아버지 나 어머니가 그거 어디서 났냐고 물어볼테고. 그럼 내가 곤란해지지~ “오...”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내 말에 감동을 받은 듯 고개까지 끄덕였다. 난 둘 이 이상한 말을 하기 전에 질문을 던졌다. “근데 선물 때문에 절 부른 거예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는데, 질문이야.” 얼레? 질문? “뭔데요?” 난 유스타키오에게 물었고 유스타키오는 잠시 헛기침을 한 다음에 입을 열 었다. “아세트와 루피니... 기억하고 있어?” “... 예.” “둘다... 서울에 살고 있어.” “......” 그랬나? 그럼... 이곳에서도 루피니와 아세트는 결혼을...? “그곳에서처럼 여기서도 루피니와 아세트는 결혼했고... 루피니는 지연이의 동생이야.” 유스타키오는 약간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난 고개만 끄덕였다. 입을 열 기분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유스타키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세트하고 루피니가 몇 살인지 알어?” 얼레? 그걸 나한테 물어보는 의도는 무엇? “모르겠는데요.” “루피니는 28살이고, 아세트는 33살이야. 아세트 나이가 나보다 더 많아.” 얼라리? “그러니까 루피니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한거야. 뭐, 먼저 프로포즈한 건 루 피니니까 우리야 할말없지.” 에... 아세트야 본래 엘프라 우리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는 것은 사실이지... 어쨌거나 아세트는 나이상으로만 따지면 더 젊어진 건가? 뭐, 외모상으로 따 져보면 더 나이가 든 것일테지... 어쨌든 결국 환타지 세계에서의 인간 관계 가 이곳에서도 계속된단 소리같구만. “권강한.” 유스타키오가 정색을 하고 날 불렀다. 내가 쳐다보자 유스타키오가 입을 열 었다. “아세트하고 루피니를 보러 가지 않을래?” “......!” 아세트와 루피니를... 보러 가자구? “루피니는 여기서도 지연이의 남동생인데, 지금은 이 근처에서 살고 있어. 전화로 연락하면 금방 올거야.” “......” 난 고개를 숙여 소파 앞에 놓인 탁자를 쳐다보았다.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내가 대답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난 입을 열어야 했다. “아세트와 루피니는... 기억하고 있나요?” “... 아니.” “그곳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만나지 않을래요.” 내 대답을 들은 팀파니가 약간 굳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피하려는 거니?” “예.” 난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를 쳐다보 았다. 내 대답이 뜻밖인 듯 둘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세트와 루피니, 그 둘과 저하고의 기억은 그다지 좋은 게 없어요. 그런 기억을 그 둘에게 떠올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세트와 루피니는 이 세계의 사람으로 계속 살아가게 하고 싶어요.” “......” “형하고 형수님하고 모두 기억의 혼재를 겪고 있지 않아요?” “기억의 혼재?”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흠칫했다. 좀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난 자세히 말했다. “형이나 형수님은 그 세계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건너온 게 아니잖아요. 그 냥 저를 보고 나서 갑자기 그곳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죠? 그건 그곳에서의 기억과 이곳에서의 기억이 이어진 것이 아니예요. 이곳에서의 기억에 그곳 에서의 기억이 침입한 거죠. 전혀 연관성이 없는 그 두 가지의 기억 때문 에 기억에 혼란이 올 수도 있어요.” “......!” 유스타키오와 팀파니 모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그런 둘의 얼굴을 쳐다보며 끝맺음을 했다. “그래서 아세트와 루피니를 만나지 않는 거예요. 두 세계에서의 기억을 지 닌 채 살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냥 그 둘은 이곳 세계의 사람으로서 살게 하고 싶어요.” “그렇구나...” 유스타키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팀파니도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유스타키오에게 부탁 비슷한 말을 던졌다. “형의 아들을 봐도 돼요?” “아, 그래. 지금 2층에서 낮잠자고 있어. 따라와.”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유스타키오는 2층으로 올라갔다. 나와 팀파니 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2층에는 방이 2개 있었다. 유스타키오는 그 2개의 방 중에서 계단 왼쪽에 있는 방 문을 열고 나에게 말했다. “여기야.” 난 그 방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살폈다. 유스타키오와 팀파니가 함께 잘 수 있는 큰 침대가 방 한쪽에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한 아기가 유아용 침대 안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유스타키오가 유아용 침대 안에서 자고 있는 아 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 성현이 잘 생겼지?” “예.” 흘... 아기가 잘 생겨봐야 얼마나 잘 생겼다구... 귀엽다고 해야지. 어쨌든 유스타키오하고 많이 닮은 것 같다... 크면 여자가 줄줄이 따르겠구만. 부러 워~ 난 잠자고 있는 유스타키오의 아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유스타키오와 팀파니 에게 말했다. “전 이제 가볼게요.” “뭐? 벌써?” 유스타키오가 아쉬운 듯 말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부할 것도 있고...” 흘흘... 집에 가봤자 공부할 내가 아니지만... 어쨌든 빨리 집에 가려면 공 부 핑계가 가장 효과적이지~ “아, 그러고 보니 강한이는 고3이었지?” 유스타키오는 나한테 물었고, 대답은 팀파니가 했다. “어제 제가 말해줬잖아요.” “알아, 알아.” 그렇게 팀파니의 말을 끊은 유스타키오는 나에게 말했다. “그럼 가야지. 고3에서 여름 방학은 중요한 시기니까.” 헐헐... 이미 방학은 다 끝나간다우... 삼일 후면 개학이니까 말이야. 보충 수업 때문에 여름 방학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럼 저 갈게요.” “내가 배웅해줄게.” 유스타키오가 그렇게 말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가라.” “다음에 언제든지 놀러와.” 난 유스타키오와 팀파니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 팀파니가 날 불렀다. “강한아! 내가 차로 바래다줄까?” “아니요, 그냥 갈게요.” 집까지 차를 태워주겠다는 팀파니의 제안을 거절한 나는 다시 가볍게 둘에 게 인사를 하고 정원을 걸어 유스타키오의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골목을 빠져나와 유유히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우리집에서 이곳까지 왔던 길을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부우웅ㅡ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지 5분 정도 지나자 내가 타고 왔던 시내버스가 내 왼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편하게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질 때, 시내버스 뒤쪽에서 붉은색의 중형 자 동차가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아앙ㅡ 그 자동차는 경적도 울리지 않고 무작정 속도만 내었다. 그러다가 시내버스 가 버스 정류장에 멈춰서자 자동차는 끼이익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그 러나 속도는 전혀 줄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인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이다. “꺄악!” “으악!”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굉장한 속도로 달려왔던 그 자동차가 인 도로 들어와 사람들을 들이받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몸이 허공을 날았고, 사람들을 들이받은 그 자동차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곧장 내 쪽으로 달려왔다. 난 피하지 못했다. 피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는 너무 빨랐 다. 사람들의 피가 묻은 붉은색의 자동차 색깔이 내 시야를 어지럽혔다. 난 멍청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죽음’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콰앙ㅡ! ━━━━━━━━━━━━━━━━━━━━━━━━━━━━━━━━━━━ 번 호 : 6879 / 6887 등록일 : 2000년 02월 23일 22:15 등록자 : THEBUR 조 회 : 2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7.피에 굶주린 자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피에 굶주린 자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28 게 시 일 :00/02/23 08:28:00 수 정 일 : 크 기 :10.8K 조회횟수 :35 <제 7 장> 피에 굶주린 자 강한 충돌음이 내 고막을 찢어버리려는 듯 크게 울려 퍼졌다. 난 즉시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막은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었다. 그 굉음은 내 고막을 뒤흔들자마자 곧 사라져버렸으니까. “......!” 얼레? 내가 방금 손으로 귀를 막으려고 했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뜻? 부우웅ㅡ 내 앞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왔다. 난 초점을 내 앞쪽에 맞추었다. 그제 서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내 앞엔 자동차가 엔진 소리를 내며 멈춰있었으 며, 나와 자동차 사이엔 실프가 서 있다는 것을. ㅡ 괜찮으세요, 주인님? 실프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려왔다. 난 마음 속으로 실프에게 괜찮다고 말한 다음 자동차 안에 탄 운전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자동차의 앞 유리가 무엇에 맞은 듯 잔뜩 금이 가 있었 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안에 있던 운전수가 머리로 자동차 앞 유리를 박아 버린 듯했다. “......!”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실프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실프가 만약 괴물처럼 생겼다면 지금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느라 난리였겠지만, 실프가 아름다운 엘프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전혀 달아날 생 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실프가 쳐놓은 바람의 장벽을 들이받았던 붉은 중형 자동차의 시동이 꺼졌 다. 그러나 실프는 여전히 바람의 장벽을 유지시켰다. 혹시라도 자동차가 다 시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덜컥ㅡ 운전석 쪽의 차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난 뒤로 주춤 물러섰 다. 앞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도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는 운전수가 두려 웠기 때문이었다. 내 예상대로 차문을 열고 나온 것은 운전수였다. 키가 180 정도 되어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전신(全身)에서 살기 비슷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휘이잉ㅡ 운전수가 차에서 내리자 실프는 바람의 장벽을 거두어 들이고 내 옆에 섰다. 난 운전수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정확히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크게 놀랐 다. 그 얼굴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 “......” 나와 운전수는 아무 말없이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먼저 입을 연 사 람은 운전수였다. “오랜만이군, 니트.” “......” 하지만 난 입을 열지 않았다. 별로 말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운전수는 바로 마르크스였으니까. 30대 중반의 나이와 얼굴에 턱수염, 콧수염을 기른 것까지 마르크스와 완전히 똑같았다. “이런, 그렇게 기분 나쁜 표정은 짓지 말라고. 기분 나쁜 건 오히려 내 쪽 이니까.” 마르크스는 정말로 기분이 나쁜지 얼굴이 굳어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 에서 마르크스를 만나 얼떨떨해 있던 나는 정신을 추스렸다. 마르크스가 몰 고 온 차 뒤쪽에는 다친 사람들이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위에 있 던 사람들은 멍청하게 서서 나와 마르크스, 그리고 실프만 쳐다보았다. 다친 사람들을 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난 119나 경찰에 전화를 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마르크스의 기세에 쫄아 그럴 수가 없었다. 나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나 똑같이 무능력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니트, 넌 이곳에 사는가?” “아니.” 마르크스가 날 향해 물었고 난 간단히 대답했다. 그러자 마르크스는 음흉한 웃음을 피어올렸다. “이거 굉장한 우연이군. 그 계집을 죽이러 가는 동안 널 만나다니.” “계집?” “후후, 그래. 계집. 날 배신한 에틱스의 키레네 공주 말이다.” 마르크스는 사악하게 웃었다. 키레네 공주가 누굴까 머리를 굴리던 나는 그 공주가 마르크스를 배신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반란을 일으켜 에틱스의 왕 위를 찬탈한 후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에틱스를 멸망시켰다는 것을 간신히 떠올릴 수 있었다. “왜 말을 하지 않는가? 기억을 잃어버린 건가?” 내가 생각을 하느라 입을 다물자 마르크스가 정색을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난 마르크스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최대한 살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째서 과속한거냐? 사람들을 들이받으면서까지 어디를 그렇게 가려고 했 지?” “후후.” 마르크스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 나서 대답했다. “말했잖나. 키레네를 죽이러 간다고.” “왜지?” “멍청하군. 그 계집이 날 배신했으니 당연히 죽여야지.” 얼레? 그렇다면... 이곳에 키레네 공주의 기억을 가진 여자가 있단 말인가? “키레네가 이 세계에 살고 있냐?” “물론이다. 그 세계에서처럼 날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지. 후후.” 마르크스의 얼굴엔 사악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다가 다시 나에게 물음 을 던졌다. “니트, 플라톤이나 옥신을 보지 못했나?” “... 못봤어.” 봤다라고 말하면 마르크스가 나한테 무슨 보복을 할 것 같은 분위기라 난 거짓말을 했다. 마르크스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빌어먹을 플라톤 녀석! 감히 날 속이다니! 삼성물을 통해서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고? 키레네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개같은 녀석! 그 녀석도 죽여버리겠어! 날 속인 자는 철저히 죽음으로 인도해 주겠다!” 헐... 플라톤에게 상당히 불만이 많은 모양이구만. 하긴, 마르크스는 키레 네와 전혀 상관없는 곳으로 가길 원했었으니까. 상황을 보니 마르크스도 환 타지 세계에서의 기억과 이곳에서의 기억이 서로 혼재하는 것 같은데... 차 원을 넘어 온 곳에 키레네 공주와 같은 인간이 있으니 화나겠지... 삐뽀삐뽀ㅡ 마르크스가 차를 몰고 온 쪽에서 소방차와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 다. 누군가 119와 경찰서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사이 렌 소리를 듣고도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전신에 푸 른색의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검기(劍氣)였다. 끼익ㅡ 탁탁탁ㅡ 소방차에서 119 구급 대원들이 내려 다친 사람들에게 응급 조치를 하기 시 작했다. 그리고 경찰차를 타고 온 경찰들은 마르크스 뒤에서 총을 겨누며 소 리쳤다. “손들어!” “......” 그러나 마르크스는 손을 들지 않았다. 사악한 웃음을 띄운 채 그 경찰 쪽으 로 몸을 돌렸을 뿐이었다. 경찰은 모두 두 명이었다. 그 중 한 경찰이 마르 크스에게 서서히 다가오려고 했다. 그것을 본 마르크스가 음흉한 웃음을 지 으며 말했다. “죽기 싫으면 꺼져라.” 그러나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경찰이 아니었다. 마르크스에게 다가온 건장한 청년 경찰은 수갑을 꺼내어 마르크스의 팔목에다 수갑을 채웠다. 그 러나, 파악! 마르크스의 한쪽 팔목에 수갑을 채우자마자 수갑이 절단되어 날아갔다. 그 것을 본 청년 경찰을 기겁을 하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마르크스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날 건드리는 자는 이렇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타고 왔던 자동차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르 크스의 손에서 검기가 뻗어나갔고, 그 검기는 마르크스의 자동차를 깨끗하게 두 동강 내었다. 쿠쿵! 자동차는 앞쪽 차문과 뒤쪽 차문 사이가 정확히 갈라져 버렸고,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경찰과 119 구급 대원조차 그 광경을 보고 경악 하고 말았다. 가볍게 자동차를 동강낸 마르크스는 다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가? 내 실력이?” “......” “검기를 몸을 통해 발현시키는 거다. 따라서 검이 필요없지.” 헐... 그 정도 수준까지 발전하다니... 역시 무서운 녀석이야... “난 이 검기에 용린(龍鱗)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용린검기(龍鱗劍氣)!” 마르크스는 아주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난 당연히 물어보았다. “용린이 뭔데?” “용린은‘용의 비늘’이다. 그것도 몰랐나?” 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자기가 만들어낸 말이면서. 웃긴 녀석이라니 까. “꼬, 꼼짝마라!” 두 경찰 중 30대 중반 정도의 경찰 아저씨가 다시 마르크스에게 총을 겨누 며 소리쳤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넌 왜 여기에 있나?” “그건 알아서 뭐하게?” “후후, 이것도 인연이겠지.” 뭐가 인연이라는 건지... 이렇게 넓디넓은 서울에서 하필이면 마르크스를 만나다니... 이건 최악이야... “손 위로 올려!” 경찰 아저씨가 또다시 소리쳤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번에도 경찰 아저씨 의 말을 씹었다. “니트, 나하고 잠깐 같이 가야겠다.” “내가 왜 너하고 가?” “후후, 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웃기고 있네... “손 들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경찰 아저씨가 마르크스의 다리를 겨누고 경고를 했다. 그제서야 마르크스 는 경찰 아저씨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한마디했다. “쏴봐.” “이녀석!” 그 말에 화가 났는지 경찰 아저씨는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마르크스의 왼쪽 다리를 쏴버린 것이다. 타앙ㅡ! 팅! 총소리가 울리자마자 총알이 무엇인가에 맞고 튕겨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왼쪽 다리에 총을 맞은 마르크스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 었다. 경찰 아저씨는 빗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총을 쏘았다. 그러나 결과 는 마찬가지였다. 총소리가 나자마자 총알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이, 이럴수가!” 경찰 아저씨는 주춤거렸다. 그런 경찰 아저씨를 보며 마르크스는 사악한 웃 음을 피어올렸다. “후후, 총알로는 내 용린검기를 뚫을 수 없다. 아니, 그 어떤 무기도 뚫을 수 없다가 더 정확하겠지!” 두 명의 경찰은 넋나간 표정으로 마르크스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르크스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들인 후 다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 다. “니트, 나하고 같이 가줘야겠다.” “싫다면?” 내 말에 마르크스는 손가락을 빳빳이 세우며 말했다. “거절하면 네 녀석 허리를 깨끗이 동강내주는 수밖에 없지.” 그때 실프가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실프의 목소리는 나밖에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실프가 마법 주문을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난 그런 실프를 말렸다. ‘그만둬, 실프.’ ㅡ 왜죠? 나원... 몰라서 묻냐? 저 녀석의 용린검기인지 뭔지 때문에 보통 공격은 먹 혀들지 않을 거라구! 괜히 저 녀석 성질만 건드리게 되는 꼴이 될지도 몰라! ㅡ 그건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안돼! 우선 마르크스의 요구를 그대로 따라하면 괜찮아. 그러니 넌 먼저 돌 아가 있어. ㅡ 하지만... 얼씨구? 이젠 소환주의 말까지 무시한다 이거지? ㅡ ... 알았어요. 마지못해 내 말을 들은 실프는 곧 정령계로 돌아가버렸다. 실프가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르크스가 흠칫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표정은 전혀 아 니었다. 자신의 용린검기에 상당한 자신이 있는 듯했다. “후후, 정령을 돌려보냈다는 건... 항복이라는 뜻이냐?”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난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었다. 그것은 무엇을 꺼내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마르크스를 공격할 뜻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내 의 도를 알아차렸는지 마르크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용린검기는 여 전히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흘... 저 녀석 인간이야? 도대체 언제까지 검기를 몸에 두를 생각이지? 어 째 지칠 기미가 전혀 안 보인다? “어이, 칼 맑스.” 내가 부르자 마르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칼 맑스?” “너 말이야.” “내가 칼 맑스라고?” 마르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난 간단히 말했다. “나이든 윤리 선생들이 마르크스를 그렇게 불러. 그나저나 목적지는 어디냐?” 내 물음에 마르크스는 다시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 그거야 키레네의 집이지.” “거기가 어딘데?” “그건 알 필요없다. 넌 그저 잠자코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거야.” 헐... 꽤 간단한 요구로군. 어렵지도 않겠어. “근데 뭘 타고 갈 생각이냐?” 난 두동강이 되버린 마르크스의 차를 눈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마르크스는 더욱 사악하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 차를 타고 간다. 저기 있는 경찰차로 말이야!” “......!” 그의 말에 마르크스 뒤에 서 있던 경찰 둘이 흠칫했다. 그 둘 중에서 이번 엔 젊은 경찰이 거의 반사적으로 마르크스에게 소리쳤다. “무슨 소리냐?! 누가 네놈 마음대로 경찰차를 타도록 할 것 같아?!” “후후.” 마르크스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그 젊은 경찰을 쳐다보았다. 마르크스 가 쳐다보자 젊은 경찰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마르크스의 기세에 압도된 듯 했다. 마르크스는 천천히 그 젊은 경찰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젊은 경찰은 즉시 총을 뽑아들고 마르크스를 겨누며 소리쳤다. “거기 서!” ━━━━━━━━━━━━━━━━━━━━━━━━━━━━━━━━━━━ 번 호 : 6881 / 6887 등록일 : 2000년 02월 23일 22:16 등록자 : THEBUR 조 회 : 26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8.피에 굶주린 자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피에 굶주린 자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29 게 시 일 :00/02/23 08:28:26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34 “후후.”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려버리고 계속 그에게 다가갔다. 젊 은 경찰의 얼굴에 공포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한 젊은 경찰은 마르크스의 몸에다 총을 쏘아댔다. 탕탕탕! 세 발의 총성. 총알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세 발의 총성이 이미 내 귀를 먹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후후, 아무리 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총에 맞고도 마르크스는 멀쩡했다. 역시 용린검기 때문에 총알이 마르크스 의 몸에 닿지 않은 것이다. 젊은 경찰을 비롯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마르크스는 그런 사람들을 한 번 주욱 둘러본 뒤 유유히 젊은 경찰을 지나쳐 경찰차 옆에 섰다. 덜컥! 마르크스가 경찰차 문을 열었지만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차문을 연 마르크스는 날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너도 어서 타라.” “......” 난 주저없이 경찰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경찰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 잡고 날 힐책했다. “뭐하는 거냐? 인질이 될 생각이야?” “......” 난 경찰 아저씨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나서 싸늘한 표정으로 한마디했 다. “비켜.” “......!” 마르크스 때문에 잔뜩 쫄고 있었던 경찰 아저씨는 내 살벌한 표정을 보고 움찔거리며 손을 놓았다. 그 사이 난 유유히 경찰차 옆으로 걸어갔다. 그리 고 나서 차문을 열었다.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 음으로 운전석 옆에 앉았다. 탁! 내가 경찰차에 타자 마르크스는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운전석에 앉았다. 이 미 시동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쉽게 경찰차를 출발시킬 수 있었 다. 부우웅ㅡ! 마르크스는 세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경찰차는 차도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렸다. 난 고개를 돌려 자동차의 뒷유리로 다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경찰 의 총소리를 들었을텐데도 119 구급 대원들은 열심히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 고 운반하고 있었다. “어딜 보고 있나?” 마르크스는 고속 질주를 하면서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굉장히 무서운 속도 로 몰고 있었기 때문에 난 우선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 대답을 했다. “뒤쪽. 근데 넌 왜 인도로 뛰어든 거냐?” “후후, 차도가 막혀서 그런다. 인도는 인간들만 있어서 뚫기가 쉬우니까.” 흘... 그래서 사람들을 들이받으면서 가려고 했냐? 도대체 정신상태가 어떻 게 된건지... 빵빵ㅡ! 여기저기서 차량들의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르크스가 모든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사고를 몰고 왔다. 끼이익ㅡ! 콰쾅! 마르크스는 차를 절대로 멈추지 않았고, 속력조차 줄이지 않았다. 브레이크 를 밟고 멈추는 것은 모두 다른 차들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도로가 엉망이 되어버렸다. “카카! 모두 비켜!!!” 마르크스는 미친듯이 소리치며 차를 마구 몰았다. 도로에는 그다지 차들이 많이 있지 않았지만 마르크스가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기 때문에 다른 차들 과 조금씩의 접촉이 생겨버렸다. 콰콰쾅! “으윽!” 차가 마구 덜컹거려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경찰차가 여기저기 찌그러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찰차 안에 있던 무전기에서 무슨 소리가 흘러나왔 지만 난 알아듣지 못했다. 내 몸 하나 제대로 추스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우하하!!!” 마르크스는 눈까지 벌겋게 충혈시키면서 거칠게 차를 몰았다. 그 때문에 차 는 완전히 찌그러져 갔고, 고생하는 사람은 나였다. 아무리 안전벨트를 맸어 도 심하게 요동하는 차 안에서 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익ㅡ! 갑자기 차가 우회전을 했다.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우회전을 하자 차체가 크게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다행히 차가 뒤집혀지지는 않았다. 급히 우회전을 한 마르크스는 차를 어떤 골목으로 몰았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고, 경찰차는 그들을 들이받으면서 나아갔다. 쿠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람의 피가 앞유리창에 묻었다. 내가 그것에 대해 어 떤 감정을 갖기 전에 차는 급정거했다. 급정거를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던 나는 그대로 앞으로 쏠려버렸다. 안전벨트 때문에 앞유리창에 머리를 박지는 않았지만 가슴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안전벨트가 가슴을 압박한 것이다. 만약 차가 무엇인가에 강하게 충돌했다면 갈비뼈가 부러져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컥컥!” 난 기침을 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날 보고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 재미있었나? 목적지에는 다 도착했다.” 그리고는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안전벨트를 풀고 나서 차문을 열고 차 밖으로 나왔다. 경찰차의 겉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여기저기에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난 경찰차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번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주위에는 단독 주택이 눈에 많이 띄었다. 느낌상 부자 동네인 것 같 았다. “저기다.” 마르크스가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집을 가리켰다. 그 집은 높은 담장으로 둘 러쳐져 있어서 내부를 거의 볼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보이는 것이 라곤 지붕 밖에 없었다. 상당한 부잣집인 듯했다. “야, 마르크스.” “왜 부르나?” “난 왜 끌고온거냐?” “후후.” 내 질문을 받은 마르크스는 마음에 안 들게 웃었다. 그리고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들러리 기사다.” 흘... 내가 들러리 기사? 무슨 소린지... 들러리는 알겠는데 왠 기사냐고... “따라와라.” 마르크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한 뒤 방금 전에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집 문앞 으로 걸어갔다. 난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마르크스는 여전히 용린검기를 몸에 유지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 녀석을 공격하더라도 전혀 먹혀들 것 같지가 않았다. “후후.” 마르크스는 나직히 웃으며 손바닥이 문쪽을 향하도록 손을 활짝 폈다. 그러 자 그의 손바닥 바로 앞에서 푸른빛의 검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검기들 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마르크스의 손바닥 앞에서 마구 요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후, 콰앙ㅡ! 철로 만들어진 문이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난 마르크스가 손을 움직이는 걸 보지도 못했다. 내가 놀라 박살나버린 문만 쳐다보고 있자 마르크스가 득 의의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가, 나의 최고 기술이? 아직 이름은 붙이지 않은 기술이지.”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궁금한가? 그럼 가르쳐주지.” 마르크스는 내 눈앞에다 손바닥을 펴보였다. 그의 손바닥 바로 앞에는 푸른 빛의 검기들이 둥근 구의 형태로 모여 있었다. 난 마르크스가 날 죽이려는 줄 알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걸 보고 마르크스가 크게 웃어제쳤다. “크하하! 겁쟁이로군! 방금 전에 말했잖나? 이 기술의 원리를 가르쳐 준다 고.” “......” 우씨... 원리를 가르쳐주려면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이지 왜 그 무시무시한 검기를 갖다대냐고! 내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자 마르크스는 웃음을 거두고 설명을 시작했다. “내 손바닥 앞에 모인 것은 너도 보다시피 검기다. 지금은 가만히 모여 있 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검기들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면 공기가 진동을 하 지. 바로 그 공기의 진동으로 생긴 충격파를 이용하여 저 문을 박살내버린 거다. 이제 이해하겠나?” 공기의 진동에 의한 충격파라고? “검기의 요동으로 공기를 진동시켜 발생한 충격파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띄지. 그래서 검으로 베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공격, 또는 큰 바위로 내려친 것 같은 공격도 할 수 있다. 검기는 날카로운 공격밖에 못한다는 것을 생각을 파괴시킨 거지. 놀랍지 않나?” 헐... 검기로 물체를 때린 것과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라... 무서운 녀석 이야... 저벅저벅ㅡ 마르크스는 부서진 문 파편을 밟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집 역시 유스타키 오의 집처럼 정원이 있었다. 유스타키오의 집보다도 더 큰 듯했다. 난 마르 크스를 따라가면서 그에게 물었다. “넌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냐?” “물리 교사.” 허거걱... 물리 교사?! 그럼 마르크스가 선생이라는 뜻? 이런 포악한 녀석 이 선생이라니!!! “언제 그런 검기를 익힌 거냐?” “아르고선 원정 때 황금용과 싸웠던 것을 기억하나?” 얼레? 아르고선 원정... 황금용? 아, 나한테 완전 소멸 당했던 그 골드 드 래곤! “근데 그건 왜?” “그때 난 그 용에게 검기를 날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런 내 자신이 한 심해서 그 후로 검기 기술을 연구했지. 그렇게 해서 습득한 것이 바로 용 린검기인 거다. 방금 전에 보여줬던 그 기술은 이 세계에 있을 때 생각해 낸 거지만.” 헐... 이 세계에 와서 그 검기 기술을 생각해냈다고? 으윽... 그동안 난 뭐 했냐... “둘다 멈춰!!!” 나와 마르크스가 말을 주고 받으며 건물 본채로 향하고 있을 때 집 안에서 누군가 나오더니 우리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소리친 사람은 집 문앞에 서서 사냥할 때 사용하는 엽총을 우리에게 겨누고 있었다. 60대는 가볍게 넘긴 것 같은 할아버지였다. 마르크스는 그 할아버지에게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 지 걸어가 멈췄다. 그리고는 그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군요, 장인 어른.” “흥! 뭐가 장인 어른이냐! 내 딸은 이미 결혼했단 말이다!”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둘의 관계를 확실하게는 몰랐기 때문에 마르크스 뒤에 찌그러져 있었다. 마르크스를 무섭게 노려보던 할아버지가 마 르크스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왜 찾아온거냐? 5년 동안 쥐죽은 듯이 있더니!” “후후.” 난 마르크스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웃음 소리만으로도 그가 아주 사악한 웃음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었다. 잠시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 마르크스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도 찾아올 생각은 없었다. 근데 저 세계나 이 세계나 모두 그녀의 흔적 이 있어서 말이야... 그 흔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찾아온 것일 뿐이다.” “무슨 헛소리냐?!” 마르크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마르크스에게 경고를 했다. “거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이리로 다가오면 쏴버리겠어! 경찰에도 연락했으 니 곧 이리로 올거다! 당장 돌아가버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그런 경고가 먹혀들 리 없었다. “후후, 경찰이 떼거지로 덤벼도 날 이기지 못해. 그리고 할아범, 쏘려면 쏘 라고.” 저벅저벅ㅡ 마르크스는 할아버지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만약 할아버지가 총을 잘못 쏴서 내가 맞을 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마르크스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 으로 피했다. 할아버지는 마르크스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내 존 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 멈춰! 멈추지 않으면 쏴버린다!” “후후, 얼마든지 쏴봐.” “이익! 누가 못쏠 줄 알고?!” 마르크스의 말에 화가 났는 지 할아버지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ㅡ! 총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여전히 천천히 할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할아버지는 크게 당황했다. 총알을 하나 밖에 준비하지 않은 듯했다. 마르크스는 사악하게 웃었다. “후후, 잘 가시오 할아범!” 마르크스는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 검기가 뻗어 나갔고, 그 검기는 할아버지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허억!” 할아버지는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마르크스는 나 직히 웃으며 꼬꾸라진 할아버지의 옆을 유유히 지나갔다. 집 앞 정원은 할아 버지의 피로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난 신발에 피가 묻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 옆을 지나갔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총소리를 듣고 밖으로 달려나온 가 정부가 죽은 할아버지를 보고 지른 비명이었다. 그러나 그 가정부는 곧 마르 크스의 검기에 의해 머리가 날아가버렸다. 털썩! 가정부의 목 없는 시체가 피를 뿌리며 문 앞에 쓰러졌다. 마르크스는 그 가 정부의 시체를 밟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용린검기 때문인지 그의 옷에는 피 가 전혀 묻지 않았다. 난 가정부의 시체 앞에 섰다. 문 앞에는 가정부의 잘 린 머리가 나동그라져 있었다. 난 그런 가정부의 시체를 보며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전 막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마르크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엄청난 광경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거실 여기저기에 사람의 사지가 널 려있었던 것이다. ━━━━━━━━━━━━━━━━━━━━━━━━━━━━━━━━━━━ 번 호 : 6819 / 6845 등록일 : 2000년 02월 24일 22:09 등록자 : THEBUR 조 회 : 12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9.피에 굶주린 자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피에 굶주린 자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48 게 시 일 :00/02/24 06:37:26 수 정 일 : 크 기 :10.6K 조회횟수 :3 "우욱!" 갑자기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역겨운 피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마르크 스는 여전히 깨끗한 모습으로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 앞에는 한 30대 중반의 여성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여 성은 울면서 마르크스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그러나 마르크스는 나직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으로 네 년의 식구들은 모두 죽었다. 아니, 한 명이 남았군. 네 년 아 들 녀석!" "내 새끼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후후, 간단하지. 저승으로 보내줄 생각이다." 저벅저벅ㅡ 마르크스는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키레네라고 생각 되어지는 그 여자가 거실 한쪽에 놓인 꽃병을 들고 마르크스의 머리를 내리 쳤다. 와장창ㅡ! 꽃병이 완전히 박살났지만 마르크스는 여전히 멀쩡했다. 키레네가 놀라 주 춤거릴 때 마르크스는 뒤로 돌아 키레네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흐윽!" "후후, 그 누구도 날 쓰러뜨릴 수 없어. 넌 네 아들이 저승으로 가는 광경 을 똑똑히 지켜보면 돼." 마르크스는 광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키레네의 멱살을 움켜잡고 2층으로 올 라갔다. 난 피가 흥건한 거실 바닥을 밟고 마르크스의 뒤를 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의 나로선 마르크스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방법이 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용린검기에 대한 공포 가 그 방법이란 것을 떠올릴 수 없게 하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키레네의 멱살을 쥔 채로 2층에 있는 방을 일일이 뒤지기 시작 했다. 2층에는 방이 모두 3개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방을 열 어본 마르크스는 나직한 웃음을 발했다. "후후, 이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군." "그 애, 그 애만은 살려줘...!" 키레네는 마르크스에게 간절히 애원했지만 마르크스는 사악하게 웃을 뿐이 었다. "어차피 너도 살려두지 않아." 그렇게 말한 마르크스는 키레네를 그 방에다 던져버렸다. 키레네의 비명 소 리가 들렸고 곧이어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그래, 내 새끼...!" 난 마르크스 뒤에 있었기 때문에 방 안에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때 마르크스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너도 이 방 안에 들어가라." 허걱?! 그건 나도 죽여버리겠다는 뜻? "... 좋아." 반항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난 마르크스의 말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와 키레네가 있었다. 둘은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자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쾅! 마르크스는 방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안쪽에서 문을 잠가버 렸다. "무, 무슨 짓을?" 키레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르크스에게 물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물 음에 답하지 않고 나를 보며 말했다. "니트, 난 저 둘을 죽일 거다. 넌 당연히 저 둘을 지켜야되지 않겠어?" 어, 얼레? 지금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날 죽여봐라. 그렇지 않으면 저 둘과 함께 너도 죽을 거다." ... 역시 마르크스는 날 죽이려고 이곳까지 끌고 온 거였어... "......!" 마르크스의 손에 검기가 모여드는 것을 본 나는 급히 키레네 쪽으로 몸을 피했다. 마르크스는 그런 날 보고 감탄어린 말을 내뱉었다. "호~ 그새 운동 신경이 조금 좋아진 것 같군. 후후." "왜 힘들게 날 이곳까지 끌고 와서 죽이려는 거냐?" 난 정령들을 모두 부른 후에 마르크스에게 물었다. 마르크스는 내가 부른 정령들을 잠시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야 저 년이 더 고통스럽고, 더 절망스럽게 죽을 수 있으니까." "......?" 지금 저 인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한다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그때 키레네가 내 발목을 잡고 소리쳤다. 난 당황해서 급히 발을 뺐다. 그 러나 키레네는 필사적으로 날 붙잡았다. "제발 좀 도와주세요!" "아니, 그게...!" 난 키레네로부터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다가 마르크스가 득의의 웃음을 짓 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그때서야 마르크스가 날 끌고 온 진짜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나를 통해서 키레네에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을 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날 죽임으로써 키레네를 확실한 절망으로 몰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키레네에 대한 마르크스의 복수였다. "자, 니트. 여기서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날 공격해봐라. 후후." 마르크스는 두 팔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렸다. 그것은 내 공격을 피하지 않겠 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를 내가 믿을 리가 없기 때문에 우 선 마르크스가 방심하도록 말을 걸었다. "넌 검기를 계속 일으키고도 안 힘드냐?" "후후. 계속 검기를 일으키는 건 확실히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하지 만 난 지금 검기를 일으키고 있는 게 아니야." 얼레? "난 검기를 내 몸 위에 얹어놓은 것이다. 즉, 검기의 갑옷을 입은 거지!" 얼라리여? 검기의 갑옷? "무슨 소리야?" "이런, 이해를 못했나? 그럼 한 가지 묻자. 넌 옷을 입고 있으면 지치나?" 엥?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거야? "옷 입는다고 지칠 인간이 어디있냐?" "후후, 바로 그거다. 난 지금 검기를 걸치고 있는거다. 그러니 지칠 리가 없지!" 뭐...? 검기를 걸치고 있다고...? "후후후." 마르크스는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그때 사라만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공격 안 해? 이런 멍청한 녀석... 지금 이 좁은 방에서 공격하란 말이야?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ㅡ 꽤 넓잖아? 사람 10명은 충분히 누워자고도 남겠는데. 좁은 방에서 마법 쓰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완전 개판되버려! 제길, 여기는 나 같은 마법사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곳이야... 특히 저기 있는 두 모자 (母子)를 지키려면 더더욱 불리해지고! "뭐하나? 왜 공격을 안 해?" 마르크스는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것을 이미 다 생각해놓고 있었다는 듯 한 표정. 아주 기분나쁜 표정이었다. "후후, 공격을 하지 않겠다라면... 내가 먼저 하겠다!" 그렇게 소리친 마르크스는 나를 향해 손을 떨쳤다. 그러자 푸른빛의 검기가 빠른 속도로 나에게 날아왔다. 난 그것을 보고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여전 히 내 운동신경은 느려터졌기 때문이었다. 까가강ㅡ! 쇠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내 왼팔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큭!" 난 왼팔을 움켜쥐었다. 정확히는 왼팔의 하박(下膊), 즉 손목과 팔꿈치 사 이였다. 상처는 그다지 깊지 않았지만 피가 줄줄 흐를 정도의 부상이었다. 내가 살벌한 눈으로 마르크스를 노려보자 마르크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 다. "후후, 난 왼팔을 절단하려고 검기를 날렸는데 정령들이 잘 막은 모양이군. 내 검기를 빗겨가게 하다니 정령들을 무시할 수 없겠는걸?" 그러나 마르크스의 표정은 전혀 진지하지가 않았다. 정령들 따위는 신경도 쓰고 있지 않는다는 표정. 난 시선을 돌려 내 옆에 주저앉아있는 키레네와 그의 아들을 쳐다보았다. 둘은 두려운 표정으로 나와 마르크스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난 다시 마르크스 쪽으로 눈을 돌렸다. 마르크스는 다시 나에게 검기를 날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정령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 다. "모두 공격해!"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일 먼저 사라만다가 불덩어리를 토해냈다. 불덩 어리는 곧장 마르크스에게 날아갔고 마르크스는 그대로 그 불덩어리를 맞았 다. 콰앙ㅡ! 폭발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불똥은 방 안에 옮겨 붙으려 했다. 그러나 운디네가 방 안에 있던 수증기를 이용해 불똥을 제거해 버렸기 때문에 화재 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후후, 정령의 공격이라 기대했더니 이거 실망이군." 사라만다의 불덩어리를 맞고도 마르크스는 다친 곳 하나없이 아주 멀쩡했다. 어차피 정령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직감하고 있던 나는 마르크스에 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을 떠올리려 애썼다. '우선 저 용린검기 때문에 보통 마법 공격은 먹히지도 않을테고... 가만... 마르크스 녀석이 검기의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했지? 음... 빈틈이 없고 강한 갑옷이니까 날카로운 공격을 해도 소용없겠군. 그렇다면... 안쪽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공격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근데 백마법 중에서 내부 파 괴 같은 종류의 마법이 있었던가...?' 내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는 동안 마르크스가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날 공격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후후,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용없어. 이 용린검기는 최강이니까!" 삐뽀삐뽀ㅡ 갑자기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그 소리를 듣고 마르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짭새들이 왔군. 출동이 느린데?" 그리고는 손가락을 빳빳이하여 검기를 모았다. "이제 슬슬 끝낼 시간이 됐다. 잘 가라, 니트!" 슈욱! 마르크스의 검기가 내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이번에도 난 보면서도 피하지 못했다. 팍ㅡ! 뭔가 풍선 터지는 소리가 났다. 노움이 마르크스의 검기를 맞고 쓰러지는 광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마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에서 연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노움은 나 대신 마르크스의 검기를 맞은 것이었다. "......"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내 앞에 드러누운 노움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노움은 다 꺼져가는 눈빛으로 날 보며 말했다. ㅡ 여기가 환타지 세계였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텐데... 이 런,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라. 네가 그렇게 쳐다보면 소름끼쳐... 스스스... 노움의 몸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난 노움이 소멸하는 광경을 그저 지 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노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후후, 정령들도 별 것 아니군. 그럼 다시 간다!" 마르크스는 연이어 두 개의 검기를 날렸다. 검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 양쪽 팔을 향해 날아왔다. 검기를 내가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 대신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이 마르크스의 검기를 맞았다. "......" 호박 머리의 잭 오 랜턴은 완전히 두 개로 갈라져 버렸고, 운디네는 가슴에 큰 구멍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둘다 점차로 몸이 소멸해갔다. 난 그 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둘다 후회하는 표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움과 잭 오 랜턴, 그리고 운디네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을 때 난 마음 속으로 사라 만다에게 물었다. '어째서 너희들은 이렇게 날 지키려고 하는거야? 소멸 당하면서까지...' 내 물음에 사라만다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ㅡ 정령신 녀석에게 네가 죽으면 다른 녀석과 계약할 수 없다는 약속을 했 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너처럼 골려먹을 수 있는 소환주가 흔한 줄 아냐? "......" 난 다시 세 정령이 소멸한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확실한 정령의 소멸이었다. 그때였다. 벌컥! 경찰이 우리가 있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방문을 열었던 경찰의 목이 마르크스의 검기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으악!" 뒤에 있던 경찰들이 비명을 지르며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마르크스는 다시 방문을 닫아버리고는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남은 정령은 둘인가? 그 녀석들도 처리해주지!" 마르크스는 내 옆에 있는 사라만다와 실프를 향해 검기를 날렸다. 그러나 사라만다와 실프는 검기가 도달하기도 전에 정령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 고 곧바로 마르크스의 양 옆에 나타나 공격을 퍼부었다. 쐐애액ㅡ! 콰콰쾅ㅡ! 실프의 스파이럴 블래스트(Spiral Blast)와 사라만다의 파이어 볼(Fire Ball) 이 마르크스의 양 옆을 가격했다. 강렬한 폭발력이 방 안을 휩쓸었다. "꺄악!" 키레네는 아들을 껴안고 방 한쪽 구석까지 날아가 버렸다. 그러다가 머리를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죽은 것 같지는 않고 단지 기절해버린 것 같았다. 방 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방 안에 있던 가구에 불이 붙어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날아가지 않도록 몸을 낮취 균형을 잡았다. "으읏! 뭐야?!" 방 바깥에 서서 총을 뽑아들고 있던 경찰들이 갑자기 일어난 폭발에 놀라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파이어 볼에 의한 폭발이 채 걷히기도 전에 마 르크스의 손이 사라만다의 목을 움켜잡았다. 위험을 느낀 사라만다가 정령계 로 돌아가려 하자 마르크스는 손에 힘을 주어 사라만다의 목을 꺽어버렸다. ━━━━━━━━━━━━━━━━━━━━━━━━━━━━━━━━━━━ 번 호 : 6820 / 6845 등록일 : 2000년 02월 24일 22:09 등록자 : THEBUR 조 회 : 11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0.피에 굶주린 자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피에 굶주린 자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49 게 시 일 :00/02/24 06:37:52 수 정 일 : 크 기 :11.0K 조회횟수 :2 툭! 도마뱀처럼 생긴 사라만다의 끊어진 머리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사라만다는 곧 연기로 화하여 소멸되었다. "......" 난 그저 멍청히 서서 사라만다가 소멸하는 장면을 지켜보기만 했다. 사라만 다를 가볍게 소멸시킨 마르크스는 사악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이제 저 정령만 남은 건가?" 슈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르크스는 나에게 검기를 날렸다. 전혀 대비하지 않 고 있던 나는 검기가 날아오는 것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파악! 실프의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내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실프가 나 대신 마르크스의 검기를 막아낸 것이었다. 실프는 어깨에서 연기를 뿌리 며 쓰러지려했다. 그래서 난 실프가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ㅡ 죄송해요... 실프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난 그저 아무 생각없이 실프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때 마르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후, 역시 내 예상대로 널 죽이려고 하면 정령들이 지키려고 한단 말이야. 정령을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그 소환주를 공격하는 것이 더 확실하지!" 벌컥! "손들어! 안 그러면 발포하겠다!" 문이 열리자마자 두 명의 경찰이 총을 뽑아들고 마르크스를 겨누었다. 그러 나, 털썩! 그 두 명의 경찰은 거의 동시에 방바닥에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마르크스 의 검기에 의해 모두 목이 날아간 채로. "이, 이 녀석!" 남아있던 경찰 2명이 일제히 마르크스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탕탕탕! 거의 미친 듯이 마르크스에게 마구잡이로 총을 갈겨댔다. 다행히 모든 총알 은 마르크스에게만 날아갔다. 꽤 훈련을 잘 받은 경찰들 같았다. 그러나 총 알로는 마르크스의 용린검기를 뚫을 수는 없었다. "커억!" "큭!" 두 명의 경찰은 검기에 심장이 꿰뚫린 채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방 안은 곧 경찰들의 선혈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르크스는 광기어린 표정으로 웃었 다. "크크크...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 난 실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른쪽 팔이 날아가버렸기 때문인지 얼굴에 생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실프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ㅡ 전 괜찮아요... 그보다 저 사람을 쓰러뜨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전혀 죄송할 거 없어... 나도 저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하니까... ㅡ 아니예요... 주인님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어요... 나한테? ㅡ 그래요... 텔레포트(Teleport)를 응용하면... 텔레포트? "쿠쿠쿠... 아직 그 정령은 안 죽었나? 서로 사귀나 보지? 그럼 나란히 저 승으로 보내주마!" 마르크스는 다시 빳빳이 세운 손가락에 검기를 일으켰다. 그것을 본 실프가 내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르크스의 검기가 실프를 향해 날아왔다. "......!" 검기가 실프의 가슴을 정확히 관통해버렸다. 그러나 나에게까지는 날아오지 못했다. 실프가 필사적으로 검기의 힘을 자신의 몸으로 약화시켰기 때문이었 다. "실프!" 난 쓰러지려는 실프의 몸을 안았다. 실프의 가슴에선 쉴새없이 녹색의 연기 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에 따라 실프의 몸 색깔이 점차 엷어졌다. 그것은 실프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ㅡ 저도... 그들을 따라가야겠어요... 실프는 점차 희미해지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실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난 정령들로부 터 도움만을 받았을 뿐... ㅡ 그렇지 않아요... 실프는 내 마음을 읽고 고개를 저었다. ㅡ 주인님이 없었으면 저희는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너희들이 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소멸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거야... ㅡ 저희는 괜찮아요... 보통 하급 정령으로 아무 생각없이 존재하는 것보다 는...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으니까요... ...... ㅡ 흐윽...! 실프가 비명을 질렀다. 실프의 몸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실프는 소멸 하기 전에 내 얼굴을 쳐다보며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ㅡ 전부터... 주인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 난 조용히 실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실프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내 입술에 입맞춤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ㅡ 사랑해요... ...... 실프의 몸은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실프의 존재감을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사라만다, 운디네, 노움, 잭 오 랜턴... 항상 내 곁에 있었 고 날 도와주었던 내 정령들을...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었다. "쿠하하! 이제 네 정령들은 모두 죽은건가? 자, 이제부터는 무엇으로 날 공 격할 테냐?" 마르크스는 광기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소리쳤다. 난 마르크스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넌 정말로 키레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는거냐?" 내 물음에 마르크스는 사악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 그 계집에게 최대한의 공포를 주기 위해서다!" "......"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르크스의 말은 절대 성립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적 어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게 목적이라면... 키레네가 저기 쓰러져 기절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 명할거지?" "......!" 키레네에게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던 마르크스는 그때서야 키레네가 벽에 머 리를 부딪히고 기절한 것을 알아차렸다. "호~ 그랬나? 뭐 상관없어. 어차피 죽을 계집이니까 굳이 깨울 필요는 없지!" 마르크스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지금 미 쳐있다는 것을. "넌 지금 키레네에게 복수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야." 난 싸늘한 표정으로 마르크스에게 말했다. 마르크스는 흥미있다는 표정이었 다. "그래? 그럼 내가 뭣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가?" "그건 너 자신의 살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갖다붙인 핑계에 지나지 않 아!" "내 살인 욕구? 쿠쿠쿠..." 마르크스는 듣기에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발했다. 잠시 그렇게 웃던 마르 크스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키레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피... 그건 너무 아름다웠어... 난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을 뿐이야...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피... 피 에 젖은 그 모습은 그 어떤 예술품보다도 아름다우니까... 크크크..." 마르크스는 날 향해 손을 들었다. 그의 손가락에 검기가 모이기 시작했다. "네 녀석의 목이 날아가면서 피를 뿌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일거야... 쿠쿠 쿠..." "......" 난 아무 말없이 마르크스를 노려보았다. 대신 머리 속으로 파이어 스톰(Fire Storm)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자, 이제 죽어라ㅡ!" 마르크스가 날 향해 검기를 날리기 직전, 화르륵ㅡ! 마르크스의 몸 주위로 불길이 피어올랐다. 마르크스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놀랍군. 주문없이 마법을 구사하다니 말이야. 하지만 이 정도의 마법으론 날 쓰러뜨릴 수 없어!" 마르크스는 모아둔 검기를 나에게 날렸다.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마르크스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라이트닝 볼트 (Lightning Bolt)를 마르크스의 등 뒤에다 먹였다. 번쩍! 번개의 빛이 방 안에서 번쩍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어떤 타격도 받지 않 았다. 오히려 몸을 돌려 등 뒤에 있던 나를 주먹으로 쳐냈다. 순간적으로 방 어 마법인 배리어(Barrier)를 발동시키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머리가 날아갔 을 것이다. "퉤!" 난 입에 고인 피를 뱉어냈다. 내 옆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 다. 하지만 난 내려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 여기서 마르크스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더 많이 죽게 될 테니까. "후후후." 마르크스는 뺨을 어루만지는 나를 보며 나직히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방금 전의 번개를 이용한 공격은 괜찮은 생각이었다. 전기 공격이야말로 내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이지. 하지만 용린검기에게는 소용이 없어. 용린검기는 전기가 흐르게 하는 물질, 즉 도체(導體)의 성질을 지녔거든." "......" 제길... 그래서 라이트닝 볼트가 통하지 않았던 거구나... 마르크스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 이유를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했는 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전기 차폐(靜電氣 遮蔽)라고 들어봤겠지? 전기장을 차단시키는 것을 뜻 하는 말이 정전기 차폐다. 예를 들어 자동차 위에 벼락이 떨어지면 자동차 위로 쏟아져 들어온 전자들이 서로 반발하여 금속의 바깥쪽 부분으로 퍼져 나가다가 결국 접지되어 있는 타이어를 통해 방전되지. 자동차 내부에는 전기장이 생기지 않아. 그래서 자동차 안의 사람은 번개가 쳐도 안전한 거 지. 그것과 마찬가지다. 용린검기는 자동차의 역할을 하는거지. 아무리 수 백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흘러도 내 몸에는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소리다." 나원... 누가 물리 선생 아니랄까봐 더럽게 길게 설명하는구만... 젠장... 이제 어떻게 해야되지? 내부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다른 마법이...! 《텔레포트를 응용하면...》 실프가 나에게 말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무시무시한 공격 방법 이 내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것은 정말 가공할 공격법이었다.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가 머리가 날아간 경찰관의 제복에서 배지 하나를 떼어냈다. 그것을 보고 마르크스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크크... 배지를 들고 뭐할려고? 드디어 너도 정신이 돌아버린 건가?" 난 배지를 손에 집어들고 마르크스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나의 공명을 유도했다. 마르크스는 배지를 들고 뚫어져라 쳐다만 보는 날 비웃었 다. "크크... 얌전히 죽음을 맞겠다는 뜻인가? 그러면 재미없지~ 좀더 발악을 해보라고." 마르크스의 손바닥 앞에 모인 검기가 마구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떤 공격인지를 알고 있는 나는 급히 텔레포트로 그 자리를 피했다. 콰앙ㅡ! 내가 텔레포트를 하자마자 내가 서 있던 자리가 완전히 뭉개졌다. 아래층으 로 내려가는 계단조차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버렸다. 난 마르크스의 왼쪽 옆에 모습을 나타냈다. 마르크스는 옆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날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이 기술의 이름이 떠올랐다. 바로 하늘을 놀라게 하는 검기, 경천검 기(驚天劍氣)!" 또다시 마르크스의 검기가 요동을 쳤다. 난 다시 텔레포트를 해서 그 자리 를 피했다. 파파팍! 이번엔 내가 있던 자리가 예리한 검기에 의해 갈가리 잘려져 나갔다. 난 마 르크스의 오른쪽에 모습을 나타냈다. 마르크스가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공격을 해야했다. "후후, 생쥐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군. 하지만 언제까지 피해다닐 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이번에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아주 고난이도의 공격을. "자, 또 피해봐라!" 마르크스가 날 향해 경천검기를 발동시켰다. 난 또다시 텔레포트를 했다. 내가 있던 자리가 완전히 붕괴되었을 때, 난 남은 마력을 짜내어 마음 속으 로 텔레포트의 주문을 외웠다.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여, 다른 이에게 공간의 문을 열어달라!' 텔레포트를 하는 중간에 또다시 사물을 이동시키는 텔레포트를 했기 때문에 난 이동 목표로 했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데에 떨어졌다. 그곳은 무너진 계 단이었다. 쿵! "큭!" 등이 굉장히 따끔했다. 계단의 잔해가 내 등에 상처를 낸 것 같았다. 난 마 르크스가 어떻게 됐는지 보려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력과 정신력이 모두 고갈된 상태였던 것이다. "크으윽...!" 2층에서 마르크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마르크스의 거대 한 몸이 내 옆에 곤두박질쳤다. 콰앙! 마르크스가 떨어진 덕분에 계단의 파편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여기저기 에 자잘한 상처가 생겼다. 마르크스는 계단의 잔해 위에 엎드린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얼굴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크으으... 도대체... 네 몸에 무슨 짓을 한... 커억!" 마르크스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난 씨익 웃으며 그 물음에 대답했다. "네 녀석 심장에다 그 배지를 텔레포트 시켰거든." "크윽! 그런 말도 안되는...!" 마르크스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난 조용히 마르크스의 최후를 감상 했다. 피를 토하며 몸부림치던 마르크스는 30초도 채 못되어 숨을 거두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던 마르크스는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후후... 역시 가능했어... 사람 몸 속에다 사물을 텔레포트 시킨다는 것... 뭐, 사람이 텔레포트하는 것도 결국 공기라는 물건 속을 왔다갔다하는 거니 까. 어쨌든... 저 가공할 인간을 죽였으니 이제 남은 건 플라톤 뿐인가...? 흘... 졸음이 오는군... 여기서 자면 영원히 안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졸 려... ━━━━━━━━━━━━━━━━━━━━━━━━━━━━━━━━━━━ 출처는 유니 환동,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시간 나시면 감상(혹은 비평)한번 날려주심이....? 번 호 : 6871 / 6875 등록일 : 2000년 02월 25일 23:04 등록자 : THEBUR 조 회 : 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1.기억의 혼재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기억의 혼재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61 게 시 일 :00/02/25 11:41:48 수 정 일 : 크 기 :9.4K 조회횟수 :47 <제 8 장> 기억의 혼재 음... 여기가 어디지? 왠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데...? “......” 난 눈을 떳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그리고 난 어떤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내 입에는 산소 호흡기가 부착되어 있었고 내 오른쪽 팔에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지금 병원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흘... 역시 그 기분나쁜 냄새는 병원 냄새였어... 정말 병원은 싫어~ 무서 버~ “아, 깨어났구나!” 꽤 젊게 들리는 여자 목소리였다. 난 보지 않고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간 호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간호사는 내 얼굴에서 산소 호흡기를 떼어낸 후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예... 병원인 것 같은데...” “네 이름 기억하지?” “예...” 흘... 당연한 질문을 하는구만... 그나저나 이 주사 바늘은 떼낼 수 없나? “저... 이 주사 떼내도 돼요?” “응? 아, 좀더 하고 있어.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니까.”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진찰 기록하는 것 같은 종이에다 무엇인가를 쓰더 니 곧 병실을 나갔다. 난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르 크스와의 일을 떠올렸다. 앗... 그러고 보니... 마르크스가 일으킨 사건은 모두 어떻게 처리됐을까? 거의 엽기적인 살인 사건인데... 경찰들도 많이 죽고... 매스컴에서 대대적 으로 다루지 않을까? 설마 내 얼굴이 뉴스에 나가는 건 아닐테지? “후...” 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팔뚝에 박혀있던 주사 바늘을 떼어 냈다. 내 몸에는 여기저기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무너진 계단의 잔해 위로 떨어졌을 때 생긴 자잘한 상처들 같았다. 그래도 얼굴에는 상처가 없는 것은 다행이었다. 가뜩이나 못생긴 얼굴 더 망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덜컥! 내가 침대에 막 내려서려 할 때 병실 문이 열렸다. 곧이어 나이든 남자 의 사 한 명과 방금 전에 나갔던 그 젊은 간호사 한 명, 그리고 어머니가 들어 왔다. 어머니는 침대에 앉아있는 날 보고 급히 다가와 물었다. “몸은 괜찮니?” “네...” “그래, 다행이구나...” 어머니는 날 끌어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들어 보이는 의사가 나 에게 물음을 던졌다. “걸을 수 있을 것 같나?” “에...” 난 침대에 내려섰다. 일어서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리고 약간 부자연스러웠지만 걸을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의사는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정신만 잃었던 것 같군요.” 난 의사에게 말했다. “퇴원하고 싶은데요.” “알겠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어머니는 퇴원 수속을 밟으러 어떤 방 안으 로 들어갔고, 퇴원 수속을 마치고 나서 바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증이 떠올라 어머니에게 물었다. “근데 어떻게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안 거예요?” “아, 어떤 사람이 전화해 주더라. 네가 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얼레? 어떤 사람? 난 내 신분을 증명해 줄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도대체 내가 누군줄 알고 전화를 했다는 거지? 그 어떤 사람이란 대체...!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TV를 켰다. 혹시 이번 사건이 뉴스에 나왔는지 알아 볼 생각이었다. 시각은 저녁 9시였기 때문에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틀었던 채널에서 마르크스가 저지른 일을 다루고 있는 중이었다. 『...에서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일반인 5명이 죽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경찰관 4명이 사망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자 화면은 키레네의 집 안을 비추었다. 여기저기 선혈 이 낭자한 모습이었는데 모자이크 처리를 해서 정확한 식별은 할 수 없었다. 『현재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살인을 저질렀는지, 심지어 는 어떤 흉기를 사용했는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사건 현장에 살아 있던 사람은 신모 양과 아들 뿐이었다고 합니다...』 얼레? 신모 양이라면 키레네일테고... 그 아들은 키레네의 아들인 게 확실 한데... 어째 내가 없다? 따르르릉ㅡ 그때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전화 를 받았다. “여보세요.” 《거기 권강한 군 집이죠?》 얼라리? 이 굵직한 목소리의 아저씨는 누구길래 내 이름을? “전데요.” 《아, 권강한 군인가? 병원에 물어보니까 퇴원했다길래 이렇게 전화한거야. 전화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이번 경찰 살인 사건에 대해 물어볼 게 좀 있 어서 그래.》 경찰 살인 사건이라면... 마르크스가 일으킨 사건 말인가? 설마... 이 아저 씨 형사? “전 왜요?” 《자네도 그곳에 있었으니까 그렇지.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헐... 그랬나? 그래서 뉴스에서 날 빼먹은 거로군. 《내일 어디 나갈 데 없지?》 “없는데요.” 《좋아, 그럼 내일 내가 직접 찾아갈테니까 집에 있으라고.》 “예...” 《내일 보자구.》 달칵ㅡ 뚜우뚜우ㅡ 형사 아저씨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저녁 준비를 하던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누구 전화니?” “형사일 거예요. 물어볼 게 있다면서 내일 오겠대요.” “아, 그 형사겠구나.” 어머니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 형사가 어머니를 찾아온 것 같았다. 아마도 그 형사는 나를 통해 사건의 경위를 듣 고자 할 생각일 것이다. 흠...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을까? 곧이 곧대로 마르크스가 검기로 그 경찰 들이 싸그리 죽여버렸다고 해봤자 믿어주지도 않을텐데... 이런... 전혀 대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만... 역시 아무 것도 모른다고 딱 잡아 떼야겠어~ “밥 먹어라.” “예.”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고 나서 난 밥을 먹었다. 마르크스의 검기에 베인 왼 팔이 제일 따끔거렸지만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난 오른손잡이라 왼손 쓸 일 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른손잡이지만. 30분 정도 걸려 밥을 다 먹은 나는 이를 닦고 나서 컴퓨터를 부팅했다. 밥 먹고 나서 컴퓨터를 하는 것이 거의 버릇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 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PC통신에 접속했다. 《신착 편지가 있습니다. 읽어보시겠습니까?》 통신에 접속하자마자 뜨는 메세지 창. 난‘예’를 클릭했다. 그 편지는 ID 가‘idea’인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즉, 플라톤이 보낸 편지였던 것이다. [나 플라톤이다. 네가 어떻게 병원에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지금 쪽지 보내 라. 난 계속 접속 중이다.] 얼레? 계속 접속 중? 설마 이 녀석 전용선 깐거야? 으윽... 부러운 녀석! 탁탁탁ㅡ! [나 니트다. 쪽지 받으면 일대일 대화창 띄워라.] 난 그렇게 플라톤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러자 30초도 안 되어 플라톤으로부터 답쪽이 왔다. [밥먹는데 쪽지 보내다니... 어쨌든 일대일 대화하겠다.] 그 쪽지를 다 읽자마자 일대일 대화창이 떴다. 창이 뜨자마자 난 바로 키보 드를 두드렸다. [☞내가 어떻게 병원에 있었던 거지?] [그건 119구급 대원들이 병원에 보냈으니까 그런거다.] [☞그럼 내가 병원에 있다는 걸 엄마는 어떻게 안 거야?] [당연히 내가 연락했으니까 그렇지.] 얼라리여? 플라톤이 어머니에게 연락했다고? [☞넌 어떻게 내가 그 병원에 있다는 걸 알았어?] [그거야 믿을 만한 정보통이 있으니까 그렇다.] 믿을 만한 정보통? 플라톤에게 그런 정보망이 있나? [마르크스가 너에게 죽었다는 걸 안다.] 헉...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마르크스를 봤냐?] [아니. 본 적은 없다. 단지 경찰 머리를 두부 자르듯 날려버릴 수 있는 인 간은 마르크스 밖에 없으니까 그런 살인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마르크스라 는 건 자명하지.] 허걱... 플라톤 녀석, 그 사이에 타자 속도가 빨라지다니! [☞도대체 넌 어떤 위치길래 그런 정보들을 알고 있는거야?] [아, 간단해. 내 친구 녀석 중에는 그쪽 구역 경찰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 이 나한테 가르쳐 준거다. 사건에 대해서 말이야. 목이 깨끗이 잘린 시체 가 있다고 해서 마르크스의 짓이라고 생각했지. 근데 신원을 알 수 없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길래 너일 것 같아서 너네 어머니에게 네가 입원한 병원 위치를 알려준 거다.] 헐... 경찰 중에 친구가 있다니... 꽤 든든한 백을 가지고 있구만... [☞근데 우리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냐?] [그거야 간단하다. 네 ID로 접속해서 네 녀석에 대한 신상 정보를 얻었거든.] 허거걱?!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단 말이야?] [비밀번호쯤이야 뻔하지. 나 같은 해킹 천재가 그런 것쯤 못 맞출 것 같나?] 으윽... 아무래도 지금 당장 ID의 비밀번호를 바꿔버려야 겠어... [☞너, 내 아뒤로 유료 서비스 쓰진 않았겠지?] [허허, 난 그런 유치한 짓은 안해.] 푸휴휴... 그건 다행이군... 하마터면 내가 쓰지도 않았는데 돈낼 뻔했다... [하여튼 놀라워. 자네가 마르크스를 죽이다니 말이야.] [☞마르크스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쥐~] [이제 나와 자네의 대결로 압축되었군. 곧 만나게 될 거네. 그동안 열심히 마법 수련이나 하게나.] [☞헐헐, 넌 나보다 클래스가 낮잖아? 너나 열심히 해~] [과연 그럴까? 어쨌든 이제 기억의 혼재가 찾아올테니 조심하라고. 아, 물 론 자네 얘기가 아니라 자네와 인연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 말이네.] ... 전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구만... 저번에도‘끈’이란 말을 하더니 이번에도 하는군... [☞자꾸 끈, 끈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뭔 상관이냐?] [이런... 아직 초끈 이론을 보지 않았나?] [☞봤어. 봐도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깊이 알 필요는 없어. 중요한 것은 초끈 이론 중에서‘끈’과‘차원의 말 림’이다. 그것만 대강 알고 있으면 나중에 내가 설명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끈과 차원의 말림? 저번에 초끈 이론을 찾아볼 때 봤던 것이긴 하지만... 그게 플라톤의 계획과 무슨 상관이 있는거지? 전혀 모르겠어... 너무 난해해 ... [☞잠깐, 근데 기억의 혼재가 찾아온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차원 융합의 중심체인 나와, 붉은 구슬의 매개체인 너를 제 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두 세계에서의 기억 공존으로 심리적인 불안을 겪게 된다. 심하면 정신 분열에까지 이를 수 있지.] 정신... 분열? [사람들에게 정신 분열을 겪게 하고 싶지 않으면 넌 그 세계에 있을 때 인 연의 끈이 닿았던 사람들과 접촉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방에 처박혀 살 아야 된다는 소리지.] 무슨 헛소리인지... [언젠가 너와 나도 만날 것이다. 그때 넌 아마 날 방해하려 하겠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후후.] [☞네 녀석 하는 일이 좋을 리가 없으니까 당연히 방해한다!] [호... 아주 편협한 생각이군. 어쨌든 다음에 보자고. 난 밥 먹어야 되니까.] 《일대일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어쩔씨구리... 감히 사라진다 이거지? 하여간 플라톤 녀석은 만날 장소나 그런 걸 전혀 안 정해... 아차, 빨리 비밀번호나 바꿔야겠다!!! ━━━━━━━━━━━━━━━━━━━━━━━━━━━━━━━━━━━ 번 호 : 6872 / 6875 등록일 : 2000년 02월 25일 23:05 등록자 : THEBUR 조 회 : 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2.기억의 혼재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22.기억의 혼재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62 게 시 일 :00/02/25 11:42:09 수 정 일 : 크 기 :10.6K 조회횟수 :36 띵동띵동ㅡ 누가 초인종을 눌렀고 난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고 물었다. “누구세요?” 《전경철 형사입니다.》 얼레? 아직 정오도 안 됐는데 벌써 오네? 난 오후 쯤에나 올 줄 알았더니? 철컥ㅡ 난 집문을 열어주었다. 밖에는 40대 중반 나이의 약간 배가 나온 형사 아저 씨가 서 있었다. 전경철이라는 이름의 형사 아저씨는 날 보더니 대뜸 말을 걸었다. “네가 권강한이지?” “예.” “들어가도 되지?” “들어오세요.” 형사 아저씨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하는 말, “너희집에는 에어콘도 없냐?” 흘... 누구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있는 거라곤 10년된 선풍기 두 대 뿐이 야... 부채 여러 개도 있지만... “흠... 부모님은 안 계시냐?” “모두 나가셨는데요.” “맞벌이시냐?” “예.” “음, 그랬구나.” 형사 아저씨는 거실 바로 옆에 있는 방에 앉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도 앉아라. 어제 사건에 대해 몇가지 물어봐야 되니까.” “예...” 난 그 형사 아저씨와 마주보고 앉았다. 내가 앉자 형사 아저씨는 나에게 질 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넌 왜 그 집 안에 있었냐?” “제 옆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가 데려왔는데요.” “네 옆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 그게... 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그 키 큰 녀석 말이지?” “예.” “그 녀석이 널 왜 데려갔는데?” 흘... 뭐라고 대답하지? 이런... 대답할 말이 마땅치가 않구만... 그냥 대 충 얼버무려야지~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는데 그냥 저보고 같이 가자고 하더라구요.” “그래? 너 그 녀석과 아는 사이냐?” 흠... 안다고 할 수도 없고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애매하구만... 뭐 이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니까 모른다고 대답해야겠다. “아니요.” “모르는 사람을 데려갔다라... 그럼 인질인가?” 헐헐... 내가 인질? 난 그냥 구경꾼으로 갔다가 들러리 기사가 되버렸을 뿐 이라우... 뭐, 마르크스 녀석은 나 같은 들러리 기사, 아니 들러리 마법사에 게 당한 머저리가 되버렸고. “근데 형사님.” “왜?” “그 남자의 신원은 알아냈어요?” “네 옆에 쓰러져 있던 사람?” “예.” 난 고개를 끄덕였고 형사 아저씨는 수첩을 꺼내들더니 입을 열었다. “알아냈어. 그 녀석의 옷에 주민등록증이 들어있었거든. 이름은 김동문. 나 이는 36살. 직업은 고등학교 물리 교사. 흥미로운 사실은 그 사람이 한때 대기업 딸과 열애했다는 거야.” 음... 대기업 딸이라면 키레네를 말하는 건가? “너 그때 상황을 기억하고 있냐?” 형사 아저씨는 볼펜을 들고 내 말을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난 잠시 갈등했 다. 사실 그대로 얘기하면 절대로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말할까요, 모른다고 할까요?” 내 말에 형사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댔다. “당연히 사실대로 말해야지, 임마!” “사실대로 말하면 안 믿어줄 게 뻔한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우선 대략적인 사건 경위부터 말할게요.” 형사 아저씨는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날 째려보았다. 난 그에 구애받지 않고 사건 경위를 들려주었다. “먼저 버스 정류장에서 그 아저씨를 만났고, 그 아저씨는 경찰차를 탈취해 서 저를 데리고 그 큰 집에 갔어요. 그 다음에 거기있는 사람들을 아저씨 가 줄줄이 죽이고 경찰들까지 죽인 후에 갑자기 쓰러져 죽었죠.” “......” 형사 아저씨의 얼굴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형사 아저씨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임마! 그건 나도 알아! 내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그 녀석이 경찰차를 탈 취하고 경찰들을 죽였는지란 말이야!” “그건... 말하기가 곤란한데요.” “......” 형사 아저씨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가만히 있다간 맞을 것 같아서 난 재빨리 입을 열었다. “말하고 나서 절 미친 놈이라고 하면 안돼요?” “... 내가 보기엔 지금 네 상태도 미친 것 같다, 임마.” 우씨... 말하지 말아버려? “그 아저씨가 경찰차를 탈취한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간단?” “예. 자기가 타고 온 차를 두 쪽 낸 다음에 경찰들이 쏜 총을 몇 발 맞아주 죠. 경찰들은 총을 쏴도 그 아저씨가 전혀 쓰러지지 않으니까 넋이 나가버 렸어요. 그 사이에 그 아저씨는 절 데리고 경찰차를 탈취한 거죠.” “차를 어떻게 두 쪽 낸다는 거냐? 그리고 총 맞고 멀쩡한 사람이 어딨어?” 형사 아저씨는 화를 내듯 물었다. 난 그저 목격자인 것처럼 얘기했다. “그 아저씨의 몸에는 파란색의 빛이 났어요. 그것 때문에 총알이 튕겨져 나 갔죠. 차를 두 쪽 낼 때도 그 푸른빛을 이용했구요.” “... 거기에 있던 경찰 놈들하고 똑같은 얘기구만...” 형사 아저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 전혀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 었다. 계속 얘기해봤자 내 입만 아플 것 같아서 난 입을 다물었다. 형사 아 저씨는 수첩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어떻게 경찰들 머리가 깨끗이 잘릴 수가 있냐고... 집에는 머리를 단번에 자를 만한 흉기가 없었는데...!” 당연하지... 마르크스는 검기로 목을 베어버렸으니까. “게다가 그 녀석은 심장에 경찰 배지가 박힌 채로 뒈져버렸고... 나원... 어떻게 심장 속에 경찰 배지가 들어가 있었던 거야? 그 놈은 심장 질환도 없었고... 수술 받은 적도 없었는데 말이야... 수술하다가 의사들이 실수 로 심장 속에다 그걸 집어넣었다고 쳐도... 하필이면 왜 경찰 배지냐고... 이해가 안가!” 헐헐... 심장 속에 경찰 배지가 박혀있어서 헷갈리겠구만... 뭐 당시에는 그것밖에 손에 안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 너무 큰 물건은 텔레포트 할 때 더 힘이 드니까. 물론 아주 작은 물건은 큰 물건을 텔레포트 할 때보 다 더 많은 마력이 들긴 하지만. “참, 형사님. 그 집에 있던 그 아줌마는 어때요?” “아, 그 여자? 다친 데는 거의 없는데... 정신 이상의 기미가 보여. 그래서 지금은 정신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지. 하긴, 사람이 여러 명 죽는 그 끔찍 한 광경을 봤을 텐데 멀쩡하면 비정상이겠지...” 얼레? 그 광경을 본 나는 멀쩡한데... 그렇다면 내가 비정상이라는 뜻? “잠깐! 너도 그 살인 장면을 봤을텐데... 안 미쳤냐?” 이 아저씨가...? “전 멀쩡해요.” “그래?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너도 정신 병원에 가보는 게 어떠냐? 치료비 는 내가 대줄께.” 흘... 이 아저씨가 지금 나한테 죽을려고 발버둥을 치는군... “괜찮아요. 근데 사건 당시에 제 신원을 어떻게 파악하셨어요?” “그거? 어떤 익명의 제보자가 가르쳐 주더라.” 익명의 제보자라... 역시 플라톤이겠군. “아, 빌어먹을... 너한테 물으면 뭔가 알아내겠구나 해서 왔는데... 전혀 알아낸 게 없으니... 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겠구만...” 흘흘...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못 풀거유... 내가 장 담하지. “근데 말이야... 너 여자 친구있냐?” 그 물음을 시작으로 형사 아저씨는 나에게 극히 개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 했다. 사건에 대해서는 더이상 건질 게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몇가지의 사적인 질문을 하던 형사 아저씨는 정오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있어라. 혹시 그 사건에 대해 뭔가 알려주고 싶은 게 있으면 여기 전화 번호로 연락하고.” “예.” 난 형사 아저씨가 건네주는 종이쪽지를 받아들었다. 형사 아저씨는 종이쪽 지를 건네주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나한테 농담을 던졌다. “나한테 15살된 딸이 있는데 소개시켜주랴?” 흘... 그 얼굴을 보니 그 딸을 알겠수다... “아뇨, 괜찮아요.” “언제라도 생각있으면 그리로 연락해라. 그럼 잘 지내라.”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한 형사 아저씨는 유유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난 더이상 배웅하지 않고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형사 아저씨가 아파트 단 지를 완전히 빠져나가고 난 뒤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따르르릉ㅡ 얼레? 내가 안에 들어오는 그 순간을 맞춰 절묘하게 울리는구만... 보나마 나 장난 전화겠지 뭐. 철컥ㅡ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장난 전화야... 근데 지금까지 걸려온 장난 전화는 내가 받자마자 그냥 끊던데... 이번엔 아예 묵비권 행사인가? 뭐, 내가 끊으 면 그만이지.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봐주지. 헐헐. “누구세요?” 《... 오빠...》 얼라리? 이 목소리는... 인티인가? 얘가 무슨 일로 전화했지? 설마 어제 일 어난 사건에 대해 물어보려고?! 《수능 끝나기 전까지는 연락 안 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연락해서 죄송 해요... 공부에 방해됐죠...?》 “아니, 지금은 쉬고 있거든.” 흘... 이건 마치 지금까지 공부하다가 잠시 쉬고 있는 것 같은 말이잖아? “근데 무슨 일로 전화한거야?” 《그게...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될까요...?》 에? 만나서? “나야 상관없지만... 어디서 만나려고?” 《전에 만났던 영광 교회... 앞으로 해요... 오늘 오후 2시로 해도 돼죠...?》 “알았어. 근데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만나서... 말씀드릴게요... 그럼... 끊을게요...》 “그래. 2시에 보자.” 《네...》 달칵ㅡ 뚜우뚜우ㅡ 인티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왠지 어떤 두려움에 떨 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급히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곧장 약속 장소인 영광 교회로 향했다. 약 1시간 후에 영광 교회 앞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온 것 이었는데 인티는 벌써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난 인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 다. “안녕.” “아, 오빠...” 인티는 억지로 빙긋 웃었다. 그러나 얼굴 표정은 한눈에 봐도 어두웠다. 태 양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얘기할 수는 없어서 나와 인티는 전에 들렀던 패스 트 푸드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구석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나서 난 인티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 인티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인티가 입을 열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하자 마침내 인티가 입을 열었다. “오빠는... 한 명인가요...?” 얼레? 무슨 소리냐...? “전... 둘이예요... 인티면서... 한미영이죠...” 인티는 진지했다. 분위기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난 조 용히 있었다. 인티는 계속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전 헷갈려요... 과연 둘 중에 누가 저 자신인지... 둘다 인지... 아니면 둘다 아닌지...” “......” “처음엔... 뭐랄까... 인티로서의 기억이 더 강렬했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그랬어요... 그래서 제게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부유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좋기만 했죠... 근데... 지금은... 그것들이 왠지 부담스러워요... 인티는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그래서 생활 방식이 한미영과는 많이 다 른데...” “......” “인티와 한미영과는 비슷한 점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점도 있죠... 그래 서... 혼란스러워요... 성격 차이가 나는 부분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말이예요...” 인티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난 인티에게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단지 내 머리 속으로 어제 통신에서 플라톤이 했던 말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ㅡ 어쨌든 이제 기억의 혼재가 찾아올테니 조심하라고. 아, 물론 자네 얘기 가 아니라 자네와 인연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 말이네... 기억의 혼재... 그것은 인티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건가? 두 세 계에서의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두 사 람의 기억 융합... “전...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요...? 이대로 있다간... 제 자신이 무너질 것 만 같아요...” 인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난 뭐라고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인 티는 내 생각보다 더 심각하게 기억의 혼재를 겪는 것 같았다. 난... 전혀 기억의 혼재 같은 걸 겪고 있지 않다... 뭐랄까... 부드럽게 기 억이 서로 연결된다고나 할까? 뭐, 환타지 세계에 떨어졌을 때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생활했으니까 기억의 혼재가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 른다. 하지만... 인티나 아린 등은 이곳을 전혀 몰랐다. 플라톤이 삼성물을 통해 이 세계로 건너온 뒤, 그들은 어느 순간 이곳에 있던 사람과 기억이 융 합되었을 뿐이다. 마치 기억을 억지로 연결해 놓은 것처럼. ━━━━━━━━━━━━━━━━━━━━━━━━━━━━━━━━━━━ 번 호 : 6873 / 6875 등록일 : 2000년 02월 25일 23:06 등록자 : THEBUR 조 회 : 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3.기억의 혼재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3.기억의 혼재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63 게 시 일 :00/02/25 11:42:34 수 정 일 : 크 기 :10.0K 조회횟수 :40 “오빠는... 그런 것을 겪지 않아요...?” 인티가 눈물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환타지 세계에 떨어졌을 때부터 이곳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생활 했으니까. 그다지 헷갈리는 일은 없어.” “그렇군요...” 인티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 것도 시키지 않고 얘기만 하는 우리 들을 주위 사람들이 가끔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지만 난 그들에게 신 경쓰지 않았다. 어떻게하면 인티를 위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거죠...? 모두... 차원을 이동했기 때문인가요...?” “아마도...” “그럼... 그들은 어떻게 됐죠...?” “그들?” “마르크스하고... 다른 두 사람 말이예요...” 흘... 마르크스만 기억하는 모양이구만. 하긴, 인티의 조국을 멸망시킨 인 간이 마르크스니까 그 이름만큼은 기억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사실대로 말해 야 하나? 흠... 역시 그냥 얼렁뚱땅 넘기는 게 좋겠군. “글쎄...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 그들 때문에... 그들 때문에 저와 아린 언니는... 두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생활해야만 해요...” 인티는 주먹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몸을 떨었다. 인티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우선 되는대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그때 내가 그 녀석들에게 붉은 구슬을 넘겨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 은 없었을텐데...” “... 그렇지 않아요. 당시에는 그들을 막을 힘이 우리에겐 없었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난 그때 정령들을 부를 수 없었으니까. 만약 정령들을 부를 수 있었다면 과연 마르크스들과의 싸움은 어떻게 됐을까... 흠... 바로 졌겠군. 내가 공격했다면 마르크스는 용린검기를 썼을 테니까. 역시 고분고 분 붉은 구슬 내주길 잘했어~ “아, 죄송해요. 계속 제 넋두리만 늘어놓구...” 인티는 슬쩍 눈물을 훔쳐내며 억지로 미소지어 보였다. 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서 먹을 거 고르자.” “네.” 다행히 인티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둘은 저번 과 마찬가지로 햄버거를 시켜먹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 난 인티에게 이렇게 말했다. “힘들 때는 언제라도 날 불러. 알았지?” “... 고마워요.” 인티는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마을 버스를 타고 사라지는 인티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억의 혼재를 거의 겪고 있지 않는 나로서는 인티를 위로해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차 라리 내가 인티 대신 기억의 혼재를 겪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몰랐다. 생각없 이 사는 내가 인티보다 그런 것에 좀더 잘 견딜테니까. 집에 돌아온 후, 난 거실 옆방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오후 4시였기 때문에 TV에서도 재미있는 것은 방송하지 않았다. 그래서 낮잠이나 자려고 눈을 붙 였다. ‘......’ 문득 정령들 생각이 났다. 마르크스에 의해 모두 소멸해버린 내 정령들. 생 각해보면 어이없는 일이었다. 마르크스 단 한 사람에 의해 다섯 정령들이 소 멸해버렸으니까. ‘정령계의 문이여, 열려라.’ 난 마음 속으로 그렇게 말했고, 내 정신은 곧장 정령계 안으로 들어갔다. 정령계는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산과 강, 푸른 하늘, 아름답게 핀 꽃들. 그리고 수많은 정령들이 정령계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도. 단지 나와 계약을 맺었던 다섯 하급 정령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뿐이었다. ...... 그때 상급 정령들이 소리없이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난 그 상급 정령들 중 에서 불의 상급 정령인 갈리노에게 말을 걸었다. ‘정령신을 만나고 싶은데.’ 온몸이 시뻘건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만 빼면 완전히 티라노 사우루 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갈리노는 내 말에 꽤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ㅡ 정령신? 나에겐 그 분을 부를 자격이 없다. 정령왕들을 찾아가봐라. ‘그럼 정령왕이나 불러.’ ㅡ ... 알았다. 잠깐 기다려라. 갈리노는 군말없이 내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곧 모습을 감추었다. 잠시후, 불의 정령왕인 블라레임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 세계로 와서 옥신과 싸웠을 때 내 정령들이 물리쳤던 바로 그 정령왕이었다. 정령왕은 하나밖에 없기 때 문이다. ㅡ 흥. 너인가? 건방지게 날 부른 녀석이? 불꽃 인간 모습의 블라레임은 아니꼬운 어투로 말했다. 난 거두절미하고 본 론만 얘기했다. ‘정령신 데려와.’ ㅡ 후후, 인간이 정령신을 만나려고? 정령신이 너같은 하찮은 인간을 만나 주실 것 같나? 블라레임은 날 비꼬았다. 전에 내 하급 정령에게 당했던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난 블라레임의 화를 북돋기 위해서 블라레임이 하급 정령에게 당했 다는 것을 크게 떠들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을 다물 었다. 《자네가 날 만나자고 했나?》 ㅡ 저, 정령신님! 그 목소리를 들은 블라레임이 화들짝 놀랬다. 난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정령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는 여전히 여러 정령들이 활 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불의 정령왕은 잠시 물러나 있게.》 ㅡ 아, 알겠습니다... 블라레임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급히 모습을 감추었다. 난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계속 주위를 둘러 보자 그 정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찾아도 없네. 난 이 정령계 자체니까.》 에? 정령계 자체? 《그렇네. 자네가 보고 있는 자연,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지.》 헐... 정령계를 이루고 있는 산, 강 등등이 정령신 자체라고라? 뜻밖인데?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날 만나고자 한건가?》 정령신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묘한 목소리였다. 단 지 목소리가 굵은 걸로 봐서 정령신은 남자의 성향을 가진 듯했다. ‘내 정령들이 모두 소멸한 게 확실합니까?’ 나도 모르게 생각조차 존댓말로 하고 말았다. 정령계로 들어오기 전에는 그 냥 반말로 나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정령신의 목소리를 듣고 보니 그럴 마음 이 싹 사라져버린 것이다. 《유감이지만 그렇다네. 자네가 현재 살고 있는 그 세계는 많이 오염됐지. 그래서 정령들의 힘이 많이 약화되네. 그런 상황에서 검기를 정통으로 맞 았으니 살아남을 리가 없지.》 흘... 다 알고 있구만. 하긴, 그런 걸 모르면 정령신이라 할 수도 없겠지. 하여튼 이걸로 내 정령들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게 확실해졌구만. 제길... 《자네는 다른 정령들과 계약할 생각없나? 자네 능력이라면 정령왕과도 충분 히 계약할 수 있는데.》 ... 하고 싶은 생각없수다. 《언젠가 정령들이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르잖나.》 물론 그럴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라우. 《... 알겠네.》 정령신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내 정령들이 완전히 소멸됐다는 것을 확인했 기 때문에 난 바로 정령계에서 나왔다. 그렇게 잠시 정령계에 들렀던 나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러다가 문득 플라톤의 말이 떠올랐 다. ㅡ 곧 만나게 될거네. 그동안 열심히 마법 수련이나 하게나... 흠... 그 녀석 말대로 마법 수련이나 해야겠군. 정령을 소환해서 공격하면 간단히 이기겠지만... 플라톤 녀석은 워낙 교활하니까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놓겠지. 결국 마법 대결로 좁혀질 것 같으니까... 마법으로 그 녀석을 저승으로 보내줘야겠다. 먼저 저 세상에 간 옥신과 마르크스도 플라톤이 어 서 황천길에 오르길 바라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띵동띵동ㅡ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을 보니 어머니였기 때문에 문을 열었다. 어 머니의 손에는 많은 음식 거리들이 들려있었다. “오늘은 새우 튀김이나 해먹자.” 허걱? 새우 튀김? 난 튀김 요리는 싫은데... 치지지직ㅡ 어머니는 새우 튀김을 만들기 시작했다. 난 TV를 보면서 할일없이 빈둥거렸 다. TV 뉴스에서는 더이상 마르크스가 저지른 사건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수사에 진척이 없으니 기사 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은 직접 당한 피해자나 그걸 본 목격자들 외에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리라. “자, 밥 먹어라.” 어느새 저녁 준비를 끝낸 어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난 밥상 앞에 앉았다. 새우에다 밀가루를 입힌 새우 튀김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어머니는 내가 새우 튀김을 뚫어져라 쳐다보자 입을 열었다. “먹어. 맛있어.” 흘... 별로 맛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난 밀가루 음식 먹기 싫어... 라면 을 하도 많이 먹어서 밀가루는 보는 것만으로도 질린단 말이여... “......!” 새우 튀김을 보며 한숨짓던 내 머리 속에 마르크스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ㅡ 난 검기를 내 몸 위에 얹어놓은 것이다. 즉, 검기의 갑옷을 입은 거지! 검기의 갑옷... 밀가루를 입힌 새우 튀김은 새우가 밀가루를 입은 것과 같 다... 그렇다면... 마나를 옷처럼 입는다면... 8클래스 이상의 마나 축적이 가능하지 않을까...? “왜 안 먹어?” 내가 멀뚱멀뚱 새우 튀김만 쳐다볼 때 어머니가 화내듯 말했다. 난 군말없 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그 생각을 유지하려고 애쓰면서. “그만 먹을래요.” 밥그릇에 담긴 밥이 삼분의 일 정도 남자 난 그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어머니가 꾸짖는 어투로 나에게 말했다. “애기들도 너보다는 많이 먹겠다!” “......”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곧장 내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바닥에 정 좌를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마나 축적을 하기 위해서였다. “......” 마나를 느끼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난 마르크스의 용린검기와 새우 튀김을 떠올렸다. 마나를 내 몸속에 축적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몸 밖에 축적시킬 생각이었다. 외부에 있던 마나를 우선 가슴 쪽에다 끌어모았다. 그리고 가슴 앞에서 마 나를 축적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나는 모이기가 무섭게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계속 마나의 축적을 시도했다. 8클 래스 이상의 마나를 축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은 이상, 그것을 실현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시계를 쳐다보니 벌써 밤 10시였다. 거의 4시간 동안 마나 축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아진 마나는 1클래스의 7할 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마저도 몸 속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배 나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내일 아침에는 가 슴 앞에다 모아 놓은 마나가 몽땅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후우...” 4시간 동안 마나 축적을 했기 때문인지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배가 고팠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온 과자를 꺼내 먹었다. 그것을 본 어머니 왈, “밥은 안 먹고 과자만 먹냐?” 흘... 밥보다는 과자가 훨씬 낫지~ 욱... 근데 이 과자는 맛이 별로다... “근데 오늘 형사가 왔니?”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난 지극히 사실대로 답했다. “왔었는데 그냥 갔어요.” “너한테 뭐 물어보대?” “몇 개 물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서 대답 못했죠.” “그래? 음... 그 일로 충격받거나 그런 건 아니지?” 어머니는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고 난 거짓말로 둘러댔다. “본 게 있어야 충격을 받죠.” 그리고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내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내가 컴퓨 터를 켜자 어머니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난 문을 닫고 컴퓨터로 음악을 틀 어놓았다. 이렇게 음악을 틀어놓으면 어머니는 내 방에 왠만하면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생기게 된다. 흠... 이제부터 음악을 들으면서 마나 축적이나 해볼까나? 최대한 빠른 시 간 내에 내 몸 바깥에 1클래스를 축적한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 반드 시 이룩해서 플라톤이 다시는 날 깔보지 못하게 해주겠다! 흐흐흐! ━━━━━━━━━━━━━━━━━━━━━━━━━━━━━━━━━━━ 펌질꾼입니다. 종종 사.케 삭제분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도 한분.. --;;;;;) 훗훗훗...저 절대로 안보내 드리니까 그런 멜 더 안주셔도 되요. (저작권 문제도 문제지만 작가분에 대한 예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그냥 필요하신 분들께선 출판을 기다려 주셔요. 사이케델리아 계속 사랑해 주시길.... 번 호 : 6887 / 6890 등록일 : 2000년 02월 26일 22:09 등록자 : THEBUR 조 회 : 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4.야망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4.야망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79 게 시 일 :00/02/26 09:08:50 수 정 일 : 크 기 :11.8K 조회횟수 :45 <제 9 장> 야망(野望) 1999년 10월 1일 금요일. 바로 국군의 날이다. 본래 국군의 날은 빨간 날이 었다. 그러다가 언제인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어쨌든 10월에 빨간 날이 너무 많다고 10월 1일 국군의 날과 10월 9일 한글날을 까만 날로 바꿔버렸다. 실 로 간악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비통의 눈물을 흘렸던가... “야! 강한아! 너 소식 들었냐?” 얼굴이 길어서‘말’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병서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난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가 병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 보자 병서가 그‘소식’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그저께 3반의 신정민이 자살했대.” 신정민... 헤모글로빈 말이로군. 나한테 계속 죽고 싶다고 전화하더니만... 기억 혼재의 첫 희생자인가...? “아니, 못 들었는데?” 3일 전에 헤모글로빈에게서 죽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이미 예감을 하 고 있었지만 헤모글로빈의 자살 소식은 확실히 처음 듣는 것이기 때문에 병 서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 말에 병서는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자그마한 목 소리로 말했다. “근데 그 녀석 유서에 뭐라고 써져 있는 줄 알아?” “아니. 뭐라고 써져 있었는데?” “이거 봐.” 병서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 쪽지를 나에게 건네주었 다. 난 종이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 종이 쪽지에는 글씨가 써져 있었는데 아 무래도 어떤 종이를 복사한 것인 듯했다. 병서가 그 종이 쪽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그 녀석 유서야.” “......” 헐... 이게 헤모글로빈의 유서? 근데 병서 녀석은 이런 걸 어떻게 구했냐...? 신기한 녀석이야... 어쨌든 헤모글로빈이 뭐라고 유서를 썼는지 읽어보기나 할까? 『난 누구지? 신정민? 헤모글로빈? 도대체 누가 진짜 나인거지? 어째서... 어째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야? 제길! 난 사람이야! 난 오크 란 말이야!』 ... 엄청나군. 죽으려는 순간까지 기억의 혼재가 일어난 건가? 하긴... 사 람과 오크의 기억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니 가장 견디기가 어려운 타입이었을 지도 모르지... 인티나 아린,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는 사람으로서의 두 가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니까. 후후... 친구의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아무 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나는 뭐하는 인간이지...? “너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 확실히 그 녀석 정신이 이상해진 걸꺼야.” 병서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난 헤모글로빈의 유서 복사본을 잘 접어서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걸 보고 병서가 문득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너 신정민하고 친하게 지냈지?” “어...” “너무 신경쓰지마.” 병서는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곧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다. 난 다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고 있었다. 점심 시간 이기 때문이었다. 후우... 마르크스와 만난지 벌써 한 달 넘게 흘렀군... 그동안 열심히 마나 축적을 해서 2클래스의 마나를 내 몸 바깥에 축적시켰고... 인티와 아린, 그 리고 유스타키오와 팀파니가 기억의 혼재를 극복하려고 나에게 전화로 상담 을 하고... 플라톤하고는 통신상에서 가끔 만나고... 그저께 헤모글로빈이 자살하고... 털퍽ㅡ! 난 책상 위에 엎드려 잠자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머리 속으로 계속 헤모글로빈이‘강한아, 진짜 나는 누구야? 모르겠어... 정 말 모르겠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헤모글로빈의 그 물음에 난 아주 간단히 대답했다. 둘다 너 자신이라고... 그리고 그 결과는 헤모글로빈의 자 살...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둘다 너 자신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헤모글로빈뿐만 아니라 인티나 아린 등도 두 세계에서의 기억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들의 기억은 다른 사람의 기억과 갑자기 섞여버린 것 이니까. 두 가지의 기억 사이에는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들도 많을테니까. 띵띠리리... 점심 시간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 난 천천히 고개를 들고 다음 시간 준비 를 했다. 수능이 한 달 하고도 17일 남은 지금, 집에서는 전혀 공부하지 않 는 나에게 수업 시간은 상당히 귀중했으니까. 티잉ㅡ 밤 10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부팅하고 PC통신에 접속했다. 그리고 즉시‘idea’란 ID를 검색했다. 오늘도 어김없이‘접속 중’이란 메세지가 떴다. 그래서 오늘도 변함없이 난 플라톤과의 일대일 대화창을 띄웠다. [☞플라톤이냐?] 내가 그렇게 두드리자마자 플라톤이 답했다. [그렇다.] [☞그저께 내 친구가 자살했다.] [그런가? 모 때메 자살했지?] 얼씨구... 지난 주부터 맞춤법을 무시하더니... 이제 계속 그렇게 쓸 생각 인가? 뭐 나야 편하지만... [☞기억 혼재.] [흠... 기억의 혼재 때메 죽었다고? 애도를 표하네...^o^] ... 지금 저 표정은 기쁠 때 쓰는... [☞뭐냐... 그 표정은... 전혀 애도하는 게 아니자나!] [내 맘이네.] [☞너한테 그런 걸 바란 내가 잘못했다...] [잘 아는군.] 하여간 플라톤 녀석, 마음에 안 들어... 남이 자살하는 게 그렇게 즐겁냐? [강한군.] [☞왜?] [이제 결전의 때가 다가왔네.] 얼레? 무슨 헛소리야...? [☞결전의 때라니? 때 밀라구?] [ㅡ.ㅡ;] 헐헐... 내가 너무 썰렁했나? [어쨌든 일요일이 10월 3일 개천절이네.] [☞근데 그게 뭐?] [하늘이 열린 날이지.]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간단하네. 만나자는 거지.] 얼라리? 플라톤이 만나자는 제안을 하다니... 드디어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 고 나에게 항복하는건가? [☞날 만나서 뭐할려고?] [내 계획 실행의 관람자로서 초대하려는 거네.] 에? 계획 실행? [☞너의 그 원대한 계획이란 게 어떤 거지?] [그건 개천절날 갈켜주지. 그 날은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될테니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장소는?] [너희 학교 옥상.] 허걱?! [☞왜 거기로 정하는 거냐?] [네 녀석이 찾아오기 쉽게 하려고 그런 것뿐이야.] 흘... 날 배려해주겠다 이거로군... 근데 왠지 기분나쁜걸? 말투가 아주 마 음에 안들어... [아, 그리고 한마디 충고하겠는데 경찰 부를 생각마라. 경찰을 불렀다간 학 교 건물을 날려버릴테니까.] 오... 학교 건물을 날려주겠다고? 그거 반가운 소리인걸? 우리 학교 후배들 이 좋아할거야~ [☞내가 연락한다고 경찰이 와줄 것 같냐? 너 바보지?] [... 그건 그렇군.] 우헐헐! 드디어 플라톤에게 한 방 먹였다! [어쨌든 그날 정오까지 와라. 기다리고 있겠다. 내일은 통신 안 할거니까 그런 줄 알도록. 그럼.] 《일대일 대화가 종료되었습니다》 뭐냐... 나한테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낼름 가버리다니... 이번에야말로 내가 먼저 일대일 대화를 종료시키려고 했는데... 또 플라톤 녀석이 먼저 해 버렸어... 우어엉... 그나저나... 플라톤이 일요일날 보자고 하다니... 그 말은 벌써 서울에 올 라왔다는 소리인가? 어쩌면 학교 근처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항상 암 흑 속에서 행동하는 녀석이니까. 흠... 분명히 이번에도 무슨 함정을 파놓고 날 기다리겠지? 그 녀석에게 이기려면 마법 사용에 능숙해져야 되는데... 마 법을 사용할 장소가 없어서 마법 수련을 전혀 못하겠어... 역시 믿을 건 정 령 마법 밖에 없구만... ‘정령계의 문이여, 열려라.’ 그렇게 마음 속으로 말하자마자 내 정신은 정령계로 들어갔다. ㅡ 무슨 일이냐, 건방진 인간. 내가 정령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불의 정령왕 블라레임이 나타나 거칠게 말했다. 난 본론만 간단히 말했다. ‘계약 맺으러 왔다.’ ㅡ 저번에 정령신에게 다른 정령과는 계약 맺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그거고. 지금은 정령이 필요해.’ ㅡ ...... 블라레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ㅡ 그럼 그냥 돌아가라. 얼씨구? 뭔 소리를 하는거야? 계약 맺으러 왔다니까! ㅡ 그러니까 돌아가라는 거다. 지금의 네 능력은 정령왕도 가볍게 소환할 수 있다. 네가 언제라도 정령계에 있는 정령의 이름을 부르면 어떤 정령 이라도 네 명령에 따를거다. 정령신은 예외지만. 얼레? 그 말은... 계약 같은 걸 하지 않고도 정령을 부릴 수 있다는 뜻? ㅡ 그렇다. 그러니 돌아가라. 네 녀석의 상판을 쳐다보는 것도 구역질이 난 다. 그렇게 말한 블라레임은 불꽃으로 화하여 모습을 감추었다. 블라레임에게 욕을 해대고 싶었지만 그냥 참고 정령계를 빠져나왔다. 어쨌든 블라레임은 그런 사실을 친절하게(?) 나한테 가르쳐줬으니까. 난 다시 컴퓨터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때서야 지금까지 통신에 접속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전화세만 날린 것이다. 우어억... 아까운 전화세... 이건 모두 플라톤 때문이야! 내일 모레 플라톤 녀석 만나면 돈이나 뜯어내야겠어! 지금까지 그 녀석과 일대일 대화를 하면 서 날린 전화세만큼 받아낼테다! 1999년 10월 3일 일요일. 우리나라의 건국 기념일인 개천절(開天節)이다. 이 날이야말로 10월의 빨간 날인데... 올해는 일요일이 되어버렸다. 또 통곡 하고 싶어진다... “......” 난 우리 학교 교문 앞에 섰다. 일요일날 학교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교문 에서는 학교 옥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플라톤 녀석이 왔는지 안 왔는지 알 수 없었다. “패스, 패스!” 운동장에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어서 난 서둘러 학교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 학교 건물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난 곧장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옥상으로 가는 길은 나무 판자 같은 걸로 막아놓고 있었다. 그래서 본관 뒤 쪽으로 빠져나왔다. 본관 뒤에는 후관이 있는데 그 사이에는 작은 공간이 있 다. 일명 자전거 주차장. 부스럭 부스럭ㅡ 난 바지 주머니에서 종이쪼가리를 꺼내들었다. 그 종이에는 마법 주문이 깨 알같이 적혀 있었다. 바로 어제 내가 열심히 외우면서 써넣은 것들이었다. 웅얼웅얼ㅡ 그 종이에 적힌 마법 주문을 확실히 외웠다고 생각할 때까지 몇 번 되풀이 하다가 다시 종이를 바지 주머니에 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엔 바람의 중급 정령인 하포크를 불렀다. 쉬이익ㅡ 반투명한 매의 몸을 지닌 하포크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난 하포크 에게 지시했다. “옥상으로 날 데리고 올라가라.” 휘이잉ㅡ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포크는 바람을 일으켜 날 들어올렸다. 그리고 학 교 옥상 바로 옆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하포크는 더이상 옥상 쪽으로 가지 않았다. 단지 날 학교 옥상에 던져버렸을 뿐이었다. “으윽!” 난 학교 옥상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학교 옥상은 시멘트 바닥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이새끼! 너 죽을래?!” 난 옥상 바로 옆에서 날개짓하고 있는 하포크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하포크는 매처럼 생긴 머리를 설레설레 젓더니 곧장 정령계로 돌아가버렸다. 내 명령도 없이 돌아가버린 것이다. “뭐야? 블라레임 녀석, 감히 구라를 쳐? 정령이 내 명령을 전혀 따르지 않 잖아!” 하포크의 명령 불이행 때문에 블라레임에게 욕을 바리바리 하던 내 귀로 어 떤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흥분은 가라앉히게.” “......!” 난 즉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은 정장 차림을 한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놓여져 있었다. “잘 왔네. 역시 약속은 잘 지키는군.” 플라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플라톤과 5미터 되는 거리까지 걸 어가다가 걸음을 멈췄다. 플라톤은 날 보며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정령에게 욕할 필요가 없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얼레? 하포크가 날 옥상으로 집어던진 게 어쩔 수 없는 거였다구? “자네의 발 밑을 보게.” “......?” 난 아무 생각없이 내 발 밑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내 머리 속으로 이때 플라톤이 공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내 그런 걱정은 털어버렸다. 만약 그가 날 죽이려고 했다면 맨처음 만났을 때 죽여버렸을 테 니까. “......!” 무심코 발 밑을 쳐다봤던 나는 크게 놀랐다. 옥상 바닥에는 이상한 마법진 이 수없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플라톤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마법진은 정령을 배척할 때 쓰는 거네. 즉, 지금 이 옥상 전체는 정령 배척 지대인 셈이지.” 정령 배척 지대... 그래서 하포크가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건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소환주를 옥상에다 집어 던지냐고! “자, 자네 옆에 의자가 있으니 내 앞으로 와서 앉게나.” 플라톤은 내 옆에 놓여진 의자를 가리켰다. 난 플라톤의 말대로 의자를 가 져다가 플라톤 앞에 놓고 앉았다. 플라톤은 껄껄 웃으면서 자기 자리에 가서 앉았다. 플라톤이 앉자마자 난 비꼬는 말을 내뱉었다. “왜 학교 의자하고 책상을 멋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냐?” “잠시 빌려쓰는 건데 뭐 어떤가.” 플라톤은 기분 나쁘게 씨익 웃었다. 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정령 배척 마법진은 왜 그린거야?” “그거야 간단하지. 자네가 정령으로 날 공격하면 골치아파지니까.” 헐... 플라톤도 내 정령들의 위력을 공감하고 있었군. “자, 어쨌든 잘 왔네. 오늘 날씨 참 맑지?” 플라톤은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서 끊어버렸다. “본론만 얘기해.” “후후, 성질도 급하군.” 플라톤은 후후 하고 웃다가 노트북을 덮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난 자네에게 내 계획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네. 귀 후비고 잘 듣 게나.” 흘... 계획을 알려준다고? 나 같으면 비밀리에 실행해 버릴텐데 이 녀석은 왜 굳이 나에게 알려주겠다는 거지? 자기 계획이 워낙 대단해서 자기 혼자 알고 있기가 안타깝다는 건가? ━━━━━━━━━━━━━━━━━━━━━━━━━━━━━━━━━━━ . 번 호 : 6888 / 6890 등록일 : 2000년 02월 26일 22:10 등록자 : THEBUR 조 회 : 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5.야망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야망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80 게 시 일 :00/02/26 09:09:10 수 정 일 : 크 기 :12.4K 조회횟수 :37 “자, 그럼 질문을 하겠네.” 얼레? 나한테? “초끈 이론을 아는가?” 플라톤은 책상 위에 덮어놓은 노트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나에게 물었다. 난 간단히 대답했다. “몰라.” “흠... 저번에 대충이라도 알아두라고 했잖은가.” “시꺼. 봐도 대강의 설명밖에 없어서 알 수가 없어.” 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훑어보기라도 했으면 됐네. 중요한 건 그 이론 자체가 아니니까.” “......” “자네는 이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얼라리...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하다니... 그게 플라톤의 계획과 관계있는 질문인가? “내가 알 턱이 없지.” “후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네.” 에? “초끈 이론은 현재의 기술로도 측정할 수 없는 아주 작은 끈의 요동으로 중 력을 포함한 모든 힘들과 소립자들을 통일하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 단지 그것뿐이야.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끈’은 힘에만 국한되지 않 고 우리의 생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네.” “......” “왜 사람들이 인연(因緣)이란 말을 끈처럼 사용할까?”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난 즉시 되물었다. 플라톤은 씨익 웃고는 말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운명이나 인연을 실이나 줄에다 비유하곤 했지.‘운명 의 실’이라든지‘인연의 줄’같은 것을 떠올리면 될거야. 질문 하나 더 하겠네.” 흘... 질문 하나란 말은 하지마라... 어차피 계속 나한테 질문할 녀석이... “자네는‘인연을 끊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얼레? “뭐가 떠오르다니?” “인연을 끊으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헐... 질문이 요상하구만... “가위? 칼?” “호... 그래도 생각은 하고 있었구만. 난 자네가 내 질문을 무시할 줄 알았 더니. 어쨌든 배울 자세는 된 것 같군.”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플라톤은 기분 나쁘게 미소지으며 다시 물었다. “인연을 끊겠다... 가위나 칼로 무엇을 끊으려는 생각이 드는가?” 흠... 인연을 끊는다... 가위나 칼로 뭘 끊지? 그건... 실 같은 것? 줄? 끈? “실이나 줄 같은 거?” 난 생각나는데로 대답했고 플라톤은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역시 자네도 그렇지? 인연을 끊겠다라는 말을 들으면 실이나 줄 같은 것을 칼이나 가위로 자르는 모습이 떠오를 거야. 그게 지극히 정상이지. 설령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해도 인연을 끊겠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칼로 실 을 자르는 모습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느껴질거네.” “뭐... 그렇겠지.”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실이나 줄 같은 게 연상되는 걸까?” 난 잠시 생각에 빠졌다. 플라톤은 내가 대답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릴 생각인 듯 가만히 있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나는 내 나름대로 의 답을 찾아내고 입을 열었다. “관습 때문 아닌가? 주변에서 인연을 실이나 줄에다 많이 비유하니까.” “흠... 물론 그렇지. 하지만 왜 인연을 하필이면 실이나 줄에다 비유하는 관습이 생겨난 것일까?” 에... 그건... 왜 그럴까... 왜지? 왜 인연 같은 것을 실이나 줄에 비유하 는 것일까? 이상한데? 다른 것도 많을텐데? 예를 들어‘인연을 뭉개버리겠다’ 라는 말이 있을 수 있고...‘인연을 먹어치우겠다’란 말도 가능할텐데... 어째서‘인연을 끊겠다’라는 말이 쓰이는 거지?‘끊겠다’라는 말 때문에 실이나 줄 같은 게 연상되는 거잖아? “글쎄... 모르겠는데?”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왠지 모르게 플라톤의 얘기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플라톤은 내가 진지한 태도를 보이자 씨익 웃었다. “그 관습이 생겨난 것은 당연하네. 앞서 말했듯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끈 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얼레? 끈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 관습이 생겨난 거라고? “우리의 생각은 모두 끈을 통해 이루어지지. 그 끈의 존재 때문에 인연을 실이나 줄에 비유하는 거네.” 플라톤은 자신있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플라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끈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 질문에 플라톤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설명하려고 했네. 잘 듣게.” 흘... 난 잘 들을 테니까 설명이나 제대로 하라고. “자, 우선 TV의 브라운관이나 컴퓨터의 모니터를 살펴보자고. 브라운관이나 모니터에 화면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내가 아냐?” “흠... 중학교나 고등학교 공업 시간에 배우지 않았나?‘주사선(走査線)’ 말일세. 화면 표시할 때 쓰이는 거지.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에 미 세한 선들이 그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네.” 에... 그런가? “아니던데?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점으로 보여. 억지로 네 녀석 생각에 껴맞추려는 거 아니냐?” “후후... 난 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네.” 플라톤은 더더욱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플라톤이 말을 이었다. “점이란 것도 결국 작은 선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일 뿐.” “무슨 헛소리야? 점이 모여서 선이 되는 거잖아?” “물론 사람이 보기엔 그렇지.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점은 모두 선이 무 수히 모여 둥글게 만들어진 것. 쉽게 말해서 이 세상엔 점과 곡선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소리네. 모든 것은 구부러지지 않은 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에에? 모든 게 선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플라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자기 생각만 떠들어댔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그 끈보다 작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기본 끈들이 모여 점이 되고, 그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곡선이나 평면이 되 지. 평면이 모이면 공간이 생기고 말이야.” ... 아주 잘 떠드는 구만... “이제 내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지!” 플라톤은 책상 서랍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그것은 수수깡이었다. 세 개의 수수깡을 직각으로 붙여서 마치 집 벽의 구석처럼 만들어 놓았다. 즉, 세 개의 수수깡으로 x축, y축, z축을 대신한 공간 좌표의 모형을 만든 것이 었다. 플라톤은 그것을 나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뭔지 알겠는가?” “수수깡이잖아.” “그거 말고. 이 수수깡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수학 수업하려고?” 난 건성으로 대답했다. 플라톤은 씨익 웃더니 그 수수깡 모형을 들고 말했다. “이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다. 공간 좌표지. 보통 공간에는 세 개의 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네. 그러나 상대성 이론에서는 이 세 개의 축 외에도 다른 축이 하나 더 추가되지. 바로 시간의 축이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 는 공간은 x축, y축, z축만으로 이루어진 3차원이 아니라 x축, y축, z축과 시간의 축으로 이루어진 4차원 시공간(視空間)이 되는 것이지.” 헐... 그러셔? 그 얘길 왜 하는 거야? 난 상대성 이론 배우려고 여기 온 게 아녀~ 그렇게 열심히 설명하던 플라톤은 갑자기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입을 열었 다. “뭐 시공간 얘기는 내 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으니까 별 상관없고...” 얼씨구? 그럼 왜 꺼낸거야, 머리 아프게? “이 x축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이 y축은 환타지 세계, 그리고 이 z축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라고 가정해보게.”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 세 개의 서로 다른 세계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네. 내가 삼 성물, 아니 사성물을 모아 행했던 그 의식은...” 플라톤은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수수깡의 y축을 부러뜨려 x축에 갖다대었 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y축에 해당하는 환타지 세계를, x축의 이 세계로 융합시켜 버린 것이네.” “......?” 난 잘 이해하지 못하고 플라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플라톤은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말했다. “한마디로 차원의 융합이라는 거네. 아니, 차원이라기 보다는 다른 세계라 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어쨌든 난 이 세계로 차원 이동을 한 게 아 니네. 아예 그 환타지 세계를 이 세계에 억지로 융합시켜 버린 것이지.” 얼... 레? 환타지 세계를 이곳과 융합? “그게... 가능해?” “후후. 물론이네. 앞서 말했듯이 서로 연관없어 보이는 차원끼리도 눈에 보 이지 않는 작은 끈들로 연결되어 있지. 난 환타지 세계와 이 세계를 연결 하고 있던 끈을 사성물의 힘으로 잡아당긴거야.” “......” 뭔가 이해갈 듯 말 듯했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플라톤이 더 설명을 했다. “그래서 환타지 세계에서 너나 나를 많이 만났던, 즉 굵은 인연의 끈이 있 는 사람들의 기억은 이곳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융합된 것이 다. 그 사람들이 기억의 혼재를 겪고 있는 이유는 환타지 세계를 이 세계 에 융합시켰기 때문이지.” “......” 플라톤의 설명이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자 플라톤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긴... 처음부터 이걸 이해하기는 힘들겠지. 좋아, 그렇다면 사성물을 다 모으고‘공간의 문 소환작업’이라고 한 차원 융합 이후로 환타지 세계가 어떻게 됐는지 차근히 알려주마.” “......” 난 아무 말없이 플라톤이 설명하는 것을 기다렸다. 플라톤은 x축에 갖다댔 던 수수깡을 다시 원래대로 끼어 맞추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세계가 존재하네. 몇 개나 되는지는 알 수 없어. 아마 무한대로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지. 우리가 알고 있는 환 타지 세계나 이 세계는 그 많은 세계 중의 하나일 뿐이야. 어쨌든 그 많은 세계들은 보이지 않은 끈들로 연결되어 있다네.” “......” “내가 사성물을 모두 모은 후, 자네 앞에서 공간의 문 소환이란 것을 했지 만 사실 그건 차원 융합이었네. 날 중심으로 한 차원 융합을 시도한 것이 지. 그 차원 융합의 과정은 이렇다네. 먼저...” 플라톤은 아까 전에 부러뜨렸던 y축의 수수깡을 x축 쪽으로 천천히 이동시 키면서 말을 이었다. “다른 세계와 연결된 모든 끈들을 제거하지. 그건 힘과 파괴의 검인 리소좀 의 역할이야. 물론 이 세계와 연결된 끈만은 자르지 않지. 그리고 나서 환 타지 세계와 연결된 끈을 붉은 구슬의 힘으로 잡아당기는 거네. 그러면 환 타지 세계는 자연히 이 세계에 붙어버리게 되는 거지. 바로 이게 차원 융 합이야. 초끈 이론에서 말하는‘차원의 말림’과 유사한 현상이지.” “......” “그게 끝이 아니네. 솔직히 말하면 차원 융합이라고 할 수는 없어. 왜냐하 면 이렇게 이동시킨 환타지 세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기억이 평화와 장 수의 돌 크레졸에 의해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로 전이되니까. 한마디로 기억의 융합이지. 하지만 아무나 기억이 융합되지는 않아. 기억의 융합이 일어나는 사람은 차원 융합의 중심체인 나와, 붉은 구슬의 매개체인 자네, 그리고 나나 자네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들뿐이네.” 나원... 저번에 나와 인연의 끈이 굵은 사람들은 기억의 혼재가 일어난다고 말했었으면서 같은 얘기를 또 반복하다니... 입 아프겠군.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네. 그렇게 기억의 융합이 일어난 뒤의 환타지 세계 는...” 플라톤은 그 y축 수수깡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그 수수깡은 아 래로 떨어졌다. 플라톤은 직각으로 연결된 두 개의 수수깡을 손에 든 채 밑 으로 떨어진 수수깡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모든 끈이 끊어진 채 공간을 떠돌게 되지.” “......!” “후후. 눈치챘나? 쉽게 말해서 이제 환타지 세계로 갈 방법은 전무하다는 거네. 이어져 있던 모든 끈이 끊어졌으니 갈 수가 없지. 어쩌면 공간을 떠 도는 게 아니라 그 세계 자체가 소멸해버릴지도 모르네.” 환타지 세계의 소멸...? “말이 안돼!” 난 자리에서 일어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내가 소리지르는 바람에 플라톤은 손에 들고 있던 수수깡을 놓쳐버렸다. “뭐, 뭐가 말이 안된다는 건가?” 플라톤은 땀을 삐질 흘리며 물었다. 내가 공격이라도 하는 줄 알았던 모양 이었다. 난 플라톤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듯 말했다. “환타지 세계가 소멸했다면 어째서 난 그곳에 있었던 정령들을 부릴 수 있 는거야?!” “아아, 진정하라고.” 플라톤은 두 손을 펼치며 나에게 진정하라는 포즈를 취해보였다. 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플라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나도 확실히 모르네. 어쩌면 신들이 사는 천계나 정령들이 사는 정령 계는 모든 차원을 격해서 존재하는지도 모르지.”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고 했잖나.” 흘... 지금까지는 마치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더니... “아, 물어볼 게 있는데...” 난 플라톤을 보며 말했다. 플라톤은 흥미롭다는 듯 어서 물어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까 리소좀은 인연의 끈을 자르고, 붉은 구슬이 그 차원을 이동시키고, 크레졸은 기억을 융합시킨다고 했잖아? 그럼 지혜의 마법서 티탄의 하는 일은 뭐냐?” “호... 예리한 질문이구만.” 플라톤의 얼굴에 감탄하는 빛이 떠올랐다. 플라톤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티탄이 하는 일은 그 모든 작업을 순차적으로 지시하는 역할이네. 가장 중 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지.” “그래? 그런데 넌 어떻게 그런 차원 융합 같은 걸 알아냈지?” “후후, 그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네.” 플라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앉아 있던 의자 뒤에 놓은 007가방에서 두 꺼운 책을 꺼냈다. 갈색 표지의 두꺼운 책. 바로 지혜의 마법서 티탄이었다. 플라톤은 티탄의 겉표지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겉표지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갈색의 표지 뿐이었다. “자네는 이 책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몰라.” “그럼 코아세르 베이트란 녀석을 아는가?” 얼레? 코아세르 베이트? 환타지 세계에서 마나 축적법을 개발한 대마법사 말인가? “알아. 마법론을 저술했다고 하던데.” “흠, 그 사람이 언제 책을 쓴 모양이군.” 에? 그럼 플라톤 녀석은 마법론을 모르고 있었다는 뜻? 헐... 그렇다면 플 라톤은 현재의 마법이 완전 주문과 불완전 주문 두 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도 모르겠구만. “뭐 그 사람이 책을 쓰던 말던 나하고는 상관없지. 어쨌든‘마이크로 스피 어’라는 사람도 아나?” “마이크로... 스피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아, 생물 문제집에서 봤구나! 전 에 환타지 세계에 떨어졌을 때 코아세르 베이트란 이름을 듣고 문제집을 뒤 지다가 같이 찾아낸 말이었지! 코아세르베이트설과 함께 생명 기원설의 하나 인 마이크로스피어설! ━━━━━━━━━━━━━━━━━━━━━━━━━━━━━━━━━━━ 번 호 : 6889 / 6890 등록일 : 2000년 02월 26일 22:10 등록자 : THEBUR 조 회 : 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6.야망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6.야망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581 게 시 일 :00/02/26 09:09:30 수 정 일 : 크 기 :10.5K 조회횟수 :39 “그 마이크로 스피어란 사람이 그 책을 썼다는 소리냐?” 난 플라톤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질문을 던졌다. 플라톤은 묘한 표정을 지 으며 답했다. “쓴 건 아니네. 단지 만들었을 뿐이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라네. 한 번 보게.” 플라톤은 티탄을 펼쳐보였다. 그 책을 본 순간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책 에는 그 어떤 글자도 써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이크로 스피어는 글을 쓴 게 아니네. 자신의 힘을 이용해서 이 책을 만 들었지.” 자신의 힘으로 책을 만들었다고? “뭐 이 책은 겉모습일 뿐이야. 자네가 이걸 얻어서 보게 된다면 이 책을 어 떻게 볼 수 있는지 알게 될거네.” 플라톤은 다시 티탄을 덮어 007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자네는 내가 왜 차원 융합 같은 걸 하려는지 알겠나?” “그걸 알면 내가 여기 왔겠냐?” “후후, 그런가? 그럼 내 계획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지.” 흘...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는구만... 플라톤은 두 손을 깍지껴서 입 앞에 댄 후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인간이 되고 싶네.” “... 지금의 너도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 같은데?” 내 말에 플라톤은 후후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는가?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네. 지금의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그리고 마법 빼면 체력도 형편없고 별볼일 없는 인간이지. 그래서 난 강해지고 싶은거네. 차원의 융합을 통해서!” 차원의 융합을 통해서 강해진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차원 융합의 중심체에게 돌아가는 이점이 무엇인지 아나?” 이점...? “그건 바로 다른 세계의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지금의 나에게 융합 시킬 수 있다는 거네.” “무슨... 말이야?” “각기 다른 세계에는 나와 유사한 성격이나 환경을 가지고 있는 또다른 내 가 존재하기 마련이지. 모든 세계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세계에 내 분신같은 것이 존재하거든. 차원 융합을 하면 그 다른 세계의 또다른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고스란히 이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 융합된다는 거지. 이제 알겠나?” “......!” 꽤 놀라운 말이었기 때문에 난 플라톤의 얼굴만 멍청히 쳐다보았다. 플라톤 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내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걸로 생각했는지 나직 히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서 다른 세계의 내가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계로의 차 원 융합을 통해서 그 강한 체력을 여기에 살고 있는 나에게 융합시킬 수 있다는 소리네. 또 다른 세계의 내가 뛰어난 머리를 지니고 있으면 차원 융합으로 그 능력도 얻을 수 있고. 즉, 차원 융합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 록 나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간이 되는 것이지!” ... 그거 구미가 당기는 일이긴 한데... 과연 좋은 능력만 얻게 되는 건가? “근데... 그 세계의 또다른 내가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거야? 그 버릇도 같이 얻게 되는 것 아니야?” 씨익ㅡ 내 말을 들은 플라톤이 아주 기분 나쁘게 미소를 지었다. 거의 악마를 방불 케 하는 미소였다. “그것에 대한 대비책은 있네. 그 나쁜 버릇의 끈을 리소좀으로 자르면 되니 까.” 얼레? “그게 가능하냐?” “물론. 삼성물 중에 하나인 리소좀을 통해 또다른 내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 한 부분의 끈을 잘라버리면 그 부분을 없애버릴 수가 있네. 좋은 능력, 필 요한 부분만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지!” 헐... 그거 아주 유용한데? “근데 넌 그렇게 뛰어난 인간이 돼서 뭐할려고 그러는데?” 난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로 플라톤에게 물었다. 플라톤은 그런 나를 잠 시 노려보다가 이내 대답했다. “남보다 더 뛰어나고 더 강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 뿐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이유가 아주 간단하구만.” 내 비꼬는 말에도 플라톤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난 다시 플라톤을 노려 보며 물었다. “넌 또 차원 융합을 할 생각이냐?” “물론.” 플라톤은 즉각 대답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차원 융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붉은 구슬을 다른 세계로 방출시켜야 한 다네. 즉, 붉은 구슬을 통해 연결끈을 만드는 거지. 그리고 나서 붉은 구 슬을 다시 소환한 뒤에, 다 모인 사성물의 힘으로 차원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네.” 흘... 꽤 절차가 복잡하구만. 저벅저벅ㅡ 플라톤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래서 난 의자에서 일어나 플라톤을 경계하 려 했다. 그러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플라톤이 나직히 입을 열 었다. “패럴라이즈(Paralyze).” “......!” 갑자기 몸이 굳어버렸다. 의자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심장이나 뇌 같은 몸 안의 장기들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손이나 발, 입과 같은 외부 기관의 근육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동자와 눈꺼풀만이 움직여질 뿐이었다. 내가 의자에서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한 플라톤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 의자에 마비 주문인 패럴라이즈를 걸어두었지. 계속 앉는 동안 그 마법 의 효과가 자네의 몸에 스며들어 내 마지막 발현 명령에 마법이 구동되지.” 이런 치사한 녀석! 역시 플라톤 녀석을 믿으면 안된다니까! “자, 거기 앉아서 잘 보고 잘 듣게나. 붉은 구슬의 소환 작업을 말이야.” 얼레? 붉은 구슬의 소환 작업? 그렇다면 이미 붉은 구슬을 다른 세계로 방 출시켰다는 거잖아? “아차, 말을 안 했었군. 붉은 구슬은 어제 다른 세계로 방출시켰네. 또 이 마법진이나 그 마비 주문도 어제 다 완성했었고.” 얼씨구... 그래서 어제 통신을 하지 않은 거였구만...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플라톤은 책상과 의자를 옥상 구석으로 치웠다. 그리고 나서 007가방에서 평화와 장수의 돌인 크레졸과 지혜의 마법서인 티탄을 꺼내들고 내 앞에 그 려진 마법진을 내려다보았다. 내 시야에 그 마법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들 어왔기 때문에 굳이 눈동자를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흘... 붉은 구슬을 소환할 때의 마법진은 아주 간단하네? 그냥 동심원 두 개만 그렸잖아? 그 원 안에다 티탄하고 크레졸을 넣는군. 너무 간단한 것 같 다... 얼레? 근데 왜 리소좀은 안 보이지? “텔레포트.” 크레졸과 티탄을 원 안에다 넣고 나서 플라톤은 무엇을 받쳐들 듯 두 손을 벌린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플라톤의 손바닥 위에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이 나타났다. 아마도 리소좀을 이곳으로 텔레포트시킨 듯했다. “이제 이 원 안에다 리소좀을 놓으면 붉은 구슬의 소환이 시작되네. 근데 자네는 내가 왜 지금까지 시간을 끌었는지 아는가?” “......” “아, 지금 자네는 마비 주문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군.” 그걸 이제야 알았냐? 저거 완전 바보야... “차원의 융합이 일어난 후 한 달 동안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이유... 그건 차원 융합이 끝날 때를 기다린 거라네.” 엥? “차원의 융합은 천천히 일어나지. 기억 융합이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길거 든. 지금은 그 차원 융합이 완전히 끝났네. 즉, 지금 상태에서 기억 융합 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나 자네가 얘기를 해도 그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다는 소리지.” 플라톤은 고개를 들어 맑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감회가 새로 운 듯한 어투로 말했다. “환타지 세계에서 처음 붉은 구슬을 소환했을 때는 그 위치를 찾지 못해서 직접 찾으러 다녔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다른 세계로 방출했던 붉은 구 슬은 분명히 이 학교로 소환될거네. 이곳은 한때 붉은 구슬의 매개체였던 자네가 다니는 곳이고, 게다가 지금 이 순간 자네가 이곳에 있으니 이곳으 로의 소환이 확실해. 느낌이 아주 좋아.” 흘... 결국 찍었단 소리잖아... 장소가 틀리면 또 열심히 찾아다녀야 겠구 나. 불쌍한 녀석~ “자, 이제 시작이다!” 플라톤은 들고 있던 리소좀을 티탄과 크레졸이 있는 원 안에 던져넣었다. 그러자 3미터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는 반응하지 않던 삼성물이 제각각 빛 을 내기 시작했다. 크레졸의 녹색빛, 티탄의 갈색빛, 리소좀의 청록색빛이 한데 섞여 위로 치솟아 올랐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크흐흐흐...” 소환이 잘 되어가는지 플라톤은 음흉한 웃음을 발했다. 플라톤이 다시 차원 융합을 한다면 기억의 혼재를 겪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마비 주문 때문에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쿠쿠쿠ㅡ 하늘 위에서 갑자기 굉음 비슷한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우웅 하는 소리도 났다. 바로 공간의 문이 열릴 때 나는 소리들이었다.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마비 주문 때 문에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번쩍ㅡ! 내 머리 위에서 무엇인가가 번쩍하고 빛났다. 빛이 강렬해서 난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후 조심스럽게 눈을 떠보았다. 그런 내 눈앞에 왠 강아지 한 마리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털 색깔은 오렌지색이었고 털 이 조금 풍성하게 나 있었으며 특히 목 부근의 털은 사자 갈기처럼 길게 자 라 있었다. 털이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애완견인 듯했다. “흐흐, 역시 이곳으로 떨어질 것이란 내 예상이 적중했어. 호~ 이번엔 강아 지가 붉은 구슬의 매개체가 되었구만.” 플라톤은 옥상 바닥에 붉은 구슬을 물고 쓰러져 있는 강아지를 내려다보았 다. 그러다가 플라톤이 입을 다셨다. “쩝, 크기만 더 컸으면 먹어버리는 건데... 이놈을 먹으면 간에 기별도 안 가겠군...” 흘... 플라톤 녀석, 멍멍이탕을 먹는가 보구만. 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확실히 저 녀석은 1인분도 안될 것 같다... 적어도 셰퍼드 정도는 되야 배부 르지... 쓰러져 있는 강아지를 보며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던 플라톤은 강아지가 물고 있는 붉은 구슬을 집어들려고 했다. 그러나 강아지가 구슬을 세게 물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붉은 구슬을 회수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세게 물고 있는거야?” 플라톤은 신경질을 부리며 강아지의 입을 억지로 벌렸다. 그 바람에 강아지 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강아지는 갑자기 플라톤의 왼팔을 물 어버렸다. “으악! 이 빌어먹을 개새끼!” 플라톤은 급히 강아지를 때려서 떨어뜨렸다. 강아지는 플라톤에게 맞고 나 서도 플라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붉은 구슬은 내 발까지 데굴데굴 굴러왔 다. 그것도 모르고 플라톤은 물린 팔을 주물럭거리며 강아지를 노려보고 있 었다. 제길... 이럴 때 빨리 플라톤을 공격해야 되는데... 이놈의 마비 주문 때문 에 움직일 수가 없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마법에서 풀려날 수가 있 는거지? 콰쾅! “왕왕!” 무엇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고, 강아지는 짖으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 고 펄쩍 뛰어올라 내 무릎 위에 올라탔다. 그것을 본 플라톤이 손에 불화살 마법인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를 들고 음흉하게 웃었다. “크크... 니트, 아니 권강한이 널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나? 내 팔을 문 대 가는 치러야지...” 그리고는 파이어 애로우를 내 쪽으로 겨냥했다. 강아지는 내 무릎 위에서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플라톤은 지금 강아지를 맞추려고 하지만 파이어 애로우가 터지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 강아지 새끼, 당장 내려가! 날 죽일 셈이냐? 너만 죽으면 됐지 왜 날 끌 어들이려는 거야, 이 사악한 강아지 놈아! 너 때문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 게 생겼잖아!!! “후후후...” 플라톤은 강아지가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은 확실히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으악! 저 빌어먹을 플라톤 녀석! 나보고 구경만 하라고 했으면서 이제 죽일 려고 해? 이건 약속이 틀리잖아 약속이! 난 이렇게 무기력하게 죽는 건 싫다 고!!! “후후... 본래 이런 식으로 자넬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 강아지 녀석 을 원망하게나. 그럼 저승가서 열심히 싸우게!” 말을 마치자마자 플라톤은 날 향해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정확히는 내 무릎 위에 앉아있는 그 강아지였지만 어차피 나도 파이어 애로우의 폭발 범 위에 들어가기 때문에 날 향해 날린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u) 번 호 : 6935 / 6935 등록일 : 2000년 02월 28일 00:49 등록자 : THEBUR 조 회 : 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7.새로운 시작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7.새로운 시작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606 게 시 일 :00/02/27 08:31:25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54 <제 10 장> 새로운 시작 슈웅ㅡ! 플라톤이 날린 파이어 애로우는 정확히 내 무릎 위에 앉아있는 강아지에게 로 날아왔다. 그러나 화살이 날아와도 강아지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 았다. 아무래도 나하고 같이 저승 구경을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제길! 난... 여기서 이렇게 아무 것도 못하고 죽을 순 없어! 이런 식으로 어처구니없이 죽는 건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적어도 플라톤 녀석에게 마법 한 방 먹이고 죽을 거란 말이다!!! 삐ㅡ 갑자기 머리 속에서 그런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 속에서 방어 마법인 배리어(Barrier)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콰앙ㅡ! 파이어 애로우가 내 앞에서 폭발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쳐놓은 배리어와 파 이어 애로우가 충돌해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으앗!” 쿠당탕ㅡ! 폭발의 영향 때문에 난 뒤로 쓰러졌고 의자가 옥상 바닥과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우욱... 하마터면 머리를 옥상 바닥에 박아버릴 뻔했잖아? 얼레? 몸이... 멀쩡히 움직이잖아? 그렇다면 플라톤의 마비 주문이 풀렸다는 뜻? “이, 이럴수가! 어떻게 마법을 깼지?” 내가 멀쩡히 일어서는 것을 본 플라톤이 경악했다. 마법을 어떻게 깬 것인 지는 나도 모르기 때문에 난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아마 네가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기 때문이겠지. 어쩌면 살고 싶다는 욕망 이 마나를 일시적으로 발동시킨 것일지도 모르고.” “흥! 웃기지 마라!” 플라톤은 버럭 소리를 지른 후 다시 파이어 애로우를 만들었다. 플라톤에게 는 파이어 애로우가 자주 사용하던 것이었는지 주문도 외우지 않았다. 그 신 속한 빠르기를 내가 당할 수는 없었다. “죽어라!” 플라톤은 내 심장을 향해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플라톤이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플라톤이‘죽어라’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옆으로 피했다. 그래서 파이어 애로우는 내 옆으로 비껴나갔다. 콰앙! “흥!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군! 하지만 이건 안될걸?” 파이어 애로우의 폭발이 채 걷히기도 전에 플라톤은 어떤 주문을 외우기 시 작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규모가 큰 마법을 사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강력한 공격 마법을 쓰려고 머리 속에 외우고 있던 마법 주문을 검색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불완전 주문 이라 플라톤의 공격에 맞설 수 없었다. 구오오오ㅡ 플라톤의 머리 위로 직경이 적어도 1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불의 공이 만들 어졌다. 아무래도 파이어 볼을 극대화시킨 것 같았다. 그렇게 불의 공을 완 성한 플라톤이 날 향해 소리쳤다. “크하하, 6클래스의 파이어 볼이다! 내가 최근에 만들어낸 공격 마법이지!” 이런... 이를 어쩐다냐... 완전 주문은 하나도 외우지 않았는데... 난 죽음 이야!!! “피해봐라, 권강한!” 플라톤의 말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난 즉시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 러나 플라톤이 파이어 볼을 나한테 던지지 않는 걸 보고 잠시 주춤했다. 슈우욱ㅡ! “......!” 뭐야, 이거? 파이어 볼을 던지는 게 아니라 파이어 볼에서 불꽃이 뻗어나오 잖아? 으악! 불꽃이 도대체 몇 개야?! 콰콰쾅! 내가 있던 자리에 불꽃 여러 개가 떨어져내려 폭발했다. 불꽃이 오기 전에 난 몸을 피했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불꽃은 계속해서 내 쪽으로 날아왔다. 좁은 옥상에서 그 불꽃을 피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난 옥상 바깥 으로 몸을 날렸다. “하포크!” 난 바람의 중급 정령인 하포크를 소환했고, 하포크는 바람을 일으켜 떨어져 내리는 나를 안전하게 받아냈다. 나와 하포크가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자 운 동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급히 교문 쪽으로 빠져나갔다. 간큰 녀석들 몇 명만이 남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후후, 정령으로 날 상대하겠단 말인가?” 플라톤은 학교 옥상에서 날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플라톤 의 말소리가 들릴 리가 없음에도 그의 말이 또렷이 잘 들렸다. 아무래도 음 성 전달 마법 같은 것을 쓰고 있는 듯했다. “그럼 또 간다!” 플라톤의 머리 위에 있던 파이어 볼에서 다시 여러 줄기의 불꽃이 뻗어나왔 다. 그 불꽃들은 운동장에 서 있는 나한테 곧장 날아왔다. 하포크만으로는 그 불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바람의 상급 정령인 라노스도 소환했다. 거대한 익룡 모양의 라노스와 매 모양의 하포크는 날개를 펄럭여 바람의 장 벽을 만들었다. 콰콰쾅ㅡ! 두 정령의 바람 장벽에 가로막힌 불꽃들이 튕겨져 나가면서 운동장을 엉망 으로 만들었다. 그것을 본 플라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해주마!” 플라톤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 파이어 볼이 수백 개의 불꽃으로 갈라지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하늘 위로 솟구친 불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릴 것이라 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플라톤의 불꽃비 속에서 바람의 정령인 라노 스와 하포크가 날 지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그 둘을 정령계로 돌려보낸 후에 급히 방어 마법 주문을 외웠다. 불완전 주문이었지만 달리 기대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쏴아아ㅡ! 하늘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불꽃들이 하늘에 서 쏟아져 내렸다. 그 불꽃비가 내리는 곳은 정확히 우리 학교 운동장 뿐이 었다. 콰콰쾅ㅡ! 내가 친 배리어 위로 상당한 양의 불꽃비가 내리꽂혔다. 불꽃비의 타격을 받고 나서 1초도 되지 않아 배리어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불완전 주문 의 방어 마법으로는 어림없었던 것이다. 배리어를 깨뜨린 불꽃비는 내 머리 위까지 떨어져 내렸다. 그때 내 머리 속에서 방어 마법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것은 환타지 세계에서 헤라클레스가 명부의 문지기인 케르베로스와 싸울 때 내가 헤라클레스에게 걸어주었던 방어 마법의 완전판이었다. 파파팡ㅡ!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던 불꽃비들이 하늘 위로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튕겨져 나갔던 불꽃들은 뒤이어 떨어지던 불꽃들과 충돌해서 폭발을 일으켰 다. 콰콰쾅ㅡ! 난 고개를 들어 서로 충돌하여 폭발하는 불꽃들을 쳐다보았다. 내 머리 바 로 위에는 투명하지만 느낌으로 분명히 알 수 있는 마법 장벽인 배리어가 쳐 져 있었다. 주문없이 방어 마법 완전판을 사용할 수 있음을 확인하자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충분히 플라톤과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콰콰쾅ㅡ! 불꽃비는 대략 10초간 운동장 위로 떨어졌다. 10초가 지난 뒤, 운동장은 완 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운동장에 뿌린 모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보 이는 것이라곤 깊숙히 파이고 뒤집어진 흙 뿐이었다. 물론 내가 있는 자리는 불꽃비의 폭발에 휩쓸리지 않아 아주 멀쩡했다. 한편 무슨 일인지 구경하려 고 운동장 옆 농구대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초토화된 운동장을 보고 거의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법이군. 내 최고 공격 마법을 막아내다니.” 플라톤은 여전히 학교 옥상에서 날 내려다보며 입을 놀렸다. 학교 운동장에 서 학교 옥상에 있는 플라톤을 공격하기에는 무리였기 때문에 우선 작전을 세웠다. 흠... 먼저 옥상으로 텔레포트를 해야겠지? 플라톤 녀석의 뒤쪽으로 텔레포 트를 해서 공격을 하는거야! 근데 어떤 공격 마법을 쓸까? 에... 주문 없이 라이트닝 볼트(Lightning Bolt)를 써봐야겠다. 방금 전에도 주문없이 방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라이트닝 볼트의 이미지만 잘 떠올리면 가능할 꺼야! “......”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플라톤은 입을 다문 채 날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정령을 이용한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학교 옥상에다 쳐놓은 정령 배척 지대에 계속 있을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어차피 정령 공격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마법에 의한 공격 방법을 떠올리고 나서 곧바로 실행 했다. 스팟! 난 플라톤의 등 뒤로 텔레포트를 했다. 텔레포트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터 라이트닝 볼트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텔레포트 공간을 빠져나와 학교 옥상 바닥에 발을 디디자마자 플라톤을 향해 라이트닝 볼트를 날렸다. 그렇 게 큰 타격을 줄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부상은 입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 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플라톤은 어느새 몸 주위에다 배리어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후후, 자네의 생각은 다 읽고 있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자네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내가 느낄 수 있다고 해야겠군. 마법을 쓰려고 마법 이미지를 떠 올리는 순간, 그 이미지를 내가 파악할 수 있다는 소리지.” 플라톤은 몸을 내 쪽으로 천천히 돌리며 음흉하게 웃었다. 내 공격이 실패 했음을 느끼고 난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플라톤은 공격하지 않고 날 향해 말을 이어가기만 했다. “얼마든지 공격해보게나. 자네가 마법 이미지를 떠올리면 나도 알 수 있으 니까 아무리 공격해도 소용없을 거야. 그냥 얌전히 다시 마비 주문에 걸리 든가, 죽든가 하게.” 흘...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냐? 어떻게든 네 녀석을 쓰러뜨려 줄테 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스파이럴 블래스트(Spiral Blast)!’ 난 실프가 자주 쓰던 마법인 스파이럴 블래스트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한 번 이미지 구상을 하고 나니까 마법에 대한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이미지를 떠올린 뒤 난 곧바로 플라톤을 향해 스파이럴 블래스트를 날렸다. 쐐애액ㅡ! 나선형의 날카로운 바람이 플라톤에게로 날아갔다. 그러나 플라톤은 여유있 게 웃으며 나와 똑같이 스파이럴 블래스트를 구사했다. 마력을 나와 똑같이 했는지 두 개의 날카로운 바람은 서로 맞부딪쳐 깨끗이 소멸되어버렸다. 그 렇게 내 공격을 무위로 만든 플라톤은 내 기분을 박박 긁었다. “말했잖나. 난 자네가 몇 클래스를 사용해 어떤 마법을 구사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주문없이 마법 이미지만으로 마법을 구사하게 되면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되네. 자네와 나는 인간의 마나 축적 한계인 8클래스를 이루었지. 마력 면에서는 동등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자 네의 정신력은 나보다 떨어지네. 이 승부는 뻔한 거야.” 제길... 플라톤이 8클래스를 이룩했다니... 그래서 내 마법 이미지를 읽어 낼 수가 있다는 소리인가? 근데 난 왜 저 녀석의 마법 이미지를 못 읽지?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 난 플라톤을 경계하며 입을 열었고 플라톤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 다. “물어보게.” “넌 내 마법 이미지를 읽을 수 있는데 난 왜 네 마법 이미지를 못 읽는거냐?” “아, 그거 말인가?” 플라톤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본래 자네도 내 마법 이미지를 읽을 수 있네. 같은 최고 등급의 마법사니 까 말이야. 하지만 자네의 마법 구현 이미지는 유달리 강렬하네. 그래서 쉽게 읽을 수 있어. 난 자네가 마법 이미지를 떠올린 다음에 그에 맞는 마 법을 사용하니까, 마법 구현에 신경쓰는 자네가 내 마법 이미지를 못 읽는 건 당연한 거라네.” 그런가? 뭐 내 마법 구현하기도 힘든데 저 녀석이 무슨 마법을 쓰려는지까 지 신경쓰기는 힘들지... 그렇다면 난 뭘로 저 녀석을 공격해야 되지? 도대 체 무엇으로...! “으아악!!!” 여유롭게 웃고 있던 플라톤이 갑자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플라톤의 오른쪽 발목에는 붉은 구슬을 물고 이곳으로 넘어왔던 다른 세계의 강아지가 매달려 있었다. 그 강아지가 플라톤의 발목을 물어버린 듯했다. “이 개새끼가!!!” 플라톤은 발을 마구 흔들었지만 강아지는 필사적으로 발목에 매달렸다. 그 좋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난 내 몸 속에 남은 마력을 모두 끌어모아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 마법 이미지를 느꼈는 지 플라톤이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플라톤이 어떤 방어를 하기 전에 난 즉시 파이어 애로우를 플라톤에게 날렸다. 슈아앙ㅡ! 파이어 애로우는 경쾌한 파공음을 내며 플라톤에게 날아갔다. 내 공격이 너 무 갑작스러웠던지 플라톤은 어떤 마법도 쓰지 못했다. 아니, 나에게는 그렇 게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파앗! 파이어 애로우가 닿기 직전에 플라톤의 모습이 사라졌다. 플라톤의 발목에 매달렸던 강아지는 내 팽개쳐진듯 옥상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한편 목표 를 잃은 파이어 애로우는 쭉 날아가 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 소형 쓰레기 소 각장에 내리 꽂혔다. 콰앙ㅡ! 학생들에게 다이옥신을 많이 먹여주었던 쓰레기 소각장이 파이어 애로우 한 방에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내 몸속에 남은 마력을 전부 끌어모아 날린 것 이기 때문이었다. ━━━━━━━━━━━━━━━━━━━━━━━━━━━━━━━━━━━ 번 호 : 6936 / 6937 등록일 : 2000년 02월 28일 00:50 등록자 : THEBUR 조 회 : 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8.새로운 시작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28.새로운 시작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607 게 시 일 :00/02/27 08:31:46 수 정 일 : 크 기 :10.8K 조회횟수 :50 “젠장!” 난 짧게 욕설을 내뱉은 후 플라톤이 텔레포트로 내 공격을 피했음을 알아채 고 즉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플라톤은 나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 위치는 삼성물을 모아 놓은 마법진 바로 옆이었다. “크으... 저놈의 개새끼 때문에... 무리하게 텔레포트를 했더니 남았던 마 력이 고갈되어 버렸군...” 플라톤은 강아지에게 물린 발목을 움켜잡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플라톤 의 마력이 고갈되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이야말로 플라톤을 쓰러뜨릴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으윽!” 털썩ㅡ 난 옥상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주저앉았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플라 톤의 말대로 마법 이미지만을 사용해 마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 것 같았다. 내가 주저앉은 것을 봤는지 플라톤이 지쳤지만 음흉한 목 소리로 입을 열었다. “후후, 자네도 마력을 다 소모했나 보군. 아쉽게도... 이번에는 자네의 패 배네.” 철컥! 쇠소리가 났다. 난 고개를 들었다. 플라톤이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을 들고 나한테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득의의 웃음을 짓고 있는 플라톤의 얼굴은 옥신이나 마르크스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제길... 여기서 끝나는 건가? 저런 엿같은 녀석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다니... 이건 말도 안돼!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무엇인가가... “......!” 그때 내 머리 속으로 아주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한편 플라톤은 바로 내 앞까지 걸어오고 나서 리소좀을 든 손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입 을 열었다. “즐거웠네, 니트군.” 파악ㅡ! 피가 터졌다. 섬뜩하리만치 붉은 피가 옥상 바닥과 내 얼굴을 적셨다. 몸에 서 갓 빠져나온 뜨거운 피... 뚝ㅡ 뚝ㅡ “크윽... 2클래스급의 라이트 애로우(Light Arrow)... 마력이 모두 고갈됐 을텐데... 어떻게...” 플라톤은 리소좀을 든 손을 높이 치켜든 채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날 내려 다보았다. 그의 심장에는 주먹 하나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의 큰 구멍이 나있 었다. 내가 날린 빛의 화살, 즉 라이트 애로우에 심장을 꿰뚫린 것이었다. 난 말도 안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플라톤을 향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마력은 10클래스거든...” “크윽... 그런 말도 안되는...!” 쿠웅ㅡ! 플라톤의 몸은 리소좀의 무게 때문에 뒤로 넘어갔다. 자신의 죽음이 억울한 지 플라톤의 눈은 하늘을 노려보며 크게 떠져 있었다. 자신은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계획은 절대 멈출 수 없다는 듯이... 후우... 이걸로 옥신과 마르크스, 플라톤이 모두 나란히 저승으로 갔군... 이제 이곳에서는 더이상 문제를 일으킬 녀석은 없겠지...? 그래... 오늘부터 는...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겠어... 털썩ㅡ! 우욱... 머리 뽀개지겠다... “......” 난 힘들게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형광등이 달린 하얀 천장... 바로 병원 천장이었다. 난 어떤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상황을 보아 병원 침 대인 것 같았다. 이런... 또 산소 호흡기를 달았잖아? 팔에는 주사 바늘이 꽂혀 있고. 도대 체 내가 얼마 동안 의식을 잃고 있었던 거지? 플라톤을 쓰러뜨린 후에 바로 정신을 잃었는데 말이야... 우선 이 귀찮은 것들부터 떼어내자! 팍, 팍! 산소 호흡기와 주사 바늘을 떼어내고 나서 난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 때서야 내 옆에 누군가 엎드려 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내 가 익히 알고 얼굴이었다. 바로 인티였던 것이다. “인... 아니, 미영아!” 난 곤히 잠들어 있는 인티를 흔들어 깨웠다. 인티는 잠깐 졸았던 것인지 금 방 깨어났다. “우웅...” 눈을 비비며 일어나던 인티는 흠칫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보았 다. 난 멀뚱멀뚱 인티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내가 일어나 앉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인티가 울음을 터트리며 내 목에 매달렸다.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야야...” 인티의 목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에 난 인티를 진정시켰다. 잠시후 인티는 마음을 진정했는지 작게 훌쩍였고, 난 그런 인티에게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훌쩍... 그건 뉴스에서 봤어요. 그저께 뉴스에서 피범벅이 된 오빠를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요?” 얼레? 뉴스...? “내가 뉴스에 나왔다고?” “네. 오빠 학교 수위 아저씨가 옥상에서 쓰러져 있는 오빠를 발견하고 경찰 에 신고했어요. 뉴스에 오빠하고 오빠 옆에 죽어 있던 사람이 찍힌 장면을 보여줬는데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오빠 얼굴은 확실히 보였거든요. 그래 서 오빠네 집에 전화했더니 이곳에 입원해 있다고 해서 간호하러 온 거예 요.” 인티는 눈물을 훔쳐내며 그렇게 말했다. 문득 뉴스에서 이번 사건을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지 궁금해져서 다시 인티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뉴스에서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어?” “그게... 알 수 없대요. 그 사람을 죽인 범인이 오빠라고들 하는데... 사람 의 힘으로는 사람 가슴에 주먹만한 구멍을 뚫을 수 없는 데다가... 죽은 사람의 혈흔이 묻은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모든 것이 의문에 쌓였 다고 그랬어요...” 헐... 그렇군. 이것도 완전 범죄로구만. 하긴, 벌써 세 사람이나 죽였는데 내가 이렇게 멀쩡히 얼굴 들고 다니는 걸 보면 난 대단한 녀석이지~ 장담하 건대 이번 사건도 100% 미궁에 빠진다! “오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인티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는 숨길 필요도 없기 때문에 난 사실대로 말했다. “이 세계로 넘어온 세 명의 적하고 싸웠어. 결과는 네가 보는 대로고.” “그럼... 모두... 죽었나요...?” 인티는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못 듣도록 속삭이듯 물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가 누워 있던 곳에는 모두 혼수상태인 사람들만 있었으니 까. “그래.” “왜... 저한테 알려주지 않았죠?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걸...” 인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잘못하면 인티가 내 행동을 오해할 것 같 아서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들과의 싸움에 내가 아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거든. 위험하 니까.” “하지만... 오빠 혼자 싸우니까 이렇게 위험한 일을 겪었잖아요...” “결국 나만 살아났잖아. 내가 그런 녀석들에게 질 리가 없지. 자, 이제 퇴 원하러 가자.” 난 침대에서 내려와 병실 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중요한 물건들이 떠올랐다. “미영아, 혹시 삼성물을 보지 못했어?” “삼성물이라면... 리소좀하고 크레졸, 티탄을 말하는 건가요?” 흘... 인티는 기억하고 있었구만. 역시 기억력이 좋아... “어. 내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모두 있었을 텐데.” “모두 경찰이 회수해 간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빨리 되찾아야 하는데... 특히 지혜의 마법서 티탄은 반드시 필요 해. 플라톤이 그 책에서 차원 융합의 방법을 알아냈으니까 어쩌면 차원 복구 의 방법도 그 책에 나와있을지도 몰라. 제길... 경찰서에서 그 물건들을 어 떻게 회수한다냐...? “오빠는 여기 있어요. 제가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인티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고는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래서 난 다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어떻게 경찰서에서 삼성물, 아니 사성물을 회수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우선 사성물을 보관하고 있는 경찰서를 알아내야겠지... 그 다음에는 당연 히 몰래 숨어들어가서 훔쳐와야 되고. 그 방법밖에 없지 뭐~ 잠시후, 인티는 의사를 데려왔고 의사는 날 보더니‘멀쩡하구만’이라고 말 했다. 그래서 퇴원하기로 했다. 퇴원 수속을 마치고 나서 인티와 함께 병원 밖으로 나오다가 때마침 날 문병하러 온 유스타키오, 팀파니와 만나게 되었 다. 유스타키오는 날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멀쩡하잖아?” “안녕하세요.” 난 유스타키오와 팀파니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인사를 했기 때문에 인티도 얼떨결에 인사했다. 유스타키오는 인티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얜 누구야? 혹시 여자친구?” 얼레? 지금 그 말은 유스타키오가 인티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뜻? “얘 기억 안 나요?” 난 인티를 가리키며 유스타키오에게 물었지만 유스타키오는 고개를 흔들었 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억? 이럴 수가? “미영아, 넌 저 형 기억해?” 난 이번엔 유스타키오를 가리키며 인티에게 물었지만 인티도 같은 대답을 했다. “모르겠어요.” 얼레... 어째서 둘다 모른다는 거야? 척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나 말투가 비슷한데! ㅡ 차원의 융합은 천천히 일어나지. 기억 융합이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길 거든. 지금은 그 차원 융합이 완전히 끝났네. 즉, 지금 상태에서 기억 융합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나나 자네가 얘기를 해도 그곳에 서의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다는 소리지. 갑자기 떠오르는 플라톤의 말... 그렇다면 플라톤의 말처럼 기억 융합이 완 전히 끝난 것인가? 그래서 인티와 유스타키오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뜻? “강한아, 그럼 너 오늘 퇴원한거냐?” 유스타키오가 나한테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강한이의 퇴원 기념으로 내가 한 턱 내마!” 유스타키오는 나와 인티를 끌고 차에 태웠다. 그리고 어느 고급 레스토랑에 서 식사를 했다. 고급 레스토랑은 중국집과 분식집만을 들르는 나에게 생소 한 장소라 여러 모로 불편했지만 어쨌든 식사는 맛있었다. 타닥 탁탁ㅡ “왜 사건 현장에 있었지?” 인상이 험악하게 생긴 형사 아저씨가 타자기를 두드리며 나에게 물었고, 난 사실대로 말했다. “거기서 죽은 아저씨가 절 불렀거든요.” 타닥타닥ㅡ “왜 그 사람이 널 불렀지? 아는 사이인가?” “통신상에서 자주 만났죠.” 타닥타탁ㅡ “근데 너와 그 사람은 어떻게 학교 옥상에 올라갔지? 학교 옥상으로 가는 통로는 차단되어 있었는데.” “마법을 이용해서 올라갔죠.” 타닥타... “뭐? 마법?” 정신없이 타자기를 두드리던 험악한 인상의 형사 아저씨가 놀라 소리쳤다. 난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진술했다. “그 죽은 아저씨는 다른 세계에서 저하고 적대관계였는데 이 세계에 건너와 서 싸우게 됐죠. 제가 마법으로 그 아저씨의 가슴을 뚫어버렸어요.” “......” 형사 아저씨의 얼굴이 더더욱 험악해졌다. 그러다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야, 이 새꺄! 똑바로 못해?!” “전 사실대로 말하고 있는 건데요.”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려?!” 형사 아저씨는 날 때리려는 듯 손을 치켜들었다. 난 싸늘한 표정으로 그런 형사 아저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목격자를 때리려구요? 맘대로 해보시죠.” “이 새끼가...!” 형사 아저씨는 욕만 할 뿐 손을 쓰지는 않았다. 난 형사 아저씨가 진정하기 를 기다렸다가 물음을 던졌다. “근데 그 사건 현장에 이상한 물건들이 떨어져 있었을 텐데요. 검 하나하고, 돌멩이 하나, 그리고 두꺼운 책 하나, 붉은 구슬 하나.” “뭐야, 알고 있었냐? 그거 네거야?” “아니요. 죽은 그 아저씨 거예요. 그것들을 보고 싶은데요.” 내 말에 형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걸 보면 뭔가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는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흘... 지금쯤 학교 가서 공부하고 있을 시간인데... 내가 플라톤 사건의 목 격자인 것처럼 되어 버려서 진술을 해야 하다니... 아... 수능 망치면 이건 모두 형사들 때문이야... 내가 오늘 학교 빠진 것 때문에 투덜대고 있을 때 날 조사했던 형사 아저씨 가 플라톤 사건의 증거품들을 들고 나왔다.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지혜의 마법서 티탄, 그리고 붉은 구슬. 모두 멀쩡히 잘 보관되어 있었다. 터텅ㅡ “자, 왜 이종성이 이걸 학교 옥상에다 놔두고 있었는지 이제 알 수 있겠냐?” 얼레? 이종성? 아, 플라톤의 이곳 이름이 이종성이었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난 일부러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든 이 사성물을 몰래 훔쳐낼 기회를 만들 어야했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인상 험악한 형사 아저씨가 발끈했다. “네가 이걸 보여달라고 해서 힘들게 꺼내왔잖아! 근데 모르겠다니!!!” 헐... 이 형사 아저씨 무지하게 꽥꽥거리는 구만... 아무래도 사성물 회수 작전의 방법을 바꿔야겠어! “......” 난 사성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사성물을 쳐다보자 형사 아저씨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난 마나의 공명을 유도했고 머리 속으로는 내 방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성물을 이 경찰서에서 내 방으로 텔레포트시킬 생 각이었기 때문이었다. ━━━━━━━━━━━━━━━━━━━━━━━━━━━━━━━━━━━ ? ? W 번 호 : 6937 / 6937 등록일 : 2000년 02월 28일 00:50 등록자 : THEBUR 조 회 : 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9.새로운 시작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9.새로운 시작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608 게 시 일 :00/02/27 08:32:03 수 정 일 : 크 기 :11.4K 조회횟수 :53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여, 다른 이에게 공간의 문을 열어달라!’ 내가 마음 속으로 그렇게 소리치자 내 앞에 있던 사성물이 한순간에 연기처 럼 사라졌다. 무사히 내 방으로 사성물이 텔레포트 했음을 느낀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 형사 아저씨가 경악에 찬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으악! 증거품이 사라졌다!!!” “무슨 일이야, 임형사!” 주위에 있던 형사들이 즉시 몰려들었다. 임형사라고 불린 인상 더러운 형사 아저씨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성물이 놓여 있었던 책상을 가리 켰다. “여기에 분명히 증거품들을 올려놓았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어 !!!” 그러자 형사들 왈, “무슨 헛소리야?” “네가 잃어버리고 그러는 거 아니야?” 형사들은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형사만 바보가 되었다. “아니라구! 분명히 내 눈앞에서 증거품들이 사라졌다니까!!!” “그러면 그 증거품들이나 찾아!” 형사들은 모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평상시에 임형사에 대한 반감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궁지에 몰린 임형사가 갑자기 날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넌 증거품들이 사라지는 거 봤지?!” 헐... 뭐라고 대답할까나... “글쎄요... 전 형사님이 다시 치워버린 줄 알았는데요.” “뭐? 내가 언제 치웠다고 그래? 네가 숨긴 거 아니야?!” “그 물건들을 제가 어떻게 숨겨요.” “으악! 그럼 그것들이 어디로 갔냔 말이야!!!” 임형사는 마구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흔들었다. 난 임형사가 못 보게 손으 로 입을 가리고 씨익 웃었다. 결국 증거품들이 사라져버린 소동 때문에 난 일찍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우헐헐... 오늘은 학교도 안 가고 바로 집에 들어오게 되는구만. 그나저나 내 개근상이 날아가버리는 건가? 고등학교 들어와서 지금까지 한 번도 지각, 조퇴, 결석을 해본 적이 없는데... 경찰 조사 받느라 학교를 빠져 버려서 개 근상이 날아가는 구나... 뭐 3년 개근이야 대부분의 아이들이 하는 거지만... “왕왕!”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내가 도착했을 때 왠 강아지가 날 보고 짖었다. 몸집은 작고 털 색깔이 오렌지색인 강아지였는데, 바로 붉 은 구슬을 물고 이 세계로 떨어진 녀석이었다. “뭐야, 네가 왜 여기있냐?” 난 그 강아지에게 물었고, 강아지는 왕왕하고 짖기만 했다. 문득 강아지는 말을 못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떠올린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빨랑 가. 네 집으로 돌아가야지...” 아차... 이 녀석은 다른 세계에서 떨어져서 집이 없구나... 그럼 주인없는 개란 소리인데... 개장수들한테 걸리면 바로 보신탕 행이로구만... 하지만 난 아파트에 살아서 강아지를 기를 수도 없고... “그럼 재주껏 살아남아라.” 난 그렇게 강아지에게 말하고나서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섰다. 그러자 그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 난 가벼운 발길질을 하며 그 강아지를 쫓아버렸다. “왕왕!” 강아지는 날 따라오고 싶은지 계속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지만 난 그 녀석을 쫓아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단독 주택이었다면 집 안에 들여놓겠지만 이곳은 아파트... 나혼자 사는 곳이 아니었다. 강아지를 아파트에서 기르려면 성대 를 제거해야 되는데, 나에게 그럴 돈이 있을 리 없었다. “사라져 임마! 내가 널 어떻게 길러?” 난 일부러 위협적인 발길질로 강아지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내가 계 속 다가오지 못하게 하자 강아지는 우울한 울음소리를 발하고는 단지 밖으로 힘없이 걸어나갔다. 강아지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서야 난 고 개를 돌리고 내 집으로 향했다. 슬쩍ㅡ 난 혹시나 그 강아지가 가는 척하면서 내 뒤를 따라올까봐 고개를 돌려 보 았다. 그러나 강아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슴 한 구석이 찌릿해 왔다. 하지만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을 하며 곧장 아파트 안으 로 들어가 엘레베이터를 탔다. 우우웅ㅡ 엘레베이터의 동작 소리가 마치 그 강아지의 우울한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띵동. 12층입니다. 감사합니다.》 12층에 도착하고 나서 난 엘레베이터 바로 앞에 있는 비상 계단을 쳐다보았 다. 그러나 그 강아지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가 계단을 통해 올라온다는 허황된 생각을 잠시 하던 나는 내 집으로 향했다. 덜컥ㅡ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12층 복도를 쳐다보았다. 강아 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았다. 역시 강아지 의 모습은 없었다. 훗... 내가 왜 이런다냐... 강아지를 쫓아버렸으니 올 턱이 없지... 그래도 아쉽구만... 고놈 참 귀여웠는데 말이야... 한 끼 식사감으로는 충분했었는 데... 쿵ㅡ 문을 닫고 나서 바로 내 방에 들어갔다. 사성물이 모두 내 방에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지혜의 마법서인 티탄을 집어들어 펼쳐보았다. 플라톤이 죽기 전에 보여줬던 대로 티탄 안에는 어떤 글씨도 쓰여있지 않았다. 《넌 플라톤이 아니구나.》 얼레? 머리 속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는데? 설마 이 책이 낸 소리는 아니 겠지...? 《플라톤은 어떻게 됐나?》 허허... 이거 정말로 책이 말을 하는구만... 《야, 이놈아! 플라톤 어떻게 됐냐니까!!!》 갑자기 머리 속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바람에 티탄을 놓쳐버렸다. 그러자 내 머리 속을 울렸던 그 목소리는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스윽ㅡ 난 조심스럽게 다시 티탄을 집어들었다. 내가 티탄을 아무렇게나 펼치자마 자 또다시 그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아! 플라톤 어딨어?!》 나원... 성깔 한 번 더러운 책이구만... 《쓸데없는 생각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얼씨구... 아주 띠껍게 노는데? 기껏 책 주제에 지금 나한테 개기겠다는 거 냐? 확 불질러 버린다? 《불 같은 것에 탈 정도면 성물이라 불리지도 않았다, 이놈아!》 흘... 지는 걸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같군... 《플라톤은 어디있나?》 책 속의 목소리는 한결 누그러진 어투로 물었다. 길게 말하는 걸 싫어하는 난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죽었어.’ 《그런가? 누구한테?》 흘... 누구긴 누구야. 나한테지. 《플라톤 녀석도 한물 갔군. 너같은 녀석에게 지다니.》 어쩔씨구리... 책 주제에 지금 날 흉보냐?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뭐냐?》 정말 띠꺼운 책인데? 완전 반말이잖아? 《그래서 불만이라는 건가? 난 너보다 최소한 1000년은 더 살았으니 너한테 반말 쓰는 것은 당연해!》 1000년...? 이 책을 만든 사람이 마이크로 스피어라고 플라톤이 그랬는데... 이 책의 나이가 1000년이라는 것은 이 책을 만든 마이크로 스피어가 1000년 전의 사람이란 소리인가? 《아니. 마이크로 스피어는 그 세계에서 1000년 전의 존재이다. 사람이 아니 야. 그리고 너와 대화하고 있는 나는 바로 마이크로 스피어다.》 얼... 레? 무슨 소리야? 《지혜의 마법서 티탄... 그것은 나, 바로 마이크로 스피어의 정신 그 자체 라는 말이다.》 에엑?! 책 자체가 사람의 정신이라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1000년 전에 난 차원의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세계 가 모두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차원의 융합이 가능하다는 것이지. 그리고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신(神)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죽기 전에 난 내 모든 힘을 동원해서 내 정신을 이 책에 봉인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지혜의 마법서 티탄인 것이다.》 차원의 모든 것을 알아서 신들에게 살해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이 어떻게 차원에 대해 알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정신을 책에다 봉인시킨다는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것은 당연하다. 난 인간이 아닌 신(神)이니까.》 마이크로 스피어가... 신? 《마법으로 정신 봉인 같은 짓은 못한다. 신력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어쨌든 난 죽으면서 세 가지의 물건을 남겼다. 바로 크레졸, 리소좀, 붉은 구슬이 지. 쉽게 말해 사성물은 내 분신인 것이다.》 사성물이 마이크로 스피어의 분신이라고? 내용이 어째 요상하게 돌아가는 듯한...! 《내가 사성물을 만들어 인간 세계에 분산시키자 당황한 신들은 신력이 가장 약해 다루기 쉬웠던 붉은 구슬을 다른 세계로 방출해버렸다. 사성물이 한 세계에 모두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내가 바라던 것. 차원 융합의 발판을 만들어놓기 위해 난 일부러 붉은 구슬을 신들이 처분토록 했다. 그 멍청한 녀석들은 내 예상대로 붉은 구슬을 다른 세계로 방출시켰지. 내가 계획한 일인 줄도 모르면서 말이야.》 으윽... 전혀 이해가 안돼... 혼자 중얼대지 말란 말이야... 하나도 못 알 아 듣겠잖아! 《난 너보고 내 말을 알아들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우씨...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책이야... 아, 뭐 좋아좋아. 근데 넌 왜 죽으 면서 사성물을 남긴 거지? 뭔가 노리는 게 있었냐? 《물론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차원 융합의 여부였다. 그리고 플라톤을 통해 서 차원 융합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차원이 융합되면 너한테 어떤 이득이 돌아가는 거야? 《아니. 전혀 없다.》 엥? 그럼 뭣 때문에 차원 융합의 여부를 알아봤던 거냐? 《내 지식의 확실성을 위해서다. 내가 알아낸 차원 지식을 확인해보고 싶었 던 것이지.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모든 것이 내가 예측한 대로 움직였으니 까 말이야.》 얼씨구... 그 말은 플라톤이 차원 융합을 하도록 종용한 녀석이 바로 너라 는 뜻? 《그렇다. 플라톤은 어릴 때부터 많은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지냈다. 난 그 녀석의 아픔을 달래주고 하면서 녀석의 신용을 얻어낸 뒤에 차원 융합을 시도하도록 부추겼지. 녀석은 쉽게 차원 융합을 하겠다고 하더군. 자신이 완벽한 인간이 되면 더이상 차별과 멸시를 받지 않는다나?》 플라톤이 도대체 어떤 차별과 멸시를 받았길래? 《그걸 너한테 가르쳐줄 의무는 나한테 없다.》 이게 죽을려구 폼잡네? 흠흠... 뭐 책하고 싸워봤자 나한테 돌아오는 것은 없으니까 내가 참아주지. 어쨌든 결론은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의 진정한 주 동자는 바로 너란 소리지? 《왜 모든 걸 나한테 뒤집어 씌우려는 거냐? 난 단지 플라톤에게 차원 융합 의 방법만을 알려줬을 뿐이야.》 그게 그거지 왜 발뺌을 해? 《위험한 녀석이군. 세상을 그렇게 단순히 보지 마라.》 지금 이게 세상 보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이상한 데에다 연결시키고 있어... 그나저나 이 녀석은 어떻게 처리한다냐... 성물이라 태울 수도 없고 ... 그러고 보니 리소좀하고 크레졸은 어쩌지? 집에다 두면 리소좀 때문에 불법 무기 소지죄에 걸릴 지도...! 《다른 세계로 가라.》 엥? 다른 세계로? 지금 나보고 플라톤이 했던 일을 이어서 하라는 거냐?! 《아니, 내가 말하는 것은 차원의 원상복귀를 위해 다른 세계로 가라는 뜻이 다.》 얼렐레? 《지금 모든 인연의 끈이 떨어져 나간 그 세계는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대로 두면 필시 소멸해버리고 만다. 그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인 연의 끈으로 이어야 한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세계라니? 환타지 세계를 말하는 거냐? 《그렇다. 넌 그 세계가 소멸하기를 바라는가?》 환타지 세계의 소멸... 글쎄... 솔직히 환타지 세계가 소멸하든 말든 나하 고는 상관없잖아? 《과연 그럴까? 넌 붉은 구슬의 매개체이기 때문에 기억의 혼재가 얼마나 무 서운 것인지를 모르고 있어. 기억의 혼재를 겪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모 두 자살해버린다.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해서 말이야.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공포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상관없어. 그런 것도 견디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멍청한 거야. 《후후... 과연 그럴까? 어차피 넌 나에게 도움을 청하게 돼있어. 또 그럴 수밖에 없고.》 시끄러! 누가 너 따위한테 도움을 청할 것 같냐?! 《넌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 탁! 난 그대로 티탄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더이상 마이크로 스피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대로 다시 책을 펼쳐 도움을 요청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터텅ㅡ 리소좀을 책상 뒤쪽에다 잘 숨겨놓은 뒤 크레졸과 붉은 구슬은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 티탄은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그러다가 창문을 내다보게 됐는데 그때 아파트 단지 입구에 오렌지색 털을 지닌 강아지 하나가 서성이는 모습 이 내 눈에 들어왔다. 헐... 안 갔잖아? 난 아예 가버린 줄 알았는데... 근데 날 기다리는 건가, 아니면 다른 녀석을 기다리는 건가? 흠... 직접 가보면 알겠지? 쿵! 난 문을 닫고 즉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간 뒤 아파트 단지 입구로 뛰어갔다. 다행히 그 강아지는 계속 그 자리에서 서성이 고 있었다. 내가 강아지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 강아지가 날 보고 반가운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날 기다린 거냐?” 난 강아지 앞에 서서 물었고 강아지는 그저 꼬리만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모습은 내 물음에‘그렇다’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웃차” 강아지가 나에게 적대감이 없는 것 같아서 안아들었다. 역시나 그 강아지는 몸부림치지도 않고 순순히 안겼다. 귀여운 얼굴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는 강아지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메우기 시작했 다. ━━━━━━━━━━━━━━━━━━━━━━━━━━━━━━━━━━━ 5 번 호 : 6904 / 6926 등록일 : 2000년 02월 28일 00:53 등록자 : THEBUR 조 회 : 23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0.새로운 시작 -1부 끝-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새로운 시작 -1부 끝-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609 게 시 일 :00/02/27 08:32:53 수 정 일 : 크 기 :11.0K 조회횟수 :68 주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평일이라 모두 직장에 나갔기 때문이었다. 난 시선을 돌려 아파트 경비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경비 아저씨는 관리소 옆 에 놓여진 쓰레기 집합장의 쓰레기들을 보기좋게 정리하고 있었다. 누가 지 나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경비 아저씨는 신경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탁탁탁ㅡ 난 그 강아지를 안고 재빨리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마주친 사람 은 없었다. 그래서 별 어려움없이 엘레베이터를 탄 후에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쿵! 문을 닫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사실 그다지 크게 잘못한 일은 아니었 지만 나로서는 꽤 긴장했던 일이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긴장이 풀려 현관에 걸터 앉아버렸다. 강아지 녀석은 내 품에서 빠져나와 거실을 돌아다녔다. 아차...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 강아지를 보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아 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보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려운 일 인데... 저 녀석이 똥오줌을 제대로 가릴 수 있는 건지... 왠지 아무대나 막 싸버릴 것 같은...! 따르르릉ㅡ 얼레? 장난 전화인가? 지금 시각이... 5시 조금 못 되는군. 이 시간에 전화 할 인간은 없을테니까... 역시 장난 전화겠구만.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 화는 받아야지... 딸칵ㅡ “여보세요.” 《... 저예요... 미영이...》 얼레? 인티잖아? 지금 시간이면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어야 할 텐데? “미영이? 학교에서 전화하는 거야?” 《아니예요... 여긴 집이예요...》 역시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은 건가? “야자는 어떡하고?” 《그냥... 선생님께 오늘은 몸이 아파서 못 한다고 하고 나왔어요...》 흘... 몸 아프다고 야간 자율학습을 빼주다니... 우리 학교 선생들은 그런 말 절대 안 믿는데... 그건 여학교도 마찬가지인가? 어쨌든 인티는 선생한테 많은 신뢰를 얻어서 그렇겠지... 아니면 정말로 몸이 아프던가...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 《오늘... 실수 많이 했어요...》 얼렐레? 그런 걸 가지고 나한테 전화하는 거야? 인티도 참 할일이 없군...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아는 여자애를 보게 됐어요. 매쓰가 멸망하고 나서 이리저리 떠도는 중에 사귄 친구였죠. 사실 그 애를 만난 건 몇주일 전이었지만 그때는 일이 있어서 말을 걸지 못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환타지 세계에 대해 얘기 해보려고 그 애에게 말을 걸었죠. 하지만 그 애 는 절 기억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절 이상한 애라고 하면서 가버렸죠...》 “......” 《한미영이란 아이는 인티보다 조금 활동적이예요. 발표 시간에도 열심히 발 표하구요... 하지만 인티는 직접 나서서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 발표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구... 오늘 발표 시간에 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어요... 발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국 오 늘은 발표를 하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그런 날 보고‘변했다’라고 했어요. ..》 “......” 《전 어떻게 해야되죠? 정말로 모르겠어요...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요 ...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그래서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티의 목소리는 점차 심하게 떨렸다. 울음을 애써 참고 있었다. 난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입을 열면 오히려 인티의 마음을 더 흐트려놓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죄송해요... 제 넋두리만 늘어놓구...》 인티는 거짓으로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그런 인티에게 난 이렇게 밖에 말해 줄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든 해볼께... 너무 걱정하지마...” 《... 고마워요 오빠... 그럼 끊을게요...》 “그래.” 《네...》 달칵ㅡ 뚜우뚜우ㅡ 난 한동안 수화기를 놓지 않고 들고 있었다. 그때 강아지가 나한테 다가와 내 다리에 머리를 부벼댔다. 난 수화기를 내려놓고 강아지에게 물었다. “넌 네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살랑살랑ㅡ 강아지는 날 쳐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강아지의 그런 행동은 내 결심을 굳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즉시 내 방에 들어가서 책꽂이에 꽂아두었던 티 탄을 꺼내어 펼쳤다. 《역시 내 예상대로군.》 시끄러. 《네 소중한 사람이 기억의 혼재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있어서 그렇겠지? 그 세계를 원상복귀시키는 방법을 나한테 물어보기 위해서. 안 그런가?》 빌어먹을 녀석... 다 알고 있군... 《좋아, 가르쳐 주마. 그 세계를 원상복귀시키는 방법을 말이야.》 난 최대한 집중력을 높여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을 경청했다. 마이크로 스피 어는 환타지 세계의 원상복귀 방법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세계를 원상복귀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세계와 이어줄‘끈’이 필요하다.》 끈? 그걸 어디서 구하지? 《그건 간단하다. 다른 세계에 가서 끈을 만들어 오면 되는 거야.》 그게 더 이해하기 어려워... 《한마디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긴밀한 인간 관계를 가지란 말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좋든 나쁘든 서로를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긴 밀한 인연을.》 그런 인연을 만들어서 뭘 어쩌라구? 《말했잖아? 긴밀한 인연을 만들면 인연의 끈은 더 굵어지고 더 많아져. 그 렇게 만들어진 인연의 끈을 잘라다가 모든 끈이 끊어진 채 동떨어져 있는 그 세계를 연결시키는 거야.》 정확히 이해가 안 가는데? 《정말 머리가 나쁘군.》 내 머리가 나쁜거냐? 네가 설명을 못하는 거지. 《너같은 녀석에게 설명하는 건 골치아퍼.》 잘났구만. 어쨌든 내가 해야하는 일은 뭐야? 《이런 덜 떨어진 녀석... 다른 세계로 가서 긴밀한 인연을 만들라니까!》 헐...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결론은 다른 세계로 가면 된다는 거잖아. 그 런데 말이야... 어떻게 다른 세계로 가냐? 《그거야 붉은 구슬을 다른 세계로 방출할 때 같이 따라가면 돼.》 그러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겠군. 근데...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해? 《......》 얼씨구? 왜 대답이 없어? 《돌아오는 방법은 나도 장담을 못하니까 그런다.》 으헥?! 《붉은 구슬을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해도 나머지 삼성물은 이 세계에 남게 된다. 확실하게 돌아오려면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삼성물을 이 용해 붉은 구슬 소환을 하도록 해야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가 충분한 인연의 끈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널 다시 소환하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말짱 도루묵이지.》 그럼 어떻게 해야되는데? 《충분한 인연의 끈을 만들었다고 네 자신이 느낄 때 돌아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네 자신이 그 다른 세계의 어떤 성물을 이용해 이곳으로 다 시 건너와야 해. 그 방법 밖에는 없다.》 다른 세계의 어떤 성물? 그런 게 있을까? 《있다. 다른 세계마다 적어도 하나의 성물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야. 단지 그것을 네가 찾느냐 못 찾느냐가 문제지.》 근데 왜 이 세계에는 성물이 없어? 《찾아보면 있어.》 흘... 네 녀석 말은 믿을 수가 없어...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다. 어차피 실행할 사람은 너니까.》 “......”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세계로 가야 하나? 인티를 저대로 내버려 두 면 헤모글로빈처럼 자살할지도 모를텐데...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가야겠군. .. 제길... 수능이 45일 정도 남았는데... 《수능이 문제가 아니다, 이 녀석아.》 뭐? 그럼 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냐? 《그렇다. 차원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나도 몰라. 그래서 네가 다른 세 계를 여행하다 돌아오면 이곳 세계는 1초도 흐르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 로 수십 년이 흘러가 버릴 수도 있어.》 예측 불허라는 건가... 《그래. 네가 돌아왔을 때쯤에는 너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 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제길...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운에 맡겨라.》 ... 아주 쉬운 대답이구만... 《시간에 대해선 전적으로 운에 맡길 수밖에 없어. 넌 우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인연의 끈이나 열심히 만들어 내라고.》 운에 맡겨야 하다니... 예전부터 내 운은 더러웠는데... 《예전에는 더러웠으니까 지금은 운이 좋을 수도 있어.》 어쩔 수 없군. 운에 맡기도록 하지. 근데 내가 인연의 끈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너하기에 달렸다. 인연의 끈을 만들려면 친구를 많이 사귄다던가, 적 을 많이 만든다던가 해야해. 물론 둘다 만들면 더 확실하지만. 내 생각엔 넌 친구보다는 적을 더 많이 만드는 편이 확실한 인연의 끈을 만드는 데 더 좋을 것 같은데?》 너 죽을리? 《후후, 어쨌든 잘해봐라. 그 세계의 원상복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으니 까. 근데 넌 부모님 걱정은 안하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데?》 난 그런 거에 신경 안써. 《가정에 문제 있냐?》 문제가 있든 말든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빨리 붉은 구슬 방출 방법이나 알 려달라고! 《성질 한 번 급하구만. 좋아, 그렇다면 나머지 성물을 모두 꺼내라.》 난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대로 책상 뒤쪽에 숨겨놓은 리소좀과, 책상 서랍에 넣어둔 크레졸과 붉은 구슬을 꺼냈다. 마이크로 스피어는 나에게 지시를 내 렸다. 《우선 리소좀으로 큰 원을 그려라.》 억? 리소좀으로 원을 그리라고? 이 방에서? 장판에 자국을 내면서? 《그래. 마법진을 그리는 거다.》 으윽... 다른 데서 하면 안 되냐? 《그럼 옥상에서 하던가.》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잠겨져 있어서 못 올라가... 《그럼 거실에다 그려.》 이런... 거실 바닥에다 칼자국을 내야 하다니...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걸리 면 맞아 죽겠구나... 스슥ㅡ 난 큰맘먹고 거실 바닥을 리소좀으로 그었다. 큰원이 하나 만들어지자 마이 크로 스피어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렸다. 《방금 그린 원보다 조금 작은 동심원을 그 안에다 그려라. 그리고 나서 안 에다 그린 작은 원에 네 머리통만한 동심원을 그려넣어라.》 얼씨구... 동심원만 세 개를 그리라구? 참 단순하구만... 《단순해서 불만있나?》 좀 복잡해야 멋있어 보이지... 《복잡하면 내가 어떻게 외워?》 흘... 신이라면서 그런 것도 못 외우냐? 《잔말말고 원이나 그려!》 마이크로 스피어는 버럭 화를 냈다. 마법진이 간단해서 그리기 쉬웠기 때문 에 난 투덜대지 않고 마법진을 완성했다. 내가 마법진을 다 그리자 마이크로 스피어가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이제 제일 작은 원과 두 번째로 작은 원 사이에다 삼성물을 놓아두면 된다. 그리고 나서 네가 붉은 구슬을 들고 제일 작은 원 안에 들어서면 다른 세 계로 가는 것이다. 알아듣겠지?》 잘 알아들었다구. 너무 쉬워서 허탈할 지경이다... 《그럼 행운을 빈다.》 아, 근데 말이야... 어째서 신들이 널 죽인 거냐? 《... 내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이지. 아무도 모르는 차원의 비밀, 끈으로 이 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니까 말이야. 그걸 내가 악용할까봐 날 제거한 거야.》 그래... 너 잘났다... 《당연히 난 잘났다. 인간인 너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하지!》 네 녀석을 상대하다간 내가 바보될 것 같아 여기까지 해주지. 그럼 돌아와 서 또 보자. 《무사히 살아돌아오기나 해라.》 흘흘... 걱정마라. 이래뵈도 난 10클래스의 마법사니까 말이야. 《네 마법을 너무 과신하지 마라. 다른 세계로 갔을 때 네가 마법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걱정해줘서 고맙구만. 어쨌든 잘 있어라. 난 간다~ 탁! 티탄을 덮고 나서 리소좀, 크레졸과 함께 제일 작은 원과 두 번째 원 사이 에 등간격으로 배치했다. 그러자 삼성물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빛의 기둥 비 슷한 것을 만들어 내었다. 난 붉은 구슬을 들고 작은 원 안으로 발을 내딛었 다. “왕왕!” 그때 강아지가 그런 날 보고 짖어댔다.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것처럼. “참, 너도 네 세계에 가고 싶다고 했지?” 살랑살랑ㅡ 내 물음에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었다. 난 한쪽 팔을 강아지에게 내밀었다. “자, 가자.” “왕왕!” 강아지는 내 품에 뛰어들었고, 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빛의 기둥 안으로 들 어갔다. 빛의 기둥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치 공간의 문을 지날 때의 느낌이었다.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마음은 심하 게 떨렸다. 이 강아지가 살고 있던 그 세계는 어떤 곳일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내가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었다. 나 에게는 할일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그 일을 다 끝낼 때까지는... 절대로 무너질 수 없다... 난 그렇게 나 자신과 약속했다. 난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녀석이니까. -끝- ======================================================================= 이걸로 사이케델리아 1부는 끝났습니다. 저번의 통신판보다는 내용이 더 괜찮아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입니다...ㅡㅡ; 그리고 4권이 출판되는대로 올렸던 글은 삭제됩니다... ━━━━━━━━━━━━━━━━━━━━━━━━━━━━━━━━━━━ 나르는 이 입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며칠동안 나르지 못하게 습니다. 3월 1일에 한꺼번에 옮기겠습니다. 죄송...--;;;; 번 호 : 7146 / 7147 등록일 : 2000년 03월 13일 23:37 등록자 : THEBUR 조 회 : 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1. 백지 -1- (2부) 제 목 :[사이케델리아] 01.백지 -1-(2부)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00 게 시 일 :00/03/13 05:51:3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48 오늘부터 사이케델리아 2부 올립니다... 조금밖에 써놓질 않아서 조금씩만 올려야 되겠네요... 글을 빨리 쓰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ㅡㅡ; (난 도저히 글쓰는 거랑 체질이....ㅡㅡ;;;;;;) ================================================================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2 부 : 혼합 세계 탐험 <제 1 장> 백지(白紙) 부우웅ㅡ! 음…… 이 소리는…… 자동차의 출발 소리? 빵빵! 으윽……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다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왕왕!” 으으…… 이번엔 개까지 짖어대냐? 짜증나 죽겠구만! 아, 좋아좋아. 정 그 렇게 날 재우기 싫다면 차라리 내가 일어나주마! 띵ㅡ! 우욱, 머리야……. 머리가 멍하구만. 도대체 내가 얼마동안 자고 있었던 거 지? 주변은 또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 난 그렇게 투덜거리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먹구름이 짙 게 끼인 어두운 하늘이었다. 날씨는 약간 쌀쌀해서 반팔 상의를 입은 나에게 는 조금 춥게 느껴졌다. “왕왕!”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있던 내 귀로 또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 다. 오렌지색의 털을 가진 조그만 강아지. 이 강아지는…… 봤었던 강아지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다 른 세계에서 왔었지…… 그래서 내가 우리집에서 기르려고 데려왔고. 얼레? 근데 왜 난 이런 데에 누워있는 거지? 벌떡ㅡ! 난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였 다. 주위에는 높은 빌딩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어떤 건물의 옥상인 듯했다. “왕왕!” 내 옆에 있던 그 강아지는 내가 몸을 일으키자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난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높은 빌 딩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난 확실히 삼성물의 힘을 이용해서 다른 세계로 건너갔을 텐데? 어째서 현대식의 건물이 보이는 거야? 설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 실패해서 내가 살고 있던 세계의 다른 나라에 떨어져 버린 건가? 아니면…… 이곳이 다른 세계인가? 빵빵ㅡ! 시끄럽게 허공에 울려퍼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난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 나 옥상의 끝부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래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자 동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그리고 육교도 보였다. 잘 정리된 거리에는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색은 제각각 달랐다. 이거…… 정말 헷갈리는데? 다른 세계로 넘어온 건지, 다른 나라로 넘어온 건지……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색이 저렇게 다양할 리가 없을 텐데…… 저건 염색한 머리가 아니라 머리색이 본래 저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넌 어떻게 생각하냐?” “왕왕!” 흘……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다…… 아차, 붉은 구슬은 어떻게 됐지? 내 가 가지고 있는 건가? 뒤적뒤적ㅡ 난 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붉은 구슬을 찾았다. 하지만 붉은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강아지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총총히 뛰어가 더니 이내 무엇인가를 물고 왔다. 그것은 붉은 구슬이었다. “아, 거기 있었구나. 나 줄거지?” 난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고 강아지는 내 손에다 붉은 구슬을 떨어뜨려 주 었다. 그런 강아지가 귀여워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강아지의 목 에 무엇인가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찰칵ㅡ 그것은 개에게 달아주는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에는‘RAI’라고 써져 있었 다. 그 영문자가 이 강아지의 이름인 듯했다. “이거 네 이름이냐? 라이?” “왕왕!” 내가‘라이’라고 부르자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멍멍거렸다. 강아지의 반 응을 보아 라이가 강아지의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근데…… 여기는 알파벳을 사용하나? 이거 점점 더 헷갈리는데? 확실히 다 른 세계로 넘어온 건지 아니면 알파벳을 사용하는 나라로 공간 이동만을 한 건지……. 뚝! 웃, 차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는데…… 빗방울인가? 이런, 먹구름이 잔뜩 끼인 걸로 봐서는 곧 비가 쏟아지겠는걸? 어디 비를 피할 데가 없나? 비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다가 옥상에 세워진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라이를 품에 안고 급히 그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옥상으로 올라오는 통로였다. 후투투툭ㅡ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로 봐서는 소나기인 듯했다. 날씨가 쌀 쌀했기 때문에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급히 그 통로 안으로 문 을 열고 들어갔다. “왕왕!” 통로 안이 어두워서 두려움을 느꼈는지 라이가 짖어댔다. 난 라이를 달래며 통로에 나있는 계단을 따라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계단에는 형광등 같은 것 도 없어서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에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구르지 않도록 조 심했다.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통해 맨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건물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건물 입구의 벽 안쪽에는 이 건 물의 구조도가 그려진 표지판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1 isyi margoto…… 2 isyi dagkinja…… 3 isyi manhahe…….” 얼레? 요상한 영문자네? 숫자만 알아보겠고 나머지는 모르겠다. 눈치로 때 려잡으면 isyi 가 1층, 2층할 때 그‘층’같은데…… 어떻게 읽는 거야? “아, 띠벌. 뭔 비가 이렇게 내려?” “옷 다 젖었잖아?” 내가 입구 벽에 걸린 표지판을 쳐다보고 있을 때 세 명의 사람이 건물 안으 로 들어왔다. 모두 17살 정도의 남자 녀석들이었는데 서로 맞춰 입었는지 세 명 다 쫄티에 쫄바지를 입고 머리에 무스를 잔뜩 떡칠하고 있었다. 소나기를 맞은 탓에 녀석들의 옷은 모두 젖은 상태였다. 헐…… 이거 왠지 저 녀석들이 날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은…… 하지만 이놈 의 소나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고……! “뭐야, 새꺄! 비켜!” 세 남자 녀석 중에 하나가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가 계단 앞을 막고 있 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난 급히 옆으로 비켜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날 화풀이 대상으로 찍어버렸다. “이 새끼가?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할 거 아니야?!” 퍽ㅡ!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한 녀석이 내 다리를 걷어찼다. 다리에 굉장한 고통 이 느껴졌다. 다행히 계단 난간을 붙잡아서 간신히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공격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비 맞아서 기분 나쁜데 이 새끼가 죽을라고!” 퍽!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쳤다. 그 일격을 맞고 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그러자 내 품에 있던 라이가 마구 짖어댔다. “왕왕왕!!!” “뭐야, 이 개새끼는?!” 퍼억ㅡ! “깨갱ㅡ!” 녀석의 발길질에 라이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뒤에 서 있던 녀석들은 재미 있는지 킬킬대며 웃고 있었다. 내가 맞아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세 녀석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블라레임!’ 난 불의 정령왕인 블라레임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블라레임에게선 응답 이 없었다. 아니, 정령계 자체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느 껴지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정령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구! 여기서 정령 들의 도움이 없으면 내가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해!!! “어쭈? 아직도 반성하지 못했냐? 좀더 맞아야겠구만!” 날 발로 찼던 올백 머리 녀석이 다시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난 급히 오른발로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어떻게든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으악!!!” 올백 머리 녀석은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나머지 녀석들이 주먹을 불끈쥐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이 새끼!” 퍽! 난 또다시 달려드는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녀석은 무식하게 주먹으 로 공격하다가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 말았다. “어억……!” 나에게 걷어차인 녀석은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또 다시 한 놈이 쓰러지자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은 발차기로 날 공격했다. 난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그 녀석의 발차기를 가슴에 맞고 말았다. “컥!” 고통스러웠다. 내가 바닥에 쓰러지자 그 녀석이 날 밟으려고 했다. 꼼짝없 이 녀석의 발에 밟히려는 순간,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 샌가 일어난 라 이가 녀석의 다리를 물어버린 것이었다. “으악, 이 개새끼가!!!” 녀석은 다리를 마구 흔들어서 라이를 떨어뜨리려 했다. 손으로 라이를 치기 에는 다리의 통증이 심해서 그럴 수 없는 것 같았다. 난 그 사이에 재빨리 일어나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ㅡ! “억!!!” 녀석은 내 주먹에 맞고 휘청였다. 그렇게 녀석에게 한 방 먹인 후, 난 있는 힘껏 밖으로 내달렸다. 싸움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 일꾼: 오랜만이니 상규님의 멜 주소를... sakali@uitel.co.kr입니다 ^0^ 번 호 : 7147 / 7147 등록일 : 2000년 03월 13일 23:37 등록자 : THEBUR 조 회 : 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2. 백지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02.백지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01 게 시 일 :00/03/13 05:52:03 수 정 일 : 크 기 :5.7K 조회횟수 :35 쏴아아ㅡ 철퍽철퍽ㅡ! 소나기는 사정없이 퍼붓고 있었다. 난 소나기를 맞으며 무작정 뛰어갔다. 맨처음에 올백 머리 녀석에게 걷어차인 다리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 다.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계속 달렸다. 그 녀석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어억!” 철푸덕ㅡ! 무작정 뛰어가다가 어딘가에 걸려 엎어져 버렸다. 소나기는 사정없이 내 등 을 때렸다. 난 그냥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차라리 그게 편했다. 빠앙ㅡ! 버스가 내 옆을 지나갔다. 도로에 고여있던 물이 버스의 타이어에 치여 날 덮쳤다. 가뜩이나 소나기에 젖은 몸이 완전히 젖고 말았다. “…….” 난 차도 바로 옆에 누운 채 내 옆을 지나다니는 차량을 쳐다보았다. 가끔씩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 때문에 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우산을 쓰고 지나 가던 사람들이 날 보고 웅성거렸다. 하지만 난 그대로 있었다. 쏴아아ㅡ 툭ㅡ 투둑ㅡ 퍼붓듯이 쏟아지던 소나기가 마침내 멎었다. 소나기가 멎자 인도에 계속 누 워있기가 거북스러워졌다. 그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문득 라 이 생각이 나서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 살랑살랑ㅡ 라이는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온몸이 온통 비에 젖은 라이의 모 습은 가여워 보였다. 난 라이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이 이 상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거북해져서 난 급 히 발걸음을 옮겼다. 철퍽ㅡ 철퍽ㅡ 후…… 이런 꼴을 당하다니…… 그 빌어먹을 녀석들 때문에…… 젠장! “왕왕!” 내 품에 안겨있던 라이가 놓아달라는 듯 짖어댔다. 그래서 난 라이를 놓아 주었다. 내 품에서 빠져나온 라이는 몸을 바르르 떨어 물기를 털어냈다. 몸 을 털었기 때문에 라이의 털은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우…… 춥다……. 아직 여기는 봄인가? 근데 봄에 왠 소나기가 내리냐고… … 제길, 옷이 다 젖어서 기분 정말 더럽구만……. 이러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니야? “왕왕!” 라이는 나보고 따라오란 듯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달릴 힘이 없어서 그냥 느릿느릿 걸어갔다. 라이는 내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다 가 다시 앞서 가는 것을 반복했다. 달리 갈 곳도 없는 난 그저 라이의 뒤만 따라다녔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었 다. 그런 내 눈에 공원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라이를 따라가다보니 어떤 공 원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털썩ㅡ 난 그대로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자 앞서가던 라이가 나한테 오더니 왕왕 짖어댔다. 하지만 난 걸을 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앉아 있었다. 타닥타닥ㅡ 내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라이는 어딘가로 달려가버렸다. 갑자기 배 신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는 내 옆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개는 개일 뿐이야…… 쓸데없이 기대를 건 내가 잘못이지…… 그 나저나 이거 추워 죽겠는걸? 흠…… 여긴 아무래도 봄인 것 같다. 공원에 꽃 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공원이 참 한적하군. 덜덜덜……. 으…… 아직 쌀쌀한 봄날씨에 반팔을 입고 있고…… 게다가 그 옷도 홀딱 젖어버려서 너무 춥다…… 이러다가 동태되겠어…… 추우니까 자꾸 졸음이 오는데? 이런…… 잠을 자지 않으려면 잡생각 같은 걸 해야 되겠다……. “어머, 저 애 가출했나봐?” “그러다 듣겠다.” 내 앞을 지나가던 젊은 커플이 그렇게 수군대었다. 그들과 얼굴을 맞추기 싫어서 난 고개를 숙였다. 사실 지금 난 가출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얼레? 저 커플이 주고 받은 그 말…… 그건 한국말이 아니잖아? 영어도 아 니고 무슨 이상한 말이었는데…… 어째서 내가 그 말을 알아들은 거지? 엇… … 생각해보니까 날 죽도록 때리려고 했던 그 세 녀석들도 방금 전의 커플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내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환타지 세 계에 떨어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제노글로시아(Xenoglossia)를 얻었다는 소리? 찌륵 찌륵ㅡ 공원 나무에 까치 두 마리가 내려와 앉았다. 이곳의 까치가 내가 살던 곳의 까치와 다른 점이 없어서 그런지 까치를 보자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나원, 까치는 똑같은데 인간들은 다르구만. 머리색이 각양각색이야. 모두 염색하고 다니나? 아무래도 내가 확실히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한 것 같 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만약 이곳이 다른 세계라면…… 설마 과학이 무 시무시할 정도로 발전된 곳?! 부아아앙ㅡ! 오토바이가 가공할 소음을 발생시키며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소음통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소리를 크게 한 미친 인간인 것 같았다. 제길…… 더럽게 시끄럽군. 얼레? 땅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가 있다는 소리 는…… 과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는 뜻이잖아? 과학이 발전했다면 적어 도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공원도 내가 살던 곳과 거의 차이가 없구만…… 갑자기 차원 이동이 실패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어떤 나라에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닐 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으음……” 엇…… 졸음이 몰려온다…… 제길, 공원 벤치에서 쪼그리고 자면 추한데… … 여기서 자다간 잘못하면 동사(凍死)해버릴 지도 몰라…… 제길…… 잠들 면 안돼…… 잠들면…… 안돼…… 음…… 내가 지금 어디있는 거지? 등 뒤의 감촉으로 보면…… 침대 위에 누 워있는데…… 이불을 잔뜩 덮고 있네? 헉!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알몸이잖아? 어어억…… 도대체 누가 벗긴 거냐? 팬티 하나만 달랑 입히다니! 근데…… 난 분명히 공원 벤치 위에 앉아 있어야 할텐데? 설마 내가 공원 벤치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린 건가? 그래서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날 집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 전개?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런 마음씨 착한 사람이 있을 리가……! 철컥ㅡ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난 눈뜰 힘도 없어서 그냥 누워 있었다. 왠지 내가 환타지 세계에 떨어져서 아세트와 만날 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비 슷한 것 같았다. 우헐헐…… 기왕이면 아주 예쁜 여자애가 날 간호하러 온 것이면 좋을텐데 말이야…… 근데 왠지 여자는 아닐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아직 안 깨어났나?” 윽…… 역시 여자는 아니었어…….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 나이든 할아버지 인 것 같은데…… 뭐, 할아버지가 예쁜 손녀와 함께 어떤 외딴 집에 살고 있 다는 전개도 있기는 있으니까 기대를 해볼까나? ━━━━━━━━━━━━━━━━━━━━━━━━━━━━━━━━━━━ 번 호 : 7155 / 7156 등록일 : 2000년 03월 14일 23:22 등록자 : THEBUR 조 회 : 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3. 백지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03.백지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11 게 시 일 :00/03/14 06:41:17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67 “으으……” 허걱! 할아버지한테‘나 깨어났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신음 소리밖에 안 나온다……! “오, 이제 깨어났군!” 할아버지는 내가 깨어나자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눈을 뜨려고 안간힘 을 썼다. 다행히 눈 뜨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힘이 들지 않았다. 헐…… 이 할아버지는 호리호리하군. 옷은…… 신선(神仙)들이 입는 것같은 품이 넉넉한 거잖아? 어떻게 보면 유도복하고 비슷하구만. 에…… 수염을 꽤 길렀네? 음…… 그리고 백발(白髮)이군. 얼레? 흰색이 아닌데? 머리칼하고 수염이 번쩍번쩍 빛나는 걸로 봐서는…… 은색인가? “내가 보이나?”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고 난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 다. 눈을 뜨는 것보다 입을 여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테니까.” 은발의 할아버지는 두툼한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따스함이 느껴지 는 손길이었다. 철든 이래로 느껴보지 못했던 손길. “저……” 난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수염의 길이로 보면 확실히 나이가 많을 테지만 아무리 봐도 50대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신선 분위기의 할아버 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든 물어보거라.” “여기는…… 어디예요?” 우선은 그게 궁금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 으니까. “오죠룬 마법학교 교장실 내방(內房)이란다.”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말했지만 난 자연스럽게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특히 마법학교란 말이 내 귀를 잡아끌었다. “마법학교요? 그런 게 있어요?” “허…… 마법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벌써 200년이 지났는데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에엑? “그런가요…… 전 처음 듣는데……” 내 말에 할아버지는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한테 질문을 했다. “넌 네 이름을 기억하느냐?” “…….” 흘…… 이거 카르본 숲에서 아세트랑 만나 얘기하는 상황하고 비슷하게 돌 아간다? 그때도 아세트가 내 이름을 물었는데…… 역시 내 이름은 가르쳐 주 기가 싫어……. “기억이……” “아, 그렇군!” 내 말을 듣자마자 할아버지는 알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안쓰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기억 상실증 같구나. 그래서 마법학교에 대해서도 모르는 거겠지.” 흘…… 아세트하고 똑같이 생각하시는 군요…… 이제 할아버지도 아세트처 럼 저한테 이름을 지어주시겠죠? “흠…… 네가 이름을 기억해낼 때까지 내가 네 이름을 임시로 지어도 되겠 느냐?” “예…….” 역시 이 할아버지도 나한테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군. 어떤 이름을 지어줄 까? 그러고 보니 여기 이름은 어떤 식이지? 설마 환타지 세계처럼‘니트로벤 젠’같은 아주 구린 이름? “음…… 류드나르가 좋겠군. 어떤가?” 잠시 열심히 생각하던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생각해내고 나한테 의견을 물 었다. 난 조금 당황했다. 이상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헐…… 환타지 세계에서 이상한 이름만 들어서 정상적인 이름이 오히려 이 상하게 느껴져…… 근데 류드나르? 류드나르를 저 할아버지가 구사한 언어로 해석하면……‘류드’는 현명,‘나르’는 사람…… 헉! 현명한 사람?! “제가 그 이름과 어울릴까요……?” “허허, 어울리고 말고. 자고로 현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발이었으니까 말 이야.”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듯이 껄껄 웃었다. 류드나르라는 이름이 조금 쑥쓰러 웠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그 말을 내 이름이라 생 각하기로 했다. 얼레? 근데 방금 할아버지가 현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발이었다라고 하지 않았나? 왜 그런 말을 한거지? 은발하고 나하고 무슨 관계길래? 내가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은색 수염을 아 래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은발은 다른 머리색보다 출현 빈도가 훨씬 낮네. 출현 빈도가 낮기 때문인 지는 몰라도 은발을 가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큰일을 했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말이야. 자네도 은발인 것을 보면 장차 큰일을 하게 될지도 몰 라.” 허걱?! “제가 은발이라구요?!” 난 상체를 벌떡 일으켜 할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몸을 일으킨 날 보고 할아버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 가 이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냐? 넌 네가 은발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거냐?” 허거걱! “거울을 볼 수 있을까요?” 난 할아버지에게 부탁했고 할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떼어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울을 받아들자마자 난 내 머리색 을 확인했다. 거울을 통해 내 머리를 보았을 때 난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검은색이어야 할 머리칼이 빛나는 은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건 말도 안돼! 난 염색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머리색이 은색이냐 고! 머리색이 다양했던 환타지 세계에 떨어졌어도 내 머리색은 그대로였는데 …… 어째서 여기 오니까 머리색이 바뀌는 거야!!! “이제 자네가 은발이란 사실을 기억하겠나?” 할아버지가 거울만 멍청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쩔 수 없이 난 내가 은발이란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그렇네요…….”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은 똑같은데 머리색만 바뀌다니…… 뭐…… 머리 가 은색이라 그런지 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군. 은발에서 광택까지 나고…… 신기해~ “류드.” 할아버지가 자상한 어조로 날 불렀다. 류드나르라는 이름을 줄여서 그렇게 부를 생각인 것 같았다. 난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얼굴을 조금 굳히며 나에게 물었다. “넌 네가 어디서 살았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기억하느냐?” 흘…… 여기에 대해서 뭘 알아야 대답을 하든 말든 하지…… 그냥 모른다고 잡아떼야겠다! “글쎄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갈곳은 있느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 할아버지는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근데 나에게는 그 한숨이 안도의 한숨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요상한 느낌의 한숨을 내쉰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 으며 다시 물었다. “정 갈곳이 없다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지 않겠느냐?” 오옷~ 내가 원했던 말이었어! 이제 노숙(路宿) 같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 겠구나~ “그렇게 해도 될까요?” 당장‘그럴게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예의상 그런 말을 띄웠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까지 휘휘 내저으면서 말했다. “어려워할 필요없다. 같은 은발의 사람을 만나니까 기분이 좋구나.” 흘…… 단지 은발이라는 이유 때문에 살게 하는 것 같은데? 뭐 이유야 어찌 됐건 길바닥에서 잠잘 일은 없으니까 잘된 거지~ 근데 난 어디서 묵어야 하 는 거냐? “저…… 제 옷은……” “아, 잠시만 기다려라. 네 옷은 완전히 젖어서 입을 수가 없어.‘네오’가 네 옷을 사러갔으니 곧 올거다.”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는 방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로 걸어갔 다. 그제서야 약간 마음이 진정된 나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보았다. 방은 조금 특이했다. 방 하나에 냉장고와 책상, 옷장, 침대, 부엌, 샤워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방은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방 크기 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자, 오렌지 쥬스다. 마시거라.” 어느새 내 앞으로 걸어온 할아버지가 나에게 오렌지 쥬스가 담긴 유리컵을 건네주었다. 오렌지 쥬스는 싫어하지만 할아버지가 성의로 주는 것이라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할아버지 성함은……” “아, 난‘파틴스왈러’다. 성(姓)은‘게이로’지. 그러고 보니 네 성을 아 직 정하지 않았구나. 흠……‘보나이’라는 성을 쓰는 게 어떠냐? 보나이 류 드나르…… 괜찮을 것 같은데.” 얼레? 류드나르 보나이가 아니고 보나이 류드나르? 성을 이름 앞에다 쓰네? 꼭 우리나라처럼…… 아, 이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의 어순도 우리나라 어순 과 똑같구나! 단지 한국말이 아닌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말을 쓰는 게 다를 뿐이야! ━━━━━━━━━━━━━━━━━━━━━━━━━━━━━━━━━━━ 번 호 : 7156 / 7156 등록일 : 2000년 03월 14일 23:23 등록자 : THEBUR 조 회 : 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4. 백지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04.백지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12 게 시 일 :00/03/14 06:41:4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64 “내 멋대로 지은 성을 쓰는 게 꺼림직하느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난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아니예요. 앞으로 보나이 류드나르란 이름을 쓸게요.” “다행이구나. 근데 류드.” 할아버지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날 불렀다. 뭔가 요구를 할 것만 같은 표 정. 난 침을 꼴깍 삼킨 다음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으으…… 제발 무리한 요구만 하지 않기를……!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 오잉? “마법이오?” “그래.” 할아버지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보고 마법을 배우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요구인 것 같았다. 헐…… 이미 10클래스를 이룩한 내가 마법을 배워서 무엇하리요~ 뭐, 이곳 의 마법이 약간 다를 수도 있으니까 배우는 것도 괜찮긴 하겠지. 근데 내가 살던 세계만큼이나 과학이 발달한 곳에서 마법을 배운다라…… 기분이 묘하 구만. “마법은 누구한테서 배우는데요?” “아, 정말 마법 배울 생각이 있는거냐?” “예.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 그거 잘 됐구나!” 할아버지는 굉장히 기뻐했다. 내가 마법을 배우는데 할아버지가 왜 기뻐하 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잠시 껄껄 웃던 할아 버지는 무슨 부탁을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라이를 맡아주지 않겠느냐?” 얼레? 라이를 맡으라고? 라이가 누군데? “교장 선생님! 옷 사 가지고 왔어요!” 라이가 누구인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려 했을 때 방 밖에서 내 나이 또래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조금 큰 목소리로 말 했다. “들어오거라, 네오.” 철컥ㅡ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정히 깎은 머리칼은 빛나는 황금색이었고, 학생인 듯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은 고등 학교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정장 차림인데 마이는 짙은 남색이고 바지는 짙 은 회색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금발 소년은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나에 게 옷을 건네주었다. “자, 네 옷이야.” “…… 감사합니다.” 소년의 나이는 나와 비슷할 것 같았지만 우선은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 금발 소년도 날 구한 사람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르니까. “왕왕!” 내가 금발 소년에게서 옷을 건네받았을 때 아주 익숙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온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어떤 물체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라이였다. “왕왕!” 라이는 기쁜 듯이 내 가슴에다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난 라이의 등을 쓰다 듬어 주었다. 다시 라이를 만나서 기뻤다. 그러다가 문득 라이가 날 구한 것 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근데 절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아, 그건 라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란다. 어제 라이가 사라져버려서 찾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나타나더니 미엘 공원까지 날 끌고 가더구나. 그래서 공원 벤치에 쓰러져있던 널 발견하게 됐지.” 흘…… 라이 녀석, 날 배신하고 가버린 게 아니라 날 구하려고 그렇게 빨리 뛰어갔던 거로군. 오해해서 미안하다. “왕왕!”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는 몰라도 라이는 꼬리를 흔들며 멍멍거렸다. 내가 라이와 친한 걸 본 금발 소년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말했다. “내가 만지려 할 때는 막 물려고 하더니 저 녀석이 만져주니까 좋아하는구 만. 이거 괜히 차별당하는 것 같은데?” “허허, 라이는 은발인 사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할아버지도 농담을 던졌다. 난 라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라이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할아버지에게 또 물었다. “근데, 라이는 할아버지의 강아지인가요? 어떤 종류예요?” “그 녀석은 내가 기르고 있기는 하지만 자주 밖으로 쏘다녀서 걱정이란다. 난 이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장이라 라이와 계속 놀아줄 수 없어서 다른 사람 에게 라이를 맡기는데, 라이는 다른 사람을 거의 따르지 않아서 요즘은 거의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단다. 라이는 수컷인데, 포메라니안(Pomeranian)이라는 품종이지.” 흠…… 포메라니안이라…… 처음 듣는 개 품종이군. 어쨌든 빨빨거리며 돌 아다니는 모습이 왠지 연상되는 녀석이란 말이야……. 뭐 그래서 붉은 구슬 을 우연히 물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 앗! 붉은 구슬! “저, 제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붉은 구슬 보지 못하셨어요?” 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묻자 할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소지품은 저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있는 거라곤 붉은 구슬하고 이상 한 글씨가 써져 있는 종이 쪼가리와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없는 동전 몇 개밖에 없더구나.” 이상한 글씨가 써져 있는 종이 쪼가리는 마법 주문을 적은 것이고…… 동전 은 200원짜리 두 개에 50원짜리 하나겠고…… 붉은 구슬은 붉은 구슬이니까 …… 내가 가지고 있던 게 모두 있구나. 헐헐. “빨리 옷 입어봐. 내 눈짐작으로 옷을 사긴 샀는데 잘 맞을 거야.” 할아버지 옆에 서 있던 금발 소년이 내가 들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금발 소년이 사온 옷을 살펴보았다. 상의는 옅은 주황색의 긴팔 티셔츠였 고, 하의는 짙은 갈색의 긴바지였다. 금발 소년과 할아버지가 어서 입어보라 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그 옷을 즉 석에서 입어보았다. “하하, 역시 내 눈썰미는 정확하다니까!” 금발 소년은 옷이 나하고 거의 딱 들어맞자 기분 좋게 웃었다. 옷의 색깔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공짜 옷이 생겼기 때문에 예의상 금 발 소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금발 소년은 내가 진짜로 고마워하는 줄로 착 각했는지‘그런 거 가지고 뭘~’이라고 말하더니만 무엇인가 생각난 듯 날 보고 물었다. “근데 이름이 뭐야?” 으윽…… 내 이름이 뭐였더라…… 아, 기억났다! “보나이 류드나르.” “보나이 류드나르? 어? 그러고 보니…… 교장 선생님처럼 머리칼이 은색이 잖아? 그렇다면 설마……?” 금발 소년은 묘한 눈초리로 나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는 껄껄 웃으며 금발 소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류드는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내가 보나이 류드나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거지. 그리고 머리색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도 알지 않느냐.” 얼레? 머리색이 유전 안된다고라? 그럴리가? 머리색도 본래 유전되는 거라 구! 왜 유전이 안된다는 거야? “그냥 해본 소리예요. 근데 기억 상실증이라니 안됐다.” 금발 소년의 표정에 동정심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난 동정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금발 소년에게서 시선을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머리색에 대해 질문했다. “아까 머리색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본래 머리색은 유전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피부색만이 유전될 뿐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깔은 유전되지 않는다 는 것이 밝혀졌단다. 이미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머리색이 갈색이셨고, 어머 니는 금발이셨단다. 만약 머리색이 유전이라면 내가 어떻게 은발이겠느냐.” 나원…… 머리색이 유전 안된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뭐 여기는 내가 사 는 곳과는 다른 세계니까 머리색 같은 게 유전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어 쨌든 이번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나 해볼까나? “근데 앞으로 전 어디서 자야 하나요?” 내가 묻자마자 할아버지는 바로 대답했다. “오죠룬 마법학교 초등부 기숙사란다.” “……?”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넌 오죠룬 마법학교 초등부에 입학한 거다.” 얼레? “하지만 공짜로 입학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학교 청소를 도맡아하는 아르 바이트를 하면서 이곳에서 지내는 거란다. 할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는‘할 수 있다라고 안 하면 뒷일은 책임 못진다’란 표정을 지으 며 내 대답을 재촉했다. 여기 아니면 갈곳이 마땅치 않아서 난 쉽게 승낙했 다. “예. 할 수 있습니다.” “허허, 대답 한 번 시원해서 좋구먼.” 흘…… 그런 대답을 하도록 강압적인 표정을 지은 게 누구더라? “네오는 그만 가보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금발 소년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고, 금발 소년은 할아버지에 게 인사를 한 다음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나와 할아버지, 그리고 라 이만이 남게 되었다. “침대에 앉아서 내 얘기를 듣거라.” “아, 예.” 난 할아버지의 말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내가 앉자 라이는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책상에 있는 의자를 빼와서 내 앞에 놓고 앉아 날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오죠룬 마법학교는 2120년 11월 16일에 탄생했다. 오늘이 3월 18일이 니까 앞으로 여덟 달만 있으면 개교 100주년이 되지. 감히 말하지만 오죠룬 마법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마법이 지금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거란다.” 허걱! 개교 100주년? 놀랍다……. 근데 2120년에 개교해서 여덟 달 후면 개 교 100주년…… 그렇다면 지금은 2220년 3월 18일이라는 소리잖아? 이럴수가! 그럼 도대체 여기는……? ━━━━━━━━━━━━━━━━━━━━━━━━━━━━━━━━━━━ ? 번 호 : 7187 / 7190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00:19 등록자 : THEBUR 조 회 : 6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5. 백지 -5- 제 목 :[사이케델리아] 05.백지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0 게 시 일 :00/03/15 04:47:58 수 정 일 : 크 기 :7.2K 조회횟수 :70 “오죠룬 마법학교는 특이한 교육 제도를 채택하고 있단다. 한마디로 말하자 면 능력제도(能力制度)지. 능력제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어쨌든 오죠룬은 능 력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걸 알아두거라.” “능력제도가 뭔데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능력제란 말 그대로 일정 점수를 얻지 못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이 되지 않는 제도란다.” 헉! 내가 사는 세계의 학교,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의 학교 학생들은 모두 출석만 잘하면 무조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데…… 여기는 무섭군……. “오죠룬 마법학교는 크게 세 부(部)로 나뉘어져 있단다. 마나(Mana)에 대해 서 배우는 초등부, 마법에 대해 배우는 중등부, 그리고 마법을 연구하는 고 등부. 요즘에는 엉터리 마법사들이 많지만 우리학교 중등부를 졸업한 학생들 은 마법사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단다. 그만큼 중등부 졸업이 어렵거든. 고 등부 학생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 할아버지는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그만 큼의 대우를 받고 있으니 기쁜 건 당연했다. 물론 난 그들이 얼마만큼의 대 우를 받는지 모르지만. “류드.” 할아버지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날 불렀다.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금 선생같은 어투로 입을 열었 다. “난 네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중등부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너 에게 기본적인 마나 회전(回轉)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 얼레? 마나…… 회전? “마나 회전이 뭔데요?” “……” 할아버지는 할말이 없는지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직 히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마나 회전같은 기본적인 것을 모르다니…… 어쩌면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흘…… 그런 건 배우면 되지! “마나 회전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난 최대한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하긴 처음부터 마법에 대해 알 수는 없지. 좋아, 우선 기본적인 것만 가르 쳐주겠다. 잘 듣거라.” 난 이미 잘 들을 준비를 끝냈수다. 근데 10클래스의 마법사가 마나에 대해 서 배운다는 게 조금 그런걸? 그러고 보니 마나가 안 느껴지잖아? 또 마나 운용법을 잊어버린 건가? 골치 아프구만. “우선 마나를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마나를 느껴야 한다.” 얼레? 마나를 회전시킨다고? 왜? “마나를 왜 회전시키는 데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쯧, 모르면 내 말을 잘 들어.” 흘…… 그 이유를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니야? 왠지 무조건‘마나를 회전시 켜라!’라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이……! “마나를 느끼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속으로‘마나를 느낀다’ 를 강하게 염원해야 하지.” 흠, 그건 환타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근데 그때는 무조건 느끼기만 했었는데 여기는 정신력과 마나와의 어떤 관계를 밝혀냈을라나? “근데 왜 마나를 느끼는데 강한 정신력이 필요해요?” “허허, 그건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단다.”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껄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내가 그 질문을 해줘서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내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할아버지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나와 정신력과의 관계를 설명한 하나의 가설이 있단다. 바로 뇌 파설(腦波說)이지.” 엥? 뇌파설? 처음 듣는 건데? “사람의 뇌는 뇌파를 발산한단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강하게 떠 올리면 그에 따라 강렬한 뇌파가 발산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 뇌파가 마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 이 뇌파설이지. 뇌파가 실제로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아직 과학적으 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뇌파설이 거의 정통 학설로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란다.” 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그 학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을 했다. 하지만 어 쨌든 할아버지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꽤 흥미가 갔다. 이 세계 에서 마법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이 됐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자, 이제 마나를 느껴보도록 하거라.” 할아버지가 날 재촉했다. 그래서 난 눈을 감고 마나를 느껴보기로 했다. 우 선 내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껴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마나가 완전히 굳어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나원, 굳어버린 마나를 전처럼 회복시키려면 완전 주문이 필요한데…… 마 법 주문을 적은 연습장은 안 가져와서 큰일이구만. 뭐, 좋아. 내 정신력만으 로 굳어버린 마나를 회복시켜 주겠어! 난 한다면 하는 인간이야! “……” 난 내 모든 정신력을 마나를 움직이는데 집중시켰다. 그렇게 한지 아마 10 여 분 정도가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지나고 나서야 난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상해……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몸 속의 마나가 아예 없는 것처럼…… 굳어져 있는 마나조차 느낄 수 없어…… 어째서지? 어째서 마나 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야? 10클래스나 되는 마나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냐구!!! 《네 마법을 너무 과신하지 마라. 다른 세계로 갔을 때 네가 마법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갑자기 떠오르는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 그렇다면…… 설마…… 지금의 난 마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 “왜 그러느냐, 류드?”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 다.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기죽을 필요없다. 마나를 느낀다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흘……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10클래스나 축적된 마나가 한꺼번 에 날아갔는데 마나 느끼는 게 문제냐? 끄아…… 아까워 죽겠구만! 내가 어 떻게 모은 마나였는데…… 으으…… 울고 싶어……. 뭐 이렇게 된 이상 처음부터 다시 마나를 모을 수밖에 없겠지. 으…… 언제 1클래스를 축적시킬 수 있을런지…… 좋아, 지금부터 당장 마나 축적을 시작 한다! ‘마나를 느끼자, 마나를 느끼자……’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난 마나를 느끼도록 강하게 염원했다. 그런 내 염원 이 통했는지 마나를 느끼는 데에는 그다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역시 마나를 축적해보고 마법을 사용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금방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헐헐…… 순조롭군. 이제 마나를 몸 속에 축적시키는 일만 남았……! “……!” 뭐, 뭐야? 마나가…… 틀리잖아?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마나는 깊은 바다 속의 물처럼 정지해 있는 듯 움직였는데…… 이 세계의 마나는 끊임없이 운 동하고 있어…… 마치…… 끊임없이 대기 대순환을 하고 있는 공기처럼……! 제길! 마나가 이렇게 쉴새없이 움직여대니 몸 속에 마나를 축적해 봤자 금 방 빠져나가겠어! 도대체 이 마나를 어떻게 축적시키지? 앗! 《마나 회전 같은 기본적인 것을 모르다니……》 그때서야 할아버지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급히 할아버지에게 소리치 듯이 물어보았다. “마나 회전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아니, 류드……!” 침대 위에서 쥐죽은 듯이 앉아 있던 내가 갑자기 소리치며 묻자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인생의 연륜을 많이 쌓은 할아버지답게 곧 침착한 표 정을 지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마나 회전이라니? 그렇다면 넌 마나를 느꼈다는 말이냐?” “마나가 막 움직이던데요. 꼭 순환하고 있는 공기처럼요.” “……!” 내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 리로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더냐?” 얼레? 이 할아버지 왜 이런다냐? “예. 그렇게 느껴지던데요.” “오……!” 할아버지는 갑자기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할아 버지는 내 어깨를 덥썩 잡더니 격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마나를 잘 느낄 수 없어. 마법사들이 도와주 어야만 겨우 느낄까 말까지. 그런데 마법을 배운 적이 없는 네가 마법사의 도움없이 단번에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네 능력이 특출나다는 거야!” 흘…… 내 능력이 뭐가 특출나? 다른 세계에서 마나를 축적해본 적이 있으 니까 그렇지. 뭐, 이 할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그렇지만. ━━━━━━━━━━━━━━━━━━━━━━━━━━━━━━━━━━━ ? 번 호 : 7189 / 7190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00:20 등록자 : THEBUR 조 회 : 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6. 백지 -6- 제 목 :[사이케델리아] 06.백지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1 게 시 일 :00/03/15 04:48:21 수 정 일 : 크 기 :5.2K 조회횟수 :63 “자, 그럼 지금부터 마나 회전에 대해 가르쳐주겠다. 잘 듣거라.” “예.” 할아버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마나 회전인 가 뭔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마나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단다. 그래서 그 마나를 네 것으로 만들기 위 해서는 마나를 회전시켜야 하지. 네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록 유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얼레? 내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 골고루 퍼져 있는 마나를 네 쪽으로 끌어모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네 정신력을 이용해서 마나가 네 몸 주위를 돌게 하는 것 이다. 그래야 마나의 항동성(恒動性)에 위배되지 않지.” 허걱? 마나의 항동성? 그건 또 뭐냐? “마나의 항동성이란 게 뭐예요?” “아, 그건 중등부에 들어가면 마법 이론 시간에 배울 거야. 지금은 그냥 내 설명만 듣거라.” 흘…… 그런 걸 알아야 이 세계의 마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거 아니냐구.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듯한……! “이제 마나를 회전시켜 보거라.” 할아버지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마나 축 적이란 말 대신 마나 회전이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 익숙하지가 않았 지만 어쨌든 마나 회전이란 것을 시도했다. 우선 마나를 느끼고…… 강한 염원을 통해 발산되는 뇌파를 이용해 마나를 내 몸쪽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서 내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 록 만든다…… 흠…… 그다지 어렵지는 않군. 좋아, 마나가 내 몸을 잘 회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마나 회전에 도전해볼까? 으…… 계속 마나 회전만 했더니 정신력이 고갈되는 것 같다…… 이제 좀 쉬어야겠어. 머리가 뽀개지려고 그래……. “……!”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떴는데 왠 소녀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빨간색의 마이와 옅은 회색의 교복 치마를 입고 있는 소녀였는데 길게 자란 머리칼은 윤기나는 핑크색이었다. 왠지 모르게 인티와 비슷하다고 느껴 지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이거 드세요.” 핑크빛 머리칼의 소녀는 나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소녀의 나이는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조금 어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분위기가 굉장히 성숙하게 느껴져서 보기보다 나이가 더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경 어를 사용했다. “감사합니다.” 소녀에게 그렇게 말한 뒤 난 차를 마셨다. 차 색깔은 투명했는데 맛은 조금 썼다. 하지만 소녀의 성의를 생각해서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러다가 문득 할 아버지가 생각나서 소녀에게 물었다. “근데 저와 함께 계시던 그 할아버지는……?” “잠시 일이 생겨서 나가셨어요.” 소녀는 별 표정의 변화없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 어도 소녀는 예뻐 보였다. 계속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싶었지만 소녀가 기 분 나빠할까봐 다시 차를 마셨다. “……!”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들어 소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소녀의 얼굴에 불쾌감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난 지금 그 런 것에 신경쓸 처지가 되지 못했다. “저, 키가 어떻게 되세요?” 난 소녀에게 물었다. 갑작스런 내 질문에 소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175cm예요. 그건 왜 물어보시죠?” 175cm…… 여기도 미터법을 쓰는 모양이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 그럼 도대체 나는……! 벌떡ㅡ! “아……!” 내가 벌떡 일어서자 소녀는 크게 놀라 주춤거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 녀 앞에 서자마자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 내 키는 소녀보 다 무려 5cm 이상 작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털썩ㅡ! 난 다시 침대 위에 주저 앉았다. 소녀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 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키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니까. 이런…… 키가 무려 7cm 이상 줄어버렸어…… 아무래도 내 나이도 어려진 것 같다…… 내 현재 키가 170cm 못 되니까…… 고1 때의 키인가? 그렇다면 …… 현재 내 나이는 17살?!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키가 작아졌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다시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팍팍 들었다. “저기……”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아진 키 때문에 한숨만 푹푹 쉬던 나는 소녀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차 고마웠어요. 피곤한데, 이 침대를 써도 되나요?” 난 소녀에게 물었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흠…… 그렇군. 그럼 쉬어야겠다. 오늘 너무 충격적인 일이 많았어. 재수없 는 녀석들한테 맞질 않나, 봄에 소나기를 맞지 않나, 10클래스의 마나가 몽 창 날아가있질 않나, 내 키가 줄어들어 있지 않나…… 모두 최악의 사태 뿐 이야……. “곧 교장 선생님께서 오실 테니까 그동안 쉬고 계세요.” “아, 예.” 소녀는 찻잔을 다시 받아들고 방 밖을 나갔다. 방 안이 갑자기 썰렁해졌다. 내 옆에 있던 라이도 할아버지와 함께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에…… 마나는 다행히 내 몸을 축으로 잘 회전하고 있군. 꼭 태양을 중심으 로 태양계의 행성들이 돌고 있는 것 같네? 뭐, 회전 궤도가 타원이 아니라 원이라는 게 조금 다르지만. 근데 내가 몇 시간 동안 마나 축적…… 아니 마 나 회전을 하고 있었던 거지? 시계가 어디 있을 텐데? 째깍째깍ㅡ 시계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는 벽에 걸려 있었다. 지금까지 딴 생각을 하다보니 시계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흠…… 벌써 오후 7시네? 그럼 몇 시간 동안 한거냐? 흘…… 전혀 감을 못 잡겠군. 뭐, 열심히 하면 1클래스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근데 이놈의 마나는 내 몸을 돌면서 조금씩 빠져나가네? 좋아, 조금 쉰 다음에 다시 마나 회전을 해주지! 오늘 내로 반드시 1클래스를 이룩해버릴 테니까! ━━━━━━━━━━━━━━━━━━━━━━━━━━━━━━━━━━━ 일꾼: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번 호 : 7207 / 7208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23:35 등록자 : THEBUR 조 회 : 1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7. 편입 전날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07.편입 전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4 게 시 일 :00/03/16 06:00:48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100 <제 2 장> 편입 전날 똑똑ㅡ “나다, 류드. 안에 있느냐?” 방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난 거의 반사적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 신없이 마나 회전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들어오세요.” 난 밖에다 대고 말했고,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와 라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 다. 라이는 들어오자마자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허허, 라이가 널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의자에 앉았다. 난 라이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할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 던 어떤 서류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내가 그것을 살펴보기도 전에 할아버지 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게 앞으로 네가 사용해야 할 주민등록번호와 신상 기록들이란다.” 얼레? 그 소리는…… 내 기록을 위조했다는 뜻? “오늘 정부의 협력을 얻어 너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나라의 M.I.K.E에 등록 되어 있는 은발의 남자는 모두 5명. 하지만 5명 모두 30살을 넘긴 사람들이 었지. 그래서 이번엔 C.N.I.E를 통해 전세계의 은발 남자를 검색했단다. 그 결과 모두 300명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느 누구도 네 모습과 일치하 지 않았지.” 헐…… M.I.K.E? C.N.I.E? 그건 또 뭐야? 결론은 나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었다란 소리잖아? 그렇게 말하면 간단한 걸 가지고 왜 이상한 얘기를 하냐 구…… 내 머리를 작살내려는 사악한……! “그래서 네 기록을 만들었다. 나중에 기억이 돌아오면 모든 게 밝혀지겠지.” 할아버지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내 신상 명세서를 천천히 읽 어보았다. 앞으로 난 보나이 류드나르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서류에 적힌 걸 모두 외워야 했다. “……!” 허걱! 어째서…… 어째서…… 이 서류에 적힌 글을 하나도 못 읽는 거지? 뭐라고 써져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저…… 여기 써져 있는 글을 하나도 못 읽겠는데요…….” 난 용기를 내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글을 못 읽는다고? 허허, 이런 낭패가……!” 흘……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나도 낭패라구. 이곳 사람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데 어째서 글은 못 읽는 건지…… 환타지 세계에서는 모든 언어를 읽 고 듣고 쓸 수 있었는데…… 어째서 여기는 아니냐구!!! 어처구니가 없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할아버지는 무엇인가가 생각났는 지 나에게 물었다. “네 또래 친구에게 글을 배우는 게 어떠냐?” 내 또래 친구? 누구? “누구하고 하는데요?” “네오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그 금발의 소년 말이다.” 금발의 소년? 아…… 나한테 이 옷을 사다 준 녀석 말이군. 기왕이면 핑크 빛 머리칼의 소녀가 가르쳐주면 좋겠지만…… 그건 나만의 꿈이고……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니 그 네오라는 녀석한테 배우면 되겠군.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마나 회전은 잘 되고 있느냐? 응……? 설마…… 마나 회전을 전혀 하 지 못한 거냐? 어째서 마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얼레? 마나 파장? 그건 또 뭐냐? 여긴 전혀 듣지도 못한 용어가 막 튀어나 온다니까. 정신 없어~ “전 마나 회전을 열심히 했는데요? 마나는 제 몸 주위를 잘 돌고 있어요.” “……!”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떠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정말로…… 마나가 네 몸을 돌고 있단 말이냐……?” 흘…… 이 할아버지, 사람 말을 왜 못 믿는 거야? “예. 확실해요.” “아…… 그렇다면 벌써 1써클을 이룩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얼굴에 허탈감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난 할말이 없어서 그저 내 옆에 앉아있는 라이의 몸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날 말없이 쳐다보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구나.” 얼레? 무슨 계획을? “본래는 초등부에 입학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미 1써클을 이룩했으니 초 등부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 바로 중등부에 들어가야겠구나.” 흘…… 초등부를 건너뛰자는 말? 나야 좋지만…… 근데 써클? 여기는 클래 스라는 말 대신 써클을 사용하나봐? 어째 내가 배웠던 환타지 세계의 마법 용어하고 많이 틀리다? “우선 냉장고에서 아무 거나 꺼내 먹거라. 난 잠시 할일이 있으니까.” “예.”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난 할아버지의 말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보았다. 냉장고에는 빵과 우유가 비치되어 있 었을 뿐, 그 이상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흘…… 난 빵은 잘 안 먹는데…… 게다가 차가워진 빵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단 말이야……. “왕왕!” 내가 냉장고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들자 라이가 자기도 달라는 듯이 멍멍거 렸다. 빵이 둥글넙적하게 생겼기 때문에 대충 손으로 나눠서 1/3 정도를 라 이에게 주었다. 라이는 빵을 받자마자 침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닥에서 맛 있게 먹기 시작했다. 난 침대에 걸터앉아 빵을 먹었다. 쩝쩝…… 이 학교에 다니면 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지? 쩝쩝 …… 그나저나 난 도대체 뭐할려고 다른 세계로 건너온 거였냐? 쩝쩝…… 아, 인연의 끈을 만들라고 마이크로 스피어 녀석이 말해서 온 것이었구나…… 쩝 쩝…… 근데 인연의 끈을 어떻게 만들지? 쩝쩝…… 아, 마이크로 스피어가 친구나 적을 많이 만들라고 그랬지! 쩝쩝…… 꽤 어려운 일인데…… 골치 아 프게 될 것 같구만. 쩝쩝…….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잡생각을 하고 있던 난 크게 놀라 하마터면 우유를 엎 지를 뻔했다. 다행히 우유를 엎지르지는 않았지만 먹던 빵이 얹히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야, 류드!” “컥컥!” 으윽…… 나 죽는다……! “어라? 체했냐?” 투닥투닥ㅡ! 방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한 1분 정도가 지나자 겨우 체한 게 가라앉았다. 한숨을 돌린 나는 갑자기 방에 들어와 날 체하게 한 그 사악한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 녀석은 바로 내 옷을 사다주었 던 네오라는 이름의 금발 소년이었다. 금발 소년은 미안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갑자기 들어와서 체했구나. 미안. 평상시에 노크하지 않고 다녀서 말 이야.” 흘…… 그게 자랑이냐? 그 버릇은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가 큰코 다친다고~ “근데 왜……?” “아, 교장 선생님이 나보고 너한테 글 읽는 법하고 글 쓰는 법 가르치라고 해서 말이야. 물론 아르바이트지만.” 금발 소년은 하하 웃었다. 성격이 좋은 녀석 같았다. “아차, 너 나이가 어떻게 되냐?” 금발 소년이 나에게 물었다. 난 이곳에서의 내 정확한 나이를 모르기 때문 에 그냥 대충 말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 16이나 17살 정도일 걸요?” “그래? 그럼 나보다 한 살 어리거나 나하고 동갑이겠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말 놓아.” 헐…… 친구하자는 소리냐? 《인연을 만들어라……》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어쨌든 내 목적이 바로 어떻게든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금발 소년하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알았어. 근데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금발 소년이 자신의 이름을 대었다. “난 이리타크 네오니스. 그냥 네오라고 불러.” “난……” “알아. 교장 선생님이 말해주셨으니까. 보나이 류드나르, 맞지?” 흘…… 내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다니…… 뭐 알고 있으니까 봐주지. “네오! 류드를 기숙사로 데려가거라!” 방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오니스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뭐해? 따라와. 네가 앞으로 지내야 할 기숙사 위치를 알아야 하니까.” 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는 건가? 난 독방을 쓰는 게 좋은데…… 아차, 내 옷하고 내 소지품을 가져가야지! 특히 붉은 구슬은 빼놓아선 안되지~ 음 …… 이제 다 챙겼으니 방 밖으로 나가볼까? 흘흘, 겨우 이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됐구나~ ━━━━━━━━━━━━━━━━━━━━━━━━━━━━━━━━━━━ 번 호 : 7204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23:37 등록자 : THEBUR 조 회 : 8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8. 편입 전날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08.편입 전날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5 게 시 일 :00/03/16 06:01:1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95 “……!” 방 밖을 나서자 보이는 것은 교장실처럼 생긴 어떤 공간이었다. 길고 큰 책 상이 하나 있고 그 앞엔 둥근 탁자와 쇼파가 놓여져 있었으며 할아버지가 마 치 회사 사장처럼 그 긴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네오, 류드가 지낼 기숙사가 어딘지 알지?” 컴퓨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던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온 네오니스에게 물었 고 네오니스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알아요. M3관 520호죠?” “잘 아는구나. 그럼 부탁한다.”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가자, 류드!” 네오니스는 할아버지, 아니 교장에게 인사를 하고 날 불렀다. 나도 간단히 교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네오니스를 따라 교장실을 나섰다. 내가 교장실 밖으로 나오자 라이도 쫄래쫄래 따라왔다. 라이가 날 따라오는 것을 발견한 네오니스가 나에게 물었다. “너 라이하고 같이 지낼거야?” “글쎄…… 라이가 계속 날 쫓아오니까 어쩔 수 없잖아.” “참 신기해. 라이가 교장 선생님 외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친하게 굴지는 않 았는데 말이야. 아, 한 명 있었구나.‘에레나’가 있었지~” 네오니스는 중앙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중얼거리듯이 그렇게 말했 다. 네오니스의 말을 들으니 문득 에레나가 그 핑크빛 머리칼의 소녀가 아닐 까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에레나? 혹시 머리색이 핑크 아니야?” “어라? 그걸 어떻게 알았냐? 언제 만났어?” 내 말을 들은 네오니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생각이 맞았음을 느낀 나 는 네오니스에게 사실대로 얘기해 주었다. “오늘 만났어, 교장 선생님 방에 있을 때.” “음…… 그렇구나. 하긴, 에레나도 나처럼 교장 선생님 일을 거드는 아르바 이트를 하고 있으니까.” 얼레? 교장 선생님 일을 거드는 아르바이트? 그런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별 희한한……! “근데 에레나하고 무슨 얘기 안했냐?” 네오니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난 나보다 5cm 정도 더 큰 네오니스를 잠시 쳐다보았다. 문득 키가 줄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자 새삼스럽 게 화가 났다. 그래서 대답하는 어조가 조금 퉁명스러워져 버렸다. “아니.” “어라? 표정이 왜그래? 에레나가 널 무시했냐? 애가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남을 무시하지는 않는데?” 네오니스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내 퉁명스러운 대답에 네오니스가 뭔가를 오해한 것 같아서 난 재빨리 얼버무렸다. 사실은 솔직한 대답이었지 만. “나보다 키가 크더라구.” “아, 그거 때문이었냐? 키는…… 뭐 어떻게 할 수가 없겠구나. 그냥 나중에 키가 왕창 클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라~” 어쭈구리…… 날 놀리냐? “근데 류드. 너 초등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중등부 1학년으로 들어간다며?” 흠…… 교장 할아버지가 결국 그렇게 정했나? “그런 것 같은데…….” “중등부 1학년 기숙사인 M3관에서 지내게 되는 걸 보면 그렇겠지.” M3관이 중등부 1학년 기숙사라고라? 기숙사에 일일이 그런 게 정해져 있냐? 흘…… 그럼 학년이 바뀔 때마다 기숙사를 옮겨야 한다는 소리잖아? 무지하 게 귀찮겠군. “원래 오죠룬에서는 편입 같은 건 거의 하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넌 기 억 상실증에 걸려서 편입시킨 건가? 뭐 어쨌든 중등부 수업 시작한 지 벌써 16일 흘러서…… 따라잡으려면 조금 힘들꺼야.” 네오니스는 날 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러 가지 궁금증이 든 나는 네오 니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여기는 능력제도가 있다는데, 그게 뭐야?” “아, 능력제? 오죠룬 마법학교의 독특한 제도지. 오죠룬이 우수한 마법사들 을 많이 배출한 것이 그 제도 때문이기는 하지만, 학생들한테는 거의 지옥과 다름없는 제도야.” 헐…… 그 제도가 도대체 어떤 거길래? “우선 처음 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초등부에 입학해. 거기서 마나를 1써클 이상 회전시켜야만 중등부 입학이 가능하지. 보통 1써클을 회전시키는데 대 략 3년에서 5년 정도가 걸려. 마나를 느끼는 것 자체가 꽤 힘든 일이거든.” 허걱? 1써클 회전시키는데 3년에서 5년? 난 하룻만에 1써클을 회전시켰는데 …… 그런 난 뭐냐? 마나 회전의 천재? “네오는 몇 년 걸렸는데?” “나? 난 1년 걸렸어. 본래는 초등부에 입학하고 나서 석 달 후에 1써클을 회전시켰는데, 중등부 입학날이 3월이다보니 8개월을 그냥 초등부에서 보냈 지.” 흘…… 그거 지금 자랑이지? 내가 노려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실실 쪼개던 네오니스는 계속해서 이 학교 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초등부는 아무 것도 아니야. 진짜 지옥은 중등부지. 중등부는 전체 3학년 으로 되어 있는데 철저한 능력제거든. 일정 점수를 얻지 못하면 다음 학년으 로 진급이 안돼. 진급을 못하면 그냥 그 학년 공부를 또 해야되지. 보통 중 등 1학년이 2학년으로 올라가는 데에는 3, 4년이 걸리고, 2학년에서 3학년으 로 올라가는 데에는 5, 6년이 걸리지. 중등부를 졸업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 수고 말이야.” 허걱…… 그럼 도대체 졸업하려면 몇 년을 보내야 하는 거야? “아, 그렇다고 너무 기죽을 필요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경우를 말하 는 거니까. 열심히 노력하면 돼. 난 2년 걸려서 2학년으로 올라갔으니까.” 얼레? 그 말은…… 네오니스가 중등부 2학년이라는 소리? 그럼 나보다 한 학년 위잖아? 허거거걱!!! “네오는 나보다 한 학년 위인데 말 놓아도 돼?” 내 말에 네오니스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하하!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래야겠지만 우리 둘만 있을 때는 그냥 말 놓으라구. 같은 나이의 친구에게 존댓말 들으면 닭살 돋아.” 헐…… 뭐 네오가 좋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그나저나 그 에레나라고 하는 핑크빛 머리칼의 소녀는 몇 학년일까? “근데 에레나는 몇 학년이야?” “에레나? 얼~ 너 혹시 걔한테 마음이 있는 거 아니냐?” 네오니스는 내 말을 듣자마자 묘한 눈초리를 해보였다. 에레나가 예쁘기 때 문에 솔직히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처음 본 사람은 마음 속에 두지 않기 때문에 에레나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해서.” “얼~ 정말 관심있나 본데? 근데 꿈 깨. 걔는 나하고 같은 학년인데 지금까 지 남자 친구가 없어. 아니, 남자 친구 사귀는 걸 안 좋아해. 중등부 1, 2학 년 남자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데도 말이야.” 헐…… 그 소녀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애였나? 뭐 얼굴이 예쁘니까 그렇겠 지. 또 얼굴이나 나이에 비해서 성숙된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였고. 하지만 핑크빛의 긴 머리칼 때문에 자꾸 환타지 세계에서 재회했을 때의 인티가 연 상돼서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은 소녀지……. 근데 인티는 잘 있으려나……? 과연 내가 살았던 세계의 시간은 지금 어떻 게 흐를까? 벌써 몇 년이 지나갔나? 아니면 환타지 세계에 있을 때처럼 전혀 흐르지 않고 있나? 궁금해 미치겠군. 내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빨리 찾아야 되겠어. 근데…… 뭘 먼저 해야하지? “저기가 기숙사야.” 어느새 나와 네오니스는 중앙 계단을 다 내려온 상태였다. 우리가 내려온 곳은 교장실이 있던 건물의 뒷문인 것 같았다. 뒷문에 서자 기숙사 하나가 정면으로 보였다. 네오니스는 우리 앞에 보이는 그 기숙사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기숙사는 M4관인데 중등부 2학년들이 사용하고 있어. 난 저 건물 310호 에 살고 있고. 잘 알아두라고~” 흘…… 난 기억력이 나빠서 잘 외울 수 있을지…… 근데 왠 기숙사 건물이 저렇게 크냐? 5층 건물인데 가로 길이만 해도 거의 100미터에 달할 것 같구 만. “네오. 저 건물 하나에 몇 명이 들어가 있는 거야?” “기숙사 하나에는 방이 모두 100개가 있어. 층마다 20개의 방이 있고. 에… … 방 하나에 3명이 들어가니까 총 3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지. 중등부 2학년이 사용하는 기숙사 건물은 모두 2개고, 1학년은 3개야. 3학년은 달랑 하나지만.” 흘…… 층마다 20개의 방이라…… 그래서 가로 길이가 거의 100미터에 육박 하는 거였군. 장난 아니게 큰 기숙사야……. “자, 날 따라와.” 네오니스는 앞장서서 기숙사로 향했다. 난 말없이 네오니스의 뒤를 따라갔 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아 지리를 파악하려 애썼다. 라이는 그런 내 뒤 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아무래도 내가 들어갈 방까지 따라올 속셈인 것 같았 다. “이 건물이 바로 M3관이야. 넌 520호니까 5층 끝부분이지.” 네오니스는 어떤 건물 옆에 서서 말했다. 방금 전에 보았던 M4관이 교장실 이 있는 본관과 수평으로 위치해 있는 것과는 달리 M3관은 본관과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다. 흘…… 기숙사 건물을 이상하게 세워놨군. 건물 4개는 본관에 수직이 되게 끔 세워놓고, 나머지 2개는 수평 위치로 세워두다니…… 그냥 일렬로 쭉 세 우면 될 걸 가지고……. “……?”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막 M3관으로 들어가려는 네오니스에게 물어보았다. “네오, 그런데 초등부하고 고등부 기숙사는 어디야?” “아, 초등부는 저기 떨어져 있잖아.” 네오니스는 중등부 기숙사 왼쪽에 따로 떨어져 세워져 있는 세 채의 건물을 가리켰다. 그 기숙사도 중등부 기숙사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 일꾼: 죄송합니다 며칠 쉬겠습니다.(간만에 집에 갑니다앙^^;;;) 일요일에 몰어서 퍼나르겠습니다. 죄송..... 번 호 : 7203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23:35 등록자 : THEBUR 조 회 : 8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7. 편입 전날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07.편입 전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4 게 시 일 :00/03/16 06:00:48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100 <제 2 장> 편입 전날 똑똑ㅡ “나다, 류드. 안에 있느냐?” 방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난 거의 반사적으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오후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 신없이 마나 회전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들어오세요.” 난 밖에다 대고 말했고, 문이 열리며 할아버지와 라이가 방 안으로 들어왔 다. 라이는 들어오자마자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허허, 라이가 널 굉장히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의자에 앉았다. 난 라이를 안고 침대에 걸터앉아 할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 던 어떤 서류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내가 그것을 살펴보기도 전에 할아버지 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게 앞으로 네가 사용해야 할 주민등록번호와 신상 기록들이란다.” 얼레? 그 소리는…… 내 기록을 위조했다는 뜻? “오늘 정부의 협력을 얻어 너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나라의 M.I.K.E에 등록 되어 있는 은발의 남자는 모두 5명. 하지만 5명 모두 30살을 넘긴 사람들이 었지. 그래서 이번엔 C.N.I.E를 통해 전세계의 은발 남자를 검색했단다. 그 결과 모두 300명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중에 어느 누구도 네 모습과 일치하 지 않았지.” 헐…… M.I.K.E? C.N.I.E? 그건 또 뭐야? 결론은 나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었다란 소리잖아? 그렇게 말하면 간단한 걸 가지고 왜 이상한 얘기를 하냐 구…… 내 머리를 작살내려는 사악한……! “그래서 네 기록을 만들었다. 나중에 기억이 돌아오면 모든 게 밝혀지겠지.” 할아버지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내 신상 명세서를 천천히 읽 어보았다. 앞으로 난 보나이 류드나르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 서류에 적힌 걸 모두 외워야 했다. “……!” 허걱! 어째서…… 어째서…… 이 서류에 적힌 글을 하나도 못 읽는 거지? 뭐라고 써져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저…… 여기 써져 있는 글을 하나도 못 읽겠는데요…….” 난 용기를 내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글을 못 읽는다고? 허허, 이런 낭패가……!” 흘……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나도 낭패라구. 이곳 사람들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데 어째서 글은 못 읽는 건지…… 환타지 세계에서는 모든 언어를 읽 고 듣고 쓸 수 있었는데…… 어째서 여기는 아니냐구!!! 어처구니가 없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할아버지는 무엇인가가 생각났는 지 나에게 물었다. “네 또래 친구에게 글을 배우는 게 어떠냐?” 내 또래 친구? 누구? “누구하고 하는데요?” “네오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그 금발의 소년 말이다.” 금발의 소년? 아…… 나한테 이 옷을 사다 준 녀석 말이군. 기왕이면 핑크 빛 머리칼의 소녀가 가르쳐주면 좋겠지만…… 그건 나만의 꿈이고……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니 그 네오라는 녀석한테 배우면 되겠군.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마나 회전은 잘 되고 있느냐? 응……? 설마…… 마나 회전을 전혀 하 지 못한 거냐? 어째서 마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 얼레? 마나 파장? 그건 또 뭐냐? 여긴 전혀 듣지도 못한 용어가 막 튀어나 온다니까. 정신 없어~ “전 마나 회전을 열심히 했는데요? 마나는 제 몸 주위를 잘 돌고 있어요.” “……!” 내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는 떠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정말로…… 마나가 네 몸을 돌고 있단 말이냐……?” 흘…… 이 할아버지, 사람 말을 왜 못 믿는 거야? “예. 확실해요.” “아…… 그렇다면 벌써 1써클을 이룩했단 말인가……!” 할아버지의 얼굴에 허탈감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난 할말이 없어서 그저 내 옆에 앉아있는 라이의 몸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 날 말없이 쳐다보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계획을 변경해야 할 것 같구나.” 얼레? 무슨 계획을? “본래는 초등부에 입학시킬 생각이었는데…… 이미 1써클을 이룩했으니 초 등부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 바로 중등부에 들어가야겠구나.” 흘…… 초등부를 건너뛰자는 말? 나야 좋지만…… 근데 써클? 여기는 클래 스라는 말 대신 써클을 사용하나봐? 어째 내가 배웠던 환타지 세계의 마법 용어하고 많이 틀리다? “우선 냉장고에서 아무 거나 꺼내 먹거라. 난 잠시 할일이 있으니까.” “예.”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난 할아버지의 말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보았다. 냉장고에는 빵과 우유가 비치되어 있 었을 뿐, 그 이상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흘…… 난 빵은 잘 안 먹는데…… 게다가 차가워진 빵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단 말이야……. “왕왕!” 내가 냉장고에서 빵과 우유를 꺼내들자 라이가 자기도 달라는 듯이 멍멍거 렸다. 빵이 둥글넙적하게 생겼기 때문에 대충 손으로 나눠서 1/3 정도를 라 이에게 주었다. 라이는 빵을 받자마자 침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바닥에서 맛 있게 먹기 시작했다. 난 침대에 걸터앉아 빵을 먹었다. 쩝쩝…… 이 학교에 다니면 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겠지? 쩝쩝 …… 그나저나 난 도대체 뭐할려고 다른 세계로 건너온 거였냐? 쩝쩝…… 아, 인연의 끈을 만들라고 마이크로 스피어 녀석이 말해서 온 것이었구나…… 쩝 쩝…… 근데 인연의 끈을 어떻게 만들지? 쩝쩝…… 아, 마이크로 스피어가 친구나 적을 많이 만들라고 그랬지! 쩝쩝…… 꽤 어려운 일인데…… 골치 아 프게 될 것 같구만. 쩝쩝…….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잡생각을 하고 있던 난 크게 놀라 하마터면 우유를 엎 지를 뻔했다. 다행히 우유를 엎지르지는 않았지만 먹던 빵이 얹히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야, 류드!” “컥컥!” 으윽…… 나 죽는다……! “어라? 체했냐?” 투닥투닥ㅡ! 방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가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렇게 한 1분 정도가 지나자 겨우 체한 게 가라앉았다. 한숨을 돌린 나는 갑자기 방에 들어와 날 체하게 한 그 사악한 인간을 쳐다보았다. 그 녀석은 바로 내 옷을 사다주었 던 네오라는 이름의 금발 소년이었다. 금발 소년은 미안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갑자기 들어와서 체했구나. 미안. 평상시에 노크하지 않고 다녀서 말 이야.” 흘…… 그게 자랑이냐? 그 버릇은 고치는 게 좋을 거야…… 그러다가 큰코 다친다고~ “근데 왜……?” “아, 교장 선생님이 나보고 너한테 글 읽는 법하고 글 쓰는 법 가르치라고 해서 말이야. 물론 아르바이트지만.” 금발 소년은 하하 웃었다. 성격이 좋은 녀석 같았다. “아차, 너 나이가 어떻게 되냐?” 금발 소년이 나에게 물었다. 난 이곳에서의 내 정확한 나이를 모르기 때문 에 그냥 대충 말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 16이나 17살 정도일 걸요?” “그래? 그럼 나보다 한 살 어리거나 나하고 동갑이겠네.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말 놓아.” 헐…… 친구하자는 소리냐? 《인연을 만들어라……》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어쨌든 내 목적이 바로 어떻게든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금발 소년하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알았어. 근데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금발 소년이 자신의 이름을 대었다. “난 이리타크 네오니스. 그냥 네오라고 불러.” “난……” “알아. 교장 선생님이 말해주셨으니까. 보나이 류드나르, 맞지?” 흘…… 내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다니…… 뭐 알고 있으니까 봐주지. “네오! 류드를 기숙사로 데려가거라!” 방 밖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오니스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뭐해? 따라와. 네가 앞으로 지내야 할 기숙사 위치를 알아야 하니까.” 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는 건가? 난 독방을 쓰는 게 좋은데…… 아차, 내 옷하고 내 소지품을 가져가야지! 특히 붉은 구슬은 빼놓아선 안되지~ 음 …… 이제 다 챙겼으니 방 밖으로 나가볼까? 흘흘, 겨우 이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됐구나~ ━━━━━━━━━━━━━━━━━━━━━━━━━━━━━━━━━━━ ? 번 호 : 7183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00:20 등록자 : THEBUR 조 회 : 292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6. 백지 -6- 제 목 :[사이케델리아] 06.백지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1 게 시 일 :00/03/15 04:48:21 수 정 일 : 크 기 :5.2K 조회횟수 :63 “자, 그럼 지금부터 마나 회전에 대해 가르쳐주겠다. 잘 듣거라.” “예.” 할아버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마나 회전인 가 뭔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마나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단다. 그래서 그 마나를 네 것으로 만들기 위 해서는 마나를 회전시켜야 하지. 네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록 유도 해야 한다는 소리다.” 얼레? 내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 골고루 퍼져 있는 마나를 네 쪽으로 끌어모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네 정신력을 이용해서 마나가 네 몸 주위를 돌게 하는 것 이다. 그래야 마나의 항동성(恒動性)에 위배되지 않지.” 허걱? 마나의 항동성? 그건 또 뭐냐? “마나의 항동성이란 게 뭐예요?” “아, 그건 중등부에 들어가면 마법 이론 시간에 배울 거야. 지금은 그냥 내 설명만 듣거라.” 흘…… 그런 걸 알아야 이 세계의 마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 거 아니냐구. 내가 이해하지 못할까봐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듯한……! “이제 마나를 회전시켜 보거라.” 할아버지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마나 축 적이란 말 대신 마나 회전이란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 익숙하지가 않았 지만 어쨌든 마나 회전이란 것을 시도했다. 우선 마나를 느끼고…… 강한 염원을 통해 발산되는 뇌파를 이용해 마나를 내 몸쪽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서 내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회전하도 록 만든다…… 흠…… 그다지 어렵지는 않군. 좋아, 마나가 내 몸을 잘 회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마나 회전에 도전해볼까? 으…… 계속 마나 회전만 했더니 정신력이 고갈되는 것 같다…… 이제 좀 쉬어야겠어. 머리가 뽀개지려고 그래……. “……!”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떴는데 왠 소녀의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옅은 빨간색의 마이와 옅은 회색의 교복 치마를 입고 있는 소녀였는데 길게 자란 머리칼은 윤기나는 핑크색이었다. 왠지 모르게 인티와 비슷하다고 느껴 지는 아름다운 소녀였다. “이거 드세요.” 핑크빛 머리칼의 소녀는 나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소녀의 나이는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조금 어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분위기가 굉장히 성숙하게 느껴져서 보기보다 나이가 더 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경 어를 사용했다. “감사합니다.” 소녀에게 그렇게 말한 뒤 난 차를 마셨다. 차 색깔은 투명했는데 맛은 조금 썼다. 하지만 소녀의 성의를 생각해서 홀짝홀짝 마셔댔다. 그러다가 문득 할 아버지가 생각나서 소녀에게 물었다. “근데 저와 함께 계시던 그 할아버지는……?” “잠시 일이 생겨서 나가셨어요.” 소녀는 별 표정의 변화없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 어도 소녀는 예뻐 보였다. 계속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싶었지만 소녀가 기 분 나빠할까봐 다시 차를 마셨다. “……!”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들어 소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자 소녀의 얼굴에 불쾌감 비슷한 표정이 떠올랐다. 하지만 난 지금 그 런 것에 신경쓸 처지가 되지 못했다. “저, 키가 어떻게 되세요?” 난 소녀에게 물었다. 갑작스런 내 질문에 소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175cm예요. 그건 왜 물어보시죠?” 175cm…… 여기도 미터법을 쓰는 모양이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 그럼 도대체 나는……! 벌떡ㅡ! “아……!” 내가 벌떡 일어서자 소녀는 크게 놀라 주춤거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 녀 앞에 서자마자 지금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게 되었다. 내 키는 소녀보 다 무려 5cm 이상 작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털썩ㅡ! 난 다시 침대 위에 주저 앉았다. 소녀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 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키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니까. 이런…… 키가 무려 7cm 이상 줄어버렸어…… 아무래도 내 나이도 어려진 것 같다…… 내 현재 키가 170cm 못 되니까…… 고1 때의 키인가? 그렇다면 …… 현재 내 나이는 17살?! “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키가 작아졌다는 사실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다시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팍팍 들었다. “저기……” 소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작아진 키 때문에 한숨만 푹푹 쉬던 나는 소녀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 차 고마웠어요. 피곤한데, 이 침대를 써도 되나요?” 난 소녀에게 물었고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 선생님이 그러라고 하셨어요.” 흠…… 그렇군. 그럼 쉬어야겠다. 오늘 너무 충격적인 일이 많았어. 재수없 는 녀석들한테 맞질 않나, 봄에 소나기를 맞지 않나, 10클래스의 마나가 몽 창 날아가있질 않나, 내 키가 줄어들어 있지 않나…… 모두 최악의 사태 뿐 이야……. “곧 교장 선생님께서 오실 테니까 그동안 쉬고 계세요.” “아, 예.” 소녀는 찻잔을 다시 받아들고 방 밖을 나갔다. 방 안이 갑자기 썰렁해졌다. 내 옆에 있던 라이도 할아버지와 함께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에…… 마나는 다행히 내 몸을 축으로 잘 회전하고 있군. 꼭 태양을 중심으 로 태양계의 행성들이 돌고 있는 것 같네? 뭐, 회전 궤도가 타원이 아니라 원이라는 게 조금 다르지만. 근데 내가 몇 시간 동안 마나 축적…… 아니 마 나 회전을 하고 있었던 거지? 시계가 어디 있을 텐데? 째깍째깍ㅡ 시계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는 벽에 걸려 있었다. 지금까지 딴 생각을 하다보니 시계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흠…… 벌써 오후 7시네? 그럼 몇 시간 동안 한거냐? 흘…… 전혀 감을 못 잡겠군. 뭐, 열심히 하면 1클래스에 도달할 수 있겠지. 근데 이놈의 마나는 내 몸을 돌면서 조금씩 빠져나가네? 좋아, 조금 쉰 다음에 다시 마나 회전을 해주지! 오늘 내로 반드시 1클래스를 이룩해버릴 테니까! ━━━━━━━━━━━━━━━━━━━━━━━━━━━━━━━━━━━ 일꾼: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번 호 : 7181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6일 00:19 등록자 : THEBUR 조 회 : 28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5. 백지 -5- 제 목 :[사이케델리아] 05.백지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20 게 시 일 :00/03/15 04:47:58 수 정 일 : 크 기 :7.2K 조회횟수 :70 “오죠룬 마법학교는 특이한 교육 제도를 채택하고 있단다. 한마디로 말하자 면 능력제도(能力制度)지. 능력제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어쨌든 오죠룬은 능 력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걸 알아두거라.” “능력제도가 뭔데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능력제란 말 그대로 일정 점수를 얻지 못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이 되지 않는 제도란다.” 헉! 내가 사는 세계의 학교,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의 학교 학생들은 모두 출석만 잘하면 무조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데…… 여기는 무섭군……. “오죠룬 마법학교는 크게 세 부(部)로 나뉘어져 있단다. 마나(Mana)에 대해 서 배우는 초등부, 마법에 대해 배우는 중등부, 그리고 마법을 연구하는 고 등부. 요즘에는 엉터리 마법사들이 많지만 우리학교 중등부를 졸업한 학생들 은 마법사로서 최고의 대우를 받는단다. 그만큼 중등부 졸업이 어렵거든. 고 등부 학생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 할아버지는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의 학교 학생들이 그만 큼의 대우를 받고 있으니 기쁜 건 당연했다. 물론 난 그들이 얼마만큼의 대 우를 받는지 모르지만. “류드.” 할아버지가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날 불렀다. 나도 진지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조금 선생같은 어투로 입을 열었 다. “난 네가 최대한 빠른 시간에 중등부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너 에게 기본적인 마나 회전(回轉)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 얼레? 마나…… 회전? “마나 회전이 뭔데요?” “……” 할아버지는 할말이 없는지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직 히 한숨을 내쉬고는 중얼거렸다. “마나 회전같은 기본적인 것을 모르다니…… 어쩌면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몰라…….” 흘…… 그런 건 배우면 되지! “마나 회전에 대해 배우고 싶습니다.” 난 최대한 진지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하긴 처음부터 마법에 대해 알 수는 없지. 좋아, 우선 기본적인 것만 가르 쳐주겠다. 잘 듣거라.” 난 이미 잘 들을 준비를 끝냈수다. 근데 10클래스의 마법사가 마나에 대해 서 배운다는 게 조금 그런걸? 그러고 보니 마나가 안 느껴지잖아? 또 마나 운용법을 잊어버린 건가? 골치 아프구만. “우선 마나를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마나를 느껴야 한다.” 얼레? 마나를 회전시킨다고? 왜? “마나를 왜 회전시키는 데요?” 내 물음에 할아버지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쯧, 모르면 내 말을 잘 들어.” 흘…… 그 이유를 가르쳐 줘야 할 것 아니야? 왠지 무조건‘마나를 회전시 켜라!’라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이……! “마나를 느끼기 위해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속으로‘마나를 느낀다’ 를 강하게 염원해야 하지.” 흠, 그건 환타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지. 근데 그때는 무조건 느끼기만 했었는데 여기는 정신력과 마나와의 어떤 관계를 밝혀냈을라나? “근데 왜 마나를 느끼는데 강한 정신력이 필요해요?” “허허, 그건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단다.” 할아버지는 왠지 모르게 껄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내가 그 질문을 해줘서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내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할아버지는 잠시 헛기침을 한 뒤에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마나와 정신력과의 관계를 설명한 하나의 가설이 있단다. 바로 뇌 파설(腦波說)이지.” 엥? 뇌파설? 처음 듣는 건데? “사람의 뇌는 뇌파를 발산한단다.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강하게 떠 올리면 그에 따라 강렬한 뇌파가 발산된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 뇌파가 마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했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 이 뇌파설이지. 뇌파가 실제로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는 아직 과학적으 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뇌파설이 거의 정통 학설로 인정되고 있는 실정이란다.” 할아버지는 마치 자신이 그 학설을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을 했다. 하지만 어 쨌든 할아버지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꽤 흥미가 갔다. 이 세계 에서 마법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까지 진척이 됐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자, 이제 마나를 느껴보도록 하거라.” 할아버지가 날 재촉했다. 그래서 난 눈을 감고 마나를 느껴보기로 했다. 우 선 내 몸속에 있는 마나를 느껴보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마나가 완전히 굳어버려서 그런 것 같았다. 나원, 굳어버린 마나를 전처럼 회복시키려면 완전 주문이 필요한데…… 마 법 주문을 적은 연습장은 안 가져와서 큰일이구만. 뭐, 좋아. 내 정신력만으 로 굳어버린 마나를 회복시켜 주겠어! 난 한다면 하는 인간이야! “……” 난 내 모든 정신력을 마나를 움직이는데 집중시켰다. 그렇게 한지 아마 10 여 분 정도가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지나고 나서야 난 뭔가 크게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상해……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몸 속의 마나가 아예 없는 것처럼…… 굳어져 있는 마나조차 느낄 수 없어…… 어째서지? 어째서 마나 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거야? 10클래스나 되는 마나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냐구!!! 《네 마법을 너무 과신하지 마라. 다른 세계로 갔을 때 네가 마법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으니까 말이야.》 갑자기 떠오르는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 그렇다면…… 설마…… 지금의 난 마나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 “왜 그러느냐, 류드?”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내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알게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 다. “마나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기죽을 필요없다. 마나를 느낀다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흘……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10클래스나 축적된 마나가 한꺼번 에 날아갔는데 마나 느끼는 게 문제냐? 끄아…… 아까워 죽겠구만! 내가 어 떻게 모은 마나였는데…… 으으…… 울고 싶어……. 뭐 이렇게 된 이상 처음부터 다시 마나를 모을 수밖에 없겠지. 으…… 언제 1클래스를 축적시킬 수 있을런지…… 좋아, 지금부터 당장 마나 축적을 시작 한다! ‘마나를 느끼자, 마나를 느끼자……’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난 마나를 느끼도록 강하게 염원했다. 그런 내 염원 이 통했는지 마나를 느끼는 데에는 그다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역시 마나를 축적해보고 마법을 사용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금방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헐헐…… 순조롭군. 이제 마나를 몸 속에 축적시키는 일만 남았……! “……!” 뭐, 뭐야? 마나가…… 틀리잖아?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마나는 깊은 바다 속의 물처럼 정지해 있는 듯 움직였는데…… 이 세계의 마나는 끊임없이 운 동하고 있어…… 마치…… 끊임없이 대기 대순환을 하고 있는 공기처럼……! 제길! 마나가 이렇게 쉴새없이 움직여대니 몸 속에 마나를 축적해 봤자 금 방 빠져나가겠어! 도대체 이 마나를 어떻게 축적시키지? 앗! 《마나 회전 같은 기본적인 것을 모르다니……》 그때서야 할아버지의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급히 할아버지에게 소리치 듯이 물어보았다. “마나 회전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주세요!” “아니, 류드……!” 침대 위에서 쥐죽은 듯이 앉아 있던 내가 갑자기 소리치며 묻자 할아버지가 크게 당황했다. 그러나 인생의 연륜을 많이 쌓은 할아버지답게 곧 침착한 표 정을 지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마나 회전이라니? 그렇다면 넌 마나를 느꼈다는 말이냐?” “마나가 막 움직이던데요. 꼭 순환하고 있는 공기처럼요.” “……!” 내 말을 듣고 할아버지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 리로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렇게 느껴지더냐?” 얼레? 이 할아버지 왜 이런다냐? “예. 그렇게 느껴지던데요.” “오……!” 할아버지는 갑자기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할아 버지는 내 어깨를 덥썩 잡더니 격정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 마법을 배우는 사람들은 마나를 잘 느낄 수 없어. 마법사들이 도와주 어야만 겨우 느낄까 말까지. 그런데 마법을 배운 적이 없는 네가 마법사의 도움없이 단번에 마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네 능력이 특출나다는 거야!” 흘…… 내 능력이 뭐가 특출나? 다른 세계에서 마나를 축적해본 적이 있으 니까 그렇지. 뭐, 이 할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모르니까 그렇지만. ━━━━━━━━━━━━━━━━━━━━━━━━━━━━━━━━━━━ ? 번 호 : 7136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4일 23:23 등록자 : THEBUR 조 회 : 34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4. 백지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04.백지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12 게 시 일 :00/03/14 06:41:4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64 “내 멋대로 지은 성을 쓰는 게 꺼림직하느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할아버지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난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아니예요. 앞으로 보나이 류드나르란 이름을 쓸게요.” “다행이구나. 근데 류드.” 할아버지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날 불렀다. 뭔가 요구를 할 것만 같은 표 정. 난 침을 꼴깍 삼킨 다음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으으…… 제발 무리한 요구만 하지 않기를……! “마법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 오잉? “마법이오?” “그래.” 할아버지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나보고 마법을 배우라는 것이 할아버지의 요구인 것 같았다. 헐…… 이미 10클래스를 이룩한 내가 마법을 배워서 무엇하리요~ 뭐, 이곳 의 마법이 약간 다를 수도 있으니까 배우는 것도 괜찮긴 하겠지. 근데 내가 살던 세계만큼이나 과학이 발달한 곳에서 마법을 배운다라…… 기분이 묘하 구만. “마법은 누구한테서 배우는데요?” “아, 정말 마법 배울 생각이 있는거냐?” “예.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 그거 잘 됐구나!” 할아버지는 굉장히 기뻐했다. 내가 마법을 배우는데 할아버지가 왜 기뻐하 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난 그냥 잠자코 있었다. 잠시 껄껄 웃던 할아 버지는 무슨 부탁을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라이를 맡아주지 않겠느냐?” 얼레? 라이를 맡으라고? 라이가 누군데? “교장 선생님! 옷 사 가지고 왔어요!” 라이가 누구인지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려 했을 때 방 밖에서 내 나이 또래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듣고 할아버지가 조금 큰 목소리로 말 했다. “들어오거라, 네오.” 철컥ㅡ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단정히 깎은 머리칼은 빛나는 황금색이었고, 학생인 듯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은 고등 학교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정장 차림인데 마이는 짙은 남색이고 바지는 짙 은 회색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금발 소년은 내가 일어난 것을 보고 나에 게 옷을 건네주었다. “자, 네 옷이야.” “…… 감사합니다.” 소년의 나이는 나와 비슷할 것 같았지만 우선은 존댓말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 금발 소년도 날 구한 사람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르니까. “왕왕!” 내가 금발 소년에게서 옷을 건네받았을 때 아주 익숙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온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어떤 물체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라이였다. “왕왕!” 라이는 기쁜 듯이 내 가슴에다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난 라이의 등을 쓰다 듬어 주었다. 다시 라이를 만나서 기뻤다. 그러다가 문득 라이가 날 구한 것 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근데 절 어떻게 발견하셨어요?” “아, 그건 라이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란다. 어제 라이가 사라져버려서 찾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나타나더니 미엘 공원까지 날 끌고 가더구나. 그래서 공원 벤치에 쓰러져있던 널 발견하게 됐지.” 흘…… 라이 녀석, 날 배신하고 가버린 게 아니라 날 구하려고 그렇게 빨리 뛰어갔던 거로군. 오해해서 미안하다. “왕왕!”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는 몰라도 라이는 꼬리를 흔들며 멍멍거렸다. 내가 라이와 친한 걸 본 금발 소년이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말했다. “내가 만지려 할 때는 막 물려고 하더니 저 녀석이 만져주니까 좋아하는구 만. 이거 괜히 차별당하는 것 같은데?” “허허, 라이는 은발인 사람을 좋아하는가 보다.” 할아버지도 농담을 던졌다. 난 라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라이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할아버지에게 또 물었다. “근데, 라이는 할아버지의 강아지인가요? 어떤 종류예요?” “그 녀석은 내가 기르고 있기는 하지만 자주 밖으로 쏘다녀서 걱정이란다. 난 이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장이라 라이와 계속 놀아줄 수 없어서 다른 사람 에게 라이를 맡기는데, 라이는 다른 사람을 거의 따르지 않아서 요즘은 거의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단다. 라이는 수컷인데, 포메라니안(Pomeranian)이라는 품종이지.” 흠…… 포메라니안이라…… 처음 듣는 개 품종이군. 어쨌든 빨빨거리며 돌 아다니는 모습이 왠지 연상되는 녀석이란 말이야……. 뭐 그래서 붉은 구슬 을 우연히 물게 되었을 지도 모르지. 앗! 붉은 구슬! “저, 제 바지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붉은 구슬 보지 못하셨어요?” 내가 다급한 표정으로 묻자 할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소지품은 저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있는 거라곤 붉은 구슬하고 이상 한 글씨가 써져 있는 종이 쪼가리와 어느 나라 것인지 알 수 없는 동전 몇 개밖에 없더구나.” 이상한 글씨가 써져 있는 종이 쪼가리는 마법 주문을 적은 것이고…… 동전 은 200원짜리 두 개에 50원짜리 하나겠고…… 붉은 구슬은 붉은 구슬이니까 …… 내가 가지고 있던 게 모두 있구나. 헐헐. “빨리 옷 입어봐. 내 눈짐작으로 옷을 사긴 샀는데 잘 맞을 거야.” 할아버지 옆에 서 있던 금발 소년이 내가 들고 있는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금발 소년이 사온 옷을 살펴보았다. 상의는 옅은 주황색의 긴팔 티셔츠였 고, 하의는 짙은 갈색의 긴바지였다. 금발 소년과 할아버지가 어서 입어보라 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그 옷을 즉 석에서 입어보았다. “하하, 역시 내 눈썰미는 정확하다니까!” 금발 소년은 옷이 나하고 거의 딱 들어맞자 기분 좋게 웃었다. 옷의 색깔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공짜 옷이 생겼기 때문에 예의상 금 발 소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금발 소년은 내가 진짜로 고마워하는 줄로 착 각했는지‘그런 거 가지고 뭘~’이라고 말하더니만 무엇인가 생각난 듯 날 보고 물었다. “근데 이름이 뭐야?” 으윽…… 내 이름이 뭐였더라…… 아, 기억났다! “보나이 류드나르.” “보나이 류드나르? 어? 그러고 보니…… 교장 선생님처럼 머리칼이 은색이 잖아? 그렇다면 설마……?” 금발 소년은 묘한 눈초리로 나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는 껄껄 웃으며 금발 소년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류드는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단다. 그래서 내가 보나이 류드나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거지. 그리고 머리색이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은 너도 알지 않느냐.” 얼레? 머리색이 유전 안된다고라? 그럴리가? 머리색도 본래 유전되는 거라 구! 왜 유전이 안된다는 거야? “그냥 해본 소리예요. 근데 기억 상실증이라니 안됐다.” 금발 소년의 표정에 동정심 같은 것이 엿보였다. 난 동정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금발 소년에게서 시선을 돌려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머리색에 대해 질문했다. “아까 머리색이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본래 머리색은 유전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피부색만이 유전될 뿐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깔은 유전되지 않는다 는 것이 밝혀졌단다. 이미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머리색이 갈색이셨고, 어머 니는 금발이셨단다. 만약 머리색이 유전이라면 내가 어떻게 은발이겠느냐.” 나원…… 머리색이 유전 안된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뭐 여기는 내가 사 는 곳과는 다른 세계니까 머리색 같은 게 유전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어 쨌든 이번에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나 해볼까나? “근데 앞으로 전 어디서 자야 하나요?” 내가 묻자마자 할아버지는 바로 대답했다. “오죠룬 마법학교 초등부 기숙사란다.” “……?”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자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넌 오죠룬 마법학교 초등부에 입학한 거다.” 얼레? “하지만 공짜로 입학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학교 청소를 도맡아하는 아르 바이트를 하면서 이곳에서 지내는 거란다. 할 수 있겠느냐?” 할아버지는‘할 수 있다라고 안 하면 뒷일은 책임 못진다’란 표정을 지으 며 내 대답을 재촉했다. 여기 아니면 갈곳이 마땅치 않아서 난 쉽게 승낙했 다. “예. 할 수 있습니다.” “허허, 대답 한 번 시원해서 좋구먼.” 흘…… 그런 대답을 하도록 강압적인 표정을 지은 게 누구더라? “네오는 그만 가보도록 해라.” 할아버지는 금발 소년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고, 금발 소년은 할아버지에 게 인사를 한 다음 방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나와 할아버지, 그리고 라 이만이 남게 되었다. “침대에 앉아서 내 얘기를 듣거라.” “아, 예.” 난 할아버지의 말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내가 앉자 라이는 침대 위로 올라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책상에 있는 의자를 빼와서 내 앞에 놓고 앉아 날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오죠룬 마법학교는 2120년 11월 16일에 탄생했다. 오늘이 3월 18일이 니까 앞으로 여덟 달만 있으면 개교 100주년이 되지. 감히 말하지만 오죠룬 마법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마법이 지금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거란다.” 허걱! 개교 100주년? 놀랍다……. 근데 2120년에 개교해서 여덟 달 후면 개 교 100주년…… 그렇다면 지금은 2220년 3월 18일이라는 소리잖아? 이럴수가! 그럼 도대체 여기는……? ━━━━━━━━━━━━━━━━━━━━━━━━━━━━━━━━━━━ ? 번 호 : 7135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4일 23:22 등록자 : THEBUR 조 회 : 33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3. 백지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03.백지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11 게 시 일 :00/03/14 06:41:17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67 “으으……” 허걱! 할아버지한테‘나 깨어났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신음 소리밖에 안 나온다……! “오, 이제 깨어났군!” 할아버지는 내가 깨어나자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눈을 뜨려고 안간힘 을 썼다. 다행히 눈 뜨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힘이 들지 않았다. 헐…… 이 할아버지는 호리호리하군. 옷은…… 신선(神仙)들이 입는 것같은 품이 넉넉한 거잖아? 어떻게 보면 유도복하고 비슷하구만. 에…… 수염을 꽤 길렀네? 음…… 그리고 백발(白髮)이군. 얼레? 흰색이 아닌데? 머리칼하고 수염이 번쩍번쩍 빛나는 걸로 봐서는…… 은색인가? “내가 보이나?”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고 난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 다. 눈을 뜨는 것보다 입을 여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어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테니까.” 은발의 할아버지는 두툼한 손으로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따스함이 느껴지 는 손길이었다. 철든 이래로 느껴보지 못했던 손길. “저……” 난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수염의 길이로 보면 확실히 나이가 많을 테지만 아무리 봐도 50대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신선 분위기의 할아버 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든 물어보거라.” “여기는…… 어디예요?” 우선은 그게 궁금했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야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 으니까. “오죠룬 마법학교 교장실 내방(內房)이란다.”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말했지만 난 자연스럽게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특히 마법학교란 말이 내 귀를 잡아끌었다. “마법학교요? 그런 게 있어요?” “허…… 마법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벌써 200년이 지났는데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에엑? “그런가요…… 전 처음 듣는데……” 내 말에 할아버지는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한테 질문을 했다. “넌 네 이름을 기억하느냐?” “…….” 흘…… 이거 카르본 숲에서 아세트랑 만나 얘기하는 상황하고 비슷하게 돌 아간다? 그때도 아세트가 내 이름을 물었는데…… 역시 내 이름은 가르쳐 주 기가 싫어……. “기억이……” “아, 그렇군!” 내 말을 듣자마자 할아버지는 알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는 안쓰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기억 상실증 같구나. 그래서 마법학교에 대해서도 모르는 거겠지.” 흘…… 아세트하고 똑같이 생각하시는 군요…… 이제 할아버지도 아세트처 럼 저한테 이름을 지어주시겠죠? “흠…… 네가 이름을 기억해낼 때까지 내가 네 이름을 임시로 지어도 되겠 느냐?” “예…….” 역시 이 할아버지도 나한테 이름을 지어주려고 하는군. 어떤 이름을 지어줄 까? 그러고 보니 여기 이름은 어떤 식이지? 설마 환타지 세계처럼‘니트로벤 젠’같은 아주 구린 이름? “음…… 류드나르가 좋겠군. 어떤가?” 잠시 열심히 생각하던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생각해내고 나한테 의견을 물 었다. 난 조금 당황했다. 이상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헐…… 환타지 세계에서 이상한 이름만 들어서 정상적인 이름이 오히려 이 상하게 느껴져…… 근데 류드나르? 류드나르를 저 할아버지가 구사한 언어로 해석하면……‘류드’는 현명,‘나르’는 사람…… 헉! 현명한 사람?! “제가 그 이름과 어울릴까요……?” “허허, 어울리고 말고. 자고로 현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발이었으니까 말 이야.” 할아버지는 기분 좋은 듯이 껄껄 웃었다. 류드나르라는 이름이 조금 쑥쓰러 웠지만 어쨌든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에 그 말을 내 이름이라 생 각하기로 했다. 얼레? 근데 방금 할아버지가 현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은발이었다라고 하지 않았나? 왜 그런 말을 한거지? 은발하고 나하고 무슨 관계길래? 내가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는 동안에도 할아버지는 자신의 은색 수염을 아 래로 쓸어내리며 말을 이어갔다. “은발은 다른 머리색보다 출현 빈도가 훨씬 낮네. 출현 빈도가 낮기 때문인 지는 몰라도 은발을 가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큰일을 했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간에 말이야. 자네도 은발인 것을 보면 장차 큰일을 하게 될지도 몰 라.” 허걱?! “제가 은발이라구요?!” 난 상체를 벌떡 일으켜 할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몸을 일으킨 날 보고 할아버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다 가 이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러냐? 넌 네가 은발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린 거냐?” 허거걱! “거울을 볼 수 있을까요?” 난 할아버지에게 부탁했고 할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벽에 걸린 작은 거울을 떼어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거울을 받아들자마자 난 내 머리색 을 확인했다. 거울을 통해 내 머리를 보았을 때 난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검은색이어야 할 머리칼이 빛나는 은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이건 말도 안돼! 난 염색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머리색이 은색이냐 고! 머리색이 다양했던 환타지 세계에 떨어졌어도 내 머리색은 그대로였는데 …… 어째서 여기 오니까 머리색이 바뀌는 거야!!! “이제 자네가 은발이란 사실을 기억하겠나?” 할아버지가 거울만 멍청히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쩔 수 없이 난 내가 은발이란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그렇네요…….” 어처구니가 없어…… 얼굴은 똑같은데 머리색만 바뀌다니…… 뭐…… 머리 가 은색이라 그런지 꽤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군. 은발에서 광택까지 나고…… 신기해~ “류드.” 할아버지가 자상한 어조로 날 불렀다. 류드나르라는 이름을 줄여서 그렇게 부를 생각인 것 같았다. 난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얼굴을 조금 굳히며 나에게 물었다. “넌 네가 어디서 살았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기억하느냐?” 흘…… 여기에 대해서 뭘 알아야 대답을 하든 말든 하지…… 그냥 모른다고 잡아떼야겠다! “글쎄요…… 기억이 안 나는데요.” “갈곳은 있느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래……” 할아버지는 나직히 한숨을 쉬었다. 근데 나에게는 그 한숨이 안도의 한숨 소리로 들렸다. 그렇게 요상한 느낌의 한숨을 내쉰 할아버지는 인자하게 웃 으며 다시 물었다. “정 갈곳이 없다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지 않겠느냐?” 오옷~ 내가 원했던 말이었어! 이제 노숙(路宿) 같은 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 겠구나~ “그렇게 해도 될까요?” 당장‘그럴게요’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예의상 그런 말을 띄웠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까지 휘휘 내저으면서 말했다. “어려워할 필요없다. 같은 은발의 사람을 만나니까 기분이 좋구나.” 흘…… 단지 은발이라는 이유 때문에 살게 하는 것 같은데? 뭐 이유야 어찌 됐건 길바닥에서 잠잘 일은 없으니까 잘된 거지~ 근데 난 어디서 묵어야 하 는 거냐? “저…… 제 옷은……” “아, 잠시만 기다려라. 네 옷은 완전히 젖어서 입을 수가 없어.‘네오’가 네 옷을 사러갔으니 곧 올거다.”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는 방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로 걸어갔 다. 그제서야 약간 마음이 진정된 나는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둘러보았다. 방은 조금 특이했다. 방 하나에 냉장고와 책상, 옷장, 침대, 부엌, 샤워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방은 그다지 좁아 보이지 않았다. 원래 방 크기 가 상당히 컸기 때문이었다. “자, 오렌지 쥬스다. 마시거라.” 어느새 내 앞으로 걸어온 할아버지가 나에게 오렌지 쥬스가 담긴 유리컵을 건네주었다. 오렌지 쥬스는 싫어하지만 할아버지가 성의로 주는 것이라 안 받을 수도 없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할아버지 성함은……” “아, 난‘파틴스왈러’다. 성(姓)은‘게이로’지. 그러고 보니 네 성을 아 직 정하지 않았구나. 흠……‘보나이’라는 성을 쓰는 게 어떠냐? 보나이 류 드나르…… 괜찮을 것 같은데.” 얼레? 류드나르 보나이가 아니고 보나이 류드나르? 성을 이름 앞에다 쓰네? 꼭 우리나라처럼…… 아, 이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의 어순도 우리나라 어순 과 똑같구나! 단지 한국말이 아닌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말을 쓰는 게 다를 뿐이야! ━━━━━━━━━━━━━━━━━━━━━━━━━━━━━━━━━━━ 번 호 : 7103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3일 23:37 등록자 : THEBUR 조 회 : 379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2. 백지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02.백지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01 게 시 일 :00/03/13 05:52:03 수 정 일 : 크 기 :5.7K 조회횟수 :35 쏴아아ㅡ 철퍽철퍽ㅡ! 소나기는 사정없이 퍼붓고 있었다. 난 소나기를 맞으며 무작정 뛰어갔다. 맨처음에 올백 머리 녀석에게 걷어차인 다리 때문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 다.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숨이 가빠왔다. 하지만 계속 달렸다. 그 녀석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어억!” 철푸덕ㅡ! 무작정 뛰어가다가 어딘가에 걸려 엎어져 버렸다. 소나기는 사정없이 내 등 을 때렸다. 난 그냥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차라리 그게 편했다. 빠앙ㅡ! 버스가 내 옆을 지나갔다. 도로에 고여있던 물이 버스의 타이어에 치여 날 덮쳤다. 가뜩이나 소나기에 젖은 몸이 완전히 젖고 말았다. “…….” 난 차도 바로 옆에 누운 채 내 옆을 지나다니는 차량을 쳐다보았다. 가끔씩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 때문에 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우산을 쓰고 지나 가던 사람들이 날 보고 웅성거렸다. 하지만 난 그대로 있었다. 쏴아아ㅡ 툭ㅡ 투둑ㅡ 퍼붓듯이 쏟아지던 소나기가 마침내 멎었다. 소나기가 멎자 인도에 계속 누 워있기가 거북스러워졌다. 그래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문득 라 이 생각이 나서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 살랑살랑ㅡ 라이는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온몸이 온통 비에 젖은 라이의 모 습은 가여워 보였다. 난 라이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들이 이 상한 시선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거북해져서 난 급 히 발걸음을 옮겼다. 철퍽ㅡ 철퍽ㅡ 후…… 이런 꼴을 당하다니…… 그 빌어먹을 녀석들 때문에…… 젠장! “왕왕!” 내 품에 안겨있던 라이가 놓아달라는 듯 짖어댔다. 그래서 난 라이를 놓아 주었다. 내 품에서 빠져나온 라이는 몸을 바르르 떨어 물기를 털어냈다. 몸 을 털었기 때문에 라이의 털은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우…… 춥다……. 아직 여기는 봄인가? 근데 봄에 왠 소나기가 내리냐고… … 제길, 옷이 다 젖어서 기분 정말 더럽구만……. 이러다가 감기 걸리는 거 아니야? “왕왕!” 라이는 나보고 따라오란 듯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달릴 힘이 없어서 그냥 느릿느릿 걸어갔다. 라이는 내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리다 가 다시 앞서 가는 것을 반복했다. 달리 갈 곳도 없는 난 그저 라이의 뒤만 따라다녔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딘가에 앉아 쉬고 싶었 다. 그런 내 눈에 공원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라이를 따라가다보니 어떤 공 원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털썩ㅡ 난 그대로 공원 벤치에 주저앉았다. 내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자 앞서가던 라이가 나한테 오더니 왕왕 짖어댔다. 하지만 난 걸을 힘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잠자코 앉아 있었다. 타닥타닥ㅡ 내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라이는 어딘가로 달려가버렸다. 갑자기 배 신감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다시 기운을 차릴 때까지는 내 옆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개는 개일 뿐이야…… 쓸데없이 기대를 건 내가 잘못이지…… 그 나저나 이거 추워 죽겠는걸? 흠…… 여긴 아무래도 봄인 것 같다. 공원에 꽃 들이 있는 걸 보면 말이야. 공원이 참 한적하군. 덜덜덜……. 으…… 아직 쌀쌀한 봄날씨에 반팔을 입고 있고…… 게다가 그 옷도 홀딱 젖어버려서 너무 춥다…… 이러다가 동태되겠어…… 추우니까 자꾸 졸음이 오는데? 이런…… 잠을 자지 않으려면 잡생각 같은 걸 해야 되겠다……. “어머, 저 애 가출했나봐?” “그러다 듣겠다.” 내 앞을 지나가던 젊은 커플이 그렇게 수군대었다. 그들과 얼굴을 맞추기 싫어서 난 고개를 숙였다. 사실 지금 난 가출한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얼레? 저 커플이 주고 받은 그 말…… 그건 한국말이 아니잖아? 영어도 아 니고 무슨 이상한 말이었는데…… 어째서 내가 그 말을 알아들은 거지? 엇… … 생각해보니까 날 죽도록 때리려고 했던 그 세 녀석들도 방금 전의 커플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했는데? 내가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것은…… 환타지 세 계에 떨어졌을 때 그랬던 것처럼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제노글로시아(Xenoglossia)를 얻었다는 소리? 찌륵 찌륵ㅡ 공원 나무에 까치 두 마리가 내려와 앉았다. 이곳의 까치가 내가 살던 곳의 까치와 다른 점이 없어서 그런지 까치를 보자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나원, 까치는 똑같은데 인간들은 다르구만. 머리색이 각양각색이야. 모두 염색하고 다니나? 아무래도 내가 확실히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을 한 것 같 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만약 이곳이 다른 세계라면…… 설마 과학이 무 시무시할 정도로 발전된 곳?! 부아아앙ㅡ! 오토바이가 가공할 소음을 발생시키며 내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소음통에 구멍을 숭숭 뚫어서 소리를 크게 한 미친 인간인 것 같았다. 제길…… 더럽게 시끄럽군. 얼레? 땅 위를 달리는 오토바이가 있다는 소리 는…… 과학이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는 뜻이잖아? 과학이 발전했다면 적어 도 자동차들이 하늘을 날아야 할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공원도 내가 살던 곳과 거의 차이가 없구만…… 갑자기 차원 이동이 실패해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어떤 나라에 떨어져 버린 것이 아닐 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으음……” 엇…… 졸음이 몰려온다…… 제길, 공원 벤치에서 쪼그리고 자면 추한데… … 여기서 자다간 잘못하면 동사(凍死)해버릴 지도 몰라…… 제길…… 잠들 면 안돼…… 잠들면…… 안돼…… 음…… 내가 지금 어디있는 거지? 등 뒤의 감촉으로 보면…… 침대 위에 누 워있는데…… 이불을 잔뜩 덮고 있네? 헉!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알몸이잖아? 어어억…… 도대체 누가 벗긴 거냐? 팬티 하나만 달랑 입히다니! 근데…… 난 분명히 공원 벤치 위에 앉아 있어야 할텐데? 설마 내가 공원 벤치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린 건가? 그래서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날 집으로 데려갔다는 이야기 전개?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그런 마음씨 착한 사람이 있을 리가……! 철컥ㅡ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난 눈뜰 힘도 없어서 그냥 누워 있었다. 왠지 내가 환타지 세계에 떨어져서 아세트와 만날 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비 슷한 것 같았다. 우헐헐…… 기왕이면 아주 예쁜 여자애가 날 간호하러 온 것이면 좋을텐데 말이야…… 근데 왠지 여자는 아닐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아직 안 깨어났나?” 윽…… 역시 여자는 아니었어……. 목소리를 들어보니 꽤 나이든 할아버지 인 것 같은데…… 뭐, 할아버지가 예쁜 손녀와 함께 어떤 외딴 집에 살고 있 다는 전개도 있기는 있으니까 기대를 해볼까나? ━━━━━━━━━━━━━━━━━━━━━━━━━━━━━━━━━━━ 번 호 : 7102 / 7212 등록일 : 2000년 03월 13일 23:37 등록자 : THEBUR 조 회 : 459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1. 백지 -1- (2부) 제 목 :[사이케델리아] 01.백지 -1-(2부)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00 게 시 일 :00/03/13 05:51:3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48 오늘부터 사이케델리아 2부 올립니다... 조금밖에 써놓질 않아서 조금씩만 올려야 되겠네요... 글을 빨리 쓰시는 분들이 존경스러울 뿐입니다...ㅡㅡ; (난 도저히 글쓰는 거랑 체질이....ㅡㅡ;;;;;;) ================================================================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제 2 부 : 혼합 세계 탐험 <제 1 장> 백지(白紙) 부우웅ㅡ! 음…… 이 소리는…… 자동차의 출발 소리? 빵빵! 으윽…… 시끄럽게 경적을 울리다니……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마음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왕왕!” 으으…… 이번엔 개까지 짖어대냐? 짜증나 죽겠구만! 아, 좋아좋아. 정 그 렇게 날 재우기 싫다면 차라리 내가 일어나주마! 띵ㅡ! 우욱, 머리야……. 머리가 멍하구만. 도대체 내가 얼마동안 자고 있었던 거 지? 주변은 또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 난 그렇게 투덜거리며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먹구름이 짙 게 끼인 어두운 하늘이었다. 날씨는 약간 쌀쌀해서 반팔 상의를 입은 나에게 는 조금 춥게 느껴졌다. “왕왕!”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누워있던 내 귀로 또다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난 그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마리의 강아지가 있었 다. 오렌지색의 털을 가진 조그만 강아지. 이 강아지는…… 봤었던 강아지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다 른 세계에서 왔었지…… 그래서 내가 우리집에서 기르려고 데려왔고. 얼레? 근데 왜 난 이런 데에 누워있는 거지? 벌떡ㅡ! 난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내가 누워있던 곳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였 다. 주위에는 높은 빌딩만이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어떤 건물의 옥상인 듯했다. “왕왕!” 내 옆에 있던 그 강아지는 내가 몸을 일으키자 기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난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높은 빌 딩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난 확실히 삼성물의 힘을 이용해서 다른 세계로 건너갔을 텐데? 어째서 현대식의 건물이 보이는 거야? 설마……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것이 실패해서 내가 살고 있던 세계의 다른 나라에 떨어져 버린 건가? 아니면…… 이곳이 다른 세계인가? 빵빵ㅡ! 시끄럽게 허공에 울려퍼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난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 나 옥상의 끝부분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래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자 동차들이 다니는 도로가 있었다. 신호등과 횡단보도, 그리고 육교도 보였다. 잘 정리된 거리에는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색은 제각각 달랐다. 이거…… 정말 헷갈리는데? 다른 세계로 넘어온 건지, 다른 나라로 넘어온 건지……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색이 저렇게 다양할 리가 없을 텐데…… 저건 염색한 머리가 아니라 머리색이 본래 저런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넌 어떻게 생각하냐?” “왕왕!” 흘……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다…… 아차, 붉은 구슬은 어떻게 됐지? 내 가 가지고 있는 건가? 뒤적뒤적ㅡ 난 내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붉은 구슬을 찾았다. 하지만 붉은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강아지가 내 품에서 빠져나와 어디론가 총총히 뛰어가 더니 이내 무엇인가를 물고 왔다. 그것은 붉은 구슬이었다. “아, 거기 있었구나. 나 줄거지?” 난 강아지에게 손을 내밀었고 강아지는 내 손에다 붉은 구슬을 떨어뜨려 주 었다. 그런 강아지가 귀여워서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강아지의 목 에 무엇인가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찰칵ㅡ 그것은 개에게 달아주는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에는‘RAI’라고 써져 있었 다. 그 영문자가 이 강아지의 이름인 듯했다. “이거 네 이름이냐? 라이?” “왕왕!” 내가‘라이’라고 부르자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멍멍거렸다. 강아지의 반 응을 보아 라이가 강아지의 이름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근데…… 여기는 알파벳을 사용하나? 이거 점점 더 헷갈리는데? 확실히 다 른 세계로 넘어온 건지 아니면 알파벳을 사용하는 나라로 공간 이동만을 한 건지……. 뚝! 웃, 차거……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는데…… 빗방울인가? 이런, 먹구름이 잔뜩 끼인 걸로 봐서는 곧 비가 쏟아지겠는걸? 어디 비를 피할 데가 없나? 비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보다가 옥상에 세워진 작은 건물을 발견했다. 그래서 라이를 품에 안고 급히 그 건물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건물이 아니라 옥상으로 올라오는 통로였다. 후투투툭ㅡ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로 봐서는 소나기인 듯했다. 날씨가 쌀 쌀했기 때문에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급히 그 통로 안으로 문 을 열고 들어갔다. “왕왕!” 통로 안이 어두워서 두려움을 느꼈는지 라이가 짖어댔다. 난 라이를 달래며 통로에 나있는 계단을 따라 아래 쪽으로 내려갔다. 계단에는 형광등 같은 것 도 없어서 상당히 어두웠기 때문에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구르지 않도록 조 심했다. 엘레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통해 맨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건물이 그다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힘들지는 않았다. 건물 입구의 벽 안쪽에는 이 건 물의 구조도가 그려진 표지판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1 isyi margoto…… 2 isyi dagkinja…… 3 isyi manhahe…….” 얼레? 요상한 영문자네? 숫자만 알아보겠고 나머지는 모르겠다. 눈치로 때 려잡으면 isyi 가 1층, 2층할 때 그‘층’같은데…… 어떻게 읽는 거야? “아, 띠벌. 뭔 비가 이렇게 내려?” “옷 다 젖었잖아?” 내가 입구 벽에 걸린 표지판을 쳐다보고 있을 때 세 명의 사람이 건물 안으 로 들어왔다. 모두 17살 정도의 남자 녀석들이었는데 서로 맞춰 입었는지 세 명 다 쫄티에 쫄바지를 입고 머리에 무스를 잔뜩 떡칠하고 있었다. 소나기를 맞은 탓에 녀석들의 옷은 모두 젖은 상태였다. 헐…… 이거 왠지 저 녀석들이 날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아주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 같은…… 하지만 이놈 의 소나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고……! “뭐야, 새꺄! 비켜!” 세 남자 녀석 중에 하나가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가 계단 앞을 막고 있 었기 때문인 듯했다. 그래서 난 급히 옆으로 비켜주었다. 하지만 녀석들은 날 화풀이 대상으로 찍어버렸다. “이 새끼가?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할 거 아니야?!” 퍽ㅡ!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한 녀석이 내 다리를 걷어찼다. 다리에 굉장한 고통 이 느껴졌다. 다행히 계단 난간을 붙잡아서 간신히 바닥에 주저앉는 것을 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녀석의 공격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비 맞아서 기분 나쁜데 이 새끼가 죽을라고!” 퍽!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쳤다. 그 일격을 맞고 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그러자 내 품에 있던 라이가 마구 짖어댔다. “왕왕왕!!!” “뭐야, 이 개새끼는?!” 퍼억ㅡ! “깨갱ㅡ!” 녀석의 발길질에 라이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뒤에 서 있던 녀석들은 재미 있는지 킬킬대며 웃고 있었다. 내가 맞아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는 세 녀석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고개를 쳐들었다. ‘블라레임!’ 난 불의 정령왕인 블라레임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블라레임에게선 응답 이 없었다. 아니, 정령계 자체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느 껴지지 않았다. 뭐야?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정령들이 느껴지지 않는 거냐구! 여기서 정령 들의 도움이 없으면 내가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어떻게 상대해!!! “어쭈? 아직도 반성하지 못했냐? 좀더 맞아야겠구만!” 날 발로 찼던 올백 머리 녀석이 다시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난 급히 오른발로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어떻게든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으악!!!” 올백 머리 녀석은 사타구니를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나머지 녀석들이 주먹을 불끈쥐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이 새끼!” 퍽! 난 또다시 달려드는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녀석은 무식하게 주먹으 로 공격하다가 방어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맞고 말았다. “어억……!” 나에게 걷어차인 녀석은 숨 넘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또 다시 한 놈이 쓰러지자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은 발차기로 날 공격했다. 난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그 녀석의 발차기를 가슴에 맞고 말았다. “컥!” 고통스러웠다. 내가 바닥에 쓰러지자 그 녀석이 날 밟으려고 했다. 꼼짝없 이 녀석의 발에 밟히려는 순간,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어느 샌가 일어난 라 이가 녀석의 다리를 물어버린 것이었다. “으악, 이 개새끼가!!!” 녀석은 다리를 마구 흔들어서 라이를 떨어뜨리려 했다. 손으로 라이를 치기 에는 다리의 통증이 심해서 그럴 수 없는 것 같았다. 난 그 사이에 재빨리 일어나서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퍼억ㅡ! “억!!!” 녀석은 내 주먹에 맞고 휘청였다. 그렇게 녀석에게 한 방 먹인 후, 난 있는 힘껏 밖으로 내달렸다. 싸움을 잘 못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 일꾼: 오랜만이니 상규님의 멜 주소를... sakali@uitel.co.kr입니다 ^0^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19일 22:3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09~12. 편입 전날 -3~6-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09.편입전날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38 게 시 일 :00/03/17 05:25:30 수 정 일 : 크 기 :7.9K 조회횟수 :29 “그럼 고등부 기숙사는?” “고등부? 고등부는 없어. 고등부는 고등부 캠퍼스라고 따로 분리하고 있거 든.” 허걱? 고등부 캠퍼스? 고등부가 무슨 대학이냐? “앗! 네오! 여기에 있었구나!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갑자기 M5관 쪽에서 어떤 소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싱글거리던 네오니스의 표정이 확 변했다.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변해버린 것이다. “으악! 오늘 네린에게 수학 강의해 주겠다고 한 거 까먹고 있었다!” 거의 중얼거리듯 말한 네오니스는 당황한 얼굴로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에레나와 마찬가지로 붉은색의 마이와 회색의 치마를 입 고 있는 이 학교의 여학생이었다. 벌써 밤 8시였기 때문에 주변이 어두워서 그 여학생의 얼굴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여기서 뭐해? 수학 가르쳐 주겠다면서!” 여학생이 네오니스에게 다가와 따지듯 소리쳤다. 네오니스는 땀을 삐질 흘 리며 달래듯이 말했다. “그게 오늘 교장 선생님한테 여러 가지로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흥! 나한테 수학 가르쳐 주기 싫어서 그런 거지?”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둘이 그렇게 다정한(?) 말을 주고 받는 동안 난 그 여학생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여학생은 네오니스보다는 키가 조금 작았다. 하지만 나보다는 적 어도 2cm 정도 더 컸다. 머리는 커트형이었는데 옆머리를 많이 길러서 뺨이 머리카락에 덮인 상태였다. 그리고 그 여학생의 머리색은…… 에메랄드색이 었다……. 제길…… 에메랄드색 머리칼을 보니까 갑자기 아세트가 생각나는구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여학생이 엘프가 아니라는 점하고…… 머리가 짧다는 것……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아세트만큼은 예쁘지 않다는 점이지 …… 물론 저 정도 얼굴이면 예쁜 편에 속하지만. “어? 얜 누구야?” 네오니스에게 삿대질을 하던 그 여학생이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서야 탈출구를 찾은 듯 네오니스가 그 여학생에게 급히 날 소개시켜 주 었다. “얜 앞으로 중등부 1학년에 다니게 될 류드나르야.” “그래? 수업은 벌써 시작했잖아?” “말하자면 편입이지~” 네오니스는 내가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내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날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 여학생이 나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안녕. 난 중등부 2학년 에트로니스 네스포린이야.” 허걱?! 얘도 2학년이잖아? “아, 안녕하세요.” 난 네스포린이라는 이름의 그 여학생과 악수를 했다. 내가 존댓말 쓰는 걸 들은 네오니스가 내 등을 쳤다. “네린한테 존댓말쓰지마.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그러나 네오니스의 말을 들은 네스포린이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야, 네오! 네가 항상 그렇게 부드럽게 나오니까 후배들이 널 우습게 보는 거야!” 네스포린이 네오니스의 말을 반박하자 네오니스도 지지 않았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면 1살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세상은 점점 자율 화되어 가는데 학교는 철저한 계급 사회라 시대에 뒤떨어진단 말이야! 난 그 런 상하 관계가 싫어!” “그건 너만의 생각이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예의 범절이 무너진다구!” 둘은 또다시 존댓말쓰는 것 가지고 그렇게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두다간 싸움날 것 같았지만 난 감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 둘은 나보다 한 학년 높은 선배들이니까. “왕왕!” 다행히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의 논쟁을 중단시킨 사랑스러운 존재는 바로 라 이였다. 라이가 짖자 둘은 논쟁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승자는 이미 정해져버 린 것 같았다. “앞으로 우리 둘을 선배라고 생각하라고. 알았지, 류드나르?” 네스포린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네오니스는 억울한 표정으 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결론이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났음을 알게 된 나 는 네스포린에게 존댓말을 썼다. “예.” “좋아. 그럼 네오. 이제 수학 공부하러 가자!” 말을 마친 네스포린은 네오니스의 팔을 잡고 M5관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네오니스는 네스포린에게 끌려가기 전에 나에게 열쇠 하나를 던지고 나서 소 리쳤다. “그거 520호 열쇠야! 520호는 M3관 5층 끝부분 쪽에 있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어! 필요한 건 방 안에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걱정말고!” “빨리 안 따라와?” 네스포린은 거의 강압적으로 네오니스를 끌고 M5관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 무래도 네오니스는 네스포린에게 전적으로 잡혀살고 있는 것 같았다. 흘…… 쟤네들 꽤 오랫동안 사귄 친구 같은데? 하여튼 네오니스가 불쌍하다 니까. 저런 무시무시한 여자애랑 사귀고 있다니 말이야. 명복을 빌어 줘야겠 어~ “왕왕!” 내가 계속 M3관 현관 앞에 서 있자 라이가 빨리 들어가자는 듯이 멍멍거렸 다. 그래서 난 M3관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1층의 긴 복도와 계단이 보 였다. 내가 들어갈 방이 5층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난 즉시 현관 옆에 있 는 계단을 통해 5층까지 올라갔다. 복도에는 형광등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 고, 그것들이 다 켜져 있어서 밝았지만 복도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발견 할 수 없었다. 또 방음 장치도 어느 정도 되어있는지 방 안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조용한 기숙사였다. “5층 520호…… 520호……” 난 그렇게 되뇌이며 5층을 살펴보았다. 총 좌측에 10개, 우측에 10개, 총 20 개의 방이 서로 마주보면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도 복도는 세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흠…… 얼레? 현관 바로 좌측에 520호가 있잖아? 흘흘,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도 없군. 현관 가까이 있으니 말이야. 다행히『520ho』라고 써진 문패가 있구만. 여기도‘호(號)’를‘ho’라고 쓰는군. 이건 읽을 수 있다! 우헐헐~ 똑똑ㅡ 한 방을 3명이 같이 쓴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혹시 나 말고 다른 누군 가가 지금 이 방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노크를 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듯했다. 헐~ 그럼 나 혼자 이 방을 쓴다는 소리? 이거 아주 좋은데? 바로 내가 원하 던 거였어! 이 학교가 갑자기 마음에 들기 시작한다~! 짤랑ㅡ 난 네오니스에게서 받은 열쇠를 살펴보았다. 열쇠는 그냥 평범한 모양이었 는데 열쇠 고리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듯한 조그만 패가 달려 있었다. 그 패에는‘520’이란 숫자가 양각되어 있었다. 520호의 전용 열쇠인 듯했다. 흘…… 과학이 꽤 발달한 곳인 줄 알았더니 아직도 구식 열쇠를 쓰는구만. 적어도 전자 열쇠를 써야지…… 근데 문도 정말 구식이네? 손잡이를 돌려서 열게 되어 있는 문이라니…… 실망이야~ 철컥ㅡ! 손잡이에다 열쇠를 집어놓고 돌리자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난 문 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 옆에 있는 점등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방 안이 훤히 다 보였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벽 양쪽에 놓여져 있 는 위아래로 침대가 마련된 2인용 침대 2개였다. 그리고 문 정면으로는 커텐 이 쳐진 조금 커다란 창문이 달려 있었고, 창문 앞에는 긴 책상이 하나 놓여 져 있었다. 책상은 하나고 의자가 3개인 걸로 봐서는 그 책상 가지고 3명이 같이 써야하는 것 같았다. “왕왕!” 라이는 방 안에 아무도 없자 방 안을 마구 돌아다녔다. 난 문을 닫고 방 한 가운데에 놓여진 둥근 테이블 위에다 들고 온 옷을 놓아두었다. 그리고 곧장 창문으로 가서 커텐을 젖혔다. 차르륵ㅡ 커텐을 젖히자 창문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창문의 구조 역시 일 상적으로 보아왔던 미닫이 형태였다. 덜컥ㅡ 창문의 잠금 고리를 젖히고 나서 창문을 조금 열어보았다. 어두워서 확실히 확인할 수 없었지만 반대편에는 기숙사 건물이 있었다. 위치로 따져보아 M2 관인 것 같았다. 흘…… 이래가지곤 창문이 있어봤자잖아! 기숙사 건물밖에 안 보이고 갑갑 하다 갑갑해. 바람도 안 들어오잖아? 통풍 상태 최악이구만……. “우우웅ㅡ” 라이는 2인용 침대의 아래 침대에서 이불에 몸을 비비적거리며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난 창문을 다시 닫고 나서 반대편 침대에 드러누웠다. 침대 시트는 조금 딱딱한 편이었다. 거의 바닥에서 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굳기 라 자고 일어나도 허리가 그다지 아플 것 같지는 않았다. 따르르릉ㅡ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는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일어나 전화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전화기는 내가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버 튼식이었는데 테이프가 들어있는 것이 자동 응답기가 내장되어 있는 것 같았 다. 흘…… 기숙사 내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다니…… 그러고 보니 컴퓨터도 있었네? 근데 왜 가장 중요한 TV가 없냐? 비디오도 없고…… 그래도 냉장고 하고 샤워실이 있는 게 다행이구만. 얼레? 옷장하고 싱크대가 있네? 대단해~ “여보세요.” 《아, 이제 방 안에 들어간 건가, 류드?》 전화를 건 사람은 교장 할아버지였다. 마침 교장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기 때문에 교장이 뭐라 말하기 전에 급히 질문을 던졌다. “네. 근데 이 520호실은 저 혼자 사용하나요?” 《그래. 그 방은 나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숙해야 하는 학생들을 위한 예비용이니까.》 음…… 그랬군. 정말 내가 이 방을 혼자 사용하게 되다니…… 우헐헐!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편입전날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39 게 시 일 :00/03/17 05:25:54 수 정 일 : 크 기 :8.5K 조회횟수 :27 《류드, 준비가 끝났으면 지금 즉시 교무실로 오거라. 네게 맞는 교복을 골 라야 하니까 말이야.》 얼레? 교복? 아, 그렇구나.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지! 그 렇다면 나도 교복을 입어야 한다는 소리겠군. 흘…… 교복은 학교에서 공짜 로 제공해주나 봐? 하긴, 난 돈이 없으니 교복을 어떻게 사냐~ “예. 지금 가겠습니다.” 《알았다. 교무실은 본관 3층에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아, 류드는 글을 못 읽지…… 어쨌든 중앙 계단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큰 방이니까 잘 찾 아오거라.》 “예.” 달칵ㅡ 뚜우뚜우ㅡ 교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진 소리조차 내가 살던 곳과 완전 히 똑같았다. 이 세계의 과학 기술이 내가 사는 세계 이상으로 발달하지 못 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슬펐다(?). “같이 교무실 갈래, 라이?” 난 침대 이불에서 나뒹굴면서 묘한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 라이에게 말을 걸 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라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섰다. 흘…… 라이 녀석은 내 말을 잘 듣는구만. 나와 같은 붉은 구슬의 매개체이 기 때문인가? 근데 왜 하필이면 강아지가 붉은 구슬의 매개체가 됐는지 원… … 라이의 하는 짓을 보면 꼭 변태 강아지 같단 말이야……. 탁! 철컥ㅡ 방 밖으로 나와서 문을 닫고 열쇠로 잠갔다. 그리고 라이와 함께 계단을 내 려갔다. 어떤 아이들은 사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어떤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돌아다녔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사복을 입어도 괜찮거나, 기숙사 안에 있을 때에만 사복이 허락되는 것 같았다. 밖은 상당히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기숙사 곳곳에 가로등이 설 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로등은 나트륨등인 듯 누리끼리한 빛을 내고 있었다. 흘…… 왜 나트륨등을 쓰냐구…… 나트륨등이 수은등에 비해 같은 전력으로 강한 세기의 빛을 내고, 또 노란색의 빛은 파장이 길어서 공기나 안개같은 작은 입자에 의해 덜 산란되어 더 멀리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묘하잖아…… 색깔 식별도 안되고…… 난 백색광(白色 光)이 더 좋단 말이다! “……!” 나트륨등을 올려다 보던 나는 시선을 내려 라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라이 녀석이 가로등 밑에서 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왕!” 쉬를 다한 라이는 거기가 자기의 영역이 됐다고 나에게 알리려는 듯 날 보 고 멍멍거렸다. 상대해 주기도 귀찮아서 난 그냥 라이를 무시하고 본관 쪽으 로 걸어가 버렸다. 탁탁탁ㅡ 난 조금 빠른 걸음으로 중앙 계단을 통해 본관 3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가장 커 보이는 방의 문 옆에 만들어 놓은 패를 쳐다보았다. 패에는『TIJASIL』 이라고 써져 있었다. 에…… 티자실? 그 말은 이곳 언어로 교무실이란 뜻인데…… 다행히 내가 알아먹을 수 있는 글자구만. 자, 그럼 들어가볼까? 끼이ㅡ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교무실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T 자형으로 붙여둔 책상을 한쪽 벽에다 놓고 문 옆의 남는 공간에는 쇼파와 테 이블 같은 것을 놓았다. 조금 혼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흘…… 벌써 오후 8시인데도 선생들이 많이 있네? 근데 선생들은 집에서 출 퇴근해야 하나? 학생들 대부분이 기숙하는 것 같던데 선생들도 기숙해야되지 않을까? “류드, 여기다.” 문 옆에 있는 남는 공간에 교장 할아버지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장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여러 벌의 교복이 펼쳐져 있는 것으로 봐서 그 교복 중에서 내 몸에 맞는 것을 나에게 줄 것 같았다. “탈의실에서 이 교복들을 한 번 입어보고 맞는 걸 고르거라.”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교장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바로 옆에 있는 어떤 방을 가리켰다.『BFYKYIRSIL』이라고 써져 있는 방이었는데 교장 말을 들어 보아 탈의실인 듯했다. 교무실과는 달리 그 글자는 어떻게 읽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흠…… 교복을 입는다…… 몇 달만 있었으면 고등학교 졸업해서 교복하곤 안녕인 내가 또 교복을 입어야 하다니…… 그나저나 교무실 안에 탈의실이 있다니 놀라운데? 대단한 학교야~ 난 나한테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교복 한 벌을 들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 다. 그러나 그 옷은 조금 작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교복을 입어보았다. 이 번엔 컸다. 그렇게 몇 벌의 교복을 입었다 벗었다 한 끝에 겨우 내 몸에 맞 는 교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행이구나. 몸에 맞는 교복이 없으면 새로 맞춰야 하는데 말이야. 새로 맞추려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 걸리니까 교복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밖에 없 거든.” 교장은 내가 몸에 잘 맞는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만족한 웃음을 띄 웠다. 그리고는 나머지 교복을 테이블 구석에다 놓아둔 뒤 쇼파에 앉고 나서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내가 맞은편 쇼파에 앉자 교장은 쇼파 위에 놓여 져 있던 서류를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까 보여줬던 네 신상 기록이란다. 우선 중요한 것만 내가 알려주려고 그 러니 잘 듣거라.” “예.” 난 대답하면서 그 서류를 받아들었다. 아까 본 것과는 달리 복사한 것인 듯 조금 지저분했다. 하지만 글자 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교장은 내가 받은 서류의 원본인 듯한 종이를 들고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기 시작했 다. “알고 있겠지만 네 이름은 보나이 류드나르고 나이는 17살이다. 나이는 그 냥 17살로 정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거라.” 흘…… 나이 위조? 뭐 내 키를 보면 17살 때가 거의 확실하지만. “그리고 네 국적은‘Reokor’,‘레오콜’이라고 읽으면 된다. 알고 있는지 는 모르지만 레오콜은‘Republic of Korea’라는 옛날 국명에서 나온 거다.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라고 읽어야 할거다. 지금의 초국가 언어와는 읽는 법이 상당히 다르지.” 에엑? Republic of Korea? 대한민국의 공식 명칭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된거 야? 게다가 지금은 레오콜이라니? 그리고 초국가 언어는 또 뭐야? “저……” “왜 그러냐?” “지금 한글을 쓰는 나라가 있나요?” 내 말에 교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직접 한글을 써 주려고 필기도구를 찾았다. 내가 연필쥐는 자세를 취하며 주위를 두리번 거 리자 교장이 한 선생에게서 볼펜을 가져오더니 나에게 주었다. “자, 여기있다. 근데 한글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거냐?” “그게……” 난 즉시 종이의 여백에다‘권강한’이라고 한글로 써서 교장에게 보여주었 다. 그 글자를 보자마자 교장은 눈을 부릅떴다. “이건 레오콜의 고어(古語)? 도대체 이런 글자를 어디서 배운 거냐? 초국가 언어가 성립되고 언어 통일 사업이 추진되어 모든 나라의 언어가 사라졌을텐 데?” 얼레? 언어 통일 사업? 모든 나라의 언어가 사라졌다고? “언어 통일 사업이 뭔데요? 그리고 모든 나라의 언어가 사라지다뇨?” 내 질문에 교장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모른단 말이냐?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다니 큰일이구나!” 흘……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냐구! “가르쳐주시면 기억날 지도 몰라요.” “음…… 그럴지도 모르지. 좋아, 그럼 2000년에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먼저 말해야겠구나.” 2000년에 일어났다던 끔찍한 사건을 말하기 전에 교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 듬었다. 그리고 나서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20세기말 YⅡK 문제, 즉 밀레니엄 버그(Millennium Bug)가 초국가적인 문 제로 대두되었단다. 컴퓨터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나라가 많아서 큰 위기였 지.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중심으로 한 YⅡK 대책 위원회에서 그 문제 를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 프로그램은 YⅡK 모의 실험에서 대성 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로 보급되었지. 하지만……”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바이러스가 있었단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순 간, 그 바이러스에 의해 프로그램이 바뀌어 YⅡK 대재앙이 발생했지. 전세계 의 핵폭탄이 일시에 발사된 것이란다.” 에에엑?! “누가 그런 짓을 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변형된 프로그 램에 의해 컴퓨터로 제어되고 있던 핵폭탄이 일시에 발사되어 다른 나라에 떨어지고 말았지. 그 결과로 대부분의 나라가 핵에 의해 날아가 버렸단다. 핵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한국과 일본 등의 나라가 있는 동북 아시 아 지역뿐이었지.” 허거걱?! “그래서 결국 세계는 그 두 나라의 주도하에 재건설되었단다. 한국과 일본 은 모든 사람들이 합심해서 세계 재건설을 이루어 나가려면 언어가 하나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초국가 언어를 만들어 언어 통일 사업을 추진했지. 그 로부터 200여 년이 흐른 지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국가 언어를 사용하 고 있단다.” 으어억……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핵에 의한 피해를 입은 나라의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부양시키기 위 해서 두 나라는 상당히 고생을 했단다. 그래서 지난 200년 동안 과학 기술이 거의 발전하지 못했지. 그리고 YⅡK의 대재앙이 발생하고 나서는 과학을 불 신하는 사람들도 많았단다. 그 결과로 그전까지는 비과학적이라고 비난받던 마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지. 그 마법의 연구를 지금의 수준으로 끌어올 린 곳이 바로 이 오죠룬 마법학교란다.” 으윽……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헷갈리는 것 같은……! “이제 생각이 나느냐?” 그 긴 설명을 다 마친 교장이 날 보고 물었다. 하지만 난 뭐라고 대답할 수 가 없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머리가 뽀개지려고 했기 때문 이었다. 그걸 보고 교장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단다. 나중에 생각날 때가 있을테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이런…… 어차피 이 세계에 대한 생각은 안 난단 말이유…… 어쨌든 빨리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너무 복잡해!!!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편입 전날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46 게 시 일 :00/03/18 05:45:09 수 정 일 : 크 기 :8.0K 조회횟수 :171 “흠, 그리고……” 뒤이어 교장은 서류에 적혀 있는 내 신상 기록을 대강 알려주었다. 그 부분 은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없었다. 단지 서류상으로 내가 고아라는 것만이 알 아둬야 할 것이었다. 그렇게 내 기록에 대해 알려준 교장은 미안하다는 표정 을 지어 보였다. “네가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우선 임시로 그런 기록을 만들었다. 나중에 기 억이 돌아오면 다 지울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흘…… 어차피 이 기록으로 여기서 계속 살아갈 확률이 높은데 그런 걱정은 하덜 마쇼~ 그나저나 돌아갈 방법을 어떻게 알아낼 지가 더 걱정이다…… 삼 성물에 비견될 만한 힘을 지닌 성물을 찾아야 할텐데…… 교장 할배에게 물 어보면 되려나? 에…… 나중에 물어보자. 아직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든 것도 아니니까. 우선 오늘은 쉬고 싶어~ “그밖에 제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나요?” 내 질문에 교장은 선생들이 앉아있는 쪽을 쳐다보며 어떤 선생의 이름을 불 렀다. “가리나크 선생! 이리와서 류드를 좀 보게.” “아, 예!” 교장의 부름을 받고 한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갈색 의 단발 머리를 지닌 30대 초반의 조금 잘생긴 남자 선생이었다. 교장이 그 남자 선생을 나한테 소개시키려는 듯이 자리에 일어났기 때문에 나도 자리에 서 일어나 그 남자 선생과 마주 보았다. 내가 일어서자 교장은 먼저 나를 손 으로 가리키며 남자 선생에게 날 소개시켰다. “이 녀석이 바로 내일부터 D-7반에서 수업을 듣게 될 류드나르라네.” “아, 얘가 편입한다는 그 학생이군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가리나크’라는 이름의 선생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안녕. 난 D-7반 담임인 가리나크야. 앞으로 잘 지내자.” “예…….” 난 그다지 할말이 없어서 그냥 악수만 열심히 했다. 가리나크 선생의 첫인 상은 괜찮았다. 꽤 온순한 성격의 선생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악수를 하 고 나서 날 이리저리 쳐다보던 가리나크 선생이 웃음을 띄우며 나에게 물었 다. “근데 초등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중등부에 들어온 거라는데, 마나 회전은 1써클까지 했니?” 흘…… 이 질문은‘너 공부 잘하니?’라고 묻는 것과 같구만…… 어쨌든 사 실대로만 대답하면 되겠지 뭐~ “예.” “마나 회전을 도와준 사람이 있니?” “교장 선생님께서 도와주셨어요.” “음, 그렇구나. 교장 선생님이야 10써클을 이룩하셨으니까 교장 선생님이 도와주셨으면 금방 1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킬 수 있겠지.” 가리나크 선생의 말에 교장이 멋쩍은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쑥쓰럽구먼. 허허허.” 흘…… 쑥쓰럽다면서 좋아라 웃고 있군…… 저러다 입 째지겠다…… 가리나 크 선생이 교장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말을 한 건지, 아니면 교장이 나한테 존경 좀 받으려고 가리나크 선생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시킨 건지 알 수가 없구만……. “저…… 근데 수업은 몇 시부터 시작해요?” 난 교장과 가리나크 선생 둘다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내일부터 내 담임이 된다는 가리나크 선생이 했다. “오전 9시에 수업 시작해. 그러니까 8시 50분 안까지는 교실에 있어야 하지. 늦으면 지각이야.” 흘…… 여기도 지각이나 결과 같은 게 있는 모양이군. 고등학교 생활을 거 의 마감해 가고 있었던 내가 다시 고등학교와 같은 규칙을 가진 학교에 다녀 야 하다니…… 차라리 날 죽여라……! “왕왕!” 그때 갑자기 라이가 날 보고 짖어댔다. 그제서야 난 라이도 날 따라 교무실 에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라이가 하도 쥐죽은 듯이 있어서 옆에 있는 지조 차 몰랐던 것이다. 자꾸 내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는 라이를 잠시 바라보던 교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허허. 라이 녀석, 빨리 침대 이불에서 뒹굴고 싶은 모양이구먼. 어서 데려 가게나. 안 그랬다간 라이가 막 물려고 그런다네.” 허걱?! 물어버린다고라? 이 녀석이 플라톤을 물어서 나한테 반격의 기회가 왔던 것이긴 하지만…… 주인조차 물려고 하는 질 나쁜 강아지였다니…… 이 거 왠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난 내 신상 기록이 적힌 종이와 앞으로 입을 교복을 들고서 교장과 가리나 크 선생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교장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문득 할말이 떠올랐는지 급히 나에게 말했다. “아차, 교과서는 내가 사람을 시켜 오늘 중으로 보낼테니 자지 말고 있게나.” 헐, 교과서? 마법 교과서를 말하는 건가? 도대체 몇 권이나 있길래 사람을 시켜 보낸다는 거냐? 아니면 다른 교과서인가? 흠…… 뭐, 배달(?)왔을 때 보면 되지~ “예. 그럼.” 난 다시 교장과 가리나크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자 라이도 바람처럼 교무실 밖으로 나와 내 바지를 잡아당기며 어 서 방에 가자고 재촉했다. “넌 침대 이불이 그렇게 좋냐?” 내 물음에 라이는 꼬리를 흔들며 아주 좋아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말 을 확실히 알아듣고 그런 행동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상 황에 맞게 행동하는 것으로 봐서는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게도 느껴졌다. “가자.” 난 곧장 내 방이 있는 M3관으로 향했고 라이는 꼬리를 흔들며 내 뒤를 쫄랑 쫄랑 따라왔다. 묘한 느낌을 일으키는 노란색의 나트륨등을 지나쳐 M3관으로 들어가 계단을 통해 520호까지 올라갔다. 520호 앞에는 간단한 사복 차림을 한 네오니스가 서성이고 있었다. “아, 류드!” 나하고 눈이 마주치자 네오니스가 웃음을 띄우며 나에게 소리쳤다. 날 기다 리다가 막 돌아가려는 중에 날 만난 것인 듯했다. “안녕…… 하세요.” 별 생각없이 반말이 나갔다가 급히 존댓말로 고쳤다. 갑자기 네오니스의 애 인(?)인 에메랄드색의 단발 머리를 지닌 그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 었다. 내 말을 듣고 네오니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존댓말 쓰지 마. 듣기 거북해.” “…… 알았어. 근데 무슨 일이야?” “응. 네린에게 수학 가르쳐 주다가 급히 빠져 나왔지. 애가 수학 공부할 생 각은 안 하고 자꾸 육탄 공격을 해오잖아.” 얼레? 육탄 공격……? 설마 남자와 여자 사이의…… 그거? “넌 그…… 네린이라는…… 애를 싫어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네오니스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서 아주 친해.” 흘…… 누가 지금 그 얘기하냐? “그게 아니라, 넌 네린을 애인으로서 좋아하냐 이거지.” “응? 아…… 그, 글쎄…… 뭐, 뭐랄까…… 그냥 친구지 뭐…… 하하.” 네오니스는 얼굴을 붉히며 대충 얼버무렸다. 활발한 성격과는 달리 여자에 대해서는 꽤 쑥맥인 듯했다. 활발한 성격과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여자들이 줄 줄이 따를 것이라 생각했던 네오니스의 그런 모습은 꽤 신선한 것이었다. “네오는 네린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아니라니까! 그냥 친구야!” 흘…… 녀석, 열 내긴…… 좀더 리얼한 표정을 지어야 내가 그 말에 속지… … 얼굴이 참 정직해~ “어쨌든 들어가자.” 난 열쇠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에 들어가기만을 눈 빠져 라 기다리고 있던 라이는 문이 열리자마자 번개같이 침대 위로 올라가 뒹굴 었다. 불도 켜지 않았는데 침대를 잘 찾아 올라간 녀석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라? 너 오늘 교복 받았어?” 네오니스가 내 교복을 보고 물었다. 난 고개만 끄덕거리고 교복을 책상 위 에 놓아두었다. 잠시‘그렇구나’란 표정을 짓던 네오니스는 방을 한 번 훑 어보더니 놀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와, 너 혼자 이 방을 쓰는 거야? 좋겠다!” 흘흘, 좋긴 좋지. 남의 신경을 쓰지 않고 편하게 방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샤워실이나 컴퓨터 등을 쓸 수 있고. “근데 네오, 물어볼 게 있는데……” “응? 뭔데?” “중등부 1학년 D-7반이 어디야?” 본래 그 질문은 교장 할배나 가리나크 선생에게 물어봤어야 했던 것이었지 만 잊어먹고 그냥 나와버렸기 때문에 네오니스에게 물어보았다. 네오니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확실히는 몰라.” 으윽……! “하지만 중등부 1학년 건물은 동관A에 있어. 1층에 A반, 2층에 B반이 있었 으니까…… 아마 D반은 4층에 있을 거야.” 흠…… 그런가? 하지만 또 물어볼 말이 생겼군. “근데 동관A가 어디에 있어?” “동관A는…… 그러니까…… 본관 옆에 있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 네오니스는 잠시 동안 쩔쩔매다가 마침내 설명할 방법을 생각해냈는지 득의 에 찬 웃음을 짓고는 자신있게 말했다. “본관 앞에 있는 운동장에서 본관을 바라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두 채의 건 물이 있어. 하나는 동관A고 다른 하나는 동관B거든? 그 중에서 본관 바로 옆 에 붙어있는 건물이 동관A야. 이제 알겠어?” “대충 알 것 같다. 직접 가보면 되겠지.” “그래그래. 그럼 내일부터 수업 받는 거야?” “그렇게 들었어.” 나와 네오니스가 그런 식으로 학교에 대해 대화하고 있을 때 교과서가 도착 했다. 교과서를 들고 온 사람은 두 명의 수위 아저씨였다. 그만큼 교과서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텅ㅡ 책상에 그 교과서들을 놔둔 수위 아저씨들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난 수위 아저씨들이 놓아두고 간 교과서를 훑어보았다. 교과서는 모두 12권이었다. 내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닐 때 배웠던 양과 맞먹는 것이라 겁부터 났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편입 전날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47 게 시 일 :00/03/18 05:45:37 수 정 일 : 크 기 :5.5K 조회횟수 :179 “공부할 게 좀 많지? 초등부에서는 그냥 거의 마나 회전을 위주로 하지만 중등부에서는 마법은 물론 기초 지식도 중요시해. 1년 동안 4번의 시험을 보 는데 그때 그 과목들을 모두 90점 이상 받아야만 다음 학년 진급이 가능하거 든.” 네오니스의 그런 말이 날 더욱 공포의 구석탱이로 몰아가고 말았다. 전과목 평균이 90점 이상 되어야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어 째서 네오니스가 2년이나 걸려 2학년으로 진급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으으윽…… 이곳 시험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을텐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는 평균 90점을 이룩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근데 네오. 이 교과서들 제목 좀 가르쳐줘.” “좋아. 우선『Matyime』는‘마트메’라고 읽어.” 네오니스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니 마트메라는 말을 하자마자 내 머리 속으로‘수학’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네오니스는 계속해서 설명했다. “마트메가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에…… 그리고『Pijik』은‘피직’이라 읽고……” 이번에도 피직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물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역시 나에게 는 제노글로시아의 능력이 있는 게 확실했다. 단지 이곳 글자를 읽지 못한다 는 것이 큰 문제점이었지만. “그리고『Mabfy Iorin』은‘마버 이오린’이라 읽고, 또……” 네오니스는 12과목의 책 제목을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앞으로 내가 배울 과 목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한문, 문학, 국사, 세계사, 윤리, 마법 이론, 마법 실습으로 모두 12개였다. 으윽…… 마법학교라면서 이상한 것을 왜 가르치는 거야? 마법학교면 마법 학교답게 마법을 가르쳐야지! 어떻게 12과목 중에 마법에 관련된 과목이 딸 랑 2개냐고!!! “야야, 류드! 너무 그렇게 겁먹은 표정 짓지마. 부담없이 하라구. 1학년에 서 2학년으로 진급하는데 몇 년씩 걸리는 이유가 바로 과목이 많아서니까 말 이야. 열심히 하면 너도 1년이나 2년 안에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을거야.” 흘…… 과연 내가 1년이나 2년 안에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을까? 왠지 어 림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얼레? 근데…… 어째서 한문 과목이 있는거 지? 전 세계의 언어가 초국가 언어인가 뭣인가로 통일되서 다른 나라의 언어 는 모두 사라졌다고 교장 할배가 그랬잖아? “네오, 근데 한문은 왜 배우는 거야?” “한문? 그야 당연히 마법서(魔法書)를 해독하기 위해서 필요하니까 그렇지.” 얼렐레? 한문하고 마법서 해독하고 무슨 상관이길래? “마법서 해독? 왜 하필이면 한문을 배워서 해독하려는 건데?” “너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네오니스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가 내가 기억 상실에 걸렸다는 것을 떠올렸 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법서가 한문으로 되어 있으니까 당연히 해독하려면 한문을 배워야지. 이 제 알겠어?” 허거걱? 마법서가 한문으로 되어 있다고라? “마법서가 왜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에…… 그건 옛날‘중국’이라고 불렸던 나라에서 마법 연구가 활발히 일 어났고, 그들이 그들의 언어인 한자(漢字)로 마법서를 남겼기 때문이야. 본 래 마법은 유럽 쪽에서 생겨난 것이었는데 유럽에서는 과학의 발달로 마법을 등한시했거든? 그래서 과학보다는 뭔가 정신적인 힘에 관심이 많던 중국인들 이 마법에 대해서 굉장한 연구를 했지. 지금까지 알려진 마법 주문은 그 중 국인들이 찾아낸 것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일 뿐이고 말이야.” 우어억…… 도대체 여기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마법을 중국인들이 연구했다니? 이게 왠 귀신 호두알 뿌셔먹는 소리야? “그런 절망적인 표정은 짓지마라, 류드. 한문이 어렵긴 하지만 열심히 외우 면 돼. 마법 원서가 모두 한문으로 되있는 걸 어떡하겠냐.” 네오니스는 내가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 이유를 오해하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주었다. 그때 따르릉 하고 전화가 울렸다. 그걸 보고 네오니 스가 한마디 했다. “이 기숙사에서 전화가 왔다는 것은 교장실이나 교무실에서 온 거야. 다른 방에도 전화가 있긴 하지만 연결은 안 되거든. 말하자면 기숙사 내의 전화는 호출용이지.” 흠…… 그런가? 나한테 전화할 선생이라면…… 교장 할배나 가리나크 선생 이겠군. 날 아는 선생은 그 둘뿐일 테니까. 철컥ㅡ “여보세요.” 《아, 마침 있었군.》 교장이네? 《교과서는 잘 받았나?》 “아, 예.” 《내가 시간표 가르쳐 준다는 걸 깜빡해서 말이야. 우선 내일 시간표만 알려 줄 테니 잘 받아적거라.》 허걱…… 그러고 보니 시간표도 모르고 내일 수업받을 뻔했잖아? “잠깐만요.” 난 수화기를 책상 위에 놓고 필기도구를 찾았다. 다행히 책상 서랍 속에 연 습장과 샤프가 있었다. 전에 이 방을 쓰고 있던 사람이 그냥 두고 간 것인 듯했다. “준비됐어요. 부르세요.” 《좋아. 순서대로 부르마. 세계사, 마법 이론, 물리, 마법 실습, 한문. 다 받아적었느냐?》 “예.” 《그래. 그럼 내일 아침 8시 50분까지 교무실로 오거라. 물론 수업 준비는 하고. 알겠나?》 “예.” 《좋아. 그럼 편히 쉬거라.》 “예.” 달칵ㅡ 뚜우뚜우ㅡ 교장이 전화를 끊고나서 나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네오니스는 내가 받아 적은 시간표를 보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와…… 이거 최악인데? 첫날부터 머리 뽀개지겠다.” 흘…… 난 고3이라 수학이나 물리 같은 것은 배웠지만…… 이곳의 수학이나 물리 수준이 어느 정도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걱정이야…… 교과서에 써져 있는 글들을 읽을 수가 없으니 원……. “어라? 벌써 9시네? 류드, 나 가봐야겠다. 오늘 공부한 거 복습하고, 내일 공부할 거 예습해야 하니까.” 네오니스는 시계를 쳐다보다가 그렇게 말하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밖에 나가기 전에 나에게 한마디 했다. “내가 3학년 올라가기 전에 꼭 2학년으로 올라와라. 알았지?” 흘……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알았어.” “그럼 난 간다.” 쿵ㅡ 네오니스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침대 이불에 열심히 몸을 비벼대던 라이는 이미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규칙적 인 시계 소리만이 적막한 공간을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흘…… 할일도 없는데 잠이나 자야겠군. 글을 읽을 수가 없으니 예습도 못 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내가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이구만. 글을 못 읽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야…… 걱정…… 걱정…….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19일 22:35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 수업 첫시간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수업 첫시간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62 게 시 일 :00/03/19 08:40:12 수 정 일 : 크 기 :7.3K 조회횟수 :127 <제 3 장> 수업 첫 시간 아흠…… 잘~ 잤다! 얼레? 이거 아직 어두컴컴하네? 몇 시지? 스슥ㅡ 척ㅡ 난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떼어냈다. 방 안이 조금 어두워 서 시계의 시침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떼어내서 가까이 들여 다보니 시각은 6시였다. 흘…… 이거 시간이 거의 3시간 남네? 그동안 뭐하지? 그냥 자버려? 하지만 그러다간 8시 50분까지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이 3시간 을 어떻게든 때워야겠구만. 척ㅡ 탁! 시계를 다시 벽에 걸어놓고 나서 불을 켰다.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자 로돕 신이 한꺼번에 반응하여 눈에 강한 자극이 가해졌기 때문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눈이 부셨다. 본래 밤이 되어 약한 빛이 망막에 있는 간상 세포를 건 드리면 세포 속에 있던 로돕신이 어떤 화학 변화를 하게 되는데, 그때 일어 난 변화가 시세포를 자극하여 비교적 어두운 밤에 물체를 대강 식별할 수 있 게 하는 것이다. 물론 색깔 구별은 되지 않지만. 흘…… 눈 따가워 죽겠구만…… 왜 우리 눈은 낮의 강한 빛을 감지하는 원 추 세포와 밤의 약한 빛을 감지하는 간상 세포로 나뉜 것일까……? 그냥 한 종류의 세포가 낮이나 밤이나 한꺼번에 강한 빛이든 약한 빛이든 감지하면 될텐데. 역할 분리를 하니까 명순응(明順應)이나 암순응(暗順應) 같은 현상 이 일어나잖아…… 뭐 무슨 이유가 있을 테지만…… 어쨌든 귀찮은 일이야… …. “왕왕!” 불이 켜져서 방 안이 밝아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 라이가 날 보고 짖어 댔다. 그러나 잠시 후에 곧장 고개를 처박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 게 라이가 잠꼬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개도 잠꼬대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어쨌든 앞으로 남은 3시 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가 중요한데…… 뭐하지? 아, 마나 회전이나 해야겠 다! 그래서 빨리 10써클을 이룩해야지~ 난 초고속의 마법사니까 충분히 가능 해! 우헐헐! 마나 회전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러나 마나 회전을 생각 만큼 할 수 없었다. 8시 50분까지 교무실에 가야한다는 생각이 마음놓고 마 나 회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내가 환타지 세계나 원래 세계에 있을 때에는 시간 제한없이 마음놓 고 마나 축적을 해서 많은 성과를 거뒀었는데…… 여기서는 마음놓고 마나 회전을 못하겠어. 이러다간 2써클 회전도 힘들 것 같은데? “휴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누운 침대 옆에 있는 옷장이 눈에 띄었다. 어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었다. 흠…… 옷장 안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옷이 있을라나? 하긴, 옷이 있을 리 가 없지. 그럼 뭐가 있지? 한 번 봐야지~ 덜컥ㅡ 난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옷장 안 옷걸이에는 그 어떤 옷도 걸려있지 않았다. 단지 옷장 아래 부분에 가방 세 개가 있을 뿐이었다. 얼레? 이 가방들은…… 오죠룬 마법학교에서 그냥 나눠주는 것 같은데? 가 방에『Ojyoru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까 말이야. 헐헐, 그렇다면 가 방 걱정은 안해도 되겠구만. 이것들을 쓰면 되니까. 게다가 샤프하고 연습장 도 책상 서랍에 있고, 아주 좋아~ 탁! 가방을 꺼내고 옷장 문을 닫은 후, 난 가방 속에 오늘 수업 과목 교과서를 챙겨넣었다. 그리고 교복으로 갈아입고 라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 밖으 로 빠져나왔다. 우선 학교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남은 2시간 동안 학교를 열심히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그래야 나중에 편해지니까. ……. 아침 7시나 됐는데 기숙사가 굉장히 조용하구만. 도대체 녀석들 언제 일어 나려는 건지…… 아닌가? 방음 장치가 잘 돼있어서 소음이 안 들리는 건가? 뭐 어찌됐건…… 난 학교나 싸돌아다녀야지~ “……!” 동관A의 위치를 확인하려고 M3관에서 나와 본관으로 가는 도중 M5관 입구에 서 나오는 한 소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 소녀는 핑크빛의 긴 머리칼을 가 지고 있는 에레나였다. 그냥 바람쐬러 나왔는지 가벼운 사복 차림을 하고 있 었다. “안녕하세요.” 난 에레나에게 인사했다. 본래 인사를 그다지 잘 하지 않는 난 그냥 지나가 려 했지만 에레나가 날 발견했고, 게다가 날 기억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인사 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에레나는 내가 인사하자 마주 고개를 숙여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흘…… 아직 내가 중등부 1학년이란 소리를 듣지 못했나 보군. 하긴, 에레 나가 그런 거에 신경쓸 이유가 없지…… 어쨌든 나보다 한 학년 위인 선배에 게 존댓말을 들으면 닭살 돋으니까 내 정체를 밝혀야겠어~ “말 놓으세요. 전 1학년이니까요.” “아……!” 1학년이라는 말에 에레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나에게 반 말을 했다. “그렇구나. 본래 나이는 몇이야?” “17이요.” “그래? 나하고 같구나. 근데 초등부에 들어갈 거 아니었어? 교장 선생님이 널 초등부로 보낸다고 했는데?” 에레나는 거침없는 반말로 나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하지만 반말을 들었는 데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쩌면 내 선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무엇보 다 반말을 듣고도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는…… 에레나가 너무 예쁘기 때문 이다…… 하하하…….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교장 선생님께서 중등부로 가라고 하셨 어요.” 내 대답에 에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중등부는 마나 회전이 1써클 이상 되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데… …?” “네. 전 마나 회전을 1써클 했거든요.” “아…… 그럼 여기 오기 전에 마법 수련을 했던 거야?” 흘…… 어떻게 대답한다? 내가 이 세계의 마나를 회전시킨 것은 어제 뿐이 었지만…… 마법 수련은 환타지 세계에 있을 때부터 했으니까…… 1년 4개월 이상을 마법 수련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겠지? “몇 년 전부터 마법 수련을 했었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그렇구나. 중등부 1학년이 된 거 축하해.” 지금까지 약간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에레나가 처음으로 미소를 머 금었다. 순간적으로 내 눈은 에레나의 얼굴에 못박였다. 에레나의 미소를 보 면 볼수록 시선을 뗄 수 없었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유치한 말이지만 하늘에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에레나 가 미소를 거둬들이며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교복은 왜 입었어? 수업 시작하려면 아직 2시간 정도 남았는데.” “아, 예…… 그냥 수업 시작할 때까지 학교 좀 돌아다녀 보려구요.” “학교를? 아, 학교 지리 익히려고?” “예.” 내 대답을 듣고 에레나는 바람직한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에 레나와 얘기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워진 나는 에레나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그럼 전 학교 구경할게요.” 그리고는 에레나에게 대충 인사하고 급히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에레 나가 그런 날 불렀다. “잠깐! 근데 내 이름은 알고 있는거야?” 얼레? 알고 있으면 어쩌려고? 내가 모른다고 하면 가르쳐줄 생각인가? 혹시 나한테 반한 것? 흘…… 망상은 그만두자……. “알고 있어요. 네오한테…… 아니 네오 선배에게 들었거든요.” “네오? 중등 2학년 네오니스?” “예.” 이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서 내가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게 만드냐고 …… 본관으로 가려고 했는데 질문을 던지니까 본관으로 가지도 못하고, 그 렇다고 다시 에레나한테 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해졌잖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빨리 사라지자! “그럼……” 난 에레나가 다시 질문을 하기 전에 급히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에 레나는 더이상 질문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설령 질문할 게 있었다고 해도 물 어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말하자마자 바로 본관에 들어가 버렸으니까. 역 시 끊을 필요가 있을 때는 냉정해져야 한다니까~ 탁탁탁ㅡ 에레나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고 나서 본관을 가로질러 본관 앞에 있는 운 동장으로 나갔다. 운동장은 생각보다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보통의 학교 운 동장처럼 축구 골대와 철봉이 있는 것이 꽤 낯익었다. 꼭 내가 다니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 같아 묘한 느낌이 들었다. 흠…… 네오 녀석이 본관을 바라보고 서면 오른쪽에 있는 건물 두 개가 동 관이라고 했는데…… 아, 저 건물이구나! 근데 동관 두 개가‘>’모양으로 거의 맞붙어있네? 신기한 구조야~ ━━━━━━━━━━━━━━━━━━━━━━━━━━━━━━━━━━━ ━━━━━━━━━━━━━━━━━━━━━━━━━━━━━━━━━━━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19일 22:35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 수업 첫시간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수업 첫시간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63 게 시 일 :00/03/19 08:40:37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127 “동관A는 본관 바로 옆에 있는 저 건물이야.” 갑자기 왠 소녀의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사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전 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라 그 작은 목소리가 나에겐 크게 들렸다. “……!” 난 고개를 돌렸다. 내 시야에 에레나의 모습이 잡혔다. 에레나는 담담한 표 정으로 동관A 건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귀신처럼 소리없이 다가온 에레나가 무서워서 난 급히 에레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에레나가 날 이상하게 쳐 다보았다. “왜 그래?” “아뇨…… 조금 놀래서……” 흘…… 소리없이 다가와 갑자기 말을 하는데 안 놀랠 사람이 어딨겠어…… 하마터면 간 떨어져서 간 없는 인간이 될 뻔했다니까~ “놀랐다구? 내가 무서워?” “그게 아니라…… 갑자기 말을 하니까요……” “아, 그렇구나. 미안. 근데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 얼레? 에레나가 내 이름을? 뭣 땜시? 나하고 하등의 관계도 없으면서? 나하 고 사귀자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흠…… 혹시 내가 에레 나의 이름을 알고 에레나는 내 이름을 모르니까 손해본다는 느낌을 받은 것 은 아닐까? 에…… 그게 맞겠구만. 아님 말구~ “류드나르인데요.” “류드나르? 좋은 이름이네?” 그렇겠지…… 현자(賢者)라는 뜻이니까. 나한테는 전혀 안 어울리는 이름이 지만 말이야. “근데 무슨 일로 어제 교장 선생님 방에 있었던 거야?” 에레나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마땅히 대답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에레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 이며 말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마. 대신 다른 거 물어볼게.” 흘…… 왠만하면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라……. “류드나르는 왜 오죠룬에 들어온 거야?” 얼레? 질문이 예상밖이군. “그냥……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요…….”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그래…… 좋은 이유구나…….” 에레나는 갑자기 얼굴을 어둡게 하더니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에레나가 그 런 표정을 짓자 분위기가 꽤 무거워졌다. 이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에레 나에게 질문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런 분위기 정도는 많 이 겪어봤기 때문에 평상시의 성격대로 말을 걸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내 입은 제멋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선배님은 왜 이 학교에 들어왔는데요?” 이런……! 이건 에레나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도록 하게끔 분위기를 유 도한 것 같아! 제길! 내가 한낱 여자의 분위기에 휩쓸려 불필요한 질문을 하 다니! 이건 내 수치야! “난…… 부모님 때문이야…… 부모님을 위해서 지금 이 학교에 있는 거지… … 물론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온 것도 있지만.” 처음 그 말을 할 때 에레나의 표정은 상당히 어두웠다. 그러나 끝의 말을 할 때는 일부러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에레나의 분위기에 휩쓸려 난 또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힘내세요.” 으윽…… 에레나하고 대화하다간 내 성격이 완전히 변해버리겠어! 빨리 에 레나의 사악한 마수에서 벗어나야 해! “그럼 전 동관을 둘러볼게요.” 난 에레나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급히 동관 쪽으로 뛰어갔다. 걸어가다간 에레나가 날 불러 세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뛴 덕분에 에레 나는 날 부르지 못했고 난 겨우 그녀의 마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흘…… 에레나 너무 무서워……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혹시라도 학교 에서 에레나를 보게 되면 내가 피해야지~ 터벅터벅ㅡ 난 동관A를 거닐었다. 1층에는 네오니스의 말대로 A-1반에서 A-7반까지 있 었다. 그것은 1층에 A반이, 2층에는 B반이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D반은 4 층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4층에 는 D-1반에서 D-7반까지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레? 근데 여기 교실이 내가 살던 세계의 학교 교실하고 거의 똑같네? 운 동장 쪽 창문하고 복도 쪽 창문이 다 있고…… 교실문은 여닫이문이고…… 일인용 책상을 사용하고…… 칠판하고 칠판 지우개, 심지어 분필까지 똑같구 만…… 이거 완전히 우리나라 학교에 다니는 느낌이 들잖아? 최악이야!!! “…….” 내가 다닐 교실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 천천히 동관A를 빠져나와 학교를 한 번 쭉 돌아보았다. 다행히 에레나는 이미 기숙사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 다. 어쨌든 여기저기 싸돌아다녀서 학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게 되었다. 흠…… 본관에 걸린 시계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잖 아? 그동안 뭐한다냐…… 아, 라이가 이제 깨어났을 지도 모르니까 기숙사에 나 가봐야겠군. 안에 가둬놓고 왔다고 설마 날 물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 1시간이나 지났어도 기숙사는 여전히 조용했다. 아니, 학교 전체가 조용하 다고 해야 더 정확했다. 아무래도 거의 9시 직전이 되어야 학교가 시끌벅적 해질 것 같았다. 덜컥ㅡ 난 520호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라이가 두 눈을 말똥말 똥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흰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 다. 그 모습은 작은 사자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난 라이에게 한마디의 물음 을 던졌다. “배고프냐?” “왕왕!” 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라이는 갑자기 꼬리를 흔들며 헥헥거렸다. 내가 먹을 걸 안 주고 가니까 화가 났었던 모양이었다. “기다려.” 난 라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냉장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냉장고에 는 아무 것도 없었다. 완전히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럼 어떻게 아침을 해결하라는 거야? 학교 본관에 매점하고 식당 이 있긴 하지만 아직 문도 안 열었는데! 라이한테 먹을 거 안주면 내 생명이 위험하다고!!! 띵ㅡ 띵ㅡ 띵ㅡ 갑자기 방 안에서 세 번의 종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놀라 급히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천장 한쪽에 구멍이 숭숭 뚫린 둥근 철판 같은 것이 달라 붙 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스피커인 듯했다. 《지금부터 아침 식사가 시작됩니다. 먼저 M6관 기숙생들부터 오십시오.》 얼레? 이제 아침 식사 시간? 8시에 시작하네? 근데 이런 식으로 아침 식사 를 하나? 그럼 난 아직 기다려야 하잖아? 귀찮아~ “……!” M3관 기숙생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가 내가 교복을 입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웃! 하마터면 교복입고 식당갈 뻔했다! 근데…… 여기는 교복 입고 아침 식 사를 하나? 설마…… 그건 아니겠지……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으니까 확인해 봐야겠다! 탁탁탁! 난 곧장 M3관 정문까지 뛰어내려갔다. 마침 식당으로 향하는 중등부 3학년 선배들이 보였다. 간혹 교복을 입고 식사하러 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식사할 때는 아무 복장이나 입어도 되는 것 같았다. 헐헐, 다행이구만. 흠…… 난 어떻게 하지? 교복입고 먹을까, 아니면 사복 입고 먹을까? 에라, 기왕 교복 입은 거 교복입고 먹지 뭐~ “……!” 문득 매점도 지금 문을 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본 관에 있는 매점으로 뛰어갔다. 내 생각대로 식당이 문을 열자 매점도 문을 연 상태였다. 라이에게 먹을 걸 갖다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에 게는 이곳 돈이 전혀 없었다……. 으윽…… 이를 어쩐다냐? 라이를 데리고 식당에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라이를 굶기면 라이가 날 물어버릴 테고…… 이거 큰일이군…… 아, 교장한 테 가보자! 라이를 나한테 맡긴 사람이 교장이니까 라이 밥값을 달라고 하면 두말없이 줄거야! 우헐헐, 난 역시 천재야! 탁탁탁ㅡ! 난 눈썹이 휘날리도록 교장실까지 뛰어갔다. 그리고 노크도 하지 않고 교장 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교장 할배는 교장실 안에서 열 심히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었다. “류드? 무슨 일인가?” 갑자기 뛰어들어온 날 보고도 교장은 별로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도 부담없이 말했다. “라이 밥값 좀 얻어내려구요.” “라이 밥값?” 교장은 잠시 머리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내 말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군. 잠깐 기다리게. 한 달분의 라이 밥값을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한 교장은 지갑에서 여러 장의 지폐를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지폐를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완전히 만원 지폐하고 똑같았다. 세종대왕 아저씨가 있는 것도 그렇고, 배추잎 색깔하며, 10000이라고 찍힌 숫자까지 똑같았던 것이다. 단지‘만원’대신‘IhaMan Wun’이라 적혀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흠…… 교장이 준 배추잎 지폐가 모두 10장…… 그럼…… 10만원?! 허거걱! 교장이 이렇게 많이 줄 리가 없을 텐데? 여기의 만원 가치는 내가 살던 곳보 다 훨씬 낮나? 도대체 원화 가치가 얼마야? ━━━━━━━━━━━━━━━━━━━━━━━━━━━━━━━━━━━ ? 도대체 원화 가치가 얼마야? ━━━━━━━━━━━━━━━━━━━━━━━━━━━━━━━━━━━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20일 23:4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5. 수업 첫시간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수업 첫시간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79 게 시 일 :00/03/20 06:10:19 수 정 일 : 크 기 :7.0K 조회횟수 :122 “10만원이 너무 적나?” 내가 묘한 표정을 짓자 교장이 그렇게 물었다. 난 이곳의 물가를 알아보기 위해 교장에게 되물었다. “근데 빵 하나에 얼마예요?” “빵? 매점 빵은 아무리 비싸도…… 500원을 넘지 않을 걸?” 어억? 빵 하나에 500원? 그럼 우리나라 물가하고 비슷하잖아? 그렇다면…… 교장 할배가 정말로 나한테 10만원을 준 건가? 라이의 밥값으로 10만원을? “교장 선생님, 정말로 이 돈을 라이 밥값으로 주시는 거예요?” 내 물음에 교장은 껄껄 웃었다. “그것도 있고, 자네의 용돈도 포함되어 있지.” 내…… 용돈? 흘흘흘…… 그렇다면 라이에게 최소한의 과자만 주고 남은 돈 을 내가 꿀꺽…… 하면 교장에게 맞아죽겠지? “참, 너도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면 식권을 사야 한다. 한 끼당 1500원이니 까 잘 알아두거라.” 얼레? 한 끼당 1500원? 하루에 세 번 밥먹으니까 4500원…… 그럼 한 달이 면…… 135000원? 허거걱! 그럼 라이에게 줄 밥값이 없잖아?! “내가 준 돈이 부족할거야. 좀더 필요하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게나.” “아르바이트요?” “그래. 수업 끝나면 내 방하고 교장실을 청소하는 거네.” 교장은 내 의향을 물어보려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에겐 선 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밥값과 라이의 밥값을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했으니 까. “할게요.” “좋아. 그럼 이제 식사하러 가거라.” 교장은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고 난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곧 장 매점으로 뛰어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오늘 아침은 우선 그걸로 때울 생 각이었다. 흘…… 라이 녀석, 빵 사왔다고 날 물어버리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나도 같은 빵을 먹으니까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하하……. 난 다시 520호로 향했다. M4관의 기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당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네오니스가 있었다. “야, 류드!” 날 발견한 네오니스가 곧장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두 개의 빵과 한 개의 우유를 보고 물었다. “너 그걸로 아침 떼울려고?” “어.” “그것만 먹으면 배 안 고프냐?” 흘흘, 난 그다지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이 정도만 먹어도 충분하단다~ “괜찮아.” “그래…… 그럼 난 식당에 갈게. 나중에 보자.” 네오니스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본관 1층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득 내가 네오니스에게 반말을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내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520호까지 걸어갔다. 내가 520호 문을 열자마자 라이 가 총알같이 튀어나와 내 앞에서 헥헥거렸다. 난 라이에게 봉지를 뜯지도 않 은 빵 하나를 던져주고 방 안으로 들어가 넓적한 그릇을 준비했다. 라이가 우유를 핥아먹기 위한 그릇이었다. 부스럭 부스럭ㅡ 라이는 열심히 발과 이빨을 이용해 빵 봉지를 뜯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빵 봉지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뜯겨져 나갔다. 빵 봉지가 뜯기자마자 라이는 살벌하게 빵을 먹기 시작했다. 그것은 완전히 사자가 갓 잡은 먹이를 먹어치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트르륵ㅡ 흘…… 쩝쩝…… 라이 녀석, 정말 살벌하게 먹는구만. 쩝쩝…… 저거 정말 강아지 맞나? 쩝쩝…… 아무리 봐도 사자 새끼같애. 쩝쩝……. 띵ㅡ 띵ㅡ 띵ㅡ 《M3관 기숙생들 오십시오……》 그 방송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M2관, M1관 기숙생들 차례가 되었고. 마 지막으로 초등부였다. 이 오죠룬 마법학교의 식사 방침은 선배 먼저, 후배 나중이었던 것이다. 째깍째깍ㅡ 시간은 흘러 어느새 8시 45분이 되었다. 방송은 이미 8시 30분 이후로 나오 지 않고 있었다. 빵 하나 먹고 침대 위에 대(大)자로 뻗어있는 라이를 뒤로 하고 난 교무실로 향했다. 많은 학생들이 동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초등부가 다닌다는 서관은 학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업 시작이 중등 부보다 훨씬 늦는 듯했다. “후…….” 교무실 앞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 에는 각 반의 담임 선생들이 조회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어제 보았던 가리나 크 선생은 교장 할배와 같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제 시간에 맞춰 왔구나.” 내가 인사하자 가리나크 선생은 실실 쪼갰다. 그런 것 가지고 실실 쪼개는 가리나크 선생이 이상해보였지만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자, 이제 가자!” 가리나크 선생은 날 데리고 동관A쪽으로 향했다.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각 자의 교실로 뛰어가고 있었다. 코앞의 기숙사에 살기 때문인지 학생들이 많 이 게을러진 것 같았다. 우당탕탕ㅡ! 가리나크 선생과 내가 D-7반 교실 근처에 다가가자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담임이 떴다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듯 했다. 아주 잠시후, 나와 가리나크 선생이 교실 안으로 들어갔을 떄는 교실 의 분위기가 굉장히 조용했다. 게다가 온통 남자뿐이었다. 아무래도 남녀 공 학이긴 해도 남녀 합반은 아닌 듯했다. 어쩄든 이 교실의 모습은 내가 다니 던 학교의 모습과 다른 점이 거의 없어서 놀라울 뿐이었다. “너희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겠다. 오늘부터 너희와 같이 공부하게 될 류드나르라고 한다.” 흘…… 아이들에게 전학온 애를 소개시키는 거랑 거의 다르지 않군. 이제 나보고 아이들에게 인사하라고 하겠지? “인사하거라, 류드나르.” 역시…… 내 예상대로구만. 그냥 대충 해주지 뭐~ “안녕하세요, 류드나르입니다.” “…….” 갑자기 썰렁해진 분위기. 내가 그 말만 하고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가리나크 선생은 조금 당황했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류드나르가 아직 어색해해서 그런 거니까 너희들이 이해해라.” 나원…… 뭐가 어색해해서 그렇다는 거야? 난 원래 긴말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왜 저 녀석들보고 날 이해해달라는 거야? 내가 저 녀석들 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어디 있다고? 모든 아이들을 획일적으로 생각해버리 는 무시무시한 담임이구만……. “자, 류드나르. 저기 레리오스 옆에 앉거라.” 가리나크 선생이 지정해준 자리는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흑발을 지닌 한 소년의 옆이었다. 그 소년은 1분단 맨 뒷줄에 앉아있었는데 4분단 뒤에는 무 려 세 자리나 비어있었다. 그곳에 앉고 싶긴 했지만 가리나크 선생에게 반항 (?)할 수는 없어서 그냥 아무 말없이 그 흑발 소년 옆에 앉았다. 띵 띵 띵 띵ㅡ 교실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1교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 소리 같았다. 수업 시작을 알릴 때 종을 사용하는 것조차 내가 살던 곳과 다 르지 않아 기분이 상당히 묘해졌다. “그럼 류드나르 잘 대해주고, 수업 열심히 들어라.” “예…….” 아이들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이들이 어떤 소리를 내든 가리 나크 선생은 신경쓰지 않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가리나크 선생이 나가자마 자 내 짝꿍이 된 레리오스라는 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난 레리오스야. 앞으로 잘 지내자.” “어…….” 난 짧게 대답하고 나서 레리오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꽤 온순하게 생긴… … 아니, 약간 장난끼가 보이는 녀석이었다. 나와 레리오스가 몇 마디 말을 나누기도 전에 선생이 들어왔다. 1교시 수업은 세계사였다. “자, 수업을 시작하자.” 대략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선생은 교탁에 자리를 잡자마자 들고 온 교과서를 펼쳤다. 그리고는 곧바로 수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반장이나 학급 회장 같은 것이 여기에는 없는 것 같았다. “교과서 42쪽을 펴라.” 세계사 선생의 말에 아이들은 힘없는 표정으로 교과서 책장을 넘겼다. 수업 시작한 지 고작 10여 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도 아이들의 얼굴엔 지 겨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흘…… 벌써부터 아이들이 지겨워하는구만. 이러니 중등 1학년에서 2학년으 로 넘어가는데 3, 4년 정도 걸리지…… 난 거의 6년 동안이나 이런 식의 수 업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면역이 되버렸지~ 나한테 꽤 유리하겠구만~ ━━━━━━━━━━━━━━━━━━━━━━━━━━━━━━━━━━━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20일 23:4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6. 수업 첫시간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수업 첫시간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880 게 시 일 :00/03/20 06:10:45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139 파라락ㅡ 난 세계사 선생의 말대로 교과서 42쪽을 펼쳤다. 가장 먼저 광활한 중국 대 륙을 축소시켜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 옆에는 글씨들이 잔뜩 써져 있었는데 난 그 글자들을 읽을 수 없었다. 발음만 알게 되면 뜻은 자동적으 로 내 머리 속에 떠오를 텐데, 그 발음을 알 수 없으니까 뜻도 떠오르지 않 는 것이었다. 골치 아프구만…… 앞으로 시험볼 때 어떡하냐…… 글자를 모르니 시험 공 부를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험 문제조차 읽을 수 없을 테니 미치 고 펄쩍뛰고 환장한다니까……. “기원전 770년에서 진(秦)이 기원전 221년에 중국 대륙을 통일할 때까지를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 부르는데……” 세계사 선생은 중국 역사에 대해 쭉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미 중학교와 고 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라 듣기도 귀찮았다. 그래서 내 짝인 레리오스를 쳐다 보았다. 레리오스는 열심히 연습장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그림은 여 자가 옷을 홀딱 벗고 있는 모습이었다. 흐흐…… 녀석, 그림 잘 그리는군…… 아주 좋은데? 으흐흐……! “헤헤, 죽이지?” 계속 그림을 쳐다보는 날 보고 레리오스가 씨익 웃었다. 내가 말없이 고개 를 끄덕이자 레리오스는 세계사 선생의 눈치를 보며 연습장을 내 눈앞에 펼 쳐놓았다. 연습장의 각 페이지에는 레리오스가 그린 그림들이 있었다. 대부 분이 여자 누드화라서 내 눈길을 잡아 끌었다. “어때? 잘 그렸지?” 레리오스는 마치 나한테 그림을 감정받는 양 물었고 난 고개만 끄덕여 주었 다.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니까 레리오스는 실실 쪼갰다.‘그림 잘 그렸다’ 라는 소리를 아주 좋아하는 녀석 같았다. “야! 레리오스! 또 만화 그리냐?!” 나와 레리오스가 열심히 연습장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세계사 선생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연습장은 허공을 날아 교실 뒷문 옆에 있는 쓰레기 통 앞에 떨어졌다. 세계사 선생이 연습장을 집어던져 버린 것이었다. “작년에 경고했잖아! 수업 시간에 그림 그리면 작살내겠다고!” 세계사 선생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그러나 레리오스는 쓰레기통 앞에 떨어진 연습장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런 레리오스의 행동에 세계사 선생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냥 두면 레리오스에게 주먹질을 할 것 같아서 난 방해 작전을 전개했다. “에취ㅡ!” 내가 할 수 있는 방해 작전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세계사 선생에게 직접 방해를 했다간 내가 죽도록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엇? 넌 누구냐?” 주먹을 치켜들었던 세계사 선생이 날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난 이때다 싶 어 급히 대답했다. “편입생인데요.” “편입생? 아, 네가 초등부 건너뛰고 중등부 들어온 놈이구나?” “예.” 흘…… 말투가 꽤 거칠구만. 뭐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입 거친 선생들이 많 았으니까 이정도야 별 것 아니지. “너 외국에서 왔냐?” 세계사 선생은 레리오스는 까맣게 잊은 채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난 세계 사 선생의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고분고분 대답했다. “아뇨.” “그럼 이 근처에서 사냐?” 흘…… 이 근처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선 그렇다고 해야지~ “예.” “형재자매는 있냐?” “없어요.” “부모님은 모두 살아계시고?” “예…… 아니아니, 지금은 혼자 살아요.” 으앗! 난 고아라고 되어 있는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생각없이 대답하 면 안되겠어! “혼자? 부모님은 어디 가셨냐?” 으윽……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꼬치구이가 되고 싶냐? “그게…… 멀리 가셔서요……” 그래, 멀리 가긴 갔지. 여기서는 내가 고아라고 되어 있으니까 부모님이 간 곳은 하늘 나라밖에 더 있겠냐? “어디 가셨는데?” 세계사 선생은 나에 대해서 모든 걸 알아내려는 듯 별 이상한 질문을 퍼부 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대답을 둘러대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거의 10여 분 동안 이것저것 묻던 세계사 선생은 더이상 질문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지 고 개를 끄덕이며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휴우…… 이제야 끝났군. 하여간 질리도록 질문만 한다니까. 저 선생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끼익ㅡ 그때 레리오스가 연습장을 주워오려고 의자를 밀치며 일어서려 했다. 그래 서 난 레리오스를 붙잡았다. 내가 붙잡자 레리오스가 무서운 눈으로 날 째려 봤다. 하지만 난 레리오스가 일어서지 못하게 막았다. “가만히 있어.” 내가 얼굴 표정을 굳히고 쫙 깔린 목소리로 말하자 레리오스는 움찔 거렸다. 세계사 선생은 나와 레리오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느끼지 못하고 수업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레리오스의 일은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띵동띵동ㅡ 수업 시간이 끝나고 세계사 선생이 나갔을 때 난 레리오스보다 먼저 일어나 연습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레리오스에게 연습장을 건네주었다. 내 행동 이 뜻밖인지 레리오스는 멍한 표정으로 나만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묘해진 것 같아서 난 레리오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냐?” “응? 어…… 그래.” 레리오스는 내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남의 사생활 등을 묻는 건 좋아하지 않았지만 뭔가 묻지 않으면 레리오스와의 관 계가 서먹해질 것 같아서 그냥 되는대로 말을 걸었다. “커서 뭐하고 싶은데?” “어…… 만화가가 하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지는 몰라.” “근데 왜 마법학교에 들어왔어?” “나도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온 게 아니야. 엄마하고 아빠 때문이지. 요즘은 마법사 자격증이 필수니까.” 얼레? 마법사 자격증? 그건 또 뭐냐? “마법사 자격증이 뭔데?” “……?” 그런 내 물음에 레리오스가 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마법사 자격증 도 모르냐는 듯한 눈치.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알지 않으면 나중에 헤맬 우 려가 있기 때문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레리오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내가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레리오스가 입을 열었다. “너 정말 마법사 자격증 몰라?” “몰라.” “그래? 뭐…… 마법사 자격증도 다른 자격증하고 똑같은 건데…… 1급에서 5급까지 있어. 그 마법사 자격증을 따야 마법을 써서 어떤 일을 도와주었을 때 보수를 받을 수 있지.” 얼레? 마법을 쓰고 돈을 받는다고라? 그런 것도 있었냐? 와…… 그거 꽤 돈 벌이 되겠는걸? 나도 마법사 자격증이나 따볼까? “마법사 자격증 따기 어려워?” “그렇게 어렵진 않아. 마법사 자격증은 거의 운전면허증 따는 거랑 똑같으 니까.” 어억? 그럼 어렵겠는데? 운전면허증 따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아나? 털푸덕ㅡ 레리오스가 갑자기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리고 나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 리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왜 마법학교에서 세계사나 윤리 같은 과목을 공부하는 거냐고…… 그건 보통 학교에서 하는 건데. 차라리 여기 자퇴하고 마법사 자격증이나 따 는 게 낫지…….” 헐헐, 이 학교에 대해 상당히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난 아직 이 학교에 대 해 잘 모르니까 뭐라고 해줄 말은 없다……. ━━━━━━━━━━━━━━━━━━━━━━━━━━━━━━━━━━━ 킪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22일 17:38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7. 수업 첫시간 -5-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수업 첫시간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03 게 시 일 :00/03/22 05:51:57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75 “야, 렐! 네 그림 좀 보자!” 레리오스 앞에 앉아있던 한 녀석이 레리오스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 지만 레리오스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 그림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난 안 보여주고 왜 쟤한테는 보여주냐?” 그 녀석이 날 들먹이자 레리오스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만 보여주는 거야.” “예술 좋아하네. 야시한 그림만 그리면서.” “야시한 그림도 예술에 속하는 거야.” “예술은 무슨…… 어차피 그런 그림이야 다 그게 그거지…….” 그 녀석이 계속 레리오스의 그림을 비꼬자 레리오스가 갑자기 열변을 토하 기 시작했다. “뭐가 그게 그거야? 성인 만화 그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어? 성인 만 화는 그림만 야리꾸리하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야! 그 야시한 상황이 전개 되게끔 만드는 스토리와,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고! 요즘 들어 얼마 나 형편없는 성인 만화가들이 많은 줄 아냐?!” “…….” 레리오스의 열변에 그 녀석은 할말을 잃어 버렸다. 녀석이 아무 말도 못하 자 레리오스는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며 말을 이었다. “난 성인 만화가가 될거야. 그래서 한 번 보면 완전히 뻑 가는 야시한 만화 를 그리고 싶어. 가능하면 성인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싶고.” 흘…… 정말 엄청난 포부로군. 성인 만화가가 되고 싶다니…… 꿈부터가 남 달라…… 하여튼 성인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레리오스의 그 마음가짐이 부럽구만……. “야, 류드나르! 넌 어떻게 생각하냐?” 갑자기 레리오스가 날 보고 물었다. 나한테 질문을 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당황했다. “어? 뭘?” “성인 만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얼레? 그게 질문이었냐? 별 희한한 질문을……! “그, 글쎄…… 본 적이 없어서……” “본 적이 없어? 이 자식, 구라를 치다니!” 내 대답을 듣자마자 레리오스는 내 목에 팔을 걸고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는 계속‘봤지? 어떤 걸 주로 봤냐?’라는 질문을 해댔다. 난 그냥 사실대로 얘기했다. “본 적 없어…….” “진짜냐? 그럼 포르노 비디오는 봤겠지?” 으윽……! “안 봤어…….” “뭐야, 너? 계속 구라치면 죽는다?” 컥컥…… 이번엔 목 꺾기냐? 이러다 사람 잡겠다, 이눔아! “너 여자 경험있냐?” 으윽…… 질문을 왜 계속 그런 쪽으로……! “없어……” “그럼 키스는?” “없어……” 레리오스 녀석…… 감히 아픈 데를 찌르다니…… 여자 친구도 없는데 무슨 얼어죽을 키스야? 이걸 끓여서 죽여, 삶아서 죽여? “뭐야, 그럼 너 범생이잖아?” 흘…… 그걸 이제야 알았냐? 난 범생이란다, 헐헐헐! “안되겠어. 내가 너한테 인생 공부 좀 시켜야지. 나중에 할일 없을 때 날 찾아와. 내가 성인 만화책하고 포르노 비디오 보여줄 테니까.” 레리오스는 팔을 풀고 날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레리오스 앞에 앉아 있던 그 녀석이 레리오스에게 애원조로 부탁했다. “나도 좀 보여주라~” 그러나 이번에도 레리오스의 반응은 냉담했다. “포르노를 우습게 생각하는 너 같은 놈에겐 안 보여줘.” “…….” 녀석이 또다시 할말을 잃었을 때 레리오스는 날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나하고 성인 만화하고 포르노 비디오를 보면서 진정한 포르노가 어떤 것인 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보자구.” 흘…… 포르노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해보자니…… 역시 정신 구조를 연구해 볼만한 녀석이야…… 어쨌든 공짜로 그런 걸 보여주겠다는데 이런 좋은 기회 를 놓쳐선 안되지~ “그러지 뭐. 근데 넌 기숙사 어디 방이야?” “나? 난 M3관 302호. 넌?” “M3관 520호.” “별로 멀리 있지도 않네? 잘됐다. 언제라도 내 방에 놀러와라. 내가 그린 야시한 그림들을 보여줄 테니까. 같이 방 쓰는 녀석들도 보지 못한 거야. 난 나갈 때마다 그 그림을 그린 연습장을 책상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궈버리거 든.” 헐…… 참 엄청난 관리를 하는구나…… 대단한 녀석이야…… 지금 당장이라 도 올라가서 레리오스의 그림 실력을 확인하고 싶은……! 띵 띵 띵 띵ㅡ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내가 지금까지 다녔 던 학교의 종소리와는 달리 음(音)이 꽤 어두웠다. 장례식 때 울리면 딱 어 울릴 것 같은 종소리였다. 흘…… 왠지 저 무거운 분위기의 종소리가 이곳 생활의 갑갑함을 대변하는 것 같구만. 우리 학교는 종소리가 경쾌해서 애들이 활발하게 놀았는데 말이 야. 대학 진학률이 높은 고등학교의 종소리는 아마도 상당히 우울하겠지? 그 래야 아이들의 놀려는 마음을 억누를 수 있을 테니까. 뭐, 아님 말구……. 처처척ㅡ! 쉬는 시간까지만 해도 열심히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일제히 반듯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종소리 때문에 그랬다는 것은 뭔가 어색했다. 그 무엇인가가 아이들을 얽어매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끼이ㅡ 나무로 만든 교실문이 열리고 한 여선생이 들어왔다. 그 여선생을 봤을 때 난 왜 아이들이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제자리에 앉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여선생의 얼굴은 남자들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헐…… 25살 정도인 것 같군. 머리색은 검정색하고 갈색이 서로 섞여있네? 염색한 건가? 어쨌든 화장발이 아주 끝내주는데? 게다가 거의 미니스커트 정 도의 치마를 입고 있구만. 애들 눈이 막 풀어진다~ “내 그림을 보면 저 선생님을 모델로 한 게 제일 많아. 몸매도 죽이고 얼굴 도 끝내주니까 모델로 딱이거든. 그래서 그림도 아주 끝내줘~” 레리오스는 그 여선생을 가리키며 나한테 속삭였다. 그런 레리오스가 걱정 되어 한마디 해주었다. “그러다가 걸리면 명예훼손이야.” “아, 괜찮아. 얼핏 봐서는 샤느 선생님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대충 그렸으니 까. 그냥 다른 만화책에서 보고 그렸다고 하면 뭐라고 말을 못한다고.” 뭐, 그건 그렇겠지. 자세히 그리지 않고 간결하게 그렸을 테니까. 어쨌든 저 여선생의 이름이‘샤느’로군. 근데 지금이 무슨 시간이더라? “자, 오늘은 지난 주에 배운 마나에 대한 것을 복습하도록 하겠어요.” “네~!” 샤느 선생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세 계사 시간까지만 해도 죽은 듯이 있던 녀석들이 저렇게 선생의 말에 동조하 는 것을 보니 조금 우스웠다. 하긴, 나도 그런 경향이 있는 녀석인데 누굴 비웃겠냐…… 근데 샤느 선생 이 마법 이론 선생이었군. 지난 주에 마나를 공부했었나? 난 전혀 배우지 않 아서 모르는데 큰일났구만…… 다행히 복습한다고 하니까 열심히 들어야겠다! ━━━━━━━━━━━━━━━━━━━━━━━━━━━━━━━━━━━ ┌───────────────────────────────────┐ │ ▶ 번 호 : 0/7389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22일 17:38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8. 마나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마나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04 게 시 일 :00/03/22 05:52:21 수 정 일 : 크 기 :8.2K 조회횟수 :71 <제 4 장> 마나(Mana) 샤느 선생은 칠판에다 흰색 분필로 어떤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 Manano 恒動性: 〃 均布性: 〃 安定性: 』 뭐냐? 알파벳하고 한자를 같이 썼네? 음……‘마나노 ?동성’…… 욱…… 움직일 동 앞의 한자는 모르겠다…… 근데‘마나노’는 이곳 언어로‘마나의’ 라는 뜻인데……‘ㅡ의’의 뜻을 가진‘no’는 꼭 일본말의‘の’같단 말이 야…… 하긴, 초국가 언어를 만든 나라가 한국하고 일본이라니까 그건 당연 하겠지 뭐. “마나에는 크게 3가지 성질이 있어요. 물론 학자마다 마나의 성질을 분류하 는 방법이 다르긴 해요. 4가지로 분류하는 학자들이 있긴 한데 3가지로 분류 하는 게 가장 많이 쓰이죠.” 아이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설명하던 샤느 선생이 날 발견하고 놀란 탄성을 발했다. “어머, 은발? 여기에 은발은 교장 선생님 빼고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오늘 왔다는 편입생?” 어억…… 내 머리색을 보고 바로 편입왔다는 것을 알아채다니…… 이놈의 머리색 때문에 쓸데없이 눈에 띈단 말이야……. “예…….” “그렇구나. 이름이 뭐니?” “류드나르……요.” “류드나르? 그래, 류드나르. 그럼 칠판에 적은 글자를 읽어보렴.” 허걱! 나보고 저 어려운 한자를 읽으라구? 제기럴, 하필이면 은발이라서 선 생 눈에 띄고 말다니…… 머리를 염색해버리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럼 내가 읽을 테니까 뜻을 말해봐.” 샤느 선생은 손에 든 작은 회초리 같은 걸로 첫번째 글자를 짚으며 읽었다. “이건‘마나의 항동성’이야. 뜻은?” 으윽…… 저‘항(恒)’자가 무슨 뜻이냐……? 항암제 할 때 그 항인가, 아 니면 항상 할 때 항인가? 전자의 뜻이라면 항동성은‘움직임에 반대하는 성 질’이란 뜻이 되고…… 후자의 뜻이라면‘항상 움직이는 성질’이란 뜻인데 …… 이곳 마나는 쉴새없이 움직여대고 있으니까 항상 움직이는 성질이란 뜻 이 아닐까? “잘 모르겠는데요…….” 마음 속으로는 대답을 생각해 두었지만 확실하지 않아서 그냥 모른다라고 했다. 샤느 선생은 내가 편입생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물은 것이었는지 恒動性이라고 쓴 옆에 그 뜻을 적으며 친절히 설 명해주었다. “마나의 항동성이란 마나의 제 1 성질로써‘마나는 항상 움직인다’라는 거 예요. 여러분들은 마나를 직접 회전시키고 있으니까 그 말뜻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죠?” 헐헐, 그럼 내 생각이 맞았군. 역시 난 천재라니까~ “자, 류드나르. 그럼 그 밑의 것은 무슨 뜻일까?” 샤느 선생은 이번엔 항동성 밑에 있는‘均布性’이란 글자를 가리키며 나에 게 물었다. 한 사람 가지고 계속 물어보려는 샤느 선생이 굉장히 사악하게 느껴졌다. 흘……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자가 없어…… 내 한자 실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다니……!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너무 어려운가? 이건‘마나의 균포성’이라고 읽어. 그럼 뜻은 무엇 일까?” 내가 그걸 알면 천재지…… 설마 저 균자가 세균 할 때 균은 아니겠지…… 포는 장기의 포냐? 아…… 그건‘包’였지…… 으윽…… 전혀 감이 안 잡힌 다……. “글쎄요……” 내가 대답을 못하자 샤느 선생은 웃으며 또다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마나의 균포성은 마나의 제 2 성질로‘마나는 균일하게 분포한다’라는 것 이예요. 그러니까 균포성은 균일분포성(均一分布性)의 준말이죠.” 그런가? 어려워……. “마지막 남은 어떻게 읽을까, 류드나르?” 샤느 선생은 사악하게도 다시 나한테 질문을 했다. 균포성 밑의‘安定性’ 이라고 써진 것은 내가 모두 아는 한자였다. 흠…… 안정성이라…… 얼레? 그렇다면…… 마나는 일정한 양이 모이면 안 정해진다는 뜻? 그건 환타지 세계의 마나 성질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마나의 제 2 성질이라고 했던 마나의 균포성도 환타지 세계의 마나 성 질과 똑같군…… 제 1 성질인 마나의 항동성만 환타지 세계의 마나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모르겠어요.” 난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알고는 있지만 이제 막 편입해 온 녀석이 아는 척했다간 애들에게 열나게 터질 것 같아서였다. 샤느 선생은 부드럽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성질을 설명했다. “마지막 것은‘마나의 안정성’이라고 읽어요. 마나의 안정성은 마나의 제 3 성질인데‘마나는 일정한 양을 회전시키면 안정해진다’라는 뜻이예요. 이 제 하나하나씩 차례로 자세하게 설명해 보겠어요.” 엥? 일정한 양을 회전시키면 안정해진다였군. 어쨌든 모두 별 어려운 내용 은 아니었어. 마나를 회전하고 있다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말이야. “첫째, 항동성의 뜻은 마나는 항상 움직인다죠? 마나는 끊임없이 운동하고 있어요. 결코 정지해 있지 않지요. 그래서 여러분이 마나를 얻을 때에도 마 나를 회전시켜야만 하는 것이죠. 마나를 정지시킨 채 모을 수는 없으니까요.” 흠…… 이 세계의 마나는 항상 빨빨거리며 싸돌아다니는 녀석이구만. 환타 지 세계의 마나는 정지해있는 듯하면서 조금씩 움직이는 놈이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여기는 마나 축적이라고 하지 않고 마나 회전이라고 하는 거겠지? “둘째, 균포성의 뜻은 마나는 균일하게 분포한다라는 거예요. 말 그대로 마 나는 공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정하게 분포한다는 것이죠.” 얼레? 공기가 있는 곳? 그럼 공기가 없으면 마나가 분포하지 않는다는 뜻? 갑자기 환타지 세계의 마나 성질과 내용이 달라지는 듯한……! “셋째, 안정성이란 마나는 일정한 양을 회전시키면 안정해진다라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마나의 제 2 성질인 균포성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정성 이 더 강한 경향을 띠어요. 보통 존재하는 마나는 균일하게 분포하여 움직이 고 있지만 일정한 양을 모아 회전시키게 되면 마나를 흩으려놓아도 마치 형 상 기억 합금처럼 그 상태를 기억해서 다시 모여 회전하게 되죠. 이 성질 때 문에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 는 거예요.” 쉴새없이 설명해서 정신없긴 하지만 어쨌든 조금 알아듣겠군. 샤느 선생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걸 어렵게 설명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밖에도‘마나의 이중성(二重城)’을 드는 학자도 있어요. 이건 조금 어 려운 내용인데…… 그냥 그런 게 있다고만 알아두세요.” 얼레? 마나의 이중성? 빛의 이중성은 들어봤어도 그 말은 처음 듣는다? 기 왕이면 가르쳐주지…… 그래야 이 세계의 마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 거 아니냐구……. “여러분, 마나 파장 기억하죠?” 샤느 선생의 그 말이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어제 내가 마나 회전을 하 면서 교장 할배가 잠깐 언급했었던 마나 파장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샤느 선 생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마나 파장을 설명했다. “마나 파장은 마나가 불완전한 회전을 할 때 발생하는 것이예요. 여러분들 은 아직 화학을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나의 회전은 보어의 양자론 과 비슷해요.” 얼레? 갑자기 왠 보어의 양자론? 현대의 양자론은 전자구름모형인가 오비탈 인가 뭔가하는 걸로 설명하던데? 어쨌든 이 세계에 우리 세계와 같은 보어라 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놀라운걸? “보어는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일정한 에너지 상태를 가진 궤도를 돌 때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마나 역시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처럼 우리 몸을 중심으로 회전하면서 마나 파장을 방출하게 되죠. 마나 파장이 방출되는 경우는 크게 2가지예요. 마나 회전을 하고 있을 때와 마나를 소모하고 마나가 다시 모여 회전하게 될 때죠. 써클 수만큼 모여 회전하는 마나는 마나 파장을 방출하지 않구요.” 으윽…… 대충 알아듣겠는데‘써클수’는 또 뭐야? 무지하게 정신없구만… …. “여러분들은 마나를 느낄 때 선생님들이 도와주셨죠?” “예ㅡ!” 샤느 선생이 질문을 하자마자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샤느 선생은 고 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요. 선생님들이 방출하는 마나 파장을 느껴야 여러분 스스로 마나를 느끼는 것이 수월하니까요. 물론 선생님들 도움 없이도 바로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경우죠.” 얼레? 난 마나 파장인가 뭔가하는 걸 느껴본 적없이 그냥 마나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럼 난 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천재로구나! “전 지금 여러분들이 방출하는 마나 파장을 느낄 수 있어요. 여러분들은 제 마나 파장을 느낄 수 있나요?” “……” 샤느 선생의 질문에 아이들은 마나 파장을 느끼려는지 일제히 눈을 감았다. 그래서 나도 눈을 감고 샤느 선생의 마나 파장이란 것을 느껴보기로 했다. 흠…… 얼레? 뭔가 느껴지네? 뭐랄까…… 파도가 조금씩 내 몸을 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게 마나 파장인가 보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마나 파 장이 많은 거야? 애들의 마나 파장인가? 정신없어~ “여러분들은 지금 대부분 1써클 아니면 2써클의 마나를 회전하고 있을 거예 요. 그리고 2써클이나 3써클에 도달하기 위해 또다시 마나를 회전하고 있을 거구요. 그런 사람에게 마나 파장이 방출되요. 전 5써클을 이루고 6써클에 도전 중이기 때문에 제 마나 파장은 여러분들이 느끼기에 아주 강렬할 거예 요.” 흠…… 그런가? 애들의 마나 파장 때문에 잘 느낄 수가…… 엇?! 이 강렬한 마나 파장…… 파도가 연거푸 날 치는 것 같은 느낌…… 이것이 샤느 선생의 마나 파장? 이것이 5써클과 6써클 사이에 발생하는 마나 파장의 느낌? ━━━━━━━━━━━━━━━━━━━━━━━━━━━━━━━━━━━ ED 번 호 : 7280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3일 23:58 등록자 : THEBUR 조 회 : 79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9. 마나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마나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12 게 시 일 :00/03/23 06:02:04 수 정 일 : 크 기 :7.2K 조회횟수 :29 “모두 느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어요. 지난 시간에 배웠던 마나 결합 시간을 복습하죠. 여러분, 마나 결합 시간의 공식을 알고 있나요?” 허걱? 마나 결합 시간의 공식? 갑자기 왠 공식이야? “예~!‘N²+1’이요!” 아이들은 일제히 그렇게 대답했다. 샤느 선생은 만족한 웃음을 띄우고는 내 쪽을 쳐다보았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자 샤느 선생은 오늘 편입한 날 위해 그 공식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나의 결합 시간이란 것은 마법으로 마나를 모두 소모하고 난 뒤에, 마나 가 다시 모여 회전하게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방금 전에 여러분들이 대답한 공식은 실험에 의해 도출된 것이죠. 1써클의 마법사가 직 접 모든 마나를 소모하고 마나가 다시 모여 회전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 했어요. 그리고 2써클의 마법사가 같은 방법으로 마나 결합 시간을 측정하고 , 이런 식으로 6써클까지의 마법사가 실험에 참여한 결과 마나 결합 시간에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지요.” 헐…… 직접 실험하다니…… 꽤 힘들었겠구만. 만약에 규칙성이 없었다면 괜한 헛고생만 한 것이었겠지. 운도 좋아~ “1써클의 마나 결합 시간은 2시간, 2써클은 5시간, 3써클은 10시간, 4써클 은 17시간, 5써클은 26시간, 6써클은 37시간이 걸렸어요. 여러분들은 아직 수열을 배우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건 계차 수열의 관계에 있어요.” 얼레? 계차 수열? 잠깐…… 저것들의 계차가 3, 5, 7, 9, 11이네? 홀수로 나가니까 그것을 수열로 표현하면 2n+1이고…… 그것을 계차 수열 공식에 집 어넣고 풀어보면…… 헐~ n²+1이 나오는구만. 따닥따닥ㅡ 샤느 선생은 칠판에다가 합의 기호인 ∑까지 써가면서 그 공식이 나온 과정 을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아직 수열을 배우지 않았는지 그저 멍청하게 칠판 만 쳐다보고 있었다. “자, 이렇게 해서 N²+1이란 공식이 나오는 거예요. 여기서 N은 1써클, 2써 클할 때의 써클수를 가리켜요. 이 공식으로 마나 결합 시간을 외워도 되고, 아니면 그냥 1써클 때 2시간, 2써클 때 5시간으로 외워도 되구요. 각자 편한 대로 하면 되요. 알았죠?” “예ㅡ!” 아이들은 대답 소리만 시원하게 했다. 샤느 선생은 아이들의 대답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교실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이들에게 말 했다. “남은 시간 동안 지금까지 배웠던 것을 복습해보세요. 지금까지 제가 설명 하지 않은 것 중에서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제가 돌아다닐 때 물어보도록 해 요.” “예ㅡ!” 흘…… 녀석들, 대답은 잘 하는구만. 마침 물어볼 게 있었는데 잘 됐어. 샤 느 선생이 오면 물어봐야지~ “저, 선생님.” 샤느 선생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난 샤느 선생을 불렀다. 샤느 선생은 미소 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니?” 흘……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구만~ “아까 마나의 이중성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뭐예요?” “마나의 이중성? 그건 네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내용이라 설명해줘도 잘 모 를텐데?” 샤느 선생은 내가 걱정되는 듯 그렇게 말했다. 오늘 편입해온 녀석이 같은 반 친구들도 모르는 것을 알려고 물어보니 우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를 하든 하지 못하든 우선은 그 마나의 이중성이란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 막 샤느 선생에게‘괜찮아요. 설명해 주세요.’라고 말하려다가 날 죽일 듯 이 노려보는 아이들의 무수한 눈초리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계속 샤느 선생 을 붙잡고 있자 아이들이 질투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내 옆에 있는 레리오스 는 내 덕분에 샤느 선생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어 좋아 죽으려고 했지만. 헐헐, 예전같으면 아이들의 저런 눈초리를 받고 쫄아버렸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하고 틀려~ 한 번 하는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 이 말씀이야! “가르쳐 주세요.” 난 샤느 선생에게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러자 샤느 선생은 잠시 날 힐끗 쳐 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면 더이상 설명은 안 해준다~” 뭐냐…… 완전 애처럼 노는구만……. “예.” 싸늘……! 아이들의 눈초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서 날 방해하 는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샤느 선생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했다. 샤느 선생은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마나의 이중성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나는 알 수 없는 존재야. 몇 개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며 존재하는 것이거 든.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하는 거야.” 흠……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 “어떤 식으로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하는데요?” “……!” 내 질문에 샤느 선생은 조금 흠칫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곧 원래 의 표정을 되찾고는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마나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을 알 수 없어. 마법을 통해 마나 의 에너지를 소모해도 마나는 다시 본래의 에너지를 어디에선가 얻지. 바로 그 점 때문에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시한다고 말해.” “우리 몸도 끊임없이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그것도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되는……!” 허걱! 질문의 예를 잘못 들었다! “아니,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 에너지는 다른 것을 소모해서 얻어내는 것이 니까 에너지 보존 법칙이 성립하는 거고…… 그렇다면 마나는 다른 어떤 것 을 소모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얻어낸단 말인가요?” 난 재빨리 질문을 얼버무렸다. 그 질문을 하는 도중에 내 생각이 잘못됐음 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샤느 선생은 내 마지막 질문을 듣고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서 마나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무 시하는 거야…….” 흠…… 그랬군. 그 어떤 것을 소모하지 않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 명히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거지. 근데 에너지 보존 법칙을 위배하는 거랑 마나의 이중성이랑 무슨 상관이냐? “근데 마나의 이중성이 그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요?” “약, 약간 관계가 있지…… 마나의 이중성이란 마나가 두 가지의 모순된 성 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거든…….” 헐…… 근데 설명하면서 왜 떨지? 설마 샤느 선생…… 마나의 이중성을 잘 모르는 거 아니야? 왠지 불안해지는데? “평상시의 마나는 자연 현상에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아. 에너지를 가지 고 있음에도 열을 내는 것도 아니고, 어떤 물체의 운동을 방해하지도 않거든. 분명히 존재해 있지만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이랄까? 하지만 마법을 사용할 때에는 그 성질이 사라져. 그 때의 마나는 질량과 부피를 가지게 되고, 그래 서 물체의 운동을 방해할 수도, 그리고 열 에너지를 낼 수도 있지.” 말을 이어감에 따라 샤느 선생의 표정은 안정을 되찾았다. 설명을 하면 할 수록 가르쳐 줄 것이 마구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것에 대해 어떤 학자가 마법을 쓸 때의 마나는 순간적으로 모여 질량과 부피를 가진다고 주장했어. 물질을 에너지 덩어리로 봤던 아인슈타인의 생각 과 비슷한 거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 E=mc²에서처럼 에너지 덩어리인 마나가 모여 물질을 이루고, 그때 질량 결손이 일어나면 막대한 에너지가 방 출되어 우리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야.” 흘…… 아인슈타인까지 들먹이다니…… 마나 하나 설명하려고 별의별 걸 다 써먹는구만. 내가 그걸 배우지 않았으면 샤느 선생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뻔 했어~ “그럼 마나도 E=mc²의 공식을 따르나요? 마나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어요?” “……!” 내 물음에 샤느 선생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렇게 놀라는 표정을 짓던 샤느 선생이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내 얼굴에 바짝 갖다대었다. 순간적 으로 난 쫄았고, 그것을 본 몇몇의 아이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너 정말 아인슈타인의 그 공식을 알고 있는 거야? 그럼 m은 뭐고, c는 뭐 지?” 샤느 선생은 흥분하여 나에게 물었다. 잘못하면 얼굴이 맞닿을 것 같아서 난 슬금슬금 뒤로 얼굴을 빼면서 대답했다. “에…… m은 결손된 질량이고…… c는 광속도(光速度) 아닌가요?” “……!” 샤느 선생의 입이 저절로 벌려졌다.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도 놀랐다. 샤느 선생의 입김이 내 얼굴에 닿았으니까. 으윽…… 이 야리꾸리한 상황은 뭐냐…… 왜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가까이 갖다댄 거냐고…… 이건 선생이 학생을 유혹하려는……!!! ━━━━━━━━━━━━━━━━━━━━━━━━━━━━━━━━━━━ 일꾼 : 사이케델리아 동호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상규님의 다른 글들도 올라갑니다. 오늘 단편 두개가 올라갔고 내일부터는 영마스터 여행기가 올라갑니다. 한번 가보세요 go psyc ^^ 번 호 : 7281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3일 23:59 등록자 : THEBUR 조 회 : 85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0. 마나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마나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13 게 시 일 :00/03/23 06:02:25 수 정 일 : 크 기 :6.7K 조회횟수 :29 “이름이 류드나르라고 했었지?” 샤느 선생은 여전히 놀란 표정을 하며 나에게 물었다. 난 샤느 선생의 얼굴 과 주먹 세 개 들어갈 정도의 거리를 확보한 후 대답했다. “예…….” “어디서 그걸 배웠니?” “그냥 책에서……”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면 안 믿어줄 테니까 책에서 배웠다고 하는 수밖에…… 거짓말 하는 것도 힘들어~ “정말 책에서 배웠니?” 샤느 선생은 재차 물었다. 거짓말을 해서 약간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 없 었다. “예…….” “그랬구나…… 그밖에 또 물어볼 것은 없니?” 흘…… 얼굴이나 치우고 물어보시죠……. “에…… 마나는 측정할 수 있는 거예요?” 내 물음에 샤느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만약 마나를 측정할 수 있었다면 마나에 대한 것이 많이 밝혀졌겠지.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마나를 측정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머리로 생각해 야해. 마나를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인간의 감각 뿐이거든.” 흠…… 인간의 감각이라…… 어째서 인간의 감각은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예를 들어 신(神)이나 귀신의 존재, 또는 기(氣) 같은 것들을 말이야…… 신기해~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던 녀석들 중에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렇게 소리쳤다. 초록색의 짧은 머리칼을 지닌 안경 쓴 녀석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꽤 느끼한 얼굴이었다. 샤느 선생은 고개를 돌려 그 녀석을 바라보 며 물었다. “그래, 질문이 뭐지, 빌리컨트?” 빌리컨트라 불린 느끼한 그 녀석은 안경을 손가락으로 쓰윽 올리며 샤느 선 생에게 질문을 했다. “뇌파설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뇌파설? 좋아. 류드나르는 뇌파설을 아니?” 빌리컨트에게 그렇게 말하던 샤느 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고 는 그렇게 물었다. 그 순간 빌리컨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난 샤느 선생 과 빌리컨트의 시선을 동시에 받으며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에게 조금 듣긴 했는데 자세히는 몰라요.” “교장 선생님? 교장 선생님에게 마법에 대해 배운 거니?” “예…….” 내 대답에 샤느 선생은 활짝 웃었다. “그래서 류드가 그렇게 지식이 해박한 거였구나!” “……!” 갑자기 날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흔들렸다. 아주 놀라는 눈초리. 교 장 할배에게 마법을 배웠다고 해서 그런 것 같았다. “류, 류드……!” 빌리컨트는 그 말을 뇌까리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한편 샤느 선생은 조 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어머, 미안. 함부로 이름 불러서. 기분 상했니?” 얼레? 뭐가 함부로 이름을 불렀다는 거지? 이상한 아줌씨네……? “아뇨.” “그래? 다행이다!” 샤느 선생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안도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난 그저 멀뚱멀뚱 샤느 선생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뇌파설은 오죠룬 마법학교의 현(現) 교장님인 게이로 선생님이 만드신 마 나 발현 가설이예요. 사람의 뇌에서 발산되는 뇌파로 인해 마나가 우리의 의 지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죠.” 샤느 선생은 무엇인가를 얼버무리려는 듯 재빨리 뇌파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 뇌파설에 대해 질문했던 빌리컨트 녀석은 나만 무 시무시한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흘…… 어째 수업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하다……? 그나저나 뇌파 설을 창시한 사람이 교장 할배라고? 그거 놀라운데? 그래서 내가 그것에 대 해 물어봤을 때 교장이 입 찢어져라 웃었던 거로군! “뇌파설은 아주 획기적인 이론이예요. 비록 과학적인 검증은 할 수 없지만 그 자체적인 이론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깝죠. 그 이론은 주문없이 어떻게 마 법 사용이 가능한 지를 설명하는데 아주 유용하니까요.” 흠…… 아무래도 그렇겠지. 강한 의지에 의해 발산되는 뇌파가 마나를 움직 여 어떤 마법을 구사하는 것이라면 굳이 마법 주문 같은 것을 쓰지 않고도 충분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가 되니까. 그런 괜찮은 이론을 만들어 내다니…… 교장 할배를 다시 봐야겠어~ “자, 또 마나에 대해 물어볼 것 없나요?” 샤느 선생은 아이들을 쭉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묵묵부답이었 다. 모두들 설명은 안 듣고 나만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 이 전혀 질문을 하지 않자 샤느 선생은 내 얼굴 앞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물어볼 거 없니, 류드?” “으헉!!!” 갑자기 몇몇 아이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특히 빌리컨트의 얼굴은 완전 히 대변 씹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의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샤느 선 생은 날 똑바로 쳐다보며 나에게 물었다. “앞으로 류드라 불러도 되지?” 얼레? 그게 뭐 내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일이유? 뭐, 상대 방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 물어보는 거겠 지만. 그래도 교장 할배는 맘대로 류드라고 부르는데 말이야. 하긴, 교장 할 배는 말 그대로 나이 많은 할배니까 그보다 훨씬 어린 내 이름을 맘대로 불 러도 되는 거겠지. 그게 어른의 권위라고나 할까? “그렇게 하세요…….” “정말? 고마워~” 샤느 선생은 필요 이상으로 굉장히 좋아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샤느 선생이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나를 향한 아이들의 살기 는 점점 더 거세어져 갔던 것이다. 흘……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간다? 샤느 선생은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 야? 아이들의 살기 어린 눈초리를 못 느끼는 건가? 이거 어디 무서워서 공부 하겠나……. “뭐 물어볼 거 없어?” 샤느 선생은 또다시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더이상 물어볼 질문 거 리가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요.” “그래……?” 내가 더이상 묻지 않자 샤느 선생은 조금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때 날 향해 가장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던 빌리컨트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채로 샤느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마법 실습 시간에 화염계(火炎系) 마법을 배우는데 그것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빌리컨트는 끓어넘치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말하는 것이었는지 목소리가 상 당히 떨려나왔다. 그 말을 들은 샤느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엔 빌리 컨트를 쳐다보며 물었다. “빌리컨트는 단열압축(斷熱壓縮)을 알고 있니?” “……?” 갑작스런 샤느 선생의 질문에 빌리컨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보 는 말인 듯했다. 빌리컨트가 아무 대답도 못하자 샤느 선생은 다시 내 얼굴 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류드는 단열압축을 알아?” 으윽…… 왜 질문할 때마다 얼굴을 들이대냐고…… 계속 그러면 확 입술을 훔쳐버린다? “조금……” “정말? 그럼 설명해봐!” 허걱? 알고 있다고 하면 됐지 설명까지 하라고라? 정말 사악하다! “에…… 공기가 압축…… 아니, 열이 출입할 수 없는 아주 짧은 시간에 공 기가 압축되는 거 아닌가요?” “맞았어. 그럼 단열압축이 되면 온도는 어떻게 될까?” “올라가죠…….” 난 주저없이 대답했다. 물리를 배우면서 단열팽창과 단열압축을 헷갈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어머, 굉장해! 그럼 단열팽창도 알겠네?” “예…….” “설명해봐!” 크윽…… 지금 날 테스트 하는 거유? “단열팽창은 단열압축과 반대되는 현상인데…… 열이 출입할 수 없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공기가 팽창하는 것이요…… 공기가 팽창하니까 온도는 내려 가구요…….” 내가 설명을 끝냈을 때 샤느 선생은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더니 흥분하여 소리쳤다. “정말 류드는 모르는 게 없구나!” 흘…… 모르는 게 없긴 왜 없어? 모르는 게 없으면 내가 지금 이 학교에 다 닐 것 같냐? 그나저나 여자가 함부로 남자의 손을 덥썩 잡다니…… 기분 좋 구만…… 흘흘. ━━━━━━━━━━━━━━━━━━━━━━━━━━━━━━━━━━━ 번 호 : 7304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4일 23:30 등록자 : THEBUR 조 회 : 68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1. 마나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마나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23 게 시 일 :00/03/24 06:07:14 수 정 일 : 크 기 :6.9K 조회횟수 :24 띵동 띵동ㅡ 그때 종이 울렸다. 수업 시간이 끝난 것이 아쉬운 듯 샤느 선생은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이들을 둘러보며 큰소 리로 말했다. “여러분 오늘 마법 실습 시간이 있다고 했죠?” “예ㅡ!” 아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고, 샤느 선생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몇 교시에 마법 실습 시간이 있죠?” “4교시요ㅡ!” 아이들의 대답을 들은 샤느 선생은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전히 내 손을 잡은 채로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럼 오늘 마법 실습 시간에 제가 참관하겠어요. 빌리컨트가 물었던 화염 계 마법을 그때 가르쳐 주어야 하니까요. 괜찮겠죠?” “예ㅡ!” 아이들은 더욱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들의 표정엔 일종의 희열이 어려있었 다. 아름다운 샤느 선생이 마법 실습 시간에 참관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흘…… 참관 하는 건 좋은데 말이야…… 왠만하면 내 손은 놓고 말하면 좀 좋아? 왜 내 손을 잡고 있는 거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샤느 선생의 전직 이 의심스러워……. “자, 그럼 나중에 보자.” 샤느 선생은 나에게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는 교탁에 놓은 마법 이론 교과서를 들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샤느 선생이 교실을 떠나자 레리오스가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샤느 선생이 너한테 관심있는가 보다!” “글쎄……” 흘…… 관심이 있든 없든 그게 나하고 뭔 상관이냐…… 오히려 찍힌 셈이니 까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지 않으면 다른 애들보다 특별히 더 많이 맞겠지… …. 쾅ㅡ! “류드나르!!!” 지금까지 자기 자리에 서 있던 빌리컨트가 어느새 내 옆에까지 다가와 책상 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극도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너! 도대체 샤느 선생님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빌리컨트는 책상을 내리친 손을 불끈 쥐며 또다시 소리쳤다. 빌리컨트가 무 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난 그냥 빌리컨트를 멀 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자 빌리컨트는 저혼자 길길이 날뛰었다. “샤느 선생님은 항상 날 빌리컨트라고 부른다고! 근데 어째서 처음 본 너한 테 다정히 류드라고 부르는 거야?!” 얼레? 호칭 때문에 지금 화난 거냐? 별 이상한 녀석일세? 뭐가 다정히 류드 라고 불렀다는 거야? 난 전혀 다정한 감을 못 느꼈는데! “말해봐, 류드나르!!!” 빌리컨트는 다시 한 번 내 책상을 치며 그렇게 소리쳤다. 뭔가 말을 하지 않으면 빌리컨트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은 분위기라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 었다. “뭘 말하라는 거야?” “너와 샤느 선생님과의 관계 말이야!!!” 얼레? 나하고 샤느 선생하고의 관계? 관계는 무슨 관계야? 그냥 선생과 제 자 사이지. 설마 이 녀석…… 뭔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난 오늘 샤느 선생님을 처음 봤어.” “웃기지 마!!!” 내 말을 듣자마자 빌리컨트가 또다시 소리쳤다. 그 소리에 귀가 먹어버릴 것 같아서 기분이 급속도로 곤두박질쳤다. 빌리컨트에게 욕이나 해주고 싶었 지만 그랬다간 싸움날 것 같아서 그냥 참기로 했다. “…….” “처음 본 사람한테 샤느 선생이 어떻게 다정하게 애칭을 부를 수 있냐고!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엉?!” 빌어먹을 녀석…… 왜 나한테 시비야? 샤느 선생이 내 애칭을 부르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확실히 이 녀석, 샤느 선생에게 이상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구만. 꿈깨라, 이 녀석아! “…….” 난 빌리컨트의 말에 대꾸하기도 싫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빌리컨트는 더욱 길길이 날뛰며 내 기분을 박박 긁어놓았다. “왜 말을 안해? 너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이제 갓 중등부 1학년에 들어온 녀석이? 그것도 편입으로!” “…….” “이 자식!!!”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빌리컨트가 갑자기 큰 동작으로 손을 치켜 올렸다. 난 그 광경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빌리컨트의 그 큰 동작은 마치 누가 자 신을 말려주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야, 네가 참어!” 빌리컨트의 손이 높게 치켜올려지자 내 옆에 앉아있던 레리오스가 총알같이 튀어나오며 빌리컨트를 만류했다. 그러나 빌리컨트는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와! 오늘 저 녀석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고 말겠어!” “오늘 처음 왔으니까 잘 모르고 그런 거야. 네가 이해해!” 레리오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빌리컨트의 행동을 막자 빌리컨트는 씩씩 거리 더니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날 내려다보고는 마치 레리오스 때문에 참는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다음부턴 조심해!” 뚜벅뚜벅ㅡ 싸늘한 한마디를 내뱉은 빌리컨트는 일부러 구두 소리를 크게 내며 교실 밖 으로 나갔다. 엉성했던 싸움이 일단락되자 아이들은 엎드려 잠을 자거나 놀 기 시작했다. 빌리컨트를 말렸던 레리오스는 다시 내 옆에 앉으며 내 귀에다 대고 속닥였다. “빌리컨트 자식, 정말 역겹다니까. 자존심만 드럽게 쎘지, 싸울 배짱도 없 는 녀석이야. 아까 널 치려고 한 것도 개폼 잡아본거고. 아까 봤지? 손을 높 이 치켜올려서 빨리 누군가 말려주길 바라는 모습말이야. 물론 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빌리컨트 녀석은 자존심 때문에 주먹을 날렸겠지만.” 헐…… 역시 내 생각대로 빌리컨트는 아주 역겨운 녀석이었군. 분명히 빌리 컨트 녀석의 집안은 상당히 좋을 거야. 그래서 거의 왕자 수준의 대우를 받 으며 자라왔겠고. 어쨌거나 싸움을 말려준 레리오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구 만~ “고마워.” “고맙긴. 내가 주로 하는 일이 빌리컨트 자존심 세워주는 일이거덩. 그래야 녀석의 도움을 많이 받지~” 얼레? 빌리컨트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어떤 도움?” “어, 끼니 해결해주는 거. 우리집은 가난해서 하루 세 끼 모두 식당에서 밥 사먹을 수는 없거덩.” 레리오스는 얍삽하게 웃었다. 빌리컨트에게 빌붙어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양 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레리오스는 다음 시간 준비를 하며 흥얼 거리듯 말했다. “오늘도 자존심 세워줬으니 점심은 해결이다~!” 흘…… 부럽군. 난 오늘 점심도 매점에서 사먹을 건데. 라이 밥값까지 충당 하려면 내가 덜 먹는 수밖에…… 라이 녀석을 굶겼다간 내 목숨이 언제 날아 갈지 모르니까~ “야, 류드나르!” 점심을 해결했다는 만족감으로 킬킬 웃던 레리오스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불 렀다. 내가 쳐다보자 레리오스는 꽤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진짜 대단하더라. 빌리컨트도 모르는 걸 네가 알고 있다니 말이야. 그 것 때문에 빌리컨트 자존심이 뭉개졌을걸?” 에너지 보존 법칙이나 단열팽창 같은 걸 말하는 건가? 뭐, 그건 이미 중학 교하고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 알고 있는 것 뿐이지. 하긴, 얘들이 그 런 걸 알 턱이 없겠군……. “너 여기 들어오기 전에 보통 고등학교에 다녔었냐?” 레리오스는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고, 난 그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까 잠 시 망설였다. 확실히 난 고등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이 세계의 고등학교는 아 니라 뭐라고 말하기가 난처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다고 하면 이곳에서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알고 있는 날 레리오스가 천재로 볼 것이 분 명했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어쩐지…… 근데 어떤 학교냐?” 으윽…… 계속 가다간 궁지에 몰려서 내 거짓말이 들통날 지도 모르겠군… … 이쯤에서 내가 말을 끝맺어야겠다! “촌구석에 있는 대라 말해줘도 몰라.” “그러냐?” 내 말을 듣고 레리오스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때를 같이하여 수업 시작 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퍼졌다. 그 종소리는 마치 날 지옥에서 구해주 는 것 같았다. “끄아…… 이제 지겨운 물리구나……!” 레리오스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죽는 소리를 했다. 내 세계나 이 세계나 아 이들이 물리를 싫어하는 것은 똑같아 보였다. 분명히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 이건만 생활 환경과 그 모습이 내가 살던 세계와 너무나 흡사해서 묘한 느낌 이 들었다. 마치 갓 입학한 고등학생의 기분이랄까……? ━━━━━━━━━━━━━━━━━━━━━━━━━━━━━━━━━━━ 일꾼: 이상규님의 다른 작품을 보시려면..... go psyc 사케 동호회로 오세요~~ (홍보다 홍보 ^^) 번 호 : 7305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4일 23:31 등록자 : THEBUR 조 회 : 70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2. 마법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2.마법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24 게 시 일 :00/03/24 06:07:51 수 정 일 : 크 기 :8.4K 조회횟수 :26 <제 5 장> 마법 띵동 띵동ㅡ 3교시 물리 시간이 마침내 끝났다. 난 이미 배운 내용이라 설명듣는데 그다 지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단지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듣다보면 자꾸만 졸음이 몰려와서 곤욕을 치렀을 뿐이었다. “난 빌리컨트에게 밥 사달라고 할건데, 넌 어떡할래?” 방금 전까지 물리 선생 눈에 안 들키게 야시한 그림만 그리던 레리오스가 종이 울리자마자 나한테 물었다. 같이 따라가서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으면 좋겠지만 내가 레리오스를 따라간다면 빌리컨트가 레리오스에게 점심을 사주 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해서 그냥 나 혼자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레리오스는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곧장 빌리컨트에 게 다가가 뭐라뭐라 얘기했고 빌리컨트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지만 레리오스 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레리오스의 밥을 사주기로 한 듯이 보였다. 흘…… 레리오스는 붙임성이 좋구만. 빌리컨트에게 붙어서 점심도 공짜로 얻어먹고…… 난 매점이나 가서 빵이나 먹어야지…… 라이 것도 사고…… 점 심 시간은 1시간이나 되니까 시간은 넉넉하다~ 터벅터벅ㅡ 난 느긋하게 매점까지 걸어갔다. 매점은 식당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로 붐벼 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질서를 잘 지켰기 때문에 난 줄 뒤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대략 몇 분 후에 빵과 우유를 살 수 있었다. 무 난히 점심 거리를 사고 나서 곧장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왕왕!” 내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라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짖어댔다. 빨리 빵을 주지 않으면 이빨로 내 살을 뜯어먹을 것 같아서 라이에게 빵을 던져주었다. 빵을 받은 라이는 능숙하게 앞발과 입을 사용해서 빵 봉지를 뜯 었고 맛있게 빵을 먹기 시작했다. 하여간 라이는 대단한 강아지라니까…… 강아지가 빵 봉지를 뜯어서 빵을 먹다니 말이야. 누가 길렀는지는 몰라도 참 대단해~ 쩝쩝……. 나와 라이는 별 대화(?)없이 빵을 먹었다. 빵으로 점심을 대신한 거라 먹는 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빵을 다 먹고 나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라이 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 당기는 것을 느꼈고 난 라이의 의도를 몰라 라이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라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어디론가 날 데려가려고 하는 듯했다. “알았어. 갈테니까 바지 그만 잡아당겨.” 난 계속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라이를 떼어내고 나서 방 밖으로 나갔 다. 그러자 라이가 쫄래쫄래 따라왔다. 밖으로 나온 라이는 곧장 계단을 내 려가기 시작했고 난 문을 잠그고 나서 앞서 가는 라이의 뒤를 조용히 밟았다 (?). 웅성웅성ㅡ 이미 식사를 끝내고 오는 아이들과 식당으로 가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 밖의 아이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꽤 아늑하게 들려왔다. 그 웅성거림도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흠…… 역시 같은 사람이 사는 데라 웅성거리는 소리도 똑같군. 새로운 사 실이야~ 빨빨빨ㅡ 라이는 짧은 다리를 쉴새없이 움직이며 본관 뒤쪽을 돌아 M6관 기숙사 쪽으 로 향했다. 라이가 무엇 때문에 그리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난 무작정 라 이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 아무 생각없이 라이를 따라가던 내 눈에 소형 공원의 모습이 들어왔다. 학 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만든 공원 같았는데 크기는 왠만한 학교의 운동장만했 고, 여기저기에 꽃과 나무를 심어놓고 기르고 있었다. 게다가 공원 한쪽에 학교 교실만한 소형 연못까지 있어서 분위기가 아주 끝내줬다. 학교에 이런 공원까지 있다니 정말 대단한 학교야…… 여기가 라이의 산책 코스인가? 그나저나 아이들이 많이 붐비는구만. 헉…… 대부분 쌍쌍이잖아? 여기 있기가 쪽팔리는……! 그러나 라이는 특히 커플이 많은 소형 연못쪽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리로 가야했다. 공원의 커플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주 고 받거나 함께 공원을 거닐고 있었다. 왠지 나와 라이가 한 커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빨빨빨ㅡ 라이는 열심히 빨빨거리며 소형 연못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다른 곳으로 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근처 벤치에 앉아 라이의 행동을 지켜보 았다. 열심히 연못 주위를 맴돌던 라이는 갑자기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ㅡ! 연못 속에 뛰어든 라이는 열심히 개헤엄을 쳤다. 라이가 갑자기 연못 속에 뛰어드는 바람에 연못 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던 물고기들이 놀라서 어디론 가 숨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라이를 보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 며 바라보기 시작했다. 파다다닥ㅡ! 연못을 헤엄쳐 육지(?)까지 올라온 라이는 몸을 한껏 부르르 털더니 다시 연못 주위를 맴돌았다. 그렇게 몇 분을 맴돌다가 다시 연못에 뛰어들어 수영 을 했다. 으윽…… 지금 라이 녀석 뭐하는 거야? 설마…… 지금 운동 중인가? 연못 주위를 맴도는 것은 조깅이고 연못에서 헤엄치는 것이 수영? 이것이 듣도보 도 못한 강아지의 다이어트법?!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헤엄 잘 친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가 강아지답지 않게 아주 능숙한 개헤엄으로 연못 끝까지 헤엄을 빨리 치기 때문인 듯했다. “…….” 난 계속 벤치에 앉아 라이의 다이어트(?)가 끝나길 기다렸다. 라이는 거의 20여 분 동안을 뛰고 헤엄치다가 다시 나에게로 왔다. 몸을 털고 왔기 때문 에 털이 쭈빗쭈빗 서 있어서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왕왕!” 라이는 마치 나보고 자기 털 좀 제대로 다듬어 달라는 듯이 꼬리를 흔들었 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할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라이에게 한마디만 했다. “네가 알아서 해.” “우웅…….”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라이가 갑자기 기죽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난 라이 가 나를 물지 않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고 재빨리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라이의 마음이 변해서 날 확 물어버릴까봐서 였다. “……” 내가 벤치에서 일어나 걷자 라이는 천천히 내 뒤를 따라왔다. 의기소침해 있는 라이의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계속 귀여워만 해주면 버릇 없어질 것 같 아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철컥ㅡ 내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라이는 내 반대편 침대 위로 올라가 몸을 웅크렸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털에 묻어있던 물기가 거의 다 말라서 라이의 털은 거의 원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째깍째깍ㅡ 다음 수업 시간이 될 때까지 난 할일없이 침대에 누워 뒹굴었다. 그리고 4 교시 수업 시작 10분 전에 유유히 교실로 향했다. 물론 라이는 방에 가둬놓 은(?) 상태였다. 교실로 가는 동안 많은 아이들이 교실로 향하는 모습을 자 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D-7반 교실에 들어갔을 때, 난 내 눈을 의심 해야 했다. “……!” 어째서 교실에 아무도 없는 거냐? 곧 있으면 수업이 시작하는데 이 녀석들 은 다 어디간거야? 혹시…… 이동 수업? 하지만 칠판에 어디로 이동하라고 써져 있지가 않아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잖아!!! 띵 띵 띵 띵ㅡ 내가 멍청히 교실에 서 있는 동안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동안 그 누구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교실문을 열어놓은 채 로 이동 수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으어어……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열받아 죽겠구만! 편입생에게 아 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사라져버리다니! 이 학교를 폭파시켜버려? ……. 아무도 없는 교실에 딸랑 혼자 서 있는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옆 교실에서 아이들이 막 떠드는 소리가 나하고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것처럼 들려왔다. 한마디로 지금의 기분을 정의하자면‘기분 더럽다’였다. 흘…… 이제 어쩌지? 이미 4교시 수업은 시작했을 텐데…… 아, 여기 계속 있으면 누군가 날 부르러 오지 않을까? 맞아, 분명히 아이들이 내가 없다는 것을 선생에게 말할 것이고, 선생은 아이들 중 한 명에게 날 데려오라고 시 키겠지? 흠…… 그 아이는 레리오스일 확률이 제일 클거야. 지금 나하고 친 한 녀석은 레리오스 뿐이니까. 좋아, 누군가 날 데리러 올 때까지 교실에서 놀고 있어야겠다! 30분 동안만 기다리다가 만약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냥 기 숙사로 가면 되고. 우헐헐, 결정했어~ 따닥 딱ㅡ 난 칠판 앞으로 걸어가서 흰 분필을 들고 그림을 그렸다. 레리오스의 그림 을 모방해서 성숙한 여성을 그리려고 했지만 인체 비례가 이상하게 되서 완 전히 이상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으윽…… 역시 난 그림에 소질이 없는 건가? 보고 그리는 그림은 조금 괜찮 은데, 아무 것도 보지 않고 그냥 머리 속에서 만들어 그리는 그림은 형편없 단 말이야…… 우웃, 짜증나! 쓱쓱쓱ㅡ 못 그린 그림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칠판 지우개로 그림을 싸그리 지웠 다. 되지도 않는 그림을 계속 그리다간 화만 날 것 같아서 이번엔 오래간만 에 수학 공부를 하기로 했다. 따닥 따닥ㅡ 이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 학교에서 공부하던 미분, 적분 공식을 칠판에 쭉 적어보았다. 그리고 그런 공식이 어떻게 나왔는지 증명을 시도했다. 기억력 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난 수학 공식을 무조건 외우면 다 잊어먹기 때문에 그 공식이 어떻게 나온 것인지에 대한 증명을 외운다. 어쩌면 그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공식이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을 때 그 공식 의 증명법을 알고 있으면 공식을 틀리지 않는다. 