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 복수의 장 날개를 펴는 묵향 금의위의 위사들을 천랑대가 학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묵향은 생각했다. '역시 아무래도 세력이 좀 더 있어야 해. 예전에 교주가 나한테 그랬었지. 나 는 독보강호(獨步强豪)는 가능해도 무림재패(武林制覇)는 불가능한 위인이라 고.... 나도 이럴 생각은 없지만 내가 복수하고자 하는 상대들이 거대 문파를 거느리고 있고 또 그들이 나와 단독대결을 벌여줄 가능성이 없는이상 나도 세 력을 거느려야만 해. 우선 한중평까지 끌어들인 후 계속적으로 마교의 오대세 력(五大勢力)을 본인이 흡수해 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 천리독행이 묵향의 앞에 부복(俯伏)하며 말했 다. "모두 처치했습니다." "좋아. 이제 염왕적자에게로 가자." "저..." "뭔가?" "옥 대장군 관저(官邸)에 본대의 부상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거두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까?" "얼마나 있나?" "거의 500명 정도..." "그럼 수하들을 보내 그들을 수습하여.... 가만있자... 어디를 본거지로 삼는 게 좋을까?" "300리(90Km정도)떨어진 곳에 흑룡문(黑龍門)이 있습니다. 아쉬운대로 그들 을 접수하심이 어떨까요?" "좋아. 수하들을 수습하여 그곳에서 합류하기로 하지. 부상자가 그렇게 많다 면 자네가 직접 지휘하도록." "존명!" "염왕대의 위치를 아는자가 있나?" "예." 천리독행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진철(眞鐵)!" 그러자 뒤쪽에서 흑의인이 쏜살같이 날아와 부복하며 외쳤다. "옛!" 묵향은 그 진철이라 불린 흑의인에게 말했다. "너는 본좌에게 염왕대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존명!" 묵향은 진철을 따라 몸을 날리며 천리독행에게 말했다. "흑룡문에서 만나자. 본좌가 도착하기 전까지 접수를 완료하도록!" "존명!" 그들이 달려간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앞쪽에서 많은 수의 흑의인들이 최대 한의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훗. 저쪽에서 찾아오다니 일이 편하게 됐군." 묵향과 진철이 잠시 기다리자 주변에 흑의인들이 병장기를 뽑아든채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묵향이 말했다. "염왕적자!" 상대로부터 아무런 답이 없자 묵향은 다시 한번 더 외쳤다. "염왕적자! 네놈은 본좌가 누군지 잊었나?" 그러자 묵향 앞쪽의 흑의인들 뒤쪽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훗! 회음전성(回音傳聲) 따위 얄팍한 술법을 쓴다고 본좌가 네녀석의 위치를 모를 것 같은가? 네녀석은 둘중 하나만 선택해라. 본좌를 따르던지 아니면 교 주의 충실한 개로서 여기서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하든지..." 회음전성이란 기를 이용하여 음을 굴곡시켜 동(東)에서 말한 것이 서(西)에서 들리도록 조작하는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그걸 바로 지적하자 상대의 경악스런 목소리. "헉! 기억을 되찾으셨습니까?" "물론... 천리독행은 나와 함께하기로 했다. 이제 너의 선택만이 남았다." "그는... 천리독행은 어디 있습니까?" "부상자들을 수습하러 대장군 저택에 간다더군. 참내... 마교가 아무리 썩어 도 겨우 대장군부 하나를 부수는데 천랑대 전력의 9할이 부숴지다니.... 믿어 지지가 않는 일이야." 그러자 경악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 "예?" "선택하라. 지금 죽을건지. 아니면 따를건지." 사실 묵향이 정파의 고수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들은 철혈의 세계에서 자라온 강자들...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묵향이 마교의 부교주라는 점을 들고나온 이상.... 이건 어디까지나 교내의 권력투쟁이 되는 것이다. 이 때는 좀 더 강한자 밑에 들어가는 것이 여러모로 봐서 자신들에게 낫다. 무엇 보다도 묵향이 마교가 낳은 최강의 고수라는 사실은 변할수 없는 진실이기 때 문이다. 일단 마음이 정해지자 그는 묵향앞으로 튀어나갔다. 놀랍게도 그는 목소리와는 달리 묵향의 오른쪽에서 나와 부복(俯伏)하며 외쳤다. "따르겠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절대 후회는 없습니다. 본교를 접수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지. 더불어 지난날의 복수도 해야할거고.... 하지만 밑의 인물들에 게 죄는 묻지 않겠다. 사실 너희들이 그때 나를 암산하는 것을 도운게 너희들 의 뜻이 아님을 본좌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무기를 들고 포위하고있던 모든 흑의인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놓고 부 복하며 외쳤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염왕적자!" "예." "모두들 대장군부로 가서 천리독행을 돕도록 하라." "존명!" 염왕대와 천랑대는 대장군부에서 부상자들을 수습하여 흑룡문으로 향했다. 그 러는 도중에 묵향은 천랑대가 괴멸적인 타격을 받은 것이 자신이 한 일이라는 것을 듣고 놀랐다. "모든 것이 내가 한 일이라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묵향은 망연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제기랄.. 나는 암습을 당한 다음 국(菊)이 나를 이끌고 물속으로 들어간 것 까지 외에는 기억나지 않아. 참. 그러고 보니 그건 총타 부근에서 벌어진 일 인데... 여기는.." 그러자 천리독행이 신중하게 말했다. "속하도 자세히는 모르나 부교주께서는 암습을 당하신 후 옥대장군가 사람들 에게 구조되어 기억을 잃은 채 찬황흑풍단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에 옥 대장군을 척살하는 사건에 연루되신겁니다. 부교주께서 기억을 잃으신 다음 무공이 감소된 것을 아시고 교주께서 능비계 부교주에게 천랑대와 염왕 대를 주어 부교주를 없애라는 명을 내리신거죠. 그런데 도중에 부교주께서 기 억을 되찾는 바람에 능비계 부교주가 사망했는데..... 중간의 기억을 또다시 잃으셨다니 하늘의 뜻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기억이 나시겠 죠." "크흐흐흐... 그따위 기억 없어도 상관없어. 무림인으로서 관부(官部)의 개가 되었던 것이 뭐 자랑이라고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겠나. 우선은 힘을 비축하여 새로운 역사를.... 피(血)의 역사(歷史)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마인 (魔人)의 도리(道理). 기왕에 잃은 수하들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고 남은 부상 자들만이라도 완쾌시켜 전력에 보탬이 되도록 해라." "존명!" 흑룡문은 흑도계열인 문도수 삼천 정도의 제법 큰 방파다. 묵향 일행이 그들 을 택한 것은 자신이 거느린 삼천에 가까운 식솔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그 럴듯한 보금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흑룡문도 주위에서는 알아주는 문파였 으나 마교의 정예앞에서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간단한 싸움으로 항복하고 묵향의 수하가 될 것을 맹세하고 만다. 묵향으로서는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묵향은 타고난 무인(武人)이라 여태껏 수련에만 전념해 왔었는데 반란도배(叛 亂徒輩)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자니 별의별 잡일을 다 떠맏아야 했던 것이다. 식량, 의복, 무기 등이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천의 문도를 거느린 방파라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그 모든 것은 서류라는 형태로 묵향에게 돌아왔다. 묵향의 밑에 있는 천랑대나 염왕대의 경 우 무인들로 구성된 집단들... 막강한 힘은 있으나 경영에 관한 머리는 깡통 이나 다름없기에 묵향으로서는 아쉬운 대로 흑룡문주 흑수마령(黑手魔翎) 갈 파(葛把)에게 경영을 맏겼지만 백지나 다름없는 그가 옆에서 보기에도 갈파또 한 영 아니올시다 였던 것이다. 그래서 묵향은 이 중대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 해 천리독행과 염왕적자, 갈파를 불러들여 회의를 열었다. "아무래도 경영의 귀재를 영입해야겠어." "맞습니다. 모두들 검밖에 모르는 돌머리들 뿐이니...." "왜 본교가 근래에 이르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지 지금에야 알것같 더군. 혁무상 그녀석이야." "적미살소 혁무상 장로 말입니까?" "그래. 나한테도 그런 머리좋은 녀석이 하나 필요해. 어디 괜찮은 인물이 있 다면 천거를 좀 해주게. 내가 책임지고 끌고올테니까." "그럼 혁무상을 납치해오면 어떨까요?" "그건 별로 좋은 의견이 못돼. 그녀석이 자결이라도 한다면... 거기에 성심껏 협력할지도 의문이고.." "무공을 몰라도 상관없습니까?" "뭐... 무공이야 몰라도 별 상관없지. 나는 무공실력을 원하는게 아니라 머리 를 원하는거야." "그렇다면 괜찮은 인물이 있습니다. 하지만 포섭하기는 힘들겁니다." "누군가?" "진량산 부근에 보면 천륜장원이 있는데 그 장원의 주인이 꽤 실력자라고 들 었습니다." "장원의 주인? 그럼 무림인인가?" "아뇨. 무림인은 아닙니다. 적당한 땅을 가지고 있고 상행위도 약간 하는데 그 장원의 주인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흠.... 