또한 증명하는 방법을 외우 려다 보면 그 공식이 외워지기도 하고. “…….” 으윽…… 갑자기 머리를 쓰려니 머리가 뽀개질 것 같다…… 그래도 수학 공 식을 잊어먹지 않을 걸 보면 내 머리도 대단해…… 근데 난 수업 시간에 배 운 건 기억하는데 왜 평상시의 기억력은 형편없는 것일까? 역시 집중력의 차 이 때문인가? 흠…… 모르겠군. 내 머리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 번 호 : 7325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5일 13:39 등록자 : THEBUR 조 회 : 739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3. 마법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23.마법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37 게 시 일 :00/03/25 05:38:43 수 정 일 : 크 기 :7.2K 조회횟수 :67 벌컥! “역시 여기 있었구나!” 내가 열심히 수학 공식의 증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교실 앞문이 열리며 어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검정과 갈색으로 된 긴 머리칼을 찰랑이며 들 어온 여성. 바로 마법 이론을 가르치는 샤느 선생이었다. 얼레? 샤느 선생이 왜 왔지? 레리오스가 와야 정상 아닌가? 그렇다면…… 이 녀석들이 내가 수업 빠졌다는 소리를 선생에게 하지 않은 것? 이런 사악 한 것들이 있나……! “어서 가자. 수업 벌써 시작했어.” 샤느 선생은 나에게 손짓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가 없어서 샤느 선생에게 물어보았다. “어딜 가는데요?” “어디긴 어디야, 마법 실습장이지. 마법 실습은 마법 실습장에서 한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널 데리러 온거야.” 샤느 선생은 멍하게 서 있는 날 보고 미소지었다. 마법 이론 선생이 왜 마 법 실습 시간에 날 데리러 온 것이냐고 물어보려던 난 2교시 때 마법 실습 시간에 참관하겠다는 샤느 선생의 말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누 군가 날 데리러 왔다는 사실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아직 난 이곳에 서‘따’를 당하지 않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뭐, 그렇다고 내가 살던 세계 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머? 뭐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분필을 들고 있는 것을 본 샤느 선생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칠판에 가득 써져 있는 수학 공식들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거 류드가 쓴 거니?” “아, 예…….” 내 대답을 듣고 샤느 선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말도 안돼…… 이건 중등부 3학년 때 배우는 것들인데……” 얼레? 중등부 3학년 때 배우는 공식? 그렇다면 여기의 중등부는 내가 살던 세계의 고등학교에 해당하겠군. 헐헐, 그 소리는 여기서 배우는 내용이 모두 내가 배웠던 것이라는 뜻이니까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근데 마법 실습장이 어디예요?” 칠판만 넋놓고 쳐다보고 있는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자 샤느 선생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 “응…… 날 따라와.” 샤느 선생은 교실 문쪽으로 걸어갔고 난 재빨리 칠판을 지우고 나서 샤느 선생의 뒤를 따라갔다. 앞장 서 가던 샤느 선생이 날 돌아보며 물었다. “류드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운 거니?” 흘…… 어떻게 대답한다? 아, 레리오스가 여기에 보통 학교가 있다고 했으 니까 거기서 배웠다고 하면 되겠지? “에…… 보통 학교에서 배웠는데요…….” “보통 학교? 하지만 거기는 적어도 17살이 되야 입학할 수 있는데…… 아, 그럼 검정 고시를 쳐서 일찍 들어간 거야?” 헐…… 여기도 검정 고시가 있나? 뭐, 우선 그렇다고 하자~ “예…….” “그렇구나…… 류드는 참 대단하네?” 샤느 선생은 활짝 웃었다. 나란히 걷다보니 샤느 선생의 키가 나보다 조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다시 키 때문에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으윽…… 키가 작으니까 괜히 화가 나네? 설마 이곳에서의 키가 내가 살던 세계만큼 자라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제발 내 본래 키만큼 만이라도 자라길 ……! “저기야.” 밖으로 나온 샤느 선생은 동관A와 동관B 사이의 장소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 했다. 그곳에는 얇은 콘크리트가 깔린 바닥이 꽤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법 실습장은 어떤 건물 안이 아니라 바깥이었던 것이다. “가자!” 샤느 선생은 내 손을 덥썩 잡고는 아이들이 있는 곳까지 나를 끌고 갔다. 마법 실습 선생인 듯한 한 남자가 샤느 선생과 같이 오는 날 보더니 목소리 를 쫙 깔고 물었다. “네가 오늘 온 편입생이냐?” “예.” “다음부터는 마법 실습 시간이 되면 여기로 나와라.” “예.” 약간 험악해보이는 그 붉은 머리칼의 남자 선생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꽤 부 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럼 5명씩 조를 짜서 화염계 마법 실습을 해라. 1번부터 5번까지 한 조, 그리고 6번에서 10번까지 한 조, 이런 식으로 조를 만들고 마법 연습을 해라.” “예!” 힘차게 대답한 아이들은 5명씩 뭉쳐서 뿔뿔이 흩어졌다. 난 내 번호를 모르 기 때문에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빌리컨트가 나와 샤느 선생 쪽 으로 다가왔다. “……!” 샤느 선생이 계속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본 빌리컨트는 눈썹을 꿈틀거렸 다. 나도 샤느 선생에게 손을 잡혀서 행동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샤느 선생의 손을 뿌리치기는 뭐해서 가만히 있었다. 전혀 나와 빌리컨트의 마음 을 모르는 샤느 선생은 빌리컨트에게 물었다. “왜 그러니? 빌리컨트?” “흠흠…… 샤느 선생님, 제가 마법 연습하는 걸 봐 주십시오.” 빌리컨트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은 빌리컨 트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도 당황조차 하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어쩌지? 난 류드의 마법 연습을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 “……!” 빌리컨트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난 샤느 선생에게서 그런 말을 전혀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류, 류드나르의 마법 연습을 도와주신다구요?” 빌리컨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샤느 선생에게 되물었다. 자기가 잘못 들었다 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그런 빌리컨트의 마음을 여지없 이 뭉개버렸다. “그래. 류드는 너희들보다 마법이 서투를 테니까. 지금 제대로 가르치지 않 으면 앞으로 고생할거야. 류드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선생이거든~” “…… 알겠습니다.” 샤느 선생의 닭살(?) 돋는 말을 들은 빌리컨트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쫄다 구들과 함께 마법 연습을 하러 갔다. 하지만 결코 샤느 선생과 멀리 떨어지 지는 않았다. 샤느 선생과 나를 충분히 볼 수 있는 곳에서 마법 연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야, 류드나르!” 이번엔 레리오스가 나한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나하고 마법 연습 안 할래? 어차피 조 같은 건 아무렇게나 짜도 선생님은 모르니까.” 흠…… 그랬군. 애들이 마법 실습 선생의 말을 무시하다니…… 무서운 넘들 이야……. “레리오스라고 했던가?” 샤느 선생이 레리오스를 보고 묻자 레리오스는 실실 쪼갰다. “예~” 샤느 선생이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상당히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샤느 선생은 그런 레리오스에게 빌리컨트한테 했던 말을 그대로 했다. “류드의 마법 연습은 내가 봐줄 생각이야. 그러니 레리오스는 다른 친구들 과 함께 마법 연습을 하도록 해.” “그러세요? 알았어요. 그럼 류드나르, 열심히 해라~” 빌리컨트와는 달리 레리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레리오스가 가자 샤느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자, 그럼 화염계 마법에 대해 공부해 볼까?” 흘…… 교실 밖에서 공부를 하게 되다니…… 이게 말로만 들어본 야외 수업 ? 근데 이러다가 비오면 어떡하냐? 그럼 교실로 들어가나? 뭐, 그건 레리오 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그나저나 이 아줌씨는 계속 내 손을 잡고 있네? 설 마 날 어떻게 해보려고……? “화염계 마법의 원리는 알고 있니?” 샤느 선생은 내 얼굴을 보며 물었고 난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샤느 선 생이 화염계 마법의 원리라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염계 마법은 단열압축의 원리를 이용해. 공기가 갑자기 압축되면 온도가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일순간에 압축시켜 온도를 높이는 거야. 이해가니?” “예. 근데 마나는 에너지라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걸 압축시킨다고 온도가 올라가요?” “물론 에너지 자체는 우리의 임의대로 움직일 수 없어. 그래서 단열압축을 할 수 없지. 하지만 2교시 때 말했었지? 마나의 이중성 말이야. 우리가 마나 를 움직이겠다고 생각하면 마나가 뇌파에 의해 뭉쳐져서 질량과 부피를 가진 다는 거. 기억나니?” 샤느 선생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말 알고서 고개를 끄덕인 것인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고개만 끄덕인 것인지 의심스러운 듯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샤느 선생이 다시 물었다. “정말 이해하는 거야?” “예.” “그럼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말해봐.” 허걱? 그런 어려운 것을 시키다니…… 화염계 마법도 여러 가지가 있을 텐 데 도대체 그 중에 어떤 마법의 사용 과정을 말하라는 건지…… 에라, 대충 나불거리자~ ━━━━━━━━━━━━━━━━━━━━━━━━━━━━━━━━━━━ 번 호 : 7326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5일 13:41 등록자 : THEBUR 조 회 : 846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4. 마법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4.마법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38 게 시 일 :00/03/25 05:39:08 수 정 일 : 크 기 :8.4K 조회횟수 :67 “에…… 먼저 마법을 쓰겠다고 강하게 염원하면 뇌에서 뇌파가 나와 마나가 뭉쳐지고…… 그리고 그 마나를 뇌파를 통해 압축시키면 온도가 올라가서 불 이 붙는다…… 맞나요?” “그래. 대충 맞았어.”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샤느 선생은 기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내게서 조금 떨어지며 말했다. “이제 한 번 화염계 마법을 사용해봐. 화염계 마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우선 방금 가르쳐준 방법대로 마법을 구현해.” “예.” 난 샤느 선생에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아이들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섰다. 그 다음으로 마나를 뭉쳐서 질량과 부피를 가지는 에너지 덩어리로 만 든다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흘…… 마법 주문없이 마법을 구사하려니까 힘든걸? 하도 마법 주문에 익숙 하다보니까 어려워…… 근데 여기는 마법 주문을 안 가르쳐주나? 마법 주문 이 있으면 더 쉽게 마법을 구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난 내 옆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었고 샤느 선생은 왜 그러냐는 듯 날 쳐다보았다. “왜? 무슨 문제가 있니?” “아뇨. 근데 마법 주문은 없나요? 마법 주문이 있으면 마법을 더 쉽게 구사 할 수 있지 않아요?” “아……” 내 질문의 뜻을 알아들은 샤느 선생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오히려 마법의 발동 원리를 모르고 무조건 주문만 외 워서 구현하는 마법에는 마나가 더욱 많이 소모돼. 앞으로 좀더 마법 공부를 하면 자연히 알게 될거야. 마법 구현의 원리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얼레? 그런가? 뭐 샤느 선생의 말대로 마법 공부를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이곳에서 밝힌 마법 구현 원리를 충실히 따라볼까나? “우와!!!” 갑자기 빌리컨트가 있는 쪽에서 아이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빌리컨트가 자신의 앞에다 자기 머리통만한 불의 공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빌리컨트야!” “1학년 중에서 빌리컨트를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 아이들은 빌리컨트에게 칭찬의 화살을 마구 쏘아댔다. 그 화살을 맞으면 맞 을수록 빌리컨트의 얼굴에는 자만심이 가득 퍼져나갔다. “……?” 입 째져라 웃고 있던 빌리컨트가 갑자기 날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마 치‘어떠냐? 난 너보다 이렇게 뛰어나다고!’라고 써져 있는 것 같았다. 어 쨌든 상당히 기분 나쁜 얼굴이었다. 정말 저 빌리컨트란 녀석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어떻게 하는 짓마다 저렇 게 역겨울 수 있는지…… 뭐, 저 녀석 신경쓰다간 나만 손해니까 열심히 마 법 연습이나 해야겠다! ‘마나야, 움직여라……!’ 난 머리 속에 그 말만 떠올렸다. 그러자 내 몸 주위를 일정한 속력으로, 즉 등속원운동을 하던 마나가 이상한 진동을 일으키며 속력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나의 속력이 바뀌는 순간, 마나 파장이 방출되었다. “……!” 그때서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마나 파장이 방출되면서 그 마나 파장에 따라 에너지 상태로 운동하고 있던 마나가 뭉쳐졌고, 그렇게 뭉쳐진 마나는 내 명령을 기다리는 듯 허공에 정지했다. 신기하구만. 쉴새없이 움직이던 마나가 멈춰있다니. 좋아, 마법을 쓰면 되 겠군. 근데 어떤 마법을 쓰지? 에……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나 서볼까? 화르륵ㅡ 내가 파이어 애로우의 이미지를 떠올리자마자 내 앞에 주먹만한 불화살이 만들어졌다. 뭉쳐져있던 마나들이 다시 마나 파장에 의해 지극히 빠른 속도 로 압축되어 공기의 온도를 높였고, 그 결과 산소의 발화점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 허공에서 불이 붙어버린 것이다. 성공은 성공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크기가 너무 작은 것에 실망하고 말았다. 이런…… 겨우 조막만한 걸 만들다니…… 적어도 팔뚝만한 파이어 애로우가 만들어져야 저 빌리컨트 녀석의 얼굴을 팍 뭉개버릴 수 있는데…… 결국 저 재수없는 녀석한테 진 거잖아? 으윽……!!! “대단해, 류드!!!”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샤느 선생이 소리쳤다. 그 외침소리 때문에 정신이 흩 으러져서 기껏 만들었던 불화살이 팍 하고 터지면서 사라져 버렸다. 형태를 유지시키던 뭉쳐진 마나가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방금 만든 거‘카파 하사로’지?” 샤느 선생이 흥분한 표정으로 날 보고 물었다. 카파 하사로는 이 나라의 언 어로‘불화살’이라는 뜻이었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파이어 애로우인 것이다. “예…….” 완전한 파이어 애로우라고는 할 수가 없었지만 어쨌든 모양은 파이어 애로 우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샤느 선생의 외침 소리를 들은 아이들 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웅성거렸다. “카파 하사로?” “쟤가 카파 하사로를 만들었다고?” “말도 안돼! 이제 마법을 배우는 녀석이……!” 얼레?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내가 만든 건 조막만한 파이어 애로우 일 뿐인데? 다른 애들은 이 정도도 못하나? “정말입니까, 선생님? 류드나르가 카파 하사로를 만들었다구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파이어 볼로 애들에게 칭찬받던 빌리컨트가 어느새 샤 느 선생의 앞까지 다가와서 급히 물었다. 그의 얼굴엔 샤느 선생의 말이 거 짓말일 것이다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이번에도 그 런 빌리컨트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정말이야. 그걸 빌리컨트도 봤어야 했는데!” 샤느 선생은 그게 정말 볼만한 장면이었다는 듯 흥분하여 말했다. 그것이 빌리컨트의 기분을 완전히 뭉개버리고 말았다. “…….” 빌리컨트는 날 잡아먹을 듯이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정도에 쫄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샤느 선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방금 만든 게 카파 하사로이긴 한데요…… 그게 대단한 일인가요?” “……!” 내 말에 빌리컨트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를 해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잘난 척 하려고 그런 질문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정말 내가 왜 칭 찬을 받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대단한 일이라니? 당연히 대단한 일이지!” 샤느 선생은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샤느 선생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본래 초보 마법사가 마나를 제대로 제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야. 그래 서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려고 마나의 단열압축을 시도하면 정확한 가열 범위 를 지정할 수 없어서 그냥 허공에 불만 붙게 되는 꼴이 되지. 근데 류드는 비록 작지만 단번에 일정한 형태를 지닌 카파 하사로를 만들었어. 그건 류드 가 마나를 아주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대단한 일이지!” 헐…… 그랬군. 모르는 사실이었어. 그래서 샤느 선생이나 아이들이 날 대 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이러다가 내 과거가 들통나지 않을까? “샤느 선생님, 편입온 녀석이 카파 하사로를 만들었다구요?!” 이번엔 마법 실습 선생까지 가세했다. 샤느 선생은 마치 자신의 아들이 엄 청난 일을 한 것처럼 마법 실습 선생에게 자랑하기 시작했다. 어쩌구 저쩌구…… 샤느 선생이 말하는 소리를 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흥분한 상태에 서 말을 무지하게 빨리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난 샤느 선생에게서 신경을 끊고 이번엔 파이어 볼(Fire Ball)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마나를 뭉치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다음에 뭉쳐진 마나를 순식간 에 압축시킨다…… 됐어! 화륵ㅡ! 내 앞에서 불길이 확 일어났다. 바로 파이어 볼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파이어 애로우처럼 주먹만한 것이었다. 이런…… 또 작구만. 왜지? 왜 이렇게 다 작은 거야? 왜…… 아, 지금 나는 1써클의 마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거구나! 그래서 마법을 써도 강 한 마법을 구사할 수 없는 거고! 난 역시 바보였어……. “아……!” “이럴수가!” 샤느 선생과 마법 실습 선생의 입에서 놀람에 찬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것 은 다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파이어 애로우, 아니 카파 하사로 에 이어 파이어 볼, 여기 말로는‘카파 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만약 카파 하사로나 카파 보가 마나의 단열압축에 의한 산소 기체 의 발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냥 제자리에서 불탈 뿐…… 날리거나 던져서 공격을 가할 수가 없지 않나? “카파 보까지 만들다니……!” 마법 실습 선생은 내 앞에서 불타고 있는 주먹만한 불의 공을 넋놓고 쳐다 보았다. 아이들도 감탄과 존경의 눈초리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에 만족할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즉시 샤느 선생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근데 지금 제가 만든 카파 하사로나 카파 보는 공격용으로는 쓰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나요?” “응? 아…… 그게 알고 싶니?” 날 자랑스러워 하듯 쳐다보던 샤느 선생은 내 질문을 받고 놀라움을 품은 미소를 떠올렸다. 내가 그런 질문을 던질 줄 몰랐던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난 좀더 이곳의 마법에 대해 자세히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샤느 선생에게 설 명을 부탁했다. “알고 싶어요.” “그래. 목표물에 카파 하사로를 맞히려면 마나 파장으로 길을 만들어야 해.” “……?”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샤느 선생은 그것에 대해 차근히 설명해주었 다. “그러니까 카파 하사로를 마나 파장에 실어서 날리는 거야. 카파 하사로를 실어나르는 마나 파장이 얼마나 멀리 나가고, 얼마나 빨리 나가느냐에 따라 카파 하사로의 날아가는 거리와 속도가 결정되지. 이제 이해가 가니?” “예.” 난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느 선생의 말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 다. 쉽게 말해 마나 파장이라는 비행기에 카파 하사로라는 사람을 태우는 것 이다. 비행기의 성능이 좋고 속도가 빠를수록 그 안에 탄 사람이 일찍 목적 지에 도착할 수 있듯이, 마나 파장을 더 멀리 그리고 더 빠르게 방출함으로 써 카파 하사로 등의 발현된 마법을 목표물에 격중시킨다는 뜻이다. ━━━━━━━━━━━━━━━━━━━━━━━━━━━━━━━━━━━ 일꾼: 사이케델리아 동호회 (go psyc)에 가시면 이상규님의 다른 작품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상규님께 감상을 보내실 땐, sakali@unitel.co.kr 번 호 : 7354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6일 13:11 등록자 : THEBUR 조 회 : 69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5.마법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마법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48 게 시 일 :00/03/26 06:46:02 수 정 일 : 크 기 :5.8K 조회횟수 :78 띵동 띵동ㅡ 그때 종소리가 울렸다. 막 샤느 선생이 가르쳐준 대로 마법을 구사하려던 나는 그 종소리 때문에 그만 맥이 빠져버렸다. 샤느 선생은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류드는 마법에 소질이 많은 것 같아. 그래서 교장 선생님도 류드를 편입시 킨 것일 테고. 앞으로 열심히 할거지?” “예.” 흘…… 내가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띵까띵까 놀기만 하면 교장 할배가 나한 테 수업비를 요구할지도 모르니까 열심히 할 수밖에……. “그럼 나중에 보자.” 샤느 선생은 싱긋 웃어보인 다음에 유유히 본관 쪽으로 사라졌다. 마법 실 습 선생도 본관 쪽으로 향했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교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계속 마법 실습장에 서 있자 레리오스가 다가와 내 등을 툭 쳤다. “교실 안 가고 뭐해?” “어…… 아냐.” 난 고개를 저으며 레리오스와 함께 교실 쪽으로 향했다. 교실로 가는 동안 레리오스는 내가 놀랍다는 듯이 쫑알대었다. “아까 빌리컨트의 표정 봤냐? 완전 똥 씹은 표정이더라~ 무지하게 통쾌하더 만! 역시 범생은 다르다니까~” 헐…… 내가 범생하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 그리고 난 범생이 아니라고~ 모범생이지……. 5교시 한문 시간. 아이들은 시작하자마자 퍼질러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30살 정도 되어 보이 는 한문 선생ㅡ남자다ㅡ은 아이들이 노골적으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도 제 재를 가하지도 않고, 깨우지도 않았다. 한마디로‘2학년 올라갈 놈들은 공부 하고, 안 할 놈들은 잠이나 자라’라는 식이었다. “‘天’은 하늘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천’이라 읽는다. 하늘과 대비되는 것은 땅으로,‘地’라고 쓰고‘지’라고 읽는다. 그리고……” 한문 선생은 듣기에도 지겨운 수업을 계속해 나갔다. 오늘 배우는 한자들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 나도 그냥 엎드려 잤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 는 것은 상당한 쾌감이었다. 헐헐,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다니…… 드디어 나도 타락의 길을 달리는구나~ 내가 살던 세계에 있을 때는 공부 좀 하려고 어떻게든 졸지 않았는데…… 뭐 여기서 배우는 것들은 이미 배운 내용이니까 부담없이 해도 되겠지~ 이래서 조기 교육이 좋다니까~ 쓱쓱ㅡ 레리오스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역시 여자가 옷을 홀라당 벗고 있는 그림이었다. 계속 잠자는 것도 지겨워져서 나도 레리오스를 따라 그림 을 그려보았다. 그러나 내가 그리는 그림은 인체 비례가 전혀 맞지 않아서 엉망이었다. 그런 내 그림을 보고 레리오스가 킥킥댔다. “너 그림에 소질없구나~” “…….” 으윽…… 그림을 그려본 지가 하도 오래됐더니 보고 그리는 그림조차 엉망 이잖아? 아무래도 그림 연습 좀 해야겠어……! 띵동 띵동ㅡ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5교시가 끝났다는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 가 울려도 아이들은 계속 책상에 엎드려 퍼질러 자기만 했다. 그러다가 한문 선생이 나가고 담임인 가리나크 선생이 들어왔을 때에서야 아이들은 친구를 깨우느라 분주해졌다. “이 녀석들, 또 퍼질러 자고 있냐?” 가리나크 선생의 그 한마디에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팍 쳐들었다. 가리나크 선생은 첫인상과는 달리 아이들을 꽤 살벌하게 대하는 듯했다. “문제아 트리오! 당장 들어와!” 가리나크 선생은 교실 밖에다 대고 그렇게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듣고 레리 오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결국 찾아냈구만. 앞으로 학교 생활이 골치 아파지겠어~” “……?” 내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 세 명의 남학생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세 명 모두 쫄티에 쫄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무스를 떡칠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보는 순간, 난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 녀석들은 내가 이 세계에 넘어 오자마자 싸웠던 바로 그 녀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허걱! 어째서 저 녀석들이 여기에 있는 거야? 혹시…… 저 녀석들이 저기 4 분단 뒤에 비어있는 자리의 주인들? 우어억! 난 죽었다!!! “엎쳐!!!” 가리나크 선생은 그 세 명에게 지시를 내렸고, 녀석들은 투덜대며 엎드려 뻗쳐를 했다. 그러자 가리나크 선생은 언제 갖고 있었는지 야구 방망이 수준 의 몽둥이로 그 녀석들의 엉덩짝을 때리기 시작했다. 퍼억! 퍽!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소리가 무려 5분간 지속되었다. 가리나크 선생은 그 녀석들에게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죽도록 때렸다. 당연히 그 세 녀석들은 거의 빈사 직전까지 놓이고 말았다. “헉헉…… 이 새끼들! 다음부터 멋대로 학교 빠지면 그땐 죽여주겠어! 학교 에 다니기 싫으면 자퇴하라고! 알았어?!” 가리나크 선생은 마지막으로 녀석들에게 발길질을 한 번씩 해준 다음 차분 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차분하지만 위협어린 어조로 말했다. “너희들도 이유없이 결석하지마라. 내가 골치 아파지니까. 알았지?” “예…….” 아이들은 다 죽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완전한 공포 분위기였다. 이곳에서 도 이런 무시무시한 체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1조가 청소한다. 종례 끝.” 그렇게 간단히 말한 가리나크 선생은 쓰러져 있는 세 녀석들을 지나쳐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가리나크 선생이 나가자마자 쓰러져 있던 녀석들이 엉덩이를 움켜쥐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렇게 얻어맞았어도 일어설 힘이 남아있는 녀 석들이 더욱 공포스러워졌다. “야야, 눈 마주치지 마. 저 녀석들은 담임한테 맞고나서는 항상 다른 애들 에게 화풀이를 하니까. 어서 가자.” 레리오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세 녀석들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가방을 챙겼다. 나도 그 녀석들과 마주쳤다간 죽음이기 때문에 레리 오스를 따라 교과서를 정리했다. 드르르륵ㅡ 책상 미는 소리와 함께 1조 아이들이 청소를 시작했다. 문득 난 몇 번일까 궁금해져서 레리오스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난 몇 번이야?” “번호? 너야 당연히 마지막 번호지. 그러니까 32번일걸?” 흠…… 그렇군. 그렇다면 청소조로 따지면 3조인가? 오늘 청소는 하지 않아 도 되겠어~ 아차, 그러고 보니 교장 할배가 수업 끝나고 나서 무슨 청소를 하라고 했는데…… 가봐야겠구만. “난 먼저 가볼께.” 내 말에 레리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그림 안 보러 가?” “어…… 오늘 교장 선생님이 오라고 했거든.” “그랬냐? 그럼 가봐. 내 방은 M3관 302호니까 언제든지 놀러와라.” 레리오스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문제아 트리오의 눈에 거슬리지 않 게 조용조용히 교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그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고개를 교실 뒷벽 쪽으로 돌리고 뒷문으로 갔다. 다행히 그 녀석들은 날 발견하지 못했고, 난 무사히 교실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헉헉…… 이거 무서워서 학교를 못 다니겠어…… 왜 하필이면 나하고 싸웠 던 녀석들이 우리반인 거야? 이건 완전히 계획적이야!!! ━━━━━━━━━━━━━━━━━━━━━━━━━━━━━━━━━━━ 일꾼: go psyc 하시면? 이상규님의 다른 작품도 보실수가 있습니다. ^^ 홍보홍보홍보! 번 호 : 7355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6일 13:12 등록자 : THEBUR 조 회 : 73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6.마법 -5- 제 목 :[사이케델리아] 26.마법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49 게 시 일 :00/03/26 06:46:26 수 정 일 : 크 기 :7.3K 조회횟수 :72 터벅터벅ㅡ 난 동관A에서 나와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교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교장은 교장실에 있는 컴퓨터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 다. 헐…… 도대체 저 교장 할배는 왜 내가 올 때마다 컴퓨터를 하고 있지? 저 나이에 컴맹이 아니라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일이냐, 류드?” 교장이 문을 열고 들어온 날 보고 물었다. 난 슬금슬금 교장 옆으로 다가가 면서 교장에게 말했다. “끝나고 나서 무슨 청소를 하라고 하셨잖아요? 그것 때문에요…….” “아, 청소 아르바이트말이구나. 그럼 여기 교장실 바닥을 대걸레로 닦아라. 그리고 나서는 창문도 깨끗이 닦고.” 교장은 아주 가볍게 말했지만 난 전혀 가벼운 기분이 나지 않았다. 교장 할 배의 그 말은 나혼자 이 교장실을 청소하라는 뜻이었으니까. 스윽ㅡ 난 슬쩍 컴퓨터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모니터 상에는 한문으로 쓰여진 책 이 펼쳐져 있었고, 교장 할배는 열심히 그 한문을 번역하는 중이었다. “허허, 이 책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모니터를 쳐다보자 교장이 물었고, 난 당연히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는데요.” “이건‘이물태경(移物太經)’이라는 마법책이다. 주로‘쇼타무브’에 대해 기술했지. 최근에 발견된 책이라 지금 해석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쇼타무브는 순간 이동이란 뜻이고…… 해석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면 아 직 해석되지 않은 마법책이란 소리로군. 그래서 교장 할배가 해석하고 있는 건가? 그나저나 모니터의 저 책은 이물태경을 스캔해서 만들었나 보지? 죄다 한문만 있네? 해석하려면 머리 뽀개지겠어……. “청소 언제 할건가, 류드?” 내가 계속 모니터만 쳐다보자 교장 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교장실 안에 비치된 대걸레를 들고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교장실 내부에 수 돗물이 나오기 때문에 대걸레에 물을 묻히려고 화장실이나 수돗가에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쓱쓱ㅡ 대걸레에다 물을 많이 먹인 다음에 열심히 교장실 바닥을 닦고 있을 때 교 장 할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류드, 쇼타무브의 마법을 아는가?” 얼레? 청소하는 나한테 왠 이상한 질문? “들어는 봤어요…….” “그래? 쇼타무브의 원리를 알고 싶지 않느냐?” 교장 할배는 미소를 떠올리며 물었다. 난 잠시 대걸레질을 멈추고 교장 할 배를 쳐다보았다. 나한테 그런 걸 가르쳐주려는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미심쩍은 표정은 짓지 말거라. 그냥 가르쳐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네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교장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모니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교장의 그 런 행동이 나에게 뭔가 아쉬움 같은 걸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난 즉시 교장 에게 말했다. “배우고 싶은데요.” “알았다.” 교장은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 이 들었지만 내가 손해보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장의 말을 듣기로 했다. “청소하면서 듣거라.” 얼씨구? 청소하면서? 청소하면서 어떻게 들어? 난 머리가 나빠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단 말이야! 쓱쓱ㅡ 하지만 난 아무 소리하지 않고 대걸레질을 다시 시작했다. 교장 할배에게 개겨봤자 나한테 득되는 것은 없으니까. “쇼타무브…… 그건 물체를 입자화시켜 마나 파장을 이용해 공간을 이동한 뒤 다시 입자를 원래대로 맞추는 것이다. 상당히 고난이도의 마법이지.” 교장은 여전히 컴퓨터의 모니터만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그래서 나도 대걸 레질을 하면서 교장의 얘기를 들었다. “쇼타무브는 위험한 마법이지. 이동하는 도중 마나 파장이 교란을 받거나 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못하니까. 한마디로 공중 분해된다는 것이 딱 맞는 설명일거야.” 허걱! 공중 분해?! 내가 배운 텔레포트(Teleport)에서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데? 여기는 장난이 아니구만……. “쇼타무브는 상당한 정신력과 마력이 필요한 마법이라 구현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그래서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 자칫 잘못하다간 공중 분해 될지도 모르는데 누가 사용하고 싶어 하겠느냐.” 그렇게 말하면서 껄껄 웃는 교장 할배. 그 웃음은‘다른 사람은 위험해서 안 하지만 난 할 수 있다’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은 쇼타무브를 사용하실 수 있나요?” 내가 묻자마자 교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10써클 마법사가 쇼타무브를 못한다면 말이 안되지.” 흘…… 그래, 교장 할아범 잘났수~ “저, 근데요……” 잘난 척하는 교장을 속으로 씹고 있던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서 교 장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교장이 모니터 옆으로 날 빼꼼히 쳐다보며 말했 다. “말하거라.” “에…… 쇼타무브 주문은 있나요?” “당연히 있지.” 교장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서 난 다시 물었다. “근데 쇼타무브의 주문을 사용할 때 뭔가 편리한 점이 있어요?” “물론 있단다. 주문없이 바로 쇼타무브를 사용하는 것보다 정신력과 마력이 덜 들지. 당연한 걸 물어보는구나.” 어쩔씨구리…… 아주 날 무시하는데? 수염을 확 뽑아버려? “교장 선생님이 해석 작업하고 계신 그 책에 쇼타무브의 주문이 써져 있어 요?” 난 교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모니터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교장 은 그런 날 빤히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있단다.” “쇼타무브의 주문은 이미 있지 않아요? 근데 왜 여기 적혀 있는 걸 해석하 려고 하세요?” 좀더 모니터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교장 할배에게 별 의미없는 질문을 던졌 다. 내 물음에 교장은 껄껄 웃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이 이물태경에 적힌 쇼타무브 주문이 더 좋으니 까 그렇지. 여러 사람을 동시에 쇼타무브 시키는 방법도 적혀져 있는데 마법 사로서 당연히 해석해야 할 것 아니냐.” 헐…… 그 책이 그렇게 대단한가? 교장 할배가 이물태경은 최근에 발견했다 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물태경을 얻은 거지? 궁금해지네? “그런데요……” “……?” “그 책은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얻으신 것인가요?” 난 교장 바로 옆까지 다가가 물었고,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다른 사람이 중국 대륙에서 획득한 것이란다.” 얼레? 중국 대륙? 그래서 책 글자가 모두 한문인 건가? 흠…… 중국 사람들 이 마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구만……. “류드.” 교장이 뭔가 나에게 할말이 있는 듯한 어조로 날 불렀다. 왠지 모르게 부담 되는 어조였다. 그래서 난 약간 불안한 눈초리로 교장을 쳐다보았고 교장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난 류드가 마법을 좋아했으면 한다. 그래서 가능한한 빠른 시일 내에 고등 부에 들어왔으면 좋겠구나.” 얼레? 고등부? 이 학교에서 고등부는 거의 대학과 같은 수준인 것 같던데… … 그게 가능할려나? 뭐 열심히 노력하면 되겠지만서도……. “그, 글쎄요…… 제가 할 수 있을런지……” “허허, 류드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다. 넌 왠지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다 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야.” 교장은 껄껄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내가 고등부에 들어간다는 것을 확신 하고 있는 듯했다. 제기럴…… 여기가 아니면 어디 살 데가 없으니 이 학교에 계속 다니는 수 밖에 없겠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교장이 원하는 데로 고등부에 들어가는 수밖에…… 이거 꼭 부모가 자식에게 명문대학에 들어가 라고 압력넣으는 것 같잖아……? “류드.” 교장은 또다시 진지한 어조로 날 불렀다. 이번엔 방금 전보다 더 어려운 요 구를 할 것 같아서 더더욱 불안해졌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말은 내게 무 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교장 자신의 중얼거림 비슷한 말이었다. “난 말이다…… 인간이 살아갈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싶구나…….” “……?” 얼레? 이 할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마치 자기가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어조로 말하잖아? 설마…… 이 교장 할아범, 인간이 아닌가?! “허허, 내가 쓸데없는 얘기를 했구나. 청소 안 하나, 류드?” “아, 예!” 교장의 말에 놀라 난 급히 교장실 바닥을 대걸레로 닦았다. 하지만 교장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한 교장의 말… … 그리고 그 어조에서 느껴지는 어두운 이미지…… 왠지 모르게 교장의 목 적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 번 호 : 7406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7일 23:33 등록자 : THEBUR 조 회 : 175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7. 불법 조작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7.불법 조작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67 게 시 일 :00/03/27 05:45:48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181 <제 6 장> 불법 조작 쓱싹ㅡ 난 열심히 학교 옥상을 빗자루로 쓸었다. 벌써 세 시간째 학교를 청소하는 거라 온몸이 뻐근해져 왔다. 나와 라이의 밥값을 벌기 위해 학교를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으어…… 이거 완전히 중노동이구만…… 나같이 허약한 인간이 이런 노가다 일을 하다니…… 이러다가 병 걸리겠다……! 뚜벅뚜벅ㅡ 그때 옥상 계단 쪽에서 묵직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의 울 림으로 보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인 듯했다. “에이, 띠벌! 그 싸가지없는 담임 새끼……!” “개쉑이 지 화풀이하려고 때린다니까!” “담임만 아니라면 확 죽여버리는 건데!” 모습이 드러나기도 전에 그런 험악한 말들이 내 귀에 들어왔다. 왠지 상당 히 불량한 녀석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량한 녀석들이 계단 을 완전히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 온몸은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서 로 맞춘 듯 쫄티에 쫄바지를 입고 머리에 무스를 잔뜩 떡칠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허억! 나하고 싸웠던 녀석들이잖아?! 으헉, 큰일났다! 빨리 피해야 하는데 피할 곳이 없어……! 죽었다……!!! “뭐야, 저 새낀?” 셋 중에 한 녀석이 기분나쁜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 던 한 녀석이 날 알아봤는지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야! 저 새낀 어제 우릴 치고 토깠던 새끼야!” “뭐?!” 그 녀석의 말에 다른 녀석들도 날 사나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침 기분도 그랬는데, 아주 잘 걸렸다!’의 뜻을 품고 있었다. 그 녀석들 의 그런 눈빛에 난 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었냐? 멀리 토깠을 줄 알았는데?” 나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녀석이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 녀석의 얼 굴에는 사악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미 녀석들은 날 화풀이 대상으로 찍어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애원해도 날 곱게 보내지 않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개겨보기로 했다. “뭐야, 너희들은?” 난 최대한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나한테 다가오던 녀석의 얼굴이 변했다. “어쭈? 까먹었냐? 이 새끼가 죽을려고!” 휘익ㅡ 녀석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나에게 날아왔다. 옆으로 후려치는 일격이었 기 때문에 몸을 뒤로 빼내어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내가 공격을 피해내자 녀석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개새끼! 나하고 해보자는 거냐?!” 녀석은 다시 나에게 주먹을 날렸다. 가만히 서서 당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 에 나도 손에 든 빗자루로 녀석을 쳤다. 복조리처럼 얇은 대나무로 엮어만든 빗자루라 그리 큰 위력은 낼 수 없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퍽! 다행히 녀석의 주먹보다 먼저 내 빗자루가 녀석의 복부를 찔렀다. 그러나 녀석의 주먹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욱!” 그다지 강하게 맞지는 않았지만 뺨을 맞아서 입안이 얼얼했다. 나에게 복부 를 맞은 녀석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다른 두 녀석들이 욕을 바리바리 하면 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2차 공격을 난 막지 못했다. 퍼퍼퍽! “커억!” 녀석들에게 연이어 얼굴과 가슴을 얻어맞았다. 강렬한 고통이 내 머리를 강 타했고, 자연히 난 바닥에 쓰러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들은 발로 날 마구 밟기 시작했다. “어억……!” 난 제대로 된 신음조차 지를 수 없었다. 녀석들에게 발로 밟히는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는 이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죽인다……!’ 퍼퍼퍽! “이 새끼가 감히 날 쳐? 이런 개새……!” 그렇게 욕을 하던 녀석이 갑자기 발길질을 멈추었다. 그건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서 기이한 마나 파장이 느껴졌을 테니 더 이상 발길질 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뭐, 뭐야 이거?” 녀석들은 상당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들의 그런 공포심을 알아줄만큼 착한 녀석이 아니었다. 내 머리 속에는 하나의 말과 하나의 이미 지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죽인다…… 파이어 월(Fire Wall)…….’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불의 장벽 파이어 월의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는 곧 마법으로 실현되었다. 화르르륵ㅡ! “으악! 이게 뭐야?!” “부, 불이다!” “살려줘ㅡ!” 녀석들이 갑자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마법으로 실현된 파이어 월이 그들 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노을을 연상하게 하는 붉은색의 불꽃은 날 죽이려던 세 녀석들을 따뜻하게 감싸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으아아아ㅡ!” 녀석들의 비명 소리가 아름답게 메아리쳤다.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 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 그 소리를 매일 듣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치지직ㅡ 사람의 살과 뼈, 그리고 옷이 타는 소리와 함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지독 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 냄새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난 그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려서 그 냄 새를 피할 수가 없었으니까. “우욱!”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위 속에 들어있던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찝찝했다. 그래서 난 계속 토해야했다. …….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파이어 월에 휩싸였던 세 녀석들이 다 타버렸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흉측하게 그을린 해골 뿐이었다. 그 해골을 보며…… 난 웃었다. 맞아서 부어버린 뺨을 억지로 움직여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잃었다……. ……. 너무나 조용한 실내. 째깍째깍하는 시계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올 뿐이 었다. 아니, 그 외에 어떤 소리가 더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잠을 자면서 내 쉬는 숨소리였다. 아주 편안한 숨소리……. “으윽……!” 난 몸을 뒤척이려다가 나직하게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온몸에 강한 통증 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뼈가 여기저기 부러진 듯한 느낌. 그러나 눈은 쉽 게 뜰 수 있었다. 으…… 여긴 교장 방인가? 교장 방이 맞긴 맞는 것 같군…… 근데 내가 왜 교장 할배의 침대에 누워있는 거지? 아…… 다쳐서 그렇겠군. 근데 왜 다쳤 지? 아…… 그 녀석들에게 맞았지…… 근데 왜 맞았지? 아…… 녀석들하고 싸웠기 때문이구나…… 근데 왜 싸웠지? 아…… 녀석들이 먼저 날 쳐서 그랬 군. 이제야 제대로 정리가 되는 것 같구만. “왕왕!” 그때 내 옆에 있던 무엇인가가 짖었다. 그 익숙한 소리는 라이가 짖는 것이 었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것은 사람이 아닌 라이였던 것이다. 낼름낼름ㅡ 라이는 내가 깨어난 것을 알았는지 내 뺨을 혀로 핥았다. 당장 피하고 싶었 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라이가 핥아주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라이의 침 이 마르면서 내 뺨에 있던 체온을 뺏어가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침냄새가 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생겼지만. “그만해, 임마.”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입도 자 유롭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눈과 입 은 아주 멀쩡했던 것이다. 허허…… 난 바보인가? 예전에는 몸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있으면 눈도 뜨기 어렵고 입 열기도 어려워서 침대에만 누우면 항상 눈과 입을 열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이런 생각을 빨리 제거해야 할 텐데……. “으윽!” 온몸에서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런 통증은 거의 주기적으로 발생 했다. 그 통증 때문에 난 계속 신음만 내질러야 했다. 내가 그렇게 대략 30여 분을 통증과 싸우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열고 교장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난 눈동자를 최대한 굴려 들어온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이 방의 주인 교장 할배였다. “깨어났느냐?” 교장은 내가 신음을 내지르는 것을 보고도 그렇게 물었다. 난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교장의 말을 씹었다. 그러나 교장은 내가 자신의 말을 씹은 줄도 모르고 자기 할말만 하기 시작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 난 여전히 교장의 말을 씹었다. 하지만 교장은 애초부터 내 대답을 들을 생 각이 없어 보였다. “넌 이 학교 학생을 무려 세 명이나 죽여버렸다.” 헐…… 내가 그런 위대한 일을 하다니…… 그래서 어쩌라는 것? “한마디로 살인자가 됐다는 소리다.” 나원…… 그런 당연한 소리를……! “그 학생들의 부모들이 널 감옥에 넣겠다고 성화를 부리고 있다.” 그렇겠지……. “지금 말을 할 수 있느냐?” “…… 예.” 난 교장의 그 말도 씹으려고 했다가 계속 씹으면 교장이 화낼 것 같아서 그 냥 입을 열어 대답했다. 교장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몸은 어떠냐?” 교장은 다정한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사람을 셋이나 죽였는데도 그렇게 다 정한 말을 하니 느낌이 묘해졌다. 어쨌든 물음을 받았기 때문에 대답을 했다. “많이 아프네요…….” “그럴 거다. 많이 다친 상태니까.” 교장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아버지가 손자 에게 해주는 듯한 따뜻한 손길. 난 가만히 누워 그 손길을 느꼈다. 그러자 아픔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 일꾼: 사.케가 올라가고 있는 곳! 일단 원천지이며 작가분께서 직접 올리시는 유니텔 환동(go fantasy) 환 문학관 제가 작가분의 허락하에 퍼나르고 있는 천리안 판츠, 천리안 사이케델리아 동호회(go psyc) 사케 동호회에 오시면 작가분의 다른 소설들도 보실수 있습니다. -> 환타지 과학강의, 영마스터 여행기 홍보홍보홍보!!!!! 아, 사.케 1부를 요구하시는 분들이 다시 생겼는데요. 절대로 안드리니까 부디 포기해 주시길..... (저작권 법에 위배...) 번 호 : 7407 / 7415 등록일 : 2000년 03월 27일 23:34 등록자 : THEBUR 조 회 : 17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8. 불법 조작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28.불법 조작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68 게 시 일 :00/03/27 05:46:08 수 정 일 : 크 기 :8.5K 조회횟수 :175 “류드.” “…….” “힘들겠지만 이 일이 일어나게 된 자초지종을 얘기해주겠느냐?” 별로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교장의 표정이 너무 다정해서 해주 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잠시 통증을 억누르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여기오기 전에……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께서 절 발견하기 전에…… 그 녀 석들하고 싸웠었어요……” “왜 싸웠지?” 교장이 내 말을 중간에서 끊고 물음을 던졌다. 길게 말하기 싫어서 난 짧게 대답했다. “녀석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거든요.” “무슨 시비?” 으윽……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거야, 귀찮게? “제가 길을 막았다고 하면서 먼저 절 쳤어요. 그래서 싸우게 됐죠.” “음…… 그렇구나. 그 다음은?” 이거 꼭 심문 받는 것 같구만……. “그러다가 오늘 그 녀석들하고 또 마주치게 됐어요. 당연히 녀석들이 먼저 공격해왔고, 전 빗자루를 들고 싸웠죠. 3 대 1 이라 곧 인정사정없이 맞았지 만요.” 인정사정없이 맞았다는 말에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내 상태를 보 면 그 녀석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맞았다는 내 말을 누구나 수긍할 테니까. “근데 어떻게 그 아이들을 죽인 거냐?” 본래부터 교장 할배는 그 질문을 가장 하고 싶었던 듯 진지한 표정으로 물 었다. 난 교장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로‘할아범이라면 내가 어떻게 녀석 들을 죽였는지 알텐데?’란 표정을 지으면서. “음…….” 교장은 나직한 신음 소리를 발했다. 내 표정에서 자신이 추측하던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에게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넌 마법으로 그 아이들을 죽인 거냐?” “…… 예.” 이번에도 얼굴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하려 했지만 교장 할배의 표정이 대답 을 바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교장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이었구나…… 하지만 믿을 수가 없어…….” 흘…… 뭐가 믿을 수 없다는 거냐? 내가 마법을 썼다는 물적 증거가 충분히 있을 텐데? 우선 옥상 바닥이 파이어 월에 의해 그을렸을 테고, 가장 결정적 으로 내 앞에 불에 탄 해골들이 있었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내가 자백 까지 했으니 확실하잖아? “류드…… 마법을 배운 적이 있었느냐?” 교장은 나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아무 탈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포기해 버리고 생각나 는 데로 대답했다. “예전에…… 배웠던 것 같은데요…….”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맨처음 널 봤을 때는 너에게서 그 어떤 마 나 파장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정말로 하룻만에 1써클을 회전시켰단 말이 냐?” 교장은 또다시 매우 예리한 질문을 했다. 그러나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 사건이 있은지 4시간이 지났고…… 지금의 너에겐 마나 파장이 느껴지 지 않는구나. 그것은 마나가 완전히 결합했다는 뜻이지. 1써클의 마나 결합 시간은 2시간, 2써클의 마나 결합 시간은 5시간이니까…… 네가 2써클의 마 나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직도 마나 결합이 일어나서 마나 파장이 방출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 파장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넌 정말로 1써클인 듯 하구나…….” 나원…… 마나 결합 속도는 가지고 있던 마나를 모두 소모했을 때에 마나가 다시 모이는 시간이잖아? 만약 내가 파이어 월을 사용할 때 약간의 마나만 소모했다면 설령 내가 3써클의 마법사라고 해도 4시간 안에 충분히 소모됐던 마나가 모두 모이잖아?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나? “…….” 교장 할배는 말없이 내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교장의 눈빛은 상당히 복잡했 다. 날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심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 리 내가 학생이라도 해도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분명히 곱게 넘어가지는 않 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류드, 마법 이론 선생인 샤느미아르를 아느냐?” 얼레? 샤느미아르? 처음 듣는 이름…… 잠깐, 내가 아는 마법 이론 선생은 샤느 선생밖에 없는데…… 샤느미아르…… 그게 샤느 선생의 이름인가? “샤느 선생님이요?” “그래.” 내 물음에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에게 아주 묘한 질문을 던 졌다. “샤느 선생하고는 어떤 관계냐?” 헐…… 왜 이 할아범까지 나서서 그러지? 혹시 이 할배도 샤느 선생에게 흑 심이 있는 거 아니야? 빌리컨트라는 녀석도 그렇고 이 교장 할아범도 문제야, 문제……! “샤느 선생에게 도대체 어떻게 보였길래 그렇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거냐?” 얼라리? 강력한 지지? 무슨 소리야? “강력한 지지라뇨?” 난 당연히 그것에 대해 물었고, 교장은 차근히 설명해주었다. “오늘 선생들끼리 회의를 열었다. 너의 처리 문제 때문이지. 대부분의 선생 들은 널 퇴학시키자고 했단다. 하지만 샤느 선생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널 변호했지. 분명히 네게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 다고 하면서.” 헐…… 샤느 선생이 날 위해서 그런 구차한 변명을 하다니…… 그러다가 짤 리는 수가 있는데…… 나 때문에 짤리면 샤느 선생한테 미안하잖아……. “넌 우리가 네가 한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 교장은 속마음을 전혀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게 통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자포자기한 어조로 말했다. “전 그냥 학교 결정에 따를 겁니다…….” “포기한거냐?”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내 대답에 교장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교장의 얼굴을 똑바 로 쳐다보았다. 우리 둘은 그렇게 잠시 동안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했다. 그 러나 통증 때문에 난 교장보다 먼저 눈을 깜빡였고, 승리자가 된 교장은 나 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학교에서 계속 마법을 배우고 싶으냐?” “……?” 얼레?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물어보는 거지? 어차피 날 퇴학시킬 거 면서? 아니면 깜방에 보내거나. “마법을 배워서…… 나와 함께 마법에 대해 연구하지 않겠느냐?” “…….” 여기서 그렇게 하고 싶다라고 대답하면…… 날 퇴학시키지 않겠다는 소리인 가? 하지만 난 이미 세 명이나 죽인 살인자인데…… 내가 계속 이 학교에 다 닐 수 있을까? “난 류드, 너 같은 인재를 이런 하찮은 일로 놓치고 싶지 않다.” 그 말을 하는 교장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그래서 난 크게 놀라고 말았 다. 사람을 셋이나 죽인 일을‘이런 하찮은 일’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이 할아범, 무서운데? 사람을 죽인 일이 하찮다니…… 그럼 이 할 아범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은 뭐야? 마법 연구뿐인가? 그런데 왜 마법을 연 구하는 거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진리 탐구? 단지 그것 뿐인가? 그것 뿐 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데? “어떻게 하겠느냐, 류드? 만약 네가 계속 이 학교에서 마법을 배우고 싶다 면 내가 어떻게든 손을 쓰겠다.” 교장의 표정에서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라는 확고한 의지가 엿보였다. 교장 의 그 말은 날 처벌하지 않겠다는 소리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 었다. 그래서 난 갈등하지 않고 대답했다. “마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전 세 명이나 죽였는데…… 그 녀석들의 부모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난 가장 우려되는 질문을 교장에게 했다. 그러나 교장은 보일락 말락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비웃음 비슷한 것이 담겨있었다. “후후, 이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단다.” 교장의 그 말과 표정은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교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애인이 배신을 했다고 그 나라를 없애버린 마르크스처럼, 무엇인가가 비뚤어 진 모습이었던 것이다. “전 교장 선생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 말밖에 달리 할말이 없었다. 교장이 아무리 사악한 음모를 가지고 있다 고 해도 지금의 나에게는 교장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나 이에 콩밥 먹으면 앞날이 씨커멓게 변해버릴 테니까 말이다. “좋아. 대신 이것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허걱? 약속? 내가 이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겠지……? “반드시 마법사가 되어 나와 함께 마법을 연구하자꾸나.” “…….” 흘…… 그건 한 가지의 약속이 아니잖아? 반드시 마법사가 되라는 첫번째 약속과 교장 할배와 함께 마법을 연구하자는 두번째 약속, 합하면 두 개인데? 정말 사악한 할아범이구만……! “예.” 한 가지 약속이든 두 가지 약속이든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어서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교장은 만족한 듯이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이번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반드시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리할 테니까 말이다.” 무서운 교장이야…… 앞장서서 학생의 잘못을 덮어버리려 하다니…… 아무 래도 이 교장 할배는 비리를 무수히 저지르는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이 아프냐?” 으윽……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다니…… 내 꼴을 보면 아픈지 안 아픈지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근데 내가 이 꼴 됐는데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거 야? 혹시…… 병원비가 아까워서? “흠, 내가 한 번 더 치유마법을 걸어주겠다. 심신을 편안히 하거라.” 얼레? 치유마법? 그렇다면 교장이 나한테 치유마법을 걸어줬었다는 건가? 나 같으면 치유마법을 거느니 차라리 병원에 데려가겠다!!! “치유지수(治癒之手) 연골합피(連骨合皮) 군력무한(君力無限) 상료통거(傷 療痛去).” 허거걱? 방금 교장이 나불나불댄 것이 치유마법의 주문?! “……!” 교장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단지 입만 놀린 것이었지만 난 교장의 몸 주위에서 방출되는 강렬한 마나 파장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마나 파장은 내 몸 구석구석으로 흡수되듯이 사라졌다. 그러자 내 몸이 점점 뜨거 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통증도 점차 가라앉아 갔다. ━━━━━━━━━━━━━━━━━━━━━━━━━━━━━━━━━━━ 번 호 : 7354 / 7360 등록일 : 2000년 03월 28일 23:49 등록자 : THEBUR 조 회 : 20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29. 불법 조작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29.불법 조작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78 게 시 일 :00/03/28 06:14:24 수 정 일 : 크 기 :8.8K 조회횟수 :186 째깍째깍…… 교장 할배는 계속 나에게 치유마법을 걸었고, 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치료 를 받았다. 그리고 내 옆에 있던 라이는 넉살좋게 잤다. 방 안에는 시계 소 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후…… 이제 어떠냐?” 치료를 다 마쳤는지 교장이 길게 한숨을 쉬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난 몸을 살짝 뒤척여 보았다. 그러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방금 전보다는 훨씬 나아져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요?” “그럴거다. 4써클의 마나를 소모했으니까. 좀전에 썼던 것까지 합하면 내 모든 마나를 다 소모한 셈이지.” 교장은 많이 피곤해 보였지만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교장을 믿지 않기 로 했다. 진돗개의 탈을 쓴 호랑이일 수도 있으니까. “그럼 편히 쉬고 있어라.” 교장은 그렇게 말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교장이 나가자 방 안은 또다시 정 적으로 휩싸였다. 난 고개를 돌려 내 옆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를 쳐다 보았다. 녀석은 전혀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팍 뭉개버리고 싶었 지만 본래 난 라이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참았다. 흠…… 그나저나 교장 할배가 이번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까? 돈으로 해결 할 듯한 움직임이었는데…… 그게 잘 될런지…… 자식을 잃었는데 돈으로 되 겠어? 뭐, 돈 액수가 천문학적인 숫자만큼 크면 그게 먹혀들 지도 모르지만. “일어나거라, 류드.” 우우…… 누가 깨우는 거야…… 졸려 죽겠구만…… 날 그냥 내버려둬……. “그만 자고 어서 일어나라.” 나지막하지만 위엄어린 교장의 목소리였다. 계속 자다가는 죽도록 얻어터질 것만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난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아침 9시를 가리키고 있 었다. “으음…….” “어서 일어나거라. 준비를 해야하니까.” 툭ㅡ! 무엇인가가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천으로 만든 것인 듯 촉감이 부드 러웠고, 두께는 얇고 길이는 길었다. 느낌만으로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손으로 그것을 집어 눈으로 확인해 보았다. “……?” 얼라리? 이건 붕대잖아? 왜 붕대를 나한테 주는 거지? “이걸 왜……?” 당연히 난 교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교장은 어제와는 달리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로 네 몸을 감싸라.” 얼레? “왜요?” “많이 다친 척 해야하니까.” 얼렐레? 다친 척을 해야하기 때문에 붕대를 몸에다 두르라구? 이거야 말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잖아? “제가 왜 다친 척을 해야하죠?” 내 물음에 교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키는 대로 하거라!” “…….” 교장의 그 말에 난 쫄아버렸다. 감히 반항할 수가 없었다. 반항했다간 순식 간에 저승문을 두드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 난 몸을 일으켜 상의를 벗었다. 그리고 대충 붕대를 몸에다 감았다. 우선 배를 붕대로 둘둘 감고, 왼쪽 어깨서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가로질러서 붕 대를 했다. 내가 대충 붕대를 감았을 때 교장이 나직한 어조로 다른 지시를 내렸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것처럼 붕대를 매라.” 흘…… 깁스를 하란 말이야? 몸에다 붕대 두르는 것도 겨우겨우 했는데 팔 과 다리에 붕대 깁스를 하는 어려운 일을 시키다니…… 사악한……! “…….” 교장은 내가 붕대 두르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 일을 다 마쳤을 때, 교장은 처음부터 들고 있었던 듯한 목발 하나를 나에게 건네 주었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발을 다친 척 하거라.” 나원…… 완전히 날 중환자 취급하는구만. 내 몸은 거의 다 나았는데 말이 야. 제길…… 교장 할아범의 저 무서운 표정을 보니 안할 수도 없겠어……. 딱! 난 오른손으로 목발을 짚고 일어섰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목발을 잡아보는 것이긴 했지만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2220년씩이나 됐는데도 이런 목발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좋아, 이제 날 따라오거라.” 교장은 내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상당히 무뚝뚝하고 말 을 걸기 어려운 분위기라 교장을 대하는 것이 꽤 어색해졌다. 그래서 그냥 말없이 교장의 뒤만 목발을 짚으며 따라갔다. 뚜벅뚜벅ㅡ 딱ㅡ 딱ㅡ 나와 교장은 교장실을 나와 3층에 있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교무실로 내려 가는 동안 교장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당부했다. “넌 부상자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네가 죽인 녀석들에게 무수히 맞았다고 진술하면 된다. 그리고 절대 부모들에게 반항하는 짓은 하지 마라. 그냥 반 성하는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된다.” 얼레? 그렇다면 난 지금 네가 저승으로 보낸 그 세 녀석들의 부모들과 만나 러 간다는 뜻? 허거걱!!! 끼이ㅡ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교장은 주저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무 실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떨려왔다. 특히 원형 테이블에 쭉 둘러앉은 살벌한 표정의 부모 세 명을 보고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목발을 짚어나가며 많이 다친 척 했다. “…….” “…….” 교장과 부모들은 말없이 인사만 했다. 그리고 나서 교장이 테이블에 앉았고, 난 열심히 다친 척을 해가면서 교장 옆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는 동안 부 모들은 살벌한 눈으로 날 노려보기만 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교장 선생님?” 학부모 중에 조금 거칠어 보이는 아저씨가 제일 먼저 교장에게 말을 걸었다. 난 살짝 고개를 들어 학부모들을 쭈욱 훑어보았다. 얼씨구…… 학부모들이 모두 행색이 구리잖아? 모두 전직이 의심스러운데? 얼굴들도 꽤 험악하게 생겼구만…… 전혀 아이들을 돌볼 스타일이 아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이제부터 학부모님들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교장은 학부모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서 학부모들에 게 내가 어제 저지른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류드나르가 여러분들의 귀한 자식들을 해쳤습니다. 그러나 그 렇다고 류드나르가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그 아이들이 류드나르를 괴롭혔기 때문에 류드나르가 순간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 지르게 된 것이니 많은 이해 바랍니다.” “흥! 우리 아이가 저 애를 괴롭혔다는 증거 있어요?”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짧은 미니 스커트와 가슴이 깊게 파인 셔츠를 입고 담배를 피워대고 있던 한 아줌마가 코웃음을 치며 교장에게 물었다. 그 아줌마를 보고 교장 할배는 잠깐 눈쌀을 찌푸렸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증거는 보시는 대로입니다. 류드나르는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될 때 까지 맞은 것이죠.” 흘…… 그런 거짓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다니…… 교장 할아범도 믿을 만 한 부류가 아니야……. “정말 저 애가 저렇게 다친 거요? 붕대만 감아놓은 거 아냐?” 허걱! 그렇게 정확하게 꿰뚫어보다니!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외상은 제가 치유마법으로 치료를 했지만 내상은 심하지 요.” 교장은 날카로운 지적을 한 아저씨의 말을 일축했다. 다행히 그 아저씨도 그냥 해본 말이었는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세 명의 부모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교장이 그들에게 부탁했다. “류드나르는 마법에 소질이 많습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맞았음에도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이런 아이가 저희 학교에는 필요합니다. 그 러니 이 애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원…… 지금 그런 말이 먹혀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멍청한 할아범이 야……. “잘못을 용서하라구요? 우리 애가 죽었는데 그런 말이 나와요?!”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아줌마가 교장에게 따지듯이 소리쳤다. 그 아줌마는 옆에 앉아 있는 요상한 분위기의 아줌마와는 달리 상당히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재벌은 아니더라도 부자인 것은 분명했다. “물론 그냥 용서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위로금을 드리 고자 합니다. 위로금만으로 류드나르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류드나르를 범죄자로 만들면 저희 학교로서는 우수한 학생을 잃는 것 과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립니다.” 교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학부모들에게 고개를 숙여보이며 정중한 태도 로 부탁했다. 학부모들은 조금 동요했다. 교장의 정중한 태도 때문이 아니라 ‘위로금’이라는 말을 들어서였다. “어, 얼마를……?” 세 명의 학부모 중에서 거칠게 생긴 아저씨가 교장에게 급히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교장은 그런 아저씨의 표정을 보며 나직히 입을 열었다. “위로금으로 1억원을 드리고자 합니다.” “1, 1억원……!” 학부모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거친 인상의 아저씨와 사창가 에서 생활하는 듯한 아줌마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단지 부자 아줌마만이 냉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흥, 나한테 1억원은 껌값도 안되요. 그런 걸로 내 아이의 죽음을 덮으려구 요? 어림없어요!” 이런…… 저 부자 아줌마한테는 위로금 작전이 안 통할 것 같은데? 이제 난 깜방 가는 일만 남은 건가……? “이보쇼! 이미 모두 지난 일이지 않습니까? 그냥 한 사람 구제하는 셈치고 없었던 일로 하죠?” 거친 인상의 아저씨가 부자 아줌마에게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 던 야시한 아줌마도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하죠? 1억원이 거저 생기는 건데!” 흘…… 저 야시한 아줌마는 아주 노골적으로 나오는구만. 뭐 그럴 수록 나 한테는 더 유리해지는 거지만 말이야. “한 가지의 제안이 더 있습니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학부모들을 쳐다보던 교장 할배가 그들의 말싸움을 중단 시키고 입을 열었다. 부자 아줌마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는 교장에게 물 었다. “그래, 무슨 제안인가요?” “여러분들의 자식들…… 그 아이들의 기록을 말소시키는 겁니다.” “……!” 모두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황당한 제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얼토당토않는 제안이 먹혀들 리 없었다. 겨우 좋아졌던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교장의 말에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 ? 번 호 : 7355 / 7360 등록일 : 2000년 03월 28일 23:49 등록자 : THEBUR 조 회 : 21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0. 불법 조작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불법 조작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79 게 시 일 :00/03/28 06:14:47 수 정 일 : 크 기 :8.5K 조회횟수 :179 “저, 정말이예요?!” 1억원을 주겠다라는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던 부자 아줌마가 상당히 흥분하 여 소리쳤다. 다른 두 학부모들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교장 은 그런 세 학부모들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그 아이들의 기록을 말소시킬 수 있 습니다. 저에게 그런 일은 식은죽 먹기니까요.” “아……!” 세 학부모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들의 그런 탄성에는‘잘됐다’ 라는 감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상황이 전 개되어 갔다. “정말로 그렇게 해주신다면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죠.” 부자 아줌마의 입에서 그런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교장은 나머지 두 학 부모들을 바라보았고, 그 둘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알겠습니다. 1억원은 내일 현금으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아침 10시 쯤 5층에 있는 교장실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해야 할 작업 이 있으니 잠깐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말한 교장은 어떤 책상 서랍에서 흰 종이를 꺼내어 학부모들에게 나 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거기에다가 싸인을 하라고 했다. 교장의 그 말에 학 부모들은 그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나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맨 아래에다 가 싸인을 했다. 난 그냥 그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근데 정말로 제 자식 놈의 기록을 지우는 겁니까?” 교장의 말이 미심쩍은지 거친 인상의 아저씨가 재차 교장에게 확인하듯 물 었다. 그들에게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기 위해서 교장은 확고한 어조로 대답 했다. “그렇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보장합니다.” “저…… 그럼 제 범죄 기록도 지워주시면 안될까요……?” 아저씨는 비굴한 표정을 띄웠다. 난 이 아저씨가 범죄자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인상만 거칠어 보일 줄 알았는데 범죄자라는 소리를 들으니 그 인상 이 더더욱 험악하게 보였다. “그건 안됩니다. 범죄 기록은 정부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손대 기가 어렵습니다.” “제길……!” 교장의 말에 아저씨는 아깝다는 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 부자 아줌 마가 아까 싸인을 했던 종이를 집어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전 교장 선생님만 믿고 있겠어요. 돈은 필요없으니까 꼭 그 녀석의 기록만 깨끗이 지워주세요, 아셨죠?” “알겠습니다.” “그럼.” 교장에게 확신어린 대답을 받고 서야 부자 아줌마는 천천히 교무실을 빠져 나갔다. 야시한 아줌마와 거친 인상의 아저씨 역시 교장에게‘잘 부탁합니다.’ 란 말을 남기고 교무실을 나섰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기쁨에 넘 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학부모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 난 교장에게 말을 걸었다. 교장은 아무 말없이 날 쳐다보았다. 어서 말해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정말 저 사람들이 그 녀석들의 부모예요?” 그것이 가장 미심쩍은 부분이었다. 도저히 부모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행동 들을 그 사람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이다. “허허허, 물론 친부모란다.” 그러나 교장은 그런 내 의심을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난 그래도 믿을 수 가 없어서 교장을 계속 째려봤다. 그러자 교장은 그 사람들에 대해서 차근히 알려주었다. “정말로 죽은 그 아이들의 친부모지. 하지만 부모 노릇을 하지 않는 사람들 이란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 흠…… 왠지 그럴 것 같은 인간들이었어……. “우선 그 인상 험악한 남자는 범죄자란다. 죄목이 참 다양하지. 절도는 기 본이고 유부녀 강간죄도 있는 인간이다.” 흘…… 역시 괜히 인상이 더러운 게 아니었어~ “게다가 도박에 푹 빠져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날렸지. 그래서 아내는 도망가 버리고 아들과 둘이서만 살았다. 당연히 그 아들이 정상적으 로 자랄 수가 없지. 그 녀석이 문제아가 된 것은 그 때문이란다.” 아버지 때문에 그 아들이 삐뚤게 나갔다는 거로군……. “그리고 옷을 이상하게 입고 온 그 여자는 사창가에서 놀고 있지. 그 여자 의 아들은 이름도 모르는 한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일종의 원치 않은 아이였 지. 그래서 그 아들이 삐뚤어지게 자란 것이고.” 그런가……? “마지막으로 그 돈 많아 보이는 여자는 다른 부유한 남자와 재혼한 것이란 다. 전 남편이 알콜 중독자였기 때문에 여자가 이혼 신청을 했지. 이혼을 하 고 나서 얼마 후에 아들이 왔다고 하더구나. 아버지와는 못 살겠으니 어머니 와 같이 살겠다고. 하지만 그 여자는 단번에 거절했지. 지금의 남편에게 자 식이 없다고 속이고 있었거든. 자기 어머니에게 거절당한 그 아이가 문제아 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란다.” 헐…… 결국 모두 가정에 문제가 있었다란 소리잖아? “근데요……” “말하거라.” “그런 걸 어떻게 교장 선생님이 알고 계신 거예요?” 내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도 교장 할아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오 히려 여유로운 미소까지 띠며 대답했다. “세계의 모든 정보는 내 손 안에 있으니까 말이다.” “……!” 허걱?! 그런 말도 안되는……! “나에게 그런 힘이 있기 때문에 널 지켜줄 수 있는 거란다.” 교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기분 좋게 웃어 제꼈다. 하지만 난 별로 기분이 좋 지 않았다. 점점 더 교장 할아범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질 뿐이었다. “근데요……” “응? 또 물어볼 게 남았느냐?” 내가 또 입을 열자 교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교장이 무슨 표정을 짓던 간에 난 교장에게 질문을 했다. “만약 제가 죽인 학생이 아주 성실한 애였고…… 그 부모들이 그 애를 정말 로 사랑했었다면…… 그때도 이런 방법으로 해결하실 생각인가요?” “허허허!” 내 말에 교장은 크게 웃었다. 꼭 비웃음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졌다. 잠시 동안 신나게 웃던 교장은 웃음을 멈추고 날 힐책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방법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그걸 모르고 하는 소리냐?” 으윽…… 웃다가 화를 내다니…… 도대체가 종잡을 수 없는 할아범이라니까 ……. “그 정도는 알아요…….” “그래? 그렇다면 넌 그 상황에서 어떻게 그 부모들의 용서를 구할 것이냐?” 이런…… 내가 한 질문을 나한테 되돌려 보내다니…… 아주 고단수로 노는 데? 무서운 할아범이야……. “에…… 그냥 무조건 빌어야겠죠…….” 별로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없어서 대충 입을 놀렸다. 분명히 무섭게 호통 칠 것이라 생각했건만 예상외로 교장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정답이다. 상대가 착할 때에는 동정심을 유발시키는 방법을 써야 한 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 척 하는 것이다.” 나원…… 이거 뭐 사악한 인간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잖아? 이런 인간 이 교장이라니…… 이 학교가 어떻게 될지 불보듯 뻔하구만……. 벌컥! “교장 선생님!!!” 갑자기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큰소리로 교장 할배를 불렀다. 교 장이 그 말에 응답하기도 전에 그 말을 한 사람이 급히 교장 쪽으로 뛰어와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류드는 어떻게 됐죠? 어떻게 됐어요?” “허허, 진정하게 샤느 선생.” 띵동 띵동ㅡ 헐…… 수업 끝났다는 종소리군. 근데 샤느 선생이 왜 저렇게 헐레벌떡 뛰 어온거냐? 마법 이론 교과서를 들고 있고…… 손에 분필이 묻은 것으로 봐서 는 방금 전까지 수업을 하다가 종치기 직전에 교무실로 뛰어온 것 같군. 나 때문에 뛰어온건가? 내가 걱정되서? “아……!” 교장을 붙잡고 늘어지던 샤느 선생이 날 보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 다. 왜 샤느 선생이 놀라는지 몰라서 내가 멍청히 서 있을 때 샤느 선생은 내 어깨를 잡고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드, 괜찮니?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왜 여기까지 나왔어!” 얼레? 그게 무슨 소리…… 허걱! 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팔과 다리에 붕대 깁스를 하고 있었잖아? 빨랑 풀어버려야겠다! “아, 이건……” 난 즉시 붕대 깁스를 풀어버렸다. 그리고 샤느 선생 앞에서 팔을 돌리고 다 리를 움직여 보였다. 내가 아주 멀쩡하다는 사실에 샤느 선생의 얼굴 표정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허허, 류드는 괜찮다네. 학부모들을 속이기 위해 잠시 연극을 하고 있었던 것 뿐이지.” “…….” 교장의 말을 듣고서도 샤느 선생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 자기 본래 교장에게 물어보려던 말이 떠올랐는지 급히 교장을 돌아보았다. “류드는 어떻게 되는 거죠? 설마 연행되는 건……?” “허허.” 교장은 일부러 웃음으로 시간을 끌며 샤느 선생의 애를 태웠다. 샤느 선생 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샤느 선생이 거 의 울듯한 표정을 짓자 그때서야 교장이 대답을 했다. “류드의 일은 무사히 넘어갔네. 걱정할 필요없어.” “아……!” 교장의 말을 듣고 샤느 선생은 무거운 짐을 털어버린 듯 안도의 탄성을 발 했다. 그런 샤느 선생의 모습에 껄껄 웃던 교장은 표정을 싹 바꾸고 날 쳐다 보았다. 막 웃던 인간이 표정을 확 바꾸니까 굉장히 공포스러웠다. “류드, 너는 반드시 고등부에 들어와야 한다. 그것이 너의 할일이다.” 그렇게 명령조의 말을 한 교장 할아범은 유유히 교무실 밖으로 나갔다. 괜 히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교장의 말은‘내가 널 구해줬으니 은혜를 갚 아라.’라는 소리였으니까. 제길…… 이거 왠지 내가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하 지만 그렇다고 교장 할배의 말을 거역할 수도 없고…… 젠장! “류드!” 속으로 열심히 교장 할배를 씹고 있을 때 샤느 선생이 날 불렀다. 문득 지 금 1교시가 끝났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난 샤느 선생에게 말했다. “전 수업받으러 교실에 가야겠어요. 그럼.” “류, 류드!” 샤느 선생이 날 불렀지만 난 즉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교무실에는 다른 선생들도 있긴 했지만 샤느 선생과 계속 있기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나 와 샤느 선생이 같이 있는 것을 빌리컨트가 봤다간 날 죽이려고 들 테니까. ━━━━━━━━━━━━━━━━━━━━━━━━━━━━━━━━━━━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07:45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1.아픔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아픔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90 게 시 일 :00/03/29 05:41:53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243 <제 7 장> 아픔 웅성웅성ㅡ 내가 교실로 들어가자 우리반 아이들이 날 보고 웅성거렸다. 모두들 날 경 계하고 있었다. 딱 한 명만 빼고. “야, 류드나르!” 1분단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레리오스가 날 발견하고 소리쳐 불렀다. 날 반겨주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끼긱ㅡ 난 내 자리에 앉아 기숙사에서 가져온 교과서들을 정리했다. 그런 날 보고 레리오스가 속삭이듯이 물었다. “네가 문제아 트리오를 죽였다며?” 헐…… 벌써 소문이 퍼진 건가? “…….”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치 빠른 레리오스는 그런 내 침묵이 긍정 의 뜻이라는 것을 금방 간파해 내었다. “그렇구나. 헛소문일 줄 알았는데. 어쨌든 잘됐어~” 얼레? 잘돼? “잘되다니?” “당연히 잘된 일이지. 문제아 트리오가 사라졌으니까. 그 녀석들 때문에 당 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거덩.” 레리오스는 흥얼거리며 계속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러다가 뭔가 궁금한 점 이 떠올랐는지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소문을 들어보니까 마법으로 녀석들을 태워죽였다는데? 널 맨처음 발 견한 녀석이 그러더라고, 네 앞에 불에 그을린 해골 세 구가 있었다고. 그거 정말이야?” 흠…… 날 발견한 사람은 이 학교 학생이었군. 그래서 그 녀석의 입을 통해 서 소문이 퍼진 거구나. 교장이 제일 먼저 날 발견했다면 이런 사실이 퍼지 지도 않았을 텐데. 운이 없었어……. “맞아. 마법을 썼으니까.” 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레리오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 명을 불태워 죽이려면 보통 화염계 마법 가지곤 안될 텐데? 어떤 걸 사 용한거야?” 흘…… 왜 이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는지…… 근데 파이어 월(Fire Wall)이 이 나라 언어로 뭐지……? 아,‘카파 워그’구나……. “카파 워그.” “카파 워그? 그거 마나가 2써클 정도는 되야 쓸 수 있다고 하던데? 너 1써 클 아니었어?” 얼라리? 그런가? 그럼 내가 어떻게 2써클의 마법을 쓸 수 있었던 거지? 이 상한 일이군…… 본래 난 10클래스의 마법사이긴 하지만…… 그건 환타지 세 계나 내가 살던 세계에서만 그렇고…… 여기에서는 1써클의 마법사일 뿐이잖 아? 단지 정신력만으로 자기의 마나 회전 이상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소리인가? “…….” “야, 류드나르. 대답 좀 해라.” 내가 생각만 하고 있자 레리오스가 날 흔들었다. 그래서 짧게 대답했다. “나야 1써클이지…….” “그런데 어떻게 2써클 마법을 쓰냐고.” “글쎄…… 정신력만으로 자기 능력 이상의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내 말에 레리오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무래도 그럴 것 같다. 그런 마법사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까. 하지만 부작용이 있다고 했는데…… 너 뭐 달라진 데 없냐?” 얼레? 부작용? 설마…… 내 키가 줄어들어 있다거나 무슨 병이 생겼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 “모르겠는데…….” “그래? 뭐 멀쩡한 것 같다. 아니지, 정신에 무슨 큰 문제가 생겼을 지도 몰 라. 확실히 머리가 어떻게 됐을걸?” 어쩔씨구리…… 이 녀석이 날 놀리는 거냐? “하하, 진담이고……” 죽을려고 물장구를 치고 있군……. “근데 너 계속 학교에 다니는 거야?” 그것이 제일 궁금한 일이었는지 레리오스는 정색을 하며 물었다. 아직 확실 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교장 할아범이 잘 처리했기 때문에 난 고개만 끄덕 였다. 그러자 레리오스가 얼굴 표정을 묘하게 지었다. “너 뇌물썼지?” “…….” 찔리는군. 내가 뇌물쓴 게 아니라 교장 할아범이 그랬지만 나도 공범자이긴 하니까 할말 없어……. 띵 띵 띵 띵ㅡ 2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어제와 다른 점이 없었다. 아무 것도 달라지 지 않았다. 단지 4분단 뒷자리에 앉았던 세 문제아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그 존재조차 사라졌다는 것만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점심 시간. 난 어제와 마찬가지로 매점으로 향했다. 매점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은 모두 날 쳐다보고 수근대었다. 벌써 모두에게 내가 한 일이 퍼진 모양이었다. 은 발은 이 세계에서 그리 흔하지 않은 머리색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날 알고 있 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거 굉장히 시선들이 부담스럽구만…… 한순간에 전교생에게 유명해지다니 나도 대단해…… 기분 더러워……. “야, 류드ㅡ!” 내가 막 매점에서 빵을 사고 나오려고 할 때 매점 안에 있던 어떤 사람이 내 이름을 불렀다. 난 슬쩍 고개를 돌려 날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오죠룬 의 교복을 입고 있는 금발의 소년이 나한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바 로 네오니스였다. “거기 있었구…… 어엇!” 내 가까이 오려던 네오니스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옆에 있던 에메랄드색 의 단발 소녀가 네오니스의 팔을 잡아당겼기 때문이었다. “왜그래, 네린?” “…….” 네오니스가 네스포린에게 물었지만 네스포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 묵히 네오니스를 끌고 가기만 했다. 네오니스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렇게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은 매점 안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흘…… 네스포린은 네오니스와 내가 친하게 지내는 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 군. 하긴, 세 명이나 죽인 살인범하고 자기 애인이 친하게 지내는 걸 누가 좋아하겠냐. 아…… 앞으로 네오니스를 보기 힘들어질 것 같구만. “류드나르.” 내가 매점을 나와 중앙 계단 쪽으로 가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이번엔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을 생각해내자 내 몸은 굳어버렸다.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야, 에레나. 저 애……!” 옆에 누가 더 있는지 날 부른 사람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차라리 누가 같이 있는 게 더 잘된 것 같아서 난 몸을 돌렸다. 내 생각대로 날 부른 사람은 에 레나였다. 핑크빛의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 “안녕하세요.” 난 에레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에레나는 인사받을 기분이 아닌 모양이 었다. 본래 무표정하긴 했지만 지금은 얼굴이 아예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런 에레나에게 신경쓰느라 에레나 옆에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볼 수 가 없었다. “에레나……!” 옆에 있던 여학생이 에레나의 팔을 잡아끌었다. 네스포린과 마찬가지로 내 가 싫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에레나는 그런 여학생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몇 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 틈을 노려 난 에레나 옆의 여학생을 잠시 살펴보았다. 길게 늘어뜨린 머 리를 한 번 묶은 모습이었는데, 머리색은 검은색이 감도는 짙은 남색이었다. 그리고 에레나와 맞먹을 정도의 미모를 소유하고 있었다. “류드나르. 잠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에레나는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난 말없이 에레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빨리 물어보쇼. 난 라이에게 점심 갖다줘야 하니까.’ 라는 표정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정말로…… 사람을 죽였니?” 에레나의 첫 질문은 내 소문에 대한 진위 여부였다. 빨리 빵을 갖다주지 않 으면 라이가 날 물어버릴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바로 대답했다. “네.” “……!” 내가 너무나 당당히 그렇게 말하자 에레나와 짙은 남색 머리의 여학생이 놀 라는 표정을 지었다. 황당한 모양이었다. “그런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에레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그 옆에 있던 여학생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런 여학생을 진정시키려는 듯 에레나는 그 여학생의 손을 잡고 나서 나에 게 다른 것을 물었다. “사람을 죽였는데…… 죄책감이 들지 않아?” 흘…… 죄책감? 그게 뭣이다냐? “죄책감 같은 건 없습니다.” “……!” 이번에도 둘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라나의 표정은 처음보다 더 굳어 졌고 옆의 여학생의 표정은 더더욱 겁에 질려 갔다. 그런 표정 변화를 보고 있는 것도 꽤 재미있게 느껴졌다. “왜 죄책감이 없지?” 에레나가 또 나에게 물었다. 이 불필요한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해서 난 거 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 녀석들은 불필요한 존재니까요. 아니, 그것보다는 날 죽이려고 했으니 까요. 그래서 죽여버린 겁니다.” “……!” “그 녀석들이 죽었다고 슬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들의 부모조차도.” “어떻게 그런……!” 내 마지막 말에 에레나와 옆의 여학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에 놀라는 에레나와 그 옆의 여학생이 우스울 뿐이었다. “그 녀석들의 부모는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받고 이번 일을 없었던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더 확실히 하기 위해 자기 자식들의 모든 기록을 말소하기 로 했죠. 이제 제가 죽인 녀석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 니다.”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07:47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2.아픔 -2- (다시올립니다.)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아픔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3991 게 시 일 :00/03/29 05:42:16 수 정 일 : 크 기 :8.9K 조회횟수 :235 “……!” 에레나와 옆의 여학생의 눈이 커졌다. 더이상 할말이 없어진 나는 간단하게 둘에게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에레나가 급히 날 불렀다. “잠깐! 넌 그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니? 그렇게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한 그 아이들이?” “…….” 난 기숙사를 향해 막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가 에레나의 말을 듣고 제자리 에 멈추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입만 열어 말했다. “세상에는 그 녀석들보다 불쌍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정도의 고통을 이기 지 못하고 약한 자나 괴롭히는 인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죠.” “넌 그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아는 거야? 그들의 기분을 네가 느 낄 수 있을 것 같니?” 이어지는 에레나의 물음. 난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들의 고통을 제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중 요한 것은 그들이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나쁜 길로 빠져들어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이죠.” “류드나르…… 도대체 너는……!” 에레나는 기가 막히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난 에레나가 더이상 물 어볼 말이 없다고 생각하여 발을 떼었다. 그러나 에레나의 질문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넌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벌레보다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 는 거니?” 으으…… 정말 지겹도록 묻는구만. 짜증나……. “이 세상에는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이 있죠. 그런 인간들은 죽이는 게 상책입니다.” “그건 범법 행위잖아!!!” 마침내 에레나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등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에 레나의 화난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법은…… 힘있는 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 “약자는 법이라는 이름 아래 강자에게 짓밟힐 뿐입니다. 법을 만든 사람들 이 바로 힘있는 자들이니까요.” 계속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 말만 하고 난 기숙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레나가 날 소리쳐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 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터벅터벅ㅡ 난 곧장 기숙사로 향했다.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부 수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난 내 방 문을 거칠게 열었고, 더욱 거 칠게 닫아버렸다. 쾅ㅡ! 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귀가 멍멍할 정도의 소음. 그리고 방 안에 있 던 라이의 나지막한 울부짖음. “크르르릉……” 라이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금방이라도 덤빌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난 라이에게 빵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라이는 빵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 만 노려보았다. “크르릉……!” “…….” 난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라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기분이 더더욱 아래로 추락했다. 당장이라도 녀석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 “지금 나한테 개기는 거냐?” “크르릉……!” 내가 눈을 깔고 오만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라이는 더욱 크게 으르렁거렸다. 갑자기 마음 속에서 쾌감이 피어올랐다. 드디어 화풀이 대상을 찾은 것이다. 화르륵ㅡ! 난 곧바로 카파 보를 만들었다. 주먹만한 불의 공이 빨갛게 타오르며 내 손 바닥 위에서 넘실거렸다. 물론 뜨거웠다. 산소가 연소하여 타고 있는 것이었 기 때문에 당연했다. 이런…… 난 아직 카파 보나 카파 하사로를 상대에게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아닌데…… 빌어먹을! 그럼 라이 녀석하고 맨손으로 싸워야 하잖아? “우웅…….” 내가 막 카파 보를 거두어 들이려 할 때 라이가 갑자기 꼬리를 말며 낮은 울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는 옆에 던져져 있는 빵을 뜯어서 먹기 시작했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참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덤비려던 녀석이 금방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빵을 먹고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내 분노를 녹여주었다. “녀석……!” 난 열심히 빵을 먹는 라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라이는 내가 뭘하든 신 경쓰지 않고 빵만 열나게 먹어댔다. 그런 라이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하, 하여간 라이 녀석 웃기다니까. 이런 녀석을 키우고 있었던 교장 할아 범의 고충을 알 것 같구나. 불쌍한 할아범~ 쓰윽ㅡ 쓱ㅡ 난 열심히 교장실 바닥을 대걸레로 닦았다. 계속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 던 교장은 기지개를 쭉 켜더니 날 불렀다. “류드.” “예.” “앞으로 한 달 정도 못볼 것 같구나.” 얼레? 그게 왠 반가운 소리? “어디 가시는 거예요?” “그래. 네 녀석 죄를 없애려고 여기저기 뇌물을 뿌려서 학교 재정이 최악으 로 되버렸으니까 돈벌러 가야지.” 으헥? 여기저기다 뇌물을 뿌려? “뇌물이요?” “당연하지! 그럼 그 인간들이 공짜로 기록 말소를 해줄 것 같으냐?” 헐…… 그 녀석들 학부모들에게 돈 주고, 공무원에게 돈 주면 도대체 얼마 나 깨진 거냐? 엄청나겠군…… 그나저나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드디어 나도 어둠의 길로 빠진 건가? “근데 어떻게 돈을 버시는데요?” 내 물음에 교장은 껄껄 웃었다. “허허, 아직 알 필요없다. 네가 훌륭한 마법사가 되면 나와 같이 돈벌러 나 가야 하니까 그때가 되어 알려줘도 충분해.” 얼씨구? 나도 돈벌러 나가야된다고라? 이젠 아예 자기 노후 대비를 위해 날 부려먹으려고 하다니……! “참, 류드. 4층에 있는 선생 기숙사로 가서 샤느 선생을 불러 오너라.” “예? 선생 기숙사라뇨?” “본관 2층과 4층은 학교 선생들의 기숙사로 쓰고 있다. 모르고 있었느냐?” 이런…… 언제 가르쳐준 적 있수? 가르쳐 주지도 않은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맨날 중앙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1층에 있는 매점만 이용하는데 뭘. “4층이요? 근데 샤느 선생님 방을 어떻게 찾아요?” “샤느 선생의 방은 404호다. 설마 숫자도 못 읽는 건 아니겠지?” 으윽…… 이 할아범이 날 어떻게 보고……! “근데요…… 꼭 제가 가야 하나요……?” 왠지 샤느 선생 방에 가기가 싫어서 슬쩍 발뺌을 해보았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교장의 무서운 호통 소리 뿐이었다. “너말고 누가 가느냐? 이 늙은 내가 가랴? 당장 불러와!” “예…….” 우씨…… 괜히 말했다가 혼만 났잖아? 터벅터벅ㅡ 난 4층에 있다는 샤느 선생의 방으로 향했다. 4층에는 방들이 즐비하게 늘 어서 있었다. 4층의 모든 방이 학교 선생들의 거처로 쓰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방음 장치가 잘 되있는 건지 선생들이 모두 자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조용했다. “404호…….” 이리저리 찾아다니다가『404ho』라고 써져있는 팻말이 붙은 방문을 발견했 다. 그리고 노크를 했다. 똑똑똑ㅡ “누구죠?” 방 안에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확실히 샤느 선생의 목 소리라고는 단정할 수 없어서 정체 확인을 목적으로 질문을 했다. “저 류드나르인데요, 샤느 선생님이신가요?” “……” 얼레? 대답이 없네? 내가 잘못 찾아온 건가? 하지만 교장 할아범이 분명히 404호라고 했는데? 이 방은 404호고? 그럼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은 누구… … 벌컥! 내가 다시 한 번 안에 있는 사람의 정체를 물어보려 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샤느 선 생이었다. “류드로구나! 내 방은 어떻게 알았어?” 내가 와서 상당히 반가워하는 표정. 하지만 난 충격먹고 있었다. 샤느 선생 은 막 상의를 갈아입으려고 했던 모양인지 위에는 브래지어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흐흐…… 브래지어가 흰색이로군…… 가슴에 볼륨도 있고…… 아니아니, 지금 내가 뭐하는 거냐? 이럴 때가 아닌데! “무슨 일이니? 참, 어서 들어와!” 샤느 선생은 지금 자기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나보고 들어 오라고만 했다. 샤느 선생의 말대로 방 안에 들어가면 완전히 치한으로 몰릴 것 같아서 한마디했다. “저기…… 옷을 갈아입는 도중이셨던 것 같은데요…….” “……!” 내 말에 샤느 선생은 그제서야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연스럽 게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꺄악!!!” 쾅! 샤느 선생은 부서져라 문을 닫고는 방 안으로 숨어버렸다. 이미 이런 상황 을 예상했었기 때문에 난 계속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때 샤느 선생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 있던 선생들이 일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야, 샤느?!” “샤느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헐…… 샤느 선생의 비명 소리에 남자 선생, 여자 선생할 것 없이 모조리 튀어나오는구만. 인기도 많어~ “아, 아무 것도 아니예요!” 방 안에서 샤느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선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각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일부 남자 선생들이 남아서 날 째려 보고 있었다.‘넌 왜 여기있는 거냐?’라는 표정. 그래서 그런 선생들에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 심부름입니다.” “…….” 내 말에 남자 선생들은 못 미더운 표정을 짓고는 방 안으로 사라졌다. 그들 에게 있어서 샤느 선생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가 경계의 대상인 듯했다. “무, 무슨 일로 찾아왔니?” 안에서 샤느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난 간단히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께서 교장실로 오라고 하셨거든요.” “그, 그래? 알았어.” 스으ㅡ 문은 아주 부드럽게 열렸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하고 나온 샤느 선생은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문을 닫고 잠갔다. 그리고는 나에게‘어서 가자’라고 하 고는 급히 5층으로 올라가버렸다. 흘…… 샤느 선생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옷 안 입었다고 가르쳐줄 걸 그랬 나? 이번 일 때문에 샤느 선생의 눈 밖에 난 것 같은……! “…….” “…….” 나와 샤느 선생은 아무런 대화없이 교장실까지 갔다. 그리고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응? 샤느 선생, 얼굴이 빨갛구먼. 열 있는 거 아닌가?” “아, 아니예요…….” 샤느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난 샤느 선생의 뒤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샤느 선생이 얼굴이 어떤 지는 볼 수 없었다. 흠…… 방금 전에 볼 때는 얼굴색이 멀쩡했으니까…… 역시 부끄러워서 그 런 건가? 으…… 이 사실이 빌리컨트의 귀에 들어가는 날엔 녀석이 사생결단 을 내자고 덤벼들지도……!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23:03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3.아픔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아픔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006 게 시 일 :00/03/30 06:15:05 수 정 일 : 크 기 :8.8K 조회횟수 :181 “그런데 무슨 일로 절 부르셨죠?” 그 사이에 마음을 안정시켰는지 샤느 선생은 조금 사무적인 어조로 교장에 게 물었다. 갑작스런 샤느 선생의 변화에 교장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고 말했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네. 단지 한 달 정도 학교를 떠나야 할 일이 생겨 서 류드의 감독을 샤느 선생에게 맡기려는 것 뿐이야.” “네? 류드의 감독이라뇨?” “류드가 청소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시하는 거지. 아르바이트는 확실하게 해야하니까.” 교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짚었다. 내가 멀 뚱멀뚱 쳐다보자 교장 할배는 씨익 미소를 띠었다. “청소 열심히 하거라, 류드. 청소 안 하고 놀면 아르바이트비는 없다고 생 각하고.” “…… 예.” “그럼 한 달 후에 보자꾸나.” 교장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유유히 교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방 안에 는 나와 샤느 선생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저……” “……!” 내가 입을 열자 샤느 선생이 몸을 움찔했다.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전 학교 옥상 청소하러 갈게요.” 난 샤느 선생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집어들었다. 그 러자 샤느 선생이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도 가야지! 류드를 감시해야 하니까.” 으윽…… 감시는 무슨 감시야? 깜시라면 몰라도…… 흠흠, 그나저나 교장 할아범은 왜 샤느 선생에게 내 감시를 맡긴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라나? 그 할아범은 괜한 일을 할 인간이 아닌데……. 쓱쓱ㅡ 내가 본관 옥상에 올라가서 열심히 빗질을 하는 동안 샤느 선생은 옥상 난 간에 기대어 학교 경치만 구경했다. 샤느 선생의 그런 행동이 청소하는데 방 해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뭐라 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류드.” 학교 경치만 구경하고 있던 샤느 선생이 고개는 여전히 옥상 바깥을 향한 채 날 불렀다. 그래서 나도 계속 청소하면서 대답했다. “예.” “마법 열심히 수련하고 있니?” 윽…… 그러고 보니 마나 회전시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잖아? 이런 이런…… 이래가지고 무슨 마법사가 되냐…… 어제하고 오늘하고 이런저런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원……. “왜 대답이 없어? 설마 마법 공부하기 싫어진 거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샤느 선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불안 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마법을 계속 배우고 싶어요. 근데 어제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 서 마법 수련할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렇구나. 난 또…….” 그제서야 샤느 선생은 안심하는 눈초리였다. 내가 묵묵히 옥상 청소 하는 것을 빤히 쳐다보던 샤느 선생이 입을 열었다. “교장 선생님은 류드가 마법사 되길 바라시고 계셔. 그건 알지?” “예.” “근데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어. 교장 선생님이 전에 없이 편입생을 받아들 였다는 건 그만큼 류드를 인정하고 계시다는 건데, 어떻게 해서 교장 선생님 눈에 띄게 된거야?” 헐…… 그건 내가 교장 할배에게 묻고 싶은 말이우. 왜 교장 할배는 나한테 마법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거지? 같은 은발이기 때문에? 아니면 라이가 날 잘 따르기 때문에? “교장 선생님이 저를 왜 인정하시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달리 할말이 없어서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자 샤느 선생은 조금 시무룩해하 는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 얘기해주기 싫은 모양이구나…….” 얼씨구…… 샤느 선생, 혹시 스파이 아니야? 나에 대해서 점층적으로 뭔가 를 알아내려는 듯한……! “…….” 난 입을 다물었다. 샤느 선생에게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황당한 얘기 를 해주기가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샤느 선생은 나직히 한숨을 쉬었지만 이 내 밝게 웃었다. “내가 왜 마법학교 선생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니?” 얼레? 난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내가 그런 걸 알아서 뭐하게? 웃긴 선생이 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별로 궁금하지 않은데요.’라고 말하면 샤느 선생 이 날 죽이려고 하겠지? “왜 마법학교 선생님이 되셨는데요?” “후훗.” 샤느 선생은 학교 경치를 바라보며 묘한 웃음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무엇 인가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 내는 소리였다. “나……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어…….” 허걱?! 샤느 선생이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구? 이 사실이 빌리컨트의 귀에 들어가는 날엔 난리나겠구나! “그때가…… 아마 16살이었을 거야.” “…….” 흘…… 샤느 선생에게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라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기 분이 나빠지는구만. 나도 샤느 선생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던 건가? 쯧쯧, 내 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 그 사람을 정말로 좋아했었어…… 하지만…… 그 사람은 날 좋아하 지 않았지…….” 얼레? 그 사람이라는 작자는 눈이 무지하게 높았나? 샤느 선생과 같은 여자 를 싫어하다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인간이야……. “왜요? 샤느 선생님을 싫어할 남자는 없을 것 같은데.” “정말?” 내 말에 샤느 선생은 기쁜 듯이 웃었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며 추억에 젖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당시의 난…… 촌스러웠거든. 안경도 큼지막한 걸로 쓰고…… 머리도 무작 정 풀어헤치고 다녔고 말이야…….” 헐…… 저렇게 화장발 잘받는 선생이 촌스러웠다고라? 왠지 상상이 안 가는 걸? 근데 안경을 썼다니? 지금은 안 쓰고 있는데? “안경을 쓰셨어요?” “그래. 지금은 콘텍트렌즈를 하고 있지만.” 콘텍트렌즈라…… 난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불편할 것 같은 데…… 어쨌거나 샤느 선생은 안경을 써도 예뻐보일 것 같은……. “하아…….” 샤느 선생이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경 위를 말해주려는 듯이 보였다. 물론 샤느 선생이 직접적으로 그 사람과 헤어 졌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란 말 자체에‘지금은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어서 그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 다. “그 사람은 다른 애를 좋아하고 있었어…… 당시의 나보다 훨씬 예쁜 애였 지…… 하지만 난 그 사람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용기를 내어 말했어…… 좋 아한다고…….” 오호~ 고백을 했었구만! “내가 고백하니까…… 그 사람이 말하더라…… 마법학교에 들어가서 훌륭한 마법사가 되어 나오면……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얼라리? 그게 왠 말이다냐? 좋아한다는 거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야? 굉 장히 말을 이상하게 하는 인간이었잖아? “그래서…… 난 마법학교에 들어갔어. 바로 여기 오죠룬이지. 그리고 5년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마침내 중등부를 졸업하게 되었어.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말이야…….” 으헉? 중등부 졸업하는데 5년? 그렇게나 오래 걸린단 말이야? 도대체 여기 수준은 어느 정도로 높길래……! “중등부를 졸업하고 나서…… 난 그 사람을 찾아갔어…… 하지만 그 사람은 거기에 살고 있지 않더라…… 사귀던 여자하고 결혼해서 다른 곳에 살고 있 다란 소리를 이웃에게 들었어…… 한마디로 말해서…… 그 사람은 나에게 마 법학교에 들어가란 말로써 날 차버린 거였지…… 그것도 모르고 난 열심히 마법 공부만 했고 말이야…….” 샤느 선생의 눈가에 약간의 물기가 맺혔다. 이럴 때에는 손수건을 꺼내서 샤느 선생의 눈물을 닦아주면 분위기가 아주 무르익을(?) 테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손수건 비슷한 물건도 없었다. “나…… 바보같지……?” 헐…… 잘 아는군. “그 사람에게 차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 홧김에 그때의 스타일을 확 바 꿔버렸어. 안경을 집어던지고 콘텍트렌즈로 바꿔끼고…… 화장도 하게 됐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그때부터 하게 된거야.” “그러세요? 잘됐네요.” “……?” 내 말에 샤느 선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샤느 선생이 더 오해하기 전에 난 급히 말을 이었다. “만약 그때 그 사람이 샤느 선생님과 결혼했었다면 지금의 샤느 선생님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 고마워, 류드.” 샤느 선생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누구나 그러겠지만 샤느 선생에게는 웃 는 모습이 확실히 잘 어울렸다. 저런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기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저, 근데요……” “응? 왜?” “그 사람…… 은발이었나요?” 내 물음에 샤느 선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은발? 아니야.” “그럼 저하고 생김새가 비슷한가요?” 흘…… 나하고 비슷한 생김새라면 샤느 선생이 그 남자를 좋아했을 리 없었 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아니. 류드하고는 전혀 다르게 생겼어.” 얼레? 은발도 아니고, 나하고도 다르다고? 근데 왜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거지? 이유가 뭐여? “어머, 류드 혹시 질투하는 거야?” 갑자기 샤느 선생이 그런 황당한 얘기를 꺼냈다. 내가 그 남자에 대해 물어 본 의도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 그 사람하고 저하고 비슷한 점이 없는데 왜 저한테 잘해 주시는 건지 궁금해서…….” “응…… 그건……” 그제서야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 샤느 선생은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건 류드가 마음에 들어서야.” 얼라리? “류드를 보고 있으면 편안한 느낌이 들거든.” 으힉? 날 보면 편안하다구? 내 열아홉 평생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 “훗.” 내가 묘한 표정을 짓자 샤느 선생이 나직히 웃었다. 왠지 놀림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나려고 할 때 샤느 선생이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야. 류드는 왠지 모르게 나이에 비해서 훨씬 어른스럽다는 느낌이 들어. 음…… 기대고 싶다는 느낌이랄까?” 흘…… 기대고 싶은 느낌? 그 말은 내가 애늙은이라는 뜻? “류드, 혹시…… 여자 친구 있지 않니?” 샤느 선생은 조금 긴장된 듯한 얼굴로 나에게 질문했다. 조금 뜻밖의 질문 이라 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샤느 선생이 말을 이었다. “왠지…… 류드는 많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아…… 그래서 여자 친구도 많이 있을 것 같구…….” 나원, 많은 일을 겪었다고 여자 친구가 많냐? 참 단순의 극을 치달리는 생 각을 하는구만. 그나저나 뭐라고 대답하지? 솔직하게 말해버려?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23:05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4.아픔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아픔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007 게 시 일 :00/03/30 06:15:27 수 정 일 : 크 기 :7.7K 조회횟수 :185 “…… 있어요.” 이런…… 말해버렸다…… 이제 솔직하게 나가는 수밖에 없겠군……. “…… 정말이니……?” 조금 떨려나오는 샤느 선생의 목소리. 괜히 샤느 선생이 날 좋아하고 있다 고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목소리였다. “두 명이었는데……” “두 명?!” 헐헐, 샤느 선생이 저렇게 놀라는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구만. 나도 별 수 없는 녀석인가? 하긴, 예쁜 여자 싫어할 남자가 어딨겠어~ “한 명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리고…… 다른 한 명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다른 남자와 결혼이라니? 도대체 좋아했던 사람의 나이가 어떻게 되길래… …?” 이제 17살밖에 안된 녀석의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말에 샤느 선생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간단하게 말했다. “연상이었어요.” 연상은 연상이지. 엘프라서 몇십 년 연상인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당시의 아세트의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연상…….” 샤느 선생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몇 년 연상인지 알고 싶은 듯 나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다른 한 명은?” “……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의아해하는 샤느 선생. 별로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샤느 선생이 이미 자신의 옛날 일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나도 해야했다. “모르겠어요. 그 애와 어떻게 될지.” 흘…… 이렇게밖에 말할 수가 없어……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말해줘봤자 믿지도 않을테고. 제발 더이상 묻지 말아주……. “…….” 다행히 샤느 선생은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한마디만 했을 뿐이었다. “류드도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헐헐, 이 세상에 아픔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것 같 수? 사람은 아픔 한두 개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이라구. 아픈 만큼 성 숙해진다라는 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지. 그렇다고 내가 아픔 같은 걸 좋 아할 리가 없지만. 쓱쓱ㅡ 난 옥상 청소를 계속했다. 샤느 선생도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대어 학교 경치 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좀전에 내가 자기 몸을 봤다는 사실을 벌써 까맣게 잊어먹은 것 같았다.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샤느 선생의 눈 밖에 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류드.” 흘…… 또 왜 불러……. “옥상 청소 끝나고 또 청소할 곳이 있니?” 난 또…… 이상한 질문인 줄 알았잖아……. “아니요, 없어요.” “그래? 그럼 내 방에 가서 뭐 좀 마시지 않을래?” “아, 예……” 난 뭐 좀 마신다는 말에 아무 생각없이 대답하다가 샤느 선생이 한 말을 모 두 알아듣고 나서 크게 놀랐다. 특히‘내 방에 가서’라는 말이 문제였다. “아, 아니예요. 숙제할 게 많이 있어서…….” “그래……?” 내 말에 샤느 선생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마음을 바꿀 내 가 아니었다. 이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 특히 남자 선생들도 모두 샤 느 선생에게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나와 샤느 선생 단 둘이 한 방안에서 음 료수를 마시는 장면을 보게 되면…… 그 인간들이 날 가만둘 리가 없기 때문 이다. “그럼 전 기숙사로 돌아갈게요.” 옥상 청소를 다 끝내놓고서 난 샤느 선생에게 허락을 구했다. 샤느 선생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교장실에 두고 온 뒤에 급히 내 방으로 향했다. 휴~ 겨우 샤느 선생의 마수에서 빠져나왔군. 하여튼 무서운 아줌마라니까. 학생을 막 유혹할려고 그러구. 에레나 외에 또 주의해야할 여자가 하나 더 늘었어~ “류우드으~” 내가 막 M3관으로 들어가려 할 때 누군가 내 이름을 아주 이상하게 불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M3관 현관 옆에 숨어 있었다. “네린이 보기 전에 빨리 들어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네오니스였다. 내가 안 으로 들어가자 네오니스는 날 끌고 계단 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주위 를 두리번 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너하고 접선하기 무쟈게 힘들구나~” “근데 무슨 일이야?” 내 물음에 네오니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말도 마. 네린이 나보고 너 만나지 말라고 협박하고 있어서 그렇거든. 아 까 매점에서 네린이 날 끌고가는 거 봤지? 너한테 글 읽는 법을 가르치는 아 르바이트를 해야한다고 말을 해도 씨알도 안 먹히더라.” 헐…… 네오니스도 고전하고 있군. 왜 여기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잡혀사는 거냐? 앞날이 걱정이야, 걱정~ “빨리 올라가자! 네린에게 들키기 전에!” 네오니스는 재빨리 날 끌고 5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5층 복도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계단 아래로 몸을 숨겨버렸다. “왜 그래?” 갑작스런 네오니스의 움직임에 놀라 내가 묻자, 네오니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5층 복도를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네, 네 방 앞에 네린이 서 있어……!” “……?” 난 슬쩍 5층 복도를 쳐다보았다. 네오니스의 말대로 네스포린이 내 방문 앞 을 서성이고 있었다. 네오니스가 내 방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네오니스는 네스포린에게 들키지 않게 그녀를 주시하면서 나에게 방법을 물 었다. 어떻게든 내 방에 들어가고 싶은 모습이었기 때문에 난 네오니스에게 안심하라고 말했다. “내가 네린을 쫓아낼 테니까.” “……?” 의아한 표정을 짓는 네오니스를 뒤로 하고 난 네스포린에게 다가갔다. 내 방문 앞을 서성이던 네스포린이 혼자서 걸어오는 날 발견하고 날 불렀다. “류드나르!”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난 최대한 리얼한 표정으로 네스포린에게 인사했다. 네스포린은 혹시나 네 오니스가 따라오지 않았나 내 뒤를 힐끔힐끔 거리다가 네오니스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에게 물었다. “네오는 어디있어?” “네오 선배님이요? 아까 공원 쪽으로 가시던데요?” “공원?” 네스포린은 정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묵묵히 네스포린 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나의 그런 자연스러운 표정에 마침내 네스포린 이 넘어가고 말았다. “알았어. 혹시나 네오를 만나거든 나 좀 보자고 그래.” “예.” 네스포린은 그 말을 남기고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계단에 서 있던 네오 니스는 어느 틈엔가 모습을 감추어서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옥상 계단 쪽에 숨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 난 네스포린이 아래층으로 완전히 내려갔음을 확인하고 나서 옥상 계단 쪽 에 있을 네오니스를 불렀다. “네오, 이제 됐어!” 내가 부른지 얼마 되지 않아 네오니스가 옥상 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었 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이리저리 살펴보고 네스포린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내 쪽으로 왔다. “휴, 정말 갔네? 너 대단하더라. 난 아무리 네린을 속이려고 해도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데.” 흘…… 그건 네가 연기를 잘 못하니까 그렇지. 나야 워낙 사악한 인간이라 상대를 속이는 것쯤은 아주 쉽게 한다고~ 얼굴에 철판 깔아놓은 사람이 뭘 못하겠냐~ “들어가자.” 덜컥ㅡ 나와 네오니스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어김없이 라이 가 침대에서 자빠져 자고 있었다. 그러나 나와 네오니스가 안으로 들어오자 자고 있던 라이가 발딱 일어나더니 막 짖어댔다. “왕왕!” 흘…… 배고픈 모양이군. 그러고 보니 벌써 저녁먹을 시간인가? “기다려, 임마.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 벌러덩ㅡ! 내 말이 끝나자마자 라이는 다시 침대에 자빠져 자기 시작했다. 방금 라이 가 잠꼬대를 한 건지, 아니면 나도 저녁을 안 먹었다는 말에 저녁 사 올 때 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잠이나 보충하겠다는 뜻으로 다시 잠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라이가 희한한 강아지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하여간 라이는 보면 볼수록 신기해~” 네오니스는 잠든 라이를 보고 히죽히죽 웃어댔다. 난 내일 배울 과목을 가 방 속에 정리했다. 그때 네오니스의 물음이 들려왔다. “네가 정말 사람을 죽였다던데, 사실이야?” “어.” “진짜였어?” “어.” 난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런 내 말에 네오니스는 아주 놀랐다는 어조 로 입을 열었다. “정말이었구나…… 난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거야? 깜방 가는 거야?” 얼씨구…… 내가 깜방 가길 바라는 거냐? “아니. 계속 이 학교에 다닐거야.”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면서.” 후후. “교장 선생님이 다 알아서 해주셨어. 불법으로.” “불법?” 네오니스의 놀람에 찬 말을 듣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난 사 악의 극을 치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먹으러 가자. 라이 것도 사야하니까.” 네오니스의 질문을 막기 위해 난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네오니스는 자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 라이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 와 네오니스는 다시 방을 나와 매점 쪽으로 걸어갔다. 물론 네스포린에게 들 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23:07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5.중간고사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5.중간고사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010 게 시 일 :00/03/30 18:07:32 수 정 일 : 크 기 :16.2K 조회횟수 :90 <제 8 장> 중간 고사 2220년 4월 30일 화요일. 오늘은 마법 실습 시험이 있는 날이다. “야, 류드. 너 첫 시험이지?” 마법 실습장으로 향하는 중에 레리오스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 이자 레리오스는 옛날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난 이미 1년 꿇었으니까 괜찮지만 넌 처음이라 힘들거야~” 흘…… 그런 걸 지금 자랑하는 거냐? “하지만 오늘은 긴장된다…….” 레리오스의 표정에는 정말로 긴장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건 당연했다. 오늘 마법 실습 시험에 샤느 선생이 참관하기로 했으니까. 하여간 샤느 선생은 꼭 꼽사리를 낀다니까. 자기 때문에 애들이 시험 못보 는 것은 생각도 안하고 말이야…… 나야 뭐 상관없지만. “정말 와 계시는구나!” 마법 실습장 한쪽에 마법 실습 선생과 같이 서 있는 샤느 선생을 보고 레리 오스가 아주 반가워하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별로 반갑지 않았다. 샤느 선생이 날 발견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으니까. “류드나르…….”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빌리컨트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그 리고는 이를 으드득 으드득 갈면서 말했다. “이번에 널 확실하게 눌러주겠다. 샤느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말이야!” 나원…… 니 맘대로 하세요~ “자! 모두 모였겠지?” 마법 실습 선생의 말에 아이들은 일제히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ㅡ!” 흘…… 역시 샤느 선생이 있으니까 아이들의 태도가 확 달라지는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녀석들이야……. “자, 1번부터 5번까지 검은 테이프 붙인 곳에 가서 서라!” 마법 실습 선생은 우리 옆에 마련된 시험장을 가리켰고, 1번에서 5번까지의 아이들이 가서 제자리에 섰다. 그들의 앞 5미터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얇은 나무 판자가 세워져 있었다. “첫번째 시험은 저 나무 판자를 흔적도 없이 제거하는 것이다! 어떤 마법을 쓰더라도 관계는 없지만, 나무 판자의 위치만을 바꾸는 것은 점수에 반영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알겠나?!” “예!”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곧이어 마법 실습 선생의 우렁찬 외침이 터져나왔다. “제한 시간은 1분이다! 시작!” ……. 시작 소리가 터져나오자마자 갑자기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시험보는 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조차 모든 신경을 시험보는 애들에 게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녀석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니까 나까지 괜히 긴장되잖아? 그나저나 난 어떤 마법으로 저 나무 판자를 없애버린다냐……? 콰앙! 파각! 앞에 나갔던 아이들이 나무 판자를 공격했다. 어떤 녀석은 카파 하사로, 즉 파이어 볼로 나무 판자를 태워버렸고, 어떤 녀석은 나선 폭풍 마법인‘스나 플라토’를 사용하여 나무 판자를 쪼개버렸다. 하지만 어떤 녀석들은 아예 공격이 성공하지도 못했다. 제길…… 저 스나플라토는 실프가 자주 사용하던 기술이었는데…… 기분 더 럽군…… 정령들과의 기억을 한동안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저 기술을 보고 떠 올려버렸어……! “1번 C, 2번 A, 3번……” 나무 판자의 상태를 보고 점수를 매긴 마법 실습 선생은 다음 번호를 불렀 다. 그 번호에는 빌리컨트가 끼어있었다. “빌리컨트야 당연히 A를 받겠지?” “아니, 어쩌면 이번엔 A+를 받을지도 몰라.” 아이들은 빌리컨트의 실력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시험장 앞에 선 빌 리컨트는 샤느 선생을 쳐다보았다. 샤느 선생은 그저 별 표정의 변화없이 아 이들을 보고 있었다. 그런 샤느 선생의 태도에 빌리컨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 째려보았다. “……!” 허걱?! 빌리컨트 녀석, 왜 날 저렇게 살벌하게 쳐다보는 거야? 시험을 치를 녀석이 다른 데다 신경을 쓰다니…… 팍 망해버려라!!! “시작!” 마법 실습 선생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순간, 빌리컨트가 갑자기 오버하면서 소리쳤다. “카파 워그!!!” 빌리컨트가 제거해야 할 나무 판자가 거센 불의 장벽에 휩싸였다. 불길에 휩싸인 나무 판자는 얼마 안 있어 완전히 타버렸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은 놀람에 젖은 탄성을 발했다. “역시 빌리컨트!” “우리반 최고라니까!” 아이들의 칭찬에 빌리컨트는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샤느 선생이 웃으면서 박수를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완전히 헤벌래했다. “빌리컨트 A+!” 마법 실습 선생은 소리높혀 외쳤고, 빌리컨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옆을 스쳐지나가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넌 날 이길 수 없어.” “…….” 괜히 나한테 경쟁 의식 느끼고 있구만. 뭐 샤느 선생이 나한테 잘해주고 있 기 때문일 테지만. 그래도 빌리컨트 같은 역겨운 녀석을 상대하려니 아주 귀 찮아~ 콰앙! 쾅! 1차 시험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내 차례가 올 동안 A+를 받은 사람은 빌 리컨트 혼자 뿐이었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레리오스는 B 를 받았다. 사실 그 정도도 녀석에게는 잘 나온 것이었다. 맨날 그림만 그리 고 마법 수련은 별로 하지 않았으니까. “31번, 32번!” 헐…… 이제 내 차례로군. 달랑 둘이서 하려니까 조금 쑥스러운걸? “저…… 그냥 기권할래요…….” 그때 31번 녀석이 마법 실습 선생에게 기권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나무 판 자까지 공격을 성공시킬 실력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법 실습 선생은 그 녀석의 기권을 받아주었고, 그 녀석이 빠짐으로써 나 혼자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흘…… 이거 완전히 원맨쇼잖아? 이런 쪽팔리는 일이……! “…….” 아이들은 모두 날 째려보고 있었다. 샤느 선생과 가깝게 지내는 날 모두들 시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됐건 이번에 마법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망신살이 하늘 끝까지 뻗치게 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빙긋ㅡ! 난 별 생각없이 샤느 선생을 쳐다보았고, 샤느 선생은 나에게 아름다운 미 소를 보여주었다. 비록 옆에서 빌리컨트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날 노려보고 있었지만 샤느 선생의 미소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 다. “…….” 문득 샤느 선생과 보낸 한 달이 뇌리 속에 떠올랐다. 그 한 달 동안, 교장 이 왜 샤느 선생에게 내 감시를 시켰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학교 청소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샤느 선생이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 주었다. 날 하루라도 빨리 마법사로 만드려는 교장 할아범의 술책이 바로 샤느 선생을 내 옆에다 붙여놓는 것이었다. “시작!” 마법 실습 선생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마법을 구사해서 저 나무 판 자의 존재를 없애버려야 하는 것이다. 흠…… 지난 한 달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4써클의 마나 회전에 성공했으니 까 이번에 2써클 정도만 쓰면 되겠지? 2차 시험 때 사용할 마력은 남겨둬야 하니까 말이야. “…….” 난 내 몸을 회전하고 있는 마나의 속도를 내 정신력으로 변화시켰다. 마나 의 속도 변화에 의해 방출된 마나 파장은 흩어져 운동하고 있던 마나를 뭉치 게 만들었고, 뭉쳐진 마나는 급격히 압축하면서 내 주위에 십수 개의 불덩어 리를 만들어 내었다. “엇…… 쟤 지금 뭐하는 거야?” “저렇게 작은 카파 보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내가 카파 보를 여러 개 만들어내자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듯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의 말에 신경쓸 내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사용할 마법에 대해 생각하니 갑자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 마법은 나에게 있어서 추억이 라고 할 수 있으니까. ‘스나플라토!’ 난 나선 폭풍 마법을 구사했다. 스나플라토의 원리는 간단하다. 마나 파장 에 의해 뭉쳐진 마나가 이동하면서 공기를 끌고 가기 때문에 공기가 날카로 운 흉기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쐐애액ㅡ! 공기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나무 판자 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냥 단순한 나선 폭풍 마법이 아니었다. 아까 전에 만들었던 십수 개의 카파 보 를 스나플라토에다 실어서 날려보낸 것이다. 콰앙ㅡ! 나무 판자는 스나플라토에 맞고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완전히 산산조각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조각은 꽤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 조각을 없애기 위해 바로 카파 보가 필요했던 것이다. 쾅! 쾅! 쾅! 쾅! 연달아 카파 보가 폭발음을 내면서 나무 판자의 조각을 불태워 없애버렸다. 본래 카파 보는 산소 기체의 연소로 실현되는 마법일 뿐이라 터질 리가 없는 데 이상하게도 목표물에 날려보내 맞추게 되면 터져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 었다. 그 이유에 대해 교장 할배에게 물어봤지만 교장 할배는 모른다라고만 대답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법의 성질이 많으니까 나보고 알아서 생각 하라고 했던 것이다. “…….” 나무 판자가 스나플라토에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가고, 카파 보에 의해 조각 조차 불타서 사라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환타지 세계에서 실프와 사라만다에게 합동 공격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생각났다. 사라만다가 불꽃 덩어리를 만들고, 실프가 바람으로 그 불꽃을 실어서 공격한다…… 그때의 편안함…… 다섯 정령들과 즐겁게 생활하던 때…… 갑자기 그때가 그리워졌 다. 그들과 즐겁게 놀던 그때가……. ……. 얼라리? 근데 왜 이렇게 주위가 조용하다냐? 마법 실습 선생이 왜 아무 말 도 안하는 거지? 이 정도로 나무 판자를 날려버렸으면 당연히 A+ 아닌가? “마, 말도 안돼…… 이중 공격이라니……!”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빌리컨트의 그 말이 너무나 확실히 잘 들렸다. 하지만 난 빌리컨트의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별로 놀라운 일 같지도 않은데 모두들 놀라고 있는 것이 이상할 뿐이었다. “대단해, 류드!” 얌전히 아이들과 같이 서 있던 샤느 선생이 갑자기 나한테 뛰어오더니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는 굉장히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중 공격까지 구사하다니! 류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마법 사야!” 헐…… 왜 흥분할 때마다 내 손을 잡는 거냐고…… 아무래도 샤느 선생은 날 자기 동생으로 여기는 것 같은데 말이야…… 왠지 어린애 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뻐……. “류, 류드나르 A+!!!” 멍청히 서 있던 마법 실습 선생이 내 점수를 큰소리로 외쳤다. 빌리컨트 때 보다도 훨씬 큰 목소리였다. 그다지 빌리컨트와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기니까 기분이 좋기는 했다. “좋아, 이제 2차 시험이다!” 마법 실습 선생은 아이들을 시켜 새로운 나무 판자를 가져오게 했다. 그 나 무 판자는 아까 전 꺼와는 달리 사람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험 보기 며칠 전에 레리오스가 말해준 대로 2차 시험은 마법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2차 시험은 마법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사람 모양 의 나무 판자에는 각각 너희들이 맞춰야할 표적이 표시되어 있다. 머리와 가 슴 중앙은 반드시 맞춰야하고 팔꿈치와 무릎은 네 군데 중에서 어느 하나만 정확히 맞추면 된다. 알았나?” “예…….” 힘없이 대답하는 아이들. 이번 2차 시험은 그냥 나무 판자를 제거해버리는 1차 시험보다 난이도가 훨씬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법 실습 시험의 성적은 1차 시험과 2차 시험 때 받은 점수를 평균하여 기록하기 때문에 둘 다 잘 봐야 점수가 제대로 나온다. “번호 순서대로 5명씩 나와서 시작해라!” 마법 실습 선생의 말이 끝나고 나서 5명의 아이들이 사람 모양의 나무 판자 앞 5미터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나서 그 나무 판자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 불화살인 카파 하사로나 얼음 화살인‘비아 하사로’를 사용하여 표적을 맞 추어 나갔다. 파앙ㅡ! “으악!!!” 시험을 치르던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비아 하사로를 사용하여 나무 판 자의 가슴 중앙을 맞추려고 했다가 복부를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 떤 녀석은 아예 나무 판자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이번 2차 시험에서는 A 맞 는 것조차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빌리컨트다!” “빌리컨트는 분명히 A일 거야!” 아이들의 철썩같은 신뢰를 받으며 빌리컨트가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무 판자 앞에 섰다. 이번에도 역시 빌리컨트는 샤느 선생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무 시무시한 눈초리로 날 쏘아보았다. 그리고는 사람 모양의 나무 판자에 정신 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시작!” 마법 실습 선생의 시작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빌리컨트는 섣불리 마법을 사 용하지 않았다. 빌리컨트 역시 2차 시험에는 많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던 것 이다. “가랏!” 빌리컨트에게서 마나 파장이 느껴진 순간, 빌리컨트는 기합을 내지르며 마 법을 구현했다. 그가 사용한 마법은 카파 하사로였다. 파아앗! 빌리컨트의 카파 하사로는 조금 들어줄 만한 파공음을 내며 나무 판자의 머 리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리고 여지없이 나무 판자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역시 빌리컨트!”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사실, 빌리컨트가 하기 전에도 어떤 녀석이 머리를 정확히 맞추었지만 아이들은 오직 빌리컨트만이 나무 판자의 머리를 맞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그 아이들 중의 대부분이 빌리컨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녀석들이었지만. “후…….” 빌리컨트는 호흡을 가다듬으려는 듯 나직이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무 판자에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후, 빌리컨트에게서 마나 파장이 방출되 었고, 이번엔 비아 하사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피융ㅡ! 비아 하사로는 카파 하사로보다 더 들어줄 만한 파공음을 내면서 나무 판자 의 가슴 중앙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역시 거의 정확하게 가슴만을 꿰뚫었다. “와ㅡ!” 자기가 맞춘 것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무지하게 좋아하면서 떠들어댔다. 그 럴수록 빌리컨트의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가 짙게 배어들어 갔다. 아이들의 환호에 역겨운 미소로 호응을 해준 빌리컨트는 다시 나무 판자를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나무 판자를 향해 마법을 구사할 듯했다. 하지만 빌리컨트는 공 격을 하지 않았다. “…….” 얼라리? 왜 저렇게 시간을 끌지? 마나 파장도 느껴지지가 않고. 설마…… 벌써 마나가 모두 고갈된 것인가? “왜 그러냐, 빌리컨트?” 빌리컨트의 침묵을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마법 실습 선생이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빌리컨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 “남아있는 마력이…… 없습니다…….” “……!” 빌리컨트의 그 말에 모두들 크게 놀랐다. 현재 D-7반에서 가장 마나 회전량 이 많다고 인정받고 있는 빌리컨트가 마력이 부족하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빌리컨트가 마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우리는 택도 없잖아?” “아씨…… 1년을 더 꿇어야 하다니……!” 여기저기서 불만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빌리컨트는 수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계속 주먹만 부르르 떨고 있었고, 마법 실습 선생은 고개를 젓 더니 이내 빌리컨트의 점수를 불렀다. “빌리컨트 A- !” “…….” 빌리컨트는 말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시험은 계속 진행되었다. 하지만 A+는커녕 A 받는 아이들도 거의 없었다. 레리오스는 2차 시험에서 C를 받고 말았다. 사실 그 정도 받는 게 당연했지만. “이번 마법 실습에서 B하고 C를 받았고…… B는 86점, C는 76점이니까 더해 서 둘로 나누면…… 81점이네? 뜨아…… 평균 90이 될려면 기말 시험에서 최 소한 99점을 받아야 하잖아? 에라…… 이번에도 포기하자…….” 레리오스는 그렇게 넋두리를 했다. 레리오스에게 해줄 말도 없어서 난 그냥 웃었다. 그러자 레리오스가 날 째려봤다. “어쭈? 날 비웃었겠다?” “그게 아니라……” “넌 이미 A+를 받았으니까 이번에 C+만 맞아도 평균 90이잖아?” 얼레? 그런가? 하긴…… A+은 100점이고 C+은 80점이니까 부담이 별로 없는 건 사실이군. “31번, 32번!” 헐…… 벌써 내 차례인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거야? 녀석들이 시험을 막 포기하니까 그런가? 뭐,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전 기권입니다…….” 31번 녀석은 2차 시험마저도 기권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 혼자 원맨 쇼를 하게 되었다. 정말 쪽팔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 난 사람 모양의 나무 판자 앞에 섰다. 그리고 카파 하사로의 이미지를 떠올 렸다. 세 발의 카파 하사로로 단번에 끝낼 생각이었다. “시작!” 마법 실습 선생의 우렁찬 외침이 내 귓고막을 강타하는 그 순간, 난 바로 세 발의 카파 하사로를 실현시켰다. 내 팔뚝만한 길이의 카파 하사로는 붉게 타오르며 뜨거운 기운을 발산했다. “카파 하사로를 세 개씩이나……?!” 누군가 경악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쨌든 난 내 머리 위와 어깨 양 옆 에 만들어진 세 발의 카파 하사로를 나무 판자 쪽으로 날려보냈다. 세 발의 카파 하사로는 내가 만들어낸 마나 파장을 따라 빠른 속도로 날아갔고, 여지 없이 나무 판자의 머리와 가슴 한복판, 그리고 왼쪽 다리 무릎을 꿰뚫어 버 렸다. “저럴 수가……!” 카파 하사로 세 발이 정확히 명중하자 아이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 으로 탄성을 발했다. 난 슬쩍 빌리컨트를 바라보았다. 빌리컨트는 아예 넋을 놓고 목과 가슴, 그리고 한쪽 무릎이 날아간 나무 판자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빌리컨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통쾌했다. “류, 류, 류, 류드나르 A+ !!!” 마법 실습 선생은 내 이름을 한참 떠듬거리더니 겨우 내 점수를 불렀다. 첫 시험을 잘 보았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이것으로 곧 있을 중간 고 사를 조금은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류드는 계속 날 놀래키는구나.”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샤느 선생이 내 손을 또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도 많이 샤느 선생에게 손을 잡혔기 때문에 이제는 별다른 감각도 느껴지 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진 샤느 선생의 행동은 충격 그 자체였다. “자, 그럼 약속을 지켜야겠지?” 쪽ㅡ! “……!” 갑자기 샤느 선생이 내 뺨에다 입술을 맞추었다. 샤느 선생의 부드러운 입 술이 뺨에 닿는 순간 내 호흡은 정지했다. 분명히 이걸 보고 아이들이 기절 초풍할 테지만 난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모든 정신이 샤느 선생에게 빼 앗겼기 때문이었다. “서, 선생님……!” 잠시 충격을 먹고 멍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급히 샤느 선생에게 서 떨어졌다. 하지만 손을 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멀리 피할 수도 없었다. “왜 그러니?” 내가 피하려고 하자 샤느 선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자기가 방 금 뭘 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왜 제 뺨에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은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빙긋 웃었다. “일주일 전에 약속했잖아. 마법 실습 시험에서 만점 받으면 내가 뽀뽀해주 겠다고.” “……?” 얼레? 일주일 전에? 음…… 생각났다. 일주일 전에 샤느 선생에게서 마법을 배울 때 샤느 선생이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난 그냥 단순한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하다니……! ┌───────────────────────────────────┐ │ ▶ 번 호 : 0/74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3월 30일 23:10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36.중간고사(5권끝)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6.중간고사(5권끝)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011 게 시 일 :00/03/30 18:08:04 수 정 일 : 크 기 :23.3K 조회횟수 :89 “전 농담인 줄 알았는데……” “뭐? 농담? 류드는 내가 거짓 약속을 할 사람으로 보이니?” 내 말에 샤느 선생이 화를 냈다. 샤느 선생이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이었다. 그래서 난 무조건 잘못을 빌었다. “죄송해요…….” “호호.” 내가 사과하자마자 샤느 선생은 작게 웃었다. 화나지도 않았으면서 화난 척 했던 것이다. 괜히 샤느 선생에게서 놀림받은 기분이 들어서 이번엔 내가 화 가 났다. 척척ㅡ! 난 샤느 선생의 손을 뿌리치고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샤 느 선생이 내 뒤를 따라오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용서를 구했 다. “미안, 류드. 놀리려고 그런 게 아니야.” “…….” “정말이라니까. 그러니까 용서해줘~” 샤느 선생은 나에게 애원 비슷하게 말했다. 그런 샤느 선생을 보고서 계속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연구 대상감일 것이다. 난 아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화가 눈 녹듯이 풀려버렸다. “알았어요. 화 안 났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정말이지?” “예.” 나원…… 화 안 났다면 안 난 거지 물어보긴…… 그나저나 이거 분위기가 묘하다? 지금은 수업 시간인데 말이야. 띵동 띵동ㅡ 마침 그때 아주 절묘하게 종소리가 났다. 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난 아이들 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나와 샤느 선생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 다. 그래서 이번엔 마법 실습 선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선생 역시 나와 샤느 선생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모두 교실에 갈 생각은 안 하고 나하고 샤느 선생만 쳐다보는군. 샤느 선생이 내 뺨에 뽀뽀해준 게 그렇게 엄청난 사건인가? 뭐…… 엄청난 사건이라면 사건이긴 하지만. 어쨌든 빨리 이 자리를 떠야 내 몸이 무사할 것 같다……! “그럼…….” 난 마법 실습 선생과 샤느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급히 동관A 쪽으로 향했 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달리 샤느 선생이 내 뒤를 따라와 버렸다. 이걸로써 난 완전히 우리반 녀석들에게 찍힌 꼴이 되었다. 이런 제기럴…… 샤느 선생 때문에 앞으로의 학교 생활이 고단해지겠군…… 으…… 이건 모두 교장 할아범 때문이야! 내 감시자로 샤느 선생을 붙여버려 서 샤느 선생이 나만 편애하잖아! “정말 화 안 난 거니? 기분이 안 좋아보이는데…….” 내 뒤를 따라온 샤느 선생이 걱정스러운 듯이 나에게 물었다. 대답할 기분 은 아니었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샤느 선생이 자책할까봐 대답할 수밖에 없었 다. “아니예요. 전 교실로 들어갈게요. 그럼.” “응, 그래…….” 내가 인사를 하고 교실 쪽으로 향하자 샤느 선생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 다. 하지만 난 별로 아쉬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나만 을 너무 노골적으로 편애하기 때문이었다. 털썩ㅡ! 교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내 자리에 주저앉듯이 앉았다. 잠시 동안 그렇게 앉아 있을 때 아이들이 속속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쪽 으로 다가왔다. 바로 빌리컨트였다. “류드나르……” 빌리컨트는 분노에 파들파들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난 팔짱을 끼고 내 자리에 앉은 채로 빌리컨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내가 아무 말없이 쳐다보자 빌리컨트는 날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너…… 샤느 선생님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흘…… 그 질문은 옛날에 하지 않았던가? “샤느 선생님이 어째서 너만을 위해주는 거지? 게다가 뽀…… 으윽!” 뽀뽀라는 말을 하려던 빌리컨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 혼자 쇼하는 모습이 내게는 재미있었다. “말해! 샤느 선생님에게 무슨 짓을 했지?” 빌리컨트는 계속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나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빌리컨트 를 계속 상대해주기도 귀찮아서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매듭을 짓기로 했다. 드르륵ㅡ! 난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고, 그러자 자연히 내가 앉아있던 의자가 뒤로 밀 려나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빌리컨트가 크게 놀라 몸 을 움찔거렸다.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도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내 주먹을 보고서 모두들 이상한 눈초리를 했다. “뭐, 뭐야……?” 빌리컨트는 방금 전과는 달리 훨씬 위축된 목소리를 내었다. 난 그런 빌리 컨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아주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는데……” “……?” “샤느 선생님은 날 남동생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스스럼없이 날 대 하는 거고. 제발 착각 좀 하지마, 알겠냐?” “……!” 그 점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듯 빌리컨트는 흠칫했다. 계속 나와 샤 느 선생과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파악했었던 자신의 잘못을 지금에 서야 돌아보는 것 같았다. “그, 그렇구나……!” 갑자기 빌리컨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내 시선을 의식하고는 이내 표 정을 굳혔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샤느 선생님에게 이상한 짓 하지 마라. 그랬다간 가만 안 둘테니 까.” “…….” 흘…… 니 맘대로 해라…… 너 상대하기 귀찮아……. 척척ㅡ! 빌리컨트는 상당히 씩씩한 발걸음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직 어린애의 티를 벗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흠…… 그런데 난 과연 어린애의 티를 벗었을까? 내 정신연령은 몇이지? 에 …… 내 정신연령이 10살만 넘으면 좋겠는데……. 2220년 5월 6일부터 5월 9일 동안의 나흘. 바로 중간 고사를 치르는 날이었 다. 난 열심히 공부했다. 내 생전 처음으로 밤 12시까지 공부했던 것이다. 물론 교장 할배가 이번에 성적 안 나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협박했기 때문 이었지만. 2220년 5월 13일 월요일. 중간 고사 결과가 나왔다. 반 아이들의 과목 점수 가 교실 뒷 칠판에 붙여졌다. 이 학교도 내가 살던 세계의 학교처럼 아이들 의 성적을 공개했던 것이다. “역시 빌리컨트야!” “평균 93점이라니…… 인간이 아니야!” 아이들은 저마다 빌리컨트의 높은 점수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다가 빌리컨 트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점수를 보고는 더더욱 놀랬다. “류드나르의 점수가 없다?!” “뭐야? 왜 점수가 안 나왔냐?” 얼레? 점수가 안 나왔다고……? “……!” 아이들의 말에 놀라 난 내 점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정말로 내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0점이라 고 써져 있지도 않았다. 내 이름 옆에는 오직 빈 칸밖에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어째서 내 점수가 나오지 않은거야? 어째서?! “류드나르.” 그때 뒤에서 가리나크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가리나크 선생 을 쳐다보았다. 가리나크 선생은 그런 나에게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날 따라와라.” 그러더니 교실 밖으로 나갔다. 갑작스런 가리나크 선생의 부름이 의아했지 만, 어쨌든 난 아무 말없이 가리나크 선생의 뒤를 따라갔다. “…….” 가리나크 선생은 교무실까지 직행했다. 그래서 내가 뭔가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적중했다. “류드나르. 솔직히 대답해라.” 으윽…… 난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이번 시험 때 컨닝했지?” 얼라리? “컨닝이요? 안 했는데요?” 가리나크 선생의 말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확실하게 말해서, 난 전혀 컨닝 같은 걸 하지 않았다. 사실 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다 한 번씩은 배운 내용 이었기 때문에 무난히 잘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이번 시험은 내 예상대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 내가 컨닝을 할 리 만무한 것이다. “거짓말하지마!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점수가 나와?!” 가리나크 선생은 어떤 종이를 집어들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그래서 난 그 종이를 받아보았다. 그것은 내 성적만 기록된 일종의 꼬리표였다. 그 꼬리표 에는 성적이 제대로 나와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점수 그대로. “그런 점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앙?!” 가리나크 선생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하지만 예비 채점했을 때도 이번 과 똑같이 나왔기 때문에 난 할말이 있었다. “제 점수가 맞는데요.” “…….” 내 말에 가리나크 선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계속 내가 컨닝을 해서 이런 점수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가, 가리나크 선생?” 언제 왔는지 교장이 귀신같이 나타나 가리나크 선생에게 물었다. 가리나크 선생은 내게서 내 성적 꼬리표를 빼앗아 교장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보세요. 그건 류드나르의 중간 고사 성적입니다.” “호오……!” 내 점수를 보고 교장 할아범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교장 할아범도 내 점수를 믿지 못한다고 판단한 가리나크 선생은 흥분하여 소리쳤다. “전과목 만점이라니 말이 됩니까? 이건 컨닝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점수예요!” “흐음…….” 교장은 나직이 침음만 할 뿐이었다. 그때 역시 귀신같이 나타난 샤느 선생 이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보더니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 샤느 선생님. 이건 류드나르의 점수인데, 한 번 보세요.” “……?” 가리나크 선생은 교장 할배가 들고 있는 성적 꼬리표를 가리켰고 샤느 선생 은 여전히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내 성적 꼬리표를 들여다보았다. “아……!” 12과목 모두 만점을 받은 내 성적을 보고 샤느 선생 역시 크게 놀랬다. 사 실, 아무리 예비 채점으로 전과목 만점임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막상 성적 표에 100이 줄줄이 써져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놀랐다. 내가 그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어떨 지 상상이 충분히 갈 것이다. “정말…… 이게 류드의 성적표인가요……?” 샤느 선생은 교장 할배와 가리나크 선생을 번갈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 었지만, 둘 다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가리나크 선생이 샤느 선생에게 의견 을 물었을 뿐이었다. “이건 류드나르가 컨닝한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샤느 선생님?” “아니예요! 류드가 컨닝할 리 없다구요!” 샤느 선생은 가리나크 선생의 말을 반박했다. 교장 할배도 샤느 선생의 말 에 동조했다. “나도 류드가 컨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네. 알다시피 수학은 컨닝해서 100 점 받을 수 있는 과목이 아니야. 혹시 자네 반에서 수학 만점자가 있는가?” “…… 없습니다.” 가리나크 선생은 얼굴을 굳히고 대답했다. 교장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꺼리가 없어서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급히 교장에게 말했다. “류드나르가‘자 힐루트’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얼레? 자 힐루트? 그거…… 여기 말로 자기 암시 마법인데? 내가 그런 엄청 난 마법을 썼다고라? 차라리 내가 세계를 만들었다고 해라……. “허허허!” 가리나크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의아해 하는 가리나크 선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류드에게 그런 실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 정도의 마법을 나흘 동안 이나 계속 구사할 수 있으면 중등부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안 그런가, 가리나 크 선생?” “…….” 가리나크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모처럼 생각해낸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어 기분이 상당히 나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컨닝했다고 오해를 받는 입장이 라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나온 대로 성적을 낼테니 더이상 토달지 말게.” 가리나크 선생에게 그렇게 못박은 교장 할배는 또다시 껄껄 웃으며 교무실 의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리나크 선생도 할말이 없는지 더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단지 날 죽일듯이 노려보며 나에게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나중에라도 사실이 밝혀지면 0점 처리하겠다.” 나원…… 이 인간은 계속 내가 컨닝했다고 생각하잖아? 아니, 내 점수를 그 렇게 못 믿나? 아주 기분 나뻐……. “류드는 천재인가 보다~” 샤느 선생이 방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천재일 리 없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전 이미 보통 고등학교에서 다 배웠으니까요.” “아, 그렇구나…….” 저번에 내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는지 샤느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 음 교시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샤느 선생에게 인사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가리나크 선생한테 오해받아서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전과목 만점이라 니 나도 잘 믿기지가 않아…… 내 생전 그렇게 완벽한 점수를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건 모두가 그런가? 어쨌든 이번 중간 고사 평균이 100점이니까 기말 평균이 80점이어도 1학기 평균이 90점이 되는군. 아주 학교 생활이 편 해지겠어~ 띵 띵 띵 띵ㅡ 내가 거의 교실 앞에 도달했을 때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그래서 급히 교실 안으로 뛰어들어가 내 자리에 앉고 수업 준비를 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레 리오스가 나에게 물었다. “네 시험 점수는 어떻게 된거야?” “어…… 제대로 나올 거래.” “그래? 그럼 평균이 얼마냐?” “너부터 말해.” 내 점수를 말하면 레리오스가 크게 놀랄 것 같아서 먼저 레리오스의 점수를 알고 싶었다. 레리오스는 내 말에 나직이 한숨을 쉬더니 연습장에 그리던 그 림 옆에다 70이라고 썼다. 레리오스의 평균 점수는 70점이었던 것이다. 헐…… 그럼 기말 고사 때 아무리 잘봐도 평균 90점은 안 나오겠군…… 뭐 이론상으로는 2학기 시험을 다 잘보면 평균 90점 이상이 가능하겠지만서도… … 경험상으로는 불가능하지……. “넌?” 자신의 점수를 적은 레리오스가 나도 쓰라고 재촉했고, 난 레리오스의 점수 옆에다 조그맣게 100이라고 썼다. 그러자 레리오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균이 100점?!” 난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내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던 레리오스가 나직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이거…… 전체 평균이 아니라 전체 총점이지?” “…….” 레리오스 녀석, 나한테 죽을라고……! “이거 평균이야.” “…….” 난 지극히 사실만을 말했고, 그런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레리오스가 또다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너 인간이냐?” “…….” “이게 사람으로서 받을 만한 점수야?” “…….” 흘…… 아직도 못 믿는 건가? 하긴, 나라도 잘 안 믿겠지만. “우씨…… 내가 외계인하고 놀았다니…….” 레리오스는 그런 황당한 말을 하면서 고개를 팍 수그렸다. 그래서 난 그런 레리오스에게 말했다. “난 보통 고등학교에서 다 배워서 그래.” “그래도 넌 외계인이야…….” 나보고 계속 외계인이라고 말하던 레리오스는 선생이 들어오자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괜히 레리오스에게 내 점수를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지만 어차피 밝혀질 사실이었기 때문에 잘된 것일지도 몰랐다. 성적표 나올 때 엄청나게 충격먹는 것보다는 지금 미리 충격먹고 나서 나중에 성적표 나 올 때는 거의 충격먹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개인 꼬리표가 나오고 난 다음날. 성적표가 나왔다. 가리나크 선생은 종례 시간에 아이들에게 성적표를 나눠 주기 시작했다. 난 제일 마지막으로 성적표를 받았다. 내가 성적표를 가지고 돌아오자, 레리오스가 내 성적표를 뺏더니 내 점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진짜였잖아?” 얼씨구…… 그럼 어제 내가 해준 말을 하나도 믿지 않았다는 소리냐? “흠흠…….” 교실 칠판 앞에 선 가리나크 선생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아이들을 죽 둘 러보며 말했다. “이번에 우리반은 중등부 1학년 전체에서 34등을 했다.” “오~!” 짝짝짝ㅡ 전체 35개 반 중에서 34등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감탄을 하며 손뼉을 쳤다. 이런 일은 아주 예사로운 것이었는지 가리나크 선생은 화도 내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작년 전교 2등이었던 빌리컨트는 이번에도 2등을 했다.” “오~!” 또다시 감탄을 터트리는 아이들. 그러나 레리오스만은 감탄을 터트리지 않 았다. 내 성적표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으니 가리나크 선생의 말을 듣 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작년 전교 1등이 이번에 3등을 했다.” “어?” 가리나크 선생의 말에 아이들이 의아해했다. 빌리컨트도 상당히 놀란 듯 가 리나크 선생을 쳐다보았다. 가리나크 선생은 잠깐 동안 날 무시무시한 눈초 리로 노려보고 나서 내게서 시선을 떼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번에 전교 1등을 한 사람은……” “…….” “이번에 새로 편입한 보나이 류드나르다.” “그럴 수가……!” 교실이 발칵 뒤집혔다. 전혀 의외의 인물이 가리나크 선생의 입에서 튀어나 왔기 때문이었다. 가리나크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내 앞에 앉아있던 녀석이 내 성적표를 뺏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내 성적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뭐야? 평균이 100점?!” “……!” 그 말에 교실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교실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날 쳐다보 았다. 그 와중에 몇몇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 받았다. “구라 아니야?” “무슨 평균이 100점이야?” 헐…… 전혀 믿지를 않는군. 그러다가 더 충격먹을 텐데……. “모두 조용히 해라!” 아이들이 웅성거리자 가리나크 선생이 호통 소리로 웅성거림을 잠재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날 무시무시하게 째려본 후,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실이다. 보나이 류드나르는 오죠룬 설립 이래 유래없는 전과목 만점이라 는 점수로 전교 1등을 했다.” “……!” 가리나크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의 표정이 막 변했다. 어떤 녀석들은 왠 개소리냐는 표정이었고, 어떤 분들은 그렇게 될 것 같더라니라는 표정을 짓고 계셨다. “전과목 100점…… 이게 컨닝으로 이룩된 점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겠지. 안 그러냐, 류드나르?” 가리나크 선생은 날 묘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고,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아, 예…….” 평상시처럼 내 대답은 끝부분이 흐려졌다. 그러나 그 말끝의 흐려짐이 지금 의 상황을 묘하게 만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리나크 선생의 말에 분 명하게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내가 컨닝을 한 것처럼 느껴버린 것이다. “컨닝이었어?”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전과목 만점을 받냐.” 아이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리나크 선생은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제지하지 않았다. 마치 나보고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 어보라는 듯이. “…….” 가리나크 선생……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끝까지 내가 컨닝했다고 생각 하는 모양인데…… 네 녀석이 아무리 그래봤자 헛수고라고. 다음 기말 시험 에서도 전과목 만점을 받아서 네 녀석 코를 완전히 뭉그러뜨려 버릴 테니까! “자, 종례 끝!”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멈추지 않았지만 가리나크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교실을 빠져나갔다. 가리나크 선생이 나가자마자 아이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 었다.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너 컨닝했지?” “성적표 조작한 거 아니야?” “어떻게 컨닝했길래 전과목 만점이 나오냐?” “…….” 기분이 극도로 나빠졌다. 짜증이 마구 일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의 모든 물음 을 철저히 씹어버리고 교과서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곧장 교실 을 나섰다. 웅성웅성ㅡ 교실 밖에 있는데도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다 들렸다. 정 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고 있는 것이 분 명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내가 이번 시험에 컨닝을 했다는 결론을 내릴 것 이다. “류드나르.” 언제 나왔는지 빌리컨트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날 불렀다. 난 아무말없이 빌리컨트를 쳐다보았다. 기분이 극도로 나빴기 때문에 아마 빌리컨트를 노려 보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이기고 싶었냐?” 얜 또 무슨 헛소리야? “그래서 컨닝을 해서 전과목 100점을 받은 거냐?” 왠 개가 이렇게 짖어대냐…… 아, 시끄러……. 터벅터벅ㅡ 난 빌리컨트를 무시하고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빌리컨트가 소리쳤다. “그렇게 1등을 하고 싶었냐? 넌 그 정도밖에 안돼?” “…….”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컨닝을 했다는 거 야? 나 혼자 만점 받으니까 괜히 시기해서 그러는 짓들이지…… 한심하게 놀 고들 있어……. 따르르릉ㅡ 성적표가 배부되고 그날 저녁 7시에 내 방 기숙사에 있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드, 넌 언제나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흘…… 그러셔? 언제 한 번 크게 실망시켜줄까? 《만약 다음 기말고사 때에도 전과목 만점을 받는다면, 2학기부터는 바로 중 등 2학년 수업을 받도록 해주겠다. 알겠지?》 허걱?! 《난 너를 최대한 빨리 고등부에 보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네가 열 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넌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네가 살 길이 니까.》 얼레? 내가 살 길? 그럼 내가 공부하지 않을 시에는 죽여버린다는 뜻?! 《반드시 다음 시험도 만점 받기 바란다. 그럼 열심히 공부하거라.》 달칵! 뚜우뚜우ㅡ “…….” 뭐냐? 나보고 또 전과목 만점을 받으라고라? 그게 지금 가능하다고 생각하 는 거야? 아무리 한 번 배운 내용이라지만 뒤로 갈수록 점점 어려워진다고! 날 완전히 공부벌레로 만들려고 하다니, 사악한……! “왕왕!” 내가 속으로 교장에게 욕을 퍼붓고 있을 때 라이가 밥달라고 짖어댔다. 그 래서 지난 번에 한꺼번에 사다놓았던 빵 중에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라 이에게 주었다. 빵을 받자마자 라이는 아주 능숙하게 빵 봉지를 뜯고는 빵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넙적한 그릇에 우유를 조금 담고 라이 옆에 놔둔 후, 저녁 식사를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흠…… 근데 라이 녀석이 똥오줌을 제대로 가릴 줄 알까? 방에다 변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제대로 가릴 줄 아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난 한 번도 라이의 변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도대체 어디다가 변을 보는 거지? 화장실? 수세식 변기라 강아지가 사용하기에는 많이 불편한데…… 뭐, 고양 이도 변기 위에서 볼일을 보니까 강아지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변기의 물 은 어떻게 내리지? 웅성웅성ㅡ 식당으로 가는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난 식당으로 천천히 걸어가 면서 라이가 어떻게 변을 보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라이 녀석은 변비라서 변을 볼 수 없다!!!’ “류드!” 그때 내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 었다. 바로 네오니스의 목소리였다. 난 고개를 돌리고 네오니스를 쳐다보았 고 네오니스는 전과는 달리 혼자 있었다. “일주일 만인가?” 내 앞에 선 네오니스가 대뜸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 고사 때문에 일주일 전부터 네오니스가 본격적인 공부를 하느라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시험 잘 봤냐?” 이어지는 네오니스의 물음에 난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 덕이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난 그 동안 시험을 잘봤다고 이렇게 자신있게 표현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었나 보네? 너 전과목 만점 받았다는 거.” 얼레? 벌써 네오니스의 귀에까지 그 소식이 전해진 건가? 전과목 만점이 얼 마나 대단한 거길래 이렇게까지 뉴스거리가 되는 건지…… 교장 할배가 다음 시험도 올 백 맞으라고 압력을 넣었는데…… 실수로 또다시 올 백을 맞으면 아이들이 아예 기절해 버리겠군……. “네가 전과목 만점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오죠룬 사 상 처음으로 전과목 만점자가 나왔다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들도 흥분하 고 있다고.” 그래…… 흥분하고 있지…… 컨닝한 게 아니냐고…… 아, 생각할수록 열 받 는군. 네오니스의 점수나 물어봐야겠다~ “네오는 시험 잘 본거야?” “휴…… 아니, 완전히 망했어.” 네오니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못 본 것을 망했다고 표현한 것인 지 궁금해서 네오니스에게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평균이 몇 점인데?” “…… 76점.” 흠…… 76점이면 다음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더라도 평균 90점이 안 되 는군. 이런 얘기하긴 뭣하지만 내년에 네오니스가 중등부 3학년으로 올라가 긴 힘들 것 같다……. “아직 밥 안 먹었어?” 난 화제를 바꾸어 물었고, 네오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와 네오 니스는 같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네오니스가 네스포린은 어디다 놔두고 혼자 식당에 왔는지 궁금해졌다. “네오, 근데 네린하고 안 온거야?” “그게…… 네린은 나보다 더 심하게 시험을 망쳐서 자기 방에 틀혀박혀서 울고 있거든…….” 얼라리? 울고 있다고라? 그럼 네가 가만히 있으면 안되지! “네린한테 가봐. 네린은 누군가가 있어주길 바랄거야.” 그러나 네오니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내가 위로해 줄려고 했는데 막 화를 냈어. 괜히 갔다간 맞는다구 …….” 나원…… 네스포린을 무지하게 겁내는구만. 앞날이 걱정이다……. “그건 네린의 진심이 아닐걸? 우선 네린은 배고플 테니까 네가 먹을 걸 들 고 가. 처음이야 당연히 너보고 가라고 소리치겠지만 그냥 쳐들어가라구. 그 런 다음에 같이 음식을 먹어. 성적에 대한 얘기는 하지 말고. 이후로는 네린 하고 오래 지낸 네가 더 잘 알테니까 알아서 하면 될거야.” “…… 그렇게 하면 될까?” 네오니스는 자신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나도 자신없었지만 일부러 분 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돼. 네린은 겉으로는 강해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약할 것 같거 든. 그러니까 지금 혼자 내버려두면 나중에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몰라.”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 가봐야겠다!” 잠시 망설이던 네오니스가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급히 나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매점 쪽으로 뛰어갔다. 네스포린에게 줄 저녁거리를 사러가기 위해서 였다. 흘흘, 이걸로 네오니스를 떼어놓는데 성공이다! 자, 이제 마음 편히 식당에 서 저녁식사나 해볼까나~ 웅성웅성ㅡ 식당에 있던 아이들이 날 보고 웅성거렸다. 주로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이 런 것들이었다. “제가 지난 달에 편입한 애지?” “이번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았다던데?” “그거 컨닝한거래.” “쟤 친구 없나봐? 혼자서 밥 먹네?” “원래 공부 잘하는 인간들이 잘난 척을 많이 하잖냐.” “그거하고 혼자 밥 먹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러니까 애들한테 따를 당한다는 거지.” 흘…… 나 밥먹는데 불만있나? 드럽게 시끄럽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만약 내가 시험을 형편없이 봤다면 나한테 전혀 신경쓰지 않았을 녀석들이 말이야. 하여간 저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나서 다음 시험에서도 전과 목 만점을 받아버리고 싶다니까. 저 녀석들에게 내가 얼마나 우월한 존재인 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줘야겠어. 크크크……. ====================================================================== 이걸로 5권 연재가 끝났군요...(아.. 힘들다...=.=) 책으로 나올 때는 몇 개의 버그가 수정되어 나갈 겁니다... (몇몇 분께서 지적해주신 것하고, 자체적으로 발견한 버그들...ㅡㅡ;) 6권은 전혀 써놓은 게 없기 때문에 아마 4월 중순부터 연재될 겁니다... 하지만 4월에 시험이 있어서 어쩌면 더 늦어질지도....ㅡㅡ;;; 그럼 즐통하세요^^ 번 호 : 7702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6일 23:01 등록자 : THEBUR 조 회 : 54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179 게 시 일 :00/04/15 07:59:22 수 정 일 : 크 기 :5.4K 조회횟수 :341 오늘부터 조금씩 잘라서 올립니다... 써놓은 게 거의 없어서...ㅡㅡ; ======================================================================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 제 2 부 - 혼합 세계 탐험 <제 9 장> 마음을 읽는 소년 2220년 5월 17일 금요일. 봄 소풍날이다. 소풍 장소는 레오콜의 수도이며 오죠룬 마법학교가 있는 세오르시(市)의 웨이사 랜드. 입장료는 학교 쪽에서 다 내주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빈 몸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부우웅ㅡ 아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가 학교 운동장에 속속 도착했다. 비록 중간 고사 끝난 지가 얼마 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이미 그런 것은 모두 까맣게 잊고 있 었다. 그리고 잊어야 정상이었다. 오늘은 뭐니뭐니해도 소풍날이니까 말이다. “야, 류드나르! 너 뭐뭐 챙겼냐?” 창 밖으로 관광버스를 구경하고 있던 레리오스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물었 다. 그래서 난 내 가방을 열어주었다. 내 가방 속에는 점심을 위한 과자 몇 개밖에 없었다. “뭐야? 딸랑 그거야?” “어.” 내 대답에 어처구니없어 하던 레리오스가 이번엔 자신의 가방을 열어서 나 에게 보여 주었다. 겉으로도 두툼해 보이는 가방의 속에는 과자와 음료수가 잔뜩 들어있었고, 또 더욱 안에는 레리오스의 그림 연습장이 자리를 잡고 있 었다. 레리오스는 자신의 그림 연습장을 가리키며 나에게 속삭였다. “웨이사 랜드에는 예쁜 여자들이 많을 테니까, 열심히 스케치를 해야지. 그 래야 나중에 만화 그릴 때 써먹을 것 아니겠어?” 흘…… 그래, 열심히 그려서 성공해라……. 끼이ㅡ 교실 문을 열고 가리나크 선생이 들어왔다. 가리나크 선생은 책상마다 꽉 차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형식적으로 물었다. “다 왔냐?” “예ㅡ!” 오랜만에 아이들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난 슬쩍 4분단 제일 뒤쪽을 쳐다보 았다. 4분단에 있는 빈 책상은 이미 처분한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죽인 녀 석들의 기록도 깨끗이 말소되었다. 또한,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도 그들은 지 워져갔다. “좋아, 그럼 가자!” “와ㅡ!” 가리나크 선생의 말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난 소풍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느릿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왔다. 그때 레리오스가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난 먼저 가서 자리 잡아놓을 테니까 빨리 와라!” “어.” 탁탁탁ㅡ! 말이 끝나기 무섭게 레리오스는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열나게 뛰어갔다. 하지만 난 천천히 걸어갔다. 빨리 뛰기가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웅성웅성ㅡ 중등부 1학년의 전체 35개 반의 아이들이 꾸역꾸역 운동장으로 몰려나갔다. 난 그런 아이들 틈에 끼어 운동장까지 내려갔다. 1학년 아이들을 태우고 갈 버스는 모두 35대. 그런 많은 버스가 운동장에 들어올 정도로 오죠룬의 운동 장은 장난 아니게 넓었다. 어제 초등부 녀석들이 소풍을 갔고…… 오늘은 중등부 1학년…… 내일은 중 등부 2, 3학년이 소풍가는군. 소풍가서 네오니스와 같이 못 놀겠네? 1학년 중에서 내가 아는 녀석이 레리오스밖에 없지만 그 녀석은 친구들이 많아서 나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테니…… 결국 나 혼자 놀아야겠군. ‘D-7반……’ 난 앞 유리창에 D-7반이라고 써져있는 관광버스를 찾았다. 그 버스는 운동 장의 거의 끝 쪽에 있었다. 별 어려움 없이 버스를 찾은 난 곧장 버스 안으 로 들어갔다. 그리고 크게 놀랐다. 버스 안에 아이들이 가득 들어차 있기 때 문이었다. “……!” 레리오스가 버스 제일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난 그리로 갔다. 그러나 자리가 없었다. 5인 석의 뒷자리에는 4명이 앉아 있었지만 그 중 한 명이 꽤 뚱뚱했기 때문에 내가 끼어 들어 앉기란 불가능했다. “여기 앉아!” 레리오스가 억지로 자리를 만들려고 몸을 비키면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내가 앉으면 옆에 앉은 다른 아이들이 불편해 할 것이 분 명했다. 그래서 난 레리오스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난 그냥 저기 제일 앞에 앉을게. 그럼.” 내가 막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레리오스가 날 불렀다. “내가 같이 앉아줄까?” 헐…… 그랬다간 네 옆에 있는 친구들이 널 싫어하게 될 거다. 같이 놀아줘 야지…… 나 때문에 친구들한테 버림받으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괜찮아. 혼자 앉아 있는 게 편해.” 난 레리오스에게 웃어 보인 다음, 버스의 제일 앞으로 갔다. 비어있는 좌석 은 왼쪽에 2개, 오른쪽에 2개였다. 난 그 중에 오른쪽에 비어있는 좌석에 앉 았다. 흘…… 제일 앞에 남은 자리는 가리나크 선생 자리일텐데…… 저기 왼쪽에 자리가 2개 남으니까 저 쪽에 앉겠지? 설마 내 옆에 와서 앉겠어? 아니지… … 중간 고사 때 내가 컨닝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내 옆에 앉아서 날 막 괴롭힐 지도 몰라……. “…….” 혼자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할 일이 없어서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잠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비몽사몽에서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와ㅡ!” 얼레?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는 거야? 하늘에서 돈이라도 떨어 졌냐? 막 잠이 들려고 했는데 날 방해하다니……! 난 눈을 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열광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 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버스의 앞 유리창이었다. 그래서 이 번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운전석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가리나크 선생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샤느 선생이었다. “……?” 얼레? 어째서 샤느 선생이 이 버스 안에 있는 거지? 잠깐 들른 건가? “안녕, 류드?” 아이들의 환호성이 끝나자마자 샤느 선생은 곧장 내 옆 좌석에 앉더니 인사 를 했다. 그래서 나도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말았다. “아, 안녕하세요…….”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자 샤느 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여기 앉아도 되니?” 흘…… 이미 앉았으면서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앉지 마세요.’라고 하면 샤느 선생이 날 막 패 죽이려고 하겠지? “앉으세요…… 근데 선생님도 이 버스를 타시는 거예요?” “응. 나도 소풍을 가고 싶거든.” 정말로 소풍 갈 준비를 했던 모양인지 샤느 선생은 나에게 학생용 가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 번 호 : 7703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6일 23:03 등록자 : THEBUR 조 회 : 45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180 게 시 일 :00/04/15 07:59:48 수 정 일 : 크 기 :5.2K 조회횟수 :323 “근데 왜 이 버스를 타신 거예요? 다른 버스들도 많을 텐데…….” 내 말에 샤느 선생이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류드는 내가 싫니?” 에엑……?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럼 타도 되잖아. 그치?” 샤느 선생이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나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여 샤느 선생에게 긍정의 뜻을 보인 뒤 바로 눈을 감았다. 잠자 는 척을 하지 않으면 샤느 선생이 계속 나에게 말을 걸 것 같았기 때문이었 다. “자, 모두 모였지?” 눈을 감고 잠을 자는 척하는 내 귀로 가리나크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아이들이 큰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들렸다. “예ㅡ!” “좋아, 그럼 출발이다!” 가리나크 선생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버스는 천 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헐…… 드디어 출발하는군. 평소에 소풍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 이 세계에서 소풍가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리는걸? “류드 자는 거니?” 내가 눈 감고 자는 척하는 걸 보고서도 샤느 선생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자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뜨고 대답했다. “아니요.” “음료수 마실래?” 샤느 선생이 웃으면서 나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공짜로 주는 음료수를 거절할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냉큼 그걸 받고 뚜껑을 땄다. 내가 살던 세계 의 음료수 캔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 음…… 이거 콜라맛인데? 이 세계에도 콜라가 존재하고 있었군. 하여간 느 낌이 묘해…… 마법만 없으면 완전히 내가 살던 세계 아니냐고…… 이런…… 콜라가 너무 미지근한걸? 조금 얼려야겠어~ “콜라 시원하게 해줄까?” 그때 샤느 선생이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물론 내가 바라던 것이긴 하지 만 나 스스로 콜라를 차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게요.” “어머, 류드가?” 내 말에 샤느 선생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떠올렸다. 난 오른손으로 콜라 를 잡고 마나 파장을 방출했다. 방출된 마나 파장은 뚜껑을 따서 콜라 캔 속 으로 들어간 마나를 뭉치게 만들었고, 콜라 캔 속에서 뭉쳐진 마나는 빠른 속도로 캔을 빠져나와 단열팽창을 했다. 흠…… 콜라가 꽤 차가워졌군. 마법이 있으니까 아주 편리한걸? 만약 마나 의 운용방법이나 단열팽창 같은 걸 모르고 무조건 콜라를 차갑게 하려고 했 다면 꽤 힘들었을 텐데 말이야. 마나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겠구만~ “어머, 시원하네?” 내 콜라를 잡아보던 샤느 선생이 놀란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날 칭찬 하기 시작했다. “류드는 정말 마나를 잘 다루는구나. 보통 사람 같으면 콜라를 손으로 잡고 얼리다가는 자기 손까지 얼려버리는데. 콜라만 얼리다니 역시 류드다워~” 흘…… 그래요, 나 대단합니다…… 나 대단하다는 거 나도 인정하니까 다음 부터는 제발 칭찬 좀 하지 마쇼…… 뒤에 앉아있는 아이들의 살기를 못 느끼 는 거유? 부우웅ㅡ 버스는 대략 1시간 동안을 달려 목적지인 웨이사 랜드에 도착했다. 반 아이 들이 버스에서 다 내리고 난 후, 가리나크 선생은 우리들에게 말했다. “지금이 10시니까 오후 2시까지 알아서들 놀아라. 2시까지 여기로 다시 모 이면 된다. 늦게 오면 그냥 가버릴 테니까 시간 잘 지켜!” “예ㅡ!” “자, 그럼 실컷 놀아라!” “와ㅡ!”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웨이사 랜드 안으로 들어갔다. 난 잠시 버스 앞 에 서서 웨이사 랜드를 쳐다보았다. 가장 먼저 받은 느낌은‘무지하게 넓고 크다’였다. 길 잃어버리기 딱 좋은 크기였던 것이다. “야, 류드나르!” 내가 멍청히 서서 웨이사 랜드를 바라보자 레리오스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 귀에다 대고 소근거렸다. “너 샤느 선생님이 우리반 버스에 타는 걸 알고 일부러 앞에 앉았지?” 얼레? 내가 샤느 선생이 우리반 버스에 타는지 안 타는지 어떻게 알아? 제 길…… 이렇게 말해봤자 아이들이 믿어줄 리가 없겠지…… 으아…… 막 꼬인 다 꼬여……. “그건 아니다.” 뭐라고 길게 설명하기 귀찮았기 때문에 레리오스에게 짧고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자 레리오스는 실실 쪼갰다. “알아, 알아. 근데 너 누구랑 같이 다닐 사람 없지?” “없어.” “그럼 같이 가자.” 레리오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고, 난 그저 레리오스를 따라 갔다. 그때 가리나크 선생 옆에 있던 샤느 선생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 다. 내가 뭔가 샤느 선생에게 호응을 해주면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들의 눈에 거슬릴 것 같아서 그냥 샤느 선생을 무시하고 레리오스의 뒤만 졸졸 쫓아갔 다. 흠…… 그나저나 라이는 잘 있을지 모르겠군. 교장 할배에게 맡기긴 했는데 …… 뭐, 원래 주인이 교장 할배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신경끊자~ “야, 류드나르! 우리 저거 타자!” 앞서 가던 레리오스가 어떤 놀이기구를 가리켰다. 그것은 바이킹이었다. 으윽…… 나보고 저걸 타라는 말이냐? 초등학교 때 저거 탔다가 무서워 죽 는 줄 알았단 말이다…… 난 무서운 게 싫단 말여……! “아니, 난 안 탈래.” 내 말에 레리오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흘…… 그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냐? “무서운 건 싫어서.” “헤…… 남자가 저런 걸 무서워하면 어떡하냐? 나중에 여자친구랑 올 때 쪽 팔린다구~” 내가 여자친구에게 쪽을 당하든 말든 뭔 상관이냐? 아무리 설득해도 난 안 탈 거다. 저기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그때까지 언제 기다려? “난 여기 둘러볼게.” “둘러봐? 저거 안 타?” “기다리기도 귀찮고, 타기도 싫어. 그럼 난 먼저 갈 테니까 다른 친구들하 고 같이 놀아라.” 난 그렇게 레리오스에게 말하고 나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날 부르는 레리 오스를 뒤로 하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향했다. 흘…… 내가 이 세계로 넘어온 목적이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들기 위한 것이 었는데…… 이렇게 인간들하고 가깝게 지내지 않으니 걱정이군…… 하여간 친구 사귀는 건 내 성격에 안 맞는다니까…… 차라리 적을 만드는 게 더 편 할 것 같다……. ━━━━━━━━━━━━━━━━━━━━━━━━━━━━━━━━━━━ 번 호 : 7704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6일 23:04 등록자 : THEBUR 조 회 : 452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3- 제 목 :[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198 게 시 일 :00/04/16 07:34:52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207 “…….” 난 말없이 웨이사 랜드를 거닐었다. 평일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많아서 굉장 히 복잡했다. 우리 학교말고 다른 학교 학생들도 꽤 눈에 띄었다. 흘…… 할일도 없군. 놀이기구 타는 것도 재미없고…… 뭐하지? 아, 오락실 이나 한 번 가볼까? 터벅터벅ㅡ 시간은 많았기 때문에 웨이사 랜드 내의 오락실까지 느릿느릿 걸어갔다. 오 락실은 굉장히 컸다. 그리고 매우 다양한 오락 종류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 장 눈에 띄는 것은『SPD』였다. 쿵쿵 쾅쾅쾅ㅡ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열심히 발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살던 세계의 DDR이나 PUMP와 거의 똑같았다. 단지 이곳의 SPD는 발 밑에 발판이 있고, 플레이어의 양쪽 옆에 손으로 치는 손판이 있는 점이 달랐다. SPD화면에는 손판을 쳐야하는 것과 발판을 눌러야 하는 것의 두 가 지 화살표가 동시에 출력되고 있었다. 결국 손과 발을 다 사용해야 하는 게 임이었다. 장난 아닌데? 저런 고난이도의 DDR, 아니 발판이 5개짜리니까 PUMP로군. 손 판은 왼쪽에 4개, 오른쪽에 4개가 있으니까…… 전부 합하면 눌러야하는 판 이 13개잖아? 얼…… 서양에서는 악마의 숫자로 취급하는 13이라……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는 뜻? 으윽…… 지금 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쿵쿵쿵ㅡ 시끄러운 음악소리를 들으며 SPD를 하는 사람들을 잠깐 쳐다보다가 다른 곳 으로 시선을 돌렸다. 1층에는 모두 몸으로 직접하는 오락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번엔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2층에는 보통의 오락실처럼 동전을 집어넣고 하는 게임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흠…… 이제야 오락실 같은 분위기가 나는군. 그나저나 게임 종류가 내가 살던 세계의 것과 상당히 비슷한데? 나도 할 수 있겠어…… 근데 여기는 한 판에 얼마냐? 이런 데는 꽤 비쌀 텐데…… 뭐, 가지고 있는 돈도 별로 없으 니까 그냥 구경이나 하는 수밖에……. “…….” 난 잠깐 동안 오락하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이번엔 3층으로 올라갔다. 웨 이사 랜드의 오락실은 3층이 마지막이었다. 3층에는 PC방처럼 수십 대의 컴 퓨터가 놓여져 있었다. [GO-GO-GO!] 얼라리? 이 특유의 소리는…… 스타크래프트? 여기에도 스타크가……? “어서 오십……” 내가 들어가자 입구에 있던 한 아저씨가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난 그 아저씨 를 무시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게임이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 화 면을 쳐다보았다. “……!” 확실히 그 게임은 스타크래프트였다. 비록 이름은『SeiKoja(세이코자)』였 지만, 그 게임 방식이나 유닛들이 스타크래프트와 매우 유사했다. 특히 방금 전에 들었던『Go-Go-Go!』는 완전한 스타크래프트식의 음이었다. 헐……‘go’는 영어로‘가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도‘가다’라는 뜻이 니까 똑같이 쓰는구만. 하여간 여기에도 스타크 게임이 있다니 놀라워~ 흘흘, 나도 한 판 해볼까? “……!” 한 번 해볼까하고 다른 빈 자리를 물색하려는 순간, 난 아주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 갑자기 거대한 전함이 등장하고 이상한 로봇들이 나타나더니 현란하게 싸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행성에 있던 자원이 부족해지자 자신의 유닛들을 모두 전함에 태우고 다른 행성으로 워프해버리기도 했고, 여러 대의 로봇을 합체시켜 거대한 하나의 로봇으로 만들고 나서 공격하기도 했다. 뭐냐…… 스타크가 저렇게 변하다니…… 나 같은 초보자는 감히 해볼 엄두 가 나지 않는…… 그냥 나가야겠다…… 괜히 했다가는 내 돈만 깨질거야……! “저기 빈 자리가……” 어느새 내 옆으로 온 아저씨가 비어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 러나 난 그런 아저씨를 무시하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나갈 때 아저씨의 살 벌한 눈초리를 느꼈지만 그런 것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서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았다. 탁-탁-탁- 난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그렇 게 할 수 없었다. 조폭(조직폭력배)처럼 생긴 인간 4명이 내 앞을 가로막았 기 때문이었다. “야, 이 형이 오락 좀 하려는데 돈이 없어서 말이야, 돈 좀 꿔줘라.” 무스를 떡칠해서 머리를 모조리 세운 이상한 녀석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난 내 앞을 가로막은 네 명의 똘마니들을 쳐다보았다. 모두 들 겉보기에는 20살 이상으로 보였지만, 내 느낌으로는 18, 19살 정도의 녀 석들 같았다. “…….” 난 계속 입을 다물고 녀석들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머리를 모두 세운 녀석 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야, 시간 없어. 좋은 말할 때 빨리 돈 내놔.” 헐헐, 이 녀석들이 죽을려고 준비 운동을 하는군. 좀 놀아줘볼까? “내가 왜 네놈들한테 돈을 줘? 미쳤냐?” 난 싸늘한 표정으로 녀석들에게 그렇게 말했고 그런 내 말을 들은 녀석들의 표정이 확 변했다. “어쭈? 이 새끼가? 죽고 싶어?” 머리를 모조리 세운 녀석이 내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 녀석의 키는 나보다 꽤 컸기 때문에 멱살을 잡히자 자연히 내 발뒤꿈치가 올라갔다. 난 녀석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입을 열었다. “죽기 싫으면 얌전히 꺼져.” “…….” 내 말에 녀석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키도 작고 힘도 없을 것 같은 내 가 자기들에게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모양이었다. “미친 새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냐?!” 내 멱살을 잡은 녀석이 주먹을 치켜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위협성의 행동이 었다. 그들의 목적은 나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었으니까. 흘…… 이제 슬슬 끝내야겠군. 시간 끄는 것도 지겨워~ “…….” 난 입을 다문 채로 마나 파장의 방출을 유도했다. 비록 멱살을 잡힌 상태였 지만 마나를 제어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기분이 착 가 라앉은 상태였기 때문에 마나 제어가 더 쉽게 되는 것 같았다. 화륵ㅡ! 내 왼쪽 어깨 옆으로 내 머리통만한 불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바로 카파 보 인 것이다. “히익! 마법사?!” 내 옆에 만들어진 카파 보를 발견한 녀석들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면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 녀석들의 외침소리에 열심히 오락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 두 날 쳐다보았다. “진짜 마법사다!” “저 교복은…… 오죠룬 마법학교?!” 헐…… 교복만 보고 그 학교를 바로 알아맞추다니…… 그만큼 오죠룬이 유 명하다는 건가? 아, 아니구나…… 교복 마이 왼쪽가슴에『Ojyorun』이란 학 교 마크가 붙어있어서 저 인간들이 알게된 거였군……. 화르륵ㅡ 카파 보는 조금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옆에서 타올랐다. 난 뒤로 주춤 물 러선 녀석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돈 빌려줘?” “으으……” 녀석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마법사이기 때문에 함부로 덤비지 못하 는 것 같았다. 그래서 통쾌했다. 나보다 강한 녀석들을 이렇게 겁에 질리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통쾌했다. ━━━━━━━━━━━━━━━━━━━━━━━━━━━━━━━━━━━ 번 호 : 7705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6일 23:05 등록자 : THEBUR 조 회 : 50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199 게 시 일 :00/04/16 07:35:25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203 자…… 이제 녀석들을 어떻게 요리해줄까? 여기서 그냥 곱게 보내면 녀석들 은 다시 힘없는 아이들에게 돈을 뜯겠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몸 을 뭉개버릴까? “흥! 마법사라고 강하진 않아! 저 새끼 짝퉁일 수도 있어!” 아까 내 멱살을 잡았던 머리 세운 녀석이 자기 패거리들에게 그렇게 소리쳤 다. 계속 그 녀석만 나서는 것으로 봐서는 그 녀석이 일행의 대빵인 듯했다. “맞아! 저 새끼도 공격용 마법은 못 쓸거야!” 머리 세운 녀석의 말에 다른 녀석들이 맞장구를 쳤다. 아무리 봐도 그냥 돌 아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나하고 한 판 붙어볼까 하는 분위기였다. 흘…… 녀석들이 지금 호랑이 앞에서 깝쭉대는군. 뭐 이럴 때는 목을 확 물 어버려서 다시는 공기를 들여마시지 못하도록 만들어줘야 겠지. 펑ㅡ! 내 옆에서 활활 타고 있던 카파 보가 펑 소리를 내며 터졌다. 그것을 본 녀 석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헤헤, 마력 다 썼지?” “역시 짝퉁 마법사였어~” 뒤로 물러섰던 녀석들이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녀석들은 내가 카파 보 를 일부러 해제시켰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화르륵ㅡ! 난 주저없이 네 발의 카파 하사로를 만들어 내었다.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네 발의 카파 하사로를 본 순간, 녀석들은 다시 뒷걸음질치며 믿을 수 없다 는 듯이 소리쳤다. “뭐야? 마력이 있었던 거야?!” “이런 씨……!” 헐헐, 저 녀석들의 당황하는 꼴을 보니 참 재미있군. 우선 녀석들에게 카파 하사로를 한 발씩 선물해줘야 겠군. 근데 어디를 맞추지? 머리나 가슴, 복부 를 맞추면 죽을테고…… 팔이나 다리를 맞춰야 할텐데…… 그래, 팔을 맞추 자! 다시는 주먹을 쓰지 못하도록! 크크크. “빨리 도망가세요.” 내가 막 녀석들에게 카파 하사로를 날리려고 했을 때, 녀석들의 뒤에서 누 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녀석들은 내가 앞에 서 있는 것도 잊고 뒤를 쳐다보았다. 뒤에는 15, 16살 정도로 보이는 곱상하게 생긴 남자 녀석 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 녀석은 놀랍게도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서 도망가세요. 저 사람은 당신들을 정말로 공격할 생각이니까요.” 그 남자 녀석이 조폭 녀석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녀석들은 그 남자 아이의 말에 다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카파 하사로 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녀석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이내 계단을 통 해 아래층으로 잽싸게 달아나 버렸다. “두고보자, 새꺄!” 흘…… 끝까지 안 질려고 헛소리를 하는군. 따라가서 죽여놔? “그만두세요.” 조폭 녀석들에게 도망가라고 충고했던 남자 녀석이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돌려 그 녀석을 쳐다보았다. 확실한 오죠룬의 교복을 입은 그 남 자 아이는 파란색의 단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외모는 조금 잘생긴 편이었 지만 얼굴선이 가늘어서 연약한 분위기를 풍겼다. 흠…… 여자애들에게 조금 인기있을 법한 녀석이로군. 근데 방금‘그만두세 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뭘 그만두라는 거지? “그 사람들을 따라가서 죽여놓는다는 거요.”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그 남자 아이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런 녀석의 말에 놀라 정신이 흩으러져서 내 머리 위에 있 던 카파 하사로가 펑 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우…… 놀래라…… 설마 저 녀석이 내 마음을 읽은 건 아니겠지? 하하, 그 럴 리가 없어…… 그런 능력이 있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오. 전 선배님의 마음을 읽은 겁니다.” 내가 생각을 하기 무섭게 녀석이 입을 열었다. 난 말없이 녀석을 쳐다보았 다. 내가 계속 빤히 쳐다보기만 하자 녀석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우선 밖으로 나가서 얘기하죠.” 흘…… 생각 좀 정리하려면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탁-탁- 난 앞장서서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울 리고 있었다.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음악소리. 계속 있으면 고막이 파열될 것 같아서 곧장 오락실 밖으로 나갔다. “선배님은 SPD를 싫어하시는 모양이군요.” 어느새 따라온 그 남자 녀석이 빙그레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잠 시 주위를 둘러보아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녀석들이 없음을 확인한 뒤, 그 남자 녀석을 보며 물음을 던졌다. “너 오죠룬에 다니지?” “예. 중등부 1학년입니다.” 얼레? 중등부 1학년이라고라? 그럼 나하고 같은 학년이잖아? “에? 그럼 선배님…… 아니, 너도 중등부 1학년이었어?” 그 남자 녀석은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녀석보다는 내가 훨씬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내가 중등부 1학년이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녀석 은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으니까. “그 정도의 마법 실력이면 중등부 2학년이나 3학년일 줄 알았는데……” 녀석은 내가 놀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엇을 떠올린 듯 나에게 소리치듯이 물었다. “너 혹시 이번 중간고사에 전과목 만점을 받았다는 보나이 류드나르?” 얼라리…… 이 녀석에게도 내 소문이 퍼진 건가? “정말이었구나. 어쩐지…… 1학년인데도 마법 실력이 뛰어나다고 했어.” 녀석은 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녀 석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꼴이 상당히 기가 막혔다. 아니, 그것보다 는 마치 내 마음을 읽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녀석이 두려워질 지경이었다. “내 이름은 몽타르노 테리야크. 아까 말했지만 오죠룬 마법학교의 중등부 1 학년이고 A-5반에 다니고 있어. 그리고 내 특기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던 테리야크라는 녀석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잠시 내 눈치를 살폈다. 난 어서 말하라는 표정을 얼굴 가득히 떠올리며 테 리야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테리야크가 말을 이었다. “내 특기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거야.” “……?” 얼레? 마음을 읽는다고라? 헐헐, 농담 그만 좀 해라…… 세상에 그런 능력 을 가진 인간이 어디있냐? “그런 능력을 가진 인간이 없긴 왜 없어? 바로 여기 있잖아?” “……!” 테리야크는 또다시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을 했다. 그래서 혼동되었다. 녀석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렸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 로 보면 테리야크가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상식적 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너도 역시 쉽게 믿지 못하는구나.” 테리야크는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테리야크가 우 울한 표정을 짓는다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건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계속 믿지 못하겠다면 증거를 보여줄게. 아무 생각이나 해봐.” 내가 계속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자 테리야크가 그런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난 테리야크의 제안대로 했다. 흠…… 어떤 생각을 할까…… 뭐 아무거나 해도 되겠지. 아…… 오락실에서 나와 버렸으니 이제 뭘 한다냐…… 앞으로 남은 시간을 뭐하면서 떼우노……. ━━━━━━━━━━━━━━━━━━━━━━━━━━━━━━━━━━━ 번 호 : 7742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7일 23:51 등록자 : THEBUR 조 회 : 331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5- 제 목 :[사이케델리아] 9장:마음을 읽는 소년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23 게 시 일 :00/04/17 06:21:17 수 정 일 : 크 기 :8.5K 조회횟수 :189 “친구들하고 같이 온 게 아니었나 보구나.” “……?” 난 테리야크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테리야크를 빤히 쳐다보았고, 테리야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할일이 없다면서? 친구들이 있었다면, 뭐 하면서 시간을 떼울까 같은 생각 은 하지 않을 테니까.” “……!” 으윽……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녀석은 정말로 내 마음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제길……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지는데? 허걱! 이런 내 마음을 녀석 이 읽었을지도……! “이미 읽었어. 기분 나쁘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내 능력이니 나도 어떻 게 할 수가 없어…….” 테리야크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녀석에게선 외로움이 묻어나왔다. 사 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독심술(讀心術)인가? 아니지…… 이건 후천적 으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이니까 독심술이 라고는 할 수 없겠군. 그런데 도대체 얼마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 거냐? “내가 이런 능력을 가졌다고 마음 속으로 질문을 하냐?” 테리야크가 조금 불만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난 계속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질문했다. 흘흘, 난 입이 무거운 편이라 입을 열기가 싫거든. 잔말말고 얼마나 먼 거 리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는지 불어! “…… 내 주위로 3미터 이내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만 읽을 수 있어.” 흠…… 그렇군. 난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의 마음도 읽을 수 있을 줄 알 았더니…… 뭐 어찌됐건 가장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어떤 식으로 사 람의 마음을 읽는 거야? “사람들이 발산하는 뇌파 때문이야.” 테리야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뇌파란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교장 할배의 뇌파설이 떠올랐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테리야크의 능력과 뇌파설하 고 어떤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관계가 있어. 난 내 능력을 교장 선생님의 뇌파설에 기초를 두고 설 명할거야.” 헐…… 뇌파설로 설명이라…… 해봐~ “우선 알고 있겠지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떠올리면 그에 따라 뇌에서 뇌 파가 발산돼. 보통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뇌에서 발산되는 뇌파를 느낄 수 없지만, 난 느낄 수 있지. 그래서 내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거야.” 뇌파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라…… 근데 어째 설명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의 뇌파 파형이 모두 같은가? 예를 들어‘배고프다’란 생각을 떠올렸을 때, 사람들마다 뇌파의 파형이 다르다면…… 마음을 읽는데 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만약 뇌파가 모두 다르다면 그렇겠지.” 그렇다면…… 뇌파가 모두 같다는 소리? “거의 그래.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할 때 사람들의 뇌파는 모두 동일해. 그래 서 쉽게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만약 동일한 생각을 할 때 사람들의 뇌파가 모두 다르다면 아마 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었 을 거야.” 음…… 그래도 뭔가 설명이 부족한 듯한 느낌…… 아, 고유명사 같은 것도 알아낼 수 있냐? “고유명사? 글쎄……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초국가 언어를 쓰고 있을 때에는 고유명사까지 알아낼 수 있어. 내가 그 사 람들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언어에 대한 뇌파를 알고 있 거든. 하지만 언어가 제각각 달랐던 옛날이라면…… 아마 고유명사까지는 알 아낼 수 없을 거야.” 헐…… 그렇다면 지금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모든 생각을 알아낼 수 있다 는 뜻? 무서워…… 갑자기 가까이 하기가 싫어지는……! “그래…… 모두들 이런 내 능력 때문에 날 멀리하지…… 그래서 난 혼자고 …….” 테리야크의 표정은 더없이 우울해 보였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데 즐 거워한다면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야 물론 예외지만.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낼 수 없어서…… 난 공부만 했어. 그래서 이번 시험 에서는 전교 2등을 했고. 공부하는 것이 좋아. 공부는 아무리 해도 날 배신 하지 않으니까…….” 헐, 테리야크가 내 뒤였군. 뭐 점수를 물어보고 싶지만 실례일 것 같아서 안 물어봐주지. 근데 공부하는 게 좋다구? 공부를 좋아하는 인간이 있다니 놀라운걸? 난 공부 자체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공부하는 게 더 좋은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공부밖에 할 게 없잖아… ….” 테리야크는 허탈감이 담긴 미소를 떠올렸다. 녀석의 미소를 보자 괜한 것을 떠올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난 어디까지나 생각만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냥 무시해버렸다. 얼레? 근데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시험 볼 때 컨닝을 자유자재 로 구사할 수 있다는 소리? “뭐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반 아이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컨닝같은 건 안 했어. 내가 전교 2등을 한 건 순전히 내 실력이라구.” 내 생각이 조금 불쾌한 듯 테리야크가 눈썹을 조금 찌푸렸다. 계속 생각함 으로써 의사를 전달하다가는 버릇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테리야크, 그럼 네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몇 명이나 아는 거야?” “글쎄…… 우리반 애들은 다 알고…… 다른 반 아이들도 꽤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나에게는 친구가 별로 없으니까 나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테리야크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냥 놔두다간 계속 저런 표정을 지을 것 같아서 난 테리야크에게 쓸데없이 말을 걸었다. “오락실에는 왜 간거야?” “오락하려고.” 흘…… 당연한 걸 물어보다니…… 이건 정말 쓸데없는 질문이었어……. “좋아하는 여자 친구 있냐?” “…… 아니, 없어…… 누가 나 같은 애를 좋아하겠어…….” 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남자 친구든지 여자 친구든지 모두 테리 야크를 멀리할 수도 있겠군. 확실히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읽힌다는 것은 기 분나쁜 일이니까. “그럼 지금 특별히 할일 있냐?” “아니, 없어…….” 이런…… 너마저도 할일이 없다니…… 나도 할일이 없단 말이야…… 으으… … 그럼 하릴없이 웨이사 랜드나 싸돌아 다녀야 하는 거냐……? “근데……” 내가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할 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테리야 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아무 말없이 테리야크를 쳐 다보았다. 마음 속으로는‘어서 말해봐’를 생각하면서. 그러자 테리야크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기…… 넌 겉보기에는 약하고 어린데…… 마음은 뭐랄까…… 많이 거칠 다고 해야하나……? 아까 전에도 넌 네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을 정말로 다 치게 할 생각이었고…… 왠지 우리 또래의 애들하고는 다른 느낌이 들어서… … 그래서 그런지…… 넌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리구 중간 고사 때 어떻게 전과목 만점을 받았는 지도 궁금하구……” 헐…… 참 궁금한 것도 많구나. “기,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난 그냥 궁금해서……” 테리야크는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남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능력이 다 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까하고 불안해 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테리야크가 나에게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했다. “나야 워낙 사악한 녀석이라 나한테 개기는 녀석들은 가만두지 않아. 물론 나한테 마법이 있으니까 녀석들을 두들겨 줄 수 있는 거지만. 만약 마법이 없었다면 난 녀석들에게 죽도록 맞았겠지. 마법이 없으면 난 한낱 힘없는 녀 석이니까. 그리고 남들에게는 나름대로 한 가지 이상의 비밀이 있어. 그런 것들을 굳이 알려고 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지.” “……!” 내 말에 테리야크는 잔뜩 쫄아버린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남을 놀래키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계속 놀리면 테리야크가 화낼 것 같아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냥 해본 말이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말라구. 그리고 남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으로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면 입에 자물쇠를 채워야 해. 네가 아 무 말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네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을 테고, 따라서 기분 나쁘지도 않을 테니까. 물론 그 사람이 아주 사악한 생각 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알리거나 그 사람에게 말해야겠지만.” “그, 그런가? 하하…….” 테리야크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계속 이런 얘기만 하다가는 분위기가 서 먹서먹해질 것 같아서 난 화제를 돌렸다. “지금이……”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난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넓은 놀이 공원에는 으레 시계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내가 시계를 찾아내기도 전에 내 마음을 읽은 테리야크가 입을 열었다. “지금 오전 11시야.” 흘…… 나쁜 노무 시키……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잖아? 그럼 진작 말을 할 것이지…… 괜히 시계 찾으려고 쪽팔리게 주위를 두리번 거렸잖아! “미, 미안…….” 나원…… 그렇다고 사과까지 하냐? 약한 모습 보일래? “미, 미안…….” “…….” 흘…… 내가 말을…… 아니, 생각을 말아야지……. “그나저나 앞으로 3시간 남았는데 뭐할래?” 난 테리야크에게 물었고, 테리야크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할일 없으면 그냥 싸돌아 다니자.” “그러지 뭐.” 그렇게 의견의 합치를 본 나와 테리야크는 대충 아무 방향이나 잡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웨이사 랜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아주 시 끄러운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위이이이잉- 으윽…… 더럽게 시끄럽군.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 거냐? 민방위 훈 련이라도 하는 거야? 《현재 웨이사 랜드 주위에 긴급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웨이사 랜드 내의 손님들께서는 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드라콘이 웨이사 랜드 쪽으로 북상 중이오니 보석류는 가급적 숨기시고 대피하십시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웨이사 랜드 주위에 긴급대피령이……》 ━━━━━━━━━━━━━━━━━━━━━━━━━━━━━━━━━━━ 번 호 : 7743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7일 23:51 등록자 : THEBUR 조 회 : 342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1-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24 게 시 일 :00/04/17 06:21:48 수 정 일 : 크 기 :4.5K 조회횟수 :188 <제 10 장> 드라콘 얼라리? 긴급대피령이라고? 이거 진짜 민방위 훈련이냐? “드, 드라콘이?!” “어서 대피를!!!”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자마자 놀이 기구에 타고 있던 사람들, 그리고 연인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급히 대피소로 뛰어갔다. 웨이사 랜 드는 순식간에 혼란으로 뒤덮였다. 그런 사람들을 통제하느라 도우미들은 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류드나르! 우리도 어서 대피하자!”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테 리야크가 말을 걸었다. 녀석의 얼굴에도 꽤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 었다. 녀석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안내 방송에서 흘러나왔던‘드 라콘’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드라콘…… 이 나라 언어로는‘Dyirakon’이라 하고…… 뜻은 영어로‘Drag on’, 한국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용(龍)인데…… 그런 드라콘이 웨이사 랜드 쪽으로 북상하고 있다니 무슨 소리야……? 드라콘이 무슨 태풍이냐? “태풍은 무슨 태풍이야!!!” 내 생각을 읽은 테리야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난 테리야크를 잠깐 매섭게 노려봐준 다음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드라콘이 왜 여기로 오는데? 아니, 그것보다 드라콘이 있기는 있는 거야? 이런 세계에?” “무슨 소리야? 드라콘의 수가 적은 건 사실이지만 없다고 볼 수는 없어! 너 그런 것도 모르는 거야?” 테리야크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살던 세계만큼이 나 과학이 발전한 곳에 드래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놀라울 뿐이었 다. “어디로 대피하지? 대피소로 갈래?” 드래곤이 이리로 오고 있다는 소리에 테리야크는 상당히 안절부절하지 못했 다. 그런 테리야크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리고 내 궁금증을 풀어버리기 위해 난 테리야크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드라콘이 많이 살고 있는 데는 어디냐?” “뭐?” “드라콘이 많이 살고 있는 곳 말이야.” “……?” 내 질문이 예상 외의 것이었는지 테리야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 다가 내 마음을 읽고 내가 정말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아까 의 당황함은 다 벗어버린 채 또박또박 대답했다. “드라콘이 살고 있는 데야 넓지. 주로 핵폭탄이 떨어졌던 곳에 살고 있으니 까.” 얼라리여? 핵이 떨어졌던 곳이라고라? 거기에는 방사능이 철철 넘칠텐데? “방사능이 많으니까 살고 있는 거지. 사람들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니까 말이야.” “……?” 테리야크는 그 말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더더욱 헷갈려졌 다. 몸에 해로운 방사능이 마구 방출되는 그런 위험지대에 드라콘이 살고 있 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데에 살면 드라콘 안 죽냐?” “안 죽으니까 살고 있지!” 그건 그렇군. “그럼 어째서 드라콘이 방사능 누출 지역에 멀쩡히 살 수 있는 건지 이유를 설명해봐.” 난 아주 딱딱한 말투로 테리야크에게 물었다. 상식적으로 방사능이 많은 곳 에 생물이 살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투가 그 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테리야크는 내 변해버린 말투에 조금 위축된 듯한 모 습을 보였다. “그게…… 그러니까…… 그 뭐드라……” 이런…… 빨랑빨랑 설명해~ “류드!!! 어서 대피하지 않고 뭐하고 있어!!!” 내가 마음 속으로 테리야크를 재촉하고 있을 때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면서 날 불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샤느 선 생이었다. “샤느 선생님이?” 테리야크가 샤느 선생을 보고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내 쪽 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네가 샤느 선생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으윽…… 테리야크, 너마저……! “하악, 학……!” 거의 번개같은 속도로 우리 앞까지 뛰어온 샤느 선생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면서 호흡을 안정시켰다. 난 그런 샤느 선생에게 한 마디했다. “선생님은 대피 안 하세요?” “하아…… 류드!!!” 갑자기 샤느 선생이 나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는 매우 화난 어조 로 말을 이었다. “드라콘이 오고 있어! 그 소리를 듣지 못한 거야?!” “들었어요.” “들었으면서 왜 피하지 않는 거야?!” 헐…… 드라콘을 꼭 피해야 하는 거야? 여기의 드라콘은 닥치는 대로 사람 을 죽여버리는 아주 사악한 도마뱀? “아, 안녕하세요……!” 그때 테리야크가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샤느 선생에게 어색한 인사를 했다. 난 샤느 선생이 테리야크의 말을 씹어버릴 줄 알았다. 그러나 샤느 선 생은 내 예상과는 달리 표정을 확 바꾸어 말했다. “그래. 너도 오죠룬의 학생이구나? 중등부 1학년 같은데?” “예.” 흘…… 드라콘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가하게 인사나 주고 받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인간들이야…… 그나저나 웨이사 랜드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네? 어디로 가버린 거냐? 대피소가 어디야? “류드! 어서 가자!” 샤느 선생은 내 손을 덥썩 잡고는 어딘가로 날 끌고가려 했다. 하지만 난 끌려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드라콘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녀 석인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 번 호 : 7767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8일 21:29 등록자 : THEBUR 조 회 : 6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2-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32 게 시 일 :00/04/18 05:59:38 수 정 일 : 크 기 :5.0K 조회횟수 :196 “근데요, 드라콘은 방사능 오염 지대에 살고 있잖아요?” “응? 아, 그래. 근데?” 막 날 끌고 가려던 샤느 선생은 질문을 받자 행동을 멈추었다. 평소 학생들 에게 질문을 자주 받고 대답해야 하는 선생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질문을 받 으면 하던 것을 멈추고 대답하는 버릇이 샤느 선생에게 생겨버린 듯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에 사는 데도 어떻게 드라콘들이 멀쩡히 살 수 있는 거예요?” 난 가장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았다. 내 나름대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산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샤느 선생은 내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물음에 대한 대답해 주었다. “드라콘들이 방사능 오염 지대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마나를 회전시키고 있기 때문이야.” 얼레? 마나를 회전시키기 때문에 방사능 오염 지대에 살 수 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그럼 마나를 회전시킬 수 있는 마법사들도 방사능 오염 지대에 살 수 있다 는 소리예요?” 난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샤느 선생도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 황당했다. 마나를 회전시킨다는 것 하나로 방사능 오염 지대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방사능 오염 지대에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마나가 방사능 을 차단하기라도 하나요?” 난 조금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 조가 조금 거칠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내가 그냥 해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아. 회전하는 마나는 방사능을 차단하는 어떤 기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 어.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많은 양의 마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마법사는 핵분열이 일어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 내의 원자로 속에 들어가도 멀쩡할 수가 있다는 소리야.” 허허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도대체 마나가 무슨 수로 그 많은 방사 능을 다 막아? 그게 가능해? “어떻게 회전하는 마나가 방사능을 차단한다는 것을 알아냈죠?” 난 여전히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기분이 괜히 나빠졌다. 샤느 선생의 얘기 는 평소의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믿고 있었던 어떤 생각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의 기분이 어떤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우연이야. 한 마법사가 방사능으로 잔뜩 오염된 지역에서 살아남았거 든. 처음에 그 마법사는 그냥 여행을 하는 도중이었다고 해. 그곳이 방사능 오염 지역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어찌됐건 그 마법사는 자신이 많은 양 의 방사능에 노출됐는데도 멀쩡하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의 가설을 세웠어. 그건‘마나는 방사능을 차단한다’는 것이었지.” 그래서? “하지만 그 가설은 처음부터 반박을 받았어. 이 세상에는 마나가 골고루 존 재해 있는데, 마나가 방사능을 차단한다면 당연히 공기 중의 방사능은 마나 에 의해 차단되어 존재하지 않아야 하거든. 하지만 자연 방사능은 공기 중에 엄연히 존재해. 그래서 그 마법사는 다시 새로운 가설을 세웠어.‘안정한 써 클수를 이루며 회전하는 마나는 방사능을 차단한다’로 말이야.” “…….”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샤느 선생의 설명을 듣기만 했다. 당장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좀더 샤느 선생의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 다. “그런 가설을 세우자 모든 게 들어맞았어. 그 동안은 드라콘이 어떻게 방사 능 오염 지역에서 살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거든. 실험적으로도 증명되었고.” “실험적으로요? 어떻게요?” “간단해. 밀폐된 방 안에서 마법사에게 방사능을 쏘는 거야. 그래서 방사능 의 자취를 추적하는 거지.” 흘…… 방사능을 인간에게 직접 쏜다라…… 위험하지 않을까? 아, X-ray도 방사능의 일종이구나…… 근데 마나가 방사능을 차단한다면…… 마법사들은 X-ray를 찍을 수 없다는 소리? “그 실험을 통해서 방사능의 자취를 추적해본 결과, 6써클 이상의 마법사는 주위의 방사능을 모두 빗겨가게 하거나 되튕겨보낼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어.” 샤느 선생은 지금이 수업 시간이라도 되는 양 그렇게 아주 자세히 말했다. 내 질문 때문에 지금이 비상 사태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했다. 어쨌든 나도 비상 사태 같은 것에는 신경쓰기 싫었다. 지금은 드라콘, 아니 마나의 방사 능 차단에 대해 확실히 알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근데요, 마법사들은 X-ray를 찍을 수 없나요?” 난 샤느 선생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질문을 던졌다. 샤느 선생은 전혀 불쾌 해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내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보통 때처럼 X-ray검사를 하면 당연히 X선이 빗겨져 나가버려. 그래서 마 법사들의 X-ray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마나의 회전 반경 내에서 X선을 발사해 야 해. 좀더 쉽게 말하면, X-ray기구를 마법사의 몸에 바짝 갖다대고 촬영해 야 한다는 거지. 그래야 X선이 마나의 방해를 받지 않고 몸 속을 투과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흠…… 그렇군. 하여간 마법사들은 마나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들겠어~ 얼 레? 잠깐! 뭔가 이상하다? 마나는 공기가 있는 곳에만 분포한다고 했는데…… 그 소리는 물체 속에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벽에 가까이 붙어 있다고 치면…… 내 몸 주위를 회전하는 마나는 도대 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 거지? 벽 때문에 원운동이 불가능할텐데? 탁탁탁- 난 급히 제일 먼저 눈에 띈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서 벽에 가까 이 붙어 섰다. “왜 그러니, 류드?” 샤느 선생이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난 내 마나의 회전을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 뭐야, 이거? 마나가 벽을 그냥 뚫고서 회전을 계속 하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공기 속에만 마나가 존재한다며? 근데 어떻게 마나가 벽 속에서 회 전할 수 있느냔 말이야! ━━━━━━━━━━━━━━━━━━━━━━━━━━━━━━━━━━━ 번 호 : 7768 / 7772 등록일 : 2000년 04월 18일 21:30 등록자 : THEBUR 조 회 : 5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3-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33 게 시 일 :00/04/18 05:59:59 수 정 일 : 크 기 :5.0K 조회횟수 :189 “류드!”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샤느 선생이 날 불렀다. 하도 많이 나한테 씹혔기 때문인지 이런 것에는 익숙해져서 화도 내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난 전에 샤느 선생이 말했던 마나에 대한 설명에서 오류를 찾아냈기 때문에 즉시 물 음을 던졌다. “선생님. 마나는 공기 중에만 존재한다고 하셨잖아요?” “으응? 그, 그래…….” 왠지 샤느 선생의 대답은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 을 알게 되었다. “근데 지금 제 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뚫고서 회전하고 있어요. 벽 속에는 공기가 존재하지 않잖아요? 어떻게 공기가 존재하지 않은 벽 속을 마 나가 통과할 수 있는 거죠?” “…….” 샤느 선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로 속이려다가 들켜버린 듯한 표정 이었다. “역시 류드는 날카롭구나.” 흘…… 내가 송곳이냐, 날카롭게? “그래. 마나가 공기 중에만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말이지.” 어쩔시구리…… 그런 잘못된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다니…… 이 아줌마 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마나는 모든 물체 안에 존재해 있을 수가 있어. 하지만 거기에는 전제 조건이 붙지. 안정한 써클수로 회전하고 있는 마나만 이 물체 안에 존재해 있을 수 있다는 것 말이야.” “……?” 쉽게 이해가 안 가는데? “보통의 마나는 공기 중에서만 분포하지. 그리고 안정한 써클수를 이룬 마 나는 물체를 통과할 수가 있어. 아까 류드가 말한 대로 마나가 벽을 통과하 여 회전할 수도 있지. 마나는 질량과 부피가 없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 사이를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거든. 하지만 보통의 마나 는 물체를 통과하지 않아. 오직 공기가 있는 곳에서만 분포해. 왜 그런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더 이상 할말이 없는지 샤느 선생은 입을 다물고 날 쳐다보았다. 마나의 성 질에 대해 물어봐도 샤느 선생은 대답해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난 마나 의 방사능 차단에 대해 궁금한 것이 여전히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런데요, 마나가 방사능을 차단한다고 그러셨잖아요? 마나가 우리 몸을 다 에워싸면서 회전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방사능을 차단할 수 있어 요?” “알루미늄을 공기 중에 방치하면 어떤 것이 생기지?” 샤느 선생은 대뜸 그런 물음을 나에게 던졌다. 갑작스런 질문이라 조금 당 황했지만,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배운 화학 지식을 떠올리자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산화알루미늄막…… 인가요?” “잘 아네?” 샤느 선생은 이미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어서 설명하라는 표정을 짓자 샤느 선생은 아주 간단한 한 마디를 했다. “그 정도만 가르쳐줘도 류드라면 충분히 알 수 있어.” 으윽…… 뭐냐? 설명 못한다면 솔직하게 못한다고 그래라…… 속 보인다… … 뭐 어쨌든…… 산화알루미늄막하고 마나의 방사능 차단하고 무슨 연관 관 계가 있다는 소리일텐데…… 아, 그렇다면?! “그럼 산화알루미늄막처럼 마나도 일종의 막 같은 걸 형성해서 방사능을 모 두 차단한다는 소리인가요?” 난 바로 샤느 선생에게 질문을 했고 샤느 선생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역시 류드야. 맞았어. 6써클 이상의 회전 마나 사이에서는 보이지도 느껴 지지도 않는 일종의 막 같은 것이 몸을 완전히 둘러싸게 된다고 마법사들은 추측하고 있지. 그래서 그 막 때문에 방사능이 차단된다고 설명해. 물론 이 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사실은 아니야. 아쉽게도 확인할 방법이 없거든.” 그런가? 여기 마나는 내가 모르는 성질을 더럽게도 많이 가졌구만…… 그 성질 다 외우려면 머리 작살나겠다……. “저기요…… 방해해서 죄송한데요…… 지금 피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때 테리야크가 나와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테리야크가 그렇게 말했 을 때서야 난 지금 드라콘이 이리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샤느 선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 그렇지! 류드, 그리고 너도 어서 가자!” 샤느 선생은 내 손을 낚아채듯이 잡더니 날 대피소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테리야크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러나 그때 거대 한 폭발음이 우리의 귀를 강타했다. 콰콰쾅-! 크윽…… 귀청 떨어지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저, 저기……!” 테리야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래서 나와 샤느 선생은 그쪽을 쳐다보았다. 그런 우리의 눈에 거대한 드래곤 한 마리가 여러 대의 전투기와 싸우는 모습이 잡혔다. 호오…… 저 드래곤, 아니 여기 말로 드라콘 녀석은 미사일을 맞고도 끄떡 을 안 하네? 피부가 강철로 되어 있나? 얼라리? 미사일이 드라콘의 몸에 닿 기도 전에 폭발해 버리는군. 그렇다면 방어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리겠지? 여기 드라콘은 마법을 쓰는구나! “이리로 온다!!!” 샤느 선생이 우리 쪽으로 곧장 날아오고 있는 드라콘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난 계속 제자리에 서서 드라콘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구경했다. 흠…… 저 드라콘은 피부색이 뻘겋구만. 그렇다면 화염 브레스(Breath)를 쓰지 않을까? 아차, 여기 드라콘이 브레스를 사용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는 데 너무 생각이 앞섰군……. “류드! 어서 대피소로!!!” 샤느 선생은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난 그런 샤느 선생을 돌아보며 한 마디 해주었다. “전 여기서 구경할테니까 먼저 가세요.” “……!” 내 말에 샤느 선생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장 내 따귀를 내 려쳤다. 짜악-!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죽고 싶어서 그러니?!” 샤느 선생은 정말로 화가 나서 소리쳤다. 뺨을 맞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 지만, 샤느 선생의 화난 표정을 보니 왠지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방 금 전에 내가 했던 말을 되새겨 보았다. ━━━━━━━━━━━━━━━━━━━━━━━━━━━━━━━━━━━ 일꾼: 이상규님의 멜주소는? sakali@unitel.co.kr ^^ 번 호 : 7803 / 7867 등록일 : 2000년 04월 19일 23:35 등록자 : THEBUR 조 회 : 523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4-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39 게 시 일 :00/04/19 06:11:48 수 정 일 : 크 기 :4.8K 조회횟수 :203 흘…… 여기 남아서 구경한다라……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죽을 지도 모 르는데 어째서? 아…… 그렇군. 난 지금 여전히 날 10클래스의 마법사로 생 각하고 있었어…… 그래서 저 드라콘이 날 공격해도 난 충분히 막아낼 수 있 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허허,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이렇 게 바보였던가? 지금 4써클 밖에 안되는 마나로 저 드라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죄송해요.” 난 뺨을 감싸쥐고 샤느 선생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샤느 선생도 고개를 저 었다. “아니야. 그것보다 어서 피하자!” 샤느 선생은 다시 내 손을 잡고 뛰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온몸이 시뻘건 드라콘 녀석이 우리 바로 앞에 착지했기 때문 이었다. 키가 10미터는 가볍게 넘을 듯한 모습. 양쪽 날개를 펼치고 그 길이 만을 재도 10미터는 될 것 같았다. “꾸아아악-!”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온몸이 시뻘건 드라콘, 이 나라 언어로‘아레드라콘’ 은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곧이어 전투기와 전투용 헬기의 요란한 소음도 들려왔다. 쐐애앵- 투투투- 이런…… 이거 우리가 전투기와 아레드라콘의 전투 지역에 포함되어 버린 것 같은데? 여기 있다가는 꼼짝없이 저승 구경가게 생겼다……! “자, 어서 이쪽으로……!” 샤느 선생은 나와 테리야크를 끌고 어떤 건물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렇 게 해서 우리는 아레드라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임시 방편일 뿐이었지만. 콰콰쾅-! 두두두두두-! 미사일 터지는 소리와 헬기의 발칸포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허공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아레드라콘의 괴성도 묘한 조화를 이루며 우 리의 고막을 시끄럽게 때렸다. “어떡하죠, 선생님?” 테리야크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샤느 선생에게 물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 이를 어쩌지……?” 샤느 선생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난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아레드라콘 을 쳐다보았다. 아레드라콘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자신을 공격하는 전투 기와 헬기를 향해 브레스를 쏘아대고 있었다. 흠…… 여기 드라콘은 브레스를 사용하는군. 얼라리? 근데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불길이 아레드라콘의 입 앞쪽부터 시작하는 거지? 브레스라면 불길의 시작점이 목구멍이나 이빨 사이일텐데? 아무래도 저건 브레스가 아닌 것 같 다……? 구구구- 콰앙-! 내가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레드라콘의 브레스 방향이 공중 에서 틀어져서 전투기 한 대를 격중시켰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난 확실히 저 아레드라콘의 브레스가 마법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되 었다. 브레스라면 허공에서 방향이 바뀔 리가 없을 테니까. 슈우웅- 아레드라콘의 공격에 격중당한 전투기에서 탈출하는 조종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조종사가 없는 전투기의 기체는 곧장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 했다. 불행히도 그 위치는 우리들이 있는 쪽이었다. “피해요!!!” 난 샤느 선생과 테리야크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상황이 급박했기 때문에 자 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무조건 피하라고만 하니까 둘은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건물 뒤쪽에서 떨어지는 날 보고는 날 따라서 그 자리를 피했다. 콰콰쾅! 우리가 피해있었던 건물이 전투기와 정면 충돌하면서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 했다. 계속 그 건물 뒤쪽에 서 있었다면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었을 뻔한 상황이었다. “휴우……!” 무너지는 건물을 보고 테리야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지금 우 리의 상황은 전혀 안도할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건물 뒤쪽에서 뛰쳐나왔기 때문에 아레드라콘의 시야 내로 들어오게 되버린 것이었다. “쿠아아-!” 다행히 아레드라콘은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공격하는 전투기와 헬기에 신경 쓰느라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 녀석의 앞쪽에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 놓는다면 언젠가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 뻔했다. “아직 드라콘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니까 이때 어서 대피소로 피하자!” 샤느 선생은 멍청히 서 있는 나와 테리야크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물론 그 소리는 허공 위의 전투기와 헬기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샤느 선생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먼저 대피소로 뛰어가는 샤느 선생의 뒤를 바로 따라갔다. 슈우우…… 두두두…… 전투기와 헬기의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전투지역에서 멀리 떨 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투기와 헬기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는 전투기가 아레드라콘에게 모두 당했거나, 또는 미사일이 떨어진 전투 기가 본부로 돌아가 버렸다는 뜻이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샤느 선생의 뒤를 따라가던 나는 크게 흠칫했다. 우리 주변에 있던 마나가 뭉쳐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아레드라콘이 우 리를 향해 공격을 하려한다는 뜻이었다. “선……!” 난 샤느 선생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이미 제자리에 멈추어서 빠른 속도로 무엇인가를 외치고 있었다. 마법 이론 선생답게 나보다 먼저 아 레드라콘의 공격을 알아챈 것이다. “방어지막(防禦之膜) 단로반격(斷路反擊) 군력무한(君力無限) 극강방마(極 强防魔)!” 샤느 선생이 외친 주문은 저번에 교장이 나에게 치유마법을 걸어줄 때의 주 문 형식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것은 샤느 선생이 전력으로 마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 -E 번 호 : 7804 / 7867 등록일 : 2000년 04월 19일 23:36 등록자 : THEBUR 조 회 : 53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5-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40 게 시 일 :00/04/19 06:12:12 수 정 일 : 크 기 :4.9K 조회횟수 :217 화르르륵- 샤느 선생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아레드라콘의 입 앞쪽에서부터 불꽃이 일어 나더니 곧장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그 불길은 우리 앞, 정확히는 샤 느 선생의 앞에서 무엇인가에 부딪힌 듯이 넓게 퍼지며 사방으로 소멸해 나 갔다. “……!” 방어마법인가? 아레드라콘의 불길이 대충 반구 모양으로 퍼져나가는 걸 보 면 우리 주변에 반구 모양의 방어막을 형성한 것 같다…… 하지만 방어마법 만으로는 아레드라콘을 이길 수 없을텐데……! 화르르륵- 불길은 끊임없이 우리를 집어삼키려는 듯 계속되었다. 그래서 샤느 선생도 계속 방어마법을 유지시켜야 했다. 그러는 샤느 선생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 글 맺히기 시작했다. 제길…… 이러다가는 모두 죽을 거야…… 나 때문인가…… 내가 여기 남아 있겠다고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빌어먹을! “분노하고 있어…… 저 아레드라콘……!” 그때 테리야크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난 그런 테리야크를 무섭게 째려봤다. 지금 상황을 보면 누구나 아레드라콘이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 까. “그게 아니야…… 저 아레드라콘은…… 무엇인가를 빼앗겨서…… 분노하고 있어……!” 얼레? 무엇인가를 빼앗겼다고? 저 강한 아레드라콘이? 누구한테? 뭘? “쿠아아악!” 샤느 선생이 자신의 공격을 잘 막아내자 아레드라콘이 괴성을 질러댔다. 상 당히 분노한 듯했다. 아레드라콘이 공격을 잠시 멈추고 괴성을 지르고 있을 때, 샤느 선생은 급히 방어마법 바리어를 거두어 들이고 우리를 돌아보며 소 리쳤다. “어서 도망가!” “……!” 샤느 선생을 이곳에 두고 우리끼리 도망가라고? 쿠쿠쿠쿠ㅡ 나와 테리야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레드라콘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불 의 공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대한 도마뱀이 날개를 활짝 펼치고 머리를 하 늘 위로 향한 채, 거대한 불의 공을 머리 위에 만들어 내는 모습은 거의 장 관이었다. “……!” 으윽…… 엄청난 마나 파장이다…… 아니, 뇌파인가? 마나 파장이든 뇌파든 너무 강렬해…… 인간이 대적할만한 수준이 아니야……! “방어지막 단로반격 군력무한 극강방마!” 샤느 선생은 다시 한 번 방어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러한 샤느 선생의 몸 주위에서도 강렬한 마나 파장이 방출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과 샤느 선생의 마나 파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흐윽……!” 샤느 선생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레드라콘이 방출하는 마나 파장에 강 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물론 파장은 서로 부딪치더라도 충돌 후에는 자 신의 파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아레드라콘 역시 샤 느 선생의 마나 파장에 맞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샤느 선생의 마나 파 장으로는 아레드라콘에게 어떤 충격을 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선생님!!!” 테리야크가 갑자기 비명 가깝게 소리를 질렀다. 잠시 아레드라콘을 쳐다보 았던 난 즉시 테리야크와 샤느 선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샤느 선 생이 입가에 피를 흘리며 비틀비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샤느 선생님! 괜찮으세요?!” 난 샤느 선생 옆으로 다가가 샤느 선생을 부축하며 급히 물었다. 샤느 선생 은 그런 날 보고 처량한 미소를 떠올렸다.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조차 견디지 못하다니…… 6써클의 마력으로 드라 콘과 싸운다는 건 역시 무리였어…… 아무래도…… 나…… 류드를 지켜줄 수 …… 없을 것 같아……” “선생님……” 주르륵ㅡ 샤느 선생의 입가로 점점 출혈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샤느 선 생의 초점은 점점 흐려져 갔고, 자연스럽게 바리어의 힘은 점점 사라져갔다. 이제는 나와 테리야크가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 되 어버렸다. “허억!” “크윽!” 나와 테리야크는 거의 동시에 신음을 내질렀다.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은 상상외로 강렬했다. 방금 전에 내가 잠시 느꼈던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은 장난인 수준이었다. 그것은 샤느 선생의 방어마법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이제 샤느 선생의 방어마 법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니, 나와 테리야크는 더욱 더 강렬한 마나 파장 을 맞아야 할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콰콰쾅! 그때 갑자기 요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우 리의 몸을 계속 내리치던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래 서 난 즉시 고개를 들어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확인했다. 투투투투ㅡ! 우리를 도운 것은 전투기와 헬기였다. 무기를 보충했거나, 아니면 다른 지 원 부대가 이제서야 도착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아슬아슬하게 그들이 도착 해서 나와 테리야크, 그리고 샤느 선생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난 거의 인사불성이 된 샤느 선생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샤느 선생은 전 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즉시 샤느 선생에게 치료마법을 걸어주려 했다. 그러나 이곳의 치료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자신 의 한계를 느끼자 절망감이 덮쳐왔다. 제길…… 난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골드 드래곤도 가볍게 무찌른 내가 …… 치료마법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다니…… 젠장…… 빌어먹을!!! “……!” 그때 또다시 아레드라콘에게서 강렬한 마나 파장이 방출되었다. 그 마나 파 장은 수십 개의 카파 하사로를 만들어내기 위한 밑거름이었다. 슈슈슉! 아레드라콘 주위에 생성된 수십 개의 카파 하사로가 곧장 전투기와 헬기 쪽 으로 날아갔다. 그 무수한 불화살을 전투기를 탄 채 피하기란 애초에 불가능 했다. ━━━━━━━━━━━━━━━━━━━━━━━━━━━━━━━━━━━ 폛 번 호 : 7836 / 7867 등록일 : 2000년 04월 20일 23:54 등록자 : THEBUR 조 회 : 360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6-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53 게 시 일 :00/04/20 05:58:57 수 정 일 : 크 기 :5.0K 조회횟수 :232 퍼퍼펑! 순식간에 여러 대의 전투기와 헬기가 격추당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사 일을 수십 발 맞아도 멀쩡한 아레드라콘도 그렇고, 카파 하사로 공격에 맥없 이 당해버린 공군도 그러했다. “으악! 녀석이 또 공격해 오려고 해!!!” 아레드라콘의 마음을 읽었는지 테리야크가 비명을 질러댔다. 난 우리 쪽으 로 고개를 돌리는 아레드라콘을 노려보았다. 아레드라콘 역시 나와 눈을 마 주했다. 그래서 난 아레드라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녀석의 얼굴에는 피가 조금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까의 미사일 공격에 만들어놓았던 카파 보가 터지면서 약간의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그리고 녀석과 눈을 마 주한 그 잠깐의 순간, 난 아레드라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서 보물을 빼앗아간 자…… 용서하지 않는다! 보물……? 구구구구ㅡ 아레드라콘은 또다시 자신의 머리 위로 거대한 카파 보를 형성하기 시작했 다. 난 샤느 선생을 녀석의 마나 파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내 몸으로 샤느 선생을 가렸다. 그리고 그 순간,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이 내 몸을 강타했 다. “커헉!!!” 크으…… 이런 엄청난 마나 파장을 샤느 선생이 혼자 막아냈단 말이야? 크 으윽…… 빌어먹을…… 아직 녀석의 공격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무 너지다니……! “어어억……!” 테리야크는 이미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한 아레드라콘 이 방출하는 마나 파장의 영향으로 흙먼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아레드라콘 가까이에 있는 건물이 흔들리기도 했다.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마나 파장의 힘이었다. 구구구구ㅡ 아레드라콘의 카파 보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 한 방으로 여기를 완전히 날려버릴 생각 같았다. 만약 저 카파 보가 여기에 떨어진다면, 아무 리 대피소에 있다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모두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만큼 아레드라콘의 카파 보에서 느껴지는 파괴력은 무서울 정 도였다. “난…… 절대 안 져…… 너 같은 도마뱀 녀석에게 질 수 없어…….” 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왼손을 들어 아레드라콘의 턱과 목 사이 부근을 겨 냥했다. 내 전 마력을 쏟아부어 그곳에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다면 아레드라콘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화르륵ㅡ! 내 왼손 앞에서 2미터가 넘는 카파 하사로가 만들어졌다. 카파 하사로를 날 려보내기 위한 마력을 제외한 나머지 마력을 전부 카파 하사로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내 몸을 덮쳐오는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을 견디기가 더욱 어려워지 고 말았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었다. “으아아ㅡ!” 난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을 누르고 카파 하사로를 날리기 위해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고함을 지르자 일순간 정신이 맑아졌고, 난 그 순간을 놓치 지 않고 아레드라콘의 턱과 목 사이를 향해 카파 하사로를 발사했다. 내 카 파 하사로는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을 꿰뚫으며 직선으로 날아갔다. 콰콰콰콰ㅡ! “……!” 이제 이겼다 싶은 순간,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내 카파 하사로가 아레드 라콘의 방어막에 충돌한 것이다. 빌어먹게도 아레드라콘 녀석은 자신의 몸 주위에 방어마법을 치고 그와 동시에 다른 공격 마법을 구현시키고 있었다. 한꺼번에 두 가지의 마법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화르르륵ㅡ 카파 하사로와 아레드라콘의 바리어 사이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카파 하사 로와 바리어 사이의 마찰 때문에 공기 중의 산소가 연소해버린 것이다. 카파 하사로와 바리어의 강한 마찰을 보면서 난 긴장했다. 여기서 내 카파 하사로 가 아레드라콘의 바리어를 뚫지 못한다면 내 모든 희망이 날아가버리는 것이 기 때문이었다. 콰콰콰ㅡ! 제발…… 제발 뚫어…… 저 재수없는 아레드라콘 녀석의 코를 납작하게 하 려면 바리어를 뚫어야 해! 저 녀석의 목을 꿰뚫어버리란 말이다! 파캉ㅡ! 그 순간,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카파 하사로가 아레드라콘의 바 리어를 꿰뚫어버렸다. 그리고 곧장 아레드라콘의 턱과 목 사이 부근으로 날 아가 꽂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명중이었다. 펑- “……!” 어이가 없었다. 기껏 아레드라콘의 몸에 격중한 카파 하사로가 작은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레드라콘의 바리어를 뚫느라 카파 하사로에 . 실린 마력이 거의 바닥났었던 모양이었다. 나의 전 마력을 쏟아부어 공격한 그 일격이……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하하…… 실패…… 전 마력을 쏟아부어도 실패…… 하하…… 강한 적들과의 싸움에서 거의 져 본 적이 없는 내가…… 조그만 타격도 주지 못하고 이렇게 무참하게 패하다니…… 이렇게 무참하게……! “허억…… 허억……!” 테리야크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레드 라콘의 마나 파장에 계속 노출되다간 죽을 것 같아 보였다. 난 다시 시선을 돌려 내 품에 안겨있는 샤느 선생을 내려다보았다. 샤느 선생은 여전히 입가 에 피를 흘린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내가 마나 파장을 차단해주고 있기 때 문에 더 이상의 타격은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의 몸은 망가져 가고 있었다. “꾸아악!!!” 아레드라콘이 괴성을 질렀다. 그래서 난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도 날 쳐 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눈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넌 졌다. 쐐애액ㅡ! 날 살의에 찬 눈으로 쳐다보던 아레드라콘이 마침내 거대한 불의 공을 내 쪽으로 던졌다. 직경이 5미터 이상 되는 거대한 불의 공이 곧장 나에게 날아 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부질없는 짓이란 건 알 고 있었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샤느 선생의 몸을 껴안는 것 뿐이었다. ━━━━━━━━━━━━━━━━━━━━━━━━━━━━━━━━━━━ 번 호 : 7837 / 7867 등록일 : 2000년 04월 20일 23:55 등록자 : THEBUR 조 회 : 384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7-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54 게 시 일 :00/04/20 05:59:23 수 정 일 : 크 기 :5.1K 조회횟수 :231 제길……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제대로 된 공격도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테리야크와 샤느 선생을 지켜주지도 못하고? 나 때문에 이곳에 있는 이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고? 대피소에 숨어서 드라콘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으아아아아ㅡ!!!”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난 크게 부르짖었다. 마법 을 익히고 나서 이 정도의 절망감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녀석이었는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죽 음 앞에서……. 번쩍ㅡ! 갑작스런 섬광이 내 눈을 강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난 눈을 급히 감아야 했 다. 그리고 잠시 후, 강렬한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크윽!” 바람이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쳤기 때문에 나와 샤느 선생이 거 의 날려가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땅바닥에 엎어질 때 샤느 선생의 몸 을 위로 했기 때문에 샤느 선생은 안전할 수 있었다. 단지 나만 죽도록 아팠 을 뿐이었다. 으으…… 땅바닥에 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돌 같은 게 널려 있었다면 등이 완전히 까질 뻔했다…… 우…… 그래도 살이 벗겨진 것 같은데? 너무 아퍼…… 으윽…… 이 아줌마 몸무게 장난이 아닌데? 여기서는 17살밖에 되 지 않은 힘없는 내가 성인 여자에게 깔려 있으니 숨막혀 죽겠다……! “허허! 그림 좋구나, 류드!” 얼라리? 이 목소리하고 이 어조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허걱! 교장 할아범?! “교장 선생님?!”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내 옆에는 다름아닌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장 할배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교장 이름이 있 긴 했지만 남의 이름을 모두 기억할만큼 내 기억력은 좋지 않았다. 교장은 그냥 교장 할배라고 하는 게 기억하기 쉬웠다. “많이 다친 것 같구나.” 교장은 날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일어나기는 싫었지만 상황이 상황 인지라 난 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몸 구석구석 안 아픈 곳이 없어서 상체를 일으키는 것 자체도 상당히 힘들었다. 게다가 내 몸 위에는 샤느 선 생이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으니 상체를 일으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끄응……!” 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내어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아레드 라콘은 우리 쪽으로 거대한 카파 보를 던졌건만 그 폭발의 결과는 아무리 둘 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지금은 아레드라콘이 교장 할배를 향해 줄기줄 기 살기를 뻗치고 있을 뿐이었다. “허허, 라이는 보통 강아지가 아니야.” 교장은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교장이 내 앞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라이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라이? 라이가 어떻게?” 난 다시 교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교장은 신비스러운 미소를 지을 뿐 라 이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 혼자 중얼거 렸을 뿐이었다. “이제…… 저 드라콘 녀석을 끝내야겠군.” 저벅저벅ㅡ 교장은 느긋한 발걸음으로 아레드라콘 앞에 가 섰다. 아레드라콘은 이상하 게도 그런 교장 할배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나 아레드라콘의 눈에서는 강 렬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죽인다…… 죽인다……! 아레드라콘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것뿐이었다. 테리야크라면 그 감정의 정확한 원인까지 아레드라콘의 마음을 읽어냄으로써 알 수 있을 테지만, 난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자기분신(自己分身) 비허실영(非虛實影) 군력무한(君力無限) 동시만격(同 時萬擊)” 교장은 어떤 마법 주문을 빠르게 읊었다. 비록 처음 듣는 마법 주문이긴 했 지만, 곧 이어지는 마법의 형태를 보고 그 주문이 어떤 마법을 위한 것인지 는 대략 알 수 있었다. 스스슥ㅡ 약 10여 개의 환영이 허공에 뜬 채로 아레드라콘의 몸 주위를 빙 둘러쌌다. 그 환영은 완벽한 교장 할배 자신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에 교장이 외웠던 주문은 환상마법인 일루젼(Illusion)인 듯했다. “불쌍해서 살려줬더니 내 사랑스런 제자를 죽이려 하다니. 아무래도 넌 저 승으로 이사가야겠다.” 교장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한 뒤, 상당량의 마나 파장을 방출 시켰다. 방출된 교장의 마나 파장은 아레드라콘을 둘러싸고 있는 교장의 환 영에 도달했고, 각각의 환영에 도달한 마나 파장은 환영들 주위에 있는 마나 의 변화를 가져왔다. 즉, 10여 개의 환영이 일제히 마법을 구사한 모습이 된 것이었다. 꽈릉ㅡ! 환영들의 손에서 한 줄기의 강한 번개가 뻗어나왔다. 라이트닝 볼트(Lightn ing Bolt)를 사용한 듯했다. 환영의 손에서 발사된 번개는 곧장 아레드라콘 에게로 날아갔다. 아레드라콘은 그 모든 공격을 그대로 맞았다. 아니, 맞을 수밖에 없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으니까. “꾸아악!” 번개에 맞은 아레드라콘이 비명을 질러댔다. 번개에 의한 전기적 충격이 방 어막을 뚫고 아레드라콘의 몸을 훑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미사일 을 맞아도 끄떡하지 않던 아레드라콘은 라이트닝 볼트 십여 발을 맞고 비틀 거리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 한 번에 십여 발의 라이트닝 볼트를 구사하다니…… 게다가 환영마법까지 발동시키면서…… 역시 교장 할배는 인간이 아니야…… 분명히 마족일거야……! “꾸아아악!” 아레드라콘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괴성을 발했다. 그리고 그와 동 시에 아레드라콘에게서 마나 파장이 방출되었다. 물론 마나 파장은 볼 수 없 는 것이었지만, 마나 파장이 흙먼지를 동반하며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 문에 마나 파장의 형체를 보지 않고도 마나 파장이 나와 교장 쪽으로 날아오 고 있음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최후의 마법을 쓰려는 것이었는지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은 상당히 강렬했다. 마나 파장만 으로도 사람을 가볍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 i9 번 호 : 7794 / 7834 등록일 : 2000년 04월 22일 02:05 등록자 : THEBUR 조 회 : 397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8-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8-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61 게 시 일 :00/04/21 06:03:53 수 정 일 : 크 기 :4.9K 조회횟수 :279 “……!”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이 나와 교장 할배에게 도달하기 전에 교장에게서 이상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어쨌 든 지금 교장이 은연 중에 내뿜는 기운은 방금 전과는 크게 달랐다. “마지막이다.” 교장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 미소는 절대 좋은 뜻을 품은 것이 아니었다. 투앙ㅡ! 실제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교장으로부터 방출된 마나 파장이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을 상쇄시키며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런 소리 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은 장관이었다. 이쪽으로 날아오던 흙먼지가 물결에 휩쓸리듯 다시 아레드라콘 쪽으로 향했으니까. ……. 조용히, 아주 조용히 아레드라콘의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골드 드래곤을 완전 소멸시킬 때의 모습과 완전히 똑같았다. 교장 은 마나 파장에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실어서 아레드라콘에게 전달함으로 써 아레드라콘의 몸을 이루고 있던 모든 분자 간의 결합을 끊어버린 것이다. “……!” 아레드라콘이 완전히 소멸하는 데에는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깨 끗하게 아레드라콘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살점 한 조각, 피 한 방울도 남 기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 랍지는 않았다. 단지 드라콘을 완전 소멸시키고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 교장이 인간 같지 않을 뿐이었다. “돈줄 하나가 끊어졌군.” 그렇게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던 교장은 다시 날 쳐다보며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일어설 수 있겠느냐?” 글쎄…… 일어날 수 있을런지…… 뭐 일어서다가 몸이 아파서 주저앉아 버 리겠지만, 한 번 시도해주지. 아…… 난 너무 착하단 말이야~ “으윽……!” 역시 내 예상대로 난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 장에 몸이 여기저기 망가진 상태라 일어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내 상 태를 보고 교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레드라콘에게 쩔쩔매다니…….” 그래…… 나 아레드라콘 녀석한테 쩔쩔맸수…… 아레드라콘을 가볍게 죽인 할아범이 아주 존경스럽수다…… 왠만하면 그 마력을 전부 나한테 주고 이제 그만 이승을 하직하시죠? “치유지수 연골합피 군력무한 상료통거.” 교장은 빠르게 주문을 외우고는 나에게 치유마법을 걸어주었다. 그러자 치 유마법의 효과가 망가진 내 몸을 점차 치료해나갔다. 잠깐 동안만 나에게 마 법을 건 교장은 이번에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테리야크에게 치유마법을 걸 었다. 나원…… 아레드라콘하고 싸울 때 이미 10써클은 모두 다 써버렸을 줄 알았 더니…… 치유마법을 두 번이나 걸 정도로 마력이 남아 있잖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 그런 요상한 자세를 하고 있을 거냐?” 내가 계속 샤느 선생을 품에 안은 채 몸을 일으킬 생각을 안 하자 교장 할 배가 나에게 힐책 비슷한 말을 했다. 몸을 일으키기 전에 난 내 몸을 움직여 보았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난 샤느 선생을 안고 몸을 일 으켰다. “샤느 선생의 상태는 어떠하냐?” 테리야크에게 치유마법을 걸어준 교장이 테리야크를 안아 들면서 나에게 물 었다. 난 잠시 샤느 선생의 얼굴을 살폈다. 샤느 선생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단지 입가에 흐르던 피가 이미 굳어져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글쎄요…… 많이 다치셨는데…… 모르겠어요.” “그래? 류드,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느냐?” 교장 할배가 내 아픈 곳을 건드렸다. 만약 내가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 다면 샤느 선생이 맨처음 아레드라콘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을 때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전혀 치유마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것을 사 용할 수도 없었다. “못하는데요…….” “흠…… 그럼 샤느 선생은 조금 나중에 치료해야겠군. 우선 날 따라오너라.” 교장은 그렇게 말하며 테리야크를 안고 어디론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래서 나도 샤느 선생을 거의 부축하듯이 끌어안고 교장의 뒤를 따라갔다. 그 런 날 보며 교장 왈, “라이는 그냥 저대로 내버려둘 거냐?” “……!” 그때서야 라이가 아직도 땅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라이에게로 갈 수 없었다. 샤느 선생이 쓰러지지 않도록 부축하는 것조차 내겐 힘에 버거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도대체 왜 라이 녀석은 한 일도 없이 땅바닥에 엎어져 있냐고…… 샤느 선생을 부축하듯이 안고 있어서 라이를 안을 수가 없는데…… 앗, 그러 고 보니 교장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안 했잖아? “저기요……” 난 교장에게 말을 걸었고 교장은 날 쳐다보았다. “말하거라.” “근데 라이하고 교장 선생님하고는 어떻게 여기 오신 거예요? 학교에 계시 지 않았어요?” “…….” 내 물음에 교장은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교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나로서는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글쎄…… 과연 나와 라이가 어떻게 이리로 오게 됐을까? 허허, 나도 궁금 하구나.” 교장은 마치 자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지만, 교장의 표정을 보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흘…… 감히 나한테 안 가르쳐 주겠다는 소리냐? 도대체 왜지? 무엇 때문에 가르쳐주려 하지 않는 거지?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었던 건가? 음…… 뭐 여기서 내가 아무리 생각해봤자 정확한 대답은 알아낼 수 없겠지…… 나중에 교장 할배를 협박해서 알아내야겠다. 에…… 그 다음 질문! “교장 선생님은 방금 전의 아레드라콘을 알고 계셨어요?” ━━━━━━━━━━━━━━━━━━━━━━━━━━━━━━━━━━━ 번 호 : 7795 / 7834 등록일 : 2000년 04월 22일 02:06 등록자 : THEBUR 조 회 : 408 건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9-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드라콘 -9-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62 게 시 일 :00/04/21 06:04:15 수 정 일 : 크 기 :5.3K 조회횟수 :273 “…….” 이번에도 교장 할배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질문에 대한 답 은 내게 가르쳐줘도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유까지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 다. “알고 있었다. 난 녀석의 보물을 몇 개 가져왔단다. 바로 네 죄를 무마시키 기 위해 들인 돈을 충당하기 위해서였지. 내가 한 달 동안 학교를 비운 이유 는 바로 그 아레드라콘의 보물을 가져오기 위해서였다.” 호오…… 학교 재정을 드라콘의 보물로 충당한다니…… 전혀 뜻밖의 사실인 데? 그래서 오죠룬 마법학교의 등록금이 다른 마법학교보다 싼 것인가? “물론 난 별로 어렵지 않게 녀석의 보물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단지 돌아 오는 도중에 걸려서 녀석과 싸우게 됐지. 당연히 난 녀석을 이겼다. 하지만 녀석을 죽이지는 않았다. 녀석이 없으면 다른 드라콘의 보물을 찾으러 다녀 야하기 때문이지.” 흘……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 아레드라콘의 보물을 수시로 꿀꺽했다는 소리? 그 아레드라콘이 화를 낼 만도 하구만……! “계속 얌전히 있었다면 이렇게 죽지도 않았을 텐데, 멍청한 녀석이야. 자, 이제 그만 라이를 데려오너라.” 이런…… 내가 어떻게 라이를 데려오냐고! 라이를 데려오려면 샤느 선생을 내팽개쳐야 한단 말이다! “으음……!” 그때 정신을 잃고 있었던 샤느 선생이 나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음…… 류드…… 미안……” 샤느 선생은 자기가 아레드라콘의 공격을 막지 못한 것 때문에 거의 비몽사 몽인 상태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서 난 그런 샤느 선생을 흔들어 깨웠 다. “샤느 선생님!” “으응……” 내가 샤느 선생의 몸을 흔들자 샤느 선생이 마침내 완전히 정신을 되찾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한동안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샤느 선생은 날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천국이니, 류드……?” “…….” 흘…… 이 아줌마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몸은 괜찮으세요?” 난 아직도 어리벙벙해 있는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샤느 선생은 내 목 소리를 듣고 주위를 다시 한 번 둘러보고 나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자 각했다. “여기는…… 웨이사 랜드…… 그런데 그 아레드라콘은……?” “교장 선생님이 처리하셨어요.” “교장 선생님?” 교장이란 말에 놀란 샤느 선생은 세 번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우 리 옆에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교장 할배를 그제서야 발견했다. “교장 선생님? 여길 어떻게?” 샤느 선생이 당연한 질문을 던지자 교장 할배는 역시 정확한 대답을 피했다. “여기에 아레드라콘이 쳐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네.” 흘…… 달려온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만약 그랬다고 쳐도 왜 라 이 녀석을 데려오냐고! 번거롭기만 할텐데! “몸은 괜찮은가, 샤느 선생?” “네…….” 교장의 물음에 샤느 선생은 홀로 서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내 약간의 비 명을 지르며 내 품에 안겼다. 아레드라콘에게 당한 부상이 심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치유마법을 걸어야 할텐데…… 이미 내 마력은 바닥났으니…….” 교장은 그렇게 말하며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우리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부상입은 샤느 선생과 테리야크를 어디로 데려가야 할지 막막했다. 게다가 아직까지 땅바닥에 엎어져있는 라이 녀석도 데려가야 했기 때문에 더 더욱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슈아앙ㅡ 투투투투ㅡ 그때 전투기와 헬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목표물인 아레드라콘을 발견할 수 없자 하늘 주위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상당히 당 황하고 있을 것이다. 쯧쯧…… 저렇게 기동력이 없어서야…… 하긴, 미사일을 퍼부어도 죽지 않 는 아레드라콘을 상대해봤자 인적 물적 피해밖에 더 입겠어…… 뭐 어쩌면 공군에서는 마법사가 나서서 아레드라콘을 처치하길 기다렸는지도 모르지… …. “샤느 선생님, 걸을 수 있겠어요?” “응…… 한 번 해볼게…….” 내 말에 샤느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다행히 내 부축을 받으며 걷는 것은 무난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샤느 선생을 데리 고 라이에게로 갔다. 그리고 나서 샤느 선생이 쓰러지지 않도록 팔에 힘을 주며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라이의 앞다리 하나를 잡고 라이를 집어들었다. “…….” 라이 녀석은 내가 다리만 잡아서 들어올려도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난 부담없이 라이의 앞다리 하나만 잡은 채로 라이를 들고 샤느 선생을 부축 하여 교장에게로 갔다. 교장은 라이를 데롱데롱 들고 있는 날 보더니 껄껄 웃었다. “류드는 동물을 사랑할 줄 모르는군.” 흘…… 이건 동물 애호하고 상관없다구…… 위험하게 이런 데서 엎어져 자 고 있는 라이 녀석이 잘못이지…… 내버려 두지 않고 이렇게 들고 가는 것만 으로도 고마워해야 돼! “어디로 가요?” 난 테리야크를 힘든 기색없이 안아들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물었다. 내 물 음에 교장은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웨이사 랜드 내의 병원에 가봐야겠구나.” 얼라리? 웨이사 랜드에 병원이 있어? 그거 놀라운데? “저기…… 우선 대피소에 피해있는 사람들에게 아레드라콘이 사라졌다고 말 해야 되지 않을까요……?” 나한테 부축을 받고 있던 샤느 선생이 교장 할배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웨이사 랜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이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알려드립니다. 현재 웨이사 랜드 주위에 발령되었던 긴급대피령을 해제합 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웨이사 랜드 주위에 발령되었던……》 “벌써 아레드라콘이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나 본데요?” “그렇구나. 역시 요즘 정보는 빠르군. 자, 이제 걱정하지 말고 병원으로 가 자꾸나.” 교장 할배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웨이사 랜드 어디에 병원이 있는지 모르는 나는 그냥 교장 할배의 뒤만 졸졸 쫓아갔다. 아직 어째서 교장이 이 곳으로 그렇게 빨리 올 수 있었고, 라이를 왜 데려온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혼자서 아레드라콘을 죽일 수 있었는지 등을 하나도 알지 못했지만 우선은 모두 잊기로 했다. 그런 걸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의 회복 속도가 느려질 테니까. ━━━━━━━━━━━━━━━━━━━━━━━━━━━━━━━━━━━ 창작:SF&Fantasy 제목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올린ID 류이엘 이름 이정기 날짜 2000/04/22 읽음 440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총 Page : 15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2 06:48:25 수 정 일 : 크 기 : 5.7K 조회횟수 : 124 <제 11 장> 인간은 이기적인가? 째깍째깍- 규칙적인 벽시계 소리가 일반 병실 안에 조용히 울려퍼졌다. 샤느 선생은 팔에다 링겔 주사를 꽂고 병원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 있었고, 난 의자를 놓 고 샤느 선생 옆에 앉았다. 테리야크는 이미 치료를 다 받고 돌아간 상태였 다. 그리고 교장은 병원에서 진찰 수속 같은 걸 밟는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라이 녀석은 탈진해서 자고 있다는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테리야크가 데 리고 갔다. 그래서 결국 병원에 남은 사람은 나와 샤느 선생, 교장, 그리고 의사들 뿐이었다. 하여간 긴급대피령이 내려져도 이곳의 의사들은 전혀 대피할 생각을 안 한 다니까. 뭐 병원 지하실이 병원 대피소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나 저나 일반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지하실로 가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일 반 병실이 썰렁하다……. “…….” 샤느 선생은 피곤한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고, 나도 그다 지 할말이 없어서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테리야크는 교장 할배에게 치유 마법을 받았기 때문에 몸 상태가 괜찮은 편이었지만, 샤느 선생은 그렇지 못 했다. 병원에서는 그냥 링겔 주사만 꽂아주었을 뿐이었다. 사실, 어떤 특정 부위가 다친 것도 아니고, 출혈도 없고, 내장이 완전히 망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샤느 선생 스스로 나아지 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류드……” 가만히 누워있던 샤느 선생이 눈을 뜨고 날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이 나한테 미안해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난 고개 를 흔들었다. “모두 제 잘못 때문이예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류드를 지키지 못한 내 잘못인걸…….” 샤느 선생은 나한테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서 난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긴급대피령이 내려졌을 때 사람들과 같이 대피소로 피했다면 샤느 선생이 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 었다. “내 손을…… 잡아주겠니……?” 샤느 선생이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듯이 나에게 말했고 난 아무런 망설임없 이 샤느 선생의 손을 잡았다. 처음으로 잡아보는 샤느 선생의 손은 굉장히 . 부드러웠다. 나긋나긋하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샤느 선생은 말없이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리고 나서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마법사로서의 자질이 없는가봐…… 아레드라콘에게 제대로 된 공격 하나 하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구…… 이렇게 큰 부상이나 입구…….” “…….” 이런…… 그래도 샤느 선생은 나은 편이라구요…… 아레드라콘의 공격을 막 았으니까요…… 하지만 난 완전히 아레드라콘 녀석에게 깨졌단 말입니다…… 가지고 있던 모든 마력을 사용해 날린 카파 하사로도 녀석에게 조그만 상처 하나 줄 수 없었다구요…… 빌어먹을……! “정말…… 네 몸은 괜찮은 거니?” 자신이 상당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샤느 선생은 내 몸 상태를 물었다. 사실 내 몸도 아직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에게 괜한 걱 정을 시키기는 싫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교장 선생님의 치유마법으로 다 나았어요.” “그래…… 정말 다행이야…… 만약 교장 선생님이 오시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어…….” 그건 그렇지…… 어떻게 그런 절묘한 시간에 교장이 등장한 것인지는 의문 이지만. 돌아가고 난 다음에 교장을 추궁해봐야겠어……. 스륵ㅡ 병실 문이 거의 듣지 못할 만큼 조용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교장 할배였다. 교장 할배를 발견한 샤느 선생은 급히 내 손에서 자 신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교장 할배를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오, 조금 나아져 보이는군. 내가 치유마법을 걸어주러 왔으니 마음 편히 먹게.” 그렇게 말한 교장 할배는 샤느 선생 옆에 섰다. 내가 계속 앉아 있으면 교 장 할배가 마법 사용하는데 불편할 것 같아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 옆으로 조 금 비켜섰다. “치유지수 연골합피 군력무한 상료통거.” 벌써 세 번째 듣는 치유마법의 주문. 하지만 뜻을 모르기 때문에 외워지지 도 않았다. 대략 30여 초 정도만 치유마법을 사용한 교장 할배는 나직히 한 숨을 내쉬었다. “아직 마력이 다 결합하지 않아서 이 정도밖에 못하겠구만.” “괜찮아요. 한결 나아졌으니까요.” 샤느 선생의 말에 교장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화제를 돌 려 물었다. “이미 다들 갈 준비를 끝냈네. 샤느 선생은 학교 버스를 타고 갈 건가, 아 니면 좀더 여기서 치료받고 나서 올텐가?” “음…… 학교 버스를 타고 가겠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네. 며칠 쉬어도 좋아.” “아니예요. 류드 반의 학교 버스를 타고 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샤느 선생은 교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차분하고 안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그 래서 교장은 샤느 선생에게 그렇게 하라고 이른 뒤, 병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나에게 당부했다. “류드, 난 먼저 갈테니까 샤느 선생을 잘 모셔라.” 흘…… 내가 하인이냐? “예.” 스륵- 쿵- 병실 문은 부드럽게 닫혔다. 교장이 나가자 샤느 선생은 링겔 주사를 빼내 고 나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다행히 상체를 일으키는 것은 별 무리 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상체를 일으킨 샤느 선생은 병원 침대 옆에 서 있는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류드, 내가 아레드라콘의 마나 파장에 당해서 쓰러졌을 때…… 날 아레드 라콘의 마나 파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류드가 날 껴안았지?” 허걱?! 그럼 그때 샤느 선생은 정신을 잃고 있지 않았다는 거야?! “그때 깨어계셨어요?” “응. 눈은 뜰 수가 없었지만 감각은 있었어.” 흘…… 그랬군. 괜히 샤느 선생에게 미안한데? 샤느 선생을 지킨답시고 다 큰 여자의 몸을 덥썩 끌어안았으니……. “고마워. 그때 류드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죽었을지도 몰라.” 샤느 선생은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난 고마움 같은 걸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시의 상황, 그러니까 두 명 모두 아레드라콘에게 죽게되는 상황에 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이었다. 내가 먼저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만약 한 사람은 죽게 되고 한 사람은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 자신조차 어떻게 행동했을 지는 알 수 없었다. 어 쩌면 나 혼자 살기 위해서 샤느 선생을 내팽개쳤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샤느 선생에게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용기가 생기지 않은 것이다. ─────────────────────────────────────── 창작:SF&Fantasy 제목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올린ID 류이엘 이름 이정기 날짜 2000/04/22 읽음 404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총 Page : 1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2 06:48:41 수 정 일 : 크 기 : 5.0K 조회횟수 : 128 “읏차!” 샤느 선생은 병원 침대로부터 내려섰다. 그러나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 지 앞으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샤느 선생이 발을 디딘 곳이 내 앞이었기 때문에 샤느 선생의 몸을 내가 안게 되었다. 하지만 샤느 선생이 나보다 키 가 크고, 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면 샤느 선생이 날 안은 꼴이었다. “괜찮으세요?” 분위기는 굉장히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난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순 진한 척 능청을 떨면서 샤느 선생에게 물었다. 샤느 선생은 여전히 날 안고 있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고마워…….” “…….” 내 목 언저리 부근에서 샤느 선생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래서 샤느 선생의 진정한 정체는 흡혈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도록 노력하려고 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오히려 기분만 묘해졌다. 날 끌어안듯이 내게 기대고 있는 샤느 선생, 그리고 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샤느 선생의 숨결…… 분위기는 더욱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애들이 기다릴텐데, 빨리 가죠.” 난 그런 분위기를 와장창 깨트리면서 샤느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내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는지 샤느 선생이 내게서 떨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샤느 선생 혼자서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미안. 어서 가자.” 샤느 선생은 조금 얼굴을 붉히며 급히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걸을 수는 없는지 자세가 상당히 불안했다. 그래서 난 샤느 선 생의 오른팔을 내 목에 걸고 샤느 선생의 허리를 잡아 샤느 선생을 부축했다. 샤느 선생은 그런 나에게 미안한 듯이 말했다. “계속 신세만 지는구나…….” 흘…… 신세는 무슨…… 신세 타령하지 말고 빨리 버스 탑시다…… 내 방에 들어가서 퍼질러 자고 싶단 말이유……! “…….” “…….” 병실 밖으로 나온 후, 나와 샤느 선생은 아무런 얘기도 나누지 않고 곧장 학교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 학교 버스가 어디있는지 잘 몰랐지만 샤느 선생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 었다. 단지 우리가 학교 버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보는 인간들의 무시무시한 눈초리가 신경쓰였을 뿐이었다. 부우웅ㅡ 나와 샤느 선생이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내가 앉았던 맨 앞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어서 난 샤느 선생을 내 옆자리에 앉혔다. 사실 그래 야했다. 교장 할배가 가리나크 선생과 같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 리가 내 옆자리밖에 없었던 것이다. “…….” 내 옆에 앉아마자 샤느 선생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꿈나라로 가버렸다.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잠을 자는 샤느 선생의 모습은…… 이렇게 유 치한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그런 샤느 선생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다간 이상한 짓을 저지를 것 같아서 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버스의 엔진 소리 사이로 간간이 들려오 는 샤느 선생의 고른 숨결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흘……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게 마음은 편안하구만. 아, 몸이 피곤해서 그 런 건가? 뭐 어쨌든 이제 돌아가서 잠자는 일만 남았군. 그나저나 소풍와서 드라콘하고 싸우다니…… 어처구니가 없어…… 으윽…… 아레드라콘 녀석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화가 나잖아? 이런…… 딴 생각 다 접고 잠이나 자자! 2220년 7월 5일 금요일. 바로 기말고사의 첫날이다. 모두들 이번 시험에서 내가 또 전과목 만점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상당한 부담감을 느껴야했다. 특히 어제 교장이 내 방에 전화를 해서‘너라면 무난히 전과목 만점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해 서 더더욱 부담감이 느껴졌다. “야, 류드나르! 너 이번에도 만점?” 옆에 있던 레리오스조차 나에게 마구 부담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계속 녀 석들의 말에 신경쓰다보면 정말로 시험을 망칠 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만 들여다보았다. “뭐, 너야 또 만점 받겠지. 아…… 난 이미 포기했다…….” 레리오스는 교과서를 덮어버리고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레리오스가 무슨 짓을 하던 나는 계속해서 교과서를 여러 번 읽었다. 이번 시험은 상당히 불 안했다. 이미 다 배운 내용이라고 해도 일일이 다 외웠던 것은 아니었기 때 문에 거의 암기 테스트나 다름없는 오죠룬 마법학교의 시험에서 이번에도 만 점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후…… 아무리 수십 번을 읽어도 불안하단 말이야…… 내 생전 시험 못 볼 까봐 이렇게까지 떤 적은 없었는데…… 역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 해 시험을 볼 때는 이렇게 떨리는군. 아…… 살 떨려……. 저벅저벅ㅡ 내가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으로 걸어왔다.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구두를 신고 그렇게 거만하 게 걷는 인간은 빌리컨트 밖에 없기 때문이다. “…….” 난 말없이 빌리컨트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나와 내가 든 책을 번갈아보던 빌리컨트가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번 기말고사 때에는 네 진짜 실력으로 볼 생각이냐?” “…….” “뭐 어쨌든 좋아. 마법 실습 시험에서 나와 네가 모두 만점을 받았으니 이 번엔 동등한 조건에서 실력을 겨루게 되는 거니까. 이번에는 확실하게 널 눌 러주겠어. 그래서 샤느 선생의 마음을 나한테로 돌려놓을 테니 각오하고 있 으라고.” “…….”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겠군……. 띵- 띵- 띵- 띵- 드디어 기말고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난 교 과서를 집어넣고 내가 외웠던 것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나서 교부된 시험지를 받아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내 모든 정신력을 문제 풀이 에 쏟아 부으면서. ───────────────────────────────────────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3일 14:1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82 게 시 일 :00/04/23 07:58:28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99 2220년 7월 11일 목요일. 기말고사 성적이 공고되었다. 전체 성적표가 교실 뒤 칠판에 개시되자 아이들이 모두 그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러한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들의 점수보다는 나와 빌리컨트의 점수를 비교하는 것이 었다. “빌리컨트 95점……!” “어떻게 그런 괴물 같은 점수를……!” 빌리컨트의 번호가 앞이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들린 소리는 빌리컨트를 칭 찬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빌리컨트는 중간고사 때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번 기말고사는 중간고사보다 훨씬 어려웠는데도 오히려 점수가 오른 빌리컨트가 꽤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여튼 빌리컨트 녀석도 꽤 한단 말이야? 샤느 선생에게 잘 보이겠다는 일 념 하나로 그렇게 죽도록 하니까. 난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은데. “류드나르…… 으헉?!” “또야?!” 갑자기 아이들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사실, 예비 채점을 통해 서 이미 내 대략의 점수를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그런 말을 듣자 내 점수 를 확신할 수 있었다. 중간고사에 이어 기말고사에서도 난 전과목 만점이라 는 대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또 만점이냐? 하여간 인간도 아니야…….” 내 점수를 보고 온 레리오스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아이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 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난 책상에 엎드렸다. 저벅 저벅― 흘…… 이 거만한 발자국 소리는…… 빌리컨트로군. 또 나한테 시비 걸려고 오나? 아…… 상대하기 귀찮아라…… 난 지금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고 있 으니까 설마 날 깨워서 말을 걸지는 않겠지? “류드나르.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그러나 빌리컨트는 방금 전까지 내가 깨어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내 옆에 오자마자 냉기가 풀풀 날리는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야했다.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빌리컨트만 올려다보았다. 빌리컨트 역시 입을 다 물고 살벌한 눈으로 내 얼굴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나와 빌리컨트는 잠시 동안 서로를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얘기도 꺼내지 않았다. “…… 설마 또 컨닝한 것은 아니겠지?” 빌리컨트의 입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그런 질문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라 화조차 나지 않았다. “넌 컨닝해서 전과목 만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난 조금 싸늘한 어조로 빌리컨트에게 물었고, 빌리컨트는 눈썹을 꿈틀거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빌리컨트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 란 생각이 들어 난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자려고 했다. 그러나 빌리컨트의 질 문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넌…… 어떻게 전과목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거지?” 흘…… 정말 멍청한 질문이구만…… 대답이야 간단한 거 아니겠어? 그냥 열 심히 하는 거지 뭐∼ “…….” 대답할 말도 없었기 때문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빌리컨트 역시 내게 서 무언가 특별한 대답 같은 걸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인지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난 이미 작년에 같은 내용을 배웠어. 그랬는데도 겨우 평균이 95점이야. 그런데 넌 무려 두 번이나 전과목 만점을 받았어.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게 가능한 일이냐?” 나원……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지…… 여기 산 증인이 있잖아? 그리고, 만 약 내가 없었다면 네 녀석이 1등을 먹었을 텐데, 그런 너를 반 아이들이 어 떻게 생각하겠냐? 인간 같지도 않다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 결국 그런 거라 고…… 그러니까 난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거지…… 근데…… 뭔가 말 이 이상하게 꼬인 것 같은……! 끼이― “모두 자리에 앉아라!” 어느새 들어온 가리나크 선생이 뒤 칠판에 몰려들어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 쳤다. 아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 모두 앉았을 때, 가리나크 선생 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점수가 나와서 알고 있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류드나르가 사상 유래 없는 2회 연속 전과목 만점을 받으면서 전교 1등을 했다.” “…….” 아이들은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것은 아이들이 나에 대해서 감탄 하는 것조차 포기했음을 뜻하는 거였다. 즉, 난 완벽하게 따를 당한 것이다. “빌리컨트는 이번에 전교 2등이 거의 확실하다. 기말고사가 중간고사보다 더 어려웠는데도 평균 점수가 올라서 좋은 성적을 거둔 거지.” “오……!” 내 얘기를 할 때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가리나크 선생의 말에 놀람에 젖은 탄성을 발했다. 아이들은 나보다는 빌리컨트의 성적 향상 이 더 놀랍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빌리컨트, 이 정도로만 한다면 내년에는 중등부 2학년이 될 수 있겠구나.” 가리나크 선생이 부드럽게 웃으며 빌리컨트를 칭찬했지만 빌리컨트는 전혀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비록 성적은 올랐지만 나에게 졌다는 사실이 분한 듯 보였다. “자, 그럼 오늘은 2조가 청소하고 종례 끝!” 말을 마친 가리나크 선생은 곧장 교실을 나갔고 아이들도 학교 수업이 끝났 다는 즐거움의 표시로 신나게 떠들어대면서 교실을 나섰다. 난 교과서를 정 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두 달 전 같으면 바로 내 방 기 숙사에 갔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다. 소풍 때 우연히 오락실에서 만나 더욱 우연하게 아레드라콘에 의해 같이 죽을 뻔한 테리야크를 만나러 가는 것이니 까. 흠…… 그나저나 테리야크 녀석, 성적이 떨어진 모양인데? 빌리컨트에게 전 교 2등 자리를 내주다니 말이야. 뭐 이미 1년 꿇은 빌리컨트와는 달리 테리 야크는 올해 처음 중등부 1학년이 된 거니까 중간고사보다 어려웠던 기말고 사에서 성적이 떨어진 것은 당연하겠지. 어쨌거나 위로나 해줘야겠다∼ 난 A-5반으로 향했다. 테리야크는 A-5반이기 때문이다. 동관A 1층으로 내려 가서 A-5반을 들여다보았다. A-5반 교실 뒤쪽 칠판 앞에서 테리야크가 머리 를 긁적이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난 주저 없이 교실 안으로 들어 가서 테리야크에게 말을 걸었다. “테리, 성적 떨어졌어?” “응. 공부를 열심히 안한 탓이지 뭐…….” 갑자기 내가 다가가 말을 걸었는데도 테리야크는 전혀 놀라지 않고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내가 가까이 다가 와 말을 거리라는 걸 내 마음을 통해서 미리 읽어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괜히 말을 건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미안. 하지만 류드의 뇌파는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강한 편이어서 쉽게 마 음을 읽어낼 수 있거든? 이해해 줘∼” 테리야크는 그런 농담 비슷한 어조로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예전처럼 우울하고 의기소침해 있는 모습이 많이 사라진 테리야크를 보니 그럭저럭 기 분이 괜찮아졌기 때문에 난 씩 웃었다. 헐헐, 입을 계속 나불대면 입술 부르트니까 이제부터는 마음 속으로 질문을 해주마. 근데 너 이번 기말고사에서 몇 등한 거냐? 빌리컨트가 전교 2등인 것 같던데. “응…… 아마 3등일 거야.” 흠…… 평균 점수는 얼마? “91…….” 얼레? 전교 3등의 점수가 91점이라구? 이번 시험이 그 정도로 어려웠나? 나 원…… 이래가지고 과연 몇 명이나 중등부 2학년이 될런지……. “평균적으로 1년에 20명 정도가 2학년으로 올라간대. 그리고 그 아이들의 점수는 대부분 90점에서 91점 사이에 몰려있고.” 흠…… 그랬군. 중등부 1학년만 해도 1000명이 넘는데 그 중에 달랑 20명 정도만 2학년으로 올라간다라…… 심각한 수준이야…….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3일 14:1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83 게 시 일 :00/04/23 07:58:50 수 정 일 : 크 기 :5.2K 조회횟수 :95 “그만큼 오죠룬의 시험이 어렵다는 거지.” 테리야크는 빙긋 웃었다. 그의 표정에는 그런 오죠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 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따진다면 전 과목 만점을 받은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야했다. 하지만 전과목 만점을 받았 어도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한 것처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왜 기분이 나뻐? 나 같으면 기쁠 것 같은데.” 내 기분을 이해하지 못한 듯 테리야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난 테리 야크에게 내 기분을 설명해주었다. “간단해. 아무도 기뻐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 “…… 그렇구나…….” 내 말에 테리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가 거의 없는 테리야크는 지금의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꼭 친구가 거의 없는 사람만이 아무도 기뻐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뚱- 뚱- 뚱- 뚱- 교실 벽에 달린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하기 전에 내보내는 종소리가 울려나 왔다. 그리고 곧이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D-7반 보나이 류드나르, 지금 즉시 교장실로 올라가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D-7반의 보나이 류드나르는 지금 즉시 교장실로 올라 가기 바랍니다.》 얼라리? 나보고 교장실에? 그 음흉한 교장 할아범을 만나라고라? “교장 선생님이 음흉해?” 내 마음을 읽은 테리야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교장에 대해 확실히 모르는 상황에서 교장의 험담을 늘어놓으면 테리야크에게도 따를 당할 것 같아서 난 대충 얼버무렸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래. 신경 쓰지마. 그럼 난 교장실에 가볼게.” “응.” 그렇게 테리야크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난 곧장 본관에 있는 교장실로 향했 다. 왜 교장 할아범이 날 불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내가 아무리 머 리를 쥐어뜯으면서 생각을 해도 교장 할아범의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맘 편히 먹기로 했다. 똑똑- 교장실 앞에 도착하고 나서 약간 긴장되었기 때문에 난 잠시 호흡을 가다듬 고 나서 노크를 했다. 내가 노크를 하자 안에서 교장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류드냐?” 헐…… 바로 맞추는군. 뭐 나보고 교장실로 오라고 방송을 때린 거니까 전 혀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예.” “들어오너라.” 덜컥― 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장은 변함없 이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지금도 이물태경(移 物太經)을 번역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마법서를 번역하고 있는 것인 지 궁금해서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을 슬쩍 쳐다보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이 물태경이 아닌 전혀 다른 마법서의 스캔 화면이 떠 있었다. 얼라리…… 이 책도 한자로 쓰여진 마법서인데…… 무슨 마법에 대한 책이 지? 한자로 되어 있어서 무슨 책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허허, 이 마법서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 가르쳐주랴?” 내가 모니터의 화면을 쳐다보자 교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물론 마법서의 내용도 궁금했지만 지금은 교장 할배가 날 부른 이유를 더 알고 싶었기 때문 에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배울게요. 근데 왜 부르셨어요?” “너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란다.” 얼레? 기쁜 소식? 누가 나한테 1억 원 줬어? 아니면 이제 이 오죠룬에 안 다녀도 되는 거야? “중간고사에 이어 기말고사에서도 전과목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류드, 너는 2학기부터 중등부 2학년이 되는 것이다.” “…….” 지금 그게 기쁜 소식? 이 교장 할아범이 나한테 죽고 싶나……! “기쁘지 않느냐?” 교장은 자기 혼자 좋아하다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잠시 교장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를 망설이다가 결국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기쁘네요…….” 흘…… 내가 이런 헛소리를 해야 하다니…… 최악이야……. “기쁜 표정이 아닌 것 같구나.” 당연하지…… 나보고 고등부에 들어가라고 압력 넣는 사람이 할아범이잖아. 압력 넣기가 성공했으니 이런 일로 기쁜 사람이 할아범 밖에 더 있수? “아니에요. 근데 2학기부터 2학년이 된다는 건…… 편입인가요?” 내 질문에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그럼 2학년이 되어도 지금 쓰는 방을 쓸 수 있어요?” 그 질문을 하면서 나는 계속 그 방을 쓸 수 있기를 바랬다.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쓰는 것보다 혼자 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장의 대답은 그런 내 바램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그럴 수는 없단다. 너도 알겠지만 오죠룬 마법학교의 기숙사는 학년 별로 쓸 수 있는 건물이 다르다. 1학년은 M1, M2, M3관을 사용하고 2학년은 M4, M5 관을 사용하지. 네가 2학년이 되면 당연히 M4관으로 가야한다.” 이런…… 귀찮아……. “근데 꼭 M4관으로 가야하나요? M5관은 안돼요?” “M5관은 중등부 2학년 여학생 전용 기숙사다. M4관은 남학생 전용이고. 몰 랐느냐?” 얼레? 그랬나? 난 처음 듣는 얘긴데……? “그럼 1학년 기숙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1학년도 남학생, 여학생 전용 건물로 되어 있나요?” “그렇단다. M1관은 1학년 남학생, M2관은 1학년 여학생, M3관은 나머지 학 생들의 전용 건물이지.” 허허…… 그랬었군. 뭐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니까 상관없어…… 앗! 상 관없는 게 아닌데? 결론은 내가 M4관으로 방을 옮겨야 한다는 거잖아?! “꼭 방을 옮겨야돼요?” 난 조금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교장에게 물었다. 하지만 교장은 완강 한 태도를 보였다. “옮겨야 한다. 1학년들이 기숙하는 건물에 2학년이 있어서는 안되니까.” 이런…… 나 그냥 계속 1학년 하면 안될까……? “자…… 이제 오죠룬 설립 사상 처음으로 1학기만의 두 시험 성적으로 진급 하는 훌륭한 학생에게 진급 기념으로 하나 질문을 하겠다.” 그렇게 말할 때의 교장의 표정은 조금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그러나‘질문 을 하겠다’란 말을 내뱉고 나서는 교장의 표정이 아주 진지해졌다. 뭔가 중 요한 질문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교장실 안의 공기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4일 14:03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5-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총 Page : 1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4 06:16:23 수 정 일 : 크 기 : 5.0K 조회횟수 : 96 “류드, 넌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느냐?” 교장의 질문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난 교장이 내 신상이 나 그런 것에 대해서 물어볼 줄 알았던 것이다. 흘…… 나보고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인지 아닌지 말하라는 건가? 이게 왠 철학적인 질문이냐? 골치 아퍼…… 뭐, 할 일 없을 때 생각해봤던 문제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인간이야 당연히 이기적이죠.” 내 대답에 교장이 눈을 빛냈다. “당연히? 꽤 강조를 하는군. 그럼 그 이유가 있을 테지? 설명해보거라.” 뜨아…… 갑자기 설명하라고 하면 어떻게 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줘야지!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나서 설명할게요.” 난 교장에게 부탁했고 교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하지만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생각을 정리했으면 하는구나.” 흘…… 지금 그거 개그라고 하는 거유? “…….” 난 입을 다물고 내가 방금 한 말에 대한 예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내 얼 굴을 빤히 쳐다보는 교장의 시선이 꽤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쨌든 3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난 내 생각을 대강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설명할게요.” “좋아, 하거라.” 교장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을 생각인 듯 정색을 했다. 그런 교장의 태도 에 난 바싹 긴장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잘못 얘기한다면 가차없이 반박을 가 할 자세였기 때문이었다. “에…… 먼저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다…… 라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난 그렇게 서두를 꺼냈다. 그러자 바로 교장의 반박이 날아왔다. “왜 모두 이기적이지?” 성격도 참 급하구만…… 그거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무려 3분을 잡아먹은 거 라구……. “그거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이기적’이란 말을 집고 넘어가야 될 것 같네요.” “이기적? 흠…… 계속하거라.” 안 그래도 계속하려던 참이었다구. 제발 중간에서 끊지 말란 말이야……! “전 이기적이다란 말을 광범위한 뜻으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광범위하게? 어떤 측면에서?” “물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것까 지 모두 이기적인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난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서 교장 할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교장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가만히 날 쳐다보던 교장 할배가 천 천히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만족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를 이기적으로 본다는 뜻인가?” 흘…… 내 말을 간단하게 압축해버리다니…… 역시 무서운 할아범이야……. “예.” “그렇군. 그렇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 는 사람들, 즉 개인주의자라고 불리는 그들도 자네의 입장에서는 이기적인가?” 교장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 지만 이런 철학적인 문제에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자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방금 말했듯이, 이기적이란 말을 제 생각대로 해석하면 그렇게 되죠.” 이런…… 그래도 왠지 내가 교장에게 지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음…… 알았다. 그럼 노인들을 위해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또 자원 봉 사를 하는 사람들도 이기적인가?” “예.” 교장이 말이 끝나자마자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 부분은 내가 3분 동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 이유를 설명하거라.” 그렇게 말 안 해도 할 생각이었다네∼ “에…… 그 자원 봉사자들도 결국은 자신의 정신적인 만족을 위해서 봉사하 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흠…….” 교장은 침음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도 내 말을 반박할 무언가를 찾 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교장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재빨리 내 말 에 대한 부연 설명을 했다. “만약 자원 봉사자들이 봉사를 하면서 정신적인 만족, 에…… 아까 노인을 위한 봉사의 경우에서 노인들이 자원 봉사자들에게 전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원 봉사 같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겠죠.” “꼭 그렇지만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 노인이 식물인간 상태라면 자원 봉사 자에게 고마워하는 감정을 가질 수 없을 텐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내가 부연 설명을 마치자마자 기회를 잡은 듯 교장이 질문을 던졌다. 괜히 부연 설명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밥그릇이었기 때문에 교장의 질문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했다. “고마움을 표현 받을 수 없는 경우에서도 충분히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신의 노부모가 식물인간 상태로 계시다가 돌아가셨 다면 식물인간이 된 다른 노인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돌아가신 노부모를 모 시는 거라고 생각해서 자원 봉사를 할 수도 있죠. 아니면 식물인간이 된 노 인을 돌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이 이 노인을 돌본다는 일종 의 그런 우월감 같은 것에 만족하여 계속 자원 봉사를 할 수도 있는 거구요.” “…….” 교장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괜히 부연 설명을 했다가는 교장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을 것 같아서 이번엔 조용히 입다물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나와 교장은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말뜻은 대강 파악했다. 모든 인간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말이다. 류드는 인간에 대해서 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구나.” 헐…… 그러셔? 난 원래 불만이 많은 녀석이라 사회를 보는 시선도 곱지 않 다고∼ “자, 그럼 어째서 사람들은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 이타주의자 이렇게 세 분류로 사람들을 구분한 것일까? 이유를 설명해보겠나?” “……!” 교장의 물음에 난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지금까지 입 아프게 내가 했던 말이 모 두 헛소리가 될 것 같아서 우선은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4일 14:0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6-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총 Page : 15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4 06:16:43 수 정 일 : 크 기 : 5.7K 조회횟수 : 93 “뭐…… 일부러 그렇게 나눈 거겠죠.” “일부러?” 으윽…… 빨리 다음 대답을 생각해야……! “에…… 물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 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으니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왜 굳이 사람들을 왜 세 가지 부류로 나눈 것일까? 그것 에는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건가?” 계속 이어지는 교장의 물음. 그 물음을 듣고 있자니 내 생각이 차곡차곡 정 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장이 내 생각을 정리해주기 위해 그런 질 문들을 던지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목적…… 있겠죠. 물질적인 만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사람들을‘이기 주의자’로 비하하고, 정신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이타주의자’라 고 추켜 올리고, 그 중간적인 사람들을‘개인주의자’라고 표현하는 것…… 그것은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개인주의자나 이타주의자로 전향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술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왜 이기주의자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그런 술책을 쓰는 건가?” “이기주의자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어지러워지니까요. 사회가 어지러워지 면 국민들의 생활도 안전해지지 못하고,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계급들도 그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그래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물질·정신적 만족의 추구자들을 개인주의나 이타주의자로 표현하는 거겠죠.” 얼라리…… 이거 왠지 대화의 초점이 조금 빗나간 것 같은데?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개인주의나 이타주의란 말을 잘 안 쓴다. 그런 말을 쓰는 건 지식층 뿐이야.” 교장에게서 바로 반박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나도 바로 반론해주었다. “굳이 그런 말을 사용할 필요가 없죠. 거의 암묵적으로 그런 것은 느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누가 이기적인 사람에게‘당신은 이기적이야’라고 드러내 놓고 말해요? 이타주의적인 사람에게는 그냥‘저 사람 훌륭하다’라고 말해 도 충분해요. 그런 식으로 그러한 말들이 사람들에게 일종의 쇠고랑으로 작 용하고 있는 거죠. 이기주의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 교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말한 것이었지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나 자신조차 헷갈렸다. 아직 생각의 정리가 덜된 상 태에서 남에게 내 생각을 얘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음…… 네 얘긴 잘 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먼저 침묵을 깬 사람은 교장이었다. 지금까지 내 말을 진지 하게 들었던 교장은 더 이상 질문할 생각이 없는지 크게 기지개를 키며 말했 다. “이제 그만 가봐도 좋다.” “…….” 얼씨구…… 질문만 무지하게 하더니 다 끝났으니까 이제 사라지라구? 흐흐 …… 고렇겐 못하지! “저기요……” 난 나가지 않고 교장에게 말을 걸었고 내가 나가지 않자 교장이 의아한 표 정을 지었다. “왜 그러느냐? 내게 할 말이 있느냐?”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미 말을 내뱉은 이상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내 말에 교장은 잠시 고 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나에게 말했다. “그래. 물어보거라.” 헐헐, 철학적인 질문 같은 건 아니니까 긴장은 푸시고……! “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신 거예요?” “…….” 가장 근원적인 질문에 교장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또다시 입을 다물었 다. 하지만 난 반드시 그 이유를 듣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물었다. “왜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저한테 하신 거죠? 저보다는 국어 선생님들이나 아니면 다른 철학자들과 얘기하는 게 더 유익할 텐데요?” “…….” 교장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난 교장보고 어서 대답하라는 무언의 눈초리 를 계속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교장은 나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그럼 안녕히 계세요.” 더 이상 기다리는 것도 귀찮아져서 난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내가 몸을 돌리자마자 교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류드, 너의 생각을 알아보고 싶었다.” “……!” 막 교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교장의 그 말에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몸 을 돌려 교장을 쳐다보았다. 교장은 컴퓨터 쪽으로 몸을 옮기며 말했다. “너의 생각이 나와 어떻게 다른지 그게 궁금했을 뿐이다.” 그랬나? “…… 제 생각과 교장 선생님이 생각은 많은 차이가 있겠죠?” 난 교장에게 물었고 교장은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아니. 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쉽게도 말이야.” “……?” 얼레? 자기와 비슷한 생각이라구? 그럼 교장 할배도 나처럼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건가? 이거 뜻밖인데? 근데…… 나와 같은 생각이라 아쉽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뭐 신경 쓸 거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너에게 몇 개의 질문을 더 할 것이 다.” 에엑?! “다음에 할 질문은‘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인간의 존재 이유 에 대해 네 나름대로의 생각을 잘 정리해놓고 있길 바란다. 내가 언제 어디 서 너에게 그 질문을 할지 모르니까.” “…… 왜 저한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다음 번에 물어본다는 질문이 장난 아니게 골치 아픈 것이었기 때문에 난 황당해서 교장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나 교장은 방금 한 말을 철회할 생각 이 없어 보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네 생각을 알아보고 싶은 것뿐이다. 앞으로 내가 던지 게 될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 그러한 질문과 대답의 종합으로 결론 하나가 도출될 때 넌 앞으로의 내 계획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다. 왜 내가 마법을 연구하는지를, 그리고 마법을 연구해서 무엇을 하려는 지를 말이다.” “……!” “알았다면 이제 그만 가보도록 해라. 그리고 반드시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 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말고, 너 자신의 생각을 말 이다.” 타닥타닥― 말을 마친 교장은 마법서의 해석 작업에 들어갔다. 난 잠시 해석 작업을 하 고 있는 교장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교장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끼이― 덜컥! 교장실 문을 닫고 나서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내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는 것 같았다.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걱정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하는 교장 의 속셈이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다. 제길…… 교장 할아범은 분명히 지금 무엇인가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데…… 도저히 그걸 알아낼 방법이 없으니 막을 수도 없어…… 이런…… 알 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니…… 빌어먹을……! ───────────────────────────────────────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5일 19:2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7-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인간은 이기적인가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299 게 시 일 :00/04/25 06:55:12 수 정 일 : 크 기 :4.6K 조회횟수 :183 “야, 류드!” 내 귀에 꽤 익숙한 네오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네오니스가 M4관 현관에서 내 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M4관 현관 에서 본관 뒷문까지 뛰어온 네오니스는 내 어깨에 팔을 걸고는 물음을 던졌 다. “너 이번에도 만점 받았다면서?” 얼레…… 벌써 소식이 죄다 퍼진 건가? 하여간 이 학교는 정보 전달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니까……. “어…….”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두 번 연속으로 전과목 만점을 받냐……!” 네오니스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별로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잠자코 있었다.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네오니스가 계속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 졌다. “너 2학기에 2학년으로 올라간다며?” “……!” 얼라리? 그것까지 소문이 퍼진 거야? 놀라워…… 아주 놀라워! “교장 선생님이 2학년으로 올라가라고는 했는데……”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대강 얼버무려 대답했다. 하지만 네오니스는 그것을 확정된 사항으로 받아들였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면 100% 진급이야. 축하한다, 류드!” 흘…… 이게 지금 축하 받을 상황인가? 뭐 이제 정식으로 네오니스와 같은 학년이 되는 거니까 축하 받을 일이긴 하구만. 그나저나 반 편성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네오니스와 같은 반이 되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텐데. 음… … 교장에게 압력을 넣어버릴까……? “참, 네오. 시험 잘 봤어?”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네오니스의 점수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네오니 스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못봤어. 중간고사 때보다는 조금 오르긴 했지만.” 얼레? 네오니스도 성적이 올랐다고라? “몇 점이나 올랐는데?” “응…… 저번에는 76점이었고…… 이번에는 82점이야.” 허걱?! 평균 점수가 무려 6점이나 올라가다니……! 무서운 넘……! “그럼 네린도 잘 봤겠네?” 난 이번엔 네스포린의 점수를 물어보았다. 내 물음에 네오니스는 고개를 끄 덕였다. “저번보다 평균이 10점 가량 올랐어. 하지만 내 성적보다 총점이 10점 적다 고 토라져있어. 그래서 지금 네린을 위로해주려고 가는 거야.” “…….” 우씨…… 평균 10점을 그냥 올리다니…… 네스포린도 무서운 애야…… 하여 튼 내 친구들이 모두 평균 점수가 오르다니…… 아, 레리오스는 전보다 떨어 졌으니까 녀석은 제외시켜야겠구만. “류드, 난 네린에게 가볼게. 나중에 또 보자.” “어.” 네오니스는 씨익 웃어 보인 다음 M5관으로 뛰어갔다. 2학년 여학생 전용 기 숙사에 들어가는 것인데도 네오니스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나라면 저렇게 당 당하게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탁- 탁- 난 네오니스가 들어간 M5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발길을 돌려 내 방 기 숙사로 향했다. 아이들은 이리저리 지나다니면서 이번 기말고사 성적에 대해 얘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해서 걱정만 하고 있었다. 끼이― 내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라이가 날 죽일 듯 이 노려보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작은 강아지라도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아 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으면 누구나 무서움을 느낄 것이 다. 하지만 난 라이가 그런 행동을 취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무서울 게 없었다. “밥줄 테니까 기다려.” “헥헥-”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이는 평상시에 얍삽한 얼굴로 돌아와 날 보고 헥 헥거렸다. 라이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방안에 있는 소형 냉장고를 열어 젖혔다. 그러나 냉장고 속에는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얼레? 이상하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먹을 게 들어 있었는데? 난 어제 냉장고에서 뭐 꺼내 먹지도 않았고…… 그럼…… 라이가 먹어버린 건가? 하 지만 녀석이 냉장고 문을 열 수 있어? 허참…… 이거 뭔가 의심쩍어……! “야! 너 냉장고에서 뭐 꺼내먹었냐?” 난 라이를 돌아보며 물었고 라이는 어벙한 얼굴로 계속 내게 밥 달라는 표 정을 짓고만 있었다. 흘…… 강아지한테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어쨌거나 먹을 게 없으니 먹 을 거 사러 매점이나 가야겠군. 아……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라이까지 맡아 길러야 하다니…… 누가 라이 식비 좀 지원해 달란 말이야……! 쿵- 라이의 식사를 사러가기 위해 라이를 방안에 둔 채 문을 닫고 매점으로 향 했다. 매점으로 가는 도중 문득 라이에 대한 여러 의문점이 떠올랐다. 정말 이상한 강아지란 말이야…… 변을 보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냉장고에서 자기가 알아서 꺼내먹는 것 같고…… 그리고…… 드라콘과 싸울 때 교장하고 같이 내 앞에 나타났고…… 하……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교장 할아범이 그 일에 대해 전혀 얘기해주지 않으니 도대체 어떻게 라이가 내 앞 에 쓰러져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 확실히 라이를 보통 강아지라고 보기 는 힘든데…… 그렇다면…… 설마…… 강아지로 위장한 마족? “…….” 내가 생각해도 한심했다. 이곳에서는 신족이나 마족이 전혀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드라콘이 존재한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지만. 어쨌든 일 단 라이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고 난 라이의 식사를 사러 빠른 발걸음 으로 매점에 들어갔다. 빨리 사다주지 않으면 라이가 그 하얀 이빨로 내 피 부를 살짝살짝 눌러줄지도 모르니까. ┌───────────────────────────────────┐ │ ▶ 번 호 : 0/795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5일 19:2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1- │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00 게 시 일 :00/04/25 06:55:34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179 <제 12 장> 마법 연구소 2220년 7월 16일 화요일. 오죠룬에 들어와서 처음 맞이하게 되는 여름 방학 식 날이다. “류드나르, 너 방학 때 뭐 할 일 있냐?”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레리오스는 꽤 들뜬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명색이 방학이라 내 마음도 조금 들뜬 상태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기쁜 것도 아니었다. 방학이 되어봤자 난 어디 갈 곳도 없고, 나갈 돈도 없기 때문에 기숙사에 죽치고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글쎄…… 갈 곳은 없어. 아마 학교에 남아야겠지.” “그래? 거참 안됐다. 난 집에 갈 건데.” 얼레? 네 성격이나 취미를 보면 해변가 같은데 가서 죽치고 앉아 있으면서 지나가는 여자 몸매나 스케치할 것 같은데? “집? 하긴, 거의 6개월 동안 집에 안 갔으니까 부모님들이 걱정하고 계시겠 구나.” 그런 말을 하다보니 문득 내 부모 생각이 났다. 하지만 곧 지워버렸다. 생 각해봤자 가지도 못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기분만 우울해지기 때문이 었다. “하하, 우리 엄마하고 아빠는 날 포기했기 땜시 전혀 걱정 안 해.” 레리오스는 그게 자랑인 듯이 실실 쪼갰다. 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레리오스가 내 목에 팔을 걸더니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왜 끄덕여? 엄마 아빠가 정말로 날 포기했을 것 같냐?” “으윽…… 미안…… 다시 생각해보니까…… 역시 포기하셨을 것 같다…….” “…….” 내 말에 레리오스는 잠시 행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뒤이어 레리오스의 무차 별 머리 헝클어뜨리기 공격이 시작되었다. “친구를 놀린 벌이닷!” “야야! 머리 헝클어져!!!” 나와 레리오스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가리나크 선생이 교실 문 을 열고 들어왔고, 내 머리를 막 헝클어놓던 레리오스는 그제서야 손을 놓고 날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해주지. 고맙게 생각해라.” “…….” 흘…… 고맙긴 뭐가 고마워? 으윽…… 머리가 완전히 엉망 되버렸군. 머리 가 헝클어지면 기분 정말 더러운데…… 레리오스니까 봐준다! “곧 방학식이 있으니까 모두들 조용히 해라.” 아이들을 조용히 시킨 가리나크 선생은 교실 칠판 옆에 있는 TV를 틀었다. TV는 천장에 매달려 있고, 비디오도 없고, 채널을 틀어도 TV 방송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교 방송용 빼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 오죠룬 마법학교의 여름 방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자 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 말에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기 귀찮았지만 나도 같이 일어서 주었다. 어쨌든 우리가 제일 위층이 기 때문에 위쪽으로부터 책상을 끌거나 의자를 끄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좋 았다. 그렇게 책상과 의자를 끄는 소리가 멈추자 스피커에서 애국가를 부르 라는 주문을 내렸다. 《애국가 제창.》 흠…… 얼레? 애국가의 곡이 확 바뀌었네? 가사는 거의 똑같은데. 역시…… 안익태가 스코틀랜드 민요를 그대로 따다가 만든 음악이라 자존심 상한다고 음악 자체를 완전히 다른 걸로 바꿔버린 것 같군. 뭐 어쨌거나 음악 자체가 조금 밝아진 듯한 분위기라 괜찮구만.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가 끝나고 스피커에서 앉으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아이들은 즉시 제자리에 앉았다. 그런 것은 가리나크 선생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부담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곧이어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커윽…… 훈화 말씀…… 그거 꼭 필요한 건가? 그냥 여름 방학이니까 몸 조 심히 놀다와라 라고만 하면 되잖아? 아…… 과연 교장 할아범은 훈화 말씀을 하는데 몇십 분이나 잡아먹을 것인가…… 기대되는구만……. 《이 시간만 지나면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방학은 너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안전 사고에 대비해야 하며, 학업을 게을리 해 서는 안 된다. 이상.》 얼레? 벌써 끝난 건가? 헐…… 내 생애 가장 짧은 훈화였어…… 그나저나 저 할아범은 아무리 학교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공식 석상인데 반말을 찍찍 해대는군. 굉장히 권위주의적인 건가? 뭐 나이가 하도 들어 보이니까 반말을 들어도 그렇게 거부감은 안 생기지만. 《에…… 다음에는……》 방학식 사회자는 계속 식을 진행했고, 들을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어쨌 든‘영원히 빛나리 오죠룬 마법학교∼!’로 끝나는 아주 유치찬란한 교가를 부르고 난 뒤에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모두 제자리에 앉았다. 가리나크 선생 은 방학식이 끝나서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아이들을 쭉 훑어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알고 있겠지만 개학은 8월 23일이다. 그때까지 모두 멀쩡히 살아서 만나기로 하고, 방학 동안 학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은 나한테 오도록 해라. 그럼 개학날 보자!” “예―!” 아이들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훨씬 크고 우렁찼다. 그렇게 힘차게 대답한 아이들은 즉시 왁자지껄 떠들며 교실을 나섰고, 난 방학 동안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천천히 가방을 쌌다. 띵- 띵- 띵- 《D-7반의 보나이 류드나르는 지금 즉시 교무실로 오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D-7반의 보나이 류드나르는 지금 즉시 교무실로 오기 바랍 니다.》 얼레? 교무실로? 이 학교에서 나에게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인간은 오직 교 장 할배 뿐인데…… 교장실이 아닌 교무실이라…… 무슨 일이지? “류드나르! 개학날 보자!” 레리오스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급히 교실을 나섰다. 난 그런 레리오 스에게 손만 흔들어 준 뒤, 최대한 빠르게 가방을 챙기고 교무실로 향했다. 왠지 이번 여름 방학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끼이― 난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가 날 부른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잠시 문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교무실에 놓인 긴 책 상에 앉아 어떤 일을 하고 있던 샤느 선생이 날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어머, 류드가 여기 왠일이니? 나보고 싶어서 왔어?” 흘…… 착각이 하늘을 꿰뚫어버릴 정도군요……. “방송에서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난 샤느 선생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샤느 선생은 내 얘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참, 류드는 이번 여름 방학 때 어디 갈 곳 있니?” “…….” 이런…… 내 말을 막 씹잖아? 기분 나쁘구만. 그런데도 샤느 선생이 저렇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를 낼 수가 없어…… 아…… 이런 나도 마음에 안 들어……. --------------------------------------------------------------------------------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6일 23:2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06 게 시 일 :00/04/26 17:33:39 수 정 일 : 크 기 :5.5K 조회횟수 :129 “특별히 갈 곳은 없는데요…….” “그러니? 잘됐다!” 얼라리? 뭐가 잘됐다는 거야? 덥썩―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은 샤느 선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그럼 우리 집에 놀러오지 않을래?” 엥? “선생님 집에요?” “그래!” 자기 집이란 걸 강조하려는 듯 샤느 선생은 조금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만, 샤느 선생이 어떤 뜻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뭐라고 대답하는 게 조금 망설여졌다. 음…… 내가 샤느 선생 집에 가서 뭐한다냐? 장인 장모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허걱? 설마…… 날 자기 부모에게 소개시키려고?! “허허, 샤느 선생. 안 됐지만 류드는 내가 접수해야겠네.” 그때 어느샌가 나타난 교장이 껄껄 웃으며 샤느 선생에게 말했고, 그런 교 장의 말을 들은 샤느 선생은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류드를 데리고 어디 가실 건가요?” “그렇다네.” “어디로……?” “그것까지 알려줄 의무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아…… 죄송해요.” 자신이 너무 꼬치꼬치 캐물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샤느 선생은 교장 할배에 게 용서를 구했다. 그런 샤느 선생의 모습에 교장이 껄껄 웃었다. “그런 걸로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네. 그나저나 류드.” “아, 예.” 이런…… 샤느 선생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왜 나한테 말을 거냐고… … 그렇게 예고도 없이 대화 상대를 바꾸지 말란 말이야……! “내일 바로 떠날 것이다. 그러니 갈 준비를 하거라.” “……?” 얼라리? 그게 갑자기 왠 비오는 날에 먼지 피어나는 소리다냐? “갈 준비요? 어디로 가는데요?” 난 교장 할배에게 아주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러나 교장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을 회피했다. “가보면 안다. 어쨌든 출발은 내일 오전 10시니까 그렇게 알고 있거라.” “10시……요?” “그래. 시간이 되면 내가 친히 네 방을 방문할 테니까 방에서 얌전히 기다 리면 된다. 그럼 돌아가서 쉬거라.”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한 교장은 교감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난 하도 어 이가 없어서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내 얘기는 전혀 듣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그런 것을 결정해버린 교장 할아범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교장의 그 긴 수염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류드.” 가만히 서서 교장 할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에게 샤느 선생이 말을 걸었 다. 그래서 난 교장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하고 같이 놀러가지 않을래?” 에엥? 집에 가자는 게 같이 놀러가자는 걸로 바뀌었네? 뭐 이번 것은 부담 없이 대답할 수 있겠군. “예…… 그렇게 할게요.” “그래. 그럼 교장 선생님하고 잘 다녀와.” 샤느 선생은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 뒤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난 잠시 샤느 선생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교장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교장은 교감하고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어서 내가 쳐다보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갑자기 날 데리고 어디를 가겠다니…… 한마디의 예고도 없이…… 하여간 저 교장 할배도 점점 더 마음에 안 들게 논다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난 저 할아범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는 거니까……. 방학식 다음날 오전 9시 30분 조금 넘은 시각,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나다, 류드. 일어났겠지?” 방문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교장 할배의 목소리. 이미 일어나 떠날 모든 준 비를 마친 나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열어제쳤다. 내가 갑자기 문을 열자 밖 에 서 있던 교장 할배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 게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준비는 모두 끝낸 것 같구나. 그럼 문 잠그고 날 따라오너라.” “저기요……” “……?” 내가 말을 걸자 교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그런 교장에게 침대에 누워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를 가리켜주며 물었다. “라이는 이대로 두고 갈까요?” “허허, 당연히 데려가야지.” 내 물음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난 즉시 라이에게 다가가 라이의 다리 중 아무 거나 하나 잡고 라이를 대롱 대롱 든 채 교장 앞에 섰다. 교장은 내게 뒷다리를 잡혀 거꾸로 들려 있는 라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정말 동물 애호심이 전혀 없는 모양이구나.” 흘…… 그것보다는 나한테 뒷다리를 잡혀 거꾸로 매달리고도 계속 꿈 속을 헤매고 있는 라이 녀석이 더 놀랍다고 말하는 게 어떨까? “자, 어쨌거나 가자꾸나.” 그렇게 말한 교장은 먼저 앞서 걷기 시작했고, 난 방문을 잠근 후 교장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기숙사 내부는 너무나 고요했다. 방학이 되었기 때문 에 아이들이 마음 편히 늦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류드.” 기숙사의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갈 때 교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 만 교장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계속 걸으면서 말했기 때문에 나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말씀하세요.” “네게서 마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데, 그새 또 한 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킨 것이냐?” 헐…… 그런 재미없는 질문을 하다니…… 수준이 낮군. “예. 하지만 5써클 밖에 안 되요.” “음…… 5써클이라…… 4개월만에 5써클…… 보통 사람은 생각할 수도 없는 속도로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마나 회전에 열심인 건가?”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이긴 뭐가 무엇 때문이야? 그 빌어먹을 아레드라콘 녀석 때문이지! 그 녀석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우……! “아레드라콘과의 싸움에서 제가 얼마나 약한 지를 깨달았거든요.” 내 말을 들은 교장은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가…… 뭐 그렇다면 자네가 그렇게 마법 수련에 열심히 몰두하게 해준 아레드라콘에게 감사라도 해야겠구먼.” 감사? 흘…… 그 녀석은 이미 죽었으니까…… 할아범이 정 그렇게 하고 싶 다면…… 지금 당장 저승으로 가서 아레드라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라구∼ “그런데…… 넌 아직도 네 기억을 되찾지 못한 것이냐?” “……!” 교장은 그 질문으로써 그 동안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일깨워 주 었다. 지금 나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상태인 척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라는 사실을. --------------------------------------------------------------------------------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6일 23:2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3- │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07 게 시 일 :00/04/26 17:33:57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118 “아, 아직 기억이……” 갑작스런 교장의 질문에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상당히 당황 하는 내 모습을 야비한 교장이 놓칠 리 없었다. “당황하고 있구나.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가령 이미 기억 을 되찾은 지 오래되었다거나.” “…….” 휴…… 다행히 교장은 정말로 내가 기억 상실에 걸렸었다고 생각하는구만. 만약 내가 차원을 넘어 이 세계로 온 사실을 교장이 알게 되면‘차원을 넘어? 도대체 네 몸이 어떻게 생겼길래?’하면서 내 몸을 해부하려고 하겠지? 으… … 생각만 해도 오장육부가 경련을 일으킬 것 같다……! “류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교장이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다음에 이어질 교장의 말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계속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교장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 일부러 태연을 가장했다. “예.” “네게는 어떤 말 못 할 비밀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처럼 날 속여서 이 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지도 모르지.” 허걱?!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난 네 능력에 흥미를 느끼고 있으니까. 네가 마법 수련을 게을리 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목적으로 이 학교에 온 것인지는 묻지 않겠다. 알겠느냐?” 교장은 완전히 날 스파이 취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교장이 했던 말처 럼 이곳에서 계속 먹고 자고 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이 학교 외에 내가 갈 곳은 아무대도 없으니까. 그아앙― 교장 할아범의 삐까번쩍한 자가용은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내달 렸다. 차를 탄 지 겨우 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곳은 전라남도 광주, 이곳 말로 바꾸자면‘나사 제이라도(道)’의‘카이주시 (市)’근처였다. 만약 내가 살고 있던 곳이라면 2시간만에 서울에서 광주까 지 올 수 없었겠지만, 이곳은 고속도로 위에 또 하나의 고가도로를 만들었고 우리는 바로 그 고가도로를 달려왔기 때문에 길이 거의 막히지 않았던 것이 다. 흘…… 2220년씩이나 됐는데도 이 동네는 벼농사를 하는군. 뭐 벼농사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밥을 먹을 수도 없겠지만. 그나저나 이렇게 차를 타고 가면 서 넓게 펼쳐진 논밭을 바라보는 건 꽤 오래 전 일 같구만. 감회가 새로워∼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지.” “……!” 아무 말 없이 차만 몰던 교장이 갑자기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우고는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중얼거리더니 차의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속 90 km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속력을 더 내자마자 차는 시속 100km를 가볍게 넘어버렸다. 두려움이 밀려올 정도의 빠르기였다. “이러다 과속으로 경찰에 걸리면 어떡해요?” 난 자동차의 속력을 떨어뜨릴 속셈으로 교장에게 물었지만 교장은 전혀 걱 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 오면 냅따 튀면 된다!” “…….” 이 인간…… 정말로 한 학교의 교장 맞아? 부우웅…… “……?” 시속 100km를 넘어 150km에 육박하던 차 속력이 갑자기 뚝뚝 떨어지기 시작 했다. 교장이 스스로 차의 속력을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교장을 내가 이상하게 쳐다보자 교장은 차의 속력을 70km까지 떨어뜨린 후에 입을 열었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간다. 그리고 너에게 말해둘 것이 있는데……” “……?” “이제 곧 만나게 될 녀석들에게 너무 기죽지 말거라.” “……???”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덜컹- 덜커덩- “윽……!” 교장이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서 울퉁불퉁한 시골길로 차를 몰았기 때문에 차가 조금 심하게 덜컹거렸다. 다행히 안전 벨트를 착용해서 머리를 차 천장 에 박을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난 조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창 밖을 쳐다보았 다. 창 밖을 통해 높은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카이주시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교장에게 물었다. “카이주시로 가는 게 아니었어요?” “목적지는 거기가 아니다.” 교장은 그 한마디만 하고는 차를 모는 것에 열중했다. 그래서 나도 교장에 게서 더 이상의 말을 듣는 것을 단념하고 시골 풍경이나 감상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논밭의 모습은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저 멀리로 현대식의 높은 빌딩들이 멀어져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 문에 마치 전혀 다른 세계를 달리고 있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 시골길을 따라 대략 20여 분 정도를 달리자 높은 담장에 둘러싸인 어떤 큰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논밭 한복판에 그런 큰 건물이 있다는 게 조금 뜻 밖이었지만 어쨌든 교장이 그 건물을 향해 차를 몰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그 건물이 목적지인 듯했다. “저 건물은 뭐예요?” 이제 목적지에 대해 물어봐도 괜찮겠지란 생각이 들어서 난 교장에게 물었 다. 본래 교장도 나에게 그 건물에 대해 말해줄 참이었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저건 마법 연구소란다. 내 친구가 운영하고 있지.” 얼레? 마법 연구소? 끼익― 마법 연구소 앞에 도착한 교장은 아무 데나 차를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그래서 나도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온통 산과 들, 논밭, 그리고 몇 채의 집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한적한 시골에 최신 시설을 갖 춘 마법 연구소가 있다라고 생각하자 뭔가 기분이 묘했다. “따라오거라.” 교장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정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차 문도 잠 그지 않은 채 교장이 가버렸기 때문에 이런 곳에 차를 그냥 두고 간다는 것 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차 안에 혼자 남아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도 걱정 되었다. 하지만 내 차도 아닌데다가 라이야 워낙 교활한 녀석이라 걱정할 필 요도 없고, 또 교장이 잘 알아서 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부담 없이 교장의 뒤를 따라갔다. “……?” 이상하게도 정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온통 담장뿐이었다. 그런데도 교장 은 어떤 특정한 담장 쪽으로 걸어갔다. 교장이 걸음을 멈춘 곳은 담장에 붙 어있는 공중 전화처럼 생긴 어떤 기계 장치 앞이었다. 그 기계 장치 앞에 선 교장은 상의 안주머니에서 어떤 카드를 꺼내더니 그 기계 장치의 카드 삽입 구에다 밀어 넣었다. 삐빅- 삐이― 그 기계 장치가 카드를 읽는 소리가 잠시 났고 곧이어 긴 발신음과 함께 담 장의 일부가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기계 장치 옆에 있는 담장은 담장이 아 니라 담장으로 위장한 문이었던 것이다. “들어가자.” 교장은 뒤에서 멍청히 서 있는 나에게 손짓하고 나서 그 문 안쪽으로 들어 갔다. 서두르지 않으면 문이 닫혀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난 재 빨리 뛰어 교장 바로 옆에 섰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은 거의 들어맞았다. 교장이 문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서 5초 후에 문이 닫혀버렸으니까. “……!” 내 시야에 들어온 담장 안의 모습은 내 생각과 너무나 틀린 것이었다. 난 마법 연구소라길래 뭔가 엄청난 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이곳 은 오죠룬 마법학교와 거의 다를 게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축구 골 대가 세워진 운동장은 이곳이 오죠룬 마법학교의 분교가 아닐까하는 의심을 품게 했다. --------------------------------------------------------------------------------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7일 13:4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4-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7 07:12:54 수 정 일 : 크 기 : 4.9K 조회횟수 : 56 “여기가 마법 연구소예요?” “그렇단다.” 내 물음에 교장은 당연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축구 골대가 세 워진 운동장을 가리키며 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근데 왜 학교처럼 운동장이 있어요?” “허허, 그거 말이냐?” 난 내 질문에 교장이 당황할 거라 생각했지만 교장은 아주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는 마법을 연구하는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연구 표본인 아이들도 있 기 때문이지.” 얼레? 연구…… 표본? “이 운동장은 그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거란다. 물론 연구 원들도 가끔씩 이 운동장을 사용하겠지만.” 그렇게 말한 교장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유난히 큰 어떤 한 건물 쪽으로 천 천히 걸어갔다. 난 그런 교장을 따라가면서 마법 연구소라는 이곳을 쭉 둘러 보았다. 건물 배치는 간단한‘ㄷ’자 모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람 모 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란 점이 가장 특이했다. “아무도 안 보이네요?” “허허, 지금은 연구 시간이라 그렇단다. 자, 안으로 들어가자.” 지잉― 교장이 건물 현관 옆에 달린 카드 판독기에 카드를 넣자 현관이 자동으로 열렸다. 건물 안에도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법 연구소에는 사람이 아닌 로봇들이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 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앞장서서 걷던 교장이 날 돌아보며 말했다.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친구 녀석을 만나서 얘기할 게 있으니까.” 얼씨구? 날 떨어뜨려 놓겠다? 무슨 얘기하는지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거냐? 흘…… 분명히 친구라는 인간하고 같이 어떤 가공할 음모를 꾸밀려고 하는 거겠지? “갔다 오세요.” “그래.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 한다.” “예.” 내 또박또박한 대답을 듣고 안심한 듯 교장은 미소를 지으며 중앙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난 꽤 넓은 1층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교장이 위층 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1층을 둘러보았다. 내가 서 있는 1층 현관 복도 양옆으로 좁은 복도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 복 도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개의 방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흘…… 난 뭐한다냐? 교장 할배가 언제 다시 내려올 지 알 수도 없는데…… 으…… 할 일도 없이 이런데서 놀고 있어야 하다니…… 최악이야……! “오빠! 오빠! 아이참, 오빠!!!” 내가 중앙 계단 앞에서 빈둥빈둥 거릴 때 중앙 계단 쪽에서 한 소녀의 목소 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꽤 묵직한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었 다. 쿵- 쿵- 쿵- “오빠! 오늘도 여기서 점심 안 먹을 거야?” 얼라리? 누가 중앙 계단을 통해서 1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모양인데? 쿵쿵거 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어봐서는 남자 한 명에다…… 예쁜 소녀의 목소리도 들리니까 소녀 하나…… 그렇게 둘이겠군. 드디어 이 삭막한 마법 연구소에 서 인간들을 처음 보겠구나! 쿵- 쿵- 쿵. 거침없이 쿵쿵거리던 발자국 소리가 멎었다. 1층으로 내려오던 남자가 중앙 계단 옆에 서 있는 날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나서 난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뜻 밖에도 17, 18살 정도의 소년이었다. “…….” “…….” 소년은 날 보며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고, 나도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소년 사이에는 잠시 동안 적막이 감돌았다. 그 틈을 타서 난 소년을 자 세히 뜯어보았다. 소년은 불붙은 듯이 새빨간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입 고 있는 옷도 붉은색 계통이라 완전히 빨갛게 달구어진 인간을 연상하게 했 다. 특히 콧잔등과 뺨에 붙인 반창고 때문에 잘생긴 얼굴이 조금 거칠게 느 껴졌다. “오빠! 오……!” 나와 소년 사이의 적막을 깬 사람은 뒤따라오던 한 소녀였다. 소녀는 붉은 머리 소년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는데 소년과는 달리 파란색의 긴 머리에다 파란색 계통의 옷을 입어서 꽤 이지적이란 느낌을 받게 했다. “오빠. 아는 사람이야?” 파란 머리의 소녀는 붉은 머리의 소년 옆에 서서 날 가리키며 소년에게 물 었다. 그러자 소년이 아주 당연한 듯이 입을 열었다. “몰라.”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녀의 말뜻은‘아는 사람도 아닌데 왜 안 가고 여기 서 있어?’였다. 소년 도 그 정도 뜻은 알아들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나도 몰라. 왠지 저 녀석이 신경 쓰여서.” 얼씨구…… 저 녀석? 저 불에 달구어진 인간이 나한테 죽여달라고 사정을 하는구만! “오빠……!” 소녀는 방금 붉은 머리 소년이 말한‘저 녀석’이란 단어에 내가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소년을 나무라듯이 불렀다. 그러나 붉은 머리 소년은 전 혀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너도 쥐새끼냐?” “…….” 소년의 입에서 대뜸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소년의 말에 소녀는 기겁할 듯 이 놀랬고, 내 기분은 꽤 가라앉아 버렸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마법을 써서 소년의 그 건방진 말투를 고쳐줄까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녀가 즉시 나에게 고 개를 숙여 보이며 용서를 구했다. “죄송해요, 오빠는 이곳 학생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 거예요. 오해하셨다 면 죄송합니다……!” 얼레? 쥐새끼란 말이 이곳 학생이냐라는 질문이라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데? “쥐새끼? 왜 그런 말을 한 거지?” 난 붉은 머리 소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한 점의 거리낌이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의료계에서 흰쥐가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이곳 녀석들도 마법 연구 용으로 사용되니까 그런다. 알겠냐?” 음…… 그런 뜻이었나? 이곳에 대해 꽤 불만이 많은 모양이군. 그나저나 말 투가 아주 거친데? 왜 처음 보는 나한테 반말을 찍찍 내뱉는 거야? 저걸 손 봐줘 말어?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7일 13:43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5- │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5-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7 07:13:12 수 정 일 : 크 기 : 5.2K 조회횟수 : 57 “오빠……!” 소녀는 더욱 어쩔 줄 몰라하며 내게 화내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그냥 물러서면 붉은 머리의 소년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날뛸 것 같았기 때문에 본때를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 난 정신을 집중하여 마나 파장을 방출했다. 그리고 나서 카파 하사로 2개를 만들어 내었다. 내가 카파 하사로를 만들어내자 붉은 머리의 소년이 코웃음 을 쳤다. “지금 나한테 화염계 마법으로 공격할 셈이냐? 머저리 같은 녀석!” 완전히 날 무시하는 발언을 한 소년은 왼손을 가슴 높이까지 쭉 펴서 들어 올렸다. 소년이 그런 동작을 하는 동안 소년에게서 마나 파장이 방출되었다. 빌어먹게도 소년 역시 마법사였던 것이다. 화르륵―! “……!” 소년이 마법을 구사할 때 방출된 마나 파장은 나보다 그렇게 강한 것이 아 니었음에도 실현된 카파 하사로의 개수는 무려 5개였다. 비록 난 마나를 그 다지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녀석이 5개의 카파 하사로를 만들 때 방출한 마나 파장의 힘이 생각보다 약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놀라웠다. “염법사(炎法師) 앞에서 그런 조잡한 화염계 마법을 구사할 생각을 하다니… … 살고 싶으면 다른 계통의 마법으로 공격해라.”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날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소년이 말했던‘염법사’라는 생소한 단어가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둘 다 그만해요!!!” 나와 소년이 잠시 대치 상태에 있자 파란 머리의 소녀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것을 본 소년이 조금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운디네, 비켜라.” “오빠……!” 소녀는 여전히 나와 소년 사이에 서서 나와 소년이 더 이상 마법을 사용하 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난 그런 것에 신경 쓸 수 없었다. 소년이 말했던‘운 디네’라는 소녀의 이름이 내 머리 속에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오빠는 계속 싸우려는 거야? 그래서 오빠에게 돌아가는 게 뭐가 있어!” “…….” 소녀의 말에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카파 하사로를 제거하지 않았다. 내가 아직 카파 하사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차하면 날 공격 할 생각인 듯했다. 그래서 이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날 말려야 한다고 느낀 소녀가 날 돌아보며 부탁 조로 말했다. “이제 그만 하세요. 여기서 싸워봐야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본래 싸움에는 의미가 없는 거야.” 소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이 아주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소녀 가 놀라 쳐다보자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싸움은 그저 싸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까.” “오빠……!” 소년의 말에 소녀는 당황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계속‘운디네’란 말이 내 머리 속을 맴돌던 중에‘싸움은 그저 싸움일 뿐이다’란 소년의 말 에 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기왕 정신을 차린 김에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싸움이 왜 의미 없지? 의미 있는 싸움도 있을 텐데?” “…… 뭐가 있는지 말해봐.” 소년은 여전히 굉장히 띠꺼운 표정을 지었다. 난 잠시 의미 있는 싸움이 어 떤 게 있을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무엇인가를 생각해 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버렸다. “에…… 사랑하는 사람을 사이에 두고 다른 남자와 싸울 수도 있지.” “그런 싸움은 의미가 없어. 사랑을 그런 식으로 쟁취하면 그 사랑은 깊어질 수 없어.” 바로 튀어나오는 소년의 반박. 말문이 막히긴 했지만 아직 내가 진 건 아니 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예를 들었다.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왕을 무찌르기 위한 싸움은?” “…….” 내가 든 예가 어이없었는지 소년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 생각해도 예가 이 상했지만 어쨌거나 그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난 소년의 대 답을 기다렸다. 나와 소년 사이에 끼인 운디네라는 이름의 소녀는 어쩔 줄 모르고 나와 소년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소년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얘기하기 귀찮아. 난 머리 쓰는 거 딱 질색이니까.” “…….” 머리 쓰는 게 싫다는 녀석이 싸움은 싸움일 뿐이다라고 생각하고 앉아있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척해서 나한테 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 사악한 ……! “그러니까 결론은 이 세상에는 의미 없는 싸움도 있고, 의미 있는 싸움도 있다라는 거잖아요? 그렇죠?” 나와 소년이 의견 충돌로 싸울 것을 염려한 소녀가 급히 종합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이러니까 꼭 변증법 토론을 벌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년의 의견이 정(正)이고, 내 의견이 반(反)이며, 소녀의 종합적인 의견이 합(合) 인 변증법적 토론. “이봐, 너!”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소년이 날 불렀다. 그래서 난 생각을 접고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눈짓으로 내 옆에 있는 카파 하사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너 지금까지 그 카파 하사로를 유지시키고 있었냐?” “……!” 허걱! 그렇구나! 카파 하사로를 소멸시키지 않고 계속 놔두고 있었어! 으악! 여기 있는 산소가 몽창 날아가 버렸겠구나! 파팍- 난 급히 카파 하사로를 소멸시켰다. 그러자 소년도 날 따라서 다섯 개나 되 는 카파 하사로를 일제히 제거했다. 그렇게 나와 소년 사이의 대립이 일단락 되자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이야……” 그러나 소년은 아직 싸움을 끝낼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 었다. 다시 한 번 소녀의 표정이 걱정스럽게 변했고, 난 소년을 쳐다보며 다 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염법사는 아니지?” 소년의 이어진 말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난 염법사라는 말 자체의 뜻을 이 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년에게 되물었다. “염법사가 뭔데?” “…….” 순간적으로 소년의 얼굴에 한심하다는 빛이 지나갔다. 그러나 곧 얼굴 표정 을 굳히고 내 질문에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소년과 소녀가 서 있는 중앙 계단 위쪽에서 들려왔다. ───────────────────────────────────────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8일 11:1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6-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6- 총 Page : 1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8 06:52:49 수 정 일 : 크 기 : 6.5K 조회횟수 : 65 “염법사란 화염계 마법을 아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마법사를 말하는 거다.” “아…… 소장님!” 소녀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차리고 기쁜 듯 소리쳤다. 하지만 소년은 전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볼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계속 내게로 향하고 만 있었다. 그리고 나는 중앙 계단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중앙 계단을 통해 내려오는 두 명의 사람을 똑바로 보게 되었다. 한 명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교장 할아범이었고, 다른 한 명은 키도 작고 머리도 시원스럽게 벗겨진 대머 리 노인이었다. “나중에 서로 인사시키려고 했는데 벌써 인사들은 나눈 모양이구만!” 정장 차림을 한 대머리 노인이 허허 웃으며 우리 옆에까지 내려왔다. 그리 고는 나와 소년, 그리고 운디네라는 이름의 소녀를 한 번씩 훑어보다가 나에 게 시선을 못박았다. “네가 류드나르냐?” 음…… 이미 교장 할배가 내 소개는 마친 모양이군. “예.” “그래, 그럼 이 애들하고 인사는 했느냐?” “아니요…….” 차마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살벌했었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그렇게만 얼버 무렸다. 다행히 대머리 노인은 그런 거에는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 두 소년 소녀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 빨갱이의 이름은‘카에트로 사라만다’고, 저 귀여운 아가씨의 이름은 ‘카에트로 운디네시스’다. 성이 같다는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저 둘은 남 매지간이지.” “……!” 사라만다…… 운디네시스……? “아, 그럼 너희들도 이 녀석의 이름을 모르겠구나. 이 녀석의 이름은 보나 이 류드나르라고 하고, 지금은 오죠룬 마법학교를 다니고 있지.” 대머리 노인은 이번엔 두 소년 소녀에게 날 소개시켰다. 서로의 소개가 그 렇게 대강 끝나자 운디네시스가 나에게 다시 한 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 예…….” “…….” 운디네시스의 인사에 난 당황한 채로 답했고, 사라만다는 전혀 나하고 인사 를 나눌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도 녀석과는 인사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도 녀석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쿵- 쿵- 쿵- 사라만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쿵쿵거리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 자 운디네시스는 우리에게‘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하고는 급히 사라만다의 뒤를 쫓았다.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교장 할배가 입을 열었다. “사라만다는 아직도 여길 싫어하는 모양이군.” “그래. 녀석은 본래 얽매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이 땅이 본래 자기 할아버지 것이었으니 더욱 우리를 싫어하는 거지.” 대머리 노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사라만다가 자신들을 싫어하든 말든 전혀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머리 노인과 교장 할배가 이야기를 나누 지 않는 틈을 타서 난 대머리 노인에게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 대해 물어 보았다. “저기요…… 근데 사라만다하고 운디네시스는 여기 다니나요?” “응? 아…… 그렇단다. 2년 전부터 우리의 연구에 동참했지. 뭐 사라만다 녀석은 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 다니는 거라고 볼 수 있지만.” 얼레? 무슨 소리야? “자, 그 얘기는 점심을 먹으면서 하자꾸나.” 대머리 노인은 나와 교장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장 동편에 있 는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교장 할배는 그 대머리 노인의 뒤를 따라가 면서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이 건물에 식당이 있어서 그리로 가는 거란다.” 음…… 그랬군. 마침 배도 고팠는데 잘 됐다! 뚜벅뚜벅- 나와 교장 할배, 그리고 대머리 노인은 동편 건물 2층에 있는 귀빈 식당이 란 곳으로 들어갔다. 귀빈 식당이라 그런지 내가 오죠룬 마법학교에서 보아 왔던 식당하고는 차원이 틀렸다. 식탁마다 식탁보가 깔려 있었고, 분위기도 무슨 고급 레스토랑 급이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다. “먼저 자리를 잡게. 난 음식을 시킬 테니까.” 대머리 노인은 나와 교장 할배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 다. 그래서 나와 교장 할배는 밖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는 창가 쪽에 자리 를 잡았다. 잠시 후, 대머리 노인이 음식을 시키고 돌아와 나와 교장 할배 사이에 앉았다. 식탁은 원형이었기 때문에 우리 셋은 거의 삼각형 모양을 이 루며 앉게 되었다.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 대해 알고 싶으냐? 운디네시스에게 관심이 있는 가 보구나.” 대머리 노인은 그런 헛소리를 하면서 날 놀리려고 했지만 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대머리 노인은 정말로 내가 운 디네시스에게 관심이 있는 줄로 착각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왜 사라만다는 이곳을 싫어하는 거죠?” 내 물음에 대머리 노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본래 이 연구소 터는 사라만다의 할아버지의 땅이었단다. 그걸 우리가 거 액에 매입해서 이 연구소를 세운 거지. 하지만 사라만다는 연구소보다는 논 밭을 더 좋아한단다. 그래서 연구소가 들어서는 걸 싫어했지.” 흠…… 그렇군. 그런데 이 연구소를 싫어한다는 녀석이 어째서 이 연구소를 들락날락 거리는 거지? “근데 왜 사라만다는 여기를 다니는 거예요?” “그건…… 운디네시스 때문이란다. 우리‘유전자 마법 연구소’는 특법사 (特法師)의 소질을 지닌 아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단다. 운디네시스도 특법사 의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연구소로 데려온 거란다. 자기 여동생을 이곳에 혼자 보내기가 걱정됐는지 사라만다가 따라왔는데, 녀석에게도 특법 사의 소질이 보였기 때문에 녀석도 받아들인 거다.” 대머리 노인이 말을 하면 할수록 난 더욱 헷갈려졌다. 유전자 마법 연구소 란 말도 처음 듣는 것인 데다가, 특법사 역시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특법사가 뭔데요?” 난 즉시 대머리 노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 내 질문을 들은 대머리 노인은 교장 할배를 째려보았다. “도대체 이 녀석에게 뭘 가르친 건가? 특법사도 모르다니, 말이 돼?” “허허, 지금 배우면 되지 않나.” “…….” 대머리 노인은 교장 할배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다시 내 쪽으로 고 개를 돌리고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특법사란 특정 계통의 마법을 잘 다루는 마법사를 뜻한단다. 특법사들의 특징은 남들보다 더 쉽게 마나를 느낄 수 있고, 자신의 계통 마법을 사용할 때는 보통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약한 마나 파장으로 강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말하자면 선택받은 마법사랄까?” 그런 마법사들이 있단 말이야? 흘…… 괜히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는……! “특법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단다. 사라만다는 화염계 마법을 잘 다루는 염 법사(炎法師)고, 운디네시스는 수계(水系) 마법을 잘 다루는 수법사(水法師) 지. 그 밖에도 광계(光系) 마법을 잘 다루는 광법사(光法師), 풍계(風系) 마 법을 잘 다루는 풍법사(風法師) 등등 많이 있단다.” 억…… 무지하게 복잡하구만……! “그런데 여기는 뭘 연구하는 거예요?” 특법사에 대해 대강 알아들었기 때문에 이번엔 이 연구소에 대한 것을 대머 리 영감에게 물었다. 대머리 노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아주 자랑 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연구소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특법사와 유전자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유전자 마법 연구소 란다. 과연 특법사의 재질이 유전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유전자가 특법사 의 자질을 구분하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거지. 어떠냐? 엄청난 연구 같지 않 느냐?” “…….” 엄청난 연구인지 아닌지는 결과가 말해줄 것 아니냐고…… 뭔가 밝혀낸 것 있수? 없으면 지금까지의 연구가 헛다리짚은 것일 수도 있지∼ ┌───────────────────────────────────┐ │ ▶ 번 호 : 0/8008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28일 11:13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7- │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7- 총 Page : 16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4/28 06:53:12 수 정 일 : 크 기 : 6.3K 조회횟수 : 59 “아직 아무 것도 알아낸 것이 없지 않은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건 무모한 연구네. 아니, 무모하다기보다는 불필요한 연구라고 할 수 있지.” 가만히 나와 대머리 노인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장 할배가 느닷없이 끼어 들어 대머리 노인의 가슴을 막 긁어놓았다. 그래서 대머리 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불필요한 연구가 아니야! 반드시 엄청난 결과가 나올 테니까 두고 보 라고!” “그런 연구보다는‘페이사’연구가 훨씬 더 가치 있네!” 얼레? 페이사? 그건 여기 말로‘환상’이란 뜻이니까…… 환상 마법인‘일 루전(Illusion)’을 말하는 건가? “자네는 어째서 페이사에 그렇게 집착하지?” “내가 그렇게 보였나? 허허.” 대머리 노인의 말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을 뿐이었다. 대머리 노인과 교장 할배 그렇게 둘이 다투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는 동안, 난 사라만다와 운디네 시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불의 정령 사라만다…… 물의 정령 운디네…… 염법사 사라만다…… 수법사 운디네시스…… 너무나 비슷해…… 확실히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는 날 기억 하지 못했으니까 그 둘을 내가 키우던 정령들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텐데…… 어째서 이 세계에 내 정령들과 비슷한 인간이 존재하는 거지? 인연의 끈…… 그것 때문에 이곳에도 환타지 세계에 있던 내 정령들과 비슷한 인간이 존재 하는 것인가? “맛있게 드십시오.” 그때 웨이터인 듯한 사람이 우리가 앉은 식탁에 음식을 놓았다. 마법 연구 소 식당에 마치 고급 레스토랑처럼 웨이터까지 있는 모습에 난 놀라고 말았 다. 하지만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아주 일상적인 것을 본 듯 아무렇지 도 않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 지금 이렇게 놀랄 때가 아니지…… 빨리빨리 점심을 먹자…… 점심은 돈까 스 정식인가? 뭐 이름이야 어쨌든 맛만 있으면 되지∼ “다 먹었느냐?” 내가 음식을 다 먹은 것을 본 교장이 나에게 물었고, 난 젓가락과 숟가락을 내려놓은 뒤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좋아, 그럼 실험하러 가자꾸나.” “……?” 그렇게 말한 교장은 대머리 노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귀빈 식당 을 빠져나갔다. 난 그런 둘의 뒤를 따라가면서 과연 무슨 실험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물론 결론은‘모르겠다’였지만. “그런데 우리 학교로 오겠다는 아이는 없는가?” 계속 어딘가로 걸어가면서 교장 할배가 대머리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러자 대머리 노인 역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글쎄…… 자네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아이들은 그다지 마법학교에 다니고 싶어하지 않네.” “그런가…….” 대머리 노인의 말에 교장 할배는 탄식 비슷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교장 할배에게 좀더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대머리 노인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도 알다시피 여기 아이들은 대부분 이 근방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왔네. 겨우 이곳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싶 어하겠는가? 게다가 오죠룬 마법학교는 공부만 시키는 곳으로 너무나 유명하 니까 더더욱 가고 싶지 않겠지.” “…….” 교장 할배는 입을 다물었다. 자기 자신도 오죠룬 마법학교가 아이들에게 너 무나 어려운 공부를 강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지 만 교장 할배는 그것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인생은 공부네. 그 정도의 공부도 완수해내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 들지.” “그건 자네 생각이고,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교장이 입을 열자마자 바로 대머리 노인의 반박이 튀어나왔다. 대머리 노인 의 반박을 피하기 위해 교장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류드,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너무 많은 공부를 시키고 있는 것이냐?” 흘…… 당연한 소리를 마치 아닌 것처럼 말하는구만…….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은 여러 가지인데…… 다른 클럽 활동 없이 무조건 공부만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난 내 생각을 조금 우회적으로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으면 교장 할아범이 직접 학생이 되어 공부해 보시지?’라고 했다간 열나게 얻어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거 보게. 저 아이가 아무리 전과목 만점을 받았다고는 해도 공부만 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 그러니 다른 아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자네가 정말로 마법의 대중화를 원한다면, 그런 무지막지한 공부는 강요하지 말게나.” 대머리 노인은 교장 할배에게 아주 훌륭한 충고를 해주었다. 그러나 교장은 그 말을 수용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난 마법의 대중화를 원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중이떠중이 마법사는 필요 없네. 내가 정말로 원하는 마법사는 마법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는 교장 할배의 얼굴은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서 난 교장이 왜 그런 마법사를 원하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교장 할배의 말을 듣고 있던 대머리 노인도 그 점이 궁금했는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 해주었다. “왜 자네는 그런 마법사들을 원하지? 마법에 대해서 알아서 궁극적으로 뭘 하고 싶은 건가? 내가 자네와 사귄 지 벌써 20년이 되어가지만, 자네는 지금 까지 그 점에 대해 나에게 말해준 적이 한번도 없었네. 이제 말해줄 때도 되 지 않았나?” “…….” 그러나 교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교장의 반응에 대머리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알겠네. 아직도 안 된다는 거구먼…….” “…….” 흘…… 어째 대머리 노인하고 교장 할아범하고 그다지 친하지 않은 것 같군. 뭐 교장 할아범이야 아주 무시무시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테니 다른 사람에 게 그 이유를 말해주기 싫은 거겠지. 저런 인간을 친구라고 생각하다니…… 대머리 노인도 바보로군. 뚜벅 뚜벅―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그 대화를 끝으로 입을 다물고 묵묵히 본관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아까 전에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라는 이름의 남매 를 만난 중앙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난 그런 두 사람을 따라가면 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단 한 사람도 눈에 띄지 않는 점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아무 말 없이 걷고만 있는 대머리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요……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나요? 건물이 썰렁하네요…….” “허허. 사람들이야 연구원들을 포함해서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연구를 거의 하루 종일 하니까 모두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단다.” 그렇게 말하는 대머리 노인의 표정은 그렇게 하루 종일 연구를 시키는 사람 이 자신임을 아주 명백히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대머리 노인에게 ‘아이들에게 공부만 시키는 교장 할아범이나 연구원들에게 하루 종일 연구만 시키는 당신이나 똑같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내 목이 날아갈 것 같아서 그냥 다른 말을 꺼냈다. “연구를 어떤 식으로 하는데 하루 종일 하는 거예요?” “그건 특별히 정해놓은 게 없다. 그냥 아이들이 마법을 부릴 때 어떤 데이 터를 측정하거나, 아이들이 마법을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데이터를 수집 하는 거란다.” 흘……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고라? 그러니까 얻어내는 게 없 지…… 하긴, 마법을 무슨 수로 연구하겠냐……. ─────────────────────────────────────── ┌───────────────────────────────────┐ │ ▶ 번 호 : 0/7954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30일 15:4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연구소 -8-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마법 연구소 -8-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48 게 시 일 :00/04/30 09:11:23 수 정 일 : 크 기 :7.3K 조회횟수 :131 “근데 아까 실험하러 가신댔잖아요? 저도 무슨 실험에 참여해야 하나요?” 난 조심스럽게 대머리 노인에게 물었다. 마음속으로는 당연히 실험 같은 걸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역시 그건 나만의 꿈이었다. “그렇단다. 오죠룬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둔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지.” “…….” 이런…… 겨우 전과목 만점 받았다고 지금 날 실험 대상으로 찍은 거야? 하 지만 그래봤자 난 5써클 밖에 이루지 못한 풋내기 마법사라고. 나보다 훨씬 뛰어난 인간들이 더 많을 텐데 왜 하필이면 날 끌어 들이냐고……! “자, 여기다.” 대머리 노인은 4층까지 올라간 후 거기서 어떤 큰 연구실 앞에 서더니 날 쳐다보며 말했다. 연구실은 보통 학교의 교실 4개를 합친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고 연구실 문에는 이런 문패가 부착되어 있었다. 『403ho Waryi mabyi Syidiensil』 음…… 403호 와르 마버 스디엔실…… 에엑? 전투 마법 연구실?! 덜컥- 대머리 노인은 여닫이 식으로 되어 있는 연구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교장 할배도 대머리 노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연구실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게 보였다. 그것은 부피가 상당히 큰 여러 기자재들 이 연구실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오셨습니까 소장님.” 우리들이 안에 들어가자 문 근처의 사무용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연구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연구원은 20대 후반 정도의 남자였는데 전형적인 하 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은 그다지 인상 깊지가 않아서 주의 깊 게 보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전혀 못 알아볼 정도였다. “아이들은 다 왔는가?” 대머리 노인은 즉시 그 연구원에게 물었고 연구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 그게…… 잭오랜턴하고 실피르디아만 오고……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는 안 왔습니다만…….” 잭오랜턴…… 실피르디아……? “그런가? 뭐 사라만다 녀석이야 항상 오전 연구만 끝나면 가버리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대머리 노인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역시 사라 만다가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잠시 눈썹을 찌푸렸던 대머 리 노인은 날 끌고 연구실 중앙으로 데려가면서 안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여기 새 친구가 왔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여기 머물면서 너희와 같이 연구에 동참할 아이니까 친하게 지내거라.” “……!” 으헉?! 한 달 동안 여기 머물면서 연구에 동참한다고? 내가? 그런 게 어딨 어? 난 그런 얘기 전혀 못 들었다고!!! “…….” 난 내 눈에 최대한의 강한 살기를 담아 교장 할배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교 장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야비한 말을 했다. “아르바이트 대신이다. 숙식비는 공짜니까 연구에 동참하면 그만큼의 아르 바이트비를 줄 거야.” “…….” 으…… 아무리 생각해도 저 할아범 마음에 안 들어…… 좋아…… 언젠간 반 드시 저 할아범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일그러뜨려 버리겠어……! “아, 안녕?” 내가 교장 할배를 노려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돌려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나와 비슷한 나 이의 남자였는데, 나보다도 키가 작았고 살도 통통하게 쪄서 흡사 호박과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노란색 계열로 통일하여 옷을 입은 상태였다. “난‘너로드 잭오랜턴’이야. 그냥 잭이라고 불러.” 잭오랜턴이라는 이름의 뚱뚱한 소년은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런 소년의 모습 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자꾸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빛의 하급 정령 잭 오 랜턴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쨌든 이곳의 잭오랜턴은 날 모르고 있는 상황 이었기 때문에 난 내 소개를 했다. “난 보나이 류드나르. 류드라고 부르면 돼.” “헤헤.” 잭오랜턴은 날 보고 실실 쪼갰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이런 말을 불쑥 꺼냈다. “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 설마…… 이 녀석 날 알아보는 건가? “헤…… 다른 사람이었던가? 어쨌든 만나서 반가워.” 잭오랜턴은 그렇게 자기가 한 말을 얼렁뚱땅 넘겨버리고는 슬쩍 옆으로 고 개를 돌렸다. 그래서 나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때서야 잭오랜턴의 옆에 한 소녀가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 녹색 계통의 옷을 입었군. 여기는 어째서 다 단색 옷을 입고 있는 거냐? 그게 이 마법 연구소의 연구 복장인가? 거의 교복 수준으로 노는구만. “……!” 별 생각 없이 소녀의 얼굴을 쳐다본 나는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녀의 머리칼은 윤기 나는 초록색이었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느려뜨린 상태 였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놀란 이유는 소녀의 얼굴 때문이었다. 비록 귀는 길지 않았지만 그 얼굴은 분명한 바람의 정령 실프였 다. 마르크스에 의해 소멸하기 전까지의 바로 그 얼굴이었던 것이다. - 주인님……! 이 세계로 오고 나서 이제는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한 실프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울렸다. 그런 실프의 목소리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소녀의 입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정작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 온 말은 형식적인 것이었다. “안녕하세요.‘룬 실피르디아’입니다.” “…….” 완전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난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왠지 모를 배 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던 실피르디아가 입을 열었다. “왜 그러시죠, 류드나르씨?” 에엑? 류드나르…… 씨? 어억…… 닭살이 마구마구 돋는다……! “그냥 류드라고 불러요…….” 실피르디아가 존댓말로 나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갔다. 그때 우리들 뒤에 서 있던 대머리 노인이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실피르디아는‘자파스’에서 왔단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존댓 말을 쓰지. 문화적 차이니까 네가 이해하거라.” 얼레? 자파스? 그게 어디에 붙어있는 곳이냐? “자파스가 어딘데요?” “…….” 내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분위기가 일순간에 썰렁해졌다. 교장 할배와 대머 리 노인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실피르 디아였다. “자파스는 레오콜 바로 옆에 붙어있는 섬나라예요. 여기 레오콜과 함께 무 너졌던 세계를 재건하고 초국가 언어를 만든 나라죠.” 섬나라…… 레오콜과 함께 세계를 재건하고 초국가 언어를 만들었다라…… 그렇다면…… 일본을 뜻하는 건가? “20세기일 때의 자파스의 국명은 일본이었나요?” 난 실피르디아에게 물었고 실피르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흠…… 그랬군. 실피르디아가 일본 사람이라…… 전혀 구분이 안 되는데? 어쨌거나 바람의 정령 실프와 닮은 실피르디아하고 존댓말로 얘기를 주고받 으니까 기분이 이상하구만. 이런…… 난 지금 실피르디아를 실프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내가 미쳤군……. “자, 이제 서로의 소개는 마쳤으니 실험을 시작해볼까?” 대머리 노인은 우리들 사이에 끼어 들어서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도 록 했다. 나와 실피르디아, 그리고 잭오랜턴이 쳐다보자 대머리 노인은 차분 히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실험은 특법사인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이 보통 마법사인 류드나르와 마법 대결을 하는 것이다.” 에엑? 나보고 얘네들하고 싸우라고?! “지금까지는 특법사들끼리 대결한 데이터를 모았으니, 이번엔 보통 마법사 와 마법 대결을 할 때 특법사의 마나 파장 변화 등을 측정할 것이다. 이번 실험의 요지는 알겠지?” “네.” “예.” 대머리 노인의 말에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뭐냐?” “마나 파장 같은 건 측정할 수 없다고 배웠는데…… 아닌가요?” 난 오죠룬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대머리 노인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러자 대머리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옛날 일이지. 지금은 마나 파장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됐단 다. 하지만 저 기계가 발명된 것도 최근의 일이라 아직 마나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고 있지. 기계 값이 만만치 않은 것도 연구가 덜 진행된 이유고.” 비용이 만만치 않은 기계를 들여놓았다는 것은…… 이 마법 연구소도 돈이 많다는 뜻? 음…… 그렇다면 교장 할아범이 이 대머리 노인에게 원조를 해주 는 건가? 하긴, 드라콘에게서 보물을 막 훔쳐오는 교장 할아범은 돈이 많을 테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 │ ▶ 번 호 : 0/7954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4월 30일 15:45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1- │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49 게 시 일 :00/04/30 09:11:44 수 정 일 : 크 기 :6.4K 조회횟수 :120 <제 13 장> 가족 “피오리드! 어서 측정 준비를 하게!” “옛!” 대머리 노인의 외침에 피오리드라는 이름의 연구원은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연구실 안은 점차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 었다. “잭오랜턴, 실피르디아는 동시에 류드나르를 공격한다. 그리고 류드나르는 바리어로 막기만 한다. 알겠지?” 허걱?! “바리어요?” 난 놀라 대머리 노인을 쳐다보며 되물었고 대머리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리어.” 힉…… 나보고 지금 저 두 사람의 공격을 막으라고라? 누굴 죽일 일 있냐?! “그건 무리일 것 같은데요…….” “괜찮아.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각각 2써클에 해당하는 마법을 쓸 거니 까. 류드나르 너는 3써클 정도의 바리어만 구사하면 된다. 그게 불안하면 4 써클의 바리어를 사용해도 되고.” 으…… 지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제가 꼭 그걸 해야 하나요……?” “물론이다. 실험에 동참하기로 했잖느냐?” 내가 언제 실험에 동참하기로 했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모든 건 저기 서 음흉하게 웃고 있는 교장 할아범이 꾸민 짓이란 말이야!!! “자, 류드나르. 이제 바리어를 치도록 해라.” 대머리 노인은 내가 뭐라고 반박하기도 전에 뒤로 물러나며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미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날 공격하려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난 상태인데다가 실험 참여가 아르바이트 대신이라는 교장 할배의 말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냥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 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여 바리어의 발동 원리를 떠올렸다. 바리어의 발동 원리는 간단하다. 그냥 마나 파장으로 마나를 뭉쳐서 그 뭉쳐진 마나로 장벽을 만들면 끝인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뭉쳐진 마나로 일일이 장벽을 치는 것은 상당한 정신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문이 필요하다. 소리를 지르지 않고 무거운 물체를 드는 것보다 소리를 지르면서 무거운 물 체를 드는 것이 더 쉽듯이, 많은 정신력을 요하는 마법에서는 주문을 외우면 서 마법 발동 원리를 동시에 떠올리면 주문 없이 그냥 생각만으로 마법을 발 동시키는 쪽보다 훨씬 편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문과 마법의 관계는 어디 까지나 일반적인 학자들의 생각일 뿐 정확한 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 서 나도 확실하게 뭐라고 말할 수 없다. 학자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렇다라 고 생각하는 수밖에. 으…… 바리어의 주문이 뭐였더라? 전에 샤느 선생이 가르쳐줬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 처음 시작 부분이…… 시작 부분이…… 아, 생각났다! “방어지막(防禦之膜) 단로반격(斷路反擊) 군력무한(君力無限) 극강방마(極 强防魔).” 겨우 주문을 떠올리고 읊조리자 정신력만으로는 잘 제어되지 않았던 뭉쳐진 마나들이 일정한 형태로 움직이며 내 앞에다 무형(無形)의 마나 장벽을 만들 었다. 그렇게 바리어를 형성한 나는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을 쳐다보며 말했 다. “난 준비됐어.” “좋아, 그럼 시작하거라.” 난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을 쳐다보며 말했지만 대답한 인간은 대머리 노인 이었다. 어쨌든 대머리 노인의 지시가 떨어지자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각 각 마법을 발동시키기 시작했다. 번쩍! 휘이잉―! 잭오랜턴의 몸에선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실피르디아의 몸 주위로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둘 다 2써클에 가까운 마나 파장을 뿜어내고 있었 는데, 그 두 명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간 내 바리어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측정 준비는 됐나?!” “옛!” 대머리 노인이 피오리드란 연구원에게 소리치자 피오리드는 큰소리로 대답 했다. 그 시원한 대답을 들은 대머리 노인은 마법을 발동시킨 채 잠시 대기 해 있는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에게 또다시 지시를 내렸다. “공격!” 끄으…… 더럽게 아프군…… 날 죽여라……. “자네에게 실망했네! 전교 1등이라 길래 마법을 잘 할 줄 알았더니 이게 뭔 가?” 얼라리? 이 목소리는…… 대머리 노인인가……? “이제 겨우 17살이네. 게다가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넉 달 정도밖에 지나 지 않았어. 그런데도 5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키고 있고, 마법의 습득 속도도 굉장히 빨라. 장래가 아주 촉망되는 인재란 말일세.” 얼∼ 교장 할아범이 날 두둔하다니…… 근데 내가 왜 지금 누워있는 거지? 여긴 침대 같은데? 그렇다면 누구 방? 설마…… 병원? “촉망되는 인재든 말든 나에게는 내 실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고위 마법 사가 필요해! 저 아이로는 하루에 실험 하나, 아니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다고!” 대머리 노인은 굉장히 화를 내고 있군. 왜 화를 낼까? 내가 여기 누워있기 때문에? 얼라리? 생각해 보니까 난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의 공격을 받은 직 후 쓰러졌잖아? 그래서 여기 이렇게 누워있는 거였군! “그럴 줄 알고 류드를 한 달 동안 여기 맡긴다고 한 거네. 아무리 류드의 마법 실력이 낮아도 한 달 정도면 자네가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은 될 거야.” 저 교장 할아범…… 감히 내 마법 실력이 낮다고? 내가 마법 수련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누군데! 공부를 시키지 않고 마법만 수련했다면 벌써 10 써클을 회전시켰을걸? “왜 고등부 아이들을 데려오지 않은 거지? 걔들이 안 된다면 적어도 중등 3 학년을 데려왔어야지! 어째서 1학년을 데려온 건가? 내 연구를 방해하려고 하는 건가?” 어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살벌한 분위기가 될 것 같은……! “그러는 자네는 어째서 마법 연구에 아이들을 쓰는 건가? 특법사들이 아이 들만 있는 건 아니잖는가? 오히려 저 아이들보다 훨씬 강한 성인 특법사들이 많은데 왜 굳이 아이들을 쓰고 있나?” 얼레……? 교장 할아범의 목소리가 왠지 대머리 노인을 비웃는 것처럼 들리 는데……? “그, 그건……!” 대머리 노인은 말을 더듬는군. 뭔가 엄청나게 찔리는가 보지? “결국 자네나 나나 마찬가지네. 류드를 데려온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라 고.” “?” 흘…… 이제 대강 말다툼이 끝난 것 같군. 이제 슬슬 일어나 볼까? “저기요.” “……!” 지금까지 쥐죽은 듯이 누워있던 내가 갑자기 입을 열자 교장 할아범과 대머 리 노인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왜 마법 연구하는데 어른들을 놔두고 아이들을 쓰는 거예요?” “류드…… 다 듣고 있었느냐?” 내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입만 뻥긋하면서 묻자 교장 할배는 눈썹을 꿈틀거 리면서 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본래 어른과 대화할 때는 몸을 일으켜야 정상이지만 지금의 난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의 공격에 몸을 다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몸을 일으켰다가 고통으로 인해 다시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 것 이 귀찮아서 그냥 가만히 누워 교장 할배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다친 상태인 것을 감안하고 있기 때문인지 교장 할배는 내 태도보다는 내 말 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깨어있었던 거냐?” “3분 전 쯤에요.” 난 지극히 사실대로 말했고 내 표정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살펴보던 교장 할 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무엇인가를 포기한 듯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훗…… 그러냐? 뭐 어쨌든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이구나.” 흘…… 전혀 다행인 것 같은 얼굴이 아닌데? 내가 얘기를 엿들어서 기분 나 쁜 건가? 하긴, 남이 자기 얘기를 엿듣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이러다가 교장 할배에게 찍혀서 아르바이트비 못 받는 거 아니야? -------------------------------------------------------------------------------- ┌───────────────────────────────────┐ │ ▶ 번 호 : 0/7954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1일 13:03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 가족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2- 총 Page : 1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5/01 06:25:43 수 정 일 : 크 기 : 5.2K 조회횟수 : 72 “왜 아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쓰는 거예요?” 난 맞을 각오를 하고 교장 할배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다시 그 문제를 들 먹이자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뜨끔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둘 중에서 대머리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우선 편히 쉬고 있거라. 마법을 막아내지 못해서 네 몸은 많이 다친 상태니까 말이다.” “…….” 과연 내 몸이 많이 다친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난 상체를 일으 켜보았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통증 조차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의 공격에 당하기 전의 몸 상태와 비슷했던 것이다. “몸은 멀쩡한데요.” “……!” 내 말에 탈출구를 찾으려 했던 대머리 노인은 할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교장 할배가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당연히 멀쩡할 거다. 내가 치유마법을 걸어줬는데 멀쩡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흠…… 역시 교장 할배의 치유마법 때문인가? 지금은 거의 멀쩡히 나은 상 태라 내가 과연 어느 정도로 부상을 입었는지 모르겠는걸? 뭐 이미 지난 일 이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고…… 했던 질문의 대답이나 들어봐야지∼ “왜 아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고 있죠?” “…….”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을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에게 던졌다. 그러나 둘은 눈썹만 꿈틀거릴 뿐 내 질문에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가 다간 내 스스로가 대답 기다리기 지쳐서 질문을 던진 나만 바보가 될 것 같 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말해보았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아이들을 쓰는 건가요?” “……!”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상당히 뜨끔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내가 했던 대답이 정답이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난 그것으로 밀고 나갔다. “여기 마법 연구소는 거의 하루 종일 연구만 하죠? 그래서 만약 어른을 연 구 대상으로 삼게 되면 그들이 불만을 토로할 것은 분명할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죠.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저 따를 뿐이니까요.” “…….”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계속 나 혼자서 떠들어 댔다. “또 어른을 연구 대상으로 하려면 돈을 줘야겠죠. 하지만 아이들은 돈을 줄 필요가 없어요. 아직 확실히 모르지만 여기서 아이들에게 돈을 주지 않죠? 아, 부모들에게 돈을 주나요?” “…….” 얼씨구? 대답이 없어? 저 늙은이들이 지금 죽을려고 환장했나? “…… 그래. 류드, 네 말이 맞다.” 마침내 침묵을 지키던 교장 할배가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그런 것까 지 생각해내다니 제법이군’하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돈 문제는 잘못 짚은 거다. 우리야 돈이 많기 때문에 뛰어난 마법 사가 연구에만 잘 동참해 준다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단다.” 음…… 그런가? 뭐 자금이 부족하면 드라콘에게서 보물을 슬쩍 해올 테니까 돈걱정은 하지 않겠군. 하여간 돈줄이 확실하니까 좋겠어∼ “하지만 어른이라는 작자들은 돈만 받아먹고 내빼는 경우가 많고, 설령 연 구에 동참한다고 해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마법을 쓰려하질 않는단다. 그래서 아이들로 연구 대상을 바꿔버렸지. 네 말대로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니까 말이다.”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한다…… 왠지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군. 하긴…… 어른이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한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 나쁘겠지 만. 역시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한다라는 소리는 어감이 좋지 않아……. “여기 있는 아이들은 어떤 이유 때문에 연구에 참여하는 겁니까?” 교장 할배의 대답에 기분이 나빠져서 내 말투는 조금 딱딱해졌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내 말투에 신경 쓰지 않고 대답했다. “대부분 가난한 애들이지. 그래서 부모에게 돈을 주고 특법사의 자질이 보 이는 아이들을 데려온 거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에 있는 아이들 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흠…… 뭐 아이들이 왜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지 내가 일일이 알아내 봤자 얻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넘어가고…… 이제 나에 대한 질문을 해볼까? “그럼 왜 절 이리로 데려온 겁니까?” “그건 네 스스로 생각해도 알 수 있을 거다.” 교장은 야비하게 그런 말로써 내 말문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사실 난 대강 그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장에게 내 생각을 들려주었다. “고등부나 중등부 2, 3학년쯤 되면 나름대로 머리가 돌아갈 테니까 시키는 대로 잘 따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서겠죠. 아닌가요?” “후후, 역시 잘 맞췄구나.” “게다가 전 교장 선생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중등부 1학년 중에서 특별히 절 이리로 데려온 걸 테죠.” “후후.” 교장 할배는 웃기만 했다. 하지만 대머리 노인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어째서 그런 사실을 저 아이에게 알려주는 거야?’라는 표정 이 떠올라 있었다. “자, 류드. 이제 사실을 전부 알았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모두 알려줄 거냐? 아니면 이곳을 떠날 것이냐?” 졸지에 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대답은 금방 나왔다. “그냥 한 달 동안 연구에 잘 참여하도록 하죠.” “허허, 탁월한 선택이다.” 흘…… 난 힘없는 녀석이니까 힘있는 교장에게 당할 방법이 없지…… 게다 가 교장에게서 쫓겨나면 갈곳도 없고…… 여기 있는 아이들도 어떤 이유로 이곳에 있는 것일 테니까 내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헐헐헐…… 세상하고 타협하면서 살아야지 어쩌겠어……. “자, 그럼 다시 실험하러 가자꾸나.” 교장 할배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나가며 나에게 말했다. 교장이 몸을 돌리고 나서야 난 이곳이 어디인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내가 누워있는 곳은 저 대머리 노인의 방이 분명했다. 그의 사진이 벽에 걸려있다는 점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 ┌───────────────────────────────────┐ │ ▶ 번 호 : 0/7954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1일 13:04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3-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3-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5/01 06:26:11 수 정 일 : 크 기 : 5.4K 조회횟수 : 72 “저기요……” “왜 그러느냐, 류드?” 막 문을 열고 나가려던 교장 할배는 내가 부르자 동작을 멈추고 날 쳐다보 았다. 교장 할배를 뒤따라가려던 대머리 노인 역시 바싹 긴장했다. 하지만 이번에 질문은 그들을 전혀 긴장시킬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밖에 차를 그냥 두고 왔잖아요…… 그러면 누가 안 훔쳐가나요?” “허허, 그게 궁금하느냐? 여기는 도시가 아니다. 땅은 넓고 사람은 적지. 그래서 이런 데다가 차를 무방비 상태로 주차시켜도 누가 가져가거나 하지는 않는단다. 뭐 설령 훔쳐간다 해도 나중에 차를 한 대 더 뽑으면 되니까 상관 없지.” 흘…… 차를 한 대 뽑는다고라? 역시 교장 할아범은 갑부야……. “근데 라이를 계속 차 안에 놔둬도 되요?” 이어지는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이는 그냥 두면 자기가 알아서 하는 녀석이다. 만약 누군가 차를 훔쳐가 려고 한다면 라이의 공격을 받게 될걸?” 아…… 그렇겠군. 그 소리는 결국 라이를 도난경보장치 대신 사용한다는 뜻? 역시 교장 할배는 무서운 인간이야……. “자, 어서 실험하러 가자. 따라오거라, 류드.” 더 이상 질문이 없다고 생각한 교장 할배는 유유히 방을 나섰고, 대머리 노 인도 교장 할배를 따라나갔다. 방에 나 혼자 남아있는 것도 그렇고 둘의 명 령을 어기면 나에게 손해만 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기 귀찮았 지만 나도 둘을 따라 실험하러 연구실로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실험이 끝나자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피오리드라는 이름의 연구원 에게 인사를 했다. 연구원은 그런 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얻어낸 데 이터를 열심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실험하느라 완전히 지쳤기 때문에 연 구실 바닥에 그냥 뻗어버렸다. “괜찮아, 류드?” 연구실 바닥에 드러누운 날 보고 잭오랜턴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런 잭오 랜턴의 얼굴을 쳐다볼 힘도 없어서 난 입만 나불거렸다. “계속 바리어 발동시키고 있어봐…… 안 지치나…… 하아 하아…….” “쿡!” 잭오랜턴 옆에 서 있던 실피르디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 하고 웃었다. 그러더니 빙긋 미소를 떠올리며 나에게 물었다. “제가 부축해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나 혼자 일어날 수 있어…….” 실험을 하면서 실피르디아가 나보고 존댓말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난 반 말을 찍찍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실피르디아에게 미안하거나 하지는 않 았다. 비록 실피르디아는 실프가 아니지만, 실프의 주인이었던 그 때의 버릇 때문에 반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튀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 후우……” 약간 비틀거리면서 난 연구실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연구실에는 나와 실피르디아, 잭오랜턴, 그리고 피오리드 연구원 밖 에 없었다.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은 실험 도중에 히히덕 거리며 밖으로 나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제 실험도 끝났는데 뭐해야 되지? 교장 할아범은 이 연구소 안 에서 방을 잡아놓고 잠을 잘 건지 아니면 민박을 할건지 나한테 가르쳐주지 도 않고 사라져버렸으니…… 아…… 골치 아퍼……. “류드나르씨는 이제 뭘 할 생각이에요?” 연구실을 둘러보던 나에게 실피르디아가 물음을 던졌다. 지금의 나에게는 바로 그 문제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실피르디아에게 질문을 되돌려보냈다. “실피르는 특별히 할 일 있어?” “음…… 운디네에게 들를 생각이에요.” “운디네? 수법사(水法師) 운디네시스말이야? 오빠가 사라만다인……?” “네. 근데 사라만다와 운디네를 알고 있었어요?” 내가 운디네시스와 사라만다의 이름을 들먹이자 실피르디아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것은 옆에 있던 잭오랜턴도 마찬가지였다. “사라만다를 알고 있었구나…… 그럼 잘됐다! 나하고 같이 사라만다 집이나 구경하러 가자!” 마침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는 듯이 잭오랜턴은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어차피 나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잭오랜턴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자. 그럼 실피르도 우리하고 같이 갈래?” “네.” 실피르디아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실피르 디아의 모습에서 자꾸 실프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실피르디 아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내가 자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니까 실피르디아는 그런 정형화된 말을 내 뱉었다. 난 실피르디아에게‘너 실프지? 나 기억하냐?’라고 물어보고 싶었 지만 그래봤자 나만 이상한 녀석 되는 짓이었기 때문에 관두었다. 대신 지나 가듯이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네가 너무 예뻐서.” “……!” “야, 잭! 사라만다 집이 어디냐?” 실피르디아의 눈이 둥그래지자마자 난 잭오랜턴에게로 말머리를 돌렸고, 잭 오랜턴은 내가 실피르디아에게 한 말을 듣지 못한 듯 평소처럼 웃으면서 나 에게 말했다. “여기서 그렇게 멀지 않아.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안 걸려.” “그래? 여기는 버스나 그런 교통 수단이 없지?” “있긴 있는데 2시간마다 한 대씩 오니까…… 그냥 걸어가는 게 빨라.” 흠…… 아직 시골은 개발이 덜 된 모양이군. 쯧쯧, 이러다가 이촌향도(移村 向都)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거 아닌가? 모두들 시골을 떠나면 이제 외국 농 산물이 우리 나라 농산물 시장을 장악하겠지…… 쩝…… 잘 살아보겠다고 가 는 사람들을 누가 말리랴마는…… 걱정되는군……. “저기, 연구원님.” 난 열심히 데이터 정리를 하고 있는 피오리드 연구원에게 말을 걸었고, 피 오리드는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그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하고 소장님이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음…… 아마 소장실에 계시지 않을까?” “거기가 몇 층에 있는데요?” “5층이다.” “아, 예. 감사합니다.” 난 피오리드 연구원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잭오랜턴과 실피르디아를 데리고 연구실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곧장 5층에 있다는 소장실로 올라갔다. 5층에 는 연구실 같은 것은 없고, 연구원들이 지내는 방들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 다. 난 그 즐비하게 늘어선 방 중에서 유난히 큰 방 하나를 찾아내었다. 그 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소장실이었다. ────────────────────────────────────── ┌───────────────────────────────────┐ │ ▶ 번 호 : 0/800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2일 23:20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64 게 시 일 :00/05/02 06:14:48 수 정 일 : 크 기 :5.3K 조회횟수 :237 똑똑- 난 소장실 문을 두드렸고, 잠시 후 안에서 어떤 노인의 말소리가 흘러나왔 다. “누군가?” “류드나르입니다.” “류드나르? 들어오거라.” 끼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난 문을 열고 소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 둘 뿐이었는데, 둘은 지금 테이블에 앉아 열심히 장기를 두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류드. 벌써 실험 끝난 거냐?” 내가 인사를 하자 상수(上手)인 듯 한(漢)으로 장기를 두고 있는 교장 할배 는 시선을 계속 장기판에 두며 별 의미없는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나도 간 단하게 대답했다. “예.” “그럼 가서 쉬도록 해라.” “…….” 역시 저 교장 할배는 자기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고서 장기만 두 고 있었어…… 도대체 뭘 가서 쉬라는 거야? 쉴 장소라도 가르쳐줘야지! 딱-! “장군이네!” 장기판과 장기알의 경쾌한 마찰음과 함께 교장 할배의 득의에 찬 말이 터져 나왔다. 대머리 노인은 장기판을 내려다보고 침음했다. “외통이구먼…… 또 지다니……!” 이런…… 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장기만 두고 있잖아? 저 노친네들이 저승 구경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군! “저기요, 제가 묵을 곳이 어디죠?” 난 승리를 해서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교장에게 물었고, 그제서야 교장도 나 에게 그걸 말해주지 않은 걸 떠올리고는 정색을 했다. “생각해보니 네가 묵을 방이 없구나.” 허거걱?! “보통 내가 여기 올 때는 나 혼자 오니까 이 방을 저 친구와 같이 쓰는데… … 류드까지 같이 자기에는 방이 너무 좁을 거다.” 흘…… 누가 댁들하고 같이 잔댔수? 그나저나 내가 묵을 방이 없으면 나보 고 어쩌라는 거야? 그럼 한 달 동안 노숙하리? 도대체 저 교장 할아범, 생각 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사라만다네 집에서 신세지는 게 어때요?” 그때 내 뒤에 서 있던 잭오랜턴이 불쑥 그런 말을 꺼냈다. 잭오랜턴의 말을 듣자마자 교장은 손바닥을 마주 치며 만족해했다. “그 방법이 있었군! 류드, 사라만다의 집에서 한 달 동안 지내도록 해라.” 사라만다네 집에서 지내라고? 그 집에 방이 남아 있을까? 음…… 시골이라 사람이 적을 테니까 남는 방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설마 사라만다하고 같은 방을 써야하는 건 아니겠지? 그랬다가는 녀석이 날 홀라당 구워서 맛있게 먹 어버릴 텐데……! “자, 그럼 사라만다네 집으로 가보도록 하자!” 말을 마친 교장은 옷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교장에게 대머 리 노인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입을 열었다. “돌아오면 나하고 체스로 승부를 가리세!” “좋네. 내가 20수 안으로 체크메이트 시켜줄 테니까 기다리게나. 허허!”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연구소 본관을 나 서자 노을 진 하늘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교장 할배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연구소 밖으로 나가는 동안 난 교장 할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장 선생님은 장기하고 체스를 잘 두시나요?” “그렇게 잘 두는 편은 아니란다.” “바둑도 두세요?” “바둑은 필수란다. 난 머리 쓰는 놀이를 좋아하니까 말이다.” 으억? 머리 쓰는 놀이가 좋다고? 난 신경을 많이 쓰면 머리가 아프던데……. “왕왕!” 우리가 연구소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주 익숙한 강아지 짓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 강아지 짓는 소리는 교장 할배의 차 바로 옆에서 나고 있었다. 놀랍게도 차 안이 아닌 차 밖에서였다. “왕왕!” 차 옆에서 서성이던 라이는 날 발견하고 꼬리를 흔들며 곧장 나에게로 뛰어 왔다. 그런 라이가 귀여워 내가 안아주려는 순간, 녀석은 가증스럽게도 날 피해서 내 뒤에 서 있던 실피르디아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머! 아…… 귀여워!”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갑자기 품속으로 뛰어들어서 놀랜 실피르디아는 라이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오히려 라이의 얼굴에 자기 뺨을 비비며 웃었다. 라이를 안아주려고 몸을 살짝 굽혀 팔을 벌렸던 나는 완전히 바보가 되고 말 았다. “…….” 으…… 끓는다 끓어…… 감히 주인을 배신하고 낼름 여자의 품에 안기다니 …… 저런 배은망덕한 강아지를 봤나…… 그냥 잡아다가 멍멍이탕으로 만들 어버려? “허허, 라이가 실피르디아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구나.” “아…… 이 강아지 이름이 라이에요?” 교장의 말에 실피르디아는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라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라이는 실피르디아의 손길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묘한 신음을 발하며 몸을 비비꼬고 있었다. 역시…… 라이는 변태 강아지였어…… 저 음흉한 강아지로부터 실피르디아 를 떨어뜨려놔야 하는데…… 무슨 방법이 없을라나? 무작정 라이를 떼어놓았 다가는 라이의 이빨이 내 살을 가만두려 하지 않을텐데……. “……!” 이럴 수가……! 라이 녀석…… 꼿꼿이 서 있는 실피르디아의 품속으로 곧장 뛰어들었다니…… 1미터 이상을 뛰어올랐다는 소리잖아? 말도 안돼…… 몸길 이가 30cm도 안 되는 강아지가 1미터 이상을 뛰어오르다니……! “자,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자꾸나. 어서 차에 타거라.” 교장 할배는 운전석에 앉았고,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이 뒷좌석에 탔다. 그 래서 난 운전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부르릉― 차에 시동이 걸리고 차는 곧장 사라만다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그때 내 바 로 뒤에 앉아 있던 실피르디아가 라이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물었다. “이 강아지, 류드나르씨 거예요?” “왕왕왕왕!” 라이가 내 강아지라는 말을 듣자마자 라이는 마구 발악했다. 그러면서‘만 약 네가 내 주인이라고 말한다면 확 물어버리겠다!’라는 눈초리로 날 마구 쏘아보았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다른 말을 해야했다. “내 강아지는 아니고, 교장 선생님 거야.” 헥헥헥-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라이는 아주 온순해져서 실피르디아의 가슴에 머리 를 부벼댔다. 가능하면 녀석을 늘씬하게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동물을 학대한다고 사람들이 경멸할 것 같았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으…… 부러워…… 만약 내가 실피르디아의 가슴에 머리를 부벼댄다면 당장 변태 소리를 듣고서 따귀를 맞을텐데, 라이 녀석은 강아지라서 전혀 제재를 안 받으니…… 이건 차별이야!!! ┌───────────────────────────────────┐ │ ▶ 번 호 : 0/800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2일 23:2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5- │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65 게 시 일 :00/05/02 06:15:03 수 정 일 : 크 기 :6.9K 조회횟수 :227 부우웅- 교장 할배의 차는 막힘없이 사라만다의 집까지 단 5분만에 도착했다. 연구 소를 나선 지 겨우 5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늘은 5분전보다 훨씬 어두워 져 있었다. “다 왔다.” 차를 세우자마자 교장은 차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는 전혀 차 문을 잠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아무 부담 없이 차 문만 닫고 밖으로 나왔 다. 그리고 사라만다의 집을 쳐다보았다. 사라만다의 집은 전형적인 시골의 기와집이었다. 마당도 넓은 편이었고, 마당 한쪽 구석에는 외양간이 있었는 데 외양간 안에는 듬직하게 생긴 소 한 마리가 열심히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또한 외양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퇴비로 쓰기 위한 짚더미와 대 변이 내 키의 절반 정도나 쌓여 있었다. 비록 나도 몇 번 시골에 가봤었지만 그건 초등학교 때뿐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모습은 내게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 다. “웡웡!” 라이의 조잡하게 짖는 소리와는 달리 사라만다네 집의 개는 아주 우렁차게 짖어댔다. 개가 덩치 큰 셰퍼드여서 규모 면에서 라이와는 엄청난 차이가 나 는 것이었다. “왕왕왕왕!” 셰퍼드의 우렁찬 소리에 지기 싫었던지 라이가 거의 발악적으로 짖어댔다. 그러나 셰퍼드가 한 번 눈알을 부라리며 낮게 으르렁거리자 라이는 바로 꼬 리를 내리고 실피르디아의 품속으로 머리를 숨겨버렸다. “거기 누구요?” 셰퍼드와 라이의 짖는 소리 덕분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만다네 집주인을 불러낼 수 있었다. 어둠이 조금씩 짙게 깔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집주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를 들어봐서는 교장 할배 정도의 나이를 가진 사람 같았다. “실례하겠습니다. 전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장이 그 집주인에게 자기 인사를 할 때 집주인 뒤에서 예쁜 목소리가 흘 러나왔다. “아, 교장 선생님!” 그 예쁜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운디네시스였다. 운디네시스는 제일 먼 저 교장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 앞으로 달려나왔다가 교장 옆에 줄줄이 서 있 는 나와 실피르디아, 그리고 잭오랜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교장 선생님이셨군요.” 집주인은 이미 교장 할배와 알고 지냈던 사이인지 별로 놀라지 않고 천천히 우리 앞으로 걸어나왔다. 집주인의 모습이 내 시야에 완전히 들어옴에 따라 난 기겁할 정도로 놀라버렸다. 집주인의 모습은 거의 완벽한 땅의 정령 노움 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50, 아니 140조차 못될 것 같은 짤닥막 한 키에 흰 머리, 흰 수염, 그리고 시골 할아버지들이 보통 입는 무명옷을 입은 모습. 만약 이 할아버지가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면 완전히 노움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던 것이다. “무슨 일로 온 겁니까?” 노움처럼 생긴 할아버지의 물음에 교장 할배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아이를 한 달 동안 이 집에서 지내게 해주셨으면 해서입니다.” “……?” 교장의 말이 뜻밖이었는지 노움처럼 생긴 할아버지는 날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내 얼굴을 보고 조금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시선을 거 두어들이며 교장 할배에게 말했다. “불량아처럼 보이지는 않는군요.” 얼씨구…… 저 노움처럼 생긴 할아버지도 아주 띠껍게 노는데? 혹시…… 이 할아버지는 사라만다의 친할아버지가 아닐까? “누가 이 집에서 지낸다고?” 그때 사라만다의 지극히 띠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라만다는 방금 전의 목소리보다 더욱 띠꺼운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이 집에서 신세질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채고 더더욱 띠꺼운 표 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기 머문다고? 누가 널 재워줄 것 같냐?” “시끄러, 이 녀석아! 교장 선생님 앞에서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나 대신 노움처러 생긴 할아버지가 사라만다를 나무랐다. 그러나 사라만다 는 그 할아버지에게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싸늘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닥쳐, 할아범.” 허걱?! 할아버지에게 저런 심한 말을……! “뭐야?! 난 네 친할아버지다! 뒤지게 맞고 싶어서 그러냐?!” 허거걱?! 친할아버지?! “난 당신을 친할아버지라 인정한 적 없어.” 에엑?! “넌 내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난 내 친손자다! 손자 주제에 할아버지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이 염병할 놈아!” 으허헉……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지고 있어……! “둘 다 그만두시오!” 사라만다와 노움처럼 생긴 할아버지의 말다툼을 중단시킨 사람은 교장 할배 였다. 교장 할배는 사라만다와 할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혀를 찼다. “쯧쯧, 나이 지긋한 사람이 손자와 말싸움이나 하다니…….” “흥! 아이들 앞이라 참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만! 학교 교장이면 애들 교 육을 똑바로 시켜야지, 어떻게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에게 개기도록 교육시켜?” 방금 전까지 교장 할배에게 조심스런 태도로 말을 했던 노움같은 할아버지 가 갑자기 반말을 내뱉으며 교장의 속을 박박 긁어놓았다. 남에게 말로 질 교장 할배가 아니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는 바로 역습했다. “손자의 인성 교육을 시켜야 할 사람은 학교 교장이 아니라 할아버지야! 할 아버지면 할아버지답게 체통을 지켜야지, 욕이나 해대니 어떤 손자가 그런 할아버지 말을 들어?!” “뭐라고? 겉멋만 든 양아치 교장 주제에……!” “시골에 처박혀 똥이나 만지고 있는 땅딸보 할아범이 멋을 알기나 하나?!” “그래, 멋을 아는 인간이라 여자들 수백 명을 따먹나?” “젊었을 때 얘기를 왜 꺼내? 그런 자넨 여자들에게 매일 차였잖아?!” “시끄러! 난 그래도 건전하게 살았다고!” 사라만다의 할아버지와 교장 할배의 말다툼은 점점 정점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그대로 두다간 어떤 말이 둘의 입에서 튀어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내 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 “어? 왠 수표가 떨어져 있지?” “……!” “……!” 수표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둘은 말다툼을 멈추었다. 그리고 매서운 눈초리 로 날 쳐다보았다. 그런 둘에게 난 빈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구라였습니다∼” “…….” 갑자기 살벌해지는 교장과 할아버지의 표정. 그때 다행히 운디네시스가 날 위험해서 구해주었다. “아까 교장 선생님이 저 분을 저희 집에 맡긴다고 하셨나요?” “으응? 아, 그렇단다. 류드나르가 지낼 곳이 없어서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신세를 지게 될 것 같구나.” 교장 할배는 내게로 향한 살벌한 표정을 풀고서 운디네시스의 말에 대답했 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는‘불량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둥의 긍정적인 표 현을 했던 사라만다의 할아버지가 태도를 확 바꾸었다. “흥! 누가 저런 불량아를 내 집에 머무르게 할 것 같냐?!” “하, 할아버지……!” 갑자기 화를 버럭 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운디네시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 었다. 교장 할배는 길길이 날뛰는 사라만다의 할아버지를 향해 위압적인 어 조로 입을 열었다. “노움!” 에에엑? 노움?! “어린애처럼 놀지 말게! 땅을 더 잃고 싶은 건가?!” “…….” 교장의 말에 노움이라고 불린 사라만다의 할아버지는 얼굴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노움 할배뿐만 아니라 사라만다 역시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교 장을 노려보듯 쳐다보았다. 마치 둘 다 교장에게 원한이 있는 듯한 모습이었 다. “저기요…… 꼭 이 집에서 신세지려는 건 아니에요. 마음이 내키지 않으시 면 그만 가볼게요.” 더 이상 나 때문에 교장과 노움 할배, 사라만다가 말다툼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난 그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누군가 입을 열기를 기 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거절을 뜻하는 것이라 느 껴졌기 때문에 난 바로 노움 할배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실례했습니다. 그럼 편히 주무세요.” 저벅 저벅― 내가 작별 인사를 할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난 일말 의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교장 할배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기분이 극히 좋 지 않았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꼴이 우스웠 기 때문이었다. -------------------------------------------------------------------------------- ┌───────────────────────────────────┐ │ ▶ 번 호 : 0/800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3일 23:36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6-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69 게 시 일 :00/05/03 05:40:48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244 “기다려라.” 내가 막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노움 할배가 내 발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기분이 나쁜 상태라 그냥 씹고 가버리고 싶었지만 상대가 나보다 훨씬 나이 가 많은 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대신 고개만 슬쩍 돌렸다. 날 부른 노움 할배는 나직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한 달 동안 여기서 지내도록 해라. 방은 사라하고 같이 쓰거라.” “사라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이 할아범아!” ‘사라’는 사라만다의 애칭이었는지 그 말을 들은 사라만다가 버럭 화를 냈 다. 하지만 노움 할배는 사라만다의 싸가지 없는 말에도 화를 내지 않고 그 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분위기는 아주 어정쩡해졌다. 난 밖으 로 나가지도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저 멍청히 대문 바로 앞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오세요!” 누구도 감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운디네시스가 웃으면서 우 리를 향해 그렇게 소리쳤다. 드디어 어정쩡한 내 모습을 벗어날 수 있는 상 황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난 운디네시스의 말에 따라 거침없이 사라만다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난 연구소로 가겠다.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은 연구소에서 잘 거냐 이곳에 서 잘 거냐?” 집 안으로 들어가는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을 향해 교장 할배가 물음을 던 졌다. 둘이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하자 운디네시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모두 자고 가요. 실피르 언니하고 제가 같은 방을 쓰고, 잭 오빠랑 저 분 은 오빠하고 같이 방을 쓰면 될 거예요.” “그렇게 해도 돼?” 실피르디아가 조금 미안한 듯이 물었지만 운디네시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 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물론이에요. 저 혼자 자는 것보다는 언니가 있는 편이 덜 무서우니까요.” “쳇. 나보고 저 뚱땡이하고 저 기분 나쁜 녀석하고 같이 자라는 거냐?” 기뻐하는 운디네시스와는 달리 사라만다는 띠껍게 나와 잭오랜턴, 특히 나 를 아주 띠껍게 쳐다보며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반대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 인지 이내 몸을 돌려 우리의 오른편에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이 사 라만다의 방인 듯해서 운디네시스에게 물어보았다. “방금 사라만다가 들어간 방이 우리가 지낼 방이야?” “네. 저와 실피르 언니는 그 옆방에서 지낼 거예요. 저기 안방은 할아버지 가 쓰시구요.” 흠…… 그렇군. 그나저나 여기서 지내려면 옷이랑 세면도구 같은 게 필요할 텐데…… 역시 교장 할배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군. “교장 선생님, 여기서 지내려면 옷하고 세면도구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음…… 알았다. 내일 가져다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참아라.” 흘…… 제발 가져다주기만 하셔…… 안 가져오면 사라만다 껄 써야하는데… … 그러면 사라만다 녀석이 날 가만 놔두겠어? “그럼 난 먼저 가마.” “예. 안녕히 가세요.”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오랜턴은 착한 아이들답게 교장 할배에 게 인사를 했지만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 사라만다나 방 밖에 서 있는 나는 교장 할배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교장 할배에게는 인사하고 싶은 기분이 전 혀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르릉― 잠시 후 자동차의 시동 소리와 함께 교장 할배의 차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교장 할배의 이미지와 딱 맞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운디네시스가 우리에게 말했다. “방에 들어가 쉬고 계세요. 제가 저녁을 만들어 드릴 테니까요.” “어. 그럼 부탁해.” 운디네시스는 사람 많은 걸 좋아하는 모양인지 빙글빙글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실피르디아가 운디네시스를 따라갔다. 라이 녀석은 실피르디아가 계속 안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라이가 실 피르디아뿐만 아니라 운디네시스에게도 변태 강아지 짓을 할 것 같아 조금 걱정되었지만 신경을 끊고 잭오랜턴과 함께 사라만다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 라만다는 방 한가운데에 정좌한 자세로 무슨 기 수련 같은 걸하고 있었다. “뭐하냐?” 난 사라만다 바로 앞에 앉아 물었고 사라만다는 눈도 뜨지 않고 입을 나불 댔다. “내가 뭘 하든 말든 뭔 상관이냐?” “참 띠껍구나.” “…….” “근데 염법사는 너처럼 그렇게 모두 머리칼이 붉은색이냐?” 염법사인 사라만다는 붉은 머리칼, 수법사인 운디네시스는 파란색 머리칼, 광법사인 잭오랜턴은 노랑이 많이 섞인 주황색 머리칼, 풍법사인 실피르디아 는 초록색 머리칼, 모두 자신의 특정 마법과 관련된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머리색이 특법사들의 특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사라만다 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사라만다는 날 비웃는 듯한 아주 띠꺼운 표정을 지 으며 대답했다. “머리색하고 염법사하고는 전혀 상관없어. 너 같은 바보 녀석 상대하기 귀 찮으니까 구석에서 찌그러져 있으라고.” “…….” 흘…… 사라만다 녀석, 정말 띠껍의 극을 치달리는데? 어째 인간이면서도 불의 정령 사라만다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아버렸냐…… 열 받는데 확 불 도마뱀으로 만들어버려? “둘 다 그만 하자……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야지…….” 나와 사라만다의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잭오랜턴이 이 분위기를 타개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바로 사라만다의 띠꺼운 말이 튀어나왔다. “난 저놈 같은 친구는 안 사귀어.” “…….”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잭오랜턴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 옆에 앉았다. 아무 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는 굉장히 썰렁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서 썰렁한 분위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라 사라만다의 방을 둘러보았다. 가구라고는 옷장과 거울, 그리고 직접 만든 듯한 나무 책상뿐이었다. 우리들 사이의 분위기보다도 더욱 썰렁한 방이었던 것이다. “앗!” 갑자기 목이 따끔했기 때문에 난 기겁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사라만 다가 싸늘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모기에게 물린 걸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 으허헉?! 모기라고라고라? 아…… 지금은 여름이었지! 이런…… 난 모기가 정말 싫단 말이다! 당장 여기를 떠나 공기 더러운 대도시로 나가고 싶어……! 여기는 공기가 맑으니까 모기들도 힘이 넘치잖아!!! “우…….” 모기가 내 목에 주둥이를 박아 넣었을 뿐인 것 같았는데도 물린 부위가 퉁 퉁 부어 올랐다.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기 연구학자 빼고는 없겠지만 한 번 물리니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눈에 띄는 모기를 싸그리 죽 여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정작 찾고자 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모기 였기 때문에 찾는 것은 포기했다. ┌───────────────────────────────────┐ │ ▶ 번 호 : 0/800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3일 23:37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 가족 -7- │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70 게 시 일 :00/05/03 05:41:05 수 정 일 : 크 기 :5.8K 조회횟수 :240 “저녁 식사예요.” 나와 잭오랜턴이 사라만다의 방에 들어온 지 5분도 채 안되어 벌써 운디네 시스가 저녁 밥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실피르디아가 같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운디네시스와 실피르디아는 자기들 방에서 자기들끼리 수다 떨면서 저녁을 먹을 것 같았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저녁 밥상을 사라만다 앞에 둔 운디네시스는 곧 방을 나갔다. 운디네시스가 방을 나가자마자 난 사라만다를 막 비꼬았다. “여동생한테 다 시켜먹는구나. 넌 여동생 안 도와주냐?” “오늘 당번은 운디네야. 모르면 닥치고 있어.” “…….”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지만 사실 먼저 비꼰 사람은 나였기 때문에 이번엔 그냥 참았다. 대신 반찬을 젓가락으로 들쑤셔놓음으로써 화풀이를 했다. 하 지만 사라만다는 내가 반찬을 뒤집어엎든 들쑤셔버리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먹을 만큼 덜어가 버렸다. 그런 식으로 사라만다는 아무 반응이 없는데 나 혼자 삽질하는 것 같아서 괜히 열만 받게 되었다. 달그락 달그락- 쩝쩝- 우리들은 그저 그 어떤 대화없이 저녁 식사만 했다. 옆방에서는 실피르디아 와 운디네시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밥만 먹는 상황도 그다지 나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모기 때문에 굉장히 신경 쓰 였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하지 않으면 모기 신경 쓰느라 머리 쪼개질 것 같 아서 사라만다에게 말을 걸었다. “야, 사라만다. 너희 가족은 세 명 뿐이냐?” “그런 걸 네가 알아서 뭐하게?” “앞으로 여기서 한 달 동안 지내야 되는데 그 정도는 알아야지, 임마.” “…….” 막 내 말을 반박하려 했던 사라만다는 내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는지 순 순히 대답해주었다. 물론 목소리는 여전히 띠꺼웠지만. “할아범하고 나하고 운디네 뿐이다.” “네 부모님은 안 계시냐?” “…… 모두 돌아가셨다.” “그랬냐? 축하한다. 지금 너의 싸가지 없는 모습을 보지 않으셨을 테니까.” “…….” 사라만다가 날 죽일 듯이 노려보든 말든 난 열심히 밥을 내 입 속으로 꾸역 꾸역 밀어 넣었다. 내 옆에 앉은 잭오랜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나 와 사라만다의 분위기에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 었다. “둘 다 그만 싸워라…… 이러다 싸움 나겠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던지 잭오랜턴이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 평화 공존을 유도했지만 나와 사라만다는 열심히 서로에게 살기를 내뿜으며 밥만 먹었다. 부모에 대해 말을 주고받은 이후로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주 살기 넘치는 저녁 식사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살벌한 저녁 식사를 어찌어찌 보낸 다음 우리는 곧바로 이부자리를 폈다. 우리들끼리 있어봤자 할 얘기도 없고, 얘기하기도 싫었기 때문에 그냥 맘 편하게 잠이나 일찍 자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사라만다의 방에는 베개와 이불이 각각 두 개밖에 없었다. 즉, 나와 잭오랜턴 중의 한 사람은 베개와 이불 없이 모기에게 헌혈하면서 밤을 보내 야 한다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거 어쩌지……?” 사라만다가 거의 던지다시피 건네준 베개 하나와 이불 하나를 들고 잭오랜 턴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사라만다에게 질문을 했다. “할아버지 방에는 베개하고 이불 남는 거 있냐?” “네가 알아서 가져와.” 흘…… 그 말은 노움 할배 방에 베개와 이불이 있다는 소리로군. “내가 가져올 생각이었어, 임마.” 난 그렇게 사라만다에게 비꼬아준 뒤 즉시 안방에 있는 노움 할배에게로 갔 다. 하지만 노움 할배는 마당에 나와 열심히 모깃불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안방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모깃불 피우세요?” “응? 아, 너로구나. 그래. 시골에는 모기가 많으니까.” 노움 할배는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았다. 왠지 분위기를 잡고 있는 노움 할배의 모습에 질문 같은 걸 하기가 조금 그랬지만, 어쨌든 나도 빨리 베개와 이불을 얻어서 자고 싶었기 때문에 노움 할배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기요, 할아버지 방에 남는 베게하고 이불 없어요?” “베개하고 이불? 남는 건 있다. 가져가거라.” “예. 그럼.” 난 노움 할배에게 인사하고 나서 즉시 안방으로 들어가 베개 하나와 이불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내가 막 노움 할배 뒤를 지나쳐서 사라만다의 방으로 가려고 했을 때 노움 할배가 나직히 입을 열었다. “너도 마법사냐?” 얼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에…… 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로 봐서는 나한테 한 질문 같군. “아…… 예.” “마법사…… 나도 왕년에는 지법사(地法師)로 활약했었지…….” 노움 할배는 모깃불을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은 듯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지법사란 한자에서‘지’가‘地’를 뜻하는지 아니면‘指’를 뜻하는지 정확 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노움 할배에게 되물었다. “지법사는 어떤 특수 마법 능력을 지녔는데요?” “…….” 간접적으로 지법사에 대해서 모름을 말해주는 내 물음에 노움 할배는 날 무 서운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모깃불 쪽으로 돌리고는 말했다. “지법사는 땅과 관계된 마법을 보통 마법사들보다 훨씬 능숙하고 자유자재 로 구사할 수 있는 특법사를 말하지.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시골에서 농사 짓는 이유도 땅을 너무나 사랑해서다. 땅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니까 말 이다. 하지만……” 갑자기 노움 할배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난 계속 베개와 이불을 든 채 어정 쩡한 자세로 노움 할배 뒤에 서서 할배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잠시 나직 한 한숨을 길게 내쉰 노움 할배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아니다. 어서 들어가서 자거라.” “…….” 이런…… 잠자러 들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상한 얘기한 사람이 누군데? 괜 히 자기 신세 타령이나 하고 말이야…… 신세 타령을 하려면 나한테 몽땅 얘 기해주던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내 시간만 뺏겼잖아? 베개하고 이 불을 계속 들고 있느라 팔 빠질 뻔했다구! “안녕히 주무세요.” 노움 할배가 또다시 이상한 말을 걸기 전에 난 급히 인사를 하고 사라만다 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있던 사라만다와 잭오랜턴은 이미 이불을 하나 씩 가지고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의 배를 발뒤꿈치로 한 번 찍어 주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제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 날 밤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했다.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었다. 특히 모기는 벽을 타고 내려오는데 난 벽에 붙어서 잤기 때문에 엄청난 모기들의 공세를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중앙을 완전히 장 악하고 맘 편히 자고 있는 사라만다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 ┌───────────────────────────────────┐ │ ▶ 번 호 : 0/801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4일 23:27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3장: 가족 -8-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가족 -8-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75 게 시 일 :00/05/04 13:53:34 수 정 일 : 크 기 :8.2K 조회횟수 :166 빵빵-! 다음날 아침, 교장 할배는 약속대로 내가 입을 옷과 내가 사용할 세면도구 를 가지고 왔다. 물건을 확인하기 위해 차 뒷트렁크에서 옷과 세면도구를 꺼 내어 살펴보았다. 모두 새로 산 것들이었는지 아주 깨끗했다. “허허, 어제 카이주시(市)까지 가서 산 것들이란다. 마음에 들지?” 교장 할배는 나에게 칭찬들을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난 칭찬할 기분이 아니었다. “잘 쓸게요.” “왜 그러느냐? 어디 아픈 거냐? 응? 얼굴이 왜 그렇게 됐지?” 내 얼굴을 자세히 쳐다본 교장 할배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 얼굴에 모기에 물린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다섯 방, 왼팔 오른팔에 각각 두 방, 그리고 양다리에 여섯 방, 총 열 다섯 방이 나 모기에게 물려서 지금 내 기분은 최저를 달리고 있었다. “허허, 모기가 류드를 아주 사랑하나 보구나.” “…….” 지금 그거 나보고 웃으라고 한 소리? “그냥 두면 마법 사용할 때 신경 쓰일 테니까 내가 치료해주마.” 오랜만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한 교장 할배는 내 앞에 선 뒤, 마나 파장을 방 출하면서 치유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치유지수(治癒之手) 연골합피(連骨合皮) 군력무한(君力無限) 상료통거(傷 療痛去).” 교장 할배의 몸 주위에서 방출된 마나 파장은 내 몸에 스며들어 신진대사를 촉진시켰고, 그에 따라 항균 능력이 증가되어 모기에 물려 부어 올랐던 자국 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치유마법이란 거구나……!” 교장 할배가 내 모기 물린 자국을 없애주는 것을 보고 잭오랜턴이 감탄을 토해냈다. 그것은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라 만다는 치유마법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내 옷과 세면도구만 쳐다 보고 있었다. 여차하면 하나 꿀꺽할 것 같은 분위기라 내가 허튼 짓하지 말 라고 말하려고 할 때 교장 할배가 나보다 먼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류드, 치유마법의 원리를 알고 있느냐?” “…….” 지금 그걸 여기서 묻는 이유가 뭐야? “대충 압니다.” “그럼 말해보거라.” “…….” 이 할아범이? 그냥 내 모기 물린 자국만 없애주면 되지, 그런 질문을 왜 해?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그러는 거지?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 앞에서 날 망신시켜 보려고? “에…… 마나 파장으로 신진대사를 촉진시켜서 병에 대항하는 능력을 향상 시키는 것 아닌가요?” “허허, 잘 아는구나. 그럼 그런 마법 발동 원리를 알고 있는데 굳이 왜 마 법 주문을 외우는 것일까?” 이런…… 도대체 어디까지 질문할 생각이야? “치유마법 같은 건 원리를 알고 있어도 정신력만으로 발동시키는 것은 어려 우니까요. 치유마법을 쓰려면 마나 파장으로 뇌나 장기에 자극을 줘서 신진 대사를 촉진시켜야 하는데 그 짓을 정신력만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주문을 통해서 좀더 쉽게 그 일을 수행하는 거죠.” “아주 훌륭한 대답이었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하지.” 으윽…… 제발 그만 좀 물어…… 왜 내가 학교도 아닌 이곳에서 그런 질문 에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고!!! “주문은 어떻게 정신력만으로 행하기 어려운 일을 쉽게 수행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일까? 그런 주문을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아냈을까?” “……!” 커커컥…… 이 질문은 절대로 대답할 수 없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전 그것보다는 옛날 사람들이 마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고, 마법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한데요. 아니, 더 나아가서 마나가 왜 존재하는지도 궁금하구요.” “…….” 내 대답에 교장 할배가 얼굴을 굳혔다. 겨우 교장 할배의 질문 공세를 막았 다는 생각에 승리감을 느낄 때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던 교장 할배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네 말뜻은 그런 것들은 극히 원론적이라 증명할 수 없다는 거로구 나!” 허걱…… 내 말에서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결론을 끄집어내다니…… 천재야……. “…….” 나와 교장 할배가 그런 실없는 말을 주고받는 동안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 스, 잭오랜턴은 완전히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교장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교장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 나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그럼 류드, 내가 전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했느냐?” 얼레? 질문? 무슨 질문? 맨날 이상한 질문만 하는데 내가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해?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 말이다.” “……!” 헉…… 그러고 보니……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교장 할배에게 내 의견을 피 력하고 나서 교장이 나에게 생각해보라고 했던 질문이었구나…… 전혀 모르 고 있었어……. “쯧쯧, 그새 까먹은 모양이구나.” 윽…… 찔려라……. “좋아, 어쨌든 이번 여름 방학이 끝나면 너에게 다시 물을 것이다. 그때까 지는 반드시 너 자신의 대답을 생각해 놓고 있어라. 만약 생각하지 않았을 시에는…… 엄청난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각오하고.” 교장 할배는 그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서 사라만다네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교장 할배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잭오랜턴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단하다, 류드…… 나 같으면 전혀 대답 못했을 텐데…….” “정말…… 우리하고는 수준이 틀린 것 같아…….” 잭오랜턴의 중얼거림에 실피르디아까지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디네시스도 한마디했다. “역시 오죠룬은 천재들만 다닌다는 소문이 맞는가 보네요.” 크윽…… 천재…… 딴 사람들은 몰라도 레리오스가 천재라…… 운디네시스 의 방 안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가 벌떡 일어나 짖어댈 일이다……. “흥! 천재긴 뭐가 천재야? 헛소리나 지껄이는 인간이 천재라면 정신병자도 천재겠다!” 그런 싸가지 풀풀 날리는 말을 한 사람은 당연히 사라만다였다. 사라만다를 상대하다가는 바보될 게 뻔했기 때문에 난 옷과 세면도구를 챙기고 사라만다 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라만다도 날 상대할 생각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고는 외양간에 가서 소를 돌보았다. 난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가 부엌으로 들어 가고, 잭오랜턴이 사라만다와 같이 소를 돌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교장 할 배가 들어간 안방으로 건너갔다. 안방에는 교장 할배 혼자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는 벌써 일어나신 모양이네요?” 난 교장 옆에 앉으며 물었고 교장 할배는 내가 말하는 할아버지가 노움 할 배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항상 일찍 일어나니까. 그나저나 이 방에 무슨 일로 왔느냐?” “여쭙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 뭐냐?” 내 말에 교장 할배는 꽤나 흥미 있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무슨 마법 원리에 대해 물어볼 줄로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전혀 상 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왜 교장 선생님은 저 애들 앞에서 저한테 그런 질문을 하신 겁니까?” “……?” 내 질문이 정말로 예상외의 것이었는지 교장 할배는 잠시 어리벙벙해 했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왜 기분 나빴느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질문은 꼭 저 애들 앞에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방금 전에 교장 선생님께서 하셨던 질문들은 학교에서 물어봤어야 어울릴 것들이었어요.” 난 조금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아주 음흉한 웃음을 터뜨렸 다. “허허, 그건 일부러 그런 거다.” 에엥? 일부러?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실피르디아와 잭오랜턴에게 오죠룬이 얼마 나 마법에 대해 잘 가르치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거든. 넌 그 역할을 아주 훌 륭히 해낸 거다.” “…….” 그 소리는 결국 사라만다 등을 학교로 불러들이기 위해 날 이용해 먹었다는 뜻? “왜…… 교장 선생님은 항상 절 이용하는 겁니까?” 난 교장 할배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전혀 쫄지 않고 아 주 당당한 어조로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넌 이용할 가치가 충분하니까 그렇다.” “…….” 크윽…… 지금 그걸 대답이라고 하는 거야?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전혀 거리 낌없이 내뱉다니…… 저 교장 할아범의 정신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 금하구만……! “류드.” 왜 불러? “난 이번에‘중크나’에 갈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 한 달 동안 널 보기 힘들 것 같구나.” 얼레? 중크나라면…… 중국을 말하는 건데…… 중국에 간다니? 마법서 발굴 하려고? “내가 없는 동안에는 소장이 돌봐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한 달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마법 실력에 큰 발전이 있길 바라마.” “…….” 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내게서 대답을 기대하고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마침 운디네시스의 맑은 목소리가 나와 교장 할배 사이 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중단시켜 주었다. “진지 드세요.” “흠. 가지고 오거라.” 교장 할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고, 운디네시스는 네 하고 대답하고는 방 안으로 아침 식사를 가져왔다. 그러다가 내가 교장 할배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 장 할배에게 예의상‘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해주고 방밖으로 나왔다. 머리 속에는 계속 날 이용하고 있다는 교장 할배의 말이 맴돌았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사라만다의 방으로 건너갔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교장 할배 가 날 이용하고 있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라만다와 잭오랜턴에게서 오늘 아침밥을 더 많이 빼앗을 수 있나였으니까. ┌───────────────────────────────────┐ │ ▶ 번 호 : 0/801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4일 23:29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 바라는 것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 바라는 것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76 게 시 일 :00/05/04 13:54:21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164 <제 14 장>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 교장 할배가 중크나로 가고 나서 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집에 컴퓨터 같은 건 아예 없었고 TV도 안방에 오직 하나 뿐이었다. 게다가 집 주위에는 구멍가게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항 상 대도시에서 살았던 내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힘든 조건이었던 것이다. 만약 매일 연구소에 가서 마법 실험에 참여한다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면 난 시골에서의 권태로움 때문에 완전히 폐인이 되어 버렸을 지도 몰랐다. 어쨌 든 연구소에서 실험에 참여하고 나서는 항상 마법 수련을 했다. 그건 할 일 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연구소 측에서도 실험의 원활함을 위해 나에게 마법 수련을 해서 마법 수준을 높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그렇게 다른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마법 수 련에만 전념하다 보니 내 마법 실력은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되어 갔 다. 겨우 보름 정도가 지났을 뿐이었는데도 벌써 6써클의 마나 회전에 성공 했던 것이다. 만약 이 속도대로 나간다면 여름 방학이 끝나기 전에 7써클에 도달할 지도 몰랐다. 내가 6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키는 동안 사라만다 등은 별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기보다는 한계에 부딪쳤다고 하는 게 더 정확했다. 이론 없이 무조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 기 때문에 특수 마법에 아무리 능통하더라도 그 이상의 마법 실력을 쌓는 것 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론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 빠른 속도로 마법 실력을 쌓아 가는 날 보고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오랜턴 은 가끔씩 마법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만약 그 소리를 교장 할배가 들었다면 아주 좋아서 날뛰었을 것이다. 교장 할배는 이들이 마법학 교에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사라만다네 집에 머문 지 대략 보름하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오늘은 마법 연구소가 문을 닫는(?) 날이었기 때문에 난 연구소 소장, 즉 대머리 노인에 게 부탁하여 그 영감과 함께 대도시 중의 하나인 카이주시에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 종류의 책을 샀다. 마법서 한 권, 과학도서 한 권, 추리소설 한 권,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 한 권, 그렇게 네 권이었다. 본래는 추리소설하고 무서운 이야기 모음집만 사려고 했는데 그것만 사면 대머리 노인이 돈을 안 대줄 것 같아서 마법서와 과학도서를 곁들여 산 것이다. 카이주시에서 사라만다네 집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하고 나 서 난 대머리 노인과 헤어졌다. 대머리 노인이 무슨 모임이 있다고 서둘러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 혼자 네 권의 책을 들고 힘겹게 사라만다네 집으로 향해야 했다. 매앰 매앰- 얕은 언덕을 돌아갈 때 시원스런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덕을 돌아 사라만다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 문 앞에 처음 보는 자동차 한 대가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 “……?” 얼레? 왠 시커먼 자동차냐? 사라만다네 친척인가? 근데 녀석에게 저런 새까 만 중형차를 끌고 다닐 정도의 재력이 되는 친척이 있을라나? “이봐, 영감. 빨리 빨리 팔아버리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애드마크씨는 그 렇게 한가한 분이 아니거든.” 내가 마당에 들어섰을 때 큰 덩치를 지닌 검은 옷의 남자 두 명이 노움 할 배를 툭툭 건드리며 아주 불량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사라만다와 운 디네시스는 논밭을 돌보러 나간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 노움 할배는 검은 옷의 사나이들에게 툭툭 맞아도 가만히 있었다. 사실 저 렇게 무식하도록 무서워 보이는 인간들에게 대들었다간 죽음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노움 할배가 하다못해 끙끙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무엇인가 그 남자들에게 약점을 잡혀있는 듯이 보였던 것이 다. “안 들어가고 거기서 왜 얼쩡거려?” 내가 대문 앞에 서서 검은 옷의 사나이들이 노움 할배에게 찝쩍대는 것을 구경하고 있을 때 어느새 돌아온 사라만다가 시비를 걸려는 듯이 띠껍게 물 었다. 사라만다의 목소리가 꽤 컸기 때문에 마당에 있던 검은 옷의 사나이들 이 나와 사라만다, 그리고 사라만다의 뒤를 따라온 운디네시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 어디 갔나 했더니 논에 나갔던 모양이군.” 두 명의 남자 중 노움 할배에게 시비조로 말을 했던 그 남자가 입가에 야비 한 미소를 걸고서 우리 앞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는 이미 그 남자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오직 나만이 속으로 벌벌 떨고 있었을 뿐이었다. “또 왔냐? 저번에 말했을 텐데? 땅은 안 판다고.” 사라만다는 자신보다 20cm는 더 큰 남자에게 아주 띠꺼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그 덩치 큰 남자는 사라만다의 뺨을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 “나도 또 오고 싶진 않았는데 애드마크씨가 시간 없다고 빨리 처리하랬거든. 이곳 지가(地價)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땅을 사겠다는데 왜 싫다고 그러냐고. 고집 그만 부리고 빨랑 팔고 사라져.” “닥쳐. 땅은 절대 팔지 않을 거니까 너희들이나 꺼져.” “…….” 사라만다가 아주 강경하게 나오자 남자의 굵은 눈썹이 한 번 꿈틀거렸다. 사라만다의 반말이 깡패 본성을 자극해버린 듯했다. “큭……!” 남자는 인상을 팍팍 쓰며 사라만다의 멱살을 움켜잡고 사라만다를 번쩍 들 어올렸다. 둘의 키 차이가 상당했기 때문에 사라만다는 완전히 허공에 들린 꼴이 되었다. 숨이 막혀 컥컥 대는 사라만다를 노려보며 남자가 화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 조까 열받게 하네? 너 졸라 터지고 싶냐?” “그만해요!” “그 아이가 잘못했으니 한번만 봐주게!” 남자가 사라만다를 칠 기미를 보이자 운디네시스와 노움 할배가 그 남자에 게 사정했다. 그러나 화가 난 남자보다도 사라만다 자신이 남자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 증거로 사라만다의 몸 주위에서 마나 파 장이 방출되었다. “으악―!” 사라만다의 멱살을 움켜잡았던 남자의 손에서 불길이 일어났고, 남자는 찢 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남자의 손을 지져버린 사라 만다는 살기 어린 눈으로 두 남자를 노려보면서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죽기 싫으면 꺼져.” “오빠……!” 운디네시스는 걱정스런 눈길로 사라만다와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난 그저 속으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너무 좋지 않았다. 이제 저 두 남자가 사라만다에게 앙갚음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일꾼:아..안녕하세요 또 죄송한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5~7연휴(저는 대딩이죠)를 맞이하여 집에 내려갑니다..--;;; 따라서 다음 사케는 일요일에 한꺼번에 모아 올리겠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아... 그러나 저는 삼주만에 집에 가는 거라 기쁘군요..^___^ ┌───────────────────────────────────┐ │ ▶ 번 호 : 0/809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8일 00:39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2~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81 게 시 일 :00/05/05 08:58:48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73 “이 개새끼……!” 완전히 살갗이 까진 팔목을 차마 잡지는 못하고 신음만 내지르는 남자의 동 료가 깡패 특유의 살기 넘치는 눈으로 사라만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사라 만다는 또다시 카파 보를 만들어 내었다. 그것을 본 남자의 동료가 주춤거릴 때 화상을 입은 남자가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내뱉었다. “후회할거다.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주지. 크크크…….” 남자는 소름이 쫙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자기가 몰고 온 차 쪽으 로 걸어갔다. 사라만다는 혹시나 남자가 기습공격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 지 이번엔 카파 하사로를 여러 개 만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동료와 함께 차에 타서 그대로 차를 몰고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본 노움 할배가 걱 정스럽게 말했다. “이제 저 녀석들의 성질을 건드렸으니 큰일났구나……!” “닥쳐, 할아범. 오면 없애버리면 되는 거야.” 사라만다는 카파 보와 카파 하사로를 소멸시키고는 노움 할배에게 그런 싸 가지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노움 할배도 곱게 넘어가지 않았다. “뭘 없애겠다는 거냐, 이 머저리 같은 놈아! 저 녀석들은 깡패란 말이다! 마법밖에 쓸 줄 모르는 너하고는 싸우는 방식이 완전히 틀리단 말이야!” “시끄러. 그딴 놈들 수천 명이 몰려와도 내 화염 마법으로 지져버리면 되는 거야.” “멍청한 녀석!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지레 겁먹고 가만히 당하는 할아범보다는 나아.” “이…… 이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는지 노움 할배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 만 사라만다는 그런 노움 할배를 무시하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노움 할배도 더 이상 사라만다에게 욕을 하지 않고 안방으로 들어갔 다. 비록 겉으로는 둘의 싸움이 일단락된 듯 보였지만 실상은 오히려 둘 사 이의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진 꼴이 되었다. “아…….” 둘의 다툼에 운디네시스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난 지 금까지 카이주시에서 구입한 책들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어깨가 뻐근함을 느 꼈다. 하지만 왜 사라만다와 노움 할배가 저렇게 싸우는 것인지, 아니 그것 보다는 방금 전의 그 남자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책을 든 채로 운디네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아니면 운디네시스에게 물어볼 기 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근데 그 남자들은 누구야?” “…… 그 사람들은…… 애드마크라는 사람이 고용한 깡패들이에요…….” 얼레? 애드마크? 그 사람은 누구길래? “애드마크라는 사람은 뭐 하는데?” “마크 그룹이라는 회사의 사장이에요. 우리나라 30위 안에 드는 재벌이죠.” 얼…… 재벌이라…… 하긴, 그러니까 깡패들을 고용할 돈이 있는 거겠지……. “근데 그 깡패들은 왜 여기 온 거야?” “그건…… 저희 땅을 자기들이 사 가려고…….” 엥? 깡패들이 땅을 사 간다고? 살다보니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듣는군. “깡패들이 왜 땅을 사는데? 그 인간들이 땅을 사서 뭐 하는데?” “그 깡패들이 땅을 사는 건 아니에요…… 그 깡패들을 고용한 애드마크가 이곳 땅을 사려고 깡패들을 이용하는 거죠…….” “그래? 그럼 그 사람은 왜 여기 땅을 사려는 거야?” “그건……” 운디네시스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는 약간의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운디네시스는 계속 하늘을 향해 눈길을 주 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다가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에엑? 쓰레기 매립장? “개인이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 수도 있는 거야?” “아니요. 하지만 애드마크에게는 돈이 많으니까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죠 …….” 흘…… 결국 돈으로 공무원들을 매수해서 쓰레기 매립장을 건설하려는 건가? 그렇게 해서 공장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이곳에다 몽땅 묻어버려서 쓰레기 처 리 비용을 아끼려고? “하지만 시민 단체에서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그건 그렇지만…… 애드마크는 표면적으로 이곳에 농촌 복지 시설을 짓는 다고 하고 있어서 시민 단체에서 모르는 거예요…….” “그럼 알리면 되잖아?” “하지만…… 증거가 없는 걸요. 애드마크가 이곳에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 거라는 증거가…….” 얼라리? 증거가 없다면서 운디네시스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그런데 넌 애드마크가 이곳에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 거라는 걸 어떻게 알 았어?” “…….” 하늘을 쳐다보며 대답하던 운디네시스는 이번엔 고개를 떨구었다. 마당이라 해봤자 그냥 흙바닥이었기 때문에 조그만 개미 몇 마리가 열심히 마당을 돌 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언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왠 구더기 한 마리가 내 발 앞에서 꿈틀대고 있었고, 그런 구더기를 발견한 개미 한 마리가 그 구더 기를 덥썩 물었다. 개미에게 걸린 구더기는 마구 몸부림을 쳤지만 개미의 강 한 턱으로부터 빠져 나오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 구더기를 보고 있자니 왠지 구더기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개미의 허리를 잘 겨냥하여 발 끝으로 눌러주었다. 내 발끝에 짓밟힌 개미는 허리가 꺾인 채로 발광을 했고 구더기는 개미의 마수에서 빠져 나와 열심히 다른 곳으로 기어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오빠와 할아버지의 사이는 좋았어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운디네시스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난 구더기가 열 심히 기어가는 것을 보다가 운디네시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운디네 시스의 말을 경청했다. “하지만 그때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죠. 아빠는 5년 전에 간암으로 돌아 가셨고, 3년 전에는 엄마마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애지중지 하시던 땅을 소장님에게 판 거예요. 소장님은 여기다가 마법 연구소를 짓고 싶다고 거액의 돈을 제시했거든요.” 흠…… 마법 연구소가 3년 전에 만들어졌던 거였군. 아니지, 공사 기간까지 고려한다면 1∼2년밖에 안된 거잖아? 마법 연구소의 역사는 오죠룬보다 훨씬 짧구만. “하지만 할아버지가 소장님에게 땅을 판 이후로 오빠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 지 않았어요. 할아버지를 남처럼 대하기 시작했죠. 처음엔 그런 오빠의 마음 을 돌려보려고 할아버지는 부단히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오빠가 반말을 하든 안 하든 신경 쓰지 않으세요. 그래서 할아버지와 오빠 사이는 더 벌어지고 말았죠…….” 그거 안됐군. 근데 그 얘기하고 깡패들 얘기하고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 거 야? “그러다가 5개월 전에 애드마크가 이곳의 땅을 모두 사들이겠다고 할아버지 에게 통보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집안 사정이 조금 나아졌기 때문에 굳이 땅 을 팔 필요는 없었죠. 그래서 할아버지는 땅을 팔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애 드마크는 깡패들까지 고용해서 할아버지에게 어서 땅을 팔라고 압력을 넣었 죠. 그때 소장님이 도와주셔서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넘어갔어요. 그 후로 이 제 괜찮겠다 싶었는데…… 오늘 또 나타난 거예요…….” 흘…… 이거 안 좋군. 한 번 물러섰던 인간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은 반드시 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텐데…… 이번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땅을 구입하려 할지 몰라…… 강제로 빼앗는 것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헐값에 이 땅을 사들일 수는 있겠지…….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82 게 시 일 :00/05/05 08:59:05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409 “오빠가 그 깡패들을 다치게 했으니 이제 어쩌죠……?” 이런 이런……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지…… 난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우선은 경찰이나 소장님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난 운디네시스에게 나름대로의 조언을 해주었고 그것을 들은 운디네시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가 있는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래서 마당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사라만다의 방으로 들어가서 들고 있던 책들을 방에다 내 려놓았다.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벽에 몸을 기대고 있던 사라만다가 날 힐 끗 보더니 여전히 띠꺼운 목소리로 물었다. “왠 책들이냐? 빨간책이냐?” “모두 건전한 책이다, 임마.” 난 그렇게 사라만다의 말을 일축한 뒤 사라만다 앞에 앉았다. 사라만다는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렇게 날 쳐다보는 사라만다를 보 고 있자니 불의 정령인 불도마뱀 사라만다의 모습이 떠올랐고, 머리를 툭툭 쳐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 었기 때문에 그 충동은 억누른 뒤에 사라만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왜 노움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거냐?” “…….” 내 질문에 사라만다는 살벌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네가 알아서 뭐하게?” “네 가족의 분위기를 확 바꿔서 나 좀 편하게 지내려고 그런다, 알았냐?” 난 진심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사라만다는 내 말을 헛소리로 받아들였다. “삽질하고 있네.” “…….” 으…… 사라만다 녀석, 상대하기가 싫어…… 하지만 시작을 했으면 어떻게 든 끝을 봐야겠지? “노움 할아버지가 땅을 팔았다고 화내는 거냐?” “……!” 내 말을 듣자마자 사라만다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사라만다의 띠 꺼운 표정을 풀었다는 생각에 내가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사라 만다는 살기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도대체 그 소리는 어디서 들었지?” “당연히 운디네에게서지.” “운디네가? 제길…… 그 애 입이 그렇게 가벼웠다니……!” 흘흘, 그건 운디네시스의 입이 가벼운 게 아니라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고 싶어서 나에게 말해준 거라고. 사라만다와 노움 할배의 싸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운디네시스 자신 말고 나밖에 없으니 나에게 의존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어? “운디네가 나한테 반했으니까 다 얘기해줬지∼” 난 사라만다에게 농담 섞인 말을 던졌지만 사라만다는 그걸 진담으로 받아 들였다. “너 같은 녀석에게 반했다니…… 운디네 녀석…… 눈깔을 뽑아버려야겠어… …!” 흘…… 눈깔을 뽑아버리겠다니…… 그게 오빠로서 할 말이냐? “야야,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냐? 멍청의 극을 치달려라∼” “시끄러.” 그 말만 내뱉은 사라만다는 여전히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벽에 몸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나하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내가 절대 아니었다. “겨우 땅 좀 판 것 가지고 왜 할아버지한테 반말을 해대? 네가 그러고도 도 마뱀이냐?” 허걱! 도마뱀이라니……! 말이 잘못 튀어나왔다……! 부들부들……. 앞에 했던 말 때문인지 뒤에 했던 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말을 듣고나서 사라만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상당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겨우…… 겨우 땅 좀 판 것……?” 헐…… 앞에 했던 말 때문에 화가 난 거였군. 난 또 내가 도마뱀이라고 해 서 화난 줄 알았지∼ 번쩍-! 눈을 감고 있던 사라만다가 갑자기 눈을 매섭게 치켜 뜨며 굉장히 화난 어 조로 나에게 소리쳤다. “네 녀석이 뭘 알아?! 겨우 땅 좀 판 것? 모르면 닥치고 있어!” 얼…… 지금 나한테 개겨보겠다는 거냐? 아 그래 좋아, 나도 맞짱 떠줄 테 니까!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야?! 나한테 아무런 얘기도 안 해주고 무조건 닥치고 있으라고? 난 이 집에서 보름이나 더 있어야 한다고! 이런 살벌한 분 위기에서 내가 어떻게 마음 편하게 지내?!” “그럼 나가!!!” “나갈 곳이 있었으면 당장 나갔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교장 할아범 뿐이야! 그 외엔 갈 곳도,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도 없다고! 그런 내 가 여기서 어떻게 나가?!” 사라만다와 말다툼하는 동안 나 스스로 울화가 치밀어 언성이 상당히 높아 졌다. 내가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기 때문에 난 사라만다가 더욱 더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사라만다는‘칫!’하더니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 서로 죽어라고 소리치다가 한 사람이 입을 닫으니까 갑자기 맥이 빠져버렸 다. 그래서 나도 입을 다물고 거칠어진 숨만 몰아쉬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던 우리 둘 중에서 사라만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날 실망시켰어.” 얼레? 평상시에는 할아범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할아버지라고 하네? “자신감 있게 땅을 일구는 모습이 아니라 돈을 걱정하는 모습이지, 지금의 할아버지는. 그래서 싫어.” 사라만다는 그 말을 끝으로 아예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좀더 사라만다 에게 질문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물었다가는 사라만다가 정말로 화를 낼 것 같아 그만두었다. “별로 도움 안 되는 얘기였지만, 어쨌든 말해줘서 고맙다.”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싸가지 없는 말을 사라만다에게 하고 나서 방을 나왔 다. 그러다가 사라만다의 방 앞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운디네시 스를 보게 되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거죠?” 운디네시스는 내가 나오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나와 사라만다가 죽어라고 소리쳤던 것 때문에 싸움이라도 난 줄 알고 굉장히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 래서 난 씨익 웃었다. “그냥 우애를 다졌을 뿐이야.” “……?” 내 대답에 운디네시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운디네시스의 넋 나간 표정 을 보니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다른 질문을 던졌다. “경찰에 연락했어?” “아, 예……. 하지만……” 얼라리? 하지만? “깡패들이 왔다고 하니까 무슨 그런 일로 전화했냐고 막 화를 냈어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으면 됐다고 하면서…….” 흘…… 아무래도 애드마크라는 녀석이 경찰에 압력을 넣은 것 같은데? 깡패 들이 무슨 짓을 하든 크게 일만 저지르지 않으면 개의치 말라고 했나? 뭐 재 벌이 압력을 넣는데 힘없는 시골 경찰에서 어떻게 하겠어……. “그럼 소장님에게는 연락했어?” “그게…… 연구소에 소장님이 안 계세요…….” 아차……! 대머리 노인은 무슨 일이 있다고 딴 데로 새버렸지! 그래서 내가 저 무거운 책을 들고 여기까지 걸어온 거고! 이런…… 이거 상황이 안 좋아 지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운디네시스는 간절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지만 나도 더 이상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기는 거의 내가 살던 세계와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을 함 부로 다치게 했다간 바로 감옥에 끌려가기 쉽상이었다. 게다가 사라만다가 그 깡패에게 화상을 입혔으니, 만약 그 깡패가 이 일로 사라만다를 고발한다 면 사라만다는 영락없이 콩밥을 먹어야 했다. ┌───────────────────────────────────┐ │ ▶ 번 호 : 0/809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8일 00:4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4~5-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89 게 시 일 :00/05/06 10:41:00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43 드륵-! 내가 어떻게 할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안방 문을 열고 노움 할배 가 걸어나왔다. 노움 할배는 마당에 하릴없이 서 있는 나와 운디네시스를 힐 끗 쳐다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사라만다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 움 할배가 사라만다와 무슨 얘기를 할지 굉장히 궁금해져서 난 방문에 최대 한 가까이 붙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으려 했다. 하지만 운디네시스가 그냥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 통에 몰래 엿들으려 했던 난 완전히 바보가 되 고 말았다. “모두 와서 앉거라.” 노움 할배는 방으로 들어온 운디네시스와 문밖에서 어정쩡하게 허리를 구부 린 자세로 서 있는 나에게 말했다. 운디네시스는 사라만다 옆에 앉았고, 사 라만다는 여전히 눈을 감고 벽에 몸을 기댄 채로 있었으며, 난 운디네시스 옆에 앉아 노움 할배의 말을 기다렸다. 우리가 모두 들을 자세가 되어 있음 을 확인한 노움 할배는 우선 한숨을 조용히 내쉰 다음에 입을 열었다. “애드마크에게 땅을 팔기로 하자꾸나.” “……!” 노움 할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우리의 생각을 모두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특히 가장 놀란 사람은 사라만다였다. “땅을 팔자고? 미쳤어, 할아범?!” 사라만다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노움 할배에게 반말을 찍찍 해대었다. 노 움 할배는 사라만다의 반말보다 사라만다가 한 말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시끄럽다. 이건 모두 너희들을 위해서야.” “뭐가 우리들을 위해서야? 할아범 자신을 위해서지!” “…… 무슨 뜻이냐?” 사라만다의 말에 노움 할배가 갑자기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사라만다를 노 려보았다. 그러자 사라만다도 노움 할배를 뚫어져라 마주 보았다. 둘이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운디네시스가 노움 할배에게 질문을 던 졌다. “왜 땅을 파신다는 거예요?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이 땅을 사랑하셨잖아요? 그런데 이 땅이 쓰레기로 가득 뒤덮이는 걸 바라세요?” “……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비록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운디네시스 역시 노움 할배의 생각을 비난하고 있었다. 운디네시스와 사라만다 둘 다에게 반대를 받자 노움 할배는 조금 어 두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바꿀 뜻은 없어 보였다. “너희도 알다시피, 여기서 농사를 지어서 얻는 수입은 적다. 1년 동안 뼈빠 지게 일해야 겨우 먹고 살 정도지. 그래서 여기 땅을 팔아 그 돈으로 대도시 에 가서 장사나 시작할 생각이다.” “……!” 모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 놀람은 절대 긍정의 뜻을 포함하고 있 지 않았다. “장사? 그게 말처럼 쉬워? 언제 장사해본 적이나 있는 거야?!” 사라만다는 흥분하여 노움 할배를 마구 비난했다. 노움 할배는 그런 사라만 다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꼭 장사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돈 되는 일을 하겠다는 거지. 얻은 돈을 은행에 예금해서 이자를 받아먹고 살 수도 있고, 아니면 주식 투자를 해서 한꺼번에 왕창 불릴 수도 있지. 음…… 주식 투자에서 한꺼번에 왕창 벌려 하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건 조심해야겠구나…….” “미친 할아범! 도대체 뭐 때문에 그런 개짓을 떨겠다는 거야?!” 허걱…… 사라만다 녀석…… 점점 위험하게 말을 하는데? 저러다 맞아죽지 ……! “…….” 하지만 노움 할배는 전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사라만 다의 화를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흥! 자기 노후 대비를 위해 땅 팔겠다는 거냐? 고작 돈 좀 벌겠다는 얄팍 한 생각으로 몇십 년 동안 일궈온 땅을 팔아버리겠다고? 그러고도 할아범이 지법사(地法師)야?!” “이…… 이 녀석!!!” 사라마다의 말에 마침내 노움 할배도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노움 할배는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사라만다에게 소리쳤다. “노후 대비를 위해서라고? 돈 좀 벌겠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그런 거라고? 도대체 네 녀석이 아는 게 뭐냐? 내가 겨우 그딴 이유로 땅을 팔아버릴 것 같으냐?!”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땅을 팔겠다는 거야?!” 사라만다는 전혀 지지 않고 노움 할배의 말을 반박했다. 사라만다의 말에 울컥한 노움 할배가 뭐라고 말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지만 이내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일어서서 말했다. “너 같은 건 몰라도 돼!” 드륵- 노움 할배는 사라만다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래서 사라만다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며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살벌한 사라만다의 분위기 때문에 방 안에 있기가 불편해진 나는 운디네시스와 나가자는 눈짓을 교환한 후 둘 다 방밖으로 나왔다. 방밖으로 나온 운디네시스는 막 안방으로 들어간 노움 할배와 내가 묵는 방에 있는 사라만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울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이제 어쩌죠? 이러다간 할아버지하고 오빠하고 사이가 더 나빠지겠어요… …!” 흘……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진 것 같은데…… 하긴, 서로 주먹질을 안 하 니까 아직까지는 희망이 있는 거로군. “잠깐 기다려. 내가 할아버지에게 뭐 좀 물어볼 테니까.” 난 운디네시스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본래는 이번 일 에 간섭할 생각이 없었지만, 노움 할배가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난 묵을 집이 없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간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요……” 안방에는 노움 할배가 사라만다와 마찬가지로 벽 쪽으로 몸을 돌리고 드러 누워 있었기 때문에 우선 조심스럽게 노움 할배를 불렀다. 들어온 사람이 나 라는 것을 안 노움 할배는 몸도 돌리지 않고 입만 열어 말했다. “뭐냐?” “아까 왜 땅을 팔겠다는 이유를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그걸 듣고 싶어서 요.” “…… 필요없으니 나가라.” 흘…… 지금 날 내쫓겠다는 것? 그런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아냐? “필요없지 않습니다. 전 이 집에서 묵고 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할아 버지가 땅을 팔지 않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땅을 팔겠다고 한 것 에는 어떤 이유가 있겠죠. 전 그 이유를 듣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그 이유 가 타당하면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를 설득할 것이고, 정당하지 않다면 할아 버지가 뜻을 바꾸도록 할 생각입니다.” “지금 내가 정당하지 않다는 거냐? 내가 왜 너에게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 야 하지?” 내 말에 화가 났는지 노움 할배는 상체를 일으키고 날 노려보며 말했다. 어 쨌든 노움 할배의 관심을 내 쪽으로 돌리는 것은 성공했기 때문에 난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 이 집 하숙생입니다. 땅을 팔고 안 팔고는 할아 버지의 가족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중요한 문제거든요. 그래서 그 이유를 듣 고 싶은 겁니다.” 난 최대한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여기서 노움 할배의 감정을 건드렸다간 그 이유란 것도 못 듣고 엄청난 욕 세례를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정중한 어조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다행히 노움 할배는 표정을 조금 풀었다. “그렇구나. 이 일은 너에게도 중요하지…….”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 그걸 이제야 자각하다니…… 역시 노움 할배는 아이 큐 한 자리였어∼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390 게 시 일 :00/05/06 10:41:16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349 “난…… 내 아이들을 위해서 땅을 팔겠다고 결심한 거다.” 마침내 노움 할배가 땅을 팔겠다는 이유를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난 조용히 자리에 앉아 노움 할배의 말을 경청했다. 우선 시작을 그렇게 한 노움 할배 는 나직히 한숨을 쉬며 그 뒤의 말을 계속했다. “꼭 깡패들이 무슨 짓을 할까봐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니다. 물론 그것도 땅 을 팔겠다는 이유에 포함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애들의 교육 비 때문이지.” 얼레?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의 교육비? “이제 사라와 운디네는 17살, 16살이 되었다. 지금까지 학교가 멀기도 하고, 농사일도 바빴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지 못했지. 하지만 학교를 다녀야 해. 여기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가르쳐줄 수 없으니까 말이야.” 음…… 뭐 그렇겠지……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인성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 를 다녀야할 테니까. 물론 착한 아이들이 학교 갔다가 오히려 사악의 구렁텅 이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지만. “하지만 지금처럼 농사만 짓는 것으로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가 없 어. 그래서 땅을 팔기로 한 거다. 애드마크야 헐값을 내걸겠지만 이 땅을 사 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노움 할배의 얼굴 표정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확실히 노움 할배도 애드마크 에게 땅을 파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노움 할배 가 땅을 팔려는 이유를 어느 정도 들었기 때문에 우선은 인사를 하고 방밖으 로 나왔다. 나 스스로 노움 할배의 말을 따를 것인지 사라만다의 말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어요?” 내가 나오는 걸 기다렸던 운디네시스가 바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난 운 디네시스에게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몰라. 생각이 정리가 안돼서…….” “아……!” 내 말을 듣자마자 운디네시스는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다는 표정으로 탄식을 토해냈다. 우선은 그런 운디네시스를 안심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디네시스에게 말했다. “마음 편하게 가져. 내 생각부터 정리하고 나서 행동을 취할 테니까 걱정하 지마. 뭐 이건 너희들 문제라 내가 끼어 들어선 안되지만 나한테도 중요한 문제니까 나중에 내가 결정한 사항에 따라줬으면 해.” “…… 알았어요…….” “그럼 밥 좀 줄래? 배고파서 말이야.” “네…….” 운디네시스는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천천히 부엌 안으로 들어갔 다. 난 사라만다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 누워 내 생각을 정리했다. 에…… 우선 노움 할배는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의 교육비 때문에 땅을 팔 려고 그러고……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는 그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 다…… 그렇다면 우선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게 그런 노움 할배의 생각을 전해주어야겠군. 둘은 지금 노움 할배가 자기 노후를 위해 땅을 팔기로 결정 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난 어떻게 하지? 땅이 팔리고 여기 가족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난 지낼 곳이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노움 할배가 아이들 교육 때문에 대도시로 가겠다는데 방해할 수도 없고…… 아…… 골치 아프다……! 드륵- 그때 운디네시스의 방문이 열렸다. 운디네시스가 부엌에 있었기 때문에 운 디네시스의 방 안에 있는 그 무언가가 방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순 간적으로 내가 놀라고 있을 때 방밖으로 라이가 쩌억 하품을 하며 천천히 걸 어나왔다. 문을 연 무언가는 라이였던 것이다. “휴……!” 흘…… 괜히 쫄았네…… 라이가 운디네시스 방에서 지금까지 퍼질러 자고 있었던 걸 몰랐어…… 근데 라이 녀석…… 아무리 시골 미닫이 문이라지만… … 강아지 주제에 문을 열고 방을 자유롭게 출입하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사라만다 방에서 잘 때 문을 열고 들어와 날 물어버릴 수도 있잖아? 으…… 무서워……! “우웅-” 하품을 늘어지게 한 라이는 몸을 한 번 쭉 펴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 리고는 날 향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건 배고프니까 어서 밥 달라는 라이의 표현 방식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지만. “난 돈 없어. 운디네한테 가서 밥 달라고 그래.” 난 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라이에게 말했고, 라이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휙 돌리고는 총총히 부엌 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에 부엌에서 운디네 시스가 밥상을 들고 나오자 라이는 기분이 좋은지 운디네시스 옆에서 촐랑촐 랑 뛰어다니며 굉장히 좋아했다. “이제 일어났니? 벌써 오후 6시인데 이제서야 일어나면 어떡해?” 말로는 라이를 혼냈지만 운디네시스는 내 앞에 밥상을 놔두자마자 라이를 안고 라이의 얼굴에 자기의 뺨을 부벼댔다. 하지만 라이는 배가 고픈 상황이 었기 때문에 운디네시스의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다. 만약 지금 라이를 안 고 있는 사람이 운디네시스가 아니라 나였다면 라이는 당장‘나 배고픈데 왜 끌어안고 그래?!’라는 생각을 하고 날 확 물어버렸겠지만 차마 운디네시스 를 물어버릴 수는 없는지 라이는 날 향해 구원의 눈길을 보내기만 했다. 그 렇게 라이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옛정을 생각해서 한 번쯤 은 도와주기로 했다. “방금 일어났을 테니까 라이는 배가 많이 고플 거야. 우선 밥부터 먹여.” “아, 그렇군요!” 그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운디네시스는 라이를 안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이제 더 이상 날 방해할 사람, 아니 강아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난 내 앞에 놓인 저녁 식사를 마음놓고 먹었다. 맴맴맴― 오후 6시였지만 지금은 여름이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해가 말짱해서 전혀 어둡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 심어놓은 나무에서 시원스런 매미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이 가족들의 마음은 결코 시원스럽 지 못했다. 깡패들에게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땅을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땅을 팔아버릴 것이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 먹어서 텅 비어 있는 밥그릇을 바라보며 내 마음도 왠지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드르륵- 탁! 안방에서 노움 할배가 먹은 밥상을 들고 나온 운디네시스는 곧장 부엌으로 가지 않고 밥상을 놓고 내 옆에 와 앉았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류드 오빠는 어떻게 할 거예요?” “…….” 이런…… 아직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하긴…… 이런 건 생각을 정 리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그냥 서로 토론을 해서 적당한 결론을 얻어내 야 하는데 말이야……. “우선 모두 모여서 다시 한 번 이 일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이 어떨까?” 난 운디네시스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내가 직접 사라만다와 노움 할배에게 가서 토론을 하자고 한다면 둘 다 내 말을 씹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운디 네시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행히 운디네시스는 그런 내 제안을 받 아들였다. “알았어요. 그럼 제가 할아버지하고 오빠에게 말해볼게요.” “어. 부탁해.” 운디네시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노움 할배의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대문 밖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누구 계십니까?” 얼레? 남자가 둘이네? 밖에는 시커먼 차가 한 대 있고. 왠지 예감이 안 좋 은……! “누구세요?” 평상시대로 운디네시스가 대문 쪽으로 뛰어나가 그 남자 둘에게 다가갔다. 왠지 모르게 손에 식은땀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남자에게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라이가 내 옆에서 알짱대고 있다는 것을 거의 신경 쓰지 않 고 있었다. “……!” 두 남자에게 온 신경을 쏟던 난 크게 놀라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운디네시스의 입을 흰수건으로 틀어막았기 때문이었다. 운디네 시스는 잠시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축 늘어졌고, 두 남자는 그런 운디네시스 를 들고 급히 시커먼 자동차 쪽으로 뛰어갔다. “거기서―!” 난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지르며 녀석들의 뒤를 쫓아갔다. 상황이 어떻게 돌 아가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운디네시스가 아주 위험에 처 했다는 점이었다. 이런 식으로 납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 했기 때문에 난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릉- 내가 녀석들을 따라잡기도 전에 녀석들은 운디네시스를 태우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 이미 다른 한 패가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래 서 난 그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 시커먼 자동차가 상당히 멀리 갔을 때 날 따라온 라이가 굉장한 속도로 그 자동차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그 자동차 와 라이의 모습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 │ ▶ 번 호 : 0/809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8일 00:42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6~7-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06 게 시 일 :00/05/07 08:07:30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244 “운디네―!” 내가 멍하니 서 있을 때 내 뒤에서 분노에 찬 사라만다의 외침이 들려왔다. 금방 내 옆으로 뛰어온 사라만다는 자신이 이미 늦었음을 알고 괴성을 질러 댔다. “으아아아아―!” 팔랑- 사라만다가 괴성을 질러대는 사이 그의 손에서 종이쪽지가 하나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그래서 난 그 종이를 집어들고 살펴보았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종 이쪽지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나한테 화상을 입힌 대가는 네 동생에게 톡톡히 치르도록 해주겠다. 만약 내일 당장 땅을 팔기로 결정하지 않는다면 너희 모두를 죽여버리겠다. 잘 생 각해서 행동해라.』 “……!” 이건 그 깡패 녀석이 보낸 것인가? 운디네시스를 잡아가는 동시에 대문에다 떨어뜨린 것 같군. 제길…… 이제 어쩌지? 이대로 두면 운디네시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개자식들…… 네 동생에게 손을 댔다간 가만두지 않겠어……!” 사라만다는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그 역시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화만 낼 뿐 행동하지는 못했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노움 할배가 내게서 종이쪽지를 빼앗아서 그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운디네를……?!” “…….” 나와 사라만다는 그저 말없이 운디네시스가 납치된 방향만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노움 할배가 그런 우리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느냐? 어서 쫓아가야지!” “제길! 누군 쫓아가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도대체 어디로 가야 되는 거냐고!” 노움 할배의 말에 사라만다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움 할배 역시 그것까지는 생각해 내지 못한 듯 종이쪽지를 구겨버리며 중얼거렸다. “개 같은 놈들…… 이런 더러운 방법을 쓰다니……!” 이런 이런…… 그렇게 욕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뭔가 대책을 강구 해야지…… 우선 운디네시스를 구하기 위해서는…… 녀석들의 본거지를 알아 내야해! “혹시 녀석들이 있을 만한 곳이 이 근처에 없을까요?” 난 노움 할배와 사라만다를 쳐다보며 물었고 노움 할배는 잠시 생각하다가 내 물음에 답해 주었다. “저번에 애드마크가 사 놓은 건물이 있는데, 아마 거기를 깡패들이 임시 거 처로 쓰고 있을 거다.” “제길!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거기가 어디야?!” 사라만다는 노움 할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노움 할배는 화조차 내지 않았다. 지금의 노움 할배는 오직 운디네시스의 안전만을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회관 근처에 있는 제일 높은 건물이다!” 노움 할배가 깡패들이 있을 만한 위치를 알려주자마자 사라만다는 그 쪽으 로 뛰어가면서 노움 할배에게 소리쳤다. “할아범은 경찰을 불러!” 탁탁탁―! 사라만다는 나와 노움 할배는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그래 서 나도 사라만다의 뒤를 따라가며 노움 할배에게 뒤를 부탁했다. 운디네시 스가 납치된 것에는 내 책임도 있었다. 두 남자를 경계했으면서도 정작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탁탁탁― “헉- 헉- 헉-” 나와 사라만다는 죽어라고 뛰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 하지 만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고, 우리의 뛰는 속도는 그에 비례하여 점차 느려졌다. 집에서 마을 회관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였기 때문에 뛸 경우,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20분 정도에 갈 수 있겠지만 다급한 상황이라 20분이 나 걸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지도 않고 무리를 하면서 최단 시간 내 에 마을 회관 쪽으로 뛰어간 것이다. “헉헉헉―”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쉬지 않고 뛰어서 마을 회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노움 할배의 말대로 마을 회관 근처에서 가장 높 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그 건물 앞에 시커먼 자동차 두 대가 세워져 있는 것은 그 건물이 깡패들의 임시 거처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고 있었다. “운디네―!” 사라만다는 건물을 확인하자마자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건물 쪽으로 뛰 어갔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쫓아가게 되었다. 쾅! 문을 카파 보로 박살낸 사라만다는 그대로 건물 안에 침입했다. 1층에서 서 로 모여 고스톱을 즐기고 있던 깡패 5명이 갑자기 들어온 사라만다를 보고 크게 놀랬다. 하지만 놀라기만 했을 뿐 공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 좋 은 기회를 놓칠 사라만다가 아니었다. “죽어―!” 사라만다의 주위에서 형성된 카파 하사로가 인정사정 없이 깡패들에게 날아 갔다. 멍하니 서 있던 깡패들은 사라만다가 마법사라는 사실에 경악하면서 그제서야 피하느라 난리를 쳤다. 그러나 카파 하사로는 그들 모두에게 날아 가 꽂혔다. “으악!” “커억!” 어떤 깡패는 다리에 카파 하사로를 맞고 주저앉았고, 어떤 깡패는 옆구리에 맞고 기절했다. 그러나 그 경우는 괜찮은 것이었다. 나머지 깡패들은 머리와 가슴, 그리고 복부에 카파 하사로를 맞아 그대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운디네는 어딨어?!” 사라만다는 살아있는 한 깡패의 멱살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그 깡패 는 어깨에 카파 하사로를 맞은 고통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에 열 받 은 사라만다가 깡패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고 할 때, 2층 계단 쪽에서 누군 가 다급하게 뛰어내려오며 소리쳤다. “지금 여자애의 개새끼가 날뛰고 있어! 어서 도와……!” 정신없이 말을 이어가던 그 사람은 쓰러져 있는 깡패들을 보고 기겁하여 말 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사라만다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여자애’라고. “운디네는 거기 있었구나!” 표적을 찾았다는 듯 사라만다가 소리치면서 그 깡패에게 달려갔다. 그의 머 리 위에는 소형의 카파 하사로가 형성되었고 카파 하사로는 곧장 계단에 서 있는 깡패에게 날아갔다. “우앗!” 그러나 그 깡패는 크게 놀라면서 몸을 놀려 카파 하사로를 피해냈다. 그리 고는 깡패다운 몸놀림으로 자신의 곁을 그대로 통과하려는 사라만다의 다리 를 걸어버렸다. “어억!” 쿵- 깡패의 다리에 걸려 넘어진 사라만다는 계단에 몸을 박아버렸다. 사라만다 가 엎어지자 깡패는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사라만다에게 다가갔고, 그대로 둔다면 사라만다가 죽도록 터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번엔 내가 그 깡패 를 공격했다. “…… 비아 하사로!” 난 정신을 집중하여 얼음 화살인 비아 하사로를 만들어 낸 후,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그 깡패에게 비아 하사로를 날렸다. 그러자 소리를 지르지 않 고 비아 하사로를 날렸을 때보다 비아 하사로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 깡패 에게 날아갔다. “허억!” 막 사라만다의 멱살을 움켜잡으려고 했던 그 깡패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비아 하사로가 정확하게 자신의 복부를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복부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깡패의 몸은 무너졌다. “후아후아…….” 깡패의 복부에서 내장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광경은 그다지 징그럽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이미 어렸을 때 복부가 잘려 내장이 나온 고양이의 시체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금은 운디네시스를 구하는 것이 더 급했 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7-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07 게 시 일 :00/05/07 08:07:48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254 “사라만다! 서둘러!” 난 쓰러져 있는 사라만다를 일으켜 주었다. 하지만 계단에 정통으로 몸을 박아버렸기 때문에 같이 가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난 사라만다보다 먼 저 뛰어가며 소리쳤다. “내가 먼저 깡패들을 조져놓을 테니까 너도 최대한 빨리 와!” 솔직히 나 혼자 깡패들이 우글대는 곳에 먼저 가는 건 무서웠지만, 운디네 시스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위층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건물은 상점용으로 건설된 것인 듯 각 층마다 큰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운디네시스가 몇 층에 있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없어…… 없어……!” 2층과 3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4층에 운디네시스와 깡패들 이 모두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화 상 입힌 대가를 운디네시스에게서 받겠다는 종이쪽지의 내용이 자꾸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운디네―!” 난 크게 소리치며 4층에 하나 있는 큰 방의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날 기다리기라도 하듯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어서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 개자식들! 운디네에게 무슨……!” 뛰어들어가자마자 그렇게 소리침으로써 깡패들의 정신을 분산시킨 뒤, 난 바로 카파 하사로를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깡패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크르르르르……” 동물의 낮은 울음소리. 난 내 앞 5미터 되는 곳에 서 있는 한 동물을 발견 했다. 눈에서 빨간 빛이 흘러나오는 포메라니안 품종의 작은 강아지. 그 강 아지는 라이였다. “라이…… 네가 어떻게……?” “크르르……” 평상시의 라이와는 다르게 라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빛은 섬뜩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그 빛은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피와 섞여 더 욱 붉어지고 있었다. 털썩- 날 향해 으르렁거리던 라이가 갑자기 눈을 감으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라이가 깡패 소굴 중앙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난 얼떨떨해져서 잠시 동안 쓰 러진 라이를 바라보며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4층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 한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깡패들의 수는 대략 20여 명이었다. 상당히 많은 수의 깡패들이었는데, 그들의 몸에는 날카로운 이빨 자국과 손톱 자국이 즐비하게 나 있었다. 그것은 어떤 맹수가 깡패들을 공격 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아……!” 그때 라이의 바로 뒤에 있는 쇼파에 운디네시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운디네시스는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옷이 군데군데 찢어져서 하얀 살결이 다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 했다. “운디네! 운디네! 정신 차려!” 난 운디네시스를 흔들어 깨웠고, 운디네시스는 나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눈 을 떴다. 눈을 뜬 운디네시스는 나를 보자마자 상당히 겁에 질린 표정을 지 으며 자신의 몸을 감싸고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날 건드리지마! 저리 가!!!” “운디네! 나야! 류드나르!” 날 깡패로 오인한 운디네시스의 어깨를 흔들면서 내가 왔다는 걸 운디네시 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운디네시스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날 알아보게 되었다. “류드…… 오빠…… 흐윽!” 날 알아본 운디네시스는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래서 난 운디네시스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 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아래층에 있던 사라만다가 이곳까지 올라왔기 때 문이었다. “운디네……!” 운디네시스가 내 품에서 울고 있는 걸 본 사라만다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 다. 그리고는 계단에 몸을 박은 고통을 느껴서인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나 바닥이 완전히 피바다라는 것을 깨달은 사라만다는 크게 경악하고 말 았다. “도대체 이건……!” 주위를 정신없이 둘러본 사라만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어서 널브러져 있는 깡패들은 나와 사라만다에게 무엇에 죽임을 당했는지 얘기해 주지 않았다. 물론 단 하나의 추측이 있긴 했지만 나라고 해도 그건 쉽게 믿 을 수가 없었다. “류드나르…… 설마 네가……?” “아니야. 내가 오기 전에 벌써 이렇게 되어 있었어.” “그럼 도대체 누가……!” “나도 몰라, 누구인지는…….” 내 대답에 사라만다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내 품에서 울고 있던 운 디네시스가 감정을 진정시켰는지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더니 나와 사라만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전…… 봤어요…… 누가 이렇게 했는지…….” “……!” “그게 누구야?!” 사라만다는 즉시 운디네시스에게 소리쳤고 운디네시스는 사라만다와 나 사 이에 쓰러져 있는 라이를 쳐다보며 답했다. “라이…… 예요…….” “…….” “……!” 난 이미 어느 정도 예측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사라 만다는 상당히 경악하고 있었다. 보기에도 귀여워 보이는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20명이나 되는 깡패들을 저승길로 보냈다는 것을 쉽게 믿을 수 없었 던 것이다. “그, 그럴 리가……!” “믿지 않겠지만 정말이에요…… 라이가 눈에서 붉은 빛을 내뿜으면서 날뛰 었는 걸요…… 피가 튀고 비명 소리가 들리고……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잃어버렸어요…….” 그 일을 떠올리자 운디네시스는 다시 몸을 세차게 떨면서 내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사라만다는 불신에 찬 눈으로 쓰러져 있는 라이를 보며 중얼거리 고 있었다. “말도 안돼…… 이런 강아지가…… 깡패들을 죽여……?” “…….” 난 그저 아무 말 없이 운디네시스가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렸다. 역 겨운 피냄새가 후각을 자극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라이의 돌연한 행동에 정신이 어지러웠기 때문이었다. 라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은 나에 게 꽤 익숙한 것이란 생각조차 들고 있었다. 삐뽀 삐뽀―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노움 할배가 경찰들을 부른 모양이 었다. 아무리 애드마크에게 압력을 받았거나 뇌물을 먹었더라도 납치 사건이 니까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범인을 무죄로 석방시키든 깜 방에 가둬버리든 우선은 사건을 무마시켜야할 테니까. “사라만다.” 난 사라만다를 불렀고 사라만다는 왜 그러냐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경찰차 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난 조금 허탈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들…… 살인자가 된 거지?” “…… 그렇지…….” “몇 년 썩을까?” “글쎄…… 아마 15년은 썩겠지…….” “아직 미성년자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닐 거야…….” “그런가……?” 나와 사라만다는 그렇게 불필요한 말을 주고받았다. 운디네시스는 그런 우 리를 울 듯이 쳐다보고 있었고, 경찰들의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오 고 있었다……. -------------------------------------------------------------------------------- ┌───────────────────────────────────┐ │ ▶ 번 호 : 0/809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8일 23:29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8-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서로가 바라는 것 -8-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15 게 시 일 :00/05/08 06:52:38 수 정 일 : 크 기 :8.4K 조회횟수 :243 - 피고 류드나르…… 사형! “헉!” 난 크게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 었다.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지금 사라만다의 방에 누워 있었다. 그것도 베개를 배고 이불을 편하게 덮어쓴 채로. 그래서 법정에서 판사가 나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광경이 모두 꿈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짹짹짹- 벌써 아침이었기 때문에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날아다녔다. 난 자리에서 일 어나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갔다. 그리고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놀고 있는 참 새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일을 정 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깡패들이 라이에게 떼거지로 죽은지 사흘…… 나와 사라만다는 살인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1층에 있던 깡패 6명은 사람이 죽였다고 해도 4층의 깡패 20명은 어떤 흉폭한 동물이 모두 죽여버렸다…… 그래서 경찰에서는 동 물에게 광폭마법(狂暴魔法)인‘크로라사’를 걸 수 있을 정도의 고위 마법사 가 범인이라고 판단, 수사를 그쪽으로 시작했다…… 결국 나와 사라만다는 무혐의로 석방……. 짹짹짹- 잘된 일이긴 하지만…… 경찰들은 바보였어…… 1층에 있던 깡패들을 죽인 사람은 나하고 사라만다인데 말이야…… 범인이 1층과 4층 깡패들을 모두 죽 였다고 생각하다니…… 하긴, 라이에게 죽은 깡패들의 상처를 보면 아주 큰 동물이 휘갈겼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으니까 크로라사를 사용한 고위 마법사 의 짓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도대체 라이는 어떤 녀석이 지? 어떻게 20명이나 되는 깡패들을 죽일 수가 있는 거야? 그것도 아주 치명 적인 큰 상처를 주면서. 도대체…… 저런 위험한 강아지를 나한테 맡긴 교장 할아범의 속셈은 뭐야? 드륵- “아, 일어났느냐?” 막 안방에서 나오던 노움 할배가 마루에 앉아있는 날 보고 물었고 난 노움 할배에게 인사했다. “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너는 잘 잤는지 모르겠구나. 하마터면 살인자로 낙인찍힐 뻔했으니 …….” 으윽, 찔려라…… 나 살인자인데……. “근데 땅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파실 생각인가요?” 난 내 옆에 앉은 노움 할배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움 할배는 나직히 탄식하 며 말했다. “글쎄…… 나도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흘…… 아직도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린 건가? “그럼 모두 모여서 한 번 진지하게 토론해보죠?” “토론?” 노움 할배는 내 말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노움 할배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로 멍청하다고 밖 에 할 수 없는 노인네였다. “토론을 해서 가능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그렇구나…… 그런 수가 있었군!” 흘…… 정말 바보였어……. “자, 그럼 사라와 운디네를 깨워라. 지금 당장 시작하자!” 이봐 이봐…… 아침밥은 먹고 토론하자고…… 나 배고파……! “어서 부르지 않고 뭐 하느냐?” 하지만 노움 할배는 지금 당장 토론할 기세였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사 라만다의 방으로 가서 자고 있던 사라만다를 깨웠다. 그러나 굳이 내가 깨울 필요는 없었다. 내가 깨우러 가기 전에 모두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모두 노움 할배의 앞에 모였다. 모두 마루에 앉고 나 서 노움 할배가 우리들을 보며 말했다. “비록 깡패들은 없어졌지만 아직 애드마크는 우리 땅을 포기한 게 아니다. 난 땅을 팔았으면 한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흥! 난 절대로 승낙 못해.” 노움 할배의 말에 사라만다가 코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노움 할배는 막 화 를 냈다. “이 땅이 내꺼지 니꺼냐? 뭘 승낙하겠다는 거야?!” 이런…… 이게 무슨 토론이야, 말싸움이지……! “저기 진정하시구요, 우선 각자 자기 생각에 대한 이유를 말해야죠.” 내가 끼어 들어 나서자 둘은 겨우 말다툼을 멈추었다. 좋든 싫든 이 두 사 람의 말다툼을 막기 위해서는 내가 사회자가 되어 토론을 주도할 수밖에 없 었다. “우선 할아버지부터 땅을 팔려는 이유를 말해보세요.” 난 노움 할배를 쳐다보며 말했고 노움 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게 자신의 입장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데서 농사 짓는 것보다는 대도시로 나가 장사를 시작하는 게 더 낫다 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듯이 돈을 은행에 집어넣고 이자를 받아먹고 살아 도 되고, 아니면 주식 투자를 해도 괜찮다.” “흥!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사라만다는 노움 할배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래서 노움 할배는 사 라만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어!” “노력해서 농사나 지으라고.” “뭐?!” 이런…… 내가 조금만 터치를 안 하면 이렇게 되버린 다니까……! “근데 할아버지, 전에 저한테 땅 팔겠다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때는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잖아요?” 저번에는 노움 할배가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땅을 팔겠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 노움 할배가 이상해서 노움 할배에게 물 어보았다. 그러자 노움 할배는 상당히 당황했다. “뭐, 뭘 말이냐? 내가 무, 무슨 마, 말을 했다고!” 흘…… 근데 말은 왜 그렇게 더듬어? 어째서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땅을 팔 기로 했다고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게 얘기를 하지 않는 거지? 자존심…… 때문인가? “뭐 우선 할아버지의 이유를 들었으니…… 이제 사라만다가 말할 차례다.” 난 사라만다가 말하도록 유도를 했다. 사라만다는 여전히 띠꺼운 표정이었 지만 순순히 내 말에 따라주었다. “이유야 간단해.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할아범의 모습은 싫으니 까.” 흘…… 정말 간단한 이유군. 근데 그 말은 뭔가 뜻을 담고 있는 듯한데? “그게 무슨 뜻이냐?” 사라만다의 말속에 담긴 뜻을 어렴풋이 느꼈는지 노움 할배가 조금 흥분한 어조로 물었다. 처음에 사라만다는 대답하기 싫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곧 표정을 풀고 노움 할배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난 할아범이 땅을 일구면서 농사 짓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어. 남들 이야 이런 촌구석에 박혀 생활하는 할아범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농 사일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할아범의 모습을 좋아했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크면 할아범처럼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데…… 돈 좀 벌겠다고 땅을 팔아? 땅을 팔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좋아하고 자 랑스러워했던 그 할아범의 모습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라만다의 감정은 점차 흥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나 노움 할배는 사라만 다의 말을 제지할 수 없었다. 사라만다의 그 감정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왜 할아범을 할아버지라 인정하지 않는 줄 알아? 난 예전의 할아범을 내 할아버지로 인정할 뿐이야. 그깟 돈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는 땅을 팔아버 린 지금의 할아범의 모습은 절대로 내가 인정할 수 없어!” “……!” 노움 할배의 표정은 무엇인가에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멍한 상태였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털어놓은 사라만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을 때, 노움 할배 는 머리를 수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런…… 그런 내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다니…… 그냥 다른 농부들처럼 평범하게 농사일을 했던 것뿐인데……” “평범하다라고 생각한 그 모습이 나에게는 자랑스러웠어.” 사라만다는 다시 노움 할배의 말에 쐐기를 박았다. 사라만다의 그 말로 인해 지금까지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노움 할배가 꺼내기 시작했다. “미안하구나…… 난 너희들의 교육비 때문에 땅을 팔 수밖에 없었다…… 너 희들에게 좀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고 땅을 팔려고 했어…… 지금의 수입으로 는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시킬 수가 없으니까……” “할아버지……!” 그 얘기를 처음으로 들었는지 운디네시스는 상당히 놀랬다. 그것은 사라만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애써 그 놀람의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난 이 땅을 사랑한다. 하지만…… 보통의 아이들처럼 너희들도 날 그저 농 사만 짓는 평범한 노인네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땅을 팔아 너희들의 교육비로 쓸려고 했어…… 그런데…… 농사짓는 내 모습을 자 랑스러워했다니……!” “…….”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노움 할배가 할 말을 다 끝낼 때까지 기 다릴 뿐이었다. “보통의 아이들처럼…… 너희들에게도 꿈이 있을 거고…… 난 그 꿈을 이루 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땅을 팔기로 작정했다…… 너희들이 예전의 내 모습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 “미안하구나…… 너희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난 내 생각대로만 처리 해왔어…… 너희들이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헤아리지도 못 하고…… 미안하구나……!” 노움 할배는 거의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 담긴 노 움 할배의 눈물은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에게 강한 감정의 파장을 일으켰고, 운디네시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사라만다는 비록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도 눈물 비슷한 것이 고여 있다는 것은 감으로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왜 진작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저희들 교육비 때문에 땅을 파시다니…… 저희는 이대로가 좋아요……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아 빠, 엄마가 열심히 일군 이 땅을…… 팔지 말아요……” 운디네시스는 마침내 눈물을 흘렸다. 노움 할배는 그저 머리를 수그린 채 연신‘미안하다’를 연발했고 사라만다는 고개를 돌린 채 딴청을 피우고 있 었다. 휴…… 이제 이걸로 가족간의 분쟁은 해결된 건가? 그냥 이렇게 서로 마음 을 털어놓으면 될 걸 싸우고 있었다니…… 어쨌든 이제부터는 편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 │ ▶ 번 호 : 0/8093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08일 23:31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16 게 시 일 :00/05/08 06:53:02 수 정 일 : 크 기 :6.6K 조회횟수 :225 <제 15 장> 2학기 시작 깡패들 전멸 사건이 발생하고 사라만다네 집이 평화를 되찾은 지 보름이 흘 렀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제 내가 오죠룬이 있는 세오르시(市)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다. “오늘 오후에 교장 선생님이 오신다고 했지?” 마법 실험 도중 약간의 쉬는 시간이 생겼을 때 잭오랜턴이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연구실에 비치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 대답했다. “어. 어제 전화로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고 그러셨거든.” “휴…… 아쉽다…… 그 동안 정도 많이 들었는데…….” 잭오랜턴은 덩치에 안 어울리게 눈물을 글썽였다. 아니, 잭오랜턴은 키가 작고 뚱뚱하기 때문에 덩치가 크지는 않아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다. “정이 들긴 뭐가 들어? 저 녀석의 상판만 보면 정나미가 떨어져.” 그 말을 한 건 당연히 사라만다였다. 또한 그런 사라만다의 말을 듣고 가만 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이제 네 그 띠꺼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기분이 좋다.” “왜 또 싸우고 그래요? 이제 서로 사이좋게 지낼 때도 됐잖아요?” 나와 사라만다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노려보자 운디네시스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때 잭오랜턴이 우리를 걱정하는 운디네시스에게 말했다. “쟤들이 저렇게 싸우는 건 서로 사이가 좋다는 증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흘…… 과연 이게 사이가 좋은 걸까? 이미 사람을 여럿 죽인 우리들인데 여 차하면 칼 날아간다고∼ “류드나르씨는 그럼 오죠룬으로 돌아가서 마법 공부 하시겠네요?” 우리들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실피르디아가 나에게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교장 선생님은 나한테 마법 공부만 시킬려고 그러니까.” “훗, 교장 선생님이 류드나르씨를 굉장히 아끼시나 보네요.” 교장 할배가 날 아끼는 게 아니지…… 날 이용해 먹으려고 그러는 거라구… …. “자, 이제 실험 시작합니다!” 연구원인 피오리드가 쉬고 있는 우리들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우리는 자리 에서 일어나 연구실 중앙으로 가 섰다. 우리가 실험할 준비를 끝내자 피오리 드가 이번에 할 실험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류드나르가 정확히 3써클의 바리어를 치고, 사라만다가 역시 3써클 의 카파 하사로를 5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류드나르에게 날립니다. 그래서 바 리어에 맞고 튕겨져 나가는 카파 하사로의 반사 각도와 튕겨져 나간 카파 하 사로가 소멸할 때까지의 시간, 그리고 거리를 측정할 겁니다. 준비해주세요.” “예.” 나와 사라만다는 연구실 중앙에 남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옆으로 비켜섰다. 나와 사라만다가 미리 5미터 떨어진 거리를 표시해 놓은 자리에 가서 서자 피오리드는 만분의 일초 단위로 찍히는 포토그래피를 준비했다. 카파 하사로 가 바리어에 맞고 튕겨져 나가는 각도와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거리를 포토그래피로 분석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방어지막(防禦之膜) 단로반격(斷路反擊) 군력무한(君力無限) 극강방마(極 强防魔).” 3써클의 바리어를 치기 위해 난 방어주문을 외웠다. 현재 내가 회전시키고 있는 마나는 모두 6써클. 그 깡패들 사건 때문에 경찰서를 왔다갔다하느라 마나 회전 리듬을 잃어서 7써클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꼭 그 이유 때문에 7써클을 이룩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저번에 산 마법서에서 경험적으로 6써클 이상의 마나를 회전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고 써져 있 다. 즉, 나 스스로도 7써클을 회전시키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책에 마(魔)의 6써클이라 써져 있겠는가. 마법서에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6은 완전수이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완전수는 어떤 숫자에서 자신을 제외한 약수들의 합이 자기 자신이 되는 수를 말하는데, 6의 약수는 1, 2, 3이므로 다 더하면 본래 자신인 6이 되어 6은 완전수인 것이다. 일일이 다 구해보면 알겠지만 6 이외의 수는 완전수가 아니다. 또한 마법사의 몸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는 마나의 이면각, 즉 한 써클의 마나를 평면인 원으로 보면 그 원과 원 사이의 각도는 6써클일 때 60도가 된 다. 60도는 정삼각형의 내각이므로 평면으로 본 그 마나 원과 마나 원의 끝 을 서로 연결하면 정확히 정삼각형을 이룬다. 그렇게 정삼각형을 이루는 마 나는 너무나 안정하기 때문에 60도 이하의 각도로 마나를 회전시켜야 하는 6 써클 이상의 써클수는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6이 완전수 때문이든 6써클의 마나 원 사이의 각도가 60도이기 때문이든 6 써클 이상을 회전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 6써클 이상을 모으려고 하면 마나 끼리의 반발력 때문에 회전시키려던 마나가 튕겨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 었다. 그래서 6써클을 이룩한 뒤 보름이나 지났지만 아직 6써클에 머물고 있 는 상태였다. “난 준비됐어.” 완벽하게 3써클의 바리어를 친 나는 사라만다에게 말했고 사라만다는 즉각 3써클에 해당하는 카파 하사로를 형성했다. 3써클이나 되는 카파 하사로였기 때문에 바리어가 잘 견딜지 상당히 걱정되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카파 하사로를 튕겨내기로 마음먹었다. “준비 끝.” 길이가 1미터나 되는 카파 하사로를 만들어낸 사라만다는 피오리드에게 준 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피오리드는 즉시 포토그래피를 작동시키고 나서 사라 만다에게 소리쳤다. “시작!” 피잉―! 피오리드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라만다는 날 죽여버리려는 듯 최대한 강하게 카파 하사로를 날렸다. 나와 사라만다의 거리가 5미터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에 카파 하사로는 1초도 훨씬 안 되어 내 바리어와 충돌했다. 콰앙! “큭!” 강한 충격이 바리어를 통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자칫 잘못했으면 바리 어가 박살나버렸을 정도로 카파 하사로의 위력은 강했다. 확실히 이렇게 목 숨을 걸고 실험을 하니 어른들이 실험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건 당연한 일이 었다. “괜찮아요?” 운디네시스와 실피르디아가 신음을 질렀던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물었다. 물론 아주 괜찮은 건 아니었지만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둘에게 일부러 웃어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흥. 내 카파 하사로를 막아내다니 제법이군.” 내가 마치 자기 적인 듯 사라만다는 팔짱끼고 서서 날 띠꺼운 표정으로 쳐 다보았다. 그래서 난 사라만다가 똑똑히 보라고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날 이기려면 100년은 더 수련하고 와라.”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난 여러 가지 마법을 쓰고 넌 쓸 수 있는 게 화염계열 뿐이니까 승부는 이 미 난 거 아니냐?” “하지만 스피드 쪽에선 내가 빠르다고. 네가 마법을 구동시키는 사이 내가 카파 하사로로 찌르거나 카파 보로 지져버리면 넌 끝이야.” 그렇게 나와 사라만다는 또다시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말리기도 귀찮다는 듯 운디네시스는 아예 우리를 포기해버렸다. 그때 잭오랜턴이 열심 히 데이터를 뽑고 있는 피오리드에게 말을 걸었다. “정확히 측정됐나요? 제가 보기에는 카파 하사로가 그냥 터져 버린 것 같던 데…….”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니까 만분의 일초 단위로 찍히는 포토그래피가 필 요한 거라고.” 피오리드는 당연한 듯 말했고 잭오랜턴은‘그렇구나’란 표정을 지었다. 데 이터를 다 뽑은 피오리드는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 밀었다. “그 동안 고마웠다, 류드나르.” “아닙니다.” 난 피오리드와 악수를 했다. 사실 이 연구소에는 주로 특법사밖에 없었기 때문에 실험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그때 보통 마법사인 내가 왔으니 그 동안 못한 실험을 나한테 몰아서 시켜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고생한 사람은 나였지만 막상 이제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감도 들었다. ┌───────────────────────────────────┐ │ ▶ 번 호 : 0/812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10일 01:39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사작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26 게 시 일 :00/05/09 22:05:13 수 정 일 : 크 기 :8.0K 조회횟수 :102 “언제 다시 만날 기회가 올까요?” 실피르디아가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 실피르디아의 얼 굴을 보니 확 끌어안고 싶었지만 치한으로 몰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 에 그냥 실없이 웃었다. “글쎄…… 교장 선생님이 다시 이리로 날 보내면 또 만날 수 있겠지.” “나원, 교장이 하는 데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냐 넌?” 내 말을 듣고 사라만다가 말꼬투리를 잡았고 난 바로 반박을 했다. “당연하지! 교장 선생님 없으면 난 갈곳도 없는데 교장 선생님 말을 들어야 지 어떡하냐?” “줏대 없는 녀석.” “너도 내 입장돼 봐. 아마 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할걸?” “흥. 내가 넌 줄 아냐?” 그렇게 우리는 또 말다툼을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노움 할배와 사라만다의 사이가 좋아진 후에는 나와 사라만다가 자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말 싸움을 걸어오는 쪽은 사라만다였다. 만약 내가 대답을 하지 않고 사라만다 의 말을 무시한다면 말싸움이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냥 말싸움을 하고 싶어서 사라만다와 이렇게 불필요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스륵- 그때 연구실 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두 명의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이었다. 오늘 오후에 온다던 교장 할배가 아직 오후 가 되지 않은 지금에 도착해서 조금 의외였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보는 얼굴 이라 조금 반가웠다. “그 동안 잘들 있었느냐?” 교장 할배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에게 물었고 나와 사라만다를 제 외한 나머지 세 명은 거의 합창하듯 대답했다. “네.” “그거 다행이구나. 근데 류드와 사라만다는 잘 있지 못한 모양이구나.” 흘…… 당연히 잘 있지 못했지…… 처음에는 노움 할배와 사라만다가 싸우 는 통에 마음 편하지 않았고…… 보름 전에는 깡패들 때문에 죽도록 고생했 고…… 지금은 사라만다와 열심히 말다툼을 하고 있으니 잘 지냈을 리가 있 겠어? “자, 류드. 아쉽겠지만 이제 가야 한다. 갈 준비를 하거라.” 나원…… 갈 준비? 난 언제든지 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아, 사라만다네 집 에 있는 내 소지품하고 라이 녀석을 가져가야지! “제껀 모두 사라만다네 집에 있어요.” “그러냐? 그럼 가자.” 내 말을 듣자마자 교장 할배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했다. 그때 운디네 시스가 교장 할배를 불렀다. “교장 선생님! 저희 집에 가실 거면 저희도 함께 가겠어요.” 운디네시스의 말에 실피르디아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연구소에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보다 사라만다네 집에서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흠…… 알았다. 근데 내 차로는 너희들을 모두 태워줄 수가 없어.” 교장 할배는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교장 할배에게 하나 의 대안을 제시했다. “저희들은 집까지 걸어갈 테니까 교장 선생님은 노움 할아버지에게 먼저 가 서 오늘 떠난다고 말하세요.” “아, 그렇구나. 그럼 나 먼저 갈 테니까 너희들은 천천히 와도 된다. 시간 은 아직 충분하니까 말이다.” “예.” 교장 할배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준 뒤 대머리 노인과 함께 연구실 밖 으로 나갔다. 난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잭오랜턴, 실피르디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자.” 교장 할배와 대머리 노인이 편하게 자동차로 갈 동안 우리는 30분 거리를 걸어갔다. 하지만 서로 얘기를 하면서 걸었기 때문에 다리도 아프지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 30분 거리를 항상 혼 자 걸었던 것에 비해 훨씬 나았다. “아…… 벌써 다 왔네요…….” 사라만다네 집 앞에 도착하자 실피르디아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어쨌든 우 리는 대문 옆에 주차되어 있는 교장 할배의 차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에 앉아 서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교장 할배와 노움 할배, 그리고 대 머리 노인이 막 들어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너라.” 난 가벼운 목례로 노인들의 인사를 대신한 후 내 짐을 정리하기 위해 사라 만다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 짐이라고 해봤자 교장 할배가 가져온 옷과 내가 전에 샀던 책들뿐이었다. 그래서 짐 정리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 다. “참, 운디네. 라이 좀 깨워 줘.” 책과 옷을 들고 나오다가 라이는 운디네시스 방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운디 네시스에게 부탁했다. 운디네시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에 들어가 라 이를 안고 나왔다. 아무렇지도 않게 라이를 안고 나오는 지금의 운디네시스 의 모습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라이가 깡 패들을 모두 죽여버린 후, 그 광경을 봤던 운디네시스는 라이를 돌보는 것을 상당히 꺼려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후로 라이가 온순하게 지내서 운디 네시스는 이제 라이에 대한 공포를 거의 다 떨쳐버린 상태였다. “갈 준비는 다 되었느냐?” 내가 책과 옷을 들고 나오자 교장 할배가 바로 나에게 물었다. 내가 막 교 장 할배의 말에 대답하려고 했을 때 실피르디아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도착하자마자 가는 거예요?” “허허, 계속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서 그렇단다. 이해해주거라.”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면서 천천히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난 책과 옷 을 들고 교장 할배의 뒤를 쫓아갔다. 모두들 나와 교장 할배가 금방 가는 것 에 아쉬워할 때 교장 할배는 고개를 돌려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 오랜턴과 실피르디아에게 말했다. “언제라도 오죠룬에 오고 싶으면 소장에게 말해서 나에게 연락하거라. 너희 들은 항상 환영이다. 허허.” “왕왕!” 어느새 운디네시스의 품에서 빠져 나온 라이도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말하려 는 듯 힘차게 짖었다. 나와 라이가 뒷좌석에 타자 교장 할배는 운전석에 앉 아 시동을 걸었고, 자동차는 다시 오죠룬 마법학교로 힘찬 출발을 했다. 부우웅― 자동차는 쾌속한 속력으로 달렸다. 여전히 교장 할배는 과속으로 경찰에 걸 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는 서로 아무 얘기도 나누지 않았다. “류드. 한 달 동안의 생활이 즐거웠느냐?” 차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자 열심히 차 속력을 올리는 것에 주력하던 교장 할 배가 차 속도를 낮추더니 부드러운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한 달 동안의 생 활이 그렇게 즐거웠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지낼 만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 며 대답했다. “괜찮았어요.” “그래? 마나는 몇 써클까지 회전시켰느냐?” 흘…… 내가 왜 그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지? “6써클이요.” 왠지 교장 할배가 날 철저히 알아보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대답이 꽤 퉁명스러워졌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런 내 말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 다. “벌써 6써클? 호…… 정말 빠르구나. 아직 6개월이 채 못됐을 텐데.” 음…… 그랬나? 그래도 여기서 마나 회전시키는 속도는 마나를 축적시키는 것보다 어려워서 힘들다구…… 환타지 세계에서는 마나 축적 한계가 8클래스 였지만 여기는 10써클 이상도 가능하다고 그러잖아…… 그러니까 아직 내가 회전시켜야 할 마나 써클수는 많이 남았다고. 그런데도 겨우 6써클이라니… … 크으…… 마나 회전에 회의를 느낀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오죠룬에 오고 싶다고 했느냐?” 얼라리? 그 아이들이라니? 사라만다 등을 말하는 건가? “사라만다하고 운디네시스…… 걔네들이요?” “그래. 녀석들이 오죠룬에 오고 싶다고 너에게 말한 적이 있느냐?” 흘…… 날 이곳으로 보낸 교장 할배의 목적 중의 하나가 사라만다 등이 오 죠룬에 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라 나에게 물어보는군. 뭐 녀석들이 그렇게 말 한 적이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해야겠지. “있었어요.” “그래? 그거 잘됐구나.” 비록 뒷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백미러를 통해 교장 할배가 얍삽한 미소를 짓 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교장 할배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여름 방학이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차는 시원스럽게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솨아아- 열어놓은 창문 틈을 통해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시원한 바람도 아니고 따뜻한 바람이었다. 고속도로가 태양에 의해 가열되어 뜨거운 기운을 발산하 고 있었기 때문에 공기조차 따뜻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스륵 스륵- 바람이 따뜻해서 더 덥게 느껴져서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신나게 운전 하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말했다. “에어콘 좀 틀어주세요.” “에어콘? 별로 덥지 않은데?” “전 더워요…….” “사내 녀석이 이깟 더위를 못 참느냐? 정 더우면 얼음 마법으로 얼음을 만 들어서 식히거라.” 교장 할배는 에어콘 틀 때 사용되는 배터리나 그런 것들을 아끼려는 듯 말 을 돌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교장 할배의 말대로 얼음 마법을 사용해 야 했다. “…….” 그렇게 큰 얼음은 필요 없었기 때문에 한 손에 쥐어질 정도의 얼음을 만들 생각이었다. 우선 한 손을 들어 얼음을 받아낼 준비를 하고, 다음에는 약간 의 정신력을 사용하여 회전하는 마나의 속도를 변화시켰다. 마나의 속도가 변해서 방출된 마나 파장은 내 정신력의 지시대로 내 손 위의 공기를 급격히 단열 팽창시켰고, 결국 손바닥만한 얼음 결정이 내 손에 툭하고 떨어졌다. 차 안의 공기는 더웠지만 얼음은 얼음인지라 시원했다. ┌───────────────────────────────────┐ │ ▶ 번 호 : 0/8121 ▶ 등록자 : THEBUR │ │ ▶ 등록일 : 2000년 05월 10일 01:40 │ │ ▶ 제 목 : [펌/사이케델리아] 15장: 2학기 시작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27 게 시 일 :00/05/09 22:05:36 수 정 일 : 크 기 :7.7K 조회횟수 :102 “웃, 차거……!” 만들어진 얼음을 얼굴과 손, 그리고 목 부위에 비비자 기분이 날아갈 듯했 다. 그때 내 옆에서 더위 때문에 축 늘어져 있던 라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 며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난 라이에게 주먹만한 얼음을 새로 만들어 던지듯 주었다. 그 주먹만한 얼음을 받은 라이가 혀로 얼음을 할짝할짝 핥고 있을 때, 난 최대한 사악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라이…… 그 얼음에는 먼지하고 불순물이 잔뜩 섞여 있어…… 그걸 핥다니 …… 그렇게 일찍 죽고 싶었니……?” “…….”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내 표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라 이 녀석은 행동을 멈추었다. 그리고 날 쳐다보며 눈에서 줄기줄기 살기를 내 뿜기 시작했다. 잘못하면 라이에게 당장 물릴 것 같아서 난 급히 말을 이었 다. “그래도 얼음을 만들어 줬으니까 됐잖아? 내가 없었으면 넌 더위 먹고 죽을 걸?” “…….” 다행히 라이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 얼굴을 얼음에 비비기 시작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백미러로 모두 보고 있었는지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입 을 열었다. “라이가 류드한테 꼼짝 못하는구나!” 흘…… 할아범…… 실상은 그 반대라구…… 지금 내가 라이한테 날 물지 말 라고 구차한 변명 늘어놨던 거 못 들었어? “류드…… 너도 알고 있겠지만 라이는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다. 뭔가 엄청 난 힘을 숨기고 있는 녀석이야.” “…….” “처음에 내가 라이를 만난 곳은 길거리에서였다. 굶어서 거의 죽어가는 라 이가 불쌍해서 데려다 기르게 되었지. 그런데 네가 아레드라콘과 싸울 때에 난 라이의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레? 아레드라콘과 싸울 때……? “라이의 몸에서 갑자기 붉은 빛이 나더니 순식간에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당시에 내가 라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서 공간 이동이 되고 말 았지. 그런데 도착한 곳은 아레드라콘이 날뛰고 있는 곳이더구나. 그때 얼마 나 놀랬는지 아느냐?” 흘…… 놀랬겠지…… 아레드라콘이 나와 샤느 선생, 그리고 테리야크를 죽 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으니까. 으윽…… 그때 아레드라콘에게 철저하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열 받는다……! “웨이사 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아레드라콘이 너와 샤느 선생에게 불덩이를 날리더구나. 그때만 해도 난 어리벙벙했기 때문에 손을 쓸 수 없었다. 불덩 이가 거의 너와 샤느 선생에게 도달하려는 순간에 내 품에 있던 라이가 사라 지면서 어느새 불덩이가 날아오는 위치, 그러니까 공중에 떠 있었단다. 마치 널 구하려는 것처럼 라이는 온몸으로 불덩이를 막아냈지. 그리고 쓰러져 버 렸단다.” 그랬나……? 난 이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는데……. “그 후에는 내가 나서서 아레드라콘을 처치했지. 만약 라이가 없었으면 너 와 샤느 선생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을 거다.” 비비적 비비적- 나와 교장 할배가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이는 열심 히 얼음에다 자기 몸을 문지르고 있었다. 교장 할배의 그 얘기를 들으니 라 이가 깡패 20명을 죽여버렸다는 운디네시스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란 생각 이 들었다. 아니, 이미 직감적으로는 라이가 확실히 그렇게 했다는 것을 느 끼고 있었다. 단지 이성적으로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억지로 그 직 감을 묶어두고 있을 뿐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사라만다네 가족이 깡패들에게 협박을 당했다던데?” 교장 할배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고 나도 라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 이 없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예.” “왜 깡패들이 협박을 가한 거냐?” 흘…… 최고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교장 할배가 그런 걸 모르다니……! “사라만다네 가족이 가지고 있던 땅을 팔라고 협박했어요.” “그러냐? 그 깡패들은 애드마크의 졸개들이겠지?” 얼렐레? 그 얘기는 또 어디서 주워들었지? “예.” “음…… 역시 애드마크가 시골의 땅을 사들여서 무단으로 쓰레기 매립장을 만들려 했다는 게 사실이었군.” 허걱! 모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확하게 알고 있잖아? 우…… 역시 교장 할 배를 무시하면 안되겠어……! “그런데 그 깡패들이 하룻밤 사이에 몰살을 당했다던데?” 허거거걱!!! “아, 예…….” “경찰에서는 고위 마법사의 짓이란 결론을 내렸다지?” “예…….” 으…… 도대체 말하려고 하는 게 뭐야, 이 할아범아!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란 말이다!!! “하지만 동물을 미치게 하는 마법인 크로라사를 사용할만한 마법사는 이 세 상에 흔치 않아. 그런데도 어떻게 경찰은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 그 소리는…… 그렇다면…… 설마……? “누가 경찰에다 압력을 넣은 게 아닐까?” “…….” 역시…… 이번에도 교장 할배의 입김이 작용했었어…… 하긴, 그러니까 살 인 현장에 있었던 우리를 순순히 풀어줬던 거겠지…… 제길…… 또 교장 할 배의 신세를 진 건가? “교장 선생님의 권력은 정말 막강한가 보네요.” 계속 범법 행위를 저지르는 교장 할배를 난 일부러 비꼬았다. 그러나 그런 나 자신조차 범법자였기 때문에 속은 편하지 않았다. 교장 할배도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다시 화제를 바꾸었다. “음…… 여기서 지내는 동안 여자 친구는 많이 만들었느냐?” “…….” 그건 또 무슨 소리여…… 왜 자꾸 쓸데없는 질문만 하는 거냐고……! “쯧쯧, 한 명도 만들지 못한 모양이구나. 내가 너만 했을 때는 여자들을 줄 줄이 매달고 다녔다. 남자라면 그 정도의 능력은 있어야지.” “…….” 그걸 지금 자랑이라고 하는 거냐? 그러고 보니 저번에 노움 할배가 교장 할 배보고 여자들을 수백 명 따먹었다고 한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 지극히 조심해야 할 노인네야……. “저기요…… 교장 선생님은 결혼하셨어요?” 계속 교장 할배만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 불공평해서 이번엔 내가 교장 할배 에게 질문했다. 내 질문이 교장 할배의 아픈 곳을 찌른 듯 교장 할배는 어색 하게 웃었다. “허허…… 네가 보기엔 내가 결혼했을 것 같으냐?” “에…… 안 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내 대답이 맞았는지 교장 할배는 조금 뜨끔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교 장 할배처럼 확실한 정보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찍어서 맞춘 것뿐이었다. “느낌상 그래요.” “허…… 역시 류드는 예리하구나.” 흘…… 이게 예리한 거라고? 찍기 실력이 탁월한 거지……. “근데 왜 결혼을 안 하셨어요?” 이제는 완전히 내가 대화를 주도하여 교장 할배에게 마구 질문을 퍼부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교장 할배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 테지만 굳이 대답을 회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해서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 이 싫었거든.” 얼…… 전형적인 바람둥이 기질이다……! “그리고…… 결혼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나에게는 있었으니까.” “중요한 일이요?” 내가 또 질문하지 않으면 교장 할배가 그 중요한 일이란 것을 말하지 않으 려는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난 즉시 질문을 날렸다. 처음엔 교장 할배는 운 전에 집중하는 척 하면서 대답을 피하려고 했지만 내가 계속 노려보자 결국 엔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일이란 것도 간단하다. 마법 수련을 하는 것이었지. 당시의 나에겐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단다. 마법과 함께 젊음을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나원…… 마법과 함께 젊음을 보냈다는 사람이 여자를 수백 명 따먹어? 근 데 정말로 그 정도의 여자들을 건드렸다는 말이 사실인가? 정말 헷갈리네? 이런 걸 물어봤다간 교장 할배가 날 볶아버리려고 하겠지? 크…… 맞을까봐 질문을 못하는 불쌍한 신세……. “왜 그렇게 마법에 매달리세요? 젊음을 마법에 투자할 만큼 마법이 가치있 나요?” 가장 근원적인 질문, 그러니까 교장 할배가 나에게 마법 공부를 계속 강요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한 발판으로 그 질문을 먼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 려 나와 교장 할배의 문답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버리고 말았다. “나에게 있어 마법은 중요하단다. 지금 그 질문을 함으로써 내가 왜 마법 연구할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는지, 그리고 왜 마법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내려는 생각은 좋았다만, 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내가 전 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해 놓았느냐?” “……!” 실수다…… 저번에 교장 할배가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놓으라고 했는데…… 물론 사라만다네 집에 있는 동안 생각해두긴 했지만…… 막상 말 하라고 하면 횡설수설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허허, 지금 물어볼 것은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말거라.” 교장 할배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겠다라는 뜻 으로 차의 속력을 올렸다. 그래서 나도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점점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날씨는 상당히 더웠지만 난 그다지 더위를 느끼지 못했다. 교장 할배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 nr 8116-8159 [번 호] 8116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0일 21:51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64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33 게 시 일 :00/05/10 14:06:31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153 2220년 8월 23일 금요일 오전 8시. 오죠룬에 들어와 첫 번째로 맞이했던 여 름 방학이 끝났음을 알리는 개학식 아침이었다. 하지만 난 교무실에 교장 할 배와 새로운 담임과 같이 테이블에 앉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쪽은 중등 2학년의 C-3반 담임인‘멜수스’다.” “안녕하세요.” 교장 할배의 말을 듣자마자 난 우선 인사부터 하고 나서 그 다음에 그 멜수 스라는 담임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멜수스는 거의 완벽한 사각의 얼굴형이었 는데 눈썹도 짙어서 굉장히 거칠고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오늘부터 C-3반에 다니게 될 보나이 류드나르네.” “안녕, 류드나르? 만나서 반갑다. 잘 지내보자.” 거칠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멜수스는 꽤나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어쨌 든 겉은 그럭저럭 괜찮게 생겼지만 속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가리나크 선생과 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멜수스 선생, 나중에 내가 류드를 데리고 갈 테니까 다른 일 먼저 보게.” “예. 류드나르, 그럼 잠시 후에 보자.” 교장 할배의 말에 멜수스 선생은 터프한 미소를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 다. 멜수스 선생이 자신의 일을 시작한 것을 확인한 교장 할배가 나에게 물 었다. “어떠냐? 보기에는 험악해 보이지만 부드러운 선생이란다.” “그런 것 같네요.” 난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가리나크 선생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라 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교장 할배는 껄껄 웃다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나에게 말했다. “참, 그리고 류드는 네오니스와 같은 반이다.” 얼라리……? “전혀 모르는 아이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네오니스 와 같은 반이 되면 공부하기가 편해질 거다. 그러니 류드는 열심히 마법 공 부에 힘쓰도록 해라.” 흘…… 나보고 공부하라고 네오니스와 일부러 같은 반에 집어넣어? “근데…… 제가 네오니스네 반에 들어가면 인원이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요?” “응? 아……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너 대신 다른 아이가 인원이 부족한 다 른 반으로 이동했으니까 인원은 똑같단다.” 에엑? 그럼 나 때문에 그 애가 다른 반으로 가야했다는 뜻? “반을 바꾸는 건데 그 학생이 승낙했어요?” “물론이다. 한 학기 등록금을 면제해주겠다고 했더니 당장 승낙하더구나.” “…….” 흘…… 결국 그것도 돈으로 해결했군…… 하여간 교장 할배는 모든 일을 돈 으로 해결한다니까…… 문제는 지금까지 돈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없었다 는 거지만……. “그리고 류드.” “……?” “오늘부터 기숙사를 옮겨야 한다. 네가 묵을 기숙사는 M4관 310호다. 좀 쉽 게 말하자면, 네오니스하고 같은 방을 쓰게 된다는 소리다.” “……!” 네오니스하고 같은 방? 그럼 이번에도……? “네오니스하고 같은 방을 쓰던 학생 하나를 내쫓으셨겠네요?” 난 조금 비꼬아 물었고 교장 할배는 그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했 다. “내쫓은 게 아니라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한 거다. 방을 옮기는 대가로 소정 의 보상금을 줬더니 상당히 좋아하더구나.” 크…… 또 돈으로 해결했구만…… 정말로 돈이 남아도나 보군…… 부러워… …. “자, 류드. 어서 가서 방 정리를 해라. 지금 바로 방을 옮겨야하니까.” 으허헉? 지금 당장?! “예…….” 난 힘없이 대답하고 나서 천천히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그때 내 뒤에서 교장 할배가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8시 50분까지 교무실로 오거라! 열쇠는 네오니스가 가지고 있을 테니까 달 라고 하고!” “예…….” 이런…… 내가 꼭 저 교장 할배의 손자라도 된 것 같잖아…… 으…… 기분 나뻐라…… 어떻게 해서라도 저 교장 할배의 마수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데… … 도대체 여기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니 가출할 수도 없고…… 제길……. 터벅터벅-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서 난 세상 포기한 사람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그러 다가 아이들이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직 난 아침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우…… 교장 할배가 8시까지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밥 먹지도 못하고 왔는 데…… 지금 방 옮기고 나면 바로 수업 들어가야 하는 시간…… 이런…… 날 굶기려 하다니……! 타타탁- 시간이 촉박함을 느낀 나는 급히 내 방으로 뛰어갔다. 빨리 방을 옮기고 나 서 밥 먹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짐을 옮기려다 보니 밥 먹을 시 간이 없어져 버렸다. 나 혼자서 내가 쓰던 모든 물품을 M3관 520호에서 M4관 310호까지 운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헉헉헉-” 도대체 내가 이 무슨 쪽팔리는 짓을 하는 거야…… 다른 아이들은 다 밥 먹 으러 식당가고 있는데 나 혼자 짐 옮기는 짓거리를 해야 하다니…… 빌어먹 을 교장 할아범! 나중에 이 쪽팔림을 그대로 돌려주겠어! 똑똑- 대강의 물품을 가방 속에 꾸역꾸역 밀어넣고 나서 M4관 310호까지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310호에 기숙하는 아이들은 이미 밥을 다 먹고 온 상 태였는지 한 아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나보다 키가 조금 작고 얼굴도 평범한 보라색 머리의 소년이었다. “누구세요?” 보라색 머리의 소년이 빵빵한 가방을 매고 온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소 년에게 내 소개를 했다. “오늘부터 이 방에서 같이 지내게 될 류드나르인데요…….” “아!” 교장 할배로부터 내가 온다는 말을 들었는지 보라색 머리의 소년은 탄성을 내지르며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야, 네오! 기숙생이 왔다!” “그래? 누군데?” 보라색 머리 소년의 외침 소리에 방 안에서 네오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네오니스는 쿵쾅거리며 문 앞에 다가와 날 쳐다보았다. “역시 류드였구나!” 얼라리…… 그렇다면 교장 할배가 같이 지내게 될 새로운 룸메이트가 나라 고 네오니스에게 말해주지 않은 거야? 이거 심각한걸? “어서 들어와!” 네오니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날 끌고 들어갔다. 내가 들고 온 짐들을 바닥 에 내려놓자 네오니스는 나에게 보라색 머리의 소년을 소개시켰다. “얜 나하고 같은 반인‘리뮤런 크리스로트’야. 그냥 크리스라고 불러. 크 리스, 그리고 얘는 보나이 류드나르라고 중등 1학년에서 전과목 만점을 두 번 연속으로 받은 천재야. 류드라고 부르면 되고.” 네오니스가 대충 서로에 대해 소개시켜주고 나서 나와 크리스로트는 악수를 나누었다. “안녕, 류드. 천재를 만나서 영광이다.” “…… 아, 안녕…….” 우…… 당황스러워라…… 왜 자꾸 천재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은 꼭‘다음 시험에도 만점을 받을 수 있나 없나 두고 보겠다’라는 것 같잖아! 엄청난 부담감이 가슴을 짓누른단 말이다……! “그럼 오늘부터 2학년 수업을 받는 거야?” 나와 크리스로트가 대강 인사를 나누자 네오니스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당장 짐을 풀고 나서 밥 먹으러 식당에 뛰어가고 싶었지만, 눈을 빛내면 서 질문하는 네오니스의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질문에 대답했다. “어. 네오하고 같은 반이래.” “역시! 어쨌든 이제 방을 같이 쓰게 되니까 서로 잘 지내보자. 어라? 근데 라이는 어딨냐?” 얼∼ 라이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네오니스는 라이 녀석을 본지 꽤 오래되서 잊어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엄청난 기억력이야∼ “라이? 라이가 누군데?” 그때 크리스토르가 나와 네오니스 사이에 끼어들어 물었다. 아무래도 크리 스토르는 교장 할배의 강아지였던 라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라이 몰라? 예전에 교장 선생님이 데리고 다녔던 강아지 말이야.” “아∼ 그 조그만 강아지? 걔 이름이 라이였냐?” 네오니스의 말을 들은 크리스토르는 라이의 이름만 몰랐을 뿐 생김새는 알 고 있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네오니스의 질 문에 대답했다. “라이는 지금 내가 썼던 방에서 자고 있어.” “그래? 안 깨울거야?” “함부로 깨웠다간 물려.” “아 그렇지. 라이 녀석 꽤 살벌하니까.” 네오니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수긍했다. 이제 어느 정도 할 얘기가 끝난 것 같아서 난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에게 말했다. “좀더 가져와야 할 짐이 있어서 가볼게.” “그래? 그럼 같이 가자!” 내 말을 듣자마자 네오니스가 잘됐다는 듯 소리쳤다. 크리스토르도 밥 먹고 나서 할 일이 없었는지 내 짐 정리를 도와주기로 했다. 물론 네오니스와 크 리스토르의 도움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황이 그렇게 되어 서 세 명이 같이 M3관 520호까지 같이 갔다. 덜컥- 520호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짐을 옮기려고 문을 잠 그지 않고 불도 켜놓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가서 남아 있는 짐을 꾸렸다. 사실, 남아 있는 짐은 어제 받은 2학년 교과서뿐이었지만 권수가 만만치 않 았기 때문에 나 혼자 한번에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번 호] 8117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0일 21:53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64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5- ..(1) 나눠 올라갑니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34 게 시 일 :00/05/10 14:06:55 수 정 일 : 크 기 :12.3K 조회횟수 :149 “와, 정말 잘 잔다!”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완전히 대(大)자로 뻗어 배를 드러내놓고 자고 있는 라이를 본 크리스토르가 감탄을 터트렸다. 네오니스 역시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라이가 저렇게 마음놓고 자는 건 처음 본다!” 얼레? 그랬나? 그렇다면…… 라이 녀석에게 있어서 나는 아주 만만한 존재 라는 뜻? “자, 옮길 건 이 책들뿐이야?” 감탄하면서 라이를 쳐다보던 네오니스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교과서를 보고 나에게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책을 어떻게 배분할까 머리를 굴리던 네오니스가 그냥 대충 세 명에게 똑같은 분량으로 책을 가르고는 말 했다. “아무거나 집어들어라!” “음…… 그럼 난 이거!” 크리스토르가 제일 먼저 한 뭉텅이의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네오니 스가 그 다음으로 한 뭉텅이의 교과서를 집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교과 서 뭉텅이는 내 몫이 되었다. 하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내가 옮길 교과서 양 이 적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제일 무거워 보이는 교과서 뭉텅이를 든 사람은 네오니스였던 것이다. 헐헐, 내가 약해 보인다고 제일 가벼운 교과서 뭉텅이를 주는구만. 눈물나 게 고마운걸? 하지만 내가 옮길 건 또 있으니 결과적으론 내가 제일 무거운 짐을 옮기게 되는구나……. 탁- 가방에다 내 몫의 교과서를 집어넣고 나서 난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라이의 뒷다리를 잡고 라이를 확 들어올렸다. 그것을 본 네오니스와 크리스 토르가 기겁했다. “뭐하는 거야, 류드!” “라이가 화내면 어쩌려고!”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라이가 당장이라도 깨어나서 날 확 물어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일부러 라이의 뒷다리만 잡 고 라이를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었다. 그러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얼굴 은 완전히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류, 류드……!” 대롱대롱- 뒷다리만 잡고 허공에서 흔들자 라이는 마치 진자처럼 대롱대롱 흔들렸다. 그러나 결코 깨어나지 않았다. 만약 라이가 이 정도 흔들림에 깨어났다면 예 전에 교장 할배 앞에서 잠든 라이를 옮길 때 라이가 날 공격했을 것이고 다 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자.” 난 여전히 라이의 뒷다리만 잡고 방을 나섰다.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라 이가 어느 순간에 깨어나 자신들을 물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여 나하고 조금 떨어져서 따라왔다. 어쨌든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도움으로 짐 운반을 비 롯하여 짐 정리까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 허걱! 벌써 8시 45분?! 이런…… 밥 먹을 시간이 없잖아? 우어억……! “난 교무실에 가야 돼. 교장 선생님이 오라고 하셨거든.” 짐 정리를 모두 끝낸 후에 난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네오니스가 실실 웃었다. “어차피 교실에서 또 만날 테니까 그때 보자.” “어. 그럼.” 둘에게 대강 인사를 하고 나오다가 네오니스에게서 열쇠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다시 방에 들어가 네오니스에게 말했다. “네오! 내 열쇠!” “아! 그렇지!” 그제서야 열쇠 생각이 난 듯 네오니스는 급히 자기 책상 서랍에서 열쇠 하 나를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받은 열쇠를 잘 갈무리한 뒤, 난 다시 둘에 게 인사를 간단히 하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거의 조회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기 교실로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었다. 왠지 나 때 문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잘못해서 지각할 것 같아 걱정되었다. 끼이-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조회 준비를 하려고 준비하는 각 반 담 임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1학기까지만 해도 내 담임 이었던 가리나크 선생의 모습도 보였다. 예의상으로 보면 당연히 가리나크 선생에게 다가가 인사를 해야하겠지만, 가리나크 선생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난 그렇게 할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그래서 가리나크 선생의 눈을 피 해 교무실 안쪽에 서서 차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다가갔다. “교장 선생님.” “오, 류드구나. 짐 정리는 다 끝낸 거냐?” “예.” 흘…… 만약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시간에 여기 못 왔을걸? 어떻게 도와줄 사람을 하나도 보내지 않냐고…… 잠깐…… 바꿔 서 생각해보면…… 교장 할배는 이미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도와줄 것을 예측하고 있었던 건가? “오늘은 개학식이라 일찍 끝날 거다. 개학식이 끝나면 바로 교장실로 오거 라. 저번에 너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을 거니까.” “……!” 허걱! 오늘 물어본다고라? 개학식에 그런 이상한 질문을 할 생각을 하다니 …… 그럼 개학식을 하는 동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죽어라고 생각해야 되 잖아? 이런……! “멜수스 선생, 류드를 부탁하네.” “걱정마십시오, 교장 선생님.” 교장 할배의 부름에 멜수스 선생은 좋게 말하면 터프해 보이는 미소를, 직 설적으로 말하면 조금 무섭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 고는 거의 조폭을 연상하게 만들 정도의 거칠고 강해보이는 손을 내 어깨에 올려놓고 날 끌고 갔다. 흘…… 말투는 확실히 부드럽게 느껴지는데 생김새나 행동 자체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군. 엄청난 불균형이야……. “류드나르, 네 출석번호는 17번이다. 알았지?” “예…….” 흘…… 17번? 원래는 제일 끝번호가 되야 정상 아닌가? 아, 다른 반으로 이 동한 녀석의 번호를 내가 대신 사용하게 되는가 보군. 정말 이상한 학교다∼ [번 호] 8119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0일 21:55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72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2학기 시작 -5-.....(2) ─────────────────────────────────────── 웅성웅성- C-3반 교실 문 앞에 서자 안에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잘 들렸다. 하지 만 멜수스 선생이 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일시에 입을 다 물었다. 그래서 교실이 상당히 조용해졌다. “자, 오늘은 새로운 친구가 들어왔다.” 멜수스 선생은 아이들에게 편입생이 들어왔음을 알리기 시작했고, 그 사이 난 교실을 아이들을 한 번 훑어보았다. 아니, 사실은 네오니스가 어디 앉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둘러본 것이었다. 그러나 네오니스의 자리를 찾아내기도 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사실에 난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 다. 그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사실이란 바로, - 남녀합반(男女合班)! 그랬다. 비록 운동장 창가 쪽 1, 2분단에는 남학생들이, 복도 쪽 3, 4분단 에는 여학생들이 앉아있긴 했지만 엄연히 남녀합반이었던 것이다. “이름은 보나이 류드나르로……” 멜수스 선생이 내 소개를 하는 동안 난 이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이느라 진 땀을 뺐다. 중등부 1학년은 남녀분반이면서 2학년은 어째서 남녀합반인지 이 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두 류드나르를 잘 대해주기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박수!” 짝짝짝- 멜수스 선생의 말에 따라 아이들은 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 상황에서 뻣뻣하게 서 있다간 애들에게 찍힐 것 같아서 난 가볍게 목인사를 했다. 가 리나크 선생과는 달리 멜수스 선생은 나에게 자기 소개를 하라고 하지 않았 다. 그것만큼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음…… 빈자리가…… 저기 네오니스 옆에 앉아라.” 멜수스 선생은 2분단 4번째 줄에 홀로 앉아있는 네오니스를 가리키며 나에 게 말했다. 그래서 난 멜수스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네오니스의 옆자리 로 갔다. 멜수스 선생이 나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이 미 대다수의 아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서 2학년에 들어왔는 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들의 시선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 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류드, 10분만에 또 만났네?” 내가 2분단 4번째 줄의 왼쪽 자리에 앉아마자 네오니스는 그런 재미없는 말 을 꺼냈다. 네오니스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난 네오니스에 게 새 화제를 제시했다. “크리스는 어디있어?” “크리스? 저기 1분단 2번째 줄 오른쪽에 앉아 있어.” 네오니스의 말대로 그곳에 크리스토르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크리스토르는 멜수스 선생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에 나하고 눈을 마주치지는 않 았다. “오늘은 개학식이다. 내일부터는 다시 지옥의 랠리가 시작되지. 그러니까 개학식 끝나면 오늘만이라도 마음껏 놀아라. 물론 탈선은 안되고∼” “예―!” 아이들은 모두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1교시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지금은 개학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개학 식이 시작되자 방송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왔고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애국가 를 불렀다. 물론 나 같은 아이들은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었 다. “근데 네오, 2학년은 남녀합반이었어?” 난 네오니스에게 물었고 네오니스는‘그런 것도 몰랐냐’하는 표정을 지으 며 대답했다. “모르고 있었어? 1학년은 남녀분반이지만 2학년부터는 남녀합반이야.” 얼레? 2학년부터? 그 얘기는…… 3학년도 남녀합반이라는 소리? 흘…… 1학 년은 남녀분반이면서 2, 3학년은 남녀합반으로 만든 거…… 교장 할배의 음 모인가? 이제 갓 중등부로 들어온 1학년들이 어서 2학년이 되도록 하기 위해 서‘2학년부터는 남녀합반이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2학년으로 올라가 여자친 구를 많이 사귀어라!’라는 헛소리? “…….” 난 슬쩍 여자애들이 앉아있는 3, 4분단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했지만 마 음만 그럴 뿐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여자애들과 같은 반에 함께 있었 던 적은 초등학교 때뿐이고, 중학교 때는 비록 남녀공학이었지만 어차피 합 반은 아니었기 때문에 밖에 잘 나가지 않는 나로서는 남학교에 다녔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에는 완전한 남학교였으니 두말할 필요도 없이 여자애들과 거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여자 와 남자가 같은 반에 함께 앉아 공부하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개학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히 교장 할배가 이번에도 1분이 채 안 되어 훈화를 끝내버렸기 때문에 개학식은 더욱 더 빨리 끝날 수 있었 다. “개학식은 이걸로 끝났고, 남은 시간 동안은 너희들이 잘 보내라. 그리고 내일 정상 수업하는 거 있지 말고.” “예―!” 멜수스 선생은 아이들의 힘찬 대답소리를 듣고는 싱글싱글 웃으며 교실 밖 으로 나갔다. 그리고 멜수스 선생이 나가자 아이들도 신나게 떠들어대면서 뛰어 놀거나 밖으로 나가 친구를 기다리는 등의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류드, 너 뭐 할거냐?” 아이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던 네오니스가 나에게 물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할 일이 없다라고 말하려던 나는 문득 교장 할배가 개학식 끝나면 교장실로 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네오니스에게 그것을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교장실로 오라고 하셔서 가야 돼.” “그래? 하여간 류드는 교장실을 밥먹듯이 드나드는구나.” 흘…… 그건 어쩔 수가 없잖아? 날 먹여주는 인간이 교장 할배 뿐이고, 교 장 할배는 날 이용해 먹으려고 자꾸 부르니까 교장실을 밥먹듯이 드나드는 수밖에……. “네오, 그럼 난 가볼게.” “어? 류드, 어디 가냐?” 그때 나와 네오니스에게로 걸어온 크리스토르가 막 네오니스와 인사하고 나 가려는 날 보고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 대답은 네오니스가 했기 때문에 난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교장 선생님이 부르셔서 가봐야 된데.” “아, 그래? 그럼 잘 갔다 와.” 크리스토르는 별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난 둘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교실 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즉시 교장실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누군 가에게 제재를 받았다. “안녕?” “……?” 상당히 고운 목소리가 날 불렀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날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어조였기 때문에 의아해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내 앞에 서 있었기 때 문에 그냥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확인했다. 나에게 말을 건 사람은 에레나, 즉 내가 오죠룬에 들어와 처음 만난 여자이며 저번에는 문제아 트리오를 죽 인 일 때문에 서로 약간의 논쟁을 했었던 그 핑크빛 머리의 소녀였다. “어…… 안녕.” 이미 나나 에레나나 같은 학년이기 때문에 난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 자 에레나가 농담조로 말했다. “금방 반말 쓰네?” 흘…… 그럼 존댓말 써주리? 내가 같은 학년에게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 냐? “에레나……!” 그때 검은색이 감도는 짙은 남색의 긴 머리칼을 갖고 있는 한 소녀가 약간 꺼름직한 표정으로 날 힐끗 쳐다보며 에레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녀는 저 번에 나와 에레나가 문제아 트리오를 죽인 일로 논쟁 비슷한 것을 벌였을 때 옆에 꼽사리껴서 같이 있었던 애였다. “어쨌든 오늘부터 같은 반이 됐으니까 잘 지내자.” 에레나는 간단하게 그런 말을 한 후 그 짙은 남색 머리의 소녀와 함께 유유 히 복도를 통해 밖으로 걸어나갔다. 왠지 얼떨떨했지만 어쨌든 에레나와 같 은 반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되었다. 언제 어느 때 에레나가 나타나 내가 하는 일마다 트집을 잡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터벅터벅- 후…… 내일부터 2학년 수업이 시작되는군. 잠깐! 그러고 보니 난 2학년 1 학기 수업 내용을 모르잖아? 으어억…… 그런데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으라는 거야? 1학기 때 배운 내용은 나 스스로 공부하라는 소리냐? 이런 사악한 교장 할아범……! “……!” 본관에 들어서자마자 식당 쪽에서 아주 맛있는 냄새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난 아직 아침, 점심을 모두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갑자기 배가 꼬르륵 하며 신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 아침도 먹지 않았는데 또 교장실에 올라가서 교장 할배의 물음에 대 답해야 하다니…… 이러다가 영양 실조로 저 세상 가겠다…… 어째서 교장 할배는 내가 밥 먹을 시간을 주지 않는 거야? 열 받는데 교장실에다 불을 확 질러버려? 똑똑- 교장실 앞에 도착하여 난 노크를 했고, 안에서 교장 할배의 느긋한 말소리 가 들려왔다. “류드냐? 들어오너라.” “후……!” 난 잠시 심호흡을 하고 교장실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교장 할배 가 저번에 물었던‘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내가 대답을 해야 했기 때문 에 많이 긴장되었다. 물론 답은 생각해 놓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번처럼 교장 할배가 연속적으로 질문을 하면 말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상당히 걱 정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난 그런 긴장감을 달래며 교장 할배의 앞에 가 섰 다. -------------------------------------------------------------------------------- 일꿈: 도대체 이 길이가 뭐가 길다고 붙여쓰기가 안되는지..--;;; 어쨌든 본의 아니게 불편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붙여서 보아 주세요. [번 호] 8157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1일 19:18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40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1-...(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43 게 시 일 :00/05/11 12:33:12 수 정 일 : 크 기 :14.2K 조회횟수 :185 <제 16 장> 인간의 존재 이유 탁탁탁- 교장 할배는 여전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긴장도 풀 겸해서 교장 할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하시는 거예요? 마법서 해석이에요?” “허허. 내가 뭐 하는지 한 번 보거라.” 얼레? 확실히 마법서 해석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타이핑 속도가 너무 빠른 걸? 도대체 뭘 하길래 저렇게 타이핑을 빨리 하는 거지? “……!” 교장 할배가 뭘 하는지 옆에 서서 슬쩍 보던 나는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 다. 지금 교장 할배는 PC통신상에서 채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 주 능숙한 채팅 언어를 사용하면서. 타탁- 타타탁- 교장 할배의 타이핑 속도는 장난이 아니었다. 결코 채팅을 한두 번 해본 솜 씨라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능숙한 통신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화상 채팅이 아닌 한 누구라도 교장 할배를 20대 정도로밖에 여길 수 없을 정도였다. “채팅을 즐겨하시나 보네요?” 다 늙어가는 교장 할배가 채팅을, 그것도 자신보다 20, 30년 어린 사람들과 재미있게 하는 것이 놀라워서 내 어조에는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채팅창을 종료하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채팅은 기분 전환으로 하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 기분이 전환되기는커녕 오히려 내 결심만 더 확고해진단다.” 얼라리? 결심? 무슨 결심? “자, 이제부터 중요한 시간이다.” 내가 막 그 결심이란 것에 대해 물어보려 했을 때 교장 할배가 내 모든 질 문을 차단시키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1차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래, 내가 전에 물었던 질문이 무엇인지 기억하느냐?” “…….” 이런…… 난 아직 궁금한 게 있는데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다니…… 또 교장 할배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말았어…… 결국 난 교장 할배에 대해 제대로 알 아내지도 못하고 불필요한 문답만 하게 되는구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그새 잊어먹은 거냐?”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교장 할배가 눈썹을 찌푸렸다. 사실 별로 대 답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교장 할배에게 찍히면 나만 손해보기 때문에 약간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무엇이었는지 말해 보아라.” “인간의 존재 이유요.” 난 아주 짤막하게 대답했다. 교장 할배는 내가 질문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 실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당연히 그것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 놨겠지?” 흘…… 그냥 안 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교장이 내 아르바이트 비를 떼먹고 안 주겠지? 하여간 교장 할배에게 너무 많은 트집거리를 잡혀 있어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 “생각은 했는데…… 설명은 제대로 할지 모르겠네요.” “상관없다. 그럼 대답을 해보아라.” 교장 할배는 나에게 더 이상의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보고 그냥 바로 대답 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난 조금 당황했지만 내가 계속 당황하면서 대답을 안 한다고 해도 대답할 때까지 기다릴 인간이 교장 할배였기 때문에 대충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말을 꺼냈다. “에……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전 철학적인 접근보다는 과학적인 접근 을 하려고 합니다.” “호∼ 과학적인 접근? 그래, 어떤 식의 접근인지 참 기대되는구나.” 내가 입을 열자마자 교장 할배는 대뜸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내가 생각하 기에도 시작이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상당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어쨌든 교 장실에는 나와 교장 할배 말고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서 긴장감을 떨쳐버 린 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우선 대답을 하기 전에요, 교장 선생님께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한테? 무엇이냐?” “교장 선생님은‘무(無)’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세요?” “……?” 내 질문이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는 듯 교장 할배는 꽤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글쎄…… 무(無)는 당연히 존재하는 것 아니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밤 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아무 것도 볼 수 없다고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죠. 게다가 어두운 곳에는 어둠 그 자체가 존재하잖아요.” “응? 그러냐? 그렇다면 진공 상태는 어떠냐?” “진공 상태에서도 진공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데요.” “…….” 내 대답을 들은 교장 할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리고는 이 말 한마디로써 날 정의했다. “류드는 궤변을 늘어놓는 소피스트(Sophist)였구나.” “…….” 내가 소피스트라구? 그러는 교장 할배는 궤변론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 지? 어린 나한테 인간의 존재 이유 같은 걸 묻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 진 인간이냐? “계속해 보거라.” 교장 할배는 팔짱을 끼고 날 쳐다보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날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하는 교장 할배의 시선에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다. 당장이라도 교 장 할배의 얼굴에 카파 하사로를 박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 무(無)라는 것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무(無)라는 말 은 인간이‘유(有)’의 개념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할 뿐이죠.” “구체적으로 말하거라.” 흘…… 그냥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알아들을 것이지 구체적으로 말하라니… …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거 아니야? “에…… 그러니까…… 예를 들어 밥이 한가득 담긴 그릇이 있는데, 누군가 그 밥을 모두 먹어치우면 그릇은 텅 비게 되죠. 그때 사람들은‘누군가 밥을 모두 먹었다’라는 말 대신‘밥이 없다’란 말을 먼저 하게 됩니다.” “그런가…… 음…… 그런 것 같구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빠른 의사소통을 위해 말을 간결하게 사용합니다. 그래서‘누군가 밥을 먹었다’라는 긴 말보다는‘밥이 없다’란 짧은 말을 먼저 하게 되는 거죠.” “흠……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구나.” 그제서야 날 이상한 인간이라는 듯 쳐다보던 교장 할배의 눈이 조금 진지해 졌다. 그에 따라 나도 말할 기분이 났기 때문에 나 혼자 신나게 떠들어댔다. “조금 말의 초점이 빗나간 것 같은데, 어쨌든‘있다’란 것을 강조하기 위 해‘없다’란 말이 쓰여요. 요약해서 말하자면‘없다’란 것은 일종의 만들 어낸 말이라는 거죠.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없다’의 개념은 많은‘있음’ 가운데에 어느 특정한 것이 사라진 상태를 뜻하거든요. 그 많은‘있음’이 모두 사라진 상태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절대적인‘무(無)’는 존재하 지 않는 겁니다.” “음…… 갑자기 또 궤변처럼 들리는구나,” 흘…… 그러셔? 그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라고. 나도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니까. 뭐, 난 내 나름대로 생각했다고 말하는 거지 만서도……. “그런데 그‘없다’라는 개념하고 인간의 존재 이유하고 연관이 있는 거냐?” 더 이상 내 궤변을 들어줄 수 없다는 듯이 교장 할배는 내 말을 자르고서 물었다. 사실 나도 그 점에 대해 더 설명해줄 말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관점 을 바꾸었다. “물론 상관 있습니다. 좀더 시야를 넓혀 우주를 바라보도록 하죠.” “우주?” “예.” “……?” 열심히 무(無)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우주로 넘어가니까 교장 할배는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항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는 교장 할배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니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 이 좋아졌다. “우주는 결코 진공 상태가 아닙니다. 기체와 먼지, 그리고 행성과 항성 같 은 것들이 많이 퍼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주 크기에 비해 그런 것들의 비 율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거의 진공과 같은 효과가 일어나는 거죠.” “…….” 교장 할배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기만 했다. 뭔가 질문할 기미도 보이 지 않았다. 내가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보였다. “지금의 우주가 진공이 아니듯, 초기의 우주도 진공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 니, 우주뿐만 아니라 우주 외부에 있는 것들도 결코 무(無)의 상태는 아니었 겠죠.” “…….” “만약 우주가 탄생하기 전에 아무 것도 없었다면 우주는 결코 탄생하지 않 았을 겁니다. 무(無)에서 유(有)로 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내 얘기를 한 귀로 흘려듣고 있는 줄 알았던 교 장 할배가 나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무(無)에서 유(有)로 갈 수 없지?” 흘…… 교장 할배 바보 아니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지금 교장 선생님에게 아무 재료도 주지 않고 로봇을 만들라고 하면 만드실 수 있겠어요?” “음…… 못 만들겠지.” “그렇죠.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그 무엇도 나올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죠.” “그 반대의 경우?” 내 말을 들은 교장 할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내가 간단히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예. 무(無)에서 유(有)로 갈 수 없듯, 유(有)에서 무(無)로 가는 것도 있 을 수 없죠.” “…….” 교장 할배는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날 완전히 바보 취급하는 눈길 이었다. “어째서 유(有)에서 무(無)로 갈 수 없다는 거냐? 책상 위에 있는 이 컴퓨 터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무(無)가 되지 않느냐?” 크크크……. “생각이 참 단순하시네요.” “……!” 내 비꼬는 말에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교장 할배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 러나 나에게 소리지르지는 않았다. 단지 오래 산 노인네답게 끓어오르는 화 를 가라앉히며 나에게 물었을 뿐이었다. “그럼 어째서 유(有)에서 무(無)로 갈 수 없는지를 설명해라.” 후후, 그런 말 안 해도 말할 생각이었어∼ “아까 교장 선생님이 드신 예를 가지고 설명하죠. 지금 책상 위에 있는 컴 퓨터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컴퓨터는 여전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없다 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리고 그 컴퓨터를 옮기지 않고 부셔버린다고 해도 그 파편이 남아있기 때문에 없다가 아니죠.” “그럼 그 파편마저 제거했다면?” 바로 반박을 날리는 교장 할배. 그러나 나도 바로 되받아쳤다. “파편 제거는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지?” “간단해요. 파편을 묻는다는 것은 어차피 땅속에 남아있게 되는 거니까 유 (有)고, 파편을 태워버린다고 해도 그 재가 남기 때문에 유(有)죠. 설령 그 재마저 미생물들이 모두 분해해 버렸다고 해도…… 무(無)가 될 수는 없습니 다.” “왜 안 된다는 거냐?!” 교장 할배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런 교장 할배를 향해 난 한마디의 질문을 던졌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라고 아세요?” “…… 지금 날 놀리는 거냐? 그런 걸 모르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 있어!!!”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듯 교장 할배의 말투는 굉장히 거칠어졌다. [번 호] 8158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1일 19:20 Page : 1 / 9 [등록자] THEBUR [조 회] 38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1-...(2) ─────────────────────────────────────── 하지만 교장 할배가 그렇게 화를 내면 낼수록 난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교장 할배가 나에게 끌려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전환될 뿐 그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에너지 보 존 법칙이죠. 이제 이 법칙을 방금 전의 컴퓨터의 예에 적용시켜 볼까요?” “…….” 교장 할배는 날 죽일 듯한 눈초리로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 말이 조금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바로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컴퓨터의 파편이 미생물에 의해 모두 분해되었다고 치죠. 그럼 미생물 속 에는 컴퓨터를 분해할 때 얻은 열에너지가 남아있겠죠? 그리고 그 열에너지 는 미생물 자신의 생명 활동을 위해 소모되어 밖으로 빠져나갈 겁니다. 그때 도 역시 에너지는 없어지지 않고 공기 중에 존재하게 되죠. 결국 컴퓨터는 열에너지로 전환됐을 뿐 없어지지는 않은 겁니다.” “…….” 내 말에 반박할 말이 없는지 교장 할배는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든 이 정 도면 유(有)에서 무(無)로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 다 되었다고 판 단하여 우주의 관점에서 얘기를 시작했다. “무(無)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주가 탄생하기 이전에는 우주가 탄생할 수 있게 해준 일종의‘재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우주는 그 재료로 부터 합성되어 탄생했고, 그 우주 속에서 지구가 탄생하고, 인간이 탄생했죠. 이해가세요?” “…… 이해간다.” 교장 할배는 수염을 부르르 떨며 대답했다. 난 그런 교장 할배에게 씩 웃어 준 뒤에 설명을 계속했다. “그럼 우주는 왜 탄생했고, 지구는 왜 탄생했으며, 인간은 왜 생겨났을까요?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과학 개념이 하나 더 있어요.” “…… 이번엔 또 뭐냐……?” 흘흘, 계속 과학 개념이 나오니까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군. 하지만 어 쩌랴? 난 인간의 존재 이유를 과학적 접근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 개념은 바로 엔트로피(Entropy)예요.” “엔트로피? 열역학에서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 말이냐?” 엔트로피라는 말을 듣자마자 교장 할배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튀어나왔다. 확실히 교장 할배가 예전에 공부를 잘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질문이었다. “예. 전 그 엔트로피의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 교장 할배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청해졌다. 엔트로피의 개념을 확장해서 사용한다는 말에 상당히 당황한 듯했다. 교장 할배가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 같아 우선 엔트로피에 대 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아시겠지만 엔트로피는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엔트로피를 설명할 때 많이 사용하는 예가 잉크인데, 맑은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면 잉크 는 조금씩 맑은 물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게 하죠. 그런 현상을 확산이라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무질서도는 증가합니다. 뭉쳐져 있던 잉크 방울이 완전 히 흩어졌으니까요. 그러면 엔트로피가 증가했다고 하죠.” “…….” “또 엔트로피 설명할 때 뜨거운 물과 찬물의 예를 많이 듭니다. 뜨거운 물 과 찬물을 서로 섞으면 미지근하게 되죠. 그 상태 역시 뜨거운 물과 찬물이 섞여서 무질서해진 것이고, 엔트로피가 증가한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엔 트로피의 중요한 성질을 빼먹을 뻔했네요.” “또 뭘 빼먹을 뻔했다는 거냐……?” 그렇게 묻는 교장 할배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 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짜증이 나고 있 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중에 얘기를 중단할 내가 아니었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거요. 잉크 방울을 물에다 떨어뜨렸을 때, 완전히 물 속에 퍼진 잉크가 다시 모여서 잉크 방울이 되는 일은 자연적으로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서로 섞여서 미지근해진 물이 다시 본래의 뜨거운 물과 찬물로 나뉘어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죠. 즉, 자연 계의 모든 현상은 항상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납니다.” “…… 그건 나도 안다.” 얼…… 알고 있었다구? 하도 멍청한 표정을 짓길래 모르는 줄 알았지∼ “자연계의 현상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나듯이, 우주의 모든 현상도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나죠. 따라서 그것을 역으로 추적 해보면 우주가 탄생하기 이전의 세계는 에너지가 덩어리처럼 뭉쳐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교장 할배는 짜증나는 어조로 날 비난하듯 말했다. 그런 교장 할배가 더욱 짜증나도록 만들기 위해 난 교장 할배의 말을 무시하고 설명을 계속했다. “만약 우주 탄생 이전의 세계에서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었다면, 우주는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거고, 따라서 인간들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우주 탄생 이전 세계의 에너지가 불균등하게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에 너지를 균등하게 만들려고 우주가 탄생하고 지구가 탄생하고 인간이 생겨난 거죠.” “……!” 내 말에서 무엇인가를 알아차린 교장 할배가 흠칫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 말은…… 에너지를 균등하게 분포시키기 위해 인간이 생겨났다는 거냐?” “예.” “에너지를 균등하게 분포시키려는 수단으로 인간이 태어났다고?” “예.” 두 번에 걸친 교장 할배의 물음에 난 분명하게 대답했다. 교장 할배는 어처 구니가 없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내 평생에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구나. 인간이 단지 에너지를 균등 하게 분포시키기 위해 존재하다니……!” 흘…… 그게 뭐 어때서? 인간이 꼭 무슨 중요한 이유를 가지고 존재하는 거 라고는 볼 수 없잖아? 아, 아니지…… 에너지 균등 분포에 크게 일조하고 있 으니 중요한 존재인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일꾼:오늘도 붙여 보아 주시압. [번 호] 8159 / 8192 [등록일] 2000년 05월 11일 19:20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39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44 게 시 일 :00/05/11 12:33:30 수 정 일 : 크 기 :8.1K 조회횟수 :164 “설명하거라.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허탈하게 웃던 교장 할배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의 요구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별로 설명할 것은 없습니다. 불균등하게 분포하는 에너지를 균등하게 만들 기 위해서는 그 에너지를 모두 열에너지로 바꾸면 되죠. 모든 에너지는 궁극 적으로 열에너지 형태로 전환되니까요. 불균등하게 존재하는 에너지를 모두 열에너지로 바꾸려면 주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존재가 필요합니다. 그래 서 지구에서 생명체가 탄생한 거예요.” “생명체가 주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예. 우선 생명이 하나 태어나면 그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어야 합 니다. 먹는다는 것은 다른 생명체를 죽인다는 뜻이고, 결국 불균등한 에너지 를 가진 생명체를 균등한 에너지 상태로 만든다는 소리죠.” 거기까지 설명했을 때, 내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던 교장 할배가 고개를 갸 웃하며 나에게 물었다. “또 이해가 안 되는구나. 네 말은 결국 생명체는 불균등한 에너지를 지닌 존재라는 것인데, 에너지가 뭉쳐져 있다는 것은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쪽 아 니냐? 아까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더냐?” 흘…… 도대체 엔트로피를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내가 엔트로피에 대해 물었을 때는 열역학 어쩌구 하더니만…… 결국 근원적인 것은 모르고 표면적 인 것만 알고 있었군…… 이것이 주입식 교육의 한계다……. “확실히 생명체 존재 자체가 엔트로피를 감소시킵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생명체들이 태어남으로써 엔트로피가 감소했다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전 체 엔트로피를 고려해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어떻게?” “그러니까 태어난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주변의 에너지를 꾸준히 소 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불균등하게 분포하던 에너지가 점차 균등한 상 태로 변해가죠. 즉, 생명체가 태어나 주변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고 있기 때 문에, 전체 엔트로피는 증가하는 겁니다.” 난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교장 할배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만약 엔트로피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 소리를 들으면 하나도 이해를 하지 못했겠지만, 교장 할배는 어느 정도 엔트로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한 생명체가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려 한다면… … 어떻게 되는 거냐?” 헐∼ 상당히 예리한 질문인데? 역시 교장 할배의 머리 회전 속도는 따라갈 사람이 없어…… 거의 천재적인 머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생명체가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으면…… 그 생명체는 죽습니다. 죽은 상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니까요.” “인간이 죽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교장 할배의 물음에 의해 대화의 초점이 생명체에서 인간으로 넘어왔다. 난 계속 서서 입을 나불거렸기 때문에 허리가 아파 잠시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 었다. 내가 그렇게 허리를 비트는 것을 보면서도 교장 할배는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계속해서 서 있는 채로 얘기를 해야했다.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자포자기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열심히 살기 위해 열심히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죠. 하지만 자포자 기한 상태의 사람들은 잘 먹지도, 마시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감소를 가져오게 되고, 자연계는 엔트로피 를 증가시키기 위해 그 자포자기한 상태의 사람을 죽여버리죠. 병에 걸려 죽 게 하든 자살하게 하든 어쨌든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대가로 죽음을 내리는 겁니다.” “죽음의 이유가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때문이다라……” 교장 할배는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고 골똘히 어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난 교장 할배가 질문을 던질 때까지 몸을 풀면서 기다렸다. 대략 1분이 지나 자 열심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교장 할배는 드디어 나에게 차례대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노인들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흘…… 이제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내 생각의 헛점을 찾아보시겠다? 큰일이 군……! “노인들의 죽음…… 노인들은 늙었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거동을 잘 못합니 다. 그것은 그렇게 많이 먹지 않는다는 뜻이죠. 활동을 잘 안 하니까요. 그 렇게 별 활동없이 조금씩만 먹게 되니까 주변 에너지 소모율이 낮아지고, 그 에 따라 엔트로피는 감소하려는 방향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 자연은 노인을 죽이는 거죠. 한마디로 적절한 시기, 그러니까 엔트로피의 증 가가 멈춘 시점에서 죽음을 내리는 겁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지내던 노인이 죽는 경우도 있잖느냐? 그리고 아주 열심 히 활동해서 주변 에너지를 소모하던 사람도 갑작스런 교통 사고를 당해 세 상을 떠났다. 그것은 모두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흘…… 1분 동안 그런 것들을 생각해내다니…… 역시 무서워∼ “그들은…… 희생양입니다.” “……?” 내 대답이 워낙 간단했기 때문인지 교장 할배는 많이 황당해했다. 당황하는 교장 할배의 모습을 보며 난 내 말에 대한 부연 설명을 했다. “지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죠. 그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세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 기 때문에 전체 엔트로피는 후자(後者)의 사람들 때문에 감소하는 방향으로 향할 수 있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엔트로피가 증가하도록 유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연이라고 해서 항상 완벽하게 움직이는 건 아니죠. 사람처럼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고, 기계처럼 오작동을 할 수도 있어요. 그 렇기 때문에 자포자기한 사람들을 죽이려다가 오히려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 람들을 죽이는 경우가 생기죠.”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말이구나. 넌 지금까지 자연이 완벽하게 엔트로 피의 증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고 설명하지 않았더냐?” “……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자연이 실수했다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게냐?” “…….” 크윽…… 할말없다…… 내가 생각해도 억지 같으니…… 역시 아직도 난 생 각이 한참 모자르구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난 솔직히 내 말의 헛점을 인정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이내 웃으면서 말 했다. “그렇게 침울해할 건 없다. 이 세상에는 완벽한 이론이나 사상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흘…… 난 침울해하지 않았다고. 단지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 해서 화날 뿐이지. 근데 완벽한 이론이나 사상은 없다면서 왜 교장 할배는 나한테 완벽을 바라는 거냐? 사악함이 하늘을 뚫어버릴 정도야……! “어쨌든 상당히 특이한 생각이었다.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 이 유를 생각하다니 말이야. 좋아, 그럼 정리하는 셈치고 묻겠다.” 윽…… 안 물어보면 안될까……? “어떤 인간이 오래 살 수 있느냐?” 얼레? 생각보다 단순한 질문이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만 내가 설명했던 과학적인 입장의 관점에서 대답해야겠지? “주변의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모하는 사람이요.”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이지?” “많이 먹고, 많이 싸고, 많이 활동하는 사람이겠죠.” “그렇다면…… 오래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흘……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답이 바 로 튀어나오잖아? “오래 살려면 열심히 살아가야죠.” 허걱?! 난 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 관점에 의해 도출된 결과가 오래 살려면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것이 라니…… 이건 말도 안돼……! “상당히 특이한 생각이었는데도 도출된 결론은 아주 평범하구나.” 교장 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나도 확실히 허탈 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때 교장 할 배가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상관없다. 이것으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충분하니까. 역시 류드, 너는 아주 독특한 사고를 가진 녀석이야. 아주 재미있었다.” “…….” 흘…… 재미있다고? 난 재미없었어…… 그 얘기하느라고 머리를 얼마나 굴 렸는지 알긴 아는 거야? “다음 번 질문을 미리 말해주겠다.” 허거걱?! 질문이 또 있단 말이야?!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너만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거라.” “……!” 커커컥…… 행복이 뭐냐고? 그런 고차원적인 질문을 머리 나쁜 나한테 하면 어떡해? 날 머리 터져 죽게 할 셈이냐?! “다음 번에도 아주 독특한 네 생각을 들었으면 하는구나. 그럼 쉬도록 해라.” “…….” 흘…… 자기 할말만 하고 나보고 쉬라고? 정말 사악하구만…… 뭐 어쨌든 좋아, 지금은 나도 피곤하니까 그냥 넘어가 주겠어. 오랜만에 머리를 굴렸더 니 머리가 지끈지끈해…….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난 교장 할배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픈 머리를 흔들며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말해놓고도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한 요점을 잡아낼 수 없었다. 아니, 요점은 잡을 수 있었지만 내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 지는 알 수 없었다. 뭐…… 맞든 틀리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독특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흘흘, 역시 난 아주 특이하게 논단 말이야? 자, 이제 잠이나 퍼질러 자볼까나?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206 / 8272 [등록일] 2000년 05월 13일 07:44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64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이유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 이유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66 게 시 일 :00/05/12 21:57:50 수 정 일 : 크 기 :8.1K 조회횟수 :150 꼬르륵- 막 1층에서 내려왔을 때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 내 위장 이 반란을 일으켰다.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피로도 두통도 말끔히 사 라졌기 때문에 난 바로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침을 굶어서 위장이 위산 에 녹아내릴 정도였던 것이다. “어? 류드?” 밥을 먹기 위해 줄의 맨 끝에 서자 내 바로 앞에 있던 남학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조금 놀란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얼굴이 곱상하게 생기고 파란색 단발인 그 남학생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테리야크였다. 거의 한 달 동안을 만나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에 반가웠다. “테리구나. 이제 밥 먹으려고 하는 거야?” “응. 같이 먹자.” 테리야크는 잘됐다는 듯 나에게 말했고 나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 에 바로 승낙했다. 여전히 테리야크에게는 친구가 없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웅성웅성- 아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식당 안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나와 테리야 크는 음침한 인간들답게 가장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마자 테리야크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오늘부터 2학년이 됐다면서?” 흘…… 아직도 모르고 있었냐? “그랬구나. 역시 전과목 만점을 두 번이나 받으니까 바로 2학년으로 올려주 네?” 난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테리야크는 내 생각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것을 보고 그제서야 테리야크에게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흘흘…… 그렇다면 이제 말을 하지 않아도 대화는 되겠지? 우켈켈……! “왠만하면 그냥 말로 해라. 나만 말하면 애들이 이상하게 쳐다볼지도 모른 다고.” 테리야크는 사악하게도 나보고 말을 하라고 했다. 말을 하는 것보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더 익숙한 나에게는 꽤 귀찮은 일이었지만, 내가 테리야크 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나 혼자만 말하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에 테리야크의 말대로 했다. “알았어. 근데 넌 방학 동안 뭐했냐?” 난 밥을 떠먹으면서 테리야크에게 물었고, 테리야크도 식사를 하면서 대답 했다. “그렇게 특별히 한 일은 없어. 엄마 아빠 찾아 뵙고…… 조금 놀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2학기 수업을 공부했지.” 헐…… 공부를 하다니…… 무서운 녀석……! “뭐가 무서워? 그러는 넌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으면서.” 테리야크는 전혀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버릇을 고쳐줄 겸 테리야크의 음식에 서 장조림 몇 개를 가지고 온 다음에 테리야크에게 말했다. “함부로 말을 만들지 마라. 그러다 뒤통수 깨진다.” “근데 내 장조림은 왜 가져가?” “사실을 날조한 벌이야.” “…….”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테리야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장 조림 뺏긴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방학 동안 너도 공부했을 거 아냐?” 흘…… 뭔가 착각을 해도 엄청나게 하는구나…… 넌 내가 공부할 인간으로 보이냐? “응. 공부할 인간으로 보이는데?” “…….” 크…… 그렇게 보인다면 할말은 없지만…… 어쨌거나 이번 여름 방학 때에 는 죽도록 실험만 했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공부를 하냐? “실험? 무슨 실험?” 아무 생각 없이 테리야크의 질문에 대답하려던 나는 생각만으로 테리야크와 대화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이번엔 목소리를 내어 대답했다. “마법 실험이야.” “마법 실험? 그게 뭔데?” “나도 몰라. 근데 넌 특법사라고 아냐?” 난 테리야크가 특법사에 대해 모르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했다. 그러나 테리 야크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알지. 특법사를 모르는 마법사가 어딨냐?” “…….” 우씨…… 그럼 특법사를 몰랐던 나는 뭐냐고……! “아…… 그랬어? 뭐 처음부터 다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하…….” 테리야크는 어설픈 웃음으로 이 위기를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내 숟가락은 결코 테리야크를 용서하지 않았다. “아앗! 또 장조림을 가져가면 어떡해?” 내가 장조림을 숟가락으로 왕창 퍼가자 테리야크가 기겁을 했다. 단 한 번 의 숟가락질로 테리야크의 장조림 3분의 2를 가져간 나는 많이 모인 장조림 을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누가 날 놀리랬냐?” “…… 치사한 놈.” “어쭈? 선배한테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 내가 선배라는 말을 들먹이자 테리야크는 할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확 실히 테리야크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지금은 학년도 나보다 낮기 때문에 서로 반말하면서 지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그냥 편하게 불러. 뭐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네가 잘 알아서 대처하고.” “으응…….” 내 말에 테리야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빼앗긴 장조림이 아깝다는 표 정은 여전했다. 테리야크의 신경을 장조림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난 테리야크 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넌 인간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냐?” “……?” 갑작스러운 철학적인 질문에 테리야크는 상당히 당황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되물음으로써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는 거야?” “그냥 네 생각을 말하라는 거야. 부담갖지 말고 말해.” 그러나 테리야크는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부담갖지 않고 말할 수가 있어? 넌 내가 그런 질문을 너한테 했다 면 대답할 수 있겠어?” 흘흘…… 난 교장 할배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고. 그래서 대답도 해줬고. 뭐 지난 한 달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대답을 할 수 있었던 거지만. “교장 선생님이…… 그걸 너한테 물어봤다고?” 내 말, 아니 내 생각이 전혀 예상외의 것이었는 듯 테리야크는 조금 놀랬다. 기회는 지금이다 싶어 난 테리야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조금 어둡게 한 뒤에 장조림을 먹었다. 물론 그렇게 행동하면서 머리로는 교장 할배의 질 문을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테리야크는 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아 채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이 왜 그런 질문을 너한테 한 거야?” “나도 몰라. 어쨌든 대답하느라 진땀뺐어.” “뭐라고 대답했는데?” 테리야크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더 구체적인 대답을 원했다. 하지 만 구체적인 대답을 하게 되면 장조림 먹는데 상당한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테리야크가 계속 얘기하도록 만들었다. “헛소리 늘어놨어. 그것보다 넌 어떻게 생각해? 인간은 왜 존재할까?” “그, 그건……” 내 물음에 테리야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우물 거렸다. 테리야크가 우물쭈물 하는 사이 테리야크에게서 빼앗은 장조림을 맛있게 다 먹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테리야크를 보며 말했다. “사실 그런 질문은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몰라. 아니, 배부른 사람들에게는 필요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헛소리 일 뿐이야. 교장 선생님이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것도, 모두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 만약 교장 선생님이 거지였다면 나한테 그런 질문은 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 아예 만나지도 못했겠구나.” “……?” 내 중얼거림을 이해하지 못한 테리야크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방금 한 말은 그냥 나 혼자 나불댄 거라 다른 사람이 이해하도록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아무 것도 아니란 뜻으로 고개를 흔들어 보인 뒤에 계속해서 식사 를 했다. 그래…… 모든 철학적인 질문은 굶주린 사람들에겐 헛소리지. 인간은 왜 존 재하고, 난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 굶주리는 사람들이 그딴 걸 생각할 여유가 어디있냐고. 모두 배부른 자들의 쓸데없는 말들이야… …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어떤 난관에 부딪쳤을 때 힘없이 무너질 지도 모르지……. “왜 그래? 네 마음속이 너무 복잡해.” 내 생각을 읽어내려던 테리야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나도 더 이상 그 점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테리야크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교장 할배가 나중에 묻겠다던 질문이 떠올랐다. “테리,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냐?” “에?” 이번 질문도 상당히 철학적인 것이라 테리야크는 또다시 당황했다. 나중에 교장 할배와 문답할 때 테리야크의 생각을 조금 섞어서 말할 생각이었기 때 문에 난 밥을 먹으면서 테리야크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테리야크는 자신이 대답해야만 함을 깨닫고는 꽤 버벅거리며 말했다. “해, 행복…… 행복은…… 행복은…… 즐거움…… 아닐까?” “즐거움? 즐거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잖아. 남을 때리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할 수 없지.” “그, 그런가……?” 모처럼 대답했다가 내게서 바로 반박을 받자 테리야크는 매우 민망한 표정 을 지었다. 하지만 난 테리야크에게 계속 말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에…… 또……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할 때 얻어지지 않 을까? 아, 또 자기 자신한테 이로운 일을 했을 때도 행복감을 느낄 테고.” 내 눈짓을 견디지 못한 테리야크는 마침내 조금 그럴 듯한 답을 내놓았다. 어쨌든 난 지금 행복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은 행복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반박은 하지 않 았다. [번 호] 8207 / 8272 [등록일] 2000년 05월 13일 07:45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68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존재이유 -6권 끝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6장:인간의.. -6권끝-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467 게 시 일 :00/05/12 21:59:37 수 정 일 : 크 기 :9.2K 조회횟수 :154 “류드, 근데 왜 행복은 뭐냐는 질문을 한 거야?” 테리야크에게는 그것이 가장 궁금한 사항인 듯했다. 그래서 난 아주 간결하 게 대답했다. “교장 선생님이 물었어.” “교장 선생님이 너한테? 왜 그런 질문을 너한테 하는 거야?” 흘……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너라면 교 장 할배가 무슨 음모를 꾸미는 지도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교장 할배는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으니까 그럴 기회가 없는 게 안타깝다……. “교장 선생님이 음모를 꾸며?” 테리야크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난 대답하는 대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그나저나 너 내년에 2학년으로 올라올 수 있겠냐?” “2학년? 글쎄…… 나야 그러고 싶지만…… 2학기 시험은 더 어려우니까…….” 조금 자신 없어하는 테리야크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또 궁금한 것이 떠올라 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넌 2학년부터 남녀합반이라는 거 알고 있냐?” 그런 내 질문에 테리야크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넌 몰랐어? 2학년부터 남녀합반이야. 그래서 어떤 애들은 남녀합반인 교실 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해.” 흘…… 결국 나만 몰랐다는 소리잖아? 항상 1학년들이 있는 동관A만 왕복하 다보니까 2, 3학년 교실에 갈 일이 없어서 전혀 몰랐어……. “그랬어? 얼마나 학교를 안 돌아다녔으면 그것도 모르냐?” 난 돌아다니는 게 귀찮단 말이다. 할 일도 없이 싸돌아다니면 다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머리 아프다고. “그건 계속 밖으로 나다니다보면 괜찮아져.” 테리야크는 계속해서 자주 쏘다니라고 했지만 난 쏘다닐 생각이 전혀 없었 다. 쏘다녀봤자 할 일도 없고, 돈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누군가 돈을 듬 뿍 준다면 밖에 쏘다닐 생각도 들겠지만. “다 먹었냐, 테리?” 난 테리야크와 얘기하면서 쉴새없이 밥을 먹었기 때문에 내 식판에는 음식 이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테리야크는 나와의 대화에 신경 쓰느라 밥을 못 먹어서 식판에 음식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어? 너 언제 다 먹었냐?” 내 식판이 텅 빈 것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던 테리야크는 열심히 밥을 먹 기 시작했다. 내가 다 먹은 상황이라 날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상당히 급 하게 먹었다. 그래서인지 테리야크는 나에게 장조림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겼 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마구 먹기만 했다. 흘흘…… 장조림 아주 맛…… 아차, 이런 생각하면 테리야크가 알아채겠구 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자…… 음…… 다행히 방금 전에 내가 떠올렸던 생각은 알아채지 못한 것 같군. 역시 정신없이 무 엇인가를 할 때에는 남의 마음을 읽기 어려운가 보다∼ “후아∼ 겨우 다 먹었다∼” 1분도 채 안되어 남아있던 밥을 모두 먹은 테리야크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어서 나가자고 손짓했다. 그래서 나와 테리야크는 텅 빈 식 판을 식당에서 설거지하는 사람들 앞에 두고 나서 유유히 식당을 빠져 나왔 다. “와! 날씨 좋다!” 식당에서 나와 기숙사와 본관 사이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던 테리야크가 탄 성을 내질렀다. 확실히 오늘 날씨는 굉장히 좋았다. 아직은 늦여름이었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조금 뜨듯한 햇살이 땅에 내리쬐고 있었던 것이다. “아…… 놀러가고 싶다……!” 테리야크는 그렇게 말했지만 정작 밖에 나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 래서 난 테리야크에게 물었다. “놀러가고 싶으면 놀러가면 되잖아? 이미 수업도 끝났는데.” “그렇긴 한데…… 나 혼자 놀러가는 건 그렇잖아…….” 내 물음에 테리야크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분위기를 바꿔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이번엔 나한테 물음을 던졌다. “류드는 날씨 좋으면 뭐하고 싶어?” 흘…… 나 말이냐? 그거야…… 우선 날씨가 좋으니까 기분은 좋고…… 이런 날씨에 싸돌아다니면 더우니까…… 집에 콕 들어박혀서 만화책을 보던가 게 임을 하지. 수업하는 도중에 창 밖으로 맑은 하늘을 보면 공부할 마음도 생 기고 좋아∼ “그래? 난 수업하다가 날씨 좋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하던데…….” 테리야크는 나와는 정반대의 말을 했다. 그래서 난 그 이유를 물었다. “왜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그거야…… 밖에 나가서 놀고 싶으니까 그렇지…….” 음…… 그런 건가? 나야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좋은 날씨를 보 면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는 스타일인데……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 은 좋은 날씨를 보면 밖에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드나보구나……. 터벅터벅- 나와 테리야크는 기숙사까지 직행했다. 그리고 M4관 앞에 도달했을 때 테리 야크가 입을 열었다. “류드는 M4관에서 지내는 거지?” “어. 310호.” “그래. 그럼 잘 들어가. 내일 또 보자.” “어.” 테리야크는 나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에 M1관으로 향했다. 난 잠시 맑은 하늘을 쳐다보다가 문득 아르바이트 생각이 났다. 1학기 때에는 아르바이트 로 학교 옥상과 교장실을 청소하는 걸 했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유효한 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라이의 밥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르바이트 를 해야했다. 터벅터벅- 난 다시 발길을 돌려 교장실로 향했다. 방금 전에 밥을 많이 먹은 상태라 뛰었다간 옆구리가 아플 것 같아서 천천히 걸어갔다. 내가 본관 1층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아주 반가운 녀석을 만났다. 그 녀석은 바로 1학기 동안 내 짝 이었던 레리오스였다. “안녕, 류드나르!” “안녕.” 나와 레리오스는 중앙 계단 앞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난 레리오스의 머리를 보다가 레리오스의 머리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리모양 바꿨네? 전에는 스포츠 머리였잖아?” 내 물음에 레리오스는 조금 길어진 자신의 흑발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 머리 좀 길렀지. 어때? 나 멋있게 보이지 않냐?” “괜찮네.” 확실히 스포츠 머리보다는 머리를 조금 긴 편이 레리오스에게 조금 어울려 보였기 때문에 난 솔직히 대답했다. 칭찬을 들은 레리오스는 째져라 웃다가 날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너 2학년 몇 반…… 앗! 이제 2학년이니까 말 놔선 안되겠구나!” “상관없어. 그냥 편하게 말해.” “헤…… 하긴, 어차피 난 학교 관둘 건데 학년 차이야 상관없지.” “……?” 레리오스의 말에 난 조금 의아해졌다. 특히 학교를 관둔다는 말이 궁금하여 레리오스에게 물었다. “학교를 관둬? 왜?” “어…… 여기 있어봤자 2학년 진급은 어렵고…… 괜히 내 인생만 버리는 것 같아서 그냥 이 학교 때려치고 만화가의 길을 걸어보려고.” 흘…… 만화가의 길…… 성인 만화가의 길이겠지……. “역시 공부하는 거랑 마법사 되는 건 나한테 안 맞아서 말이야.” 레리오스는 실실 쪼갰다. 후회 같은 건 전혀 없는 모습. 왠지 자신의 길을 정해놓고 열심히 하는 레리오스가 부러웠다. “근데 부모님이 반대 안 하시냐?” 난 또다시 레리오스에게 물었고, 레리오스는 여전히 실실 쪼개며 대답했다. “당연히 반대하셨지. 하지만 내가 안 나가면 그만이잖아? 엄마 아빠가 계속 반대하면 가출해서 만화 그리는 곳에 들어가 일할 생각이야.” “그게 잘 될까?” “잘 안되면 되게 해야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대잖냐.” 흘…… 그런 헛소리를 믿고 있다니……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도와? 돕는다 는 건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드는 거라고. 그건 이렇게 바꿔야 돼. 하늘은 스 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라고. “그럼 난 간다. 나중에 내가 성공하면 너한테 만화책 공짜로 보내줄게.” 레리오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본관 밖으로 나갔다. 난 잠시 자신감에 가득찬 레리오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중앙 계단을 통해 교 장실로 갔다. 교장실은 5층에 있었고 지금은 밥을 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계 단으로 5층까지 올라가다 보니 옆구리가 살살 아파왔다. 그러나 난 옆구리의 아픔을 누르고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냐?” 안에서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아무 대답 없이 문을 벌 컥 열고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갑자기 들어갔음에도 교장 할 배는 전혀 놀라지 않고 아주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류드였구나. 그래, 무슨 일이냐?” 이런…… 놀래키려고 갑자기 들어왔는데……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생각이 ……! “저기요…… 아르바이트 때문에요…….” “아르바이트?” 내 말에 교장 할배는 날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래서 난 좀더 구체적으로 설 명했다. “1학기 때에는 교장실하고 옥상을 청소했잖아요, 근데 그걸 지금도 할 수 있을까해서…….” “아, 그랬었지!”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그리고는 날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아르바이트는 하지 않아도 된다. 2학년이나 됐는데 아르바이트를 하 다간 성적 떨어지기 쉬워.” 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아니요…… 제 밥값하고 라이 밥값을 그 아르바이트로 충당했었거든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굶어야 되요…….” “아, 그랬냐? 그것도 걱정 말아라. 내가 매달 20만원씩 줄 테니까.” 얼레? 20만원씩 준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요?” “물론이다. 넌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흘…… 결국 공부시키려고 돈을 공짜로 준다는 건가? 뭐 어쨌든 매달 공짜 로 20만원씩 생기는 거니까 좋지∼ “예. 그럼 지금 당장 주세요.” 난 곧바로 교장 할배에게 현금을 요구했다. 교장 할배는 잠시 어처구니없어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지갑에서 만원 짜리 20장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20 만원을 현찰로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교장 할배가 신기할 뿐이었다. “여기 있다.” “감사합니다.” 난 교장 할배가 건네준 20만원을 손에 쥐었다. 감촉이 아주 끝내주었다. 20 장의 만원을 부채처럼 펼쳐서 부채질을 하면 기분이 괜찮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교장 할배에게 20만원을 받았기 때문인지 내 말투는 나도 모르게 상당히 정 중해졌다. 어쨌든 그렇게 교장 할배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난 기쁜 마음으로 교장실을 나섰다. 역시 사람은 돈이 많아야 뭔가 할 의욕이 생기는 모양이었 다. 헐헐헐, 20만원이라…… 우선 나와 라이의 밥값을 최대한 줄이면 한 달에 거의 5만원 이상이 남겠군. 필요한 물품은 교장 할배에게 가서 돈을 뜯어내 면 되니까…… 흘흘, 차근차근 모아서 돈을 불려야지∼ ======================================================================= 이걸로 한 권 분량이 안 되지만... 우선 6권은 여기까지... 나머지는 어떻게든 불려야 하는...ㅡㅡ;; 6권 정리하고 나서 좀 쉬어야겠네염... (벌써 원고 마감일 3일 초과...ㅡㅡ;;;;) =============================================================== 일꾼:^^ 작가분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450 / 8540 [등록일] 2000년 05월 26일 10:36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87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수업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 수업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39 게 시 일 :00/05/26 06:25:59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26 아직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거의 쓴 게 없다는...ㅡㅡ;) 우선 조금씩 올립니다... 근데 17장이 6권 끝부분으로 될 것 같군요... 뭐 어쨌든... 빨리 빨리 써야겠네염...ㅡㅡ; ====================================================================== <제 17 장> 2학년 첫 수업 개학식이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정상 수업은 토요일부터 시작했다. 다행히 토요일 수업은 3교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찍 끝나리란 생각에 아침부터 기 분이 좋았다. 물론 어제 20만원 받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침 8시 50분. 나와 네오니스, 그리고 크리스토르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교실에 도착한 시각이었다. 아침 조회가 50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자칫 잘 못했으면 지각할 뻔했던 것이다. 사실 그건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라 이에게 밥을 먹이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졌으니까. 끼이- 나와 네오니스, 크리스토르가 제자리에 앉음과 동시에 담임인 멜수스 선생 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우리들을 한 번 쭉 훑어보아 모두 있음 을 확인한 뒤 조회를 시작했다. "특별한 전달 사항은 없고, 오늘부터 2학기 시작이니까 열심히들 해라." "예." 그렇게 간단히 아침 조회를 끝낸 멜수스 선생은 바로 교실을 나갔다. 난 오 늘 시간표를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1교시 한문, 2교시 마법 이론, 3교시 윤리였다. 확실히 시간표에 맞게 교과서를 챙겨왔기 때문에 안심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왜, 피곤하냐?" 내가 책상 위에 엎드리자 오늘부터 내 짝인 네오니스가 나에게 물었다. 그 래서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아닌데, 우선 대충 휴식을 취하는 거야. 다음 시간에 최상의 컨디션 으로 수업을 들으려고. 쉬지 않고 계속 수업 들으면 머리 아프거든." "오∼ 그게 전과목 만점자의 공부 방법이로구나! 그렇게만 하면 전과목 만 점이냐?" 네오니스는 그렇게 헛소리를 해댔다. 여기서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네오니 스는 계속 헛소리를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간단하게 한마디로 끝냈다. "맘대로 생각해." 그리고는 엎드려 자는 척했다. 그러자 네오니스는 더 이상 나한테 말을 걸 지 않았다. 이것이 좋은 점이었다. 책상 위에 엎드리며 자는 척만 해도 아이 들은 내가 자는 줄 알고 날 귀찮게 하지 않는다. 실상은 그냥 눈을 감고 잠 깐 휴식을 취하는 것뿐인데 말이다. 띵 띵 띵 띵- 책상 위에 엎드린 지 얼마 안 되어 1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렸기 때문에 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을 보고 네오니스 왈, "정확하게 일어나네? 역시 만점자는 달라∼" "……." 흘…… 상대하면 나만 바보될 것 같다…… 수업 준비나 해야지……. 타탁- 첫 번째 시간은 한문(漢文)이었다. 난 한문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흥 미가 있었다. 그래서 한문 수업은 비교적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끼이- 수업종이 울리고 나서 대략 2분 정도 흐르자 한문 선생인 듯한 남자가 들어 왔다. 앞이마가 약간 벗겨진 40대의 한문 선생은 교탁에 서자마자 장황한 말 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잘 지냈느냐? 모두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한 사람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할만큼 일취월장(日就月將) 했을 테고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만 한 사람은 다음 시험에 좋지 않은 점수 를 받을 게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겠지. 어쨌든 이제부터 내 수업 시간에 열 심히 참여하기 바란다." "예……." 왠지 아이들의 대답에는 힘이 없었다. 역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문을 싫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문 선생은 아이들의 반응에는 신경 쓰지 않고 곧 수업을 시작했다. 2학기 첫 시간부터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의 표정은 실 망으로 가득 찼다. 따닥- 딱- 한문 선생은 칠판에다가 오늘 배울 과목의 한자를 쭉 써나갔다. 하지만 난 어디부터 수업이 시작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네오니스의 책을 쳐다보았다. 네 오니스는 106쪽을 펴놓고 있었다. 그래서 난 106쪽을 핀 다음에 칠판에 적힌 글과 확인해보았다. 음…… 맞군. 근데 조금 어려운데? 모르는 한자가 꽤 많다? "자, 오늘은 교과서 106쪽 입지(立志)에 대해서 공부하겠다. 누가 한 번 교 과서를 읽어볼까……?" 한문 선생의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팍 수그렸다. 그것은 네오니스 역시 마 찬가지였고, 나도 그랬다. 발표하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잠시 아이들을 둘러보던 한문 선생이 한 아이를 지목하며 말했다. "헤로칸드, 네가 한 번 읽어봐라." "예." 한문 선생이 지명한 아이는 2분단 맨 앞줄에 앉은 다갈색의 단발머리 소년 이었다. 다갈색 머리의 소년은 아주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본문을 읽어 내려 가기 시작했다. "학자소환(學者所患)은 유유립지부성(惟有立志不誠)이니 재혹부족(才或不足) 은 비소환야(非所患也)니라." 헤로칸드란 소년은 막힘없이 본문을 줄줄이 읽었다. 모르는 한자가 없는 것 같은 아이였다. 내가 그 소년의 엄청난 한자 실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네오 니스가 조그만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역시 한문 천재답다니까. 쟨 다른 과목은 점수가 그저 그런데, 한문만큼은 항상 만점이야." 얼∼ 한문 만점? 이곳에도 만점자가 존재하다니! 놀라워! "그럼 뜻도 말해봐." 헤로칸드가 본문 읽기를 마치자 한문 선생은 해석까지 하라고 했다. 그러나 헤로칸드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본문 해석을 하기 시작했다. "배우는 사람이 근심할 바는 오직 뜻을 세움에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있을 뿐이니 재주가 혹 부족한 것은 근심할 바가 아니니라." 이번에도 역시 막힘 없이 해석을 했다. 그래서 헤로칸드가 꽤 대단하게 보 였다. 그러다가 교과서 본문 옆에 본문 해석한 것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흘…… 이걸 보고 해석한 건가? 근데 좀 틀린 것 같은데? 해석에는 '배우는 자로서 근심할 바는 오직 뜻을 세움에 정성스럽지 못함이 있을 뿐이다. 재주 가 혹시 부족한 것은 근심할 바가 아니다'라고 써져있는데 말이야…… 뭐 해 석을 보고 한 거든 자기가 직접 한 거든 독음(讀音)은 책에 써져 있지 않으 니까 독음을 무난히 했다는 것은 대단한 거지……. "잘했다. 역시 헤로칸드는 준비가 철저하구나." 한문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네오니스는 더욱 작은 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한문 시간에만 준비가 철저하지, 헤로는." 헐헐, 꽤 트집을 잡으면서도 헤로칸드의 애칭을 부르는 걸 보니까 네오니스 는 헤로칸드와 친한 것 같군. 하여간 네오니스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니까. 친구를 거의 만들지 못하는 나하고는 완전히 성격이 달라∼ [번 호] 8451 / 8540 [등록일] 2000년 05월 26일 10:36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79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수업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 수업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40 게 시 일 :00/05/26 06:26:20 수 정 일 : 크 기 :5.5K 조회횟수 :23 "자, 이 글자는……" 헤로칸드가 자리에 앉자 한문 선생이 설명을 시작했다. 난 평상시대로 열심 히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가 한문 선생이 고사 성어에 대한 얘기에서 전혀 이상한 쪽으로 말을 전개시켰기 때문에 난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슬쩍 여자애 들 자리를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졸고 있었고, 일부의 여학생들 만 고개를 들고 한문 선생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들도 마찬가 지였지만, 어쨌든 고개를 들고 수업에 참여하는 여학생들 중에서 에레나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흠…… 역시 모범생은 모든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군. 지금 한문 선생은 전 혀 불필요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에레나는…… 3분단 3번째 줄의 운동장 쪽에 앉아있군. 얼레? 그 옆에는 전에 에레나하고 같이 있었던 그 짙은 남색 머리 여자애가 있네? 서로 짝꿍이었나? 뭐 그러니까 같이 붙어 다니는 거겠 지만. "왜 그래, 류드?" 내가 3분단 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리고 있자 네오니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러다가 내 시선이 닿은 곳을 쳐다보더니 한문 선생에게 들키지 않 게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며 음흉한 웃음을 발했다. "흐흐…… 너 에레나에게 관심 있는 거지?" 네오니스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난 자연스럽게 두 손을 깍지껴서 턱을 받 치는 척하면서 입을 가렸다. 그리고 나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니고, 에레나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애는 누구야?" "응? 에레나 옆……" 네오니스는 슬쩍 에레나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에 그 옆에 앉아있는 여자애 를 확인하고는 날 아주 야리꾸리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너…… 에레나도 모자라서 이번엔 로리아를 꼬실 생각이야? 양다리는 나쁜 거야∼" "……." 네오니스 녀석……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에휴…… 여기서 변명하면 네오니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가만히 입이나 다물어야겠다. 근데 저 짙은 남색머리 소녀의 이름이 로리아? "내가 예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한문 선생은 수업은 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물론 듣다 보면 좋은 얘기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관심 가는 것이 생겼기 때문 에 한문 선생의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렸다. "저 여자애 이름이 로리아야?" "얼∼ 너 정말 관심 있나 보구나. 아차, 그러고 보니 내가 너한테 에레나하 고 로리아의 풀 네임을 안 알려줬구나." 얼라리? 그럼 에레나는 애칭이었단 소리? "에레나의 풀 네임은 '페르소아 에레나리스', 그리고 로리아의 풀 네임은 '하타오리스 로리아케시'야. 나야 쟤들하고 조금 친하니까 애칭을 부르지만, 넌 그냥 이름을 다 부르는 게 좋을 거야." 그거 당연한 소리 아니냐?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대뜸 애칭을 부르면 기분 좋겠어? "근데 류드, 너 에레나하고 로리아가 얼마나 인기 많은 줄 아냐?" 내가 계속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쪽을 쳐다보고 있자 네오니스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난 시선을 거둬들이고 나서 슬쩍 고개 를 저으며 말했다. "몰라. 둘 다 예쁘니까 인기는 많을 것 같은데." "그래. 인기가 장난 아니지. 러브레터를 하루에 거의 십여 통씩 받는다구." 얼…… 그렇게 인기 있나? 그런데 그렇게 받는 러브레터는 어떻게 처리할까? 아무래도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릴 것 같은……! "그런데도 에레나하고 로리아에게는 남자 친구가 없어. 이상하단 생각 안 드냐?" 네오니스는 그게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는 듯 의문 어린 말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충 말했다. "눈이 높은가 보지. 근데 둘 다 공부 잘 하냐?" "공부? 물론 둘 다 상위권이야. 1학기 시험에서 에레나가 우리반 4등을 했 고, 로리아는 6등을 했어." 엥? 겨우 4등? 생각보다 못하네? "에레나보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세 명이나 되는 거야?" 내 물음에 네오니스는 날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대답했다. "생각해봐. 에레나는 처음 2학년 과정을 공부한다고. 그리고 이 반에는 몇 년 동안 2학년 과정만 공부하는 사람이 많고. 신입 2학년이 그런 사람들을 여럿 제치고 4등을 했다는 건 대단한 거야." 아…… 그렇군. 여기에는 몇 년 꿇은 사람도 있지…… 그걸 생각 못하다니 난 바보인가? 그럼 난 여기서 몇 등이나 할까? 2학년 과정도 내가 전에 배웠 던 것이긴 하지만…… 그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어서 힘들 것 같단 말이야…… 시험 망치면 교장 할배가 나한테 돈을 안 줄텐데 큰일이 군……. "넌 몇 등 했냐?" 물어보기 미안하지만 궁금했기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난 네오니스에게 성적 을 물어보았다. 내 질문을 받은 네오니스는 나직이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자 기 등수를 말해주었다. "난 19등이야. 총 인원이 30명이니까 중간에도 못 미치는 거지……." 흘…… 아픈 곳을 찌른 것 같군.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거니까 계속 물 어보자! "그럼 크리스의 등수는?" "크리스? 걔는 나보다 조금 잘해. 그래서 15등이야." "딱 절반이네? 그럼 반 1등은 몇 점 받았어?" "92점. 2년 꿇은 사람이야." 헐…… 2년 동안 같은 내용을 배웠는데도 평균이 92점? 심각한데? 도대체 시험이 얼마나 어렵길래 점수가 그렇게 안 나오는 거냐? "점수가 왜 그렇게 조금 나오는 거야? 시험이 어려워?" "엄청 어려워. 절반은 외우는 거고 절반은 사고력 측정인데, 사고력 측정 문제를 더럽게 꼬아서 내기 때문에 맞는 애가 거의 없어." 얼레? 사고력 측정 문제? 그거…… 수능과 비슷하게 내는 거냐? 지금 수능 이야 쉬워지고 있는 추세지만 예전에는 무지하게 어려웠는데…… 헉! 그러고 보니 난 아직 수능도 보지 않았잖아? 어억…… 혹시 지금 내 세계로 돌아가 면 시간이 훌러덩 지나가 버려서 수능도 못 보고 인생 망치는 거 아니야? "……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거다!" 한문 선생은 열심히 열변을 토하며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네오니스는 한문 선생의 눈에 띄지 않고 서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근데 네린은 어디 있어?" "네린? 네린은 C-4반이야. 바로 옆 반이지." "네린은 몇 등 정도 하냐?" "글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하고 비슷할 걸? 아니면 나보다 조금 떨어지던가." 흘흘, 친구들의 성적을 알아내는 것도 재미있군. 자세하게 묻고 싶지만 그 랬다간 네오니스에게 따 당하겠지? 이 정도로 질문을 마쳐야겠군. -------------------------------------------------------------------------------- [번 호] 8489 / 8540 [등록일] 2000년 05월 27일 08:27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63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7장:2학기 첫수업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 수업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46 게 시 일 :00/05/27 05:38:37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26 띵동띵동- 그때 수업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가 나자마자 거의 졸고 있 던 아이들의 눈에서 예리한 빛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서 2학년으 로 올라온 사람들이라 해도 공부하는 것은 역시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다음 시간에 보자!" 한문 선생은 자기 혼자 힘차게 말한 뒤 교실을 나갔다. 선생이 나가자마자 교실은 곧 힘찬 활기로 뒤덮였다. 네오니스 역시 수업이 끝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난 친구도 없고 수다떨 생각 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책상에 엎드려 휴식을 취했다. 띵 띵 띵 띵- 잠시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쉬는 시간이 모두 흘러가 버렸다. 좀더 자고 싶다는 감정을 누르며 난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2교시는 마법 이 론이었다. 그래서 마법 이론 책을 꺼내놓고 피로한 눈을 마사지했다. 흠…… 마법 이론…… 샤느 선생이 생각나는군. 샤느 선생이 나한테 많은 신경을 써줘서 쉽게 공부할 수 있긴 했는데…… 너무 날 신경 써줘서 부담이 컸지…… 이번 선생은 그렇지 않겠지? 난 부담 없이 공부하고 싶어…… 그래 서 최고의 마법사가 되야지……. "네오, 마법 이론 선생님은 어떤 분이야?" 난 2학년을 가르치는 마법 이론 선생에 대해 알고 싶어서 네오니스에게 물 어보았다. 내 물음에 네오니스는 잠시 자기 이마를 두드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냥 평범해. 30대 초반 정도의 남자 선생님인데, 성격도 보통이고 외모도 보통이고." 음…… 그렇군. 그럼 나도 편하게 마법 이론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잘됐 어∼ 끼이-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신나게 떠들어대던 아이들은 이내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난 아직도 눈의 피로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눈을 마사지했다. "어……?" 갑자기 아이들이 당황해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왜 그러는 것인 지 궁금해져서 난 즉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눈을 비비다가 고개를 든 것 이었기 때문에 눈에 안개가 낀 듯이 시야가 흐릿했다. 이런…… 눈을 너무 비볐나? 어쨌든 칠판 앞에 누군가 서 있는데…… 마법 이론 선생이 아닐까? 그런데 왜 아이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였을까? 혹시…… 마법 이론 선생이 오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들어온 건가? 그렇다면…… 지금 은 자유시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마법 이론 과목을 담당하게 될 샤느미아 르입니다." "……!" 칠판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나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그 래서 난 눈을 깜빡여 초점을 바로 잡은 후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나서 난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 다. 지금 칠판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1학년의 마법 이론을 담당하는 샤 느 선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샤느 선생님?" 내 옆에 앉아있던 네오니스가 벌떡 일어서더니 샤느 선생에게 물음을 던졌 다. 샤느 선생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샤느 선생을 알고 있는 듯했다. 샤느 선생은 벌떡 일어나 질문을 던진 네오니스에게 미소를 지 어 보이다가 그 옆에 멍청히 앉아있는 날 발견하고 아주 반가운 얼굴을 했다. "……." 이런…… 샤느 선생이 날 발견하고 말다니…… 네오니스가 그냥 조용히 자 리에 앉아있었으면 들키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 또 고달파지겠구나 ……! "본래는 소로나체시 선생님이 가르치셨지만, 2학기부터는 제가 여러분들에 게 마법 이론을 가르치게 되었어요." 샤느 선생은 질문을 던졌던 네오니스가 아닌 날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샤느 선생이 2학기부터 마법 이론을 가르친다는 말에 남학생들이 환호를 내 질렀다. "와―!" 흘…… 그렇게 좋아할 것까진 없는 것 같은데…… 근데 왜 샤느 선생이 2학 기부터 마법 이론을 가르치게 된 거지? 뭔가 비리가 있는 것 같은데? 교장 할배에게 따지러 가봐야겠군. "샤느 선생님에게 배우게 되다니…… 이거 꿈은 아니겠지?" 어느새 자리에 앉은 네오니스가 좋아서 헤벌래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불행히도 그렇게 된 것 같다." "불행히도? 넌 기쁘지 않은 거야?" 내 대답에 네오니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잠시 내 마음을 정리해보 았다. 과연 난 기뻐하고 있는가 한숨쉬고 있는가…… 답은 금방 나왔다. 감 정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어쨌든 만나서 반갑긴 한데…… 앞으로도 나한테 지나친 신경을 써줄 게 걱 정이다…… 으…… 왜 샤느 선생은 날 보면서 실실 쪼개는 거야? 여기서도 샤느 선생 때문에 아이들에게 따돌림받기는 싫다고……! "오늘은 여러분들과 처음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수업은 하지 않겠어요." 샤느 선생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아이들은 교실 무너져라 환호를 내질렀다. 샤느 선생은 아이들의 환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수업을 하지 않는 대신 저한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세요. 수업에 대 해 물어도 되고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되요." "선생님, 저요!" "질문 있습니다!" "여기요, 여기!" '수업에 대해 물어도 되고'란 말을 할 때에는 잠자코 있던 아이들이 '개인 적인 질문을 해도 되요'란 말이 샤느 선생의 입에서 나오자마자 요란하게 손 을 들었다. 물론 손을 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남학생들이었다. "음…… 저기 남학생." 샤느 선생은 손을 든 남학생들 중에서 한 사람을 지목했고, 그 남학생은 즉 시 샤느 선생에게 질문했다. "샤느 선생님, 애인 있으세요?" "와하하―!" 그 남학생의 질문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 질문 을 한 남학생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 해주었 기 때문에 통쾌해서 웃는 것이었다. 질문을 받은 샤느 선생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달고서 말했다. "글쎄요…… 여러분들은 제게 애인이 있을 것 같나요?"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일제히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샤느 선생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있을 것 같나요? 난 그 반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애인이 있으신 거예요?" 어떤 남학생이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샤느 선생은 잠시 날 쳐 다보다가 이내 대답했다. "아직은 없어요." "와―!" 남학생들 쪽에서 굉장한 환호가 있었다. 남학생들의 소란스러운 환호가 어 느 정도 가라앉은 후, 이번엔 한 여학생이 샤느 선생에게 질문을 했다. "첫사랑은 언제 하셨어요?" "첫사랑? 글쎄…… 첫사랑이 짝사랑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아이들과 샤느 선생의 문답은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난 샤 느 선생의 개인 사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마법 이론 책을 한 번 쭉 훑어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아이들의 질문 내용과 샤느 선 생의 대답 내용에 신경 쓰고 있었다. 역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번 호] 8490 / 8540 [등록일] 2000년 05월 27일 08:28 Page : 1 / 9 [등록자] THEBUR [조 회] 63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7장:2학기 첫수업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 수업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47 게 시 일 :00/05/27 05:38:55 수 정 일 : 크 기 :4.0K 조회횟수 :21 "야, 류드. 들어보니까 너 샤느 선생님하고 굉장히 가깝게 지낸다면서?" 내가 마법 이론 책을 보는 척하면서 아이들과 샤느 선생과의 문답 내용을 듣고 있을 때 네오니스가 그렇게 물었다. 가깝게 지낸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 지만, 네오니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대강 말했다.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럼 친하게 지낸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맘대로 생각해라……." 물음에 일일이 대답해줬다간 끝없이 질문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난 그렇게 네오니스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네오니스의 집념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 다. "말을 하지 않으려는 걸 보니까 뭐 찔리는 게 있나 보지? 설마 샤느 선생님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린 사이?" "…… 너 죽고잡냐?" "하하, 진담이야 진담!" "……." 그래…… 끝까지 놀려먹어라…… 상대하기도 귀찮아……. 띵동 띵동- 네오니스가 나에게 다른 질문을 막 던지려던 찰나, 아주 절묘하게 수업 종 료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네오니스는 멈칫했고, 샤느 선생은 아이들에게 작 별 인사를 했다. "그럼 모두 다음 시간에 봐요." "예―!" 여전히 아이들의 대답소리는 시원했다. 난 네오니스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받기도, 그리고 샤느 선생의 시선을 받기도 싫었기 때문에 바로 책상에 엎드 리려 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내 귀를 울린 소리가 날 엎드리게 하지 못했다. - 류드! 지금 날 따라와. "……!" 이 목소리는…… 샤느 선생? 이건…… 음성 전달 마법인가? 음…… 만약 그 말이 샤느 선생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면 아이들이 저렇게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지 않겠지? 확실히 나한테만 들리게 한 것 같군. 근데 왜 날 부르는 거야? 드득- 난 막 엎드리려는 자세에서 약간 빠른 속도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네오니스가 놀란 얼굴을 하며 나에게 물었다. "어라? 왜 그래? 설마 너 내가 싫어진 거야?" "그건 아니고, 잠시 가볼 데가 있으니까……" "……?" 네오니스는 내가 어디 갈 데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 이었다. 그건 표정에서 대충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말에 토 를 달지는 않았다. "그래, 가봐." "어." 난 짧게 대답하고 나서 즉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샤느 선생은 쪽팔리게도 교실 복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는 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 었고, 그 중 대부분의 아이들이 샤느 선생이 무엇을 할 지에 관심을 기울이 는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등장하면 난 당장에 '따'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했지만 샤느 선생이 날 불렀기 때문에 안 만날 수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우선 아이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난 샤느 선생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내가 그렇게 인사를 하자 샤느 선생은 조금 어두운 표정을 지 어 보였지만, 아이들은 나와 샤느 선생이 그저 할 말이 있어서 만난 것이라 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 그럼 날 따라와." 샤느 선생은 앞장서서 걸었고, 난 약간 떨어져서 그 뒤를 따랐다. 어디론가 로 향하던 샤느 선생이 걸음을 멈춘 곳은 동관A 1층에 있는 여교사 휴게실이 었다. 본관에서 교실이 있는 동관A나 동관B까지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각 동관 1층에 교사 휴게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자 선생들은 대부분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여자 선생들과 같은 휴게실을 사용할 수 없어 서 남자 선생 따로 여자 선생 따로 휴게실이 있었다. 덜컥- 여교사 휴게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샤느 선생을 따라 나도 조심스럽게 안에다 발을 들여놓았다. 처음으로 와보는 교사 휴게실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인지 궁금해서 슬쩍 휴게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여교사 휴게 실이었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꽤 아늑했고 여러 가지 그림과 꽃들이 많이 보 였다. 휴게실 중앙에 둥근 테이블이 있고, 그 둘레를 소파가 둘러싸고 있었 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 흘…… 왠지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군. 방금 전까지 누가 여기 있다가 간 모양인데? 아니면 여교사 휴게실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걸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여기서 한 번 눈을 붙였다간 수업 모조리 끝날 때까지 그 대로 잠잘 것 같다……. "류드는 여기 처음 오지?" 아무 소파에 앉은 샤느 선생은 나한테 앉으라고 손짓하며 물었고 난 먼저 '예'라고 대답한 뒤에 샤느 선생의 반대편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샤느 선생은 실실 쪼개며 입을 열었다. "여름 방학 잘 보냈니?" "예……." 윽…… 잘 보내긴 뭘 잘 보내…… 실험하다가 여름 방학 다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한 달 동안 난 뭘 했는지 모르겠어……!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547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28일 22:57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2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수업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7장:2학년 첫 수업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58 게 시 일 :00/05/28 10:39:53 수 정 일 : 크 기 :4.9K 조회횟수 :226 "학교 생활은 어떠니?" 샤느 선생은 나에게 아주 전형적인 질문을 했고, 그래서 나도 아주 전형적 인 대답을 해주었다. "괜찮아요." 흘…… 도대체 그런 걸 물어보려고 날 이리로 끌고 온 거야? 차라리 다음 시간을 위해서 책상에서 퍼질러 자는 게 훨씬 낫겠다! "친구는 생겼니?" 이봐 이봐…… 그만 물어보라구……! "예." "다행이구나. 난 류드가 친구가 없어서 쓸쓸해 할까봐 걱정했는데. 류드에 게는 친구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어유, 그러셔? 난 친구 없다고 쓸쓸해하지 않는다고. 매일 혼자 다니는 것 에 익숙한 걸 뭐. 어쨌거나 나한테 친구가 별로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은 상당 히 정확……! "……!" 그렇게 생각하는 도중에 난 아주 중대한 사실을 잊어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이 세계에 왔고, 무엇을 할 생각이었는지를 생각해낸 것이 었다. 허허…… 까맣게 잊고 있었어…… 난 환타지 세계를 본래대로 돌려놓을 생 각으로 차원을 넘어 이곳에 왔고…… 여기서 인연의 끈을 최대한 많이 만들 어 다시 내 세계로 돌아갈 생각을 했는데…… 완전 잊고 있었다…… 어째서 …… 난 어째서 내 목적조차 까맣게 잊고 이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었지? 내 세계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 세계로 돌아 가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살 생각이었나……? "……!" 난 나 스스로의 생각에 놀라 버렸다. 아니, 그것보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음을 부정할 수가 없는 나 자신에 대해 놀라고 있었다. 어느새 난 지금 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류드!" 그때 샤느 선생의 목소리가 내 모든 생각을 접게 만들었다. 생각이 갑자기 중단되어 어리벙벙해 있는 날 향해 샤느 선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니? 어디 아픈데 있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허걱! 대답을 잘못했다! 샤느 선생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 때 딴 생각을 했 다는 건 샤느 선생의 질문을 귀찮게 여겼다는 소리가 되잖아! "그랬구나. 난 또 갑자기 류드가 딱딱한 표정을 짓길래……." 그러나 샤느 선생은 내 대답을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난 분위기 전환을 위해 샤느 선생에게 물음을 던졌다. "근데 왜 절 부르셨어요?" "응. 그냥. 방학식 이후로는 처음 만나는 거잖아." 그러면서 샤느 선생은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에 많이 봤었지만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나 혼자만이 샤느 선생의 미소를 보고 있다는 생각 에 꽤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깨트려버리는 것이 내 특기였 다. "곧 3교시 시작인데요……." "……."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샤느 선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얼굴 표정 을 어둡게 하며 입을 열었다. "나하고 같이 있는 게 거북하니?" 흘흘…… 거북한 정도가 아니지…… 샤느 선생을 노리고 있는 다른 인간들 에게 맞아 죽을까봐 불안하고 초조하거든∼ "그건 아니구요…… 아, 근데 왜 1학년 마법 이론을 가르치시다가 갑자기 2학기부터 2학년 수업을 맡으신 거예요?" 난 뭔가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래봤자 오해만 더 깊어질 것 같아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다행히 샤느 선생은 그런 내 의도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응, 교장 선생님의 지시야. 물론 내가 부탁한 것도 있지만." 흘…… 역시 그렇군. 교장 할배야 내가 어떻게든 공부하도록 만들려고 샤느 선생이 2학년 수업을 맡도록 한 거겠지…… 문제는 샤느 선생인데…… 날 가 르치려고 일부러 2학년 수업을 하고 싶다고 교장 할배에게 부탁한 건가? 나 때문에……? "류드는 내가 가르치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거든." 샤느 선생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아름다운 미소였다. 정면으로 쳐 다보면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 난 그냥 머리를 긁적거리며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다. 샤느 선생의 미소를 마주 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띵 띵 띵 띵-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3교시 시작 종소리가 울려왔다. 그래서 난 고개를 들어 '어서 들어가야 되는데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샤느 선생을 바라봤고, 샤느 선생은 나직이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말했다. "계속 붙잡고 있어서 미안. 그럼 나중에 또 보자." "예. 그럼." 난 샤느 선생에게 인사하고 나서 급히 3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다행히 내가 교실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3교시 윤리 선생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자리로 돌아가 앉은 후에 거칠어 진 숨을 골랐다. 그런 날 보고 네오니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너 어디 갔다온 거냐? 애들이 그러던데 샤느 선생님하고 같이 나갔다며?" 허걱? 벌써 소문이 다 퍼진 건가? "어……." 네오니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그냥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네오니 스는 내 옆구리를 마구 찌르며 날 놀렸다. "지금까지 샤느 선생님하고 뭐한 거야? 혹시 샤느 선생님하고 밀애(密愛)를 나누는 건?" "그게 아니라 얘기 나눴어." "얘기? 무슨 얘기?" "몰라. 이것저것 물어서 기억이 안 나." 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하기가 귀찮아서 그렇게 대충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네오니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것저것? 그럼 샤느 선생님은 너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한다는 것? 그 말인 즉…… 샤느 선생님은 너에게 아주 많은 관심이 있다는 거겠지? 와 …… 잘하면 학교 선생님하고 제자하고 맺어지겠구나∼" "……." 흘…… 도저히 네오니스의 멋대로인 생각을 수습할 수가 없군…… 그래…… 그냥 맘대로 생각하고 맘대로 놀아라…… 난 신경 안 쓸란다……. [번 호] 8548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28일 22:58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53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8장:또다른 나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또 다른 나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559 게 시 일 :00/05/28 10:40:39 수 정 일 : 크 기 :4.3K 조회횟수 :220 <제 18 장> 또 다른 나 세월은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갔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다. 지금은 2220 년 8월 26일 월요일. 토요일 날 샤느 선생과 만난 지 겨우 이틀이 흘렀을 뿐 이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2학년 2학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으으……!" 2교시 수업까지 마치고 난 굳은 몸을 풀었다. 단지 2시간 수업을 받았을 뿐 인데 머리는 벌써 아파 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수업이 어려웠다. 게다가 중등부 2학년 2학기 과정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배웠던 것들이었 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웠다. 크…… 이러다간 성적이 형편없어질 것 같다…… 이거 장난이 아니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바로 밑바닥을 길 것 같아……! "후…… 너무 어려워……!" 네오니스도 나와 같은 입장이었는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난 그런 네오니 스에게서 진한 동료애(?)를 느끼며 아픈 머리를 달래기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자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자 의아해진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날 부른 사람을 쳐다보았다. 스포츠형의 짧은 흑발을 지닌 내 또래의 남학생이었다. 키도 나 와 비슷하고 약간 말라 보였는데, 눈이 나쁜지 안경을 쓰고 있었다. "……." 난 아무 말 없이 그 남학생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약간 어벙하게 생긴 그 소년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다음 시간이 화학Ⅱ인데…… 실험이 있거든……" "……." 뭐냐…… 도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빨리 용건만 말하고 사라져라∼ "그래서…… 너하고 내가…… 실험 도구를 가져와야 되거든……" 소년은 그것이 아주 어려운 일인 듯 상당히 답답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러자 내 옆에 앉아있던 네오니스가 소년의 말을 거들어주었다. "니트의 말이 뭐냐면, 오늘 화학Ⅱ 실험이 있으니까 실험 도구 가져가러 같 이 가자는 거야. 실험 도구 가져오는 사람은 번호 순서대로 두 명씩 돌아가 면서 하거든. 오늘이 바로 너하고 니트 차례일거야." 흘…… 그런가?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될 걸 가지고 말을 더듬기는…… 아주 어벙의 극을 치달리는 녀석이야…… 근데…… 이름이…… 니트라고……? "알았어. 같이 가자." 난 자리에서 일어서며 니트라는 이름의 소년에게 말했다. 내 말에 소년은 약간 바보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장을 섰다. 그렇게 나와 소년은 화 학 실험 도구를 가지러 가기 위해 교실을 빠져 나왔다. "근데 이름이 뭐야?"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난 소년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소년은 그런 내 질문 에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베히클 니트로바츠……." "니트로바츠? 그럼 애칭은 니트야?" "응……." 니트로바츠는 날 조금 경계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나 소심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듯 했다. "……." "……." 우리 둘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곧바로 화학 실험 도구가 있는 2층 화학실로 직행했다. 서로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조바심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나나 니트로바츠나 이러한 침묵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 다. 드륵- 화학실은 미닫이문이었기 때문에 문을 옆으로 밀어서 열었다. 물론 문을 열 고 화학실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니트로바츠였고 난 그 뒤를 그냥 졸졸 따라 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나서 화학실 교탁 위에 놓여진 실험 도구를 각각 나 눠들고 다시 교실로 향했다. 덜그럭 덜그럭-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비커와 병이 서로 부딪치면서 제법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실험 도구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혼자서 들기엔 꽤 무거운 것이었다. 그런 실험 도구의 절반을 들고 가던 나는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니트로바 츠에게 물었다. "니트로바츠, 근데 화학 끝나면 또 이거 갖다놔야 되지?" "응……." 니트로바츠는 내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입을 연 김에 난 니트로 바츠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로 했다. "너 시력 마이너스지?" "응……." "너 올해 2학년 된 거야?" "응……." "1학년은 몇 년 동안 보냈어?" "2년……." "공부는 잘 하냐?" "……" 마지막 질문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과연 니트로바츠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 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을 받은 니트로바츠는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 못해……." "1학기 기말 고사 점수는 얼만데?" 난 공부를 잘 못한다는 니트로바츠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 내 질문에 니트로바츠는 약간 망설이다가 이내 대답했 다. "…… 87점……." 역시…… 잘 못한다는 소리는 거짓이었어…… 네오니스가 82점인데 87점… … 아마 반 10등 내에 들겠지? 전형적인 범생 스타일이야…… 마치…… 어벙 했던 내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 올리는 분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ㅡㅡ;; 하지만 써놓은 게 없으니...ㅡㅡ;;;;;;; [번 호] 8569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29일 14:05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3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8장:또다른 나 -2-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8장:또 다른 나 -2-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5/29 05:47:24 수 정 일 : 크 기 : 4.7K 조회횟수 : 72 "……." "……."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닫자 니트 로바츠는 그저 묵묵히 교실로 향하기만 했다. 남이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니트로바츠의 모습은 확실히 예전의 내 모습 이었다. 탁- 교실에 도착하여 들고 온 실험 도구들을 교탁 위에 두고 나서 나와 니트로 바츠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시계를 보 니 수업 시작까지는 아직 1분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난 화장실 에 가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 음…… 니트로바츠는 1분단 세 번째 줄에 앉는군. 으…… 할 일 없이 멀뚱 멀뚱 앉아있는 것도 예전의 나와 너무 닮았어…… 나도 예전에는 저렇게 한 심한 모습이었을까……? 뭐 어쨌거나 지금은 화장실이 급하니까 얼른 화장실 에 가자……! 화학Ⅱ 시간이 끝나고 나와 니트로바츠는 다시 실험 도구를 갖다놓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화학실로 향했다. 역시 우리 둘은 아무런 얘기도 주고받지 않 았다. 한 여학생이 니트로바츠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니트!" 나와 니트로바츠가 중앙 계단으로 2층에 내려갔을 때, 2층 복도를 지나가던 한 여학생이 니트로바츠의 애칭을 불렀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니트로바츠 의 표정에는 순간적으로 기쁨이 떠올랐지만 내가 있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금 방 무표정한 척했다. "어디 가는 거야?" 니트로바츠에게 달려온 여학생은 니트로바츠와 같은 나이처럼 보였다. 네오 니스의 애인(?) 네스포린처럼 에메랄드 색의 머리칼이었지만 단발형의 네스 포린과는 달리 길게 늘어뜨린 머리였다. 흘…… 얼굴도 꽤 예쁜…… 얼라리……? 왠지…… 저 얼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마…… 설마…… 하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 냥 비슷한 사람이겠지…… 하하하……! "안녕, 아세트." 니트로바츠의 인사말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여학생의 이름은 날 쓰 러지게 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세트…… 니트…… 하하하…… 하하하하…… 뭐야 이거……? 저 녀석들은 환타지 세계에서의 나와 아세트란 말이야……? 여기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단 소리인 거야……? 하하하…… 안 믿을래……! "아, 화학 실험 도구 가져가는 거야?" 아세트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그렇게 묻자 니트로바츠는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반대야. 실험이 끝나서 갖다놓으려고." "응, 그렇구나." 니트로바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여학생은 내가 계속 쳐다보는 것을 알 아채고는 불쾌하다는 듯 니트로바츠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응…… 2학기부터 2학년 수업을 받게 된 류드나르야……." "류드나르? 그 전과목 만점자?!" 그 여학생도 내 소식을 알고 있었는지 크게 놀라며 이번엔 날 자세히 뜯어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난 니트와 아세트라는 이름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 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충격 받은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둘에게 농담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너희 둘 사귀는 거야?" "에?!" "……!" 여학생과 니트로바츠는 서로 동시에 놀랐다. 여학생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 인 채 고개를 숙였고, 니트로바츠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만약 손에 아 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 그냥 해본 소리고…… 어쨌든 너희 둘 잘 어울리니까. 니트로바츠, 빨 리 가자." 그렇게 대충 얼버무린 나는 먼저 앞장서서 화학실로 향했다. 이미 위치는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학실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화학실에 도착하 여 실험 도구를 제자리에 갖다놓은 나는 화학실 밖에서 실험 도구를 든 채 아세트라는 이름의 여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니트로바츠의 모습을 바라보았 다. 후…… 니트와 아세트라…… 정말로 저들이 이곳에서의 나와 아세트라는 건 가?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니트로바츠의 지금 성격은 예전의 내 성격과 너무 비슷하다는 거야……. "아, 미안!" 여학생과 얘기를 끝낸 니트로바츠는 화학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날 보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실험 도구를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난 그런 니트 로바츠에게 그 여학생에 대해 물었다. "근데 그 여자애 이름이 뭐야?" "여자애? 아, 아세트?" "어." "…… 그건 왜?" 니트로바츠는 날 조금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혹시나 그 아세 트라는 여학생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예 전의 나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여자 친구가 전혀 없었으니까.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름 안 가르쳐주면 그냥 아세트라고 부른다?" "아…… 미안." 내가 그냥 그 여학생의 이름을 알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챈 니트로바츠 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여학생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이소아밀 아세트니퍼'야." 이소아밀…… 아세트니퍼…… 아세트 이소아밀과 상당히 비슷한 이름이군… … 흘…… 그럼 이제 유스타키오도 나오고 헤라클레스도 나오는 거냐? "그럼 아세트니퍼하고 너하고 소꿉친구야?" "응." "언제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7살 때부터. 서로 이웃이라서……." 니트로바츠는 역시 길게 대답하지 않고 짤막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나 와 니트로바츠는 단순한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물론 질문은 모두 내가 하고 니트로바츠는 대답만 했다. 그 모습도 완벽하게 예전의 나였 다. [번 호] 8570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29일 14:06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2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8장:또다른 나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18장:또 다른 나 -3-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5/29 05:47:56 수 정 일 : 크 기 : 4.9K 조회횟수 : 69 째깍째깍- 교실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은 조용히 흘러갔다.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2 학년들도 5교시면 수업이 모두 끝나기 때문에 오후에는 시간이 꽤 남게 되었 다. 종례가 끝난 후에 네오니스가 남학생들 쪽을 쳐다보며 크게 외쳤다. "오늘 A-5반 애들과 축구 시합하기로 했는데 할 사람은 이리로 와!" "오옷! 그거 정말이야?!" 네오니스의 말에 남학생들이 속속 네오니스 쪽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끼고 싶긴 했지만 내가 팀에 들어가면 망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냥 옆에 앉아 있기만 했다. 그래도 혹시나 인원이 부족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다른 곳 으로는 가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 그렇게 아이들 수를 세어가던 네오니스는 자신을 포함하여 인원이 9명밖에 되지 않음을 알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2명이 부족한걸? 누구 더 낄 사람 없냐?" 헐…… 2명이 부족하다라…… 그럼 내가 끼어도 되겠군. 그래도 혹시 나 말 고 다른 녀석이 들어오고 싶어할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볼까……? "없어?" 이미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교실을 빠져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네오니스의 외 침만 공허하게 교실을 메아리칠 뿐이었다. 잠시 실망한 표정을 짓던 네오니 스는 내가 아직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류드! 같이 축구하자!" 흘…… 굳이 내가 먼저 말을 안 해도 자기들이 알아서 끼워주는군. 심심하 던 차에 잘됐다. "어. 할게." "좋았어! 이제 한 명이구나!" 내가 순순히 승낙하자 네오니스는 기분 좋게 웃었다. 하지만 남은 한 명을 구하기가 난처했기 때문에 네오니스의 표정에는 다시 실망감이 떠올랐다. "……!" 난 그냥 교실을 둘러보다가 1분단 세 번째 줄에 앉은 니트로바츠가 아직 가 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난 네오니스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니 트로바츠를 가리켰다. "쟤를 포섭해라." "니트? 그래!" 내 말에 네오니스는 활짝 웃으며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니트! 우리랑 축구 같이 하자!" "응? 나……?" 갑작스런 네오니스의 요구에 니트로바츠는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난 그런 니트로바츠의 표정에서 마침 하고 싶었는데 잘 됐다라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기가 직접 축구 시합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누가 같이 하자는 말을 해야만 팀에 들어가는 니트로바츠의 모습도 확실한 내 예전 모습이었기 때문 에 감정 파악이 쉬웠다. "응…… 할게……." "좋았어! 이제 어서 운동장으로 나가자!" 나처럼 니트로바츠도 순순히 응하자 기분이 좋아진 네오니스가 기쁨의 환호 를 터트리며 운동장 쪽으로 빠르게 뛰어나갔다. 다른 아이들도 네오니스의 뒤를 따랐고, 난 가방을 들고 니트로바츠와 함께 녀석들의 뒤를 쫓아갔다. "오래 기다렸냐?!" 이미 상대편 아이들은 모두 나와 있었기 때문에 네오니스는 그 녀석들의 살 벌한 눈초리를 넉살좋게 웃음으로 때워 넘겼다. 어쨌든 우리는 곧장 축구 시 합할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랄 것은 없었고, 그냥 위치 정하고 선공을 정하 는 것뿐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부터 공격이다!" 선공은 우리가 되었기 때문에 네오니스를 주축으로 한 공격진 몇 명이 빠르 게 상대편 골문 쪽으로 치달렸다. 난 운동신경이 느려서 공격 같은 건 할 수 가 없어서 고등학교 때처럼 그냥 수비만 보았다. 그것은 니트로바츠 역시 마 찬가지였다. "니트로바츠, 공격 안 해?" 우리편이 공격하는 동안 할 일이 없는 나는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가 말을 걸 었다. 그러자 니트로바츠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공격은 무슨…… 수비도 잘 못하는데……" 흘…… 그 소리는 수비보다는 공격이 어렵다는 뜻이냐? 뭐…… 솔직히 아마 추어끼리의 시합에서는 그렇긴 하지만……. "그, 근데 류드나르는 왜 공격 안 나가?" 처음으로 니트로바츠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별로 기뻐할 만한 일도 아닌 데 괜히 기뻤다. 난 니트로바츠의 어깨에 내 팔을 두른 다음에 나직한 목소 리로 말했다. "그냥 류드라고 불러. 나도 앞으로 니트라고 부를 테니까. 괜찮겠지?" "응……." "그리고 네가 보기에 내가 운동을 잘하게 생겼냐?"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러니까 수비 보는 거야." 내 말에 니트로바츠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아직도 우리편의 날카로운 공격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난 니트로바츠에게 수비 보는 법에 대해 말 해주었다. "이 시합은 프로의 시합이 아닌 아마추어끼리의 시합이야. 그러니까 우리 같이 달리기 잘 못하는 사람들이 굳이 공격수들을 바짝 붙어서 공을 빼앗겠 다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 그냥 길목만 지키고 있으면 돼. 그럼 공격수들 이 알아서 실수를 하니까." "그런 거야?" "당연하지. 내가 그런 식으로 '컴퓨터 수비수'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거 모 르냐?" "컴퓨터 수비수?" "어. 내가 주로 공이 오는 방향에 서 있어서 그런 별명을 얻었지. 내가 하 는 일이라고는 굴러오는 공을 그냥 뻥 차는 것뿐이었지만 그 정도로 수비는 돼. 아마추어니까." "그렇구나……!" 니트로바츠는 날 아주 대단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약간 부담스럽긴 했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 난 축구할 때 수비만 보았지만 다수의 공격수들을 혼자 막아낸 전적이 있었다. 물론 세트 플레이 하겠다고 센터링 올린 공이 공격수들 중앙쯤에서 얼쩡거리던 내 발에 걸린 것이었지만. 흘…… 생각해보면 재미있었어. 물론 축구를 잘하는 녀석들에게는 여지없이 뚫렸지만 왠만하면 막아냈었지…… 내가 항상 공 있는 위치에 서 있어서 어 떤 녀석들은 내가 머리 속으로 공이 떨어질 위치를 미분과 적분으로 계산한 다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왠지 그때의 녀석들과 또 축구 시합을 하 고 싶다……. ─────────────────────────────────────── [번 호] 8613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30일 11:24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1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8장:또다른 나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또 다른 나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05 게 시 일 :00/05/30 06:48:36 수 정 일 : 크 기 :5.3K 조회횟수 :55 "오, 온다!" 니트로바츠의 말에 난 예전 생각을 접고 시합에 집중했다. 벌써 상대편 공 격수는 하프 라인을 넘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날 기준 으로 공을 몰고 오는 공격수 왼편에 두 명의 다른 공격수들이 뒤따라오고 있 었다. "니트! 넌 저 두 명이 오는 길목을 지켜! 저 녀석은 내가 맡는다!" 난 그렇게 니트로바츠에게 소리친 후 즉시 그 공격수 쪽으로 달려갔다. 물 론 바짝 붙지는 않고 길목만을 지켰다. 내가 달려오지 않고 길목을 지키자 그 공격수는 왼편에서 뛰어오던 다른 두 명의 공격수에게 공을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다시 골대를 향해 치달렸다. 전형적인 공격 패턴이라 난 녀석이 패스를 한 직후 우리편 골대 쪽 중앙으로 달려나갔다. 반대편에 공격 수가 두 명이나 있어서 니트로바츠 혼자서는 막아낼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 문이었다. "여기!" 먼저 공을 잡고 달려왔던 공격수가 골대 오른쪽으로 달려가면서 공을 잡은 다른 공격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패스 길목에 니트로바츠가 서 있어서 패 스하기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뒤에 따라오던 다른 한 명의 공격수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간다!" 공을 잡은 세 번째 공격수는 약간 어정쩡한 폼으로 달려들어 왔다. 척 보기 에도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난 같이 달리지 않고 골 키퍼에게 소리쳤다. "골키퍼! 앞으로 나가!" 사실 내가 소리칠 필요도 없이 골키퍼는 이미 공격수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공격수의 공격은 골키퍼에게 맡기고 난 제일 먼저 골대 근처에 있던 첫 번째 공격수에게로 달려갔다. 내 예상대로 세 번째 공격수는 수비가 아무도 붙지 않은 첫 번째 공격수에게 공을 패스했다. 하지만 골키퍼에게 걸릴까봐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한 그 패스는 형편없게 땅을 데굴데굴 구르는 정도의 것이었다. 그래서 난 가볍게 그 공을 우리 공격수들이 있는 쪽으로 뻥 찼다. "으앗! 빨리 수비로!" 공격해왔던 세 명의 공격수와 막 뒤따라오던 다른 공격수들이 기겁을 하며 다시 자기편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해서 2대 3, 아니 골키퍼까지 합하 면 3대 3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대단하다!" 니트로바츠는 감탄을 터트렸다. 난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거칠어진 숨을 고 르며 말했다. "하아…… 괜히 컴퓨터 수비수인 줄 아냐…… 하아……" 흘…… 이런 내 수비 방식은 상대가 아마추어일 때나 가능하지…… 프로에 서는 이런 방법이 절대로 안 통해…… 그래도 이건 서로 즐기기 위한 거니까 이 정도의 수비만으로도 충분하지 뭐∼ "수비!" 그때 우리편 공격수들이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공이 우리 쪽으로 높게 날 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니트로바츠는 긴장했다. 수비수는 여전히 우리 둘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퉁-! 한 번 바운드된 공은 니트로바츠가 헤딩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이까지 도달했 다. 정면에서는 바운드된 공을 잡기 위해 두 명의 상대편 공격수들이 달려오 고 있었다. 헤딩을 해서 공을 쳐낸다면 그 공격수들이 공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니트로바츠에게 소리쳤다. "니트! 헤딩!" "……!" 하지만 니트로바츠는 헤딩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상대편 공격 수가 공을 잡았고 이내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 녀석이 슛을 하지 못하게 난 가능한한 빠른 속도로 뒤따라갔다. 내가 뒤를 추격하자 심리적으로 불안 을 느낀 것인지 그 공격수는 엉성한 슛을 날렸고 공은 골대 위를 아슬아슬하 게 빗겨나갔다. "저런 벼엉신!" 자기네 팀 공격수가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자 다른 공격수들이 그 녀석을 손 가락질을 했다. 어쨌거나 이것으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다. "미…… 미안……!" 무리하게 뛰어서 숨을 헐떡이는 나에게 다가온 니트로바츠가 머리를 긁적이 며 미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그런 니트로바츠를 잠시 쳐다보다가 말을 했다. "안경 때문이지?" "……!" "헤딩하다가 안경 휘어질까봐 불안해서 못했지?" "응……." "안경 벗으면 하나도 안 보이니까 안경을 안 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경 쓰고 축구나 농구 같은 걸 하면 안경이 부러지거나 휘어질 가능성이 높으니 까…… 그래서 거의 운동을 안 하고…… 맞냐?" "응……." 니트로바츠는 내 모든 말에 수긍했다. 그것은 당연했다. 나도 그렇게 했었 으니까. 특히 나처럼 운동 신경이 둔한 사람은 격렬한 경기를 하다보면 십중 팔구 안경이 휘어져 버리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농구 같은 운동은 하기가 상당히 꺼려졌었다. 지금은 마법으로 시력을 회복시켜서 전혀 그런 것에 신 경 쓰고 있지 않지만. 흠…… 그러고 보니 나도 안경을 썼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안경은 쓸만 한 것이 못돼…… 안경을 쓰면 여러 가지로 제약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콘텍 트 렌즈도 제약이 없는 건 아니지. 그것도 불편해…… 결국 눈 나쁜 건 여러 모로 안 좋다니까∼ "자, 계속 경기에 집중하자!" 난 니트로바츠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내 위치로 돌아갔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나도 잘 알지 못했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어쩌면 그것은 나와 같은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내가 이 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관심 주지 않았던 당시의 나 에 대한 내 스스로의 조치…… 였을 지도……. 와와-!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흘렀고, 반 대항 축구 시합도 끝났다. 결과는 3대 2, 우리의 승리였다. 우리편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보인 사람은 단연 네오니 스였다. 네오니스 혼자 두 골을 넣었던 것이다. "우하하, 나 어떠냐?" 시합이 끝나고 나서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는 나에게 네오니스가 다가와 물 었다. 그래서 난 아주 당연한 말을 했다. "꽤 하던데." "꽤? 말투가 왜 그래? 뭐가 불만이야?" "수비수가 나하고 니트뿐이 없어서 죽는 줄 알았다. 두 골만 먹은 것도 기 적이야." 그런 내 말에 네오니스는 하하 웃었다. "어쨌든 이겼잖냐∼" 흘…… 이기면 다냐? 정신없이 뛰어다녀서 다리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죽 겠다…… 만약 1학기 때처럼 아르바이트가 있었다면 정말 지쳐 죽었을 지도 …… 어쨌거나 빨리 내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야지∼ [번 호] 8614 / 8614 [등록일] 2000년 05월 30일 11:25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8장:또다른 나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또 다른 나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06 게 시 일 :00/05/30 06:48:51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54 "니트!" 그때 누군가가 흐르는 땀을 물로 씻어내고 있는 니트로바츠에게 다가와 말 을 걸었다. 나보다도 먼저 네오니스가 그 사람을 알아보고 입을 열었다. "아세트네? 애인 감시하러 왔어?" "남이야 감시하러 오든 말든 무슨 상관?" 네오니스의 말에 아세트니퍼가 약간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불쾌 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네오니스가 그렇게 말해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 쨌든 대부분의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네오니스가 부러울 뿐이었다. "나, 니트가 축구 좋아하는지 몰랐어." 아세트니퍼는 그걸 정말로 몰랐던 듯 약간 놀람이 담긴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은 평소에 니트로바츠가 거의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난 니트로바츠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운동을 거의 하지 않으 니까. 긁적긁적- 니트로바츠는 웃으면서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본래는 '나 운동하는 거 좋 아해'라고 아세트니퍼에게 말하려고 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세트니퍼가 '그 럼 왜 운동을 하지 않는 거야?'라고 물을 게 뻔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그랬다. 니트로바츠가 내 성격과 같다면 그건 확실했 다.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아이들이 끼워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기 싫어 할 테니까. "아세트, 기숙사 안 들어가?" 화제를 바꾸기 위해 니트로바츠는 아세트니퍼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고 그 말을 들은 아세트니퍼는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내가 빨리 사라지길 바라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세트니퍼가 자신의 말을 오해하자 니트로바츠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 고 그런 니트로바츠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세트니퍼는 풋 하고 웃었다. "그냥 해본 말인데 왜 그렇게 당황해? 니트는 너무 순진하다니까." 긁적긁적- 니트로바츠는 그냥 머리만 긁적였다. 그래도 그런 그의 얼굴에는 아세트니 퍼가 화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많 은 신경을 써주는 니트로바츠의 모습은 아세트니퍼의 시선에 따뜻함을 담게 했다. "그럼 니트, 나 먼저 들어갈게. 오랜만에 운동 좀 하라구." "응." 아세트니퍼는 생글생글 웃으며 M5관 기숙사로 향했고 니트로바츠는 그런 아 세트니퍼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청하게 서 있었다. 아세트니퍼 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후 네오니스가 니트로바츠의 목에 팔을 걸며 장난 스럽게 말했다. "니트, 너무 티내는 거 아니야? 보는 사람 닭살 돋는 거 생각 좀 해달라구∼" "미, 미안……." 니트로바츠는 전혀 미안한 일이 아님에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다 른 사람들의 화를 북돋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피 해를 주고 싶지 않다라고 할 수 있었다. "니트, 류드, 이제 뭐 할거야?" 땀을 대강 씻어낸 네오니스가 나와 니트로바츠에게 물었을 때, 이번엔 네오 니스의 애인인 네스포린이 등장했다. 네스포린은 아세트니퍼와는 달리 처음 부터 거칠게 나왔다. "네오! 공부는 안 하고 왠 운동이야?" "운동은 기분 전환으로 하는 거야.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다보면 척추 디스 크 생긴다, 너∼" "그거하고 운동하고 무슨 상관이야?" "상관없긴 왜 없어? 운동을 통해서 그런 병들을 예방하는 거라고∼" "운동하다가 다치면 어쩔 거야?" "그러니까 안 다치게 하고 있잖아." "흥! 흥분하면 무작정 뛰는 주제에."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은 그렇게 논쟁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결국 네스포린이 말하고자 한 바는 네오니스가 다칠까봐 걱정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이야말로 니트로바츠와 아세트니퍼보다 더 닭살 돋는 커플이었다. "난 기숙사로 갈게." 더 이상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의 사랑싸움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네 오니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오니스는 같이 좀더 놀자는 말을 하려고 했지 만 네스포린이 째려보는 바람에 그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니트, 같이 갈래?" 예전의 나와 유사한, 아니 거의 같은 성격을 지닌 니트로바츠와 좀더 같이 있고 싶었기 때문에 니트로바츠에게 그런 제안을 했고, 내 예상대로 니트로 바츠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네오, 네린과 잘 해봐라∼" 난 지나가는 어투로 네오니스에게 그렇게 말한 뒤 니트로바츠를 데리고 급 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런 내 뒤에서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의 구차한 변명이 들려왔다. "네린과 잘 해보라니 뭘 잘 해보라는 거야! 난 네린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 라구!" "야, 류드나르! 내가 네오 애인인 줄 알아?!" 흘…… 시끄럽군. 모처럼 선심을 써서 서로 이어주려고 했더니 거부들을 하 는구만. 그렇게 자신들의 마음을 속여서는 안되지∼ 아, 그러고 보니 내 성 격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네오니스에게 그런 시덥지 않은 농담도 던지고. 역시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까 성격이 막 변해∼ "저기……" 내가 그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내 옆에서 말없이 따라오던 니트로바츠가 입 을 열었다. 니트로바츠의 성격상 먼저 질문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거 나 궁금한 일들일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난 즉시 니트로바츠 쪽으로 고 개를 돌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왜?" "응…… 류드는 여자친구 있는지 궁금해서……." 내 생각과는 달리 니트로바츠가 나에게 한 질문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었 다. 어쨌든 질문은 질문이기 때문에 난 그것에 대한 대답을 했다. "지금은 없지." "그럼 예전엔 있었다는 거야?" 재차 이어지는 니트로바츠의 물음. 난 내 생각을 정리해야했다. 무작정 대 답했다가는 나중에 큰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먼저…… 환타지 세계로 떨어졌을 때 제일 처음 만난 아세트…… 서로 좋아 했지만 아세트는 결국 떠났다…… 그 다음엔 인티…… 역시 서로 좋아하지만 지금은 기억의 혼재 때문에 인티는 고통받고 있다…… 둘 다 나에게 있어서 중요했던 사람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그 둘을 생각하면 아무 런 느낌도 들지 않는다…… 왜…… 왜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거지……? 난 벌써 이곳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인가……? 아니면…… 잊고 싶어 서 그런 것일까……? "……!"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니트로바츠가 아무 말 없이 정면만 쳐다보고 있음 을 알게 되었다. 니트로바츠는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냥 입을 다물고 정면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니트로바츠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예전에 애인이 있었다고 말은 못 하겠다. 관계가 묘해서 말이야." "그래? 쓸데없는 거 물어봐서 미안." "뭘 그런 거 가지고 사과하냐? 자, 빨리 기숙사에 들어가자." 나와 니트로바츠는 중등부 2학년 남학생들이 거주하는 M4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니트로바츠의 방은 우리 방 바로 옆이었다. 우리 방과 니트로바츠의 방 사이에 선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니트 로바츠에게 물었다. "방에 들어가서 뭐하냐?"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니트로바츠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 다. 니트로바츠가 얼마만큼이나 나와 비슷하게 생활하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 다.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던 니트로바츠는 머리를 긁적이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그, 글쎄…… 별로 하는 일은 없는데……" 흘…… 역시 내 생각대로 대답하는군. 뭐, 더 물어보면 니트로바츠가 곤란 해할 테니까 이쯤에서 그만둬야겠다. 하여간 니트로바츠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쉬워∼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 난 니트로바츠에게 그렇게 말하고 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크리스 토르가 침대에 누워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겉 표지의 제목으로 봐서는 추리소설 같았다. 반면 라이는 역시나 침대에 대(大)자로 뻗어 퍼질러 자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잠만 퍼질러 자는 라이의 그 엽기적인 모습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크리스, 너 추리소설 좋아하냐?" 별로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추리소설 책이라도 얻어 볼 양으로 크리스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고, 크리스는 계속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나 추리소설 매니아다. 너도 볼래?" "어." 크리스의 그 말은 내가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크리스의 말이 끝 나자마자 난 분명하게 대답했다. 크리스는 여전히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손가락으로 자기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책상 서랍 봐봐. 첫 번째 서랍에 있어." "알았어." 난 바로 크리스토르의 첫 번째 책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여러 권의 추리소설 책들이 들어 있었다. 난 그 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책을 집어들고 나서 내 침대에 걸터앉아 그 책을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볼만한 것이었다. 어쨌든 시간 때우기에 딱 좋았으니까.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655 / 8676 [등록일] 2000년 05월 31일 23:13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25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22 게 시 일 :00/05/31 06:14:58 수 정 일 : 크 기 :4.9K 조회횟수 :257 <제 19 장> 의문의 죽음 2220년 8월 31일 토요일. 달력상으로만 보면 내일부터 가을의 시작이었지만 실제 날씨는 여전히 한여름이었다. 특히 환경 오염에 의해 무더위 현상은 내 가 살던 세계보다 더 심했다. "우후∼ 찐다 쪄!" 토요일의 3교시 수업 중 2교시, 즉 마법 이론 시간이 끝나자마자 네오니스 가 책으로 부채질을 하며 더운 날씨를 탓했다. 다른 아이들 역시 수업이 끝 나고 나서야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만약 2교시가 마법 이론이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수업 중에 부채질을 했을 테지만,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인 샤느 선 생이 수업을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수업 중에 부채질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류드, 넌 안 덥냐?" 책으로 열심히 부채질을 하던 네오니스는 막 책상에 엎드려 자려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내가 전혀 더운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이상한 모양이었다. 난 책상에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만 네오니스 쪽으로 돌리고 나서 대답했다. "더울 때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야." "그래? 난 그게 더 더울 거 같은데?" 내 말을 들은 네오니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상당히 더운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는 것도 귀찮았다. "그냥 넘어가." "할말없으니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냐?" "맘대로 생각해라…… 난 잘란다……." "……." 자겠다는 내 말에 네오니스는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래서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물론 정말로 자는 것은 아니고 그저 휴식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옆에서 네오니스가 쉴새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 에 가끔씩 네오니스의 부채 바람을 쐬면서 조금은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 었다. 꺄아악-! 그때 기숙사 쪽에서 왠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갑작스런 비명소리에 아이 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평소의 나였다면 그 정도의 비명소리에 신경조차 쓰지 않았겠지만 할 일도 없었고 날씨도 무더워서 교실에 남아있기 싫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뒤를 쫓았다. 흘…… 갑자기 왠 비명소리였지? 설마 괴물이라도 쳐들어온 건가? 헤…… 설마 그건 아니겠지…… 아니지, 이곳에도 드래곤과 같은 드라콘이 있으니까 오크 같은 괴물이 존재할지도 몰라……! "허억!" "꺄악!"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있는 곳에 도착해서 내가 처음으로 들은 소리는 그곳 에 서 있던 아이들의 비명소리였다. 나와 네오니스, 크리스토르는 그런 아이 들의 틈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주로 네오니스가 길을 뚫고 나와 크리스 토르는 그 뒤를 따르기만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우리들은 아이들이 보고 놀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헉!" "이건……!" "……!"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역시 그것을 보고 경악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난 두 사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아버렸다. 아이 들이 보고 있던 것은 튼튼해 보이는 나뭇가지에다 혁대를 묶고 목을 매달아 죽어있는 우리 학교 중등부 1학년 남학생의 시체였다. 죽어서 창백하게 변한 그 남학생의 얼굴…… 그것은 바로 내가 잘 알고 있는 테리야크였다. "누가 경찰을 불러!" 어떤 남학생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소리쳤지만 정작 경찰을 부르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조차 감히 경찰을 부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 다. "너희들 무슨 일이냐?!" 아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한 남자 선생이 아이 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아이들은 그 선생이 테리야크의 시체를 발견하도 록 하기 위해 길을 터 주었고, 그 선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테리야크가 매 달린 나무 근처에 다다랐다. 그리고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이게……!" 창백하게 변해버린 테리야크의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 선생은 갑자기 몸을 돌려 본관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함부로 손대지 마라!" 하지만 선생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아이들 중 그 누구도 테리야크에게 손대려는 사람은 없었다. 척 보기에도 이미 죽은 게 확실했고, 설령 지금 구 하면 살아난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손쓰지 않았다. 테리야크의 친구인 나조 차도 그랬으니까. "네오, 류드. 저기 저 애 발 밑을 봐." 내가 테리야크의 얼굴을 보며 넋을 잃고 있을 때 옆에 있던 크리스토르가 테리야크의 발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나와 네오니스는 테리야크의 발 밑을 쳐다보았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테리야크의 바로 밑에는 하얀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그 종이에 무엇이 써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난 천천히 죽은 테리야크에게로 걸어갔다. "류, 류드!" 내가 테리야크에게 다가가자 크리스토르가 놀라 날 불렀다. 하지만 난 놀라 는 아이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테리야크의 발 바로 밑에 놓인 종이를 살펴보 았다. 물론 손을 대지는 않고 그냥 눈으로만 확인했다. "유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단어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써진 내용도 유서라는 단어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유서? 유서라구?"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네오니스가 급히 내게로 다가와 물었다. 난 그저 고 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네오니스는 발 밑에 놓인 유서와 나뭇가지에 목을 매 단 테리야크를 번갈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이 녀석은 자살했단 말이야?" "……!" 그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자기들끼리 웅성대고 있었기 때문 에 난 전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웅성거림이 중 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테리야크가 자살을 했는가가 중요했다 [번 호] 8656 / 8676 [등록일] 2000년 05월 31일 23:14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27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23 게 시 일 :00/05/31 06:15:14 수 정 일 : 크 기 :5.1K 조회횟수 :245 "자살? 류드, 네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때 크리스토르가 나와 네오니스 곁으로 다가오며 테리야크의 죽음에 의문 을 제기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난 테리야크의 죽음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테리야크 주위를 살펴보았다. 우선…… 테리야크는 목에 혁대를 매단 채 죽어있고…… 혁대는 목을 매달 수 있을 정도로 길다…… 또 나뭇가지에 혁대를 감아 그 이음새를 강력 테이 프로 붙여서 떨어지지 않게 했고…… 발 바로 밑에는 구겨지지 않은 유서 한 장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외관상 테리야크는 아주 깨끗하다…… 단지 그 것뿐…… 그 이외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니?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크리스토르의 의문 제기에 네오니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크리스토르는 자신의 의문을 네오니스와 나에게 말해주었다. "봐, 저 애 주변에 발판이 없잖아. 자살을 하려면 발판을 딛고 나뭇가지에 매단 혁대에 목을 매단 뒤, 발판을 발로 걷어차거나 발판에서 뛰어내리는 게 보통이잖아? 근데 발판이 없어. 발판이 없는데 어떻게 자살해?" "……!" 크리스토르의 말에 네오니스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아이들까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네오니스는 곧바로 크리스토르의 말을 반박했다. "꼭 발판이 있어야만 자살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뭇가지에 혁대를 매단 뒤에 나무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릴 수도 있지 않아?" 네오니스의 지적은 꽤 좋은 것이었지만 지금 테리야크의 상태에서는 충분한 증거를 갖지 못했다. "봐, 저 애 교복이 깨끗해. 전혀 나무를 타고 올라간 흔적이 없어." 크리스토르는 구겨짐이 거의 없고 나뭇잎조차도 붙어있지 않은 테리야크의 교복을 가리켰다. 그래서 네오니스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혼잣 말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자살이 아니라면…… 타살이라는 소리인가……?" "……!" 네오니스의 중얼거림에 잠시 조용히 있던 아이들이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 했다. 자살보다 타살 쪽이 자신들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언제 그 살인범이 자신을 죽일 지 알 수 없으니까. "설마 연쇄 살인?" "범인은 도대체 누구……!" 아이들의 웅성거림은 나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 그때 본관으로 뛰어갔 던 그 남자 선생이 다른 선생들과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들은 몰려있는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곧 경찰이 올 테니까 너희들은 교실로 돌아가 있어!" "곧 수업 시작이다! 어서 돌아가!" 그러자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불평하면서 교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와 네오니스, 크리스토르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실 돌아갈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지금 저 나뭇가지에 목을 매단 사람이 내 친구인 테리야크인 데다가, 그 테리야크가 타살 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에 범인을 잡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고 싶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왜 안 돌아가?!" 우리들이 계속 남아있어서 아이들을 돌려보내던 선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선생들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크리스토르는 약간 불안한 눈초리로 나와 네오 니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해? 돌아가라는데?" "그, 글쎄…… 어떡하지?" 네오니스도 갈등했다. 하지만 난 전혀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선생들에게 얘기했다. "저희들은 여기 남겠습니다." 그러자 바로 선생들의 호통이 날아왔다. "뭐?! 이 녀석들이? 당장 돌아가!!!" 흘……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돌아갈 내가 아니지! "경찰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려면 저희들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요?" "……!" 내 말에 선생들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시체를 먼저 발견한 학생 은 이미 돌아간 상태였기 때문에 남은 사람은 우리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니, 아직도 몇 명의 아이들이 남아있긴 했다. "……." 선생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한 말이 맞긴 맞지만 곧 수업이 시작된다는 것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헷갈려하는 것이었 다. 띵 띵 띵 띵- 그때 3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그래서 결국 선생들은 우리보고 어서 교실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찰들에게는 우리가 설명할 테니까 너희들은 안심하고 돌아가 있어!" "……." 난 할말이 없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들이 여기 있어봤자 경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는 모르지만 우리가 도 착한 뒤에는 그 누구도 시체나 그 외의 것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라고 말 하는 것밖에 없을 확률이 제일 컸다. 게다가 경찰들이 제일 처음 현장을 발 견한 학생을 부를 게 뻔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곳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셋은 교실로 돌아가야만 했다. 삐뽀삐뽀- 선생들에게 개겨서라도 어떻게든 남으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절묘한 타이밍으로 경찰이 학교에 도착했다. 경찰이 도착했기 때문에 선생들은 우리 에게 신경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선생 들 눈에 잘 띄지 않게 약간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류드, 너 수업 안 들을 거야?" 크리스토르가 약간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난 그런 크리스토르에 게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지금이 더 중요하잖아." "……." 우리들은 말없이 경찰들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았다. 출동한 경찰은 모두 2 명이었다. 단지 2명뿐이었다. 특히 그 두 명의 경찰 중에서 나이가 좀 들어 보이고 인상도 거칠게 생긴 경찰 아저씨는 테리야크의 발 밑에 놓인 유서를 집어서 쭉 훑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이군요." 흘…… 역시 저 아저씨는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구만. 역시 그대로 두면 살해당한 테리야크만 억울해진다니까. 이러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겠군. 테리야크를 죽인 녀석을 가만히 놔두면 안되니까!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3- 관련자료:없음 [26909] 보낸이:김정호 (HopeLKS ) 2000-06-01 16:08 조회:706 "저기요, 자살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난 즉시 막 시체를 수습하려는 두 경찰에게 다가가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두 경찰은 하려던 행동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그 중에서 방금 '자살이군 요'라고 말했던 경찰 아저씨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날 째려보며 말했다. "애들은 저리가!" "……." 흘…… 어리다고 바로 무시하는군. 역시 저 인간은 생긴 대로 놀고 있어… … 내가 좀 강하게 나가야겠는걸? "경찰 아저씨의 생각이 틀려서 그럽니다. 이건 자살이 아닌 타살이에요." "……." 내 말에 경찰 아저씨의 표정을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글 로 옮긴다면 '뭐야 이 새끼는? 나보고 틀렸다고? 이런 엿같은 녀석이……!' 였다. "선생님들, 이 녀석 좀 데려가 주세요!" 경찰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선생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선생들이 나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말하려는 순간에, 난 경찰 아저씨에게 도 전장을 내밀었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인 이유를 말씀드리죠!" "……." 그 경찰 아저씨는 여전히 날 띠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가 계속 끼어 들 려고 하니까 상당히 기분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에 기죽는 다면 테리야크를 살해한 범인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난 물러서지 않았다. "유서는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유서를 자살의 증거로 채택하는 건 곤란합니다. 필체 감정을 하면 아마 그 유서는 다른 사람이 썼다는 것으 로 나올 걸요?" "……." 경찰 아저씨는 입을 다문 채 날 쳐다보기만 했다. 내 말을 전혀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난 계속 타살의 증거를 들먹였다. "자살이라면 당연히 시체의 주위에 발판 같은 것이 있어야 할텐데 전혀 없 어요. 게다가 유서는 시체의 발 바로 밑에 놓여져 있었죠. 보통 유서는 자기 앞에다 내려놓은 다음에 목을 매달잖아요? 근데 어떻게 유서가 시체의 발 바 로 밑에 있을 수 있어요? 그건 테리야크가 자살을 한 것처럼 속이려는 살인 범의 술책이라구요." "……." 흘…… 지금 이 경찰 아저씨,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거야? 아무래도 내 말을 막 씹는 것 같은데?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 인간이군……. "아셨겠죠? 이건 자살이 아닌 타살입니다." 난 타살이란 점을 강조하면서 끝맺음을 했다. 그러나 경찰 아저씨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아주 간단했다. "개소리 말고 꺼져." "……." 개소리?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이 개소리라고? 흐흐…… 이거 이성을 잃으려 고 한다…… 참자…… 참아……! "오디! 어서 119 불러. 여기 자살한 인간이 있으니까." 경찰 아저씨는 자신과 같이 온 젊은 경찰에게 그렇게 명령했다. 그 말은 타 살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폭발하고 말았다. "자살? 뭐가 자살이라는 거야?! 야, 이 새끼야! 경찰이면 똑바로 사건 처리 해!" "……!"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경악했다. 특히 그 경찰 아저씨 는 내가 정말로 자신에게 욕을 한 것인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다시 한 번 욕설을 내뱉었다. "자살이 아닌데도 자살이라고 하는 심리는 뭐야? 쉽게 일을 처리하자는 거 야? 그러고도 네 녀석이 경찰이냐? 차라리 내가 경찰 하는 게 낫겠다!" "뭐? 이 녀석이 지금……!" 그제서야 내가 확실히 자신에게 욕했음을 안 경찰 아저씨는 가뜩이나 더러 운 인상을 팍 구기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멱살을 움켜잡고 소리쳤 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이 새끼야! 공무집행 방해죄로 깜방에 쳐 넣어 줄 테 니까!" 흐흐…… 이거 내 성질을 막 건드리는데? 아, 좋아좋아. 어디 갈 데까지 가 보자고! "정말로 공무집행 방해를 해줄까?" "……!" 내 얼굴에 떠오른 사악한 표정을 발견한 경찰 아저씨는 흠칫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갈 데까지 가겠다고 생각한 이상, 난 멈추지 않았다. 화르륵-! 내 옆에서 생겨난 두 개의 카파 하사로. 내 멱살을 움켜잡은 경찰 아저씨의 몸에다 박아버리기 위해 내가 만든 불화살이었다. 이 자리에서 경찰 아저씨 를 죽여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무, 무슨 짓이야?!" 내 옆에 생겨난 두 개의 카파 하사로를 보고 경찰 아저씨가 기겁했다. 내가 마법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방금 전에 날 죽일 듯했던 그 모습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경찰 아저씨의 모습이 날 더 화나게 했다. 그래서 그 경찰 아저씨를 향해 카파 하사로를 날렸다. "그만 둬라, 류드나르!" 그때 굵직한 목소리가 내 행동에 제재를 걸었다. 그 목소리가 워낙 강경했 기 때문에 난 나도 모르게 경찰 아저씨에게 날린 카파 하사로를 그대로 흩꾰p으 러 뜨려버렸다. "헉……!" 자신의 바로 앞에까지 날아왔던 카파 하사로가 소멸하는 것을 보고 경찰 아 저씨는 안도감 어린 헛바람을 토해냈다. 난 경찰 아저씨에게서 시선을 돌려 나에게 그만 두라고 소리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내 담임은 멜수스 선생이었다. 뚜벅 뚜벅- 멜수스 선생은 발에 힘을 싣고서 나와 경찰 아저씨에게로 걸어왔다. 거칠게 보이는 멜수스 선생의 인상 때문에 경찰 아저씨는 그저 멜수스 선생을 쳐다 보기만 했다. 아마 속으로 '나만큼이나 인상 더러운 인간이 존재하다니……!'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까 전에 경관님하고 류드나르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류드나르가 경 관님에게 욕을 한 것은 담임으로서 사과 드립니다." 흘…… 일을 쉽게 처리하려는 저런 경찰 아저씨에게 님자를 붙이다니…… 게다가 사과까지 한다고? 어처구니가 없구만……! "당신이 담임이요? 도대체 학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머리에 피도 안 마 른 녀석이 다 큰 어른에게 욕지거리를 합니까?!" 경찰 아저씨는 멜수스 선생을 비난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멜수스 선생의 인상 때문에 잔뜩 쫄고 있다가 멜수스 선생이 저자세로 나오니까 바로 사람 을 무시하는 것이 아주 역겨웠다. 당장이라도 카파 하사로를 심장에 쳐박아 버리고 싶었다. "……." 멜수스 선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주먹을 꼭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 을 보면 경찰 아저씨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멜수스 선생의 그 런 모습에 경찰 아저씨가 다시 움찔할 때, 멜수스 선생은 선생답게 화를 삭 이며 입을 열었다. "제 제자가 욕을 한 것은 담임으로서 정말 드릴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까 전에 류드나르가 이 사건을 타살이라고 한 것은…… 제 생각에도 일리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멜수스 선생의 말끝은 떨렸다. 만약 이번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으 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려버리겠다는 아주 심오한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경찰 아저씨도 그런 멜수스 선생의 심오한 뜻을 깨달았는지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 녀석, 아니 저 학생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저 녀석은 어려요! 그런 놈이 뭘 압니까?!" 말을 하면 할수록 경찰 아저씨는 점점 반말 투로 나갔다. 듣고 있던 사람을 상당히 기분 나쁘게 하는 말투였다. 경찰 아저씨가 자꾸 상황을 심각하게 몰 아가자 곁에 있던 젊은 경찰이 경찰 아저씨에게 조심스런 어조로 말을 걸었 다. "저기, 김 경관님. 제 생각에도 이건 타살일 것 같습니다만……" "뭐? 타살? 신입 경찰이 뭘 안다고 나서? 입 닥치고 있어!" 경찰 아저씨는 젊은 경찰은 완벽하게 무시했다. 동네 파출소 경찰인 주제에 잘났다고 떠드는 경찰 아저씨가 정말로 재수 없었다. 만약 이 자리에 멜수스 선생이나 네오니스 등이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저 경찰 아저씨를 죽여버렸을 지도 몰랐다. "경관님,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차근히 조사했으면 해요." "……!" 거친 남자들의 목소리만이 울리다가 갑자기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자 모두들 입을 다물고 그 말을 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정체는 놀랍게도 핑크빛의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에레나리스였다. 모범생 인 에레나리스가 수업 시간인 지금 이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웠지 만 에레나리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4- 관련자료:없음 [26910] 보낸이:김정호 (HopeLKS ) 2000-06-01 16:09 조회:682 "사건을 처음부터……?" 에레나리스를 본 경찰 아저씨는 얼굴을 확 누그러뜨리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조금이라도 에레나리스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얄팍한 생각이었다. 에레나리스는 나와 네오니스, 그리고 크리스토르를 눈으로 가리 키며 대답했다. "네.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류드나르에게 그 증거를 찾아보라고 하는 거예요." 허걱?! 나보고 증거를 찾으라구? 그건 형사들이 할 일이지 왜 나한테 떠넘 기려는 거야? "흠…… 그거 좋은 방법이군." 경찰 아저씨는 대뜸 에레나리스의 요구를 수락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에레 나리스가 예쁘기 때문에 승낙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이번 사건을 자세히 조사할 기회가 생겨서 기쁘기는 했다. "류드나르, 타살의 증거를 찾아봐."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에레나리스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 다. 그녀의 눈에는 '타살의 증거를 찾을 자신이 없다면 지금 포기하고 경찰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잘못을 빌어라'라는 빛이 어려있었다. 형사도 아닌 나 보고 증거를 찾으라고 하는 것이 매우 불합리하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뭐, 찾아볼게." 그다지 자신은 없었기 때문에 대답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크리스 토르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도와줄 테니까 한 번 찾아보자!" "나도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네오니스도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었던 크리스토 르는 그렇다 쳐도 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네오니스가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위안을 가져다주었다. "좋아, 그럼 나머지 분들은 사건 현장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난 내가 형사라도 된 것처럼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경 찰 아저씨는 그런 내가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 었다. 그렇게 해서 테리야크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건 현장 근처에는 나와 네오니스, 그리고 크리스토르만이 남게 되었다. "저기, 흰 장갑 없으세요?" 난 젊은 경찰을 향해 물었다. 맨손으로 시체나 그 외의 것들을 만지게 되면 내 지문이 남게 되고, 그것은 내가 테리야크를 죽여놓고 시체에 묻은 내 지 문을 마치 지금 내가 시체를 만져서 생긴 것으로 여기게 하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장갑이 필요한 것이었다. "장갑? 여기 있다." 거친 인상의 경찰 아저씨와는 달리 젊은 경찰은 순순히 흰 장갑을 벗어 나 에게 넘겨주었다. 난 손에 장갑을 끼고 나서 테리야크가 매달린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창백한 표정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테리야크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지내던 테리야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테리야크가 이런 모습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우선…… 테리야크는 혁대를 나뭇가지에 매달고 강력 테이프로 나뭇가지와 혁대를 딱 접착시킨 후에 혁대를 둥글게 해서 거기다 목을 맸군…… 이렇게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 아, 우선 범인이 학교 내부에 있는지 외부 사람인지부터 밝혀내야겠는걸? 만약 학교 내부인의 소행이라면 범인이 학교 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학교를 봉쇄해야해! "류드…… 이거…… 혹시 학교 안에 있던 사람이 저지른 범행이 아닐까?" 테리야크의 시체를 살펴보던 나에게 크리스토르가 물음을 던졌다. 마침 나 도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크리스토르에게 되물어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니 지금은 감히 그렇게 말은 못하겠는데…… 수위 아저씨들한테 물어봐 서 오늘 학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봐야지. 보통 토요 일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무단으로 빠져 나갈까봐 감시를 더 하니까 아마 외 부인이 들어오지는 못했을 거야." 크리스토르의 생각은 괜찮은 것이었다. 그래서 난 간단하게 이 사건을 내부 인의 소행이라 단정짓고서 증거를 찾기로 했다. "그렇다면 우선 범인을 내부인이라고 생각하자. 외부인이라면 우리가 잡기 어려우니까 그건 경찰들에게 맡기자고. 범인이 내부인일 경우에는 우리들이 잡을 수 있으니까 증거를 찾아보도록 하자." "그래. 그런데 범행이 일어난 시각은 언제일 것 같아?" 크리스토르는 갑자기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답은 금방 나왔다. "2교시 수업 시간일 때겠지." "2교시 수업 시간? 왜? 아…… 그렇겠구나!" 처음엔 내가 너무 쉽게 대답해서 의아해하던 크리스토르는 이내 탄성을 내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크리스토르만 서로 고개를 끄덕거리자 혼자 툌?霽4?네오니스가 급히 나와 크리스토르에게 물었다. "왜 2교시 수업 시간이야?" "응, 그건 1교시 쉬는 시간까지 저 애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그렇 지. 저렇게 나뭇가지에 사람을 매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시간이 많 이 걸리거든. 그래서 10분밖에 안 되는 2교시 쉬는 시간에 범행을 저질렀다 고는 보기 어려워. 그러니까 당연히 범행이 일어날 수 있는 시각은 2교시 수 업 시간 밖에는 없지." 크리스토르는 네오니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물론 나도 크리스토르 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크리스토르의 설명을 듣는 동안 뭔가 의문점 이 생겼기 때문에 크리스토르에게 다른 질문을 해보았다. "크리스, 근데 말이야. 테리가 2교시 수업 시간에 교실에 있었을까?" "테리? 너 얘 아는 거야?" 크리스토르는 내가 테리야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꽤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어.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애야." "그랬구나……." 나와 테리야크가 친구였다는 말에 크리스토르와 네오니스가 날 보며 안됐다 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둘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은 그것보다 테리를 죽인 범인을 일초라도 빨리 찾아내는 게 중요해. 만약 테리가 1교시 때에도 자리에 없었거나 오늘 결석했다면 범인은 테리를 1교시 시작하기 전이나 1교시 수업 도중에 죽인 후 2교시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 테리를 나뭇가지에 매달았을 수도 있어."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선 테리야크가 오늘 수업 시간에 있었는지, 또 언제 교실을 빠 져나갔는지를 알아내야 해." 내 말에 크리스토르와 네오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오니스가 나 와 크리스토르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알아볼 테니까 너희들은 다른 증거를 찾아봐." "그래." 사교성이 풍부한 네오니스라면 그런 쪽은 충분히 알아내고도 남는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에 난 네오니스에게 그 일을 맡겼다. 네오니스는 씨익 웃어 보인 뒤 급히 멜수스 선생과 함께 동관 쪽으로 사라졌다. 아이들에게 테리야크의 행적을 물어본답시고 혼자 교실에 들어가 애들에게 질문한다면 수업하던 선 생들에게 죽도록 얻어터질 가능성이 짙었기 때문에 멜수스 선생을 방패로 삼 으려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 우리는 다른 증거를 찾아보자." "응." 나와 크리스토르는 조심스럽게 사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난 주로 죽은 테리 야크의 몸을 뒤졌고, 크리스토르는 다른 것들을 살폈다. 흠…… 혁대를 강력 테이프로 묶었다면 당연히 강력 테이프가 근처에 떨어 져 있거나 테리야크의 옷에 들어있어야 할텐데 없군. 역시 범인이 테이프 버 리기 아까워서 가져가 버린 건가? 으…… 테리야크의 몸에 묻어있는 지문을 채취해서 지문 감식을 한다면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을 텐데 저 경찰 아저 씨가 도와줄 리 없고…… 힘들겠군……. "……!" 테리야크의 몸을 살피던 나는 테리야크의 목에 혁대에 의한 것과는 다른 자 국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건 손자국처럼 보였다. 만약 그 자국이 손가락 자 국이라면 범인은 테리야크를 목 졸라 살해한 후 나뭇가지에 매달았다는 뜻이 었다. "류드! 그 테리라는 애, 지금 허리띠 하고 있어?"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크리스토르가 약간 흥분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테리야크의 허리를 살펴보았다. 테리야크의 바지에는 허리띠가 얌 전히 매어져 있었다. "……!" 허리띠가 그대로 있다…… 이건 범인이 테리야크의 허리띠를 빼서 나뭇가지 에 묶은 게 아니라 다른 허리띠를 사용했다는 소리잖아? 만약…… 범인이 사 용한 허리띠가 범인 자신의 허리띠라면……! "누가 나뭇가지에 매어져 있는 혁대 좀 풀어주세요!" 난 사건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선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들은 잠시 경 찰 아저씨의 얼굴을 쳐다보며 망설였지만, 경찰 아저씨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곧장 달려와 테리야크의 시체를 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테리야크의 몸에 선생들의 지문이 묻겠지만 지문을 감식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그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번 호] 8648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2일 23:16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01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43 게 시 일 :00/06/02 05:43:47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233 뜨득- 뜨드득- 테리야크의 시체를 내린 후 나와 크리스토르는 혁대를 나뭇가지에 고정시키 기 위해 붙인 강력 테이프를 모조리 뜯어내고 테리야크의 목에 감겨 있는 혁 대를 떼어냈다. "역시……!" 테리야크의 목에 난 손자국을 보고 난 테리야크가 누군가에게 목 졸려 살해 당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편 크리스토르는 혁대에 자기 지문이 묻든 말 든 신경 쓰지 않고 혁대를 조사했다. 그리고는 원하는 것을 찾았다는 듯 탄 성을 내질렀다. "좋아!" "뭐야? 뭘 찾았길래?" 난 급히 크리스토르 곁으로 가서 물었고 크리스토르는 나에게 혁대에 나 있 는 구멍 쪽을 보여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혁대에 당연히 나 있는 구 멍만을 보여주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구멍을 자세히 들여 다보고 나서는 그것이 매우 중요한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구멍만이 유난히 크구나." 난 일부러 모르는 척 크리스토르에게 말을 했지만 크리스토르는 속지 않았 다. 그건 크리스토르의 얼굴과 한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너도 알았지?" 흘…… 내 말투가 너무 정직했나? 뭐 어쨌든 구멍 하나가 유난히 크다는 것 은 이 혁대를 누군가 자주 사용했다는 뜻이니까…… 이 혁대를 용의자들 바 지에 매도록 해보면 쉽게 범인을 찾아낼 수 있지. 후후, 생각보다 쉬운데? 추리소설 같은 데에서는 어렵더니만…… 뭐 그건 추리를 위한 사건들을 많이 만들어내니까 그렇겠지. 현실은 어디까지나 현실이고. "이 혁대를 쓰는 사람은 덩치가 크구나." 나에게서 혁대를 받아 들고 유난히 큰 구멍에 맞춰 자기 허리에 둘러보던 크리스토르가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확실히 테리야크의 시체를 나뭇가 지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덩치 큰 남자일 것이 기 때문에 그 인간이 사용하는 허리띠가 큰 건 당연했다. "그럼 범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군. 다른 증거를 찾아볼까?" "그래." 나와 크리스토르는 다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테리야크의 몸과 그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난 젊은 경찰에게서 받은 흰 장갑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주로 테리야크의 몸을 뒤졌고, 흰 장갑이 없는 크리스토르는 그 주변을 뒤졌 다. "이제 더 이상의 증거는 없는 것 같다……." 테리야크의 목에 남은 손자국과 테리야크의 목을 매고 있던 혁대의 증거를 찾아내고 난 뒤, 우리는 그 밖의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경찰 아저씨에게 가서 손자국과 혁대에 묻은 지문을 감식해달라고 하고 싶었 지만, 계속 띠꺼운 눈으로 우리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는 경찰 아저씨에게 무 엇인가를 해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남은 건 네오니스가 아이들로부터 얼마 나 많은 양의 정보를 얻어내느냐 하는 점이었다. "많이 기다렸지?" 나와 크리스토르가 대강의 증거를 찾아내고 쉬고 있을 때 네오니스가 한 때 의 무리들과 같이 나타났다. 멜수스 선생을 제외하면 모두 5명의 학생들이 네오니스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와 크리스토르가 뒤따라온 아이들을 보 며 의아해할 때, 네오니스는 우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알아보니까 그 테리야크라는 애는 2교시 때 양호실에 간다고 나갔다더라. 그 후로 들어오지 않았고." 흠…… 2교시 때까지 살아있었으니…… 결국 범행이 이루어진 시각은 2교시 수업 도중이라는 소리군. 그럼 2교시 수업 시간 도중에 교실에 없었던 사람 들을 모두 불러내면 범인을 잡아낼 수 있겠구나! "근데 네오. 뒤에 있는 애들은……?" 크리스토르가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눈짓으로 가리키자 네오니스가 싱글싱 글 웃으며 말했다. "2교시 수업 시간에 잠시 나가거나 아예 빠졌던 애들을 모두 불러모은 거야. 어때? 나 착하지?" 얼∼ 벌써 용의자들을 모두 데려왔다는 거야? 이거 일이 금방 풀리겠는걸? 네오니스, 다시 봐야겠어∼ "좋아, 그럼 범인을 찾아볼까?" 난 네오니스 뒤에 서 있는 아이들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다섯 명 중 두 명이 여자였고 나머지는 남자였다. 여학생 두 명은 키도 작고 몸도 말라보였 기 때문에 바로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시켰고, 남학생 세 명에게 초점을 맞추 었다. 흠…… 한 녀석은 나와 테리야크만큼이나 말랐고…… 나머지 두 녀석이 덩 치가 꽤 크군. 근데 저 덩치 큰 두 녀석들은 뭐 때문에 2교시 수업 도중에 교실을 빠져나간 거지? 역시 물어봐야겠어. "네오, 저 애들 몇 학년이야?" 난 두 덩치들이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네오니스에게 물었고 네오니 스는 내 등을 팡 치며 하하 웃었다. "모두 1학년들이니까 그렇게 쫄지 마라!" "……." 흘……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모두 듣게끔 말할 필요는 없잖아? 저런 덩치들 을 보고 어떻게 1학년일 거라는 생각을 하냐고. 여기는 나이로 1, 2학년을 구별할 수도 없는데! "좋아, 너희 둘에게 질문을 하겠어." 나이야 어쨌든 이곳은 철저한 계급 사회인 학교 안이었기 때문에 난 나보다 도 나이가 많아 보이고 힘도 쎄 보이는 두 덩치들에게 반말을 했다. 그래서 두 덩치들은 상당히 기분 나쁘다는 얼굴을 해 보였지만 하도 많이 당하는 일 인 듯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뭡니까?" 두 덩치 중 여자처럼 머리를 길게 기른 남학생이 아주 띠꺼운 목소리로 나 에게 물었다. 그의 그런 띠꺼운 목소리에 난 잠시 쫄았지만 다시 마음을 가 다듬고 그 녀석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넌 2교시 수업 때 어디에 있었지?" "오늘 감기에 걸려서 양호실에 누워 있었수다. 됐수?" 긴 머리 덩치는 꽤나 띠꺼운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난 그 띠꺼운 말보다는 그 말의 내용이 의심스러워서 재차 물었다. "감기? 여름에 감기에 걸린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아주 멀쩡한 것 같은데?" "지금도 열나고 있단 말입니다. 내 이마를 만져보면 알 거 아뇨." 그러면서 긴 머리 덩치는 머리를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순간적으로 긴 머리 덩치가 내 이마를 들이받는 것이 아닌가하고 잠시 긴장했었지만 얌전히 내 눈앞에 이마를 들이민 상태였기 때문에 난 녀석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 았다. 확실히 긴 머리 덩치의 이마는 뜨거웠다. 여름에는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 이런 덩치가 걸렸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여기서 웃으면 녀석에게 죽 도록 맞을 것 같아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어? 진짜 뜨겁네?" "당연하죠. 방금 전까지 양호실에 누워 있다가 끌려나온 건데!" 긴 머리 덩치는 자신을 끌고 온 범인인 네오니스를 살벌한 눈으로 쳐다보았 다. 네오니스는 그런 덩치의 시선을 피하며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난 그런 네오니스에게 물어보았다. "네오, 얘가 2교시 내내 양호실에 있었다는 게 사실이야?" "응. 양호 선생님께 물어보니까 그랬다고 하더라구." 네오니스는 여전히 긴 머리 덩치의 살벌한 시선을 피하며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어쨌든 이것으로 긴 머리 덩치의 행적은 어느 정도 파악이 됐 기 때문에 이번엔 빠박머리의 덩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2교시 동안 어디에 있었지?" "…… 수업 듣기가 싫어서 기숙사에 들어가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빠박머리의 덩치에게서 불안감과 초조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빠박머리 덩치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수업 시간에 무단으로 빠져서 선생들에 게 혼날까봐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범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중을 기하며 질문했다. "네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걸 본 사람이 있어?" "아마…… 없을 겁니다……." 음…… 뭐 기숙사에 들어가 자는데 누구한테 알릴 일은 없겠지. 어쨌든 두 덩치 중에서 이 녀석의 행적이 가장 수상쩍군.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하나 증 거와 껴맞춰볼까? "자, 그럼 거기 다섯 사람, 아니 여자는 허리띠를 안 하지…… 어쨌든 남자 들은 모두 허리띠를 보여줘." "……?" 빠박머리 덩치를 제외한 두 명의 남학생들은 내 요구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순순히 바지에 매고 있던 허리띠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에게 허리띠를 주지 않고 망설이는 사람은 빠박머리 덩치뿐이었다. "넌 왜 안 줘?" "그, 그게……!" 빠박머리 덩치는 크게 당황하면서 바지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래서 난 크 리스토르가 들고 있는 혁대를 눈으로 가리키며 물어보았다. "크리스가 들고 있는 혁대가 네 꺼지?" "……!" 크리스토르가 들고 있는 혁대를 본 빠박머리 덩치는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건네 받은 허리띠를 다시 돌려준 뒤, 크리스토르에게서 범행에 쓰 인 혁대를 가져와 빠박머리 덩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 이걸 허리에 매봐. 여기 크게 된 구멍에다 혁대를 끼고서 말이야." "……!" 빠박머리 덩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빠박 머리 덩치의 뒤를 네오니스가 막아섰기 때문에 녀석은 더 이상 도망갈 수도 없게 되었다. [번 호] 8649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2일 23:17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116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죽음 -6-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의문의 죽음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44 게 시 일 :00/06/02 05:44:05 수 정 일 : 크 기 :5.9K 조회횟수 :236 "으으……!" "왜 피하는 거지? 이 허리띠가 네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냐? 아니면 이 허 리띠에 묻어있는 네 지문 때문에?" 난 빠박머리 덩치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를 범인으로 몰고 갔다. 여기는 마법학교이기 때문에 녀석이 마법을 사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 했다. "테리의 목에 너의 손자국이 남아있어. 당연히 네 지문이 묻어있겠지. 또 네가 위조한 유서에도 네 지문이 남아있을 거고. 아, 그리고 혁대를 나뭇가 지에 고정시키려고 사용한 강력 테이프에도 네 지문이 있겠군. 이거 증거가 너무 많은 걸? 우발적으로 테리를 죽이고 나서 어떻게든 죄를 면해보려고 급 히 생각해낸 것이기 때문이냐?" "크윽……!" 빠박머리 덩치는 내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여차하면 날 공격할 분위기였기 때문에 난 긴장감을 가지고 녀 석을 주시했다. 잠시 그렇게 몸을 떨던 빠박머리 덩치는 이내 발악하듯이 소 리쳤다. "저 녀석이, 저 녀석이 봤기 때문이야! 그때 보지만 않았어도……!" "뭘 봤다는 거냐?" 난 발악하는 빠박머리 덩치에게 물었다. 범인은 이미 드러났고, 중요한 것 은 왜 빠박머리 덩치가 테리야크를 죽였는가였기 때문이었다. "난 잘못 없어! 모두 녀석이 봤기 때문이야! 난 잘못 없다고―!!!" 빠박머리 덩치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마구 내달렸다. 녀석이 뛰어가는 방향에 서 있는 사람은 에레나리스 밖에 없 었다. 그래서 난 에레나리스에게 소리쳤다. "피해!" "……." 그러나 에레나리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무 표정했다.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고 있었다. "……!" 에레나리스가 빠박머리 덩치에게 받혀서 쓰러지는 광경을 상상했던 난 아주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빠박머리 덩치가 에레나리스에 의해 업어치기를 당하는 장면을. 쿠웅―! 아주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빠박머리 덩치는 땅바닥에 등을 세게 부딪치며 완 전히 뻗어버렸다. 유도 선수를 방불케 하는 놀라운 에레나리스의 솜씨에 모 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에레나리스가 거대한 덩치 의 남자를 단 한 방에 넘겨버린 일은 절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 다. "뭐하세요? 범인을 밝혀냈으니 잡아 가야죠." 에레나리스는 멍청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경찰 아저씨에게 담담한 어조 로 말을 했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경찰 아저씨는 급히 젊은 경찰에게 명 령했다. "당장 체포해!" "옛!" 젊은 경찰은 즉시 빠박머리 덩치에게 다가가 손목에다 수갑을 채웠다. 나와 크리스토르가 엄청난 에레나리스의 업어치기에 놀라고 있을 때 네오니스는 우리들 중에서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에레나리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단한데, 에레나? 너 유도했었어?" "아니. 호신술을 조금 배웠을 뿐이야." 에레나리스는 표정의 변화 없이 그렇게 말한 뒤 나와 크리스토르에게로 걸 어왔다. 그래서 에레나리스가 우리들도 방금 전의 덩치처럼 업어치기 당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에레나리스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조금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정말로 범인을 잡아냈네? 난 못 찾을 줄 알았더니." 윽…… 에레나리스조차 날 무시하다니…… 도대체 애들 눈에 평상시의 내 모습이 어떻게 비쳐지길래……! "이제 그만 들어가자. 수업 시작한 지도 벌써 20분 흘렀어." 그러면서 유유히 교실로 돌아가는 에레나리스. 나와 크리스토르, 그리고 네 오니스는 즉시 에레나리스의 뒤를 따라붙었다. 반에서 우등생인 에레나리스 가 선생들에게 수업에 늦은 이유를 설명해주면 우리도 무사히 넘어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테리야크가 죽은지 며칠이 지나서야 우리들은 그 빠박머리 덩치가 왜 테리 야크를 죽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상황은 대충 이랬다. 우선 토요일 2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기숙사에 돌아간 빠박머리 덩치는 매점을 털기 위해 강력 테이프를 준비하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 다. 매점을 털려고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의 부모가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일요일에 신나게 놀기 위해 매점을 털어 유흥비를 마련 하려는 생각을 했던 빠박머리 덩치는 2교시가 시작되고 나서 아무에게도 들 키지 않게 본관 1층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서 매점 유리창에 강 력 테이프를 붙이고 유리창을 거의 소리 없이 깼을 때, 머리가 아파서 양호 실로 가고 있던 테리야크가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빠박머리 덩치는 이번까 지 합해서 매점이나 식당을 4번이나 턴 경력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정학까 지 받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측으로부터 다시 한 번 매점이나 식당을 털면 퇴학 조치를 내리겠다는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물론 학교 매점이나 식당을 4번이나 털 정도였으니 학교 다닐 마음이 없다 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문제는 그의 부모들이 그를 반드시 마법사로 만 들겠다고 벼르고 있었기 때문에 퇴학당한다면 부모들에게 죽도록 맞을 것이 라는 위협이 빠박머리 덩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테리 야크에게 범행 현장을 들킨 순간, 테리야크를 목 졸라 살해했던 것이다. 그 리고 나서 어떻게든 살인죄를 피하려고 마치 테리야크가 자살한 것처럼 꾸미 려고 했지만 우발적인 범행에다가 급하게 생각해낸 트릭이었기 때문에 여기 저기 헛점이 많아서 나와 크리스토르에게 덜미를 잡혔다. 흘…… 만약 그 경찰 아저씨가 제대로 수사만 했더라면 나와 크리스토르가 나설 일은 없었을 텐데…… 하여간 그 인간은 일을 쉽게 처리하려고 한다니 까. 그러고도 아직까지 경찰 옷을 입고 있다니 불가사의한 일이야……. "괜찮냐, 류드?" 내가 쉬는 시간에 멍청하게 자리에 앉아있자 네오니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네오니스에게로 돌리고 나서 물었다. "뭘?" "친구가 죽어서 충격 받은 거지?" 난 네오니스의 말대로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글쎄…… 아니야. 나하고 테리가 친구이긴 했지만…… 마음을 터놓을 정도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물론 테리야크는 내 마음을 자기 맘대로 읽어낼 수 있었지만 난 아니었고… … 테리야크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 그리고 만나봤 자 식당이나 쉬는 시간, 수업 끝나고 나서 잠깐 뿐이었으니…… 아주 친해질 기회는 없었고……. "그러냐? 그래도 왠지 기운 없어 보이는데?" "어…… 친구가 죽었는데 기운이 날 리 없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내가 기운이 없는 건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테리 야크의 죽은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 며칠 지나자마자 그때의 충격 이 거의 사라져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과연 나에게 정(情) 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번 호] 8747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5일 06:37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59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59 게 시 일 :00/06/03 18:23:37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331 <제 20 장> 행복? 2학년 2학기 중간 고사가 있었다. 2학년 들어와서 바로 2학기 시험을 치르 느라 난 진땀을 빼야했다. 비록 내가 살던 세계에서 모두 배운 내용이라고는 해도 1학기 내용을 듣지 못하고 시험을 치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류드, 이번에도 전과목 만점이냐?" 오늘 시험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네오니스가 그런 농담을 했다. 하지만 네 오니스 역시 내가 그다지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스갯소리로 묻기만 했을 뿐이었다. "후…… 어쨌든 평균 90은 넘었으니까 된 거지 뭐." 난 네오니스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는 내가 잘난 척 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전과목 만점자가 평균 90점을 겨우 넘었다는 사실은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네가 그렇게 나약한 소리를 하면 안되지∼! 넌 우리들의 희망이라고." "희망은 뭐가 희망이야. 어쨌거나 꼬리표 나오면 나 좀 깨워 줘." 네오니스의 말을 끊으며 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꼬리표가 뒷 칠판에 붙여졌으니까. 으…… 잠 좀 자려고 했더니 꼬리표조차 내 잠을 방해하는구만. 지금쯤 애 들이 많이 모여서 내 점수는 보기 어려울 테니까 나중에 보도록 하고 잠이나 자 볼까나? "애들 성적이 많이 떨어졌네?" "당연하지! 얼마나 어려웠는데!" "그래도 몇 년 한 사람들은 꽤 나왔다!" "당연하지! 몇 년 동안 배운 거잖아!" "어? 류드나르가 1등이다!" "당연하…… 뭐? 류드나르가 1등이라고? 여름 방학 끝나고 나서 편입한 애?!" "응. 평균이 94점인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소리가 고스란히 다 들렸다. 예비 채점을 못한 과 목도 있었기 때문에 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온 것에 기분이 좋아졌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 점수를 본답시고 일어난다면 애들이 나한테 이상한 말들을 걸 것 같아서 그냥 계속 자는 척했다. "대단한데, 류드! 너 1등이야!" 하지만 네오니스는 눈치 없이 내 등을 빡 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난 방 금 깨어난 것처럼 연기를 하며 네오니스에게 물어야했다. "어? 뭐?" "중간고사 말이야. 네가 반 1등이라고." 네오니스는 자기가 1등한 것도 아닌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것은 그만 큼 네오니스가 날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분 은 괜찮았다. 단지 네오니스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다른 아이들이 날 재수 없다고 여기지 않을 것인가가 걱정스러울 뿐이었다. "그랬냐? 난 잠 좀 잘란다."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왔다고 떠들기도 싫었고, 그렇다고 이 점수로 시험 못 봤다고 말하면 애들에게 살기 어린 눈초리를 받을 게 뻔해서 그냥 책상에 엎드렸다. 그러자 네오니스가 내 목에다 자기 팔을 걸며 목 조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시험 잘 봤으면 좀 기뻐해라. 난 저번보다 성적이 떨어졌단 말이야!" "그건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다른 애들도 거의 다 떨어졌다구!" "그렇게 따지면 나도 떨어졌잖아." "그, 그런가? 하하……!" 내 말에 할말이 없어진 네오니스는 멋쩍게 웃었다. 네오니스 때문에 잠이 모두 달아난 나는 성적이나 확인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이들 의 '저 녀석 인간이야?'와 비스무리한 시선을 받으면서 교실 뒷칠판 쪽으로 걸어갔다. "……." 흠…… 2등한 사람과는 총점이 3점 차이 나는군. 내 점수가 조금만 낮았어 도 2등이었겠는걸? 운이 좋았어∼ 근데…… 2등을 에레나리스가 했잖아? 4등 에서 2등으로 뛰어오르다니…… 상위권 쟁탈전은 정말 힘든 건데……! "2등은 에레나구나! 이거 우리 반 1, 2등을 신입 2학년들이 다 차지했잖아? 이건 아주 놀라운 일이야∼!"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네오니스가 실실 쪼개며 그렇게 나불댔다. 그래서 난 네오니스의 점수와 등수를 확인해보았다. 네오니스의 평균은 79점이었지 만 등수로는 15등이었다. "등수는 올랐네? 하지만 여긴 절대평가라서 반드시 90점 이상을 받아야 3학 년에 올라가니까…… 네오니스, 3학년 올라가는 거 포기해라∼" 난 농담조로 말했고 네오니스는 내 목에 자기 팔을 걸며 목조르기를 시도했 다. "놀리면 죽인다∼!" "윽…… 살류……!" 나와 네오니스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동안 크리스토르가 자기 점 수와 등수를 확인하고는 머리를 움켜잡으며 한탄했다. "으아…… 80점이라니! 그 동안 너무 추리소설만 읽어서 망해버렸다!" 흘…… 둘 다 심각하구만. 하긴, 나도 엄청나게 성적이 떨어진 거라 할 수 있으니까 네오니스나 크리스토르와 같군. 우리 모두 망해부렀어∼ "2등이라니 아깝다! 3점밖에 차이 안 나잖아?" 그때 서로 좌절(?)하고 있는 우리들 옆에서 에레나리스의 친구이자 짝인 로 리아케시가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에레나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에레나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3점 차이는 큰 거야." "크기는 뭐가 커?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네가 이겼을 거라구." 로리아케시는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 같았다. 그러나 에레나리스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실수도 실력이야." "윽……!" 에레나리스는 그렇게 로리아케시의 말을 막으며 유유히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서 로리아케시도 에레나리스를 따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자리 로 돌아갈 때 날 무시무시하게 째려보고 가버렸기 때문에 난 머리를 갸웃해 야했다. 흘…… 내가 로리아케시에게 뭐 잘못한 거 있었나? 난 쟤하고 얘기해본 적 도 없는데? 에레나리스가 자기 우상이라서 내가 에레나리스를 이겼다는 게 싫다는 건가? 이런…… 여자가 내 적이 되다니…… 골치 아프겠어……. "휴……." 그때 내 옆에서 누군가의 안도하는 한숨 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그 누군 가는 니트로바츠였다. 그래서 난 니트로바츠의 어깨에 내 팔을 걸며 물었다. "성적은 어떻게 나왔냐?" "응…… 약간 올랐어……." 헉! 오르다니…… 에레나리스 말고도 성적이 오른 사람이 있었구나! 부러워 ……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거냐…… 아차! 내가 니트로 바츠보다는 시험을 잘 봤군…… 성적이 올랐다는 말에 잠시 헷갈렸어……! "평균 몇 점?" 물론 붙여져 있는 성적표에서 니트로바츠의 성적을 보면 되겠지만 찾기 귀 찮아서 니트로바츠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내 예상대로 니트로바츠는 금방 대 답했다. "응…… 88점……." 헐…… 10등 안에는 가볍게 들겠고…… 잘하면 5등 안에도 들겠는걸? 어벙 하게 행동하면서도 공부는 한단 말이야…… 나도 예전에 저랬던 것 같은데… … 내가 나 자신을 지켜볼 리가 없으니까 모르겠다……. 띵동 띵동- 스피커에서 방송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가 나고 난 직후, 안내 방송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중등부 2학년 C-3반의 보나이 류드나르는 수업이 모두 끝난 즉시 교장실로 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중등부 2학년 C-3반의 보나이 류드나르는 수업이 모두 끝난 즉시 교장실로 가시기 바랍니다.》 얼레? 교장실? 교장이 도대체 무슨 일로 날 보자는 거지? 무슨 특별한 이유 가 있나? 에…… 에…… 아, 저번에 행복이란 뭐냐라고 물었었지! 그거에 대 한 대답을 들으려고 날 부르는 거구나! 이런…… 거의 생각을 안 했는데 어 떡하지? 아직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으니까 지금 빨리 생각해내야 돼……! "또 교장 선생님의 호출이네? 하여간 교장 선생님은 류드만 편애하신다니까." 네오니스의 말은 물론 거의 농담조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정말로 교장 할배가 날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난 교장 할배에게 사랑… … 욱…… 갑자기 구토가…… 흠흠, 정정하고…… 확실히 난 교장 할배에게 총애를 받고 있긴 하지만…… 그건 내 능력을 총애하는 것일 뿐 나 자신을 총애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내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는 한순간에 나 몰라라할 인간이 바로 교장 할배였다. 교장 할배에 대한 나의 신뢰도는 0 도 아니고 -100이니까. [번 호] 8748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5일 06:38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56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0장: 행복?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60 게 시 일 :00/06/03 18:24:13 수 정 일 : 크 기 :5.5K 조회횟수 :345 띵 띵 띵 띵- 마침내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났다. 하지만 내 마음은 결코 편하지 못했다. 수업 끝나자마자 교장 할배에게 가서 행복이란 어쩌구 저쩌구 해야하기 때문 이었다. "야, 류드! 같이 축구하자!" 종례가 끝나고 나서 네오니스는 내가 교장실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잊어먹고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교장실에 가야되니까 혼자 놀아라." "아, 그랬지! 그럼 잘 갔다와라." 네오니스는 내 등을 탁탁 치더니 이내 다른 아이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교장 할배 때문에 축구도 못해서 열 받았지만 난 교장 할배에게 반항할 수 없는 입장이라 아쉬움을 달래며 교장실로 향했다. "……." 교장실 앞에 서자 갑자기 긴장되었다. 행복이 무엇인지 지금 현재로서는 전 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밖에 생각해 둔 것이 없었다. 똑똑- "류드냐? 들어오거라." 내가 노크를 하자마자 안에서 교장 할배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교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교장 할배의 앞에 섰다. 교장 할배는 평상시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내가 널 부른 이유를 알고 있느냐?" 교장 할배가 나에게 물었고 난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뭐지?"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거…… 아닌가요?" "허허, 기억하고 있구나." 내가 올바른 대답을 했는지 교장 할배는 기분 좋게 웃으며 컴퓨터 모니터에 서 시선을 돌려 날 쳐다보았다. 왠지 내 대답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아서 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냐? 얼굴 표정이 굳어 있구나." 흘…… 당연하지! 왜 나한테 행복이 뭐냐는 둥의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내 머리를 작살내려고 하냐고!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왜 나한테 하는 거야! "뭐 어쨌든, 류드는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마침내 교장 할배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난 하얗게 비어 있는 내 머리에 서 억지로 생각을 끌어 모아 교장 할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행복 같은데요……." "그러냐?" 내 대답을 들은 교장 할배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 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내 대답은 너무 평범한 것이었다. 나에게 그렇게 느 껴지니 교장 할배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그 이유를 말해보겠느냐? 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행복한지." 헉……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다니……! "에…… 글쎄요…… 하고 싶은 걸 하는데 거기 무슨 이유가 있나요?" "……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는구나. 도대체 생각은 하고 말하는 거냐?" 교장 할배는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어려운 질문만 해놓고 자기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고 화를 내는 교장 할배에게 화가 났기 때문에, 나 역시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생각 못했습니다! 공부하느라 시간 없는데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합니까?!" "……." 교장 할배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교장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들어앉 았다. 하지만 난 이 침묵을 깨트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교장 할배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는 나도 절대로 입을 열지 않을 생각이었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냐?" 마침내 교장 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서 '그런 질문을 아예 하지 마 쇼'라고 말할 정도의 용기가 없는 나는 그저 교장 할배의 말에 수긍했다. "확실히 시간이 부족했던 건 사실입니다." "음…… 알겠다. 그럼 시간을 더 늘려주도록 하지." 흘…… 왠만하면 질문을 하질 말지…… 그때가 되도 난 대답을 못할 것 같 단 말이야……. "이번 겨울 방학이 끝나고 나서 다시 한 번 묻겠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시간이 널널하구만. 하지만 과연 내가 그때까지 행복 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낼 수 있을까? 그냥 겨울 방학이 다 끝날 때까지 놀기만 할 거 같은데……. "그리고 류드." "예." 흘…… 또 무슨 어려운 일을 시키려고 날 불러? "겨울 방학이 되면 나와 해외 여행을 하자꾸나." "……!" 해외 여행? 태어나서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내가 해외 여행을? "어디로 가는데요?" 난 즉시 교장 할배에게 물었고 교장 할배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 했다. "놀러 가는 게 아니다. 나와 같이 드라콘의 보물을 얻으러 가는 거다." 허거거걱?! "드라콘이 있는 데로 간다구요? 그 소리는 방사능 오염 지역에 가자는 소리 잖아요?" "잘 아는구나." "그런 위험한 지역에 같이 가자구요?" 내가 조금 흥분해서 말하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상관없단다. 넌 이미 6써클을 이룩했으니 방사능은 자연스럽게 차단된다. 이 정도는 알고 있을 텐데?" "……." 그렇게 샤느 선생에게서 들었긴 하지만…… 누가 그걸 쉽게 믿냐고……! "정말로 방사능이 차단되는 거예요?" "물론이다. 나도 거기에 수시로 드나들지만 보다시피 멀쩡하잖느냐?" 흘…… 교장 할배가 멀쩡하다고? 어린 나한테 인간의 존재 이유가 뭐냐느니 행복이 뭐냐느니 묻는 인간이 멀쩡? 방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라이가 기지개 를 펴고 웃겠다! "근데 왜 절 데려가시겠다는 거예요?" 난 가장 중요한 이유를 교장 할배에게 물었고 교장 할배는 시선을 다시 컴 퓨터의 모니터로 돌리며 대답했다. "좀더 세상 구경을 하면 네 생각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흘…… 그 소리는 내가 행복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도록 하려고 배 려해준다는 거냐? 난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고. 머리 굴리는 게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데! "이제 그만 가도 좋다." 교장 할배는 예전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며 어떤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서 난 짧게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내 방 기숙사로 향했 다. 제길…… 왜 내가 행복이 뭐냐는 둥의 것을 생각해야 하는 거지? 자기가 먹 여주고 재워준다고 이상한 질문만 하는 거냐? 나한테서 그런 것들을 들어서 뭐 어쩌겠다는 거야? 나하고 지금 놀자는 거냐?! "후……." 마음속으로 욕을 하고 나니까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난 기숙사와 본관 사이에 서 있었다.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하지만 내 기 분은 그다지 맑고 푸르지 않았다. ====================================================================== 요즘 너무 게을러졌다는...ㅡㅡ;;;; [번 호] 8749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5일 06:38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60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0장: 행복?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75 게 시 일 :00/06/04 10:38:27 수 정 일 : 크 기 :6.0K 조회횟수 :273 "안녕, 류드나르." 그때 맑은 소녀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소녀 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저렇게 예쁜 목소리로 말을 걸 여자는 이 학교에서 에레나리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에레나, 저런 애 상대하지 말고 어서 가자!" 에레나리스의 옆에 서 있는 짙은 남색 머리의 로리아케시가 손에는 빵과 우 유를 들고 날 경계하며 에레나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에레나리스는 로리아 케시의 말을 듣지 않았다. "교장실에 갔다고 들었는데? 갔다 온 거야?" 흘…… 뭘 그런 걸 묻냐…… 나한테 관심 있는 거야? "어." "근데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에레나리스는 어서 가자는 로리아케시의 눈짓을 무시하며 나에게 계속 질문 을 던졌다. 에레나리스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하는 것은 나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난 시선을 맑은 가을 하늘로 돌리고 나서 대답했다. "답답해서." "흥! 시험도 잘 봤으면서 뭐가 답답해?" 그 말을 한 사람은 에레나리스가 아닌 로리아케시였다. 로리아케시는 여전 히 날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 로리아케시의 태도에 내가 화를 낼 까봐 에레나리스가 얼른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성적이 떨어져서 답답한 거야?" "아니. 성적하고는 상관없어. 이번 시험은 잘 본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난 여전히 시선을 하늘로 향한 채 대답했다. 로리아케시는 내 말을 듣자마 자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흥! 잘난 척 하네." "……." 흘…… 로리아케시는 왜 저렇게 띠껍게 나오는 거냐? 내가 자기한테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손 좀 봐줘? "성적이 아니라면 뭐 때문에 기분이 답답한지 물어봐도 될까?" 로리아케시와는 다르게 에레나리스는 예의바른 어조로 나에게 물음을 던졌 다. 상대가 부드럽게 나오는데 무시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난 간단하게 대답 해 주었다. "머리가 복잡해서." "왜?" 에레나리스는 할 일이 없는지 계속 내 말을 잡고 늘어졌다. 평상시 같으면 그냥 무시하고 가버렸겠지만, 에레나리스가 예의바르게 나오고 나도 누군가 에게 내 답답한 마음을 털어 버렸으면 하는 것도 약간 있었기 때문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해야할 일이 있는데 못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난 무엇 때문에 여기에 다니는 건지도 모르니까." "해야할 일? 그게…… 아, 미안. 너무 캐물었지?" 에레나리스는 스스로 자신이 너무 많이 물었음을 깨닫고 나에게 용서를 구 했다. 에레나리스의 그런 점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공부 잘하는 에레나리스를 만난 김에 행복에 대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 "응?" 내 질문이 뜻밖의 것인 듯,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자신에게 질문했다는 것 이 뜻밖인 듯 에레나리스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행복?" "어." "행복…… 글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에 성공하는 거 아닐까? 이런 공식이 있잖아. '행복 지수=충족÷욕구'라고.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분모인 욕구를 줄이거나 분자에 해당하는 충족을 늘려야 해. 하지 만 무엇인가를 충족시키는 것보다는 욕구를 줄이는 게 더 쉬운 일이니까 욕 구가 적을수록 행복감을 느끼지." 오…… 행복에 관해서 그런 공식이 있었단 말이야? 역시 공부 잘하는 애들 은 아는 것도 많아. 어쨌든 도움이 될만한 말이었어.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 각이 든다! "근데 그건 왜 물어보는 거야?" "흥! 자기가 철학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네!" 뒤의 말을 한 사람은 당연히 로리아케시였다. 난 그런 로리아케시를 싸그리 무시하고 에레나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나한테 물어보신 거거든." "교장 선생님이?"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둘 다 내 말을 듣자마자 놀랬다. 사실 교장이 학 생들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왜 너한테 그런 걸……!" 로리아케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에레나리스 역시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침착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류드나르는 교장 선생님에게 스카웃 돼서 여기 온 거였지?" 흘…… 스카웃…… 뭐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교장 할배는 내가 은발이 고, 라이가 날 어느 정도 잘 따라서 나를 라이 보호자로 채용했으니까. "스카웃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 근데 어떻게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된 거야?" 에레나리스는 그것이 상당히 궁금한 것인 듯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에레나리스나 네오니스는 내가 기억 상실이라는 것 말고는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기억 상실이라는 것조차 모 르고 있었다. 사실 기억 상실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교장 할배는 다른 사람 들에게 나에 대해서 거의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교장 할배조차 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뭘 말해주겠어. 이 세계에서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구만. 왠지 쓸쓸하다는 생각이 드는걸? "글쎄…… 어떻게 교장 선생님을 만났는지는 몰라. 기억이 안 나거든." "기억이 안 나? 정말 기억력 나쁜 애야∼" 내 대답을 듣자마자 로리아케시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날 비꼬았다. 로리 아케시를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나 대 신 에레나리스가 로리아케시에게 말했다. "류드나르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그래." "흥! 너 지금 쟤를 변호하는 거야? 사람을 죽여놓고 멀쩡히 다니는 애를?" 로리아케시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로리아케시가 왜 나를 그렇게 싫어했는 지 대강 알 수 있었다. 내가 문제아 트리오를 마법으로 태워 죽이고도 교장 할배의 도움으로 아무 탈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미안하군. 살인자가 감옥에 안 들어가서." "흥!" 로리아케시는 세차게 코방귀를 뀌었다. 이유야 어쨌든 난 살인을 했기 때문 에 로리아케시가 날 경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로 리아케시에게 경멸받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않 았다. "만약 여러 명의 불량배들이 널 죽이려고 한다면 넌 어떡할 거지?" "……?" 갑작스런 내 질문에 로리아케시는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 내 질문 내용을 이해하고는 더욱 더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 그건…… 도와달라고 소리쳐야지." "주위에 아무도 없고, 너에게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 로리아케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로리아케시에 게 쐐기를 박았다. "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했을 뿐이야. 그렇다고 살인 행위 자체가 올바른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살인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로리아케시는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막히는지 '하지만'만을 연발했다. 살인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 말에 반박하고 싶었겠지만 '상황에 따 라서'라는 전제 조건 때문에 감히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번 호] 8750 / 8795 [등록일] 2000년 06월 05일 06:39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63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676 게 시 일 :00/06/04 10:38:43 수 정 일 : 크 기 :4.6K 조회횟수 :270 "자, 둘 다 그 얘긴 그만 하자." 에레나리스가 중간에서 우리들의 얘기를 차단시켜 주어서 나와 로리아케시 는 더 이상 그 주제로 말다툼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로리아케시와 싸 운 꼴이 되어서 오늘 이후로 로리아케시가 날 더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왜 교장 선생님이 류드나르에게 행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신 거 지?" 에레나리스는 내 대답을 바라는 중얼거림을 토해냈다. 마침 로리아케시 때 문에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릴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난 에레나리스의 중얼 거림에 응해주었다. "왜 교장 선생님이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는 건지 나도 알고 싶어." 교장 할배를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나도 모르게 '물어보시는'을 '물어보는' 이라고 말해버렸지만 에레나리스나 로리아케시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어 쨌든 둘 다 내가 이유를 모른다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참, 류드나르. 다음주부터 예술제 기간인데 뭐 준비하는 거 있어?"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한 질문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니, 그것보다는 오 죠룬 마법학교에 예술제가 있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예술제? 그런 것도 해?" "그런 것? 예술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재미있는데!" 내가 예술제를 깔보는 것처럼 생각했는지 로리아케시가 즉각 내 말을 반박 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예술제 같은 것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예 술제가 그렇게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예술제가 10월 24일, 25일 그렇게 이틀이라서 다음주부터 예술제 준비에 들어가." 흘…… 역시 에레나리스는 친절하게 날짜까지 말해주는군. 근데 10월 24일 이면 무슨 요일이지? 에…… 아, 다음주 목요일이구나. 예술제 하는 동안에 수업을 안 했으면 정말 좋겠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수업 끝난 후에 예술 제를 할 것 같은……! "예술제는 수업 끝나고 나서 하는 거야?" 난 에레나리스에게 물었고 에레나리스는 내 예상과는 달리 고개를 가로저었 다. "아니. 예술제 준비는 수업 끝나고 나서 하지만 예술제날에는 수업이 없어. 하루 종일 예술제만 하거든." 오옷! 정말 그렇단 말이야? 우허허허! 아주 좋은데? 아주 좋아! 예술제 기 간 동안 방에서 마음껏 퍼질러 잘 수 있겠구나! "흥! 저 인간이 예술제날 뭐 하는 지나 알고 있겠어?" 로리아케시는 여전히 띠꺼운 어조로 날 트집잡았다. 하지만 난 로리아케시 에게 신경 쓰지 않고 에레나리스하고만 대화했다. "예술제에 뭐뭐 하는데?" "응, 우선 미술 전시회도 있고 운동회 비슷한 것도 있어. 또 알뜰 시장도 있고 먹거리 장터도 있고. 다양해." 얼∼ 꽤 큰 규모로 예술제를 하는구나. 왠지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과연 내가 할만한 게 있을까? 내가 참여할만한 것이 있을까? "예술제 때 넌 뭐 할거지?" 난 에레나리스에게 물었고 에레나리스는 약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직 생각해둔 건 없지만 예술제에는 참여할거야." "작년에는 뭐했는데?" "작년에는 그냥 구경만 했어. 그런 거에 익숙하지 않았거든." 흠…… 그랬군. 난 올해 들어왔으니 예술제는 정말 처음인데…… 뭐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예술제라는 것을 하긴 했지만 수업 끝나고 나서 했기 때문 에 난 바로 집에 갔었지……. "난 예술제에 참여해본 적이 없으니까 뭐할지는 나도 몰라." "야! 류드! 거기 있었냐!" 내가 에레나리스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온 네오니스의 외침이 내 고막을 강타했다. 기숙사에서 논스톱으로 내가 서 있는 곳까지 뛰어온 네 오니스는 내 어깨에 자기 팔을 얹고 나서 내 목을 꺾는 시늉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하고 볼일 끝났으면 얼른 와야할 거 아냐? 예술제 땜에 너하고 할 얘기가 있다구…… 어?" 그제서야 내 앞에 서 있는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를 발견한 네오니스가 놀란 어조로 중얼거렸다. "엇…… 에레나와 로리아가 류드와 같이 있다니…… 이건 류드의 양다리다 ……!" "……." 네오니스 녀석…… 또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군……. "흥! 누가 저런 애에게 관심이 있다고! 네오, 함부로 그렇게 말하면 명예훼 손으로 고발해버린다?" 로리아케시는 눈에 불꽃을 튀기며 네오니스를 노려보았다. 그런 로리아케시 의 반응에 네오니스는 잠깐 움찔했다가 멋쩍게 하하 웃었다. "그냥 해본 말이었어. 이런 멋대가리 없는 녀석을 누가 좋아하겠어. 하하하!" "……." 네오니스…… 너 죽고잡냐? "그럼 류드 좀 빌려갈게." "흥! 아예 가져가버려." 네오니스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로리아케시가 아주 띠꺼운 말을 툭 내뱉었 다. 역시 로리아케시는 나에게 아주 불쾌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예 드러내놓고 욕을 하지 않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자, 네오." 난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네오니스만을 끌고 기숙사로 향했다. 그러자 뒤에서 로리아케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다니! 매너 꽝이라니까! 우리도 저런 애 상대하지 말고 어서 가서 빵이나 먹자, 에레나!" 탁- 탁- 탁-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하며 에레나리스와 같이 M5관으로 들어가는 로리아케 시. 그런 로리아케시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귀여워 보였다. 나한테 성적으로 나 말로는 이길 수 없어서 어떻게든 날 이겨보려고 떼를 쓰는 것 같았기 때 문이었다.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839 / 8890 [등록일] 2000년 06월 07일 16:46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1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0장: 행복?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행복?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746 게 시 일 :00/06/07 16:38:35 수 정 일 : 크 기 :4.7K 조회횟수 :1 "류드, 너 로리아한테 어떻게 보였길래 로리아가 저렇게 널 싫어하는 거야?" 네오니스는 기숙사 안으로 사라진 로리아케시를 보고 나에게 물었다. 난 잠 시 네오니스를 그윽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네오니스는 뭔가 심 상치 않음을 느끼고 내게서 떨어지려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네오니스에게 난 아주 간단한 말을 해주었다. "난 살인자니까." 그러면서 난 씨익 웃었다. 그것도 보통 웃음이 아닌 사악함이 가득 담긴 악 마의 미소를 지었던 것이다. 당연히 네오니스의 표정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헉! 그럼 난 지금까지 살인범하고 같이 다녔던 거잖아?!" "후후, 그걸 이제 알았냐?" 네오니스에게 최대한 겁을 주기 위해 난 더욱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말소리도 아주 음흉함이 감돌도록 내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네오니스의 행동은 내 그런 노력을 모두 수포로 되돌려 버렸다. 척-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네오니스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 다. "사악의 길로 빠져버린 널 구하는 일은 천사인 나 네오니스의 할 일이다. 내가 널 반드시 바른 길로 인도할 테니까 내 말을 잘 따라라." "……." 윽…… 네오니스 녀석, 일부러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어…… 역시 네오니 스를 너무 얕본 것인가? 이건 완전히 나의 패배로군…… 비참해……. "재미없으니까 그만 하자." 난 내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네오니스의 말을 끊었지만 네오니 스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그건 먼저 시작한 네 잘못이라구." "그래, 미안하다." 결국 난 내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그러다가 네오니스가 날 찾은 이유를 완 전히 잊어먹었음을 깨닫고 네오니스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날 왜 찾고 있었냐?" "말했잖아. 예술제 때문에 상의할 게 있다고." 흠…… 그랬나? 네오니스도 예술제를 알고 있었군. 결국 나만 모르고 있었 다는 소리…… 큭…… 여기서도 따를 당하고 있었다니……! "어서 가자, 류드!" 네오니스는 먼저 앞장서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난 예술제에 별로 참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네오니스가 저렇게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 니 예술제에 참여 안 한다는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그냥 네오니스가 하는 대 로 따르자고 생각했다. 벌컥! "크리스! 류드를 잡아왔다!"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우리의 방안으로 들어간 네오니스는 그렇게 크리 스토르에게 말했고 크리스토르는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 이제 작전을 짜볼까?" 얼라리……? 작전? 무슨 작전? 털썩- 우리들은 라이가 퍼질러 자고 있는 침대의 반대편에 둘러앉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네오니스였다. "다음주 목요일이 예술제인데, 뭔가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겠지?" "무슨 이벤트?" 난 네오니스에게 물었고 네오니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묘기 마법을 선보이는 거야!" 에? 묘기…… 마법? 그건 또 뭣이다냐? "설마…… 류드, 너 묘기 마법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네오니스는 실눈을 뜨고 날 쳐다보았지만 난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대답 했다. "처음 듣는 말이다." "……."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들의 표정에서 '어떻 게 공부 잘 하는 녀석이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냐?'하는 생각을 대강 읽어 낼 수 있었다. "몰라서 미안하다." 내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을 하니까 그제서야 둘은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네오니스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묘기 마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묘기 마법은 말 그대로 관중들에게 마법을 통해 묘기를 보이는 거야. 예를 들자면 카파 보를 두 개 만들어서 불꽃 눈사람을 만든다든지 그런 거지." 호∼ 그런 것도 있었냐? 이를테면 묘기 당구와 같은 맥락이란 거잖아? 꽤 재미있을 것도 같은데? "묘기 마법을 하면서 애들에게 관람료를 받는 거야! 크리스, 류드, 우리 얼 마씩 받을래?" 네오니스는 나와 크리스토르를 둘러보며 물었다. 크리스토르는 네오니스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음…… 우선 우리들이 보여줄 묘기 마법에 등급을 매기는 게 어떨까? 그리 고 나서 각 등급의 관람료를 다르게 받는 거야." "야∼ 그거 좋은 생각이다!"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서로 좋아했다. 하지만 난 그것의 문제를 떠나서 근원적인 문제를 둘에게 들먹였다. "근데 학교 내에서 관람료를 받으면서 뭘 해도 괜찮은 거야? 교칙에 안 걸 려?" "……." 순간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내가 뭔가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 때 네오니스가 사악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류드는 교장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이런 일로 걸려도 관대하게 용서해주시지 않겠냐? 흐흐, 류드. 우리는 너만 믿고 있어." "……." 녀석들…… 내 권력(?)을 이용해서 비리를 저지를 생각을 하는군. 이런 녀 석들을 친구라고 생각했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나도 기꺼이 참여해주지!" 난 자신 있게 둘에게 말했고 둘은 입 찢어져라 좋아했다. "좋아! 역시 류드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아!" "하하하!" "하하하!" 우리 셋은 정신나간 인간들처럼 한껏 웃어젖혔다. 잠시 후에 웃음을 진정시 킨 우리들은 본격적으로 예술제 때의 돈벌이를 위한 대계획을 구체적으로 논 의하기 시작했다. 선생들에게 걸리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런 위험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더욱 더 묘기 마법을 하고 싶었던 것 이다. [번 호] 8840 / 8890 [등록일] 2000년 06월 07일 16:47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1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 자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 자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747 게 시 일 :00/06/07 16:39:21 수 정 일 : 크 기 :5.6K 조회횟수 :1 <제 21 장> 의심하지 않는 자 "우선 3학년의 라드 선배를 포섭하자!" 네오니스가 가장 먼저 내놓은 방안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나나 크리스토르 는 그 라드 선배라는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라드 선배가 누군데?" 크리스토르의 질문에 네오니스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3학년 중에서 마법 관련 과목을 항상 만점 받는 선배가 있거든? 그 사람이 바로 라드 선배야. 그 선배라면 충분히 묘기 마법을 부릴 수 있을 테니까, 그 선배에게서 묘기 마법의 진수를 배우는 거지!" 얼∼ 그런 대단한 선배를 네오니스가 알고 있다니…… 역시 네오니스의 사 교성은 알아 줄만해. 이런 사람을 우리 나라 속담으로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 하던가? 하도 이곳에서 살았더니 우리 나라에 대한 것을 잊어버릴 것 같단 말이야……. "근데 그 선배가 우리 일을 도와줄까?" 크리스토르는 약간 염려하는 눈빛이었지만 네오니스는 그런 크리스토르의 어깨를 팡팡 치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그 선배는 왠만한 일은 거의 다 도와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네오니스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도 크리스토르는 안심하지 못했다. 혹시나 그 선배가 우리가 하려는 일을 선생들에게 알리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네오니스는 불안해하는 크리스토르에게는 전혀 신경 쓰지 않 고 예술제 때 벌어들일 수입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자, 그럼 라드 선배를 포섭하러 가자!" 호기롭게 소리치며 앞장서는 네오니스의 뒤를 나와 크리스토르가 따라갔다. 네오니스는 전혀 망설임 없이 중등부 3학년들이 기숙하고 있는 M6관으로 향 했다. 우리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들이 기숙하는 기숙사에 멋대로 들어온 것 이 약간 불안했지만 그 누구도 2학년 뱃지를 달고 있는 우리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공부만 하는 인간들이 모인 곳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여기야!" M6관 520호에 도착한 네오니스가 걸음을 멈추고 우리에게 말했다. 난 의아 할 수밖에 없었다. 각 기숙사 건물은 모두 5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마 다 1에서 20호까지의 방이 있기 때문에 520호는 M6관에서 가장 마지막 방을 의미했다. 중등부 3학년에 다닌다는 사람이 이런 가장 마지막 방을 배정 받 았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웠던 것이다. "네오, 그 선배는 왜 제일 끝방을 배정 받은 거야? 무슨 이유라도 있어?" 내 물음에 네오니스는 실실 쪼개며 대답했다. "라드 선배는 특별하거든. 과학과 마법 관련 과목만 모조리 만점이고 나머 지 과목은 거의 바닥을 기어다니지. 그런 라드 선배에게 교장 선생님은 공짜 로 학교 수업을 받게 하고 공짜로 기숙사에 살게 하고 공짜로 식당에서 밥을 먹게 해줬어. 류드 너와 마찬가지로 교장 선생님에게 사랑 받고 있는 사람이 야." 얼∼ 그런 사람이었군. 근데 그거하고 제일 마지막 방을 배정 받은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근데 왜 제일 끝방을 배정 받은 거야?" 난 다시 한 번 네오니스에게 물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한 네오니스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라드 선배가 교장 선생님에게 이 방을 달라고 해서 그런 거야." 흘…… 진작 그렇게 간단히 대답하면 될 걸 가지고. 그나저나 그 라드 선배 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보고 싶은걸? 그 인간도 은발이려나? 똑똑- 네오니스는 520호실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청년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누구십니까?" "아, 저 네오에요! 들어가도 되죠?" 네오니스의 말에 방안에 있던 청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승낙했다. "들어와." "예! 자, 들어가자." 네오니스가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나와 크리스토르가 조심스러 운 태도로 네오니스의 뒤를 이었다. 방안은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 다. 그래서인지 라드 선배라는 사람의 성격은 굉장히 까다로울 것이란 생각 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라드 선배!" 네오니스는 책상에 앉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한 청년에게 큰소리로 인사 말을 건넸다. 그러자 라드 선배인 듯한 그 청년은 하던 공부를 멈추고 우리 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 네오. 친구들도 데려왔구나." 흠…… 머리는 검은색이군. 근데 여자처럼 머리를 왜 길게 길렀다냐? 장발 족인가? 하여튼 얼굴도 곱상하게 생겨 가지고 잘못하면 여자로 착각하겠다. 뭐 키가 거의 180cm를 육박하니까 여자로 보기 조금 어려울 지도 모르지만. "안녕하세요." 나와 크리스토르는 라드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라드 선배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방안으로 들어온 우리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왔어?" "예, 헤헤. 부탁 하나 하려구요." 네오니스는 실실 쪼갰다. 그런 네오니스의 표정을 보면 누구나 불안한 마음 이 들텐데, 라드 선배는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 무슨 부탁이야?" "헤헤, 저희가 이번 예술제 때 묘기 마법을 선보이려고 하거든요." "묘기 마법?" "예, 그래서 선배의 도움이 필요해서요. 선배는 마법을 잘 하잖아요." 네오니스의 말에 라드 선배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예상 외로 라드 선배는 너무나 쉽게 우리의 부탁을 수락했다. 물론 예술제 묘기 마법 이면에 돈벌이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라드 선배는 모르겠 지만, 네오니스의 말처럼 라드 선배는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이유도 묻지 않 고 왠만하면 다 들어주는 것 같았다. "에……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관중들이 놀랄 건지 그런 것들이요……." 네오니스가 굉장히 추상적인 부탁을 했기 때문에 라드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책들이 즐비하게 꽂혀있는 책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를 찾아보면 묘기 마법에 대한 책이 있을 거야." "아, 예. 찾아볼게요." 라드 선배의 말에 따라 우리들은 곧장 즐비하게 꽂혀있는 책들을 일일이 꺼 내어 내용을 확인했다. 책장을 빽빽이 책들로 채웠다지만 책장 자체가 그렇 게 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책들 중에서 묘기 마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좋아!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을 찾자!" 네오니스의 말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실력으로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을 발 견하기 위해 열심히 책을 뒤졌다. 다행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에 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단지 묘기 마법 하나를 부리고 나면 그 다음 것을 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 이틀동안 글은 안쓰고 놀기만 했슴다... 죄송함당...ㅡㅡ;;;; -------------------------------------------------------------------------------- 일꾼:.....라시네요^^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a선택 > [번 호] 8925 / 8969 [등록일] 2000년 06월 09일 00:35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64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1장: 의심하지 않는자 -2- ─────────────────────────────────────── "좋아! 이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을 찾자!" 네오니스의 말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실력으로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을 발 견하기 위해 열심히 책을 뒤졌다. 다행히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묘기 마법에 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단지 묘기 마법 하나를 부리고 나면 그 다음 것을 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이런이런…… 이래가지고선 하루에 두세 개 밖에 못하겠는걸? 그럼 돈벌이 가 안 되는데…… 어쩌지?" 네오니스가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네오니스의 말을 들은 라드 선배가 우 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돈벌이라니? 축제 때 묘기 마법 한다며? 근데 왠 돈벌이야?" 헉……! 들켰다! "예…… 묘기 마법 할 때 관람료를 받을 생각이거든요. 좋은 생각이죠?" 하지만 네오니스는 너무나 당연한 듯이 라드 선배에게 그 얘기를 했고, 라 드 선배도 아주 당연한 듯이 네오니스에게 말했다. "그러다가 걸리면 근신 이상 받을 텐데?" "괜찮아요. 여기 훌륭한 방패가 있으니까요." 네오니스는 '훌륭한 방패'라는 말을 하면서 날 가리켰다. 그러자 라드 선배 는 날 여기저기 뜯어보기 시작하더니 뭔가 알아낸 듯이 약간 놀라면서 나에 게 물었다. "너 보나이 류드나르지? 1학년 1학기 두 시험에서 전과목 만점을 받았다는 애." 흘…… 선배들도 날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 유명인은 어딜 가나 골치라 니까……. "예." "음…… 확실히 교장 선생님은 널 신뢰하는 것 같으니까 걸려도 그다지 큰 문제 삼지는 않겠지.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아주 관대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라드 선배의 얼굴에는 교장 할배에 대한 일종의 불신감 같은 것이 어려있었다. 그래서 난 라드 선배라는 사람에 대해 많은 호기심이 일어 났다. 라드 선배도 나처럼 교장 할배에게 별 이상한 질문을 받았을 수도 있 었기 때문이었다. "네오, 크리스. 너희들은 찾아낸 묘기 마법의 등급을 매기고 있어. 난 라드 선배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 괜찮지?" 내 말에 네오니스가 눈을 좁히며 말했다. "너 등급 매기기 귀찮아서 빠지려는 거냐?" "진짜 물어볼 게 있다니까 그러네. 그럼 열심히들 해라."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불성실한 대답을 하고 책상에 앉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라드 선배의 옆에 앉았다. 의자가 두 개 더 있었기 때문에 앉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저기요, 괜찮으시다면 밖에 나가서 얘기하고 싶은데요." "밖에 나가서? 중요한 얘기야?"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여쭤보고 싶은 게 몇 개 있어서……." 난 라드 선배에게 장난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리기 위해 최대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그런 내 진지한 표정이 먹혀 들어가서 라드 선배는 순순히 승낙해주었다. "좋아, 그럼 나가자." 라드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열심히 묘기 마법의 등급을 매기고 있는 네오니 스와 크리스토르에게 격려의 말을 하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나도 네오니 스와 크리스토르에게 격려의 말을 했다. "그럼 열심히들 해라∼" "치사한 녀석! 너 혼자 라드 선배한테 밥 얻어먹으려고 그러지?" "맘대로 생각하셔∼" "그럼 너한테 수입을 안 나눠줄 수도 있어!" 네오니스는 예술제 때 들어올 돈 얘기를 해서 날 붙잡을 생각을 했지만 난 아주 간단한 말로 응했다. "안 나눠주면 나 안 한다." "……." 네오니스가 잠시 할말을 잃은 틈을 타서 난 라드 선배의 방밖으로 나갔다. 라드 선배는 밖에서 느긋하게 날 기다리다가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나한테 할 얘기는 길어?" "에……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어요." "그래? 그럼 산책 겸 학교 인공 호수까지 걸어가면서 얘기하자." "예." 그렇게 합의를 본 나와 라드 선배는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기숙사 옆에 있는 행사장 내의 인공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라드 선배에게 먼저 말을 건 시기는 우리가 막 기숙사를 빠져 나왔을 때였다. "선배는 교장 선생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장 선생님?" 내 물음을 들은 라드 선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라드 선배가 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나는 좀더 자세하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하시려는 일 말이에요. 교장 선생님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저희들에게 가르쳐준 적이 전혀 없으니까요." "……." 라드 선배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밖에서 할 일없이 싸돌아다니는 아이들과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떠드는 것뿐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뭘 하시려는 지는…… 교장 선생님 혼자 아시겠지……." 그렇게 말하는 라드 선배의 얼굴은 결코 밝지 않았다. 아무래도 라드 선배 역시 교장 할배가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난 더욱 라드 선배와 얘기하고 싶어졌다. "라드 선배도 교장 선생님에게 이상한 질문 같은 걸 받았어요?" "……?" "인간의 존재 이유가 뭐냐는 둥 행복이 뭐냐는 둥의 질문이요." "글쎄…… 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어.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나에게 뭔가를 묻거나 하시지 않아. 내가 잘하는 것은 마법과 과학 분야뿐이거든. 그래서 난 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잘 못해." 흘……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지…… 생각을 차분 히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냐고. 만약 생각도 정리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천재라고 밖에 할 수 없어. "그럼 교장 선생님은 선배한테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은 거네요?" "그래." "그런데 어떻게 교장 선생님이 하시려는 일에 대해 느끼고 있는 거예요?" "……." 라드 선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약간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냥…… 느낌이 그래. 교장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무엇인가를 너무 많이 숨기시는 것 같거든." 헐…… 그런 걸 느끼다니…… 뭐 나도 대충 감을 잡았긴 하지만. "류드나르, 넌 교장 선생님에게 인간의 존재 이유가 뭐냐…… 뭐 그런 것들 을 질문 받았었어?" 라드 선배의 물음에 난 강한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예. 왜 교장 선생님이 저한테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것 때문에 머리가 박살날 것 같은데." "그러겠구나." 라드 선배는 남의 일이라고 하하 웃기만 했다. 우리가 교장 할배에 대해 이 런 저런 험담을 하는 동안 어느새 인공 호수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인공 호 수에서 팔딱팔딱 뛰어 다니는 잉어와 붕어들, 그리고 물에 비치는 맑은 가을 하늘이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만약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떠드 는 소리만 없었다면 기분은 최고조를 달렸을 것이다. [번 호] 8926 / 8969 [등록일] 2000년 06월 09일 00:36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63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자 -3- ─────────────────────────────────────── "정말 좋지? 오죠룬에서 꽤 큰돈을 들여 만든 인공 호수인데, 그만큼 잘 만 들어졌어.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해지니까 말이야." 라드 선배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나도 같이 기지개를 키고 싶었지만 주위 에 아이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여서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단지 심호흡을 한 번 하여 인공 호수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와하하-! 아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라드 선배는 인공 호수 옆에 가 만히 서 있었다. 계속 이렇게 서 있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바쁜 라드 선 배를 불러내어 괜히 시간만 낭비시키는 것 같아서 난 라드 선배에게 물음을 던졌다. "라드 선배는 왜 혼자 방을 쓰시는 거예요?" "음…… 그냥 혼자서 마법 공부 좀 하고 싶었어. 그리고 난 학교 수업을 듣 지 않아. 과학 과목하고 마법 관련 과목만 들어. 나머지는 듣지 않아도 된다 고 교장 선생님이 허락하셨으니까." 허걱? 그런 엄청난 권리를 가지고 있다니…… 부러워……! "교장 선생님은 마법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원하는 대로 해주시거든." 그렇게 말하는 라드 선배의 얼굴은 또다시 어두워졌다. "왜 교장 선생님은 마법사들을 양성하고 있는 걸까?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세계 정복이라도 하실 셈인지…… 아니면 단순히 마법을 통해서 좋은 일을 하시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흘…… 절대로 좋은 일은 아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장담하지. 교장 할배는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맞아, 아마 세계를 파멸시키기 위한 계획일거 야. 확실해! "류드나르, 너도 교장 선생님에게 뭔가 특별 대우를 받는 거라도 있어?" 교장 할배를 속으로 헐뜯고 있던 나에게 라드 선배가 물음을 던졌다. 그래 서 난 잠시 내가 어떤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생각했다. 흠…… 생각해보니까 나도 꽤 대우를 받고 있었군. 우선 오죠룬을 공짜로 다니고 기숙사도 공짜로 얻었고…… 이번에는 식사비도 그냥 얻고 있고…… 1학년 때에는 샤느 선생을 내 옆에 붙여서 마법을 빨리 배우게 했고…… 2번 밖에 시험보지 않았어도 전과목 만점이라는 것 때문에 바로 2학년으로 올려 주고…… 뭐 여러 가지인 것 같다. 물론 그게 다 내가 아주 우수한 성적을 올렸기 때문에 받은 대우였지만. "글쎄요…… 많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긴 한데…… 만약 제가 성적이 형편 없었다면 교장 선생님은 저에게 특별 대우 같은 걸 해주시지 않았겠죠." "그래. 그게 교장 선생님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잉어와 붕어는 인공 호 수 속에서 뛰어 놀고 있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수면에 비치고 있었는데도 내 마음은 방금 전과는 다르게 밝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저기요……" 한참 후에 내가 입을 먼저 열자 라드 선배는 어서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선배는…… 외계인을 믿어요?" "외계인?" 뜻밖의 질문에 라드 선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입가에 미 소를 걸며 말했다. "있겠지. 보지 않았다고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이 세상에는 불가사의 한 일들이 많이 있거든.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도 존재할거야. 난 그렇게 생 각해. 그렇다고 난 그것들을 무서워하지도 않아. 뭐랄까…… 그냥 있으면 있 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라고나 할까? 쉽게 말해서 난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아." 흘…… 있든 없든 상관 안 한다 이거군. 거의 나하고 비슷한데? 그럼 이제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군. 왠지 라드 선배라면 믿어줄 것도 같단 말이야…… 뭐, 안 믿어주면 나만 바보 되는 거지. 이 선배는 다른 사람에게 남의 약점을 말할 성격이 아니니까 부담 없이 말해보자! "라드 선배는…… 이 세계 말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세계?" 내 질문은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굉장히 황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라드 선 배는 전혀 황당해하는 표정조차 짓지 않았다. 아주 진지한 표정이었다. "다른 세계라……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미래의 세계라든지 과거의 세계 라든지 말이야." 흘…… 역시 아주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까? 나 같아도 안 믿겠는데 과연……? "에…… 제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면 선배는 믿으시겠어요?" "……?" 라드 선배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았다. 사실 나라고 해도 갑자기 그런 말을 들으면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에 난 다시 한 번 얘기했다. "전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 라드 선배는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전혀 내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인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말을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에 라드 선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생각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어떤 세계에서 살다 왔는데?" "……!" 헉…… 설마 이 선배…… 내 말을 믿는 거야? 아니면…… 날 놀리자는 거야? "이곳과 비슷한 곳에서 살았어요. 단지 제가 살던 세계에는 마법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죠." "그거 흥미로운걸?" 라드 선배는 정말로 흥미가 당긴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나 간단하게 라드 선배가 내 말을 믿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오히려 허탈해졌다. 그래서 난 일부러 라드 선배를 놀려보았다. "정말로 제 말을 믿으시는 거예요?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말을 그냥 믿어요?" 내 말에 라드 선배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다. "네 얼굴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어." "……." 흘…… 표정으로 진실과 거짓의 여부를 가려낸단 말인가? 꽤 엄청난 능력이 군. 뭐 어쨌든 좋아. 정말 이 선배가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그 동안 아무에 게도 말하지 않아서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를 확 풀어보자!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004 / 9019 [등록일] 2000년 06월 10일 23:10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33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1장: 의심하지 않는 자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 자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776 게 시 일 :00/06/09 20:12:23 수 정 일 : 크 기 :6.1K 조회횟수 :366 "제가 어떻게 해서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됐는지 가르쳐 드릴까요?" "물론. 실례되지 않는다면." 헐…… 실례는 무슨…… 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야! "제가 살던 곳은 이곳과 비슷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연도는 1999년이에요. 제가 고3일 때 여름 방학 보충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죠. 길 에서 어떤 붉은 구슬을 주었는데 그 구슬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를 만들었 고, 전 그 통로 안으로 들어갔어요." "왜 들어갔지?" "그냥 심심해서요. 일상이 지루했거든요." "그래? 계속해." 내 불성실한 대답을 듣고서도 라드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다는 표 정을 지었다. 어쨌든 난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통로를 통해 제가 간 곳은 마법 세계였어요. 단지 과학은 전혀 발달하 지 않은 곳이었죠. 말하자면 서양의 중세 시대라고나 할까요? 거기서 1년 넘 게 생활하다가 어떤 나쁜 인간의 음모에 휘말려서 다시 제 세계로 넘어오게 됐죠." "그 부분을 자세히 듣고 싶은데?" "에…… 설명하려면 복잡해요. 간단히 말하면 그 인간은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려고 여러 개의 다른 세계들을 융합시키려고 했어요. 다른 세계에는 자 신과 비슷한 인간이 존재하고, 자신에게는 없고 그 인간들이 가진 능력을 자 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게 그 사악한 인간의 목적이었죠." "그게 가능해?" "예. 사성물(四聖物)이란 것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가능해요. 모든 것은 눈 에 보이지도, 현대의 기술로도 측정할 수 없는 작은 끈으로 되어 있는데, 그 끈은 다른 세계와 이곳을 연결시키고 있죠. 그 끈을 잡아당겨 이곳으로 융합 시킨다는 게 그 방법이에요." "……!" 라드 선배는 놀랍다는 듯 감탄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로 내 얘기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더욱 신이 나서 떠벌떠벌 거렸다. "하지만 세계를 융합시키면 서로 다른 기억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자리잡 게 되기 때문에 기억의 혼재가 찾아오죠. 그래서 전 그 사악한 인간을 방해 했어요. 결과는 저의 승리로 끝났지만 차원 융합은 이미 된 후였죠. 차원 융 합이란 게 좀 묘해서 다른 세계 자체를 융합시키는 게 아니라 그 세계에 살 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나 능력 같은 걸 융합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차원 융합이 일어나고 난 후의 그 세계는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던 모든 끈이 끊어져 동떨어지게 되고, 결국은 소멸하죠." "……!" "차원 융합이 일어났기 때문에 모든 세계와 동떨어진 그 세계를 그대로 두 면 위험해요. 아니, 그것보다는 제가 살던 세계에서 기억이 융합되어 혼재된 기억을 가진 제 친구들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떨어진 그 세계를 이어 줄 끈을 만들기 위해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된 거구요." "……." 라드 선배는 말없이 날 쳐다보았다. 난 잠시 긴장해야했다. 라드 선배가 당 장이라도 '그런 거짓말을 하다니, 그러고도 살길 바라냐?!'하면서 날 욕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로 넘어와서 어떻게 그 끈을 만들지?" "……!" 정말로 이 선배는 내 말을 믿고 있잖아? 세상에 이렇게 남의 말을 쉽게 믿 는 인간이 존재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에…… 마이크로 스피어란 녀석이 끈을 만들려면 인연을 많이 만들래요. 친구를 많이 사귀던가 적을 많이 만들던가." "그래? 그거 재미있는 얘기구나. 그래서 끈은 많이 만들었니?" 헉…… 정곡을 찌르다니…… 아, 그러고 보니 도대체 내가 인연의 끈을 만 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 내가 무슨 방법으로 알 수 있는 거지? 설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만약 알 수 없으면 어떻게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냐고! "그게…… 그 끈이란 걸 만들었는지 만들지 못했는지 제가 알 수 있는 방법 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내가 한심스러웠다. 끈을 얼마나 만들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게다가 느낌상 내가 인연의 끈 같은 것을 많이 만들었을 리도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끈을 만들었는지 만들지 못했는지 모른다라…… 그거 어렵구나. 그런데 네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있는 거야?" "……." 윽…… 왜 자꾸 정곡만을 찌르는 거야……! "아뇨……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로는 여기에 차원 이동의 힘을 지닌 성물이 존재할 거라고 하는데…… 아직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제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가 없어요……." "그건 더 큰일이구나." 으…… 이 인간이 지금 날 놀리나? "근데 그 끈이란 것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겠어?" 라드 선배는 나에 대해서 물어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끈'에 대해서 물었다. "끈이요?" "그래. 끈. 왠지 초끈 이론과 유사한 점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 라드 선배의 말은 나에게 있어서 거의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끈이란 말만 듣고 초끈 이론을 생각해낸 것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라드 선배가 초 끈 이론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던 것이었다. "초끈 이론을 아세요?" "아니, 자세히는 몰라. 하지만 대략적인 건 알아. 난 과학 분야를 좋아하니 까." 헐…… 초끈 이론을 알고 있다니 설명이 조금 쉬워지겠군. 근데 초끈 이론 같은 걸 알고 있다면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것도 알겠지? 우히히… … 나중에 가르쳐달라고 해야지. 나도 과학을 좋아하니까. "자, 이제 그만 들어가 볼까?" 라드 선배는 먼저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난 그런 라드 선배의 뒤를 따라가면서 다시 말을 걸었다. "선배는 제 말을 다 믿으시는 거예요?" "그래. 사실인데 믿어야지." 흘…… 어떻게 얼굴 표정만 보고 사실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냐고…… 그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친다구. "난 그 끈이란 게 존재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가." 라드 선배는 천천히 기숙사 쪽으로 걸어가면서 입을 열었다. 난 조용히 라 드 선배의 말을 듣기만 했다. "초끈 이론에서는 끈을 통해 에너지 등이 전달된다고만 설명했지만…… 정 말로 이 세상은 그 작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지. 만약…… 이 세 상이 전부 끈으로 만들어져 있다면…… 어쩌면 우리가 미신이다 저주다 하는 것들도 모두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얼레? 뭔 소리여? "그거 있잖아. 지푸라기 같은 걸로 사람 모습을 만들고 거기에 무슨 부적 같은 것을 붙여서 자기가 증오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칼 같은 걸로 그 인형 을 찌르는 게 있잖아. 그럼 그 저주를 받은 사람은 고통스럽게 죽는다라던가 하는 그거. 만약 끈이 존재한다면 인형과 증오 받는 사람이 끈으로 연결되어 증오하는 사람이 인형을 칼로 찌르면 끈이 요동하던가 뒤틀린다던가 해서 증 오 받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럴 듯하지 않아?" 음……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군……. "짧은 시간에 그런 것까지 생각하시다니 대단하네요." 내 탄성 어린 말에 라드 선배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뭐 초끈 이론을 배우면서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거였어." 흘…… 생각을 참 많이 하는군. 이런 사람이라면 행복이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 아마 생각했을 거야. 생각해야만해! [번 호] 9005 / 9019 [등록일] 2000년 06월 10일 23:12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31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 자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장:의심하지 않는 자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777 게 시 일 :00/06/09 20:12:46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378 "저기요, 선배는 행복이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셨어요?" "응? 행복? 아니, 난 그런 거엔 신경 안 써. 난 과학 분야를 좋아한다고 했 잖아." 라드 선배는 평상시대로 말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아주 차가운 대답이라 고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해답을 대신 찾아내게 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나중에 교장 할배가 행복이 뭐냐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않으면 된다. 만약 교장 할배가 날 죽이겠다고 하 면 맞짱 떠 주면 되는 것이다. 와와와-! 기숙사에 가까워질수록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도 점점 커졌다. 막 M6관 현관 에 들어서려고 했을 때 갑자기 라드 선배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참, 너 마법이 있는 나라에서 1년 이상 살았다고 했지?" 흘……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꽤나 머리 좋은 인간이군……. "예." "그럼 거기서 마법을 배웠겠네?" "뭐 그렇죠." "거기서는 몇 써클까지 마나를 회전시켰어?" 라드 선배는 이 세계의 마법 체계를 기준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역시 아 무리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라드 선배라도 세계마다 마법 체계가 다르 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게…… 거기서 배운 마법하고 여기서 배운 마법은 많이 틀려요. 마나의 성질 자체가 틀리거든요." "마나의 성질 자체가 틀리다고?" 역시나 라드 선배는 내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했을 때도 놀라지 않던 인간이 마나의 성질이 틀리다는 말에 굉장히 놀라는 것이 조금 의외였다. "에…… 저쪽의 마나는 바다 깊숙이 있는 물처럼 고요하면서 조금씩 움직이 고, 이곳의 마나는 공기처럼 끊임없이 움직이죠. 그 성질의 차이 때문에 마 나를 모으는 법도 완전히 틀려요." "어떻게 틀리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드 선배는 급히 물음을 던졌다. 그의 얼굴에는 당 장이라도 알고 싶다는 빛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역시 마법 관련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곳의 마나는 항상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마나를 회전시켜야 하죠. 하지 만 저쪽의 마나는 움직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마나 회전 같은 것을 시킬 필 요가 없어요. 그냥 고루 퍼져 있는 마나를 몸 안에 축적시키기만 하면 되죠. 그래서 마나를 모으는 말을 저쪽에서는 '마나 축적'이라고 불러요. 이곳에서 는 '마나 회전'이라고 부르지만요." "마나 축적……!" 라드 선배는 마치 꿈을 꾸듯이 몽롱한 표정으로 그 말을 중얼거렸다. 마법 을 좋아하는 사람이 전혀 새로운 마나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 으니 그것을 알고 싶어서 미쳐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서로 마나의 성질이 다르다면…… 그럼 너한테는 두 가지의 마나가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말이야?" 꽤 날카로운 질문이긴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곳으로 오니까 그 동안 제가 축적시켰던 마나가 모조리 사라져 버렸더라구요. 그래서 이곳에 와서 다시 처음부터 마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거죠." "모조리 사라졌다구? 왜?" 흘…… 내가 그걸 알면 천재다! "모르겠어요. 아마 저쪽과 이곳의 마나 성질이 너무 차이가 나서 제가 축적 시켰던 마나가 모두 소멸해버린 것 같아요." "하…… 그런 아까운 일이……!" 라드 선배는 마치 자신의 마나가 모두 날아가 버린 듯 안타까워했다. 그렇 지만 당사자인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초로 8클래스 이상의 마나를 축적시켰었는데 그 모든 게 단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얘기,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 라. 믿어주지 않을 게 뻔하니까." 뭐냐? 남들은 믿어주지 않을 걸 알면서 왜 이 선배는 내 말을 믿고 있는 거 지? 정말로 표정만 가지고 참 거짓을 가리겠다는 건가? 심각한데? "특히 교장 선생님께는 절대로 말하지 마. 이 사실을 교장 선생님이 알게 되면…… 아마 널 연구하려고 해부할지도 몰라." 흘…… 이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교장 할배한테 전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지. 교장 할배는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 는 인간이니까 말이야. 탁- 탁- 탁- 대강 이야기를 끝마치자 나와 라드 선배는 선배의 기숙사 앞에 도달하게 되 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장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네오니스 와 크리스토르가 열심히 묘기 마법의 등급을 매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잘 되가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네오니스가 소리쳤다. "당장 와서 일 좀 거들어!" 흘…… 짜식들. 내가 없으니까 아무 것도 못하는구나. 어쩔 수 없지. 날 저 렇게 필요로 하는데 도와줘야겠다∼ "아직 등급 다 못 매겼냐?" "당연하지! 이제 막 우리가 할 수 있는 것하고 할 수 없는 것하고 분류했단 말이야! 빨랑 너도 등급 매기라구!" 윽…… 겨우 그것만 하다니…… 좀더 라드 선배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올걸 ……! "근데 등급은 어떻게 나눌려고?" 난 네오니스에게 물었고 네오니스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A, B, C, D, F로 해." 흘…… 이게 무슨 학교 시험이냐? "등급 매기는 기준은 뭔데?" "하기 어려운 건 A, 보통은 C, 하기 쉬운 건 F." 나원, 정말 쉽게 생각하는군. 뭐 상관없어. 지금은 우선 등급부터 매긴 다 음에 나중에 다시 조정하면 되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째깍 째깍 째깍-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의 묘기 마법 분류 작업은 겨우 끝났다. 그러나 분류를 다 끝냈다고 다 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우리들이 가지고 있 는 마력으로는 하루에 두세 개 정도의 묘기 마법 밖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래가지고는 돈벌이가 제대로 되지 않겠는걸?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네오니스는 방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나 와 크리스토르도 그것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 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들이 폐인처럼 방바닥에 엎어지고 드러눕고 앉아있자 라드 선배가 우리에게 말했다. "꼭 묘기 마법만 할 필요는 없잖아? 과학 원리를 응용한 묘기 같은 걸 하는 거야." "아, 그거 좋은 방법이네요!" 방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네오니스가 벌떡 일어나며 기쁜 듯이 소리쳤다. 그 리고는 라드 선배에게 진지한 눈빛을 보내며 부탁했다. "라드 선배! 선배가 그 과학 원리를 응용한 묘기를 생각해 주세요! 그럼 수 입의 4분의 1을 드릴게요!" "음…… 뭐 좋아.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을 써먹어 보고 싶었으니 까. 그러니까 돈은 너희들이 알아서 나눠가져. 난 어차피 식사도 공짜로 하 잖아." 라드 선배는 미소를 띄우며 우리의 일에 동참할 것을 밝혔다. 우리는 당연 히 좋아했다. 특히 라드 선배가 돈은 필요 없다는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역시 라드 선배! 그럼 부탁해요!" 우리는 라드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이미 마법 분류는 다 끝냈 기 때문에 이제부터 어떤 식으로 진행을 할 것인가, 그리고 분류한 묘기 마 법 중에서 어떤 것을 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으아…… 이거 정할려면 골머리 꽤나 썩히겠다……!" 많은 묘기 마법들을 분류해놨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까 결정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특히 묘기 마법을 하자고 먼저 제안한 네오니스가 갈 팡질팡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컸다. "아, 그래! 우리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묘기 마법을 정해오는 건 어때?" 그때 크리스토르가 그런 제안을 했고 나와 네오니스는 그 제안에 즉각 찬성 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야.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고 빨리 돌아가 잠이나 자 자!" 우리는 마치 그걸로 모든 게 끝난 것처럼 기뻐하면서 우리 방으로 향했다. 물론 그 방법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피곤했기 때문에 나나 네오 니스, 그리고 크리스토르도 더 이상의 생각을 하기 싫었던 것이다. 에휴…… 어쨌거나 열심히 해봐야지. 처음으로 예술제에 제대로 참여하는 거니까. 아니, 이건 참여가 아닌가? 뭐 상관없어. 할 일 없이 방에서 퍼질러 자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 sakali@unitel.co.kr은 작가님의 주소... 사케의 원산지는 유니텔 환동...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080 / 9090 [등록일] 2000년 06월 13일 15:12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4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모스 그대로-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1-... 총 Page : 1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2 18:40:48 수 정 일 : 크 기 : 4.8K 조회횟수 : 270 <제 22 장> 그 모습 그대로 "야, 니트!" 예술제 준비가 한창인 10월 22일 화요일 오후. 난 청소 당번이라서 교실을 청소하다가 나와 같은 청소 당번인 니트로바츠가 청소는 안 하고 빗자루를 든 채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을 보고 니트로바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니 트로바츠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류드였구나……." 얼라리? 뭔 일 있나? 뭘 그렇게 놀라지? "무슨 일 있냐?" "아니…… 아무 일도 없어……." 하지만 니트로바츠의 얼굴에는 '나 무슨 일 있었다'란 글씨가 잔뜩 써져 있 었다. 그래서 난 니트로바츠의 목을 내 팔로 조르는 시늉을 하며 위협했다. "빨랑 말해. 말 안 하면 저승으로 보내주겠어." "……." 니트로바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주위에서 청소하고 있는 애들 을 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우선 청소부터 하고." 흘…… 청소 안 해서 내가 불러준 게 누구더라? "좋아, 청소 끝나고 나서 심문해주지." 난 니트로바츠에게 그렇게 말한 다음 열심히 청소를 시작했다. 니트로바츠 도 농땡이 치지 않고 청소했다. 원래 쓸기만 하면 되는 나와 니트로바츠는 책상 끌기를 덤으로 했다. 물론 책상 끌기 하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거의 있으나마나 였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해버리는 게 청소가 더 빨리 끝났다. 이것은 확실히 나만 손해보는 짓일 테지만, 난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손해 보는 생각이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면 열만 받으니까. 음…… 역시 니트로바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열심히 책상 끌기를 하니까 말이야. 이런…… 왜 대걸레질하는 녀석들이 안 보여? 으…… 또 내가 대걸레질을 해야 하냐? 하여간 청소하는 녀석들이 전혀 도움 이 안돼……. "내가 대걸레질할 테니까 기다려." 난 니트로바츠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즉시 대걸레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 다. 화장실에서 대걸레에 물을 묻힌 후 다시 교실로 돌아와 교실 바닥을 닦 았다. 니트로바츠는 열심히 책상을 옮기고 바닥을 쓸었다. 그렇게 해서 교실 청소의 절반 정도는 나와 니트로바츠가 해버린 꼴이 되었다. "휴, 끝났다!" 청소를 모두 끝내고 나서 그때까지 놀고 있던 청소 당번 녀석들이 담임인 멜수스 선생을 부르러간 사이 나와 니트로바츠는 청소 도구를 정리하고 책상 에 걸터앉아 쉬었다. "야, 니트. 거의 우리 둘이 청소했는데, 안 억울하냐?" 난 이미 니트로바츠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니트로바츠가 과연 나와 같은 성격을 지닌 녀석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니트로바츠에게 물어보 았다. "뭐 별로." 흘…… 역시 내 생각대로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군. 하여간 니트로바츠 나 나나 손해보기 딱 좋은 타입이야∼ 아, 니트로바츠 녀석은 예술제 때 뭐 하는 거 있나? 물어봐야지. "니트, 예술제 때 뭐 준비하고 있냐?" "응? 예술제? 에…… 아무 것도 안 해……." 니트로바츠는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뭔가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기 때문 에 난 재차 물음을 던졌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응…… 사실……" 니트로바츠는 굉장히 쑥스러워하면서 말을 더듬더듬 이어나갔다. "그냥…… 아세트랑 이것저것 둘러보기만 할 거 거든……." 웃…… 부러워라…… 여자 친구랑 같이 다닌다니…… 역시 여자 친구가 있 는 점은 나하고 너무 틀려……! "하지만……" 갑자기 니트로바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걱정이 있는 표정, 그것도 아주 심각한 걱정이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뭔 일 있어?" "……." 니트로바츠는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소 검사를 하러 멜수스 선생이 들어오자 나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어……." 니트로바츠 녀석……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아세트니퍼와 같이 예술제를 구경한다면 당연히 기뻐해야 정상일텐데…… 녀석이 아세트니퍼를 싫어할 리가 없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음…… 좋아, 가도 좋다." 대강 교실을 훑어본 멜수스 선생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아이 들은 환호를 지르며 교실을 나갔다. 그렇게 나가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청소 하지 않고 띵까띵까 놀았던 녀석들이었다. "니트, 이제 말해봐." 멜수스 선생과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간 후, 난 니트로바츠에게 말을 걸었 다. 그러나 니트로바츠는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 채 계속 어두운 표정만 짓고 있었던 것이다. "야야, 뭔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친구한테 말해야 속 편하다구. 혼자만 끙 끙대면 스트레스 쌓여서 일찍 죽는다?" "……."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니트로바츠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 나 니트로바츠가 내뱉은 말은 꽤 싸늘한 것이었다. "내가 너한테 말을 해도 네가 날 도와줄 수 있어?" "……!" "아, 미안. 내가 좀 흥분했나봐……." 니트로바츠는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보더니 미안한 얼굴을 하며 머리 를 긁적였다. 하지만 니트로바츠의 말이 흥분하여 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 다. 그 말을 했을 때의 니트로바츠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네가 널 도와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혼자서 끙끙 앓는 것보다는 다른 누구와 얘기하면 기분이 더 나아질 거야." 내가 니트로바츠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뿐이었다. 감히 '네가 도움 안 된다고? 도움되면 어쩔래? 자꾸 헛소리하면 죽여뿐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 알았어." 잠시 생각을 하던 니트로바츠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직하 게 한숨을 쉬고 나서 얘기를 시작했다. [번 호] 9081 / 9090 [등록일] 2000년 06월 13일 15:16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4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 모습 그대로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2-... 총 Page : 21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2 18:41:41 수 정 일 : 크 기 : 7.7K 조회횟수 : 266 "나…… 오늘 돈 뜯겼어……." "……!" 헉……! 그렇다면 여기에도 깡패 같은 녀석들이 존재한단 말이야? 아…… 하긴, 학교 내에서 살인 사건이 날 정도니까 그런 녀석들이 있다는 건 이상 한 일이 아니겠구나……. "1학년들에게 돈을 뺏긴 거야……." "……." 1학년이라…… 만약 여기가 보통 학교였다면 꽤 쪽팔리는 일이겠지만, 이 학교는 오직 실력에 의해서만 학년이 올라가니까 나이하고 학년하고는 전혀 상관없지. "어떤 녀석들인데? 덩치 큰 녀석들이야?" 내 물음에 니트로바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세. 게다가 나이도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많은 것 같고." 흠…… 니트로바츠의 나이가 대략 17살 정도 되니까 다섯 살 더 많으면…… 22살인가? 아니지,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고 반드시 나이가 더 많은 건 아니 잖아? 얼굴이 썩은 녀석들일 수도 있으니까. "얼마나 뜯겼는데?" "…… 만원." 허걱! 그렇게나 큰돈을 가지고 있었다니……! "내일 2만원을 더 준비하래……." "……!" "나 어떡하지? 돈을 주기 아깝지만 돈을 안 주면 맞을 테고……." 니트로바츠는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 깡패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감히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실효 가능성이 있 든 없든 방법은 있어서 니트로바츠에게 말해주었다. "선생님들에게 알리면 되잖아?" "내가 녀석들에게 돈을 뺏겼다는 증거가 없어. 녀석들이 딱 잡아떼면 할말 없다구." 내가 할 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니트로바츠는 망설임 없이 대답 했다. 그 점은 나도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아직 할말은 더 있었다. "선생님들이 언제 증거 따지고 하냐? 그냥 범인인 것 같은 녀석들을 잡아서 때리던가 해서 자백을 받아내잖아." "지금은 그런 게 잘 안 통해. 맞은 학생이 교육부에 '선생이 증거 없이 학 생을 범인 취급했다'라고 고소하면 그 선생님은 끝이라구." 흘…… 여기도 선생들의 권위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건가? 아, 많이 약해져 있겠군. 내가 살았던 시기보다 200년 후니까. 하지만 그렇게 선생들의 권위 가 약해졌다고는 못 느끼겠는데? "그럼 경찰에 알리던가." 내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대안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니트로바츠는 그것마저 거절했다. "경찰에 알리고 녀석들을 깜방에 보낸다고 해도…… 몇 년 후에는 풀려나올 테고…… 풀려 나오자마자 날 찾아서 죽이려고 할거야……." 음…… 확실히 법보다는 주먹이 더 빠르니까 위험하겠군. 제길……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고 녀석들을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한가? 내가 니트로바츠를 도와줄 만한 방법은 없는 걸까? "류드, 넌 깡패들을 만나면 어떡할 거야?" 계속 우울한 표정을 짓던 니트로바츠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깡패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리고 나서 아주 간결하게 대답했다. "죽여." "…… 그런 말을 쉽게 하는구나……." 니트로바츠는 약간 허탈한 듯이 말했다. 그러더니 옛날 일을 말하기 시작했 다. "내가 녀석들에게 돈을 뜯긴 건 이 학교에 들어오자마자였어. 덩치 큰 녀석 들이 무서워서 난 꼬박꼬박 돈을 바쳤지. 처음엔 돈도 그다지 많이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참을 만했어. 하지만…… 녀석들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어…… 더 이상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야…… 그래 서…… 녀석들만 보면……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마법으로 당장에 죽여버리 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무서워져…… 내가 아닌 것 같으니까……."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니트로바츠의 표정. 지금의 니트로바츠는 마음 여린 한 소년일 뿐이었다. 지금의 나처럼 막 나가는 성격이 아닌 것이 다. 난…… 어떻게 해야하지? 방법은 있지만…… 그 방법을 써야하나? 그 방법 대로 하면 니트로바츠에게 아무 일도 없을까? 실패하면 니트로바츠와 아세트 니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텐데? 아니, 성공을 해도 두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지도 몰라…… 어떡하지? "아세트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 깡패들에게 계속 당하고만 있 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건 싫어…… 녀석들을 죽이고 싶어…… 하지만… …." 니트로바츠는 더 이상 말을 잇질 못했다. 감정적으로는 그 깡패들을 죽이고 싶지만 이성적으로는 그 후의 일이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당하 고만 있는 니트로바츠의 모습을 보고 난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차피 니트로바츠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적 어도 니트로바츠는 나와 비슷한 성격이니까. "니트. 세상에는 인간 같지 않은 녀석들이 많아. 그런 녀석들에게 적절한 응징을 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난 그것을 내 생각이랍시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니트로바츠의 반박이 날아 왔다. "내가 내 멋대로 벌을 가하면 법이란 게 왜 필요해? 그리고 내가 어떻게 멋 대로 응징의 적절한 정도를 판단할 수 있겠어?" 흘흘…… 니트로바츠 녀석, 제법 생각을 할 줄 아는군. "물론 그런 것들을 개인이 정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혼란이 일어나겠지. 하 지만 말이야, 이것만은 알아두라고. 언제나 법보다는 주먹이 먼저라는 사실 을." 거기까지만 말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교실을 걸어나갔다. 내가 교실 문을 막 나서려고 할 때 니트로바츠가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네가 만약 내 입장이라면…… 넌 그 녀석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야?" 크크……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쯧쯧, 아직 나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군. "당연히 모두 죽여버려. 날 건드리는 녀석들이 갈 곳은 오직 지옥뿐이니까." "……." 니트로바츠는 입을 다물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곧장 교실 문을 나섰다. 그러다가 문득 내 작전을 써먹으려면 니트로바츠에게 물 어볼 것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야, 니트." "……?" "너 그 깡패 녀석들과 자주 만나서 돈 뜯기는 곳이 있어?" 내 물음에 니트로바츠는 잠시 놀라는 얼굴을 했지만 곧 대답을 해주었다. "응. 기숙사 제일 뒤편." 흠…… 꽤 후미진 곳이군. 인간들도 별로 들락날락 거리지도 않는 곳이고. 게다가 거기는 청소하는 아이들도 없으니 돈 뜯기에는 최적의 장소일지도 모 르겠군. "항상 수업 끝나고 나서 돈을 뺏기냐?" "응……." 흘…… 그랬군. 잘됐어. 내 계획을 실행하기는 딱 좋은 시간이로군. "그래? 그럼 내일 네 선택을 기대하겠어. 녀석들에게 벌을 가할 것인가, 아 니면 그냥 당할 것인가를 말이야." 난 니트로바츠에게 그렇게 말한 뒤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여주고 나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내일 해야할 아주 중요한 일이 남은 셈이었다. 어쩌면 이 일로 난 큰 죄를 지을지도 몰랐지만,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멈출 생각이 없었다. 후후…… 아무리 니트로바츠를 위해서라지만 아세트니퍼를 이용하는 거니까 결코 방식이 좋다고 할 수 없겠지. 교장 할배처럼 무엇인가를 꾸미는 꼴이 되어버린 건가? 뭐 상관없어. 실패하면 내가 나서서 해결하면 되는 거니까. 탁- 탁- 탁- 난 바로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예술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라 이 녀석은 여전히 침대에 큰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청소 잘 했냐, 류드?" 청소 당번이 아니었던 네오니스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지만 난 네오니스의 질문은 싸그리 무시하고 내가 질문을 했다. "아세트니퍼가 기숙하는 방 번호하고 어느 반에 있는지 알고 있냐?" "에? 아세트니퍼?" 전혀 뜻밖의 질문을 받은 네오니스는 잠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 다가 이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쓸데없는 말을 나불거렸다. "너 아세트에게 관심 있는 거야? 하지만 아세트는 니트 꺼라구. 친구의 애 인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돼∼" 흘…… 이미 예상하고 있던 말이었어∼ "헛소리 말고 빨리 가르쳐 줘." "이유도 안 가르쳐주다니…… 왠지 말하기 싫은걸?" 네오니스는 심심해서 한 번 해보는 소리였기 때문에 난 네오니스를 재촉했 다. "빨리." "M5관 214호에 기숙하고 반은 B-2반이야." 내 독촉에 네오니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세트니퍼의 방 번호 와 교실을 나에게 알려 주었다. 난 네오니스에게 고맙다고 말한 다음 즉시 마법 이론 책을 펴들고 읽었다. 그러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아주 놀라 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수가……! 류드가 시험기간도 아닌데 공부를 하다니…… 해가 동쪽으 로 지겠다!" "……." 난 둘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마법 이론 책만 들여다보았다. 내일 일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마법 몇 개를 알아두어야만 했기 때문 이었다. 사악한 인간이 되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 ======================================================================= 나태의 극을 치달리는....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067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4일 00:16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97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 모습 그대로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892 게 시 일 :00/06/13 21:17:47 수 정 일 : 크 기 :5.1K 조회횟수 :113 띵- 띵- 띵- 띵- 드디어 수업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부터 일어날 일의 시작종이 었다. "그럼 종례 끝!" 멜수스 선생이 나가자마자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교실을 나갔다. 난 일 부러 천천히 가방을 챙기며 니트로바츠의 행동을 예의 주시했다.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어서 가서 예술제 준비를 하자고 유혹해도 난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니트로바츠만을 살폈던 것이다. "……!" 드디어 니트로바츠가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이제 깡패들이 기다리고 있는 기숙사 뒤편으로 가겠지? 좋아, 이제 내가 열나게 뛰어야할 차례구나! 탁탁탁-! 난 급히 네오니스가 가르쳐준 대로 아세트니퍼가 있다는 B-2반으로 달려갔 다. 하지만 B-2반에는 청소하는 아이들만 있을 뿐 아세트니퍼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그래서 난 즉시 아세트니퍼의 기숙사 방으로 향했다. 탁탁탁-! 중등부 2학년 여학생들이 기숙하고 있는 M5관으로 거침없이 들어간 나는 즉 시 214호를 찾아갔다. 복도를 통해 일부의 남학생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기숙사라지만 그다지 쪽팔리지는 않았다. 똑똑- 214호 앞에 도착한 나는 노크를 했고 곧 안쪽에서 한 여학생의 물음이 들려 왔다. "누구세요?" "저기, 니트로바츠의 같은 반 친구 류드나르인데요, 아세트니퍼 안에 있어 요?" 난 불량배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예의바르게 말했다. 내가 물음을 던지고 나서 잠시 후에 누군가가 문을 열고 복도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슨 일이야?" 밖으로 나온 사람은 다행히도 아세트니퍼였다. 그래서 나는 작전을 실행했 다. "어, 니트가 기숙사 뒤편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거든. 뭔가 중요한 얘기 가 있다나?" "중요한…… 얘기?" 갑자기 아세트니퍼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니트로바츠가 자기에게 사랑 고백이라도 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런 아세트니퍼에게 거짓말을 해 서 마음 한 구석이 찔렸지만 내 계획을 철회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난 간다. 안녕." 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멍청하게 서 있는 아세트니퍼에게 인사를 한 뒤, 곧장 니트로바츠와 그 깡패들이 만나고 있을 기숙사 뒤편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잘못되면 제재를 가해야 하기 때 문이었다. 흘…… 벌써 니트로바츠가 깡패녀석들에게 돈을 바치고 돌아갔으면 어떡하 지? 아니야,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내 계획이 모두 물 거품이 되는 거겠군……. 탁탁탁- 난 정신없이 달려 기숙사 뒤편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내가 들은 소리는 꽤 섬뜩한 것이었다. "이 새끼가? 돈을 안 가져와? 너 죽고 싶냐, 앙?!" 퍽! "큭!" 상황을 들어보건대 아무래도 니트로바츠가 돈을 준비하지 못해서 깡패들에 게 신나게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최대한 들키지 않게 기숙사 건물에 몸을 숨기고 녀석들을 주시했다. 내 시야에 들어온 상황은 내 예상대로 니트로바 츠가 덩치 큰 깡패 3명에게 둘러싸여 가끔씩 구타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야, 우리가 오냐오냐 해줬더니 이제 막 기어오르려고 하냐? 돈을 안 가져 오면 어쩌겠다는 거야? 예술제 때 우린 밖으로 나가서 놀 돈이 필요하다고!" 퍽! "욱!" 깡패 녀석의 발길질에 배를 걷어차인 니트로바츠는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쓰 러졌다. 그러자 깡패들이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니트로바츠에게 풀기 위 해서인지 니트로바츠를 사정없이 밟기 시작했다. 보기만해도 섬뜩한 장면이 었다. 으…… 도대체 아세트니퍼는 언제 오는 거야? 잘못하면 상황이 종료된다고! 빨리빨리 나타나란 말이…… 엇! 아세트니퍼다! 타탁-! 내 뒤쪽에서 아세트니퍼가 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즉시 기숙사 건물에 몸을 숨기고 아세트니퍼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세트니 퍼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기숙사 뒤편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깡패들 에게 둘러싸여 얻어터지고 있는 니트로바츠를 발견했는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니, 니트!" 차착! 이미 아세트니퍼가 내 자리를 지나갔기 때문에 난 다시 상황을 살피기 위해 기숙사 건물에 몸을 붙이고 녀석들을 주시했다. 현재 상황은 아세트니퍼가 니트로바츠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깡패들의 관심사가 곧바로 아세트니퍼 쪽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뭐야, 저 여자애는?" "이 녀석 애인 아니야?" "오, 예쁘게 생겼는데?" 니트로바츠를 열나게 밟고 있던 세 깡패들은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아세트니 퍼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래서 깡패들 중에 제일 덩치가 작은 깡패 하나가 아세트니퍼에게로 다가갔다. "어이, 아가씨. 저기 애인이 맞고 있는데 그냥 가면 섭하지?" "무, 무얼 하려고……?!" 깡패들의 불량스런 낌새를 눈치챈 아세트니퍼가 뒷걸음질을 치며 주춤거렸 지만 상황은 이미 늦어버렸다. 그리고 상황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꺄……!" 아세트니퍼가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그 깡패 녀석은 아세트니퍼의 입을 막 고 자기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아세트니퍼는 마구 반항을 했지만 건장한 체격의 깡패를 뿌리치기란 불가능했다. "아세트에게 뭘 하려는 거야?!" 아세트니퍼가 깡패 녀석에게 붙잡힌 것을 안 니트로바츠는 얼굴을 찡그리며 깡패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깡패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가 돈을 준비하지 않아서 잠시 놀아보자는 거야. 네 녀석이 돈만 준비했 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안 그래? 히히히." 좋아. 이제 상황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군. 곧 있으면……! "여기서 뭐해, 류드나르?" "……!" 갑자기 내 뒤에서 예쁜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난 즉시 고개를 돌려 그 여학생에게 조용히 하라 는 손짓을 하려고 했다. "……!" 헉! 에레나리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로리아케시도 있었잖아? 왜 저 둘은 항 상 붙어 다니는 거야? 만약 깡패들이 이 둘을 발견하게 되면 큰일이야!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893 [번 호] 9068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4일 00:17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10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 모습 그대로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4893 게 시 일 :00/06/13 21:18:24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112 "조용히 해!" 난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 했다. 그러나 로리아케시가 일부러 큰 소리로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난 즉시 로리아케시의 입을 막고 위협했다. "둘 다 가만히 있어. 방해하지 말고." "……!" 내 반응에 둘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니트로바츠의 외침 소리 가 들렸다가 이내 구타 소리가 나며 끊어져 버렸다. 그 소리를 들은 에레나 리스와 로리아케시가 나처럼 조심스럽게 기숙사 건물에 몸을 숨기며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는 깡패들에게 잡혀 있는 니트로바츠와 아세트니퍼를 보고 흠 칫했다. "정말 네 애인 죽이는데? 너한텐 과분하다!" "그래. 나하고 잘 어울리겠어!" "헤헤헤, 그럼 우리 서로 잘 놀아보자고∼" 깡패들은 아세트니퍼에게 다가가 몸을 더듬으려고 했다. 당연히 니트로바츠 는 그런 깡패들을 막기 위해 큰소리로 외쳤다. "아세트에게 허튼 짓…… 컥!" 기세 좋게 외치던 니트로바츠는 한 깡패에게 발로 채여 나가 떨어졌다. 니 트로바츠를 발로 차버린 깡패는 역겨운 미소를 띠우며 입을 놀렸다. "자고로 강한 자가 미인을 차지하는 법이야. 너 같은 힘없는 녀석은 구석에 찌그러져서 네 신세나 한탄하라고." "……." 땅바닥에 쓰러진 니트로바츠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았다. 그때 내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에 레나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왜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거야? 선생님을 불러야지!" "그래, 네가 도와주지 못하면 그렇게 해!" 에레나리스의 말에 로리아케시도 작은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깡패들은 니트로바츠와 아세트니퍼에게만 신경 쓰느라 우리들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 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난 빨리 선생을 부르라는 두 여성의 말 을 싹 무시하며 답했다. "가만히 보고 있어." "……." 내 표정이 워낙 싸늘했기 때문에 둘은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꼼짝하지도 못했고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둘에게 엄포를 놓은 나는 다시 시선을 깡패들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 상황은 이미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강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 넌…… 네 녀석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나?" 땅바닥에 쓰러져 허우적대던 니트로바츠의 입에서 아주 딱딱한 말이 튀어나 왔다. 완전히 달라진 니트로바츠의 어투에 깡패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하하 웃었다. "우리는 당연히 강해! 넌 약하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냐?" 니트로바츠의 목소리는 칙칙했다. 고개를 숙여서 그 표정은 확실히 볼 수 없었지만 지금 니트로바츠가 상당히 분노하고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 었다. "어쭈? 지금 우리하고 싸워보겠다는 거야?!" 니트로바츠의 말투에서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깡패 하나가 먼저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듯 주먹을 세게 쥐고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니트로 바츠는 고개를 들어 그 깡패를 쳐다보았다. 그런 니트로바츠의 얼굴은 무표 정했다. 콰앙! 갑자기 깡패와 니트로바츠 사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갑작스런 연 소에 의해 일어난 폭발이었다. 즉, 니트로바츠가 마나 파장을 이용해서 일으 킨 폭발이었던 것이다. "뭐, 뭐야?!" 막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깡패 녀석은 갑작스런 폭발에 크게 놀 라며 뒤로 급히 물러섰다. 니트로바츠는 아세트니퍼를 붙잡고 있는 깡패 둘 을 무표정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세트에게서 손 치워." "흥! 웃기지 마! 마법 좀 할 줄 안다고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세 깡패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깡패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난 알고 있었다. 지금 세 깡패 녀석들 모두 니트로바츠의 마법에 크게 겁을 집어먹고 있음을. 게다가 너무나 무표정한 니트로바츠의 모습이 깡패 녀석들의 공포심 을 더욱 자극하고 있음도 쉽게 파악했다. "손 치우라고 했다." 니트로바츠는 아주 싸늘한 말을 내뱉으며 손을 가슴 높이까지 치켜올렸다. 그러자, "우악!" 아세트니퍼의 입을 막고 있던 한 깡패 녀석의 손등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이 정확하게 깡패 녀석의 손등에서만 치솟았기 때문에 아세트니퍼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없었다. 너무나 정확한 마법 발현이었다. "이 자식!" 자기네 동료 하나가 손등을 데이자 니트로바츠와 제일 가까이 서 있던 깡패 가 빠른 몸놀림으로 니트로바츠에게 주먹을 날렸다. 보통의 니트로바츠였다 면 절대로 피하지 못했을 정도의 빠르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니트로 바츠에게는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빠악-! "커어억!" 니트로바츠가 친 바리어를 정통으로 때려버린 깡패는 아픈 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찬 신음을 내질렀다. 니트로바츠는 그런 깡패를 무표정한 눈으로 쳐 다보기만 할뿐이었다. "니트로바츠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 놀란 얼굴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에레나리스가 약간 두려움 섞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지금의 니트로바츠는 니트로바츠라고 할 수 없었다. 니트로바츠 속에 잠자고 있던 또 다른 니트로바츠, 그 동안 소극적 인 성격으로 억눌러져 있던 적극적인 성격이 깡패들에 의해 표출된 것이었다. 바로 환타지 세계에서 골드 드래곤을 소멸시켰을 때의 나처럼. "거기 무슨 일이냐?!" 그때 굵직한 남자 선생의 목소리와 함께 여러 명이 이쪽으로 뛰어오는 발자 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깡패들이 소리 지르고 펑펑 터지는 소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드디어 아이들과 선생들이 이곳에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여기서 무슨 소리가……!" 기숙사 건물 옆에 서 있는 나와 에레나리스, 로리아케시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했던 한 남자 선생이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깡패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니트로바츠를 보더니 하던 말을 중단했다. 니트로 바츠의 몸 주변에서 강렬하게 방출되고 있는 마나 파장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봐!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장 그만 둬!" 일개 학생이 내기에는 마나 파장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남자 선생은 함부 로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우리 옆에서 목소리를 높여 니트로바츠 를 부르기만 했다. 그러나 이미 이성이라는 것이 상실된 니트로바츠가 그런 선생의 말을 들을 리 없었다. "무슨 일이야?" "몰라." "저기 저 애들, 그 유명한 문제아들이잖아?" "아, 니트로바츠가 저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니……!" 우리 주변에 몰려든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상황이 지금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떠들었다. 만약 지금 니트로바츠가 저 세 깡 패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저렇게 웅성거리며 떠들 수는 없 을 것이다. "니트……!" 깡패들의 마수에서 빠져 나온 아세트니퍼는 그러나 니트로바츠에게 다가가 지 못하고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니트로바츠를 불렀다. 평소에 그녀가 알던 니트로바츠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세트. 피해있어." 니트로바츠는 아주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그의 말속에는 아세트니퍼가 가 자마자 깡패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명백한 살의가 담겨져 있었다. 그래서 아세트니퍼는 피하지 않았다. "니트!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너 같지가 않아!" "……." 아세트니퍼의 말에 니트로바츠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아세트니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니트……!" "하지만 널 건드리는 녀석들은 절대 용서 안 해." "……!" 니트로바츠의 마지막 말에 아세트니퍼는 멍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아세트니퍼가 더 이상 방해를 하지 않자 니트로바츠는 깡패들에게 다 가갔다. 손등을 데인 깡패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니트로바츠를 보며 소 리쳤다. "우리하고 해보겠다는 거냐?!" 화륵-! 니트로바츠는 대답 대신 카파 하사로 여섯 개를 만들어 내었다. 니트로바츠 의 뜻은 명백했다. 카파 하사로를 날려 깡패 녀석들의 몸에 구멍을 뚫어놓으 려는 작정이었던 것이다. "자, 잠깐 기다려!" 니트로바츠가 진짜로 자신들을 공격할 것을 느낀 깡패들은 겁에 질린 표정 으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보통의 경우 마법사보다는 깡패들이 싸울 때 더 유 리하지만, 이미 마나 파장을 극한까지 방출하고 있는 니트로바츠에게는 그 어떤 물리적 공격도 소용없었다. 깡패들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니트로바츠의 마법 공격이 날아올 테니까. ====================================================================== 쓴 게 바닥났당... 내일은 못 올릴 것 같은...ㅡㅡ;;;; [번 호] 9185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7일 02:27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3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모습 그대로 -5-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5-...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5 06:30:09 수 정 일 : 크 기 : 7.2K 조회횟수 : 491 "너희들은 날 괴롭혔다. 내가 그 동안 겪었던 고통만큼 너희들에게 돌려주 겠다." 니트로바츠의 어조는 딱딱했다. 마치 기계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성을 상 실했을 때의 니트로바츠의 모습은 나하고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이성을 상 실하면 앞 뒤 가리지 않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나하고 흡사했다. 피잉-! 마침내 니트로바츠의 카파 하사로가 깡패들에게 날아갔다. 우등생답게 카파 하사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깡패들의 다리를 훑고 지나갔다. 당연히 깡패 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끄아악!" "사, 살려줘!" 깡패들이 카파 하사로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본 아이들이 경악했다. 특히 니트로바츠의 온순한 성격을 알고 있던 아이들은 더욱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니트로바츠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살의에 압도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은 재미로 날 때렸겠지만, 난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느껴봐라." 피잉-! 다시 한 번 카파 하사로가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깡패들의 옆구리를 스 쳐 지나갔다. 단지 스쳐지나간 것뿐이지만 불화살이기 때문에 옆구리에 화상 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크어억!" 세 명의 깡패들은 너무나 강한 고통에 비명도 못 지르고 고통에 찬 신음만 을 터트렸다. 평상시에 남에게 고통만을 주는데 익숙한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에는 한없이 약했다. "으아악……!" 깡패들의 눈은 하얗게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니트로바츠는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니트로바츠의 주위에 얼음 화살인 비아 하사 로가 세 개 만들어진 것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만 둬, 니트―!" 아세트니퍼가 울 듯한 표정으로 니트로바츠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니트로 바츠의 행동에서는 여전히 살의가 느껴졌다. 그러자 에레나리스가 불신 가득 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류드나르…… 왜 니트로바츠를 막지 않는 거야? 왜?" "……." 흘……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인간이 시끄럽게 떠드는군. 왜 남한테 그런 걸 떠넘기려 하냐고. 자기가 막으면 될 거 아니야? 웃기다니까. 뭐 어쨌든 이제 내가 슬슬 나설 차례가 된 것 같군. 니트로바츠를 살인자로 만들 생각은 없 으니까 말이야. 저벅 저벅- 난 느긋한 발걸음으로 막 비아 하사로를 날리려는 니트로바츠에게로 걸어갔 다. 그런 내 움직임을 느낀 니트로바츠는 잠시 행동을 멈추고 날 노려보았다. 내가 방해하면 죽이겠다는 얼굴이었다. "니트로바츠. 넌 지금 네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는 거냐?" 니트로바츠의 행동을 막기 위해 난 무감정한 어조로 질문했다. 내 말에 그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니트로바츠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자신을 방해하려는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것이었다. "내 행동?" "그래. 저기 쓰레기들을 죽이는 게 옳다고 생각하나?" 난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에 몸부림치는 세 깡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니트로바츠는 잠시 고통에 허우적대는 깡패들을 무표정한 시선으로 내려다보 았다. 그리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날 건드리는 자는 죽인다. 너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후후,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니까 이제 점점 이성이 되돌아오고 있는 모양이구만. 역시 내가 깡패들을 죽이라고 부추기고 그런 내가 방해를 하니 까 니트로바츠 녀석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어. 얘기하기는 더 쉬워지겠군. "저들을 죽이고 나서의 일은 생각해봤나?" "……." 내 질문에 니트로바츠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니트로바츠는 앞 뒤 생각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었 다. 그러나 그 질문이야말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니트로바츠의 행동에 제 동을 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들이 널 괴롭히고 고통을 줬어도, 지금 네가 저들을 죽이면 너도 저 녀석들과 똑같아지는 거야." 난 아주 평범한 말, 내가 싫어하는 말을 내 입으로 해야만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니트 로바츠는 내 말,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에 수긍하지 않았다. "똑같아진다고?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저들은 날 괴롭혀도 되고, 난 안 된다 는 거야? 어째서 고통받은 사람이 고통을 준 녀석에게 복수하는 것을 막는 거지? 왜 약한 사람은 계속 당해야만 하는 거냐고!" 니트로바츠는 점점 흥분하고 있었다. 니트로바츠를 더 흥분시킨 뒤에 아주 결정적인 말을 때리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니 트로바츠와 좀더 논쟁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게 되면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려. 그러면 이번에는 피해자가 된 가해자가 다시 복수를 하 겠지. 결국 돌고 돌 뿐이야." "그럼 나보고 계속 저 녀석들에게 당하고 있으라는 말이야? 녀석들에게 벌 을 줄 방법은 힘밖에 없다고!" "그건 나도 인정해." 난 니트로바츠의 말에 수긍했다. 그러자 니트로바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도 알면서 왜 나를 막는 거야? 어른들이나 그 어른들이 만든 법으로는 녀석들의 위협을 막아낼 수 없다고! 알리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게 돼! 그런데도 녀석들에게 복수해서는 안 된다고?!" "맞아. 아무리 훌륭한 법이라도 눈앞에 있는 주먹을 막아내지는 못해. 힘없 는 사람들은 강한 녀석들에게 짓밟히는 수밖에 없지." 내가 또 고개를 끄덕이자 니트로바츠는 더욱 표정을 찌푸렸다. "뭐냐? 내 말을 인정하면서 왜 나를 막으려는 거야? 녀석들에게 복수하겠다 는 나를 왜 막는 거냔 말이야!" 니트로바츠는 최고조로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흥분은 이성적인 판단 에 의한 흥분이었기 때문에 날 공격하지는 않았다. 만약 니트로바츠가 감정 적으로 흥분했다면 당장에 날 죽여 없애버렸을 것이다. 후후,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가 왔군. 만약 내가 니트로바츠였다면 지금 내 가 하려는 말은 전혀 먹혀들지 않겠지만 니트로바츠이기 때문에 아주 결정타 가 될 거야. 아, 꼭 니트로바츠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먹혀들겠 군. 나만 안 먹혀드는 말인가? 왠지 서글픈걸? "니트, 넌 어떤 식으로 녀석들에게 복수할 생각이냐?" 내 물음에 니트로바츠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세 깡패들을 싸늘히 내려다 보며 답했다. "내가 그 동안 받은 고통만큼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죽여주겠다." 헐∼ 확고한 의지인걸? 역시 내성적인 녀석이 뚜껑 열리면 완전히 변한다니 까. "뭐 네가 뭘 하든 난 상관하지 않겠어. 하지만 말이야, 이것만은 알아두라 고." "……?" 니트로바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내 다음 말을 진지하게 기다 렸다. 그런 니트로바츠를 보면서 나는 내가 생각해두었던 결정타를 날렸다. "네가 녀석들에게 복수를 하고 나면 넌 변해. 지금까지의 네 성격에 많은 변화가 생길 테니까. 그건 너도 부정할 수 없을 거야." "……." "네가 변하게 되면 슬퍼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나?" "……!" 니트로바츠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를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내 말을 더욱 강조했다.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 네가 저 녀석들처럼 되어 가는 것을 원할까?" "……!" 니트로바츠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세트니퍼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 나와 니트로바츠가 계속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전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오지 못했던 아세트니퍼는 니트로바츠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오자 울 듯한 목소리 로 입을 열었다. "니트……!" "아세트……." 비록 니트로바츠의 목소리는 평상시와 달리 나직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 상적으로 불렀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마무리를 해야할 때라고 느낀 나는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던 말을 시작했다. "손은 더러워지면 씻을 수 있지만, 마음이 더러워지면 씻어내기가 어려워. 물론 사람은 어떤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좀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야겠지만, 때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있는 편이 나을 때가 있어. 지금 서 있는 너보다 는 소극적이지만 착했던 너를 사람들은 더 좋아할 거야. 나도 그렇고, 아세 트니퍼도 그렇고, 너 자신도 그렇고." "……." 니트로바츠가 만들어 놓았던 비아 하사로는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던 마나 파장 역시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제 니트로바츠에게서 그 어떤 살의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번 호] 9186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7일 02:27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3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2장: 그모습 그대로 -6-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2장:그 모습 그대로 -6-... 총 Page : 1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5 06:30:29 수 정 일 : 크 기 : 6.6K 조회횟수 : 518 "니트……!" 아세트니퍼도 니트로바츠가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음을 느끼고 눈물 을 흘렸다. 아세트니퍼의 눈물을 본 니트로바츠는 진심 어린 어조로 입을 열 었다. "아세트…… 미안해." "니트…… 흑!" 아세트니퍼는 니트로바츠의 품으로 몸을 던졌고 니트로바츠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이미 이렇게 뻔한 결말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 는 옆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 남자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 녀석들 병원에 데려 가야죠." "아! 어서 구급차를 불러!" 내가 말을 해주자 그때서야 화상 입은 깡패 녀석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 선생이 요란을 떨었다. 그 사이 난 깡패 녀석들에게로 걸어갔다. 지금 녀석들이 병원에 가버리면 나중에 다시 니트로바츠를 괴롭힐 가능성이 있었 기 때문에 확실히 해두어야 했다. "견딜 만하냐?" "끄으……!" "그렇게 아프냐? 그러게 왜 니트를 건드려서 그 꼴이 되냐고. 아무리 순한 양이라도 화나면 앞 뒤 가리지 않아. 어쨌든 그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여 겨라. 다시 한 번 니트에게 찝적거렸다간 그때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 다." 녀석들이 듣던 말던 난 내 말만 하고 바로 그 자리를 떴다. 녀석들도 머리 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니트로바츠에게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니트로바츠의 이중적인 면을 본 학교 친구들이 니트로바츠를 외면할 가능성 이었지만, 그건 아세트니퍼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내 무모한 계획은 종료되었다. "류드나르." 아이들의 웅성거림과 아세트니퍼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 리까지 걸었을 때 에레나리스의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에레나리스 와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내 몸은 거의 반사적으로 에레나리스 쪽 으로 향했다. 그래서 로리아케시가 에레나리스 옆에 붙어서 날 띠껍게 쳐다 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난 질문할 게 있으면 빨리 하라는 뜻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해 보였다. 에레 나리스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아 로리아케시 말고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음 을 확인하고 나서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니트로바츠가 그 사람들을 죽일 거라는 거…… 알고 있었지?" "……." 흘……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 "이런 일이 일어날 거 알고 있었지?" 에레나리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에레나리스의 표정이 워낙 담 담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어." "왜 니트로바츠가 저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기 전에 막지 않은 거야? 너라 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에레나리스가 알고 싶어하는 것은 내 계획의 이유였다. 그래서 난 잠시 망 설였다. 내 계획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얘기를 했다간 에레나 리스에게 바로 반박을 당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냥 반박 당하기로 마음먹고 입을 열었다. "니트가 녀석들을 공격하기 전에 내가 나섰다면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 을 거야. 내가 녀석들을 벌하더라도 니트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녀석들은 내게 당한 것까지 합쳐서 니트를 괴롭히겠지. 그래서 난 니트가 녀석들을 공 격할 때까지 기다린 거야. 녀석들에게 니트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줘야만 했으니까." "그러다가 니트로바츠가 정말로 그 사람들을 죽였으면 어쩔 뻔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내가 막았을 테니까. 만약 죽은 사람이 있었다 면 바로 나였겠지. 니트의 공격을 막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내 말에 에레나리스는 조금 표정을 바꾸었다. "그럼 넌 죽을 각오를 하고 니트로바츠를 막은 거야?" 흠…… 그런가? 그냥 계획 진행에만 신경 썼는데. 뭐 그랬다고 치자∼ "맘대로 생각해." 난 퉁명스럽게 말한 뒤 기숙사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러나 에레나리스의 이어지는 질문 때문에 다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넌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지금 나하고 토론하자는 거냐? "그래." "그럼 법은 왜 있는 거지? 저번처럼 강자를 위해서 있는 거라고 할거야?" 에레나리스는 저번에 내가 문제아 트리오를 죽인 후 논쟁했던 것까지 들먹 였다. 그러한 반박을 받았기 때문인지 난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그래서 진 지하게 말했다. "법이 강자를 위해 존재하든 약자를 위해 존재하든 결국 주먹보다 느려. 법 은 항상 일이 터진 다음에 뒷수습만을 할 뿐이야. 예방에는 아주 취약하지. 그래서 아주 큰 피해가 아니면 피해자는 법에 의지하지 않게 돼. 결국 가해 자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가해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법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잖아? 네가 니트로바츠에게 말했던 것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을 하고, 다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복을 가하는 악순환만이 되풀이될 뿐 아니야?" 흘…… 에레나리스가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하다니…… 난 너무 위대해∼ "그렇겠지.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망각이란 게 존재하는 거라 할 수 있 어." "망각?" 갑자기 얘기가 전혀 다른 데로 넘어가자 에레나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런 에레나리스에게 평상시의 내 생각, 그리고 내가 직접 겪고 느낀 것을 얘기해주었다. "어떤 녀석들에게 돈을 뜯기고 얻어터져도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되지. 만약 망각이라는 게 없어서 10년, 20년 후에도 그때 돈을 뜯기고 얻어터진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10년, 20년 후에도 그 녀석들에게 보복을 가하게 될 거야. 하지만 망각이라는 장치 때문에 그때 당했던 고통을 잊고 지낼 수가 있는 거지." "그런데?" "망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거야. 학생 시 절에 아무리 맞고 살았어도 크면 모두 추억 속으로 묻혀져버려. 결국 가해자 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어렸을 때 남을 괴롭히며 즐겁게 다닌 게 돼. 피해자들만 손해를 보는 거지." "류드나르……!" 에레나리스는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지만 말을 잇지는 못 했다. 내가 에레나리스의 말을 막고 내 생각만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괴롭힘을 받아도 나중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잘못을 빌게 되면 피 해자는 예전 일을 용서하게 돼. 과거에 당했던 그 고통을 보상받지도 못하고 말이야. 나도 어렸을 때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었던 녀석들이 있어서 나에게 힘이 생기면 당장 보복을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신경조차 쓰지 않아. 그 렇게 당하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니까 모두 잊혀지더군. 모두." "……!" 이번에도 역시 에레나리스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지만 난 전혀 듣고 싶 은 생각이 없었다. 예전 일을 떠올려서 기분이 굉장히 더러워져 버렸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난 에레나리스와 지금까지 꼽사리로 서 있었던 로리아케시에 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내 방 기숙사로 걸어갔다. "류드나르!" 에레나리스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기분은 자꾸만 아 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망각이라는 것 때문에 예전에 받은 고통을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나와, 어떻게든 녀석들에게 보복을 가하고 싶어하는 나, 그리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전혀 보복하려 하지 않는 나, 그렇게 모순된 마음이 내 기분을 잡쳐버렸던 것이었다. 후…… 화만 나는군. 어차피 절대적으로 옳은 일은 없으니까 니트로바츠가 깡패 녀석들을 공격한 게 나쁘다고만 할 수 없고 또 옳다고도 할 수 없겠지 만, 니트로바츠는 과거로부터 떨쳐 일어나게 되었는데 난…… 과거를 그냥 과거로 묻어버리기만 하고 있고…… 아…… 짜증나…… 어차피 날 괴롭혔던 녀석들과는 만날 일도 없으니 그냥 잊어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그래, 나만 손해보며 살자. 내가 언제 손해 안 보고 산 적이 있었냐. 하하……. ─────────────────────────────────────── [번 호] 9188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7일 02:39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3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3장: 예술제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3장:예술제 -1-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6 21:46:36 수 정 일 : 크 기 : 6.7K 조회횟수 : 158 <제 23 장> 예술제 니트로바츠가 세 깡패 녀석들에게 공격을 가한 일은 무사히 넘어갔다. 내가 교장 할배에게 협박(?)을 가한 것도 있었고, 평상시의 그 녀석들의 행실을 교장 할배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니트로바츠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돌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녀석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도 그 녀석들의 부 모들에게는 통지가 되지 않았고, 녀석들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 외에 있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예술제 날이 되었다. 나와 네오니스, 크리스토르는 예 술제 때 묘기 마법을 선보인다고 계획은 했지만 막상 때가 되니까 왠지 하기 가 싫었다. 애들 앞에서 뭔가를 한다는 게 내 성격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네오, 나 묘기 마법 하는 거 안 하면 안될까?" 난 용기를 내서 네오니스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역시나 네오니스의 비난이 날아왔다. "뭐? 너도 한다고 해서 했잖아! 빠지면 죽인다?!" "…… 알았어." 흑…… 돈이라는 말에 눈이 어두워 이런 일을 한다고 해버린 나 자신을 탓 해야지 누구를 탓하랴…… 뭐 대충대충 해야지…… 어차피 볼 사람도 별로 없을 테니까 상관없어. "자, 그럼 어디서 할까?" 대충 짠 계획서를 들고 네오니스는 싱글벙글하며 나와 크리스토르에게 의견 을 물었다. 난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기만 했고, 대답은 크리스토르가 했다. "선생님들 눈에 안 띄는 곳으로 해야해. 걸리면 당장 그만 두라고 할 테니 까." "그렇네. 그럼 으슥한 곳에서 해야겠지?" "으슥한 곳보다는 학교 옥상이 어떨까?" 마지막 말을 한 사람은 나였다. 난 가능한 한 거의 오지도, 볼 수도 없는 곳에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내 의견을 들은 네오니스는 잠시 생각을 하 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옥상에서 하는 걸로 하자. 이제 손님을 끌어모으는 일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할래?" 헉! 그 일은 난 정말로 할 수 없어! "네오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일 같은데?" 내 말에 네오니스는 또 잠깐 생각을 하더니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듣고 보니 그렇구나. 뭐 그건 내가 할게. 그럼 너희 둘은 뭐할 거냐?" "글쎄…… 뭘 하지?" 사실 할 것은 많았지만 우리 셋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좀더 일손이 필요했다. 우선 라드 선배는 우리 일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으니 일을 맡아달라고 해도 해줄 것이고, 니트로바츠는 아세트니퍼랑 같이 나다닌 다고 했기 때문에 부탁하기 그랬다. 아, 그렇군! 샤느 선생이 있었지! 그 선생이라면 도움을 요청해도 거절하지 않을 거야. 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선생들에게 알리지도 않을 테고. 그러고 보니 이건 샤느 선생을 이용해먹는 건가? 뭐 상관없어. 돈이 굴러 들어오는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네오, 내가 샤느 선생을 포섭할게." 내 말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순간적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샤느 선생이 날 아낀다지만 선생을 이 일에 끌어들인다는 것이 약간 께름직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둘에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마. 샤느 선생이 있으면 돈벌이가 더 잘될 테니까. 만약 일이 잘 못 되도 내가 다 책임질 테니까 걱정을 하지 말라고." "음…… 그렇다면 그 일은 류드에게 맡기도록 하자. 나하고 크리스하고 라 드 선배는 먼저 동관A 옥상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놓을 테니까 그리로 와. 그럼 잠시 후에 보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어제 어떤 선생에게서 빌린 텐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그 텐트를 무대 대신 쓰려는 생각이었다. 난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가 나간 뒤 문단속을 하고 샤느 선생이 머물고 있는 본관 선생 기숙사로 향 했다. 저번에 샤느 선생의 방을 찾아갔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없 이 샤느 선생의 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404호……." 샤느 선생의 방인 404호실 앞에서 난 잠시 망설였다. 아직도 샤느 선생이 이 방을 쓰고 있는지 아니면 지금은 다른 방을 쓰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 다. 흘…… 노크를 해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걸 난 왜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 역시 난 바보인가? 하지만 그러다가 샤느 선생이 없으면? 뭐 나만 개 쪽 당하는 거지……. 똑똑똑- "저기, 샤느 선생님 계세요?" 내가 문을 두드리고 안을 향해 말을 하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 만 안에서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흠…… 아무도 없는 건가? 이를 어쩐다? 네오니스에게 샤느 선생을 포섭하 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왔는데…… 아, 교장 할배에게 샤느 선생의 방이 어딘지 물어보면 되겠구나!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한 거지? 벌컥! 교장 할배에게 샤느 선생의 방을 물어보려고 막 발길을 교장실로 돌리려던 순간, 문이 갑자기 열리며 안에서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류드?!" 내 이름을 부르며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샤느 선 생이었다. 샤느 선생은 지금까지 이 방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교장실에 갈 필요가 없어진 나는 즉시 샤느 선생에게 인사를 했고 샤느 선 생은 계속 놀란 표정을 유지시키며 나에게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니? 무슨 급한 일이 생긴 거야?" 흘…… 내가 무슨 일이 생겨서 자기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하긴, 난 항상 뭔 일이 있을 때에만 다른 사람들을 찾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리고 지금도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거고. 난 너무 사업적 인가? "급한 일은 아닌데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부탁?" 부탁이라는 말을 들은 샤느 선생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난 샤느 선생에게 부탁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부탁을 할 게 있다고 하니까 상당히 감동 받은 모양이었다. 물론 그건 내 생각이긴 하지만. "무슨 부탁인데? 말해봐." "에…… 그게 조금 그런데요…… 저하고 네오니스하고 크리스토르가 이번 예술제 때 묘기 마법을 할 생각이에요."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샤느 선생이 놀란 얼굴을 했다. "묘기 마법? 그거 대단하구나!" 흘…… 대단하긴 뭐가 대단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하지만 저희들끼리 묘기 마법을 하는 건 무리라서요, 선생님이 도와주셨으 면 합니다." "내가?" "예." 난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서 진지한 표정으로 샤느 선생의 반응을 기다렸다. 샤느 선생은 그런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나도 묘기 마법을 한 번 해보고 싶었으니까!" 우헐헐, 이것으로 샤느 선생 포섭 성공…… 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 샤느 선생은 아직 우리가 돈벌이를 위해 묘기 마법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으 니까. 말해야 될텐데…… 그 말을 하고 나서도 샤느 선생이 하겠다고 할까? 에라, 될 대로 되라! "저기 그런데요, 저희는 묘기 마법을 보여주면서 입장료를 받을 생각이거든 요? 괜찮으시겠어요?" "입장료?" 순간적으로 멍해지는 샤느 선생. 그러다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이 그런 일을 해도 되는 거야?" 윽…… 잘못하면 샤느 선생이 다른 선생들에게 모두 불어버릴 듯한……! "그냥 재미로 하는 건데요 뭐." "재미로 시작한 일이 나중에는 습관 된다?" 이런…… 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냐고…… 지금 날 놀리는 거야? "그럼 안 하시는 건가요?" 난 모든 말을 무시해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샤느 선생에게 물었다. 그런 나 를 샤느 선생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좋아, 할게. 하지만!" 설마…… 설마……! "수입의 일부를 나한테도 줘야해?" 역시……! "예……." 이런이런…… 결국 돈으로 샤느 선생을 포섭한 꼴이 되어버렸잖아? 쩝, 이 사실을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알면 난리 나겠군. 샤느 선생의 몫만큼 내 수입이 줄어들겠구나……! ─────────────────────────────────────── [번 호] 9189 / 9199 [등록일] 2000년 06월 17일 02:40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3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3장: 예술제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3장:예술제 -2- 총 Page : 1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6 21:46:49 수 정 일 : 크 기 : 5.9K 조회횟수 : 158 "그럼 오늘부터 시작하는 거니?" 샤느 선생은 지금 당장이라도 할 듯한 자세였다. 그래서 난 샤느 선생을 바 로 작업에 투입시키기로 결정했다. "동관A 옥상에서 할 예정이에요. 지금 네오하고 크리스가 준비하고 있어요. 바쁘시지 않다면 같이 가요." "그래. 가자!" 샤느 선생은 단번에 승낙하며 즉시 방문을 잠그고 내 등을 떠밀며 동관A 옥 상으로 향했다. 샤느 선생이 정말로 돈 때문에 묘기 마법 하는 것에 참여하 겠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샤느 선생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그나저나 기쁜걸? 류드가 나에게 부탁을 하러 오다니 말이야." 동관A 옥상으로 향하는 동안 샤느 선생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난 샤느 선생을 기쁘게 해주려고 부탁한 것이 아니고 샤느 선생이 내가 잘 아는 사람 이라 부탁한 것뿐이기 때문에, 샤느 선생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약간 냉정하게 말했다. "선생님이 마법 이론 선생님이니까요." "그러니……?" 역시나 샤느 선생은 조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그런 썰렁한 얘기 를 나누는 동안 우리들은 동관A 옥상에 도착했다. 옥상에서는 네오니스와 크 리스토르, 그리고 라드 선배가 분주히 움직이며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샤느 선생님!" 네오니스가 샤느 선생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하지만 샤느 선생 옆에 서 있는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샤느 선생 때문에 내가 있는 줄 도 모르는 것이었다. "선생님! 저희들을 도와주시려고 오신 거죠?" 네오니스의 물음에 샤느 선생은 날 쳐다보면서 답했다. "류드에게 부탁을 받았으니까 그래야지?" "……." 돈을 요구했으면서 부탁은 무슨 부탁……. "아, 너 언제 왔냐?" 네오니스는 샤느 선생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날 발견하고 놀라 물었다. 당장 에 녀석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참았다. "아까 전부터 있었어." "그랬냐? 어쨌든 왔으면 빨리 일 좀 거들라구. 벌써 예술제는 시작됐는데 우리는 전혀 시작을 못하고 있잖아!" 흘…… 그게 내 탓이냐? 무리해서 이런 계획을 세운 네 탓이지. "자, 그럼 나도 도와줄게." 샤느 선생의 말에 네오니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나와 네오니스, 크리스토르, 라드 선배, 그리고 샤느 선생은 열심히 작업을 시작했다. 단순히 텐트 치고 교실에 있던 의자를 무단으로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그것만 하는 데에도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휴! 겨우 다 끝냈네!" 무대를 대충 마련한 우리들은 피곤한 몸을 잠시 쉬게 했다. 이제부터 공연 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그리고 입장료는 얼마나 받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큰 문제가 남게 되었다. 수근수근-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그 문제에 대해 열심히 논의 하기 시작했다. 난 의견도 없었고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아서 라드 선배에게 갔다. 라드 선배는 침을 튀기며 열심히 의논하고 있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 르의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었다. "선배." "어? 왜?" "아뇨, 그냥 할 일 없어서요." 그런 내 말을 들은 라드 선배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넌 별로 할 마음이 없는 것 같구나." 헐∼ 정확한데?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 하는 건 내키지 않거든요." "후후, 소극적인 성격이구나." 그렇게 후후 웃던 라드 선배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낸 듯이 나를 쳐다보며 말 했다. "참, 네가 전에 말했던 다른 세계의 마나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어머, 너희 둘은 의견 안 내놓을 거니?" 갑자기 샤느 선생이 우리 둘에게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라드 선배의 말은 거기서 중단되었다. 라드 선배는 나한테 있어서 꽤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했 던 것 같았기 때문에 중간에 끼어 든 샤느 선생이 조금 못마땅했다. 그래서 내 어투는 약간 딱딱해졌다. "의견 같은 거 없어요." "그러니? 하지만 너희도 참여는 할 거 아니야?" "뭐…… 그렇겠죠." "꼭 남의 일처럼 말하는구나?" 흘…… 맘대로 생각하셔. 하여간 괜히 묘기 마법 하겠다고 해 가지고 학교 옥상에서 이렇게 앉아 있어야 하다니…… 뭐, 라드 선배를 만났으니 그나마 나은 건가? "야, 류드! 입장료는 500원이 어떨까?" 크리스토르와 의견을 주고받던 네오니스가 나를 향해 소리치며 그렇게 물었 다.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 나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너무 비싸." "거봐, 류드도 비싸대잖아. 너 같으면 500원씩이나 내고 검증 받지도 못한 묘기 마법을 보겠냐?" 내 대답을 듣자마자 크리스토르는 거 보란 듯이 네오니스에게 말했다. 내가 동조를 하지 않아서인지 네오니스는 날 무섭게 째려보았다. 하지만 자신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지 나와 크리스토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알았다고. 그럼 얼마로 할래?" "200원으로 하자." 크리스토르의 제안에 네오니스는 너무 적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반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입장료는 200원으로 결정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묘기 마법을 먼저 시작할 지였는데 그 전에 누가 처음 묘기 마법을 시작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했다. "난 애들을 끌어 모으는 일을 해야 하니까 너희 둘 중에 아무나 먼저 해." 네오니스는 나와 크리스토르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크리스토르 는 즉각 발뺌을 하려고 했다. "난 마나가 겨우 4써클밖에 안돼. 류드가 먼저 해." 얼씨구? 중요한 순간에 남에게 떠넘긴다는 거냐? "처음엔 쉬운 묘기 마법부터 하니까 크리스가 먼저 해라." "아니야, 내가 양보할 테니까 류드가 먼저 해." "네가 먼저 하라니까." "먼저 해." "네가 먼저." 나와 크리스토르는 서로에게 역할을 떠넘기며 무대에 제일 먼저 서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당연히 곧바로 네오니스의 비난이 쏟아졌다. "야! 하려면 제대로 하라구! 왜 자꾸 안 하겠다고 하는 거야?" 흘…… 누가 쪽팔리게 애들 앞에서 묘기 마법하고 싶어하겠냐? 약간이라도 재미없으면 애들이 '눈 버렸다. 돈 물어내!'하면서 난리를 칠텐데! "음…… 그럼 내가 먼저 할까?" 그때 우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샤느 선생이 웃으면서 물어왔다. 그래 서 우리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예!" "알았어. 내가 먼저 애들의 시선을 꽉 잡아놓을 테니까 걱정 말아." 샤느 선생은 아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해 보였다. 샤느 선생이라면 묘기 마법 말고도 미모로도 아이들의 시선을 확실히 잡아놓을 수 있기 때문에 안 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헐헐, 역시 샤느 선생을 데려오기 잘했다니까. 그나저나 학생이 선생을 이 용해먹다니…… 역시 나란 녀석은 불량의 극을 치달리는 학생인가? 쩝……. 어쨌든 우리들은 계속해서 서로의 역할을 정했다. 네오니스는 아이들을 끌 어들이는 역할을, 라드 선배는 입장료를 받는 회계 역할, 그리고 나와 크리 스토르, 샤느 선생은 직접 묘기 마법을 행하는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 일꾼의 사과문... 현재 상황설명: 컴터가 부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응당 맡겨야 하겠지만 돈이 없는지라.. 일단 학기중인 다음주는 매일 퍼나르는게 가능하겠지만 그 다음주부터는 화, 목만 퍼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_(__)_ 죄송해요~~~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322 / 9323 [등록일] 2000년 06월 20일 08:11 Page : 1 / 22 [등록자] THEBUR [조 회] 9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3장:예술제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3장:예술제 -3- 총 Page : 2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8 15:32:31 수 정 일 : 크 기 : 10.9K 조회횟수 : 413 "과연 애들이 많이 올까?" 네오니스가 아이들에게 우리들의 일을 선전하러 간 동안, 다른 교실에서 무 단으로 가져온 책상에 앉아 입장료 받을 준비를 끝낸 라드 선배가 중얼거리 듯이 나에게 물었다. 라드 선배에게 거짓말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 문에 난 아주 솔직하게 내 예감을 말했다. "별로 안 올 것 같은데요." "후후." 라드 선배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긍정의 웃음을 흘렸다. 샤느 선생은 묘기 마법을 준비하느라고 분주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라드 선배 가 하려다가 그만 둔 말을 들을 생각이었다. "저기요, 아까 뭘 말하려다 못했잖아요?" "아. 그렇게 중요한 얘기는 아닌데…… 네가 전에 말했던 마나에 대해서 생 각해봤거든." 헐…… 라드 선배가 말하는 거니까 나한테 아주 중요한 얘기 같은 예감이 드는걸? "네가 살았던 세계의 마나는 심연의 바다처럼 고요하게 움직인다고 했잖아?" 흘…… 심연의 바다…… 어려운 말이라 잠시 알아듣지 못했어……. "그리고 여기의 마나는 공기 분자처럼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래서 말인데… … 혹시 네가 거기서 회전, 아니 축적시켰던 마나가 네 몸 속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생각돼서 말이야." "몸 속에…… 남아있다?" "그래. 단지 이곳의 활발한 마나적 성질 때문에 네 몸 속에서 축적시켰던 마나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어. 또 이곳의 마나 가 네 몸 속의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게 억누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흠……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내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갔 을 때에도 처음엔 마나가 몽땅 사라진 줄 알았지만 나중엔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내가 축적시켰던 마나를 어떻게 사용 하지? 느낄 수조차 없어서 사용하는 게 불가능한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사용할 수 없으면 모두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조금 퉁명스러운 내 말에 라드 선배는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네가 축적된 마나를 느끼는 방법은 생각해놨어. 단지 여러 가지로 부작용이 생길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오옷?! "어떤 방법인데요?" 내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묻자 라드 선배는 쑥스러운 듯이 머리를 자꾸 매만졌다. "에…… 우선 네가 살던 곳의 마나는 몸 속에다 축적시키는 거고, 이곳의 마나는 몸 주위로 회전시켜야만 마력을 유지할 수 있지?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네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마나를 느끼지 못한 이유는 아마 공기 중 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마나가 네 마나를 억누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흘…… 그 비슷한 말은 방금 했었잖수…… 그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라니까! "그리고 네가 이곳의 마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네 마나는 더욱 강한 압력을 받아서 네 몸 속에 굳어있을 거야.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방법은 그 굳어진 마나를 풀어버리는 거거든?" "어떻게요?" "그러니까 이곳의 마나를 네 몸 속에 축적시키는 거야. 물론 이곳의 마나를 몸 속에 축적시킨다는 건 어렵지만, 마법을 사용할 때 마나를 덩어리로 만드 는 게 가능하니까 아마 마나 축적도 가능할거야. 단지 이건 정신력만으로는 어려워서 마나를 같이 사용해야해. 결국 마나를 축적시키기 위해서는 마력을 소모해야 한다는 소리지." 그렇겠군. 여기서 마나를 모으려고 마나 축적을 시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이야. 마나를 모으는 속도보다 마나를 소모하는 속도가 더 빠르니 전혀 소용 이 없지.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해서 내 본래의 마력을 되찾을 수 있다면 ……! "어쨌든 마력을 소모해가면서 이곳의 마나를 네 몸 속에 축적시켜. 그러면 네 몸 속에 축적된 마나는 본래 네 몸 속에 있던 마나와 서로 반발하겠지. 그때 반발력이 생기면 넌 서로 다른 두 가지 성질의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될 거야. 뭐,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음…… 개미집을 들쑤시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가? 개미집을 나뭇가지 같 은 걸로 쑤시면 개미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오듯이, 축적되어 뭉쳐 있는 마나 속에다 전혀 다른 성질의 마나를 쑤셔 박으면 뭔가 반응이 올 것이다…… 라 는 것? 그럴 듯한데? "근데 말이야, 만약 네가 축적시켰던 마나의 양이 적으면 굳이 그 마나를 느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본래 마나를 사용하려다가 회전시켰 던 마나를 더 많이 소모하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야." 라드 선배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제 안한 방법대로 하다가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게 아닐까하고 걱정하고 있었 던 것이다. "괜찮아요. 그곳에서 축적시킨 마나의 양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꼭 자기 자랑 같았지만 난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그러자 라드 선배가 궁금 한 듯이 물었다. "얼마나 모았었길래?" "10클래스였을 거예요." "10클래스? 그게 어느 정도인데?" 이어지는 라드 선배의 질문에 난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라 드 선배가 이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달리 설명할 길도 없었 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만 말해주었다. "그곳에서 축적시킬 수 있는 마나의 한계는 8클래스에요." "잠깐! 아까 넌 10클래스를 축적시켰다고 했잖아? 8클래스가 한계라면서 어 떻게?" "예, 우선 8클래스를 몸 속에다 모두 축적시키고 그 이후에 모은 마나는 몸 속에 축적시키지 않고 옷을 입듯이 몸 바깥에다 축적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2클래스를 더 모았죠." "……!" 라드 선배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사실 라드 선배의 입장에서 보면 마나를 몸 속에 축적시킨다는 것도 믿기 힘든데, 거기다 마나를 옷 입듯이 모았다고 하니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후…… 역시 세상은 넓구나.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흘…… 그렇다고 그렇게 기죽은 표정은 지을 필요 없다구. 세상에 어느 누 가 모르는 게 없이 살 수 있겠어? 세상은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알기에는 너 무나 거대하다구. "첫 번째 관람객들 등장!" 그때 네오니스가 한 무리의 아이들과 같이 옥상으로 올라오며 호기롭게 소 리쳤다. 아이들의 수는 대략 10명 정도였다. 한 사람 당 200원씩이기 때문에 도합 2000원이고, 우리 쪽은 다섯 명이라 5로 나누면 나에게 돌아오는 금액 은 1회 공연에 400원이었다. 물론 계속 10명 정도의 관람객이 유지되어야 한 다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 했지만. "자자, 우선 기본 입장료는 200원이니까 저기 라드 선배에게 내시고 나서 편한 자리에 앉아주세요!" 크리스토르는 마치 안내원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로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라드 선배도 아이들의 입장료를 받고 정리하느라 바빠졌다. 그래서 난 텐트 속에서 열심히 묘기 마법 준비를 하고 있는 샤느 선생에게 다가갔다. "준비는 다 되셨어요?" 내가 묻자 샤느 선생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래. 조금 떨리지만……." 흘…… 항상 30명 정도의 학생들 앞에서 마법 이론을 가르치면서 겨우 10명 앞에서 묘기 마법 부리는데 긴장하다니…… 뭐 묘기 마법을 남들 앞에서 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어쩔 수 없군. 샤느 선생 혼자 하게 내버려두면 안되겠어. 나도 거들어야지. "저도 같이 할게요.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정말?"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뻐하는 샤느 선생. 그래서 결국 첫 번째 공연은 나와 샤느 선생 둘이서 하기로 했다. "선생님! 준비 되셨어요?" 벌써 애들이 자리를 다 잡고 앉았는지 크리스토르가 텐트 안으로 고개를 들 이밀며 물었다. 샤느 선생은 잠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서 대답했다. "준비됐어!" "예. 그럼 나오세요." 크리스토르가 무대 쪽으로 가자 샤느 선생은 약간 긴장하면서 텐트 밖으로 나갔다. 난 그런 샤느 선생의 뒤를 따라가면서 물었다. "어떤 마법을 사용하실 거예요?" "응? 아…… 우선 쉬운 것부터 하려고……." 그렇게 대답하던 샤느 선생은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겨우 10명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 그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아주 놀랐다. 10명의 아이들 대부분이 우리 반 이기 때문이었다. 흘…… 니트로바츠, 아세트니퍼, 네스포린, 에레나리스, 로리아케시 등등… … 네오니스 녀석…… 우선 우리 반 녀석들을 끌어다놓고 평가 삼겠다는 거 냐? 뭐, 모르는 사람들에게 쪽팔림을 당하는 것보다 아는 녀석들에게 여러 가지로 지적을 받는 게 더 낫겠지. 아닌가? 아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게 더 쪽팔리는 일일지도……. "저기 앉아있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저희 반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내 말에 샤느 선생은 잠시 안도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알았어. 그럼 시작하자!" 자신 있게 소리친 샤느 선생은 아이들 앞에 섰고 샤느 선생이 나오자 아이 들은 꽤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크리스토르가 입을 열었 다. "우선 샤느 선생님이 먼저 묘기 마법을 선보이실 겁니다. 그럼 선생님, 부 탁해요!" "응!" 무대가 없기 때문에 그냥 애들 앞에 서서 하는 것이었지만 의자 배치를 지 그재그로 해놓아서 묘기 마법 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샤 느 선생은 곧장 묘기 마법을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인 물체의 상을 형성하는 거부터 하겠어요." 짝짝짝- 아이들이 박수를 보내는 동안 샤느 선생은 마나 파장을 방출시켜 마나를 제 어했다. 묘기 마법을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은 샤느 선생의 마나 파장을 느 끼고 진지한 눈빛으로 관람을 시작했다. 잠시 후, 샤느 선생이 불꽃을 일으 켜 조그만 강아지 모양을 형성하자 아이들은 크게 박수를 했다. "역시 샤느 선생님이라니까!" "너무 멋져요!" 누구 입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들 샤느 선생에게 감탄을 보냈다. 사실 이건 묘기 마법 중에서 아주 기초적인 것이었지만 묘기 마법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녀석들도 없었고, 그 묘기 마법을 한 사람이 샤느 선생 이었기 때문에 훌륭하게 보인 것이었다. 좋아, 이제 나도 나서야겠군. 샤느 선생 혼자 계속하면 마력만 고갈되니까 말이야. 한번에 아주 죽여주는 묘기 마법을 보여줘야지∼ "선생님, 이제 같이 하죠." 내가 샤느 선생에게 다가가 그렇게 말하자 관람석에 앉아있던 남자 녀석들 이 살벌한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샤느 선생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음을 던졌다. "어떤 걸 할건데?" "간단한 거요. 반은 불꽃으로 되고, 반은 얼음으로 된 독수리." "……!" 내 말을 듣자마자 샤느 선생은 크게 경악했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결코 쉽고 간단한 묘기 마법이 아니었다. 마나 제어를 잘못하면 완전히 불꽃이나 얼음으로 뒤덮힌 독수리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의 마나 파장이 충돌을 일으켜 서로에게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묘기 마법 중에서도 아주 수준 높은 묘기 마법인 것이다. "음…… 좋아, 한번 해보자!" 샤느 선생이 자신감 넘치게 말했기 때문에 난 바로 시작했다. "제가 불꽃을 사용할 테니까 선생님은 얼음을 사용해주세요." "그래." 후……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이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니까 정신을 집중해 야지…… 이거 하나만 하고 나서 난 쉬어야 될 것 같군. 많이 지칠 테니까. 나머지는 크리스토르나 네오니스, 라드 선배가 알아서 해주겠지. 좋아! 화르륵! 내 머리 위 1미터쯤에서 불꽃으로 된 독수리의 반쪽 모습이 허공에 나타났 다. 그리고 잠시 후 반쪽 짜리 독수리는 불꽃과 얼음으로 양분된 완전한 독 수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와-!" 관람객들 모두 이것이 어려운 마법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탄했다. 하지 만 난 겨우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샤느 선생에게 다른 주문 을 했다. "이제 날개를 움직이세요." "……!" 경악하는 샤느 선생. 날개를 움직이려면 그만큼의 정신력과 마력이 소모되 는 일인 데다가, 본래의 독수리 모습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결코 장난이 아닌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반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나와 샤느 선생은 즉시 새로운 마나 파장을 방출하여 독수리의 형상을 흐트 러지지 않게 제어하면서 날개를 움직이도록 마나를 제어했다. 처음에는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날개 젓는 것이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되었다. 마치 살아있는 독수리처럼 부드러운 날개짓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와……!" "멋지다……!" 반은 불꽃으로, 반은 얼음으로 된 독수리가 부드럽고 자연스런 날갯짓을 하 면서 허공에 떠 있자 아이들은 넋을 잃고 그 독수리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크리스토르와 네오니스, 라드 선배마저도 넋을 놓고 독수리를 보고 있었다. 후후, 이거 아주 대성공인데? 이 정도까지 보여줬으니 관람료를 더 받아도 되겠지? 우히히, 잘만 하면 이걸로 1000원 이상 벌겠는걸? ─────────────────────────────────────── [번 호] 9323 / 9323 [등록일] 2000년 06월 20일 08:12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80 건 [제 목] [펌/사니케델리아] 23장:예술제 -4-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3장:예술제 -4- 총 Page : 2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8 15:32:48 수 정 일 : 크 기 : 8.8K 조회횟수 : 433 "대성공이었지?" "그래, 아주 좋았어." 오전의 공연(?)을 끝낸 우리들은 빈 관람석에 둘러앉아 수입을 계산했다. 입장료 200원씩에다가 나중에 관람료를 자율적으로 받은 결과, 1회 공연에 올린 수입은 모두 5520원이었다. 20원은 한 녀석이 관람료랍시고 그냥 낸 것 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것도 수입은 수입이었다. "5500원 나누기 5를 하면…… 1100원?! 이거 장난이 아닌데?" 우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은 수입이 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관람객들이 거의 우리 반이라서 예의상 관람료를 많 이 냈다고는 해도 짭짤한 수입이었던 것이다. "좋아, 이제 점심 먹고 소모된 마나를 모은 다음, 2시쯤에 다시 오후 공연 을 하자고!" 우리는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해산했다. 수입은 가장 믿음직한 라드 선배가 관리하기로 하고, 샤느 선생은 너무 많은 마력을 소비해서 쉬러 갔고, 네오 니스와 크리스토르, 그리고 나는 예술제를 구경하러 갔다. "이렇게만 나가면 좋겠다." "글쎄 말이야∼"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싱글벙글 거렸다. 하지만 난 그다지 실실 쪼개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묘기 마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특법사인 사라만다나 운디네시스가 묘기 마법을 했다면 나보다 더 오래 마법으로 만들 어진 형상을 유지시켰을 것이 분명했다. 왠지 특법사들보다 실력이 형편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흘…… 6써클에서 더 이상의 마나 회전을 못하고 있으니 발전이 있을 리 없 지…… 뭐 그건 녀석들도 마찬가지군. 마법 이론을 모르니까 특정 마법밖에 사용할 수 없고, 응용하는 것도 어려울 테니까. 그래도…… 난 지금 뭐 하는 걸까? 왜 마법 수련은 안 하고 놀고만 있는 거지? 도대체 왜……! - 써먹을 일이 없으니까. 내 머리 속을 울리는 하나의 어구. 그랬다. 확실히 난 너무 편한 생활을 해 왔다. 싸워본 적이 거의 없으니 마법을 전력으로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 것이다. 그래서 마법 수련을 게을리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류드, 우리 알뜰 시장에서 뭐 좀 먹자." 네오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나와 크리스토르를 끌고 알뜰 시장이 벌어지고 있는 기숙사 옆의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에는 저번에 라드 선배와 같이 왔었던 소형 인공 호수가 있어서 많은 행사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뭐 먹을래?" 인공 호수 주변에 잔뜩 늘어선 간이 음식점들을 가리키며 네오니스가 나와 크리스토르에게 물었다. 크리스토르는 잠시 간이 음식점들에서 팔고 있는 음 식들을 둘러보고는 떡볶이 가게를 가리켰다. "난 떡볶이가 좋을 것 같은데?" "떡볶이? 떡볶이는 괜찮지! 넌 어때, 류드?" 네오니스가 크리스토르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래서 난 간단히 대답했다. "난 김밥." "……." 갑자기 굳어버리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그런 둘을 위해 난 이유를 설명 해주었다. "난 매운 거 싫어. 그리고 이 더운 날에 매운 떡볶이를 먹고 땀을 흘려야겠 냐?"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말도 있잖아! 남자라면 그 정도는 참아야지!" "시꺼. 난 김밥이나 먹을 테니까 너희들은 떡볶이 먹어라." 난 그렇게 딱 잘라 말한 후에 김밥을 팔고 있는 간이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러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나에게 뛰어왔다. "야! 어떻게 너만 남기고 우리끼리 먹냐?" 흘…… 녀석들은 역시 마음이 착하구만. 나하고는 질적으로 달라. "괜찮아. 난 김밥 먹고 좀 둘러보다가 2시에 옥상으로 올라갈 테니까 너희 들도 놀라고." "너 혼자서?" "어. 지금은 혼자서 천천히 둘러보고 싶으니까. 이해해줘." 내 말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 그럼 2시에 다시 보도록 하자." "어." 난 떡볶이를 파는 간이 음식점 쪽으로 향하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뒷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즉시 김밥 파는 간이 음식점에 들렀다. 간이 음식점 이라고 해봤자 학교 책상 몇 개 붙여놓고 천막 쳐 놓고 하는 것뿐이었다. 또 의자도 없었기 때문에 서서 먹어야했다. 흠…… 간이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이들은 모두 중등부 1학년들인가? 학교 수업 시간도 아닌데 왜 교복을 입고 하는 거냐? 아, 사복 입으면 더러워질까 봐 더러워져도 전혀 아깝지 않은 교복을 입은 건가? "김밥 주세요." 난 김밥을 주문했고, 약 1분 후에 주문한 김밥을 받을 수 있었다. 김밥은 아이들이 손수 만든 것이라 울퉁불퉁하고 엉성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리고 김밥 한 줄에 가격이 200원이었기 때문에 돈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아!"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나하고 그 탄성하고는 관 계없을 것 같아 난 묵묵히 김밥만 입 속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안녕, 류드나르." 윽…… 이 목소리는…… 에레나리스……! 스윽- 난 고개를 돌려 정말로 날 부른 사람이 에레나리스인지를 확인했고, 확실히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가 내 뒤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 안녕." 김밥을 입 속에서 우물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날 보고 로리아케시가 또다시 트집을 잡았다. "흥, 더럽게 입도 안 가리고 말하냐?" 흘…… 내가 입을 가리든 말든 댁하고는 상관없수다. "김밥 먹고 있었던 거야?" 에레나리스는 로리아케시가 날 비꼬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나에게 물었다. 내가 김밥 먹는 걸 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질문을 하는 에레나리스가 조금 한 심해 보이긴 했지만 질문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난 역시 우물거리면서 대답했 다. "어." "로리아, 우리도 김밥 먹는 게 어떨까?" 에레나리스의 제안에 로리아케시는 날 음흉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들 김밥이 먹고 싶은데…… 누가 사줄 사람 없을까나∼" "……." 어쭈구리…… 지금 나보고 김밥 사달래는 거냐? 흘흘, 고렇게는 못하지! "……." "……."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김밥만 먹자 로리아케시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 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크게 소리칠 것 같던 로리아케시는 얼굴에 억지웃 음을 띄우며 다시 한 번 나에게 말했다. "류드나르, 예쁜 숙녀 둘이 김밥이 먹고 싶어. 사주지 않겠니∼" 흘…… 무섭군. 내가 졌다∼ "알았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갑자기 로리아케시의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다 음에 이어진 내 말에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더치 페이(Dutch Pay)로 하자." "……." 더치 페이는 각자가 먹은 양만큼 각자가 따로 음식값을 계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국 로리아케시와 에레나리스는 혼자 사 먹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로리아케시는 버럭 화를 냈다. "그게 그거잖아!" "그랬냐?" 내가 김밥을 입에 한가득 물고 우물거리며 대답하자 로리아케시의 얼굴이 또다시 부들부들 거렸다. 그러나 정작 화를 내지는 않고 김밥 파는 여학생에 게 김밥 두 줄을 주문하기만 했다. 헐헐, 이번에는 나의 승리군. 하긴, 나야 뭐 항상 로리아케시에게는 이겼지 만. "아까 전의 묘기 마법은 대단했어." 주문한 김밥을 기다리는 동안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난 마지막 남은 김밥 하나를 입 속에 털어 넣은 후 입을 놀렸다. "그렇게 대단한 것 같지는 않던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에레나리스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겸손하구나." 흘…… 내가 겸손하다고라? 방에서 퍼질러 자던 라이가 웃겠다! "왕왕왕왕!" 갑자기 들려오는 익숙한 강아지의 울음소리. 바로 라이가 짖는 소리였다. "왕왕!" "앗!" 라이 녀석은 곧바로 에레나리스의 품으로 뛰어들어 에레나리스의 가슴에 얼 굴을 부벼대기 시작했다. 방문을 잠갔는데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온 라이를 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라이." 에레나리스는 부드러운 손길로 라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 자 라이는 헤롱헤롱한 표정으로 헥헥거렸다. 에레나리스의 품에 안긴 라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나저나 라이 녀석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 계속 잠만 퍼질러 자더니 말이야.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조심해야겠어……. "참, 류드나르. 다음주 금요일부터 수학 여행이라는 거 알아?" 에엑? 수학 여행? "11월 1일부터 11월 4일까지 3박 4일 동안 제도르에서 지낸대." 제도르…… 제도르가 어디였더라? 이곳에서 만들어진 지도에서 봤었는데… … 제도르…… 제도르…… 아! 제주도였구나! 허걱! 제주도?! 경주가 아니라 제주도라고? 설마…… 비행기 타고 제주도에 간다는 소리는……! "비행기 타고 가냐?" 내 물음에 에레나리스는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응." 헉…… 비행기…… 내 생전 비행기를 타보게 될 줄이야…… 으윽…… 그래 서 난 비행기 멀미가 있을 지도 모르는데……! "수학 여행 갈 거야?" 에레나리스는 날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수학 여행에 가고 못 가고는 전적으로 교장 할배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가라면 가는 거고, 가지 말라면 못 가는 거지 뭐." "그렇겠구나. 하지만 교장 선생님은 가라고 하실 거야." 그거야 그렇겠지. 수학 여행 안 보내주면 내가 학교 건물을 폭파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2학년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은 수학 여행을 여러 번 가게 되겠구만. 똑같은 장소에 여러 번 가면 재미없을 거야……. "물 주세요." 김밥을 다 먹었기 때문에 목이 말라서 물 담당인 여학생에게서 물을 받아 마셨다. 내가 물을 마시자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물었다. "가려구?" "어. 오후에 또 묘기 마법을 해야 하니까 쉬어야지." "그렇구나. 또 보러 가도 되지?" 흘…… 그러면 나야 좋지∼ 돈이 들어오는데 마다할 인간이 어디 있겠냐? "오는 관객 안 막고 가는 관객 붙잡으니까 언제든지 환영." "훗, 알았어. 꼭 갈게." 그렇게 에레나리스에게서 약속을 받은 나는 천천히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라이 녀석은 에레나리스의 품속에서 빠져 나와 내 뒤를 쫄랑쫄랑 따라왔다. 흘흘, 역시 여자보다는 자기 주인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구나! 생 각해보니까 녀석에게 오늘 점심을 안 줬잖아! 으윽…… 날 따라오는 것은 밥 달라는 무언의 표시였어…… 크윽…… 그냥 에레나리스에게 라이를 맡길 걸 그랬다……!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221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0일 08:04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82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1- 총 Page : 12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9 22:03:11 수 정 일 : 크 기 : 4.7K 조회횟수 : 194 <제 24 장> 수학 여행 예술제도 다 끝나고 수학 여행이라는 이벤트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술제 때 묘기 마법 공연을 해서 우리들이 벌어들인 수입은 총 22,220원이었다. 이 엄청난 숫자의 나열에 우리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이 수입을 나누어가졌다. 그러나 샤느 선생은 자신의 몫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나에게 돌아온 몫은 이론상 5555원이라는 경이적인 것이었다. 물론 55 원이 있을 리가 없었으므로 내 실제 몫은 5500원이었다. 그리고 2220년 11월 1일 금요일. 비행기를 타고 제도르로 가는 수학 여행 날이 찾아왔다. 내 예상대로 교장 할배는 나보고 수학 여행에 가라고 용돈까 지 주었기 때문에 난 당연히 수학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게다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도 간다고 했으니 내가 안 갈 리가 없었던 것이다. "네오, 1학년 때는 수학 여행 가냐?" 학교 전용 버스에 몸을 싣고 공항으로 가는 동안 난 내 옆좌석에 앉은 네오 니스에게 질문을 했다. 난 중등부 1학년을 1학기까지만 다녔기 때문에 2학기 때 수학 여행을 가는지 가지 않는지 모르고 있었다. "1학년 때는 극기 훈련을 가." 첫마디는 그렇게 짧게 말한 네오니스는 곧이어 자기가 재작년과 작년에 겪 었던 극기 훈련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1학년을 2년 동안 다녔잖아? 그래서 그 끔찍한 극기 훈련을 두 번이 나 갔다왔다고. 처음에는 주타로로 갔었는데……!" 흘…… 네오니스 녀석, 돈이 많은 모양이구만. 한번만 가도 되는 극기 훈련 을 두 번씩이나 갔다오다니. 뭐 장소를 바꾸면서 극기 훈련을 했다니까 가고 싶기도 했겠지만. 그나저나…… 1학년 때 소풍갔을 때에는 나 혼자 앉았었는 데…… 아, 샤느 선생하고 같이 앉았었구나…… 어쨌든 그랬는데…… 지금은 네오니스 녀석하고 같이 앉아있고…… 뒤에는 크리스토르도 있고…… 왠지 즐겁군. 역시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수학 여행도 왠지 즐거울 것 같다. "왕왕!" 내 허벅지 위에서 보통의 강아지처럼 꼬리를 말고 몸을 움츠리고 있던 라이 가 날 올려다보면서 짖었다. 녀석이 짖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배가 고파서였 다. 그래서 난 내 가방 속에 여분으로 넣어놨던 빵 한 봉지를 라이에게 주었 다. 공항까지 가는 동안 라이가 배고프다고 성화를 부릴 것이라 예상했었기 때문에 빵을 사다 넣어놓은 것이었다. 뜨드득-! 아주 능숙한 발놀림과 입놀림으로 빵 봉지를 가볍게 뜯어낸 라이는 허겁지 겁 빵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라이를 보고 네오니스가 실실 쪼개며 말했 다. "하여간 라이는 너를 잘 따른단 말이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말을 잘 듣게 하냐?" "넌 지금 이 녀석이 내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이냐?" "적어도 물지는 않잖아." 네오니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확실히 라이 녀석이 날 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라이같이 사악한 강아지가 공격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 큼 그 사람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던 것이다. 흘…… 내가 밥줄이기 때문에 날 물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만… … 어쨌든 다른 사람들보다는 나와 라이가 친근하게 지낸다는 것은 사실이지. 어떻게 보면 라이 녀석 귀여운 구석이 있기도 하고……. 싹싹- 난 열심히 빵을 먹는 라이의 등을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라이는 바로 나를 향해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라이의 얼굴에는 '밥 먹을 때 나 건드리면 죽인다?'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네오, 넌 지금 이 녀석의 태도가 내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냐?" 내가 라이의 허연 이빨을 가리키며 말하자 네오니스는 멋쩍게 웃었다. "하하, 방금 전의 말은 취소다." 부르릉- 버스는 어느새 공항에 도달하고 있었다. 난 당연히 버스가 공항 앞에서 멈 춘 후에 모두들 내려서 무슨 절차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학교측에서 끝낸 것인지 버스는 곧바로 공항 내로 진입하여 대기 중인 비행기 쪽으로 직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행 기 근처에 버스가 서자마자 담임인 멜수스 선생이 우리들에게 말했다. "자, 어서 비행기에 올라타자!" 헉…… 아주 초스피드하게 노는구만…… 이건 뭐 너무 간단하게 비행기에 타는데? 역시 교장 할배의 힘인가? 하여간 쓸데없이 기다리지 않으니까 좋긴 좋구나∼ "이야∼!" 네오니스는 거대한 비행기의 동체를 둘러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확실히 250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비행기라서 그런지 굉장히 컸다. 그런 비행기 좌 석의 거의 대부분은 오죠룬의 학생들이 예약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일반 사람 들도 여러 명 타게 되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일등석이지?" 비행기의 2층으로 올라가는 선생들을 보고 네오니스가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러자 크리스토르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답했다. "일등석이야. 학교에서 여비도 모두 대주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몸만 오면 되거든." 헉! 그랬단 말이야? 그럼 왜 우리는 돈을 내고 수학 여행을 가야하는 거냐 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해. 왜 우리만 돈을 내고 선생님들은 돈을 안 내는 거야?" 네오니스의 말에 난 선생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아주 간단하게 답해주었다. "선생님들은 모두 가난하잖냐. 봉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뭐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우리들은 빈 좌석에 앉았다. 본래는 좌석표가 있어서 해당하는 좌석 번호에 앉아야했지만, 이등석은 죄다 우리 학교 애들이 전세 냈기 때문에 좌석표가 필요 없는 것이었다. ─────────────────────────────────────── [번 호] 9222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0일 08:06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77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2-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2- 총 Page : 15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19 22:03:25 수 정 일 : 크 기 : 5.7K 조회횟수 : 175 "네오, 난 창가 쪽에 앉을게." 난 차 멀미가 조금 있기 때문에 창가 쪽에 앉고 싶어서 네오니스에게 그렇 게 말했다. 예전에는 차 타다가 가끔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 오고 나서부터는 항상 버스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지금은 약간의 어지러움만 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다든지 무엇인가 글씨를 보 려고 할 때는 굉장히 어지럽고 머리도 아팠다. 그런 이유로 아직 난 멀미에 완전히 적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창가 쪽에 앉고 싶었던 것이다. 창 밖을 쳐다보면 멀미를 덜 느끼니까. "창가? 좋아, 얼마든지." 네오니스는 웃으면서 나에게 창가 쪽을 양보했고 난 유유히 창가 쪽 좌석에 앉았다. 두꺼운 유리로 된 창 밖으로 넓게 펼쳐진 활주로가 보였다. 그리고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아프리카의 사바 나에 온 기분이 들었다. "류드, 너 설마 비행 중에 갑자기 오바이트 하는 건 아니겠지?" 내 옆에 자리를 잡은 네오니스가 아주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좌석이 세 줄 연달아 붙어 있었기 때문에 네오니스 옆에 앉은 크리 스토르는 자기 가방에서 검은 봉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토할 거 같으면 언제든지 말해. 봉지 줄 테니까." "……." 이것들이…… 날 놀려? 기왕 비행기 탄 김에 저승으로 확 보내버린다? "아, 근데 라이는 어디 갔냐?" 내 주변에 라이가 없음을 알아챈 네오니스가 주위를 둘러보며 나에게 물었 다. 사실 난 버스에서 내릴 때 라이 녀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랐다. 그리고 솔직히 알 생각도 없었다. 녀석은 어떻게 하든 반드시 이 비행기에 올라타 있을 테니까. "근데 네오. 원래 비행기 내에서는 동물 같은 거 타지 못하게 하지 않냐?" 내 물음에 네오니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실실 쪼개며 대답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로 아는데…… 그래서 라이는 못 들어오는 건 가?" 흘흘, 라이 녀석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강아지가 아니라고. 분명히 공항 감 시망(?)을 모조리 다 뚫고 지금쯤 비행기 어딘가에서 놀고 있을걸? "저기 앉을래, 로리아?" 그때 에레나리스의 목소리가 우리 뒤쪽에서 들려왔고, 잠시 후 에레나리스 와 그녀의 오른팔(?)인 로리아케시가 우리의 앞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 게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가 자리를 잡자마자 그 앞쪽은 거의 전부 여학생 들이 쫘악 앉았고, 우리들 뒤쪽으로는 남학생들이 포진했다. 즉, 우리들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의 경계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쩝, 그냥 뒤죽박죽 섞어서 앉아도 될텐데…… 녀석들 부끄러움을 타는 건가? 이미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을 녀석들이 쑥스러워 한다라 …… 왠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듯한…… 허걱! 내가 이렇게 어려운 말을 생각해내다니……! "안녕?" 내 바로 앞좌석에 앉은 에레나리스가 좌석 너머로 고개를 돌리며 우리들에 게 인사를 했다. 그 인사에 대한 대답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했기 때문 에 난 아무 말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보통 때라면 당연히 인사를 했겠지만 상대가 에레나리스였기 때문에 왠지 말을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흥! 역시 저 녀석은 전혀 예의를 몰라!"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로리아케시가 날 살벌하게 흘겨보며 나보고 들으라 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난 그런 로리아케시를 상대해줄 마음이 전혀 없 었기 때문에 계속 입만 다물고 있었다. "류드나르!" 그때 에레나리스가 작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난 무슨 일인가 하여 에레나 리스를 쳐다보았고, 에레나리스는 좌석 너머로 어떤 물건을 보여주었다. 그 것은 라이의 머리통이었다. "어? 에레나가 라이를 데리고 있었던 거야?"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네오니스가 에레나리스에게 내가 하고 싶던 물 음을 던졌기 때문에 난 그냥 가만히 앉아서 에레나리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응.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나한테 오더라." "안 걸렸어?"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면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어." 얼∼ 그런 허락을 용케도 받아냈군. 내가 갔다면 그런 허락을 못 받을 가능 성이 컸겠지. 내가 워낙 띠껍게 생긴데다가 말도 아주 띠껍의 극을 치달리니 까. 하하하……. 띵동! 《안녕하십니까. 기장인 토비아스입니다. 이 여객기는 30분 후에 출발하오 니 이점 숙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헐…… 30분 후에 출발이라…… 아까 까지만 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는 데 저 방송을 들으니까 갑자기 심장이 떨리는구만. 괜히 긴장되는걸? "……." 난 잠시 아이들이 앉은 좌석을 둘러보았다. 니트로바츠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른 반 아이들이 마구 섞여 들어와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니트로바츠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톡톡-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서 난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니트로바츠가 앉아 있었다. "안녕, 류드." "어, 안녕." 왠지 모르게 니트로바츠의 행동이 꽤 어른스러워 보였기 때문에 전처럼 니 트로바츠를 대하기가 조금 그랬다. 확실히 그때 깡패들과의 사건 이후 니트 로바츠는 많이 변해 있었다. "아세트니퍼하고는 잘 돼가냐?" "응? 아…… 그, 글쎄……" 내가 아세트니퍼를 들먹이자 방금 전까지 약간 폼을 잡고 앉아있던 니트로 바츠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은 그 사건이 일어나 기 전의 니트로바츠였다. 흘흘, 역시 애인 얘기가 나오니까 바로 어벙한 상태가 되어버리는군. 그나 저나 아세트니퍼는 다른 비행기에 타게 된 것 같은데? 그래서 니트로바츠 녀 석이 저렇게 안 좋은 기색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처럼 멀미가 걱 정돼서? "자, 이제 곧 출발하니까 모두들 안전 벨트를 매라!" 어느 사이에 아래층으로 내려온 각 반 담임들이 아이들에게 안전 벨트를 매 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우리들은 안전 벨트를 맸다. 안전 벨트를 매니까 움 직이는 것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만약 에어컨이 틀어져 있지 않았다면 더워 서 미쳐버렸을 것이다. 띵동! 《이제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모두 제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 니다.》 와! 드디어 출발하는구나! 우우웅- 엔진 돌아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방음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소 음이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더 컸다. "……." 창 밖으로 멀어져 가는 공항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비행기 안에서는 아이 들이 열심히 떠들고 있었지만 창 밖은 너무나 고요해 보였기 때문에 기분이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벌러덩 벌러덩했다. [번 호] 9274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1일 18:14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6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 수학여행 -3-...(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3- 총 Page : 2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1 15:44:22 수 정 일 : 크 기 : 11.4K 조회횟수 : 98 우우웅- 공항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한 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까 지 작아졌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새들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도 있었다. "기분 좋다……!" 네오니스는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끼며 한껏 심호흡을 했다. 비록 바깥의 공기를 느낄 수는 없지만 기분 상 그러고 싶은 것 같았다. 그리고 크리스토 르는 가져온 추리 소설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이제 각자의 시간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크리스토르가 추리 소설을 읽고 있는 걸 보니까 갑자기 죽은 테리야크 생각이 나는구만. 녀석, 너무 어이없게 죽어버렸지…… 마음을 읽 을 수 있다면서 어떻게 자기를 죽일 마음을 먹은 녀석을 보고도 왜 도망 안 하냐고…… 아, 도망치다 잡혀서 죽은 건가? 쩝, 녀석은 나처럼 몸이 약하니 까 달리기도 잘 못했겠지…… 근데…… 난 왜 이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어째서 전혀 슬픈 생각이 들지 않는 거지? 감정이 완전히 메말라 버린 건가? 언제부터 난 이렇게 됐지? 언제부터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 게 되어버린 거지? - 처음부터. 내 머리 속으로부터 울려나오는 내면의 소리. 처음부터, 내가 비뚤어지기 시작할 때 아무도 나를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내 목소리.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생활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나. 결국 모 두 내 탓이라는 결론이 나와버렸다. 쯥…… 뭐 내가 감정이 메말라버렸든 사악의 극을 치달리는 녀석이든 상관 없어. 그냥 열심히 사는 거야. 설령 이 사회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나란 존 재가 불필요해도, 내가 존재함으로써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해도 난 남들 이 사는 만큼 살 테니까. 후후후. 띵동! 《안녕하십니까, 승객 여러분. 지금 이 여객기는 제도르로 향하는 중입니다. 편안한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기내 방송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또한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마저 잠 을 부추기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네오니스 녀석은 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자고 싶어졌다. "아!" 그때 에레나리스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무슨 일일 까 궁금증이 떠올랐지만,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 버리고는 잠이나 자려고 했다. 그러나 라이가 에레나리스의 품에서 빠져 나와 나에게 온 것을 보고 잠을 잘 수 없었다. 라이 녀석은 항상 나를 긴장시키기 때문이었다. 폴짝- 총총히 내 쪽으로 다가온 라이는 이내 가볍게 내 허벅지 위로 뛰어오르고는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은 들리지 않도록 낮게 으르 렁거리기 시작했다. 얼라리? 배고파서 그런가? 아닌데…… 라이 녀석은 배고플 때에 허연 이빨 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설마…… 이곳에서 응아를 하려는 건……! "너…… 화장실 가고 싶냐?" 내가 조심스럽게 라이에게 묻자 라이는 혀를 낼름 내밀더니 다시 낮게 으르 렁거렸다. 그래서 난 라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님 을 알게 되었다. 그럼…… 도대체 뭣 때문에 라이가 이렇게 잔뜩 경계하고 있는 거지? 이 비 행기 안에 수상한 사람들이라도 타고 있단 말인가? 하지만 승객들의 3분의 2 가 우리 학교 아이들인데…… 3분의 1의 나머지 승객들 중에서 수상한 사람 들이 타고 있다는 건 조금 무리가 있는 것 같은……. 띵동! 《현재 이 여객기는 우리들이 점거했다. 이제부터 함부로 움직이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얌전히 앉아 있어라!》 갑자기 기내 방송에서 이상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방송을 듣고 저 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뭔 소리야?" "어떤 미친 녀석이 장난치고 있는 거 아니야?" "진짜면 어떡해?" "야, 넌 이 상황이 진짜로 보이냐?" 