그는 안돼." "예?" "무림에 뜻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놔두는게 좋아. 피의 법칙이통하는 무림에 그런 순수한 사람들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지. 그거 말고 예전에 망한 단체 의 제정을 맏았다든지... 뭐 그런 인물들 중에 뛰어난 자는 없나?" "아. 한명 있습니다. 예전에 천마문(天魔門)에서 일하던 사람인데 알력이 생 겨 쫓겨난 인물이 있습니다. 천마문이면 그런대로 흑도 계열에서도 1만의 문 도를 거느리는 큰 문파인데다 거기서 문상(文相)의 직위에 있었던 설무지(설 무지(雪無知)란 인물입니다. 이름은 호(湖)인데 익히면 익힐수록 더욱 모르는 것이 많더라고 하여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여 자를 무지(無知)라 붙인 인물입 니다." "구미(口味)가 당기는군." "그때 쫓겨난 다음 칠야산(柒倻山)에서 은거하고 있다고 그러더군요." "좋아. 그자로 하지. 내가 돌아올 동안 저놈의 흑룡문 현판은 떼버리고... 흑 룡문은 약간 정파같은 냄새가 나서 영 껄끄러우니까 아무 이름이나 적당한 걸 로 현판을 걸어놓도록!" "존명!" 이때 갈파가 말했다. "그런데... 부교주님." "왜그러나?" "소인이 깔아놓은 정보망에 걸린 건데.... 부교주님의 기억에 없기에 지금은 별 문제될 것이 없으나 나중에 기억이 돌아온 다음에...." 서론이 길어지자 짜증이난 묵향이 말했다. "무슨 일인지 서론은 빼고 결론만 말해!" "옥영진을 구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염왕대와 충돌했던 흑풍단의 일부가 반도 라고 규정되어 관군(官軍)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심이 어떨는지 요." "내가 왜 그들을 도와줘야 하지?" "아마도 그들중에는 부교주님과 친했던 인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기 억이 돌아오신 다음 후회해도.." "알겠다. 그들은 지금 어디있나?" "확실하지는 않으나 관군에게 쫓기면서 지금 감숙성의 무산(巫山) 부근에 있 다고 합니다. 체계적인 정보조직이 없기에 들리는 소문만을 종합했기에 정확 한 것은 가봐야만 알것입니다." "흠...." 그러자 천리독행이 말했다. "만약 구하러 가신다면 수하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아니야. 그럴필요는 없어. 괜히 그러면 관부와 충돌이 생기니까 혼자가기로 하지. 대신 나는 바로 그리로 갈테니까 군사(軍師)를 호위할 수하들은 10명정 도 데려가기로 하지. 천리독행! 눈치빠른 놈들로 부탁하네." "존명!" 이때 갈파가 비단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 "부교주님의 무공으로는 별 필요없겠으나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돌아와야 하 는 일입니다. 혼자 가시겠다면 이게 필요할겁니다. 그냥 들판에 뿌리기만 하 시면 됩니다." 묵향은 그 주머니 위에 써진 글자를 읽어본 다음 언뜻 이체가 떠오르며 말했 다. "이런것도 있었군. 잘 쓰겠네." "감사합니다." * * * * * * "이런 빌어먹을... 칠야산이 이렇게 넓을줄은 생각도 못해봤군." 묵향은 벌써 10인의 호위무사를 거느린채 4일째 수색중이었다. 칠야산 곳곳을 이잡듯이 뒤져댔지만 찾으려는 인물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행방 이 묘연하다. '칠야산에 불을 지르면 숨이 막혀서 튀어나올까...?' 급기야는 짜증스러움에 이런 망상(妄想)까지 하게 될때쯤... 동쪽을 살펴보러 갔던 수하가 달려와서 묵향의 앞에 부복하며 외쳤다. "찾았습니다." "그래? 가자!" 자그마한 모옥(芼屋)... 그 모옥을 중심으로 묵향의 신호에 따라 사방에서 수 하들이 몰려들었다. 모든 수하들이 도착한 다음 묵향은 그들을외곽에 놔둔채 혼자만 모옥으로 다가갔다. 그런다음 모옥앞에 이르러 부드럽게 외쳤다. "계십니까?" "......." "계십니까? 저는 묵향이라 합니다." 아무런 답이 없자 묵향은 조심스레 다가가 문을 열어봤다. 안에는 아무도 없 었다. 대신 방안의 공기가 절대 폐가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덧 붙여 황급히 떠난 듯 살림살이도 거의 다 있었고 일부만이 어지러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몇시진 전까지 사람이 있었다. 볼일이 있어 딴곳에 갔나? 아니면 저놈의 마 기를 풍겨대는 수하놈들 때문에 겁먹고 도망가버렸나..... 하여튼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군.... 쯧쯧' 묵향은 멀찍이서 기다리고 있는 수하들을 원망스레 바라보다가 생각을 돌렸 다. '일단 겁을 먹었다면 어쩔 수 없다. 편지나 남겨두고 돌아간 다음, 다음에는 혼자 와서 뒤져보는 수밖에. 강한건 좋은데 모두들 마기를 안풍기는 놈들이 없으니... 그래서 사군자는 일부러 마기없는 놈들만 넣은거였는데...' 