흠…… 아이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구만. 사실 나도 별로 두렵지는 않지만. 그냥 기내 방송으로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고 하면 누가 무서워하냐. 직접 총이나 칼을 들고 위협해야 두려움을 느끼지. "모두 조용히 해!!!" 그때 아주 굵직한 사내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을 일시에 조용 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모두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 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고개를 돌려 그 사내가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를 확인해보았다. "……!" 총을 가지고 있잖아? 경찰들이 사용하는 권총 같은데? 어째서 저 인간이 총 을 가지고 있는 거지? 게다가 그 뒤에는 두 명의 사내들이 같은 총을 들고 서 있고…… 설마…… 이건…… 테러?! "모두 안전 벨트를 단단히 매고 절대 움직이지 마라! 화장실 가고 싶은 녀 석이 있으면 우리에게 반드시 알려라! 함부로 움직이면 머리통에 구멍을 뚫 어주겠다!" 웅성웅성- 그런 사내의 말에 아이들이 저마다 웅성거렸다. 어떤 녀석들은 이제 큰일났 다고 하면서 울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 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현실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었 다. "저, 저기요……." 그때 한 남학생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우리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쳤던 사내가 그 남학생의 머리를 향해 총을 겨누며 물 었다. "무슨 일이야?" "저기……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요……." 그 남학생은 당장이라도 사내가 자기의 머리를 향해 총을 발사할까봐 두려 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남학생의 말을 들은 사내는 자신의 뒤에 서 있 는 한 사내에게 말했다. "녀석하고 같이 가서 감시해." "알았어. 야! 너 따라와!" 그 사내가 부르자 남학생은 약간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 사내를 따라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야 이제 이 상황이 그렇게 즐길만한 사건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 일꾼: 길어서 짤렸슴다....이어집니다. [번 호] 9275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1일 18:15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52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 수학여행 -3-....(2) ─────────────────────────────────────── "도대체 이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글쎄…… 잘은 모르지만…… 테러 같긴 한데……." "그러니까 왜 저 사람들이 왜 테러를 하는 거냐구." "모르겠어." 내 앞에 앉아있던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가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것들은 사실 나도 알고 싶은 것들이었다. 왜 저 사내들이 이 비행기를 점거 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요구할 생각인지 나를 비롯한 여기 있는 아이들은 아 무 것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 사내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다 알 아낼 수 있을 지도 몰랐지만, 그걸 물었다가는 저 총에 장전된 총알이 내 머 리에 안착하여 살게 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 았다. 크르릉……. 내 허벅지 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서 있던 라이가 날 올려다보며 낮게 으르 렁거렸다. 그런 라이의 얼굴에서 '넌 그런 걸 물을 용기도 없냐? 그러고도 네 녀석이 남자냐?'라는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제길…… 강아지 주제에 저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정말 이 녀석 강 아지 맞는 거야? 아니면 강아지 얼굴에서 그런 말을 떠올리는 내가 이상한 거야? 빌어먹을…… 라이 녀석이 이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저 인간들에게 안 물어볼 수도 없고……! "왕왕!" 갑자기 라이가 큰소리로 짖었다. 갑작스런 강아지 짖는 소리에 그 사내들은 흠칫하며 즉시 내가 앉은 좌석 쪽으로 뛰어왔다. "뭐야?!" 거칠게 묻는 사내들. 난 내 허벅지 위에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놓고 으르렁 거리는 라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강아지인데 말을 안 듣네요." "뭐야, 개새끼인거야? 괜히 놀랬잖아!" 흘…… 말을 더럽게 거칠게 하는군. 아니, 강아지는 개의 새끼니까 지극히 정상적인 말이구나…… 그래도 어감이 안 좋아∼ 크르릉……. 사내들이 가까이 있음에도 라이 녀석은 계속 날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마치 나보고 저 사내들에게 테러의 목적을 물어보라는 것 같았다. "야! 그 개새끼 조용히 시켜!" 라이가 계속 으르렁거리자 라이의 폭주를 우려한 사내가 나에게 총을 겨누 며 위협했다. 그러나 난 두려움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한심함을 느꼈다. 내 머리 속에는 이 말만이 떠돌아다닐 뿐이었다. - 난 이성을 잃고 난리칠 때에만 평상시에 할 수 없던 짓을 하는 건가? 평 상시에는 단순히 질문할 용기도 없는 것인가? 이성을 잃지 않을 때, 화가 나 지 않을 때에는 난 이렇게 형편없는 녀석이란 말인가? 탁! 난 내 몸을 속박하고 있던 안전 벨트를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 어섰다. 나에게 총을 겨누던 사내는 갑작스런 내 움직임에 놀라 소리쳤다. "뭐야, 너!" - 용기를 내라. 용기를 내는 거다. 이성을 잃었을 때뿐만이 아니라 평상시 에도 얼굴에 철판 깔고 띠껍게 나갈 수 있는 그런 사악한 인간이 되는 거다! 그러한 내면의 소리가 울렸을 때 난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아저씨들은 테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뭐?" 순간적으로 사내들은 당황해했다.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역시 기겁하면서 나보고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어서 앉으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나 난 자리에 앉지 않고 사내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언제라도 사 내들이 총을 발포할 지 모르기 때문에 속으로는 심하게 떨고 있었지만 겉으 로는 아주 태연한 척을 했다. "자리에 앉아!" 사내들은 대답해줄 생각은 하지 않고 나에게 앉으라고만 명령했다. 그런 명 령을 들을 내가 아니었다. "우리는 지금 수학 여행을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를 점거 해서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그 이유라도 알고 싶습니다." "……." 내가 아주 띠껍게 묻자 사내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만약 저 사내들이 숙달 된 테러리스트라면 이런 질문을 하는 날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본보기로 날 죽도록 두들겨 팰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사내들은 그렇 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저들이 어떤 이유 때문에 이런 테러를 하는 것일 뿐, 전문 테러리스트는 아니란 뜻이었다. "어떡하지?" 사내들은 날 경계하면서 무엇인가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 테러의 목적을 가르쳐줄까 말까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결 정을 내린 사내는 여전히 날 향해 총을 겨누며 입을 열었다. "좋아, 너희들도 이유를 모르고 있는 건 답답하겠지. 가르쳐주겠다. 왜 우 리가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다행이군. 내 머리통에 총알이 자리잡고 살 일은 없어져서. 그래도 모르지, 갑자기 녀석들의 기분이 나빠져서 내 머리에 총알을 심어놓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승객들을 인질로 삼아서 현 정부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생각이다." "손해배상?" "그래. 정부에서는 우리에게 전혀 예고도 하지 않고 우르사 지역을 쓰레기 매립 지역으로 지정해버리고 다량의 쓰레기를 무단 매립해왔다. 정부에서 그 일을 비밀리에 했기 때문에 우르사 지역의 주민들은 무단 매립된 쓰레기로부 터 침출수가 흘러나오고, 강이 오염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 히 주민들은 반발했지. 하지만 정부는 철저하게 주민들을 외면했다. 사실 우 르사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수는 200명도 채 안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전혀 주민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있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그 사내들의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어 나왔다. 그만큼 정부를 증오하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모든 정보를 은폐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마을의 일을 알지 못 하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항의 집회를 열어 데모를 했지만 모두 감옥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강경한 수단으로 녀석들에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거야!" 사내는 흥분했다. 그들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지금의 행위를 잘한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입을 열 었다. "하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었습니까?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 밖에?" "그렇다." 사내의 어조는 너무나 단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 역시 그러 했다. "녀석들은 우리의 모든 항의를 진압했다. 공권력을 투입하는 건 아주 당연 한 것이었지.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쳤지만 녀석들은 전혀 신경 쓰지를 않더군. 그러더니 최근에는 아예 마을을 봉쇄해버렸다. 그래서 테러를 생각 했지. 테러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 비행기 테러더군. 공중에서 는 아무리 군인들이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무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 내 물음에 사내들은 하하 웃었다. "그건 너무 쉬워. 검문관에게 돈 좀 주고 했더니 그냥 통과시키더구만. 하 하!" 흠…… 하긴, 교장 할배도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먹 였다고 했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군. 그나저나 이 나라…… 생각보다 썩어있는걸? "근데 왜 정부에서는 그 마을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은 겁니까? 보통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주던가 해서 다른 곳으로 이주시킨 다음에 쓰레기 매립지를 건설하던지 그렇지 않습니까?" 난 신나게 웃고 있는 그 사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사내들은 웃음 을 뚝 그친 후 다시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흥! 녀석들은 처음에 겨우 한 가족 당 100만원만 주고 이 마을을 떠나라고 했다. 일자리도 마련해주지 않고 단지 100만원만 주고 마을에서 떠나라고 한 거다. 너 같으면 떠나겠냐?" "아니오." 난 솔직히 대답했다. 겨우 1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 때 문이었다. 월세 방 얻기도 힘든 돈인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번 호] 9277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1일 18:21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52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 수학여행 -4-...(1)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4장:수학 여행 -4- 총 Page : 32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1 15:44:42 수 정 일 : 크 기 : 12.9K 조회횟수 : 95 "그래서 우리들은 거절하고 나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우리 몰래 쓰레기를 매립해버린 거다. 그 후로는 그 어떤 타협도 보려하지 않더군. 결국 우리는 테러라도 해서 녀석들의 잘못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밖에 없는 거야." "……." 난 할말이 없었다. 이것은 확실히 정부 쪽의 잘못이었다. 만약 나였다고 해 도 이들처럼 행동했을 건 자명했다. 그러나 이 인간들 때문에 내 수학 여행 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벼룩 발가락의 때만큼도 없었다. "아저씨들이 어떤 마음인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도르로 수 학 여행을 가고 있는 겁니다. 그런 수학 여행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 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내 말에 사내들은 화를 냈다. 난 그런 그들을 향해 아주 간단한 말을 해주 었다. "테러를 그만두십시오." "……." 순간적으로 사내들의 표정이 어벙해졌다. 확실히 나도 내 말이 어림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기대 때문에 그 렇게 말한 것이었다. "푸하하하!!!" 잠시 후에 사내들은 비행기가 들썩거릴 정도로 크게 웃어 제쳤다. 그 웃음 속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제길…… 결국 수학 여행을 즐기려면 녀석들을 때려잡는 수밖에 없는 건가? 대화로 해결할 방법은 없는 거야? 아니야…… 우선 말을 걸어서 녀석들의 마 음을 돌리도록 노력해보자. 물론…… 될 리가 없겠지만. "당신들은 당신들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로 인해 피해 를 입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사내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서? 테러를 그만 두라는 거냐? 개소리마!!!" "당신들이나 정부의 간부들이나 똑같다는 걸 압니까?" "……!" 내 말을 듣자마자 사내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러나 확실한 점은 그 표정이 결코 내 말에 수긍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하고…… 녀석들이 똑같다고? 어째서지?" 사내는 내 코앞에 총을 들이밀며 독촉했다. 난 내 코앞에서 당장이라도 불 을 뿜어낼 것 같은 총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부 간부들은 돈을 아끼기 위해 불법으로 쓰레기를 매립했습니다. 자신들 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당신 마을 사람들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리 고 당신들은 그런 정부에게 항의하기 위해 우리들의 피해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테러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나 당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피해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자신들만을 위해 그런 행동들을 취하고 있는 겁니다." "뭐……?" 사내들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난 아직 할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또 데모하는 인간들이나 파업을 하는 인간들 역시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 해 행동합니다. 그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죠. 아무리 그들이 데모나 파업을 하는 이유가 타당하다 하더라 도, 다른 사람들이 그로 인해서 피해를 입을 것을 고려하지도 않고 그런 행 동을 강행하는 것은 결코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하는 그러한 행동은 오히려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죠. 집단 이기주 의라고 말입니다. 당신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 안 듭니까?" "으으윽……!" 사내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분위 기였다. 설령 여기서 총을 들고 있는 사내가 총을 쏴서 날 죽인다고 하더라 도 난 크게 두렵지 않았다. 이미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했고, 또 삶의 미련 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죽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럼 넌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거냐?!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게 모든 정보를 차단시켜버렸는데 우리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넌 우리들이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알지도 못하잖아!" 총을 든 사내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래서 나도 맞받아쳤다. "당신들은 당신들 때문에 수학 여행을 망쳐버린 우리들의 기분을 알기나 압 니까?" "겨우 그딴 것으로 우리의 일과 비교하지마!!!" "당신도 겨우 고통 조금 받은 걸로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과 비교하지 마십 시오." 본래는 반말로 나가려고 했지만 예의상 존댓말을 써주었다. 그러나 사내는 내가 존댓말을 쓰건 반말을 쓰건 내 말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작은 고통을 받았다고? 쓰레기 때문에 토양이 병들고 우리들도 병 들어 가는데 작은 고통? 수학 여행 망쳤다는 그런 고통과 우리가 당해왔던 고통을 비교해?" "하하하!" 난 웃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건 어처구니가 없어서 나오는 웃 음이었다. "넌 네가 받은 고통만 큰 줄 아냐? 이번 수학 여행에서 난 아주 귀중한 추 억을 만들 수도 있어. 한평생 남을 만한 추억을 말이야. 근데 그런 기회가 너 때문에 사라져버렸어. 알아? 넌 수학 여행 망치는 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중요해. 너희들이 받는 고통보다 더 중요하다고! 너희들만 고통받는다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다!" "이 새끼!!!" 내 말에 완전히 이성을 잃은 사내가 총을 발사했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은 내 왼쪽 어깨를 꿰뚫고 비행기 벽을 때렸다. 내 어깨에 총알이 걸렸 기 때문에 비행기 벽에는 아무런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본래 사내는 내 머 리를 향해 총을 쏜 것이었지만 막판에 내가 몸을 움직였고, 게다가 사내의 총 솜씨는 정말 형편없었기 때문에 내 어깨를 맞추게 된 것이었다. "큭……!" 어깨에 총알을 정통으로 맞았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주위에서는 비명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 었다. 내가 총에 맞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왕자왕 하는 것이었다. "크으……!" 난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고개를 들어 날 쏜 사내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자신이 총을 쏘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 고 있었다. 결국 사내는 총을 쏠 용기도 없으면서 홧김에 총을 발포해버린 것이었다. 난 그런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가면서 입을 열었다. "크크…… 난 말이야…… 죽는 건 상관없어……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끝 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는 녀석은……" 뚝뚝- 어깨에서 떨어진 피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주위 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로 시끄러워서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지만 심리적 으로 내 귀에는 그 핏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 일꾼:...잘림의 연속.. 이어집니다. [번 호] 9278 / 9306 [등록일] 2000년 06월 21일 18:22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54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4장: 수학여행 -4-...(2) ─────────────────────────────────────── "나에게 고통을 주는 녀석은…… 죽여버린다." 화륵-! 난 카파 보를 만들었다. 그것으로 화끈하게 녀석을 가루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자 사내는 기겁하며 다시 날 향해 총을 쐈다. 그 러나 총알을 다시 장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알은 나오지 않았다. "으으으……!" 사내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은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 다. 나에게 고통을 가한 만큼 돌려줄 생각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한번에 저승으로 보내는 것이 더 기분 전환에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카파 보를 정 통으로 먹이기로 했다. "류드나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여기는 비행기 안이라구!!!" 그때 에레나리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감정에 억눌러져 있던 이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곳은 비행기 안이기 때문에 여기서 카파 보를 날 렸다가는 비행기에 구멍이 생기거나, 아니면 비행기가 크게 흔들려 아래로 추락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그것은 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깨 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은 그런 나의 이성을 싸그리 암매장시켜 버렸다. "죽어라." 콰앙-! 카파 보는 내 의지에 따라 사내에게로 날아가 터져 버렸다. 사내는 내 카파 보를 피하지 못하고 직격으로 맞았다. 보지 않아도 죽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카파 보의 폭발로 인한 충격이 비행기 내부를 휩쓸자 비 행기 내부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꺄악!" "우악!" 폭발에 휩쓸려 아이들이 주르륵 밀려났고, 나 역시 어깨에서 피를 쏟으며 뒤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비행기 자체도 크게 기우뚱거 렸고, 중심을 잃은 비행기는 곧장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비행기 벽이 뚫리지 않은 건 그나마 나은 것이었다. 만약 비행기에 구멍이 났다면 안팎의 기압 차이로 인해 지금쯤 안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허공을 날고 있었 을 테니까. "으아악! 살려줘―!" 아이들의 비명 소리만이 내 귀를 시끄럽게 울렸다. 난 비행기 내부에서 둥 둥 뜬 채 가만히 있었다. 비행기가 자유낙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 내 부는 무중력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흠…… 무중력 상태란 이런 느낌이었군. 기분 괜찮은데? 하지만 무중력 상 태는 오래가지 못하겠지. 이제 곧 비행기가 공기 저항 때문에 종단속도에 이 를 테니까. 종단속도가 되면 비행기는 등속도로 떨어지게 되고 마치 정지해 있는 비행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겠지. 쩝, 계속 이 무중력 상 태를 느끼고 싶은데……. "젠장! 어떻게 할 방법은 없는 거야? 비행기를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냐고!!!" 그때 네오니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네오니스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 을 탓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 수 있어! 아직 희망을 버리지마!!!" 에레나리스 역시 허공에 뜬 채로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 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상황은 죽음 밖에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하……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군. 죽음이 가까이 찾아오니까 모두들 추해 지는걸?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꼴이 우스워. 후후, 나처럼 삶의 미련을 버리 면 죽음이란 것이 전혀 두렵지 않지. 단지…… 난 죽음보다는 고통이 두려울 뿐이니까…… 후후…… 내가 저 아이들보다 더 약해빠진 녀석인가? 후후…… 그럴지도 모르겠군……. 크르릉……. 무중력 상태가 없어지고 내 몸이 비행기 아래로 떨어지고 있을 때 라이가 나와 같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날 보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모든 게 내 잘못 이라는 듯한 라이의 표정은 내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었다. 하하…… 난 지금 뭐한 거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은 남에게 피해를 주 는 인간이었는데…… 지금 내가 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거잖아? 내 기분에 젖어서 저 아이들을 모두 죽게 만들고 있다니…… 하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을 내가 직접 하고 말다니…… 하하하…… 하하하하…… 젠 장…… 빌어먹을―! 콰앙―! 난 고통받으며 살아왔다. 내 부모는 항상 싸웠고,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타고난 성격이 그런 건지 난 말없이 살았다. 그 래서 아이들에게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것은 내가 점점 자라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이미 내 성격은 극단적으로 변한 뒤였다. 그리고…… 환타지 세계로 넘어가서 내 성격은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랬지……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은 심각할 정도지…… 그래도 내 가 고통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나 때문에 누군가 고통받는 건 싫었어…… 하지만…… 난 우리 학교 애들을 모조리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지…… 후후… … 어처구니가 없어…… 나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이 생겨버리다니…… 제길 …… 나만 죽어버리면 될 것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아이들이 나 때문에 죽다니…… 빌어먹을! "앗!"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급히 눈을 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 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맞았다. "깨어났구나, 류드." 내가 눈을 뜨자 제일 먼저 교장 할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즉 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병원의 중환자실이었다. 그것을 확인했을 때 어깨로부터 몰려온 강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난 다시 침대에 쓰러져야했다. "으윽……!" "아, 함부로 움직이지 말거라. 왼쪽 어깨에 총을 정통으로 맞아서 그런 거 니까. 하마터면 뼈가 완전히 부서질 뻔했다. 잘못했으면 왼쪽 팔을 영원히 쓰지 못할 뻔했어." 교장 할배는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난 내 어깨의 부 상보다는 어떻게 내가 이곳에 와 있으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는지를 알 고 싶었다. "우욱……!" 막 교장 할배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나는 고통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신 음만 흘려야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눈을 감고 나지막히 주문을 외우기 시 작했다. "치유지수(治癒之手) 연골합피(連骨合皮) 군력무한(君力無限) 상료통거(傷 療痛去)" 오랜만에 들어보는 치유마법의 주문이었다. 그렇게 교장 할배가 내 어깨를 치유해주자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확실히 병원에서의 치료보다는 제대로 된 치유마법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저기요, 어떻게 된 거예요?" 통증이 가라앉자마자 난 교장 할배에게 물었고 교장 할배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비행기는 땅바닥과 충돌해서 산산조각이 났는데 어떻게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멀쩡 할 수 있는 거지?" "……?" 얼레?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그런데…… 모두 무사하다고? 모두 무 사? 하하…… 다행이다…… 모두 살아있는 모양이구나…… 다행이야……. "애들의 말로는 비행기가 땅과 충돌할 때 무슨 빛 같은 것이 번쩍였다는데 …… 알 수가 없어. 누가 아이들을 구한 것인지." 교장 할배는 그런 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구한 것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서 난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라이는 어디 있어요?" "라이 말이냐? 자고 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더 구나. 밥 먹을 때가 되어서도 전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지금까지 죽 은 듯이 자고 있지." 라이가…… 자고 있다고? 밥도 거르고? 녀석이 밥을 거를 리가 없는데……? "……!"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뇌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레드라콘과 싸울 때 갑자기 등장한 라이, 그리고 운디네시스를 납치해간 깡패들을 라이가 모두 죽여버린 일. 그때 모두 라이는 잠을 잤다. 그리고 이번 비행기 추락 사건……. - 라이는 평범한 강아지가 아니다. 저번에 교장 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 말에는 수긍하고 있었 다. 그러나 난 라이를 그냥 보통의 강아지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이 녀석 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이제 좀 쉬고 싶은데요……." 난 혼자 있고 싶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에게 나가달라는 말을 그렇게 우회적 으로 표현했다. 교장 할배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편히 쉬거라. 또 오마." "예." 교장 할배가 병실 문을 열고 나간 후,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굳이 이 번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잤다.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342 / 9384 [등록일] 2000년 06월 23일 20:41 Page : 1 / 7 [등록자] FOX314 [조 회] 67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전설의 드라콘 -1- ─────────────────────────────────────── 퍼오시는 분이 좀 늦는거 갔아서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1- 관련자료:없음 [27573]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6-23 17:31 조회:279 <제 25 장> 전설의 드라콘 비행기 테러 사건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해서 비행기 추락 사건 이후 우리 학교 아이들은 날 경계했다. 내가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와 얘기를 하려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단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그리고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니트 로바츠밖에 없었다. 나 자신조차도 나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이성을 잃고 날 뛰었을 때마다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폭주 상태로 들 어가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 추락 사건을 통해 그 폭주 상태가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음을 알게 되 었다. 이성을 잃었을 때의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나도 다른 사람 들에게 다가가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 세계로 넘어오고 오죠룬에 다니는 동안 내 성격은 어느 정도 변했었다. 평소에는 학교 아이들과 얘기를 거의 하지 않지만, 네오니스와 그 일당들하 고 사귀면서 말을 많이 하고, 가끔 농담도 서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난 마음의 문을 닫고 생활했다. 이곳에서 내가 유 일하게 잘할 수 있는 마법 수련에 집착하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기말고사 때 여실히 드러났다. "류드! 어떻게 된 거야? 평균이 53점이라니?" 교실 뒤 칠판에 붙어있는 꼬리표에서 내 성적을 확인한 네오니스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점수였기 때문에 난 차분 히 말했다. "공부 안 했다고 했잖아." "아니, 네가 공부 안 하고 이번 시험 망쳤다길래 평균 80점 정도 나오는 줄 알았단 말이야." 흘…… 뭐 나라도 평소에 공부 잘 하던 녀석이 시험 망쳤다고 하면 그 정도 로 생각했겠지. 내가 생각해도 너무 못 본 것 같군. 하지만 책 한 번 보지 않고 시험을 치렀는데 이 정도 나왔으면 거의 천재 수준 아닌가? "에레나가 일등이구나!" 어느새 우리들 옆에 다가온 로리아케시가 성적을 보더니 득의의 미소를 지 으며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정작 일등한 당사자인 에레나리 스는 그다지 기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사실 나 같아도 기쁘지 않을 것 이다. 라이벌이 일부러 기권한 경기에서 이기는 게 기쁠 리가 없으니까. "……!" 왜지? 왜 기쁘지 않은 걸까? 라이벌이 기권했다고 해도 일등한 건 일등한 거잖아? 그럼 당연히 기뻐야지 어째서……? "류드나르." 그때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 기만 하자 에레나리스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사건 때문에…… 모두 포기하기로 한 거야?" "……." 그 사건이라면…… 비행기 추락 사건 말이겠군. 그거 때문에 내가 모든 걸 포기했다고? 후후, 물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 각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가 시험 망친 것은 마법 수련 때문이라고. "아니. 단지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전념했을 뿐이야." "하고 싶은 것?" 대화는 나와 에레나리스만이 하고 있었지만 듣는 사람들은 여럿이었다. 난 듣는 사람이 많을수록 얘기하는데 많은 부담을 느끼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거 기서 대화를 끝맺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는 안 해." 그렇게만 말하고 난 내 자리로 돌아갔다. 확실히 시험 망치기로 결정한 것 은 나였다. 그 대신 마법 수련만 죽어라고 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아주 좋 았다. 마침내 마(魔)의 6써클을 넘어 7써클을 회전시킬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남은 건 초고속으로 10써클까지 마나를 회전시키는 것뿐이었다. 2220년 12월 17일. 드디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방학식이 끝나 자마자 난 교장실로 불려갔다. 저번에 교장 할배가 말했던 것처럼 드라콘의 보물을 훔치러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갈 준비는 다 했느냐?" 교장 할배는 두꺼운 코트를 걸쳐 입으며 나에게 물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당장 떠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오." "그럼 어서 하거라." 흘…… 왜 방학식 끝나자마자 가야하는 거냐고. 뭐 여기 남아 있어도 마법 수련밖에 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방학한 분위기가 아니잖아! "예."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난 불평하지 않고 즉시 떠날 준비를 하러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안에 들어가서 대충 돈을 챙기고 옷도 몇 개 챙겼다. 그렇 게 내가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네오니스가 물었다. "어디 가냐?" "어. 아마 한 달 동안 해외에 좀 갔다와야 될 거야." 내 말을 듣자마자 네오니스는 크게 놀랐다. "해외?!" "어. 교장 선생님하고 같이 가는 거지만." 그다지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만 말하고 대충 짐을 챙겨 서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마 겨울 방학 끝나고 나서 볼 수 있을 거야. 그럼 한 달 후에 보자." 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난 빠른 발걸음으로 교장실에 갔다. 그러나 기숙사 현관으로 내려가는 길에 난 제재를 받았다. 에레나리스와 그녀의 오른팔인 로리아케시를 만난 것이다. "어? 어디 가니?" 내가 짐을 잔뜩 우겨 넣은 가방을 매고 있는 것을 본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로리아케시가 띠꺼운 표정을 지 으며 자기 멋대로 넘겨 짚어버렸다. "아∼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염치가 없어서 몰래 도망가는구나?" "……." 쩝…… 쟤랑 말하기 싫어……. "해외 여행이야." 난 그렇게 간단히 말한 뒤에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몇 발짝을 걸었을 때 내 말을 그제서야 알아들은 로리아케시가 기겁했다. "에? 해외 여행? 나도 해본 적이 없는 걸 네가?" 푸헐헐! 그만큼 내가 대단하다는 거 아니겠어? 물론 교장 할배는 날 부려먹 을려고 데려가는 것일 테지만. "그럼 겨울 방학 끝나고 나서야 볼 수 있겠네?" 그 말은 에레나리스가 한 것이었다. 로리아케시와는 달리, 듣는 사람이 편 한 어조였기 때문에 나도 편하게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럼." 급히 두 여자들과 작별인사를 한 나는 시간을 지체한 만큼 빨리 걸었다. 그 러나 난 또다시 본관 앞에서 제재를 받아야했다. 아니, 이번엔 제재를 받은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나에게 제재를 걸었다. "안녕, 니트." "아." 니트로바츠는 평소와 같은 발걸음으로 걷다가 내가 부르자 반가운 얼굴을 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런 니트로바츠 의 얼굴은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청소 당번이었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오늘 청소 당번인 애가 바쁜 일이 있다고 나하고 청소 당번을 바꾸자고 해서 바꾼 거야." 니트로바츠는 실실 쪼개면서 내 물음에 대답했다. 그 아이가 다음 번에 니 트로바츠 대신 청소를 해줄지 의문이긴 했지만, 이것은 니트로바츠가 스스로 택한 일이기 때문에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 아서 할 나이가 되었으니까. "나 해외 여행 간다." 난 일부러 니트로바츠에게 자랑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내 생각대로 니트로바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해외 여행? 자파스 어디로?" 얼라리? 자파스? 자파스는 일본이잖아? 해외 여행이라고 말을 하자마자 왜 자파스가 튀어나오는 거냐? "자파스는 안 가는데." "진짜?" 니트로바츠는 내 생각보다 더 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난 왜 니 트로바츠가 저렇게 놀라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잠시 후에 니트로바츠가 한 말을 듣고 나서는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보통 해외 여행이라고 하면 자파스로 가는 거라구. 다른 나라들은 대부분 핵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버렸으니까." 그랬군. 그랬었지, 참. 핵의 피해를 받지 않은 나라가 한국하고 일본뿐이라 고 했으니 해외 여행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으로 가는 거겠지. [번 호] 9343 / 9384 [등록일] 2000년 06월 23일 20:42 Page : 1 / 8 [등록자] FOX314 [조 회] 62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전설의 드라콘 - 2 -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2- 관련자료:없음 [27574]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6-23 17:32 조회:266 "류드, 마나가 6써클 이상일 때에만 방사능 지역에 가는 것이 안전한데, 괜 찮은 거야?" 니트로바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난 니트로바츠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신 있게 대답해주었다. "난 이미 7써클이니까 방사능은 안 무서워." "7…… 써클?!" 방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놀라는 니트로바츠. 지금은 니트로바츠 에게 자랑해도 될 것 같아서 난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 대단하지? 기말고사 망친 대신 마의 6써클을 넘어서 7써클을 회전시킨 거라구." "대단하다……!" 우허허허, 괜히 기쁘군. "그럼 니트, 겨울 방학 끝나고 나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응." 난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니트로바츠와 작별인사를 한 뒤에 교장실로 향 했다. 내가 교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계속 교장실에 서 있었던 교 장 할배가 불만을 토했다. "뭐하다가 이제 온 거냐? 늙은이를 이렇게 계속 세워둬도 되는 거라고 생각 하나?" 흘…… 다리 아프면 앉으면 될 것 아니냐고. 그리고 할배가 늙은이유? 젊은 사람들보다 마법도 잘 다루고, 건강도 양호의 극을 치달리는 것 같구만. "준비는 다 된 것 같으니 이제 가자." 교장 할배는 힘들게 무거운 가방을 매고 온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내 가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이런…… 차라리 차가 대기되어 있는 곳에서 기다렸으면 내가 이 무거운 가 방을 매고 교장실까지 올라올 필요가 없었잖아? 지금 날 운동시키자는 거냐, 이 노망난 할아범! "자, 타라." 교장 할배는 교사 주차장에 세워둔 차 쪽으로 가더니 이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가 어기적거리며 차에 올라타자 이내 차를 출발시켰다. 부르릉- "비행기 타고 가나요?"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능숙한 운전 솜씨로 교문을 빠져나가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비행기 타고 간다. 그럼 넌 이 자동차로 갈 거라 생각했느냐?" "그게 아니구요, 여권도 없는데 해외로 나갈 수 있어요?" "여권? 그건 내가 다 알아서 한다." 흘…… 또 불법으로 여권 위조 같은 걸 하겠지 뭐. 안 봐도 뻔해∼ 부우웅- 차는 막힘 없이 공항까지 질주했다. 일반 도로를 지나왔기 때문인지 교장 할배는 저번처럼 과속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어쨌든 교장 할배가 공항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난 공항 내의 벤치에 앉 아 할 일없이 시간만 때웠다. 무려 1시간이 흐른 뒤에 어슬렁어슬렁 모습을 드러낸 교장 할배는 여객기들 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공항 쪽으로 가지 않고 전혀 이상한 곳으로 날 끌 고 가기 시작했다. "저기, 비행기는 저쪽에 있는데 왜?" 내가 의아해져서 물어보자 교장 할배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부족하구나. 지금 저 비행기들은 대부분 우리 나라나 자파스로 가 는 것들이다. 그런 걸 타서 어떻게 다른 나라로 가겠다는 거냐?" 아…… 그렇군. 방사능의 피해가 없는 나라가 한국하고 일본뿐이니까 비행 기들도 모두 그 두 나라밖에는 운항하지 않겠구나. 그럼…… 방사능으로 오 염된 지역으로 가려면 뭘 타야 하지? "우리가 타고 갈 것은 저거다!" "……!" 사람들과 비행기가 거의 없는 활주로의 한 귀퉁이로 들어선 교장 할배가 손 가락으로 가리킨 것을 본 나는 크게 놀랐다. 그건 경비행기였다. "저걸 타고 간다구요?" "그래. 저걸 타고 가면 빠른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말이 야." 경비행기를 타는 게 좋은지 교장 할배는 연신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난 절 대로 즐겁지 않았다. 저번에 수학 여행갈 때 탔던 비행기는 거의 요동이 없 어서 멀미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이 경비행기는 무지하게 움직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멀미를 일으킬 확률이 100%의 극한값을 가질 수 있었다. 즉, 하늘을 나는 중에 오바이트를 할 최악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안 타면 안 되나요……" 당연히 안 된다고 하겠지……. "잔말 말고 타라!" 커윽…… 역시……. 덜컥! 교장 할배는 경비행기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행기 안은 생각보 다 넓은 편이었다. 안에는 2인용 좌석이 두 개 있었기 때문에 조종사까지 합 하면 5명 정도는 거뜬히 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데나 앉아서 안전 벨트를 매라!" 그렇게 말한 교장 할배는 조종석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머리에 헬멧을 쓰고 경비행기의 조작버튼을 이것저것 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당연히 물어보 았다. "교장 선생님, 경비행기 조종은 하실 줄 아는 거예요?" "물론이다. 아니면 내가 왜 이걸 택했겠느냐? 내 조종 솜씨에 놀라지나 말 거라!" 푸르르르릉-! 경비행기의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하??경비행기는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내가 급히 경비행기 안에 준비되어 있던 헬멧을 머리에 쓰고 안전 벨트를 매 자 그와 동시에 경비행기가 떠올랐다. 부아앙-! 경비행기는 빠른 속도로 공항 위를 지나갔다. 교장 할배의 조종 실력이 생 각보다 훌륭했기 때문에 기체는 금방 안정을 찾고 날기 시작했다. "허허, 어떠냐?" 경비행기의 시끄러운 모터 소리 사이로 자신만만한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솔직하게 답했다. "조종 잘 하시네요." "허허, 칭찬해줘서 고맙구나." 흘…… 이걸 칭찬이라고 생각하다니…… 할아범은 당연히 조종을 잘해야 한 다고. 할아범이 조종을 못하면 내가 죽으니까. "근데 지금 저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아주 큰소리로 대답했다. "전설의 드라콘이 있는 곳이다!" 쿠쿠쿠쿠- 경비행기가 숲 속에 있던 넓은 공터에 착륙하고 나서 나와 교장 할배는 경 비행기에서 내려 숲 속으로 들어갔다. 공터에 경비행기를 그냥 놔두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생각해보면 방사능으로 오염된 이곳에 도둑 같은 게 있을 리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기로 했다. 흠…… 그런데 여기가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인가? 근데…… 생명체들이 자 라고 있잖아? 모두 이상하게 생긴 생물들이긴 하지만. "놀랬느냐? 방사능 오염 지역에 생물들이 살아간다는 것이." 수풀을 헤치며 교장 할배가 나에게 물었다. 난 길을 잃지 않도록 교장 할배 의 뒤를 바짝 쫓았다. "솔직히 놀랐어요. 생물들의 생명력은 강하군요." "허허, 그렇단다. 인간의 생명력도 강하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 나 약해." 생명체 얘기에서 갑자기 인간 얘기로 넘어오더니 교장 할배는 자기 할말만 하고서는 굉장히 어두운 표정을 지어 버렸다. 묻는 게 곤란할 정도였기 때문 에 난 교장 할배의 뒤를 따라가면서 생물들을 관찰했다. 헐…… 식물들의 대부분은 두꺼운 표피를 가지고 있군. 역시 방사능을 막기 위해서인가? 뿌리를 들춰내면 뿌리가 아주 깊숙이 땅 속을 파고들고 있겠지? 그래야 이런 삭막한 땅에서 충분한 양의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동물들은 어디있노……? 끼악-! 왠 익룡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몇 마리의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 들은 꽤 딱딱해 보이는 털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방사능을 막으며 살아온 것 같았다. 물론 일부의 생물은 아주 얇은 표피나 피부를 가 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방사능의 에너지를 자신들의 생명 활동에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이런…… 그러고 보니 난 지금 이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에 대해서는 신경 을 쓰지 않고 있잖아? 나 바보인가? 가장 눈에 잘 보이고 이 숲에서 가장 중 요한 나무를 보지 않고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니…… 드디어 나도 갈 데까지 갔군……. "흠……." 나무는 보통의 나무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 같군. 단지 잎이 모두 두 꺼워 보이고 줄기의 껍질도 상당히 단단한 것 같구만. 그나저나…… 이런 방 사능 오염 지역을 6써클 이상의 마법사들은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니…… 대단해…….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437 / 9441 [등록일] 2000년 06월 26일 15:23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7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5장: 전설의 드라콘 -3-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3-... 총 Page : 2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4 15:54:34 수 정 일 : 크 기 : 7.3K 조회횟수 : 513 "저기, 그런데 전설의 드라콘이란 게 뭐예요?" 난 계속해서 앞으로만 전진하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물어보았다. 교장 할배 는 계속 전진하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전설의 드라콘은 말 그대로 전설의 드라콘이다." "……." 흘…… 그걸 누가 몰라? 왜 전설의 드라콘이냐 이거지! "그 드라콘은……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드라콘을 자신의 것으로 할 수만 있다면……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오호∼ 그런 엄청난 드라콘이 있단 말이야? 구미가 당기는걸? "그 전설의 드라콘에게는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아주 오랜 옛날, 학 자들은 1000년 전 정도라고 추정하는 그 옛날, 고등한 사고를 가진 두 드라 콘이 새끼 드라콘을 낳았다. 하지만 그 새끼 드라콘은 자라서 엄청난 능력을 소유했고, 그 능력으로 인해 많은 수의 드라콘들이 죽었다." 얼라리? 그 드라콘이 엄청난 능력을 소유했다고 해도 왜 많은 수의 드라콘 들이 죽지? 드라콘들끼리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이야? "왜 드라콘들이 죽은 거예요?" "그건 그 새끼 드라콘이 아주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에에엑?! "물론 드라콘과 인간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 전설의 드라콘은 암컷이었는데 수컷 드라콘들이 그 드라콘을 차지하기 위해 항상 싸 웠다는구나. 이건 옛 문헌상에 나와있는 기록이니까 사실이다." 우리들은 계속 걸어나가면서 그 전설의 드라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 전설의 드라콘에게는 엄청난 매력 이외에도 다른 생명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든지, 또 산 하나를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힘도 지녔다고 한다. 학 자들 사이에서는 그 능력들이 모두 마법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어. 어쨌든 그 전설의 드라콘 때문에 많은 수의 드라콘들이 서로 싸워 목숨을 잃었고, 그것 을 보다못한 전설의 드라콘 부모가 자신의 딸을 이곳 어딘가에 봉인했다고 한다." 흘…… 부모가 자식을 봉인하다니…… 뭐, 드라콘들의 사고 방식을 내가 어 떻게 이해하겠냐……. "그 후 약 700년 전에 한 사람이 그 봉인을 풀었다. 그는 그 드라콘의 힘을 사용하여 당시 세계를 장악해나가던 몽고족인 원(元)나라의 영토확장을 저지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충분히 원을 멸망시켰을 수도 있 었지만 그는 원의 유럽 장악만을 막아낸 채 다시 그 드라콘을 이곳에 봉인해 버렸지." 얼레? 왜지?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떻게 그 드라콘의 봉인을 풀었는지는 알려지지 않 는다. 또 왜 그 사람이 다시 드라콘을 봉인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들 의 목적은 그 드라콘이 어디에 봉인되어 있는지, 그리고 봉인을 풀 수 있을 지를 확인하고, 만약 봉인을 풀 수 없다면 그 드라콘이 수컷 드라콘에게 선 물로 받은 그 많은 보물들을 가져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예예……." 결국 보물 때문이잖아…… 뭔 설명이 그렇게 긴지……. 사삭 사삭- 수풀을 헤치며 나와 교장 할배는 끊임없이 걸었다. 그러나 숲만이 보일 뿐 무슨 드라콘의 집 같아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 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근데 그 드라콘의 봉인 장소는 알고 계신 거예요?"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너무나 간단하게 대답했다. "모른다." "……." 지금 나하고 놀자는 거냐? 봉인 장소도 모르면서 무작정 가자고? 이런…… 이 할아범이 치매에 걸려서 미쳐버렸나……! "그럼 어떻게 찾아요?" "그냥 열심히 찾는 거다." "……." 이 할아범…… 정말 미쳤군. 도대체 왜 내가 이런 데서 헤매고 있어야 하는 거지? 어차피 마력도 7써클밖에 안 되고, 마법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내 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데려왔냐 이거야…… 아까운 내 방학 시간만 헛되이 소비되고 있잖아……. 크르르릉……. 그때 어떤 동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난 무슨 소린 가 하여 소리의 발원지를 찾으려고 했다가 교장 할배의 말에 기겁했다. "드디어 나타났나? 마법사 사냥꾼!" "……!" 마법사 사냥꾼? 이봐, 할아범! 난 그런 소리 전혀 듣지 못했다고! 이런 위 험한 곳에 도대체 날 왜 데려온 거야!!! "어서 내 뒤로 붙어라!" 교장 할배가 나에게 소리쳤고 난 즉시 교장 할배의 뒤로 몸을 바짝 붙이고 교장 할배의 후방을 살폈다. 혹시라도 교장 할배의 뒤에서 그 마법사 사냥꾼 이라는 녀석이 덥쳐올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마법사 사냥꾼이 뭐예요?"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계속 주위를 경계하며 대답했다. "마법사 사냥꾼은 전문적으로 마법사들을 사냥해서 잡아먹는 동물들의 통칭 이다." 허거거걱?! 마법사들을 잡아먹는 동물?! 화륵! 교장 할배는 카파 하사로를 두 개 만들어 싸움에 대비했다. 그래서 나도 카 파 하사로를 만들어 교장 할배의 후방을 견제했다. 그러나 마법사 사냥꾼이 라는 동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꾸르릉……. 윽…… 도대체 몇 마리인 거야? 아무리 교장 할배가 마법의 달인이라고는 해도 많은 수의 맹수들을 당해낼 수는 없을 거 아니냐고…… 특히 날 보호하 면서 싸우려면 금방 지칠텐데…… 제길…… 내가 마법사 사냥꾼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덜덜덜……. 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강한 적 앞에서도 떨어본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우리 를 습격하려는 동물 앞에서 떨고 있었다. 그 힘을 전혀 알 수 없고, 모습도, 그 숫자도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난 무서웠다. 너무 무 서웠다. 제길…… 난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녀석들에게 당하는 걸 무서워하다니…… 난 왜 살고 싶어하는 거지? 이런 상황이 되면 '그래, 좋아! 신나게 싸우다 죽어보자!'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 두려운 거야? 크르르릉……. 마법사 사냥꾼들은 쉽사리 덤비지 않고 그저 주위 수풀 속에 숨어서 낮은 울음 소리만 냈다. 이건 분명히 우리들이 긴장해서 먼저 지쳐버리기를 바라 는 것이었다. "이런…… 이곳에는 평상시에 전설의 드라콘을 찾기 위해 많은 마법사들이 들르는 곳이라 마법사 사냥꾼이 생각보다 많구나……!" 교장 할배는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그걸 이제서야 말하는 교장 할배의 얼굴에 주먹을 안겨주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위 경계에 정신을 집중했다. 크르릉……. "교장 선생님, 이러다간 우리가 먼저 지치겠어요. 먼저 공격하죠?" 내 말에 교장 할배는 반대했다. "마법을 쓰고 난 다음에는 녀석들이 떼거지로 공격할 거다. 그건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간 죽음뿐이라고! "비행 마법 쓸 수 있으세요?" "물론 쓸 수 있다. 단지 주문을 외우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 녀석들은 마법 사들의 마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면 바로 공격할 거다. 지금은 카파 하사로로 방어하고 있으니까 감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 하는 거고." 교장 할배는 카파 하사로를 하나 더 만들어 마법사 사냥꾼이 섣불리 공격하 지 못하게 위협했다. 우리들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마법사 사냥꾼들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상황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 큭…… 벌써 눈앞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어…… 이러다간 얼마 못 버티고 쓰러져…… 뭔가 방법을 생각해내지 않으면……! "교장 선생님." "무슨 일이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요." "뭐냐?" 교장 할배와 나는 여전히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 렇기 때문에 마법사 사냥꾼들도 공격하지 않았다. "제가 카파 워그로 주변을 방어하는 동안 교장 선생님은 비행 마법 주문을 외우는 거예요." 카파 워그는 불의 장벽인 파이어 월(Fire Wall)이다. 본래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강한 카파 워그를 형성하면 녀석들도 감히 덤벼들지는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교장 할배는 내 제안을 잠시 동안 고려해보더니 긍정적인 응답을 했다. "좋다. 그럼 한 번 해보자." "예." 난 미리 만들어놓았던 카파 하사로는 그대로 두고, 눈도 감지 않고 카파 워 그의 발동 원리를 떠올렸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마법사 사냥 꾼들이 먼저 눈치채게 되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했다. '카파 워그…… 카파 워그……' 난 그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카파 워그의 발동 원리를 떠올렸다. 아직 마나 파장의 방출은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마나 파장의 방출이 한순간에 이루어져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마나 파장의 방출을 시작 하자마자 마법사 사냥꾼들이 덮쳐올 테니까. [번 호] 9438 / 9441 [등록일] 2000년 06월 26일 15:26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6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5장: 전설의 드라콘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4-...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4 15:54:49 수 정 일 : 크 기 : 7.0K 조회횟수 : 490 "아직 준비 안 됐느냐?" 이런…… 독촉하지 말라구!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단 말이야! '카파 워그…… 카파 워그……!' 난 정말로 열심히 카파 워그의 발동 원리, 즉 마나의 단열압축을 통한 산소 의 연소를 강하게 생각하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그 원리를 완전히 뇌리에 새 겨 넣었을 때, 난 마나 파장을 한꺼번에 방출했다. "카파 워그!!!" 소리를 지르면서 카파 워그를 발동시키자 곧 나와 교장 할배 주변이 높이 2 미터 정도의 거대한 불의 장벽으로 뒤덮였다. 그것을 확인한 교장 할배는 즉 시 비행 마법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천공지익(天空之翼) 승풍비천(乘風飛天) 군력무한(君力無限) 고비원거(高 飛遠去)!" 교장 할배가 주문을 모두 외우자 미세한 바람이 생성되면서 나와 교장 할배 를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마치 헬기가 이륙하는 것처럼 쉽사리 몸이 뜨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꽤 빠른 속도로 하늘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컹컹컹!" "카아악!" 몸이 하늘 위로 치솟아 오르자마자 카파 워그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난 밑 에서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사자나 호랑이처럼 생기기도 했고, 어떤 녀석들은 곰처럼 생 기기도 했다. 그러나 공통점은 하나같이 먹이감을 노리는 맹수의 표정이라는 것이었다. "괜찮으냐?" 하늘 위에서 잠시 정지한 교장 할배가 나에게 물었다. 마법사 사냥꾼들과 대치하느라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카파 워그를 사용했기 때문에 정신이 어질어질했지만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네요……." "그래? 우선 이곳을 피하도록 하자." 교장 할배는 날 자기 뒤꽁무니에 붙이고 하늘을 유유히 날기 시작했다. 우 리가 이동하기 시작하자 밑에 있던 마법사 사냥꾼들도 같이 움직였다. 녀석 들은 아직 포기할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녀석들이 따라오는데요." "어쩌겠느냐? 지금 난 비행 마법 사용하느라 다른 마법은 쓸 수 없다." 흘…… 과연 그럴까? 저번에 아레드라콘하고 싸울 때에는 동시에 두 가지 마법을 썼잖아? 게다가 거의 무한대로 마법을 사용했고. 그런데 왜 지금은 안 쓰는 거지? 이유가 뭐야? "저기 계곡이 있구나!" 교장 할배의 말대로 우리의 전방에는 꽤 깊은 계곡이 있었다. 이 정도 넓이 와 깊이의 계곡이면 마법사 사냥꾼들이 더 이상 쫓아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들은 즉시 그 계곡 위로 날았다. "컹컹컹!" "크르르릉!" 계곡의 넓이가 꽤 있었기 때문에 녀석들은 감히 계곡을 건너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완전히 녀석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 을 내쉬었을 때, "끼아악!" 뭔가 아주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익룡의 울음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내 바로 뒤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난 기겁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 헉! 익룡하고 똑같이 생긴 새잖아?! "끼아악!" 익룡처럼 거대한 박쥐 날개에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그 새는 빠른 속도로 나에게 날아왔다. 교장 할배도 녀석이 나에게 날아오고 있는 걸 보고 있었지 만 비행 마법에 전념하느라 달리 대책이 없었다. 결국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 이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으아악!" 불에 데인 듯한 화끈한 통증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그 새의 발톱은 내 가슴 을 거의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갈비뼈가 대여섯 개 부러져서 폐를 관 통해버렸다. 그나마 심장이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이대로 내가 살아난다 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슈우웅-! 귓가로 바람 지나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것은 내가 지금 계곡 아래로 추락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교장 할배가 어떻게 되든, 그 익룡 같은 새가 어떻게 되든 이제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져버렸다. 가슴에 서 느껴지는 너무나 강렬한 고통이 내 모든 이성을 마비시켜버렸으니까. 풍덩-! "으음……." 난 나직한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어두운 동굴의 천장이었다. 아무래도 난 동굴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내 등은 지금 차가운 동굴 바닥과 키스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의외로 등은 따뜻했다. "끄응……!" 그것이 이상해서 난 몸을 일으켰다. 분명히 익룡 같은 새에게 가슴을 할퀴 어서 지금쯤 저승에서 헤매고 있어야 할 내가 여기 이렇게 누워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게다가 가슴의 상처가 전혀 없어서 더더욱 이상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난 분명히 계곡에 쳐박혀서 물귀신이라도 되어 있 어야 할텐데? 왜 동굴 안에 멀쩡히 누워있는 거냐? 설마…… 누가 날 구해준 건가? "……!" 뭐야? 내가 누워있는 자리에 동물 가죽이 널려있잖아? 이건…… 분명히 사 람의 솜씨야. 그럼 확실히 누군가가 날 구해줬다는 건데…… 그 사람이 계곡 에 떨어진 나를 구해주고 가슴 부상까지 치료해준 거 같군. 헉! 옷도 바꿔져 있잖아? 하긴…… 가슴에서 번져 나온 피 때문에 옷이 더러워져 있을 테니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옷을 갈아 입혔겠지. 그나저나 날 구해준 그 존경할만한 분은 어디 가셨나? "아, 이제 깨어나셨군요!" 그때 내 앞에서 아주 아름다운 소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 때문에 난 꽤 놀라야했다. 그리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소 녀의 모습에 난 더더욱 놀라야했다. 큭…… 저거…… 인간이야? 인간이 뭐 저렇게 예쁘고 고결하게 생겨 먹었다 냐? 이거 내가 엄청나게 위축되잖아! 빨리 사라지라구! 무서버! "제가 싫으신가요? 왜 무서워하세요?" 17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그 소녀는 금발의 긴 머리를 찰랑이며 내 앞에 앉더 니 맑은 눈으로 날 쳐다보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난 무섭다는 말을 입밖 에 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또다시 기겁했다. "설마……!" "전 다른 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금발 소녀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난 제 2의 테리야크를 만나게 되어 반갑다기 보다는 황당했다. 그리고 왠지 금발 소녀가 수상쩍게 보였다. "누구신데 이런 동굴 속에 있는 겁니까?" 난 약간 뒤로 물러서며 금발 소녀에게 물었다. 내가 약간 물러서자 금발 소 녀의 맑은 눈에서 이슬이 배어 나왔다. "왜…… 절 피하시는 거예요?" 흘…… 이건 상황이 너무 이상하잖아! 구천을 떠돌고 있어야 할 내가 여기 누워있는 것도 그렇고, 죽을 정도의 상처가 자국하나 없이 말끔히 치료된 것 도 그렇고, 이런 동굴 속에 갑자기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나는 것도 그렇다구! "그렇군요……." 테리야크처럼 내 마음을 읽었는지 금발 소녀는 이내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결코 물러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에게 피해가 되는 짓도 하지 않구요." 흘…… 나쁜 사람이 '나 나쁜 사람이유'하고 말하는 것 봤냐? "의심이 많으시군요……." 당연하지! 그냥 여기에 아저씨가 나타나거나 아님 할아버지라도 나타나면 전혀 이상할 게 없지만, 이런 동굴 속에 아름다운 소녀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데 의심 안 하게 생겼냐! "제가 예쁘기 때문에 의심하시는 건가요?" 금발 소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물었다. 그 모습은 너무 천진해 보 였다. 그러나 너무 천진해 보였기 때문에 난 더욱 의심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우선 그렇게 물었다. 평상시 같으면 존댓말을 썼겠지만, 상대가 이미 반말 로 생각하는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굳이 존댓말 같은 걸 쓸 필요는 느끼 지 못했기 때문에 반말로 나갔다. 그리고 금발 소녀도 내가 반말을 하든 존 댓말을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곳이 제 집이니까요." 으헉?! "여기가 집이라구? 이 동굴이?" "네." 금발 소녀는 그 이상한 말을 아주 당연한 듯이 했다. 난 잠시 마음을 진정 시킨 후에 다른 질문을 계속했다. "날 구한 건 너지?" "네." "내 상처를 치료한 사람도 너고?" "네." "여기서 혼자 사는 거야?" "네." 금발 소녀는 내 모든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더욱 수상했다. 어떻게 저렇게 가냘퍼 보이는 여자애가 날 구하고, 내 상처를 치료하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 일꾼: 늦어서 죄송함다...--;; 저 드뎌 컴 고쳤습니다. 근데 판츠 하루 허용량이 얼마인지 모르는 관계로 오늘 판츠에는 여기까지만... 사케동에는 다 올라가니 까 그쪽에ㅏ서 보세요. go psyc입니다. 작가소설란이 아마 14번인가 할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ㅠ.ㅜ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119 / 120 [등록일] 2000년 06월 26일 15:28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5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5장: 전설의 드라콘 -5-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5-...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5 17:32:43 수 정 일 : 크 기 : 7.0K 조회횟수 : 345 "이름이 뭔데?" "메이로나에요." 금발 소녀는 순순히 자기 이름을 밝혔다. 물론 거짓으로 이름을 꾸며댄 것 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믿기로 했다. 그리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날 구한 것이 금발 소녀의 계획이든 아니든 어쨌든 은혜를 입었으니까. "근데 여기서 왜 혼자 사는 거야? 부모님은?"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어요……." 메이로나라는 이름의 금발 소녀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평상시 같으면 '쓸 데없는 거 물어서 미안'이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럴 마음이 들지 않 았다. 왠지 이 모든 것이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절 믿지 못하시는군요……." 바로 내 마음을 읽어버린 메이로나는 표정을 더욱 어둡게 했다. 이미 상대 에게 내 마음을 속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난 솔직하게 묻기로 했다. "내 상처는 어떻게 치료한 거야? 갈비뼈가 부러지고 폐가 관통 당한 거라 보통 사람은 절대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그건……." 메이로나는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다가 무슨 좋은 거짓말이 떠 올랐는지 이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법이에요!" 흘…… 마법이라…… 그럼 메이로나는 마법사란 소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 게 이런 짧은 시간에 내 상처를 모두 치료하냐고. 잠깐, 내가 계곡에서 떨어 지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거지? 설마……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는 헛소리는 아니겠지? "잘은 모르지만…… 제가 당신을 발견한 후로 하루가 지났어요." 메이로나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난 더더욱 메이로나를 의심했다. 하루만 에 내 모든 부상을 완치시킨 그 엄청난 능력이 믿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말이야…… 너…… 신성 마법 쓰냐?" 내 물음에 메이로나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성 마법이요? 그게 뭔가요?" 윽…… 헛다리짚은 건가? 신성 마법 정도라면 내 부상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럼 뭐지? 도대체 어떻게 마법으로 내 부상을 말 끔히 치료할 수 있는 거야? 무슨 전설의 드라콘도 아니면서…… 헉?! - 그 전설의 드라콘은 암컷이었는데 수컷 드라콘들이 그 드라콘을 차지하기 위해 항상 싸웠다는구나. 이건 옛 문헌상에 나와있는 기록이니까 사실이다. - 그 전설의 드라콘에게는 엄청난 매력 이외에도 다른 생명의 마음을 읽는 것이라든지, 또 산 하나를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힘도 지녔다고 한다. 학 자들 사이에서는 그 능력들이 모두 마법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어. 연이어 떠오르는 교장 할배의 말. 그리고 그 말이 모두 귀결되는 눈앞의 소 녀. "너……!"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 마음을 읽은 메이로나가 어쩔 수 없다는 표 정을 지으며 답했다. "결국 아셨군요. 그래요. 전 700년 전에 봉인된 드라콘이에요." 커커컥!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어! 메이로나가 전설의 드라콘이라니……! "뭣 때문에 날 살려준 거지?" 난 최대한 메이로나를 경계하며 물음을 던졌다. 본래는 그 뒤에 이어질 말 도 있었지만 그게 '난 네 보물을 가지러 왔는데!'였기 때문에 감히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했다가는 당장 메이로나가 드라콘으로 변신해서 날 짓뭉개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목적은 제 보물인가요?" "……!" 으악! 마음을 읽혀버렸다! 이제 난 죽었다!!! "따라오세요." 메이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일어섰다. 메이로나가 정말로 드라콘이라면 난 상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순순히 메이로나를 따라 일어섰다. 설령 메이로 나가 드라콘이 아니라도 내 부상을 가볍게 치료한 실력이기 때문에 결코 만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난 메이로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박사박- 메이로나의 발걸음은 상당히 가벼웠다. 거의 몸무게가 없는 것처럼. 그것이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도대체 메이로나가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모르 기 때문에 공포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제가 선택한 주인이니까요."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서 메이로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냥 묵묵히 메이로나의 뒤만 따라갔다. "여기예요." 메이로나가 멈춘 곳은 동굴의 가장 안쪽이었다. 그곳은 교실만한 크기의 공 터였는데, 사방이 동굴로 막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굴 천장에 박힌 구슬 때문에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구슬들은 스스로 빛을 내뿜는 야 명주(夜明珠) 종류인 듯했다. "여기에 보물들이 있어요." 그렇게 말한 메이로나는 갑자기 동굴 벽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러 자 그녀의 손은 동굴 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해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손에는 약간의 다이아몬드와 금 덩어리가 쥐어져 나왔다. "이 벽 속에는 많은 보물들이 감추어져 있답니다. 이 동굴 벽은 허상이에요. 실제로 이 동굴은 지금 보는 것보다 더 크죠." 메이로나는 손에 보물을 든 채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표정을 약 간 굳히면서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그런 걸 나에게 가르쳐주는 거지? 내가 모두 가지고 달아날 수도 있잖 아?" "후훗." 그러자 메이로나는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그런 메이로나의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바짝 긴장하고 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보물을 가지고 달아날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이라면 제가 선 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 뭔 소리야? 아까부터 계속 선택, 선택 그러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우선 앉으세요. 다 말씀드릴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메이로나가 동굴 안에 있던 동물 가죽을 깔고 그 위에 다소 곳이 앉았기 때문에 나도 동물 가죽을 바닥에 깔고 털퍽 주저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메이로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지금으로부터 약 900년 전에 부모님들에 의해 이곳에 봉인됐어요. 그런 데 봉인이라는 것이 당신의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요. 전 1년 중에 단 며칠 동안만 깨어있을 수 있어요. 그때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복종하게 끔 되어 있는 봉인이죠." 흘…… 그럼 메이로나가 깨어있을 때 내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나에게 복종 한다는 소리인가?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전 제가 복종할 사람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으 니까요." 엥? 봉인이라면서 그런 권리가 있다고? 그럼 나한테 복종 안 해도 되잖아? "물론이죠." 메이로나는 그 말을 웃으면서 했다. 그래서 난 기겁했다. 당장이라도 '나 배고프니까 내 먹이가 되라!'고 소리치면서 날 덮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전 사람을 안 먹어요. 저희 드라콘은 동식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는 것보 다는 공기 중의 분자를 직접 흡수해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얻으니 까요." 흘……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네가 날 선택했다고 했는데, 왜 날 선택했지? 날 선택하지 않아도 되잖아?" 내 물음에 메이로나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래요." 그렇다면서 날 선택한 것은…… 설마…… 그 동안 인간 세계로 나가고 싶어 서 미칠 지경이었던 건가? 그래서 밖으로 나가면 인간 세상을 뒤집어버리려 고?! "그렇지 않아요." 내 생각을 읽은 메이로나가 이번엔 고개를 저었다. "전 당신의 기억을 훑어보았어요. 그리고 그 결과 당신이라면 제 주인으로 모셔도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구한 것이고, 이렇게 당신 앞에 앉아있는 것이지요." "……." 내 기억을 훑어보는 능력까지 있단 말이야? 무서운 능력을 가지고 있구만. 이 여자 드라콘 앞에서는 거짓말도 못하겠다! "거짓말은 나쁜 거잖아요." 그러면서 싱긋 웃는 메이로나. 그 모습만 본다면 아름다운 소녀였지만, 그 정체가 엄청난 능력을 지닌 전설의 드라콘이라고 생각하자 왠지 다가가기가 껄끄러웠다. "근데 넌 인간의 모습으로도 변할 수 있는 거야?" 가장 의심스러운 질문을 난 그제서야 했다. 그러자 메이로나는 자신의 하얀 손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사람 같죠? 이런 능력은 드라콘 중에서도 고급 드라콘에게만 있는 거 예요. 몸을 이루고 있던 분자를 쪼개어서 새로운 분자 구조를 만들어야 하니 까요." 흘…… 분자마저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 무서운 능 력이야……. [번 호] 120 / 120 [등록일] 2000년 06월 26일 15:29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5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5장: 전설의 드라콘 -6-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5장:전설의 드라콘 -6-... 총 Page : 2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5 17:33:00 수 정 일 : 크 기 : 9.4K 조회횟수 : 329 "이 모습이라면 당신하고 잘 어울리겠죠?" 메이로나는 마치 자기가 정말 소녀인 것처럼 몸을 사뿐사뿐 움직이면서 나 에게 물었다. 메이로나에게 거짓말을 해봐야 모두 소용없는 짓이기 때문에 난 솔직히 말했다. "예쁜 모습이긴 한데, 나하고는 전혀 안 어울려." "네? 왜요?" 메이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난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동굴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메이로나가 내 몸을 흔들며 내 대답을 재촉했다. "왜요? 전 당신 마음에 들도록 모습을 바꾼 거라구요. 당신 마음에 들지 않 는다면 또 바꿀게요." "……." 하……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군. 지금 메이로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데 난 왜 이렇게 착잡한 마음이 드는 걸까. 왜지? 도대체 왜? "……!" 그때 갑자기 메이로나가 내 몸 위로 자기 몸을 포갰다. 소녀 하나가 내 몸 위로 올라왔는데도 그다지 무겁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분만 이상하게 좋을 뿐이었다. "이, 이봐, 빨리 내려가라구!" "싫어요. 전 당신 것이니까요." 그러면서 메이로나는 내 몸을 꼭 안았다. 이렇게 계속 있다간 무슨 일을 저 질러버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즉시 메이로나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말이야, 700년 전에 널 봉인에서 풀어준 사람이 있었잖아?" "……!" 내가 그 말을 하자 메이로나의 움직임이 뚝하고 멈추었다. 그래서 난 계속 물었다. "그 사람은 네 힘으로 몽고족의 영토확장을 막았다고 하던데, 정말이야?" "……." 내 물음에 메이로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나도 이때다 싶어 즉시 몸을 바로하고 앉았다. 잠시 후 내 앞에 다소곳이 앉은 메이로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리고 몽고족의 영토확장을 막은 후에 널 다시 봉인했다고 했는데, 사실 이야?" "네……." 메이로나의 표정을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널 봉인에서 풀어준 사람은 남자야, 여자야?" "남자예요……." "그렇다면 왜 그 사람이 널 다시 봉인한 거지? 너처럼 예쁜 여자를?" "……." 메이로나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메이로나가 모든 것을 말 해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날 주인으로 선택한 이상, 내 물음에 대한 대 답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전……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그 사람도 절 사랑했구요……." 마침내 메이로나가 700년 전에 있었던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 그 사람과 평생을 같이 하기로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들 어줬어요." 헉! 그렇다면 그, 그것까지……?! "아니요. 그 사람도 당신처럼 소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제 몸을 요구한 적은 없어요." 메이로나는 나보고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말에 괜히 기뻐하는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어쨌든 난 계속 메이로나의 말을 경청 했다. "전 그 사람의 부탁대로 몽고족의 영토확장을 저지했답니다. 그 일이 끝나 면 전 그 사람과 평생 같이 살 생각이었어요. 근데……" 메이로나의 눈가로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그 사람은 전쟁이 끝난 뒤에 절 다시 이곳으로 데려와 봉인했어요…… 왜 …… 왜 절 봉인했는지 모르겠어요…… 전 그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람도 절 사랑했는데…… 왜…… 왜……." 똑- 똑- 그녀의 볼을 타고 이슬 몇 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난 흐느껴 울고 있는 메 이로나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녀의 가냘픈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차라 리 마음 편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왜 그 사람이 널 다시 봉인했는지는 모르겠어. 너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거나." "흑흑……." "어쨌든 울지 말라구. 난 네가 우는 모습이 보기 싫으니까." "죄송해요……." 메이로나는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빙긋 웃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확 끌어 안아버릴 정도로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난 그런 충동을 억누르며 화제를 돌 렸다. "계속 여기서 살 거야? 난 여기서 나가야 한다구." "알아요. 전 당신의 의견에 따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메이로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녀를 따라 일어선 후 에 문득 교장 할배가 생각나서 물어보았다. "혹시 은발 머리의 할아버지 본 적 없어?" 내 물음에 메이로나가 웃으며 되물었다. "오죠룬 마법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말씀하시는 거죠?" 헉! 어떻게 그걸…… 아, 내 기억을 훑어봤다고 했었지. 그래서 알고 있는 거겠군. 허걱!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메이로나도 알고 있다는 소리?!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고 있지 않으니까요." 메이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날 이해시키려고 했지만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 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사생활을 들킨다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 그때 갑자기 메이로나가 내 품에 안겨왔다. 갑작스런 접근에 난 당황했고, 메이로나는 그런 나에게 애교를 떨었다. "기분 나빠하지 말아요. 그럼 제가 슬퍼진단 말이에요." "……." 쩝…… 이거 원……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왠지 개꿈을 꾸고 있는 것 같 단 말이야……. "어쨌든 나가자." 난 메이로나를 떨어뜨려 놓고 급히 동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메 이로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보물 안 가져가요? 그것 때문에 온 거잖아요?" 아…… 그렇군. 언제 교장 할배를 만날 지 모르니까 우선 보물이라도 챙겨 가야겠지. 학교 재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럼 약간만 가져가 볼까?" 난 다시 발걸음을 돌려 동굴 벽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이 동굴 벽은 진짜처럼 보였다. 내가 계속 동굴 벽만 쳐다보고 있자 메이로 나가 풋하고 웃었다. "손을 넣어봐요. 그럼 보석이 만져질 거예요." "……." 흠…… 좋아. 한번 해보지 뭐. 슥- 난 물건을 집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벽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벽 속으로 손이 그냥 통과되면서 손에 딱딱한 물체가 만져졌다. 그래서 우선 손 에 집히는 대로 움켜쥐고 나서 손을 다시 빼냈다. "야……!" 내 손에 잡힌 것은 번쩍번쩍 빛나는 주먹만한 황금의 구슬이었다. 누구나 봐도 인위적인 가공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난 메이로나에게 물 어보았다. "이거 누가 만든 거야?" "그거요? 어떤 드라콘에게서 받은 거라 확실히는 몰라요." 그러면서 메이로나는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은 인기 많은 소녀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앞으로 메이로나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마음 편할 테니까. "그럼 이걸로 할까? 근데 이걸 들고 가야 하나?" 황금 구슬이 주먹만했기 때문에 솔직히 들고 가는 것은 쪽팔리기도 했고, 만약 다른 사람들 눈에라도 뜨이면 의심받을 게 뻔했기 때문에 뭔가 넣고 갈 것이 필요했다. 그러자 메이로나가 어깨에 메는 가죽 가방을 나에게 건네주 었다. "이거면 되죠?" "어…… 고마워. 근데 이거 어디서 구했냐?" 내 물음에 메이로나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떤 마법사에게서 얻은 거라……." "어떤 마법사?" "네……." 왠지 나에게 숨기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난 그것을 추궁했다. "어떤 마법사인데?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메이로나는 여전히 제대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이쯤에서 그만두었을 테지만, 메이로나는 내 생각을 모조리 읽을 수 있고 난 전혀 그 렇게 할 수 없으니 이런 방법으로만이 메이로나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추궁을 멈추지 않았다. "그 동안 봉인이 풀린 적이 없다면 이런 가죽 가방을 얻었을 리가 없잖아. 설마 700년 전 이후로 누가 네 봉인을 풀어준 적이 있었던 거야?" "그건 아니에요. 단지……" "단지?" 난 계속 추궁했고 메이로나는 마침내 그것에 대해 말했다. "한 마법사가 이곳으로 찾아왔어요. 마침 전 그때 활동일이라 이 동굴 안에 서 제 주인이 될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럼 그 마법사와 만났겠네? 어떻게 됐어?" "전 우선 그 마법사의 정신을 잃게 해놓고 기억을 훑어보았죠. 그런데 불순 한 의도로 온 사람이더군요. 그래서……" "그래서?" 메이로나는 잠시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내가 계속 말하라는 표정을 짓고 있자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죽였어요……." "……!" 허거걱! 그렇다면 나도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소리잖아? 갑자기 메이로나가 무서워진다……! "그래서…… 말하기 싫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 메이로나가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그 표정이 모두 거짓이라고는 해도 아주 리얼했기 때문에 난 진짜라고 믿고 원래 묻고자 했 던 걸 물었다. "그럼 그 마법사에게서 이 가방을 얻었겠네?" "네……." 흠…… 이 가방이 전리품이라는 건가? 뭐 어쨌든 내가 안 죽었다는 게 아주 중요한 거지. 그런데 왜 메이로나는 날 선택한 것일까? 난 사악의 극을 치달 리는 녀석인데. "당신은 사악하지 않아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메이로나가 즉각 반박했다. 그녀의 얼굴은 아주 진지했다. "당신은 나쁘지 않아요. 당신이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것은 주변 상황 때문 이잖아요. 만약 주변 상황이 당신을 화나게 하지 않으면 평상시의 당신은 선 하니까요." 흘…… 그게 말이 되냐? 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들도 다 착한 거라고. 주 변 상황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구별되는 것도 몰라? 주변 상황이 화를 부추기지 않으면 누가 화를 내냐고. "그건 그렇지만……." 내 생각에 반박할 말이 없는지 메이로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 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전 당신이 좋으니까요." "……." 흘…… 결국 느낌이라는 거냐? 느낌 때문에 인생 망치는 인간들이 꽤 되지. 그럼 그럼∼ "어쨌든 이제 나가자." "네." 난 대화를 끊고 메이로나를 앞장 세워 동굴을 빠져나갔다. 동굴은 내 생각 보다 꽤 길었다. 다행히 건장한 사람 하나가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동굴이 높았기 때문에 걷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런 동굴에서 계속 사는 것도 고역이겠구나." 내 말에 메이로나가 기뻐했다. "전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불 속이라도 괴롭지 않아요." 윽…… 그만해…… 닭살 돋는단 말이야……! 화악-! 동굴 밖으로 나오자 밝은 빛이 내 눈을 덮쳤다. 난 잠시 눈을 감고 명순응 이 끝나기를 기다린 다음에 눈을 뜨고 동굴 밖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확인 했다. 동굴 밖에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고, 동굴은 계곡 제일 밑바닥 절벽 에 나 있었다. 즉, 난 계곡에 떨어진 후에 계곡물에 휩쓸려 이 동굴 안으로 빨려들어 왔던 것이었다. 흘…… 운이 좋았어. 잘못했으면 계속 계곡물에 휩쓸리다가 익사했을 지도 몰랐는데 말이야. 역시 악인은 쉽게 죽지 않는다니까. 하하.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484 / 9494 [등록일] 2000년 06월 28일 23:56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23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6장:보물 사냥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153 게 시 일 :00/06/27 15:31:51 수 정 일 : 크 기 :9.3K 조회횟수 :427 <제 26 장> 보물 사냥 하…… 이제 어디로 가지? 우선 교장 할배를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어 디 있는 줄 알아야 찾던가 말던가 하지…… 이거 여러 가지로 골치 아퍼……. "계곡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내 말에 메이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힘차게 대답한 메이로나는 이내 눈을 감고 마나 파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메이로나의 마력이 얼마나 되는지 느껴보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나 메이로나로부터 나온 마나 파장은 3써 클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의 그녀의 전 마력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했 다. "가요!" 휘이잉-! 메이로나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내 몸은 하늘 위로 높이 들어올려졌다. 메이 로나 역시 유유히 제자리에서 날아오르며 내 옆에 바싹 붙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금방 계곡 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헐…… 이거 정말 대단해. 원래 비행 마법 종류는 어려운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다니. 역시 전설의 드라콘답군. 흘…… 난 언제나 저런 마법을 쓸 수 있을까……. "이제부터 어디로 갈 건가요?" 메이로나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주 곤란한 질문을 했다.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그 자리에서 생 각해보려고 했다. 그때 메이로나가 나보다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이 숲을 빠져나가야겠어요. 그런 다음에 교장 선생님을 찾을 방법을 생각해봐요." "음…… 그렇게 하자." 난 메이로나의 말에 따라 우선 계곡을 벗어나기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 러나 난 곧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내 앞에 여러 마리의 마법사 사냥꾼들 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릉……. 이런…… 아직 안 가고 있었냐? 아니구나, 원래 이 장소가 녀석들의 활동 지역인가 본데? 제길…… 여기서 녀석들하고 또 싸워야 하다니……! "제가 처리하겠어요!" 내가 막 마나 파장을 일으키려고 했을 때 메이로나가 내 앞으로 나서며 호 기롭게 소리쳤다. 메이로나는 전설의 드라콘이기 때문에 마법사 사냥꾼 정도 야 가볍게 저승으로 보낼 수 있겠지만, 혹시나 메이로나가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법을 쓸 준비는 계속 했다. "비록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서 평소의 절반도 안 되는 힘밖에 낼 수 없지만 그 정도로도 너희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충분해!" 크르릉……! 그 말에 화가 났는지 늑대처럼 생긴 마법사 사냥꾼 한 마리가 메이로나에게 달려들었다. 메이로나가 마나 파장을 방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이 메이로 나를 얕잡아보고 먼저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퉁-! 그러나 그 늑대는 메이로나가 쳐놓은 바리어에 맞고 퉁겨져 나갔다. 비록 메이로나가 바리어를 사용했더라 하더라도 그녀의 몸에선 마나 파장이 방출 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메이로나가 정확한 써클수의 마나 파장을 한순간에 방출하여 바리어를 형성했다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늑대 녀 석은 메이로나가 마법을 사용했는지도 모르고 이상한 표정만 지었다. 왜 자 신이 되튕겨져 나왔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역시 녀석들은 마나 파장만을 느낄 수 있을 뿐 마법 자체는 모르고 있었어. 마나 파장만 느끼지 못하게 한다면 녀석들을 한번에 저승으로 보낼 수 있겠 는걸? "류드나르님! 어떻게 할까요? 모두 죽여야 하나요?" 그때 메이로나가 나에게 물었다. 난 메이로나에게 내 이름을 말해준 적이 없지만 그녀는 내 기억에서 이곳에서의 내 이름을 알아낸 듯했다. 그거야 어 쨌든 지금 상황에서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나서 대답했다. "그냥 위협만 해. 만약 도망가지 않고 계속 공격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죽일 수밖에 없고." "알았어요!"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한 메이로나가 한순간에 머리통만한 카파 보를 형성했 다. 그러자 여러 마리의 마법사 사냥꾼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메이 로나에게서는 마나 파장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그녀의 머리 위에 불의 공이 떠 있으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끼앵 깽! 그 중에 겁이 많은 마법사 사냥꾼들은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 은 녀석들의 수는 10여 마리 이상이었다. 역시 그 동안 많은 마법사들을 상 대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배짱이 붙은 듯했다. 크르릉……! "휴, 어쩔 수 없네? 그럼 모두 저승 구경 시켜줄게!" 그런 살벌한 말을 다정하게 한 메이로나가 카파 보를 녀석들이 모인 한가운 데로 떨어뜨렸다. 카파 보가 메이로나의 머리 위에서 날아가기가 무섭게 마 법사 사냥꾼들은 잽싸게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쿠아아앙―! 생각지도 못했던 강한 폭발이 일대를 휩쓸었다. 그 폭발력은 당연히 내가 있는 곳까지 쓸어버렸지만 내 앞에 서 있던 메이로나의 바리어 때문에 나는 그 폭발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 폭발에 의한 흙바람이 완전히 멎었을 때, 난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정도의 폭발이라면 분명히 폐허가 되어 있어야 할 땅이 너 무나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땅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와 수풀들이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카파 보가 폭발할 때 제가 계곡이 붕괴되지 않도 록 마나로 바리어를 쳤기 때문이니까요." 메이로나는 아주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난 기가 막힐 정도 로 놀라고 말았다. 카파 보를 날린 후에 이 계곡이 붕괴되지 않도록 바리어 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이 거의 거짓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릉……! 얼레? 아직도 살아있는 녀석들이 있었단 말이야? 그 폭발에서 살아남다니 거의 불사신 수준이로구만! "꽤 끈질기네? 그렇다면!" 몇 마리의 마법사 사냥꾼을 바라보던 메이로나가 이번에는 비아 하사로를 만들었다. 그걸로 녀석들의 몸에 구멍을 내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나 굳 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메이로나의 비아 하사로를 보자마자 녀석들은 꽁지 빠지도록 도망가버렸으니까. "어머? 모두 가버렸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메이로나는 이내 비아 하사로를 소멸시키고는 날 돌아 보며 빙긋 웃었다. "임무 완수!" "……." 흘…… 메이로나가 모두 처리하고 난 구경만 한 셈이 됐구만. 쩝, 내가 아 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다니…… 왠지 씁쓸해…….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는 메이로나의 얼굴은 울 듯한 표정이었다. 메이로나의 그런 표 정에 난 내 기분을 접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알았다구. 또 녀석들이 몰려오기 전에 가자." "네." 나와 메이로나는 곧장 그 자리를 떴다. 그러나 무작정 걸어가는 것에는 한 계가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나와 교장 할배가 타고 왔던 경비행기가 있는 쪽 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이라면 혹시 교장 할배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 다. "근데 거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문제는 그것이었다. 이 넓은 숲에서 경비행기를 세워놓은 곳을 찾아낸다는 것은 상당히 고난이도의 문제였다. 그리고 난 그 문제를 풀 자신이 없었다. "제가 찾아볼게요." 그때 메이로나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당연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주겠어?" "네. 맡겨주세요!" 메이로나는 빙긋 웃으며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하늘 위로 몸을 날렸다. 비 행 마법으로 허공에 뜬 상태에서 경비행기가 세워져 있는 곳을 찾아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아! 저기 있어요!" 메이로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경비행기가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그 녀는 경비행기가 있는 쪽으로 날아가면서 나에게 소리쳤다. "절 따라오세요!" "……." 그래서 난 말없이 메이로나를 따라 달려갔다. 잠시 동안 그렇게 달리고 나 서 도착한 곳은 나와 교장 할배가 타고 왔던 경비행기가 있는 공터였다. 그 러나 경비행기는 있어도 교장 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이 할아범 어디로 가버린 거야? 경비행기가 그대로 있는 걸 보니 까 이 부근에 있는 게 분명한데…… 설마…… 마법사 사냥꾼들에게 당해버린 건? 흘흘…… 그럴 리가 없어. 아레드라콘도 가볍게 물리친 인간이 그깟 녀 석들에게 당할 리가 없지. 지금쯤 날 찾으러 계곡을 뒤지고 있거나 아니면 날 포기하고 드라콘의 보물이나 훔쳐가려고 난리 치고 있겠지 뭐.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내가 계속 멀뚱멀뚱 서 있기만 하자 메이로나가 그렇게 물어왔다. 하지만 난 뭘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 에 와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제길…… 이 부근은 몽땅 방사능 오염 지역이라 인간들이 살 리가 없고…… 허걱! 그럼 먹을 것부터 구하는 게 급선무잖아? 하지만…… 방사능으로 오염 된 땅에서 자란 열매를 먹고 내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이 부근이 모두 방사능으로 오염된 것은 아니에요." 그때 메이로나가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난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라고 물으려다가 저번에 죽였다던 마법사의 기억에서 그런 정보를 얻었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말을 바꿔 물어보았다. "그럼 오염되지 않은 곳도 있어? 사람도 살아?"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제가 한번 찾아볼게요." 얼라리? 모른다면서 찾아본다고? 어떻게? "괜찮아요. 저에게 모두 맡겨주세요." 메이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는 여기저 기 둘러보다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반복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신의 어 떤 능력으로 방사능 비오염 지역을 찾아내려는 것 같았다. "……." 후…… 난 그냥 이렇게 기다려야 하나? 나란 녀석은 정말 무능하구만. 차라 리 모든 걸 메이로나에게 맡기고 난 은퇴나 해버릴까? 아…… 그러고 보니 메이로나에게 맡길 일도 없구나…… 난 백수니까……. "아! 저곳이에요!" 그때 메이로나의 목소리가 조금 멀리서 들려왔다. 그래서 난 그녀의 목소리 가 들려온 곳으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마법사 사냥꾼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 에 금방 메이로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찾아낸 거야?" "네! 저기 마을이 보이죠?" 메이로나는 허공에 뜬 채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방 향에는 조금 넓은 구릉 지대가 있었는데 그 구릉에는 몇 채의 가옥이 지어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긴 했지만, 문제는 그 구릉이 여기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대략 2km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저기까지 언제 가냐?" 내 불평 어린 말에 메이로나가 살짝 미소지었다. "갈 방법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난 메이로나에게 물었고 메이로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쇼타무브에요." "……!" 아, 그렇구나! 순간 이동 마법인 쇼타무브가 있었지! 메이로나라면 쇼타무 브 쯤이야 간단하게 할 테니까 저기까지 걸어갈 필요는 없겠구나! [번 호] 9485 / 9494 [등록일] 2000년 06월 29일 00:03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21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2-...(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6장:보물 사냥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154 게 시 일 :00/06/27 15:32:12 수 정 일 : 크 기 :11.4K 조회횟수 :401 "자, 갈 테니까 가만히 서 계세요!" 나에게 그렇게 소리친 메이로나가 허공에 뜬 채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 기 시작했다. 메이로나의 말대로 난 제자리에 선 채 메이로나가 쇼타무브를 사용하길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메이로나의 몸 주변에서 강한 마나 파 장이 방출되었고 그 마나 파장은 날 분자화시켜 버렸다. 즉, 내 몸은 콩가루 가 되어버린 것이다. 흘…… 어쨌든 드라콘답게 몸 쪼개는 것은 가볍게 성공하는군. 문제는 그 다음인데…… 설마 이대로 분열해버리는 건 아니겠지? 메이로나가 제대로 내 몸을 다시 만들어놓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쇼타무브 를 공격형으로 바꾸면 거의 가공할 만한 수준이겠는데? 저번에 내 세계에서 마르크스랑 싸울 때에는 녀석의 심장에 경찰 배지를 텔레포트시켜 저승으로 보냈었는데, 여기서는 이 쇼타무브를 사용해서 적을 완전 분해시킨 다음에 마력을 거두어들이면 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구나! 이거 정말 아주 훌륭 한 공격 마법이 되겠는걸? 뭐, 내가 쇼타무브를 사용하려고 할 때 적이 마나 파장을 느끼고 도망가버리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 잠시 후에 몸의 감각이 돌아와서 눈을 떠보니 난 벌써 구릉 지대에 있는 마 을 입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메이로나가 빙글빙글 웃으며 서 있었다. 역시 전설의 드라콘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것이었다. "대단한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걸요." 내 칭찬에 메이로나는 싱글싱글 웃었다. 어쨌든 난 엄청난 능력을 지닌 메 이로나와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크기는 얼마 안 됐 기 때문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단지 밭에서 농작물을 가꾸고 있는 노인들 몇 명이 보일 뿐이었다. 흠…… 저 할아버지들에게 먹을 거라도 달라고 해야겠군. 근데 순순히 줄라 나? 게다가 지금은 겨울이라 먹을 게 부족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뭐 노인들 이니까 인정을 베풀어서 조금은 주겠지? 헤헤∼ "저기요!" 난 평상시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밭에 있는 노인을 불렀다. 노인이라서 귀 가 잘 안 들릴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한 것이었다. 내가 부르자 베옷을 입고 있던 노인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무슨 일이우?" "저기…… 며칠간 신세 좀 질 수 없을까요? 길을 잃어버려서요." 난 최대한 어리숙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야 노인에게서 동정심을 유 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의 그런 노력에 노인은 반갑게 응해주었 다. "그러시우? 잠깐 기다리구려." 평범하게 생긴 그 노인은 대충 하던 일을 끝내고 밭을 나와 나에게 다가왔 다. 그리고는 내 옆에 서 있는 메이로나를 보더니 인상좋게 웃었다. "허허, 벌써 애인이 있구만 그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도 젊으시네요!" 노인의 말에 메이로나는 즉각 애교를 떨었다. 그렇게 아첨을 하는 것은 내 성격에 맞지 않아서 난 가만히 있었지만, 메이로나의 애교는 확실히 노인에 게 우리들의 인상을 좋게 심어주는데 크게 공헌했다. "자, 길을 잃어서 헤맸을 테니 배가 고프겠구만. 따라오구려." 노인은 우리들을 이끌고 어떤 기와집으로 향했다. 2220년이나 됐는데도 기 와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잠시 후, 기와집 앞마당에 도착한 우리들은 기와집 안에 사람이 노인과 할머니밖에 없음을 알 고 조금 놀랬다. 마치 내 세계에서의 시골처럼 이곳에서도 노인들만이 논밭 을 일구고 있었던 것이다. "어이구, 손님이 오셨구마!" 외양간에서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던 할머니가 우리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사람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난 약간 가슴이 찡 했다. 그만큼 노인들은 여기서 외롭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진심으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잘 왔수. 저기 빈 방이 있으니까 그걸 쓰시구려." 할머니는 사랑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엔 노인들의 친절함에 감사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사랑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메이로나가 날 따라 들어오려는 것 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방을 따로 쓰면 안 될까요?" "응? 와요? 샥시 아니었수?" 할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난 약간 당황한 얼굴을 해보였다. "아니에요. 아직 전 학생인걸요." "아, 그랬수? 하지만 안방하고 사랑방 빼면 불이 안 들어와서 추울틴디……." 엑? 다른 방들은 불이 안 들어온다고라? 하긴…… 사람이 없는데 방마다 불 을 넣을 필요는 없겠지. 후…… 어쩔 수 없이 메이로나하고 같은 방을 써야 겠구만. 쩝…… 기분이 묘해∼ "그럼 같은 방 쓸게요." "그류 그류. 그 방에서 첫날밤 보내도 암말 안 할 거니껜 걱정말구랴." 할머니는 농담처럼 말을 한 뒤에 나머지 여물을 여물통에 넣었다. 그래서 나와 메이로나, 그리고 할아버지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사랑방은 한마디로 썰렁했다. 있는 거라곤 옷걸이 두 개, 이불 두 장, 베개 두 개, 수건 두 장 뿐이었다. "너무 썰렁해서 미안하구먼. 그렇지만 불 넣으면 따뜻하니까 걱정말구려." "괜찮아요. 전 류드나르님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요!" 메이로나가 그런 닭살 돋는 말을 했을 때에서야 난 아직 노인들에게 내 이 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급히 나와 메이로나의 소개를 했다. "아, 전 보나이 류드나르이고, 이쪽은 메이로나에요. 그냥 편하게 류드, 메 이라고 부르세요." "음…… 알겠구먼. 그럼 곧 불 넣을 테니까 여기 있구려." "예."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불을 넣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가 방밖으로 나간 후 난 자리에 앉았고, 메이로나도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이렇게 아 무도 없는 방에서 메이로나와 단 둘이 있는 것이 나에게는 꽤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난 메이로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너 요리할 줄 아냐?" 내가 항상 이름은 안 부르고 '너'라고 하는데도 메이로나는 전혀 불쾌해하 지 않고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할 줄 알아요." "그래? 그럼 할머니 좀 도와드려." "그렇네요. 알았어요." 내 말에 메이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해서 가재도구 가 없어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사랑방 안에는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아…… 도대체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할까? 우선 교장 할배라도 찾아내야 돌아가던가 말던가 하지…… 에휴…… 이놈의 교장 할배는 어디로 사라져버 린 거야? "……!" 그렇게 교장 할배를 욕하던 나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분명 히 한국이 아닌데도 기와집이 있는 게 이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즉시 사 랑방 밖으로 나가서 부엌에서 열심히 불을 지피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갔 다. [번 호] 9486 / 9494 [등록일] 2000년 06월 29일 00:04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21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2-...(2) ─────────────────────────────────────── "할아버지,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응? 물어보구려." 할아버지는 불 피우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난 기와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음을 던졌다. "여기는 레오콜이 아니잖아요. 근데 왜 이런 기와집이 있는 거예요? 혹시 레오콜에서 살다 이리로 오신 건가요?" "아, 그렇다우. 20년 전에 일루 왔지. 그 전엔 방사능이다 뭐다 해서 오지 못하게 했다우." "왜 이리로 오셨어요?" 이어지는 내 질문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야 농사 지을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 그렇다우. 여기는 방사능이 있다면서 왠만한 사람들은 오려하지 않으니까 말이우." 흠…… 그렇겠군.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런 데 오는 걸 꺼려하겠지. 결국 노 인들에게 이 땅을 헐값으로 팔아버린 것 같구만. 그래서 이 부근에는 노인들 밖에 없었던 거고. "추운데 들어가 있구려. 곧 점심을 준비할 테니까 말이우." "예. 감사합니다." 본래는 '제가 대신 불 피울게요'라고 말하려다가 난 생전 온돌 장치로 불 때는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냥 그만두었다. 괜히 한다고 했다가 시커 먼 연기만 잔뜩 먹으면 굉장히 쪽팔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불 피우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그래서 난 인사만 하고 다시 사랑방 안으로 들어갔다. 벌러덩! "……." 정말 난 할 일도 없구만. 여기서 얼마나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기 있으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도와줘야 할텐데…… 내가 잘 할 수 있 는 게 있어야 도와주지…… 아…… 내가 언제 요리를 한 적이 있나 농사를 지어본 적이 있나…… 정말 내 무능력함에 분노를 느낀다……. "점심이에요!" 그때 메이로나가 그렇게 말하며 밥상을 들고 사랑방 안으로 들어왔다. 밥상 에는 역시 시골답게 인스턴트 식품은 전혀 눈에 띄지 않고 있는 것이라곤 고 기국하고 밥, 그리고 김치 정도였다. 이런…… 고기국이라…… 할머니가 인심을 썼군. 하지만 이렇게 잘 대접받 으면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운데…… 뭐 어쩔 수 없지. 나중에 교장 할배를 만나게 되면 교장 할배에게 하숙비(?)를 지불하라고 해야겠어. 아니지, 여기 는 어차피 상점 같은 곳도 없으니까 돈보다는 뭔가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선 물 같은 걸 해야겠는데? "어서 드세요." 메이로나는 무슨 조선시대의 여자라도 되는 것처럼 내가 먼저 먹기를 기다 렸다. 그래서 난 먼저 수저와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메이로나도 밥을 먹었다. 흘…… 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군. 이거 할머니가 만든 거야 메이로나가 만든 거야? 하긴 뭐 어때,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실례합니다." 그때 밖에서 어떤 노인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꽤 익숙한 것이 었기 때문에 난 밥 먹는 걸 멈추고 문을 살짝 열어 밖에 있는 사람을 확인해 보았다.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아, 두 소년소녀가 찾아오긴 했는데…… 무슨 일이우?" 그렇게 할아버지와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은 바로 교장 할배였다. 그래서 난 즉시 교장 할배를 불렀다. "교장 선생님!" "엇! 류드?! 여기 있었구나!" 사랑방 앞에 서 있는 날 보고 교장 할배가 반가운 얼굴을 했다. 나와 교장 할배가 서로 아는 사이란 것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잘 됐구먼. 우선 방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시구려."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교장 할배는 할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한 뒤 사랑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가 방안에 메이로나가 있는 것을 보고 흠칫했다. 그리고 메이로나 역시 교장 할배를 보고 흠칫했다. "……?" 얼라리? 무슨 일이냐? 왜 서로 쳐다보자마자 흠칫거리는 거지? 설마…… 둘 이 아는 사이? "넌…… 인간이 아니구나." 교장 할배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메이로나 역시 교장 할배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뭔가를 숨기고 있군요." 그렇게 둘은 잠시 동안 서로를 경계했다. 완전히 날 배제하고 서로 노려보 기만 했기 때문에 난 즉각 끼어들었다. "우선 앉아서 얘기하죠." "흠…… 그러지." 내 말에 교장 할배는 방바닥에 앉았고 난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교장 할배에게 예의 차리기 귀찮았고, 게다가 국이 식으면 맛없기 때문에 밥을 먹 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버릇없는 행동에도 교장 할배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그의 신경은 모두 메이로나에게로 쏠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넌 전설의 드라콘이구나." 교장 할배의 입에서 그런 엄청난 말이 튀어나왔다. 단번에 메이로나의 정체 를 꿰뚫어본 교장 할배 때문에 난 밥 먹다가 체할 뻔했다. "역시…… 당신은……!" 교장 할배의 말에 메이로나가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순간, 교장 할배가 그것 을 제지했다. "후후, 그렇다네. 그나저나 놀랍군. 류드를 주인으로 섬기다니." "상관 말아요. 내 마음이니까." 메이로나는 교장 할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듯 쌀쌀맞게 대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그것을 전혀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이번엔 나에게로 시선을 돌 리며 말했다. "널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 "……." 흘…… 별로 고생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데? 이곳으로 온 것도 날 찾기라서 보다는 메이로나의 기운을 느끼고 온 거 아니야? "네가 그 새에게 당하고 나서 녀석들이 날 노리고 덤벼들었기 때문에 녀석 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 널 찾았다. 하지만 넌 이미 계곡물에 휩쓸려 어디 로 갔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우선 드라콘의 보물이라도 가져 가려고 여기저기 나다녔지." 교장 할배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할머니가 작은 밥상 하나를 들고 와서 교 장 할배에게 건네주었다. 교장 할배는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밥만 먹던 우리들 중에서 먼저 입을 연 사 람은 교장 할배였다. "내일 드라콘의 보물을 가지러 가지 않겠느냐?" 엥? 보물 가지러 가자고? "여기 황금 구슬 하나가 있는데요." 난 가죽 가방에서 황금 구슬을 꺼내어 교장 할배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그 구슬을 만져보지도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 구슬 하나로는 학교 재정을 감당해낼 수 없어. 좀더 많이 필요하다." "그럼 제가 가서 더 가져올게요." 교장 할배의 말을 듣고 메이로나가 그렇게 말했지만 교장 할배는 고개를 내 저었다. "아니, 너무 쉽게 얻은 보물은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없어." "……." 흘…… 어차피 그거나 드라콘에게서 보물을 훔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직 접 돈을 버는 것보다는 그렇게 해서 한번에 돈을 얻으려는 한탕주의 아니냐 고. [번 호] 9487 / 9494 [등록일] 2000년 06월 29일 00:14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20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3- ─────────────────────────────────────── "류드, 너에게는 이미 전설의 드라콘도 있으니 전혀 무서워할 게 없다. 그 러니 내일 바로 보물 사냥을 하러 가자꾸나." "……." 싫은데…… 그냥 빨리 학교로 돌아가면 안될까? 흘…… 교장 할배의 저 표 정을 보니 그런 말을 했다간 죽음이겠군……. "알았어요. 가죠, 뭐." "잘 선택했다." 내가 선택하긴 뭘 선택했다고 그래? 자기가 강압적인 표정을 지었으면서! "그럼 내일을 위해서 오늘 잠이나 자야겠구나. 하도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그러면서 교장 할배는 자리에 드러누웠다. 밥은 어느새 다 먹은 상태였다. 그러나 교장 할배의 이불과 베개는 방에 없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교장 할배 에게 알려주었다. "베개하고 이불이 부족한데요." "신경 쓰지 마라. 베게나 이불 없어도 잠은 충분히 잘 수 있다." 교장 할배는 그렇게 말하며 완전히 큰 대자로 뻗어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점심부터 자는 교장 할배가 한심해 보이긴 했지만 나도 할 일이 없었기 때문 에 밥을 다 먹고 나서 이불 깔고 드러누웠다. 그러자 메이로나가 투정을 부 렸다. "벌써 자려고 그래요? 아직 해가 중천이라구요!" "그럼 뭐해? 할 일이 있어야지." "……." 내 말에 할말이 없는 듯 메이로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방밖으로 나가며 나에게 말했다. "전 할머니 일 도와드릴게요." "맘대로." 드륵- 탁! 메이로나가 방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낮부터 퍼질러 자고 일어나면 기분 정말 더럽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잠을 자는 대신 잠을 자고 있는 교장 할배를 깨웠다. "교장 선생님. 어떻게 메이로나가 전설의 드라콘인 걸 아셨어요?" "……." 어쭈구리…… 대답을 안 하겠다 이거냐? "안 주무시는 거 다 아니까 대답하세요." 내 말에 교장 할배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멋쩍게 웃었다. "허허, 그랬느냐? 읏차!" 그렇게 계속 누워있기가 뭐했는지 교장 할배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나 에게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물었느냐?" "메이로나가 어떻게 전설의 드라콘이라는 걸 아셨는지 궁금하다고 물었습니 다." 조금은 쌀쌀한 내 말에 교장 할배는 허허 하며 웃음으로 때워 넘기려고 했 다. 그러나 교장 할배가 대답 안 한다고 대답을 듣지 않을 내가 아니었다. 난 집요하게 물었다. "어떻게 아셨죠? 전 처음엔 전혀 몰랐다구요. 메이로나에게서는 마나 파장 도 안 느껴졌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아실 수 있었죠?" 내가 계속 집요하게 물어보자 교장 할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 들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로 온 것은 그 메이로나라는 드라콘의 기운 때문이다. 사실, 인 간에게는 드라콘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물론 특별한 사람은 가능하겠지만, 난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도 드라콘의 기운 같은 건 느낄 수 없지." "그럼 어떻게 아셨어요?" "드라콘의 기운은 드라콘만이 느낄 수 있다." 교장 할배는 그렇게 딱 잘라서 말했다. 그래서 난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버렸다. 그 말의 뜻은 교장 할배가 드라콘이라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 만 교장 할배는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채고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난 엄연히 사람이다." "그럼 어떻게 드라콘의 기운을 느끼신다는 겁니까?" 교장 할배가 자꾸 말을 돌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난 약간 화난 어조로 물 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건 나에게 드라콘이 있기 때문이다." "……?" 무슨 헛소리라냐? "즉, 내 몸은 드라콘과 하나가 되어 있다는 소리다. 즉, 난 드라콘과 정신 을 같이 공유하고 그 힘 역시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장 할배의 말을 난 금방 이해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 멍청하게 앉아 얘 기를 정리해보고 나서야 겨우 이해가 갔다. "그럼 드라콘하고 교장 선생님하고 융합됐다는 소리예요?" "거의 그런 셈이다. 하지만 완전한 융합은 아니라서 녀석의 힘을 빌려쓰려 면 녀석의 동의가 있어야 한단다." 교장 할배는 그 점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난 잠시 교장 할배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문득 아레드라콘과 싸울 때 교장 할배에게서 느꼈 던 이질감이 혹시 교장 할배와 융합된 드라콘의 것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저기, 봄 소풍 갔을 때 아레드라콘이 웨이사 랜드를 부수고 있었잖아요?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나타나서 아레드라콘을 없앴구요. 그때 교장 선생님과 융합된 그 드라콘의 힘을 사용하신 건가요?"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단다. 아무리 내가 10써클의 마법사라고는 해도 강한 마력을 지닌 아 레드라콘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녀석 의 힘을 빌렸지. 이 녀석은 드라콘과 싸울 때에는 항상 힘을 빌려주기 때문 에 가볍게 승리할 수 있었던 거란다." 흠…… 그렇군. 그럼 질문이 더 많이 생기는걸? 물어보자, 물어봐! "그럼 메이로나가 교장 선생님을 이상하게 쳐다본 것은 그 드라콘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인가요?" "그렇다." "그 드라콘하고는 어떻게 융합하시게 됐어요?" "……." 그 다음 이어진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별로 대답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계속 질문하면 대답해줄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정중하게 물었다. "말씀해 주세요." "흠……." 교장 할배는 잠시 동안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 말해줘도 괜찮겠 지란 얼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드라콘의 보물을 얻기 위해 드라콘과 싸웠을 때였다. 그 당 시의 난 드라콘에게 처절하게 당해서 보물은 커녕 겨우 목숨만 부지해서 빠 져 나왔지. 그렇게 정신없이 도망치는 중에 어떤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봉인 되어있던 녀석을 찾아낸 것이다." 얼라리? 이거 꼭 나와 메이로나의 얘기 같잖아? "녀석은 본래 드라콘 중에서 막강하다고 알려진 시로브드라콘인데, 같은 드 라콘을 학살했기 때문에 드라콘들에 의해 그곳에 봉인되어 있었던 거였다." 흘…… 메이로나의 경우와 상당히 유사하구만. 단지 메이로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 때문에 수컷 드라콘이 서로 싸우니까 부모에 의해 봉인 되었다는 것이 다를 뿐이군. 그나저나 시로브드라콘은 블랙드래곤하고 같은 뜻인데…… 여기서는 시로브드라콘이 최강인가? "그런데 드라콘 중에서 가장 강한 드라콘은 어떤 종류예요?" 중간에서 내가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질문을 던졌지만 교장 할배는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시로브드라콘하고 고나드라콘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나드라콘? 골드드래곤이라는 뜻인데? "아마 전설의 드라콘인 메이로나는 고나드라콘일 거다. 시로브드라콘하고 고나드라콘 중에서 누가 더 강한 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시 로브드라콘쪽이 전투력이 더 탁월하고 고나드라콘쪽이 특수능력은 더 뛰어나 다고 한단다." 흠…… 그렇군. 그럼 시로브드라콘하고 고나드라콘하고 붙으면 누가 이길까? 괜히 궁금해지네? "그럼 얘기를 계속해서……" 교장 할배는 내가 더 이상 묻지 않고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녀석은 드라콘에게 봉인을 당했기 때문에 드라콘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단 다. 그래서 난 녀석의 봉인을 풀었다. 어떻게 풀었는지는 묻지 마라. 나도 내가 어떻게 봉인을 풀었는지 모르니까." 흘…… 결국 우연으로 봉인을 풀었다는 소리잖아? "어쨌든 봉인을 풀었어도 녀석의 육체는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 에 녀석은 내 몸과 융합해 버렸다. 그때에는 나도 많이 부상당해서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이라 녀석과 융합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녀석의 힘이 라면 충분히 드라콘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맞았다. 녀석과 융합하자마자 몸의 상처가 나았고, 난 날 죽 음으로 몰고 갔던 그 드라콘을 별 어려움 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그래서 난 녀석의 힘에 반했고, 결국 이렇게 녀석과 계속 융합한 채로 살아가고 있 는 거다." 얼레? 그 시로브드라콘은 정신만 봉인됐었던 건가? 그거 참 사악한 봉인이 구만. 메이로나는 육체와 정신 모두 봉인된 상태였는데. "그런데 그 시로브드라콘과 융합한 채로 살면 뭔가 불편하지 않아요?"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당연한 것을 물었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이다. 상당히 불편하지. 우선 내 생각을 녀석이 모두 알 수 있는데다 가, 내 머리 속에 내가 아닌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도 꽤 불쾌한 거란다. 물론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말이다." 흘…… 그건 꼭 기억의 혼재 같잖아? 하여간 내 세계와 이곳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이 많다니까. 역시 끈이란 것이 존재하는 모양이야. 그나저나…… 언제 끈을 모으지? 도대체 끈을 얼마나 모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해 죽 겠어! "자, 이제 궁금증은 다 풀렸느냐?" 교장 할배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난 아직 궁금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왜 그 시로브드라콘은 다른 드라콘들을 학살한 거예요?" "허허, 그게 궁금하느냐?" 교장 할배는 나에게 의표를 찔린 듯 허허 웃더니 이내 내 질문에 대한 대답 을 했다. "녀석은 메이로나와 동시대에 살았단다. 즉, 녀석도 메이로나의 매력에 사 로잡힌 수컷 드라콘이었지. 그래서 메이로나에게 구애하는 다른 수컷 드라콘 들을 학살해버린 거란다." 엑? 그 시로브드라콘이 메이로나를 좋아했다구? 헐…… 전혀 예상 밖이었어. 하여간 다른 수컷 드라콘들을 학살하다니…… 역시 이름대로 상당히 거친 드 라콘이구만. "자, 그럼 질문은 모두 끝났겠지? 난 이제 자야하니까 더 이상 말 걸지 말 거라." 교장 할배는 그렇게 말한 뒤에 다시 방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나도 특별히 더 이상 물어볼 말은 없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가 자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단지 낮잠 자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사랑방 밖으로 산 책이라 하러 나갔다. 내일이면 이 마을을 떠나 드라콘의 보물을 훔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마을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끄응…… 더 자고 싶어…… 날 내버려 둬……. "어서 일어나라니까요! 안 일어나면 밥 안 줄 거예요?!" 흘…… 메이로나 녀석…… 꼭 내 아내라도 된 것처럼 말하는구만. 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귀찮다니까. 오늘 보물 사냥하러 가야한다고 어 제 교장 할배가 일찍 나가자고 해서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이 비극……! "지금 몇 시야?" "여기 시계는 없지만 제 느낌상으로는 벌써 아침 6시예요." "……." 아침 6시라는 말에 난 자리에서 꼼지락거리며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았다. 밖은 아직도 꽤 어두웠다. 밖으로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에 난 교장 할배에게 좀 늦게 나가자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교장 할배 는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었다. "……." 윽…… 아침 일찍 나가자던 인간이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다니…… 근데 메 이로나는 왜 날 깨운 거야? 나 졸려 죽겠단 말이야……! "아침은 먹고 나가야죠. 지금 아침 준비할 테니까 씻고 있어요." 메이로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며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이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찍 일어나서 분주히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한껏 기지개를 켠 후 세수하러 밖으로 나갔다. 끼익 끼익- 쏴아아- 마당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세숫대야로 물을 받았다. 그러다가 물이 굉장 히 차갑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떠올렸다. 이곳은 현대문명과 꽤 동떨어진 곳 이기 때문에 보일러도 없어서 뜨거운 물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이런…… 어떻게 씻지? 여름이라면 몰라도 이 추운 겨울에 찬물로 세수를 해야 하다니…… 게다가 찬물로 머리를 감으면…… 으으으……! "어이구, 잠깐만 기다리구랴. 물 데우고 있응께." 내가 어기적거리며 찬물로 세수를 하려고 했을 때 할머니가 오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따뜻한 물이 마련될 때까지 또 놀아야 했다. 그러나 교장 할배가 느릿느릿 일어났을 때에는 따뜻한 물이 마련되어 세수를 할 수 있었 다. [번 호] 9488 / 9494 [등록일] 2000년 06월 29일 00:15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19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6장:보물 사냥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165 게 시 일 :00/06/28 16:16:37 수 정 일 : 크 기 :10.0K 조회횟수 :243 쩝쩝- 대강대강 씻고 나서 바로 밥을 먹었다. 어제 교장 할배가 할아버지와 할머 니에게 오늘 아침 일찍 떠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평소보 다 약간 일찍 일어나 이렇게 우리가 떠날 준비를 해준 것이었다. 하여간 이곳은 생활하는데 많이 불편하겠어. 전기하고 수돗물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 외에는 현대문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나저 나 이런 곳에 사는데 세금을 걷어갈까? 뭐 전기세하고 수도세는 당연히 걷겠 지만…… 소득이 없으니까 세금은 안 걷겠구나. "잘 먹었습니다." 밥을 모두 먹고 우리들은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게 뭔가 도움되는 선물을 하고 싶었지만 내 능력상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그래서 감사함이 담긴 작별 인사를 진심으로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두 분 다 건강히 오래 사세요." "잘 가시구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들은 다시 방사능 오염 지역으로 향했다. 사실 드라콘의 보물을 훔치러 가는 것이라곤 하지만 거의 드라콘과 의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셋 중에서 가장 실력이 딸리 는 난 전투 시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오히려 짐만 될 수도 있었지만 교장 할배가 날 데려와 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물 사냥에 참가해야했다. "그런데 드라콘이 있는 곳은 알아내신 거예요?"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다. 널 찾는 동안 한 녀석을 발견했지. 목표는 그 파블드라콘이다." 파블드라콘…… 블루드래곤이라는 소리인데…… 녀석의 무기는 뭐지? "그 파블드라콘은 주로 어떤 공격을 해요?" "그거야 전격(電擊) 마법을 사용한다. 쉽게 말해 번개 공격을 한다는 거다." 흘…… 전격 마법이라…… 잘못하면 전기 통구이가 되겠는걸? 녀석이 그런 공격을 하면 난 어떻게 대응해야하지? 아, 저번에 마르크스가 용린검기인가 뭔가로 자기 몸을 완전히 둘러싸서 정전기 차폐를 일으켰었지! 그래서 내 라 이트닝 볼트를 맞고도 전류가 모두 땅속으로 방전돼서 멀쩡했었고. 하지만… … 용린검기는 전류가 잘 흐르는 도체라서 정전기 차폐가 가능하지만 바리어 는 도체가 아닌데…… 이런……!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제가 반드시 지킬 테니까요." 메이로나가 날 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듣고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날 뿐이었다. "왜 자꾸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내 생각을 읽고 메이로나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일부러 생각과 말을 하나로 일치시켰다. "미안. 그럼 너한테 맡기도록 하지." "알았어요." 그제서야 활짝 웃는 메이로나. 비록 마음속으로 메이로나가 날 지켜준다면 괜찮겠구나라는 생각을 억지로 떠올리고 있었지만, 진짜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 혹은 친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옆에서 구경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박사박- 터벅터벅- 우리 셋은 계속해서 걸었다. 그러나 방사능 오염 지역에 들어가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난 교장 할배에게 제안을 했다. "교장 선생님. 그 드라콘이 있는 위치를 메이로나에게 가르쳐주고 나서 단 번에 순간 이동하는 게 어때요?" 난 당연히 교장 할배가 승낙할 줄 알았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예상 외의 말을 했다. "그렇게는 못한다. 녀석이 그렇게 하면 죽인다고 하니까." 얼레? 녀석? 교장 할배와 융합된 그 시로브드라콘 말인가? 그 녀석이 왜 그 렇게 못하게 하는 거지? 아! 녀석은 메이로나를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그 럼 메이로나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어서 단번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건가? 흘…… 귀찮게 됐군. 그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들은 몇 시간씩 걸려 겨우 교장 할배 가 발견했다는 드라콘의 레어에 들어섰다. 그러나 레어라고 해봤자 동굴뿐이 었기 때문에 이곳에 드라콘이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오직 교장 할배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 드라콘 있는 거 확실하죠?" "물론이다. 녀석도 여기에 드라콘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나도 봤으니 확실 해."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한 교장 할배는 나와 메이로나에게 당부했다. "그 파블드라콘이 언제 공격을 할지 모르니까 항상 한 써클수의 마법을 사 용할 준비를 해라. 가능하면 녀석이 우리의 마나 파장을 느끼지 못하도록 해 야한다." "예." "네." 나와 메이로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교장 할배는 파블드라콘의 레어 깊숙 이 들어갔다. 우리 둘은 교장 할배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 우리 셋은 모두 최대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전진했다. 동굴은 생각보다 깊은 편이었다. 그래서 혹시 이건 터널처럼 양쪽이 뚫린 동굴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곧 드러난 동굴의 끝이 그런 내 생각을 모두 깨끗이 날려버려 주었다. "흠…… 녀석은 잠시 나간 모양이군." 교장 할배의 말에 난 동굴을 살펴보았다.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는 보물이 있을 만한 곳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에게 물 었다. "아무 것도 없잖아요? 여기가 정말 드라콘의 동굴 맞아요?" "지금 날 의심하는 거냐?" 교장 할배가 눈을 날카롭게 하면서 날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도 지지 않고 교장 할배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우리 둘이 서로를 노려보자 메이로나가 중 개인 역할을 했다. "둘 다 그만하세요. 여기는 확실히 파블드라콘의 동굴이 맞으니까요." 얼라? 그걸 어떻게 알아? 아…… 메이로나는 드라콘이지…… 흑흑…… 내가 틀리다니……! "그거 봐라! 나이든 사람의 경험을 우습게 보지 말란 말이다." "……." 알았다구. 다음부터 우대해줄 테니까 빨리 보물이나 찾아내시지? "흠…… 아무래도 마법으로 보물 있는 곳을 숨긴 것 같군. 어디 있지?" 교장 할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동굴을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런 교장 할배 가 답답했는지 메이로나가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순간, 교장 할배는 메이로나 쪽으로 고개를 세차게 돌리고는 말했다. "아, 가만히 있어라! 이건 나하고 류드의 일이니까 제 삼자는 빠져." 교장 할배의 말투는 평상시보다 상당히 거칠었다. 역시 상대가 드라콘이기 때문에 별로 말을 부드럽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말투 에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메이로나는 말투 때문에 화가 났다기보 다는 그 말의 내용 때문에 화를 냈다. "제 삼자라구요? 전 류드나르님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구요! 어떻게 그런 심 한 말을!" 허걱…… 내 아내가 될 사람이라는 게 더 심한 말이야……. "허, 그런가? 그럼 미안하군. 하지만 이 여행은 애초에 나와 류드의 능력으 로 하려고 했던 일이었으니까 가능하면 참견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네." "…… 알았어요." 교장 할배의 말에 메이로나는 조금 불평 어린 표정이었지만 순순히 따랐다. 메이로나가 아무 말 없이 동굴 한 쪽에 서자 교장 할배가 나에게 말했다. "너도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보물을 찾아봐라. 이 동굴 어딘가에 반드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다. 드라콘의 습성 상 그것은 확실해." 흘…… 상당히 자신하는 말투로구만. 뭐 여기 드라콘은 보물을 좋아하니까 자기 동굴 안에다가 당연히 보물을 숨겨놓았겠지. 자, 그럼 찾아볼까? 스슥- 난 동굴 벽을 손으로 일일이 쓸어가면서 진짜 동굴 벽인지 허상인지를 확인 해보았다. 메이로나처럼 가짜 동굴 벽을 만들어 그 속에 보물을 숨겨놓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 동굴 벽은 모두 진짜였던 것이다. 윽…… 틀렸다…… 그럼 어디다 숨긴 거지? 설마 개처럼 땅을 파서 그 속에 다 숨긴 거 아니야? 에…… 설마…… 드라콘이 그런 개 같은 짓을 할려고… … 아니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봐야 해! "저기요, 혹시 땅 속에다 숨기지 않았을까요?" 내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메이로나가 풋 하고 웃었고 교장 할배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라콘이 땅 속에 보물을 묻어? 그럼 보물의 빛이 바래지는데 넌 그러고 싶겠냐?" "……." 우씨…… 무시당했다…… 모를 수도 있는 거지 그걸 가지고 쪽을 주다니… … 나중에 처절하게 복수해줄 테니까 두고 보라고! "아……!" 그때 메이로나가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나와 교장 할배가 놀라 쳐다보자 메이로나는 약간 긴장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파블드라콘이 이리로 오고 있는 것 같아요." "……!" 같은 드라콘인 메이로나의 말이기 때문에 거의 확실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교장 할배는 즉각 공격 준비를 해야했다. 이미 되돌아나가서 동 굴 밖으로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류드, 최대한 적은 지점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해라. 우선 내가 먼저 시로브드라콘의 힘으로 파블드라콘을 상대해보겠다!" 교장 할배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난 무슨 좋은 마법을 사용할 능력이 없었다. 특히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마력을 지닌 드라콘을 상대로는 더더욱 왜소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제길…… 도대체 나보고 어떤 마법을 사용하라는 거야? 여기서 카파 보 같 은 걸 썼다간 동굴 전체가 무너질 테고…… 한 지점에 강한 타격을 줄 수 있 는 마법은 파블드라콘이 즐겨 쓴다는 전격 마법 종류나 비아 하사로나 카파 하사로 같은 것 등인데…… 그것들은 내가 펼치면 위력이 형편없어진단 말이 다…… 그걸로 드라콘에게 상처 하나 주지 못한다고! "괜찮아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메이로나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것과 거 의 동시에 동굴 입구 쪽에서 무엇인가가 땅에 떨어진 듯한 강한 충격음이 들 려왔다. 잠시 외출했던 파블드라콘이 동굴 앞에 착지한 것 같았다. "이제 온다……!" 교장 할배는 전에 없이 긴장했다. 좁은 동굴 안에서 싸우는 건 상당히 위험 하기 때문이었다. 마법을 쓰고 나면 다음 마법을 쓸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앞서 사용한 마법 때문에 동굴이 무너지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동 굴에 깔려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기 그런데요, 그 큰 덩치의 드라콘이 이런 좁은 동굴 안으로 어떻게 들 어와요?" 하도 궁금했기 때문에 지금이 위험 상황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난 교장 할 배에게 물었다. 사실 파블드라콘이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가할 리는 없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교장 할배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파블드라콘은 자신의 몸을 어느 정도 축소시키거나 확대시킬 수 있는 능력 이 있다. 대신 메이로나처럼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것은 못해." 교장 할배는 여전히 동굴 입구 쪽을 주시하며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그때 그러한 우리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어떤 굵직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거기 안에 누가 있냐?!'하는 뜻 같았다. "왔다!" 교장 할배의 말에 난 동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우리들 앞에 서 있는 작은 몸집의 파란색 드라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몸을 최대한 줄인 거인 듯했지만 그 축소된 덩치는 거의 2미터 정도나 되었기 때 문에 결코 작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쿠아아! 파블드라콘이 우리를 발견하고 낮게 소리질렀고 그 울음소리는 동굴 내부에 서 메아리치며 시끄럽게 내 귀를 때렸다. 비록 난 드라콘의 언어 같은 것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지금 파블드라콘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머리에서 울리는 일종의 파장으로써 알 수 있었다. 방금 전에 했던 파블드라콘의 말뜻은 '너 희들은 누구냐?'였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복귀(RET,RET 0)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126 / 127 [등록일] 2000년 06월 30일 07:50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1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5-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6장:보물 사냥 -5-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9 16:47:34 수 정 일 : 크 기 : 6.8K 조회횟수 : 312 "우리들은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단지 보물 몇 개를 가지러 왔을 뿐이에요." 그 말을 한 사람은 메이로나였다. 메이로나는 인간의 언어로 말을 했지만 그 말을 파블드라콘이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듣든 말든 메이로나의 말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드라콘에게서 보물을 가지러 온 존재가 적이 아니라는 말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쿠악! 당연히 파블드라콘은 '헛소리마라!'라는 뜻으로 울부짖으며 강한 마나 파장 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비록 아레드라콘 때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강력한 마나 파장이었다. 이제는 싸움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든지 와라! 네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뼈져리게 느끼도록 해주마!" 교장 할배는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파블드라콘에게 소리쳤다. 아 무래도 시로브드라콘의 정신이 순간적으로 드러난 듯 보였다. 어쨌든 교장 할배의 그러한 도발에 파블드라콘이 즉시 마법을 구사했다. 꽈릉! 역시 파블드라콘답게 강력한 번개 공격을 시작했다. 그 번개가 교장 할배만 을 노리면 좋았겠지만 나도 그 공격 범위에 포함되어 버렸기 때문에 속으로 파블드라콘을 마구 욕했다. 빠른 번개 공격을 운동 신경 느린 내가 피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쾅! 강력한 벼락이 동굴 벽과 바닥을 강타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단 하나의 번개도 맞지 않았다. 바리어를 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멀쩡했다. 메이로나가 나 대신 바리어를 쳐서 번개를 막아냈으니까. 쿠아악! 자기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는 우리들, 아니 교장 할배와 메이로나를 보고 파블드라콘은 열 받는 듯 신나게 울어대며 제 2차 공격을 감행했다. 제 2차 공격을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것이었다. 녀석의 몸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마나 파장이 상당히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흥! 네 녀석이 공격하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교장 할배는 마치 자기가 이삼십 대의 청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리치며 먼 저 공격을 가했다. 교장 할배가 선택한 공격 방법은 비아 하사로를 최대한 가늘게 만들어서 빠른 속도로 날리는 것이었다. 피융! 상당히 날카로운 파공성이 아주 짧은 시간 울렸고, 잠시 후 그 공격을 피하 지 못한 파블드라콘이 괴성을 내질렀다. 바늘처럼 가늘어진 비아 하사로가 녀석의 심장 쪽으로 날아가 박혀버린 듯했다. "쳇! 못 뚫었군!" 교장 할배는 평상시와는 사뭇 다른 어조로 중얼거린 후에 다시 공격을 준비 했다. 그러나 이번엔 파블드라콘이 먼저 공격해 들어왔다. 녀석의 공격 방법 은 정말 무식했다.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엄청난 양의 전류를 방전시켜버린 것이다. 콰콰콰콰-! "빌어먹을 녀석!" 교장 할배는 그렇게 욕을 하며 즉시 바리어를 쳤다. 나도 급히 바리어를 치 려고 주문을 외우려 했지만, 메이로나가 대신 바리어를 쳐서 번개 무더기를 막아주었다. 쿠쿠쿠- 하지만 그 누구도 동굴 자체에는 바리어를 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번개에 손 상을 입은 동굴 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블드라콘은 가슴에 비아 하사로를 맞은 고통 때문인지 자기 동굴이 무너지는데도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번개를 방출했다. "이제…… 이제 그만해―!" 그때 메이로나의 외침이 내 고막을 울렸고 곧이어 메이로나의 손에서 뻗어 나간 한줄기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콰앙―! 그 빛에 맞은 파블드라콘은 그대로 나가 떨어졌고 그에 따라 우리에게 쏟아 지던 번개 공격은 멈추어졌다. 그러나 동굴은 이미 타격을 받을대로 받은 상 태였다. 쿠쿠쿠-! "동굴이 무너진다!" 척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을 굳이 입 아프게 말한 교장 할배는 즉시 동굴 입구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메이로나를 데리고 같이 달렸다. 그러나 메이로나의 공격에 직격으로 당한 파블드라콘은 동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어쨌든 우리들은 녀석을 무시하고 있는 힘 껏 밖을 향해 뛰었다. 콰콰콰-! 우리가 동굴을 미처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우리는 동굴 무더기에 그대로 깔려버렸다. 하지만 교장 할배와 메이 로나의 바리어로 인해서 우리들은 그 어떤 부상도 당하지 않았다. 쿠쿠쿠-! "……." 나도 바리어 정도는 칠 수 있으니까 교장 할배와 메이로나를 좀 도와줄까? 음…… 제길…… 그럴 필요는 없겠구만. 둘 다 전혀 지쳐 보이지 않으니까……. "완전히 무너졌군요……."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후 메이로나는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렸다. 드라 콘의 레어가 무너진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동굴보 다는 동굴 속에 갇혀버린 자신을 더 걱정했다. "우선 여기를 빠져나가도록 하지. 파블드라콘도 곧 빠져 나올 테니까." "알았어요." 약간 힘없이 대답한 메이로나는 즉시 바리어 위에 잔뜩 쌓여있는 흙과 바위 무더기를 올려다보며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머 리 위에서 생성된 빛의 덩어리는 동굴의 잔해를 헤치고 하늘 위로 치솟아 올 랐다. 샤라락-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들려오며 내 몸은 허공 위로 떠올랐다. 메이로나가 동굴 잔해를 날려버리자마자 교장 할배가 마법을 사용하여 우리들을 모두 허 공에 떠오르게 한 것이었다. 그렇게 메이로나와 교장 할배만의 힘으로 우리 들은 안전하게 무너진 동굴 밖으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후…… 파블드라콘 녀석, 더럽게 발광하는구만." 교장 할배가 무너진 동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메이로나도 잠시 거의 반 정도가 무너진 산을 바라보다가 교장 할배에게 물었다. "근데 그 파블드라콘은 어디다가 보물을 숨겼을까요?" "음…… 분명히 동굴 안일 거야. 아마 무슨 기관 장치를 이용해서 동굴 속 에 숨겨놓았겠지. 어쩌면 전기 기관을 만들었을지도 몰라. 녀석은 전격 마법 을 사용하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교장 할배와 메이로나는 서로 그렇게 의견을 나누었지만 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완벽히 둘에게서 소외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 드라콘 에 대한 것은 하나도 알지 못하고, 드라콘에 대항할만한 힘도 없다는 것이 나 자신을 상당히 좌절시키고 있었다. 쿠아아아―! 그때 무너진 동굴 사이로 무엇인가 거대한 물체가 괴성과 함께 몸을 일으켰 다. 그것은 바로 파블드라콘의 원래 모습이었다. 키가 거의 10미터 정도에 육박하는 거대한 모습. 저번에 보았던 아레드라콘하고는 몸 색깔이 다를 뿐 모습은 거의 똑같은 배불뚝이 도마뱀이었다. "후후! 이제 본격적으로 싸워야겠군!" 그렇게 말하는 교장 할배의 얼굴로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떠오르고 있었다. 역시 드라콘과 싸울 때에는 시로브드라콘의 정신이 표출되는 것 같았다. 어 쨌든 가슴 부위에 상처를 입고 자기 집까지 무너져서 분노에 이성을 잃은 파 블드라콘은 연신 괴성을 질러대며 우리를 향해 곧장 번개 공격을 가했다. "윽!" 분명히 번개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난 피할 수가 없었다. 빛의 속 도로 날아오는 번개를 내가 피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난 전혀 다치지 않았다. 메이로나가 안전하게 바리어로 날 지켜주고 있었으 니까. "보물만 주면 살려주려고 했더니! 이제 죽여주마!"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며 교장 할배가 하늘 위로 날아올라 거 대한 카파 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곧장 그 불의 공을 파블드라콘에게 던졌다. 콰아아앙―! 강한 폭발이 일대를 휩쓸었다. 인간이 10써클의 마력을 가지고 카파 보를 만들어 날린다고 해도 이 정도의 폭발은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 지만 그런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파블드라콘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쿠아악! 군데군데 화상을 입은 파블드라콘은 더욱 미쳐 날뛰며 하늘 위에 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번개 공격을 가했다. 녀석은 번개 공격밖에 할 줄 아는 게 없 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만큼 다양한 공격 방법을 가진 교장 할배가 유리하 다는 뜻이기도 했다. [번 호] 127 / 127 [등록일] 2000년 06월 30일 07:51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11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6장: 보물사냥 -6-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6장:보물 사냥 -6- 총 Page : 2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6/29 16:47:57 수 정 일 : 크 기 : 7.8K 조회횟수 : 287 "그런 막무가내식 공격은 안 통해!" 파블드라콘의 번개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교장 할배는 수십 개의 비아 하사 로를 형성하여 바늘처럼 만든 뒤 파블드라콘에게 날려보냈다. 그 비아 하사 로가 날아가는 속도는 번개 못지 않게 빨랐기 때문에 파블드라콘은 그것을 단 하나도 피하지 못했다. 꾸아아아―!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교장 할배의 비아 하사로에 격중당해 파블드라콘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 이번엔 메이로나가 공격을 감행 했다. "자기 집을 부수어 버리는 드라콘은 죽어버렷!" 메이로나의 손에서 한줄기의 빛이 뻗어나갔다. 그리고 그 빛은 정확히 비틀 대는 파블드라콘의 심장을 가격했다. 꾸악! 파블드라콘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메이로나의 정확한 공격 한 방에 파블드라콘이 저승으로 떠난 것이었다. "역시 고나드라콘이군!" 파블드라콘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음을 확인한 교장 할배가 메이로나에게 다 가가 칭찬을 했다. 그러나 메이로나는 전혀 기뻐하는 얼굴을 하지 않았다. "흥! 자기 집을 부수는 드라콘은 살아있을 가치도 없어요." "허허, 그런가. 그나저나 어서 보물이나 찾도록 하지. 동굴이 완전히 무너 졌으니까 보물은 더 찾기 쉬울 거야." 그렇게 말한 교장 할배는 곧장 무너진 동굴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멍청하게 멀뚱멀뚱 서 있는 날 보고는 소리쳤다. "빨리 따라오너라!" "……." 흘…… 난 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걸일까? 내가 있어서 뭐하지?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지? 교장 할배와 메이로나 둘이면 충분한데 난 왜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냔 말이야!!! "류드나르님……!" 내 분노를 읽은 메이로나가 두려운 얼굴로 날 불렀다. 그러한 메이로나의 얼굴을 보니 차마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고 아무 말 없이 교장 할배의 뒤를 따르기만 했다. "후, 우선 이 잔해를 치워야 할 것 같군." 완전히 무너져내려 어디가 동굴이 있었던 곳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려서 교 장 할배는 잠시 난감해했다. 그러다가 메이로나에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 다. "마법으로 이 잔해를 제거해주게. 지금 내 몸 속에 있는 녀석은 그런 쓸데 없는 일에 자기 힘을 소비하기 싫다고 하니까 말이야." "알았어요." 교장 할배의 부탁에 메이로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굴이 있었던 것 같은 위치에 빛의 비[光雨]가 쏟아져 내렸고 그 광우를 맞은 바위와 흙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 지기 시작했다. "호…… 정말 엄청난 마법이야!" 교장 할배는 메이로나의 마법에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나 역시 그건 마찬 가지였지만, 교장 할배의 감탄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교장 할배는 메이로나 보다 전투 능력이 더 탁월하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감탄하고 있었으나, 난 모든 면에서 메이로나보다 뒤쳐진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가 동굴이 있었던 자리 같구만!" 난 전혀 구별할 수 없었지만 노련한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어떤 한 지점 을 향해 걸어갔다. 나와 메이로나도 교장 할배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교장 할배의 말대로 그 지점이 정확히 동굴의 가장 안쪽임을 알게 되었다. 동굴이 무너져 내려서 그 부근에 보석 하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이제 이 잔해를 조심스럽게 들춰내라. 보석에 손상이 가면 안 되니 까." "네!" 메이로나도 역시 드라콘이기 때문인지 번쩍번쩍 빛나는 보물을 보자 눈을 까뒤집고 열심히 잔해를 들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전혀 그럴 마음이 생기 지 않았다. 둘이서 척척 보물을 찾는 모습을 보니 감히 내가 도와줄 수 없었 던 것이다. "호호호!" "허허허!" 보물을 찾을 때마다 둘은 그렇게 웃어댔다. 그러나 난 웃을 기분이 들지 않 았다. 나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보물을 얻는다는 목적만을 달성 했기 때문에 전혀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흠…… 이제 더 이상은 없는 것 같구만." 상당한 양의 보물을 찾아낸 교장 할배는 보물이 좀더 없나 둘러보다가 그렇 게 말했다. 메이로나 역시 더 이상의 보물은 없다는 말에 동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저 멍청하게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보물들을 어떻게 가지고 가죠?" 메이로나의 걱정 어린 물음에 교장 할배는 그제서야 무엇인가를 떠올렸는지 이마를 탁 쳤다. "이런! 비행기 안에 마대자루 여러 개가 있어서 그걸 먼저 가져왔어야 하는 건데! 내가 벌써 늙은 모양이구만!" 그러더니 메이로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와 류드가 타고 온 경비행기의 위치를 아나?" "네, 알아요." "그거 잘됐군. 그럼 그 경비행기 안에서 마대자루 몇 개 가져오지 않겠나?" 그러한 교장 할배의 제안에 메이로나는 즉각 찬성했다.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한 메이로나가 즉시 쇼타무브를 사용하여 단번에 경 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그래서 파블드라콘이 쓰러진 바로 옆 에는 보물을 잔뜩 모아놓고 있는 교장 할배와 아무 할 일없이 멍청히 서 있 는 나만이 있게 되었다. "허허, 류드. 이렇게 많은 보물은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놀랄 것이다. 하지 만 이건 내가 모으려는 양의 조족지혈(鳥足之血)이란다. 학교 재정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이것 이상으로 모아야해." "……." 교장 할배는 날 대상으로 그런 말을 했지만 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러자 교장 할배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왜 그러느냐? 이런 방법으로 보물을 모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 이미 불법을 자주 경험한 내가 그 정도에 양심의 가책을 받을 리가 없지… … 뭐 드라콘 녀석들도 자기 멋대로 어디선가 보물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 르니까 꼭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도 없겠군. 아니, 그것보다는 법적으로 드라콘의 보물을 훔치면 위법이라는 조항도 없잖아. 그러니까 그런 일로 양 심의 가책을 받을 리가 없다고. 내 기분이 나쁜 건……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나 자신 때문일 뿐……. "류드답지 않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구나. 무슨 일이냐?" 교장 할배는 정말로 내가 걱정되는지 그렇게 물어왔다. 그래서 난 지금의 내 기분을 교장 할배에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나만 더 비참해질 것 같아서 다른 것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이 파블드라콘의 시체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허허, 그것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냐?" "……." 흘…… 내가 그런 것 때문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것 같냐? 하여간 어떻 게 보면 교장 할배도 단순의 극을 치달린다니까. "이런 시체는 그냥 놔두면 동물들이 알아서 다 뜯어먹는다. 그러니까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야." 교장 할배가 그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메이로나가 마대자루 세 개를 들고 내 옆에 나타났다. 역시 아주 간단하게 순간 이동을 하는 메이로나의 능력에 난 또 묘한 감정을 느껴야했다. "여기 자루 가져왔어요!" "허허! 역시 빠르군. 좋아, 그럼 이제 자루에다 보물을 꽉꽉 채워 넣자꾸나!" 그렇게 교장 할배와 메이로나는 신나게 자루에다 보물을 채워 넣기 시작했 다. 이번에도 역시 난 구경만 했다. 그러다가 구경하기도 지루해서 널브러져 죽어있는 파블드라콘에게로 다가갔다. 흘…… 넌 왜 드라콘으로 태어나서 이런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했냐…… 그 리고 난 왜 이렇게 태어나서 지금 여기 있는 걸까…… 적어도 환타지 세계에 서는 난 강한 편에 속했었는데…… 여기서는 난 평범한 인간일 뿐이야…… 내가 살던 세계에서와 같이…… 난 별 볼일 없는 녀석이라구……. "자, 오늘은 이걸로 그만하자꾸나. 내일은 장소를 바꾸어서 보물 사냥을 할 거니까 긴장을 늦추지 마라!" 교장 할배는 마대자루 하나를 완전히 채운 보물 자루를 들고 나와 메이로나 에게 소리쳤다. 메이로나는 교장 할배의 말에 좋아라고 대답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근데 경비행기 있는 곳까지 어떻게 가실 건가요?" 내가 그렇게 묻자 메이로나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당연히 제가 쇼타무브로 단번에 가도록 할 거예요." "……." 당연한 걸 질문한 셈이 되어버렸군……. "자, 그럼 갑니다!" 메이로나가 나와 교장 할배를 보며 소리쳤고, 잠시 후에 우리들은 단번에 경비행기가 얌전히 착륙해 있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날은 그 경비행기 안에서 잠을 잤다.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자기에는 상당히 불편하 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만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잠자는 불편함보다 훨씬 더 불편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런 불편한 마음을 안은 채 지내야 한다고 생 각하니 앞날이 캄캄해왔던 것이다. ======================================================================= 이것으로 7권 연재를 끝냅니당... 한권 분량이 제대로 되는지 모르겠군염... 요즘 들어서 분량 제대로 맞추기가 잘 안 되기 땜시...ㅡㅡ; 그리고 일주일 후에 7권 연재 삭제함당... 8권은 언제 연재 시작할지 장담 못함...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74 / 75 [등록일] 2000년 07월 10일 11:18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7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7장: 봉인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7장:봉인 -1-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0 08:39:09 수 정 일 : 크 기 : 7.0K 조회횟수 : 31 <제 27 장> 봉인 쿠콰콰쾅―! 하늘 위로 엄청난 빛의 비[光雨]가 쏟아지면서 무슨 미사일 공격을 연상시 키는 폭발을 일으켰다. 그 광우의 정체는 당연히 메이로나의 마법이었다. 이 번에 싸운 드라콘은 강한 산성 위액을 찍찍 내뱉는 그로드라콘, 즉 그린드래 곤이었는데 메이로나의 광우에 완전 피떡이 되어 쓰러져버렸다. "호호호! 더럽게 위액이나 토해내니까 그런 비참한 꼴을 당하는 거야!" 죽은 그로드라콘을 실컷 놀린 메이로나는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날 돌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번에도 승리!" "……." 난 그냥 입을 다물고 서 있기만 했다. 내가 메이로나를 칭찬하지 않아도 교 장 할배가 다 알아서 그녀를 칭찬해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긴 했 지만, 가장 큰 이유는 메이로나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결코 생각으로 떠올리지는 않고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다. "역시 고나드라콘이구만! 이제 보물을 챙기자!" 교장 할배는 기쁜 얼굴로 그로드라콘의 보물을 바쁘게 챙기기 시작했다. 메 이로나 역시 보물에 실성한 듯 열심히 보물을 모았다. 그리고 난 이곳에 도 착하고 나서 서 있었던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푸르르릉-! 경비행기 엔진 소리와 함께 경비행기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경비행기 조종 은 당연히 교장 할배가 하고 있었고, 난 헬멧도 안 쓰고 그냥 경비행기 안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메이로나는 내 옆에 앉아 지금까지 획득한 보물 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환하게 웃었다. "너무 예뻐∼!" "……." "류드나르님! 어때요? 저한테 잘 어울려요?" 보물을 살펴보던 메이로나가 진주 목걸이 하나를 자기 목에 걸고 나에게 물 었다. 드라콘의 보물 중 상당수가 가공되어 있는 것이라 놀랍긴 했지만 지금 의 나에게는 그런 놀라운 것들도 아무런 궁금증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 예쁘네." 잠시 메이로나를 쳐다보고서 내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 말은 솔직히 내 가 느낀 그대로를 얘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메이로나는 기뻐했다. "정말요? 기뻐요!" "……." 메이로나가 기뻐서 활짝 웃는 모습을 잠시 보던 나는 다시 시선을 창 밖으 로 돌렸다. 창 밖으로는 넓은 숲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숲의 모습만 본다면 그 누구도 이 지역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곳이란 걸 알지 못할 정도였다. "……."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일 부러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가 생각을 하면 바로 메이로나가 알아 차리기 때문에 그녀를 걱정시키지 않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 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있다고 할 수 있었 다. "메이로나! 이 근방에 드라콘이 있느냐 없느냐?" 경비행기 조종 중에 교장 할배가 메이로나에게 물었다. 그런 교장 할배의 물음에 메이로나는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시킨 후에 대답했다. "있어요! 이 기운으로 봐서는 예노드라콘일 것 같아요." 예노드라콘…… 옐로우드래곤이던가…… 녀석의 공격 무기는 뭐지……? "고나드라콘과 마찬가지로 빛을 이용한 공격을 해요." 내 마음속에 떠오른 질문을 읽고 메이로나가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사실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것이었지만 내가 궁금증을 떠올려서 메 이로나가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재차 물어야했다. "그럼 고나드라콘하고 예노드라콘의 힘은 대등하다는 거야?" "아니에요. 예노드라콘은 단지 빛의 눈부심을 이용할 뿐이에요. 저처럼 그 빛에 어떤 에너지를 실을 수가 없어요." "그럼 상대하기 쉽겠구나." "네. 드라콘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 그 말을 끝으로 난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내가 오랜만에 질문해서 기분이 좋아진 메이로나는 계속 싱글거렸다. 그리고 그런 메이로나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난 지금의 내 감정을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버렸다. "이런! 비행기를 내릴 만한 곳이 없군!" 한참 동안 숲 위를 빙글빙글 돌던 교장 할배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자 메이로나가 즉시 대안을 내놓았다. "제가 마법으로 비행기를 내려놓을게요. 우선 시동을 모두 끄세요." "좋아, 메이로나만 믿겠네!" 교장 할배는 아무런 반박도 가하지 않고 바로 경비행기의 시동을 꺼버렸다. 그러자 당연히 경비행기는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이로나가 시 동이 꺼지자마자 바로 마법을 사용하여 경비행기를 숲 안쪽에다 순간 이동시 켰기 때문에 경비행기가 추락해서 박살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단지 숲 안쪽에 내렸기 때문에 나무 수십 그루가 날아가 버렸을 뿐이었다. "어때요? 비행기 동체에 바리어를 치고 쇼타무브를 써서 안전하게 착지했는 데?" 메이로나의 자랑 어린 말에 교장 할배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훌륭했네! 앞으로도 부탁하네!" "걱정 마세요!" "……." 둘이서 서로 잘하고 있는 모습을 난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바라보기만 했던 것 이다. "그럼 보물 사냥하고 올게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메이로나는 내 뺨에 살짝 키스를 하고 경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교장 할배 도 조종석에서 내린 후 마대자루 하나를 들고 메이로나의 뒤를 따라갔다. 난 그저 경비행기 안에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때가 나에게 자유가 주 어지는 시간이었다. 후…… 기분이 더러워……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거냐고…… 돌아 가고 싶어……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에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 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편이 더 나아……! 콰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섬광이 번쩍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산 뒤쪽에서 메이로나와 교장 할배가 예노드라콘과 열심히 싸 우고 있는 듯했다. 흘…… 그래, 열심히들 싸우라고. 어차피 나하고는 모두 상관없는 일이니까. 뭐 결국 메이로나와 교장 할배가 이길 건 뻔하지. 어떻게 드라콘 한 마리가 드라콘 둘을 당할 수 있냐고. 수적으로도 불리하고 기술적으로도 불리한데 예노드라콘이 어떻게 이기나. 크르르릉……! 그때 경비행기 밖에서 아주 살벌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바싹 긴장했다. 이 울음소리는 마법사 사냥꾼들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릉……! 이런 빌어먹을! 녀석들이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왔지? 이 경비행기 때문인 가? 경비행기가 있는 곳에 사람이 있거나 아니면 먹을 것이 있다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크르르릉……! 계속해서 들려오는 마법사 사냥꾼들의 울음소리. 울음소리의 수로 봐서는 숫자가 꽤 되는 것 같았다. 메이로나도 없고 교장 할배도 없는 상황에서 갑 작스럽게 쳐들어온 마법사 사냥꾼들을 막을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하지? 나 혼자서 녀석들을 막아낸다는 건 무리라구!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나 혼자서 싸워? 내가 마법 하 나를 쓰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달려들텐데! 으아…… 난 죽었다……! 쿵! 쾅쾅! 경비행기 문에서 그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경비행기의 문을 열기 위해 마법사 사냥꾼들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문이 열리 지 않게 문을 걸어 잠그고 문에 등을 기대었다. 혹시라도 녀석들이 몸통 박치 기로 문을 부수고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쾅쾅! 으으으…… 무서워…… 나 혼자서 저 사나운 녀석들을 상대해야 하다니…… 빌어먹을…… 난 이렇게 약한 녀석이었나? 난 왜 메이로나나 교장 할배처럼 그런 힘을 낼 수 없는 거지? 이성을 잃지 않으면 난 이 정도일 뿐인 거야? 한 낱 맹수들에게 벌벌 떨어야 할만큼? 쿵쿵! 드디어 마법사 사냥꾼들이 문을 열기 위해서 몸통 박치기를 하기 시작했다. 등으로 문을 막고 있는 나는 녀석들이 몸으로 부딪쳐 올 때마다의 충격을 고 스란히 받아야 했다. 빌어먹을…… 여기서 녀석들의 밥이 돼서 죽기는 싫다고! 특히 녀석들이 내 몸을 완전 분해해서 뜯어먹을 걸 생각하면…… 으으으…… 싫어…… 이런데 서 녀석들에게 죽기는 싫다구…… 그런 엿 같은 죽음은 당하기 싫단 말이야! ───────────────────────────────── [번 호] 75 / 75 [등록일] 2000년 07월 10일 11:19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6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7장: 봉인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7장:봉인 -2- 총 Page : 1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0 08:39:57 수 정 일 : 크 기 : 6.4K 조회횟수 : 29 콰앙-! 그때 조종석 바로 옆에 나 있던 문이 박살났다. 그리고 그 문으로부터 고개 를 내민 것은 곰처럼 생긴 마법사 사냥꾼이었다. 즉, 일부 녀석들은 경비행 기 몸체 부분에 있던 문을 열려고 했고, 다른 녀석들은 조종석에 있던 문을 열려고 했던 것이었다. 몸체 부분의 문은 내가 막고 있었기 때문에 열리지 않았지만, 내가 막지 않았던 조종석 문은 녀석들의 힘에 의해 열려져 버렸다. 조종석 문을 생각하지 못한 나의 실수였던 것이다. 크르릉……! 경비행기 몸체 부분의 문을 막고 있던 날 발견한 곰 모양의 마법사 사냥꾼 이 눈에서 빛을 발했다. 날 잡아먹어서 배를 채우겠다는 뜻을 명백하게 담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난 즉시 공격을 가했다. 녀석들을 우선 쫄게 만들 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카파 하사로!" 난 앞 뒤 생각 없이 카파 하사로 한 발을 녀석에게 날렸다. 그러나 공포로 인해 내 마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카파 하사로는 녀석을 맞추지 못하고 대신 경비행기의 동체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쿠아앙! 내가 카파 하사로를 날렸기 때문에 화가 난 곰 녀석은 울부짖으며 경비행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녀석의 덩치가 워낙 컸기 때문에 좌석 같은 것이 걸리적거려서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죽어―!" 난 발악을 하면서 녀석의 몸을 향해 카파 하사로 한 발을 날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카파 하사로가 녀석의 복부를 뚫고 지나갔다. 표적이 넓었기 때문 에 그만큼 맞추기 쉬웠던 것이다. 꾸아……. 복부를 꿰뚫린 곰 녀석은 그대로 좌석 위에 쓰러져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그 뒤를 이어 늑대처럼 생긴 마법사 사냥꾼이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의 덩치 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녀석의 움직임은 빠른 편이었다. 쿠아악! "으악!"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녀석은 나에게로 달려들었고, 난 마법 사용할 새도 없 이 녀석의 앞 발톱에 왼팔을 긁혀야 했다. 녀석이 강하게 갈겼기 때문에 내 왼팔에 난 상처는 굉장히 깊은 편이었다. 왼손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너 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녀석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꾸아악! "저리 가―!" 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녀석을 발로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은 내 발에 걷어차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날 다시 한 번 휘갈겼다. 이번엔 오른팔이 긁혔다. 하지만 난 녀석의 앞 발톱을 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 히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아픈 건 아픈 것이었다. "이 개새끼들아―!" 팔의 고통을 잊기 위해 난 욕을 바리바리 하면서 주위에 집히는 물건을 늑 대 녀석에게 마구 집어 던졌다. 가슴이 심하게 떨려왔고 손조차 떨렸기 때문 에 집어던지는 물건은 대부분 빗나가고 있었다. 어쨌든 나의 그런 발악에 늑 대 녀석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곧 던질 물건이 없어진 날 보더니 이내 나에게 달려들었다. 쿠아앙! "끄악!" 왼쪽 어깨가 녀석의 앞 발톱에 깊숙이 찔려버렸다. 저번에 총알에 맞은 상 처는 이미 다 나아 있어서 상관없었지만 또 어깨를 다치자 저번의 고통이 되 살아나서 더 아프게 느껴졌다. "꺼져, 이 새끼야―!" 난 마구 몸부림을 치면서 녀석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녀 석은 아주 능숙하게 내 어깨를 놓지 않고 내 주먹질과 발길질을 잘 피하고 있었다. "으아― 꺼지란 말이야! 꺼지라구―!" 거의 반 미치다시피, 아니 아예 미쳐서 난 마구 날뛰었다. 그 어떤 것도 생 각할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 녀석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난 꼼짝없 이 죽기 때문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 그것보다는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몸을 뜯어먹을 때의 고통에 대한 공포가 날 미쳐가게 하고 있었다. 빠각! "컥!" 녀석이 자기 발로 내 오른쪽 무릎을 짓밟아버렸다. 그래서 무릎이 완전히 부서지며 오른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난 나 자신이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을 느꼈다. 더 이상의 반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난 죽는 걸까? 위치도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저 늑대 녀석에 게 완전히 뜯어 먹혀서 죽게 되겠지? 녀석은 내 몸 중에서 뭘 먼저 제일 먹 을까? 머리? 아니, 머리털이 있어서 먹기 귀찮을 거야…… 그럼 가슴? 난 빼 빼 말라서 갈비뼈밖에 없을 텐데…… 그럼 다리를 제일 먼저 먹겠구만. 그나 마 살이 많은 곳은 허벅지쪽이니까. 하하…… 허벅지부터 뜯어먹는다면 꽤 아프겠군. 차라리 내 숨통을 먼저 끊어놓고 날 먹어라……. 크릉! 늑대 녀석은 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당장에 내 목을 물려고 했다. 역시 더 이상 먹이감이 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최우선적으로 행하는 맹수들의 기본에 충실한 행동이었다. 이제…… 죽는구나……! 콰아앙―! 그때 갑자기 경비행기 밖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경 비행기의 동체가 크게 흔들렸다. 따라서 내 목을 물려고 했던 늑대 녀석은 획 날아가 경비행기 몸체 내부에 부딪치고 말았다. 깨갱! 늑대 녀석의 비명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늑대 녀석 이 비행기 한쪽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도 확인했다. 녀석이 그렇게 내동댕 이쳐져 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지고 녀석을 죽일 수 있다는 자 신감이 피어올랐다. "카파…… 하사로!" 카파 하사로는 하도 많이 써먹은 마법이기 때문에 마법 발동 원리를 자세히 떠올리지 않아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급하게 사용하면 위력 이 많이 약해지지만, 늑대 녀석에게 큰 타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깨개갱! 막 일어서서 날 다시 공격하려던 늑대 녀석은 내 카파 하사로를 몸통에 맞 고 다시 날아가 경비행기 몸체에 부닥쳤다. 그 사이에 난 제대로 된 공격을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단열팽창…… 온도 하강…… 비아 하사로……!' 비아 하사로의 발동 원리를 완전하게 떠올린 나는 이제 막 비실비실 일어서 는 늑대 녀석에게 비아 하사로를 날렸다. 푸욱-! 비아 하사로는 어김없이 녀석의 옆구리를 꿰뚫고 경비행기 동체를 관통하여 밖으로 사라졌다. 늑대 녀석을 완전히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날린 비아 하사 로이기 때문에 마력 제어를 제대로 못하여 경비행기 동체마저 꿰뚫어버린 것 이었다. 콰앙! 그때 밖에서 다시 큰 폭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동물들의 비 명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있는 동물들이라고는 마법사 사냥꾼밖에 없기 때 문에 녀석들의 비명 소리가 나자마자 난 경비행기의 창을 통해서 밖을 살펴 보았다. "류드나르님! 괜찮아요?!" 밖에서 메이로나가 마법사 사냥꾼들을 마법으로 날려버리며 큰소리로 외쳤 다. 교장 할배 역시 마법사 사냥꾼들을 상대하며 날 불렀다. "류드! 괜찮으냐! 살아있으면 대답해라!" 콰콰쾅-! 흘…… 마법을 사용하면서 내 걱정을 하다니…… 역시 엄청난 실력의 소유 자들이야. 나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구만. 어쩌다 내가 보호만 받는 입장이 됐누…… 큭! "끄아아……!" 늑대 녀석을 죽였다는 쾌감에 잠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어깨와 무릎 부상 의 고통이 다시 내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펑펑하고 터 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그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모두 느낄 수 없었다. 느끼는 것이라고는 오직 고통뿐이었다. ======================================================================== 쓴건 별로 없지만... 올림다...ㅡㅡ; (역시 난 게을러...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76 / 79 [등록일] 2000년 07월 12일 08:52 Page : 1 / 10 [등록자] THEBUR [조 회] 17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7장: 봉인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7장:봉인 -3- 총 Page : 12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1 20:45:34 수 정 일 : 크 기 : 4.4K 조회횟수 : 212 "괜찮으냐, 류드?" 항상 듣는 교장 할배의 말. 그래서 난 눈을 떴다. 보통 때라면 병원의 천장 이 가장 먼저 보여야 했지만 지금은 경비행기의 천장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 고 덤으로 메이로나의 걱정하는 표정도 볼 수 있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 메이로나의 말에 난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대답했다. "알아." "아…… 다행이다……!" 내 마음을 통해 내가 확실히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메이로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런 메이로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살짝 움 직여보았다. 몸은 거의 멀쩡했다. 늑대 녀석의 발톱에 어깨가 찔린 것도, 녀 석의 발에 무릎이 으깨진 것도 모두 다 나아 있었다. "하나도 안 아프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교장 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나와 메이로나가 사력을 다해서 치료한 거니까." 흘…… 사력이 아니라 마력이겠지…… 뭐 어쨌든 결국 또 두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었구만. 도대체 방사능 오염 지역에 들어서서 몇 번째 도움을 받는 거 냐? 셀 수가 없어. "엄살부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라. 네가 비행기를 작살내서 지금 비행기 수 리를 해야 해." 교장 할배의 말에 난 내가 카파 하사로와 비아 하사로로 경비행기의 동체에 구멍을 숭숭 뚫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를 쳐다 보며 물었다. "제가 얼마나 작살냈는데요?"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단지 조종석 유리창이 나가고 동체 몇 군데에 구멍 이 뚫렸을 뿐이야. 그나마 기계는 멀쩡해서 다행이다." 흠…… 기계는 고장 안 났으니까 날 수는 있으려나? 아, 비행기 동체에 난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날 수도 없겠구나. 이런…… 공포에 떨어서 무작정 마 법을 사용했더니 이런 결과가 나와버렸군. 여기 계속 있다가는 마법사 사냥 꾼 녀석들의 공격을 받을텐데……. "걱정 마세요. 구멍은 제가 메울 수 있으니까요." 메이로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감고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래서 나와 교장 할배는 메이로나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말없이 지켜보았 다. 잠시 후, 눈을 뜬 메이로나는 우리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 리며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러자 비행기 동체에 나 있던 구멍이 순식간에 메워지기 시작했다. "놀라워! 이 능력을 최대한 살리면 물질 창조, 아니 생명 창조도 가능하겠 어!" 교장 할배는 그러한 메이로나의 능력에 흥분했다. 그 능력을 이용해서 무슨 일이라도 벌릴 심산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교장 할배가 뭘 하려는 것인 지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가 않았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드러눕고 싶었다. "휴…… 이제 됐죠?" 메이로나는 나와 교장 할배를 보고 물었고 교장 할배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 다. "완벽해! 역시 고나드라콘의 능력은 대단하구만!" "이 정도쯤은 아무 것도 아니죠!" 교장 할배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메이로나. 난 그런 둘에게서 시선을 돌려 경비행기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는 아무 것도 없는 그냥 철판뿐이었 다. 황량한 내 마음과 같은 철판. "자, 이제 어떻게 할까? 이미 보물 목표치는 다 모았는데." "돌아가요. 보물을 더 찾는 것도 좋겠지만 이런 곳에 계속 있다가는 류드나 르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니까요." "흠, 그렇구만. 알겠네. 그럼 보물 사냥은 이쯤에서 끝내고 그만 돌아가도 록 하지!" 메이로나와 교장 할배의 대화를 들으며 내 기분은 끝없이 밑바닥으로 침몰 했다. 나란 존재가 보물을 더 모으고자 하는 두 사람의 일에 방해되는 것 같 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확실한 사실이었다. "우선 근처 마을에 들러서 식사를 하세." "네!" 둘이 알아서 의견의 합의를 보고 나서 경비행기를 출발시켰다. 그때까지 난 꼼짝도 하지 않고 경비행기 좌석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내가 경비행기 이륙 시 바닥을 구르지 않도록 메이로나가 내 몸을 꽉 잡아주었다. 그래도 난 손 끝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푸르릉― "왜 그러세요?" 내가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메이로나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내 마음속에서도 그 어떤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메이로나는 더욱 답 답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런 메이로나의 물음을 무시했다. 아니, 무시 했다기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메이로나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류드나르님!" 메이로나의 부름도 더 이상 나의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없었다. 대신 내 마 음속에서는 하나의 확고한 의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그 마음을 느낀 그대로 얘기했다. "돌아가고 싶어……." "네?" "내가 살던 곳……." "지금 가고 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곳……." "네?" 내 중얼거림에 메이로나는 많이 당황했다. 내 마음을 읽으려고 해도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중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내 진정한 마음을 알지 못 해 당황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을 잤다. 그 쪽이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번 호] 77 / 79 [등록일] 2000년 07월 12일 08:53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17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7장: 봉인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7장:봉인 -4- 총 Page : 2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1 20:45:51 수 정 일 : 크 기 : 8.6K 조회횟수 : 206 "류드나르님! 마을에 도착했어요!" 메이로나가 날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기도 싫고 눈도 뜨기 싫었지만 경비행 기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자는 것도 싫었기 때문에 난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잠을 잔 셈이 되어버려서 머리가 굉장히 띵하고 아팠다. "잠깐 기다리세요." 그때 갑자기 메이로나가 자기 양손을 내 머리 옆에 두더니 이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잠시 후, 내 머리를 헤집고 다니던 두통 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괜찮죠?" 그러면서 빙긋 웃는 메이로나. 그런 메이로나를 보고 있자니 감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봉인의 조건 때문이기는 하나 메이로나는 날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오죠룬에 돌아간다면 분명히 난 폐인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한 두 가지 모순되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 잡해져갔다. "안에 둘! 안 내리고 뭐하나? 설마 비행기 안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경비행기 밖에서 교장 할배의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교장 할배의 말 에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메이로나가 밝게 소리쳤다. "곧 나가요!" 그러면서 날 데리고 경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경비행기가 내려선 곳은 마을 입구였다. 마을은 꽤 큰 편이었는데, 공장 같은 것이 있는 걸로 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듯했다. "저기…… 메이로나." "네? 왜요?" 아무 것도 모른 채 아름다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오는 메이로나의 모습에 난 또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생각을 해서 내 마음을 전달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아직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그 말을 하 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야. 교장 선생님이나 따라가자." "네." 나와 메이로나는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교장 할배의 뒤를 따랐다. 그 누구도 경비행기가 어떻게 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설령 경비행기가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메이로나나 교장 할배의 능력을 사용하면 충분히 오죠 룬까지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 들어가서 편히 쉬어라." 마을 안에 있는 여관에서 우리들은 쉬게 되었다. 방은 각자 따로따로 얻었 기 때문에 난 내 방에 혼자 있을 기회를 얻었다. 아니, 생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었다. 무능력…… 인간에게 있어서 무시무시한 것…… 하하, 정말 무서워. 보물 사냥을 하는 동안 난 완전히 들러리 역할만 했잖아. 제길…… 이렇게 나의 무능력함을 느끼는 것은 싫어. 뭔가 하고 싶단 말이다. 남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단 말이다! "……!"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난 엉켜있었던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그 실마리를 붙잡고 생각들을 정리했고, 그 결과 행복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하하…… 그랬군. 그래서 난 메이로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야. 메이로나 때문에 그 동안 골머리 썩혀 왔던 행복에 대한 문제를 요령껏 풀어서 다행이 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분은 느끼고 싶지가 않아……. 똑똑- "류드나르님! 들어가도 돼요?" 현관문 밖에서 메이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메이로나에게 내 생각 을 말해줄까 말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침대에 걸터앉아 곧바로 대답했다. "어. 들어와." "네." 끼이- 밝은 대답과 함께 밝은 얼굴로 메이로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런 메이로나의 모습에 내 마음은 또다시 흔들렸다. 과연 그 말을 해야할 것 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왜 그러세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내가 분명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모르는 메이로나가 내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난 대답하지 않고 메이로나를 쳐 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 말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너한테 할말이 있어."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도 메이로나는 내가 자신에게 할말이 있다 는 것이 기쁜 듯 싱긋 웃기만 했다. 그러나 난 메이로나에게 내 생각을 말했 다. "날 따라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갑작스런 내 말에 메이로나가 되물었다. 그러나 그 반문은 내 말을 듣지 못 해서 한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왜요?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메이로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은 지금 내 가 한 말을 철회시킬 뻔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날 따라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넌 네 삶을 살도록 해." "……." 내 말에 메이로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직 내 진정한 생각을 읽어내 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진정한 생각도 내 말과 같다는 것을 안 메 이로나는 그런 내 생각을 부정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왜? 왜 그러는 거예요? 어째서? 어째서?" 눈물을 머금고 그렇게 부정하고 있는 메이로나에게 난 다시 한번 비수를 던 졌다. "네가 있으면 난…… 불행해지니까." "……!" 순간적으로 메이로나의 동작이 멈춰졌다. 내 말로 인해서 메이로나는 큰 정 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분명 예전에 자신의 봉인을 풀어주었던 어떤 남자에게서도 나와 비슷한 말을 들었을 테니 그 충격은 더욱 클 것이 분명했 다. "제가 있어서…… 불행해진다구요?" 정신나간 듯 중얼거린 메이로나의 말에 난 분명한 대꾸를 해주었다. "그래. 네가 있으면 난 확실히 불행해져." "아……!" 메이로나의 몸이 휘청였다. 하지만 난 계속 침대에 걸터앉아 냉정한 눈으로 메이로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런 내 모습에 메이로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워 했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전 당신을 위해 열심히 했는데…… 왜 ……?" "물론 그랬어.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난 네가 싫은 거야." 난 쓸데없는 말은 줄이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메이로나의 눈에서 눈물 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마음 한 구석이 크게 아려왔다. 과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괜찮은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내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메이로나의 행복을 없애버리는 사악한 인간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사람과…… 같은 말을 하는군요……." 털썩- 메이로나가 침대에 앉아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날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난 메이로나가 우는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당장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지금 시선을 돌리게 되면 내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밖으로 드러 내 보이게 되는 꼴이기 때문에 그대로 메이로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유라도…… 이유라도 말해줘요. 왜 절 싫어하게 됐는지……." 메이로나는 필사적이었다. 내가 제대로 된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면 절대로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 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그 이유를 메이로나에 게 가르쳐주었다. "넌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해. 바로 그 점 때문에 네가 있으면 내가 불행하 다는 거야." "완벽하기 때문에……?" "그래." 거기서 말을 끊은 나는 잠시 숨을 돌린 후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보물 사냥에서 교장 선생님과 네가 아주 큰 활약을 했어. 둘만의 힘으로 드라콘을 누르고 보물을 가져올 수 있었으니까. 반면에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어. 지금까지 보물 사냥을 하는 동안 내가 교장 선생님과 너에게 도움을 준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 "그게 어떻다는 거예요? 전 그런 거 바라지 않는다구요! 전 당신이 안전하 고 편안하다면 그걸로 된 거라구요!" 고개질을 세차게 하는 메이로나를 보며 난 좀더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남에게,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힘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사람의 마음을…… 넌 생각해본 적 있어?" "……!"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돼. 만약 너에게 날 지킬만한 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넌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 내가 그렇게 설명을 해주자 메이로나는 무엇인가를 느낀 듯이 몸도 움직이 지 않고 내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된다면…… 괴롭겠죠……." "그래. 이제 내 마음을 알겠어?" "……." 메이로나는 고개를 떨군 채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치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지만 전 당신의 도움은 바라지 않아요! 그냥 제가 당신을 도 울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구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떠나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끝으로 갈수록 메이로나의 목소리는 작아졌고 떨렸다. 애처롭게 우는 메이 로나의 모습에 난 다시 한번 지금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과연 메이로나가 있으면 내가 불행해지는가를.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끝마친 나는 메이로나 에게 말했다. "사람은, 아니 내가 남자라서 여자들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람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야. 서로 도움을 주 고받으면서 살아야지만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거야. 그게 바로 사 람의 심리라구." "류드나르님……." "그래서 너에게 계속 도움만을 받고 살게 되면 나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난 폐인이 되어버릴 거라구. 넌 내 행복을 위해 날 돕겠다고 하지만 그것 때 문에 난 오히려 불행해져. 아마…… 널 다시 봉인시켰던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 메이로나의 표정은 크게 흔들렸다. 난 그런 메이로나에게 마지막 말을 했다. "난 네가 없었던 예전이 더 좋아. 네가 있으면 확실히 많은 좋은 점이 있겠 지만, 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기는 싫어. 난 뭔가 하고 싶어. 그러니까 더 이상 내 곁에 있어주지 말아 줘. 네가 옆에 있으면 난 너에게 의지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류드…… 나르…… 님……." 메이로나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뺨으로부터 방울방울 떨 어지는 이슬을 차마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그렇게 방안에는 메이로나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번 호] 78 / 79 [등록일] 2000년 07월 12일 22:08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6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7장: 봉인 -5-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7장:봉인 -5- 총 Page : 2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2 21:51:04 수 정 일 : 크 기 : 8.2K 조회횟수 : 23 "…… 알겠어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메이로나는 눈물을 거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는 억지로 미소를 떠올리며 나에게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이 절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줘서. 아무 것도 모른 채 그 사 람에게 봉인된 것보다는 훨씬 낫네요……." "……."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 동안…… 즐거웠어요……." 메이로나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미소를 떠올리며 나에게 인사를 하고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보내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난 나도 모르게 메이로나에게 물음을 던지고 말았다. "어디로…… 가는 거야?" "집…… 에 가요." "그 동굴?" "네……." "그래……." 난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침대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를 잠 시 쳐다보던 메이로나는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전 아직 당신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어요. 제가 드라콘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죠. 그래서…… 집에 가서 생각해볼 거예요. 도움을 주고받기를 원하는 인간과 도움을 주고만 싶은 드 라콘이 같이 살 수 있을지를……." 그 말을 끝으로 메이로나의 모습은 방안에서 사라졌다. 문도 열지 않고 그 냥 쇼타무브를 사용해서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 마음이 착잡하군. 내 행복을 위해 메이로나의 행복을 짓밟아버린 것이나 마 찬가지인데…… 메이로나는 화도 내지 않고 돌아가 버리다니…… 차라리 화 를 냈다면 내 마음이 조금 편해졌을 텐데……, "무슨 일이냐, 류드? 메이로나와 싸우고 있는 거냐?" 그때 문밖에서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장 할배에게 메이로나가 자신의 동굴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교장 할배가 묘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응? 안에 메이로나 없느냐? 아까 이 안으로 들어가던데?" "……." "어째서 대답이 없는 거냐?" 교장 할배는 문밖에서 내가 배정 받은 여관방을 한번 쓱 훑어본 교장 할배 는 조금 굳은 얼굴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메이로나가 지금 없는 것에 대해 난 할말이 없었다. 그저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메이로나는 돌아갔습니다." "돌아가? 어디로?" 메이로나를 상당히 아끼는 듯한 교장 할배의 물음에 난 담담히 대답했다. "자기 동굴이요." "동굴?" 잠시 내 얘기의 요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던 교장 할배는 그제서야 메이로 나가 날 떠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녀가 동굴로 돌아갔단 말이냐?" "……." "대답해라!" 교장 할배는 상당히 강압적으로 변했다. 그런 교장 할배의 강압적인 모습에 나는 괜히 반항하고 싶어져서 계속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교장 할배가 침음을 흘리며 나에게 물었다. "음…… 네 녀석이 메이로나를 쫓아낸 거냐?" "……." "그런 모양이군."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내 표정은 정직했는지 교장 할배는 바로 대강의 내막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재차 교 장 할배의 질문이 날아왔다. "왜 쫓아낸 거냐?" "……." "끝까지 대답하지 않을 속셈이냐?" "……." 난 입을 바늘로 꼬맨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교장 할배도 나에게서 대답 을 듣는 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단지 나에 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봉인이 풀린 지금, 그녀가 자신의 동굴로 돌아갔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을 스스로 봉인시키려 한다는 뜻이다." "……!" 뜻밖의 얘기에 난 크게 놀랐다. 내가 그렇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자 교장 할배는 고개를 살짝 내젓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난 그녀의 동굴로 갈 생각이다. 너도 따라가겠느냐?" "……." 하하…… 봉인이라니…… 난 그냥 메이로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 하하…… 메이로나가 봉인되면 난 완전히 그녀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로군…… 그럼 기뻐야 하는데…… 마음이 착잡해……. "따라가겠느냐?" 그것이 마지막 질문인 듯한 교장 할배의 표정. 그래서 난 간단하게 대답했 다. "가겠습니다." 푸르르릉……. 경비행기의 엔진 소리가 완전히 멈추고 난 뒤, 나와 교장 할배는 경비행기 에서 내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메이로나의 동굴이 있는 계곡의 바로 위였 다. 그녀의 동굴로 가기 위해서는 이 높은 계곡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천공지익(天空之翼) 승풍비천(乘風飛天) 군력무한(君力無限) 고비원거(高 飛遠去)" 교장 할배가 비행 마법의 주문을 다 외우자 부드러운 바람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런 상태에서 교장 할배의 말이 들려왔다. "뛰어내려라. 내려갈 테니." "……." 평상시라면 이 높은 계곡 위에서 뛰어내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겁 을 먹었겠지만, 지금 내 마음은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계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스스스……. 교장 할배의 비행 마법의 영향으로 내 몸은 천천히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이렇게 아래로 내려가도록 조절하는 비행 마법이 위로 올라가도록 조절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었다. 위로 올라갈 때는 강한 마력으로 그저 중 력에 대항하기만 하면 되지만, 아래로 내려갈 때에는 중력에 의해 떨어지지 않게 마력을 알맞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마력 조절을 잘못하면 아래 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가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가 맞군." 교장 할배는 계곡 아래를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교장 할 배는 이곳을 모르지만 교장 할배와 융합된 시로브드라콘이 메이로나의 기운 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이렇듯 쉽게 찾아낸 것이었다. "……!" 메이로나의 동굴 쪽을 쳐다본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처음 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수풀과 넝쿨이 동굴 입구를 완전히 막아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접근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 동굴의 모습에 난 감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렸군." 그 수풀과 넝쿨을 바라보며 교장 할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역시 그렇 다고 느꼈다. 그리고 메이로나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생각하자 난 또다시 혼란스러워져 버렸다. "왜…… 교장 선생님은 절 이곳으로 데려오신 겁니까……?" 난 주먹을 쥐고 고개를 떨군 채 교장 할배에게 물었다. 고개를 떨구고 있었 기 때문에 교장 할배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교장 할배가 하는 말은 분명 하게 들을 수 있었다. "넓은 세상을 구경하면 네 생각도 더 넓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 뿐입니까……?" "……." 이어진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교장 할배의 말 을 반박했다. "넓은 세상이 드라콘만 있는 곳을 뜻하는 겁니까? 보통 넓은 세상은 사람들 이 많은 곳 아니던가요? 이렇게 사람도 없는 곳에서 무슨 넓은 생각을 한다 는 겁니까? 그리고…… 교장 선생님은 처음부터 전설의 드라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교장 선생님에게는 시로브드라콘이 있는데 왜 전 설의 드라콘을 찾으려고 한 거냔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했다가는 내 성질에 못 이겨 주먹이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교장 할배는 이내 웃음을 흘렸다. "후후……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느냐?" "……!" 난 즉시 고개를 들어 교장 할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득의에 차 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어서 아주 기쁜 듯한 얼굴이었 던 것이다. "류드, 난 네가 행복에 대해서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졌으면 하는구나." "……." 그랬군…… 역시 교장 할배는 내게 물었던 질문을 내가 대답할 수 있도록 하려고 이런 곳에 날 데려온 거였어…… 내가 자신의 생각대로 행복에 대한 견해를 얻어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만약…… 제가 메이로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 었습니까?"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허허, 처음부터 전설의 드라콘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 쨌거나 메이로나 덕분에 난 별로 힘들이지 않고 보물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잘된 거지." 그랬던가…… 처음부터 전설의 드라콘 따위는 계획에 없었던 거로군…… 그 렇다면…… 본래 교장 할배의 작전은 내 앞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할 생각이 었겠군. 메이로나 때문에 내가 절망감을 느꼈듯이 자신의 강한 힘을 나에게 보여줌으로써 내가 행복에 대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메이로나를 만나겠느냐?" 교장 할배는 날 보며 물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이미 내 대답을 알겠다 라 는 표정이었다. 그런 교장 할배가 역겹기는 했지만 난 교장 할배의 생각대로 대답했다. "아니오. 돌아가겠습니다." 내 대답에 교장 할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주문을 외웠 다. "천공지익 승풍비천 군력무한 고비원거." 휘잉- 미풍이 불어와 내 몸을 들어올렸고, 곧이어 내 몸은 빠른 속도로 계곡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록 내 몸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내 기분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교장 할배의 생각대로 되어 가는 나 자신에 대해서 화 가 났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가면 난 교장 할배의 꼭두각시 인형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화가 나고 두려웠던 것이다. [번 호] 79 / 79 [등록일] 2000년 07월 12일 22:09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7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8장: 행복의 본질 -1-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8장:행복의 본질 -1- 총 Page : 1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2 21:51:21 수 정 일 : 크 기 : 5.8K 조회횟수 : 18 <제 28 장> 행복의 본질 나와 교장 할배는 예정보다 훨씬 일찍 오죠룬으로 돌아왔다. 만약 내가 행 복에 대해서 그 어떤 생각도 얻어내지 못한 기미가 보였다면 계속 드라콘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테지만, 메이로나의 역할로 인해 내가 행복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냈다고 교장 할배는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돌아온 것이었다. 어쨌 든 오죠룬에 도착했을 때에는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덜컥- M4관으로 들어가 310호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두 사람이 아주 놀란 얼굴을 했다. 그 두 사람은 당연히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였다. "류드!" 둘은 내가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나에게 뛰어와 내 손을 덥썩 붙잡았다. 갑 작스런 녀석들의 행동에 어리둥절함을 느낄 때 네오니스가 물었다. "너 방사능 오염 지역에 갔었다면서?" "어." "방사능 쐬고도 무사히 살아 돌아오다니…… 역시 류드는 불사신이야." 흘…… 네오니스 녀석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기분도 그렇고 해서 모 처럼 분위기 좀 잡을려고 했더니……. "내가 죽기를 바랬다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걱정돼서 말이야. 6써클 이상의 마력이 없으면 위험한 곳이잖아." 네오니스는 그렇게 말하며 실실 쪼갰다. 그런 네오니스 옆에 서 있던 크리 스토르는 내가 부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나 네오니스나 아직 4써클밖에 안 되는데 넌 벌써 6써클이라 방사능 오 염 지역에도 갔다오고…… 부럽다……." 흘…… 뭘 그런 걸로 부러워하냐? 하여간 생각할수록 신기해. 6써클 이상의 마력이 방사능을 차단한다는 거. 그리고 6써클의 마력을 이룩한 뒤에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마력을 소모하고도 멀쩡하다는 것도. 한 번 6써클을 이룩해놓 으면 어떤 보이지 않는 막이 계속 방사능을 차단하는 모양이야……. "근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야? 방학 끝날 때쯤에 올 줄 알았는데?" 네오니스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고, 난 자세한 대답은 피했다. "사정이 생겨서 빨리 돌아왔어." "그래?" 내가 그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네오니스는 더 이상 캐묻 지 않았다. 난 방안으로 들어가 짐을 꾸린 가방을 내려놓은 뒤에 침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침대 위에는 라이가 배를 천장 쪽으로 향하고 퍼질러 자고 있었다. 그런 라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난 라이 옆에 앉아 라이의 배를 쓰다 듬어 주었다. 크르릉……. 내가 배를 만지자 라이는 잠시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거의 잠 꼬대 수준이었기 때문에 날 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계속 라이의 배를 쓰다듬어 주다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물음을 던졌다. "너희들은 왜 학교 안에 있는 거야? 겨울 방학 동안 갈 데 없어?" 내 물음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차례로 대답했다. "난 집에 갔다 이틀 전에 왔어. 집에 계속 있으면 게을러지거든." "나야 뭐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집에 가봤자 할 일도 없잖아. 엄마와 아빠 도 내가 집에서 빈둥대면서 노는 것보다는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걸 바라 시니까." 흘…… 둘 다 공부하려고 학교에 남았다는 소리? 아니면 놀려고? 뭐 어쨌든 이 방을 혼자 쓰는 것보다는 셋이 같이 쓰는 편이 더 낫지. 얼레? 왜…… 이 렇게 생각하는 거지? 전에는 방을 혼자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 가…… 있기 때문인가? 따르르릉-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교장 할배의 호출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내가 받았 다. "여보세요." 《류드냐? 짐 정리 끝났으면 교장실로 올라오거라.》 흘…… 행복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서냐? 귀찮아……. "예. 곧 가겠습니다." 딸칵- 내가 전화를 끊자마자 네오니스가 나에게 물었다. "교장 선생님이지?" "어." "또 널 부른 거지?" "어." "그럼 잘 갔다 와라." "어." 흘…… 이거 '어'밖에 할말이 없군. 나한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교장 할 배밖에 없어서 네오니스가 바로 알아맞추는구만. 뭐 내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긴 하지만. "너희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내 물음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둘에게 말 했다. "그럼 너희들끼리 먹어. 교장 선생님하고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얼∼ 교장 선생님하고 무슨 담판을 벌이고 있는 거야? 얘기가 길어질 것 같다니∼" "어쨌든 난 간다." 네오니스와 계속 얘기하다가는 다 불어버릴 것 같아서 난 즉시 밖으로 나왔 다. 그리고 천천히 교장실로 향했다.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내 생각을 정리했다. 저벅저벅- 명색이 겨울 방학이기 때문에 기숙사에 있던 아이들 중의 대다수가 학교를 빠져나가고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학교는 꽤나 조용했다. 덕분에 나도 방해 를 받지 않고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내 예상보다 짧았다. 교장실로 가기 위해 본관으로 들어섰을 때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그 두 마녀하고 마주친 것이었다. "류드나르?!" 상당히 놀라는 두 마녀. 그 둘 중에서 에레나리스가 조금 흥분하면서 나에 게 질문을 던졌다. "방사능 오염 지역에 갔었다면서?" 흘…… 에레나리스도 그걸 물어보는군. 니트로바츠 녀석, 도대체 몇 사람에 게 이 사실을 알린 거야? 어째서 내가 똑같은 질문을 두 번씩이나 받아야 하 냐고. "어." "무사히 돌아왔구나." 그러면서 웃는 에레나리스. 그러자 이번엔 로리아케시가 입을 열었다. "말도 안돼! 저런 녀석이 6써클 이상이라니! 에레나리스도 이제 5써클인데!" 오…… 그랬나? 그럼 7써클인 나는 상당한 수준이라는 거네? 흘흘, 기분이 좋아지는군. 역시…… 역시…… 행복이란 그런 거야…… 그런 거……. "왜 그래?" 갑자기 내 표정이 어두워지자 에레나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물었다. 그래서 난 표정을 풀고 대답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데 물어볼 게 있어." "물어볼 거?" 내가 물어볼 게 있다고 하니까 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질문 을 듣지 않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에레나리스는 기대된다는 표정으 로 되물었다. "뭔데?" "너희들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어?" "……?" 전혀 예상외의 질문이었는지 두 마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가장 이성적인 에레나리스가 입을 열었다. "행복?" "어." "저번에도 행복은 뭐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얼∼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역시 에레나리스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 다니까. "질문이 틀리잖아. 저번엔 행복이 뭐냐고 물었고, 지금은 행복을 느끼고 있 냐고 물었으니까." 그런 내 말에 에레나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흘…… 그렇다고 알았으면 빨리 대답하라구.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너희들 의 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니까 말이야.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0 / 81 [등록일] 2000년 07월 13일 22:32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7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8장: 행복의 본질 -2-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8장:행복의 본질 -2-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3 21:26:04 수 정 일 : 크 기 : 7.3K 조회횟수 : 50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라……." 에레나리스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것은 로리아케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로리아케시의 행동으로 보면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조금 의아했지만, 어쨌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로리아케시를 보니까 골려 줄 마음도 들지 않았다. "글쎄…… 모르겠어. 하지만 학교 생활이 행복할 리는 없잖아?" 잠시 후에 에레나리스로부터 나온 대답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로리아케시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당연히 지금 행복할 리가 없지. 지겨운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데 넌 행복 하냐?" 흠……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버린 건가? 하지만 아직 내 질문은 안 끝났다 구. "그럼 학교 생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하고 어느 쪽이 행복 할까?" "당연히 자연 속에서 지내는 거지!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내 물음이 끝나자마자 로리아케시가 날 비웃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난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그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과 돈을 많이 벌고 좋은 배우자와 같 이 이 도시에서 성공하면서 사는 것 중에서는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그, 그건……." 이어진 내 물음에는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둘 다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 어느 쪽?" 내가 계속 대답을 요구하자 마침내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가 차례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성공하면서 사는 쪽이겠지." "나도 물론. 아름다운 자연도 좋지만 좋은 배우자는 더 좋거든." 후후, 이것으로 됐어. 역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고마워. 이걸로 내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내 말에 에레나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 행복에 대해서?" "어." "저번에 교장 선생님에게서 행복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잖아? 그 대 답을 생각해낸 거야?" 에레나리스는 몇 달 전의 그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고 있는 놀라운 기억력 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하고는 상당히 차이나는 기억력이라 부러웠다. "그래. 대답은 대충 생각해뒀고, 지금 그 대답을 하러 교장 선생님께 가는 거야." "오∼ 네가 그런 철학적인 문제의 대답을 얻어냈다니!" 흘…… 로리아케시는 왜 자꾸 날 비꼬는 거냐고…… 맨날 에레나리스 옆에 만 붙어 다니면서! 허걱! 그렇다면 설마…… 저 둘…… 레즈비언?! "어떤 대답을 생각해냈는데?" 웃으면서 물어보는 에레나리스. 그 웃음은 나에게 그 대답을 말하라는 무언 의 압력이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행복이 뭐냐는 둥의 화제로 논쟁을 주고받기 싫었기 때문에 얼렁뚱땅 에레나리스의 질문을 넘겨버렸다. "별거 아니야. 그럼 난 교장실에 간다." 에레나리스가 뭐라고 더 묻기 전에 난 서둘러 교장실로 향했다. 사실 지금 도 너무 시간을 많이 지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가 화를 내기 전에 어서 가야했다. 그런 내 행동에 로리아케시가 가만있지 않았다. "뭐야! 에레나가 모처럼 물었는데 그냥 씹어버리고!" 흘…… 언제 에레나리스가 나에게 질문 안 한 적이 있었냐? 귀찮다고. 탁- 탁- 탁- 난 뒤에서 내 욕을 하는 로리아케시를 무시하고 중앙 계단을 통해 교장실 쪽으로 올라갔다. 교장실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저 두 마녀가 겨울 방학 인데 왜 학교에 남아있는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 한 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신경을 내 머리 쪽으로 돌렸다. 똑똑- "류드면 들어와라." 흘…… 내가 아니면 당장 돌아가라는 소리군. 사악하기 그지없는 말이야……. 끼이- 탁! 내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평상시처럼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 던 교장 할배가 날 쳐다보았다. 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후 교장 할배 앞 으로 걸어갔다. "늦었구나." "친구들과 얘기를 하느라고 늦었습니다." "그러냐? 뭐 상관없다. 어쨌든 내가 무엇 때문에 널 불렀는지 알겠지?" 흘……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항상 당하는 일인데. "행복에 대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 부르신 거겠죠." "후후. 잘 아는구나." 내 말에 교장 할배는 실실 웃다가 팔짱을 끼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 에게 물었다. "그럼 행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제…… 논쟁의 시작이군. 귀찮지만 할 수밖에 없지……. "행복은 상대적 우월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적 우월감? 그게 뭐냐?" 전혀 생소한 단어가 나오자 교장 할배는 조금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 실 그 말은 내가 임의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 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말의 뜻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상대적 우월감은 어떤 두 가지 이상의 상황을 비교해서 더 우월하다고 여 겨지는 쪽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지 쉽게 이해가 안 가는구나." 교장 할배는 날 예리하게 째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도 내 설명이 이해 하기 더 어렵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번엔 친절히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 었다. "간단합니다. 돈과 돌멩이 중에서 어떤 것이 저에게 중요한 지를 파악해보 는 거죠. 당연히 돈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돈이 돌멩 이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가지게 되죠. 즉, 돈이 돌멩이보다 상대적인 우월함 을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군. 그런데 그것하고 행복하고 무슨 관계지?" 그러나 그렇게 묻는 교장 할배의 얼굴에는 득의의 웃음이 걸려있었다. 내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하게 나가고 있어서 기쁜 모양이었다. "행복은 그 밑바탕에 상대적 우월감이 깔려 있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 다. 즉, 행복이란 감정은 항상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난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잠시 숨을 차분히 했다. 이제 교장 할배가 그 예 를 들어보라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것이었 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교장 할배가 말했다. "예를 들어봐라." "그러죠. 가장 쉬운 예부터 들어 보이겠습니다." "좋다." 교장 할배는 긴장되는지 팔짱 꼈던 팔을 잠시 푼 뒤, 다시 팔짱을 끼고는 내 말을 기다렸다. 난 교장 할배가 내 얘기를 들을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하 고 나서 입을 열었다. "학생들의 예를 들겠습니다. 우선 항상 평균 50점 맞는 학생이 있다고 하죠. 그 학생의 꿈은 평균 60점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시험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죠. 그 결과 다음 시험에서 그 학생은 평균 60 점 이상을 받았습니다. 그 학생은 행복감을 느낄까요?" 계속 내가 얘기하다가 갑자기 질문이 날아오자 교장 할배는 잠시 당황했지 만 이내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물론 행복감을 느끼겠지.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어떨까요?" "……?" 교장 할배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난 말을 이어 나갔다. "그 학생이 다음 시험에서 평균 60점을 받았을 때, 평소에 그 학생보다 성 적이 낮았던 다른 학생들이 모두 평균 70점 이상을 받았다면, 그 학생은 과 연 행복감을 느낄까요?" "……." 교장 할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만족스러운 웃음을 떠올리고 있 었다. 그래서 내가 대신 대화를 이끌어야했다. "물론 그 학생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왜 행복감을 못 느낄까요? 자신의 목표인 평균 60점을 달성해놓고도 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요?" "상대적 우월감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려 했겠지?" 웃으면서 내 말을 중도에서 차단하는 교장 할배.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말 을 그대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예. 아무리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월등한 점수를 받게 되면 자신은 비참해집니다. 목표를 달성해놓고도 말이죠. 즉, 그 학생이 성적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성적에 대해서 다른 학생들보다 상 대적으로 우월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이죠." "그렇군." 교장 할배는 내 말이 지당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번 엔 교장 할배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길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면서 행복감 을 느끼는 것도 상대적 우월감으로 기술할 수 있느냐?" 읏…… 꽤 난해한 질문이군. 내가 제대로 대답할 수 있으려나? 뭐, 한번 해 보자! ─────────────────────────────────────── [번 호] 81 / 81 [등록일] 2000년 07월 13일 22:33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6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8장: 행복의 본질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8장:행복의 본질 -3-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3 21:26:21 수 정 일 : 크 기 : 7.5K 조회횟수 : 50 "환경미화원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난 우선 교장 할배에게 그렇게 물었다. 자신이 한 질문을 내가 되묻자 교장 할배는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싹 바꾼 뒤 대답했다. "물론 더러워진 거리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겠지." "그렇겠죠? 그럼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죠." "……?" 내가 또 상황 운운하자 교장 할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내 말에 상당 한 관심을 쏟고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래서 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아서 거리가 아 주 깨끗하다면 어떻죠?" "흠…… 거리가 깨끗하면 환경미화원은 좋아하겠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하던 교장 할배는 무엇인가를 깨닫고는 이내 말을 바꾸었다. "아니군. 모든 거리가 깨끗하다면 환경미화원의 할 일이 없어지니까 불행해 지겠군!" 헐헐, 그나마 머리를 조금 굴리셨군. "그런데 할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일 뿐, 상대적 우월감을 확 보하지 못해서 불행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교장 할배의 물음에 난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 면 난 완전히 헛소리를 늘어놓는 인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일이 없어졌다는 것도 좀더 파고 들어가면 그 일에서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죠. 즉, 상대적 우월감을 확보하지 못한 것 에 할 일이 사라진 것이 포함되는 겁니다." "음…… 왠지 억지성이 짙은 것 같군." 흘…… 억지라고 생각하면 나도 할말 없다구. 어차피 이런 얘기는 모두 억 지성이 짙은 거 아니겠어? 해답도 없는 걸 이렇게 서로 옥신각신해야 하다니 …… 불쌍한 내 신세……. "뭐, 좋아. 나도 완벽한 이론 같은 건 바라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럼 또 질 문을 하겠다." 교장 할배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바짝 긴장 하고 있을 때 교장 할배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사람은 언제 행복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 흘……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군. "상대적 우월감만 확보된다면 누구나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위 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상황이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죠." "두 가지 상황?" "예. 상대적으로 우월한 상황과 상대적으로 열등한 상황을 그 사람이 모두 겪어야만 행복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내 말에 교장 할배는 겨울인데도 진땀을 흘렸다. "그런가? 예를 들어 설명해봐라."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들겠다고 하자 교장 할배는 부담 없는 표정을 해 보였 다. 내가 이상한 예를 들까봐 걱정했던 것 같았다. 어쨌든 난 그 일반적인 예를 들기 시작했다. "40대의 가장이 있다고 하죠. 그는 보통의 가정을 지닌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고 있죠. 항상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그 남자는 화 목하게 지내고 있는 가족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물론 행복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겁니다. 스트레스만 받는 회사보다는 화목한 가정이 더 우월하 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그런가요? 그럼 이번엔 똑같이 화목한 가정이지만 가장은 회사에서 아주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죠.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그 사람은 과연 성공 하고 있는 순간과 화목한 가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내 물음에 교장 할배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둘 다. 넌 성공하는 그 순간에는 화목한 가정이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은 거 아니냐?" 얼레? 잘 아네? 근데 그게 어쨌다고? "류드, 넌 사람의 머리가 어떤 순간에 하나의 생각만을 할 수 있다는 걸 간 과하고 있다. 성공하고 있는 순간에 어떻게 화목한 가정을 떠올릴 수 있다는 말이냐? 난 순간의 행복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전체적인 행복에 대 해서 듣고 싶은 것이다." 흘…… 내 말을 아직 이해 못했군.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과거의 경험을 되살리는 게 그 좋은 예 아닙니까?" "바보냐?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순간에 현재의 어려움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느냔 말이다. 사람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현재 에 도입하려고 할 때의 과정을 잘 생각해봐라. 우선 과거의 경험을 떠올린다. 그러면 계속 과거의 경험만을 생각하게 되지. 그 순간에 현재의 문제점을 떠 올리지 못한다. 현재의 문제에 과거의 경험을 도입하려는 과정은, 먼저 과거 의 경험에 대한 생각을 종료시킨 후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뇌가 두 개라면 모를까, 보통 사람들은 한 번에 하나의 생각밖에는 할 수 없어. 단지 생각하 는 속도에 있어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보면 한 번에 여러 가지 의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마치 컴퓨터의 CPU와 같은 것이다. CPU 의 처리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우리는 한 CPU를 가지고 컴퓨터 상에서 여러 가지의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거지. 본래 CPU는 한 번에 하 나의 일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알겠느냐?" 교장 할배는 엄청난 열변을 통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나에게 주지시키 려고 했다. 그러나 굳이 CPU의 예를 들 필요는 없었다. 그 전에 이미 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컴퓨터에 대해서 거의 모르는 나에게 CPU의 예를 든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럼 예를 바꾸도록 하죠." 하도 열변을 토해서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는 교장 할배에게 난 내가 잘 못 생각했음을 인정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득의의 웃음을 지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이었다. 대신 잘못을 지 적 당한 사람은 기분이 꽤 나쁠 수밖에 없었다. "좀더 전체적인 측면에서 행복이란 녀석을 살펴보도록 하죠. 한 사람이 있 습니다. 이 사람은 청년 시절까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 러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취직을 했다고 하죠. 만약 취직해서 열심히 일한 결 과 중소기업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면, 그 사람은 시골과 도시에서의 생활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난 교장 할배를 쳐다보며 물었고 교장 할배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도시에서의 생활에서 행복감을 느끼겠지. 성공했으니까 말이야." "그럼 그 반대의 경우로, 농사 짓다가 서울로 올라왔지만 서울에서 연이어 실패만 하고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생활이 더 행복 하다라고 생각할까요?" 이어진 내 질문에 교장 할배가 날 째려보았다. "당연히 시골에서의 생활이지! 왜 자꾸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거냐?" 흘흘, 내가 계속 이상한 말만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제 곧 본론으로 들어 가니까 귀나 잘 후비고 있으라고. "그렇다면 그 사람이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죽었다면 과연 그는 시 골에서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 교장 할배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에게 되물었다. "주변의 상황하고는 상관없이 오직 농사만 짓다가 죽은 것이냐?" "예. TV나 라디오 같은 대중 매체도 없이 단순히 농사만 평생 짓다가 죽은 겁니다. 즉, 다른 삶은 전혀 겪어보지 않은 상태죠. 또 농사 이외의 삶이 있 다고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음……." 생각보다 교장 할배의 침묵 시간은 길었다. 그래서 내가 막 뭐라고 하려고 하자 그때서야 교장 할배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감정을 못 느끼겠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교장 할배는 다시 침묵했다. 내 말에서 뭔가의 오류를 찾아내려고 하는 모 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내 물 음에 대해 답했다. "다른 생활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를 짓고 사는 자신의 생활이 행 복한 것인지 불행한 것인지 느낄 수 없는 것이겠지." 헐∼ 나하고 같은 생각이구만. 뭐 교장 할배는 처음부터 내게서 그 말을 듣 고 싶어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생각이 비슷하니까 설명하기도 쉽겠군. "그렇습니다. 행복은 절대 단 하나의 상황만 가지고는 느낄 수 없는 겁니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무엇이 더 좋은 생활이고 무엇이 더 나쁜 생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삶이 행복한 것인지 행복하지 않은 것인지 알 길이 없죠. 결국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입니다." "음……." 교장 할배는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그저 침음만 흘렸다. 나에게서 뭔가 잘못된 점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교장 할배 자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알아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2 / 84 [등록일] 2000년 07월 16일 22:35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27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8장: 행복의 본질 -4-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8장:행복의 본질 -4- 총 Page : 2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5 20:09:19 수 정 일 : 크 기 : 9.6K 조회횟수 : 334 "좋다. 그럼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교장 할배가 잠시 후에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이미 그렇게 물어볼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약간의 자신감을 실어서 대답했다.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 고통이 정신적이 든 육체적이든 그러한 고통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예전에 겪었던 생 활이나 지금 겪고 있는 생활이 행복한 것인지 불행한 것인지를 비교할 수 있 게 되는 것이죠. 즉, 항상 반 1등을 하는 학생에게는 반 1등 하는 것이 행복 일 수 없지만 반에서 꼴찌를 하다가 반 1등이 되는 것은 상당한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꼴등의 고통을 겪은 그 꼴찌는 꼴등보다 반 1등이 훨씬 좋다고 느 끼니까요. 그러한 상대적 우월감에서 행복을 느끼는 겁니다." "음……." 교장 할배는 잠시 팔짱을 끼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나에게 물음을 던졌 다. "그렇다면 항상 반 1등인 학생이 반 2등으로 내려가면 반 1등 했을 때가 행 복하다는 것이냐?"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2등으로 쳐진 그 학생은 다음 시험 때에 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결국 다음 시험에서는 1등의 자리를 재탈환합니다. 보통의 경우에서, 적어도 제가 본 바로는 반 2등 하던 학생이 한번 1등 자리 를 탈환한 후 계속 1등 자리를 지켜나간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 말은 반 1 등 하던 학생은 2등으로 밀려나고 나서야 1등 자리가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 를 깨닫게 되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거죠." 난 그 정도로 얘기하고 나서 교장 할배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설명이 엉성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내 말의 오류를 찾을 생각은 안 하고 이상한 물음만을 던졌다. "그럼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계속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 냐?" 흘…… 내 말에는 반박을 안 하고 다른 질문을 하다니…… 뭐 반박을 안 하 면 나야 편하지. 그나저나 질문이 쉽군. 이것도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이 할배, 바보 됐나? "당연히 행복감은 지속되지 않죠. 인간에게는 망각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망각?" "예. 목표를 이룬 순간에는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하지만 시 간이 흐르면 그 우월감의 정도는 약해지고, 결국 행복도도 내려가게 되죠. 또다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목표를 찾던가, 아니면 목표를 더 크게 잡아야 합니다."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그렇게 대답했을 때, 교장 할배가 아주 진지한 표정 을 지으며 나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어째서 인간에게는 망각이란 것이 있지? 왜 그러한 행복한 감정까지도 잊 게 되는 건가? 망각이라는 것이 없다면 모든 인간이 행복할 수 있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 교장 할배의 그 질문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근원적인 질 문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는 것 이었다. "에…… 그건 그런데, 어쨌든 인간에게는 망각이란 것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난 실실 쪼개면서 얼렁뚱땅 이 상황을 넘겼다. 교장 할배 역시 나에게서 그 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내 표정을 풀었 다. "그렇구나. 그럼 한 가지의 질문을 더 하겠다." 으헉! 아직도 행복에 대한 질문이 안 끝난 거야? 그냥 대충대충 하고 보내 달라구! 어차피 내 생각이나 할아범 생각이나 똑같은데 뭘 또 바라는 겨? "나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사람을 보면 당연히 불행함을 느끼겠지."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만. 그건 내가 메이로나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 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을 보면 또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게 된 다. 안 그러냐?" 얼라리? 그런가? 음…… 뭐 그렇겠군. 그 사람을 하나의 우상으로 만들고 나서 그 사람처럼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겠지. "그렇죠." "왜 그런 노력을 하는 건가?" 교장 할배의 질문이 짧아서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난 당황했다. 평소 교장 할배가 하나의 질문을 하고 난 뒤에 꼭 뒤에 그 질문을 뒷받침하는 말을 더 하기 때문에 그것에 익숙해져서 처음 내뱉는 말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는 버 릇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예?" "귀가 먹은 거냐? 왜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처럼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흘…… 그래, 나 귀 먹었다. 난 형광등이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한다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으니까 그런 거죠. 그 사람보다 더 잘하고 싶으니까요. 뭐, 그 사람이 자기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좌절하게 되겠지만요." 내가 띠꺼운 어조로 대답했음에도 교장 할배는 화를 내지 않고 더욱 구체적 인 질문을 했다. "그럼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속에는 정말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 는 마음이 숨어있을까?" 흘…… 지금 나하고 사람 심리를 파고들자는 거냐? "당연히 아니죠. 그 마음속에는 그 사람보다 뛰어나지고 싶다는 마음이 숨 겨져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그 사람과 대등한 위치에 서고 싶은 마음이 있 죠. 그래야만 상대적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되니까요." 난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교장 할배는 의미심 장한 미소를 얼굴 전체에 띄우고는 나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물어보겠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졌다고 하 자. 목표는 분명히 그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진 경기지만 행 복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 이번엔 내가 침묵했다.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 대강의 대답을 생각해내고 입을 열었다. 물론 자 신은 없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겠죠.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겁 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 자체에 '난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했다'라는 상대 적 우월감이 녹아 들어가 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음…… 억지 같군." 윽…… 그래, 나 억지 쓴다. 내가 억지 쓰는데 뭐 보태준 거 있냐? 할아범 이 나한테 그런 이상한 질문들을 하니까 내가 이러고 있는 거라고. 그런 나 한테 뭘 바래? "뭐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행복이란 상대적 우월감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감 정이란 소리로군." 그렇게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린 교장 할배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교장 할 배로서는 자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비슷해서 기분이 좋았겠지만 난 계속 서 서 행복이란 어쩌구 저쩌구 주절대야 했기 때문에 다리가 아팠다. "이제 끝났나요?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난 교장 할배에게 날 보내달라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해서 알렸다. 전 같으 면 감히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오죠룬에 도착해서 쉬지도 못 하고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정말로 피곤했던 것이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그런 내 말을 무시했다. "그럼 다음 질문을 알려주겠다." 크윽…… 이번엔 또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그래? 제발 그냥 보내 줘……! "이것이 너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이 될 것이다." 교장 할배는 상당히 폼을 잡았다. 그러나 할아범이 폼을 잡아봐야 전혀 볼 게 없기 때문에 난 빨리 말하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교장 할배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런 내 표정 때문에 서둘러서 용건을 말할 인간이 절대 로 아니었다. "너에게 마지막으로 할 질문은 바로……" 윽…… 왜 또 뜸을 들이고 그래?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하라구! "바로……" 할아범…… 죽고 싶은 거야? 말 안 하면 그냥 가버린다? "바로 낙원이란 무엇인가이다." "……?" 내 생각대로 역시나 황당한 질문이라서 난 얼굴 가득히 당황의 표정을 떠올 렸다. 교장 할배는 그런 내 표정을 보는 것이 아주 즐거운 듯 괜히 실실 쪼 개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낙원을 바라고 있다. 물론 뭔가 문제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겠 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원을 원하지. 그 낙원이란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 이고, 왜 사람은 낙원을 원하는지, 그리고 낙원이란 게 존재하는지 등에 대 해서 말하면 되는 거다." 허걱…… 요구하는 게 왜 그렇게 많아? "이것이 내가 너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곧 2221년이 되고, 그 해 가 지나면 2222년이 되지. 아주 의미 깊은 연도이지 않느냐?" 2222년…… 정말 의미 깊겠군. 환상적인 연도인데? "2222년 2월 22일…… 그 날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 말을 하는 교장 할배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전 적으로 내 생각이긴 했지만, 2222년 2월 22일이라는 날이 되면 교장 할배가 무슨 일인가를 벌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낙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빠른 시간 내에 대답해주면 고맙겠다. 네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나와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 생 각한다." 교장 할배는 이미 내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럴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묻고 답해온 것들이 모 두 교장 할배의 생각과 거의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만 가봐도 좋다. 편히 쉬거라." 흘…… 편히 쉬라고? 편히 쉬려고 했던 나를 부른 게 누군데? 자기가 내 휴 식을 방해해 놓고는 이제 편히 쉬라니……!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난 교장 할배에게 인사를 하고 교장실 밖으로 나왔다. 이제 막 오죠룬에 도 착해서 교장 할배와 이상한 문답을 하고 나니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릴 여유도 없어서 그냥 앞만 보고 뛰다시피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 왔다. 털썩-! 방에 들어가자마자 난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아직 점심을 먹고 있었는지 방안에 없었다. 아무도 없는, 아니 라이의 숨소 리와 벽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방안에 고요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난 아픈 머리를 베개에 들이박고 잠을 청했다. - 류드…… 나르…… 님……. 크윽! 왜 머리 속에서 메이로나가 떠오르는 거야? 이미 끝났잖아? 제발 날 괴롭히지 말라구! 난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버리는 녀석이니까 사라 져버려! 사라져버려……! 사라져 버리라구……. "……." 가슴이 답답했다. 메이로나보고 사라지라고 했던 내가 지금에 와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막상 메이로나가 곁에 없자 그녀를 보 고 싶다는 야비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후후후…… 난 왜 항상 무엇인가를 하고 나면 후회를 하는 거지?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하면서? 후후…… 짜증이 생기는군. 나 자신이 짜증나… …! "……!" 머리가 너무 아파서인지 눈물이 나왔다. 정말 오랜만에 흘려보는 눈물이었 다. 그랬다. 잘 생각해보면 난 이곳에 온 뒤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어깨에 총을 맞고 늑대 녀석에게 무릎이 망가졌을 때에도 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단지 엄청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얼굴을 찡그렸을 뿐이 었다. 하하…… 아픈데도 난 울지 않았군. 어쩌면 눈물이 눈가에 맺혔을 수도 있 겠지만…… 근데 왜 지금은 눈물이 주룩주룩 나오는 거야? 짜증나는군…… 빌어먹을……! ====================================================================== 하하하... 이틀만에 달랑 한편만 올리는 이 부지런함... 정말 난 부지런해....ㅡㅡ;;;;;;;;; ─────────────────────────────────────── 라이: 그걸 이제야 옮기는 나도 참 부지런해~~ ^^* 이번주 퍼나름이 불순해질 조짐이 보입니다... 집에 일이 좀 생겨서리...--;; 이번주만 좀 봐주십쇼.. 그래도 틈틈이 나를께요.. [번 호] 83 / 84 [등록일] 2000년 07월 16일 22:36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28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9장: 의외의 사건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9장:의외의 사건 -1-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6 22:04:22 수 정 일 : 크 기 : 7.1K 조회횟수 : 18 <제 29 장> 의외의 사건 2221년 1월 1일. 드디어 2220년이 지나고 2221년이 찾아왔다. 그러나 나에 게는 2220년이든 2221년이든 전혀 상관없었다. 단지 이곳에서의 내 나이가 한 살 많아졌다는 것뿐. "류드! 점심 먹으러 가자!"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네오니스가 침대에 여전히 드러누워 있는 나에게 말했다. 새 해가 왔다고 갑자기 공부를 시작하는 네오니스였는 데, 내가 보기에는 공부를 제대로 한다기보다는 올해에 있을 예술제 때 어떤 묘기 마법을 할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 나도 배고팠는데 가자!" 네오니스 옆에 앉아서 열심히 추리소설을 읽고 있던 크리스토르가 네오니스 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난 그다지 입맛이 없었지만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가뜩이나 마른 몸이 피골이 상접해지도록 마를 것 같아서 둘을 따라나섰다. "식당에서 먹을 거지?" 네오니스는 나와 크리스토르에게 물었고 크리스토르만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아무 곳에서나 먹어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빨리 밥을 먹고 또 자고 싶었을 뿐이었다. 라이 녀석처럼 아무 생각도 안하고 편하게 자고 싶었던 것 이다. 타탁- 타탁- 타탁- 서로 걷는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발소리가 엇갈려 들려왔다. 그런 발소리를 듣고 있으니 문득 진동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사물에는 각각의 고유진동수 를 가지고 있고, 그 진동수에 딱 맞추어 진동파를 계속 보내면 공명이 일어 나 사물이 작살난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런 예가 있었는데…… 미국이었던가? 어떤 나라의 다리가 일정한 속도로 부는 바람 때문에 마구 흔들렸었는데 말이야. 파도에 출렁이는 듯이 다리가 상하좌우로 막 흔들렸지. 아주 멋있었는데. 후후, 이 학교 건물의 진동수를 알아내서 그 진동수와 같은 음파를 계속 쏘면 이 건물도 무너지겠지? "……!" 학교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 생각을 하는 동안 다 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역시 교장 할배의 말대로 인간은 한번에 단 한 가지의 생각밖에 하지 못한 것이었다. 흐흐, 왜 난 지금까지 바보짓을 하고 있었던 거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 려고 잠을 자는 것보다는 다른 일에 열중하는 것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 도록 하는 데에 효과적인데! 역시 난 바보였어! "무슨 좋은 일 있냐? 왜 실실 쪼개?" 내 얼굴을 잠시 돌아보았던 네오니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도 모르 게 웃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웃음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네오니스 에게 말했다. "어, 이제부터 마법 수련을 열심히 해보려고." "그래? 근데 그게 즐거운 일이냐?" "나한테는 그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어. 성과가 확실하니까." 내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 는 것이 바로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떠올리자 웃지 않을 수 없 었던 것이다. 웅성웅성- 식당에서 아이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많지 않 았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 래서 우리들은 금방 음식을 받고 금방 앉을 수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 아하는 창가 쪽 자리를 얻었던 것이다. "사람이 적으니까 편하다∼" 네오니스는 그런 당연한 말을 중얼거리며 창가 쪽에 앉았다. 식탁은 직사각 형 형태였기 때문에 난 네오니스의 반대편에 앉아 창가를 점령했다. 나와 네 오니스가 그렇게 찢어지자 크리스토르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내 옆에 앉 을 것인지 네오니스 옆에 앉을 것인지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스, 그냥 아무 데나 앉아." 네오니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크리스토르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 우스워서 난 크리스토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그냥 네오 옆에 앉아." "응…… 그러지 뭐." 크리스토르는 헤헤 웃으며 네오니스 옆에 앉았다. 어쨌든 그렇게 자리 문제 를 해결하고 나서 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식당이 1층인데다가 기숙사 쪽으로 창이 나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기숙사의 현관을 드나드는 아이들뿐이었다. 흘…… 이거 뭐 구경할 것도 없구만. 괜히 창가 쪽에 앉았나? 이러다가는 다른 아이들이 이 앞을 지나가면서 내가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하겠군. 이런 이런∼ "안녕?"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아름다운 목소리. 그 목소리는 바로 에레나리스였기 때문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에레나리스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창 밖을 보고 있던 나는 에레나리스 쪽을 향해 고개를 느릿느릿 돌렸다. "흥! 역시 인사를 할 줄 몰라!" 역시나 그런 내 태도에 로리아케시가 투덜거렸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고 나서도 전혀 화가 나지 않고 단지 귀찮았기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나 먼저 밥 을 먹었다. "류드나르! 여기 앉아도 되지?" 로리아케시가 아주 띠꺼운 어조로 나에게 물었다. 아니, 그것은 물은 것이 아니라 사후 승낙이었다. 이미 로리아케시가 내 옆에 앉았고, 에레나리스는 그런 로리아케시 옆에 앉았으니까. 흘…… 이미 승낙 없이 앉았으면서 무슨 승낙을 얻으려고 하는 건지…… 그 나저나 왜 내 옆에 앉는 거야? 남아도는 게 자리인데! "왜 여기서 먹냐?" 내가 그렇게 로리아케시에게 묻자 로리아케시는 날 찌릿하고 째려보았다. "여기서 먹어서 불만이야? 영광으로 생각하라구!" "……." 그래…… 참 영광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너희들, 올해에 특법사들이 2학년으로 편입된다는 거 알아?" 로리아케시는 날 무시하며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에게 물었다. 처음엔 로리 아케시의 말에는 관심 없던 나는 특법사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특히 '특법사'도 아닌 '특법사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특법사? 특법사들이 온단 말이야?" 네오니스가 아주 놀란 얼굴을 했다. 특법사는 어떤 한 마법에 능통한 마법 사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천재로 보여 부러움이나 시기를 많 이 산다. 네오니스도 그런 특법사들이 온다는 소식에 자신이 더욱 뒤쳐질까 봐 조바심 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네오니스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던 것이다. "특법사들이 오면…… 묘기 마법을 더 완벽하게 할 수 있어! 그럼 돈이 왕 창―!" 윽…… 묘기 마법 때문이었냐…… 하여간 네오니스 녀석, 돈맛을 보더니 돈 에 미쳐버린 것 같아. 앞날이 걱정된다……! "그랬구나! 이거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겠는데?" 특법사들이 온다는 소리에 크리스토르가 보이지 않는 투지(?)를 불태웠다. 비록 이곳은 진급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결정되고 있지만 역시 아이 들은 절대 성적보다는 상대 성적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쟁심이라 당연했다. "뭐야, 넌? 아까부터 전혀 놀래지도 않고!" 갑자기 로리아케시가 날 물고 늘어졌다.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전혀 쳐주지 않아서 맥이 빠진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얌전히 밥만 먹었다. 괜한 말을 했 다가는 더 시끄럽게 되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오늘은 내 기분이 좋으니까 봐주지!" 자기 혼자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로리아케시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로리 아케시가 내 태도를 트집잡지 않는 것에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놀라고 있 을 때, 옆에서 얌전히 식사를 하고 있던 에레나리스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 다. "내일 로리아의 오빠가 여기에 오기로 했거든. 그래서 들떠있는 거야." "오빠?" 로리아케시에게 오빠가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는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가족 관계는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로리아케시에게 오빠가 있던 없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로리아케시가 예쁘기 때문에 그 오빠라는 사람은 얼마나 잘 생 겨먹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약간 들었을 뿐이었다. "룰룰루∼" 로리아케시는 콧소리까지 내면서 즐거워했다. 평상시에는 나에게 자주 시비 를 걸지만 그렇게 웃고 있으니 괜히 예뻐 보였고, 그런 애가 지금 내 옆에 앉아 있기 때문에 긴장이 되어서 젓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그러한 내 실수 를 그냥 넘길 로리아케시가 아니었다. "뭐야,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해? 앞날이 걱정이야∼" 크으…… 아까 예뻐 보였다고 떠올렸던 생각 취소다! [번 호] 84 / 84 [등록일] 2000년 07월 16일 22:36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31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9장: 의외의 사건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9장:의외의 사건 -2- 총 Page : 2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6 22:04:41 수 정 일 : 크 기 : 7.7K 조회횟수 : 13 "우우웅……." 라이 녀석은 내가 배를 만져주자 처음엔 발버둥을 치다가 이내 곧 신음을 흘리며 곤히 잤다. 방금 전에 저녁으로 빵을 먹였기 때문에 포만감에 나에 게 으르렁거릴 마음도 없어 보였다. 어쨌든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지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고, 난 저녁을 그냥 빵과 우유로 때우고 지금 내 방에 와서 앉아 있는 상태였다. 오늘 점심 먹으러 갈 때 마법 수련 에 미쳐버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당장 마법 수련을 할 생각이었 던 것이다. 쾅쾅! "류드나르! 너 안에 있지? 들어간다!" 내가 막 마나 회전을 위해 정좌를 하고 정신을 집중하려 했을 때 로리아케 시가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더니 이내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 서 난 뭐라고 쏘아주려고 했지만 로리아케시의 화난 얼굴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너! 내일 시간 남아돌지?!" 다짜고짜 그렇게 묻는 로리아케시. 무엇 때문에 로리아케시가 그렇게 화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괜히 로리아케시의 신경을 건드렸다가는 더 골치 아파질 것 같아서 난 순순히 대답했다. "어." "좋아! 그럼 너 내일 잠깐 내 남자 친구 역할 좀 해!" "……?" 얼레? 방금 얘가 뭔 소리를 했지? 나보고 자기 남자 친구 역할을 하라고 했 던가? 갑자기 그게 왠 자다가 천장 무너지는 소리야? "남자 친구?" "그래! 내일 내 남자 친구 역할만 하면 돼! 알았지?!" 로리아케시는 '남자 친구 역할 안 하면 죽여버린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강요했다. 그래서 거절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이유를 물었 을 뿐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시켜?" "시끄러! 잠자코 해!" 그러나 로리아케시는 그 이유마저 들려주려 하지 않았다. 씩씩거리며 거칠 게 숨을 몰아쉬며 화를 내는 로리아케시의 모습에 난 감히 뭐라고 할 수 없 었다. "후우…… 후우……!"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들었는지 로리아케시는 심호흡을 몇 번하고 나서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내일 오후 1시에 오빠가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린다고 했어. 넌 그냥 내 남자 친구인 척만 하면서 오빠하고 만나면 되는 거야." "왜?" "그냥 그렇게 하면 돼!" 크으……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군. 그나저나 왜 나보고 남자 친구 역할을 해달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있을 텐데? 혹시…… 나한테 마음이 있어서? "왜 나한테 그런 걸 시켜? 다른 애들 있잖아?" "네가 제일 만만하니까 그렇지!" 내가 묻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로리아케시. 그러나 그거하고 이 번 일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난 약간 비아냥거렸다. "그렇다고 날 남자 친구라고 속이면 네 이미지가 망가지지 않냐?" "음…… 그건 그렇네. 너 같은 살인범이 남자 친구면……!" 흘…… 살인범이라 미안하군. "어쨌든! 내일 내 남자 친구 역할이라고 해서 내 손을 잡던가 하면 죽일 테 니까 주의해!" 뭐냐? 누가 너 같은 애 손을 잡는다고 그래? 병균 옮을까봐 안 만진다! "내일 1시까지 학교 정문 앞에서 기다려! 알았지!" 그렇게 자기 할말만 해버린 로리아케시는 이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방에 쳐들어와서 이상한 요구만 하고 가버린 로리아케시로 인해 많이 황당했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무런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뭔가 받을 건 받고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건 손해보는 일 아니야?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해버렸어…… 마법 수련을 해야할 황금 같은 시간에 그런 불필요한 일을 해야 하다니…… 뜨아……! 끼이- "나 밖에 나갔다 올게. 좀 늦을지도 몰라." "밖에?" 난 놀란 표정을 짓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를 뒤로 하고 기숙사를 빠져 나 왔다. 어제 약속했던 대로 로리아케시의 일일 남자 친구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역할 끝나고 나면 로리아케시에게 내 몸값을 받아 챙길 속셈이 었다. 흘…… 그나저나 내가 왜 로리아케시의 남자 친구 역할을 해야하는 거지? 왜 하필이면 나냐 이거야. 로리아케시 오빠가 날 정말 로리아케시의 남자 친 구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건지…… 앞날이 걱정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숙녀를 10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로리아케시의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난 정확히 약속 시간인 1시보다 10분 일찍 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로리아케시에 게 욕먹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난 당당하게 말했다. "일찍 나온 네 잘못이지." "흥! 보통 남자가 먼저 나와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로리아케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끝까지 내가 잘못했다고 우 겼다. 평상시보다 더 날카로워져 있는 로리아케시의 모습에 난 감히 대들 수 없었다. 그냥 내가 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 미안하다." "미안한 줄은 아나보네? 어쨌든 잘 들어. 우리는 작년부터 사귄 거야, 알았 지? 헛소리 늘어놓으면 죽일 테니까 알아서 해!" 흘……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유나 좀 알면 안되냐? 궁금증 때문에 미쳐 서 돌아가시겠다! 부우웅- 그때 학교 정문 쪽으로 곧장 오는 차량 한 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색 계통이었는데, 왜인지는 모르지만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차였다. "오빠다!" 자동차를 보자마자 로리아케시는 지금까지의 날카로운 표정을 확 풀어버리 더니 이내 자동차가 오는 쪽으로 달려갔다. 빨간색의 자동차는 로리아케시가 다가오자 그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자동차 앞좌석에서 두 사람 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흠…… 남자 하나 여자 하나군. 남자는 당연히 로리아케시의 오빠라는 사람 이겠지? 키가 180 정도는 되어 보이는군. 체격도 좋은 편이고. 얼라? 근데 붉은색의 장발이잖아? 뭐 여기는 머리색이 유전자하고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 으니까 남매의 머리색이 반드시 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머리색이 다르 니까 왠지 남매처럼 느껴지지가 않는구만. 에……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 는 긴 금발이로군. 얼굴은 자세히 안보이지만 예쁠 것 같은걸? 로리아케시 오빠의 애인인가? "……." 나와 로리아케시 일행은 대략 1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 로리아케시와 그 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로리 아케시가 자동차를 발견했을 때의 들뜬 상태가 아니란 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로리아케시의 행동이 굳어있었던 것이다. "류드나르! 뭐해! 빨리 이리로 오라구!" 내가 계속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자 로리아케시가 날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 말을 안 들었다가는 나중에 무 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난 즉시 그들에게로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보나이 류드나르라고 합니다." 로리아케시의 옆에 서자마자 난 고개를 숙여 그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 내가 처음부터 부드럽게 나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로리아케시의 오빠라는 사람은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 했다. "안녕. 로리아에게서 얘기는 들었어. 남자 친구라면서?" "아, 예……." 그 말에 괜히 멋쩍어져서 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의 얼굴을 잘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행동은 거기서 멈추어버렸다. "왜 그러지?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내가 계속 빤히 쳐다보자 로리아케시의 오빠는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난 그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짓는 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 의 얼굴에 놀라버린 것이었다. 하하…… 하하하…… 저 얼굴은…… 저 얼굴은…… 내가 아세트와 같이 카 르본 숲을 벗어나고 나서 처음으로 만난 동료였던 유스타키오잖아……? 하하 하……! 그렇다면…… 그 옆에 서 있는 금발의 여자는……! "안녕." 계속 로리아케시 오빠의 얼굴만 쳐다보던 내가 금발 여성 쪽으로 고개를 돌 리자 그녀가 빙긋 웃으며 나에게 인사했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난 또 속 으로 웃음을 흘려야 했다. 내 생각대로 그 여자는 팀파니의 얼굴을 하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어제 말했지만 얜 내 남자 친구인 류드나르야." 로리아케시는 그런 말을 하면서 자기 오빠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오빠가 기분 좋게 웃고만 있자 삐진 표정을 짓더니 약간 감정 조절 안된 어조로 말 했다. "이제 오빠가 소개할 차례라구!" "아, 그런가? 미안." 유스타키오의 얼굴을 하고 있는 로리아케시의 오빠는 자신과 그 옆에 서 있 는 금발 여성을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난 로리아의 오빠인 율리어스. 그리고 이쪽은 팀파니시아." "아, 안녕하세요." 내 행동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난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율리어 스라는 이름은 유스타키오와 많이 다르지만, 팀파니시아라는 이름은 팀파니 와 거의 같기 때문에 그 둘이 이곳에서의 유스타키오와 팀파니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다졌다.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5 / 88 [등록일] 2000년 07월 20일 00:13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30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9장: 의외의 사건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9장:의외의 사건 -3- 총 Page : 21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8 18:12:37 수 정 일 : 크 기 : 8.0K 조회횟수 : 388 "그럼 아직 점심 안 먹었을 테니까 점심 먹으러 가자. 타." 율리어스는 그렇게 반가운 소리를 하며 운전석에 탔고, 그 옆에는 팀파니시 아가 앉았다. 그래서 나와 로리아케시가 뒷좌석에 앉아야 했다. 부르릉- "으으으……!" 점심 먹을만한 곳으로 향하는 동안 로리아케시는 앞좌석에 사이좋게 앉아있 는 율리어스와 팀파니시아를 날카로운 눈으로 째려보면서 라이처럼 으르렁거 렸다.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로리아케시가 그 둘 사이를 질투하는 것 같았다. "호호호! 오빠! 우리 어울려?" 갑자기 내 팔을 끼고 내 옆에 바싹 붙은 로리아케시가 억지로 웃으며 율리 어스에게 물었다. 율리어스는 백미러에 비친 우리들을 보고 하하 웃었다. "잘 어울려. 로리아의 남자 친구인데 어련하려고." "그래요. 만난 적은 없지만 왠지 아주 훌륭한 남자 같아요." "어? 팀파니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류드나르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는 데?" "어머, 당신도요?" 그렇게 또다시 둘만 얘기를 주고받기 시작하자 로리아케시의 표정이 일그러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로리아케시가 저 둘을 질 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오빠가 질투를 느끼도록 하려고 날 남자 친구랍시고 데려왔다는 것도. 흠…… 로리아케시는 율리어스를 좋아하고 있는 건가? 친남매가 아니라 한 남자로서? 하지만 보통 남매가 그런 관계가 되어 버리는 일은 잘 없는 걸로 아는데? 설마…… 친남매가 아닌 이복남매? "자, 오늘은 저곳에서 먹자." 율리어스가 차를 세운 곳은 한 레스토랑 앞이었다. 오죠룬이 있는 세오르시 (市)는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식당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난 정신없 었다. 그래서 그냥 율리어스가 지목한 레스토랑 안으로 따라들어 가기만 했 다. 흘…… 하여간 이런 데 온 적이 거의 없어서 괜히 긴장 되는구만. 그냥 차 라리 간편하게 짜장면 집에 가서 짜장면이나 시켜먹으면 될 걸 가지고……. "앉아." 율리어스는 팀파니시아와 같이 앉았고, 그래서 난 로리아케시 바로 옆에 앉 게 되었다. 율리어스가 나보고 뭐 먹을 거냐고 물었을 때 난 아무거나 좋다 고 했고, 그러자 로리아케시가 돈가스 정식으로 먹으라고 했다. 본래 율리어 스는 돈가스 정식을 잘 먹는 모양인지 그것을 주문했고, 팀파니시아 역시 율 리어스와 같은 것으로 주문했기 때문에 결국 우리들 모두 돈가스 파티를 하 게 되었다. "류드나르는 지금 2학년이지?"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율리어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의 얼굴을 보건대 로리아케시로부터 내 얘기를 별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로리아케시가 내 얘기를 율리어스에게 할 이유가 없지만. "예. 로리아하고 같은 반입니다." "음. 실례지만, 마나는 지금 몇 써클이지?" 율리어스가 인상 좋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기 때문에 나도 별 생각 없이 대 답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전에 팀파니시아가 율리어스를 힐책했다. "율, 그런 건 실례라구요." "나도 알아. 그래서 실례라고 하고 물었잖아." "그럼 묻지 말아야죠." 둘은 그렇게 그 문제로 옥신각신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광경도 사랑싸 움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을 만큼 닭살이었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그 말다 툼을 종결시켰다. "괜찮아요. 지금 7써클의 마나를 회전 중입니다." "음. 그렇군…… 뭐?!" 처음에는 내가 거리낌없이 대답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표정이었다가 내가 말 한 내용을 듣고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팀파니시아나 로 리아케시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내가 7써클이라니까 믿지 못하고 있는 것 이었다. "7, 7써클? 네, 네가? 그 마의 6써클을 넘었다고?!" 로리아케시는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율리어스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나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7써클? 6써클을 이룩하고 나서 얼마의 시간을 소비한 거지?" 음…… 얼마의 시간이냐? 기억력이 나빠서 모르겠군. 내가 6써클을 이룩한 때가…… 어억…… 기억이 안 나…… 크…… 그냥 대충대충 말하는 수밖에. "아마 6개월일 겁니다." "음…… 6개월만에 6써클을 뛰어넘었다라…… 나야 마법사가 아니라서 그런 건 잘 모르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보통 6써클을 넘는 마법사는 흔치 않다고 하고, 설령 넘었다고 해도 몇 년, 아니면 몇십 년이 걸려서 겨우 넘었다고 하던데…… 6개월만에 6써클을 뛰어넘었으니 류드나르는 대단한 천재인걸?" 율리어스는 나를 칭찬함과 동시에 그런 나를 남자 친구로 만든 로리아케시 를 대단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로리아케시는 거의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그제서야 무엇인가를 떠올렸는지 급히 나에게 물었 다. "그럼 기말고사 시험을 망친 건 7써클을 회전시키기 위해서였단 말이야?!" "아…… 뭐 그렇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못 넘었을 테니까." "하……." 로리아케시는 상당히 허탈한 얼굴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능력이 안돼서 기 말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나와 로리아케시의 대 화를 듣고 있던 팀파니시아가 입을 열었다. "류드나르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면이 있는 것 같군요." "아…… 예……."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거는 팀파니시아의 모습은 환타지 세계에서의 팀파니 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환타지 세계와 내가 살던 세계, 그리고 이곳에서 조차 유스타키오와 계속 같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오빠는 천재 과학자라고 불리잖아. 7써클의 마법사보다는 훨씬 위 대하다구!" 내가 칭찬 받는 것이 못마땅한지 로리아케시는 자기 오빠의 자랑을 하기 시 작했다. "10살 때 과학 영재로 발탁돼서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과학계를 주름잡고 있잖아?" "하하, 과학계를 주름잡기는. 이론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로리아케시의 자랑을 율리어스가 열심히 부정하고 있을 때 주문한 돈가스 정식이 줄줄이 나왔고, 우리는 이제 식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다. "과학자세요?" 내 물음에 율리어스는 하하 웃었다. "이름만 과학자야.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했다가 우연히 과학 영재로 발 탁됐지. 그래서 항상 연구소에서만 지내. 집에 오는 건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안되고. 부모님에게나 로리아에게는 미안하지 뭐." "그래도 당신은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부모님이나 로리아도 모두 이해하고 있을 거예요." 팀파니시아가 율리어스를 격려했고 율리어스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나와 로리아에게 팀파니시아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는 것을 떠올리고는 급히 입을 열었다. "팀파니는 나하고 같이 일하고 있어. 말하자면 내 조수인데, 같이 일하다보 니까 어느새 연인 사이로 발전하더라고." "그러셨군요." 팀파니시아가 과학자라는 사실이 의외라서 난 조금 놀랐다. 팀파니시아의 부드러운 성격과 과학자로서의 예리한 이성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였다. "근데 몇 년 동안 사귀신 거예요?" "큭……!" 내가 율리어스와 팀파니시아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돈가스를 나이프로 자르 고 있던 로리아케시가 들릴 듯 말 듯하게 신음을 내질렀다. 내 질문이 못마 땅한 모양이었다. 그러한 로리아케시의 반응을 모르는 율리어스는 실실 쪼개 며 대답했다. "지금 3년 됐어. 뭐 서로 마음을 알게 된 때부터 치면 아직 1년도 안 되지 만 말이야." 호∼ 그랬군. "크으……!" 덜거덕 덜거덕- 율리어스의 대답을 들은 직후부터 로리아케시의 칼질이 요란스러워졌다. 돈 가스를 자르지 않고 자꾸 접시를 자르려고 했던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는 로리아케시의 모습에 율리어스와 팀파니시아가 의아해했고, 난 로리아케시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율리어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결혼은 언제 하실 거예요?" "……!" 역시나 내가 그 질문을 하자마자 로리아케시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비록 시 선은 계속 이상하게 잘라놓은 돈가스에 가 있었지만, 모든 신경을 율리어스 의 입에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뭐…… 나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만, 아마 대략 5월 전후가 될 것 같아." 이미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율리어스는 결혼 날짜까지 입에 담았다. 팀파니시아가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5월달에 결혼한다는 것이 거의 확실한 듯 보였다. "결혼…… 한다구……?" 로리아케시는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율리어스에게 물었다. 그런 로리 아케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율리어스와 팀파니시아에게는 어떻게 들 릴 지는 모르지만 옆에 앉아있는 나는 목소리의 떨림을 확실하게 들었다. 그 러나 율리어스는 그 떨림을 느끼지 못했는지 계속 실실 쪼개면서 말을 했다. "아, 미안. 갑자기 말을 꺼내서 놀랬지? 아버지하고 어머니에게는 이미 말 씀드렸어. 어제 너한테도 말하려고 했다가 전화 상에서 하는 것보다는 직접 팀파니를 만나고 나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 구나……." 로리아케시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같은 여자인 팀파니시아가 그런 로리 아케시의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구체적으로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쓰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마 갑자기 오빠가 결혼한다고 해서 그 런가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식사시간은 끝났고, 이곳저곳을 더 쏘다니다가 대략 4시쯤에 다시 오죠룬 마법학교의 정문으로 돌아왔다. [번 호] 86 / 88 [등록일] 2000년 07월 20일 00:13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34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9장: 의외의 사건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29장:의외의 사건 -4- 총 Page : 2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18 18:12:56 수 정 일 : 크 기 : 11.0K 조회횟수 : 390 "그럼 둘 다 건강해라." "예. 두 분도 건강하세요." 나와 율리어스는 차 밖으로 나와서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로리아케시 가 계속 아무 말도 없이 침울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로리아케시가 아닌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눈 것이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 다시 자신 의 자가용에 올라타려던 율리어스는 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의아한 표정으 로 나에게 물어왔다. "근데 너 데자르에 온 적 있냐?" 얼레? 데자르라면…… 대전 아니었던가? 내가 왜 거길 가? "아니오. 간 적 없는데요." "그래? 거참 이상하네. 분명히 오늘 처음 본 건데 어째서 전에 많이 봤었다 는 느낌이 드는 거지?" 율리어스는 정말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율리어스의 중얼 거림을 들은 팀파니시아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음…… 뭐 어쨌든 나중에 다시 만나자." 전생 같은 것은 잘 믿지 않는 모양인지 율리어스는 그냥 미소만 지은 뒤에 팀파니시아와 함께 승차했다. 그리고는 뿌연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학교 반대 편으로 차를 몰았다. 흘…… 배기가스가 뿌옇다니 배기 기관에 문제가 있나보군. 원래 무색 기체 가 나와야 정상인데. 아, 지금은 겨울이라서 배기가스가 하얗게 보인 건가? 뭐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흑……!" 그때 갑자기 로리아케시가 울음을 터트렸다. 전혀 예상 못한 반응이었기 때 문에 난 멍청히 서서 로리아케시가 우는 모습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왜 우는 거야?" 잠시 후에야 난 겨우 로리아케시에게 그런 질문이나마 던질 수 있었다. 그 러나 로리아케시는 계속 울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넘겨 짚으며 말했다. "오빠가 결혼한다니까 그러는 거지?" "……!" 역시 내 예상대로 로리아케시는 흠칫했다. 그리고는 눈물 젖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눈초리에는 '언제부터 알아차린 거야?'란 뜻이 내포되어 있 었다. 그래서 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네 오빠를 만났을 때부터. 날 남자 친구라고 소개한 것도 오빠에게 질투심 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었겠고." "……." 내 말에 로리아케시는 그 어떤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단지 묵묵히 눈물을 흘 릴 뿐이었다. 그 모습은 평상시의 로리아케시가 아닌 한 명의 나약한 소녀였 다. 그래서 그 어려움을 가능하면 해결해주고 싶었다. "보통 자기 오빠를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잖아? 무슨 이유 가 있었던 거야?" 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내 목소리에 그 어떤 감정도 실어 넣지 않았던 것이다. 로리아케시로부터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다. 다 행히 그런 내 의도가 적중했는지 울기만 하던 로리아케시가 마침내 입을 열 었다. "그래…… 나도 오빠하고 계속 살았다면…… 오빠를 사랑하는 일 따위는 없 었겠지……." "……?" "너도 들었지? 오빠가 10살 때 과학 영재로 발탁됐다는 거." 흠…… 확실히 그렇게 듣긴 했지. 그리고 지금은 22살이라고 들었는데 말이 야. 근데 그게 무슨 문제 있나? "과학 영재로 발탁되고 나서 오빠는 집을 나와 연구소에서 살았어. 집에 오 는 건 한 달에 한두 번뿐이었고. 하지만 오빠가 16살이 되고 나서 3년 동안 집에 단 한번도 오지 않았어. 오빠는 그때 정신없이 과학 공부에 빠져있었거 든. 3년 동안 오빠를 보지 못했고, 게다가 오빠가 16살이었을 때는 난 12살 이었으니까 아직 어린애 티를 못 벗은 상태였지. 그래서 3년이 지나니까 오 빠 얼굴이 가물가물하더라구. 사진은 어릴 때 것밖에 없어서 오빠 얼굴 기억 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됐고. 오빠 얼굴도 기억 못하는 내가 싫기도 했지 만, 과학 영재로 발탁돼서 집에 안 들어오는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했어. 그 래도 난 오빠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 그렇게 3년이 지난 후에 마침내 오 빠가 돌아왔어. 근데……." 자신의 얘기를 쉼 없이 하던 로리아케시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의 일 을 회상하는 로리아케시의 얼굴에서 약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울다가 갑자 기 웃는 로리아케시의 모습에 내가 당황할 때 로리아케시가 이야기를 계속했 다. "그때 난 16살이었어. 평소에는 남자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그 나이가 되 니까 남자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가더라구. 그때 오빠를 다시 만난 거야. 16살 생일 때 본 오빠의 모습은…… 내가 쭉 꿈꾸던 이상형이었어. 백마 탄 왕자 님 같았지……." 그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던 로리아케시는 갑자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 고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묻으며 말을 이었다. "한눈에 반해버렸어…… 오빠한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 어쩔 수 없었어…… 오빠를 사랑해버렸으니까…… 흑……!" 로리아케시가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계속 나 혼자만 서 있는 것도 뭐하기 때문에 난 로리아케시 옆에 걸터앉았다. 학교 정문 앞에 두 남녀가 앉아있는 것을 다른 아이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거 따 질 생각 따위는 없었다. "속으로…… 나 경멸하고 있지……?" 잠시 후에 로리아케시가 고개를 여전히 숙인 채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말했다. "아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네 오빠는 여러 모로 훌륭한 남자고." "……." 그런 내 말에 로리아케시가 고개만을 살짝 돌려 날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 에는 여전히 눈물이 어려 있었다. 상당한 연민을 일으키는 모습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난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 나서 로리아케시에게 물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아무리 오빠를 사랑한다고 해도 윤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고, 게다가 네 오빠는 결혼하잖아. 결국 네가 포기해야 할텐데?" "알아…… 하지만…… 하지만……." 로리아케시는 그 말만을 되풀이할 뿐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둘 사이에는 꽤 오랫동안 무거운 침묵이 맴돌게 되었다. 하…… 이거 골치 아프군. 뭐 나야 로리아케시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오늘 점심을 공짜로 얻어먹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결국 도와줘야 할텐데…… 나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고 도와주냐. 무슨 좋은 말이 없을까? "류드나르…… 넌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어……?" 한참 후에 로리아케시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나 자신조차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난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있을까? 정말로 그 사람이 없다면 안될 정도로 사랑을 해본 적 이 있나? 아세트…… 인티…… 실프…… 그리고 메이로나… … 그들을 난 정말로 사랑했던 것일까? 그들이 없어지면 나도 죽어버리겠다 는 그런 사랑을 했던 걸까? - 아니다. 결론은 그것이었다. 난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내 가 먼저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단지 사랑을 받 기만 했을 뿐, 사랑을 준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하하…… 나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녀석인지도 모르겠군. 사랑을 받기만 하고 준 적이 없으니…… 난 그런 녀석이었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 람 안 붙잡는…… 그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인간이었던 거야……. "사랑…… 해본 적…… 없어." 마지막 말은 분명하게 했다. 그러자 로리아케시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좋겠구나…… 사랑 때문에 가슴 아픈 일은 없었을 테니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랑 하나 못하는 것이 더 가슴 아픈 일일 지도 몰라." "……!" 내 말이 꽤 충격적이었는지 로리아케시가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난 별 로 충격적인 얘기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단지 간신히 로리아케시가 울고 있 던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이때에 무슨 말이라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 아서 열심히 지껄여댔다. "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 있다는 거니까 좋은 일이야. 사랑을 하게 되 면 당연히 이별의 아픔 같은 것도 겪게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물론 그런 거 원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야. 난…… 감정이 메말라버려서 사랑 같은 것도 못 느껴." "……." 이런 이런,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나보구만. 로리아케시가 멀뚱멀뚱한 표정 으로 쳐다보잖아? 어쨌거나 빨리 로리아케시의 슬픔을 극복하게 해줘야 할텐 데…… 제발 좋은 말이 떠올라라……! "사랑의 아픔을 잊기 위해서는…… 아니, 꼭 사랑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픔 을 잊기 위해서는…… 어떤 일에 몰두하면 돼. 사람은 한번에 하나밖에 생각 할 수 없으니까 그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에는 사랑의 아픔이든 뭐든 잊게 되지. 물론 이게 좋은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계속 아픔 속에서 살아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너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거나, 아니면 공부를 열심히 하던가 하는 쪽이 좋겠지." 후아…… 겨우 말했다! 정신없이 나불거려서 말의 앞뒤가 제대로 맞았는지 모르겠구만. 그나저나 너무 흔한 말을 해버려서 조금 그렇군. 결국 누구나 알고 있는 소리였잖아? 흘…… 내 수준이 다 그렇지 뭐……. "그렇구나…… 새로운 남자 친구라……." 다행히 로리아케시는 내 말에 수긍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눈물 젖은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로리아케시가 내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며 물음을 던졌다. "넌 남은 방학 동안에 뭐할 거야?" "나? 나야 뭐 마법 수련할 거야. 적어도 방학 끝나기 전에 8써클을 이룩할 테니까." 난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로리아케시가 약간 어두운 표정으 로 물었다. "왜…… 그렇게 마법 수련에 열심인 거야? 혹시…… 너도 어떤 아픔을 가지 고 있는 거야? 그래서 그걸 잊으려고 그렇게 마법 수련을 하려는 거야?" "……!" 로리아케시의 말은 거의 정확했다. 메이로나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마법 수련에 빠지기로 결정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누구나……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구.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겨울의 땅바닥은 상당히 차가웠다. 그리고 날씨도 추웠기 때문에 이대로 계 속 학교 정문 앞에 주저앉아 있다가는 동태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만 들어가자. 여기 있다가는 슬픔 때문에 가슴 터져 죽는 것보다 먼저 얼어죽겠다." "훗." 율리어스와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로리아케시의 웃는 모습. 이제 어느 정 도 그 슬픔을 극복할 힘이 생긴 듯했다. 비록 내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로리아케시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서 다행 이라고 생각하고 막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난 기절할 정도로 놀라 고 말았다. 학교 정문 바로 안쪽, 그러니까 우리 바로 뒤쪽에 에레나리스가 서 있었던 것이었다. "에레나!" 로리아케시도 에레나리스를 보고 크게 놀랬다. 자신의 얘기를 에레나리스가 듣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 역시 에레나리스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에레나리스가 무슨 말을 하 는가에 따라 대응 방법을 달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머? 둘이 여기서 뭐해? 데이트하는 거야?" 에레나리스의 입에서 그 말이 튀어나오자 로리아케시는 즉시 얼굴의 긴장을 풀고 전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이런 애하고 데이트한다고 그래? 그럼 나 먼저 갈 테니까 둘이 잘 해 봐∼" 그러면서 로리아케시는 기숙사 쪽으로 열심히 달려갔다. 로리아케시가 돌아 갔기 때문에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진 나도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진 에레나리스의 말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로리아가 자기 오빠를 사랑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 "……!" 헉! 그렇다면 다 들었던 거야? 이런…… 도대체 어떻게 우리 뒤에 서서 다 들을 수 있었던 거지? 거의 귀신 수준이구만! "왜 여기 나온 거야?" 난 조금 굳은 얼굴을 하며 물었고 에레나리스는 나와는 달리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냥. 오늘 로리아가 나간 뒤에 지금쯤이면 올 것 같아서 산책 겸 나와 있 었던 거야." "그렇게 할 일이 없냐?" "산책도 할 일에 속해." 내 퉁명스러운 말에도 에레나리스는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어쨌든 로 리아케시의 개인적인 일이 알려지면 큰일이기 때문에 난 에레나리스에게 못 박았다. "아무한테도 알리지 마. 로리아케시하고 친구니까 그 정도는 지킬 수 있겠 지?" "나도 이런 걸 떠들며 다니고 싶지 않아." 그렇게 말한 에레나리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에레나리스의 모습이 사라진 후 학교 정문 앞에 혼자 서 있던 나는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기숙사 쪽으로 뛰어 갔다. 하…… 이걸로 잘된 건가? 모르겠군. 내가 뭐 잘한 일이 있어야지. 하여간 에레나리스는 아주 위험해. 귀신 같이 나타나서 남의 얘기를 엿듣는 엄청난 능력이 있으니까. 앞으로는 더더욱 조심해야겠어! ─────────────────────────────────────── [번 호] 87 / 88 [등록일] 2000년 07월 20일 22:27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24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0장: 일상적인 나날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일상적인 나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522 게 시 일 :00/07/20 19:16:55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142 <제 30 장> 일상적인 나날 으으으…… 제발…… 제발…… 제발 느껴져라……! …….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지금은 2221년 1월 28일. 2221년의 1월달도 거의 끝나 가는 시점이었다. 이미 8써클의 마나 회전은 일주일 전에 끝냈고, 지금 내가 도전하는 것은 뭉쳐져 있다고 여겨지는 내 본래의 마력을 느끼도록 하 려는 것이었다. "……." 외부의 마나를 마나 파장으로써 뭉치게 하고, 그 뭉쳐진 마나 덩어리를 내 몸 속에 쑤셔 박는다…… 말로는 쉬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짜증나 죽겠다……! "웅얼웅얼" 그때 내 귀로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난 모든 정신을 마나 느끼는 것에 쏟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무슨 말을 하는 것까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차! 이런!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의 웅얼거림을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집중력이 흩으러 졌다는 거잖아? 안돼, 이래선 진전이 없다구! 다시 한번 집 중해서 해보는 거닷! ……. 시간은 또 흘러갔다. 점점 성공에 다가가는 나 자신을 느끼며 난 계속해서 마나 덩어리를 내 몸 속에 쑤셔 박는 것을 시도했다. 하도 오랫동안해서 머 리가 지끈지끈 아팠지만, 곧 성공할 것만 같아서 감히 도전을 그만둘 수 없 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 조금만 더 힘 내면 돼…… 제발…… 제발…… 이번엔 제발 성공 좀 해달란 말이다! "……!" 그렇게 속으로 바락바락 악을 쓰다가 마침내 뭉쳐진 마나 덩어리를 내 몸 속에 넣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 부근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지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 나,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몸 속으로 마나 덩어리를 밀어 넣자마자 바로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헉! 엄청난 양의 마나가 갈라진다……! 이건 바위가 쩍쩍 갈라지는 것 같잖 아? 이러다가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모았던 마나가 모두 갈라져서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는 거 아니야?! "……!" 마구 쪼개진 마나들은 내 몸 속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조용한 벌집을 들 쑤신 것 같은 느낌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그렇게 정신없이 온몸을 누비 던 본래의 내 마나가 이내 고요해졌다. 다시 방금 전의 굳은 상태로 되어버 린 것이었다. 아니야…… 지금 이건…… 마나가 다시 방금 전처럼 굳어버린 게 아니야… … 지금 내 본래의 마나들은…… 활성화된 상태인 거야! 환타지 세계에 있을 때처럼 활성화된 상태!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인 거야! "하하하하―!" 난 정신없이 웃었다. 이렇게 쉽게 내 본래 마력을 되찾을 것이라고는 생각 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마나를 느끼자마자 본래의 마력을 되찾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쉽 게 본래 마력을 되찾았다고 느껴버린 것이었다. "왜 그래, 류드? 뭐 잘못 먹었어?" 가만히 침대에 앉아 마법 수련을 하던 내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자 네오니스 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라면 이 상황에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을 테지만, 지금은 기분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그러고 싶 지 않았다. "어, 마법 수련이 생각보다 잘 돼서 말이야." "…… 지금 그거 자랑이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가 날카롭게 노려봐도 기분은 좋았다. 자신이 잃고 있던 본래의 힘을 되찾았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일 줄은 정말 몰랐다.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정지한 듯 움직이는 내 본래의 마나를 느껴보았다. "이번엔 진짜 기쁜가 보네? 지금까지 억지로 웃더니만." "뭐 좋잖아? 사람은 자고로 웃는 모습이 좋다니까."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는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 둘도 보물 사냥 여행에 서 돌아온 뒤로 내가 억지로 웃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마법 수련의 성공을 계기로 나 자신 역시 예전 일을 잊고 싶었다. 그나저나…… 어째서 내 몸 속에 축적시켰던 8클래스의 마력만이 느껴지는 거지? 원래 난 내 몸에다 옷을 걸치듯이 2클래스의 마력을 더 축적시켰었는 데? 그건 또 어디로 간 거야? 왜 안 느껴지지? 이상한데? 음…… 라드 선배 한테 한 번 물어볼까? "나 좀 라드 선배한테 가볼게." 난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내가 나오는 것이 네오니 스와 크리스토르를 당황하게 할 수 있었지만, 둘 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라드 선배의 기숙사로 향했다. 똑똑- "라드 선배, 안에 있어요?" 내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라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드나르? 들어와." 흘…… 얼마나 사람이 안 찾아오면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나인 걸 알아차리냐 고. 하여간 과학하고 마법에 빠져서 친구도 안 만드니……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를 텐데.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뭐하세요?" 라드 선배는 항상 문을 잠그지 않기 때문에 난 가볍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가며 라드 선배에게 예의 상 물었다. 어차피 과학 공부나 마법 공부를 하 고 있을 게 뻔했다. "아, 과학 서적 좀 보고 있었어." 역시나 라드 선배는 책상에 앉아서 과학 서적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난 허락 없이 의자 하나를 잡아끌어 라드 선배 옆에 앉은 뒤에 입을 열었다.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어요." "그래? 뭔데?" 라드 선배가 내 말에 흥미를 느낀 듯 날 쳐다보았다. 저번에 내가 했던 말 들이 모두 자신에게 흥미로웠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가 흥미로운 말을 할 것 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번에 내가 물어 볼 것이 라드 선배에게 흥미로울 지 흥미롭지 않을지 알 수 없었고, 그리고 라드 선배라고 해서 알아낼 수 있 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물어보기로 했다. "오늘 마법 수련을 하다가 저번에 라드 선배가 말해준 대로 마나 덩어리를 몸 속에 축적시켜 봤거든요?" "그래? 성공했어?" 흘…… 즉각 반응하는군. 뭐 자기가 제안했던 방법이니까 성공했는지 안 했 는지를 알고 싶은 건 당연하겠지. "성공했어요." "성공? 어떻게 됐어? 본래 가지고 있던 마나를 느꼈어?" 라드 선배는 내가 차근히 다 말할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에게 막 물었다. 하지만 그만큼 내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만한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라드 선배가 묻는 대로 대 답했다. "느꼈어요." "진짜?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에…… 처음엔 바위가 깨지듯이 굳어 있던 마나가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다음에는 마나가 활성화 상태로 되었구요.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해도 좋게 말이죠." "아……!" 라드 선배는 아주 잘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제안했던 방법이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으니 기분 좋은 것은 아주 당연했다. 게다가 마법에 상 당한 관심이 있는 라드 선배이니 만큼 이번의 성공으로 마법에 대해 더욱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됐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라드 선배한테 물어보려구요. 굳어져 있던 마나를 들쑤시자마자 아 무 이상 없이 활성화 되어버린 게 미심쩍거든요. 너무 쉽게 된 것 같아서 찜 찜하고……." 내가 묻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었다. 라드 선배 역시 그 점이 이상한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나도 한번 생각해보려고 노력했고, 라드 선배도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방안은 고요 속에 잠기게 되었다.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 소리를 들으며 내 생각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나는 문득 한가 지 말하지 않은 게 있음을 떠올리고는 즉시 라드 선배에게 그것을 알려주었 다. "아차, 저번에 제가 인간의 한계 마력인 8클래스 외에 2클래스의 마력을 옷 걸치듯이 몸 바깥에 축적시켰다고 했잖아요? 근데 지금 그 2클래스의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요. 혹시 그 마력이 뭔가 작용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내 말에 라드 선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렇다면 아마 그 2클래스의 마력이 네 몸 속에 있는 마력과 네 몸 바깥을 회전하고 있는 마나의 힘을 서로 상쇄시켜 주고 있을 거야. 그래서 성질이 다른 두 마나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안전하게 유지되고 있는 거겠지." 흠…… 그럴지도 모르겠군. 위치 상 그 2클래스의 마나는 내 몸을 회전하고 있는 8써클의 마나와 내 몸 속에 축적되어 있는 8클래스의 마나의 중간이니 까 말이야. 이건 꼭 우주 속을 떠다니는 사람 같군. 거의 진공과 다름없는 우주 공간에서 우주복이 사람의 몸을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온통 열심히 움 직이는 마나 공간에서 2클래스의 마나가 내 몸 속에 있는 8클래스의 마나를 지켜주고 있는 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번 호] 88 / 88 [등록일] 2000년 07월 20일 22:28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26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0장: 일상적인 나날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일상적인 나날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523 게 시 일 :00/07/20 19:17:12 수 정 일 : 크 기 :8.3K 조회횟수 :140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이제 대강 궁금증이 풀리는 것 같네요." 사실 정확한 대답 듣기를 바라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한 이득이 되었다. 라드 선배도 나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을 주었다는 만 족감으로 같이 기뻐했다. "언제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와. 성심껏 대답해줄 테니까." "예. 그럼 전 가볼게요." "그래." 할 일만 마치고 휭 하니 가버리는 날 라드 선배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지 만, 같이 있어봤자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난 그냥 인사만 하고 방을 나왔다. 쩝…… 하여간 난 볼일이 없으면 누구를 만나지도 않고 얘기도 하지 않으니 …… 이러니까 친구가 없지…… 얼레? 그러고 보니 인연의 끈이란 걸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으…… 아, 됐어. 귀찮아. 어차피 돌아갈 방법도 없는데 끈을 많이 만들면 뭐하냐고. 뭔가 희망이 보여야 뭘 하지. 게다가 사람 많이 만나는 건 내 성격에 절대로 안 맞는단 말이다. "쳇! 뭔 학교가 이렇게 넓어? 걷다가 지쳐버리겠다!" "오빠, 그래도 기숙사가 있으니까 멀리서 통학하지 않아도 되잖아?" "난 기숙사 같은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 중등부 3학년들이 있는 M6관을 나와 M4관으로 향하는 도중 본관 뒷문으로부 터 몰려나오는 여섯 명의 남녀를 볼 수 있었다. 딱 남자 셋 여자 셋이었고 모두 내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붉은색의 단발머리와 파란색의 긴 머리, 주 황색의 스포츠 머리, 녹색의 긴 머리, 핑크빛의 긴 머리, 그리고 짧은 금발 머리로 완전히 다른 머리색 때문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아, 류드!" 그때 그 여섯 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그것은 네오니스의 목소리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여섯 명의 아이들 중 짧 은 금발머리와 핑크빛의 긴 머리는 네오니스와 에레나리스였다. "어……." 방에 있어야 할 네오니스가 왜 여기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난 좀 얼떨떨하 게 대답했다. 그런 날 쳐다보던 나머지 네 명 중에서 한 소녀가 반가운 음성 으로 소리쳤다. "류드나르씨!" "……?" 얼레? 날 이곳에서 그런 식으로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데? 설마?! "안녕하세요! 여기 오자마자 만나게 되네요." 내 앞으로 달려나온 그 소녀는 예의바르게 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난 겨우 얼떨떨한 상태에서 벗어나 그 소녀를 비롯한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 네 명의 아이들은 특법사인 사라만다, 운디네시스, 잭오랜턴, 그리고 실피르디 아였던 것이다. "학교 오자마자 저 녀석을 만나게 되다니, 운도 더럽게 없군." 사라만다는 여전히 띠꺼운 표정으로 날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 던 운디네시스가 사라만다를 힐책했다. "오빠! 그런 말 좀 하지마!" 흘…… 사라만다 때문에 운디네시스가 고생하는군. 하여간 화염계 마법을 잘 다루는 염법사라서 그런지 성격이 불같은 것 같다. 뭐 사실 내가 더 성격 은 더럽지만. "근데 너희들 모두 여기로 편입한 거야?"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네오니스가 했다. "그래. 개학하자마자 우선 우리 반으로 들어와." 엥? 개학하자마자 우리 반으로 들어온다고? 인원 초과잖아? 게다가 개학하 고 나서 보름 정도 지나면 공식적으로 작년 수업이 끝나고, 그러면 반도 바 꾸고 기숙사도 죄다 옮길텐데? 차라리 3월달부터 다니게 하지 왜 개학하자마 자 다니라는 거야? "그거 교장 선생님이 맘대로 결정하신 거지?" 난 네오니스를 보며 물었지만 대답은 에레나리스가 했다. "응. 학교 적응을 빨리 하려면 보름 정도라도 학교 수업을 받는 게 좋다고 하셨거든." 흘…… 학교 적응이라…… 이유도 잘 갖다 붙이는군. 그건 그렇다 쳐도 왜 하필이면 우리 반에다 얘네들 전부를 집어넣냐고. 이건 명백한 교장 할배의 농간이야!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실피르디아는 나에게 존댓말을 하며 물었다. 같은 학년에다 같은 반씩이나 될 텐데도 전혀 말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왠지 그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아서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너희들도 잘 지냈냐?" "네. 다른 특법사들이 새로 들어와서 저희들이 실험에 반드시 참여할 필요 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이곳에 오게 됐구요." 흠…… 그렇군. 좋게 말하자면 스카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명예퇴직인가? "뭐야? 서로 아는 사이였어?" 나와 실피르디아 등이 서로 스스럼없이 얘기를 주고받자 네오니스가 꽤 놀 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간결하게 녀석들과 만난 경위를 들려주 었다. "여름 방학 때 교장 선생님 따라 마법 연구소에 갔을 때 알게 됐어." "아…… 그렇구나." 그다지 알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네오니스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내가 이 녀석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류드, 난 얘들에게 기숙사 있는 곳하고 방을 가르쳐줘야 하니까 먼저 간다." "어." 네오니스는 사라만다와 잭오랜턴을 이끌고 중등부 2학년 남자들이 기거하는 M4관으로 향했고,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는 에레나리스를 따라 M5관으로 들어갔다. 난 잠시 그렇게 두 부류로 찢어지는 특법사들을 바라보다가 방으 로 돌아가기 위해 M4관 쪽으로 걸어갔다. 하…… 사라만다 녀석이 와버렸으니 앞으로 자주 싸우게 생겼군. 불의 정령 인 사라만다는 그나마 내 말은 잘 들었는데 저 녀석은…… 에휴…….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예정대로 개학하자마자 사라만다 등이 모두 우리 반 으로 편입했고 거의 형식적으로 하는 수업을 받았다. 그 동안 난 사라만다와 자주 말다툼을 하며 지내야했다. 항상 싸움을 걸어오는 쪽은 사라만다였지만, 환타지 세계에서의 우정(?) 상 차마 무시할 수 없어서 그냥 같이 맞받아주었 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221년 2월 14일이 되었다. 하…… 다음주부터 봄방학이구만. 그리고 봄방학 끝나면 새학기가 시작되겠 지. 쩝, 결국 난 2학년 수업을 또 듣게 됐군. 뭐 그래봤자 2학년 1학기 수업 은 전혀 듣지 않았으니까 처음 한다는 기분으로 시작하면 되겠지. 그나저나 오늘따라 아이들이 어수선해 보인다? 다음주부터 방학이라 그런가? 어제 여 자 아이들이 밖으로 많이 나가던 것 같은데…… 오늘이 무슨 날인감? "야, 류드! 너 초콜렛 받았냐?" 아침 조회 시작 15분 전에 네오니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난 왜 네오니스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 몰라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근데 왜 갑자기 초콜렛 얘기를?" "허억! 너 모르는 거야?" 내 말에 네오니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궁금했 기 때문에 급히 네오니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무슨 날이냐?" "나원…… 정말 몰라? 오늘은 발렌타인의 날이라고!" 발렌…… 뭐시기? 처음 들어보는 건데? 발렌타인 데이는 들어봤어도…… 앗, 그렇다면 발렌타인의 날이란 게 발렌타인 데이를 뜻하는 것?! "그래서 뭐 하는 날인데?" 난 우선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괜히 아는 척 말했 다가 쪽 당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 네오니스는 놀랍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발렌타인의 날을 모르다니…… 너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냐?" 흘…… 뭐하고 살긴. 그냥 되는대로 살았지. "발렌타인의 날에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렛을 준다고. 알겠냐?" 네오니스의 설명을 듣고 나서 발렌타인의 날이란 것이 발렌타인 데이임을 알게 되었다. 2221년이나 된 이 시기에 발렌타인 데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꽤 놀라웠다. "그럼 남자가 여자한테 사탕 주는 날도 있냐?" 내 물음에 네오니스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히트의 날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왜 발렌타인의 날을 모르냐?" 얼레? 히트의 날? 히트…… 하얀색이란 말 아니었던가? 하얀색의 날? 그게 화이트 데이냐? 하…… 이름도 참 이상하게 변했어……. "그건 들었거든. 근데 네오 너는 초콜렛 받았냐?" 난 화제를 바꾸기 위해 말을 돌렸고, 네오니스는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무 엇인가를 꺼내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손에 들어오는 크기의 작은 선물 상자였다. "오늘 아침 네린에게서 받은 거야. 부럽지?" 흘…… 그런 걸로 자랑하냐? "그래도 대부분은 그냥 우정 상 초콜렛을 막 나눠주잖아?" 내 말에 네오니스가 내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그렇게 말하면 죽여뿐다!" "아, 알았으니까 놔라……." 정신없이 내 머리를 흔들던 네오니스는 네스포린이 줬다는 초콜렛 상자를 소중하게 다루며 헤죽헤죽 웃었다. 그 실성한 모습에 난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네오! 그거 너만 먹을 거냐?!" 그때 크리스토르가 잽싸게 달려오더니 네오니스의 초콜렛 상자를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평소라면 군말 없이 같이 나눠먹었을 테지만, 오늘만은 달랐 다. "안돼! 이건 누구한테도 안 줘! 그러니까 빨랑 가!" "앗, 치사한! 좀 나눠먹자!" "안 된다니까 그러네! 너 같으면 같이 먹고 싶겠냐?!"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를 보기 민망해서 난 슬쩍 자리 에서 일어났다. 초콜렛 하나 때문에 둘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가지 않도록 빌 면서. 쩝…… 나야 태어나서 누구한테 선물 같은 거 정식으로 받은 적도 없고 준 적은 아예 없으니 기대도 안 하지만…… 남자 아이들은 많은 기대를 걸고 있 는 것 같구만. 왠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부럽게 보이기도 하는군. 아…… 애들이 초콜렛 먹는 거 보니까 나도 배고프다……! ====================================================================== 글을 쓰려고 컴 앞에 앉아 한글을 띄우는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 눈은 핑핑 손발은 바들바들...ㅡㅡ; 이러다간 오래 못 살겄당...ㅠ.ㅠ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9 / 90 [등록일] 2000년 07월 22일 22:17 Page : 1 / 17 [등록자] THEBUR [조 회] 12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0장: 일상적인 나날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0장:일상적인 나날 -3-... 총 Page : 2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2 19:49:28 수 정 일 : 크 기 : 8.1K 조회횟수 : 116 "류드나르씨!" 그때 실피르디아가 날 불렀다. 그녀는 평소에도 이곳 아이들 모두에게 존댓 말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이제는 실피르디아의 말투에 신경 쓰 지 않았다. 실피르디아가 유일하게 말을 놓고 있는 상대는 같은 특법사인 사 라만다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오랜턴밖에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실피르디아 옆에는 운디네시스도 있었다. 운디네시스는 우리 반 전체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 물론 그래봤자 1년 차이였지만. 어쨌든 그래서 실피르 디아처럼 항상 존댓말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실피르디아의 영 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아 보였다. "왜?" 나한테로 온 그 예쁜 두 소녀들을 바라보며 내가 묻자 실피르디아가 먼저 무엇인가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받으세요." "……?" 실피르디아가 내게 건네준 것은 작은 선물 상자였다. 왜 이것을 나에게 주 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동안 이번엔 운디네시스가 실피르디아의 것과 크기가 거의 비슷한 선물 상자를 나에게 주었다. 얼레? 이건 뭐지? 오늘 내 생일도 아니고, 내 생일을 말해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선물을 나한테 주는 거지? 오늘은…… 발렌타인의 날…… 허 걱! 그렇다면 이것은!!! "저번에 운디네를 구해주신 것하고 마법 실험에 참여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의 표시예요." 실피르디아는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었다. 그리고 실피르디아에 이어 운디 네시스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번에 절 구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에요." "……." 흘…… 그거였냐? 난 또 이상한 쪽으로 생각해버렸잖아. 뭐 이유야 어쨌든 이런 날에 이런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었으니 기분은 괜찮군. "아, 그런데 초콜렛 좋아하세요?" 실피르디아의 물음에 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초콜렛 자체는 좋아하지 않아. 너무 달거든. 난 너무 단 것은 싫어. 금방 질려서 말이야. 물론 초콜렛 들어간 과자는 아주 좋아하지만." "그렇군요. 그럼 초콜렛 과자를 사올 걸 그랬나?" 으흐흐, 왠만하면 지금 사주라∼ "괜찮아. 이걸로도 충분하니까." 그러나 내 입은 내 마음과는 달리 반대로 말하고 말았다. 내 말에 두 소녀 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인사하고는 이번엔 다른 아이들에게 초 콜렛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초콜렛은 선물 상자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낱개의 초콜렛이었다. 우헐헐∼ 감사의 표시라지만 나만 이런 초콜렛 선물을 받으니까 기분 죽이 는구만! 자, 그럼 이 초콜렛은 나 혼자 맛있게 잡숴볼까나? 생전 처음 받은 선물을 다른 녀석들에게 뺏기면 안되니까! "야, 류드! 너만 먹지마!!!" "나도 좀 줘라!" 그렇게 내게서 초콜렛을 요구하는 사악한 인간은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였 다. 난 니트로바츠가 아세트니퍼에게서 초콜렛을 받는 광경을 잠시 쳐다보다 가 나에게 다가오는 그 두 사악한 인간들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건 내 꺼니까 건들지 마라. 건들면 다쳐." "치사한!" "그러는 너는 안 치사하냐?!" 날 보고 치사하다는 네오니스의 말에 누구에게서도 초콜렛을 받지 못한 크 리스토르가 이번엔 공격 대상을 바꾸어 네오니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둘의 싸움을 재미있게 보다가 곧 아침 조회가 시작될 시간인 것을 보고 즉시 내 자리에 앉았다. 우헐헐, 왠지 먹어버리기는 아깝지만 선물이니까 맛있게 먹어야겠지. 근데 여기서 먹을까 기숙사에 돌아가서 먹을까? 흠…… 그것도 갈등 생기는군. 에 …… 네오니스랑 크리스토르를 놀리면서 나 혼자 먹을까? 흐흐흐, 그거 재미 있겠군! ……. 거의 놀자판인 수업이 끝난 후, 청소 당번이라 교실 청소를 하고 나서 유유 히 내 방 기숙사로 향했다.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가 준 초콜렛은 이미 나 혼자 꿀꺽한 상태였다. 먹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초콜렛 상자에 들어있던 초 콜렛은 하트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아주 감격하고 말았다. 하트 모양이기 때문에 내 생각보다 초콜렛 크기가 컸던 것이다. "어? 안녕, 류드나르." 내가 막 본관 뒷문을 나와 M4관 현관으로 들어가려 할 때 막 M5관에서 나오 던 에레나리스와 만났다.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도 없어서 난 대충 인사하고 다시 현관 계단을 올라가려고 했다. 그때 에레나리스가 날 불 렀다. "류드나르, 초콜렛 남은 거 있는데 줄까?" "……!" 갑자기 귀가 솔깃해졌다. 먹는 걸 주겠다는데 마다할 내가 아니었다. 그래 서 난 즉시 에레나리스 앞에 가서 섰다. "주면 고맙지." "훗, 먹을 걸 밝히네?" 흘…… 남에게 얻어먹는 게 얼마나 맛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군. "줄려면 빨리 줘." 내가 애처럼 재촉하자 에레나리스는 손에 쥐고 있던 것 같은 작은 선물 상 자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난 그냥 초콜렛을 낱개로 주는 줄 알았다가 갑자기 선물 상자가 튀어나왔기 때문에 당황해버렸다. "이걸 날 준다고?" "왜? 받기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준비할 정도면 이거 줄 사람 정한 거 아니야?" 내가 선물 상자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을 하자 에레나리스는 웃으면서 대 답했다. "원래 내 친구한테 줄 생각이었는데 그 애가 오늘 집으로 가버려서 남은 거 야." 흠…… 집으로 갔다라……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뭐 내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중요한 건 그 아이 덕분에 이 초콜렛을 내가 먹을 수 있게 되 었다는 것뿐! "그럼 고마운 마음으로 먹을게." 에레나리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난 재빨리 그 초콜렛 상자를 가로채고 나 서 에레나리스에게 한번 웃어준 다음 빠른 발걸음으로 계단을 밟았다. 이것 으로 또 초콜렛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막 째졌다. "……?" 기분 좋게 초콜렛 상자를 들고 내 방이 있는 복도 입구에 들어섰을 때, 복 도에 로리아케시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막 서성이 고 있는 폼이 무슨 급한 볼일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내가 다가가 묻자 로리아케시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 없이 날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야, 왜 그래?" "잔말 말고 따라와." "……." 로리아케시의 위협적인 말에 난 그저 조용히 로리아케시의 뒤를 따랐다. 혹 시나 방금 전에 에레나리스에게서 받은 초콜렛을 조금 달라고 하는 것이 아 닐까 해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로리아케시는 날 기숙사 옆에 있는 행 사장으로 끌고 가더니 아이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큰 나무 뒤편에 숨었다. "뭐 여기면 괜찮겠지." 주위에 아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로리아케시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선물 상자였다. 즉, 초콜렛 선 물이었던 것이다. 오……! 이게 왠 횡재냐? 초콜렛을 무려 4개나 받다니! 이건 기적이라고 밖 에 할 수 없어!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한다니까! "나 먹으라고?" "뭐야? 그 말투는? 받기 싫어?" "아니. 근데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야?" 내 물음에 로리아케시가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맘에는 안 들지만 내 사생활을 말하지 않은 고마움의 표시니까 받으라구." 아, 그런 뜻이었군. 뭐 상관없어. 초콜렛만 받으면 그만이지∼ "고마워." 난 로리아케시에게서 그 초콜렛 선물을 받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러나 내 가 무의식적으로 올린 손은 오른손이었다. 그 오른손에는 에레나리스가 준 선물 상자가 쥐어져 있었다. "뭐야, 그건?" "아…… 이건……" 이런! 내가 또 초콜렛을 받았다는 걸 알면 '그럼 내가 굳이 줄 필요도 없겠 네? 그거 먹으면 되잖아?'라고 하겠지? 으헉! 망했다!!! "에레나리스가 준 건데……." 난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로리아케시는 그런 내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에레나가 줬다구? 거짓말하지마!" 얜 또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보이는 거야? 내가 이런 초콜렛 선물도 못 받 을 정도로 하찮게 보인다 이거냐? 기분 나쁘군. "본인한테 물어봐. 난 사실을 말할 뿐이니까." 내가 표정을 굳히면서 말하자 로리아케시도 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 차린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말도 안돼…… 에레나가 너에게 그런 걸 줬다니……!" "……." 흘…… 듣다보니 화나는군. 내가 에레나리스한테서 이런 거 못 받을 이유라 도 있는 거냐? 초콜렛 주니까 '꽤 괜찮은 녀석이로군.'이라고 생각하려 했더 니 안 되겠어. "난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냐?" 약간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내 말투는 꽤 퉁명스러워졌다. 그러나 로리아 케시는 그런 내 말투에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만 했다. "에레나가 다른 애들에게 저런 거 준 적이 없었는데…… 어째서……?" "……?" 얼라? 방금 얘가 무슨 말을 했지? "뭐라고?" 내가 묻자 로리아케시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에레나하고는 3년 가까이 사귀었지만 걔가 누구한테 선물하는 거 한번도 못 봤어. 기껏해야 생일 선물이 고작이라구. 발렌타인의 날에 선물 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애란 말이야." 얼라리……? "게다가 오늘도 누구한테 뭘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얼라리여…… 그럼 뭐야? 나한테 이런 걸 줬다는 뜻은…… 설마……?! "헤…… 그렇다고 설마 에레나가 너한테 반해서 그걸 준 것은 아니겠지." 로리아케시는 묘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주려고 했던 초콜렛 선물을 내 왼 손에 건네주고는 총총히 기숙사 쪽으로 걸어갔다. 난 내 양손에 들린 초콜렛 선물을 멍청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난 이런 결론을 내렸다. -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번 호] 90 / 90 [등록일] 2000년 07월 22일 22:18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12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0장: 일상적인 나날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0장:일상적인 나날 -4-... 총 Page : 27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2 19:50:06 수 정 일 : 크 기 : 11.0K 조회횟수 : 105 내 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서 선물다운 선물을 받은 발렌타인의 날 이 지나가고 봄방학이 되었다. 그러나 봄방학은 마법 수련하다보니까 그야말 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처음엔 내 본래의 마력을 되찾았으니 이제 더 이상 마법 수련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좀더 머리를 굴려본 결과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력을 소비할 경우 이곳과 내 본래 마나의 성질이 다르므 로 다시 본래 마나가 내 몸 속에 축적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겨우 생각해내 었다. 즉, 8클래스의 마력은 이곳에서 한번 쓰면 땡인 일회용이 되어버린 것 이다. 따라서 난 계속해서 마나를 회전시켜 나갔다. 8클래스의 마력을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내 마력 수준을 더 높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마의 6써클을 뛰어 넘은 후 8써클을 이루고 나서 봄방학 동안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이지만 어 느새 난 9써클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너무 쉽게 9써클까지 이루어서 내가 다 어이없었다. 이제 한 써클수의 마나만 더 회전시키면 드디어 교장 할배의 마 력에 필적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페이스대로 나간다면 충분히 한달 안에 10써클을 회전시킬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사회는 나에게 항상 시 련을 안겨 주었다. 2221년 3월 2일 금요일. 새 학기가 시작되어 버린 것이었다. 내년에 3학년 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날 죽여버린다고 학기 첫날 교장 할배가 나한테 엄포 를 놓았기 때문에 감히 공부에 소홀할 수가 없어서 더 이상 마법 수련만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교장 할배에게 10써클을 이룩할 테니 날 방해하지 말아달라고 했으나 교장 할배는 내 요구를 거절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마법 수련하도록 지원해 주었던 교장 할배가 왜 갑자기 마법 수련하겠다는 날 방 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짐작 가는 바는 교장 할배가 나 대신 무언가 자신의 음모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 같다는 점이었다. 띵- 띵- 띵- 띵- 수업 종료종이 울리고 나서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반 아이들 중 대부분 이 교체되었지만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네오니스와 크리스토르, 그리고 니트로바츠와 아세트니퍼는 여전히 나와 같은 반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네 오니스의 애인인 네스포린까지 가세했고, 특법사인 사라만다 등도 모두 내 반이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교장 할배의 얍삽한 술책이라 보는 것이 정 확했다. "네오! 내일 히트의 날인 거 잊지 않았겠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네스포린이 네오니스를 향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고 네 오니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 잊어 먹으면 사람이냐?" "……." 윽…… 네오니스 녀석…… 그럼 난 사람이 아니냐? 난 잊어 먹고 있었단 말 이다……! "야! 네오! 사탕 많이 사와라!" 크리스토르가 실실 쪼개며 그렇게 말했지만 네오니스는 가볍게 녀석의 말을 씹어 버렸다. 둘 사이의 우정에 쩍쩍 금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난 내일 사탕 을 전해주어야 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우선…… 나한테 초콜렛을 건네줬던 실피르디아, 운디네시스, 에레나리스, 그리고 로리아케시에게는 기본적으로 줘야겠지. 그 외에는 특별히 줄 사람도 없군. 그럼 사탕이 많이 남겠는걸? 어차피 나야 값싸게 사탕 한 봉지 짜리를 사서 낱개로 나눠줄 테니까. 흠…… 조금 사악한가? 뭐 상관없어. 난 가난하 니까 말이야. "아니, 난 괜찮아. 사탕 같은 거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에레나리스는 또다시 어떤 남학생이 내민 사탕을 거절했다. 지금까지 모두 16명의 남학생이 찾아와서 사탕 준다고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모두 퇴짜만 맞 고 사탕을 손에 쥔 채 힘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물론 에레나리스와는 달리 로리아케시는 주는 대로 덥썩덥썩 받아먹었지만. 하…… 이거 괜히 갈등 생기네? 에레나리스한테 사탕을 줘 말어? 준답시고 갔다가 안 받으면 그거 정말 쪽팔리는 일인데…… 음…… 아무래도 나중에 몰래 전해줘야겠다. 아이들 보는 데에서는 못 주겠어……. 부스럭 부스럭- 난 남은 네 개의 사탕을 잘 확인했다. 어제 사탕 한 봉지를 샀다가 크리스 토르와 라이에게 사탕을 뺏겨서 남은 건 겨우 건진 이 사탕 4개뿐이었다. 물 론 라이 녀석이 제일 많이 사탕을 먹어버렸다. 녀석은 아예 사탕을 삼켜 버 렸으니까. 하여간 라이 녀석은 계속 잠만 자다가 내가 사탕을 사들고 오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다 뺏어먹어 버리기나 하고 말이야…… 정말 사악하기 그지없는 강 아지라니까. 이제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버렸으니 엄청나게 활개치고 다니겠 지. 걱정이야……. 드륵- 난 자리에서 일어나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에게로 걸어갔다. 둘은 뭔가 얘기를 나누며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지금은 2교시 쉬는 시간. 다음 시간 까지 10분이라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 난 둘에게 보답의 사탕을 전해줄 생각이었다. "둘 다 안녕." 내가 먼저 입을 열자 즐겁게 얘기하던 두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사탕 주시러 오신 거예요?" 둘 중에서 운디네시스가 내 목적을 바로 꿰뚫어 보았다. 내 입으로 직접 그 런 말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저쪽에서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 나에게는 편 했기 때문에 난 조금 여유로운 자세를 가질 수 있었다. "잘 아네? 자, 저번에 초콜렛 받은 보답." "감사합니다." 둘은 꽤 기뻐하면서 내가 주는 사탕을 받았다. 보통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 스처럼 예쁜 소녀들에게는 남학생들의 사탕 세례가 날아오게 마련이지만, 이 들이 이 학교에 온 지 아직 한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그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둘에게 사탕을 건네는 사람은 같은 동성 친구 들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여태까지 살펴본 바로는 남학생으로서는 내가 처음 둘에게 사탕을 주는 것이었다. 자, 이제 두 사람에게 사탕 전해주는 일은 끝났고…… 남은 건 로리아케시 와 에레나리스로군. 둘 다 나한테 거의 비밀리에 초콜렛을 전해줬으니까 나 도 비밀리에 사탕을 전해주는 게 예의겠지? 뭐, 점심 시간이나 수업 끝난 후 에 전해줘야겠군. 띵- 띵- 띵- 띵-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난 후 가방 정리를 하면서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쪽 을 쳐다보았다. 둘 다 오늘 청소 당번이라서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 만 난 청소 당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얼른 사라져줘야 했다. 쩝…… 언제 주지? 왠지 주기가 귀찮아진다는…… 그렇다고 안 주면 로리아 케시가 막 화낼 지도 모르지. 거금 들여서 초콜렛 사줬는데 보답도 안하냐면 서. 에휴…… 복도에서 청소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우르르릉- 천둥처럼 들리는 책상 끄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삼으면서 복도 창 밖을 쳐다 보았다. 복도 창 밖에는 기숙사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그다지 운치는 없 었다. "어? 여기서 뭐해?" 그때 로리아케시가 내 어깨를 치며 날 불렀다. 주위에는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이들과 청소하는 아이들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사탕을 전해줄 아주 좋 은 기회였다. "이거 주려고." 난 로리아케시에게 사탕을 내밀었다. 처음엔 얼떨떨한 표정이던 로리아케시 는 내 손에 들린 사탕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나 주려고 일부러 기다린 거야?" 흘…… 이런 거로 설마 감격했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겠지? "그건 맘대로 생각하고 받기나 해라." 로리아케시가 사탕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놀란 표정으로 계속 내 얼굴만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난 재촉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로리아 케시는 사탕을 집어들었다. 그러다가 이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째려보았다. "뭐야? 겨우 사탕 한 개?" "……." 으…… 역시 사탕 한 개로는 무리였나…… 하지만 라이 녀석이 다 먹어버려 서 어쩔 수가 없었단 말이여…… 라고 말해봤자 전혀 믿지 않겠지…….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런 내 말에 로리아케시는 흥 하고 코웃음을 발하며 이내 청소하러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사탕은 챙긴 로리아케시가 눈꼽만큼은 귀여워 보였다. 하…… 어쨌든 이걸로 로리아케시 몫도 줬군. 이제 에레나리스만 남았구나. 사탕 하나 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골치 아프다……. 웅성웅성- 복도에서 떠드는 아이들과 본관 밖 기숙사 앞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웅성거 림을 들으며 하늘을 쳐다보니 왠지 내가 저들과 전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난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걸까……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내가 이 세계로 온 이유는…… 뭐였지? 난 왜 여기에 왔지? 뭐 하려고 왔지? 도대체…… 아, 무슨 끈이란 걸 만들려고 왔었구나. 근데 왜 그런 걸 만들려고 하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그렇군. 환타지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그랬군. 근 데 난 왜 그렇게 하려는 거지? 그렇게 해서 나한테 돌아오는 게 뭐가 있다고? "……!" 그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는 동안 난 나 자신에 대해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 세계로 넘어온 지 거의 2년. 사실 그 2년이란 것을 떠올리는 데 에도 한참 걸렸지만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난 내가 이곳의 온 진 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거의 잊고 있었다. 망각이라는 것이 내 기억을 점점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 자신이 이곳 생활에 거의 완전히 동화되 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하…… 이곳에 오기 전에 뭔가 크게 다짐했던 것 같은데…… 그 다짐은 다 어디로 간 거지? 도대체 난 무엇을 다짐했던 거지? 후후…… 나란 녀석은 도대체……! "아직도 안 가고 있었어?" "……?" 정신없이 나 자신을 질책하던 중에 들려온 목소리 때문에 난 생각을 접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로리아케시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에레나리스도 함 께 있었다. 그렇군. 지금 난 에레나리스에게 사탕을 주려고 여기 있었지…… 후후…… 중요한 것은 잊고 이런 사소한 것을 하고 있는 난……. "에레나리스에게 전해줄 게 있어서." 난 로리아케시를 보며 그 말을 했다. 물론 얼굴에는 '넌 어서 가봐'라는 표 정을 잔뜩 깔아놓았다. 그런 내 태도에 로리아케시는 흥하고 코웃음을 날리 고는 이내 기분 나쁜 듯한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나한테 줄 게 있다니?" "어, 저번에 초콜렛 받은 보답." 사탕을 에레나리스에게 건네주면서 난 그녀의 얼굴을 잘 살펴보았다. 일말 의 표정 변화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에레나리스는 평상시의 얼 굴 그대로 달라진 게 없었다. "사탕이네? 음…… 보답이라니까 아무래도 받아야겠지?" 잠시 사탕을 받을까말까 고민하던 에레나리스는 이내 결정을 내리고 사탕을 집어들었다. 그러는 사이 난 에레나리스의 얼굴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았으나 전혀 얼굴 표정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저번에 에레나리 스가 나한테 초콜렛 선물을 한 행동에는 아무런 뜻도 없음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그럼 난 갈게." "응." 난 에레나리스와 그런 썰렁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에 내 방 기숙사로 향했 다. 그렇게 걷는 동안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다. 에레나리스의 행동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어서 그런 것이란 점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것보다 내 행동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상당히 나빠졌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마 음에 들지 않았다. 심한 무력감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화이트 데이였던 히트의 날도 지나가고 2222년으로 향하는 시간은 또 꾸역 꾸역 채워져 갔다. 2221년 들어 치루어진 첫 중간 고사에서 난 평균 94점으 로 반 2등, 전교 8등을 했다. 1등인 에레나리스하고는 총점 3점 차이였다. 본래 시험보다는 마법 수련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나였기 때문에 이번 시험 은 평균 90점 이상을 목표로 하고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덕 분에 중간 고사가 막 시작됐을 때에는 10써클을 회전시킬 수 있었다. 6써클 과 마찬가지로 10써클 역시 넘어서기 어려운 마력이었기 때문에 마(魔)의 제 2 장벽이라 불렸고, 내 목표는 그 마의 제 2 장벽을 뛰어넘는 것으로 상향조 정되었다. 그러나 중간 고사에서 2등을 한 것이 괜히 화가 나서 난 벼락치기 가 아닌 제대로 된 공부를 시작했고, 그 결과 7월달에 치뤄졌던 기말고사에 서 평균 96점으로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전교 등수로도 1등이었다. 그 대 신 난 11써클의 마나를 회전시키는 것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특별한 일이 없는, 일상적인 나날이 계속되었다. 단지 이상한 점이 라면 최근 들어 교장 할배가 전혀 날 부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니, 아예 학교 내에서 만날 수가 없었다. 여행하러 간다는 말도 없었고 선생들도 전혀 말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계속 교장실에 틀어박혀서 무언가를 하는 것 같았 다. 어쨌든 교장 할배가 무언가를 꾸민다는 것 말고는 아주 평온한 시간이 흘렀고, 2221년도 여름 방학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 결국 이틀에 두편이 되어가는...ㅠ.ㅠ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1 / 92 [등록일] 2000년 07월 25일 02:51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3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1장: 환상마법 페이사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1장:환상 마법 페이사 -...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4 19:29:08 수 정 일 : 크 기 : 6.6K 조회횟수 : 242 <제 31 장> 환상 마법 페이사 똑똑- "라드 선배! 류드나르예요!" 난 라드 선배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라드 선배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비록 지금 시각이 오후 5시였지만 혹시나 라드 선배가 지금 자고 있 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이상한데? 문이 잠겨 있다는 것은 라드 선배가 어디 나갔다는 소리인데…… 평소에 문밖으로 잘 안 나오는 라드 선배가 어디 간 거지? 마법 수련에 대해 서 약간이라도 자문을 구하려고 찾아왔더니만……. 터벅터벅- 헛걸음을 했다는 생각에 힘이 빠져서 거의 폐인처럼 걸으며 M6관 현관으로 내려왔을 때 바로 옆 행사장에 아이들이 꾸역꾸역 몰려있는 것을 보게 되었 다. 마침 허탕을 쳐서 기분도 그랬기 때문에 난 기분 전환을 할 겸 행사장 쪽으로 향했다. 퍼엉! 아이들이 몰려있는 행사장 한가운데에서 무언가 폭발이 일어났지만 아이들 은 전혀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폭발이 아이들을 위 협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 그때 몰려있는 아이들 중에서 잭오랜턴과 실피르디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 래서 난 가까이 다가가 잭오랜턴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아, 류드……." 내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 잠시 놀랬던 잭오랜턴은 이내 앞쪽을 가리켰다. 아이들과 대략 5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는 사라만다가 아주 위풍당당한 모 습으로 서 있었고, 그 뒤에는 운디네시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리고 그런 두 사람의 앞에는 보기에도 그 성격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거칠게 생긴 남자 녀석들 3명이 벌벌 떨고 있었다. "사, 살려줘!" 세 남자 중에서 한 녀석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지만 사라만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닥쳐." 콰아앙! "으아악―!" 사라만다가 자신들 바로 옆에다 카파 보를 떨어뜨리자 세 남자 녀석들은 눈 물 콧물을 흘리며 마구 떨었다. 이미 그 남자 녀석들의 주위는 시꺼먼 그을 음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사라만다가 녀석들 주변에 화염계통의 공격을 여러 번 가했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저 녀석들을 볶는 거야?" 내 물음에 잭오랜턴이 한숨을 쉬었다. "저 녀석들이 운디네를 귀찮게 해서 그래. 뭐 거의 성희롱 수준이었다고 봐 도 됐었지만." "그래?" 흠…… 그렇다면 사라만다가 계속 손 좀 보게 해도 괜찮겠군. 콰콰쾅! "끄악 뜨거―!" 마침내 한 녀석의 교복에 불이 붙었고 녀석은 정신없이 옷을 털어 불을 끄 려 했다. 아이들 역시 그 광경을 보고 약간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러나 사라만다는 여기서 그만 둘 생각이 없었는지 이번엔 카파 하사로를 만 들어 내었다. 계속 마법을 연속으로 사용해서 이마에는 땀줄기조차 흘러내리 고 있었는데도 사라만다는 마법 사용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다? 사라만다가 왜 저렇게 무리하면서 하는 거지? 게다가 저 카파 하 사로를 날린다는 것은…… 명백한 살상 의사가 있다는 거 아닌가? "……!" 그때 난 사라만다의 눈을 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대로 둔다면 반드시 세 남자 녀석들을 살상할 것이 분명한 살기였던 것이 다. "야! 불도마뱀!" 사라만다를 말리기 위해 난 즉시 사라만다와 세 남자 녀석들의 사이에 뛰어 들며 외쳤다. 막 카파 하사로를 날리려던 사라만다는 내 외침 소리에 손을 멈추고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날 향해 무감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넌 뭐냐?" "……!" 그 말투는 날 모르겠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사라만다의 얼 굴 표정에서도 날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정신 나간 모습 에 난 녀석의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정신 차려, 임마! 내가 누군지도 모르냐?!" "아……!" 내 외침을 듣고 나서야 사라만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와 동시에 사라 만다가 만들었던 카파 하사로도 모습을 감추었다. 겨우 본래 정신을 되찾은 것 같이 보여서 난 사라만다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지금 여기서 뭐하냐?" "크…… 아침부터 기분이 더럽더니만……." 사라만다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마에 손을 얹으며 그렇게 중얼거 렸다. 상당히 기분이 나쁜 모습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것에 대해 재차 물어 보려 했을 때 사라만다가 나에게 말하듯 입을 열었다. "기분이 이상하고 더러워서 조심하려고 했는데 저 녀석들이 지랄을 해서 바 로 정신이 나가버렸어. 오늘……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아. 기분 나쁜 뭔 가가……." 그렇게 말하며 사라만다는 천천히 자기 방 기숙사로 돌아가려 했다. 아이들 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사라만다 를 위해 길을 터 주었다. 나 역시 얼떨떨해서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 다. 사라만다의 말뜻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사라만다 녀석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무슨 나 쁜 일이 일어난다 라니…… 정말 할말없게 만드는 녀석이구만. 콰앙―! 그때 교장실 창문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나 날아가 버렸다. 행사장에 몰려 있던 아이들은 갑작스런 폭발음에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창문이 날아 가 버린 위치가 교장실이란 것이 마음에 걸려 난 즉시 본관 쪽으로 뛰어갔다. 탁탁탁- 뭐야? 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거야? 설마 사라만다의 예감이 맞았다는 소 리야? 그래, 확실해! 이건 사라만다가 자신의 예감이 아주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광고하기 위해서 일부러 교장실에 폭탄을 장치한 거야! "……!" 내가 그런 허황된 생각을 하며 본관 뒷문에 막 도착했을 때 누군가가 본관 뒷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주위에 깨진 유리창 조각이 널 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막 본관에 들어가거나 본관에서 나오다가 깨진 유리 창 조각 세례를 받은 듯했다. "괜찮아요?" 체격은 180cm였지만 여성처럼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른 사람이었고, 지금 나 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누군지 알 수 없어서 우선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런 내 물음에 호리호리한 그 사람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 라드 선배잖아? 왜 라드 선배가 여기 서 있는 거지? 게다가 지금 라드 선배 의 이 이상한 분위기는 대체……! "넌…… 누구냐?" 라드 선배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그것이었다. 그 말에 당연히 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라드 선배의 모습은 방금 전의 사라만다와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라드 선배! 저예요! 류드나르요!" 사라만다의 경우처럼 난 라드 선배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라드 선배는 사라만다의 경우와는 다른 듯했다. "시끄러." 슈아앙- 라드 선배가 손을 한번 휘젓자 날카로운 바람이 나에게 날아왔다. 갑작스러 운 공격이었기 때문에 난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바람은 거침없이 내 몸을 베려고 했다. 휘이잉- 그때 내 뒤에서부터 뭔가 회오리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회오리가 라드 선배의 날카로운 바람 공격을 상쇄시켰다. 그렇게 라드 선배의 공격을 무효화시킨 인물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예요?" "아……!" 내 앞에 선 인물은 실피르디아였다. 풍법사(風法師)답게 바람을 이용해서 라드 선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확실히 풍계 마법을 잘 다루는 풍법사 가 아니면 그렇게 갑작스러운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꺼져." 슈아앙- 라드 선배의 싸늘한 말과 함께 다시 날카로운 바람이 날아왔다. 실피르디아 는 짧은 기합을 내지르며 손을 머리 위로 빠르게 들어올렸고, 그에 따라 라 드 선배의 날카로운 바람은 실피르디아의 회오리에 말려 하늘 위로 분산되었 다. [번 호] 92 / 92 [등록일] 2000년 07월 25일 02:52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4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1장: 환상마법 페이사 -2-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1장:환상 마법 페이사 -... 총 Page : 1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4 19:29:23 수 정 일 : 크 기 : 7.6K 조회횟수 : 228 "라드 선배! 정신 차려요!" 라드 선배의 2차 공격이 끝난 직후 난 라드 선배를 소리쳐 불렀다. 그러나 라드 선배는 전혀 정신 차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시끄럽다." 슈아앙- 다시 이어지는 3차 공격. 특법사가 아닌 난 당연히 손을 놓은 채 그 공격을 쳐다보고만 있었고, 공격은 실피르디아가 대신 막아주었다. "아악!" 그러나 계속해서 마법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드 선배의 3 차 공격에 실피르디아는 무너졌다. 팔과 다리에 약간의 상처를 입어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마에는 땀까지 흘리는 것으로 봐서는 정신적으로도 꽤 지친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실피르디아가 다친 것을 보고 운디네시스가 라드 선배를 비난했다. 그리고 어느새 많은 아이들이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지금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 는 것을 모른 채. "귀찮은 계집." 화륵! 이번에 라드 선배가 만든 것은 카파 하사로 두 발이었다. 그러자 운디네시 스는 라드 선배가 먼저 공격하기 전에 비아 하사로를 만들어 대응할 태세를 갖추었다. 잠시 동안 카파 하사로와 비아 하사로 두 발씩을 만들어 놓고 말 없이 대치하고 있던 라드 선배와 운디네시스는 거의 동시에 각자의 마법 화 살을 발사했다. 펑! 펑! 무슨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카파 하사로와 비아 하사로가 서로 부딪쳐 소멸해 버렸다. 운디네시스가 자신의 공격을 정확히 방어하자 라드 선배는 약간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번엔 카파 보를 만들어 내었다. "꺄악!" "으악!" 일반 사람의 머리통 만한 카파 보를 보고 나서야 아이들은 지금 일이 결코 장난이 아님을 깨닫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나도 직감적으로 도망쳐야 함을 느꼈지만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라드 선배의 카파 보를 막기 위해 방어 마법 주문을 떠올리려 했지만 다급한 상황이라 주문이 전혀 떠오 를 생각을 안 했다. 이런 빌어먹을! 이런 상황에서 주문이 떠오르지 않으면 10써클의 마력이 무 슨 소용이야! 제길! 난 왜 항상 평상시에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거지? 어 째서 폭주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느냔 말이야!!! 콰앙―! 어느새 라드 선배의 카파 보가 날아와 폭발을 일으켰고, 엄청난 압력과 바 람에 의해 난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나 버렸다. 그러나 그나마 넘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하악…… 하악……!" 폭발의 여운이 가라앉은 후 난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확인해보았다. 그 리고 내 앞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의 모습 을 보게 되었다. 즉, 둘이 마법으로 카파 보를 막아낸 것이었다. "둘 다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치유 마법을 걸어주면 좋겠지만 지금 난 그 어떤 주문도 생각할 수 없었고, 간단한 카파 하사로 같은 것조차 만들 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난 당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 아요……." "걱정 마세요……." 둘 다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둘의 모습을 보고 그대 로 그 말을 믿을 인간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특법사만큼이나 빠른 마법 대응을 할 수 없는 나로서는 둘 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이라이!" 그때 잭오랜턴의 외침 소리와 함께 한줄기의 광선이 라드 선배의 얼굴을 노 리고 날아갔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두 눈이었다. 갑작스러운 잭오랜 턴의 기습에 라드 선배는 피하지 못했고, 눈에 그 빛을 맞아버렸다. "크윽! 눈이!" 잭오랜턴이 발사한 그 빛은 살상을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빛이었는지 라드 선배는 눈을 부여잡기만 했을 뿐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것으 로 라드 선배의 공격은 멈추었고, 그 틈을 노려 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법 주문이나 마법 발동 원리 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있었지만 나한테 많은 도움을 주었던 라드 선배 를 차마 공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드 선배! 정신 차려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소리쳤다. 그러자 라드 선배는 잠시 행동 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 내 쪽을 쳐다보더 니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류드나르인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하는 녀석." "……!" 이번엔 내 몸이 굳어버렸다. 라드 선배의 말이 나에게 충격 비슷하게 다가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라드 선배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0써클? 후후, 난 이제 겨우 6써클을 회전시켰을 뿐인데 10써클이라고? 날 놀리는 거냐?" "……." "전교 1등? 공부하느라고 11써클 회전시킬 시간이 없다고? 후후후후……." 라드 선배는 나직이 웃었다. 상당히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물론 나한테만 기분 나쁘게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라드 선배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난 거의 넋을 놓고 있었다. "너 같은 녀석은 꺼져버려!!!" 그렇게 외치며 라드 선배는 손을 휘저었고, 그에 따라 내 주위로 불의 장벽 인 카파 워그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불의 장벽은 빠른 속도로 좁혀들기 시작 했다. 라드 선배는 카파 워그로 날 태워 죽일 속셈이었던 것이다. "어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서 있는 날 지키기 위해 운디네시스와 실 피르디아는 다시 마법을 발동시켰다. 특법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둘은 라드 선배의 카파 워그조차 수계 마법과 풍계 마법으로 막아내었다. 치이이- 물이 기화하면서 기묘한 소리가 났다. 카파 워그를 사용한 뒤 라드 선배는 잠시 공격을 멈추었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 만 마법을 너무 사용해서 지친 것 같았다. 그리고 운디네시스와 실피르디아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은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잠시 공격이 멈춘 틈을 타서 실피르디아가 라드 선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드 선배는 그런 실피르디아를 보더니 놀람에 찬 탄성을 터트렸다. "오…… 정령인가…… 바람의 정령 실프로군." "……?!" 뭐야? 지금 라드 선배가 뭐라고 말한 거지? 정령? 바람의 정령이라고? 여기 에는 정령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고 있지도 않고 그런 기록도 찾아볼 수 없 는데…… 어떻게 라드 선배는 정령이란 말을 알고 있는 거야? "호…… 그 옆은 물의 정령 운디네인가…… 그리고 그 뒤에 있는 호박처럼 생긴 녀석은 빛의 정령 잭 오 랜턴이군. 얼씨구? 저기서 구경하고 있는 녀석 은 불의 정령 사라만다 아닌가? 흙의 정령을 빼고는 4대 정령이 여기에 다 모여있군 그래. 재미있어." 라드 선배의 말은 점점 더 예측불허로 가고 있었다. 난 뭐가 어떻게 돌아가 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서 라드 선배만 멍청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라드 선배의 얼굴에 피어오른 웃음이 어디선가 많이 봤던 것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라드 선배는 날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놀렸다. "니트…… 아, 원래 이름은 권강한이었던가? 어쨌거나 그곳 세계에서 내 심 장에 경찰 배지를 박아 넣고 죽인 일은 아주 고마웠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려준 인간이니까 말이야." "……!" 어떻게…… 어떻게 그걸 라드 선배가 알고 있는 거야? 마치 자기가 마르크 스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어떻 게 돌아가고 있는 거냔 말이야!!! "자…… 그럼 제 2 라운드를 시작해볼까, 권강한? 저번에는 내 패배로 끝났 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을 거야. 나에게는 마법도 있으니까. 후후후." 라드 선배는 사악하게 웃었다. 그런 라드 선배의 몸 주위로 파란색의 무엇 인가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 파란색의 이상한 것은 곧 라드 선배의 몸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이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라드 선배가 나에게 물었다. 난 라드 선배의 몸을 뒤덮고 있는 그 파란색의 기운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었다. 마법 밖에 다룰 줄 모르는 라드 선배가 그것을 다 룰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잊어먹은 모양이군. 그럼 가르쳐주도록 하지. 이건 네 세계에서 내 가 완성한 용린검기(龍鱗劍氣)다.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최강의 검기지. 너도 경험해봤으니까 알 거다. 후후후." 라드 선배의 그 말은 내 의심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어 버렸다. 라드 선배의 그 말이야말로 그 자신이 마르크스임을 명확하게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난 아무리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전혀 마르크스와 닮은 점이 없는 라드 선배가 마르크스라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이미 죽은 마르크 스가 여기에 버젓이 나타났다는 것도 그러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정말로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3 / 94 [등록일] 2000년 07월 25일 22:09 Page : 1 / 22 [등록자] THEBUR [조 회] 30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1장: 환상마법 페이사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1장:환상 마법 페이사 -... 총 Page : 29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5 20:14:43 수 정 일 : 크 기 : 11.4K 조회횟수 : 100 "너…… 정말로 마르크스냐?" 그것이라도 확인하기 위해서 난 라드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라드 선배는 그 런 질문을 하는 날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호쾌하게 웃었다. "카하하! 정말 의심 많은 녀석이군! 네 눈엔 내가 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냐?" 라드 선배는 자신이 마르크스라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분위기는 확실한 마르크스였다. 게다가 라드 선배의 몸에 걸쳐진 듯 존재하 는 저 용린검기야말로 라드 선배가 마르크스라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어떻게 네 녀석이 여기 있는 거야? 넌 죽었잖아?!" 난 거의 발악하듯 물었다. 그런 내 행동에 실피르디아와 운디네시스는 날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지금 나와 라드 선배가 서로 이상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지만, 난 그것에 신경 쓸 마음 의 여유가 없었다. "빨리 대답하라고! 어째서 네놈이 여기 있어?!" "후후, 못 본 사이에 성격이 많이 거칠어졌군.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저 위에 있는 플라톤 녀석에게 물어보라고." "……?" 라드 선배, 아니 마르크스의 말에 난 본관 위층을 쳐다보았다. 깨진 교장실 창문 안쪽에 교장 할배가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장 할배가…… 플라톤이라고?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렇다면…… 이곳의 플라톤인 교장 할배가 마르크스를 부활시켰다는 소리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어떻게 죽은 녀석을 부활시켜? 지금 농담하냐?! "멈춰, 라드롬스!" 그때 본관에 있던 선생 몇 명이 소란을 알아채고 마르크스의 뒤쪽에서 라드 선배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이미 그 착한 라드 선배가 아니었 다. "시끄럽군." 마르크스의 손이 한번 휘저어지자 날카로운 검기 한줄기가 선생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쾌속한 빠르기의 검기를 선생들이 피할 리 만무했다. "꺄아악―!" 운디네시스와 실피르디아의 비명 소리,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던 간 큰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마르크스의 검기에 의해 두 선생 의 목이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서…… 선생님을……!" 아이들은 거의 반 실성하고 있었다. 목이 날아간 선생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 본관 현관을 새빨간 피로 물들였다. 그 섬뜩한 광경은 내가 마치 내 세계에서 마르크스와 싸웠을 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느끼게 해 버렸다. "이번엔 경찰이 아니라 힘없는 선생들을 베니 별로군. 뭐 짭새 녀석들도 그 게 그거였지만." 마르크스는 선생들의 목에서 철철 흘러 넘치는 붉은 피를 보고 기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얼굴에서는 쾌감이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참모습이었다. "이제 네 차례다, 권강한!!!" 마르크스는 갑작스럽게 공격을 날렸다. 하지만 난 이미 마르크스가 그런 패 턴으로 공격할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앞에 서 있던 운디네시스 와 실피르디아를 밀어 제치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두 사람을 밀어 제치고 나서 검기를 피한다는 건 약간 무리가 있어서 오른팔을 살짝 베이고 말았다. "큭!" "호! 피하다니! 이거 엄청난 발전인걸? 그새 몸놀림 연습이라도 했나?" 마르크스는 피가 흐르는 오른팔을 부여잡고 있는 날 보고 감탄했다. 난 즉 시 몸을 움직여 운디네시스와 실피르디아로부터 떨어졌다. 마르크스가 그 둘 을 노리고 공격할 경우 난 둘을 지켜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 잠시 놀아주지!" 마르크스는 재차 검기를 날렸다. 검기를 날릴 때에는 항상 손을 휘저어야만 하기 때문에 손을 휘젓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난 몸을 날렸고, 검기는 내가 있던 자리를 정확히 내려쳤다. 파학! 콘크리트로 된 바닥에 깊숙한 홈이 생겼다. 한번 맞으면 그대로 몸을 두 쪽 내버리는 무시무시한 강도였다. 그러한 검기의 위력을 본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급히 기숙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이곳에 있다간 마르크스에게 죽게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들 역시 아이들에게 어 서 기숙사 안으로 들어가라고 지시를 했다. 선생들조차 감히 마르크스에게 제재를 가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들의 안전을 돌보고 있을 뿐이었 다. 제길…… 여기서 마르크스를 막지 못하면 녀석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모 조리 죽여버릴 지도 몰라. 아니 확실히 그렇게 할거야. 녀석은 라드 선배가 아닌 마르크스니까! "후후, 역시 마법 따위는 내 용린검기의 상대가 되지 못해. 나보다 훨씬 숫 자가 많으면서 모두 자기만의 안전을 위해 숨어버리다니 말이야. 저런 약한 녀석들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는 기숙사 안에 숨어서 창문을 통해 이쪽 사정을 살펴보고 있는 아 이들을 힐끗 보더니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아직도 남아있는 운디네시 스와 실피르디아, 그리고 잭오랜턴과 사라만다를 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지었 다. "호∼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나하고 싸우겠다는 거냐? 이거 정말 재미 있군. 이곳에서의 너희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테스트해보기로 할까?" 마르크스는 특법사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녀석이 특법 사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난 마르크스가 내게서 등을 보인 틈을 타서 공격을 감행했다. "네 상대는 나다!" 콰앙―! 마르크스의 머리 위로 떨어진 카파 보가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본래는 카 파 보를 발동시키려면 그 발동 원리를 떠올려야 했지만, 지금의 나는 거의 순간적으로 카파 보를 발동시켰다. 마르크스의 등장이 당황하고 있던 내 마 음을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후후, 이번에도 주문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군. 역시 강한 상대를 만나면 본래의 실력이 드러나는 건가? 뭐 나야 재미있지. 이번에 죽을 사람은 바로 너니까 말이야!" 마르크스는 내 일격을 받고 나서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검기를 날렸다. 하 지만 이미 녀석의 공격 패턴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 검기를 가볍게 피 했다. 그리고 재차 공격을 가했다. 녀석이 사라만다 등에게 신경 쓸 틈을 주 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아 하사로!" 파파팍-! 내가 만든 비아 하사로는 마르크스의 용린검기를 뚫지 못하고 그냥 박살났 다. 내 공격이 끝나자 곧바로 마르크스의 검기가 여러 개 날아왔고, 몸을 날 려 피하기에는 늦었음을 직감한 나는 즉시 텔레포트를 감행했다. "죽엇!" 텔레포트로 마르크스의 머리 위로 이동한 나는 다시 한번 카파 보를 먹였다.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마르크스는 그대로 카파 보의 폭발에 휘말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죽을 마르크스가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즉 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녀석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후후, 제법 하는군. 오히려 전보다 위력이 강해진 것 같은데? 이동 속도도 빠르고 말이야." 마르크스는 여전히 사악하게 웃으면서 날 칭찬했다. 그러나 난 마르크스에 게 칭찬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어떻게 하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만을 생각했다. 용린검기는 거의 완벽한 갑옷이야. 저것을 뚫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지도 몰라. 결국 저번처럼 텔레포트로 사물을 이동시켜서 공격을 가하는 수밖에 없겠어. 하지만 녀석이 똑같은 수법에 또 당할까? "뭘 그렇게 생각하나!" 쐐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한줄기의 검기가 나에게 날아왔다. 잠시 다른 생각 을 했기 때문에 난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와의 싸움에서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카앙-! 그때 뭔가 날카로운 것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갑자기 내 옆에서부터 불어온 날카로운 바람이 검기를 튕겨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바 람을 날린 사람은 실피르디아였다. "괜찮으세요, 주인님?" 실피르디아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난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말았다. "마르크스! 이번엔 쉽게 죽지 않아!" 그 말은 사라만다가 했다. 그리고 운디네시스와 잭오랜턴 역시 사라만다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정령이었을 때의 기억을 되찾은 듯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너희들……!" 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분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완전히 정령일 때의 기억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는 4명의 특법사들은 내 주위를 둘러싸며 마 르크스를 경계했다. "얼마든지 덤벼, 이 악당녀석아!" 사라만다의 호기로운 외침에 마르크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이거 정령들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구만! 저번처럼 확실히 죽여주 겠다!" 마르크스는 검기를 날리지 않고 손바닥 위에 검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 엔 뭐하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나는 그것이 마르크스의 최고 기술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특법사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피해! 충격파가 와!!!" "이미 늦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르크스의 손바닥 위에 모인 검기가 요동을 쳤고, 그 요동은 강한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검기에 의한 충격파는 나와 특법사들이 서 있던 자리를 덮쳤고 진동에 의해 콘크리트 바닥이 완전히 조각조각 깨져 버렸다. "이럴 수가!" 가까스로 몸을 날려 피했던 사라만다 등은 놀라운 검기 충격파의 위력에 입 을 다물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검기 충격파를 피해내자 꽤 놀란 표정 을 지었다. "호, 내 기술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제법이군. 그렇다면 이건 아직도 기술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이름을 짓기 전에 네 녀석이 날 죽였으니까 말이야." 마르크스의 얼굴이 다시 사악하게 물들어갔다. 그에 따라 또다시 검기가 요 동을 시작했고 강한 충격파가 우리를 재차 덮쳤다. "쉽게 당하진 않아!" 어느새 마르크스의 검기 충격파를 피한 특법사들은 거의 동시에 마르크스에 게 공격을 퍼부었다. 즉, 사라만다는 파이어 볼(Fire Ball)로, 운디네시스는 파운테인(Fountain)으로, 잭오랜턴은 라이트(Light), 그리고 실피르디아는 스파이럴 블래스트(Spiral Blast)로 공격했던 것이다. 콰콰쾅! 상당히 요란한 소음과 함께 마르크스가 뒤로 주르륵 밀려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르크스에게 타격을 준 듯했다. 이대로 계속 밀어붙인다 면 우리들이 이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귀찮은 녀석들!!!" 마르크스는 그렇게 소리치며 손을 휘저었다. 난 검기가 날아올 줄 알고 재 빨리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검기가 아니었고, 날 공격하 려는 것도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검기가 아닌 마법을 사용해서 특법사들의 움직임을 봉쇄해버렸던 것이었다. "모, 몸이……!" 그렇게 마르크스의 마법에 속박 당한 채 특법사들은 허공 위로 끌어올려졌 다. 난 그 광경을 멍청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마르크스가 이런 고난이도의 마법을 구사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겐 검기뿐만이 아니라 마법도 있다는 것이 너희들에게는 불행이다!" 마르크스는 즉시 손바닥 위에 검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특법사들 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나는 마르크스가 그 검기 충격파를 사용하지 못하 도록 카파 하사로로써 선제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내 카파 하사로는 마르크 스에게 그 어떤 타격도 입히지 못했고, 마르크스는 여유 있게 검기 충격파를 허공에 묶여있는 특법사들을 향해 날렸다. "으악―!" "아악―!" 난 두 종류의 비명 소리와 함께 특법사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하늘에서 떨어 지는 모습을 두 눈을 뜨고 보아야만 했다. 내 바로 앞에 떨어진 네 명의 특 법사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크으…… 이렇게…… 또…… 당해버리다니……."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가슴에 상처를 입은 사라만다가 허탈한 듯이 중얼거 렸다. 잭오랜턴은 거의 떨어져 나갈 듯 붙어 있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웃 었다. "헤헤…… 결국 또 아무 도움도 못 됐네……." "흐윽…… 이번에는 뭔가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복부를 크게 다친 운디네시스의 힘없는 중얼거림이 내 귀를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실피르디아는 거의 전신에 입은 상처의 아픔을 참으며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죄송해요…… 또 이렇게 되어 버려서……."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 상처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또 무력하게 마르크스에 게 당해버린 자신들에 대한 한탄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분신과 도 같은 이들을 또다시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버 렸다. "울지…… 말아요…… 주인님이 울면…… 저희도 슬퍼지니까……." "……." 실피르디아는 힘겹게 내 쪽으로 손을 들어올렸다. 그래서 난 실피르디아에 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실피르디아는 내 손을 힘없이 쥐며 웃음 을 떠올렸다. "비록 짧았지만…… 이렇게 다시 주인님을 알아보게 되어서 기뻤어요…… 좀더 빨리 기억을 되찾아서…… 주인님과 더 오랜 시간 같이 있었다면 좋았 을 텐데…… 흐윽!" 실피르디아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상당한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거의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실피르디아의 손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난…… 난 또다시 너희들을 죽게 하지 않아." "주인님……." 실피르디아는 꺼져 가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더 내 얼굴을 담아두려는 듯한 실피르디아의 모습에 난 내 몸 속에 있던 8클래스의 마력을 방출시켰다. "리커버리(Recovery)." [번 호] 94 / 94 [등록일] 2000년 07월 25일 22:10 Page : 1 / 22 [등록자] THEBUR [조 회] 33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1장: 환상마법 페이사 -4-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1장:환상 마법 페이사 -... 총 Page : 2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5 20:15:01 수 정 일 : 크 기 : 11.4K 조회횟수 : 91 ……. 치유 마법은 조용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발동되었다. 비록 방금 전에 마르크 스와 싸울 때 사용한 텔레포트 때문에 정확한 8클래스의 마력은 아니었으나, 텔레포트 사용 시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회전 마나와 축적 마나를 동시에 섞 어서 소비했었기 때문에 마력의 소모는 별로 없었다. 워크맨에서 충전용 건 전지와 일반 건전지를 동시에 사용하면 충전용 건전지나 일반 건전지 둘 중 에 하나만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사용 시간이 길게 된다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주인님……!" 실피르디아는 점차 치유되어 가는 자신의 상처를 보고 놀란 탄성을 내뱉었 다. 그것은 사라만다 등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나는 실피르디아뿐만 아니라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오랜턴까지 동시에 치유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호! 치유 마법으로 동시에 4명을 치유시키다니, 정말 대단한데? 하지만 그 렇게 마력을 낭비하면 나하고 어떻게 싸우려고 그러지?" 마르크스는 내 치유 장면이 재미있다는 듯이 공격하지는 않고 구경만 했다. 마르크스의 공격이 없었기 때문에 대략 1분 여의 시간이 걸려 특법사들의 상 처를 치유시킬 수 있었다. 물론 완전한 치유라고는 볼 수 없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내상을 치유한 것뿐이었다. 피부에 입은 상처까지 치유할 여력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끝난 건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군.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다." 마르크스는 일부러 하품까지 하며 날 격분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난 실피르 디아 등의 상태를 재차 살펴보고 그냥 두어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마 르크스를 쳐다보았다. 그때 기숙사 쪽에서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네오니 스와 크리스토르, 그리고 니트로바츠와 아세트니퍼가 뛰어나오더니 쓰러져 있는 특법사들을 기숙사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마르크스가 크게 웃었다. "이거 정말 눈물나는 우정이군. 다친 친구들을 구하러 위험을 무릎쓰고 여 기까지 나오다니 말이야. 근데 왜 나하고 싸울 생각은 하지 않고 다친 녀석 들만 데리고 가버리는 거냐? 권강한, 넌 아무래도 친구들에게서 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구나." "……." 난 가볍게 마르크스의 말을 씹었다. 사실 에레나리스들의 행동은 아주 적합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싸움을 보고 마르크스에게는 보통의 마법 공격이 통하지 않음을 알았을 테니까. 괜히 날 도운답시고 끼어 들었다가는 특법사 들처럼 사상자만 대거 나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내가 마음놓고 싸울 수 있 도록 특법사들을 옮긴 것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겁이 나서 그런 것일지도 몰 랐지만. "단 한방에 널 죽여주겠다." 난 그렇게 마르크스에게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마르크스가 목젖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웃어댔다. "크하하! 뭐? 날 한방에 죽여준다고? 카하하!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지? 저 번처럼 텔레포트에 의한 살상은 안돼! 나에게도 마나가 있어서 네 녀석의 마 나를 반발시킬 수가 있거든?" "상관없어. 이번에 내가 할 공격은 그런 조잡한 게 아니니까." 난 천천히 마르크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회전하는 마나의 속도를 바꾸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서 있던 마르크 스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날 보고 저번처럼 또 당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검 기를 손바닥 위에 모으기 시작했다. "……." "……!" 마르크스와 나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마르크스는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내가 너무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포심을 느낀 듯했다. 게 다가 저번에 나에게 전혀 예상외의 공격을 당해 죽었다는 그 기억으로 인해 더더욱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으으……!" 마침내 나와 마르크스의 거리가 2미터 이내로 가까워졌다. 서로 손만 뻗으 면 닿을 거리까지 내가 걸어오자 더 이상 공포심을 참지 못한 마르크스가 손 바닥에 모아두었던 검기를 진동시켜 강렬한 충격파를 날렸다. "죽어버려!!!" 그 말은 마르크스가 검기 충격파를 날리면서 소리친 것이었다. 난 마르크스 가 검기 충격파를 날리자마자 즉시 마나의 회전 속도를 급격하게 바꾸었고, 그에 따라 엄청난 양의 마나 파장이 한꺼번에 방출되었다. 그래서 내 마나 파장과 마르크스의 검기 충격파가 서로 맞부딪쳤다. "……!" 난 크게 놀랐다.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 마나 파장이 마르크스의 검기 충격 파를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파장은 서로 맞부딪쳐도 간섭 후에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는 성질이 있어서 내 마나 파장과 부딪친 후에는 마르 크스의 검기 충격파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파장의 성질을 무시하고 마르크스의 검기 충격파가 내 마나 파장에 모두 밀 려나버린 것이다. "컥……!" 마르크스는 낮은 신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검기 충격파에 의해 용린검기에 금이 가버렸고, 그 틈을 내 마나 파장이 파고들어서 용린검기를 붕괴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마나 파장이 마르크스의 몸을 엉망으로 만 들어 버렸다. "끄악―!" 마르크스의 눈과 코, 귀, 그리고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상당히 잔인 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난 마르크스를 제거했다는 생각에 그다지 잔인하다 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통쾌했다. 내 정령들을 또다시 죽이려 했었 던 녀석을 직접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마르크스는 하늘을 향해 누운 채로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마나 파장이 몸을 망가뜨려 버린 순간 절명했기 때문에 쓰러진 후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가버린 마르크스를 비웃던 나는 문득 마르크스의 얼굴이 라드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비록 마 르크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해도 내가 죽인 사람은 분명히 라드 선 배였던 것이다. "……!" 하하…… 하하하…… 내가…… 내가 지금 뭐한 거지? 내가 지금 누구를 죽 인 거지? 난 분명히 마르크스를 죽였는데 어째서 여기 쓰러져 있는 사람은 라드 선배인 거야? 어째서 라드 선배가 죽어 있느냔 말이야―! 빙글― 하늘이 빙글 돌았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어났고, 라드 선배를 내가 죽 였다는 정신적인 충격과 마나 파장을 한꺼번에 방출한 후 고갈된 정신력으로 인해 난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뒤로 꼬꾸라졌기 때문에 하늘이 빙글 도는 듯한 착각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게 쓰러진 후, 난 정신을 잃었다. 크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누가 내 머리통을 새것으로 교체해 줘……! "일어났느냐?" 이 세계로 넘어온 뒤부터는 정신을 차리고 나면 거의 항상 교장 할배의 목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난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입만 열었다. "교장실입니까, 병원입니까?" "내 방이다." 흠…… 교장실 안쪽에 있는 교장 할배의 방이겠군. 하지만 난 본관 뒷문에 쓰러져 있었는데 왜 이리로 데려온 거냐? 당연히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게 정상 아니야? "어떻게 된 겁니까?" 내 물음에 교장 할배가 대답했다. "네가 라드롬스를 죽인 거다. 그리고 너는 정신을 잃었고. 아, 사라만다 등 은 모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네 치유 마법 덕분에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 "그거 말고 어떻게 라드 선배가 그렇게 되어버렸는지를 알고 싶은 겁니다." 난 눈을 뜨고 교장 할배를 노려보았다. 마르크스, 아니 라드 선배의 말에 의하면 교장 할배가 플라톤이라고 했지만, 난 아직 그것을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교장 할배가 정말로 플라톤이라면 날 이렇게 살려둘 리가 없기 때문이 었다. 저번에 나에게 죽임을 당한 복수를 하려고 할 테니까. "아직 너에게 말하는 것은 이르지만…… 어쩔 수 없군." 교장 할배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라드 선배가 마르크스로 되어버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라드롬스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건 나다. 실수였지." 실수……? "난 인간의 기억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고 싶었다. 세뇌 같은 것이 아닌 완벽한 기억의 조작을 말이다. 그 인위적인 기억 조작을 페이사를 통해 실현 하려고 했다." 페이사…… 환상 마법……. "그 기억 조작의 대상을 라드롬스로 택한 것이다." "왜입니까?" 난 거기서 교장 할배의 말을 끊고 불쑥 물음을 던졌다. 교장 할배는 그런 날 잠시 아무 말 없이 내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라드롬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었고, 그리고 라 드롬스 역시 내 실험에 동참할 것을 희망했다. 마법을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말이야." "……." 과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난 알 수 없었다. 라드 선배가 평상시에 마 법에 얼마나 빠져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과연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 는 실험에 참가 의사를 밝힐 정도로 마법에 심취했는지는 느끼지 못했기 때 문이었다. "몇 달 전에 찾아낸 고나드라콘의 유적에서…… 아, 고나드라콘이라고는 해 도 네가 알고 있는 메이로나는 아니다. 어쨌든 그 고나드라콘의 유적에서 놀 라운 마법 주문들을 찾아냈다. 고나드라콘의 능력이 어떤지는 너도 잘 알 거 다. 그 마법 주문 중에서 페이사의 증폭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난 이번 실험 을 했던 것이다." "왜 그런 실험을 한 겁니까? 무엇 때문에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려고 했던 겁니까?" 난 교장 할배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교장 할배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네게 말할 단계가 아니다. 어쨌든 난 라드롬스를 통해 페이사를 실현했다. 처음엔 잘 되가는 것 같았지. 하지만 라드롬스의 이성, 감정 등을 거의 다 지웠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라드롬스가 폭주를 해버렸다. 라드롬 스의 머리에는 자신이 여태까지 겪은 경험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같이 존재하고 있었던 거였지. 그래서 본래의 기억이 지워지자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던 라드롬스의 또다른 면이 표출된 거다." 라드 선배의 또다른 면…… 그것이 마르크스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왜 하필 이면 마르크스지? 어떻게 마르크스가 라드 선배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거야? 이 세계하고 내가 살던 세계하고는 차원 융합 같은 건 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으로 난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인간의 완전한 기억 조작은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에게는 현재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전생의 기억 같 은 것이 함께 존재하고, 그 전생의 기억은 수없이 많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에 그 기억들을 모두 소거해버린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무리지. 설령 신 이나 고나드라콘이라 할지라도 해내지 못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전생의 기억…… 라드 선배의 전생이 마르크스였다고? 말도 안돼…… 차라 리 각각의 세계마다 서로 인연의 끈이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사람의 기억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라고 하는 게 낫겠다! 얼레? 잠깐…… 끈…… 정말로 끈 때문인가? 라드 선배와 마르크스의 기억이 서로 끈으로 이어져 있어서 라드 선배의 기억이 소거되자 마르크스의 기억이 표출됐다는 것? 그렇다면 내 무 의식 깊은 곳에는 나와 다른 사람의 기억이 존재하고 있다는 소리잖아? "그렇기 때문에 난 이제 두 번 다시 인간의 기억 조작 따위는 하지 않을 생 각이다. 그래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말이다. 대신 최후의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교장 할배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러다가 교장 할배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류드, 낙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느냐?" "……." 갑자기 또 그건 왜 물어봐? 심신이 지친 사람에게 그딴 걸 물어보다니…… 정신 상태가 썩었군. 아…… 교장 할배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뇌가 지 금 썩어 들어가고 있었지 참……. "지금 들을 겁니까?" 난 교장 할배를 노려보았고 교장 할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지금 들을 생각은 없다. 단지 낙원에 대해 생각해두었는지를 알고 싶을 뿐이다." 흘…… 그랬군. 그럼 방금 했던 말 취소해주지. "대충은…… 생각해뒀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방학 끝나기 전에 물어보겠다. 알겠느냐?" "그렇게 하죠." 내 확실한 대답을 들은 교장 할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에게 편히 쉬어라 라고 말한 뒤 방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문득 무엇 인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나한테 오더니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라드롬스의 또 다른 모습을 넌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행동하더구 나. 정말 넌 라드롬스의 또 다른 면을 알고 있었던 것이냐?" "……." 난 눈과 입을 닫고 휴식을 취했다. 교장 할배에게 복잡하게 얘기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좀더 자고 싶었다. "흠…… 대답하기 싫다면 하지 마라. 그럼 편히 쉬거라." 터벅터벅- 끼이- 쿵 교장 할배의 걷는 소리와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교장 할배가 나가고 난 뒤 눈을 떠서 확실히 교장 할배가 나갔다 는 것을 확인한 후,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라드 선배가 마르크스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교장 할배가 목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로 머리가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래서 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난 다음에 잠을 청했다. 자고로 고통은 생각을 억누르는 법이니까. ====================================================================== 어제 생각보다 많이 썼기 때문에 올림당...ㅡㅡ; 하지만 오늘은 거의 못써서 내일은 못 올릴지도 모른다는...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5 / 96 [등록일] 2000년 07월 27일 22:12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4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2장: 낙원은 필요 없다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2장:낙원은 필요 없다 -... 총 Page : 2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7 19:12:44 수 정 일 : 크 기 : 7.7K 조회횟수 : 134 <제 32 장> 낙원은 필요 없다 2221년 7월 13일 일요일. 라드 선배가 죽은 날로부터 대략 나흘 정도 지난 뒤였다. 라드 선배, 아니 마르크스와의 싸움으로 8클래스의 마력과 10써클의 마력을 전부 소모해버렸기 때문에 난 거의 정신이 헤롱헤롱한 상태였다. 물 론 지금은 10써클의 마력 중 9써클 정도가 다시 모여 있었다. 마나의 결합 시간이 써클수의 제곱에 1을 더한 양이기 때문에 10써클이 모두 모이기 위해 서는 101시간이나 필요했고, 현재 그 사건 이후로 89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반나절을 기다려야만 10써클이 완전히 모이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10써클은 저절로 모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쓸 필요는 없었고, 문제 는 8클래스의 마력이었다. 내가 생각했었던 대로 8클래스의 마력을 사용하자 마자 다시는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역시 마나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류드, 다 씻었냐?" 방안 화장실에서 느릿느릿 씻고 있던 나에게 네오니스가 물었다. 그래서 난 크게 소리쳐 대답했다. "아직 안 했어!" "빨리 좀 해라! 나 지금 급하단 말이야!!!" 흘…… 작은 거냐 큰 거냐? 작은 거면 그냥 싸서 말리고 큰 거면 교사 화장 실이라도 이용해라. 아니면 기숙사 뒤편으로 가서 몰래 싸던지. "빨리 나와! 안 나오면 문 앞에다 싸버린다?!" 큭……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끼익- 네오니스가 정말로 싸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난 대강 씻는 걸 마무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내가 나오자마자 네오니스는 거의 총알같이 화장실 안으 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급하기는 정말 급했던 모양이었다. 하…… 현재 시각 오전 10시…… 일요일 아침치고는 조금 일찍 일어난 셈인 가? 뭐 나야 일요일 아침에도 9시 이전에 일어나지만, 네오니스 녀석들은 거 의 12시까지 자니까 굉장히 일찍 일어난 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병 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사라만다들을 문병하러 가게 되다니…… 평소의 나였 다면 문병하러 가지도 않았을 텐데…… 네오니스 녀석들이 선동하는 바람에 따라가게 돼버렸어……. "너희들! 아직 준비 안됐어?!" 그때 밖에서 로리아케시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사라만다들의 문 병 가는 데에 에레나리스와 로리아케시, 네스포린, 그리고 니트로바츠와 아 세트니퍼도 함께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여자보다 시간이 더 걸려? 너희들 지금까지 자다 일어난 건 아니겠 지?!" "로리아, 다른 사람들 방해되잖아. 조용히 하자." 바락바락 화를 내고 있던 로리아케시를 에레나리스가 말렸기 때문에 더 이 상 그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어쨌든 로리아케시의 독촉으로 인해 우리들은 아침을 거른 채 바로 문병을 가야만 했다. "우…… 배고파……." 교문을 나서며 네오니스가 죽는 소리를 내자 네스포린이 네오니스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한끼 굶는다고 사람 안 죽어. 그리고 넌 항상 일요일 아침은 그냥 잠만 자 잖아?" "크…… 일어났기 때문에 배가 고픈 거라구……." 그렇게 네오니스가 계속 투덜댔기 때문에 아침을 먹지 않은 사람끼리 돈을 모아서 간단하게 햄버거 비슷한 것을 사서 먹었다. 그리고 나서 사라만다들 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집어탔다. 부우웅- "어? 자리가 별로 없다." 네오니스의 말대로 버스 안의 빈자리는 거의 없었다. 있다면 운전사 뒤쪽 좌석과 앞문에 가장 가까운 좌석, 그리고 맨 뒷좌석뿐이었다. 그 뒷좌석은 대략 다섯 명 정도, 바싹 붙어 앉으면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어떡하지?"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을 보고 에레나리스가 날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난 그다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여자는 앉고 남자는 서서 가면 돼." 그런 내 말에 로리아케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놀렸다. "어머, 평소답지 않게 여자애들 생각해주는 것 봐∼" 흘…… 누가 생각해준다고 그러는 거야? 난 당연한 사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그나저나 로리아케시의 말투가 언제 '어머'로 바뀐 거냐? 평소에는 '흥'이라 고 하지 않았었나? 으…… 기억력이 딸려서 모르겠다……. "자, 그럼 류드나르의 맘이 바뀌기 전에 어서 앉자!" 로리아케시는 여자들을 선동하여 재빨리 뒷자리를 장악했다. 하지만 로리아 케시와 에레나리스, 그리고 네스포린과 아세트니퍼가 모두 글래머는 아니었 기 때문에 날씬한 사람 두 명 정도가 앉을 여유분이 생겼다. "여기 앉아." 아세트니퍼가 우리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으나 우리들 중에서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앉을 사악한 악마는 없었다. 남자가 모두 네 명이었기 때문에 어 차피 두 명은 서서 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네 명의 소녀들을 둘러보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뭐 그 자리는 그냥 다음에 탈 사람들을 위해 남겨 놔. 우리들은 서서 갈 테니까." 그렇게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남자들은 서서 가고 여자들은 편하게 앉아 서 갔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버스 탄 시간이 겨우 5분밖에 되 지 않았으니까. 『사마리움 종합 병원』 사라만다들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의 이름이었다. 그 병원 문 앞에 서서 그 병원 이름을 보고 있자니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좀더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네오니스 녀석이 문병 선물을 산답시고 날 끌고 가버려서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됐다! 이거면 되겠지?" 문병 선물로 과일 여러 개를 산 우리들은 즉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안은 생각보다 사람들로 북적북적 거렸다. "따라와." 에레나리스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기 때문에 난 부담 없이 걸었다. 그리 고 사라만다들이 어느 병실에 입원해 있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 피 이곳까지 오는 길을 죄다 까먹은 상태라서 그런 걸 기억해봤자 다시 이곳 을 찾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인가 보다." 에레나리스도 다른 사람한테 사라만다들이 입원해 있는 병실 번호만을 들었 던 모양인지 그런 불확실한 말을 하면서 병실 문을 열었다. 내가 병실 번호 를 확인하기도 전에 에레나리스가 문을 열어버렸기 때문에 번호 확인은 못하 고 아이들을 따라 병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 있다!" 가장 먼저 사라만다들을 발견한 네스포린이 기쁜 듯이 작은 목소리로 소리 쳤다. 병실 안에는 다른 환자도 있었고, 게다가 의사 선생과 간호사 몇 명이 있어서 크게 소리치지 않은 것이다. "어? 너희들……!" 의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받고 있던 사라만다가 가까이 다가온 우리를 보 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라만다와 가까운 침대에 누워 있던 실피르디 아와 운디네시스, 그리고 잭오랜턴도 우리를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문병 온 거야? 기쁘다!" "하하, 친구끼리 당연히 문병을 와야 하지 않겠냐!" 네오니스는 어느새 잭오랜턴과 친해져서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사 라만다는 문병 온 사람 중에 내가 끼어 있는 것을 보고 띠꺼운 표정을 지었 다. "넌 왜 왔냐?" "……." 어쭈구리…… 감히 자기 주인한테 반항하는 거냐? 모처럼 부활했으면 주인 을 반갑게 맞이해야 정상 아니야? 계약을 파기해버릴까 보다……! "안녕하세요, 류드나르씨." 실피르디아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다. 며칠 전이었다면 전혀 어색한 말 이 아니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 말이 굉장히 생소하게 들렸다. 아무리 여기에 친구들이 있다고는 해도 마치 남 부르듯이 그렇게 말하는 실피르디아 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받았던 것이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습니까?" 대략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의사의 질문에 사라만다는 없다는 뜻으 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때 한 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 젊은 의사 를 불렀다. "매르 선생님, 원장님께서 오라고 하셨어요." "아, 그래요. 알았습니다. 곧 가죠." 매르라는 이름의 젊은 의사는 사라만다들에게 편히 쉬라고 말한 뒤에 간호 사들과 함께 병실 밖으로 나갔다. 매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었 던 것 같은 느낌에 내가 또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사라만다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근데 왜 내가 다친 거였지? 아무리 생각해도 다친 기억이 없는데……." "글쎄 말이야. 그 사람하고 싸우긴 했지만 우리가 부상당하지는 않았잖아?" 잭오랜턴 역시 사라만다의 중얼거림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네오니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드 선배한테 죽을 뻔 했으면서!" "그래! 얼마나 끔찍했었다구!" 그러나 네오니스와 네스포린의 말에도 사라만다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에 아이들은 어리둥절했고, 나 역 시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 사라만다들의 말은 그들이 라드 선배 와 싸웠을 때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했고, 좀더 그 말을 확장 시키면 날 주인으로서 알아보았던 기억까지 잃어버렸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 는 것이었다. [번 호] 96 / 96 [등록일] 2000년 07월 27일 22:13 Page : 1 / 17 [등록자] THEBUR [조 회] 14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2장: 낙원은 필요 없다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2장:낙원은 필요 없다 -... 총 Page : 21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27 19:13:01 수 정 일 : 크 기 : 8.0K 조회횟수 : 125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류드나르씨를 공격했던 그 사람은?" 실피르디아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네오니스였다. "그 사람은 라드롬스라고 우리들 선배인데…… 왜 갑자기 그렇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는지는 모르겠어. 어쨌든 너희들이 라드 선배에게 부상을 입고 나서 류드가 너희들을 치유시켰고, 라드 선배마저 쓰러뜨렸다는 건 확실해." "저 녀석이 치유 마법으로 우리를 치유시켰다고?" 사라만다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째려보았다. 사라만다가 심각 한 불신의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에레나리스가 네오니스의 말을 보충해 주었다. "그건 맞아. 거의 죽을 뻔했던 너희들이 살아난 건 류드나르의 치유 마법 덕분이었으니까." "나원……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에레나리스의 말을 듣고서도 사라만다는 좀처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러나 난 사라만다에게서 그런 자질구레한 일로 감사 같은 걸 받을 생각도 없 었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이번엔 내가 사라만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정말 라드 선배와 싸웠던 기억이 없는 거야?"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내 표정은 나 도 모르게 굳어져버렸다. 그것은 사라만다가 내 얼굴을 보고 조금 놀란 것으 로써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워낙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자 사라만다는 약 간 기가 죽은 듯한 모습으로 내 물음에 대답했다. "어, 없어……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비록 사람의 얼굴 표정으로써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능력은 나에게 없었 지만, 지금의 사라만다는 결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 서 난 허탈해져 버렸다. 기껏 내 정령들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라드 선배 가 죽어버리자마자 이렇게 원 상태로 되돌아 와버렸다는 것이 나에게 허탈감 을 느끼게 한 것이다. "자, 이거 먹고 기운 차려." 사라만다들과 이것저것 얘기하던 네오니스는 병원 침대 옆 탁자 비슷한 곳 에 놓아두었던 과일 선물을 가리켰다. 그 말은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병실에는 사라만다들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있기 때문에 너무 오래 떠들면 칼 날아올지도 몰랐다. "그럼 여름방학 시작하기 전에 다 나아라." "싫어. 어차피 이 병원비는 교장 선생님이 내는 거라 몇 날 며칠을 보내도 우리는 돈 한 푼 안내는 데다가, 방학 시작하기 전에 나아버리면 그 지겨운 수업을 들어야 하니까 방학 시작하고 나서 나을 거야." 사라만다의 진심 어린 농담에 아이들은 웃었다. 그러나 난 웃을 수가 없었 다. 정말로 사라만다들이 그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또 올게." "안녕." 문병을 마친 네오니스들은 곧 병실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난 네오니스를 잠시 붙잡고서 부탁했다. "한 1분만 기다려 줘. 쟤들하고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네오니스는 순순히 승낙해주었고 네오니스들이 모두 나간 뒤에 난 사라만다 를 쳐다보았다. 나의 진지한 눈길에 사라만다는 의아해했다. "왜 그래? 나한테 뭐 할 얘기 있냐?" "……." 분명하게 묻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의 사라만다의 표 정에서도 그들이 그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 고 난 입을 열어 물음을 던졌다. "정말……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그때의 일? 뭐?" "라드 선배에게 당했던 일." "그 사람? 아까 말했잖아. 기억 안 난다고." 사라만다는 흥미 없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러나 사라만다가 평소 에 나에게 잘 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 을 억지로 떠올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거짓말이지? 나 놀리는 거지?" "나원, 기억 안 나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최면이라도 걸어서 확 인해볼래?" 사라만다가 조금 화난 어조로 말을 하자 실피르디아가 즉시 우리 대화에 끼 어 들었다. "저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실피르디아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서 난 현 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럼 편히 쉬어라……." 그렇게 말한 나는 힘없이 병실 문을 나섰다. 병실 밖 복도에는 네오니스들 이 날 기다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는 날 보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쟤들하고 뭔 얘기 나눈 거야?" "국가 기밀이야?" "……." 그러나 난 전혀 대답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질문을 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저기압인 날 보고 아이들은 이상하다는 눈치였지만 그다지 신 경 쓰지는 않고 즉시 병원을 나와서 버스를 탔다. 돌아가는 버스에는 사람들 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남자들끼리 그리고 여자들끼리 그룹을 짜서 두 명씩 앉는 좌석에 각각 포진했다. 부우웅- "왜 그래, 류드? 기운 없어 보이는데." 내가 좌석에 앉자마자 창 밖만을 쳐다보고 있자 네오니스가 의아한 표정으 로 물어왔다. 대답하기는 싫었지만 대답하지 않는 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난 간단하게 답했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 완전히 굳어버린 내 표정을 본 네오니스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래서 오죠룬에 도착할 때까지 난 누구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난…… 또다시 혼자인 건가……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던 라드 선배마저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이제 의지할 사람은 없게 돼 버렸어…… 마음을 터놓 고 얘기할 사람은…… 더 이상 없어……. 2221년도의 여름방학식. 아이들은 모두 방학한다고 들떠 있었지만 난 전혀 즐겁지 않았다. 겨울에는 기숙사에 난방이 들어오지만, 여름에는 선풍기가 고작이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를 떠나 집으로 돌아 간다. 그러나 난 돌아갈 집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기 때문에 이 학교에 남 아야 했다. "그럼 개학날 보자!" 방학식이 끝난 뒤 아이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교실을 나갔다. 난 잠시 책상 에 앉아 이번 여름방학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다가 이내 마법 수 련밖에 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에레나리스 가 로리아케시를 대동한 채 나에게 다가와 물음을 던졌다. "방학 동안 어디 가?" "아니." "그럼 계속 학교에 있겠네?" "그래야겠지." 난 거의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기분이 우울하기도 했고 왠지 에레나 리스나 로리아케시와 친하게 지내기 싫어서였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혹시나 돌아간다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모두 헤어 져야 하기 때문에 아주 가깝게 지내기가 껄끄러웠다. 라드 선배의 죽음 이후 로 그 생각은 더 강해진 상태였다. "네오니스하고 크리스토르도 모두 집에 간다고 하던데, 혼자 남아서 쓸쓸하 겠어? 뭣하면 나도 학교에 남아줄까?" 로리아케시는 날 놀리려는 속셈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그 말을 무시하 고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화를 냈다. "뭐야? 기껏 걱정해줬더니!" "걱정해달라고 한 적 없어." 난 싸늘한 한마디를 던지며 교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리고 곧장 내 방 기 숙사로 향했다. 지금 나는 누구와도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이들 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오히 려 기분이 가라앉기만 했다. 터벅터벅- 힘없이 걸음을 내딛어 M4관으로 향하던 중에 난 아주 오랜만에 샤느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꽤 바빠 보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난 말을 걸지 않으려 했 지만 샤느 선생이 날 발견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 거의 반년만에 만나는 거네?" 샤느 선생은 날 만나자 상당히 반가워했다. 1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네 오니스에게서 샤느 선생이 1학년 마법 이론을 가르치고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말을 돌렸다. "바쁘신 것 같아 보이는데요?" "아…… 담임이라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 1학년들이라 학교 빼먹는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 기숙사에 가서 몇 가지 확인해야 돼." 흘…… 그렇다면 샤느 선생은 올해 처음 담임을 맡았다는 소리? 힘들겠군. "참, 발렌타인의 날에 선물 못해서 미안. 그날 애들이 너무 빠져서 정신이 없었어." 그러면서 샤느 선생은 나에게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난 그 사과를 받을 입장이 되지 못했다. 나 역시 샤느 선생에 대한 것은 단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뭘요. 근데 빨리 가보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 그렇지!" 내가 그렇게 일깨워주자 샤느 선생은 그제서야 아차 하면서 M2관 기숙사 쪽 으로 뛰어갔다. 그러다가 잠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손을 흔들고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 흘…… 그냥 가면 되는데 저런 행동을 하다니…… 저게 선생이 제자한테 할 행동이냐? 뭐 샤느 선생이 뭘 하든 말든 어차피 난 신경 안 쓰니까 상관없지 만. 근데 오랜만에 아는 사람 만나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기왕 기분 좋아진 김에 열심히 마법 수련이나 해볼까나∼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7 / 100 [등록일] 2000년 07월 29일 22:52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37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2장: 낙원은 필요 없다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낙원은 필요 없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750 게 시 일 :00/07/29 22:05:08 수 정 일 : 크 기 :9.4K 조회횟수 :62 2221년 8월 1일 금요일 오전 11시. 따르르릉- 아무도 없는 방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그 아무도 없는 방은 내 방이었고, 비록 나와 라이 녀석이 같이 있었지만 라이 녀석은 인간이 아닌데 다가 내 입장에서는 '누군가 있다'라는 뜻이 다른 사람의 존재를 말하는 것 이기 때문에 결국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 셈이라 할 수 있었다. 흘…… 내가 왠 횡설수설을 하고 있냐? 더위를 먹어서 정신이 나갔나? 그나 저나 저 전화는 당연히 교장 할배가 건 것이겠지. 왜 전화했지? 혹시…… 낙 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대답하라고 부른 건가? 방학 끝나면 대답을 듣겠다 고 하지 않았나? 음…… 뭐 나야 상관없어. 이미 대답은 예전에 생각해 놨 었으니까. 자신 있게 전화를 받아볼까? 달칵- "여보세요." 《지금 뭐 하느냐?》 흘…… 역시 교장 할배군. "마법 수련 중입니다." 《그러냐? 그렇다면 교장실로 올라오거라. 그 대답을 들을 테니까.》 푸하하하, 내 생각이 완벽하게 들어맞았구만. "근데 방학 끝나고 나서 물어보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무슨 소리냐? 난 방학 끝나기 전에 물어본다고 했었다.》 얼라? 그랬나? 음…… 그랬던 것 같군. 그때는 대충 흘려들어서 기억이 안 나. "알겠습니다. 곧 가죠." 덜커덕! 더 이상 교장 할배의 말이 없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사실 본래는 그렇게 거칠게 끊을 생각은 없었는데 땀 때문에 수화기가 미끄 러지는 바람에 전화를 거칠게 끊은 꼴이 되고 말았다. 뭐 거칠게 끊던 말던 어차피 상대는 교장 할배니까 상관없어. 교장 할배는 내가 화를 내든 말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것보다는 교장 할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되겠군. 대답을 못하면 쪽 팔리니까. 탁- 탁- 탁- 많은 수의 아이들이 빠져나간 기숙사는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고, 선생들 역시 대부분 방학을 이용해 학교를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본관의 선 생 기숙사 역시 너무나 조용했다. 마치 이 학교에 나 혼자만 있다는 착각을 하면서, 난 천천히 교장실로 올라갔다. 똑똑- "……." 교장실 문을 두드린 후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교장 할배가 먼저 내 신원을 확인하려고 질문을 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류드냐? 들어와라." "……." 흘…… 신원 확인이라 할 것도 없구만. 끼이-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교장 할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날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자, 답변은 준비됐겠지?" 흘…… 그럼 물건부터 보여달라구. 그래야 거래가 성립하는 거니까. 뭐 그 건 그렇고 저 교장 할배는 또 날 세워둘 셈인가? 하여간 앉아서 뭔가 얘기한 적이 없어. 날 운동시키려고 그러는 거냐? "근데 꼭 서서 얘기해야 하나요?" 난 용기를 내서 교장 할배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얼 굴을 굳히더니 내 도전장을 찢어버렸다. "그럼 나하고 마주 앉아서 얘기하기를 바랬다는 거냐? 어른 앞에서 건방지 게?" "……." 그래…… 나 건방집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관두고 이제 질문을 하겠다." 교장 할배의 선언에 난 더 이상 의자 얘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저 교장 할배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한 준비나 해야했다. "낙원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흘…… 나한테 지금 평범한 대답을 바라는 거냐? 뭐, 나야 교장 할배가 이 끄는 대로 따라가는 수밖에는 없겠지. 결국 교장 할배는 내게서 그 대답을 바라고 있을 테니까. "낙원은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곳이겠죠." 난 교장 할배의 뜻대로 그야말로 아주 평범의 극을 치달리는 대답을 해주었 다. 내 대답에 교장 할배는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 세상에는 낙원이란 게 있을까?" "당연히 없죠." "……." 내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대답하자 교장 할배는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내가 낙원이 존재한다는 식의 대답을 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듯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내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교장 할배는 이 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어째서 낙원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하…… 내가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한 대답을 꼭 해야되겠냐? "우선 자원의 희소성(稀少性)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으니까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곳은 낙원이라 볼 수 없죠." 내 대답을 들은 교장 할배가 이내 반박 비슷한 말을 내뱉었다. "그건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물질적인 것이 완벽 히 구비되어 있는 곳은 낙원이겠구나." 헛소리하고 앉아 있구만.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에 세수라도 하고 오는 게 어떠셔? 아니면 냉수마찰을 하던가.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완전하게 손에 넣는다고 해도 정신적인 측면이 만족 되지 않으면 행복을 못 느낍니다. 그 정신적인 측면을 만족시켜 줄 만한 곳 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낙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후후." 교장 할배는 묘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내 얘기에 헛점을 발견한 것인지 아 니면 자신의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해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 쨌거나 상당히 기분 나쁜 웃음소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왜 정신적인 측면을 만족시킬 만한 곳이 없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 해라." 흘…… 그럴 줄 알았어. 언제 예를 들지 않고 대화가 진행된 적이 있었냐? "그럼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죠. 그 보석을 가지는 사람은 행복감을 느낄 겁니다. 상대적 우월감이 확보되니까요. 하지 만 그 보석을 원하는 사람은 한두 사람이 아니죠. 누군가 그 보석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 보석을 가질 수 없고, 그 보석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은 불행함을 느낄 겁니다. 그런 상황이 존재하는 곳을 낙원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내 얘기를 듣고 있던 교장 할배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눈쌀을 찌푸렸다. "그건 정신적인 측면이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이지 않느냐?" 얼레? 그런가? 음…… 그런 것 같군. "그럼 예를 바꿔서…… 아주 예쁜 여성이 있습니다. 그 여성과 결혼하는 남 자는 당연히 행복감을 느끼겠죠. 하지만 그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한 사람이라는 법은 없습니다. 여러 명의 남자들이 한 여성을 좋아하는 경우 도 발생하죠. 그런 상황에서 그 여성과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불행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곳 역시 낙원이라 볼 수 없죠." "음…… 그것도 왠지 물질적인 측면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단지 보석이 라는 것이 예쁜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니까 말이다." 흘…… 또 아니라구? 나원, 아주 골치 아프게 하는구만. 아, 그래그래 얼마 든지 예를 바꾸어서 설명해 주지. 어차피 예로 들 것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그럼 3번째 예를 들도록 하죠. 한 소설가가 훌륭한 소설을 하나 써서 성공 했습니다. 그 소설가는 당연히 행복감을 느끼겠죠. 그런데 다른 소설가들 역 시 훌륭한 소설을 쓰고 싶어합니다. 낙원이라면 당연히 그 소설가들도 훌륭 한 소설을 써서 성공하겠죠. 하지만 소설가 지망생들이 모두 좋은 소설을 써 서 성공을 한다면, 이미 성공한 소설가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물론 전보 다 더 노력해서 아주 훌륭한 소설을 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쓴 소설보다 더 훌륭한 소설이 쏟아져 나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소설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고…… 낙원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성공해 야 한다…… 따라서 훌륭한 소설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교장 할배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팔짱을 낀 채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이 내 다시 눈을 뜨고는 나에게 되물었다. "만약 그 소설가들이 모두 동등한 실력의 소설을 쓴다면 어떠냐?" "……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낙원이라고 가정하지 않았느냐?" "……." 내가 띠꺼운 눈초리로 노려보아도 교장 할배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어 서 대답하라는 표정을 해 보였다. 난 그런 교장 할배의 표정을 일그러뜨릴 만한 대답을 생각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너무 시간을 끌면 교장 할배가 화를 낼 것 같아서 대충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동등한 실력의 소설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면 어떨까요?" "……." "아무리 훌륭한 글을 써도 다른 소설가들도 그와 동등한 수준의 소설을 쓸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습니까?" "……." "아무리 노력해서 훌륭한 글을 써도, 결국 남보다 뛰어난 수준의 글은 쓰지 못하고 그저 다른 소설가들과 동등한 수준의 글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남보 다 뛰어난 글을 쓰는 순간, 그 글보다 수준이 낮은 글을 쓴 사람들은 불행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낙원이 성립되지 않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소설가들은 과연 행복감을 느낄까요? 그곳이 낙원일까요?" "……." 이번엔 교장 할배의 입이 굳게 닫혀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내 대답이 자신 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에 굳이 반박하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 이었다. 닫힌 교장 할배의 입꼬리가 묘하게 말려 올라가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결국 네 말은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구나." 그렇게 한 문장으로 내 말을 요약한 교장 할배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왜 모든 사람이 행복감을 동시에 느낄 수 없는 것이냐? 왜 사람 은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냐?" 흘…… 지금 나보고 전에 했던 말을 또 하라는 거냐? 정말 귀찮게 구는 노 인네야……. "그건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라."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예랍시고 들 것도 없는데 뭐. 어차피 내 가 할 말은 전에 다 했었다구. 이제 와서 그 얘기를 또 듣는 게 지겹지도 않 냐? "전에도 말했듯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상대적 우월감이 확보되어야 합 니다. 하지만 낙원이란 곳에서는 상대적 우월감이 확보될 수가 없죠. 모두 성공하고 싶어하고, 모두 성공하기 때문에 누가 우월하다 누가 열등하다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 곳에서 상대적 우월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죠." "그건 알고 있다. 내가 듣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어째서 인간은 상대 적 우월감을 가져야만 행복한가 하는 것이다. 왜 절대적인 무언가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교장 할배의 물음에 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교장 할배의 질문을 제대로 이 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장 할배의 표정을 통해 교장 할배가 원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파악한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 내가 그 말을 한 순간 교장 할배의 표정이 간사하게 변했다. 내 대답이 만 족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것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원 하는 듯 말없이 날 쳐다보았고, 난 계속 입을 놀려야했다. [번 호] 98 / 100 [등록일] 2000년 07월 29일 22:53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40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2장: 낙원은 필요 없다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낙원은 필요 없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751 게 시 일 :00/07/29 22:05:25 수 정 일 : 크 기 :10.8K 조회횟수 :52 "인간에게는 누구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좀 더 확장해서 말하면 인간이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모든 사람이 행 복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행복 따 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됐을 겁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이유나 삶의 의미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죠. 인간이기 때문에 낙원을 바라지만, 인간이 기 때문에 결코 낙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겁니다." "후후후…… 허허허허!" 처음엔 낮게 웃던 교장 할배는 곧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교장 할배의 웃음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통쾌하게 들렸다. 그것은 결국 내 생각이 교장 할 배의 생각과 일치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허허허! 나하고 같은 생각에 도달했구나." 흘……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구. "그럼 너는 인간에게 낙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바로 교장 할배가 이번 질문에서 가장 묻고 싶어하는 것임을 난 거 의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사실 그 질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 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아주 단정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인간에게 낙원은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즉, 낙원은 필요 없다는 겁니다." "왜 필요 없느냐?" 이미 내가 그렇게 말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교장 할배는 내 말이 끝나기 무 섭게 물음을 던졌다. 교장 할배가 너무 빨리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난 잠시 당황했다. "에…… 그러니까…… 아, 인간은 낙원을 원하지만 정작 낙원을 이루게 되 면 오히려 불행함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 누구도 잘나지 않고 그 누구도 못나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상 대적 우월감을 확보할 수가 없는 거죠. 낙원에서는 성공이나 실패란 것이 전 혀 의미 없어지고 대신 권태감만을 느끼게 됩니다.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낙원에서, 인간은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되어 오 히려 권태를 느낀다는 겁니다." "음……." 교장 할배는 마치 생각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했지만 이미 내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말을 반박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죽어서 천국이나 극락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 각하느냐? 아니면 세상 종말이 왔다하면서 천국에 가길 희망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어떻지?" 잠시 생각하는 척하던 교장 할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고, 난 아주 간단 하게 대답해 주었다. "바보들이죠." "……." 너무나 간단한 내 말에 교장 할배는 조금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 고는 날 째려보면서 어서 그 이유를 대답하라고 무언의 협박을 했다. 굳이 대답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지만 교장 할배가 그 대답을 직접 듣고 싶어했 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천국에 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권태만을 느끼게 됩니다. 오히려 힘들게 지냈던 이승 세계를 그리워하게 될 겁니다. 전 그렇게 확신합 니다. 물론 갔다 와본 적은 없지만요." "그럼 내가 직접 저승 세계로 보내주면 되겠구나. 네가 천국에 갔다 와서 정말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를 알아보는 거다!" 교장 할배는 마치 그게 아주 훌륭한 생각이라는 듯이 만족한 얼굴을 했다. 사실 그거야말로 내 생각을 가장 확실하게 해줄 증거가 되는 것이었지만, 설 령 천국 같은 것이 있더라도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했 기 때문에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그 대상을 바꾸기로 했다. "저보다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가시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요." "나 말이냐? 넌 내가 천국에 갈 사람처럼 보이느냐?" "아니요." "그렇지? 그럼 이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꾸나." 그렇게 자신이 했던 말을 얼렁뚱땅 얼버무린 교장 할배는 화제를 돌리기 위 해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럼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 하느냐?" "그 사람들은 착한 존재들이죠." "……." 내 대답에 교장 할배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전에 내가 했던 말과 지금 내가 한 말은 명백하게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교장 할배는 잠시 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천국에 가고자 희망하는 사람들은 바보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를 만 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착하다는 거냐? 모순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냐? 모 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바로 모든 사람이 불행한 사회라고 말한 사람은 너 잖느냐?" 후후, 저런 표정의 교장 할배를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결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는 만들 수 없습니다. 자원 의 희소성도 문제가 되고, 인간의 감정 자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죠." "인간의 감정?" "예. 인간은 남보다 뛰어나고 싶어하지 남보다 뒤쳐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는 반드시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게 되죠. 그것은 사회 불만을 낳게 되고 결국 범죄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인간이 상대적 우월감을 버린다면 서로 싸울 일은 없겠지만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죠." "결국 인간의 사회 생활에서는 항상 다툼이 일어난다는 뜻이로군." 이번에도 역시 내 말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버린 교장 할배는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인간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냐? 행복한 사 회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모르기 때문이냐?"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더 큰 이유?" 이렇게 교장 할배가 내 말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이 내 상대적 우월감을 충족시켜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물론 이 모든 질문은 교장 할배 자신의 생각을 나에게 심어주기 위해서일 테지만, 그런 교 장 할배가 내 말에 놀라는 것을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인간은 불행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약육강식 의 세계에서 약자들은 항상 불행만을 겪기 때문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들은 법을 만들게 되죠. 그리고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 모든 사람 이 행복한 사회 만들기라는 팻말을 걸고 활동하는 겁니다." "흠…… 왠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 고 있는 것 같구나." 얼레? 내가 그런 식으로 말했나? 난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이런…… 내 어조가 워낙 띠꺼워서 그러나? 그럼 큰일인데……. "아니오.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저 같은 약자도 이 사회에 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나쁜 감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 만 그런 사람들은 착한 존재들이죠. 비록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는 만들 수 없지만, 적어도 분쟁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는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계속해서 생겨나는 사회 부조리를 해결하면서 문명을 이어나가는 겁 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난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 다. 다행히 교장 할배도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었는지 질문을 하지는 않았 다. 대신 나직이 한숨을 쉬면서 자기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난 말이다, 낙원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 모 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을 말이다." "……?" 교장 할배가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흘…… 전혀 아닐 것 같은데? 플라톤 처럼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이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 아니야? 왜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네가 말한 대로 지금의 인간으로서는 낙원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인간을 개조하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 때문에 낙원 창 조가 불가능하다면, 그 인간의 감정을 없애버림으로써 낙원을 만들어 내겠다 고 생각한 거다." "……!" "인간의 감정을 없애기 위해 난 페이사를 연구했다. 인간의 정신을 건드릴 수 있는 마법인 페이사야말로 인간의 감정을 없애는 것에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한 거지. 그렇게 몇십 년간의 연구와 발굴된 유적을 통해 페이사를 극대 화시키는 방법을 알아냈고, 라드롬스를 통해 인간의 감정 말살을 시도해보았 다." "……!" "하지만…… 결과는 네가 봤던 대로다. 대 실패였지. 인간에게는 전생의 기 억이 있어서 그 기억의 감정까지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거다. 뭐 그 전생의 감정까지 없애버리면 되겠지만, 라드롬스처럼 갑자기 날뛰어 버리면 그 작업이 상당히 어려워지지. 게다가 인간이 꼭 하나의 전생을 가지고 있다 고 할 수도 없어. 수십 개, 어쩌면 수백 개, 수천 개의 전생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기억의 감정을 일일이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교장 할배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더 이상 그 인간 감정의 말살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난 그것보다 교장 할배가 그 런 위험한 생각을 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잠깐만요! 그런 생각으로 라드 선배를 실험 대상으로 했단 말입니까? 인간 의 감정을 말살해버리면 그 존재 의미가 사라져버리잖아요!!!" 내 흥분 어린 말에 교장 할배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아직 생각이 모자르구나. 인간의 기억을 모두 제거했 다면, 그 인간들은 행복 따위는 느끼지 못할 테고, 따라서 존재 의미 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겠지. 동물처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사는 거다. 그야말로 무위자연(無爲自然) 아니냐?" "……."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동물과 같은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정과 이성을 가지고 있는 지금 의 나일 뿐이고, 만약 내가 이성과 감정을 잃어버렸다면 동물처럼 사는 것이 전혀 아무렇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에 교장 할배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 이제 내 질문은 이것으로 끝이다. 더 이상 이렇게 교장실로 널 불러서 물어볼 게 없다는 뜻이지. 기뻐해라." "……." 흘…… 전혀 안 기뻐. 뒷맛이 구리단 말이다. "만약 인간의 감정 제거가 성공했다면 2222년 2월 22일에 모든 인간의 감정 을 말살해버리려고 했다. 낙원을 만드는 것이 내 오랜 꿈이니까 말이다." 으헉?! 모든 인간의 감정을 말살하려고 했다고라? 그런 말도 안 되는 계획 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 할아범 완전히 돌아버린 거 아니야?! "어떻게 모든 인간의 감정을 말살해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흥분하여 소리치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허허, 물론 가능하니까 그런 계획을 세운 거다. 드라콘 유적에 적힌 마법 주문을 빌리면 충분히 가능하단 말이다. 알겠느냐?" "……!" 드라콘의 유적…… 골드드라콘이나 시로브드라콘 같은 마법 능력이 뛰어난 드라콘들의 유적인가? 그 유적에 파묻혀 있는 마법 주문으로 페이사를 극대 화시켜 모든 인간의 감정을 말살한다? "그럼 교장 선생님은 다른 인간들의 감정을 제거하고, 자신의 감정은 남겨 놓을 작정이었습니까?"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으며 손까지 내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드라콘 유적에 적혀있는 그 가공할 마법 주 문은 술사조차 마법의 영향을 받게 한다. 그러니까 내가 그 주문으로 페이사 를 발동하면 나도 그 페이사의 영향을 받아 감정이 말살되는 거다." "그렇다면 자신의 감정까지 말살시키면서 낙원을 만들려고 한 겁니까?!" "물론 그렇다. 나만 감정이 남아 있다는 것도 불행이니까 말이다." "……." 도대체…… 이 할아범의 머리는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자신의 감정까지 말살하면서 낙원을 이루고 싶었다니…… 그 두뇌를 해부하고 싶게끔 만드는 인간이야……! "어쨌든 그 계획이 실패한 이상 최후의 계획을 실행할 것이다. 그 최후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말 안 해도 알 거다." 교장 할배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처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교장실 문을 열더니 어디론가 천천히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난 그저 교장 할 배가 교장실을 나가는 모습을 멍청히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 최후의 계획을 실행할 것이다. 그 말만이 내 머리 속에 울리고 있었다. 그 최후의 계획이란 것이 무엇인지 는 거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믿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계획을 알아봤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난 그저 교장 할배가 음모를 꾸미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난 무능력한 존재일 뿐이었다……. ====================================================================== 요즘 제가 무능력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음다...ㅠ.ㅠ. [번 호] 99 / 100 [등록일] 2000년 07월 31일 22:13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15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3장: 최후의 계획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3장:최후의 계획 -1- 총 Page : 18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31 20:02:22 수 정 일 : 크 기 : 7.0K 조회횟수 : 112 <제 33 장> 최후의 계획 "왕왕왕!" 어느새 잠에서 깬 라이 녀석이 밥 달라고 짖어댔다. 열심히 마법 수련을 하 고 있던 나는 라이를 무시했고, 그러자 라이는 자기 머리로 내 복부를 들이 받았다. "윽…… 뭐야 임마!" 내가 화를 내자 라이 녀석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릉……!" "…… 알았어. 밥 주면 되잖아!" 결국 난 마법 수련을 관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미리 사 두었던 빵을 꺼내 라이에게 던져주었다. 라이 녀석은 능숙하게 빵 봉지를 뜯고는 열 심히 빵을 먹기 시작했다. 후…… 그나저나 마법 수련이 전혀 안되고 있어…… 11써클은 이제 더 이상 안돼.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먹고 있기 때문인가? 하지만 교장 할배가 언제 그 최후의 계획이란 것을 실행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마법 수련 하고 앉아있는 것도 좋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거야? - 마음을 편하게 하라.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지금 할 수 있다고 생 각되는 일을 차근히 하라. "……!" 갑자기 내 머리 속으로 그런 말소리가 울려왔다. 너무나 똑똑하게 들렸기 때문에 난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방에는 라이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방금 전의 그 목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는 목소리가 어째서 내 머리 속에 울린 거지? 누가 마법을 사용한 건가? 하지만 마나 파장 같은 것은 전 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설령 마나 파장을 완전히 제어하면서 마법을 사용했 다 하더라도 밖에서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마법을 사 용하는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건가? 아니면……? "왕왕!" 어느새 빵을 다 먹은 라이 녀석이 눈을 빛내며 날 쳐다보았다. 라이의 눈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저번에 운디네시스를 구출하러 갔을 때 깡패들을 죽 여버렸었던 라이의 그 눈자위 색과 같았던 것이다. "너…… 설마 날 죽이려고……?!" "왕왕!" 라이는 왠 헛소리를 하냐는 듯 사납게 짖더니 어서 물 달라는 얼굴을 해 보 였다. 다시 한번 살펴보니 라이의 눈자위 색은 이미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작은 접시에 물을 따라 라이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할짝할짝- 라이 녀석이 물을 마시는 동안 난 라이의 그 붉은 눈동자에 대해 생각해보 았다. 하지만 어째서 라이가 그런 눈동자 색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 도 알 수 없었다. 비록 교장 할배의 말대로 라이가 보통의 강아지는 아니겠 지만, 그렇다고 뭔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저렇게 물을 마시 고 있는 라이는 보통의 강아지 같아 보일 뿐이니까. 붉은색의 눈동자…… 붉은색…… 붉은색…… 왠지 익숙한 색이군. 내가 너 무 피에 찌든 생활을 해서 그런가?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있었던 것 같 은 느낌이 드는데? 왜 붉은색이란 것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걸까? 붉 은색의 사람의 감정을 격앙시킨다고는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 "……!" 그렇게 생각을 굴리던 나는 마침내 붉은색이란 것에 묘한 느낌이 들었던 이 유를 알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붉은 구슬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환타지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했던 그 붉은 구슬을 이제서야 떠올린 것이었다. 이런! 난 바보인가? 이 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붉은 구슬의 존재에 대한 것 은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어! 예전처럼 무슨 붉은 빛을 발하지도 않아서 신경 을 안 쓰게 되어버렸으니…… 그런데 붉은 구슬은 어디 있는 거지? 내가 어 디다 두었더라? 제길…… 기억이 나지 않아……! 쾅! 텅텅! 난 집안을 이 잡듯이 뒤지며 붉은 구슬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구슬 비슷한 것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내가 1학년일 때 기거했던 M3관 520호에 붉 은 구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즉시 그곳으로 뛰어갔다. "헉헉헉!" 정신없이 뛰었기 때문에 숨이 가빴지만 난 쉬지 않고 즉시 520호의 문을 열 어보았다. 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방이든 아이들이 사용하는 방이든 현재 아무도 없으면 열쇠로 모두 잠가놓았기 때문에 열쇠가 없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제길…… 결국 확인을 못하는 거냐? 교장 할배에게 가서 열쇠를 달라고 해? 하지만 붉은 구슬을 찾는답시고 내가 그런 요구를 하면 교장 할배가 분명히 그 이유를 물어올텐데…… 뭐라고 대답하면 좋지? 도대체 뭐라고 대답하면 교장 할배가 아무 의심 없이 열쇠를 내어줄까……. "왕왕!" 그때 내 뒤를 따라왔는지 라이 녀석이 내 옆에서 꼬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난 라이 녀석을 상대해줄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라이를 무시했다. 덜컥! "……?" 갑자기 문 손잡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열쇠로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왠지 묘한 생각이 들어 라이 녀석을 내려다보 았다가 라이 녀석의 눈자위가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발견했 다. 그래서 난 즉시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았다. 끼이- 문은 여지없이 열렸다. 방금 전까지 잠겨 있었던 문이 열려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라이 녀석에 게 그런 놀라운 능력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랬던가? 그래서 문을 잠가놓아도 라이 녀석은 밖을 잘도 싸돌아 다녔던 것이군. 그런데 어떻게 문을 여는 거지? 강아지에게 초능력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그럼 라이 녀석은 말로도 듣지 못했던 초능력 강아지?! "왕왕!" 라이는 자신이 리더라도 된 양 앞장서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잠겨 있 었기 때문에 현재 방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방이 누구에 게도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방안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어떤 책도 없었던 것이다. 좋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이 방을 쓴 뒤로 그 누구도 이 방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물론 청소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건 우선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 방을 뒤져보자! …….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시계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대략 1시간 정 도 흐른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극도의 허탈감에 빠졌던 나는 비로소 붉은 구슬이 내 옷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타타탁-! 거의 정신없이 달려 다시 내 방에 도착한 나는 내가 이 세계로 오기 전에 입고 있었던 옷을 꺼내어 뒤졌다. 비록 이 세계로 넘어온 뒤로 이 옷을 입은 적은 없으나 세탁기를 사용해 여러 번 빨았었기 때문에 붉은 구슬이 과연 있 을지 걱정되었다. "……." 그러나 없었다. 붉은 구슬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에 와서 붉은 구슬을 찾아봤자 내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난 붉은 구 슬 찾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피곤해지기만 했을 뿐이 었다. 후후…… 붉은 구슬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을 정도로…… 난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것인가? 환타지 세계를 본래대로 돌려놓겠다는 내 다 짐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난 그렇게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녀석인가? 후후…… 형편없어……. "왕왕!" 침대에 누워 허탈하게 웃고 있던 날 향해 라이가 짖어댔다. 그 소리는 마치 '정신차려 임마! 그렇게 약해빠져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고!'처럼 들려왔다. 나보고 힘내란 듯한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알았다고, 그러니까 시끄럽게 짖지 마라." 난 라이 녀석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라이 녀석은 나 때문에 헝클어진 자기 머리털을 다듬느라 정신없었다. 난 강아지 가 앞발을 사용해서 털을 다듬는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있다가 마법 수련이나 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마법 수련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부터 마법 수련을 한다고 해도 10써클의 마력에다 시로브드라콘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교장 할배를 이길 수 있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하 는 데까지는 해봐야겠지. 저번의 보물 사냥 때처럼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절대 사양이니까. [번 호] 100 / 100 [등록일] 2000년 07월 31일 22:14 Page : 1 / 23 [등록자] THEBUR [조 회] 15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3장: 최후의 계획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3장:최후의 계획 -2- 총 Page : 3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7/31 20:02:37 수 정 일 : 크 기 : 11.8K 조회횟수 : 104 2221년 8월 15일 금요일. 광복절이라고 달력에는 빨간 날로 표시되어 있지 만 방학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별로 의미 없는 공휴일 중의 하나. 그런 공휴 일에는 7월 17일 제헌절도 포함되어 있다. 여름 방학은 항상 제헌절 되기 직 전에 시작되니까. "끄아―!" 난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이미 옆방에 도 사람이 없고 내 방에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내도 뭐라 욕 먹을 일은 없었다. 단지 라이 녀석이 시끄럽다고 짖어댈 뿐이었다. "피곤해 죽겠구나∼ 마력은 이제 겨우 1클래스밖에 모으지 못했는데." 난 라이 녀석이 짖든 말든 열심히 불평만 늘어놓았다. 교장 할배에게서 최 후의 계획이라는 말을 들은 직후부터 난 마법 수련을 했는데, 11써클의 마나 회전보다는 1클래스의 마나 축적의 길을 택하였다. 그 방법은 계속 움직여대 는 이 세계의 마나를 덩어리로 만들어서 내 몸에 축적시키는 것이었다. 처음 엔 물론 잘 되지 않았다. 마구 날뛰는 망아지를 진정시키는 것과 같은 상황 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그런 마나의 날뜀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그 마나의 날뜀을 진정시키는 요령 같은 것이 생겼고, 지금은 그런 내 노력 의 결과로 새로운 1클래스를 몸 속에 축적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하…… 겨우 1클래스의 마력으로는 교장 할배를 당해낼 수 없는데…… 차라 리 11써클에 도전할 걸 그랬나? 음…… 아니야, 분명히 11써클을 회전시키려 고 노력하는 시간이 1클래스를 축적했던 시간보다 길 테니까 난 선택을 잘한 거야. 그럼그럼. 따르릉- "……!" 따르릉- 후…… 깜짝 놀랬잖아? 아무도 없는 방에서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서 하마터 면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어. 내 눈으로 내 심장을 볼 기회가 사라져서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다시 놀라기는 싫다구. 다음에는 제발 '곧 전화벨 울립니다' 하고 예고하란 말이야. 달칵- "여보세요." 《보름만이구나.》 그 목소리는 당연히 교장 할배였다. 8월 1일에 낙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한 뒤로 교장 할배와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교장 할배가 그렇게 말한 것 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허, 꽤 기분이 안 좋은가 보구나. 무슨 일 있었느냐?》 흘…… 무슨 일이 있었다기보다는 교장 할배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 빠져 버린다고. 게다가 예고 없이 전화를 해서 사람을 놀래키기나 하고 말이 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아니오." 《그래? 뭐 어쨌든 너하고 갈 곳이 있다.》 얼레? 갈 곳? 최후의 계획인가 뭔가를 세운다더니 갑자기 날 왜 불러? 헉! 설마…… 벌써 최후의 계획이 모두 준비되어서 나에게 구경시켜준다는 의미?! "어디로 갑니까?" 《그건 나중에 가르쳐주마. 우선 교문 앞으로 나오거라.》 달칵- 뚜우뚜우- 그렇게 자기 할말만 한 교장 할배는 냉큼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모습은 꼭 내가 살던 세계에 있을 때 PC통신상에서 나하고 일대일 대화를 하다가 할말 다하면 일대일 대화를 바로 종료시켰던 플라톤과 비슷하게 보였다. 아니, 그 것이 아니라 어쩌면 교장 할배가 플라톤이라고 마르크스에게서 들은 후 교장 할배의 사소한 행동을 억지로 플라톤으로 끼워 맞추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덜컥- 난 수화기를 거의 집어던지듯이 내려놓은 후 교장 할배의 말대로 교문으로 향했다. 교장 할배가 말한 최후의 계획인가 뭔가를 막지 못하면 다시는 이곳 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나갈 때 굳이 문을 잠그고 싶은 생각 은 들지 않았다. 그저 몸만 달랑 가지고 나갔다. "왕왕!" 내가 밖으로 나가자 라이 녀석이 멍멍 짖으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눈을 초 롱초롱 빛내며 꼬리를 흔들고 따라오는 라이 녀석을 모른 척 하기에는 내 양 심상 찔렸기 때문에 라이도 데려가기로 했다. 사실 솔직히 말한다면, 라이 녀석을 데려가지 않으려고 했다가는 라이가 날 물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 다. 탁탁탁- 여름의 뜨거운 햇빛만이 내리쬐고 있는 운동장을 지나 교문에 다다랐다. 뛸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괜히 뛰어와서 내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기숙사에서 교문까지 겨우 15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데, 뛰어서 땀 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 오늘 날씨가 상당히 덥다는 것을 의미했다. "……?" 얼레? 왜 교장 할배가 교문 앞에 없는 거야? 교문 앞으로 나오라길래 당연 히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더니…… 혹시…… 교장실에서 나보고 교문 앞으로 나오라고 전화한 뒤에 지금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는 거 아니야?! "……!" 그때 본관 현관에서 여유있는 발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교장 할배 의 모습을 발견했다. 역시 교장 할배는 교장실에서 내 방으로 전화를 한 다 음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진짜 괜히 뛰어온 거잖아? 가뜩이나 더운 날씨인데 더 열 받게 하 는구만…… 저 할아범을 죽여 살려? "오, 벌써 나와 있었구나. 뛰어온 거냐?" "……." 흘…… 내 이마에서 땀이 수영하고 있는 거 보고도 몰라? "라이까지 데려왔구나. 뭐 상관없지만." 교장 할배는 잠시 라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다가 이내 학교 밖으로 걸어나갔 다. 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교장 할배의 뒤를 따랐고, 라 이 녀석은 그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교문 앞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교 장 할배의 시뻘건 자동차가 놓여져 있었다. 전에는 그저 보통의 붉은색 자동 차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 자동차에 피칠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타라." 교장 할배는 피떡이 된 차 문을 열어 운전석에 앉았고, 난 라이와 함께 교 장 할배의 옆에 앉았다. 본래는 뒤에 앉고 싶었지만 운전 도중 교장 할배가 나한테 뭔가 질문을 해올 수가 있었기 때문에 싫지만 교장 할배의 옆에 앉은 것이었다. "멀리 갑니까?" 난 자리에 앉자마자 교장 할배에게 물었고, 교장 할배는 가볍게 내 말을 씹 고 나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릉- "왕왕왕!" 차가 출발하자 기분이 좋아진 건지 라이 녀석이 신나게 짖어댔다. 차는 상 당한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지만 도로에 차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전혀 위험 하지 않았다. 얼레? 왠지 지금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 모습이나 풍경들이 어디선가 봤었 던 것 같은데? 원래 세계에서 봤었던가? 아닌데…… 확실히 이곳의 건물 모 습이 내가 살던 곳하고 비슷하긴 하지만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단 말이야…… 원래 세계에서 저런 풍경을 봤을 리가 없지…… 근데도 어디선가 봤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설마…… 전생에 이곳에서 살았던 건가? 그래 서 처음 왔는데도 언젠가 왔었다는 느낌이 든다는 데쟈뷰 현상?! 부우웅- "……." 처음엔 데쟈뷰 현상이다 뭐다 하는 헛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왜 내가 이 풍경을 어디선가 봤었다는 느낌이 드는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 교장 할배가 가고 있는 곳은 전에 수학 여행갈 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학교 버 스를 이용해 갔었던 공항이기 때문이었다. 흘…… 괜히 들떴잖아? 그나저나 공항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비행기를 탄다는 뜻이로군. 근데 이번에는 여객기를 타고 가나, 아니면 보물 사냥할 때처럼 경비행기를 타고 가나?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만. 끼익- 공항 앞에서 차를 세운 교장 할배는 차에서 내리고는 차 문도 잠그지 않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나도 차에는 신경 쓰지 않고 라이와 함께 교 장 할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교장 할배를 따라가는 동안 무심코 뒤를 돌 아보니 어떤 양아치처럼 생긴 청년 두 명이 교장 할배의 차를 이리저리 살펴 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눈에도 교장 할배의 차를 훔쳐가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난 그걸 무시하고 이미 공항 안으로 들어가 버린 교장 할배의 뒤를 쫓기만 했다. 웅성웅성- 방학이라 그런지 해외, 그래봤자 이곳에서는 자파스라는 국명을 가지고 있 는 일본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공항에 몰려 있었다. 교 장 할배는 그런 관광객들 사이를 용감하게 헤쳐나가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교장 할배가 길을 다 뚫어주었기 때문에 나와 라이는 굉장히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아, 저기 그곳은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됩니다!" 그때 공항 경비원처럼 생긴 사람이 교장 할배에게 다가오더니 제재를 가했 다. 그러나 교장 할배가 무엇인가를 꺼내 보여주며 뭐라 뭐라 하자 이내 고 개를 숙이더니 그냥 사라졌다. 그렇게 경비원의 일차 방어선을 뚫은 후 교장 할배는 나를 데리고 활주로 안에 무단침입 했다. "자,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다!" 활주로의 한쪽 구석에 있던 창고로 날 끌고 갔던 교장 할배는 창고 안에 들 어가 있는 경비행기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경비행기는 저번에 탔었던 것하고 거의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난 띠꺼운 표정을 하 면서 물었다. "저번에 탔던 거 아닙니까?" "허, 무슨 소리냐? 그건 네가 말아 먹어버리지 않았더냐?" 흘…… 내가 경비행기를 말아먹어? 경비행기가 무슨 국수냐, 말아먹게? 경 비행기는 자고로 말아먹었다 라고 하지 않고 뿌셔먹었다 라고 하는 거라고. 어휘력이 부족해∼ 탁- 교장 할배는 경비행기에 올라탔고 나도 역시 라이와 함께 올라탔다. 그리고 교장 할배가 경비행기를 가동시키기 전에 교장 할배에게 물음을 던졌다. "어디로 가는 건지는 알고 싶은데요." "……." 처음엔 아무 소리하지 않던 교장 할배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이내 내 물음에 대답해주었다. "목적지는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다." 고나드라콘의 유적? 메이로나 같은 고나드라콘? "거기 가서 뭐 하려는 건데요?" 난 그렇게 물었지만 교장 할배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란 곳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나드라콘은 드라콘들 중에서 성격이 가장 온순하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가 가고 있는 그 고나드라콘은 암컷이었는데, 시로브드라콘에게 강간을 당했 다는구나." "……?!" "본래 고나드라콘이 시로브드라콘보다 특수 능력은 뛰어나지만 당시 고나드 라콘은 다른 드라콘과 싸운 직후라 많이 지쳐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이없 이 시로브드라콘에게 강간을 당한 거지." 하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구만…… 거대한 덩치 의 드라콘이 다른 드라콘을 강간해? "저기요, 드라콘끼리 강간도 해요?" 하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교장 할배의 말을 중간에서 끊으며 물었고, 계속 설명만 할 것 같았던 교장 할배는 그런 내 물음에 응해주었다. "물론이다. 동물 집단에서도 그런 일은 일어나니까 드라콘 집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흘…… 그래도 드라콘이 강간을…… 하하…… 말도 안돼……. "어쨌든 그렇게 시로브드라콘에게 정조를 빼앗긴 그 고나드라콘 암컷은 나 중에 힘을 회복한 뒤에 그 시로브드라콘을 흡수해버렸다. 말하자면 복수지." 뒤에 이어진 교장 할배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드라콘에게 정조라는 개념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드라콘이 다른 드라콘 을 흡수한다는 것조차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즉시 질문을 던졌다. "드라콘에게도 정조 관념이 있어요?" "그런 것 같더구나. 동물 집단에서도 정조 비슷한 관념이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정조 관념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순수 자손을 낳기 위해 다른 동물과 교 미할 수 없도록 하는 본능 같은 거라 할 수 있겠지. 그 고나드라콘의 유적에 써진 글을 보면 시로브드라콘에게 정조를 잃은 뒤 좋아하던 수컷 고나드라콘 에게 버림을 받았다는구나." "……." 난 할말을 잃었다. 그저 교장 할배의 얘기를 멍청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버림받은 암컷 고나드라콘은 아까 얘기했다시피 자신을 강간했던 시로브드라콘을 흡수해버리고는 광폭해졌단다. 거의 실성한 그 고나드라콘은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한 주문을 완성하고 그 주문을 발동시키려 했다. 하지 만 그 순간에 자신을 버렸던 수컷 고나드라콘이 나타나 사랑을 고백했고, 둘 은 화해를 하고 맺어지게 되었지. 그리고 그 주문은 발동되지 못하고 사장되 어 버렸단다." "……." 난 정말로 할말을 잃었다. 그 엄청난 고나드라콘의 러브스토리에 감명 받았 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허접한 러브스토리는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이다. "그거…… 교장 선생님이 만들어낸 얘기죠?"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교장 할배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내 말을 부정했다. "그 고나드라콘의 유적에 적힌 그대로 얘기한 것뿐이다. 감동적이지 않느냐?" "……." 감동적? 그게 감동적이냐? 그렇게 요약해서 말하면 도대체 누가 감동을 받 냐 이거야. 뭔가 그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 같은 걸 자세히 말해줘야 할 거 아니냐고. 감동을 받기는커녕 형편없는 얘기로밖에 안 들리잖아. 아…… 귀 버렸다. "그런데 왜 그 고나드라콘의 유적에 가는 겁니까?" 난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을 교장 할배에게 던졌다. 교장 할배는 그런 내 질문에 방금 전과는 달리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 고나드라콘이 사장시켰던 주문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다." "……!" 고나드라콘이 세상을 멸망시키려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사장시켜 버렸다는 그 주문을 발동시킨다고? 그 소리는 교장 할배가 말하는 최후의 계획이란 것 이…… 역시 내 생각대로 세계 멸망이란 뜻이잖아?!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겁니까?!" 내가 흥분하여 소리쳤는데도 교장 할배는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게 다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려고 경비행기를 작동시켰다. 당연히 경비행기 는 활주로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고 시끄러운 경비행기의 엔진 소리 때문에 난 더 이상 교장 할배에게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 하루 15시간 정도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내지만... 글 쓰는 시간은 4시간도 안되는...ㅡㅡ; ─────────────────────────────────────── 라이: 작가님 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101 / 102 [등록일] 2000년 08월 02일 01:08 Page : 1 / 11 [등록자] THEBUR [조 회] 16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3장: 최후의 계획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최후의 계획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13 게 시 일 :00/08/01 20:53:17 수 정 일 : 크 기 :5.8K 조회횟수 :211 투투투투- 무슨 기관총 연사하는 소리가 나며 경비행기는 활주로를 떠나 허공을 날았 다. 그리고는 어디론가를 향해서 날아갔다. 땅 위에 있는 길도 잘 찾지 못하 는 나로서는 아무런 이정표가 없는 공중에서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교장 할배가 경비행기를 몰고 날아가는 데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대략 3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경비행기가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았다. 경비행기의 고도가 어느 정도 낮 아졌을 때 난 창 밖을 통해 이곳이 어디쯤인가를 짐작해보려 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온통 산과 숲, 그리고 강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이곳이 저번에 보물 사냥하러 갔던 곳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 "크르르……." 경비행기가 착륙을 시도하기 위해 공중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동안 라이 녀석은 계속 낮게 울음소리를 내었다. 뭔가 좋지 않은 기운을 감지한 모양이 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교장 할배와 같이 오는 곳은 항상 기분이 나쁜 곳이었으니까. 쾅! 쾅! 교장 할배는 거의 공터도 없는 숲 속으로 경비행기의 착륙을 시도했지만 경 비행기의 날개가 부러지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게다가 바퀴마저 날카로 운 바위에 찢겨져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경비행기 안에 있는 나와 라이가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은 교장 할배가 기적 같은 경비행기 조종술 을 가지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드디어 다 왔다." 경비행기가 멈춘 후 교장 할배는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고, 나도 라이 를 데리고 경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교장 할배가 착륙을 시도했던 그 구간은 완전히 폐허로 변해있었다. 몇십 년도 더 되어 보이는 나무들이 줄줄 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자연 파괴에 달인이시네요." 내가 그렇게 비꼬아 말했지만 교장 할배는 자연 파괴 같은 것에는 전혀 신 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쨌거나 나를 따라오너라." 내 말을 가볍게 씹어버린 교장 할배는 숲 속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 작했고, 난 잠시 속으로 교장 할배에게 욕을 바락바락 해준 다음에 그 뒤를 따라갔다. 혹시나 보물 사냥 때처럼 마법사 사냥꾼들이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교장 할배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걸음 을 멈췄을 때까지 마법사 사냥꾼은커녕 그 어떤 동물들의 모습도 볼 수 없었 다. "이곳이 바로 우리들의 목적지인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다." "……." 난 교장 할배의 말을 듣고 그 유적이란 곳을 쳐다보았지만, 단지 동굴일 뿐 무슨 특이한 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굳이 특이한 점을 꼽자면 동굴 입구 가 여느 동굴보다 상당히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3미터도 채 안 되는 크 기였지만. "여기가 고나드라콘의 유적입니까?" 내가 실망감을 역력히 드러내면서 그렇게 말하자 교장 할배는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날 힐책했다. "유적이라고 무슨 엄청난 건물 같은 것이 세워져 있을 줄 알았느냐? 고나드 라콘의 유적은 그런 게 아니다. 고나드라콘이 죽었거나 자신의 글이나 마법 주문을 남긴 곳이 바로 유적이란 말이다." 흘…… 그런 게 유적이라고? 고나드라콘이 그냥 심심해서 동굴 벽에 그림 그려놓은 곳도 그럼 유적이 되는 거냐? 나참…… 괜히 기대했었군. 저벅저벅-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교장 할배와 나의 발자국 소리가 동굴 속에 울려 퍼 졌다. 그렇게 큰 발자국 소리를 내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걷는 교장 할배의 모습에 이 동굴에는 드라콘이 살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동굴 안을 유유히 걸어가던 교장 할배는 동굴 끝 지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가 바로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다." "……." 전혀 유적처럼 보이지 않는데? 아무런 글자도 써져 있지 않고 무슨 특별한 물건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동굴일 뿐이잖아? "여기가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란 것을 느끼지 못하겠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교장 할배는 큰 소리로 웃었다. "생각이 짧구나. 유적이라는 건 그렇게 쉽게 발견되도록 만들어질 것 같으 냐?" 흘…… 유적이 쉽게 발견되도록 만들어졌는지 잘 발견되지 않도록 만들어졌 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유적 같은 거에는 관심 없다고. "그럼 어떻게 여기가 유적이란 걸 안 겁니까?" "그건 마력을 사용하면 된다." 그렇게 말한 교장 할배는 마나 파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방출된 마나 파 장은 동굴 벽을 때렸고, 그 결과 동굴 벽에 황금색의 글씨가 모습을 드러내 었다. 그것을 보고 내가 놀라자 교장 할배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떠냐? 이제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라는 게 느껴지지?" "뭐 그럭저럭 그런 거 같네요. 근데 고나드라콘이라서 글씨 색이 노란 거예 요? 아니면 다른 드라콘들도 노란색의 글씨를 사용해요?"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도리어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날카로운 눈썰미로구나. 고나드라콘이기 때문에 글씨 색이 황금색인 거란 다. 만약 아레드라콘이라면 글씨가 붉은색이지. 즉, 드라콘의 종류에 따라 글씨 색이 다르다는 소리다." 흘…… 글씨 색이 노랗기 때문에 고나드라콘의 유적이라고? 정말 엄청나게 쉬운 감정법이구만. 마나 파장만 방출할 수 있으면 누구나 드라콘의 유적을 찾을 수 있겠어. 뭐 드라콘의 유적이 그렇게 사방에 널려있을 리는 없겠지만. "자, 이제 최후의 계획이나 실행해볼까?" 교장 할배는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더 강한 마나 파장을 방출했다. 그러자 이번엔 동굴 바닥에 무슨 둥근 형태의 황금색 그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했다. 교장 할배의 마나 파장 방출은 계속 되었고, 그 황금색의 선들은 계속 생겨나면서 일정한 그림을 형성했다. 기본적으로는 크고 둥근 원에 여러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섞여 있는 그림이었는데, 그 그림에서 상당한 마나 파장이 느껴졌다. 그 그림이 바로 고나드라콘의 유적에 있는 마법 주문의 힘을 극대 화시키는 마법진인 것 같았다. "류드, 어째서 날 방해하지 않는 거냐? 넌 이대로 이 세계가 멸망하기를 바 라는 것이냐?" 교장 할배의 그 말은 최후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교장 할배가 어떤 마법 주문을 사용하려고 하는지 난 몰랐기 때 문에 질문을 했다. "어떤 식으로 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겁니까?" "허허, 아주 간단하다. 이 세상에서 공룡이 사라진 것처럼 우주를 떠다니는 큰 운석을 이곳에 떨어뜨리는 거지. 아주 간단하지 않느냐?" "……." 왠지 실감이 안 나는구만. 단지 저 마법진만으로 우주에 떠 있는 운석을 불 러올 수 있다고? 운석이 내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 전혀 믿지 못하겠는데? [번 호] 102 / 102 [등록일] 2000년 08월 02일 01:09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5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3장: 최후의 계획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최후의 계획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14 게 시 일 :00/08/01 20:53:34 수 정 일 : 크 기 :8.3K 조회횟수 :201 "그게 가능합니까?" 내가 띠껍게 쳐다보면서 묻자 교장 할배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넌 아직도 시로브드라콘의 힘을 흡수한 고나드라콘이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지를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 고나드라콘의 마력이 담긴 이 주문을 사 용하면 운석 소환 같은 것은 아주 쉬운 일이 되어버린다." "운석이 떨어지면 교장 선생님도 죽잖아요?" "물론이다. 크기가 거의 달만한 운석이 떨어질텐데, 어쩌면 지구가 폭발할 지도 모르지." 달 크기의 운석이 떨어진다고? 운석 충돌설에서 지구에 떨어진 운석의 지름 을 10km라고 계산했는데, 달의 지름은 3000km가 넘는다구. 그게 떨어지면 지 구는 완전히 작살날텐데? "달 크기의 운석을 불러올 정도로 그 마법 주문이 강해요?" "물론이다. 심지어는 태양 크기의 항성도 끌어당길 수 있는데 달 크기의 운 석은 기본이지. 단지 그 운석을 이곳까지 끌어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이다." 흘…… 태양 크기의 항성도 끌어당겨? 태양의 반지름은 지구보다 100배 이 상이고, 질량도 지구보다 30만 배 이상인데 어떻게 태양 크기의 항성을 끌어 당긴다는 거냐? 그게 말이 돼? 나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얼레? 아니지, 지구의 질량을 엄청나게 불린다면 가능하잖아? 아니면 지구를 블랙 홀로 만들어버린다던가. 그렇게 하면 가능할지도……. 저벅저벅-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교장 할배는 바닥에 형성된 마법진의 한복판으 로 걸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난 교장 할배가 계속 마나 파장을 방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법진으로부터 방출되고 있는 마나 파장 때문 에 교장 할배의 마나 파장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지금 계속 마나 파장을 방출하는 겁니까?" "물론이다. 