묵향은 주인도 없지만 실례를 무릎쓰고 방안에 놓인 지필묵(紙筆墨)을 이용해 서 그럴듯한 편지를 한 장 남겨둔 다음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주변에 남으면 아마도 감시중일게 분명한 상대가 더욱 조심할 것이 염려되어 아예 모 두를 이끌고 마을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묵향은 수하들을 이끌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다음 모옥에서 50장(약150M) 밖에 그들을 대기시켜 둔 후 모옥으로 향했다. 모옥에 도착해보니 모옥 앞에있는 밭에서 한 남자가 곡괭이를 들고 밭을메고 있었다. 묵향은 그에게 다가갔다. 한 50살은 되었으리라... 희끗한 수염에 얼굴 곳곳 에 새겨진 세월의 상처들이 그의 경륜을 나타내는 듯 하다. 맑고 잔잔한 눈에 적당히 솟아오른 콧날... 확실히 농부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지적인 얼굴이다. 묵향은 그가 일을 마칠때까지 그냥 옆에 서서 기다렸다. 이윽고 곡괭이 소리가 멈추더니 그 농부는 묵향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차라도 드시겠소?" "예." 농부는 부엌에 들어가더니 손수 차를 준비해 왔다. 묵향이야 별로 차를 즐기 는 인물은 아니었기에 그런대로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정도로만 행동하며 차를 마셨다. 그런 의미에서 유백 사부는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던 것이다. 조용히 차를 마시는 묵향을 바라보며 농부는 생각했다. '알수가 없군. 차를 마시는 모양으로 보아.... 결코 교육을 잘 받은 사내는 아니다. 타고난 무골처럼 행동하지만 겉모습으로는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 으니.... 거기에 저 칙칙한 눈동자.... 결코 정도를 걷는 인물은 아닌가.... 아니야.. 계속 보니 그냥 칙칙한게 아니군. 맑지만 너무나 깊다보니 칙칙하게 느껴지는... 그렇다면..?' "손님께서는 어떻게 오셨는지요?" "이미 편지를 통해 아시겠지만 저는 설 대인을 애타게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느린 식구가 많다보니 먹여살리기도 힘들고 또 효과적으로 이들을 통 제해 나갈 인물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설 대인의 뛰어난 능력을 저와 함께 꽃 피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함께 꽃피워 뭘하자는 것입니까? 무림통일? 대문파로 키우는 것? 도대체가 알수가 없군요." "뭐가 말씀입니까?" "저도 관상(觀相)을 볼줄 압니다. 하지만 당신은 피비린내 나는 무림과는 별 로 상관이 없다고 보고.... 더구나 무림통일따위 허황된 꿈을 쫓을 인물도 아 닌 듯 한데...." "우선 저는 작은 꿈을 이루려 합니다. 나머지는 그 후에생각할 문제죠." "작은 꿈이라니요?" "사적인 저의 자그마한 복수입니다." 그러자 설 대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복수라구요? 겨우 하찮은 복수따위를 해주자고 자신의 인생을 맡 길 인물도 있을까요?" "하하하.. 그것도 상대 나름이죠. 저의 상대는 마교.... 아니지 어쩌면 무림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그들을 부수려면 너무나도 큰 힘이 필요하 고... 그런 힘을 효과적으로 이끌 능력이 제겐 없습니다. 힘을 빌려주지 않으 시겠습니까?" 그러자 설대인은 아연한 표정으로말했다. "작은 복수가 아니군요. 어쩌면 세상을 뒤집을 일인데.... 과연 당신에게 그 런 능력이..." 그의 말에 묵향은 빙그레 미소지으며 말했다. "이미 마교가 가진 드러난 힘의 4할은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교의 인물. 천마(天魔)의 법칙(法則)을 잘 알기에 승산이 없는 대결은 피하는 사람 이니 저를 믿어주실수는 없을까요?" 묵향의 말이 떨어지자 설 대인은 경악했다. '드러난 힘의 4할이라고? 그러면 왠만한 문파 정도가 아니라 세상을 피로 물 들일 힘이로군. 놀라운 인물이로다. 그런데 전혀 마인처럼 보이지가 않으니 도대체 어느정도로 수련을 쌓은 인물인지 상상도 가지않는군.' 묵향은 그가 경악한 표정으로 말이없자 다소곳이 말했다. "지금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시다면 며칠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한 일주일 정 도 시간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야 별수없다. 눈앞의 인물이 별볼일없는 인물도 아니었고 또 자신또한 죽는 그날까지 초야에 묻혀지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사 (謀士)란 주인을 잘 만나야 그 능력을 꽃피울수 있다. 자신의 느낌으로는 그 런 인물이 눈앞에 있는 흑의인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소인의 능력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삼고초 려(三顧草廬)를 하시겠다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으리를 모시겠습니 다." "감사하오." "소인에게는 자식이 둘 있습니다. 둘다 멍청하지는 않으니 속하와 함께 거두 어 주실수는 없겠습니까?" "좋소. 능력있는 자는 아무리 많아도 부담이 되지 않는 것. 좋을대로 하시 오."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설무지는 신형을 날려 뒷산으로 날아갔다. 보통 인물들이 봤을때는 꽤 괜찮은 신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무공에 대한 성취는 학문에 못따라가는 모양이군. 하기야 말이좋아 팔방미인 (八方美人)이지.... 오히려 여러 가지를 조금씩 아는 자 보다는 한가지에 정 통한 자가 더욱 필요하지. 한평생을 바쳐 한가지도 이룩하기 어렵거늘... 수 십가지 재주를 모두 꽃피울수는 없지.' 조금 시간이 지나서 설무지는 두명의 자식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한명은 조금 병약해보이는 사내였고 또 한명은 그런대로 튀지도 빠지지도 않는 얼굴을 가 진 여자였다. 둘다 무공은 겉만 핥았을뿐... 진수(眞髓)를 맛보려면 애시당초 그른 인물들이었지만 묵향에게는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 너무나도 필요함을 한 눈에 알수 있었다. 설무지는 둘에게 말했다. "주군(主君)이시다. 앞으로 충성을 다해 모시도록 해라." "예." "이 아이는 설민(雪旻)이라 하옵고 이 아이는 설령(雪 )이라 합니다. 예로부 터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습니다. 실지 무림사(武林史)를 거슬러 보 면 영웅(英雄)은 목적한 바를 이룬 후 끝까지 영화(榮華)를 누렸으나 그를 도 운 모사(謀士)의 말로는 비참하게 끝난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주군을 받듦에 있어 제 생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제 능력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보고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나중에 남은 것이 죽음이라 하 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무지는 품속에서 비수(匕首)를 꺼내어 그의 머리카락과 그 아이들의 머리카 락을 조금씩 잘라 묵향의 앞에놓으며 말했다. "언젠가는 주군이 저희들의 목숨을 원할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여태껏 있어왔던 역사의 순환... 저는 그걸 지금도 거스릴 생각이 없고 앞으로도 없 을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생명(生命)이니 나중에 일이 끝난후 실물(實物)을 취해가셔도 저로서는 제가 지닌바 모든 능력을 다할수만 있다면 아무런 여한 이 없다는 점을 여기서 밝힙니다. 대신에 주군께도 그만큼의 신뢰(信賴)를 부 탁드립니다." "좋소. 내가 아무리 사냥감이 없어져 배가 고파도 그대들을 삶아먹을 생각은 없지만 그대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 뜻만은 받아들이지.... 여봐라." 묵향의 부름이 있자 50장(150M정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달려와 부복하며 외쳤다. "예" "일단 도착할때까지 이들의 몸에 티끌만한 상처라도 생긴다면 너희들의 목숨 으로 그 죄를 묻겠다. 이들의 경호에 최선을 다하라!" "존명." "너희들은 군사(軍士)를 모시고 돌아가라. 나는 일이 있어 따로 행동하겠다." "존명!" 묵향이 갑자기 군사(軍師)라 칭하는 것을 보고 설무지 등은 놀랐다. 사실 그 들에 대해 아는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보자마자 그 직위를 결정해서 준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커다란 신뢰의 표시였기 때문이다. "주군께서는 어디로 가시려고 그러십니까?" "흠.... 뭐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오. 좀 쑥스러운 말이지만 날 아는 사람 들을 좀 데리러 가는 길인데.... 나중에 본거지에 도착해보면 자연히 알수 있 을거요. 그럼 나는 가볼테니 가는길에 몸조심 하게나." * * * 만리장성(萬里長城)은 과거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찬란한 제국인 조선과 고 구려를 막기 위해 건설했다. 그런데 일단 세우고 나니 기마민족(騎馬民族)이 라 기동력이 뛰어나 방어에 곤란을 겪었었는데 그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됨 을 보고 거기에 재미를 붙여 점차 서쪽으로 확장해 나갔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북성(河北省)의 윗부분 동쪽 끝 바다에서 시작하여 산서성(山西省), 섬서성 (陝西省)의 북단(北端)을 지나 길쭉한 감숙성(甘肅省)의 서쪽 끝까지 이어져 거의 만리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건설하게 된다. 