약간의 마나 파장을 지속적으로 방출해야 주문이 발동된다. 앞 으로 5시간 동안을 이렇게 서 있으면서 마나 파장을 방출해야 하지." 흘…… 그거 엄청난 중노동이구만. 나 같으면 안 하고 만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세계를 멸망시키고 싶은 겁니까? 교장 선생님도 죽 잖아요?" 난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일상적인 어조로 교장 할배에게 물음을 던졌다. 지 금 교장 할배가 하고 있는 짓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뭔가 눈에 보이는 위험이 내 앞에 나타나지 않 는 한, 계속 교장 할배와 일상적인 어조의 대화를 할 것 같았다. "말했잖느냐. 낙원 만들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남은 건 죽음뿐 이지." 너무나 당연한 듯이 말하는 교장 할배의 말에 난 어이가 없었다. "낙원을 만들지 못했으면 그만이지 무슨 멸망을 시키려고 그래요? 노망 드 신 거 아닙니까?" "맘대로 생각해라. 어차피 인간은 멸망할 테고, 난 그 멸망을 조금 앞당기 려 하는 것뿐이다."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군. 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그렇다면 교장 선생님은 언젠가 저승으로 가실 테니 제가 봉사할 겸 그 시 간을 조금 앞당겨 드리죠. 어떻게 죽여드릴까요?" "허허허." 내가 교장 할배의 말을 반박하자 교장 할배는 껄껄 웃었다. 그래도 마법 주 문 발동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법진에서 계속 마나 파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낙원을 만들지 못했다고 세계를 멸망시키려는 건 억지 아닙니까?" 교장 할배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난 눈살을 약간 찌푸리면서 물었다. 그런 내 모습에 교장 할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잔인한 존재인지를.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행복을 이룰 수 없는 존재인데 살아있어서 무엇하 겠느냔 말이다." 교장 할배의 어조는 끝으로 갈수록 조금 높아졌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별로 화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살아가는 겁니다. 어차피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적인 행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는 거죠. 그냥 그렇게 살면 되지 뭣하러 인 간을 다 죽여요?" "후후,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에 죽이려는 거다." "……?"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어진 교장 할배의 말은 조금 의외의 것이었다. 인간 이 모순된 존재라는 것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 모순된 존재라는 겁니까?" 내가 흥미를 가지고 묻자 교장 할배는 득의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또 교장 할배와 이상한 대화를 할 것 같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 쩔 수 없었다. "인간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냐?" 갑자기 교장 할배가 그런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이었 기 때문에 난 잠시 당황했지만, 대강 생각나는 대로 얘기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고…… 아, 이성이 있어야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 죠. 에…… 또 감정도 있어야 할 테구요." "그래, 이성과 감정이 인간의 조건이지." 다행히 내 대답이 맞았는지 교장 할배는 만족스런 표정을 해 보였다. 그러 나 다음 말을 이어가는 동안 교장 할배의 표정은 굳어져 버렸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인간인 거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동 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약한 존재인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을 가 지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약해지지 않았을 거다." "……?"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 할아범? "아니, 인간에게 감정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강해졌을 거다. 그 빌어먹을 놈의 감정 때문에 인간이 이렇게 약해져버린 거야!" 교장 할배의 목소리는 점점 격앙되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리를 고 래고래 지를 것 같았기 때문에 중간에 내가 끼어 들었다. "이성만 있는 인간이 강해질 수 있을까요?" "후우……." 내 질문에 잠시 끓어오른 화를 가라앉힌 교장 할배는 나직이 숨을 몰아쉬었 다. 그리고 나서 내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이다. 이성적인 판단만을 한다면 인간은 적당한 인구수를 유지하고, 적당한 법을 채택하며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었을 거다. 능력 없는 자를 매 장해도 이성적으로 그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매장 당한 자도 이성적으 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 그렇지 않느 냐?" "……."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같군. 어차피 감정이 없으니까 분노 같은 것도 못 느끼겠지. 완전히 로봇과도 같은 삶이겠군. 어쩌면 그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일지도 모르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지금의 인간들이 보면 그 사회를 비 윤리적인 사회, 삶의 의미가 없는 사회라고 비난하겠지만 말이야.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 빌어먹을 감정 때문이다. 남에게 지고 싶지 않다, 남보다 뛰어나고 싶다는 그 빌어먹을 감정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거란 말 이다. 한 남자를 두 여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나,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서로 가지려고 싸우는 것도 모두 감정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지. 이성만이 있 었다면 먼저 차지한 사람이 주인이라고 여기고 간단하게 포기했을 거란 말이 다." "……." 난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교장 할배의 말에 수긍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장 할배의 설교를 듣기만 했다.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파멸의 구덩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거다. 지금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생명 경시 풍조나 물질 만능 주의 같은 것 은 모두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지. 인간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이성만 을 가지고 있었다면, 생명 경시 풍조나 물질 만능 주의가 팽배해질 것 같으 냐?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불합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절 대 있을 수 없지. 자살? 살인? 범죄? 감정이 없다면 그런 것들을 생각할까?" "……." "그래서 난 감정을 없애버리고 싶었던 거다. 감정만 제거한다면 인간은 그 무엇보다 완벽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 감정이 없다면 그딴 것 을 생각하지도 않아. 로봇과도 같은 삶, 그거야말로 완벽한 삶이다. 분쟁이 있을 래야 있을 수 없고 문제점이 발생할 래야 발생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완벽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과도 같은 삶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인 것이다." "……." 처음에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던 마법진이 서서히 복잡해져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마법진으로부터 방출되는 마나 파장도 강렬해져 갔다. 그러나 교 장 할배의 말대로 아직 4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난 별로 신경 쓰 지 않았다. 지금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교장 할배의 말이었다. "로봇과도 같은 삶은 바꿔 말하며 동물과 같은 삶이겠군요." "후후,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내 말을 트집잡은 교장 할배는 곧이어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동물에게는 이성이 없다. 본능이라고 불리는 감정만이 남아있지. 물론 동 물들도 머리를 굴리기는 하지만 그건 무시한다. 놈들의 생각에는 한계가 있 으니까 말이다." 흘…… 동물들을 무시하는 거냐? 그러다 동물들한테 몰매 맞는다구. "동물에게는 감정만이 있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 동물들끼리 서로 싸 운다는 것은 너도 잘 알 거다. 그런 분쟁 많은 삶을 어떻게 로봇의 삶에 비 유한단 말이냐." 미안하군. 머리를 제대로 굴리지 못해서. "로봇과도 같은 삶이 진정하게 완벽한 삶이다. 한마디로 낙원이지." 그 말을 할 때 교장 할배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하지만 내 눈은 반짝반 짝 빛나지 않았다. 나 역시 교장 할배의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지 만,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 과연 내일은 올릴 수 있을 것인가...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103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3일 01:20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55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3장: 최후의 계획 -5-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최후의 계획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39 게 시 일 :00/08/02 20:39:42 수 정 일 : 크 기 :10.4K 조회횟수 :186 "그럼 한가지 묻겠습니다." "……?" 갑자기 내가 질문을 한다고 하자 교장 할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렇게 나하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해서 마법진으로 마나 파장을 방 출하고 있는 교장 할배가 마법사로서 상당히 존경스러웠다. 인간적으로는 전 혀 아니었지만. "교장 선생님은 그런 로봇과도 같은 삶을 살고 싶으신 겁니까?" "……." 내 질문에 교장 할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을 질질 끌기만 했을 뿐 이었다. 그렇게 5분 가량이 덧없이 흘러가자 난 참지 못하고 교장 할배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대답하시죠? 교장 선생님은 로봇과도 같은 삶을 살고 싶으신 겁니까?" "……." 교장 할배는 역시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난 열을 받았고, 교장 할배에게 카 파 하사로를 날리기 위해 마나 파장을 방출했다. 그런 내 낌새를 알아차렸는 지 마침내 교장 할배가 입을 열었다. "로봇과도 같은 삶…… 솔직히 말해 살고 싶지 않다." "……." 이번엔 내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정말 어이가 없는 대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봇과도 같은 삶을 지향한다는 인간이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그런 삶이 싫다면서 왜 그런 삶을 지향합니까?" 하도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내 목소리는 자연히 높아졌다. 하지만 그런 어 이없는 대답을 한 교장 할배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모순이라 생각하겠지? 그래, 이건 분명히 모순이다. 로봇과도 같은 삶을 지향하면서도 정작 그런 삶을 싫어하는 이 모순, 분명히 인간의 감정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 인간에게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이런 모순이 생겨나는 거다." "……!" 교장 할배의 말에는 뼈가 있었기 때문에 난 뭐라 할 수 없었다. 그저 뭔가 있을 것 같은 교장 할배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 다. 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아서는 안 되는데, 가 장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을 데려왔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행동이지." "……." "우습지 않느냐? 자신의 계획이 틀어질지도 모르는데 하찮은 자만심과 과시 욕 때문에 적군을 불러들이는 인간의 감정이 말이다. 인간의 감정은 모순 투 성이인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 모순 투성이…… 당연한 말이군. 누구나 한번씩은 모순된 감 정을 느껴봤을 테니까.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도망갈 때의 그 희열과, 그 로 인한 불안감과 죄책감 등등…… 인간에게 이성만이 있었다면 야자를 빼먹 지 않을 테고, 따라서 행동에 전혀 모순이 없겠지. "우리 가문은…… 인간이 너무나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인간을 완 벽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 갑자기 이야기가 교장 할배의 가문 쪽으로 흘러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한 참 인간의 감정에 대해 얘기하다가 가문 얘기를 꺼내는 교장 할배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런 내 당황하는 모습에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1999년에서 2000년도로 넘어갈 때 발생했던 YⅡK의 재앙…… 컴퓨터 바이 러스에 의한 핵폭탄의 무단 발포…… 그것은 바로 내 선조가 행했던 첫 번째 일이었던 거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한 개인이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을 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핵폭탄을 발사시켰다구요? 그게 가능해요?!" "후후, 물론이다. 내 선조가 바로 YⅡK 대책 위원회의 회장이었으니까 말이 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유포시켜서 핵폭탄 제어 시스템을 조작한 것은 쉬운 일이지." "……!" 하하…… YⅡK 대책 위원회 회장이 교장 할배의 선조…… 그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YⅡK 예방 프로그램에 바이러스를 몰래 입혀서 핵폭탄 제어 시스템을 조작했다…… 엄청난 가문이구만! "내 선조는 계속 증가해 가는 인구수를 줄이기 위해 핵을 사용한 것이다. 그 덕택으로 50억을 훨씬 넘었던 인구는 3억 명도 채 안 되게 되었지. 실로 엄청난 업적이었던 거다." "……." 핵폭탄 떨어뜨린 게 엄청난 업적? 엄청난 업적들이 다 죽었군. "그런데 어째서 레오콜하고 자파스를 남겨둔 겁니까? 이유가 있어요?" "후후, 이유야 간단하다. 레오콜과 자파스에는 내 선조의 가족들이 살고 있 었거든." "……." 교장 할배의 말에 난 할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곳만 남기고 다른 곳은 핵으로 싸그리 쓸어버린 그 교장 할배의 선조가 가증스러 웠던 것이다. "정말 엄청난 이유군요. 정말 대―단한 업적입니다." 난 최대한 비꼬는 투로 얘기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내 말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2100년, 우리 가문의 힘으로 마법학교 오죠룬이 탄생했다. 마법을 통해 낙원을 실현하기 위해서였지. 그렇게 마법사 육성에 힘쓰면서 마법을 연구했고, 그 결과 페이사야말로 낙원을 실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마법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아 페이사 연구에 몰두했 고, 결국 이 고나드라콘의 유적에 적혀있는 마법 주문을 사용하여 첫 실험에 들어갔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실패했다. 마법의 힘으로 인간의 감정을 제 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지." 또다시 그때의 실패를 떠올렸는듯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던 교장 할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인간들의 멸망을 선택한 것이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흘…… 그렇다고 인간의 멸망을 선택해?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자기 혼자만의 생각이잖아요! 그 누구 도 인간의 멸망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행동하란 말입니다!" "후후,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거다." "무슨 헛소리입니까? 사람마다 생각은 틀리다구요! 자신의 생각한 것이 무 조건 옳다는 건 이기주의란 말입니다!" 난 입에서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해냈다. 그러나 교장 할배는 눈도 꿈 쩍하지 않았다. "그렇다. 난 이기적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다. 난 이기적인 생 각을 가지고 이기적인 인간들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다. 불만 있느냐?" 너무나 당당하게 말했기 때문에 난 일시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 지만 난 교장 할배에게 말로써 지기 싫었다. "당연히 불만 있죠! 사람들한테 물어보세요! 누가 교장 선생님한테 죽고 싶 어 하나!" "후후, 인간들이야 죽고 싶지 않다고 하겠지. 동물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인간이나 동물이나 결국 고통받으며 사는 존재들, 따라서 내가 그 고통을 영 원히 없애주려는 거다." "삶에는 당연히 고통이 있어야 한다구요! 그래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 했잖습니까!" "왜 고통을 받아야만 행복을 느끼는 건가? 행복이란 것을 왜 느껴야 하는가? 그냥 완벽히 짜여진 프로그램에 의해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 말이다." "……." 으…… 전혀 얘기가 안 통하잖아. 이래 가지고서는 전혀 진전이 없겠어. 뭔 가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해야 할텐데…… 무슨 말을 해야하지? 으…… 어쩔 수 없다, 우선 교장 할배의 심리를 파고들자! "교장 선생님은 왜 절 이리로 데려오신 겁니까?" 내가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자 교장 할배는 굳은 얼굴을 풀고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내 계획을 말이다. 구경꾼 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과연 그런 겁니까? 단지 보여주기 위해서 절 이곳으로 데려오신 겁니까?" "……." 교장 할배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대신 교장 할배의 마음을 들 추어보았다. "교장 선생님은 제가 당신을 막아주기를 바라고 계신 것 아닙니까? 교장 선 생님도 살고 싶기 때문에 계획을 막아달라고 절 데려오신 거 아닙니까?" "……." 여전히 교장 할배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보기 만 했기 때문에 동굴 속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평소에는 그토록 잘 짖던 라이조차 조용히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도 계속해서 소리 없이 강렬한 마나 파장을 방출하고 있었다. "허허허허!!!" 갑자기 교장 할배가 실성한 듯이 큰소리로 웃어제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 는 자신의 속마음을 나에게 정확히 꿰뚫렸기 때문에 허탈해서 내는 것이었다. "맞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도 인간인 이상 살고 싶고, 따라서 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짓을 하기 싫은 건 당연하다. 그래서 널 이곳으로 데려온 것일 지도 모르지." 휴…… 이제 드디어 뭔가 얘기가 될 것 같군. 역시 상대방의 심리를 파고드 는 방법이 유효하다니까. "그럼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만 두세요." 난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교장 할배에게 마법 주문 발동을 그만두라고 말 했다. 하지만 교장 할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대신 나에게 질문 을 던졌다. "류드, 너는 왜 살고 싶어하는 것이냐?" "……?" 엑? 왠 그런 황당한 질문을? "왜 살려고 하는 것이냐?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냐? 아무런 삶의 목표 도 없이 그저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다라는 교장 할배의 말이 내 가슴속을 강하게 찔러왔 다. 난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난 지금 되는대로 살고 있기 때 문이었다. 아무런 삶의 목표도 없이, 그저 잘되면 잘 되는대로 잘 안되면 잘 안 되는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왜 인간은 삶의 목적을 가지지도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냐? 삶의 목표도 없이 살기 때문에 인간이 약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다면 삶의 목표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는 일 따위는 없다. 감정에 이리저리 휩쓸려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인간들 따위보다는 짜여 진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들이 훨씬 우수하단 말이다!" 교장 할배는 그렇게 열을 내며 말했다. 그런 교장 할배의 위압적인 말에 압 도되어 난 멍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잘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막연한 감정, 그런 것들이 인간을 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앞날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지 않느냐? 왜 그런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인간은 살아야 한단 말이냐? 왜 항상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를 두려워해야 한단 말이냐? 왜 인간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냔 말이다!!!" 교장 할배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파장은 점 점 강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마법진에 스며들어 있는 마법은 술사의 감 정에 따라 발동 속도가 달라지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대로 내버려두면 순식 간에 마법 주문이 완성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어 난 급히 교장 할배에게 소리쳤다. "앞날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재미있는 겁니다! 미리 정해 진 대로 움직인다면 무슨 삶의 보람이 있단 말입니까!" "후후." 교장 할배는 기분 나쁘게 웃었다. 그리고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 다. "미래의 불확정이 재미있다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네 미래가 절망뿐이 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으냐? 삶이 재미있다는 것은 성공했을 때 얘기란 말이다. 인간에게는 개개인의 능력 차이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어떤 일에 도전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면 실패하게 되지. 사회는 모든 사람을 성공시켜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삶이 재미있다고 해봤자 개소리일 뿐이다. 미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각자에게 맞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 인생이 생기게 되는 거란 말이다." "……." 제길…… 도저히 교장 할배를 말로써 못 이기겠어.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 좋은 거야? 어떻게 해야 교장 할배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거야? 빌어먹을… … 내 머리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잖아! 후우…… 어쩔 수 없어. 내 능력이 안 되니 이제는 머리 싸움을 관두는 수밖에! ====================================================================== 오늘은 달랑 한편...^^;;; -------------------------------------------------------------------------------- [번 호] 104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4일 03:37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47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4장: 라이의 정체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라이의 정체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60 게 시 일 :00/08/03 21:19:38 수 정 일 : 크 기 :9.8K 조회횟수 :198 <제 34 장> 라이의 정체 "교장 선생님에게 한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교장 할배는 잠시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어서 말해보라는 듯이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교장 할배와 마주보면서 난 입을 놀렸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감정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함께 있기 때문에 인간 인 것이죠." "……." "교장 선생님은 인간의 감정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 그렇지 않 습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기 때문에 인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 교장 할배는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난 계속 나 혼자 얘기를 해야했다. 사실 교장 할배가 내 말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난 그 이유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인간에게 감정이 주어진 이상, 전 제 감정에 따를 겁니다. 지금 제 감정은 여기서 죽기 싫다는 뜻을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장 선생님을 죽 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죠. 전 그런 제 감정에 따라 교장 선생님 을 막겠습니다." 난 거기까지 말한 뒤에 즉시 카파 하사로를 발동시킬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직후 교장 할배가 껄껄 웃어댔기 때문에 의아한 마음이 들어 마법 발동을 잠시 보류했다. "허허, 감정을 따른다라…… 그래, 나도 인간인 이상 감정에 따라야겠지.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니까." "……?" 얼레? 지금 교장 할배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서 마법 주문 발동을 그만두겠다는 거야, 아니면 계속하겠다는 거야? 굉장히 헷갈리게 말하잖아? "난 거의 평생 동안을 페이사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인재 양성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오죠룬의 재정을 위해 보물 사냥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이 덧없이 흘러가 버렸다. 사랑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난 평생을 마법과 더불어 살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마법 연구가 모두 부질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지." 그렇게 말하는 교장 할배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난 뭔가 상황이 잘 못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마법진에서 방출되는 마나 파장이 전보다 더 강해졌던 것이다. "내 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페이사…… 그게 쓸모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내 한평생을 덧없이 보낸 거란 말이다!!!" 구구구-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격해지자 동굴에서 무언가 울림이 일어났다. 아무래 도 지진이 일어났던가 아니면 동굴이 저 마법진의 마나 파장으로 인해 붕괴 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교장 할배의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고 생각 한 순간, 교장 할배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난 보상받겠다! 내가 한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페이사가 쓸모 없게 되어버 린 지금, 페이사 연구에 바쳤던 그 시간을 보상받겠다! 인간의 멸망으로써!!!" 쩌저적- 동굴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굴이 진동했다. 그것만 보더라도 동굴이 붕괴되려 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동굴이 위험 상태가 되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서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던 라이가 막 짖어대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또 동굴을 울려서 동굴의 붕괴를 가속화시켜 버렸다. "그만 두라고!!!" 이대로 있으면 내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난 즉시 교장 할배에게 카파 하사로 를 날렸다. 하지만 카파 하사로는 마법진 위치까지 날아가서 순식간에 소멸 해버렸다. 마법진에서 방출되고 있는 마나 파장 때문에 카파 하사로가 소멸 한 것 같았다. "크하하하하!!!" 교장 할배는 미친 듯이 웃었다. 이미 제정신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동굴 천장은 벌써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는 동굴 밖으로 빠 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내 달리기 속도와 동굴의 붕괴 속도를 비교해 볼 때 동굴의 붕괴 속도가 더 빠르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신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방어지막(防禦之膜) 단로반격(斷路反擊) 군력무한(君力無限) 극강방마(極 强防魔)!" 난 정신을 집중하고 빠르게 방어 주문을 외웠고, 라이 녀석의 옆에 붙어서 바리어를 전개했다. 내가 그렇게 바리어를 내 몸 주변에 치자마자 동굴이 무 너져 내렸고, 바리어를 통해서 상당한 충격이 내 몸을 짓눌렀다. 콰콰콰- "큭……!" 거의 산 하나가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 바리어 위를 짓누 르는 바위와 흙의 무게는 장난이 아니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증거로 난 벌써 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왕왕!" 라이는 그런 나를 쳐다보며 힘내란 듯이 짖어댔다. 물론 나도 힘내고 싶었 지만 산 하나의 무게를 나 혼자 버틴다는 것은 힘들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난 이렇게 산 무더기에 매장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하……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이야…… 그나저나 너도 불쌍하다… … 나 같은 녀석 옆에 있어서 생매장되다니 말이야…… 역시 처음부터 짜여 진 프로그램대로 살아가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 교장 할배의 말대로……." "왕왕!" 날 보는 라이의 표정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난 점점 정신이 흐릿해 져 갔기 때문에 더 이상 라이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이걸로 끝인가? 내 화려했던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하 하…… 할 일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죽게 되는군. 후후…… 이제 모든 게 귀 찮아……. - 정말 이곳에서 죽을 텐가? "……!" 갑자기 내 머리 속으로 저번에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했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여기서 죽고 싶은가? 후후…… 누가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어할 것 같냐? 나도 살 수 있는 방법 이 있다면 살고 싶다고. 하지만 내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단 말이야. 그 러니 여기서 생매장 당하는 수밖에 없잖아. - 너에게 이곳을 빠져나갈 힘이 주어진다면 살아나갈 것인가? 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군. - 그렇다면 널 도와주도록 하겠다. "……?" 그 의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 다. 정신을 거의 잃어가던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시야가 갑자기 밝아졌다 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눈을 뜨고 있었다면 실명해 버릴지 도 모르는 정도의 밝기였다. 쿠쿠쿠- 눈을 감고 있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내 바리어를 짓누르고 있던 바위와 흙 더미의 무게가 점점 감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시 간이 흐른 뒤, 바리어에 작용하던 모든 압력이 사라져버렸다. "……!" 압력이 사라진 후 난 눈을 떴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크게 놀라고 말 았다. 내 앞에는 교장 할배가 여전히 마법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장 할배와 나를 매장시키려고 했던 그 많은 바위 와 흙들이 아예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는 것이었다. "호∼ 류드, 살아 있었구나."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교장 할배가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말을 건넸다. 난 즉시 바리어를 거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나서 교장 할배에게 소리쳤다. "안 죽었습니까?" "허허, 그거 섭하구나. 내가 겨우 산 하나 무너진 거에 죽을 것 같으냐?" "……." 그래, 거 대단하시군. 난 그 산 하나 무너진 거에 죽을 뻔했단 말이다.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마법진의 마법 주문을 발동하면서 다른 마법을 쓸 수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교장 할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냐? 산을 날려버린 건 너 아니더냐? 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 얼레? 왜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지? 교장 할배가 산을 날려버린 게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라는 거야? 그 의문의 목소리가 한 짓인가? 그게 말이 돼? 목소리만 있는 녀석이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내냐고! - 누가 목소리만 있다는 건가? 그때 그 의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머리 속을 울렸다. 그러나 이번엔 그 목소리의 출처를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는 바로 라이의 머리에 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즉, 라이가 자신의 뇌파로 나에게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네가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야?" 내가 놀라서 묻자 라이 녀석은 허연 이빨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와 동시에 또다시 그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눈치도 더럽게 없는 녀석이군. 보면 모르나? "……!" 진짜 라이 녀석이 말하고 있는 거잖아? 뭐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어떻게 강아지 주제에 나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냐고! 육성도 아 니고 뇌파로! "류드,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이 상황에서 라이에게 말을 걸다니 배짱 한 번 좋구나." 교장 할배는 라이 녀석의 뇌파를 느끼지 못한 듯했다. 사실 그건 당연할지 도 몰랐다. 지금 교장 할배는 마나 파장이 강렬하게 방출되고 있는 마법진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니까. 그런 강렬한 마나 파장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 약한 라이의 뇌파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넌 어떻게 할 것이냐? 저 사람을 막을 거냐? 라이 녀석은 교장 할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나에게 그렇게 물어왔다. 그 래서 나도 교장 할배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 너 같으면 여기서 죽고 싶겠냐?" - 그렇군. 그렇군은 뭐가 그렇군이야! 뭔가 할 것처럼 말했으면 뭔가 해 보이라구! 우우웅- 그때 마법진에서 마나 파장이 강렬하게 방출되다 못해 울리기 시작했다. 또 한 교장 할배의 은발과 수염, 그리고 옷이 마치 아래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심하게 날렸다. 마법 주문이 점점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가는 느낌이 들었다. "류드, 날 한번 막아보거라. 날 막지 않으면 달 크기의 운석이 지구와 충돌 하게 된다!" 기분 나쁘게 웃으면서 그렇게 소리치는 교장 할배에게 난 가볍게 뻑Q 싸인 을 날렸다. 그리고 나서 교장 할배를 향해 비아 하사로를 날렸다. 하지만 비 아 하사로는 마법진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마법진에서 방출되는 마나 파장 에 의해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렸다. 제길……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 어떻게 해야 저 마법진을 돌파해서 교 장 할배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지?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하나? - 저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가면 네 몸이 부서진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라이 녀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난 라이 녀석의 목을 부여잡고 녀석을 번쩍 들어올려 허공에서 마구 흔들었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빨리 방법을 생각해, 이 똥강아지야!" - 으윽……! 라이 녀석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리며 정신없어 했다. 그래서 난 흔드는 것을 멈추고 라이 녀석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라이 녀석은 입에 게 거품이 아닌 개거품을 물고 있었다. "왕왕!!!" 잠시 후 라이 녀석이 하얀 이빨을 나에게 들이대며 마구 짖어댔다. 그렇게 서로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교장 할배가 야리꾸리한 표정을 지 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날 막을 생각이 없는 거냐? 세상이 멸망해도 상관없다 는 거냐?" "시끄러 할아범!!!" 난 버럭 소리를 질러 교장 할배의 말을 거기서 끊었다. 갑자기 내가 반말을 찍찍 내뱉자 교장 할배는 멍해져 버렸다. 그런 교장 할배를 향해 난 계속해 서 소리를 질렀다. "왜 자꾸 나보고 막으라는 거야? 그냥 입 닥치고 세상 멸망시키면 되잖아?!" "……." 교장 할배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자신의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멍하게 서 있는 교장 할배의 꼴은 정말 우습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번 호] 105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4일 03:38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51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4장: 라이의 정체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라이의 정체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61 게 시 일 :00/08/03 21:19:53 수 정 일 : 크 기 :10.0K 조회횟수 :193 "나보고 막아달라는 이유는 뭐냐고! 자신도 죽기 싫어서 나한테 막아달라고 하는 거잖아! 그럼 때려 치면 되지 뭣하러 아무 상관없는 날 끌어들이려 하 는 거냐고!!!" "……." 교장 할배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마법진에서 방 출되던 마나 파장이 불규칙하게 변해버렸다.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내가 아 니었다. "카파 보!!!" 콰앙―! 난 전력을 다해 교장 할배의 머리 위로 카파 보를 형성해서 그대로 떨어뜨 렸다. 내 근처에서 카파 보를 만들어 날리게 되면 마법진에 걸려버릴 것 같 았기 때문에 교장 할배의 머리 위에다 카파 보를 형성했던 것이다. 물론 그 만큼 내 정신력 부담은 가중되는 것이었지만 그 방법만이 교장 할배에게 타 격을 줄 수 있었다. "큭……!" 교장 할배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카파 보에 맞고 크게 비틀거렸다. 지 금 교장 할배는 태풍의 눈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법진이 강한 마나 파장을 방출하고 있어서 외부에서 날아오는 마법 공격은 다 무효화가 되어버리지만, 마법진의 마나 파장이 닿지 않는 교장 할배의 위에서 마법 공 격을 가하면 타격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 호…… 제법이군. 교장 할배에게 혼란을 주어 그 틈을 노리고 마법 공격 을 가하다니 말이야. 교장 할배의 옷이 크게 그을린 모습을 보고 라이가 혀를 내둘렀다. 난 그런 라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려 놓으며 말했다. "우연이야. 원래 진짜 화가 나서 그렇게 소리친 거라구. 그러다가 저 마법 진에서 나오는 마나 파장이 불규칙해졌고, 또 태풍의 눈이 생각나서 그런 공 격을 한 거지. 마법진의 마나 파장이 불규칙해지지 않았다면 교장 할배의 머 리 위에 카파 보를 만들지도 못했을걸?" - 그랬던가? 뭐 어쨌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한 거다. 그나 저나 왜 남의 머리는 헝클어뜨려 놓는 건가? 죽고 싶나? 날 향해 으르렁거리는 라이의 모습이 나에게는 귀여워 보였다. 라이와 대화 를 하다보면 내 정령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특히 라이의 화내는 어투는 상당히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류드나르……!" 교장 할배의 입에서 상당히 음침한 어조의 말이 흘러나왔다. 화가 나도 단 단히 난 모양이었다. 이제부터는 교장 할배가 나에게 공격을 가할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난 최대한 긴장하면서 교장 할배의 동태를 살폈다. "제법이구나…… 일순간의 방심을 노려 공격하다니 말이야……." "뭐 별로 그렇게 타격을 입힌 것 같지는 않은데?" 이미 반말을 했기 때문에 난 계속 반말 모드로 나아갔다. 마법진에서 방출 되는 마나 파장은 다시 안정적으로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장 할 배는 보기에도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막아달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다. 대신 널 지금 당장 죽여버리겠다!!!" 교장 할배의 전투 선언이었다. 자체 마력이 10써클인데다가 시로브드라콘의 힘까지 지니고 있는 교장 할배가 날 죽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난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 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마력은 이제 6써클도 채 못 되었 던 것이다. "자기분신(自己分身) 비허실영(非虛實影) 군력무한(君力無限) 동시만격(同 時萬擊)" 교장 할배는 환영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마법진 내부에서 교장 할배 와 똑같이 생긴 인물이 하나 더 나타났다. 진짜 교장 할배는 그 가짜 교장 할배에게 자신이 본래 서 있던 위치를 맡긴 뒤, 즉시 마법진 밖으로 빠져 나 왔다. 가짜 교장 할배에게 마법진을 계속 발동시킬 수 있게끔 마력을 나누어 준 뒤에 진짜 교장 할배는 날 죽이려고 마법진 밖으로 빠져 나온 것이었다. "크크크…… 어떻게 죽여줄까?" 교장 할배의 웃음소리가 사뭇 달라졌다. 그것은 교장 할배의 웃음소리가 아 닌 시로브드라콘의 웃음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장 할배는 시로브드라 콘의 힘으로 날 죽일 생각인 듯했다. "이봐, 왠만하면 말로 해결하자고. 싸움은 나쁜 거야!" 난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우선 교장 할배의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 다. 그러나 한번 나한테 당한 교장 할배가 내 말을 들을 리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시로브드라콘의 의식이 밖으로 표출된 상태였기 때문에 대화가 통할 리 만무했다. "네 녀석이 메이로나를 봉인해버렸지?" "……?" 얼레? 갑자기 여기서 왜 메이로나 얘기가 나오는 거야? "네 녀석이 얼마나 잘났길래 감히 메이로나를 봉인시켜버린 거냐? 난 그녀 의 사랑을 얻으려고 별 짓을 다했는데도 실패했다. 그런데 네 녀석은 메이로 나가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겠다는 데 왜 거절했느냔 말이다!!!" 콰앙―! 내가 방금 전에 서 있던 자리에 카파 보 하나가 떨어져서 폭발했다. 교장 할배의 마나 파장을 느끼자마자 몸을 날려 피했던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카 파 보의 폭발로 일어난 돌풍에 휘말려 난 라이를 안고 거의 5미터 이상을 날 아가야만 했다. "윽!" 잠시 하늘을 날았다가 땅바닥에 쓰러지는 기분은 상당히 더러웠다. 게다가 튀어나온 돌들에 몸을 찧어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아프다고 계속 쓰러져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교장 할배의 공격에 저승 구경하러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메이로나를 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해주겠다……!" 교장 할배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난 이를 꽉 물고서 라 이를 안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지금의 나로서는 시로브드라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아니, 그 어떤 마법사라도 시로브드라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마력의 차이가 너무 현격했기 때문이었다. - 류드나르 그때 내 품에 안겨 있던 라이가 날 불렀다. 하지만 난 라이 녀석을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라이를 쳐다보려고 고개를 내린 순간 교장 할배가 공격해 올 것은 뻔했다. 그래서 그냥 입만 놀렸다. "왜 불러?" - 내가 너에게 힘을 주겠다. 그 힘으로 저 시로브드라콘을 쓰러뜨려라. "힘?" 갑자기 힘을 주겠다는 라이의 말에 놀라 난 나도 모르게 라이 녀석의 얼굴 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곧바로 교장 할배의 공격이 날아왔다. 무슨 공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한 마나 파장을 보아 가벼운 마법은 아니었다. "죽어라, 류드나르―!" "빌어먹을!!!" 난 내가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즉시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교장 할배가 사용한 마법은 내 움직임을 봉쇄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교장 할배가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번―쩍! 교장 할배가 거의 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라이의 몸에서 강한 빛이 뿜어 져 나왔다. 그 빛은 교장 할배를 10여 미터 정도 밀어내 버렸고, 곧이어 내 눈앞에 하나의 구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붉은 구슬이었다. - 그 구슬을 사용해라. 그 구슬에 내 힘을 불어넣었다. 이 정도의 마력이라 면 시로브드라콘의 마력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라이는 내 품에서 빠져 나와 내 뒤로 빠졌다. 그와 동시에 내 눈앞에서 찬란한 붉은 빛을 뿜어내던 붉은 구슬은 갑자기 내 가슴으로 스며 들었고, 순간 붉은 구슬로부터 엄청난 마력이 나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내 정신력으로는 그 마력을 측정할 수조차 없었다. 거의 무한으로 느껴지는 마력이었던 것이다. "크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교장 할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그런 교장 할배에게 득의 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나에게 힘이 생긴 이상 교장 할배와 신나게 싸 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자, 얼마든지 덤비라고!" "호, 자신감이 넘치는군. 무슨 방법이라도 생긴 거냐?" 이런 이런, 교장 할배, 아니 시로브드라콘 녀석은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마력의 양을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아직 마나 파장을 전혀 방출하지 않았 으니 모르는 건 당연하지만. 이제 저 녀석에게 진정한 전투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줘 볼까나? "탓!" 난 연습용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내 몸은 곧장 하늘 위로 솟구쳤고 허공 에서 정지했다. 마법 주문은 알 필요조차 없었다. 그저 정신력만 있으면 내 가 생각하는 모든 마법이 가능했던 것이다. "응? 뭐야? 그 엄청난 마력은?!" 그제서야 내 마력의 양을 느낀 교장 할배가 경악했다. 난 하늘 위에서 교장 할배를 내려다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널 죽이라고 하늘이 내린 힘이다. 자, 어떻게 죽여줄까?" "……." 방금 전까지 득의의 웃음을 지었던 교장 할배는 얼굴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 다. 아무래도 현재 내 마력이 시로브드라콘의 마력과 맞먹거나 그 이상이라 그런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지금부터 마력 운용에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 었기 때문에 먼저 공격을 가했다. "카파 하사로!!!" 내가 카파 하사로의 이미지를 떠올리자 내 주위로 10여 개의 카파 하사로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마법 구현의 원리를 떠올릴 필요조차 없었다. 단지 이 미지만으로 마법 발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마법 구현의 원리를 떠올려 도 마법 사용이 가능했다. 즉, 붉은 구슬에 들어 있었던 마나는 이 세계의 마나와 환타지 세계에서의 마나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피유웅-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음향과 함께 내 카파 하사로가 일제히 교장 할배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시로브드라콘답게 바리어로써 내 카파 하사로를 소멸 시켰다. 그리고 내가 잠시 주춤하는 동안 바로 반격을 해왔다. 교장 할배가 사용한 마법은 전격(電擊) 마법이었다. 쉽게 말해서 번개가 나한테 날아온 것이었다. 하지만 난 텔레포트를 사용해 가볍게 그 번개를 피해냈다. "제법 하는군!" 내가 인간으로서는 고난이도의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하자 교장 할배 는 더 이상 날 깔보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겁에 질린 표정 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싸움 상대를 만났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나도 제대로 싸워주마. 시로브드라콘의 전투 능력이 얼마나 우수한지 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겠다!!!" 교장 할배는 나와 본격적으로 싸우기 위해서 나처럼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아래가 막힌 땅보다는 사방이 뚫린 하늘에서 싸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 이었다. 물론 그것은 마력이 충분하다는 가정 하에서였지만. "자! 각오해라!" 교장 할배는 그렇게 소리치고 나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순간 이동 마법인 쇼타무브를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도 즉시 텔레포트를 사 용했다. 이곳 마법인 쇼타무브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에 게는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쪽이 대응 속도가 더 빨랐다. "카하하!!!" 그때 내 뒤에서 교장 할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텔레포트할 위치를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내 뒤로부터 강렬한 마나 파장과 함께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콰앙! "큭!" 다행히 바리어로 내 몸을 감쌌기에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등에 구멍이 뚫릴 뻔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교장 할배의 공격이 끝날 리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다시 텔레포트로 자리를 옮겼다. "네 움직임은 뻔하다!!!" 콰앙-! 다시 교장 할배의 카파 보가 내 몸에 격중했다. 상당한 충격이 전해져 왔지 만 몸을 감싼 바리어 덕택에 다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교장 할배의 공격 에 맞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텔레포트로 위치를 바꾸었다. "카카카!!!" 콰앙-! 또다시 내 몸에 격중하는 교장 할배의 마법.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교 장 할배는 내 움직임을 모두 읽고 마법을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로브드라 콘의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 거짓이 아님을 난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 전투 부분을 쓰는 게 쉽긴 쉽군여... 헐헐...ㅡㅡ;;; [번 호] 106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5일 03:13 Page : 1 / 23 [등록자] THEBUR [조 회] 45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4장: 라이의 정체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라이의 정체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79 게 시 일 :00/08/04 21:14:44 수 정 일 : 크 기 :12.4K 조회횟수 :210 "방어지막(防禦之膜) 단로반격(斷路反擊) 군력무한(君力無限) 극강방마(極 强防魔)!" 이대로는 계속 당하기만 한다고 판단한 나는 즉시 방어 주문인 바리어를 겹 겹으로 펼쳐 내 몸을 둘러쌌다. 이렇게 바리어만 펼치고 있으면 교장 할배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겠지만 새로운 공격 방법을 찾지 않는 한 승산은 없었 다. "얌전하게 맞겠단 말이냐? 그럼 죽어라!!!"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교장 할배는 허공에 정지해 있는 나에게 가공할 마법을 퍼부어 대었다. 무차별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마법은 카파 보였다. 콰앙―! 엄청난 폭발과 함께 강한 불길이 내 바리어를 완전히 뒤덮었다. 보통의 바 리어에 상당한 양의 마력을 쏟아부어 날렸기 때문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내 바리어 한 겹을 날려버렸다. 그렇게 내 바리어 하나를 날려버린 교장 할 배는 이어서 전격 마법을 사용했다. 번―쩍! 상당한 양의 전류를 포함하고 있는 번개가 내 바리어를 때렸고, 그 엄청난 전류에 의해 바리어 하나가 홀라당 타버리고 말았다. 교장 할배는 계속해서 다채로운 공격을 나에게 퍼부었고, 그에 따라 내 바리어는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콰콰쾅―! 제길…… 이대로 있으면 바리어가 모두 박살나서 죽게 된다구! 어떤 공격을 해야 녀석을 압도할 수가 있는 거지? 텔레포트로 물체를 이동시켜 녀석의 몸 에 박아버리려고 하면 녀석이 그 자리를 피할 테니까 소용없고…… 마나 파 장을 방출시키는 공격은 상대가 나보다 마력이 약할 때나 통하는 것인데…… 지금 날 공격하는 것을 봐서는 녀석의 마력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력보 다 결코 약한 것 같지는 않아…… 어떻게 해야 하지? 녀석이 내 움직임을 읽 지 못하게 한다면 뭔가 될 것 같은데……! "자, 이제 마지막이다!" 교장 할배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교장 할배의 몸이 10여 개로 불어났다. 환영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교장 할배의 속셈이야 뻔했다. 일일이 마법을 날려 내 바리어를 부수는 것보다는 자신의 분신을 만 들어 한꺼번에 위력적인 공격을 쏟아 부으려는 생각인 것이다. "……!" 그때 어떤 생각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것이라면 교장 할배가 내 움 직임을 읽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즉시 정신력을 최대한 가동하여 그 마법을 실현했다. "엇?!" 교장 할배의 입에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이미 청력을 극대화시켰던 나는 즉시 교장 할배의 위치를 파악하고 마나 덩어리로 화살을 만들어 교장 할배 에게 날렸다. 마나 덩어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맞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빗겨난 것 같았다. "어디 있는 거냐?!" 또다시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다시 교장 할배의 위치 로 짐작되는 곳을 향해 마나의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맞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길…… 역시 눈으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니까 공격이 자꾸 빗나가는구만. 뭐 상관없어. 맞을 때까지 계속 공격하면 되니까 말이야! "도대체 어디에 숨은 것이냐!!!" 이번엔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이미 만들 어 놓았던 자기 분신에게 자신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도록 한 것 같았다. 어 조도 억양도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에 어느 쪽이 분신이고 어느 쪽이 진짜인 지 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우선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마나의 화살 을 날렸다. 펑! 다행히 이번에는 맞았는지 마나가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분신이 내 마나의 화살에 맞았다는 뜻이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교장 할배의 분신을 이렇게 차례대로 없애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진짜 교장 할배이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거야?! 말도 안돼!!!"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막 이동하면서 들려왔다. 분신들이 이동하면서 목소 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내 공격이 맞을 확률은 줄어들게 되 지만 난 내 감각을 믿기로 했다. 콰앙―! 그때 땅으로부터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당황한 교장 할배가 무턱대고 허공에다 카파 보를 날린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난 속으로 교장 할배, 아니 전투 능력이 탁월하다는 시로브드라콘을 비웃었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전투 상황에 빠져서 당황하는 꼴을 보지 않아도 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난 지금 완벽하게 허공에서 몸을 감춘 상태였다. 내 쪽으로 오는 모든 빛을 굴절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빛을 반사하거나 굴절시키면 내 위치는 드러난다. 내 모습은 보이지 않을 지라도 반사된 빛을 상대가 보게 되면 내가 서 있는 위치가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난 빛의 진행 방향에 맞추어 빛을 굴절시키고 있었다. 예 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상대편과 바위 사이에 서 있다고 하 면, 바위에 맞아 반사된 빛은 내 몸 뒤쪽에 맞고 다시 바위 쪽으로 반사되고 내 몸 앞쪽으로부터 반사된 빛이 상대의 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가 보 는 것은 내 몸 앞쪽뿐이다. 그러나 바위에 맞고 반사된 빛을 굴절시켜 상대 의 눈에 들어가게 하고 내 몸 앞쪽으로 향하는 빛을 모두 굴절시켜 바위에 맞아 반사되도록 하여 다시 상대의 눈으로 들어가게 한다면, 상대는 내가 자 신과 바위 사이에 없다고 느낀다. 내 몸을 맞고 반사되는 빛이 없기 때문이 다. 약간 설명은 틀리지만 빛이 내 몸을 그냥 통과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 이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내 몸쪽으로 오는 빛을 모두 굴 절시키게 되면 상대가 날 볼 수 없지만, 난 그 어떤 것도 볼 수 없게 되어버 린다는 것이었다. 내 눈으로 들어오는 빛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난 장님 상태 가 된 것이다. 그래서 시각 대신 촉각, 청각을 극대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내 공격이 빗나간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교장 할배는 사방팔방으로 카파 보를 날리고 있었다. 내 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무차별 공격을 마구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거의 무한에 가 까운 빛을 모두 굴절시키고 있는 나 역시 굉장히 힘들었지만, 저렇게 공포에 질려서 마구 마법을 낭비하는 교장 할배 역시 지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나와! 나오란 말이다―!!!" 휘이이잉―! 이번엔 엄청난 바람이 일대를 휩쓸었다. 카파 보를 무작정 날리는 것보다는 일대를 날카로운 바람으로 쓸어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이미 그 바람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그 리고 교장 할배가 또다시 허공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것에 대비하면 서 천천히 몸을 이동시켰다. 휘이이이잉―! 내 바로 아래에서는 엄청난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저기에 있 었다면 지금쯤 몸이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교 장 할배의 공격은 무서웠으며, 그만큼 마력의 소비도 상당한 것이었다. "어디 있는 거냐, 류드나르―!!!" 이미 환영 마법으로 만들어놨던 분신들을 거두어들인 모양인지 교장 할배의 목소리는 한곳에서만 들려왔다. 게다가 목소리의 위치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절대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죽어라!' 난 지체없이 교장 할배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회심의 마나 화살을 날렸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맞는다고 내 몸의 모든 감각들이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콰앙―! 엄청난 폭발이 내 앞에서 일어났다. 상당한 마력이 담긴 카파 보가 정확히 내 앞으로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카파 보가 공기를 지나올 때의 그 진동파를 감지하고 미리 바리어를 치지 않았다면 난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후우후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째서 내가 공격을 당한 거지? 분명 히 교장 할배는 내 위치를 알지 못했을 텐데? 교장 할배가 목소리를 내서 내 쪽에서만 교장 할배의 위치를 알게 됐잖아? "……!" 그제서야 교장 할배가 어떻게 날 공격했는지를 깨달았다. 방금 전 교장 할 배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진짜 교장 할배 대신 환영 마법으로 만든 가짜 교장 할배가 있었던 것이다. 즉, 진짜 교장 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 짜 교장 할배만이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 그 위치에 교장 할배가 있다고 나에 게 착각을 일으킨 후, 내 공격이 날아오는 쪽으로 카파 보를 날렸던 것이다. 그랬어…… 역시 전투 능력이 탁월한 시로브드라콘다워. 당황하는 사이에도 그런 공격법을 생각해내다니 말이야. 이제 내가 녀석의 공격 방법을 알았으 니 녀석이 날 또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걸? "어디 있나, 류드나르―!!!" 교장 할배의 목소리는 또다시 한곳에서만 들려왔다. 그래서 난 공격하지 않 았다. 그것이 환영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인지 아니면 진짜 교장 할배인지 지금의 나는 가려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이대로 있으면 내 쪽에서 먼저 지칠지도 모른다구. 모든 빛을 굴 절시켜 모습을 감춘다는 게 상당히 힘든데…… 하지만 녀석도 항상 긴장하고 있는 상황일 테니 지쳐 가는 건 비슷한가? "류드나르―!!!" 감정에 복받친 교장 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어떻게 교장 할배를 공격할 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방법을 생각해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도 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콰앙―! 그때 또다시 카파 보에 의한 폭발음이 울려왔다. 진짜 교장 할배가 날린 것 인지 가짜 교장 할배가 날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맞으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정도의 카파 보였다. 아마도 내가 자신의 공격 방법을 알아챘다 는 것을 알고 조금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시간은 조용히 흘러갔다. 대략 30분 정도를 그렇게 서로 공격도 하지 못하 고 흘려보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상당히 지쳐갔다. 정신력이 점점 한 계에 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교장 할배의 상태는 알 수 없었다. 나 만큼 지쳐 있는지 아니면 나보다 덜 지쳐 있는지 난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어쩔 수 없어…… 이제 내가 먼저 공격을 가하는 수밖에…… 이 한번의 공 격으로…… 내가 죽거나 교장 할배가 죽거나 결정 나겠지……. "……!" 난 모습을 드러내었다. 상당히 지친 모습의 나였다. 이마에는 땀이 구슬처 럼 흐르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물론 난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현재 나는 계속 허공에 몸을 감춘 상태였고, 내 바로 오른쪽에 모습을 나타낸 나는 환 영 마법으로 만들어낸 가짜였기 때문이었다. 쐐애액―!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내 왼쪽 부근으로부터 날아왔다. 상당한 양의 마력을 쏟아 부었는지 날아오는 속도도 장난이 아니었다. 난 그 알 수 없는 마력이 날아온 곳을 향해 전력으로 마나의 화살을 만들어 날렸다. 콰앙―! "컥!" "크윽!" 내 분신 쪽으로 날아왔던 그 마법이 터지면서 엄청난 폭발이 나까지 휘감았 고 난 신음을 터트리며 그대로 추락했다. 그러나 그 폭발에 말려들기 직전에 교장 할배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음을 분명하게 들었다. 내 공격이 성공했 다는 기쁨의 소리였다. 쿵! "으윽……!" 땅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기 때문에 머리가 띵했다. 물론 떨어질 때 남은 마 력으로 바리어를 쳐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그 어떤 마 력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붉은 구슬로부터 얻은 마력은커녕 내 본래의 마력조 차 모두 소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령 마력이 남아 있더라도 그 마력을 사용하게끔 도와주는 정신이 극도로 지친 상황이라 마법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었다. "흐흐…… 흐흐흐흐……." 나와 같이 땅에 떨어졌으나 멀쩡히 두 다리로 서 있는 교장 할배는 섬뜩하 게 웃었다. 하지만 난 전혀 두렵지 않았다. 교장 할배의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려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즉, 내 마나 화살에 가슴을 관통 당했던 것이다. "나를 이기다니…… 제법이군…… 인간 주제에…… 그런 공격 방법을…… 컥!" 교장 할배의 입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검은 기운으로 뭉쳐진 덩어리였다. 그 검은 덩어리가 바로 시로브드라콘의 정신체 같아 보였다. "대단하구나, 류드……." 이번엔 교장 할배가 말했다. 시로브드라콘이 죽고 본래의 교장 할배로 돌아 온 것이었다. 그러나 가슴이 뻥 뚫렸기 때문에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오히려 저렇게 서 있고 나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류드…… 어째서 넌 이 싸움을 한 것이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 을 말이다……." "후후." 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엄청난 상대를 이겼 다는 생각에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싸움을 해 왔다고. 지금 말하지만 난 다 른 세계에서 당신하고 비슷한 인간하고도 싸워봤지. 물론 그 싸움도 다른 사 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말이야." "후후…… 다른 세계라…… 그런 게 있었던가…… 아쉽군…… 그런 걸 알았 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크윽!" 교장 할배의 몸이 그대로 무너졌다. 그와 동시에 지면은 교장 할배의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점차 붉은색으로 물드는 땅을 쳐다보던 나는 순간 아찔하 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냥 잠들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 넌 저 마법진을 그대로 둘 것인가? 그때 라이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들어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크게 놀랐다. 마법진은 여전히 발동하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어째서 계속 발동하는 거야? 교장 할배는 죽었는데?!" - 시간이 너무 늦은 거다. 교장을 죽였어도 이미 마법진은 다 완성되어 버 린 거지. 이제 곧 있으면 거대한 운석이 이곳에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러면 모두 죽겠지. 라이는 그 말을 아주 담담하게 했다. 그래서 난 녀석의 목을 부여잡고 허공 에서 대롱대롱 흔들었다. "그딴 말하지 말고 어떻게든 해봐! 너에게는 그런 힘이 있잖아!!!" - 우욱……! 내가 목을 잡고 흔들자 라이 녀석은 힘없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정신없 어 했다. 이대로 라이 녀석이 정신을 잃어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난 라이의 목을 놓아주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빨리 어떻게 좀 해봐! 너도 죽기는 싫잖아!" - 물론 그렇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 나에게 묻고 싶은 거라니? 지금 이 위급한 상황에서 나한테 묻는다고라? 너 지금 제 정신이냐? 어떻게 사람이 그런 생각을…… 아, 라이는 강아지였지……. [번 호] 107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5일 03:16 Page : 1 / 25 [등록자] THEBUR [조 회] 48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4장: 라이의 정체 -4-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라이의 정체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880 게 시 일 :00/08/04 21:15:04 수 정 일 : 크 기 :12.1K 조회횟수 :206 "뭐야, 그 묻고 싶은 건?" 라이가 아직 여유를 부리는 것을 봐서는 운석이 지금 당장 지구에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도 여유를 가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라이에게 되물었다. 라이는 잠시 맑은 하늘을 쳐다보더니 자신의 말을 뇌파로써 전달 했다. - 넌 내가 누군지 아는가? "당연히 모르지." - ……. 갑자기 라이 녀석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날 야리꾸리한 시선으로 쳐다보 았다. 그래서 나도 같이 띠꺼운 눈초리로 마주 보자 라이 녀석은 고개를 설 레설레 흔들었다. - 정말 눈치 없는 녀석이군. 흘…… 그래, 나 눈치 없는 녀석인 거 이제 알았냐? - 붉은 구슬은 뭐라 부르지?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난 상당히 당황했다. 여기서 붉 은 구슬 얘기가 나올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라이가 날 물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라 난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붉은 구슬은 사성물(四聖物) 중에 하나인데……." - 그렇지? 그럼 이제 내가 누구일 것 같나? "……?" 그게 힌트? 붉은 구슬은 사성물이다…… 라이는 붉은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 왠지 전혀 연관성 없는 것 같은…… 뭐 그냥 대충 때려잡으면…… 라이 는 성물이다냐? 라이는 성물? 허걱?! - 이제 알았나? 이제서야 자신의 정체를 알아챈 날 한심하다고 생각했는지 라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난 그런 라이의 목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허공에서 대롱대 롱 흔들었다. "네가 성물이라고? 그거 진짜냐?!" - 으윽……! "빨랑 대답하라구!!!" - 손을 놓아야 대답할 거 아닌가!!! "손 안 놔도 잘만 말하잖아!!!" - ……. 내가 정곡을 찌른 것인지 라이 녀석은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목을 붙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나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 손을 놓으면 차근히 설명해 주겠다. "진작 그럴 것이지." 라이의 말을 듣자마자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이를 땅바닥에 내려놓았 다. 땅에 발을 디딘 라이는 잠시 머리를 돌려 목이 제대로 붙어 있나를 확인 한 뒤에 나에게 말했다. - 난 이 세계의 성물이다. 처음엔 성물로서 각성하지 못했지만, 네가 아레 드라콘과의 싸움에서 절규했을 때 난 붉은 구슬을 흡수함으로써 성물로 각성 하게 된 것이다. 얼레? 아레드라콘과 싸울 때 라이가 붉은 구슬을 흡수했다고? 그래서 찾았 는데도 붉은 구슬이 보이지 않았던 건가? 그나저나 성물을 각성시킨 사람이 나라니…… 내가 그렇게 훌륭한 존재였어? - 네가 붉은 구슬의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거지. 어쩔 수 없다……? 왠지 말투가 띠껍다? - 어쨌든 현재 난 성물로 각성한 상태지만 내 힘에는 한계가 있다. 어쭈구리…… 얼렁뚱땅 답변을 회피하는데…… 그러다가 나한테 죽는 수가 있다? - 이 자식아! 남이 말할 때는 제대로 들으란 말이야!!! "왕왕!!!" 머리 속이 라이의 뇌파로 울리는 것과 동시에 라이의 입에서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정신력을 많이 소모해서 약해진 내가 그 런 뇌파와 음파의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하마터면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했 다. "얌마! 놀랬잖아!!!" 난 라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날 보고 라이가 야리꾸리한 시선으 로 날 쳐다보았다. - 놀라긴 뭘 놀래? 네 녀석이 그 정도에 놀랄 인간이냐? "흐…… 너 상당히 띠껍다? 나하고 한번 맞짱 뜨자는 거냐?" - 지금 그럴 시간 없다. 너에게 말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다. 그러니까 딴 소리하지 말고 잘 들어라. 그렇게 내가 딴 말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은 라이 녀석은 강아지 주제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 아까도 말했지만 내 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 교장이 저지른 일을 수습한 뒤에는 성물로서의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 - 쉽게 말해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운석을 다른 곳으로 날려버린 후에는 난 다시 보통의 강아지가 된다는 소리다. "그래서?" - ……. 내가 그렇게 되묻자 라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날 완전히 바보 취급하는 녀석의 태도에 내가 회심의 보복을 가하려는 순간, 라이가 날 무시무시한 눈으로 째려보았다. - 넌 네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가? "……!" 갑자기 라이가 그런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난 순간적으로 멍해졌 다. 그런 날 보고 라이가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 돌아가고 싶은가 돌아가고 싶지 않은가? "돌아가고 싶긴 하지만……." 난 그 말 뒤에 '방법이 없잖아'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라이가 성 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고, 성물의 힘을 지닌 라이라면 날 원래 세계로 돌려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급히 라이 녀석의 목을 부여잡고 허공에서 흔들었다. "네가 보내줄 수 있는 거야? 있어, 없어? 빨랑 대답하라구!!!" - 크으…… 제발 그만 좀 흔들어라, 이 자식아! 계속 이러면 물어서 죽여버 릴 테다!!! 마침내 라이가 화났는지 날 보고 으르렁거렸고, 난 즉시 라이를 풀어주었다. 라이는 강아지 주제에 마치 자기가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허공에서 한바퀴 를 빙글 돌더니 안전하게 땅 위에 착지하고 나서 아까 하던 말을 계속했다. - 흠흠, 난 널 네 세계로 돌려보낼 수 있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내 능력 은 무한정하지 않다. 그래서 운석을 막고 나서는 성물로서의 자각이 사라지 게 되지. 다시 보통의 강아지가 되는 것이다. 으…… 왜 이상한 얘기로 시간을 질질 끄는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뭐야?" - 결론은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운석을 막은 직후 돌아가 야 한다는 소리다. 쉽게 말해서, 난 운석을 막고 나서 성물로서의 자각을 잃 기 전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널 네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이다. 알겠냐? 흘…… 이제 좀 뭔가 이해가 가는군.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잖아? 괜히 불필요한 말을 해 가지고 가뜩이나 정신없는 내 머리를 더 헷갈리게 하고 말 이야……. -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넌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작별한 시간도 없지. 그래도 괜찮으냐? "…… 그건 어쩔 수 없잖아. 어차피 운석을 막지 않으면 모두 죽을 테니까." - 이런, 넌 또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 지금 네가 선택할 수 있 는 길은 두 가지다. 내가 힘없이 하는 말을 듣고 난 라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고는 그 렇게 말했다. 난 지금 라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 문에 그저 멍청히 라이가 하는 말을 잘 느끼도록 노력했다. - 아까 말했듯이 운석을 막아낸 후 바로 네 세계로 돌아가는 것 하나와, 운 석만 막아내고 여기에 남아 다른 성물이 각성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렇게 두 가지란 말이다. 알겠냐? 여기에 남아서…… 다른 성물이 각성할 때까지 기다린다……? - 첫 번째 방법은 가장 안전하게 네가 네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지만 지금 당장 가야하고, 두 번째 방법은 언젠가 각성할 성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언제 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넌 어떤 방법을 선택할 건가? "……." 난 뭐라 답할 수 없었다.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 나 라이의 눈빛은 지금 당장 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제 곧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저기 말야, 만약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한다면 난 확실하게 내 세계로 돌아 가는 거지?" - 물론이다. "그럼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면 언제 성물을 각성시킬 수 있는 거야? 아니, 너 다음의 성물이 또 네가 될 수 있는 거야?" 내 두 번째 물음에 라이는 잠시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곧 대답했다. - 나도 장담할 수 없다. 다음 성물이 내가 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지. 그리고 성물의 존재를 파악해도 그 성물이 과연 각성을 할 것인지 아닌지 지 금의 나로서는 전혀 장담할 수가 없는 거다. "너…… 상당히 무책임하구나……." 내가 그렇게 트집을 잡자 라이가 막 부정했다. - 시끄러! 모르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그러는 넌 방금 전까지 만 해도 내가 성물이라는 걸 몰랐잖아?! "어쭈구리…… 왜 날 걸고 넘어지는 거야? 네 녀석이 무책임한 거랑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 ……. 나하고 말다툼을 하던 라이 녀석이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다. 더 이상 이 런 무의미한 말다툼으로 시간 낭비하기 싫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상당히 복잡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 난 어떻게 하지? 그냥 내 세계로 돌아가? 하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인연의 끈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면 돌아가 봤자 환타지 세계를 원래 대로 돌려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남았다가는 언제 내 세계로 돌 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데…… 끄아……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느냔 말이 다……!!! - 네 기분에 따라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라이의 조언이었다.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조언이었기 때문에 난 녀석의 꼬리를 잡고 뱅글뱅글 돌렸다. 머리를 잡고 흔들면 날 물어버린다고 해서 머리 대신 꼬리를 돌리기로 한 것이다. - 류드나르……! 자신의 꼬리가 꼬이고 있음을 알아차린 라이가 눈에 살기를 담았다. 그래서 난 손을 놓았고, 자연히 꼬였던 꼬리는 풍차처럼 회전하면서 다시 본래의 위 치로 돌아왔다. -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흘…… 이번엔 라이 녀석마저 날 죽이려고 하는군. 내 주위에는 정말 적이 많은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히 인연의 끈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긴…… 내 적이라고 해봤자 교장 할배밖에 더 있었냐…… 그 외에는 그저 잠시 아는 사 이였을 뿐……. "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잠시 땅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 을 바라보았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해는 쨍쨍 빛나고 있었다. 언제 나와 교 장 할배의 전투가 있었냐는 듯한 그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난 묘한 감정을 받아야했다. 이번 싸움도 결국 나와 교장 할배만의 싸움이 되어버렸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서 내가 라이에게 떨어지는 운석을 막지 말라고 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이 되겠지만. - 이제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어서 결정해라. 라이의 독촉 어린 뇌파가 내 머리를 살살 울렸다.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았 다. 이제 곧 있으면 운석이 떨어지는데도 그 무엇도 변한 게 없었다. 그저 하늘은 하늘대로 있을 뿐이었다. 탁탁-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미 마음의 결정은 내린 상태였다. 내가 결심했 다는 것을 알고 라이 녀석은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고, 난 그런 라이에게 내 가 결심한 내용을 알려주었다. "내 세계로 가겠어." - 좋다. 라이는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실 나도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 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그런 결정을 내려버린 나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따지지 않고 그저 되는대로 선택한 것 이 바로 첫 번째 방법이었으니까. 우우웅― 라이에게서 거의 측정 불가능할 정도의 마나 파장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 리고 라이의 몸에서 피처럼 붉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피의 빛은 전혀 섬뜩함을 일으키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피의 빛이 내 몸을 둘러싸고 온 세상을 덮어갈 때 난 아주 편안함만을 느꼈을 뿐이었다. - 후회하지 않는가? 피의 빛이 온 세상을 덮어 내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을 때 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그런 라이에게 아주 자신있게 말해주었다. "후회하겠지." - 그런 말을 자신 있게 하는 이유는 뭐냐? 라이 녀석의 어처구니없어 하는 어투를 들으며 난 웃었다. "난 인간이라 무언가를 하고 나면 항상 후회하거든." - 인간이기 때문에 후회하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아, 아주 좋은 말이 떠올랐다!" 의식이 점차 몽롱해져 가는 상황에서 난 그 말을 떠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라이 녀석에게 그 말을 해주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다! 하하하!" - 그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거 같은데? 하지만 라이는 그런 내 분위기를 와장창 깨뜨려버렸다. 마지막 가는 순간까 지 내 이미지를 부수는 라이에게 한방 갈기고 싶었지만 이미 내 온몸의 근육 은 풀려버려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직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입 근 육뿐이었다. "사악한 강아지 녀석! 이대로 가는 게 억울해! 널 꼭 봉날에 잡아먹고 가야 하는데!" - 후후, 맘대로 해보시지? 이미 끝났어. 잘 가라. "취소!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겠어!" - 이미 끝났다니까 그러네. 널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다 후련하다! "으윽! 이 사악한 똥강아지!!!" - 하하하! 라이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 감을 느꼈다. 그건 라이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의식이 점점 잠들어간다고 해석해야 맞았다. 확실 하게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의식을 완전히 잃은 순간 내가 살던 곳으 로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았다. 하하…… 이제 가는 건가? 집으로 가는 건가? 돌아가서 난 과연 지금의 내 선택을 후회할까? 아무래도 후회하겠지? 분명히 인연의 끈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후후…… 내 세계의 시간은…… 과연 얼마나 지났을 까? 10년? 20년? 아니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까? 궁금하군…… 너무 궁금 해……. 그렇게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점차 꺼져 가는 정신을 느끼고 있을 때 또다시 라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잘 가라. "……." - 널 만나서 반가웠다. "……." - 네 일이 잘되길 기원하마. "……." - 건강해라…… 류드나르……. 라이의 목소리는 점차 사그라들었고 난 마침내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에 라이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으나 입 근육마저 풀려버렸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만으로 라이에게 이 말을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고맙다…… 라이.' -------------------------------------------------------------------------------- [번 호] 108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5일 22:40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42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5장: 본래의 나로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5장:본래의 나로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902 게 시 일 :00/08/05 21:34:52 수 정 일 : 크 기 :6.9K 조회횟수 :62 <제 35 장> 본래의 나로 - 왕왕! 시끄러워, 임마. - 음…… 류드나르가 좋겠군. 어떤가? 자기 멋대로 내 이름을 정하는구만. 아, 맘대로 하라고. - 야! 류드! 왜 불러? 나보다는 네스포린하고 같이 노는 게 어때? - 그 정도만 가르쳐줘도 류드라면 충분히 알 수 있어. 흘…… 선생님은 절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경향이 있다구요. - 지금 나한테 화염계 마법으로 공격할 셈이냐? 머저리 같은 녀석! 시끄러. 내가 화염계 마법을 쓰든 말든 네 녀석이 뭔 상관이냐? 염법사라고 째는 거냐? - 응…… 할게……. 짜식, 뭘 그렇게 자신 없어 하냐? 아세트니퍼 보기가 부끄럽지도 않아? 자 신감을 가지라고! 아, 그렇다고 나처럼 성격 더러운 녀석은 되지 말고. - 네 얼굴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어. 선배…… 제발 남의 얼굴만 보고 참말 거짓말을 단언하지 말란 말입니다……! - 이유라도…… 이유라도 말해줘요. 왜 절 싫어하게 됐는지……. 미안. 너에게는 그것밖에 할말이 없어. - 그렇구나…… 새로운 남자 친구라……. 네 그 더러운 성격으로는 새로운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할 것 같은데? 정 뭣하면 내가 남자 친구 해줘? - 사탕이네? 음…… 보답이라니까 아무래도 받아야겠지? 뭐냐? 하여간 쟤 마음은 전혀 알 수가 없다니까. 얼굴에 철판을 깐 건지 아 니면 정말 아무 감정이 없는 건지……. - 울지…… 말아요…… 주인님이 울면…… 저희도 슬퍼지니까……. 난…… 울지 않아…… 운 적이 없어…… 감정이 메말라버렸으니까……. - 크하하! 이거 정령들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구만! 저번처럼 확실히 죽여주 겠다! 네놈 때문에…… 네놈 때문에 내 정령들이 또다시 고통을 받았단 말이다……! - 난 보상받겠다! 내가 한평생을 바쳐 연구했던 페이사가 쓸모 없게 되어버 린 지금, 페이사 연구에 바쳤던 그 시간을 보상받겠다! 인간의 멸망으로써!!! 시끄러! 날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준 건 고맙지만 그런 한심한 이유로 세 상 멸망 따위를 운운하면 죽여버리겠어!!! - 건강해라…… 류드나르……. 이 목소리는…… 라이! "……!" 난 눈을 번쩍 떴다. 그런 내 눈에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왠지 낯설게 느 껴지는 천장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그 천장을 쳐다본 후에야 그것이 우리 집의 거실 천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끄응……!" 난 어지러운 머리를 감싸쥐고 상체를 일으켰다. 머리가 장난 아니게 어지러 웠기 때문에 상체를 일으키고 나서도 얼마 동안은 머리를 감싸쥐고 있어야 했다. 잠시 후, 머리의 어지럼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서 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내가 누워 있는 곳은 거실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난 칼로 장판을 그어 만든 마법진 위에 있었고, 나 말고도 돌 하나와 책 한 권, 그리고 검 한 자루가 놓여져 있었다. 에…… 그러니까 저 돌은…… 뭐였지? 윽…… 기억이 안 나…… 그럼 저 책 이름은…… 뭐였더라? 이런…… 모르겠다…… 그렇다면 저 검 이름은…… 제 길…… 머리가 어지러워서 제대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째깍째깍- 내가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동안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초침 소리를 듣자 문득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됐고, 날짜는 어떻게 되어 있는 지 궁금해져서 즉시 시계를 쳐다보았다. "8시…… 45분……." 시계는 8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오전 8시 45분인지 오후 8시 45 분인지 벽시계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디지털 시계가 없기 때 문에 시계만으로는 오전과 오후를 구분할 수 없었다. "……." 거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꽤 어두웠다. 하지만 단지 하늘이 어둡 다고 지금이 오후라고는 할 수 없었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아침 8시에도 이 정도의 어둠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 그때 내 눈에 TV 리모콘이 들어왔다. 그래서 난 즉시 리모콘을 집어들고 TV 를 켰다. 하지만 하도 오랜만에 사용해보는 리모콘이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눌러서 어떤 버튼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알아본 후에 날짜/시간 확인 버튼을 눌렀다. "10월 4일 오후 8시 50분……." 그렇다면 지금은 확실히 저녁이라는 건데…… 그나저나 지금 몇 연도인 거 야?…… 아, 달력을 보면 되는 걸 난 뭐하고 있었던 거지? "……!" 달력을 본 순간,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10월이라는 것이었고 그 다음 에는 1999년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즉, 지금은 1999년 10월 4일 오후 8시 50 분인 것이었다. 1999년 10월 4일…… 1999년…… 왠지 내가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드 는군. 지금까지 2220년도에 살다 왔기 때문이겠지. 얼레? 그러고 보니까 마 법하고 이곳이 짬뽕된 듯한 그 세계에서 살았던 기억이 그냥 떠오르잖아?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의……》 TV에서는 9시 뉴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거실에 앉아서 TV 방송을 보고 있던 나는 문득 거실 장판에 쩍쩍 금이 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 다. 분명히 다른 세계로 간답시고 저 이름 모를 검으로 장판을 그었기 때문 인 것 같았다. 이유야 어쨌든 이제 곧 어머니가 돌아올 시간인데 장판이 이 렇게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난 어머니에게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뜨아……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냐?" 쉽게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장판에다 그어버린 그 마법진의 크기는 사람 하나가 충분히 드러누울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가릴 만한 것이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거실에 놓인 이불, 즉 쇼파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 이불을 보고 나서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펄렁- 난 즉시 그 이불을 있는 대로 펼쳐서 거실 바닥에 깔았다. 임시 방편이지만 이것으로 장판에 그려진 마법진을 가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 이불 은 얇고 큰 편이었기 때문에 마법진이 다 가려지고도 남았다. 휴…… 이제 됐네. 우선 이것으로 장판 훼손의 위기는 넘겼다…… 앗! 저 삼성물들을 이대로 두면 큰일이야! 어서 치워야……! 부스럭 부스럭- 그때 조금 열린 현관문 밖으로 비닐 봉지 소리가 났다. 그것은 어머니가 먹 을 것을 사들고 오는 소리였다. 그래서 난 허겁지겁 삼성물을 챙겨 내 방에 다 숨겨놓았다. "후아후아…… 머리가 어지러워……!" 갑자기 정신없이 뛰었기 때문인지 머리가 상당히 어지러웠다. 서 있는 것조 차 힘들었기 때문에 그냥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와 동시에 거실로 들 어온 어머니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방바닥에 드러누운 날 발견했다. "어디 아파?" "아뇨…… 머리가 조금……." "그래? 그러니까 컴퓨터 조금 하라고 했잖아." 어머니는 그렇게만 말하고는 사온 찬거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 가 아픈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나 역시 머리 아픈 것으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신경성 두통 일 것은 뻔했으니까. 하…… 이렇게 내 방에 있으니까 드디어 내 세계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드는 군. 라이 녀석 정말 확실하게 보내줬어. 만나면 감사의 인사라도 하고 싶지 만…… 이제 만날 기회는 없겠지……. "왜 이불 깔아놨어?" 거실에 깔아놓은 이불을 봤는지 어머니가 그렇게 물었다. 장판이 엉망이라 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난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했다. "조금 추운 거 같아서 깔아놨어요. 그러니까 그냥 놔두세요." "추워? 온도 올릴까?" 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난방 온도였고, 사실 지금은 10월이라 그다지 춥지도 않았기 때문에 난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온도 올리면 더워요."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는 더 이상 거실에 이불 깔아놓은 것에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불을 치우지도 않았다. 그래서 얼마동안은 장판 망가 진 것을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어머니가 언제라도 집안 청소를 시작하면 여지없이 걸리겠지만. 휴…… 어쨌든 오늘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 거지 뭐. 내일 어떻게라도 저 장 판을 원래대로 해야할 텐데…… 으윽…… 머리가 어지러워서 오늘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겠다……! [번 호] 109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5일 22:43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45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5장: 본래의 나로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5장:본래의 나로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5903 게 시 일 :00/08/05 21:35:09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49 "참, 오늘 학교 안 갔지?" "……?" 갑작스런 어머니의 질문에 난 의아해졌다. 오늘이 10월 4일이라는 것은 알 고 있었으나 무슨 요일인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 방에도 달력이 있었기 때문에 달력을 보면 확인 가능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어지러 워서 그렇게 하기 싫었다. "왜요?" 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물음으로써 어머니에게서 내가 오늘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들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내 의도대로 그 이유 를 말해주었다. "어제 무슨 사건 때문에 오늘 경찰서에 간다고 했잖아?" "……?" 얼레? 사건? 경찰서? 그게 또 무슨 소리야?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난 왜 경찰서에 갔 다는 거야? 제길…… 기억이 안 나니까 돌아버리겠군……. "뭐……." 난 대충 얼버무렸다. 내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어머니에게 뭐라고 말 하기 그랬던 것이다. 다행히 항상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대충대충 말했던 내 습관 때문인지 어머니는 내 말투에서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 다. "그럼 내일도 경찰서에 가야되는 거냐?" "몰라요. 머리 아프니까 잘래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난 내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서 눈을 감았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뇌세포들이 일제히 장렬한 최후를 맞이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이 들었던 것이다. "강한아, 일어나!" 한참 잘 자고 있는 나를 누군가 깨웠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머니였다. 그래서 난 좀더 투정을 부리면서 자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어머니 의 말이 내 잠을 싹 달아나게 했다. "강한아, 학교 안 가니?" "……!" 제길! 학교 가야 하는 걸 잊어먹고 있었어!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멀어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 몇 시인 거야?! 벌떡- 난 거의 튕기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계를 쳐다보았다. 누워 있다 갑 자기 일어났기 때문인지 잠깐 동안 시야가 어두워졌다가 이내 밝아졌다. 어 쨌든 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었고, 학교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이상이라는 것, 그리고 학 교 등교시간이 7시 30분이라는 것까지 떠올리고 난 경악해야 했다. 지금 당 장 가지 않으면 아침 보충 수업에 늦기 때문이었다. "……." 막 헐레벌떡 학교 갈 준비를 하려고 했던 나는 그냥 관두었다. 지금 가봤자 보충 수업 시간에 늦을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보충 수업 을 빼먹더라도 아침밥은 먹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는 것이 학교 수업 듣는 데 지장이 없다라고 판단했다. "오늘 늦었으니까 아침 보충은 안 할래요. 그냥 밥 먹고 9시까지 학교 갈게 요." "보충 안 해?" 내 말에 어머니는 오늘부터 보충 수업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생각한 듯했다. 여기서 거짓말로 오늘부터 보충 안 한다고 하면 내일부터도 계속 보충을 하 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난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 지금 가봤자 보충 늦으니까 그냥 보충 빼먹겠다는 거예요." "보충을 빼먹어?" "아침 굶고 별로 도움 안 되는 보충 들으러 가는 것보다는 아침 먹고 학교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하는 편이 낫잖아요?" 내 설득이 먹혀들든 먹혀들지 않든 난 그렇게 말했다. 설령 어머니가 지금 당장 나보고 학교에 가라고 해도 절대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침을 거르고 학교에 가본 적이 없는 나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밥을 먹고 갈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럼 얼른 밥 먹어라." 어머니는 나에게 학교에 가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이런 말 을 했다. "근데 그 보충 수업이라는 거 꼭 해야되냐? 아침 일찍 일어나서 가야 하는 데 피곤하잖아. 그리고 그 무슨 야간 자율 학습인가? 그것도 너무 늦게 끝나 는 것 같고." "어쩔 수 없어요. 학교에서 강제로 시키는 거니까요." 난 그렇게 말하고 우선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간 자율 학습이 끝 나는 시각이 9시이기 때문에 집에 오면 항상 10시를 넘기게 된다. 그런데 난 항상 학교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집에 와서 먹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항상 10시 이후가 되어 버린다. 어머니는 그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 다. 철퍽 철퍽- 세수를 끝내고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을 먹은 후 느긋한 마음으로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아침 보충 수업이 끝나는 시각은 8시 30분이라 적어도 7시 30 분까지는 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시각이 7시이라 무려 30분이나 남은 상태였다. "……." 다행히 엉망이 된 장판은 들키지 않은 모양인지 어머니는 그것에 대해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점에 안도하며 난 내 방으로 들어가 숨겨놓은 마법서 를 꺼냈다. 지금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마법서에 깃든 이상한 녀석 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금방 돌아왔군, 권씨.》 윽…… 처음 말부터 상당히 띠껍군. 어째 내가 아는 녀석들은 다 이렇게 띠 꺼운 거야? 《네놈이 띠껍기 때문에 남들도 다 띠껍게 구는 거다. 그런 기초적인 사실 도 모르다니 역시 넌 아이큐 두 자리야. 아, 아이큐가 진짜 두 자리였지…….》 어쭈구리…… 너 언제 내 아이큐 확인했냐? 어떻게 알아? 《네놈 기억을 들춰봤으니까 아는 거지.》 뭐냐? 너한테도 남의 기억 들춰보는 기술이 있었어? 《내가 신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녀석이 신이었다는 것을 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멍청 히 마법서만 들고 있었다. 내가 전혀 무반응을 보이자 그 녀석이 먼저 말을 걸었다. 《너 정말 기억력 더럽게 나쁘군.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내 이름하고 삼 성물 이름을 죄다 까먹냐?》 시끄러! 누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아? 너도 다른 세계에서 1년 반 동안 살다 와봐! 전혀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단어 외우기가 얼마나 힘든 가! 어쨌거나 빨리 이름이나 가르쳐 달라고! 《알았다. 그럼 귀를 후빈 후 경건한 자세로 내 말씀을 경청해라.》 "……." 당장이라도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지금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이 이 마법서 안에 처박힌 정신 나간 녀석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 얌전히 녀 석의 말을 들었다. 《내 이름은 마이크로 스피어. 그리고 삼성물의 이름은 각각 지혜의 마법서 티탄, 평화와 장수의 돌 크레졸, 그리고 힘과 파괴의 검 리소좀이다. 이제 기억 나냐, 쇠 대가리?》 그래…… 이제 좀 기억이 나려고 하는군. 그런데 왜 날 쇠 대가리라고 부르 는 거야? 여차하면 헌책방에다 팔아버린다? 《후후, 날 사는 헌책방은 엄청난 행운을 손에 거머쥐는 것이다.》 그렇겠지. 파리 잡는데 딱 좋으니까. 《…….》 마이크로 스피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에 상당한 타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남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착한 녀석이 아니었기 때 문에 내게 필요한 질문을 마이크로 스피어에게 던졌다. 어이, 내가 다른 세계로 가고 나서 다시 여기로 돌아올 때까지 도대체 얼마 나 시간이 걸린 거냐? 내 생각에는 그렇게 많이 지난 것 같지는 않던데. 《…….》 헤이, 마이크로 스피어 씨. 이 형님이 물으시는데 왜 대답이 없어? 《…….》 지금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거냐? 묵비권은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동물이 나 신이 묵비권을 행사해도 된다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빨리 대답 안 하면 확 불질러 버린다? 《하나 묻겠다. 왜 헌책방에서 날 파리 잡는데 쓰는 거냐?》 "……?" 전혀 예상치도 못한 황당한 질문이었기 때문에 난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이라는 마이크로 스피어가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던 것이다. 《대답하지 않으면 네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 흘…… 알았다, 알았어. 하여간 이상한 질문을 하니까 내가 잠시 헷갈렸잖 아. 어쨌든 헌책방에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파리가 날릴 테고, 그 파리를 잡 는데 네 녀석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거라는 거야. 알겠냐? 그럼 이제 내 질 문에 대한 대답을 하라고. 《그런 뜻이었던가. 뭐 별로 좋은 용도로 쓰이지는 않는군.》 빨리 내 질문에 대답을 하라니까! 《멍청한 녀석. 넌 네가 언제 다른 세계로 건너갔는지 모르냐?》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 아니야! 아까도 말했듯이 난 다른 세계에서 1년 반 동안 살다왔다고! 언제 어느 장소에서 떠났는지 같은 사소한 것을 어떻게 기 억하냐 이 말이야! 《그래, 네 기억력 아주 좋다.》 마이크로 스피어는 그렇게 날 무시한 뒤에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넌 1999년 10월 4일 오후 5시쯤에 삼성물의 힘을 빌어서 다른 세계로 건 너갔다. 그리고 4시간 뒤인 오후 9시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거다. 이제 이 해 가냐, 무쇠 대가리?》 얼레? 4시간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고? 겨우 4시간밖에 걸리지 않은 거야? 《말했잖아. 차원의 시간은 불규칙하게 돌아가고 있어서 다른 세계에 갔다 가 돌아오면 몇십 년이 흐를 수도 있고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을 수도 있다 고. 설마 그것도 잊어먹은 건 아니겠지, 철 대가리?》 하하…… 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강한아, 학교 안 가니?"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7시 20분이었 다. 마이크로 스피어와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던 것 이다. 이런, 우선 나중에 얘기해야겠다. 오늘 가방이 가벼우니까 특별히 네 녀석 을 내 가방 속에다 넣어주겠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해라. 《내가 왜 곰팡이 낀 네놈 가방 속에 들어가야 하는 거냐?》 시꺼. 책 주제에 뭘 따져? 들어가라면 잔말 말고 들어가! 탁! 난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가방 속에다 아무렇게나 쑤셔 박고 나서 가방을 닫고 내 방을 나섰다. 어머니가 준비한 도시락을 잘 챙긴 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현관을 나서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오랜만에 타보는 엘리 베이터라 약간은 흥분되었다. 띵동- 《12층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륵- 1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탄 후 1층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닫히 고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탄 기분은 상당히 묘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인 듯했다. 띵동- 《1층입니다. 감사합니다.》 흘…… 난 전혀 감사받고 싶은 생각이 없다네. 그나저나 내가 타야하는 버 스가 몇 번이었더라? 어억…… 기억이 안 나…… 으…… 지나가는 버스를 살 펴보다 보면 내가 몇 번을 타야 하는지 알 수 있겠지? 부우웅-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 난 지나가는 버스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맨 처음 오는 버스를 보고 저 버스가 바로 내가 타야할 버스라는 것을 금방 알 아차렸다. 학교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하, 다행이다. 난 또 내가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잊어먹은 줄 알았어. 한 번 보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군. 역시 인간에게는 기억력 이외에 습관 같은 게 있어서 편하다니까.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그 일을 저절로 인식하게 되니까 말이야. 편하다, 편 해∼ ===================================================================== 라이: 어째서 나를 이글의 작가님인 이상규님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건지--;; 제목 앞에 붙은 당당한 펌/표시가 있잖습니까... ID THEBUR 은 절대로 작가가 아닙니다--;; 작가님의 주소는 sakali@unitel.co.kr 입니다.. [번 호] 110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6일 22:24 Page : 1 / 25 [등록자] THEBUR [조 회] 36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5장: 본래의 나로 -3-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5장:본래의 나로 -3- 총 Page : 32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8/06 21:10:26 수 정 일 : 크 기 : 11.9K 조회횟수 : 74 부우웅- 난 버스에 탄 후 언제나처럼 제일 뒷좌석에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버스 안 에는 중학생들이 많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서서 가게 되었다. 움직이는 버스 의 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며 난 생각에 잠겼다. 인연의 끈…… 그 인연의 끈이란 것을 만들기 위해 난 그 세계로 건너갔던 것인데…… 과연 내가 끈을 많이 만들었을까? 후후…… 그렇지는 않겠지. 내 가 생각해도 난 별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니까. 제길…… 라이 녀석이 말 했던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어야 옳았나? 다른 성물이 각성할 때까지 기다려 야 했나? 치이이- 어떤 중학교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 도달하여 버스 뒷문이 열리자 버스에 탔 던 중학생들이 대거 내렸다. 그래서 버스는 순식간에 한산해졌고, 마침 뒷자 리가 비었기 때문에 난 그 자리에 재빨리 앉았다. 부우웅- 이제…… 그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건가? 하긴…… 여기에 성물이 없 으니…… 아니지, 성물이라면 삼성물이 있으니까 돌아갈 수 있는 거잖아? 아 ……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 문제군……. "……."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40분이었다. 즉, 아침 보충 수업이 이미 끝난 시각이 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유유히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 었던 듯이 내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교실 안으로 들어가니 어 느 게 내 자리인지 잊어먹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교실 뒤쪽에서 어느 자리 가 내 자리인지 찾아보던 나는 비어있는 책상 옆에 내 신발주머니가 걸려 있 음을 발견했고, 그 자리가 바로 내 자리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강한아, 왜 늦게 왔어?" 내가 겨우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자 내 앞에 앉아 있던 광석이가 놀랬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제, 물론 나에게는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었지 만 어쨌든 어제 경찰이 불러서 학교 빠진 것을 빼고는 지각이나 결석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광석이를 비롯한 몇몇의 아이들이 놀라고 있는 것이었 다. "어…… 늦잠 자서." "하여간 운도 좋다니까." 9월말에 자리를 바꿔서 새롭게 내 짝이 된 얼굴 긴 병서가 부럽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난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몰라 병서의 얼굴만 쳐다보았고, 병 서는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주었다. "오늘 아침 보충 안 했거든. 선생님도 안 들어왔고. 그냥 자습했어." "……!" 그렇다는 소리는…… 난 아침 보충 수업에서 결과 체크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 "하여간 재수 좋은 녀석은 뭔 짓을 해도 괜찮고, 재수 없는 녀석은 하나만 잘못해도 바로 걸린다니까. 부럽다, 부러워. 나도 오늘 보충이나 빼먹을 걸." 병서의 말에 난 크게 안도했다. 비록 아침 보충에 빠진 것은 출석부에 표시 되지 않지만, 빠지면 담임에게 맞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 로 하나의 근심을 털어 버렸으니 기분이 굉장히 상쾌했다. "야, 근데 어제 무슨 조사 받았다면서? 어떤 조사를 받았냐?" 병서가 나에게는 1년 6개월 전에 있었던 플라톤 살인 사건을 묻고 있었기 때문에 난 뭐라고 대답해주기 어려웠다. 확실히 내가 그 사건 때문에 경찰서 까지 불려갔긴 했지만 경찰서에서 무엇을 조사 받았는지는 구체적으로 떠오 르지 않았던 것이다. "글쎄…… 별로 묻는 건 없었는데. 그때 왜 있었냐, 뭐 이런 식이었을걸?" "그래? 근데 너 진짜 왜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있었던 거야?" 병서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오기 시작했고, 난 속으로 크게 뜨끔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갈등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답하더라도 내가 일요일에 학교 옥상에 올라가 있었다는 사실을 변명해줄 수 없을 것 같 았기 때문에 난 나의 방어 수단을 동원했다. 그건 바로 '모르겠다'라는 말이 었다. "모르겠어. 나도 왜 거기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 "기억 안 나? 그럼 유괴 당한 거 아니야?" 흘…… 유괴…… 플라톤 녀석이 날 유괴했나? 뭐 그냥 불러내기만 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병서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는 게 아무래도 낫겠지? "그럴지도……." "이야…… 하마터면 죽을 뻔했겠다." 죽을 뻔한 거야 사실이지. 플라톤 녀석과 막상막하로 싸웠으니까. 그때 나 에게 2클래스의 마력이 더 있지 않았더라면 죽은 쪽은 나였을걸? "근데 너 많이 바뀐 것 같다?" "……?" 갑자기 그게 뭔 소리여? 내 모습은 이곳을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 어 보였는데?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뭐가 바뀌어?" 내 물음에 병서는 날 이리저리 뜯어보고 나더니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놀렸다. "글쎄…… 왠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하나? 그게…… 조금 날카 로워진 것 같기도 하고…… 너 혹시……!" "……!" 왠지 병서가 내 말에서 뭔가 의심나는 점을 찾아낸 것 같은 느낌에 난 가슴 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병서의 말은 날 시베리아 의 한복판으로 집어던져 버리고 말았다. "너 한 달에 한번 한다는 그 마술에 걸린 거 아니냐?" "……." 마, 마술…… 마법도 아니고 마술? 내가 무슨 여자냐?! "재미없어." 난 간단히 그렇게 병서를 무시했고 내 그런 모습을 보고 병서가 역시나 하 는 표정을 지었다. "거봐, 바뀌었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얘기하면 그냥 웃었는데, 지 금은 재미없어 라고 말했잖아?" 내가…… 그랬던가? 그런 썰렁한 얘기를 들으면 그냥 실없이 웃었다고? 음 …… 그랬던 것 같군. 비록 겉으로는 그다지 달라진 게 없지만 역시 1년 6개 월이란 시간이 내 사고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근데 그 변화가 좋은 쪽으로 간 것인지 나쁜 쪽으로 간 건지……. "역시 경찰서에 한번 갔다오면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 자꾸 헛소리를 하는 병서를 상대하는 것은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 난 잠자 코 앉아있기만 했다. 그리고 어서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되어야만 마이크로 스피어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띵- 띵- 띵- 띵- 마침내 4교시 수업이 끝나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평소 와 같이 애들과 모여 도시락을 먹은 후, 대부분의 반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 나가 한산해진 교실 안에 남은 나는 가방에 쑤셔 박고 있었던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꺼냈다. 그리고 누가 볼새라 재빨리 책을 펴놓아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그 펼쳐놓은 티탄 위에 엎드렸다. 누가 보더라도 내가 책 보다가 자는 것 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들에게 안 들키려고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시끄러. 어쨌든 이제 우리끼리의 얘기를 시작해보자고. 《우리가 언제 그런 사이였냐? 난 남자한테는 관심 없다.》 "……." 썰렁한 마이크로 스피어의 개그에 난 엎드린 채로 굳어버렸다. 마음 같아서 는 당장이라도 책을 창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싶었으나 애들에게 미친 놈 취 급당하기는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 《네 녀석은 여전히 흥분을 잘 하는군.》 네가 날 흥분하게 만드니까 그렇지. 내가 괜히 흥분할 거 같냐? 《그거 미안하군. 그래,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냐?》 간단해. 인연의 끈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거다. 《그런가. 그럼 넌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들고 왔냐? 내가 확인해줄까?》 에? 네가 확인할 수 있다고? 《물론이다. 네가 과연 얼마나 많은 끈을 만들었는지 측정하는 것쯤은 간단 하다.》 마이크로 스피어의 그 말은 듣던 중 아주 반가운 말이었다. 그러나 한편으 로는 상당히 두려워졌다. '인연의 끈이 너무 적게 만들어졌다'라는 말을 들 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이미 와버린 건 어쩔 수 없으니까 맘 편히 가지는 수밖에 없겠지. 좋아, 그럼 확인을 부탁한다. 《좋다. 잠시 기다려라.》 마이크로 스피어는 그렇게 말한 뒤 잠시 동안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난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그래서 참다못한 내가 마이크로 스피어에게 뭐라 말하려는 찰나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됐다. 알아봤다.》 그래? 얼마나 되는데? 《정확하다.》 정확? 난데없이 왠 정확? 뭐가 정확하다는 거야? 《네가 만든 인연의 끈이 아주 정확하게 환타지 세계를 구할 정도라는 것이 다.》 "……?" 난 그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 인지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투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강철 대가리로군. 네가 모은 인연의 끈으로 환타지 세계를 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건 방금 들었어! 그것보다 그게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 환타지 세계 를 구할 수 있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뜻이냐고! 《듣고 싶나?》 당근이지! 《그럼 충격 받지 말고 잘 들어라.》 마이크로 스피어는 괜히 무게를 잡았다. 그래서 난 전혀 진지하게 들을 생 각이 없었다. 어차피 녀석이 하는 말은 전혀 진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저 마이크로 스피어가 하는 말의 요지만을 파악할 생각이었다. 《넌 정확히 환타지 세계를 구할 정도의 인연의 끈을 만들었다. 그 말은, 모든 끈이 끊어진 환타지 세계에 다시 끈을 만들어서 다른 세계와 연결되게 할 수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하지만……? 《네가 만들어온 인연의 끈이 너무 적다. 따라서 사람들의 기억까지 이곳 세계와 연결시킬만한 끈이 없어. 환타지 세계를 구하더라도 그곳의 사람들이 나 이곳의 사람들이나 너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즉!》 즉? 《아무 일도 없게 되는 것이다. 넌 환타지 세계에 간 적도 없게 되고, 환타 지 세계가 이 세계와 융합했던 일도 없게 되는 거지. 한마디로 요약해서 말 하자면, 넌 꿈을 꾼 게 되는 것이다.》 "……!" 엄청난 충격이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꿈을 꾼 것과 같이 되어버리는 것……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결말이었 으니까. 《이제 내가 할말은 다했다. 남은 건 네 결심뿐이다. 이 정도의 끈으로 환 타지 세계를 구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던가, 아니면 다시 다른 세계로 넘어가 인연의 끈을 더 만들어 오던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린 것이 다.》 "……!"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나 혼란스 러웠다.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이건 모두 네 녀석이 자초한 일이다. 친구나 적을 많이 만들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너 자신을 탓해야지.》 "……." 《참고로 내가 말한 그 두 가지 방법의 장단점을 말해주겠다. 우선 환타지 세계를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게 되지만 가장 확실 하게 환타지 세계와 이곳에서 기억이 융합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너 자신의 기억은 남게 돼. 즉, 넌 환타지 세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지. 아까도 말했듯이 넌 꿈을 꾼 것이 되니까 말이야.》 "……." 《그리고 다른 세계로 가서 끈을 더 만들어 가지고 오는 것도 좋긴 한데… … 문제는 다른 세계로 갔다가 오면 이 세계의 시간이 얼마나 지나있을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뭐, 네 녀석 운을 믿고 다른 세계로 가던가.》 "……." 《어이, 권씨! 뭐라고 말해봐!》 "……." 《충격 먹었냐? 어이, 다이아몬드 대가리!》 미안…… 다음에 얘기하자……. 탁! "후우……." 난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덮어버리고 고개를 들어 교실 칠판을 쳐다보았다. 주번이 칠판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에 칠판은 주로 흰색 분필로 쓴 글씨를 잔 뜩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어지러운 생각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꿈을 꾼다…… 꿈을 꾼 것이 된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나? 결국 난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 것이 되는 건가? 하하…… 한심하군…… 한 심해……. "저기…… 선생님." "무슨 일이야?"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내가 갑자기 교무실로 찾아와 말을 걸자 담임은 조금 놀래는 표정이었다. 난 그런 담임에게 최대한 피곤해 보이는 듯한 얼굴 로 말했다. "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야자를 못할 것 같아서요." "……." 담임은 잠시 날 가만히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무슨 소리! 야자는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신성한 시간이다! 특히 고3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란 말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긴장하고 있을 때, 담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내일부터는 정상적으로 야자를 할 수 있도록 해." "예. 감사합니다." 난 담임에게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플라톤 살인 사건 때문에 내가 충격을 받았을까봐 배려해주기 위해 쉽게 승낙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충 격의 구체적인 예는 내 성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야자를 하라는 말은 바로 그 충격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라는 소리였던 것이다. 터벅터벅- 담임에게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난 천천히 그러나 힘없는 발걸음으로 교문 을 나섰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야자를 하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애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저렇게 텅 빈 버스에 타면 기분이 상당히 좋 아지는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기분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황 량해졌다. 부우웅- "……." 내가 거의 실수여고 앞 버스 정류장, 즉 마을버스 종점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종점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 한 대가 그냥 출발해버렸다. 한마디로 눈앞 에서 버스를 놓친 것이었다. 그래서 내 기분은 더욱 우울해지고 말았다. "후우……." 미치겠군…… 집에 돌아가기가 싫어…… 집에 돌아가면 마이크로 스피어가 말한 방법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니까…… 돌아가기가 …… 싫어……. "아, 오빠!" 내가 종점에서 다른 버스가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때 누군가 날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그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 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인티였다. [번 호] 111 / 111 [등록일] 2000년 08월 06일 22:26 Page : 1 / 31 [등록자] THEBUR [조 회] 39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5장: 본래의 나로 -4-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35장:본래의 나로 -4- 총 Page : 40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8/06 21:11:00 수 정 일 : 크 기 : 15.2K 조회횟수 : 64 "아, 안녕. 오랜…… 아니, 흠흠…… 근데 이 시간에 왜 나왔어? 야자 안 해?" 나도 모르게 오랜만이다라고 말이 튀어나오려고 했기 때문에 난 급히 말머 리를 돌렸다. 그러나 인티는 그런 내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인티의 표정은 극히 어두웠던 것이다. "오빠…… 흑……!" 갑자기 인티는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주위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대담한 행동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위에는 사람이 거의 없 었기 때문에 별로 대담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왜 그래?" 난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인티를 안고 당황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또다시 당 황하고 있었다. 인티의 가슴이 풍만하다거나 인티의 몸에서 좋은 향기가 난 다는 류의 이유는 전혀 아니었다. 그것은 인티의 이곳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인티뿐만 아니라 아린이나 유스타키오 등등의 이곳 이름을 죄다 까먹어버린 것이다. 이런…… 인티 이름이 뭐였지? 뭐였지? 으…… 기억이 날 듯하면서도 안 나 네…… 미치겠군…… 역시 1년 6개월의 공백이 너무 컸어…… 으…… 으…… 으……! "흑…… 전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제가 인티인지…… 한미영인지…… 전 혀 모르겠어요…… 제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 인티가 직접 자신의 이름을 말한 덕택에 난 비로소 인티나 아린, 그리고 유 스타키오 등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잠시, 지금 인 티가 기억의 혼재를 겪고 있음을 보고 내 마음은 착잡해져 버렸다. 끼이익- 어느새 종점에서 마을버스 한 대가 기어 나왔기 때문에 난 울고 있는 인티 를 달래면서 버스에 태웠다. 어차피 인티나 나나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방향 은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집이 인티네 집보다 훨씬 멀지만. 땡그렁- 막 종점에서 나온 싱싱한 버스였기 때문에 안에는 사람이 버스기사 말고는 전혀 없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우는 여자애를 안고 있는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난 그 아저씨에게서 신경을 끄고 인티를 달래는데 전념했다. "어디 앉을래?" "흑……!" 이런…… 계속 울면 내가 민망해지잖아. 어쩌지? 어쩔 수 없다, 그냥 뒷자 리에 앉히는 수밖에. 난 뒷자리 아니면 앉기가 싫으니까 말이야. "자, 앉아." 난 인티를 맨 뒤 창가 쪽에 앉히고 나서 그 옆에 앉았다. 예전 같으면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던 대담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티를 달래는 게 더 급했다.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 "오빠…… 오빠…… 흑……!" 그러나 인티는 전혀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계속 인티가 울음 을 그치도록 달래다가 문득 인티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보니 그렇게 해서 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인티는 혼자서 기억의 혼재로 인한 고통 을 감내해야만 했다. 남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서 알면 정신병자 취급을 할지 도 모르기 때문에 누구한테도 속 시원히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때까지." "오빠…… 아앙―!" 내 말에 인티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내 품에 고개를 묻고 실컷 울기 시 작했다. 그런 갑작스러운 인티의 울음소리에 버스기사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의 분위기가 심 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뭐라 하지는 않았다. 참으로 눈치 하나 끝내주는 버스 기사 아저씨였다. "흑흑……." 대략 2분 동안을 소리내어 울던 인티는 진정이 됐는지 점차 울음소리를 작 게 내었다. 다행히 그렇게 인티가 소리내어 울 동안 그 누구도 버스에 타지 않았다. 드라마 또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긴 했지만 어쨌든 아무도 타 지 않았기 때문에 인티는 진정할 때까지 마음놓고 울 수 있었다. 부우웅- 인티의 울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마을버스가 종점을 출발했 다. 아무래도 인티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던 듯했 다. 그래서 난 버스의 백밀러에 비치는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목례를 했고, 그것을 본 버스기사 아저씨는 그저 사람 좋게 웃기만 했다. "고마워요, 오빠……." 마음을 완전히 진정시킨 인티는 눈물 젖은 웃음을 지으며 내 품에서 빠져 나왔다. 왠지 아쉽긴 했지만 난 그 아쉬움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버리고 인티 에게 물음을 던졌다.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는 거야?" "그건…… 공부가 되지 않아서예요…… 제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어서 ……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걸요……." "……." 난 인티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내가 인티의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난 괴로움을 느꼈다. 그렇기에 인티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덜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괴로워?" "…… 모르겠어요……." 인티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작게 떨리는 인티의 어깨는 그 고통이 괴롭 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그 작은 떨림을 일으키는 인티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러자 인티의 떨림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티가 견뎌내 기에는 너무 큰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린 언니는…… 아린 언니는 벌써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무서워요…… 아린 언니가 어떻게 될까봐…… 무 서워요……!" "……!" 인티의 말은 나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비록 아린도 인티처럼 기억의 혼재를 겪고 있긴 했지만 원래 명랑하고 활달한 녀석이라 기억의 혼 재를 잘 견뎌내고 있다라고 생각해버렸던 것이다. 아린마저…… 기억의 혼재를 견뎌내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토록 기억의 혼 재가 무서운 건가? 두 사람의 기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토록 무 서운 것인가? 그렇게 건강한 아린이 학교를 며칠 동안 결석할 정도로? "죄송해요…… 쓸데없는 소리만 해서……." 내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인티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인티의 모습이 나에게 하나 의 결심을 하게 해주었고, 난 그 결심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인티에게 질문 을 했다. "미영아, 만약 지금 너에게 인티의 기억과 한미영으로서의 기억 중 하나만 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어?" "……!" 인티는 잠시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내 진지한 표정을 보고 지금 내 질문이 결코 대충 대답할만한 성질이 되지 못함을 느낀 듯했다. "저,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티는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인티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 줘." "오빠……." 치이이- 그때 두 사람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나 모두 버스 앞쪽에 있는 좌석에 앉 았다. 버스 앞쪽에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보다는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앉은 것이었다. 부우웅- 승객을 태운 마을버스는 다시 출발을 했고, 그와 동시에 인티의 대답이 떨 어졌다. "전 인티로서 오빠를 좋아해요…… 하지만…… 한미영의 기억도 소중해요… … 그 두 개의 기억 모두 버릴 수가 없어요……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요……." 인티의 대답은 내 생각대로였다. 그래서 내 결심은 더욱 확고하게 다져졌다. 더 이상 인티에게 고통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티뿐만 아니라 내 잘못으로 기억이 융합되어 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싶 지는 않았다. 삐이익- 인티네 집인 노루 아파트 단지 근처에 왔을 때 난 인티 대신 벨을 눌렀다. 그리고 인티와 함께 버스 뒷문으로 갔다. 인티는 내가 내릴 것처럼 자신을 따라오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인티에게 난 간단하게 말해주었 다. "배웅이니까 신경 쓰지마." "……?" 치이이- 버스의 뒷문이 열렸다. 인티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리려 했다. 그러나 난 인티가 내리기 전에 인티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 내가 갑자기 끌어안자 인티는 놀란 얼굴을 했다. 하지만 난 10여 초 가량 동안 인티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 때문에 버스가 출발을 하지 못하 고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것이 인티와의 마지막 인사이기 때문이었 다. "잘 가, 인티." "오빠……!" 내가 미영이라는 이름 대신 인티라고 부르자 인티는 상당히 놀랬다. 난 그 런 인티를 버스에서 내리게 한 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인티는 그저 멍한 얼 굴로 그 자리에 서서 날 쳐다보기만 했다. 치이이- 부웅- 마침내 버스는 출발했고 인티의 모습도 점차 멀어져 갔다. 난 한동안 버스 뒷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인티와의 마지막 포옹의 느낌을 계속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찰칵- 난 우리 집의 문을 열쇠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가방 속에 들어있는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꺼냈고, 방안에 숨겨놓았던 나머지 성물도 죄다 꺼냈다. 펄렁- 거실에 펼쳐놓았던 이불 역시 걷어내고 장판에다 그려놓은 마법진 한가운데 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서 지혜의 마법서 티탄을 펼쳤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런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거냐?》 "……."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냐? 넌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은데?》 마이크로 스피어는 정확하게 내가 결심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 서 난 망설임 없이 마이크로 스피어에게 내 결심을 말해주었다.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육성을 냈다. "환타지 세계를 원래대로 만들기로 했어." 《그런가? 결국 꿈을 꾼 것과 같이 되는데도 괜찮은가?》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 다는 나으니까." 《…… 좋다. 네 결심이 그러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지.》 마이크로 스피어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결정을 내린 이상 최대한 빠르게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렇게 불필요 한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아린이나 인티, 그리고 유스타키오 등은 괴로움 을 당하고 있고 심지어는 자살을 기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시간이 중요했다. 《그려놓은 마법진은 동심원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저번에 했던 대로 제 일 작은 원과 두 번째 원 사이에 삼성물을 등간격으로 배치하고, 동심원의 중심에 네가 들어가 앉아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난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대로 제일 작은 원과 두 번째 원 사이에 삼성물을 등간격으로 놓았다. 그리고 나서 동심원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 자 잠시 후, 우우웅― 마법진에서 빛이 뻗어 나왔다. 난 그 빛에 완전히 파묻힌 채로 앉아 있었다. 그때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이 들려왔다. 《후회하지 않는가?》 누구하고 같은 질문을 하는군. 《누구?》 아, 넌 모르겠군. 저쪽 세계에 성물이 나한테 그런 질문을 했었거든. 물론 대답은 후회한다 였지만 말이야. 《그럼 지금 후회하고 있다는 말인가?》 맞아. 후회하고 있어. 왜 내가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그렇군. 좋아, 이제 네가 모은 인연의 끈을 잘라 환타지 세계의 끊어진 끈과 서로 연결하겠다.》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이 끝난 직후 내 몸에서 무엇인가가 잘려나가는 느낌 이 들었다. 마치 온몸이 거미줄에 묶였다가 그 거미줄이 모두 잘려나가는 느 낌이었던 것이다. 우우웅― 빛에서 나오는 울림이 더욱 심해졌다. 주변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빛의 울림만이 있는 공간 속에 난 앉아 있기만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밖에는 없었다. "음……!" 난 천천히 눈을 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머리가 약간 띵하긴 했지 만 그런 대로 견딜만했다. 단지 너무나 조용해서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들려 오는 방안이 기분 나빴을 뿐이었다. "……!" 문득 장판을 쳐다보았던 나는 크게 놀랐다. 분명히 있어야 할 마법진이 보 이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삼성물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 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 꿈을 꾼 게 되어버린다. 마이크로 스피어의 그 말만이 내 뇌리에 떠올랐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TV의 날짜/시간은 10월 5일 오후 8시로 되어 있었다. 내가 환타지 세계의 구출 작전을 시행한 시각이 오늘 오후 6시 정도였기 때문에 거의 2시간 동안 거실에 쓰러져 자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마이크로 스피어의 말대로 난 꿈을 꾼 게 되어버린 건가? 모두 기 억을 잃어버린 건가? 혹시…… 내가 꿈을 꾸지 않았다 라는 증거 같은 게 나 에게 남아 있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바로 마법이었던 것이 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결코 지금까지 꿈을 꾼 게 아님을 증명해줄 유일한 수단이었다. 척- 난 다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마나를 느끼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 것 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환타지 세계에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처럼 쉽게 마나를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제길…… 뭔가 다른 증거가……!"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나는 문득 인티 생각이 났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인티에게 전화를 해봄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 서 난 즉시 인티의 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철컥- 《여보세요.》 핸드폰이기 때문인지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인티였다. 난 떨리는 가슴을 억누 르며 인티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미영아." 《누구시죠?》 "나, 강한이." 《글쎄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잘못 거신 것 같네요. 그럼.》 ? 뚜우뚜우- 인티는 자세한 설명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것은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놀란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 단 한 번의 전화로써 난 내 실낱같은 희망을 버려야만 했다. "하하……!" 덜커덕-! 수화기는 전화기에 제대로 놓이지 못하고 나뒹굴었고, 나 역시 거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인티의 전화번호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자체는 나에게 내가 결 코 꿈을 꾼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 었다. 나는 기억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나 혼자만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저 웃음이 나오는 대로 정신없이 웃어댔다. 그 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마이크로 스피 어에게 이렇게 될 것임을 들었지만, 그리고 나 스스로 이렇게 되기로 결정해 버린 것이었지만 막상 아무 일도 없는 게 되어버리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우울해져 버린 것이었다. 퉁- 그때 내 손이 거실 바닥에 놓여져 있던 TV리모콘의 전원 단추를 눌렀고 그 것으로 인해 TV가 켜졌다. 켜진 TV에서는 마침 뉴스를 하고 있었다. 《이번 2000학년도 수능시험은 작년보다 쉬워질 전망입니다.》 "……." 뉴스에서 2000학년도 수능에 관한 경향 분석을 하고 있는 것을 난 아무 생 각 없이 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허무함에 몸서리치던 내가 수능이라는 말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난 웃 고 말았다. "하하하!" 난 뭐 하는 놈이지? 그래, 난 수험생이야. 대학을 가기 위해 수능을 잘 치 루어야 하는 수험생이라고. 근데 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미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일, 그리고 이미 지나가 버려서 되돌릴 수 없는 일 가 지고 난리를 치고 있다니 말이야. 우스워…… 정말 우습다고 밖에 설명할 수 가 없어! 벌떡- 난 상체를 일으켰다. 더 이상 거실 바닥에서 나뒹굴고 싶지 않았다. 시간의 존재, 그리고 망각의 존재를 믿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이번 일을 잊을 수 있기를 빌었다.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지금의 나를 위해 그 일들을 모두 잊 기로 한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면 잊어버리겠어. 그 지나간 일에 얽매여 지금 내가 해 야할 일을 망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난 단지 본래의 나로 돌아왔을 뿐이야. 다른 세계를 돌면서 화려하게 놀았던 마법사에서 이제 평범한 수험생으로. 그래, 단지 본래의 나로 돌아왔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거야! 《이번 수능은 교과서 위주로 출제될 것이기 때문에 교과서를 반드시 봐야 합니다.》 퉁- 난 TV를 껐다. 어차피 출제 위원들이 하는 말은 죄다 똑같기 때문이었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이야 교과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봐야 했지만 국 어나 사회 교과목들에는 아무리 찾아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결국 문제집을 사서 푸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교과서는 심심할 때 한번씩 읽어둬야 하겠지 만. 펄렁- 거실 한쪽에 던져놓았던 이불을 다시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드러누워 잠 을 청했다. 학교 시험 기간 외에는 집에 와서 공부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지 금 시간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나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나다운 행동은 '학교에서 공부하 고 집에서 놀자'니까. 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하겠어. 이번 일 때문에 공부를 더 열심 히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아.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 기억에서 도피하고 싶은 행동일 뿐이니까. 이제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그것에 당당히 맞서겠어. 그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당당히 사는 거야. 본래의 나답게! ====================================================================== 흘... 썰렁한 결말...ㅡㅡ;;; 어쨌든 이것으로 2부는 끝났습니다... 다음주 주말쯤에 연재분을 삭제할 예정임다... 3부는 현재 구상 중이라 한참 후에야 쓸지도...^^;;; ─────────────────────────────────────── [번 호] 74 / 77 [등록일] 2000년 08월 21일 22:04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25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부 1장: 두명의 내방자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장:두 명의 내방자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39 게 시 일 :00/08/21 19:18:18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107 사이케델리아 3부 연재 시작합니다... 근 2주일동안 30쪽도 못 썼다는...ㅡㅡ; 역시 연재를 안 하니까 구상한답시고 계속 놀게 되더군염...-.-; 어쨌든... 써놓은 게 거의 없어서... 연재 분량이나 연재 속도가 느릴 것이라는...^^;; ======================================================================= 사이케델리아(Psychedelia) - 제 3 부 - 다중 세계 탐험 <제 1 장> 두 명의 내방자(來訪者) "……." 정오라서 그런지 버스 안은 한산했다. 그리고 6월말이었지만 날씨가 상당히 더웠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는 냉방 장치가 작동되고 있었다. 그래서 시원하 기 그지없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금 전에 치렀던 교양영어 시험을 거의 망쳤기 때문 이었다. 게다가 교양영어 레포트를 단 한번도 낸 적이 없어서 학점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기말고사 마지막 시험을 망치고 나니 기분이 매우 울적했다. 그런 내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난 음악을 들었다. 비록 가사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 애니 주제가였지만 가사보다는 반주 쪽을 좋아 하는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빵빵-! "……." 그 일이 있은 지 벌써 9개월이 흘렀다. 환타지 세계의 잘려진 끈을 다시 이 어 본래대로 돌려놓는 방법을 실행한 후 그 어떤 달라진 점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 난 혼란스러웠다. 과연 내가 꿈을 꾼 것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다 른 세계에 갔다가 그 방법의 실행 이후 꿈을 꾼 것처럼 되어버렸는지 혼란스 러웠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을 잊고 보통 때처럼 수능 준비하자는 결심을 내리긴 했지만, 혼란한 것은 혼란한 것이었다. 부르르릉…… 버스 안의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길은 막혔다. 난 차가 막힌 도로를 보다 가 손으로 내 눈을 만져보았다. 내 눈은 허전했다. 거의 7년 넘게 써왔던 안 경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결코 꿈을 꾼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만약 내가 꿈을 꿨다면 난 지금 당연히 안경을 쓰고 있어야 하기 때 문이었다. "후……."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내 눈이 좋아졌다는 것 말고는 나에게 남은 것이 없 었다. 내가 그토록 열심히 모으고 회전시켰던 마나는 전혀 느껴지지도 않았 다. 아니, 돌아온 뒤로부터는 이곳에 마나가 있다는 것 자체를 느낄 수가 없 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도 느껴지는 것은 계속 앉아있어서 피곤해져 가는 내 몸뿐이었던 것이다. "훗."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또 지나간 일에 신경 쓰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수능 쳐서 대학 들어온 상태인데도 꿈이 되어버린 일을 신경 쓰는 내가 한심했다. "후우……!" 그러나 대학 생활을 떠올리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럭저럭 2000학년 도 수능을 잘 봐서 소위 명문대라는 곳에 들어왔지만 대학이라는 곳에 난 실 망하고 말았다. 마치 고등학교 때처럼 강의 계획표를 따라잡기 위해 진도빼 기에 급급한 대학 강의, 빈약한 실험 도구, 그리고 여름인데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는 강의실 등, 과연 이런 곳에 오기 위해 난 그렇게 공부를 했 나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이다. 《じぶんに なにが できる(자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나)》 후후…… 내가 알아듣는 가사가 흘러나오는군. 과연 난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지? 공부? 후후, 공부할 리가 없지. 대학이란 곳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공부를 안 하는 나니까 말이야. 핑계일 뿐인가? 공부하기 싫다는 이유를 그 런 것에다 두고 있는 것인가? 《いっしゅんお つよく いきよ(순간 순간을 강하게 살아요)》 강하게 살아라…… 좋은 말이야. 나도 그렇게 살려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 금의 나는 결코 강하게 살고 있지 않아. 그저 대학이란 곳을 들어가는 것에 목표를 두고 살았을 뿐이었지. 이제 그 목표를 이루었으니 다른 목표를 찾아 야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목표가 없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 자신조차 모르고 있으니까……. 삐이- 버스의 벨은 붉은색이었다. 벨을 누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 른 버스의 벨은 파란색도 있는데 왜 하필 이 버스의 벨은 붉은색인지 마음에 안 들었다. "……." 오늘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대학생들에게는 오늘부터가 사실상의 방학…… 하지만 난 그 방학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무엇을 해야 덧없이 보냈 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제길…… 아무 목표도 없는 상태에서 방 학이 되어봤자 나에게는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치이이- 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항문을 개방했고 난 버스로부터 배 설되었다. 그렇게 날 배설한 버스는 한층 가벼운 몸놀림으로 도로를 질주했 고 버스의 방귀 냄새를 어쩔 수 없이 들여 마신 나는 띵해진 머리를 느끼며 내 집으로 걸어갔다. 《ちからお わたしに ください(힘을 나에게 내려주세요)》 누가…… 나에게 힘을 줘…… 아무 목표도 없이 헛된 시간만 보내고 있는 나에게…… 뭔가 목표를 잡고 험난한 이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저기…… 잠깐만요." 힘없이 집으로 걸어가는 도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비록 기분은 우울했지만 남이 말 걸어오는 것을 무시하고 그냥 지나칠 정도는 아 니었기 때문에 난 이어폰을 귀에서 뺀 다음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 뒤에 는 20대 정도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서 있었다. "……?" 그 두 여자를 본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두 여자 모두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한 여자는 짙은 남색의 머리칼을 길게 길렀다가 중간을 자른 듯한 모습 이었는데, 머리색이 남색이긴 했지만 어두운 곳에서 보면 완전히 검은색으로 보일 정도로 색이 짙었다. 게다가 곧 여름이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옷이 아주 화끈했다. 속옷이 비칠랑 말랑한 하늘색의 셔츠를 입고 허벅지의 절반 정도만을 가리는 붉은색의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남자 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 만한 옷차림이었다. 그 화끈한 여자 옆에 서 있는 여자는 금발인지 은발인지 백발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머리색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칼을 자라는 대로 놔둔 상태라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화끈한 여자의 옷차림과는 달리 그 여자의 옷은 웨딩 드레스 비슷하게 생겨서 몸의 피부를 거의 모두 가린 상태였다. 드러나 있는 부분이라고는 얼굴밖에 없었다. 손마저 하얀 장갑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저런 옷을 입으면 분명히 더울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난 전혀 답답함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옷의 색깔이 웨딩 드레스처럼 하 얀색인 데다가 그 옷은 통풍이 굉장히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그 두 여자에게도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얼굴이 무서울 정 도로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예술가가 조각해놓은 작품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던 것이다. "권강한님 맞으세요?" 그때 개량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한 여자가 날 불렀다. 난 처음엔 무 심코 대답하려다가 그 여자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알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난 전혀 저들에게 내 이름을 가르쳐 준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그런데요?" 그렇다고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지? 너희들 혹시 스토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약간 당황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화끈한 옷차림의 여자가 그것 보라는 듯한 어조로 수수한 옷차림의 여자에게 말했다. "맞다니까 그러네. 하여튼 빨리 하자구." "……?" 뭐가 맞고 뭘 하자는 거야? 왠지 위험한 냄새가 풍기는 여자들이다……. "그럼 몇 가지 물어볼게요. 시간 괜찮죠?" "아, 예……." 금발 여자가 공손한 어조로 물어왔기 때문에 난 별 수 없이 긍정의 대답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 지금 집에 들어가 봤자 할 일도 없이 방에서 뒹굴 것은 뻔했고, 게다가 저런 미인들을 본다는 것은 아주 드문 기회였기 때문에 승낙했던 것이다. 흠…… 근데 무슨 질문을 한다는 거지? 설마 이 여자들 예수 믿으라고 나온 전도사들 아니야? 흘…… 그러면 귀찮은데…… 난 아무 종교도 안 믿는단 말 이야…… 그리고 믿고 싶은 생각도 없어…… 그나저나 어째 전도사들이 이런 미인들이냐? 대부분 아줌마들이던데? "권강한님은 약한 사람들을 돕고 싶은가요?" "……?"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 금발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보통 전도 사들이 묻는 질문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얼레? 이상하군. 그럼 이 여자들은 전도사들이 아닌가? 그럼 다행이긴 하지 만…… 전도사들이 아니라면 왜 나한테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지? 혹 시…… 방금 정신 병원을 탈출한 정신 이상자?! [번 호] 75 / 77 [등록일] 2000년 08월 21일 22:05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23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장: 두명의 내방자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장:두 명의 내방자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40 게 시 일 :00/08/21 19:18:37 수 정 일 : 크 기 :10.4K 조회횟수 :95 "약한 사람들을 돕고 싶기는 하지만…… 실제로 약한 사람들을 도운 적은 없어요." 상대가 정신 이상자이든 아니든 얼굴이 예쁘기 때문에 모든 걸 용서해 주기 로 하고 난 순순히 금발 여자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들은 금발 여자 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그럼 권강한님에게 약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면, 약한 사 람들을 도우실 건가요?" "……!" 왠지 뼈가 있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실대로 답했다. "모릅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저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다면 약 한 사람들을 돕겠죠." "그 말은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내버려 두겠다는 말인가요?" 금발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차 물었고 나 역시 재차 같은 대답을 했 다. "그럴 겁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금발 여자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상당히 우울해져 버렸 기 때문에 내 어조는 꽤 퉁명스러워졌다. 지금까지 난 남을 도운 적이 없었 다. 나에게 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을 도움으로써 나에게 어 떤 피해가 올까봐 감히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의 비겁함을 떠올 리게 되어서 기분이 나빠져 버렸던 것이다. "그런 무책임한……!" 내 대답에 무척이나 황당해하는 금발 여자와는 달리 남색 머리의 여자는 고 개까지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주 솔직해. 마음에 들어."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저런 남자에게 어떻게 그 일을 맡겨요?!" 금발 여자는 방금 전의 태도와는 달리 남색 머리의 여자에게 막 화를 냈다. 하지만 그 모습으로 금발 여자의 이미지는 깨어지지 않았다. 그저 귀엽게 보 일 뿐이었다. "자신이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있다는 건 중요하다구. 자기 자신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인간보다는 훨씬 낫지!" 남색 머리의 여자는 나를 옹호해주려는 것처럼 그렇게 말했지만 금발 여자 는 여전히 화를 냈다. "하지만 저 말을 들어보면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다는 소리잖아요!" "그렇네." "그렇네가 아니라구요! 저 사람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다른 사람을 찾아 봐요!" 금발 여자가 귀엽게 화를 내면서 다른 곳으로 가려하자 남색 머리의 여자는 금발 여자를 뒤에서 와락 끌어안으며 귓속말로 뭐라 뭐라 속삭였다. 그러자, "꺅! 하지 말아요! 간지럽단 말이에요!" 금발 여자의 비명 비슷한 소리에 남색 머리의 여자는 까르르 웃으며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 남색 머리의 여자가 금발 여자에게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 만 금발 여자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확실 했다. "자, 이제 내가 물어볼게." "……." 뭐야, 이 여자는?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것이여? 눈 오는 날 펄펄 끓도록 흠씬 두들겨 패 줘? "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 거지?" "……?" 남색 머리의 여자가 나에게 한 질문은 내가 한번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것이었다. 그런 이상한 질문을 받고 당황하는 날 보면서도 남색 머리 여자는 자기 할말만 해댔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못하는 거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남들이 자신을 의식하도록 하는 게 싫은 거지?" "……?" 이 여자 지금 무슨 소리를 한다냐? 약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면 안되냐? 대학 들어온 다음부터는 내 머리가 썩어들어 가고 있으니까 가능한 쉽게 설 명해 줘. "에…… 그러니까 그…… 뭐지? 무슨 네모나게 생긴 이상한 수레에 사람들 이 잔뜩 타고 가는 거……." 열심히 말을 하던 도중 남색 머리 여자는 어떤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잠 시 머리를 갸웃했고, 그 모습을 본 금발 여자가 나직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 었다. "버스." "아, 그래! 버스!" "……." 흘…… 그럼 저 여자 버스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정말 무식이 철철 넘치다 못해 하늘을 날아다니는군.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 아니야?" "……?"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남색 머리 여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많은 버스 안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 이 너에게로 향하게 되고, 넌 그것이 싫어서 노인이 와도 뻐팅기고 앉아 있 는 거 아니야?" "……." "만약 사람이 없는 버스 안에서 노인이 네가 앉은 자리에 앉고 싶다고 하면 두말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겠지?" 남색 머리 여자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 밀며 물었고, 난 그 여자의 얼굴이 닿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입을 놀렸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노인이 내가 앉은 자리에 올 이유가 없어. 앉은 자 리가 널려있는데 내 자리에 굳이 앉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남색 머리의 여자가 나한테 반말을 했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반말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내 말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그건 그렇네. 하여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쉽게 자리 양보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거 아니야? 자리를 양보하고 난 후의 그 어색함이 싫어 서 그런 거 아니냐구." "……." "그렇지, 그렇지? 남들이 널 좋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게 싫지? 한번 좋은 사람으로 보여지면 계속 좋은 행동만 해야 하니까 그게 싫은 거지? 좋은 성 격도 아니고 나쁜 성격도 아닌 너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좋은 사람, 나 쁜 사람 그렇게 구분되는 게 싫은 거지?" "……." 난 남색 머리의 여자가 그 말을 하는 동안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러나 속 으로는 뜨끔하고 있었다. 그 여자의 말대로 난 어떤 부류의 인물로 구분되어 지는 게 싫었다. 그 사실을 남색 머리 여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 던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난 착한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말을 내뱉은 후, 난 바로 몸을 돌렸다. 지금 남색 머리의 여자가 나에 게 뭔가 목적이 있어서 접근하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렇게 내가 몸을 돌리자 그 여자는 갑자기 내 등에 업히듯이 뒤에서 날 껴안 고는 귓속말로 중얼거렸다. "거봐, 내가 너무 정확하게 꼬집어서 피하려고 하네. 남에게 자기 자신의 속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거지?" "……." '피한다'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버렸다. 그런 말을 들으니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나 자신이 비겁자가 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냐?" "어머, 말투 한번 딱딱하네. 나 같이 섹시한 여자가 말을 걸면 좀더 부드럽 게 말을 해야지!" "……." 왠지…… 잘못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내 심장을 후빈다……! "라케시스(Lachesis)님! 언제까지 그렇게 붙어있을 셈이에요? 사람들이 보 면 어쩌려구요!" 금발 여자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남색 머리의 여자가 아직도 내 등에 달라붙 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남색 머리 여 자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그렇게 남색 머리 여자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고 나서야 금발 여자가 남색 머리의 여자를 이상한 이름으로 불렀 다는 것을 깨달았다. 흘…… 외국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남색 머리 여자는 외국 사람이라는 건가? 처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까 왠지 이국적 인 분위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군. 그나저나 저 남색 머리는 염색한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염색한 것 같지는 않은데……. "라케시스님! 정말 이 사람으로 할 거예요?" 금발 여자가 남색 머리 여자에게 다가와 잔뜩 의심 어린 얼굴로 날 쳐다보 면서 물었고 라케시스라는 이름의 남색 머리 여자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말했 다. "물론! 저 녀석에게는 실력도 있고 경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인격 쪽으로는 무리가……!" "괜찮다니까 그러네. 말은 저렇지만 저 녀석은 나쁜 애가 아니거든." 얼씨구…… 왜 나보고 녀석 녀석 그러는 거야? 내가 널 年이라고 부르면 기 분 좋냐? "후…… 알았어요. 영마관(靈魔官)의 감각을 믿어보기로 하죠." 약간 못미더운 말을 내뱉은 금발 여자는 바로 몸을 돌려 어느 골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남색 머리 여자는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즉시 금발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난 그 두 여자가 골목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도대체 저 여자들의 정체는 뭐야? 왜 갑자기 조용히 지나가는 날 붙잡고 이상한 질문을 던지냐고. 게다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모르겠어…… 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터벅터벅-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은 나는 곧장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그 렇게 우울하던 기분이 이상한 여자 둘을 만나고 나서는 완전히 풀어졌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하지만 사소한 일에 웃고 울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모습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기분이 느껴지는 대로 놔두었다. 겨우 좋아진 기분을 괜히 망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휘이잉- 현관문도 열어놓고 베란다 창문도 모두 열어놨더니 시원한 바람이 방안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역시 방이 12층이라 그런지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던 것 이다. 하지만 난 그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TV앞에 드러누워 꺼진 TV를 하릴없이 들여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TV를 켜고 어떤 프로가 하는지 확인 해보았지만 오전이라 그런지 재미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뜨아…… 심심해 죽겠구만. 어제 이상하지만 엄청나게 예뻤던 그 두 여자를 만난 뒤로는 무슨 흥미로운 일도 생기지 않고 완전 극권태를 치달린다……. 벌떡-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지겨웠기 때문에 난 몸을 일으켜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컴퓨터 부팅이 완료된 후 즉시 PC 통신에 접속했다. 하지만 접속해도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바로 통신 을 종료한 뒤 이번엔 인터넷을 항해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인터넷에서도 할 일이 없었다. 잠시 아무 사이트나 들어가 보았던 나는 결국 인터넷 항해 도 그만두고 나와버렸다. 게임 같은 것도 하기 귀찮았다. 대학교 들어와 처 음 맞이하는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정말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퉁- 컴퓨터를 종료시킨 나는 다시 거실로 돌아가 TV앞에 드러누웠다. 바람은 시 원했지만 내 마음은 답답했다. 아무 것도 할일이 없다는 상황이 날 무력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 이러다가는 진짜 미쳐버리겠다…… 대학교 들어와서조차 할 일없이 방학을 보내야 하다니…… 남들은 이런저런 자격증 따느라 바쁘다지만…… 내가 뭘 잘 하는 게 있어야지……. 띵동- 띵동- 그때 갑자기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사실 더워서 현관문을 반쯤 열어놓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벨을 누를 필요는 없었지만 역시 예의상 벨을 눌러준 것 같았다. "누구세요?" 난 느릿느릿 현관 쪽으로 걸어가면서 밖에 있을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밖에서 어떤 사람이 반쯤 열린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는 물음을 던 졌다. "집안에 아무도 안 계시나요?" "……!" 현관문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 그 사람을 보고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짙은 남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즉, 어제 만났던 그 이상한 여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저 혼자 뿐인데요……." 난 사실대로 그렇게 말했고, 내 말을 들은 그 남색 머리 여자는 입가에 묘 한 웃음을 떠올리며 다시 밖으로 고개를 빼더니 누군가에게 얘기했다. "거봐, 내 말대로 혼자잖아." "알았어요. 우선 들어가서 얘기나 하세요." 얼레? 설마 웨딩 드레스처럼 생긴 이상한 옷을 입은 그 여자도 온 거야? 어 떻게 우리 집 위치를 알아낸 거지? 혹시 저 두 여자 정말로 스토커인가?! "실례합니다!" 밖에서 금발 여자인 듯한 사람과 얘기를 나눈 남색 머리 여자는 내 허락도 없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게다가 남색 머리 여자와 얘기를 했던 그 여자도 같이 따라 들어와 버렸다. 역시 뒤따라 들어온 여자는 내 예상대로 어제 만 났던 금발 여자였다. 또한 그 두 여자의 옷차림 역시 어제와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 [번 호] 76 / 77 [등록일] 2000년 08월 22일 22:12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9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장: 두명의 내방자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장:두 명의 내방자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48 게 시 일 :00/08/22 09:32:32 수 정 일 : 크 기 :10.2K 조회횟수 :269 사이케델리아를 퍼가시는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사이케델리아를 다른 곳에 퍼가시는 분들은 제게 반드시 메일을 보내시기 바랍니다.(sakali@unitel.co.kr) 그리고 홈페이지에 제 글을 올리시는 분들도 반드시 메일 보내주십시오. (물론 홈페이지 주소를 같이 적어보내 주셔야 합니다.) 현재 어느 분이 제 허락을 받아 퍼가시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퍼가시는 분은 제게 메일을 보내주세요. 그 외의 곳에 제 글이 올라가 있는 것은 허락치 않겠습니다. 그럼. ====================================================================== "아, 저기……!"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한 두 여자에게 난 위협을 주려고 했지만, 이미 자기 집인 듯 여기저기 방안을 둘러보는 남색 머리 여자를 말릴 수 있는 힘이 나 에게는 없었다. "방이 좁네? 이런 코딱지 만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해∼" 우리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던 남색 머리 여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것 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저 여자를 집어들어서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 었지만 같이 온 금발 여자가 그 남색 머리 여자를 힐책했기 때문에 참았다. "실례되는 말은 하지 마세요! 어서 얘기나 하자구요!" "어머, 왜 그렇게 급해? 어차피 얘네 부모님은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올 텐 데." "……!" 허걱! 어떻게 저 여자가 그걸 알고 있지? 도대체 저 여자들의 정체는 뭐야?! "에…… 근데 여기는 소파도 없는 거야? TV 드라마를 보면 거실에 소파를 들여놓고 있던데." "라케시스님, 그건 드라마니까 그런 거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거실 바닥에 앉을 수도 없잖아?" 남색 머리 여자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당장이라도 베란다 밖으로 떨어뜨 려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눈에는 남색 머리 여자의 말이 모두 어리 광으로밖에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깐, 거기 둘! 남의 집에 막 들어와서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야?" 기분이 나빠진 나는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고, 이번에도 역시 남색 머리 여 자는 내 말투 같은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얘기는 무슨 얘기, 아주 중요한 얘기지." "……." "어머? 이불이 있었네? 이걸 깔고 앉으면 되겠다!" "……." 난 남색 머리 여자가 거실에 소파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던 이불을 맘대로 펴서 거실 바닥에 펼쳐놓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이불을 펼 쳐놓은 남색 머리 여자는 그대로 자리에 앉은 후 여기가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두 다리를 쫙 뻗었고, 금발 여자는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소곳이 남 색 머리 여자의 옆에 앉았다. 난 그런 두 여자의 행동에 얼이 빠져서 멍청하 게 서 있었다. "뭐해? 서서 얘기 들을 거야?" "……." 남색 머리 여자는 나에게 어서 앉으라는 말을 했지만 난 쉽게 앉을 수 없었 다. 비록 윗몸 앞으로 구부리기 할 때처럼 두 다리를 붙인 채 쭉 뻗고 있었 지만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남색 머리 여자의 앞에 앉게 되 면 미니스커트 속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쉽게 앉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치한으로 몰릴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 흘……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여기는 우리 집이잖아? 그리고 저 여자들은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거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내가 전혀 겁을 낼 필요는 없잖아? 털썩- 그런 결론에 도달한 나는 남색 머리 여자의 말대로 그녀 앞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개를 들고 남색 머리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물론 얼굴 가득히 '어서 용건을 말해라'라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뭐야? 섹시한 여자 둘이 이런 누추한 집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와 주었는 데 어서 나가달라는 그 표정은? 남색 머리 여자가 내 표정을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응해주었다. "누가 들어와 달랬냐?" "어머, 저러니까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지. 좀 친절하게 굴면 안돼?" "내가 여자들에게 인기 있든 없든 너하고 무슨 상관이야? 할 얘기 없으면 당장 나가." 난 여전히 남색 머리 여자의 얼굴을 노려보며 나가라고 협박을 가했다. 그 러나 남색 머리 여자는 물론 금발 여자도 전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 쨌든 나와 남색 머리 여자가 대화를 계속 하게 되면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번엔 금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권강한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왔어요." 흘…… 부탁이라…… 도대체 처음 보는 인간한테 부탁을 하겠다는 그 엄청 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어……. "부탁을 하든지 말든지 우선 그쪽 정체를 밝히라고." 저 두 여자는 내 이름과 집 주소까지 알고 있었지만 난 저 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그것부터 알아낼 속셈으로 그렇게 물 었다. 그러자 금발 여자는 내 물음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렇군요. 소개하는 것을 잊었어요. 우선 전 영신관(靈神官) 클로토(Clotho) 라고 하고 저 분은 영마관(靈魔官) 라케시스(Lachesis)라고 해요." "……?" 얼레? 영신관 클로토? 영마관 라케시스? 그건 또 뭐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뭐가 이름이고 뭐가 성이냐? 진짜 헷갈리는걸? 게다가 한자하고 외 국어를 동시에 쓰고 있어서 더 헷갈리는데? 외국사람인 것 같은데도 우리 나 라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잘 하는 것을 보면 또 이상하고……. "클로로! 그렇게 소개하면 저 바보가 알아들어?" "전 클로로가 아니라 클로토라구요!" "클로토는 발음이 어렵다구. 게다가 여자이름 같지도 않고. 클로로가 얼마 나 부르기 편해?" "그래도 제 이름은 클로토예요!" 그렇게 라케시스라는 이름의 남색 머리 여자와 클로토라는 이름의 금발 여 자는 이름 가지고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였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 끼어 들었 다. "클로토든 클로로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너희들 정체가 뭐야?" 난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두 여자를 노려보았다. 이런 식으로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를 나에게 말해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 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좋아, 그럼 정식으로 우리들 소개를 하지!" 라케시스는 허리를 쫙 펴고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리는 여전히 쫙 뻗은 상태라 난 라케시스의 얼굴만을 봐야했다. 그리고 조용히 라케시스의 말을 기다렸다. "난 영마관인 라케시스, 그리고 저쪽은 영신관인 클로토! 이제 이해 가지?" "……." 지금 이 여자가 장난 하나? 아까 했던 말을 왜 반복해서 들려주는 거야? 네 가 무슨 자동 반복 기능 있는 카세트냐? "호호, 그렇게 무서운 눈 하지 말라구. 농담한 거니까." 자기가 무슨 요조숙녀라도 되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던 라케시스 는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들은 다른 세계에서 왔어." "……?" 난 멍청히 라케시스라는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 표정을 보건대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우선 라케시스를 떠보기로 했다. "다른 세계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세계인데?" "음……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내 질문을 받자 라케시스는 조금 생각하는 표정을 했다. 그러나 난 라케시 스가 그 생각해보는 듯한 시간에 내 물음을 피해갈 방법을 떠올리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뭐 간단하게 말해서 이곳에서 흔히 말하는 그…… 그…… 클로로, 뭐라고 했었지?" 어떤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 듯 라케시스는 클로토를 쳐다보며 물었고 클 로토는 또 클로로라고 불려서 기분이 나쁜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환타지 세계요." "아, 그래. 환타지 세계! 신도 있고 악마도 있고 마법도 있으니까 환타지 세계지! 바로 그곳에서 왔어." "……." 흘…… 왠지 이 여자들 서로 짜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뭐야? 지금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았는지 라케시스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나 는 아주 침착한 어조로 라케시스의 말에 응했다. "생각해 보라고. 갑자기 찾아와서 '나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하면 도대체 누가 믿어?" "어머 어머, 기가 막혀서 말이 다 안나오네!" 흘…… 기가 막히는 건 내 쪽이다. 그리고 말이 안 나온다면서 말만 잘하잖 아? 계속 거짓말하면 정말로 베란다 밖으로 밀어버린다? 여기는 12층이니까 떨어지면 바로 저승 공짜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다. "자기도 다른 세계에 갔었으면서 남의 말은 전혀 안 믿다니! 인간들은 생각 이 너무 편협해!" "……!" 라케시스의 말에 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충격이었 던 것이다. 라케시스가 그런 사실마저 알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내가 놀라 묻자 라케시스는 안 어울리게 호호 웃으며 입을 놀렸다. "영마관인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것 같아? 붉은 구슬의 매개체 권강한씨?" "……!" 도대체…… 이 여자들의 정체는 뭐야? 어떻게 내가 다른 세계에 갔었던 사 실을 알고 게다가 붉은 구슬의 매개체라는 것도 아는 거지? 도대체 어떻게… …! "너무 놀래지 말라구. 너에 대한 행적은 이미 다 조사해 둔 상태니까 말이 야. 그 정도는 기본적인 사항이거든." "……." 난 그저 라케시스가 하는 말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뭐라고 해줄 말도 없었 다. 상대는 나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난 아무 것도 모르기 때 문이었다. 이미 상황은 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져 있었고 두 여자의 신상 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둘이 자발적으로 나에게 알려주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어머? 너무 놀래서 정신이 나간 거야? 여보세요? 권강한씨? 뭐라고 말해 보세요∼" 라케시스는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장난을 쳤다. 하지만 난 손가락 건너에 있는 라케시스의 얼굴만을 쳐다보며 물음을 던졌다. "너희들…… 정확히 어느 곳에서 온 거야?" "말했잖아. 환타지 세계와 비슷한 곳에서 왔다고. 머리가 참 나쁘구나∼" "……."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장난하듯 대답했다. 그래서 이번엔 질문을 바꾸어 보 았다. "너희들 집은 어디야?" "환타지 세계라니까." "……." 으…… 대화가 안 되는구만. 말해주기 싫다 이거냐? 빌어먹을, 저쪽은 나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데 난 저 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으니……! "그런 것들은 네가 우리의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자연히 알게 돼." 라케시스는 다시 다리를 쭉 뻗은 편한 자세로 고치며 입을 놀렸다. 난 자꾸 아래로 향하려는 시선을 필사적으로 위로 올리면서 라케시스에게 되물었다. "부탁이라니?" "응, 간단한 거야. 우리 세계로 넘어와서 신하고 악마하고 패죽이면 되거든." "……." 라케시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난 한참 동안을 멍청히 앉아있어야만 했다. 너무나 황당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조용히 앉아 있었던 클로토라는 금발 여자도 라케시스의 말에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설명이 너무나 성의 없 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제가 설명해드릴 테니 라케시스님은 잠시 쉬고 계세요." 클로토는 라케시스에게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얼굴 표정은 결코 부드럽지 않았다. 지금까지 라케시스가 보여준 성격으로 보건대 클로토의 말에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라케시스는 조금 삐진 표정을 짓 기만 했을 뿐 순순히 클로토의 말에 따랐다. 슥- "난 잘래." 비록 클로토의 말에 군말 없이 따르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나는지 라케 시스는 소파 대용으로 두고 있었던 베개를 끌어안고 그대로 돌아 누워버렸다. 머리를 내 반대편으로 두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볼 수 없었고 대신 미끈 하게 빠진 다리만 잘 보였다. 흘…… 미니스커트를 입었는데도 행동에 전혀 거침이 없군. 게다가 남자 앞 인데 말이야. 직업이 의심된다……! "그럼 이제부터 저희들이 권강한님을 찾아온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번 호] 77 / 77 [등록일] 2000년 08월 22일 22:13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9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장: 강압된 선택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장:강압된 선택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49 게 시 일 :00/08/22 09:32:52 수 정 일 : 크 기 :7.8K 조회횟수 :255 <제 2 장> 강압된 선택 클로토는 정색한 얼굴로 날 찾아온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차분히 말해나가 기 시작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들은 다른 세계, 굳이 말한다면 아르카디아 (Arcadia)라는 세계에서 왔습니다. 아르카디아는 여러 개의 세계를 포용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즉, 아르카디아라는 세계 안에는 천신계(天神界), 천마계 (天魔界), 회로계(回路界), 명계(冥界), 영계(靈界)가 함께 공존하고 있죠." "잠깐만요." 난 클로토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말을 하고 나서야 알았지만 난 나도 모 르게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역시 상대가 예의바르게 나오기 때문에 감히 건방지게 반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난 그렇게 클로토의 말 을 끊고 나서 입을 놀렸다. "아르카디아는…… 아니, 아르카디아 속에 여러 개의 세계가 있다고 했는데, 그 세계에 대해서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본래는 클로토에게 아르카디아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의 고원을 뜻하고 이상 향이라는 전설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물어봤자 별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 질문을 바꾸었다. 그런 내 질문의 변경을 모르는 클로 토는 살짝 미소 지었다.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보기와는 달리 꽤 급하신 성격 같네요." 흘…… 그 말은 내가 차분하게 보인다는 뜻인가? 거울 볼 때마다 난 별로 그런 느낌 못 받았는데? "천신계는 천신(天神)들이 사는 세계예요. 그리고 천마계는 천마(天魔)들이 사는 세계구요." 클로토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난 당연한 듯이 끼어 들어 질문을 날렸다. "천신은 뭐고 천마는 뭡니까?" "천신은 말 그대로 신(神)이에요. 천마는 당연히 악마(惡魔)구요." "보통 천신이라 하지 않고 신족(神族)이라고 하지 않나요? 천마는 마족(魔族) 이라 하고." "아, 이곳에서는 그런가요? 하지만 저희들 세계에서는 신족은 인간과 천신 사이에 태어난 종족이고 마족은 천마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종족을 뜻해요." 얼레? 그런가? 뭐 그곳에서 그렇게 부른다는데 나야 할말은 없지. 단지 헷 갈릴 뿐. "그렇게 천신계, 천마계가 있고 인간들이 사는 회로계가 있죠." 이번에도 역시 클로토의 말이 끝나자마자 난 질문을 집어 던졌다. "인간들이 살면 인간계 아닌가요?" "아르카디아 대륙에는 인간들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사는데 어떻게 감히 인 간계라고 해요?" 클로토는 조금 불쾌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 역시 내가 잘못 생각하 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뜻으로 그냥 실없이 웃었다. 그 렇게 내가 사죄의 뜻으로 실없이 웃자 클로토는 그제서야 얼굴을 풀며 말을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물질계(物質界)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마나회로 (Mana回路)가 깔리고 나서부터는 회로계라 부르게 됐죠." 도저히 안 묻고 지나갈 수 없는 질문이 생겼기 때문에 난 즉시 클로토의 말 을 끊었다. "마나회로라는 게 도대체 뭐죠?" "아, 그건……." 클로토가 막 그 마나회로란 것에 대해 설명하려고 할 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라케시스가 여전히 베개를 끌어안고 돌아누운 채로 말했다. "직접 아르카디아로 가서 느끼는 게 더 빨라.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도 쉽게 이해 못해." "네, 그래요. 그냥 그런 게 있다라고 생각하세요." 클로토도 라케시스의 말에 동조했다. 그런 클로토의 얼굴에서 안도의 표정 이 떠오르는 것을 봐서는 클로토 자신 역시 그 마나회로에 대해 어떻게 설명 해야 할까 난감해 했던 것 같았다. "에…… 또 회로계가 있고 그 다음에는 명계가 있어요. 명계는 죽은 영혼을 처리하는 곳으로 회로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죠. 회로계에서 죽은 영혼은 명계에서 모두 처리하니까요." 흘…… 또 안 물어볼 수가 없군. "그럼 천신계나 천마계에서 죽은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자체 처리를 해요." "……?" 황당한 말이라 난 잠시 멀뚱멀뚱 클로토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사실 자체 처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갑자기 하수 처리장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클로토가 훗 하는 웃음소리를 내었을 때에 서야 난 내 멍청한 모습을 깨닫고 즉시 정색을 했다. "자체 처리를 어떻게 하는데요?" "음……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그냥 그렇다라고 얘기를 들었을 뿐이에요." 흘……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구. "그렇게 회로계에서 죽은 영혼을 처리하는 명계가 있고, 마지막으로 영계가 있어요. 영계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싸인 곳이죠. 천신이나 천마들조차 영 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알지 못하니까요. 하 지만 영계가 아르카디아라는 세계를 전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요." 클로토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영계라는 곳에 대해서 상당한 경외심 비슷 한 것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아르카디아라는 곳의 설 명은 다 끝난 것 같아서 난 저 둘이 나에게 접근해온 목적을 묻기로 했다. "그럼 왜 저한테 온 겁니까? 부탁이란 건 뭐죠?" "저희들이 부탁하고 싶은 것은…… 중용(中庸)의 법칙을 실현해 달라는 거 예요." "……?" 난 또다시 황당해져 버렸다. 중용의 법칙이란 것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 기 때문이었다. 하는 말마다 날 황당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는 클로토의 말이 놀라웠다. "중용의 법칙이요?" "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중용 의 법칙입니다. 저희들이 권강한님께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 중용의 법 칙을 실현해 달라는 거예요. 아까 라케시스님이 말했다시피 천신과 천마를 소멸시킴으로써 말이죠." 흘…… 신과 악마를 패죽이라는 뜻이냐? "왜 그래야 하는 겁니까?"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퉁명스러워졌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분 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클로토는 내 퉁명스러운 말에 조금 당황 했지만 곧 정색을 하며 내 물음에 대답했다. "현재 천신과 천마의 힘이 극한에 이른 상태입니다. 극한에 이른 두 힘은 언젠가 격렬하게 부딪치고 말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르카디아 자체가 붕괴 될 위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 두 힘을 약화시켜야 하는 거죠." "아르카디아가 붕괴될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신과 천마가 격돌할 거 라고는 생각하기 힘든데요." 난 여전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클로토의 말을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베개 끌어안고 자고 있던 라케시스가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대로 설명해야지 그런 얼렁뚱땅한 말로 넘어가기는 힘들다구. 특히 저 잔머리 많은 녀석 앞에서는." "……." "그럼 설명할게." 그래, 빨리 설명해라. 잔머리 최대한 굴리면서 들어주마. "우선 천신과 천마의 힘이 극한에 이르렀다는 건 사실이야. 극한에 이른 그 두 힘은 반드시 격돌하게 되어 있어. 천마는 가만히 있더라도 천신이 가만히 있지 않거든. 분명 싸움을 먼저 거는 쪽은 십중팔구 천신쪽이야." "……?" 라케시스의 말에 난 잠시 머리가 복잡해졌다. 평상시의 내 생각대로라면 천 신은 신이기 때문에 착한 녀석들이고, 천마는 악마이기 때문에 나쁜 녀석들 이라 먼저 싸움을 거는 쪽은 당연히 천마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천신이 먼저 싸움을 건다고? 왜?" "아, 그건 천신이 천마를 아주 싫어하기 때문이야. 모두 없애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거든. 나도 그 이유는 잘 몰라. 클로토도 천신이긴 하지만 영 관(靈官)이기 때문에 날 그렇게 증오하는 것 같지도 않고. 뭐, 천신이 천마 를 싫어하는 이유는 네가 직접 알아봐야 할거야." 라케시스의 말은 성의 없음의 극치를 치달렸다.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말 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로토가 천신이고 라케시스가 천마라는 말은 처 음 듣는 것이었다. "천신은 천마를 증오할 정도로 싫어한다면서 클로토는 널 죽이고 싶을 정도 로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잔뜩 의심을 품은 난 라케시스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물었고 라케시스는 쯧 쯧하고 혀를 찼다. "내가 방금 설명해 줬잖아? 비록 클로토는 천신이고 난 천마지만 둘 다 영 관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증오심이 없다고." 흘…… 그랬나? 하지만 그 말만 듣고 어떻게 알아들어? "영관이 뭔데 그런 증오심마저 사라지게 하는 거야?" "영관? 간단해. 영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거든. 영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신은 영신관이라 불리고, 영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천 마는 영마관이라 불리며, 영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은 영인관(靈人 官)이라고 불려. 영관은 그렇게 세 명이야." 얼레? 영관이 세 명? 근데 왜 두 명밖에 안 왔다냐? "영인관은 어디 갔냐?"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영인관을 만나려면 네가 직접 아르카디아로 가야해." 흠…… 그런가? 그럼 만날 일은 없겠군. 아차, 지금 그런 걸 물어볼 때가 아니지! ====================================================================== 다시 한번 알립니다. 제 글을 다른 곳에 퍼가시는 분들은 제게 반드시 메일 보내주십시오. 제 허락없이 제 글을 올려놓으신 분들에게는 삭제 요청 메일이 날아갑니다. 그럼. ps 오늘만 오전에 올립니다. 내일부터는 저녁 때 연재가 될 겁니다. ━━━━━━━━━━━━━━━━━━━━━━━━━━━━━━━━━━━ 라이:작가님이신 이상규님의 멜주소는 sakali@unitel.co.kr입니다. 감상과 글에대한 의문사항 등등은 작가님께 직접 보내드려주세요.^^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78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3일 22:07 Page : 1 / 16 [등록자] THEBUR [조 회] 47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장: 강압된 선택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장:강압된 선택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74 게 시 일 :00/08/23 08:18:46 수 정 일 : 크 기 :8.3K 조회횟수 :258 알립니다. 현재 출판된 사이케델리아 1,2부를 홈페이지 등에 올려놓으신 분은 이번주 금요일(8월 25일)까지 반드시 자진 삭제하시기 바랍니다. 설령 제게 허락 메일을 받았다고 해도 출판된 부분이 남아 있을 경우 3부 연재를 불허합니다. 또한 제게 메일 보내지 않으시면 3부 연재를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 "영관이 어떤 존재인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클로토는 천신이 고 넌 천마잖아? 천신과 천마는 서로 싫어한다면서 어떻게 같이 붙어 다녀?" "간단해. 영관들은 따로 떨어져서 생활하거든. 즉, 클로토는 천신의 생활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고 나 역시 천마의 생활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다는 소리 지. 한마디로 우리들은 천신과 천마이면서 동시에 천신도 아니고 천마도 아 닌 존재라는 거야." "……." 라케시스의 그 설명이 결코 이해하기 쉬운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저 멍청하게 라케시스의 얼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현재 클로 토와 라케시스가 서로 미워하지 않으면 그걸로 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뭐 어쨌든 결론은 나보고 천신과 천마를 죽이라는 소리냐?" "바로 그거야." 라케시스는 내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지 내 말에 상당히 기뻐 했다. 하지만 나는 라케시스의 생각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이해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참 단순한 부탁이긴 한데, 나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일을 하라는 거 냐?" 난 라케시스를 쳐다보며 물었고 라케시스는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너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한때 10클래스의 마력에다가 10 써클의 마나를 가지고 있었잖아? 그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해." 얼씨구…… 역시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이 여자는 그런 사실들을 어디서 알아낸 거지? 신이기 때문에 모든 걸 아는 건가? "하나 묻고 싶은데, 어떻게 그런 걸 알았냐?" "응, 그거야 영계의 힘을 통해서 너에 대해 많이 알아봤으니까 그렇지. 너 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게 없다고 보는 것이 좋아." "왜 하필이면 나에 대해서 알아봤냐? 다른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근원적이라 할 수 있는 내 질문에 라케시스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거든." "……?" 뭔 소리여? 무슨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넌 다른 세계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잘 지냈어. 바로 그 점 때문에 난 너를 중용자(中庸者)인 이그드라실(Yggdrasil)로 선택한 거야." "……?" 중용자라던가 이그드라실이라는 말에 난 또 헷갈려야 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우기를 중용(中庸)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라 고 했지만 중용자라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 것이었고, 영어 사전에서 우연히 봤었던 이그드라실(Yggdrasil)은 북유럽 신화에서 우주를 떠받치고 있다는 거대한 물푸레나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케시스가 지금 어떤 의미로 그 두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중용자는 뭐고 이그드라실은 또 뭐냐?" 그 두 단어의 뜻을 라케시스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난 그렇게 물었고, 라케시스는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중용자는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중용자의 다른 말 이 이그드라실이고. 한마디로 네가 우리의 부탁에 따라 중용의 법칙을 실현 하기 위해 아르카디아로 넘어가게 되면 넌 중용자 이그드라실이 되는 거지. 알겠어?" 흘…… 내가 이그드라실이 된다고? 나보고 물푸레나무가 되라는 거냐? 나무 가 되려면 사람이 열 명 필요하다구. 人 + 十 = 木 이라는 엄청난 공식을 성 립시키려면 말이야. "이제 알겠지? 그러니까 넌 중용자가 되어 신과 악마를 패죽이면 돼." 라케시스는 그것이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다. 하지만 나는 중용자 따위가 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라케시스의 말을 붙 잡고 늘어졌다. "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라는 거야? 천신이 이기든 천마가 이기든 그냥 내 비두면 되잖아?" "그냥 두면 인간들도 서로 싸우게 된다고. 천신을 숭배하는 인간들도 있고 천마를 숭배하는 인간들도 있으니까. 넌 인간들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기를 바래?" "그쪽 인간들이 치고 박고 싸우든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그쪽 세계가 망 하면 그쪽이 망하는 거지, 내가 사는 세계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사실 내가 한 마지막 말은 나도 확신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냥 그럴 것 같 은 느낌이 들어서 들먹여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아르카디아라는 세계가 망해도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라케시스의 말에 난 조금 놀랬다. "정말 피해가 없는 거야?" 좀더 확실히 하기 위해 난 라케시스에게 다시 한번 물었고 라케시스는 멍청 하게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래. 아르카디아가 망해도 이곳에는 눈꼽만큼의 피해도 없어." "……." 후후, 그렇군. 전혀 피해가 없단 말이지? 우히히, 우히히히! "그럼 결정됐네. 잘 가라." 난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 세계에 전혀 피해가 없다 고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던 것이다. 난 위험스러운 일을 자처해서 할 정도로 착한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잠깐만요! 권강한님은 정말 아르카디아의 인간들을 그냥 두실 건가요?!"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놀란 클로토가 간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소 리쳤다. 그래서 난 간단하게 한마디만 해주었다. "그냥 죽으라고 해." "……!" 클로토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떴다. 내 말에 엄청난 충격을 먹 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난 내 말을 철회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내 속에서 느껴지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 것뿐이었다. 후후, 나한테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데 내가 그런 미친 일을 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저 여자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얼레? 그러고 보니까 나도 모르게 클로토에게 반말을 해버렸네?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이 미 뱉어버린 말이니까. "권강한."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클로토와는 달리 라케시스는 이미 이럴 줄 알았다 는 표정으로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라케시스가 과연 날 불러 세워서 어 떤 말을 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난 그 자리에 선 채로 라케시스를 말없 이 내려다보았다. 라케시스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달고 날 올려다보며 물음 을 던졌다. "넌 이 세계에서 뭔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있는 일이 있어?" "……!" "이 세계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거야?" "……."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도,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학이 되어서도 집에서 뒹굴고만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없지? 하고 싶은 일도, 해야하는 일도 없잖아? 그런 무의미한 생활보다는 아르카디아로 가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은데?" 역시나 라케시스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의도는 나보고 아르카디아로 가 라는 것이었다. 그런 라케시스의 질문에 난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곧 정색 을 하고 라케시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아르카디아로 가면 뭔가 얻는 게 있는 거냐?" "얻는 거? 당연히 있지. 다른 세계로의 흥미진진한 경험! 멋지잖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라케시스. 라케시스의 그 대답을 듣고 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하하하! 아하하하!" "뭐야? 뭐가 우스운 거야?" 내가 갑자기 웃자 라케시스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크게 웃음으로써 내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정색을 하고 나서 말했다. "다른 세계로의 흥미진진한 경험? 웃기지 마. 뭐가 흥미진진하다는 거야? 결국 중용의 법칙인가 뭔가 실현시키면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고. 그곳에 서 만든 인연 같은 건 모두 꿈인 채로 남는 거란 말이야. 알아? 그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말을 하면서 점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난 필사적으로 노 력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꿈으로 되어버렸던 다른 세계들과의 인연이 생각 나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우울해져 버렸다.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에 화까지 치밀고 있었다. "무서운 거지? 똑같은 경험을 할까봐." 라케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표정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 문에 바로 발길질을 해대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난 생각으로만 라케시스를 발로 걷어찰 뿐이었다. "맞아, 무서워. 또다시 꿈을 꾼 것처럼 되어버리는 경험은 하고 싶지가 않 으니까. 그러니까 나한테 아르카디아로 가라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난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돌리고 내 방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자 리에서 일어난 라케시스가 뒤에서부터 날 껴안고 내 귀에다 속삭였다. "왜 피하기만 하는 거야? 실패했던 그 경험을 살려서 이번에는 완벽하게 중 용의 법칙을 실현하겠다 라고 왜 생각하지 않는 거야?" "시끄러. 내가 말하는 건 임무를 완수한 다음이야.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 결국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져 이곳으로 온다는 것 자체가 싫다고." "그럼 아르카디아에서 살면 되잖아?" "싫어. 난 신이나 악마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그딴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 아." "역시 무신론자답구나." 라케시스는 살짝 웃으면서 몸을 더욱 붙여왔다. 평소라면 당황했을 나였지 만 지금은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라케시스가 의도적으로 그 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을 뿐이었다. 전혀 동요가 없는 내 모습에 라케시스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번 호] 79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3일 22:08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53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장: 강압된 선택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장:강압된 선택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275 게 시 일 :00/08/23 08:19:02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258 "역시 다른 세계로 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은 거구나." "……." "지금까지 내려온 영관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용자로 선택된 사람들은 두 말없이 아르카디아로 넘어왔었어. 다른 세계의 위기를 구한다는 명목이 있었 고, 게다가 다른 세계는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호기심이 중용자들을 아르카 디아로 끌어들였지. 그런데 넌 이미 그런 경험, 아니 그것도 나쁜 경험을 했 기 때문에 아르카디아로 가기 싫어하는 거구나." "……." 난 여전히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라케 시스가 이상하게 되받아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케시스의 말을 듣고 궁금한 점이 떠올라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중용자가 여러 명이었냐?" "그래. 중용의 법칙이 생겨나고 나서 900년간 총 9명의 중용자들이 아르카 디아로 건너왔어." 흠…… 중용의 법칙이 900년이라…… 역사가 참 길군. 근데 900년 동안 중 용자 9명이면 100년에 한 명씩 나타났다는 거냐? 흘…… 중용의 법칙이란 건 100년마다 실현돼야 하는 건가? "900년 동안 중용자가 9명이라는 건 중용의 법칙이 100년마다 주기적으로 실현되어 왔다는 거냐?" 난 라케시스가 내 물음을 비웃지 않게 기도하면서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러나 라케시스는 날 비웃기는커녕 잘 말했다는 듯이 날 더욱 강하게 뒤에서 끌어안으며 답했다. "맞아. 100년을 주기로 천신과 천마의 힘이 강해지거든. 그때마다 중용자들 이 나서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했어. 900년 동안 중용의 법칙이 깨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 만약 중용의 법칙이 한번이라도 깨지면 아마 인간들의 생활 은 신이나 악마와 똑같아질 거야." 인간의 생활이 신이나 악마와 똑같아진다…… 뭐 대충 들어도 별로 좋은 생 활이 될 것 같지는 않구만. 그나저나 아르카디아라는 세계는 상당히 주기적 인 곳 같은데? 정확히 100년마다 천신과 천마의 힘이 극에 이르다니 말이야.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되도록 짜여진 것 같으니까. "그럼 9명의 중용자들은 모두 자기 세계로 돌아갔냐?" "……." 이어진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중용의 법칙이 모두 실 현됐다 길래 중용자들이 모두 안전하게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라고 단순히 생각했던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라케시스의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야, 왜 대답을 안 해? 9명의 중용자들은 어떻게 됐냐니까?" "응…… 그게……." 라케시스는 여전히 대답을 망설였다. 그래서 난 몸을 뒤틀어 라케시스의 마 수로부터 빠져 나온 뒤에 라케시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중용의 법칙을 실현한 중용자들은 모두 어떻게 됐어?"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어요." 라케시스가 전혀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클로토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이미 나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작정한 듯 클로토는 망설이지 않 고 중용자들의 나중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라케시스님의 말대로 중용자는 모두 9명이었습니다. 그 중 5명이 사망했고 1명은 반신불수가 됐으며 1명은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었고, 1명은 오른 손을 쓸 수 없게 되었고, 나머지 1명은 왼쪽 눈 하나를 잃었습니다." "……!" 허걱?! 그렇다면 9명의 중용자 중에서 멀쩡히 살아 돌아간 인간이 단 하나 도 없었다는 뜻이잖아? 그런 위험한 일을 나보고 하란 말이야?! "그렇게 위험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나한테 왜 부탁하러 온 거야?" 난 눈을 부릅뜨고 따지듯이 물었지만 클로토는 아주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 다. "저희들은 반드시 중용자를 데려가야만 해요. 중용자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 주면 오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뿐이구요." "그래? 그럼 나 말고 다른 중용자를 찾아보시지? 난 그런 위험한 일은 하기 싫어." "저도 그러고 싶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 뭐가 늦은 것인지 제대로 의미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클로토와 라케시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클로토의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날 위해 라케시스가 설 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이미 널 중용자로 선택해버렸거든. 어제 널 만났던 건 널 중용자로 선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정하기 위해서였고. 어쨌든 그렇게 중용자 수속 을 마쳤기 때문에 넌 이미 중용자가 되어버렸어." "……!" 허걱?! 이미 날 중용자로 찍었다고라? 누구 맘대로 그딴 짓을 한 거야? 적 어도 본인의 의사 정도는 들어봐야 할 거 아니냐고! "필요 없어. 너희들 맘대로 정한 거니까 난 안 따라." 자신들 멋대로 일을 처리한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난 몸을 돌려 내 방으 로 향했다. 그러나 라케시스는 그런 나를 불러 세웠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는 널 아르카디아로 데려갈 거야. 자발적인 참 여가 어려울 경우 강제로라도 끌고 가는 수밖에." 후후, 날 강제로 끌고 간다고? 내가 아무리 힘이 없다지만 여자 둘에게 끌 려갈 정도는 아니라고! "능력 있으면 끌고 가 보시지?" 난 둘을 비웃으면서 내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때 라케시스의 어떤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무슨 영어 비슷하게 들리는 말이었는데, 어쨌 든 그 폼을 보건대 분명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할 속셈인 것 같았다. 이런, 말도 안돼! 라케시스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니! 그럼 내가 절대 적으로 불리하다고! 난 지금 마법 비슷한 것도 사용할 수 없단 말이야! "……!" 라케시스의 주문이 끝났다고 느꼈을 때 내 몸이 이상하게 뒤틀어졌다. 하지 만 고통은 없었다. 그저 내가 마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라케시스가 거대해져 보였을 뿐이었다. "호호호! 어때? 나의 이 엄청난 솜씨가?" 라케시스는 클로토를 보며 물었고 클로토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하지만 날 한번 쳐다보고는 갑자기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꺄악! 너무 귀여워!"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어느새 거대해져 버린 클로 토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내 몸을 들어올리며 날 자기 가슴에 파묻어 버렸다. "전 쭉 이런 귀여운 강아지를 기르고 싶었어요!" "……?" 얼레? 강아지? 갑자기 왠 강아지? 그나저나 클로토나 라케시스가 저렇게 커 지다니…… 어? 얼라리여? 그러고 보니까 집도 모두 커졌잖아? 혹시…… 나 혼자만 작아진 거야?! "어때? 권강한씨. 강아지가 되신 기분이?" "……?" 클로토의 가슴속에 파묻혀 있는 날 내려다보며 라케시스는 묘하게 웃었다. 그래서 난 내 팔을 들어 쳐다보았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털이 잔뜩 나 있는 짧은 팔이었다. 꼭 강아지 다리처럼 생긴 팔이었다. "자,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봐." 내 다리가 이상하게 변했음을 보고 황당해 하고 있던 나에게 라케시스가 손 거울 하나를 내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래서 난 볼 수 있었다. 두 귀는 쫑긋 하고 하얀 털이 복실복실 나 있는 강아지 한 마리를. "……?!" 설마…… 저 거울 속에 있는 강아지가…… 나?! "어때? 네가 봐도 너무 귀엽지? 이런 귀여운 강아지로 만들어 줬으니까 조 금은 감사하라구." 라케시스…… 감히…… 날 강아지로 만들어 버렸다는 거냐? "왕왕왕!!!" 난 큰소리로 라케시스를 향해 욕을 퍼부으려 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오 는 목소리는 강아지 짖는 소리일 뿐이었다. 그런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난 내가 정말로 강아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어머, 짖는 소리도 귀엽네? 역시 넌 사람보다는 강아지로 사는 게 더 어울 려." "크르르……!" 득의의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는 라케시스를 보면서도 난 그저 으르렁거리 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라케시스는 클로토의 품속에서 날 끄집어 낸 뒤 에 날 들어올리고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난 라케시스에게 어서 본래 의 내 모습으로 돌려달라는 뜻으로 낮게 으르렁거리며 라케시스의 얼굴을 노 려보았기 때문에 우리 둘은 잠시 대치 상태를 이루었다. 하지만 으르렁거리 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들어가는 일이라 난 결국 으르렁거리는 것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 없이 라케시스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꺅! 너무 귀여워!!!" "……!" 내가 표정을 풀자마자 라케시스는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막 비벼댔다. 완 전 무방비 상태에서 습격을 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 었다. 흐…… 내가 강아지로 되어버리다니…… 기가 막혀서 강아지 짖는 소리밖에 안 나오는군. 뭐 그래도 날 불독 같은 개로 만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해 야 하나? ======================================================================== 한번 더 알립니다. 이번주 금요일까지 반드시 출판 부분을 자진 삭제하십시오. 그럼. ps 저녁에 올린다고 했는데 또 아침에 올리는군요. 내일은 반드시 저녁에...^^; ━━━━━━━━━━━━━━━━━━━━━━━━━━━━━━━━━━━ [번 호] 80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4일 22:08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46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2장: 강압된 선택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2장:강압된 선택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04 게 시 일 :00/08/24 20:23:44 수 정 일 : 크 기 :10.5K 조회횟수 :117 "자, 건강한 강아지 님. 이제 선택하세요. 우리와 같이 아르카디아로 가시 던가, 아니면 평생을 그런 강아지 모습으로 사시던가."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라케시스의 얼굴을 보 고 있자니 한번 확 긁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리가 닿지 않 아서 관두었다. "어떻게 할거야? 그냥 이대로 강아지인 채로 살 거야?" 시끄러. 빨리 내 원래모습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른다고. 어서 원상복귀 시켜주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음…… 정말 아르카디아로 가기 싫어하는가 보네? 그럼 어쩔 수 없지. 평 생을 강아지로 살도록 하라구. 우린 이만 가볼 테니까 집 잘 지켜, 강아지야∼" 라케시스는 그렇게 말하며 날 놓아주고는 클로토에게 어서 나가자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러자 클로토도 정말 갈 생각인 듯 라케시스를 따라 밖으로 나 가려고 했다. 그래서 난 즉시 둘을 향해 짖어댔다. "왕왕!" 그런 날 보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던 라케시스가 고개를 돌리며 묘한 웃음을 떠올린 채 날 보고 물었다. "어머? 왜 그러니 강아지야? 누나들이 떠나는 게 싫어?" 크으…… 내가 저 날라리 같은 여자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언젠가 기회가 나면 정신 교육을 똑바로 시켜서 그 썩어빠진 정신을 바로잡아주겠어 ……!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보기로 할까?" 라케시스는 여전히 묘한 웃음을 입가에 달고 거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날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말을 못하는 나에게 말을 시키기 위해 자기 맘대로 두 가지의 강아지 행동 규약을 정했다. "만약 우리와 함께 아르카디아로 가고 싶다면 꼬리를 흔들고, 그냥 강아지 인 채로 살고 싶다면 고개를 좌우로 저어. 알아들었지?" "……." 그래, 아주 잘 알아들었다. "자, 결정의 순간입니다. 과연 강아지 님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라케시스의 말이 끝난 순간, 난 그 둘 중에서 하나의 선택을 했다. 내가 선 택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라케시스의 얼굴에는 기쁨의 물결이 번졌다. "역시, 강아지 님의 선택은 탁월하군요!" 흐…… 탁월하긴 뭐가 탁월하다는 거야? 사상 최악의 선택이야……. "약속은 받았으니까 이제 본래 모습으로 돌려줄게." 라케시스는 당연한 말을 마치 선심 쓰는 것처럼 말하고는 이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주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내 몸이 또다시 변화했다. 커 보였던 라케시스가 나만해진 것을 보면 원래대로 돌아 온 것 같았다. "자, 거울. 확인해봐." 난 라케시스가 준 거울을 받아들고 내 얼굴을 비추어보았다. 다행히 거울에 비치는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었다. 확실하게 원상복귀 되었음을 확인한 나 는 라케시스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그저 묘하게 웃고 있을 뿐이 었다. 흘…… 강압에 의한 약속을 꼭 지킬 필요는 있나? 모르겠군. 지키고 싶지는 않지만 어쨌든 약속은 했으니까 지킬 수밖에.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겠 지? "하나 물어보자." "뭔데?" 내 진지한 표정에 라케시스는 물론 어느새 다시 돌아온 클로토도 의아한 표 정을 지었다. 난 그 두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질 문을 던졌다. "날 순식간에 강아지로 만들 수 있을 정도면 상당한 실력 아니야? 차라리 아무런 힘도 가지지 않은 중용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보다는 너희들이 직접 나서는 게 더 낫지 않아?" "아……." 내 질문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라케시스는 호호 하고 역겹게 웃었다. 라케시 스가 계속 웃기만 하자 클로토가 내 질문에 대신 대답해 주었다.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저희들의 힘이 유효해질 수 있는 상대는 오 직 중용자뿐이니까요. 중용자에게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요." "……?" 에? 그게 무슨 소리냐? 요즘 공부를 하도 안 했더니 이해력이 부족해져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내가 알기 쉽게 설명해주지!"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웃기만 하던 라케시스가 직접 나섰 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들의 힘은 오직 너한테만 유효하다는 거야. 너 이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마술을 걸 수가 없다는 뜻이지. 결국 우리들은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소리야. 알아들었겠지?" 흠…… 그랬나? 하여간 우습군. 자기 멋대로 날 강아지로 만들 수 있으면서 아무런 힘이 없다니. 결국 중용자는 저 두 여자, 그러니까 영신관과 영마관 의 일꾼이란 소리군.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봐야지. "하나 더 물어보자." "이번에는 어떤 질문?" "간단한 질문이야. 내가 아르카디아로 가게 되면 이곳의 시간은 어떻게 돼?" 난 평상시와 같은 어조로 물었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 었다. 라케시스나 클로토의 대답에 따라 이곳에서의 내 인생이 완전 작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물론 이곳의 시간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아 르카디아의 시간을 훨씬 빠르게 지나가도록 하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이곳의 시간이 1초 흐를 때 아르카디아의 시간은 1일이 지나가거든? 그렇게 계산하 면 이곳 시간으로 6분이 흐르면 아르카디아는 1년이 흐른다는 소리야." 라케시스는 친절하게 예까지 들어가면서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난 일단 안 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에 대한 걱정은 별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으 니까. 하지만 라케시스의 설명을 듣고 나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아르카디아의 시간을 훨씬 빠르게 지나가도록 한다니? 그 소리는 누가 시 간을 맘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예리하구나! 역시 중용자다운 예리함이야!" "……." 흘…… 갑자기 녀석이 왜 날 칭찬하는 거냐? 닭살 돋을려고 그래……! "맞아. 원래 아르카디아의 시간도 이곳과 똑같이 흘러. 하지만 중용자가 건 너온 뒤부터는 영계에서 아르카디아의 시간을 빨리 흐르도록 하지. 물론 아 르카디아 안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느끼지 못해. 계속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는 지구 위의 인간들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야." 흠…… 영계에서 시간의 빠르기를 조절한다라…… 역시 아르카디아를 지배 하고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가 보군. 근데 라케시스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또 궁금증이 생겼는데? 어쩔 수 없이 한번 더 물어봐야겠군. "물어볼 게 또 생겼는데." "또?" 연속되는 내 질문에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내가 질문하지 못하도록 막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중용자로서 아르카디아에 가 기로 결정한 이상 최대한 내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인 듯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이곳 세계에 대해서 아는 거야? 버스라든지 지구의 자전 이라든지 그런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그거? 당연히 영계를 통해 알아낸 거야. 이번 중용자 후보로 여러 명이 영 계에서 뽑혀졌고, 그 여러 명의 중용자 후보 중에서 난 너를 중용자로서 결 정한 거지." 흘…… 라케시스가 날 중용자로 뽑았다고라? 결국 그 소리는…… 이 모든 음모의 시작이 라케시스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군. 역시 위험한 여자야……. "뭐 좋아.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하지." "마지막 질문?" 마지막이라는 말에 라케시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난 그런 라케시스를 쳐다보며 마지막인 것처럼 질문을 던졌다. "왜 중용자를 다른 세계 사람으로 결정하는 거야? 아르카디아에 사는 사람 은 안 되는 거야?" "아, 그거야 중용을 지키기 위해서지. 아르카디아 내의 사람은 대부분 천신 과 천마 둘 중의 한쪽 편일 가능성이 크거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사 람으로 중용자를 결정하는 거야." 흠…… 그런가? 하지만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중용을 지킬까? 뭐, 지금까지 중용의 법칙이 잘 지켜졌다고 하니까 문제없었겠군. 후후, 그 렇다면 내가 최초로 중용의 법칙을 깨부수는 인간이 되어줄까? "자, 그럼 이제 질문은 모두 끝난 거지?" 라케시스는 얼굴 한가득 '또 질문하면 죽여버리겠다'라는 미소를 떠올리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우선 일차적인 질문이 모두 끝났음을 알렸다. 그것을 모르는 라케시스는 그저 질문이 끝났다니까 굉장히 좋아했다. "좋아, 그럼 지금 당장 아르카디아로 가자!" "……!" 엑? 벌써 간다고? 적어도 떠날 준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당장?" 난 라케시스를 보며 되물었고 라케시스는 크게, 그것도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지금 당장!" "……." 흘……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근데 어떻게 가려고?" "그냥 우리 뒤를 따라오면 돼." 그렇게 말한 라케시스는 즉시 클로토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난 현관을 나서는 두 여자의 모습을 뒤에서 잠시 지켜보다가 내 집 내부를 한번 훑어보 았다. 이제 곧 이 집을 또다시 떠나게 되는 것인데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 다. 흘…… 실감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한 건가? 갑자기 이상한 여자 둘이 찾아와 서 협박을 통해 날 이상한 곳으로 끌고 가는 거니까 말이야. 혹시……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야, 권강한! 빨리 안 따라오면 이번엔 바퀴벌레로 만들어 버린다?!" 흐…… 꿈일 리는 없겠군……. "알았어!" 난 밖에 나가있는 라케시스에게 소리를 한번 질러준 다음에 즉시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물론 열쇠로 문을 잠그지는 않았다. 이유야 간 단했다. 지금 난 집 열쇠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문을 잠가버리면 나중에 돌 아왔을 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어서 가자, 어서 가!" 내가 밖으로 나오자 라케시스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날 끌고 갔다. 아무래도 아파트 밖으로 나갈 생각인 것 같아서 즉시 물어보았다. "어디로 가?" "잠자코 따라오라구." 한마디로 내 질문을 일축해버린 라케시스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자 즉시 날 끌고 안으로 들어가 1층 버튼을 눌렀다. 클로토도 이미 우리와 함께 엘리베 이터 안에 탔기 때문에 난 심심해서 닫기 버튼을 눌러보았다. 역시 닫기 버 튼은 제대로 작동하여 엘리베이터 문이 즉시 닫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력 낭비라는 이유로 닫기 버튼을 아예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는데, 어 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작동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은 전력 낭비 좀 해볼 겸 열심히 닫기 버튼을 사용해 주고 있었다. 하…… 그나저나 마음이 싱숭생숭하구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모두 가짜 같단 말이야…… 금방이라도 꿈에서 깨어날 듯한 느낌 ……. 띵동- 《1층입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라케시스는 아파트 밖으로 날 끌고 나왔다. 주 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면 당장 라케시스를 들이받을지도 몰랐다. 남자가 여자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쪽 팔림의 극치였으니까. "자, 여기야!" 라케시스가 날 끌고 데려온 곳은 아파트 가까이 있는 골목 한 구석탱이였다. 하지만 그 구석에는 무슨 특별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난 라케시스에게 물었 다. "여기서 어떻게 간다는 거야?" "호!호! 잠자코 지켜보기나 하라구." 역겨운 웃음소리를 낸 라케시스는 아무 것도 없는 골목을 향해 손을 휘저었 다. 그러자 아무 것도 없었던 골목 바닥에 금색의 마법진이 나타났다. 둥근 테두리 안에 아주 복잡한 도형이 그려져 있는 전형적인 마법진. 흘…… 마법진이 뭐 저렇게 복잡하다냐? 복잡할수록 괜히 멋져 보이긴 하지 만…… 마법진 외우는 거 귀찮다고 마법진을 간단하게 만들었던 마이크로 스 피어 녀석이 그립군. "어서 가자." 내가 멍하니 마법진을 쳐다보자 라케시스는 날 끌고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 다. 처음 들어갔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클로토가 뒤따라 들어오고 나서 는 마법진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빛은 강렬해져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흠…… 이제 아르카디아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 거냐? 그런데 간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니까. 흘…… 그나저나 그곳에 가면 뭐 먹을 거 주나? 설마 나무 뿌리를 캐서 먹고 나뭇잎을 이불 삼아 잠을 자 라는 건 아니겠지? 그러기만 해봐…… 중용의 법칙이고 뭐고 없을 테니까. [번 호] 81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4일 22:09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52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장: 아르카디아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장:아르카디아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05 게 시 일 :00/08/24 20:24:04 수 정 일 : 크 기 :5.8K 조회횟수 :102 <제 3 장> 아르카디아(Arcadia) "자, 다 왔어!" 빛이 내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고 나서 대략 30초 후, 라케시스의 목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난 지체없이 사방을 살폈다. 그런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나무였다. "……?" 뭐냐? 나무밖에 없네? 그렇다는 여기는…… 숲?! "어때? 아르카디아를 본 소감이?" 싱글싱글 웃으며 묻는 라케시스를 노려보며 난 입을 열었다. "왜 숲이냐? 난 숲이 싫단 말이야." "그래? 왜 싫어? 공기도 맑고 좋잖아?" "시꺼. 싫다면 싫은 줄 알라고. 근데 왜 하필이면 숲에다 마법진을 만든 거 야? 다른 좋은 곳도 많잖아?" 난 따지듯이 물었다. 말 그대로 숲이 싫었기 때문에 있는 것조차 거북했다. 그런 날 보고 라케시스는 의아해했다. "숲이 싫어? 이상하네? 넌 숲을 싫어할 만한 경험은 하지 않았잖아?" "이상한 거 묻지 말고 왜 숲을 선택했는지 바른 대로 불어." 난 라케시스의 말을 자르며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나 라케시스는 계속 의아 해할 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클로토가 대신 했다. "간단한 이유예요. 숲이라면 사람들이나 천신, 천마의 눈에 띄지 않으니까 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왜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이상하게도 클로토는 쉽게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왠지 대답하기 꺼려하는 눈치라 괜시리 불안해졌다. 그래서 난 라케시스를 쳐다보며 어서 대답하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런 내 무언의 압력을 느꼈는지 라케시스는 어깨를 으쓱 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 별거 아니야. 그냥 중용자는 좋은 사냥감이라는 소리니까." "……?" 중용자가 좋은 사냥감이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중용자를 끓여먹 으면 무병장수 한다라는 이상한 소문이 아르카디아 전체에 퍼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좋은 사냥감이라는 게 무슨 뜻이야?" "에…… 그러니까 중용자는 항상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훔쳐다가 팔면 비싸게 받을 수 있거든. 이 세상에는 없 는 것일 테니까 말이야. 그래서 중용자를 노리는 사람도 있다는 소리야." 라케시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도 사실을 은폐하려는 기미가 엿보여서 확실히 추궁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어차피 이곳에 건너와 버린 것,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먹 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사방을 둘러보아도 나무 밖에 보이지 않는 숲을 잠시 쳐다보다가 난 라케시 스와 클로토에게 목적지를 물었다. 내가 다른 질문을 하자 클로토는 하마터 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내 질문에 대답했 다. "영인관(靈人官)이 있는 곳으로 갑니다." 영인관이라…… 영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영인관은 여자냐 남자냐? 영신관과 영마관이 모두 여자인 것으로 봐서는 영 인관도 여자일 거라는 느낌이 드는 걸? "그럼 어서 가자구." 난 둘을 재촉했다. 어서 가서 영인관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내 예상뿐이긴 했지만, 영인관은 여자이고 그것도 아주 미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역시, 이미 두 번 다른 세계로 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금방 이 상황에 적 응하는구나." 라케시스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그런 말을 했다. 혹시라도 내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쳐 날뛸 것을 걱정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라케시 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놀렸다. "아직 난 적응 못했어. 이곳이 정말 아르카디아인지도 모르고. 단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으니까 그럴 뿐이야." "그게 적응이지. 아, 잊어먹을 뻔했다!" "……?" 갑자기 라케시스는 무엇인가가 떠오른 듯 내 양어깨에 자기 손을 척하고 올 려놓더니 안 어울리게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넌 앞으로 중용자 이그드라실이야. 알겠지?" "……."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리면 안돼. 중용자에게 협조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비협조적인 사람들도 있으니까. 어쨌든 네 이름은 앞으 로 '이드'니까 잊어먹지마." 얼레? 이 세계에 와서도 내 이름을 갈아치워야 하는 거야? 흘…… 미치겠군 ……. "자, 네 이름이 뭐라구?" 라케시스는 날 어린 아이 취급하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래서 난 아주 어 른스럽게 대답해 주었다. "시끄러." "시끄러? 네 이름이 시끄러야?" "안 웃겨." "아, 그럼 네 이름은 앞으로 '안 웃겨'로 할게." "……." 왠지 라케시스하고 대화 나누는 것이 내 정신 연령을 떨어뜨리는 짓 같이 느껴져……. "하여튼 앞으로 난 널 '이드'라고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뭐, 다른 사 람들에게 이름 알려줄 때는 아무 이름이나 말해도 상관없어." 한마디로 현재 내 이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을 강조한 라케시스는 다시 한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이드, 지금 이 세계의 마나가 느껴져?" "……?" 이 세계의 마나? 흠…… 그러고 보니 이 세계에도 마나가 있었다고 했지. 과연 이곳의 마나는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왠만하면 내가 느꼈었던 마 나라면 좋겠는데……. "지금부터 느껴볼게." "그래? 그럼 느껴봐." 라케시스는 아주 기대하는 표정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도 라케시스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집중하는데 방해되니까 떨어져." 그러나 라케시스는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 집중하는데 무슨 거창하게 하려고 그래? 중용자라면 아무리 시끄러 운 곳이라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구. 아, 설마…… 너 나한테 반해서 집중 할 수 없는 거야?" 흐…… 차라리 말을 말자……. "……." 난 여전히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뚫어져라 날 쳐다보는 라케시스를 무시 한 채로 이 세계의 마나를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처음엔 라케시스의 몸 에서 나는 묘한 향기 때문에 집중을 잘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 코가 마비된 후부터는 쉽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음…… 이거 잘 안 되는데? 역시 내 세계로 돌아오고 나서부터 마나를 느끼 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가? 뭐 상관없어. 반드시 이곳의 마나를 섭렵해서 최 강의 마법사가 될 테니까! "……!"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내 몸은 흠칫하고 떨렸 다. 지금 난 이 세계의 마나를 느낀 상태였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몸을 흠칫하고 떤 것은 아니었다. 이곳의 마나가 내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 에 경악해 버린 것이다. ======================================================================= 흘... 생각보다 분량이 적은...ㅡㅡ; 낼... 올릴 수 있을까...-.-;; ━━━━━━━━━━━━━━━━━━━━━━━━━━━━━━━━━━━ [번 호] 82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5일 22:05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48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장: 아르카디아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장:아르카디아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21 게 시 일 :00/08/25 20:37:52 수 정 일 : 크 기 :7.7K 조회횟수 :81 "왜 그래? 어디 아퍼?" 내가 갑자기 몸을 떨었기 때문인지 라케시스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 며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난 우선 눈을 떠 라케시스를 쳐다보았다. 그 런 나를 라케시스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 난 라케시스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마나는 거미줄이냐?" "응?" 갑작스런 내 질문에 라케시스는 당황했다. 그러다가 내 질문이 무엇을 뜻하 는지 알아채고는 놀란 얼굴을 했다. "벌써 마나를 느낀 거야? 역시 중용자다워!" 라케시스의 말을 통해 내가 느낀 마나가 이곳의 마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 었다. 그러나 이곳의 마나가 내 생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다시 눈을 감고 마나를 느껴 보았다. "……!" 역시…… 이곳의 마나는 무슨 거미줄처럼 허공에 퍼져 있구만. 으…… 이건 완전히 거미줄에 걸린 상황인데…… 그런데도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건 이상하단 말이야? 그나저나 난 왜 항상 마나의 성질이 다른 세계만 가는 거 지? 흘…… 이곳 세계의 마나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꽤나 걸리겠군……. "느껴지는 거지? 마나회로(Mana回路)가?" 라케시스의 물음에 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세계의 마나가 마나회로라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확실히 그 말대로 이곳의 마나는 마치 전기 회로처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껴져. 그런데 이 마나회로 때문에 인간들이 사는 이 땅을 회로계(回路界) 라 부른다고 했던가?" "맞아. 이 마나회로 때문에 천신이나 천마가 이 땅에 내려오길 꺼려하게 되 었으니까." "……?" 얼레? 이 마나회로 때문에? 음…… 이 마나회로가 거미줄처럼 온 허공을 뒤 덮고 있어서 천신이나 천마가 내려오면 거미줄에 곤충 걸리듯이 걸려버리는 건가? "왜 꺼려하는데?" "아, 마나회로가 있으면 천신이나 천마는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든. 오직 사용할 수 있는 건 육체적인 힘밖에 없어. 하지만 능력에 전적 으로 의지하는 천신과 천마가 육체적인 힘이 있을 리 없지." 음…… 그런가? "게다가 이곳에 내려와서 죽게 되면 다시는 부활할 수 없거든." "……?!" 에엑? 부활이라고라? 그건 또 무슨 소리여? "부활이라니?" "말했었잖아. 천신계와 천마계는 자체적으로 영혼을 처리한다고. 그것을 바 꾸어 말하면 죽은 영혼을 살려낼 수 있다는 소리야." 허거걱?! "그런데 마나회로가 깔린 이 세계의 영혼은 명계에서 모두 처리하고 있어. 즉, 아무리 천신과 천마라 하더라도 이곳에서 죽으면 그 영혼이 명계로 가버 리기 때문에 다시는 살려낼 수가 없다는 소리지." 라케시스는 내가 놀라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열심히 입을 나불댔다. 그 래서 난 급히 라케시스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천신하고 천마가 다시 살아나? 그럼 내가 녀석들을 죽여도 소용없다는 소 리잖아!" 내가 길길이 날뛰자 라케시스는 장난치듯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아니야. 중용자만이 천신계와 천마계에서 유일하게 천신과 천마를 죽 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 부활 같은 건 전혀 생각할 필요 없어." 음…… 그런가? 뭐 중용자의 힘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얼레? 잠깐만! "근데 그 소리는 내가 천신계와 천마계로 직접 가야 한다는 거야?"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어차피 천신이나 천마는 회로계에 잘 안 오려고 하니까." 흐…… 천신하고 천마를 해치우기 위해서 그리로 가야 한다니…… 차라리 녀석들 보고 이리로 오라고 해서 단번에 끝을 보는 게 낫겠다! 도대체 나보 고 무슨 수로 천신계나 천마계에 가라는 거야? "자자, 나머지 얘기는 영인관에게서 듣기로 하고 우선 해 떨어지기 전에 이 숲을 빠져 나가자구." 내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라케시스는 어떤 한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살펴도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숲 속인데도 전혀 망설임 없이 걷는 라케시스가 존경스러웠다. 아니지, 혹시 방향도 모르고 무작정 걷는 거 아니야? 라케시스 녀석의 신뢰 도를 봐서는 지금 제대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할 수가 없어. 불안해 ……. 찌르르르― 삐익 삐익― 나무 사이로 비춰지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난 앞장서고 있는 라케시스와 클로토를 따라 걸었다. 햇살이 뜨겁고 날씨도 꽤 더운 것으로 봐서는 여기도 여름인 것 같았다. 흐…… 더워 죽겠군. 지금 10분 정도 걸었나? 오랜만에 걸었더니 다리에서 쥐가 나려고 그래. 아…… 쉬고 싶어…… 누가 나에게 시원한 물 좀 줘……! "다 왔어! 바로 저기야!" 방금 전까지 헤롱헤롱 했던 나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적지에 도 착했으니 이제 마실 것을 얻어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런 내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 호∼ 마을이군. 근데 마을이 작은 걸? 구릉 지대에서 밭농사를 하는가 보네? 그나저나 죄다 벽돌 대신 나무로 집을 지었군. 뭐 산간 지역이라서 그런 건 당연하겠지. 근데…… 왠지 과학이라고는 전혀 발달되지 않은 곳 같은데? 중 세 시대 냄새가 팍팍 풍겨……. "영인관의 기운은 저 건물 안에서 느껴져요." 마을 입구에 선 클로토가 어떤 한 건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가 리킨 건물은 이 마을에서 가장 크고 좋아 보이는 2층 짜리 집이었다. 얼∼ 꽤 부유한 집에서 산다고 할 수는…… 없겠군. 마을이 구릉 지대에 조 그맣게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마을에 부유층이 살고 있다는 소리는 아닐 테니 까. 그래도 영인관이라는 사람은 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에서 사는 것 같은데? "……." 나와 라케시스, 그리고 클로토는 영인관이 있는 건물 쪽으로 말없이 걸어갔 다. 그 건물까지 가는 동안 밭에서 농작물을 돌보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타지 사람이 이 마을로 들어온 적이 별 로 없어서 우리를 경계하는 듯했다. "클로로, 이 안에 영인관이 있단 말이지?" 그 건물 문 앞에 선 라케시스는 재차 확인하듯 클로토에게 물었고, 클로토 는 클로로라고 불려서 기분이 나쁜지 약간 눈썹을 떨고 나서 대답했다. "네." "좋아, 그럼." 똑똑똑- 라케시스는 가볍게 노크를 했다. 그러자 곧 안에서 하녀로 보이는 어떤 젊 은 여자가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누구시죠?" "……!"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건물 안에서 나온 여자의 말은 거의 영어와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첫마디만 들어서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영어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곳에 영인관 아트로포스(Atropos)가 있다고 들어서, 만나려고 왔어요." "……!" 라케시스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이곳의 말이 대략 어떤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의 언어는 주로 영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존 대어 같은 것이 섞여 있어서 꽤 복잡했다. 그러나 난 그 말을 이번에도 쉽게 알아듣고 있었다. "영관이신가요?" 젊은 여자의 물음에 라케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내 생각과는 달리 젊은 여자는 쉽게 우리들을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집안은 상당히 넓은 편이었다. 그리고 우리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던 여자를 비 롯하여 몇 명의 하녀들이 집안을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부잣집이 라 할 수 있었다. "영관이십니까?" 그때 젊었을 때 운동 좀 했을 것 같은 50대의 흑발 중년 남자와 갈색 머리 를 말아 올린 40대의 중년 여자가 우리 앞에 나타나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비록 보석 같은 것이 옷에 달려 있지는 않았지만, 둘이 입은 옷과 하녀들이 입은 옷을 비교해 봤을 때 저 두 사람이 이 집의 주인일 것이라는 느낌은 팍 팍 들었다. "그래요. 아트로포스는 어디 있죠?" 라케시스는 대뜸 본론부터 말했다. 그러나 이 집주인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 에 2층 계단 쪽에서 한 소녀가 천천히 내려왔다. 갈색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 린 17세 정도의 소녀였는데, 클로토와 비슷하게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 다. 단지 손까지 장갑으로 가린 클로토와는 달리 소녀는 손에 아무 것도 끼 고 있지 않아서 그녀의 하얀 손이 잘 보였다. "제가 영인관 아트로포스입니다." 영인관 아트로포스라는 소녀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주 무표정하 게 입을 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듯이 소녀의 얼굴은 클로토와 라케시스 못지 않게 아름다웠으나 얼굴이 하얗고 지나치게 무표정해서 어떻게 보면 섬 뜩함마저 불러 일으켰다. 그래도 예쁜 건 예쁜 거였다. "어머, 예쁘게 생겼네? 영계에서 예쁜 여자만 영관으로 뽑았나 보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당연히 라케시스 말고는 없었다. 어쨌든 클로토는 라 케시스의 말을 듣고 쑥스러운 듯이 약간 얼굴을 붉혔으나 아트로포스는 그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단지 자기 할말만 할뿐이었다. "세 분께서는 제 방으로 오세요." 그리고는 다시 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쌀쌀함이 지나쳐 괴기스러움마저 느껴질 정도의 행동이라 난 왠지 귀곡산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번 호] 83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5일 22:05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63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장: 아르카디아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3장:아르카디아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22 게 시 일 :00/08/25 20:38:16 수 정 일 : 크 기 :7.1K 조회횟수 :71 "어쨌든 올라가자." 라케시스는 나와 클로토를 이끌고 아트로포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갑 자기 집안에 이방인이 들어왔는데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이 집 사람들을 보며, 난 또다시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 흐…… 이런 분위기의 집은 싫단 말이다…… 설마 이 집에서 귀신이 튀어나 온다던가, 이 집의 사람들이 모두 귀신이라던가 하는 이상한 전개는 되지 않 겠지? 으…… 그런 건 생각만 해도 무서워……! 끼이- 아트로포스가 들어갔던 방문을 라케시스가 열었고, 난 라케시스의 등뒤에 숨어서 방안을 살펴보았다. 방 내부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상당히 깔끔했다. 하지만 화장품 종류는 전혀 쓰지 않는 듯 방 어디에도 화장품이 보이지 않았 다. 그렇게 화장품이 없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난 아트로포스가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얼레? 그럼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화장을 했나? 음…… 얼라라, 둘 다 했구 나. 얼핏보면 화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를 정도인데? "여기 앉으세요." 이미 방 중앙에 놓인 원형 탁자에 앉아 있던 아트로포스는 우리들에게 자리 를 권했다. 탁자에는 의자가 정확히 3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아트로포스는 이미 우리들 셋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듯했다. "방이 참 깔끔하네? 이렇게 청소하려면 힘들텐데?" 라케시스는 아트로포스의 오른쪽 옆에 앉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리고 클 로토는 아트로포스의 왼쪽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아트 로포스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자리를 잡고 나 서야 아트로포스는 라케시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별로 힘들지 않아요. 방이 더러워질 일이 없으니까요." "설마 아트로포스님은 직접 방을 청소하시는 건가요?" 아트로포스의 대답을 들은 클로토가 놀라 물었다. 처음엔 클로토가 왜 그런 질문을 하나 의아해했던 나는 이 집에 하녀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서 클로토의 질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녀가 있는 집의 딸, 물론 아트로포스 가 이 집 딸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만 꽤 귀하게 자란 것 같은 소녀였기 때문에 자신의 방을 자신이 직접 청소한다고는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방 청소는 제가 해요. 그리고 아침 식사는 항상 제가 마련합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그런 일은 자신이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말에 클로토는 놀라워하며 또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렇다면 빨래도 직접 하시나요?" "네. 제 옷은 제가 빨고 있습니다." "……!" 아트로포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지만 우리들은 모두 놀라버렸다. 아무리 봐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랐을 것 같은 소녀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아트로포스의 애칭은 뭐야?" 여전히 놀라고 있는 나와 클로토와는 달리 라케시스는 금방 제 정신을 차리 고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날렸다. 그 질문에 아트로포스는 금방 대답했다. "'로스'입니다. 부모님께서 절 부르실 때 애칭이에요." "응, 로스. 그럼 로스는 이 집 딸이겠네?" "네." 흘…… 역시 딸이군. 그런데 왜 자기 방을 자기가 청소하고 게다가 아침 식 사도 마련하고 빨래도 하는 거지? 보통은 하녀에게 죄다 시키는데? "역시 중용자를 바로 옆에서 보살펴야 하니까 그런 것을 미리 배웠구나?" "네." 라케시스의 물음에 대답한 아트로포스의 말에 난 크게 놀랐다. 아트로포스 가 날 바로 옆에서 보살핀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즉시 라케시스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옆에서 보살핀다니? 너희들은?" "아, 아직 말 안 했구나!" 그렇게 전혀 도움 안 되는 감탄을 터트린 라케시스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 을 했다. "회로계에서 나와 클로로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잘못해서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영인관이 네 곁에서 널 보살펴주는 거야." 흘…… 지금 그걸 이유라고 대는 거냐? "그럼 영인관은 여기 있으면 안 죽냐?" "뭐, 죽겠지." "근데 왜 영인관만 남기고 너희들은 간다는 거야?" "어머나, 언제 우리가 간다고 그랬어? 우리는 단지 천신계와 천마계에서 널 지켜볼 뿐이라구." "그게 그거잖아." "그게 그거라니? 우리가 회로계에 있으면 너만 부담스러워 진다구! 우리들 을 모두 지켜야 한단 말이야! 아직 힘도 없는 네가 그럴 능력이 있어?!" 라케시스는 막 화를 내며 날 구석으로 몰아 세웠다. 하지만 난 라케시스의 말에 수긍할 수 없었다. 아직 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명해준 적이 없잖아. 내가 중용자로서 뭘 해야 하는지." 난 무게를 있는 대로 잡으며 라케시스를 반격했다. 그러나 라케시스는 몇 마디의 말로써 내 반격을 피해버렸다. "그건 아트로포스가 전부 설명해줄 거야. 그렇지, 로스?" "그래요. 그것이 제 임무입니다." 크…… 아트로포스마저 수긍해 버렸으니 라케시스를 몰아세울 방법이 없군 …… 왠지 라케시스에게 말빨로 밀린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럼 이제 영신관과 영마관의 역할은 끝났어. 로스, 뒤를 부탁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케시스는 클로토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 작스런 행동이라 내가 황당해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는 뒤를 잘 맡겠다는 뜻으로 '네'라고 대답했고 그 대답을 들은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유유히 방을 나가버렸다. 끼이- 쿵! 문이 다시 닫힌 후에서야 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둘을 따라잡기 위 해 급히 몸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의 싸늘하기조차 한 말에 몸이 굳어져 버렸다. "자리에 앉아 계세요." "……!" 으…… 엄청나게 찬바람 쌩쌩 부는군. 저 말을 들으니 차마 일어날 수가 없 어. 왠지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린 듯한 느낌이……! "라케시스님과 클로토님은 이미 그분들의 세계로 돌아가셨습니다. 중용자님 께서는 이곳에 남아 제 말을 듣도록 하세요." "……."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아트로포스의 말에 난 그저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 다. 내가 그렇게 얌전히 있자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흘…… 왠지 심문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권강한." 에…… 근데 저 소녀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나? 음…… 확실히 나보다 나이 가 어려보이니까 굳이 존댓말 같은 것은 쓸 필요 없겠지? 어차피 라케시스하 고 클로토에게도 말 놓고 있으니까 상관없겠군. "권강한님…… 아르카디아의 이름과는 너무 다르군요. 죄송하지만 이름을 바꿔야 하겠어요." "아, 그래서 라케시스가 '이드'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이드…… 그럼 앞으로 이드님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이드라고 부르든 애들이라 부르든 어차피 가짜 이름이니까 상관 없어. "이미 들으셨겠지만 제 이름은 영인관 아트로포스, 로스라고 부르시면 됩니 다." 역시나 아트로포스는 자신의 소개를 지극히 딱딱하게 했다. 어쨌든 아트로 포스가 내게 할말이 많은 것 같아 보여서 난 잠자코 가만히 앉아 있기로 했 다. "현재 이드님은 중용자 이그드라실로 선택되셨습니다. 중용자의 할 일은 중 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드님이 직접 천신계와 천마계로 가서 천신과 천마를 제거해야 합니다." 흠…… 역시 천신계와 천마계로 가야하는 거였군. 근데 어떻게 가냐? 뭐, 그거는 아트로포스가 알아서 설명해 주겠지? "천신계와 천마계에 가기 위해서는 일곱 개의 성물(聖物)을 모아야 합니다. 그 칠성물(七聖物)의 힘을 통해서 천신계와 천마계로 가는 것입니다." 얼레? 이곳에도 성물이라 불리는 게 있단 말이야? 흐…… 또 옛날 일이 떠 오르려고 하는군…… 기분이 울적해져……. "칠성물은 현재 아르카디아 대륙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따라서 일차적인 목표는 칠성물의 회수입니다." 칠성물의 회수…… 왜 하필이면 일곱 개냐? 7이 행운의 숫자라서 그러냐? 성물 일곱 개를 다 찾으려면 시간 더럽게 걸리겠군. "칠성물의 기운은 저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드님 곁 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겁니다." 흠…… 그런가? 헉! 그럼 아트로포스가 없으면 난 칠성물을 찾을 수 없고, 결국 전혀 쓸모 없는 인간이 된다라는 소리잖아? 흘…… 결국 나보다 아트로 포스가 더 중요한 인물이구만…… 난 단지 아트로포스의 경호원이냐? ━━━━━━━━━━━━━━━━━━━━━━━━━━━━━━━━━━━ [번 호] 84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7일 18:08 Page : 1 / 1 [등록자] ZBPSYC1 [조 회] 406 건 [제 목] ▶[ 경고 ] INDR83 ─────────────────────────────────────── 이곳은 작가님 전용 게시판 입니다...... 작가님 외에는 아무도 쓰실 수 없는 게시판임돠 퍼오신건 감사하나........... 삭제 조치 취합니다...... 그럼 이만....... [번 호] 85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8일 20:21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36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장: 아르카디아 -4-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3장:아르카디아 -4- 관련자료:없음 [29561]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8-26 22:11 조회:1102 **퍼돌이의 말...*** 아까 2개를 올려서 오늘은 이거 하나밖에 못 퍼올리겠네요... 3개넘으면 지워지기 땜 시...ㅡ,.ㅡ "잠깐,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나는 즉시 아트로포스에게 질문할 수 있도록 허 락을 요청했고, 아트로포스는 두말없이 허락해주었다. "무엇인가요?" "나한테 칠성물이 뭐뭐인지를 알려주면 굳이 네가 따라올 필요는 없잖아?" 내가 생각하기에도 내 의견은 꽤 괜찮다고 느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고 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도 현재는 칠성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 "영계의 힘을 통해 칠성물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영계에서 지정해준 곳으로 가야만 성물의 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말에 난 어이가 없었다. 이건 마치 짜여진 각본대로 움 직이는 꼭두각시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때려 치고 집에 돌 아가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그럴 힘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했다. 똑똑- "아가씨, 차를 가져 왔습니다." 그때 문밖에서 하녀인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트로포스는 여전 히 쌀쌀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들어와." 끼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젊은 하녀는 나와 아트로포스 앞에 찻잔을 놓고는 다시 조용히 방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차를 천천히 마시기 시 작했다. 그래서 나도 찻잔을 들어 내용물을 살폈다. 투명한 색의 차였다. 난 이 차가 맛있기를 바라면서 한입 마셨다. "……!" 읍! 써! 누가 설탕 좀 팍팍 풀어 넣어 줘!!! "……." 아트로포스는 쓴 차를 홀짝홀짝 잘도 마셨다. 하지만 이미 단 음식에 길들 여져 있던 나는 쓴 차를 마시기가 거북해서 몇 모금 마시지도 않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 "……." 아트로포스는 차만 홀짝홀짝 마시고, 난 그저 멀뚱멀뚱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방안은 너무나 고요했다. 바퀴벌레 하나가 지나가더라도 그 지나가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정도였다. 흐…… 아트로포스도 나 못지 않게 썰렁한 분위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 하는군. 하지만 할 일없이 앉아있는 것보다는 이 세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는 쪽이 더 유익하겠지? "저기." "네." 내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아트로포스의 대답이 날아왔다. 내가 질문할 때 를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아트로포스의 반응이 너무나 신속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멋쩍어졌다. "아, 에…… 그러니까……." 으윽…… 뭘 물어볼 지 까먹어버렸다…… 이런 쪽팔리는 일이…… 어쩔 수 없다! 다른 질문을 하는 수밖에! "근데 칠성물은 언제 찾으러 갈 거야?" "그건 이드님께서 마법과 검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신 후입니다." "……?" 얼렐레? 마법과 검술? 마법은 그렇다치고 검술이라니? 설마 이 약하디 약한 나보고 무거운 검을 들고 삽질하라고?! "검술을 배워야 해?" "네. 중용의 법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드님께서 강해지셔야 하니까요." "마법만으로는 안될까?" "안돼요." 아트로포스는 다른 말은 필요 없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모두 날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흘…… 그래도 그렇지…… 검 종류는 거의 잡아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검 술을 배우냐고…… 가장 중요한 체력이 뒷받쳐주질 않는데…… 걱정이다, 걱 정……. "……." 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트로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 다섯 개가 일렬로 꽂혀져 있는 촛대를 가지고 오더니 어디선가 가져온 성냥 으로 촛불을 켰다. 촛불이 켜져서 실내는 방금 전보다 밝아지긴 했지만, 항 상 형광등 아래에서 생활했던 나에게는 촛불의 밝기 따위는 형편없는 것이었 다. 그나저나 이 세계에 성냥이 있군. 그렇다면 화약도 발달했다는 소리인가? 뭐 성냥이 있다고 화약이 발달했다 생각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르겠군. 근데 이곳에 무슨 총 같은 류의 무기는 없는 거겠지? 옛날 세계 비슷하니까 없을 거야…… 그럼, 없어야 하고 말고. "……." 촛대를 탁자 가운데에 놓은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말없이 자리에 앉아 날 쳐 다보기만 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무감정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는 아 트로포스 때문에 난 시선을 어디다 돌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 래서 이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난 누구한테 마법하고 검술을 배워야 하는 거야?" "이 마을의 마법사님에게 마법을 배우시면 됩니다. 그리고 검술은 제 아버 님께 배우시면 돼요." 얼레? 아트로포스의 아버지한테서 검술을 배워? 그 소리는? "아버지가 검술사야?" "네. 정확히 말하면 검법사입니다." 똑똑- "아가씨, 저녁 준비 됐습니다." 문밖에서 ??毬敾?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즉시 자리 에서 일어나면서 나에게 말했다. "식사하러 가요." "……." 흘…… 검법사하고 검술사의 차이를 물어보려 했더니 아주 절묘하게 내 입 을 다물게 하는구만. 혹시 하녀하고 둘이 나 몰래 이렇게 하자고 짠 거 아니 야? 어떻게 이런 절묘한 순간에 하녀가 올 수 있는 거냐고. 사삭- "……!" 난 촛불의 불을 끄는 아트로포스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녀가 오른손 검지 와 엄지를 사용해 초의 심지를 비벼서 불을 껐기 때문이었다. 물론 촛불 정 도는 손으로 직접 꺼도 전혀 뜨겁지 않지만, 손가락이 더러워지는데도 그렇 게 불을 끈 아트로포스의 모습이 정말 의외였다. "따라오세요." 아트로포스는 내가 놀라든 말든 촛불을 모두 끈 다음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난 연기조차 내지 못하고 짧은 생을 마감한 촛불을 위해 아주 잠깐 동안 묵 념한 뒤에 아트로포스를 따라 방을 나섰다. ……. 삐걱- 삐걱-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는 동안, 오직 내 발걸음 소 리만이 요란하게 울렸다. 아트로포스는 마치 허공 위를 나는 듯이 계단 밟 을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흐…… 어떻게 나무 계단을 밟는데도 소리를 전혀 안 내냐? 저 여자 인간 이야? 운동화를 신고 조심조심 걷는 나도 계속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는 데! "……!" 열려진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는 순간, 난 크 게 놀라고 말았다. 음식이 엄청나게 많아서가 아니었다. 식탁에 올라온 음 식이 손바닥만한 크기의 고기 절임과 샐러드 비슷하게 생긴 야채, 그리고 그 밖의 잡다한 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휘황찬란한 음식을 기대했던 나에 게 있어서 대단한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음식이 변변치 못해 죄송합니다." 이미 식탁에 앉아 있던 50대의 흑발 중년 남자가 날 보고 미안하다는 표정 을 지어 보였다. 식탁은 네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아트로포 스가 갈색 머리 중년 부인의 맞은편에 앉았기 때문에, 난 중년 남자 맞은편 에 앉아야만 했다. "산간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라 음식이 그리 풍족치 못하니 너그럽 게 이해해 주십시오." 중년 남자의 격식 있는 말에 엄청나게 부담스러워진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정도 음식이면 충분하니까요." 흐…… 어째서 내가 이런 닭살 돋는 말을 해야 하는 거지? 하녀까지 둔 집 에 음식이 이 정도밖에 없냐? 역시 나한테 주는 밥이 아까워서 그러지? "……?" 내가 속으로 이 집 욕을 바리바리 하고 있을 때 한 하녀가 내 음식 접시 옆에다가 왠 흰 손수건을 놓아두었다. 난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서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이 집 가족들이 그 흰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것 을 보고 이 흰 손수건의 용도를 알게 되었다. 슥슥- 흘…… 엄청나게 깔끔 떠는 집안이야. 이 집에서 살라고 하면 답답해서 못 살겠다. 그나저나 식당이 그렇게 크지는 않군. 뭐 전체적으로 이 집 자체가 저택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편이지만. 역시 갑부는 아니야. 하긴, 갑부가 이 런 산골 구석에 살 리가 없겠지. =================================================== 라이: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게다가 유니에서 직접 퍼오지도 못하고 하텔에 올라온 걸 다시 퍼올린 겁니다. 죄송함다...--;; [번 호] 86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8일 20:24 Page : 1 / 17 [등록자] THEBUR [조 회] 39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3장: 아르카디아 -5-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3장:아르카디아 -5- 관련자료:없음 [29571]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8-27 13:43 조회:991 따닥 따닥- 흰 손수건으로 가볍게 손을 닦은 이 집안 사람들은 포크와 나이프를 들더니 고기를 열심히 썰기 시작했다. 난 잠시 내 앞에 놓인 포크와 나이프를 노려 보았다. 그리고 나서 먹음직스럽게 한 뭉터기로 놓여져 있는 고기를 쳐다보 았다. 뭐냐…… 그냥 먹기 좋기 처음부터 썰어주면 좋잖아? 왜 나보고 고기를 써 는 일을 하라는 거야? 그리고 이런 날이 거의 없는 나이프보다는 날카로운 부엌칼을 달란 말이다! 그래야 고기를 썰지! 달칵- 나이프를 집어들자 나이프와 접시가 부딪치며 마찰음을 내었다. 난 잠시 심 호흡을 한 뒤 나이프로 고기를 한번 썰어보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고기가 너무 쉽게 잘 썰렸다. 포크로 고기를 잡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이야…… 이런 엄청난 고기가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어! 좋아, 그럼 한번 맛을 봐볼까? 쩝쩝- "……!" 고기 한 점을 먹던 나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고기 맛에 크게 놀랐다. 아무 래도 잘 다진 고기를 뭉쳐서 한 덩어리로 만들어 놓은 것인 듯했다. 어쨌든 고기가 입안에서 잘근잘근 씹히는 맛은 없었지만 부드러운 고기 육질만으로 도 충분히 괜찮았다. "중용자님." 내가 정신없이 고기를 썰어 입안에 꾸역꾸역 채워 넣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 의 아버지가 확실한 중년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난 입안 가득 히 고기를 물고 우물거리고 있어서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중년 남자를 빤 히 쳐다보기만 했다. 중년 남자는 그런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내일부터는 중용자로서의 훈련이 있을 겁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겁니다." 얼레? 훈련?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흐…… 왠지 훈련이 상당히 고될 것 같 은 불길한 느낌이 팍팍 들어…… 아무래도 오늘 이렇게 잘 먹이는 건 내일 있을 훈련 때문에 그런 것 같은……! "그런데 중용자님께서는 마법과 검술 중 어느 것부터 수련하실 겁니까?" 중년 남자의 물음에 난 잠시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긴 후,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마법부터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십니까? 그럼 내일은 마법을 배우시고, 그 다음날은 검술을 배우도록 하죠. 마법을 수련한 다음날에는 검술을 수련하는 겁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흘…… 내가 무슨 힘이 있수…… 그저 댁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수밖에……. 딱- 따닥- 달그락- 중년 남자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입을 다물자, 식당은 다시 나 이프 놀리는 소리와 식기 부딪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하녀들조차 말없 이 시중만 들었기 때문에 식당은 너무나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꿀꺽- 내 몫의 음식을 남김없이 해치운 나는 하녀가 건네준 물잔을 받아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오랜만에 맘껏 음식을 먹은 것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상당히 좋아졌다. 물론 이 썰렁한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았지만. "맛있게 드셨나요?" 내가 음식을 다 먹자 아트로포스의 어머니가 100% 확실한 중년 부인이 처음 으로 나에게 물었다. 처음엔 중년 부인을 자세히 보지 않아서 몰랐지만, 지 금 보니 젊었을 때 한 미모 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군요." 흘…… 왜 아줌씨가 다행이라 생각하는 거지? 어차피 이 음식 만드는 사람 은 주방장이잖아? 그럼 당연히 주방장한테 맛있는 음식 잘 먹었다 라고 말해 야 하는 거 아닌가? 난 아줌씨보다는 주방장한테 고마움을 느낀다고. "메이, 중용자님에게 방을 안내해 드리렴." "네." 중년 부인의 지시를 받은 한 젊은 하녀가 나에게 오더니 결코 크지 않은 목 소리로 말했다. "절 따라오십시오." "……." 흐…… 이놈의 집안은 하녀들까지 교육을 엄하게 시켰냐? 왜 모두 격식 있 는 것처럼 구느냔 말이야! 난 이런 분위기가 절대로 싫단 말이다! 날 여기서 내보내 줘! 클로토! 라케시스! 천신계하고 천마계에서 지금 날 보면서 웃고 있지? 당장 내려오지 못해?!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내 집에서는 밥 다 먹으면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 버렸던 평상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격식 있는 척 정중히 인사하고 메이라 는 이름의 하녀를 따라 식당을 빠져 나왔다. 식당을 빠져 나온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은 정말 몰랐다. "……!" 히익! 하녀들조차 발소리를 내지 않고 나무 계단을 오르다니! 으으…… 아 무리 생각해도 이 집안 사람들은 귀신이야! 설마 나보고 귀신 잡으라고 날 이 집에 보낸 건 아니겠지?! "이 방입니다." 메이는 2층에 있는 어떤 방 앞에 서서 나에게 말했다. 그 방문에는 P?『GUEST』 라고 떡 하니 적혀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는 완벽한 영어 알파벳이었다. 흠…… 이 세계는 알파벳을 문자의 기본으로 사용하나? 뭐 무슨 글자를 사 용하든 이 세계의 나는 다 읽을 수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그래도 생판 모르는 글자를 보는 것보다는 영어 알파벳을 보는 게 더 낫지. 나중에 내 세계로 돌 아가면 영어 공부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근데…… 영어 공부가 되려나? 여긴 영어+잡어 인데……. "……." 방안에는 옷장과 탁자, 침대, 그리고 그 밖의 가구들이 있었다. 산간 마을 답게 죄다 나무로 만들어진 가구들이었다. 저 나무 가구 사이에는 분명히 바 퀴벌레가 알 낳고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요하신 것은 없습니까?" 내가 방안을 찬찬히 둘러보고 있을 때 메이가 나에게 물었다. 방안을 둘러 본 결과 그다지 필요한 것은 없는 듯해서 난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말씀 낮추세요." "아, 네." "또 경어군요." "아……." 메이는 당황해하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 듯 풋 하고 웃었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앞으로 내 방이 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촛대를 탁자 위에 놓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뒤, 다시 방밖으로 나오며 나에게 말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나서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총총히 1층으로 내려갔다. 난 메이가 1층으로 완전히 내려갔음을 확인하고 방문을 닫았다. 그러자 방안은 상당히 어두워졌다. 비록 초가 다섯 개 있는 촛대로 불을 밝혔다고는 하지만 그 정 도의 밝기로는 이 방안을 전부 밝게 할 수가 없었다. 쩝…… 형광등이 그립군. 아무래도 이곳은 중세 시대와 상당히 비슷한 시기 일 것 같다. 그러니까 촛불로 불을 밝히고 있는 거겠지. 흐…… 어두워서 제 대로 보이지가 않는군. 어쩔 수 없이 일찍 자야한다는 거냐? 날 새 나라의 어린이로 만들려고 하다니……! 털썩- 침대는 꽤 푹신푹신했다. 그러나 침대가 푹신푹신하면 자고 일어나서 허리 가 아프기 때문에 조금 걱정되었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아주 훌륭한 격언인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다'의 행동 방침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했으 니까. "……!" 그때 갑자기 난 어떤 살벌한 기운을 느꼈다. 누군가 날 노려보고 있는 듯한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이었다. 귀신같은 집안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 에 소름이 돋았다. 탁탁- 덜컥! 난 급히 창문 쪽으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어제쳤다. 창문은 바깥쪽으로 밀어 서 열게 되어 있는 형태였다. 그렇게 창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내 얼 굴을 때렸다. 그리고 이 집 근처의 나무에 서 있는 하나의 그림자가 보였다. 사삭- 그 그림자는 내가 쳐다보자 급히 마을 쪽으로 사라졌다. 숲으로 가지 않고 마을로 간 것을 보면 사람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왜 내 방을 노 려보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흘…… 도대체 뭐냐? 이 마을은 왜 이렇게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거 야? 이거 어디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있나…… 누군가 내 목숨을 노리는 것 같은데…… 설마 벌써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내 물건을 훔쳐가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건가? "더우신가요?" "……!" 갑자기 내 뒤에서 들려온 말소리에 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그 래서 급히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뒤에는 분명히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러나 촛불이 탁자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불빛이 그 사람의 뒤에서 비추고 있는 꼴이 되어 얼굴이 그림자에 가려져 버려 누구인지까지는 확인할 수 없 었다. "누, 누구……?" 난 최대한 창문 쪽으로 몸을 붙이며 그 사람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날 죽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내 뒤에 서 있는 채로 입을 열었을 뿐이었다. "저예요. 아트로포스." "……!" 아트로포스? 아, 드레스풍의 옷인 걸 보니까 아트로포스가 맞는 것 같다. 흐…… 방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으로 봐서는 문 열고 들어온 거 같은데…… 어떻게 문 여는 소리하고 발자국 소리를 전혀 안 낼 수 있는 거야? "무슨 일로?" 난 더운 척하며 이마에 잠시 흐른 식은땀을 훔쳤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날 잠시 쳐다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탁자 위에 두며 말했다. "더우실 것 같아 찬물을 가져 왔어요. 그럼 편히 쉬세요. 내일부터 혹독한 훈련이 시작될 테니까요." "……!" 혹독한 훈련?! 나 같이 연약한 남자에게 무슨 그런 심한 말을! 윽…… 촛불 가까이에서 제발 그런 무표정한 얼굴 하지 말라구! 조각 인형을 보는 것 같 아서 무섭단 말이야! ……. 그 말을 끝으로 아트로포스는 조용히 방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 두 눈과 두 귀로 똑똑히 확인했큁?? 그 어떤 조그만 소리도 내지 않고 문을 닫았다는 것을. 흐으…… 무서워…… 여기 있다가는 언젠가 미쳐버릴 거야…… 도대체 여기 집안 분위기는 왜 이래? 왜 귀신이기를 자청하는 거냐고! 한번만 더 귀신 흉 내내면 죽여버릴 거야!!! ======================================================================== 내일은... 못 올릴지도...-.-;; =================================================== 라이: 역시 하텔 거친 펌이었습니다... 죄송..--;; [번 호] 87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9일 14:36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34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4장: 마나회로 -1-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4장:마나회로 -1- 총 Page : 23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8/28 20:44:42 수 정 일 : 크 기 : 8.6K 조회횟수 : 309 <제 4 장> 마나회로 "……." 아직 사방이 어두운 때, 난 눈을 떴다. 지금 시각이 한밤중인지 새벽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잠을 충분히 잔 것으로 봐서는 새벽녘 같았다. 찌르르르- 곤충의 소리인지 새의 소리인지 하여튼 생물의 울음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맨 처음 눈을 떴을 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시 야가 밝아져서 방안의 가구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스윽- 난 약간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런 내 눈에 괘종 시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래서 과연 지금 시각이 몇 시인지 알아 보려고 괘종 시계 쪽으로 걸어갔다. 째깍 째깍- 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잘 들리는군. 근데 이 시계의 동력원은 뭐냐? 무슨 건전지나 그런 건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추시계인가? 뭐, 추시계든 아니든 그거야 중요하지 않고…… 지금 시각이…… 으…… 어두워…… 에…… 6시…… 10분? 음…… 6시 10분 정도인 것 같군. 그나저나 이제 뭐하지? 이 집안 사람들이 깨려면 아직 시간이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에…… 어쩔 수 없군. 마법 수련이나 해볼까? 털썩- 난 침대에 앉아 이 세계의 마나를 느껴보았다. 마나를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단지 이곳의 마나는 거미줄처럼 허공에 겹겹이 펼쳐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마나를 모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을 뿐이었다. 흐……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마나를 모으지? 이 마나회로들을 잘라서 내 몸 에 쑤셔 박는 거냐? 아니면 마나회로를 잘라다가 내 몸에 걸치는 것? 으…… 전혀 마나 모으는 방법을 모르겠군. 역시 이 세계의 마법사에게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어. "일어나셨군요." "……!" 마나 느낀답시고 침대에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간 떨어질 정 도로 놀랐다. 내가 알아차릴 수 없게 방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 이 아트로포스였다. "저기, 로스." "네." "하나 부탁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새벽의 어둠 속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아트로포스를 향해 난 아주 정중한 어 조로 입을 열었고,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어투로 말했다. 그래서 잠시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나는 결국 그 말을 하기로 했다. "왠만하면 인기척이라도 내고 들어올 수 없어?" "……." 내 간절한 부탁을 듣고서 아트로포스는 잠시 어둠 속에서 날 쳐다보았다. 그 리고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미 습관처럼 되어서 고칠 수가 없어요." "……." 흘…… 그런 나쁜 습관을 빨리빨리 고치는 게 좋다구. 계속 이렇게 예고 없 이 불쑥불쑥 들어오면 내 짧은 수명이 더욱 단축될지도 몰라. 나야 아직 삶의 목표 같은 것도 정하지 못해서 되는대로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찍 죽고 싶 지는 않단 말이여. "근데 무슨 일이야?" 아트로포스의 버릇은 지금 당장 고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선 넘어가기로 하고 아트로포스가 이 이른 시간에 날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나시는 건가요?" "응? 글쎄…… 집밖의 다른 곳에서 자면 뭐 거의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 같 긴 한데……." "그럼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나시는 거군요." "아, 그런가……." 이 세계 자체가 집밖의 다른 곳이니까 그렇게 되는군…… 얼레? 지금 이게 아니지! 내가 먼저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 야? "지금 식사하실 건가요?" "그, 글쎄……." "그럼 지금 식사하시고 식사 끝난 후에는 그분을 찾아 뵙도록 하죠." "어……." 난 그저 아트로포스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은 아트로포스의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난 이 집의 식객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사박사박- 저벅저벅- 점점 동이 트려 하는 무렵, 나와 아트로포스는 이 마을의 마법사라는 사람을 만나러 밭 사이의 길을 걸었다.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 없이 걷던 아트로포스가 밖에 나오자 약간이지만 발자국 소리를 냈다. 역시 원정이기 때문에 홈에서보 다 제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없는 듯했다. "근데 로스, 왜 그 도시락을 들고 가는 거야?" 난 아트로포스의 손에 들린 도시락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트로포스와 아무도 없는 식당 안에서 둘이 아침 식사를 하고 난 뒤, 아트로포스가 마법사 만나러 가자면서 싸들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질문에 아트로포스는 무표정 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 분의 아침 식사입니다." "만나러 갈 때는 항상 아침 식사 줘야 하는 거야?" "아니에요. 제가 그 분께 항상 아침 식사를 가져다 드리고 있어요." "……." 흠…… 항상 아침 식사를 가져다 준다라…… 혹시…… 아트로포스하고 그 마 법사하고 서로 사귀는 사이? 흘…… 왠지 아트로포스에게는 좋아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뭐, 그 마법사를 보게 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겠지. 슥- 열심히 밭 사이를 걷던 아트로포스는 숲 근처에 있는 어떤 집 앞에서 멈추었 다. 거의 쓰러질랑 말랑한 나무 판자집이었는데, 사람이 들어가 살만한 집은 못 되었다. 아니, 거지라면 살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똑똑- "저 왔어요." 아트로포스는 그 다 쓰러져 가는 나무 판자집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아무 런 기척도 없었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안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었다. "오늘은 꽤 이른 시간에 왔군. 무슨 일 있어?" "……!"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 사람의 모습에 난 상당히 놀래야만 했다. 아트로포 스가 마법사 만나러 가자고 했으니 이 사람이 마법사일 것은 당연했지만, 마 법사답지 않게 엄청나게 큰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어서 완전 산적 두목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색의 반팔 상의와 검은색 긴 바지가 엄청나게 낡고 더러웠기 때문에 아무리 봐도 도저히 마법사라고는 볼 수 없었 다. "어? 뭐야? 로스가 남자를 데려오다니? 이거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는걸?" 산적 아저씨는 아트로포스 옆에 멍청하게 서 있는 날 보고는 허허 웃었다. 목소리를 들어봐서는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대략 30세 전후인 듯했다. "이 분은 중용자이십니다." 아트로포스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산적 아저씨에게 말했다. 그러자 산적 아저씨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중용자?!" "네. 나머지는 안에 들어가서 하겠습니다." "그, 그래. 안으로 들어와." 산적 아저씨는 놀란 눈으로 잠시 날 쳐다보다가 이내 나와 아트로포스를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집안은 내 예상대로 여기저기 더러워진 옷이 널려 있었고 음식 찌꺼기가 방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어서 상당히 지저분했다. 아무래도 이 산적 아저씨 혼자서 이 집에 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안을 둘러보고 그 더 러움에 놀라고 있는 날 보고 산적 아저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지저분해서 미안." "아니에요. 근데 혼자 사시나요?" "뭐 그렇지. 하하." 흘……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나? 하여튼 혼자 산다고 이렇게 지저분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이런 지저분한 곳에서 살면 기분 좋냐? 어이구, 저기 바퀴벌 레 한 마리가 열심히 지나가는구만. 얼레? 방금 전에는 쥐 그림자도 언뜻 보 인 듯한……! "소개하겠습니다. 이분은 중용자로 선택된 이드님이세요." 아트로포스는 그 산적 아저씨에게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산적 아저씨는 나 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그 손이 상당히 지저분했기 때문에 난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렇게 잠시 마음의 갈등을 겪은 나는 결국 결정을 내리고 그 산적 아저씨의 손을 덥썩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어차피 손이야 집에 가서 씻으면 그만이지 만, 사람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상황을 보아 이 산적 아저씨 가 앞으로 내 마법 스승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지금 잘 보여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분은 이 마을의 유일한 마법사이신 '트레이'님이십니다." 아트로포스의 소개를 통해서 난 이 산적 아저씨가 마법사라는 사실과 이름이 트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의문인 것은 마법사가 왜 이렇게 산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었나 하는 점이었다. "하하, 마법사는 무슨. 그냥 마법만 조금 다룰 줄 아는 것뿐이라고." 트레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손하게 굴었다. 나도 가능하면 그 겸허함을 인 정해주고 싶었지만, 트레이의 머리에서 떨어지는 비듬을 보자 그럴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이미 그런 트레이의 더러움에는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가져온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오늘부터 이틀에 한번씩 이드님이 마법을 배우러 찾아올 겁니다. 많은 지도 부탁드려요." "하하, 맨날 아침 얻어먹으니 그 정도는 해야겠지."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내일 아침도 부탁해!" 아트로포스는 트레이의 배웅을 받으며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난 그저 아트 로포스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무 슨 주의사항 같은 것도 알려주지 않고 냉큼 가버리는 아트로포스가 원망스럽 기조차 했다. "자, 그럼 식사부터 하고 나서 시작해볼까?" 스슥- 아트로포스가 건네준 도시락을 열어 젖힌 트레이는 지저분한 바닥에 앉아서 열심히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왼손 오른손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음식을 집어먹는 트레이의 모습에 난 질려버렸다. 그래서 아까 전에 트레이와 악수했던 오른손을 살펴보았다. 별로 눈에 띄게 더러워진 데는 없었으나 기분 상 상당히 께름직했다. 흐…… 더러워진 손은 집에 가서 씻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언제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아무래도 나한테 마법 수련시킨다고 해 떨어지기 전까 지는 집에 안 돌려보낼 것 같은데…… 여기에 무슨 손 씻을 만한 곳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면…… 이 손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으윽……! [번 호] 88 / 90 [등록일] 2000년 08월 29일 14:37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38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4장: 마나회로 -2- ─────────────────────────────────────── ─────────────────────────────────────── 幻 문학관 [사이케델리아] 4장:마나회로 -2- 총 Page : 24 ------------------------------------------------------------------------------ 게 시 자 : sakali(이상규) 게 시 일 : 00/08/28 20:45:03 수 정 일 : 크 기 : 10.0K 조회횟수 : 298 꺼어억― 어느새 도시락을 다 먹은 트레이는 힘차게 트림을 했다. 그러나 다행히 난 계 속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트림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서 있는 날 보고 트레이가 손짓을 했다. "뭐해, 앉지 않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있으라고." "……." 흘…… 지금 이 집에서 편안히 있으라고라? 바닥에는 음식 찌꺼기가 굴러다니 고, 개미에다 바퀴벌레까지 운동회를 벌이고 있는 이 집에서 편하게? 도대체 그런 정신 상태는 어디에서 나오는 거야? "이런 이런, 더럽다고 못 앉는 거냐?" 트레이는 수염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주섬주섬 떼어먹으며 날 힐책하듯 물음 을 던졌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고는 보기 힘든데요." "후후." 내 대답을 들은 트레이는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잠시 후 나에게 질문 을 했다. "그럼 왜 아까 전에는 나와 악수를 한 거지? 내 손이 더럽다는 것은 알고 있 었을 텐데?" 얼씨구? 그럼 자기 손이 더럽다는 것을 인식했으면서도 나에게 악수를 청했단 말이야? 사악의 극을 치달리다 못해 그 극마저 넘으려고 하는 인간이구만. "그때는 손을 씻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색한 거짓말 따위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더 속 편했기 때문이었다. 트레이는 그런 날 올려다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럼 됐군. 옷이야 더러워지면 로스가 두말없이 빨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 고 자리에 앉으라고." "……!" 왠지 트레이의 말에 뼈가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난 내가 왜 자리에 앉기 싫어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단순히 이 집 바닥이 더럽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단순히 더럽다는 이유 하나로 난 바닥에 앉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더러워진 옷은 빨아버리면 그만인데도. "그렇군요."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은 나는 즉시 바닥에 자리를 털썩 소리를 내며 힘 차게 앉았다. 그러나 마침 내가 앉으려고 하는 자리에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고, 결국 난 그 바퀴벌레마저 같이 깔고 앉아버리고 말았다. "호! 바퀴벌레를 엉덩이로 죽이다니! 정말 대단한데?" "……." 크으…… 바퀴벌레를 깔고 앉아버리다니…… 으윽…… 뱃속에서 뭔가가 올라 올 것 같은…… 크윽…… 뭔가 엉덩이가 축축하다…… 우우……. "……!" 그렇게 바퀴벌레 깔고 앉은 것에 대해 절망하던 나는 트레이의 말을 듣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판단했던 그것이 다시 옳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더러움을 싫어하는 이유, 그것은 단지 더럽다는 게 기분 나빠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 로 그 더러움이 야기하는 병원균 때문이었던 것이다. 제길…… 이렇게 더러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눈병 걸리고…… 더러워진 옷 을 입고 있으면 인체에 유해한 병균들이 번식하게 되겠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런 엄청난 실수를 해버리다니…… 크으…… 앞으로 조심해야겠어……. "트레이 씨." 난 조용히 트레이를 불렀다. 그러자 트레이는 히죽 웃었다. "왜?" "이런 데서 살면 병 걸리지 않아요?" 내 물음에 트레이는 일부러 방바닥에 엎어져 허우적거리며 대답했다. "아니, 전혀! 지금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걸 보면 몰라?" "……." 흐…… 대단하군. 바퀴벌레와 개미들을 쳐내면서 허우적거리다니. 얼레? 그러 고 보니까 몇 마리 깔렸잖아? 불쌍하군. 이런 집에서 최후를 맞은 너희들의 명 복을 빌어주마. "좋아! 그럼 이제부터 마법을 가르쳐볼까나?" 한참을 방바닥에서 허우적대던 트레이는 벌떡 일어나더니 날 끌고 밖으로 나 왔다. 이 집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미 해는 떠 있어서 주위 가 조금 밝아진 상태였다. 트레이는 산봉우리 사이로 고개를 내민 해를 정면으 로 두고 힘차게 기지개를 폈다. "끄으으아! 오늘도 좋은 날씨구나!" "……." 난 트레이의 옷에서 떨어지는 음식 찌꺼기와 작은 벌레들을 발견하고 나도 모 르게 온몸을 떨었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반짝반짝 빛나면서 떨어지는 바퀴벌레들은 내 몸의 모든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것을 모르는 트레이는 씨익 웃으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드…… 입니다." "이드, 마법 배운 적 있나?" 마법을 배운 적이 있느냐라…… 뭐라고 대답하지? 나야 분명히 마법을 배우긴 했지만…… 이곳의 마법은 쓸 줄 모르니까 배우지 않은 게 되나? 음…… 그렇 게 되겠군. "배운 적 없습니다." "좋아, 그럼 오늘은 우선 마나회로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지." 트레이는 오늘의 할 일을 모두 정한 듯이 말했다. 그러나 난 이미 마나회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트레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마나회로는 느꼈습니다. 전 마나를 모으는 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 마나회로를 이미 느꼈다는 말에 트레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마나회로를 느꼈다고?" "예." "마법 배운 적 없다면서?" "마법 배운 적은 없지만 마나회로는 느낍니다." "……." 그러나 트레이는 그런 내 말을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계속 날 뚫어지게 쳐다 보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난 이런 말 을 트레이에게 했다. "제가 중용자라서 마나회로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걸 겁니다." "중용자…… 아, 이드는 중용자라고 했지!" 흘…… 그걸 지금에서야 생각해낸 거냐? 엄청난 기억력이군. "뭐 좋아. 이미 마나회로를 느꼈다면 얘기는 쉬워지겠군. 우선 앉아." 트레이는 자기 먼저 땅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 다음 나에게 말했다. 난 잠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와 개미들을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음을 느끼고 트레이 앞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트레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마나회로라는 것으로 뒤덮여 있다. 마나회로 의 존재가 천신과 천마를 몰아내었고, 결국 이 세계는 인간들의 것이 되었지. 즉, 이 마나회로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인간들도 아무 쓸모 없다는 소리다." 흘…… 왠지 궤변처럼 들리는……. "마나회로를 사용하기 위해 탄생한 존재가 바로 마법사지. 마법사가 되기 위 해서는 먼저 마나회로를 몸에다 까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얼레? 마나회로를…… 몸에다 깐다구?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마나회로를 깐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내 질문에 트레이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간단하게 말해서 피부에다 마나회로를 건설하는 거야. 그래야 이 세계에 그 물처럼 깔려 있는 마나회로와 접속해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 마나회로를 피부에다 건설한다고? 그리고 마나회로와 접속? 흘…… 도대체 무 슨 소린지…… 어째서 마나 모으는 방법이 왜 이렇게 차이나는 거야? 미치는군 ……. "마나회로를 어떻게 피부에다 건설하는데요?" "그거야 정신력으로 외부의 마나회로를 반응시켜서 피부에다 복사하면 되지. 뭐 무조건 마나회로를 깐다고 되는 게 아니고, 반드시 몸에 건설하는 마나회로 는 양쪽 관자놀이를 지나야해. 이를테면 두뇌가 동력원이라는 거지." 트레이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설명했지만 난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마나회로를 피부에 과연 깔 수 있을 것인가부터 실험하기로 했다. "……." 마나회로를 느낀다…… 이거야 별 거 아니고…… 그 다음…… 마나회로를 정 신력으로 반응시켜 내 피부에 마나회로를 복사한다……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 지만 한 번 해봐야지. 에…… 마나회로가 내 피부에 복사된다…… 복사된다……. "……!" 그렇게 생각하기를 5분, 사실 정신없이 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했을 때 드디어 허공에 펼쳐 져 있는 마나회로에서 반응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가 까이 놓인 나침반의 바늘을 움직이게 하는 자기장 같은 것이었고, 그 기묘한 자기장은 내 의지에 따라 내 피부, 정확히 말해서 내 오른팔 하박 부근에 마나 회로를 복사했다. 그것은 마치 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트레이 씨, 마나회로를 피부에 깐 다음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난 내 오른팔에 약간 복사된 마나회로를 느끼며 트레이에게 물었다. 내가 마 나회로를 깔았다는 소리에 트레이는 또다시 눈을 둥그렇게 떴다. "마나회로를 건설했다고? 벌써?" "그게 아니라, 오른 팔뚝에 약간 깔았을 뿐이에요. 그 다음 어떻게 해요?" "오른 팔뚝에 깔았다고? 그건 소용없어. 마나회로는 항상 관자놀이에서부터 시작해서 깔아가야 해. 그래야 마나회로가 사라지지 않고 피부에 남게 되거든." 흘…… 꼭 관자놀이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냐? 그거 귀찮군. 윽…… 정말 복사한 마나회로가 사라질 것만 같잖아? 이런…… 어쩔 수 없이 관자놀이에서 부터 마나회로를 깔아가야 하다니…… 근데 다른 궁금증이 드는걸? 난 착한 학 생이니까 당연히 물어봐야겠지? "근데 마나회로가 반드시 양쪽 관자놀이를 지나야 한다면 마나회로를 얼굴에 다만 깔면 되지 않나요? 온몸에다 마나회로 까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요." "아주 좋은 질문이야!" 내 질문을 들은 트레이는 그렇게 날 칭찬하더니 곧 대답을 했다. "양쪽 관자놀이를 바로 이어버리는 것이 가장 빠르게 마나회로를 건설하는 방 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양쪽 관자놀이 를 잇는 마나회로 하나를 건설하게 되면 '1서킷(Circuit)을 건설했다'라고 말 해. 근데 1서킷을 건설할 때는 항상 같은 시간이 걸려. 그게 무슨 말이냐면, 1서킷을 얼굴에만 건설하는 것이나 온몸 전체를 돌도록 건설하는 것이나 걸리 는 시간은 같다는 소리야." 얼레? 시간이 같게 걸린다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관자놀이야 눈 하고 귀 사이의 움푹 들어간 곳이니까 마나회로가 이마를 돌도록 깔아버리면 그 거리가 가장 짧다고 할 수 있잖아? 근데 그렇게 해서 마나회로를 건설하는 시간이나 마나회로가 온몸을 돌도록 건설하는 시간이나 서로 같다니? "쉽게 이해는 안 되겠지만 마법사들이 실험한 결과 그렇다는 걸 알아냈어. 오 히려 마나회로를 짧게 건설하는 쪽이 시간이 더 걸려. 마나회로를 짧게 하면 시간 당 건설되는 마나회로가 짧기 때문에 짜증이 일어나거든. 하지만 마나회 로를 길게 하면 시간 당 건설되는 마나회로가 길어져서 즐겁게 마나회로를 건 설하게 되지. 이해가냐?" 트레이의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난 쉽게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동거리 와 변위를 떠올리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논스톱으로 가는 거와 비 행기 타고 제주도를 돌아 부산으로 가는 것은 서로 이동거리가 다르지만, 결국 출발지는 서울이고 목적지는 부산이기 때문에 그 변위는 같다니까…… 마나회 로도 변위의 관계라 할 수 있겠군. 마나회로를 아무리 길게 깔아도, 아니면 아 무리 짧게 깔아도 결국 한쪽 관자놀이에서 출발해 반대편 관자놀이에서 끝나니 까 그 변위는 똑같지. 단지 이 세계에서는 그 변위가 시간으로 바뀐 것뿐…… 흘…… 어째 내 생각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럼 전 마나회로를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그렇게 트레이에게 선언하고 나서 즉시 마나회로 건설에 들어갔다. 이미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은 내 관심 밖이었다. 더러워진 손, 더러워진 옷에 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마나회로 건설에 주력하고자 했던 것이다. ======================================================================== 아무래도 이틀에 2편으로 해야겠군여... 흘...ㅡㅡ;; ─────────────────────────────────────── [번 호] 89 / 90 [등록일] 2000년 08월 30일 20:14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29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4장: 마나회로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4장:마나회로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98 게 시 일 :00/08/30 20:09:59 수 정 일 : 크 기 :8.6K 조회횟수 :3 "후우……." 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맨 처음 눈을 뜨자 내 앞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트레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트레이의 눈빛은 결코 곱지가 않았다.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요?" 그 무서운 눈길에 쫄아버린 난 조심하면서 물었고 트레이는 잠시 이를 으드 득 갈고 난 뒤에 입을 열었다. "너 인간이냐? 어떻게 8시간이나 그렇게 앉아 있을 수 있어? 배도 안 고파? 지금 점심 먹을 때가 훨씬 지났단 말이야!" "……." 흘…… 나 때문에 점심 시간 지났다고 화를 내는 거였군. 괜히 놀랬잖아. "그럼 혼자서 점심 먹으면 되잖아요?" "임마, 산짐승이 튀어나와서 널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 혼자 점심 먹으러 가냐?" "여기는 산짐승이 튀어나와서 마을을 공격해요?" "아니.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 나원, 일어나지도 않을 일 가지고 걱정하고 앉아 있구만. 뭐 제자가 걱정돼 서 다른 곳에 갈 수 없었다 라는 뜻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고마워할 내가 아니다! "그럼 지금 점심 먹으러 가죠."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아트로포스의 집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렇게 말했지만 트 레이는 그런 나를 불러 세웠다. "기다려, 이드. 지금 어디 가는 거냐?" "로스네 집에 가는데요." "거기서 점심 먹을 생각이냐?" "예." 내 대답에 트레이는 날 매서운 눈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난 트레이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멍청하게 서 있어야 했다. 도대체 왜 저러지? 이상한 아저씨구만. 아, 지금 내 옷이 더러워져서 그런 건가? 하지만 어차피 돌아갈 거, 지금 돌아가도 별 상관은 없잖아. 마법 수련 이야 점심 먹고 다시 이리로 와서 하면 되고. "넌 로스네 집에서 점심을 먹어서는 안돼." "……?" 난 트레이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트레이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로스가 널 여기로 보낸 것은, 하루 동안 널 나한테 맡긴다는 뜻이다. 즉, 오늘 하루 동안 로스는 너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그런데 지금 돌아가 봐라. 로스가 점심을 줄 거 같냐?" "……!" 엑? 그런 뜻이 있었단 말이야? 난 처음 듣는 소리인데? 그 집에 가도 점심을 안 준다면 도대체 난 어디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거야? 설마…… 저 더러움의 극을 치달리는 인간하고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는 뜻?! "그럼 어디서 점심을 먹는데요?" 내 물음에 트레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우리의 점심 장소는 바로 저기다!" "……." 흘…… 숲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뭘로? 설마 열매를 따서 먹거나 산짐승 잡 아서 먹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난 그런 고대 사회의 식사 방식은 따르고 싶 지 않다구! "자, 그럼 날 따라와라!" 그러나 트레이는 호기롭게 소리치며 유유히 숲 안으로 들어갔다. 난 별로 따 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트레이의 말대로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점심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트레이의 뒤를 따라가야 했 다. "그런데 뭘로 점심을 때울 건데요?" "글쎄, 점심은 뭘로 먹을까? 새고기? 토끼고기? 아니면 멧돼지 고기?" 흘……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들어왔다는 거냐? 한심하군. 잘못하면 오늘 점 심은 굶을지도……. 졸졸졸졸- 그때 어디선가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물소리를 듣자마자 난 내 더러운 옷과 더러운 오른손을 떠올렸다. 만약 이 손으로 무엇인가를 먹었다가 는 분명 수십 가지의 병에 걸려 인생 종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손을 씻기 위해 즉시 그 시냇물 소리가 나고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얌마! 어디가?!" "손 씻으러요!" "사내 자식이 겨우 손 더러워졌다고 씻냐?!" 흘…… 내가 아저씨인 줄 아슈? 난 몸이 약해서 한번 병에 걸리면 바로 운명 을 달리한다고! 졸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달려간 결과, 폭이 1m 정도 되고 깊이는 30cm 정 도 되는 시냇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즉시 바지를 벗어 시냇물에다 첨벙하고 담갔다. 그리고 바퀴벌레 살해 사건의 증거를 말살하기 위해 열심히 물 속에다 바지를 비벼댔다. "너 지금 뭐하냐?" 어느새 따라온 트레이가 시냇물에서 열심히 바지 빨고 있는 날 보고 물었다.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빨래요." "그러냐? 로스가 해줄텐데?" "지금 당장은 안 해주잖아요." "뭐 그렇겠지만." 졸졸졸- 싸삭싸삭- 숲 속의 시냇물은 정말 맑고 차가웠다. 이런 물에다 더러운 바퀴벌레의 시체 잔해를 떨궈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내가 그렇게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바지를 빨고 있을 때, 가만히 앉아서 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던 트 레이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맞아! 오늘은 물고기를 사냥해서 먹는 거야!" "……?" 얼레? 물고기? 음…… 그러고 보니까 이 시냇물에 물고기들이 간간이 보이는 군. 아니다, 꽤 큰놈도 있는데? 역시 물이 맑으니까 물고기들이 많이 사는 건 가? "뭐 물고기 먹기로 하죠. 근데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요?" 난 바지 빨래를 멈추고 트레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트레이는 내 옆으로 다가 오더니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드, 넌 좀 밑으로 내려가서 시냇물에 들어가 있어." "뭘 어쩌시려구요?" "간단해. 내가 마법으로 이 물고기들을 일시에 정신 잃게 해버릴 테니까. 그 러면 넌 물살에 떠밀려 내려오는 물고기들을 건져내면 되는 거야. 알아들었지?" 헐…… 무슨 수로 물 속의 물고기들을 정신 잃게 한다는 거지? 마법을 쓸 생 각인가? 뭐 마법이 아니라면 그럴 수도 없겠지. 근데 어떤 마법을 쓸까? 궁금 해지는걸? 첨벙 첨벙- 난 트레이의 말대로 즉시 시냇물 속으로 들어가 약간 밑으로 내려가서 대기 했다. 내 손에는 물에 쫄딱 젖은 바지가 들려 있었다. 맨손으로는 미끄러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바지로 안전하게 잡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좋아, 그럼 간다!" 트레이는 시냇물 표면에 손바닥을 살짝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정 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 세계의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하는 장면 을 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난 바짝 긴장하면서 트레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트레이의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오자마자 물 속에서 무엇인가가 번쩍했다. 그것은 분명히 번개였다. 트레이는 전기 공격으로 물고기들을 일시에 기절시 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그것보다도 뭔가 기이한 것을 느끼고 크게 놀랐다. 그것은 바로 내가 마나회로를 피부에 건설할 때 느꼈었던 자기장이었 다. "됐다! 이드, 물고기 떠내려간다! 어서 잡아!" 마나회로의 자기장을 느끼고 멍청하게 있던 날 향해 트레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난 즉시 정신을 추스리고 손에 들고 있던 바지로 떠내려오는 물고기들 을 건져내었다. 트레이의 전기 공격에 기절한 물고기 수는 대략 5마리 정도였 고, 그 중에 난 3마리를 건졌다. "여기 물고기요." 난 물고기를 감싼 바지를 들고 트레이에게 갔다. 트레이는 바지 속의 물고기 들을 보더니 씨익 웃고 나서 즉시 주변의 돌을 주워 모았다. 그리고 사악하게 도 멀쩡한 나무의 나뭇가지들을 꺾어 돌 사이에다 잘 쌓아놓았다. 흠…… 물고기를 구워먹을 생각이군. 다행이다, 날걸로 먹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불도 없는데 어떻게 물고기를 구워먹지? 또 마법을 사용할 생각인가? "파이어 포인트(Fire Point), 크로스(Cross)!" 트레이는 무슨 정신 집중 없이 바로 마법을 구사했다. 그랬는데도 쌓아놓은 나뭇가지의 한 지점에서 시작한 불길은 순식간에 십자 모양으로 퍼지며 나뭇 가지를 활활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이번에도 불길이 일어나는 순간 허 공에 펼쳐져 있는 마나회로에서 기묘한 자기장 같은 것을 느꼈다. 타닥- 타닥- "이제 물고기 배를 따야지?" 그렇게 말한 트레이는 지저분한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손칼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보면 맥가이버 칼처럼 생긴 그것을 들고 트레이는 아주 능숙하게 물고 기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남은 나뭇가지로 물고기의 몸통을 관통하여 찌른 후 그것을 들고 방금 붙여놓은 불에다 굽기 시작했다. "너도 하라구." 트레이는 나에게 그 손칼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난 한번도 물고기의 배를 따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망설였다. 그러자 트레이는 그런 날 묘한 눈으로 쳐다 보았다. "설마 물고기 배 따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거는 아니지?" "……." 그래, 나 물고기 배 따는 거 무섭다. 됐냐? 스슥- 트레이의 말에 흥분한 나는 즉시 자리에 앉아서 거침없이 물고기의 배를 손 칼로 갈랐다. 물고기는 이미 기절 상태였기 때문에 산놈의 배를 가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단지 내장이 줄줄이 쏟아져서 하마터면 다리에 묻을 뻔했을 뿐이었다. 타닥- 타닥- 난 트레이처럼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꽂아 열심히 지핀 불에 구웠다. 그러다 가 이 세계의 마법 구현에 대해 궁금한 점이 떠올라서 트레이에게 질문을 했 다. "그런데 방금 전에 그 마법은 어떻게 쓰신 거예요? 주문 같은 거 필요 없어 요?" "주문? 하하하!" 내 질문을 받은 트레이는 잠시 큰소리로 웃었다. 그것은 날 완전히 비웃는 것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타고 있는 나뭇가지로 트레이의 몸을 꿰뚫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야 했다. "하하, 어떻게 중용자라면서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냐? 걱정이다, 걱정!" "……." 그래…… 내가 가는 곳마다 내가 물어보는 건 항상 기초적이라고 하더군. 그 러는 넌 마법 처음 배울 때 그런 기초적인 것을 알았냐? 왜 초보를 무시하는 거야? "천신이나 천마의 힘을 빌리는 마술도 아닌데 무슨 주문이야? 마법을 사용하 는 데에는 오직 피부에 건설한 마나회로와 그 마나회로를 작동시키는 정신력 만 있으면 된다고." "……?" 난 쉽게 트레이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세계는 마술과 마법을 따로 분류하는 것 같긴 했지만 정확하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몰랐다. 어쨌든 여 러 가지 궁금증이 일어났기 때문에 질문을 계속했다. [번 호] 90 / 90 [등록일] 2000년 08월 30일 20:16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32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4장: 마나회로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4장:마나회로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399 게 시 일 :00/08/30 20:10:15 수 정 일 : 크 기 :10.0K 조회횟수 :3 "마술과 마법은 다른가요?" "물론이지. 마술은 회로계 외부의 존재에게 주문을 통해 힘을 빌리는 행위이 고, 마법은 회로계의 마나회로를 통해 주문 없이 힘을 발휘하는 행위거든. 차 이점을 알겠냐?" 흠…… 그렇군. 어떤 특정 존재에게 힘을 빌리는 것이 마술이고, 마나회로를 이용하면 마법이 되는 것이구나. 생각해보니까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니었잖아? 그럼 다음 질문. "근데 마법사가 마술을 사용할 수 있어요? 아니면 마술사가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나요?" "둘 다 가능해. 그거야 자기 능력에 따른 거니까. 그래도 보통 마법사가 마 술을 사용하는 것과 마술사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워. 두 가지를 동시 에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트레이 씨는 마술도 사용할 수 있어요?" "하하, 내가 무슨 마술을 쓰냐. 주문 외우기도 귀찮은데." 흘…… 확실히 암기하는 걸 좋아할 만한 인간은 아니지. 근데 암기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려나 모르겠군. 뭐 암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쨌 든 계속해서 질문. "그럼 마법은 어떻게 사용해요?" "왜? 아직 1서킷도 깔지 못했으면서 벌써부터 관심을 갖냐?" 트레이는 물고기가 타지 않도록 물고기를 잘 돌리면서 날 놀렸다. 하지만 8 시간 동안의 마법 수련을 통해 이미 1서킷의 마나회로를 건설한 내가 그런 놀 림을 받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당장 트레이에게 난 이미 1서킷을 깔 았다 라고 큰소리치려 했지만, 마나회로를 다 깔았더라도 혹시나 잘못 깔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우선은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어쨌든 빨리 가르쳐줘요. 안 그러면 저 물고기 제가 먹어버립니다." "어쭈? 이제 스승을 하찮은 물고기 한 마리 가지고 협박하겠다는 거냐?" "협박이 아니라 제자로서 당연한 요구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 내 말이 뻔뻔스럽다고 느꼈는지 트레이는 한동안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 았다. 그러나 내가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보자 결국 트레이가 한발 물러 섰다. "뭐 좋아. 마법을 쓰려면 우선 사용하려는 마법의 이미지를 떠올려야 해. 그 러면 마나회로 속에서 멋대로 헤엄치고 있는 마나들이 한쪽 방향으로 정렬을 하고, 그렇게 정렬된 마나의 영향으로 피부에 건설한 마나회로에서 마나장(Ma na場)이 형성되지. 그 마나장이 외부 마나회로 속의 마나를 정렬시키고, 정렬 된 외부 마나회로의 마나에 의해 마법이 실현되는 것이야. 네 그 작은 머리로 이해가냐?" "……!" 트레이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내 머리 속에는 전기회로도가 그려졌다. 두뇌를 건전지, 마나를 전자, 마나장을 자기장으로 생각하면 완벽했던 것이다. 즉, 마법 이미지의 구상이라는 스위치를 누르면 마나라는 전자가 한쪽 방향으로 정렬되고, 그에 따라 전류가 흘러 마나장이라는 자기장이 형성되며 그 자기장 이 다른 전기 회로에 영향을 주어 건전지 없이 코일만 있는 외부 회로에 유도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흘…… 역시 내 말이 이해하기 더 어려워…… 난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 건지…… 어쨌든 이곳 마나회로의 사용법을 알았으니까 이제 써먹어 봐 야겠지? 아차, 그 전에 질문! "근데 마법을 사용할 정도가 되려면 마나회로를 얼마나 깔아야 되요?" "적어도 1서킷은 완벽히 깔아놔야지." 트레이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난 뒤 굽고 있던 물고기의 머리를 덥석 뜯어먹 었다. 역시 더럽게 사는 인간이라 먹는 것도 거침없었다. 어쨌든 내 물고기도 대충 익은 것 같았기 때문에 나도 물고기의 뱃살을 조금 뜯어먹어 보았다. "……." 크으…… 더럽게 맛없군. 이런 걸 어떻게 먹냐? 게다가 어디는 너무 익어서 타버리고, 어디는 덜 익어서 맛이 형편없고. 만약 이 물고기가 기생충에 감염 되어 있다면 기생충도 먹는 셈이 되는데…… 으으……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당 장에 이걸 집어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스슥- 어느새 물고기를 다 먹은 트레이가 한 마리 남은 물고기를 집어들더니 손칼 로 배를 쓱 갈라 내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또 나뭇가지에 물고기를 꽂아 열심 히 굽기 시작했다. 어차피 난 물고기를 더 구워먹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트 레이가 남은 물고기를 먹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지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음…… 근데 무슨 마법을 쓰지? 어떤 마법이 가장 쉽냐? 에…… 트레이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괜히 마법 실현한다고 했다가 실패하면 엄청 쪽팔리니까 그 렇게는 못하겠고…… 음…… 그냥 간단하게 불장난이나 해봐야지. 그래, 저 작은 돌을 한번 구워보자! "……." 그렇게 결정한 나는 내 옆에서 대략 1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져 있는 돌 을 향해 몸을 살짝 돌렸다. 그리고 나서 작은 불길이 그 돌을 감싸는 장면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생각에 불과했지만, 그 생각이 마나회로에 영향을 주자 내 피부에 건설된 마나회로에서 순간적인 마나장이 형성되었고 그 마나장이 외부의 마나회로에 영향을 주어 내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의 마법 이 곧바로 실현되었다. 화르르……. 이런…… 조금 거칠게 일어났던 불길이 바로 사그라들어 버리는군. 역시 아 직 제대로 마나회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건가? 뭐 그거야 계속 연습하다보면 익숙해지겠지. "뭐, 뭐야 방금?!" 막 다 구운 물고기를 먹으려던 트레이가 내 마법을 보고 크게 놀랬다. 하지 만 난 그런 트레이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마법 연습을 했다. 후후, 뭐든지 감각이 중요한 거야. 이제 막 이곳 마법에 눈을 떴는데 여기서 중단하면 감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번엔 파이어 볼로 해볼까? 근데 여 기서는 파이어 볼을 뭐라고 부를까? 음…… 뭐 그거야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니 까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고 지금은 마법 실현에 집중하자! "……." 난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파이어 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렇게 마법 이미 지를 떠올리고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곧바로 마나회로에서 마나장이 일 어났고, 그 마나장의 영향으로 순식간에 마법이 실현되었다. 화륵! 마법을 사용하는 나조차도 놀랄 정도의 빠르기로 실현된 파이어 볼은 아쉽게 도 주먹의 절반도 채 안 되는 크기였다. 하지만 처음 마법을 실현한 것치고는 이 정도면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그 파이어 볼을 방금 전에 불길로 구 웠던 그 돌멩이에다 날렸다. 펑! 약간의 폭발음과 함께 파이어 볼의 폭발에 휘말린 그 돌멩이는 대략 30cm 정 도 날더니 시냇물 속에 퐁당하고 다이빙을 했다. 비록 작은 파이어 볼이었지 만 작은 돌멩이 하나 날리는 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흠…… 이 세계의 마법은 꽤 쓸만한데? 특히 마법 실현 속도가 장난 아니게 빨라. 게다가 마법을 실현했는데도 마나의 고갈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도 않고. 정말 이상해. 여기는 마법을 실현해도 마나의 소모가 없는 건가? 음… … 어쩔 수 없이 이건 트레이에게 물어봐야겠군. "저기……?" 막 트레이에게 질문을 하려했던 나는 트레이의 모습을 보고 차마 질문을 던 질 수가 없었다. 트레이가 입을 헤 벌린 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 인간이냐……?" 트레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인간인데요." "……." 내 말이 썰렁했는지 일순간 트레이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하지만 트레이는 곧 눈에서 살기를 거둔 후 다시 날 쳐다보면서 물었다. "너 지금 1서킷 깔았냐?" "깔았다고 생각하는데요." "8시간만에 1서킷을 깔았다고?" "그런 것 같은데요." "너 인간 아니지?" "……." 흘…… 결국 그걸 물어보고 싶어서 그런 거냐? 내가 8시간만에 1서킷의 마나 회로를 건설한 게 믿겨지지 않는 모양이지? 뭐 트레이가 내 말을 믿든 말든 사실은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 단지 예의 상 이런 말을 해주는 수밖에. "아마 제가 중용자이기 때문에 습득 속도가 빠를지도 모릅니다." "아……!" 또다시 내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떠올린 트레이는 수긍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 바라보는 눈은 결코 곱지 않았다. "아무리 중용자라고 해도 이렇게 빨리 마법을 사용해도 되는 거냐? 난 지금 네 정도 수준의 마법을 구사하기까지 무려 5개월이나 걸렸단 말이야." 흘…… 그거야 아저씨 실력이 딸리니까 그런 거지. 난 이미 마법 구사하는 것에는 이골이 나 있어서 이 세계의 마나에 적응만 하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 고. 사실 이 정도의 마법도 내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친다고 할 수 있지. 하지 만 이런 말을 하면 트레이가 날 죽이려고 할 테니까 궁금한 거나 물어봐야겠 다. "근데 마법을 구사해도 마나의 소모 같은 거는 없나요?" "마나의 소모? 그게 뭐냐?" 내 질문에 오히려 트레이가 되물어왔다. 정말 마나의 소모라는 것을 들어본 적 없다는 표정이었기 때문에 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정신력의 소모는 들어봤어도 마나가 소모된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잠시 후에 트레이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그 말은 이곳의 마법이 오직 정신 력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었다. 전기회로에서 건전지만이 소모될 뿐 전선은 닳지 않듯이, 마나회로라는 특이한 공간에서는 건전지에 해당하는 정신력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헐…… 정신력만 소모된다면 이거 엄청나겠는데?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으 면 마나의 제약을 받지 않고 강한 마법을 연속적으로 펼칠 수 있으니까 말이 야. 게다가 마법 실현 속도도 빠르니까 검사 정도는 가볍게 이기겠는걸? 흠… … 그렇다면 이곳의 마법사는 무섭겠군. 마법사 만나면 조심해야겠어. "나원, 중용자는 마법을 금방 배우고 보통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건 완전 차별이야." 트레이는 어울리지 않게 궁시렁 대면서 물고기를 뜯었다. 난 비록 그렇게 생 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으로 논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트레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졌다. "트레이 씨는 왜 이 마을에 있어요?" 사실 트레이의 저 더러운 모습을 보면 이 마을에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마법사씩이나 되는 인간이 저렇게 산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 내 질문에 트레이는 별 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난 떠돌이라서 2년 전에 여기 잠깐 들른 뒤에 바로 다른 마을로 가려 고 했어. 그런데 로스가 나보고 여기 남아달라고 하더군. 매일 마다 아침 식 사를 갖다준다고 했지. 대신 중용자가 오면 잘 가르치라면서. 그래서 이렇게 이 마을에 눌러 살고 있는 거다." 음…… 아트로포스가 트레이의 발목을 잡았단 말이지? 단지 중용자에게 마법 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생각해보면 엄청난 여자군. 중용자를 위해서 2년 동안 이나 이 더러운 인간의 집에 아침마다 왔다갔다해야 했다니. 존경스러워∼ "그럼 절 훈련시킨 다음에는 뭐하실 거예요?" "글쎄…… 그런 걸 일일이 너한테 보고해야할 필요를 못 느끼겠는데?" 어쭈구리…… 상당히 띠껍게 나오는군. "제자로서 궁금하잖아요.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을지." 흘…… 제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시는 저 인간 몸에서 떨어지는 바퀴벌레들을 보고 싶지 않다구……!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하지만 만나기 어려울 거야. 내가 워 낙 귀한 인물이라서." 트레이는 그렇게 자화자찬을 하면서 마지막 남은 물고기를 낼름낼름 먹어치 웠다. 트레이가 물고기 두 마리를 다 먹는 동안, 난 한 마리를 겨우 다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는 물고기를 구워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트 레이는 두 마리의 물고기로는 배가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 이드! 또 물고기 건질 준비해라!" "……." 흘…… 차라리 날 죽여라……!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1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2일 13:58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47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5장: 영인관 아트로포스 -1- ─────────────────────────────────────── 제목 [사이케델리아] 5장:영인관 아트로포스 -1-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17 게시일 00/09/01 22:35:22 수정일 크기 6.9K 조회횟수 257 <제 5 장> 영인관 아트로포스 똑똑- 으…… 누가 이른 아침부터 이 귀하신 몸을 깨우려는 거냐? 어제 트레이한테 엄청나게 시달려서 피곤하단 말이다……! "중용자님, 아니 이드님.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습니까?" "……?"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왠 중년 남자의 것이었다. 상황을 고려하면 아트 로포스의 아버지가 틀림없었기 때문에 난 부스스 일어났다. 남의 집에 얹혀 사 는 인간의 서글픔인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하하, 잊으셨습니까? 오늘은 검술 연습을 하는 날입니다." "……." 아…… 그랬지. 어제 트레이에게 마법을 배웠으니 오늘은 아트로포스의 아버 지에게서 검술을 배우는 거군. 근데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왜 온 거야? 난 좀 더 자고 싶구만. "알겠습니다. 곧 나가죠." 마음 같아서는 계속 침대에 퍼질러 자고 싶었지만 식객인 나에게 그럴 권리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나가지 않으면 아트로포스가 귀신같이 나타나 그 무 표정한 얼굴을 들이대며 날 협박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의 말을 따라야만 했 다. 덜컥- 문을 열자 아트로포스의 아버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검술 훈련을 할 것 같은 분 위기였다. "지금 하나요?" 난 반신반의하며 물었고, 아트로포스의 아버지는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네. 지금 당장 합니다." "…… 식사도 안 하구요?" "식사를 하게 되면 몸의 반사 속도가 떨어집니다." "……." 크…… 그렇다면 결국 밥도 먹지 못하고 혹사당해야 한다는 소리구만. 아무리 검술 훈련이라지만 사람에게 밥은 먹여 줘야 할 거 아니야?! "받으십시오." 아트로포스의 아버지는 나에게 들고 있던 검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검은 단 순한 다이아몬드형의 검신(劍身)에 지극히 단순한 십자형의 가드로 되어 있었 다. 게다가 검날조차 다 떨어져서 이걸로는 사람을 베기는커녕 쳐죽이는 꼴밖 에 나올 것 같지 않았다. 흘…… 이런 낡은 검으로 연습을 하라는 거냐? 진짜 돈 아끼는구만. 왠만하면 새 검으로 사주면 안돼? 이렇게 넓고 하녀까지 있는 집에서 그깟 검 살 돈이 없어서 이러는 거야?! "그럼 절 따라오십시오." 아트로포스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뒤 유유히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아트로포스가 우리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트로 포스는 내 검술 훈련을 볼 생각인 듯했다. 뚜벅뚜벅- 저벅저벅- ……. 아트로포스의 아버지, 나, 그리고 아트로포스의 순서대로 우리들은 집 뒤쪽에 있는 뒤뜰로 나갔다. 사실 그건 뒤뜰이라기보다는 그냥 집 뒤의 공터였다. 아 트로포스의 아버지는 날 집 뒤쪽에서 대략 1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도록 한 뒤, 자신은 아트로포스와 함께 집과 나 사이에 섰다. 그런 다음에 날 보며 입 을 열었다. "이제 검술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이드님께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 습니다." 흘…… 얼마든지 당부하라고. 어차피 난 그 당부를 들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 니까. "현재 이드님은 검술을 하기에 아주 부적당한 분입니다. 우선 몸이 너무 호리 호리하고, 완력도 없으며 체력도 약하고 운동 신경도 더디기 때문이죠." "……." 이봐, 아저씨.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낼 건 없잖아? 그건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부분이란 말이야. 왜 아픈 곳을 찌르는 거냐고. "검술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과 운동 신경입니다. 하지만 체 력은 단기간에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죠. 따라서 제가 이드님에게 훈련시키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운동 신경의 향상입니다." 호…… 운동 신경의 향상? 근데 그걸 어떻게 향상시켜? 설마 무슨 요상한 약 을 먹여서 운동 신경을 비이상적으로 향상시킨다는 헛소리는 아니겠지? "로스, 준비를." 아트로포스의 아버지는 아트로포스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했고, 그의 지시를 받 은 아트로포스는 천천히 내 옆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내 옆에서 조금 떨어져 서 나와 자신의 아버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제자리를 잡았음을 본 아 트로포스의 아버지는 다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제가 이드님을 공격하겠습니다. 이드님은 최선을 다해서 제 검을 막기 바랍니다." 에엑?! 저 아저씨가 날 공격한다고? 큰일이다! 잘못하면 다치겠는걸? 으…… 우선은 저 아저씨의 이름이라도 물어서 시간을 조금 끌어볼까나? "저기요, 근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있으면 그렇잖 아요." "아, 그렇군요." 내 말에 아트로포스의 아버지는 수긍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내 예상대로 나한테 자신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텔'입니다. 그리고 제 아내의 이름은 '나엔'이죠. 그 정도만 알 아두셔도 됩니다." 흘…… 소개를 그렇게 간단히 하면 어떡해? 그러면 시간 끌기 작전이 먹혀들 지 않잖아! 좀더 시간을 끌만한 화제 거리를 어서 생각해내야……! "그럼 갑니다!" 아트로포스의 아버지, 즉 텔은 말을 끝내자마자 갑작스럽게 나에게 달려왔다. 50대의 나이답지 않게 빠른 몸놀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아저씨의 검에 맞기는 싫었기 때문에 난 즉시 검을 고쳐 잡으며 오른쪽으로 피했다. 챙! "윽……!" 텔의 검이 내 검과 부딪치면서 금속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오른쪽으로 몸을 옮기자 텔이 검을 옆으로 휘둘러 내 검을 때린 것이다. 상당히 강한 힘으로 휘 두른 것인지 순간적으로 내 손이 저려옴을 느꼈고 그 순간, 사악-! "……!" 텔의 검이 내 오른쪽 팔을 베고 지나갔다. 그 위치는 어깨와 팔꿈치 사이, 즉 상박의 가운데 부분이었다. 당연히 내 팔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고, 난 상당 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끄아……!" 고통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검을 떨어뜨리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다친 부분을 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그런다고 아픈 곳이 낫지는 않았다. 텔은 그런 나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 정도의 상처에 주저앉으십니까? 맷집이 없으시군요." "……." 시끄러! 너도 한번 칼 맞아봐! 그런 말이 나오나! "로스." "네." 텔은 갑자기 아트로포스를 불렀고,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옆에 조용히 앉아 다친 부위 가까이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잠시 후, 놀랍게도 내 상처가 말끔히 나아버렸다. 이미 흘러나온 피는 그대로였지만 상처는 완벽하게 아물었고 고통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 이야∼ 영인관인 아트로포스에게는 치유 능력이 있는 건가? 이거 아주 쓸만한 능력인데? 뭐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완벽하게 상처를 치 유하다니 정말 대단해. 앞으로는 다쳐도 문제없겠는걸? "그것이 바로 로스의 능력입니다." 내가 다 치유된 상처를 보며 놀라고 있을 때 텔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난 텔을 쳐다보았고 텔은 아트로포스의 능력에 대해 나에게 자세히 알려주기 시작 했다. "로스는 영인관으로서 중용자를 보좌합니다. 영인관은 바로 그 치유의 능력으 로 중용자를 돕는 것이죠." "하지만 영인관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치료할 능력은 없습니다. 영인관의 치유 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상대는 오직 중용자 뿐이니까요." 아트로포스는 다시 몸을 일으키며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역시 영신관과 영마 관, 그리고 영인관 모두 그들의 힘을 적용시킬 수 있는 상대는 오직 중용자 뿐 이었던 것이다. "그럼 다시 검술 훈련을 시작하죠." 텔은 검을 바로 쥐며 나보고 어서 일어나라는 눈짓을 보냈다. 지금 당장 일어 나지 않으면 내 머리통을 날려버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난 내키 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트로포 스는 나에게서 약간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텔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사악-! "……!" 텔의 검이 스쳐지나가자 내 왼쪽 다리에서 피가 튀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저 검이 피부를 긁은 정도의 상처였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난 또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번 호] 92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2일 14:00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54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5장: 영인관 아트로포스 -2- ─────────────────────────────────────── 제목 [사이케델리아] 5장:영인관 아트로포스 -2-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18 게시일 00/09/01 22:35:41 수정일 크기 7.0K 조회횟수 244 "전혀 손을 쓰질 못하시는군요." 텔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날 내려다보았다. 그런 텔에게 한바탕 욕이라도 퍼붓 고 싶었지만 다리의 고통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있는 대로 인상을 쓰 며 끙끙대자 아트로포스가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자신의 능력으로 검에 베인 곳 을 낫게 해주었다. "자, 상처도 나았으니 어서 일어나십시오." "……." 난 텔의 말대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아까 팔을 베이고 이번에 다리를 베인 탓인지 내 몸이 이런 훈련은 싫다고 거 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운동 신경을 향상시키려고 날 막 베는 거냐? 정말 더러운 훈련 방법이구만. 영인관이 옆에 있다고 이런 엿 같은 훈련 방법을 쓰다니…… 제길! "뭐하시는 겁니까? 다리가 떨리고 있습니다. 중풍이라도 걸린 겁니까?" "……." 텔은 날 도발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했지만 난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허점 많은 내가 먼저 공격한다면 텔의 검이 그 허점을 비 집고 들어와 내 몸을 베어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 보고 텔이 입을 열었다. "뭐 공격하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공격해 들어가죠. 갑니다!" 탓! 텔의 발이 떨어짐과 동시에 텔의 검이 내 몸 쪽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나도 계속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텔의 움직임을 파악하자마자 즉시 뒤로 세 발 자국 이상 물러섰다. 그렇게 물러선 뒤에 텔이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내가 반격 을 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춤거릴 것이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 리 텔은 달려오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슈욱-! "헉!" 내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텔의 검 이 내 왼쪽 팔을 어깨에서부터 깨끗이 날려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 이다. "으아악!!!" 팔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음을 확인하자마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어깨에서부터 피가 뿜어져 나와 땅에 자라고 있던 잡초 위로 뿌려졌다. "으아아아―!" 난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가능하면 땅바닥을 구르고 싶 었지만 그렇게 하면 상처에 이물질이 들어가 버려 더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세요." 그때 아트로포스의 차분한 말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보통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팔이 떨어져 나간 고통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이상하 게 아트로포스의 말은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지금 치유해 드릴 테니 가만히 계세요." 아트로포스는 내게 그런 말을 한 뒤 내 옆에 떨어져 있는 내 왼쪽 팔을 주워 들었다. 마치 인형처럼 아트로포스의 손에서 축 쳐져버리는 내 팔을 보고 있자 니 또다시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트로포스의 말이 내 마음 을 다시 가라 앉혀 주었다. "잠시 참아주세요. 곧 치유합니다." "크윽……!"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고통을 참았다. 아트로포스는 잘린 내 팔을 보고도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잘린 팔을 갖다대 었다. 그리고 나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 고통이…… 사라져간다…… 잘려 나갔던 팔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어…… 설마…… 잘린 팔을 다시 이어 붙였다는 건가? 도대체 영인관의 힘은 어느 정 도지? 이 정도라면 내가 죽어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후…… 이제 치유는 끝났습니다." 아트로포스는 잠시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내 옆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곧 텔의 말이 들려왔다. "팔이 떨어져 나간 기분이 어떻던가요?" "……." 난 조용히 텔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텔은 검에 묻은 피를 탁탁 털며 날 보고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은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사악해 보였다. "남의 팔을 함부로 잘라도 되는 겁니까?" 마음에서 피어나는 분노를 억누르며 난 텔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텔은 하하 웃더니 또다시 역겨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로스가 치유해줬지 않습니까?" "로스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다면 어떡할 겁니까?" "지금 로스에게는 치유 능력이 있습니다." "……." 빌어먹을…… 말이 안 통하는군. "이런 훈련이 과연 도움이 되는 겁니까? 이런 게 운동 신경을 향상시킨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검에 베이기 싫으면 저보다 빨리 움직이시면 되는 겁니다." 텔은 내 질문에 능글거리며 대답했다. 텔의 그 말은 내 기분을 더욱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이유도 생각해내기 싫었다. 그래서 난 텔을 향해 소리쳤다. "닥쳐! 나 같은 초보자에게 네 검을 피해보라고?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 해?!" "가능합니다. 수십 번 베이다 보면 그렇게 되죠." "……." 후후…… 수십 번 베이다 보면 그렇게 된다라……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말이 군. 크크…… 그딴 말은…… 그딴 말은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너희들이나 열심히 연습해! 난 안 할 테니까!" 난 텔에게 그렇게 소리친 뒤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텔은 그런 내 앞 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당신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이런 낯선 세계에서 개죽음을 당하기 싫다면 지시하는 대로 따라주십시오." "……." 텔에게서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그는 지금 내 검술 훈련을 여기서 그만두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이런 검술 훈련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남에게 억지로 떠밀려 하는 짓은 더더욱 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난 텔 에게 경고했다. "비켜." "제가 비킬 것 같습니까?" "비키지 않으면 죽인다." "능력이 있으면 그렇게 하시죠. 후후." 텔은 내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날 비웃었다. 나 같은 것은 새끼손 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다는 그런 비웃음이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비웃음이었던 것이다. "꺼져 이 새끼야!!!" 난 손에 들려 있는 검으로 텔을 내려쳤다. 그러나 텔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해 내 뒤로 돌아갔기 때문에 내 검은 허공만을 갈랐을 뿐이었다. "이 개새끼!!!" 텔이 내 검을 피했다는 사실에 더욱 화가 난 나는 몸을 돌려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텔은 내 검을 가볍게 받아내었고, 오히려 주춤해 있던 날 검으로 베어 버렸다. "크윽!" 텔의 검이 지나간 곳은 내 오른쪽 팔이었다. 다행히 피부만 살짝 긁힌 정도였 으나 그 상처로 인해 난 더욱 미쳐버렸다. "죽어버려!!!" 우우웅-! 내 외침 소리와 함께 내 몸과 맞닿아 있는 외부의 마나회로에서 강한 마나장 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바위 하나를 가볍게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살인적인 마 나장이었다. 그런 마나장이 텔을 노리고 있었다. "타앗!" 마나장이 막 텔을 덮치려는 순간, 텔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내 품속으 로 뛰어들었다. 마나장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텔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푸욱-! "……!" 뭔가 단단한 것이 내 배를 파고들었다. 그것은 텔의 검이었다. 비록 내 몸에 는 강한 마나장이 분포하고 있었으나 텔의 빠르고 날카로운 검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커헉―!" 신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복부를 검으로 관통 당한 충격은 뭐라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텔은 내 복부에 여전히 자신의 검을 꽂아 넣은 채로 입을 열었다. "화를 낸다고 해도 현격한 실력차가 없어지는 건 아니죠. 당신은 이 정도의 실력 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 후후…… 이것이…… 내 실력…… 제대로 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는 것이 내 실력…… 후후…… 하하하하!!! 털썩! 내 몸은 무방비 상태로 꼬꾸라졌다. 땅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는데도 고통 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의식이 점차 사라져갈 뿐이었다. 그 어떤 감각 도 느낄 수 없게……. ========================================================================= 흐... 축구 보느라고 조금밖에 못썼습니다...ㅡㅡ;; [번 호] 93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3일 23:25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42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5장: 영인관 아트로포스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5장:영인관 아트로포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40 게 시 일 :00/09/03 15:58:23 수 정 일 : 크 기 :10.5K 조회횟수 :223 - 푸욱-! - 빌어먹을……! - 화를 낸다고 해도 현격한 실력차가 없어지는 건 아니죠. - 크으……! - 당신은 이 정도의 실력 밖에 되지 않는 겁니다. "……!"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낯선 방의 천장이었다. 물론 그 낯선 방은 내 가 아트로포스네 집에 들어와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낯선 방이라고는 할 수 없 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낯선 방이었다. "……." 침대에 누운 채로 배를 만져보았다. 배에 뚫린 구멍이 만져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트로포스가 완벽하게 치유시킨 듯했다. 역시 영인관의 힘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제길…… 비록 중용자에게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지만…… 아트로포스는 중용 자를 도울 수 있는 강력한 능력이 있는데…… 난 뭐지? 한물 가버린 아저씨한테 여지없이 깨지다니…… 빌어먹을! 저벅저벅- 나에 대해 화가 치밀어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즉시 방밖으로 나왔다. 하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과, 지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을 보니 점심 식사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난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냥 현관문을 통해 집밖으로 나갔다. 나갈 때 하녀 하나가 날 불렀지만 무시해버렸다. 찌르륵- 찌르르릉- 밖으로 나오자마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소리가 날 반겼다. 이대로 집밖에 서 있으면 하녀들이 또 날 부르러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난 천천히 숲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숲 속으로 얼마 들어가지 않고 걸음을 멈췄다. 숲의 지리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멋대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후후……." 정말 우습군. 기분 우울한 상황에서 그런 걸 따지고 앉아 있다니. 결국 나는 숲으로 들어갈 용기도 없는 거잖아.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말이야. 저 집에서 살지 않으면 이 세계에서 내가 살아갈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 숲의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굉장히 높아 보였다. 왠지 절대로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이곳에서 내가 훈련한다해도 내 실력은 그저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박-! "……!" 그때 내 뒤에서 수풀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숲 속의 맹수가 날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자 온몸의 털이 죄다 곤두섰다. 비록 1서킷의 마나회로를 깔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지만 아직 강한 마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무기도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숲의 맹수를 상대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으…… 여기서 맹수한테 먹혀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거냐? 아직 그 텔이라 는 아저씨한테 복수도 못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좋아, 사자 든 호랑이든 표범이든 곰이든 뭐든 다 덤벼! 공격하면 바로 저승으로 보내주겠 어! "네놈이 중용자냐?" "……?"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말소리에 내 긴장이 탁 하고 풀렸다. 방금 전에 내 뒤에 서 났었던 수풀 소리는 바로 그 사람이 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사 람은 17, 18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던 것이다. 우씨…… 괜히 놀랬잖아? 감히 자기보다 나이 많은 대선배를 긴장시키다니…… 저 녀석이 염라대왕을 만나고 싶어서 저러나? 나보다 키가 작고 얼굴도 새까맣 고 촌티도 팍팍 나는 녀석 주제에……! "네가 중용자인지 물었잖아!" 소년은 나에게 반말을 찍찍 해대면서 화를 냈다. 이런 말을 하면 녀석에게 미 안하지만, 모든 면에서 나한테 뒤떨어지는 녀석이 나한테 반말을 하니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나도 띠껍게 나갔다. "그래, 내가 중용자다. 나한테 무슨 볼일 있냐?" "역시. 로스네 집에서 왠 남자가 나오길래 그럴 줄 알았다." 어쭈구리…… 이 녀석 혹시 스토커 아니야? 아트로포스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 는…… 엇? 잠깐! 저 녀석의 눈빛…… 어디서 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언제였지…… 언제…… 아! 맞아! 내가 처음 아트로포스네 집에 들어가서 막 자 려고 했을 때 누군가 날 노려보고 있던 느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정체가 바로 이 녀석이었구나! "쳇! 결국 중용자가 와버리다니……." 소년은 나한테 무슨 악감정이 있는 듯 날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난 녀석 을 본 적도 없고 녀석에게 무슨 잘못한 적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 했다. "나한테 할말 있으면 빨리 해. 중얼거리지 말고." "……." 내가 약간 띠껍게 나왔기 때문인지 소년의 기세가 약간 위축되었다. 그러나 금 방 다시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영인관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하는군. 난 녀석이 '로스에게 허튼 짓을 했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녀석은 아트로포스에게 관심이 없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뭐 우선 녀석의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 다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영인관은 중용자를 보좌하는 역할 아닌가?" 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간단히 줄여서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비웃음을 흘렸 다. "훗, 역시 로스가 전혀 말을 하지 않았군. 그럴 줄 알았어." "……?" 뭐냐? 아트로포스가 나한테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있나? 음…… 그럴지도 몰라. 영관이라는 녀석들이 항상 나한테 사실을 숨기려고 하니까 말이야. "그럼 넌 성물(聖物)의 수수께끼를 아냐?" 내가 속으로 영관에 대한 불신을 쌓아갈 때 소년의 질문이 들려왔다. 소년의 말은 확실히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꽤 흥미가 생겼다. "성물의 수수께끼? 그게 뭐냐?" "역시. 로스가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어." 소년의 눈은 꽤 살벌해졌다. 단지 문제는 그 살벌한 눈빛의 대상이 아트로포스 가 아닌 나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사실을 은폐한 아트로포스는 놔두고 사실을 모르는 나만 죽일 듯이 노려보는 소년의 태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년 은 계속해서 날 죽일 듯이 노려보며 나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설마 너 성물이 일곱 개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 "알아." "그럼 잘 들어. 영인관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을 말이야." 영인관이…… 마지막으로 하는 일? 그런 것이 있었나? 설마…… 중용자를 죽인 다는 것은 아니겠지? 헉! 그러고 보니까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는 그리 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이잖아? 그 중에서 아트로포스는 운명의 실을 끊는 역 할을 하고! 으으…… 그렇다는 것은…… 아트로포스가 내 운명의 실을 싹뚝 잘 라버린다는 뜻?! "중용자는 영인관과 함께 칠성물을 모아야만 해. 그래야 천신계나 천마계에 갈 수 있으니까. 어쨌든 여섯 개의 성물까지는 영인관의 능력으로 그 위치를 알 수 있어. 하지만 마지막 하나의 성물은 영인관의 능력으로써 찾을 수가 없어. 성물 의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그 위치를 알 수 있지." "……?" 성물의 수수께끼라…… 이게 무슨 장난이냐? 정말 유치찬란하게 노는구만. 그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은 누구냐? 영계에서 문제 뽑아서 나보고 풀라고 주는 거 야? "지금까지 9명의 중용자 중에서 그 성물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단지 2명 뿐 이야. 성물의 수수께끼란 것은 문제도 없고 어떤 식으로 풀어야 하는지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새로운 중용자가 올 때마다 바뀌는 것 같고." "……?" 엥? 문제가 없으면 그게 무슨 수수께끼냐? 문제가 없으면 도대체 어떻게 풀어? "어쨌든 그 수수께끼를 풀면 무사히 나머지 성물을 얻어 천신계나 천마계로 갈 수 있어. 하지만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나머지 하나의 성물을 얻지 못하게 되면……." 소년은 거기서 잠깐 말을 멈추었고, 난 왠지 모르게 긴장을 느끼며 소년의 다 음 말을 기다렸다. 분위기 같아서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것 같 았지만, 중용의 법칙이 지금까지 모두 실현됐다는 것으로 봐서는 중용자들이 죽 을 리는 없었다. 어쨌든 난 긴장하면서 소년의 말을 기다렸고, 소년은 침을 꼴 깍 삼킨 뒤에 입을 열었다. "나머지 하나의 성물을 얻지 못하게 되면…… 중용자는 영인관을 죽여서 그 힘 을 흡수한 뒤 천신계나 천마계로 가야해."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 때문에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내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짓자 소년은 코웃음을 쳤다. "놀랐지? 그게 바로 영인관의 마지막 할 일이야. 중용자가 무능해서 그 수수께 끼를 풀지 못하면 함께 다녔던 영인관을 죽여서 그 힘을 흡수해야 하는 거지." "그럼……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던 그 7명의 중용자들은 영인관을 죽인 다음에 중용의 법칙을 실현했다는 거야?" 난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급히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내 질문에 아주 차갑 게 대답했다. "그래. 7명 모두 그랬어." "……!"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영인관을 죽여 그 힘을 흡수해야 한다…… 상 당히 비인간적인 행위로군. 9명의 중용자 중 단지 2명만이 영인관을 죽이지 않 았다 라는 소리…… 후후…… 중용자보다도 영인관의 역할이 더 무섭군. "어때? 진실을 알게 된 소감은?" 소년은 날 비웃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그가 나에게서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는 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 소년의 물음에 대답하기 전에 다른 질 문을 했다. "하나 물어보자. 영인관은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결정되는 거냐?" "아니. 자신이 영인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는 10살 전후야. 그 전까지는 보통의 인간과 전혀 다를 게 없지." "그렇다면 영인관이라는 것을 알기 전의 로스의 성격은 어땠지?" "후후." 내가 그런 질문을 하자 소년은 왠지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내 질문은 소년이 원하고 있던 질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소년은 그렇게 재수 없게 웃은 뒤 에 입을 열었다. "영인관이 되기 전의 로스는 밝고 착한 아이였어. 항상 웃고 다녀서 주위의 사 랑을 한 몸에 받았지. 그리고 난 로스와 친하게 지냈고 나중에 크면 결혼하기로 약속했어." "……!" 속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화가 난다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웃음이었다. 얼굴이 새하얀 아트로포스와 얼굴이 시꺼먼 저 소년이 서로 결혼한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웃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안 달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날 눈치채지 못하고 자기 혼자 흥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로스가 영인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로스의 태도는 완전히 달 라져 버렸어! 아무리 우스운 얘기를 해도 웃지 않고, 사람들 만나는 것마저 피 했어! 마치 처음부터 이 마을에 살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단 말이야! 넌 왜 로 스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아?!" 소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끝에는 아주 격한 어조로 나에게 소 리쳐 물었다. 역시 자신과 결혼하기로 한 여자가 자기를 모른 척 하니까 무척 화가 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년이 화를 내든 말든 나하고는 전혀 관계 가 없었기 때문에 난 혼자 발악하는 소년에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소년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로스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야 간단한 거지. 어차피 중용자에게 죽을 가능성 이 높은 몸이니까 자신이 죽었을 경우 다른 사람들에게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 서 그런 행동을 취하는 거라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굉장히 슬퍼하지만, 그냥 얼굴만 알고 지낸 사이일 경우에는 그 사람이 죽어도 그다지 슬퍼하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네 말은…… 로스의 지금 행동이 옳다는 소리냐?" 내 말을 들은 소년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상당히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소년의 주먹이 날아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난 잠자코 있 었다. 소년은 다행히 주먹을 날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왜 로스가 영인관이 되어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모른 척 해야 한다는 거야? 로스에게는 로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그런데 영인관으로서의 임무는 로스에게 행복을 버리라고 강요하고 있어! 로스가 너 같은 녀석에게 죽 으면 로스의 행복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 헐…… 자기 애인이 자기를 모른 척 하니까 할 것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고 있 었군. 이런 산골 구석의 소년의 촌스러운 생각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야. 그 점에서는 칭찬을 해주지. [번 호] 94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3일 23:26 Page : 1 / 19 [등록자] THEBUR [조 회] 48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5장: 영인관 아트로포스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5장:영인관 아트로포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41 게 시 일 :00/09/03 15:59:05 수 정 일 : 크 기 :10.2K 조회횟수 :232 "이 세상에는 권리에 앞서는 의무가 있어." 난 우선 그렇게 말을 함으로써 소년의 분노를 잠시 억누르고자 했다. 내 예상 대로 소년은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고, 약간 여유가 생긴 나는 천천히 내 생각을 토해냈다. "권리에 앞서는 의무는 그 의무를 행하지 않았을 때 그에 따른 권리를 획득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하지. 로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야. 로스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 하려고 영인관으로서의 의무를 내팽개친다면 중용자는 혼자서 싸워야 하고, 결 국 죽겠지. 그렇게 되면 중용의 법칙은 실현되지 못하고 나중에는 아르카디아가 천신이나 천마 둘 중 하나에게 예속될 거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로스는 행복하 게 지낼 수 있을까?" "……." "한마디로 로스의 행복은 영인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로스는 영인관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것이고." "그렇지만……!" 소년은 내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비록 이성적으로는 내 말이 틀리지 않 았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행복을 버려 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나에게 대들려고 했다. "왜 하필이면 로스가 영인관이 되어야 하는 거야? 로스는 10살 때까지는 평범 한 애였단 말이야! 왜 영인관이 돼서 너 같은 녀석 손에 죽어야 하냔 말이야!!!" "……." 어쭈구리…… 그 말은 내가 절대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서 아트로포스 를 죽인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이 녀석이 나한테 죽도록 맞고 한 대 더 맞고 싶 나? "내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할 것 같다는 소리냐?" "당연하지! 너 같이 귀하게 자란 녀석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 허걱! 내가 귀하게 자랐다고? 도대체 뭘 보고 내가 귀하게 자랐다는 거야? 저 녀석 눈,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넌 내가 귀하게 자란 것처럼 보이냐?" 난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최대한 불량스럽게 보이도록 하면서 소년 에게 띠꺼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소년은 전혀 겁내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 를 쳤다. "당연하지! 그 하얀 피부, 여자보다 마른 몸에다가 매일 여자만 꼬시러 다니는 얼굴인데 내가 그 정도도 모를 줄 알아?!" "……." 허허…… 내가 하얀 피부라고? 윽…… 어두운 곳에서 보니까 확실히 내 피부가 하얗군…… 내 몸이 웬만한 여자들만큼이나 마른 건 예전부터 알아서 별로 충격 적이진 않지만…… 내가 매일 여자만 꼬시러 다니는 얼굴이라고? 내 이십 평생 에 그런 소리는 처음이다! "네 녀석이 중용자가 됐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넌 기회만 있으면 로스에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할 게 뻔하니까!" 소년은 날 완전히 불량배 쪽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이대로 당하고 있을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즉시 소년에게 반격의 화살을 날렸다. "넌 로스를 사랑하고 있냐?" "……!" 내 질문이 전혀 예상외였는지 소년은 잠시 멍청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그 러다가 계속 내가 대답하라는 강압적인 얼굴을 하면서 노려 봐주자 소년이 마침 내 입을 열었다. "그래, 사랑해! 난 로스를 사랑한다고!" 그렇게 소년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하지만 난 이미 소년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기 때문에 즉시 소년에게 내가 생각했던 질문을 던졌다. "좋아. 그럼 넌 그 사랑하는 로스를 위해 무엇을 할거지?" "……!" "영인관으로서 힘든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로스를 위해 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느냔 말이다." "……!" 내 질문에 소년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멍하게 서 있었다. 난 그런 소년에게 비수와도 같은 말을 수십 마디 했다. "넌 지금 로스에게 그녀의 의무를 포기하라고 강요만 하고 있을 뿐이야. 너 자 신은 로스를 위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면서 그녀의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거다. 즉, 넌 이 마을에서 가장 예쁜 로스를 잃기 싫어서 그녀를 붙잡아두고 싶 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사랑이 아닌 소유욕 때문이지. 만약 네가 정말 로스를 사랑한다면, 로스를 위해 도움되는 일을 했을 거다. 하지만 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 모든 탓을 중용자에게 돌리고 있으면서 말이야." "으으……!" "로스는 지금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많이 괴 로워하고 있어. 어차피 이행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더라도 다른 사 람들에게 큰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차가운 행동을 하고 있는 거야. 그것은 로스가 그녀 나름대로 생각해낸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하지만…… 하지만……!" "난 로스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순 없어. 솔직히 그런 거 따지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넌 지금 로스를 위해 아무 것도 안 해주고 로스가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있어. 나 같으면 로스와 같이 여행을 떠나기라도 해서 세 상의 위험으로부터 그녀를 지키려고 했을 거다." "크윽……!" 소년은 신음만을 흘린 뿐 단 한마디의 반박도 하지 못했다. 역시 녀석은 내 말 대로 로스를 잃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욕망 때문에 그 욕망을 방해하는 중용자 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소년에게 마지막 말을 해주었다. "로스를 도와줄 힘이 없다면 그녀의 결심을 흐트러뜨릴 생각은 하지 마라." 저벅저벅- 그 말을 끝으로 난 숲 밖으로 걸어나왔다. 비록 소년에게 열심히 열변을 토하 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상당히 우울했다. 선택받은 자가 되어 자신의 행복을 버 려야 한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막 숲에서 벗어났을 때 내 앞에 누군가가 내 앞길을 막았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아트로포스였다. 내 뒤에서 돌아 나오며 내 앞을 막은 것을 보면, 아무래 도 나와 소년의 대화를 다 들어버린 듯했다. 이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만약 아트로포스가 저 소년을 좋 아하고 있다면…… 내가 한 말 때문에 소년이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아트로포스 가 엄청나게 화낼 것 같은……! "사실을 숨겨서 죄송합니다." "……?"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내 예상과는 달리 나에게 허리까지 숙이며 정중히 사과했 다. 아트로포스가 말하는 '사실'은 나에게 성물의 수수께끼에 관한 것이었지만 난 아트로포스에게 그런 걸로 사과 받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즉시 고개를 저 었다. "전혀 죄송할 거 없어. 중용자가 부담감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알려주지 않은 거잖아. 안 그래?" "네……." "그럼 그걸로 됐어. 넌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니까. 솔직히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내 부담감만 쌓이겠지." 흘…… 근데 그 사실을 알았으니 부담감이 막 쌓인다…… 내가 성물의 수수께 끼란 것을 풀지 못하면 아트로포스를 죽여야 하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난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 후후…… 당연한 걸 물어본 건가? 그런 상황이 나 한테 닥친다면 난 거의 망설이지 않고 아트로포스를 죽여버리겠지. "오후에 또 검술 훈련이 있습니다." 내가 막 아트로포스의 곁을 지나치자 그녀가 아주 당연한 듯이 그 말을 꺼냈다. 방금 전에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역시 아트로포스는 지 극히 사무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난 그런 아트로포스를 돌아보며 한마디했다. "점심 아직 안 먹었어." "점심은 이미 준비했습니다." 흘…… 점심이 준비돼서 날 부르러 왔던 건가? 그러다가 나와 그 시꺼먼 소년 의 얘기를 들은 거고? 뭐 어쨌든…… 그 살벌한 검술 훈련을 또 해야하다니……. "점심 먹고 나서 훈련하도록 하지." "네." 난 아트로포스와 함께 집 쪽으로 걸어갔다. 검술 훈련은 빠질 생각이 없었다. 비록 나에게는 고통뿐인 훈련이지만, 그 텔이라는 아저씨의 말대로 지금의 나는 형편없는 실력이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런 낯선 세계에서 개죽음을 당하기는 싫 었다. "……!" 아, 맞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녀석의 눈이 삔 것 같아. 항상 냉철한 아트로포 스에게 물어보면 내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겠지? "저기 로스, 하나 묻고 싶은데." "물어보세요." 아트로포스는 전혀 긴장하지 않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난 잠시 발걸음을 멈 추고 아트로포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로스가 보기에 난 어때?" "……?"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본 내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느냐 이거야. 방금 저 녀석은 나보고 여자만 꼬시러 다니는 얼굴이라고 했었거든. 로스도 그렇게 느껴 져?" 난 그 녀석이 나에게 했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아트로포스에게 내 의도 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내 자세한 설명에 아트로포스는 내 물음의 취지를 알아채고 날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트로 포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이드님의 첫인상은 뭐랄까…… 약간 연약하게 보여요. 피부도 하얗고 몸 도 말랐으니까요. 하지만 바람둥이 스타일은 아닌 것 같네요. 그냥 괜찮은 얼굴 이에요." "괜찮은 얼굴?" "일반적으로 조금 잘생겼다 라는 정도에요." 얼레? 내가? 내 이십 평생에 그런 말은 또 처음 듣는데? 이 세계에 와서 내 얼 굴이 달라진 곳은 전혀 없다구!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는 못 들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 얼굴 보면 별로 라는 생각도 했었고." "음…… 혹시 어렸을 때 귀엽다라는 소리 많이 들으셨나요?" 아트로포스는 지극히 객관적인 어조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을 받은 나는 잠시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본 뒤에 대답했다. "그런 것 같은데…… 보통 어렸을 때는 애들보고 다 귀엽다라고 하잖아."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어렸을 때 잘생겼던 사람이 자라면서 얼굴의 균형이 일그러져 오히려 못생겨 보이다가, 나중에 완전히 성장하고 나면 다시 얼굴이 균형을 찾아서 잘생기게 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이드님도 혹시 그런 스타일이 아닐까요?" 호…… 그런 사람이 있나? 그러고 보니까 나도 TV에서인가 그런 말을 들어봤었 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결론은 내 얼굴이 그럭저럭 괜찮다는 소리잖아? 우헐헐, 역시 얼굴 괜찮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는군. 좋아, 그럼 나도 아트로포스에게 서비스를 해줄까? "로스. 내가 로스의 생김새를 객관적으로 말해줄까?" "……." 아트로포스는 갑작스런 내 말에 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별로 싫다는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 얼굴 표정에 변화는 전혀 없었지만, 난 아트로포 스에게 그녀의 생김새를 알려주었다. "뭐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겠지만, 로스는 조각 예술품처럼 아주 예뻐. 단지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다녀서 밤에 갑자기 나타나면 무섭지. 하지만 로스가 웃 으면 많은 남자들이 한눈에 반할걸?" "그거 아부인가요?" 헉…… 아부…… 내가 너한테 아부해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아부를 하냐? "말했잖아. 난 지극히 객관적인 눈으로 널 관찰한 결과를 말했을 뿐이야." "객관적인 것 같지 않아요." 아트로포스는 미심쩍은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하지만 난 사실만을 말한 것이 었기 때문에 전혀 꿀릴 것이 없었다. "믿든 말든 그건 네 마음이니까 알아서 생각하고. 어쨌든 확실하게 말해둘 것 이 있어." 내가 그 말을 하자 아트로포스가 약간 긴장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혹시나 내 가 중용자 역할을 때려 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난 그런 아트로포스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감 있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내 힘을 다해서 중용자로서의 일을 해내겠어. 그러니까 내가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말라고." "…… 알았어요." 처음엔 아무 말 없이 날 쳐다보았던 아트로포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날 믿 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그렇게 아트로포스와 약속을 함으로써 나 자신과도 약속을 했다. 아무리 괴로워도 도망치지 않고 중용의 법칙인가 뭔가 하는 그 재 수 없는 것을 실현하기로. ========================================================================== 오늘은 조금 일찍 올립니다...-.-;; ━━━━━━━━━━━━━━━━━━━━━━━━━━━━━━━━━━━ [번 호] 95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5일 21:07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37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6장: 떠나는 날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6장:떠나는 날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70 게 시 일 :00/09/05 20:15:57 수 정 일 : 크 기 :9.7K 조회횟수 :34 <제 6 장> 떠나는 날 찌르르릉-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소리가 들려온 직후, 난 정신을 집중하여 마법을 구사했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필라(Pillar)!" 화르륵-! 내가 생각한 이미지대로 바위 하나가 불의 기둥 속에 갇혀버렸다. 난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연이은 마법을 실현시켰다. "파이어 스톰, 허리케인(Hurricane)!" 콰콰콰-! 강한 폭풍인 허리케인답게 파이어 스톰은 불똥을 쏟아내며 바위를 작살낼 듯이 공격했다. 파이어 스톰에서 쏟아지는 불똥을 맞고 사방에서 달구어진 돌멩이가 튀어 올랐지만 산불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지금 난 바위만 줄줄이 깔아놓은 공 터에서 마법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이어 스톰, 토네이도(Tornado)!" 난 마지막으로 파이어 스톰의 토네이도를 구사했고, 토네이도의 강력한 불꽃 회오리에 수많은 돌들이 허공 위로 들어올려졌다. 그러나 이 공터에서 가장 큰, 거의 내 키의 절반 만한 바위는 전혀 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 내 실력으 로는 저 바위를 토네이도로써 들어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투툭- 투툭-! 내가 마법을 멈추자 허공 위를 날았던 돌멩이들이 별똥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내 목표는 저 큰 바위를 작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마법을 그만 둘 생각은 없었다. "아이스 스톰(Ice Storm), 필라(Pillar)!" 난 곧바로 아이스 스톰을 구사했다. 그리고 그 큰 바위가 아이스 스톰의 기둥 속에 갇히자마자 바로 연결 공격을 했다. "아이스 스톰, 블리자드(Blizzard)!" 콰콰콰- 파이어 스톰의 허리케인과 유사한 형태인 블리자드는 수많은 얼음을 쏟아내며 큰 바위를 마구 몰아쳤다. 방금 전에 불에 의해 달구어졌던 바위는 갑자기 차가 운 얼음 공격을 받자 균열이 생기며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몰아치면 바위를 작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그러나 난 갑작스런 현기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이스 스톰 블리자드는 모습을 감추었고 막 붕괴되려고 했던 바위 도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렇게 한바탕 욕을 한 뒤 난 그대로 발라당 드러누웠다. 강한 마법을 연속적 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직 내 정신력이 뒷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실패한 것이었다. 내 뒤에서 내가 마법 사용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던 트레이는 지저분 한 몸을 벅벅 긁으며 나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몰아쳤으면 부서졌을 텐데 아쉽군." "……." 흘…… 나도 아쉽다고 느낀다고. 어쨌든 저 바위를 부수지 못해서 내기에 졌으 니 오늘 점심은 내가 잡아야 하는 거냐? 으…… 마법 쓰고 나서 정신없는데 점 심을 마련해야 하다니…… 역시 저 인간은 사악한 스승이야. "끄응!" 난 머리를 붙잡고 신음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서 오늘 점심으 로 무엇을 먹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휴식 겸 생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네 마리의 새들이 나하고 대략 3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나무 위에서 옹기 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긴 것으로 봐서는 참새 종류의 새 같았 다. 후후, 오늘은 저 녀석들로 점심을 때워야겠군. 미안하다, 난 너희들을 먹고 싶 지는 않지만 내 건강을 위해서는 너희들이 희생해줘야겠어. 그 은혜는 너희들을 먹고 난 다음에 바로 잊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번쩍-! 네 마리의 참새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에서부터 눈에 보이는 전류가 찌릿하고 흘렀다. 그 전류는 네 마리 참새들을 여지없이 관통했고, 감전된 참새들은 비틀 비틀 허공을 날더니 이내 땅바닥에 추락했다. "윽……!" 하마터면 나도 땅바닥에 머리를 박아버릴 뻔했다. 강한 마법을 연속적으로 사 용해서 머리가 아픈 가운데에 또 라이트닝 쇼크를 범위 지정해서 실현했기 때문 에 정신이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뜨아…… 이러다가 내가 저 참새들보다 먼저 골로 가는 거 아니야? 머리가 어 질어질 속조차 울렁거려서 미치겠다…… 크…… 제자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는 저 사악한 스승……! 슥- 스윽- 난 머리가 혼미한 가운데서도 떨어져서 기절한 참새들을 주워 모았다. 다행히 네 마리 모두 내 전기 충격에 맞아 헤롱헤롱해 있었다. 난 그 녀석들을 가지고 가서 트레이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트레이 씨가 죽이세요." "엉? 내가?" "전 지금 지쳐서 못한다구요." "그건 약속이 다르잖아?" 내 예상대로 트레이는 쉽게 내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트레이와 다시 협상해야 했다. "그럼 제가 한 마리 먹을 테니까 녀석들을 요리해주세요." "음……." 내 제안에 구미가 당기는지 트레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 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 몸이 손수 요리를 해주지!" 그렇게 자신 있게 소리친 트레이는 아직도 헤롱헤롱해 있는 참새들을 머리가 서로 맞닿게 잘 눕힌 다음, 참새들의 머리가 모인 곳 위에 오른손을 위치시켰다. 그리고 나서 마법을 구사했다.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Destruction)!" 팟! 기절상태에 있던 참새들의 눈과 입 등에서 빛이 번쩍였다. 방금 트레이가 구사 한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은 참새들의 머리에 다량의 전류를 흘려보냄으로써 참새들의 뇌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마법사의 정신력이 극도로 강할 경우, 이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으로 다수의 인간을 한꺼번에 쓰러트릴 수도 있다. 그런 엄청난 기술이 점심용 참새를 죽이는데 사용된 것이다. 뭐 아무리 엄청난 기술이라도 쓰일 일이 없으면 전혀 필요 없는 게 되니까 이 런 용도로라도 쓰이는 쪽이 훨씬 낫지. 그나저나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참새 들의 뇌를 홀라당 지져버리다니…… 역시 트레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야. "이드, 넌 어떤 식으로 이거 먹을 거냐?" 트레이는 참새 하나를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모처럼 트레이가 나에게 점심 요리를 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난 조금 어려운 주문을 내렸다. "전 잘 익은 새 고기만 먹을 겁니다. 그러니까 내장이나 피는 모조리 태워주세 요." "네가 먼저 참새 배를 따서 내장 꺼내!" "전 지금 정신이 없어서 참새 배도 딸 수 없어요." "……." 내가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트레이는 날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나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고 그저 두말없이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여 참새의 내장 과 피를 홀라당 태워버렸다. 역시 참새 세 마리를 주니까 인간이 고분고분해진 것이다. "옜다, 받아라!" 내 요구대로 참새 요리를 끝냈는지 트레이는 나에게 그 참새를 던져주었다. 확 실히 참새는 갓 구워져서 따끈따끈했지만, 털은 그대로 있었기 때문에 먹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난 다시 트레이에게 털을 없애달라고 요구했다. "털 다 뽑아주세요." "시끄러. 주문엔 그런 게 없었어. 미리미리 주문하지 않은 너를 탓해라." 그런 사악한 말을 내뱉은 트레이는 자기 몫의 참새를 열심히 화염계 마법으로 굽기 시작했다. 아무리 요청해도 트레이가 내 부탁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일일이 참새의 털을 뽑으며 고기를 뜯어먹어야 했다. "하여튼 네놈의 정신력은 완전 괴물 수준이야." "……?" 정신없이 털 뽑고 고기 뜯고 있는 나에게 트레이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난 무슨 소리인가 하여 트레이를 쳐다보았고, 트레이는 참새 하나를 통째로 입 에 넣어 우물거리며 말했다. "네놈에게…… 우물우물…… 겨우 일주일…… 우물우물…… 밖에 마법을…… 우물우물…… 가르치지 않았는데…… 우물우물……!" "……." 흘…… 웬만하면 참새를 목구멍으로 넘긴 뒤에 말을 하시지? 무슨 소리인지 하 나도 못 알아 듣겠잖아! 자꾸 우물거리면 내 남은 정신력을 발휘해서 라이트닝 쇼크로 지져버린다? 꿀꺽! 내가 그렇게 노려본 것이 유효했는지 트레이는 단번에 참새 한 마리를 목구멍 으로 넘겨버렸다. 그리고 나서 하던 말을 계속했다. "뭐 시간상으로는 2주일이 지났지만, 이틀에 한번씩 왔으니까 너와 만난 실질 적인 시간은 일주일이지. 근데 네놈이 아무리 중용자라고 해도 어떻게 일주일만 에 5서킷의 마나회로를 건설할 수 있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뭐냐…… 한다는 소리가 그거였어? 나잇살 먹은 어른이나 되가지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트집을 잡고 있다니…… 정신 연령이 의심스럽다. "세상에는 보통 사람들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법입니다." "어쭈? 조금 띄워주니까 엄청 오버하네?" "전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 트레이는 내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런 말을 하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 런 그의 표정에서 '내가 이런 싸가지 없는 녀석을 제자로 삼고 있다니……!'라 는 후회를 읽을 수 있었다. "……!" 이런…… 벌써 참새 고기를 다 먹어버렸잖아? 역시 주먹만한 녀석 한 마리로는 배를 채우기 어렵군. 하지만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마법은 사용 못할 것 같고 ……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참새 한 마리로 점심을 때우게 되는구나. 아…… 이 처절한 신세……. 턱-! 그때 내 앞으로 뭔가가 날아와 땅바닥에 부딪쳤다. 그것은 트레이가 요리해 놓 았던 참새 한 마리였다. 트레이는 그렇게 나한테 참새를 던져주고 나서 말했다. "오늘이 네놈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니까 기념으로 주는 거다. 뼛속 깊 이 감사하면서 먹어라." "……?" 얼레? 내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 저 아저씨 어디 가나? "이 마을을 탈출하시려구요?" 내 물음에 트레이는 치아 사이에 끼인 참새 고기를 더러운 손가락으로 쑤시며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네 녀석에게 가르쳐줄 마법은 없으니까. 앞으로는 너 혼자 마나 회로 깔고 마법 연습해. 난 하던 여행 계속할 테니까 말이야." "무슨 여행인데요?" "제자는 스승의 일을 꼬치꼬치 캐묻는 게 아니다." 트레이는 자신의 일을 나에게 알려주기 싫은지 더 이상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 다. 그래서 난 트레이에게 질문하는 걸 관두고 내 앞에 떨어져 있는 참새를 주 워들어 깃털에 묻은 먼지를 잘 털어낸 뒤에 깃털을 뽑아가면서 참새 고기를 뜯 어먹었다. 혹시나 트레이가 마음을 바꿔 내게 준 참새 고기를 다시 내놓으라 하 기 전에 다 먹어야 했던 것이다. "읏차!" 트레이는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그 여행이라는 것을 떠날 듯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난 트레이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 내 질문을 받은 트레이는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뭔가 우울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 지금까지의 트레이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 때문에 난 신기한 동물 구경하듯이 트레이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던 트레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아마 만날 일은 없을 거다." 저벅저벅- 날 뒤로 하고 집 쪽으로 사라지는 트레이의 모습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확 실히 트레이는 뭔가 할 일이 있어서 여행을 하다가 아트로포스의 부탁에 휘말려 이 마을에 묵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트레이의 여행 목적이 무엇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뭐 저 아저씨가 뭘 하든 나하고는 상관없지. 또 내가 신경 쓴다고 트레이가 친 절하게 가르쳐줄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 야. [번 호] 96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5일 21:08 Page : 1 / 22 [등록자] THEBUR [조 회] 38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6장: 떠나는 날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6장:떠나는 날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71 게 시 일 :00/09/05 20:16:16 수 정 일 : 크 기 :11.2K 조회횟수 :28 따가운 햇빛이 내리쬐는 오후, 나와 텔은 2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 마 주보고 섰다. 사실 말이 2미터지 서로 검을 뻗으면 검이 부딪치고도 남는 아주 짧은 거리였다. 그런 거리 간격을 두고 서 있던 텔은 예고도 없이 갑자기 공격해 들어왔다. 아주 빠른 찌르기 공격이었다. "큭!" 까강! 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하며 텔의 검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텔은 거기서 공격을 멈추지 않고 검을 크게 휘둘러 내 머리를 노렸다. 50대 아저씨의 손놀림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으나 난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몸 을 살짝 숙여 그것을 피해냈다. "제법이군요!" 텔은 내가 자신의 검을 피해내자 훌륭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이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 잘못을 막 트집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방의 검을 피하기만 한다고 해서 이기는 건 아닙니다. 어째서 제 검을 피했을 때 절 공격하지 않은 겁니까?" "……." 흘…… 언제 공격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적 있냐? 지난 2주일, 아니 실질적으로 는 일주일 동안 나한테 가르쳐준 게 검 피하는 거 밖에 더 있어? 이제 내 몸은 검이 다가오기만 해도 자기가 알아서 피해버린다고. 완전히 조건 반사적으로 돼 서 내 통제를 벗어났다니까. 마음에 안 들어. "상대의 공격이 실패했을 때가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그것을 놓치면 싸움에서 항상 밀리게 마련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그걸 누가 몰라? 하지만 기회 포착해서 내가 공격했을 때 실패하면 반대로 상 대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주는 거잖아? 게다가 난 공격하는 방법도 잘 모른단 말이야! 검법사라면서 어째서 나한테 단 하나의 검법도 가르쳐주지 않는 거냐고!!! "하긴…… 완력이 없으니 강한 상대를 공격한다는 것은 무리겠군요. 검으로 찔 러봤자 상대는 따가움만 느낄 테니까요." 텔은 날 완전히 무시했다. 그러나 난 그 무시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내 가 검을 휘둘러 봤자 상대에게 얼마만큼의 타격을 줄 수 있는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텔의 말대로 따가운 정도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기본부터 가르칠텐데…… 아쉽군요." "……." 그래…… 나 기본 전혀 안 돼있는 인간이다……. "기본만 받쳐준다면 감각이 좋아서 훌륭한 검법사가 될 수도 있을 텐데." "……?" 그 말은 텔이 거의 혼자 중얼거리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듣긴 들었지만 그 말이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텔이 나에게 감각 좋다는 소리를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다친 곳이 없으시군요." 나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내 훈련을 지켜보던 아트로포스가 기적이 일어났 다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텔 역시 아트로포스의 말에 수긍했다. "확실히 제 검을 모두 피했으니 지난 훈련 동안 열심히 하신 게 증명되는군요." "……." 흘…… 이틀마다 한 번씩 그 무서운 검으로 몸을 찌르는데 어떻게 훈련을 게을 리 해? 검을 피하지 못하면 내 붉은 피가 땅바닥을 적시는데! "그럼 이것으로 훈련은 종료합니다. 내일 떠나시려면 오늘 푹 쉬십시오." 텔은 그런 말을 남기고 유유히 집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난 내일 떠난다는 소리를 지금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즉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내일 떠나다니?" "네, 내일부터 성물 회수 여행을 떠납니다. 영계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거든요." 영계에서 지시를 내려? "언제? 어떻게?" "오늘 새벽에 그런 꿈을 꿨어요." "그게 영계의 지시라고?" "네." "……."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었으나 내 입장에서는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저 영계의 지시라면 그렇구나 하고 생각해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목적지 같은 게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라 아트로포스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성물의 위치를 아는 거야?" "아니요. 아직은 몰라요. 이 마을을 벗어나야 성물의 위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트로포스는 그런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했다. 한마디로 현재 목적지가 없는 것인데도 아트로포스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걱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여튼 정말 넉살 좋군. 목적지 없는 여행을 하면 불안하지도 않나? 영인관이 되면 여자들이 저렇게 다 변하는 거야? 흘…… 아, 근데 여행 경비는 어떻게 하 지? 나하고 아트로포스 그렇게 둘만 달랑 여행을 떠나는 건가? "로스, 근데 여행 경비는 어떻게 해?" "여행 경비는 제가 가져갈 거예요. 오늘을 위해서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요." 흠…… 그렇군. 그것도 영인관의 해야할 일 중에 하나인가?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은 영인관도 못해 먹겠군. "다른 일행은 없어?" "없어요." 아트로포스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왠지 질문을 더 했다가는 날 죽일 것 같 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난 질문을 관두고 방금 전의 훈련으로 긴장됐던 몸을 풀 었다. 숲 속인지 어떤 시골 마을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단지 내 눈에 보이는 것 은 방금 전에 내린 비로 인해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미줄이었다. 그 거미집의 주 인인 듯한 징그러운 거미는 망가져 버린 거미줄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 다. 흘흘, 네 녀석이 징그럽게 생겼으니까 널 역겨워한 하늘에서 비를 뿌려 네놈 집을 부순 거야. 웬만하면 그냥 나가 죽어라. 이곳은 너 같은 녀석이 있을 데가 아니야! "……!" 그러나 거미는 내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 새로 거미집을 짓기 시작했다. 거미줄 하나하나 천천히 이어가는 거미를 난 그저 말없이 쳐다만 보았다. 비록 시간은 꽤 걸렸지만 그렇게 거미집이 완성되었을 때, 거미는 거미집 중앙에 자리를 잡고 먹이가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는 부럽게 보였다. - 거미가 되어라. "……!" 그때 어디선가 그런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암흑 뿐이었다. 오직 내 앞에는 방금 전에 거미집을 다 지은 거미만이 느긋한 모습으 로 먹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거미가 되어라. 또다시 그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목소리의 출처 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목소리는 메아리까지 동반하며 울 려대기 시작했다. - 거미가 되어라…… 거미가 되어라…… 거미가 되어라…… 거미가…… "……!" 헉헉…… 뭐야? 꿈인가? 이런…… 왜 하필이면 거미가 나오는 꿈을 꾼 거야? 요즘 들어서는 꿈을 꿔본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꾼 꿈에서 거미가 나오다니… … 으으…… 오늘 일진은 더럽게 안 좋을 듯한 불길한 느낌이……! "오늘도 어김없이 이 시간에 일어나셨군요." 내가 눈을 뜨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트로포스가 침대 옆에 서서 날 내려다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지금 시각은 대략 오전 6시였다. "로스는 항상 이 시간에 내가 깨나 안 깨나 보러오는군." 난 농담조로 말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트로포스가 새벽 달빛을 배경 으로 삼아 무표정한 얼굴로 날 내려다보는 것이 솔직히 무서웠기 때문에 일어나 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 9시쯤에 떠날 예정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아트로포스는 그 말만 남기고 휭하니 방밖으로 나갔다. 역시 이번에도 난 오늘 아침 9시에 떠난다는 소리를 지금 처음으로 들은 것이기 때문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흘…… 그런 얘기는 어제 해줬으면 좋잖아? 왜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에게 그 런 얘기를 하냐고. 아, 맞아! 이건 바로 그 거미꿈 때문이야! 역시 오늘은 일진 이 안 좋아……!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우리는 정확히 9시에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트로포 스 쪽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난 여행 준비를 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9시 되자마자 아트로포스가 말한 대로 현관 앞에 나갔을 뿐이었다. 현관에는 이미 아트로포스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긴 드레스가 아닌, 무릎까지만 내려온 갈색의 치마와 분홍색의 간단한 반팔 셔츠 차림을 하고 머리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아트로포스의 모습은 꽤 낯설게 느껴 졌다. 얼∼ 드레스를 입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아트로포스도 한 몸매 하 잖아? 뭐 영마관인 라케시스보다는 약간 떨어지지만. "준비 다 되셨나요?" 내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아트로포스가 대뜸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그렇다 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와 아트로포스가 나란히 현관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본 텔과 그의 부인 나엔은 약간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건 내 가 아트로포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까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딸이 여행하는 것 자체를 걱정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잘 다녀오거라." 그밖에 많은 할말이 있었겠지만, 텔은 아트로포스에게 오직 그 말만을 했다. 텔과 나엔 역시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말 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그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서인지 지극히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걱정마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 역시 아트로포스와 함께 텔과 나엔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집 밖으로 나왔 다. 그리고 이 마을을 벗어나기 위해 마을의 밭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나 우 리들의 행진은 뜻밖의 장애물로 인해 멈추어야만 했다. 그 뜻밖의 장애물이란 아트로포스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던 바로 그 시껌둥이 소년이었다. 아트로포스 는 그 소년을 보고 놀라 탄성을 지르듯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존……." 아, 저 녀석 이름이 '존'이었군. 아주 흔해빠진 이름인데? 그래서 얼굴도 저렇 게 흔해빠지게 생겼나? 윽…… 하긴…… 나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지……. "로스! 나……!" 존이라는 이름의 시꺼먼 소년은 뛰어왔는지 거칠게 숨을 씩씩거렸다. 나와 아 트로포스는 그저 존이 다음 말을 할 때까지 친절히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거 칠어진 숨을 고른 존은 아트로포스를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나…… 나 너를 따라가고 싶어! 별로 도움은 안 되겠지만 널 이렇게 혼자 보 낼 수는 없어!" "……." 어쭈구리…… 아트로포스 혼자 보낼 수는 없다고? 옆에 있는 난 무시한다는 거 냐? 이거 듣다보니 기분 나쁘네? 아트로포스, 나 기분 나쁘니까 이 녀석은 그냥 데려가지 말라고∼ "존, 넌 여기에 있어." 존의 얘기를 듣고 나서 아트로포스가 한 말은 아주 차가웠다. 난 아트로포스가 당연히 존도 함께 데려갈 줄 알았다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말에 조금 놀라버렸다. 아니, 사실 내가 놀란 솔직한 이유는 아트로포스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반말을 썼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존은 아트로포스가 자신이 따라오기 를 거부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왜 난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거야?" "네가 따라와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 아트로포스의 너무나 싸늘한 말에 존의 온 몸이 얼어버린 듯 굳어졌다. 좋아하 는 상대에게서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엄청난 심적 타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그리고 너에게는 지켜야할 네 가족들이 있잖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을지 도 모르는 여행을 떠나는 것을 좋아할 부모님은 없으니까." "로스……!" "어서 돌아가." 옆에 있던 나조차 상당히 차갑게 느껴지는 말을 내뱉은 아트로포스는 존의 곁 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그래서 나도 아트로포스를 따라 존을 무시한 채 걸어 갔다. 아트로포스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존은 그저 멍하니 우리들이 있었던 자 리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흘…… 불쌍한 녀석.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트로포스에게 채인 거겠지. 역시 그 런 평범하고 시꺼먼 얼굴로는 아트로포스에게 어필할 수 없다니까. 최소한 나 이상은 되야 어느 정도 해볼만하지. 쯧쯧, 네 명복을 빌어주마. "……." 아트로포스는 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다. 그래서 난 시간 때우기나 할 겸 아트로포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로스, 넌 존 안 좋아해?" "……." 어쭈구리…… 지금 내 말을 씹는 거냐? 아, 뭐 좋아. 어차피 남녀 문제야 미묘 한 거니까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나도 꼭 그걸 들으려고 물은 건 아 니니까. "존하고는 단지 소꿉친구일 뿐이에요." 내가 막 아트로포스에게 다른 질문을 하려고 했을 때 아트로포스가 먼젓번 질 문에 대한 답을 해 주었다. 그래서 난 그것에 대해 또 질문했다. "정말 단지 소꿉친구일 뿐이야?" "그래요." 아트로포스는 냉랭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 쳐다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걸 물으시죠?" 흘흘, 왜 묻긴. 재미있으니까 묻는 거지! "심심해서." "별난 취미군요." 그래그래, 난 별난 취미를 가진 별난 사람이다. 하여튼 아트로포스는 정말로 존이라는 녀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구만. 녀석만 불쌍하게 됐어. 또다시 명복을∼ ========================================================================= 이틀에 2편... 밤 9시 전후로 해서 올릴 겁니당... 즉... 오늘 올렸으니 내일은 절대 안 올린다는...ㅡㅡ; ━━━━━━━━━━━━━━━━━━━━━━━━━━━━━━━━━━━ [번 호] 97 / 97 [등록일] 2000년 09월 07일 23:37 Page : 1 / 29 [등록자] THEBUR [조 회] 6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6장: 떠나는 날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6장:떠나는 날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499 게 시 일 :00/09/07 20:43:19 수 정 일 : 크 기 :15.0K 조회횟수 :153 저벅저벅- ……. 나와 아트로포스는 그 이상의 말은 주고받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다. 할 얘기도 없었고, 얘기 해봤자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 가 아트로포스나 나나 이 침묵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더더욱 대화를 할 리가 없었다. 저벅저벅- ……. 흘…… 역시 아트로포스는 걷는 소리를 거의 안 내는군. 내 발자국 소리 때문에 전혀 안 들려. 얼레?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네? 하긴, 모두들 아트로포스 가 영인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아트로포스가 걱정되긴 하겠지. 게다가 내 가 성물의 수수께끼인가 뭔가를 풀지 못하면 아트로포스는 내 손에 죽게 되고. 하지만 그렇게 띠꺼운 시선으로 날 쳐다볼 필요는 없잖아? 내가 꼭 성물의 수수 께끼를 풀지 못한다는 것도 아닌데! 저벅저벅- ……. 그나저나 아트로포스가 여행 경비를 많이 챙겨왔을까? 아트로포스의 준비성 철 저한 성격으로 보면 넉넉히 준비했을 것 같긴 하지만…… 아트로포스네 집이 아 주 부자는 아니라서 걱정된단 말이야……. "아……!" 헉?! 갑자기 그 탄성은 뭐야? 설마 여행 경비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헛소리는 아 니겠지? "이상하다……." 허걱!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설마 여행 경비가 생각보다 적다는 거야? "왜지?" 허거걱! 왜 그런 의문을 품는 거야? 도대체 뭣 때문에 그래?! 사람 불안하게 하 지 말란 말이야!!! "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거지?" "……?" 아트로포스의 중얼거림을 통해 그녀가 의아해 하는 것이 여행 경비의 부족 같은 게 아님을 알아낸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목적지를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 에 난 또 다시 불안해졌다.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으면 어디를 목적지로 삼아서 출발할거야?" "음……." 아트로포스는 처음으로 꽤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 본 아트로 포스의 표정 변화였다. 어쨌든 잠시 동안 심각한 얼굴로 생각을 하던 아트로포스 는 이내 본래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오며 나에게 말했다. "그냥 발 닿는 데로 가보죠." "……." 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아트로포스…… 생각보다 막 나가는 스타일 같은데? 저벅저벅- …….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그저 발 가는 데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어차피 아트로 포스가 정확한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는 이상, 내 마음대로 방향을 잡아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흘…… 하지만 내가 방향을 잡은 곳이 성물과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아트로포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몰라…… 제발 성물하고 너무 떨어진 곳만 아니어 라……! "……!" 속으로 그런 기도를 하며 걷던 나는 갑자기 몇 가지의 궁금한 점을 떠올렸다. 어차피 지금 나나 아트로포스나 할 일이 걷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 망설임 없이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로스, 근데 트레이 씨가 마법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간단해요. 트레이 씨가 이 마을에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마나폭풍(Mana 暴風)이 어디서 발생하느냐고 묻고 다니는 걸 봤으니까요." 아트로포스는 내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의 말에서 생전 처음 듣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 에 그것에 대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나폭풍? 그게 뭐야?" "마나폭풍은…… 자연재해예요." "자연재해? 태풍이나 지진 같은 거?" "그래요." 흠…… 마나폭풍이 자연재해라…… 근데 마나폭풍이란 게 정확히 뭐지? 마나 뒤 에 왜 폭풍이라는 글자가 붙는 거야? 설마 마나가 폭풍을 발생시킨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이 세계, 아르카디아에는 마나회로가 깔려 있어요. 바로 그 마나회로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 재앙이 바로 마나폭풍이에요." "……?" "마나회로는 계속 변하고 있어요. 때로는 아주 빠른 속도로, 때로는 아주 느린 속도로 위치를 바꾸거나, 없어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해요." 헉! 마나회로가 막 변한다고? 지난 2주일 동안 마나회로를 건설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전혀 못 느꼈는데? 흘…… 하긴 허공에 마나회로가 거미줄처럼 깔려 있 는데 그 마나회로가 위치를 바꿨는지 사라졌는지 새로 생겼는지 내가 어떻게 아 냐……. "그러한 마나회로의 변화로 인해 어떤 지역에서 마나회로가 과도하게 집적되는 현상이 발생해요. 그것을 '마나회로 집적 현상'이라고 하는데, 그 현상이 발생하 게 되면 마나회로에서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나 강한 마나장이 형성되죠. 그 마나 장이 바로 마나폭풍의 원인이에요." 아트로포스는 어려운 말까지 쓰면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 의 설명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과도한 마나회로의 집적 때문에 발생한 마나장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면서 주위 의 모든 것을 파괴해요. 마나폭풍 안에서는 그 어떤 것도 형체를 보존할 수 없 죠. 게다가 마나폭풍이 발생하는 지역은 어디라고 지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즉, 어디에서라도 마나폭풍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태풍 이나 지진,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보다 마나폭풍이 더 무섭다고 흔히들 말해요." 호…… 마나폭풍의 발생지는 어디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군. 헉! 그렇다면 한 나라의 수도 정중앙에서 마나폭풍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소리잖아?! 흐…… 정말 무시무시한 재앙이군. 마나회로가 천신과 천마를 쫓아 내준 대신 그런 무서운 대 가를 치러야하다니……. "근데, 트레이 씨가 마나폭풍 물어보러 다녔다고 해서 어떻게 마법사라고 안 거 야?" "느낌이에요. 마나폭풍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위 마법사들이니까 요." "……." 단지 느낌만으로 트레이가 마법사라고 생각했던 거야? 어쩌면 아트로포스야말로 가장 단순하게 세상을 사는 사람일지도 몰라…… 이것이 바로 영인관의 부작용인 가……! "트레이 씨는 겉으로는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위 마법사예요." 아트로포스는 천천히 걸으면서 자신의 말을 보충했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 아트 로포스가 트레이의 더러움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흥미로웠다. 하도 무표정 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트레이가 얼마나 더러운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난 '아트로포스도 더러움을 느낀다'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로스는 마법사도 아니면서 마나폭풍이라든지 그런 걸 잘 아네?" "책을 통해서 읽었고 가끔 트레이 씨에게서도 들었으니까요." 흠…… 그렇군. 어쨌거나 마법사도 아닌 아트로포스가 나보다 마나회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 왠지 아트로포스에게 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단 말이야……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이제 텔에 대해서 물어볼 까? "너희 아버지 말이야, 젊었을 때 주로 어떤 일을 하셨어?" 난 별 생각없이 그런 질문을 했지만 아트로포스는 그것을 이상한 뜻으로 받아들 인 듯했다. "그런 걸 왜 물으시죠?" "아니, 그냥 스승이 옛날에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해서." "……." 억…… 뭐냐, 그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은? 내 질문은 해서는 안될 거였어? 난 별로 이상한 질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 뭐 어차피 이드님하고 전 동료니까 모르는 건 없게 하는 편이 낫겠죠." 아트로포스는 그렇게 상당히 띠꺼운 말을 한 뒤에 자신의 아버지인 텔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이라서 잘 모르겠지만, 아버님은 예전에 '마법사 킬러'라고 불리셨던 것 같아요." "……!" 허걱! 마법사 킬러?! "소문에 의하면 아버님의 검 실력은 마법을 가를 정도라고 하니까요." 마법을 갈라?! "확실히는 몰라요. 전 아버님의 진짜 실력을 본 적이 없거든요." 비록 아트로포스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믿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서 텔에 대 한 소문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었다. 뭐 이것으로 대충 트레이와 텔에 대해서 알아봤고…… 이제 또 화제를 바꿔서 물어봐야지. 기왕 얘기를 시작한 김에 계속 질문을 하는 거야! "근데 9명의 중용자 중에서 성물의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2명이라고 했잖아. 그 럼 영인관이 2명 살았었다 라는 소리인데, 맞아?" "아니에요." "……?" 아트로포스가 너무 딱 부러지게 대답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어쨌든 아니라고 부정한 이상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을 자신이 직접 할 것이 분명해서 난 잠자코 아트로포스의 말을 들었다. "확실히 2명의 중용자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2명의 영인관은 중용자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 2명의 영인관은 중용자와 함께 천신계와 천마 계로 건너갔어요. 그리고 천신과 천마와의 싸움 도중 모두 죽었죠." 얼라리? 중용자와 같이 천신계하고 천마계로 건너가? "왜 건너갔는데?" "간단해요. 중용자를 돕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서도 중용자와 함께 한 거죠." 흠…… 그렇다는 소리는……! "혹시 그 두 영인관이 각자의 중용자를 사랑했던 거 아니야?" "맞아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아트로포스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부연 설명을 했 다. "그 두 명의 영인관 뿐만이 아니라 다른 7명의 영인관 모두 중용자를 사랑했어 요." "……!" "사실 당연한 거지요. 항상 함께 있어야 했으니까요." 음…… 그렇군. 영인관이 없으면 중용자는 성물을 찾을 수 없으니까 싫든 좋든 항상 영인관을 데려가야 하고…… 그렇게 항상 같이 있다보면 사랑을 할 수도 있 겠지. 근데 모든 영인관이 중용자를 사랑하다니…… 왠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데? "9명의 영인관이 모두 중용자를 사랑했다는 게 사실이야?" 난 얼굴 가득 의문의 표정을 띄우며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 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을 하면서 대답했다. "9명의 중용자와 9명의 영인관 모두 미남미녀였거든요." "……!" 헉! 미남미녀? 그래서 서로 사랑했다는 것? 흐흐…… 흐흐흐…… 그렇다면 난 둘 중에 하나겠군. 하나는 내가 미남이라 중용자로 선택되었던가…… 또 하나는 나로 인해 미남 중용자의 관례가 깨졌던가…… 음…… 당연히 후자 쪽이겠지…… 흑흑……. "그럼 로스도 날 사랑하게 될지 모르겠네?" 난 아트로포스에게 농담을 던졌지만 아트로포스는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어요. 전 그 누구도 사랑할 생각 없으니까요." "……." 흘…… 그 말은 내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할 것이 뻔하다는 뜻을 내포하 고 있는 거지? 날 무시하는 거냐? 이래뵈도 난 한 수수께끼 하는 인간이라고! ……. 아트로포스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처음보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아직 질문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 아트로포스를 따라잡은 후에 질문을 던졌다. "그럼 영인관과 같이 천신계와 천마계로 갔었던 중용자들은 어떻게 됐어?" 난 내 질문을 아트로포스가 무시하지 않을까 속으로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트로 포스는 내 질문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 두 중용자는 9명의 중용자 중에서 가장 경미한 부상을 당했죠. 한 명은 오 른손 하나를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왼쪽 눈 하나를 잃었을 뿐이니까요." "……." 오른손 하나 잃고 왼쪽 눈 하나 잃은 게 경미한 부상? 그게 어떻게 경미한 부상 이야! 설마 나도 그들처럼 된다는 건 아니겠지?! "멀쩡히 살아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야?" 난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질문을 아트로포스에게 했다. 그 질문을 받 은 아트로포스는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선 반드시 성물 7개를 다 찾아야 하고, 지금까지의 중용자보다 훨씬 강해져 야 합니다. 그러면 이드님이 최초로 아무 부상 없이 살아 돌아간 중용자가 될지 도 몰라요." "……." 흘…… 그건 나도 알고 있다고. 강하면 죽을 리가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 가 있어! 문제는 어떻게 어떤 식으로 강해져야 하는 거라구!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는 거야?" "몰라요. 그건 이드님 스스로 찾으세요." 아트로포스는 내 입장에서 볼 때 지극히 싸늘한 말을 내뱉었다. 확실히 아트로 포스의 말대로 강해지는 방법은 내 스스로 찾아야 하겠지만, 이 세계에 처음 발 을 들여놓은 나로서는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막막함만이 들었을 뿐이었다. 흐…… 뭔가 강한 무기 같은 것이 있다면 해볼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한 테는 마법 밖에 무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마법 능력만이라도 극대화시켜 야겠지. 근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니야, 벌써부터 이런 약한 생각을 먹으면 될 일도 안 된다고! 그래, 우선 노력하고 보는 거야! "……." 난 내 결심대로 아트로포스를 따라 걸으면서 마나회로 건설을 시도했다. 최고의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걸으면서도 마나회로를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걸으면서 무엇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 니었다. 집중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지만 앞에 있는 장애물을 잘 피하면서 집중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엇?!" 그렇게 마나회로 건설에 집중하면서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버렸다. 다행히 균형 을 잘 잡아서 엎어지지는 않았지만, 꼴사납게 휘청거렸다는 것이 쪽팔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트로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어디 아프세요?" "아니,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다가 잘 안 돼서." 난 그렇게 아트로포스의 질문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예리한 아트로포스는 내가 말한 '두 가지 일'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마나회로 건설하고 있었죠? 그것도 걸으면서." "……." "처음부터 무리하시는군요." 그래…… 나 처음부터 무리한다. 하지만 이렇게 걷는 시간이 나한테는 너무 아 깝다고. 이 시간에 건설한 마나회로 덕분에 내가 나중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날지도 모르니까. "마음을 너무 조급하게 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요."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충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난 아트로포스와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내 입장을 밝혔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하면 하고 싶어. 여행을 하다 보면 걷는 시간이 많을 테고, 그럼 그렇게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잖아. 걸으면서 마나회로 건설을 할 수 있다면 상당한 시간이 절약된다고." "물론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요?" 내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어떻게 보면 싸늘하기조차 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아트로포스의 그런 얼굴에 익숙해진 나는 그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능해. 내가 해낼 테니까. 난 초고속의 마법사거든." "……." 헐헐, 내 말이 미덥지 못한가? 뭐 아트로포스가 내 말을 믿든 말든 난 열심히 마나회로 건설만 하면 되지. 그것이 내 말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이니까! "초고속의 마법사가 뭐죠?" 내가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의 질문이 날아왔다. 아트로 포스가 질문하는 적은 거의 없기 때문에 감격스럽기조차 했다. 어쨌든 모처럼 아 트로포스가 나에게 한 질문이라 난 성심 성의를 다해 대답해 주었다. "내가 마나를 모을 때 항상 보통 마법사보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마나를 모으 니까 나 스스로 그렇게 부르는 거야. 근데 여기는 마나를 모으지 않고 마나회로 를 까는 거니까 로스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음……." 확실히 마나회로라는 것만 들었던 아트로포스는 '마나를 모은다'는 새로운 말을 듣고 머리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내 말의 요점 은 잘 찾아내었다. "한마디로 다른 마법사보다 더 우수하다는 뜻이군요." "아…… 그렇겠지 뭐." 흘…… 왠지 내가 나 자신을 칭찬하는 것 같아서 무지하게 쑥스럽구만. 뭐 확실 히 내가 마나 모으는 면에 있어서는 그 어떤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건 사실이지. 단지 마나를 많이 모아도 주문 같은 것은 거의 외우지 않아서 아주 강한 마법을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뿐……. "이드님은 예상외로 잘난 척하는 면이 있는 것 같군요." 아트로포스는 나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는 듯이 날 묘한 눈빛으로 쳐 다보았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묘한 눈빛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난 급 히 변명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랑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구. 로스도 그렇잖아?" "전 안 그래요." "……." 꼭 그렇게 딱 잘라서 말해야겠냐? 사악하기 그지없어…….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 거죠?" 더 이상 나하고 얘기하기 싫다는 듯이 아트로포스는 화제를 돌려버렸다. 아트로 포스가 얘기하기 싫어하는 이상 나만 뭐라 나불대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난 아트 로포스의 화제 전환에 응해주었다. "우선 성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근데 성물의 기운은 아직도 안 느껴져?" "음…… 전혀 안 느껴져요." "그럼 느껴질 때까지 아무 방향으로나 가자고." "그래야겠군요." 그렇게 전혀 도움 안 되는 의견의 합치를 본 우리는 내키는 대로 걸었다. 혹시 나 성물이 있는 방향이 지금 가는 쪽과 완전히 반대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에는 그저 운이 더럽게 없다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니까. ========================================================================== 오늘... 달랑 한편 올립니다...ㅡㅡ; 두 개로 쪼개면 한편당 용량이 작아져서...-.-;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8 / 101 [등록일] 2000년 09월 14일 21:13 Page : 1 / 23 [등록자] THEBUR [조 회] 35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장: 요센 -1-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7장:요센 -1- 관련자료:없음 [30016]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11 22:46 조회:1094 <제 7 장> 요센(Yosen) 니아르 제국. 바로 아트로포스의 모국(母國)이다. 그리고 아트로포스가 태어 났으며 내가 2주일 동안 살았던 마을, 즉 '도니아'가 위치해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니아르 제국은 영토 확장에만 죽어라고 매달렸기 때문에 나라 안 사정 은 별로 좋지 못했다. 게다가 영토가 방대하여 네 명의 제후들에게 통치를 시 키고 있는데, 그 네 제후들의 세력이 거의 왕과 맞먹고 있어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나라인 것이다. 히이잉! "즐거운 여행되십시오!" 따그닥 따그닥- 나와 아트로포스를 내려놓은 마차는 오후의 햇살을 뒤로한 채 도시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져갔다. 도니아를 떠난 후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목적지 없 이 마음 내키는 대로 걷던 도중, 갑자기 아트로포스가 성물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 하면서 이리로 오자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마차를 타고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끄응…… 도대체 마차를 몇 번 갈아탔는지 기억이 안 나…… 하여간 제국이라 그런지 영토가 더럽게 넓어서 이 도시까지 오는데 6일이나 걸리고…… 게다가 마차 안에서 마나회로 건설을 했더니 머리도 어지럽고 피곤해 죽겠다……! "로스, 성물이 느껴지는 방향이 어디야?" 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아트로 포스는 잠시 도시를 둘러본 뒤에 이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산을 가리키며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산 쪽에서 느껴져요." 흘…… 왜 하필이면 산이냐고…… 저기는 마차 타고 갈 수도 없잖아…… 피곤 하게 걸어가야 하냐? 방금 5시간 동안 마차 타서 정신이 없단 말이야……. "우선 좀 쉬자." "음…… 그러죠." 다행히 아트로포스도 마차를 오래 타서 피곤한 모양인지 두말없이 내 의견에 따랐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며 여관을 찾았고, 마침내 한 여 관을 발견하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여관은 3층으로 되어 있는 듯했다. "어서 오십시오." 나와 아트로포스가 여관 안으로 들어오자 안에 있던 50세 정도의 여관 주인이 웃으면서 우리를 맞았다. 난 빨리 쉬고 싶었기 때문에 여관 주인에게 즉시 방 을 요구했다. "1인용 방 하나 주십시오. 그리고 얇은 이불 두 장하고 베개 하나 덤으로 주 세요." 그러나 여관 주인은 내 말을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예? 1인용 방 하나요? 두 개 아닙니까?"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불 두 장하고 베개 하나요." 난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여관 주인은 여전히 의아해했다. "두 분 아니십니까? 그럼 1인용 방 두 개 아니면, 2인용 방 하나 아닌가요?" 흘…… 이 아저씨 이해력이 부족하군. 아…… 맨날 이렇게 여관 주인하고 싸 우는 것도 지겨워…… 하여튼 이건 모두 아트로포스 때문이야! "1인용 방 하나에서 둘이 같이 잘 겁니다. 그래서 이불 두 장하고 베개가 필 요한 거구요." 난 또다시 여관 주인에게 더욱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제서야 여관 주인 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들은 듯이 보였지만, 여전히 이상하다는 얼굴 은 감추지 않았다. "아, 네. 그럼 104호에서 묵으십시오." 그러나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나에게 방 열쇠를 넘겨주며 이름 적으라고 장부 비슷하게 보이는 책과 펜을 주었다. 그래서 난 펜촉에 잉크를 묻히고 나서 이 름 적는 난에다 『ID, ROSE』라고 적었다. 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이름을 ID라고 표기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꼭 내 ID가 ROSE인 것 같잖아. 그냥 YD라고 쓸 걸 그랬나? 에이, 그냥 대충 살지 뭐. "며칠 동안 묵으실 겁니까?" 내가 이름 다 적은 걸 확인한 여관 주인은 나에게 104라고 쓰여진 열쇠를 넘 겨주며 물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대답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 트로포스였기 때문에 난 조용히 뒤로 빠졌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오늘 하루만 묵을 생각이에요." "그러십니까? 그럼 40사사드입니다." "……." 여관 주인의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손가방에서 갑옷이 그려져 있는 10사사 드짜리 지폐 4장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여관 주인은 잠시 아트 로포스의 미모를 보고 놀랬지만 오랜 삶의 경험이 있는 사람답게 금방 자신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식사는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하시면 됩니다." 흘…… 여기도 음식점하고 연계해서 장사를 하고 있군.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여관이 근처 음식점하고 서로 동맹을 맺어서 손님들을 끌어 모은다니까. 뭐 어 쨌든 그 음식점 음식이 맛있으면 거기서 계속 먹고 맛없으면 다른 음식점에서 먹으면 되겠?지. "들어가요." "어."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104호의 문을 열쇠로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여관과 전혀 다른 점이 없었다. 1인용 침대 하나에 옷장 하나, 여성을 위한 화장대도 하나, 화장실 겸 욕실 하나, 나무 테이블 하나에 의자 네 개 그렇게 있었다. 이 나라의 전형적인 여관방 배치였던 것이다. "여분의 베개와 이불이 옷장 속에 하나씩 있습니다." 여관 주인은 내가 요구했던 것을 떠올렸는지 방밖에서 옷장을 가리키며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방바닥에서 자야하기 때문에 이불 하나가 더 필요했다. "방바닥에서 잘 거니까 이불 하나 더 주세요." "그러십니까? 그럼 곧 준비하겠습니다." 내 요구에 여관 주인은 두말하지 않고 응해주었다. 그렇게 여관 주인이 이불 가지러 사라지자 방안에는 이제 완전히 나와 아트로포스만 남게 되었다. 하지 만 6일 동안 계속 이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될 건 없었다. 단지 두 사람이 1인용 방을 하나 사용하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로스, 돈이 얼마나 없길래 계속 1인용 방을 둘이 사용해야 하는 거야?" "무슨 문제 있나요? 여행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데 유한정한 돈을 낭비 할 수는 없잖아요."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는지 나한테 좀 알려달라구. 재산 공개를 하란 말이야." "싫어요." "……." 크으…… 도대체 왜 재산 공개를 안 하겠다는 거야? 설마 내가 그 돈을 가지 고 어디로 튈 거라는 허황된 망상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난 돈에는 일말의 욕심 도 없는 깨끗한 인간…… 욱…… 갑자기 심장이 쑤신다……! "어쨌든 로스 혼자 여행 경비를 가지고 있다가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어쩔려고 그래? 그럼 졸지에 알거지 신세가 된다구. 여행 경비를 나누어서 둘이 가지고 있으면 누군가 돈을 잃어버려도 한꺼번에 돈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난 최대한 논리적인 말로써 아트로포스를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논리 적인 말도 아트로포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드님은 언제 누구와 싸우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싸움 도중에는 수중의 돈 에 신경 쓸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싸움을 하다보면 저보다 돈을 잃어버릴 확 률이 클 거라구요. 그러니까 제가 모두 관리하는 거예요." "……." 흘…… 도대체 할말없게 만드는구만. 지금까지는 누구와 싸워본 일이 없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확률을 배제할 수 없을 테니 아트로포스의 말에 반박할 수 도 없고…… 하지만 나한테 땡전 한 푼 안 주는 건 너무 하잖아? 나도 내 개인 적인 일에 돈을 사용하고 싶다구! "로스, 용돈 좀 주라." "왜요?" "그냥." "돈이 필요한 이유를 밝히세요." 아트로포스는 너무나 사무적인 어조로 나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그러나 난 단 지 내 수중에 돈을 가지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트로포 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알았어! 그럼 로스 혼자 다 관리하라고. 잃어버려도 난 몰라." 아트로포스는 돈이 있지만 난 땡전 한 푼 없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말투가 퉁명스러워져 버렸다. 그런 내 모습에 아트로포스는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어린애 같으시군요. 투정인가요?" "……." 그래…… 나 얼라다. 그래서 불만 있냐? 불만 있으면 담배 줘? "이불 가져왔습니다." 그때 여관 주인이 담배 대신 이불을 가져왔다면서 나에게 이불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곧 친절하게 문을 닫고는 방밖으로 사라졌다. 이것으로써 그 누구의 방해도 없이 완벽하게 방안에 나와 아트로포스만이 남게 되었다. 펄렁- 여관 주인에게서 받은 이불을 내가 잘 방바닥에다 펼친 나는 옷장에서 여분의 베게와 이불을 꺼내 펼쳐놓은 이불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그 자리에 누웠다. 그렇게 내가 자리를 잡자 아트로포스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침대 위로 올라갔다. ……. 나와 아트로포스는 자리에 누운 뒤 그 어떤 말도 주고받지 않았기 때문에 자 연히 방안은 고요해졌다. 물론 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끔 들리기는 했 지만 그 정도는 소음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에…… 이렇게 누워 있으니까 확실히 편하구만. 어차피 지금쯤 아트로포스는 자고 있을 테니까 난 마법 수련이나 해볼까? 도니아를 떠난 후 6일 동안 걸어 가면서, 그리고 마차를 타고 가면서 죽어라고 마나회로 건설한 결과 7서킷까지 깔았는데…… 전혀 마법을 쓴 적이 없으니 내 실력이 늘어난 건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리고 검술 연습은 전혀 안 해서 훈련했던 반사 신경도 전부 무뎌진 것 같고…… 걱정이다 걱정……! "후우……!" 그런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방이 고요했기? 때문에 내 한숨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지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내 한숨 소리가 아트 로포스의 선잠을 깨게 한 모양이었다. "무슨 걱정 있으세요?" "아, 아니. 별로." 흘…… 잠자는 사람 깨워서 무지하게 미안하구만.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는걸? 그나저나 기왕에 아트로포스가 나한테 말을 건 김에 질문이나 해야겠다! "근데 로스, 성물이 있는 곳이 어떤 마을인지 알아?" "음…… 몰라요." "전혀 모르는 곳에 가는 건데 걱정 안돼?" "물론 걱정은 되지만 직접 부딪쳐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니까 처음부터 겁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트로포스는 약해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어떻게 보면 자신감 넘치는 어조 로 내 물음에 대답했다. 처음부터 겁을 집어먹고 한숨만 쉬고 있는 나하고는 근본적으로 마음가짐이 틀린 것이다. 흘…… 역시 영인관이라서 보통 소녀하고는 달라. 존경스러울 정도야. 난 엄 청난 겁쟁이라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겁을 먹고 무지하게 긴장하는 데. 도대체 아트로포스의 저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 저벅저벅- ……. 나와 아트로포스는 상쾌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여관을 나섰다.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배는 고팠지만 최대한 빨리 성물을 찾아야 한다 는 아트로포스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빈속으로 가야했다. 흘…… 아침도 못 먹고 걸어야 하다니…… 이러다가 나 쓰러지면 어떡하지? 아…… 밥도 안 먹고 아침 햇살을 받으니까 갑자기 현기증이……! 다그닥 다그닥- 도시의 거리 사이로 아침 일찍부터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 도시의 모습은 내 기분을 상 당히 좋게 만들어 주었다. 흘…… 역시 난 이상한 녀석이라니까. 풍요로운 자연 속에 있는 것보다 이런 인공 구조물 속에 서 있는 것에서 기분 좋음을 느끼다니 말이야. 뭐 솔직히 아 무리 아름답게 펼쳐진 꽃밭이나 멋진 산이라도 서울의 야경에 비하면 상대가 안 되지. 어두운 밤을 수놓는 인공 불빛들에 의해 아름답게 장식된 도시를 높 은 곳에서 내려다본다…… 캬……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지! 우헐헐! 역시 난 이상한 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상한 녀석이야! "뭘 그렇게 웃고 있어요?" 그때 아트로포스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아무래도 아침 도시를 바라보는 내 얼 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올랐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난 즉시 정색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아니,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아트로포스는 그 이상 묻지는 않았지만 날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혹시 내가 미쳐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허황된 망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이 오해를 풀기 위해 아트로포스에게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 그 순간, 뒤에서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두 사람!" "……?" 뒤를 돌아보니 회색의 금속 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장검을 차고 있는 한 병사 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위기 상 이 도시의 경비병일 것 같았기 때문에 난 눈에 거슬리지 않게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보다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 병사는 잠시 아트로포스의 미모에 넋을 놓고 있다가 내 질문을 받자 급히 본래의 살벌한 표정으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너희 둘, 저 산 쪽으로 가고 있는 거냐?" 병사가 가리키고 있는 쪽은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 바로 그 산이었다. 그래 서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그건 안돼. 요즘 그 근방에서 사람들이 습격 받았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 니까.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 산 을 넘어가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 병사는 강압적인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 산 쪽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상 그곳으로 반드시 가야했기 때문에 난 병사와 협상을 벌였다. "저희는 저쪽으로 꼭 가야합니다. 저곳에 저희가 찾는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 거든요." "너희들이 뭘 찾는지는 모르지만, 너희들이 저리로 갔다가 실종되기라도 하면 우리들만 골치 아파져. 사람들의 안전도 지키지 못했다고 윗분들한테 욕먹는단 말이야." "괜찮습니다. 저희가 실종되어도 신경 쓸 사람은 없으니까요." "너희들 고아냐?" 흘…… 고아라…… 나야 이 세계에서는 고아라고 할 수 있지만 아트로포스는 엄연히 부모님들이 살아있는데…… 음…… 어쩔 수 없지. 거짓말을 하는 수밖 에. ====================================================================== 라이:하이텔에 올라온 것을 다시 펌 한 것입니다. 오늘 네게는 전부 하텔 거친 것.. 죄송....--;; [번 호] 99 / 101 [등록일] 2000년 09월 14일 21:14 Page : 1 / 23 [등록자] THEBUR [조 회] 34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장: 요센 -2-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7장:요센 -2- 관련자료:없음 [30017]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11 22:46 조회:1033 "예. 계속 눌러살 집이 없어서 여기저기 여행하고 있습니다." "흠……." 병사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아트로 포스를 자세히 쳐다보고 나서는 분명하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돼. 아무리 아는 사람 없는 고아라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다. 그건 이 도시를 지키는 병사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니까!" "……." 흐흐…… 도시 경비병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 웃겨 죽겠구만. 네 녀석이 우리 를 저 산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모두 아트로포스 때문이잖아? 예쁜 아트로포스를 놓치기 싫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거 모를 줄 아냐? "저희에게 그 정도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저 산으로 꼭 가야합니다." 난 최대한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병사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병사는 전혀 그 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왜 꼭 저 위험한 산으로 가야한다는 거냐? 목숨을 걸고 가야할 정도로 중요 한 것이 있다는 소리냐?" "……." 흘…… 상당히 귀찮게 구는 녀석이군. 마음 같아서는 마법으로 날려버리고 싶 지만…… 그랬다가는 저기 지나가고 있는 병사들이 볼 테니까 안되겠지. 아트 로포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겠군. "모두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고아가 아닙니다. 부모님께서는 모두 살아 계시니까요." 갑작스럽게 변경된 내 말에 병사는 혼란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아까는 고아라고 했잖아?" "그건 여행의 목적을 감추려고 일부러 그렇게 말씀드린 겁니다. 솔직히 말해 서 저희는 이제 곧 결혼하려고 합니다." "겨, 결혼?!" 결혼이라는 말에 병사는 경악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전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아트로포스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 문에 난 계획대로 아트로포스의 손을 덥석 잡으며 병사에게 말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사람과 위험한 곳에 함께 있어봐야 그 사랑이 진 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부러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저 산에 올라가는 것을 마지막으 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결혼할 생각이구요." 크으…… 내가 왜 이런 헛소리를 해야하는 거지? 아무리 즉석에서 생각해냈다 고는 하지만 너무 닭살 돋는 얘기야…… 가뜩이나 닭띠인데 이러다가 정말 닭 이 되면 어떡하지? "……." 병사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다가 다시 아트로포스에게 시선을 박았다. 아트로포스에게서 내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보려는 의도 였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병사의 시선을 받으며 너무나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 었다. "그이의 말이 맞아요. 그러니 저희의 사랑을 위해서 저 산으로 가는 것을 꼭 허락해주셨으면 합니다." 커커컥…… 그이…… 사랑…… 나 정말 닭이 되어버릴 것 같아……! "그, 그렇다면 그, 그렇게 하십시오……." 병사는 떠듬거리며 우리가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했다. 계속 그 병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긴 했지만 금방이라도 마음이 변해 산에 올라가지 말 라 라고 소리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난 즉시 아트로포스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 다. 물론 손은 여전히 잡은 채였다. 저벅저벅- ……. 잠시 후, 그 병사와의 거리가 멀어졌다고 느껴지자마자 아트로포스가 날 비꼬 듯이 말했다. "거짓말을 아주 잘하시는군요." "로스도 만만치 않아." "전 그저 이드님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춰드린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만만치 않다는 거지. 그 상황에서 전혀 당황 안 하고 그런 말을 할 사람은 로스밖에 없을걸?" "……." 내 반박에 아트로포스는 할말이 없는지 금방 입을 다물었다. 아트로포스에게 보기 좋게 반격을 가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문득 지금까지 아트로 포스의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놀랐다. 이미 병사의 모습은 보 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의 손을 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 흘…… 내가 계속 손잡고 있는데 전혀 뭐라고 안 하는군. 그냥 목적지에 도착 할 때까지 계속 잡고 있어 버려? 그나저나 아트로포스의 손은 정말 부드러운 데? 피부도 야들야들하고. 윽…… 이러다가 나 이상한 짓 할지도 모르겠군……. "근데 로스." 난 일부러 아트로포스에게 말을 걸면서 그와 동시에 자연스럽게 손을 놓았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 았다. "말씀하세요." "아까 병사가 여기 위험하다고 했는데, 괜찮을까?" 그런 내 물음에 아트로포스는 그녀다운 대답을 했다. "직접 부딪쳐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에요." "……." 흘??─?역시 아트로포스는 터프해. 하여간 아트로포스에게서는 걱정이라는 단 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니까.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아트로포스가 겁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저벅저벅- ……. 우리는 그 위험하다는 산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산이 꽤 가파르고 높았기 때 문에 올라가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확실히 이 길은 교통로로 이용하기에는 부적합했다. 이 산을 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빙 돌아가는 게 더 나을 정도 였던 것이다. 까악 까악- 흘…… 웬 까마귀 소리냐? 여기에 죽은 동물이라도 있는 거냐? 얼레? 벌써 화 창한 정오가 됐나? 해가 중천에 걸렸네? 도대체 이 산 오르는데 몇 시간이 걸 리는 거야? 이러다 지쳐 쓰러지겠다! "로스, 잠시 쉬었다 가자." 난 뒤로 고개를 돌려 아트로포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인 아트로포스에게 이런 험한 산 의 등정은 상당히 힘든 모양이었다. "하아하아……!" 아트로포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가까이 있는 나무 옆에 쓰러지듯이 주저 앉았다. 나 역시 그런 아트로포스의 옆에 앉고 휴식을 취했다. 울창한 나무 사 이로 비추는 햇살을 보면서 난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하아……." 흠…… 아트로포스가 상당히 지쳐있군. 하긴, 지금까지는 편안하게 마차를 타 고 왔으니 이런 거친 여행은 처음이겠지. 뭐 생각해보면 나도 지금까지 특별히 힘든 여행을 한 건 아니었지만. 아, 그러고 보니 아침을 안 먹어서 더 지쳤는 지도 모르겠군! 역시 아침은 먹어야 한다니까. 흘…… 어쨌든 아트로포스는 피 로가 쌓인 것 같으니 내가 마법으로 피로를 풀어줘볼까? "로스, 가만 있어봐.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네?" 앗…… 말이 헛나왔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말을 하다니……! "아니, 그게 아니라 로스의 피로를 풀어주려고." "피로를……?" 아트로포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뭔가를 생각했는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요. 피로 풀어준다는 명목으로 제 몸을 주무를 생각이죠?" 얼레? 몸 주물러? 아, 보통 피로 풀어준다고 하면 몸을 주무르는 거였구나.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뭐 어쨌든 내가 하려는 건 그런 유치한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로스 몸에 손 안대고 피로 풀어줄 수 있어." "그게…… 가능해요?" "마법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마법으로요?" 아트로포스는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아트로포스 의 표정 변화였기 때문에 난 괜히 으쓱해져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근육의 피로쯤은 마법으로 풀 수 있어." "……!" 얼씨구? 왜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짓냐? 내 신용도가 그렇게 형편없어? 한 방에 서 같이 자도 난 아트로포스의 잠자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나 같이 신사적인 인간은 없다구! "어쨌든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아픔 같은 건 전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구." 난 아트로포스에게 수 차례 안전하다고 말한 다음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정 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로 회복을 위한 생물학적 과정을 떠올렸 다. 우리의 몸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용하는 유기물은 포도당…… 우리 몸은 포 도당을 분해하여 근육이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그 포도당 분해에 필요한 것이 바로 산소. 하지만 산소의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근육이 심한 운동을 할 경우 우리 몸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산소 없이 포도당 분해를 하게 되는데 그것을 무기 호흡이라 하며 그때 젖산이 생긴다… … 그 젖산이 바로 근육의 운동을 방해하여 사람은 피로를 느끼게 된다…… 휴 식이라 함은 그 젖산에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젖산을 분해하는 과정…… 즉, 아 트로포스의 근육에 산소를 보내어 그 젖산을 산화시키면 아트로포스의 피로는 풀린다는 뜻! "……."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난 계속 산소를 아트로포스의 근육에 보내는 상상을 하면서 마나회로를 가동시켰다. 문제는 피로한 사람이 아트로포스이기 때문에 지금 아트로포스의 피로가 풀리고 있는지 아닌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 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트로포스가 피로 풀렸다 라고 할 때까지 계속 이러고 있어야 했다. 크으…… 이것도 상당히 힘든 일이군. 다행히 7서킷의 마나회로로 이 피로 회 복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거의 무리가 없지만…… 정신력이 딸려서 힘들어. 그나저나 이쯤이면 아트로포스의 피로도 다 풀리지 않았을까? "어때, 로스?" 난 마나회로 가동을 중지하고 아트로포스에게 상태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아 트로포스는 웬일인지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지 않았??? 왠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난 순간적으로 쫄아버렸다. "이드님……." "왜?" "이드님은…… 정말 마법사 맞나요?" "……!" 아트로포스의 예상외의 질문에 난 당황하고 말았다. 그 소리는 내 피로 회복 마법이 여지없이 실패했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던 것이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성공을 예상하고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 이 컸다. 크윽…… 실패라니…… 아트로포스에게 엄청난 쪽을 당해버렸어…… 당장이 라도 목매달고 죽고 싶다…… 차라리 내 머리 위로 벼락이나 떨어져라! "마법으로 피로를 없앨 수 있다는 말은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어요! 근데 어떻게 이드님은 마법으로 피로를 없앨 수 있는 거예요?!" 아트로포스는 얼굴 가득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당히 흥분했다. 항 상 차분하고 냉정했던 아트로포스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꽤 당황스러웠지만, 왜 아트로포스가 이토록 흥분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의아해 졌다. "무슨 소리야? 내 마법이 성공했다는 거야?" "그래요! 그것도 너무 완벽하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예요?!" 얼레? 내 마법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우히…… 우히히…… 우하하하하! 그 럼 그렇지! 과학에 근거해서 마법을 사용하는데 틀려서는 안되지! 내 마법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에 관련된 과학 이론이 잘못됐다는 것을 뜻하니까 말이야! "로스, 진정해. 마법으로 피로 회복한 거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건 놀랄 일이라구요! 지금까지 마법으로 피로를 회복시켰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단 말이에요! 오직 마술로만 가능했던 일이라구요!" 아트로포스는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흥분했다. 그래서 난 그런 아트로포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두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았다. 그런 갑작스런 내 행동에 아트로포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귀여웠지만 지금은 아트로포스의 진정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놀렸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얘기해. 알았지?" "아…… 네……." 흘…… 이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모양이군. 어쨌든 아트로포스의 흥분한 모습 을 봤다는 것이 큰 의의인가? 왠지 기쁘다∼ "마법으로 피로를 회복시킨 적이 없었어?" 난 진정 상태로 들어간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고,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천신이나 천마의 힘을 빌려서 행하는 마술만이 피로 같은 것을 풀 수 있었거든요." 흠…… 여기는 마법하고 마술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인다고 했지…… 이를테 면 마술은 신력이나 마찬가지겠군. 하긴, 여기 마법은 오직 이미지만으로 발 동되니까, 피로 회복 같은 건 어떤 식으로 상상해야 할지 몰라서 제대로 사용 하지 못했겠지. 이 세계 사람들이 젖산이나 무기 호흡 같은 걸 알겠어? 뭐 파 이어 스톰 같은 것의 과학적 원리도 모르겠지만, 피로야 회복돼라 라는 식으 로 상상하는 것보다는 불꽃 일어나는 상상을 하는 게 훨씬 쉬우니까 별 어려 움은 없었겠지. "어쨌든 로스, 내 피로도 풀어 줘." 난 아트로포스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 아트로포스는 영인관의 힘으로써 나에 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내 피로쯤은 가볍게 풀어줄 수 있기 때문 이었다. 물론 아트로포스가 정신적으로 지쳐있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한 말이 지만. "알겠어요."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뭐라고 중얼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내 몸에 쌓인 피로가 확 풀려버렸다. 내 마법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흘…… 왠지 기가 죽는다…… 내가 저 정도로 마법을 사용하려면 도대체 얼마 나 있어야 할까? 영인관의 능력을 뛰어넘지 못하면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것 도 힘들텐데 걱정이군. "자, 이제 피로도 풀렸으니 계속 가볼까?" "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피로가 모두 풀렸으니 이렇게 쉬고 있을 이유 가 없어진 것이다. 왠지 머리 속에서는 육체가 혹사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육체는 아주 멀쩡했기 때문에 상당히 모순된 느낌을 받았다. "크크크……." "키키키……." 얼레? 뭐냐, 이 기분 나쁜 소리는? 이런…… 한 방향이 아니라 사방에서 들려 오는 것 같은데? 설마…… 무슨 오크 같은 괴물은 아니겠지? ========================================================================= 흘... 이틀에 2편도 지키기 힘들어지는군요...ㅡㅡ;; [번 호] 100 / 101 [등록일] 2000년 09월 14일 21:15 Page : 1 / 30 [등록자] THEBUR [조 회] 34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7장: 요센 -3-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7장:요센 -3- 관련자료:없음 [30056]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14 19:24 조회:169 사삭- "……!" 마침내 그 기분 나쁜 소리의 주인공이 수풀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사람이었다. 중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옷이 아주 헐 어서 거의 거지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런 거지 아저씨 4명이 나와 아트로포스 의 주위를 에워쌌다는 것이었다. "으흐흐……!" "이히히……!" 흘…… 진짜 짜증나게 웃는구만. 산적인가? 확실히 손에 도끼라든지 칼 같은 걸 들고 있으니 그런 것 같긴 하군. 처음으로 마법을 쓰게 생겼는걸? 불쌍한 녀석들, 난 지금 몸의 피로가 완전히 풀려 머리도 맑은 상태라고. 한마디로 컨디션 최상! "오랜만에 맛있는 걸 찾았어……." "저 여자애 정말 맛있겠는걸?" 그 4명의 산적들은 아트로포스를 상대로 그런 음담패설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중에 2명은 날 쳐다보면서 입을 놀리고 있었다. "저 남자 녀석도 괜찮겠는데?" "크크…… 그렇군." 허걱?!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저 두 녀석은 호모?! "저 계집의 가슴살은 내 꺼다." "난 저 여자의 엉덩이살!" "그럼 난 저 남자 녀석의 허벅지살이다!" "지금 결정하면 뭐해? 우선 잡아야지!" 4명의 산적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종합해본 결과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단어는 바로 …… 식인종! 이런 어처구니없는…… 어떻게 산적도 아니고 식인종이야? 설마 사람들을 습 격했다는 것이 저 식인종 아저씨들? "자아…… 얌전히 살을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한 식인종 아저씨가 내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런 헛소리를 해대었다. 물론 난 그런 식인종의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즉시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어떤 인간이 끼어 들어서 내 마법 실력을 과시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모두 꼼짝 마!!!"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자 나와 아트로포스를 둘러쌌던 그 식인종 아저 씨들은 얼굴 가득히 당황하는 표정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 과 식인종 아저씨들의 사이는 극히 안 좋은 듯했다. "빌어먹을! 우선 후퇴다!" 탁탁탁- 4명의 식인종 아저씨들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반대쪽으로 다리가 안 보이도록 빠르게 도망갔다. 그렇게 그들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싶은 순 간,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한 청년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도망 하나는 정말 귀신같군!" 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짧은 보라색의 머리를 지닌 그 청년은 그 식인종 아저 씨들을 찾는 듯 잠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와 아트로포스가 자기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급히 손에 들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 어넣으며 우리에게 물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 당연히 다친 데는 없지. 난 원래 저 식인종 아저씨들을 상대로 내 마법을 시 험해보려고 했는데 네 녀석이 쫓아내 버려서 그럴 수도 없게 됐다고. 전투에 있어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내가 입은 막심한 경험적 손해를 배상 하란 말이여.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요센 마을의 순찰대원인 '헤로드'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로스이고 이분은 이드님이십니다." 보라색 머리 청년의 소개에 아트로포스는 나 대신 우리의 소개를 청년에게 해 주었다. 문제는 헤로드라는 이름의 그 청년이 아트로포스의 미모에 완전히 넋 을 잃어서 그녀의 소개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흘…… 하여간 아트로포스가 너무 예쁘니까 여러 가지로 골치 아퍼. 어떻게 남자들마다 저 모양인 거냐고. 나처럼 여자의 미모에는 초탈해야지. 우헐헐. "헤로드 씨,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트로포스의 얼굴에서 헤로드의 시선을 떼어놓기 위해 난 그에게 말을 걸었 다. 헤로드는 내 말을 듣고 이내 정신을 차려 나에게 되물었다. "아, 무엇입니까?" "아까 그 사람들 누굽니까?" 내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란 당연히 4명의 식인종 아저씨들이었다. 헤로드는 내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며 묻고 있는가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며 대답했다. "악질적인 인간들이죠. 사람의 고기에 맛을 들였으니까요." 헐…… 사람 고기에 맛을 들였다라…… 역시 식인종이었군. 왠지 흥미가 생기 는걸? 좀더 캐물어 볼까? 아, 맞다! 그 전에 이 녀석이 있는 마을에 들어가서 밥을 공짜로 먹는 거야! "저기, 여기서 제일 가까운 마을이 어디입니까?" 난 일부러 헤로드의 마을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마을에서 밥 얻어먹겠다는 의도를 들키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드는 하하 웃으며 내 예상 대로 말을 했다. "이 부근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제가 사는 요센뿐입니다. 이런 위험한 곳에 오래 있다가는 아까와 같은 녀석들이 나타나니까 괜찮으시다면 저를 따라오십 시오." "음……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드립니다." 비록 난 겉으로는 헤로드에게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사실 쾌재를 부를만한 것도 못 되었다. 남자라면 누구 나 아트로포스가 이런 위험한 산 속을 헤매는 것을 바라지 않고, 남자인 헤로 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야 정상인 것이다. 어쨌든 그런 내 계획을 모르는 헤로드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산 속을 헤 쳐나가기 시작했다. 사삭- 사삭- 흘…… 도대체 길이 하나도 안 보이는구만. 근데도 저 녀석은 길을 아주 잘 찾는데? 역시 이곳에 오래 살면 다 그렇게 되는가 보다. 그나저나 헤로드를 믿 어도 될려나? 저 녀석도 식인종이면 어쩌지? 음…… 어쩔 수 없지. 그때는 봉 사하는 셈치고 먹혀주는 수밖에. "자, 여기입니다." 마을에 다 도착했는지 헤로드는 걸음을 멈추며 앞쪽을 가리켰다. 확실히 우리 앞에는 나무로 만든 집들이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마을의 모습이 펼쳐져 있 었다. 게다가 넓은 분지 안에 건설된 마을이라 그런지 마을 규모가 생각보다 엄청 컸다. 흠…… 이 요센이라는 마을은 분지에 둘러싸여서 다른 마을하고 교류를 잘 안 하는 것 같군. 밭도 있고 분지 가장자리로 꽤 넓은 강물도 흐르니까 자급자족 이 되겠는걸? 왠지 여기는 특정 나라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치제도를 취할 것 같은데? "헤로드 씨, 요센은 어느 나라 소속입니까?" 난 마을을 내려다보며 헤로드에게 물었고, 헤로드는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본래는 니아르 제국 소속인데, 이런 변두리 마을에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희 마을 사람들끼리 뭉쳐서 살고 있죠." 흘…… 역시 지방 자치였군. 그럼 세금은 내나? "세금은 내나요?" "세금이요? 아니오, 안 냅니다. 그쪽에서 안 걷어가거든요." "……?" 얼레? 세금을 안 내? 아무리 지방 자치를 한다지만 세금 갈취로 먹고사는 나 라가 자기 나라 영토의 마을에서 세금을 안 걷다니? 그게 말이 돼? 흐음…… 아무래도 여기엔 뭔가 엄청난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어……! "자, 따라오십시오. 외부인이 이 마을을 방문하는 건 오랜만이군요." 헤로드는 마을 쪽으로 내려가면서 실실 쪼갰다. 그의 시선이 자꾸 아트로포스 쪽으로 가는 것을 보면 녀석이 아트로포스에게 관심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러나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내 뒤를 따를 뿐이었다. 터벅터벅- 저벅저벅- ……. 흘…… 사람마다 걷는 소리가 다 다른 모양이네? 뭐 신발 종류가 다르니까 그 렇겠지. 녀석은 가죽 신발 같은 거 신었고 난 운동화니까. 하지만 가죽 구두 비슷한 걸 신고 있는 아트로포스는 전혀 걷는 소리를 안 내고…… 저건 거의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고 밖에 할 수 없어. "이드님." "……?" 그때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오던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내 옆에 바싹 붙으 며 날 불렀다. 난 당연히 아트로포스를 쳐다보았고, 아트로포스는 헤로드가 듣 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마을에서 성물의 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져요. 이 마을에 성물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호오∼ 그거 아주 잘됐는데? 이 마을에서 며칠 간 머무르면서 성물을 찾아보 면 되겠군! 우헐헐, 정말 난 운이 좋은 것 같아∼ "여어, 헤로드! 순찰 무사히 끝냈냐?" "예! 녀석들을 만났는데 놓쳐버렸어요!" "그거 아깝구나! 다음에는 작살을 내라!" "예! 꼭 그렇게 할게요!" 헤로드는 밭에서 생전 처음 보는 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아저씨들과 그런 살벌 한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를 마을 안으로 안내했다. 비록 내 느낌이었지만 이 마을에서는 뭔가 안 좋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작물,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가축들이 그 증거였다. 흐…… 설마…… 여기서 무슨 작물이나 동물들의 인공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는 소리는 아니겠지…… 근데 저 동물은 뭐야? 소도 아니고 돼지도 아니고. 크 …… 왠지 이 마을 정말 기분 나뻐……! "우선 촌장님을 뵙도록 하죠." 헤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어떤 큰 나무집으로 데려갔다. 마을이 넓은 편이라 분지 끝에서 마을 중앙 쪽에 있는 촌장의 집까지 가는 데에는 거의 20 분 여가 걸렸다. 사실 빨리 걷는다면 10분 정도에도 갈 수 있었겠지만 앞서 가 는 헤로드가 느릿느릿 걸었기 때문에 거의 2배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웅성웅성- 마을 광장 같이 보이는 마을 중앙부에 들어서자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우리, 특히 아트로포스를 보고 웅성거렸다?. 물론 우리들이 이 마을에 오랜만에 들어 온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단지 몇몇 청년들이 눈 찢어지도록 아트로포스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다. 똑똑- "촌장님, 저 헤로드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헤로드가 촌장집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끼이- 늙은이의 말이 들려오자마자 헤로드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촌장의 집 내부는 별 볼일 없었다. 물론 회의용의 거대한 탁자가 문 앞에 떡 놓여있고 촌 장의 방은 이쪽에서 보이지 않게 칸막이를 쳐놓았기 때문에 이 집 내부가 어떻 게 생겼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 드륵-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칸막이인 줄 알았던 미닫이문을 열고 한 노인이 모 습을 드러내었다. 촌장인 듯한 그 백발 노인은 칸막이 문 앞에 놓여있던 신발 을 신고 회의용 탁자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촌장님." 그 노인이 나오자 헤로드는 곧바로 인사를 했다. 허리나 고개를 전혀 숙이지 않고 입만 나불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이곳에서의 인사는 말로만 하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저 노인에게 뭐라고 인사를 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그냥 잠자 코 있었다. "응? 그 분들은 뉘신가?" 촌장 노인은 헤로드 뒤에 서 있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고 헤로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헤로드는 촌장 노인에게 우리를 소개시키려고 했지만, 아트로포스가 우 리 소개를 할 때 녀석은 아트로포스의 미모에 넋을 잃고 있었던 관계로 우리 이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촌장 노인에게 우리를 소개시키고자 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 그러니까 이분들은…… 외부에서 오신 분들인데…… 에……." 흘…… 무지하게 더듬거리고 있구만.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하냐? 귀찮게 하는군. "전 이드고, 이쪽은 로스입니다. 헤로드 씨의 말처럼 외부인입니다." "오…… 그렇소? 우선 자리에 앉으시오." 촌장 노인은 우리에게 자리를 권하며 자기 방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탁자가 꽤 커서 촌장 노인하고 너무 떨어지면 내가 촌장을 꺼려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촌장과 약간 가까운 위치에 앉았다. 아트로포스 는 그런 내 옆에 앉았고, 헤로드는 내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위치를 쉽게 설명하자면, 촌장의 왼쪽에는 나와 아트로포스가 앉고, 촌장의 오른쪽에 는 헤로드가 앉은 상태였다. "두 분은 어디서 오셨소?" 우리들이 그렇게 모두 자리를 잡자 촌장 노인이 날 보면서 물음을 던졌다. 그 것은 나와 아트로포스 중에서 남자인 내가 리더라는 촌장 노인의 지레짐작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즉, 촌장 노인은 여자보다 남자가 일행을 이끌고 있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난 그런 촌장 노인의 질문에 대답했다. "도니아라는 마을에서 왔습니다." "흠…… 그런가." 흘흘…… 분명히 이 할아범 도니아라는 마을을 모르는 거야. 하긴, 계속 이 분지 마을에서 틀어박혀 살아온 듯한 인상이니까 다른 마을 이름을 알 리가 없 겠지. 하여튼 촌장이 나한테 질문 하나 했으니까 이제 내가 질문 할 차례다! "근데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응? 무엇이오?" "아까 전에 이 마을 근처에서 어떤 이상한 사람들의 습격을 받았는데, 그 사 람들의 정체는 뭡니까?" "……?" 내 질문을 받은 촌장 노인은 머리를 갸웃했다.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 았다. 그래서 난 다시 촌장 노인에게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때 난데 없이 헤로드가 끼어 들었다. "녀석들 말입니다. 사람 고기에 미친 작자들." "아……!" 적의에 가득 찬 헤로드의 말을 들은 촌장 노인은 알겠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날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작자들은 위험하오. 사람 고기에 맛을 들여버린 자들이기 때문이오. 그 자들 때문에 우리 마을에서는 순찰대까지 만들어서 마을 경비에 신경 쓰게 되 었소." 흘…… 그 말은…… 그 식인종 아저씨들이 이 마을 사람들까지 잡아먹는다는 뜻? "그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까지 노립니까?" "그렇다오. 벌써 마을 사람 몇이 그들에게 희생됐소이다. 그런 작자들은 잡아 서 동물들의 사료로 줘도 시원치 않소!" 촌장 노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꽤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러다가 이내 촌장 이라는 자신의 직분을 생각하고는 헛기침을 해댔다. 그런 촌장의 어색함을 무 마해주기 위해, 그리고 나와 아트로포스의 거주를 위해 난 촌장 노인에게 부탁 했다. "근데 촌장님, 저희 두 사람이 이 마을에서 잠시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지금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고, 그 사람들 만나기도 두렵고……." "허허, 물론이오. 어떻게 외부인을 내쫓겠소?" 촌장 노인은 전혀 불쾌한 기색을 떠올리지 않고 오히려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친절하게도 우리가 살 집까지 지정해 주었다. "헤로드, 자네 집에서 저 두 분을 맡아주게." "예, 촌장님." 헤로드는 처음부터 그것을 바라고 우리를 이곳에 데려왔다고 할 수 있었기 때 문에 아주 좋아했다. 촌장 노인은 더 이상 나와 아트로포스에게 질문할 것이 없는 듯, 아니 질문하는 것도 실례라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헤로드, 이 분들을 모셔가게. 난 행사를 준비해야 하니까." "예.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두 분, 이 마을에서 얼마든지 편히 쉬어 가시오. 이곳은 음식이 아주 풍성한 곳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그렇게 말한 촌장 노인은 느릿느릿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촌장 노인이 마을 중앙 부근의 어떤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보던 헤로드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절 따라오십시오. 방은 많이 있으니까 걱정마시구요." 흘…… 드디어 7일만에 개인 방에서 잘 수 있게 됐구나.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차가운 방바닥에서 이불 두 장으로 자야만 했던 그 설움…… 크으…… 눈물난 다……! 터벅터벅- 저벅저벅- ……. 촌장 노인의 집에서 헤로드의 집까지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 대략 5분 여를 걸 어야 했다. 헤로드의 집은 이층집이었는데, 이 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1층짜리 인 것을 보면 이 마을에서의 헤로드의 위치가 결코 낮지 않은 듯했다. 똑똑- "나 왔어!" 집앞에 도착한 헤로드는 노크를 하며 크게 외쳤고, 그러자 안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헤로드처럼 보라색의 머리를 지닌 소녀였는데, 얼굴도 헤 로드하고 비슷하고 나이가 나보다 어린 것으로 봐서는 헤로드의 여동생 같았다. "어머? 오빠, 이 분들은?" "아, 손님들이야. 오늘부터 우리 집에 머무르게 됐어." "정말?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헤로드의 여동생으로 여겨지는 소녀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들은 집안으로 들어 가게 되었다. 집안은 밖에서 봤던 대로 2층집이었고, 넓은 편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현재 이 집안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헤로드 남매뿐이었던 것이다. "근데 헤로드 씨의 부모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헤로드 여동생의 안내를 받으며 1층에 있는 손님 접대실로 가는 동안 난 헤로 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헤로드는 약간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 모두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사고였죠." "아…… 어떤 사고였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무리하게 새로운 음식을 만들려고 하시다가……." "……?" 얼레? 무리하게 새로운 음식을 만들려고 하다가 죽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 야? 음식 만들다가 죽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냐? 허어…… 정말 신기해……. "여기 앉으세요." 헤로드 여동생의 안내에 따라 나와 아트로포스는 손님 접대실 안에 마련된 탁 자에 마치 연인처럼 사이좋게 앉았다. 헤로드는 그런 우리들 맞은편에 앉았고, 헤로드 여동생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 여동생을 가리키며 헤로드가 서로의 소개를 시작했다. "이 아이는 제 여동생인 '케시'입니다. 말썽쟁이지만 요리는 정말 잘하죠." "뭐가 말썽쟁이라는 거야!" 케시는 헤로드의 소개에 발끈 화를 냈다. 그러나 헤로드는 케시가 화를 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소개를 계속했다. "케시, 저 분은 이드님이고 저 분은 로스님이야. 이름 잘 기억하라구." 헐∼ 이름 잘 기억해야 할 쪽은 헤로드 너야. 그나저나 우리 이름을 외웠다는 건 경축할만한 일이다. 축하∼ "흥! 내가 오빤 줄 알아?" 이름 잘 기억하라는 말에 케시는 헤로드를 놀리듯이 혀를 내밀었지만 우리 쪽 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에는 얼굴을 확 바꾸어 얌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 식사를 준비하고 올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케시는 그렇게 말하며 얌전하게 접대실을 빠져나갔고, 헤로드는 그런 케시를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녀석은 원래 남 앞에서는 얌전한 척 합니다. 이해하세요." "뭘요, 귀여운데요." 난 그냥 솔직하게 느껴지는 대로 말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트로포스보다는 훨씬 낫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외모 쪽은 아트로포스가 훨씬 우세하지만. 뭐 어쨌든 이제 이 집에서 살게 되는 건가? 아…… 아침부터 굶었더니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가능하면 빨리 나에게 밥을 줘…… 밥 줘…… 밥 줘…… 밥 ……! [번 호] 101 / 101 [등록일] 2000년 09월 14일 21:16 Page : 1 / 29 [등록자] THEBUR [조 회] 379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8장: 공포의 음식 -1-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8장:공포의 음식 -1- 관련자료:없음 [30057]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14 19:24 조회:156 <제 8 장> 공포의 음식 "식사 나왔어요!" 손님 접대실 탁자에 앉아 헤로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대략 10분 정도하고 나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 식사가 그 반가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음식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음식 운반용 수레에 뚜껑이 덮인 쟁반 형태로 놓여 있 었는데, 케시는 그 수레를 손수 접대실 안으로 끌고 와서 가져온 음식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얼∼ 음식 종류가 다양한 모양인데? 뚜껑 덮인 쟁반이 몇 개냐? 하나, 둘, 셋 …… 모두 세 개군. 쟁반 수는 많지 않지만 쟁반이 세숫대야 정도로 큰 걸로 봐서는 음식 양이 장난이 아니겠군. 큰일인데? 난 너무 많이는 못 먹는단 말이 야. 이 음식은 분명 케시가 만들었을 텐데 다 먹지 못하고 남기면 케시한테 미 안하잖아. "제 보잘 것 없는 실력으로 만든 거지만, 맛있게 드시길 바래요." 케시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쟁반 뚜껑 하나를 열어 젖혔다. 과연 어떤 음식이 들어있을까 잔뜩 기대하며 쟁반 위에 놓인 음식을 바라본 순간, 난 경 악하고 말았다. 쟁반 위에 웬 동물의 창자가 떡 하니 올려져 있었던 것이다. 뭐야? 어째서 창자가 쟁반 위에 놓여져 있는 거야? 헉! 창자 속에 뭔가 들어 있잖아? 다진 고기…… 야채…… 콩…… 나물…… 허허허…… 창자 속에 저런 걸 넣다니…… 도대체 이 음식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거냐……? "……!"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다음으로 열린 쟁반에는 주먹만한 동물의 눈알이 네 개 놓여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 눈이 작은 것 같지만, 실제로 눈 을 파보면 망막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크기는 주먹만하다. 지금 두 번째 쟁반 에 놓인 그 눈알은 어떤 동물의 얼굴에서 눈알을 통째로 꺼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크기가 주먹만한 것이다. 흐윽…… 눈알에다 웬 소스를 뿌렸냐? 소스가 분홍색인 걸 보니 케첩하고 마 요네즈를 섞은 것 같은데? 뭐 다른 소스일 수도 있겠지만…… 주먹만한 눈알이 분홍색 소스에 잘 버무려져 있는 모습은…… 정말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군……. "이건 후식이에요." 케시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쟁반의 뚜껑을 열어제쳤다. 이미 두 개의 희한 한 음식에서 충분히 놀라움을 맛본 나는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맹세하고 열린 마지막 쟁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난 내 마음 속 맹세를 어기고 또다시 놀라 고 말았다. 이번엔 곤충의 알 같은 것이 쟁반 위에 잔뜩 올려져 있었기 때문이 었다. 허어억…… 새끼손가락 만한 굵기에 3∼4cm 정도의 길이…… 겉이 반투명해서 속에 뭔가 검은 것이 보이는데…… 저거 혹시…… 곤충 애벌레 아니야? 저걸 지금 나보고 먹으라고? "우선 이것부터 드세요." 케시는 나이프로 첫 번째 쟁반 위에 놓여져 있던 동물 창자를 마치 순대 자르 듯이 썰었다. 그리고는 그 자른 창자 요리를 개인 접시에 덜어서 나와 아트로 포스, 그리고 헤로드에게 나누어주었다. "……." 흘…… 이 창자의 굵기로 봐서는…… 대장이야…… 소화되고 남은 음식 찌꺼 기가 꽉꽉 들어차 있는 대장…… 허으윽…… 이 속에다 고기 양념을 넣다니… … 도대체 저 여자애 머리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드세요?" 내가 요리에 전혀 손을 대지 않자 케시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난 내 옆에 앉아있는 아트로포스를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자기 앞에 놓인 창자 요리를 먹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아트로포스라 할지라도 생전 처음 보는 이런 요리를 아무 거리낌없이 먹을 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은 것이다. "아…… 손님이 먼저 먹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요. 먼저 드십시오." 난 그렇게 변명을 둘러대었다. 다행히 헤로드와 케시는 '외부인에게는 그런 식사 예절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보란 듯이 그 창자 요리를 나이프로 잘게 잘라 포크로 열심히 찍어먹기 시작했다. "……." 으으…… 헤로드하고 케시가 저렇게 잘 먹고 있으니 이제 내가 먹을 차례인가? 미치겠군…… 내가 동물의 대장을 먹게 되다니…… 우어어…… 나 당장이라도 이 집을 떠나고 싶어……! 덜거덕 덜거덕- 창자 요리를 먹기 좋게 잘게 자르는 내 손은 저절로 떨렸고, 그래서 나이프가 자꾸 접시를 긁어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창자 요리를 잘게 자른 후, 난 포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먹기 좋게 자른 대장 조각 하나를 포크로 찔렀 다. 대장 속에 들어있던 고기 양념은 워낙 잘 다져져서 포크로 찍어 들었는데 도 전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꿀꺽-! 어느새 입안에 고인 침이 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 침은 절대로 이 요리가 먹음직해서 생긴 군침이 아니었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생긴 침이었던 것 이다. 으으?…… 드디어 운명의 시간인가…… 아……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대 장을 먹어야 한단 말입니까……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옵니까…… 앞으 로 편식 안 하고 아무 거나 잘 먹을 테니 제발 이 위기를 타개해 주소서……! "사양 말고 드세요." 내가 창자 요리를 들고 먹지 않자 케시가 재촉했다. 그런 케시의 재촉에 난 결국 이 요리를 먹기로 결정했다. 이미 더러움의 극치를 치달리는 트레이의 밑 에서 음식을 먹었던 나였기 때문에 이 정도는 약과였다. 덥석- 마침내 그 창자 음식이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예상외로 창자에 고기 양념이 잘 베어들어 굉장히 맛있었다. 아주 잘 만들어진 창자 요리였던 것이다. "아주 맛있는데요?" 난 그 창자 요리를 완전히 씹어 삼킨 다음 내 감상을 케시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케시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많이 걱정했어요. 입맛에 안 맞으면 어쩌나 하고." "입맛에 잘 맞아요. 로스도 어서 먹어. 맛있어." 이 창자 요리가 아주 맛있음을 알게 된 나는 거침없이 또 하나를 포크로 찍어 먹으며 아트로포스에게 어서 먹도록 재촉했다. 그래서 아트로포스는 다른 사람 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으나, 내가 보기에는 분명히 내키지 않 는 표정을 지으며 창자 요리 하나를 찍어 먹었다. "……!" 헐헐, 아트로포스도 놀래는군. 하긴, 동물 창자로 이런 수준의 요리를 만든다 는 건 쉽지 않지. 정말 케시에게는 엄청난 요리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정말 맛있어요." 창자 요리를 한입 맛본 아트로포스도 나와 똑같은 감상을 내놓았다. 아트로포 스의 칭찬에 케시는 더더욱 기뻐하며 헤로드를 보더니 '거봐, 내 요리는 누구 나 인정한다니까'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나와 아트로포스는 그렇게 창자 요리를 무난히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엔 이걸 드셔 보세요." 창자 요리가 거의 다 바닥나자 케시는 눈알 요리를 각자의 개인 접시에 하나 씩 떡 하니 올려놓았다. 방금 전에 그 맛있는 창자 요리를 먹었음에도 불구하 고 내 눈앞에 놓인 눈알 요리를 보자 갑자기 입맛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특히 분홍색 소스 사이로 보이는 시꺼먼 눈동자는 날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 기에 충분했다. 흐으…… 도대체 이 눈알 요리는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설마 눈알은 내비두 고 분홍색 소스만 먹는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먹는 방법 을 모르겠어! 스슥- 내가 그렇게 눈알 요리를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는 동안, 헤로드 와 케시는 나이프로 눈알의 윗부분을 가르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눈알이 딱 딱해서 나이프로는 자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헤로드와 케시는 너무나 쉽게 눈알의 한 부분을 자르고 있었다. 흐음…… 우선 눈알을 잘라야 하는 건가? 뭐 그렇다면 나도 잘라주지. 근데 잘 잘라질까? 헤로드하고 케시가 아주 쉽게 자르는 걸 보면 잘 잘라질 것도 같 긴 하지만…… 걱정이다……. 스슥- 난 나이프로 눈알의 윗부분을 삼각형 모양으로 잘라보았다. 다행히 눈알은 너 무나 부드럽게 잘 잘라졌다. 충분히 익혔기 때문에 이렇게 잘 잘라지는 듯했다. 어쨌든 난 그렇게 눈알의 한 부분을 잘라낸 후에 헤로드를 쳐다보았다. "……?" 얼레? 헤로드 녀석, 웬 검정 소스를 묻혀서 눈알 조각을 먹잖아? 도대체 저 검정 소스는 어디 있는 거지? 눈알 요리에는 분홍색 소스밖에 없는데? 헤로드 녀석의 눈알 요리에도 분홍색 소스밖에 보이지 않고. 이상한데? 도대체 어디서 저 검정 소스가…… 아! 혹시?! 삭삭삭- 어떤 생각을 떠올린 나는 눈알의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눈알에 큰 구멍을 내었다. 그리고 먼저 잘라놓았던 그 눈알 조각을 눈알 속에다 집어넣고 잘 휘 저었다. 그러자 어떤 액체 같은 것이 걸리적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후후…… 역시 이 눈알 속에 저 검정 소스를 집어넣었군. 한마디로 이 눈알 요리는 눈알 껍질을 잘라내서 그 속에 집어넣은 소스에다 듬뿍 묻혀서 먹는 거 였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눈알 속에다 소스를 집어넣을 수 있는 거냐? 정말 엽기의 극을 치달리는 눈알 요리다……! 쩝쩝- 난 눈알 속에 들어있는 검정 소스를 눈알 껍질에 묻혀 하나 먹어보았다. 역시 나 그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검정 소스는 초콜렛 비슷한 맛을 냈기 때문에 달 콤했다. 눈알 요리의 시꺼먼 눈동자가 날 노려보고 있었지만 난 눈알을 삭삭 자르며 맛있게 요리를 맛보았다. "이 요리도 맛있는데요?" "정말이요? 고마워요. 그건 요리하느라 힘들었어요." 헐헐, 확실히 이 눈알 요리는 만들기 힘들지. 눈알에다 검정 소스를 넣는 고 난이도의 요리니까 말이야. 아∼ 이 소스 정말 맛있다! 눈???껍질 자체는 별 맛이 없지만 소스 때문에 아주 맛있게 느껴지는걸? "……?" 열심히 눈알 요리를 먹던 나는 아트로포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아트로포 스가 눈알 요리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난 이번에 도 아트로포스에게 눈알 요리를 권하기로 했다. 스슥- "자, 이걸 속에 들어있는 소스에 묻혀 먹으면 돼." "……." 내가 눈알 껍질 하나를 잘라주자 아트로포스는 꽤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보았 다. 하지만 난 그런 아트로포스의 무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른 눈알 껍 질을 친절하게 검정 소스에 묻혀서 아트로포스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얼굴 가 득히 사악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아트로포스는 잠시 나와 얼굴을 마주 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음을 알았는지 내가 준 눈알 껍질을 하나 맛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케시에게 그 감상을 알려주었다. "맛있어요." 헐…… 역시 아트로포스도 나하고 똑같은 감상이구만. 역시 나와 아트로포스 의 입맛은 비슷한가? 아니지, 그것이라기보다는 케시의 요리가 누구에게나 맛 있게 느껴질 정도로 훌륭하다는 뜻일 거야. 쩝쩝- 우리들은 그 눈알 요리도 맛있게 시식했다. 그렇게 눈알 요리마저 다 먹어 가 는 동안, 문득 이 요리들에 쓰인 창자와 눈알이 과연 어느 동물의 것인지 궁금 해졌다. 그래서 난 케시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기, 케시. 이거 어떤 동물을 사용한 겁니까?" "아, 저희 집에서 기르는 소예요." 얼레? 소? 소의 창자하고 눈알을 사용해? 그럼 창자 요리에 들어있던 고기는 당연히 소고기였겠구만. 소의 창자에 소고기라…… 무섭다……. "식사 다 하셨으면 후식을 드시고 계세요. 물을 가지고 올 테니까요." 케시는 그렇게 말하며 총총히 접대실을 빠져나갔다. 케시가 나가자 헤로드는 우리에게 마지막 쟁반에 담긴 그 곤충의 알 같은 것을 우리에게 퍽퍽 떠서 건 네주었다. "이건 이 부근에서만 사는 '네비아'의 알입니다. 그냥 떠서 먹으시면 돼요." 이 알 요리에 대해 짤막한 소개를 마친 헤로드는 숟가락으로 알을 떠서 입 속 에 집어넣었다. 지금 이 자리에 젓가락이 있다면 이 알 하나를 집어들어서 자 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숟가락밖에 없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나도 그 알들 을 숟가락으로 조금 떠야했다. "……." 흐으…… 진짜 R 속에서 뭔가 꿈틀거려…… 이걸 도대체 어떻게 먹으라는 거 야? 게다가 이거 요리도 전혀 안 하고 생으로 가져다 놓은 거 맞지? 날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릴 지도 모른다구! "아까워 마시고 맘껏 드십시오. 알이 터지면서 알 안에 있는 액체가 쏴아 하 고 입안을 적시는 게 일품이죠. 애벌레 씹는 맛도 좋구요." "……." 헤로드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자 이 애벌레 알을 먹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 져 버렸다. 하지만 이미 창자 요리와 눈알 요리도 먹은 마당에 이런 알 요리를 못 먹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난 눈 딱 감고 그 알들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 알들을 씹었다. "……!" 알들이 터질 때 뿜어져 나오는 액체…… 그리고 알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애 벌레를 씹는 감촉…… 우어어어…… 내가 정녕 이 알 요리를 씹어먹고 있는 것 이냐…… 이 알 요리를 목구멍 저편으로 넘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어떻습니까? 괜찮죠?" 내가 간신히 그 알 요리를 씹어 삼킨 것을 본 헤로드가 웃으면서 물었다. 난 잠시 내 입에 남아있는 그 찝찝한 액체를 다시 한번 맛본 뒤에 헤로드에게 내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글쎄요…… 제 입맛에는 잘 안 맞네요. 날 것을 먹는다는 건 좀……." "아, 그러세요? 입맛에 안 맞으시다니 안타깝군요." 흘…… 당신한테는 아까울지 몰라도 나한테는 전혀 안 아까워. 하여간 이 알 요리는 사람이 먹을 게 아니야…… 그냥 씹는 감촉만 있지, 무슨 좋은 맛도 안 나잖아. 이건 아트로포스에게 권할 만한 것이 못돼! "로스님은 안 드십니까?" 헤로드는 내가 알 요리를 먹지 않자 이번엔 아트로포스에게 알 요리를 권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그 알 요리를 뚫어져라 쳐다만 볼뿐 먹을 생각을 하지 않 았다. 그녀의 얼굴에 그 알 요리를 꺼리는 표정이 명백히 떠올라 있었던 것이 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저 무표정한 얼굴이라 생각할지도 몰랐지만. 흘…… 내가 안 먹으니까 아트로포스도 먹기 싫은 모양이군. 뭐 당연한 건가? 그렇다면 내가 아트로포스를 도와줘야겠는걸? "로스도 날 것을 잘 못 먹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내 말을 들은 헤로드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 혼자 알 요리를 떠먹기 시 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알 요리를 먹지 않아도 된 아트로포?스는 날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숙여 나에게 무언의 감사를 보냈다. 달칵달칵- 그때 케시가 큰 쟁반에 물 주전자와 컵 몇 개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 디어 이 공포의 점심 식사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그래서 난 케시가 물을 따라준 컵을 들고 원샷했다. 그러나 이 물마저 보통 물 이 아니었다. "맛 괜찮나요? 물에다 소의 침과 네비아 애벌레의 체액을 섞었어요. 달콤한 맛이 날 거예요." "……! 케시의 설명을 듣다가 난 하마터면 마시려고 입 속에 넣은 물을 토해낼 뻔했 다. 네비아 애벌레의 체액은 몰라도 소의 침을 섞었다는 것이 아주 불쾌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케시의 말대로 물은 달콤한 맛을 내고 있었다. 제길…… 어떻게 물에다가 그런 걸 탈 수가 있지? 난 그냥 평범한 물을 마시 고 싶단 말이야! 음식 먹은 후에 이런 단 음료(?)를 마시면 뒷맛이 안 좋다구! "저기…… 그냥 물로 주시면 안 될까요? 식사 후에는 항상 물을 마셔서 다른 걸 마시게 되면 식사를 제대로 한 것 같지가 않거든요." 난 용기를 내서 케시에게 그런 부탁을 했다. 물론 얼굴에는 '이 물 정말 맛있 습니다'라는 표정을 잔뜩 짓고 있었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케시의 성의 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내 표정은 제대로 먹 혀 들어갔고, 그 결과 케시는 다시 부엌까지 가서 평범한 물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주게 되었다. 꿀꺽꿀꺽- "……!" 후아∼ 평범한 물을 먹었는데 이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역시 물이란 것은 소 중한 것이야! 참, 아트로포스에게도 평범한 물을 마시게 해야지. 헐헐, 아트로 포스가 어서 물 달라고 날 째려보는군. "로스에게도 보통 물을 주세요." "아, 네." 케시는 내 말대로 아트로포스에게 보통 물을 따라서 건네주었다. 물론 헤로드 와 케시 두 사람은 소의 침과 네비아 애벌레의 체액을 섞은 그 달콤한 물을 마 셨다. 어쨌든 그렇게 식사를 모두 끝낸 후, 헤로드는 직접 우리가 잠시 동안 지낼 방으로 나와 아트로포스를 안내했다. "2층은 모두 비어있습니다. 아무 방이나 선택해서 사용하십시오." 헤로드는 2층에 나란히 붙어있는 방 3개를 가리켰다. 그래서 난 그 방 3개를 전부 들어가 보았다. 방에는 옷장이나 침대 등, 생활하는데 필요한 가구들은 대강 놓여져 있었는데, 사람이 살았던 흔적 같은 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 데도 그다지 먼지가 눈에 띄지 않는 걸 보아 청소는 자주 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이 집에는 헤로드와 케시만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아무리 봐도 하인이 나 하녀는 없었어. 그렇다는 것은…… 이 넓은 방을 헤로드와 케시 둘이 청소 한단 뜻? 아니, 헤로드는 마을 순찰대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바쁠 테니…… 결국 청소는 케시 혼자서? "근데, 헤로드 씨. 집 청소는 케시가 하나요?" 난 즉각 헤로드에게 질문을 날렸고, 헤로드는 하하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아요. 일주일에 2번 청소를 하는데, 그때마다 마을 아주머니들께 서 도와주시거든요." 아…… 그렇군. 난 또 케시 혼자 이 넓은 방을 다 청소하는 줄 알았지. 근데 어쨌든 청소하러 도와주는 사람이 아주머니들인 걸로 봐서는…… 역시 이 마을 도 가부장적 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겠군. "그럼 전 이 방으로 하겠습니다." 난 가운데에 있는 방을 선택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오른쪽 방으로 유유히 들어가며 입을 열었다. "전 여기예요. 피곤해서 먼저 쉴게요." 그러면서 조용히 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집에 와서도 문을 소리 없이 닫는 아 트로포스의 재주에 내가 놀라고 있을 때, 헤로드가 상당히 머뭇거리면서 나에 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이드 씨. 이드 씨는 로스 씨하고 어떤 사이십니까?" 호오……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충분히 알고도 남겠군. 흠…… 뭐 라고 대답할까? 흘…… 생각하니까 골치 아프네? 에이, 그냥 사실에 가깝게 둘 러대자. "그냥 여행을 같이 다니는 사이입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는 항상 붙어있어 야 하지만요." "음…… 그러시군요." 헤로드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항상 붙어있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게 편히 쉬라는 말을 하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흘…… 드디어 자유시간인가? 근데 뭐하지? 방에 들어가서 마법이나 수련해? 음…… 아니야, 우선 아트로포스와 작전 회의를 해야지. 이 마을에 성물이 있 는 걸 알았으니까! ======================================================================== 흘... 어제 올리려고 했는데 유니마왕 땜시...ㅡㅡ;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제 목 [사이케델리아] 8장:공포의 음식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0/9/16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704 제 목 :[사이케델리아] 8장:공포의 음식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608 게 시 일 :00/09/16 22:06:53 수 정 일 : 크 기 :9.8K 조회횟수 :119 똑똑- "나야, 로스. 할 얘기가 있는데." "…… 들어오세요." 내가 노크를 하고 나서 잠시 후 아트로포스의 말이 들려왔다. 그래서 난 아 트로포스와는 달리 소리가 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문을 열었다. 어차피 방 선택할 때 방 내부는 다 살폈기 때문에 방 자체가 색다르지는 않았다. 단지 아트로포스가 침대에 걸터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가 방 분위기를 환하게 바꾸 고 있을 뿐이었다. 쩝…… 아트로포스가 웃으면 진짜 방 분위기가 환해질 텐데 아쉽군. 아, 지 금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라 성물 회수 작전을 구상하러 왔지! "로스, 성물의 기운은 계속 느껴지는 거야?" 난 허락 없이 아트로포스의 옆에 앉으며 질문을 던졌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아까 들렀던 촌장님의 집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졌었어요." 허걱?! 촌장 노인 집에 성물이 있다고? "왜 말하지 않았어?" "어떻게 말해요? 게다가 말해봤자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촌장님에게 직접 성물을 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 아트로포스의 말에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촌장 노인의 집에 갔 을 때 아트로포스가 성물이 있다고 알려준다 하더라도, 이제 갓 마을에 들어 온 이방인이 오자마자 성물 내놓으라고 하기는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어쩌지?" 난 그다지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 아트로포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트 로포스는 아주 쉽게 대답해주었다. "간단해요. 내일 촌장님 집에 찾아가서 성물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알 아오는 거예요. 성물의 형태를 확인한 다음에는 그 성물을 취할 방법을 생각 해야겠죠." 흘…… 별로 내키는 방법은 아니지만 달리 생각나는 것도 없으니 그렇게 해 야겠군. 그나저나 내일 무슨 구실로 촌장 노인의 집을 방문하지? 골치 아프구 만. "촌장집을 방문할만한 구실은 있는 거야?" 난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트로포스에게 또 물었으나, 아트로포스의 반응은 냉 담했을 뿐이었다. "그건 이드님께서 직접 만들어요. 전 성물의 위치만을 알려주는 역할이니까 요." "……." 흘…… 생각한 게 없으니까 그런 걸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사악한 계획을 누가 모를 줄 아냐? 그나저나 도대체 어떤 구실을 만들지? 아…… 머리 돌아 버리겠다……!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으면 그만 나가주세요.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남자가 들어오는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구요." 아트로포스는 얼굴에 냉기를 담으며 나보고 어서 나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할 일도 없어서 나가야 했지만, 그런 강압을 받자 괜히 나가기가 싫어서 아트로포스와 말싸움이나 하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는 지난 6일 동안 한 방에서 같이 잔 사이잖아. 뭘 새삼스럽게." "그건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지금은 피치 못할 사정이 없으니 어서 나가주세요." "그래? 혹시 한 달에 한 번 있다는 그날이야?" "……." 내 마지막 말에 아트로포스는 냉기 서린 얼굴에 살기까지 담아 날 노려보았 다. 그래서 난 한 번 하하 웃어준 다음 유유히 아트로포스의 방을 빠져나갔다. 흘…… 지금 내가 아트로포스하고 뭐한 거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이 나 하다니. 음…… 난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 흠흠, 어쨌든 이제 내 방에 가서 마법 수련이나 해야겠다! "으아앙ㅡ!" 헉!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왜 갑자기 울음소리가 들리냐고! "또 실패야ㅡ!" 그때 또 그 울음소리의 주인인 듯한 사람의 말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목소리가 나에게 조금 익숙한 것으로 봐서는 내가 아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음…… 이거…… 케시의 목소리 아닌가? 에…… 아무래도 케시 같군. 근데 왜 갑자기 소리를 질렀지? 애가 미쳤나? 아무래도 한 번 상태를 봐야겠는데? 저벅저벅- 난 케시의 목소리가 들려온 1층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부엌 안에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그 사람은 케시였다. "앙ㅡ 도대체 어떻게 하지?" 케시는 앞치마를 두른 채 열 받는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 다. 왜 케시가 요리하면서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난 케시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 이드 씨." 케시는 날 보더니 대뜸 내 이름을 말했다. 역시 케시는 헤로드와는 달랐던 것이다. 어쨌든 난 부엌 안으로 들어가서 케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 지를 살펴보았다. 내가 그렇게 부엌을 기웃거리자 케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 다. "지금 요리하고 있었어요. 근데 잘 안 돼서……." "그렇습니까? 무슨 요리인데요?" "꿀개미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데……." 엑? 꿀개미 요리? 그건 또 뭐다냐? 소의 창자 요리와 눈알 요리를 선보이더 니 이번엔 무슨 엽기적인 요리를 만들려고 그래? "꿀개미 요리라는 건?" "저걸 조리해서 만드는 요리예요." 케시는 그렇게 말하며 부엌 한쪽 구석에 놓여진 큰 유리 상자를 가리켰다. 그 유리 상자는 라면박스 8개로 정사각형을 만든 것처럼 상당히 컸는데, 그 안에는 흙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얼레? 꿀개미라면서 웬 흙이냐? 아, 설마…… 저 흙 속에서 꿀개미란 것들이 떼지어 살고 있다는 뜻? 그리고 그 꿀개미를 잡아다가 조리하는 것이 꿀개미 요리? "저 속에 꿀개미가 삽니까?" 난 즉시 케시에게 질문했고 케시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키우고 있어요." "……." 흐으…… 꿀개미를 키운다고라? 요리해서 먹을려고 개미를 사육해? 대단해……! "꿀개미는 보통 개미하고 어떻게 다릅니까?" 그것이 꿀개미 요리의 엽기성을 판단해주는 지표가 될 것 같아 난 그런 질문 을 케시에게 했다. 그렇게 내 질문을 받은 케시는 설명도 안 하고 갑자기 요 리 기구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유리 상자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상자 안에 든 뭔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바로 꿀개미예요." "……!" 헉! 이게 꿀개미? 시커멓게 생긴 데다가 덩치도 장난 아니게 큰데? 개미가 어떻게 새끼손가락만 하냐? 얼레? 근데 웬 배 부분이 저렇게 빵빵해? 머리하 고 몸통 합친 것보다 열 배 정도는 크겠는데? 한 입에 먹기 딱 좋겠군. 어억 …… 내가 왜 그런 엽기적인 생각을……! "뱃속에 뭐가 들은 겁니까?" 난 그 유리 상자에 들어있는 한 마리의 꿀개미를 가리키며 물었다. 하지만 케시는 대답을 하지 않고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가 들었을 것 같아요?" "……." 어쭈구리…… 지금 나하고 퀴즈 풀이하자는 거냐? 뭐 좋아, 단번에 맞춰서 기를 꺾어주지. 근데 뭐가 들었을까? 이름이 꿀개미인 걸 보면…… 저 뱃속에 는 꿀이 들어있지 않을까……. "꿀 같은 것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딩동-!"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시는 내가 맞았음을 알렸다. 그냥 한 번 해본 말이 정답으로 되어버리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난 재차 물었다. "정말 꿀이 들어있습니까?" "네. 뱃속에 들어있는 꿀로 꿀개미 새끼들을 먹이는 거예요. 사실 꿀개미 중 에서 이렇게 뱃속에 꿀이 들어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아요." 흠…… 그런가? 하긴, 모든 꿀개미의 배가 저렇게 빵빵하다면 개미에게 있어 서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기동력이 딸려서 굶어죽게 되겠지. 배가 빵빵한 개미 들은 말하자면 선택받은 개미들인가? "드셔보실래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케시가 장난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꿀 개미 십여 마리가 든 그 작은 유리 상자를 나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런 정신 나간 짓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즉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이거 요리하기 어렵습니까?" "어려워요. 그 누구도 꿀개미 요리를 성공시킨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케시의 얼굴은 약간 어두워졌다. 요리를 성공시키지 못했다고 그런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케시가 나에게는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 다. 어쨌든 케시는 내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꿀개미에는 독이 있어서 그냥 먹으면 맛도 없고 독 때문에 위험해요. 그래 서 끓는 물에다 '틀로인'하고 '세스피'를 넣어서 독을 빼야하는데…… 꿀개미 의 배 부분이 워낙 약해서 끓는 물에다 꿀개미를 넣으면 꿀개미의 배가 터져 버리죠……." 어억?! 꿀개미의 배가 터져? 으으…… 생각만 해도 속이……! "만약 꿀개미의 배를 터트리지 않고 꿀개미의 독을 제거해서 요리할 수만 있 다면…… 이번 요센 요리 대회의 우승은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요센 요리 대회의 우승'이라는 말을 할 때 케시의 얼굴에는 상당한 결의가 엿보였다. 반드시 그 대회에서 우승하고 말겠다는 강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 던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대회가 정확히 뭐 하는 대회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케시에게 질문해야 했다. "요센 요리 대회라뇨?" "1년에 한 번씩 여기서 열리는 요리 대회예요. 5일 후에 열리죠." 얼레? 5일 후에 열려? 그래서 케시가 그 꿀개미 요리란 것을 만들려고 하는 거야? 그 대회는 요리의 엽기성으로 우승을 판가름하나? 도대체 그 대회가 어 떤 의미가 있길래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꿀개미 요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 냐? "그 요리 대회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물론이죠. 제가 우승한다면 제가 만든 음식을 마을 사람들이 최고라 칭찬하 면서 먹게 되는 걸요. 게다가 우승 상품도 있구요." 케시는 요리 대회 얘기를 시작하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마을 사람들이 그 대회를 얼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케시에게 있어서 그 요리 대회는 목숨을 걸 정도로 아주 중요한 것 같이 보였다. 어쨌든 케시 는 즐거운 듯이 얘기를 계속했다. "아까 이드 씨가 먹었던 그 눈알 요리는 바로 저희 어머니께서 만드셨던 거 예요. 그래서 재작년 요리 대회에서 우승했구요." 엥? 그 눈알 요리를 만든 사람이 케시 어머니라고? 흘…… 그런 엽기적인 음 식을 만들었다니…… 케시 어머니도 엄청난 인물이었겠군. 모전여전(母傳女傳) 이야……! "하지만……." 방금 전까지 꽤 들떠서 얘기를 하던 케시는 갑자기 표정을 어둡게 했다. 그 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재작년에 우승하신 후로 2연패를 꿈꾼 어머니께서 꿀개미 요리를 하시려다 가 꿀개미 관리 소홀로 꿀개미에게 물려 돌아가셨죠. 꿀개미 떼에게 공격받아 쓰러진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아버지도 돌아가셨구요. 저희는 그때 밖에 놀러 가 있어서 무사했지만요……." "……." 왠지…… 전혀 슬프지가 않은 얘기야. 오히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어 떻게 꿀개미 요리하려다가 꿀개미한테 물려 죽냐? 꿀개미 요리 같은 위험한 걸 하려니까 그런 꼴을 당하지. 하긴, 소의 눈알을 뽑아서 요리하는 여자였으 니 꿀개미 다루는 것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겠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밖에. "그래서 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꼭 꿀개미 요리를 성공시키려고 해요. 그것이 어머니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케시는 그것이 엄청나게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굉장한 결의를 얼굴 가 득히 떠올렸다. 그런 케시의 모습은 나한테 있어서 경건하기는커녕 상당히 웃 기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웃으면 나만 싸가지 없는 녀석이 되기 때 문에 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생각이군요." 흘…… 훌륭한 생각은 뭐가 훌륭한 생각이야? 거짓말을 하자니 닭살 돋아 미 치겠어. 하여튼 케시나 헤로드의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이야. 제 목 [사이케델리아] 8장:공포의 음식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0/9/16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667 제 목 :[사이케델리아] 8장:공포의 음식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609 게 시 일 :00/09/16 22:07:18 수 정 일 : 크 기 :12.2K 조회횟수 :111 "휴……." 케시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으려고 했지만 꿀 개미 요리를 성공하고 있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운 듯했다. 난 그런 케시 의 기분을 바꿔주기 위해서, 아니 솔직히 말해서 꿀개미 요리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근데 꿀개미의 독을 빼내는데 뭘 넣고 끓인다고 했잖습니까? 그것들은 뭐 죠?" "아, 틀로인하고 세스피를 말하는 거군요." 내 질문을 받은 케시는 어두운 표정을 싹 지우더니 벽난로처럼 생긴 곳 쪽으 로 걸어갔다. 벽난로에는 큰 통이 하나 걸려 있었는데, 그 통에는 스프를 만 들려고 하는 것인지 많은 스프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스프 속에는 미역처 럼 얇고 길쭉한 식물과 무지개 색을 띤 버섯 등이 떠 있었다. 케시는 그 중에 서 미역처럼 생긴 식물 하나를 국자로 떠올리면서 말했다. "이게 바로 틀로인이에요. 세스피는 저 버섯이구요." 흠…… 저 미역처럼 생긴 식물이 틀로인이고 무지개 색을 띠고 있는 저 버섯 이 세스피군. 보통 알록달록한 버섯은 독버섯인데…… 독을 독으로써 제거하 는 건가? 뭐 어쨌든 그건 그거고…… 문제는 스프 속을 떠다니는 꿀개미들의 잔해야…… 배가 터져서 머리하고 몸통만 떠다니는 꿀개미들…… 어억…… 속 이 뒤틀리려고 그래……! "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배가 안 터지지?" 케시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꿀개미들의 잔해를 국자로 다 걷어내어 쓰레기통 처럼 보이는 큰 통에다 버렸다. 그리고는 작은 유리 상자 안에서 빵빵한 배를 끌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십여 마리의 꿀개미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요리해 야 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흘…… 엄청나게 진지하구만. 웃고 싶은데 케시의 저 진지한 표정을 보니까 웃지도 못하겠어. 에…… 내가 한 번 도와줄까? 어차피 케시에게서 점심도 얻 어먹었으니 약간의 보답이라도 해야지. 근데 내가 도움이 될려나 몰라? 음… … 뭐 우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겠다. 달그락- 난 부엌에 있던 그릇 중에서 큰 것을 집어들고 그 그릇에다 벽난로 통에 담 겨 있던 스프를 부었다. 물론 꿀개미의 독을 제거한다는 틀로인과 세스피도 함께 넣었다. 그렇게 내가 허락 없이 주방 용품을 만지자 케시가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지금 뭐하세요?" "그냥 실험이나 해볼 생각입니다. 꿀개미 한 마리를 이 그릇에 담아주시겠습 니까?" 케시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난 케시에게 스프 담긴 그릇을 내밀며 꿀개미를 담아달라는 요구를 했다. 비록 케시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는 알지 못 했지만 내 요구대로 꿀개미 한 마리를 장갑 낀 채 잡아서 스프 속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나에게 물었다. "이러면 되나요?" "예. 근데 꿀개미의 독을 제거하려면 어느 정도로 끓어야 합니까?" "5분 동안 충분히 끓여주면 된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뭘 하실려 구요?" "그냥 옆에서 구경하십시오." 흘, 어차피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데 자세히 알아서 뭐하냐. 자, 그럼 이 제 꿀개미 요리를 시작해볼까? "……." 난 수프가 담긴 그릇을 불로 가열하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마나회로를 가동시 켰다. 내 피부의 마나회로에서 발생한 마나장은 그릇 주변의 마나회로에 영향 을 주었고, 그로 인해 그릇 주변의 온도가 삽시간에 올라갔다. 화륵- "앗!" 그릇 주변에서 불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케시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그릇을 불로 가열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법을 행했다. 그렇게 1분 여 정도를 불로 끓이자 마침내 스프가 끓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스프 속에서 허우적대던 꿀개미는 더욱 몸부림을 쳤다. 좋아, 이제 꿀개미를 공기층으로 뒤덮으면 열 전달이 빠르게 되지 않아서 꿀 개미의 배가 터지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구운 꿀개미를 한 입에 쏘옥……! "……!"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마법을 중단시켰 다. 공기층으로 꿀개미를 덮게 되면 꿀개미의 독을 빼낼 틀로인과 세스피의 성분이 꿀개미와 접촉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구워진 꿀개미에 독이 남아있 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역시 실패인가? 흐…… 실패하니까 괜히 열 받는데?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꿀개미에게 적당한 열을 보내면서 꿀개미의 독 을 제거할 수 있을까……. "이드 씨는 마법사인가요?" 내가 마법을 중단하자 케시가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예. 실력은 없지만요." "그렇구나! 저, 마법사는 처음 봐요! 얘기만 들었거든요! 와……! 마법사도 보통 사람들이랑 똑같구나!" 케시는 날 신기한 동물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케시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 여 난 케시에게 질문을 했다. "근데 꿀개미의 독이 다 제거됐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네? 아, 그건 꿀개미가 하얗게 변하면 독이 다 제거된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흠…… 저 시꺼먼 꿀개미가 하얗게 변하면이라…… 그게 가능한가? 왠지 불 가능할 것 같은…… 얼레? 잠깐! 지금 스프 속에서 허우적대는 저 꿀개미…… 조금 색이 변한 건가? 회색 비슷하게 됐는데? "케시 씨! 지금 이 꿀개미의 독이 제거되고 있는 거죠?" 난 회색으로 변한 꿀개미를 가리켰고, 케시는 그 꿀개미를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음…… 틀로인하고 세스피를 넣고 끓인 후에 꿀개미를 넣어도 꿀개미의 독이 빠지는구나……." 케시도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는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꿀개미의 독이 다 제거된 다음에는 방금 전에 했던 대로 꿀개미를 공기층으로 뒤덮으면 꿀개미의 배가 열을 과도 하게 받아 터지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나와 케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스프 속에서 발버둥치는 꿀개미만 노려보았다. 그렇게 대략 20분 여가 지났을 때, 꿀개미의 몸 색깔은 완전히 검정색에서 하 얀색으로 바뀌어졌다. 물론 그보다 훨씬 전에 꿀개미는 익사해서 운명을 달리 한 상태였다. 흘…… 틀로인하고 세스피를 넣은 스프를 팔팔 끓인 후에 꿀개미를 넣었더니 독이 제거되는 데까지 무려 20분이나 걸리는구만. 케시 어머니가 했던 대로 꿀개미를 같이 넣어서 팔팔 끓이면 5분밖에 안 걸릴 텐데…… 뭐 그렇게 하면 꿀개미의 배가 터지니까 어쩔 수 없지. 20분이나 기다려야 하지만 꿀개미의 배를 터트리지 않고 독을 빼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좋아, 이제 꿀개미 굽기 를 시작해볼까? 화르륵- 난 다시 마나회로를 가동시켜서 마법을 구현했다. 그릇 주변의 허공에서 타 오르기 시작한 불길은 빠른 속도로 그릇을 달구기 시작했고, 난 꿀개미를 공 기층으로 둘러싸는 생각을 강하게 떠올리며 마나회로를 2서킷까지 가동시켰다. 2서킷의 마나회로로 지금의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 다. 부글부글- 마침내 스프가 소리를 내면서 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마법으로 인해 공기 층에 뒤덮인 꿀개미는 적당한 열만을 받으며 잘 구워지고 있었다. 문제는 과 연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 꿀개미를 이렇게 구워야하는 것이었다. 흘…… 맛있게 구울려면 도대체 몇 분을 구워야 하지? 이런 방법으로 꿀개미 를 구운 적이 없을 테니까 케시한테 물어봐도 소용없고…… 결국 여러 번의 실험으로 내가 알아내야 한다는 거냐? 흐으…… 귀찮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니 어쩔 수 없군. "이럴 수가……!" 케시는 끓고 있는 스프 속에서 멀쩡히 떠 있는 꿀개미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 기만 했다. 마법을 잘 모르는 케시로서는 지금의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모양이 었다. 어쨌든 난 꿀개미 굽기를 계속했고, 대략 2분 후에 이 정도면 다 구워 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케시에게 부탁을 했다. "케시 씨, 꿀개미를 건지십시오." "네? 아, 네!" 정신없이 꿀개미만 보고 있던 케시는 조금 당황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국자를 사용해 스프 속의 꿀개미를 건져내었다. 케시가 꿀개미를 건지자마자 난 즉시 마법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다. 마나회로의 특성상 마나의 소모 같은 것은 없지만 정신력이 소모되므로 쉬어주지 않으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 었다. "얼마나 잘 됐는지는 모르지만, 한 번 먹어보십시오." 난 케시에게 그 꿀개미를 권했다. 본래는 요리한 내가 먹어야 하지만, 새끼 손가락만큼이나 큰 개미를 먹을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케시에게 꿀개미 를 권한 것이었다. 케시는 이미 죽어서 축 늘어져 있는 꿀개미를 보더니 입맛 을 다셨다. "그래요? 음…… 그럼 한 번……!" "……!" 헉! 이럴 수가! 저 큰 꿀개미를 한 입에 먹어버리다니! 어떡하면 저렇게 거 리낌없이 개미를 먹을 수 있지? 인간 맞아? "냠냠……." 케시는 내가 경악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열심히 꿀개미를 씹어먹으며 그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꿀개미를 목구멍으로 넘긴 후, 그 감상을 토로했다. "약간 덜 익은 것 같은데 꿀개미의 뱃속에 있던 꿀 때문에 그런 건 별로 느 껴지지 않네요. 꿀개미의 배가 터지면서 꿀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정말 좋 아요." "……." 으으…… 어떻게 그런 엽기적인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거냐? 정말 무서 운 여자라고 밖에 말할 수 없어……! "도대체 어떻게 꿀개미의 배가 터지지 않도록 한 거예요? 마법인가요?" 케시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나에게 물었다. 케시에게 내가 한 방법을 가르 쳐 줘봤자 마법을 모르는 케시로서는 따라할 수도 없었지만 케시가 아주 간절 한 표정을 지으며 가르쳐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저 방법이나 알려주기로 했다. "모두 마법입니다. 아까 봤던 것처럼 불로써 가열한 다음, 꿀개미를 공기로 둘러싸서 적당한 열이 꿀개미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군요. 그럼 마법사가 아니고는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없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아……." 케시는 굉장히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평생의 염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꿀개 미 요리의 방법을 알아내고도 능력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케시 에게 절망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케시의 저런 표정을 보니까 안 도와줄 수가 없잖아? 으…… 난 왜 이렇게 여자들에게 약한 건지……. "우선 제가 이번 요리 대회에서 케시 씨를 도와드리겠습니다." "……!" 내 말에 케시는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케시가 내 말을 듣고 시큰둥한 반 응을 보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상당히 놀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 에 난 나 자신을 고생길로 밀어버렸다. "나중에 제가 간 다음에도 꿀개미 요리를 할 수 있으려면 마법사가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을 떠나기 전에 마법사 양성도 할 생각입니다." "아……!" 흘…… 내가 미쳐버렸다…… 내 마법 실력이 얼마나 된다고 벌써부터 후배 양성이라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어…… 하지만 어쩌랴…… 이미 밖으로 나온 말인걸……. "정말 감사합니다!" 케시는 말한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상당히 기뻐했다. 너무나 기뻐하는 케 시의 모습에 난 그저 웃어주었다. 앞으로의 고생이 눈앞에 훤했기 때문이었다. 얼레? 근데 헤로드는 어디 갔지? 이 넓은 집안에 케시 혼자 남겨두고 밖에 나가도 전혀 걱정이 안 되나? 나 같이 위험한 인간이 집안에 있는 대도 말이 야. "헤로드 씨는 어디 나갔습니까?" "오빠요? 오빠는 지금 마을 순찰 나갔어요." 흘…… 또 순찰이냐? 거참 마을을 위해 수고하는군. 그나저나 사람의 고기를 먹는다는 그 식인종 아저씨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 지경이 된 거지? 왜 사람의 고기를 먹기 위해서 안달인 걸까? 케시한테 물어보면 대답해 주려나? "그런데 사람 고기를 먹는 사람이 왜 생겨난 겁니까?" 케시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케시에게 그런 질 문을 했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케시는 전혀 망설임 없는 태도로 대답했 다. "좀더 독특한 요리를 추구하다가 그런 거예요. 그래서 사람의 고기라는, 절 대 음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까지 맛보게 된 거죠." 흘…… 사람의 고기는 안 되면서 소의 창자나 눈알, 꿀개미는 먹어도 되냐? 아, 뭐 좋아 좋아. 그런 건 안 따지기로 하지. 궁금한 거나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미친 듯이 사람 고기를 먹으려고 한다는 건 이해하 기 힘들군요. 사람 고기가 마약이라도 됩니까?" "네." "……?" 케시가 너무 빨리 대답해 버렸기 때문에 난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자 케시는 자신의 대답을 더 자세히 들려 주었다. "사람 고기에는 중독성이 있다고 해요. 그래서 사람 고기를 맛본 사람은 다 른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죠. 저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실제로 사람 고기를 먹은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면서까지 사람 고기 를 먹으려 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흘…… 사람 고기에 중독성이 있다라…… 뭐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을 습격해서 사람 고기 먹으려는 그 식인종 아저씨들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겠지. 하지만 전에 남아메리카의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 람에 생존자들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고 목숨을 연장하다가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구조된 사람들이 그 후로 사람 고기를 먹었다는 소 리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음…… 혹시 아르카디아의 사람들은 독특한 살맛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도 한 번 먹어봐? "이드 씨! 죄송하지만 한 번 더 꿀개미 요리를 해주실 수 없겠어요? 이번엔 양념도 제대로 해서 해보게요!" 케시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그 런 부탁을 했다. 나로서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얼굴 표정이었기 때문에 난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게 하죠. 준비하십시오." "네ㅡ!" "……." 흘…… 뭐가 저렇게 좋아서 날뛰는 건지. 으…… 마법 수련할 시간에 꿀개미 요리나 하고 있어야 하다니…… 아니지, 오히려 마법 수련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지금까지 마법을 써본 적이 없으니까 이 기회에 마법 감각을 익혀두는 거야! 그래그래. 기왕 하는 일, 좋게 생각하는 게 나으니까! ======================================================================= 늦게 올리게 됐군요... 왜 이리 글이 안 써질까...ㅡㅡ;; [번 호] 105 / 108 [등록일] 2000년 09월 23일 20:59 Page : 1 / 22 [등록자] THEBUR [조 회] 17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9장: 요센 요리대회 -1-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9장:요센 요리 대회 -1- 관련자료:없음 [30250]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21 00:22 조회:1353 <제 9 장> 요센 요리 대회 "자, 오늘 아침 요리는 작년에 우승했던 요리예요!" 케시는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헤로드가 앉아 있는 식탁에 뚜껑이 덮여 있는 큰 쟁반을 올려놓았다. 헤로드는 이미 그 작년에 우승했다는 요리를 많 이 먹었었는지 별로 기대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와 아트로포스는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다. 작년에 우승한 음식이 어떤 것인지 구경하고 싶었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케시가 그 쟁반 뚜껑을 걷어낸 순간, 우리 둘은 기절 초풍할 정도로 놀라야 했다. "소의 심장 요리입니다!" 케시의 말대로 그것은 심장 요리였다. 심장만 가지고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 는 알 수 없었으나 케시가 소라고 말했으니 소라고 믿어야 했다. 어쨌든 확 실히 주먹만한 4개의 심장이 쟁반 위에 올려져서 우리에게 어서 시식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으…… 심장에다 소스 바른 건 여전하군. 하긴, 소스가 없으면 무슨 맛으 로 심장 같은 기관을 먹겠냐. 하여튼 작년에 다른 사람이 우승했다는데, 그 사람이 만든 요리도 엄청나게 엽기적이구만. 역시 요센 요리 대회는 요리의 엽기성으로 우승을 판가름하는 거야……. "심장을 십자로 갈라보세요." 케시는 나에게 나이프를 주며 그렇게 말했다. 왜 하필이면 십자로 잘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난 케시가 시키는 대로 소의 심장을 십자로 갈랐다. "……!" 십자로 갈라진 심장에는 총 4종류의 음식이 들어 있었다. 소를 포함한 포유 류의 심장은 모두 2심방 2심실이기 때문에, 그 각각의 공간에 4가지의 음식 을 넣은 것이다. 문제는 그 4가지의 음식이 죄다 엽기적이라는 것이었다. 으으…… 우심방에는 개미 튀김…… 우심실에는 개미 애벌레 튀김…… 좌심 방에는 진딧물들…… 좌심실에는 지렁이 토막 요리…… 어떻게 이런 것들을 심장 속에 넣고 요리할 수가 있는 거지? 정말 할 말 없게 만들어 버리는구만 ……! "진딧물을 먹어도 되는 겁니까?" 그 4가지의 음식 중에서 진딧물 요리가 가장 께름직했기 때문에 난 진딧물 을 손으로 가리키며 케시에게 물었다. 그러자 케시는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 다. "그건 특별 사육한 진딧물이라 먹어도 괜찮아요. 오히려 꿀개미처럼 단맛이 나기 때문에 작지만 맛있어요." "……." 흘…… 저런 말을 하니까 안 먹을 수도 없군. 아, 뭐 어차피 어제 소의 창 자하고 눈알을 먹었는데 이 정도를 못 먹으면 말이 안 되지. 그리고 또 케시 의 꿀개미 요리를 도와줄 때 꿀개미를 먹어야 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예비 훈 련하는 셈치고 먹자, 먹어. 팍- 팍- 씹힌 진딧물이 내 입안에서 터지는 느낌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기분 더러웠 다. 하지만 그것을 진딧물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과자 비슷한 것이라고 생 각하면 그렇게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진딧물 요리의 일부를 맛본 나는 다시 개미 튀김을 씹어먹었고, 곧이어 개미 애벌레 튀김, 지렁이 토막 요리까지 하나하나 맛보았다. "맛있나요?" 내가 심장 요리 속에 들어있는 음식을 하나씩 다 맛보자 케시가 기대에 가 득 찬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 아주 맛이 좋다고 느끼지는 못했 지만 케시의 그런 표정 때문에 약간 거짓말을 섞었다. "맛있습니다. 역시 작년 우승 요리군요." "그럴 거예요. 작년에는 꿀개미 요리를 실패해서 대회에 나가지 못했지만, 올해에는 꿀개미 요리로 꼭 우승할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세요." 케시의 말에서는 아주 큰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내가 계 속 꿀개미 요리를 위해 마법을 사용해주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따라 서 그런 케시의 자신감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난 쉴새없이 꿀개미 요리를 위해 마법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어? 꿀개미 요리를 성공한 거야?" 아직 케시에게서 얘기를 듣지 못했는지 헤로드는 크게 놀랬다. 케시는 그런 헤로드에게 혀를 낼름 해 보이며 약을 올렸다. "오빠에게도 안 가르쳐 줘. 이건 초극비 사항이라구." 흘…… 꿀개미 요리 성공시킨 게 무슨 초극비 사항인지…… 하여튼 마법을 죽어라고 써야 하니까 나만 죽어나겠구나…… 역시 요리 만드는 거 도와주겠 다는 말을 괜히 했어…… 후회가 막심하다……. "오늘도 도와주실 거죠?" 꿀개미 요리 성공의 공개 문제로 티격태격 말싸움을 벌이던 케시가 갑자기 날 쳐다보면서 물었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워서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하 려고 했으나, 그때 아트로포스가 개입하여 날 도와주었다. "저와 이드님은 아침 먹고 나서 촌장님께 가려고 해요. 오랜 시간은 아니겠 지만 어쨌든 이 마을에서 당분간 머물러야 하니까 촌장님에게서 마을에 대한 여러 가지 주의 사항 같은 것들을 듣고 싶거든요."? "아…… 그렇네요. 그럼 돌아오면 꼭 도와주셔야 해요?" 그래도 케시는 오늘 꼭 꿀개미 요리를 하고 싶은지 나에게서 그런 약속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것만큼은 거절할만한 마땅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고, 아트로포스도 전혀 도움의 손길을 뻗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결 국 촌장집에서 돌아오자마자 꿀개미 요리를 도와주기로 케시와 약속하게 되 었다. "그럼 아침 식사를 합시다!" 출발 신호와도 같은 헤로드의 말이 떨어지자 우리들은 천천히 작년 우승 요 리인 소의 심장 요리를 먹었다. 그것은 심장 속에 든 4가지의 서로 다른 음 식을 다 먹은 후, 마지막으로는 심장까지 뜯어먹는 식으로 시식하는 것이었 다. 전체적으로 맛있기는 했으나, 개미 등등의 곤충과 소의 심장을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조금 거북함을 느꼈다. 그렇게 아침 식사를 끝내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아트로포스의 방에 들어가 사이 좋게 침대에 걸터앉았다. 소화가 되는대로 촌장집에 갈 생각이었기 때 문에 그 전에 촌장집에 도착한 후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지를 미리 구상해야 했던 것이다. 흘…… 미치겠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얘깃거리가 떠오르지 않아. 어 쩔 수 없이 아트로포스가 아침 식사시간에 말했던 대로 이 마을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는 수밖에. 그렇게 촌장 얘기를 듣다보면 성물에 대해서 듣거나 물 어볼 기회가 생기겠지. "이드님은 적응이 빠르시더군요."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전혀 딴 소리를 했다. 난 아트로포스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그냥 멀뚱멀뚱 아트로 포스만 쳐다보았고, 아트로포스는 자기가 한 말을 좀더 구체화시켰다. "오늘 아침 식사 말이에요. 이드님은 거의 망설이지 않고 그 요리를 먹었어 요. 이미 그런 요리 정도에는 익숙해진 것처럼 말이죠." 아…… 그 말이었나? 그거야 어쩔 수 없잖아. 내가 그 요리를 먹지 않으면 요리를 만들어준 케시를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는 자기도 심장 요리 맛있게 먹었으면서! "로스도 잘 먹던데?" "그건 이드님이 먹으니까 안전하다 싶어 저도 먹은 거예요." "독이라도 들어있을까봐?" "아니요. 맛있나 없나 모르잖아요." 어쭈구리…… 그 말은 날 통해서 먼저 음식의 맛을 확인해본다는 거냐? 사 악하기 그지없구만. 날 이용하다니 말이야. 음…… 뭐 그건 여기 온 첫날부 터 그랬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이드님이 이곳 음식에 익숙해진 것은 다행일지도 모르지만, 그 적응 속도 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이곳의 특이한 음식에만 길들여지다 보면 이 마을 밖의 음식에는 손을 대기 싫어질지도 모르죠. 어쩌면 계속 특이한 음식만 먹 다가 마침내는 인육(人肉)을 먹은 그 사람들처럼 인육을 먹고 싶어하게 될지 도 모르구요." 아트로포스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 트로포스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기 때문에 농담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상당히 빠르게 이곳의 엽기적인 음식에 적응했 다는 것은 나 자신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엽기적인 음식을 달라고 하지 말고 아주 평범한 음식으로 내놓으라고 그래? 하지만 엽기성을 추구하는 케시에게 그런 말을 하기에는 무리가…….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도저히 머리를 굴려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 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하지만 아트로포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그건 이드님이 직접 결정하셔야죠. 아니면 이곳 음식을 계속 먹으면서도 이성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잘 제어하시던가요." 으…… 하여간 아트로포스는 꼭 중요한 건 안 가르쳐 준다니까. 맨날 문제 제기만 하고 말이야,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어떡해? 내가 어떻게 일일이 그 문제를 다 해결하냐고. …… 뭐…… 솔직히 아트로포스가 방금 한 지적은 나로서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거니까 괜찮은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겠 지. 기분은 내키지 않지만 그런 지적 해줘서 감사. "이제 촌장님 댁에 가도록 하죠?" 아트로포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아침 식사로 그 심장 요리 하나를 소스조차 안 남기고 완전히 먹어버렸기 때문에 배가 불러 움직 이기 귀찮았지만, 아트로포스의 말에 토를 달 용기가 없어서 같이 일어섰다. 그리고 둘이 사이좋게 방밖으로 나왔다. "아, 촌장님 댁에 가시는 거예요?"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온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고 케시가 웃으면서 물었 다. 그 웃음 속에는 촌장집에 갖다오면 당장 꿀개미 요리 도와달라는 무언의 압력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난 이 말을 케시에게 해주어야 ??杉? "금방 갖다올 겁니다. 그 사이에 어떤 소스를 쓸 건지 생각해 두십시오." "네. 그럼 잘 다녀오세요." 나와 아트로포스는 케시의 배웅을 받으며 드디어 헤로드와 케시의 집에서 탈출했다. 실제 이 집에 있었던 시간은 하루도 채 안되었지만, 그 엽기적인 음식들로 인해 몇 년을 이 집에서 틀어박혀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때문에 밖으로 나오자 기분이 상당히 맑고 상쾌해졌던 것이다. "로스, 공기 좋지?" "그렇군요." 아트로포스는 내가 물은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기분이 좋다는 무 표정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나와 아트로포스는 하루 전의 기억을 더듬어 촌 장집으로 향했고, 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간 결과 마침내 촌장집 을 찾아낼 수 있었다. "길을 정말 못 찾으시는군요." 촌장집 앞에서 아트로포스가 날 놀렸다. 그 말은 자신은 이미 이 길을 알고 있었다 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를 째려보았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안 가르쳐 줘? 아까는 기억 안 난다며?" "그 정도도 제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가망이 없으니까요." "……." 끄으…… 중용자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일은 잘 알아서 처리하라는 거냐? 도대체 중용자에게 바라는 게 왜 그렇게 많아? 난 예전부터 길치라서 한두 번 가본 길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영인관이 중용자를 돕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 "어쨌든 들어가자." 아트로포스하고 말다툼해봤자 나에게 득 될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난 내 가 졌음을 시인하며 촌장집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촌장님, 안에 계십니까?" 내가 그렇게 단 한번의 노크를 했을 때, 안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촌장 노인 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그대들이구려. 마침 나가려던 참인데 무슨 일이오?" 얼레? 이런…… 막 나가려던 참이라니…… 타이밍이 좋지 않아. 이래가지고 는 촌장하고 방에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가 없잖아? 그러면 촌장 방안에 있 다는 성물이 뭔지도 확인할 수 없고…… 제길……! "어디로 가시려 하세요?" 내가 시간 탓을 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는 촌장 노인에게 질문을 했다. 촌 장 노인은 아트로포스의 물음에 허허하고 웃으며 답했다. "대회 준비가 잘 되나 둘러보려고 한다오." 흘…… 대회 준비라면 요센 요리 대회냐? 나이 먹은 할배가 대회 준비 잘 되나 감독하러 나가려니 힘들겠군. 아니지, 어쩌면 건강을 위해서 일부러 그 러는 걸지도. "그러시다면 저희도 같이 따라가겠어요." 촌장 노인이 대회 준비하러 간다는 말에 아트로포스도 따라갈 뜻을 밝혔다. 하지만 그것은 성물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려는 우리의 당 초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난 의아함을 느껴야 했다. "그러시오." 촌장 노인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먼저 앞서 걸었다. 그 뒤를 아트로포 스가 따라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도 그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의아한 느 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아트로포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로스, 성물은 촌장님 집안에 있다고 했잖아. 근데 이렇게 이상한 곳으로 가도 되는 거야?" "걱정 마세요." 아트로포스는 우선 그 한 마디로써 날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째려보자 나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지금 성물의 기운이 촌장님에게서 느껴져요." "……!" 허거걱?! 성물의 기운이 촌장에게서? 그렇다면 성물이란 건 저 촌장 할아범?! "설마 성물이 촌장님 자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때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이 아트로포스는 아주 날카로운 말로 내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난 그런 내 생각을 숨기기 위해 열심히 변명을 해대었다. "그런 생각 안 해. 어쨌든 지금 촌장님이 성물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잖아." "네, 그래요." "어떻게 할 거야?" 난 물어봐도 소용없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트로포스에게 그런 질 문을 했다. 그리고 아트로포스는 내 예상대로 전혀 도움 안 되는 말을 해주 었다. "그건 이드님이 알아서 하세요." "……." 흘…… 역시 기대를 한 내가 바보였어……. [번 호] 106 / 108 [등록일] 2000년 09월 23일 21:00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16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9장: 요센 요리대회 -2-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9장:요센 요리 대회 -2- 관련자료:없음 [30251]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21 00:22 조회:1234 "안녕하세요, 촌장님!" 촌장 노인을 따라 마을 중앙에 도착했을 때, 중앙 광장에서 열심히 무대 같 은 것을 만들고 있던 사람들이 촌장 노인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했다. 다른 곳에서는 요리 대회를 위한 식탁과 요리대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곳에서 는 관객들을 위한 의자도 만들면서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촌장 노인은 그렇게 요리 대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돌아다녔 다. 헐…… 촌장 할배…… 생각보다 열심히 돌아다니는군. 저 나이에 저렇게 무 리해도 되는지 몰라. 하여튼 기회를 봐서 촌장 할배에게서 성물을 정당하게 훔쳐내야 하는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촌장님! 여기 앉으십시오!" 그때 어떤 아저씨가 한 식탁을 가리키며 촌장 노인을 불렀다. 그래서 촌장 노인을 비롯한 우리들은 대회용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헤로드나 그 밖의 사람들을 통해서 나와 아트로포스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지 마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촌장 노인과 마주 앉은 우리들을 건방지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여기서 날 찾아온 이유를 들어도 되겠소?" 촌장 노인이 먼저 나에게 질문했고,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던 나는 꽤 당황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대충 말을 끄집어내었다. "이 마을의 역사에 대해서 듣고 싶어서요." "호오……!" 흘…… 촌장 할배가 엄청나게 감탄하는군. 하긴, 외지인이 이 마을에 대해 알고 싶다는데 기분 나빠할 사람이 어디 있겠냐. 어쨌든 이것으로 좋은 출발 이다! "우리 마을은 역사가 꽤 오래 되었다오. 이 땅에 마나회로란 것이 깔리기 전 에도 존재했던 마을이니까 말이오." 촌장 노인은 자신이 그렇게 오랜 역사를 견뎌온 마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마나회로가 언제부터 깔렸는지 모르 기 때문에 요센 마을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 서 즉시 촌장 노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마나회로가 깔린 때가 언제입니까?" "마나회로 말이오? 아마 천년 전에 깔리기 시작해서 900년 전에 완전히 이 땅을 덮었을 거요. 그 마나회로에 대해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소이다." 헐…… 그렇다면 마나회로는 거의 100년 동안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소리잖아? 난 단번에 완성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군. 하긴, 우주 자체도 단번에 형 성된 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우주가 빅뱅을 통해 성장했다는 게 사실인지 모 르겠구만. 빅뱅은 그냥 우주가 그렇게 성장했을 것이라는 가설일 뿐인데 말이 야. 뭐 확실치 않은 이론이야 널리고 널렸지. 진화론도 창조론도 모두 가설이 고…… 흘…… 그러고 보니 세상은 가설 투성이군……. "어쨌든 요센은 풍족의 천신 '아베드'의 가호 아래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 다오. 그래서 요리 대회를 통해 아베드 천신에게 감사하고 훌륭한 요리를 많 이 만들고 있소." 얼레? 마나회로가 깔린 다음에는 천신이 아르카디아에 내려올 수 없다고 하 지 않았나? 그런데 웬 아베드 천신의 가호? 이상하군. "저기 그런데요, 마나회로가 깔린 다음에는 천신이 이 땅에 내려올……!" 막 촌장 노인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 했던 나는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아트로포스가 중간에서 내 말을 가로채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베드 천신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해 이 대회를 개최하시는 거였군요." "허허, 그렇소이다." 아트로포스의 말에 촌장 노인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러나 난 기분이 언짢았다. 중간에 말을 가로채이는 것이 기분 좋을 리 없으니까. 우씨…… 왜 내 말을 가로채? 내가 뭐 말을 잘못했냐? 난 그저 순수하게 궁 금한 점이 있어서 물어보려고 했다고! 빨리 내 말을 가로챈 이유를 대지 않 으면 꿀개미 30마리를 먹으라고 한다? "혹시 이 요리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에게 뭔가 주는 것이 있나요?" 한 번 내 말을 가로챘던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변명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해서 촌장 노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미 대화의 주도권이 아트로포스에게 넘 어갔음을 느낀 나는 그저 아트로포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지켜보기로 마 음먹었다. 물론 헛소리를 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내가 중간 컷트를 할 생각이 었다. "대회에서 우승하면 최고 요리사라는 칭호를 받게되고, 우승 상품을 받소." 그런 촌장 노인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아트로포스의 질문이 날아갔다. "그 우승 상품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허허, 본래는 대회 시작 날에 알려주는 거지만 그대들에게는 특별히 지금 알려주겠소이다. 하지만 누구한테도 상품 얘기를 하면 안되오." "네. 걱정 마세요." 흘…… 누구한테도 해서는 안될 얘기라면 차라리 우리한테도? 얘기 안 하는 게 좋지 않아? 하여튼 늙은이 주제에 예쁜 소녀가 물어보니까 대뜸 알려 주 려고 하고…… 쯧쯧. "올해 우승 상품은 십 년마다 한 번씩 열매를 맺는 십년수(十年樹)의 열매 라오." "십년수의 열매요?" "그렇소. 십년수의 열매는 요리의 맛을 더욱 좋게 만들어 준다오. 그래서 아 베드 천신의 선물이라고도 하오." 촌장 노인의 말을 듣자 그 십년수의 열매가 성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 다. 그래서 촌장 노인에게 그 열매를 보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외부 인이 너무 주제넘는 짓을 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 트로포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정말 귀중한 열매군요. 어째서 이 마을 사람들이 그 요리 대회에 기대를 걸 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허허,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아트로포스의 계속되는 마을 칭찬에 촌장 노인은 입 찢어져라 웃었다. 그렇 게 우리들과 촌장 노인의 얘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요리 대회 준비는 열심히 되어가고 있었다. 이미 성물에 대해 묻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화 제를 요리 대회 쪽으로 돌렸다. "근데 요리 대회의 우승 기준은 어떻습니까? 맛은 당연히 포함되겠고…… 혹 시 독창성도 선정 기준입니까?" "물론이오. 독특한 아이디어로 만든 요리이어야만 우승할 수 있다오. 요리는 혀나 배를 만족시키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눈을 즐겁게 해줘야 하니까 말이오." "……." 흘…… 눈을 즐겁게 해? 소의 창자 요리나 눈알 요리, 심장 요리에 개미 튀 김 등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고라? 도대체 그 눈은 어떻게 되어먹은 거냐?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갑자기 아트로포스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겠다는 듯한 말을 해버렸다. 성물 의 형태 여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철수하겠다는 아트로포스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이라 아트로포스가 이끄는 대로 따 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허허, 언제라도 마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물어보시오." "네. 그럼 저희는 이만 헤로드 씨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트로포스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날 슬쩍 흘겨보았다. 그것은 나도 같이 일어서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나 역시 아트로포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리고 아트로포스의 무언의 압력에 따라 촌장 노인에게 인사 를 했다. "그럼 또 나중에." "그러시오." 나와 아트로포스는 대회용 식탁에 앉아있는 촌장 노인을 뒤로하고 헤로드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을 광장을 빠져 나와 한적한 밭길에 들어섰을 때, 난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날렸다. "로스, 왜 그냥 돌아온 거야? 성물에 대해 알아내지도 못했잖아?" "아니요. 성물은 그 십년수의 열매예요." 아트로포스는 너무나 단정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그래서 난 또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제 육감이에요." "……." 얼씨구…… 육감으로 십년수의 열매가 성물이라고? 그건 나도 느꼈던 거야. 문제는 그 열매가 성물이라는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뭐 좋아. 그 열매가 성물이라면 이제 어떻게 그 성물을 탈취할 거야?" "탈취요? 어감이 안 좋군요. 회수라고 하세요." 흐으…… 그게 그거지 뭘 따져? 아트로포스가 왜 이렇게 많이 타락한 거야? 나한테 물들어서 그러나? 이거 큰일이군. 나 같은 녀석이 하나 더 생기면 골 치 아픈데. "하여튼 어떻게 성물을 회수할 거야?"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아트로포스는 평상시의 '알아서 생각하세요'라는 말 대신 이미 그 방법을 생 각해놓고 있다는 듯한 말을 했다. 어쨌든 모처럼 아트로포스의 계획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뻤다. 내가 굳이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으니까. "난 무식해서 잘 몰라." "일부러 생각하지 않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우씨…… 누가 그 작전을 모를 줄 알고? 나한테 성물 회수 방법을 생각하게 한 다음, 내가 말한 것을 마치 자기가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식으로 말 하려는 수작이지? 아주 치사하게 놀아……! "알았어. 우선 생각할 시간을 줘." 난 밭길을 걷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굴렸다. 사실 헤로드의 집이 어디에 있었는지 이미 잊어먹은 나로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헤로드의 집까지 찾아 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흐음…… 성물이 그 십년수의 열매라 생각하고…… 그 열매는 요리 대회의 우승 상품이니까……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면…… 얼레? 요리 대회에서 우승 하면 아주 합법적으로 성물을 회수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설마 요리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난 반신반의하면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그녀?치고는 너무나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 흐으……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라고라? 나보고 엽기적인 음식을 만들라고라? 흘…… 이 말밖에 할 말이 없군. 지금 아트로포스는 미쳐버렸다……! "어떻게 나보고 우승하라는 거야? 난 요리 같은 거 전혀 못 만들어!" 난 거의 발악하듯이 소리쳤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아주 간단하게 내 발광 을 저지했다. "바보군요.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요?" "……." 흘…… 그래…… 나 바보다…… 나 바보인 거 이제 알았냐? 벌써 한 달 가까 이 지내고 6일 동안이나 한 방에서 잤는데 그런 것도 몰라? 아트로포스야말로 바보구만. "난 머리 굳은 지 오래됐으니까 알기 쉽게 알려 줘." 아트로포스와 싸우기 귀찮아서 난 내가 바보임을 인정했다. 그러자 아트로포 스는 '어떻게 이런 작자가 중용자로 선택됐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요. 어쨌든 요리 대회에서 우승하면 성물을 얻을 수 있으니까 케시님 을 요리 대회에서 우승시키면 되는 거예요." "케시 씨를?" "그래요. 이드님은 요리 전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흐음…… 아트로포스의 말을 들어보니까 약간만 머리를 더 굴렸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거였군. 흘…… 역시 난 바보였어…… 한 마디로 난 천재적인 바보인 거야……. "그럼 내가 케시 씨의 우승을 도와주는 것으로 하면 되겠네. 그건 그렇게 하 면 되겠고……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성물 회수 작전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뒤, 난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 고,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되물었다. "뭐죠?" "아까 촌장님이 풍족의 천신…… 에…… 누구더라?" "아베드." "아, 그 아베드 천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했잖아? 근데 마나회로가 깔린 다음에는 천신이나 천마나 모두 이 땅으로 내려올 수 없지 않아?" 촌장 노인이 했던 말 중에서 그것이 가장 궁금했기 때문에 난 그것을 아트로 포스에게 질문했다. 내 질문의 요점이 무엇인가를 파악한 아트로포스는 고개 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마나회로가 깔린 다음에는 천신, 천마 모두 이 땅에 내려올 수 없 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이 땅에 기적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없게 되었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천신과 천마의 힘이 이 땅에 뻗친다라고 생각해요. 뭔가 의지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이 좋으니까요." 흘…… 하긴, 여기는 아직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과학적 해석 같은 게 전혀 없으니까 천신이나 천마라는 존재에게 의지하는 편이 맘 편하겠지. 그러고 보니 나도 과학이라는 것에 상당히 의존하는군. 쩝……. "어서 출발하세요." 열심히 그런 생각을 하던 나에게 아트로포스가 빨리 헤로드의 집을 찾아가 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길을 다 잊어먹은 나는 아주 자신 있는 목소리 로 말했다. "길 몰라." "……." 헐헐, 내가 너무 당당하게 말했나? 그치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근데 설마 아트로포스도 길을 모른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 "최초로 중용의 법칙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아트로포스는 그렇게 사악한 말을 내뱉고는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난 그 저 아트로포스가 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아무 말하지 않고 그 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후후, 역시 이럴 때 영인관이 필요하다니까. 나 혼자였다면 열심히 헤매고 있었을 텐데. 윽…… 그러고 보니 지금 돌아가면 케시의 꿀개미 요리를 도와 줘야 하잖아? 으…… 귀찮은데…… 어쩔 수 없지…… 대회 날까지는 참는 수 밖에……. ======================================================================= 아... 대학 생활이 고등학교 때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번 호] 107 / 108 [등록일] 2000년 09월 23일 21:01 Page : 1 / 18 [등록자] THEBUR [조 회] 161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9장: 요센 요리대회 -3-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9장:요센 요리 대회 -3- 관련자료:없음 [30307]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23 12:45 조회:423 촌장 노인을 직접 찾아가 만난 날로부터 4일 후, 마침내 요센 요리 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지난 4일 동안 난 케시에게 엄청 시달려야 했다. 꿀개 미 요리하는데 마법 쓰는 것은 기본이고, 만들어진 꿀개미를 먹고 그 감상 을 말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까지 끌어들여 꿀 개미 요리의 감상을 해주었다. 이미 아트로포스도 이곳 음식에 익숙해져 있 어서 꿀개미 먹는 걸 그다지 망설이지는 않았다. 단지 꿀개미 하나를 먹을 때마나 날 무표정한 눈으로 째려봤을 뿐이었다. "이드 씨! 로스 씨! 어서 준비하고 나오세요!" 케시는 아침부터 우리들을 재촉했다. 요리 대회가 정확히 9시부터 시작이 기 때문에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 흘…… 어째서 대회가 아침 9시부터 시작하냐고. 요리 대회가 무슨 학교 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1교시 시작 시간이 9시인데 요리 대회 마저 9시라니…… 아, 초등학교 1교시도 9시부터였던가? 윽…… 오래되어서 기억이……! "헤로드 씨는 어디 가셨나요?" "오빠는 대회의 치안 유지를 위해 미리 나갔어요." 아트로포스와 케시의 문답을 듣고 나서야 난 헤로드가 집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로드는 요센 마을 순찰대의 대장격이기 때문에 미리 나갔던 것 이다. 어쨌든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케시는 대충 나갈 준비를 다 마친 다음, 발걸음도 무겁게 집을 나섰다. 쩝…… 문도 안 잠그고 나오다니…… 이러다가 도둑이 몽땅 쓸어가 버리면 어쩌려고…… 하긴, 이 마을은 화폐 같은 것을 전혀 안 쓰니까 도둑 들어올 염려는 없겠군. 아니지, 어쩌면 귀중한 음식을 노리고 들어올지도 몰라. 여 기는 돈보다는 음식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으니까. 웅성웅성- 지금 시각이 8시라 대회 장소에 나온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을 광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서로 떠들고 있었다. 워낙 웅성대는 인간들이 많아서 정확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언뜻 들어 보면 이번 대회의 우승은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는 듯했 다. "여기들 계세요. 전 등록을 하고 올 테니까요." 케시는 객석의 빈자리를 세 개 확보한 뒤 그런 말을 하며 재빨리 무대 옆 으로 뛰어갔다. 무대 옆에서는 이번 요리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등록을 하고 있었다. 지금 무대 앞에 마련된 대회용 식탁이 전부 5개 밖에 없었기 때문에 출전 등록을 하고 나서 추첨을 통해 먼저 요리를 시작할 사람들과 나중에 요리를 시작할 사람들을 결정하려는 것이었다. "우승할 자신 있나요?" 객석에 앉아 아무도 모르게 마나회로를 깔고 있던 나에게 아트로포스가 질 문을 던졌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마나회로 건설을 하면서 아트로포스의 질 문에 대답했다. "우승해야지. 그래야 우승 상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우승 못하면요?" "……." 흐으…… 그런 걸 꼭 내 입으로 말해야겠냐? 우승 못하면 당연히 우승자가 누구인가 눈여겨본 다음에 몰래 가택 침입해서 훔쳐와야지! "안 봐도 뻔한 생각을 하고 있군요."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인지 보통 사람들로서는 좀처럼 구 별하기 힘들 정도로 내가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나 난 아 트로포스를 무시하고 머리를 쉬게 했다. 이제 앞으로 한 시간 후에는 마법 을 질리도록 써야 하기 때문에 머리를 맑게 해야 했던 것이다. 웅성웅성- 시간은 자기 가고 싶은 만큼 흘러갔고, 케시가 등록하고 다시 돌아온 후 대략 20여 분이 지나자 마침내 요리 대회 시작 시간인 9시가 되었다. 대회 개최를 알리는 신호는 촌장 노인의 축사(祝辭)였다. "오늘 대회를 보러 오신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드리오. 그럼 이제부터 제 128회 요센 요리 대회를 시작하겠소이다!" "와ㅡ!" 헐…… 축사라고 해서 엄청 길게 할 줄 알았더니 달랑 두 마디로군. 내가 사는 세계의 각 학교 교장이나 교감들이 표본으로 삼아야할 분이야∼ "자, 이제부터 경기 규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촌장 노인이 내려간 직후, 사회자인 듯한 아저씨가 올라와 경기 규정에 대 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방금 전 등록을 마친 분들을 임의로 뽑아 5명 씩 요리를 시작하게 됩니다. 제한 시간은 없으며, 요리를 마친 분께서는 다 음 순서의 분과 자리를 교대해 주시고 심사위원들에게 만든 요리를 제출하 시면 됩니다. 그럼 심사위원들께서 요리를 직접 맛보셔서 채점을 하며, 그 채점된 점수가 가장 높은 분이 오늘 대회의 우승자가 되는 것입니다." 얼…… 왠지 TV 같은 것에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어쨌든 진행 패턴을 보니까 이제 심사위원 소개할 차례 같은데? "그럼 심사위원?들을 소개합니다. 저기 앉아 계시는 분들이 바로 심사위원 들이십니다. 뜨거운 박수 부탁합니다!" 짝짝짝- 사회자 아저씨가 가리킨 곳은 무대의 왼편이었고, 그 곳에서는 모두 5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백발 할아버지와 백발 할머니, 그리고 아저씨와 아줌마, 마지막으로 청년 하나가 심사위원이었는데, 일부러 다양한 연령층 을 심사위원으로 해서 모든 연령층이 좋아할 요리를 엄선하기 위한 의도인 듯했다. 흘…… 근데 왜 노인층하고 중년층은 각각 남자, 여자 이렇게 뽑았으면서 청소년층은 어째 남자만 뽑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여성 차별 같은…… 아, 그러고 보니까 청소년층과 중년층 여자들은 대부분 요리 대회에 출전했 군. 그런데도 중년층에서 아줌마 하나를 심사위원으로 만든 이유는 역시 음 식 맛을 아줌마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음…… 청소년층의 여자들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데다가 모두 요리하러 나갔으니 누굴 심 사위원으로 할지 난감할 거야. 확실히 아까 등록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자보 다는 여자 쪽이 훨씬 많았지. "이제 요리 대회를 시작합니다! 먼저 요리하실 다섯 분을 호명하겠습니다! 포이드! 세이린! 제니! 미셸! 메리!" 사회자가 호명을 하자 남자 하나에 여자 네 명이 대회용 식탁 앞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각각의 선수들을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대충 보기에 10명 이상이 나간 것 같았다. "잘 해!" "꼭 우승해라!" 선수들은 대회용 식탁에 자리를 잡자마자 가져온 음식 재료들로 요리를 시 작했다. 주 요리 재료가 식물일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었으나, 주 요리 재 료가 살아있는 동물일 때에는 즉석에서 동물을 죽여 요리를 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동물을 죽이는 장면까지 똑똑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흘…… 미리 요리 재료를 준비할 수 없으니까 직접 저래야 하겠지만…… 이런 모습을 어린애들까지 보게 하다니…… 쩝…… 이러니까 아이들도 엽기 적인 음식을 아무 거리낌없이 만들어 먹지……. "우리 차례는 언제가 될까요?" 케시는 먼저 나가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물었 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을 알고 있을 리 없었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처럼 대답했다. "잘 모릅니다. 어쨌든 저 사람들이 요리를 끝낼 때까지는 요리를 할 수 없 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리죠." "네……." 비록 '네'라고 하긴 했으나 케시는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긴장해야 하는 사람은 케시가 아니라 나여야 했다. 꿀 개미 요리 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법이고, 이번 요리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성물을 강탈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케시보다 훨씬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난 그다지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 래도 요리하기 위해 저 대회용 식탁에 가서 섰을 때에서야 긴장감을 느낄 것 같았다. 따닥따닥- 지글지글- 여기 저기서 요리 만드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고, 꽤 맛있을 것 같은 냄새도 물씬물씬 풍겨왔다. 하지만 완성되어 가는 요리 중에서 눈에 확 뜨 일 정도로 특이한 요리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지금까지 우승했었던 요리와 비슷한 식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흘…… 모두 독창성이 떨어지는군. 하긴, 케시가 만들려는 꿀개미 요리도 그다지 독창적인 요리는 아니지. 단지 아직까지 그 누구도 꿀개미 요리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게 중요할 뿐이지만. 그 정도면 독창적이라 할 수 있 을려나? "오……!" 그때 관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먼저 요리를 하던 다섯 명의 선수들 중에서 한 명이 요리를 다 완성하고 그것을 심사위원에게 건네주었 기 때문이었다. 심사위원들이 그 요리를 먹으면서 채점을 하는 동안, 사회 자는 다음 선수를 호명했다. "케시!" "……!" 헉…… 놀래라…… 여섯 번째로 걸릴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 뭐, 빨리 요 리 끝내고 빨리 쉬는 게 낫겠지. 순서가 뒤로 가면 갈수록 긴장 때문에 지 쳐서 요리 감각이 무디어질지도 모르니까. "나갑시다." 난 아직도 자리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케시를 불렀다. 그렇게 내가 부르고 나서야 케시는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요리 재료를 챙겨 빈자리로 갔다. 역시 케시는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흘…… 어떻게 이 대회에 생전 처음 나오는 나보다 더 긴장하냐? 그래가지 고 우승하겠어? 우승을 못하면 난 강도로 돌변해서 삽질을 해야한단 말이야. 이제 더 이상 불법적인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구. 난 깨끗하게 살고 싶어! "이, 이제 시, 시작해요." 대강 요리 준비를 끝낸 케시는 말을 더듬으며 요리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 지만 이렇게 ?떨고 있는 상태로는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케시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난 케시에게 말을 걸었다. "헤로드 씨는 마을 순찰 때문에 대회를 볼 수 없습니까?" "네? 아, 그래요." "근데 헤로드 씨는 왜 검술을 배웠습니까?" "음…… 요리보다는 검술 쪽을 더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오빠의 검술 실력 은 주로 동물을 잡거나 내장을 꺼낼 때 더 많이 쓰여요." 케시는 그렇게 나와 얘기를 나누면서 웃었다. 이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난 즉시 요리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근데 요리 시작 안 합니까?" "아!" 작게 탄성을 내지른 케시는 허둥지둥 거리며 요리를 시작하려고 했다. 그 래서 난 케시에게 약간의 제재를 가했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십시오. 시간은 널널합니다." "아……!" 내 말을 듣고 케시는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지금 너무 긴장하 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그렇네요.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요?" "그러죠." 그렇게 서로 얘기만 주고받고 있던 나와 케시는 드디어 꿀개미 요리 준비 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습해온 대로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꿀개 미의 독을 30분간에 걸쳐 천천히 제거한 뒤, 마법으로 꿀개미를 공기층으로 뒤덮어 요리했다. 물론 그 사이에 케시는 꿀개미에게 열심히 소스를 바르고 소스의 맛이 꿀개미에게 충분히 스며들도록 조리했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우리가 꿀개미를 가지고 요리를 하자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듯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대략 3시간 후에 완성된 꿀개미 요리를 보고 나서는 믿 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만 쩍 벌렸다. 그것은 관객들뿐만이 아니라 심사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꿀개미 요리 완성됐어요. 번호는 6번이고 이름은 케시입니다." 심사위원에게 꿀개미 요리를 갖다주면서 케시는 자신의 요리 번호와 이름 을 밝혔다. 하지만 5명의 심사위원들 중에서 케시의 말을 제대로 들은 사람 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배가 빵빵한 꿀개미들만 넋을 놓은 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번 호] 108 / 108 [등록일] 2000년 09월 23일 21:02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7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9장: 요센 요리대회 -4- ─────────────────────────────────────── 제 목:[펌/사이케델리아] 9장:요센 요리 대회 -4- 관련자료:없음 [30308] 보낸이:김정호 (마법가문) 2000-09-23 12:46 조회:378 "이것이 진정 꿀개미란 말인가……!" 심사위원 중에서 할아버지 대표로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중얼거렸 다. 그때 청년 대표는 할아버지 대표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꿀개 미 하나를 집어들고 입 속에 넣었다. 그러자 다른 대표들도 즉시 꿀개미를 시식했다. 과연 그들이 우리의 꿀개미 요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으나, 다른 선수들이 요리를 끝내고 심사위원에게 요리를 제출하려고 기다렸기 때 문에 난 케시를 잡아끌었다. "객석에 가서 기다립시다." "아, 네……." 케시는 정신없이 꿀개미 요리를 집어먹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듣고 싶어했으나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객석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아트로포 스가 맡아놓고 있는 객석에 도착하여 앉은 후에도 여전히 케시의 눈은 심사 위원들에게로 가 있었다. 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의 요리가 모두 끝난 다음에 나오니까 엄청 기 다려야 할텐데…… 그 전에 신경과민으로 쓰러지겠군. 근데 어째 난 전혀 안 떨리는 거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대회라서 그런가? "결과는 어떨 것 같나요?" 가만히 앉아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걸 지켜보고 있던 나에게 아트로포스 가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난 내 솔직한 느낌을 말해주었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요리를 보지 못해서 모르겠지만, 케시의 우승은 무난 할 것 같아." "자신만만하군요." 헐헐, 당연한 거 아니야? 심사위원들이 다른 사람들이 제출한 요리는 제쳐 두고 꿀개미 요리만 먹고 있는데. 흘…… 저 인간들은 꿀개미만 저렇게 먹 어도 안 질리나? 꿀개미를 30마리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다 먹어버리다니…… 엄청나군. 그 놀라운 먹성에 찬사를 보낸다. 웅성웅성- 시간은 관객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열심히 흘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맨 마 지막 사람까지 요리를 모두 끝마쳤다. 첫 번째 사람이 요리를 시작해서 마 지막 사람이 요리를 끝낼 때까지 걸린 시간은 상당했다. 이미 해는 서산으 로 기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적게 걸린 것이었다. 이번 요리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모두 30여 명. 만약 이들이 모두 요리를 했다면 대회는 다음날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30여 명 중에서 절반 이상이 요리 도중 기권해 버렸다. 그것은 자신의 요리가 실패했거나 아무리 해도 다른 경쟁자의 요리를 이길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심사위원에게 완성된 요리를 제출한 사람은 모두 14명뿐이었다. "드디어 요리 시간이 끝났습니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채점을 집계해서 우 승자를 뽑도록 하겠습니다. 집계가 끝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회자 아저씨는 관객들에게 그렇게 말한 뒤 심사위원석 쪽으로 갔다. 심 사위원의 결과표를 받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사람들 은 열심히 웅성거리며 누가 이번에 우승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다. 흘…… 토론할 필요가 없다니까. 어차피 우승은 케시라고. 다른 사람들의 요리는 너무 평범했는걸. 뭔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음식이 없었어. 그저 우승한 요리와 비슷비슷하게 만들었을 뿐이니까. 우승은 확실해∼ "……?" 느긋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던 나는 케시가 눈을 감고 두 손을 맞잡으 며 뭔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누구에게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 것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느낌 상 자기 어머니에게 요리 대회에서의 우승을 빌고 있는 것 같았다. 헐…… 참으로 열심이군. 요리 대회에 목숨 건 사람처럼 말이야. 이러다가 혹시 우승하지 못하면 케시, 자살해버리는 거 아닐까? 왠지 걱정되는걸?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결과가 나왔는지 사회자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서 소리쳤다. 그 러자 웅성대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고, 대회장은 일순간에 조용해 졌다. 사회자는 그런 관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대회 결과를 크게 외쳤다. "올해 요리 대회의 우승자는 꿀개미 요리를 선보인 케시 양입니다!" 짝짝짝- 발표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의 박수 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미 케시의 우승 을 점치고 있었는지 사람들은 케시의 우승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시 당사자는 자신이 우승하자 놀라서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케시 씨, 우승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가야죠." "아…… 네!"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케시는 허겁지겁 무대 위로 올라갔다. 케시가 무대 위로 올라가자 사람들은 더욱 크게 환호했다. 그러한 사람들의 환호를 받 은 케시는 그제서야 자신의 우승을 실감하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꿀개미 요리를 만든 케시 양에게 우 승 소감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는 그렇게 말하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이 세계에서 마이크 같은 것 이 있을 리 없기 때문에 케시는 큰 소리로 우승 소감을 발표해야만 했다. 하지만 감정이 격앙된 케시의 목소리는 자연히 커져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 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렇게 우승할 줄은 몰랐어요! 이번 꿀개미 요리 는 이드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었을 거예요!" 케시의 우승 소감 발표가 끝나자 갑자기 사람들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 다. 내 도움이 없었다면 요리를 만들 수 없었을 거라는 케시의 말이 사람들 에게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이런…… 모두 나와 케시 사이에 뭔가 something이 있었다 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냥 내 마법이 없었다면 요리를 만들 수 없었을 거라고 하면 되 지 어째서 내 도움이라고 말하냐? 대중적인 오해는 풀기가 어렵단 말이야! "자, 이제 우승 상품 수여가 있겠습니다! 모두들 주목하십시오! 올해의 우 승 상품은 과연 무엇일까요! 촌장님, 올라와 주십시오!" 사회자는 특별석에 앉아서 요리 대회를 지켜보던 촌장 노인을 불렀고, 촌 장 노인은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 동안 사람들은 과연 우승 상품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또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촌장 노인 이 케시 옆에 자리를 잡고 정면을 쳐다보자 사람들은 일순간에 입을 다물었 다. 상당히 잘 진행되는 대회였다. "올해의 우승 상품은 바로 이것이오!" 촌장 노인의 말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워낙 조용하게 있 었기 때문에 모두들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촌장 노인의 품속에서 우승 상품이 빠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터트렸다. "오! 저건 십년수의 열매!" "저것이 올해의 우승 상품이었구나!" 한눈에 우승 상품이 십년수의 열매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감 탄을 터트렸다. 그만큼 그 열매는 이 마을 사람들이 아주 탐내는 물건이었 던 것이다. 흘…… 십년수의 열매라는 건 럭비공 같은 형태를 띄고 있군. 단지 색깔은 분홍색이고 크기는 사람 손바닥 크기만 하다는 게 다른걸? 저게 과연 성물 일까? "이드님, 저 열매에서 성물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요." 내 옆에 앉아있던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것은 저 십 년수의 열매가 확실한 성물이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이제 성물의 존재를 확 인했으니 남은 것은 저것을 내 손안에 넣는 일이었다. 흐음…… 어떻게 한다? 케시한테 직접 달라고 해야하나? 하지만 저 열매는 이 마을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쉽게 나한 테 주려고 할까? 걱정이군. "케시 양, 받으시오." 촌장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십년수의 열매를 케시에게 내밀었고, 케시는 그것을 소중히 받았다. 케시가 우승 상품을 받는 순간에 맞추어 사람들은 박수를 보내려고 했으나, 그 계획은 웬 침입자에 의해 산산이 부수어졌다. "기다려!!!"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대 옆쪽으로 걸 어갔다. 모두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은 나도 알고 있었 다. 바로 인육을 먹으려고 하는 그 식인종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너희들이 여기를 어떻게?!" 사람들은 그 식인종들을 보고 크게 놀랬다. 마을 순찰대가 있어서 저들이 이런 곳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 생각이 무참히 깨 졌기 때문에 충격을 먹은 것이었다. "저들을 몰아내자!" 그때 어디선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그 말에 동조하여 곧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그렇게 합심하여 식인종 인간들을 몰아내려고 집단 행동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식인종 인간들은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중의 한 식인종 아저씨가 누군가를 앞으로 끌어내며 소리쳤다. "너희들은 이 녀석을 죽이고 싶나?!" "……!" 식인종들이 인질로 삼고 있는 사람을 확인한 마을 사람들은 주춤거렸다. 그들의 인질이 된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을 순찰대의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헤로드였기 때문이었다. "오빠!!!" 케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경악했다. 그러나 인질은 분명 헤로 드였다. 뒤로 손을 묶인 헤로드는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그리 고 서 있는 것도 약간 불안했다. 식인종 인간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것이 확실했다. "……." 이런…… 저 식인종 인간들이 혼자서 순찰하고 있던 헤로드를 계획적으로 노렸던 모양이군. 인간 고기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헤로드를 살려두었다는 것은 뭔가 마을 사람들에게 요구를 할 생각이라는 건데…… 설마 주기적으 로 사람 고기를 바쳐라???둥의 요구는 아니겠지? 이거 큰일인걸? 헤로드 때 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군. 우선 녀석들의 요구가 무 엇인지 듣고 나서 움직이자. ===================================================================== 이것으로 9권 연재는 끝입니다... 퍼가셨던 분들은 다음주 금요일까지 삭제해주세염... (에궁... 힘들어랑...ㅡㅡ;)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76 / 77 [등록일] 2000년 10월 03일 22:59 Page : 1 / 7 [등록자] THEBUR [조 회] 7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15 게 시 일 :00/10/03 20:48:46 수 정 일 : 크 기 :6.5K 조회횟수 :71 <제 10 장> 첫 번째 성물 "헤로드를 풀어 줘!" 식인종 아저씨들에게 잡혀 있는 헤로드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러나 그런 말을 순순히 들을 식인종 아저씨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헤로드 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보다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시끄러! 조용히 하지 않으면 이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리겠어!" "……!" 한 식인종 아저씨가 헤로드의 목에 짧은 칼을 갖다대며 위협하자 마을 사 람들은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조용히 시킨 식인종 아 저씨들은 헤로드를 끌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서 있는 촌장 노인과 케시, 그리고 사회자까지 인질로 붙잡았다. "네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이런 짓을 하는 거냐?!" 촌장 노인은 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식인종 아저씨에게 호통을 쳤다. 그 러나 식인종 아저씨는 그런 촌장 노인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일개 힘 없는 노인을 일일이 상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저 자기가 하 고 싶은 질문만을 했을 뿐이었다. "이봐, 촌장. 올해의 우승 상품은 뭐지?" "……!" 얼씨구? 저 식인종 아저씨들, 한마디로 우승 상품을 강탈하기 위해 내려 온 거야? 사람 고기에 미친 인간들 아니었나? 왜 우승 상품을 가져가려고 하지? 나 같으면 오늘 저녁 식사 거리로 사람들을 잡아가겠다! "우승 상품을 알아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 촌장 노인은 너무나 뻔한 질문을 식인종 아저씨에게 던졌고, 식인종 아저 씨는 전형적인 악당의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흐흐, 당연한 걸 묻는군. 가져갈 생각이다." "그렇게는 안 된다!" 식인종 아저씨의 말에 촌장 노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미 한 식인종 아저씨가 케시의 손에 들려있는 십년수의 열매를 발견하고 다른 일 행에게 그 사실을 알려버렸다. "이 계집애가 십년수의 열매를 가지고 있어!" "뭐?!" 십년수의 열매라는 소리에 식인종 아저씨들은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케시에게서 십년수의 열매를 가로챘다. 그러나 케시는 자기 손안에 들려있던 십년수의 열매를 뺏기고 나서도 멍하게 서서 만신창 이에 가깝게 얻어터진 헤로드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 녀석들! 십년수의 열매를!!!" 식인종 아저씨들이 십년수의 열매를 뺏어가자 촌장 노인은 노인답지 않은 호통을 내지르며 한 식인종 아저씨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퍽! "허억!" 식인종 아저씨의 복부 공격에 촌장 노인은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그대로 무대 위에 쓰러져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촌장 노인이 맞고 쓰러지는 광경 을 보고서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 다. "이봐, 예쁜 아가씨. 이번 우승은 아가씨가 했지?" 케시에게서 십년수의 열매를 뺏어든 한 식인종 아저씨가 음침한 표정을 지으며 케시에게 물었다. 케시는 그의 음침한 표정에 달달 떨면서 순순히 물음에 대답했다. "그, 그래요……." "역시. 그렇다면 그 우승 요리를 가지고 와라." "……?" 전혀 예상치 못한 식인종 아저씨의 요구에 케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 모 두 당황했다. 그러나 그 식인종 아저씨는 진심이었다. "빨리 가져와! 죽고 싶냐?! 우리 모두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가져 와!!!" "……!" 얼레? 왜 갑자기 우승 요리를 가져오라는 거야? 목적은 우승 상품의 탈취 아니었나? 아니면 뭔가 더 큰 이유가 있는 거야? "빨리 가져오란 말 안 들리냐?!" 케시가 계속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자 급기야 식인종 아저씨가 화를 내며 케시에게 칼을 들이댔다. 그제서야 식인종 아저씨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 들은 케시는 겁에 질려 더듬거렸다. "그, 그게, 이미 시, 심사위원들께서 모, 모두 드셔서……!" "그럼 지금 없단 말이냐?!" "네, 네!" 식인종 아저씨는 잔뜩 겁에 질린 케시를 쳐다보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케시가 더욱 쫄아버렸을 때, 그 식인종 아저씨는 아주 당연하다 는 듯이 소리쳤다. "없으면 지금 당장 만들어서 가져와!!!" "……!" 얼라리? 만들어서 가져오라고? 어째서 우승 요리에 집착하는 거지? 무슨 이유가 있나? 하…… 가면 갈수록 저 식인종 아저씨들의 저의를 모르겠군. "마, 만들어 올게요!" 케시는 그렇게 소리친 후 무대에서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십년수의 열매 를 들고 있는 식인종 아저씨가 그녀를 저지시켰다. "기다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만들어라." "……?" "그러니까 재료를 가지고 와서 여기서 그 우승 요리를 만들란 말이다!" "아, 네!" 식인종 아저씨의 요구에 케시는 부리나케 나와 아트로포스가 있는 쪽으로 뛰어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말했다. "집에 가서 요리 재료를 가져와야 해요. 같이 가요." 헐…… 식인종 아저씨들 앞에서는 그렇게 떨더니 나하고 말할 때는 평상시 하고 똑같군. 그나저나 저 식인종 아저씨들 때문에 그 꿀개미 요리를 다시 해야 하다니…… 저 인간들을 마법으로 그냥 쓸어버려? "어서 따라 와요!" 케시는 먼저 앞장서며 날 재촉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여기 남아 있으라는 눈짓을 해 보인 뒤에 케시를 따라갔다. 물론 나와 케시가 요리 재 료를 가지러 가고 있는 것인지 구원을 요청하러 가고 있는 것인지를 감시하 기 위해 두 명의 식인종 아저씨가 우리 뒤를 따라붙었다. "하아 하아……!" 케시는 빨리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는지 거의 뛰듯이 집으로 향했다. 난 그저 내 뒤에서 따라붙고 있는 두 식인종 아저씨들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케시를 따라갔다. 가능하면 그 두 식인종 아저씨들에게 우승 요리를 먹으려는 이유를 듣고 싶었지만, 케시가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덜컥! "어서 요리 재료를 챙겨요!" 거의 뛰다시피 해서 집에 도착한 케시는 곧장 부엌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는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요리 재료를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잡다한 요 리 재료는 케시가 알아서 다 챙길 것이기 때문에, 난 꿀개미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 식인종 아저씨들이 배불리 먹을 정도의 꿀개미를 나 혼자 들고 갈 수는 없어서 난 뒤를 따라온 식인종 아저씨 둘을 부려먹었다. "아저씨들! 저 유리 상자를 가지고 오십시오! 저 속에 요리할 꿀개미가 있습니다!" "……." 내가 그런 부탁을 하자 두 식인종 아저씨는 당황했지만, 이내 두말없이 꿀개미를 사육하고 있는 거대한 유리 상자를 번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두 건장한 아저씨들이 들어도 약간 불안했기 때문에 나도 거들었다. 그렇게 요리 재료를 모두 챙긴 나와 케시는 다시 식인종 아저씨들이 눈을 부라리 며 기다리고 있는 마을 중앙으로 향했다. 쿵- 가지고 온 유리 상자를 대회용 식탁 옆에 놓아두자 십년수의 열매를 들고 있는 식인종 아저씨가 케시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제 만들어라!" "네……." 식인종 아저씨의 명령에 케시는 힘없이 대답하며 꿀개미 요리를 다시 만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케시의 요리에 동참했다. 내가 없으면 꿀 개미 요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글지글- 나와 케시는 십여 명의 식인종 아저씨들이 지켜보는, 아니 세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청난 쪽팔림을 느끼 며 꿀개미 요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3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십여 명 의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꿀개미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후아…… 머리가 어질어질하군.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꿀개미를 요리했더니 정신이 없어. 아트로포스에게 머리 맑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어쩌면 마법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번 호] 77 / 77 [등록일] 2000년 10월 03일 23:00 Page : 1 / 8 [등록자] THEBUR [조 회] 6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16 게 시 일 :00/10/03 20:49:06 수 정 일 : 크 기 :8.0K 조회횟수 :64 "다 만들었어요." 꿀개미 요리를 완성한 케시는 무대 위에 만든 요리를 올려놓았다. 난 그 사이에 아트로포스에게로 가서 그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로스, 내 정신적 피로 좀 풀어 줘. 왠지 또 마법을 써야 할 것 같아." "알겠어요." 아트로포스는 내 말에 조용히 대답하고는 식인종 아저씨들과 마을 사람들 이 눈치채지 못하게 영인관의 힘을 발휘했다. 오늘 하루, 머리를 전혀 쓴 적이 없는 아트로포스였기 때문에 힘이 남아돌아서 내 정신적 피로를 순식 간에 말끔히 날려 주었다. 쩝쩝- 내가 아트로포스에게서 피로 회복을 받고 있을 때, 식인종 아저씨들은 열 심히 꿀개미 요리를 먹어대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꿀개미 요리가 담긴 접 시를 엎어버리며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우승 요리라고? 이렇게 맛없는 음식도 세상에 없을 거다!" "……!" 얼레? 꿀개미 요리가 맛없어? 그럴 리가? 외부인인 나와 아트로포스조차 맛있다고 인정한 그 요리인데? 저 식인종 아저씨들, 사람 고기를 먹다보니 입맛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사람의 고기보다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지 못하면 너희들을 모두 먹어버 리겠다!" 십년수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 식인종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했지만, 난 그 식 인종 아저씨가 한 말에 담긴 속뜻에 주목했다. 저 식인종 아저씨들…… 더 이상 사람을 잡아먹고 살기 싫어진 건가? 그 래서 그들의 입맛을 바꿔줄 만한 요리를 먹기 위해 요리 대회가 끝난 시점 에 맞추어서 쳐들어 온 거고. 그랬군. 이제야 녀석들의 행동을 알겠어. "잠깐 기다리시오." 그때 식인종 아저씨들의 감시를 받고 있던 촌장 노인이 식인종 아저씨의 말을 중지시켰다. 갑작스런 촌장 노인의 간섭에 십년수의 열매를 가지고 있는 식인종 아저씨들의 대장이 촌장 노인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뭐냐?" "십년수의 열매…… 십년수의 열매를 그 요리에 넣고 다시 만들면 될 거 요." 촌장 노인은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대장 식인종에게 말했고, 그 말을 들은 대장 식인종은 손에 들고 있는 십년수의 열매를 내려다보고는 감탄을 터트렸다. "그래! 십년수의 열매는 음식의 맛을 더 좋게 하니까 이걸 넣고 만들면 될 거야! 그럼 이제 더 이상 사람 고기를 먹지 않아도 돼! 하하하!" 흘…… 무지하게 좋아하는구만. 저거 완전 바보 아니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그 음식밖에 입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사람 고기 먹는 거와 무슨 차이야? 내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아 줄까? "이드님. 만약 저들이 십년수의 열매를 요리에 넣고 먹어버린다면…… 아 마 십년수의 열매는 성물로서의 효능을 상실할 겁니다." 그때 아트로포스의 귓속말이 내 고막을 강타했다. 그것은 내가 전혀 생각 지도 못했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저 미친 식인종들이 성물을 먹어버리면 큰일이야! 어쩔 수 없어! 내가 저 녀석들을 모두 잡아서 내가 생각한 해결책으로 식인종들을 개과천 선시키는 수밖에! "기다려!!!" 그렇게 생각한 나는 큰소리로써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연히 식인 종 아저씨들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날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고, 난 마 을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식인종 아저씨들만을 주시하며 말을 이 었다. "십년수의 열매를 써 봤자 너희들의 입맛을 바꿀 수는 없어. 설령 바꾼다 해도 결국 그 음식에만 길들여져서 다른 음식에는 손을 못 대게 되겠지. 한마디로 사람 고기 먹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거야. 이곳이 아무리 풍성한 요리 재료를 가지고 있다지만 계속 그 음식만 먹게 되면 결국 그 재료는 사라져버릴 테니까." "그럼 어쩌자는 거냐?!" 내 말을 들은 대장 식인종이 버럭 화를 내며 날 다그쳤다. 난 저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얘기를 꺼냈다. "내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알고 있어. 한 일주일 동안만 너희들을 나에게 맡겨보지 않겠나?" "……." 이런…… 표정을 보니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하긴, 내가 생각 해도 믿기 힘드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방법을 알려줄 수도 없고……. "무슨 헛소리냐? 당장 그 해결책이란 걸 말해!" 대장 식인종은 당장이라도 나에게 칼을 던질 듯한 포즈를 취하며 날 위협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해낸 방법을 저들에게 알려줬다가는 저들이 날 죽 일 게 뻔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쩝…… 어쩔 수 없군. 대화로써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싸우는 수밖에. 뭐, 사실 본래부터 싸울 생각으로 아트로포스에게 피로 회복을 받은 거지만. 우선 잡혀 있는 헤로드와 케시, 그리고 촌장 노인을 구해야 할텐데…… 어 떤 마법을 쓰지? 고민되네? "저 녀석을 잡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대장 식인종이 다른 식인종 아 저씨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고, 두 명의 식인종 아저씨가 무대 아래로 내 려와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난 내 7서킷의 마나회로를 모두 가동시켜 마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디스트럭션(Destruction)!" 난 십여 명의 식인종 아저씨들의 머리에다 강한 전류를 형성하여 통과시 켰다. 본래 살상용으로 쓰이는 디스트럭션을 기절할 정도로 약화시켜 사용 하려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정신력이 들었다.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 이 나에게는 편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 마을 사람들은 신음 하나 내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식인종 아저씨들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식인종 아저씨가 쓰러지자, 그것이 내가 한 짓임을 알고 더욱 놀래었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마법?!" "어, 엄청나다! 열 명을 한순간에 죽이다니!" 이, 이런…… 죽인 게 아니라니까. 왜 쓰러지면 꼭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 야? 저기 쓰러진 식인종 아저씨들이 숨쉬는 거 안 보여? 모두들 눈 삐었냐? "오빠ㅡ!" 식인종 아저씨들이 전멸했다고 생각한 케시는 즉각 헤로드에게 달려가 헤 로드의 팔을 묶고 있던 줄을 풀었다. 난 멍청하게 서서 쓰러진 식인종 아 저씨들만 쳐다보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일부러 살려놓은 거니까 이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으십시오!" "……!" 내 외침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즉시 밧줄 대신 입고 있던 옷 을 벗어서 식인종 아저씨들을 포박했다. 살상용의 디스트럭션을 기절할 정 도로만 약화시켜 사용한 나는 심한 피로 때문에 내 자리에 쓰러지듯이 주 저앉았다. 그런 날 보고 아트로포스가 무표정하게 물었다. "그 정도에 지치신 건가요?" "……." 얼씨구…… 기껏 마법을 써서 10명을 순식간에 잠재워 버렸더니 나한테 하는 말이 그거냐? 하여튼 칭찬한 적이 거의 없어. 아, 됐어. 내가 아트로 포스한테 칭찬 받아서 뭐하냐. 그나저나 나 지쳤으면 내 피로 좀 풀어달라 고. 왜 내 피로를 풀어주지 않고 내 트집만 잡는 거야? 지금 나하고 한번 해보겠다는 뜻? "이드 씨, 저 자들을 살려서 무엇을 하실 생각이오?" 피곤해서 쉬고 있는 나에게 촌장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머리가 어질어질 해서 대답하기는 싫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저들을 가두십시오. 저들을 개과천선시킬 생각이니까요." "개과천선?" 내 말을 들은 촌장 노인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개과천선 이 알아듣기 힘든 어려운 단어라서가 아니라, 식인종 아저씨들을 처벌하지 않고 그들을 개과천선시키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정말 저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오?" 흘…… 이 영감, 속고만 살았나? 난 웬만하면 거짓말하지 않는 성격이라 고. 물론 이번 장담은 진짜가 될 수도 있고 거짓말이 될 수도 있지만. 뭐, 그거야 결과를 보면 알아. "우선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난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촌장 노인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진지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촌장 노인은 그런 내 진지한 표정을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이다. 그럼 이드 씨를 믿겠소." 헐헐, 믿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성공 못하더라도 내가 저 식인종 아저 씨들을 잡았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욕먹지는 않겠지. 한마디로 나한테는 전혀 부담 없는 일! "……?" 그때 아트로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열심히 포박 당하고 있는 식인종 아저씨들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대장 식인종이 가지고 있던 십년수의 열매를 집어들었다. 그렇게 십년수의 열매를 얻은 아트로포스는 일부러 마 을 사람들이 다 보라는 듯이 그것을 두 손으로 아주 당당히 가져왔다. 이 미 마을 사람들은 아트로포스가 케시의 집에 얹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재를 전혀 가하지 않았다. 우헐헐, 생각보다 아트로포스는 대담하군. 사람들은 아트로포스가 십년수 의 열매를 케시에게 전해줄 거라 생각하니까 가만히 있고, 케시는 다친 헤 로드 때문에 십년수의 열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으니까 저 열매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었어. 이렇게 쉽게 성물을 얻다니! 이거 저 식인종 아 저씨들에게 감사해야 하나? ===================================================================== 앞으로 이틀에 두편씩, 이 정도의 분량으로 올립니다... 목표없이 산다는 건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군요... 흘... 힘 빠져라...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78 / 81 [등록일] 2000년 10월 06일 02:43 Page : 1 / 8 [등록자] THEBUR [조 회] 33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 첫번째 성물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39 게 시 일 :00/10/05 21:43:59 수 정 일 : 크 기 :6.9K 조회횟수 :95 "이드님, 집에 안 가세요?" 내가 계속 의자에 앉아있는 것을 본 아트로포스가 어서 일어나라는 뜻이 담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나도 왜 내 피로를 풀어주지 않느냐라는 뜻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째려 봐준 다음에 자 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 나에게 아트로포스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집에 가서 이 성물의 힘을 흡수하도록 하세요." "……." 흘…… 케시의 허락도 없이 성물을 낼름 하자고? 역시 아트로포스는 보기 보다 사악하다니까. 뭐, 좋아. 나중 일은 아트로포스에게 책임지라고 하면 되니까. 얼레? 근데 왜 아무도 헤로드를 안 도와주지? 어떻게 케시 혼자 헤로드를 부축하면서 집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냐? 이 마을 사람들도 사악 하구만. "헤로드 씨, 괜찮으십니까?" 난 헤로드를 부축하면서 예의 상 그런 질문을 던졌다. 헤로드는 그런 내 질문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보시는 대로 이 꼴입니다.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흘…… 잘 아는군. 사실 난 별로 걱정 안 했지만. "어서 가서 쉬도록 합시다." 나와 케시는 헤로드를 부축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트로포스만이 혼자 십 년수의 열매를 들고 편하게 우리 뒤를 따라왔다. 그리고 쓰러져 있던 식인 종 아저씨들은 전부 포박 당한 채 마을 사람들에게 들쳐 업혀서 어딘가로 사라졌다. 쩝…… 아까 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에게 위협을 주던 인간들이 오히려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가다니…… 역시 세상은 알 수 없는 거라니까. 여기 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겠지. 하나는 착하게 살라는 것, 또 하나 는 강해야 한다는 것. 끼이- 집에 도착한 우리는 헤로드를 그의 방 침대에다 눕혔다. 그 후, 나와 아 트로포스는 헤로드의 방을 나왔다. 치료는 케시에게 맡기고, 난 케시와 헤 로드 몰래 성물의 힘을 흡수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느 방에서 하지? 내 방? 로스 방?" 내 방과 아트로포스의 방 앞에 선 나는 어느 방으로 들어가 성물의 힘을 흡수해야 할지 고민돼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아 주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제 방에서 해야해요. 여자 방이기 때문에 케시 씨나 헤로드 씨가 함부로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요." 헐…… 그럼 남자 방이면 케시나 헤로드가 맘대로 들어온다라는 거냐? 어 차피 케시나 헤로드는 남의 방에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오는 인간들이 아 니라서 아무 방이나 써도 된다고. 그냥 솔직히 내 방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렇다라고 대답하시지? "그럼 로스 방에서 하지 뭐."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향수 냄새가 없기 때문 에 여자 방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는 않았으나, 방이 깔끔하게 정리되 어 있는 점은 여자다웠다. 흘…… 생각해보니까 여자 방은 깨끗하고 남자 방은 지저분하다라는 건 편견이잖아? 내가 이런 한심한 편견에 빠져 있었다니…… 심각한데? "받으세요." 그때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십년수의 열매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주먹만한 럭비공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가벼운 편이었다. 하지만 이 십년수 의 열매에 들어있는 성물의 힘을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 문에 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로스, 성물의 힘은 어떻게 흡수해?" "간단해요. 이런 종류의 성물이라면 먹어야죠." 얼레? 먹어? 이 열매를 나보고 먹으라고? 그러면 성물의 힘이 나한테 흡 수되는 거야?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데……. "근데 이걸 어떻게 먹어?" 열매의 겉이 꽤 딱딱했기 때문에 그냥은 먹을 수가 없어서 난 또다시 아 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날렸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아주 쉬운 대답을 해주 었다. "깨서 드세요." "……." 흘…… 깨서 먹으라고?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깨서 먹으 라는 거야? 생각을 해놓고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아, 뭐 좋아. 십년수 의 열매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 되는 거니까. 퍽퍽-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십년수의 열매를 벽에다 열심히 박았다. 원래는 마법을 사용할 생각도 했으나 어떤 마법을 사용해야 효과적인지 알 수 없 었고, 열매 깨는 일에 마법까지 동원하기 싫어서 그냥 무식하게 벽에다 열 매를 박았던 것이다. 팍- 어쨌든 십년수의 열매 껍질은 그다지 단단한 것이 아니라서 쉽게 갈라졌 고, 난 그 갈라진 틈을 중심으로 열매를 쪼개었다. 그렇게 열매를 두 쪽 낸 나는 즉시 열매 속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십년수의 열매 속에 는 많은 양의 흰 과육(果肉)과 자두맛 사탕 두 개 합친 것 같은 크기의 금 색 씨가 들어 있었다. 아트로포스는 그 금색의 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씨에서 가장 강한 성물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요. 이 씨를 드 세요." "……." 뭐? 나보고 씨를 먹으라고? 이 먹음직스러운 과육은 놔두고 씨를 먹어? 이런…… 이렇게 큰 씨를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이거 먹다가 씨가 목에 걸려서 나 죽으면 책임질껴? "빨리 안 드시고 뭐하세요?" "…… 알았어." 아트로포스가 하도 재촉했기 때문에 난 어쩔 수 없이 십년수의 열매 속에 들어있는 금색의 씨를 손으로 집었다. 씨라서 그런지 조금 딱딱했으나, 약 간 물렁물렁하기도 해서 먹는 것에는 그다지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와삭와삭- 마침내 난 그 금색의 씨를 입안에 넣고 열심히 씹었다. 다행히 씨는 내 이에 닿자 무력하게 부서졌고, 난 별로 힘들이지 않고 그 씨를 다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 흘…… 씨를 다 먹었는데 어째 달라진 게 없냐? 뭔가 힘이 샘솟는다던가 무슨 그런 게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이래가지고는 성물의 힘을 흡수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잖아! "로스. 이 열매, 정말 성물 맞는 거야?" 난 얼굴 가득히 불신의 표정을 떠올리며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아트로 포스는 잠시 날 쳐다보더니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질 문을 되던졌다.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전혀 없어." "이상하네? 이드님이 그 씨를 다 먹자마자 성물의 기운은 깨끗이 사라져 버렸는데……." 아트로포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날 쳐다보았다. 하 지만 그녀가 보기에도 나에게서 전혀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이상해했다. 흘…… 성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트로포스밖에 없으니 아트 로포스가 느낀 것이 성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도 없고…… 흐으…… 정말 귀찮군. 왜 중용자에게는 성물의 기운을 느낄 수 없게 해 놓은 건지…… 에라, 성물의 기운도 사라졌다는데 성물에 대한 건 잊어버리고 마법 수련 이나 해야겠다! "어디 가시게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잔뜩 의아한 표정으로 열심히 뭔가를 생각하던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물었다. 성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기분 이 나빠진 나는 그런 아트로포스의 물음에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마법 수련하려고.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 얼레? 왜 아트로포스가 저런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내가 마법 수련한다는 게 놀랍나? 그럴 리가? 마차 안에서 내가 마법 수련했을 때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아트로포스였는데? "왜 그래? 뭐 불만 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트로포스는 말을 잇지 않고 날 빤히 쳐다보았다.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취하는 이유를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그저 멍청히 서서 아트로포스만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대략 1분 여가 흘렀을 때, 마침내 아트로포스가 입을 열었다. "이드님…… 지금…… 피곤하지 않으세요?" "별로…… 피곤하지는 않은데?" "방금 전까지는 피곤하지 않았나요?" "……?" 얼라리? 방금 전까지 내가 피곤했었나? 음…… 우선 열 명의 식인종 아저 씨들을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으로 잠재웠으니까 그 때에는 엄청 피곤 했고…… 그러다가 헤로드를 부축하면서 왔기 때문에 더더욱 피곤해졌고… … 성물의 힘을 흡수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피로를 잊고 있었는데…… 지금은…… 피곤하지 않잖아? [번 호] 79 / 81 [등록일] 2000년 10월 06일 02:44 Page : 1 / 8 [등록자] THEBUR [조 회] 35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 첫번째 성물 -4-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40 게 시 일 :00/10/05 21:44:19 수 정 일 : 크 기 :7.1K 조회횟수 :93 "왜 안 피곤한 거지? 이상하네?" 아트로포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잠시 후, 난 내가 어째서 지금 피로하지 않은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것을 아트로포스에게 알리기 위해 그 말을 꺼낸 순간, 아트로포스도 나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성물 때문 아닐까?" "성물 때문 아닐까요?" "……." "……." 흘…… 아트로포스하고 내 생각이 모처럼 일치했군. 생각이 서로 같으니 까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걸? 어쨌든 이 십년수 열매의 능력은 피로 회복인 가? 근데 일회용이냐 재활용이냐? 이번 한번만 내 피로를 회복시키는 거야, 아니면 계속 내가 피로할 때마다 내 피로를 회복시키는 거야? 흠…… 아무 래도 성물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까 계속 효력이 생기겠지? 그럼 이제 아트로포스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겠군. "하여튼 이 열매가 성물인 건 확실한 거 같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우승 상품을 우리가 맘대로 처리했으니 케시 씨에게는 뭐라고 말하지?" "……." 아트로포스는 내 물음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그건 이드님이 알아 서 하세요'라는 사악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를 한 번 째려 봐준 다음에 두 쪽으로 쪼개진 십년수의 열매를 들고 그녀의 방에 서 나왔다. 그리고는 잽싸게 내 방으로 들어갔다. 성물을 맘대로 처리한 것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 때문에, 십년수 열매의 과육이나 마음껏 먹 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드 씨! 촌장님께서 찾아오셨어요!" 대회가 끝난 다음날 오전 10시쯤, 내가 방안에서 열심히 마법 수련을 하 고 있을 때 문밖에서 케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마나회로 건설 을 중단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촌장 노인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 다. "무슨 일이십니까?" 난 촌장 노인이 찾아온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얼굴 가득 히 의아한 표정을 떠올리며 물었고, 촌장 노인은 그런 날 쳐다보며 대답했 다. "어제 대회 끝날 쯤에 나타나 소동을 부렸던 그 작자들을 어떻게 처리하 실 것인지 궁금해서 왔소이다. 그들을 언제까지나 마을 안에 가둬둘 수 없 으니 어떤 방법으로든지 처리해 주시오." 아…… 어제 잡았던 그 식인종 아저씨들의 처리 문제 때문에 찾아온 거였 구나. 난 까마득히 잊어먹고 있었는데. "알겠습니다. 지금 같이 가도록 하죠." 이미 아침 식사를 끝마치고 방안에서 마나회로 건설을 하고 있었던 나였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나가도 상관없었고, 귀찮은 일은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촌장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난 촌장 노인과 같이 그 식인종 아 저씨들이 잡혀 있는 일종의 감옥으로 향했다. "그런데 정말 그 작자들을 개과천선시킬 수 있으시오?" 감옥으로 가는 동안 촌장 노인이 미심쩍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사실 그 물음에는 뭐라고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난 대충 얼 버무렸다. "우선은 되나 안 되나 해봐야죠." "……." 흘……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말라구. 내 생각에는 될 확률이 높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까 장담할 수는 없지. 어쨌든 그 식인종 아저 씨들을 개과천선시키면 좋은 거고, 실패하면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상관없잖아. "여기오." 어떤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춘 촌장 노인은 그 건물을 가리켰다. 식인종 아저씨들이라는 흉악범들을 가두어 두기 위해 예전부터 만들어 놨었던 듯 한 느낌이 드는 벽돌 건물이었다. 벽돌 건물은 이 요센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고, 게다가 철로 만들어진 문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이 건물이 얼마나 공을 들여 만든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 쩝…… 이런 건물을 범죄자 가두는데 쓰다니…… 하긴, 나무로 만든 보통 집에다 가두어 버리면 범죄자들이 통나무 벽을 부수고 탈옥할 가능성이 많 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건물이 아깝다……. 철컹! 끼이- 촌장 노인은 철 자물쇠를 열쇠로 따낸 후, 육중한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 는 나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라고는 몇 개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밖에 없었기 때문에 건물은 전체적으로 어두워 보였고, 밤이 된다면 아예 암흑 속에 잠겨버릴 것 같았다. 그런 건물 속에 쇠창살이 박 힌 여러 개의 감옥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감옥 속에는 각각 2명의 식인 종 아저씨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녀석이다!" "저 마법사 녀석 때문에!!!" "나가 죽어!!!" 약간 어두운 건물 안이었지만, 감옥 안에 틀어박혀 있던 식인종 아저씨들 은 촌장 노인 옆에 서 있는 날 발견하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 아저씨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댔기 때문에, 난 위협 차원 에서 불화살 하나를 만들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제일 시끄럽게 떠든 녀석에게 이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의 맛을 보 여주겠다. 누가 제일 시끄럽게 떠들었지?" "……!" 거의 발광하듯이 떠들어댔던 식인종 아저씨들은 내가 만든 파이어 애로우 를 보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건물 안은 일시에 정적으로 뒤덮였다. 그런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촌장 노인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흘흘, 어떻게 하냐고? 기분 같아서는 저 녀석들의 머리에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을 갈기고 싶지만,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려고 마음먹었으니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그 전에 하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저들에게 오늘 아침식사를 주었습니까?" 내 물음이 뜻밖의 것인 듯 촌장 노인은 잠시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내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식사를 주긴 했지만 먹지 않았다오. 사람 고기 아니면 안 된다고 해서." 흘흘…… 역시 그렇군. "그럼 저들에게 앞으로 3일 동안 물 이외의 음식은 주지 마십시오." "……?" 촌장 노인은 내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서 난 좀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저들이 스스로 사람 고기가 아닌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할 때까지 굶기라 는 얘기입니다. 만일 3일 후에도 다른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냥 굶어죽게 놔두시던 가요." "그렇게 하면 된단 말이오?" "성공할지 안 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난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얼굴 가득히 진지함이 철철 흘러 넘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처음엔 못미더워하던 촌장 노인은 그 방법 밖에 해결 책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헐헐,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저들을 굶겨 죽이지 않겠다고 사람 고기를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사람 고기에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면 몰라 도, 순수하게 그 맛에 매혹된 거라면 거의 죽을 정도로 굶기면 나중에는 아무 거나 먹게 되겠지. "빌어먹을 자식! 그런다고 우리의 입맛이 달라질 것 같냐?!" "차라리 우릴 죽여라!!!" 촌장 노인이 내 의견을 따르자 조용히 날 경계하던 식인종 아저씨들이 일 제히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그래서 난 한순간에 10발의 불화살을 만들어 그들을 위협했다. "소원대로 지금 당장 죽여줄까? 어디를 맞고 싶나? 머리? 심장? 아니면 거기?" "……!" 역시나 식인종 아저씨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죽을 생각도 없으면서 죽여달라는 그들이 나에게는 역겨웠기 때문에,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감옥을 빠져 나왔다. "이드 씨." "……?" 내가 막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건물 앞에 서 있던 케시가 날 불렀다. 다 친 헤로드를 보살피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케시가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난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드 씨가 십년수의 열매를 가지고 계시죠?" "……!" 헉! 이렇게나 빨리 케시가 십년수의 열매를 생각해 내다니! 헤로드가 다 쳐서 한동안은 십년수 열매에 대해 생각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어……! "그걸 어떻게……?" "처음엔 로스 씨에게 물었는데, 로스 씨가 이드 씨에게 있다고 하셔서……." "……." 흘…… 치사한 아트로포스…… 모든 책임을 나에게 떠넘겨버리다니…… 젠장,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기지? 이미 십년수의 열매는 다 먹어치워서 버 렸는데…… 으아…… 나 미쳐……! ━━━━━━━━━━━━━━━━━━━━━━━━━━━━━━━━━━━ [번 호] 80 / 81 [등록일] 2000년 10월 07일 23:05 Page : 1 / 8 [등록자] THEBUR [조 회] 28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 첫번째 성물 -5-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5-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78 게 시 일 :00/10/07 22:03:16 수 정 일 : 크 기 :6.8K 조회횟수 :49 "그게……!" 내가 케시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촌장 노인이 건물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발견했다. 만약 십년수의 열매를 내가 임의로 처리했다는 사실이 촌 장 노인에게 알려지면, 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난 즉시 케시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집에 가서 얘기하죠." "아, 네." 케시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다지 신경 쓰는 얼굴은 아니었다. 어쨌든 난 촌장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에, 케시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 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는 케시를 부엌으로 끌고 간 다음에 아무도 내 말을 엿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케시 씨." "……?"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했기 때문에 케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케시 에게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십년수의 열매를 꿀꺽했다는 것을 케 시가 용서해줄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하면 몰래 활동하는 것이 불편해질 수 도 있어서 사실을 숨긴 채 케시에게 용서를 구해야했다. "십년수의 열매는…… 제가 마음대로 먹어버렸습니다." "네?" 으으…… 역시 케시가 엄청나게 놀라는구만. 난 이제 죽었다……! "죄송합니다. 케시 씨의 허락없이 그런 짓을 해서……." "십년수의 열매는 그냥 먹는 게 아니에요. 요리에 넣어서 먹어야 그 가치 가 있는 거라구요." "……?" 케시의 말이 내 예상과는 약간 다르게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케시가 내 마음대로 십년수의 열매를 처리해 버렸다는 것에 화가 났다는 것은 변함없었기 때문에 난 다시 한번 용서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어떤 처벌을 내리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 케시는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난 그런 케시의 얼굴을 마주 대할 배짱이 없어서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렇게 잠시 지속되던 대치 시간은 케시가 먼저 입을 엶으로써 끝을 맺었다. "이드 씨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십년수의 열매를 처분한 것이겠죠?" "…… 예." "그럼 됐어요. 십년수의 열매야 어차피 요리 몇 번 하다보면 다 쓰게 되니 까요. 요리에 썼다고 생각하면 돼죠, 뭐." 케시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로 말했지만, 난 케시가 십년수의 열 매를 요리에 써보지 못해서 상당히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 었다. 흘…… 케시가 지금 엄청 서운해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케시의 기분 을 풀어줄 수 있는 거지? 케시에게 빚을 진 채로 마을에서 사라지는 건 마 음에 걸린단 말이야……. "대신 하나 조건이 있어요." 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케시가 갑자기 활짝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알 수 없었지만, 그다지 대단 한 조건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난 순순히 응했다. "어떤 조건입니까?" "저번에 하셨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달라는 거예요." "……?" 얼레? 저번에 내가 했던 약속? 그게…… 뭐였더라? 으윽…… 갑자기 기억 이 안 난다…… 뭐였지? 뭐였지? 지금 여기서 그 약속을 떠올리지 못하면 난 약속을 저버리려고 한 사악한 녀석이 되는 거라구……! "아, 마법사 양성 말입니까?" 케시는 느끼지 못했겠지만, 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 서 그 약속이라 짐작되는 말을 떠올리고 그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케시 에게 물어보았다. 내 물음을 들은 케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휴…… 맞았군. 틀렸으면 난 맞아 죽었을 거야. 그나저나 내가 그런 경솔 한 약속을 했다니…… 방금 전까지는 그 약속은 완전히 까먹고 그냥 마을을 떠나려고 했는데…… 이거 양심이 엄청나게 찔리는구만……. "그럼 언제부터 마법사 양성을 시작할까요?" 난 케시에게 그렇게 물으면서 마음속으로 지금 당장만 아니기를 하늘에 기 도했다. 그러나 하늘은 그런 내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렸다. "지금 촌장님에게 가서 부탁드리세요. 그럼 마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잘 선발해주실 거예요." "……." 흘…… 기껏 집으로 돌아왔더니 또 촌장 할배에게 가라니…… 흐으…… 하 지만 어쩌랴…… 이건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인걸……. "그럼 전 촌장님을 다시 뵈러 가겠습니다." "네." 결정된 사항은 빨리 해버리는 게 가장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난 즉시 케 시의 말대로 촌장 노인을 찾아갔다. 이 마을에서 내가 얼마나 머물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이 마을에 있는 동안은 케시와의 약속대로 마법사들을 키워내서 꿀개미 요리를 만들 수 있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일 후, 마을 감옥에 갇혀서 물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했던 식인종 아저씨들이 마침내 아무 음식이나 달라고 애원을 했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가장 평범한 음식을 갖다 주게 했다. 내 예상대로 그들은 그 평범한 음식을 미친 듯이 먹어치웠다. 역시 배가 고프면 음식의 맛 같은 것 을 느낄 겨를이 없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시오. 이런 방법으로 저들을 바꿔버리다니." 촌장 노인은 그 식인종 아저씨들이 처음 음식을 먹은 다음날에도 평범한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것을 보고 날 극구 칭찬했다. 비록 칭찬 받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 생각이 통했다는 것이 기뻤기 때문에 나 도 모처럼 웃었다. "이제 저들이 지금까지 지어왔던 죄는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처리하 십시오. 지금부터 저들은 죄를 지은 이 마을 사람입니다." "감사하오." 흘…… 별로 감사받을 일도 아닌데 감사한다는 말을 들으니까 엄청나게 쑥 스럽구만.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은 그 식인종 아저씨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해지는군. 뭐, 그건 마을 일이니까 외부인이 신경 쓸만한 것이 아니겠 지만. 찌르르릉-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가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계절 은 이미 여름이라 상당히 무더웠지만, 산간 마을이라 그런지 그다지 덥다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단지 밖으로 나가면 햇살이 점차 따가워진다는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후아……!" 드디어 끝냈군. 이 요센이라는 엽기 음식 마을에 들어온 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나? 하여튼 일주일 안으로 마법사를 양성하려던 내 계획은 여지없이 실 패해버렸고…… 흐으…… 1서킷의 마나를 까는 것도 이 마을 사람들은 전혀 못하니…… 뭐, 이 마을 사람들이 마법 같은 것은 거의 접해보지 못해서 그 렇겠지만. 어쨌든 무지하게 귀찮아. 내가 이런 마법 설명서를 써야 한다니 말이야. 똑똑- "케시예요. 차를 가져왔어요." 흘…… 이번엔 무슨 엽기적인 차를 만들어 왔을까. "들어오십시오." 끼이- 문이 열리고 찻잔이 놓인 쟁반을 손에 든 케시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 에 들어온 케시는 나에게 찻잔을 건네주고 내가 써 놓은 마법 설명서를 보 더니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벌써 다 쓰신 거예요?" "예. 간단한 설명서 수준이라 별로 길지 않습니다." "그래도 100장은 되는 것 같은데요……." "100장은 아니고 88장입니다." "……." 케시는 말없이 88장의 마법 설명서를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난 케시가 가 져온 차를 한 모금 마셔 보았다. 약간 단맛이 나는 차였지만 나로서는 어떤 엽기적인 재료가 이 차 안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케시에게 물어보았다. "차 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 있습니까?" "네? 아, 돼지의 침으로 잘 발효시킨 '레이프' 열매를 물에다 끓여서 만든 차예요. 맛 괜찮나요?" "맛있습니다." 흘…… 레이프 열매가 뭐였더라…… 아, 무슨 사과처럼 생긴 이 마을의 특 이한 열매였지. 하여튼 그걸 돼지의 침으로 발효시킨 다음에 물에다 끓였다 라…… 별로 엽기적이지도 않군. 이 마을에서 하도 이상한 음식만 먹었더니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야. "근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내가 말한 '그 사람들'이란 바로 식인종 아저씨들이었다. 어제 마을 사람 들이 모여 그들의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결 과가 궁금했던 것이다. [번 호] 81 / 81 [등록일] 2000년 10월 07일 23:06 Page : 1 / 8 [등록자] THEBUR [조 회] 30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0장: 첫번째 성물 -6-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0장:첫 번째 성물 -6-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879 게 시 일 :00/10/07 22:03:36 수 정 일 : 크 기 :7.5K 조회횟수 :47 "결정은 이래요. 그 사람들에게 평생 이 마을의 농작물과 가축을 돌보게 하자는 거죠. 대신 과거의 죄를 묻지 않기로 하구요." 흐음…… 일종의 재사회화인가? "하지만 그들에게 가족을 잃었던 사람들도 그런 결정에 따랐다니 의외군요." "네…… 아마 사람 고기를 먹던 사람들도 우리와 같다고 생각해서 용서해 준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이나 좀더 맛좋은 음식을 추구한 다는 것은 동일하니까요. 단지 그들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에 손을 댔을 뿐……." 흘…… 만약 내가 그 식인종 아저씨들에게 가족을 잃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걸? 당장 마법으로 통구이를 만들어 버렸을 테니까. 마을 사람들의 결정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이긴 하지만, 나야 이 마을 일에 끼어 들 이 유가 없으니까 신경 꺼야지. "근데…… 마법 설명서를 다 쓰셨으니 이제 떠나실 건가요?" 케시는 내가 써 놓은 마법 설명서를 내려다보며 나에게 물었다. 어차피 그 럴 생각으로 마법 설명서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 다. "예. 제 능력이 모자라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를 양성하지 못했 으니까 이런 방법으로라도 약속을 지켜야죠." "언제…… 떠나실 생각이세요……?" 그렇게 묻는 케시의 얼굴은 꽤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난 케시가 무엇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가버리면 이제 더 이상 꿀개미 요리를 만들 수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이 마을에 너무 오래 머물러서 가능하면 빨리 떠날 생각입니다. 근데 로 스는 어디 있습니까?" "로스 씨는 지금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계세요." 흘…… 언제는 이 마을 요리에 적응하는 걸 조심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 예 나서서 요리를 만드는구만. 뭐, 상관없어. 이제 곧 이 마을을 떠나게 되 니까. "그럼 전 로스와 상의하러 가보겠습니다. 떠날 날짜를 정해야 하니까요." 난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차를 목구멍으로 넘긴 뒤에 케시에게 그렇게 말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케시도 따라서 자리에 일어서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에요……." 뭔가 나에게 할말이 있는 듯했던 케시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난 곧장 방문을 열고 방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케시가 또다시 제 동을 걸었다. "꼭…… 떠나서야…… 하나요……?" "……!" 뭔가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케시가 방금 한 말, 지금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케시의 얼굴, 그리고 케시가 지 금까지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꿀개미 요리 만들자고 한 것, 그 모든 것을 종합해서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랬던가? 마법사 양성한다는 약속을 지키느라 바쁘게 지내던 나에게 계속 꿀개미 요리 만들자고 한 건 그것을 핑계 삼아 내 옆에 있고 싶었던 건가? 케시가…… 날 좋아하고 있었다는 건가?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면 케 시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약간 놀랬던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입을 열었다. "저도 이 마을이 싫은 건 아니지만, 제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떠 나려는 겁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어떻게 들으면 지극히 차갑게 들릴 만한 말을 한 나는 케시의 말도 듣지 않고 곧바로 방밖으로 나왔다. 방문을 닫기 직전에 본 케시의 얼굴은 너무 나 어두웠다. 눈물마저 글썽이던 것 같았으나 내가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는 건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해버렸다. 저벅저벅-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걸음이 왠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방금 전 까지는 마법 설명서를 다 써서 홀가분했던 기분이 지금은 상당히 무거웠다. 케시의 마음에 응해줄 수 없다는 것이 내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로스 씨는 요리도 참 잘하시는군요. 어떤 요리를 주로 하십니까? 아니, 어떤 요리를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는 요리 없으십니까?" 부엌으로 내려가자 부엌문 옆에서 헤로드가 누군가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부엌에 있는 사람은 아트로포스밖에 없기 때문에, 헤로드가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트로포스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가 부엌에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헤로드의 말소리만 들린 것으로 봐서는 아트로포스가 여전히 헤로드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헤로드 씨." "아, 이드 씨." 내가 인사를 하자 헤로드는 마치 야자 시간에 땡땡이를 치려다 들킨 아이 처럼 당황했다. 아트로포스를 꼬시려하고 있다는 것을 들킬까봐 당황한 것 이었다. 하지만 난 이미 처음부터 헤로드가 그럴 마음으로 우리를 이 집에 머물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로스, 잠깐 할 얘기가 있는데." 난 부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트로포스를 불렀다. 내 생각대로 부엌 안 에는 아트로포스밖에 없었는데, 내 부름에 아트로포스는 하던 요리를 멈추 고 날 쳐다보며 되물었다. "뭐죠?" "아, 이제 마법 설명서도 다 썼으니까 여행을 계속 해야지. 떠날 날짜를 상의하려고." "그렇군요." 흘……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군. 적어도 이 마을 을 싫어했다면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을 테고, 이 마을이 좋았다면 아쉬운 표정이라도 지었을 텐데…… 무표정하니까 이 마을을 떠나는 게 좋은지 싫 은지 알 수가 없어. "떠나신다구요?!" 내 말을 뒤에서 듣고 있던 헤로드가 굉장히 놀래며 소리쳤다. 어차피 난 헤로드의 그런 반응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예. 계속 이 마을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저희에게는 해야할 일이 있습 니다." "……." 흘흘, 역시 말을 못하는군. 하긴, 일이 있어서 떠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 냐. 아무리 아트로포스가 좋다고는 해도 헤로드에게는 이 마을을 지킬 사명 이 있으니까 우리를 따라올 수 없지. 후후, 짝사랑으로 끝나서 안타깝겠군. "로스, 언제 떠날 생각이야?" 난 속으로 사악하게 속으로 실실 쪼개면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내일 떠나기로 하죠." "……." 흘…… 저 말투를 보니 이 마을을 그다지 맘에 들어하지 않은 모양이군. 아니지, 아트로포스의 성격 상 이 마을이 싫었다면 아마 지금 당장 가자고 했을 거야. 그것은 이 마을이 어느 정도 좋았다는 소리인가? "내일 언제?" "내일 아침 식사하고 나서요."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구." 아트로포스와 간단하게 계획을 짠 나는 그대로 부엌을 나와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 했다. 그때 부엌 입구에서 우울한 얼굴로 서 있는 케시를 보게 되 었다. 나와 아트로포스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는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저 얼굴에 거짓 웃음을 띄우며 케시에게 인사한 뒤 그녀의 곁 을 스쳐 1층 계단을 올라갔다. 왠지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거의 곧바로, 나와 아트로포스는 헤로드의 집을 나 섰다. 우리를 배웅해준 사람은 헤로드였고, 케시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지냈던 2층 방 창문 사이로 케시가 날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쨌든 그렇게 썰렁한 배웅을 받으며 나와 아트로포스는 그대로 요센 마을에서 벗어났다. 저벅저벅- ……. 요센 마을에서 지낸 지 보름이 약간 지났는데도 여전히 발걸음 소리를 내 지 않는 아트로포스에게 내가 감탄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질문 을 던졌다. "케시 씨가…… 이드님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거…… 아셨어요?" "……." 흘…… 케시에 관한 건가? 아…… 괜히 기분이 우울해지는군. "알고 있었어."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날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떠나시는 건가요?" 흘……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다니…… 지난 보름 동안 아트로포스의 머리 도 상당히 굳은 것 같구만. "만약 로스가 나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겠어?" "……." 내가 그렇게 되묻자 아트로포스는 할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내 질문 을 끝으로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대화 없이 갈 길을 재촉했다. 물론 아트로포스가 성물을 아직 느끼지 못해서 목적지는 없 었다. 흘…… 역시 이 산을 완전히 내려가고 약간 헤맨 후에 아트로포스가 성물 의 기운을 느끼겠군. 흐으…… 목적대로 성물 하나는 회수했는데 기분이 왜 이러지? 앞으로 남은 성물을 모을 때도 계속 이런 기분일까? 걱정되는군……. ====================================================================== 어제와 오늘... 단 한줄도 못쓴...-.-;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2 / 84 [등록일] 2000년 10월 15일 22:54 Page : 1 / 13 [등록자] THEBUR [조 회] 18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장:보멜트족 오브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보멜트족 오브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991 게 시 일 :00/10/15 20:58:28 수 정 일 : 크 기 :12.3K 조회횟수 :61 <제 11 장> 보멜트족 오브(Obe) 따그닥- 따그닥- 나와 아트로포스는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마차를 타고 가는 중이 었다. 요센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났을 때 아트로포스가 성물의 기운을 느꼈 기 때문에 거의 일주일 동안의 마차 여행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흐으…… 이건 완전히 중노동 하는 기분이야. 그런데도 정신적인 피로가 없는 건 역시 십년수의 열매라는 성물의 힘 때문이겠지. 근데 왜 십년수의 열매는 정신적인 피로만 풀어주는 거냐? 육체적인 피로가 안 풀리니까 힘들 잖아! 같이 여행해서 지쳐있는 아트로포스에게 일일이 피로 풀어달라고 부 탁할 수도 없고! "아……!" 내가 속으로 성물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아트로포스가 무엇 인가에 놀란 탄성을 내질렀다. 그래서 난 당연히 물어보았다. "왜 그래?" "방금 성물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어서 마차를 세우세요!" 아트로포스는 금방이라도 화를 낼 듯이 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난 성물 이 가까이에서 느껴졌다는 말에 흥분하여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았 다. "아저씨! 마차를 세워요!!!" 난 마차의 창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마부에게 냅다 소리를 질렀고, 내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란 마부는 말고삐를 급히 잡아당기며 마차를 정지시켰 다. 이히히힝! 갑작스런 정지 명령에 말들은 반항을 했지만 이내 얌전히 마부의 말을 들 었다. 그렇게 달리던 마차를 급정거시키게 한 아트로포스는 즉시 마차에서 내려 길옆에 우거져 있는 나무숲 사이로 들어갔다. 나도 즉각 아트로포스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마부가 '마차값을 안 내고 도망가려는 수작' 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난 마부를 설득해야만 했다. "잠시 여기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절대 마차값 안 내고 도망가지는 않을 겁니다!" "……!" 난 어쩌면 마부가 우리를 더욱 의심하게 하는 말을 해버린 후에 즉시 아트 로포스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나무숲 사이로 아트로포스의 모습이 사라져버린 뒤였기 때문에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은 무리였다. 이런…… 이러다가 서로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그럼 난 성물을 모을 수도 없고 중용의 법칙도 실현할 수 없잖아! 난 이런 연고도 없는 세 계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부스럭- 그때 내 앞쪽에 있던 수풀이 흔들렸다. 그것은 절대 바람에 의해 흔들린 것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수풀을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즉시 마 나회로를 풀가동시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부스럭- "이드 님?" "……!" 수풀을 움직이게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아트로포스였다. 곰이나 산적이 아 님을 확인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멋대로 뛰쳐나간 아트로포스를 꾸짖 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품에 안겨있는 10살 정도의 초록색 단발머리의 아 이를 보고 그 말을 목구멍 저쪽으로 넘겨야 했다. 그때 아트로포스가 입을 열었다. "이 아이가 성물을 가지고 있어요." "……!" 에엑? 저 꼬맹이가 성물을 가지고 있다고? 이거 일이 왜 이렇게 잘 풀리냐? 성물이 날 제 발로 찾아오다니! 이건 열심히 살아가는 나에게 하늘이 감동 한 거야! "우선 많이 다쳤으니 마차 안으로……!" 아트로포스는 멍하게 서 있는 내 옆을 지나쳐 마차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난 아트로포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 아이가 피에 젖어 있었다는 것을 알 아채고 즉시 그녀를 따라갔다. 다행히 마차는 제 자리에 얌전히 서 있었다. "……!" 마부는 아트로포스가 안고 있는 아이가 피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눈 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가 아이를 안고 마차에 타자마자 마부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출발하십시오! 이 근처에 산적이 있습니다!" "아, 예!!!" 내 말이 거짓인 줄 모르는 마부는 피에 젖은 아이만 보고 정말로 산적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즉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이를 마차 에 태운 나는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구경했다. 아이의 얼굴은 피 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외모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하게도 상 당히 귀엽게 생긴 얼굴이라는 것은 얼핏 봐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여아인 지 남아인지 구별할 수 없는 얼굴이라는 거였는데, 머리가 단발인 것을 보 고 그냥 남자아이라고 넘겨짚어 버렸다. "이드 님, 어서 이 아이를 치유해주세요." 아트로포스는 눈짓으로 피에 젖은 아이를 가리키며 나에게 부탁했다. 아니, 그건 부탁이 아니라 거의 명령이었다. 중용자에게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트로포스로서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알았어." 별 수 없이 난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옮겨 아트로포스 옆에 앉았다. 그리고 즉시 마나회로를 모두 가동시켜 상처 치료의 과정을 떠올렸다. 우선 혈액 속에 들어 있는 혈소판이 응고해서 적혈구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상처 근처의 세포가 빠른 세포 분열을 해서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킨다…… 흘…… 우선 이렇게 외상만 치료해야지. 이 남자아이가 내 상을 입었다면 난 치료 불가능∼ 따그닥- 따그닥- 남자아이의 외상을 치유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 자아이는 외상 치유를 다 해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상 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내상이 있다면 어디를 다쳤는지 정확히 알아내야 치유가 가능하기 때문에 함부로 마법을 남발할 수 없었다. "로스, 지금 그 녀석 숨을 쉬고 있지?" 내 물음에 아트로포스는 날 매섭게 째려보았다. 하지만 난 그런 아트로포 스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 할말을 했다. "그럼 녀석 몸에 묻은 피를 닦아야지. 피가 잔뜩 묻은 상태로 마차에서 내 리면 사람들이 우리를 의심할걸." "그럼 어떻게 하죠? 이미 피가 완전히 굳어버려서 닦아내기도 힘든데." 아트로포스는 약간 걱정스런 얼굴을 해 보였으나 난 말없이 마법을 사용하 였다. 깊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피와 피부가 분리되는 이미지를 떠올렸고, 그에 따라서 남자아이의 몸에 묻어 있던 굳은 피가 툭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렇게 남자아이의 몸과 옷에 묻은 피를 대강 제거하고 나서 난 천천히 숨 을 몰아쉬었다.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시켰기 때문이었다. 흘…… 만약 십년수 열매의 힘을 흡수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정신적인 피로 로 쓰러져 버렸겠지. 확실히 성물의 힘이란 건 대단해. 근데 아트로포스는 저 남자아이에게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는데…… 저 녀석이 가지고 있는 성물은 과연 뭐지? 별로 가진 게 없어 보이는 녀석 같은데……. "로스, 근데 녀석한테서 계속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야?" 난 성물의 힘에 의해 조금씩 피로가 풀려 가는 정신을 느끼며 아트로포스 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었다. "왜 이 아이에게 계속 녀석, 녀석 그러는 거죠?" "……." 흘…… 갑자기 아트로포스가 왜 저러지? 혹시…… 저 아이…… 아트로포스 의 숨겨둔 아들 아니야? 음…… 맞아, 그럴 거야. 그렇지 않으면 아트로포 스가 저 아이를 저렇게 감싸줄 이유가 없어. "알았다고. 그 남자아이에게서 성물의 기운이 지금도 느껴져?" "네. 정확하게는 이 아이의 몸 속에서 느껴져요." "……!" 아트로포스의 대답에 난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성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 남자아이의 몸을 갈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녀석의 몸을 갈라서 성물을 꺼내야 하는 거야?" "……."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더욱 매서운 눈초리로 날 노려보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서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트로포스의 눈초리에 반발했다. "몸 속에서 성물이 느껴진다고 했잖아? 그게 정확히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예요." "……." 흐으…… 지금 아트로포스가 나한테 장난 하나? 나한테 맞아죽을려고 별 짓을 다 하는군. "좀더 자세히 설명해." 난 목소리를 쫙 깔고 거의 명령조로 말했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가는 나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아트로포스는 순순히 내 명령을 들어주었다. "이 아이는 '보멜트'족(族)이에요." "……?" 엥? 보멜트족? 뭐야, 그건? "보멜트족이라니?" "간단하게 말하면 물체를 자신의 육체 속에 저장시킬 수 있는 특수한 종족 이지요." "……?" 아트로포스는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무슨 재주로 자신의 몸 속에 물체를 저장시킬 수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멀뚱 초록색 머리의 남자아이만 쳐다보고 있자 아트로포스는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쉽게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지금 어떤 성물을 자신의 몸과 융합시킨 상태예요. 그래서 전 이 아이의 몸 속에서 성물의 기운을 느 끼는 것이구요." "……." 아트로포스의 설명에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무 슨 수로 몸 속에 성물을 저장시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의구심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보멜트족은 어떤 방법으로 몸 속에 물체를 저장시키는 거야?" "음…… 저도 잘 몰라요. 그냥 그렇다라고만 알고 있으니까요." "……." 흘……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대답이구만. 그럼 그냥 보멜트족은 몸 속에 물체를 저장시키는 능력이 있다라고 외우라는 소리냐? 학교 다닐 때 수학 공 식이나 암기 과목 같은 걸 죽어라고 외웠던 적이 있어서 암기하는 건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고. "근데 어떻게 그 아이가 보멜트족이라는 걸 알아낸 거야?" 난 계속해서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마저 아트로포스가 제 대로 대답해주지 않는다면 이 마차를 한 번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물론 생 각만 그랬을 뿐 진짜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보멜트족은 은은한 금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어요. 이 아이의 피부를 잘 보 세요." "……."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난 그 남자아이의 피부를 들여다보았다. 대충 볼 때에 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확실히 남자아이의 피부가 은은한 금색을 띠고 있 었다. 그것을 보고 내 머리 속에 아주 훌륭한 생각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에 난 즉시 아트로포스에게 내 생각을 말해주었다. "로스, 이 아이가 황금으로 이루어졌다고 하고 시장에 내다 팔자. 그럼 여 행 경비가 넉넉해질 거야." "……." 흐으……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마. 그냥 한번 해본 말인데 무지하게 노려보는구만. 아무래도 저 남자아이는 아트로포스와 어떤 관계가 있는 거 야. 역시 숨겨놓은 아들? "보멜트족은 자신들의 마을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요. 나왔다가는 이드 님 처럼 그들을 시장에 내다 파는 작자들이 있으니까요." 아트로포스는 무표정한 얼굴 가운데 불쾌하다는 빛을 떠올리며 날 비난했 다. 그러나 이미 그런 것에는 면역이 되어버린 난 그녀의 공격을 한 귀로 흘려버리고 나서 다시 물었다. "왜 보멜트족을 시장에 내다 파는 거야? 황금으로 된 것도 아닌데." "잘 생각해보세요. 보멜트족은 물체를 자신의 몸 속에 저장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그러니까 보멜트족의 몸 속에다 뭔가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물 건을 저장시키면 그 보멜트족이 스스로 그것을 꺼내지 않는 한 절대로 찾을 수 없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숨기는 방편으로 보멜트족을 많이 사는 거예 요." 호오, 그런 용도로 보멜트족이 쓰이고 있었군. 하지만 궁금증은 더해 가는 걸? "그러다가 보멜트족이 도망가버리면?" "그러니까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억압하는 거지요. 어떤 불 법적인 물건을 숨기기 위한 용도로 팔린 보멜트족은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아트로포스는 그 얘기를 하면서 연신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아이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연민이 섞인 따 스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흘…… 왠지 저 녀석이 부럽군. 난 아트로포스의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없 는데 말이야. 아트로포스는 아이를 좋아하나 봐? 뭐, 지금 저 녀석은 전형 적인 미소년이니까 귀여워하는 건 당연하겠지. "근데 로스, 혹시 그 아이도 어떤 사람에게 팔려갔다가 가혹한 생활을 견 디지 못하고 탈출한 거 아닐까? 아까 온몸이 피에 젖어 있었던 걸로 봐서는 누군가와 싸우다가 거기까지 왔었던 것 같은데."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추리를 아트로포스에게 말해주었다. 말없이 남자아이의 초록색 머리를 어루만져주던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추리에 동의 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죠. 이 아이가 저장하고 있는 물건이 성물이니까 틀림 없이 그럴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할거야? 그 아이가 깨어나면 성물을 달라고 할거야?" "……." 그런 내 질문에 아트로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가 성물 의 회수인 이상 반드시 그래야만 했지만, 쫓기다 다쳐서 정신을 잃어버렸던 아이에게 깨어나자마자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무리이기 때문이었다. "이드 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 흘…… 또 그 소리군. 하여튼 뭔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죄다 나한테 떠넘 겨 버린다니까.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녀석에게 성물을 달라고 하라는 거야? '목숨이 아깝다면 당장 성물을 내놓아라!'라고 할 수도 없잖아? "으으음……!" 어떻게 남자아이에게서 성물을 탈취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던 도중, 갑 자기 남자아이가 몸을 뒤척이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성물을 강제로 빼앗 느냐, 아니면 좀더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이냐를 당장 결정해야 하기 때문 이었다. "으으…… 여긴……?" 남자아이는 변성기가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 안 되 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남자아이를 내려다보며 부드 럽게 말했다. "마차 안이야." "……!" "……!" 나와 남자아이는 아트로포스의 얼굴을 보고 거의 동시에 놀랐다. 남자아이 야 아트로포스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놀란 것이었지만, 난 아트로포스가 처음으로 얼굴에 옅은 미소를 떠올린 것을 보았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얼∼ 아트로포스도 웃을 줄 아는군. 어린아이한테까지 무표정한 얼굴을 하 지는 않는구나. 이거 대단한 발견인걸? 역시 내 생각대로 아트로포스는 웃 으니까 더욱 예뻐 보인다∼ [번 호] 83 / 84 [등록일] 2000년 10월 15일 22:55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7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장: 보멜트족 오브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보멜트족 오브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992 게 시 일 :00/10/15 20:58:45 수 정 일 : 크 기 :14.3K 조회횟수 :56 "누, 누구세요……?" 남자아이는 약간 멍청한 표정으로 아트로포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이미 남 자아이에게서는 아트로포스에 대한 경계심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트로포 스가 너무 예뻤기 때문에 녀석은 아트로포스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흘…… 하여튼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예쁘면 경계를 하지 않는다니까. 아름다운 것 치고 나쁜 것은 없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인가? "내 이름은 로스, 그리고 저 분의 이름은 이드." "앗!" 아트로포스가 날 가리키며 내 소개를 하자 남자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아트 로포스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마차 안에 아트로포스만 있다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잔뜩 경계심을 품은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난 또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나원…… 남자인 내가 있으니까 바로 경계를 하다니…… 하여튼 기분 더러 워서 원…… 아, 좋아좋아. 나도 그러니까 같은 남자로써 봐주마. 운 좋은 줄 알아라. "안녕. 몸은 괜찮냐?" 난 최대한 나쁘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 하나 가득 웃음을 띄우며 남자아 이에게 말을 걸었다. 마차 구석에서 나와 아트로포스를 경계하던 남자아이 는 내 물음에 자신의 상처가 다 나아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랬다. "설마…… 저 누나가 날 구해준 거예요?" 남자아이의 말에 난 또다시 녀석의 고정관념을 알게 되었다. 녀석은 나와 아트로포스, 아니 좀더 나아가서 남자와 여자 중에서 누군가를 치료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여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남자아이는 자신을 치료한 사람이 아트로포스라 믿어버리고 그녀에게 어색하지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트로포스도 자신이 치료했다고 남자아이를 속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 는지 남자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난 왠지 사실을 숨기고 싶 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아니, 널 치료한 사람은 저 누나가 아니라 나야." "……!" 내 말에 남자아이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잔뜩 경계하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목적으로 날 구해준 거죠?" "……." 흐으…… 아트로포스가 치료해줬다고 생각했을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를 하더니…… 내가 치료해줬다고 하니까 무슨 목적? 갑자기 저 녀석을 패 서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너, 보멜트족이지?" 기분이 나빠진 나는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날렸다. 내 얼굴이 무서운 것인지 내 말투가 무서운 것인지는 모르 지만, 어쨌든 남자아이는 내 말에 잔뜩 겁을 먹으며 대답했다. "그, 그런데요……." "왜 그런 상처를 입은 거야?" "……." 난 이어서 질문을 던졌지만 남자아이는 그 질문에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 았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치료해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 했다. 흘…… 사실 확실히 난 저 녀석이 가지고 있는 성물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 만약 녀석이 성물과 하등의 관계가 없어도 난 녀석의 상처를 치료해줬 겠지. 난 워낙 착한 녀석이니까 말이야. 뭐, 녀석이 성물과 관계가 없었으 면 아트로포스가 녀석을 데려왔을 이유가 없었겠지만. "이름이 뭐니?" 남자아이가 입을 다물고 계속 나만을 경계하고 있자 마침내 아트로포스가 나섰다. 그렇게 아트로포스가 나서자마자 남자아이는 약간 경계심을 누그러 뜨리며 입을 열었다. "오브……." 크으…… 아트로포스가 묻자마자 바로 대답을 하다니…… 녀석을 진짜로 죽이고 싶다는 충동이 가슴 속 깊이에서 밀어닥치는구나……!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아트로포스는 오브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졌고, 나와는 달리 오브의 대답이 곧바로 날아왔다. "모두 죽었어요…… 그 나쁜 아저씨들에게……." 자신의 부모가 죽는 광경을 떠올렸는지 오브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그런 오브를 끌어안더니 부드러 운 어조로 말했다. "미안해…… 괜한 질문을 해서……." "흑흑……." 아트로포스가 안아주자 오브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양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사내아이랍시고 소리내어 엉엉 울지는 않았다. 어쨌든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모자(母子)처럼 서로 얼싸안고 있는 광경을 난 혼자서 외로이 지켜 봐야만 했다. 쩝…… 그래, 서로 끼리끼리 놀아라. 나 같이 사악하게 생긴 녀석은 구석 에서 찌그러져 있을 테니까. 아…… 내 얼굴이 그렇게 사악하게 생겼나……? "그런데 무슨 일로 쫓기고 있었던 거니?" 오브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려 아트로포스는 내가 했었던 질문을 오브 에게 했다. 이미 아트로포스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오브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떤 아저씨들이 갑자기 마을에 쳐들어와서 마을 아저씨들을 죽이고 아이 들하고 누나, 아줌마들을 잡아갔어요…… 그리고 우리 아빠가 소중히 가지 고 있던 검을 뺏으려고 해서…… 아빠 말대로 그 검을 가지고 여기까지 도 망쳐 온 거예요……." 흐음…… 호멜트족의 아이들과 여자들을 잡아갔다는 것은…… 그들을 잡아 서 시장에 내다 팔려는 속셈이었겠지. 힘이 센 남자들보다는 힘 약한 아이 들과 여자들을 잡는 게 수월하니까. 게다가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아이들이 나 여자 쪽을 선호하겠고. 그나저나 검이라…… 뭘까? 혹시 그 검이 우리가 찾는 성물 아닐까? "그 검이 그렇게 귀중한 거야?" 난 혹시나 해서 오브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나 역시나 오브는 내가 묻 자 잔뜩 경계만 할 뿐 전혀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오브 의 경계심을 풀어주기 위해 아트로포스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 흘…… 아트로포스…… 왜 나이 20세 밖에 안된 새파란 젊은이를 아저씨라 고 하냐? 내가 널 '할머니'라고 부르면 좋아? "……." 오브는 아트로포스의 말에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여전히 날 상대하기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의 관심은 오직 아트로포스에게 있었던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이 어떤 것인지 알려줄 수 없겠니?" 아트로포스는 내 질문을 약간 우회적으로 하면서 부탁조의 어조를 구사했 다. 오브가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하는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술책 이었던 것이다. 나보다 아트로포스가 더욱 영악하다는 것을 모르는 오브는 별 의심 없이 대답했다. "아빠가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이 세계를 구할 영웅에게 건 네줘야 한다면서요." 흐음…… 이 세계를 구할 영웅이라…… 그거 중용자 아니야? 만약 그 검이 성물 중의 하나라면 그걸 받을 사람은 당연히 나겠지? "그랬구나." 아트로포스는 오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코 오브에게 검을 보여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직 오브가 우리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풀지 않은 상태라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는 오브가 도망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에 너무 많은 진도를 나가지 않은 것이었다. 흐으…… 하여튼 아트로포스는 정말 영악하다니까. 오브가 가지고 있는 검 이 성물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만약 성물일 경우에는 여지없이 가져버린다 는 뚜렷하고 사악한 목적이 있는데도 그걸 감추고 저런 거짓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말이야. 존경스러워∼ 히이잉- 마차는 니아르 제국 내의 '렙소'란 도시에 도착했고, 이미 두 번째 성물의 행방을 알아낸 나와 아트로포스는 일주일 동안의 지루한 마차 여행을 끝내 고 모처럼 도시 생활을 즐겨보기로 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오브를 잘 구슬 려서 성물을 뺏어내자는 계략이 숨겨져 있었다. "와ㅡ!" 처음으로 도시를 본다는 오브는 돌로 만들어진 집들과 포장된 도로를 보며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가지각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도 탄성 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거의 보멜트족 마을에서만 살아왔던 오브에게 이 모 든 광경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우선 여관을 잡도록 해요." 아트로포스는 나와 오브를 보며 그렇게 내 생각을 묻듯이 말했으나, 난 아 트로포스의 말을 거역할 입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돈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아트로포스가 실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었 다. 저벅저벅- 타박타박- …….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오브는 여관을 찾기 위해 도시의 거리를 거닐었 다. 하지만 오브는 여관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찾는 건 나와 아트로포스뿐이었다. "로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난 오브가 도시 풍경에 정신이 팔려있는 틈을 타서 아트로포스에게 말을 걸었다. 아트로포스는 여관을 찾는 중에 갑자기 내가 말을 걸자 의아한 표 정을 지었다. "뭐죠?" "아니, 별 건 아닌데…… 오브 혼자서 보멜트족을 습격했던 침입자들에게 서 빠져 나올 수 있어? 오브는 이제 10살 정도밖에 안 됐잖아? 보멜트족의 남자들도 당해내지 못했던 그 침입자들을 녀석이 어떻게 따돌릴 수가 있지?" "음…… 그렇군요……." 내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가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는 나에게 말해주었다. "보멜트족에게는 물체를 몸 속에 저장시키는 능력이 있어요. 그것을 바꾸 어 말하면 물체 속에 자신의 몸을 저장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물론 그 역능력(易能力)을 가진 보멜트족은 흔치 않다고 해요. 하지만 오브가 역 능력을 가진 보멜트족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 흐음…… 물체 속에 자신을 저장시킨다라…… 오브에게 그런 역능력이 있 다고 하면 그 침입자들에게서 몸을 피했을 수도 있겠군. 여차하면 주변 사 물에 몸을 숨겨버리면 되니까. 녀석이 그렇게 다쳤던 건 역능력을 이용해 몸을 피하다가 실수로 걸려서 죽을 뻔했다 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툭- "……?" 내가 그렇게 아트로포스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접촉이긴 했지만 난 그다지 놀라지 않고 거 의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돌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했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건방진 인간은 웬 20대 후반쯤의 청년이었 다. "……." 난 말없이 그 청년을 노려보았다. 짧은 금발 머리에 잘 생긴 얼굴을 지녔 지만 입고 있는 옷은 일반 평민들과 다름없는 그 청년은 내가 노려보자 실 실 쪼개기 시작했다. "이거 처음 뵙는군요. 전 '스파트'라고 합니다. 이름을 알 수 없을까요?" "……." 뭐냐, 이 인간은? 어떻게 처음 보는 인간한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 으로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눈 하나 깜짝 안 하면서 내 이 름까지 물어보다니……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나? 그럴 리가? 아무래도 아 트로포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우선 내 환심을 사려는 수작 같은걸? "저한테 무슨 볼일 있으십니까?" 난 우선 스파트라는 청년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 고 질문을 되던졌다. 그러자 스파트는 갑자기 날 잡아 끌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연히 너에게 볼일이 있어서 부른 거다, 중용자 이그드라실." "……!" 갑자기 스파트의 말투가 달라진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내 정체 를 알고 있다는 것에 기겁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알아 채지 못했던 내 정체를 스파트가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너 누구냐?" 스파트가 좋은 목적으로 나에게 접근한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내 말투도 거칠어졌다. 물론 아트로포스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 소리였다. 스파트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 내 물음에 대답했다. "말했잖나. 스파트라고 말이야. 내가 알고 싶은 건 네 이름이다." "누가 순순히 대답할 것 같냐?" "호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서 당장 네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밝 혀버릴까?" "……!" 이 녀석…… 감히 나한테 협박을 한다 이거지? 이런 짜증나는 녀석은 인간 통구이로 만들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니까 마법을 쓰기도 그 렇군. 내가 봐 주마.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내 임시 이름은 이드. 됐냐?" 난 스파트의 협박을 무시하지 못하고 착한 아이처럼 대답해 주었다. 그렇 게 내가 이름을 밝히자 스파트는 나에게서 떨어지더니 다시 방금 전의 어조 로 말했다. "이드 씨였군요. 그럼 저 여자 분은?" "로스입니다." 아트로포스는 나와 스파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자 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트로포스가 이름을 밝히자마자 지금까지 도시 구경만 하고 있던 오브도 스파트에게 자기 소개를 했다. "전 오브예요. 로스 누나의 동생이죠." "……?" 얼레? 저 녀석이 언제 아트로포스의 동생이 된 거지? 얼씨구? 아트로포스 는 전혀 신경 안 쓴다는 표정이잖아? 흘…… 뭐, 오브는 보멜트족이라 많은 인간들이 노리고 있으니까 아트로포스의 동생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지…… 가 아니라 아트로포스는 보멜트족도 아닌데 어떻게 오브가 동생이 되냐고! 누가 봐도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남남이라는 건 알 수 있단 말이야! "하하, 넌 보멜트족이구나. 노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조심해야 할걸?" 스파트는 한눈에 오브가 보멜트족이란 것을 알고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 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오브의 피부가 금색임을 알 수 있었지만, 내가 중 용자라는 사실을 너무나 쉽게 알아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단순한 것도 나 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스파트 씨,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아트로포스도 스파트가 결코 좋은 의도로 우리에게 접근한 것이 아님을 알 았는지 꽤나 딱딱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하지만 스파트는 그런 아트로포 스의 물음을 완전히 무시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드 씨는 거미를 좋아하십니까?" "……?" 얼레? 거미? 갑자기 여기서 왜 거미 얘기가 나오는 거야? "거미는 대단한 존재이지요. 추한 생김과는 달리 거미집은 예술 그 자체니 까요." 흘…… 거미가 대단하다고? 추한 생김새라는 건 이해가 가는데 거미집이 예술 그 자체? 그거 과장이 심한 거 아니야? 거의 똑같은 형태만 반복해서 만드는데 뭐가 예술이냐? "이드 씨, 거미가 되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 스파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지금 이 작자가 나에게 무슨 말을 들으려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함부 로 뭐라 대답할 수 없어서 그냥 대충 둘러댔다. "전 거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하! 세상에 거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흘…… 이 세상을 잘 뒤져보면 거미 좋아하는 사람 많아. 네 녀석이 거미 싫어한다고 다른 사람들도 다 싫어하는 줄 아냐? "전 비유하고 있는 겁니다. 거미가 되어보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 잘 생각 해보십시오." "……." 스파트는 나보고 그 말의 속뜻을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난 그럴 생각이 눈 꼽의 먼지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난 스파트를 무시하고 아트로포스에게 어서 여관을 찾자는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마침내 스파트가 한 발 물러섰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 같군요. 오늘은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그럼 또 다음에 뵙죠." 스파트는 그 말을 남기고 유유히 거리의 인파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스 파트가 가버린 것은 괜찮았지만 자꾸 다음에 만나자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흘…… 스파트 녀석…… 이미 우리의 행로를 다 알고 있단 말인가? 어떻게 다음에 만나자는 말을 자신만만하게 할 수 있지? 도대체 스파트의 정체는 뭐야? "아까 스파트라는 사람이 이드 님에게 뭐라고 했었나요?" 아트로포스는 나와 스파트 사이에 주고받았던 말이 궁금했는지 그렇게 물 었다. 비록 그다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스파트가 내 정체를 알 아차렸다는 것은 알려줘야 했다. "스파트가 내 정체를 알아차렸어.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정말인가요?" "어." 내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못되어 정체를 발각 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아트로 포스를 안심시켰다. "아마 녀석은 우리 정체를 일부러 말하고 다니지 않을 거야. 녀석이 우리 를 노리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노리지 못하게 해야할 테니까. 그 러니까 들켜도 상관없어." "……." 아트로포스는 잠시 날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입 을 열었다. "그 사람의 입이 무거운지 가벼운지 이드 님이 아나요? 그리고 이런 식으 로 몇몇 사람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되면 나중에는 그 숫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단 말이에요." 흘……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군. [번 호] 84 / 84 [등록일] 2000년 10월 15일 22:55 Page : 1 / 15 [등록자] THEBUR [조 회] 17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1장: 보멜트족 오브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1장:보멜트족 오브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6993 게 시 일 :00/10/15 20:59:05 수 정 일 : 크 기 :14.9K 조회횟수 :54 "알았어. 다음부터 주의하면 되잖아. 근데 그건 그렇고, 어떻게 녀석이 내 정체를 안 거지?" 그것이 가장 궁금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스파트에게 정체를 발 각 당했는지를 알아야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 에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도 모르는 모양이었 다. "이드 님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게 어떤 정보를 흘려준 거 아니에요?" "모르겠어. 날 보자마자 내가 누구라고 말해버렸으니……." "그것 참 이상하군요.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나와 아트로포스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스파트라는 청년의 진정한 정체 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지만, 예상한 대로 완벽한 헛수고였다. 게다가 우 리가 생각하고 있을 때 우리의 하는 짓거리를 쳐다보던 오브가 말을 걸었기 때문에 그 헛생각도 멈춰야 했다. "정체라뇨? 이 아저씨 혹시 범죄자예요?" "……." 오브 녀석…… 왜 날 아저씨라고 불러? 게다가 범죄자? 내가 어딜 봐서 범 죄자처럼 생겼냐? 나 같이 착하게 생긴 인간을 범죄자라 매도를 하다니……! "로스, 시간 너무 지체했다. 빨리 여관이나 잡자고." 난 오브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고 아트로포스를 재촉했다. 아트로포스도 나 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오브를 무시했다가는 성물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 걱정했는지 오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드 님에게 너무 그러지마. 알고 보면 좋은 분이니까 말이야. 자, 빨리 여관 잡아서 편히 쉬자." "응!" 오브는 여관 잡고 쉬자는 말에 좋아하면서 아트로포스의 뒤를 쫄래쫄래 따 랐다. 어쨌든 아트로포스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오브에게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나도 아트로포스와 함께 여관 선정에 동참했다. 쿨……. 여관방 침대에서 곤히 잠이 든 오브를 옆에 두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방 탁자에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지금까지 긴장하면서 도망치다가 우리를, 아 니 정확히는 아트로포스를 만난 뒤로 긴장을 풀었기 때문인지 오브는 여관 방을 잡자마자 퍼질러 잤다. 난 오브가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라는 느낌 을 받을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런 느낌이 오자마자 작은 목소리로 아트로포스에게 투덜거렸다. "오브 때문에 방을 두 개나 잡다니…… 이러다가 여행 경비 거덜나면 어떡 해?" "괜찮아요. 정 안 되면 이드 님이 돈을 벌어오시면 되잖아요." "……." 어쭈구리…… 이젠 중용자를 아예 일꾼으로 만들 생각이냐? "그나저나 어떻게 할거야? 성물을 얻어야 하잖아?" "그렇죠." "……." 윽…… 왜 대답을 그렇게 짧게 하는 거야? 오브에게서 성물을 뺏어올 기막 힌 구실 같은 걸 생각해봐야 할 거 아니냐고! 또 나보고 알아서 하라는 소 리를 하면 죽인다? "나보다는 로스가 오브하고 친하니까 오브한테 검 좀 보여달라고 그래." 난 그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몸 속에 물체를 넣어놓을 수 있는 보멜트족은 자신이 직접 꺼내지 않는 한 타인이 몸 속 물체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오브에게 검 좀 보여 달라고 한 다음, 빠른 손놀림으로 그 검을 뺏어버리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브의 동의 없이 무조건 성물을 취하려는 거죠?"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뭔가 얘기만 하면 트집을 잡는 아트로포스의 행동에 내 어조는 퉁명스러워 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뭔가 방법이 있는 거야?" "아니요." "……." 으윽…… 지금 이 여자가 장난하나? 도대체 나한테 얼마나 맞아야만 정신 을 차리겠냐? 방법도 생각하지 않고 트집만 잡으면 뭐하냔 말이야! "이봐, 로스. 제발 생각 좀 하고 나서 말을 하라고. 왜 모두 나한테 떠넘 기는 거야?" "간단해요. 이드 님은 중용자니까요." 아트로포스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로 내 입을 다물 게 만들었다. 중용자로서 이 정도의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길…… 그래도 나 혼자서 모든 걸 처리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사람 은 더불어 사는 존재인데 어떻게 혼자서 해? 더불어서 해야지, 더불어서! "저 아저씨가 중용자?!" "……!" 그때 자고 있는 줄만 알았던 오브가 침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날 가리키며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자는 척하면서 나와 아트로포스의 말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흘……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브 녀석에게 완전히 속 아버렸군.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는걸?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사실대 로 말해서 맘 편하게 성물 달라고 하자! "그래, 내가 중용자다. 불만 있냐?" "말도 안돼…… 저런 악당 같은 아저씨가 중용자라니……!" 오브는 선량하게 생긴 나를 완전히 악당으로 매도하면서 날 피하려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마법으로 위협해서 성물을 달라고 협박하고 싶었지만, 내 이 미지를 생각해서 아주 부드럽게 나갔다. "악당이라고 생각하든지 착한 녀석이라 생각하든지, 어쨌든 내가 중용자라 는 말은 사실이야. 설마 중용자에 관한 전설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알고…… 있어." "그럼 중용자가 7개의 성물을 모아야 한다는 것도 알겠구나." "응……." 내 예상대로 오브 역시 중용자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브와 얘기하기는 더욱 쉬워졌다. 이제는 오브에게 검을 보여달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난 지금까지의 중용자가 했던 대로 성물을 모아야해. 하나는 이미 찾았고, 다른 하나는 지금 네 몸 속에 들어있는 검이야. 로스는 성물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네 몸 속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니까 그 검이 성물이라는 건 확실해." "그래, 네 몸 속에는 성물이 존재하고 있어." 내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아트로포스도 거들어 주었다. 나와 아트로포 스가 그렇게 강조를 하자 오브 역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이 성물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럴 지도 몰라. 아빠가 이건 영웅에게 줘야 한다고 했으니까." 흘흘, 이제 얘기가 술술 잘 풀리겠군. 그 영웅이 나라는 걸 알았으니 안 줄 수는 없을 거야. 만약 안 주면 오브 아빠의 유언을 들먹이면서 협박하는 수밖에! "난 네가 가지고 있는 검이 필요해. 그 검이 없으면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 없어. 너에게 있어서 그 검은 소중한 아버지의 유산이겠지만, 나에게 빌 려줬으면 해.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 있도록." "……." 오브는 여전히 침대에 앉아 입을 다문 채 날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지금 이 순간 오브에게 찍히게 되면 성물을 얻어낼 기회가 사라질 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최대한 선량한 얼굴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잠시 날 자세히 살피던 오브는 마침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저씨는 믿을 수 없으니까 그렇겐 못해." "……." 으으으……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 어조로, 선량한 얼굴을 하면서 부탁을 했는데 그걸 싸그리 무시하다니…… 너 나한테 밟히고 싶냐?! "하지만 네 검이 없으면 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 없어!"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약간 언성을 높여서 오브를 설득해보려고 했다. 그 러나 그런 설득은 오브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중용의 법칙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건 아저씨 일이니까 아저씨 알아 서 하라고." "……." 으으…… 속이 끓는다…… 뚜껑이 열리려고 한다…… 마나회로가 가동되고 마법이 실현되려고 한다…… 누가 나 좀 말려 줘……! "오브." "……?" 내가 막 자제력을 잃으려고 할 때, 아트로포스가 오브에게 다가가 녀석의 손을 잡았다. 아트로포스가 내 편임을 알고 있을 텐데도 오브는 아트로포스 의 접근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역겨운 얼굴 이 막 가라앉은 내 분노를 또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중용의 법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오브도 알고 있지?" 아트로포스는 오브의 손을 잡은 채로 오브에게 질문을 던졌고, 오브는 크 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오브의 행동은 내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으나, 지 금 아트로포스가 오브에게서 성물을 얻기 위해 오브를 설득하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난 잠자코 내 분노를 가라앉혔다. "중용자에게 있어서 성물인 네 검은 필요한 거야. 그 검의 힘을 취하지 못 하면 이드 님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 없게 되고, 이 세계는 전란에 휩 싸이게 될지도 몰라. 오브도 전쟁은 싫지?" "응." "그렇다면 검을 빌려줬으면 해. 네 아빠가 말씀하신 영웅은 바로 중용자를 뜻하는 거니까 말이야." 아트로포스의 말은 근본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내 말과 다른 점이 거의 없었 으나 어조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나보다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리고 오브의 반응이 즉각적이란 것이 그 증거였다. "알았어요. 누나가 하는 말이니까 거짓말은 아니겠죠. 검을 줄 테니까 잠 시 기다리세요." "고마워." 오브의 긍정적인 말에 아트로포스는 예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미소는 다분히 가식적이었다. 성물을 내준다는 오브에게 무표정 한 얼굴을 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런 아트로포스를 잘 모르는 오브는 그저 아트로포스의 예쁜 미소만을 보고 헬렐레하고 있었다. 흘…… 솔직히 아트로포스의 말보다는 내 말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나? 아 니라면 할말없지만…… 저 오브 녀석은 내 말은 무조건 안 듣는 것 같단 말 이야. 반대로 아트로포스의 말은 무조건 듣고. 아주 마음에 안 들어. "……." 오브는 말없이 눈을 감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트로포스는 거짓 미소 속 에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난 그다지 기대 같은 건 하지 않 았다. 오브 같은 녀석에게 뭔가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하기 싫었기 때문이 었다. 어쨌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갔고, 마침내 오브가 자신의 몸 속 에 손을 박더니 몸 속에 있던 무엇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마치 영화나 만 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 있어요." 자신의 몸 속에서 검신(劍身)의 길이가 1.5미터 정도이고 손잡이는 30cm 정도인 검을 꺼내든 오브는 그것을 아트로포스에게 건네주었다. 내 키보다 더 큰 검이었는데도 오브나 아트로포스는 마치 성냥개비를 집듯이 아주 가 볍게 그 검을 주고받았다. 흘…… 저것들 인간이야? 어떻게 저 무겁게 생긴 검을 가볍게 들 수 있는 거지? 아, 혹시 원래 저 검의 무게가 아주 가볍나? 흐음…… 아무래도 그렇 겠지? 뭐, 저 검이 성물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이드 님. 이 검은 분명한 성물이에요. 확인해 보세요."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들고 있던 검을 건네주었다. 검을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내 예상대로였다. 검의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 도 무게의 검이라면 세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충분히 휘두를 수 있었다. "……?" 얼레? 어째 검신의 색깔이 이상한 것 같다? 보통은 흰색이나 삐까번쩍한 철 색깔인데…… 이건 광택이 전혀 없잖아? 꼭 굳어버린 수은이나 납 색깔 같다? 얼라리? 자세히 보니까 이거 검신과 손잡이가 일체형이잖아? 손잡이 까지 이런 구린 금속을 사용하다니…… 이거 정말 성물 맞나? "로스, 이거 성물이야?" "말했잖아요. 성물이라고." "……." 난 미심쩍어서 물어보았지만 아트로포스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막바로 대답했다. 성물의 기운이라고는 벼룩 발바닥의 때만큼도 느낄 수 없는 나로 서는 그저 아트로포스가 성물이라면 성물이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 었다. 흘…… 이게 성물이라면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겠지? 검에게 특별 한 능력이란 뭐가 있을까? 우선 검의 무게가 상당히 가벼워서 다루기 쉽고 …… 아마도 검날도 날카롭겠지? 근데 그렇게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는데? 직접 시험해 봐야겠는걸? "……!" 난 내 머리카락 하나를 뽑았다. 아무 죄 없이 단지 실험용으로 쓰이기 위 해 뽑혀버린 한 올의 머리카락은 복수라도 하듯이 내 두피에 강한 통증을 남겼다. 어쨌든 난 검날을 위로 향하게 한 후, 그 검날 위로 방금 뽑은 싱 싱한 머리카락을 자유낙하 시켰다. 머리카락은 느릿느릿 떨어지다가 마침내 검날 위에 닿았고, 그리고 아주 멀쩡히 방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뭐야? 전혀 날카롭지도 않잖아? 머리카락을 떨어뜨리면 그냥 머리카락이 잘릴 정도로 예리해야 성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런 검을 가지고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가뜩이나 실력 없는 나인데! 《너 지금 장난하냐?》 "……!" 그때 갑자기 내 머리 속으로 어떤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출처는 바로 내가 들고 있는 야리꾸리한 검이었다. 검 자체에는 그 어떤 진동도 없 었지만 목소리는 분명 그 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생전 너처럼 바보 같은 중용자는 처음 본다. 머리카락을 검날 위에 떨어뜨려서 예리함을 판가름하려고 하다니…… 너 또라이지?》 "……." 뭐냐, 이 싸가지 없는 말투는? 한낱 검 주제에 지금 나하고 말싸움하자는 거냐? 이게 불 속에 처박히고 싶나? 《불 속에 처박혀서 녹을 정도면 내가 성물이겠냐? 머리 더럽게 안 돌아가 는 놈이군!》 "왜 그러세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내가 검의 욕설을 듣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트로포스가 의아한 얼 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지금 이 검이 내 욕을 하고 있어서 말이야." 《내가 언제 욕했다고 그래? 난 어디까지나 사실을 얘기했을 뿐이다!》 "원래 그 검은 지난 900년 동안 단 한번도 성물의 자리에서 빠져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 검만이 유일하게 성물이라고 드러난 것이지요." 검의 욕설과 아트로포스의 설명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기 때문에 내 머리는 그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가 없어서 시스템이 다운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다시 내 머리를 부팅시킨 후에 검의 욕설은 무시하고 아트로포스 의 설명을 다시 한번 읽어들이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설명해 줘."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 검은 지금까지 9번의 중용의 법칙이 실현되 는 동안 계속 성물의 자리를 지냈던 유일한 물건이니까요." 얼레? 이 검이 계속 성물이었다고? 말투 더러운 이런 검을 가지고 싸워야 했다니…… 지금까지의 중용자들이 불쌍하구만. 아차, 그러고 보니 나도 이 검을 가지고 싸워야 하잖아? 으윽…… 나도 불쌍한 녀석이 되겠구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삽질하는구만. 어떻게 너 같은 녀석이 중용자가 된 거냐?》 검 녀석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인지 내 욕을 해댔다. 하지만 난 녀 석의 속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선 성물과 사이좋게 지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네 이름은 뭐냐?" "네?" "……?" 난 검 녀석에게 질문을 한 것이었지만, 아트로포스와 오브는 내가 자신들 에게 질문을 한 줄 알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난 급히 변명을 했 다. "아니, 이 검한테 물어본 거였어." 《병신! 나한테 물어볼 때는 그냥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면 돼. 뭣하러 입 아프게 말을 하냐? 그렇게 응용력이 없어? 당장 중용자 때려 치는 게 어때?》 "……." 으으…… 이 녀석은 오브보다 더 열 받게 하네? 입 닥치고 이름이나 밝히 시지? 《너 또라이냐? 입 다물고 어떻게 말해? 그리고 나한테는 입이 없어!》 "……." 난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녀석의 욕설을 들어주었을 뿐이었 다. 녀석과 말다툼하는 것은 나에게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 던 것이다. 그러자 녀석은 나에게 곧바로 자기 이름을 밝혔다. 《내 이름은 '실버럭서스'. 간단히 '실버'라고 생각해라.》 흘…… 이름 한번 구리군. 어떻게 이름이 은[Silver]일 수가 있어? 수은 [Mercury]이나 납[Lead]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편이 훨씬 잘 어울 릴 것 같은데. 《거, 신참 중용자 주제에 말도 드럽게 많군. 고참 말에 일일이 토달지 마!》 실버럭서스가 자기 자신을 '고참'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나에게는 우스웠다. 그러나 그것은 잘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전혀 반박을 하지 못하자 실버럭서스는 자기 자랑을 아주 유창 하게 하기 시작했다. 《지난 900년 동안 9명의 중용자 곁에 있으면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때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냈던 나다. 내가 없었다면 중용의 법칙은 실현되지 못했을 거다. 그만큼 난 엄청난 존재이며 너 같은 신참 중용자는 내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 중용자가 성물의 말에 복종해? 도대체 그런 썩어빠진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검 녀석이 어떻게 성물일 수가 있는 거야? 이 세계도 말세구나 말세야! 쨍강! 나와 실버럭서스가 마음속으로 욕설을 서로에게 퍼붓고 있을 때, 무엇인가 가 창문을 깨고 날아왔다. 그것은 정확히 내 이마의 한가운데를 표적으로 하고 있었다. 창문을 깨고 날아왔음에도 속도에 변화가 없는 그 날카로운 물체를, 나 같이 운동 신경이 느려터진 사람이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얌전히 암기를 정통으로 맞고 저승으로 가는 길밖에 없었던 것이다. ===================================================================== 지난주 내내 아침 6시 30분에 집을 나와서 저녁 10시 이후에 집에 들어가는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매주 두세 개씩 레포트를 내야하기 때문에... 당분간 그 생활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시험기간이 한달 내내라는 건 장난이 아니군요... 흐으... 이거 올린 다음에 과연 언제 또 올릴 수 있을지....-.-;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5 / 87 [등록일] 2000년 10월 22일 20:11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28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2장: 바이오 에고 소드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바이오 에고 소드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070 게 시 일 :00/10/22 10:08:53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23 <제 12 장> 바이오 에고 소드(Bio-ego Sword) 팍-!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던 암기는 내 뒤에 있는 벽에 자리를 잡고 꽂혔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 이마가 멋지게 꿰뚫렸을 테지만, 아트로포스의 아버지 인 텔에게서 그 참혹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지 뭔가 위협적인 것이 날아오 자 내 몸이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해버린 것이었다. "밖에 누구냐?!" 난 암기가 또 날아올 것을 대비하면서 깨진 창문 밖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은커녕 암기만 줄줄이 날아왔다. 파파팍-! 또다시 내 뒤쪽에 꽂히는 여러 개의 암기들. 밖에서 날 노리고 있는 자들 이 몇 명이고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표적이 나뿐이란 것은 확실했다. 《밖에 5명이 있다! 여기 있으면 암기 맞아 뒈지니까 빨리 밖으로 나가!》 밖에 5명? 눈도 없는 녀석이 그런 건 어떻게 알아? 너 구라칠래? 《900년 동안 싸워온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 같냐, 이 빙신아!》 욕은 왜 해? 너 죽도록 맞고 열 대 더 맞고 싶냐? 《또 암기를 던지려고 한다! 어서 나가! 이건 독암기야!》 실버럭서스는 계속해서 나보고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녀석의 그런 명령조 의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방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피한다는 건 어려운데다 만약 적들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와 날 공격한다면 마법밖 에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내가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버럭서스의 말대로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물론 내가 나오자마자 적들이 암기를 날릴 것을 대비해 땅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몸을 옆으로 굴렸다. 파팍-! "……." 내 예상대로 내가 발을 디뎠던 자리에는 암기 여러 개가 꽂혀 있었다. 어 쨌든 난 그들이 다시 암기를 날릴 것에 대비하면서 그들이 어디에 숨어 있 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적들은 창문 밖에 버젓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5명 모두 건장한 체격의 아저씨들이었다. 흐음…… 적은 모두 5명인가…… 실버럭서스의 말이 맞았잖아? 으윽…… 괜히 내가 녀석에게 진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날 노린 거냐?" 난 다섯 명의 적들을 향해 아주 띠꺼운 어조로 질문을 날렸다. 그러자 다 섯 명의 아저씨 중에서 양쪽 뺨에 칼자국이 흉하게 나 있는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꼬마를 내놔라." "……?" 얼레? 꼬마? 갑자기 웬 꼬마? 꼬마가 어디 있다고 나한테서 꼬마를 찾는… … 아, 오브 녀석 말인가? 만약 저들이 원하는 꼬마가 오브라면…… 저들이 바로 오브 녀석 동네를 쓸어버린 인간들? "바로 저 아저씨들이에요!" 그때 깨진 창 사이로 고개를 빠꼼히 내밀었던 오브가 내 앞에 서 있는 다 섯 명의 아저씨들을 보고는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그런 오 브를 즉시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계속 창문 사이로 목을 내밀고 있다가는 날아오는 암기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꼬마는 왜 노리는 거냐?" 난 다섯 명의 아저씨들에게 소리쳤고, 대답은 여전히 그 칼자국 아저씨가 했다. "꼬마가 보멜트족이란 건 네놈도 알 거다. 그럼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겠 지." "삽질하고 서 있네." "……!" 내 말에 칼자국 아저씨의 보기 흉한 뺨이 씰룩였다. 난 그런 칼자국 아저 씨는 노려보면서 말을 이었다. "겨우 보멜트족 아이 하나 잡으려고 다섯 명이 다 출동하냐? 너희들이 진 짜로 노리는 건 이 검이잖아? 그래서 아까 계속 나만 노렸던 거고. 아니냐?" "후후." 칼자국 아저씨는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미소는 뺨에 나 있는 흉터 때문에 지극히 사악하게 보였다. 게다가 원래 그 인간은 나쁜 의미로 미소를 지었던 것이라 그 미소는 더더욱 사악해질 수밖에 없었다. "네 말이 맞다. 보멜트족을 잡아서 파는 것보다는 그 검을 얻는 것이 더 남는 장사니까 말이야. 자, 이제 우리의 목적도 알았으니 어서 그 검을 넘 겨 주실까?" "……." 흘…… 어차피 내가 그 말을 듣지도 않을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저런 형식적인 말을 하는 걸까? 악당들이 뭔가를 뺏으러 올 때 맨날 하는 거잖아. '좋은 말할 때 줘라'라는 말은. "내가 줄 거라고 생각하냐?" "……." 내 띠꺼운 대답에 칼자국 아저씨는 씨익 웃었다. 그 웃음은 검의 존재를 알아챈 나를 살려둘 수 없다는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즉시 마나회로를 가동시키며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어쭈? 검 잡은 자세도 엉성하면서 마나회로는 많이 깔았네? 이거 의외인 걸?》 시끄러! 너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네놈 같은 풋내기는 내가 나설 필요도 없어." 칼자국 아저씨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대신 네 명의 쫄따구들을 앞으로 나가게 했다.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검으로 녀석 들과 승부를 내려고 하면 나만 죽을 게 뻔했기 때문에 난 즉시 마법을 가동 시켰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컥!" "어어억!" 마법이 발동되자마자 네 명의 아저씨들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신 음만 내질렀다. 거대한 공기의 압력이 위에서부터 누르고 있었으니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네 녀석, 마법사였구나!" 내 마법을 보고 내가 무시 못할 존재라는 것을 느낀 칼자국 아저씨는 즉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는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내가 마법을 사 용할 시간을 주지 않게 하려고 무조건 뛰어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 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마나회로라는 독특한 것이 깔려 있는 이 세계에서는 마법을 구현할 때 오직 생각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으악!!!" 칼자국 아저씨는 내가 구현한 바람에 의해 하늘 높이 들어올려졌다. 순간 적인 생각에 의해 구현한 마법이라 약간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견딜 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칼자국 아저씨에게 마법을 사용해버려서 포스 프레셔 로 묶여 있었던 네 명의 아저씨들이 자유를 되찾았다는 것이었다. "죽어라!!!" 네 명 중에서 머리를 길게 기른 못 생긴 아저씨가 나에게 암기를 던졌다. 방금 전에 포스 프레셔 때문에 몸 컨디션이 제대로 돌아왔을 리도 없건만 그 암기는 정확히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만약 그가 내 편이었다면 칭 찬을 해주었을 테지만, 내 적이기 때문에 속으로 무지하게 욕을 해댔다. 슈웅- 암기가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려왔다. 이번에도 역 시 텔에게서 받은 혹독한 훈련 때문에 내 몸이 조건 반사적으로 암기를 피 한 것이었다. 《뒤에서 적이 온다! 피해!》 "……!" 부웅-! 내가 실버럭서스의 외침에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피했을 때 허공을 가르는 음향이 내 귀를 강타했다. 장발의 추남 아저씨가 암기를 날림과 동 시에 다른 아저씨가 뒤에서 날 공격해왔던 것이다. 그것은 나머지 두 아저 씨도 내 빈틈을 노려 합동 공격할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두 걸음 옮기면서 그쪽에다 마법!》 콰앙-! "커헉!" 실버럭서스의 지시에 따라 오른쪽으로 두 걸음을 옮기고 나서 그 자리에다 가 소형의 파이어 볼을 떨어뜨리자 한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 다. 그 순간에도 실버럭서스의 지시는 계속되었다. 《앞으로 뛰어가면서 그쪽에 마법!》 콰앙-! 《멈추고 네놈 주위에 파이어 스톰을 일으켜!》 엥? 파이어 스톰? 마법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잖아? 한낱 검 주제에 제법이군! 화르륵-! 난 실버럭서스의 말대로 파이어 스톰을 일으켜 내 주변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켰다. 이렇게 연속해서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머리에 그다지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역시 성물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날아올라!》 크윽…… 주문이 왜 그렇게 많은 거야? 슈우욱- 포스 프레셔 언더(Under)를 사용하자 내 몸은 하늘 위로 무섭게 치솟아 올 랐다. 포스 프레셔 오버(Over)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이고 언더(Under)는 아래에서 올려 누르는 것이라 위가 훤히 트인 곳에서 포스 프레셔 언더는 아주 좋은 부유 수단이었다. 물론 힘 조절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리가 부 러져버리는 위험이 있었지만. "뭐, 뭐야?" "어디로 갔지?!" 포스 프레셔 언더를 사용한 결과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파이어 스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그에 따라 다섯 명의 아저씨들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멍청히 고개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런 좋은 기 회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로 녀석들을 공격해!》 시끄러! 그럴 생각이었다고! "파이어 애로우!!!" 난 일부러 힘차게 소리치며 파이어 애로우를 형성했다. 내 외침이 허공에 서 들려오자 아저씨들은 놀라 위를 쳐다보았고, 그 순간에 그 누구도 서 있 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 정지한 표적을 향해 화살을 날릴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피융-! "……!" 파이어 애로우는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땅 위에 서 있는 아저씨들 에게로 날아갔고, 그제서야 화살이 날아옴을 알아챈 아저씨들은 몸을 피하 려고 했다. 그러나 날 공격하기 전에 내게서 받았던 포스 프레셔나 바람 공 격 때문에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질 못했고, 결국 다섯 명의 아저씨 모두 내 파이어 애로우에 꿰뚫리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탁- 내 공격이 성공한 것을 확인한 나는 가볍게 땅 위에 착지했다. 하지만 파 이어 애로우에 맞아 죽거나 아까 전의 파이어 볼에 의해 처참한 몰골이 된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지극히 우울해졌다. 게다가 살아 있는 녀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내 기분을 더욱 침잠시켜 버렸다. "사, 사, 사람이 죽었다!!!" "사, 살인이다!!!" "사, 사람 살려!!!" 여관에 있던 사람들과 그 주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던 사람들은 5구의 처 참한 시체를 보고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이곳에 계속 남아 있다가는 경비 대에 잡혀서 철창 신세를 질 것 같았기 때문에 난 방안에 숨어 있는 아트로 포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어서 '이 자리를 뜨자'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어떤 사람이 아주 큰 소리로 놀라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건 살인이 아닙니다! 저쪽에 죽어 있는 사람들은 악당이란 말입니다!" "……?" "쓰러져 있는 자들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이들을 대낮에 살해한 저 청년의 얼굴을 보십시오! 어느 쪽이 더 악당이라고 생각합니까?" "……." 뭐냐? 갑자기 웬 얼굴 비교야? 얼굴을 가지고 그 사람이 착한지 나쁜지 판 단하라는 거냐? 그거 아주 위험한 생각인데? 그나저나 이 목소리……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죽은 놈들이 악당이다!" "맞아!" "그럼 저 청년은 좋은 일을 한 거구나!" "대단한데! 혼자서 다섯 명을……!" 얼굴 비교하라는 말에 정말로 나와 아저씨들의 얼굴을 살펴본 사람들은 아 저씨들을 악당으로 몰아세우며 날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단지 얼굴만으로 선인과 악인을 판단해버린 사람들이 혐오스러웠지만, 그런 단순함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 사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간단하게 빠져 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1 ㅈ [번 호] 86 / 87 [등록일] 2000년 10월 22일 20:13 Page : 1 / 20 [등록자] THEBUR [조 회] 268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2장: 바이오 에고 소드 -2-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바이오 에고 소드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071 게 시 일 :00/10/22 10:09:10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21 "좋은 일을 하셨군요, 이드 씨." "……!" 사람들의 동요를 멈추게 하는 말을 했던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아주 친 근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내 이름을 아는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스파트였다. "스파트……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 난 작은 목소리로 스파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파트는 실실 쪼개며 입을 열었다. "이 상황을 진정시켜준 사람에게 말투가 그게 뭡니까? 제대로 대접을 해주 지 않으면 당신을 이 세계 최고의 악당으로 만들어버릴 겁니다." "……." 어쭈구리…… 감히 나에게 협박을 한다는 거냐?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녀석 이야…… 하지만 어쩌랴…… 녀석은 내가 중용자라는 것도 아는데 난 녀석 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니 협박할 거리도 없고…… 억울하게 녀석이 하라는 대로 하는 수밖에…….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어떠신지요?" "하하, 시간이야 많습니다. 이거 마법사 님과 얘기를 나누게 되다니 영광이 군요."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죠." "예." 나와 스파트는 그런 입 발린 소리를 하면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 은 그런 우리를 보며 고개만 연신 끄덕일 뿐 시체를 치우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무리 악당을 물리친 영웅이라도 시체를 그대로 두고 가버리 면 나중에 죽도록 욕먹을 지도 몰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몸께서 친히 시체 처리를 해야 했다. "에어 스톰(Air Storm), 토네이도(Tornado)." 휘이잉- 내가 형성한 공기 폭풍에 의해 다섯 구의 시체들이 일제히 하늘 위로 떠올 랐다. 그리고 나서 시체의 표면적을 극소화시키기 위해 포스 프레셔를 사용 했다. "포스 프레셔, 어라운드(Around)!" 우득- 우드득- 허공에 떠올랐던 다섯 구의 시체들은 사방에서 밀려들어오는 공기 압력에 형체가 일그러지며 축소되었다.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진 상태일 테지만 사방에서 압력이 작용하고 있어서 피가 밖으로 터져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 다. 그렇게 시체들의 표면적을 극소화시킨 나는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 "파이어 포인트(Fire Point), 익스플로젼(Explosion)!" 콰앙-! 포스 프레셔 어라운드에 의해서 공기 압축이 일어난 상태에다가 점화를 시 켰더니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다섯 구의 시체가 폭격을 맞은 듯이 터져 나 갔다. 그러나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압력 때문에 압축된 공간에서만 피가 튀 고 난리가 났을 뿐이었다. "오오ㅡ!" "저것이 진정한 마법인가!" 사람들은 내가 시체 처리를 하는 걸 보더니 완전히 넋을 잃었다. 어쨌든 잠 시 간의 폭발과 열에 의해 뼈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소거가 되어버린 시 체들은 사방의 압력이 사라지자 먼지처럼 지상에 떨어져 내렸다. 주로 떨어 지는 건 가루가 되듯이 부서진 뼈들이었다. "오오ㅡ!" 하늘에서 뼈 조각이 떨어지는 섬뜩한 광경을 보고도 사람들은 연신 감탄만 했다. 내 행위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모양이었다. 흘…… 이 세계에서도 살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건가? 그래서 사람 죽 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거야? 흐음…… 어쨌든 오랜만에 사람을 죽였더 니 기분이 우울하군. 이제는 더 이상 사람 죽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 데. "자, 들어갑시다." 난 시체 처리를 끝내자마자 스파트와 함께 당당히 여관의 정문을 통해서 안 으로 들어갔다. 이미 상황이 내 쪽으로 기운 이상 도망칠 필요가 없었기 때 문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상황을 지켜봤던 실버럭서스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오∼ 벌써 성물의 힘을 흡수한 거냐? 그렇게 마법을 써도 안 쓰러지다니.》 놀라는 척 하지마. 겨우 하나 얻었을 뿐이니까. 뭐, 네놈을 포함하면 이제 두 개를 모은 셈이지만. 《뭐, 성물 모으는 거야 네 녀석 일이니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더 이상 사람 죽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니? 네가 무슨 킬러냐?》 시끄러. 난 이래봬도 과거가 많은 인간이야. 과거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 을 거니까 아마 네 녀석은 죽을 때까지 내 과거를 모를 거다. 《네놈 과거 따위 누가 알고 싶댔냐? 그런 거 알아서 나한테 도움되는 게 뭐가 있어?》 그럼 애초부터 말을 꺼내지 말았어야지! 네 녀석이 말을 시키니까 그렇잖아! 《괜한 말 시켜서 미안하군.》 쿵- "……!" 처음으로 실버럭서스의 말빨을 이긴 순간, 앞을 보고 걷지 않아서인지 열린 문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이 아닌 문 옆의 벽과 부딪치고 말았 다. 그것을 보고 실버럭서스, 스파트, 아트로포스, 그리고 오브가 각각 한 마디씩 했다. 《대단한데 또라이! 벽을 통과해서 방으로 들어가려는 묘기를 보여주려 하 다니!》 "이드 씨, 앞을 보고 걸으십시오." "이드 님, 어디 아픈 건가요?" "저 아저씨가 정말로 중용자?" "……." 으으…… 인간들이 한꺼번에 말을 하니까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파악이 안 된다…… 가뜩이나 벽에 헤딩해서 정신이 없는데 모두 날 놀리다니…… 마법으로 모두 날려버린다? "아니, 잠시 정신을 팔아서." 난 그렇게 변명을 한 다음에 방안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방안 에 의자가 모두 4개가 있었기 때문에 각각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 었다. 본래 난 스파트와 마주 앉으려고 했지만 오브 녀석이 아트로포스의 옆자리를 고집했기 때문에, 결국 난 재수 없는 오브 녀석과 마주보며 앉아야 만 했다. "창문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오른쪽 옆에 앉은 스파트는 깨져버려서 바람이 휭휭 들어오는 창문을 가 리키며 말했다. 창문 밖에는 아직도 사람 몇 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여기 서 얘기를 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얘기를 들을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대답해주었다. "재주 있으면 막아봐." "…… 그렇군요." 내 대답에 스파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누 가 얘기를 듣던 말던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나도 스파트와 같은 생 각이었지만 아트로포스는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가 여관 주인에게 가서 새 창문을 달라고 하겠어요. 그 사이에 얘기를 주고받지 마세요." 나와 스파트에게 그런 으름장을 놓은 그녀는 오브와 함께 여관 주인에게로 갔다. 하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고, 스파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 "너의 위치는 쉽게 알아낼 수 있어." "그러니까 어떻게 알아냈냐고." "내가 왜 그걸 알려줘야 하지?" "꼭 고문을 받아야 불겠냐?" "중용자가 무고한 사람을 고문해도 된다고 생각하나?" 나와 스파트는 그렇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말만을 주고받았다. 서로 자신 에 대해 숨기면서 남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했기 때문에 헛소리만 하고 있었 던 것이다. "도대체 나한테 원하는 게 뭐냐?" 난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스파트는 실실 쪼개면서 대답했 다. "그야 전에도 말했듯이 거미가 되라는 거다." "거미? 거미 인간이 되라고? 너 미쳤냐?" "생각이 참 단순하군. 뭐 상관없어. 나중에 가르쳐줄 테니까." 흘…… 나중에 가르쳐 준다고? 그럼 앞으로 네 녀석의 그 상판때기를 또 봐 야한다는 거냐? 너 같이 뭔가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녀석만 보면 구역질이 치민단 말이다. "그나저나 이드, 넌 중용의 법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속으로 자기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스파트는 아주 진지한 표정 을 지으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파트가 하기에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난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귀찮은 것. 쓸데없이 그딴 거나 만들어서 괜한 사람 고생시키니까." "후후." 내 대답을 들은 스파트는 아주 낮은 웃음소리를 발했다. 그것은 내가 많이 들어보았던 플라톤과 교장 할배의 웃음소리와 아주 흡사했다. 특히 뭔가 음 흉한 속셈을 숨긴 채 웃는 그 모습은 그 둘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설마…… 이 세계에서 스파트 녀석이 뭔가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 리?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가 그 음모를 막아야 하는 건가? 귀찮아, 이 제 그런 일은 하고 싶지가 않다고! 그냥 중용의 법칙인가 뭔가만 얼른 끝내 고 멀쩡히 살아서 돌아가고 싶단 말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세계는…… 발전이 없다." 그때 스파트가 그런 말을 내뱉었다. 뭔가 있을 것 같은 그 말은 스파트가 어떤 무서운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내 말투는 조금 거칠어졌다. "그래서? 그 세계를 때려부수기라도 할 생각이냐?" "세계를 부수지는 않는다. 단지 주기를 부술 뿐이다." "……?" 주기를 부순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설마 중용의 법칙 자체를 없애버리 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너…… 중용의 법칙을 없애버리려고 그러냐?" 난 조심스럽게 스파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스파트는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 다. "잘 아는군." "……." 으으…… 이 세계에서도 플라톤이나 교장 할배와 같은 인간이 있었다니…… 죽여버리겠어…… 나중에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는 상황이 되기 전에…… 지 금 이 자리에서…… 이 자리에서 이 녀석을 죽여버리겠어!!! "네가 중용의 법칙을 무너뜨려 줬으면 한다." "……!" 막 이성을 잃고 마법을 사용하려던 나에게 스파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아니, 그것은 부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마법으로 스파트를 제거 할 수 없었다. "…… 내가?" "그래. 중용의 법칙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중용자인 너뿐이니까." 스파트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장난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한 말이라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웠다. "내가 중용의 법칙을 무너뜨리면 너한테 무슨 득 되는 게 있냐?" 사람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동물이기 때문에, 난 스파트에게 중용의 법칙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 다. 다행히 스파트는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지금 이 세계는 영계가 만들어낸 중용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것 이 이 세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지. 그래서 난 그 법칙을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영계 자체를 말살하고 싶은 거다." "……." 흘…… 상당히 큰 포부를 가지고 있군. 문제는 그게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거지만. 어떻게 그런 머저리의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대 단해∼ "중용의 법칙이 발전을 저해한다는 증거는 뭐냐?" "인간들의 의식 수준이 낮다는 거다." "인간들의 의식 수준이 낮다는 증거는?" "아직도 신과 같은 특별한 존재에 모든 것을 의지하려고 하는 자세가 바로 의식 수준이 낮다는 증거다." 연이은 내 질문에도 스파트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물론 스파트의 생각이 편협할 수도 있었으나, 어쨌든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로서는 할말이 없었다. "단지 인간의 발전을 위해 중용의 법칙을 무너뜨리고 싶다는 거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렇다. 나에게는 영계의 말살만 실현되면 족해." "……." 흘…… 정말 그것만 바라고 있을까? 왠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녀석이야 …… 분명 뭔가 속에 엄청난 꿍꿍이를 가지고 있을 텐데…… 지금은 알 수 가 없으니 답답하군. [번 호] 87 / 87 [등록일] 2000년 10월 22일 20:17 Page : 1 / 21 [등록자] THEBUR [조 회] 27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2장: 바이오 에고 소드 -3-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2장:바이오 에고 소드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072 게 시 일 :00/10/22 10:09:29 수 정 일 : 크 기 :10.5K 조회횟수 :20 "뭐, 좋아. 중용의 법칙이란 걸 없애버리면 다시는 다른 세계 사람이 이런 곳으로 넘어오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근데 하나 물어보자." "뭔가?" "도대체 나보고 무슨 수로 영계를 작살내라는 거냐? 방법은 있는 거야?" "……." 아주 중요하고도 근원적인 질문에 스파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난 불안해졌다. 녀석의 입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내 예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해 버렸다. "그건 중용자인 네가 알아서 해야지." "……." 으으…… 스파트 녀석…… 네 녀석도 아트로포스와 같은 말을 하는 거냐? 죽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구나! "그럼 때려 친다. 방법도 없이 요구만 할 생각이라면 사라져버려." 기분이 착 가라앉아 버린 나는 파리 쫓듯이 손을 휘저으며 아주 띠꺼운 어 조로 말했다. 그러나 스파트는 전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후후, 너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군." "……!" 오옷?! 선물? 선물을 준다고라? "어떤 건데?" 선물이란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나는 띠꺼운 표정을 지워버리고 착한 표정을 지었다. 스파트는 그런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손을 휘휘 저었다. "안 되겠다. 네가 반드시 영계를 무너뜨린다는 약속을 하지 않으면 선물을 줄 수 없어." "……." 뭐냐? 약속을 하고 나서 선물을 주겠다고? 그런 싸가지 없는……! "그럼 됐어. 어차피 난 선물 같은 거 원하지도 않으니까. 한낱 선물 때문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생각은 없다." 《네놈 거짓말 뻔히 다 보인다! 선물이 뭔지 궁금하지? 궁금하지? 그렇지?》 지금까지 죽은 듯이 입을 다물고 있던 실버럭서스가 갑자기 끼어 들어 날 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실버럭서스의 말은 싸그리 무시했다. 녀석의 말 을 일일이 상대했다가는 나만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어쭈? 지금 이 위대한 성물 님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 내 삐까번쩍한 몸 에 찔리고 싶어?》 "선물이 뭔지 알기 전에는 약속을 할 생각이 없는 건가?" 그렇게 실버럭서스와 스파트의 말이 동시에 들려왔으나, 실버럭서스의 말을 무시하고 있던 나는 스파트의 말만을 받아서 읽어들였기 때문에 두뇌 시스템 이 다운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거야. 선물이 무엇인지 알아본 다음에 영계 멸망을 생각해보겠다." "후후, 그럼 그 선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지." 헐∼ 드디어 가르쳐주는 건가? 선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까 갑자기 궁금증이 팍팍 생기는데? "이드, 아니 권강한!" "……!" 스파트가 내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라이트닝 쇼크보다 더 큰 충격이 었다. 이 세계에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 스 이렇게 세 명밖에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권강한, 넌 이대로 주저앉고 싶은가?" "……!" "새로운 인연의 끈을 만들 생각이 없는 건가?" "……!" 새로운 인연의 끈? 어떻게 영관들도 모르는 걸 스파트가 알고 있는 거야? 도대체 스파트 녀석의 정체는 뭐야? 뭐냔 말이야!!! "스파트…… 넌 누구냐?" 난 목소리를 깔았다. 그래서인지 표정 자체도 상당히 굳어졌다. 스파트는 그런 내 굳은 얼굴을 보고는 한번 씨익 웃어주었다. "너무 그렇게 정색하지 말라고.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 "난 단지 주변 상황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떠밀리는 네가 안타까워서 그런 것뿐이다." "……." 주변 상황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떠밀린다라…… 후후…… 아니라고 발뺌할 수도 없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건 사실이니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라. 그것이 내 선물이다." 스파트는 그것이 선물이랍시고 말했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전혀 선 물 종류가 될 수 없었다. 뭔가 물질적인 것을 기대했던 나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보고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거야? 무슨 수로?" "그거야 아주 간단한 일이다." "……?"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말한 스파트는 내 궁금증을 더하려는 듯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난 스파트를 따가운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그러자 마 침내 스파트가 입을 열었다. "끈을 지배하는 자가 되라." "……!" 끈을 지배하는 자……! "끈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신을 능가해야 한다. 한마디로 전지전능해져야 한 다는 소리지." "……." 전지전능…… 스파트 녀석……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보통 사람보고 전지전능해지라니…… 머리가 돌아버린 거 아니야? 뚜벅뚜벅- 그때 복도 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어린아이의 말도 간간이 들려왔다. 그것은 창문 수리 부탁하러 간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돌아오고 있 다는 소리였다. 그 둘이 오면 나와 스파트는 비밀 회담을 진행할 수 없게 되 기 때문에, 스파트의 얘기는 짧고 간결해졌다. "넌 성물의 힘을 통해서 강해지는 거다. 그리고 난 그런 네가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겠다. 그러면 넌 끈을 지배하는 자가 될 수 있다." "……." "그럼 나중에 또 얘기하도록 하지. 그때까지 살아있어라." 스파트는 그런 사악한 말과 함께 깨진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리고 그와 동시에 아트로포스 일행이 새 창문을 들고 온 여관 주인과 같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드 님, 스파트 씨는 어디 갔죠?" 방안에 스파트가 없는 것을 본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물었고, 난 간단히 대 답해주었다. "갔어." "그럼 전 창문을 달아놓도록 하겠습니다." 새 창문을 손수 가져온 여관 주인은 깨진 창문을 떼어내고 새 창문으로 갈 아 끼우기 시작했다. 아트로포스는 잠시 여관 주인이 창문 갈아 끼우는 광경 을 지켜보다가 다시 눈을 나에게로 향했다. 이드 님하고 서로 무슨 얘기 주고받았겠죠." "……." "안 가르쳐 주실 건가요?" "……." 흘…… 사실을 숨기려고 하니까 아트로포스가 꽤 무섭게 나오는군. 그래도 스파트의 말을 들려줄 생각은 없어. 스파트와의 일은 왠지 나만의 일 같은 느낌이 드니까. 뭔가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숨겨야 해. "서로 숨기는 것이 많아지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게 돼요." 아트로포스는 그런 말까지 하면서 스파트와의 대화를 알아내려는 시도를 계 속했다. 그러나 이미 사실을 숨기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아예 입을 다물었다. 내가 전혀 대답을 하지 않자 마침내 아트로포스도 포기를 하고 말았다. 그 대신 말투가 상당히 쌀쌀해졌다.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하지 마세요. 그리고 할말도 없으시면 이만 이 방에 서 나가 주시구요. 여긴 제 방이니까요." "……!" 아트로포스의 쌀쌀한 말투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트로포스가 방을 두 개 잡아놓아서 이 방 옆에는 창문이 멀쩡한 내 방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서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흐아…… 나 바보인가? 내 방이 있는 줄 알았다면 창문 깨진 이 방에서 얘 기하지 말고 내 방에 가서 얘기하면 됐을 텐데! 아트로포스조차 멀쩡한 내 방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는 소리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내 방에 가서 얘기했으면 됐잖아?" "흥! 누나보고 아저씨 방에 들어가라고? 말도 안돼!"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한 사람은 아트로포스가 아닌 오브였다. 그리고 오 브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트로포스를 보면서, 오브 때 문에 내 방에 가서 얘기하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흘…… 하여간 저 오브 녀석,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게 하는구만. 아트로포 스가 내 방에 들어가는 건 안되고, 내가 아트로포스 방에 들어가는 건 돼? 웃긴 녀석이야. "그럼 난 가볼 테니까 잘 쉬어." 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실버럭서스를 들고 아트로포스의 방에서 나왔다. 내가 자기 아버지의 검을 들고 나오는 데도 오브는 전혀 제재를 가하지 않았 다. 아트로포스와 단 둘이 방에 남아 있게 된다는 생각 때문에 검 따위에는 신경 쓰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녀석이 어머니 없이 자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스에게 달라붙는 거 고.》 헐, 그러셔? 그럼 오브 녀석이 날 무시하는 이유는 뭐냐? 《간단해. 자기 아버지를 최고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 녀석이니까 널 인 정하지 않는 거다. 게다가 아트로포스를 자기 어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와 가까운 널 싫어하는 거지. 자기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 외의 남자에게 친절하게 굴면 기분 나쁜 건 당연하잖나.》 흘…… 그거 맞는 해석이야? 《900년 이상 살아온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냐?》 그래, 아주 오래 장수하셨군요 검 할아버지. 이제 조용히 세상을 뜰 나이가 되지 않으셨나요? 제가 친히 저승길을 안내해 드릴까요? 《…….》 아까 전에 나에게 무시당한 것을 갚기 위한 생각인지 실버럭서스는 입을 다 물어 버렸다. 그러나 실버럭서스가 입을 닫는 것이 나한테는 편했기 때문에 그 틈을 타서 실버럭서스를 내 방 탁자에 놓은 다음, 난 침대에 벌러덩 드러 누웠다. "……." 하아…… 왠지 마음이 착잡하군. 그 스파트라는 녀석의 정체는 뭘까? 어떻 게 녀석이 내 진짜 이름하고 인연의 끈 같은 걸 알고 있는 거지? 이 세계에 서 그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헉! 설마…… 스 파트는 플라톤과 교장 할배의 환생?! 《내 느낌에 스파트가 어떤 나쁜 목적을 가지고 너에게 접근해온 건 아니라 는 생각이 든다.》 "……!" 갑자기 실버럭서스의 말이 들려왔기 때문에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손에 검을 쥐지 않고도 실버럭서스가 나에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뭘 그리 놀래냐? 난 지금 내 몸을 진동시켜서 너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는 거다. 그러니까 난 어디서라도 너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거야.》 흘…… 몸을 진동시켜서 의사를 전달한다라…… 하지만 그건 진공 속에서는 안 된다고. 진동이란 것은 매질이 없으면 전달이 되지 않으니까. 《진공? 진공이 뭔데?》 얼레? 어떻게 녀석이 내 생각을 알아들은 거지? 난 단지 생각만 하고 말은 하지 않았는데? 난 녀석처럼 진동을 일으켜서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은 없잖 아? 《네놈의 뇌파 때문이다.》 실버럭서스의 대답은 간결했지만 난 단번에 그 말을 이해했다. 교장 할배가 있었던 세계에서 뇌파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 즉 테리야크를 만났 었기 때문이었다. 쩝…… 그때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또 가라앉아 버리는군. 내가 좀더 열심 히 활동해서 인연의 끈을 많이 만들었다면 꿈을 꾼 게 되어버린 상황으로 되 지는 않았을 텐데……. 《과거에 많은 일을 경험했던 모양이군. 여태까지의 중용자와는 다른 느낌 이 든다.》 내 기분이 우울해졌음을 느꼈는지 실버럭서스의 말투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래서인지 난 녀석과 얘기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스파트 녀석이 했던 말…… 넌 가능하다고 생각하냐?" 《영계 멸망 말인가?》 "그래."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중용자는 중용의 법칙조차 간신히 지켰을 뿐이니까. 그런 중용의 법칙을 지배하는 영계를 부순다는 건…… 불가능일지도 모르지.》 실버럭서스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 다. 만약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인연의 끈을 만들어야 했을 때 그렇 게 삽질하고 앉아있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중용자와는 다른 너라 면 말이야.》 흘…… 그거 지금 날 칭찬하는 거냐? 《칭찬이 아니다. 난 내 느낌을 솔직하게 말할 뿐이지.》 칭찬이든 거짓말이든 하여튼 고맙군. 《자신에 대해서 좀더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 그것은 왠지 나하고는 상관없는 단어처럼 들렸다. 지금까지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했던 것은 마법 수련뿐이었다. 그리고 그 외의 것에는 전혀 자신 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자신감…… 여기에서도 자신감 없이 행동한다면…… 결국 이곳에서의 경험 도 모두 꿈을 꾼 게 되어버릴지도 모르지. 후후…… 이제 더 이상 꿈은 싫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추구하고 싶다. 더 이상의 후회 는 하지 않겠다.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 헐헐... 피곤...=.=.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88 / 90 [등록일] 2000년 10월 30일 23:15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5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3장: 여성국가 우메드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여성 국가 우메드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153 게 시 일 :00/10/29 19:12:38 수 정 일 : 크 기 :10.3K 조회횟수 :314 <제 13 장> 여성 국가 우메드(Umed) 오브에게서 실버럭서스를 회수하고 다섯 명의 악당들을 저승으로 보낸 다 음날, 난 모처럼 아트로포스에게서 돈을 받아 실버럭서스를 집어넣을 검집 을 구입했다. 어차피 내가 검을 휘두를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검집 중에서 가장 싼 가죽 검집을 샀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아트로포스와 오브 몰래 군것질을 한 뒤에 실버럭서스를 가죽 검집에 넣고 유유히 돌아왔다. 내가 여관으로 돌아왔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 있었다. 바로 오랜 만에 모습을 드러낸 영신관 클로토와 영마관 라케시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트로포스의 여관방에 모여 얘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잘 지냈나 모르겠네? 로스, 이드가 중용자 하기 싫다고 날뛰지 않았어?"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래? 그거 의외인데? 난 이드가 중용자 하기 싫어서 자살이라도 할 줄 알았더니." 흘…… 내가 그런 미친 인간처럼 보이냐? 그리고 모처럼 찾아왔으면 뭔가 선물을 줘야할 거 아니야? 어떻게 맨손으로 오냐? "무슨 일로 왔냐?" 난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우리를 찾아온 이유 를 물었다. 라케시스는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인지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으나, 내가 계속 날카롭게 째려보자 어쩔 수 없이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을 했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천신과 천마가 너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걸 알 려주려는 거야." "녀석들이? 어떻게?" "실버럭서스가 그 꼬마가 있던 보멜트족 마을에서 사라졌다는 것 자체가 중용자의 출현을 의미하거든. 게다가 지금이 중용자가 슬슬 나타날 시간이 고 말이야. 그래서 중용자가 이미 이 세계로 건너왔다 라고 생각하는 거지." 흘…… 한 마디로 저 싸가지 없는 검 때문에 내 존재가 들켰다는 소리잖아? 저 검을 당장 집어 던져버려? 《얌마! 그게 어째서 나 때문이야? 나한테 심장을 꿰뚫리고 싶냐?!》 "그럼 이제 천신하고 천마가 날 노린다는 거야?" 난 실버럭서스의 말을 무시하며 라케시스에게 물었고, 라케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고위 천신이나 고위 천마가 여기로 내려오지는 않아. 마나 회로 때문에 자신의 특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으니까 내려오지를 않 는 거지. 대신 졸개들을 보내는데, 그 졸개들은 대부분 전투 능력이 탁월해. 몸놀림도 빠르고 무기 다루는 솜씨도 좋고 말이야." "……." 전투 능력이 탁월한 녀석들이라…… 왠지 불안해지는군. 내가 그런 녀석들 과 싸우게 되면 마법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는데…… 몸놀림 빠른 녀석들 을 마법으로만 처리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겁을 먹는 거냐?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한다면서 처음부터 그러 면 어떡해?》 흘…… 그거 참 미안하군. 난 항상 작심삼일이다. 불만 있냐? "근데 영신관 누나하고 영마관 누나는 왜 저 중용자 아저씨하고 같이 안 다녀요?" 아트로포스 옆에서 잠자코 우리들을 살피고 있던 오브가 조심스러운 어조 로 라케시스에게 물었다. 라케시스는 오브의 귀여운 -나한테는 역겨운- 얼 굴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들은 로스처럼 중용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가 없거든. 대신 천 신족과 천마족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거야." 흘…… 간단하게 말하면 중용자에게 짐만 될 뿐이라는 거잖아. 왜 말을 돌 리고 그러냐? "이제 나한테 할 얘기 더 없냐?" 난 라케시스와 클로토를 쳐다보며 물었고 그런 내 물음에 라케시스는 고개 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한 마디만 했다. "그럼 가라." "……." 얼씨구? 왜 그런 야리꾸리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 내가 무슨 괴물이 냐? 계속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눈깔을 찔러버린다? "멋대가리라고는 하나도 없네, 정말." 라케시스는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별말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여기 오 래 남아 있어봤자 나한테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혹시라도 적이 공격해온다 면 자신들이 방해만 된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열심히 성물이나 잘 모으라구. 가자, 클로로." "이만 실례합니다."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나와 아트로포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장 여관 밖 으로 나갔다. 그렇게 내가 라케시스와 클로토를 쫓아내 버리자 오브 녀석이 날 마구 째려보았다. 하지만 난 녀석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로스, 성물의 기운이 느껴져?" "네." 얼레? 벌써? 난 또 어디론가로 이동을 시작해야 성물의 기운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느껴졌는데?" "어제요." 얼씨구? "어제? 그럼 왜 말을 안 했어?" "어제 이드 님이 스파트 씨와의 얘기를 숨기니까 얘기하기가 싫었어요." "……." 흐으…… 팀웍 갈라지는 소리가 똑똑히 들리는구나……! "어쨌든 어서 성물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천신과 천마가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해올지도 모르니까." "네." "히잉……." 아트로포스는 내 말에 찬성했으나 오브 녀석은 가기 싫다는 뜻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그러나 오브의 그 찡그린 얼굴은 나에게 더욱 빨리 성물 있 는 곳으로 가자는 충동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지금 당장 출발이다."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온 결과, 우리들은 니아르 제국 변방에 위치한 국경 도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물은 국경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 라 니아르 제국 변방의 어떤 지역에 존재한다고 아트로포스가 말했고, 그 말에 따라 우리는 니아르 제국의 국경을 넘기로 했다. 저벅저벅-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도시 안팎을 돌고 있는 것은 바로 니아르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다른 도시보다 병사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도시 경비는 자연 삼엄했다. "로스, 어째서 이렇게 경비가 삼엄한 거야?" 난 병사들을 가리키며 아트로포스에게 물었고 아트로포스는 간단하게 대답 했다. "아무래도 국경 경계 때문이겠죠." 흠…… 그렇겠군. 뭐 경비를 삼엄하게 하든 엉성하게 하든 그건 이 나라 사정이니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그냥 성물 있는 곳에만 가 면 되니까. 히이잉-!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꼽사리 낀 오브는 마차가 여러 대 세워져 있는 이른바 마차 대기장소로 향했다. 마차 대기소라고 해봤자 넓은 광장에 마차 가 여러 대 몰려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일반 서민들이나 여행 객들이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요금이 저렴했기 때문에 마차 대기소에는 사 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어서 옵쇼! 어서 옵쇼! 어디라도 번개 같이 태워다 드립니다!" 어떤 마차를 잡아탈까 갈등하고 있는 내 시야에 이제 막 마부 일을 시작한 듯한 한 젊은 마부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소리를 치는 장면이 잡혔다. 그래서 난 그 마부에게 가서 물었다. "국경 밖까지 나갑니까?" "국경 밖이요? 여기서 국경 밖이라면 우메드국(國)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되묻는 마부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어째서 마부가 그렇게 당황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로 가면 안됩니까?" "당연한 말씀을! 거긴 무역 금지가 되어버린 나라라구요! 함부로 들어가려 하다간 큰일나요!" "……?" 얼라리? 갑자기 웬 무역 금지냐? 언제 우메드라는 나라하고 니아르 제국이 치고 박고 싸웠었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성물이 그쪽에 있다는데 안갈 수도 없잖아? "알겠습니다. 그럼." 마부가 우메드로 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바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러자 마부는 그런 나를 불러 세웠다. "손님! 우메드로는 갈 수가 없어요! 나라에서 못 가게 막고 있으니까요!" "……!" 니아르 제국에서 아예 못 가게 한다고? 그런 싸가지 없는……!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마부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내뱉은 나는 즉시 아트로포스에게 다가 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병사들 눈에 안 띄도록 밤중에 걸어가야겠어. 우선 국경에서 가 장 가까이 있는 여관부터 찾자고." "그래야겠군요." 그렇게 의견의 합치를 본 우리는 즉시 여관을 찾기 위해 도시를 싸돌아다 녔다. 단지 오브 녀석은 우리가 방금 전에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제대 로 듣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곳의 여관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이 이상하 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도시 안에 있는 여관 을 모조리 둘러본 끝에 우리는 한 여관을 잡고 밤이 되기만을 조용히 기다 렸다. ……. 한밤중이 되자 도시는 조용해졌다. 자정이 넘을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눈 을 말똥말똥 뜨고 있어야만 했던 나는 열심히 자유낙하 하려는 눈꺼풀을 들 어올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아 트로포스가 묵고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내가 문을 살짝 두드리자마자 방안에서 아트로포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말소리가 아주 또렷한 것을 보면 지금까지 졸지 않고 있던 것 같았다. 끼이- "깨어있었으면 나와야지 뭐해?" 난 문을 열고 방안을 살피면서 아트로포스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아 트로포스는 침대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오브 녀석을 가리키며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자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렇게 잠들어 버렸어요." "……." 흘…… 자고 있는 오브 때문에 아트로포스가 나오지 못한 건가? 하여튼 저 오브 녀석 때문에 행동에 상당한 지장이 생긴다니까. 맞다! 녀석이 세상 모 르고 잠들어 있는 틈을 타서 이대로 날라버릴까? "어떻게 하죠?" 아트로포스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듯 갈등 섞인 얼굴을 한 채 나에 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갈등 사항이 될 수 없 었기 때문에 난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깨워야지. 업고 갈 수는 없잖아." "그렇군요."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으나 정작 오브를 깨울 생각 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보고 오브를 깨우라는 무언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오브를 깨워야만 했다. "일어나." 흔들흔들- "으으음……!" 난 오브를 흔들어 깨우려 했으나 오브 녀석은 묘한 신음소리만 내면서 깨 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대갈빡을 한 대 갈겨버리고 싶 었지만 그렇게는 하지 못하고, 대신 녀석의 코를 손가락으로 쥐어서 막아버 렸다. "읍읍…… 푸아!" 코가 막혀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자 오브는 잠결에 몸을 뒤척였고, 그러 다가 결국에는 물 속에서 잠수하다 나온 사람처럼 거친 숨을 터트리며 침대 에서 몸을 일으켰다. "끄응……!" 얼씨구? 순한 방법으로 깨워줬는데 왜 그렇게 인상을 팍팍 쓰면서 째려봐? 자정까지 제대로 버티지 못한 네놈 잘못이라고. 그렇게 인내심이 없으니 나 중이 걱정이다. "출발이다." 난 열심히 인상 쓰는 오브를 뒤로하고 방밖으로 빠져 나왔고, 아트로포스 는 빌빌대는 오브를 데리고 내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서 아트로포스가 여 관 주인에게 여관비를 지불했고, 이렇게 늦은 시각에 어딜 가느냐며 계속 자고 가라는 여관 주인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채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도 시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한밤중이 되었는데도 병사들은 두 명씩 짝을 지어 시내를 열심히 돌아다니 고 있었다. 그래도 낮보다는 병사의 수가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서 병 사들의 눈을 피하면서 도시 밖, 정확히 말해서 니아르 제국의 국경 근처까 지 가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저 숲 건너편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져요." 아트로포스는 국경 바로 바깥에 있는 숲을 가리키며 조용히 속삭였다. 어 둠이 수북히 쌓인 숲을 바라보고 있자니 걱정부터 밀려왔다. 이 어두운 한 밤중에 숲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고 헤맬 확률이 99.9%의 소수 첫째자리 반올림이기 때문이었다. 흘…… 과연 지금 숲으로 들어갈 것이냐, 아니면 훤한 낮에 삼엄한 경비를 뚫고 숲으로 진격할 것이냐…… 으으…… 에라 모르겠다! 이왕 여기까지 왔 으니까 들어가자! 운이 나빠서 길을 잃으면 맹수한테 잡아먹히기밖에 더하 겠냐! [번 호] 89 / 90 [등록일] 2000년 10월 30일 23:16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46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3장: 여성국가 우메드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여성 국가 우메드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154 게 시 일 :00/10/29 19:12:54 수 정 일 : 크 기 :11.7K 조회횟수 :273 "들어가자." 난 마음을 비우고 먼저 어두운 숲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트로포스는 처 음부터 숲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는지 내가 움직이자 바로 날 따라왔고, 그 렇게 우리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타박타박- 사삭- 난 수풀 때문에 생기는 아트로포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무턱대고 앞으 로만 나갔다. 그러나 때때로 큰 나무가 내 진로를 방해했기 때문에 내가 제 대로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방향 감각 이 들어맞기만을 바래야만 했던 것이다. 흘…… 난 길을 제대로 못 찾는 길치에다가 방향 감각도 없는 방향치인데… … 아무래도 난 숲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굶주린 맹수의 넉넉한 한끼 식 사거리가 될 모양이다…… 아니지, 난 말랐으니까 한끼 식사거리는 안되겠군. 간식거리라고 해야하나? 부스럭- 부스럭- 우리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숲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나 마을은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길을 잃은 것이었고, 또한 내 방향 감각이 형 편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닫게 해주었다. "뭐해요? 아까부터 계속 헤매기만 하고!" 내가 제대로 길을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았는지 오브가 버럭 화를 냈다. 하 지만 오브 녀석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도 당당히 맞섰다. "그럼 네가 찾아. 누군 가만히 있었는 줄 아냐?" "길을 아는 줄 알았죠!" "처음 오는 건데 어떻게 알아?" "그럼 이 밤중에 숲으로 왜 들어가요? 아저씨 바보예요?" "……." 으으…… 어째서 내가 오브 녀석에게서 바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 내 가 그렇게까지 타락을 했단 말이야? 난 자신감을 가지고 한번 숲으로 들어와 본 건데…… 이 꼴이 났으니 이러다가는 남아있던 자신감마저 다 잃어버리겠 다……! 《한밤중에 숲으로 들어간다는 건 자신감도 아니고 용기도 아니다. 단지 객 기일 뿐이다.》 실버럭서스……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했던 녀석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난 단지 네가 내 말뜻을 오해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능력 을 제대로 파악한 다음에 자신감 있게 행동해야 할 거 아니야? 누가 이런 삽 질을 하라고 했어?》 그래…… 난 삽질 매니아다…… 내가 삽질 매니아 되는데 뭐 보태준 거 있 냐? 없으면 빨리 이 숲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나 찾으라고! 이 제 곧 날 간식거리로 삼기 위해 맹수들이 그 시커먼 마수를 뻗쳐온단 말이야! 부스럭- 그때 우리의 정면 쪽에서 뭔가 있는 듯 수풀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난 싸구려 가죽 검집에서 더 싸구려인 실버럭서스를 빼들고 정면 쪽에 주의 를 기울였다. 아트로포스와 오브는 이미 내 뒤쪽에 숨어서 나 혼자 싸우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어쨌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난 마나회로 를 가동시켜 여차하면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했고, 잠시 후에 우리의 정면 쪽에서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아……!" 정체를 드러낸 것은 놀랍게도 네 명의 여자들이었다. 빛이라고는 달빛과 별 빛 밖에 없어서 정확히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모두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 의 여자들인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느낌상 그다지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럭저럭 봐줄 만한 것 같았다. 흐음…… 이런 한밤중에 여자들이 모여서 뭐하고 있는 거지? 얼레? 허리에 는 칼을 차고 있잖아? 그렇다는 건…… 혹시 이 여자들이 우메드의 국경을 지키고 있는 여자 병사? 우메드는 여자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나? 그래서 니 아르 제국에서 맘에 안 든다고 무역을 금지시킨 것? "이런 한밤중에 숲 속으로 들어오다니 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군." 네 명의 여자들 중에서 30대 중반쯤으로 일행에서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여자가 얼굴 가득히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결코 좋은 말 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이 여자들이 우메드의 병사라는 생각을 바꿔야했 다. 흘…… 역시 여자들에게 병사 일을 시킬 리가 없어. 아마도 저 여자들은 먹 고살기 힘들어서 산적질이나 도적질을 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남자들만 산적 하냐? 여자들도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누구시죠?" 내 뒤에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던 아트로포스가 부드러운 어조로 그 여자 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런 아트로포스의 태도가 그 여자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흥! 얼굴만 번드르르하지 검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녀석이군! 그러고도 네 녀석이 여자냐?" "네?" "남자에게 검을 쥐게 하다니…… 여자로서 부끄럽지도 않아?" "……?" 그 여자들의 말에 아트로포스는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너희들은 누구냐?" 난 우선 위협적인 어조로 그 여자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가장 나이 가 많아 보이는 여자가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꽤 남자다운 남자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자답군?" "……?"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남자답다라고 생각했다가 의외로 여자다워? 그거 욕이 냐 칭찬이냐? 욕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칭찬을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확 실히 하라고! "뭐 상관없지. 거기 칼 들고 있는 귀여운 청년, 우리 한번 진하게 놀아볼까?" 그 여자의 말은 가면 갈수록 이해하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귀여운 청년이란 말도 처음 듣거니와, 무엇보다도 진하게 놀자 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여자들이 좋은 의도로 우리에게 접근한 것 이 아님은 확실했고, 그래서 난 더욱 위협적인 어조로 소리쳤다. "시끄러워. 너희들은 도대체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냐? 너희들 산적이냐?" "오∼ 남자가 그렇게 말빨이 사나워서야 결혼이나 제대로 하겠어?"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여자는 얼굴 가득히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웃 고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의미로 그 여자가 그런 미소를 띄우는 것인지 몰랐 기 때문에 뭐라고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우선 이 여자들의 목적부터 알아내기로 했다. "우리한테서 원하는 게 뭐냐?" "이런이런. 우린 그쪽 아가씨에게 볼일은 없어. 더불어 꼬마 애에게도 볼일 이 없고. 우리들에게 볼일이 있는 쪽은 바로 너야." "……." 흘…… 도대체 나한테 무슨 볼일이 있다는 거지? 내가 일행 중의 리더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그건 잘못 생각한 건데. 돈이라면 전부 아트 로포스에게 있으니까. "돈을 노리는 거냐?" 난 실버럭서스를 쥔 손에 힘을 가하며 그 여자들에게 물었고, 역시 대답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 아줌마가 했다. "뭐 그것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더 좋은 일이 있지." "좋은 일?" "이런이런. 아무래도 눈치 못 챈 모양이네? 저렇게 순진해서야." 흘…… 내가 순진해? 실버럭서스가 피를 토하며 기절하겠다. 내가 순진하면 이 세상 사람들도 모두 순진한 거라고. 도대체 내 어떤 면을 보고 순진하다 고 하는 건지……. "뭐 모른다면 이 누나가 친절히 가르쳐주지." 스슥- 그 아줌마의 손짓에 따라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이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그 여자들이 칼을 쥐고 있는 폼이나 그 몸놀림을 볼 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님 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실버럭서스도 동의했다. 《네놈의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마법으로 상대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임마. 누가 너 같이 무거운 칼을 들고 싸우냐? 《무겁긴 뭐가 무거워? 난 종이보다 가볍다고! 네놈은 무게 감각이 있는 거 냐 없는 거냐?》 팟-! 《로스의 뒤에서 공격해온다!》 나와 말다툼을 벌이던 실버럭서스가 갑자기 그렇게 나에게 경고를 했고, 이 미 공격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아챈 난 즉시 아트로포스의 뒤로 돌아가 공격 해온 여자의 검을 막아냈다. 챙! "칫!" 내가 자신의 검을 막아내자 그 여자는 즉각 뒤로 몸을 빼내고는 다시 경계 자세로 들어갔다. 나 역시 검을 막아냈다는 기쁨을 억누르고 다른 두 명의 여자들에게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산적 아줌마가 놀 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놀렸다. "호오∼ 호신용으로 검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아주 빠른 몸 놀림인걸?" "……." "뭐 좋아. 반항하는 사내일수록 더 따먹고 싶어지니까." "……?!" 으헥?! 뭐, 뭐, 뭘 따먹어? 설마 저 여자들…… 남자를 어떻게 해볼 생각으 로……? "자! 모두 일제히 공격!" 마침내 그 아줌마의 총공격 명령이 떨어졌고, 그에 따라 다른 세 명의 여자 들이 칼을 앞세우고 공격해 들어왔다. 세 방향에서 세 명의 여자들이 짓쳐 들어왔기 때문에 검으로 그들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난 역압(力 壓) 마법인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으로 세 여자들의 움직임을 봉쇄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마법을 사용하려 고 했을 때, 갑자기 어떤 나무 위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ㅡ!" "……!" 갑작스럽게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에 날 공격하려던 세 여자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공격을 명령했던 아줌마는 그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 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녀석이 여기까지……?!" 휘익- 척! 뭔가 바람 소리가 난다 싶더니 어느새 우리들 옆에 한 사람이 날아 내렸다.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검사였는데, 오렌지색의 긴 머리를 묶어 내리고 있었 고 몸도 호리호리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가슴에 볼륨이 있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 옆으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여자였던 것이다. "도망치는 중에도 남자를 겁탈하려 하다니! 하늘이 부끄럽지도 않나?!" 얼굴도 아주 예쁘게 생긴 그 여검사의 목소리와 어조는 생각보다 아주 거칠 었다. 겉모습만 아니라면 완벽하게 남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런 여검사를 보는 아줌마와 그 졸개 여자들의 인상은 보기 흉할 정도로 찌푸려져 있었다.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여검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네 여자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자 내 위협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네 여자들이 잔뜩 긴장하며 여 검사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에 내가 마법을 사용하면 저들을 모두 잡 을 수 있을 테지만,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가 궁금했기 때문에 난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타핫!" 4 대 1의 불리한 형세임에도 불구하고 여검사가 그 여자들보다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그녀가 맨 처음 노린 상대는 네 여자 중에서 두목 격인 그 아줌마 였다. 대장을 먼저 죽여야 나머지 졸개들을 처리하기 쉬워진다는 아주 교과 서적인 공격 방식이었다. "젠장!" 짓쳐 들어오는 여검사를 보고 산적 아줌마는 욕설을 토해내며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여검사의 공격에 맞대응했다. 검술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보 더라도 그 아줌마의 대응 속도는 빨랐다. 그러나 여검사의 솜씨가 한 수 위 였다. 사악- "아악!" 여검사의 검이 산적 아줌마의 오른쪽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산적 아줌마 는 커다란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커다란 검상(劍傷)이었기 때문에 산적 아줌마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로 여검사의 검이 산적 아줌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 산적 아줌마의 목이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본 나머지 세 여자들은 그 자리 에서 몸을 굳혀버렸다. 두목을 잃었다는 충격이 그들의 움직임을 봉쇄시켜 버린 것이었다. 우리의 무서운 여검사는 그 순간마저 놓치지 않고 곧장 그들 에게로 달려갔다. "으악!" 한 명의 여자가 멍청히 서 있다가 여검사의 검에 베여 쓰러졌고, 그 비명에 정신을 차린 두 여자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가려고 했다. 여검사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녀들마저 죽이려고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거리가 너무 벌어져 있었 기 때문에 쫓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나섰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슈앙-! 난 두 발의 불화살을 만들어 열나게 도망치고 있는 두 여자들을 향해 날렸 다. 파이어 애로우는 그녀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가 그녀들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녀들은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 흐으…… 또 나도 모르게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버렸군. 게다가 남자 도 아닌 여자를 말이야. 이렇게 나가다간 난 완전히 살인광(殺人狂)이 될지 도 모르겠는걸? "당신…… 마법사였군?" 내가 마법을 사용한 것을 본 여검사가 아주 놀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그 래서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법사는 마법사지만 실력은 별로 없습니다." "글쎄, 별로 실력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렇게 말한 여검사는 검집에 검을 넣고 나에게로 다가와 날 자세히 뜯어보 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의아한 얼굴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군. 남자가 이렇게 대담할 수 있다 니 놀라운걸?" "……." 뭐가 놀라워? 난 여자인 네가 같은 여자를 그렇게 무참히 베어버리는 게 더 놀랍다! "그런데 저 여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죠?" 여검사가 별로 나쁜 사람이 아님을 느꼈는지 아트로포스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질문에 여검사는 죽어서 널부러져 있는 여자들의 시체를 쳐 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저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의 동정을 빼앗았지. 저들에게 짓밟혀 인생을 망친 남자가 한둘이 아니야." "……." 저 여자들이 수많은 남자의 동정을 뺏어? 게다가 동정 빼앗겨서 인생을 망 친 남자가 한둘이 아니라고? 하하…… 남자 대신 여자, 동정 대신 순결이란 단어를 집어넣으면 이해를 하겠는데 그게 아니니까 상당히 이상하게 들리는 구만……. [번 호] 90 / 90 [등록일] 2000년 10월 30일 23:16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44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3장: 여성국가 우메드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3장:여성 국가 우메드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155 게 시 일 :00/10/29 19:13:12 수 정 일 : 크 기 :12.4K 조회횟수 :280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실격이야. 남자에게 검을 잡게 하다니." 여검사의 그 말은 아트로포스보고 하는 것이었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여검 사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고개만 갸웃했다. 사실 나도 여검사가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도 없었 다. 그러나 오브는 여검사가 아트로포스를 비난했다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뭐예요? 로스 누나는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모든 건 저 아저씨 때 문이라구요!" "……." 크으…… 오브 녀석은 왜 항상 모든 걸 나한테 덮어씌우려는 거야? 아트로 포스도 나한테 모든 걸 맡기고 있어서 짜증나 죽겠구만. 하여튼 오브나 아 트로포스나 다 똑같애. 뭐 오브 녀석이 더 싸가지 없지만. "그런데 당신들은 여기서 뭐하고 있었지? 이런 한밤중에 숲으로 들어오다 니." 여검사는 기쁘게도 오브의 말을 철저히 무시하고 아트로포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여검사에게 씹힌 오브는 화가 나는지 눈에 핏발을 세웠으나 여검사 가 풍기는 분위기가 워낙 싸늘했기 때문에 뭐라고 반항은 하지 않았다. 어 쨌든 아트로포스는 씩씩대는 오브를 진정시키며 여검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희는 우메드로 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 숲에 들어왔는데 길을 잃어 버렸구요." "그렇군. 난 저자들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괜찮다면 날 따라와도 좋아. 마음 내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여검사는 이번엔 날 보면서 그 말을 했다. 왜 날 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 는 알 수 없었지만, 여검사를 따라가면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아지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따라가겠습니다. 근데 어디로 갈 생각입니까?" "난 다시 내 마을로 돌아갈 거야. 거기도 우메드 소속이니까 당신들의 목 적지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겠지." 헐헐, 그렇다면 더욱 잘됐군. 우선 이 여검사의 마을에서 잠시 쉬다가 거 기서부터 성물 찾기를 하면 되니까. 그건 그렇고 앞으로 이 여자에게 신세 지게 될텐데 이름이라도 물어봐야겠지? "전 이드고, 저쪽은 로스, 그리고 오브입니다. 성함을 물어봐도 되겠습니 까?" "내 이름은 '베르시아'. 아무리 여름이라도 숲의 밤은 차가우니까 어서 서 둘러." 자기 이름만 밝힌 여검사 베르시아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고, 우리도 재빨 리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베르시아가 숲에서 방향을 알아내는 방법은 별자 리를 통해서였다. 이동할 때마다 하늘에 수놓아진 별자리의 위치를 확인했 던 것이다. 흘…… 그 별자리가 그 별자리 같은데 잘도 구별해내는군. 존경스러워. 나 도 남쪽이나 북쪽에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만 알고 있었으면 숲에서 길을 잃 지는 않았을 텐데. 뭐 알고 있었다고 해도 별자리를 제대로 구별해내지 못 할 테니까 별로 소용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나저나 베르시아를 믿어도 되려 나? 흐음…… 조금 살벌하긴 해도 믿을 만한 여검사 같은 느낌이 드니까 괜 찮겠지. 하긴, 여차하면 내가 마법으로 날려버리면 되니까 상관없어∼ "쿠울……." 내 등에서 잠든 오브는 아침이 되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아니 정 확히 말해서 오늘 새벽 내내 숲을 걸어서 빠져 나오느라 지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나 아트로포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무거운 오브를 업고 가는 나는 더욱 지칠 수밖에 없었다. "저기가 베르시아 씨의 마을인가요?" 아트로포스는 지친 표정도 짓지 않고 베르시아에게 물었고 베르시아는 계 속 걸어가면서 입만 놀려 대답했다. "아니. 우선 저기에서 쉴 생각이다." 헐…… 드디어 쉬게 되는군. 여기까지 오는데 도대체 몇 시간이 걸린 건지 …… 역시 한밤중에는 숲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니까. 대체 누가 한밤중에 숲으로 들어가자고 한 거야? 그 녀석은 잡아다가 목을 비틀어서 죽여 버려 야해! 《너잖아.》 그래, 나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 목을 비틀어서 날 죽여줘! 《안타깝군. 나에게 손만 있었어도 네놈 목을 비틀어버리는 건데.》 흘흘! 네 녀석에게 손이 없다는 걸 아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한 거야! 누가 죽고 싶은 줄 아냐? 너 바보지? 지금 당장 고철덩이로 만들어 줄까? 《재주 있으면 해보시지? 입만 살아 가지고.》 입이 아니라 머리다, 임마! 누가 언제 입으로 말했어? 너 진짜 바보구나? 《…….》 "베르시아 씨! 지금 여관 하나를 지나쳤는데 어디까지 갈 생각인가요?" 나와 실버럭서스가 속으로 열나게 싸우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의아한 표 정을 지은 채 베르시아에게 의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베르시아는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아는 집이 하나 있다. 그리로 간다." "그렇군요." 베르시아의 말에 아트로포스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그래도 베르시 아의 싸늘한 말에 약간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은 지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렇게 베르시아의 뒤를 따라 점점 동이 터 오는 마을의 대로를 거슬러 올라 갔다. 흠…… 지금까지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까 베르시아의 나이는 대충 20살 전후…… 아니, 아트로포스하고 비슷한 나이 같은데? 그런데 왜 나한테 반말을 찍찍 내뱉는 거지? 베르시아의 성격은 원래 그런가? 뭐 그렇 다면 할 수 없지만…… 솔직히 기분 나쁘군. "……!"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베르시아의 발걸음이 어떤 집 앞에 멈추어 섰다. 집이 꽤 크고 넓고 높은 것으로 봐서는 부자가 살고 있는 듯했다. 그 런데 베르시아는 그 집의 문을 거침없이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흐으…… 여자가 검을 잡더니 거칠 것이 없어졌나보군. 베르시아에게 잘못 걸렸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는걸? 어제, 아니 오늘 새벽에 죽은 그 산적 여 자들처럼 될지도……. "……!" 그 큰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집 앞마당에 널부러져 있 는 병사들의 시체였다. 근데 병사들은 전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도대체 이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쓰러져 있는 여병사들의 시체를 본 아트로포스가 베르시아에게 물었다. 베 르시아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붉게 물든 앞마당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어제 그 강도들에게 당한 거다. 원래 녀석들은 모두 7명이었는데, 이 집 아들을 노리고 침입했다가 나에게 걸려서 3명이 죽고 다른 네 명은 도망쳐 버렸지. 도망친 나머지 놈들을 죽이려고 쫓아갔다가 당신들을 만나게 된 거 고." 흘…… 무섭군. 3명 죽인 것도 모자라서 나머지 놈들을 쫓아가서 죽여버리 다니…… 정말 무서운 여자야……! "안에 아무도 없습니까?!" 베르시아는 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집안에서 누군가 황급히 문을 열고 뛰어 나왔다. 그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있는 미소년이었 는데, 나이는 아트로포스나 베르시아와 비슷하게 보였다. 문제는 그 미소년 이 뛰어나오자마자 베르시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는 것이었다. "오셨군요! 베르시아 님!" "……." 베르시아는 미소년 하나를 품에 안고도 불쾌하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표 정을 전혀 짓지 않았다. 그저 아트로포스처럼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을 뿐 이었다. "베르시아 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베르시아의 품에 안긴 -정확히는 자기 혼자 껴안은 상태지만- 미소년은 행 복한 표정을 지으며 황홀해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와 아트로포스에게 아주 커다란 역겨움을 불러 일으켰다. 베르시아와 미소년의 입장이 서로 뒤바뀐 상황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그 반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온몸 에 닭살이 무럭무럭 자랐던 것이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오." 그 말을 하면서 앞마당으로 나온 인물은 미소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었다. 말투로 보면 분명 미소년의 아버지가 했어야 정상이지만 중년 부인이 그런 말투를 구사한 것으로 보아 이 집안은 여자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쨌든 베르시아는 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미소년 을 떼어놓고 중년 부인에게 가서 가벼운 인사를 했다. "도망친 자들은 처리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데자엘'이 무슨 일을 당했을지…… 후 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먼." 그렇게 베르시아와 중년 부인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기쁜 듯이 쳐다 보고 있던 데자엘이라는 미소년이 갑자기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엄청 나게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베르시아에게 뛰어가 말까지 더 듬으며 소리쳤다. "베, 베, 베르시아 님!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예요?!"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베르시아 씨를 만나서 같이 여기로 온 사람입니다." 베르시아가 뭐라 말을 하기 전에 내가 한발 먼저 대답했다. 그러나 데자엘 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정말이에요, 베르시아 님? 정말 단순히 만나기만 한 거죠?!" "그렇다." 베르시아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데자엘에게 아주 짤막한 대답만을 해주고 다시 시선을 중년 부인에게로 돌려 요청을 했다. "오늘 여기서 묵고 싶습니다. 물론 저 사람들도 함께입니다." "그렇게 하게. 데자엘을 지켜준 자네의 부탁인데 그 정도도 못 들어주겠나." 베르시아의 요청에 중년 부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흔쾌히 승낙했다. 베르시 아가 이 집에 머물러 간다는 소리를 들은 데자엘 역시 뛸 듯이 좋아했다. 그러나 중년 부인이 호탕하게 웃는 것이나 데자엘이 호들갑을 떠는 것이나 나에게는 아주 묘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흘…… 왠지 이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저럴 것이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 어…… 설마…… 니아르 제국에서 이 나라에 대한 무역을 금지시킨 이유가 …… 여기서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져 있는 것 때문이 아닐 까? "따라오게나." 중년 부인은 앞장서서 집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베르시아가 중년 부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다리를 움직였다. 그때 데자엘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살벌한 눈초리를 하면서 위협적인 말을 했다. "베르시아 님에게 찝쩍대면 가만두지 않겠어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몸에서는 전율이 흘렀다. 그것은 온몸에 소름 끼치 는 닭살을 동반한 전율이었다. 특히 남자인 데자엘이 완벽한 여성적 어투를 구사하는 것을 들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었다. 크으…… 정말 닭살 돋아 미치겠군.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미쳐버릴 것 같다. 오늘 하루만 여기에서 묵다가 내일 당장 성물 찾으러 떠나야겠어. "……." 앞마당에 널부러져 있던 시체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도 시체가 몇몇 보 였다. 집안에 있는 시체는 대부분 하인들이었는데, 집안이 조용한 것으로 봐서는 대부분의 하인들이 죽임을 당해서 시체 치울 사람도 없는 듯했다. "집안이 어수선하지만 2층에 있는 방에서 쉬도록 하게." "예. 그럼." 중년 부인의 말에 베르시아는 짤막한 인사를 하고 나무 계단을 통해 2층으 로 올라갔다. 그래서 나와 아트로포스도 베르시아를 따라 2층으로 향했다. 넓은 집답게 2층에는 양쪽에 3개씩 총 6개의 방이 있었는데, 베르시아는 그 중에서 계단 왼쪽의 가운데 방을 택했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그 반대편의 방 을 하나씩 택해서 들어갔다. 물론 오브 녀석을 아트로포스에게 건네줘야 하 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와 같이 한 방에 들어가게 되었다. "쿠울……." 아침이 되었는데도 계속 퍼질러 자고 있는 오브 녀석을 침대에 사정없이 내팽개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그랬다가는 아트로포스에게 죽도록 맞 을 것 같아서 아주 얌전하게 오브를 침대에 눕혀주었다. 흐으…… 오브 녀석을 내려놓으니까 몸이 날아갈 것 같다. 하여간 쬐그만 녀석이 왜 그렇게 무거운 거야? 녀석을 업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가 대견스 럽군. "이드 님. 이 나라는 아무래도 남자와 여자의 성격이 바뀐 것 같아요." 내가 오브를 내려놓기를 기다려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점 은 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그런 점 때문에 니아르 제국에서 교류를 금지했는지도 모 르지." "그렇겠군요." "근데 지금 성물의 기운이 느껴져?" 난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만약 지금 있는 이곳이 성물 있는 곳으로 가는 방향과 반대라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었다. 아트로포스도 그 질문을 기다 렸는지 곧바로 대답했다. "성물의 기운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우메드국의 중 앙 부근에 성물이 있는 것 같아요." 흐음…… 그거 다행이군. 돌아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좋아, 이제 남 은 건 하루라도 빨리 이 집을 나가서 성물을 찾는 것이군. 아트로포스는 어 떻게 생각할까? 숲에서 하도 헤매서 며칠 동안 이 집에서 머무를 생각일까? 물어봐야겠군. "로스, 내일 여길 떠나서 성물을 찾으러 갈 생각인데 괜찮지?" "음…… 네. 시체가 널려있는 집에 오래 머물기는 싫으니까요." 아트로포스는 내 생각에 동의했다. 아무리 아트로포스가 담력 강한 소녀라 지만 역시 시체를 가까이 두고 생활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확실히 집안에서 풍기는 피 냄새는 결코 좋지 않았다. "그럼 내일 떠나기로 하고, 오늘은 푹 쉬어." "네. 이드 님도." 난 아트로포스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곧장 내가 점찍어둔 방안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실버럭서스를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침대에 다이빙을 했다. 그러자 어김없이 실버럭서스의 욕설이 날아왔다. 《야, 나 같이 귀한 몸을 함부로 던지면 어떡해? 너 토막 나고 싶냐?!》 후아…… 역시 침대는 편하군. 그 무거운 오브 녀석을 업고 걸었더니 허리 가 끊어질 것 같아…… 남자는 허리가 생명인데 앞날이 걱정이군. 《딴 생각하지 말고 내 말씀을 들으란 말이다! 그런 식으로 놀면 잠을 잘 수 없도록 계속 떠들어주겠어!》 실버럭서스는 내가 잠을 잘 수 없도록 몸을 마구 진동시켜 나만이 들을 수 있도록 암호화된 음파를 발산했지만 난 내 두뇌를 두드리는 그 암호화된 음 파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소음 속에서 잠을 자는 것 은 어려운 일일 테지만, 나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하도 겁이 많아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자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에 항상 불 을 켜놓고 TV도 틀어놓고 잤었다. 오히려 불을 끄고 TV도 꺼버리면 무서워 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나였기 때문에 실버럭서스의 욕설쯤은 자장가 정도로 들려왔을 뿐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편안해졌다. 어렸을 때 겁많고 착했던 나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 흘... 저도 절 포기했습니다...-.-;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1 / 93 [등록일] 2000년 11월 04일 23:47 Page : 1 / 9 [등록자] THEBUR [조 회] 275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4장: 신비의 물 上 -1-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신비의 물 上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25 게 시 일 :00/11/04 19:45:58 수 정 일 : 크 기 :8.7K 조회횟수 :118 <제 14 장> 신비의 물 (上) 피 냄새가 진동하고 데자엘의 역겨운 호들갑을 봐야만 하는 이 집에 들어 온 그 다음날, 나와 아트로포스는 아침 일찍 여행길에 나섰다. 우리가 집 을 나설 때에는 이미 시체들이 모두 치워져 있는 상태였다. 어제 사람을 고용해서 시체를 처리한 듯했다. "나도 가겠어." 나와 아트로포스가 졸려 하는 오브를 질질 끌고 그 집을 나서려 할 때 2 층 방에서 베르시아가 내려오더니 그렇게 말했다. 저번에 베르시아가 자기 마을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었기 때문에 그 마을이 우메드국의 중앙 쪽에 있다면 베르시아를 여행 가이드로 삼아 여행해도 될 것 같았다. "베르시아 씨의 마을은 우메드국의 어디 쯤에 위치해 있습니까?" "음…… 정확한 건 모르지만 아마 우메드국의 중앙 부근일 거다. 조금 소 란스러운 곳이지." 조금 소란스러운 곳? 무슨 전쟁이라도 났나? 뭐 하여튼, 베르시아의 마을 이 우메드국의 중앙 부근이라니까 같이 가도 되겠군. 흘흘, 심심할 때마다 베르시아에게 돈을 뜯어내서 공짜 숙식을 하면 좋겠다∼ "그럼 같이 가도록 하죠. 저희들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으니까 베르시아 씨의 마을까지 한번 가보겠습니다." 난 그렇게 베르시아에게 제안을 했고, 베르시아는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 다가 이내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베르시아의 승낙을 듣자마자 데자엘이 또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베르시아 님! 저런 애 딸린 남자하고 어딜 같이 가시겠다는 거예요?!" "……." 애 딸린 남자? 저 어린놈이 죽고 싶나…… 이제 겨우 약관(弱冠)인 날 보 고 애 딸린 남자라니! 내가 보기에 데자엘 너는 게이(gay)로밖에 안 보여! "지금까지 신세 많았다. 그럼." 베르시아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못 가게 하는 데자엘의 마수를 유유히 뿌 리치고 먼저 저택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나와 아트로포스도 그런 베르시 아의 뒤를 따라갔다. 뒤에서는 데자엘이 눈물을 뿌리면서 베르시아의 마음 을 돌리려고 삽질을 하고 있었지만, 베르시아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통하 지 않았다. "베르시아 님ㅡ!" "……." 크어어…… 닭살 돋으려고 그래…… 다 큰 남자 녀석이 저런 역겨운 말을 하다니…… 지금 당장 돌아가서 녀석의 주둥아리를 꿰매 버리고 싶은 충동 이……! "베르시아 님ㅡ!" 끄으으…… 제발 그만해…… 지나가던 인간들이 다 쳐다보잖아! 왜 나하 고 아트로포스까지 쪽팔림의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거냐고! 그렇게 문 앞에 서서 소리만 지르지 말고 차라리 베르시아를 따라와라, 멍청아! "베르시아 님ㅡ!" 처절하게 베르시아의 이름을 외치는 데자엘의 외침은 우리와의 거리가 상 당히 떨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여자가 하더라도 쪽팔리는 짓을 남자 녀 석이 하니까 쪽팔림의 수준을 넘어서 소름까지 끼쳤다. 온몸에 닭살이 엄 청나게 돋았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정말 추하군요." 아트로포스는 데자엘이 있는 집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고는 내 귀에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래서 난 아주 간단하게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 다. "여긴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어져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어 쩌면 여기서는 남자의 지위가 상당히 낮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왠지……." "그냥 참아. 그 수밖에는 없어." "알았어요." 그다지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아트로포스는 내 말에 수긍했다. 어쨌 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우리는 한 소년의 순정(?)을 무시해버린 베르시 아의 뒤를 따라 베르시아가 살고 있다는 마을 쪽으로 향했다. 우메드는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었다. 단지 몇 개의 마을이 모여 만들어 진 소국(小國)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력도 별로 강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약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성 왕국임에도 다른 국가에서 섣 불리 건드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베르시아가 살고 있다는 마을까지 가는 데에는 이틀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단지 베르시아는 마차 타고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이 마을까지 올 때 쉴새없이 걸어야 했다. 만약 마차를 타고 왔다면 하루, 아니 반나절 정 도면 충분히 도착했을 것이다. "이 마을로부터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성물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아트로포스가 그렇게 속삭였다. 나와 만나는 사람들 이 항상 성물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해서인지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영계에서 계획한 대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 았기 때문이었다. 우와와ㅡ! 그때 마을 중앙 쪽에서 굉장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마을 중앙에서 여기 까지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성은 우렁차게 잘 들렸다. 마을 에 들어오자마자 갑작스럽게 웬 함성이 들려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난 즉시 베르시아에게 물어보았다. "베르시아 씨, 마을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지. 남자들의 반란." "……?" 남자들의 반란? 그건 또 뭐야?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보러 가도 되겠습니까?" 베르시아가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직접 가서 보려고 난 베르시아 에게 그런 요청을 했다. 그러나 사실 그건 예의 상이었고, 베르시아가 승 낙을 하지 않더라도 나 혼자 가서 볼 생각이었다. "…… 같이 가지." 이미 내 속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베르시아는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그렇 게 말하고는 먼저 마을 중앙 쪽으로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베르시아를 따라 마을 중앙 쪽으로 가는 중에 사람들이 열심히 도망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그런 행동은 마을 중앙에 모인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지 기 위한 것 같았다. "여성도 집안일을 하라ㅡ!" "남자에게도 지위 상승의 기회를 달라ㅡ!" "남자의 인권을 보장하라ㅡ!" 마을 중앙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는데, 그들이 외치는 구호는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버렸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른바 '남성 해방 운동' 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허허…… 여성 해방 운동도 아니고 남성 해방 운동이라니…… 이 나라에 서는 얼마나 남자들을 억압했으면 남자들이 저런 시위를 하는 거냐…… 대 단하다, 대단해! "이제 저들이 지금 뭐 하는지 알겠지?" 마을 중앙에 모여 목청 터져라 시위를 하고 있는 남자들을 바라보며 베르 시아가 탐탁치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베르시아는 남성 해방 운동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베르시아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마을 사람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 남자들을 보고 있었다. "남자의 인권을 보장하라ㅡ!" 그러한 그들의 구호는 동조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자기들끼리만의 공허 한 외침으로 끝났다. 그리고 그 공허한 외침마저도 곧 몰아닥친 여자 병사 들에 의해 여지없이 탄압되었다. "남자가 얌전히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지 밖에 나와 설치다니!" "이 미친 것들이!!!" 여자 병사들은 꽤 험한 말을 입에 담으며 시위하던 남성들을 구타하고 심 지어는 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호기롭게 구 호를 외치던 남자들이 여자 병사들의 무자비한 탄압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것은 마치 3·1 운동을 하다가 일제 관군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우리 조상들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 있으면 우리들까지도 말린다. 어서 따라와!" 베르시아는 시위 탄압 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와 아트로포스를 불렀다. 나 역시 이런 위험 지역에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즉시 아 트로포스의 손을 덥썩 잡고 베르시아를 따라갔다. 오브 녀석이야 계속 아 트로포스의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를 데려가자 오브 녀석은 자동으로 끌려왔다. "거기 서라, 반역자!" 내가 시위 탄압 지대에서 도망치는 것을 보고 날 시위하던 사람으로 생각 했는지 한 명의 여자 병사가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보통 의 여자 병사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될 정도로 거대한 여자라, 달려오는 것 만으로도 땅이 울리고 있었다. "먼저 피해!" 거대한 덩치의 여자 병사가 무서운 속도로 나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난 아트로포스를 내 곁에서 떨어지게 했다. 그래야 내가 싸우는데 더 편해지 기 때문이었다. 휘잉-! 여자 병사는 자신의 덩치에 걸맞게 검신(劍身)만 2미터가 훨씬 넘는 거대 한 검으로 날 후려쳤다. 그 위력은 바위도 부술 수 있을 정도였으나 텔에 게서 받은 지옥 같은 훈련의 후유증으로 날카로운 물체가 날아오면 내 몸 이 저절로 반응하여 피해버리는 데다가, 나 역시 그 공격을 피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병사의 거대한 검을 피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콰앙-! 여자 병사가 휘두른 검은 땅바닥에 닿았고, 땅바닥은 굉음을 내며 완전히 부서져 나갔다. 내려치는 힘이 너무나 강해서 땅바닥이 그만 터져 나가버 린 것이다. 만약 내가 저 검을 막으려고 했다면 난 이미 저승에서 저승사 자와 같이 노닥거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보통 여자가 아니다! 정면 승부는 하지마!》 실버럭서스는 조언이랍시고 그런 말을 했으나, 이미 나도 그렇게 생각하 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방금 전에 땅바닥이 터져 나 가버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지닌 여자 병사와 정정당당히 검을 맞대고 싸 운다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난 우선 여자 병사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 역압 마법을 사용했다. 그 에 따라 순간적으로 여자 병사의 머리 위에서 엄청난 공기압력이 작용했고, 그 엄청난 공기압력에 의해 여자 병사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사이, 난 그 여자 병사에게 내 입장을 말해주었다. "전 시위하던 남자가 아니니 오해 마십시오!" "시끄러! 이곳에 있는 남자는 모두 죽인다!" 내가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병사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날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역시 남의 일에 함부로 끼어 들면 안 된다니까! 난 시위하던 사 람들하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괜히 오해를 받았잖아! 어떻게 하지? 그냥 이대로 이 여자 병사를 죽여버려? 아니면 이대로 36계 줄행랑을 쳐? [번 호] 92 / 93 [등록일] 2000년 11월 04일 23:47 Page : 1 / 12 [등록자] THEBUR [조 회] 247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4장: 신비의 물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신비의 물 上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26 게 시 일 :00/11/04 19:46:15 수 정 일 : 크 기 :12.4K 조회횟수 :108 "앗! 저기다!" 내가 그렇게 갈등하고 있을 때 시위하던 남자들을 탄압하고 있던 다른 여 자 병사들이 나와 한 여자 병사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소 리치며 급히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당장 행동의 결정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저 무지막지한 여자 병사들에게 죽도록 맞 고 저승으로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켜!!!" 그때 내 뒤에서 베르시아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어떻게 행동할 까 갈등하고 있던 나에게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난 망설 임 없이 베르시아의 말대로 옆으로 몸을 비켰다. 푸욱-! 내 뒤에서 달려왔던 베르시아는 포스 프레셔에 의해 몸이 묶여 있던 거대 한 덩치의 여자 병사를 검으로 찔렀다. 이미 달려오면서 몸에 가속도가 붙 어있었기 때문에 베르시아의 검은 여자 병사의 복부에 아주 깊숙이 박혀 버렸다. 그러자 전혀 아픔이라고는 느끼지도 못할 것 같았던 큰 덩치의 여 자 병사가 천둥소리 같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 으윽! 귀청 떨어지겠다! 덩치가 커서 목소리도 큰 거냐?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왜 남의 청각을 작살내려는 거야? 내 청각에 이상 생기면 네 가 책임질 거냐?! "반역이다! 저 여자도 죽여라!!!" 베르시아가 큰 덩치의 여자 병사를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다른 여자 병사 들이 일제히 베르시아 쪽으로 달려갔다. 그 수가 대략 7명 가량이었기 때 문에 아무리 검술이 뛰어난 베르시아라고 해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 같았 다. 그래서 내가 우선 마법으로 잔챙이를 거르기로 했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필라(Pillar)! 허리케인(Hurricane)!" 화르륵-! 펑! 퍼퍼펑! 이곳에서의 파이어 스톰은 연속 마법이기 때문에 사방 공격이 가능한 허 리케인을 쓰기 위해서는 불기둥인 필라를 먼저 가동시켜야 했다. 하지만 필라에서 허리케인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허리케인만 사용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으악!" "아악!" 허리케인에 의한 불똥이 자신들에게로 날아오자 베르시아를 공격하려던 여자 병사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걔 중에는 옷과 갑옷에 불 이 붙어 괴로워하는 여자 병사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불똥에 가격 당해 큰 부상을 당한 여자 병사들도 있었다. 그런 여자 병사들을 보는 내 마음은 지극히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잔챙이들을 걸러내려고 허리케인을 사용했는데…… 전부 뒤로 물러나 버렸군. 게다가 불에 데어서 화상을 입고 부상까지…… 여자 병사 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강한 마법을 썼기 때문에 이런 결과 가 나와버린 건가……. "감히 군(軍)의 집행에 반기를 들다니!" 여자 병사들은 허리케인의 불똥이 떨어지지 않는 지역까지 피하고서는 거 기서 나와 베르시아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비록 멀리서 고래고 래 소리지르는 여자 병사들은 무섭지 않았으나, 문제는 나중이었다. 잘못 하면 반역자로 찍혀서 쫓기는 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떡합니까, 베르시아 씨? 이대로 도망칩니까?" 난 베르시아에게 물었다. 최초로 여자 병사를 죽인 사람이 바로 베르시아 라서 그녀도 나와 같은 공범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베르시아도 그걸 알고 있는지 잠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여자 병사들을 바라보다가 나에게 말했다. "우선 도망한다." 도망친다는 그 말은 결코 멋진 것이 아니었지만, 베르시아가 무게를 잡고 그 말을 했기 때문에 괜히 훌륭한 작전이란 헛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효율 적인 도주를 하기 위해서 난 허리케인을 중지하고 여자 병사들의 앞쪽에 마법을 사용했다. "어쓰퀘이크(Earthquake) 콜랍스(Collapse)!" 콰콰콰-! 붕괴 마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여자 병사들의 정면에 있던 땅이 움푹하고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땅이 움푹 꺼질 때 진동이 발생해서 그 여파로 여 자 병사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난 아트로포스와 오브를 데리고 베르시아와 함께 발바닥에 땀날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쳤다. 물론 도주하는 방향은 베르시아가 달리는 쪽이었다. 탁탁탁- 얼마나 뛰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었을 때 더 이 상 여자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와 아트로포스는 달리기를 멈추고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애썼 다. 하지만 그 전에 베르시아가 먼저 이곳의 위치를 말해주었다. "여기는 내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 얼레? 친구? 베르시아에게도 친구가 있었나? 하도 분위기 잡고 다녀서 나 나 아트로포스처럼 친구가 없는 줄 알았더니만. 어쨌든 친구가 있다니까 쉴 곳도 있겠지? 먹을 것도 있겠고. 우히히히. "들어와." 베르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어떤 집의 문 앞에 섰다. 집은 꽤 큰 편이었지 만 그렇게 부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베르시아는 그 문을 두드렸 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나다." 베르시아의 대답은 극히 짧았다. 그러나 그 대답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 집의 문은 즉시 열렸다. 그리고 한 명의 여자가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 내었다. 약간 피부가 거칠거칠한 아줌마였는데, 그 아줌마는 베르시아의 뒤에 서 있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고 약간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베르시아, 저 사람들은?" "얘기는 나중에 한다. 우선 비밀 장소로." 베르시아는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아줌마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더니 이내 안으로 들어갔다. 베르시아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니 조금 낡은 집 이 보였고, 그 다음으로는 여기저기 많이 심어놓은 나무들이 보였다. 집으 로 가는 외길 외에는 모두 수풀이 길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숲 속 에 있는 집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쿵- 대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외길을 걷던 베르시아가 갑자기 수풀이 우거 진 정원 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있는 무엇인가 를 찾는 듯하더니, 이내 우리의 시야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얼레? 베르시아가 어디로 가 버렸지? 이건 완전히 땅속으로 꺼진 거잖아? 그렇다는 것은…… 땅속에 뭔가 지하실 같은 것이 있다는 소리인가? "따라와라." 베르시아가 땅속으로 사라진 직후, 문을 열어 주었던 그 아줌마는 베르시 아의 모습이 사라졌던 바로 그 자리로 걸어갔다. 그래서 난 아줌마의 뒤를 따라가면서 수풀 사이에서 놀고 있는 벌레들이 바지에 달라붙지 않도록 조 심했다. 부스럭- 길게 자란 수풀을 헤집고 들어간 아줌마는 우거진 잡풀 사이에서 무엇인 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어떤 둥글고 납작한 물체가 들려졌다. 그것은 분 명 지하실의 출입문 대신 사용하는 나무 판자였다. 거친 피부의 아줌마는 그 나무 판자를 열어 젖히고는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밖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우리에게 말했 다. "어서 따라 들어와. 다른 녀석들이 보기 전에." "아, 예." 아줌마의 말에 따라 난 즉시 그 구멍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구멍은 깊이는 2미터 정도 됐기 때문에 뛰어내려 발이 바닥에 닿을 때 약간의 충 격이 발생했다. 이런 높이였기 때문에 아트로포스가 한번에 뛰어내리기에 는 무리가 있어 보여서 난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잡아줄 테니까 뛰어." "흥! 그러면서 로스 누나의 몸을 더듬으려고 그러지?" 내가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아트로포스를 도우려고 말한 것을 오브 녀석 은 그 뜻을 오해하여 날 비꼬았다. 하지만 난 오브를 철저히 무시하고 아 트로포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잠시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내려다보던 아트 로포스는 이내 내 손을 잡고 구멍 안으로 뛰어내렸다. 턱! 뛰어내린 아트로포스의 몸을 감싸안은 느낌은 조금 의외였다. 본래 힘이 약한 내가 사람 하나를 받았는데도 팔에 그다지 무리가 오지 않았던 것이 다. 내 팔 힘이 강해진 건지 원래 아트로포스의 몸무게가 가벼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아트로포스를 내려놓고 나서 난 다시 지상에 남아있는 오브 녀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음 변하기 전에 어서 내려와." "……." 오브는 내 도움을 받고 내려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자기 혼자서는 2미터나 되는 높이를 뛰어내릴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갖은 인상을 팍팍 쓰며 내 손을 잡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뛰어내린 오브의 몸을 받아든 결과, 오브의 몸무게가 아트로포스의 몸무게보다 훨씬 덜 나간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나참, 여자가 되어 가지고 남자한테 의지하다니……." 내가 아트로포스와 오브를 내려주는 것을 보던 거친 피부의 아줌마가 쯧 쯧 하고 혀까지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여자 중심의 이 사회관으로 보면 그런 못마땅한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 나라 사람이 아닌 나와 아트 로포스는 남자가 여자를 돕는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길 필요가 없었다. "따라와." 거친 피부의 아줌마는 어둠으로 뒤덮인 지하를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순서대로 그 뒤를 따랐다.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나 지하 에 만들어 놓은 복도가 짧아 지하실 문이 금방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걷 는 데에는 그다지 불편한 점이 없었다. 흘…… 땅 위에 집을 하나 마련해 놓고 이런 지하실을 만들어 놓다니…… 땅 위에 있는 집은 눈속임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인간들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야? 설마 나라를 뒤엎어버리겠다는 미친 생각을 하는 작자들은 아 니겠지? 똑똑- 똑- 똑똑- 거친 피부의 아줌마는 지하실 문에다 그렇게 리듬감 있게 다섯 번의 노크 를 했다. 그리고 누가 문을 열어주는 것 없이 바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갔다. 한마디로 문이 열려있었는데도 왜 아줌마가 그런 노크를 한 것인지 난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줌마를 따라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아줌마가 왜 노크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흘…… 문 쪽에 검을 든 여자들이 서 있군. 만약 저 아줌마가 노크를 하지 않고 무조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면 문 옆에 서 있는 여자들의 검이 여지없이 몸에 구멍을 냈겠지? 무섭다, 무서워∼ 콜록- 지하실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트로포스가 작게 기침을 했다. 지하실 방은 그다지 좁지는 않았으나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지 담배 연기가 지하 실 방을 헤엄치며 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흘…… 담배 연기가 있다는 것은 담배를 피웠다는 소리인데…… 이 지하 실 방에 있는 사람은 전부 여자니까 여자가 담배를 피웠다는 뜻이로군. 걱 정인데? 혹시 이 중에 임신한 여자라도 있으면 담배 연기 때문에 태아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텐데 말이야. 아, 혹시 이 나라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 의 성격이 바뀐 것뿐만 아니라 성 자체가 아예 바뀌어져 있는 건가? 예를 들어서 남자가 임신을 한다든지 하는……. "저 녀석이 베르시아가 데려왔다는 남자로군." 지하실 방 한쪽에 놓여진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던 한 젊은 여자가 나를 보더니 실실 쪼갰다. 그 젊은 여자의 얼굴이 완전히 우락부락한 남자였기 때문에 그 미소는 별로 봐줄 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 "꽤 섹시한데? 역시 베르시아는 남자 보는 눈이 있어." 그 말은 지하실 방의 한쪽 구석에서 검과 화살 같은 무기를 손질하던 젊 은 여자가 한 것이었다. 그 여자는 그나마 얼굴이 괜찮게 생겼기 때문에 웃으면 꽤 봐줄 만했으나, 문제는 그 말의 내용이었다. 흐으으…… 내가 섹시하다고라? 닭살 돋아 미쳐버릴 것 같다…… 섹시하 다는 것보다 차라리 멋지다, 잘생겼다 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냐? 섹시하다 라는 말은 여자에게 하든 남자에게 하든 마음에 안 든단 말이다! "더 이상 떠들어 댔다간 주둥아리를 막아버리겠다." 지하실 방 중앙에 놓인 둥근 탁자에 앉아있던 베르시아가 안에 있는 여자 들에게 살벌한 경고를 내렸다. 그러자 방안에 있던 여자들은 금방 나에게 서 시선을 돌리며 자기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위기를 잡은 베 르시아는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 와서 앉아라." "아, 예." 난 베르시아의 말대로 탁자로 걸어가 베르시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방 의 탁자도 모두 네 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 오브 녀석이 아트로포스와 같이 앉으려고 날 베르시아의 맞은편 자리에서 밀어낼 것이 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지하실 방의 분위기가 무서운 것인지 오브는 얌전 히 아트로포스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이 나라 사람이 아니겠지?" 우리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베르시아의 질문이 날아왔다. 아트로포스나 오 브가 베르시아의 질문에 대답할 리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대답은 내가 해야했다. "예. 니아르 제국에서 왔습니다." "그렇군. 그 나라에서 우리 나라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는다고 알고 있는 데, 아닌가?" 흘흘, 원칙상으로는 그렇지만 어떻게 월국자(越國者)를 다 막을 수 있겠 냐. 병사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 데다가 지금 니아르 제국은 제후들끼리 언 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태니까 말이야. "병사들 눈을 피해서 왔습니다." "그래? 왜 넘어온 거지?" 베르시아는 자신이 마치 형사라도 되는 것처럼 나를 심문하려고 했다. 그 러나 베르시아에게 성물 찾으러 왔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 다 른 이유를 대야했다. "그게…… 왜 나라에서 여길 못 오게 막는지 알고 싶어서……." 난 그렇게 말하면서 일부러 고개를 숙였다. 마치 그런 사소한 일로 월국 을 한 것이 쪽팔린다는 듯한 태도를 베르시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그런 내 연극이 통한 것인지 베르시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것뿐인가? 한심하군." "……." 흘…… 그래, 날 열심히 한심한 녀석이라고 생각해라.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그나저나 이제 내가 베르시아에게 물어볼 차례인가? 뭐, 베르시아가 나한테 질문을 했으니 나도 질문을 할 권리가 있겠지? "그런데 이 지하실은 왜 만들었습니까?" 조금 주제넘을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용기를 가지고 베르시아 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지금까지 지하실 안에서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하고 있던 여자들이 나에게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가는 죽이겠다는 뜻을 명백히 담고 있었다. 흘…… 저것들이 지금 날 노려본다 이거지? 정말 싸가지가 없구만. 베르 시아가 나한테 질문을 했으니까 나도 질문을 해야할 거 아니야? 물론 베르 시아가 나에게 사실을 얘기하든 거짓을 얘기하든 그거는 어쩔 수 없지만 말이야. [번 호] 93 / 93 [등록일] 2000년 11월 04일 23:48 Page : 1 / 14 [등록자] THEBUR [조 회] 26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4장: 신비의 물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4장:신비의 물 上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27 게 시 일 :00/11/04 19:46:40 수 정 일 : 크 기 :14.1K 조회횟수 :104 "……." 베르시아는 잠시 말없이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믿을 만한 녀석인지 아 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어차피 난 베르시아의 비밀이나 음모를 누군가에게 일러바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떳떳하게 베르시아의 시 선을 맞받아쳤다. 그래서인지 베르시아는 약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 다. "뭐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베르시아!" 베르시아의 말에 지하실에 있던 여자들이 모두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 다. 그러나 베르시아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인 듯, 베르시아가 한번 째려보 자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쫄다구들의 반발을 가볍게 잠재 운 베르시아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신비의 물을 되찾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 신비의 물? 그건 또 뭐냐? 그 물을 마시면 뭔가 엄청난 능력을 얻는 거야? 얼레? 얼레? 엄청난 능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그 신비의 물이란 것이 세 번 째의 성물일지도 모르겠는걸? "신비의 물이 무엇입니까?" 뭔가 성물에 대한 단서를 찾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난 베르시아에게 또 물 었다. 그러나 결코 얼굴에 흥분 어린 기색은 띄우지 않았다. 그래야만 베르 시아에게서 그 신비의 물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 다. "신비의 물을 모르나?" "예. 처음 듣습니다." "……." 내가 정말로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베르시아는 내 얼굴을 다시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 표정에서 일말의 거짓도 없음을 알아냈 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나라에는 병이나 상처에 아주 탁월한 효과가 있는 연못이 있어. 그 연못의 물을 신비의 물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연못의 치유 효과는 최근에 나타난 것이지. 그 전까지는 그냥 보통 연못물에 불과했어." 흐음…… 역시 중용자가 나타날 시기가 되니까 그 연못이 성물로 선택된 모양이군. 베르시아를 비롯한 이곳의 여자들은 그 신비의 물을 되찾으려고 한다니까, 이들을 따라가면 되겠지? "근데 나라에서는 그 연못이 치유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고 연못을 점거 해버렸지. 그리고는 왕족과 귀족들에게만 신비의 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비싼 돈을 받고 신비의 물을 팔고 있어. 본래는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연못이었는데도 말이야." 그 말을 하는 베르시아에게서 상당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나라에서 신비의 물을 점거해버려서 어떤 큰 피해를 입은 듯했다. 그때 열심히 무기 를 손질하고 있던 여자가 분노하는 베르시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베르시아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걸 려서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하고 있어. 발병하고 나서 신비의 물로 치료 를 해서 겨우 병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나라에서 연못을 장악해버려서 더 이상 남동생을 치료할 수가 없게 됐지. 뭐, 우리들도 그 때문에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을 구할 수 없게 됐지만." "의사에게 가면 되잖습니까?" 내 말에 그 여자는 코방귀를 뀌었다. "돈만 많이 받고 제대로 치료도 못하는 무능한 녀석들에게 가봤자 소용없 어. 맨날 하는 소리가 '이건 불치병입니다'니까." 흘…… 의사한테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만. 뭐, 이런 옛날 시대에 지금과 같은 의술이 존재할 리 없을 테니까 치료할 수 있는 병보다 치료할 수 없는 게 더 많겠지. 그래서 신비의 물이란 것에 의존했던 것일 테고. "신비의 물이 그렇게 효능이 좋습니까?" 이어지는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베르시아였다. "효능이 있긴 있지. 물론 그 물을 마신다고 단번에 병이 낫는 것은 아니 지만." 그것이 약간 불만인 듯한 베르시아의 어투에 다른 여자들이 각각 한마디 씩 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그래서 그 신비의 물을 되찾으려고 우리 들이 이렇게 모인 거고." "신비의 물이라도 없으면 전염병에 걸려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 해?" "지금 당장이라도 되찾으러 가야한다니까." 흐음…… 여기 모인 여자들은 모두 신비의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었 군.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나돌아 마을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전염 병에 걸린 상태인가 본데? 그건 그렇다 치고, 모이는 장소가 왜 이런 좁은 지하실이냐? 환기도 제대로 안 되니까 답답하잖아. "나라에서 여러분들의 행동을 알고 있습니까?" 물어봐서 결코 좋은 시선을 받을 리 없는 질문이었지만, 난 주저하지 않 고 베르시아에게 그렇게 물었다. 다행히 베르시아는 날 별로 위험한 녀석 이라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지, 내 질문에 쉽게 응해주었다. "알아. 그래서 이런 지하실을 만들고 숨어 있는 거다." "그럼 여러분들의 가족이 위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들은 가족이 거의 없다. 있더라도 모두 병에 걸려 숨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지. 나라에서 신비의 물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에 죽은 가족들 도 있어." "……." 베르시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분노 때문에 난 더 이상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분노의 대상이 신비의 물을 장악해버린 우메드국의 귀족 계층 임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너무 강렬해서 나한테 화를 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것이다. 흘…… 무서워라. 만약 내가 신비의 물을 죄다 마셔버린다면 날 무한대로 토막내서 적분을 통해 내 몸의 단면적을 계산할 것 같군. 그나저나 신비의 물이 성물일 경우에 어떻게 성물의 힘을 취하지? 정말 신비의 물을 죄다 마셔야 하는 건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정말 그랬다가는 위장이 터져 버 릴 테니까. "베르시아 씨가 절 구해주셨으니, 저도 뭔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신 비의 물을 되찾는 일에 협력하면 안 되겠습니까?" 신비의 물이 성물인지 아닌지를 알아내기 위해, 난 베르시아에게 그런 요 청을 했다. 이미 내가 그럴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아트로포스는 가만 히 있었지만, 오브와 베르시아를 비롯한 지하실의 여자들은 내 말이 의외 였는지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우리를 돕겠다고?" 베르시아가 놀라면서 되물었고, 난 좀더 분명히 대답했다. "예. 여러분을 돕고 싶습니다." "……." 지하실 안에는 묘한 정적만이 흘렀다. 하지만 난 그러한 어색한 정적 속 에서도 베르시아에게 정말 돕고 싶다는 강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 한치의 흔들림 없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베르시아가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더 이상은 묻지 않겠다." "베르시아!" "됐어. 책임은 내가 진다." 그 말로 다른 여자들의 반발을 막아버린 베르시아는 할 얘기가 끝났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들어왔던 쪽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나 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 오래 있다가는 몸 버린다. 어서 나와." "아, 예." 난 베르시아의 말대로 아트로포스와 오브를 데리고 담배 연기가 뿌옇게 들어앉은 지하실을 빠져 나와 베르시아의 뒤를 따라갔다. 반대쪽 문의 밖 에는 아까 들어왔던 곳하고는 달리 나무로 만들어진 계단이 있었다. 그래 서 우리는 그 계단을 따라 조금은 편하게 위로 올라갔다. 스윽-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조금 크지만 많이 낡은 저택의 뒤뜰을 볼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온 베르시아는 저택의 뒷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르기만 했다. "이 저택은 시장의 조카 소유로 되어있어. 한마디로 시장 조카의 별장인 셈인데, 시장 조카의 경호원 대신으로 우리들이 이곳에 숨어서 지내는 거 지. 시장 조카가 하인들을 잘 단속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는 우리들이 이곳 에 숨어 지낸다는 말이 새어나간 적이 없어." 저택 안으로 들어서며 베르시아는 그렇게 말했다. 비록 시장 조카의 나이 가 얼마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만약 그 사람의 나이가 베르시아와 그 다지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베르시아에게 반해서 베르시아 일행을 보호해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장 조카 얘기를 할 때 조금 곤란해하는 베르시아의 표정에서 난 내 생각을 거의 확신하게 되 었다. "아, 베르시아 님!" 그때 2층 계단에서 내려오던 한 하인이 베르시아를 보고는 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베르시아는 그 하인이 내려오자마자 즉시 물음을 던졌다. "'토드'의 상태는?" "'레이드' 님이 보살펴주고 계시지만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 하인의 말에 베르시아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정확하게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베르시아의 표정으로 보아 그 '토드'라는 사람이 베르시아의 남동생인 것 같았다. 아까 무기를 손질하던 여자가 베 르시아에게 남동생이 있다고 했고, 게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에 걸 렸다고 했으므로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토드가 베르시아의 남동 생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탁탁탁- 베르시아는 갑자기 거의 뛰다시피 계단을 올라갔다. 우리를 이 저택 사람 들에게 소개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이 남아있는 베르시아를 놓쳐버리면 우리 는 가택 무단 침입자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급히 아트로포스의 손을 잡고 베르시아의 뒤를 쫓아갔다. 항상 그렇듯이 오브는 아트로포스의 손을 잡고 있는 상태라 아트로포스만 잡아끌면 오브는 자동적으로 끌려왔다. 벌컥- 2층이 아닌 3층까지 올라간 베르시아는 어떤 방 앞에 이르자 노크도 하지 않고 막바로 문을 열어 젖혔다. 베르시아가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간 방은 여느 방보다 상당히 넓었고, 꽃이나 그림, 고급 가구 등으로 화려하게 치 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방안에는 침대 위에 누운 병약해 보이는 남자아 이와, 그 남자아이를 간호하는 듯한 흑발의 미소년이 있었다. "아! 베르시아 님!" 남자아이를 돌보고 있던 베르시아와 아트로포스 또래 정도의 미소년은 멋 대로 방안에 들어온 사람이 베르시아임을 확인하고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베르시아는 그런 미소년을 그대로 지나쳐 침대에 누워있 는 남자아이에게 다가가 그 아이의 손을 움켜잡았다. "괜찮니?" "누나……." 남자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은 나는, 그 남자아이가 베르시아의 남동생인 토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토드를 돌보고 있 는 사람이 레이드라는 시장의 조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의사는…… 여전히 손을 못대고 있는 건가?" 베르시아는 레이드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토드의 손을 잡은 채 그에게 물 었고, 레이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전염병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진찰도 거부하고 있어요." "……." 흘…… 의사가 병 옮을까봐 진찰을 거부하다니…… 뭐, 의사도 인간이니 까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내가 만약 의사라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 이 나돈다면 어디 안전한 곳으로 피했을 테니까. 그나저나…… 토드가 전 염병에 걸린 상태라면…… 이 방에 있는 우리들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소 리잖아? 허걱! 갑자기 이 방의 공기가 탁해진 것 같은 느낌이……! "아, 베르시아 님. 이분들은……?" 지금까지 나와 아트로포스가 들어온 줄도 몰랐는지, 레이드는 이제서야 우리들을 발견하고는 급히 베르시아에게 우리들의 정체를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레이드가 정체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흐으…… 뭐냐? 레이드라는 이 금발의 미소년은 베르시아를 좋아하고 있 는 거야? 그래서 베르시아가 남자인 날 데려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건 가? 그 뭣이냐…… 아, 데자엘이라는 미친 녀석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베 르시아의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전 외국에서 온 이드라고 하고, 이쪽은 동료인 아트로포스와 오브입니다. 베르시아 씨에게서 이 나라에 대한 안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난 레이드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아주 격식 있는 어조로 베르 시아 대신 우리들의 소개를 했다. 그래서인지 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 던 레이드는 이내 표정을 풀고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전 이 집주인인 레이드라고 해요. 그리고 베르시아 님이 이미 말씀했을 지도 모르지만, 저기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는 베르시아 님의 남동생인 토 드예요." "예……." 레이드의 말을 통해서 내 생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레 이드의 말투조차 완벽한 여성어라는 사실이 내 온몸에 닭살을 돋게 만들었 다. 이상하게도 여자가 남성어를 구사할 때는 별 감정이 들지 않는데, 남 자가 여성어를 구사할 때는 엄청난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흘…… 그 이유는 역시 남성 위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왔기 때문이겠지. 일상 생활 속에서 남성어에 익숙해져서 남자가 남성어를 쓰든 여자가 남성 어를 쓰든 상관없었으니까. 뭐, 여기는 그 반대로 여성 위주의 사회니까 남자의 여성조 어투에 익숙해져야 할텐데…… 아무리 들어도 닭살이 돋아……. "레이드." 토드의 손을 잡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베르시아가 어떤 결심을 내린 것인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레이드의 이름을 불렀다. 갑작스런 베르시아의 어조 변화에 레이드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약간 흠칫하며 베르시 아를 쳐다보았다. 베르시아는 그런 레이드에게 자신이 결심한 사항을 알려 주었다. "계획을 조금 앞당긴다. 미안하지만 무기 확보를 해줘." "베르시아 님……!" 베르시아가 생각하고 있던 계획이란 것은 신비의 물 탈취밖에 없기 때문 에, 베르시아의 말은 결국 나라와 정면 충돌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알고 있기에 레이드는 아주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베르시아는 자신의 결심을 되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폐만 끼쳐서 미안하지만, 역시 부탁할 사람은 레이드밖에 없어." "베르시아 님……." 자신이 베르시아에게 있어서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베르시아 의 부탁을 들은 레이드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완전히 무엇에 홀린 듯한 표 정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레이드는 베르시아에게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져버린 상태였다. 흘…… 지금의 이 상황은 왠지 남자가 자신에게 푹 빠진 여자를 속이고 그 여자의 재력만을 취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 뭐, 이 나라에 서는 여자 쪽이 남자의 순정을 이용하고 있다라고 해야 맞겠지. 그나저나 베르시아는 과연 레이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베르시아의 표정을 봐서는 레 이드에게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알겠어요, 베르시아 님. 베르시아 님이 어떤 일을 하시던 간에 전 베르 시아 님을 도울 테니까요." 전형적인 순정형 여성, 아니 전형적인 순정형 남성의 대답을 한 레이드는 베르시아의 보일락말락한 미소를 보고 상당히 기뻐했다. 상대의 작은 변화 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베르시아가 계획적으로 레이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다 지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레이드, 저 사람들의 거처도 마련해 줘. 우리와 같이 행동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우리를 가리키는 베르시아의 말에 레이드가 크게 놀래며 되물었다. "그럼 저 분들도 베르시아 님의 작전에 합류하는 거예요?" "그래." 베르시아는 여전히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토드의 머리를 매만져 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하나밖에 없는 내 가족을 더 이상 죽게 하지는 않아. 그러니 잠시 동안만 참아 줘, 토드." "응, 누나……." 흘…… 베르시아에게는 혈육이 토드밖에 없나보군. 그래서 남자들의 사랑 을 모두 무시하고 토드의 상태만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근데 난 왜 이런 장면을 보면 아무런 감정이 안 드는 걸까? 쩝…… 역시 난 감정이 메말랐 어……. "여러분들은 절 따라오세요." 베르시아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레이드가 먼저 앞장서서 방밖으로 나갔다. 나와 아트로포스는 레이드의 뒤 를 따랐고, 그가 지정해준 방에 머물게 되었다. 사람의 시체가 여기 저기 에 널려 있었던 데자엘의 집과는 달리, 레이드의 집에는 먼지 하나 발견하 기 힘들어서 지내는 데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물론 레이드나 이 집의 사람들에게 무례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상당히 신경 쓰며 지내야 했기 때문에 신경성 두통이 재발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을 뿐이었다. ===================================================================== 다음주에 수학 2차 시험... 그 다음주에는 물리 2차 퀴즈와 2차 시험이 열심히 글을 쓰려는(-.-;) 저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헐헐...ㅡㅡ;;;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번 호] 94 / 96 [등록일] 2000년 11월 11일 03:45 Page : 1 / 24 [등록자] THEBUR [조 회] 12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 신비의 물 下 -1-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신비의 물 下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70 게 시 일 :00/11/10 20:02:07 수 정 일 : 크 기 :12.0K 조회횟수 :127 <제 15 장> 신비의 물 (下) 레이드의 별장에서 머무른 이틀 동안, 난 열심히 마나회로를 건설했다. 누가 나한테 일을 시키거나 부탁 같은 것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 문에 마나회로 건설밖에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틀 동안 마나회 로만 건설한 결과, 7서킷까지 건설했던 마나회로가 하나 더 늘어 8서킷이 되었다. 한 달이 조금 넘고 나서야 1서킷을 추가시킨 것이었다. 흘……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온 지도 거의 두 달이 되어가는 군. 두 달만에 8서킷을 건설한 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중 용의 법칙을 실현해야 할 중용자로서는 과연 좋은 상태인가? 8서킷 가지고 는 좀더 고난이도의 마법을 구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똑똑- "이드, 아직 잠자리에 안 들었겠지?" 내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열심히 마나회로 건설을 하고 있을 때, 베르시 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그래서 난 마나회로 건설을 멈추고 입 을 열었다. "깨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할 얘기가 있어." "그럼 들어오십시오. 문은 열려 있습니다." 평상시에 난 항상 문을 열어놓고 자는 습관이 있었다. 일일이 문을 잠그 고 자는 게 귀찮은 점도 있었고, 문을 열어놓고 잔다고 해도 날 죽이려는 자가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에 굳이 문을 잠글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얘기는 간단한 거야. 지금 당장 신비의 물을 탈환하러 간다는 거 지." "……!" 베르시아의 말은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이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출발한다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난 즉시 문 쪽으로 뛰 쳐나가 벌컥 문을 열고는 베르시아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렇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 베르시아는 자신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는 듯 아주 단정적인 어조를 구사했다. 그리고는 내가 어이없어 멍청히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말 을 이어나갔다. "지금 당장 출발하기 싫다면 여기에 남아 있어라. 신비의 물을 탈환하러 가는 것은 나라에 대항한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그것만큼이나 위험한 일도 없어." "……." 흠…… 확실히 나라에 대항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고. 하지만 신비의 물이 성물일지도 모르는데 안 갈 수는 없 어. 게다가 베르시아에게는 아주 눈꼽만큼의 신세를 졌으니까 그 은혜도 갚을 겸 따라가야지. "그럼 지금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난 베르시아에게 그렇게 말한 뒤에 즉시 아트로포스가 있는 방 쪽으로 향 했다. 그리고는 아트로포스의 방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로스! 오브! 지금 즉시 출발한다고! 어서 나와!" 끼이- 내가 방문을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트로포스가 귀신같이 문을 열었 다. 이미 아트로포스가 소리 없이 문을 열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전혀 놀 라지 않고 아트로포스에게 베르시아의 말을 전했다. "신비의 물을 탈환하러 간다. 어서 준비하라고." "…… 알겠어요." 예상외로 아트로포스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단지 문 앞에 선 채로 나에게 방안의 내부를 보여주며 입을 놀렸을 뿐이었다. "오브는 이미 자고 있으니 이드 님이 오브를 깨우세요." "……." 흐으…… 오브 녀석은 왜 저렇게 일찍 자는 거야? 지금 9시도 안 됐는데! 하여간 오브 녀석은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서 문제라니까. 그렇게 과다한 수면을 취하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고. 특히 정신이 흐리멍텅해져! 저벅저벅- 털퍽- 난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오브를 짐짝 들 듯 이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다시 성큼성큼 방밖으로 나와서 아트로포스에게 부탁을 했다. "로스, 내 검을 가져와 줘." "네." 내가 오브를 업고 있어서 검을 집어들 수가 없다는 것을 고려한 아트로포 스는 두말하지 않고 내 방에서 실버럭서스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것뿐 만이 아니라 친절하게도 내 허리에 검을 매어 주었다. 그렇게 아트로포스 의 도움으로 검을 허리에 찬 나는 모든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하여 베르시 아에게 보고를 올렸다. "갈 준비 끝났습니다." "…… 정말 갈 생각인가?" 베르시아는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어린 오브까지 데려가는 게 걱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나나 아트로포스가 무슨 일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난 그런 베르시아에게 걱정 같은 것을 주고 싶지 않아서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걱정 마십시오." "…… 알겠다. 그럼 따라와라." 잠시 말없이 날 쳐다보던 베르시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먼저 앞장 서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녀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니 1층 현관에는 이미 저번에 지하실에서 만난 여자들하고 처음 보는 여자들 몇 명까지 섞여서 대략 10여 명의 여자들이 손에 온갖 무기를 들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베르시아 님!" 1층에서 그 여자들과 같이 있던 레이드가 내려오는 베르시아를 보고 아주 걱정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나 그저 걱정스런 얼굴만을 했을 뿐, 말 리거나 같이 따라가겠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베르시아가 말린다고 관둘 여자도 아닌데다가, 자신이 베르시아를 따라가 봐도 방해만 될 것임을 알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르시아, 그 남자도 데려갈 건가? 게다가 어린 남자애까지?" 저번에 무기를 손질하던 그 젊은 여자가 나와 아트로포스가 같이 내려오 는 것을 보고 베르시아에게 의문스런 어조로 물었다. 그러나 베르시아는 저번에 말했던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우리를 돕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나참……." 젊은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베르시아의 생각에 반대 를 할 생각은 없는지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어쨌든 그렇게 나와 아 트로포스, 그리고 오브까지 신비의 물 탈환 작전에 합류한다는 것을 알린 베르시아는 모두를 둘러보며 장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나라에서 멋대로 장악한 신비의 물을 탈환하러 간다. 그것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를 지도 모르는 격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만 약 지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여기를 떠나라." "……." 흘…… 떠나라고 떠난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지. 저건 완전히 형식적 인 말이라니까. 뭐, 그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동료들의 생각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는 있겠지. "그럼 출발이다." 베르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레이드의 저택을 나섰다. 난 베르시아 일행의 뒤를 따라가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현관에 서 있는 레이드를 쳐다보았다. 레이드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눈물을 흘리며 베르시아의 안전을 빌 고 있는 상태였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장면은 원래 봐줄 만한 것 이었다. 그러나 다 큰 남자 녀석이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기도하 는 모습은 눈 버리기 딱 좋은 것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흐으…… 성물을 얻자마자 당장 이 나라를 떠나야겠어. 안 그랬다가는 내 가 미쳐버릴 것 같아. 아무리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바뀐 나라라고는 해도 정말 못 견디겠어! 찌륵 찌륵- 어디선가 들려오는 곤충 소리를 들으며 베르시아를 선두로 한 '신비의 물 탈환 멤버'들은 어두운 밤에 몸을 숨겨 목적지로 향했다. 가능하면 마차를 타고 편하게 가고 싶었지만, 이런 심야에 마차 같은 게 나다닐 리 없기 때 문에 걸어야만 했다. 흘…… 무거운 오브 녀석을 등에 업고 가려니까 무지하게 피곤하구만. 도 대체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지? 설마 밤을 꼬박 세워야 한다는 건 아니 겠지? 그렇게 강행군을 했다가는 싸우기도 전에 지쳐버린다구! "……!" 오브를 등에 업어 뻐근해진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걷고 있을 때, 갑자 기 허리의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갑작스런 통증의 소멸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아트로포스가 내 허리 가까이에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즉, 아트로포스는 내가 허리 통 증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영인관의 능력으로 내 허리 통증을 없애버린 것 이었다. "……." 베르시아 일행이 하도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난 차마 고맙다 는 말은 하지 못하고 단지 미소로써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그러자 아트 로포스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오브를 운반하는 내 공로를 인정하는 듯했다. 저벅저벅- 얼마나 걸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온이 조금 떨어진 것으로 봐서는 새 벽에 가까운 시간인 것 같았다. 한밤중에는 낮에 흡수됐던 태양 복사 에너 지가 지구 복사 에너지의 형태로 지표면으로부터 방출되지만 새벽녘에는 그러한 에너지의 이동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밤중보다는 새벽이 조금 더 춥다. "다 왔다."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던 베르시아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튀 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일행들은 일제히 무기를 들고 정면을 응시했다. 그 들의 시선을 따라 정면을 쳐다보니 돌로 만들어진 일종의 조그마한 성(城) 이 산 중턱에 하나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흘…… 역시 신비의 물은 산 속에 있는가 보군. 그래서 산 중턱에다 성을 세워놓고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막고 있는 거겠지. 연못 하나를 위해서 성 을 지었다는 건…… 그만큼 신비의 물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소 리. "신비의 물은 저 성 안쪽에 있다. 우리의 목표는 저 성의 병사들을 모두 죽이고 저 성을 장악하는 거다." 베르시아는 낮은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들어보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 말이었으나, 나에게는 성을 장악한 이후가 걱정되었다. 지금 이 런 소수의 인원으로 성을 장악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나라에서 보낼 지원군 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가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성 안이나 밖에다 불을 질러 성 안의 병사들이 성문을 열고 밖으 로 나오기를 기다리려고 했지만, 작전을 변경한다." 갑작스런 베르시아의 작전 변경 선언에 다른 여자 동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베르시아가 어떤 작전을 쓸 것인가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베르시아는 그런 동료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내 쪽으로 고 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이드, 당신은 마법사니까 마법으로 저 성문을 제거해주면 좋겠어." "……!" 헉! 나보고 성문 파괴 공작을 하라고?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베르시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만약 내가 못하겠다는 소리를 한다면 당장이라도 돌아가 버리라는 말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흘…… 내가 신비의 물 탈환 작전의 첫 번째 타자라니…… 어차피 도움을 주겠다는 조건으로 따라왔으니까 군말 없이 해야겠지. 그나저나 성문 파괴 같은 유치한 일을 나한테 시키냐? 그건 너무 기초적인 일이라구. 날 무시 하지 말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난 베르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동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아주 자신 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의 그런 대답을 듣고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실버럭서스가 또다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라니까 이제는 맨날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하 는구만. 그러다가 실패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시꺼, 이 녀석아. 그 정도의 쉬운 일도 실패하면 중용의 법칙 같은 걸 어 떻게 실현해? 《흠…… 그것도 그렇군. 그럼 열심히 해라. 난 네 녀석이 실패하기를 기 도할 테니까.》 "……." 실버럭서스의 사악한 말을 들으며 난 오브를 아트로포스에게 넘기고 나서 성큼성큼 성 쪽으로 걸어갔다. 일부러 들키기 위해 수풀 밟는 소리도 크게 냈다. 그것을 보고 베르시아 일행은 경악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아주 당당히 성문 앞까지 걸어갔다. "누구냐!!!" 성벽 위에서 망을 보고 있던 한 여자 병사가 너무나 당당히 성문 앞까지 걸어온 날 보고 크게 놀라며 내 정체를 물었다. 그래서 난 성 안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외쳤다. "이 성을 접수하러 온 사람이다!" "……." 그러나 여자 병사들은 성벽 위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 기만 했다. 사실 내가 이 성의 병사라고 해도, 갑자기 나타나서 선전 포고 를 하는 녀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 내가 결코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윈드 코트(Wind Court) 플로트(Float)!" 바람을 이용한 부유 마법은 내 몸을 하늘 위로 솟구치게 했다. 난 하늘 위로 떠오른 나를 멍한 표정으로 보는 여자 병사들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윈드 코트를 구현하며 유유히 성 안으로 날아 내렸다. 탁- 지상에 안전하게 착지한 나는 즉시 고개를 들어 성문을 쳐다보았다. 성문 의 크기는 3미터가 훨씬 넘는 크기였는데, 재질은 나무였고 단순한 나무 판자 빗장으로써 외부에서 성문을 열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침입자다! 잡아라!" 성 안으로 유유히 날아 내린 나를 잡으려고 몇 명의 여자 병사들이 나에 게로 달려왔다. 그러나 난 그런 병사들을 무시하고 성문을 향해 마나회로 를 가동시켰다. 물론 빗장만 제거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윈드 코트의 강도 를 떨어뜨려 마법을 사용했다. 휘잉- 내가 일으킨 바람에 의해 적어도 1미터 이상 되는 빗장용 나무 판자가 잠 시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그와 동 시에 여자 병사들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죽어라ㅡ!" 휘이잉- "……!" 막 나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여자 병사들은 자신들의 시야에서 내 모습 이 갑자기 사라지자 상당히 당황했다. 윈드 코트로 허공으로 날아오른 나 에게 있어서 이것은 병사들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난 병사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성문을 쳐다보았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프런트(Front)." 끼이이- 성 안쪽으로부터 압력을 가하자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본래의 내 성격으로는 단번에 성문을 부수어야 했지만, 성문을 부수었다가는 나중 에 밀어닥칠 나라의 지원군을 막아낼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에 성문에 손상 이 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성문을 열었던 것이다. [번 호] 95 / 96 [등록일] 2000년 11월 11일 03:46 Page : 1 / 29 [등록자] THEBUR [조 회] 13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 신비의 물 下 -2-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신비의 물 下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71 게 시 일 :00/11/10 20:02:31 수 정 일 : 크 기 :14.9K 조회횟수 :117 "화, 활을 쏴라!" 성문이 거의 다 열렸을 때, 내가 성문을 여는 광경을 멍청히 쳐다보고 있 던 한 여장군이 그나마 괜찮은 명령을 내렸다. 여장군의 명령이 내려지자 마자 여자 궁수(弓手) 몇 명이 몰려나와 나에게 활을 겨누었다. 난 허공에 떠 있는 상태라 화살이 날아온다면 마법으로 막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여자 궁수의 손에서 화살이 떠나기 전, 베르시아를 선두로 한 신비 의 물 탈환 멤버들이 일제히 성 안으로 침입했다. "병사들을 남김없이 죽여라!" "와ㅡ!" 베르시아 일행은 인원도 얼마 없으면서 상당히 우렁찬 기합과 함께 얼떨 떨하게 서 있는 여자 병사들을 차례차례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난 마치 대 장이라도 된 듯 허공 위에 둥둥 떠서 성 안의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 당연한 말이지만 전장에서는 사정없이 피가 튀고 있었다. 한쪽은 신비의 물을 되찾기 위해, 한쪽은 신비의 물을 지키라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이렇게 허공 위에서 전 장 상황을 내려다본다고 하더라도, 나 역시 지금 사람을 죽이는 이 일에 합류하고 있으니 내가 저 여자 병사들을 죽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 었다. 《쯧쯧,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있군.》 뭐가 쓸데없는 감상이야? 《앞으로 네가 죽일 녀석들이 많은데 벌써부터 그런 감상에 빠져 있으면 망하기 딱 좋아.》 그럼 나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라는 거냐? 《당연하지. 네가 중용자로 선택됐을 때부터 넌 이미 킬러가 된 거니까.》 "……." 실버럭서스의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었 기 때문에 난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중용 의 법칙을 실현해 달랍시고 이 세계로 잡혀왔지만, 이미 이곳으로 넘어와 버린 이상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이다. 탁-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기 때문에 난 지상에 착지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브를 안은 아트로포스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어린아이 하나를 안고 있어서 조금 힘든 표정이었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브를 넘겨." "……." 마치 물건 다루는 듯한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곧 두말하지 않고 오브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아직도 퍼질러 자고 있 는 오브를 등에 업었을 때,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이 성 안에서 성물의 기운이 아주 강하게 느껴져요. 아무래도 그 신비의 물이 성물인 것 같아요." 아트로포스의 말은 내 생각대로였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성 어디 쯤에 신비의 물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신비의 물은 어디 있어?" "음…… 저 내성(內城) 안쪽에서 성물의 기운이 아주 강하게 느껴져요." "좋아, 그럼 베르시아들이 병사들하고 싸우고 있는 틈에 우리는 이익을 취하자고." 난 싸가지 없음의 극을 치달리는 말을 하고 즉시 싸움터를 가로질러 성벽 없이 건물만 세워진 내성으로 향했다. 베르시아 일행들이 하도 이리저리 날뛰면서 여자 병사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얌전히 싸움터 만 가로질러 가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공격하지 않았다. 사실, 아직 새벽도 오지 않아 주위가 꽤 어두웠기 때문에 달빛이나 별빛에 반사될만한 무기가 없는 우리를 여자 병사들이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쉽 게 내성까지 도달한 우리는 열려있는 내성의 성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갔 다. "누구냐?!" 내성 안에서도 지키는 여자 병사가 있었는지 날카로운 목소리가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내성에 몇 명의 여자 병사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 에 난 우선 실버럭서스를 손에 들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 내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횃불로 밝혀놓은 내성 중앙에 큰 연 못 하나가 있고 그 주위를 여섯 명의 건장한 여자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그들은 병사들이 아니었다. 우메드국의 갑옷을 입지 않고 그냥 평상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들어오다니, 제법이군." 머리를 빡빡 민 거친 용모의 한 여자가 들고 있는 낫을 혀로 핥으며 입을 열었다. 난 잠시 여섯 명의 여자들을 둘러보고 나서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용병이냐?" "당연하지. 저 밖에 있는 병사들만 있으면 여기는 쉽게 빼앗기니까 말이 야. 그래서 나라에서는 특별히 우리를 고용한 거다." 대머리 여자는 보기에도 소름 끼치는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여섯 명 의 여자 용병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했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 스에게 다시 오브를 넘겨주며 아트로포스보고 피해 있으라고 했다. 그것을 보고 여자 용병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자가 안 싸우고 남자가 우리하고 싸운다고?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구나!!!" "후후, 내가 우스운지 안 우스운지는 직접 싸워보고 판단하시지?" 난 실버럭서스를 잡은 손에 힘을 가하며 여자 용병들을 도발시켰다. 대머 리 여자는 그런 내 도발에 쉽게 넘어가 버렸다. "감히 남자 주제에!!!" 슈우욱- 나와 대머리 여자 사이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정도였는데, 그 5미터를 격 하고 낫이 날아왔다. 낫의 손잡이 부분에는 쇠사슬이 달려 있어서 낫을 던 져도 쉽게 회수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던지기 공격으로 기선을 잡으 려는 것이었다. 까강! 실버럭서스와 낫이 맞부딪쳤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큰 타격이 오지 않았다. 그것은 실버럭서스 스스로가 낫과 강하게 부딪친 충격을 진동으로 제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빠른 속도로 날아온 낫을 거의 조건 반사적으 로 막아낸 나는 대머리 여자가 낫을 회수하기 전에 공격을 가했다.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피잉-! 본래는 파이어 애로우를 날리려고 했지만 그랬다가 실수로 성에 불이라도 붙으면 큰일나기 때문에 즉시 아이스 애로우로 마법 종류를 바꿔 얼음 화 살을 대머리 여자에게 날렸다. 대머리 여자는 막 낫을 회수하려다가 얼음 화살이 정통으로 날아오자 기겁해 버렸다. 내가 마법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으악!!!" 대머리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얼음 화살이 가슴을 뚫고 지나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대머리 여자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대 량의 피를 보며, 난 다른 여자들이 날 공격하기 전에 먼저 마법을 날렸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스트레이트(Straight)!" 이번에 내가 쓴 마법은 라이트닝 쇼크에서 가장 기본적인 스트레이트였다. 이론상 스트레이트는 이곳과 목표점 뒤쪽의 전위차를 형성해서 자동적으로 번개의 형태로 전류가 흐르게 하는 것인데, 그러한 전위차를 형성하는 방 법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없는 나는 그저 단순히 번개 치는 이미지만을 떠 올림으로써 스트레이트를 구현했다. 그리고 지금이 되어서야 환타지 세계 에서 사용했던 라이트닝 볼트가 단순한 이미지 구현으로 실현된 것임을 알 게 되었다. 그 당시 난 전위차를 형성해서 라이트닝 볼트를 사용했다고 생 각했지만, 실제로는 양쪽으로 번개가 치는 장면을 상상함으로써 라이트닝 볼트를 구사했던 것이다. "크윽……!" 내 라이트닝 쇼크 스트레이트가 실현되자, 목표가 된 한 여자가 신음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내 손으로부터 뻗어 나온 번개가 그 여자의 몸을 통해 땅속으로 방전되었기 때문에 여자의 내장이 타버린 것이다. "이 개자식!" 손에 단도 여러 개를 들고 있던 여자가 나를 향해 단도 세 개를 집어 던 졌다. 단도는 횃불로 인해 붉어진 허공을 가르며 내 심장, 왼팔 부근, 오 른팔 부근을 노렸다. 그렇기 때문에 난 감히 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심장 쪽으로 날아오는 단도를 피하려고 왼쪽으로 몸을 이동했다가는 왼팔 쪽으 로 날아오는 단도에 맞게 되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피했다가는 오른팔 쪽 으로 날아오는 단도에 맞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뛰어오를 시간적 여유 나 아래로 몸을 숙일 배짱은 없었다. 내가 뛰어오르거나 몸을 숙인다면 다 음 단도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여자의 공격을 막아내기 어려운 자세 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텔에게서 받은 지옥 훈련의 성과를 믿기로 하고 그 단도를 실버럭서스로 맞받아쳤다. 까강! 다행히 지옥 훈련의 성과는 탁월해서 빠르게 날아오는 단도를 막아내기에 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어쨌든 1차의 위기를 넘긴 나는 단도 가진 여자가 또다시 단도 두 개 날린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바람 마법을 사용했다. 휘이잉- 《오른쪽 옆에서 한 여자가 검으로 공격하려고 한다!》 막 바람을 일으켜 단도를 떨쳐내려고 했던 나는 갑작스러운 실버럭서스의 외침에 놀라 급히 바람 마법을 부유 마법인 플로트(Float)로 변형하여 빠 르게 위로 몸을 피했다. 물론 날아오던 단도는 바람 마법으로 되튕겼다. 그렇지 않았으면 플로트로 떠오르기 전에 단도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젠장!" 내가 공격을 예상하고 -실제로는 실버럭서스가 알려준 것이지만- 공중으 로 날아오르자 날 베려고 했던 여자는 욕설을 내뱉었다. 아무리 훌륭한 솜 씨를 가진 검사라 할지라도 허공에 떠 있는 상대를 공격할 수는 없기 때문 이었다.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날 검으로 베려고 했던 여자와 나에게 단도를 던진 여자를 목표로 난 얼 음 화살을 여러 개 만들어서 날렸고, 그 둘은 내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치 명타를 입고 말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위를 맞았는지는 횃불이 밝지 않 아서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피가 쉴새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봐서 살 아나기 힘들 것 같았다. "사, 사람 살려!!!" 네 명의 동료가 불귀의 객이 되자 남아있던 두 여자 용병은 나와 싸웠다 간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비명을 지르며 내성의 다른 쪽문을 통해서 밖으 로 달아났다. 옛날 같으면 도망치는 녀석까지 죽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상대가 단순한 용병이라는 것 때문에 그럴지도 몰랐다. 《오늘도 내 조언 덕분에 살아난 줄 알아라.》 그래, 아주 고∼맙다. 《언제 내 도움 없이 싸울 거냐? 앞날이 걱정이다, 앞날이!》 걱정마셔, 다 알아서 하니까. "로스, 저 신비의 물이 성물 맞는 거야?" 난 실버럭서스의 쓸데없는 말을 막아버린 후, 이미 깨어있는 오브와 같이 서 있는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내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확실해요. 저 물이 바로 성물이에요." 후후, 역시 그렇군. 나도 이제 어느 것이 성물일 것인가 하는 감이 오기 시작했어. 뭐, 그래봤자 아트로포스가 없으면 그게 성물인지 아닌지 확인 할 수 없으니 그다지 도움이 안될지도……. "……." 난 신비의 물이 고여 있는 연못 근처에 가서 섰다. 연못은 아주 평범했다. 원래는 나무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성 안에 연못을 막아놓는다고 있던 나 무나 잡초를 모두 제거한 듯했다. 그리고 연못 바로 근처에만 흙을 남겨놓 고 나머지 땅은 모두 돌을 깔아버린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돌로 만들어져 서 차가운 느낌이 드는 내성 안에 연못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모습이 왠지 애처롭게 보였다. 흘…… 근데 어떻게 성물의 힘을 흡수하지? 신비의 물을 봐도 뭔가 떠오 르는 것도 없고. 도대체 나보고 무슨 수로 성물의 힘을 흡수하라는 거야? 설마 정말 이 물을 다 마시라는 건 아니겠지? "아……!" 내가 신비의 물을 내려다보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내 곁에 오더니 갑자기 탄성을 터트렸다. 그 탄성은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듯한 것으로 들렸기 때문에 난 즉시 아 트로포스에게 물었다.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방법을 알아낸 거야?" "알아낸 건 아니에요. 신비의 물을 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방법이 떠오른 것뿐이니까요." 결국 영인관의 힘, 아니 영계가 짜놓은 각본대로 성물의 힘 흡수 방법을 알아낸 아트로포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는 그 방법을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물의 힘은 신비의 물에 녹아 있어요. 그것 때문에 이 평범했던 연못물 이 갑자기 치료 효과를 내기 시작한 거죠. 중용자가 아닌 보통 사람에게도 성물의 힘이 약간이나마 효력을 발생하니까요. 십년수의 열매와 마찬가지 로요." 흐음…… 그러고 보니 십년수의 열매는 음식의 맛을 아주 좋게 만든다고 했었지? 그것과 마찬가지로 신비의 물도 치료 효과를 나타냈던 것이군. 두 번째 성물인 실버럭서스도 중용자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명검(名劍)으로 통하니까 성물의 힘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 겠구만. "신비의 물에 깃든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신비의 물 표 면에 손바닥을 갖다대는 것뿐이니까요." 헐……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진짜 간단하구만. 이 신비의 물을 몽땅 마시라고 할까봐 무지하게 걱정했는데. "그렇지만……." 아트로포스가 말해준 방법대로 성물의 힘을 흡수하려고 할 때, 아트로포 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며 내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난 동작을 멈추고 다시 아트로포스에게로 고개를 돌려 질문을 해야했다. "왜?" "……." 아트로포스는 계속 어두운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 았다. 하지만 아트로포스가 얘기를 안 해주면 나로서는 어떤 행동을 취해 야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를 재촉했다. "어서 말해." "휴우……." 아트로포스의 입에서 뜻 모를 한숨이 새어나왔다. 계속 뜸을 들이는 아트 로포스에게 파이어 볼 하나를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으나 난 입을 다물고 아트로포스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말해줄 마음이 생겼는지 아트로포스는 느린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중용자는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드 님이 신비 의 물에 깃든 성물의 힘을 흡수하게 되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신 비의 물의 치료 효과는 모두 없어지게 되요." "……!" 그 말은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었다. 만약 내가 신비의 물에 녹아있는 성물의 힘을 흡수해버린다면, 남동생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신비의 물을 탈환하려는 베르시아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보통 물이 된다는 거야?" 믿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했다. "네. 보통 물이 되요." "……." 보통 물…… 그럼 난 어떡해야 하는 거지? 중용자로서 당연히 성물의 힘 을 취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목숨을 걸고 이 성을 탈환하려는 베르시 아 일행의 노력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당연히 헛고생한 게 되는 거지.》 실버럭서스의 말은 인정이란 단어를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난 내성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쉽게 마 음의 결정을 내릴 수 없어 갈등만 했다. "로스…… 이 물의 일부를 퍼다가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주면 안될까?" 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아트로포스에게 제시했지만 아트로포스는 고개 를 가로저었다. "소용없어요. 신비의 물이 병을 단번에 고치는 효능이 있다면 모를까, 겨 우 병의 악화를 막는 정도의 효능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신비의 물을 접 하지 않으면 병은 호전되지 않아요." "……." 지속적…… 하지만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신비의 물을 접하게 하려면 난 신비의 물에 깃든 성물의 힘을 흡수해서는 안돼…… 이런…… 뭔가 양쪽에 게 모두 좋은 해결책은 없는 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군. 세상일이 모두 그렇게 잘 풀린다면 싸움 같은 게 일어날 것 같냐?》 …….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내가 근 1000년간을 살아오면서 배운 세상의 진리다.》 ……. 《주저 말고 성물의 힘을 취해라. 그렇지 않으면 넌 중용의 법칙을 실현 시킬 수 없고, 네 원래 세계로도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탁탁탁- 그때 내성 밖에서부터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 고 잠시 후, 본래 10여 명 정도였던 일행 중 다섯 명만이 내성 안으로 들 어왔다. 다른 일행은 싸움 도중에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괜찮나, 이드?" 내가 아트로포스와 함께 연못 가까이 서 있는 것을 본 베르시아가 걱정스 러운 얼굴로 나에게 소리쳐 물었다. 난 그런 베르시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베르시아와 그 일행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대부분 크고 작 은 부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 중에 베르시아의 상태가 가장 양호했다. 역 시 일행 중에 가장 실력이 있는 사람은 그녀였던 것이다. "다친 곳은 없는 것 같군. 다행이야." 내 모습이 아주 멀쩡하다는 것을 알고 베르시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다. 그러다가 내성 안에 쓰러져 있는 네 명의 여자 용병들을 보고 크게 놀 랬다. "설마…… 이 자들을 당신이 쓰러뜨린 건가?" "……."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르시아는 여자 용병들의 상처를 보고 그것이 마법으로써 만들어진 것임을 금방 알아냈다. "상당한 실력이야. 이런 좁은 내성 안에서 정확한 마법을 구사하다니." "……." "이 정도의 실력이었다면 우리가 싸울 때 조금 도와주면 좋았잖아." 팔 한쪽이 거의 너덜너덜해진 거친 용모의 여자가 실실 쪼개며 입을 열었 다. 하지만 그 말은 날 탓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는 남자가 싸움 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번 호] 96 / 96 [등록일] 2000년 11월 11일 03:47 Page : 1 / 30 [등록자] THEBUR [조 회] 10 건 [제 목] [펌/사이케델리아] 15장: 신비의 물 下 -3- ───────────────────────────────────────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5장:신비의 물 下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272 게 시 일 :00/11/10 20:02:53 수 정 일 : 크 기 :15.3K 조회횟수 :123 "베르시아, 이제 어떻게 하지? 성의 탈환에는 성공했지만 내일쯤에는 성이 함락됐다는 소문이 퍼질 테고, 그럼 지원군이 몰려올 텐데." "그건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오면 전력을 다해 막는 수밖에." "하긴, 우리가 무슨 작전을 세우고 이러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깡으로 버 텨야지." 살아남은 베르시아와 다른 네 명의 여자들은 승리자의 여유를 보이며 서로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언제 지원군이 쳐들어올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들에게 있어 행복한 것이었다. 그러나 난 그런 그들의 순간 적인 행복마저 깨트려야 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내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입을 열자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던 베르시아 일 행이 날 쳐다보았다. 그녀들의 얼굴에 떠오른 의아함을 느끼며, 난 내 정체 를 우선 밝혔다. "전 중용자 이그드라실입니다. 중용의 법칙을 실현해야 할 사람인 것입니 다." "……!" 중용자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이 나라에서도 알려져 있는 듯 중용자라는 말을 듣자 모두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난 그녀들이 놀라 든 말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시겠지만 중용자는 성물의 힘을 취해서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합 니다. 모두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죠." "그런데?" 내가 중용자라는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뜻밖의 말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베르시아가 약간 딱딱한 얼굴로 물음을 던졌다. 내가 질질 말을 끄는 것을 보고 내가 결코 좋은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직감적 으로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베르시아의 직감을 적중시켜야 하는 내 마음도 결코 편치 않았다. "지금 저 신비의 물은 중용자가 흡수해야 할 성물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용자인 저는 신비의 물에 깃든 성물의 힘을 모두 흡수해야만 합니 다." "……!" 내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뭔가를 느낀 베르시아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 다. 특히 '성물의 힘을 모두 흡수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표정 변 화가 가장 심했다. 예리한 그녀답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알아차 린 것이다. "설마…… 성물의 힘을 흡수해버리면 이 신비의 물은 그냥 평범한 물이 된 다는 소리인가?" "……!" 베르시아의 말을 듣고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다른 네 명의 여자 들도 흠칫했다. 난 그녀들의 의혹과 경계의 눈초리를 받으며 내 스스로 그 녀들의 짐작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습니다. 중용자가 성물의 힘을 흡수해버리면, 신비의 물은 보통 물이 되는 겁니다." "……." 내 말이 끝맺음을 맺었을 때, 베르시아를 비롯한 네 명의 여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기묘한 침묵을 형성했다. 이러한 침묵은 견디기 어려웠지만, 난 견뎌야만 했다. 그리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라도 마법을 쓸 수 있 는 준비를 해두었다. 그녀들과의 무력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 기 때문이었다. "넌…… 정말로 중용자냐?" 베르시아가 먼저 기묘한 침묵을 깨고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나를 지칭하는 말이 '당신'에서 '너'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날 결코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전 중용자입니다." "……." 내 대답 이후로 또다시 기묘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베르시아 일행의 눈길이 점차 사나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 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그래서…… 넌 신비의 물에 깃든 성물의 힘을 모두 흡수하겠다는 소리냐?" 점점 험악해져 가는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베르시아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리고 난 또다시 그녀의 기대에 어긋나는 대답을 해주었다. "예. 반드시 해야 합니다." "……." 세 번째로 찾아오는 기묘한 침묵. 그러나 이번 침묵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닥쳐! 어떻게 되찾은 신비의 물인데 그렇게 허무하게 내줄 것 같나?!" 마침내 베르시아의 입에서 내가 가장 우려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했 던 말이 거칠어진 숨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베르시아의 검이 내 가슴을 노리고 허공을 갈랐다. 슈웅- 무엇인가 날카로운 물체가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베르시아의 검은 요란한 파공음을 내며 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갔다. 그건 베르시아 가 일부러 빗겨 나가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의식적인 조건 반사를 이용해 검을 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 난 신비의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채로 베르시아 일행과 대치했다. 물론 신 비의 물에 사람의 몸을 띄우는 효능은 없기 때문에 내가 마법으로 물의 표 면 장력을 극대화시켜 사람이라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었다. "성물의 힘을 흡수하려면 날 죽여라!" "누가 네 녀석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줄 아냐?!" "친구와 가족을 버려가면서 이렇게 했는데 그걸 물거품으로 만들려고 하다 니!" "네놈의 목적은 이거였냐?!" "그런 짓을 했다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다섯 명의 여자들은 각각 한 마디씩 나에게 던졌다. 그러나 난 그 말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과 싸울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난 모두 다섯 개의 얼음 화살을 만들었다. 그것을 보고 베르시아 일행은 급히 뒤로 물러나 내 공격에 대비했다. 많이 다치고 지친 상태일텐데도 신 비의 물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피잉- 5개의 얼음 화살은 거의 동시에 각각 한 명씩에게로 날아갔다. 내 생각엔 얼음 화살의 속도가 조금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베르시아 일행은 모두 얼음 화살을 잘 막고 잘 피했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 마법을 사용하기 전 에 공격해 들어왔다. 슈웅-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그것은 다섯 명의 여자들 중에서 어떤 여자가 기습적으로 날린 단검이었다. 그러나 난 의식적인 조건 반사로 머리만 움직여 가볍게 단검을 피해낸 뒤, 여전히 신비의 물 위에 떠 있는 상태로 마법을 사용했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큭……!" 다섯 여자들이 서 있던 위치를 넓게 포함하는 지역에 역압 마법을 걸자 위 에서 내리누르는 압력 때문에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나 난 물의 표면 장력을 극대화시킨 것과 역압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마법의 동시 사용을 지속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난 역압 마법은 계속 가동시키고 신비의 물 위에서 빠져 나와 다시 연못가에 가서 섰다. "감히……!" 내가 연못가에 발을 디디자 베르시아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난 그 것에 개의치 않고 그녀들에게 마법을 걸었다. "윈드 코트(Wind Court) 블래스트 블레이드(Blast Blade)" 바람 마법 중에서 강한 기술에 속하는 블래스트 블레이드가 가동되자 잔잔 히 대류 운동을 하고 있던 공기가 날카로운 검날처럼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만약 저 날카로운 바람에 푸른색을 입힌다면 완벽한 검기처럼 보일 것이다. 슈욱- 블래스트 블레이드, 즉 따블-나만 쓰는 말-은 역압 마법으로 움직이지 못 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에게 날아갔고 그녀들은 내 따블을 피하지 못했다. "크윽……!" 다섯 여자들의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여러 개 생겼다. 특히 이미 다쳤던 곳을 또 베인 여자도 있어서 피가 돌바닥을 흥건히 적시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 그 누구도 따블을 맞고 죽지는 않았다. 내가 일부러 따블의 힘을 약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왜…… 죽이지 않는 거냐?" 자잘한 상처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로 인해 점점 힘이 빠지는지, 베르시아 는 방금 전보다 힘없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난 대답을 하지 않 고 대신 역압 마법을 가중시켜 주었다. "커억……!" 다친 몸에 더욱 무거운 압력이 가해지자 베르시아 일행은 모두 피를 토하 며 마침내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단지 베르시아만이 쓰러지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힘겹게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를 움직이 지 못하게 만든 나는 역압 마법을 거두어 들였다. 더 이상 역압 마법을 사 용했다가는 모두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널 믿고 있었는데…… 어째서……!" 베르시아는 무릎을 돌바닥에 꿇은 채 마지막 반항을 하듯이 입을 열었고, 난 지금까지의 입장을 고수하며 차가운 대답을 해주었다. "중용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중용자…… 중용자는 우리들을 천신과 천마 사이의 불필요한 전쟁으로부 터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근데 그런 중용자가 우리의 마지막 희 망을 빼앗아가겠다는 거냐?!" 내 대답을 듣자마자 베르시아가 날카로운 반박을 던졌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내가 생각했던 대로의 반박이었기 때문에 난 망설임 없이 내 입장을 변호했다. "대의(大義)를 위해서 소(小)는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게 대의고 우리가 신비의 물을 잃는 것은 소(小)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 떨어질 정도의 확답을 했다. 그리고 나와 반대되 는 입장의 사람들을 저토록 무참히 무너뜨리고 나서 이런 말을 하는 나 역 시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싫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 었다. "대의를 위해서 소를 버려? 소를 버려서 얻은 대의 따위가 뭐가 대의란 말 이야!!!" 드디어 베르시아의 입에서 극단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보통 사람들에게 그 런 말을 한다면 모두들 옳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극단적 인 상대주의적 생각을 하는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소를 희생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대의 따위는 없습니다. 모 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의가 있다면 인간들이 서로 싸울 리가 없겠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보존됩니다. 얻은 자가 있으면 잃은 자가 있죠. 그걸 바 꿔 말하면 대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여러 개의 소(小)가 버려져야 한다는 겁니다. 즉, 여러분들이 신비의 물은 잃는 것은 중용의 법 칙이라는 대의를 위한 하나의 소(小)에 불과하다는 뜻이죠." "……!" 베르시아와 네 명의 여자들을 절대로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차피 그녀들이 내 말을 이해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녀 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신비의 물 바로 옆에 오른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트로포스가 말했던 대로 신비의 물에 손바닥을 갖다댐으로써 성물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 내 행동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직감적으 로 알아챈 베르시아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만 둬! 그 물이 없으면 내 동생은 죽게 된단 말이야!" "……." "내 동생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까지 죽게 된다고!" "……." "힘없는 자들을 짓밟고 성물의 힘을 얻어낸들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다!" "……." 난 베르시아의 말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단지 말없이 신비의 물 에 손바닥을 갖다대었을 뿐이었다. 손바닥으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차가워진 내 마음을 얼어붙을 정도로 차갑게 만들었다. 지잉- 무슨 레이저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신비의 물에서 횃불의 붉은 빛이 스며 든 푸른 섬광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 푸른 섬광은 점차 내 손바닥 쪽으 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백하게 성물의 힘이 나에게 흡수되고 있다 는 것을 뜻했다. "그만…… 제발 그만해ㅡ!" 베르시아의 마지막 말은 절규였다.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로 얻어낸 것 이 한순간에 날아간 것과 같은 피맺힌 절규였다. 그리고 중용자 이그드라실 이라는 녀석은 그런 여성의 절규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지이잉……. 차가운 캔커피 하나를 마실 시간이 지나자 신비의 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섬광은 점차 모습을 감추었고, 마침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비의 물 은 붉은 횃불의 빛을 머금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 성물의 힘을 흡수하자, 내 몸에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내가 피부에 깔아놓았던 8개의 마나회로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내 모든 피부에 마나회로가 자동으로 깔리고 있었다. 처 음에는 수많은 마나회로가 피부에 깔리더니,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수많 은 마나회로가 모두 하나로 합쳐져서 내 모든 피부를 마나회로로 덮어버렸 다. 즉, 나 자신이 하나의 굵은 마나회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 이것이 누구의 행복도 짓밟지 않은 상태에서 얻은 것이라면 아주 기뻤겠지 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전혀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 히려 기분이 더욱 우울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을 느끼며, 난 베 르시아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베르시아는 여전히 돌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푸른 섬광이 사라져버린 신비 의 물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 생기 없는 표정, 굳어버 린 몸. 그것이 지금의 베르시아를 설명해주는 말이었다. "가자, 로스." 난 지금까지 계속 내성의 한쪽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트로포스 에게 말을 걸며 내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내가 베르시아의 곁을 지나가려고 할 때 베르시아의 힘없는 목소리가 내 발을 붙잡았다. "기다려……." "…… 무슨 용무입니까?" 내 입에선 여전히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냉랭한 말이 튀어 나왔다. 비록 말 자체는 무엇 때문에 불렀냐고 묻고 있었지만, 실제로 부탁 같은 것을 들어줄 어조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알고 도 베르시아는 나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가기 전에…… 날 죽여라." "……." 자신을 죽여달라는 베르시아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라와 싸울 각오로 얻어 낸 신비의 물이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된 이상, 평생을 나라에 쫓기며 사는 것보다는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베르시아 씨." "……." 내가 이름을 부르자 베르시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희망을 상실한 무표정한 얼굴이 내 마음 한 구석을 아프게 했다. 난 그런 베르시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녀가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당신은 죽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그리 고 당신이 없으면 당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남동생 토드는 어쩔 생각입니까." "……!" 토드의 얘기가 나오자 베르시아의 표정이 흠칫하고 변했다. 그 기회를 놓 치지 않고 난 베르시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비록 토드의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해도, 토드는 당신이 곁에 남아서 지 켜봐 주기를 바랄 겁니다. 당신이 이대로 죽는다면, 토드는 쓸쓸히 이 세상 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하면서, 난 베르시아가 '네놈이 아니었다면 토드의 병은 나을 수 도 있어!'라고 할까봐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러나 베르시아는 토드의 얼굴 을 떠올리며 허망한 듯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중용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할지도 모르는 성물의 힘을 빼앗아서 그 힘으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무슨 일이 있더 라도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겁니다. 성물의 힘으로 인한 행복을 빼앗아 중 용의 법칙을 실현해야 하는 제 마음도 이해해주십시오." "……." "더 이상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만약 제가 원망스럽다면, 언제 라도 제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한 뒤에 죄를 물으러 오십시오. 그럼……." 난 말을 마치고 나서 아트로포스와 함께 내성을 빠져 나왔다. 내성을 빠져 나오기 직전에 베르시아를 쳐다보니,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돌바닥에 무릎 을 꿇은 채로 앉아 있었다. 내가 가고 나서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는 그녀 밖에 알 수 없을 것이다. 저벅저벅- 난 여자 병사들의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있는 성 앞마당을 지나 활짝 열려 있는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피 냄새가 숨조 차 쉬기 어렵게 만들었다. 오브는 이런 혈투는 처음 보는 건지 두려움에 떨 며 아트로포스의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녀도 조금씩 떨고 있다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스, 나 사악한 녀석이지?" 성밖으로 완전히 빠져 나온 나는 막 동이 터 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트로 포스에게 물었다. 피만큼이나 붉은색을 내뿜으며 떠오르는 햇빛에 의해 붉 게 물든 아트로포스는 내 물음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실버럭 서스가 몸의 진동으로 내게 의사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의 중용자도 너와 같은 길을 걸어왔으니 까 말이야.》 후후…… 9명의 중용자가 모두 나하고 같은 행동을 했다고? 《그래. 뭐, 내가 계속 중용의 법칙 실현을 강조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 지만. 어쨌든 남에게 불행을 주고 성물의 힘을 획득한 중용자들은 모두 강 하게 다짐했지. 반드시 중용의 법칙을 이루겠다고 말이야.》 그렇겠지. 남에게 불행을 주고 나서도 중용의 법칙 실현에 실패하고 싶지 는 않을 테니까. 9명의 중용자 모두 착한 사람들일 테니까. 《어조가 조금 이상하군. 그럼 넌 착한 녀석이 아니라서 중용의 법칙을 실 현하지 않겠다는 거냐?》 아…… 뭔가 내 말뜻을 오해했군, 실버럭서스. 내가 언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지 않겠다고 했냐? 난 단지 9명의 중용자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생각? 그게 뭐지?》 실버럭서스의 말투, 아니 진동으로 인한 떨림이 미세하게 변했다. 내가 품 고 있는 다른 생각이란 것이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난 점차 붉은색에 서 황금색으로 변해 가는 햇빛을 마주보며, 마음속으로 강한 어조를 통해 실버럭서스에게 내 생각을 밝혔다. 중용의 법칙을 깨부순다! ====================================================================== 흐어... 낼이 수학 시험인데 전혀 공부를 안한...-.-;; ━━━━━━━━━━━━━━━━━━━━━━━━━━━━━━━━━━━ 쓰기(W) 조회수검색(DS) 목록(L) 상위메뉴(M) 그림보기(SEE) 페이지이동(PG) 이전(B) 기타(Z) 선택 > <제 16 장> 마족 청년의 공격 여성 위주의 사회 체제를 가지고 있는 우메드국의 국경선을 넘으며, 난 우메드국의 국민들에게서 들은 소문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신비의 물을 지키던 성이 어떤 무리들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것이고, 그 무리들은 성에 있던 병사들만 죽인 뒤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는 것이었다. "베르시아 씨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내 옆에서 오브의 손을 잡고 걷던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물음을 던져왔다. 내가 베르시아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런 질문을 던진 아트로포스의 절묘한 타이밍에 감탄하며, 난 내 심중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아마…… 토드와 함께 어디 안전한 곳으로 피해있겠지." "토드의 병세는…… 나아질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더 이상 말하는 것은 베르시아나 토드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서 난 그 말 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하지만 아무 대화도 안 하고 걷는 것도 지겨웠기 때문에 말은 하되 화제를 다른 것으로 했다. "다음 성물의 위치는 어디야?" "그건 아까 물었잖아요?" "까먹어서 그래." "지금 이드 님이 가고 있는 방향인데 까먹어요?" "내가 원래 천재적인 바보거든." "……." 전혀 도움 안 되는 대화로 시간을 때우며 나와 아트로포스는 마침내 니아 르 제국 내로 진입했다. 니아르 제국에서 우메드국으로 넘어갈 때의 도시 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왔기 때문에 보이는 마을은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 다. "……?" 아침식사 시간이라 한산한 마을의 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어떤 큰 물체 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것은 분명한 사람의 형태였는데, 키는 대 략 180cm 이상이었고 등에는 무언가 커다란 물체를 매달고 있었다. 또한 그의 허리에 아주 긴 검이 매어져 있는 것도 보였다. 흐으……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 왜 하필이면 곧장 이쪽으로 걸어오 는 거냐고. 뒤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걸어오니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가 없잖아! 완전 시컴둥이로밖에 안 보여! "저 사람은……!" 나와 그 키 큰 녀석 사이의 거리가 대략 10미터 정도가 되었을 때, 아직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보고 아트로포스가 놀란 듯이 입 을 열었다. "저 사람은 마족(魔族)이에요!" "……?" 얼레? 마족? 마족이 뭣이다냐? 아, 여기서는 인간과 천마 사이에서 태어 난 종족을 마족이라고 했지. 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라서 생소했어. "저 사람이 마족이라고?" "네. 확실해요. 저 등에 보이는 검은 날개가 그 증거라구요." 아트로포스는 이리로 유유히 걸어오고 있는 녀석의 등뒤에 달린 거대한 물체를 가리키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햇빛을 받으며 녀석이 걸어 오고 있는 통에 그 물체가 정말 검은 날개인지 하얀 날개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뚜벅뚜벅- 잘 포장된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녀석은 마침내 내 앞 5미터까지 다가왔 다. 그리고 그 이상은 오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날 조용히 응시했다. 그래서 난 녀석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흐음…… 확실히 등에 검은 날개를 달고 있군. 역시 마족인가? 그나저나 키는 진짜 크구만. 생각보다 얼굴도 그럭저럭 볼만하고. 나이는 나보다 훨 씬 보이는 걸? 아마 20대 후반인가? 하여튼 허리에 장검(長劍)을 차고 있 는 걸로 봐서는 검사겠군. "누구십니까?" 난 먼저 정중한 어조로 마족 청년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주 차가웠을 뿐이었다. "기다렸다, 중용자!" "……!" 얼라리? 어떻게 저 녀석이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거지? 설마…… 스파트나 베르시아가 녀석에게 내 정보를 흘린 건가? 하지만 스파트 녀석은 나하고 손잡기로 했는데 이런 짓을 해서 내 기분을 망치게 할 리 없고…… 베르시 아도 토드 때문에 정신없을 텐데…… 도대체 누가……? 딱! 마족 청년이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어 신호를 보내자 마을의 가옥 사이로 여러 명의 인간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등에 날개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보통의 인간인 듯했으나, 모두들 손에 검을 들고 있는 폼이 결코 나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았다. "중용자! 내 모족(母族)인 천마를 없애려는 널 절대 살려두지 않겠다!" 그 말은 마족 청년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난 물어보았다. "내가 중용자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간단하다! 중용의 검을 가지고 있고 항상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녀석이 바로 중용자니까!" "……." 흘…… 실버럭서스가 중용의 검이란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니…… 난 그냥 단순한 명검인 줄 알았더니만. 아…… 실버럭서스 때문에 내 정체가 다 들 켜버렸어.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실버럭서스를 없애버리고 조심조심 행동 해야겠어. 《이미 다 들켰는데 무슨 헛소리냐? 그리고 왜 나 때문에 들켜? 아트로포 스도 있기 때문에 녀석들이 알아차린 거잖아! 나한테 모든 죄를 뒤집어씌 우지마!》 그래그래…… 모든 건 실버럭서스 때문이야. 《이 녀석이……!》 "그런데 저 인간들은 뭐냐? 네 녀석 쫄따구냐?" 난 분노로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는 실버럭서스의 진동을 느끼며 우리를 둘러싼 여러 명의 인간들을 가리킨 상태에서 마족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 자 마족 청년은 씨익 하고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저들은 내가 고용한 폭력배들이다. 아무리 중용자라고 해도 혼자서 여럿 을 당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거 비겁하지 않냐?" "시끄러! 싸움에 비겁이란 없다! 오직 승리자가 정의일 뿐이다!" 마족 청년은 그렇게 소리치며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어 일행에 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폭력배 들이 가지각색의 자세로 공격을 가해왔다. 뭔가 엉성해 보이는 폼들이 전 문 폭력배라고 생각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아…… 난 어째서 계속 일 대 다수의 싸움을 해야하는 거지? 여기 와서 는 정정당당한 일 대 일 싸움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음…… 하긴, 저 많은 인간들을 일 대 일로 상대하다간 시간만 낭비하니까 한꺼번 에 싸우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군. 휘잉- 난 바람 마법 중에서 플로트(Float)를 사용해 빠르게 하늘 위로 떠올랐다. 물론 나만 떠오르면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공격 대상이 될 확률이 크기 때 문에 두 사람도 같이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 플로트로 10미터 정도 떠오르 고 나서, 난 시선을 아래로 내려 내가 상대해야할 녀석들의 숫자를 파악해 보았다. 흐음…… 하나, 둘, 셋, 넷…… 모두 일곱 명이군. 에게? 겨우 일곱 명으 로 날 죽이려고 온 거야? 날 죽이려면 병사 천 명으로도 부족할 텐데? 이 거 시시한 싸움이 되겠군. 《더럽게 잘난 척 하고 앉아 있네.》 아니, 틀렸어. 난 더럽게 잘난 척 하고 하늘 위에 떠있는 거야. 《…….》 "역시 중용자답게 마법을 쓰는군!" 내가 하늘 위에 유유히 떠있는 것을 보고 마족 청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는 손짓으로 뭔가 지시를 내렸고, 그 직후 나 에게 무엇인가가 곧바로 날아왔다. 《피하지 말고 마법으로 막아!》 내가 막 날아오는 물체를 피하려고 하자 실버럭서스가 보통보다 훨씬 빠 른 속도의 진동으로 나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게다가 그 진동에는 힘이 실 려 있었기 때문에, 난 나도 모르게 실버럭서스의 말대로 물체를 피하지 않 고 내 앞쪽에 마법으로 바람의 장벽을 만들었다. 퍼엉-!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내 앞쪽에 있던 공기가 조금 뜨거워졌다. 이런 식의 공격이 가능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밖에 없었고, 그 중에 서 빠르고 뜨거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파이어 애로우가 날 공격했던 물체 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 중에 마법사가 있다. 만약 네 녀석이 아까 공격을 피했다면 뒤에 있 는 로스나 오브가 당했을 거다. 내 탁월한 대응으로 둘의 목숨을 구한 거 야. 알겠냐?》 흐음…… 도대체 어떤 녀석이 날 공격한 거지? 숨어서 공격하고 있는 건 가? 그렇다면 어디에 숨어 있을까? 건물 사이에 숨어서 날 노리고 있는 가 능성이 가장 크겠지? 《이 자식! 또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아까 파이어 애로우가 날아왔던 방향을 잘 따져보면 마법사의 위치를 알 아낼 수 있을 거야. 어디쯤일까……. 《멍청한 녀석! 그 마법사가 계속 그 자리에 남아 있을 것 같냐?!》 피잉-! "……!" 그때 내 뒤에서 뭔가 날카로운 것이 날아왔다. 그 속도는 마법을 치는 것 보다 내 반사 신경에 의존하여 피하는 것이 더 나을 정도였기 때문에, 난 나와 아트로포스 주변에 강한 바람의 장벽을 침과 동시에 몸을 살짝 비틀 었다. 마법을 사용한 이유는 다음 공격이 있을까봐 미리 방어를 하자는 뜻 이었다. 파앙! 난 나를 중심으로 하여 거의 구(球) 모양으로 바람의 장벽을 쳤기 때문에 내 몸을 빗겨간 그 날카로운 물체는 반대편 장벽에 가로막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때서야 난 내 몸을 꿰뚫으려고 날아온 물체가 바로 아이스 애로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아까 파이어 애로우가 날아왔던 방향하고 완전히 달라. 아무래도 마법사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럿 있는 것 같은데? 저 기분 나쁜 마족 녀석은 나 하나 상대하려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원군을 불러들인 거야? "제길!" 상황을 지켜보던 마족 청년은 마법사에 의한 기습 공격이 실패했음을 아깝 게 여겼는지 열 받은 소리를 내며 날 띠꺼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난 최대한 역겹게 웃어주며 마족 청년을 놀려주었다. "정말 형편없는 녀석들만 불러왔군. 날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니야?" "으으……!" 내 놀림을 받은 마족 청년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러나 하늘 위에 떠 있는 날 공격할 방법은 없는 듯했다. 검을 든 폭력배들은 아까부터 계속 멍 청히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방금 전에 날 공격했던 마법사들도 건물 사이 에 숨은 채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웬만하면 지금 당장 끝내라. 언제까지 녀석들을 붙잡고 있을 거냐?》 내가 계속 허공 위에 뜬 채 바람의 장벽으로 방어만 하고 있자 실버럭서스 가 불만인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난 날 노리는 자들에게 선제 공격을 가하 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저들이 순순히 물러나 주길 바라고 있 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읽고 실버럭서스가 한심하다는 듯한 어 조로 나에게 의사를 전달했다. 《놈들은 돈을 받고 하는 거야. 순순히 물러날 것 같냐?》 흘…… 그건 폭력배하고 마법사들 얘기잖아. 저 마족 녀석이 공격을 포기 하고 돌아간다면 고용된 녀석들은 자동적으로 돌아가지 않겠어? 《그럼 마족 녀석을 공격하던가.》 흐음…… 그래야 하나? 난 웬만하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은데 ……. 《평화적인 방법 좋아하네. 빨랑 공격 못해?!》 실버럭서스의 시끄러운 재촉 때문에 난 결국 마족 청년에게 선제 공격을 가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마법으로 선제 공격을 할까 생각하려고 할 때 이만 부득부득 갈고 있던 마족 청년이 갑자기 두 눈을 감 고 손을 모으더니 뭐라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 리는 폼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얼레? 뭐 하는 거지? 무슨 주문을 외우는 건가? 하지만 이 세계의 마법은 모두 주문이 필요 없다고 알고 있는데? 주문이 있는 마법이 있었나? 《녀석이 쓰려하는 건 마법이 아니야! 마술이야!》 "……!" '마술'이란 말에 내 몸에 작은 경련이 스쳐갔다. 이 세계에 와서 성물을 찾으려고 이렇게 싸돌아다닌 지 두 달이 넘었으나 한번도 마술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족 청년이 과연 어떤 마술을 쓸 것인가가 날 흥분시켰던 것이다. 《마술은 골치 아픈 거야! 상대하기 귀찮다고! 지금 당장 없애버려!》 시꺼! 처음으로 마술 구경하는데 방해할 거냐? 《지금 이게 무슨 놀이인 줄 알아?!》 누가 놀이라고 했어? 난 어디까지나 마술을 구경하려는 거라고! 《…….》 나하고 대화해 봤자 정신만 쓸데없이 소모된다는 것을 느낀 실버럭서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실버럭서스와의 말다툼을 효과적으 로 끊은 나는 마족 청년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마족 청년이 중얼거림을 끝 내고 어떤 말을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암흑 마수왕(暗黑 魔獸王) 다크오레인!" "……?"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 포크레인이 아니고? 《역시 귀찮은 상대를 불러버렸군!》 정말로 짜증나는 듯한 실버럭서스의 말을 들으며 난 마족 청년의 앞쪽에 거대한 마법진 하나가 생긴 것을 목격했다. 그 마법진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가운데에 흉악하게 생긴 괴물이 떡 하니 그려 져 있어서 뭔가 좋은 일을 하는데 쓰이는 마법진 같지는 않았다. 쿠쿠쿠쿠- 대략 지름이 10미터 정도 되는 마법진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마법진 속에서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이 나올 것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었다. 마법진에서 거창한 빛과 전기가 흐르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강한 녀석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당히 강한 녀석이 아니야! 아주 골치 아픈 녀석이라고!》 흘…… 그래? 어떤 녀석인데? 《피부가 무지하게 질긴 데다가 잘 타지도 않아서 공격하기가 어려운 녀석 이야!》 피부가 질겨? 그게 무슨 소리야? 《직접 싸워보면 알아.》 실버럭서스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진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게 실 버럭서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마법진 위에는 거대한 괴물 하나가 위압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암흑 마수왕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온몸이 시 커먼 괴물이었는데, 키가 자그만치 10미터였고 그 모습은 분명한 늑대 인간 이었다. 쿠아악!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은 마법진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아주 우렁찬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늑대처럼 생긴 녀석이라 늑대 울음소리를 낼 줄 알았으나 그냥 평범한 괴물 소리였기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물론 늑대 울음소리보다는 평범한 괴물 소리가 녀석에게 더 잘 어울리긴 했다. 크르르……. 다크오레인의 키가 10미터 정도였기 때문에, 나와 녀석의 눈은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었다. 시뻘건 다크오레인의 눈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만약 내가 지금처럼 마법이라는, 날 지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 다면 이미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었을 것이다.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이여! 저 사악한 중용자를 죽여주시오!" 마술로써 다크오레인을 불러들인 마족 청년은 다크오레인에게 날 공격하라 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다크오레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마족 청년의 말 대로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앙! 다크오레인의 주먹이 내가 쳐놓은 바람 장벽을 강하게 때렸다. 어차피 난 마법으로 바람의 장벽을 구현한 것이었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타격은 전혀 없었다. 단지 다크오레인의 힘이 워낙 강해서 바람 장벽이 금방이라도 박살 날 듯이 위태해졌을 뿐이었다. "아이스 애로우(Ice Arrow)" 난 다섯 발의 얼음 화살을 만들어 그것을 그대로 다크오레인의 눈에 날려 보냈다. 물론 얼음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보다 다크오레인이 눈을 감는 속도 가 더 빠를 테지만, 다크오레인의 피부가 얼마나 질긴 지 알아보기 위한 공 격이라 맞든 안 맞든 신경 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내 예상을 너 무나 빗겨 가는 것이었다. 파팍! 얼음 화살은 팍팍 하고 터져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다크오레인의 눈꺼풀 에 맞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다크오레인의 눈에 정통으로 맞아 터진 것이었 다. 즉, 다크오레인은 눈을 감지도 않고 날아오는 얼음 화살을 맞았고, 그 얼음 화살이 다크오레인의 눈에 그 어떤 타격도 주지 못하고 눈의 각막에 부딪쳐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녀석의 모든 부분은 저렇게 되어 있어. 내장조차도 평범한 공격으로는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고. 그래서 아주 귀찮은 녀석인 거야.》 쿠아악! 쾅! 쾅! 쾅! 다크오레인의 공격 방식은 단순한 주먹 공격인 듯, 녀석은 내가 쳐놓은 바 람의 장벽만 죽어라고 때렸다. 그러나 그 단순한 공격이 지금의 나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바람의 장벽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우선적으로 녀석의 움직임을 봉쇄하기로 했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어라운드(Around)!" 쿠악! 사방에서 강하게 몰려드는 압력에 의해 다크오레인은 주먹을 나에게로 향 한 채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리 강한 힘을 지닌 다크오레인이 라 할지라도 더 이상 서킷 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무식하게 강 해진 내 마법 앞에는 지렁이의 발악일 뿐이었다. "말도 안돼! 아무리 중용자라도 저렇게 고난이도의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다니!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마족 청년은 내가 지금 부유 마법인 플로트(Float)와 역압 마법, 그리고 방어 마법을 동시에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난 또다시 마법으로 음성을 증폭시켜 마족 청 년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중용자는 원래 이 정도야. 그것도 모르고 덤볐냐? 나가 죽어라." "크윽……!" 내 놀림을 받은 마족 청년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내 게 놀림을 받았기 때문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해 터져 나온 신음 같았다. 그 러한 마족 청년의 모습을 보며 실버럭서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진동시 켰다. 《마술이란 건 일종의 계약을 통해서 뭔가를 실현하는 거야. 저 녀석은 자 신의 정신력을 제물로 바쳐서 다크오레인을 불러냈겠지. 그래서 저렇게 삽 질하는 거고.》 헐…… 정신력을 제물로 바칠 수도 있는 거야? 그럼 마법하고 차이점이 별 로 없잖아? 《차이점이 왜 없어? 마법은 정신력을 통해서 순식간에 공격을 가할 수 있 지만 마술은 그렇지 않아. 주문 외우는 시간이 엄청 길다고.》 아, 마술에는 주문이 있었지. 그럼 나도 주문만 알면 마술을 쓸 수 있겠네? 에이, 마술도 별 거 아니구만. 《별 거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 그 형편없는 머리로 긴 주문을 외울 수 있겠냐?》 윽…… 역시 마술이란 건 어려워……. "……!" 그때 내 역압 마법에 걸려서 꼼짝 못하고 있던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다크오레인을 불러냈던 마족 청년이 입 가에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해서 다크오레인과의 계약이 깨진 듯했다. "으으…… 사람 살려!" 마족 청년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자 지금까지 돈 때문에 버티고 있었던 폭 력배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 버렸다. 마족 청년이 죽게 되면 자신들은 돈을 받을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나한테 대들어서 죽는 것보다는 재빨리 도 망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 분명했다. 헐…… 저 폭력배들은 그럭저럭 머리가 돌아가는군. 그런데 날 공격했던 마법사들은 어떻게 됐지? 이미 도망갔나? 아니면 건물 사이에 숨어서 날 노 리고 있나? 《내 예리한 감각으로 미루어 보건대 녀석들은 이미 도망갔다.》 흐음…… 그래? 그럼 숨어서 날 노리고 있겠군. 조심해야지. 《이 자식!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탁- 난 부유 마법의 힘을 점차 감소시키며 땅 위에 안전하게 발을 디뎠다. 아 트로포스와 오브 역시 안전하게 착지했다. 꽤 오랫동안 10미터나 되는 상공 에 떠 있었는데도 아트로포스의 얼굴은 볼이 약간 상기되어 있다는 것 빼고 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와 대조적으로 오브는 새파랗게 질린 얼 굴로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최저 높이 인 11미터에 가깝게 오랫동안 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넌 왜 날 노리는 거냐? 천마가 네 모족(母族)이라서? 단순히 그 이유 때 문에 날 죽이려는 거냐?" "……." 난 나에게 사죄하듯 무릎을 꿇고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마족 청년 에게 물음을 던졌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 녀석의 입을 열 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에 또다시 질문을 했다. "넌 마족이지? 아버지가 천마냐, 어머니가 천마냐?" "……." "그럼 아버지가 천마겠군." "……!" 내 지레짐작으로 해본 말에 마족 청년은 아주 크게 놀란 반응을 보였다. 너무나 알기 쉬운 반응에 난 속으로 웃으면서 녀석을 놀렸다. "그 정도는 중용자에게 기본이지. 중용자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말라고." "쳇……." 하지만 이어진 내 말을 듣고서 내가 했던 말이 지레짐작이었단 것을 알아 챘는지 마족 청년은 자신의 실수를 탓하듯 코방귀를 뀌었다. 그것으로 보아 녀석의 머리는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마족 청년의 아버지 가 천마족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낸 나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천마족은 천마계에 살잖아? 그럼 네 아버지도 천마계에 살겠지? 한마디로 이 땅에 내려와 인간 여자 하나 겁탈하고 냉큼 돌아갔다는 거 아니냐?" "……!" 내 말에 마족 청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것을 통해서도 그에게는 자 신의 아버지인 천마를 미워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천 마가 인간 여자를 겁탈하고 태어난 것이 마족 청년이라면, 그는 지금 눈에 불똥을 튀기지 않고 대신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손을 떨거나 몸을 떨고 있었을 것이다. "네 아버지를 존경하나?" "……." 내가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파악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족 청년은 멍청한 표정으로 내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는 자 긍심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 난 천마인 아버지를 존경한다." "그런데 왜 넌 천마계에 안 간 거지?" "흥, 중용자가 그런 것도 모르나? 마족은 천마계에서 살 수 없다. 회로계 의 환경과 천마계의 환경이 다르니까." 아, 그랬었나? 아트로포스에게서 그런 설명을 못 들어서 몰랐어. 어쨌든 천마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마족조차 천마계에서 살 수 없다면 보통 인간 들은 거기에서 살아볼 생각조차 버려야겠군. 그래서 중용자는 성물의 힘을 흡수해서 천마계나 천신계로 가야 하는 거였고. "언제 아버지를 만났나? 아니면 언제 아버지에게서 날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거냐?" "……." 그런 질문에 대답할 의무는 없다는 듯 마족 청년은 입을 꽉 다물었다. 그 러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아버지에게서 날 공격하 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비록 난 이렇게 중용자 제거에 실패했지만, 아버지는 분명 성공할 거다. 아버지는 아주 강한 분이시니까." 마족 청년은 내 죽음을 확신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그에게 또 물었다. "직접 천마가 내려온다고? 내려왔다가는 마나회로 때문에 제 능력을 발휘 못하잖아?" "그건 보통의 천마일 뿐이다. 내 아버지는 마나회로를 날려버릴 정도의 능 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란 말이다. 마나회로 정도는 아버지에게 아무런 장애 도 되지 못해." 마족 청년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을 맘껏 자랑하고 있을 때, 그 말 을 내 뒤에서 듣던 아트로포스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말도 안돼! 그 정도의 천마가 이곳에 내려오면 천신족과 천마족의 균형이 깨져서 천신족이 천마족을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얼레? 그런가? 만약 천신족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그거 큰일이잖아? 난 그 전쟁을 막기 위해서 성물을 모아 녀석들을 싹쓸이하러 가야 하니까 말이야. 세력 균형이 깨지는 것을 감수하고서 날 죽이러 내려온다는 것은…… 그만 큼 중용자가 두려운 존재라는 뜻인가? "후후…… 아버지가 직접 내려올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천신족에서도 아버지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천신을 이 땅에 내려보낼 생각이니까 말이야." "……!" 마족 청년의 그 말은 천신족과 천마족이 중용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손을 잡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는 아 주 안 좋은 소식이었다. "천신과 천마가 손을 잡은 거냐?" 난 조금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족 청년에게 물었다. 하지만 마족 청 년은 크게 코방귀를 뀌더니 어처구니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천신족이 천마족과 손을 잡을 거 같나?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천마들을 싫어한단 말이다." "그럼 어떻게 동등한 능력의 천신과 천마가 날 죽이려고 내려올 수 있는 거지?" "그거야 아버지가 먼저 천신족에게 중용자를 죽이러 회로계로 간다는 정보 를 일부러 흘린 거다. 녀석들도 천마족을 공격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중용 자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기회로 아버지 정도의 천신을 내려보내려 하는 거지. 물론 그 천신은 절대로 아버지하고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야." 흐음……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천신족도 날 죽이려는 의도가 있군. 뭐, 난 천신과 천마 둘을 모두 제거해야 하니까 그들이 날 노리는 것은 당 연하겠지. 하지만 내가 천신이라면 천마와 손을 잡고 중용자부터 제거할텐 데…… 따로따로 행동하는 비효율적인 공격 방법을 택하다니 천신들 바보로 군. "후후…… 천신 같은 게 중용자를 죽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버지까지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칠 거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마족 청년은 고통을 느끼는 표정에서도 사악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쿨럭 하고 피를 한 웅큼 토해냈다.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을 부른 무리한 마술 때문에 큰 내상을 입은 듯했다. 게다가 그 내상은 나아지지 않 고 점점 심해지는 것인지 마족 청년의 표정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렇게 점 차 어두워져 가는 마족 청년의 표정은 그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 가고 있음 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제길…… 아버지까지 나설 필요 없이 내 손으로 죽이려고 했는데…… 이 렇게 어처구니없이 실패를 하다니…… 쿨럭!" 마족 청년은 또다시 피를 토해냈다. 비록 녀석은 날 죽이려고 온 것이었지 만, 왠지 녀석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너무나 현격한 능 력 차이에 의해 나한테 상처 하나 주지 못하고 죽어 가는 녀석이 불쌍하다 는 동정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서 날 죽여라……." 패배자의 전형적인 말을 내뱉은 마족 청년은 내가 칼로 목을 잘라주기를 바라는 듯 내 앞으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러나 날 공격했던 마족 청년의 부탁 같은 것을 들어줄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실버럭서스를 뽑지 않았다. 대신 녀석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어놓고 마법을 구사했다. "……!" 내가 어떤 마법을 쓰고 있는지를 알아챈 마족 청년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 정을 지었다. 그러나 난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마법 사용을 계속했다. 비 록 마나회로에 의한 마나장으로 마족 청년의 두뇌에 자극을 가해 신체의 치 유력을 극대화시킨다는 구체적이지 못한 이미지를 떠올려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 어려운 작업은 두뇌의 피로를 제거해주는 십년수의 열매와 마 나회로를 온 피부에 깔아버린 신비의 물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 됐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마족 청년의 몸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 나는 마법을 거두고 녀석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몸이 나아졌으니 갑작스런 공격 을 가할 확률이 아주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마족 청년은 멍청 히 내 얼굴만 쳐다볼 뿐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날 치료해 주는 거지? 난 널 죽이려고 했는데?" 항상 그렇듯이 도움을 받은 악당이 하는 말을 마족 청년은 아주 진지한 표 정으로 내뱉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리 적이라도 죽게 할 수는 없으니까' 라는 등의 뻔한 대사를 해볼까 하다가, 역시 그런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하여 다른 말로 바꾸었다. "죽이기 귀찮거든." "…… 이렇게 살리는 편이 더 귀찮은 거 아닌가?" 얼씨구? 나한테 구조를 받은 녀석 주제에 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 이걸 다시 죽여버릴까? "어떤 화려한 마법으로 시체 하나 안 남기고 죽여버릴까 생각하는 게 귀찮 단 말이다. 엉성하고 평범한 걸로 죽이면 기분이 더러워지니까." "……." 내 대답에 할말이 없는지 마족 청년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천천히 자리에 서 몸을 일으켰다. 나보다 10cm 이상 큰 마족 청년의 키 때문에 난 녀석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들어야 했다. "역시 중용자답군. 내상이 거의 완치됐다." 몸을 일으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본 마족 청년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성격상 녀석이 입 발린 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말은 사실일 테고, 그것은 내 마법이 거의 완벽했음을 뜻하는 것이라 조금 기분이 풀렸 다. 스릉- 마족 청년의 허리에 매어져 있던 검집에서 자그만치 2미터 길이의 장검이 뽑혀져 나왔다. 나와 마족 청년 사이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았기 때 문에, 뽑힌 장검은 내 오른쪽 팔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지나가 내 머리 바로 위에 안착했다. 날카로운 검날이 내뿜는 차가운 기운이 내 머리카락을 통해 서 내 머리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 계절이 늦여름이기 때문에 그 것은 나에게 아주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마족 청년은 왜 검을 피하지 않느냐는 눈빛을 했다. 그래서 난 만화 같은 데에서 많이 나오는 대사, 즉 '네 검에는 살기가 없었으니까' 같은 말을 하려다가 나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조금 말을 바꾸었다. "내 몸은 살상을 목적으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무기만 피하거든." 흘…… 내가 말한 것이지만 결국 그게 그 소리군. 으…… 왠지 온몸에서 닭살이 돋는……! "후후" 마족 청년은 내 말을 듣고 실소를 머금더니 갑자기 장검을 옆으로 크게 돌 렸다. 그 장검이 노리고 있는 상대는 바로 마족 청년 자신의 목이었다. 본 래 마족 청년이 가지고 있는 검이 적당한 길이라면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자 신의 심장을 곧바로 찌를 수 있었을 테지만, 검신의 길이가 너무 길었기 때 문에 그렇게는 못하고 약간 불편한 자세로 검을 크게 휘둘러 자신의 목을 베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큭……!" 막 자신의 목을 향해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른 마족 청년은 갑작스런 움직임 봉쇄에 신음을 터트렸다. 바람을 이용한 일종의 올가미 마법이지만 내가 상 당한 마나회로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녀석이 힘으로써 내 마법을 빠져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스스로 죽는 것마저 방해할 셈이냐?!" 마족 청년은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서 나도 같이 화를 냈다. "지금 네 녀석이 죽으면 나한테 피 묻잖아!" "그럼 비켜!" "내가 왜 비켜? 죽으려면 딴 데 가서 죽어!" "그럼 마법을 풀어!" 나와 공방을 주고받던 마족 청년이 나에게 그렇게 요구했고, 나도 마법을 계속 쓰는 건 귀찮았기 때문에 즉시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멀리 가서 죽어버려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마족 청년은 마법 이 풀렸음에도 죽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욱하는 기분에 자살하 려고 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나로 인해 그 기분이 모두 달아난 상 태에서는 죽을 기분도 나지 않는 것이다. "빌어먹을 녀석……!" 마족 청년은 날 그렇게 욕한 뒤에 장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리 고는 냉큼 몸을 돌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했다. 그래서 난 녀석에 게 소리쳤다. "얌마! 그냥 가면 어떡해? 살려줬으니 보수를 지불해야지!" "……." 내 말에 마족 청년은 다시 몸을 돌려 날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나한테 돈을 뜯어내겠다는 거냐? 중용자가 그딴 짓을 해도 돼?" "시꺼. 요즘 돈이 궁해서 말이야, 돈을 내놓지 않으면 곤란해.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가진 거 다 내놔." "……." 내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알아챈 마족 청년의 표정이 멍청하게 바뀌었 다. 그냥 놔두면 계속 그런 멍청한 표정으로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난 좀 더 구체적인 돈을 요구했다. "네가 고용했던 마법사하고 폭력배들에게 주려던 돈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거만 주면 돼. 그러면 되지?" "……." "빨랑 안 주면 다 털어가 버린다?" "……." 계속 멍청한 표정으로 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마족 청년의 얼굴에서 마침내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이내 큰 웃음으로 화하여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었다. "하하, 정말 어처구니없는 중용자로군. 그래, 좋을 대로 받아먹어라!" 휘익- 뭔가 주먹만한 것이 내 얼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난 그것을 한 손으로 여유 있게 받아낸 뒤에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것은 작은 가죽 주머니였는데, 속을 열어보니 아주 비싸 보일 듯한 보석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녀석들이 성공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성공하게 되면 그 걸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아버지에게서 그런 용도로 받은 거니까 가지든 말든 맘대로 해." 그렇게 말한 마족 청년은 다시 몸을 돌리고 자신이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난 그런 마족 청년을 다시 한번 불러 세운 뒤에 그 에게 큰 보석 하나를 던져 주었다. "보석 받은 기념으로 큰맘 먹고 하나 준다. 돌아갈 때 여비로 써." "……." 내가 던져준 보석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마족 청년이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못 마땅한 게 있는 듯했다. "중용자 이그드라실." "왜 불러?" "…… 네가 준 이 보석은 내가 가지고 있는 보석 중에서 가장 질이 떨어지 는 거다." "……!" 얼레? 그, 그런가?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보석 중에서 제일 크길래 가장 비쌀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네? 역시 보석에 대해 전혀 모르니까 뭐 가 제일 좋은 건지 알 수가 없구만. "그럼 딴 걸로 바꿔줄까?" "아니, 됐어. 이걸로 충분하니까. 그럼 잘 있어라, 냄새 구린 중용자." 그렇게 나에게 마지막 작별의 말을 던진 마족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큼 걸어가 버렸다. 처음에 봤을 때는 상당한 위압감이 들었던 그의 덩치 였으나, 지금 내 눈에 들어오는 그의 뒷모습은 그다지 힘이 없어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는 뭔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중압감에서 벗어난 듯한 홀가 분한 모습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았다. 흘…… 날 죽여야 아버지에게 칭찬 듣는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꽤 많은 스 트레스를 받은 것 같군. 지금은 날 죽인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해탈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겠지. 아, 역시 난 너무 강해. 난 왜 이 렇게 강한 걸까? 아, 너무 강하니까 괴로워. 《도저히 못 봐주겠군. 네 녀석은 성물의 힘을 흡수했기 때문에 강할 뿐이 야. 네 진짜 실력 가지고 저 마족 청년이 불렀던 다크오레인을 이길 수 있 다고 생각하냐?》 그야 당! 연! 히! 이길 수 없지. 《…… 알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하냐?》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성물의 힘 때문에 강해진 내가 싫어. 그래도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물의 힘을 철저히 이용해야 하니까 지금은 내가 강하 다는 생각을 하는 것 뿐이야. 그리고 성물의 힘을 흡수한다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니까 내가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어? 《…….》 실버럭서스는 비록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침묵은 긍정의 뜻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성물의 힘을 통해서만 강해지고 있는 나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다행이다라고 여기는 듯한 느낌 도 들었다. 만약 내가 지금 얻은 힘에 대해서 '이건 내 힘이 아니다', '성 물의 힘이 없다면 난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둥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중 에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데에 상당한 장애물로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거저 얻은 힘, 노력하지 않고 얻은 힘이라도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 기 위해서는 그런 힘조차 아쉬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탁-! 그때 내 손에 들려있던 주먹만한 가죽 주머니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깜 짝 놀란 난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런 내 옆에 아트로포스가 가죽 주머니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모처럼 여행에 도움되는 일을 하셨군요. 이건 제가 보관할게요." 그렇게 말한 아트로포스는 내게서 압수한 가죽 주머니를 자신의 옷 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설날에 세배해서 어른들에게 세뱃 돈을 받았는데 그 돈을 모두 어머니에게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묘해졌다. "로스, 내 용돈도 조금 줘." "용돈이요? 어떤 용도로 쓰실 건데요?" "사적인 용도." "어떤 사적인 용도요?" "비상금." "없었던 얘기로 하죠." 비상금 얘기가 나오자마자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홱 돌리며 오브의 손을 잡 고 방금 전에 일어난 암흑 마수왕 소환 사건으로 인해 한산해져버린 마을의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아트로포스의 말 한마디에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못 한 날 보고 실버럭서스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후후, 로스에게 완전히 붙잡혀 살고 있구나.》 실버럭서스…… 그 말, 왠지 나와 아트로포스를 부부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은 사실 아니냐? 지금까지의 중용자도 영인관과 그렇고 그런 관계였 다고.》 그래서? 나보고 아트로포스를 좋아하라고? 나한테 용돈 안 주는 여자를? 《누가 뭐래냐?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네 마음이니까 난 상관 안 해.》 그럼 처음부터 끼어 들지 말았어야지! 《끼어 들기가 얼마나 재미있는데.》 "……." 실버럭서스와 한심한 얘기를 주고받는 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 문에, 난 더 이상 실버럭서스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앞서 걷던 아트로포스의 앞쪽에서 금색의 빛이 지면으로부터 뻗어 나오기 시작했 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난 거의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아트로포스의 앞쪽에 바람의 장벽을 쳐놓은 뒤, 즉시 그쪽으로 뛰어갔 다. 우우웅- 아트로포스의 앞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금색의 마법진이었다. 처음에 는 그것이 방금 전의 마족 청년처럼 마수 같은 것을 불러내는 마법진이라는 생각을 해서 잔뜩 긴장했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마법진이 어 디서 봤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경계를 늦추었다. 우우웅……. 금색의 마법진에서 들려오던 기이한 소리가 마침내 사라졌고, 그 대신 마 법진 위에는 두 개의 사람 그림자가 서 있었다. 그 사람 그림자는 바로 영 마관인 라케시스와 영신관인 클로토였다. "안녕. 20일만이야." 나타나자마자 그런 말을 던진 녀석은 바로 라케시스였다. 그래서 난 아트 로포스 앞쪽에다 쳐놓았던 바람의 마법을 거두어들인 후에 라케시스를 사납 게 노려보았다. "올 때에는 온다는 예고를 하고 와야할 거 아니야? 갑자기 오니까 놀랬잖 아!" "어머, 그러셔? 하지만 우리하고 너하고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어떡해?" "그럼 연락할 방법을 만들던가!" "제법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데?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 중에 그것도 포함되니까 말이야." 아트로포스에게 돈을 빼앗긴(?) 분풀이를 라케시스에게 하려고 했던 나는 라케시스의 그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이번엔 분노의 화살 을 실버럭서스에게 돌려 속으로 열심히 실버럭서스와 친근한(?) 대화를 주 고받았을 뿐이었다. "이드! 무슨 생각하는 거야? 지금 실버럭서스하고 얘기하고 있었지?" 나와 실버럭서스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라케시스가 내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난 즉시 실버럭서스와의 대화를 중단하고 라케시스에게 질문을 날렸다. "왜 왔냐?" "역시 매너를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다니까. 모처럼 만났는데 따뜻한 인사 한 마디라도 건네면 어디가 덧나?" "그런 말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쳐." "……." 나에게서 인사 같은 걸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임을 깨달은 라케시스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논하지 않고 대신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현재의 천신족과 천마족의 움직임을 알려주려는 것 과 아까 말했듯이 연락 방법을 알려주려는 것 이렇게 두 가지야." "그럼 빨랑빨랑 말하고 사라져." "……." 내가 들어도 싸가지의 극을 치달리는 말이었으니 그런 말을 들은 라케시스 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 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의외로 라케시스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고 비교적 냉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탁 트인 곳에서 얘기할 거야? 그러다가 누가 엿듣기라도 하면 어떡 해?" "아까 암흑 마수왕이 나타났는데 이 근처에 남아있을 사람이 있을 거 같냐?" "음…… 그건 그렇네." 라케시스는 이미 내가 마족 청년과 싸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암흑 마수왕 이란 말을 들어도 전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난 또다시 약간의 분노가 치밀었다. 싸움이 다 끝나고 어기적거리며 나타난 라케시스 가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빨리 가서 자야하니까 시간 끌지 말고 용건만 말해." 난 라케시스를 재촉했고 라케시스는 그런 날 살벌하게 째려본 다음,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네가 싸웠던 자는 바로 천마계에서 서열 10위에 드는 풍천마(風天魔) '자레드'의 아들이야. 아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흘…… 어떻게 이름도 모르냐? 나야 녀석 이름 알아봤자 아무 득도 안 되 니까 안 물어봤던 거지만,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영마관이 그런 걸 모르면 어떡하냐고. 얼레? 잠깐. 라케시스하고 클로토는 천신계와 천마계에서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다 내려다보고 있는 건가? "라케시스, 너 천마계에서 내 행동을 살피고 있냐?" "뭐?" 라케시스는 내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건지 반문을 했고, 난 다 시 한번 자세히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내 행동을 천마계에서 모두 보고 있었냐고." "아…… 난 또 뭐라고.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야. 천마계나 천신계에서 회로계의 일을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의식이 필요한데, 그 의식을 오랫동안 하면서 회로계를 살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 그래서 필요할 때 만 회로계를 살펴보고 있어. 예를 들면 너한테 전해줄 얘기가 있을 때 네가 어디 있나 찾아낼 때 쓰지." "그래? 그럼 다른 천신이나 천마들도 그 의식을 통해 회로계를 살필 수 있 는 거냐?" "물론이지. 하지만 특정 인물을 찾아낸다, 또는 어떤 물건을 찾아낸다는 등의 구체적인 일은 할 수 없어. 기껏해야 하늘 위에서 어떤 지역에서 일어 나는 일을 쳐다보는 정도라고나 할까? 뭐, 우리들이야 영관의 능력 때문에 너를 금방 찾을 수 있지만." 흐음…… 그렇군. 만약 라케시스가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면 사생활 침해라는 죄목으로 흠씬 두들겨 패주려고 했는데. 아…… 아쉬워라. "앗, 내가 지금까지 무슨 말을 하다가 옆으로 샜지?" 라케시스는 내가 중간에서 말을 끊었기 때문에 할말을 잊어먹었는지 얼굴 에 당황함을 떠올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나와 라케시스의 대화를 가만히 지 켜보고만 있던 클로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풍천마 자레드까지 얘기했어요." "아! 그랬지! 그러니까 풍천마 자레드가 네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거야." 그 말을 시작으로 라케시스의 설명은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천신계에서도 풍천마 자레드와 같은 서열의 천신을 보내기로 결정 했는데, 역시 천신계에서 서열 10위 안에 드는 염천신(炎天神) '뮤로'가 뽑 혔어. 그자들은 모두 회로계에서도 천계에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 자들이야. 그런 엄청난 자들이 널 노리고 있다고. 이건 지난 900년 동안 전 례가 없었던 일이야." 흘…… 어째서 내가 중용자로 뽑히니까 지난 900년 동안 있지도 않았던 일 이 벌어지는 거야? 왜 모두들 날 가만 내버려두려 하질 않는 거지? 인기 많 은 것도 귀찮아 죽겠구만. 《드디어 네놈도 맛이 완전히 갔구나. 역시 성물의 부작용이야.》 그래, 나 성물 중독자다. 됐냐? "그리고 이거." 라케시스는 내 뒤에서 클로토처럼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아트로포스에게 목걸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목걸이는 평범한 줄에 보석 하나가 달랑 매달려 있는 지극히 단순한 형태였는데, 보석 자체도 그다지 값비싸 보이지 않았다. "그 목걸이가 바로 나와 클로토에게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수단이야. 잘 가 지고 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면 당장 우리에게 연락을 해. 알았지?" "아, 네." 라케시스에게서 목걸이를 받은 아트로포스는 그것을 자신의 목에 걸고 밖 으로 드러나지 않게 옷 속에 감추었다. 아트로포스가 목걸이를 목에 거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라케시스는 볼일이 끝났는지 나와 아트로포스 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 어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아까 보았던 금 색의 마법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라케시스에게 아직 볼일이 있었 기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라케시스! 그냥 가면 어떡해!" "응? 왜?" "염천신인가 뭔가 하고 풍천마인가 뭔가 하고 어떻게 생겨먹었나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그냥 둘이 날 노리고 있다라고만 가르쳐주면 도움이 안 되잖 아!" "아……!"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을 빠뜨렸는가를 알아챈 라케시스는 미안하다는 듯이 실실 쪼갰다. 생각 같아서는 실실 쪼개는 라케시스의 얼굴을 도끼로 쪼개버 리고 싶었지만, 세숫대야에 받아놓은 물만큼이나 넓은(?) 아량으로 봐주었 다. "염천신 뮤로는 29살인데 조금 야윈 편이고 얼굴은 봐줄 만해. 그리고 풍 천마 자레드는 올해로 50살이고 체격도 좋고 얼굴도 괜찮아. 아, 참고로 말 하면 천신족과 천마족의 수명은 정확히 100년이야. 인간의 나이와 비교하면 20살까지가 청소년기, 40살까지가 청년기, 60살까지가 중년기, 80살까지가 장년기, 100살까지가 노년기로 구분되지. 그렇기 때문에 겉모습을 보면 뮤 로는 네 나이 정도고, 자레드는 30대 중반쯤이야. 이 정도까지 자세히 설명 했으니까 알아듣겠지?" 확실히 라케시스의 설명은 자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단지 내 머리의 CPU 가 286 컴퓨터보다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염천신 뮤로와 풍천마 자레드의 겉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만 전체 용량이 100메가인 내 머리의 하드디스크 에 저장시켰다. "이제 더 물어볼 거 없지?" 라케시스는 더 이상 대답해줄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래 서 난 물어볼 게 없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자 라케시스는 할 일 끝나서 홀가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금색의 마법진을 만들어 클로토와 함께 냉큼 천계로 돌아가 버렸다. 흘…… 바람 같이 왔다가 바람 같이 사라지는군. 하긴, 라케시스나 클로토 는 있어봤자 별로 도움이 안 되니까 없는 게 낫지. 난데없이 오브 녀석이 끼어 들어서 생활비가 쪼들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라케시스하고 클로토까지 부양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어서 가요." 아트로포스는 오브의 손을 잡고 나보다 먼저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성물 의 힘은 오직 아트로포스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난 그저 조용히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내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염천신 뮤로나 풍천마 자레드는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적을 걱정하는 것보다는 어 떻게 하면 아트로포스에게서 용돈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가 나에게는 더 큰 걱정이었던 것이다. ====================================================================== 제 17 장> 죽음의 사막 다라노드(Daranod) 니아르 제국에서 유일한 사막 지대인 다라노드(Daranod). 아르카디아 여 기저기에 널려있는 사막과는 달리 다라노드는 '죽음의 사막'이란 칭호가 붙어 있다. 그것은 바로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마나폭풍 때문이었다. 본래 다라노드 지역은 열대 기후가 아니라 온대 기후이기 때문에 사막이 생기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중첩된 마나회로에 의해 발생하는 마나 폭풍이 다라노드 지역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렸고, 자연히 사람들과 동물들 은 다라노드를 떠났으며, 그 결과 다라노드는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사막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로스, 성물을 얻기 위해서 꼭 이런 사막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야?" 드넓게 펼쳐진 사막의 모래를 바라보며,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어서 돌아가자는 뜻을 밝히며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고 개를 좌우로 저었다. "빨리 따라와요." 그렇게 말한 아트로포스는 앞장서서 사막의 모래를 밟으며 광활한 사막에 역사적인 한 발자국을 내밀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장소도 모래 위였지만, 우리 뒤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가 발을 내 딛은 그 장소부터 사막이었다. "그래도 이 무더운 날에 이런 옷을 입고 꼭 가야겠어?" 난 머리에 두른 흰색의 터번(Turban)과 옷 위에 덧입은 흰 로브(Robe)를 가리켰다. 그러자 나와 같은 차림을 하고 있는 아트로포스가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터번하고 로브는 사막을 지나갈 때 필수라구요." "20살이나 됐는데 어떻게 그런 것도 몰라요? 아저씨 정말 바보네." 아트로포스에 이어 오브까지 내 흉을 보았다. 하지만 모르고 있는 건 아트 로포스와 오브였기 때문에 난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건 진짜 사막일 때야! 이 사막은 마나폭풍에 의해 만들어진 거잖아! 그 래서 보통 사막과는 달리 습기가 있다고! 게다가 원래 사계절의 기후라서 여름에는 습도가 상당히 높아! 그런 사막을 이런 옷을 입고 지나가면 쪄죽 어!"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보통의 사막은 습기가 없어서 내리쬐는 햇빛만 차단시키면 어 느 정도 더위를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습기가 있을 때에는 그게 안돼. 차라 리 옷은 얇게 입고 따가운 햇살을 막을 수 있는 걸 들고 가는 게 낫지." 그 구체적인 예가 바로 장마가 끝난 직후의 무더위이다. 그때는 장마에 의한 습기 때문에 불쾌지수가 상당히 높아지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여름 의 무더위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서 공기의 온도 자체가 올라가 버린다. 아무리 그늘진 곳에 가서 따가운 햇빛을 피해도 공기 자체가 덥기 때문에 더위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과 마찬가지인 다라노드의 사막에서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겉옷 위에 로브까지 덧입으면 쪄죽는 도리밖에 없었 다. "음…… 알았어요. 이드 님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죠." 마치 선심을 쓰듯이 말한 아트로포스는 머리에 둘렀던 터번과 덧입었던 로 브를 벗고 다시 마을의 상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서 터번과 로브를 환불 받고 나서 대신 따가운 직사광선을 막을 수 있도록 대나무로 만들어진 가벼 운 우산을 세 개 샀다. "이거면 되겠죠?" 나에게 대나무 우산을 하나 건네주며 아트로포스가 조금 웃는 듯한 표정으 로 물었다. 그래서 난 대나무 우산을 받아들고 대답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불어오는 모래 바람 같은 건 마법으로 차단시키면 되 니까." "그 방법도 있었군요. 그럼 햇빛은 차단 못 시키나요?" 흘…… 나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군. 모래 바람이야 바람의 마법으로 차단시키면 간단하지만 햇빛을 무슨 수로 막냐? "햇빛은 그냥 우산으로 막아." "그래야겠네요. 기왕 우산을 샀으니까요." 아트로포스는 미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오브와 함께 먼저 앞서 걷기 시작했 다. 요즘 들어 점차 부드럽게 변하고 있는 아트로포스의 모습이 보기 좋았 다. 역시 사람은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훨씬 보기 좋은 것이다. 휘이잉-! 사나운 모래 바람이 나와 아트로포스를 맹렬하게 덮쳐왔다. 그러나 이번에 도 역시 내 바람 마법에 의해 가로막혀 우리에게는 모래 한 알조차 날아오 지 않았다. "날씨 자체는 그렇게 덥지는 않은데 바람은 상당히 부는군요." 모래 바람이 잠잠해지자 아트로포스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리듯 이 말했다. 확실히 기온은 높지 않았다. 보통의 한여름 정도 수준일 뿐이었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람은 정말 많이도 불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래만 있는 땅이 불규칙하게 가열되면서 생긴 지역 기압차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부 는 듯했다. "로스, 점점 성물이 있는 곳에 가까워지고는 있는 거야?" 대략 5시간을 걸었어도 모래밖에 나오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해진 나는 방 금 전에도 했던 질문을 아트로포스에게 또 했다. 평소 같으면 성격 급하다 고 핀잔을 했을 아트로포스도 사막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다는 불안감 때문 인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분명 이 근처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데……." 흘…… 성물이 이 근처에 있다고? 하지만 주변에 보이는 건 오직 드넓은 모래 벌판 뿐인데? 설마…… 이 수많은 모래 속에서 성물을 찾아내야 한다 는 소리는 아니겠지? "로스 누나…… 나 배고파." 지금이 바로 점심 먹을 시간인데다가 다섯 시간 동안을 쉬지 않고 걸었기 때문인지 오브가 배를 감싸쥐고 인상을 팍팍 썼다. 하지만 이런 모래 벌판 뿐인 곳에서 음식을 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계속 성물을 찾을 것인가 아 니면 일단 사막을 벗어나 배를 채운 후 다시 돌아와 성물을 찾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다. "로스, 우선 마을로 돌아가서 배를 채우자." 후자를 선택한 나는 아트로포스에게 그렇게 말했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 던 아트로포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럼 일단은 돌아가기로 해요. 그런데 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어떻게 마을 로 돌아가죠?" 흘흘, 내가 그런 것도 생각 안하고 사막에 발을 디딜 인간 같이 보이냐? "그야 간단하게 순간 이동 마법으로 날아가 버리면 되지." "그렇군요. 그럼 부탁할게요." 내 말을 듣고 나서 아트로포스는 별 걱정 없이 그런 부탁을 나에게 했다. 아주 고난이도의 마법에 속하는 워프(Warp)를 쓰겠다는 말을 듣고서도 전혀 놀래지 않는 아트로포스의 모습을 보건대 그녀는 내 마법 실력,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성물의 힘을 흡수한 내 마법 실력을 믿고 있는 듯했다. "로스, 워프하다가 실수로 온몸이 분해되어도 후회하지 않는 거지?" "만약 그렇게 되면 이드 님 혼자서 성물을 찾아야 할 텐데요?" "그래도 내 실력이 워낙 불규칙하기 때문에……." "정 그렇다면 이드 님 자신만 분해시키고 저는 살려주세요." "그게 안 된다니까." "안 되는 건 되게 하세요." 아트로포스와 그런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난 마나회로를 가동 시켜 순간 이동 마법인 워프를 사용할 준비를 했다. 이 세계에서의 워프는 사람의 몸을 원자 분해하여 그것에 일련번호를 매겨 도착 장소에서 다시 조 립하는 형태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자료를 전송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송 오류로 파일이 손상되는 것처럼 사 람에게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고난이도 마법인 것이다. 우르릉……. 막 워프를 사용하려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내 귀에 갑작스런 굉 음이 들려왔다. 만약 굉음만 들려왔다면 정신 집중하느라고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했겠지만, 다리를 통해서 이상한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 굉음을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르릉- 그 굉음은 모래 속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크 게 들려왔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모래 속으로부터 뭔가 가 올라오고 있는 듯했다. "뭔가 올라오고 있어요!" 갑작스런 굉음의 출처를 파악한 오브가 그렇게 소리치며 아트로포스의 뒤 에 바싹 달라붙었다. 그래서 난 워프를 사용하려고 했던 마법을 해제시키고 대신 바람의 장벽으로써 마법 방어막을 형성했다. 흐으…… 도대체 땅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 거야? 이 소리를 들어봐서는 살 아있는 생물이 올라오는 소리는 절대 아닌데…… 그럼 뭐지? 아무도 살지 않는 이런 사막에 무슨 건물이 우뚝하고 솟을 리가……! 우르르릉! 맑다 못해 뜨거운 사막의 여름 햇살을 받으며,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작은 사각형의 물체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물체는 돌로 만들어졌다 뿐이지, 거의 엘리베이터 하나의 크기였다. 그그긍- 사각형 물체의 중앙에 그어져 있던 금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그 안에 들어 있던 시커먼 물체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런데 그 시커먼 물건은 뜻밖에도 사람들이었다. "너희들은……!" 돌로 만들어진 일종의 건물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 중에 덩치가 상당히 큰 사람 하나가 나와 아트로포스를 발견하고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러나 그 덩치뿐만이 아니라 나와 아트로포스 역시 그 덩치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거대한 덩치에 덥수룩한 수염, 낡아서 구멍마저 뚫려있는 옷에 땟 국물이 줄줄 흐르는 피부. 바로 이 세계에서 나에게 마법을 가르쳐주었던 트레이였던 것이다. "어떻게 너희들이 여기 있는 거냐?" 트레이는 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와 내 얼굴을 손가락질하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맞짱을 떠주었다. "그러는 트레이 씨는 왜 이런 사막 한가운데에 있습니까?" "말버릇을 보니 이드 맞군." "이드가 맞아서 유감이군요." 나와 트레이는 재회의 인사를 그런 식으로 때워버렸다. 비록 트레이가 내 마법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트레이하면 기억나는 것이 '극한의 더러움'뿐이 었기 때문에 재회를 했다고 서로 얼싸안는 짓은 사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트레이, 아는 사람인가?" 트레이의 뒤에 서 있던 두 사람 중에 트레이보다 나이가 약간 많아 보이는 중년 남자가 척 보면 아는 질문을 트레이에게 던졌고, 트레이는 그들에게 나와 아트로포스를 소개시켜 주었다. "이 녀석은 이드고, 저 아가씨는 로스다. 그리고 저 아이는……." 본래는 나와 아트로포스만 소개시키려던 트레이는 아트로포스의 손을 잡고 있는 오브를 발견하자 알지도 못하면서 오브의 소개를 하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트레이 대신 오브를 소개시켰다. "여행하다가 만나게 된 아이인데, 이름은 오브입니다." "그런가? 본래 우리들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없 지만 그냥 난 '올드페이스(Old-face)'로, 저 녀석은 '이트맨(Eat-man)'이라 고 불러." 트레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자의 소개를 받고 난 터져 나오려 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올드페이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늙은 얼굴, 즉 '애늙은이'고, 이트맨은 간단하게 '먹보'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름이 없 기 때문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이름 대신 부르고 있는 듯했다. "그건 그렇고, 근데 너희들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냐?" 트레이는 아까도 물었던 질문을 다시 나에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누 구인지를 알면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트레이 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난 조금 말을 돌 려서 트레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여기에 잃어버린 물건이 있어서 찾아보러 왔습니다." "잃어버린 물건? 뭘 잃어…… 아!" 처음엔 눈치 없이 그 물건이란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 했던 트레이는 그 때서야 내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채고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그랬구나. 그럼 열심히 찾아라. 난 할 일이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트레이는 다른 두 아저씨들을 데리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모처럼 만난 데다가 난 지금 배가 꽤 고픈 상태이기 때문에 트레이 에게 식사라도 얻어먹으려고 그를 불러 세웠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금방 헤어지니 섭섭합니다. 트레이 씨의 집이라도 구 경하고 싶습니다." "……." 비록 나와 일주일 정도밖에 같이 지내지 않았던 트레이였지만, 지금 내 말 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원하는가 정도는 금방 알아차렸다. 그것은 트레 이의 표정이 띠꺼워졌다는 것으로써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뭐,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니까 우선 들어가자." "괜찮겠나, 트레이?" "오랜만에 만난 제자 녀석이니까 말이야." 약간 걱정하는 듯한 올드페이스라는 애늙은이 아저씨의 말에 트레이는 안 심하라는 손짓을 하며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 돌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 안 에 올라탔다. 그리고 나서 뜨거운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사막 위에 서 있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불렀다. "너희들도 어서 타라. 내려갈 테니까." 흘…… 내려간다고라? 그럼 저 돌 건물이 정말 엘리베이터인가? 하지만 이 세계에서 전기도 없을 텐데 무슨 수로 움직이게 하지? 설마…… 육체 노동 으로? 그그긍-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고 나와 아트로포스가 올라타자 엘리베이터처럼 문이 좌우로 닫혔다. 물론 그 문을 닫은 사람은 애늙은이와 먹보 아저씨였다. 어쨌든 창문도 없는 상태에서 문이 닫혔음에도 실내가 어둡지 않은 것은 건 물 천장에 박혀있는 야명주(夜明珠) 때문인 듯했다. "내려간다!" 그렇게 소리친 애늙은이 아저씨는 실내의 중앙에 있는 기구를 돌리기 시작 했다. 그 기구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꼭 옛날 배의 방향키 같았다. 어쨌든 그 방향키 같은 기구를 돌리자 우리가 탑승(?)한 건물이 아래로 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거 누가 만든 구조물입니까?" 이 엘리베이터의 작동 원리가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에, 난 트레이와 그의 쫄다구를 바라보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날 실망시켰다. "옛날 다라노드 지역이 마나폭풍에 의해 폐허가 되기 전에 만들어 놓았던 구조물 같아. 직접 보면 알겠지만 지하에 상당히 큰 비밀장소를 만들어 놨더 군. 마나폭풍이 이 일대를 휩쓸어도 지하라 별 피해를 입지도 않고 말이야.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쓰고 있지." 흘…… 그렇다는 얘기는 결국 이 엘리베이터가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모 른다는 소리잖아? 역시 트레이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는구만. "저기요……." 열심히 방향키를 돌리고 있는 트레이와 그 일당들을 향해 이번에는 오브가 말을 걸었다. 아니, 오브가 말을 걸려는 상대는 트레이였다. 그래서 트레이 는 잠시 방향키 돌리는 일을 애늙은이와 먹보 아저씨에게 모두 맡겨버린 후 에 오브를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뭐지, 꼬마?" "아저씨…… 우리 아빠하고 아주 많이 닮아서요." 오브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난 오브가 트레이를 보고 '아저씨 정말 더럽네요. 한 달에 한번 씻죠?'라고 할 줄 알았 다. 자신의 아버지와 트레이가 많이 닮았다는 소리는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충격이었다. 하하…… 이런 말하기는 싫지만 확실히 오브는 예쁘장하게 생겼으니…… 그런 오브의 아버지라면 어느 정도 인물이 되는 사람이겠지. 그런데 그런 오브의 아버지하고 트레이하고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닮았다고라? 오브 녀석, 트레이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 아니 야? "내가 네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그거 참 영광이구나." 오브의 얼굴을 잠시 뜯어본 트레이는 기분이 좋은지 껄껄거리며 웃었다. 만약 오브가 거기서 말을 그쳤다면 트레이에게 꽤 많은 점수를 받았겠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이 문제였다. "수염 깎고 목욕하고 깨끗한 옷 입으면 우리 아빠하고 아주 똑같을 것 같 아요." 쯧쯧…… 불쌍한 오브.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다니…… 명복을 빌어주마. "그러냐? 하지만 이건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거니까 신경 쓰지 말거라." 분명 화낼 것이라 생각했던 트레이는 내 예상을 뒤엎고 오브를 향해 그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브의 말도 그렇고 트레이의 말도 그렇고 모두 내 예상을 뒤엎는 것이라서 난 정신이 없었다. 쿠쿵- 마침내 아래쪽에 도착했는지 엘리베이터가 멈추었고, 트레이를 선두로 애 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나도 아 트로포스를 데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본 나는 지하에 만들어진 구조물에 놀 라버렸다. 지하 공동의 규모는 거의 학교 운동장만 했는데, 내가 디디고 있 는 땅을 비롯하여 옆벽, 그리고 위조차도 모두 돌로 가로막혀져 있었다. 그 리고 그런 공동 내부에는 대략 세 채 정도의 돌집이 있었다. 여기를 둘러보 아도, 저기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모두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뿐이었다. "엄청나군요.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한데요?" 난 지하 공동을 본 감상을 솔직하게 말했다. 트레이는 그런 날 보고 당연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길 처음 발견하고 엄청 놀랬다고. 그리고 저 돌집 안에 들어있는 걸 보고 더욱 놀래버렸지." "……?" "따라와라. 너도 놀랠 거다." 트레이는 거의 정삼각형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세 채의 돌집 중에서 가 장 가까운 돌집 쪽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그래서 나도 트레이를 따라 그 돌 집 쪽으로 향했다. 기기깅- 돌집에 도착해서 돌로 만들어진 문을 열어제치니 보이는 것은 잠을 잘 수 있는 커다란 돌침대와 잡다한 물건을 놓아두는 돌선반, 그리고 가운데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돌 항아리였다. "이걸 봐라." 트레이는 방 한가운데에 있는 돌 항아리를 가리켰다. 돌 항아리 속에는 상 당한 양의 고체가 들어있었는데, 그 고체는 바로 납이었다. 그리고 돌 항아 리 밑에는 불을 땔 수 있는 공간이 있었고, 항아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의 금속들이 놓여져 있었다. 처음엔 이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 으나, 계속 쳐다보는 동안 어떤 한 단어가 내 머리 속에 강렬하게 떠올랐다. "연금술(鍊金術)?" "그래. 바로 납을 금으로 바꾸려는 연금술이다. 여기서 그 연금술이 행해 지고 있었지." 헐…… 연금술이라……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서 연금술이 성공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 만약 있었다면 금이 지금처럼 비싸지도 않을 테고. 근데 화학적으로 납이 금으로 바뀌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납이나 금이나 합성물 이 아닌 기본 원소니까 말이야. 납은 원소 기호로 Pb, 금은 Au 였던가? 수 능 끝나고 한번도 안 봤더니 기억이 가물가물……. "놀랐지?" 트레이는 자기가 놀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놀랄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나에게 했다. 그래서 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 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근데 왜 이런 지하에서 연금술을 연구합니까? 밖에서 하면 되잖아요?" "어째 놀란 표정이 아니다?" "제 물음이나 대답하시죠." "……." 내가 전혀 놀라지 않았기 때문에 트레이는 상당히 실망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 질문에 대답하면 내가 놀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 는 듯이 상세한 답변을 해주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연금술을 허용해주기도 하는데, 니아르 제국에서는 납이 금으로 되면 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허용해주지 않지. 그래서 지하에 이런 비밀 장소를 만들고 연금술을 연구하고 있었던 거고." "음…… 개인이 이런 연구실을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 아마도 이 마을의 지도자가 비밀리에 이곳을 만들어 연금술을 연구하도록 했겠군요. 나라에서 모르도록 해야 나중에 연금술이 성공했을 때 값싸게 만들어진 금으로 떼돈 을 벌 수 있을 테니까요." "……." 나의 명쾌한 해석에 트레이를 비롯한 애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내 두뇌의 명석함에 감동하면서 이번엔 화제 를 지금 이 지하 공동에서 살고 있는 트레이 일당에게로 돌렸다. "근데 여기에는 먹을 음식이 없잖아요? 어떻게 끼니를 해결하죠?" "아, 그거? 그렇게 궁금하면 따라와 봐!" 이번에야말로 내 입에서 경탄의 목소리를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는 듯, 트 레이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지하 공동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창고 같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 돌창고의 미닫이식 돌문을 한쪽으 로 힘껏 밀었다. 그그긍- 거대한 돌문이 밀리면서 갑자기 웬 냉기(冷氣)가 돌창고 안에서부터 흘러 나왔다. 그것은 마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 아무 생각 없이 돌창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돌창고 안에 흐르고 있는 냉기 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을 때, 난 더욱 크게 놀 라고 말았다. "어때? 이 정도면 앞으로 10년 정도는 거뜬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 냐?" 트레이는 돌창고에 수북히 쌓여있는 싱싱한 음식물 중에서 사과 하나를 집 어들고는 맛있게 먹었다. 갖가지의 음식물들이 냉장고와 같은 이 돌창고 안 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날 놀래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확실히 이 정도의 양이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거뜬하겠군요. 근데 화장 실 같은 것도 있어요? 그리고 목욕탕은요?" "화장실은 저 구석에 있는 건물이고, 목욕탕 같은 건 없어. 그래도 저 구 석에 있는 건물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니까 물 걱정은 없고." 흘…… 씻지도 못하고 이런 답답한 공간에 틀어박혀서 먹고 싸고 연금술을 연구했던 건가? 처절하군. 아무래도 예전 마을 지도자가 강제로 연금술사들 을 이 안에 가두고 연구를 시켰겠지?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지하 공동에 많은 음식을 비치해놓을 리가 없을 테니까. "어쨌든 얘기는 그만하고 식사나 하자. 뭐, 우리는 먹었지만 너희들은 물 건 찾느라고 밥도 못 먹었지?" 모처럼 트레이가 맘에 드는 말을 했다. 물론 난 지금 당장 밥 먹자는 뜻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아까 들어갔었던 돌집과는 다른 돌 집 안으로 돌창고의 음식을 가지고 들어갔다. 그 돌집에는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철 냄비가 있었다. 지글지글- 음식이 잘 익을 동안 우리들은 돌 탁자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그 얘기를 통해서 애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가 3년 전에 트레이와 만났고, 트레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여행을 하다가 이 지하 공동을 우연히 발견하여 둘을 이곳에 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까도 들었다시피 애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서 거의 거지처럼 살 아왔기 때문에 음식이 풍부한 이 지하 공동에서 사는 것이 훨씬 편했던 것 이다. "트레이 씨는 왜 여행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 난 단도직입적으로 트레이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확실히 질문 자체는 건방졌지만, 괜히 말을 돌려서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난 당장 대답하 라는 눈초리로 트레이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트레이의 입은 굳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마나폭풍에 관련된 일 아닌가요?" 그때 내 옆에 얌전히 앉아있던 아트로포스가 나와 트레이의 대화 사이에 끼어 들었다. 트레이는 아트로포스의 생각이 맞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며 대답했다. "역시 로스군. 뭐, 너희들에게 말해줘도 별 피해는 없을 테니까 얘기해 주 지." 마치 큰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말한 트레이는 자신의 여행 목적을 우리에 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전에 품에서 하나의 목각 인형을 꺼내 내 앞에 두었다. 그래서 난 당연히 질문을 날렸다. "이게 뭡니까?" "내 아들이 자주 가지고 놀던 인형이다." "……!" 허거걱! 이럴 수가! 아들이라고? 그럼 저 지저분의 극을 치달리는 트레이 가 결혼을 했단 말이야? 이건 말도 안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결혼하셨어요?" 난 흥분하려는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 트레이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러자 트레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젊었을 땐 나도 한 얼굴 했다고." "……." "부인하고 아드님은 어디 사세요?" "……." 내 질문에 트레이는 표정을 어둡게 했다. 그 표정은 일주일 간의 마법 공 부를 마치고 트레이와 헤어질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 결코 좋은 말을 들은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아내하고 아들 녀석은…… 죽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트레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 예상대로였다. 만약 아내와 아들이 살아 있다면 트레이가 저런 지저분한 모습으로 여행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건이 있었던 겁니까?" "…… 그래, 있었지. 엄청난 사건이." 트레이는 옛날 일을 떠올리기나 하려는 듯이 아무 것도 없는 돌 천장을 올 려다보았다. 난 그저 잠자코 트레이가 자발적으로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그 렇게 잠시 동안 떠올리기 싫은 옛날 일을 떠올렸던 트레이는 이내 고개를 내려 날 쳐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래 마법사였던 나는 젊었을 때 아내와 만나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도시에서 명예 마법 강사로 초청을 받아서 며칠 동안 집을 비웠지. 하지만 그 며칠 동안에 엄청난 일이 일어나 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나폭풍이라는 대재앙이 찾아오리란 걸 ……." 거기까지 말한 트레이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분노가 치밀었는지 잠시 동 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마나폭풍이 마을에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법 강의도 때려 치고 내 집 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잔해물 밖에 남지 않은 처참한 마을의 모습뿐이었지. 그건 내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었던 집도 마찬가지였어. 부서지고 무너진 집안에 남아 있는 건 뭉그러지 고 으스러져서 형체조차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아내와 아들의 시신…… 그 리고 그나마 형체를 보존하고 있었던 건 아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이 목각 인형뿐이었지." "……."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트레이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확실히 트레 이의 얘기는 슬픈 것이었지만, 직접 그 현장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슬프다 는 느낌은 솔직히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물론 내가 트레이의 입장이 되 어 그런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라는 감정이입을 한다면 슬픈 마음이 들겠지 만, 일부러 그런 슬픈 생각을 떠올리려는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분노했다. 