티벳에 근거를 둔 서융족(西戎族)이나 여타 남만족(南蠻族)들은 기마민족이 아니었기에, 건설하는데 있어 엄청난 국고(國庫)를 낭비하는 장성을 더 이상 확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만리장성은 감숙성을 지나 청해성 윗부분 에서 끝을 낸다. 대신 청해성, 사천성(四川省), 운남성(云南省)에는 만리장성 에 비해서는 강도가 많이 떨어지는 방어선(防禦線)을 가지고 있었고 이정도로 도 그들을 물리치는데는 충분했다. 감숙성(甘肅省)의 성도(省都)이자 최고의 군사도시 난주(蘭州)로 뻗어있는 잘 발달된 관도(官道)를 따라가다가 보면 난주로의 관문이라 부를만한 무산(武 山)이 나온다. 이것은 사천성(四川省)에 있는 무산(巫山)과는 달리 산이 아니 라 서부 장성에 군수물자(軍需物資)를 공급하는 보급의 통로이자 거대한 상업 도시 이름이다. 무산 방향으로 흑풍단이 이동중이라는 것은 즉 그들이 감숙성 을 지나 청해성(靑海省)의 산골에 들어박힐 생각이던지 아니면 좀 더 나아가 북방의 이민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세운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없는 청해성을 지나 티벳쪽으로 이동할 생각임을 엿볼 수 있다. 티벳은 산이 많고 지형이 험준(險峻)하기에 아마도 그들이 자그마한 요새를 건설하고 새로이 정착하기에 알맞을 것이다. 괜히 몽고같은 평야에 정착하면 목초를 하기에는 비교적 유리할지 모르지만 흑풍단이 원체 이번에 해놓은 짓 거리가 있어서 몽고인들이 잘먹고 잘살라고 가만 놔둘 가능성이 없었다. 이정 도가 관도를 따라 말을 달려오며 묵향이 생각한 전부였다. 이제 시간도 적당히 점심시간을 넘어가고 있었고 때마침 작은 촌락이 나왔기 에 묵향은 주저않고 객점을 찾아들었다. 자그마한 마을치고는 꽤 많은 식당과 여관(旅館)이 있었기에 묵향은 그중 그런대로 큼지막한 곳에 들어갔다. 묵향 도 이제는 무림 초출이 아닌만큼 객점에 들어서자마자 암암리에 신경쓰고 싶 지 않아도 모든 분위기가 느껴졌다. 비록 챙이 깊은 죽립을 쓰고있어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앞이 보이지 않았으나 그에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모든 분위기 가 피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식당은 작지않은 규모인데도 꽤 붐비고 있었고 묵향은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 고 않아 간소한 음식을 시킨다음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때 앞자리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처음 들어설때부터 이 식당안에서 최고의 고수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앉은 자리일 것이다. 그 때문에 묵향이 그들을 정 면으로 보는 자리에 앉았으니까... 이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묵향의 정신을 그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한 소녀의 음성이었는데 거기있는 한 단어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오빠는 왜 흑풍단이 있는곳에 가려는거죠?" 그러자 제법 위엄을 가장한 점잖은 듯한 목소리. "그야 그들에게는 죄가 없기 때문이지. 나는 연(蓮)아가 생각하는 대로 멍청 하게 그들을 도와 싸우러 가는게 아냐. 그들에게 한가지 조언을 해주려고 할 뿐이야." 그러자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여자의 목소리는 처음것과는 달리 조금 더 차분하다는 점이 달랐다. "뭘요? 지금 그들의 진로를 보면 아마 티벳으로 갈거 같던데요?" "언니 말이 맞아요. 티벳은 산세가 험해서 숨어들기도 좋잖아요. 그렇다고 남 만쪽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사천성이나 운남성(云南省)쪽으로 갔을거 아니 에요?" "바로 그거야. 그게 문제라는거지." "뭐가요?" "만약 그들이 산세가 험한 청해성이나 사천성에 그냥 숨어있다면 모르겠는데 티벳으로 도망가면 오히려 더 위험하게 되지." 그러자 좀 의아해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요. 국외로 도망치는게 더 안전하잖아요?" "그게 아니야. 너는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고 있어. 그들이 국내에 숨는다면 이건 송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겠지?" "예." "지금 그들을 격파할 만큼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원수부(元帥府)가 있냐?" "무슨 말이에요? 오대원수부(五大元帥府)의 군사력은 최강이라구요." 그러자 거만한 목소리가 뽐내듯이 들려왔다. "쯧쯧... 평상시는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지. 