마나폭풍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왜 아무 죄 없 는 선량한 사람들에게 이런 벌을 내리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리 고 그것은 마나폭풍을 없애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나폭풍은 결국 마나회로의 집적에 의해 생기는 마나장일 뿐이니까, 그 마나장을 마법사의 마나장으로 상쇄시켜 버린다면 충분히 마나폭풍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 난 이렇게 마나폭풍을 찾아 여행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트레이의 긴 설명은 마침내 끝이 났다. 물론 그 사이에는 더 많은 얘깃거리들이 있겠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했다. 트레이의 목적이 마나폭풍을 찾아서 마법으로 제거하는 것이란 점만 중요할 뿐이었다. "이론적으로는 마법사의 마나장으로 마나폭풍을 저지할 수는 있겠죠. 하지 만 마나회로 개수의 현격한 차이 때문에 마법사가 마나폭풍의 마나장에 견 디지 못하고 죽을 겁니다. 그 정도는 트레이 씨라면 알고 있을 텐데요?" 난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트레이가 하려는 일을 비판했다. 그러나 트 레이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마나폭풍의 대처 방법을 찾 아내지 못한다면 마나폭풍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 아니 적어도 내 아내와 아들이 분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마나회로가 있어야 마나폭풍에 대항할 수 있는지, 난 내 마법을 통해 직접 실험해보고 싶은 거다!" "그러다 죽으면 아무 소용 없잖습니까?" "…… 내가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도 마나폭풍 대처 방법은 저절로 생겨 나지 않는다." 흘…… 결국 자기 한 몸 희생하겠다는 거군. 뭐, 그건 트레이가 스스로 결 정한 거니까 내가 이러쿵저러쿵 할만한 것이 못되지. 문제는 그 실험의 성 공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다는 것일 뿐. "그러지 마세요!" 그때 갑자기 오브가 트레이를 쳐다보며 큰 목소리로 거의 발악하듯 외쳤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오브의 반응에 우리 모두 놀라고 있을 때, 오브는 울상 어린 표정으로 트레이에게 말했다. "죽지 마세요…… 아저씨는 아빠하고 닮았으니까…… 아저씨가 죽는 건 아 빠가 다시 죽는 것 같아서 싫단 말이에요……." "……." "아빠가 죽는 모습은…… 또 보고 싶지 않아요……." 오브의 눈에선 닭똥 같은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트레이를 비롯한 다 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 오브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팍 숙이고 얼굴을 들지 못했다. 오브가 하도 리얼하게 울었기 때문에 모두들 동정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어떤 감정이 내 가슴을 파고들기 전에 재빨리 화제 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데 트레이 씨,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 걸 보니 아직 마나폭풍 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엉? 아, 뭐 그렇지." 잠시 고개를 숙여 죽은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내 질문이 날아 오자 트레이는 내가 한 말이 싸가지 없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렇게 황 망히 대답했다. 내 질문으로 인해 오브에 대한 동정심이 모두의 마음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우선 저희들은 잃어버린 물건도 찾을 겸 잠시 이곳에서 지내겠습니다. 그 러기 위해서는 트레이 씨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마나폭풍 찾는다고 함부로 나가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제 좀 쉬고 싶은데 남아 있는 방은 없습니까?" 난 트레이가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도록 빠른 템포로 하고 싶은 말을 내뱉 었다. 그러자 내 페이스에 말려든 애늙은이 아저씨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 나 대답했다. "방은 우리들이 각자 하나씩 쓰고 있는데, 내 방을 비워줄 테니까 쓰도록 하라고." "아니, 저만 쓸 게 아니라 로스하고 오브도 방이 필요해서요." "그래? 이거 조금 복잡한걸?" 애늙은이 아저씨는 방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 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대안을 내놓았다. "저와 트레이 씨가 같은 방을 쓸 테니까 올드페이스 씨와 이트맨 씨가 같 은 방을 써 주십시오. 로스와 오브는 남은 방을 쓰기로 하죠." "그럼 되겠군. 좋아, 당장 준비하지!" 내 대안이 괜찮다고 생각한 애늙은이 아저씨는 즉시 먹보 아저씨와 함께 방 정리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철 냄비에 끓이고 있던 음 식이 완전히 익혀졌다는 것을 알고 걸음을 멈추어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식사부터 하고 방 정리를 하든 하자고." "그렇게 하죠." 사실 방 정리보다는 배를 채우는 것이 더 급했기 때문에, 난 즉시 애늙은 이 아저씨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하 공동의 돌집에서 음식 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 자체는 별로 특이할 게 없었으나, 지하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때문인지 그 맛이 조금 각별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방 정리도 대강 끝내어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잠잘 집을 마련한 나는, 아트로포스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서 그녀를 찾아갔다. 마침 오브 녀석은 트레이와 논다고 트레이의 돌집에 가고 없어서 아트로포 스와 오붓하게 둘이서 얘기할 수 있었다. "로스, 성물이 어디 있는지 감이 잡혀?" 내가 묻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기 때문에 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날렸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도 내 성격에 맞추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을 했다. "성물은 바로 이곳에 있어요.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도 알고 있구요." "……!" 성물이 뭔지 알고 있다고? 그렇게 쉽게 알아냈단 말이야? 하하…… 이거 왠지 허탈해지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구만. "성물은 뭔데?" "성물은 바로 트레이 씨가 가지고 있는 그 목각 인형이에요." 질문을 던지자마자 바로 날아온 아트로포스의 대답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 평범한 목각 인형이 성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목각 인형이 성물? 지금까지의 성물은 모두 어느 정도의 효능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었잖아? 십년수의 열매나 실버럭서스, 그리고 신비의 물은 모 두 그랬는데?" "그건 그것들이구요, 모든 성물이 보통 상태에서도 그런 특별한 효력을 가 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아주 평범한 물건이 성물일 수도 있어요." 흘…… 그거 참 상당히 귀찮구만. 그냥 특별한 물건들 죄다 모아서 성물인 지 아닌지 확인해보면 간단할 텐데 평범한 물건도 성물일 수 있다니…… 역 시 성물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아트로포스가 없으면 중용자 혼자서는 성물을 찾을 수 없는 건가? "그럼 트레이 씨한테 목각 인형 달라고 하면 되잖아? 설마 성물의 힘을 흡 수하면 목각 인형이 망가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 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으나, 이외로 아트로포스의 반응은 진지했다. 그래서 난 재차 물어야 했다. "설마 진짜 망가지는 거야?" "…… 순서는 약간 틀리지만 그래요." "순서?" "네.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그 목각 인형의 안이에요." 목각 인형의 안쪽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건 목각 인 형을 부수고 나서 그 안에 들어있는 성물을 취해서 그 힘을 흡수해야 한다 는 소리? "하아…… 또 귀찮게 됐구만."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베르시아를 힘으로 굴복시켜 신비의 물을 얻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베르시아와 토드, 그리고 신비의 물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의 희망을 꺾어버린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트레이의 추 억이 어려있는 목각 인형마저 부수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 기 때문이었다. "진짜 중용자 노릇하기 싫어진다……." "어쩔 수 없어요. 그게 중용자의 사명이니까요." "그래그래…… 사명이지…… 영계에 의해 모든 게 정해진 사명……." 내 말은 내가 들어도 상당히 띠꺼웠다. 그러나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영계의 후환이 두려워 내 말을 철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날 보 며 아트로포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영계가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어요. 이 아르카디아를 지배하는 것 은 영계니까요." "……." 흘…… 바로 그 점이 더욱 마음에 안 들어. 왠지 어떤 특정 인물의 생각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말이야. 저번에 다짐을 하긴 했었지 만, 정말 가면 갈수록 영계를 때려부수고 싶다는 기분이 들어. "자, 그럼 난 자러 갈 테니까 문단속 잘해." 아트로포스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직 저녁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자려구요?" "아까 전에 사막을 걸었더니 피곤해서 말이야." "그러세요? 그런데 왜 문단속을 하라는 거죠?" 아트로포스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까 내가 했었던 말의 꼬투리를 붙잡고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녀가 알면서 그러는 건지 모르면서 그 러는 건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그냥 대충 답했다. "트레이 씨나 다른 아저씨들이 아트로포스를 노릴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물론 오브 녀석도 위험하지만." "왜 절 노리는 데요?" 흘…… 정말 모르고 하는 질문인가? "꼭 그걸 말로 해야겠어?" "제가 보기에는 그 분들보다 이드 님이 더 위험한 것 같은데요." "내가 위험 인물이라는 뜻이야?" "네. 이드 님은 마법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까요." 아트로포스의 그 말은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그것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칭찬 고맙군. 그럼 편히 쉬어." 그렇게 말한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트로 포스가 그런 날 불러 세웠다. "이드 님." "응? 왜?" "…… 중용자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힘내세요." 아트로포스의 표정에 약간의 미소가 어렸다. 날 안쓰러워하는 듯한, 조금 은 슬픈 느낌이 드는 미소였다. 그래서 난 일부러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 했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그럼 편히 쉬라구." "네. 이드 님도." 그그긍- 비교적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진 돌문을 닫은 후, 난 곧장 트레이의 돌집으 로 향했다. 마지막에 보았던 아트로포스의 희미한 미소가 이상하게도 내게 힘이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동정 어린 미소를 달갑지 않게 여겼을 텐 데 지금 전혀 그런 느낌이 없는 나 자신이 신기했던 것이다. 흘…… 그건 아무래도 상대가 예쁜 여자니까 그렇겠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가 그런 동정 어린 얼굴을 했다면 파이어 볼이 날아갔을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난 여자에 약하다니까. 쩝……. Name : 운영자 Date : 29-11-2000 03:46 Line : 964 Read : 124 [32]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1- -------------------------------------------------------------------------------- Ip address : 157.197.11.21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437 게 시 일 :00/11/28 21:40:41 수 정 일 : 크 기 :11.5K 조회횟수 :10 <제 18 장> 목각 인형의 선물 휘이잉- 지하 공동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햇살에 달구어진 바람이 모래 바람을 일 으키며 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에 맞추어서 가동시킨 바 람의 마법 때문에 모래가 내 옷을 더럽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트레이.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겠네." 한 차례의 모래 바람이 쓸고 지나간 뒤, 애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는 트레이와 작별한 채로 단 둘이서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볕이 내리쬐는 다라노드 사막을 두 사람이 물도 없이 건넌다는 것은 조 금 무리라고 생각해서 난 트레이에게 물었다. "저래도 괜찮아요? 저러다 갈증 때문에 큰일날 것 같은데요." "그러냐? 그럼 너희들은 여기까지 물을 마시며 왔었냐?" "……!" 트레이의 반문에 비로소 이 사막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 명 나와 아트로포스가 성물 찾는답시고 이 사막 안으로 들어와 걸었을 때에 도, 이곳까지 오는데 그 어떤 음식이나 수분을 섭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다라노드 사막은 변두리에서 중심부까지 오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 이 걸리지 않는 조그마한 사막이었던 것이다. "아차! 자네 마나회로가 12서킷이라고 했나!" 우리를 뒤로 하고 걷기 시작했던 애늙은이 아저씨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돌려 트레이에게 소리쳤다. 트레이는 그런 애늙은이 아저씨에게 부탁하듯이 말했다. "그래! 만약 내가 죽으면 12서킷 이상의 마나회로가 있어야 한다고 마법사 들에게 소문을 내주게나!" "알았네! 그럼 성공하길 빌겠네!" 그 말을 끝으로 두 아저씨는 더 이상 모습이 안 보일 정도까지 순식간에 걸어갔다. 이런 사막을 여러 번 왔다갔다했기 때문인지 모래 위를 걷는 속 도가 상당히 빨랐다. 역시 아무리 평범한 저 두 사람이라도 사막의 모래라 는 환경에 적응했기 때문에, 아무리 달리기가 빠른 사람이 도전한다해도 이 모래 위에서 그 두 사람을 능가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았다. "자,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애늙은이 아저씨와 먹보 아저씨의 모습이 사라지자 트레이가 우리에게 물 었다. 그러나 성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트레이이기 때문에 굳이 특별한 행동을 취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트레이 씨가 뭐 하는지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 그러다가 마나폭풍에 휘말려 죽어도 난 모른다." "마나폭풍에 휘말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습니다." "……." 자신 있게 말하는 내 모습이 건방져 보였는지 트레이는 잠시 날 띠꺼운 시 선으로 째려보았다. 하지만 본래 내가 그렇게 싸가지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는 이내 띠꺼운 시선을 풀었다. "맘대로 해라." 그리고는 아무 방향이나 잡아서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마나폭풍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마나폭풍을 찾기 위해서는 그렇게 무작정 이곳저곳을 헤매야 했던 것이다. "트레이 씨. 이 다라노드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마나폭풍 발생율이 높 습니까?" "이곳이 계속 사막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겠지. 만약 마나폭풍 이 없었다면 이런 좋은 기후를 사람이나 동물이나 놓칠 이유도 없고." 하긴, 확실히 다라노드 지역은 온대 기후니까 생물이 살기 좋은 여건이지. 어쨌든 마나폭풍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란 점은 확실한 것 같은데…… 언제 어디서 어느 규모로 발생하는지를 알아야 할 거 아니냐고…… 무작정 걷다 가는 아무런 소득도 없을 거다! 쿡쿡- 그때 내 옆에서 따라오던 아트로포스가 진지한 얼굴로 내 옆구리를 쿡쿡 하고 찔렀다. 그것은 트레이에게 어서 성물 얘기를 하라는 뜻이었다. 어차 피 언젠가는 트레이에게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시간을 질질 끄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난 용기를 가지고 트레이 에게 말을 걸었다. "트레이 씨. 그 목각 인형의 출처는 어떻게 됩니까? 직접 만드신 겁니까?" "응? 아…… 아니. 내가 무슨 재주가 있어서 인형을 만드나. 그냥 산 거지." "어디서요?" "글쎄……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숲 속에서 한 할머 니를 맹수로부터 구해드린 적이 있었거든? 근데 그 할머니가 고맙다면서 목 각 인형을 주더라고. 어떤 일을 하시는 할머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흘…… 왠지 그 얘기…… 동화 같은데? 착한 일 해서 좋은 물건 선물로 받 는 그런 종류의 동화 말이야. 혹시 그 할머니, 천사나 뭐 그런 건 아니겠지? "하여튼…… 트레이 씨는 그 목각 인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난 서서히 본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아직 말하고자 하는 바와 조금 거리가 있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트레이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당연히 소중하지. 내가 아들에게 줬고, 마나폭풍의 피해 속에서 아들이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거니까 말이야. 말하자면 이 목각 인형은 내 아들의 분신인 셈이다." "그럼…… 그 목각 인형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 트레이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내 말 속에서 뭔가 좋지 않은 뜻을 감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불길한 느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 듯, 얼굴 가득 의혹의 빛을 띄우며 반문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냐?" "글쎄요…… 제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잘 생각해보신다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만." 난 일부러 직접적인 대답을 피했다. 직접적인 말은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 을 확실히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는 하지만, 그 말이 상대가 전혀 생 각지도 못한 것일 경우에는 직접적인 말이 상대의 이해력에 상당한 차질을 줄 수도 있다. 그 때에는 상대가 스스로 깨닫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것이 다. 그리고 난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네 녀석이 찾고 있는 거야 당연히 성물……." 거기까지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렸던 트레이의 얼굴에 급격한 표정 변화가 일어났다. 비로소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알아낸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믿기 힘든 듯, 트레이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 목각 인형이 성물이라는 소리냐?!" "……." 난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트레이의 얼굴만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런 내 모습에서 자신의 말이 확실한 사실이란 것을 알아챈 트레이는 자신도 모 르게 목각 인형이 들어 있는 품을 손으로 막으며 나에게서 한 걸음 뒤로 물 러났다. 그것은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행동 이라, 트레이가 한 걸음을 물러서든 천 걸음을 물러서든 난 신경 쓰지 않았 다. 대신 입을 열어 트레이에게 목각 인형이 성물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 목각 인형 속에 성물이 들어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 그 목각 인형 을 부수어서 그 속에 들어 있는 성물을 취해야만 합니다." "……!" 트레이는 품에 가지고 있던 목각 인형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목각 인형 을 들여다보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이것을…… 부수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난 가능한 모든 감정을 배제한, 극히 기계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그것은 중용자의 할 일을 잘 알고 있는 트레이라면 분명 나에게 목각 인형을 넘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아들과의 추억으로 인해 트레이가 망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나의 계획적인 의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러한 의도는 한 방해꾼에 의해 어긋나기 시작했다. "안돼요! 그건 아저씨 아들이 가지고 놀았던 인형이잖아요! 그런 소중한 걸 부수다니 말도 안돼요!" 내 계획을 방해한 인간은 다름 아닌 오브였다. 그리고 그런 오브의 방해 공작은 트레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 "아들의 유품이나 마찬가지인 인형을 부수는 건 용서 못해요! 아들은 자신 의 인형이 부서지는 건 원치 않을 거라구요!" 오브는 마치 자신이 트레이의 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소리쳤다. 사실 지금 오브는 트레이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들이 가지고 놀았던 목각 인형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인 형을 부수어서 성물을 취한다는 것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브,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각 인형이 필요해." 아트로포스는 발악하듯 소리치고 있는 오브를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한 어 조로 오브에게 말했다. 그러나 오브는 그런 아트로포스에게서 떨어져 트레 이의 앞으로 달려가 우리를 막으려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싫어! 인형을 부수게 둘 수는 없어!" "오브……." 처음으로 오브가 자기 말에 반대하자 아트로포스는 꽤나 당황한 표정을 지 었다. 그것은 오브의 마음속에서 아트로포스보다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트레이가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함을 뜻했다. "아저씨! 그 목각 인형을 저한테 주세요!" 그때 오브가 뒤로 돌아 트레이에게 그런 요구를 했다. 자기보다 목각 인형 을 지켜낼 힘이 있는 트레이에게 목각 인형을 달라고 한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난 오브가 트레이에게서 목각 인형을 빼앗 아 나에게 건네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브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전 보멜트족이에요! 그러니까 제 몸 속에 인형을 넣어놓으면 아무도 뺏어 가지 못한다구요! 그러니 어서 인형을 저한테 주세요!" "……!" 이런! 오브 녀석이 물체를 몸 속에 저장시킬 수 있는 보멜트족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어! 녀석이 목각 인형을 몸 속에 저장시켜 버리면 녀석이 자진해 서 꺼내줄 때까지는 손도 못 대게 되는데! 휘이잉! 오브의 예상 못한 요구에 트레이나 우리나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갑자기 트레이 주변에서 거센 모래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모래 바람은 목각 인형 을 들고 있는 트레이의 손 쪽으로 몰렸고, 강한 바람에 의해 트레이는 들고 있던 목각 인형을 놓쳐 버렸다. 그 결과 목각 인형은 모래 바람에 휘말려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오르게 되었다. "윈드 코트(Wind Court) 스트링(String)!" 휘말려 올라가는 목각 인형을 구하기 위해 난 바람의 줄로써 목각 인형을 낚아채고자 했다. 그러나 내 바람의 줄은 모래 바람에 막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무엇인가가 내 바람의 줄을 억지로 튕겨낸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좀더 강한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블래스트 블래이드(Blast Blade) & 스트링(String)!" 바람 마법 중에서 가장 강한 따블로써 모래 바람을 없애버리고, 그 틈을 노려 스트링으로 목각 인형을 낚아챈다는 방법이었다. 한달 전쯤이라면 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마법의 이중 구사였으나, 성물의 힘을 흡수한 나 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퍼퍼펑! 모래 바람을 베기 위해 날렸던 바람의 칼날은 모래 바람을 뚫지 못하고 그 대로 터져 버렸다. 그에 따라 당연히 바람의 줄도 모래 바람을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것은 확실히 저 모래 바람이 결코 자연 현상으로 생긴 것이 아 니라는 명백한 증거였다. "후후……." 모래 바람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목각 인형을 들고 하늘 위에 둥둥 떠서 정 떨어지게 미소 짓고 있는 한 인간을 볼 수 있었다. 나이는 내 또래 정도 되는 듯한 청년이었고 체격은 조금 야위고 얼굴은 그럭저럭 봐줄 만했는데, 새하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왠지 인간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성물인 모양이군요." "……!" 제길! 저 녀석,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길래 저 목각 인형이 성물이라는 사 실을 아는 거지? 아니, 그건 그렇고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거야? 설마 모래 땅 사이에 숨어서 우리가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넌 누구냐?" 난 허공에 5미터 가량 떠서 목각 인형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 정체 모 를 청년에게 낮은 목소리로 협박하듯이 물었다. 그러자 백의(白衣) 청년은 역겹게 실실 쪼개더니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전 천신계의 28대 염천신(炎天神) 뮤로입니다. 영신관 클로토에게서 제 이름을 들으셨을 것 같군요. 천신계의 움직임을 중용자에게 알려주는 역할 을 하는 자가 바로 영신관이니까요." "……!" 백의 청년의 자기 소개를 들은 나와 아트로포스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내 목숨을 노리고 있는 염천신 뮤로가 이렇게 빨리 날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날 찾아냈지?"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윗분들의 도움을 받아 당신의 소재를 대강 파악한 뒤, 아름다운 소녀와 함께 다니는 남자를 봤느냐고 인간들에게 물어 보면 되니까요." 흘…… 결국 아트로포스 때문에 들킨 거라고 할 수 있겠군. 뭐, 그 이상한 마족 청년이 날 찾아낸 것도 아트로포스하고 실버럭서스 때문이었긴 하지만. 한마디로 중용자가 어떻게 생겨먹었나는 필요 없고 오직 영인관을 데리고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뿐이라는 소리겠지. 흐으…… 생각할수록 왠지 내 존재가 철저히 무시되는 듯한……! "전 본래 중용자 당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그 런데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 "성물의 힘을 전부 흡수하지 못한 중용자는 있으나마나한 존재. 즉, 제가 이 성물을 들고 사라져버리면 당신은 불완전한 중용자로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는 소리입니다." "……!" 염천신 뮤로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사실, 날 죽이는 것보다는 성물을 하나라도 빼돌려서 내가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용자를 무력화시 키는 데에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439 게 시 일 :00/11/28 21:41:16 수 정 일 : 크 기 :14.0K 조회횟수 :8 "……." 난 말없이 트레이를 쳐다보았다. 아직 트레이에게서 명확한 확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어 목각 인형을 부수지 말 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성물을 취해라." 잠시 내 손에 들린 목각 인형을 바라보았던 트레이는 이내 고개를 들고 허 락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난 미안하다는 뜻으로 트레이에게 가볍게 고개 를 숙인 뒤, 목각 인형에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어라운드(Around)를 걸어 목각 인형을 부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내 행동은 멈춰지고 말았다. 그것은 오브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웅ㅡ 우리 주변에서 거대한 마나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반 마법사로서는 절 대 발휘할 수 없는 크기의 마나장이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경우밖에 생 각할 수 없었다. "마나폭풍!" 그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은 트레이였으나, 난 이미 트레이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 마나장의 정체가 마나폭풍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즉시 아트 로포스 등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내 계획은 트레이의 말 한마디에 무산되었다. "너희들은 어서 도망가라! 난 남아서 마나폭풍을 막겠다!" "……!" 그랬었지! 트레이의 목적은 마나폭풍을 막기 위한 것이니까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 내가 만약 억지로 워프를 시켜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다 면, 나중에 죽어라고 욕을 듣게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나폭풍을 막는 다는 가능성 제로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은데……. "아저씨도 같이 가요!" 트레이가 도망가라면서 손을 풀자 오브는 트레이에게 매달리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트레이는 그런 오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오브를 설득 했다. "난 할 일이 있단다. 그러니 넌 형과 누나하고 먼저 피해있거라." "아저씨……!" 오브는 트레이의 더러운 손이 자신의 머리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병균을 옮 기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펑펑 울기만 했다. 오브의 머리에 병원균을 잔뜩 건네 준 트레이는 날 바라보면서 부탁을 했다. "이드, 오브를 잘 부탁한다. 그리고 너도 어서 피해라. 이건 내 일이니까 말이야." "……." 난 한순간 어떻게 할까를 망설였다. 그러나 금방 결정을 내리고 마나회로 를 가동시켰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즉시 순간 이동 마법을 구현하여 나 자신을 비롯하여 아 트로포스와 오브를 지하 공동의 엘리베이터로 옮겼다. 워프하는 도중에 집 적된 마나회로에 의한 마나장 때문에 약간의 간섭 현상을 받았지만 내 마나 회로도 막강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간섭은 무시할 수 있었다. "아……!" 순식간에 지하 공동의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해버린 아트로포스는 트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그것은 오브 역시 마 찬가지였다. "아저씨는! 어째서 트레이 아저씨는 데려오지 않은 거야!" 팍팍- 오브는 내 다리에다 쉴새없이 주먹 공격을 하면서 트레이를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트레이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마나폭풍은 점차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육안으로는 마나폭풍이 일어 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법사이기 때문에 그 엄청난 세기 의 마나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나폭풍 속에서는 트레이조차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트레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난 시력 향상 마법을 사용했다. "……!" 시력 향상 마법으로 트레이의 상태를 살펴본 나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아 직 마나폭풍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닌데 트레이는 이미 모래땅에 두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스! 오브를 잘 부탁해!" "아, 이드 님!" 난 날 부르는 아트로포스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트레이가 있는 쪽으로 또 다시 워프를 했다. 방금 전보다 강한 마나장의 간섭이 내 워프를 방해하려 고 했으나, 무사히 트레이가 있는 곳까지 워프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 다. "윈드 코트(Wind Court) 스피어(Sphere)!" 우선 트레이를 보호할 목적으로 난 바람 마법으로 주변에 반구(半球) 모양 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즉시 트레이에게 몸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트레이 씨?" "쿨럭…… 어째서 돌아온 거냐……." 흘…… 벌써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군. 병든 사람처럼 기침이나 하고 말 이야.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냐? "역시 혼자서 마나폭풍을 막는다는 건 무리입니다." "쿨럭…… 나도 인정한다…… 12서킷의 마나회로로는 어림도 없어……." 트레이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자신의 실력이면 어느 정도까지는 마나폭풍 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단 일 분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 져버렸기 때문에 모든 희망을 상실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런 트레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내 생각을 전했다. "트레이 씨, 제가 마나폭풍을 막겠습니다. 마나폭풍을 막는데 어느 정도의 마나회로가 필요한지 제가 측정할 테니까 트레이 씨는 잘 지켜보십시오." "……!"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트레이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못한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니까 놀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놀란 표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군…… 그럼 부탁한다." 트레이는 아예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마나폭풍을 막아내는 장면을 쳐다볼 준비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지금 발뺌한다면 내 목을 비틀어서 즙 을 짜낼 기세였다. 그래서 난 스스로 제안을 한 것이지만 왠지 강압적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우선 마나회로 50개로 갑니다!" 이미 내 마나회로는 거대한 한 줄기로 엮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정확히 50 서킷의 마나회로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8서킷까지 마나회로를 스스로 깔았었던 그때의 느낌을 기준으로 50서 킷이면 이 정도일 것이라고 어림잡았던 것이다. 우우웅- "……!" 50서킷 정도면 어느 정도 버틸 것이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마나폭 풍의 위력은 50서킷의 마나회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장을 유유히 먹어버 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난 다시 마나회 로의 가동 개수를 늘렸다. "마나회로 60서킷!" 우우웅- "마나회로 80서킷!" 우웅- "마나회로 90서킷!" 우- "마나회로 100서킷!" ……. 처음에 가동시켰던 마나회로의 개수를 두 배로 늘리자 마침내 마나폭풍의 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서킷 이 상의 마나회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흐아…… 지금 내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풀 가동시킨 것인데 겨우 마나폭 풍을 상쇄시킬 정도라니, 마나폭풍의 위력은 진짜 엄청나구만. 뭐, 지금 난 일부러 하나의 마나회로를 여러 개의 가상 마나회로로 쪼개서 사용하고 있 으니까 내가 본래 발휘할 수 있는 마나회로의 위력은 지금보다 조금 더 강 하긴 하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마나폭풍이란 거 정말 무섭군. 중용자조차 힘들게 막아야할 정도니……. "괜찮으냐, 이드?" 마나폭풍에서 몰아치는 마나장이 느껴지지 않자 트레이가 걱정스러운 목소 리로 날 불렀다. 마나폭풍 막는 것에 많은 정신력을 쏟고 있었긴 했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상황은 아니라 난 트레이의 부름에 대 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마나폭풍 정말 무섭군요. 중용자인 저도 마나폭풍 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어요." "그야 당연한 거다. 중용자는 자신의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가동시켜 외부 에 깔려 있는 마나회로에 마나장을 유도하는 것이고, 마나폭풍은 그 마나회 로에서 직접 발생하니까 그 위력에서 차이가 나지." 흐음…… 그런가? 하긴, 아무리 온 몸에 마나회로를 잔뜩 깔아도 인간 하 나가 깔 수 있는 마나회로의 수와 자연에 깔려 있는 마나회로의 수를 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그래도 중용자가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마 나회로에서 발생하는 마나폭풍을 오직 유도 마나장만으로 이렇게 막아내고 있다는 건 대단하지 않나? 우헐헐∼ "……!" 그때 외부에서 몰아치고 있던 마나폭풍의 마나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마나폭풍의 발생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난 즉시 가동시켰던 마 나회로를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두뇌의 피로를 풀어주는 십년수의 열매의 힘을 흡수했는데도 마나회로를 막고 나자 상당한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다. "100서킷의 마나회로인가……." 내가 외쳤던 말을 들었는지 트레이는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그 정도의 마나회로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명의 인간일 경우이고, 여러 명일 때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난 그것을 트레이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여러 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한꺼번에 마나장을 방출한다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 그렇구나. 그렇지만 100서킷이 되려면 적어도 10서킷 이상의 마법사 를 10명이나 모아야 한다는 소리 아니냐?" 흘…… 그건 그렇군. 10서킷 이상의 마법사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설령 있더라도 과연 트레이와 같이 마나폭풍 막으려는 일에 동참할지도 의 문이고 말이야. 만약 내가 그런 제의를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흘흘, 아무 래도 이렇게 말하겠지. - 거절한다 《사악한 녀석. 그런 도움 안 되는 제안을 하면 어떡해? 제안한 녀석이 그 걸 싫다고 하다니……!》 시끄러, 이 녀석아! 누가 미쳤다고 힘들게 10서킷의 마나회로를 모으고 나 서 마나폭풍 때려잡는 일에 동참하냐? 너 같으면 하겠냐? 《…… 안 하겠지.》 거봐, 임마! 그러니 너도 할말없잖아? 《너 지금 얘기의 요점이 벗어났다고!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왜 실용성 없 는 제안을 했느냐 이거야! 왜 날 걸고 넘어져?》 재미있잖아! 《…….》 "이드 님! 트레이 씨! 모두 괜찮아요?!" 저 멀리서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난 실버럭서스와의 잡담을 중지하고 손을 흔들어서 둘 다 무사하다 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드." "……?" "성물의 힘을 취하지 않을 거냐?" "……!" 트레이의 말을 듣고서야 난 아직 네 번째 성물의 힘을 흡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목각 인형을 부수고 성물의 힘을 흡 수해야만 하는 일이 남았던 것이다. "…… 절 말리지 않을 겁니까?" 유일한 방해꾼인 오브가 현재 이리로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트레 이만 좋다고 한다면 난 목각 인형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그런 내 손에 들려 있는 목각 인형을 잠시 바라보던 트레이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 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난 트레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바로 역압 마법을 목각 인형에 걸었다. 사방에서 눌러오는 압력에 목각 인형의 몸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압 마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목각 인형의 몸체가 펑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다시피 부서져 버렸다. 번쩍-! 목각 인형이 부서짐과 동시에 인형의 몸 속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난 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 는 것도 모자라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했다. 그렇게 강렬했던 빛이 사라지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 은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를 가진 심장 모양의 물체였다. 흘…… 이 심장처럼 생긴 물체가 성물인가? 뭐, 목각 인형 속에서 이것밖 에 남은 게 없으니까 당연히 성물이겠지. 근데 어떻게 성물의 힘을 흡수하 냐? 설마 이 이상한 물체를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이드 님!" 내가 목각 인형을 부순 장면을 본 아트로포스가 서둘러 내 쪽으로 달려왔 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심장 모양의 물체를 보고 나에게 말했다. "그게 바로 성물이에요. 그것을 손바닥으로 감싸쥐면 되요." 흘…… 그냥 손바닥으로 쥐라고? 정말 쉽군. 먹으라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 다. "아……!" 오브는 정말로 내가 목각 인형을 부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난 그런 오브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성물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딱딱한 촉 감을 유지하던 성물이 점차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 성물의 힘이 모두 내 손바닥을 통해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몸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냥 보통 때와 같을 뿐이었다. 하지만 십 년수의 열매에 어린 성물의 힘을 흡수할 때도 아무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성물의 힘을 모두 흡수했는데도 내 손에 남 아 있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어떤 물건이 남아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꼭 쥐었던 손을 펴보았다. "그건……!" 내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고 아트로포스와 트레이, 그리고 절망 어린 표 정을 짓고 있던 오브조차도 크게 놀랬다. 그리고 나 역시 놀라버렸다. 내 손에 웬 목걸이 하나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줄에다 진주처럼 생 긴 보석 하나 달랑 매달려 있는 극히 간단한 목걸이였다. "성물의 힘을 다 흡수했는데 웬 목걸이가 있는 거지?" 난 모두에게 물어볼 의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그것 을 보고 자기 나름의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건 트레이 씨 아드님의 선물 아닐까요? 이미 죽은 아들이 아버지 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 말이에요." "……." 흘…… 그게 지금 말이 되냐? 죽은 녀석이 어떻게 목각 인형 속에 선물을 남겨? 드디어 아트로포스도 맛이 가버렸구나……!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 예상 밖으로 트레이는 아트로포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내가 들고 있던 목 걸이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다 걸었다. 내가 발견 한 목걸이를 자기가 냉큼 가져버리는 트레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필요 없는 목걸이이기 때문에 트레이가 목걸이를 가지는 것에 토를 달지 않았다. "트레이 씨,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목에 단 목걸이를 때가 묻도록 만지작거리고 있는 트레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트레이는 계속해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내 물음에 대답했다. "앞으로 뜻이 맞는 마법사들을 모아서 마나폭풍 제거단을 만들 생각이다." 헐…… 난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 구만. 하긴, 그렇지 않으면 내 마법 스승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럼 몸도 잘 씻으세요. 그렇게 더러우면 마음이 맞는 마법사를 찾아도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을 걸요?" "하하, 그렇구나. 귀찮지만 이제부터 씻고 다녀야겠다." "하지만 때가 너무 오래 묵어서 잘 씻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웃기지 마라. 때가 잘 안 벗겨지면 돌에다 문지르면 돼." "차라리 때를 칼로 긁어내시죠?" "너나 긁어라, 이 녀석아." 대화는 어느새 일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은 모두 부서진 목각 인형 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걸이 때문이었다. 만약 그 목걸이가 없었다면 나와 트레이는 지금처럼 우스갯소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목걸이가 아트로 포스의 말처럼 정말로 트레이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남겨놓은 선물인지 어떤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트레이와 내가 예전처럼 말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은 나 에게 필요가 없었다. "저기……." 그때 열심히 서로를 헐뜯고(?) 있던 나와 트레이를 보며 오브가 조심스럽 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 가득히 '뭔 일이냐?'의 표정을 만들면 서 오브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오브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 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한 마디의 말을 불쑥 내뱉었다. 그 한 마디의 말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전 트레이 아저씨를 따라가겠어요!" ====================================================================== 이것으로 10권 연재 끝입니다...=.= 9권 나오고 나서 두 달 정도 흘렀군요... 빨리 쓰고자 했지만 결국...-.-;;; 10권 연재분은 일주일 후에 삭제합니다... Name : 운영자 Date : 29-11-2000 03:47 Line : 467 Read : 107 [33]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2- -------------------------------------------------------------------------------- Ip address : 157.197.11.21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438 게 시 일 :00/11/28 21:40:58 수 정 일 : 크 기 :12.5K 조회횟수 :9 "그럼 안녕히." 염천신 뮤로는 그 말을 끝으로 내게서 달아나기 위해 하늘 위로 더욱 높이 솟아오르려 했다. 만약 여기서 뮤로를 놓쳤다가는 나중에 성물을 찾는데 상 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했기 때문에 난 마나회로를 풀 가동시켜 녀석을 막았다. "윈드 코트(Wind Court) 스피어(Sphere)!" "……!" 거대한 구(球) 모양의 바람 장벽이 앞을 가로막자 염천신 뮤로는 더 이상 위로 날아가지 못했다. 내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풀로 가동시키고 있는 만 큼 아무리 염천신이라해도 내 마법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뮤로는 내 스피어(Sphere)를 뚫기보다 직접 날 공격해왔다. "싸움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친 뮤로의 손끝에서 수십 개의 불똥이 뻗어 나왔다. 한 손가락 에서 여러 개의 불똥이 한꺼번에 발출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불똥들은 나 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 있는 아트로포스와 트레이, 그리고 오 브마저 공격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었다. 콰콰쾅! 내가 친 바람의 장벽과 모래 위에 부딪친 불똥들은 상당한 폭발을 일으키 며 일대를 모래먼지투성이로 만들었다. 뮤로의 불똥 공격을 막기 위해 스피 어를 거두어들이고 바람의 장벽을 친 결과, 하늘은 뮤로가 도망치기 좋은 상태가 되었다. "하하! 그럼 나중에!" 염천신 뮤로는 그런 싸가지 없는 말을 남기며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내가 따라오지 못하게 전속력으로 날아올랐기 때문에, 비행 마법 같은 것으 로는 뮤로를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한순간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 할 수 있는 순간 이동 마법을 구사했다. "워프(Warp)!" 워프라는 말을 외침으로써 다른 잡생각이 떠오르지 못하게 한 후, 난 곧바 로 뮤로가 날아가는 진로의 앞쪽으로 도착 이미지를 정했다. 그러자 내 몸 은 순식간에 모래 사막 위에서 사라져 뮤로의 바로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헉!" 갑자기 내가 앞을 가로막자 득의양양하게 하늘을 날아가던 뮤로는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난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뮤로를 지상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마법을 구사했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커억!" 위에서 내리누르는 거센 압력에 뮤로는 버티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지상에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뮤로의 낙하 속도를 따라잡기 위 해 내 머리 위에 역압 마법을 걸었다. 물론 그 위력은 뮤로가 받은 것보다 훨씬 약한 것이었다. 퍼억! 염천신 뮤로는 사막의 모래 위로 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물론 그건 염천신인 뮤로의 경우에 한해서였다. 높이가 1km나 되는 곳에서 떨어져서 무사할 인간은 없을 테니까. 척- 난 가볍게 모래 위에 착지했다. 뮤로가 떨어진 곳에서 모래 구름이 뭉게뭉 게 피어오르고 있어서 뮤로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단지 이 정도로 쓰러진다면 천신계 서열 10위 권내에 드는 염천신이라고 할 수 없었 기 때문에 난 불시의 공격에 대비하며 모래 구름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후후…… 중용자를 너무 우습게 봤던 것 같군요." 뭉게뭉게 피어올라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는 모래 구름 사이로 염천신 뮤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들어도 확실히 화가 난 목소리였다. 그것 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이 될 것이란 느낌을 팍팍 들게 만들었다. "이제 당신을 죽이는 일에만 전념하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한 뮤로는 모래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런 그의 손 에는 아무 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떨어질 때 목각 인형을 떨어뜨린 듯했다. 그러나 뮤로는 방금 선언했던 대로 성물보다는 내 목숨을 노렸다. "천염낙화(天炎落花)!" 콰콰쾅-! 뮤로의 손끝에서 이번에도 수십 개의 불똥이 뻗어 나왔다. 그리고 그 불똥 은 내가 피하지 못하도록 내가 서 있는 일대를 완전히 뒤덮으며 떨어져 내 린 후,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 광경을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본다 면 정말 장관이었겠지만, 바람 마법으로 그 공격을 견뎌야만 하는 나에게는 완전히 죽을 맛이었다. "천염시(天炎矢)!" 두 번째 공격은 불화살 공격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파이어 애로우는 아니 었다. 강하게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거대한 불화살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회 전력이 걸린 불화살은 바람 마법만으로 막아내기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즉시 순간 이동 마법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쿠앙-! 내가 있었던 자리에 떨어진 불화살은 거대한 폭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그리고 본래 가지고 있던 불화살의 회전력 때문인지 일대에 강한 회오리가 형성되었다. 다행히 난 뮤로의 등뒤로 워프를 했기 때문에 그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푸욱-! 워프를 통해 한순간에 뮤로의 뒤를 잡은 나는 녀석의 등뒤에다 아이스 애 로우를 선물해주었다. 너무나 짧은 거리에서 받은 공격이었기 때문에 뮤로 는 심장 부근에 아이스 애로우를 맞아버렸다. 난 뮤로의 등뒤에 있어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스 애로우의 뒷부분이 등에 깊숙이 박힌 것으로 봐서는 아이스 애로우가 뮤로의 등을 관통하여 앞가슴으로 삐져나온 듯했다. "빌어먹을!!!" 내 공격에 당한 뮤로는 발악을 하며 나에게 불똥을 쏘아대었다. 그러나 공 격을 성공시키자마자 난 바로 워프를 통해 뮤로의 머리 위로 피했기 때문에 뮤로의 불똥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서로 부딪쳐 폭발했을 뿐이었다. "어디……!" 내 모습이 사라진 것을 알고 뮤로는 화를 내며 '어디냐'라고 소리치려 했 다. 하지만 그 순간 쇳덩이 수십 톤의 무게와 맞먹는 크기의 압력이 머리 위에 걸려버렸기 때문에, 뮤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또다시 아래로 추락하게 되었다. 퍼억-! 뭔가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그것은 뮤로의 몸이 분해되는 소리가 아니었다. 모래 위에 떨어져서 그런 소리가 났던 것이다. 어쨌든 난 뮤로가 다시 일어나서 날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세 번째 공 격을 가하려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처박힌 뮤로는 다시는 일어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레? 벌써 끝난 건가? 천신계 서열 10권에 드는 염천신이 벌써 죽었어? 이거 내가 안심한 틈을 타서 기습을 가하려는 얄팍한 수작 아니야?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뮤로를 잘 봐라.》 뮤로의 죽음을 의심하고 있는 나에게 실버럭서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온몸에 바람의 장벽을 둘러친 후 서서히 뮤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 석의 모습이 시야에 확실히 들어오는 높이에서 멈춰 섰다. "……!" 뮤로의 모습을 본 나는 놀라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뮤로의 모습은 처 참했던 것이다. 가슴에는 날카로운 아이스 애로우가 꽂혀 있었으며, 역압 마법에 의해 목과 어깨 부근이 완전히 함몰되어 목이 등에 닿을 정도였다. 그러한 뮤로의 얼굴은 한번 보면 일년 내내 악몽을 꾸게 만들 정도로 공포 스러웠다. "진짜 죽어버린 거야?" 난 믿을 수가 없어서 실버럭서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실버럭서스는 확실하 다는 듯이 몸을 크게 진동시키며 대답했다. 《보면 모르냐? 너 눈을 어디다 달고 다녀?》 "……." 하하…… 말도 안돼. 염천신이라는 작자가 겨우 두 번의 공격에 맥없이 쓰 러져 버리다니. 어떻게 염천신이 나한테 부상 하나 입히지 못하고 죽어버리 냐? 어처구니가 없구만! 《그건 네 공격이 아주 능숙했기 때문이다.》 헐…… 그거 칭찬이냐? 《칭찬이라면 칭찬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까지의 중용자들은 적을 만나면 긴장해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했거든. 그래서 내가 항상 지도해줬지. 근 데 네 녀석은 뮤로와의 전투에서 내가 조언을 할 기회도 없게 만들었다, 그 것이 칭찬할만한 일이라고나 할까?》 흘…… 칭찬해주니 고맙군. 《이드…… 넌 도대체 이런 전투를 몇 번이나 한 거냐? 이 세계에서 처음 마법을 사용할 텐데 어떻게 이런 능숙한 마법 공격이 가능한 거지? 빨리 사 실대로 불어!》 시끄러.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일일이 말할 의무는 없어. 게다가 그런 것들 은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란 말이다. 자꾸 캐물으면 뜨거움과 차가움을 번갈 아 맛보게 해주겠어. 《…….》 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실버럭서스는 더 이상 그것에 대 해 묻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충고를 하나 해주었다. 《뮤로를 이겼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라. 이곳은 천신이나 천마가 활동하기 에는 장애가 많은 회로계니까 말이야. 만약 천신계에서 뮤로와 싸웠다면 이 정도로 간단하게 이기지는 못했을 거다. 그것만 기억해둬.》 그렇게 하지. 사실 전혀 도움 안 되는 충고지만. 《이 자식……!》 "이드 님ㅡ!"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부터 아트로포스와 트레이, 그리고 오브가 이쪽으 로 뛰어왔다. 모두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아서 절로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시선이 그들에게서 뮤로에게로 향해지자 또다시 기분이 나빠져 버렸다. 내 가 지금까지 해온 살인 중에서 가장 추악한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후후…… 만약 내가 했던 살인이 모두 이런 추악한 모습이었다면 아마 사 람 죽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대부분의 살인을 마 법으로 깔끔하게 처리해버려서 사람을 죽였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으니 까 말이야. "이드 님! 다친 데는 없으세요?"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아트로포스가 조금 걱정하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난 대답 대신 죽어 있는 뮤로의 모습을 가리켰다. "아……!" 처참한 뮤로의 주검을 보고 아트로포스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경악 의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아버지인 텔이 내 팔을 잘라내는 장면을 보고도, 내 잘린 팔을 손으로 집었어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던 아트로포스가 뮤로 의 시체를 보고 저렇게 크게 놀란 것은 조금 의외였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격렬하게 싸웠잖아요?" 뮤로의 시체를 보고 놀랬던 아트로포스는 다시 날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얼 굴로 물었다. 그래서 난 괜찮다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때 트레이가 끼어 들어 방해를 했다. "다친 곳이 없으니까 괜찮겠지. 그나저나 대단하군. 이 녀석, 천신족이라 고 했잖아? 엄청난 화염 마법을 퍼붓는 그런 녀석을 이렇게 간단히 쓰러뜨 리다니…… 역시 중용자답군." "칭찬 감사합니다." 난 퉁명스럽게 대답함으로써 트레이의 잡설을 끊었다. 그리고 나서 즉시 화제를 성물 쪽으로 돌렸다. "로스, 이 부근에 성물이 떨어져 있을 거야. 한번 찾아봐." "이드 님이 뮤로에게서 빼앗지 않았나요?" "아니. 녀석이 날 공격할 때 어딘가에 내팽개쳐 놓아서 말이야." "그렇군요. 그럼 찾아볼게요." 아트로포스는 성물이 부서지든 말든 신경 안 쓰고 싸운 날 탓하지 않고 내 말대로 이 부근에 떨어져 있을 성물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 중했다. 그러나 오브가 갑자기 아트로포스에게 달라붙었기 때문에 그녀는 정신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오브……!" "안돼요, 누나! 그냥 놔둬요! 인형을 찾으면 부술 거잖아요!" 오브는 눈물까지 흘리며 아트로포스를 붙잡고 늘어졌다. 오브의 말대로 목 각 인형을 찾게 되면 성물을 취하기 위해 그것을 부수어야 했기 때문에 아 트로포스는 차마 오브를 떨어뜨리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둔다면 오브 스스 로 지쳐 떨어질 때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할지도 몰랐다. "오브, 이제 그만 하거라." 그때 트레이가 오브를 향해 조용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오브는 그럴 수 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트레이를 쳐다보았다. 그런 오브를 바라보는 트레이의 눈에 잠깐 눈물이 어리는 듯했으나, 이내 평상시의 표정 으로 돌아와서 말했다. "중용자는 성물의 힘을 얻어야만 한다. 그게 중용자의 할 일이다. 비록 중 용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라지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부수어야 하는 이 드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거다. 그러니 이해해 주거라." "싫어! 저 아저씨는 분명 속으로 웃고 있을 거라구!" "……." 흘…… 오브 녀석, 내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군. 완 전히 틀린 생각을 하고 있다니 한심하다. "트레이 씨, 오브를 부탁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마법으로 오브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 가는 오브에게 완전히 찍히게 되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트레이에게 떠넘겼 다. 다행히 트레이는 그런 내 책임 떠넘기기를 피하려 하지 않았다. "알았다." 그렇게 대답한 트레이는 아트로포스에게 달라붙어 있는 오브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는 번쩍하고 오브를 들어 아트로포스에게서 떼어냈다. 오브 는 아트로포스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트레이의 강한 완 력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거 놔줘요! 아저씨도 싫잖아요! 그런데 왜 막는 거예요!" "……." "아들의 손때가 묻어있는 인형을 부수면 아들과의 추억은 어떻게 되는 거 냐구요!" "……." 오브의 외침을 들으면서도 트레이는 묵묵히 오브가 나와 아트로포스의 일 을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트레이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져 있 었다. 오브의 말에 마음의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트레이를 설득하려는 오브의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인형이 부서진다고 아들과의 추억이 사라질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오브의 말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오직 자신을 트레이의 아들과 동일시해서 아버지 대신 트레이 에게 사랑을 받으려는 오브의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로스, 성물은 어디 있어?" "아, 네…… 음……." 오브와 트레이의 실랑이를 넋 놓고 보고 있던 아트로포스는 내가 말을 걸 자 화들짝 놀라 급히 성물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의 시 간이 지나자 아트로포스는 어떤 한 장소를 가리켰다. "저 부근에 있는 것 같아요." 흠…… 저 부근이라면 어느 정도의 범위지? 에라, 그냥 무식하게 놀자!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언더(Under)" 난 아트로포스가 가리켰던 장소에 역압 마법을 걸었고, 그에 따라 그 부근 의 모래가 일제히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모래 더미 속에서, 난 하나의 목각 인형이 모래와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것을 발견했 다. 그래서 난 즉시 바람의 줄로써 그 목각 인형을 낚아채었다. 탁! 목각 인형은 정확히 내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 엄청난 뮤로의 화염 공격 속에서도 목각 인형은 전혀 망가지지 않았다. 물론 뮤로가 천염낙화라 는 무식한 불똥 공격을 했을 때 폭발에 의해 목각 인형이 멀리 날아가서 형 체를 무사히 보존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제 이 멀쩡한 목각 인형을 내가 부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 Name : 운영자 Date : 29-11-2000 03:47 Line : 544 Read : 89 [34]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3- -------------------------------------------------------------------------------- Ip address : 157.197.11.21 Browser version : Mozilla/4.0 (compatible; MSIE 5.0; Windows 98; DigExt) 제 목 :[사이케델리아] 18장:목각 인형의 선물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439 게 시 일 :00/11/28 21:41:16 수 정 일 : 크 기 :14.0K 조회횟수 :123 "……." 난 말없이 트레이를 쳐다보았다. 아직 트레이에게서 명확한 확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마음이 바뀌어 목각 인형을 부수지 말 라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성물을 취해라." 잠시 내 손에 들린 목각 인형을 바라보았던 트레이는 이내 고개를 들고 허 락의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난 미안하다는 뜻으로 트레이에게 가볍게 고개 를 숙인 뒤, 목각 인형에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어라운드(Around)를 걸어 목각 인형을 부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내 행동은 멈춰지고 말았다. 그것은 오브 때문이 아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웅ㅡ 우리 주변에서 거대한 마나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일반 마법사로서는 절 대 발휘할 수 없는 크기의 마나장이었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경우밖에 생 각할 수 없었다. "마나폭풍!" 그 말을 입에 담은 사람은 트레이였으나, 난 이미 트레이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 마나장의 정체가 마나폭풍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즉시 아트 로포스 등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내 계획은 트레이의 말 한마디에 무산되었다. "너희들은 어서 도망가라! 난 남아서 마나폭풍을 막겠다!" "……!" 그랬었지! 트레이의 목적은 마나폭풍을 막기 위한 것이니까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어. 내가 만약 억지로 워프를 시켜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킨다 면, 나중에 죽어라고 욕을 듣게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나폭풍을 막는 다는 가능성 제로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은데……. "아저씨도 같이 가요!" 트레이가 도망가라면서 손을 풀자 오브는 트레이에게 매달리면서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트레이는 그런 오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오브를 설득 했다. "난 할 일이 있단다. 그러니 넌 형과 누나하고 먼저 피해있거라." "아저씨……!" 오브는 트레이의 더러운 손이 자신의 머리에 셀 수도 없이 많은 병균을 옮 기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펑펑 울기만 했다. 오브의 머리에 병원균을 잔뜩 건네 준 트레이는 날 바라보면서 부탁을 했다. "이드, 오브를 잘 부탁한다. 그리고 너도 어서 피해라. 이건 내 일이니까 말이야." "……." 난 한순간 어떻게 할까를 망설였다. 그러나 금방 결정을 내리고 마나회로 를 가동시켰다. "그럼 행운을 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나는 즉시 순간 이동 마법을 구현하여 나 자신을 비롯하여 아 트로포스와 오브를 지하 공동의 엘리베이터로 옮겼다. 워프하는 도중에 집 적된 마나회로에 의한 마나장 때문에 약간의 간섭 현상을 받았지만 내 마나 회로도 막강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간섭은 무시할 수 있었다. "아……!" 순식간에 지하 공동의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해버린 아트로포스는 트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그것은 오브 역시 마 찬가지였다. "아저씨는! 어째서 트레이 아저씨는 데려오지 않은 거야!" 팍팍- 오브는 내 다리에다 쉴새없이 주먹 공격을 하면서 트레이를 데려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트레이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마나폭풍은 점차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비록 육안으로는 마나폭풍이 일어 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법사이기 때문에 그 엄청난 세기 의 마나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나폭풍 속에서는 트레이조차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트레이의 상태를 보기 위해 난 시력 향상 마법을 사용했다. "……!" 시력 향상 마법으로 트레이의 상태를 살펴본 나는 크게 놀라게 되었다. 아 직 마나폭풍이 본격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닌데 트레이는 이미 모래땅에 두 무릎을 꿇고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스! 오브를 잘 부탁해!" "아, 이드 님!" 난 날 부르는 아트로포스의 말을 무시하고 곧장 트레이가 있는 쪽으로 또 다시 워프를 했다. 방금 전보다 강한 마나장의 간섭이 내 워프를 방해하려 고 했으나, 무사히 트레이가 있는 곳까지 워프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 다. "윈드 코트(Wind Court) 스피어(Sphere)!" 우선 트레이를 보호할 목적으로 난 바람 마법으로 주변에 반구(半球) 모양 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즉시 트레이에게 몸 상태를 물었다. "괜찮으세요, 트레이 씨?" "쿨럭…… 어째서 돌아온 거냐……." 흘…… 벌써 죽을 때가 다 된 모양이군. 병든 사람처럼 기침이나 하고 말 이야.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냐? "역시 혼자서 마나폭풍을 막는다는 건 무리입니다." "쿨럭…… 나도 인정한다…… 12서킷의 마나회로로는 어림도 없어……." 트레이는 힘없이 말을 이었다. 자신의 실력이면 어느 정도까지는 마나폭풍 에 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단 일 분도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 져버렸기 때문에 모든 희망을 상실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난 그런 트레 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내 생각을 전했다. "트레이 씨, 제가 마나폭풍을 막겠습니다. 마나폭풍을 막는데 어느 정도의 마나회로가 필요한지 제가 측정할 테니까 트레이 씨는 잘 지켜보십시오." "……!"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트레이는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못한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니까 놀란 것이었다. 그러나 그 놀란 표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렇군…… 그럼 부탁한다." 트레이는 아예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마나폭풍을 막아내는 장면을 쳐다볼 준비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지금 발뺌한다면 내 목을 비틀어서 즙 을 짜낼 기세였다. 그래서 난 스스로 제안을 한 것이지만 왠지 강압적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우선 마나회로 50개로 갑니다!" 이미 내 마나회로는 거대한 한 줄기로 엮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정확히 50 서킷의 마나회로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단지 8서킷까지 마나회로를 스스로 깔았었던 그때의 느낌을 기준으로 50서 킷이면 이 정도일 것이라고 어림잡았던 것이다. 우우웅- "……!" 50서킷 정도면 어느 정도 버틸 것이라 예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마나폭 풍의 위력은 50서킷의 마나회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장을 유유히 먹어버 리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난 다시 마나회 로의 가동 개수를 늘렸다. "마나회로 60서킷!" 우우웅- "마나회로 80서킷!" 우웅- "마나회로 90서킷!" 우- "마나회로 100서킷!" ……. 처음에 가동시켰던 마나회로의 개수를 두 배로 늘리자 마침내 마나폭풍의 위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서킷 이 상의 마나회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흐아…… 지금 내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풀 가동시킨 것인데 겨우 마나폭 풍을 상쇄시킬 정도라니, 마나폭풍의 위력은 진짜 엄청나구만. 뭐, 지금 난 일부러 하나의 마나회로를 여러 개의 가상 마나회로로 쪼개서 사용하고 있 으니까 내가 본래 발휘할 수 있는 마나회로의 위력은 지금보다 조금 더 강 하긴 하지만 말이야. 어쨌거나 마나폭풍이란 거 정말 무섭군. 중용자조차 힘들게 막아야할 정도니……. "괜찮으냐, 이드?" 마나폭풍에서 몰아치는 마나장이 느껴지지 않자 트레이가 걱정스러운 목소 리로 날 불렀다. 마나폭풍 막는 것에 많은 정신력을 쏟고 있었긴 했지만,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정도로 힘겨운 상황은 아니라 난 트레이의 부름에 대 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마나폭풍 정말 무섭군요. 중용자인 저도 마나폭풍 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어요." "그야 당연한 거다. 중용자는 자신의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가동시켜 외부 에 깔려 있는 마나회로에 마나장을 유도하는 것이고, 마나폭풍은 그 마나회 로에서 직접 발생하니까 그 위력에서 차이가 나지." 흐음…… 그런가? 하긴, 아무리 온 몸에 마나회로를 잔뜩 깔아도 인간 하 나가 깔 수 있는 마나회로의 수와 자연에 깔려 있는 마나회로의 수를 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그래도 중용자가 그 셀 수도 없이 많은 마 나회로에서 발생하는 마나폭풍을 오직 유도 마나장만으로 이렇게 막아내고 있다는 건 대단하지 않나? 우헐헐∼ "……!" 그때 외부에서 몰아치고 있던 마나폭풍의 마나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마나폭풍의 발생이 끝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난 즉시 가동시켰던 마 나회로를 닫고 잠시 눈을 감았다. 두뇌의 피로를 풀어주는 십년수의 열매의 힘을 흡수했는데도 마나회로를 막고 나자 상당한 피로가 몰려왔던 것이다. "100서킷의 마나회로인가……." 내가 외쳤던 말을 들었는지 트레이는 약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그 정도의 마나회로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명의 인간일 경우이고, 여러 명일 때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난 그것을 트레이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오. 여러 명의 마법사가 모여서 한꺼번에 마나장을 방출한다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 그렇구나. 그렇지만 100서킷이 되려면 적어도 10서킷 이상의 마법사 를 10명이나 모아야 한다는 소리 아니냐?" 흘…… 그건 그렇군. 10서킷 이상의 마법사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설령 있더라도 과연 트레이와 같이 마나폭풍 막으려는 일에 동참할지도 의 문이고 말이야. 만약 내가 그런 제의를 받는다면 어떻게 할까? 흘흘, 아무 래도 이렇게 말하겠지. - 거절한다 《사악한 녀석. 그런 도움 안 되는 제안을 하면 어떡해? 제안한 녀석이 그 걸 싫다고 하다니……!》 시끄러, 이 녀석아! 누가 미쳤다고 힘들게 10서킷의 마나회로를 모으고 나 서 마나폭풍 때려잡는 일에 동참하냐? 너 같으면 하겠냐? 《…… 안 하겠지.》 거봐, 임마! 그러니 너도 할말없잖아? 《너 지금 얘기의 요점이 벗어났다고!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왜 실용성 없 는 제안을 했느냐 이거야! 왜 날 걸고 넘어져?》 재미있잖아! 《…….》 "이드 님! 트레이 씨! 모두 괜찮아요?!" 저 멀리서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난 실버럭서스와의 잡담을 중지하고 손을 흔들어서 둘 다 무사하다 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드." "……?" "성물의 힘을 취하지 않을 거냐?" "……!" 트레이의 말을 듣고서야 난 아직 네 번째 성물의 힘을 흡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목각 인형을 부수고 성물의 힘을 흡 수해야만 하는 일이 남았던 것이다. "…… 절 말리지 않을 겁니까?" 유일한 방해꾼인 오브가 현재 이리로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트레 이만 좋다고 한다면 난 목각 인형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그런 내 손에 들려 있는 목각 인형을 잠시 바라보던 트레이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 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난 트레이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곧바로 역압 마법을 목각 인형에 걸었다. 사방에서 눌러오는 압력에 목각 인형의 몸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역압 마법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목각 인형의 몸체가 펑 소리를 내며 가루가 되다시피 부서져 버렸다. 번쩍-! 목각 인형이 부서짐과 동시에 인형의 몸 속에서부터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에 난 그 빛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 는 것도 모자라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했다. 그렇게 강렬했던 빛이 사라지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 은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를 가진 심장 모양의 물체였다. 흘…… 이 심장처럼 생긴 물체가 성물인가? 뭐, 목각 인형 속에서 이것밖 에 남은 게 없으니까 당연히 성물이겠지. 근데 어떻게 성물의 힘을 흡수하 냐? 설마 이 이상한 물체를 먹어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 "이드 님!" 내가 목각 인형을 부순 장면을 본 아트로포스가 서둘러 내 쪽으로 달려왔 다. 그리고 내 손에 들려있는 심장 모양의 물체를 보고 나에게 말했다. "그게 바로 성물이에요. 그것을 손바닥으로 감싸쥐면 되요." 흘…… 그냥 손바닥으로 쥐라고? 정말 쉽군. 먹으라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 다. "아……!" 오브는 정말로 내가 목각 인형을 부쉈다는 것을 알고 절망하는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난 그런 오브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성물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고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딱딱한 촉 감을 유지하던 성물이 점차 물렁해지기 시작했다. "……!" 성물의 힘이 모두 내 손바닥을 통해 내 몸으로 흡수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몸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냥 보통 때와 같을 뿐이었다. 하지만 십 년수의 열매에 어린 성물의 힘을 흡수할 때도 아무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성물의 힘을 모두 흡수했는데도 내 손에 남 아 있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난 어떤 물건이 남아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꼭 쥐었던 손을 펴보았다. "그건……!" 내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고 아트로포스와 트레이, 그리고 절망 어린 표 정을 짓고 있던 오브조차도 크게 놀랬다. 그리고 나 역시 놀라버렸다. 내 손에 웬 목걸이 하나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는 줄에다 진주처럼 생 긴 보석 하나 달랑 매달려 있는 극히 간단한 목걸이였다. "성물의 힘을 다 흡수했는데 웬 목걸이가 있는 거지?" 난 모두에게 물어볼 의도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그것 을 보고 자기 나름의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건 트레이 씨 아드님의 선물 아닐까요? 이미 죽은 아들이 아버지 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 말이에요." "……." 흘…… 그게 지금 말이 되냐? 죽은 녀석이 어떻게 목각 인형 속에 선물을 남겨? 드디어 아트로포스도 맛이 가버렸구나……!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군." 예상 밖으로 트레이는 아트로포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내가 들고 있던 목 걸이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그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다 걸었다. 내가 발견 한 목걸이를 자기가 냉큼 가져버리는 트레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필요 없는 목걸이이기 때문에 트레이가 목걸이를 가지는 것에 토를 달지 않았다. "트레이 씨,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목에 단 목걸이를 때가 묻도록 만지작거리고 있는 트레이에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트레이는 계속해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내 물음에 대답했다. "앞으로 뜻이 맞는 마법사들을 모아서 마나폭풍 제거단을 만들 생각이다." 헐…… 난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 구만. 하긴, 그렇지 않으면 내 마법 스승이라고 할 수 없지. "그럼 몸도 잘 씻으세요. 그렇게 더러우면 마음이 맞는 마법사를 찾아도 같이 다니려고 하지 않을 걸요?" "하하, 그렇구나. 귀찮지만 이제부터 씻고 다녀야겠다." "하지만 때가 너무 오래 묵어서 잘 씻어도 소용없을 겁니다." "웃기지 마라. 때가 잘 안 벗겨지면 돌에다 문지르면 돼." "차라리 때를 칼로 긁어내시죠?" "너나 긁어라, 이 녀석아." 대화는 어느새 일상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것은 모두 부서진 목각 인형 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걸이 때문이었다. 만약 그 목걸이가 없었다면 나와 트레이는 지금처럼 우스갯소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목걸이가 아트로 포스의 말처럼 정말로 트레이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남겨놓은 선물인지 어떤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인해 트레이와 내가 예전처럼 말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은 나 에게 필요가 없었다. "저기……." 그때 열심히 서로를 헐뜯고(?) 있던 나와 트레이를 보며 오브가 조심스럽 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 가득히 '뭔 일이냐?'의 표정을 만들면 서 오브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오브는 잠시 망설이다가 마 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한 마디의 말을 불쑥 내뱉었다. 그 한 마디의 말은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전 트레이 아저씨를 따라가겠어요!" ====================================================================== 이것으로 10권 연재 끝입니다...=.= 9권 나오고 나서 두 달 정도 흘렀군요... 빨리 쓰고자 했지만 결국...-.-;;; 10권 연재분은 일주일 후에 삭제합니다... ━━━━━━━━━━━━━━━━━━━━━━━━━━━━━━━━━━━ <제 19 장> 이상한 할머니 "방금 뭐라고 했지?" 오브의 말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난 다시 한 번 오브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브는 좀더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어조로 소리 쳤다. "트레이 아저씨를 따라간다구요!" "……." 오브의 두 번째 말을 듣고 나서 난 내가 결코 오브의 말을 잘못 들은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의 뒤만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오브가 전혀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트레이를 따라간다고 했기 때 문에 나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트레이 씨를 따라간다고? 왜?" 난 오브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 알고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오 브는 진심이라는 것을 알리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따라가고 싶으니까 따라가는 거지 이유가 어딨어요?" "……." 따라가고 싶어서 따라간다…… 흘…… 할말없게 만들어 버리는군. 하지만 그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왜 드는지에 대한 이유는 있을 거 아니야? 그걸 말해야지 왜 헛소리를 하냐고! "왜 따라가고 싶은 거지? 트레이 씨가 네 아버지와 닮아서?" "……." 내 물음에 오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브의 표정을 봐서는 내 말대 로 트레이가 자신의 아버지와 닮았기 때문에 따라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날 따라오면 고생만 한다. 그냥 이드와 로스를 따라가거라." 트레이는 그 말을 할 때 자신의 더러운 얼굴을 가리키며 오브의 마음을 돌 리려고 했다. 그러나 오브의 결심은 생각보다 강했다. "어차피 중용자 아저씨를 따라가 봤자 맨날 싸울 테니까 위험하다구요! 차 라리 트레이 아저씨 쪽이 덜 위험해요!" 헐…… 생각해보니까 그건 맞는 말이군. 염천신 뮤로는 간단하게 이겼지만 풍천마 자레드라는 녀석은 어떤 식으로 공격을 가해올지 모르니까 말이야. 확실히 나와 아트로포스를 따라다니는 것보다는 트레이와 같이 다니는 게 안 전하겠지. "게다가 중용자 아저씨는 맨날 절 구박만 한다구요!" 어쭈구리? 내가 언제 널 구박했다고 그래? 구박받는 쪽은 언제나 나였잖아? 지금까지 항상 아트로포스 옆에 빌붙어서 내 욕만 해대고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전 트레이 아저씨를 따라가고 싶어요……." 오브의 표정은 정말 실감났다. 누가 보더라도 트레이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 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오브가 진심으로 그렇게 원하고 있을 수도 있었으나, 오브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오브의 모든 행동이 연기로 보였다. "이드……." "이드 님……." 갑자기 트레이와 아트로포스가 일제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오브 의 양육권(?)을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 나보고 정하라는 뜻이었다. 흘…… 왜 또 나한테 그런 걸 결정하라는 거야? 하여튼 인간들이 중용자라 는 이유 때문에 모든 걸 나한테 떠넘기려고 그래. 귀찮아, 귀찮아∼ "그럼 오브는 트레이 씨가 맡아주십시오." 내 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졌다. 사실 그건 당연했다. 오브를 일행으로 받아 들인 결과 아트로포스가 가지고 있던 재정이 빈곤해졌고, 싸움이 있을 때마 다 오브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어떻게 하면 떨어뜨려 버릴까를 생각하고 있던 참에 오브가 자발적으로 떠나준다니 망설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드 님……." 내 결정이 너무 신속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뭐라고 반박을 하려고 했지 만, 이내 나와 자신의 역할을 생각해내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 스스 로도 이 기회에 오브를 때어내는 것이 오브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 듯 했다. 오브는 그런 아트로포스에게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요, 로스 누나. 누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결정해버려서요." "오브……." "하지만 그 편이 로스 누나에게도 편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도 트레이 아저씨를 꼭 따라가고 싶었구요. 이해해 주세요." 간절함마저 묻어 나오는 오브의 말에 마침내 아트로포스도 침울한 표정을 바꾸었다. "좋아. 대신 트레이 씨의 말을 잘 따라야해?" "네!" 아트로포스가 허락하자 오브는 기쁨의 대답을 터트리며 트레이에게 달라붙 었다. 트레이는 그런 오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그로 인해 오브에게는 더욱 많은 병원균이 옮겨가게 되었다. "트레이 씨, 저와 아트로포스는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성물의 힘을 얻었고 트레이에게 도움도 준 데가가, 이런 사막 지대에 남아 있어봤자 할 일도 없었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의 의견은 듣지도 않은 채 트레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트레이는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난 지하 공동으로 돌아가서 조금 쉬었다가 오브와 함께 여행할 생각인데… … 오늘 하루만이라도 오브와 같이 있어주면 좋지 않나?" 흘…… 오브 녀석이 나한테 귀여움을 떨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를 않았으니 눈꼽만큼도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게다가 빨리 다섯 번째 성물을 찾으러 떠나야 하니까 그럴 시간도 없고 말이야. "죄송합니다. 인연이 있으면 나중에 또 만나겠죠. 그럼 안녕히." 난 그 말을 끝으로 아무 방향이나 잡고 무작정 걸었다. 내가 걷기 시작하자 아트로포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트레이와 오브에게 작별의 인사를 한 뒤에 내 뒤를 따라왔다. 오브를 귀여워하는 아트로포스로서는 하루 정도 오 브와 같이 지내는 것을 바라겠지만 내가 그걸 바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 불평 없이 날 따라온 것이다. "여전히 오브를 싫어하시는 모양이군요." 트레이와 오브의 모습이 꽤 작게 보일 정도로 걸었을 때 아트로포스가 약간 투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난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오브 녀석이 항상 날 좋지 않게 생각하니까 나도 녀석이 싫은 거라고. 난 날 싫어하는 사람조차 좋아할 정도로 착한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 아트로포스도 오브가 날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내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얼굴에는 오브와 좀더 같이 있지 못해서 안타까워하 는 빛이 어려 있었다. 역시 사람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아무리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아트로포스를 통 해서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로스." "네?" 대략 10여분 가량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을 때 내가 갑자기 말을 걸자 아트로포스는 의아한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그러나 난 여전히 변함없 는 속도로 걸으며 입만 놀렸다. "걸어가기 귀찮으니까 워프로 건너뛰어 버릴까?" "음…… 그게 좋을 것 같네요." 내 말을 듣고 나서 잠시 생각을 하던 아트로포스는 이내 괜찮다는 듯이 고 개를 끄덕였다. 워프 같은 고난이도의 마법을 사용하겠다는데 전혀 걱정하지 않는 그녀의 표정은 역시 그만큼 날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었 다. "그 전에 이드 님의 정신적 피로를 풀어드리겠어요." 내가 염천신 뮤로와 싸우고, 거기에다 마나폭풍과도 맞섰기 때문에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했다는 것을 알아챈 아트로포스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 으며 작은 목소리로 뭐라뭐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조금 어지러웠던 머리가 이내 말끔히 정돈되었다. 헐, 정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십년수의 열매의 힘에다 아트로포스의 영인관 으로서의 능력까지 더하니까 정신적 피로가 엄청난 속도로 회복되는구만. 내 가 마법을 쓰는 것과 동시에 아트로포스가 계속해서 내 정신 피로를 풀어준 다면 하루 종일 마법 사용해도 지칠 것 같지 않은걸? "자, 그럼 우선 마을까지 워프한 다음에 그 위치에서부터 성물 찾기 시작하 자고." "네." "간다." 난 그 말을 끝으로 마나회로를 개방하여 순간 이동 마법인 워프를 사용했다. 이 사막에 들어오기 전에 들렸던 마을의 모습은 대강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 에 목적지를 떠올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아트로포스의 몸을 입자화시켜서 전송하는 것도 정신이 말끔해진 상태라 부담 없었다. 그 렇게 워프를 해서 다라노드 사막과 바싹 붙어있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갑자 기 웬 비명이 들려왔다. "우악!!!" "유령이다!!!" "사람 살려!!!" 흘…… 뭐가 이리 시끄러워? 사람 둘이 갑자기 나타나서 마을 사람들이 놀 란 건가? 이런, 난 전혀 놀래킬 생각이 없었는데. 쩝,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 지.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성물을 찾는 것뿐. "로스, 성물의 위치는 어디야?" 난 우릴 보고 기겁하며 도망치는 마을 사람들을 무시한 채 아트로포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던 아트로포스가 날 쳐다보며 입 을 열었다.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껴져요." 흐으…… 멀리 떨어져 있으면 언제 거기까지 가냐…… 생각 같아서는 워프 로 한번에 뛰어넘고 싶지만 거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를 알아야지…… 뭐, 그곳까지의 거리만 알고 있으면 대충은 날아갈 수 있지만 내 거리 감각은 형 편없으니까 시도는 하지 말자…… 아, 그러고 보니……!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여비는 있는 거야?" 아트로포스와 성물 찾기 여행을 하면서 동전 한푼의 수입도 없었기 때문에 여비가 아직도 충분한지 안 한지가 상당히 신경쓰였다. 그런 내 걱정을 알아 챈 아트로포스는 희미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오브가 있으면 약간 아껴야할지도 모르지만 이드 님과 제가 쓰기에는 충분 히 있어요. 그래도 이 여행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알 수 없으니까 가능한 여비는 아끼도록 해야죠." "그래야겠지. 그럼 목적지로 가자." 난 아트로포스에게 어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이 어디인지 알려달라 는 표정을 지었고, 아트로포스는 위치를 알려주기보다는 직접 앞장서서 걸음 으로써 내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다섯 번째의 성물을 찾기 위 한 여행을 계속했다. 목각 인형 속에 들어있던 성물을 흡수한지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처음엔 그 성물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일주일의 여행에서 그 성물의 힘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체력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었다. 그것 은 계속된 여행에서 쉽게 피로해지는 아트로포스와는 대조적으로, 하루에 몇 십 킬로미터를 걸어도 내 몸이 전혀 피로해지지 않는 것 때문에 알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네 번째 성물의 힘을 파악한 것에 기뻐하면서 네오도로스 산 근처까지 걸어갔다. 네오도로스 산. 정상에는 만년설이 쌓여있는 높은 산으로, 가파르다고 소문 이 나서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그 산의 근처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트로포스가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이 이쪽이라고 했기 때 문에, 네오도로스 산을 넘어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네오도로스 산을 삥 돌 아서 갈 것인가를 정해야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할 거예요? 이 산을 넘어갈 건가요?"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아트로포스의 예상에 어긋 나지 않는 대답을 해주었다. "돌아갈 시간이나 금전적 여유도 없으니까 당연히 산을 넘어가야지." "네." 사실 의논할 필요도 없었지만 서로 간의 예절 상 그런 말을 주고받은 후, 우리는 곧장 네오도로스 산으로 진입했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산이기 때문 에 온갖 잡풀이 우거져서 앞으로 나가기가 꽤 힘들었다. 게다가 산길로 나 있지 않아서 내가 실버럭서스로 걸리적 거리는 나뭇가지나 수풀을 베어 길을 만들면서 걸어야 했다. 《나 같은 명검을 나뭇가지 베는데 쓰다니…… 너, 지금 나 모욕하냐?》 흘…… 내가 언제 널 존경한 적 있었냐? 새삼스럽게 뭘 그래? 《차라리 마법을 써라!》 시끄러. 나뭇가지 베는 구질구질한 일에 마법씩이나 써야겠냐? 《나뭇가지 베는 게 구질구질한 일이면…… 난 구질구질한 일이나 하는 검 이냐?》 헐∼ 잘 아는군! 《크으…… 언젠가 네놈 몸에 구멍 수십 개를 뚫어서 그 속에다 말벌들을 넣어주겠어……!》 실버럭서스는 내 몸을 벌집으로 만들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했지만 난 묵묵히 녀석을 가지고 길을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그렇게 실버럭서스의 저 주를 받으며 산 속을 헤쳐나간 지 대략 20여 분 정도가 흘렀을 때, 갑자기 정면 쪽에서 웬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쿨럭- 얼레? 기침 소리가 조금 무겁게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심하게 병을 앓는 사 람이나 아니면 노인 같은걸? 하지만 이런 깊은 산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아, 저기!" 기침 소리를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트로포스가 무엇인가를 발견 했는지 내 정면에서 약간 오른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것 은 사람의 앉은키 만한 큰 바위였는데, 한 할머니가 그 바위에 등을 기대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잔 기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흘…… 이런 깊은 산중에 기침하는 할머니라니…… 저 할머니 혹시 산 속에 있는 약초나 그런 걸 캐서 마을에다 내다 파는 거 아니야? 얼레? 하지만 바 구니 같은 것도 없고 삽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수수한 옷에다가 지팡이 하나 달랑 들고 있잖아? 도대체 저 할머니의 정체는? "괜찮으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기침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웠던지 아트로포스가 걱정스런 얼굴로 할머니에게 뛰어갔다. 하지만 난 아직 할머니가 이런 산중에 있을만 한 이유를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처럼 할머니에게 급히 달려가 지 않았다. 단지 아트로포스가 할머니에게 불의의 기습을 받을 것을 대비하 여 여차하면 그녀를 워프시킬 준비를 했을 뿐이었다. 쿨럭 쿨럭- 할머니는 아트로포스를 한번 슬쩍 보더니 다시 기침을 해댔다. 할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서야 난 그 할머니가 곱게 늙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세상사 에 찌들어 잔뜩 일그러진 그런 모습이 아니라 자식들을 잘 키우고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 여기서 뭐하세요?" 난 할머니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듯이 꿇으며 할 머니에게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는 연달아 기침을 토하다가 어느 정도 기침 이 진정되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 리고 나서 내 질문에 대답했다. "산책하던 중이라네." "……." 흘…… 산책? 기침하는 몸을 이끌고 험하다는 네오도로스 산에서 산책을 해? 이 할머니…… 혹시 노망든 거 아니야? "산책이라면 집 부근에서 하셔도 되잖아요. 이런 위험한 산까지 오시면 어 떡합니까?" 난 최대한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어조로 할머니를 탓했다. 다행히 할 머니도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음을 알고 있었는지 쉽게 내 비난을 받아들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역시 늙은 몸으로는 등산은 무리야…… 쿨럭쿨럭" 쩝…… 왠지 내가 노인들은 집에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라는 식으로 말한 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하군. 노인들도 열심히 사회 활동하는 게 좋긴 하지만… … 문제는 이 할머니의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는 거지. 보통 사람도 오르기 힘든 산을 기침까지 하면서 오르려고 하다니 말이야. 그냥 동네 산책 정도로 하면 충분한 운동이 되잖아? "집은 어디세요?"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할머니가 안쓰러웠는지 아트로 포스가 얼굴 가득 근심스러운 표정을 떠올리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기침으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이 산 너머에 있다네. 산을 한 번 넘으니까 힘들더구먼." 흘…… 당연히 산을 넘으면 피곤해지지. 그나저나 지금 할머니 혼자 등산하 러 온 건가? "혼자 오신 겁니까?" "혼자 사니까 등산도 혼자 하는 거라네……." 할머니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것으로 보아 할머니의 남편은 할머니 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식들과도 같이 살지 않는 것 같 은 느낌도 들었다. "집에 돌아가실 겁니까?" "그래야겠지…… 근데 나 혼자서는 어려울 것 같아……." 할머니는 산 너머에 있는 자신의 집 쪽을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 런 할머니의 모습은 나와 아트로포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게 만들었다. 그래 서 난 할머니를 데리고 산을 넘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저희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까요?" "응? 내 집까지? 하지만 젊은이들도 갈 길이 있을 텐데……." "괜찮습니다. 별로 바쁜 일도 아니니까요." 흘…… 바쁜 일인데 바쁘지 않다고 말하는 나는 뭐냐……. "그런가? 그럼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겠네." 할머니는 보기 드문 내 친절에 인정이 철철 넘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지 다리가 풀려버린 건지 할머니는 다시 땅바닥에 주저앉게 되었다. "괜찮으세요?" 할머니가 주저앉아 버리자 놀란 아트로포스가 급히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할머니는 아트로포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기침을 몇 번 토해냈다. 쿨럭 쿨럭- 이런…… 할머니를 데리고 이 산을 넘는다는 건 다시 고려해봐야겠는걸? 하 지만 그렇다고 이 위험한 산중에다 할머니를 놔두고 갈 수도 없고…… 결국 마법을 사용해야겠군. 워프는 목적지를 모르니까 쓸모 없고…… 역시 비행 계열의 마법으로 우선 이 산부터 넘어야겠어. "할머니, 우선 마법으로 이 산 너머로 간 다음에 할머니 집까지 모셔다 드 리겠습니다." "그건 안되네." "……?" 할머니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했기 때문에 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어리둥절했다. 얼핏 들은 기억으로는 할머니가 내 의견에 반대한 듯 했지만, 왜 반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저희하고 같이 가는 게 싫으십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네. 단지 이 산에서는 마법을 써서는 안되기에 하는 말 이야." 얼렐레? 네오도로스 산에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고라? 난 그런 얘길 아트로포스에게서 전혀 듣지 못했는데? 설레설레- 내가 아트로포스를 쳐다보았을 때 아트로포스는 자신도 그런 얘기를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자기가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다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할머니에게 더 자세한 질문을 던졌다. "왜 마법을 사용하면 안 됩니까?" "이 산은 천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네. 마법을 사용했다가는 천신에게 어떤 벌을 받을지 몰라. 늙은이의 부탁이니 제발 마법만은 사용하지 말게나." 할머니는 그 천신이란 녀석이 무서운지 몸까지 부르르 떨면서 겁에 질린 표 정을 해 보였다.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겁을 내는데 일부러 마법을 사용하기 도 뭐해서 난 할머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예, 마법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흘……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이 할머니를 어떻게 데려가지? 이런 산중에 타고 갈 만한 것은 없을 테니까…… 아, 할머니가 타고 갈 만한 것은 하나 있군. "제 등에 업히십시오." 난 할머니 앞에 등을 내보이며 그렇게 재촉했다. 할머니는 처음에 그런 내 제의를 거절했으나 아트로포스도 끼어 들어 같이 재촉했기 때문에 할머니는 결국 내 등에 업히게 되었다. "그럼 갑니다." 역시 그다지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 것을 느끼며, 난 할머니를 등에 업은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만약 할머니를 업고 가다가 허리에 무리가 생기면 아트로포스에게 치료받으면 되기 때문에 아무 걱정이 없었다. 아트로포스의 능력은 마법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산을 꿀꺽한 천신이란 녀석의 심 기를 건드릴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얼레? 갑자기 왜 할머니가 무거워지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별로 무겁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무거워질 리가 없잖아? 설마…… 이 할머니…… 요괴? "……?" 아트로포스는 내가 계속 산 속을 헤치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자기 얼굴을 쳐 다보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표정을 보아서는 할머니의 모습이 괴물로 변했다는 유치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할머니 의 몸무게가 무거워졌다는 것은 분명했다. 흐으…… 내가 이렇게 힘이 없었나? 아직 3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허리에 무리가 생기다니…… 이러면 결혼해서도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까? 밤마다 아내에게 엄청나게 구박받을 것 같은……! ======================================================================= 이 다음 내용은 언제쯤 써서 올라갈지...-.-;;;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이상한 할머니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830 게 시 일 :00/12/27 20:13:19 수 정 일 : 크 기 :7.2K 조회횟수 :50 "……!" 허리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마터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을 정도의 강렬 한 통증이었다. 허리의 통증 때문에 걸음을 멈춘 날 보고 할머니가 걱정스럽 게 물었다. "왜 그러나, 젊은이? 내가 무거워서 그러나?" "아, 아니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크윽…… 딴 생각은 무슨 딴 생각! 허리 아파 죽겠구만! 이 할머니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왜 갑자기 몸무게가 늘어난 거냐고! 《몸무게가 늘어나다니? 너 지금 무슨 헛소리야?》 으윽, 허리야…… 네 녀석이 직접 이 할머니를 업어보면 될 거 아니야! 《너 바보냐? 내가 무슨 수로 그 할머니를 업어?》 그럼 됐어! 신경 끄고 잠이나 자! 《검에게는 신경이 없어! 그리고 난 잠을 안 자! 내가 잠을 잔다는 것은 곧 나의 죽음이다!》 저벅 저벅- 난 실버럭서스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다시 할머니를 업은 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무거운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허리로부터 전해지는 강렬한 고통 역시 여전했다. 크으…… 아무래도 허리 통증을 없앤 후에 움직여야겠어. 그런데 어떻게 없 애지? 아트로포스에게 부탁을 해? 하지만 그러면 할머니가 미안해할 것 같은 데…… 어쩔 수 없이 아무도 모르게 마법으로 자가 치료를 해야겠군. 허리가 아픈 주된 요인은 척추 사이에 있는 디스크가 압박을 받기 때문이니까 척추 마디 사이를 평상시처럼 유지시키는 마법을 사용하면 되겠지. "……!" 막 마법을 사용하려던 나는 할머니가 마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 이 떠올라 마나회로 개방을 멈추어야 했다. 마법에 의한 자가 치료를 할 수 없는 지금 아트로포스의 능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아트로포스는 내 허리가 엄청나게 아프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할머니에게 말을 걸면서 계속 걷 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그녀를 불러야 했다. 하지 만 그렇게 하면 할머니가 굉장히 미안해하면서 혼자서 걷겠다고 할 것이 뻔 했다. 그래서 난 그냥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 허리의 통증은 참으로 절묘했다. 내가 간신히 걸음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누군가 날 시험하는 듯한 통증의 지속 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나에게 그리스 신화 하나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황금 양피를 찾기 위한 아르고선 원정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이아손…… 그 이아손이 청년으로 성장하여 숙부 펠리아스에게 왕위 반환을 요구하려고 이 올코스로 향할 때 어떤 강에서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부탁대로 할머니를 업고 비에 불은 강을 건넜다…… 그런데 처음엔 가벼웠던 할머니가 강 한가 운데에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이아손은 끝까지 버텨서 할머니를 강 반대편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바로 헤 라 여신이며, 헤라 여신이 이아손을 시험해보려고 한 짓임을 알게 되었다… … 라는 그리스 신화가 떠오르는군. 만약 지금 상황이 이아손이 겪었던 것과 똑같다면…… 이 할머니는 천신이란 소리인가? 저벅 저벅- 할머니가 천신이든 아니든, 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허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고통, 아니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 듯한 그 고통은 오히려 나에게 반발심을 불러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할머니를 업고 끝까지 가겠다 라는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바로 저기 보이는 마을이라네." 네오도로스 산을 넘어 한 언덕에 도달했을 때, 내 등에 업혀 있던 할머니가 산밑에 보이는 작은 규모의 마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작은 마을이 할머니 가 사는 마을이었던 것이다. 흐으…… 저 마을까지 또 언제 내려가냐? 하도 통증이 강렬해서 지금은 허 리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어떤지조차 느낄 수가 없어. 이러다간 마을에 도착 해서 할머니를 내려주면 허리가 영원히 이렇게 휘어버린 상태가 되지 않을까? "여기서 내려주게나." "예?" 갑작스런 할머니의 말에 난 내가 잘못 들었나해서 반문했다. 그러나 내가 들은 말은 제대로 들은 것이었다. "내려주게나." "……?" 얼레? 아직 마을에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벌써 내려달라는 거지? 혹시 내 허리가 아픈 것을 알아채서 내 고통을 덜어주려고 그러나? 하지만 기왕 망가진 허리 더 망가져도 되는데? "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 내려주게나." 할머니는 세 번째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난 의아한 얼굴로 할머니 를 내려주었다. 거의 30여분 동안을 구부정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 를 내리고 나서 허리를 피려고 했을 때 허리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저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아픈가 보구먼." 허리를 필 때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날 보고 할머니가 사람 좋게 웃었다. 미안한 걸 느끼는지 안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할머니가 나에게 사과 같은 걸 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겼다. 내가 할머니를 업고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내가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30분 동안 이 무거운 나를 업고 오느라 고생했네, 중용자 이그드라실." "아니, 별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할머니의 말에 처음엔 별 신경을 안 쓰고 대답하던 나는 할머니가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트로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 "이런이런, 둘 다 놀란 모양이군. 하긴, 놀라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만." 나와 아트로포스가 지금 어느 정도로 놀라고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듯, 할머니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허리를 쭉 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통의 할머 니들처럼 약간 구부려져 있던 허리가 거의 완전한 일직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할머니에게서는 아주 위엄스런 기운이 뻗어 나왔다. 아까까지만 해도 기침하며 빌빌대던 할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할머니 정체가 뭡니까?" 지금까지 할머니에게 완전히 속고 있었다는 것을 안 내 어투는 자연스럽게 조금 거칠어졌다. 그러나 그런 내 행동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할머니는 여 전히 얼굴의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냥 평범한 노인네라네." "……." 흘……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할멈을 평범한 노인네라고 생각해? 나한테 정체를 밝히기 싫은가 본데,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할멈 이름을 밝혀주지! "할머니 이름은 헤라 아닙니까?" "헤라? 그게 누군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얼레? 헤라라는 이름이 아니었단 말이야? 이, 이런! 내 찍기 실력이 여지없 이 빗나가버리다니! 그럼 이제 무슨 수로 저 할망구의 이름을 알아내지? "내 이름은 '네프나'란다. 난 자네들의 공식 명칭밖에 몰라. 통상적으로 쓰 는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나?" 할머니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었다. 물론 그 이름 이 할머니의 진짜 이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름조차 모르 는 할머니에게 농락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네프나 라는 할머니는 우리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전 이드입니다. 이쪽은 로스구요." "그렇구먼. 둘 다 간단하게 공식 명칭에서 이름을 따왔군." 흘……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이 없으니까 그렇지. 사실 이드란 이름은 영 마관 라케시스가 멋대로 붙여준 거지만. "뭐 어쨌든, 지금까지 찾은 성물은 네 개라고 알고 있는데 맞나?" "……!" 네프나 할멈이 찾은 성물의 개수마저 알고 있다는 사실은 나와 아트로포스 를 또다시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다. 네프나 할멈의 말이 계속되면 계속될수 록 우리의 버릇이나 과거의 일까지 모두 드러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 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잔뜩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네프 나 할멈은 편안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네. 자네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온 것은 아니니까 말 이야." "그럼 무엇 때문에 나타난 겁니까?" 난 조금 거친 어조로 물었다. 뭔가를 숨긴 채 접근하는 사람들이 아주 싫었 기 때문에 어조가 그렇게 거칠어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네프나 할멈은 내 거칠어진 어조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여기 나타난 이유는 바로 이드 자네의 성품을 시험하기 위해서라네." "……." 푸하하,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구만. 성품을 시험하기 위해 나타났다고? 지금 누구 놀리는 거야? 이 할망구가 나한테 죽도록 맞고 싶나? 자기가 무슨 헤라 여신인 줄 아냐고! 제 목 :[사이케델리아] 19장:이상한 할머니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831 게 시 일 :00/12/27 20:14:13 수 정 일 : 크 기 :9.8K 조회횟수 :50 "믿지 않는 건가? 하지만 그건 사실이네. 내가 이곳에 온 뒤로 가장 지저분 한 인간에게 목각 인형을 준 것도 그 인간의 성품이 괜찮았다고 느꼈기 때문 이고." "……!" 네프나 할멈의 가장 지저분한 인간이란 말을 듣고 내 머리 속에는 불현듯 트레이의 영상이 그려졌다. 그리고 곧이어 트레이가 어떤 할머니를 맹수로부 터 구해주고 그 답례로 성물이 들어있는 목각 인형을 받았다는 얘기도 떠올 랐다. 그리하여 네프나 할멈의 말과 트레이의 말을 종합한 결과 나오는 결론 은 하나였다. "할머니가 트레이 씨에게 목각 인형을 줬단 말입니까?!" "아, 그 지저분한 인간 이름이 트레이였군.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은 마법사 였지. 그것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었고. 그래서 그 인간이라면 목각 인형을 받아도 쉽게 잃어버릴 것 같지 않아서 줬다네." 역시…… 트레이에게 목각 인형을 준 사람이 바로 이 할망구였군. 그런데 이 할멈은 어떻게 목각 인형을 손에 넣은 거지? 그리고 말을 들어보면 이미 목각 인형에 성물이 있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그걸 순순히 트레이에게 줘버린 거야? "왜 트레이 씨에게 목각 인형을 줬습니까? 할머니는 그 목각 인형 속에 성 물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잖아요?" "중용자 외에는 그 성물이 쓸모 없어서 그냥 준 거라네. 그리고 트레이하고 자네하고 성물 때문에 한판 붙으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말이야." "……." 나하고 트레이하고 한판 붙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이 할망구가 정말 나한테 죽도록 맞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구나……! "이드, 아니 중용자 이그드라실." 갑자기 네프나 할멈의 입에서 위엄이 깃든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난 나 도 모르게 머리 속에서 잡생각을 지워버린 후에 네프나 할멈을 쳐다보았다. 네프나 할멈은 내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이내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는 중용의 법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네프나 할멈의 질문은 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스파트가 나에게 질문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스파트와 네프나 할멈 모두 시커먼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스파트를…… 아십니까?" "스파트? 아, 그 아이 말인가? 당연히 알지. 자네에게 스파트를 보낸 건 바 로 나니까 말이야." "……!" 스파트 녀석을 알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나한테 스파트를 보낸 인간이 이 할망구라고? 도대체 이 할망구 정체가 뭐 길래 내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 는 거지? "그러고 보니 자네들은 스파트와 내 정체를 모르겠구먼." 네프나 할멈은 당연한 소리를 하면서 드디어 자신과 스파트의 정체를 밝혔 다. "스파트는 천신족이라네. 그리고 나는 천마족이고." "……!" "믿건 말건 자네들의 자유지만 자네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존재는 그렇 게 많지 않다는 것만큼은 기억해 두게나." 네프나 할멈의 말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그러나 할멈 말대로 내 위치를 쉽 게 찾을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할멈의 말이 거짓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단지 스파트가 천신족이고 네프나 할멈이 천마족이라는 사실 이 이상했을 뿐이었다. 내 생각에는 얍삽하게 생긴 스파트가 천마족일 것 같 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천마족이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기 때문에 난 네프나 할멈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네 프나 할멈의 대답은 같았을 뿐이었다. "그렇다네. 뭐 정확히 말하자면 난 천마족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야. 스파트도 완전한 천신족이라고 보기는 힘들지. 영신관과 영마관이 천신족과 천마족이라고 분명히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흠…… 확실히 천신은 천마를 죽일 정도로 미워한다고 했는데 영신관인 클 로토는 영마관인 라케시스를 죽일 정도로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같이 다니니 까 그 둘을 순수 천신족과 천마족으로 볼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스파트나 네프나 할멈도 그런 종류의 존재들인가? "그럼 다시 한 번 묻겠네. 자네는 중용의 법칙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프나 할멈은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이미 스파트에게서 그 질문을 받고 했던 대답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약간 생각이 달랐기 때문에 그 대답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았다. "반드시 깨부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죠." "왜지?"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중용자가 힘없는 사람들의 행복을 짓밟아 성물을 모으는 행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뿐입니다." "후후." 내 감정적인 대답을 들은 네프나 할멈은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내 생 각을 부정하지 않고 얘기를 계속해나갔다. "스파트는 중용의 법칙이 이 세계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싫어하지. 혈기 왕 성한 시기니까 그쪽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몰라. 그리고 자네는 자 신에게 주어진 의무가 싫기 때문에 중용의 법칙을 없애려고 하네. 안 그런가?" "……." "뭐 어찌됐든 나 역시 중용의 법칙을 곱게 보고 있지는 않네. 난 스파트처 럼 세계의 발전을 위한다는 거창한 뜻도 없고, 자네처럼 중용의 법칙으로 인 해 어떤 의무를 강요당하고 있지도 않아. 내가 중용의 법칙을 싫어하는 이유 는 단 한가지뿐이라네." 네프나 할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해나가다가는 감 정이 격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한 박자 쉰 네프나 할 멈은 중용의 법칙을 싫어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중용자가 천신과 천마를 죽여 없애는 것이 싫을 뿐이라네. 그들도 보통의 존재들처럼 살려고 하지. 하지만 중용자는 중용의 법칙이라는 미명 아래 그 들을 죽인다네. 난 지난 900년 동안 수많은 천신과 천마가 죽어 가는 것을 지켜봐 왔네. 그리고 또한 중용자들의 죽음도 보았지. 내가 늙었기 때문인지 는 몰라도…… 난 그런 죽음들이 싫다네. 그래서 중용의 법칙을 없애고자 하 는 것이야." 네프나 할멈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윤리·도덕적인 차원에서 중용의 법칙을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런 사실보다도 네프나 할멈이 지난 900 년 동안 천신과 천마의 죽음을 지켜봐 왔다는 말이 신경 쓰였다. "900년 동안 지켜봐 왔다는 말은…… 할머니 나이가 900세를 넘었다는 겁니 까?" "후후, 그렇다네. 난 100년밖에 살지 못하는 천신족이나 천마족과는 다른 존재니까 말이야. 천마족이되 천마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천마족이지." 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여튼 결국 거의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인가? 어떻게 보면 부러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노인 의 모습으로 영원한 삶을 사는 건 별로 재미없어. 영원한 삶보다는 영원한 젊음이 좋지. 물론 영원한 젊음 같은 것도 마음 착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이지 만. 애인은 죽고 자기만 오래 살면 얼마나 괴롭겠어? 뭐, 나야 애인 죽으면 바로 다음 애인을 만들 사악한 녀석이니까 영원한 젊음이 좋지만 말이야. "중용자 이그드라실, 반드시 중용의 법칙을 없애주게나." 네프나 할멈이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 리는 스파트에게서도 비슷하게 들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난 스파트 때처럼 말했다. "제가 무슨 수로 중용의 법칙을 없앱니까? 스파트는 제게 무슨 도움을 준다 고 했지만 지금까지 도움 준 적이 전혀 없는데, 할머니는 어떻게 절 도와주 실 겁니까?" "후후, 스파트는 자네가 끈을 지배할 수 있도록 단 한번의 도움을 곧 줄 거 네. 그 단 한번의 도움이 자네에게 진정 도움이 된다면 자네는 끈을 지배하 는 자로서의 길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셈이지." 흘…… 스파트가 날 달랑 한 번 도와줄 거라고? 달랑 한 번의 도움으로 중 용의 법칙을 부수는 고난이도의 일을 나에게 부탁하는 거냐? 참 남는 장사들 을 하는군. 이거 완전히 나만 손해보는 느낌이야. "스파트는 그렇다 치고, 할머니는 저에게 무슨 도움을 주실 겁니까?" 난 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네프나 할멈에게 했다. 다행히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은 있는 모양인지 네프나 할멈은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난 자네에게 9번째 중용자에게 주어졌던 성물의 수수께끼를 알려주려고 하 네." "……!" 네프나 할멈의 말은 확실히 뜻밖이었다. 아직 그 누구도 모른다는 성물의 수수께끼를 알고 있다는 것이 의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금방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나타났다. "어떤 수수께끼였습니까?" "뭐 간단한 거라네. 하나의 키워드(key-word)를 주어준 거지." "키워드? 어떤 키워드입니까?" 9번째 중용자가 풀어야 했던 성물의 수수께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번 성물 의 수수께끼에 참고할 생각이었다. 물론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더라도 적 어도 어떤 식으로 성물의 수수께끼가 나오는지는 알아야 마음의 부담이 적어 질 것 같았던 것이다. "키워드는 바로 '목각 인형의 선물'이라네." "……?" 얼레? 목각 인형의 선물? 그건 또 뭐야? "목각 인형의 선물이란 바로 트레이에게 주었던 목각 인형 속에 들어 있던 성물을 가리키는 거였네. 그렇지만 9번째 중용자는 세상에 널리고 널린 목각 인형만 뒤지다가 결국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고 영인관의 힘을 흡수하게 됐지. 그래서 남게 되어버린 그 목각 인형은 내 소유가 되었다네. 그러다가 그 목 각 인형이 이번에 성물로 선택됐다는 것을 알고 이 땅에 풀어놓았던 것이고." 흘…… 근데 왜 그 남은 7번째 성물이 네프나 할망구의 손에 들어간 거지? 그거 참 이상하군. 게다가 네프나 할멈은 그 목각 인형이 성물이란 것도 느 낀 건가? 성물은 영인관인 아트로포스밖에 느끼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생각 할수록 이상하네? "할머니도 성물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까?" "뭐…… 오래 살다 보니까 자연히 그런 능력이 생겼다라고나 할까?" 네프나 할멈은 그런 식으로 내 질문을 얼버무렸다. 그래서 마법으로 고문을 가하면서 사실을 실토하게 할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까 내 허리에 절묘하게 통증을 가했던 그 능력을 얕잡아 볼 수는 없어서 관두기로 했다. "그럼 저한테 볼일은 끝난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구먼. 난 그저 자네에게 중용의 법칙을 없애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려고 왔을 뿐이니까 말이야. 그럼 난 이만 가겠네." 그렇게 말한 네프나 할멈은 곧바로 몸을 돌려 아까 내가 힘들게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상당히 자연스러운 몸놀림으로 산을 오르는 네프 나 할멈의 모습은 결코 나이 먹은 노인으로 볼 수 없었다. 흘…… 역시 천마족이라 다르군. 그나저나 중용의 법칙을 탐탁지 않게 생각 하는 인물들이 많은가 본데? 스파트도 싫어하고 네프나 할멈도 싫어하고, 그 리고 나도 싫어하고. 또 나에게 당했던 사람들도 중용의 법칙을 싫어하겠지. 어쨌든 네프나 할멈의 말대로 스파트 녀석이 나한테 도움을 줄 때나 기다려 볼까? 근데 녀석은 어디 있지? 아, 녀석은 천신족이니까 자기가 알아서 찾아 오겠군. 그렇다면 난 성물 찾기 여행을 계속하면 되겠지? "가자, 로스." "아, 네." 난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성물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프나 할멈 때문에 많은 시간이 지체됐기 때문에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나중에 네프나 할멈을 만날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네프나 할멈 에 대한 인상은 별로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밥이라도 사달라고 졸라보기로 마음먹었다. ======================================================================== 조금이지만 이틀만에 올렸습니다... 기적...-.-;;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정령의 숲(上)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855 게 시 일 :00/12/29 20:29:58 수 정 일 : 크 기 :8.0K 조회횟수 :17 <제 20 장> 정령의 숲 이프노(Ipno) -上- 저벅저벅- 탁- 탁- 지금까지는 발자국 소리를 전혀 내지 않았던 아트로포스였지만, 지금은 약 간이나마 발자국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날 따라오고 있다는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저 숲에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져요." 아트로포스가 가리킨 곳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숲보다 엄청나게 넓은 숲이었 다. 옛날 기억을 꺼내기는 싫었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환타지 세계에서 엘프 들이 살았던 카르본 숲에 맞먹는 크기일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비록 내가 숲에는 약하다고 해도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상 안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숲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 나 막 숲에 진입하려는 순간에 우리 근처를 열심히 말을 타고 지나가던 한 상인이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당신들! 설마 그 숲 안으로 들어가려는 거요?" "……?" 흘…… 어째서 지나가던 상인이 우리를 막는 거냐고. 설마 이 숲에는 무시 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어서 들어가면 위험하다라는 헛소리는 아니겠지? "그 숲은 정령의 숲 이프노(Ipno)요! 인간이 출입할 장소가 아니라오! 게다 가 이프노에는 무서운 괴물도 살고 있어서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못 나오는 사람이 많다오!" 나참, 결국 괴물이 있어서 위험하다는 거잖아? 나 같은 무적의 마법사가 괴 물 있다고 안 들어갈 거 같냐? 저 상인 아저씨의 말은 무시해버리고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그런데…… 정령의 숲 이프노? 어째서 정령의 숲이라고 부르 는 거지? 정령의 숲…… 정령……. "왜 그러시죠? 설마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 아니죠?" 내가 상인의 말을 듣고 멍하게 숲을 쳐다보고 있자 아트로포스가 불안한 듯 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난 머리 속에서 떠오르려는 옛날 일들을 지워버린 후에 평상시와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들어가야지. 괴물 만나면 잡아서 구워먹을까?" "훗…… 그건 좀 꺼려지는데요?" 나와 아트로포스는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정령의 숲이라 불리는 이프노 숲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에게 경고의 말을 해주었던 상인 아저씨는 계속 위험 하다고 소리쳤으나 우리가 아예 무시를 하자 나중에는 욕설 비슷한 저주를 하더니 이내 자기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로스, 정령의 숲이라는 것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 숲에 어느 정도 들어서고 나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트 로포스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정령의 숲……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의 정기가 모 여있는 곳에는 신비로운 정령들이 살고 있다고 말이에요. 사람과 비슷한 모 습의 정령, 동물과 비슷한 모습의 정령, 자연과 비슷한 모습의 정령들 등등 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흐음…… 그런가. 얘기를 들어보면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만났던 정령들하 고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하…… 마음이 왠지 싱숭생숭 한……. "아……!" 그때 내 옆에서 나와 나란히 숲을 헤쳐나가던 아트로포스가 정면을 보고는 놀란 음성을 토해냈다. 계속 정령 생각만 하던 난 고개를 들어 그녀가 보고 놀란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전혀 예상외의 물건이었다. 짧은 금발 머리에 잘생긴 얼굴, 그리고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는 그 물건은 바로 스파트였던 것이다. "후후, 오랜만에 만나는군요.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으니 말입니다." 스파트는 큰 나무에 기대고 서 있다가 우리를 보고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반가운 표정이 떠올라 있었지만 난 전혀 반갑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극히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용건은 뭐냐?" "지난번에 말씀드렸을 텐데요." 아트로포스를 의식한 스파트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그렇게만 말했다. 그러나 이미 네프나 할멈을 통해서 스파트가 날 도와줄 것임을 알고 있는 아트로포스는 주저 없이 끼어 들었다. "이드 님이 끈을 지배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거 아닌가요?" "그, 그걸 어떻게……?!" 흘…… 스파트 녀석은 아직 우리가 네프나 할멈을 만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군. 도대체 그 동안 스파트는 뭐한 거지? 진짜로 날 도와주기 위해 준 비하고 있었나? "네프나를 만나서 다 알아. 네 정체 같은 걸 다 말해줬거든." "큭…… 그 늙은 할망구……!" 내 말을 들은 스파트는 이를 박박 갈면서 네프나 할멈을 욕했다. 서로 중용 의 법칙을 없애자는 목적은 같지만 천신과 천마이기 때문에 사이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았다. 어쨌든 난 스파트와 오래 있는 것은 싫어서 단도직입 적으로 물었다. "날 어떻게 도울 거지?" "성격이 참 급하시군요. 그렇게 서두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난 급해." "후후, 급하더라도 서두를 수가 없으니 그냥 참으십시오. 자, 안으로 들어 가죠." 스파트는 날 약올리는 말만 해놓고는 숲의 안쪽으로 더욱 들어갔다. 어차피 우리도 성물을 찾기 위해 숲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에 별 망설임 없이 스파트의 뒤를 따랐다. 스파트는 우리가 제대로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하고는 계속 앞으로 걸어가면서 입을 놀렸다. "여기에는 정령이란 신비로운 존재가 살고 있습니다. 그 정령들을 본 사람 은 그렇게 많지 않죠. 저 역시 정령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드 씨는 정령을 봤지요?" "……." 스파트 녀석…… 내 옛날 행적까지도 알고 있는 건가? 기분 나쁘군. "정말이에요? 이드 님은 정령을 본 적이 있나요?" 스파트의 말에 아트로포스가 보기 드물게 흥분하면서 나에게 물었다. 별로 대답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아트로포스가 그녀치고는 굉장히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다른 세계에서 본 적이 있었지. 그곳에서 본 정령하고 여기 있는 정령하고 비슷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와…… 이드 님이 본 정령들은 귀여웠나요?" "글쎄…… 귀여운 녀석들도 있고 귀엽지 않은 녀석들도 있고." 난 거의 성의 없이 대답을 한 것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아트로포스는 상당히 좋아했다. 그리고 얼굴 가득히 지금 당장이라도 정령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이곳의 정령들이 끔찍하게 생 겼다면 아트로포스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스파트, 정령들이 있는 곳을 알기는 아는 거야?" 난 여전히 스파트에게 반말을 해대며 물었다. 어차피 방금 만났을 때부터 반말을 썼으니 계속 반말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스파트 같은 녀석에게 존댓말을 쓴다는 것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다. "하하, 정령들은 숲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곳에 많이 있습니다. 즉, 숲의 중앙 부근에 있다는 소리죠." "그럼 숲의 중앙이 어디인지는 아냐?" "물론입니다. 이대로 쭉 가면 숲의 중앙이 나오니까요." 스파트는 아주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나에게는 숲 속에서 앞으로만 걸어가는 일도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는데 녀석에게는 그것이 별로 어려운 일 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크르르르르……. 그때 어디선가 짐승의 울음소리 비슷한 괴음이 들려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 닌 여러 개였기 때문에 소리의 출처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었고 대강 정면 쪽에 여러 마리가 몰려 있는 정도만 느꼈다. 아무래도 늑대 같은 맹수가 단체로 먹이 사냥을 나섰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우리를 사냥감으로 찍 어버린 것 같았다. 《너 바보냐? 저들은 보통의 맹수가 아니야! 보통의 맹수는 사냥감을 발견 하고 나서 사냥감이 도망치도록 저렇게 울음소리를 내지는 않는다고!》 아, 그렇군! 원래 맹수들은 사냥감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될 수 있는 한 가 까이 접근한 다음에 습격을 가하지! 그런데 저 놈들은 일부러 소리를 냈다… … 는 것은 저들의 정체가 뭐라는 거냐? 크르르르르……. 또다시 정면 쪽에서 맹수의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수풀에 가려서 어떻 게 생겨먹은 녀석이 겁을 주고 있는가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아 트로포스는 나에게 바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스파트는 잠시 맹수들 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더니 이내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울음소리는 이곳에서 살고 있는 맹수군요. 늑대 정도가 아닐까요?" "……." 그 정도는 아까 나도 파악했다고! 문제는 실버럭서스의 말처럼 보통의 늑대 라면 저렇게 사냥감이 알아채도록 소리를 내지는 않는단 말이야! "윈드 코트(Wind Court) 스피어(Sphere)" 정확한 적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우선 방어를 목적으로 바람의 장벽을 둘러쳤다. 그러나 내가 바람의 장벽을 둘러친 이후에도 계속 낮은 울 음소리만이 들릴 뿐 그 어떤 공격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누 군가 녹음기에다 맹수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뒤 그걸 계속 틀어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의 생각은 나와는 달랐다. "혹시…… 우리보고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요?" "……!" 아트로포스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꽤 설득력 있음을 알아차렸다. 저 맹수들의 목적이 우리의 접근을 막는 것이라면 울음소리로써 우리에게 겁을 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흐음…… 왜 맹수들이 우리의 접근을 막고 있는 거지? 우리는 단지 정령을 보러 가고 있을 뿐인데. 엥? 그렇다는 것은…… 설마 정령들이 저 맹수들을 조종해서 인간의 접근을 막고 있다는 뜻? 제 목 :[사이케델리아] 20장:정령의 숲(上)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856 게 시 일 :00/12/29 20:30:41 수 정 일 : 크 기 :11.3K 조회횟수 :13 "어쨌든 저지선을 뚫고 지나가자고." 중용자인 내가 한낱 맹수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난 일부러 자신 감 있는 어조로 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정면 쪽에서 맹수들의 울 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역시 그들은 우리의 접근을 막기 위해 아까부터 힘들 게 계속 으르렁거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난 맹수들의 울음소리에는 신경 쓰 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사삭- 사삭- 내가 몇 발자국을 앞으로 걸어가자 숨어서 으르렁거리기만 했던 맹수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었다. 녀석들은 완벽한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리고 허연 이빨을 잔뜩 드러내며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무섭 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너희들은 정령을 지키기 위해 우리를 위협하는 거냐?" 난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알면서도 늑대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내 예상대로 늑대들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크르릉 뿐이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한 발 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간다면 녀석들이 일제히 공격해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난 녀석들의 기를 먼저 꺾어버리기로 했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깨갱! 내가 역압 마법을 걸자마자 늑대들은 Dog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풀썩 하고 쓰러졌다. 한낱 동물들의 힘으로는 위에서 내리누르는 압력을 견딜 수 없었 던 것이다. 그렇게 늑대들을 꼼짝 못하게 한 나는 최대한 위협적으로 입을 놀렸다. "죽고 싶지 않으면 덤비지 않는 게 좋아. 덤볐다가는 뼛조각 하나 보존하지 못할 테니까." 《너 지금 늑대들한테 얘기하는 거냐? 늑대들이 네 녀석 말을 알아들을 것 같아?》 끼잉- 낑- 실버럭서스는 한심한 짓을 한다고 날 놀렸지만 늑대들은 내 말을 알아들은 듯, 아니 내 힘을 느낀 듯이 좀 전과는 달리 많이 겁먹은 모습을 하고 있었 다. 그래서 난 녀석들의 머리 위에 걸어놓았던 역압 마법을 해제시켰다. 그 러자, 깨갱- 완벽한 Dog 소리를 내며 늑대들은 일제히 꽁무니를 빼고 도망쳐 버렸다. 나 한테 대들었다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녀석들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어 쨌든 그렇게 늑대들의 방어선을 유유히 뚫은 나는 앞장서서 숲 안으로 더 깊 숙이 들어갔다. 저벅저벅- 터벅터벅- 사박사박- 각기 다른 세 명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우리들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 고 숲 속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가끔가다 맹수처럼 보이는 녀석들을 만 났지만 녀석들은 우리들에게는 관심이 없는지 제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다. 그렇게 걷기를 20여분, 마침내 우리들은 방금 전까지 느끼던 것과는 다른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아…… 이곳은 모든 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상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사람은 아트로포스였다. 나와 스파트 역 시 그녀의 느낌과 똑같았기 때문에 굳이 입 아프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 신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아 어디에 정령이 숨어 있는지 찾는데 주력했다. "저기다!" 정령을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안타깝게도 내가 아닌 스파트였다. 스파트는 굵은 나무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가 가리키고 있는 쪽에는 나무 주변을 빙 글빙글 돌고 있는 손바닥만한 소녀 하나가 있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름 다운 외모에 엘프처럼 긴 귀를 가진,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보았던 정령과 거의 비슷한 정령이었던 것이다. "와! 예뻐라∼" 나무 근처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정령을 보고는 아트로포스가 평소에는 거 의 짓지 않았던 표정을 하며 그 정령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 정령은 다가 오는 아트로포스를 보고 금방 나무 속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한 정령의 모습에 아트로포스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무서운가……?" "하하, 그렇지 않습니다. 본래 정령은 사람을 피하니까요." 실망하는 아트로포스를 달래려는 듯이 스파트는 활기찬 어조로 말했다. 그 러나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의기소침해 했다. 아트로포스도 보통의 소녀처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정령에게서 외면을 당했다는 사실 이 마음의 상처(?)가 된 것이다. 어쨌든 난 주변을 둘러보아 스파트가 발견 한 정령 이외의 정령들을 발견했다. 흘…… 여기 정령들은 이상하게 생겼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군. 땅딸보 할아 버지처럼 생긴 정령도 있고 불도마뱀처럼 생긴 정령도 있고…… 호박처럼 생 긴 정령에다 방금 전에 봤던 소녀 엘프 모습의 정령도 있군. 내가 알고 있는 정령들하고 너무 비슷해서 어이가 없어. "……!" 내가 정신없이 정령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던 정령 하나가 갑자기 내게로 다가왔다. 반투명한 초록색의 몸에 아름다 운 외모의 소녀 엘프 정령. 그 정령은 내가 처음으로 만나고 계약을 맺었던 바람의 정령 실프와 완전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키며 그 바람의 정령은 내 머리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 았다. 마치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 고 스파트가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역시 정령을 다루었던 이드 씨를 알아보는 것 같군요." "네? 이드 님이 정령을 다루었다구요?" 스파트의 말에 아트로포스가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에게는 내가 뭘 하다 왔는지 전혀 알려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정령을 키웠다는 사실 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물론 이곳의 정령하고 이드 씨가 다루었던 정령하고는 다르겠지만 말입니 다." 스파트 역시 환타지 세계의 정령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지는 모르는 듯 그렇 게 말했다. 물론 스파트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내 생 각에는 그저 내가 다른 세계에서 정령 다루다 왔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주워 들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랑살랑- 나한테 다가왔던 바람의 정령은 아까부터 계속 내 머리 주변을 맴돌고만 있 었다. 그래서 난 손을 살짝 들어 그 바람의 정령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인사 해보았다. "안녕?" "……?" 그러나 바람의 정령은 내가 인사하는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을 뿐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한 나만 상당히 멋쩍게 되어버렸다. 흐으…… 역시 괜한 짓이었어. 저 바람의 정령이 실프일 리도 없는데 인사 해서 뭐하냐…… 아…… 아트로포스하고 스파트가 날 이상한 녀석으로 보겠 구나……. 싱긋- "……!" 그때였다. 잠시 내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바람의 정령이 나를 향 해 미소를 지어 보였던 것이다. 그러한 정령의 웃는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아니, 지금은 한동안 보지 못해서 오히려 낯선 모습이었다. 그러 나 그 미소가 지금까지 잊고 있던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만큼은 확실했다. 슥- 난 바람의 정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바람의 정령은 내 손바닥 위 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키가 20cm도 채 되지 않는 바람의 정령을 보고 있자 니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난 그 기분을 억누르고 가능한 평상시의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살랑- 마치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바람의 정령은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와 부드 러운 바람으로 내 얼굴을 감싸주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바람과, 바 람의 정령의 아름다운 미소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 낯선 세계 에 온 뒤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앗! 저기!" 그때 아트로포스가 내 뒤쪽을 보더니 놀람에 찬 외침을 터트렸다. 그래서 난 뒤를 돌아 무엇 때문에 그녀가 놀란 것인지를 확인해 보았다. 내 뒤에 있 는 것은 온몸이 시뻘건 도마뱀이었다. 크기가 이구아나 정도 되는 상당한 덩 치였다. 그런 시뻘건 도마뱀이 내 바로 뒤까지 다가오더니 특유의 띠꺼운 눈 으로 날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사라만다……." 난 누구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뻘건 도마뱀 앞 에 털썩 하고 앉았다. 그러자 바람의 정령은 급히 아래로 내려와 이번엔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시뻘건 도마뱀 모습의 불의 정령은 띠꺼운 표 정으로 혀를 낼름낼름거리며 날 쳐다보았다. 둘 다 날 겁내지 않고 오히려 따르고 있었다. "꺅! 도대체 저건!" 또다시 아트로포스의 비명 가까운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바람의 정 령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몸이 반투명한 물색을 띠고 있는 물의 정령과, 호박 처럼 생긴 빛의 정령, 그리고 땅딸보 할아버지처럼 생긴 땅의 정령이 한꺼번 에 모습을 드러내어 내 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난 나에게로 향하는 정 령들을 앉은 채로 맞이했다. "아…… 정령들이……!" 아트로포스가 놀라는 것과 동시에, 바람의 정령이 내려앉은 어깨의 다른 쪽 에 물의 정령이 내려앉았고 땅의 정령은 불의 정령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와 눈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박 모양의 빛의 정령은 내 머 리 위에 척 하고 내려앉았다. 물론 이 정령들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손으 로 만질 수도 무게를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내 관심 밖 이었다. "모두…… 오랜만이다……." 알아들을 리 없는 인사를 하며 난 내 주위에 모인 정령들을 차례차례 부드 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물리적인 영향을 받을 리가 없는 정령들이었지만, 녀 석들은 마치 자신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내 손길에 닿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 내가 환타지 세계에서 처음 정령들을 만났을 때처럼 녀석들은 작은 모 습이었지만, 나와 아주 오랫동안 지내왔던 친구처럼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졌 다. 그런 느낌이 내 가슴에 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하하…… 쪽팔리게 왜 눈물이 나려고 그러지? 별거 아닌 장면에서 말이야. 이러면 안돼…… 이러면 안돼…… 여기서 울면 내 사악한 이미지가 사라져버 려……! "이드 씨." 그때 스파트가 진지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마침 이대로 가만히 정령들하고 있으면 눈물이 뺨을 질주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즉시 스파트에게로 고개를 돌려 되물었다. "왜?" "정령들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듭니까?" "……." 스파트가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내가 느끼는 느낌을 굳이 어렵게 말로 표현하기가 싫었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언어로 써는 지금의 내 미묘한 느낌을 전부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 파트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정령들이 반갑지 않습니까?" 반갑기는…… 반갑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셈이니까. "정령들이 이드 씨를 알아봐 주어서 기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이 녀석들이 나와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정령들과 떨어지기 싫지 않습니까?" 또 이 녀석들과 헤어지는 건…… 싫어. 하지만 녀석들은 정령의 숲에 사는 정령들. 이곳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 이 녀석들을 데려갈 수는 없잖아……. "후후." 계속 질문만 하던 스파트가 거기서 잠시 질문을 멈추었다. 난 그저 스파트 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말없이 기다리기만 했다. 내가 굳이 물어 보지 않아도 다 알아서 가르쳐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스파트는 입을 열었다. "이드 씨는 정령들을 잃었습니다. 왜 정령들을 잃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상대가 너무 강해서 정령들을 지킬 수 없었다고 말하시려는 겁니까?" "……." 난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으나 스파트가 말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령을 잃은 것은 모두 용린검기라는 무서운 기술을 썼던 마르 크스 때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정령들이 죽을 리 만무했다. 모두 마르크스 때문이었던 것이다. "후후, 이드 씨는 정령들을 죽였던 그 자를 죽였습니까?" 스파트의 질문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이미 내가 마르크스를 처치 했다는 사실은 스파트도 알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스파트만 계속 질문 하고 난 계속 대답하지 않는 것도 미안해서 이번 질문에는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드 씨는 어떻게 그 자를 죽일 수 있었습니까?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죽인 거잖습니까? 정령이라는 같은 편이 있었을 때는 죽이지 못 했다가 말입니다." "그건……." 스파트의 말처럼 내가 생각해도 그건 이상했다. 수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본다면 정령들과 함께 싸웠을 때 마르크스를 죽였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난 정령들이 다 죽고 혼자 달랑 남았을 때 마르크스를 저승으로 보내버렸다. 그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것이었다. "그건…… 정령들이 죽었기 때문에 반드시 녀석을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이… …." 잠시 생각을 한 나는 스파트에게 그런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자 곧장 스파 트의 질문이 날아왔다. "정령의 복수입니까?" "그렇…… 겠지." "후후." 내 대답에 스파트는 예상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은 날 비웃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난 스파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스 파트는 내 날카로운 눈초리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계 속했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정령의 복수를 위해서일까요? 정령들을 죽인 녀석을 살려두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요?"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후후." 내가 되묻자 스파트는 또다시 그 기분 나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금 그의 일거수 일투족, 말 하나 하나가 내 기분을 상당히 잡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를 바라보는 내 표정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파트는 여전히 실실 쪼개며 마침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시했다. "이드 씨가 그 자를 죽일 수 있었던 것…… 그건 정령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죠. 아무리 친하다해도 정령은 이드 씨 자신이 아닙 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자와 맞서 싸워 죽을 때 아무런 힘도 낼 수 없었던 것이죠. 정령들이 죽는 것이 이드 씨에게 어떤 직접적인 타격을 주지는 않으 니까요. 그러나 정령들이 죽고 그 자의 목표가 이드 씨 자신이 되자 이드 씨 는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자를 죽였습니다. 정령들의 복수를 한다는 그 럴 듯한 포장으로 자신의 본심을 잘 숨긴 후에 말이죠." "……!" "지금까지 이드 씨는 거의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적들을 물리쳐 왔습니다. 그건 왜 그럴까요? 바로 그 적들이 이드 씨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기 때문이 죠. 만약 그들이 이드 씨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았다면 이드 씨는 결 코 그 적들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니, 물리칠 생각도 하지 않았겠죠. 귀찮으니까." "……!" "이드 씨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보다는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기 만 했습니다. 그런 이드 씨의 경향이 정령들의 죽음을 그대로 방치했던 것이 며, 본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 드 씨 자신으로부터 잘못된 것이란 말입니다!" "……!" 스파트의 신랄한 비난은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대었다. 난 스파트의 말에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은 나 자신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고개를 떨구는 것밖에는 없었다. "이드 씨." 정신없이 날 공격했던 스파트가 이번엔 차분한 어조로 날 불렀다. 그래서 난 힘없이 고개를 들어 스파트를 쳐다보았다. 스파트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는 잠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후에 입을 열었다. "이드 씨는 정령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이드 씨 근처에 모인 그 정령들을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 난 다시 고개를 돌려 정령들을 쳐다보았다. 정령들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기운 없어 하기 때문에 걱정되는 듯했다. 그러 한 정령들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소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이기 때문에 난 그것을 다시 마음속 깊숙 이 가두어 버렸다. "이드 씨는 정령들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이드 씨를 잘 따르고 친 구처럼 지낸 정령들을 살려내고 싶지 않습니까?" "……!" 스파트가 한 말은 방금 내가 느꼈던 실현 불가능한 소망과 같은 뜻을 지니 고 있었다. 이기적이라 할 수 있지만 정령들을 살려내어 전처럼 지내고 싶다 는 내 소망과 같았던 것이다. 아니, 나 자신만을 위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내 얼굴을 보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정령들을 다시는 놓 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곳에 있던 정령이 이드 씨에게 다가왔다는 것은 이드 씨와 그 정령들 사 이에 인연의 끈이 닿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끈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끈 을 이용해 기억 속에 묻어버린 정령들을 살려내십시오. 이드 씨, 당신은 중 용자로서 끈을 지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 "그것은 지금 이드 씨가 정령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받 기만 하던 자신에게서 벗어나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자가 되십시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 스파트의 말은 계속해서 내 머리 속에 메아리쳤다. 정령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속의 외침과 끈을 지배하는 자가 되라는 스파트의 외침이 절 묘하게 아우러져 내 정신을 지배해 나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큰 야심가였 던 플라톤을 통해서 처음으로 알게 된 끈의 존재. 어느 누구도 어떻게 해서 끈을 다룰 수 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난 이미 그 끈의 존재를 머리 속 에서 형상화해서 끈을 지배해나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됐고 나로부터 틀어졌다…… 내가 붉은 구슬을 주 워들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된 것이고…… 내가 플라톤의 계획을 완벽히 막아내지 못하고 또 다른 세계에 가서도 인연의 끈을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난 꿈을 꾼 것으로 되어버렸다…… 이제 난…… 그 얽힌 끈을 돌려놓겠다…… 꿈이 아닌…… 현실로……! "크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끈의 존재를 형상화시켜 그것으로써 내 소망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난 계속해서 끈을 놓지 않았다. 스파트의 말처럼 모처 럼 끈을 다룰 수 있게 된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만하세요…… 주인님……." "……!" 그때, 이 세계로 넘어와서 처음으로 주인님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날 주인님이라고 부른 존재는 오직 하나뿐이었기 때 문이었다. 그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난 내 귀를 의 심해야만 했다. "이 이상은…… 주인님이 큰일난다구요……." 그러나 그런 내 의심을 불식시키려는 듯이 약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와 함 께 어떤 따뜻한 물체가 내 머리를 감싸안았다. 너무나 따뜻한 품이었기 때문 에, 난 무리하게 끈을 지배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쉬기로 했다. 흐으…… 피곤해 죽겠군. 십년수의 열매 때문에 정신적 피로는 금방 풀어지 는데도 이렇게 피곤하다니…… 역시 끈을 다룬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야. 근데…… 날 안고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아까 어디선 가 들어봤던 말이 들렸던 것 같은……. "……!" 날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고개를 든 나는 그 사람을 확인하고 기절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 사람의 얼굴은 내가 너무도 잘 아는 얼굴 이었다. 은은한 초록색의 피부에 엘프처럼 긴 귀를 가진 소녀의 얼굴. 그 얼 굴은 바로 바람의 정령인 실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었다. "실프……?" "네. 주인님." 실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은 분명 틀림없는 실프였다. 게다가 키가 거의 나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급히 실프의 품에서 빠져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예상대로 내 주변에는 본래의 모습을 한 채 날 쳐다보고 있는 정령들이 있었다. 은은한 물색의 피부를 지 니고 그 키가 실프와 비슷한 물의 정령 운디네, 큰 호박 모양의 빛의 정령 잭 오 랜턴, 꽤 키가 큰 땅딸보 할아버지 땅의 정령 노움, 마지막으로 거대 한 왕도마뱀 정도의 크기를 지닌 시뻘건 불도마뱀 불의 정령 사라만다. 그들 이 모두 내 주변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 이미 죽어버린 녀석들이 내 앞에 버젓이 살아있기 때문에 난 말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위해 실프가 입을 열어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주인님이 끈을 잘 다루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부활한 거예요." "끈……?" "네. 주인님은 끈을 통해 주인님의 소망을 이룬 거예요." 실프는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난 믿을 수가 없었다. 단순히 끈의 이미지만을 떠올려 끈을 다루는 생각만을 했을 뿐인데, 그것만 으로 죽었던 정령들이 살아났다는 것은 믿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 헉! 잠깐! 원래 정령들은 음성으로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는데…… 지금 실 프는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 어떻게 이런 일이……?! "실프! 너 원래 목소리를 낼 수 없지 않았어?" 의심이 떠오르자마자 난 곧바로 실프에게 질문을 날렸다. 혹시라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정령들이 모두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 만 실프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것은 주인님의 소망이에요. 주인님이 저희를 되살릴 때 저희에게 목소리 를 준 것이죠. 그리고 그밖에 더 유용한 능력도 주었구요." "……?" 내가…… 정령들에게 목소리를 줬다고? 그리고 다른 유용한 능력도 줬어? 도대체 뭘 줬다는 거야? 난 그저 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너희들이 좀더 강해졌으면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는데……! "주인님의 그런 소망이 끈을 통해 이루어진 거예요." 여전히 내 마음을 읽는 능력은 남아 있는지 실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실프의 말만 듣고서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덜컥 믿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난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는 다른 정령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불의 정령 사라만다였다. "사라만다, 너 진짜 불도마뱀이냐?" "……." 내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사라만다는 특유의 띠꺼운 표정으로 내 얼 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뭔가 한 마디라도 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 지 퉁명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럼 넌 내가 뱀으로 보이냐? 눈이 삐었군." 사라만다의 목소리는 전형적인 반항 청소년의 그것이었다. 항상 내 욕만 하 는 실버럭서스와 비슷한 톤의 목소리였다. 물론 실버럭서스 쪽이 나이가 약 간 더 많은 듯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쨌든 사라만다의 목소리와 그 띠꺼움을 확인한 나는 다음으로 물의 정령 운디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운디네." "아, 안녕하세요……." 실프와는 다르게 나와 그다지 많은 말을 주고받지 않았던 운디네였기 때문 에 내가 말을 걸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 부끄러움을 잘 타는 소녀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운디네의 목 소리를 확인한 나는 잠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운디네를 바라보다가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는 호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난 지금까지 너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은데 ……." 끄덕- 호박 머리의 잭 오 랜턴은 호박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내가 아무리 질문을 해도 목소리로써 대답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난 잭 오 랜턴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잭 오 랜턴에게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들 내가 알고 있던 정령들이 맞는 것 같구나……." 대충 확인을 끝낸 나는 다시 한번 정령들을 돌아보며 이 믿을 수 없는 상황 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대충 확인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 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어이, 젊은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노인을 무시할 생각이냐?" 성질 고약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물론 그 목소리의 주 인공이 땅의 정령 노움이라는 것쯤은 확인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만 여기서 내가 고개도 돌리지 않으면 노움이 독설을 퍼부을 것은 당연했기 때문에 난 무거운 머리를 돌려 노움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거기 있었냐? 작아서 잘 안 보였어." "시끄러! 나보다 더 작은 사라만다는 봤잖아!" "사라만다야 워낙 눈에 확 띄는 색깔이니까 그런 거고." "그럼 난 눈에 안 띈다는 소리냐?" 오랜만에 만난 노움과 열심히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 그때까지 말없이 우 리들을 쳐다보고 있던 스파트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감동적인 재회를 방해해서 미안하지만 놔뒀다간 계속 그럴 것 같아 서 중간에 제가 끼어 들어야겠군요."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미 나와 정령들과의 감동적인 재회를 방해한 스파트는 내 정령들을 하나씩 훑어보더니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정말 놀랍군요. 이렇듯 완벽하게 정령들을 되살려 놓다니. 뭐, 저로서는 이 정령들이 그 정령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 흘…… 역시 스파트는 내 생각대로 누군가에게서 내가 정령들을 키웠다는 사실만을 들은 모양이군. 네프나 할망구에게서 들었나? 그 할망구는 오래 살 고 있는 데다가 성물의 힘조차 느낄 수 있으니까 내가 다른 세계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 "이드 씨가 지금까지의 중용자와는 수준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천신이나 천마도 다루지 못한, 아니 그 존재조차도 모르는 끈을 이렇게 완벽하게 다루었다니 말입니다. 전 단지 이드 씨의 마음 을 이용해서 약간의 계기를 만들어줬을 뿐이죠." 스파트는 지나가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으나, 난 그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이용했다고?" "아, 들으셨습니까?" "……." 자기가 들리도록 얘기해놓고 들으셨습니까? 저것이 나한테 맞아 죽으려고 발광을 하나……? "뭐, 이드 씨의 마음을 이용한 건 사실이니까 부인할 수 없죠. 그럼 어떻게 이드 씨의 마음을 이용한 것인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스파트는 내가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분 명 내가 묻지 않았어도 자기가 스스로 말할 생각이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드 씨는 실패만을 거듭해왔습니다. 정령들을 지키지 못했고, 다른 세계 에 가서도 또 다른 세계를 구하는 것에 실패했죠. 그런 실패들은 이드 씨의 마음속에 쌓여 있습니다." "……." 흘…… 그래…… 난 맨날 실패만 하는 녀석이다……. "그리고 이드 씨의 성격은 극단을 치달리죠. 기분이 좋을 때는 괜찮지만, 기분이 나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을 합니다. 그것은 위험한 성격이 기도 한 동시에, 남에게 이용당하기 딱 좋은 성격입니다." "……." 그래…… 내 성격 드러워서 맨날 이용만 당한다……. "그래서 전 일부러 이드 씨에게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이드 씨 스스로 자신 의 실패를 만회하고 싶도록 했습니다. 물론 정령의 숲에 있던 정령들이 이드 씨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의외였지만, 오히려 그것 덕분에 이드 씨는 지금 이 렇게 정령들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울컥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르는 이드 씨이기에 끈을 다루는 것도 가능한 것이죠." "……." 크으…… 도대체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이 안 가…… 얼핏 들어보면 모두 내 성격이 더럽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 같은데…… 하지만 지금은 끈을 다루고 싶어도 이미지가 잘 안 떠올라서 내 더러운 성격도 소용없단 말이야. "스파트, 지금 난 끈을 다룰 수 없어. 끈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이래가지고 네가 무슨 도움을 나에게 준다는 거야? 정령들을 되살린 것으로 끝내라는 거냐?" 난 스파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지금 내가 되살린 정령들이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용의 법칙을 부수고 나아가 영계를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 끈이란 것을 지배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따라서 여기서 끈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후후, 아무리 중용자라고 해도 끈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 다. 어떤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끈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지요. 그래서 전 이드 씨를 정령의 숲으로 데려옴으로써 끈을 다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겁니다. 앞으로 이드 씨가 다시 끈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를 만나야겠 지요." "……." 계기라…… 하지만 그 어떤 계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영원히 끈을 다룰 수 없 게 될지도 모른다고. 좋은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순간이지만 이드 씨가 끈을 다루어서 정령 들을 되살렸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수확이었으니까요. 앞으로 만날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럼 몸조심하시길." 그 말을 끝으로 스파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자기 할 일이 끝 나자 휭 하니 가버리는 스파트의 등에 파이어 애로우를 선물할까도 생각했지 만, 그러다가 정말로 불화살에 맞아죽으면 내 양심에 먼지만큼의 가책이 쌓 이기 때문에 관두었다. "어이, 소환주. 아까부터 저기 서서 이쪽을 쳐다보는 저 소녀는 누구냐?" 내가 스파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법을 쓸까 말까 갈등하고 있을 때 사라만 다의 띠꺼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사라만다가 그 큰 머리통으로 가 리키고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소녀가 하나 서 있었다. "아, 저 소녀는 영인관 아트로포스. 날 도와주는 역할이야. 간단히 로스라 고 부르면 돼." 그렇게 정령들에게 아트로포스의 소개를 간단히 한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 나서 아트로포스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정령들을 하나 하나씩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바람의 정령 실프, 저쪽은 물의 정령 운디네, 저 호박은 빛의 정령 잭 오 랜턴, 밑에 있는 왕도마뱀은 불의 정령 사라만다, 그리고 그 옆에서 폼잡고 있는 땅딸보는 땅의 정령 노움." "안녕하세요. 로스입니다." 정령들을 처음 보는 아트로포스는 약간 당황하면서 인사를 했다. 어쨌든 그 렇게 서로의 소개를 끝내고 나서, 난 실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실프, 그런데 여기는 정령계라는 게 없지 않아? 그냥 그 모습으로 같이 다 녀야하는 거야?" "아니에요. 물론 이 세계에는 정령계가 없긴 하지만 저희들은 주인님이 주 신 능력으로 이 자연에 몸을 숨길 수가 있어요. 심지어는 주인님의 몸 속에 몸을 숨길 수도 있어요. 노움은 주인님의 피부 속에, 잭 오 랜턴은 주인님의 눈 속에, 운디네는 주인님의 혈액 속에, 사라만다는 주인님의 체온 속에, 그 리고 전 주인님의 폐 속에 말이에요." 흘…… 땅의 정령은 땅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 내 피부에 스며들고 빛의 정 령은 빛이 들어오는 내 눈 속에 스며들고 물의 정령은 물이나 마찬가지인 혈 액 속에 스며들고 불의 정령은 항상 열을 내는 체온 속에 스며들고 바람의 정령은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폐 속에 스며든다는 거냐? 그런 능력을 내가 줬다고? 난 그런 구체적인 것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하자고. 어차피 성물이란 걸 찾아야 하잖아." 그 말을 한 사람, 아니 도마뱀은 사라만다였다. 내가 말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녀석이 알고 있는지 의아해서 녀석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정령들은 본래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금방 떠올라서 대신 아트로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로스, 확실히 이 근처에 성물이 있는 건 맞지?" "네? 아, 그래요. 좀더 숲의 안쪽 같아요." 흘…… 숲의 더 안쪽에 있다고? 도대체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는 거야? 귀찮 아 죽겠구만. 차라리 숲의 나무들을 싹쓸이한 다음에 성물을 찾는 게 빠르겠 다. 윽…… 또 걸을 생각을 하니까 아까 정신력을 너무 소모한 것 때문에 머 리가 어질어질거려…… 아무래도 아트로포스에게 치료를 받아야겠어……. "로스, 미안하지만 내 정신 피로 좀 풀어 줘. 정신력을 너무 많이 쓴 것 같 아." "네? 아, 네!" 아트로포스는 이번에도 역시 되물음을 던졌다가 금방 내 부탁을 알아듣고는 영인관의 힘으로 내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아트로포스 가 이렇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리가 없었겠지만, 갑자기 없던 정령이 생겨 났으니 그녀가 놀라는 건 당연했다. "이제 좀 어때요?" 치유를 끝낸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물었고, 난 가볍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서 고개를 돌려 정령들을 쳐 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제부터 걸을 건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너희들도 같이 걸어갈 거 야?" "아니요. 저희는 주인님의 몸 속에 들어가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언제라도 주인님이 위험해지면 도와드리겠어요. 주인님의 몸 속에 있는 동안 저희들도 바깥의 사정을 볼 수 있으니까요." 헐∼ 예전에는 정령계와 물질계 사이를 오가야했기 때문에 내 주변에서 무 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는데 내 몸 속에 스며들게 되 면 그런 제약도 사라지게 된다라 이거로군. 그런 능력도 내가 준 건가? 도대 체 난 끈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정령들을 되살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으면서 어떤 생각을 한 거지? 흘…… 내가 나 자신을 모르겠어. "그럼 저희는 이만." 그 말을 끝으로 실프는 한 줄기의 바람으로 화하여 직접적으로 내 가슴을 통과하여 폐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른 정령들도 일제히 각자 몸을 변형 시켜서 내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정령들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들 때 나에게 는 그 어떤 통증도 없었다. 그냥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흘…… 이러면 정령들이 수시로 내 몸 속을 들락날락 거려도 모르겠군. 그 것 때문에 왠지 내 사생활이 정령들에 의해 침해를 받을 것 같은 불길한 느 낌이 들긴 하지만…… 뭐, 그래도 역시 정령들이 있는 편이 왠지 마음이 놓 여. 근데 갑작스런 재회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난 이렇게 차분할 수가 있는 거지? 그렇게 냉철했던 아트로포스도 정령들을 보고 당황하고 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란 녀석은 이상한 동물이라니까. <제 21 장> 정령의 숲 이프노(Ipno) -下- 저벅저벅- 사박사박- 정령들이 내 몸 속으로 사라진 후, 또다시 둘이 된 나와 아트로포스는 열심 히 숲의 안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만, 대략 5분 정도가 흐르자 먼저 아트로포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드 님에 대해서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로스가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전혀 모르니 까." "…… 그렇군요.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아트로포스의 표정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그녀가 어떤 의 미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는 것은 싫었기 때문에 난 가능한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에 대해서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지금부터 천천히 알아 가면 되니까." "…… 그렇네요."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엷은 미소를 떠올렸다. 어떻게 들으면 상당히 묘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는데, 다행히 아트로포스가 별 의미 없이 받아들여서 조 금 안심이 되었다. 《눈치 빠른 녀석인 줄 알았더니 눈치 더럽게 없군.》 뭐야, 갑자기? 내가 눈치가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모른다면 됐고.》 어쭈구리, 욕을 해놓고 오리발을 내민다 이거지? 바른 대로 말 안 해? 《난 발이 없다. 그리고 난 말을 하지 않고 진동을 할뿐이다.》 "……." 실버럭서스가 너무나 차분한 어조로 말을 했기 때문에 난 뭐라고 대꾸할 말 도 잊어버렸다. 상대가 흥분해야 응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반박하는 법인데, 상대가 차분한 태도로 말을 해버려서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근처예요!" 그때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작은 외침을 터트렸다. 그래서 난 실버럭서스와의 잡담을 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지금까지와 마찬 가지로 무성한 나무들이 있었고, 우리의 앞에는 지름 5미터 정도의 원형 공 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원형 공터의 중심에는 큰 바위 하나가 떡 하니 자리 를 잡고 있었고 그 바위 위에는 하나의 꽃이 꽃봉오리를 닫은 채 심어져 있 었다. 또한 그 바위 주변에서 원형 공터의 끝까지 바위 위의 꽃과 약간 틀리 지만 거의 비슷한 꽃들이 바위를 빙 둘러싸며 꽃봉오리를 닫은 채 땅 위에 박혀 있었다. 한마디로 완전한 꽃판이었다. "저 바위 위에 있는 꽃이 바로 다섯 번째 성물이에요!" 아트로포스는 확신에 찬 어조로 바위 위의 꽃을 가리켰다. 나 역시 바위 위 의 꽃이 결코 평범한 꽃은 아님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정말이지?' 하는 식의 질문을 하지 않고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저 성물의 힘은 어떻게 흡수해야 하는 거야?" "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트로포스는 열심히 성물 흡수 방법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으나 결국은 모르 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어서 그 저 바위 위에 있는 꽃을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지?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미안해요……." 성물의 흡수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아트로포스는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 듯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성물 흡수 방법은 모두 영계 쪽에서 알려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욕을 먹어야 하는 쪽은 영계일 뿐이었다. 불쑥- "저 꽃들이 뭔지 제가 알아요." 그때 갑자기 내 가슴에서 사람 머리통 하나가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바로 실프의 머리였다. 실프는 머리만을 내밀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하 고 있는 것이었다. "실프! 놀랬잖아! 말을 하려면 밖으로 나와서 해!" 엘프 소녀의 머리가 내 가슴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은 결코 보기 좋 은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난 실프를 윽박질렀다. 그러나 실프는 내 윽박지 름에도 결코 굴하지 않았다. "싫어요. 주인님의 몸 속은 따뜻해서 좋은 걸요." "따뜻하더라도 얼굴만 내미는 엽기적인 행동은 하지 말란 말이야! 이러면 내가 괴물처럼 보이잖아!" 내가 실프에게 훈계를 주고 있을 때 이번엔 거대한 불도마뱀의 머리가 내 머리를 관통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실프와 마찬가지로 머리통만을 내민 사 라만다는 내 머리 위에 자기 머리를 올려놓으며 극히 차분한 어조로 입을 놀 렸다. "우리를 되살려 놨다는 것만으로도 넌 이미 괴물이라고. 괴물을 더욱 괴물 처럼 보이게 해주겠다는데 뭐가 불만이냐?" "사라만다…… 소환주를 괴물이라고 놀려?" "괴물은 어디까지나 괴물." 그 말을 끝으로 사라만다는 귀신같이 내 머리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생각 같아서는 마나회로를 가동시켜서 내 몸 속에 들어온 정령들을 모두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으나, 얌전히 내 몸 속에 살고 있는 잭 오 랜턴이나 운디네 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대신 노움에게 경고를 내렸다. "노움! 너도 머리 내밀었다가는 모가지를 잘라버리겠어!" "쳇!" 마침 노움도 고개를 내밀려고 했던 참이었는지 아깝다는 목소리를 내며 내 가 알아듣지 못하게 궁시렁 궁시렁 대었다. 어쨌든 그것으로 다른 정령들을 잠재운 나는 아직도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실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꽃들이 뭔지 안다고?" "네. 저건 '성장(成長)의 꽃'들이에요." "성장의 꽃? 그럼 저 꽃을 먹으면 키가 커지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일종의 진화예요. 성장의 꽃은 성숙기가 지나면 하나의 열 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를 먹게 되면 각각의 생명체에게 맞게 진화가 되 요. 그리고 저 성장의 꽃들이 모두 피게 되면 바위 위에 있는 '초월(超越)의 꽃'이 열매를 맺게 되는데, 초월의 꽃의 열매는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어쩔 때에는 아주 도움되는 능력을 주기도 하고, 어쩔 때에는 먹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구요. 그 능력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어요." 흘…… 초월의 꽃? 이름 하나는 근사한데 말이야…… 문제는 그 꽃이 우리가 찾는 성물이라는 거야…… 열매가 맺힌다니까 그 열매를 먹는 것이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방법일 게 뻔한데…… 그 열매를 먹고 말 그대로 삶을 초월해 버리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설마 성물이 중용자를 죽이기나 하겠어요? 그 러니 초월의 꽃에 열매가 맺히면 주저하지 말고 드세요." 실프는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인지 걱정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 열매를 먹 어야 하는 당사자인 나는 엄청나게 걱정이 되었다. 아직 아트로포스가 열매 를 먹는 것이 성물 흡수 방법이라고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열매를 먹고 죽어버리면 나만 손해인 것이다. "그나저나 성장의 꽃들에 열매가 맺히는 건 언제야?" "음…… 아마 오늘일 걸요? 오늘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저희도 모습을 나타 냈던 것이고…… 그래서 주인님을 만나게 됐고…… 아!" 말을 이어나가던 실프가 갑자기 놀람에 찬 탄성을 터트렸다. 뭔가 전혀 생각 지도 못했던 사실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을 잊어먹고 있었던 듯했다. "큰일이에요! 이 숲에 사는 정령들은 성장의 꽃의 열매를 먹고 진화를 해요! 그리고 초월의 꽃의 열매를 지키기 위해 침입자들을 공격하게 되어 있어요! 성장의 꽃에 열매가 맺히면 정령들이 그걸 먹고 주인님을 공격할 거라구요!" "……!" 말도 안돼! 정령들이 성장의 꽃의 열매를 먹고 진화해서 날 공격한다고? 도 대체 정령들이 뭣 때문에 날 공격한다는 거야? 걔네들이 왜 초월의 꽃의 열 매를 지키려는 건데? "그건…… 초월의 꽃의 열매를 먹은 자가 정령의 숲을 파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 열매의 능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열매를 먹은 자가 이 숲을 파괴할 가능성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누구도 초월의 꽃 열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거예요." "……." 하…… 귀찮게 됐군. 내가 진화한 정령들하고 싸워야 한다고? 어처구니가 없어. 내가 초월의 꽃 열매를 먹고 숲을 파괴할 가능성보다 정령들하고 싸우 는 도중에 숲을 파괴할 가능성이 훨씬 높단 말이야! "그런 건…… 정령들이 알 리가 없죠…… 그들은 단순하니까요." 실프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내 몸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서 난 가 슴에 머리가 달린 괴물의 모습에서 다시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 으나, 정령과 싸워야 한다는 실프의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단순 히 자신들의 숲을 지키려는 정령들을 물리치고 초월의 꽃 열매를 손에 넣어 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 그때였다. 무성한 나무 사이사이에서 많은 수의 정령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장의 꽃 열매를 먹기 위해 정령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중에는 손바닥만한 크기의 정령들도 있었고 내 키 만한 정령들도 있었다. 덩치가 큰 정령들은 분명 성장의 꽃 열매를 먹고 진화한 녀석들이 틀림없었 다. "근데 실프, 정령들은 어째서 성장의 꽃 열매를 먹고 진화하려는 거야? 진 화하면 뭔가 이득 되는 게 있어?" 난 내 폐 속에서 유유히 놀고 있을 실프에게 질문을 던졌고, 실프는 다행히 고개만 빠꼼히 내미는 엽기 행각을 벌이지 않고 대답만 해주었다. "진화한 정령은 그만큼 오래 살고 강해져요. 그리고 끝까지 진화한 정령은 생명의 씨앗이 되어 나중에 생명체로 살게 되요. 하지만 정령들에게는 복잡 한 사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거의 본능에 따라 성장의 꽃 열매를 먹으려한다 고 할 수 있어요." 흠……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장의 꽃 열매는 정령들에게 중요 하다라는 것이로군. 다행히 난 성장의 꽃 열매에 관심이 없고 단지 초월의 꽃 열매를 얻으려는 것뿐이지만…… 정령들이 날 공격하면 싸워야 할텐데… … 꼭 정령들하고 싸워야하나……? "이제 곧 성장의 꽃이 필 거예요." 확실히 내 몸 속에 있어도 밖의 상황을 알 수가 있는지 실프는 고개도 내밀 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실프의 말처럼 원형 공터에 심어져 있던 꽃들 에게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꽃봉오리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을…… 까요?" 비록 무섭게 생긴 녀석들은 없었지만 주위에 무수히 몰려드는 정령들을 보 고 아트로포스가 내 곁에 바싹 붙으며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 다. 그녀의 걱정대로 이 많은 수의 정령들이 성장의 꽃 열매를 먹고 일제히 공격을 가한다면 장난이 아니었다. 우선 이 자리를 피한 뒤에 기회를 봐서 초월의 꽃 열매를 훔쳐 가는 것이 더 안전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런 생각 과는 달리 난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 아트로포스가 걱정하는 말을 한 뒤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마침내 원형 공터를 가득 메우고 있던 성장의 꽃들이 그 봉오리를 활짝 피웠다. 그런데 봉오리가 완전히 열렸을 때 꽃의 암술과 수술이 있어야 할 부분에 사탕 하나 크기의 열매가 떡 하니 놓여져 있었다. 그 열매가 바로 성장의 꽃 열매인 듯 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몰려들었던 정령들이 일제히 그 열 매를 집어들고 입안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무지하게 위험하다는 느낌이 드는군.》 실버럭서스도 지금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았 다. 아트로포스는 정령들이 열매를 먹기 시작할 때부터 내 곁에 바싹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령 들은 맛있게 열매를 먹고 진화하고 있었다. 흘…… 진화라고 해봤자 키가 더 커지거나 덩치가 더 커질 뿐 모습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군. 난 정령들이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유감인걸? 정령들이 흉칙한 괴물로 변해서 날 공격해야 나도 싸울 맛이 나지…… 저런 호감 가는 모습으로 날 공격하면 싸울 맛이 안 난단 말 이야……. 꾸아아악-! 열매를 먹고 진화하는 정령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숲의 여러 곳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누구라도 의심하지 않을 완벽한 괴물의 울음소리였다. 그런 괴물의 울음소리는 마치 우리가 있 는 원형 공터를 압박하는 듯이 사방에서 들려오면서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소리는……!" 괴성을 들은 실프가 좀더 확실히 하고 싶은 건지 다시 내 가슴으로부터 머 리를 빠꼼히 내밀었다. 그리고 나서 더욱 가까이 들려오고 있는 괴성을 확인 하고는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이건 반정령(反精靈)들의 울음소리예요!" 얼라리? 반정령? 정령에 반하는 존재라는 소리야? 그런 게 있었어? "네! 성장의 꽃 열매를 먹고 진화하려는 정령들과는 달리 그들은 초월의 꽃 열매를 먹어서 이 숲을 단번에 붕괴시키고자 해요. 평상시에도 기회만 있으 면 숲을 말살하려고 해서 정령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키는 존재들이지요." 흘…… 반정령이라…… 이 세계에는 그런 신기한 존재들도 있군. 재미있는 걸? 반정령들이 나타났으니 이제 진화한 정령들이 우리는 내버려두고 반정령 과 열심히 싸우겠지? 후후, 한마디로 반정령들은 내 응원군이라 할 수 있으 려나? "절대 응원군이 아니에요! 정령과 반정령이 서로 맞붙어 싸우게 되면 정령 장(精靈場)이 발생해요! 그 정령장은 이 숲의 생명체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지만 외부 생명체에게는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구요! 그래서 이 숲에 들어 왔던 사람들이 정령장에 의해 죽거나 다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해서 이 숲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생긴 거예요!" "……!" 반정령이 있다는 소리도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다 정령장이란 소리 까지 겹치자 정신이 어질어질해왔다. 그래도 정령의 숲에 살고 있는 괴물의 정체가 정령과 반정령의 격돌에 의한 정령장이라는 것이 꽤 흥미 있었다. 그 래서 정령장이 과연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 는 충동이 일어났다. "앗!" 그때 아트로포스가 조금 겁에 질린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반정령들 이 우리의 눈앞에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반정령들의 모습 은 대체적으로 봐줄 만한 정령과는 달리, 지극히 추악하고 역겨웠다. 어떤 반정령은 피부가 완전히 쭈글쭈글해져 있었고 어떤 반정령은 배만 불룩 튀어 나와 있었으며 어떤 반정령은 눈알이 반쯤 빠져 나오기도 했다. 쳐다보면 눈 만 버릴 모습이었던 것이다. 쿠아아악-! 정령들이 원형 공터에 핀 성장의 꽃 열매를 먹는 모습을 본 반정령들은 열 받았는지 발광을 하면서 정령들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정령들을 발견 한 정령들도 떼를 지어 녀석들을 공격했다. 정령과 반정령의 격돌은 각자의 자연 능력을 겨루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저기에 바람과 불과 물과 흙먼지 등이 마구 발생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결코 주위에 있는 나무나 풀을 손상 시키지 않았다. 단지 이방인은 나와 아트로포스에게만 타격을 주고 있을 뿐 이었다. 쾅! 콰쾅! 실프를 비롯한 다섯 정령들이 내 주변에 쳐놓은 다섯 종류의 방어막 덕분에 정령과 반정령의 격돌에 의한 정령장이 우리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지는 않았 다. 그래서 난 무시무시하게 몰아치는 정령장 속에서도 유유히 정령과 반정 령의 싸움을 구경할 수 있었다. 흐음…… 진짜 서로 원수라도 만난 듯이 싸우고 있군. 정말 살벌한걸? 서로 소멸하면서까지 싸우고 있다니…… 혹시 정령과 반정령이 서로 싸워서 사라 지기 때문에 정령과 반정령의 개체수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 그때였다. 무식하게 몰아치고 있는 정령장 속에서 마침내 초월의 꽃이 그 봉오리를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령들과 반정령들을 여전 히 무시무시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미 초월의 꽃 열매는 그들의 관심 밖에 있는 듯했다. 어쨌든 그러는 사이에도 초월의 꽃은 완전히 봉오리를 펼 쳐 하나의 큰 열매를 우리들 눈에 드러내었다. 물론 열매의 크기는 갓 태어 난 아기의 주먹만한 정도였다. "이드 님! 바로 저 열매가 바로 성물이에요! 저 열매를 먹으면 성물의 힘이 자연스럽게 흡수돼요!" 초월의 꽃에서 열매가 나타나자마자 아트로포스가 그렇게 소리쳤다. 이미 예상했던 듯이 초월의 꽃 열매가 바로 다섯 번째 성물이었던 것이다. 흘흘, 정령들과 반정령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동안 난 초월의 꽃 열매만 슬쩍하면 되겠군. 이거 너무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은데? 뭐, 쉽게 풀리든 어렵게 풀리든 난 어떻게 해서라도 성물을 손에 넣어야 하니까 상관없어. "간다, 로스!" 난 아트로포스의 가는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안으며 즉시 마나회로를 가동 시켰다. 워프를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보통 때라면 아트로포스를 안지 않고도 그냥 워프를 하겠지만, 정령장이 판을 치는 이곳에서 실수라도 했다 간 아트로포스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확실한 워프를 위해서 그녀를 안고 마법 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팟-! 워프하는 거리가 짧았기 때문에 앗 하는 사이에 나와 아트로포스는 초월의 꽃 바로 위로 이동했다. 그런데 워프를 한 결과 내 정령들이 쳐놓은 방어막 에서 벗어나 정령장 속에 몸을 던진 꼴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워프를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젠장!" 난 내 무식함을 탓하며 즉시 마법으로 내 몸 주변에 바람의 장벽을 쳤다. 다행히 그 대처 순간이 그렇게 늦지 않았기 때문에 정령장에 의해 몸이 망가 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아트로포스가 정령장의 타격을 받아서 입가에 피를 줄줄 흘렸을 뿐이었다. 《로스가 다친 게 별 거 아닌 일이냐?!》 내 머리 속의 생각을 알아챈 실버럭서스가 날 비난하면서 거센 진동을 발했 다. 그러나 난 그의 비난을 싸그리 무시하고 바위 위에 가볍게 안착하여 초 월의 꽃 열매를 집어들었다. 아트로포스가 다친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중요 한 건 성물의 힘을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나중에 치료하기로 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성물을 우선시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으나 내 몸 은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나 초월의 꽃 열매를 입 속에 털어 넣으려고 하고 있 었다. "……!" 내가 초월의 꽃 열매를 먹으려고 입을 벌렸을 때, 그렇게 열심히 싸우고 있 던 정령들과 반정령들이 일제히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에 어린 빛은 분명한 적의(敵意)였다. 적의 어린 눈빛으로 날 노려보고 있는 모든 정 령들과 반정령들을 보고 있자니 소름이 오싹하고 돋아버렸다. 《네 녀석이 초월의 꽃 열매를 먹으려니까 그러는 것 같은데? 정령들이야 원래부터 열매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고, 반정령들은 그 열매를 먹어야 숲의 파괴를 용이하게 할 수 있으니까 누군가 열매를 훔쳐먹는 걸 달갑게 생각하 지는 않겠지. 결과적으로 정령과 반정령 양쪽 다 적으로 만들어버린 거구만. 역시 중용자답다니까.》 실버럭서스는 잘됐다는 듯이 기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실버럭서스에게 뭔 가 복수를 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나를 향해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고 있는 정 령과 반정령들에게서 빠져나가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 는 동안 비겁하게도 녀석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해왔다. 쿠콰콰콰-! "젠장……!" 무시무시하게 몰아쳐 오는 불, 물, 바람, 빛, 흙 등의 공격들이 나에게 욕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어쨌든 워프를 통해 이 자리를 빠져나가기로 결정 하고 즉시 마나회로를 개방했다. 그러나 막 마법을 쓰려는 순간, 정령과 반 정령의 힘이 나에게로 집중하면서 발생한 정령장이 마나회로의 마나장과 간 섭 현상을 일으켰다. 즉, 내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마나장이 변화를 일으 켰기 때문에 이대로 워프를 했다간 나는 물론이고 아트로포스조차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콰콰쾅! 워프 잘못해서 몸이 분해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령장에 맞는 쪽이 살아날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에 난 워프를 관두고 얌전히 정령과 반정령들의 공격 을 받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순간적으로 떠오른 내 마음을 읽은 다섯 정령들 이 일제히 방어막을 쳐주어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흐으……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정령과 반정령의 힘이 맞붙어야만 정령장 이 발생하는 줄 알았더니 녀석들의 힘이 한 곳에 집중해도 발생해버리는구만. 아니, 그것보다는 정령장이 마나장에 영향을 미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이래 가지고는 마법도 완벽히 사용하지 못할 것 같은데? 《또 온다!》 실버럭서스의 외침이 들려오자마자 또다시 정령과 반정령들의 공격이 나에 게로 날아왔다. 그래서 난 즉시 마나회로를 풀가동시켜서 바람의 장벽을 만 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정령장은 내 마나장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많은 양 의 정령장이 내 마나장을 상쇄시켰고, 뒤이어 다가온 나머지 정령장이 내 몸 을 휩쓸려는 듯이 덮쳤던 것이다. 콰쾅! 내 다섯 정령들이 쳐놓은 방어막과 정령장이 맞부딪치자 꽤 커다란 폭발음 이 일어났다. 다행히 내 정령들의 능력만으로도 정령장의 힘을 막아낼 수 있 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내 정령들이 힘을 모두 소모하여 지치게 되고, 그 결과 정령장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난 이승을 영원히 떠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제길…… 정령장의 위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내 마나장을 정확 히 상쇄시킬 수 있는 거지? 아니, 오히려 내 마나장이 더 강하지 않나? 그런 데 어떻게 내 마나장이 상쇄되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한눈 팔지 말고 공격할 생각이나 해!》 실버럭서스의 외침이 날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현실에서는 정령과 반정 령이 사이좋게 힘을 모아 날 공격하려고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녀석들 보다 먼저 공격을 가해 빼앗긴 기선을 되찾기로 했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필라(Pillar)! 허리케인(Hurricane)!" 화염계 마법 중에서 막강하다고 할 수 있는 파이어 스톰은 내 정령들이 쳐 놓은 방어막을 넓게 포함하는 범위에서 발생하여 우리를 완전히 둘러쌌다. 그리고 필라에 이은 허리케인이 무시무시한 불똥을 사방으로 쏘아대면서 정 령과 반정령들을 공격했다. 후후, 이 정도면 정령과 반정령들이 어느 정도 죽어나가겠지? 뭐 운이 좋으 면 녀석들이 전멸할지도 모르고. 어쨌거나 이번 공격의 핵심은 바로 불에 이 은 물 공격이지. 불에 달궈지고 물에 식게 되면 견딜 수 없을 테니까 말이야! ====================================================================== 눈치챈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성장의 꽃이나 초월의 꽃의 모티브는 일본 애니메이션 '베터맨(betterman)'에 나오는 '아니무스의 꽃'입니다. 라미아가 그 열매를 먹고 베터맨으로 진화하죠.(아실 분이 계시려나...-.-;) 물리와 생물학적 지식이 많이 쓰인 애니메이션이라 좋아합니다...^^; 게다가 공포물이라 일본에서 심야에 방송되었던 거죠... 아쉽게도 한글자막판으로 20화밖에 없는...-.-; 하여튼 어쩌다보니 베터맨이 생각나서 표절해봤습니다...-.-; (아무 말 안 하는 것보단 출처(?)를 밝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장:정령의 숲(下)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930 게 시 일 :01/01/04 20:40:26 수 정 일 : 크 기 :7.3K 조회횟수 :47 "……!" 그렇게 내 공격 방법에 나 자신이 만족하고 있을 때, 갑자기 파이어 스톰 허리케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정령과 반정령들이 만든 정령장에 상쇄되 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정령장에 의해 허리케인이 사라져 버렸고, 나중에 밀려들어오는 정령장이 내 정령들의 방어막을 때리면서 비교 적 큰 폭발음을 내었다. 콰쾅-! 흐으…… 진짜 이유를 모르겠네? 어째서 내 마법이 사라지는 거지? 어째서 내 마나장이 상쇄되어 버리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냐고! 누가 나에게 그 이 유 좀 가르쳐 줘!!! "아이스 스톰(Ice Storm) 필라(Pillar)! 블리자드(Blizzard)!" 효과가 없는 것은 알지만 마법이라도 쓰지 않으면 정령장의 모든 힘을 내 다섯 정령들이 막아야만 하기 때문에 난 내 마법으로 그 정령장을 상쇄시켜 야 했다. 공격은커녕 수비만 해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콰쾅! 콰콰쾅! 정령들과 반정령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고, 나 역시 계 속해서 마법으로 녀석들의 정령장을 어느 정도 소멸시켰다. 그리고 내 다섯 정령들 역시 계속해서 내 마법을 뚫고 밀려드는 정령장을 막아내었다. 서로 이렇다할 승기도 잡고 있지 못한 지루한 공방전의 연속이었다. 《너 중용자 맞냐? 중용자가 한낱 정령들에게 쩔쩔매?》 시끄러! 정령들뿐이라면 내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고! 저 싸가지 없는 반정령들까지 합세해서 날 공격하니까 그래! 왜 저 녀석들은 정령하고 잘 싸우다가 갑자기 날 공격하는 거냐고! 《핑계도 좀 그럴 듯하게 대라.》 핑계가 아니야! 난 어디까지나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 거라고! 근데 녀석들 은 계속 힘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지치지도 않아? 녀석들의 힘은 무한하기라 도 한 거야? "그건 아니에요. 단지…… 그들은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요." 내가 실버럭서스와 속으로 바락바락 다투고 있을 때 실프의 말이 조용히 들 려왔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정령과 반정령들의 공격 때문에 실프는 거기 까지만 얘기하고 정령장에 맞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물론 실프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도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콰콰쾅-! 효율적으로 힘을 사용한다라…… 분명 그렇겠지. 그렇다면 녀석들은 어떤 효율적인 방식으로 힘을 쓰고 있는 거지? 녀석들의 정령장은 확실히 내 마나 장보다 그 위력이 약한데…… 어떻게 작은 힘으로 큰 힘을 제압할 수 있지? 어떻게……? 콰쾅-! "……!" 그때 어떤 한 줄기의 생각이 내 뇌리를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거 의 한순간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난 그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정령들에게 바보 같은 지시를 내렸다. "잠깐 동안만 너희들끼리 놈들의 공격을 막아 줘!" "……!" "무, 무슨 소리야?!" 내 명령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정령들을 무시한 채, 난 그대로 떠오른 아이 디어에 집중했다. 그 아이디어를 놓치게 되면 져서 죽게 되는 쪽은 바로 나 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정령들이 엄청난 부담감 을 안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사악한 명령을 내렸다. 콰쾅! 콰콰콰쾅! 내가 마법으로 정령장을 약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다섯 정령들의 방어막과 정령장이 부딪치자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하지만 난 그 모든 위험 상황에서도 계속 머리만 굴렸다. 인연의 끈…… 끈…… 난 그 끈을 통해 정령들을 되살렸다…… 그것을 다른 것에도 적용시키면…… 다른 존재들도 끈을 다룰 수 있다라는 것…… 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공명…… 그 끈이 가지고 있는 고유 진동수에 맞추어 진동을 일으키게 되면 끈이 굉장한 진폭으로 진동하게 되는 것……. 콰콰쾅! 콰콰콰쾅! "크윽! 언제까지 맡길 거야?!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이 빌어먹을 소환주! 우릴 또 죽이려고 작정했냐?!" "아악!" 공명…… 공명…… 고유 진동수만 알 수 있으면 적은 힘으로도 상당한 진동 을 일으킬 수 있는 것…… 그렇다면 녀석들도 혹시 공명을 이용하고 있는 것 인가? 하지만 그 말은 녀석들이 끈을 다루고 있다는 소리인데? 중용자 이외 의 존재가 끈을 다룰 수 있는 걸까? 콰콰쾅! 콰쾅! 그래…… 꼭 중용자만 끈을 다룰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어. 다른 존재들 역 시 능력이 되면 끈을 다룰 수 있겠지. 좋아, 그렇다면 녀석들이 끈의 공명을 이용해서 위력 약한 정령장으로 내 마나장을 상쇄시킨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군. 녀석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나 역시 끈의 공명을 이용해야겠지? 하지만 끈이 잘 느껴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끈의 공명을 유도하지……? 콰콰콰쾅! "……!" 정신없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엄청난 폭발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어 느새 내 다섯 정령들의 방어막이 사라지고 있었다. 역시 정령들만으로는 정 령장의 위력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흐윽……!" 내가 정령장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것은 아트로포스의 신음 소리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정령장에 의해 다친 몸을 치료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아직 치료하지 않는 원인은 바로 나였다. 하하…… 지금 난 뭐하고 있지? 바로 옆에 다친 사람이 있는데도 전혀 신경 을 안 쓰다니…… 그것도 아트로포스가 다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난 지 금 뭐하고 있냔 말이야…… 도대체…… 도대체……! 우웅- 머리 속에서 뭔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울림은 나에게 끈의 이미지 를 형상화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한번 내 머리 속에서 형상화 된 끈의 이미지는 잘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정령들을 살릴 때 접해봤기 때 문이었다. "……." 내가 끈의 이미지를 완전히 형상화함과 동시에 정령과 반정령들의 정령장이 밀려들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힘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의 정령장 은 그 위력을 전혀 잃고 있지 않았다. 끈의 공명을 이용해서 효율적으로 능 력을 사용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 정령의 숲에서 싸우는 동안 자연을 통해 힘을 공급받고 있는 듯도 했다. ……. 그렇지만 막 날 덮치려던 정령장은 한순간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내가 끈 의 공명을 이용해서 내 마나장을 엄청나게 증폭시킴으로써 정령장을 상쇄시 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본래 내 마나장의 위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정령장을 막는 정도에는 절반의 힘도 쓸 필요가 없었다. "너희들……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 난 내 주위를 완전히 둘러싼 정령과 반정령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녀 석들은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똑같은 패턴의 공격을 가해왔다. 그래 서 나도 끈의 공명으로 가볍게 녀석들의 정령장을 소멸시켰다. 그렇게 몇 번 의 공격과 방어가 이어지자 단순무식한 정령과 반정령들도 마침내 지금 상태 로는 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겨우 깨달았냐? 정말 머리 나쁘군." ……. 정령과 반정령들은 여전히 날 둘러싼 채로 내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 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손에 들린 초월의 꽃 열매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내 손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녀석들은 죽기살기로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을 기세였던 것이다. "로스, 괜찮아?" 난 시선은 여전히 정령과 반정령들에게 둔 채 내 팔에 안겨있는 아트로포스 에게 상태를 물었다. 아까 끈의 이미지를 떠올림과 동시에 아트로포스의 부 상을 치료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네, 괜찮아요." 대답하는 아트로포스의 상태는 아주 양호해 보였다. 그래서 난 이번엔 정령 들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아트로포스만 신경 쓰느라 정령들의 부 상 같은 건 전혀 치료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괜찮냐?" "…… 괜찮을 것 같냐?" 대답은 사라만다가 했다. 확실히 그의 어조를 들어보면 힘이 많이 빠져나간 듯했다. 그렇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알아서 치료되라고 놔두었다. "왜 치료를 안 해?!" "이런 싸가지 없는 소환주…… 정령에 대한 사랑이 눈꼽만큼도 없어!!!" 항상 그렇듯이 그런 말을 하는 정령들은 사라만다와 노움뿐이었다. 다른 정 령들은 가만히 내 몸 속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사라만다와 노움의 투정을 무시하고 다시 관심을 정령과 반정령들에게로 돌 렸다. "너희들, 언제까지 그렇게 쳐다만 볼 거냐? 집에 안 가?" ……. 어쭈구리…… 이 중용자 님께서 친히 물으시는데 대답이 없어? 저것들이 얼 마나 맞고 싶어서 저러지? 열 받는데 끈의 공명으로 녀석들을 확 휩쓸어 버 릴까? 제 목 :[사이케델리아] 21장:정령의 숲(下)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7931 게 시 일 :01/01/04 20:40:47 수 정 일 : 크 기 :10.9K 조회횟수 :45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이 숲의 생명력이 사라져 버려요." 실프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내 몸 속에서 하는 말이 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지만 난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실프에게 마음속으로 왜 생명력이 사라지는지를 물었다. 그런 내 질문을 받은 실프는 조용히 대답했다. "정령과 반정령은 숲이 만들어낸 존재예요. 즉, 숲이 자신이 생명력을 그들 에게 불어넣었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죽으면 숲의 생명력이 손상 을 입게 되구요." 흘…… 도대체 이 놈의 숲은 뭣 때문에 정령하고 반정령을 만들어낸 거야? 그냥 얌전히 살면 좀 좋아? 괜히 녀석들을 만들어 내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불필요한 싸움을 해야 하잖아! "이드 님…… 우선 성물을 취하는 편이 어떨까요?" 내가 계속 정령과 반정령만을 노려보고 있자 보다못한 아트로포스가 그런 제안을 했다. 나 역시 그녀의 제안에 찬성하는 입장이긴 했지만, 내가 손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녀석들이 공격을 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 다. 게다가 성물을 먹은 직후 과연 마법 사용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었다. 성 물의 힘이 몸 속에 흡수되는 동안 내 몸이 무방비 상태가 될지도 모르기 때 문이었다. 흠…… 차라리 녀석들이 손을 쓰기 전에 워프를 해서 다른 곳에서 여유를 가지고 성물의 힘을 흡수할까? 근데 내 워프 속도가 녀석들의 공격 속도를 이길 수 있을까? 워프 도중에 방해를 받으면 몸이 제자리를 찾지 못할 가능 성도 많은데…… 하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치겠구만……! "주인님" 그때 실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실프의 말은 계속되었다. "저희가 방어막을 쳐드릴 테니 우선 성물을 취하세요. 그리고 나서 싸우면 훨씬 편하실 거예요." 얼레? 너희가 방어막을? 아까 정령장 막느라고 힘을 다 써버리지 않았어? 근데 또 정령장을 막았다가는 너희들 목숨이 위험하잖아? "물론 그렇긴 하지만 주인님이 지금 끈을 이용해서 저희를 회복시켜 주시면 충분해요. 저들이 끈의 진동을 눈치채지 못하게 저희를 회복시켜 주세요." 뭐 그거야 어렵진 않겠지만…… 성물의 힘이 완전히 흡수되는 시간은 나도 잘 모른다고. 그 시간이 너무 길면 너희들의 부담이 엄청 커지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야죠. 그리고 설령 정령장 때문에 부상을 입더라도 주인님이 치료해주시면 되잖아요." 흐음…… 그건 그렇군. 아직 끈의 이미지가 잘 형상화되어 있으니까 부상 정도야 거뜬히 치료할 수 있지. 좋아,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겠어. 잘 부탁 한다! 우웅- 내 의지에 따라 끈이 진동을 시작했고, 그 진동으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가 내 다섯 정령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힘을 회복시켰다. 그 순간은 5초도 채 되지 않았다. 단순히 치료 마법으로 치료를 하려면 적어도 1분 정도의 시간 이 소요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저희는 준비 됐어요!" 힘이 회복되자 정령들 대표로 실프가 힘차게 소리쳤다. 그래서 난 즉시 손 에 들고 있던 초월의 꽃 열매를 입 쪽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그와 거의 동시 에 정령과 반정령들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꿀꺽! 콰콰콰쾅-! 초월의 꽃 열매를 입 속에 털어 넣자마자 강렬한 폭발음이 일어났다. 지금 까지 중에서 가장 큰 폭발이었다. 역시 내가 초월의 꽃 열매를 먹으려고 하 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온 힘을 다해서 공격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그들의 정령장은 내 다섯 정령의 방어벽을 뚫지 못했고, 결과 적으로 내가 초월의 꽃 열매를 완전히 목구멍 저편으로 넘겨버린 상황을 초 래하고 말았다. "……!" 초월의 꽃 열매는 내 식도를 따라 위장으로 내려가기도 전에 내 몸 속으로 흡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몸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 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밖에서 보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흘……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 느낌인데? 마치 새털처럼 몸이 가뿐해진 느낌 이야. 마치 변비가 시원하게 해결된 것 같은걸? 하지만 난 변비도 아니었는 데? 콰콰쾅!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는 사실에 내가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 도중에도 정령과 반정령의 정령장 공격은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초월의 꽃 열매를 먹 은 이상, 내가 숲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이 세상에서 내 존재를 아예 말살시 켜버릴 작정인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정령과 반정령의 정령장을 견뎌 야 하는 내 다섯 정령들의 부담은 점차 커지고 있었다. 흠…… 웬만하면 어째서 몸이 가벼워졌는지, 이번 성물의 능력은 무엇인지 를 더 자세히 생각해보고 싶지만…… 이대로 있으면 내 정령들이 위험하니까 어쩔 수 없구만. 근데 정령과 반정령들을 죽이지 않으려면 계속 녀석들의 공 격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다고 과연 녀석들이 공격을 멈추지 않 을까? 녀석들이 완전히 지치게 되면 그건 숲의 생명력도 완전히 지치게 된다 는 뜻 아니야? 우웅- 생각만 한다고 일이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난 우선 끈의 이미지 를 형상화해서 끈의 공명을 일으킴으로써 내 마나장으로 정령과 반정령의 정 령장을 상쇄시켰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끈의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무의미한 싸움은 그만 하는 게 어때?" 난 무게 있는 목소리로 정령과 반정령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녀석들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변함없는 공격을 가해왔다. 그래서 나도 별 수 없이 녀석들의 정령장을 소멸시켜야만 했다. 그렇게 또다시 지겨 운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크으…… 미치겠군. 녀석들을 한순간에 쓸어버리는 건 정말 별 게 아닌데… … 숲의 생명력이 사라진다니까 차마 그렇게는 못하겠고…… 도대체 언제까 지 이런 삽질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어……! "……?" 그때였다. 무식하게 계속 공격만 했던 정령과 반정령들이 일제히 공격을 멈 춘 것이다. 왜 녀석들이 갑작스럽게 공격을 멈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 었다. 그러나 녀석들의 표정이 지쳐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더 이상 날 공격 할 힘이 없어서인 듯했다. "지쳤냐?" 난 전혀 지치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들을 한 번 도발시키려고 매우 띠꺼운 어조로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녀석들은 내 말에는 그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녀석들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말 에 대꾸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말에 반응을 보일 수는 있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 말이 말 같지 않 은 모양이었다. ……. 나와 정령·반정령들이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시간은 매우 느리게 기어갔 다. 그 동안 난 연신 하품을 쩍쩍 하면서 녀석들의 반응을 유도하려고 노력 했다. 그럼에도 녀석들의 반응은 없었다. 희로애락 같은 감정이라고는 털끝 만큼도 없는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너희들은 쟤들이 뭐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냐?" 정말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난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면서 내 몸 속에 기생 하고 있는 정령들에게 물었다. 첫 번째로 대답한 정령은 바람의 정령 실프였 다. "음…… 주인님이 그렇게 위험한 존재가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공격하 지 않는 게 아닐까요?" 흐음…… 그럴지도 모르지. 난 초월의 꽃 열매를 먹었지만 숲을 전혀 파괴 하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나한테 죽은 정령도 없고 말이야. 그러니 아무리 단세포인 정령과 반정령들도 내가 위험하단 생각은 안 하지 않겠어? "그게 아니야. 녀석들은 널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야. 그것밖에 공격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냐?" 흐흐…… 노움…… 넌 그게 지금 이 상황에 맞는 설명이라고 생각하냐? 너 요즘 너무 늙어서 치매 증상에 걸린 거 아니야?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정령에게는 나이가 없어! 지나가는 정령들에게 물어봐! 너하고 나 중에서 누가 더 정신이 말짱한지!" 눈앞에서 나와 노움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도 정령·반정령들은 여전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적의에 찬 표정은 서서히 풀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정령과 반정 령들은 숲의 나무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한마디로 나와의 싸움을 포기하고 돌아가 버린 것이었다. 얼라리…… 도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냐? 왜 갑자기 돌아가 버리는 거야? 정말 나하고 싸우지 않기로 한 거야? 뭐라고 말은 해주 고 가던가 말던가 해야할 거 아니냐고! 궁금해 죽겠잖아! "역시…… 저들은 주인님을 위험 인물로 생각하지 않은 거예요." 정령과 반정령들이 돌아가 버리자 실프가 확신한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분명 돌아갈 때의 정령과 반정령들의 표정은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실프의 생각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성장의 꽃하고 초월의 꽃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는데…… 녀 석들은 이 꽃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원형 공터를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중얼거 렸다. 지금까지 바위 위에서 정령·반정령들과 피 터지게 싸웠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스웠다. 바위가 사람 두 명이 충분히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평평했 기 때문에 거의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 서 있었던 것이다. "이 꽃들은 열매를 맺고 나서는 원래 금방 시들어요. 그리고 나중에 또 피 게 되구요. 그러니까 그들이 이 꽃들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해요." 이번에도 역시 실프가 나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어쨌든 계속 바위 위에 서 있어봤자 나오는 건 없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의 허리를 감싼 뒤에 바위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 순간 난 내 몸에서 묘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내 몸이 하나의 깃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왜 그러세요?" 내가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으로 서 있자 아트로포스가 의아한 듯이 물어왔 다. 그래서 난 그녀의 허리를 감싼 내 손을 풀고 나서 대답했다. "글쎄…… 잘하면 이번 성물의 능력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 "……?"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나도 그녀에게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 예상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마음을 비우고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아……!" 내 몸이 하늘 위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아트로포스가 놀란 탄성 을 발했다. 눈치 빠른 그녀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 늘 위로 떠올랐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어쨌든 난 이번엔 하늘을 자유로 이 활보하는 생각을 떠올렸고, 곧이어 내 몸은 내 생각대로 하늘 위에서 자 유롭게 날기 시작했다. "와…… 이번 성물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군요……!" 한 마리의 새처럼 아무 장애 없이 하늘을 나는 날 보면서 아트로포스는 연 신 감탄을 터트렸다. 확실히 초월의 꽃 열매에 깃든 성물의 힘은 나에게 하 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난 그것을 단순히 하늘 날게 하는 능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후후, 이건 인간을 초월하게 해준 거야.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은 원하 든 원치 않든 중력에 얽매일 수밖에 없어. 항상 지구 중심으로 모든 것을 끌 어당기는 중력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하늘을 날 수가 없지. 근데 초월의 꽃 열매는 이런 제약을 없애버렸어. 한 마디로 중력을 초월한 거야. 중력을 초 월했다는 것은 인간의 제약을 초월했다는 거니까 인간을 초월했다고도 할 수 있지. 역시 초월의 꽃답다니까. "로스! 빨리 가서 식사나 하자고!" 다섯 번째 성물의 능력을 확실히 확인한 나는 아트로포스의 곁에 날아 내리 면서 그렇게 제안했다. 아트로포스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찬성했고, 그 래서 난 그녀의 허리를 안고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라 빠른 속도로 정령의 숲 이프노 위를 날아갔다. 물론 마법을 써도 되지만 모처럼 성물의 능력을 얻었는데도 그걸 쓰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릴 것 같았기 때문에 마법은 사용 하지 않고 성물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아…… 바람이 직접 느껴져서 좋네요!"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느끼자 아트로포스가 기분 좋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바람의 마법으로 이동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은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아트로포스가 좋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헐헐, 아트로포스가 좋아하니까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군. 그럼 앞으로 이렇게 허리를 안고 하늘 위를 날아갈까? 그러면 난 좋은데 말이야∼ ====================================================================== 다음 편은 조금 늦어질지도...-.-; <제 22 장> 풍천마(風天魔) 자레드 시끌벅적- 웅성웅성- 사람들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음식점 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정 령의 숲 이프노에서 정령·반정령들과 싸우고 초월의 꽃 열매를 취한 지 이 미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그리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지금 여섯 번째의 성물 을 찾기 위해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중에 점심을 때우 려고 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난 열심히 나이프와 포크를 놀려 스테이크를 먹었다. 이곳에는 스프를 떠먹 는 숟가락은 있어도 젓가락은 없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한 포크를 써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벌써 석 달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흐으…… 역시 난 젓가락 체질이야. 크기가 크고 부드러운 음식은 포크로 찍어먹으면 편하긴 하지만 그 외의 것은 손으로 집어먹어야 하니까 상당히 불편해. 젓가락은 손으로 집어먹을 필요 없이 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음식을 집어들 수 있는데 말이야. 아∼ 젓가락이 그리워∼ "아!" "……?" 내가 열심히 젓가락 타령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트로포스가 놀란 음성을 발했기 때문에 난 무슨 일인가 하여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트 로포스는 식탁에 놓여져 있던 냅킨을 집어들더니 그걸 내 얼굴 쪽으로 가져 오면서 말했다. "입가에 양념이……." 쓱쓱- "……." 아트로포스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내 입에 묻은 양념을 닦아주었다. 이 광경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분명 닭살의 배양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 리고 분노를 넘어선 증오의 시선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효과도 가지고 있었 다. 그렇지만 아트로포스와 다닐 때부터 그녀가 주위의 시선을 항상 끌어 모 았기 때문에 지금은 난 주위의 시선에는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이제 됐어요." 내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다 닦아냈는지 아트로포스가 냅킨을 본래의 자리에 내려놓으며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환했다. 미소가 거의 보일랑 말랑했던 지난 시절과는 천지 차이였던 것이다. "고마워." 아트로포스의 미소짓는 얼굴을 쳐다보며 말하는 게 조금 어색해서 난 짧게 그렇게만 말하고 즉시 식사에 열중했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도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아트로포스 사이에 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에 들어와서 식사를 하기 시작 할 때부터 그랬기 때문에 나나 아트로포스나 어색한 침묵에 그다지 신경 쓰 지 않았다. "즐거워…… 보이네요……." 내가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약간 우울한 듯한 실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실프는 내 몸 속에서, 정확히는 내 폐 속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 그 목소리는 나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흘…… 즐겁긴 뭐가 즐거워? 그냥 평상시처럼 아트로포스랑 식사하고 있는 건데. 게다가 지금 이 어색한 침묵이 안 보여? 서로 말도 안 하고 묵묵히 식 사만 하고 있단 말이야. 이게 뭐가 즐거워 보이냐고. "그래도…… 주인님의 마음은 즐겁게 느껴지는 걸요……." 그 말을 끝으로 실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실프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실프와 함 께 했던 기억들을 차례로 떠올리는 동안 실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 강 알게 되었다. 실프가 날 좋아하기 때문에 나와 아트로포스가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을 별로 좋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어이, 형씨!" 그때 웬 굵직한 목소리가 내 귀를 자극했다. 그 굵직한 목소리가 부르고 있 는 상대가 바로 나라는 느낌을 직감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난 목소리의 주인 공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에는 내 생각대로 덩치가 굉장히 큰 남자가 서 있었다. 흘…… 뭐냐 저 덩치들은? 모두 3명이네? 3명 모두 덩치가 장난이 아니군. 적어도 180cm는 넘는 것 같다. 헐∼ 팔뚝 근육들이 장난 아닌걸? 근육 자랑 하려고 얇은 반팔 상의를 입었냐? 첫 인상부터 마음에 안 드는구만. "형씨, 앞에 계신 아리따운 아가씨는 누구요?" 3명의 덩치 중에서 큰 입에다 두터운 입술을 가진 녀석이 내 어깨에 손을 턱하니 올려놓더니 내 앞에 앉은 아트로포스를 가리키며 기분 나쁜 어조로 질문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분도 덩달아 나빠져 버렸다. 그런 내 입 에서 나오는 말이 부드러울 리 없었다. "식사 중이니까 사라져." "……." 내 띠꺼운 말에 3명의 덩치들은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힘이 없어 보 이는 내가 그런 말을 하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이 녀 석들은 어처구니없는 듯이 웃고 나서 날 설득하듯이 말했다. "이봐, 형씨. 오래 살고 싶으면 얌전히 구는 게 좋아." 우드득- 마치 퉁퉁 부은 것처럼 입술이 두꺼운 녀석은 내 어깨에 올려놓은 손에 힘 을 가했다. 그 입술 부르터스 녀석의 힘은 상당히 강했기 때문에 난 어깨가 부서질 듯한 고통을 맛보았다. 크으…… 짜증나는군. 식사 중에 이런 역겨운 녀석들을 만나다니. 어이, 실 프. 네가 나가서 이 녀석들 좀 어떻게 해줘. 난 계속 식사해야 하니까 말이 야. "싫어요. 주인님이 직접 하세요." "……?" 실프의 말을 듣고 난 내 귀를 의심해야했다. 실프가 내 부탁을 거절하리라 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보고 처리하라는 거야? 내가 직접 나서면 녀석들은 모두 죽는다고. 그러니까 실프가 적당히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거라구! "어쨌든 싫어요. 그러니까 주인님이 직접 해결하세요." 실프의 목소리는 다분히 반항적이었다. 왜 갑자기 실프가 내 말을 듣지 않 는 것인지 알고 싶었으나, 어깨에 가해지는 통증 때문에 그 이유를 깊이 생 각할 수 없었다. 대신 사라만다에게 부탁을 했다. 어쩔 수 없다, 사라만다! 믿을 건 너밖에 없어! 네가 나가서 멋지게 저 녀 석들을 해치우고 돌아와! "그럼 뭐 줄 건데?" 윽…… 줄 게 어딨어? 그냥 나가서 싸우고 오란 말이야! 소환주로서 명령한 다! "네가 언제 소환주로서의 위엄이 있었냐? 그냥 네가 직접 싸워. 왜 깡패 퇴 치 같은 사소한 일에 정령들을 부리려고 그래? 우리는 싸울 만한 상대와 싸 울 뿐이다." "……." 사라만다는 내 부탁을 완벽하게 거절했다. 소환주의 명령을 듣는 게 당연한 정령들이 내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이 지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어깨에 가해지는 고통 역시 매우 마음에 안 들었다. "형씨! 꽤 버티는데, 그러다가 어깨가 부서지는 수가 있다고. 그냥 얌전히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게 좋아. 저 아가씨는 누구야?" 입술 부르터스가 역겨운 웃음을 흘리며 내 어깨에 올려놓은 손에 힘을 가했 다. 따라서 자연히 내 어깨에 가해지는 고통도 증가했다. 그 사이, 다른 두 명의 덩치들은 아트로포스에게 찝쩍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나 손을 만지 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 짜증나는군. 어째서 상황은 날 자꾸 살인자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 지? 아무리 착하게 살려고 해도 주위 상황이 이러니 착하게 살긴 글러 먹었 어. 아, 뭐 좋아. 어차피 중용자는 살인에 능숙해져야 하니까 너희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주지. 영광으로 알아라. 지직-! "윽! 뭐야?!" 입술 부르터스는 내 어깨에 올려놓았던 손을 움찔하면서 나에게서 조금 떨 어졌다. 내가 마법으로 녀석의 손에 강한 정전기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녀석 이 따끔함을 느끼고 떨어진 것이었다. 드륵- 난 입술 부르터스가 나에게서 떨어지자마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러자 아트로포스에게 찝쩍대던 두 덩치들도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또한 주위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사람들도 모두 날 쳐다보았 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나는 3명의 덩치에게 경고를 날 렸다. "너희들, 지금 사라지는 게 유일한 목숨 부지 방법이다." "……." 3명의 덩치들은 '이 녀석, 지금 뭔 개소리야?'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그저 녀석들을 바라보면서 녀석들의 생김생김을 머리 속에 기억했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무서운 공격을 3명의 덩치 들을 대상으로 시험해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푸하하! 사라지는 게 목숨 부지 방법? 어디 재주 있으면 한 번 죽여보시지?" 3명의 덩치들은 일제히 날 비웃으며 정말 죽여보라는 듯이 내 행동을 지켜 보기만 했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난 편한 마 음으로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동시켰다. "잘 가라."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3명의 덩치들에게 난 친절히 손까지 들어주며 그들을 전송해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덩치들의 모습은 음식점 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음식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것은 아트로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드 님, 방금……!" "아, 뭐 일이 생겨서 가버렸겠지. 우린 하던 식사나 계속하자고." 굳이 어렵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난 다시 자리에 앉아 덩치 녀 석들 때문에 중단했던 점심 식사를 계속했다. 만약 이 점심이 누군가 사주는 것이라면 굳이 식사를 계속하지는 않았겠지만, 내 돈이나 마찬가지인 아트로 포스의 돈으로 사먹는 것이기 때문에 남기면 아까웠던 것이다. 《무서운 녀석……!》 내가 어떤 마법으로 녀석들을 처리했는지 알아챈 실버럭서스가 몸을 미미하 게 떨었다. 그리고 실프와 사라만다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 나에게 질문을 해 왔다. "주인님, 방금 그건 워프……?" "설마 녀석들을 워프로 날린 거야?" 흘흘, 그나마 너희들 머리가 있구나. 확실히 내가 사용한 마법은 워프지. 녀석들을 워프시켜서 다른 곳으로 보냈으니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워프의 성질이야. 워프는 사람의 몸을 원자 단위까지 분해해서 자료 전송하듯이 번 호를 매긴 다음 목적지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이지. 그러니까 목적지를 지정해 주지 않으면 분해되었던 몸의 재조립이 불가능하게 되어 그 인간은 완전히 사라지게 돼. 이 세상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는 소리 지. 한 마디로 증거 하나 남지 않는 완전범죄! 《성물의 힘이 없었으면 절대 못했겠지.》 헐,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워프가 어디 쉬운 마법이냐? 특히 워프는 자기 자신을 이동시키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이동시키는 게 더 어렵다고. 하지만 성물의 힘 때문에 그것도 나에게는 별 게 아니야. 거의 모든 마법을 내 마음 대로 쓸 수 있으니까. "그럼…… 역시 저희들은 주인님에게 별 필요가 없군요……." 그렇게 말하는 실프의 목소리는 매우 우울했다. 마치 그냥 놔두면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어버릴 것 같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난 예전부터 쭉 정령 들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 번 도움 받은 것을 들먹이면서, 그리고 이번에도 정령들이 없었다면 성물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실프의 기분을 풀 어주려고 진땀을 뺐다. 그러나 실프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울했다. "그래도…… 주인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저희들의 필요성은 줄어들겠지 요……." 이런…… 왜 꼭 나한테 필요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 거야? 그냥 너희들은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난 너희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너희들을 되살린 게 아니야. 난 그저 너희들과 같이 있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거면 됐 잖아? "…… 그렇네요." 다행히 이번엔 실프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확실히 기분이 풀어진 어조 였기 때문에 비로소 난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식사 를 거의 다 끝마칠 무렵, 갑자기 아트로포스에게 이상한 소리가 났다. 삐빅- 삐빅- "……?" 얼라리? 이 소리는 뭐냐? 누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런 옛 날 시대에 휴대폰이 있을 리 없을 텐데? 근데 어째서 휴대폰 벨 소리 비슷한 것이 들리는 거냐? "아……!" 자신의 몸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고개를 젓고 있던 아트로포스가 마침내 그 소리의 근원을 알아내고는 즉시 자신의 목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는 옷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의 목걸이를 밖으로 빼냈다. 줄 하나에 보석 하나 달랑 달려있는 평범한 목걸이였다. 문제는 그 목걸이에서 휴대폰 벨 비 슷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게 뭐야?" "이거요? 기억 안 나세요? 라케시스 님이 이걸로 연락한다고 주신 거잖아요." 아, 그랬나? 음…… 잘 생각해보니까 그런 기억이 있었던 것 같은…… 하여 튼 저 목걸이로 연락한다고 해놓고는 전혀 소식이 없으니까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어. 근데 저 목걸이에서 왜 휴대폰 벨 소리가 나는 거냐? 무슨 장치를 해놨길래? "……." 아트로포스는 그 목걸이의 보석을 손으로 감싸쥐고 눈을 감았다. 상황을 보 건대 그런 식으로 라케시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조금 남아 있는 음식을 마저 먹으면서 아트로포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끄덕끄덕- 절레절레- 끄덕끄덕- 아트로포스의 머리가 그렇게 3번 움직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그렇게 크 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이던 나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 다. 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왜 나한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야? 정령들이나 실버럭서스는 내 마음을 다 읽 는데! 《아트로포스도 네 마음을 못 읽잖아.》 그, 그런가? 그럼 뭐 상관없겠군. "이드 님." 그때 어느새 통신을 마친 것인지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에게 그 목걸이를 내밀었다. 그것은 라케시스가 나에게도 용 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가 하던 대로 그 목걸이를 받아 쥐고 눈을 감았다. 〈안녕, 이드. 나야, 라케시스. 설마 내 목소리를 잊은 건 아니겠지?〉 잊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억하고 있다. 요즘 내 기억력이 너무 좋아져서 말이야. 〈그래? 꽤 변했구나. 한 달 이상이나 못 만났기 때문인가?〉 사람은 원래 변해. 그리고 지금도 만나는 건 아니잖아. 이 통신기로 연락만 하고 있을 뿐. 〈음…… 그렇네. 그건 그렇고 아까 로스에게도 물어봤던 건데, 정말 네가 염천신 뮤로를 없앴어?〉 염천신 뮤로? 그 녀석이 누구냐? 〈…….〉 알았어. 대답하면 될 거 아니야. 아까 아트로포스에게 물어봤다면 들었겠지 만, 확실히 염천신 뮤로는 내가 친절히 저승까지 안내해줬다. 천신족 서열 10위 안에 든다는 녀석이 그렇게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니까. 〈이것도 아까 로스한테 물었던 건데, 아직 풍천마 자레드하고는 접촉 안 했어?〉 접촉? 풍천마 자레드하고? 미안하지만 난 남자한테는 관심 없어. 〈너 자꾸 헛소리할래?〉 아까 아트로포스에게 물어봤다며? 근데 왜 나한테 또 물어보는 거야? 〈본인에게 확인해보려고 그러지.〉 거참 귀찮게 하는구만. 그래, 풍천마 자레드하고는 만나지도 못 했다. 됐냐? 〈그랬구나. 어쨌든 천신계와 천마계에 염천신 뮤로와 풍천마 자레드가 중 용자에게 패배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벌써 돌아왔어야 할 시간인데 둘 다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까 말이야.〉 염천신 뮤로가 죽었다는 건 그렇다 치고, 만나지도 못한 풍천마 자레드가 나한테 죽었다니 무슨 소리야? 천신이나 천마는 지금 녀석들하고 연락을 하 지 못하는 거야? 〈그래. 회로계에 내려간 천신이나 천마는 천신계와 천마계에 연락을 할 수 없어. 자신이 직접 돌아가지 않는 한은 말이야. 물론 서열이 높은 천신이나 천마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들의 위치를 찾아낼 수도 있는데, 문제는 둘 다 그 탐색 능력에서 몸을 숨길 수 있는 실력자들이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 않아.〉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그러니까 염천신 뮤로는 죽었기 때문에 애당초 위치 탐색이 불가능하고, 살아있을 확률이 높은 풍천마 자레드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자신이 있는 위치를 숨기고 있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나나 클로토도 녀석의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아마 녀석은 비밀리에 널 없앤 후에 천마계로 돌아가서 염천신 뮤로의 죽음으로 병력이 크게 약화된 천신계를 단번에 칠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흐음…… 그런가? 뭐, 어쨌든 염천신 뮤로는 별 거 아니었으니 풍천마 자레 드도 그다지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내 생각엔 풍천마 자레드가 날 죽이지 않고 몰래 천마계로 돌아가서 천신계를 쳐버리는 게 훨씬 좋은 계 획일 것 같은데? 〈염천신 뮤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풍천마 자레드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일 확률은 없어. 녀석은 반드시 널 죽이려 할 거야.〉 그건 그렇군. 그럼 느긋하게 녀석이 오길 기다리면 되겠네. 할 말 끝났으면 그만 통신 끊어. 〈하여간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니까.〉 난 원래 그런 인간이야. 너도 내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날 중용자로 선택해서 이 세계로 끌고 왔잖아? 서로 피장파장일 뿐이다. 〈에휴…… 어쨌든 그럼 풍천마 자레드 조심하고, 나중에 또 보자.〉 그래, 잘 가라. 앞으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란다. ……. 다행히 내 마지막 말을 라케시스가 듣지 못한 모양인지, 연락은 그대로 끊 어졌다. 그래서 난 목걸이를 아트로포스에게 건네주면서 라케시스와 어떤 얘 기를 했는지 아주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자레드 조심하라고 하더군." "저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요." 아트로포스는 목걸이를 다시 옷 속으로 잘 넣은 뒤 남은 식사를 하기 시작 했다. 하지만 난 이미 식사를 모두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천천히 물을 마시 면서 음식물이 소화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아트로포스가 식사를 다 마쳤 기 때문에 우리들은 음식값을 지불하고 더 이상 볼일이 없어진 음식점을 나 왔다. 그리고 나서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누군가 뒤에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을 방해했다. "기다려라." "……?" 상당히 위압적인 말투였기 때문에 난 즉시 고개를 돌려 그 말을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짧은 은발에 체격이 좋 고 얼굴도 꽤 반듯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날 보는 그 아저씨의 얼굴 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난 즉각 마나회로를 개방하여 있을지도 모르는 아저씨의 기습 공격에 대비 했다. 그러나 은발의 아저씨는 지금 당장은 날 공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말려들게 하고 싶나?" "…… 아니, 없다." 상대가 반말로 나와서 나 역시 반말로 나갔지만 은발 아저씨는 내 반말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지 주위 사람들이 지금 음식점 앞에 서서 얘기를 주고받는 우리를 이상히 여기지 않을까만 신경 쓰고 있었다. "조용히 얘기하고 싶다면 날 따라와라." 일방적으로 그렇게 말한 은발 아저씨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어딘가로 뚜벅 뚜벅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서 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내가 다른 곳으로 가버 리면 이곳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얌전히 아저씨를 따라갔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내 옆에 바짝 붙으면서 걱정스런 어조로 말 했다.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저 사람 수상해요." "어쩔 수 없잖아. 무슨 얘길 하자는 건지 우선 들어보자고." "…… 그래도……." 아트로포스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꽤 불안해했다. 그러한 그녀 에게서는 이미 예전의 냉철함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역시 여행을 계 속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공포나 불안 등의 여러 감정을 습득한 것 이다. 어쨌든 아트로포스가 계속 불안해하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난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내가 옆에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아, 네……." "안 따라올 건가?" 내가 아트로포스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자마자 은발 아저씨가 무서운 눈으로 날 째려보면서 당장 따라오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은발 아저 씨를 무섭게 노려봐 준 다음에 큰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물론 아트로 포스도 내 뒤를 따라왔다. 《로스의 얼굴이 빨개졌군.》 응? 방금 뭐라고 했냐, 실버럭서스? 뭐가 어떻게 됐다고? 《아…… 피곤하다…….》 이 자식! 빨리 대답 안 해? 왜 혼자 궁시렁대는 거야? 너 방금 날 놀렸던 거지? 빨리 바른 대로 불어! 《그만 좀 떠들어라. 가뜩이나 정신없어 죽겠는데.》 네 녀석이 정신없을 이유가 어디 있어? 내가 언제 싸움 때 널 사용한 적이 있었냐? 넌 맨날 칼집에 얌전히 꽂혀 있잖아. 그런데 뭐가 정신없어? 자꾸 이상한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면 죽인다? 《나도 성물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정신없지. 이제 곧 있으면 네놈 상판때 기를 볼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뭔 소리야? 뭔가 뼈가 있는 말처럼 들린다? 뚜벅뚜벅- 내가 실버럭서스를 다그치는 동안, 은발 아저씨는 우리를 마을의 뒷동산으 로 데려갔다. 이제 가을에 막 들어서는 계절이라 뒷동산의 나무들 중 일부는 단풍잎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뒷동산을 둘러보고 있을 때 은발 아저씨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중용자 이그드라실." "……!" 어, 얼레? 방금 저 아저씨…… 날 보고 중용자 이그드라실이라고 하지 않았 나?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렇게 들렸는데…… 어째서 저 아저씨 가 내 정체를 알고 있는 거지? 도대체 저 아저씨의 정체는 뭐야? "절 알고 있습니까?" 아직 상대가 내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난 우선 부드럽게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의 예상대로 그 은발의 아저씨는 나에게 호의가 있어서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내 이름은 자레드. 천마계 서열 10위 안에 드는 천마다. 다른 자들은 날 풍천마(風天魔)라 부르지." 풍천마 자레드…… 방금 전에 라케시스에게서 풍천마 자레드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후에 녀석이 바로 나타나다니…… 혹시 라케시스가 풍천마 자레 드에게 내 위치를 알려준 거 아니야? 그 사악한 영마관이라면 충분히 그러고 도 남아. 《바보 녀석. 영마관이 일부러 그런 짓을 하겠냐?》 그럼 어째서 라케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풍천마가 나타난 거야? 《그거야 타이밍이 들어맞았을 뿐이지. 이런 속담도 모르냐? 배나무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가 날아올랐을 때 배가 떨어지니까 어리석은 인간들이 까마 귀 때문에 배가 떨어졌다라고 생각한 거.》 아, 오비이락(烏飛梨落)? 그 속담이 이 세계에도 있냐? 신기한걸? 어쨌거나 …… 지금 이 상황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 라케시스는 나에게 언제나 불행을 전해준다는 거 말이야. 《…….》 "나에 대한 얘기는 이미 영인관이나 영마관을 통해서 들었을 거라 생각하는 데?" 내가 자레드라는 말을 들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풍천마 자레드가 약간 불쾌한 얼굴을 했다. 자신의 인지도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풍천마 자레드보다는 중용자 이그드라실 의 인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난 약간의 거짓말을 구사했다. "염천신 뮤로는 들어봤어도 풍천마 자레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 풍천마 자레드의 표정이 약간 흔들렸다. 비록 활동 영역은 다르지만 서열이 자신과 거의 비슷한 염천신을 내가 알고 있고, 풍천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 다라는 사실이 역시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내 말이 거짓말이란 것 을 눈치챈 자레드는 원래의 위엄스런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목 [사이케델리아] 22장:풍천마 자레드 -3-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005 게시일 01/01/09 19:46:52 수정일 크기 10.3K 조회횟수 2 "꽤 여유 있는 중용자로군. 그래, 그럼 염천신을 만났나?" "만나기야 만났지. 만남이 너무 짧아서 어떻게 생긴 녀석인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말이야." 난 약간의 비유를 사용하여 입을 놀렸다. 다행히 풍천마 자레드는 머리가 좋은 편인 듯 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아맞혔다. "설마…… 염천신을 죽였단 말이냐?" "뭐, 지금도 죽음의 사막 다라노드에서 열심히 선탠(suntan)하고 있을 거야." "……." 내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님을 알아챈 풍천마 자레드는 얼굴 표정을 약간 굳 혔다. 자신의 인지도가 낮다는 사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래서 난 녀석에게 더욱 겁을 주기 위해 갖은 폼을 다 잡으며 말했다. "염천신은 내 몸풀기 상대도 되지 않아서 굉장히 실망했어. 너도 염천신과 비슷한 실력이라는데, 뭐 저승 구경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덤벼." "……." 내 말을 들은 자레드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굳어졌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기이하게도 자레드의 표정이 풀려버렸다. 오히려 뭔가 자신 있다는 표정이었다. "중용자, 하나만 묻겠다." "뭐지?" "염천신은 천신장(天神場)을 사용했나?" "……?" 얼레? 천신장? 그건 또 뭐냐? 처음 듣는데? "후후, 역시 그렇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풍천마 자레드는 득의의 표정을 지었다. 그 리고는 나보고 똑똑히 들으라는 듯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염천신은 자신의 힘을 모두 발휘한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그를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 흘…… 염천신 뮤로가 힘을 모두 사용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고, 나에게 무시무시한 불꽃 공격을 가했던 그 녀석이? 말도 안 되 는 소리!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난 풍천마 자레드가 날 위축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거짓말을 한다고 생 각했기 때문에 날카롭게 그를 째려보면서 사실을 실토하도록 유도했다. 하지 만 풍천마 자레드는 사실을 실토하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시키는데 주력 했다. "이곳은 회로계다. 마나회로가 셀 수도 없이 깔린 곳이지. 이런 곳에서는 천신이나 천마가 자신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천신계나 천마계에서 낼 수 있는 힘의 10분의 1도 채 낼 수 없지." "……." "그래서 웬만한 천신이나 천마가 아니고서는 회로계에 잘 내려오려 하지 않 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천신 뮤로나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마나회로 의 영향을 받지 않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뭔 지 아나?" "……." 나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빨리 말하는 게 좋을걸? 안 그러면 내 마법 이 네 녀석의 안면을 형편없이 구겨줄 테니까 말이야. "마나회로의 영향을 받지 않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바로 이거다!" 우우웅-! 풍천마 자레드의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기이한 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그리고 이내 사방이 묘한 것으로 뒤덮였다. 풍천마 자레드를 비롯하여 사방 30미터까지 포함한 그 거대하고 투명한 반구(半球)에서는 마치 물 위에 뭔가 가 떨어졌을 때와 같은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나회로를 차단하는 천마장(天魔場)이다! 천마장 안에서라면 천마계에서의 힘을 그대로 낼 수가 있지!" 주변에 완벽한 파문의 장막을 쳐놓은 풍천마 자레드는 날 똑바로 쳐다보았 다. 그의 얼굴에서는 이미 승리의 표정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난 두려움 때 문에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아트로포스의 허리를 한 손으로 감싸안으며 자 레드에게 소리쳤다. "얼마든지 덤벼! 덤빈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해줄 테니까!" "하하하! 넌 지금 네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있나? 천마장 안에서는 마나회 로가 배제된다. 즉, 지금의 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소리다!" "……!" 풍천마 자레드의 말에 난 크게 놀라 급히 내 몸에 깔린 마나회로를 가동시 켰다. 하지만 마나장은 내 몸 근처에서만 일어날 뿐 외부에 깔려 있는 마나 회로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천마장이라는 이 공간에서 외부 마나회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레드의 말대로 천마장 안에서는 마나회 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염천신 뮤로는 자신의 힘을 다 사용하지 않았다. 천신장을 쳐놓고 싸워야 그것이 그의 힘을 다 사용했다는 뜻이지. 하지만 녀석은 그렇게 하지 않고 좀더 쉬운 방법을 택해서 싸웠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성물을 가지고 도망친다 던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야." 나와 염천신 뮤로의 싸움을 보지도 못했을 텐데도 풍천마 자레드의 추리는 완벽히 들어맞았다. 확실히 염천신 뮤로는 성물이 들어있는 목각 인형을 빼 앗아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자신의 힘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나에게 불의의 공격을 받아 황천으로 떠났던 것이다. "후후, 중용자 이그드라실! 난 염천신과는 달리 처음부터 내 온 힘을 다한 다! 그것이 천신과 천마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 천신은 상대에게 공격할 기 회를 주지만 천마는 그렇지 않으니까 말이야!" 위위윙- 풍천마 자레드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에서 날카로운 바람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부메랑처럼 빠른 회전을 하면서 날아오는 여러 개의 바람은 진행 방향을 교묘하게 틀며 내가 쉽게 피할 수 없도록 날 압박하고 있었다. 팍-! 난 아트로포스의 허리를 감은 채로 땅을 박차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다 행히 성물의 힘은 천마장 안에서도 발휘될 수 있었는지 내 몸은 중력에 지배 되지 않고 하늘 위를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이리저리 하 늘 위를 날면서 날아오는 부메랑 바람을 피해냈다. "성물의 힘인가! 하지만 피했다고 안심하지 마라!" 내가 가볍게 부메랑 바람을 피해내는 것을 본 풍천마 자레드는 여전히 승리 의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손을 활짝 펼쳐 뭔가를 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그러자, 위이잉- 천마장에 닿은 부메랑 바람은 일순간 파문의 장막에 흡수되었다가 잠시 후 전혀 다른 곳에서 내 쪽으로 날아왔다. 만약 나 혼자라면 어떻게 해서든 부 메랑 바람을 피할 수 있겠지만, 지금 아트로포스가 나와 같이 있는 관계로 그 무게 때문에 더 빨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즉시 정령들에게 도 움을 요청했고, 정령들은 즉각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까가강-! 내 정령들이 쳐놓은 방어벽과 부메랑 바람이 서로 부딪치자 마치 쇠끼리 부 딪치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났다. 그러나 다행히 정령들의 방어벽에 막힌 부 메랑 바람은 이내 사라졌다. 바람 정도의 위력으로는 정령들의 방어벽을 뚫 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풍천마 자레드는 크게 놀랬다. "방금…… 마법을 사용한 거냐? 하지만 천마장 안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있 을 리가……!" 후후, 역시 풍천마 자레드라도 정령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군. 뭐, 나도 얼마 전까지는 정령들을 되살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녀석이 혼란스러워하는 틈을 이용해서 무차별 공격을 하는 거다! 너 희들의 힘을 쏟아 부어! "또 쓸데없이 우릴 부려먹는구만!" 쿠쿠쿠- 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제일 먼저 땅의 정령 노움이 지진을 일으켜서 풍 천마 자레드가 제자리에 제대로 서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이어서 불의 정령 사라만다가 여러 개의 불덩어리를 만들어내어 자레드에게 날렸고, 그보다 한 발 먼저 빛의 정령 잭 오 랜턴이 강렬한 빛으로써 풍천마 자레드의 시야를 차단시켰다. 콰콰쾅-! "큭!" 처음으로 풍천마 자레드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신음소리는 나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였기 때문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계속해서 정령에 의한 공격을 떠올렸고 정령들은 그런 내 생각에 반응하여 즉각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쿠쿠쿠쿠- 마치 지축을 흔드는 듯한 굉음이 천마장 안에서 발생했다. 정령의 숲 이프 노에서 정령과 반정령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그 정령장이 지금 내 다섯 정령 들의 능력에 의해 재현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령장?!" 정령장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풍천마 자레드는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 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정령들에 의해 만들어진 강력한 정령장이 자레드 를 덮쳤다. 정령장의 특징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정령장에 닿은 땅이나 돌, 나무 등이 터지거나 박살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령 장이 노리는 것은 오직 풍천마 자레드뿐이었다. "……!" 그러나 풍천마 자레드의 모습은 정령장이 채 닿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의 차이가 매우 짧았기 때문에 자칫 자레드가 정령장에 의해 소멸되 는 모습으로 오인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순간의 차이를 보지 못했다하더라 도 풍천마 자레드가 사라졌음에도 멀쩡히 남아있는 천마장이 그의 존재를 분 명히 해주고 있기는 했다. 《사라졌군. 하지만 이곳에서는 몸을 숨길만한 장소도 없는데?》 실버럭서스의 말대로 천마장이 둘러쳐져 있는 장소에서 사람 하나를 완벽히 숨길만한 큰 바위나 나무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풍천마 자레드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로 정령장에 맞아 소멸했다고 생각해버릴 정도 로 완벽한 은둔이었던 것이다. 제길…… 어디에 있지? 설마 천마장 자체에 숨어버린 건가? 천마장에 대해 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녀석이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 감을 못 잡겠어. 그냥 이렇게 얌전히 녀석이 공격을 가해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나? 아, 그래! 우선 내 몸 주변에 정령들의 방어막을 친다면 그나마 안전……! "……!" 내가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내 가슴 부근에서 뭔가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 날카로운 기운이 정확히 내 심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본능적 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몰래 다가와서 내 몸을 칼로 찌르는 듯한 섬뜩한 느낌이었다. 팟- 가슴 근처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내 몸은 저절로 반응하여 즉 시 그 자리를 피했다. 다섯 번째로 얻은 성물인 초월의 꽃 열매에 깃든 능력 으로써 하늘을 이동하여 피했던 것이다. 만약 내가 땅에 서 있었고 하늘을 마음대로 나는 능력이 없었다면 내 가슴을 노린 그 날카로운 기운을 피하기 란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흐으……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그런데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한 거지? 아…… 녀석은 풍천마였지? 풍천마라는 것은 결국 바람을 사용한다는 것…… 즉, 이 천마장 안에 흐르고 있는 바람 속에 숨어 있다는 소리? ……. 풍천마 자레드의 기습 공격이 있은 후 천마장 안은 조용한 침묵 속에 휩싸 였다. 그렇게 주위가 조용했기 때문에 천마장 안의 바람이 약하면서 매우 불규칙하게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회오리를 치듯이, 때로는 일정한 방향으로, 때로는 맞바람이 정신없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래가지고는 녀석의 접근을 알 수가 없어…… 녀석이 날 죽이기 위해 바람을 변형시켜 날 베려고 하는 그 순간, 그 순간에만 발생하는 날카 로운 기운을 느껴서 몸을 피하는 수밖에 없는 건가? 불리해…… 천마장 안에 서의 싸움이 이렇게 불리할 줄이야……! "……!" 열심히 자레드의 공격 위치를 알아내려고 갖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난, 문득 땅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는 아트로포스에게 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풍천마 자레드가 날 죽이기 이전에 그녀를 노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영인관 아트로포스가 없으면 난 성물을 찾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풍천마 자레드의 목적은 거의 이루어진다 고 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팟! 그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난 급히 허공에서 몸을 이동하여 그 자리를 피했 다. 그리고 나서 정령들에게 아트로포스의 몸 주변에 방어막을 치도록 말하 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풍천마 자레드의 공격이 더 빨랐다. 사악- "아악!" 아트로포스의 비명과 함께 그녀의 오른쪽 어깨 바로 아래에서 피가 솟구쳤 다. 본래는 아트로포스의 목을 노리고 공격했던 것이겠지만 내가 갑자기 위 치를 이동하는 바람에 녀석의 날카로운 바람이 아트로포스의 어깨를 베어버 리게 되었던 것이다. 제목 [사이케델리아] 22장:풍천마 자레드 -4-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006 게시일 01/01/09 19:47:28 수정일 크기 11.5K 조회횟수 4 "모두 나가서 녀석을 공격해!!!" 아트로포스의 부상에 울화가 치민 나는 즉시 정령들에게 내 몸밖에 나가서 싸울 것을 명령했고 정령들은 내 말대로 몸밖으로 빠져 나온 뒤에 방금 내가 있던 자리에 무시무시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난 천마장의 거의 끝까지 이동하여 아트로포스를 땅 위에 앉혔다. 그녀의 어깨에서는 그 다지 많은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으나, 거의 뼈가 보일 정도로 베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상당하리란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괜찮아, 로스?" "흐윽…… 괘, 괜찮은…… 것 같아요…… 흑……!" 아트로포스는 약간 눈물 섞인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생각 같아서는 지 금 당장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지만 마나회로가 없는 천마장에서 마법 같은 것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난 아트로포스가 계속 통증에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어쨌든 우선 자레드 녀석이 또 공격하기 전에 여길 피하자." 비록 정령들이 여기저기 공격을 뿌려대고 있지만 그게 자레드에게 타격을 주고 있는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에 난 아트로포스를 다시 안고 그 자리를 뜨 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자리를 뜨기도 전에 이미 풍천마 자레드의 공격이 들어왔다. 사각- "컥!" 등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녀석은 내가 자리를 이동했을 때 바람인 채 로 같이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아트로포스에게 정신이 팔려 있 는 틈을 노려 날 공격했던 것이다. 확실히 그의 공격은 제대로 먹혀 들어갔 고, 난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충격을 받아야 했다. "으아ㅡ!!!" 난 갖은 괴성을 질러대면서 아트로포스를 안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자 리에 가만히 있으면 또 자레드의 바람 공격에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등 한복판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난 이리저리 몸을 이동하여 자레드의 추적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그렇게 천마장 안에서 정신없이 설쳐댔기 때문에 정령들도 공격을 멈춘 채 날 지켜보았다. 제길…… 마법만 쓸 수 있다면 녀석을 없애버릴 수 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마법을 사용하게 만들 수 있지? 뭔가 좋은 방법이 없는 거야?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 다녀야만 하냐고! "끈……." 어깨의 통증 사이로 바람이 들어가서 괴로워하고 있던 아트로포스가 있는 힘을 쥐어짜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 에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난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아트로포스도 그것 을 알았는지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노력했다. "정령들을…… 되살렸던 그 끈이란 걸 사용하면…… 흑……!" "……!" 그래…… 끈을 사용하면 이런 천마장쯤이야 간단히 없앨 수 있겠지. 게다가 이미 끈을 두 번이나 사용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는 좀더 익숙하게 끈을 다룰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여기서 끈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녀석에게 이길 수 없 으니 해보는 수밖에! "로스! 내 정신이 항상 맑게 되도록 유지시켜 줘! 그리고 너희들은 내 주위 에 방어막을 치고!" 난 아트로포스와 정령들에게 거의 명령조로 소리치면서 허공 위의 한 지점 에 멈춰섰다. 그러자 정령들은 내 몸 속으로 들어와서 주변에 방어막을 둘러 쳤다. 그리고 아트로포스는 어깨의 통증을 참으며 내 목에 한쪽 팔을 건 뒤 언제라도 내 정신적 피로를 풀어줄 준비를 마쳤다. 콰콰쾅-! 그러나 내가 한 위치에 멈추자 곧바로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바람 공격이 시 작되었다. 비록 정령들이 방어막으로 풍천마 자레드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긴 했지만, 그다지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정령들에 대한 걱 정을 떨쳐버리고 오직 끈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에 집중했다. 끈이란 가늘고 긴 물건…… 여러 개의 얇은 끈이 모이면 무거운 물체도 끌 수 있는 끈…… 그 끈을 천마장에 연결시켜 잡아당기면 천마장은 붕괴……! 콰콰쾅-! "우아아아ㅡ!!!" 끈에 대한 대강의 이미지를 생각한 나는 괴성을 질러댐으로써 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자 했다. 처음엔 끈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나 괴성 을 질러대면서 머리 싸움을 한 결과 간신히 끈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에 성공했다. 콰쾅! 콰쾅! "큭! 더 이상은 못 버티겠어! 빨리 빨리 하라구!" "이놈의 소환주가 정령을 죽이려고 한다!" "꺄악!" 끈의 이미지 형상화에 성공하자 정령들의 처절한 외침소리가 똑똑히 들려왔 다. 이미 정령들의 방어막은 위태로울 대로 위태로워져 있었다. 이대로 두면 정령들이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질 것은 뻔했다. 그래서 난 즉시 형상화한 끈 의 이미지를 천마장에 연결하여 순전히 정신력만으로 잡아당겼다. 우우웅- 끈을 사용하자 머리에서 기묘한 울림이 일어났다. 끈이 요동을 치면서 나타 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어쨌든 난 끈의 이미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 하면서 천마장이 끈에 잡아당겨져서 붕괴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에 따라 멀쩡했던 천마장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천마장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파문의 장막이 심하게 요동쳤다. 천마장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풍천마 자레드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듯 더 이상 의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면 흔들리는 천마장을 유지하느라 날 공격 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쨌든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천마장의 붕괴를 유도했다. 펑- 퍼엉- 끈의 잡아당김에 의해서 마침내 천마장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 치 강을 막아놓은 둑이 터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한 번 붕괴되기 시작한 천마장은 급속도로 없어져갔다. "크윽! 내 천마장이 무너지다니……!" 천마장이 걷혀지자 계속 천마장 안의 바람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풍천마 자 레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마장을 유지시키지 못한 충격에서인지 그의 표 정은 상당히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자레드가 나에게 공격을 하지 못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난 머리 속에서 그의 마음과 몸에 끈을 연결시키는 상상 을 떠올렸다. 만약 풍천마 자레드가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면 그의 정신과 몸에 끈을 연결시키는 작업은 매우 어려웠을 테지만, 다행히 아주 얌전히 서 서 인상만 팍팍 쓰고 있었기 때문에 끈 연결 작업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 다. "풍천마 자레드! 넌 끝이다!!!" 끈의 연결 작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난 그렇게 소리치며 풍천마 자레드에게 연결시킨 끈을 조작했다. 끈의 조작은 모두 내 의지대로 행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마장을 붕괴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정신력을 잡아먹었다. 그렇지 만 다행히 아트로포스가 어깨 통증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내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끈 조작을 도중에 그만두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 다. "으아악ㅡ!!!" 끈이 내 생각대로 움직이자 풍천마 자레드는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의 시간은 잠깐이었다. 끈 조작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풍천마 자레 드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금방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크으으……." 풍천마 자레드는 땅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호흡을 내쉬었다. 그 사이, 난 아트로포스의 어깨 부상과 내 등의 부상을 끈의 조작을 통해 치료했다. 한 마디로 끈으로 상처를 꿰매고 이어 붙이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치료의 완성도나 치료 시간을 비교해보더라도 마법에 의한 치유보다 끈에 의한 치유가 월등히 우수했다. 문제는 끈을 다룰 때 무지막지한 정신력이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후우…… 피곤해 미치겠군. 역시 십년수의 열매만으로는 끈 조작 시에 소모 되는 정신력을 보충할 수가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아트로포스의 도움을 받 도록 조치한 건 정말 잘한 일이라니까. "이제 괜찮아, 로스?" "아, 네. 괜찮아요. 근데 자레드는……?" 아트로포스는 아직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풍천마 자레드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난 간단하게 풍천마 자레드의 상태를 설 명해주었다. "녀석은 지금 절망 중이야." "……?" 내 설명이 너무나 간단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고개 를 갸웃했다. 어쨌든 난 풍천마 자레드에게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이미 녀 석에게 공격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녀석 앞에 서도 전혀 겁 나지 않았다. 물론 그 공격 능력을 없앤 인간은 바로 나였다.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냐?" 풍천마 자레드는 여전히 시선을 땅바닥에다 둔 채 나에게 질문만을 던졌다. 마침 그 질문은 아트로포스도 했던 것이라 이번 기회에 아트로포스나 풍천마 자레드에게 자세히 설명하기로 했다. "지금 넌 평범한 인간이 된 거다. 네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풍천마로서의 능력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리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물론. 난 중용자니까." "후후……." 내 설명을 다 들은 풍천마 자레드, 아니 이제는 평범한 인간이 된 자레드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천마계 서열 10위권 안에 드는 실력자였던 그가 한순 간에 모든 능력을 잃어버렸으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왜…… 날 죽이지 않고 이런 번거러운 일을 한 건가?" 흘…… 왠지 그 질문은 누구에게서 들은 것 같은…… 아, 그렇군. 이 녀석 아들이라는 마족 청년이 나에게 패배하고 나서 했던 질문이었지. 하여간 부 전자전(父傳子傳)은 부전자전인가 보군. 둘 다 똑같은 인간에게 패배하고 똑 같은 질문을 하니까 말이야. "날 건드렸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곱게 죽을 생각을 하다니 꽤 대담 하군." "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대가인가?" "평범하게 살아보라는 거다. 남에게서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느껴보라는 거지. 특히 너 같이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가 그것을 한 순간에 잃었을 때의 허탈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 잠시 동안 자레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녀석의 키가 나보다 5cm 가량 컸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난 고개를 약간 들어야했다.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뚫어 져라 쳐다보고 있는 상태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자레드였다. "거짓말 마라. 넌 내게 대가를 치르게 하기보다는 단순히 날 죽이기 싫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날 두면 나중에 또다시 싸움을 하게 되 기 때문에 내 능력을 없앤 것이고. 틀렸나?" "……." 흘…… 역시 눈초리가 날카롭군. 내 얼굴 표정이 그렇게 서툴렀나? 난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뭐 어쨌든 들킨 이상 굳이 숨길 필요도 없지. "잘 아는군. 알았다면 그만 내 앞에서 사라져." 난 자레드에게서 등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사라지는 쪽이 자레드가 아니 라 나라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긴 했지만 어쨌든 자레드와 계속 낯짝 을 맞대기는 싫어서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내가 몇 발자국 걷지도 못했을 때 자레드가 날 불러 세웠다. "내 아들 녀석을 살려줬다고 들었다." 헐…… 그 소식을 들었단 말이야? 그래도 아들에 대한 걱정은 있었나 보군. 나 같으면 아들한테 중용자를 치라는 미친 명령은 내리지도 않는다! "아들을 죽이지 않은 것에 고마움을 표한다. 난 이제 아들과 조용히 살 테 니 앞으로 얼굴을 맞댈 일은 없을 것이다." 뚜벅뚜벅- 자레드는 나보다 빠른 걸음걸이로 날 지나쳐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대로 언덕을 넘어 다른 마을로 가는 것보다는 아까 점심을 먹었던 그 마을로 내려가는 편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었다. "자레드!" 난 언덕을 내려가려는 자레드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아트로포스에게 부탁 해서 보석 하나를 받아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갑작스럽게 보석을 받은 자레 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난 그 보석의 의미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여비로 써라." "……." 자레드는 잠시 동안 손에 들린 보석을 내려다보았다. 그다지 비싸 보일 것 같지 않은 보석이었기 때문에 자레드가 이딴 거 필요 없다고 던져버릴 것 같 았다. 천마계 10위권 안에 드는 녀석인 만큼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데 익숙 해져서 겨우 보석 하나로 생활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딴 거 필요 없다!" 휙- 내 예상대로 자레드는 받은 보석을 다시 나에게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이내 발걸음을 돌려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다말고 제자 리에 멈춰 서더니 나에게 보석을 되돌려준 이유를 말했다. "천마계에서 내려올 때 여비는 충분히 가지고 왔다.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 는 여비도 충분하다. 너희들은 너희들 여비도 부족할 테니까 괜히 은혜 베푸 는 척 하지 마라." 흘…… 사람이 모처럼 덕을 베풀겠다는데 거절하다니…… 기분 나쁜데 저걸 확 죽여버릴까? 아니면 녀석이 가지고 있는 금품을 모두 뜯어버릴까? 가뜩이 나 여비도 부족한데 말이야. 뚜벅뚜벅- 자레드는 내가 뒤에서 열심히 갈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유유히 언덕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 역시 그의 아들인 마족 청년처럼 무엇인가의 압박감 에서 해방된 듯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비록 앞으로 자레드가 인간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이것 으로 모두 잘된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나도 아트로포스와 같이 여 섯 번째 성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하였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23장:반나절 아르바이트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059 게 시 일 :01/01/12 20:12:23 수 정 일 : 크 기 :10.2K 조회횟수 :47 <제 23 장> 반나절 아르바이트 웅성웅성- 나와 아트로포스가 코딱지만한 나라인 '사일러드'의 수도인 '사일러드' -사 실 도시 하나가 나라 하나였다- 를 지나갈 때였다. 사람들이 벽에 줄줄이 붙 여놓은 광고지 같은 것을 보면서 열심히 웅성대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 가 버리려고 했지만, 한 번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트 로포스와 함께 그 광고지 앞으로 걸어갔다. 【제 2 회 강자(强者) 선발 대회 개막!】 【우승 상금 : 순위별로 10만 사사드, 5만 사사드, 1만 사사드】 【참가 자격 : 자신이 강자라고 생각하시는 분!】 【대회 참가 비용 : 없음! 몸만 있으면 됨!】 【대회 일시 : 9월 28일 오전 10시】 【대회 장소 : 사일러드 궁전 앞마당】 【단, 상금을 받으신 분들은 의무적으로 사일러드 국왕님의 부탁 하나를 이 행해야 합니다! 별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 많은 참가 바랍니다!】 "……." "……." 광고지를 모두 읽은 나와 아트로포스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 았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광고지를 읽은 소감을 얘기했다. "구린 냄새가 팍팍 나는 대회다." "그러네요. 그냥 무시하는 게 좋겠어요." 그렇게 의견의 합치를 본 우리는 즉시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러나 주변 에 몰려든 사람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열심히 부대끼면서 어렵사 리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인파를 비집고 나와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도 간신히 빠져 나와서 정신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몰려드네요." "뭐 강자 선발 대회인가 뭔가 때문이겠지. 상금이 엄청나니까 말이야." 흠…… 10만 사사드면 원화로 얼마나 되려나…… 대충 물가를 때려 맞춰보 면 거의 5천만원 정도일 것 같은데…… 그 정도면 인간들이 눈에 불을 켜는 것도 당연하겠지? 근데 이 조그만 나라가 니아르 제국의 화폐를 그대로 사용 하나 보네? 뭐, 작은 나라니까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것보다는 널리 쓰이는 제국의 화폐를 쓰는 게 낫겠지. "어쨌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태양이 중천에 걸려서 햇빛을 내 정수리에 들이붓고 있는 시간이라 저절로 배가 고파왔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거리를 방황하다가 음식값이 싸 보이는 듯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싼 음식을 몇 개 시키고 느긋하게 음식을 기다렸 다. "내일까지 강자 선발 대회 신청을 받는다는데, 자네는 나갈 건가?" "당연히 나가야지! 돈이 얼마인데! 그런 돈이 쉽게 생기는 줄 아나?" "하지만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야. 도대체 사일러드 국왕이 부탁하는 일이 란 게 뭐지?" "그거야 우승하면 자연히 알게 되지 않겠나!" 가만히 음식점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강자 선발 대회 에 대한 얘기가 들려왔다. 그 중 나와 아트로포스가 앉은 테이블에서 가장 가까운 어떤 사람들의 말이 내 귀를 확 잡아당겼다. "그러고 보니 한 달인가 두 달 전에도 강자 선발 대회를 했지 않았나? 근데 어째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같은 대회를 또 개최하는 거지?" "글쎄 말이야. 사일러드 국왕이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 건지……." "또 1회 우승자들의 소식도 묘연하지 않나?" "그러게 말일세." 호오……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 대회인데? 만약 나한테 여유가 있었다면 한 번 출전해서 그 내막을 낱낱이 파헤쳤을 텐데…… 아쉽게도 난 성물 찾아 여행해야 하니 어쩔 수 없군. 너무 안타까운 일이야. 《네 녀석이 대회 나간다고 우승할 거 같냐?》 실버럭서스…… 내가 그런 대회에서 우승조차 하지 못하면 중용자라고 할 수 있겠냐? 우승은 당연한 거야! 문제는 사람들이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 도록 평범하게 싸워야 한다는 거라고! 《그냥 한 방에 상대를 죽이지 그래?》 물론 나도 그러면 편하지만…… 대회 나와서 사람 죽이면 그게 무슨 추태야? 대회는 즐기라고 있는 거라고. 거기서 살인하면 재미없어져. "식사 나왔습니다." 음식점 종업원이 시킨 음식을 우리 테이블에 놓았다. 그래서 난 실버럭서스 의 대화나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음식을 뱃속에 집 어넣는 것에 집중했다. 배고프다고 위벽을 갉아먹고 있던 염산은 음식물이 넘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물의 단백질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남 은 음식물은 십이지장과 소장으로 넘어가 완전히 소화되며, 나머지 찌꺼기는 대장으로 넘어가 마침내 대변으로 승화될 것이다…… 난 그 과정을 떠올리면 서 별 맛이 없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열심히 넘겼다. "아……!" 그때 갑자기 아트로포스가 크게 놀란 음성을 발했다. 물론 아트로포스답게 그 놀란 음성은 그리 크지 않아서 그녀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 나 난 굉장히 신경 쓰였다. "무슨 일이야?" "말도 안돼…… 이럴 수는……!" 내가 물었지만 아트로포스는 대답할 생각을 하지 않고 열심히 몸을 뒤적였 다. 그것은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난 상당히 불안해졌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 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내 바램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떡해요…… 여비가 모두 사라져버렸어요……!" "……." 아트로포스의 울 것 같은 표정을 보며 난 허탈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사람 들과 맞부딪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돈을 잃어버렸다면 아까 강자 선발 대회 의 광고지를 보고 나서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올 때 떨어뜨렸거나 소매치기 당한 게 틀림없었다. 흐아…… 나 미쳐…… 이미 음식은 거의 다 먹었는데 돈이 없다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그냥 무전 취식하고 도망쳐버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 지는 않은데……. 《그럼 외상으로 달아.》 실버럭서스…… 네가 음식점 주인이라면 처음 보는 인간에게 외상 같은 걸 허락할 거냐? 《절대 안 하지.》 알았으면 칼집에 찌그러져 박혀있어! "죄송해요…… 제가 보관을 제대로 해야하는데……!" 아트로포스는 정말로 울려고 했다. 돈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를 안심시켰다. "우선 식사는 다 하라고. 그리고 나서 내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내 생각 엔 아마 괜찮을 거야." "네……."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힘없이 대답하고 힘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 만 돈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음식을 마음놓고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 면 내가 과연 지금의 이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난 여유로운 표정으로 남 은 음식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 쩝…… 이를 어쩐다…… 외상은 안 되니까 뭔가 돈을 대신 지불할만한 게 있어야 하는데…… 뭘로 하지? 실버럭서스로 할까? 겉모양이 후진 녀석이긴 하지만 명색이 검이니까 음식값 정도는 하겠지? 《이 자식! 성물인 나를 팔아치울 작정이냐?!》 뭐 어때? 어차피 네 녀석이 내 옆에 있어봤자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데. 그 냥 불쌍한 녀석 구제해주는 셈치고 얌전히 고물상으로 가. 《넌 아직 내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았다고!》 얼레? 힘? 네 녀석이 언제 나한테 힘을 줬냐? 거짓말하지마. 그런 말로 내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러지? 내가 속을 줄 알고? 《내 말을 못 믿는 거냐?! 중용자는 반드시 성물의 힘을 흡수해야해! 지금 까지의 성물도 그랬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야! 지금 네 녀석이 날 버리면 넌 내 힘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게 돼!》 얼…… 그랬냐? 그럼 네 녀석이 나한테 주는 힘은 뭔데? 사람 트집 잡는 능 력? 아니면 사람 약올리는 능력? 《이그드라실……!》 "이드 님…… 식사 다 했는데요……." 나와 실버럭서스가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식사를 다 마친 아트로포스 가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표정은 나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비록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정말 괜찮을지 어떨지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런 상황이 된 이상 직 접 부딪쳐 보는 수밖에 없어서 난 아트로포스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 대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 12사사드입니다." 우리가 계산대 쪽으로 오자마자 종업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값을 말했다. 대부분의 가게 손님들이 보고 있는 계산대에서 돈 없다고 말하기에는 내 얼 굴이 두껍지 않았기 때문에 난 대신 말을 돌렸다. "저기, 음식점 주인장을 만나고 싶습니다. 어디 계십니까?" "……?" 내라는 돈은 내지 않고 다짜고짜 주인장을 찾는 날 종업원이 이상하게 쳐다 보았지만 곧 두말없이 주인장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주인 아저씨는 주방에 계신데……." "알겠습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난 종업원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즉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 어떤 종 업원도 내가 주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마치 이 음식점 주인 과 내가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따각따각- 치이익- 주방 안으로 들어서자 음식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식욕을 돋 구는 냄새도 풍겼다. 난 그 음식 소리와 냄새를 지나쳐 열심히 음식을 만들 고 있는 40대 정도의 아저씨에게로 걸어갔다. 주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 분 젊은 남성과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한 눈에 그 아저씨가 이 음식점의 주인 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실례합니다. 주인 아저씨 되십니까?" "……?" 정신없이 음식을 만들고 있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내가 말을 걸어오자 의 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다행히 주인 아저씨의 인상이 그렇게 사납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난 용기를 가지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음식을 주문해서 먹었지만 실수로 돈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음 식값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 내가 너무 정중하게 말을 했기 때문인지 주인 아저씨는 내가 무슨 말을 했 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음식값 대신 이곳에서 무급(無給)으로 하루 정도 일하고자 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너그럽게 용서해주십시오." 말을 모두 끝낸 나는 최대한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여 내가 진심임을 알렸 다. 그리고 주인 아저씨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차분히 기다렸다. 설 령 내 머리 위로 프라이팬이 날아오더라도 그냥 맞을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마음이 아니면 주인 아저씨의 마음을 풀 수 없기 때문이었다. "…… 결국 돈이 없다는 얘기인가?" 처음엔 말이 없던 주인 아저씨가 입을 열어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 질문 이 좋은 의도인지 나쁜 의도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난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예." "……." 다시 주인 아저씨의 입이 닫혀졌다. 난 지금 고개를 숙인 상태라 주인 아저 씨의 얼굴 표정을 살펴볼 수 없었다. 단지 정령들이 나에게 열심히 상황을 보고하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표정이 묘한 걸?" "화내는 건지 어처구니없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흘…… 정령들이 전혀 도움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구만. 내 진지하고 반성 적인 분위기 깨지 말고 그냥 조용히 틀어박혀 있어. 알겠냐? "나참 어이가 없군."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주인 아저씨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 역시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들이 먹은 음식값이 얼마나 되지?" "모두 12사사드입니다." "흠…… 비싼 걸 시키지는 않았군." 얼레? 왠지 주인 아저씨의 말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은데? 역시 짜장면 두 그릇 정도의 값이라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어쨌거나 잘 하면 그냥 가라고 할지도 모르겠는걸? ====================================================================== 다음편에는 심각한 욕설들이 직설적으로 몇 개 쓰였습니다... 이해하고 봐주시기를...-.-;; 제 목 :[사이케델리아] 23장:반나절 아르바이트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060 게 시 일 :01/01/12 20:12:49 수 정 일 : 크 기 :10.2K 조회횟수 :47 "됐어. 고개 들게." 주인 아저씨의 말에 따라 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많이 부드러워진 주인 아저씨의 얼굴 표정을 보며 그냥 가라고 할지 모른다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 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역시 내 편이 아니었다. "자네들은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하게." "……." 크으……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군. 그냥 가라고 할 줄 알았더니 일을 시키 다니…… 뭐 어쨌든 큰 소리로 욕 얻어먹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럼 열심히 일해볼까? 아차! 그러고 보니 아트로포스에게도 손님 들의 주문 받는 일을 시켰지? "주인 아저씨,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뭐지?" "로스, 그러니까 이 소녀에게는 주방 일을 시켜주셨으면 합니다." "왜인가?" "로스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게 되면 자연 찝쩍대는 인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럼 음식점 영업에 상당한 지장이 생기겠죠. 게다가 이 음식점에 예쁜 소녀 가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지게 되면 저희들이 가고 난 뒤에 뒤늦게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로스가 없는 것을 알고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로스는 주방에서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 로스의 요리 실력도 괜찮습니다." 난 장황한 설명으로 아트로포스를 주방에 묶어두고자 했다. 다행히도 주인 아저씨가 내 의견에 동의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주방에서, 난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물론 아트로포스 주변에 잭 오 랜턴과 운디네를 배치함으로 써 음흉한 생각을 가지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치한들을 퇴치하도록 했다. 웅성웅성- 식당 쪽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소란스러웠다. 대부분 강자 선발 대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보아 그 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하러 온 사람들 인 듯했다. 흘…… 모두 우락부락한 남자들이군. 아, 꽤 잘 생긴 청년들도 있구나. 얼 씨구? 잘 생긴 청년들 옆에는 예쁜 여자들이 있네? 일행인가? 역시 잘 생긴 녀석들에게는 예쁜 여자들이 붙는군. 부러워……. 《네놈 옆에는 로스가 있잖아.》 아, 그랬나? 그거야 내가 중용자니까 어쩔 수 없이 로스가 따라오는 거지. 만약 내가 중용자가 아니라면 로스가 날 따라오는 일 따위는 없었을걸? 《그야 그렇겠지.》 "어이! 주문 안 받아?!" 내가 멍하니 서서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만 보고 있자 한 종업원이 날 힐책 했다. 그래서 난 즉시 달려가 손님들의 주문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종업 원이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것을 본 손님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 다. 이런…… 실버럭서스를 허리에 차고 있는 게 일상이라서 녀석을 두고 오는 걸 잊어먹었다…… 아, 뭐 상관없어. 잘 둘러대면 되니까! "곧 강자 선발 대회가 열린다고 하길래 튀어 보이려고 검을 차봤습니다. 멋 지죠?" 난 최대한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손님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다행 히 내 표정이 착해 보였는지 그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가지 주문을 시켰다. 생전 처음 듣는 음식을 주문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외우려고 진땀을 뺐으나 어쨌든 첫 주문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 시간은 열심히 흘러갔다. 점심 시간에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손 님끼리의 사소한 충돌이 몇몇 있긴 했지만 그것은 그냥 자기들끼리 잘 알아 서 무마시켰다. 그래서 굳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주인 아저씨 가 저녁 대신 먹으라고 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나서 저녁 영업을 시작했을 때, 꽤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술 취한 인간들의 주정이 시작된 것 이다. "뭐야, 이 새끼야!" 와장창-! 술에 만취한 20대의 인상 더러운 청년 하나가 갑자기 테이블 위를 손으로 쓸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에게 욕을 했다. 그러자 욕을 얻어먹은 20대 후반의 왜소한 청년도 같이 맞섰다. 그 청년 역시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너 같은 새끼는 내 상대도 되지 않아! 집에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오 라고!" "지랄하네, 이 좆같은 새끼가! 죽고 싶냐, 앙?!" "아, 이 씹탱이 봐라? 그래, 어디 죽여봐! 죽여보라고!" "죽이라면 못 죽일 줄 아냐, 이 개새꺄!" 흘…… 오랜만에 욕설을 들었기 때문인지 상당히 귀에 거슬리는군. 게다가 술에 만취한 녀석들의 욕설이라 듣기에 더 짜증나는걸? 저것들을 죽여, 살려? 쾅-! 그때 먼저 욕을 했었던 인상 더러운 청년이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앉아있던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그 충격에 테이블이 두 쪽 으로 갈라졌다. 손바닥 내리치는 것으로 나무 테이블을 두 쪽 낸다는 것은 결코 범인(凡人)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저 더러운 인상의 청년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꼴깝 떨지마, 새꺄!" 인상 더러운 청년이 먼저 실력 과시를 하자 이번엔 왜소한 덩치의 청년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더니 부서진 테이블을 향해 단 한 번 검을 휘 둘렀다. 그러자 테이블이 여섯 조각으로 분리되었다. 헐…… 검을 한 번 휘두른 것처럼 보였지만 빠르게 한 번 더 휘둘러서 네 조각을 여섯 조각으로 만들었군. 나 같으면 여섯 조각으로 만든 후에 검을 되돌릴 때 한 번 더 베서 여덟 조각으로 만들겠다. 《너한테 그런 실력이 있을 거 같냐?》 날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당연히 없지! 《…….》 "어이! 거기 두 사람! 좀 조용히 해줄 수 없겠나? 지금 다른 사람들은 식사 중이란 말일세!" 더러운 인상의 청년과 왜소한 덩치의 청년이 서로 죽일 듯이 욕지거리를 퍼 붓고 있자 마침내 못 참겠는지 한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그 둘에게 주의를 주었다. 상당히 큰 덩치지만 비교적 잘 생긴 얼굴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이야…… 드디어 정의의 사도 등장인가? 뭐 저런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줘 야 나 같은 녀석이 일 저지르지 않게 되지. 어쨌든 내가 뒤에서 열심히 응원 해줄 테니까 아저씨는 저 인간들과 힘껏 싸우십쇼! "뭐야 넌?" 인상 더러운 청년이 그 아저씨를 보고 인상을 팍팍 썼다. 다치고 싶지 않다 면 찌그러져 있으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아저씨는 청년의 더러운 표정에도 굴하지 않았다. "싸우려면 밖에 나가서 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되겠는가!" "시끄러! 네가 뭔데 참견이야!" "이건 참견이 아니오! 난 두 사람 싸움에 끼어 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 소!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는 주지 말라는 것뿐이오!" 두 청년이 상당히 거칠게 나오고 있었는데도 아저씨는 화를 내지 않고 되도 록이면 말로 해결하려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 청년은 아저씨와 말로 해결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이 동시에 화풀이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기뻐하는 듯했다. "죽어버려!!!" "꺼져!!!" 마치 오랫동안 함께 했던 것처럼 두 청년은 양쪽으로 갈라져 우리의 아저씨 를 협공했다. 협공이 꽤 잘 들어맞는 것으로 봐서는 두 청년은 서로를 잘 아 는 사이인 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술김에 욕을 했긴 했지만 쉽게 공격을 펼치지 못하고 애꿎은 테이블만 아작낸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아저씨가 밖에 나가 싸우라면서 괜히 나서자 화풀이 대상을 찾던 두 청년이 기다렸다 는 듯이 그 아저씨를 화풀이 상대로 찍어버렸던 것이다. "쯧……!" 우리의 아저씨는 달려드는 두 청년을 보고 그 한 마디만 했다. 원래는 뒤에 어떤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두 청년의 공격이 빨랐기 때문에 느긋하게 말하 고 있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두 청년의 검과 주먹이 거의 코앞에 다다랐을 때 아저씨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까강- 쾅! 거의 동시에 검과 주먹이 아저씨에게 닿았으나 아저씨의 앞에 바람의 장벽 이 둘러쳐진 관계로 요란한 소리만 났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심 마음속으로 피가 튀기를 바랬던 난 그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마, 마법사?!" 우리의 아저씨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챈 두 청년은 크게 겁을 먹은 표정 을 지었다. 이 세계에서 마법사의 공격 속도는 검사(劍士)가 휘두르는 검보 다도 빠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 여실히 증명되었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 아저씨의 입에서 전기 충격 마법 이름이 뱉어지자 두 청년의 몸이 일순간 부르르 떨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아저씨의 전기 충격 마법에 의해 두뇌의 사고 능력이 잠시 정지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두 청년은 지금 기절한 상태 였다. 털썩- 두뇌에 의해 유지되고 있던 두 청년의 직립 상태는 두뇌가 기절 상태에 이 르자 곧바로 무너졌다. 음식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두 청년이 갑자기 쓰러지 자 혹시 우리의 아저씨가 두 청년을 죽이지 않았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숨은 여전히 쉬고 있는 두 청년의 모습을 보고 모두들 이내 관심을 돌려 갑작스런 소란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식사를 재개했다. "어이, 종업원! 이 녀석들 좀 밖으로 끌어내 주게. 난 아직 식사도 다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두 청년을 너무나 가볍게 처리한 우리의 아저씨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 게 말했다. 주위에는 몇 명의 종업원들이 있긴 했지만 내가 아저씨와 가장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에 나한테 부탁을 했던 것이다. 흐으…… 조금 멀리서 구경할걸. 가까이 붙어서 구경하니까 뒤치닥꺼리(표 준어는 뒤치다꺼리)를 떠 안게 됐어…… 그나저나 저 두 인간들을 어디다 내 다버리냐? 길바닥에 그냥 놔둬? 지금이 9월말이니까 길바닥에서 잠잔다고 얼 어죽지는 않겠지? "어? 너……!" 나에게 두 청년의 뒤처리를 맡긴 아저씨는 막 자리에 앉으려다가 뭔가 이상 한 듯이 날 다시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도 뭔 일인가 하여 아저씨를 쳐다보 았다. 그렇게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던 두 사람 중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 은 아저씨였다. "이드…… 여기서 뭐 하는 거냐?" "……?" 얼레? 저 아저씨, 날 아나? 목소리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긴 하지만 난 저 아저씨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데…… 언제 만난 적이 있었던가? 흐으 …… 기억력이 나쁘다 보니까 얼핏 본 사람은 전혀 생각이 안 난다니까. 문 제는 내가 저 아저씨를 얼핏 봤는지조차 불확실하다는 것……. "언제 만난 적이 있었습니까?" 상대에게는 실례되는 말이었으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안다고 할 수는 없 었기 때문에 난 즉시 반문을 했다. 그러자 우리의 아저씨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스승의 얼굴을 까먹어?" "……?" 에엥? 스승? 내가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오직 한 사람뿐 인데? 몸은 다가가기 두려울 정도로 더럽지만 성격은 괜찮은 인간……. "로스 누나는 어딨어?" 내가 트레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보다는 목소리에 실려있는 띠꺼움이 그 목소리의 주인 공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알려주고 있었다. "오브?!" "당연하지. 나말고 또 누가 있어?"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에 앉아 날 쳐다보고 있는 인물은 초록색 머리에 아름 다운 얼굴과 엷은 금색의 피부를 지니고 있는 보멜트족 소년 오브였다. 아무 리 눈을 씻고 다시 쳐다봐도 오브가 틀림없었던 것이다. "네가 어떻게 여기에……?" "그러는 아저씨는 왜 여기 있어? 로스 누나는 어디다 내팽개치고?" 헤어지고 나서 20일이 지난 뒤에 이 음식점에서 우연히 만난 오브는 상당히 거친 말투로 나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와 여행을 하면서 쓸데없는 말투만 배운 듯했다. 어찌됐든 난 오브 녀석보다는 트레이가 뭐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트레이에 대해서 물었다. "그건 그렇고 트레이 씨는 어딨냐?" "눈에 삐었어? 눈앞에 두고도 몰라?" "……?" 오브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 서 있는 아저씨를 가리켰다. 그의 말뜻은 이 아저씨가 트레이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트레 이라고 하기에 부적절했다. 우선 덥수룩한 수염이 없고, 무엇보다도 모습이 너무 깔끔했던 것이다. "정말 못 알아보는 거냐? 수염 좀 밀고 목욕 좀 한 것밖에 없는데. 제자가 스승을 몰라보다니…… 아무래도 제자를 잘못 키운 것 같다." "……!" 수염을 밀고 목욕을 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 잘생긴 아저씨가 인간 이 어디까지 지저분해질 수 있나를 보여주었던 그 트레이란 말이야? 허억… … 수염 좀 밀고 목욕 좀 했다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져 보이다니……! "트레이 씨……?" "그래, 임마. 이제서야 알아보는 거냐?" 내가 트레이라고 말하자 아저씨는 내 어깨를 탁탁 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물론 주위에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에 그의 웃음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난동을 부렸던 두 청년을 가볍게 제압한 사람이 음식점의 일개 종업원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인 듯 모두 이쪽으 로 시선을 돌리고 있어서 나에게는 트레이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런데 트레이 씨는 여기서 뭐하세요?" 일개 종업원이 손님과 얘기하고 있으면 다른 종업원이 왜 일 안 하냐고 하 면서 지적하는 게 당연했지만, 그 손님의 상대가 가게를 지킨(?) 마법사였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무전취식을 해버린 나에 게는 미안했다. "우선 얘기는 손님들이 뜸해지면 하기로 하죠. 그때까지 여기서 죽치고 앉 아있어요. 다른 곳으로 튀면 목숨을 보장 못 합니다." 난 그렇게 트레이와 오브에게 경고를 하고 난 뒤에 즉각 종업원의 신분으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트레이와 오브 말고도 한 사람이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라색의 머리를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른 아 저씨였는데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알리기라도 하듯이 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 다. 그리고 트레이하고 오브와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봐서는 그 들의 새로운 일행 같았다. 흠…… 20일만에 동료 하나를 영입했군. 연봉은 얼마나 줬을까…… 가 아니 라 트레이를 따라나설 생각을 하다니 저 사람도 참 대단해. 하긴, 트레이가 저렇게 때 빼고 광내면 그의 진정한 모습을 알 수가 없으니 따라나설 수도 있겠지. "끄응……!" "머리가……!" 그때 트레이의 전기 충격 마법에 기절해버렸던 두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주 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고 트레이가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여, 잘 잤는가?" "……!" 트레이를 본 두 청년의 표정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는 누가 먼 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음식점을 뛰쳐나가려고 했다. 트레이에게 당했으니 여기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 만 난 그런 그들을 잡아놔야 했다. 아직 저들은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악!" 콰당! 쾅! 내가 땅의 정령 노움을 이용해서 짧은 순간 땅을 진동시키자 열심히 달리던 두 청년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동시에 음식점 바닥에 처박혔다. 술에 취한 데다가 트레이에 의해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땅에 엎어진 것이라도 그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끄으……!" 흘흘, 꼴 좋군.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일부러 패배한 척해서 돈을 안 내고 달아나려는 고단수를 쓰다니 대단한 녀석들이야. 하지만 그걸 모두 꿰 뚫어본 난 더욱 대단하지. 《녀석들이 그렇게 똑똑한 줄 아냐?》 시꺼.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손님, 가시기 전에 음식값은 주고 가셔야죠." 난 두 청년이 엎어진 화풀이를 나한테 하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둘에게 다가 가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식비를 요구했다. 다행히 녀석들은 날 트레이로 착각했는지 가지고 있던 돈주머니를 죄다 던져주고는 재빨리 음식점을 떠나 버렸다. 두 청년이 너무 쉽게 돈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해졌 다. 흘…… 이래서는 내가 저 둘에게 금품을 요구해서 뜯어낸 것 같잖아. 난 원 래 음식값만 받으려고 했는데 이렇게 한꺼번에 주다니…… 뭐, 어쩔 수 없군. 손님이 팁으로 준 거니 음식값을 제외한 나머지는 내가 꿀꺽하는 수밖에. 《사악한 녀석. 실수로 돈을 모두 줘버려서 길바닥에 누워 자야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두 녀석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불쌍?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녀석들이 처음에 술 처먹고 난동을 부리지 않 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이건 모두 녀석들이 자초한 일이야. "어이! 여기 주문 안 받나?" 내가 손에 돈주머니를 들고 멍청히 서 있자 한 손님이 날 불렀다. 그래서 난 즉시 돈주머니를 내 옷 속에다 집어넣고 주문을 받았다. 손님들의 대부분 이 강자 선발 대회 때문에 이곳에 온 거라 내가 돈을 빼돌리든 말든 신경 쓰 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그런 소액의 돈이 아니라 10만 사사드의 거액이었 기 때문이었다. ……. 바쁜 저녁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오는 손님이 많이 뜸해졌다. 사실 술 먹고 난동을 부렸던 두 청년이 내놓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나와 아트로포 스의 음식값을 해결하면 지금까지 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이 음식점에 대한 인상이 별로 나쁘지 않았고 한 번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계속 종업원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 대체 로스 누나는 어디 있는 거야? 설마 지금 로스 누나가 여기 없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겠지?"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서 지금까지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있던 오브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20일만에 만난 오브의 어투는 상당히 거칠어져 있었다. 남자끼리의 여행을 하다보니 자연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한테 함부로 대하는 녀석은 가만둘 수 없었다. "시끄러 임마. 로스 보고 싶으면 거기 앉아서 잠이나 자! 일이 끝나야 만나 든 말든 할 거 아니냐고!" "쳇……!" 내 말을 들은 오브는 인상을 팍 쓰더니 이내 테이블에 엎어져 잠을 자기 시 작했다. 하지만 손님들의 수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자 얌전 히 잠자는 척했던 오브가 또 입을 열었다. "일 거의 다 끝나가잖아! 빨리 로스 누나 데려와!" "……." 흐으…… 쪼그만 녀석이 엄청 시끄럽게 구는구만. 저 녀석의 입을 바늘로 꼬매버려? 아니야, 그것보다는 입을 불로 지져버리는 게 더 효과적일 거야. 아, 그렇지! 차라리 모가지를 잘라버리면 간단하겠구나! 끼익- "……?" 그때 주방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한 소녀가 얼굴을 내밀어 식당 쪽을 쳐다보았다. 그 소녀의 얼굴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아트로 포스였다. "로스 누나!" 아트로포스가 주방에서 얼굴을 내밀자마자 오브는 얼굴에 함박 웃음을 머금 으며 그녀에게 뛰어갔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를 지키기 위해 배치시켰던 운디 네와 잭 오 랜턴이 웃으면서 달려오는 오브를 치한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오 브는 그 둘의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번쩍- "……!" 일차적으로는 잭 오 랜턴의 빛 공격에 의해 오브의 눈은 한순간 멀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운디네의 공격은 오브의 앞에 물을 고이게 하는 것이었다. 미끌- "우왓!" 콰당! 눈이 잠시 멀어버렸기 때문에 오브는 앞에 고인 물을 피하지 못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의 뒤통수가 땅바닥에 부딪쳐 피가 튀는 경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척추에 금조차 가지 않고 단순히 자빠 지기만 한 것이라 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안타까움을 금하래야 금할 수 가 없었다. "오브?! 괜찮니?!" 자기 앞에 꼴사납게 엎어진 인간이 오브임을 알아챈 아트로포스는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해하며 오브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잭 오 랜턴의 빛 공격에 잠시 시력이 저하되었던 오브는 시력이 돌아오자 아트로포스를 보고 굉장히 기뻐했다. "로스 누나! 보고 싶었어요!" "아, 응……." 갑작스런 재회였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기쁜 표정도 짓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다가가 트레이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트레이 씨도 있어." "아……!" 트레이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아트로포스는 정말로 오브 일 행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 듯했다. 오브를 끌어안으며 만나서 반갑다 는 둥의 말을 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아트로포스가 오브를 보고 웃고 있었 기 때문에 오브를 본 적 없는 운디네와 잭 오 랜턴도 공격을 멈추고 내 몸 속으로 귀환했다. 흘…… 그나저나 트레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도 아트로포스는 그가 트레이 라는 걸 단번에 알아맞추는구만. 놀라운 안목이야. 존경스러워∼ "근데 소환주님…… 여쭤볼 말이 있어요." 그때 내 몸 속으로 귀환한 운디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난 마 음속으로 뭐든 물어보라고 했다. 그러자 운디네는 잠시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이었다. "저 오브라는 아이…… 나쁜 자가 아니었던가요?" 얼레? 오브? 물론 오브야 극악인…… 아니 뭐, 악인이라고는 볼 수가 없지. 아트로포스에게 보기 역겨울 정도로 귀여움을 떠는 것뿐이 없으니까. "그랬군요…… 그것도 모르고 공격을 해버렸으니……." 헐헐, 전혀 신경 쓸 거 없어. 오브 녀석은 그 정도 당해도 오히려 부족해. 좀더 매운 맛을 봐야하는 녀석이라고. 근데 오브의 어떤 점을 보고 나쁘다는 인상을 받은 거야? 보통 오브의 귀여운 얼굴을 보면 그런 생각들을 잘 안 하 는데? "그건…… 소환주님의 기억에 남겨진 오브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좋지 않은 것들이라……." 아하하…… 뭐…… 그렇겠지. 오브가 나한테 귀엽게 군 적이 단 한번도 없 으니까 말이야. 사실 지금도 보면 녀석은 아트로포스나 트레이에게는 애교를 떨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거든. "모처럼 만났으니 우리 한 번 거나하게 마셔볼까!" 아트로포스와 오브가 재회하고 있는 모습을 보던 트레이는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다른 종업원들에게 술을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트레이 옆에 앉아있던 회색 로브의 마법사 아저씨가 그런 트레 이의 행동에 제재를 가했다. "트레이…… 자네가 술값을 낼 건가?" "큭……!" '술값'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트레이의 표정이 똥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언 제 그랬냐는 듯이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물만 홀짝홀짝 마셨다. 그러한 트레 이의 행동으로 보아 그에게는 술값을 낼 만한 돈이 없는 듯했다. "아, 그 분은……?" 자꾸 달라붙으려는 오브 때문에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트로포스 가 회색 로브의 아저씨를 발견하고 트레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트 로포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인지 트레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오브가 회색 로브의 아저씨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저 분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카이론'이에요. 아빠와 거의 동등한 실력을 가진 마법사죠." 헐…… 역시 마법사군. 하긴, 트레이의 목적은 실력 있는 마법사들을 모아 마나폭풍 저지단을 만드는 것이니까 동료가 마법사인 것은 당연하겠지. 그나 저나 오브 녀석, 트레이를 아빠라고 부르는군. 쯧쯧, 저런 녀석을 정말 아들 로 삼다니…… 트레이의 노후가 걱정된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 로스라고 하고 이 분은 이드 님이세요." 아트로포스는 자신의 소개와 내 소개를 동시에 해주었고 난 그저 회색 로브 의 마법사 카이론에게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게 서로의 소개 가 대충 끝나자 아트로포스는 날 끌고 트레이 일행의 테이블에 앉아 기쁜 듯 이 입을 열었다. "방금 주인 아저씨가 이 정도 일했으니 됐다면서 이제 가도 좋다고 하셨어 요." 오…… 그랬어? 그렇다면 이제 봉사활동은 끝난 건가? 뭐, 성물의 힘 때문 에 피곤하기는커녕 기운이 펄펄 흘러 넘치지만 그래도 무급 아르바이트는 그 만 둬야지. 이런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너희들…… 왜 여기서 일하고 있냐?" 일 끝났다고 좋아하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고 트레이가 기묘한 표정을 지 으며 물었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숨길 필요성도 못 느꼈기 때문에 난 사실대로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물론 내 성격상 자초지종은 지 극히 간단명료했다. "돈이 없거든요." "……." 내 말에 세 명의 일당들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그것에 대 해서는 묻지 않았다. 단지 트레이가 앞으로의 일을 물어왔다. "돈이 없다면 이제 어떻게 할 건데?" "……!" 헉! 그러고 보니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어! 돈이 없 으니 당장 잘 곳을 구할 수도 없는데…… 이를 어쩌지? 이 위기를 어떻게 타 개하면 좋단 말이냐……! "쯧쯧, 언제나 이런 음식점 일자리를 구해서 끼니를 때울 수는 없다고. 뭔 가 돈을 벌어놓지 않으면 여행하기가 아주 고달파져. 알겠냐?" 트레이는 내 앞날이 아주 걱정이라는 표정으로 입을 놀렸다. 그러나 트레이 옆에 앉아있던 카이론이 그런 트레이의 표정을 한번에 뒤집어 버렸다. "우리들도 돈이 다 떨어져서 돈을 벌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트레이는 수 중에 돈을 단 한푼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저 꼬마도 그렇고." "카이……!" "난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다.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 들은 이 작은 나라에 온 것이 아닌가."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 말을 제자 앞에서 하면 스승 체면이 뭐가 되나?" 흘…… 언제 트레이가 스승으로서의 체면이 있었냐? 항상 지저분하게 다니 는데 체면은 무슨…… 오히려 한때 중용자를 제자로 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 워해야지! "그래서 두 분은 무슨 방법으로 자금을 마련하실 생각이죠?" 그때 아트로포스가 트레이와 카이론의 잡설을 끊으며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 역시 그 점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둘의 대답에 주의를 기울였다. 질문을 받은 트레이와 카이론 중에서 대답을 한 사람은 트레이였 다. "뭐…… 우선 상금이 잔뜩 걸려있는 강자 선발 대회에 나갈 생각이다. 목표 는 나와 카이론이 우승과 준우승을 휩쓰는 거지." 얼레? 강자 선발 대회? 트레이와 카이론이 그 대회에 나간다고? 그 구린 냄 새가 풀풀 나는 대회에? 흘…… 역시 돈이 쪼들리니까 구린 냄새가 나든 말 든 상관 안 하는군. 하긴, 나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구나. "그럼 저도 강자 선발 대회에 출전하겠습니다." 난 트레이와 카이론 앞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상금이 자그마치 10만 사사드 인 이상, 어떤 목적으로 개최되는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 게 중요한 것은 오직 여행 자금뿐이기 때문이었다. "뭐?! 너도 나간다고?!" 내가 강자 선발 대회에 나가겠다는 말을 하자 트레이가 기절할 듯이 놀랬다. 난 왜 트레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멍청히 트레이만 쳐 다보았다. 트레이는 그런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죽일 듯한 시선을 보 냈다. "네 녀석이 나가면 우승은 불가능하다…… 난 반드시 우승해서 10만 사사드 를 손에 넣고 싶단 말이다…… 내가 우승하면 2만 사사드 정도 떼어줄 테니 까 가만히 구경만 해라…… 알겠지……?" "……." 흘…… 그런 소리를 손님들이 많은 저녁 시간에 했다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겠군. 소란을 일으켰던 두 청년을 가볍게 쓰러트린 마법사가 나 같은 녀 석에게 약해빠진 소리나 하고 있으니 말이야. "싫습니다. 저도 나가서 우승할 겁니다." 난 트레이의 앞에서 강자 선발 대회에 나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자 트레이는 자신의 얼굴을 내 얼굴에 바싹 갖다대며 협박을 했다. "이드…… 지금 스승과 한 번 싸워보겠다는 거냐? 제자는 얌전히 스승의 말 을 들어야 하는 거야. 내가 강자 선발 대회에서 우승해야 내 이름이 전 세계 에 알려질 거고 그렇게 되면 내 여행에 참가하는 인원이 늘게 된단 말이다. 이제 내 원대한 계획을 알았으니 강자 선발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거지? 그 렇지?" "싫은데요." "……." 내가 계속해서 출전 의사를 밝히자 트레이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이 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것을 보고 카이론이 의아한 표정으로 트레이에게 물었다. "트레이, 이 청년이 그렇게 강한가? 자네 같은 마법사가 대회에 나가지 못 하도록 말릴 정도라니 말일세." "그건 녀석이 중……." 막 '중용자'를 거론하려고 했던 트레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즉시 말 을 삼켰다. 그리고는 카이론이 의심하지 않도록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녀석이 출전한다니까 그때 직접 보면 알아." "……." 비록 더 이상의 질문은 던지지 않았지만 카이론의 표정은 절대 내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쪽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다가 트레이의 제자이기 때문 에 트레이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죄송해요, 이드 님…… 제가 바보같이 돈을 잃어버려서 이드 님이 그런 대 회에 나가시게 돼서……." 나와 트레이와 카이론의 일차 면담(?)이 끝나자 아트로포스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것은 트레이와 오브가 내 부주의로 인해 서 돈을 잃어버렸다던가 내가 돈을 모두 써서 돈이 없다는 것으로 착각할지 도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 두 사람은 아트로포스가 돈을 잃어버리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것은 오브의 놀란 얼굴로 인해 금방 사실로 드러났다. "로스 누나가 돈을 잃어버렸던 거예요?!" "응……." "흠흠, 그랬던가? 참 별일이군. 흠흠" 트레이 역시 내 잘못으로 돈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연신 헛기침 을 해댔다. 툭하면 모든 것을 내 잘못으로 생각하는 한 아저씨와 한 보멜트 족 소년을 어떻게 하면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을까 심사숙고를 하려다 그것 보다는 아트로포스를 위로하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되어 난 얼굴 가득히 웃 음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어차피 여행 자금이 필요했었으니까 잘된 거지. 게다가 이번 기회 에 다른 사람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면 내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러니까 얼굴 좀 펴라구. 로스가 얼 굴을 찡그리면 하늘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느낌이니까." "네……."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뭐야, 실버럭서스? 지금 나하고 한 번 붙어보자는 거야? 내가 언제 낯간지 러운 말을 했다고 그래? 난 지금 아트로포스를 위로해주고 있는 거라고! 《그래, 그래. 멍청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멍청? 바보? 그 두 개의 단어…… 같은 뜻 아니었냐? "그나저나 너희들은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돈도 없다면서." 트레이는 점차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져 가는 바깥을 가리키며 나에게 물었다. 확실히 돈이 없는 지금, 여관에서 잔다던가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만약 트레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길거리에서 아트로포스와 사 이좋게 서로 끌어안고 자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를 만난 지금,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트레이 씨가 제자 살리는 셈치고 여관비 좀 주십시오." "나 돈 없다." "……." 생각보다 트레이의 대답은 번개같았다. 이미 내가 자신에게 돈을 요구할 것 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급히 작전을 변경하여 카이론을 설득하 고자 했다. "카이론 씨, 죄송합니다만 여관비를 조금 빌려주십시오. 나중에 강자 선발 대회에서 상금을 타면 그때 이자 쳐서 갚아드리겠습니다." "글쎄…… 자네가 과연 강자 선발 대회에서 상금을 탈 수 있을지 없을지 확 신이 서지 않아서 그건 좀 곤란하겠네." 이런…… 카이론도 트레이처럼 의심이 정말 많군. 나처럼 믿음직한 녀석을 보면 그냥 돈을 빌려줘야지! 어쩔 수 없이 잔재주 좀 부려서 카이론을 설득 하는 수밖에 없겠군. "그럼 제 실력을 잠깐 보여드릴 테니 그때 결정해주십시오." "좋네. 얼마든지 실력을 보여서 날 깜짝 놀래켜 보게나." 카이론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히 승낙했다. 강자 선발 대회에 나가 려는 날 말렸던 트레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 이 기회에 알아보겠다 는 의지가 뚜렷하게 엿보였다. 그래서 난 그런 카이론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 한 마법이 뭐 없을까 궁리해야만 했다. 흐으…… 어떤 마법을 쓰냐? 정령들을 사용하면 더 편하겠지만 카이론은 내 가 마법사라고 알고 있으니 마법을 써야 할텐데…… 게다가 주변에는 아직 손님들이 몇 명 남아있어서 엄청난 마법을 쓰기에도 그렇고…… 아…… 갈등 만 생겨……! "뭐하나? 시간을 끌겠다는 건가?" 내가 계속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고 있자 카이론이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어떤 마법을 사용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카이론에게 제안을 했다. "카이론 씨가 주문을 하십시오. 그럼 어떤 마법이라도 제가 실현해 보이도 록 하겠습니다." "……!" 내 제안을 들은 카이론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심지어는 그의 얼굴에서 분 노조차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진지한 표정으로 카이론을 쳐다보았고,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챈 카이론이 약간 비웃음 섞인 말을 내뱉었다. "어떤 마법이라도 실현하겠다…… 좋네. 그럼 아주 기초적인 걸로 주문하지." 탁- 카이론은 품속에서 하나의 단검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전투용 단검이 라기보다는 숲 속에서 나뭇가지나 수풀을 자를 때, 또는 열매의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하는 종류였다. 물론 그 단검을 집어던지면 충분히 암기 수준이라고 도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단검을 테이블 위에 놓인 카이론은 나에게 마법 주 문을 했다. "자네는 워프를 해서 내 뒤로 몸을 이동시킴과 동시에 테이블 위에 놓인 이 단검을 워프로써 집어들어야 하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단검을 내 목 뒷덜 미에 살짝 갖다대면 되는 것이라네. 아주 기초적이지 않나?" "카이……!" 카이론의 주문을 들은 트레이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이론의 주문에 따르면 자신의 몸을 워프시키는 것과 다른 물체를 워프시키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동시 워프는 자칫 잘못하면 자료 전송에 혼동을 가져와 다시는 이승에 모습을 나타내지 못할 수도 있었 다. 즉, 카이론은 지금 보통의 마법사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고난이도의 마 법을 주문한 것이다. "흠, 정말 기초적인 마법이군요." "……!" 내 자신감 넘치는 말에 카이론의 얼굴이 묘하게 뒤틀어졌다. 아마도 그는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법은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거절할 것이라 생각 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관비가 걸려있는 이상, 난 그 어떤 마법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팟- 기분 나쁜 얼굴을 한 카이론과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한 트레이를 남겨두 고, 난 곧바로 마나회로를 가동시켜 워프를 했다. 또한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단검 역시 워프시켰다. 이미 마법 정도는 특별히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동시 워프도 전혀 어렵 지 않았다. 슥- "이 정도면 됐습니까, 카이론 씨?" 정확하게 카이론의 뒤로 이동한 난 워프를 통해 손 안에 들어온 단검으로 카이론의 목 뒷덜미를 살짝 찌르며 물었다. 내가 너무나 완벽히 과제를 성공 했기 때문에 카이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진땀을 뻘뻘 흘렸다. 어째서 트레이가 강자 선발 대회에 날 나가지 못하게 하고자 했는지를 뼈저리게 느 꼈던 것이다. 탁- 난 다시 단검을 테이블 위에 놓고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나서 당당히 카이론에게 여관비를 요구했다. 카이론은 내 실력을 충분히 감 상했기 때문에 두말없이 여관비를 주었다. 하지만 카이론의 무리한 주문을 내가 너무나 간단히 수행한 결과 나와 그들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 리고 그 날은 그렇게 묘한 침묵을 안은 채로 헤어졌다. <제 24 장> 강자(强者) 선발 대회 9월 27일. 사일러드 궁전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제 2 회 강자 선발 대회일의 전날 아침.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트레이 일행은 나란히 사일러드 궁전 앞으로 향했다. 내일 있을 대회에 선수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 웅성웅성-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대회의 선수 등록을 하고 있었다. 아 니,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선수 등록을 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봐서 강한 자가 등록하면 대회에 나가지 않고, 약해 보이는 자가 등록하면 대회에 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 로 극심한 눈치 작전이었다. "죄송하오, 길 좀 비켜주시오."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우리들은 선수 등록을 받고 있는 사일러드 궁전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난 사일러드 궁전을 힐끗 쳐다보 았다. 누구라도 궁전에 쉽게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궁전 주위에는 폭이 5미 터 가량이나 되는 연못이 둘러쳐져 있었고, 유일한 통로인 다리마저 올라가 있었기 때문에 날지 않은 이상 성 안에 침입하기는 어려웠다. "선수 등록을 하실 겁니까?" 우리가 궁전 앞, 정확히는 궁전의 다리가 놓이는 위치 바로 앞까지 걸어가 서 서자 그곳에서 선수 등록을 받고 있던 한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물었다. 나이는 50세 정도로 보였지만 조금 날카로운 인상에 마른 체형이었기 때문인 지 나에게는 간사함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예. 그런데 대회는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됩니까?" 트레이는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상당히 중요한 사실을 물었다. 대회가 어 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선수 등록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 이었다. "대회 진행은 간단합니다. 이 앞에 있는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저 상 자에 넣어두면 되니까요. 물론 참가 인원이 많기 때문에 이름이 같은 사람들 도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자신의 특징 같은 것을 간단히 적어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대회에서는 순수한 제비뽑기로 대결할 양 선수를 결정합니다. 양 선 수 중에서 승리한 선수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다른 상자에 넣고 다음 경기를 기다리는 식으로 대회는 진행되죠. 하지만 처음부터 강한 실력을 가 진 선수끼리 붙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사일러드 국왕님의 특권으로 패배한 선수를 다음 경기에 참가시킬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진정으로 강한 사 람을 뽑기 위한 사일러드 국왕님의 배려입니다." 흘…… 정확하게 대회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싸워서 이기면 된다는 거겠지. 그나저나 저 종이에 난 뭐라고 쓰지? 스슥-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 트레이와 카이론은 주저하지 않고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있었다. 트레이는 이름 외에 '마나폭풍 저지단의 수장 (首長)'이라고 적었고, 카이론은 '회색 로브의 마법사'라고 적어 넣었다. 아 트로포스나 오브는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옆에서 우리가 쓰는 걸 구 경하고만 있었다. 《너도 빨리 써.》 알았어, 임마. 재촉하지 말라구. 이름 외에 뭔가 멋진 문구를 생각해내야 하는데…… 무슨 멋진 말이 없을까? 으음……. 쓱쓱- 약간의 생각을 했던 난 귀찮아서 대충 갈겨썼다. 내가 종이에다 이름 이외 에 쓴 말은 '마법 정령 검사'였다. 이 세계에서는 정령을 다루는 자가 없기 때문에 이 정도만 쓰더라도 충분히 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쓰고 나서 할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금색의 도금을 한 상자에 종이를 집어넣었다. 너무 간단했으나 그것으로 선수 등록은 끝났다. "자, 이제 선수 등록도 끝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냐?" 내가 금색 상자에 종이를 집어넣는 광경을 보던 트레이가 나와 아트로포스 에게 물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지금 특별히 할 게 있을 리 없었다. 게다가 내가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면 오브가 날 죽일지도 몰랐기 때 문에 내키지는 않지만 트레이 일행을 졸졸 따라다녀야만 했다. "대회 시작 때까지 트레이 씨와 같이 다녀야겠죠." "흠…… 그렇군. 그럼 아침이나 먹으러 갈까!" 트레이는 자신이 돈을 내지도 않으면서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열심히 머리 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카이론은 자신의 돈주머니를 걱정스러운 듯이 살펴보았다. 현재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직 카이론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9월 28일의 아침해가 밝아왔다. 바로 사일러드 국왕 주최의 제 2 회 강자 선발 대회가 열리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어제 밤, 우승은 따놓 은 거라면서 트레이가 술을 무진장 마셔버렸기 때문에 트레이의 술 주정을 받아주느라고 나나 카이론이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컨디션은 그다지 좋 지 않았다. "끄응…… 머리가 쪼개진다……." 아침 9시가 되어서야 겨우 잠에서 깨어난 트레이는 술 냄새가 팍팍 풍기는 말을 내뱉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관비를 아끼느라고 나와 트레이, 카이 론은 같은 방에서 한꺼번에 잤기 때문에 트레이의 술 냄새를 고스란히 맡아 서 나 역시 정신이 몽롱했다. "빨리 출발해야 한다. 안 그러면 늦어." 카이론은 헤롱대는 나와 트레이를 보며 말했으나 그렇게 얘기하는 카이론 역시 약간 정신이 어질어질한 표정이었다. 이래가지고는 대회에 출전하기 전 에 자멸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난 급히 마법을 사용하여 나를 비롯한 트 레이와 카이론의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흐느적거리 며 일어나길 거부했던 트레이는 물론이고 카이론도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흘…… 어제도 진작에 마법을 쓸 걸 그랬어. 아, 하긴…… 어제는 트레이가 하도 정신없이 굴어서 마법 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지. 어쨌거나 이렇게 피 로는 회복됐으니까 대회 시작하기 전에 출발해야겠다! "세 분 모두 일어나셨나요?" 우리들이 열심히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에 아트로포스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그녀와 오브는 이미 준비를 끝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 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서둘러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 우 리들이 챙기고 나갈 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씻기만 하면 준비는 끝 이었다. 끼익- "미안, 어제 무리를 해서 늦었어." 밖으로 나온 난 우선 아트로포스에게 사과를 하고 즉시 대회가 벌어지는 사 일러드 궁전을 향해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 여관에서 사일러드 궁전까지 가 는 길은 지극히 간단했기 때문에 길치인 나도 그 길을 외웠던 것이다. "서둘러 가면 여유 있게 도착할지도 모르겠군." 내 뒤를 따라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던 카이론이 안도 섞인 말을 내뱉었다. 주위에는 우리처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사일러드 궁전으로 향하는 사람들 이 많이 뭉쳐서 다니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간대 가 안전하다는 불변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웅성웅성- 본래는 내 기억력에 의존해서 사일러드 궁전까지 걸어가려고 했지만 사람들 이 줄줄이 늘어져서 길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괜히 없는 기억력 되살려서 골 머리 썩힐 필요가 없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간대를 잡아야 목 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는 두 번째 불변의 법칙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궁전 성문이 열려있네요." 사일러드 궁전 앞에 도착한 우리들 중에서 아트로포스가 열려진 성문을 보 고 입을 열었다. 확실히 궁전의 성문을 열려져 있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꾸 역꾸역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 것으 로 봐서는 단순한 구경꾼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듯했다. 웅성웅성- 성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 만 성 안에 세워진 거대한 내부 건물 앞마당에는 꽤 큰 무대가 마련되어 있 었다. 웬만한 공격에는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돌로 만들어진 무대였다. 그리고 내부 건물, 즉 궁전의 발코니에서는 사일러드 국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로 보이는 소녀가 각자의 좌석에 앉아 몰려든 사람들을 내려다보 고 있었다. 또한 발코니의 양 측면에는 궁중 마법사 두 명이 언제라도 마법 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한 명의 검사가 궁전 마법사와 같이 있었다. 국왕이나 왕비, 아니면 공주를 노리는 자들이 기습을 가해올지도 모르기 때 문에 궁중 마법사와 검사가 배치된 듯했다. "이제 금방 시작하겠군. 거의 10시가 되어가니 말이야." 트레이는 궁전 앞에 마련된 시계탑을 보고 대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 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10시가 되자 열려있던 성문이 닫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꼭 우리들을 이곳에 가둬놓고 한꺼번에 몰아 죽이려는 수작 같았기 때문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불만을 제기했다. "어째서 성문을 닫는 거야?!"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 "우릴 여기서 죽일 속셈 아니야?!" 흘…… 사람들이 내가 물어볼 말을 대신 해주는군. 하지만 우리들을 죽일 생각으로 성문을 닫았다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한바탕 열나게 싸워준 뒤에 이 궁전에 있는 돈을 모두 갈취해도 상관없을 테니까 말이야. 차라리 그 쪽이 더 편하겠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자 한 우람한 아저씨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우렁차 게 소리를 질렀다. 그의 외침 소리에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그를 쳐 다보았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는 그 아저씨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우 렁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출전 선수 외의 사람들이 무단으로 대회장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 치요! 성 밖으로 나가고 싶으면 그대들의 오른쪽에 작은 쪽문이 있으니 그곳 을 통해 나가도록 하시오!" 갑옷 아저씨의 말대로 나를 기준으로 오른쪽 성벽에 작은 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쪽문의 양옆에는 인간들의 무단 침입을 막기 위해 네 명의 병사가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럼 이제부터 강자 선발 대회를 시작……!" 끼이악-! 갑옷 아저씨가 막 대회 시작을 알리려고 했을 때 하늘 위에서 예상치 못한 괴성이 들려왔다. 그 괴성은 분명 어떤 생물의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그 괴 성의 주인공이 궁전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헐…… 여기에도 저 배불뚝이 도마뱀이 있었네? 색깔이 누리끼리한 걸 보면 골드 드래곤인가? 뭐, 여기에서 저 골드 드래곤을 골드 드래곤이라고 부르는 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골드 드래곤이다.》 아, 그래? 그럼 저 골드 드래곤의 주특기는 뭐냐? 《하늘 나는 거.》 아니, 그거 말고 뭐 다른 능력 없어?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무 슨 브레스 같은 걸 쏜다든지 마법 같은 걸 사용한다든지 하는 능력 말이야. 《드래곤한테 그 따위 능력이 어디 있냐? 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인데! 드래곤은 그냥 드래곤일 뿐이야.》 "……!" 실버럭서스의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골드 드래곤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생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드래곤처 럼 특별하게 생긴 동물은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생각이, 완벽 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펄럭펄럭- 하늘을 죄다 덮을 듯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골드 드래곤이 성 바로 위까지 내려와 날개를 펄럭거리자 엄청난 바람이 성 안을 휩쓸었다. 그것이 나에게 는 충격적이었다. 골드 드래곤이 날개를 펄럭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날 때에 도 날개를 이용해 난다는 것이었고, 저 집채만한 덩치의 골드 드래곤이 단순 히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는 비과학적인 일이 날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 이다. "늦어서 미안해요!" 골드 드래곤이 잠시 허공에서 정체하고 있을 때 골드 드래곤의 등에서부터 한 여자가 폴폴 떨어져 내렸다. 입고 있는 옷이 나풀거리는 것인데다가 화려 했기 때문에 그 여자가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마치 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자! 넌 아무 데나 가서 놀고 있어!" 높이가 10미터 이상인 위치에서 떨어져 내렸는데도 사지 멀쩡한 그 여자는 골드 드래곤을 올려다보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열심히 두 날개를 펄럭거려 몸이 중력 방향으로 이끌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던 골드 드래곤은 살 았다는 듯이 급히 하늘 위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그 거대한 덩치의 골드 드래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사실 역시 나에게 동물은 불가 사의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지게 해주었다. "당신은 누구요? 대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나가주시오!" 하늘에서 골드 드래곤을 타고 내려온 여자를 가리키며 갑옷 아저씨가 호통 을 쳤다. 그러나 갑옷 아저씨의 호통에도 그 여자는 당당했다. "나도 이 대회에 출전한다구요! 괜히 소리지르지 마요!" 헐…… 기가 드센 여자 같군. 하지만 얼굴은 상당히 예쁜 걸? 화장을 잘 해 서 그러나? 하여튼 20세 중반쯤으로 보이고…… 웬 보석들을 주렁주렁 매달 았지? 손가락마다 반지를 꼈고, 목걸이도 휘황찬란하고 옷에조차 보석을 박 아 넣고…… 엄청난 보석 매니아인가 보구만. 웬만하면 눈깔도 보석으로 갈 아 끼우지 그래? 치아를 모두 금으로 바꾼다던가. 아, 그것보다는 차라리 피 부에 도금을 하는 게 낫겠다. "저 여자…… 보석 사냥꾼 아니야?" "맞아! 아름다운 보석만을 모은다는 그 여자!" "보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가 보석 같은 건 상금으로 걸려있지 않은 이 대회에 왜 출전하는 거지?" 사람들은 보석 매니아 여자를 보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수군대었다. 그 사람 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보석 매니아 여자의 등장은 의심스러웠다. 하 지만 다른 인간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 대회에 출전하는 것인가는 나하고 상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난 바로 신경을 끄고 갑옷 아저씨에게로 시선을 돌렸 다. "그럼 대회를 시작하겠소! 대회 방식은 저 발코니 위에 계신 마리요느 공주 님께서 상자에 들어 있는 종이를 두 개 뽑으면, 뽑힌 종이에 적힌 사람이 나 와서 실력을 겨루는 것이오! 승자는 자신의 종이를 대회장 옆에 마련된 상자 에 넣고 쉬면 되오! 단, 승자는 자신이 원하는 한 계속해서 경기를 할 수 있 소! 실력이 있다면 한 번 이기고 나서 다른 사람들의 경기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경기를 계속하는 편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일지 모르오! 물 론 그건 전적으로 승자가 결정할 사항이니 각자 좋은 선택을 하기 바라오!" 헐…… 만약 내가 계속 경기를 해서 출전 선수들을 모조리 탈락시키면 어떻 게 될까? 아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대회가 순식간에 끝나지 않겠어? 《그랬다가는 네 녀석이 중용자라는 사실이 들통나 버릴 거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귀찮다는 거지. 문제는 우승을 하긴 하되 아슬아슬하 게 해야 한다는 거니까 말이야. 너무 쉽게 우승을 차지하면 인간들이 내 정 체를 금방 파악해버리겠지. "단! 훌륭한 실력을 가진 선수끼리 초반에 붙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사일 러드 국왕님의 승인 아래 패한 선수도 경기를 계속할 수 있소! 그러니 강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 이오!" 흠…… 만약 이 대회가 미리 대전표를 짜고 하는 거라면 우승 후보에게 시 드를 배정해서 처음부터 우승 후보끼리 맞붙는 사태를 방지했겠지. 하지만 이 대회는 무조건 임의로 경기를 진행하니까 시드를 배정할 수 없어서 사일 러드 국왕에 의해 패자를 살린다는 규칙을 내세울 수밖에. 왜인지는 모르지 만 사일러드 국왕은 진정으로 강한 인물을 고르려고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승리의 조건은 상대가 패배를 시인하거나, 상대가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요! 경기 중 상대를 죽이는 것도 인정하겠소! 그러니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판단되면 기권을 하는 편이 좋을 것이오!" 얼레? 살인도 허용한다고? 그거 참 무서운 대회네? 살인 같은 건 허용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말 사일러드 국왕은 강한 자를 얻으려고 하는군. 그 이유가 무지하게 궁금해지는데? 도대체 강한 녀석들을 모아서 뭘 시켜먹 으려고 그러지? "그럼 지금부터 추첨에 들어가겠소!"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갑옷 아저씨의 긴 설명은 끝났고 그와 동시에 발코니에 앉아있던 마리요느 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발코니 안쪽 바로 앞에 놓인 상 자에 손을 집어넣었다. 공주답게 예쁜 얼굴이었으나 아트로포스보다는 예쁘 지 않았다. 그냥 미인 축에 낄 정도였던 것이다. 어쨌든 마리요느 공주는 금 색 상자에서 두 개의 종이를 꺼냈고, 발코니에 있던 검사가 그것을 대회장 위에 서 있는 갑옷 아저씨에게 던져주었다. 발코니에서 대회장까지의 거리는 어림잡아 5미터였고 던져진 것은 종이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정확하게 갑 옷 아저씨에게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헐…… 엄청난데? 저 검사는 분명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종이를 일직선 으로 날려보내다니…… 설마…… 무슨 무공 같은 걸 배운 건 아니겠지? 《저 검사는 방금 마나회로를 이용해서 종이를 운반한 거다.》 뭐? 마나회로를 이용해서 종이를 운반해? 어떻게? 《어떤 사람들은 고된 수행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마나회로를 건드릴 수 있 는 능력을 얻을 수 있어. 그것을 그들은 '기(氣)'라고 부르지.》 하하…… 그러냐? 《왜? 뭐가 이상하냐?》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계속해. 《그들은 기를 통해서 마나회로를 직접 건드려서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경 로로 날려보내거나, 아니면 마나회로를 이용해서 물체를 들거나 움직일 수 있어. 마법사는 피부에 건설한 마나회로를 통해 마나장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통해 외부의 마나회로에서 마나장을 유도하여 마법을 구사하지만 녀석들은 마나회로를 직접 움직이게 해서 놀라운 기술을 사용하는 거야.》 흠…… 그렇다면 마나회로를 상대의 몸에 칭칭 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 거나 마나회로를 가지고 상대를 직접 공격할 수도 있는 거야? 《그렇다고 하더군. 물론 지금까지 그 정도로 기를 수련한 인간은 보지 못 했지만 말이야.》 "……." 난 실버럭서스와의 문답을 통해 이 세계의 마나회로가 꽤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마나회로에는 공격적인 특성이 들어있는지도 몰랐다. 마법사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기 수련자가 상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경기의 선수들을 부르겠소! 먼저 회색 로브의 마법사 '카이론'! 그리고 세계 제일의 마법사 '에르크'!" 갑옷 아저씨의 우렁찬 외침 소리가 들렸고 호명을 받은 두 사람이 대회장 위로 올라갔다. 첫 경기부터 카이론이 나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괜 히 내가 떨렸다. 하지만 정작 호명을 받은 카이론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 니, 오히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 제 일의 마법사'라는 호칭 때문이었다. "자기가 무슨 세계 제일의 마법사야?" "저런 재수 없는 녀석도 나오다니!" "어차피 저런 녀석은 나오자마자 사라지게 되어 있어!" 사람들 역시 세계 제일의 마법사라는 호칭에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나 에르 크라는 이름의 젊은 마법사는 오히려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 내가 세계 제일이면 제일이지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 "……." 에르크가 하도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져서 입을 다물 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조용해진 틈을 타서 갑옷 아저씨가 경기 시작을 외쳤 고, 그와 동시에 카이론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잘난 척하는 녀석은 맘에 안 들어!" 피잉- 카이론의 첫 공격은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였다. 하지만 에르크 역시 파이어 애로우로 맞섰기 때문에 두 사람의 불화살이 허공에서 격돌하게 되었 다. 콰앙-! "파이어 볼(Fire Ball)!" 파이어 애로우끼리의 폭발이 사라지기도 전에 카이론은 파이어 볼을 날렸고, 에르크 역시 파이어 볼로 맞대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카이론이 먼저 공격 하고 에르크가 똑같은 마법으로 방어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아트로포스가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에르크라는 사람, 젊은데 마법 실력은 출중하군요." "음…… 확실히 그래. 젊을 때 강한 실력을 가지게 되면 잘난 척하는 경향 이 있지. 녀석도 아마 그런 경우가 아닐까? 대게 저런 놈들은 이런 시합에서 무참히 깨어지게 되어 있지만." 트레이는 자신이 마치 예언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트레이의 예 언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아무리 마나회로를 많이 깔았거나 마법 실력이 출 중하더라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정신력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 이었다. 콰앙! "크윽!" 카이론과의 계속되는 마법 격돌로 정신력을 많이 소모한 에르크는 이내 크 게 비틀거리며 헛점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그 기회를 카이론은 그냥 흘려 보냈다. 오히려 에르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권해라. 그렇지 않았다가는 정말로 다친다." "흥! 헛소리! 난 포기하지 않아!"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바로 세우며 에르크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소리를 지른 것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카이론에게 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난 자신의 능력도 모르고 무조건 행동하는 녀석들도 싫단 말이다!" 콰앙-! 카이론의 파이어 볼이 에르크 바로 앞에 떨어졌다. 기분 같아서는 에르크에 게 정통으로 먹이고 싶었겠지만 실력 있는 젊은 마법사를 죽여봤자 별로 득 이 될 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오늘 새벽,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서 자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습니다...ㅠ.ㅠ 다행히 지금은 난방이 들어오는군요... 역시 방은 따뜻해야해...-.-; ---------------------------------------------------------------------- 털썩- "으으……!" 파이어 볼의 폭발 충격에 휘말린 에르크는 잠시 허공에 떠올랐다가 그대로 대회장에 몸을 박았다. 이번에 당한 충격은 꽤 큰 모양인지 녀석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갑옷 아저씨가 그대로 경기를 중단시켰다. "승자는 이리로 와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집으시오!" 갑옷 아저씨의 지시에 따라 카이론은 자신의 종이를 집어들었다. 그러자 갑 옷 아저씨는 카이론에게 한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그대는 경기를 계속하겠소, 아니면 쉬겠소?" 헐…… 나 같으면 경기를 계속하겠는데…… 카이론은 에르크하고 싸우면서 쓸데없이 많은 마법을 썼으니까 그냥 쉬는 걸로 하겠군. "쉬도록 하겠습니다." 카이론의 대답은 내가 생각하던 그대로였다. 그래서 카이론은 자신의 종이 를 대회장 옆에 마련된 푸른색의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경기가 끝났고, 곧이어 마리요느 공주가 다시 추첨을 해서 다른 두 사람이 대회장 위로 올라가 격돌을 펼쳤다. ……. 경기는 꽤 시간을 질질 끌며 진행되고 있었다. 돈에 눈이 먼 인간들이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기 때문에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거의 반 죽이다시피 해야했던 것이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걸리고 위장에서 밥 달라고 아우성치 는 시간이 될 때까지 경기는 이제 1차 시합의 절반도 도달하지 않은 상태였 다. 너무 길게 이어지는 대회 시간 때문에 서서 관람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 앉아 하품을 하거나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흐아…… 짜증나 미치겠군. 이 경기에 나오는 마법사나 검사들의 실력은 볼 만한 게 없어서 재미도 없어. 모두 아마추어들만 모아놨냐? 어째서 프로들의 경기가 안 보이는 거야? 게다가 배도 고프니까 경기 관람에 집중할 수가 없 잖아……! "제가 점심을 사올게요, 카이론 씨. 죄송하지만 돈을 좀 빌려주세요." 점심 시간이 되자 아트로포스가 카이론에게 금품을 요구했다. 어제 저녁에 트레이의 술값을 치르느라고 수중에 돈도 별로 없는 카이론이었으나 점심을 위해서 가지고 있던 보석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다. 그 보석은 그렇게 아름답 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히 점심은 사고 남을 것 같았다. "그럼 저 갔다 올게요." 아트로포스는 오브를 데리고 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서 난 아트로포스 의 주위에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을 배치시켰다. 물론 운디네는 공기 중의 수 증기 속에 몸을 숨기고 잭 오 랜턴은 햇빛 속에 몸을 숨겨 아트로포스를 호 위하고 있었다. 흠,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이라면 충분히 아트로포스를 지켜주고도 남겠지. 오브 녀석은 굳이 지켜줄 필요 없으니까 죽든 말든 내버려두고…… 그나저나 이 대회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진짜 지겨워 죽겠어……! "…… 마나폭풍 저지단의 수장 '트레이' 대회장 위로 올라오시오!" 꽤 지루하게 이어졌던 경기 중에서 마침내 트레이가 호명되었다. 이제서야 트레이의 실력을 보게 되는가 생각하니 시선이 자동적으로 대회장으로 향했 다. 지겨웠던 경기 중 볼만한 경기가 생겨난 것이다. "시작!" 갑옷 아저씨의 외침 소리가 끝나자마자 트레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상대 방은 검사였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트레이를 치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 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기 속도보다는 마법 속도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승부 는 뻔했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스트레이트(Straight)!" "……!" 트레이의 손에서 뻗어 나온 번개는 빛의 속도로 날아가 검사의 몸에 닿았다. 그러자 검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대회장 위에 뻗어버리고는 다 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투 불능 상태가 된 것 은 확실했다. 호오…… 대회가 길어서 트레이도 짜증났나 보군. 첫 상대를 저렇게 쉽게 끝내다니 말이야. 대회 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승부를 낸 경기가 아닐까? "다음 경기도 하겠소! 추첨해 주시오!" 상대 검사를 가볍게 쓰러트린 트레이는 사일러드 국왕 내외가 앉아 있는 발 코니를 쳐다보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즉각 마리요느 공주가 추첨을 했고, 제 2 의 상대가 대회장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 시간은 유유히 흘러갔다. 트레이는 방금 전에 5번째의 상대를 쓰러트리고 유유히 대회장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건대 더 싸울 수 있는 기력은 있었으나 배도 고프고 다음 경기를 위해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그냥 이쯤에서 끝내겠다는 표정이었다. "대단한데, 저 마법사!" "마나폭풍 저지단의 수장이라고 했던가?" "근데 그게 뭐냐?" 사람들은 5명을 연달아 이기고 내려오는 트레이를 극찬했다. 트레이의 덕분 으로 지겨운 경기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현재까지는 트레이의 5연승이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다음 선수! 보석 사냥꾼 '요시아'! 그리고 ……" 트레이가 대회장을 내려오고 난 다음, 경기를 치르는 사람 중에서 보석 사 냥꾼 요시아라는 소리가 내 귀를 잡아끌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 가지였다. 아름다운 보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그녀가 보석이 걸 려 있지 않은 이 대회에 출전했다는 사실을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 보석 사냥꾼 요시아는 대회장 위로 올라갈 때 갑자기 날 쳐다보며 윙크를 던졌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윙크를, 그것도 얼굴이 예쁜 여자에게서 윙 크를 받은 나는 뭐가 뭔지 헷갈려왔다. 저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관심은 무슨 얼어죽을. 너한테 무슨 이상한 낌새를 느꼈기 때문에 저러는 거지.》 시끄러. 저건 분명 나한테 관심이 있어서야. 《그런 식으로 자기 위로는 하지 마라. 불쌍하다.》 콰앙-! 나와 실버럭서스가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는 동안 대회장 위에서 굉장한 폭 발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폭발음에 파묻힌 사람들의 경악에 찬 외침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즉시 시선을 대회장 위로 돌렸다. 그런 내 시야 에 잡힌 광경은 처절한 것이었다. 대회장 위에는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 을 정도로 손상을 입은 시체 한 구가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괜히 덤비지 말고 그냥 기권했다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을 텐 데." 대회장 위에서 시체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보석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요시아였다. 격렬한 전투를 한 것은 아닌지 그녀의 옷매무새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는 반대로 상대의 모습은 너무 비참했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사람들에게나 나에게나 섬뜩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휴…… 만약 내가 객기를 부려서 한 번 더 경기를 했다면 저 무시무시한 여자하고 붙었겠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트레이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요시아를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트레이가 5명을 물리치고 대회장을 내려왔을 때 그 다음으로 호 명된 사람이 바로 요시아였기 때문에 만약 트레이가 계속해서 경기를 했다면 저 요시아와 격렬한 경기를 치렀을 게 뻔했던 것이다. 흘…… 그런 의미에서 트레이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겠지? 난 요시아가 어 떻게 상대방을 죽여버렸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실력을 보건대 결코 쉬운 상대 는 아니야. 그런 상대와 싸운다면 설령 이기더라도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하 겠지. 다시 한번 트레이의 현명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자! "계속 싸울 테니까 추첨 부탁해요∼" 시체가 병사들에 의해 치워지자 요시아는 궁전 발코니를 향해 여전히 장난 스럽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녀의 장난스러움을 귀엽게 보 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들이었다. "다음 선수! 엘베르 시의 최강 검사 '밀렌'!" 갑옷 아저씨의 우렁찬 외침 소리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인 대회장 안을 쩌 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호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 누구도 대회장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시아가 방금 전에 상대방을 가볍게 죽이 는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었다. "엘베르 시의 최강 검사 밀렌! 지금 올라오지 않으면 자동 기권으로 처리하 겠소!" 갑옷 아저씨는 대회장 아래에 불규칙하게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소리쳤지 만 여전히 호명된 사람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게 아주 잠깐 동안의 시간이 흐르자 갑옷 아저씨는 여지없이 요시아의 승리를 선언했다. 부스럭 부스럭- "점심 사 가지고 왔어요." 요시아의 승리가 선언되고 또다시 도전자 추첨이 시작되었을 때 점심을 사 러 성밖으로 나갔던 아트로포스가 먹을 걸 잔뜩 싸들고 내 옆에 앉았다. 그 녀가 사 가지고 온 것은 주로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빵 종류였다. 그리고 오 브 녀석은 물이 가든 득 물통 하나만 달랑 들고 왔다. 어차피 이 세계의 사 람들은 물이 귀중하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 집에 들어가 물을 요 구하면 다 주는 형편이라 오브가 들고 온 저 물통도 어느 가게나 집에서 받 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자, 먹자 먹어!" 먹을 것을 보자 내 위장이 크게 경련을 일으키며 기괴한 신음 소리를 내었 기 때문에 난 즉시 빵 하나를 집어들고 열심히 뜯어먹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요시아의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고 도전자는 한결같이 대회장 위로 오르는 것 을 거부했다. 그래서 요시아는 5연승의 기록을 세운 트레이를 제치고 단번에 7연승을 기록했다. 그 7연승 중 첫 경기 빼고는 모두 상대방의 기권에 의해 획득한 것이었다. "정말 재미없게들 구네! 더 이상 있다가는 전부 기권패 하겠어! 좀더 재미 있는 대회를 위해서 난 이쯤에서 내려가겠어요!" 7연승에서 스스로 기록 세우기를 포기한 요시아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푸른색 상자에 집어넣고는 대회장을 내려왔다. 요시아가 스스로 대회장을 내려오자 아직 경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것으로 우승은 아닐지라도 3등 안에는 들지 모른다는 희 망이 생긴 것이다. 흘…… 상대방과 싸우지도 않고 내리 6승을 따내다니…… 역시 첫 시합에서 상대방을 잔인하게 죽임으로써 실력 없는 자들의 기를 팍 꺾어놓겠다는 수작 이었겠지. 아주 좋은 방법 같은데 나도 그렇게 할까? 《너도 살인을 할 거냐?》 글쎄…… 아까 죽은 인간이 첫 희생자였는데…… 역시 난 그냥 보통으로 싸 울란다. 어차피 천신계나 천마계 올라가면 질릴 정도로 피를 볼텐데 지금부 터 피를 볼 필요는 없겠지. 또각 또각- 대회장을 내려온 요시아는 일부러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더니 내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섰다. 갑작스런 요시아의 행동에 내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요시아는 허리를 숙여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대더니 한쪽 눈을 찡긋하 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저께 동시 워프 잘 봤어요, 귀여운 오빠." "……!" 그저께 동시 워프? 그렇다면 내가 트레이 일행과 처음 만나서 인사 겸 내 실력을 보여줬을 때 그 자리에 이 여자가 있었단 건가? 이런…… 그래서 아 까 대회장에 올라갈 때 나한테 윙크를 했던 거군. 근데 내가 동시 워프한 거 가지고 흥미가 생긴 것뿐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오빠 경기 잘 볼 테니 열심히 해요∼" 요시아는 그 말을 끝으로 이내 자기가 앉았던 자리로 걸어갔다. 마치 나와 아는 사이처럼 군 요시아 때문에 난 다른 사람들의 의문에 찬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시선들 중에서 가장 따갑게 느껴진 것은 아트로포스의 시선 이었다. "저 여자…… 아는 사이에요?" 그렇게 물어오는 아트로포스의 표정은 마치 옛날의 그녀를 보는 것처럼 딱 딱하고 무표정했다. 하지만 난 전혀 캥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대답 해 주었다. "저 여자는 날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저 여자 오늘 처음 봐." "……." 내 당당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아트로포스의 무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요 즘 들어 웃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갑자기 무표정한 얼 굴을 하니까 괜히 겁이 났다. 그래서 뭔가 그녀의 표정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정신없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옷 아저씨의 입에서 우렁찬 목소리 가 터져 나왔다. -------------------------------------------------------------------------------- "다음 선수! 마법 정령 검사 '이드'! 그리고 ……" "……!"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름이 불린 터라 난 가슴이 덜컥하는 느낌을 받아 야했다. 어쨌든 이름이 불렸기 때문에 난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런 날 보고 트레이가 안타까운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런! 요시아가 경기를 중단하지 않고 계속했다면 다음 상대는 이드였는데! 이드하고 요시아하고 둘이 맞붙으면 아주 재미있는 경기가 됐을 텐데 아쉽다!" "……!" 헉! 그러고 보니 요시아가 내려간 다음 내 이름이 불렸잖아? 으으으…… 하 마터면 저 마녀 같은 아줌씨하고 맞붙을 뻔했어…… 다행히 내 운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가 보군. "요시아가 말을 걸었을 정도면 결코 실력 없는 녀석은 아닐 거야!" "하지만 나이는 어려보이는데?" "나이 어린 거랑 실력이랑 무슨 상관이냐! 따지고 보면 요시아도 나이가 어 린 거잖아!" 아까 요시아의 돌발적인 행동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나에게로 몰려 있었다. 그래서 난 요시아에게로 시선을 돌려 지금 요시아가 뭘 하고 있는지 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그녀의 얼 굴이 '한번만 더 싸울걸!'하는 안타까움을 가득 담고 있을 뿐이었다. 저벅저벅- 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대회장 위로 올라갔다. 밑에서 볼 때는 잘 몰랐지만 막상 올라와 보니 대회장 무대는 꽤 엉망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재질의 돌로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연달아 터지는 마법에 견딜 수 없었던 것 이다. "어? 저 녀석, 빵은 왜 들고 있지?" "설마 빵이 무기?" 내가 대회장 무대 위를 한번 쓱 훑어보았을 무렵 사람들의 입에서 기묘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난 내 손을 살펴보았다. 내 손에는 사람들이 말 한 것처럼 먹다 만 빵이 들려있었다. 아까 빵을 먹다가 요시아의 돌발 행동 에 놀라고 갑자기 내 이름이 호명되어 놀라서 빵 먹고 있던 걸 새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아직 빵도 다 먹지 않았는데 바로 경기라니! 게다가 쪽팔리게 빵 을 들고 대회장 위에 올라오다니…… 아…… 내 이미지 마구 뭉개지는구나… …! 앙- 쩝쩝- 기왕 빵을 들고 올라온 이상 안 먹을 수도 없어서 난 대회장 위에서 맛있게 빵을 먹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갑옷 아저씨의 경기 시작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내 상대가 된 어떤 검사가 나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날 우습게 보지 말란 말이다!!!" 경기가 시작되고도 맛있게 빵을 먹고 있는 나 때문에 화가 난 검사는 빠른 속도로 뛰어와서 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내 몸은 날카로운 물체가 다 가오자 반사적으로 그것을 피해버렸다. 게다가 나 역시 빵을 먹으면서 검사 의 검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피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붕- 슈욱- 연달아서 허공만 가르는 검은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검에 맞아주면 내 붉은 피가 대회장 위를 아름답게 수놓을 게 뻔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뭐야! 제대로 싸우란 말이다!" "언제까지 피하고만 있을 거냐!" "빵을 무기로라도 쓰란 말이야!" 계속 피하기만 하는 날 사람들은 열렬하게 비난했다. 물론 나 역시 피하고 만 있기는 싫었다. 하지만 아직 빵도 다 먹지 않은 상태에서 싸울 수는 없었 기 때문에 빵을 다 먹으면 그때부터 제대로 싸울 생각이었다. 붕- 붕- 팟-! 정신없이 날아오는 검사의 검을,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완벽하게 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트로포스의 아버지인 텔하고 지옥 훈련을 했다지만 이건 결코 그 훈련의 성과라고 볼 수는 없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 실력이 늘었다고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놈 실력이 좋아진 게 아니다. 바로 나 때문이지.》 뭐? 너 때문에? 그게 무슨 한 겨울에 난방 꺼진 집에서 자다가 이불 걷어차 는 소리야? 헛소리하면 가만 안 놔둔다? 《저번에 말했잖아. 중용자는 성물의 힘을 흡수한다고. 그러니까 너도 지금 까지 나와 같이 있으면서 내 힘을 흡수한 거다. 물론 네가 잘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말이야.》 그러냐? 그럼 넌 나한테 어떤 힘을 주고 있는데? 《지금 넌 내 힘을 사용하고 있는 거다.》 "……?" 내 몸을 베기 위해서 정신없이 날아오는 검을 보며 난 실버럭서스의 말뜻을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대체 지금 내가 어떤 능력을 사용하고 있 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현재 난 검사의 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으나, 그것은 초월의 꽃 열매를 먹어서 생긴 초중력의 능력으로 움직인 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실버럭서스의 힘이라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머저리 같은 녀석!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내 능력은 바로 반사신 경의 향상이란 말이다! 네 같잖은 능력으로 저 검의 움직임을 그렇게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냐?!》 흐음…… 생각해보니 그렇군. 확실히 예전 같으면 검이 거의 내 몸에 닿을 정도가 되어서야 피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검의 움직임을 완전히 보면서 피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생각보다 쓸모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실버럭서스. 《그런 말을 하면 넌 내가 기뻐할 거라 생각하냐?》 난 널 기쁘게 해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도 너한테 기쁨 같은 거 받고 싶지도 않다.》 붕- 붕- 여전히 검사의 검은 허공만을 사정없이 가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검사의 표정에는 초조함과 수치감이 어려있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냥 포기하겠 지만, 그래도 검사가 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피 하는 것밖에 없다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듯했다. 게다가 내가 검 사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만큼 체력이 뒤질 가능성도 있어서 감히 기 권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고로 하나 말해두겠는데, 네 녀석이 내 힘을 모두 흡수하게 되면 난 잠 들게 된다.》 뭐? 잠들어? 죽는다는 거냐? 《죽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잠드는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식을 잃고 그 냥 평범한 검이 되는 거지.》 오…… 그러냐? 그거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그럼 언제 네 힘이 나한 테 모두 흡수되는데?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네가 6번째 성물의 힘을 흡수할 때일 거다. 웬 만하면 내가 이 천재적인 머리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참 아쉽다.》 아니, 전혀 안 아쉬워. 넌 차라리 가만히 잠드는 게 날 도와주는 거야. 아 쉬워할 필요 전혀 없으니까 걱정을 마라. "이 자식!!!" 붕- 붕- 붕- 내가 계속해서 피하고만 있자 더 이상 검을 휘두르기에도 지친 검사가 소리 를 고래고래 지르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공격은 하지 않고 피하기 만 하니까 짜증이 일어날 대로 일어나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검사의 모습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에 난 급히 마지막 남은 빵 조각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쩝, 빵을 먹었으니 우유를 마셔서 마무리를 해야하는데…… 적어도 물이라 도 마셔서 입가심을 해야하는데…… 여기는 대회장 위니까 그럴 수도 없고… … 어쩔 수 없이 순식간에 경기를 마쳐서 물을 마셔야겠다! "자,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빵을 모두 먹어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나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는 검사에 게 예고를 날렸다. 그리고 나서 오랜만에 실버럭서스를 뽑아들고 검사 앞에 섰다. 비록 검으로 싸운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지만, 검의 움직임이 모 두 보이는 이상 한번 검을 가지고 싸워보고 싶었던 것이다. 《빨리 끝내고 물 마실 생각 아니었냐? 네 녀석이 검으로 싸우면 끝이 안 날 텐데?》 깡-! 날 비웃는 실버럭서스를 무시하고, 난 검사에게 최초의 일격을 가했다. 제 대로 검 다루는 걸 배워본 적도 없는 내가 내리친 일격이었는데도 검사는 내 검을 피하지 못하고 막았다. 그만큼 내 반사신경이 향상되어 내 검의 속도도 빨라졌다고 해석하는 게 옳았다. 좋아, 마법이나 정령을 쓰지 않고 단순한 검 휘두르기로 승리를 거머쥐어 볼까? 지금의 나라면 그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깡- 까강! 이미 검을 정신없이 휘둘러 많은 체력을 소비한 검사가 상대였기 때문에, 자세는 어설프더라도 내 검은 스피드를 무기로 계속해서 검사를 압박해 들어 갔다. 게다가 검과 검이 부딪치는 충격을 실버럭서스가 고스란히 흡수하여 상쇄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난 손이 저리는 현상도 없는 상태에서 마음껏 검 을 휘두를 수 있었다. 따앙-! 몇 번의 검을 주고받고 나서 잠시 후, 검사의 검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빛을 발했다. 그리고 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회장 위에 떨어져 내렸다. 그것 은 내가 실버럭서스로 그의 검을 올려쳐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큭……!" 검을 놓쳐버린 검사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내 검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난 여전히 검 끝을 그의 목에 겨눈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패배를 인정하십시오." "크으……내가 졌다……!" 인정하기는 싫겠지만 이건 누가 봐도 나의 승리였기 때문에 검사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지만 이내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괜히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개겼다가는 나에게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쳇……!" 검사는 어설픈 검술을 구사했던 나에게 진 것이 분한 듯이 잠시 이를 바득 바득 갈았으나 이내 놓친 검을 주워들고 대회장을 내려갔다. 검사가 대회장 을 완전히 내려갔음을 확인한 갑옷 아저씨는 날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대의 승리오! 계속 싸우겠소, 아니면 쉬겠소?" 흐음…… 기왕 올라온 거 남은 녀석들 모조리 쓰러뜨려서 대회 시간을 단축 시켜 주는 게 좋겠지. 이미 경기에서 진 사람들이나 구경꾼들은 빨리 우승자 를 확인하고 집에 가길 바랄 테니까 말이야. "계속 하겠습니다." 난 갑옷 아저씨를 보며 당당히 그렇게 말했고, 갑옷 아저씨는 내 대답에 즉 시 발코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리요느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내 다음 상대를 추첨하는 사이, 난 대회장 끝까지 걸어가서 지금 빵을 다 먹고 물을 마시고 있는 트레이에게 소리쳤다. "트레이 씨! 물 좀 주세요!" "……." 열심히 물을 마시고 있던 트레이는 갑작스런 내 부탁에 상당히 띠꺼운 표정 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내 요구대로 물통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대회장 위 에 서 있는 나와 트레이 사이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정도 되었는데, 그 정도 의 거리에서 물통을 정확히 나에게 던지는 것이 불안했는지 트레이는 순간 이동 마법인 워프를 사용했다. 탁- 내 앞에 물통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난 그것을 잡아 물통 속에 든 물을 벌 컥벌컥 마셨다. 마침 열심히 움직인 탓도 있어서 시원한 물을 마시니 하늘을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시원하게 물을 마신 난 물통을 다 시 트레이에게 보내주었다. 물론 돌려주는 방법은 트레이와 마찬가지로 워프 였다. "이봐, 방금 저 두 사람 워프를 쓰지 않았어?" "맞아, 분명 워프야! 그것도 물통을 완벽하게 전송했어!" "그러고 보니 저 사람도 다섯 명을 이기고 쉬는 중이잖아? 그렇게 싸우고도 벌써 마법을 사용하다니…… 엄청난 정신력이야!" "도대체 저 두 사람은 어떤 관계지?" 워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 나와 트레이를 보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군거렸다. 그러다가 트레이 옆에 역시 1승을 거두고 쉬고 있는 카이론을 보고 저 사람도 보통이 아니었다라면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이야기꽃을 피웠 다. 쩝…… 열심히 떠들고 있군. 뭐 자기들끼리 떠들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지 만 말이야. 근데 저 요시아라는 아줌씨는 왜 계속 나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도대체 나에게서 뭘 원하는 거지? 설마……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은 아닐까? "다음 선수는……!" 사람들이 떠들던 말던 갑옷 아저씨는 우렁찬 목소리로 다음 선수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 따라 한 명의 마법사가 대회장 위로 올라왔고, 난 그 사람과 싸웠다. 상대가 마법사이기 때문에 나도 마법을 이용하여 싸웠다. 하지만 상 대가 부상당하지 않도록 싸우느라 마음껏 마법을 쓰지는 못했다. ……. 시간은 유유히 흘러가 어느새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달아서 4명의 상대를 꺾은 나는 계속해서 기권하는 선수들 때문에 30분 동안이나 대회장 위에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 더 흘렀고, 마침내 난 대회장 아 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건 내가 패배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금색 상자에 든 종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난 1회전이 끝날 때까지 계 속 경기를 가졌던 것이다. 흐음…… 이것으로 1회전은 종료인가? 보니까 내 기록은 아주 화려한데? 연 달아서 5연승을 한 뒤에 나머지 12연승은 모두 상대방의 기권으로 따낸 거니 까 말이야. 내가 상대의 기량에 맞추어서 싸웠다는 걸 모두들 알아본 것 같 다. 뭐, 대회를 빨리 끝내고 빨리 돈 받고 빨리 성물을 찾아야하니까 차라리 잘된 거야. ===================================================================== 다음편은 언제쯤 올릴 수 있을런지...-.-; <제 25 장> 숨겨진 목적들 웅성웅성- 1회전이 끝나고 2회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은 나와 트레이, 그리고 카이론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열심히 수다를 떨고 있었다. 특히 그들 의 주된 화제 대상은 바로 나였다. 쓸데없이 보석 사냥꾼 요시아가 나에게 말을 건 데다 내가 무려 12연승을 기록했기 때문에 내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던 것이다. 《아직까지는 네 녀석이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 아무래도 저 요시아라는 여자는 주의해야 할 거다. 눈치도 장난이 아니 게 빠른 것 같으니까.》 실버럭서스의 말에 난 요시아 쪽을 쳐다보았다. 현재 요시아는 많은 남자들 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인간들이 잔뜩 몰려있어 확실히 볼 수는 없었으나 무 엇인가가 그들의 틈 사이로 빛나는 것으로 봐서는 보석 거래를 하던가 남자 들에게서 보석을 선물로 받고 있는 듯했다. "지금부터 2회전을 시작하겠소!" 어느새 대회장 위에 올라간 갑옷 아저씨는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실컷 떠 들고 있던 관중들을 잠재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리요느 공주가 푸른색 상자에서 두 개의 종이 쪽지를 꺼냈고, 곁에 있던 검사가 그 종이를 갑옷 아 저씨에게 날려보냈다. 종이를 받은 갑옷 아저씨는 더욱 우렁찬 목소리로 입 을 열었다. "선수를 부르겠소! 마법 정령 검사 '이드'! 그리고 회색 로브의 마법사 '카 이론'!" "……!" 헉! 첫 경기부터 나라고? 게다가 상대가 카이론? 이런…… 이거 최악의 대 전표인데? 어떡하지? 카이론을 떨어뜨리면 3등의 상금은 다른 녀석이 차지할 지도 모르는데……! 《카이론이 최선을 다해서 사일러드 국왕 마음에 들면 녀석도 3회전에 올라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넌 초반에 승기를 잡겠다고 삽질하지 말고 카이론이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 줘.》 호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좋아! 그렇다면 이번 경기에서 카이론을 이 긴 다음에 다른 상대들도 모조리 이겨서 바로 우승을 해버리겠어! 《그러다가 네 녀석이 중용자라고 알려지면 어쩌려고?》 아, 상관없어! 알려져 봤자 인간들 중에서 날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없으니 까 말이야! 내 상대는 오직 천신계와 천마계에서 놀고 있는 녀석들이라고! 《드디어 잘난 척이 하늘을 꿰뚫었구나…….》 "이드." 내가 대회장 위에 올라서자 뒤따라온 카이론이 날 불렀다. 그리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 다음 말을 이었다. "난 최선을 다해서 널 공격하겠다. 너도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다. 안 그러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글쎄요…… 과연 그렇게 될까요? 카이론 씨는 아무리 공격해도 저에게 상 처 하나 입힐 수 없습니다. 실력의 차이가 너무 현격하니까 말이죠." 난 최대한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입을 놀렸다. 카이론을 격발시켜 그가 먼저 공격을 가하도록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내 생각대로 카이론은 잘난 척의 극을 치닫는 내 말을 듣고 인상을 팍 쓰더니 갑옷 아저씨의 시작 소리 가 들리자마자 공격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었다. "경기 시작!"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카이론이 초반에 사용한 마법은 불화살 10개였다. 보통 마법사라면 그 엄청 난 개수의 불화살에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나에게는 유치한 수준으로밖에 보 이지 않았다. 콰콰쾅-! 10개의 불화살은 모두 나에게로 날아왔으나 내 앞에 쳐진 바람의 장벽 때문 에 그대로 터져 버렸다. 내가 10개의 불화살을 막고도 너무 멀쩡한 표정을 짓고 있자 카이론은 화가 치미는지 인상을 더욱 찌푸리더니 제 2 의 공격을 감행했다. "파이어 볼(Fire Ball) 파티션(Partition)!" 카이론이 사용한 마법은 파이어 볼을 여러 개로 분할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카이론의 머리 위에 지름 5미터짜리의 초 대형 파이어 볼이 형성되었고, 그 파이어 볼에서 수십 개의 작은 불덩어리가 갈라져 나와 나에게 쏟아졌다. 난 그것을 그냥 바람과 물을 사용해서 하나 하나씩 가볍게 막아내었다. 펑! 퍼펑! 퍼퍼펑! 수십 개의 불덩어리가 바람과 물에 가로막혀 터져 나가는 모습은 아주 장관 이었다. 그리고 나도 무슨 슈팅 게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이 모두 저지 당하는 카이론에게는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것도 막아봐라!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쿠웅-! 카이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 위에서 엄청난 공기 압력이 날 짓눌렀 다. 하도 그 압력이 엄청나서 돌로 만들어진 대회장이 조금씩 땅바닥으로 밀 려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조잡한 역압 마법으로 내가 쓰러질 리는 벼 룩의 눈꼽만큼도 없었다. "큭……!" 내가 포스 프레셔 언더(Under)로써 오버(Over)에 대항하자 카이론의 표정이 크게 뒤틀어졌다. 역압 마법은 계속 마나회로를 가동시켜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날 납작하게 만들려는 카이론이 자신의 정신력을 극도로 소모하는 것 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카이론은 마법을 거두지 않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듯이 계속해서 역압 마법으로 날 짓눌렀다. "카이론 씨, 역압 마법으로는 안 됩니다. 이미 지치신 듯한데 웬만하면 이 쯤에서 기권하시죠? 그게 카이론 씨의 정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은데요." "크으……!" 내 말에 카이론은 더욱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전력을 다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아주 약간의 힘만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서 허탈 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털썩- 마침내 더 이상의 정신력 소모를 감당할 수 없게 된 카이론은 대회장 위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완벽한 자멸이었기 때문에 설령 카이론이 사일러드 국왕의 마음에 들어 3회전에 올라간다고 해도 그 사이에 정신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매우 불투명했다. 이래가지고는 카이론을 3위에 올리고자 한 내 계획은 거의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패배를…… 인정한다……." 잠시 헝클어진 정신을 가다듬었던 카이론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하기 힘든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대회장을 내려가기 시작했 다. 관중들은 현격한 실력 차이로 패배하여 대회장을 내려가는 카이론에게 동정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카이론에게 이긴 나도 그랬다. "회색 로브의 마법사 카이론! 사일러드 국왕님의 배려로 다음 경기에 출전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소!" "……!" 그때 갑자기 갑옷 아저씨의 입에서 그런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대회를 하는 동안 처음으로 사일러드 국왕의 배려가 가동한 것이기 때문이었 다. "오! 저 사람도 3회전에 올라가게 됐군!" "역시 실력이 있어야 한다니까!" "근데 저렇게 지치고도 3회전 경기가 가능할까?" 한쪽에서는 사일러드 국왕의 처사가 매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이미 지쳐버린 선수를 3회전에 진출시켜서 뭐하냐는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3회전 진출 자격을 얻게 된 카이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회장 아래로 내려갔다. 내가 있는 한 3회전에 올라가도 우승은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대는 계속 경기를 하겠소?" 흘흘, 지금 팔팔한 날 보면서도 그런 물음이 나와? "계속 싸우겠습니다." 난 당당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고, 그런 내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방금 전에 그렇게 강력한 카이론의 마법을 정통으로 맞고도 아무렇지 도 않게 계속 싸우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천신이나 천마라고 수근덕 거리기도 했다. "다음 선수는……!" 어느새 추첨이 끝났는지 갑옷 아저씨는 내 상대의 이름을 불렀고, 그 사람 은 대회장 위로 올라와 나와 싸웠다. 상대가 마법사였기 때문에 나도 마법으 로만 상대해주었다. 그리고 결과는 나의 완벽한 승리였다. 아니, 그보다는 상대방의 처절한 패배라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녀석은 내 갖가지 화려한 마법 공격에 마법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았기 때문이었다. ……. 시간이 또 어느 정도 흘렀다. 1회전에서 쉬운 상대를 만나 쉽게 2회전에 올 라왔던 인간들은 겉모습만 화려한 내 마법에 넋을 잃고 그냥 패배를 인정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일러드 국왕의 배려를 받지 못하고 완전 탈 락하게 되었다. 어쨌든 난 2회전에서도 쉽게 5연승을 달성하여 순조로운 경 기를 했다. "다음 선수는 마나폭풍 저지단의 수장 '트레이'!" 호오…… 이번엔 트레이인가? 카이론은 나와 열심히 싸워서 3회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됐는데 트레이는 어떨지 모르겠군. 그나저나 트레이를 만났으니 어 떻게 싸울까? 단번에 끝내버려 약올리면서 끝내버려? "정말 오랜만에 네 녀석하고 싸우게 되는구나." 그것은 대회장에 올라오자마자 나에게 던진 트레이의 한 마디였다. 그의 말 투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트레이는 카이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전력을 다할 생각인 듯했다. 물론 그래야만 3회전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사일러드 국 왕에게서 받을 수 있었다. "시작!" 갑옷 아저씨의 시작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트레이의 발빠른 공격이 날아왔다. 트레이는 마법 이름 소리치는 시간도 아까운지 머리 속에서 마법의 이미지를 떠올려 마법을 사용했다. 그가 처음 사용한 마법은 빛의 속도로 상대를 제압 하는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스트레이트(Straight)였다. "……!" 그러나 번개가 나에게 닿기도 전에 내 몸은 워프를 통해 트레이의 뒤로 돌 아가 있었다. 한순간에 내 모습을 놓쳐버린 트레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 했고, 난 잠시 트레이의 뒤에 얌전히 서 있다가 그의 등을 발바닥으로 밀 듯 이 걷어찼다. 퍽! "윽!" 갑작스럽게 등뒤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하자 트레이는 크게 휘청거렸으나 이 내 몸을 돌리면서 내 머리를 팔로 베듯이 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움직 임은 내 눈에 모두 포착되어버려서 난 가볍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트레이의 무시무시한 팔 공격을 피했다. 부웅-! "어엇?!" 분명 기습적인 몸 돌리기에 의한 반격에 내가 맞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트레 이는 팔이 그냥 한 바퀴를 헛돌자 크게 놀란 음성을 내질렀다. 그 사이, 난 회전이 걸려서 지탱력이 많이 약해진 트레이의 다리를 내 다리로 걸었다. 그 러자 자연히 트레이의 몸은 허공에 붕 떠서 대회장 바닥에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다. 쿵! "으윽!" 육중한 트레이의 몸이 떨어지자 꽤나 큰 소리가 발생했다. 그 커다란 소리 는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어쨌든 난 넘어진 트레이에게서 조금 떨어 진 곳으로 간 뒤에 트레이에게 말했다. "제가 공격하기 전에 어서 일어나 공격하세요." "으으……!" 비록 내가 중용자라지만 아직 새파랗게 젊은 녀석에게 완전히 놀림 당하고 있으니 트레이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이의 2차 공 격은 자연히 거칠어지게 되었다. "시끄럿!!!" 트레이의 우렁찬 일갈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내 주위에 엄청난 양의 마나장 이 요동을 쳤다. 그 마나장의 파장이 나타내고 있는 마법은 바로 전격(電擊) 마법 중에서 가장 위력적인 라이트닝 쇼크 디스트럭션(Destruction)이었다. 그것도 내 두뇌 세포를 단번에 파괴하려는 듯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일격이 었던 것이다. 흘…… 트레이가 정말 화났나 보군. 아니, 그것보다는 전력을 다해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만났기 때문에 즐거운 거라고나 할까? 하여튼 트레이는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내겠구만. 그러다가 3회전에서 고생하면 어쩌려고 그러지? "엇?!" 내 머리 속에 디스트럭션을 먹여주려고 했던 트레이는 또 갑자기 내가 시야 에서 사라져버리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게다가 디스트럭션이 발동되는 영향으로 생기는 마나장이 워프 마법을 교란시켜 워프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는데, 그 효과가 나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기 때문에 당황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습니다!" "……!" 내가 소리를 지르자 트레이는 그때서야 내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고개를 쳐들어 날 쳐다보았다. 트레이의 머리 5미터 위에 여유 있게 떠 있는 나는, 날 올려다보고 있는 트레이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빨리 방어 마법을 치십시오! 안 그러면 저승에 떨어질 겁니다!" 우우웅- 내 피부에 깔려있는 마나회로를 완전히 가동시키자 엄청난 마나장이 발생하 여 기이한 울림소리를 내었다. 마나장이 울려서 소리를 낼 정도의 마법이란 거의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트레이는 즉시 방어 마법을 가동시켰 다. 난 잠시 트레이가 방어를 완벽히 했음을 확인한 뒤에 마법을 실현시켰다. "만천화빙우(滿天火氷雨)!" 그 자리에서 생각해낸 마법 이름을 외치면서 난 트레이를 향해, 정확히는 대회장 무대를 향해 마법을 쏟아 부었다. 그에 따라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 은 불덩어리와 얼음 덩어리가 대회장 위에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우왁!" "어, 엄청나다!" 쉴새없이 대회장 위로 쏟아지는 얼음과 불덩어리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필시 대회장 위에 있던 트레이가 완전히 죽 었을 거라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카이론 등의 일부 고위 마법사들 은 내가 결코 트레이를 죽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이드!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후후, 모르면 잠자코 보기나 하라고! 난 다음에 싸울 녀석들을 위해 봉사를하는 것뿐이야! 아, 이제 됐다! 남은 건 트레이가 서 있는 자리! 콰콰쾅-! 쉴새없이 대회장 위로 쏟아졌던 얼음과 불덩어리는 이제 트레이가 서 있던자리에 집중되어 떨어졌다. 물론 그 전에 트레이는 대회장 한쪽 구석으로 옮겨 놓았다. 방어 마법으로 열심히 폭발의 충격을 막아내고 있던 트레이를, 억지로 워프시켜 안전한 곳으로 데려놓았던 것이다. 뭉게뭉게- 드디어 나의 대 공사가 끝을 맺었고, 공사의 과정 중에 생긴 엄청난 돌 먼지들이 대회장 무대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게로 뻗어나갔다. 돌 먼지는 결코 몸에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난 바람의 정령 실프를 불러 그 돌 먼지들을 모두 하늘 높이 말아 올렸다. 휘이잉- "어?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먼지를 누가 치웠나?" "근데 대회장 위에 있던 그 마법사는 어떻게 됐지?" 돌 먼지가 말끔히 사라지자 사람들은 모두들 눈을 빛내며 대회장 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트레이가 서 있는 위치만 다를 뿐 멀쩡히 서 있는 것을 보고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상대를 쓰러뜨리지도 못했는데 그런 화려하고 어려운 마법 공격을 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드! 무슨 짓이냐?!" 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트레이는 여전히 하늘 위에 떠 있는 날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어 마법 치라고 협박하고는 직접 공격은 하지 않고 폭발 충격만 주고, 또 갑자기 자신의 방어 마법을 뚫고 자신을 워프시켰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난 계속 허공에 떠 있는 채로 대회 장무대 위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뭘? 도대체 네 녀석은……!" 내 눈짓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트레이는 대회장 무대를 내려다보 고는 경악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대회장 위가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지금까지 많은 마법사들의 마법이 대회장 위에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대회장 무대는 군데군데 파이고 깨진 곳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그걸 만천화빙우을 통해 완전 평면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트레이 씨! 여기서 순순히 패배를 인정해야겠지만, 그렇게 되면 3회전에는 올라가지 못하겠죠. 트레이 씨는 아직 사일러드 국왕님의 마음에 들만한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 내 말에 트레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트레이가 사용한 마법은 결코 보통의 마법사가 쓸 수 있을 수준의 것은 아니었으나, 그게 모두 전개 속도가 너무 빠른 전격 마법이라 마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위 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남에게 강한 마법사라는 인상을 심 어주기 위해서는 최대한 화려하고 멋진 마법을 구사해야만 하는 것이다. "전 여기에 가만히 방어만 하고 있겠습니다. 트레이 씨에게 단 한번의 공격 기회를 드릴 테니 멋진 마법으로 마무리를 부탁합니다." 난 트레이가 승낙을 하든 말든 바람의 장벽을 내 몸 둘레에 겹겹이 쳐놓았다. 트레이는 그런 날 잠시 쳐다보며 공격할까 말까 갈등했으나, 이내 상금이란 것에 눈이 멀어 공격을 결정하고 제자인 나에게 마지막 마법을 퍼부을 준비를 했다. "간다! 죽어버려도 책임 못 진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결코 날 죽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트레이였으나 기합 만큼은 멋들어지게 하며 마법을 실현시켰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용한 마법은 나도 본 적이 없는 불꽃의 용(龍)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었다. 호오…… 트레이가 저런 예술적인 마법을 개발했다니! 저 화룡(火龍)의 모습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할 텐데 역시 정신력 하나는 강한 트레이라서 저런 마법을 할 수 있는 거로군. 내 스승다운 아주 멋진 공격이야! 콰아앙-! 트레이의 화룡은 결코 겉모습만 멋들어진 마법이 아니었다. 그 위력 또한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그러나 내 바람의 장벽을 깨부수는 데에는 한참 모자랐다. 결국 화룡은 엄청난 열기만을 발산한 채 이내 허공에 흩어져 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제길……!" 마지막 정신력을 쏟아부어 만들었던 화룡이 너무 어이없이 흩어져 버리자 맥이 풀린 트레이는 털썩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내가 졌으니까 너 혼자 상금 다 처먹어라!" "……." 탁탁- 나에게 욕을 한바탕 한 트레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대회장 아래로 내려 가려 했다. 그러나 그때 어김없이, 그리고 내 예상대로 갑옷 아저씨의 반가 운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마나폭풍 저지단의 수장 트레이! 사일러드 국왕님의 배려로 다음 경기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음을 알리오!" 흘흘, 역시 내가 의도했던 대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군. 아니지, 이미 카이론이나 트레이나 나와의 싸움으로 엄청나게 지쳤을 테니까 꼭 그렇지도 않 구나. 흐음…… 아무래도 이쯤에서 내가 경기를 그만두고 두 사람의 지친 정신을 회복시켜 줘야겠어. 그래야 3회전을 두 사람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싸워서 2등이나 3등의 상금을 얻어낼 테니까 말이야. "이쯤에서 전 쉬도록 하겠습니다." 막 나에게 계속 경기를 할 것이냐의 여부를 물으려는 갑옷 아저씨에게, 난 한 발 앞서 먼저 내 의사를 밝혔다. 멀쩡해 보이는 내가 갑자기 경기를 중단하겠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트레이와 카이론조차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내가 정말 멀쩡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트레이는 내 결정에 의의를 제기했다. "뭐야 너! 원래 그냥 이대로 우승할 생각 아니었냐?!" 하하…… 처음엔 그랬지. 하지만 내가 우승 상금을 차지하더라도 그건 나와 아트로포스가 쓸 돈이니까 댁들에게는 줄 수가 없다구. 그러니까 트레이나 카이론이 2등이나 3등의 상금, 운 좋으면 2·3등의 상금을 모두 따서 생활비에 보태라는 거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기를 그만두고 댁들의 정신력을 마법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두 분의 고위 마법사와 싸우느라 많이 지쳤습니다. 더 이상 싸웠다가는 제승리가 불투명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쉬려는 겁니다." 난 트레이에게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댄 다음 유유히 대회장 옆에 마련된 금색 상자 속에다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집어넣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우승을 확신하는 듯한 어조의 핑계였기 때문에 그 점에서 사람들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으나 난 그냥 신경을 끄고 자리에 앉아 다음 경기를 볼 준비를 했다. 그런 날 보고 트레이가 이상한 눈초리를 해 보였다. "너……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 "아무 속셈도 없습니다. 단지 피로를 풀어드리고자 하는 것뿐이죠." "피로?" 트레이는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카이론은 내 말을 알아듣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우리들에게 치유 마법을 쓰겠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말도 안돼! 그렇게 마법을 썼으면서 치유 마법을 사용할 정신력이 남아 있다는 거냐?!" 말을 하면서 점차 흥분을 했는지 카이론의 어조는 마지막에 가서 조금 높아졌다. 난 그런 카이론을 말리면서 둘을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지금 저와 두 분에게 필요한 건 상금입니다. 그러니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은 가능한 도움을 주고받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전 특이한 인간이니 절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마십시오." "……." 카이론은 내 말을 믿어주고자 하는 표정은 아니었으나, 상금이라는 말에 결국 마음대로 하라면서 나와 말싸움하는 걸 포기했다. 그것은 트레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난 일반 사람들이 잘 알아차릴 수 없게 마나장을 잘 다스리면서 둘의 두뇌에 열심히 산소를 공급해주었다. "다음 선수는 보석 사냥꾼 요시아로 뽑혔으나, 더 이상 상대할 선수가 없는관계로 부전승 으로써 3회전에 진출하게 되었소!" 내가 열심히 트레이와 카이론의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고 있을 때 갑옷 아저씨의 입에서 그런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것은 나 혼자서 2회전에 올라왔던 사람들을 요시아 빼고 모조리 쓰러뜨렸음을 의미했다. 한 마디로 완벽하게 득을 본 사람은 요시아였던 것이다. "2회전 경기가 끝났으니 잠시 후에 3회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3회전 출전선수들은 곧 있을 경기를 위해 편히 쉬도록 하시오!" 말을 마친 갑옷 아저씨는 대회장을 내려갔다. 어쨌든 그렇게 2회전은 모두끝났고, 그 시각이 오후 6시쯤이었기 때문에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은 각자성을 빠져나가 먹을 것을 사들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들도 아트로포스가 사온 빵을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잠깐 끼어 들어도 될까요?" "……!" 신나게 빵을 먹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을 건 사람이 다름 아닌 보석 사냥꾼 요시아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크게 경계를 했다. 그러나 요시아는 나쁜 뜻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활짝 펴 보이며 내 바로 옆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 들을 둘러보며, 특히 날 중점적으로 쳐다보며할말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3회전에 올라간 사람은 저와 이 자리에 있는 세 남자분들뿐이에요. 원래대로 경기를 한 다면 이 중에서 두 사람이 승리해서 4회전에 올라가고, 3·4위전을 통해서 3등을 가리고 나 서 결승을 시작하겠죠. 하지만 그러면 너무 번거러우니까 제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요." "무슨 제안입니까?" "간단한 제안이에요. 저와 이드 씨가 서로 싸워서 이긴 사람이 1등을 하고,진 사람이 3등을 하자는 거죠. 그리고 트레이 씨와 카이론 씨 중에서 한 명이 2등을 하기로 하구요." 요시아의 제안은 황당했다. 그것은 4명의 순위를 단 한 번의 경기로 가르자는 소리였던 것 이다.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트레이가 아니었다. "말도 안되오! 우승은 이드가 할 게 뻔하고 2등과 3등도 할 자신이 없으니 까 그런 식으로 3등이라도 따낼 작정 아니오?" "호호, 뭘 모르시군요. 제가 그렇게 실력 없는 여자로 보이나요?" 요시아의 눈빛에 살기 비슷한 것이 떠올랐다. 그 눈빛은 결코 범상한 여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대적한 상대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그녀의 실력으로 볼 때, 충분히 2등을 할 수도 있는 그녀가 일부러 3등을 자처한다는 것은 결코 그녀에 게 이득이 되는 게 아님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문에 당신은 보석이 아니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난 요시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요염하다고해야 어울리는 요시아는 심각한 내 표정을 보고는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글쎄요, 저보다는 이런 대회를 개최하는 사일러드 국왕이 더 의심스럽지 않나요? 하여튼 전 3등 안에만 들면 되요. 그게 제 목적이죠." "……." 흘…… 3등 안에만 들면 된다라…… 뭔가 속셈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전혀모르겠군. 이 여자의 말대로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까? 어차피 내가 이 여자에게 질 리는 없을 테니까 내가 1등을 먹고 트레이나 카이론이 2등을 먹으면 충분하잖아? "트레이 씨, 요시아 씨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대회에서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는 건 좋지 않을 테니까요." 난 트레이와 카이론을 설득했다. 괜한 시간을 이 대회에서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트레이와 카이론 역시 더 이상의 싸움은 하고 싶지가 않은지 내 의견에 금방 동의했다. "뭐, 그게 더 편할 테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지." "2등의 상금이 안전하게 확보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지." 나와 트레이, 그리고 카이론이 모두 의견의 합치를 보자 요시아는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섬뜩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좋은 선택을 하셨어요. 안 그랬다가는 트레이 씨와 카이론 씨 중에서 한 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체로 변해있었을 테니까요. 호호호!" 그 말을 끝으로 요시아는 요사스러운 웃음소리를 남기며 자기가 원래 앉았던 자리로 유유히 돌아갔다. 마지막에 그녀가 남긴 말이 신경에 엄청 거슬렸는지 카이론이 그녀에게 욕을 하려고 했으나 트레이가 말리는 바람에 그는 그저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야만 했다. "이제부터 3회전 경기를 시작하겠소!" 오후 7시가 된 시각, 갑옷 아저씨는 대회장 위로 올라가서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리고 지금까 지와 마찬가지로 마리요느 공주에게 싸울 선수들을 추첨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그때 요시아가 벌떡 일어나 대회장 위로 사뿐사뿐 올라서고는 사일러드 국왕 내외가 앉아있는 발 코니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사일러드 국왕 폐하시여, 전 보석 사냥꾼 요시아라고 하고 이번에 3회전까지 운 좋게 진출한 여자입니다. 3회전에 진출한 사람은 모두 4명인데, 원칙대로라면 총 네 번의 경기를 가져 야하지만 그러면 시간이 너무 걸릴 듯하여 제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갑작스런 요시아의 행동에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나 역시 요시아가 저렇게 대담하게 국왕 앞에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사람들과 같이 놀라는 중이었다. 사일러드 국왕은 처음엔 이상한 표정으로 요시아를 내려다보다가 물음을 던졌다. "어떤 대안인가?" "간단한 것이옵니다. 보석 사냥꾼이라 불리는 저와, 2회전 때 환상의 경기를 펼쳤던 마법 정령 검사 이드 씨의 단 한차례 경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긴 사람이 1등, 진 사람은 3등을 하고 3회전에 진출했던 나머지 두사람 중에서 2등을 주는 겁니다." "그럼 그 나머지 두 사람도 2등 자리를 위해 경기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사일러드 국왕의 이어진 질문은 꽤 좋은 지적이었으나 그것은 트레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였다. "3회전에 올라간 저와 카이론은 친구 사이입니다. 한낱 2등 자리를 위해 친구와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녀의 제안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흘…… 한낱 2등 자리? 안전하게 2등 자리를 확보한답시고 요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이 누구더라? 친구와 싸울 수 없기 때문이라니…… 말은잘 해요. "알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잠시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던 사일러드 국왕의 입에서 마침내 허락의 말이터져 나왔다. 그렇게 해서 나와 요시아는 대회장 위에서 서로 마주보며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겨라! 저 요사스런 여자를 죽여버려!" "저 잘난 척하는 남자 녀석을 죽여!"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은 내 편과 요시아 편으로 갈라져서 목청 터져라 응원을 했다. 그러나 트레이와 카이론은 둘 중에서 누가 2등 상금을 먹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요시아에게는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호호, 이렇게 싸우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귀여운 오빠!" "……." 으으…… 귀여운 오빠? 아무리 들어도 닭살 돋는단 말이야…… 게다가 저 여자의 말이니까 절대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고……. "대회 마지막 경기! 시작하시오!" 마침내 갑옷 아저씨가 경기 시작을 선언했다. 아직 요시아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 난 잘 모르기 때문에, 우선 정령들에게 내 몸을 지키도록한 뒤 요시아의 공격을 눈여겨보기로 했다. 요시아는 그런 나에게 윙크를 살짝 하더니 첫 공격을 감행했다. "독염화접(毒炎花蝶)!" 요시아의 외침 소리와 함께 내 주위에 수많은 불꽃의 덩어리가 형성되었다.아까 요시아가 소리친 대로 이 불꽃을 불나비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냥 작은 불덩어리 두 개 붙여놓은 듯한 것밖에 되지 않았다.흐음…… 이런 작은 불덩어리들을 내 주위에 깔아서 뭐하겠다는 거지? 이건꼭 내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 깔아놓은 지뢰(地雷) 같은데? 아, 아니지! 허공에다 깔아놨으니까 천뢰(天雷)가 되는 건가? ===================================================== 연재가 많이 늦었군요...-.-;;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장:숨겨진 목적들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1/26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325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장:숨겨진 목적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189 게 시 일 :01/01/25 20:52:42 수 정 일 : 크 기 :12.0K 조회횟수 :142 "호호! 빨리 워프로 그 자리를 빠져 나오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러면 독 염화접에 몸이 성치 않을 테니까 말이죠." 요시아는 친절하게도 나에게 사용할 마법까지 가르쳐주면서 날 배려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배려가 결코 좋은 의도라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난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로 했다. 그러자 요시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사람 말을 안 듣는군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첫 번째 공격 갑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변에 깔린 작은 불덩어리들이 점차 가까워지기 시 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까워진 불덩어리들은 서로 마찰을 일으키더니 이내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쾅-! 연쇄폭발의 위력은 강력했다. 내가 기껏 만들어놓았던 완전 평면 대회장을 들쑥날쑥하게 만들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령들의 방어막으로 몸을 지키 고 있던 나에게 이 정도의 폭발은 아무런 타격도 될 수 없었다. "저 공격을 막아내다니!" "저게 인간이냐?!" 사람들은 망가진 대회장과는 달리 멀쩡히 서 있는 날 보고 질렸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처음엔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 있던 요 시아였지만, 이내 평상시의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대단하군요. 아까 그 공격은 제가 제일 자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 래서 이번엔 마법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상대해드릴까 하는데 잠깐 기다려 주 실 수 있겠어요?" "……?" 얼라리? 경기 중에 상대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저 여자 대단한데? 그런 대담한 요구를 하다니 말이야! 도대체 어떤 얼간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요 구를 들어줘? "기다려드릴 테니 마음껏 해보십시오." "호호호! 고마워요. 그럼!" 내 승낙의 말에 요시아는 감사의 미소를 보내고는 어떤 주문 같은 걸 외우 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보니 마술을 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난 아까 약속한 대로 그녀가 모든 준비를 끝낼 때까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너…… 아까 '도대체 어떤 얼간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줘?' 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냐?》 뭐? 아…… 그랬나? 《상대가 귀찮은 마술을 쓰려면 어쩌려고 그래? 전에 마족 청년이 불러냈던 암흑 마수왕(暗黑 魔獸王) 다크오레인 같은 녀석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좋지! 전에는 마족 청년 녀석의 약한 정신력 때문에 다크오레인과는 승부를 내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이번에 나오면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주겠 어! 《너…… 성물의 힘 때문에 너무 해이해진 거 아니야? 그런 해이해진 정신 으로는 천신이나 천마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푸하하! 당연히 지금 난 정신이 해이해져 있어. 상대가 싸울 맛도 안 나게 약한데 긴장해서 뭐하냐고! 차라리 강한 천신이나 천마와 싸우면 좋겠다!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 계속 주문만 중얼거리던 요시아의 입에서 마침내 그런 말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와 나 사이에 거대한 마법진이 저절로 만들어졌다. 대회장 위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관객들 자리까지 침범한 마법진에서는 기 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쿠쿠쿠쿠-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을 부르다니……!》 이거…… 나와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 사이에는 질긴 인연의 끈이 연결되 어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자리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 으니까 말이야. 《임마! 계속 구경하지 말고 이때 공격해!》 나보고 약속을 깨라는 거냐? 싫어! 《지금 쓸데없는 고집 부릴 때냐? 다크오레인에게는 마법도 통하지 않는 걸 너도 경험했잖아?!》 상관없다니까. 끈을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된 나에게는 다크오레인 정도 는 아무 것도 아니야. 아니, 다크오레인 정도를 이기지 못하면 결코 천신이 나 천마에게 이길 수 없다구! 쿠아악-! 상당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다크오레인의 울음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실버 럭서스와 잡담하다보니 어느새 다크오레인이 마법진 위에 떡 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10미터 정도 되는 시꺼먼 몸뚱이에 완벽한 늑대 인간의 모습을 한 다크오레인은, 마족 청년에 의해 나와 싸웠을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크르르르…….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은 자기 발 바로 앞에 있는 날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저번에 나와 싸웠던 걸 기억하고 있었는지 날 보자마자 발악을 하 기 시작했다. 그의 발악은 전과 다름없는 주먹질이었다. 쾅쾅쾅! 쿠아아악! "앗! 진정해!" 다크오레인이 명령도 없이 날 공격하자 요시아의 표정에 당황함이 떠올랐다. 본래 마술에 의해 소환된 다크오레인은 소환주인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크오레인은 날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내 정령들이 쳐놓은 정령 방어막을 쉴새없이 주먹으로 내리치며 발악하고 있었다. 쾅쾅쾅! 쩝, 녀석은 변함없이 주먹 공격밖에 못하는군. 하긴, 나도 저 녀석에게 마 땅히 타격을 줄만한 공격도 못하지. 녀석 몸은 마법 같은 것에 당하지 않는 이상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말이야. 뭐, 그래봤자 지금의 나에게는 상 대도 되지 않지만.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어라운드(Arround)" 난 우선 녀석이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녀석을 역압 마법으로 묶어놓았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한 공기 압력에 다 크오레인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괴성만 질러대었다. 쿠아악! 으득- 으드득- 시간이 지날수록 다크오레인의 몸은 내 역압 마법 때문에 점차 둥글게 말리 기 시작했다. 불이나 물, 또는 번개나 바람 같은 마법은 녀석에게 통하지 않 으나 단순히 압력으로 밀어 부치니까 녀석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뚜둑- 뚝- 다크오레인의 뼈마디가 부수어져 나가는 섬뜩한 소리가 점차 많아졌고 그와 비례하여 다크오레인의 비명 소리 또한 커져갔다. 한 불쌍한 늑대 인간을 이 렇게 처참하게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동물 학대 같아서 마음 아주아 주 깊은 곳에서 눈꼽만큼의 괴로움을 느꼈다. "다, 다크오레인이……?!"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둥글게 말려 들어가는 다크오레인을 보고 요시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날 쓰러뜨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다크오레인이 너 무 어이없이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요시아는 다크오레인에게 어떤 대가를 지불했을까? 마족 청년은 자신의 정신력을 제물로 바쳤다가 다크오레인을 계속 유지시키지 못해서 큰 타격을 받았었는데 말이야. 다크오레인이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도 요시아의 표정이 멀쩡한 걸 보면 요시아는 정신력이 아닌 다른 걸 제물로 바친 것 같 군. 우드득- 역압 마법을 사용한지 대략 2분 여가 흐르자 마침내 다크오레인의 몸은 완 전히 둥글게 말려버렸다. 그 결과로 생긴 둥근 공은 다크오레인의 큰 몸집 탓에 지름이 1미터를 육박했다. 본래는 녀석을 더 작게 해서 없애려고 했으 나 녀석의 특수한 피부 때문에 더 이상 둥글게 만드는 건 무리라서 난 이쯤 에서 역압 마법을 풀기로 했다. 쿠웅- 거대한 검은 공이 대회장 위에 떨어져 내리자 아주 육중한 소리가 발생했다. 그리고 역압 마법의 압력이 사라지자 둥글게 말렸던 다크오레인의 몸은 다시 펴지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양팔과 양다리가 원상태로 돌아오며 대회장 위를 치는 소리는 듣기만 해도 섬뜩한 것이었다. 게다가 다크오레인의 눈, 귀, 코, 입, 그리고 항문 쪽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와 내장 조각은 사람들의 비위를 크게 거슬리고 있었다. "이제 다크오레인은 죽었습니다. 계속 싸우실 겁니까?"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날 줄 모르는 다크오레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요 시아에게 난 차분히 말을 걸었다. 처음엔 요시아는 그저 내 얼굴을 멍청하게 쳐다보았고, 그 다음엔 내 정체가 무엇이냐는 듯한 눈초리를 해 보였으며, 마지막에는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소리내어 웃었다. "호호! 역시 대단하군요. 마지막 수단이었던 다크오레인마저 격퇴시켰으니 전 이제 당신을 이길 수가 없어요. 패배를 인정하죠." 흘…… 생각보다 쉽게 패배를 인정하는군. 난 좀더 발악한 뒤에 졌다고 할 줄 알았더니 말이야. 뭐 어쨌든 이것으로 내 우승은 확정됐구만. 10만 사사 드의 상금이 모두 내 것……! "요시아의 패배 인정으로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정령 마법 검사인 이드로 결정되었소!" 와ㅡ! 갑옷 아저씨의 선언에 대회장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 다. 그 환호성 중에는 내가 우승하게 된 걸 축하한다는 의미의 외침도 있었 으나, 자세히 들어보면 대회가 빨리 끝난 것에 대한 기쁨의 소리가 대부분이 었다. "이제 대회가 끝났으니 입상자와 관련 없는 사람은 모두 나가주길 바라오!" 끼기깅- 마치 사람들을 내쫓는 듯, 아니 확실히 사람들을 내쫓기 위해 닫혀 있던 성 문이 활짝 열렸고 사람들은 병사들에 의해 떠밀리듯이 밖으로 나갔다. 그러 한 처사에 사람들은 불만을 내뱉었으나 병사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대부 분의 사람들을 성밖으로 몰아낸 뒤에 다시 성문을 굳게 닫았다. 게다가 이번 엔 성 옆에 나 있는 쪽문조차 닫아버렸다. 이제 하늘 위 말고는 이 성을 빠 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이다. 흘…… 뭐냐? 이런 대회가 끝나면 보통 축제를 벌이지 않나? 어째 인간들을 모조리 내보냈다냐? 게다가 무슨 시상식 같은 것도 없고 말이야. 이거…… 엄청나게 불길한 느낌이 드는걸? "수고하셨소, 용사들이여!" 성문이 굳게 닫힌 후 얼마 되지 않아 발코니에 가만히 앉아 있던 사일러드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안에 남아있는 우리들을 보고 소리쳤다. 하지 만 우리들은 뭐라고 대답할 기분도 들지 않아서 그냥 사일러드 국왕만 뚫어 져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의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우리들을 보고 사일러 드 국왕은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대들은 우리 사일러드의 체면을 세워줄 용사들이니 절 대 소홀히 대접하지 않을 것이오!" 엥? 우리들이 사일러드의 체면을 세워준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설마 그 체면 세워주는 것이 사일러드 국왕의 한 가지 부탁? "여봐라! 이 분들에게 좋은 옷과 음식을 대접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성에서 가장 좋은 방을 내어드리도록 하라!" 사일러드 국왕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린 뒤 자신의 아내와 딸을 데 리고 유유히 건물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누군가 안내를 해줄 때까지 대회장에 계속 남아 있어야만 했다. 다행히 금방 하녀들이 줄줄 이 나와서 우리들을 끌고 갔기 때문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 다. "한 분마다 방을 하나씩 쓸 수 있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우리들을 여러 개의 방이 있는 2층으로 데려갔던 하녀들은 우리에게 어서 방으로 들어가길 권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각자 알아서 방을 선택해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생각대로 화려했지만 하녀들이 갈아입으라고 들고 온 옷 은 그냥 돌려보내고 대신 식사하라고 온 저녁은 맛있게 먹었다. 물론 대회 중에 저녁을 먹기는 했지만 그건 빵으로 때운 것이라 제대로 된 저녁 식사라 할 수는 없었다. "식사가 끝나고 1시간 후에는 사일러드 국왕님을 알현하러 가셔야 합니다. 그 시간에 저희들이 한 번 더 올 테니 그때까지 편히 쉬고 계십시오." 내 방에 들어온 하녀들은 그렇게 말하며 총총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래서 난 그들의 말처럼 식사를 하면서 느긋하게 1시간을 기다렸다. 아트로포스 등 이 잘 있는지 궁금하긴 했으나 각자의 방도 모르고 괜히 건물 안을 어슬렁거 렸다가는 침입자로 오인 받아 잡혀갈 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시간 가기를 기다리기만 했다. "밖으로 나오십시오. 국왕 폐하를 알현할 시간입니다." 모처럼 충분한 저녁 식사를 해서 침대에 누워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을 만끽 하고 있던 난 방 밖에 있는 하녀가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대충 몸 정리를 마치고 방밖으로 나갔다. 방 밖에는 이미 트레이와 카이론, 아트 로포스와 오브, 그리고 요시아까지 모두 나온 상태였다. "모두 모였으니 절 따라오십시오." 내가 방 밖으로 나오자마자 꽤 나이 들어 보이는 하녀가 그렇게 말하며 우 리들을 알현실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궁전에 들어온 것은 모두들 처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하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 지만 국왕을 만나기 전에 요시아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어서 난 그녀에게 다 가가 말을 걸었다. "요시아 씨,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응? 뭐죠?" "다크오레인에 관한 겁니다." "……?" 요시아는 내가 뭘 물어보려고 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 으로 내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뒤에 있던 트레이 일행도 내가 다크오레인을 들먹거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괜히 말을 돌리지 않고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크오레인을 불러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제물이 필요했을 텐데, 요시아 씨 는 어떤 제물을 바쳤습니까?" "……." 내가 그런 질문을 할 줄 생각 못했는지 요시아는 잠시 입을 다문 채 내 얼 굴을 쳐다보았다. 내 질문에 어떤 가공할 의도가 숨어 있는가 없는가를 파악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단순한 궁금증 때문에 한 질문이라는 것을 그녀는 금방 알아차리고 이내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제 별명이 뭔지 알면 답이 될 거예요." "……?" 얼레? 요시아의 별명? 요시아의 별명이야 내가 알고 있기로는 보석 사냥꾼 …… 앗…… 그럼 요시아가 암흑 마수왕 다크오레인에게 바친 제물이란 것은 ……! "보석을 제물로 바쳤단 뜻입니까?" "맞아요." "녀석을 불러내려면 보석 한두 개로는 어림없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죠. 다크오레인과 계약할 때 지금까지 모아뒀던 보석을 거의 날 렸으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보석 날리면서 계약한 녀석이 당신에게 쉽게 죽 어버렸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요?" 하하…… 그거 무지하게 미안하구만. 하지만 녀석은 앞 뒤 사정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공격만 하는 스타일이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물론 저번에 녀 석에게 혼줄이 났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의 성격이 다분했었지만.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장:숨겨진 목적들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1/26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301 제 목 :[사이케델리아] 25장:숨겨진 목적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190 게 시 일 :01/01/25 20:53:27 수 정 일 : 크 기 :14.0K 조회횟수 :133 사삭- "……!" 그때 갑자기 요시아가 내 목에 팔을 두르며 내 몸에 자기 몸을 밀착시켰다. 성숙한 여인에게서 풍기는 향내는 내 냉철한 이성을 교란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혼란에 의한 황홀함도 요시아의 말 한 마디에 씻은 듯이 달아나고 말 았다. "당신은 중용자니까 다크오레인 정도야 가뿐하겠죠. 안 그래요?" "……!" 이 여자…… 내 정체를 어떻게 알아낸 거지? 트레이나 아트로포스가 요시아 에게 내 정체를 알려줄 리 없고…… 그리고 나도 내 정체를 밝힐 만한 실수 는 하지 않았는데…… 그렇다는 건 역시 지금 이 여자는 자신의 지레짐작으 로 날 유도심문 한다는 뜻이겠군. 후후, 유도심문 따위에 내가 넘어갈 것 같 냐? "글쎄요…… 중용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제가 중용자라는 말은 이 자리에서 처음 듣는군요." 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요시아의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요시아 는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거짓말이 너무 서툴러요, 중용자 오빠." "……." 으으…… 전혀 안 넘어가잖아? 난 최대한 자연스러운 어조로 말했다고 생각 했는데…… 도대체 내 어디에서 거짓말이란 걸 알아차린 거지? 《보통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들으면 약간은 놀라잖아. 근데 네 녀석 은 전혀 놀라는 기미도 없이 처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아니라고 부정을 했 어. 아마 그 때문에 요시아가 네 녀석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 차렸을 거다.》 실버럭서스의 해석이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확실히 그 점도 내 거짓 말의 실패 요인 중에 하나일지도 몰랐다. 비록 내 거짓말의 실패로 인해 요 시아가 내 정체를 알아냈다고는 해도 아직 내 정체를 확신한다고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 계속 거짓말을 밀어 부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는 다르게 요시아는 이미 내 정체를 확신해버린 듯했다. "그저께 동시 워프를 가볍게 하는 당신을 보고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러다가 오늘 경기에서 그렇게 마법을 쓰고도 전혀 피곤한 표정을 짓지 않는 당신이 전설 속에 나오는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아마도 그 허리에 찬 검은 중용의 검이겠죠?" 흐아…… 실버럭서스까지 알아본 이상 내 정체를 숨긴다는 건 이제 무리야. 어차피 이 여자가 내 정체를 알아도 무슨 나쁜 짓은 못할 테니까 그냥 내버 려두자. 나중에 방해가 되면 간단하게 해치워버리면 그만이지. "전설에 의하면 중용자는 다른 세계에서 건너온다는데, 그거 사실이에요?" "……." "사실이었구나. 그럼 다른 세계에서 쓰던 물건도 가지고 있겠네요? 그 세계 에서 가져온 보석 같은 거 없어요? 아니면 팔면 돈이 될만한 거라든가." "……." "음…… 없는 모양이네. 아쉽다∼" "……." 흐으…… 난 한 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요시아는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내 표정 연기가 그렇게 서툴단 말이야? 으으으…… 이 여자 정말 위험 해! 어서 떨어뜨려야겠어! "근데…… 언제까지 붙어있을 겁니까?" 요시아가 계속 내 몸에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핑계삼아 난 그렇게 말함으로 써 그녀를 떨어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내 노력도 요시아의 앞에선 물거 품이었다. "어머, 부끄러워하는 거예요? 숙맥인가 보네∼" 흐으…… '숙맥인가 보네' 하면서 왜 남의 볼은 계속 꼬집는 거야? 나중에 볼이 부르팅팅 부으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것보다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로스를 달래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지금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여자를 떨어 뜨리는 거라고! 안 그랬다가는 내 모든 게 폭로될지도 몰라! 《됐어, 임마. 너 같은 둔탱이하고 얘기하는 내가 바보지.》 "다 왔습니다. 바로 이 안입니다." 거대한 문이 떡 버티고 있는 어떤 방 앞에 서자 길을 안내했던 하녀가 한쪽 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 양 옆에 서 있던 병사들이 우 리들의 도착을 큰소리로 알리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계속 내 옆에 달라붙어 있던 요시아가 저절로 떨어져 나갔고 그때서야 난 막힌 숨이 탁 터지는 듯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서들 오게." 우리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약간 높은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있던 사일 러드 국왕이 반가운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하지만 난 국왕을 본다고 기쁘 진 않았기 때문에 아주 빠른 속도로 알현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장식도 없는 썰렁한 방이었고 흔히 볼 수 있는 병사나 신하들조차 거의 없었다. 단지 사 일러드 국왕 내외의 양옆에 대회 때 보았던 두 궁중 마법사가 서 있었을 뿐 이었다. "인사드립니다, 사일러드 국왕 폐하." 우리들 중에서 이런 일이 제일 능숙할 것 같았던 요시아가 예상대로 앞으로 나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사일러드 국왕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우리들도 덩달아 국왕에게 인사를 했다. 사일러드 국왕은 그런 우리를 보며 입을 열었 다. "그대들은 진정한 용사들이오. 따라서 나 사일러드 국왕은 그대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고 싶소. 그대들이 그 일을 무사히 끝낸다면 대회 때 제시했 던 상금을 모두 줄 것이오." 흘…… 역시 상금부터 주지 않고 일부터 하라고 하는군. 근데 웬만한 실력 자들을 옆에 두고 있을 게 분명한 국왕이 어째서 떠돌이 용사들을 모아서 부 탁을 하는 거지? "짐이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검을 되찾아 오라는 것이오. 그 검은 내가 근위대장에게 하사하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어느 날 간 큰 도둑이 그 검을 훔쳐가 버렸다오. 그 검이 없으면 근위대장의 체면이 서지 않고, 나아 가서는 내 체면도 서지 않기 때문에 그대들이 그 검을 반드시 되찾아와 주시 오." 흐음…… 검을 잃어버렸다라? 근데 어째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 단순히 검을 잃어버렸다고 되찾아오라고? 나 같으면 차라리 근위대장 에게 줄 검을 새로 만들겠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째서 그런 일을 저희들에게 분부하시는지요? 폐하 주 변에는 저희들보다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만?" 그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보석 사냥꾼 요시아였다. 하지만 사일러드 국왕은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할 것임을 예상했었는지 극히 자 연스러운 표정으로 응답했다. "근위대장에게 하사할 검을 찾기 위해 도적 소굴까지 들어가는 건 사일러드 국의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오. 그렇기 때문에 사일러드와는 상관없는 그대 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는 것이라오." 흠…… 왠지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아까도 생각했던 거지만 차라리 검을 만들지 뭐 하러 그 검을 찾으려고 대회를 개최하고 상금까지 주 면서 난리를 피우는 거야? 그 검이 그렇게도 중요한 거야? 단순히 근위대장 에게 주려는 거잖아? "그럼 출발은 언제하는지요?" 우리들이 전혀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시아가 또 국왕에게 질문을 던 졌고, 국왕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얼굴을 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출발해주었으면 하오. 근위대장의 취임식이 얼마 남지 않 았으니까 말이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무법지대인 '에스란'이오." "알겠습니다. 내일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혼자서 사일러드 국왕과 얘기를 나눈 요시아는 즉시 몸을 돌려 알현실 밖으 로 걸어갔다. 그래서 우리들도 어쩔 수 없이 요시아를 따라 알현실을 떠나야 했다. 그렇지만 난 국왕이 뭔가 감추고 있는 낌새를 느꼈기 때문에 실프에게 국왕을 감시하란 명령을 내렸다. 지금의 정령들은 자연물 속에 몸을 감추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염탐에는 적격이었던 것이다. "어이, 요시아 양! 왜 그냥 나온 거요? 여행 경비에 대한 얘기도 못했잖소! 우린 돈이 없어서 이 이상의 여행은 할 수가 없단 말이오!" 알현실을 완전히 빠져 나오고 하녀의 안내로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트레이가 요시아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확실히 사일러드 국왕이 여행 경비 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이제 여행할 만한 돈도 없었다. 하지만 요시아는 그런 우리들을 보고 안심하라는 표정을 해 보였다. "걱정 말아요. 여행하는데 국왕이 돈도 안 줄 것 같아요? 여행에 필요한 경 비보다 더 많이 줄 게 뻔해요. 게다가 여행 끝나고 임무를 달성하면 남은 경 비와 함께 상금까지 얻을 수 있어요. 알겠어요?" "오……!" 아직 임무를 달성한 것도 아닌데 트레이는 돈이 생긴다는 말에 눈을 빛내며 실실 쪼갰다.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술을 잔뜩 마실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아내와 자식이 마나폭풍에 희생당하고 마나폭풍을 찾아 배회할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나 새로운 아들이 생기고 친구까지 생기니까 마음이 해이 해진 것이었다. "자, 그럼 내일 있을 즐거운 여행을 위해 편히 쉬라고!" 하녀의 안내를 받아 방 앞에 도착하자 트레이는 가장 먼저 우리들에게 인사 하고는 잽싸게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하녀들에게 시켜놓은 술을 마 시려고 먼저 들어간 것 같았다. 한낱 평민이나 다름없는 트레이가 궁전의 고 급 술을 마실 기회는 이번밖에 없을 확률이 100%에 수렴하기 때문이었다. "모두 잘 자라." "저도 이만 들어갈게요." 먼저 방으로 들어간 트레이를 보고 카이론과 요시아도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난 그 순간을 노려 운디네를 요시아에게 딸려보냈 다. 요시아가 무슨 생각으로 이 대회에 참가를 했는지 알아내고 싶었기 때문 이었다. "로스 누나! 우리들도 빨리 들어가요!" 오브는 아트로포스의 손을 잡아끌며 같이 방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어차 피 아까 전에도 아트로포스는 오브와 같은 방을 썼기 때문에 이번에도 오브 와 같이 방을 쓸 것은 뻔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무슨 할말이 있 는 것인지 오브를 달래어 오브 먼저 방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나서 날 똑바 로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이드 님, 아까 요시아 씨와 어떤 얘기를 했죠?" "……!" 억…… 아트로포스의 표정이 엄청 굳어있다…… 역시 요시아가 내 정체를 알아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군. 어쩔 수 없다! 상대가 너무 노련했다는 걸 핑계로 대자! "가능하면 숨기려고 했는데…… 그게……." "……." "요시아 씨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그 뭐냐…… 사회 경험도 많고…… 노련하다고 할까? 하여간 그런 게 있으니까……." "……."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이것저것 묻는데…… 뿌리치기도 힘들어서…… 결국 그녀의 수법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어…… 그래서……!" 난 최대한 조리 있는 변명으로 내 실수를 만회하고자 했으나 아트로포스의 무표정한 얼굴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어서 얘기를 논리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말했는데도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요점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래가지고는 아트로포스의 화만 더욱 북돋는다고 판단한 나는 막 '모두 내 잘못이야'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그것보다 먼저 아트로포스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됐어요! 그래서 결론은 이드 님이 그 여자를……!" 아트로포스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으나 눈가에 눈물만 그렁그렁 매달고 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앞에 오래 있는 것도 싫었는지 그 냥 자기 방으로 돌아가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쿵! 어억…… 결국 아트로포스를 화나게 하고 말았어…… 역시 처음부터 내가 잘못했다고 무조건 용서를 빌었어야 했는데…… 망했다……! 《바보 녀석! 그게 아니야! 로스는 지금……!》 아트로포스의 행동에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실버럭서스도 덩달아 화를 내 면서 날 힐책했다. 하지만 실버럭서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일러드 국 왕의 말을 엿들으라고 보냈던 실프가 돌아왔다. 게다가 실프는 뭔가 중요한 얘기를 엿들었다고 했기 때문에, 난 내일 아트로포스에게 용서를 빌기로 하 고 내 방에 들어가 실프가 엿듣고 온 얘기를 듣기로 했다. 끼이- 쿵! 밖에 아무도 없고 방 안에도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나는 실프와 마주 앉아 우울한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 뒤, 실프가 몰래 엿듣고 온 내용을 물었다. "엿들은 내용은?" "사일러드 국왕이 주인님 일행에게 찾아오라고 부탁한 그 검은 사실 근위대 장에게 하사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검은 바로 사일러드국의 상징물이에요. 게다가 그 검은 사일러드 국왕이 다른 나라에 갈 때 항상 들고 다니면서 자 신들의 나라가 엄연한 국가임을 알리는 상징으로 사용했다고 해요." 호오…… 국가의 상징을 나타내는 검이라…… 사일러드국은 도시 하나 크기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니까 하나의 국가로서 외교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상징물이 필요할 수도 있겠군. 그런데 그런 중요한 상징물인 검을 잃어 버렸다는 것은…… 사일러드국이 엄연한 국가임을 다른 대국(大國)들에게 알 릴 수 없다는 뜻인가? "그래요. 그 검은 특수한 광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똑같은 검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대요. 그래서 사일러드 국왕은 그 검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하는 입 장이에요." 특수한 광물이라…… 혹시 그 검이 바로 여섯 번째 성물 아닐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떤 도둑에게 그 검을 도둑맞았다는 건 사실인 것 같 아요." 하하, 진짜 도둑맞았다는 거야? 도대체 어떤 간 큰 도둑이길래 한 나라의 궁전까지 침입해서 검을 훔쳐갔지? 그 도둑 녀석에게 경이를 표한다! "제가 들은 얘기는 여기까지예요. 지금 사일러드 국왕은 침소에서 잠을 자 고 있어서 더 이상 엿들을 게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돌아온 거구요." 실프는 그 말을 끝으로 내 몸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래서 나도 방 안의 촛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물론 눕자마자 잠이 바로 찾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건 정리도 할 겸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어느 야심한 밤…… 한 간 큰 도둑이 사일러드 궁전에 침입해서 사일러드국 의 상징인 검을 훔쳐갔다…… 그 후 사일러드에서 그 도둑을 추격했으나 그 도둑은 교묘하게 은신해서 꼬리를 감추었다…… 한낱 도둑에게 나라의 상징 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일러드국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기 때문 에 사일러드에서는 군대를 동원한 본격적인 도둑 찾아내기를 할 수 없었다… … 그래서 강자 선발 대회를 열어 떠돌이 용사들을 모았다…… 떠돌이 용사 들은 보통 어떤 국가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기 때문에 사일러드국의 상징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다른 나라의 귀에 흘러 들어갈 가능성은 적다… … 어쨌든 국왕은 그렇게 모은 용사들에게 도둑을 추격하여 검을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1차 선발대는 돌아오지 않았고 이번에 2차 대회를 열어 우리들을 뽑았다…… 그리고 국왕은 2차 선발대인 우리들에게 검을 되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라는 이야기 전개로군. 근데 도둑이 사일러드국 의 추적을 피해 몸을 숨겼다면 우리들도 녀석을 찾아내기 어렵지 않나? 도대 체 무슨 수로 찾아오라는 거지? 《아까 사일러드 국왕이 목적지 말할 때 너 딴짓했냐? 그 도둑 녀석은 에스 란에 있다고 했잖아!》 에스란? 그게 어디야? 《무법지대 에스란! 온갖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서 도저히 다른 나라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범죄자들이 득실대며 사는 곳이다. 말하자면 범죄자의 천국 이지. 물론 그곳은 같은 범죄자들에게도 흉악한 짓을 하며 사는 극악범죄인 들이 있어서 힘없는 범죄자들에게는 위험한 곳이지만 말이야.》 호오…… 그런 곳이 있었냐? 몰랐어. 어쨌든 검을 훔친 도둑 녀석이 그 무 법지대 에스란에 몸을 숨겼다면 사일러드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쓰기 어렵겠군. 얌전히 모여 살고 있는 극악범죄자들을 들쑤셔서 득 볼 건 없을 테니까 말이 야. 《그런 쪽은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그런데 어째서 여자 쪽에는 그렇게 머 리가 안 돌아가냐?》 무슨 소리야? 지금 사건 정리하느라 바쁘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나중에 하라 고. 《뭐가 사건 정리야? 사건 정리는 방금 다 했잖아!》 "……." 난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몸을 떠는 실버럭서스를 무시한 채 잠을 청했다. 요시아를 염탐하라고 보낸 운디네는 내일 만나서 상황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요시아 같은 여자일수록 주로 모두가 잠을 자는 야밤에 움직이기 때문에 지 금은 푹 자기로 한 것이다. 비록 요시아 때문에 아트로포스에게 찍혀버렸으 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 빚을 갚아주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 장을 다 쓰면 11권 연재가 끝날 것 같군요...^^; 제목 [사이케델리아] 26장:무법지대 에스란 -1-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226 게시일 01/01/28 21:28:32 수정일 크기 16.0K 조회횟수 10 <제 26 장> 무법지대 에스란(Esran) "날씨 참 화창하구나!" 무법지대 에스란으로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트레이는 입에서 술 냄새를 팍팍 풍기면서 자신에게 배정된 말 위에 올라탔다. 역시 어제 저녁에 자기 방에서 열심히 고급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 날씨가 좋군요! 이건 우리들이 국왕 폐하의 부탁을 수행해서 많은 상 금을 받을 거라는 계시일 거예요!" 그렇게 말한 사람은 요시아였다. 어제 운디네를 배치해서 그녀의 행동을 눈 여겨보았으나 어제 그녀는 잠만 열심히 잤다고 운디네가 보고를 했었다. 그 래서 결국 어제는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으나, 요시아가 어떤 목적으로 이 여행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확실했기 때문에 결코 경계를 늦추 지 않을 생각이었다. 히이잉-! "……." 히이잉- 푸루루- "……." "뭐하냐, 이드? 말 안 타?" 내가 배정 받은 말 위에 타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트레이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난 트레이에게 솔직하게 말할까 말하지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말하지 않으면 나만 바보될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을 했다. "말을 타본 적이 없어서요." "말을…… 타본 적이 없다고?"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트레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날 째려보았 다. 그러나 내 표정이 진짜임을 안 트레이는 이윽고 내가 다른 세계에서 날 라온 중용자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끄덕 거 렸다. "말을 타지 못한다면 저와 같이 타요." "……!" 요시아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내 몸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일어나더 니 내 몸은 저절로 요시아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즉, 요시아를 뒤에 둔 채 말을 타게 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말이란 것을 타는 것이었기 때문에 몸의 균형을 잡는 것부터, 심지어는 앞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자, 말고삐를 잡아요." 내가 말 위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할 때 요시아는 나에게 말고삐를 넘겨주었 다. 그냥 타는 것도 어려운데 말고삐까지 건네 받자 난 더욱 불안해졌다. 그 런 날 보고 요시아는 말고삐를 같이 붙잡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승마요령에 대해서 차근히 알려주었다. "우선 머리를 똑바로 세우고 턱은 가볍게 당겨주는 쪽이 좋아요. 그리고 팔 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내려요. 그 다음 가슴하고 등을 똑바로 펴고 무릎 안쪽을 말의 몸에 밀착시켜요." 난 요시아가 말한 대로 열심히 따라했다. 아직 말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하는 것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가 요시아가 말을 출 발시켰을 때에는 엉덩이와 등에 오는 충격을 예상하지 못해서 약간 위험할 뻔했다. 그러나 요시아의 지도 아래 말을 타게 되자 어느 정도 말을 타는 것 이 익숙해졌다. "이걸 받으십시오." 내가 말타기 연습을 하는 동안 하녀들이 일행에게 여행경비를 건네주었다. 여행경비는 어린 오브에게조차 지급되었는데 대충 금액을 보니 1000사사드, 원화로 굳이 고친다면 50만원 정도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인 원까지 따지면 여행경비로 사일러드 국왕이 준 돈은 모두 6000사사드였다. 역시 나라의 상징물을 찾아오는 일이기 때문에 아낌없이 돈을 주는 듯했다. "자! 그럼 가자!" 돈이 넉넉해진 트레이는 기분 좋다는 듯이 앞장서서 말을 몰았고, 우리들은 그런 트레이를 선두로 무법지대인 에스란으로 향했다. 처음 말을 타고 갈 때 에는 엉덩이로부터 전해지는 충격 때문에 제대로 자세 잡기도 힘들었지만 요 시아가 도와준 관계로 몇 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나도 요시아의 도움 없이 혼 자 탈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배정 받았던 말은 그냥 사일러드에 두고 왔기 때문에 항상 요시아를 뒤에 태우고 말을 몰아야 했다. "……." 흐으…… 미치겠군. 말은 못 타더라도 주는 말은 그냥 데려올 걸 그랬다. 요시아가 맨날 내 뒤에 앉아서 내 등에 바짝 붙어서는 '다른 세계는 어떻게 생겼어요?' 등등의 쓸데없는 질문만 던지니까 미치겠어. 차라리 아트로포스 하고 요시아를 같이 태우고 내가 오브하고 같이 탈란다! 《로스가 절대 싫다고 할걸? 로스의 저 싸늘한 얼굴을 보면 모르겠냐? 어유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저게 바로 그 증거로 군∼》 실버럭서스…… 알지도 못할 소리 늘어놓지 말고 빨리 나에게 성물의 힘을 모조리 준 뒤에 잠이나 주무셔. "그런데 요시아 양!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리가 검을 훔쳐간 도둑 녀석을 알 아낸단 말이오? 검의 생김새는 아까 받은 그림을 통해 확실히 눈에 익혔지만 도둑 녀석의 생김새는 전혀 모르지 않소?" 열심히 말을 몰면서 길을 재촉하던 중, 트레이가 상당히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요시아에게 물었다. 그러자 요시아는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했다. "검을 위주로 찾는 수밖에 없어요. 그 검은 꽤 귀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 문에 아마도 무법지대 에스란에서도 힘이 있는 자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우 린 그 자를 찾아내서 검을 되찾아오면 되는 거지요." "나원, 도대체 그 많은 범죄자 중에서 어떻게 녀석을 찾아낸단 말이오? 무 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요?" 요시아의 대답이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트레이는 얼굴 가득히 불 만을 떠올리며 재차 물음을 던졌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요시아가 완전히 우 리들의 리더였다. 본래 이 일행의 리더는 대회에서 우승한 내가 되어야 했지 만, 난 말 타는 데 온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내 뒤에서 마음 편히 앉아있 는 요시아처럼 머리를 굴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트레이는 본래 머리를 쓰는 타입이 아니고, 아트로포스는 원래 잘 말을 하지 않으며, 카이론은 지금까지 지내온 결과 자기 의견을 별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 결국 나서기 좋아하는 요시아가 우리의 리더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물론 방법은 있어요." "……!" 방법이 없이 말만 떠벌린 줄 알았던 요시아가 방법이 있다고 하자 트레이와 카이론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요시아는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내 목에 두 팔을 걸고 내 등에 기댄 상태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범인은 한 나라의 궁전에 침입해서 여유 있게 검을 훔쳐갔어요. 결코 보통 실력의 도둑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런 도둑이 검을 훔쳐서 무엇을 할까요? 보통은 보석상에 내다 팔거나 부자에게 팔아서 거액을 챙기겠지요. 그런데 그 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무법지대라 불리는 에스란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 어요. 그것은 범인의 목적이 결코 돈 때문이 아님을 의미하지요." "……!" "범인은 돈보다는 그 검을 직접 사용하거나 자신보다 높은 자에게 아부하려 고 훔친 거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전자보다는 후자의 가능성이 훨씬 높겠죠. 좋은 검을 얻으려고 한 나라의 궁전에 들어가서 검을 훔쳐오는 미친 짓은 하 지 않을 테니까요." "그 말뜻은…… 범인에게 그 일을 시킨 자가 있다는 뜻이오?" 트레이와 요시아의 문답을 듣고만 있던 카이론이 요시아의 말을 종합하면서 반문했다. 요시아는 그런 카이론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무리 무법지대라고 해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 자연스럽게 위 계질서는 세워지는 법이에요. 특히 에스란 같은 경우에는 강한 자 밑으로 그 보다 약한 자들이 살기 위해서 모여들게 되지요. 혼자서 숨어사는 것보다는 강한 자 밑에서 복종하며 살던가, 아니면 약한 자 위에 서서 군림하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을 챙기면서 살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검을 훔친 범인은 자신 의 실력을 강자에게 알리고 그 검을 선물로 바침으로써 에스란에서 안전한 지위를 얻으려고 하는 게 틀림없어요. 적어도 전 그렇게 생각해요." 요시아의 설명은 막아놓은 둑이 터지듯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우리 들 중에 그 누구도 그런 요시아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 었다. 요시아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 요한 것을 요시아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요시아를 다그쳤다. "맞는 소리인 것 같은데, 문제는 어떤 식으로 그 많은 범죄자 중에서 범인 을 찾아낼 것인가 하는 겁니다. 아니, 꼭 범인이 아니라 검을 어떻게 찾느냐 가 중요하죠." "호호호!" 내 질문에 요시아는 요사스럽게 웃더니 더욱 날 껴안으며 일부러 내 귓가에 다 숨을 훅훅 불면서 대답을 했다. "간단해요. 눈에 제일 먼저 띈 녀석을 잡아다 고문해서 알아내면 되니까요. 물론 녀석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고문한 녀석은 조용히 죽여야겠죠. 어쨌든 녀석들을 고문 고문하다 보면 녀석들의 우두머리를 알아낼 수가 있어요." "……." 흐으…… 그거 무지하게 사악한 방법이구만. 역시 이 여자는 무섭다니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말이야. 뭐…… 사실 그 방법이 가장 확 실하긴 하지만. 《이드…… 웬만하면 요시아와 떨어지지 그래? 로스의 눈길이 따가워서 내 가 못 견디겠어!》 누군 떨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아냐? 타고 갈 말이 없으니까 그렇지! 덩 치 큰 트레이나 일반 남자 체격인 카이론과 같이 타는 것보다는 마르고 몸무 게도 적게 나가는 요시아와 같이 타는 편이 말에게도 부담이 덜 된다구! 《그런데 왜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는 거냐?》 흐으…… 그런 사소한 건 따지지마! "주인님, 차라리 제가 주인님을 목적지까지 데려다드릴 테니까 이 여자로부 터 떨어져 주세요!" "저도 돕겠어요!" "소용없다니까. 녀석은 이미 이 여자에게 완전히 넋이 나갔다고." "그럼그럼. 변태 녀석이 오죽하겠어?" 처음 말한 사람, 아니 정령은 실프였고 실프의 말에 맞장구를 친 정령은 운 디네였다. 그리고 그 뒤에 날 욕한 녀석은 사라만다와 노움이었다. 정령들 중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건 잭 오 랜턴이었다. 굳이 소리를 내어 내 귀 에 직접 말을 걸지 않고 생각만으로 말을 해도 다 들리는데, 그렇게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잭 오 랜턴은 항상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았다. 흘…… 어째서 실버럭서스에 이어서 정령들까지 시끄럽게 구는 거야? 나도 지금 당장 마법으로 에스란까지 날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내가 마법을 쓰면 요시아가 정말로 날 중용자라 생각해버린단 말이야. 《이미 들켰잖아.》 시끄러! 아직 완전히 들켰다고는 할 수 없어! 요시아는 워낙 교활하니까 일 부러 날 떠보기 위해 나보고 중용자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구! 《과연 그럴까? 내가 보기엔 완전히 들킨 것 같던데.》 실버럭서스! 이제 곧 잠들 성물 주제에 말이 많아! 따그닥 따그닥- 마음속으로 실버럭서스 및 정령들과 말을 주고받으면서 난 말을 몰았다. 여 행이 계속될수록 말을 모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성물의 힘으 로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뒷받침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피로조차 쌓이지 않았 다. 다른 사람들도 걷지 않고 말을 타고 가기 때문인지 목적지인 에스란에 도착할 때까지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도리어 말짱했다. 아무래도 모처럼 잘 먹고 편하게 이동했기 때문인 듯했다. 히이잉-! "바로 여기가 무법지대 에스란이에요!" 며칠간의 여행 끝에 어떤 숲 입구에 도착한 요시아가 나 대신 말을 세우면 서 모두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트레이와 카이론, 아트로포스는 말을 멈추고 숲을 둘러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이라 숲의 정확한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는 없었으나 숲이 꽤 넓은 편이란 것은 확실했다. 단 지 하나의 높은 산봉우리의 경사를 따라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어서 사람이 모여 살기에는 그다지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이 숲에 살고 있는 범죄자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나 대신 말을 세우느라 요시아는 내 등에 바짝 붙으면서 말고삐를 잡았고, 그에 따라 자연히 요시아의 가슴이 내 등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난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그녀에게 범죄자 수를 물었다. 그러자 요시아는 요사스럽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호호! 이 숲에 사는 자들은 에스란에서도 지위가 낮은 하급 범죄자들이에 요. 저기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분지가 하나 있는데, 그 분지 안에 고급 범죄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지요." "대략 몇 명입니까?" "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천 명은 거뜬히 넘을 걸요?" 헉?! 천 명을 넘는다고? 저 조그만 산 정상의 분지에 그렇게 많이 살아? 장 난이 아닌데? 그 많은 녀석들 중에서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가지고 있는 자 를 찾으라는 거야? "저희들이 찾을게요." "저희들은 몸을 숨기며 이동할 있으니까 이 일에는 적격이에요." "뭐 널 도와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군." "변태 소환주를 도와주면 우린 변태 정령이 되는 건가?" "……." 이제부터 어떻게 범인을 찾을까 골몰하던 나에게 정령들이 각자 한 마디씩 했다. 물론 이번에도 잭 오 랜턴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녀석도 날 돕겠다는 의지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었다. 흐음…… 그게 좋은 방법이겠군. 시간도 없는데 녀석들을 잡아다 일일이 고 문해서 알아내는 것보다는 너희들이 찾아보는 게 훨씬 빠르겠지. 좋아! 너희 들만 믿는다! "그럼 다녀올게요." "금방 찾아오겠어요." "소환주의 더러운 몸에서 나오게 되니 기분이 좋군." "야! 해방이다!" "……." 다섯 정령들은 내 몸을 빠져나가기 전에 그렇게 한 마디씩 하고는 다른 사 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 속에 몸을 숨겨 즉시 산봉우리의 분지 쪽으로 날아갔다. 물론 노움은 땅의 정령이라 땅을 통해 분지까지 가야만 했다. "범인을 찾아내려면 분지로 가야할텐데…… 그러다가는 숲에서 살고 있는 범죄자들 눈에 띄어서 우리들이 이리 왔다는 사실이 녀석들에게 전해질지도 모르겠군." 트레이는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내 다섯 정령들이 검을 잘 찾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령들은 정령들대로, 우리들은 우 리들대로 범인의 탐색을 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왔다는 사실이 녀 석들의 우두머리에게 전해지면 조용히 검만 되찾고 사라지기가 힘들어질 가 능성이 아주 컸다. "들키면 들킨 대로 행동하면 돼요. 한낱 범죄자들에게 겁먹을 필요는 없잖 아요?" 요시아는 모두 안심하도록 하려고 그렇게 말했으나 카이론이 고개를 설레설 레 저으며 우리들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범죄자들 중에는 마법사도 있을 거요. 이곳에서 지위가 높은 범죄자들일수 록 뭔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오." "괜찮다니까요! 녀석들이 무서워서 지금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요!" 카이론에게 버럭 화를 낸 요시아는 갑자기 말에서 내려 모두가 숲으로 들어 갈 것을 종용했다. 숲에 들어가는데 말을 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카이론 은 무작정 들어가자는 요시아의 태도에 고개를 휘휘 내저었으나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말에서 내려 그녀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러자 다른 사람들도 요시아를 따라 숲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찬성했다. "아! 그런데 말은 어떻게 합니까?" 말을 숲 속에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한 숲 밖에 놔둬야만 했는데, 우리들 모두가 들어가면 말을 돌볼 인간이 없어지므로 난 일행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 내 질문에 모두들 뜨끔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생 각해보지도 않은 표정이었던 것이다. 흐으…… 이 인간들…… 말은 말 취급도 안 하냐? 여기까지 우리를 태워준 불쌍한 말들을 잘 대접해줘야지! 돌아갈 때 녀석들을 또 혹사시켜야 한단 말 이야! 그 먼 거리를 말도 타지 않고 걸어서 갈 거냐? "글쎄…… 어떻게 할까……." 트레이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사람들 도 그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내가 직접 의견을 냈다. "트레이 씨와 오브가 남아서 말을 지키는 것으로 하죠." "그 이유는?" "오브는 어리니까 위험한 곳에 데려갈 수가 없잖아요. 오브가 남는데 보호 자인 트레이 씨가 남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당연한 겁니다." "……." 내 말을 들은 트레이는 반박 같은 건 하지 않았으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숲에 들어가서 범죄자 녀석들과 한판 신나게 벌이고 싶 은 생각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내 말이 옳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 말 지킴이는 트레이와 오브로 하면 되겠군. 근데 로스 양도 남아야 하지 않겠나? 마법 같은 건 쓰지 못하는 듯한데." 말 지킴이가 정해지자 카이론이 아트로포스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확 실히 내 상처나 내 정신력을 회복시켜주는 것 말고는 아트로포스에게 별다른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점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또한 아트로포스가 아니면 성물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놔두 고 갈 수도 없었다. 사일러드 국왕이 되찾고자 하는 검이 여섯 번째 성물인 지 아닌지 그녀가 감정을 해줘야했던 것이다. "로스는 저와 같이 갑니다. 로스가 있어야 전 마법을 제대로 쓸 수 있으니 까요." "……?"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카이론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법사가 마법을 쓰는데 어째서 여자가 같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난 카이론이 질문을 더 하기 전에 급히 아트로포스를 데리고 숲 속으 로 들어갔다. 그때 오브는 아트로포스가 남아야할 것을 주장했지만 어린이 의견에 동조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사박사박- 요시아와 날 선두로 하고 그 뒤에 아트로포스와 카이론이 따라오는 형태로 우리들은 숲 안을 가로질러 산봉우리의 분지를 향해 걸어갔다. 자세히 보면 숲에 인위적으로 만든 좁은 길이 있긴 했지만 그리로 갔다가는 범죄자들의 이목에 걸릴 것 같아서 일부러 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곳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우리들의 전진 속도는 매우 더뎠다. 흐으…… 차라리 마법으로 단숨에 날아가 버리고 싶어…… 어차피 요시아에 게 내 정체를 들켰으니 이번 기회에 카이론에게도 내 정체를 말해서 내 힘을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직 요시아가 완전히 널 중용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랬잖아?》 아니야, 이미 요시아는 내 정체를 완전히 파악했어. 내 예리한 직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기술이냐?》 부스럭- 그때 어떤 나무 위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 나무 위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뜻했다.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이 에 스란에 살고 있는 범죄자였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그 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지 요시아는 즉시 역압 마법을 나무 위에 걸었다. 그러자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지며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털썩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남자가 떨어지자마자 요시아는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더니 그 자의 목에 칼을 대었다. 그것은 소리라도 질렀다간 당장 목을 그어 버리겠다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제목 [사이케델리아] 26장:무법지대 에스란 -2-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227 게시일 01/01/28 21:28:50 수정일 크기 14.7K 조회횟수 14 "으으으……!" 전형적인 범죄자 얼굴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긴 그 남자는 목에 들어온 칼을 보고는 덜덜 떨었다. 얼굴 전체에 겁먹은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면 에 스란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라고는 볼 수 없었다. 요시아는 그 겁에 질려 있는 남자에게 더욱 칼을 들이대며 조용히 물었다. "저 산의 분지 안에 우두머리가 살고 있겠지? 정확히 어느 집이냐?" "모, 몰라……!" "헛소리하지마!" 주륵- 남자가 모른다고 하자마자 요시아의 단도가 남자의 목을 살짝 그었다. 그에 따라 갓 나온 싱싱한 피가 남자의 목을 따라 흘러내렸다. 지금 요시아의 눈 에서는 일말의 동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을 안 남자는 목소리를 달달 떨며 말했다. "저, 정확히는 모, 몰라…… 그냥 저 분지 안에 살고 있다고…… 제발 목숨 만은 살려줘……!" 푸욱-! "……!"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일어난 상황에 우리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요시 아가 주저 없이 남자의 가슴에 단도를 꽂아버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시 아는 우리들이 놀라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피 묻은 단도를 남자의 옷에 잘 닦고 나서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 말했다. "다음 녀석을 찾아보도록 하죠." "……." 흐으…… 진짜로 죽여버렸군. 굳이 죽일 필요 없이 그냥 기절시키거나 어딘 가에 묶어두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왠지 가슴이 답답해……. "그 자를 굳이 죽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오?" 요시아의 행동을 지켜본 카이론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요시아에게 했다. 그러자 요시아는 뭘 그런 거를 물어보냐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사는 자들은 모두 극악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온 거라구요. 어차피 처형되었을 인간들이란 말이에요. 그런 자들을 죽이겠다는데 뭐가 잘못됐죠?" "물론 잘못됐죠." 난 요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반론을 폈다. "사람을 처벌할 권리는 법원에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이 너도나도 범죄자들 에게 보복을 가한다면 사회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이죠. 게다가 요시아 씨는 그 자로 인해 목숨을 위협받거나 하는 등의 위급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 당 방위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 내 말에 요시아는 물론이고 카이론과 아트로포스 모두 지금 내가 무슨 소리 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서야 난 이곳이 법과 제도가 현대와는 달라서 내가 한 말들은 이들에게 있어서 완전히 개 짖는 소리로밖 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즉시 내 말을 변경했다. "간단히 말해서 신변에 위협을 받지도 않았는데 사람을 죽인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겁니다." "위협은 받았다구요. 이 녀석을 죽이지 않았다면 벌써 우리가 왔다는 사실 이 저기 있는 자들에게 알려졌을 걸요?" "꼭 죽이지 않아도 되잖습니까? 기절시키거나 나무에다 묶어두던가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 건 시간이 걸려요!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처리 방법이에요! 그걸 모르는 거예요?" 요시아는 절대 내 말에 지지 않겠다는 신념 하나로 열심히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질 것 같아서 난 급히 화제를 기본적인 사항 으로 되돌렸다. "이 자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요시아 씨는 아십니까? 이 자가 그렇게 죽 어야 마땅한 자입니까? 증거는 있습니까?" "윽……!" 내 말이 결정적인 듯 요시아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아까 말했던 그대로를 구간 반복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극악 범죄인들이라구요! 나쁜 짓을 했으니까 여기 있 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건 말이 안 됩니다. 단지 심증만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도 요시아 씨가 매우 의심스러우니까 당신을 죽여야겠군요." "으윽……!" 이번의 내 말에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요시아는 이만 바득바득 갈았다. 승리를 눈앞에 둔 나는 속으로 열심히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 만 그 마음속의 노래는 카이론의 말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너희 두 사람이 떠드는 통에 들켜버린 것 같군." "……!" 카이론이 말한 대로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의 그림자가 엿보였다. 요시아와 정신없이 말다툼하다보니 소리가 커졌고, 그 결과 우리들의 존재가 들켜버린 꼴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건 두말할 것도 없는 나와 요시아의 잘못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사람 죽이지 말자 씨? 지금 이 상황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데요?" 요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날 비꼬고 있었다. 확실히 예전 같으면 이렇게 많은 적과 싸우다보면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을 테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 상자가 대량으로 나오게 하거나 아예 안 나오게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린 결정은 사상자를 0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갑니다!" 난 모두에게 예고를 한 뒤에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물론 내가 사용한 마법 은 워프였다. 우선 워프로 순식간에 산봉우리로 올라가자는 계산이었던 것이 다. "아……!" 아주 잠깐의 순간이 지나고 주위를 둘러본 요시아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표 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카이론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에 네 명이나 되는 사람을 워프시키는 건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 다. "도대체 네 녀석은……!" "중용자 이그드라실입니다." "……?!" 카이론이 날 보고 경악할 때, 난 망설이지 않고 내 정체를 얘기해 주었다. 더 이상 숨기는 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이론은 자 신이 뭔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중용자 이그드라실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묻는 카이론에게 난 친절하고도 분명한 어조로 재차 대답했다. 내가 내 정체를 곧이곧대로 얘기해버리자 아트로포스도 카이론과 같은 표정을 지 었다. 우리들 중에서 멀쩡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건 나와 요시아밖에 없었다. "이드…… 네가…… 중용자 이그드라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이론 씨와 처음 만났을 때 동시 워프를 간단 하게 해낸 것이고, 강자 선발 대회에서 쉽게 우승했으며, 지금 이렇게 사람 네 명의 워프도 간단하게 한 겁니다." "……." 카이론은 마치 내 말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라도 하듯이 내 얼굴을 뚫어져 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지금까지의 일을 기억하느라 내 얼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다. "그랬군…… 그랬었군……." 잠시 후, 카이론의 입에 나온 말은 그 두 마디였다. 그 이외의 말은 그에게 불필요했던 것이다. 그때 나와 카이론의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던 요시아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뭐야? 카이론 씨는 이드 씨가 중용자였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예요? 동료에 게조차 자신의 정체를 숨겼을 줄은 몰랐는데." "응? 그럼 요시아 양은 알고 있었단 말이오?" "물론이죠. 척 보면 알아요." "……." 척 보면 안다는 요시아의 말에 카이론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척 보면 아 는 요시아와는 달리 자기는 척 보면 모른다 쪽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대로 두면 이번엔 요시아와 카이론끼리 맞붙을 것 같아서 난 즉시 화제를 본래의 목적으로 바꾸었다. "저 아래가 극악 범죄자들이 사는 분지인 모양이군요." "아, 맞아요." "근데…… 집들이 상당히 불규칙하게 만들어져 있네요." "그럴 거예요. 무슨 계획을 가지고 집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 들어오는 대 로 그냥 막 짓는 것이니까요." 요시아는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으나 나에게는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두워서 세세한 부분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분명 분 지 안의 집은 완전 개판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집은 쓸데없이 넓 은 공간을 차지하고 어떤 집은 무지하게 작으며 어떤 집은 괜히 높게 지어졌 고 어떤 집은 굉장히 작게 만들어서 완전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기분 같아서 는 저 집들을 싸그리 치워버리고 아예 새로 집을 짓고 싶었다. "……!" 