지금 어림군(禦臨軍)의 군 사력은 거의 대부분 요와의 전쟁에 출동해있지. 그러니 남은 군사력은 거의 없다고 봐야돼. 지금 어림군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곳은 정북원수부와 정서원 수부 뿐인데... 정서원수부는 들리는 소문으로 남만족과의 사이도 안좋고... 또 산적토벌 등으로 병력을 뺄수 없어서 대요전쟁에도 참가안했다고 하더군. 그렇다면 정북원수부 뿐인데 그 20만 정예군을 빼버린다면 만약의 사태에 요 와의 전쟁이 힘들어지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할거야? 그렇다고 향방군(鄕防軍) 을 동원하자니... 그들의 힘으로는 흑풍단을 막을 수 없지. 거기에 각 군영 (軍營)에 있는 장수들이 안그래도 대부분의 병력이 요와의 전쟁에 보내진 마 당에 몇 안남은 수하들을 잃고싶겠어? 그냥 쉬쉬하며 모른척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티벳으로 도망치면 문제가 완전히 달라진다구. 먼저 티벳쪽에 압력만 가하면 되는거야. 만약 그들의 목을 가져다 바치지 않으면 전쟁을 벌이겠다 고.... 그러면 티벳에서는 고수들을 모아서 그들을 토벌할거고... 오히려 국 내에 남은것만 못한 사태가 벌어진다 이말이야." 그러자 그 목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야유하는 듯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와... 오늘 오빠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와... 오빠가 그런생각까지 다하고... 다시봤어요." "이녀석들이!" 아마도 남매들인 듯... 그들은 목소리를 낮춰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었지만 일 단 대화에 흥미를 느낀 묵향의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묵향은 이들을 우연 히 만난 것이 하늘의 도움으로까지 느껴졌다. 우선 오빠라는 자의 말을 들어 보니 비교적 묵향보다는 정보에 밝은 것 같았고 또 제법 생각이 깊은 인물인 듯 했기 때문이다. '좋았어! 저녀석만 따라가면 되겠군.' 묵향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조금 차분한 여자의 음성 이 이어졌다. "그건 그렇고 아버님이 샛길로 샌걸 알면 오빨 가만두지 않을텐데 어쩔거에 요?" "괜찮아. 그래봐야 한 며칠 면벽수련(面壁修練) 밖에 더 시키겠냐?" "문제는 저희들이라구요. 참. 오빠 이렇게 하면 어떨까?" "뭐 좋은 수라도 있냐?" "이왕에 벌받는거. 오빠가 다 덮어쓰는거야." "뭐시라? 이녀석이..." 그러자 일부러 애교스럽게 치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오빠가 우리를 대신해서 고생을 해야지... 안그래, 언니? 오빠 좋 다는게 뭔데.... 난 죽어도 벽만 보고는 못살아. 그러니까 오빠... 응?" "너한테는 못당하겠군. 좋아. 내가 다 책임지지. 모든게 다 내탓이다. 에 구... 이것들을 데리고 오는게 아니었는데..." "그건 그렇고 황화루(黃華樓)에는 언제 갈거에요?" "얘는 누가 초출(初出) 아니랄까봐..." "그건 볼일 끝난 다음에 가자." 그러자 짐짓 투정하는 투로.. "에이잉.... 오빠... 난 빨리 가보고 싶단 말야. 황화루의 절경은 얼마나 소 문이 나있는데.... 무림인이라면 안가본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구요." "너 말은 꼭 거기 안가면 무림인이 아니라는 투로 들린다." "안그래? 언니하고 오빠도 다 가봐놓고는.." 그러자 젊잖게 타이르는 목소리... "아냐. 거기는 경치야 좋지만 아주 비싼곳이라 무림인 보다는 고관이나 부호 의 자제들이 많이 들리는 곳이지. 여기 경치도 이 부근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구. 그래서 근처에 여관이나 식당들이 많잖아. 황하(黃河)의 절경이 많은 곳 은 청해성(靑海省)이지만 감숙성도 그에 못지않은 명소들이 많지. 여기도 그 중의 하나고..." "그래도 난 이번에 청해호(靑海湖)를 보고싶다구요. 엄마도 정말..." "글쎄 나중에 보여준다고 해도 그러네... 잔말말고 밥이나 먹어. 빨리 먹고 나가야지." "흥!" 남매들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대금을 지불한 뒤 말을 타고 식당을 떠났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자신들 뒤에 검은 혹이 하나 붙어있다는 것을 깨닳 았다. 힐끗 뒤를 쳐다본 엷은 홍의를 입은 여자가 그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 했다. "오빠.. 뒤에 쫓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알고 있다." "알고 있었어요?" "응.. 처음엔 몰랐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식당을 나선 다음부터 따라왔어." 그러자 매화문양이 수놓아져있는 옅은 청의를 입은 여자가 뒤를 힐끗 보면서 말했다. "오빠. 