그때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탐색하러 갔던 다섯 정령들이 한꺼번에 내 몸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정령들의 대표로 실프가 나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찾아냈어요. 검은 저기 보이는 가장 작은 집 안에 숨겨져 있어요!" 호오∼ 그래? 아주 수고 많았어. 그건 그렇고 내가 여기 있는 거 잘도 찾아 냈네? 게다가 너희들은 서로 만나서 왔냐? 어떻게 동시에 돌아오냐? "검을 먼저 발견한 건 잭 오 랜턴이에요. 그리고 나서 서로 모인 다음에 주 인님에게 돌아온 거구요. 주인님을 찾는 건 아주 쉬워요. 저희들과 주인님 사이는 끈으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헐…… 그랬냐? 잭 오 랜턴이 꽤나 하는군. 역시 소환주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까 녀석도 덩달아 훌륭해진 거야. 어쨌거나 너희들이 날 쉽게 찾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검의 행방은 알아냈습니다. 내려가겠습니다." "……?" 갑작스런 내 말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그런 모두의 표 정을 무시하고 즉시 워프로써 순식간에 산봉우리 정상에서 검이 숨겨져 있는 집 바로 앞으로 이동했다. 집 주위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가장 작고 허름한 집이라 설마 이런 곳에 훔친 검을 놓아두지는 않았겠지라는 착각을 일으키기 위한 것인 듯했다. "이 집 안에 있다는 말이에요?" 내가 그 집의 문을 열려고 하자 요시아가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카이론과 아트로포스도 어떻게 내가 그런 걸 알았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렇다고 이들에게 정령들 얘기를 한다면 믿어줄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이 한 마디로 넘어가야 했다. "중용자이기 때문입니다." "……!" 흘…… 중용자라고 하니까 모두들 납득하는 표정이군. 웬만한 건 이 한 마 디로 다 통용되는 거냐? 아무리 중용자라도 숨긴 물건 찾기 같은 능력은 없 단 말이야. 내가 무슨 마법을 사용한 건 줄 아나? "하여튼 어서 검을 가지고……!" 난 그렇게 말하면서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주변에 있던 집들에서 모조리 불이 들어오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인간이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훌륭한 살인흉기들이 들려 있었다. 우리들의 존재가 발각되었을 때부 터 녀석들은 우리들이 이리로 올 것임을 확신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중용자 님? 아까처럼 워프를 해서 먼저 다른 곳으로 피하실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사람 죽이지 말자'에서 '사람 죽이자' 로 생각을 바꾸실 건가요?" 요시아는 여전히 날 놀리면서 나에게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독촉했다. 그러 는 사이에도 극악 범죄자들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우리들에게 다가오고 있 었다. 완벽하게 우리를 사방에서 둘러쌌기 때문에 하늘이나 땅이 아니고는 도망칠 길이 없었다. "모두들 집 안으로 들어가서 검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 동안 전 이곳에서 녀석들의 접근을 막겠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확실하게 검을 찾아오 십시오." 잠시 동안의 생각 끝에 내가 얻어낸 결론은 그것이었다. 중용자인 나라면 극악 범죄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고 해도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 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취지를 이해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문을 열고 그 작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극악 범죄인들은 버럭 소리를 지 르며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파이어 스톰(Fire Storm) 필라(Pillar)" 화르륵- 극악 범죄자들이 다가오기 전에 난 나와 그 작은 집 주변에 거대한 불기둥 을 만들었다. 불기둥의 높이는 장장 10여 미터에 달했고, 그 열기도 말할 수 없이 뜨거웠다. 물론 그건 불기둥 밖에 서 있는 녀석들에게만 해당하는 사항 이었고, 불기둥 안에 있는 난 전혀 뜨거움을 느끼지 않았다. "파이어 스톰 허리케……!" 막 평소의 버릇대로 필라 다음에 허리케인을 가동시키려던 나는 문득 그렇 게 되면 무수한 인명 사상이 발생할 것임을 떠올렸다. 그래서 필라만을 계속 가동시킨 채 그냥 그대로 있었다. 그러자 불기둥 너머에 있던 극악 범죄자들 이 열심히 소리쳤다. "마법사! 마법사 없냐?!" "마법으로 저 녀석을 짓밟아버려!" "마법사인 녀석은 빨리 마법을 쓰라고!" 흘흘…… 열심히 마법사를 찾는구만.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쓰러질 거 같냐? 이 정도의 강력한 불기둥 마법을 뚫고 나한테 마법을 사용할 녀석은 없다고. "불가능합니다! 녀석이 쓰는 마법이 너무 강해요!" "젠장! 그럼 무기를 집어던져!" 호오∼ 마법이 안 되니까 이제 물리적인 방법을 쓰겠다는 거냐?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불기둥 속에다 강한 바람의 장벽을 쳐서 모두 막아주겠다! 까강-! 깡-! 내가 막 바람의 장벽을 불기둥 속에 같이 첨부시켰을 때 바람의 장벽으로부 터 무엇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무기들이 바람의 장벽에 맞고 튕겨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키듯이 불기둥 밖에서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으윽! 뭐야? 어째서 무기가 도로 튕겨져 나오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이러다가는 검을 뺏기겠다!" 목소리의 굵기와 그 말의 내용으로 보아 그 주인공은 무법지대 에스란의 우 두머리인 듯했다. 그래서 불기둥의 기세를 약간 누그러뜨려 녀석의 모습을 확인한 결과, 에스란의 우두머리는 상당한 거구에 근육이 무수하게 박혀 있 고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법지대라 불리는 에스란에 딱 걸맞은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으악!" "……?" 내가 열심히 에스란의 우두머리를 감상하고 있을 때 갑자기 요시아, 아트로 포스, 카이론이 들어갔던 집 안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만을 듣고 '이 목소리는 누구다!'라는 놀라운 청력을 내 가 가지고 있을 리 없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난 전혀 알 수 없었다. 콰당! "크윽……!" 비명 소리가 들린 직후, 검이 숨겨져 있는 집의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신음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난 처음엔 그 사람이 검을 지키려고 집 안 에 잠복해 있던 녀석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땅바닥 을 뒹군 인간은 다름 아닌 카이론이었다. "카이론 씨! 무슨 일입니까?" "으으……!" 난 땅바닥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있는 카이론을 보고 질문을 던졌지만 카이 론은 대답 대신 신음 소리로 일관했다. 자세히 보니 카이론의 왼쪽 다리에 검에 베인 듯한 상처가 생겨 있었다. 척 봐도 무지하게 아플 것 같은 상처였 다. 도대체…… 저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째서 일급 마법사인 카 이론이 부상을 당한 거야? 정말 저 안에 매복하던 녀석이 있었나? 그럼 같이 안으로 들어간 아트로포스나 요시아는?! "이드!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집 안쪽에서 들려왔다. 즉시 고개를 돌려 확인해본 결과 나에게 소리친 인간은 요시아였다. 그리고 그런 요시아의 손에는 단도 하나와 긴 장검 하나가 들려져 있었으며, 요시아의 앞에는 아트로포스가 서 있었다. 문제는 요시아의 단도가 아트로포스의 가녀린 목에 겨누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뭐냐?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건 완전히 인질극 아닌가? 근데 어째서 요시아가 아트로포스를 인질로 하고 있지? 나한테 뭐 요구할 게 있나? "무슨 짓입니까, 요시아 씨?" 아직 요시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요시아에게 부드러운 어 조로 물어 보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미안하지만 이 소녀를 인질로 난 여기서 도망쳐야겠어." "……." 흐흐…… 아트로포스를 인질로 삼고 여기서 도망치겠다라…… 뭐, 네 녀석 좋을 대로 해라. 하지만 그게 네 녀석 마음대로 될 것 같냐? 하여튼 녀석이 반말을 지껄이니까 나도 반말로 나가주마. "이유는 뭐냐?" "이유는 필요 없어! 어서 그 불기둥을 없애!" 요시아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불기둥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당장 없 애라고 재촉했다. 내 불기둥 때문에 요시아가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이다. 난 나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인간의 얘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으나 요시아가 아트로포스의 목에 단도를 바싹 갖다댔기 때문에 그냥 얌전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엇……?" 갑작스럽게 뜨거운 불기둥이 사라져버리자 불기둥 밖에서 이만 부득부득 갈 던 극악 범죄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나와 요시아를 보더니,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해서 요시아의 얼굴을 보고 나더니 에 스란의 우두머리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보석 사냥꾼 요시아! 어째서 네놈이 여기 있는 거냐? 게다가 왜 그 검을 가지고 있는 거냐? 그 검은 네 녀석이 사러 오기로 되어 있었잖아!" 얼레? 그건 또 무슨 소리다냐? "호호! 내가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아? 너희들은 녀석들에게 완전히 속은 거라구! 그 자들은 본래 이럴 목적으로 너희에게 이 검을 훔치도록 지시한 거니까 말이야!" "뭐엇?!" 요시아의 득의 어린 말에 에스란의 우두머리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 다. 난 저 둘 사이에 뭔가 은밀한 거래가 있던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내 가 전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두머리는 나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 고 오직 요시아를 쳐다보며 따지기 시작했다. 제목 [사이케델리아] 26장:무법지대 에스란 -3- 게시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228 게시일 01/01/28 21:29:12 수정일 크기 18.1K 조회횟수 15 "녀석들이 날 속였다고? 웃기지 마! 녀석들은 검을 훔치고 나서 요시아가 사러오든 말든 그 검으로 사일러드 국왕을 협박하면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 다고 했다! 너 같은 건 오지 않아도 막대한 돈을 얻을 수 있다고! 멋대로 그 검을 가지고 달아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호호! 그 자들이 아무 이득 없이 너희들에게 그런 제안을 했을 거 같아? 그 자들은 나에게 너희들이 훔쳐 나온 검을 훔치라고 했어! 한 마디로 너희 들은 그 자들 대신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쳐준 거란 말이야!" "무슨 헛소리냐! 넌 그 녀석들에게 그 검을 가져다 줄 생각이란 거냐?!" "아니! 이 검을 가질 자는 다른 녀석이야! 그것이 이번 사건의 진정한 목적 이니까 말이야!" 요시아와 우두머리의 말다툼은 계속되었지만 난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둘 사이의 말다툼에 끼어들어야만 했다. "둘 다 진정하라고. 차근차근히 얘기를 들어보면 되잖아." "……!" 내가 입을 열고 나서야 내 존재를 파악한 우두머리 녀석은 손에 든 검을 꽉 쥐면서 상당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트로포스라는 인질을 잡고 있는 요시아는 아주 여유 만만한 표정이었다. 아트로포스가 있는 한 내가 공 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치라고 시킨 자는 누구냐? 그리고 너희들 은 각자 어떤 목적으로 검을 훔치려고 했나?" 난 요시아와 우두머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우두머 리는 내가 방금 전까지 그 엄청난 불기둥을 만들었던 분이란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인지 내 말을 가볍게 씹어버렸다. "애새끼는 꺼져! 지금 난 저 년과 얘기 중이란 말이다!" "……." 흐으…… 어쩔 수 없이 약간 강압적으로 녀석들에게 얘기를 들어야겠군. 평 화를 사랑하는 내가 폭력을 써야하다니…… 아…… 가슴 한 구석에서 기쁨의 물결이……!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커억!" 위에서 내리누르는 공기 압력에 에스란의 우두머리를 비롯한 모든 극악 범 죄자들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집은 아주 멀쩡했다. 내가 역압 마법을 건 것은 오직 에스란의 극악 범죄자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말할 기분이 생겼냐?" "크윽…… 네 녀석이 바로 방금 전에 마법을 썼던……!" "그걸 이제야 알았냐? 죽기 싫으면 바른 대로 대답하라고." "으으……!" 에스란에 들어와서 군림하고 있던 우두머리 녀석이라 그런지 나에게 강요를 받아서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지만 내 압도적인 힘을 당할 수가 없음을 깨 닫고는 이내 순순히 모든 진상을 불기 시작했다. "한 몇 주일 전에 어떤 녀석이 찾아왔다. 그 녀석은 우리에게 사일러드 국 왕의 검을 훔쳐오라고 했다. 성공하면 요시아가 찾아와 거액을 주고 그 검을 사갈 것이고, 설령 요시아가 오지 않더라도 그 검을 가지고 사일러드 국왕을 협박하면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다지 나쁜 생각은 아닐 것 같 았고, 사일러드는 코딱지 만한 나라라서 우리들을 죽이려고 군대를 보낼 수 도 없다라고 생각해서 실행에 옮기게 된 거다." 흐음…… 한 마디로 녀석들은 한 밑천 잡아보려고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 쳐냈다는 소리로군. 한 나라의 검을 간단히 훔쳐내는 걸 보면 에스란 녀석들 의 저력도 상당한걸? 자, 이제 요시아의 얘기를 들을 차례겠지? "요시아, 이제 네가 말할 차례다." "호호, 이드! 넌 내가 녀석처럼 다 얘기할 거라 생각해?" 에스란의 우두머리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보고도 요시아는 눈 하나 꿈 쩍하지 않고 오히려 날 놀리고 있었다. 역시 인질을 잡고 있다는 상황이 그 녀에게 상당한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휘이익-!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요시아는 허공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고, 잠시 후에 한 마리의 거대한 골드 드래곤이 허공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마도 아 트로포스를 인질로 잡은 채 골드 드래곤을 타고 이곳에서 달아날 생각인 듯 했다. 펄럭펄럭- 휘이잉-! 상당히 강한 바람을 동반하며 내려온 골드 드래곤은 내 역압 마법에 의해 움직일 수 없게 된 인간들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아무리 골드 드래곤이 사뿐히 내려앉았다고는 하더라도 그 무게는 한낱 인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골드 드래곤에게 깔린 녀석들은 간단하게 땅 위에 자신의 피를 뿌리며 이승을 떠나버렸다. 흐으…… 골드 드래곤에게 신경을 쓰느라고 밑에서 바둥거리던 극악 범죄자 들을 그냥 두고 말았군. 내가 약간만 신경 썼더라면 골드 드래곤에 깔려 죽 는 참사는 면했을 텐데……. "호호! 그럼 잘 있어, 이드!" 요시아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아트로포스와 함께 골드 드래곤의 등 위에 올 라타고는 바로 골드 드래곤을 출발시켰다. 골드 드래곤은 강한 바람을 일으 키며 허공에 떠올랐고, 이내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으으……!" 아! 그러고 보니까 지금까지 다리 부상을 당한 카이론을 그냥 방치하고 있 었구나! 인질로 잡힌 아트로포스만 신경 쓰느라 카이론을 잊어먹고 있었어! "이제 괜찮아질 겁니다." 땅바닥에서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카이론을 떠올리자마자 난 즉시 그에게 다가가 치유마법을 걸어주었다. 중용자인 내가 사용한 마법이라 카이 론의 다리 부상은 순식간에 낫게 되었다. 그래서 난 부상의 고통에서 벗어난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어떻게 하다가 부상을 당하신 겁니까?" "후우……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찾아내자마자 요시아가 내 다리를 베어버 렸다. 그리고 아까 봤던 대로 로스 양을 인질로 잡아버렸지." 역시 집 안에는 매복자가 없었군. 대신 요시아가 카이론을 공격했던 거였어. 모든 것은 요시아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요시아에게 누군가 이런 일 을 시킨 건가? 음…… 요시아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고는 모르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요시아를 찾아내서 로스를 되찾기로 하죠." 난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다섯 번째 성물의 힘인 초중력을 사용하여 하늘 위로 떠올랐다. 물론 카이론을 에스란에 그대로 남겨두면 극악 범죄자들에게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200%였기 때문에 카이론도 같이 데려갔다. 내가 따라 가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저만큼 날아가 점이 되어 가는 골드 드래곤이었다. 슈우웅- 마치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처럼 내 몸은 엄청난 속도로 골 드 드래곤을 따라잡아 나갔다. 카이론은 내 등에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은 채 비명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비명은 주변에서 발생하는 바람 소리 때문에 전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카이론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유는 카이론의 몸에서 진동이 발생하기 때문이 었다. 카이론이 비명을 지를 때 그의 몸이 진동을 일으키고 그 진동이 내 몸 에 전달되므로 그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슈웅- 처음 출발할 때는 나와 골드 드래곤 사이의 거리가 거의 몇 킬로미터까지 차이가 났었으나 성물의 힘에 의한 비행 때문인지 현재 그 거리는 불과 몇 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난 지금 요시아의 바로 뒤까지 쫓아온 상 태였던 것이다. "앗! 어떻게……!" 골드 드래곤의 뒤쪽에 내가 날아오고 있는 것을 본 요시아가 말도 안 된다 는 표정을 지었다. 인간이 골드 드래곤보다 빨리 날고 있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놀래는 사이, 난 요시아의 앞쪽에 얌전히 앉 아 있는 아트로포스가 사지 멀쩡함을 확인한 뒤에 즉시 골드 드래곤에게 마 법을 걸었다.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디스트럭션(Destruction)" 부르르- 머리 속에 전기 충격이 가해지자 골드 드래곤은 일순간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은 채 그대로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땅 위에 떨어져 내 렸다. 앞으로 날아가던 관성 때문에 곧바로 떨어져 내리지 않고 포물선을 그 리며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꺄아악ㅡ!" 골드 드래곤이 무서운 속도로 포물선 추락을 시작하자 요시아가 겁에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아트로포스 역시 무서워하고 있었으나 비명은 지르지 않고 요시아에게 죽어라고 매달려 있기만 했다. "포스 프레셔 오버(Over)!" 골드 드래곤이 떨어지는 속력 그대로 땅 위에 추락하면 모두 무사하지 못하 기 때문에 난 골드 드래곤의 추락 속도를 역압 마법으로 조금씩 늦추었다. 그에 따라 골드 드래곤은 천천히 떨어져 내렸고, 마침내 어떤 숲 속에 안전 하게 착지하게 되었다. 물론 골드 드래곤 녀석은 숲 속에 떨어져 내렸어도 기절 상태였다. "아야……!" 다친 곳도 없으면서 괜히 아픈 소리를 낸 요시아는 내가 골드 드래곤 옆에 가볍게 내려서자 즉시 아트로포스의 목에 단도를 들이대고는 날 협박하기 시 작했다. "다가오면 이 여자애를 죽이겠어!" "……." 흘……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가 보군. 인질만 있으면 내가 함부로 손을 쓸 수 없다라고 정말 굳게 믿는가 본데? 물론 내가 평범한 중용자였다면 나 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테지만, 문제는 내가 평범한 중용자가 아니라는 거지.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고 네 얘기 엿들을 사람도 없으니 왜 검을 훔치려고 하는지 이유나 알려달라고." 난 정신을 잃은 골드 드래곤 옆에 가만히 선 채 요시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장 요시아를 죽이고 아트로포스를 안전하게 구해낼 자신은 있었으나 그보다 먼저 이 사건의 동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요시아는 내가 선뜻 손 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아트로포스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리고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그런 걸 너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나한테 돌아오 는 이득이 뭐가 있는데?" "이득이야 있지.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내가 널 지금 당장 죽여버릴 거 니까."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시아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인질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도 너무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는 날 보고 불안함을 느낀 것이 었다. 그러나 인질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불안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있었 다. "호호! 어차피 중용자는 중용의 법칙 때문에 인간들 일에 끼어 들 여유도 없을 테니까 이 친절한 누님께서 알려주도록 하마." 흘…… 아줌마…… 억지로 웃는 게 다 보여……. "에스란에 있던 녀석들에게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쳐오라고 주문한 녀석 은 바로 니아르 제국의 제후야. 그 녀석이 이번 사건의 진정한 배후인물이지." "……?" 이번 사건에 니아르 제국의 제후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조금 의외였다. 제후가 남의 나라 검을 훔쳐 서 뭐에다 쓸 건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요시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니아르 제국이 지금 네 명의 제후들에 의해 분열되다시피 하고 있다는 건 너도 아는 사실이겠지? 또 그 제후들이 니아르 제국 전체를 통치하고 싶어한 다는 것도 알 거야." "……." "제국 전체를 통치하려면 상대를 포섭하거나 쓰러뜨려야 해. 하지만 네 제 후들 모두 강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어서 남의 밑에 들어가는 걸 싫어하지. 그래서 결국 전쟁을 통해 상대를 쓰러뜨릴 수밖에 없어. 그렇지만 아무 명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간 다른 세 제후들의 연합 공격에 가장 먼저 사라질 가 능성이 아주 크지." "……." "자신 이외에 힘이 비슷한 다른 세 명의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표적 하나를 정해서 세 명이 연합 공격으로써 그 사람을 없애고, 그 다음 다 시 남은 두 사람이 연합해서 나머지 한 명을 제거한 뒤 마지막으로 두 사람 이 격돌하는 거야. 그러면 이길 가능성이 커지지." 요시아는 열심히 입을 나불대면서 나에게 무슨 전쟁 방법을 가르쳐주려는 듯이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인질을 붙잡아서 유리한 입장에 서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내 표정에서 전혀 초조함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이 라도 많이 해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니아르 제국의 한 제후는 에스란 녀석들에게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쳐오 라고 시켰어. 그리고 아까 대장 녀석이 말했던 대로 검을 훔친 후 내가 찾아 와서 거액의 돈을 지불하거나, 아니면 그 검으로 사일러드 국왕을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라는 조언을 해주었지. 에스란 녀석들은 제후 녀석의 제안이 별 로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해서 대담하게도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쳐 내었고 말이야." "그래서?" "하지만 제후 녀석은 애초에 날 이용해서 에스란 녀석들이 빼낸 검을 훔쳐 내고자 했어. 물론 그 검을 자신이 직접 가지려는 건 아니야. 그 검을 다른 제후의 수중에 몰래 가져다줌으로써 전쟁의 구실을 만들려는 생각이지. 난 지금 니아르 제국의 다른 제후의 밑에 있고, 내가 이 검을 들고 그 다른 제 후에게로 가면 사일러드 국왕의 정보망에 의해 그 다른 제후가 검을 훔쳐갔 다는 것으로 사실이 잘못 알려지겠지." "음……." "니아르 제국의 제후는 세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사일러드 국왕은 검을 되찾 기 위해 니아르 제국의 다른 세 제후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거야. 그럼 다른 세 제후들은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훔쳐갔다는 죄명을 그 제후에게 덮어씌우 고 그를 제거하는 거지. 이제 알겠어?" "……." 요시아가 말한 요점은 한 마디로 그녀 자신이 스파이 역할을 해서 니아르 제국의 제후 중 한 명을 제거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요시아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네가 검을 그 제후에게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 제후가 검의 정체를 알면 받 아줄까?" "호호! 그 제후는 검의 정체를 몰라. 본 적이 없거든. 사일러드국과 멀리 떨어진 지역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일러드 국왕의 검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거야." "넌 제후를 직접 만나서 뭔가를 전해줄 정도로 신분이 높냐?" "물론이지! 실력이 있으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어 있어!" 흘…… 자기 자랑을 하는구만. 뭐 요시아가 높은 자리에 앉아있든 땅바닥에 앉아있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가장 중요한 질문이나 하자. "넌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선 거냐? 일을 꾸민 그 제후가 너에게 무슨 좋은 조건을 내건 거지?" "흥!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너한테 알려줘야 해?" 지금까지 이번 사건의 진정한 목적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던 요시아는 화제의 중심이 자신에게로 옮겨지자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 거부는 생각보다 상당히 완강했기 때문에, 그녀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 난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 기로 했다. "자, 요시아. 넌 이미 인질을 놓친 거니까 순순히 자백해." "무슨 소리야? 이 여자애가 내 손에 있는 거 안 보여?!" 요시아는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듯 버럭 화를 냈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보기에는 아트로포스가 요시아의 단도 때문에 꼼짝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미 아무도 모르게 손을 쓴 나는 여유 있는 태도로 말했다. "능력 있으면 지금 당장 로스를 죽여봐." "……!" 내 입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자 요시아의 표정이 크게 흔들 렸다. 게다가 내 표정 역시 일말의 초조함도 떠올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요 시아는 더욱 동요했다. 하지만 인질로 삼고 있는 아트로포스에게 상처를 주 면 내 여유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는지 단도로 아트로포스의 목을 살짝 그 으려고 했다. "뭐, 뭐야……?!" 아트로포스의 목을 그으려 했던 요시아는 단도가 전혀 아트로포스의 목에 닿지 않자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 는 것이었다. 난 그 순간을 노려 노움에게 지시를 내렸다. "노움, 뒤로 잡아당겨." "……!"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요시아의 발 밑에 대기하고 있던 노움이 요시아의 발목을 잡아 뒤쪽으로 잡아끌었다. 그러자 요시아는 완전히 중심을 잃고 노 움이 끄는 힘에 의해 땅바닥에 볼썽 사납게 나뒹굴었다. 그 사이 아트로포스 는 안전하게 내 옆으로 돌아왔다. 아까 요시아가 아트로포스의 목에 상처를 주지 못한 것은 바람의 정령 실프가 아트로포스의 목과 요시아의 단도 사이 에 얇은 바람의 장벽을 쳐놓았기 때문이었다. "다친 데 없지?" 난 멀쩡한 아트로포스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달리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트로포스는 그런 날 보고 약간 삐진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전혀 걱정한 눈치가 아니네요." "아, 뭐……." 흘…… 솔직히 요시아가 아트로포스를 인질로 삼은 다음부터는 전혀 걱정을 안 했지. 안전하게 아트로포스를 구해내리라 확신했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요시아가 아트로포스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느낌도 있었고. "아윽……!" 그때 노움이 무지막지하게 잡아챘기 때문에 땅바닥을 완전히 뒹굴었던 요시 아가 죽는 소리를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여유 있게 옷에 묻은 먼지 를 탁탁 털었다. 이미 그녀 자신은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중용자는 정말 무섭네. 인질범과 인질을 아주 쉽게 떨어뜨려 놓다니 말이 야. 자, 난 이제 모든 걸 포기했으니까 맘대로 해봐." 요시아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항복의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난 즉각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했다. "왜 넌 그 제후의 말을 따른 거지? 일을 완수하면 보석이라도 받는 거야?" "맞아." "……?" 요시아의 대답이 그렇게 금방 나올 줄은 몰랐고, 게다가 내 엉성한 추측이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난 잠시 어리벙벙한 상태로 서 있었다. 그런 날 보고 요시아는 당연한 듯이 말했다. "난 보석 사냥꾼이야. 보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라구. 그런 내 가 움직였으니 보석 걸린 일이 당연하잖아!" 흘…… 그래, 그런 당연한 사실을 몰라서 미안하다. "그런데 어째서 보석을 모으려는 거냐? 보석을 모아서 어쩌려고? 설마 다크 오레인 같은 녀석들을 소환하기 위한 도구로 쓰려는 건 아니겠지?" "호호호!" 이어진 내 질문에 요시아는 요사스러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날 비웃기 라도 하는 듯한 웃음소리라서 기분이 상당히 언짢았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 는 실제로 날 비웃은 것이었다. "정말 바보구나! 내가 그 아까운 보석을 다크오레인 같은 놈들에게 제물로 바칠 것 같아? 난 어디까지나 보석 자체를 사랑한다구! 그 찬란하게 빛나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말이야!" 보석 얘기를 하자 요시아의 눈에서 광채가 돌았다. 하지만 난 그런 요시아 를 무시하고 질문만 했다. "대회 때 불렀던 다크오레인에게 제물로 보석을 바쳤다며?" "물론 그랬지." "그런데 뭐가 보석 자체를 사랑해?!" "그 보석들은 평범한 보석이니까 그렇지! 진짜로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을 제물로 바칠 것 같아?!" "……." 흘…… 그래, 평범한 보석들을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을 생각 못한 내가 죽 일 놈이다……! "보석 때문에 전쟁 구실 만들기에 참여했다는 거냐?!" 그 말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카이론이었다. 갑작스런 카이론의 끼어 들기에 나와 요시아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했고, 카이론은 열심히 요시 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보석을 좋아하는 것은 네 자유다! 하지만 좋은 보석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는 지 아는 거냐?! 너의 그 단순한 허영심 때문에 무수한 백성들이 죽을지도 모 른단 말이다!" 헐∼ 카이론이 꽤 열심히 설교를 하는군. 문제는 그 정도의 설교로 요시아 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리가 없다는 거지만. "단순한…… 허영심……?" "……?" 카이론의 설교를 들은 요시아의 입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말이 흘러나왔다. 분위기를 잡는 요시아 때문에 카이론은 약간 위축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억지로 자신감을 쥐어짜서 소리쳤다. "물론이다! 보석을 모으고자 하는 건 너의 단순한 허영심일 뿐이야!" "후후……." 요시아는 처음으로 낮게 웃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주었던 가짜 웃음과는 차원이 틀렸다. 그 웃음은 그녀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흘러나 오고 있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웃음소리는 결코 즐거워서 내는 것이 아 닌, 기분 나빠서 내는 것이었다. "아하하하하ㅡ!" 흘…… 왠지 불안하군. 요시아가 화를 내봤자 내 앞에서는 개구리 원맨쇼니 까 신경 쓸 거 없지만 아무래도 요시아가 보석을 좋아하는 것에는 특별한 이 유가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걸? "하하하……." 한참을 신나게 웃었던 요시아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웃음소리는 작아져갔 다. 그러나 한번 웃고 난 요시아의 모습은 결코 지금까지의 가식에 찬 모습 이 아니었다. 진지함의 극치를 달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희들에게 하나 질문을 하겠다." "……!" 갑자기 요시아의 어조가 딱딱해졌다. 그래서 우리들도 긴장하며 요시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요시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질문이란 것은 황당 했다. "꽃과 보석 중에 뭐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 이것으로 11권 연재 끝입니다... 일주일 후에 연재 분량 삭제하겠습니다...=.= 내일 동생이 군대 갑니다... 그래봤자 방위지만...-.-; 전 내년쯤에 갈 생각... 현역으로...-.-; 퍼나르는 이: -_-; 담주 토욜 삭제입니다. 잊지 마시고.. 잘 받아두세여~~ <제 27 장> 여섯 번째 성물 "왜 대답이 없지? 난 꽃과 보석 중에 어떤 것이 더 아름다운지를 묻고 있어." 나와 카이론, 그리고 아트로포스 중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자 요시아가 다 시 한 번 자신의 질문을 반복했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내가 일행을 대표해서 입을 열었다. "뭐…… 꽃은 향기가 있고 뭔가 생명력이 있지. 보석이야 가공하면 더 빛나 고 말이야. 보는 관점에 따라서 꽃을 더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보석 을 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데 굳이 둘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를 따질 필요가 있을까?" "후후, 보는 관점에 따라?" 내 대답에 요시아는 낮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했던 대답을 우리들 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꽃은 결코 아름답지 않아. 꽃에는 먼지가 끼어있지. 그리고 자세히 보면 벌레가 들끓어. 하지만 보석은 그렇지 않아. 보석 속에는 벌레 같은 게 없어. 먼지가 쌓이면 닦아내면 그만이거든?" "……."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지. 꽃의 아름다움은 금방 시들지만 보석 의 아름다움은 반영구적이라는 거야. 꽃은 가꾸질 않으면 아름다움을 뿜어내 지 않아. 하지만 보석은 굳이 가공하지 않아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그런 점에서 보석이 꽃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거야." "……." 흘…… 뭘 잘못 생각하고 있군. 보석이라는 게 그냥 나오는 줄 아나? 보석 이란 건 대부분 인간이 가공한 거라고. 가공하지 않은 보석은 거의 별 볼일 없는 돌과 같지. 자연 상태의 보석은 대부분 볼품없다고. 근데…… 이런 말 을 해도 요시아는 믿어줄 것 같지가 않군. "사람들은 여자를 꽃에다 비유하곤 하지. 장미라든지 백합이라든지 수선화 라든지 그런 꽃들을 여자의 아름다움에 비유하는 거야. 근데 왜 꼭 꽃에다 아름다움을 비유하는 거지? 꽃은 금방 시든다구. 그런 꽃을 여자에게 비유한 다는 건 그 여자의 아름다움이 곧 시들어버린다는 뜻이잖아?" 요시아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꽃에다 비유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난 요시아에게 '꽃 이나 여자나 같은 생물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다음에 이어진 요시아의 외침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난 보석이 되고 싶어! 보석처럼 영원한 아름다움을 빛내고 싶단 말이야! 벌레 같은 게 꼬이지 않는 보석처럼!" "……." 우리들은 요시아의 외침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한 사람의 소망 같은 걸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느낀 요시아가 킥 킥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흘…… 뭐하긴 뭐하냐? 다른 사람들 앞에 두고 자기 소망을 발표하고 있었 잖아. 보석이 되고 싶다라는 말도 안 되는 소망을 말이야. "요시아, 보석이 되던 말던 그건 네 희망사항이야. 하지만 보석을 얻기 위 해서 스파이 짓을 하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왜 굳이 전쟁 구 실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거지? 이런 짓을 하지 않고도 보석을 모으는 건 가 능하잖아?" 난 요시아를 똑바로 쳐다보며 그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내 말이 요시아의 심기를 더욱 건드린 듯했다. 그녀의 표정이 더욱 어 두워졌던 것이다. 이런…… 말을 잘못한 건가? 옳은 일을 하면서 보석을 모으는 게 거의 불가 능한 모양이지? 하긴, 좋은 일 하면서 돈 많이 벌 수 있다면 누가 굳이 나쁜 짓을 하겠냐……. "이드…… 넌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 "……?" 요시아가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난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질문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라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 려웠다. 요시아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즉시 보충 설명을 덧붙이며 같은 질문 을 던졌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하는 걸 좋아할까 나쁜 말을 하는 걸 좋아할까?" 헐……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나쁜 말 하는 걸 좋아하지. 그리고 남을 칭찬하는 것보다는 남을 욕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 이야." "후후……." 거침없이 나오는 내 대답에 요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또 질문을 던졌다. "이드…… 넌 내가 과거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 알고 있어?" "몰라. 난 성물 모으느라 바빴으니까." "아, 그랬구나. 그럼 카이론이나 아트로포스는 나에 대한 소문을 들었겠지? 주로 어떤 것에 관한 소문이었는지 말 좀 해보겠어?" 내가 요시아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니까 요시아는 카이론과 아트 로포스를 바라보며 대답을 강요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정말로 그 둘의 대답 을 듣고 싶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트로포스가 솔직하게 입 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보석이라면 무조건 눈에 불을 켠다고……." "그것 뿐?" "거의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듣지 못했어요." "후후." 아트로포스의 대답에 요시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을 거두어들이며 이번엔 카이론 쪽을 쳐다보았다. 카이론은 아까 검을 찾았을 때 요시아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려는 것인지 요시아를 비난하듯이 소리쳤다. "보석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는 여자라고 들었다! 기분에 거슬리는 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여자! 그게 바로 너에 대한 소문이다!" 어이, 카이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요시아가 화를 낸단 말이야. 이제 거 의 자포자기 수준이 된 여자를 격발시켜서 어쩌자는 거냐고. 잘못하면 요시 아가 열 받아서 기습적인 마법을 날릴 수도 있어! "하하…… 하하하!" 그때 요시아의 입에서 통쾌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요시아가 끓 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내 예상은 웃음소리가 멈추고 나서 들려온 요시아의 말에 의해 완전 히 무너져 내렸다. "역시 아무도 내 과거에 대해서 모르고 있어! 모두 내가 계획했던 대로 소 문이 퍼져 나가고 있는 거야! 잘 되어 가는 거라구!" "……?" 얼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계획대로 소문이 퍼져 나간다고? 그 런 안 좋은 소문이 퍼지는데 잘 되어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무슨 소리냐?" 난 기뻐하고 있는 요시아의 말을 끊으며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요시아는 잠시 자신의 기분을 잘 추스린 후에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모두 내가 의도했던 대로 소문이 퍼졌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라, 네 의도가 뭐냐고." "아, 그거?" 내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가를 파악한 요시아는 후후 하고 웃었다. 일부러 드러내서 말하고 싶은 얘기는 아닌 듯했으나 내가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 서인지 이내 자신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에스란에서 태어났어." "……?" 뭐냐? 자기 출생의 비밀부터 밝히려는 거야? 난 왜 요시아가 좋지 않은 소 문을 일부러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은…… 얼레? 잠깐, 지금 에스 란이라고 했던가? 에스란이라면 극악 범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그 무법지대잖아? 요시아가 거기서 태어났다고?! "……!"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기 때문에 나를 비롯하여 카이론과 아트로포스도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요시아가 에스란에서 태어났다면 그녀의 아버지 와 어머니는 에스란에 살던 극악 범죄자라는 소리였다. 그런 우리들의 궁금 증을 풀어주기 위해서인지 요시아는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알려주었다. "내 아버지는 강간범이야. 물론 평범한 강간범은 아니고, 자신의 잘생긴 얼 굴을 이용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있는 귀족의 아내를 범한 뒤에 많은 돈을 뜯 어내는 자였어. 그리고 어머니는 돈 많은 귀족의 남자를 꾀어서 결혼한 뒤에 남편을 독살하고 다른 귀족 남자와 결혼해서 많은 부를 축적해 나가고 있었 지." 헐…… 친부모가 화려한 전적을 가지고 있군. 결국 요시아는 그 양친의 영 향을 받아서 성격이 틀어졌다는 건가? 하지만 그 정도로 비뚤어진다면 정신 이 약해빠진 여자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어느 날, 아버지는 어머니를 납치해서 에스란으로 끌고 왔어. 그때 아버지 는 이미 에스란에서 높은 지위에 앉아 있었지. 실력보다는 순전히 돈이 많아 서 그런 거지만. 어쨌든 어머니를 잡아온 아버지는 날마다 어머니를 겁탈했 지.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아기를 낳게 했어.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게 나야." 헐헐…… 약간 좋지 않은 환경에서 요시아가 태어난 거군. 근데 좀 이상한 걸? 요시아의 아버지는 어째서 요시아의 어머니를 강제 임신시킨 거지? 보통 그런 자일수록 아기가 생기는 걸 귀찮게 생각하지 않나? 제 목 :[사이케델리아] 27장:여섯 번째 성물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351 게 시 일 :01/02/07 20:34:18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2 "후후…… 넌 아버지가 무슨 생각으로 어머니를 임신시킨 줄 알아?" 요시아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마침 나도 그 점이 궁금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한 번 주절대어 보았다. "태어난 아기를 인질로 해서 네 어머니에게 많은 돈을 뜯어내려고 했던 거 아니야? 아니면 네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뭔가 귀중한 물건을 달라고 요구 하던가." "후후…… 정말 생각하는 게 너무 착해. 아니, 정상적인 생각을 한다고 할 까?" "……?" 난 내 생각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요시아는 완전히 틀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이외의 정답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장 답을 말하라는 표정으로 요시아를 노려보았다. 요시아는 그런 날 쳐다 보며 실실 쪼갰다. "이드, 넌 아버지가 원했던 게 뭔 줄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후후, 하긴…… 알 리가 없겠지." 그렇게 말하는 요시아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그늘이 졌다. 비록 입은 웃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빛은 꺼져들고 있었다. 마치 다시는 꺼내기 싫은 기억을 끄집어내야 하는 괴로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초점 없이 흐려진 눈빛으로, 요시아는 정답을 말했다. "아버지가 원했던 것…… 그건 자신의 친딸을 겁탈하는 것이었어." "……?" 요시아의 말이 완전히 우리들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들 은 쉽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우리가 그렇게 멍청한 상태로 서 있자 요 시아가 다시 한 번 정답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죽기 전에 자신의 친딸을 겁탈하고자 했던 거야. 그게 수많은 여 자를 건드린 그 자의 소망이었지. 아름다운 여자에게서 낳은 여자아이라면 분명 예쁠 테니까 어머니를 선택해서 임신시킨 거야. 그리고 나서 태어난 아 이를 잘 길렀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태어난 아이가 여자아이라서 아버지는 그 여아를 열심히 길렀어. 남자아이가 태어났다면 당장 죽이고 다른 여자를 잡아다 임신시켰겠지." "……." "어쨌든 여아는 아버지의 속셈을 모르고 그 자를 아버지라 부르며 잘 컸어. 나중에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아버지 같은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겠다는 소박한 꿈을 키우면서 말이야.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마침내 여자아 이가 첫 월경을 했을 때 아버지는 그 아이를 겁탈해버렸지. 그렇게 한 여자 아이의 소박한 꿈은 사라졌어." "……." "그 이후로 여자아이는 에스란에 있는 짐승 같은 자들의 노리개 감이 되었 어. 하루하루가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지.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더라구.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면 어떨까하고 말이야." 요시아가 초점 없는 눈으로 말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요시아의 얘기가 끝나지 않은 데다가 뭐라고 말을 할 만한 것 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얘기를 조용히 듣기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후부터 그 여자아이는 에스란에 있던 마법사 놈들에게 애교 를 부려가면서 마법에 대한 지식을 배워나갔어. 검술이나 검법 같은 건 힘이 약한 여자아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았거든. 어쨌든 마법사 놈들에게 배운 마법 을 여자아이는 빠른 속도로 익혀나갔어. 그리고 여자아이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마침내 자신을 겁탈했던 자들을 모두 죽이는 것에 성공했지. 물론 그 첫 살인 대상은 아버지였고." "……." "복수를 끝내고 그 소녀는 에스란을 빠져 나와 방황했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고 사회 생활 같은 걸 전혀 몰랐던 소녀였기 때문에 사악한 자들의 표 적이 됐지. 친절을 가장한 남자들에 의해 또 당했던 거야. 그때부터 소녀는 악당이 되기로 마음먹었어. 이미 여자로서의 삶은 꿈꿀 수 없는 상황이었으 니까 말이야." "후우……." 난 나 혼자만이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 꾸 나 자신이 그 소녀가 되어 소녀가 느꼈던 아픔을 느끼려 하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난 가능하면 냉정한 입장에서 요시아의 말을 듣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한숨으로써 불필요한 감정이입을 배제했던 것이다. "소녀는 악당처럼 사람을 죽였어. 자신에게 찝쩍대는 자들이나 눈에 거슬리 는 자들을 잔인하게 죽여버렸지. 그랬더니 사람들이 소녀를 무서워하게 되더 라구.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소녀의 과거를 전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라는 점이야. 모두들 지금의 소녀 행동에 관심을 기울일 뿐 소녀의 출생이 어떻다 든지 그런 거는 따지려들지 않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내 행동이 중요하지 내 출생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거였지." "……." "만약 그때 소녀가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후후, 뻔하지 뭐. 사람들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을 떠벌리기 좋아하니까 분명 소녀의 출생을 가지고 뭐라뭐라 했을 거야. 그렇게 되면 소녀가 많은 남자들에게 당했다는 것도 자연히 밝혀지겠지. 그때부터 사람들은 소녀를 불 쌍하게 여길 거야. 그런 일을 당하고도 착하게 사는 소녀가 대단하다면서.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녀를 경계하겠지. 자신의 아들들이 그 소녀와 가까이 지내는 건 바라지 않을 테니까. 많고 많은 여자 중에 굳이 더럽혀진 여자와 결혼하길 원하는 남자나 부모들은 없거든." "……." "뭐, 그런 저런 이유로 소녀는 지금까지 나쁜 짓을 하며 살고 있는 거야. 길고 지루한 얘기였는데 끝까지 들어줘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 그 말을 끝으로 요시아는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 지 냉정한 입장에서 그녀의 얘기를 들었던 나는 요시아가 말을 끝내자마자 바로 질문을 날렸다. "근데 그거하고 보석 모으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 내 질문에 요시아는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표정을 찬찬히 뜯 어보았다. 난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정말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쓸데없이 동정심 들어 있는 표정을 했다가는 자존심 강한 요시아가 대답해주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훗" 내 표정에 일말의 동정도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요시아는 마음에 든 듯 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난 꽃보다는 보석이 좋아. 꽃 은 한 번 꺾이면 되살릴 수가 없지만 보석은 금이 가더라도 그 본래의 빛은 잃어버리지 않으니까. 결점이 있어도 아름답게 보이는 보석이 좋아서 모으기 시작한 것 뿐이야." 흐음…… 보석에 금이 가면 별로 예쁘지 않던데…… 뭐, 하여튼 요시아는 보석에 대해서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뭐라뭐라 할 수는 없지. 단지 잘못된 점을 알려주는 수밖에. "보석을 모으는 건 네 취미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 는 안돼.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고. 과거에 네가 어떻 게 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전쟁 구실 만들기에 참 여한 네가 나쁘다는 거지. 따라서 우린 네가 원하는 대로는 절대 해주지 않 을 거다." 난 아주 확고한 표정으로 요시아에게 그렇게 못박았다. 요시아의 과거에 대 해서는 나 역시 동정하고 있긴 했으나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하는 것까지 용서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내 의지를 읽은 요시아는 킥킥 하고 웃더니 이 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난 보석을 모을 거야. 왜냐면…… 보석 수집이 내 유일한 삶의 목적이니까!" 화르륵- 요시아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요시아의 머리 위에 거대한 불의 공이 생겼다. 그리고 곧이어 그 불의 공은 우리들에게로 날아왔다. 요시아가 파이어 볼을 만들어 우리에게 던져버린 것이었다. 콰앙-! 내 뒤에 카이론과 아트로포스가 있었기 때문에 난 파이어 볼을 피하지 않고 방어벽을 쳐서 파이어 볼을 막아내었다. 그때 파이어 볼의 폭발 후 일어난 연기 사이로 요시아가 숲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 파이어 볼 공격은 날 죽이려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도망치기 위해 사용했던 것 이었다. 중용자인 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휘익- 난 요시아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즉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나서 열 추적을 시작했다. 숲 전체를 적외선으로 스캔하고 스캔한 정보를 끈을 이용해 시각 화시켜 내 두뇌로 보내는 것이었다. 끈이 사용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불가능 한 일이었다. 흐음…… 저기 인간 형태의 뻘건 물체가 움직이고 있군. 그 주위에 보이는 작고 빨간 형태들은 동물일 게 뻔하고…… 숲을 통 털어 인간 형태의 물체는 저거밖에 없으니까 저 물체가 요시아다! 파앗-! 요시아의 위치를 파악한 난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계속 해서 열 추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치고 있는 요시아의 뒤를 정확히 따 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난 요시아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러나 요시아는 절대 검을 내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예고도 하 지 않고 나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피피핑- 콰콰쾅! 다섯 발의 파이어 애로우가 내 쪽으로 날아왔고 난 바람의 장벽으로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다섯 발의 불화살 중에서 두 발은 일부러 날 빗겨나가 주변 의 나무를 맞추었다. 그에 따라 자연히 나무에 불이 붙었고, 주변은 온통 나 무이기 때문에 그 불은 여차하면 다른 나무에도 번지려 하고 있었다. 흘…… 일부러 나무를 맞춰서 불을 질렀군. 내가 숲에 불이 나지 않도록 불 을 끄려고 하는 사이에 도망치려는 수작이겠지. 뭐, 요시아의 바램대로 숲의 불은 끌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요시아를 놓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아악!" 난 우선 요시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그녀를 역압 마법으로 묶어두었다. 그 리고 나서 막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나무 주변에 진공의 막을 둘러쳤다. 그 러자 나무를 태우려고 활발히 일어났던 불은 금방 꺼져버렸다. 아무리 탈 게 있다하더라도 산소가 없는 이상 물체의 연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요시아, 왜 아무 죄 없는 숲을 불태우려고 그래? 이 많은 나무들이 불에 타 없어지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고." "시끄러! 포스 프레셔 언더(Under)!" 내 역압 마법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요시아도 역압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마법의 수준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요시아는 내 역압 마법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오직 소리 지르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 는 유일한 것이었다. "놔! 놔달란 말이야! 난 보석을 모아야 한다고! 보석이 아니면 내가 살아갈 의미가 없어!" 흘…… 보석이 아니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니……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거 아닌가? "보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살 이유는 있잖아?" 난 요시아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요시 아는 오히려 화를 냈다. "후후, 살아갈 이유가 얼마든지 있다고? 그래, 있으면 말해봐. 지금의 나에 게 살아갈 만한 이유가 될 것이 있는지 없는지 말해보라고!" "……." 이런…… 막상 살아갈 이유를 말해보라니까 할말이 없어…… 좋은 남자 만 나서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가는 죽도록 맞겠지…… 그러고 보니까 나 자 신조차도 살아갈 만한 이유가 없이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잖아? 도대체 난 왜 살고 있는 거지? 죽기 싫어서? 단지 그것 때문에? "후후, 할말이 없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여자에게 살아갈 만한 이유 같은 게 있을 리 없다고. 그래서 난 보석을 모으는 거야. 아름답게 빛을 내 는 보석을 보고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거든.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서 내 가 누구인지, 뭘 하는지, 왜 사는지 같은 걸 모두 잊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요시아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절망에 휩싸여 있었다. 보석을 모 으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을 경멸하고 있는 것이 다. 그리고 그 하나뿐인 의미조차 방해하려는 날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도 담 겨 있었다. "파이어…… 볼……!" 위에서 짓누르는 공기 압력에도 불구하고 요시아는 자신의 머리 위에 지름 1미터의 거대한 파이어 볼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한 요시아의 정신력은 실로 높이 살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커다란 파이어 볼을 그냥 방치 했다가는 이 숲에 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난 요시아에게 제 재를 가해야 했다. "크윽!" 역압 마법의 힘을 가중시키자 요시아는 탁한 신음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 무 릎을 꿇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성물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중용자의 정신력에는 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27장:여섯 번째 성물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366 게 시 일 :01/02/09 19:29:59 수 정 일 : 크 기 :9.2K 조회횟수 :71 "흐윽……!" 나에게 이길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이제 어렵게 얻은 검을 빼앗기게 되어 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요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 있던 파이어 볼은 역압 마법을 가중시키자마자 사라져 버 린 뒤였다. 그렇게 모든 위험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나는 요시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사람은 꼭 무슨 삶의 의미가 있어야만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야." "……."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삶의 목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 그런데도 그들 은 살아가고 있어. 무엇인가 이룰 목적이 없는데도 살고 있지." "……." 요시아는 여전히 뺨에 눈물을 굴리며 내 말을 들은 척 만 척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릴 랑 말랑하게 작아진 사실이 그 증거였다. "나 역시 중용자가 되기 전에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 때에는 특별한 목적 없이 그냥 살고 있었어. 그래서인지 내가 왜 살고 있는가하는 것도 생각해보 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살았지. 죽는 게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었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 두려웠지 죽음 자체는 전혀 무섭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내 가 계속 살아왔던 이유는……" "……." 내 얘기를 전혀 듣지 않는 척하던 요시아가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쳐다보 았다. 내 말에서 자신에게 맞는 어떤 대답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런 요시아에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아니 누가 했던 말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생각해낸 말인지조차 모를 문장을 얘기해주었다. "살다보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야. 아니, 꼭 좋은 일이 아니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일을 겪을지도 모르니까 살아가는 거지. 좋 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든지 간에 뭔가 변화가 있는 삶을 인간은 바라니까 말이야. 말하자면 얘기 거리가 생기는 걸 바란다 고나 할까?" "얘기 거리……?" "사람에게는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리고 사람은 그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신이 직접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돼. 예를 들어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의 험담을 하거나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귀족들을 헐뜯을 게 그거 지. 한 마디로 이야기는 사람에게 대리만족을 준다고 할 수 있어." "대리만족……." 흘…… 요시아가 내 얘기를 아주 잘 듣고 있군. 그나저나 이야기에 관한 내 용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듯한데…… 뭐, 어쨌든 배운 걸 이런데다 써먹어야지 써먹지도 않고 묵혀두면 무슨 소용 있냐. "그래서 사람은 항상 얘기 거리를 만들려고 해.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만들어서 말하고 싶어하지. 그게 자신이 살고 있다는 증거 중에 하나니까." 난 우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한숨을 돌렸다. 말은 지금까지 대충 끌어왔 지만 이제 그 얘기 거리란 것과 요시아의 삶의 의미를 잘 연결시켜야 했기 때문에 잠시 머리를 굴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왕에 얘기 거리를 남기려면 좋은 얘기 거리가 좋잖아? 악 업을 쌓아서 후대에 기리기리 남을 나쁜 얘기 거리를 남기면 뭐해? 살다보면 좋은 얘기 거리가 될만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너무 보석에 연연하지 말 라고." "……." 흐으…… 얘기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여…… 이래가지고는 모처럼 머리를 굴려 말한 것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겠다……! "훗……." 내가 한 말에 나 자신이 절망하고 있을 때 요시아가 짧은 웃음을 토해내더 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렵다면 어려운 질문이었다. "만약 좋은 일이 일어날 가망성이 전혀 없다면 넌 어떻게 할 거지?" 헐헐,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녀석이구만. "좋은 일이 일어날 가망성이 전혀 없다?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런 걸 알 수 있을 정도면 점쟁이로 나가도 성공할 것 같은데?" "……." 내 대답이 성의 없게 들렸는지 요시아가 날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난 여전히 같은 입장을 고수했다. "사람이란 존재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 다른 사 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앞으로 좋은 일 이 일어날 리가 없다라고 단정지어버리는 건 인간의 자만이겠지. 아니면 자 기 자신이 스스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는 짓이던가." "……." "살다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설령 수많은 나쁜 일이 일어 나도 단 하나의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때까지의 나쁜 일을 모두 잊을 수 있 는 게 사람이야. 그 단 하나의 좋은 일을 기다리면서 살아도 충분하지 않을 까?" "……." 난 더 이상 할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계속 쓸데 없이 주절댔다가는 오히려 요시아의 기분만 상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나와 요시아 사이에는 침묵의 공기가 흘렀다. 그러다가 요 시아가 먼저 그 침묵을 깨뜨리면서 입을 열었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 뭐…… 생길 수도 있고 안 생길 수도 있고. 아까도 말했지만 난 미래 의 일은 전혀 모르니까 그런 거 묻지 마라." "그래?" 내 대답을 듣고 난 요시아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는 천 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요시아라면 갑작스럽 게 공격을 가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난 정령들에게 방어 준비를 갖추라 고 일러두었다. 하지만 요시아는 나에게 공격을 가하는 대신 농담 비슷한 말 을 던졌다. "네가 내 일생을 책임져 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 허억…… 그런 무시무시한 말을 하다니…… 난 아직 결혼도 안한 몸이라고! 벌써 책임질 여자가 생기면 어쩌라는 거야? 내 앞길은 아직 구만리처럼 창창 하단 말이야! "미안하지만 난 로스도 부양해야하기 때문에 바빠." "로스? 아, 그 영인관 말이야? 그러고 보니 중용자와 영인관은 항상 사랑에 빠졌다는데…… 너희들도 벌써 갈 데까지 간 사이?" 아트로포스의 얘기가 나오자마자 요시아는 나와 아트로포스의 관계를 물어왔 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 당사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 들의 얘기는 중단되어야만 했다. 기절한 골드 드래곤 옆에서 녀석을 간호해 주어야하는 아트로포스와 카이론이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런이런, 벌써 응원군이 나왔네. 중용자 하나 상대하는 것도 힘든데 응원 군이 둘씩이나 왔으니 난 사라져야겠어." 아트로포스와 카이론이 나타나자 요시아는 그렇게 말하며 결코 주려고 하지 않았던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나에게 던졌다. 그리고는 유유히 우리들 사이를 지나쳐 자신의 골드 드래곤이 쓰러져 있는 장소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지 만 난 아직 요시아에게서 명확한 대답을 얻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를 불 러 세웠다. "요시아! 앞으로 뭘 하면서 지낼 거지?" "왜? 알아서 뭐하게? 나 책임지려고?" 《엇! 아트로포스의 표정이……!》 "또 보석을 모을 생각인 거냐?" 요시아의 말을 듣고 나서 실버럭서스가 뭐라고 말하려던 것 같았지만 난 요 시아에게서 대답을 들어야만 했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요시 아를 다그쳤다. 그러자 요시아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보석을 모으는 건 내 맘이야. 여자 일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려는 건 좋지 않아." "그게 아니라 일부러 좋은 일이 생길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리지 말라는 거 다." "기회를 없애든 말든 그것도 내 자유. 그럼 잘 있어라∼" 내 말을 들은 척 만 척하며 요시아는 유유히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비록 그녀가 앞으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얌전하게 살아갈 것인지는 알 수 없 었지만, 적어도 이번에 순순히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건네준 것으로 봐서 그 녀의 마음이 약간 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한테 죽고 싶지 않아서 검을 내준 거 아니냐?》 헉…… 그런가? 이런……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내가 입에 침을 튀기며 했던 설득이 전혀 소용없었다는 소리인가?! "저기…… 도대체 요시아와 무슨 얘기를 했던 거죠?" 요시아가 숲 속으로 모습을 감춘 뒤에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바로 물음을 던 져왔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얘기하려면 요시아에게 했던 말을 또 해야했기 때문에 난 그냥 간단하게 요점만 대답했다. "요시아에게서 검을 되돌려 받았어." "그게 아니라, 무슨 얘기를 했길래 책임 운운하는 말이……!" "아, 별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 "그래도……!" 가능하면 설명하려 하지 않는 나와 어떻게든 설명을 들어야겠다는 아트로포 스의 생각이 서로 충돌하여 맹렬한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 옆에 서 얌전히 서 있던 카이론이 그 불꽃을 맞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그 검이 확실한 건가? 어서 확인해 보게. 가짜하고 맞바꿨을 수도 있 을 테니까." "……!" 그렇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는걸? 당장 확인을……! 스르렁- "음……." 검집에서 검을 뽑은 후 난 차근히 관찰했다. 몇 번을 자세히 관찰한 끝에 내가 얻은 결론은 이 검이 틀림없는 사일러드 국왕의 검이라는 것이었다. 사 일러드 국왕이 보여주었던 검의 모습이 이 검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보기에는 진짜인 것 같은데요?" "흠…… 그런 것 같군." 내가 검을 관찰할 때 같이 검을 살펴보던 카이론이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 했다. 그래서 난 사일러드 국왕의 부탁을 무사히 완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 게 되었다. 이제 사일러드로 돌아가서 국왕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다. 흘…… 그러고 보니까 지금까지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카이론이 요시아 때문에 고생하는 동안 말 지키고 있는 트레이와 오브는 편하게 놀고 있었겠 군. 내가 그 둘에게 말을 지키라고 했던 거지만 왠지 손해본 느낌……. 끼이악-! 그때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위치로부터 괴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울음소리는 요시아가 타고 다니는 골드 드래곤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 시 후,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두워진 하늘 위로 골드 드래곤이 날아올 랐다. 달빛을 받으며 황금색 가루를 떨어뜨리는 듯한 모습이 왠지 전과는 달 라 보였다. 약간이나마 진실된 희망이 보이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진실된 희망은 무슨 얼어죽을! 그냥 달빛 때문에 골드 드래곤이 예쁘게 보인 것뿐이잖아! 아무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감상에 젖지 말란 말이야!》 그래, 쓸데없이 감상에 빠져서 무지하게 미안하다. "이제 일도 모두 끝냈으니까 어서 돌아가자!" 요시아의 골드 드래곤이 어두운 허공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자 카이론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지키고 있는 트레이와 오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시아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 디쯤에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정령들이 길을 잘 찾아주어서 말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27장:여섯 번째 성물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367 게 시 일 :01/02/09 19:30:17 수 정 일 : 크 기 :10.4K 조회횟수 :65 똑똑- 내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사일러드국에 가려면 며칠 정도 걸리기 때문에 우리들은 모두 여관에 묵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여행 경비는 며칠 정도라면 충분하기 때문에 지금은 각자 방을 따로 쓰고 있었다. "로스예요. 들어가도 되요?" 얼레? 이 시간에 아트로포스가 웬일이지? "어, 들어와." 문밖에서 아트로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 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조용히 열리며 약간 상기된 얼굴의 아 트로포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해요, 이런 늦은 시각에 찾아와서……." "아니, 뭐……." 흘…… 지금 밤 10시밖에 안됐는데 늦은 시각인가? 내 원래 세계였다면 지 금 시각에 열심히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하고 있었을걸? 이런, 그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컴퓨터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게임도 하고 싶어…… 우어억……!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내가 신나게 옛날 생각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이 시각에 찾아온 용건을 간략히 말했다. 방 한가운데에 테이블이 있긴 했지만 이미 아트로포스가 침대에 걸터앉은 관계로 나도 그냥 침대에 앉은 채 그 묻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물었다. "뭔데?" "요시아…… 아니, 요시아 씨에 관한 거예요." 처음엔 그냥 요시아라고 부르려던 아트로포스는 급히 요시아에게 '씨'자를 붙여 말했다. 요시아가 내게 얌전히 사일러드 국왕의 검을 넘겨주고 사라졌 기 때문에 그만큼 대우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서 론에 요시아를 들먹인 아트로포스는 이내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요시아 씨가 검을 가지고 도망친 후…… 어떤 얘기를 했나요?" "……." 흘…… 얘기하기 귀찮은 걸 질문하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얘기 안 해주면 아트로포스가 무지하게 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쩔 수 없이 간략하 게 얘기해줘야겠다. "별 거 아닌데…… 그냥 남에게 피해주면서 보석 모으지 말고 착하게 살라 고 했어." 《그게 아니잖아. 별 이상한 얘기로 요시아의 머리 속을 헝클어뜨려서 정상 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든 후에 착하게 살아라라고 하지 않았냐?》 뭐가 이상한 얘기고 뭐가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야? 침대 구석에 박혀있으면 얌전히 잠이나 잘 것이지 왜 남의 말에 간섭이냐고! 쓸데 없는 진동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잠자! 《나에게 잠은 죽음이다. 네놈이 여섯 번째의 성물을 얻을 때까지 난 널 괴 롭혀서 네놈이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도록 방해할 테다.》 "……!" 실버럭서스의 저주를 듣는 도중 난 문득 성물에 대해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 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가 훔쳐가지 못하게 침대 위에 올려 두었던 사 일러드 국왕의 검을 집어들고 그것을 아트로포스에게 보여주며 급히 물었다. "로스! 이거 성물이야?" "……." 그러나 아트로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자신의 질문 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보았다. 그런 아트로 포스의 살벌함에 난 잔뜩 쫄아서 이렇게 말해야했다. "하던 질문 계속해……." "……."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날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불만 가득한 한숨이었기 때문에 난 더욱 긴장하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 다. 하지만 아트로포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 예상 밖이었다. "제가…… 그렇게 상대하기 어려운가요?" "……?" 얼라리?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상대하기 어려워? 내가 언제 아트로포스하고 싸운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엔 전혀 없었던 것 같던데……? 《끈을 다루더니 사고 수준이 어린애 이하로 떨어졌냐? 로스가 말한 의미를 정말 싸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 농담이지. 넌 설마 내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 줄 아냐? 그나저나 말 이야, 왜 자꾸 남의 얘기에 끼어 드는 거야? 검이면 검답게 아무 소리하지 말라고! "역시…… 어려운가 보군요……." 실버럭서스와 잡담하느라 대답을 못한 나를 보고 아트로포스는 어두운 표정 을 지었다. 그래서 난 급히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생각해둔 말도 없어 서 난 말만 더듬거렸다.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어려운 게 아니라……" "후우……." 말을 계속 더듬는 날 보던 아트로포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 에 난 더욱 쫄아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계속 얘기했다가는 아트로포스의 화 만 더욱 북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여전히 내 예상을 벗어나는 말만 했다. "트레이 씨나 카이론 씨 같은 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대하면서…… 왜 저한 테만 그러는 거예요? 이드 님은 제가 화낼까봐 너무 겁을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왜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대하지를 못하는 거죠?" 흘…… 그거야 아트로포스의 화난 얼굴은 보기 싫으니까 그렇지. 트레이나 카이론이 분노의 표정을 짓든 말든 상관없지만 아트로포스가 화를 내면 괜히 두려워진단 말이야. 아트로포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얼굴은 웃는 얼굴이니 까. "뭐……."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그걸 말로 나타낼 수는 없어서 난 그냥 대답을 어설 프게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트로포스가 거의 부탁하는 듯한 얼굴로 말을 했 다. "다른 사람들처럼 절 편하게 대하세요. 이드 님이 자꾸 절 피하시면 사이만 어색해진단 말이에요. 알았죠?" "어……."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확실히 대답해주세요!" "아…… 그렇게 할게." 아트로포스가 날 다그치는 바람에 난 거의 반강제적으로 대답을 했다. 그러 나 기분은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아트 로포스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임마! 로스한테 성물이 뭔지 안 물어보냐?》 아, 그렇군! 아트로포스가 하도 공격적으로 나와서 잊어먹고 있었어! "그런데 로스, 이 검은 성물이 아닌 거야?" "……." 난 아트로포스가 화를 내든 말든 그렇게 물었다. 아까 아트로포스 스스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대하라고 했기 때문에 난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아트로포스 역시 내 태도가 방금 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것인 지 약간 풀어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코 내가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았 다. "한 가지만 물을게요." 흘…… 제발 어려운 질문은 하지 마라……! "그 검을 돌려 받는 대신 요시아 씨에게 뭔가 해준다는…… 뭐 그런 이상한 협상 같은 건 하지 않았죠?" 나원…… 또 요시아에 대한 얘기냐? "어차피 힘으로 뺏으면 간단한데 협상 같은 걸 왜 해. 단지 쓸데없이 사람 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설득으로 요시아의 마음을 돌렸던 거야." "그렇군요." 내 설명이 자세하지 않았는데도 아트로포스는 더 이상 어떤 말로 요시아를 설득했는지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답하는 내 자세가 성의 있게 보인 모양이 었다. 어쨌든 그렇게 질문을 끝낸 아트로포스는 사일러드 국왕이 검이 성물 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었다. "그 검은 성물이 아니에요." "그래?" 아트로포스의 대답이 완벽하게 확정적이었기 때문에 난 속으로 나직이 한숨 을 내쉬어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이 검이 성물 이라면 사일러드 국왕에게 검을 돌려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럼 성물은 어느 쪽에 있어? 여기서 가까워?" 사일러드 국왕의 검이 성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난 그 검을 침 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다음 아트로포스에게 성물에 대해서 물어보았 다. 그러자 아트로포스는 품속에서 한 쌍의 장갑을 꺼내어 나에게 건네주었 다. 색깔은 짙은 갈색이었고 손가락 장갑이었는데 재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매우 얇았다. 그런데도 장갑의 탄력이나 강도는 아주 우수했다. "이 장갑은 뭐야? 나 주려고 산 거야?" "물론 이드 님 드리려는 거예요. 단지 제가 산 것은 아니죠. 그 장갑이 바 로 여섯 번째 성물이니까요." "그래?" 아트로포스의 말이 상당히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난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 지 처음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여섯 번째 성물이란 말이 머리 속에 맴돌게 되었을 때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 장갑이 성물?!" "네." "어디서 찾았어?" "에스란에서요. 사일러드 국왕의 검이 숨겨져 있던 곳에 같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국왕의 검보다 이 장갑을 먼저 챙겼는데 갑자기 요시아 씨가 저를 인 질로 삼아버렸죠." 요시아에게 인질이 되었을 때가 생각난 듯이 아트로포스는 잠시 고개를 설 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난 그것보다는 무법지대 에스란에 여섯 번째 성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다. 본래 내가 강자 선발 대회에 참가한 것은 여 행 경비를 벌기 위해서였고 사일러드 국왕이 에스란에서 검을 가져오란 명령 을 내릴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런데 검을 찾기 위해 간 곳에 성물이 있었다는 기막힌 행운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흘…… 이건 완전히 영계 쪽에서 시나리오를 다 짜서 내 행동을 지시하는 것 같잖아? 정말 기분이 안 좋아. 빨리 영계로 날아가서 영계를 부수고 싶다 는 충동이 드는군.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지 말고 빨리 성물의 힘을 흡수해라. 그래야 내가 더 이상 너와 무익한 잡담을 하지 않게 되니까 말이야.》 아…… 그렇군. 내가 여섯 번째 성물의 힘을 흡수하게 되면 실버럭서스는 잠에 빠져서 평범한 보통 검이 되는구나. 왠지 친구를 잃는 것 같아서 섭한 걸? 《웃기지마. 속으로 웃고 있는 거 모를 줄 아냐?》 "어서 장갑을 껴서 성물의 힘을 흡수하도록 하세요." 아트로포스는 내가 장갑을 들고 가만히 있자 그렇게 말하며 날 재촉했다. 나 역시 성물의 힘을 흡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말대로 장갑을 손에 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실버럭서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쩝…… 너하고는 맨날 싸우기만 했지만 도움도 받았으니까 작별 인사 정도 는 해야겠지. 그 동안 고마웠다. 《작별 인사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잖아. 뭐, 너 같은 녀석에게 진심 어린 작별 인사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헐헐, 잘 아는구나. 만약 내가 영계를 박살내지 못한다면 넌 또 다른 중용 자하고 같이 다니게 되겠지? 그때는 중용자를 놀리지 말기 바란다. 《후후, 900년 동안 살아온 내 안목으로 단언하건대 네놈은 충분히 중용의 법칙을 달성한다. 그리고 영계도 충분히 박살낸다. 만약 아니라면 내 몸이 녹슬 거다.》 "……!" 실버럭서스와 작별 인사를 하면서 장갑을 손에 끼자 장갑이 내 손에 스며들 기 시작했다. 바로 장갑에 깃든 성물의 힘이 내 몸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었 다. 그래서 난 급히 실버럭서스에게 진정한 작별 인사를 했다. 하하, 네 녀석이 없으면 조금 쓸쓸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음에 다시 깨 어날 때까지 몸 조심히 있어라. 《네놈도 무사히 네 세계로 돌아가길 바란다…….》 실버럭서스의 말소리는 점차 작아지다가 마침내 아예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갑 속에 깃들어 있던 성물의 힘이 모두 나에게 흡수되 었다. 이것으로 아트로포스가 느낄 수 있는 성물은 모두 찾은 셈이었다. 이 제 남은 건 성물의 수수께끼라는 것을 풀어 마지막 7번째 성물을 손에 넣는 것이었다. "……." 후우…… 앞으로 실버럭서스의 시끄러운 진동소리를 듣지 못한다라고 생각 하니까 섭섭하군. 녀석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한 것이 아쉽구나……. "성물의 힘은 모두 흡수했나요?" 내가 침대 구석에 놓여져 있는 실버럭서스를 바라보고 있자 아트로포스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난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 다. "모두 흡수했어. 이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마지막 성물을 얻기만 하 면 돼." "그렇네요." 이제 자신의 할 일이 모두 끝났기 때문인지 아트로포스의 표정은 한결 밝아 졌다. 물론 그 표정 이면에는 내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할 경우 그녀 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을 게 분명하지만 적어도 지 금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아트로포스의 모습은 나에게 부담을 주 기도 했지만 반드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의지를 굳건하게 해주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28장:성물의 수수께끼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382 게 시 일 :01/02/11 20:02:33 수 정 일 : 크 기 :8.1K 조회횟수 :93 <제 28 장> 성물의 수수께끼 "그대들은 진정한 용사들이오!" 자신의 손에 들린 검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그 검이 진품임을 확인한 사일러 드 국왕은 아주 만족한 웃음을 띄웠다. 하지만 만약 우리들이 검을 되찾지 못하고 죽었을 때는 오히려 우리를 욕하면서 제 3 회 강자 선발 대회를 열었 을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사일러드 국왕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검이지 어 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르는 대회 우승자들의 목숨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석 사냥꾼 요시아는 어디로 갔는가?" "아,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흠…… 그런가." 지금 자리에 없는 요시아에 대해서 사일러드 국왕은 예의 상 잠깐 질문을 던졌지만 모른다는 내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트레이와 카이론이 기뻐할 만한 얘기를 해주었다. "요시아가 없는 관계로 3등 상금도 그대들에게 하사할 생각이오. 나중에 요 시아를 만나 상금을 주는 건 그대들의 자유이니 난 상관하지 않겠소." "감사합니다." 3등 상금도 준다는 말에 트레이는 벌어지려는 입을 간신히 추스리며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사일러드 국왕은 하녀들에게 명령해 우리들에게 상금을 하 사했다. 물론 내가 우승 상금인 10만 사사드를 받았고 트레이가 5만 사사드, 카이론이 3만 사사드를 받았다. "얼마든지 내 성에서 편히 지내도록 하게. 만약 그대들만 좋다면 그대들에 게 귀족의 지위를 주고 이곳에서 살도록 할 수도 있네." 헐…… 우리들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포섭해 보려는 회유책을 쓰는군. 트레 이라면 몰라도 난 그런 자리에는 관심 없어. 게다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 야 하는데 느긋하게 지낼 수도 없고 말이야. "국왕 폐하,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자 사일러드 국왕을 비롯해서 트레이 일행까지 의 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표정이 바뀌지 않은 사람은 아트 로포스뿐이었다. 어쨌든 난 사일러드 국왕에게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지낼 수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그렇게 바쁜 일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사일러드 국왕은 굉장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날 포섭해서 사일러드의 국 력을 강하게 만들고자 하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국왕 폐하, 그럼 가보겠습니다." 국왕에게 하는 인사 같은 걸 내가 알 리 없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대충 얼버무리고는 아트로포스와 함께 알현실을 빠져 나왔다. 그때 트레이 일행도 같이 내 뒤를 따라나섰다. 어차피 국왕하고 오래 얘기할 것도 없기 때문에 일찍 쉬려고 알현실을 나온 것이었다. "이드, 정말 오늘 떠날 생각이냐?" 내가 하녀들의 안내를 받으며 궁전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트레이가 급히 날 불러 세웠다. 마침 난 트레이에게 줄 것도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트 레이에게 다가가 실버럭서스를 건네주었다. "이거 받으십시오." "이거…… 중용의 검 아니야? 근데 왜 이걸 나한테……?" 트레이는 실버럭서스를 내미는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뭔가 음흉한 속셈으로 실버럭서스를 넘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서 난 실버럭서스를 트레이에게 주는 이유를 차근히 설명했다. "지금 이 검은 저에게 성물의 힘을 모두 주고 나서 잠이 든 상태입니다. 한 마디로 평범한 검이 된 거죠. 이런 검을 가지고 강한 적과 싸우다가는 검이 부러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트레이 씨에게 맡기려는 겁니다." "아…… 그랬냐? 하하." 내 설명을 듣고 나서야 내 행동에 결코 음흉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 않다 는 것을 깨달았는지 트레이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난 트레이에게 실버럭서스를 건네주고 나서 그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때 오브 녀석이 아 트로포스와 헤어지기 싫다고 떼를 썼지만 그 누구도 어린애의 몸부림에는 신 경 쓰지 않았다. 저벅저벅- 사박사박- 트레이 일행과 작별한 나와 아트로포스는 사일러드 궁전을 나와서 목적지도 없이 그냥 걷기만 했다. 이제 더 이상 아트로포스가 성물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요?" 아트로포스는 무작정 걷기만 하는 날 보더니 걱정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하 지만 나도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야하긴 하는데 무슨 키워드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힌트도 없으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나 스스로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우선 여관에 들어가서 쉬도록 하자." "네……." 이대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난 아트로포스와 함께 여관에 들 어갔다. 그리고 각각 방을 따로 잡은 뒤에 난 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러 덩 드러누웠다. 여섯 번째 성물을 얻으면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 어떤 힌트가 떠오를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게 전혀 아니라서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흐으…… 설마 힌트도 주지 않고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건 아니겠 지? 제길…… 도대체 힌트도 없는데 무슨 수로 수수께끼를 풀라는 거야? 영 계 녀석들…… 지금 당장 쳐들어가서 박살내버릴 테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내가 침대에 누워 열만 내고 있자 실프가 바람을 일으켜 내 열을 식혀주면 서 날 달래었다. 하지만 사라만다와 노움은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날 놀리기 시작했다. "너 같은 멍청이가 어떻게 힌트도 없이 문제를 풀겠냐? 그냥 일찌감치 포기 해라." "그래, 넌 절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다니까. 만약 네가 성물의 수 수께끼를 풀면 내 손에 진흙을 묻히겠다!" 크으…… 실버럭서스가 없어지니까 이제 사라만다와 노움이 날뛰려고 하는 구만. 이것들을 내 몸밖으로 끄집어내서 고문을 해? 똑똑- "로스인데, 들어가도 되요?" 사라만다와 노움의 처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 문 밖에서 아트로포스 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말했다. "들어와." 끼이- 방 문이 열리면서 아트로포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별 망설임 없이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난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채로 있었다. 나한테는 아트로포스에게 질문할 것이나 할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 힌트 같은 게 떠오르지 않아요. 그건 이드 님도 마 찬가지인가요?" 약간의 침묵 후, 아트로포스의 질문이 나에게 날아왔다. 그녀의 질문만 기 다리고 있던 난 잠시 한숨을 쉬고 나서 대답했다. "전혀 떠오르지 않아. 아무래도 이번 성물의 수수께끼는 힌트 없이 풀어야 하나봐." "그런 것 같네요……." 아트로포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더 이상 날 도울 방법이 없기 때문 에 기분이 우울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아트로포스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 내 머리 회전 속도는 더욱 느려지기 때문에 난 그녀를 달래야 했다. "힌트가 없으면 힌트가 없는 대로 풀어야겠지. 그 문제는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쉬자. 정 안되면 라케시스하고 클로토에게 연락을 하던가." "네……."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힘없이 대답하며 힘없는 발걸음으로 내 방을 나섰다. 난 그런 아트로포스의 뒷모습을 말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그녀의 힘을 흡수해서, 정확히 말하면 아트로포스를 죽여서 그 힘을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아트로포스의 생명줄을 쥐고 있 는 자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니까 엄청난 부담감이 쌓였던 것이다. 콰앙-! 내가 주먹으로 바위를 치자 바위가 터지듯이 박살나 버렸다. 여섯 번째 성 물인 얇은 장갑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사람들이 잘 다니 지 않는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숲 속에 있던 가장 큰 바위를 주먹으로 쳤는데, 내 생각대로 바위가 내 힘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된 것이었다. 헐헐, 역시 그 얇은 장갑에는 강력한 힘을 내는 능력이 깃들어 있었어. 얇 은 장갑이 손에 흡수된 다음부터 손이 근질근질했으니까 얇은 장갑에는 힘을 증가시키는 능력이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답이라니…… 난 왜 이렇게 천재일까? "그게 천재냐? 확증도 없이 무작정 바위를 내려친 주제에!" 흘…… 사라만다, 소환주님이 자화자찬하고 있는데 중간에 끼어 들지 마라. 잘못하면 널 차가운 물 속에다 영원히 집어넣어 버릴 수도 있어. 어쨌든 난 내 할 일이나 할 테니까 참견하지 말도록. "윈드 블레이드(Wind Blade)" 팍- 내가 만든 바람의 검날이 바위의 중간 부분을 완전히 수평으로 절단하자 약 간 둔탁한 소리가 바위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잘린 부분은 그대로 바위 위 에 얹혀 있었다. 그래서 난 손으로 가볍게 그 잘린 부분을 밀었다. 바위 자 체의 크기는 내 키만 했고 맨 아래쪽의 둘레는 직경 3미터 정도 됐었지만 아 까 주먹으로 박살냈기 때문에 크기는 절반으로 줄어있었고, 이번에 그 절반 중의 절반을 윈드 블레이드로 잘라냈기 때문에 잘린 부분의 크기는 직경이 2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쿵-! 잘린 부분을 바위 옆에 밀어버리고 나서 난 바람을 일으켜 잘린 바위 위에 남아있는 돌먼지를 제거했다. 그 다음에 완전 평면이 된 바위 위에 사지를 쭉 뻗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건 완벽한 자연 훼손이었지만 높고 푸른 하늘 을 보면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내 원대한 계획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와ㅡ 정말 하늘이 푸르네요!" 내가 바위 위에 드러눕자 옆에서 내 하는 짓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던 아 트로포스가 내 옆에 와서 앉더니 하늘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확실히 맑 은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자버릴 것 같은 평화롭고 기분 좋은 하늘이었다. 흘…… 어제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으면서 오늘은 오히려 밝은 표정을 하고 있군. 하여간 여자 마음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나저나 아름다운 자연 속 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뭔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할 일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 같은 느낌이……. "저기, 이드 님…… 만약……" "……?" 푸른 하늘을 드러누워서 보고 있는 나에게 아트로포스가 말을 걸었다. 하지 만 그런 아트로포스도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바위 위에 앉은 상태에서 하늘 을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하려는 말이 내 얼굴 보면서 할 만한 것은 아닌 듯했다. "만약 이드 님이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다면…… 이드 님은 저의 힘 을 모두 흡수할 건가요?" "……." 흐으…… 대답하기 꽤나 어려운 질문이군. 가능하면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 고 싶긴 하지만…… 정말 내가 그걸 풀 수 있을런지…….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어투로 대답했다. 하 지만 나에게서 그런 대답을 들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지 아트로포스는 별 반 달라진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담담하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드 님이 저의 힘을 흡수한 다음…… 이드 님은 제 죽음을 슬퍼할 건가요?" "슬플 거야. 단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슬퍼하지는 않을 테지. 쓸데없이 중용의 법칙이나 성물의 수수께끼를 만들어서 영인관을 죽이도록 만든 영계 를 박살내려고 마음을 먹을 테니까." 대답을 하는 내 어조는 상당히 딱딱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정말로 영계 를 지금 당장 부수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제가 죽었을 때 이드 님이 느끼는 슬픔은…… 친구를 잃었기 때문에 가슴 아픈 슬픔인가요, 아니면…… 아, 아니에요." 막 뭔가를 물으려고 했던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고개를 도리도리 하더니 입 을 다물었다. 얼굴 표정이 우울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묻고 싶지 않은 질 문인 듯했다. 그래서 난 몸을 일으켜 아트로포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나서 그녀를 달래주었다. "걱정하지마. 반드시 성물의 수수께끼는 풀고 말 테니까. 성물의 수수께끼 조차 풀지 못하면 영계를 없애버린다는 것도 실현 불가능이잖아." "그렇네요…… 앗!" 약간 힘없는 표정으로 대답한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 니, 그건 비명이라기보다는 놀라서 소리 질렀다고 하는 게 맞았다. 뭔가 예 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난 급히 아트로포스 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라케시스 님하고 클로토 님이 오신대요." 처음엔 그렇게 놀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 아트로포스였지만 막상 내가 놀 란 이유를 물었을 때에는 아주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아트로포스의 대답을 듣고 나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흘…… 라케시스하고 클로토가 온다고? 그거 잘됐군. 녀석들이라면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 힌트를 알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 설령 모르더라도 한 사람 의 머리보다는 네 사람의 머리를 함께 굴리는 게 문제 푸는 데에 더 수월하 겠지. 우우웅- 갑자기 나와 아트로포스가 앉아있는 바위 앞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나왔 다. 그리고 곧이어 금색의 마법진이 땅바닥에 나타났다. 그 마법진은 라케시 스와 클로토가 천신계에서 회로계 등의 다른 세계로 갈 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 공격 태세를 풀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었다. 우웅……. 마침내 마법진에서 울리는 소리가 멈추었고 그와 동시에 마법진 위에 두 사 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두 사람은 당연히 영마관 라케시스와 영신관 클 로토였다. "안녕!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라케시스는 전혀 미안함이 담겨 있지 않은 밝은 얼굴로 나에게 용서를 구한 뒤 내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완전평면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클로토 역시 사뿐사뿐 걸어와서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았다. 모두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나자 라케시스가 나에게 이곳에 온 용건을 말했다. "천신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아무래도 중용자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 기 전에 먼저 천마계를 없애버리려는 것 같아. 서두르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 날지도 모른다구." 얼레? 천신계가 천마계를 없애버리려 한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친 천신족들이 나중에 중용자에게 모두 죽게 되잖아? 그런데도 그런 미친 짓을 한단 말이야?" 난 라케시스의 생각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반문했다. 나 같으면 힘을 최대한 축적하고 있다가 중용자가 오면 한꺼번에 공격해서 중용자를 없애버리는 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그게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신족은 천마족을 죽일 정도로 싫어해. 지금 당장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될 종족으로 여기고 있지. 그래서 중용자에게 천신족이 몰살당하는 일이 있 더라도 천마족만큼은 이 세계에서 말살시키자는 천신족들이 많아지고 있는 모양이야." 흐으…… 자신들이 몰살당하는 일이 있어도 천마족을 말살시키자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천신족은 천마족을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무조건 천마족이 나 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미워할 리는 없을 텐데……. "천마계 쪽의 움직임은 어때?" 천신족들이 천마족들을 없애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 었기 때문에 이번엔 천마족들의 동향을 알아보려고 라케시스에게 물었다. 그 러자 라케시스는 별 일없다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평상시하고 똑같은 것 같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 흘…… 천신족들은 천마족들을 없애려고 하는데 천마족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쓴다는 건가? 천신족들은 천마족들을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째서 천마족들은 천신족들에게 신경을 안 쓰는 거지? 천신족이 천마족을 미워하면 천마족도 천신족을 미워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어째서 한쪽만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미워하는 거냐? "그런데 라케시스나 클로토는 어떤 방법으로 천신계와 천마계의 움직임을 아는 거야?" 난 라케시스와 클로토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그렇듯이 라케시스가 했다. "천신계하고 천마계에 우리들의 정보망이 깔려 있거든. 그들을 통해서 녀석 들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거지. 나나 클로토가 직접 천신계나 천마계로 들어 가서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펴볼 수는 없거든." "그럼 너희들은 천신계나 천마계에 살고 있지 않은 거야?" "당연하지! 왜 우리가 그런데서 살아? 만약 그쪽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렇게 영신관과 영마관이 같이 다니는 일은 없을걸?" 라케시스는 아주 당연한 듯이 대답을 했지만 나로서는 전혀 당연한 대답이 아니었다. 난 지금까지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각각 천마계와 천신계에 거주하 면서 녀석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흘……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묻지도 않았더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었 군. 어쨌든 지금 남은 건 천신족들이 천마족들을 치기 전에 성물의 수수께끼 를 풀어서 마지막 성물을 손에 넣는 것이군. 하지만 힌트를 알아야 문제를 풀지……! "참, 성물 다 모았어?" 그때 라케시스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다 모았어. 마지막 7번째 성물만 빼고." "아,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마지막 성물을 얻을 수 있는 거였구나!" 그 중요한 사실을 이제서야 떠올린 듯 라케시스는 실실 쪼개며 웃었다. 그 런 라케시스의 얼굴 표정을 봐서는 그녀가 성물의 수수께끼에 관한 힌트를 알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 았다.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해서 아는 거 없냐? 힌트라든가." "글쎄? 전혀 없는데." 내 예상대로 라케시스는 나에게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지 극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볼일 끝났으면 빨랑 사라져. 성물의 수수께끼 풀어야 하니까." "아직도 못 푼 거야? 머리 나쁘구나∼" "도움 안 줄 거면 방해 말고 사라지라니까." "왜 이래? 나도 도움이 된다구!" 빨리 사라지라는 내 말에 라케시스는 삐진 표정을 지으며 절대 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라케시스야 있던 말던 상관없기 때문에 나도 더 이상 가라고 하지 않고 그냥 바위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어야한 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리고 있는 나와는 달리 하늘은 아무런 근심 없이 맑고 푸르렀다. 그것은 약간만 비뚤어지게 생각하면 그 푸른 하늘을 부수어 버리 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정도였다.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힌트가 없다면 지금까지 모은 성물의 이름이나 특 징 같은 것에 수수께끼의 정답이 들어있지 않겠어?"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완전평면 바위 위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 라케시스가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라케시스의 말이라 무시하려고 했으나 잠 깐 생각해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서 난 즉시 상체를 일으켜 라케시스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도 때로는 도움이 되는구나." "이드……!" 라케시스가 내 말에 막 화를 내려고 할 때, 난 급히 라케시스에게 부탁을 했다. "라케시스! 종이하고 펜 있으면 좀 빌려줘."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지 말라구……!" "알았으니까 빨리 종이하고 펜 내놔." "없어." 종이와 펜을 요구하는 나에게 라케시스는 당연한 듯이 대답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아주 간단명료한 명령을 내렸다. "없으면 만들어." "……." 내 명령을 들은 라케시스는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 내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알 수 없는 말을 막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이 끝났을 때 아주 엽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내 왼손이 종이로 변하고 내 오른손이 펜으로 변했던 것이다. 중용자에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마관이기 때문에 이런 일은 충분히 가능했다. "만들었어. 이제 됐지?" "되긴 뭐가 돼! 누가 내 손을 종이하고 펜으로 만들라고 했냐고! 빨리 원래 대로 돌려놓지 못해?!" "뭣하러? 그냥 그걸로 성물의 수수께끼나 풀어.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한 거잖아?" "……." 크으…… 내가 졌다…… 라케시스가 내 손을 종이와 펜으로 만들어버릴 줄 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그 엽기적인 머리에 찬사를 보낸다……! 슥슥- 난 라케시스의 말대로 종이가 된 왼손에다가 펜이 된 오른손으로 글씨를 썼 다. 놀랍게도 글씨는 아주 깨끗이 잘 나왔다. 만약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면 라케시스를 죽도록 패려고 했는데 글씨가 잘 써졌기 때문에 아쉽게도 라케시 스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었다. 【엽기 음식 마을 요센(Yosen) - 십년수의 열매 - 정신력 강화 보멜트족 오브(Obe) - 중용의 검 실버럭서스 - 반사신경 향상 여성국가 우메드(Umed) - 신비의 물 - 마나회로 온몸에 건설 죽음의 사막 다라노드(Daranod) - 목각인형 속의 목걸이 - 체력 강화 정령의 숲 이프노(Ipno) - 초월의 꽃 열매 - 초중력 획득 무법지대 에스란(Esran) - 얇은 장갑 - 힘 강화】 흘…… 내가 지금까지 모은 6개의 성물의 출처와 이름, 능력은 이것들인데 …… 이 중에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힌트나 정답이 숨어있다는 건가? "와, 머리도 좋네? 이런 걸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니!" 내 왼손에다 써놓은 성물에 대한 정보를 보더니 라케시스가 놀라워했다. 하 지만 난 놀라는 라케시스에게는 신경을 끈 채 모든 정신을 내 왼손에다 집중 시켰다. 남겨진 힌트가 이것밖에 없는 한 이 중에서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단서를 찾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 그때 어떤 단어가 내 눈에 탁 하고 들어왔다. 그것은 굉장히 단순했기 때문 에 감히 이것이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이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서는 바로 그 말이 정답일 것이라는 불길하고도 섬 뜩한 느낌이 들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내가 종이로 변한 왼손을 쳐다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아트로포스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그렇지만 난 그녀를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내 얼굴 표정이 어떻게 되어있었는지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우선 내가 찾아낸 단서가 맞나 틀리나를 검토해봐야 했기 때문이었 다. 이곳의 언어 체계는 영어에다 잡어가 섞여 있는 형태…… 그렇기 때문에 이 런 영어가 이 세계에서 완전한 하나의 문장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 렇지 설마 이 말이 성물의 수수께끼의 정답은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건 너무 단순하잖아! "정말 표정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야?" 이번엔 아트로포스뿐만이 아니라 라케시스까지 내 얼굴 표정을 보고 이상하 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서 난 그녀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계속 나 혼자 머 리 굴려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찾은 것을 그녀들에게 보여줘서 그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작정이었던 것이다. "내가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걸 찾긴 했는데…… 너무 단순하고 내용도 이상해서 너희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번 봐봐." "응? 뭔데?" 슥슥- 난 궁금해하는 세 명의 여자들에게 종이로 변한 왼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성물에 대한 정보를 적은 것 중에서 출처의 지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단어, 즉 요센, 오브, 우메드, 다라노드, 이프노, 에스란의 첫 글자에 각각 동그라미 를 쳤다. 라케시스는 내가 동그라미 치는 글자를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YOUDIE…… 엑? You Die?!" 별 생각 없이 첫 글자만 읽던 라케시스가 그 의미를 알아채고 크게 놀랬다. 이 세계의 언어 체계가 영어+잡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You Die'의 뜻은 거의 '너는 죽는다' 혹은 '너 죽어라'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바로 그 내용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난 세 여자들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내 등을 탁탁 치면서 실실 쪼갰다. "대단한데! 이렇게 쉽게 성물의 수수께끼 정답을 찾아내다니!" "아직 이게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 '너 죽어라'라는 뜻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냐고! 나보고 죽으라는 거냐?!" 정답 찾았다고 좋아하는 라케시스를 난 살벌한 눈초리로 째려보았다. 그런 데 라케시스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물론이지! 네가 죽어야만 마지막 성물을 얻을 수가 있는 거야!" "……." 흐으…… 라케시스에게 물어본 내가 바보다……. "정말이라니까! 이건 네가 죽음의 세계인 명계(冥界)로 가서 마지막 일곱 번째 성물을 얻으라는 뜻이야!" 라케시스는 그것이 확실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납득할 수 없었다. 죽음의 세계로 가라는 것은 나보고 죽어버리라는 것을 뜻하기 때 문이었다. 그래서 난 라케시스의 무식함을 탓했다. "내가 죽으면 성물을 얻어봤자 무슨 소용이야? 너 바보냐?" "바보는 바로 너야! 성물의 수수께끼나 중용의 법칙은 절대적이라고! 죽으 라는 계시가 있으면 목숨을 끊어도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넌 아무 걱정 없이 죽어버리면 되는 거야!" "……."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는군. 라케시스가 무슨 말을 하던 무시해버리기로 하 고……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정답이라고 볼 수 없겠지? 역시 다른 힌트를 찾아봐야겠다. "왜 안 믿는 거야? 정말 멍청이라니까!" 라케시스는 여전히 내가 죽어야할 것을 주장하면서 화를 버럭버럭 냈다. 그 러자 아트로포스가 라케시스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드 님이 죽는다고 성물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뭔가 명 확한 증거가 없고서는 이드 님의 목숨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구요." 헐∼ 아트로포스는 내 편이군. 그럼 아트로포스, 계속 내 죽음을 주장하는 저 이상한 아줌씨를 열심히 좀 말려 줘. 그 사이에 난 다른 힌트나 찾아볼 테니까. "증거는 있어! 바로 우리들의 공식 명칭이야!" "……?" 아트로포스에게 반박을 받자 라케시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소리쳤다. 처음엔 그런 라케시스의 말도 무시하려고 했지만 혹시라도 뭔가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라케시스는 우리들이 모두 경청할 준비를 하자 그 이유라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 이건 우리들이 영신관과 영마관, 영인관이 되면 자동으로 주어지는 이름이야. 이 이름의 본래 뜻을 살펴보면 이렇지. 클로토(Clotho)는 인간의 생명의 실을 잣고, 라케시스(Lachesis)는 인간의 생명의 실의 길이를 정하며, 아트로포스(Atropos)는 인간의 생명의 실을 끊 는다. 이건 이드네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뭐……." 확실히 라케시스의 말대로 그리스 신화에서 그 운명의 세 여신이 하는 일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내가 죽어야한다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난 라케시스를 몰아 부쳤다. "그 공식 명칭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쓸데없는 이유로 날 죽이려고 하 는 이유가 뭐야? 나한테 불만 있어?" "그게 아니야. 중용자를 뽑을 때 클로토는 수많은 중용자 후보를 선택해. 그리고 라케시스는 그 수많은 중용자 후보 중에서 중용자를 정하게 되어 있 어. 확실히 나와 클로로는 그 임무를 이미 수행했지. 하지만 로스는 아직 아 트로포스로서의 일을 수행하지 않았어. 공식 명칭의 어원에 따르면 로스의 할 일은 바로 중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것이니까!" "……!" 라케시스의 말에 나뿐만 아니라 아트로포스와 클로토조차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놀란 사람은 아트로포스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 듯 아트로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라케시스에게 질문을 했다. "정말…… 인가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영인관들은 오히려 중용자에게 죽었 잖아요? 영인관의 할 일이 중용자의 생명을 끊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들은 그 렇게 하지 않은 거죠?" 아트로포스의 질문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예리했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이미 그런 질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의 영인관들은 중용자의 목숨을 끊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한 거야. 왜냐하면……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중용자들을 사랑했으니까." "……!" "그래서 대신 중용자의 손에 죽음으로써 자신들의 일을 완수한 거지. 당사 자가 바뀌긴 해도 누군가의 실을 끊었으니까 임무 완수라고 할 수 있거든." "하, 하지만……!" 라케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트로포스가 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해버린 말이라 일순간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 황해 하기만 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이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한 아트로포스가 라케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중용자가 성물의 수수께끼를 푼 경우가 두 번 있었잖아요? 그때는 중용자 도 영인관도 죽지 않았어요. 그럼 그 영인관 두 명은 자신의 할 일을 하지 않은 거잖아요?"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들이 그들에 대해 아는 건 아무 것 도 없어. 우리들이 그 두 명의 중용자와 영인관에 대해 아는 것은 그들이 성 물의 수수께끼를 풀고 천신계와 천마계로 날아가 중용의 법칙을 실현했다는 사실뿐이지.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었는지는 모른다구. 어쩌면 그 두 명의 영인관은 중용자의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라. 나중에 중용 자가 마지막 성물을 얻고 나서 부활했을 수도 있잖아." 흐으…… 라케시스…… 어째서 계속 내 죽음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거 야?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내 죽음으로 결론이 나버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얘기의 흐름을 끊어야해! "내 앞의 9번째 중용자는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힌트로 '목각인형의 마음' 이란 키워드를 받았어. 마지막 성물은 그 목각인형 속에 들어있는 목걸이였 고. 물론 그 중용자는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지만 어쨌든 목각인형의 마음 이란 키워드하고 영인관이 중용자를 죽이는 것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잖 아?" 난 저번에 네프나 할멈이 말해주었던 것을 라케시스에게 들려주었다. 하지 만 라케시스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보다는 내가 그런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에 더 놀랬다. "뭐야? 어떻게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해 알고 있어?" "어떤 할머니가 들려줬어. 천마족이되 천마족이 아닌 할머니라나? 하여튼 중용자들이 중용의 법칙을 행하는 걸 쭉 지켜볼 정도로 엄청나게 오래 살고 있는 할머니야. 혹시 그 할머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있냐?" 혹시 천마족이라고 할 수 있는 라케시스라면 그 수상한 할머니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라케시스의 대답 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천마족이나 천신족 중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거든? 아마 그 할머니는 그 중에 하나일 거야. 그런데 그런 존재들은 자신 들 영역 이외에는 별로 관여를 안 하는데…… 그 할머니는 참견하는 걸 좋아 하나?" 흘…… 역시 모르는군. 도대체 라케시스가 아는 건 뭔지…… 아차, 지금 이 런 말 할 때가 아니라 빨리 내가 죽어도 성물 같은 건 얻을 수 없다고 말을 해야해! "어쨌든 키워드를 주고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라고 하는 것하고 영인관이 중 용자를 죽이는 것하고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한마디로 네 말은 전혀 근거 없는 헛소리!" 이 정도로 말을 하면 라케시스도 더 이상 할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종이로 변한 내 왼손을 들여다보면서 성물의 수수께끼에 대한 다른 힌트 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 정도의 말로써 라케시스를 물러나게 하는 것은 불 가능했다. "연관성이 왜 없어? 목각인형 속에 들어 있는 목걸이가 성물이라고 했지? 그건 목각인형을 부수어야 한다는 뜻이잖아. 만약 그 목각인형이 중용자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영인관이 그 목각인형을 부수지 못했을 수도 있지." "…… 그거 너무 억지라고 생각하지 않냐?" "아니, 전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넌 빨리 명계로 가서 마지막 성물을 찾아야해! 너 죽어라 라는 결정적인 해답이 나와 있다구!" 라케시스는 더욱 내 죽음이 바로 정답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 키려고 했다. 심지어는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바퀴벌레로 만들어서 구워먹 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그러나 영인관에게 죽던 바퀴벌레가 되어 구워 먹히 던 죽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난 라케시스의 말을 싸그리 무시했다. 그런 데 지금까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나와 라케시스의 하는 짓을 쳐다보고 만 있던 클로토가 갑자기 라케시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제 생각에도 마지막 성물은 명계에 있을 것 같아요. 라케시스 님의 말대로 모든 상황이 그러함을 나타내고 있으니까요." 으으…… 도대체 뭐가 모든 상황이 그러함을 나타낸다는 거야? 너 죽어라 라는 글자는 우연의 일치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명계에 가더라도 중용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계에 성물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단 말이야! 그런 불확실한 상황으로 날 죽이려 하지 말라구! "후우……." 머리 속에는 그런 말들이 메아리치고 있었으나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한숨뿐이었다. 막상 한숨을 쉬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미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내 죽음을 확정짓고 있는 이상,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트로포스를 내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로스, 어떻게 생각해? 내가 죽어서 명계로 간 다음에 거기 있는 성물을 얻 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아트로포스는 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속으로 는 라케시스의 말에 동조하면서도 겉으로는 나 때문에 아닌 척하려는 것 같 았다. 만약 여기서 아트로포스마저 라케시스의 편이 되어버린다면 영락없이 난 죽어야만 하기 때문에 망설이는 아트로포스를 설득해 보았다. "저 둘은 지금 근거 없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믿지마. 성물의 수수께끼가 첫 글자를 가지고 풀 수 있는 거라면 누구나 다 맞힐 수 있다고. 이렇게 쉬 울 리가 없어. 어쩌면 이건 영계의 속임수일지도 몰라." "저도 그렇다면 좋지만……." 헉?! 그렇다면 좋지만? 그 말은 내가 죽어야만 마지막 성물을 얻을 수 있다 고 생각한다는 뜻? 말도 안돼! 아트로포스마저 라케시스에게 넘어가면 남은 건 나 혼자라구!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내 죽음은 확정적이 되어버린단 말이 야! "이드! 순진한 로스를 꼬드기지 말고 얌전히 죽어." 라케시스는 그 사악한 말을 너무나 친근하게 했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까지 띄우면서 죽음을 강요하는 라케시스의 모습은 완전히 마녀 그 자체였다. 더 없이 사악한 마녀였던 것이다. "아차, 그러고 보니 죽으려면 그 모습 그대로 죽는 게 좋겠구나.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까 잠깐 기다리라구." 그렇게 말한 라케시스는 들리지도 않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주문으 로 종이와 펜으로 변한 내 손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원상복귀 후의 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 을 수가 없었다. "날 정말로 죽일 거라면 나도 가만있지 않는다?!" 난 바위 위에 앉은 채 라케시스에게 마법을 쓸 자세를 갖추며 그녀를 협박 했다. 하지만 어느새 주문을 다 외워 내 손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라케시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내 죽음은 결정된 것 이나 마찬가지라는 얼굴이었던 것이다. "라케시스……!" "왜?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야? 영계를 믿지 못하는 거야? 중용의 법칙을 발동시켜 이 세계의 균형을 맞추려는 영계가 중용자를 쓸데없이 죽일 것 같 아?" "그래도 죽어야 한다는데 누가 기다렸다는 듯이 죽냐?!" "나참, 남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어서야." "용기가 있냐 없냐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당연히 용기의 문제지 그럼 무슨 문제야? 죽을 용기가 없으니까 그런 것일 뿐이잖아? 내가 중용자라면 가볍게 영인관에 손에 죽을 거다!" 흐으…… 남의 일이라고 말은 쉽게 하는구만. 저 아줌마를 콱 밟아버려? 아 니면 뜨거운 물에 집어넣고 삶아버려? "자,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라케시스는 아주 수상쩍은 말을 하더니 또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중 용자에게 강제력을 행할 수 있는 영마관의 능력으로 날 꼼짝 못하게 할 생각 인 듯했다. 그래서 난 급히 정령들에게 라케시스를 정령장 같은 걸로 묶어버 리라는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어차피 머리 속에서 내리는 명령이기 때문에 말 같은 건 필요 없었다. 그러나 그때 난 또 한사람의 라케시스 편을 잊어먹 고 있었다. "……!" 라케시스는 주문을 다 외우지도 않았지만 내 몸은 무엇에 걸린 것처럼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중용자에게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신관 클 로토가 나에게 건 주문이었다. 한마디로 라케시스가 날 공격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클로토가 나에게 강제력을 걸어버린 것이었다. 으윽…… 내가 이런 공격에 당하다니…… 너무 라케시스만 의식하고 있었어 …… 그런데 어째서 정령들도 움직이지 못하는 거지? 클로토가 강제력을 행 할 수 있는 상대는 중용자인 나뿐이잖아? 어째서 정령들까지……? "주인님과 저희들은 하나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에요." 내 머리 속에서 그런 궁금증이 일어나자마자 실프가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 나 그 정도의 대답만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난 다시 한번 물어야 했다. 나하고 너희들이 하나라니? 난 그냥 너희들의 소환주일 뿐이잖아? 여기서야 정령계가 없어서 소환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관계 아니 었어? "아니에요. 주인님이 끈으로 저희를 되살렸을 때부터 저희들과 주인님은 주 종 관계에서 벗어나 있었어요. 주인님은 저희를 주인님의 일부로 되살린 것 이니까요. 그래서 중용자에게 사용하는 강제력이 저희들도 구속하는 거예요." 실프의 설명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정 령들마저 강제력에 구속되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라케시스의 마수에서 벗 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끈을 이용해서 강제력을 해제시킬 수도 있겠 지만 끈을 느낀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웬일인 지 끈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나 역시도 마음 한 구석에서 너 죽 어라 라는 문장이 정답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걸려들었구나, 이드. 중용자도 별 거 아닌데? 나한테만 신경 쓰느라 클로 토가 강제력을 사용할 줄 몰랐지?" "시끄러! 클로토! 당장 강제력 해제시켜!" 난 강제력에 의해 바위 위에 앉은 채로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클로토 를 쳐다보며 그녀에게 강제력 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클로토는 내 얼굴을 외면하는 것으로써 거부의 뜻을 명백히 밝혔다. 그런 클로토의 모습에 내가 절망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나 대신 라케시스에게 내 석방을 강하게 주 장했다. "이드 님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그래요? 우선 이드 님을 설득해야죠! 이런 식의 강압적인 행동은 옳지 못해요!" "로스는 저 녀석이 설득 당할 것 같아?" "그건……!" "안 된다니까. 말은 안 들으면 억지로 듣게 해야지." 라케시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며 아트로포스의 손을 덥썩 하고 잡았다. 정확히는 그녀의 손목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라케시스에게 손목을 잡히자 아트로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라케시스의 얼굴에 떠 오른 사악한 미소를 보고는 흠칫했다. 라케시스가 결코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 "중용자의 목숨을 끊는 것은 영인관 아트로포스!" 라케시스는 그렇게 외치는 것과 동시에 아트로포스의 손을 거세게 잡아당겼 다. 잡아당긴 위치는 내 심장 쪽이었다. 하지만 라케시스는 계속해서 아트로 포스의 손을 이끌었고, 결국 아트로포스의 손이 내 가슴에 닿게 되었다. 그 런데 그 속도가 너무 빨랐다. 푸욱- 마치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것처럼 묘한 소리가 발생했다. 바로 아트로포스의 손이 통째로 내 가슴에 박혀버린 것이었다. 라케시스에게 손만 으로, 그것도 남의 손을 잡아끄는 것으로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괴력이 있을 리도 없건만 아트로포스의 손은 정확하게 내 가슴에 박혀 있었다. "커…… 억……!"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을 뿐 이었다. 내 가슴을 자신의 손으로 찌르고 경악해하는 아트로포스의 얼굴과, 아트로포스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라케시스의 웃는 얼굴이 내 머리 속에 잠 깐 스쳐지나갔을 뿐, 그 이상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제 29 장> 죽음을 관장하는 곳 으음……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드는데? 꼭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묘한 느낌이 든 다……. "……." 난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뭔가를 느끼려고 해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 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지 누 워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머리를 굴 리는 것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라케시스가 아트로포스의 손을 내 가슴에 박아버렸구나 …… 닭 잡을 힘도 없는 줄 알았던 라케시스에게 그런 괴력이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잠깐, 그렇다는 것은…… 난 지금…… 죽었다는 건가? "영육분리(靈肉分離)" 나 자신이 죽었음을 의식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잔잔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굵은 걸로 봐서는 남자였는데 어조가 또렷한 것이 분명 젊은 남자 였다. 그런데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갑자기 앞이 환해졌다. 그리 고 잠시 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르고 맑은 가을 하늘이었다. "……?" 하늘이 제일 먼저 보인다는 것은…… 내가 지금 밖에 있고 어딘가에 누워있 다는 뜻인데…… 어디에 누워있는지는 느껴지지 않는걸? 등에 무슨 감촉이 오는 것도 아니고…… 일어나지 않고는 모르겠군. "으음……?" 뭔가 몸을 일으키는 게 조금 이상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나 왔다. 난 누워 있는 상태라 손을 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켜야 정상이었지만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내 몸이 그냥 슬슬 일어나 버렸기 때문에 놀란 것 이었다. "……!" 그리고 일어나고 나서도 난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내 시 야에 들어온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젊은 남자였다. 그러나 그 정도로 내가 놀란다면 난 이미 심장마비로 죽어 있었을 것이다. 내가 남자를 보고 놀란 이유는 바로 그 남자가 완전한 알몸으로 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십니까? 어째서 그런 몸으로……?" 난 내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그 남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젊은 남자는 내 몸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나와 같지 않소?" "……?" 얼레? 무슨 소리야? 내가 저 남자처럼 알몸이기라도 하단 말이야? 지금 내 가 죽은 건지 살아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쪽팔리게 알몸으로 나다닐 녀석이 아니……! "……!"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몸을 살펴봤던 난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버렸다. 젊은 남자의 말대로 나 역시 알몸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분명 히 옷을 입고 있었던 내가 갑자기 왜 알몸으로 서 있는 것인가하는 사소한 것은 따질 새도 없었다. 알몸이란 걸 확인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보 다 주위에 누가 있나 없나를 먼저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주위를 살펴본 나는 더더욱 경악해야했다. 내 바로 옆에 아트로포스와 클로토, 라케시스가 떡 하니 버티고 앉아있었던 것이다. "으앗!!!" 세 명의 여자에게 계속 내 알몸을 보여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난 기겁하면 서 숨을 곳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난 바위 위에 누워 있는 상태라 어디 숨을 만한 곳도 없었다. 그냥 그대로 내 모든 부위를 그녀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얼레? 내가 바위 위에 누워 있다고? 이상한걸? 난 지금 분명히 이렇게 바위 위에 알몸으로 서 있는데…… 어째서 바위 위에 누워 있는 난 멀쩡히 옷을 입고 있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호들갑 떨지 마시오. 당신은 죽었을 뿐이오." "……!" 바위 위에 알몸으로 서 있는 내가 바위 위에 얌전히 드러누워 있는 날 보면 서 당황해하자 젊은 남자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무나 차분하고 너 무나 확정적인 어조였기 때문에 난 그 말 한 마디에 내가 죽었다는 것을 마 음속으로 인정하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젊은 남자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럼 제가 아트로포스의 손에 심장을 제대로 찔렸단 말입니까?" "모르오. 난 아즈라엘(Azrael)로서의 일을 할뿐이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 게 죽었는지 따위에 신경 쓰지 않소." 젊은 남자의 말은 싸늘했다. 마치 그 말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죽어나가는데 그 녀석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죽었는지 일일이 기억해서 뭐하 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젊은 남자의 어조에서 그런 것을 느낌과 동시에 '아즈라엘'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아즈라엘(Azrael)……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말인데…… 정확히 어느 책에서 본 것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즈라엘…… 죽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천사라고 했던가? 맞아,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틀림없어. 잠깐, 그 렇다면 아즈라엘은 우리 나라에서 말하는 저승사자나 마찬가지인 건가? "당신은 죽었으니 명계로 가야하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날 따라오시 오." 젊은 남자는 나한테 다가오며, 아니 다리를 움직이지도 않고 그냥 훌훌 날 아오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알몸의 남자가 알몸으로 서 있는 나한테 다가 오는데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난 즉시 그 남자의 접근을 막았다. "기다려요!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생각할 시간을 달란 말입니다." "……." 기다리라는 내 말에 젊은 남자는 그 자리에 선 채 날 무표정하게 쳐다보았 다. 젊은 남자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즉시 주위를 둘러보 았다. 주변은 확실히 숲 속이었고, 나처럼 생긴 한 인간이 바위 위에 드러누 워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고 가슴의 기복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 인간은 죽 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내 주위에 있는 세 여자의 반응이었다. 아트로포스는 내 시체를 붙잡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 고 있었고,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걱정 말라는 듯이 그녀를 달래고 있었던 것 이다. "……?" 얼레? 그런데 어째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지? 지금 아트로포스가 눈물 을 흘리며 울고 있으니까 적어도 울음소리는 들려야하잖아? 어떻게 된 거야? "로스! 라케시스! 클로토! 나 알몸이다! 어쭈, 무시하냐?!" 난 세 여자의 앞에서 알짱거리며 시선을 끌어보려고 주먹질을 하는 등 별별 짓을 다해보았다. 하지만 세 명의 여자들은 내가 앞에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자기들끼리 말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것으로써 지금 내 존재는 다른 사람 들에게 보이지 않으며 나 역시도 그들에게 전혀 간섭할 수 없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 당신이 죽었다는 것을 믿겠소?" 내 행동이 멈추자 젊은 남자가 무감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난 내 가 죽어버렸다고 절망하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그 젊 은 남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신 천사 아닙니까? 그런데 왜 날개도 없고 알몸으로 있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부끄럽습니까?" "난 천사가 아니오. 인간의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하고 그 영혼을 명계까지 데려가야 하는 아즈라엘일 뿐이오. 그리고 영혼은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알몸 인 것이오. 어차피 모든 영혼들은 알몸이니 신경 쓸 것 없소." "모든 영혼? 그럼 지금 알몸으로 있는 당신도 영혼이란 말입니까?" "그렇소." 젊은 남자의 대답은 간결했다. 게다가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 이 아예 입을 꽉 다물었다. 그렇지만 난 집요하게 젊은 남자의 입을 열게 했 다. 특히 상대가 남자라는 것에 입각하여 화제를 이상한 쪽으로 돌렸다. "그럼 여자들의 영혼도 알몸이겠군요?" "…… 그렇소." 처음엔 대답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내 질문을 무시하다가는 정말 이상한 쪽으로 얘기가 흘러갈 것이라 생각했는지 젊은 남자는 한숨을 내쉬듯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이미 한 번 입을 열게 했기 때문에 난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날렸다. "영혼도 아픔을 느낍니까?" "못 느끼오. 사고 능력만 있을 뿐 모든 감각은 느낄 수가 없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도 가슴의 두근거림도 없고, 야한 생각을 한다하더라도 몸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소. 그건 남녀노소의 영혼들에게 모두 해당하오." 호오…… 야한 생각을 해도 몸의 변화가 없다는 건가? 그거 못 믿겠는걸? 좋아, 야한 생각을 잔뜩 떠올려보자……! "……."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는지 다 알겠다는 듯 젊은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난 젊은 남자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온갖 야한 상상을 하는 것에만 전념했다. 그런데 젊은 남자의 말대로 내 몸, 아니 내 영혼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흥분 같은 것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흘…… 정말 아무런 변화도 없군. 야한 상상을 했는데도 그냥 건전한 사진 을 보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니 신기하다. 얼레? 감각이 없다는 것은 부 끄러움 같은 것도 느낄 수 없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난 아까 분명……! "근데 전 당신이 알몸으로 나타났을 때 부끄러워서 피하려고 했습니다. 영 혼에게 감각이 없으면 그런 부끄러움도 느낄 수 없지 않습니까?" "감각은 인간의 뇌가 만들어내는 것. 당신의 뇌에 박혀 있던 사회적 관습 등이 알몸으로 서 있는 자신에게 부끄럽다는 지시를 내리게 했을 뿐이오. 그 리고 영혼은 원래 감각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시각이나 청각을 사용할 수도 없소. 지금 당신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모두 나의 뇌와 당신의 뇌가 공명 을 일으켜 이런 광경을 보고 내 목소리를 듣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오." 젊은 남자의 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다시 물어보 았다. "그럼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게 거짓이란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소. 당신의 뇌가 주위 사물의 파장을 느끼고 당신 눈에 보이는 풍경을 만든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아마 당신이 보는 풍경과 내가 보고 있 는 풍경이 같을 것이오." "……." 흘…… 정확히 뭐가 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영혼은 뇌를 통해서 보고 듣고 말하는 거라는 건가? 뭐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면 되겠지. 그나 저나 정말 내가 죽었다니…… 저 싸가지 없는 라케시스! 날 진짜로 죽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이제 명계로 가야하오." 젊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은 나보고 자기 손 을 잡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여자 손도 아니고 같은 남자의 손을, 그것도 알몸으로 서 있는 남자의 손을 잡는 것을 내 머리가 거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같이 손잡고 명계로 가는 겁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없소." 내 물음에 젊은 남자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그 남 자의 손을 잡았다. 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몰라도 알몸으로 서 있는 남자의 손을 잡고 있으니까 머리 속에서는 계속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하지만 난 그런 거부 반응을 느끼면서 내 손에는 아무런 감각도 없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눈으로는 분명 젊은 남자의 손을 잡은 것을 목격하고 있으나 손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위잉- 머리 속에서 뭔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일어나자 갑자기 눈앞의 광경이 일그 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아예 풍경이 바뀌어서 웬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방 한가운데 나와 젊은 남자가 사이좋게 손잡고 서 있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방이라는 느낌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 황으로 보아 지금 이곳이 명계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난 즉시 주위를 둘 러보았다. "……!" 주변에는 엄청난 수의 영혼들이 복작복작 대고 있었다. 영혼들은 모두 발가 벗은 상태였는데 그 중의 절반은 아즈라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아즈라엘이 데려온 죽은 자들의 영혼이었다. 그리고 눈을 잠시 깜빡이는 순간에도 영혼 들의 숫자는 조금씩 불어나고 있었다. "그대가 중용자구려." 내가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렇게 말을 걸었다. 혹시라도 내 정체를 알고 있던 인간이 죽어서 명계로 왔을 가 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난 즉시 그 사람, 아니 영혼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영혼의 얼굴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구십니까?" "난 이 명계의 관리자인 '베이타'의 분신이오. 그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약간 덕이 많은 듯한 얼굴의 중년 아저씨 영혼은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그러나 명계의 관리자라는 건 믿어줄 수도 있겠는데 베이타의 분신이라는 말 은 믿어줄 수가 없어서 난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분신이라뇨? 무슨 말입니까?" "아, 난 저기서 아즈라엘들이 데려온 영혼들을 확인하고 있는 명계 관리자 베이타의 일부란 말이오. 잠시라도 저 자리를 비울 수 없고 지금은 중용자에 게 마지막 성물을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내 분신을 만든 거요." 베이타의 분신이라는 영혼의 말대로 끝이 보이지도 않는 묘한 방에는 제단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있었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영혼과 똑같이 생긴 녀석 이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몰려든 아즈라엘들이 차례대로 제 단에 올라가 그 영혼에게 자신이 데려온 영혼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제단 위의 영혼과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영혼이 동일하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난 또다시 물었다. "영혼은 자기의 분신도 만들 수 있습니까?" "영력(靈力)이 강하면 가능하오. 일반 영혼들은 분신을 만들 수 있을 정도 로 강한 영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렵소." 흐음…… 그런가? 내가 뭐 영혼에 대해서 알아야지…… 어쨌든 이 영혼 아 저씨가 마지막 성물이란 말을 한 걸 보면 명계에 성물이 있다는 게 사실인가 보군. 맘에 들진 않지만 라케시스의 추리가 맞았으니 녀석에게 감사를 해야 하나? "그대는 가서 다음 영혼의 회수를 맡게." "예." 베이타는 날 데려온 아즈라엘에게 그렇게 지시를 내렸고 지시를 받은 아즈 라엘은 아무 소리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아즈라엘이 사라진 후, 베이타 는 나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고는 먼저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 지만 난 바로 따라가지 않고 베이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갑니까?" "성물을 얻으려고 이곳에 온 것 아니오? 성물을 보러 가는 게 당연하지 않 겠소?" "……." 흘…… 할말없게 만드는군. 뭐 쓸데없는 얘기로 시간 때우기보다는 빨리 성 물 찾고 나서 빨리 돌아가는 게 훨씬 낫겠지. 웅성웅성……. 우리는 영혼들이 잔뜩 몰려있는 제단 근처를 돌아서 이상한 문 옆에 섰다. 제단 위에 있는 베이타에게 확인을 받은 영혼들은 일렬로 그 문 안으로 들어 서고 있었다. 그 때문에 궁금증이 생긴 난 베이타에게 속공으로 질문을 집어 던졌다. "왜 영혼들이 저 안으로 들어갑니까?" "명계에서 당분간 거주하는 거라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때까지 저 문 안 에 있는 영역에서 살아야 한다오." "생명이 탄생할 때까지요? 그럼 생명이 탄생하면 저 영혼들은 어떻게 됩니 까?" "당연히 그 생명의 영혼이 되는 것이오."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명의 영혼이 된다는 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소. 명계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죽은 사람의 육체에서 영혼을 분리한 뒤 생명이 태어날 때까지 여기서 관리하다가, 생명이 태어나 면 영혼을 그 새 생명에 집어넣는 것이라오. 물론 그 전에 그 영혼의 기억은 모두 지운다오." 베이타는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지만 난 어렵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내 생각과는 완전히 틀렸기 때문이었다. "왜 죽은 사람 몸에서 영혼을 분리합니까?"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생명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요." "왜 새 생명에 영혼을 불어넣어 줍니까? "그래야 그 생명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오." "영혼이 없으면 생명은 죽습니까?" "물론이오." 베이타와 얘기를 나눌수록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점점 헷갈려 져왔다.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궁금증은 쌓여만 갔다. 따라서 난 자연히 계 속해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영혼의 수는 한정되어 있습니까?" "거의 그렇다고 할 수 있소. 가끔 영혼 하나가 여러 개로 나뉘는 경우도 있 는데 그건 영력이 강한 영혼일 때 해당하는 얘기고 보통은 생명 하나당 영혼 하나가 배정받소." "그럼 영혼이 부족할 수도 있잖습니까?" "물론이오. 영혼을 받지 못한 생명체는 죽게 된다오. 예를 들자면 유산이 되던지 태어나자마자 죽던지, 아니면 태어나더라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게 되오." "그렇다는 얘기는 지금 아르카디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수는 예나 지금이 나 거의 일정하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소." "인구수의 증가가 전혀 없는 겁니까?" "거의 없소." 베이타의 대답에 난 어처구니없음을 느껴야 했다. 인간은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의술이 발달하게 되고 따라서 인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한 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는 의술이 발달해도 인구의 증가가 일어나지 않는, 말하자면 자연계의 생태계 평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후후…… 아무래도 영혼의 유무(有無)로 생명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이런 체제는 영계에서 만들어낸 것 같은데? 인간의 머릿수를 제한하면 환경 오염 이나 식량 부족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사회에 변혁을 몰고 올 인재의 탄생 확률이 적어진다는 문제가 있겠지. 거의 변화나 변혁이 일어나 지 않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의 연속…… 스파트 녀석이 말했던 발전 없는 세계가 지금의 아르카디아인가……. "후후, 그대는 아르카디아를 발전 없는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구려."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인지 베이타는 미미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 다. 명계 관리자 정도라면 충분히 영혼들의 생각에서 나오는 파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별로 놀랍지 않았다. 단지 베이타가 말한 내용에 신경이 쓰일 뿐이었다. "그럼 베이타 씨는 지금의 아르카디아를 좋아합니까?" "뭐 좋아한다고는 볼 수 없소. 아르카디아는 지금 상태로도 먹고 살 만하기 때문에 뭔가 만들려는 노력도 뭔가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도 없다오. 그래 서 발전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난 굳이 그 규칙을 바꾸고 싶지는 않소. 그냥 지금 그대로 사는 게 훨씬 편하다오." 흘……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자 들에게 변화란 두렵고 부담스러운 존재지. 그 변화에 적응하려면 여러 가지 로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쌓아올린 업적마저 무너지는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명계의 관리자인 베이타 역시 그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군. "변화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지 않을까요?" 난 베이타에게 그렇게 물었다. 이미 내 생각을 다 알고 있는 베이타라면 내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베이 타는 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대는 이런 체계를 만들어놓은 영계를 부수고 싶어하는구려." "……." "뭐 지금의 체계가 무너지든 말든 나하고는 관계없소. 영계가 무너지면 새 로운 체계가 생길 거고 그때가면 내 역할도 바뀔 테니까 말이오. 어떤 식으 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베이타는 약간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영계가 부서지는 것을 그다지 바라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중용자를 제어할 의무가 없기 때문 에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상태였다. 현재 명계의 관리자인 베이타의 할 일은 내게 마지막 일곱 번째 성물을 넘겨주는 일이기 때문이었 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렇게 말한 베이타는 영혼들이 일렬로 들어가고 있는 문 안으로 향했다. 그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더니 수풀이 우거지고 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이리저리 날아 다니는 영혼들과 심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활보하고 다니는 영혼들을 볼 수 있었다. "여기는 천국입니까?" 눈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난 베이타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베이타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천국? 하하, 그런 건 없소. 당연히 지옥 같은 것도 없고." 얼렐레? 천국과 지옥이 없어? 설마 명계의 공무원들이 직무 유기를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영혼들에게 형벌 같은 건 안 가합니까?" "그런 질문들은 보통 영혼들이 다 하는 건데, 우리 명계에서는 영혼들에게 형벌을 가하지 않소. 영혼들은 고통도 못 느끼는데 형벌을 가해봤자 무슨 소 용이 있겠소." 아, 그랬지. 영혼들은 감각을 느끼지 못하니까 때리거나 해도 고통을 못 느 끼겠구나. 그렇지만 뭔가 이상한 걸? 그럼 어째서 사람들은 저승에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거지? "명계에서 하는 일은 뭡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영혼들의 보관과 방출이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죽으면 천당이나 지옥에 간다고 생각합니까?" "후후." 내 질문에 베이타는 묘한 웃음을 흘렸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할 것임을 예상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 건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일 뿐이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 간들이 죽음의 세계 역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은 모습일 거라고 추 측하고, 자신들의 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사회적 논리를 죽음의 세계에 투영시킨 것이라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착한 일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오. 한 마디로 자신들의 현재 생활 의 질서를 지키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날조하는 거요." "……!" "생각해 보시오. 만약 명계가 영혼들이 생전에 지은 죄를 벌하는 곳이라면 명계는 권선징악을 장려하는 것이 되오. 그것은 명계의 목적이 착한 인간 만 들기라는 뜻이오. 그렇다면 명계에서는 죄를 진 영혼들을 처벌하는 장면을 이승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쁜 짓을 하면 이런 벌을 주겠다'라고 협박하 는 편이 악행하는 자들에게 강한 경고를 주어 나쁜 짓을 못하게 할 수 있소.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오. 영혼을 처벌하지 않기 때문에 처 벌 장면을 보여줄 이유가 없는 거요." "……!" 베이타의 말은 모두 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의 생활을 경계하기 위해 잘 알지 못하는 죽음의 세계에다 멋대로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그런 사실을 알고서도 명계 쪽에서 그런 소문을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왜 사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겁니까? 인간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인간들에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니오. 아즈라엘들이 영혼들에게 쉴새없이 그런 해명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오. 그렇지만 해명을 위해서는 명계에서 영력 이 제일 강한 내가 직접 이승으로 가야하오. 그것은 명계의 영혼 관리 체계 가 엉망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거요. 모든 영혼들은 나를 통해 관리되고 있 으니 말이오." 음…… 그렇군. 아까 베이타가 제단 위에서 아즈라엘들이 데려온 영혼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지.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은 그 베이타의 분신이니까 …… 잠깐, 그럼 분신을 만들어서 그런 일을 시키면 되지 않나? "분신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어렵소. 내 분신은 영력이 약하오. 영력을 분신에게 조금이라도 많이 주입 하게 되면 명계 업무에 차질이 생긴단 말이오." 베이타는 결단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곳으로 온, 정확히 말해서 강제로 이곳으로 오게 된 목적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 성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안 어딘가에 있소. 그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까지는 나도 잘 모른다오." "그 말뜻은…… 제가 직접 성물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까?" "잘 아시는구려." 흐으…… 그런 싸가지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같이 찾아주면 어디 덧나냐? 명계의 업무 봐야한다는 걸 핑계로 안 도와줄 생각이지? "잘 아시니 내가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난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성물을 찾게 되면 나한테 오시오. 그럼 명계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소." "…… 이미 죽은 사람이 살아날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물론이오. 성물 찾아오면 가르쳐줄 테니 걱정 마시오." "……." 왠지 모르게 베이타의 하는 말은 별로 미덥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베이타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난 영혼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이 상한 곳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질문이 떠올 랐기 때문에 베이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근데 제 정령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정령? 글쎄…… 아마 죽은 그대의 몸에 묶여 있을 거요. 아즈라엘이 영육 분리(靈肉分離)를 할 때 정령들이 딸려오지 않은 걸로 봐서는 그대와 완전한 정신합일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소. 그래도 영마관의 강제력에 구속된 걸 보 면 정령들이 그대의 정신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을 거요. 그래서 그대의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후 정령들은 기절 상태로 그대의 육체에 얽매여 있 을 것이오." 베이타는 내가 말하는 정령의 의미가 바로 내 다섯 정령을 가리키고 있음을 정확히 알아내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명계에만 있어야 할 베이타가 영 마관이 나에게 강제력을 걸었던 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난 크게 놀랐다. "상당히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하하, 내가 영혼을 다루다보니 본의 아니게 회로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것뿐이라오. 그걸 뭔가에 악용할 생각은 없소." "뭐 하여튼…… 제가 다시 살아나면 정령들도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겠죠?" "그건 확신하오." 베이타의 대답은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난 그다지 베이타를 믿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이 상황에서는 그냥 믿기로 하고 다시 영혼들이 떼거 지로 몰려 사는 장소로 걸어들어 갔다. 그런데 그 와중에 갑자기 질문할 거 리가 또 떠올라서 베이타에게 다시 질문을 날렸다. "근데 전 성물의 기운을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어떻게 성물을 찾아내고 그 게 성물인지 확신할 수 있습니까?" "척 보면 그게 성물이라는 느낌이 올 거요." "……." 흘…… 정말 성의 없는 대답이군. 하긴, 직책 높으신 관리자 양반에게 뭔가 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자, 그럼 성물이나 찾으러 가볼까? 앗! "왜 그러시오?" 내가 막 안쪽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하자 베이타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난 베이타 쪽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더 있어서요." "……." 찾아가라는 성물은 찾아가지도 않고 질문만 연신 해대는 내가 귀찮은지 베 이타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렇지만 난 그런 베이타의 표정에는 신경 쓰 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가차없이 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명계의 업무를 하면 지치지 않습니까?" "후후." 내 질문에 베이타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내가 아 직 한참 모자르다는 듯한 기분 나쁜 미소였다. "우선 영혼은 감각이 없소. 피로는 육체가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요. 그리 고 육체가 피로해지는 원인은 바로 감각이 있기 때문이오. 일상 생활에서 수 도 없이 받는 자극이 육체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뜻이오. 그래서 밤에 인간은 잠을 잠으로써 자극에 지친 육체를 잠시 쉬게 하는 거요. 하지만 감각이 없 는 영혼은 자극을 받지 않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오. 따라서 아무 리 일을 해도 아무리 머리를 써도,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혼은 결코 지 치지 않는 것이오." "아……." 베이타의 친절한 설명에 난 대충 이해를 했다. 그의 말을 정리해보면 영혼 에게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피로를 느끼지 못하고, 피로를 느끼지 못하기 때 문에 잠을 잘 필요성이 없어지며, 잠을 잘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이곳을 아 무리 싸돌아다녀도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각이 없는 영혼이 배고픔 같은 것을 느낄 리가 없었기 때문에 배를 채워야만 하는 이유도 없었 다. "이제 난 더 이상 대답하지 않겠소. 빨리 성물을 찾아오시오. 그렇지 않으 면 소생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 거요." 날 그냥 놔두면 계속해서 질문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는지 베이타는 그렇게 딱 잘라 말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질문 거리들을 가슴에 품은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성물을 찾으러 이 끝도 보이지 않는 이상한 장소를 죄다 뒤져야 했던 것이다. 흐으…… 도대체 어떻게 성물을 찾아? 날 죽일 셈이냐? 영혼이 아무리 피로 를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성물을 언제 찾아서 언제 내 몸으로 돌아가? 이러다가는 내 몸이 썩어 없어질 때까지 돌아가지도 못하겠다! ……. 영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영혼들의 보관소는 매우 조용했다. 말다 툼이나 서로 잡담하는 것도 없이 너무나 조용했다. 바람이나 곤충 같은 잡음 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주위는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조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 하늘 위를 유유자적하게 날아다니고 있거나 일부러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가 는 영혼들을 보며 난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 영혼들의 얼굴에 서는 그 어떤 즐거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에 초탈한 듯한 표정만 이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이 죽음의 세계에서는 뭔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보내 줘! 난 죽지 않았단 말이야!" 영혼 보관소의 입구에서 한 영혼이 소동을 부렸다.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살려내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 영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심지어 시끄럽게 떠든다고 소리치는 영혼들도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 영혼 녀석도 얌전해질 것이라는 확신을 하 고 있었던 것이다. 흐으…… 항상 똑같은 자연 환경만 보고 항상 똑같은 일만 되풀이되니까 영 혼들이 완전 맛이 갔군. 이런 곳에다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집어넣으면 며칠 견디지 못하고 정신병자 되겠는걸? 어쨌든 성물 찾기 전에 저 무표정한 영혼들에게 성물 비슷한 거 보지 못했냐고 물어봐야겠군. "저기요, 혹시 여기에서 뭔가 눈에 띄는 물건 보신 적 없습니까?" 난 하늘을 날아다니는 한 영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 영혼은 날 무표 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이내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갔다. 간단하게 내 말을 무시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영혼들 역시 내 질문에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듯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크으…… 어쩔 수 없이 나 혼자 성물을 찾아야 하냐? 뭐 처음부터 뒤지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엄청 걸릴 텐데 걱정이다……. "저기……." 그때 웬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마침 영혼들에게 무 시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난 즉시 그 목소리를 낸 영혼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꽤 예쁜 20대 정도의 여자였는데 영혼이라서 완전한 알몸을 한 채 서 있었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여자의 몸을 눈앞에 두고 있 는데 그 순간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 '얼굴은 화장을 한다면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이고 몸통과 다리의 비 율은 대략 4대 6 정도…… 다리도 꽤나 잘 빠진 편이고 살이 지나치게 찌지 도 않았고 지나치게 마르지도 않았군. 성격에 문제만 없다면 연애하거나 결 혼하는 데에 별 지장이 없겠구만.' 단순히 그런 생각들 뿐, 무슨 야시시한 생각이나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마치 예술가의 조각품을 보는 듯한, 아니 그것도 여성상 같은 그런 것이 아 니라 그냥 단순한 조각품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감각이 없기 때문인 지 생각의 경향이 본능적인 쪽보다는 표면적인 쪽으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상대방도 알몸이고 나도 알몸, 생전 처음 보는 남녀가 서로의 알몸을 쳐다 보는데도 나나 그 여자나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 가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나나 그 여자의 사고 방식이 그 분위기에 지배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눈에 띄는 물건을 찾으신다고 하셨나요?" 그 여자는 내 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뭔가 특이한 물건 없습니까?" "특이한 거라면 봤어요. 저쪽에 있던데요." 여자의 손이 상당히 애매한 쪽을 가리켰다. 단순히 저쪽에 있다는 것일 뿐 정확히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는 그 손짓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넓은 곳을 뒤지는 것보다 대강의 위치라도 아 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난 그 여자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리고 나서 즉시 여자가 가리킨 곳을 뒤져보려 했다. 그때 여자가 아직 할말이 끝나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 "잠깐만요. 제가 안내할게요." "……?" 얼레? 이 여자가 나한테 관심 있나? 다른 영혼들은 모두 가만히 있는데 왜 굳이 안내하겠다는 거지? "……!" 그 여자 영혼의 의도를 알 수 없었던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어느 정 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 곳에 온지 얼마나 됐습니까?" "저요?" "예." "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역시 그렇군. 여기에 오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인간적인 생각이 남아 있어서 뭔가 변화 있는 것을 추구하는 거야. 그 변화란 것은 눈에 띄는 것을 찾으려하는 나일테고. 저 여자도 이곳에 더 있으면 그런 관심도 꺼버리겠지? 모든 영혼들이 그런 것처럼. "그럼 안내 부탁드립니다." 예쁜 여자 영혼이 친절하게 안내해 주겠다는데 거절할 내가 아니었다. 그렇 게 난 여자 영혼의 안내를 받으며 눈에 띄는 것이 있다는 장소로 향했다. 영 혼이라 땅 위를 걷지 않고 하늘 위를 훨훨 날아갔는데, 그 동안 난 여자의 이름이나 그런 잡다한 것을 전혀 묻지 않았다. 그건 여자 쪽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어차피 죽은 이상 긴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야 할텐데 그렇게 되면 다 른 영혼들처럼 모든 것에 신경을 끄고 살게 되므로 그런 사소한 것들은 알 필요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흘…… 난 이곳에 금방 왔을 뿐인데 다른 영혼들처럼 상대방 이름이나 나이 같은 걸 전혀 안 묻고 있군. 벌써 이곳의 분위기에 휩쓸려버린 건가? 아, 난 원래 그런 걸 잘 안 묻는 녀석이었지……. "여기에요." 어떤 장소에 도착한 후 여자 영혼이 비행을 멈추며 한곳을 가리켰다. 그녀 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린 결과 지금까지 보아왔던 나무와 꽃들만 보였다. 무슨 눈에 띌 만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똑같은 나무하고 꽃들만 있지 않습니까?" "아니, 나무와 꽃 사이를 잘 보세요. 뭔가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가 보일 거 예요." "……?" 여자 영혼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난 좀더 자세히 나무와 꽃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말대로 뭔가 빛나는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나무와 꽃 사이를 지나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물체의 속도 가 워낙 빨라서 대충 보면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저게 뭡니까?" "모르겠어요. 다른 영혼들에게 물어보니 원래부터 있었다고 했어요." 흐음…… 저게 성물일까? 베이타 녀석은 척 보면 그게 성물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라 했는데…… 난 전혀 느낌이 안 오는걸? 그럼 저 물체는 성물이 아니라는 소리인가?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가버리기에는 뭔가 께름직하고……. "저거 영혼에게 뭔가 해를 주는 물체는 아니죠?" 난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물체를 가리키며 여자 영혼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 영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혀 해를 주지 않아요. 제가 저걸 잡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지만 모두 실패했죠. 영혼에게는 육체가 없어서 그런지 저 물체를 잡을 수가 없더라구 요."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해보죠." 우선 저 물체가 성물이라는 가정을 한 후, 난 그 물체를 잡기 위해 그 물체 가 지나가는 길목을 잡고 기다렸다. 빠른 속도로 나무와 꽃 사이를 질주하던 빛나는 물체는 순식간에 내가 서 있는 위치까지 날아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내 몸 속에 파고들었다. "아! 없어졌어요!" 빛나는 물체가 내 몸 속에 파고들고 나서 내 영혼의 몸을 꿰뚫고 나오지 않 았는지 여자 영혼이 경탄의 소리를 발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빛나는 물체가 일곱 번째 성물인지, 그냥 이곳에서 우연히 발생한 물체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성물을 찾은 걸 로 치고 베이타에게 돌아갈 건지 계속 성물을 찾아 이 넓은 장소를 헤매고 다녀야 할 것인지조차 결정하기 힘들었다. 흐으…… 어떻게 하지? 느낌상 내 영혼의 몸 속에 들어있는 물체가 성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지하게 헷갈리는구만. 뭐, 됐어. 그냥 성물 찾았다고 생각하고 우선 베이타에게 돌아가자.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난 그 여자 영혼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나서 베이타가 있는 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여자 영혼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간다는 거예요? 명계의 관리자인 베이타가 허락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영혼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요." "그건 괜찮습니다. 베이타의 명령을 받고 여기에 왔던 것이니까요." "……?" 내가 대충 얼버무린 대답에 여자 영혼은 그래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 웃했다. 어쨌든 난 계속 머리만 갸웃하는 여자 영혼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에 바로 베이타에게 날아갔다. 도움만 받고 아무 보답도 하지 않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오, 벌써 찾았소?" 비행청소년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온 날 보고 베이타가 얼굴 가득 미소를 떠 올렸다. 난 그런 베이타에게 이렇게밖에 얘기해줄 수 없었다. "제대로 찾은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럼 더 찾지 그러시오?" "…… 귀찮습니다." "허허, 중용자가 성물 찾는 일을 귀찮아해서야 쓰겠소?" 흘……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가 직접 성물 찾아보시지? "그럼 약속대로 그대를 소생시키겠소. 날 따라오시오." 나에게 더 이상 성물 찾을 의지가 없음을 알아차린 베이타는 어딘가로 걸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걸어가는 곳은 영혼들의 보관소 내부였다. 밖으 로 나가서 뭔가 다른 곳에서 소생 방법을 실행할 줄 알았던 난 약간의 당황 함을 느껴야만 했다. "……!" 그때 갑자기 눈앞의 풍경이 소리도 없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엄청 놀라고 있는데도 베이타는 유유히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자 세히 보니 베이타의 앞쪽에서도 풍경이 마구 일그러지고 있었다. …….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일그러졌던 눈앞의 풍경이 제대로 보이기 시 작했다. 하지만 그 풍경은 방금 전까지 내가 보고 있었던 풍경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해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 베이타와 내가 서 있었던 것이 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난 베이타에게 물었다. 그러자 베이타는 날 쳐다보면서 느긋한 어조로 대답 했다. "여기가 바로 영혼들을 방출하는 곳이오." "이 어두운 곳이 말입니까?" "그렇소." 베이타의 말은 정말 뜻밖이었다. 도대체 여기서 영혼들의 방출이 어떻게 이 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 르는지 베이타는 그저 새카만 어둠을 뚫고 어딘가로 걸어갈 뿐이었다. "근데 영혼들을 방출하는 곳이라면서 어째서 영혼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 까?" 베이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걷기만 했기 때문에 난 베이타에게 말 을 걸어보았다. 다행히 베이타는 내 질문을 기다렸던 모양인지 질문을 받자 마자 대답을 해주었다. "영혼들은 이미 여기 있소. 단지 이 어둠이 서로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오. 즉, 방출 장소로 온 영혼들은 혼자서 어둠을 떠돌다가 목적지 에 도착하여 지금까지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이 있는 곳으로 날아 가는 것이오." "기억을 왜 잃어버립니까?" "이곳에는 영혼의 기억을 먹고사는 벌레들이 있기 때문이오. 명계에서는 그 벌레들을 영충(靈蟲)이라고 부른다오." 헐…… 기억을 먹고사는 벌레들이 있다고? 그래서 영혼들이 새로운 생명의 영혼이 되어도 예전의 기억은 갖고 있지 않는 건가? "하지만 그 벌레들의 공격을 피하면 기억을 잃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 까?" "하하, 물론이오. 가끔씩 영충의 습격을 피해서 예전의 기억을 가지고 새 생명의 영혼이 되는 영혼들도 있다오. 그것을 인간들은 환생(還生)이라고 하 더이다." "흐음…… 그렇군요." 베이타의 말은 꽤 흥미로웠다. 하지만 잠시 생각을 바꿔서 해보니 그 영충 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면 나 역시 지금까지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내 몸으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베이타는 영충이 습격하던 말던 전 혀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 나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영충의 습격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본래는 없소. 하지만 나와 같이 갈 경우에는 안전하오." 얼레? 베이타와 같이 있으면 안전하다고? 설마 그 영충들, 베이타가 기르고 있는 애완곤충은 아니겠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 단지 영충들이 내 강력한 영력을 느끼고 접근하 지 않는 것뿐이라오. 비록 내 분신이라 할지라도 말이오." 베이타는 그렇게 말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영충들은 베이 타의 애완곤충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어차피 이번에 되살아나면 다시는 이 곳에 올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명계에 대해서 멋대로 생각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 시간은 시간대로 흘렀고 나와 베이타는 나와 베이타대로 걸었다. 영혼이기 때문에 걷는다고 피곤하거나 지치는 것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 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렇게 새카맣 던 어둠이 갑자기 사라지며 아주 밝은 풍경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육체가 없는 영혼이기 때문에 어둠에서 밝음으로 뒤바뀌어도 눈부시다거나 눈이 따 갑다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 풍경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을 때 난 크게 놀랐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바로 육체밖에 없는 나 자신이 바위 위에 얌전히 드러누워 있는 바로 그곳이기 때 문이었다. 내 곁에는 아트로포스가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아트로포스 위로하기를 포기한 채 내가 깨어 나기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대의 육체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요." 베이타는 더 이상 자신의 할 일이 없다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되살아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 유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안내해준 베이타에게 작별 인사는 해야 도리 라고 생각해서 내 육체에 들어가기 전에 베이타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지금까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내가 뭘 한 게 있겠소. 아참!" 내 인사에 실실 쪼개던 베이타가 뭔가 생각난 듯이 탄성을 발했다. 갑작스 런 탄성이라 내가 바짝 긴장했을 때, 베이타는 느긋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마지막 성물의 효능은 바로 극반동(極反動)이오." "……." 어쭈구리…… 마지막 성물의 효능을 알고 있다는 말은 성물이 뭔지 이미 알 고 있었다는 뜻? 그런데 왜 나한테는 한마디 말도 안하고 무조건 성물 찾아 오라고 한 거야? 이 명계 관리자를 주인공으로 청문회를 열어? "극반동은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리는 것을 말하오. 물론 자신보다 약 한 자의 공격만 튕길 수 있다오. 어쨌든 극반동은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 별 볼일 없는 졸개들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당히 유용하오. 졸개 들이 아무리 그대를 칼로 찌르건 마법으로 공격을 하건 졸개들의 실력이 당 신보다 아래인 한, 그들은 자신들이 한 공격에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 뿐 그 대는 그 어떤 부상도 당하지 않게 된다오." "……!" 마지막 성물에 그런 엄청난 능력이 숨겨져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에 난 놀 람에 놀람을 거듭해야 했다. 그렇게 날 경악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은 베 이타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작별 인사를 하고 냉큼 명계로 돌아가 버렸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이런……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냥 가버렸네? 뭐 어쩔 수 없지. 마지막 성물의 효능에 대해서 듣기 전에 녀석에게 했던 작별 인사로 대신했 다고 치자. 그럼 이제 슬슬 내 육체로 돌아가 볼까? 스스슥- 내가 내 육체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마찰이 일어나는 듯한 음향 효과가 발 생했다. 하지만 내 영혼은 무리 없이 육체 안으로 들어갔고 그와 동시에 머 리 속의 필름이 끊겨버렸다. ……. "흑흑……!"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제일 먼저 들렸다. 그리고 내 머리가 부드러운 뭔 가에 감싸여 있다는 것도 느꼈다. 난 잠시 머리를 굴려서 내가 명계에서 성 물을 얻고 본래의 내 몸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생각해 내었다. 그러자 몸의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면서 내 정신 역시 아주 말짱해졌다. "흑흑……." 흘…… 아트로포스가 내 머리를 부여잡고 계속 울고 있는 것 같군. 그렇다 는 건 지금 얼굴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물체는 아트로포스의…… 흠흠, 하 여튼 일어나야겠다. "로스, 나 돌아왔는데." "……!" 죽어 있던 시체가 갑자기 말을 하자 아트로포스는 크게 놀래었다. 그 사이 난 아트로포스의 품에서 빠져 나와 라케시스와 클로토에게도 내 부활 소식을 알렸다. 두 사람은 이미 내가 멀쩡히 살아 돌아올 것임을 알고 있었는지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이드 님…… 정말 이드 님인 거죠……?" "아…… 일단은 그런 것 같은데." "흑……!" 내 대답을 듣자마자 아트로포스는 내 품속에 몸을 던지며 또 울기 시작했다. 오히려 내가 죽었을 때보다 더 많이 우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내 품에 안 겨 우는 아트로포스를 살짝 끌어안아 주었다. 뭔가 어색한 말을 하는 것보다 는 그렇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다음편은 상당히 늦어질지도 모르겠군요... 글의 진척 속도가 엄청 느려서...-.-;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5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2012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44 게 시 일 :01/03/05 19:51:33 수 정 일 : 크 기 :9.6K 조회횟수 :25 2주일만이군요...-.-; 글이 안 써져서 띵까띵까 놀다보니 어느새...;;; 게다가 개강을 했기 때문에... 연재 속도는... 기대하지 마시길...-.-;;; ====================================================================== <제 30 장> 천신계 진입 "어때? 내 말이 맞았지?" 내가 죽었다가 멀쩡히 살아나자 라케시스가 거 보란 듯이 말했다. 난 그냥 어느 정도 울음이 진정된 아트로포스를 안고서 라케시스를 째려보았다.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고맙게 생각하면 됐어. 근데 언제까지 로스를 끌어안을 생각이야?" 라케시스는 아트로포스를 품에 안고 있는 내 꼴을 보고 날카로운 눈초리를 해 보였다. 그렇지만 난 라케시스나 클로토의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고 아트 로포스가 스스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안고 있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라케시스의 말을 듣고 나자 아트로포스가 내 품에서 빠져 나와 어색하고 웃고 말았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 로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어쨌든 라케시스의 말대로 명계에 가 서 마지막 일곱 번째 성물을 얻어왔으니까 말이야." 그럼그럼. 문제는 만약 라케시스의 예측이 틀렸다면 난 완전히 죽었을 거란 것일 뿐. 결론적으로 끝은 좋았지만 그 과정에 문제가 있으니까 라케시스에 게 보상을 받아야 할 텐데…… 뭘 달라고 할까? "성물 다 모았다니까 이제 나하고 클로로의 일은 끝난 거네. 그럼 이제 이 드 혼자 천신계나 천마계를 가든가 로스하고 같이 가든가 서로 열심히 의논 해서 결정하라구. 우린 이만 가볼게. 중용의 법칙 잘 실현해라." "그럼 몸 건강히 임무 완수하시길." 내가 보상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그렇게 말 하더니 자신들의 뒤쪽에 금색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주저 없이 그 금색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었 다. "갑자기 가는 게 어디 있……!" 그 두 명에게 가지 말라고 소리치려고 했을 때 이미 두 여인의 모습은 내 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들의 할 일이 다 끝나자마자 냉큼 자기들 세계 로 돌아가 버리는 라케시스와 클로토의 행동에 나와 아트로포스는 멍청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버린 거지……?" "그런 것 같네요……." 이미 두 여자가 떠난 후에 물었던 어리석은 질문이었지만 아트로포스는 그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서로 멍청한 문답을 나눈 우리들은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라케시스와 클로 토가 너무 갑작스럽게 가버려서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성물을 모두 모은 이상 이제 천신계나 천마계로 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천신계나 천마계로 가지?" "글쎄요…… 뭔가 방법이 떠오를 것 같기는 한데……." 아트로포스는 어떤 이미지가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듯 고운 아미를 살짝 찡 그렸다. 난 그저 아트로포스가 어떤 생각을 완전히 떠올릴 때까지 그냥 옆에 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대략 1분여 정도가 흐르자 아트로포스는 마침내 그 이미지를 완전히 떠올리고는 나에게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요!" 난 아트로포스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고 아트로포스는 주변에 있는 돌 하나 를 주워들더니 그걸로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이리로 올 때 사용하는 마법진과 꽤 비슷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 마법진을 자세히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단순히 복잡하다는 이유로 두 개가 비 슷하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됐다!" 한참을 마법진 그리는데 정신을 쏟았던 아트로포스가 허리를 펴며 기분 좋 게 외쳤다. 그러나 그 이후의 일을 떠올렸는지 이내 우울한 얼굴을 했다. 아 직 중용의 법칙을 실현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어서인 듯했다. "저기……." "응?" "제가…… 이드 님을 따라가도 될까요?" 아트로포스는 그것이 어려운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망설이며 물었다. 그러 나 난 어차피 그 대답에 관해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물론. 로스가 있어야 힘이 되니까." 그럼그럼. 만약 아트로포스가 없으면 저 복잡한 마법진을 내가 외워야 하니 까 귀찮거든. 게다가 마법쓸 때 아트로포스가 옆에 있으면 정신력의 부담도 덜 수 있으니까 좋고. 또 하나 이유를 덧붙이자면 예쁜 여자가 옆에서 응원 해주면 힘이 난다는 것! "네!"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트로포스는 내 대답을 듣고 밝은 미소를 지었 다. 그 미소를 보니 순간적으로 '지금까지의 중용자와 영인관은 서로 사랑했 다'라는 말이 떠올랐으나 난 그 생각을 일부러 덮어버렸다. 아직 중용의 법 칙이라는 관문이 남아 있는 이상 그 외의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천신계하고 천마계 중에서 어디로 먼저 갈 건가요?" "응? 아…… 글쎄…… 어디로 가지?" 지금까지는 성물 모으는 것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천신계와 천마계 중에서 어디를 먼저 방문할 것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성물을 모 두 모으고 차원 이동 마법진까지 갖추어진 이상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흠…… 저 마법진으로 그냥 내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나? 그러면 두말할 것 도 없이 좋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그나저나 천신계냐 천마계냐 그것이 문제 구나……! "먼저 천신계로 가는 게 어때요?" 내가 계속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아트로포스가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당연 히 난 그 이유를 물었고 아트로포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라케시스 님과 클로토 님의 말로는 천신계가 천마계를 공격하려고 한다잖 아요? 그러니까 우선 전쟁을 일으키려는 천신계를 처리하는 것이 급할 것 같 아서요." "음……." 뭐, 아트로포스의 말에도 1, 2가 있지. 전쟁 준비를 갖춘 천신계를 먼저 처 리하는 게 좋을지도 몰라. 만약 천마계를 먼저 처리한다면 천신계가 기다렸 다는 듯이 날 공격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럼 천신계로 하자."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직 마법진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는지 돌을 든 아트로포스의 손이 다시 움 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 시간은 매우 짧았다. 그냥 선 몇 개 그은 걸 로 끝났던 것이다. "다 됐어요. 마법진 안으로 들어오세요." 아트로포스는 먼저 마법진 안에 들어간 뒤 날 불렀다. 마법진에 들어가자마 자 천신계로 날아가는 건 아닌 듯해서 난 가벼운 마음으로 마법진 위에 섰다. 그렇게 내가 마법진 안으로 들어오자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지시를 내렸다. "천신계로 이동한다는 생각을 하세요." "응? 하지만 난 천신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그건 상관없어요. 그냥 생각만 하시면 되요." "그래?" 차원 이동 방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트로포스밖에 없었기 때문에 난 그 냥 아트로포스가 시키는 대로 천신계로 이동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내 나와 아트로포스의 몸은 이상한 공간으로 빨려들듯 사라지게 되었다. "……?" 차원 이동이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난 내 눈앞의 달라진 풍경 에 얼떨떨함을 느껴야 했다. 이곳의 풍경은 분명 화창한 한낮의 숲이었건만 나무의 형태나 꽃의 형태가 아주 가관이었다. 나무들은 모두 곧게 자라고 완 벽한 좌우대칭이었으며 꽃 역시 좌우대칭에 조금도 구부러짐이 없었다. 숲에 서 자라고 있는 모든 나무와 꽃, 그리고 수풀들이 모두 곧은 형태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좌우대칭이었던 것이다. "어, 엄청나네요……!" 누군가 만들어놓은 듯한 숲의 모습에 아트로포스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아트로포스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왠지 이 숲의 형태 가 천신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여기의 자연물은 환상적이군." "이런데서 살다간 정신이 이상해지겠다." 지금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사라만다와 노움이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명계 에 갔다오고 나서 정령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탓에 두 녀석이 갑자 기 입을 열었을 때 난 조금 놀라버리고 말았다. "옆에 영인관이 있으니까 저희들한테는 관심도 없는 거죠?" 내 반응을 느낀 실프가 우울해진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난 명계에서 정령 들을 걱정했다는 등의 말로 정령들을 달래려고 했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렇게 내가 정령들 때문에 골치 아픈 줄 모르고 아트로포스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천신계인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 지금부터 당장 천신계의 아지트로 쳐들어가서 녀석들을 두들겨주면 아주 간 단하게 일이 해결되겠지만, 천신족들이 왜 천마족들을 싫어하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하고 무작정 싸움을 거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역시 난 인 간이기 때문에 내 행동에 대해 어떤 정당성이 부여된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천신계에 대해 정보를 모아야겠어. 천신족들은 이곳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왜 천마족들을 미워하는지 알아내야지." "네! 그러는 게 좋겠어요." 내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약간 들뜬 어조로 찬성했다. 천신계에 오자마자 싸움을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자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 아트 로포스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쁨을 느낄 때, 갑자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흠칫했다. "왜 그러세요?" 내 표정이 달라지자 아트로포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하지만 난 그 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내 피부에 깔아놓은 마나회로를 가동시켰다. 그 리고 내 예감대로 내 몸 바깥에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즉, 이 천신계라는 곳에는 마나회로가 전혀 깔려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마나회로가 없으면 난 마법을 못 쓰는데…… 그럼 나에게 남은 건 정령들의 힘뿐이란 말인가? 이거 골치 아픈걸? 도대체 지금까지의 중용자들 은 어떻게 천신계에서 싸운 거지? 마나회로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왜 그래요? 뭔가 잘못됐나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아트로포스는 아까보다 더욱 근심 어린 얼굴을 해 보였다. 만약 내가 여기서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게 된다면 아 트로포스는 더욱 걱정스러워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건 중대사항이라 그냥 숨길 수도 없어서 난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어쩌면 아트로포스가 어떤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마나회로가 깔려있지 않아. 그래서 마법을 쓸 수가 없어. 그것 때 문에 좀 걱정이 돼서." "아……!" 어째서 내 표정이 어두워진 것인지 알게 된 아트로포스는 작은 탄성을 터트 렸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을 떠올렸는지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곳에 마나회로가 없다는 것은 전에 풍천마 자레드가 말했던 대로 천마장 …… 아니, 천신장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가 그랬잖아요, 천마장 은 마나회로를 배제한다고. 그러니까 천신계 자체에 천신장이 깔려 있어서 마나회로가 배제되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 흐음…… 생각해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군. 풍천마 자레드의 천마장 때문 에 난 마법을 쓸 수 없었지. 그래서 끈을 이용해 그 천마장을 부수어 버렸고. 그렇다는 것은 끈을 이용하면 여기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 만 끈을 다루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중용자들은 어떻게 싸울 수 있었던 거야?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5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937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45 게 시 일 :01/03/05 19:51:50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25 "이드 님, 이건 제 생각인데 풍천마 자레드가 그랬던 것처럼 이드 님의 힘 으로 천신장을 배제하면 되지 않을까요? 마나회로를 극도로 개방해서 천신장 을 몰아내고 이드 님의 마나회로를 이곳에 건설하는 거예요." 아트로포스는 마법 사용 방법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녀의 의 견은 확실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난 고개를 끄덕인 뒤 즉각 마나회로를 최대로 개방했다. 우선 마나장으로 천신장을 몰아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우웅- 내 피부에 건설한 마나회로로부터 막대한 양의 마나장이 발생했고 마나장은 천신장과 반발하는 성질을 가졌는지, 천신계에 넓게 퍼져 있어 상대적으로 밀도가 작은 천신장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신장을 내 몸 주위에서 몰아내고 나서 난 마나장을 인위적으로 중첩시키고 고정시켜서 가상의 마나 회로를 만들었다. 꽤 어려운 작업이라 생각했었지만 성물의 힘 때문인지 이 외로 쉬웠다. 내 주위를 마나회로가 덮힌 소형 회로계로 만드는 건 별로 어 렵지 않았던 것이다. "파이어 애로우(Fire Arrow)" 가상 마나회로 건설이 끝나자마자 난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내 주위에 하나의 불화살이 만들어졌다. 내가 하나만 만들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 만 만들어진 것일 뿐, 마나장 안에서 마법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이상이 없 었다. "마법 사용이 가능해요?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내가 만들어낸 불화살을 보고도 아트로포스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 었다. 불화살의 개수가 적어서 마법 사용에 어떤 제한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 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난 실실 쪼개면서 입을 열었다. "괜찮아. 마나회로를 만들어 놓은 뒤에는 마음대로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그것보다는 이렇게 싸우려면 정신력이 많이 소모될 거야. 그러니까 로스가 많이 도와줘야 해." "네!" 도움을 바라는 내 말에 아트로포스는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뭔가 도 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쁜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마법 사용 에 대한 걱정도 어느 정도 덜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무 방향이나 잡고 무작 정 걷기 시작했다. 우선 배가 고파오기 전에 뭔가 식사를 해결할 만한 것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구우우ㅡ! 나와 아트로포스가 숲에서 얼마 벗어나지 못했을 때 하늘 위에서 기이한 소 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고려해보자면 그 소리는 어떤 새 종류의 울음소리가 분명했다. 그리고 내 느낌만을 고려해보자면 우리에게 뭔가 해를 끼칠 만한 녀석은 아니었다. "아! 저기……!" 하늘 위에서 거대한 물체를 발견한 아트로포스가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켰 다. 확실히 그건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양쪽 날개를 활짝 펼친 길 이가 거의 10미터에 달해서 무지막지하게 커 보였다. 만약 저런 독수리가 10 마리 정도만 모인다면 하늘을 완전히 뒤덮어서 낮을 밤으로 뒤바꿀 것 같았 다. "……?" 얼레? 근데 왜 저 독수리가 아까부터 우리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지? 나와 아트로포스를 점심 식사감으로 찍어버린 건가? 하지만 녀석의 덩치에 비해서 우리들이 너무 작아서 먹어봤자 간에 기별도 안 갈텐데? 아, 저 녀석 점심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우릴 먹으려는 걸지도 모르겠는걸? 나하고 아트 로포스는 운동도 거의 안 하니까 살이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워서 맛있을 지도 몰라. 펄럭펄럭- 우리의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던 거대 독수리가 마침내 우리를 잡아먹으려 고 하강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거대 독수 리의 하강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거대 독수리도 그것을 알았는지 더 이상의 하강은 시도하지 않고 우리 머리를 기준으로 뱅글뱅글 돌기만 했다. 쩝, 녀석이 내려오면 잡아다가 독수리 튀김을 만들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군. 저런 거대한 독수리는 그 수가 별로 없을 테니까 희귀동물 보호차원에서 밀 렵은 못하겠다. 날 공격했으면 정당방위를 적용해서 망설임 없이 맛있게 잡 숴주실 텐데……. "아! 누가 내려와요!" 내가 하늘 위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대 독수리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아트로포스가 그 독수리를 가리키며 또다시 소리쳤다. 확실히 그녀 의 말대로 하늘 위에서 한 인간이 훌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니, 이곳은 천신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천신족이라고 해야 맞았다. 탁- 적어도 20미터는 되는 하늘 위에서 아주 사뿐히 날아내린 그 천신족은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겉모습으로 보이는 나이도 20살 전후 정도였고 키도 나보 다 컸다. 성격에 문제만 없다면 여자들에게 인기 엄청 많을 청년이었던 것이 다. "두 분은 이곳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천신족 청년은 나와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묻는 어조에 어 떤 권위적이거나 관료적인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난 부담없이 대답했다. "여행 중입니다." "여행?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곳이되 이곳이 아닌 곳입니다." "……." 난 네프나 할멈의 말을 멋대로 도용해서 거짓말을 했다. 천신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로 가장해서 행동한다면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이 발각되 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천신족 청년은 내 거짓말에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렇군요. 그럼 옆에 계신 여자 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 큰 고비를 넘겼다고 내가 안도하고 있는 틈을 타서 천신족 청년은 나에게 까다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 천신계에서 내가 마법을 쓰기 위해서는 아트로 포스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르므로 난 항상 그녀와 같이 있어야 했다. 그렇 기 때문에 내 대답은 약간 황당한 쪽으로 흘러버렸다. "제 아내입니다." "……!" 예상했던 대로 아트로포스만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었을 뿐 천신계 청년은 그런 것 같았다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전 '겔레오스'라고 합니다. 자기 소개를 이제서야 하는 점을 용서하십시오." "전 이드고 이쪽은 로스입니다." 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아트로포스를 대신해 서 겔레오스라는 천신족 청년에게 우리의 이름을 밝혔다. 그렇게 서로의 소 개가 대강 끝나자 겔레오스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이 부근에 아는 분이 계십니까?" "……." 흘…… 이 근처에 아는 사람 없다면 자기가 우릴 도와주겠다는 소리인가? 설마 아트로포스에게 눈독을 들이는 건 아니겠지? 아, 아트로포스 몸에 몇몇 정령들을 집어넣어 주면 별 문제는 생기지 않겠군. 잠시 녀석 신세 좀 져볼 까? "신혼 여행을 겸해서 하는 거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이 부 근에 하룻밤 묵고 갈만한 곳이 있습니까?" "있긴 있습니다만 이 숲을 벗어나야 합니다.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여 관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얼레? 천신계에도 여관 같은 게 있나? 아니, 그것보다는 그 여관에서 돈을 받을텐데 난 천신계에서 쓰는 돈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능하다면 내 착한 얼굴을 미끼로 해서 공짜로 잠을 재워줄 만한 곳을 찾아야……! "저희는 맨몸으로 여행하는 거라 수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 니다. 그래서 여관에서 지내기 어렵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런 외진 숲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니 제가 두 분의 몫까 지 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괜찮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겔레오스는 내 계획대로 우리들의 여관비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래서 난 단 한번만 사양하고 나서 냉큼 고맙다고 말했다. 너무 거절을 하다보면 겔레오 스가 정말로 생각을 바꿀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럼 실례를 무릅쓰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하하, 별 말씀을. 그럼 '튜이'를 타고 숲을 빠져나가기로 하죠." "튜이?" "머리 위를 돌고 있는 저 새의 이름입니다. 제가 기르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죠." 겔레오스는 아직도 우리들의 머리 위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대 독수리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저런 거대한 독수리를 애완 동물로 기르고 있는 겔레오스가 나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자, 그럼 갑니다!" 겔레오스의 낭랑한 외침이 있은 직후 갑자기 나와 아트로포스의 몸이 허공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우리들은 거대 독수리 튜 이의 등 위에 올라타 있었다. 겔레오스가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튜이의 등 까지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그것만 보더라도 겔레오스의 능력이 결코 범상 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우우우ㅡ! 나와 아트로포스가 땅 아래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튜이의 몸에 잔뜩 나 있 는 털을 부여잡자마자 튜이는 하늘 높이 떠올라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난 아트로포스의 몸에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을 배치시킨 다음 튜이의 등 위에 서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겔레오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겔레오스 씨, 방금 전까지 튜이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숲 아래로 내려온 겁니까? 저희를 발견해서 내려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숲에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난다는 건 흔히 있는 일 이 아니니까요. 두 분을 발견하고 누군가 궁금해서 내려와 본 겁니다." 흘…… 할일 더럽게 없나보군. 뭐, 그 덕분에 이렇게 노숙할 걱정은 없어졌 으니까 다행이지. 어쨌든 겔레오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로 실컷 이용해먹은 다음에 기회를 봐서 도망가야겠다. 한 녀석에게 너무 오래 붙어있으면 내 존 재가 들킬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펄럭펄럭- 튜이의 덩치가 크다보니 몇 번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니까 순식간에 숲을 벗어나 버렸다. 숲 밖에는 마을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이 형성한 마을의 모 습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단지 하늘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뭐라 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느낌상 꽤 분위기가 침착한 마을 같았다. "내려갑니다!" 튜이가 마을 광장 바로 위에 도달하자 겔레오스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물론 마을 광장에 떨어진 우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멀 쩡했다. 그렇게 우리들을 마을 광장에 내려놓은 겔레오스는 자신도 아래로 내려오고 나서 하늘 위에 떠 있는 튜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나 와 아트로포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구우우……. 말도 못하게 거대했던 독수리 튜이가 마을 광장 쪽으로 내려옴에 따라 급속 도로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기어이 참새만한 크기로 축소되어 겔레오 스의 어깨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 장면을 보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물론 이고 주변에 있던 천신족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으…… 천신계라서 그런지 보통은 상상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군. 겔레 오스가 자신의 능력으로 튜이를 작게 만든 건지 튜이가 스스로 자기 몸을 축 소시킨 건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놀라워. "그럼 우선 점심부터 하도록 하죠." 나와 아트로포스가 멍청히 튜이만 쳐다보고 있을 때 겔레오스는 그렇게 말 하며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간들이 사는 모습 이나 천신족들이 사는 모습이나 거의 다른 게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세 계로 왔다는 이질감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9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477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57 게 시 일 :01/03/07 20:14:04 수 정 일 : 크 기 :11.8K 조회횟수 :194 끼익- 어느 음식점 앞에 도착한 겔레오스는 주저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고 우리들 역시 그를 따라 그 음식점 안에 잠입했다. 점심 시간이라 그런지 음 식점 안에는 천신족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음식점 안은 너무나 조용했다. 거의 30여 명이나 되는 천신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도 불구하고 가끔 식기가 달그락 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잡소리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흘…… 도대체 이 많은 인간, 아니 천신족들이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다니 …… 이건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어. 게다가 모두들 의자에 똑바로 앉아 서 거의 부동 자세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나원, 뭐라고 할 말이 없군. 여기가 무슨 군대냐? "저기 앉도록 하죠." 겔레오스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하며 마침 식사를 끝내고 천신족 몇 명이 일어서는 자리로 걸어갔다. 하지만 아직 테이블 위에 먹던 식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앉지 않았다. 음식점에서 일하던 천신족 종업원이 그릇을 모두 치우고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나서야 유유히 그 자리에 앉았다. "……." 우리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종업원 하나가 테이블 옆으로 오더니 말없이 우 리들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주문을 받으려는 행동이었다. 하 지만 나와 아트로포스는 천신계의 음식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겔레오스에게 맡기기로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겔레 오스는 테이블 중앙에 놓인 종이와 펜을 집어들더니 어떤 글을 써서 종업원 에게 보여주었다. 겔레오스가 그 종이쪽지에다 뭐라고 썼는지는 알 수 없었 지만 지금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주문할 음식 이름을 쓴 것 같은 느낌이 들 었다. 척척- 겔레오스에게서 종이쪽지를 건네 받은 종업원은 우리들에게 살짝 인사를 하 고는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겔레오스는 그 종이쪽지에다 주문 음식을 적어놓은 것이었다. 흐으…… 이 음식점은 주문을 종이쪽지에다 받는 거냐? 말로 하면 안 되나? 주문을 일일이 종이에다 써야하는 건 무지하게 귀찮을 텐데……. 슥슥- 나와 아트로포스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 겔레오스가 종이쪽지에다 뭔 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종이쪽지를 우리들 앞으로 살짝 밀어놓았 다. 당연히 우리들은 그 종이쪽지에 써져 있는 글을 읽었다. 『이곳의 모든 음식점에서는 종이쪽지를 통해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그게 예 의죠.』 헉…… 그런 말도 안 되는……! 슥슥- 겔레오스는 우리들이 글을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종이쪽지에다 뭔가 를 쓰고는 다시 우리들 앞에 그것을 놓았다. 그 내용은 이랬다. 『제가 주문한 것은 이곳의 기본적인 식사메뉴입니다. 만약 그 음식이 마음 에 들지 않는다면 저에게 글을 써주십시오. 다른 걸로 바꿀 테니까요.』 흘…… 일일이 글을 써서 얘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불편하구만. 하지만 뭐 어떡하나, 음식점 안에 있는 모든 녀석들이 다 그러고 있는데. 나도 그냥 동참해주는 수밖에. 달그락…… 달그락…… 가끔씩 들리는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겔레오스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나와 아트로포스는 또 놀라고 말았다. 천신족들의 음식이란 것이 전부 채소나 과일, 야채류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들은 먹기 좋게 잘 요리된 상태였다. 크으…… 고기를 못 먹는 건가? 도대체 이런 걸로 어떻게 버티라는 건지…… 난 하루라도 고기를 안 먹으면 입안에 이끼가 낀다고! 달그락…… 우리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식들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하고 있을 때 겔 레오스는 테이블에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음식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사실 나이프 같은 건 그다지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는 나이프를 계속 들고 포 크로 음식을 찍어 먹었다. 주위를 둘러본 결과 다른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천신족들 역시 모두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아트로포스도 그들처럼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식사를 했다. 끼이- 점심 식사를 모두 마치고 우리들은 음식점을 나섰다. 너무나 조용한 분위기 에서 식사를 했기 때문인지 나와 아트로포스는 포만감보다는 해방감을 먼저 느끼고 있었다. 우리들 중에서 포만감을 느끼는 녀석은 겔레오스뿐이었다. "이제 여관을 잡도록 하죠." 배가 부른 겔레오스는 괜히 실실 쪼개면서 한 여관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창 자라는 나이에 고기를 먹지 못한 아트로포스는 아직도 배가 고픈 표정 을 하고 있었지만, 주도권은 이미 겔레오스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저 그의 뒤를 얌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끼이- 여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겔레오스는 나이가 꽤 들어보이는 여관 주인 에게 방을 두 개 주문했다. 다행히 여관에서는 종이쪽지로 주문을 하지 않고 직접 말을 해서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방 두 개를 주문한 겔 레오스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며 주의를 주었다. "두 분은 한 방에서 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관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 는 장소이니 밤에 너무 시끄럽게 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 그 말의 뜻은…… 나하고 아트로포스가 한 방에서 같이 자야 한다는 소리? 흠흠, 뭐 겔레오스한테 부부라고 말해버렸으니 같은 방에서 자는 게 당연하 지만. "두 분은 여행하느라 지치셨을 테니 먼저 들어가 쉬도록 하십시오. 전 튜이 와 함께 산책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저녁 시간이 되면 돌아올 테니 걱정 마 십시오." 그렇게 말한 겔레오스는 여관 주인에게 먼저 돈을 지불한 뒤 조용히 여관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여관 주인은 우리에게 방 번호를 알려주었고 우리들 은 그 방으로 올라갔다. 음식점에서조차 조용히 음식을 먹는 천신족들의 여 관이라 그런지 방도 상당히 깔끔하고 깨끗했다. 화려도는 별로지만 청결도는 인간들의 어느 고급 여관보다 나았다. "……." "……." 당연한 소리지만 방 안에는 나와 아트로포스밖에 없었다. 그리고 침대는 하 나이고 두 명이 잘 수 있게 넓었다. 바닥에 깔아놓고 잘만한 이불이나 담요 가 침대 위에 덮여 있는 것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바닥에서 자는 것 도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난 아트로포스와 같은 침대 위에서 자야한다는 소 리였다. 꿀꺽…… 엄청나게 긴장이 되는군. 회로계에서 아트로포스하고 같이 여행할 때 거의 같은 방을 썼긴 했지만 같은 침대 위에서 잔 적은 없었는데…… 천 신족 녀석들은 바닥에서 자는 걸 고려하지도 않나? 어떻게 이불을 하나밖에 준비 안 하는 거야? 이건 나보고 아트로포스와 같이 자라는 소리잖아. 크…… 녀석들, 정말 마음에 들어! "저기……."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침대만 뚫어져라 쳐다보자 아트로포스가 얼굴을 잔 뜩 붉히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잇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 게 지금의 상황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다 큰 남녀 둘 이 같이 있으니 자연스럽게 심장이 쿵쾅하고 뛰기 시작했다. 아트로포스에게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헛생각조차 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너무나 다른 분위기였다. "호흡이 빨라지고 맥박수가 증가하는군." "뜨겁다 뜨거워! 잘못하면 내가 타죽겠다!" "……!"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그 두 마디의 말이 내 귀를 강 하게 때렸다. 그것은 바로 내 몸 속에 있는 사라만다와 노움의 목소리였다. 정령들이 너무 조용히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 몸 속에서 주변 상황을 살펴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해요! 저희가 그렇게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가요?" 자신들을 까맣게 잊었다는 것에 실프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운디네 와 잭 오 랜턴은 현재 아트로포스의 몸에서 잠복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트로포스의 몸에 운디네와 잭 오 랜턴을 배치시켰다는 것조차 잊어먹은 것에 대해서 그 둘에게 미안한 감 정을 느꼈다. "후우……." 정령들이 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난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 갑작스런 한숨에 놀란 사람은 아트 로포스였다. "왜…… 그러세요?" "아니, 내가 겔레오스에게 우리들이 부부라고 해서 한 방을 쓰게 됐잖아. 게다가 이불도 하나밖에 없고 말이야." 우선 그렇게 한숨 쉰 이유에 대해서 말한 나는 약간의 부연 설명을 덧붙였 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같이 자야겠다." "……!" 내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런 말을 하자 아트로포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내 말의 의도를 오해한 것이 틀림없었다. 여기서 아트로포스를 좀더 놀려주고픈 생각도 들긴 했지만 그냥 사실을 그대로 얘기해주었다. "같이 자도 괜찮아.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면 정령들이 방해를 할 테니 까 말이야. 그리고 로스 몸에도 정령 둘이 들어가 있으니까 안전하고." "아……." 내 말을 들은 아트로포스는 안도의 탄성을 발했다. 그런데 그 탄성은 자세 히 들어보면 뭔가 허탈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미묘한 탄 성의 느낌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했을 때 아트로포스의 말이 들려왔 다. "정령이라고 하면…… 이드 님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지 않아요? 전혀 안전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흘……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뭐…… 그렇긴 하지만 내 정령들은 워낙 특이한 녀석들이라 내 말을 잘 안 듣거든. 그러니까 염려할 필요 없어." "……." 아트로포스의 얼굴에는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날 믿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난 확실한 어조로 말했다. "그냥 잠만 잘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정 싫다면 이불 없이 그냥 바닥에 서 잘 수도 있어." "아, 아니에요. 같이…… 자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자도록 하죠' 같은 말을 하면 됐을 텐데 아트 로포스가 괜히 말끝을 흐렸기 때문에 분위기만 더욱 이상해졌다. 하지만 이 번에도 역시 그 미묘한 분위기에 초를 친 건 내 정령들이었다. "또다시 혈압과 맥박 상승 중." "이제 가을인데 왜 이렇게 더워? 누가 얼음 좀 줘!" 흐으…… 사라만다…… 노움…… 알았으니까 가만히 좀 있어라.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잘 생각은 없다고. 그래도 딱히 할만한 것이 없으 니까 문제이긴 하지만. "로스, 우리도 산책이나 할까?" 난 아트로포스에게 그렇게 제안했고 계속 남녀 둘이 같은 방에 있는 건 부 담스러웠는지 그녀도 쉽게 찬성했다. 의견의 합치를 본 우리는 방을 나와 유 유히 마을의 골목골목을 거닐었다. 왠지 데이트하는 기분이긴 했지만 가끔씩 터져 나오는 정령들의 간섭에 그런 기분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짹짹짹- 이른 아침, 여관을 나서는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겔레오스를 맞이한 것 은 참새 비슷한 새의 울음소리였다. 어젯밤 난 아트로포스와 같은 침대 위에 서 잤긴 했지만 정령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우려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 았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겔레오스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것에 관해서는 어젯밤 아트로포스와 의논한 것이 있어서 난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천신계의 고위 관리들이 있는 곳에 한 번 가려고 합니다." "……!" 내 말에 겔레오스의 웃는 표정이 크게 바뀌었다. 보통 부부 동반 여행(?)이 면 경치 좋은 관광지를 둘러보는 게 정상인데 갑자기 고위 관리들이 사는 곳 을 가보고 싶다고 하니 놀랬던 것이다. "왜 그런 곳에……?" "그냥 보고 싶은 겁니다. 가능하면 천신계의 모든 것을 알고 싶거든요. 여 행할 때마다 그런 걸 확인하지 않으면 허전합니다."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둘러대었으나 겔레오스는 내 말을 그냥 믿어 버렸다. 천신계에서 살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는 겔레오스가 잘 모르기 때문 에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납득해버리는 것이었다.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계속 여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겔레오스에게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발 닿는 대로 걸 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우리들의 발걸음에 겔레오스가 제동을 걸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 "그런 곳은 두 분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무리 천신 족들이 선량하다 하더라도 함부로 돌아다녀서는 안됩니다." 흠…… 뭐 고위 관리들이 살고 있는 곳이니까 경비가 그만큼 삼엄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안 갈 리가 있나. 녀석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많이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어. "겔레오스 씨 같은 분과 만나면 구경하는 것도 별로 어려울 것 같지는 않군 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내 말을 들은 겔레오스는 잠시 입을 닫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었기 때문에 나와 아트로포스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 자 마침내 겔레오스가 자신의 생각을 모두 정리했는지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얼레? 설마 겔레오스가 지위 높은 천신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천신계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아들이라던가 하는……. "전 빙천신(氷天神)의 자제이기 때문에 저와 같이 있으면 충분한 구경이 될 겁니다." 겔레오스는 그 말로써 우리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빙천신이 천신계에서 어 떤 지위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겔레 오스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하하 웃으며 말했다. "빙천신은 현재 천신계 서열 4위에 올라있습니다. 그 정도면 고위 관리 축 에 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 헉! 서열 4위라고? 그런 엄청난 위치에 있는 관리의 아들이 혼자서 왜 싸돌 아다니고 있는 거야? 이런 황당한 전개가 있나……!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9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50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0장:천신계 진입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58 게 시 일 :01/03/07 20:14:38 수 정 일 : 크 기 :8.6K 조회횟수 :178 "근데 왜 이렇게 혼자 다니시는 겁니까? 서열 4위의 고위 관리 아들이라고 는 생각하기 힘들군요. 설마 집을 나오신 건 아니겠죠?" 겔레오스의 말을 모두 믿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겔레오스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는지 전혀 화를 내 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대답은 날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사실 전 지금 집을 나온 상태입니다." "……." "믿기지 않으십니까?" "……." 겔레오스의 물음에 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겔 레오스가 고위 관리의 자제라는 소리를 인정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 거대 독 수리 튜이를 참새만큼이나 작게 만든 실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진 존재는 그만큼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을 받았거나 굉장한 자질 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의 부모가 강한 실력자일 확 률이 높은 것이다. "저와 같이 가실 거라면 그 이유를 알려드릴 생각입니다만." 겔레오스는 마치 협상을 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대로 헤어지면 더 이 상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쨌든 난 천신계의 고위 관리들의 생활상을 파악하는 겸 겔레오스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기 때 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신세 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겔레오스는 즉시 튜이를 원상복구시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들을 거대해진 튜이의 등에 태웠다. 우리가 등에 타자마자 튜 이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여 날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어젯밤을 지냈던 마을 이 작아져가기 시작했다. "중용자라고 아십니까?" "……!" 튜이가 어딘가로 열심히 날아가고 있을 때 겔레오스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 의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도 튜이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갈 때 생기 는 바람 소리를 억누르며 내 귀에 똑똑히 전달되었다. "중용자 이그드라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 소문은 약간 들었습니다만." 난 그저 그렇게만 말했다. 차마 내가 중용자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 었다. 그리고 겔레오스가 어째서 갑자기 중용자를 거론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겔레오스는 내가 속으로 뜨끔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지 모르는지 자기 할말만 했다. "중용자는 중용의 법칙에 따라 천신족을 치러 올 겁니다. 모두 합심해서 그 를 막는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모두 중 용자의 승리였으니까요." "……." "그런데 지금 제 아버지를 비롯한 천신계 고위 관리들이 천마계 공격을 결 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용자를 막는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존재 가치가 없는 천마계라도 말살하자는 소리죠." "……." 역시 라케시스와 클로토의 말대로 천신계는 천마계 공격을 준비하는 모양이 군. 중용자를 막는 게 불가능해서 천마계를 치려 하다니…… 어떻게 하면 그 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천마계의 존재 가치가 없다라……. "천마족이 아무리 동물만도 못한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에게도 살 권리 는 있습니다. 그래서 전 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했지만 전혀 소용없었죠. 그것 때문에 여행 좀 하겠다는 핑계로 집을 나오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겔레오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말을 들어보면 겔레오스의 아버지가 여행하겠 다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은 듯했는데 겔레오스 혼자 아버지에게 미안한 감정 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우스웠다. 흠…… 근데 천마족이 동물만도 못한 종족이라고? 도대체 천마족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길래 천신족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천마족은 천신족에게 미움을 받아도 단단히 받고 있구만. 구우우ㅡ 거대 독수리 튜이를 타고 날아가길 몇십 분, 마침내 튜이가 속도를 천천히 줄이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하늘 위에서 쳐다보니 높은 건물의 지붕이 많이 보였다. 건물도 지금까지 보던 것보다는 크고 웅장 한 것이 확실하게 고위 관리들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펄럭펄럭- 어떤 넓은 집의 정원 안으로 튜이가 날아 내렸다. 정원 자체의 크기가 웬만 한 학교만큼이나 컸기 때문에 튜이가 내렸어도 정원의 공간은 남아돌고 있었 다. 그래서인지 겔레오스도 튜이를 작게 만들지 않고 그냥 내렸다. "여기가 아버지의 집입니다." 나와 아트로포스를 튜이의 등에서 내려준 겔레오스가 정원 안의 건물을 가 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아까도 하늘에서 봤지만 내려서 보니까 건물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무슨 궁전 같은 크기인 데다가 완전히 하얀색이라서 무슨 신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얼레? 근데 하늘에서 거대 독수리가 자기 집 정원에 무단으로 주차했는데 왜 집주인은 전혀 반응이 없지? 이 정원은 무료 주차장인가?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그때 갑자기 건물 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정원 쪽으로 걸어나와 겔레오스 에게 인사를 했다. 입고 있는 옷이나 겔레오스에 대한 행동을 보면 이 집의 하인 정도의 신분인 듯했다. 그리고 겔레오스 역시 그 노인을 편하게 대했다. "손님을 모시고 왔어. 이 분들은 부부니까 큰 방을 하나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겔레오스의 지시를 받은 노인은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들어가 고 난 뒤 겔레오스는 튜이에게 둥지로 돌아가라고 말했고 튜이는 어기적 어 기적 걸어서 건물 뒤로 돌아갔다. 튜이의 둥지가 건물 뒤쪽에 있는 모양이었 다. 우우웅- "……!" 튜이가 건물 뒤쪽으로 모습을 감춘 직후 갑자기 우리의 정면에서 어떤 파장 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 파장에서 기이하게도 아주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그 차가운 기운 때문인지 난 순간적으로 빙천신(氷天神)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눈처럼 흰 피부에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닌 30대 정도의 중년 남자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돌아왔느냐?" "예, 아버지." 중년 남자는 겔레오스가 그렇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난 놀라고 말았 다. 겔레오스가 20살 정도이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인 저 중년 남자는 적어도 40세나 50세 정도여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중년 남자의 모습이 나이에 걸맞 지 않게 젊어 보였기 때문에 놀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에 사라만 다가 토를 달았다. \ "너 바보냐? 천신족이나 천마족은 나이에 비해서 젊게 보인다고 그랬잖아! 네가 전에 만났던 염천신이나 풍천마 모두 나이에 비해서 젊었다고! 그러니 겔레오스의 아버지가 젊어보이는 건 당연하지!" 아…… 그랬군. 얼레? 그렇다는 건 겔레오스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뜻? 흘…… 천신족이나 천마족은 겉모습을 믿어서는 안되겠군. "응? 그 분들은 누구시냐?" 겔레오스에게서 우리들로 시선을 돌린 중년 남자는 우리들을 보고 다시 겔 레오스에게 물었다. 그러자 겔레오스는 간단히 우리들을 중년 남자에게 소개 시켜 주었다. "여행하다가 만난 분들로, 남자 분이 이드 씨고 여자 분이 로스 씨입니다. 두 분이 여기에서 잠시 지내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 모시고 왔습니다." "흠……." 겔레오스의 말에 중년 남자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얼굴 표정이 예전의 아트로포스보다 훨씬 차가웠기 때문에 그가 쳐다볼 때 난 몸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냉정하고 차가운 두 눈으로 내 마음 속을 꿰뚫어보는 것 같아서 난 일부러 집 넓다, 나도 이런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등의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천신계 서열 4위의 빙천신 이라면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 내 이름은 '샤메이로'라오. 남들은 모두 빙천신이라 부르오." 겔레오스의 아버지 빙천신 샤메이로는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다음 다시 겔레오스를 보며 말했다. "난 이제부터 천신 회의에 나간다. 두 분을 잘 모시거라." "…… 전쟁 준비하는 겁니까?" "그렇다." "……." 겔레오스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다물었다. 침묵으로써 샤메이로의 행동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샤메이로는 겔레오스의 반대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런 아버지의 행동에 겔레오스는 침울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흘…… 침울한 표정을 짓는 건 좋은데 손님을 그냥 문 밖에다 세워놓고 침 울한 표정을 지으면 어쩌라는 거야? 우리의 입장 좀 생각해 달라구. 이 썰렁 한 분위기에서 잘 지낼 수나 있겠어? "아, 죄송합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겔레오스는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우리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밖에서 봤던 느낌대로 건물 안 역시 차갑고 하얀 느낌이었다. 빙천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집 자체가 얼음 같은 느낌을 받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련님, 방 준비했습니다." 어느새 나타난 노인이 겔레오스에게 상황을 보고했고 겔레오스는 우리보고 노인을 따라가라고 했다. 그래서 나와 아트로포스는 노인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복도를 거닐었다. 노인은 우리를 2층으로 데려갔고 그 중에서 내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이 방입니다. 두 분이 지내실 수 있도록 해놨으니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점심은 12시에 있고 장소는 1층 식당입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깎는 듯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노인은 방금 걸어왔던 복도를 되돌아갔다. 넓은 복도에 노인까지 가버리자 남은 것은 나와 아트로포스 둘 뿐이었다. "그럼 들어가자." 끼이- 난 그 큰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방은 두 사람이 쓰기에 충분한 크기였고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하얀 색이었기 때 문에 약간 차가운 이미지가 풍겨왔다. 흠…… 방 이미지가 이런 데다가 정령들까지 두 눈 부릅뜨고 있으니 실수할 리는 없겠지. 어쨌든 이 방에서 아트로포스와 둘이 또 한 침대에서 자겠군.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 다음편은 언제 올릴 수 있을런지...-.-;;;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31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75 게 시 일 :01/03/10 20:19:36 수 정 일 : 크 기 :8.7K 조회횟수 :312 <제 31 장> 사고 방식의 차이 겔레오스의 집, 정확히는 겔레오스의 아버지 빙천신 샤메이로의 집에서 머 무른 지 벌써 3일이 흘렀다. 그 3일 동안 나와 아트로포스는 상당히 지쳐버 렸다. 어떤 이상한 짓을 해서 지친 게 아니라 이 집 식구들의 생활에 적응하 려다 보니 굉장히 지쳤다. 식사 시간이나 장소는 항상 그 시간, 그 장소였고 취침 시간조차 정해져 있었다. 나와 아트로포스는 손님이라서 그나마 자유시 간이 많은 편이었지만 겔레오스나 이 집 식구들은 완전히 짜여진 시간표대로 생활했다. 그런 점에서 그들 모두 하루의 한 시간이라도 멍하게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휴……." 점심 식사를 끝내고 방에 돌아온 아트로포스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난 그녀 옆에 앉아 그 이유를 물었다. "어디 아픈 거야?" "아니에요. 별로 점심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도 항상 그 시간에 식사를 해야하잖아요. 왠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흘…… 그건 그래. 이곳 식구들은 식사 시간 외에는 절대로 음식을 준비하 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식사 시간을 놓치면 굶는 수밖에 없지. 게다가 음식의 양은 항상 정해져 있고 재료도 거의 똑같은 데다가 남기지 말고 모두 먹어야 하니까 처절해. 여긴 극기훈련할 때보다 규율이 더 엄격하다니까. 아 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군대 수준이 아닐까? 똑똑- "저 겔레오스입니다. 혹시 시간 있으십니까?" 얼레? 겔레오스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녀석 계획표대로라면 점심 식사 끝 난 후에는 튜이와 1시간 동안 놀아줘야 할텐데?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생겼 나? 끼이- "무슨 일입니까?" 난 문을 열고 문 밖에 서 있는 겔레오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겔레오 스는 부탁조의 어조로 말했다. "지금 아버지께서 천신 원로님들에게 천마계 토벌을 강력히 주장하고 계십 니다. 오늘 있을 천신 회의에서도 그 주장을 굽히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 래서 아버지가 천신 회의에 가기 전에 제가 아버지의 생각을 돌려보려고 합 니다. 이드 씨와 로스 씨가 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 흘…… 천신계의 천마계 토벌이라…… 막아야하긴 하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나. 게다가 난 설득 같은 것도 잘 못해서 별 도움이 안 될텐데…… 아, 그 래도 일단 언제 공격할 것인지 등의 정보는 캐낼 수 있을 테니까 같이 가는 게 좋겠군. "별 도움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어서 따라 오십시오." 겔레오스는 누군가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듯이 웃으며 우리 를 1층으로 데리고 갔다. 1층의 접대실 안에는 이미 외출 준비를 모두 끝낸 빙천신 샤메이로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원래는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겔 레오스가 할말 있다면서 잡아놓아서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앉으십시오." 겔레오스뿐만이 아니라 나와 아트로포스까지 세트로 왔는데도 샤메이로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우리에게 접대실 안에 마련된 소파에 앉기를 권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샤메이로의 맞은편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았다. 한쪽은 전 쟁 지지편이고 다른 한쪽은 전쟁 반대편이기 때문에 그렇게 앉은 것이었다. "그래, 무슨 일로 불렀느냐?" 샤메이로는 여전히 무표정해서 차갑게 느껴지는 얼굴로 겔레오스에게 물었 고 겔레오스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쟁 준비를 중단해 주십시오." "…… 이유는?" "전쟁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입니다." "……." 겔레오스의 대답에 샤메이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샤메이로의 입에서 분명한 어조의 말이 흘러나왔다. "천마족의 존재 자체가 비윤리적이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이런, 겔레오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납득하면 어쩌라는 거야? 그 러다가는 우리가 설득 당할 수도 있다고! 내가 꼭 나서야 되겠냐? "갑자기 끼어 들어서 실례합니다만, 어째서 천마족의 존재 자체가 비윤리적 이라는 겁니까? 천마족이 비윤리적인 짓이라도 하는 겁니까?" "그렇소." "……." 샤메이로의 대답이 너무 빠르고 확정적이라 난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리 속에는 '천마족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한다, 비윤리적인 행동 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천마족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라는 삼단논법 이 틀어박혀 있는 것 같았다. 흘…… 샤메이로의 생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천마족이 비윤리적이라는 대전제를 부수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설명을 해야하는 데…… 내가 생각하기에도 비윤리적인 행동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니 까 결국 천마족이 비윤리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소리겠군. 하 지만 천마족의 생활을 모르는 내가 그런 걸 증명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원……. "천마족들이 어떤 점에서 비윤리적이라는 것입니까?" 천마족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샤메이로에게 객관적인 대답을 기대하기는 힘들 테지만 현재 샤메이로를 통해서만이 천마족에 대해 알 수 있었기 때문 에 난 그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샤메이로는 그런 내 기대를 산산 이 무너뜨렸다. "모르는 편이 좋소. 그것이 정신 건강을 위한 일이오." "……." 이런……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거 아니야? 난 이미 정신이 썩을 대로 썩어있기 때문에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도 정신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그럼 언제 천마계를 토벌할 생각이십니까?" 어차피 지금 상태로는 샤메이로의 굳은 생각을 바꿀 수 없었기 때문에 적어 도 천마계 토벌 시기라도 알아내기 위해서 난 그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샤메이로는 정확한 답변을 피해버렸다. "조만간이오." "……." 흘…… 천신계 중요 기밀이라고 안 가르쳐주다니…… 이래가지고는 겔레오 스를 따라온 보람이 없잖아? 그냥 지금 이 순간부터 당장 중용의 법칙을 실 행해버릴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소. 언제 중용자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러 올지 모 르기 때문이오." 샤메이로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자신의 주장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듯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샤메이로의 말에 겔레오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나하고 같이 샤메이로의 생각을 돌리기로 했으면서 제일 먼저 포기해버린 그의 행동에 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원…… 웃어른의 생각은 옳다…… 라는 거냐? 하여간 젊은것이 이렇게 끈 기가 없어서야 어디다 써먹어? 아, 그래 열심히 포기해라. 난 샤메이로에게 서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낼 테니까 말이야. "중용자는 현재 회로계에 있습니까?" 천신족들이 중용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에 난 샤메 이로를 떠보았다. 다행히 중용자에 대해서는 샤메이로도 별로 중요시하는 것 같지 않았다.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시기적으로 봐서는 아마 지금쯤 마지막 일곱 번째 성 물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요. 그가 과연 마지막 성물을 찾을 것인 가 찾지 못할 것인가는 그의 능력에 달려있다 할 수 있소." "예……." 흐흐, 녀석들은 내가 이미 일곱 번째 성물을 찾아내서 자기들 앞에 버젓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군. 하긴, 내가 생각해도 마지막 성물을 너무 순 식간에 찾아내 버렸어. 내가 그 엉성한 성물의 수수께끼를 풀자마자 라케시 스가 바로 날 저승으로 보내버렸으니……. "이제 곧 천신 회의가 있어서 난 가봐야겠소." 나와 겔레오스가 더 이상 말을 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샤메이로는 자리 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아트로포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접대실을 빠져나갔다. 샤메이로가 접대실을 나간 후 난 겔레오스에게 사과했다. "도움이 못 되서 죄송합니다." "…… 아닙니다. 저 역시 아무 말도 못했으니까요." 흘…… 잘 아는군. "사실…… 저도 마음속으로는 천마족이 말살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 니다. 그들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있으니까요." 겔레오스는 샤메이로에 못지 않게 천마족에 대해서 아주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계를 치겠다는 샤메이로를 말리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난 겔레오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았다. "겔레오스 씨는 천마족들의 생활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까?" "…… 아니오." "그런데 어떻게 천마족들이 비윤리적인 삶을 산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물론 워낙 지저분한 것들이라 자세히 가르쳐주지는 않습니다만, 배운 것들만으로도 천마족의 생활이 매우 비윤리 적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흐으…… 배운 것만으로 짐작한다냐?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는 아는 거야? 어차피 어릴 때 배우는 정보는 엄청나게 왜곡된 상태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한테 어른들의 복잡한 생활을 제대로 알려줄 것 같냐? "그럼 겔레오스 씨가 배운 천마족의 생활을 알려주십시오." "……." 내 요구에 겔레오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너무 더러운 얘기라 차마 말 로 꺼낼 수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서 결국 난 이런 결정을 내려야 했 다. "알겠습니다. 천마족의 생활을 알기 위해서는 직접 천마계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요." "……!" 천마계로 가겠다는 내 말에 겔레오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의 표정 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런 위험한 곳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 지만 천신계를 구경한 다음에 천마계를 구경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 때문 에 난 확정적인 어조로 말했다. "어차피 천마계도 한번 구경하려고 생각했었습니다. 천신계에서 전쟁을 일 으키기 전에 다녀올 겁니다. 만에 하나 천마계가 멸망해버린다면 다시는 천 마계를 구경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희도 저희들 스스로의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습니다. 단지 겔레오스 씨에 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천신계에서 천마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 겔레오스는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내 부탁이 자신에게 별로 곤란한 것은 아니지만 위험한 천마계에 그냥 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저 겔레오스의 말을 기다리기만 했다. 내가 뭐라고 강요해봤자 소용없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14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76 게 시 일 :01/03/10 20:19:52 수 정 일 : 크 기 :10.1K 조회횟수 :307 툭툭- 그때 아트로포스가 내 옆구리를 살짝 쳤다. 천마계로 가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차원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면 되는데 왜 굳이 겔레오스에게 그런 부탁 을 하는 거냐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난 그냥 아트로포스에게 날 믿으라는 얼굴을 해 보이기만 했다. 뭐, 아트로포스가 천마계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긴 하지만 천신족들은 어떤 식으로 천마계에 갈 수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어? 겔레오스와 떨어지기 전 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구. 자, 겔레오스 어서 대답을 하시지? "……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 한참 후에 겔레오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겨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난 잠시 어리벙벙해졌다.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 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가겠다니오?" "말 그대로입니다. 두 분만 그런 위험한 곳에 가도록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와 같이 가는 편이 안전할 겁니다." 흐으…… 도대체 겔레오스는 왜 이렇게 남의 일에 끼어 들기를 좋아하는 거 야? 숲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들을 데리고 와서 여관까지 잡아준 건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증오하는 천마족들이 사는 천마계까지 같이 가겠다니…… 이 녀석, 진짜 아트로포스에게 흑심을 품은 거 아니야? "왜 이렇게 저희들에게 친절을 베푸시는 겁니까?" 이번만큼은 겔레오스의 친절을 그냥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조금 차 가운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겔레오스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을 지으며 답했다. "타인이 위험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하더라도 타인을 돕는 것이 정의라고 배웠기 때문에 전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 배운 대로 행동한다 이거냐? 그거 참 어렵고 위대한 일이지만 그 타인이 믿 을만한지 믿을만하지 못한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돕는 게 좋다고 할 수 는 없잖아? 만난 지 겨우 나흘밖에 안 지났는데 어떻게 목숨을 내놓고 우리 를 돕겠다는 거냐고. "겔레오스 씨는 저희를 믿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예의를 아는 분 치고 나쁜 존재는 없으니까요." 내 질문에 겔레오스는 단정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한마디로 겔레오스는 내 가 지금까지 예의 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날 좋은 인간이라고 단정짓고 있 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존재는 겉으로 착하게 행동하면서 속으로 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흐…… 겔레오스는 마음이 순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어쨌거나 천신계 서열 4위에 랭크되어 있는 빙천신 샤메이로의 아들이니만큼 실력이 있을 테 니까 같이 천마계로 가면 그나마 덜 위험하겠지. 이 기회에 겔레오스의 사회 경험도 늘려 줘 볼까? "알겠습니다. 그럼 함께 천마계에 가도록 하죠." "……!" 내 말을 듣고 아트로포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계속 같이 있다보면 겔레 오스에게 내 정체를 들킬 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었 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에 겔레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출발은 최대한 빨리 하고 싶습니다.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그래 서 가능하면 오늘 중으로 가고자 합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출발하시겠습니까?" 헐, 생각보다 빠른걸? 나야 뭐 출발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이런 답 답한 천신계에 오래 있다가는 내 명이 짧아질 테니까 말이야. "지금 출발하기로 하죠." 내 대답을 듣고 나서 겔레오스는 앞장서서 접대실을 빠져나갔고 우리들은 그런 겔레오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서 겔레오스가 부른 튜이의 등 위에 다시 올라타게 되었다. 장소가 멀어서 튜이를 타고 거기까지 날아갈 생각인 듯했다. 펄럭펄럭- "겔레오스 씨, 어디로 가실 생각입니까?" 튜이가 완전히 날아올라 하늘을 가르며 비행을 시작했을 때 난 겔레오스에 게 질문을 던졌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소리 때문에 내 목소리가 잘 전 달될지 걱정했으나 빙천신의 아들답게 겔레오스는 내 말을 정확히 알아듣고 입을 열었다. "지금 가려는 곳은 '차원의 틈'입니다. 천신계와 천마계 사이에는 불규칙하 게 길이 생기는데 그걸 차원의 틈이라고 하죠. 바로 그 틈을 통해서 별 어려 움 없이 천마계로 갈 수 있습니다." "차원의 틈이 불규칙하다면 지금 그 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소리 아 닙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 틈을 통하지 않고서는 평범한 존재가 천신계에서 천 마계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특별한 능력자만이 차원 이동을 할 수 가 있죠." 흠…… 그런가? 하지만 빙천신 샤메이로의 아들 정도면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나? 아직 어려서 그 정도까지의 능력은 없을라나? 구우우ㅡ! 튜이는 긴 울음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녀석의 비행 속도가 정말 빨랐기 때문에 주위의 풍경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튜이의 등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상당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튜이가 우 리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절묘하게 나는 것인지 겔레오스가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승차감 하나는 좋 았다. ……. 대략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듯했다. 날아가는 튜이의 등에 타서 할일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지만 마차보다 수십 배 빠른 속도로 날아왔기 때문에 목적지까지의 거리에 비해서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 다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이 근처입니다. 이 근처에서 차원의 틈이 발생합니다." 겔레오스는 튜이의 속도를 늦추면서 아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수 풀이 우거진 숲이었다. 나와 아트로포스가 있던 숲은 아니었으나 곧게 자란 나무라던지 좌우대칭적인 식물들의 모습은 그곳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탁- 겔레오스의 도움으로 숲에 내려선 나와 아트로포스는 차원의 틈이란 것이 있 나 없나를 대충 살펴보았다. 그 사이 겔레오스는 튜이를 작게 만들었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차원의 틈처럼 보이는 것을 전혀 찾지 못했다. "차원의 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글쎄요…… 얘기로만 존재한다고 들어서 잘 모릅니다만……." 이런…… 겔레오스도 말로만 들었다는 거였어? 난 실제로 본 줄 알았잖아! 이래가지고 천마계로 가는 게 가능하겠냐? 차라리 겔레오스에게 우리의 정체 를 밝히고 차원 이동 마법진을 써버릴까? "……!" 그때 갑자기 숲 안쪽에서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마치 유리창에 쩍 쩍 금이 가는 듯한 파장이 느껴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둘러 숲 안쪽으로 들 어갔다. 숲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파장은 강렬해졌고 그 파장 발원지에 도착 했을 때에는 유리창이 완전히 깨지는 듯한 파장을 느끼게 되었다. "저거 아니에요?!" 뛰어온 탓에 거칠어진 숨을 제대로 고르지도 못한 채 아트로포스가 정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 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좁은 공간으 로부터 시커먼 틈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모습을 나와 겔레오스는 두 눈으 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리고 서로 그것이 틀림없는 차원의 틈이란 것을 확신 했다. "저게 차원의 틈이겠군요." "운이 좋군요. 이렇게 금방 발견하게 되다니." 차원의 틈을 발견한 우리들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차 원의 틈의 크기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 만 아직은 차원의 틈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여유 를 부릴 수 있었다. "정말 천마계로 가실 겁니까?" 겔레오스는 그것을 다시 확인하려는 듯이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며 물었다. 그리고 내 대답은 정석대로 흘러나왔다. "물론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갈 수는 없죠." 그럼그럼.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면 튜이를 타더라도 최소한 3시간 이상 걸 리는데 그 지겨운 시간을 또 보내기는 싫다고. 차라리 천마계로 들어가서 싸 우는 게 낫지. 심심한 건 진짜 못 견딘다니까. "그럼 갑시다!" 겔레오스는 호기롭게 소리친 후 제일 먼저 차원의 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이어 나와 아트로포스가 차례로 차원의 틈 안에 진입했다. 차원의 틈에 들어갔을 때 약간 현기증을 느꼈으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을 뿐,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얼레? 갑자기 왜 서늘한 느낌이 드는 거지?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 따뜻한 느낌이었는데…… 설마 천마계는 천신계와 계절이 다르다는 건 아니겠지? "으악!!!" 내가 서늘한 느낌을 느끼며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앞쪽에서 비명소 리가 들려왔다. 비명소리가 굵은 것으로 봐서는 나보다 먼저 차원의 틈에 들 어갔던 겔레오스가 어떤 이유에선가 비명을 지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급히 초점을 맞춰 내 앞쪽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가를 확 인해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초점이 맞춰지고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광경은 앞쪽에 있던 겔레오스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은 채 급히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린 결과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은 시원한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시냇 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별로 깊지 않은 시냇물 속에는 상체를 완 전히 드러낸 18살 정도의 젊은 여성이 목욕을 하고 있는 것도 확인했다. 흠…… 맨 처음 느꼈던 서늘한 기운은 저 시냇물 때문이었나 보군. 이곳의 계절 자체도 천신계와는 크게 다르지 않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고 상체를 완전히 드러낸 여자가 있다…… 라고라고라?! "정말 죄송합니다!" 내 앞에 서 있던 겔레오스는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가 사과하고 있는 대상 은 시냇물에서 목욕하던 여성이었다. 겔레오스의 목소리에 지금의 상황을 파 악한 난 어서 고개를 그 여자로부터 돌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 상하게도 그 여자가 전혀 몸을 가릴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대담하게 도 그 여자를 몸을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뭘 봐요? 여자 몸 처음 봐요?" 내가 빤히 자기 몸을 쳐다보고 있자 그 여자가 날카롭게 한마디했다. 자세 히 쳐다보니 상당한 미모에 날씬한 몸매, 그리고 풍만한…… 어쨌든 미인이 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여자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내가 쳐다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시냇가에서 나와 바위에 걸쳐놓았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이, 소환주. 언제까지 쳐다볼 거냐?" "어쩔 수 없어, 사라만다. 이 녀석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변태니까 말 이야." 내가 시선을 돌리지 않자 사라만다와 노움이 날 놀려댔다. 하지만 그런 녀 석들의 말 때문에 난 더욱 시선을 돌리기 싫어졌다. 그리고 시선을 돌릴 필 요도 없이 그 여자는 이미 옷을 다 입고 우리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다 입었으니 그렇게 뒤돌아 설 필요는 없어요." 여자가 말하는 대상은 겔레오스였다. 그러나 겔레오스는 여전히 얼굴을 빨 갛게 물들이며 이렇게 소리칠 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한 점 용서해주십시오!" "나참, 신경 쓸 거 없다니까 그러네. 됐으니까 이쪽이나 쳐다보고 말해요." 여자는 물에 젖은 파란색의 긴 머리카락을 끈으로 묶으며 말했다. 그런 여 자의 말에 마침내 겔레오스는 몸을 돌려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의 상체를 보았기 때문인지 그의 얼굴은 여전히 빨개져 있었다. "후훗, 정말 귀엽네?" 겔레오스의 빨개진 얼굴을 보고 여자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지만 뻔뻔하게 자기 몸을 쳐다본 날 보고는 날카로운 눈초리를 했다. "그쪽은 사과 안 하나요?" "몸을 본 건 잘못한 거지만…… 가만히 있었던 그쪽도 잘못한 것 아닙니까?" 흐으……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여자의 알몸을 보더니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당당히 말하다니……!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292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94 게 시 일 :01/03/12 19:46:54 수 정 일 : 크 기 :10.4K 조회횟수 :213 "훗, 그건 그렇군요." 의외로 여자는 내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묘한 질문을 던졌다. "내 몸 어땠어요? 괜찮았죠?" "……." 지금 이 여자…… 날 놀리는 거야? 당연히 괜찮았…… 그게 아니라 그런 질 문을 하는 의도가 뭐냐고! "뭐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서로 자기 소개나 하죠? 난 '루리 아'라고 해요." 자신을 루리아라고 밝힌 여자는 먼저 날 쳐다보았다. 일행 중에서 내가 제 일 뻔뻔스럽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한마디로 '찍혔다'라고 할 수 있었다. "전 이드입니다." "전 로스에요." "저, 전 게, 게, 겔레오스입니다……." 여자의 몸을 본 것이 충격이었는지 겔레오스는 자기 소개할 때 굉장히 더듬 었다. 그런 겔레오스의 모습에 킥킥 웃던 루리아가 나와 아트로포스를 쳐다 보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그쪽 두 분, 혹시 애인 사이 아니에요?" 흘…… 꽤나 눈썰미가 있는 여자로군. 외모 자체로만 보자면 나와 아트로포 스보다는 겔레오스와 아트로포스 쪽이 어울릴텐데. "결혼했습니다." "에? 그래요? 얼마나 됐는데요?" 어쭈구리…… 왜 그런 사소한 것까지 묻는 거야? 저 여자의 눈썰미가 날카 로우니까 잘못하면 내 정체를 들킬지도 모르겠는걸? 조심조심! "얼마 안 됐습니다. 한 석 달 정도?" "그렇군요. 축하해요."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루리아가 축하의 말을 했기 때 문에 난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행히 겔레오스에게 부부라고 말했 던 것이 있었기 때문에 아트로포스는 전혀 놀란 표정을 짓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면 루리아에게 거짓말을 발각 당했을 것이 틀림없 었다. "근데 여러분들은 차원의 틈을 통해서 건너온 거죠? 그렇다는 건…… 세 명 다 천신족?" 헐…… 역시 머리 회전이 장난 아니게 빠르군. 아, 그 정도는 다 알 수 있 나? 하지만 난 머리가 나빠서 그 정도까지는 못 알아낼 것 같은데……. "이쪽 겔레오스 씨만 천신족이고 저와 로스는 천신계의 외진 구석에 살고 있는 종족입니다." 얼굴을 여전히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겔레오스를 대신하여 난 루리아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나와 로스가 천신족이 아니라는 말에 루리아는 의아한 표 정을 지어 보였지만 천마계에서도 천마족이 아닌 존재가 있는 모양인지 그다 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세 분은 무슨 일로 천마계에 온 거예요? 설마 정찰하러?" "아닙니다. 천마족들의 생활상을 구경하고 싶어서 온 것뿐입니다. 원래는 저와 로스가 신혼 여행을 겸해서 하려고 했는데 천신계를 여행하던 중 겔레 오스 씨를 만나서 이렇게 천마계까지 같이 오게 된 겁니다." "그래요? 천마족들의 생활상을 구경해봐야 볼 것도 없는데."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천마계의 고위 관리들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난 하루라도 빨리 천마계의 천신계 대처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루리아에 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루리아는 그 질문을 듣고 날 의심했다. "천마족들의 생활상을 알아보려면 보통 천마족 마을에 놀러 가면 되는데 왜 굳이 고위 관리들을 보려고 그러죠? 역시 천마족의 정보를 빼내려고 온 거죠?" "……." 흐으…… 거참 꼬치꼬치 캐묻기는.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알 것이지! 하여 간 의심은 많아 가지고! "그냥 고위층 존재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해서 그럽니다. 일반 천마족 의 생활을 보는 것보다 그들의 생활을 보는 것이 더 어려우니까요." "뭐 그건 그렇지만……." "처음 본 분에게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한 것 같군요. 그래도 고위 관리들이 어디에 사는지 정도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음……." 내 부탁에 루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겔레오스가 우리를 돕고 심지어는 천마계까지 따라왔을 때의 표정이었기 때문에 난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내 짐작은 들어맞고 말았다. "내가 안내하죠. 어차피 할 일도 없었는데." "…… 감사합니다." "뭐예요, 그 똥 씹은 듯한 얼굴은? 여자 앞에서 그런 표정 지었다가는 인기 못 얻어요." "아, 아닙니다. 안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루리아의 흘기는 눈초리에 난 급히 얼굴 표정을 고치며 그렇게 말했다. 확 실히 천마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들만 가는 것보다는 천마계에서 사는 루리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안전했다. 단지 그것은 루리아에게 내 정체 를 발각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였다. "참! 소문을 들어보니까 천신계는 복수형벌 제도가 아니라고 하던데 정말이 에요?" 루리아는 겔레오스 쪽을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겔레오스는 계속 루리아의 알몸이 눈앞에 어른거리는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더듬 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흐으…… 겔레오스, 제발 그만 좀 떨어라. 겨우 여자 알몸 본 거 가지고 그 렇게 부끄러워하면 어떡하냐? 뭐, 너무 폐쇠된 공간에서 제한된 정보만을 얻 고 살았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그나저나 복수형벌 제도란 건 또 뭐야? "루리아 씨, 복수형벌……!" "듣기 거북하니까 '씨'자는 빼요. 그냥 이름만 부르라구요. 그리고 여자 분 빼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으니까 경어 쓸 필요 없어요." 루리아는 나와 겔레오스, 그리고 아트로포스에게 말을 놓을 것을 권했다. 그렇지만 겔레오스는 천신계에서 받은 교육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 래서 말을 놓게 된 사람은 나와 아트로포스였다. 어쨌든 그렇게 하기로 한 나는 루리아에게 하던 질문을 계속했다. "근데 루리아, 복수형벌 제도란 건 뭐야?" "복수형벌 제도요? 간단해요. 피해자가 당한 만큼 가해자에게 형벌을 내리 는 거죠. 천마족을 죽이면 사형이고 다리를 자르면 다리를 잘리고 그런 거예 요." 흘…… 그게 복수형벌 제도라고? 그 말을 들으니까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던 가? 하여튼 거기에서 함무라비라는 왕이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복수법인가 뭔가하는 것을 집행했다는데…… 그거하고 똑같은 거군. "그런 건 비윤리적입니다! 적어도 가해자에게 자신의 죄를 반성하게 하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하지 않습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던 겔레오스가 갑자기 루리아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루리아도 지지 않았다. "뭐가 비윤리적이에요? 죄를 지은 만큼 대가를 치르는 건데! 그럼 그쪽은 죽은 피해자는 개털이고 가해자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건가요? 종족을 죽였으 니 당연히 죽어야죠!" "실수로 죽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실수 같은 것도 안 합니까?!" "그 실수로 종족이 죽었다면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죠! 단 한번의 실수 라도 그 하나의 실수 때문에 삶 자체를 망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해자 때 문에 죽은 피해자는 10년 동안 아무 생활도 못한다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아까운 건지 알고 있어요?!" 겔레오스와 루리아의 말을 듣고 있던 도중 갑자기 의아한 점이 들었다. 그 건 루리아가 마지막에 했던 '죽은 피해자는 10년 동안 아무 생활도 못한다' 라는 말이었다. 그 말은 마치 10년이 지나면 죽은 피해자가 살아난다는 것처 럼 들렸기 때문에 난 둘의 논쟁 중간에 끼어 들기를 시도했다. "잠깐! 죽은 피해자가 10년 동안 아무 생활도 못한다는 게 무슨 뜻이야? 설 마 10년 후에는 멀쩡히 살아 돌아온다는 건 아니겠지?" "무슨 소리예요? 당연히 살아 돌아오죠! 지금까지 그런 것도 몰랐단 말이에 요?" "……!"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렇다면 천마족들은 영원히 산다는 거야?! "천마족이나 천신족이나 100살까지 살 수 있어요. 물론 천마족이 천마계를 벗어나거나 천신족이 천신계를 벗어나면 주어진 생을 다 살지 못할지도 모르 지만요. 사실 천신계에서 어떤 식으로 죽은 자가 부활하는지는 모르지만 적 어도 천마계에서는 한 번 죽은 자는 10년 뒤에 '시간의 틈'을 통해 10살 늙 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되요. 물론 예전까지의 기억은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 죠." 루리아의 설명에 난 어안이 벙벙해졌다. 천마계에서 사는 이상, 죽었어도 10년 뒤에 부활한다는 그 엄청난 시스템에 경탄밖에 흘러나오지 않았던 것이 다. 그리고 그것은 천신계 역시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발전되었다. "설마 천신계에서도 그렇습니까?" "약간 다릅니다. 저희 쪽에서는 강한 능력을 가진 천신족이 최소한 둘 이상 모여야 부활 작업이 가능하니까요. 또 다른 점은 죽은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 로 부활한다는 것이죠." "……." 하하…… 죽었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라니…… 도대체 천신계하고 천마계 는 어떻게 되어 먹었길래 그렇게 되는 거야? 회로계에서는 한 번 죽으면 그 걸로 끝인데! 《말했었잖아. 천신계와 천마계는 자체적으로 영혼을 처리한다고. 그것을 바꾸어 말하면 죽은 영혼을 살려낼 수 있다는 소리야.》 그때 갑자기 내가 처음 아르카디아에 왔을 때 라케시스가 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중용자만이 천신족과 천마족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는 말 도 연이어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 말이 지금 루리아와 겔레오스가 하는 설명의 진정한 의미였던 것이다. "잠깐요! 천신계는 능력자 둘이 죽은 자를 살려내는 거였어요?!" 내가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루리아가 겔레오스에게 반문을 던졌다. 겔 레오스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고 루리아는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다시 따지 기 시작했다. "그쪽은 죽어도 금방 살려낼 수 있으니까 가해자에게 기회를 주는 둥의 이 상한 짓거리를 하는 거죠! 우리는 한번 죽으면 10년을 기다려야 한다구요! 배정된 삶의 무려 10분의 1이란 말이에요!"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가해자도 그만큼의 가책을 느낀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겁니다!" "가책을 안 느끼면요?" "그럴 리 없습니다! 천마족에는 있을지 몰라도 천신족 중에서 그런 자는 절 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흐으…… 또 싸우기 시작하는군. 근데 난 저 둘의 말을 들으면 화가 나. 천 신족이나 천마계이나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만 인간들은 절대 그럴 수 없으니까. 어쨌거나 내가 중간에 끼어 들어볼까? "근데 천신계에서 가해자가 같은 범행을 저지르곤 합니까?" "그건……." 내 질문에 겔레오스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건 뭔가 숨기려고 하는 게 아 니라 그것에 관해서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난 겔레오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면서 '천신족에는 가해를 해놓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후후, 우선 이렇게 해서 겔레오스의 입은 틀어막았고…… 이제 루리아 차례 인가? "천마족 사이에서 많은 선행을 베풀던 자가 실수로 천마족을 죽였어. 천마 족 법대로라면 그 선행자는 죽어야겠지. 하지만 그건 천마족에게 필요한 자 를 없애는 거나 마찬가지. 차라리 그를 살려두는 것이 더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천마족들이 법을 집행하지 말라고 탄원을 할 거예요. 실제 로 천마계에선 그런 예도 있었으니까요." "그거 좋긴 한데 만약 죽은 자의 친척이 선행자를 죽이라고 탄원한다면 어 떻게 돼? 선행자를 죽이라는 소수의 탄원자와 선행자를 살리라는 다수의 탄 원자 사이에서 천마계는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아마도…… 피해자의 말을 존중해서 그 선행자를 죽이겠죠……." 루리아는 내 예상에 들어맞는 말을 했다. 당한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천마 족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범죄자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피해자가 당한 만 큼의 죄값을 치러야 하므로 선행자를 죽이라는 피해자의 친척과 선행자를 살 리라는 천마족들이 협상하기 전에 법을 실행해야만 한다. 나쁘게 말한다면 피해자를 잃은 친척들의 일시적인 분노에 사회적으로 덕을 쌓아온 선행자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루리아, 넌 그걸 어떻게 생각해?" "……." 내 물음에 루리아는 선뜻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 제에 대해 생각하려니까 쉽게 머리가 정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두 남녀의 말문을 틀어막은 나는 전혀 필요 없고 누구나 알고 있는 결론을 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583 제 목 :[사이케델리아] 31장:사고 방식의 차이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595 게 시 일 :01/03/12 19:47:18 수 정 일 : 크 기 :9.9K 조회횟수 :215 "천신계나 천마계나 자신들의 환경에 맞게 법을 발전시켰을 뿐입니다. 자신 들의 생활에 맞는 법을 가지고 다른 종족의 법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러니 더 이상 그런 의미 없는 싸움은 그만하십시오. 같은 종족 내에서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면 토론을 통해 해결을 봐야겠지만 지금 두 분은 전혀 다른 종족이잖습니까." "……." "……." 겔레오스와 루리아는 그리 내키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내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내가 한 말 에 반박할 말을 가지고 있었다. 종족이 다르다고 모든 걸 그렇구나 하고 넘 겨버리는 것은 결코 좋은 행동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겨우 말싸움을 멈춘 겔레오스와 루리아가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저기……." 그때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들의 하는 짓을 관람하기만 하던 아트로포스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와 겔레오스, 그리고 루리아 는 아트로포스를 쳐다보며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그런 우리들의 시선을 받으며 아트로포스는 어떤 물체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저건 뭔가요?" "……?" 아트로포스가 가리킨 물체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생김새는 마치 사람 눈에서 갓 빠져 나온 눈알처럼 징그럽게 생겼는데 크기는 대략 내 머리 통만 했다. 뭐지? 저 눈알탱이는? 그러고 보니 저 눈알탱이, 아까부터 그 징그럽게 큰 눈으로 이쪽을 계속 쳐다보고 있던데…… 설마 스파이? "아, '아이프로브(eye-probe)'요? 그거 천마계에는 다 깔려 있는 거예요. 생명체는 아니라서 누군가 일부러 없애지 않는 한 결코 죽지 않죠. 천마계의 몇 대 수장(首長)인가가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억? 저게 생물이 아니라 천마계 수장이 만든 거라고? "왜 만든 건데?" "말하자면 증거물이에요. 누군가 죽었을 때 정당한 결투를 통해 죽은 것인 지 일방적으로 살해당한 것인지 쉽게 알기 위해서 천마계 수장이 만들어서 천 마계 곳곳에 뿌려놓았죠." 루리아는 쉽게 설명한답시고 한 말이지만 듣는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말한 '정당한 결투'의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당한 결투라니?" "말하자면 이런 거죠.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졌을 때 지나가 던 종족을 하나 붙잡고 '나와 싸우자!'하는 거예요. 상대방이 그 제안을 받 아들이면 정당한 결투가 성립되어 죽든 말든 처벌을 받지 않게 돼요. 그 상 대방이 그 제안을 거절했으면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하구요.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살상을 하면 처벌을 받아요." "그래서?" "그런데 어떤 자는 불법 살해를 하고도 정당한 결투를 통해 그 자를 죽였다 라고 거짓 증언을 하죠. 그런 거짓 증언을 못하도록 항상 아이프로브가 천마 족의 행동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거예요." 어억? 행동을 낱낱이 기록해? 저게 무슨 감시 카메라냐? "어떤 식으로 기록하는데?" "잘은 모르지만 아이프로브 머리 속에 기억이 된다고 하던데요." "그럼 누군가 아이프로브를 이용해서 남의 생활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 "아니,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내 질문에 루리아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고 루 리아는 그 이유에 대해서 차근히, 하지만 그렇게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아이프로브의 머리 속에 기록되어 있는 정보를 알아내는 건 고위 능력자들 밖에 못해요. 게다가 아이프로브의 정보는 알 수 없는 기호와 표식으로 되어 있어서 그 해독 방법을 모르는 자는 정보를 줘도 알 수가 없죠. 그러니 다른 일반 천마족에게 아이프로브의 기록 정보가 누출될 위험은 거의 없어요." 흐으…… 그거 꼭 무슨 블랙박스 같다? 비행기 사고에서 그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블랙박스를 해독하는데 그게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던가? 어쨌 든 천마계의 아이프로브는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겠군. "근데 아무리 아이프로브가 생명체가 아니라고 해도 저 징그럽게 큰 눈이 쳐다보고 있으면 기분 나쁘지 않아? 자기 비밀 같은 것도 저 녀석의 머리 속 에 다 기억될지도 모르잖아." 아이프로브를 보고 있으니 꼭 몰래 카메라로 감시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서 난 루리아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루리아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 른 대답을 했다. "뭐가 기분 나빠요? 그냥 없는 셈치면 되는데." "……." 흘…… 아이프로브가 작은 것도 아니고 인간 머리통만큼이나 큰데 저런 눈 알탱이가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면 기분 안 나쁘냐? 아무리 생각해도 천마족의 사고방식, 아니 적어도 내 앞에 서 있는 루리아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가 어 렵다니까. 부스럭- 그때 우리의 뒤쪽에서 수풀이 움직인 소리가 들려왔다. 천마계의 나무와 수 풀은 천신계와는 달리 삐뚤빼뚤 자라고 있어서 꽤 난잡해 보였다. 물론 좋게 보면 숲의 모양새가 자유분방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 수풀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 직후, 사람 크기만한 그림자 하나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대체 너희들은 언제까지 루리아를 붙잡고 있을 생각이냐?!"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는 우리를 보고 대뜸 큰소리를 쳤다. 얼 굴은 전형적인 악당처럼 생기고 키만 크고 해골처럼 앙상 마른 천마족이라서 그런지 첫인상부터가 좋지 않아서 나도 사악하게 나갔다. "넌 뭐야?" "어린것이 까부냐?" 첫인상 더러운 천마족은 내 예상대로 띠꺼운 반응을 보였다. 그때 루리아가 그 천마족을 알고 있는지 귀찮다는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파엔드', 도대체 언제까지 쫓아다닐 거야? 너하곤 절대 안 하니까 빨리 사라져." "후후, 난 한번 찍은 여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네년이 허락할 때까지 쫓아다닐 거다. 정 안 된다면 강제로라도 하겠다." 파엔드라는 이름의 첫인상 더러운 천마족은 루리아를 협박했다. 그러나 루 리아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누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데? 날 덮치려고 했다간 네 목숨이 온전하지 못 할걸? 널 죽여도 날 덮치려고 했으니까 정당방위 성립돼서 난 무죄!" "……!" "……!" "……!" 파엔드와 루리아가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던 나와 아트로포스, 겔레오스는 루리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파엔드라는 녀석이 루리아를 노리고 있으며 루리아는 그런 파엔드가 자신을 덮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파엔드로서는 루리아가 자신보다 강하기 때문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고 루리아로서는 파엔드가 귀찮긴 하지만 녀석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떼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서로 그렇게 경계 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 루리아 씨를 덮치려고 한단 말이오?!" 겔레오스는 엄청나게 흥분한 목소리로 파렌드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파렌드 는 아주 띠꺼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럼 내가 왜 여기 있을 것 같냐?"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요? 그런 짓은 절대 용납할 수 없소!" "네 녀석이 뭔데 나서? 천신족이면 천신족답게 잠자코 있으라고. 천마계의 정보를 캐내려고 넘어온 주제에 말이 많아!" "……!" 파렌드의 띠꺼운 발언에 가뜩이나 흥분해 있던 겔레오스는 더욱 흥분했다. 하지만 결코 먼저 주먹질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만 보더라도 겔레오스 가 천신계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천마계다. 천마장이 존재하는 곳이지. 천신족이 천마계에서 제 힘 을 쓸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꼬맹이? 재주 있으면 공격해봐. 공격 해 보라니까?" 파렌드는 화났으면서 그 화를 참고 있는 겔레오스를 보고는 더 놀려주고 싶 은지 더 기분 나쁜 말을 해대었다. 아무리 철저한 교육을 받은 겔레오스라도 계속 놀림 받으면 폭발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파렌드의 말을 가로챘다. "야, 나하고 싸워볼 거냐?" "……?" "나하고 싸워서 이기면 네가 루리아와 한번 하는 거고 내가 이기면 넌 죽는 거야. 어때, 아주 좋은 생각이지?" "……!" 내 말에 모두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겔레오스가 엄청난 반 발을 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여자의 몸을 조건으로 내세우 다니오! 그게 생각하는 존재로서 할 짓입니까?!" "어차피 내가 이길 건데 아무 조건이면 어때?" "이드 씨가 이긴다는 보장이 도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아니, 설령 이길 수 있다하더라도 그런 조건은 비윤리적이란 말입니다!!!" 흐으…… 다른 녀석들은 다 가만히 있는데 왜 겔레오스만 펄쩍펄쩍 뛰는 거 야? 당사자인 루리아만 좋다면 난 당장 싸울 생각이라고. "루리아, 어때?" "……." 난 루리아에게 의향을 물었고 루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 실력을 전 혀 모르는 그녀로서는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약 간 고민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길 자신은 얼마나 되죠?" "무한대." "무한대가 뭔데요?" "자신감이 넘쳐흐른다는 뜻." "질 확률은?" "마이너스 무한대." "그건 또 뭐예요?" "질 확률 전혀 없다는 뜻." 나와 루리아는 바보들만 하는 문답을 했다. 그 사이 겔레오스는 그런 조건 으로 싸워서는 절대 안 된다며 펄펄 뛰었다. 아트로포스는 별로 반응이 없었 으나 표정으로는 결코 내 생각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때 열심히 손익 계산 을 하던 파렌드가 나와 루리아에게 정식 발표를 했다. "난 그 녀석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남은 건 루리아, 네 결정뿐이다!" 후후, 걸려들었군. 파렌드는 내가 천신족이라고 생각한 데다가 내 나이가 어린 것을 보고 얕잡아봤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 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뭐, 굳이 중용자라는 티를 내지 않고도 가볍게 녀석을 끝낼 수 있지만. "음…… 뭐 좋아요. 아내까지 있는 남자가 괜한 헛소리를 하지는 않을 테니 까 말이죠. 그럼 둘이 열심히 싸워요. 아, 그리고!" 내 생각대로 싸움 허락을 한 루리아는 날 쳐다보더니 한 가지 조건을 제시 했다. "만약 그쪽이 지면 그쪽의 예쁜 아내는 내 시녀로 삼을 테니까 일부러 지는 일이 없길 바래요." "물론. 그럼 결투나 시작해볼까?" 난 루리아와 약속을 한 후에 파렌드와 마주보고 섰다. 순식간에 내기 조건 이 되어버린 아트로포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 실력을 믿고 있었기 때 문인지 별 반발은 하지 않았다. 단지 자기와 아무런 의논 없이 멋대로 하는 날 날카롭게 흘겨봤을 뿐이었다. "이드 씨는 자기 아내조차 내기에 거는 겁니까?!" 겔레오스는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날 힐책했다. 하지만 난 원래 그런 사람이다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 그 말 한 마디에 겔레오스는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의 내 행동은 그가 천신계에서 배웠던 '윤리'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겔레오스로서는 그런 녀석도 존재하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 없 었던 것이다. "언제 시작할 거냐?!" 내가 겔레오스와 잡담을 하자 이번에는 파렌드가 화를 냈다. 그로서는 빨리 날 죽여버리고 루리아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후후, 천신계에서는 전혀 싸움 같은 건 하지 못했는데 천마계에서는 들어오 자마자 싸움을 하게 되는군. 내 싸움 감각의 유지를 위해서 녀석을 열심히 두들겨 볼까?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지." ===================================================================== 다음편은 언제나...-.-;;;;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7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35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15 게 시 일 :01/03/16 20:00:58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191 <제 32 장> 근본적인 차이 "죽어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렌드는 그렇게 외치며 나에게 장풍(掌風)을 날 렸다. 파렌드의 손바닥으로부터 강맹한 바람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하지 만 난 장풍이 날아오든 말든 가만히 서 있었다.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내 몸 속에 있는 정령들은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휘이이잉ㅡ! 갑작스럽게 내 앞에서 일어난 돌풍 때문에 파렌드가 날린 장풍은 돌풍과 함 께 휘말려 올라가 버렸다. 그 광경에 파렌드는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나에 게서 천신장이라던지 천마장, 그리고 마나장 같은 힘의 파장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을 하긴. 아무 짓도 안 했지." "개소리마라ㅡ!" 파렌드는 장난스런 내 말에 화를 내며 이번엔 주먹치기라는 직접 공격을 가 해왔다. 그래서 이번엔 파렌드의 움직임을 봉쇄하고자 했다. "어억?!" 발이 땅에 붙은 듯이 떨어지질 않자 파렌드는 경악을 터트렸다. 그로서는 어째서 발이 움직이지 않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파렌드의 움직임을 제한시켜놓은 나는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 "끄아악ㅡ!" 파렌드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내장이 타들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비명이었다. 하지만 나와 내 정령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 구도 어째서 파렌드가 괴로워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두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을 뿐이었다. "끄으…… 어, 어떻게……!" 털썩- 그 말을 끝으로 파렌드는 자신의 생애를 마감했다. 내장이 모두 타들어 갔 기 때문인지 파렌드의 시신은 쭈글쭈글 마른 상태였다. 그럼에도 피부가 타 지 않은 것은 사라만다가 절묘하게 불꽃을 제어했기 때문이었다. 후후, 난 가만히 있었는데 정령들이 다 알아서 녀석을 처리해버렸군. 이거 너무 싱거운걸? 좀더 어려운 조건을 걸고 싸울 걸 그랬나? 예를 들어 파렌드 에게 공격할 기회를 한 100번 정도 준다든지 하는……. "어째서 시체가 없어지지 않는 거야?!" 그때 죽은 파렌드를 보고 있던 루리아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그녀가 말 한 내용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천마계나 천신계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지 루리아는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나에게 알려주었다. "천마계에서는 죽은 자의 시체가 시간의 틈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 래야 시간의 틈을 통해 10년 후에 다시 부활해요! 근데 아직 제 수명이 다 안 된 파렌드가 죽었는데도 시체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건 이제 파렌드가 더 이상 부활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구요!" 헐…… 그래? 그렇다면 그거 아주 잘된 일 아닌가? 더 이상 파렌드가 자신 을 따라다닐 수 없게 됐으니까 말이야. 근데 루리아는 왜 저렇게 흥분하는 거지? 설마 루리아가 파렌드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아무리 고위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천마계 내에서 죽인 천마족은 반드시 시 간의 틈으로 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근데 파렌드는 그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 어요. 천마족이나 천신족을 천마계나 천신계에서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는 자는…… 중용자 밖에 없어요." "……!" 루리아의 이어진 설명에 난 심장이 튀어나올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내 정체가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 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루리아의 얼굴은 내 정체가 중용자임을 확신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중용자를 직접 보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 제길…… 중용자라는 걸 들켜버렸으니 이제 어쩌지? 어쩔 수 없이 루리아와 겔레오스를 죽여 입막음을 해야하는 건가? 아이프로브야 암호 해독하는데 시 간이 걸리는 데다가 아이프로브 스스로는 중용자가 천마계에 들어왔다는 소 식을 전할 수 없으니까 전혀 신경 안 써도 되겠지. "이드 씨가…… 중용자……?!" 겔레오스는 아직도 내 정체를 확신할 수 없다는 듯이 날 쳐다보았다. 자기 가 도움을 주고 집까지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줬던 자가 자신을 비롯한 천신 족을 죽일 중용자라는 사실에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 그렇습니다." 이미 드러난 사실을 숨겨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에 난 스스로 루리아의 말을 인정했다. 그러자 겔레오스는 완전히 굳은 얼굴로 날 쳐다보기만 했다. 충격 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노려 공격한다면 겔레오스가 죽을 확률은 100%를 가볍게 넘겠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나서 영광이에요, 중용자 씨." "……?" 내가 겔레오스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갑자기 루리아가 내 손을 덥썩 잡더니 그런 말을 했다. 게다가 얼굴에는 만나서 진짜 영광이라는 표정 에 화사한 미소까지 떠올라 있었다. 그런 루리아의 표정에 난 황당해질 수밖 에 없었다. 뭐, 뭐냐?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았으면서 어떻게 웃고 있는 거지? 겔 레오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아서 머리가 아예 이상해져 버린 건가? 내 정체 를 드러내는 순간 루리아가 경악을 하면서 뒤로 물러나야 정상인데? "이쪽이 중용자면 저쪽은 영인관이겠군요. 아, 그럼 성물의 수수께끼라는 걸 풀고 영인관이랑 사이좋게 건너온 거예요?" 전혀 예상치 못한 루리아의 밝은 반응에 난 멍청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한데……." "역시! 그럼 이제부터 천마족을 죽이는 거예요? 아, 천신계에서 왔으니까 벌써 천신족 죽이기는 끝난 건가요? 아니면 천마족부터 없애려고 온 거예요?" 흐으…… 어떻게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할 수가 있지? 아 무리 생각해도 루리아의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드 씨가 정말 중용자란 말입니까?!" 루리아와는 달리 겔레오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가 중용 자라는 사실도 모른 채 먹여주고 재워줬으니 충격을 안 먹을 수 없었던 것이 다. 어차피 정체를 들켰기 때문에 난 아주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 건너온 중용자 이그 드라실입니다." "……!" 겔레오스의 표정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 지 갑자기 침을 꼴깍 삼키며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 그런데 어째서 천신계에서는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지 않은 겁니까?" 흐으……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을 하다니…… 그냥 대답하지 말고 겔레오스 의 목을 댕겅 잘라버릴까? "그건…… 천신계에 가자마자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 다." "왜……?" "잘 생각해 보십시오. 겔레오스 씨라면 천신계에 가자마자 '난 중용자니까 너희들을 죽이겠다'라면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겠습니까?" "……!" 내 말의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은 듯 겔레오스는 약간 의외라 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이어 나에게 그와 관련된 물음을 던졌다. "그럼 당신은 천신족이 과연 죽여도 되는 것인가를 확인하고 나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생각이란 말입니까?" "어차피 전 중용자이기 때문에 중용의 법칙은 반드시 실현합니다. 단지 천 신족이 천마족을 어째서 증오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서 중용의 법칙 실현 시기를 잠시 늦추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천신족과 천마족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두 종족이 천마계에서 싸우다 죽게 되면 시간의 틈으로 인해 그 죽은 종족이 다시 살아날 텐데…… 그렇게 되면 10년 후에 당신은 또다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러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중용의 법칙을 실현할 겁니다." 난 분명한 어조로 내 입장을 밝혔다. 그것은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겠다라는 나의 의지였다. 그렇 게 나와 겔레오스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을 때 루리아가 의아한 표 정을 지으며 나에게 물었다. "에? 아직 천신계에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지 않은 거예요? 중용자면서 그 렇게 태평스럽게 놀아도 되는 건가요?" "……." 흘…… 아무리 들어도 루리아의 말은 나보고 빨리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라 는 것 같이 들린단 말이야…… 역시 물어봐야겠어. "루리아, 넌 내가 중용의 법칙을 빨리 실현하길 바라는 거냐?" "물론이죠!" 너무나 당연한 듯이 대답을 한 루리아 덕분에 난 더욱 황당함을 느껴야 했 다. 그런 내 황당함을 알아차렸는지 루리아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나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중용의 법칙에 의해 완전 소멸되는 존재는 천신계와 천마계의 고위 능력자들이라구요. 그다지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종족은 중용 자에게 죽은 적이 없어요. 그러니 중용자가 건너와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 든 말든 일반 종족인 우리들은 전혀 상관할 필요가 없죠. 아니, 중용자가 천 마계의 윗대가리들을 제거해주면 힘없는 우리들이 권력을 잡을 기회가 생기 니까 오히려 중용의 법칙 실현을 바라는 쪽이 많아요." "……!" 그랬었군! 그래서 루리아는 내가 중용자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날 경계하지 않은 거였구나. 어쨌든 루리아가 날 경계하지 않으니 루리아의 도움을 받아 천마계의 고위 관리들을 제거할 수도 있겠군. 어쩌면 다른 천마족들도 내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게끔 도와줄 지도 몰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그때 언제나 그렇듯이 겔레오스가 루리아의 말에 반박을 하고 나섰다. 천신 계에서 일방적인 교육을 착실히 받은 겔레오스로서는 루리아의 그런 생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당신은 고위 관리들이 죽든 말든 전혀 상관 안 한다는 소리입니까? 그들이 없으면 규율과 규범이 흔들리게 된다는 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어차피 윗대가리들이 있어도 규율, 규범은 제대로 안 지켜져요! 힘없는 우 리들은 언제나 강한 자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구요! 하지만 약한 능력을 가지 고 있어도 권력을 잡게 되면 자신의 안전을 지킬 수 있어요! 그래서 많은 일 반 천마족들이 윗대가리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거라구요!" "설령 당신들이 권력을 잡게 되더라도 결국 당신들 역시 다음 중용자에게 죽게 될 겁니다! 그래도 권력을 바란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중용자가 올 때까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데 누가 원 하지 않겠어요?! 그쪽은 권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나 보죠?" "권력은 한낱 뜬구름일 뿐입니다! 그런 것을 쫓다가는 자신마저 잃고 허망 한 꿈을 쫓게 될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루리아와 겔레오스의 공방전은 또다시 장기전으로 들어가려는 조짐을 보였 다. 그래서 난 중간에서 둘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런 얘기는 나중에 시간 많을 때 둘이 만나서 잘 토론해보십시오." "……." "……." 내가 중간에서 인터럽트(interrupt)를 걸자 루리아와 겔레오스는 입을 다물 었다. 그렇게 둘의 말싸움을 중단시킨 나는 루리아에게 먼저 용건을 말했다. "루리아, 고위 관리들이 사는 곳으로 안내해 줘." "알았어요." 루리아는 내 요구에 금방 찬성했다. 천마족의 고위층이 죽기를 바라는 그녀 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난 다음으로 겔레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7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279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16 게 시 일 :01/03/16 20:01:17 수 정 일 : 크 기 :9.5K 조회횟수 :164 "겔레오스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천신계로 돌아가서 중용자가 나타 났다는 사실을 알리실 겁니까?" "……." 내 물음에 겔레오스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뭔가를 상당히 망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겔레오스가 어떤 대답을 하던 간에 루리아와 같이 천마족의 고위층 생활을 둘러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루리아를 앞장 세웠다. "시간 없으니까 서두르자." "그러죠." 루리아는 내 요구대로 앞장서서 나와 아트로포스를 안내하려고 했다. 그녀 로서도 빨리 고위층이 제거되어 권력 교체가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그때 가만히 서 있던 겔레오스의 입에서 예상외의 말이 흘러 나왔다.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 얼레? 겔레오스가 따라오겠다고? 그럼 천신계로 가서 내가 나타났다는 소리 는 안 하겠다는 건가? 왜지? 애국심, 아니 애계심(愛界心)이 넘쳐흐르는 겔 레오스라면 당연히 천신계로 가서 중용자의 출현을 알릴 거라 생각했는데? "뭐, 마음대로 하십시오." 난 간단히 그렇게 말한 뒤에 루리아를 앞장 세워 천마계 여행을 시작했다. 겔레오스의 튜이를 타고 날아가면 편하겠지만 천신계의 동물이 천마계에 제 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겔레오스가 우리 편하라고 튜이에 태워줄 건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에 그냥 운동하는 겸 열심히 걸었다. 그래서인지 루 리아와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루리아는 왜 혼자 다니는 거야?"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니까요." "집은? 부모님은?" "집이나 부모라는 존재가 있으면 답답하잖아요. 뭔가 구속되는 것 같고. 그 리고 엄마나 아빠도 일일이 나한테 신경 쓰려면 귀찮을 테니까 그냥 나온 거 죠." 루리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 자체만 으로도 나나 아트로포스로서는 그다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 나 그 뒤에 이어진 루리아의 말은 우리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 "아빠하고 섹스하는 것도 질렸다는 이유도 있어요. 내 위로는 두 살 나이 많은 오빠가 있는데 3년 전에 먼저 독립해서 나갔죠. 그래서 오빠가 어디 있 는지 찾아볼 겸 혼자서 나다니고 있는 거예요. 뭐, 별로 의미는 없지만 어쨌 든 첫 섹스 상대였으니 만큼 지금 어떤 여자하고 놀고 있나 궁금하잖아요." "……!" 지금…… 루리아가 뭐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걸까? 다시 물어보고 싶은 데 묻기가 겁이 난다……. "…… 오빠라니? 친오빠?" "당연하죠. 형제가 없으면 첫 상대 섹스는 대게 아빠나 엄마가 되지만 형제 가 있으면 그들이 되니까요. 뭐, 아직 섹스 경험이 많지 않은 형제보다는 부 모 쪽이 훨씬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만 부모하고 하면 왠지 리드 당하는 느낌 이 있어서 좀 그래요." 루리아의 말을 듣고 나서 난 루리아가 지금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문 득 바로 이 점 때문에 천신족이 천마족을 극도로 증오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아무 편견 없는 입장에서 질문을 던졌다. "루리아는 언제 오빠와 관계를 가졌는데?" "음…… 아마 12살 때였을 거예요. 아빠랑 엄마가 우리들 보는 앞에서 자주 섹스를 해서 한번 해보고 싶었죠. 그때 오빠가 나랑 하자고 해서 하게 됐어 요. 나중에는 넷이 그룹섹스 하면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지냈죠." "그 외에 관계를 가진 종족은?" "집에서 나올 때까지는 가족들과 했다가 오빠가 독립한 뒤에는 이웃의 다른 남자들하고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빠랑 엄마가 빨리 내가 독립하기를 바 라는 것 같아서 작년에 그냥 독립했죠. 독립하니까 꽤 힘들더라구요. 원하지 는 않지만 먹고 자고 해야하니까 맘에 안 드는 녀석들하고도 섹스를 하고…… 그냥 집에 좀만 더 들러붙어서 돈 좀 빼갈 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어요. 뭐,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이라 그럴 일은 없지만요." 하하…… 대단한 집안이군…… 아니, 난 지금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그나저나 만약 보석 사냥꾼 요시아가 천마계에서 살았다면 과거 일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질문이 나 계속해야겠다. "네가 독립한 뒤에 부모님들은 어떻게 됐어?" "글쎄요…… 아마 서로 헤어져서 다른 남자·여자하고 잘 살고 있겠죠. 둘 다 얼굴이 받쳐주니까 먹고살기에는 지장 없을 거예요. 어쩌면 결혼해서 애 들을 키우면서 살지도 모르구요." "내 생각엔 결혼하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나중에 헤어질 거면 왜 결 혼을 했지?" "그거야 애를 키우려고 그런 거죠. 아, 그러고 보니 그쪽은 천마계의 법률 에 대해서 잘 모르죠?" 그 생각을 이제서야 떠올린 듯 루리아는 자기 머리를 살짝 치며 실실 웃었 다. 그리고는 천마계의 법률, 특히 결혼 법률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천마계에서는 결혼한 자만이 아이를 가질 수 있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남자·여자하고는 관계를 가지면 안되죠. 오직 가족 구성원끼리 섹스를 해야만 해요. 그것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는 거예요. 그래야 섹스할 상대가 많아지니까요." 하하…… 정말로 만약 요시아가 여기서 태어났다면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 았겠군……. "그리고 아이들이 자기 의사로 모두 독립한 뒤에는 결혼한 두 남녀는 자유 로운 몸이 되요. 다시 자기들끼리 결합해서 살든지 다른 남녀를 찾아서 헤어 지든지 자기들 자유죠. 만약 결혼하지도 않은 자가 아이를 낳아 키우려고 하 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요." 흘…… 결혼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다라…… 그 말을 들으니 궁금증이 생기는군. "만약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돼?"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5년 정도 감옥에서 지내게 될 거예요. 물론 그 아 이는 보호 시설에 맡겨지죠. 그래봤자 부모가 없으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거의 일꾼 수준으로 전락해버려요. 그런 아이들은 섹스나 살상 등의 자유가 없이 그저 100년의 삶을 허무하게 채우다 사라질 뿐이죠." "왜 그런 법을 만든 거야?" "글쎄요…… 아무래도 모두 자유롭게 살려다보니 자연히 힘든 일을 하려는 자들은 줄어들게 마련이죠. 그래서 그런 법을 만들어서 억지로 힘든 일을 시 킬 존재들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뭐, 감옥에서 죄값 치르는 자들도 힘든 일 에 동원되긴 하지만요." 루리아는 그 말을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얘기했다. 그녀에게는 힘든 일에 억지로 동원되는 아이들을 동정하는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저 자기 자신만 안전하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틀어박혀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루리아를 어떻게 평가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사는 인간 이기 때문이었다. "……." 겔레오스는 루리아의 말을 들을수록 더욱 천마족이 혐오스러워진다는 표정 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하기에도 합법적인 살상 행위가 가능하고 가족과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성생활과 여러 가지로 다른 법들이 이른바 '윤리적'이라고 불리는 천신족에게는 '비윤리적'이며 혐오스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마족을 멸하려는 천신족들의 행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가치관으로 남의 생활에 간섭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아, 혹시 영인관하고 이혼하면 나한테 와요. 아직까지 중용자하고 섹스를 한 천마족 여자는 없었으니까 내가 그쪽하고 하면 역사적으로 기리기리 남을 거예요." 루리아는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할 수 없는 미소로 날 쳐다보며 그렇게 말 했다. 그래서 나도 약간 농담조의 대꾸를 해주었다. "나보다는 천신족인 겔레오스하고 하는 게 어때? 그게 더 역사적으로 기리 기리 남을 것 같은데." "저쪽은 마음에 안 들어요. 그리고 알게 모르게 천신족하고 천마족은 관계 를 맺어왔기 때문에 저쪽하고 섹스해도 별 거 아닌 일이라구요. 그것보다는 100년마다 나타나는 중용자 쪽이 훨씬 역사적이에요." 흘……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군. 아무리 천신족이 천마족을 미워한다고는 해도 그 중에는 그런 것에 전혀 상관없이 사는 녀석들이 있을 테니까 말이야. 물론 드러내놓고 천신족이나 천마족과 관계를 가졌다라는 소리는 못하겠지만 암암리로는 상당히 많을지도……. "……?" 그때 뭔가 요상한 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자세히 들어보니 무슨 신음 소리 같았다. 그러나 일행 중에는 누구도 그 소리에 신경 쓰는 존재가 없었 다. 그 소리를 모른 척 한다기보다는 들리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 다. "루리아,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 내 말에 루리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귀에 갖다대었다. 모두들 내 말로 인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에 그 요상한 소리는 조금 잘 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소리의 강도가 갑자기 커졌다. 비록 깜짝 놀랄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소리의 강도가 커졌을 때 그 소리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쾌락으로 인해 여자가 지 르는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근처에 섹스하는 자가 있나 보네요. 신경 쓰지 말아요." "……." 흘…… 신경 쓰지 말라고?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데다가 이런 숲 속에서 하 고 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 이런 건 당장 가서 몰래 훔쳐봐 야 하는 거야! "아, 아직 훤한 대낮인데도 그런 짓을……!" 겔레오스는 은은히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황당해했 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나조차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갈레오스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난 한 참 즐기고 있을 녀석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모두를 신음소리가 들리 지 않는 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근데 천신계에서 곧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천마계는 꽤 조용한 것 같다?" "그거야 방어 준비가 끝났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일반 천마족은 전쟁에 참 여를 안 하니까 그냥 자기 생활만 즐기고 있는 거예요. 전쟁 터지면 열심히 피난가야겠죠." 루리아는 전쟁이 터지더라도 별 걱정이 안 드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만 안 전하다면 다른 건 어떻게 되도 좋다라는 사고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난 그런 루리아의 생각에 토를 달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 군대 결속력이 약할 것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지만 병사 하나 하나가 자잘한 싸움으로 단련되어 있으니까 쉽게 죽지는 않아요. 아마 천신족이 쳐들어오면 우리가 이길 걸요?" 흘…… 이길 거란 생각으로 태평하게 살고 있다라는 소리냐? 참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군. 전쟁이 터지면 자기들에게도 피해가 온다는 것을 모르나보 지? "어쨌든 묵을 곳을 찾자. 저녁도 해결해야 하니까." 난 길을 잘 아는 루리아를 앞장 세워 모두를 마을 쪽으로 이끌었다. 겔레오 스는 루리아와 함께 있는 것, 아니 좀더 나아가 천마계 자체에 들어와 있는 것에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천신계로 돌아가려 하지는 않았다. 아마 도 나와 아트로포스가 천마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가 궁금했기 때문 일 것이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8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247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32 게 시 일 :01/03/18 19:07:00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72 천마계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천마족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 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조용하고 윤리적인 천신족과는 달리 그들은 항상 자유롭게 생활했다. 많은 부분에서 그 자유로움이 지나쳐 방탕함으로 표출되고 있었으나 그들은 그 방탕함을 당 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식사시간에 왁자지껄 떠드는 것은 기본이고 남들 다 잘 때 술 먹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싸움 붙어서 시간의 틈 속으 로 사라지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마계는 그런대로 잘 돌 아갔다. 정당한 결투라는 제도와 10년 후에 부활하는 시간의 틈이 있기 때문 인지 친구나 가족이 다른 자와 싸우다가 죽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남 에게 특별히 피해주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 쓴다면 누구하나 뭐라 하 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회가 바로 천마계였다. 털썩- "와! 이겼다!" 건물 때문에 한낮의 태양이 잘 비치지 않는 마을의 좁은 골목에서 10살 정 도의 소년이 기쁜 듯이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조잡하게 만들어진 검이 들려 있었고 그 앞에는 목이 잘린 또래의 소년이 쓰러져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 의 시체는 그대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시간의 틈 속에 빨려 들어간 것 이었다. "이걸로 3연승! 5연승의 고지가 멀지 않았다!" 소년은 기분 좋은 듯 당당하게 외치며 다른 골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리고 그 소년과 교대를 하듯 그 골목에서 겉보기로 3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두 명의 아낙네가 따사로운 햇빛 속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두 아낙네는 열심히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전에 그쪽을 겁탈한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뭐 지금쯤 감옥에서 호모들에게 겁탈 당하고 있겠죠. 여자를 우습게 보는 그런 자는 직접 당해야 한다니까요. 얼굴도 못생긴 녀석이 날 겁탈하는데 얼 마나 기분 나쁘던지." "아, 전부터 궁금했는데 도대체 강간죄가 있는 남자는 어떻게 겁탈을 당해 요?" "몰랐어요? 엉덩이에 삽입 당하는 거예요. 애널섹스(anal sex)라고 하는 건 데 호모들이 사용하는 방법이죠. 근데 그거 잘못하면 항문이 파열돼서 위험 해질 수도 있어요." 두 아낙네는 거리를 거니는 천마족들이 듣던 말던 자기들 얘기만 열심히 했 다. 아니, 거리에 있는 천마족들은 자기 외의 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 기 때문에 두 아낙네가 그런 얘기를 큰소리로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 러나 그런 것에 익숙지 않은 나와 아트로포스, 그리고 겔레오스는 얼굴을 붉 혀야만 했다. "이곳에 온지 며칠 지났는데도 여기 생활은 적응이 잘 안 되네요……." 두 아낙네의 모습이 작아지자 아트로포스가 빨갛게 물든 얼굴로 입을 열었 다. 그 말에 루리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뭐가 적응이 안 되요? 그냥 편하게 지내면 된다구요. 전혀 어려워할 것 없 어요." 흘…… 그거야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너니까 편하게 지내는 거지. 우리 같은 외부인들은 적응하기 매우 어려운 곳이야. 특히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겔 레오스로서는 우리보다 더 견디기가 어렵겠지. 얼∼ 겔레오스의 얼굴에 전신 의 피가 다 몰려든 것 같은데? 바늘로 살짝 찌르면 피가 팍 하고 터져 나오 겠다. "……!" 그때 어떤 미묘한 파장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 고 그 파장은 순간적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내 몸을 때리고 있었다. 그 파장 의 정체가 무엇인가 궁금해진 나는 모두에게 말했다. "갈 곳이 생겼어.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거든." "……?" 천마계에 그 어떤 연고도 없는 내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아직 천마계의 고위 관리들의 생활 방식도 보지 않았는 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의 생활 방식은 현재로서는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괜히 봤다가 더 충격 먹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난 먼저 갈 테니까 따라오려면 따라와." 난 사악한 선포를 한 뒤에 미묘한 파장이 계속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어 차피 모두들 할 일이 특별히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내 뒤를 얌전히 따랐다. 흠…… 아무래도 파장이 발생하고 있는 곳은 여기서 꽤 멀리 떨어진 것 같 은 느낌이 드는데…… 걸어가다가는 파장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겠는걸? 튜 이 녀석을 타고 날아가면 편하겠지만 여기는 천마장이 고루 퍼져 있어서 겔 레오스가 튜이 녀석을 원상복구 시키기 어려우니 관둬야겠고…… 설령 원상 복구 시켜도 승차인원이 많으니까 튜이에게 부담이 갈지도 모르지.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해야겠다. 우웅- 난 내 몸의 마나회로를 모두 가동시켜 마나장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 마나장으로 천마장을 밀어내고 그 대신 가상의 마나회로를 형성시켰다. 여러 가지로 귀찮은 작업이었으나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천마장을 몰아낸 것을 느꼈는지 루리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내가 사용한 마법은 바로 비행 마법이었다. 워프를 하면 간단하지만 워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도착 지점에도 마나회로를 깔아야 하는데 그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 행 마법을 쓰기로 한 것이었다. 비행 마법 역시 날아가면서 비행 경로에 계 속 가상의 마나회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귀찮은 점이 있긴 했지만 그게 천마 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이었다. "우앗?!" 갑자기 자기 몸이 허공에 둥실 하고 떠오르자 겔레오스를 비롯한 모두가 놀 람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난 놀라는 일행에게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비행 경로에 마나회로를 건설하면서 그와 동시에 모두를 비행 마법으로 이동시켰다. 다행히 실프가 가끔씩 바람을 일으켜 날 도와주었기 때문에 정신력의 부담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다. "와아! 이게 중용자의 힘인 건가요?" 루리아는 자기 몸이 하늘을 유유히 날자 놀람의 탄성을 터트렸다. 그것은 겔레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루리아는 내 능력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어린애처럼 기뻐하고 겔레오스는 내 능력이 천신족에게 얼마나 피해를 줄 것 인가를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 내가 한참 마나회로를 건설하면서 비행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때 아트로포 스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능력으로 내 정신적 피로를 풀어주었다. 마침 난 정신이 약간 어지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아트로포스의 도움이 굉장히 반가 웠다. 그렇게 아트로포스와 실프의 도움을 받으며 난 파장이 점점 더 강렬해 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우우웅-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고 느낄 무렵 루리아와 겔레오스, 그리고 아트로포스 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강렬한 파장이 허공에 떠 있는 우리들을 덮쳤다. 그 파장은 단순한 파장이었기 때문에 몸에 아무런 이상도 없었지만 문제는 그 파장 이면에 있었다. 파장이 나오는 곳은 하나의 거대한 공간의 틈이었는데 그 공간의 틈 앞에 무수히 많은 천신족의 군사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전쟁을 벌써 시작하려는 건가?!" 공간의 틈으로부터 속속 모습을 드러내는 천신족의 군사들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며 겔레오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들은 우연히 발생 한 공간의 틈을 특수 능력자의 힘으로 계속 유지시키며 군사들을 천신계에서 천마계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듯했다. 사실 그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대군 (大軍)을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이었다. "천신족이 쳐들어오려고 하는데 천마계 쪽에서는 전혀 대응을 안 하는 건가?" 난 수가 점점 불어나는 천신족 군사들을 보면서 루리아에게 혼잣말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루리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이미 천신족이 쳐들어온다는 보고를 받았을 걸요? 단지 군 대를 정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지만요." 흘…… 그건 결국 누가 더 빨리 군대를 정비해서 쳐들어가느냐 방어하느냐 가 문제겠군. 아무래도 기습 비슷하게 넘어온 천신족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뭐, 천마계가 이전부터 천신족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었다면 별 문제가 없겠 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런 대비가 전혀 없었던 것 같던데……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은 천마장이 가득한 천마계구나! 아무래도 원정 경기를 하는 천신 족이 불리하겠지? 그래서 천마계에서 대비를 안 했던 건가? 쳐들어오면 천마 장의 이점을 살려서 가볍게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 "거기 누구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천신족 군사들 사이에서 우렁찬 호통 소리 가 터져 나왔다. 허공 위에 계속 떠 있는 우리들을 마침내 그들이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피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그들의 진로 앞에 사뿐 히 내려섰다. 이대로 녀석들을 보내면 누가 이기든 지든 10년 후 녀석들이 부활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여기서 진로를 막을 생각이었다. "아! 겔레오스 님!" 그때 한 천신족 군사가 겔레오스를 알아보고 반가운 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한 천신족이 우리들 앞으로 걸어왔다. 그 천신족은 다름 아닌 겔레오스의 아버지 빙천신 샤메이로였다. "겔레오스,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냐?" 빙천신 샤메이로는 냉기가 풀풀 날리는 얼굴로 겔레오스를 질책했다. 천마 장이 만연해 있는 천마계에 겔레오스가 들어와 멋대로 활보하고 있으니 당연 한 것이었다. 그런 샤메이로의 질책에 겔레오스는 고개를 숙여 용서를 구하 고 자기 할말을 했다. "아버지 허락 없이 멋대로 한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계속 천마 계 토벌을 주장하셨고 이 분들이 천마계에 가고자 했기 때문에 저도 따라오 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쟁에 휘말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샤메이로와 겔레오스는 진짜 부자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격식을 차려 얘기 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루리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게 가족이야? 아버지는 왕이고 아들은 종인가? 저렇게 딱딱하게 굴면 가 족애 같은 게 생기겠어?" 흘…… 역시 루리아도 천신족들의 생활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군. 그거 야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하니까 그냥 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두자. "샤메이로 씨, 정말 전쟁을 일으키실 생각입니까?" 난 한 발 앞으로 나가 샤메이로에게 말을 걸었다. 그와 나와의 거리는 3미 터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샤메이로의 뒤에 있는 천신족 군사들과는 5미 터 가량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였으나 그 정도면 나에게는 피하거나 공격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였다.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오." 샤메이로는 저번에 말했던 대로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러자 루리아가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샤메이로에게 부탁 비슷한 말을 했다. "전쟁을 일으키든 말든 상관없어요. 단지 윗대가리들만 싸그리 죽여달라구 요. 그 녀석들 재산을 전부 가져가도 괜찮아요. 일반 천마족만 건드리지 않 는다면 누구 하나 들고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흐으…… 역시 루리아는 지극히 개인적인 녀석이군. 윗대가리들만 싸그리 죽여달라…… 한마디로 천신족을 이용해서 현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 치 세력을 만들겠다라는 거로군. 하긴, 그래야 천마족이 물갈이되겠지. 그래 봤자 고위 관리들만 바뀔 뿐 현재의 법이나 생활 같은 건 전혀 안 달라지겠 지만. 그나저나 샤메이로가 과연 천마족의 고위 관리들만 죽이려고 할까? "그럴 수는 없다. 너희들의 존재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샤메이로는 그런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루리아가 아니었다. "뭐예요? 그럼 모두 죽인다는 거예요?!" "그렇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곳은 천마계라 모 두 죽인다고 해도 10년 후에는 모두 부활하게 된다구요! 그럼 그때 가서 또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에요?!" "천마계의 부활 시스템을 없애버릴 것이다." "그게 될 것 같아요?!" "반드시 그렇게 되게 만들 것이다." 샤메이로와 루리아는 각각 차갑고 격렬한 어조로 말을 주고받았다. 그 둘의 말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천마계의 부활 시스템을 없애겠다는 샤메이로 의 장담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전쟁을 일으킴과 동시에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진 소수의 능력자들이 천마계를 붕괴시키도록 유도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충분히 가능성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18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247 제 목 :[사이케델리아] 32장:근본적인 차이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33 게 시 일 :01/03/18 19:07:39 수 정 일 : 크 기 :11.9K 조회횟수 :67 "이봐요!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예요?! 중용자면 중용자답게 이 녀석들 좀 막아봐요!!!" 더 이상 샤메이로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느낀 루리아가 날 쳐다보며 그 렇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 말은 천 명이 가볍게 넘어가는 천신족의 군사들 귀에 똑똑히 전달되었다. "주, 중용자?!" 천신족 군사들 사이에서 커다란 동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동요를 제어할 장군들 역시 동요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샤메이로조차 동 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메이로는 서열 4위의 천신족답게 금방 진정을 하고 겔레오스에게 진위여부를 확인했다. "겔레오스, 저 말이 사실이냐?" "…… 그렇습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 "천마계에 온 뒤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알려주지 않은 거냐?" "……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째서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딱딱한 어투로 대답을 주고받은 샤메이로와 겔레오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사이 크게 동요되었던 천신족 군사들이 점차 안정을 되찾 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샤메이로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에는 동요가 완전히 가라앉아 아까 전과 같은 안정 상태가 되었다. "네 잘못은 나중에 다시 따지기로 하마." "……." 겔레오스에게 그렇게 말한 샤메이로는 이번엔 날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는 우리들을 없앨 작정이오?" 흘…… 당연한 질문을 하는군. "…… 그게 중용자의 일이니까요. 단지 여러분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중용 자에게 죽을 이유가 없는 일반 천신족의 병사들까지 죽게 되겠죠." "중용자, 그대는 이 많은 군사들을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오?" "이깁니다. 전 중용자니까요." "……." 자신감이 철철 흘러 넘치는 내 말에 샤메이로는 차가운 표정을 더욱 딱딱하 게 굳혔다. 그리고 내 자신감 넘치는 말로 인해 알게 모르게 천신족 군사들 의 사기는 떨어졌다. 중용자 자체가 두려운데 그 중용자란 녀석이 다 죽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으니 더욱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두두두두- 그때 천신족 군사들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의 뒤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시 끄럽게 들려왔다. 비록 절도 있게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는 아니었으나 그 수 는 꽤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무리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우리 들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100명 정도였다. "푸하하! 겨우 천 명인가? 천마계를 없애러 온 머릿수치고는 너무 적군!" 일행 중에서 가장 앞에서 달려왔던 자가 도열해있는 천신족 군사들을 보고 호쾌하게 소리쳤다. 천신족 총대장인 샤메이로와는 달리 그는 몸에 그 어떤 갑옷도 걸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가 총대장이라는 표식 같은 것도 전 혀 없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척 하면 그가 천마족의 총대장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그 자가 내뿜는 기운은 범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겨우 100명 가지고 우리를 상대하려 드는가?" 자신들의 군대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군대가 왔으니 샤메이로로서는 어처구니없어 했다. 하지만 천마족 총대장은 두려움은커녕 힘이 펄펄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선봉대일 뿐이다! 이제 곧 지원군이 왕창 도착한다. 그때까지 우리 는 조금이라도 많은 적을 없애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결국 군사 정비가 아직 안 끝났다는 소리군." 샤메이로는 천마족 총대장의 말에서 그런 결론을 유도해 내었다. 그의 결론 이 사실이었는지 천마족 총대장은 약간 똥 씹은 표정을 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색을 바꾸어 천신족의 기세를 꺾기 위한 외침을 터트렸다.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았다고 해도 곧 있으면 수천이 넘는 지원군이 도착한 다! 겨우 1000명 가지고 이길 수 있다라 생각하는 건가?!" "시간 끌기는 소용없다." 샤메이로는 이번에도 천마족 총대장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차가 운 이미지하고 어울리지 않는 큰 목소리를 토해냈다. "작전을 수행한다! 모두 자신의 맡은 바를 수행하라ㅡ!" 와ㅡ! 샤메이로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1000명의 군사 중에서 200명 가량이 천마 족 군사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대로 두면 피 튀기는 전쟁이 시작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난 마나회로를 풀가동시켜 천신족과 천마족이 도 열해 있는 장소를 가상의 마나회로로 뒤덮었다. 그 순간은 매우 짧았다. 아 까 마나회로를 만들면서 날아왔기 때문에 어느새 가상의 마나회로 만들기가 익숙해진 것이다. 어쨌든 일대를 마나회로로 뒤덮은 나는 마법을 사용하여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멈춰ㅡ!" 쩌렁쩌렁- 내 목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받아 증폭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음파가 되었고 그 음파의 영향에 천신족과 천마족 군사들 모두 동작을 멈추었다. 그 렇게 모두의 움직임을 잠시 멈추게 한 다음에 난 약간 큰 목소리로 말을 이 었다. "여기서 공격을 하는 자는 중용자인 내가 모두 죽이겠다." "……!" 내 존재는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천마족 총대장과 그 일당들은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약 내가 말로만 그런 소리를 했다면 그들은 코웃음을 쳤겠지만 천마장을 몰아내고 이 일대를 마나회로로 뒤덮은 자가 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떨어져라." 난 앞으로 달려나온 천신족 군사들에게 싸늘한 말투로 명령을 내렸다. 그러 자 그들은 귀신에라도 홀린 듯이 뒷걸음쳤다. 심지어는 장군급 천신족도 뒤 로 물러났다. 그만큼 그들이 중용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공포심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있나?" 천신족 군사들이 뒤로 물러난 다음 난 여전히 싸늘하고 싸가지를 전혀 찾을 수 없는 말투로 천신족과 천마족 총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둘 중에서 내 물음에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천신족 총대장인 샤메이로였다. "그들은 존재 가치가 없다." "…… 우린 저들이 공격을 가해오니까 싸우는 거다!" 샤메이로가 대답하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천마족 총대장이 황급 히 입을 열었다. 그것을 보더라도 샤메이로가 천마족 총대장보다 정신력뿐만 아니라 실력에서도 훨씬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중용자의 압박감을 쉽 게 벗어나서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대답을 한 샤메이로가 천마족 총대장보 다 강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메이로, 넌 천신족과 천마족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천마족 총대장과 얘기할 거리는 없어서 난 샤메이로 쪽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항상 그렇듯이 샤메이로는 지극히 단순한 대답만 했다. "천신족은 윤리적이고 천마족은 비윤리적이다." "왜 천신족은 윤리적이고 천마족은 비윤리적인지 그 이유를 생각해봤나?" "……." 이어진 내 질문에 샤메이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지금까지 표면적 으로 드러난 천마족의 행위만을 문제삼고 있었고 그 행위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그건 천마족 쪽도 마찬가지 일 테지만 지금은 샤메이로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천마족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천신족과 천마족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바로 환경 때문이다." 난 우선 결론부터 말했다. 그리고 나서 좀더 자세한 설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샤메이로가 중간 컷트를 해서 내 말을 끊어버렸다. "천신족은 윤리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들이 모여 사는 환경이고 천마족은 비 윤리적인 생각을 하는 존재들이 모여 사는 환경이란 소리인가? 그것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사회적인 환경일 뿐 근본적인 차이가 아니다." "……." 흘…… 이 위대하고 훌륭하신 중용자 님이 말씀하시는데 버릇없이 끼어 들 어? 이 녀석을 그냥……! "헛소리 그만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게 아니다." "……?"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에 샤메이로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 든 난 약간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메이로의 얼굴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하고자 하는 말을 했다. "천신족과 천마족이 다른 근본적인 환경…… 그건 바로 부활 시스템의 차이 때문이다." "……?" 내 말을 듣고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내가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있는 존재들 중에서 그 누구도 내가 그 다음에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들의 의아해하 는 표정을 살짝 둘러보면서 그 다음 말을 이었다. "천신족은 두 명 이상의 능력자가 모여 죽은 자를 살려낸다. 그리고 천마족 은 시간의 틈을 통해 10년 후 죽은 자가 부활한다. 바로 그 차이가 지금의 천신족과 천마족을 있게 한 원인인 것이다." "……." 아직 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답답하다는 표정을 했다. 심지어는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 공격해버리겠다는 표정의 천마족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의 무언의 압력에 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천신족은 두 명 이상의 능력자가 모여야 한다. 그것은 죽은 자기 가족이나 친구를 살리려면 전혀 안면 없는 능력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거나 자신 이 그 능력자에 포함될 경우에는 다른 한 명의 능력자를 포섭해야 한다는 뜻 이다. 근데 아무런 조건 없이 능력자를 포섭하는 것은 어렵다. 부활시킬 때 많은 힘을 소모하기 때문에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자를 살리려는 바보 같은 짓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신족들은 '윤리'라는 것을 만들어 내 었다. '윤리'라는 이름 하에 능력자들이 죽은 자를 부활키는 것을 당연하게 만들도록 했던 것이다. 부활 시에 능력자들이 판단하는 것은 죽은 자가 윤리 적인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으로만 귀착되고, 죽은 자가 그 경우에 해당하면 능력자들은 윤리적인 입장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그 로 인해 천신족의 부활 시스템이 무리 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흐으…… 나 혼자 설명하자니 입이 무지하게 아프구만. 하지만 어쩌랴, 지 금 이 생각을 하는 존재는 나 하나 뿐이니 나 혼자 입 아프게 설명하는 수밖 에. "그에 반해 천마족은 시간의 틈이란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굳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10년 후에 자동으로 부활하므로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천마족을 지극히 개인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 고 죽은 경우에는 무려 10년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시간의 틈에서 썩어야 하기 때문에 멀쩡히 살아 있는 동안에 충분히 즐기려는 생각을 가지 게 되었고 그것이 천마족을 지극히 쾌락 지향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천신족 이나 천마족이 인간들에 비해 지극히 극단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부활 시스템의 존재 때문이며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천신족은 윤리적인 생활을, 죽으면 알아서 부활되는 천마족은 개인적이고 쾌락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난 길게 이어진 설명을 그쯤에서 끝냈다. 내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더 설명하다가는 내가 한 말을 나 스스로 모순되게 만들어버릴 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때 내 편이어야 할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버렸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째서 천신족과 천마족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생활을 하 는 거죠? 한 번 죽으면 끝인데 왜 천마족처럼 쾌락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지 않는 거예요?" "……." 아트로포스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던질 줄 몰랐기 때문에 난 순간적으로 당 황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처음 천신족과 천마족의 차이를 따져볼 때 생각해 봤었던 것이라 대답이 나가는 속도는 그다지 느리지 않았다. "인간은 한 번 죽으면 끝이야.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어. 그런 인간이 쾌락적인 생활을 하다보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고 그러다 보 면 남에게 죽게 되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그래서 천 신족처럼 윤리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생명을 지키려고 한 거지. 최 대한 즐기면서 최대한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다보니 인간들은 윤리 라는 것을 필요할 때 이용해먹는 생활을 하게 되는 거야. 천신족은 부활하기 위해서 다른 능력자를 포섭해야 하는데 인간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윤리 정 도로는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윤리의 정도를 아주 강하게 만든 거지." 흐으…… 말해놓고 보니까 어딘가 엉성한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드는군. 뭐 어쨌든 아트로포스는 어느 정도 내 말에 수긍하는 것 같으니 재빨리 화제나 돌려야겠다. 녀석들이 내 말을 가지고 계속 물고 늘어지면 결국 허점이 발견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런 환경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의 입장에서 남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그 문제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더욱 옳지 않 은 일이다. 샤메이로, 넌 지금 너의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 "한 점의 지나침도 없다." "……!" 놀랍게도 샤메이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표정으로 내 말을 받아쳤다. 사실 난 내 말로 인해 샤메이로가 갈등 정도는 할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냉담한 반응은 충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다시 샤메이로에게 급히 질문을 던져야 했다. "넌 천신족과 천마족의 차이를 이해하려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 "아니, 그건 이미 이해했다. 단, 천마족들의 생활 방식은 용납할 수 없다." 흘…… 천마족의 생활 방식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게 어떻게 문화 차이를 이 해했다는 거야? 샤메이로의 아이큐 수준은 도대체……? "그래서 난 천마족의 부활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 샤메이로의 입에서는 루리아와 말다툼했을 때에 언급했었던 '부활 시스템의 파괴'란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말의 무게는 그때와는 달랐다. 뭔가 확실한 계획을 세워놓고 내뱉은 말이란 인상을 강하게 남겼기 때문이었다. ==================================================================== 다음 연재는... 언제가 될런지...-.-;;;;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2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358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68 게 시 일 :01/03/22 20:12:55 수 정 일 : 크 기 :7.4K 조회횟수 :211 <제 33 장> 중용의 법칙 "무슨 수로 천마족의 부활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거냐?" 헛소리를 할 샤메이로가 아니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그 방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샤메이로를 다그쳐보았다. 사실 그것은 극비라고 할 수 도 있는 것이라 샤메이로에게서 그 방법을 듣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컸다. 그런데 샤메이로는 예상외로 그 방법을 쉽게 알려주었다. "죽은 천마족이 시간의 틈으로 사라질 때 시간의 틈의 흔적을 잡아 능력자 가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시간의 틈과 함께 자폭한다. 그것이 바로 천 마족 부활 시스템의 파괴 방법이다." "……!"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근데 그게 잘 통하려나? 하긴, 보통 인간이라 면 완벽한 개죽음이겠지만 천신족의 능력자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아버지!" 그때 아직도 천신족에 붙지 않고 내 옆에 있던 겔레오스가 샤메이로를 소리 쳐 불렀다. 그 외침에 샤메이로가 자신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겔레오스는 떨 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설마…… 천마족의 부활 시스템을 파괴할 능력자가 아버지인 겁니까?" "…… 그렇다." "어째서입니까?!" "그 방법을 생각해낸 게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샤메이로의 어조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이나 떨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위험 한 방법을 생각해낸 자가 그 방법을 실행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이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이라 샤메이로의 행동을 당연하다고 느꼈지만 문 제는 샤메이로가 그 방법을 실현하게 놔두면 무수한 천마족이 죽어버릴 가능 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부활 시스템이 파괴된 천마족이 천신족에 의해 멸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던 것이다. "그런 짓을 하면 천마계에 발을 들여놓은 너희들도 부활을 할 수 없단 말이 다! 그걸 알고나 하는 말이냐?!" 샤메이로가 감히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천마족 총대장이 황당한 듯이 화를 버럭 냈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샤메이로의 대답은 차가 웠다. "우리들의 목숨으로 천마족이 정화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으…… 미친놈들……!" 천마족 총대장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샤메이로는 천마족 군사 들의 표정에는 무관심을 보이며 자기들 천신족 군사들에게 굵은 목소리로 명 령을 내렸다. "진(陳)을 펼쳐라!" 와ㅡ! 샤메이로의 명령을 받은 천신족 군사들 중 3분의 2 이상이 어떤 일정한 배 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이 끝난 천신족 군사들의 배치 모습은 완전한 마법진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둥근 원 안에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는 차원 이동 마법진의 모습을 군사들이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아무래도 저 차원 이동 마법진은 천마계의 시간의 틈으로 가기 위 해 만든 것 같은데…… 아까 샤메이로 녀석이 말했던 대로 천마족 하나가 죽 을 때 그 틈을 노려 차원 이동 마법진으로 시간의 틈 속에 들어가려는 속셈 인가? "더 이상 허튼 짓을 하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천마족 총대장은 샤메이로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확실하게는 알고 있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는지 샤메이로에게 엄포를 놓았 다. 그리고 나 역시 가만있을 수 없어서 샤메이로에게 경고를 먹였다. "샤메이로! 어서 마법진을 풀어라! 그렇지 않았다간 모두 나에게 죽을 것이 다!" "……." 위대하신 중용자 님의 경고를 먹었는데도 샤메이로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가 이곳에 오려고 했을 때부터 준비한 계획을 실행할 뿐이 었다. "중용자에게 겁먹지 말고 작전을 수행하라!" 와ㅡ! 샤메이로의 강한 외침에 천신족 군사들은 홀린 듯이 앞으로 진격했다. 물론 천마족 군사들 쪽으로 진격해간 숫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200여 명 정도였 다. 그러나 이번에는 본격적인 싸움을 위한 물밑 작업이 먼저였다. 우우웅ㅡ 천신족 군사들의 뒤쪽에서부터 내가 건설해 놓은 마나회로가 밀려나기 시작 했다. 그 속도는 워낙 엄청나서 내 마나회로가 완전히 없어지는데 걸리는 시 간은 고작 2초 정도였다. 내 마나회로를 몰아낸 것은 다름 아닌 천신장이었 다. 바로 천신족의 고위 능력자가 자신들의 능력으로 내 마나회로를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헐…… 천마계에서 천신장 없이 싸우면 불리하니까 천신족 고위 능력자가 일대를 천신장으로 둘러싼 다음에 전쟁을 하겠다 이거로군. 어쨌거나 중용자 가 한낱 천신족 고위 능력자에게 마나회로를 제거 당하다니 꼴사납구만. 휘이이잉ㅡ "……!" "뭐야?!" 막 천신족 군사와 천마족 군사가 격돌을 벌이려고 했을 때 그 지점에서부터 강한 회오리 바람이 일어났고 그 회오리바람 때문에 양쪽의 군사들은 각자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물론 그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존재는 바람의 정령 실 프였다. 마나회로가 제거되어 버려서 내가 직접 마법을 쓰는 것보다는 정령 들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빠르기 때문이었다. 우우웅ㅡ 천신족 군사들과 천마족 군사들이 회오리바람에 의해 잠시 대치 상태가 되 었을 때 난 즉시 마나회로를 개방하여 일대를 다시 마나장으로 뒤덮어버렸다. 이번에는 천신족 고위 능력자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샤메이로 급의 고위 능력자가 아니고서는 내 마나회로를 제거 하기 어려웠다. "싸우면 모두 죽인다고 분명 경고했다!" 난 회오리바람의 바로 위로 워프해서 양쪽의 군사 진영을 바라보며 그렇게 외쳤다. 천신장과 천마장이 없는 마나장 속에서는 천신족이든 천마족이든 평 범한 공격 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들 넋 놓고 날 올려다보기만 했다. "중용자……!" 내가 싸움을 방해하고 나서자 샤메이로의 입에서 마침내 분노에 찬 목소리 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낸 천마계 말살의 최선 방책을 나 때문에 실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냉정한 샤메이로가 분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귀찮은 네놈부터 없애주마!!!" 샤메이로는 천신족의 입장에서 볼 때 강도가 세다고 할 수 있는 욕설을 퍼 부으며 군사들이 형성한 마법진을 빠져 나와 내 쪽으로 날아왔다. 본래 마나 회로가 깔려 있으면 천신족인 샤메이로로서는 비행 같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지만 자신이 스스로 천신장을 형성하면서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본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연빙소수(燃氷素手)!" 땅 위에서 순식간에 회오리바람 위에 떠 있는 나에게 날아온 샤메이로는 자 신의 손으로 날 치려고 했다. 그런 샤메이로의 손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 르고 있었다. 그것은 차가운 냉기가 주변 공기의 열을 받아 순식간에 증발하 면서 내는 것이었다. 즉, 그만큼 샤메이로의 손은 극도로 냉각된 상태였고 천신족 서열 4위라는 그의 지위를 고려해 볼 때 그 손에 맞게 되면 맞은 부 위는 즉각 얼어버릴 것이라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치지지직- 샤메이로의 손이 내 몸에 닿기 직전 사라만다는 내 가슴 앞에다 불꽃의 장 벽을 만들었고 샤메이로의 손과 불꽃 장벽이 맞부딪치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소리가 발생했다. 그러나 샤메이로가 불의 정령인 사라만다보다 는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라만다에게 다 맡겨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즉시 그 자리를 피해 샤메이로의 머리 위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쾅-! 몇 개의, 정확히는 다섯 개의 소형 파이어 볼을 샤메이로 머리 위에 떨어 뜨렸으나 샤메이로는 그것을 모두 손으로 쳐내듯이 터트려 버렸다. 하지만 충격은 있었는지 바로 공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내가 먼저 공격에 나섰다. 위잉- "크윽!" 회전 톱날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샤메이로의 오른쪽 팔이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마법으로 바람을 회전 톱날처럼 만들어 날렸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샤메이로의 몸통을 자를 생각이었으나 샤메이로의 민첩성으로 인해 목표가 빗겨나간 것이다. "아버지!!!" 샤메이로의 오른쪽 팔이 털썩 하고 땅 위에 떨어지자 겔레오스의 입에서 비 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팔을 잘린 샤메이로는 통증 하나 호소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몸이 멀쩡 할 때 나에게 부상을 입히자는 속셈이라 할 수 있었다. "세빙침(細氷針)!" 떨어져 나간 팔의 고통을 잊으려는 듯 샤메이로는 기술 이름을 크게 외치며 날 공격했다. 그가 공격한 방법은 아주 가는 얼음침을 여러 개 날리는 것이 었다. 일반인이 그 가는 얼음침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실버럭서스가 가지고 있던 신경 반응 속도의 향상과 아트로포스의 아버지 텔의 훈련으로 인한 반사적인 몸놀림으로 인해 그 얼음침을 피하는 건 나에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얼음침을 날리고 지쳐버린 샤메이로를 끝장낼 기회만 생겼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23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340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69 게 시 일 :01/03/22 20:13:13 수 정 일 : 크 기 :10.3K 조회횟수 :205 "죽어라." 난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샤메이로의 몸 주위에 강한 전류를 흘렸다. 전 격 마법 중 최강인 라이트닝 쇼크(Lightning Shock) 디스트럭션(Destruction) 을 샤메이로의 몸 주위에 걸어버렸던 것이다. "……!" 샤메이로는 비명 하나 지르지 못했다. 디스트럭션의 전류가 그의 몸 속 세 포를 전부 사멸시켰기 때문이었다. 세포가 죽으니 몸 속 장기는 형체를 유지 하지 못한 채 파열되고 땅에 떨어진 샤메이로의 시체는 완전히 흐물흐물 해 진 채 그의 혈액만이 땅 위를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 아버지ㅡ!" 겔레오스는 완전히 곤죽이 되어버린 샤메이로의 시체를 보며 절규를 터트렸 다. 아무리 샤메이로가 천신족 서열 4위의 고위 능력자라고는 해도 천신장을 펼치면서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부을 수 없는데다 중용 자인 내가 마법뿐만 아니라 정령들의 힘까지 이용해먹기 때문에 샤메이로 혼 자서는 절대로 날 이길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결과였다. "중…… 용…… 자……!"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날 바라보는 겔레오스의 눈은 분노에 차 있 었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입에서는 강한 분노를 함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트로포스는 내가 샤메이로를 죽이자 루리아와 함께 그 자리를 피했다. 잘못하면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 그때 어떤 알 수 없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천신족과 천마족 군사들 사 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샤메이로를 죽이자마자 나타난 그 감각은 나에게 중용의 법칙에 의해 죽어야만 하는 자를 지정해주는 듯이 일부의 천신족·천 마족에게만 느껴지는 상태였다. 후후…… 이 감각이 바로 중용의 법칙에 의해 죽을 녀석들을 골라주는 건 가? 이거 아주 편리하군. 영계에서 멋대로 죽을 자를 지정해주고 난 그 감각 에 따라 녀석들을 없앤다……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편리해! "감히 아버지를ㅡ!" 내가 뜻밖의 감각에 화를 버럭버럭 내고 있을 때 겔레오스가 나에게 달려들 었다. 아직 자신의 힘을 완전히 끄집어낼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지만 겔레오 스의 얼음 화살 공격은 꽤나 위력적이었다. 난 그런 겔레오스를 쳐다보며 허 탈감을 느껴야 했다. 내 머리 속의 감각이 겔레오스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팍- 파팍- 겔레오스가 만들어 날렸던 얼음 화살은 모두 실프의 바람에 의해 제거되었 다. 그리고 난 겔레오스를 향해 불화살 하나를 날렸다. 분노에 의해 무작정 날 공격했던 겔레오스로서는 내 반격을 피할 여력이 없었다. 따라서 불화살 은 겔레오스의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고 겔레오스는 입만 벌린 채 그대로 땅 바닥에 몸을 눕혀야 했다. "여, 역시 중용자……!" "으으……!" 두 명의 천신족을 가볍게 죽인 날 보고 모두들 겁에 질려했다. 난 시선을 내려 죽은 샤메이로와 겔레오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금방 고개를 들어 시선을 다른 천신족과 천마족들로 돌렸다. 그리고 나서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했다. "이 중에서 죽을 자는 소수다. 죽을 자는 내가 결정하며 다른 자는 덤비지 만 않는다면 죽이지 않는다." "웃기지 마라! 샤메이로 님의 원수를 갚아주겠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신족의 고위 능력자처럼 보이는 녀석이 반박하 며 나섰고 그것을 시작으로 천신족 군사들 모두가 나에 대한 적개심을 강하 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결국 나와 싸우다가 죽을 것을 결심한 것이었다. 그 러한 천신족 군사들의 반응에 천마족 군사들 역시 영향을 받아 나와 싸울 것 을 결심했다. "우리의 적은 중용자다!" "싸우자!" 중용자라는 전대미문의 적 앞에 천신족과 천마족은 손을 잡았다. 살기 위해 서는 그 어떤 윤리 의식도 필요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명백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서로의 자존심까지 버리고 손을 잡은 그 두 종족을 없애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우아아ㅡ! 언제 짜고 한 것도 아닌데 천신족과 천마족 군사들은 일제히 나에게로 달려 들었다. 일대가 마나회로로 뒤덮인 이상 그들은 오직 손에 든 무기와 체력만 으로 나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 사지가 멋대로 잘려나간 시체들. 그리고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시체들. 겉 은 멀쩡하지만 속은 극도로 망가져 버린 시체들. 마치 시체 박물관을 방불케 하듯 다양한 시체들이 땅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 작품을 만 든 인간은 바로 중용자인 나였다. "아……!" 항상 싸움과 죽음을 보면서 자라온 루리아조차 이와 같은 참상에 고개를 돌 렸다. 게다가 죽은 시체가 시간의 틈 속으로 없어지질 않으니 역겨운 피 냄 새의 입자가 하늘을 유유히 떠다녔고 루리아와 아트로포스는 그 입자가 후각 세포를 자극하지 않도록 코를 손으로 막아야만 했다. 후후…… 결국 모두 죽여버리고 말았군. 이 중에서 중용의 법칙에 의해 제 거될 녀석은 적은데 일일이 녀석들만 찾아서 죽이기 귀찮다는 이유로 모두 죽여놓고…… 이제 와서 후회하는 난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 그 순간, 난 또다시 머리 속에 떠오른 기묘한 감각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그 중용자의 감각이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루리아이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루리아마저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루리아…… 어째서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네……?" 내 물음이 뜻밖인 듯 루리아는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루리 아의 의심 없는 표정을 보면서 난 괴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 머리 속의 감각에 따라 내 마나회로는 가동되고 있었다. "아……!" 루리아의 입에서 채 터지지 못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전격 마법인 디스트럭 션에 의해 두뇌가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짧은 며칠 동안이었지 만 천마계에서 나와 아트로포스를 많이 도와주었던 루리아를 난 너무나 간단 히 죽이고 말았다. 그것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감각이 그녀를 지목하자마 자 바로 실행했다. 그런 내 모습에 난 쓴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 중용자의 감각이 나보고 살상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 결국 그 명령을 실행하는 건 나의 의지…… 중용의 법칙에 의해 죽어야 만 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을 죽여야하는 중용자……. "어째서 루리아 씨를 죽인 거예요?!" 이유를 모르는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강한 항의를 했다. 마침 나도 누군가에 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지금의 내 상태를 설명했다. "어떤 감각이 나에게 죽어야 하는 자를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어…… 그 감 각이 루리아를 지목해서 난 그녀를 죽인 것 뿐이야…… 모두…… 중용의 법 칙에 의한 것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식의 전개가 될 것임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아트로포스 였으나 막상 루리아가 중용의 법칙이라는 이름 하에 죽임을 당하자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트로포스뿐만 아니라 나 역시 혼란 스러웠다. 루리아를 죽이자마자 중용자의 감각이 수많은 존재를 지명하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천마족의 선봉대가 말을 타고 달려왔던 그 방향에서 이번엔 묵직한 말들의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천마족의 원정군이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도 착한 것이다. 그 수는 족히 3000명에 달했고 그 중에서 중용자의 감각이 지 목하는 상대는 500여 명 남짓이었다. "로스." 난 조용한 어조로 아트로포스를 불렀고 아트로포스는 그런 나를 복잡한 표 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머물고 있음을 확인한 나는 약간 허탈감이 묻어나는 어조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또 싸움이야. 언제나처럼 날…… 도와줄 거야?"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방에 시체들이 즐비하다는 것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런 천마족의 대부대를 쳐다보면서 아트로포스는 약하 지만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영인관이니까요." 다그닥 닥- 마침내 나중에 온 천마족 군대가 시체들이 즐비한 장소에서 멈춰 섰다. 그 리고 그 시산혈해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고 한 장군이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누구냐?!" 흘…… 시체가 줄줄이 늘어져 있어서 다가오지는 못하고 멀리 떨어져서 묻 고 있군. 어쨌거나 난 중용의 법칙이나 실행해야 하니까 녀석들에게 경고는 해줘야겠지. "난 중용자 이그드라실이다. 너희들의 목숨을 가지러 왔다." 기분이 꿀꿀했기 때문에 내 입에서 직접 나오는 목소리는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대신 마법으로 내 목소리를 증폭시켰기 때문에 천마족 군사들이 들은 소리는 큰 편이었다. "중용자?!" 웅성웅성- 중용자라는 말에 천마족 군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중용자 라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내 주위에 널려 있는 시체들 쪽으로 시선을 돌린 다음부터는 내 말을 완전히 믿어버린 듯했다. 천마족과 천신족 군사들 의 시체가 모두 있기 때문에 그 둘을 없앨 존재는 중용자밖에 없다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쿠하하! 중용자가 벌써 오다니 정말 뜻밖이군!" 중용자가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천마족 본대의 총대장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 렸다. 분명 내가 천마족과 천신족 군사들을 제거하느라 힘을 많이 소진한 상 태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아트로포 스의 도움을 받는다면 천마족 본대를 괴멸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중용자가 힘을 되찾을 시간을 주지 말고 지금 당장 죽여라!" 천마족 본대 총대장은 앞장서서 말을 몰며 군사들을 독려했고 군사들은 일 제히 함성을 지르며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3000명이 넘는 군사가 일제히 몰 려드니 그 기세는 가히 폭풍을 방불케 했다. 사실 저 정도의 군사가 달려들 면 먼지가 일어나 시야를 차단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아까 죽은 시체들에서 나온 피 때문인지 먼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간다, 로스!" 난 아트로포스에게 공격할 의사를 밝히고 나서 바로 마법을 구사했다. 우선 땅의 정령인 노움과 함께 천마족 군사들이 달려드는 앞쪽의 땅을 붕괴시킴으 로써 대열을 흐트려뜨렸고 우왕좌왕하는 천마족 군사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파이어 애로우를 날렸다. 아트로포스가 내 정신적 피로를 풀어준 결과 파이 어 애로우는 한 번에 30개 해서 5번, 총 150개가 쏘아져 나갔는데 그것에 맞 고 죽은 천마족 군사들의 수는 100명 안팎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천마 족 군사들 중에서 진짜 죽어야할 능력자는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포스 프레셔(Force Pressure) 오버(Over)!" 난 귀청 떨어져라 고함을 지르며 천마족 군사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 역압 마법을 걸었다. 여태까지 그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역압 마법을 사 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소리라도 질러 정신적 피로를 적게 받으려는 생 각에서 큰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다행히 아트로포스의 도움이 커서 천마족 군사들의 머리 위를 모두 공기 압력으로 누를 수 있었다. "끄악!" "으악!" 역압 마법에 의해 활동에 제약을 받은 천마족 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차례 로 쓰러져 갔다. 내 몸 속에서 놀고 있던 실프와 사라만다, 노움은 물론이고 아트로포스의 몸 속에 배치시켰던 운디네와 잭 오 랜턴까지 가세해서 천마족 군사들을 죽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마장을 형성하라!" 천마족 군사들이 덧없이 쓰러지자 천마족 본대 총대장이 각 장군들에게 그 런 명령을 내렸고 명령을 받은 장군들은 즉각 천마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내가 만들어 놓았던 마나회로가 밀려나 사라지고 천마장이 다시 일대를 뒤덮어 버렸다. 따라서 자연히 내가 천마족 군사들 머리 위에 걸어놓 았던 역압 마법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일제히 공격!" 천마족 본대 총대장의 명령에 따라 각 장군들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 내어 날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른 천마족 병사들은 그저 뒤로 물러나 사태를 관전할 뿐이었다. 중용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육탄전이 아닌 능력전으로 나 가야 한다는 것을 방금 전에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24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808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80 게 시 일 :01/03/24 19:57:42 수 정 일 : 크 기 :8.1K 조회횟수 :80 콰콰쾅- 난 마나회로를 개방하여 아트로포스를 포함한 내 주위에 마법의 방어벽을 쳤지만 천마족 능력자들의 합동 공격에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큰 타격 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아트로포스가 여러 명 있다하더라도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지만 현재 나로서는 도망칠 방법도 없었다. 도망치려면 워프가 가장 효과적이었으나 마나회로가 제거된 상황에서 워프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후…… 이제 죽기살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나? 잘 하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군. 최초로 중용의 법칙에 실패해버릴까? 그럼 아주 볼만할 텐데. 우우웅- 천마족 장군들이 다시 나에게 합동 공격을 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순 간은 생각보다 무척 짧았고 눈을 한번 깜빡이자 다양한 능력이 혼합된 강력 한 에너지 덩어리가 나에게 날아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아 까 받은 충격 때문에 완벽한 방어벽을 칠 수가 없었다. 콰콰……. 이상하게도 내 방어벽이 박살나는 소리가 점차 약하게 들리더니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녀석들의 공격에 맞아 죽었음을 의 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 몸은 너무나 멀쩡했다. 아니, 아직 몸에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로 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너 바보야?!" 갑자기 웬 호통소리가 내 귀를 강하게 때렸다. 그 소리에 황급히 정신을 차 려 주위를 둘러보니 난 허름한 집의 거실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 위에 멋대로 드러누워 있었고 그 옆에는 아트로포스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진 바 깥쪽에는 오랜만에 보는 영마관 라케시스가 화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것 을 보건대 난 아직 살아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라케시스에게 인사했다. "안녕……." "안녕이 아니잖아! 어떻게 하면 3000명의 군사들하고 맞짱 붙을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런 무식한 중용자는 아마 네가 처음일 거다!!!" 라케시스는 내 인사를 막 씹으면서 날 마구 혼냈다. 하지만 난 아직 정신이 얼떨떨한 상태였기 때문에 라케시스의 호통을 그냥 멍청히 받기만 해야 했다. 흐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난 방금 전까지 천마족 군사들과 싸 우고 있었는데…… 아, 이 마법진…… 라케시스가 날 마법진으로 구해준 건 가? 에이, 설마. 저 사악한 라케시스가 그런 이쁜 짓을 할 리가 없지. "여긴 어디냐?" 어느 정도 머리를 굴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난 거실 바닥에서 상체를 일 으키며 라케시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라케시스는 차가운 어조로 대답 했다. "내 집이야." "어…… 그래? 로스는 안 다친 거지?" 아트로포스가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얼굴색은 좋아 보여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도 들 긴 했다. 그런 내 묘한 걱정을 덜어주려는 듯 라케시스의 대답이 금방 날아 왔다. "갑자기 공간을 이동해서 잠시 정신을 잃은 것 뿐이야. 곧 있으면 정신을 차릴걸?" "으음……!" 라케시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줄곧 누워 있던 아트로포스가 나직한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도리도리 둘러보더니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는 어디예요?!" "내 집."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대답을 하기는 아주 귀찮은 일이지만 라케시스 는 묵묵히 그 귀찮은 일을 했다. 라케시스의 대답에 라케시스가 이곳에 있다 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린 아트로포스는 더욱 놀란 표정을 했다. "라케시스 님?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아트로포스가 던진 질문은 나도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난 라케시 스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렸다. 얼굴 가득히 궁금하다는 표정을 떠올리며 말똥 말똥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나와 아트로포스를 보면서 라케시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들을 구한 거야. 만약 그때 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르카디아 최초로 중용의 법칙 실패라는 대 기록이 세워졌을걸?" 흘…… 중용의 법칙 실패의 대 기록을 세우지 못해서 엄청나게 미안하군. 그건 그렇고 라케시스가 때맞춰 날 구해냈다는 소리는…… 내 일거수 일투족 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뜻? "날 감시하고 있었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언제부터?" "네가 천마계에 들어왔을 때부터." 난 라케시스와의 짧은 문답을 통해서 그녀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곳에서 날 쭉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신계에 있는 클로 토 역시 내가 천신계에 있을 때 날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내가 마 지막 성물을 얻고 돌아오자 라케시스와 클로토가 냉큼 돌아가 버렸던 것은 바로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날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드! 다음부터는 상대의 숫자를 봐가면서 하라구!" 이제 모든 상황 설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라케시스는 다시 날 질책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내가 너무 무모하게 싸우고 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 녀의 질책을 얌전히 받았다. "에휴…… 하여튼 다음부터는 잘 좀 처신해." 내가 너무 얌전하게 있자 혼낼 기분도 들지 않는지 라케시스의 질책은 거기 서 끝을 맺었다. 그래서 난 하고 싶은 질문을 그녀에게 던졌다. "천신계와 천마계에서 중용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다 알려졌어?" "당연하지. 그렇게 들쑤셔 놨는데 모르겠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되는 거야?"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암살 방식으로 나가야지." 호오…… 암살이라…… 중용자가 이제 전문 킬러로 나서야 한다는 거냐? 아 주 그냥 날 살상용 기계로 만들어라! "괴롭더라도 참아." 내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라케시스가 한마디했다. 지금까지의 중용자 모 두 그런 괴로움을 겪으면서 중용의 법칙을 완성했기 때문에 그 정도에 포기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 역시 그런 것은 알고 있었으나 문제는 중용의 법 칙을 완성한 다음이었다. "라케시스…… 중용의 법칙을 달성하고 나서……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음…… 아마 잠깐 동안 영계로 갔다가 바로 네 세계에 돌아가게 될 거야.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된다고 들었어. 그리고 이런 얘기는 안 하려고 했지만…… 영계에 가게 되면 여기서 있었던 일은 모두 기억에서 사 라지게 될 거야." 후후…… 기억을 못하게 된다라…… 꿈을 꾸게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지 도 모르겠군. 하지만 만약 몸이 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세계로 돌아가게 되면 자신이 왜 다쳤는지 모르게 되는 것 아닌가? 아…… 영계에서 기억 조 작을 할 테니까 그럴 일은 없겠군. "이드, 어쨌든 지금은 중용의 법칙을 실현하는 일에 집중하라구. 그렇지 않 다간 네 세계에 돌아가기는커녕 여기서 뼈를 묻게 될지도 모르니까." 라케시스는 내가 마음을 약하게 먹을까봐 그런 말로써 내 마음을 붙잡아 매 려고 했다. 하지만 난 결코 마음을 약하게 먹지 않았다. 단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네프나 할멈과 스파트가 나에게 부탁을 했던 바로 '그것'일 뿐이 었다. 흐흐…… 중용의 법칙을 달성하고 내가 영계로 가는 순간…… 그 순간에 영 계를 무너뜨리면 되겠군. 천마계에서 천신족과 천마족 군사들과 싸울 때는 영계로 갈 수 있는 방법도 모른 채 중용의 법칙만 실현해서 뭐하냐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했지만…… 지금 그 방법이 정해진 이상…… 반드시 중용의 법칙을 실현한다! 저벅저벅- 주변이 깜깜한 저녁이었는데도 저택의 경계는 매우 삼엄했다. 중용자가 천 신족과 천마족의 군사들을 쓸어버렸다는 소식이 퍼지고 나서부터 천신계에서 는 적어도 세 명 이상의 능력자가 한 저택에 같이 머물면서 중용자의 기습을 대비하고 있었다. 특히 중용자가 암살 방법으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저택의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다. "이번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네요." 저택 주변에 쫙 깔린 천신족 병사들을 보며 아트로포스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와 아트로포스는 저택 앞쪽에 있는 나지막한 언 덕에 몸을 숨기고 저택의 동향을 살피는 중이었다. "우선 저택의 지붕 위쪽으로 날아가서 그 다음을 생각해보자구." "네." 아트로포스는 내 의견에 아무런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난 즉시 비행 마법 을 통해 목표 지점인 저택의 지붕 위까지 유유히 날아갔다. 고도를 상당히 높여서 비행했기 때문에 아무리 예리한 감각을 지닌 천신족 능력자라 하더라 도 내 몸 주위의 마나장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약간 시간이 걸 리기는 했지만 저택 지붕 위까지 가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탁- 저택 밖에서 들려오는 곤충 소리에 비해 너무나 작은 소음을 내며 우리는 저택의 지붕 위에 사뿐히 착지했다. 건물 지붕은 전형적인 삼각형태였고 여 기 저기에 창문이 땅과 직각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창문 쪽에도 작은 지붕 이 만들어져 있었고 나와 아트로포스는 바로 그 창문 지붕에 앉아 몸을 숙인 채 다음 계획을 구상했다. "굴뚝으로 들어가면 어떨까요?" "굴뚝은 거실 쪽하고 연결되어 있어서 저택 안에 있던 녀석들에게 발견될 확 률이 많아. 그리고 천신족 능력자들쯤 되면 굴뚝으로 중용자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어를 철저히 하고 있을걸?"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글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완전히 방어만 하고 있는 녀석들을 두들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아트로포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24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951 제 목 :[사이케델리아] 33장:중용의 법칙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681 게 시 일 :01/03/24 19:57:57 수 정 일 : 크 기 :10.7K 조회횟수 :76 "로스, 그 목걸이로 클로토 좀 불러봐. 할 얘기가 있어." "……?" 내가 갑자기 클로토를 찾자 아트로포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대 로 가지고 있던 통신용 목걸이를 통해 클로토와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잠시 후 클로토와 연결이 되자 목걸이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트로포스에게서 목 걸이를 건네받자마자 클로토의 목소리가 머리 속으로 직접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이드 님?〉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클로토는 중용자에게 강제력을 행할 수 있으니까 날 작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그렇긴 하지만 왜 그런 걸 물어보시는 거죠?〉 그거야 당연히 날 작게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려는 거 아니겠어? 가능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초파리 수준의 곤충으로 만들어 줘. 반드시 날 수 있는 종류여야 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내 원래 몸으로 돌아올 수 있도 록 해줬으면 하는데. 〈별로 어렵지는 않아요. 그런데 몸을 작게 만들어서 저택 안에 침입한 뒤 몸이 원래대로 회복된 다음에 공격을 할 건가요?〉 정확히 맞췄어. 어쨌든 내가 신호를 내리면 내 몸을 작게 만들어 줘. 그리 고 원래대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쯤으로 해주고. 아트로포스에게도 부탁할 게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 〈알았어요. 목걸이를 통해서 강제력을 전송할 거니까 이드 님의 몸이 작아 진 다음에 목걸이가 지붕 아래로 떨어져서 병사들에게 들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세요.〉 클로토의 주의 사항을 듣고 나서 난 목걸이를 아트로포스 가까이 가져간 뒤 에 아트로포스에게 내 계획에 대해 알려주었다. "난 클로토의 힘으로 몸을 작게 한 다음에 저택에 잠입해서 공격을 할 거야. 로스가 할 일은 내가 일을 다 끝마치고 나올 때 천마계로 바로 워프할 수 있 는 차원 이동 마법진을 그려주는 거고. 마법진은 운디네의 물방울로 이 지붕 에다가 안 보이게 그려놓은 다음에 내가 오면 바로 워프! 이해했지?" 끄덕- 아트로포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난 운디네에게 아트로포스의 말을 잘 따르도록 지시한 뒤에 운디네를 아트로포스에게 양도했다. 또한 내 몸이 작아지고 나면 나로서는 목걸이를 들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목걸이 가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아트로포스가 잘 받아야 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 난 클로토에게 신호를 했다. 우웅- 목걸이를 따라 클로토의 강제력이 내 몸으로 파고들었고 이내 내 몸은 순식 간에 줄어들었다. 그 순간 목걸이는 중력 방향으로 이끌렸지만 아트로포스가 목걸이를 잡아내어 목걸이가 땅 아래로 떨어져 병사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들 키게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윙윙윙- 흐으…… 아무리 내가 생각해낸 방법이라고 해도 초파리로 변하니까 기분이 무지 드럽군. 그런데 설마 초파리로 변하면 파리로서의 본능이 나타나는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지나가던 새가 갈겨놓은 새똥을 보면 눈이 확 돌아가면 서 무작정 달려든다든지 하는……! "어이가 없군. 파리로 변한 중용자의 몸 속에 쳐 박혀있어야 하다니." "그러게 말이야. 지저분해서 미치겠다." 내 몸이 초파리로 변하자마자 내 몸 속에 있던 사라만다와 노움이 불만을 토했다. 하지만 난 그 둘을 무시하고 바로 굴뚝을 통해 저택 안으로 잠입했 다. 굴뚝에서 불을 때고 있었기 때문에 뜨거워 죽을 뻔했지만 어쨌든 무사히 저택의 거실로 들어가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 철컹- 거실 안에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여러 명의 무장 병사들이 굴뚝 주위를 활 보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초파리 하나가 굴뚝을 통해 거실로 들어온 것에 신경 쓰는 병사들은 단 한 명도 없 었다. 심지어는 거실 안에서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던 고위 능력자들조차 내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흐음…… 거실 안에 있는 능력자가 3명…… 나머지는 각자의 방에 있겠군. 우선 위치를 알아내서 가장 빨리 녀석들을 암살할 수 있는 루트를 찾아야지. 파리로 변했으니 열심히 싸돌아다녀 볼까? 윙윙윙- 난 열심히 날개를 움직이며 저택 안을 활보했다. 아무리 문이 닫혀 있어도 방과 문 사이에는 약간의 틈이 있었기 때문에 방으로 무단침입 하는 것은 아 주 쉬웠다. 그런 식으로 저택 안의 고위 능력자 수를 파악한 결과 모두 13명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에…… 우선 방 복도에 잠복해 있다가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마법으로 방을 때려부순 다음에 거실로 가서 남은 능력자를 제거하고 재빨리 창문을 통해 빠져나가야겠군. 방에서 쉬고 있는 능력자 중에는 가족과 함께 잠든 녀 석들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가족도 방과 함께 날려주는 수밖에. "사악하군." "자기가 살려고 남을 그렇게 쉽게 죽이냐?" 내 계획을 엿들은 사라만다와 노움이 날 비난했다. 그렇지만 일일이 능력자 들만 골라죽이다가는 도리어 내가 역습을 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난 그런 사악한 짓을 해야했던 것이다. "그건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흐으…… 사라만다…… 내가 자기 합리화를 하든 말든 내버려둬. 난 최대한 빨리 중용의 법칙을 끝내서 영계로 가야한다고. 그리고 영계를 없애야해. 그 렇지 않으면 내가 중용의 법칙을 실행하는 의미가 없어져. "네놈이 영계를 없앨 수 있을까?" 글쎄…… 그건 해봐야 알지. 만약 내가 영계 제거에 실패한다면 나라는 존 재가 대신 제거 당하겠지. 내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난 최선을 다할 뿐이다. ……. 30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내가 복도에 세워 놓은 장식용 석상에 달라 붙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것을 그 어떤 자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순간에 복도를 지나가는 녀석도 없었기 때문에 난 제법 여유 있게 내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각 방에서 터져 나왔다. 내가 고밀도의 파이어 볼을 각 방에 던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자고 있다고는 해도 겨우 파이어 볼 하나 가지고 능력자를 죽일 수 있을 리는 없어서 즉시 정령들의 힘과 섞어서 두 번째 공격을 가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폭발은 저택 천장의 일부가 무너져 내 릴 정도로 강력했다. "무슨 일이냐?!" 갑작스런 연속 폭발에 거실 쪽으로부터 여러 명의 병사를 대동한 능력자 하 나가 급히 달려왔다. 그 순간을 노려 난 날카로운 얼음 화살을 능력자에게만 날렸고 급히 달려오느라 흥분 상태에 있는 능력자는 폭발로 인한 안개 때문 에 내 얼음 화살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가슴을 꿰뚫리게 되었다. 흘…… 안개가 능력자의 시야를 가려주는 효과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운이 좋군. 난 중용자의 감각이 가리키는 대로 무작정 얼음 화살을 날렸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도 상관없고 말이야. 음…… 방에 있던 능력자들의 느 낌이 없는 걸로 봐서는 내 기습 공격에 모두 죽은 모양인데? "중용자다! 중용자가 침입했다!" 이런 일을 저지를 자는 중용자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모두들 그렇게 외 치며 뛰어다녔다. 일단 중용자가 침입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자 혼란스러웠던 저택 안은 금방 가라앉았고 각 복도 끝에 병사들이 신속하게 배치되었다. 아 직 내가 처리해야할 능력자가 거실 쪽에 두 명 남아있었기 때문에 난 이대로 내뺄 수도 없었다. 크…… 생각보다 녀석들의 혼란이 너무 쉽게 가라앉아 버렸어. 비록 개개인 의 능력을 보잘 것 없지만 역시 훈련을 잘 받은 탓에 대처가 꽤 빠르구만. 이제 어쩔 수 없이 정면 돌파를 해서 남은 두 능력자를 죽인 다음에 무사히 여길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윈드 코트(Wind Court) 블래스트 블레이드(Blast Blade)!" 난 흐트러지려는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며 바람 마법 중에서 가장 강한 따블 을 구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은 내 앞을 가로막은 병사들을 무참히 베어 쓰러뜨렸다. 비록 병사들의 수가 많다 하더라도 초월 의 꽃 열매의 초중력을 사용하고 있는 내 이동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솔직히 말해서 병사들은 있으나마나한 존재들이었다. "천뢰폭(天雷瀑)!" 병사들은 있으나마나한 존재였으나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능력자들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한 능력자가 내가 가는 길목에 마치 하늘에서 무수한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번개 공격을 가해왔던 것이다. 파파팍- 무시무시한 벼락 공격이었으나 내 정령들이 합심하여 내 피부 바로 위에다 방어막을 쳐놓은 덕택에 인간 전기 통구이가 되는 불상사는 면하게 되었다. 피잉- 한 능력자의 공격을 정령들이 막아내는 동시에 난 불화살을 그 능력자에게 쏘았다. 정령이라는 제 2 의 나 자신을 가지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 능력자 는 자기 혼자만 힘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공격을 받으면서 반격을 하 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결과는 불화살이 능력자의 가 슴을 관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풍검(風劍)!" 이 저택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능력자는 바람으로 칼을 만들어 날 베려고 했다. 바람의 칼은 모양을 마음대로 변형시키는 게 가능해서 근접전이든 원 거리 공격이든 다 가능한 병기였다. 그렇지만 그 능력자 자체의 실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풍검이 내 몸에 닿기도 전에 전격 마법인 디스트럭션(Destruc tion)에 의해 두뇌를 파괴당해 버렸다. 콰쾅-! 간단하게 두 명의 능력자를 해치운 나는 즉시 방향을 틀어 지붕을 뚫고 밖 으로 나갔다. 지붕 위에는 내가 지시했던 대로 아트로포스가 마법진 위에 서 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사하셨군요!" 내가 땀방울조차 흘리지 않고 멀쩡한 몸으로 저택을 탈출하자 아트로포스의 얼굴에는 기쁨이 번졌다. 그러한 아트로포스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능력자들 을 죽여서 꿀꿀해진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그건 별로 좋은 일이라고 는 할 수 없었지만 기분 풀린 건 풀린 거였다. 팟- 마법진 위에 서서 천마계로 가는 생각을 하자 나와 아트로포스는 순식간에 천신계에서 천마계로 차원 이동을 했다. 천신족 능력자라면 아직 남아 있는 마법진을 이용해서 쫓아올 수도 있겠지만 능력자는 모두 죽고 일개 병사들만 남아 있으니 그걸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휴우……." 무사히 천신족 능력자 살상을 마치고 나자 긴장이 풀리면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트로포스는 많이 소모된 내 정신력을 자신의 힘으로 풀어주며 날 다독여 주었다. "잘하셨어요. 이제 남은 건 천신족과 천마족의 최고위 능력자들뿐이에요." 흘…… 중용의 법칙이랍시고 천신족·천마족의 능력자들을 죽이는 건 잘하 는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아트로포스 말대로 남은 건 천신족과 천마족의 지배자들뿐이니 그것만 잘 해결하면 중용의 법칙은 끝나는군. "우선 어떤 최고위 능력자를 없앨 건가요?" 아트로포스는 없앤다는 말을 입에 쉽게 담으며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리 고 난 아트로포스보다 더 의미 강한 말을 입에 담으며 대답했다. "천마족 지배자부터 죽일 거야. 천신족 지배자는 전투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을 게 뻔하니까 우선 전투에 능란한 천마족 녀석부터 없애버려야지. 그래 야 편하잖아." "그렇겠군요." 아트로포스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이 지쳤으니 나중에 하기 로 하고 오늘은 편히 쉬자는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오늘밤은 한번에 많은 마법을 사용했고 이미 자야할 시간이기 때문에 그녀의 말대로 여관을 잡아 편히 쉬었다. 물론 천마계의 화폐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지나가던 천 마족에게 시비 걸어서 돈을 내기로 한 정당한 결투를 만든 다음, 싸움에서 이겨서 돈을 갈취했기 때문에 돈 걱정은 전혀 할 필요 없었다. "음……." 나만큼이나 긴장을 했었는지 아트로포스는 여관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져 들었다. 난 그런 아트로포스의 옆에 누워 잠시 동안 잠이 든 아트로포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중용의 법칙을 처음 실행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아 트로포스와 같은 방에서 잤었다. 여행 경비를 아끼자는 측면도 있었지만 그 것보다는 같이 자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중용의 법칙 실행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어서인지 둘 다 그냥 얌전히 잠만 잤다. 중용 의 법칙 외의 다른 생각을 하기에는 우리들의 정신 상태가 여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후우…… 천마족 능력자들은 중용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어도 맨날 혼자 퍼질러 놀기만 해서 해치우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천마족 지배자는 조금 다르겠지. 뭐 어쨌든 난 반드시 녀석을 해치울 거니까 그 걱정은 내일 하기로 하고 지금은 마음 편히 잠이나 자자!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30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397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14 게 시 일 :01/03/29 23:13:30 수 정 일 : 크 기 :9.8K 조회횟수 :211 <제 34 장> 각 계(界)의 지배자들 나와 아트로포스가 천마계와 천신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꽤 지난 것 같았 다. 그 동안 중용의 법칙을 실행하느라 천마계와 천신계를 여러 번 왔다갔다 해야 했지만 그다지 피로감은 생기지 않았다. 단지 중용의 법칙이라는 것으 로 죽어야만 하는 능력자와 그의 가족들을 볼 때마다 내 기분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저곳이 천마족의 최고위 능력자가 살고 있는 궁전인가요?" "맞을 거야. 중용자의 감각이 그렇다고 하고 있으니까." 난 아트로포스의 물음에 답하면서 궁전을 차근히 살펴보았다. 한낮이라 그 런지 황금으로 도금된 궁전은 휘황찬란한 색을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 은 병사들이 궁전 안팎을 거닐면서 물샐틈없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흘…… 역시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니까 사는 곳이나 거느리는 병사들의 수 가 보통이 아니군. 뭐 그래봤자 병사들은 내 상대가 아니니까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지. 저번에 했던 것처럼 내 몸을 작게 만든 다음 몰래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 천마족 지배자만 죽이고 나오면 간단해! "이드 님, 라케시스 님이 하실 얘기가 있대요." 그때 아트로포스가 나에게 목걸이를 내밀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난 목 걸이를 받아들고 라케시스와 통화했다.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이상한 짓거리 하지마!〉 흘…… 내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던 말던 신경 쓰지 마라. 난 원래 그런 녀 석이니까.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전화했냐? 〈전화? 뭐, 어쨌든…… 너 설마 천마족 수장(首長)의 궁전에 내 힘을 이용 해서 들어가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 얼레? 방금 막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거야? 〈좋은 생각은 너 스스로 하고, 그것보다 난 이번에 도움을 줄 수가 없어. 수장의 궁전에는 일종의 결계가 쳐져 있어서 우선 그걸 뚫지 못하는 한 절대 궁전 안에 침입할 수 없으니까. 결계의 강도나 범위에 대해서는 너 스스로 조사해. 그럼 이만!〉 ……. 자기 할 말을 다한 라케시스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렇지만 그 녀가 나에게 하고자 했던 말은 내 머리 속에 모두 입력된 상태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별 불만은 없었다. 단지 전화와 통신 예절을 모르는 라케시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뿐이었다. "라케시스 님이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목걸이를 돌려주자 자연스럽게 아트로포스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래서 난 라케시스가 나에게 했던 말을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저 궁전에는 결계가 쳐져 있어서 우리끼리 알아서 하래." "결계요?" "어. 천마족 지배자의 궁전인 만큼 강한 결계가 쳐져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저 넓은 궁전 전체에 몽땅 결계를 치는 무식한 짓은 안 했겠지? 음…… 설마 안 했겠지." 난 완전히 자문자답 형식으로 헛소리를 한 뒤에 실프를 불러 모종의 지시를 내렸다. "실프, 우선 저 궁전에 바람을 불게 해봐. 대신 정령력으로 바람을 궁전까 지 밀지 말고 궁전에 바람이 도착할 때쯤에는 정령력을 거두어 들여서 바람 이 관성에 의해 자연스럽게 궁전까지 불도록 해야해." "네." 내 지시를 받은 실프는 내 몸 속으로부터 나온 뒤 아트로포스도 들리게끔 대답을 하고는 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우리들 눈앞에 모 습을 드러내었다. 나에게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은 그대로 궁전 안을 통과했어요. 결계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구 요." 흐음…… 그렇군. 그 말만 들어보면 결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람 같은 무생물은 그냥 결계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에 조심 을 기해야지. "노움! 땅 속에 있는 개미 한 마리 잡아서 저 궁전 가까이 몰아봐. 생물이 결계를 통과할 수 있을지 없을지 봐야하니까." 무생물 실험 대신 생물 실험을 하기로 한 나는 노움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 다. 그러나 노움은 실프와는 달리 쉽게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왜 그런 걸 나한테 시켜?" 흐으…… 소환주님이 하라면 하는 거지 뭐가 불만이야? 그리고 개미는 땅 속에 사니까 땅의 정령이 개미를 잡아야 하는 건 당연하잖아! "쳇! 알았다!" 내 마지막 말이 결정타였는지 노움은 툴툴거리며 땅 속으로 기어 들어가 개 미를 한 마리 끄집어내고는 그 개미를 몰면서 궁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개미를 이용한 실험을 마친 노움이 나에게 그 결과를 보고했다. "궁전 거의 다 와서 개미가 그 이상 나가지 못했다. 그런데 옆으로 살짝 방 향을 틀어서 모니까 들어가더라. 결계가 어떤 식으로 쳐져 있는지는 전혀 모 르겠어." 흘…… 개미가 앞으로 가지 못한 건 분명 결계가 쳐져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방향을 조금 바꾸자 개미가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 결계가 완전한 막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인가? 뭐, 어쩔 수 없군. 수많은 실험으 로 확인해 보는 수밖에! "실프, 운디네, 사라만다, 노움, 잭 오 랜턴! 너희들은 지금부터……!" 난 다섯 정령들에게 생물을 이용한 실험을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것은 결계의 범위와 모양을 알아보기 위해 생물을 직접 궁전 안으로 투입시키는 방법이었다. 아까 노움이 했던 것처럼 개미를 이용하여 생물이 결계를 통과 할 수 있는 위치와 범위를 알아내고, 허공에 쳐져 있는 결계는 날아다니는 새를 이용하여 알아내고자 했다. 정령들이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식으로 어느 위치에서 생물이 통과했다 통과하지 못했다를 알려주는 것이었고 나와 아트 로포스가 하는 일은 그들의 보고를 받아 그것을 토대로 결계의 범위와 모양 을 구상해내는 것이었다. ……. 실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벌써 해가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 이다. 하지만 모든 실험이 다 끝났을 때에 나와 아트로포스는 마침내 결계의 범위와 모양을 구상해내었다. 결계는 궁전의 바깥까지 포함하여 반구형(半球 形)으로 둘러쳐져 있었는데 그 진짜 모습은 그물이었다. 즉, 반구형의 그물 이 궁전에 결계로써 둘러쳐져 있었던 것이다. 에…… 그물 구멍의 크기는 사람이 낮은 포복하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그물 결계가 아닌 완전한 반구 결계를 치면 참새나 곤충 같은 작은 생명체가 궁전 안의 정원에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결계를 그물 모양으로 만든 건가? 예상 밖으로 천마족 지배자는 자연을 사랑하는 환경론자일지도…….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모든 실험이 끝나고 결계의 범위와 모양을 파악하고 나자 아트로포스가 나 에게 침투 방법을 물어왔다. 생각 같아서는 라케시스의 힘으로 몸을 작게 만 든 다음 천마족 지배자를 죽인 후 탈출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임무를 완수하 고 탈출할 때 결계를 뚫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무리였다. 그래서 난 약간 다 른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음…… 아무래도 내가 저 안에 스스로 침투해서 나중에 천마족 지배자 죽 인 후에 라케시스의 힘으로 몸을 작게 만들어서 결계를 탈출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저 안으로 들키지 않게 들어갈 거죠?"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난 그렇게 얼버무린 다음에 아트로포스에게 통신용(?) 목걸이를 달라고 했 다. 내 요구에 아트로포스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으나 순순히 목걸이를 건 네주었다. 아트로포스에게서 목걸이를 받은 나는 그녀에게 저번과 같은 주문 을 했다. "아, 그리고 이쯤에서 차원 이동 마법진을 준비해 줘. 일을 끝내자마자 바 로 날라야하니까." "…… 알았어요." "그럼 빨리 끝내고 올게." 난 그 말만을 남긴 채 어둠이 내려앉은 궁전 쪽으로 접근했다. 아트로포스 의 호위를 맡고 있는 운디네를 제외한 네 정령들이 날 도와주었기 때문에 궁 전 경비병들의 눈에 띄지 않고 무사히 결계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난 정령들이 조사해놨던 결계의 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것은 완전 히 그물에 걸린 고기가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그물 구멍의 크기가 고기의 몸집보다 크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바스락- 땅에 뿌리를 박은 잡초 위를 낮은 포복 자세로 열심히 기었다. 자신들의 몸 으로 결계의 틈의 위치와 크기를 정확히 알려주고 있는 정령들 덕택에 난 무 사히 결계를 통과할 수 있었다. 어쨌든 아주 쉽게 결계 안으로 침투한 나는 통신 목걸이로 라케시스에게 나중에 일 완수하면 내 몸을 작게 만들라는 지 시를 내린 후 초월의 꽃 열매의 초중력을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궁전의 성벽 을 넘어 궁전 건물의 지붕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천마족의 지배자라고 생각되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 아서 알려줘." 난 네 정령들에게 명령을 했고 실프와 잭 오 랜턴은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사라만다와 노움은 언제나처럼 투덜거린 다음에 내 명령대로 건물 안에 들어 가 천마족 지배자를 찾아다녔다. 난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건물 지붕 위에서 편하게 시간만 보냈다. "조사 끝났어요."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네 정령들이 거의 동시에 돌아와 나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난 네 정령들이 전부 다른 천마족을 찾아서 보고할 것이라 생각했 다. 하지만 정령들의 얘기를 종합하자 천마족 지배자로 지목된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흘…… 네 정령들이 그 녀석을 천마족 지배자로 지명했으니까 설마 틀리지 는 않겠지. 어쨌든 그 녀석을 찾아서 정체를 물은 다음에 없앨까 말 것인가 를 정하자. 휘잉- 난 정령들이 지목한 건물 쪽으로 날아가 그 천마족 지배자가 머물고 있는 방의 창문을 빠른 속도로 뚫고 지나갔다. 당연히 창문은 와장창 부수어졌지 만 창문 깨지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실프가 창문 주위에 일시적인 진 공을 만들어 소리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깨진 창 조각이 방 안으로 떨어질 때 나는 소리까지는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예상 하고 창문을 깬 것이라 방 안에 있던 자가 날 발견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 다. "중용자인가?" 내가 방 안으로 무단 침입을 하자마자 내 귓속으로 차분한 어조의 물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정령들이 보고했던 대로 카리스마가 팍팍 느껴지는 중년 천마족 남자가 침대에 여유있게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본 순간 그 중년 천마족 남자가 천마족 지배자일 것이라는 느 낌이 팍팍 들 정도였다. "…… 당신이 천마족 지배자인가?" 척 보면 딱이었지만 예의 상 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천마족 중년 남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내 잘못을 지적했다. "내가 먼저 물었네." "……." 흘…… 어차피 예절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천마족이면서 그런 걸 왜 따 져? 그냥 내 질문에 대답만 하면 그만이지! "난 중용자 이그드라실이다. 넌 천마족 지배자인가?" 약간 기분이 나빠졌기 때문에 내 어투도 조금 거칠어졌다. 그러자 천마족 중년남자는 또다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게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존재에게 쓸 수 있는 어투인가?" "……." 흐으…… 이건 뭐 천신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구만. 천마족 지배자라고 해서 엄청나게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점점 빗나가 고 있는 듯한……! "난 천마족 수장 광천마왕(光天魔王) '페르오'라네. 벌써 천마계의 고위 간 부들을 모두 죽인 그대의 솜씨에 우선은 경의를 표하지." 천마족 지배자 페르오의 어조는 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결코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경비병들을 불러 날 제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뭔가 나하고 얘기를 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 난 질문을 던졌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2-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30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444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2-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15 게 시 일 :01/03/29 23:34:51 수 정 일 : 크 기 :10.3K 조회횟수 :199 "오늘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말투에 싸가지가 없는 건 안 바뀌는군. 뭐, 그대와 난 어차피 적이니까 그 런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흘…… 도대체 저 천마족은 왜 계속 내 질문을 씹는 거야? "방금 난 내 방문을 네가 알고 있었냐고 질문했다." "아, 그렇군. 그런데 그런 질문은 어리석지 않나? 내가 어떻게 그대의 방문 시기를 알 수 있겠나? 그저 언젠간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지." 페르오는 여전히 침대 위에 걸터앉은 자세로 대답했다. 내 기습 공격에는 전혀 대비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난 그것에 관해 질문을 했 다. "나하고 무슨 할말이 있나? 중용자와 싸울 준비는 전혀 안된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네. 단지 중용자와 목숨을 걸고 정정당당히 겨뤄보고 싶었을 뿐이지. 그리고 그대의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는 상대를 기습해서 죽일 정도 로 냉혹한 것 같지 않으니까 말이야." 헐…… 그러셔? 그럼 지금 당장 기습적으로 공격을 해서 당신 숨통을 끊어 드릴까? 말만 해. 머리를 단번에 잘라줄 수도 있고 가슴에 구멍을 뚫어줄 수 도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넌 혼자 지내나? 아니면 중용자의 침입에 대비해서 특별히 혼 자 있는 건가?" 왠지 천마족 지배자인 페르오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에 난 싸움은 뒷전으 로 하고 질문을 해댔다. 페르오 역시 만나자마자 싸우는 건 별로인 듯 내 질 문에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난 원래 혼자 사네." "결혼도 안 했나?" "그렇다네. 여자와 같이 있는 건 전사로서의 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지. 나 중에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여자와 같이 있고픈 생각은 없네." "설마…… 여자와 같이 자본 적이 없다는 건 아니겠지?" "난 동정이네. 따라서 여자와 같이 자본 적이 없지. 아마 계속 동정인 채로 살다가 수명을 다 할 거라고 생각하네." "천마족 수장의 위치에 있으면서…… 왜 쾌락을 추구하지 않지?" "난 나 자신을 수련함으로써 쾌락을 추구하네. 다른 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쾌락을 추구할 뿐이고. 천신족들의 말대로 하자면 난 정신적인 쾌락 주의자…… 아니, 그것보다는 명예나 강한 힘을 추구하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거네." 천마족 지배자 페르오의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것이었다. 아 니,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페르오가 천마족의 수장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실 력을 닦을 만한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슬슬 시작하지. 계속 있다가는 그대의 침입 사실이 경비병들에게 알 려지게 되고 그러면 정당한 결투를 할 수 없게 되니까 말이야." 페르오는 그렇게 말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내 앞쪽에 섰다. 그것은 명백히 나와 일대일로 싸우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 다. "넌 중용자와 싸워서 이기리라 생각하나?" "후후, 지면 죽게 되겠지. 그래서 난 최선을 다할 거네. 중용자를 이기면 난 최강의 존재가 되는 거고 중용자에게 지면 지금까지의 천마족 수장처럼 조용히 사라지겠지." 흘…… 정말 나하고 싸우고 싶었던 건가? 어쩌면 페르오가 제일 무서운 녀 석일지도 모르겠군. 지금까지 천마족의 강자들을 쓰러뜨리면서 현재의 자리 에 오른 것이라면…… 내가 당할 지도……. "와라, 중용자!" 우우웅- 천마족 지배자 페르오의 몸에서 강한 천마장이 방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천마장은 외부의 천마장과 공명을 일으켜 강력한 에너지를 형성했다. 그 에너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난 이곳을 마나회로로 덮지 않고 대신 내 주위 의 천마장만을 몰아내어 내 몸 전체에 마나장을 걸었다. 원거리 공격은 천마 계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서 접근전을 펼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슈욱- 난 초중력의 힘을 사용해서 빠른 속도로 페르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결코 녀석 공격하기 좋으라고 무식하게 일직선으로 날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방향 을 틀어 접근 루트를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 지만 페르오는 내가 몸을 움직이자마자 접근전임을 알아채고는 자신의 몸 주 변에 고에너지를 뭉쳐두었다. 그래서 난 섣불리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흘…… 나보다는 싸움을 많이 한 페르오가 접근전에는 유리할 텐데…… 어 쨌든 파괴적인 원거리 마법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접근전 밖에 나에 게 승산이 없어! 죽기살기로 덤빈다! "죽엇!" 난 여섯 번째 성물인 얇은 장갑의 능력을 앞세워서 페르오에게 주먹을 날렸 다. 물론 성물의 힘만으로는 페르오에게 타격 주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 문에 내 주먹 주위에 강한 바람의 회전톱날을 만들었다. 마나회로가 충만한 회로계에서는 근접전용의 마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내가 쓰는 마법은 순 전히 내가 생각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콰콰쾅- 강한 힘을 내는 여섯 번째 성물의 능력과 마법으로 만든 회전톱날, 그리고 실프의 바람 공격이 한꺼번에 페르오에게 전해졌지만 페르오가 만들어놓았던 고에너지를 뚫지 못했다. 그래도 내 공격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내 공격을 받은 페르오의 가슴 쪽 고에너지 방어벽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마광포(魔光砲)!" 방어벽의 일부가 무너지자 페르오는 즉시 반격에 나섰다. 그가 사용한 것은 뭉쳐놓은 고에너지를 응축시켜 발사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속도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기 때문에 페르오 가까이 있었던 나는 그 빛덩어리 를 단 하나도 피하지 못하고 모조리 맞아야했다. 콰콰콰쾅- 폭발음이 거의 동시에 들려서 구분하기는 어려웠지만 대충 열 개 정도의 마 광포를 맞은 것 같았다. 다행히 처음부터 내 몸에 마나장을 걸쳐놓고 공격받 은 순간 정령들도 방어를 해줬기 때문에 단 한 번의 반격에 골로 가는 비극 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내가 받은 충격은 컸다. "마광시(魔光矢)!" 마광포의 충격으로 내가 정신을 못차리고 있을 때 페르오가 제 2의 공격을 가해왔다. 빛덩어리로 화살을 만들어 날리는 것이었는데 아까와 마찬가지로 빛처럼 빠른 속도라 육안으로 그 빛화살을 확인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크윽!" 몸 여기저기서 통증이 느껴져서 난 비명 비슷한 신음을 내질렀다. 통증이 오는 부위는 왼쪽 어깨 부근과 오른쪽 옆구리, 그리고 오른쪽 정강이 쪽이었 다. 페르오가 쏜 빛의 화살이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는 완전히 화살에 관통 당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 다. 하하…… 의식이 멀어져 간다…… 이번에는 라케시스가 날 구해주지 않는군. 하긴, 페르오의 공격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날 구해줄 시간도 없었겠지…… 어쨌든 난 이렇게 여기서 죽는 건가? 고통 때문에 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니 반격 같은 건……. "……!" 그때 순간적으로 내 머리 속에서 아트로포스의 영상이 떠올랐다. 내가 무사 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트로포스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 서 라케시스와 클로토의 모습,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심지어는 지금까지 만났던 인간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상당히 짧 은 시간에 그런 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게 정말 이상했지만 그 머 리 속 영상들로 인해 난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끈'이었다. 우웅- 머리 속에서 떠오른 끈의 이미지는 그대로 외부 세계에 적용되었다. 난 분 명히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까까지의 고통 때문에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 는 내 두뇌에서 전혀 처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끈의 이미지를 떠올린 후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페르오의 모습과 건물의 모습, 심지어는 나 자신의 모습조차 볼 수 있었다. 마치 제삼자의 입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쩌저적-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내가 이미지화한 끈에 의해 유 리에 금이 가듯 갈라졌다. 실제로 공간이 갈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내 머리에 서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인식을 했다. 어쨌든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갈라졌 던 공간은 아무 일 없이 원래대로 되었고 나 역시 몇 분 전에 깨고 들어왔던 창문 앞쪽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 있었다. "이것이…… 중용자의 힘인가……?" 페르오는 어디 하나 다친 곳 없는 몸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만 그의 어조는 죽음을 목전에 둔 것처럼 힘이 없었다. 반면 난 왼쪽 어깨와 오 른쪽 옆구리, 그리고 오른쪽 정강이 쪽에 피를 묻히고 있었지만 아까 전에 입었던 상처는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끈의 이미지가 내 상처를 낫게 하고 페르오의 몸 내부를 칼로 긋듯이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지금까지의 모든 천마족과…… 천신족이 중용자 앞에 무릎을 꿇었 는가를 알겠군……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중용자를 이긴다는 건…… 불가능해 ……." 털썩- 천마족 지배자인 페르오는 그 말을 끝으로 차가운 방바닥에 몸을 뉘였다.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그 어떤 부상도 없는 듯했으나 그의 부릅떠진 눈은 그 가 죽었음을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미 페르오는 죽었으나 그가 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중용자의 힘이 아니야…… 끈을 지배하는 자의 힘이지." 쿵쿵쿵- 그때 누군가 페르오의 방에 침입했음을 뒤늦게 알아챈 경비병들이 열심히 이리로 뛰어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난 즉시 창문 쪽으로 몸을 던 졌다. 어차피 성물의 초중력을 사용하면 가볍게 허공을 날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남아 있는 끈의 이미지를 이용해서 비행을 하고 있었다. 비행 속 도가 빨랐기 때문에 결계의 바로 앞까지 가는 건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한 결계가 완전히 부서져 사라지는 것도 순간이었다. 끈으로 결계를 사방으로 잡아당겨 그물을 끊어버리듯 제거했던 것이다. "아! 이드 님!" 내가 하늘을 유유히 날아오자 아트로포스가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내 지시대로 발 밑에 차원 이동 마법진을 그려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난 그 마법진을 이용하지 않고 그냥 아트로포스의 허리를 안아 그대로 천마계에서 천신계로 워프했다. 끈으로 시공간을 휘게 만들어 아주 짧은 시간에 차원 이 동 마법과 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윽……!" 성공적으로 천신계에 도착한 나는 끈의 이미지를 놓쳐 버렸다. 그래서 끈의 이미지를 떠올린 후 느끼지 못했던 피로를 한꺼번에 받게 되었다. 그 피로는 생각보다 강해서 난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땅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괜찮아요?!" 갑자기 내가 무릎을 꿇자 아트로포스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게다가 내 옷에 피까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랬다. 하지만 난 피로 때문에 제대로 입 열기도 힘들어서 그녀에게 피로를 풀어달라는 몸짓을 했고 아트로포스는 서 둘러 영인관으로서의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엄청난 중압감으로 날 짓눌렀 던 피로가 가시며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후우……." "이제 괜찮아요?" 내 표정이 한결 나아진 것을 보면서도 아트로포스는 내 말을 듣고 싶은 듯 이 그렇게 물어왔다. 나 역시 그녀에게 걱정 끼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대답했다. "괜찮아. 그리고 피는 내 피가 아니니까 걱정 말고." 흘…… 지금 내 옷에 묻은 피는 내 피인데 내 피를 내 피라고 하지 못하는 이 안타까운 상황……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나와 같은 심정인가? 그거하고 이 상황은 다르나? 흐음…… 어쨌든 내 불쌍한 피들……. "천마족 수장은 어떻게 됐어요?" 그 질문을 하는 아트로포스의 얼굴에는 천마족 수장이 죽었기를 바라는 마 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래서 난 천마족 지배자 페르오의 현재 위치를 간단하 게 알려 주었다. "저승에서 놀고 있어." "휴…… 다행이네요. 무사히 성공해서." 내 대답에 아트로포스는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죽은 페르오는 전혀 불쌍하 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페르오는 무시하고 내가 살아 있다 는 것에만 기뻐했다. 아직 천신족 지배자의 처리가 남아있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살아있다는 것에 기뻐하기로 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3-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31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483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3-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25 게 시 일 :01/03/31 19:29:05 수 정 일 : 크 기 :9.2K 조회횟수 :38 찌르르르- 저녁 7시가 되니까 어김없이 귀뚜라미가 노래를 불렀다. 천신계와 천마계를 뻔질나게 다니면서 느낀 것은 자연 자체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었다. 천신 계는 천신족뿐만 아니라 천신계에 사는 동물과 식물들조차 정확히 짜여진 삶 을 살고 있었고 천마계는 그와 반대로 완전 뒤죽박죽인 삶의 방식을 채택하 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다는 사 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 저기가 바로 천신족 수장이 살고 있는 궁전이군요." 아트로포스는 깔끔한 흰색의 궁전을 보고 약간 놀란 어조로 입을 열었다. 친절한 천신족 평민들에게 열심히 안내를 받아 천신족 수장이 살고 있는 궁 전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정보를 캐본 결과 천신족 궁전 에는 결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것은 정령들을 이용하면 천신족 지 배자의 방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참, 로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천신족 지배자 제거가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난 작전 같은 건 구상하지도 않고 대신 아트로포스에 대한 것을 묻고자 했다. "라케시스가 전에 말하길, 내가 중용의 법칙을 모두 완수한 다음에는 난 영 계로 갈 거라 했는데…… 로스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 내가 질문을 하자 아트로포스는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 지 놀람의 탄성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중용의 법칙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중 일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 아마 회로계로 돌아가게 될 거예요…… 그리고…… 영인관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게 되겠죠……." 별로 나쁜 조건이라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트로포스의 말투에는 힘이 없었다. 비록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우울해하는 이유는 더 이상 나와 만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설령 아니더라도 난 그렇게 믿기로 했다. "저기…… 이드 님……." 그때 아트로포스가 모기만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아 트로포스는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이드 님은…… 이드 님은…… 저를…… 어떻게…… 아, 아니에요. 신경 쓰 지 마세요." 계속 더듬거리다가 결국엔 고개를 흔든 아트로포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한다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트로포스에게서 풍겨 나오는 알 수 없는 분위기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어렴풋이 나타내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난 일부러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우선 쳐들어가기 전에 실력 점검을 해야겠어." 우웅- 난 마나회로를 개방하지 않고 머리 속으로 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처음엔 쉽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천마족 지배자인 페르오를 처리할 때의 경험을 살려 금방 끈의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끈의 이미지를 형성한 나는 즉시 끈을 이용해 내 옆에 있는 나무를 건드렸다. ……. 나무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 어떤 흔적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 었던 것처럼 정말 조용히 사라졌다. 그렇게 간단하게 나무를 제거한 나는 다 시 끈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나무가 사라진 위치에 끈의 진동을 증폭시켰다. "아……!" 나무가 사라질 때는 별로 놀래지 않던 아트로포스가 이번에는 놀란 탄성을 내질렀다. 나무가 아까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무 의 모습만을 재생해 놓은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살아 있는 나무를 창조해 낸 것이었다. 후우…… 이것으로 끈은 어느 정도 다룰 수 있게 됐군. 페르오하고 싸울 때 의 경험을 바탕으로 며칠간 열심히 연습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하여간 끈이란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소멸뿐만 아니라 창조까지 가능 하게 하다니……. "내 피로 좀 풀어 줘." "아, 네!" 끈 사용 연습을 하고 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해져서 난 아트로포스에게 부탁 을 했고 아트로포스는 계속 나무만 쳐다보다가 내 부탁에 황급히 대답하며 내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머리도 맑아지고 끈 사용에 자신감도 붙은 이상 난 이대로 천신족 지배자의 제거를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그럼 난 천신족 지배자 없애러 갈게." "저기……!" 내 말에 아트로포스가 이번에도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난 그런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챘다. "운디네는 로스와 같이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고마웠어." 난 그 말을 끝으로 재빨리 천신족 지배자가 살고 있는 궁전 쪽으로 뛰어갔 다. 어차피 중용의 법칙을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트로포스와는 더 이상 만나 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으로 됐다라고 나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나 난 얼마 뛰어가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비록 앞날은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가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아트로포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서 불확실한 미래를 담은 말을 큰소리로 내질렀다. "반드시 성공하고 돌아올게!" 휘잉- 그 말을 내뱉자마자 난 바로 천신족 지배자의 궁전으로 초중력을 사용하여 날아갔다. 아트로포스가 지금 내 말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고 싶지 않았다. 확실하게 약속할 수 없는 말을 해놓고 가는 것이 오히려 마음 에 걸릴 뿐이었다. 그렇지만 난 내 말을 철회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 다. 그저 내 생각대로 말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을 가볍 게 무시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아트로포스가 우는데?"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군." 크으…… 노움…… 사라만다…… 난 아트로포스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너희들 나한테 한 번 죽어보 고 싶냐?! "벌써 다 왔어요! 조심하세요!" 내가 노움과 사라만다에게 속으로 호통을 치고 있을 때 실프가 경고를 해주 었다. 실프의 말대로 어느새 난 궁전의 담벼락 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을 날고 있는 날 발견한 궁전 경비병들이 살기를 뿜으며 날 향해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전투 상황은 나에게 더 이상의 다른 생각 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퍼퍼펑! 약간 능력 있는 경비병들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나에게 원거리 공격을 가 해왔다. 하지만 그 정도의 공격은 내 정령들이 가볍게 막아낼 수 있었기 때 문에 난 그들의 공격을 싸그리 무시했다. 대신 빠르게 궁전의 정원을 거쳐 본건물에 침입해 들어갔다. 본래는 정령들을 이용해 천신족 지배자만 찾아낼 생각이었으나 이미 들킨 이상 무작정 쳐들어가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다. "……!" 궁전의 본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중용자의 감각이 어떤 방을 가리켰다. 그것 은 그 방에 천신족 지배자가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난 주저 없이 그 방으 로 날아들었다. 무식한 돌진으로 방문이 박살나면서 문의 파편이 튀었을 때 파편 사이로 무엇인가 날카로운 물체가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난 그것을 별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팍- 날카로운 물체가 문 반대편의 복도 벽에 맞는 소리를 들으며 난 방 안에 있 는 자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그 자는 파란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 50대 정도 의 중년남자였는데 그의 몸 주변에는 파란색인지 투명한 색인지 헷갈리게 하 는 물이 그를 둘러싸듯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자의 정체와 공식명칭 을 바로 알아차렸다. "네가 천신족 수장 수천신왕(水天神王)이냐?" "…… 그렇다. 내가 바로 수천신왕 '뉴드메크'다." 내가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더욱이 서로 적이기 때문인지 천신족 지배자 인 뉴드메크의 어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뉴드메크에게 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았다. "중용자가 침입했다!" "수천신왕 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밖에서는 경비병들이 그렇게 떠들어대며 이리로 열심히 몰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난 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끈의 이미지는 곧 외부에 영향을 주었고 나와 뉴드메크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방을 완전히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두께가 30cm 정도 되는 콘크리트로 방을 완 전히 둘러쌌던 것이다. 콘크리트 자체는 이 세계에 없으나 콘크리트라는 것 이 결국 자연재료를 이용해서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끈을 통해서 콘크리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콘크리트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끈을 이용하면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의 경우가 그랬다. ……. 두께 30cm의 콘크리트 때문인지 외부의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저 콘크리트가 울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마도 경비병들이 콘크리트를 부수 기 위해 별짓을 다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나마 조용한 상태에서 뉴드메 크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 나는 여전히 끈의 이미지를 놓지 않으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넌 결혼했나?" "…… 그렇다." "천신계에서는 힘이 강하다고 최고 자리에 앉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이다." "그럼 넌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앉게 되었나?" "……." 세 번째로 던진 질문에 뉴드메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별로 대답하고 싶은 질문이 아닌 듯했다. 그래서 내가 그의 대답을 예상해서 물어 보았다. "네 아버지가 전대(前代)의 천신계 수장이었나?" "……!" "아버지의 뒤를 이은 건가? 물론 수장의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너의 성품을 가지고 다른 고위 천신족들이 찬반 투표를 했겠지." "……!" "결국 천신계에서는 서열이 그 자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는 소리군. 하긴, 서열을 힘으로 정한다는 것 자체가 천신계에서는 비윤리적인 일일 테 니까 말이야." "……!" 뉴드메크는 내 말에 하나하나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내 말이 전부 들 어맞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분은 좋아졌다. 그렇지만 그렇 다고 뉴드메크를 살려둘 수는 없었다. "그럼 간다." 난 간단한 말을 내뱉은 뒤에 마치 공격할 것처럼 폼을 잡았다. 하지만 몸을 이동하지는 않았다. 천신장이 가득한 방 안에서는 원거리 마법 공격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난 천신족 지배자인 수천신왕 뉴드메크의 실력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산우만천(酸雨滿天)!" 중용자라는 막강한 적을 만난 뉴드메크는 처음부터 가장 강한 기술로 승부 를 걸어왔다. 그것은 기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강한 산성비를 나한테 뿌 려대는 것이었다. 그 물방울에 맞은 콘크리트 벽이 급히 부식되는 것이 명백 한 증거였다. 흐음…… 끈을 이용해서 방어벽을 치니까 저 산성비가 나한테 전혀 닿지를 않는군. 마법으로 방어벽을 치면 어느 정도 타격을 받는데 그것도 없고…… 그런데 확실히 뉴드메크의 실력은 천마족 수장이었던 광천마왕 페르오보다 떨어지는군. 뭐 당연한 결과이긴 하지만. 자, 이제 그만 놀고 끝내볼까?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4-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3/31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736 제 목 :[사이케델리아] 34장:각 계의 지배자들 -4-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26 게 시 일 :01/03/31 19:29:48 수 정 일 : 크 기 :9.4K 조회횟수 :33 우웅- 난 끈을 진동시켰다. 그러자 큰 에너지를 갖게 된 끈이 뉴드메크에게 그 에 너지를 고스란히 전달했다. 자신의 몸으로 굉장한 크기의 에너지가 흘러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뉴드메크가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에너지 전달 속 도가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 "허억ㅡ!" 뉴드메크는 순간적으로 크게 헛바람을 삼켰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라면 발 버둥이었으나 그는 금방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엄청난 에너지가 전달됨에 따라 몸의 세포를 구성하고 있던 전자들이 들뜨게 되고 그로 인해 결국 원자 간의 결합이 줄줄이 끊어지면서 뉴드메크의 몸이 그대로 없어져 버렸던 것이 다. 물론 그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라든가 완전 분해가 되지 않은 세포 들은 방 안에 고루 퍼져 있었지만 그것을 가지고 '뉴드메크는 살아있다'라고 볼 수는 없었다. 흘…… 끈을 이용하니까 싸움이 너무 싱겁게 끝나는군. 하긴, 페르오와 싸 울 때에도 끈의 힘을 이용해서 단번에 끝장을 봤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이렇게 중용의 법칙을 완전히 완수했는데 왜 영계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지? 설마 영계에서 내 작전을 알아차리고 계획을 변경 한 건 아니겠지?! 우우웅- 내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기이한 힘이 내 몸 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 기이한 힘에는 나에게 해가 되는 위협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힘에 몸을 완전히 내맡겼다. 그 기이한 힘이 날 영계로 데려다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우웅- 기이한 힘이 내는 울림소리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기이한 힘이 내 머리 속으로 침투하려고 했다. 그것은 라케시스가 말했던 것 처럼 내 기억을 지우려는 영계의 행위였다. 그래서 난 즉시 끈의 이미지를 떠올려 그 기이한 힘을 밀쳐내었다. 기이한 힘의 위력은 상당했으나 결국 둘 사이의 씨름은 끈의 승리로 돌아갔다. "으……!" 내 기억을 지우려는 기이한 힘을 밀쳐내고 나서 난 상당한 어지러움을 느꼈 다. 특히 내가 물 속에 잠겨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속도 메슥거렸다. 하지만 내 시야에는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고 내 몸에는 그 어떤 감각도 느 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흘…… 지금 난 어떻게 되어있는 거지? 무슨 물 속에 잠긴 느낌이 들긴 하 지만…… 몸의 감각이 전혀 가동을 안 하는데 어떻게 그런 느낌을 느끼는 거 야? 정말 이상하구만. 게다가 내가 살아있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고 있으니… …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걸? 《중용자여……》 얼라리? 내 귀는 분명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있는 상태인데 웬 음성 변조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그대는 지금 영계라는 곳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에엥? 영계? 그렇다는 것은…… 지금 나한테 말을 걸고 있는 녀석은 영계의 주인이라는 건가? 《그렇다……》 흘…… 여기가 영계라는 건 좋은데 그 음성 변조한 것 같은 목소리는 바꿀 수 없어? 듣기가 상당히 거북하구만. 그리고 웬만하면 마지막 말은 좀 분명 히 끊어서 하라고. 그렇게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면 듣는 게 짜증난단 말이 야. 《그대는 무단으로 이곳에 들어왔다……》 흐으…… 내 말은 전혀 안 듣고 있군. 아, 뭐 좋아. 어차피 나도 영계에 좋 은 감정을 가지고 들어온 건 아니니까. 그런데 내가 무단으로 들어왔는데 뭐 불만 있어? 《왜 내 힘에 거역했나……》 흘…… 그거? 내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데 그럼 가만히 있냐? 넌 누가 네 기 억을 조작하면 기분 좋겠어? 《기분 나빠할 필요 없다…… 그대는 그대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 그건 그렇긴 한데, 문제는 날 돌려보낼 때 내 기억을 왜 쓸데없이 건드리려 는 거냐고. 그냥 지금 그대로 날 보내면 되잖아? 《그대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면 어떨 것이라 생각하는가……》 음…… 그거야…… 처음엔 괴롭겠지. 내가 전에 겪었던 것처럼 꿈을 꾼 게 되어버리니까. 《그 괴로움을 또 겪고 싶은가……》 물론 아니지. 누가 일부러 괴로움을 겪고 싶어하겠어? 《그것을 알면서도 어째서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려 하는가……》 흘…… 그 답은 하나밖에 없지. 《그 답이란 것은 무엇인가……》 뭐냐고? 간단하게 말해서…… 난 인간이라는 것! 《……》 이봐, 뭐라고 대답 좀 해.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화낸다? 《……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흘…… 그거야 간단하지. 인간은 누군가 자기 기억을 건드리는 걸 무지 싫 어하거든. 자기 스스로 그 기억을 없앤다면 또 모르지만. 《괴로운 걸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가……》 글쎄…… 괴롭든 괴롭지 않든 남에 의해 만들어진 삶을 살고 싶지 않은 게 인간의 심리라서 말이야. 게다가 괴로움이 없으면 진정한 기쁨도 느낄 수 없 으니까 괴로움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 그렇다고 괴로움의 빈도가 더 많으면 그것도 골치 아프지만. 《어째서 괴로움이 없으면 기쁨을 느낄 수 없나……》 흘…… 그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군. 인간은 기준이 없으면 인식을 못하는 멍청한 동물이라서 그래. 항상 기쁜 일만 보고 자란 사람은 그 기쁜 일이 기쁘다는 인식을 하지 못해. 하지만 괴로움을 맛보게 되면 지 금까지 겪었던 기쁜 일들이 얼마나 기쁜 것이었던가를 알게 되지. 괴로움이 라는 기준이 있어야 기쁨을 인식하게 되고 반대로 기쁨이라는 기준이 있어야 괴로움을 인식하게 되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군……》 뭐 굳이 머리 아프게 이해할 필요는 없어. 어쨌든 괴로움을 겪어도 내가 겪 으니까 쓸데없이 내 기억을 함부로 지울 생각은 말라고. 《영인관 아트로포스와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도 좋은가……》 ……! 《괴롭지 않은가……》 …… 물론 괴로워. 하지만 이거 하나는 집고 넘어가자고. 그 괴로움을 애초 에 제공한 건 누구지?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너의 지시를 따라 날 이곳에 데 려왔어. 한마디로 바로 너 때문에 난 이곳에 와서 중용의 법칙을 실행하고 결국엔 아트로포스와 헤어져서 내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거라고. 알겠어? 《그래서 그대는 날 없애려는 것인가……》 맞았어. 중용의 법칙이라는 이상한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고. 왜 넌 중용의 법칙이라는 것으로 이 세계를 통치하려고 한 거냐? 천신계 와 천마계가 싸워서 회로계가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냐고! 멸망과 흥성 이라는 그런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스스로 자리를 잡아나가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대는 천신계와 천마계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아르카디아가 낫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천신족과 천마족의 고위 능력자들만이 중용자에게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르카디아지! 한번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야 천신 계와 천마계가 싸움을 자제할 거 아니냐고! 본격적인 전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천신족들이 천마족들을 죽여버리겠다고 설치는 거 아니야! 《주기적인 세계는 안정하다…… 자연은 주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살아있다 …… 그 주기성을 천신족과 천마족, 그리고 인간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자연이 주기성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자연에도 불규칙성이 많 아. 수많은 종들이 자연에서 생기지만 그 중의 많은 수가 멸종해버리지. 그 리고 살아남은 종들도 불규칙한 자연에 적응하면서 진화하고. 그런데 넌 진 화하려는 이 세계를 중용의 법칙이라는 것으로 억누르고 있어. 이 세계가 스 스로 진화해 나가는 걸 그냥 지켜보면 되잖아? 《이해할 수 없다…… 주기성을 잃어버리면 이 세계는 불안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끝은 파멸뿐이다……》 파멸이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생명은 태어났다가 죽는 거라고. 파 멸은 필연적인 거야! 아무리 완벽한 주기성을 가지고 있어도 파멸은 오게 되 어 있어! 날 중용자로 택했다는 것 자체가 네가 만들어낸 주기성의 파멸을 뜻하는 것이니까! 《난 파멸하지 않는다…… 이 세계도 파멸하지 않는다…… 파멸하는 건 중 용자 그대 하나뿐이다……!》 우우우웅- 처음으로 영계의 지배자 목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가 느껴졌다. 그것은 화가 난 영계의 지배자가 날 없애기 위해 가동시킨 힘의 울림이었다. 그래서 나도 즉시 끈의 이미지를 떠올려 그 힘에 대항했다. 영계 지배자의 힘과 내 끈의 힘은 격돌을 시작하자마자 굉장한 진동을 발생시켰다. 그리고 그 진동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우웅- 우웅- 크으…… 역시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영계답군. 끈을 이용하면 간단하게 없애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하면 내가 먼저 쓰러질지도……. 《중용자여……》 흘…… 왜 불러? 날 불러놓고 정신을 빼놓은 다음에 힘을 가중시킬 생각이 냐? 내가 그런 뻔히 보이는 수법에 당할 것 같아? 앗! 그러고 보니 이미 녀 석이 부른 거에 대답해버렸잖아? 《그대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이 있으면 그대의 세계를 그대 마음대로 만들 수가 있다…… 서로 득이 되지 않는 싸움은 피하고 서로의 세 계를 지배하는 것이 어떤가……》 흠…… 확실히 사물을 없애고 창조할 수 있는 끈의 능력이라면 내 세계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가능하겠지. 하지만 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어. 《어째서인가…… 그대는 아무런 능력도 없이 그대의 세계 속에서 살아갈 생각인가……》 그것도 싫긴 하지만 내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계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도대체 난 무엇을 통해 성취 감이나 기쁨을 느껴? 내가 할 수 없는 게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을 기쁨으로 여길 거 아니냐고! 《이해할 수 없다……》 인간도 아닌 네 녀석이 이해할 필요는 없어! 어쨌든 너 같은 지배자는 하루 빨리 사라지는 게 이 세계를 위해서도 좋은 거야! 알겠냐?! 《난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로……!》 우우우웅- 잠시 소강상태였던 나와 영계 지배자와의 힘 겨루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 리고 서로 필사적으로 능력을 사용했다. 서로 말로 해서 통하지 않을 경우 할 수 있는 건 결국 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쿠쿠쿠- 무너지기 시작했다. 절대 이 세계의 지배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영계가 내 끈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내 눈으로는 그 어떤 현상도 볼 수 없었지만 내 머리는 분명히 영계의 붕괴를 느끼고 있었다. 번쩍- 어느 순간 빛이 번쩍였다. 그 빛은 영계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였고 내가 이 세계에서의 여행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빛이 사 라진 후 남은 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無)의 공간이었고…… 난 그 무의 공간 안에서…… 서서히 정신을 잃어갔다……. ==================================================================== 다음장으로 사이케델리아가 끝납니다. 다음장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마지막장:지금의 선택 -1-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4/1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685 제 목 :[사이케델리아] 마지막장:지금의 선택 -1-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36 게 시 일 :01/04/01 10:03:32 수 정 일 : 크 기 :12.8K 조회횟수 :82 <마지막 장> 지금의 선택 삐비빅- 삐비비빅- "……!"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난 눈을 번쩍 떴다. 그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어두컴컴한 천장이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의 정체는 알람시계였다. 오늘부터 개강인데다 1교시부터 강의가 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시 계를 아침 6시에 맞춰놓았던 것이다. "하…… 음……." 부스럭- 난 일어나기 싫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하품을 크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굉장히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여러 세계를 돌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주 선명해졌다. 뭐지? 난 분명히 영계의 지배자하고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는데…… 왜 갑 자기 여기 누워 있는 거야? 여기는 분명히 내 집이야. 도대체 언제 돌아온 거지? 그리고 왜 난 아까 개강 어쩌구 알람시계 어쩌구하는 생각을 했던 거 지? 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거야? 화악- 그때 갑자기 거실 쪽에서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평소에 난 방문을 잘 닫지 않고 생활하기 때문에 거실에 불이 들어오자 내 방도 많이 밝아지게 되었다. 그래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이제 막 일어난 어머니 가 아침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어머니가 그릇 준비하는 소리를 들으며 난 거의 반사적으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일상적인 아침맞이를 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기 때문에 난 오히려 의아했다. 뭐냐? 머리 속으로는 분명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몸은 왜 자동으로 움직이 지? 설마 내 몸이 누군가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건 아니겠지?! 철퍽- 난 세면대에 받아놓은 물을 손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물이 튀어 거울이고 내 옷에 그 흔적을 남겼다. 그것을 보면 내 몸이 결코 누군가에게 강제적으로 지배받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철퍽철퍽- 분명히…… 난 영계를 무너뜨리고 이상한 무의 공간에 있었는데…… 그러다 가 내 세계로 건너와 버린 건가?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가 아르 카디아로 넘어가기 전에는 분명 여름이었는데…… 왜 지금 날씨는 이렇게 쌀 쌀하지? 《오늘 날씨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아침에는 춥겠으며 낮 기온은 어 제보다 1, 2도씩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자마자 아침 뉴스에서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 은 지금의 계절이 결코 여름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서 난 달력을 쳐다보았다. 거실에 걸려 있는 달력은 3월달이었다. 3월? 지금이 3월인가? 내가 아르카디아로 건너갔을 때는 분명 6월말이었는 데…… 어째서 지금은 3월인 거야? 설마 내가 없는 동안 시간이 흘러갔다는 소리야? 탁탁- 난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 있는 종이쪽지를 집어들었다. 그 종이쪽지는 내가 수강신청한 과목들을 시간표로 만들어 어제 프린트해 놓은 것이었다. 그 시간표에는 확실히 1교시부터 강의 가 있었다. 잠깐…… 난 분명 어제 이걸 프린트했고…… 오늘 날짜는 3월 5일 월요일… … 그리고 년도는 2001년…… 얼라? 그럼 난 지내지도 않았던 2000년 2학기 는 어떻게 된 거지? 1학년 2학기를 보내지도 않았으면 이렇게 2학년이 되어 수강신청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그런 의문이 들자 갑자기 2000년 2학기 때 보냈던 시간들이 줄줄이 머리 속 을 스쳐지나갔다. 난 분명 2학기를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이 보 냈었다. 그리고 성적은 1학기 때와 별 차이 없이 보통이었다. 그 동안 여자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집에 와서 잠이 나 퍼질러 자는 생활을 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 시간들을 분명히 지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누가 내 기억을 조작한 건가? 그러면…… 설마 망 한 줄 알았던 영계에서 내 기억을 조작한 거야? 얼레? 하지만 영계라면 왜 아르카디아에서의 내 기억을 남겨준 거지? 녀석은 분명 내 기억을 지우려고 했는데…… 이렇게 내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건 분명 이상해……. 탁- 그때 거실에서 아침 준비를 하던 어머니가 밥그릇을 밥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아침 준비가 끝났으니 밥 떠서 먹으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난 반사적 으로 거실로 나가 밥통에서 밥을 떠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렇게 밥을 먹으 면서 난 문득 정령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정령들이 만약 내 몸 속에 있 다면 내가 분명히 아르카디아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실프! 사라만다! 노움! 운디네! 잭 오 랜턴! 아무나 내 부름에 대답해! 있 는데도 대답을 하지 않으면 어떤 보복이 가해질지 장담할 수 없어! 쩝쩝- "……." 집 안에서는 오직 내가 밥 먹는 소리만이 들릴 뿐 그 외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정령들을 불러봐도 대답은 없었다. 그리고 정령 들의 기운 같은 것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느껴지는 건 오늘 아침이 꽤 맛 있다는 것뿐이었다. 《오늘 교통 정보는……》 아버지는 거실에 누워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집은 내가 제 일 먼저 밥을 먹고 그 다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먹기 때문에 아버지는 TV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1교시에 강의가 있으면 아침을 6시 30 분에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탁- 탁- 난 힘없는 발걸음으로 내 방에 들어갔다. 교장 할배가 있던 이상한 세계 빼 고는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정령들이 없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힘이 빠졌 던 것이다. 마나회로나 마법 같은 건 항상 그렇듯이 느낄래야 느낄 수도 없 었다. 하아…… 설마 난 지금까지 꿈을 꾸었던 건가?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 도 있을 수가 없어. 만약 내가 꿈을 꾸고 있었던 거라면 그 몇 년의 시간이 겨우 몇 시간의 꿈이라는 거잖아? 그런 건 수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내가 멍청하게 그딴 꿈이나 꾸고 있을 리가 없단 말이야! "다녀오겠습니다……." 난 힘없이 말한 다음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서 언제나처럼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라타고 대학교까지 갔다. 부우웅- 버스 좌석에 앉아 수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상태가 어떻게 되 어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이곳에서 언제나처럼 살 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끼익- 대학교 앞에서 내린 나는 유유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동안 학교는 전 혀 변한 것이 없었다. 내가 과연 아르카디아라는 세계에서 지냈던 것인지 이 곳에서 방학을 보냈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학교를 보니 반가웠다. 덜컹-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난 학교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 다. 평소에는 그냥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지만 사람이 없을 때는 전기 낭비 차원에서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띵동- 덜컹- 약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난 과방 앞에 있는 사물 함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강의실과 썰렁한 복도를 잠시 쳐다보다가 내 사물함에 채워놓은 열쇠를 잡았다. 그리고 열쇠의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잠겨 있었던 열쇠는 열렸다. 난 열쇠 번호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내 자 신에 놀랐다. "……." 사물함에는 내 책들밖에 없었다. 나와 같이 사물함을 쓰던 녀석은 군대 간 다고 책을 다 가져갔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쓰던 사물함과 별 차이가 없는 네모난 빈 공간에 내 책들만 외로이 남아 있는 모습은 왠지 지금의 나 와 같은 처지 같았다. 쿵- 철컥 난 사물함 문을 닫고 열쇠를 채운 뒤 1교시 강의가 있는 강의실로 향했다. 그것으로 작년 1학기, 2학기와 변함없는 생활 패턴이 시작되었다. ……. 5교시의 전공 탐색 수업에서 난 친구 몇 명을 만났다. 2학년 2학기에 결정 되는 전공 과목에서 나와 같은 전공을 희망하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서로 마음을 터놓은 사이는 아니었다. "방학 동안 잘 지냈냐?" '상진'이라는 녀석이 날 보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 다. 어차피 내가 거의 입을 열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걸 아는 상진은 먼저 화 제를 꺼냈다. "우리 반에서 현대물리 듣는 사람은 너하고 나하고 또 '재호'하고 해서 3명 뿐이야. 모두 일반물리에서 피 봐서 안 듣는데." 흘…… 일반물리에서 피본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뭘. 재호는 A+이고 상진이 는 A고 나는 C+…… 물리 공부하기가 귀찮아서 대충 봤었지. 물리 공부는 하 기 싫지만 물리는 좋단 말이야…… 역시 난 이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인간 ……. "아, 그런데 이번주 금요일에 이학1반 MT가 있는데 안 올 거야?" 화제는 어느새 MT쪽으로 가 있었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이 난 MT 같은 데에 나갈 생각이 없었다. 남들과 어울려 논다는 것도 별로였고 분위기 때문 에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도 싫었으며 밖으로 나간다는 것 자체도 귀찮았다. 그래서 내 대답은 작년과 같았다. "난 안 가." "그래? 웬만하면 나와라. 작년에도 안 나왔잖아? 올해에는 신입생들도 들어 오니까 선배로서 얼굴이라도 보여줘야지." "그래도 안 가. 집에서 뒹굴 거야." "하여튼 생각 바뀌면 언제라도 나와." 상진은 방학 동안 제대로 만나지 못했던 같은 반 아이들과 선배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신입생들을 본다는 것 때문에 MT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듯 했다. 그런 상진의 모습에 MT가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MT에 나가 지 않을 거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개학하고 나서 첫 시간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강의는 간단한 소개만 하고 끝 났다. 그래서 일찍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 언제나처럼 인터넷 을 하던가 게임이나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다른 세계에 갔던 것은 꿈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도대체 언제 나간 거야? 여태까지 기다렸잖아!" 내가 잠긴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갑자기 옆집의 문이 열리 며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집에 살고 있던 여대생이었다. 어머니가 그 집 아줌마와 친하기 때문에 가끔 보는 사람이었 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여대생이 나한테 갑자기 반말을 써서 황당했다. "예? 저요?" "그래 너!" 옆집 여대생은 날 똑바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그런 여대생의 태도에 화가 나서 나도 여대생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사실 지금까지 가끔 보기는 했지만 얼굴을 자세히 본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여대생의 얼굴이 어떻게 생 겼는지는 거의 모르는 상태였다. "……!" 그 여대생의 얼굴을 본 순간 난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르카디 아에서 세 명의 영관 중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말을 놓았던 라케시스의 모습 이었다. 그 라케시스의 얼굴이 머리색만 바뀐 채 여대생의 얼굴에 그대로 달 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설마 내 얼굴 기억 못한다는 건 아니겠지, 이드?" "……!" 여대생이 마지막에 한 그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이드라고 부른 것으로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그 여대생은 분명 라케시스인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드 님." 그때 라케시스의 뒤에서 한 여자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 예의바른 모습과 부드러운 억양을 통해 난 그녀가 영신관 클로토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 만 갑자기 두 여자가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난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너희들…… 어떻게……?" "클로로는 원래 나하고 친구라서 놀러온 거야. 오늘 아침에 아르카디아에서 의 일이 떠올라서 이렇게 널 찾은 거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라케시스는 오히려 나에게 되물어왔다. 그녀뿐만 아니라 클로토도 내가 뭔 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간단하게 결론을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도 몰라." "뭐? 중용자인 네가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안다는 거야?!" 내 대답에 라케시스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클로토는 그런 라케시스를 진정시키며 우선 내 집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어차피 아버지 나 어머니는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나로서는 별 상관없었다. 털퍽 털퍽- 나와 라케시스는 거실 바닥에 털퍼덕하고 주저앉았고 클로토는 조용히 자리 를 잡았다. 그렇게 이야기할 준비를 끝낸 우리는 먼저 현재의 생활에 대해서 말했다. "난 권강한. 대학교 2학년." "난 대학교 4학년이고 이곳 이름은 '임소영'. 뭐 방금 봐서 알겠지만 권강 한 옆집에 살고 있어." "전 소영 선배의 동아리 후배예요. 이름은 '강진희'구요." 간단한 서로의 생활 소개를 끝내고 나서는 언제 아르카디아의 일을 깨닫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예상대로 세 명 다 모두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그 일을 떠올렸다. 문제는 우리들 모두 아르카디아에서의 기억과 이곳의 기 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라케시스와 클로토를 바라 보며 물었다. "너희들, 혹시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아? 진짜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하 는 혼란 말이야." "글쎄? 생각해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전혀 안 그래." "저도 혼란스럽지 않아요. 그냥 그 둘 다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기억의 혼재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난 보내지도 않았던 2000년 하반기 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 라케시스와 클로토처 럼 그 어떤 기억의 혼란도 없었다. 그저 그 기억을 내가 지냈다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빨리 바른대로 불어. 너 도대체 중용의 법칙을 완성한 다음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라케시스는 날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로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영계에서 있 었던 일을 정리하다보면 해답의 실마리가 나올지도 몰랐기 때문에 난 거의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먼저 천신족 지배자를 죽이고…… 그 다음에 영계의 힘에 이끌려 영계로 갔다가…… 영계 지배자가 내 기억을 지우려하기에 서로 싸웠고…… 서로 쓸 데없는 얘기를 하다가 모든 힘을 쏟아 부어서 내가 이겼는데…… 이상한 공 간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에 있었다……." "영계를 없앴단 말이야?!" "당연하지. 내가 졌으면 너희들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잖아." "말도 안돼…… 영계를 없애버리다니……!" 영계의 멸망 소식을 들은 라케시스가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클로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계가 없어졌다는 것은 아르카디아가 멋대로 흘 러간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로스 보지 못했어?" 아트로포스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난 라케시스와 클로토에게 물어보았 다. 하지만 그녀들도 아트로포스에 대한 것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 곳에 같은 기억을 지닌 사람 둘이 있어서 나로서는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만약 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난 모든 걸 꿈을 꿨다는 것으로 해버 리고 여태까지와 똑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 목 [사이케델리아] 마지막장:지금의 선택 -끝- 올 린 ID 류이엘 작 성 시 각 2001/4/1 이 름 이정기 조 회 수 1901 제 목 :[사이케델리아] 마지막장:지금의 선택 -끝- 게 시 자 :sakali(이상규) 게시번호 :8737 게 시 일 :01/04/01 10:03:52 수 정 일 :01/04/01 11:13:05 크 기 :14.5K 조회횟수 :79 철컥- 난 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2교시부터 강의가 있 어서 여유있게 출발하는 것이었다. 어제 만났던 라케시스와 클로토는 나와 다른 대학에 다니고 나보다 모두 나이가 많지만 아르카디아에서의 기억 때문 에 클로토는 나에게 존대를 하고 난 둘 다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 "야! 권강한!" 내가 학교에 도착해서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고 있을 때 누군가 날 불렀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날 부른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처음 봤을 때에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남자 녀석 둘이 날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류드나르!" "……!" 두 명의 남자 녀석 중에서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는 녀석이 '류드나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래서 나는 놀라고 말았다. 게다가 옆에 있는 얼굴 곱 상하게 생긴 녀석은 더 놀라 자빠질 말을 늘어놓았다.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기억 못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설마 오죠룬 마법학교 를 잊어먹은 건 아니겠지? 거기서 모두 같은 학년이었잖아. 그리고 난 재수 없게도 이상한 녀석한테 걸려서 죽었었고." "……!" 설마…… 저 스포츠 머리는…… 성인 만화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졌 던 레리오스…… 그리고 그 옆의 얼굴 곱상한 녀석은…… 남의 마음을 읽어 내는 능력을 가졌지만 이상한 녀석한테 걸려서 죽어버린 테리야크…… 란 말 이야?! "너희들…… 진짜 레리오스하고 테리야크야?" 얼굴 생김새는 분명 레리오스와 테리야크였지만 난 재차 확인해보았다. 그 러자 두 남자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레리오스가 아니면 누구겠냐? 뭐, 여기서의 이름은 '홍우민'이지만." "내 이름은 '정찬호'. 죽었던 녀석이 살아나서 놀랐겠지만 확실히 지금 난 살아있으니까 귀신 보듯이 하지 마라." 하하…… 정말 레리오스하고 테리야크가 맞는 모양인데? 그럼 라케시스와 클로토 뿐만 아니라 얘네들도 기억의 혼재 없이 그곳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살고 있단 말인가? "근데 너 핸드폰 번호 좀 알려줘. 시간 날 때 회포를 풀어야지." 레리오스는 나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핸드폰이 없었다. 항상 혼자서만 다니기 때문에 굳이 핸드폰을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핸드폰 없는데……." "뭐? 대학생이나 돼서 핸드폰이 없다고?" 핸드폰이 없다는 내 말에 레리오스와 테리야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 었다. 그런데 그때 레리오스와 테리야크의 뒤에서 웬 남자 녀석 목소리가 들 려왔다. "핸드폰이 없으면 우리가 돈 모아서 사 줄까?" 그 말을 한 사람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잘생긴 인간이었는데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난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교장 할배가 있는 그 기분 나쁜 세계에서 항상 나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던 네오니스였다. 그리고 그 세 계에서 네오니스의 여자친구라고 할 수 있었던 네스프린이 지금 네오니스 옆 에 서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사실 1학년 때 미적분학 들을 때 네 이름을 듣긴 했었는 데 네가 너였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선배를 통해서 네 이름을 알았다니까." 네스포린은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러다가 자기 옆에 서 있는 두 여자를 가 리키더니 나에게 물었다. "류드! 아니, 권강한! 얘들이 누구인지 알겠어?" "……?" 난 네스포린이 가리킨 두 여자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둘 다 아주 예뻤는데 한 명은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중간에서 긴 머리를 한번 묶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의 여자는 오죠룬에서 인기가 많았던 에레나리스였고 머리 묶은 여자는 친오빠를 좋아했었던 로리아케시였던 것이다. "에레나…… 로리아……." 내가 이름을 기억하자 둘 다 기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둘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때 네오니스가 쪽지에다 자신의 핸드폰 번 호를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다음 강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고 있었기 때문에 길게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 이학2반이니까 심심하면 과방으로 놀러와. 그럼 나중에 또 만나 자!" 네오니스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일행과 함께 바로 옆 강의실로 들어갔다. 다음 강의를 모두 같이 듣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난 그들이 강의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다음 2교시 강의를 들으러 갔다. 아침부터 아는 사람들을 만났 기 때문인지 내 기분은 아주 좋았다. ……. 2교시 강의를 듣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누군가 볼펜으로 내 어깨 를 찔렀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그 인간을 확인해보았다. 내 뒤에는 커플로 보이는 두 남녀가 사이좋게 앉아 있었는데 그 얼굴은 내 머리 속에 분명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루피니…… 아세트……!" 그랬다. 그 두 남녀는 바로 유스타키오의 남동생인 루피니와 엘프인 아세트 였다. 물론 지금의 아세트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잘 생긴 얼굴과 아름다운 얼굴은 어디 가지 않아서 난 단번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같은 강의를 듣고 있었구나. 오랜만이다." 루피니는 날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아세트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둘은 영락없는 커플이었다. 어차피 나나 아세트나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서로를 쳐다보아도 별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단 지 나로서는 루피니의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아서 그게 다행이었다. "거기 조용히 할 수 없습니까?" 강의를 진행하던 교수가 떠드는 우리에게 경고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이상 강의 시간에는 대화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강의가 끝나고 나서 서로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나누었다. "두 분 다 선배죠?" "그래. 우리 모두 3학년이니까." "그런데 유스타키오도 여기 다녀요?" "형? 물론 여기 다녀. 형은 4학년인데 수학과야. 아, 그러고 보니 수학과는 이학1반하고 과방이 같지 않나?" 루피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과방에 가면 유스타키오를 만나 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루피니와 아세트를 대동한 채 과방으로 향했다. 항상 혼자 다녀서 과방에는 잘 드나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 가 아는 선배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태였다. 웅성웅성- 과방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 유난히 키가 큰 인물이 하나 있었다. 그 키가 큰 인물은 바로 유스타키오였다. "형!" 루피니는 유스타키오를 발견하자 반갑게 소리쳤고 유스타키오도 루피니를 발견하고는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다가 그 옆에 있는 날 발견했다. "권강한! 너도 왔구나!" 흐…… 오늘 한꺼번에 많은 인간들을 만나서 유스타키오를 보고도 별로 놀 랍지도 않군. 그런데 유스타키오가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설마 네오 니스 일행에게 내 이름을 알린 사람이 유스타키오인가? "안녕하세요." 난 유스타키오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때 유스타키오 주변에 몰려 있던 사 람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원래 난 유스타키오 주위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경 쓰려 하지 않았지만 모두 날 쳐다보았기 때문에 나 역시 그 인간들의 얼굴을 마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대한 순간 난 경악하고 말았다. "너희들……!" 유스타키오 주위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아는 얼굴들이었다. 네오 니스 일행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봤던 사라만다와 운디네시스, 잭오랜턴, 실 피르디아의 모습과 환타지 세계의 아린과 인티까지 있었다. 그리고 아르카디 아의 영인관 아트로포스의 모습도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실피르디아가 날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뜻밖의 사람들을 너무 한꺼번에 만나게 되어서 나로서는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날 보고 사라만다가 한심하다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머리가 저렇게 안 돌아가는 인간이 내 선배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저런 선 배에게서 도대체 뭘 배우라는 건지……." 어쭈구리…… 내가 정신없어 하는 틈을 타서 날 욕하다니…… 역시 사라만 다의 띠꺼움은 하늘을 찌른다니까. 그런데 내 정령들은 어떻게 된 거지? "내 정령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난 실피르디아 등을 쳐다보며 물었다. 내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실피르디아 였다. "정령들의 기억은 저희들 머리 속에 다 들어 있어요. 그래봤자 정령이었을 때의 능력은 전혀 사용할 수 없지만요." 그런가…… 그럼 정령들은 인간으로 변했다라고 할 수 있겠군. 퍽- "오랜만이다! 그 동안 잘 지냈냐?" 내가 실피르디아 등을 보며 정령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아린이 갑자기 내 등을 쳤다. 그것만 봐도 아린의 활달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 다. 하지만 아린이 왜 과방에 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난 그녀에게 물었 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나? 당연히 과방이 여기니까 그렇지! 너하고 나하고 같은 반이란 거 몰랐 냐?" 헉? 내가 아린하고 같은 반이었다고? 하하…… 같은 반에 누가 있는지 전혀 신경을 안 쓰니 알 수가 있나……. "그런데 인티는?" 난 인티를 바라보았다. 인티는 내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신입생이에요. 쟤들도 신입생이구요." 인티가 가리킨 사람은 실피르디아 일행이었다. 그래서 아까 실피르디아와 사라만다가 날 선배라고 불렀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럼 로스도?" "네……." 아트로포스는 눈가에 작은 이슬을 단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뭐야? 은정이하고 너하고 아는 사이였어?" 아트로포스와 내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아린이 놀라 물었다.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난 아트로포스가 이곳에서는 '은정'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과방에는 다른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 직까지는 한국식 이름을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이름 외우는 게 귀찮았다. "그런데 모두들……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 혼란스럽지 않아? 두 세계의 기 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거잖아?" 난 모두를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 기억의 혼재가 나타난다면 난 또다시 여 행을 해야하는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대답은 라 케시스와 클로토가 했던 것과 같았다. "상관없잖아? 그 둘 다 나 자신인데 뭘." 기억의 혼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직접 겪어 괴로워했었던 아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런 아린의 대답에 부연 설명을 한 건 인티였다. "왜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기억의 혼재가 느껴지지 않아요. 전에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는데도 말이에요. 혹시 오빠가 뭔가 일을 저지른 거 아니에요?" "……?" 내가 일을 저질렀다고? 정말 그런 걸까? 난 분명 영계를 물리친 후에 이상 한 무의 공간에 있었는데…… 그 다음…… 내가 뭘 했지? "니트가 무슨 일을 저질렀든 상관없잖아. 이렇게 모두 모여서 즐겁게 놀면 되지!" 모두들 날 쳐다보며 날 다그치자 유스타키오가 이 상황을 무마시키려 했다. 다행히 유스타키오의 말은 효력이 있어서 모두들 크게 웃었다. 그렇지만 난 웃을 수 없었다. 내가 그 이상한 무의 공간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만 했 던 것이다. 음…… 난 분명…… 그 공간에서 이상한 생각들을 했겠지…… 집에 돌아가 고 싶다…… 그리고 모두와 다시 만나고 싶다…… 설마…… 그래서 지금 이 런 상황이 된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한 테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런 걸……! "……!" 갑자기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에 난 크게 놀랐다. 그것은 바로 '끈'이었다. 소멸과 창조가 자유로운 끈이라면 그게 가능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계를 끈으로 없애버린 후 끈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끈을 이용해서 지금의 상황을 내 스스로 창조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계는 내가 창조한 세계인가? 하지만 이 세계를 내 가 창조했다면…… 어째서 난 이 세계의 주인이 아닌 거지? 왜 평범한 생활 을 하고 있는 거지? 설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를 나 스스로가 바라 지 않았다라는 소리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 아린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날 불렀다. 그렇지만 난 아직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싶었기 때문에 아린의 말을 싸그리 무시했다. 이 세계를 창조해놓고도 난 주인이기를 거부했다…… 확실히 있을 수 있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는 오히려 지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일부러 날 평범하게 놔둔 걸 거야. 에…… 그러니까 지금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우 선 영계를 멸망시킨 후 이상한 무의 공간에 있다가 끈을 이용해 지금의 세계 를 창조했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내게 특별한 능력이 있으면 그것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 내 기억을 조작해서 다시는 끈을 다룰 수 없도록 했을 테고. 그렇다면 보내지도 않았던 2000년 하반기의 기억이 내 머 리 속에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가 있어. 근데 왜 2000년 하반기부터 살아가 도록 하지 않고 2001년 3월부터 생활하도록 만든 거지? 도대체 무의 공간에 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길래? "너 자꾸 무시할래?" 내가 계속 생각의 나래를 펼치자 아린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이대로 있 으면 아린이 폭발할지도 몰라서 난 즉시 사과했다. "미안. 그런데 왜 하필이면 3월이지?" "뭐? 뭔 소리야?"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아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해버린 말이었기 때문에 모두의 의견을 듣기 위해 난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3월이 무슨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 전혀 예상 못한 질문이라 모두들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3 월에 무슨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아트로포스가 조 심히 입을 열었다. "3월은……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학교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나요? 직장인들에게는 별 의미 없을 지도 모르지만요." 아트로포스의 말에 아린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3월이 되야 신입생들을 만날 수 있잖아! 뭐 신학기 시작되기 전에 새터 같은 데 나가면 되지만 정식으로 만나는 건 3월이니까." "……!" 그렇구나…… 그래서 난 2000년 하반기를 그냥 보냈던 거야…… 그때 이런 세계를 만들어 놓아도 서로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내 생활에 변화가 오지 않을 테니까…… 모두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3월에 내가 만든 세계를 움직 이도록 한 거였어……! "권강한! 이번주 금요일에 MT 있는 거 알지?" 그때 유스타키오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건 상진이에게서 들었던 말이기 때문에 난 '그랬어요?'라는 헛소리를 하지 않고 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러자 유스타키오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작년에 MT 불참했지?" "예……." "그럼 이번에는 나오는 거다? 알았지?" "……." 난 잠시 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MT 같은 곳에 나갈 리가 없 는 나였다. 그러나 여기서 MT를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다시 지금까지와 같 은 삶을 반복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끈을 이용해 지금의 세계를 창조했다 하더라도 끈을 다룰 수 없는 지금, 난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 이었다. 그래…… 지금의 대답이 중요해. MT에 가지 않는다는 건 항상 혼자 다니고 친구조차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생활을 계속한다는 뜻이고, MT에 가겠다는 건 그런 내 생활을 바꾸겠다는 뜻이니까. 답답하기만 했던 내 생활을 바꾸는 첫 단계가 바로 지금인 거야! "후……!" 마음 속으로 너무 흥분했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 자 유스타키오가 살벌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뭐냐 그 한숨은? 설마 이번 MT에도 불참하겠다는 망언을 하려는 건 아니겠 지?" 헐…… 나도 그런 망언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지. 아직 만나지 못한 녀석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내가 이 세계를 창조했다면 나와 대적했던 인간 들까지 다시 살려놨을지도 모르니까 그 녀석들이 있는지 찾아봐야 하거든. 뭐, 내가 그렇게 착한 녀석일지가 문제지만. "MT 올 거야, 말 거야?" 유스타키오가 다시 한 번 날 다그쳤다. 심지어는 유스타키오 뿐만 아니라 아트로포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내 입에서 과연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 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의 긴장 어린 시선을 받으며, 난 아주 또박또박하고 분명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MT에는 꼭 나가겠습니다." ======================================================================= 이것으로 사이케델리아는 완전히 종결됐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만우절이었군요... 그래도 완결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너무 평범한 엔딩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머...-.-;; 사이케델리아 4부나 외전을 쓸 생각은 없으니 걱정이나 기대는 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사이케델리아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