저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말이야?" "응." 홍의를 입은 여자가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허리에 찬 도(刀)라든지... 뭐 낡은 흑의를 보니까 그렇게 대단한 인물 같지 는 않은데... 아마 우리들 말을 옅들은 관부의 밀정(密偵)이 아닐까요?" "흠... 그럴지도.... 아무래도 훈련을 받은 밀정이라면 따돌리기는 힘들거야. 기회를 봐서 헤치우는게좋겠지." 그러자 청의를 입은 여자가 흥미가 있다는 듯 물었다. "언제요?" "내가 말했지. 기회를 봐서라고." "피... 저런 밀정을 없애는데는 저혼자 해도 충분하다구요." 그러자 남자가 신중하게 말했다. "아니야. 또 다른 밀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또 살인을 백주대낮에 할수도 없잖아. 인적이 드문곳에서 숲속으로 유인해서 없애야 돼." * * * 그들은 뒤따라오는 밀정을 조심해서 힐끔거리며 도란도란 작전을 짠 다음 이 윽고 행동을 개시했다. 거의 인적이 없는 상태에서 왼쪽으로 자그마한 오솔길 이 나 있는 것을 본 그들은 태연하게 그리고 말을 몰아 들어갔다. 오솔길로 들어서서 2각정도 갔을까... 이때 남자는 말의 고삐를 청의를 입은 소녀에게 건네준 다음 몸을 날려 나무 가지를 밟고는 그 탄력을 이용해서 4장(12M)정도 떨어진 큼지막한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지로 다시금 몸을 날렸다. 그 모든 일을 순간적으로 해치우는 것으로 보아 그 남자는 대단히 오랜시간 고련(苦 練)을 했음을 알수 있게 해주었다. 남자가 나무위로 몸을 날린 상태에서 청의를 입은 소녀는 앞으로 나가면서 청 의 여자에게 말했다. "오빠의 신법은 정말 완벽해. 난 언제쯤 저정도 경지에 오를수 있을까.." 그러자 돌아오는건 비웃는 듯한 목소리... "꿈깨거라... 얘야.." "언니는.... 나도 언젠가는 할수 있단 말이에요. 사람을 어떻게 보고..." "후훗... 토끼 머리에 뿔날 때?" "흥! 하여튼 미워 죽겠다니까.." "여기서 기다릴까?" "응" 두 여자는 각자 말에서 내린 다음 말들을 끌어다가 도망 못가게 나뭇가지에 묶었다. 그런다음 말안장에 끼워뒀던검을 검집 채로 꺼내어 손에 들고는 조 심스레 수풀 사이에 숨어서 멀직이서 조심스레 따라오는 밀정을 기다렸다. 청의를 입은 소녀가 자신이 가진 검을 힐끗 바라보더니 나즈막히 힘없이 말했 다. "사람을 죽이는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녀의 손은 흥분때문인지 아니면 살인(殺人)이라는 미지(未知)의 행위(行爲) 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홍의 소녀는 약간 놀리는 투로 속삭였다. "오빠가 힘쓰면 너차례는 오지도 않아. 괜히 맘 조리지 마. 괜히 흥분해서 함 부로 날뛰다가 오빠한테 상처입히지 말고." "언니는? 그러는 언니도 살인은 처음이잖아." 두 여자가 이상하게도 나타나지 않는 밀정을 기다리다 지쳐 서로를 헐뜯고 있 는 사이 그녀들의 오빠도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흑의를 입은 밀정은 식 당을 떠난 다음 언제나 30장(90M)거리에서 느긋하게 따라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꾀가 자신은 나무에 남아 밀정의 퇴로를 차단한 후 자신이 직접 해치우던 지 최악의 경우 합공까지 고려하여 매복을 한건데 이놈의 밀정이 어떻게 알았 는지 자신에게서 30장 거리에서 멈춰 서더니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대단한 놈이군. 고수같지는 않은데... 아무래도 추격술에 대단히 능한 놈인 모양이군. 잘못 걸렸는데... 어떻게 한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남자는 이윽고 생각을 정했는지 몸을 날려 3장쯤 아랫쪽에 위치한 가지를 밟더니 그 탄력을 이용해 몸을 날리더니 거의 10장을 날아가 재차 다른 가지를 밟고 튀어오르는 수법으로 삽시간에 흑의인의 뒤쪽에 떨어 졌다. 정말이지 놀라운 신법(身法)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뒤로 돌아서는 밀정을 향해 칼을 뽑아들었다. 챙~~ 경쾌한 쇳소리를내며 뽑힌 검은 즉시 밀정의 목줄기를 겨누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반항하지 않는 자를 도살(屠殺)할 수 없다는 얄 팍한 정파인으로서의 자부심(自負心)이었다. "칼을 뽑아랏!" "왜그러시오?" "왜그러는지는 네놈이 더 잘 알게 아니냐?" 그런데도 상대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있자 다시금 말했다. "우리 뒤를 미행(尾行)한 이유가 뭐냐?" "흑풍단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소?" "바로 그거야. 가긴 가겠지만 꼬리를 달고 갈수는 없지." "내가 따라가서 안될 일이라도 있소?" "그들은 쫓기는 몸. 밀정을 달고 가면.." "나는 밀정이 아니오." "그러면 왜 미행하는 거냐?" "난 흑풍단과 꽤 인연이 있기에 그들을 도와주러 가는 길이오. 그런데 정확한 위치를 잘 모르니... 그대들이 잘 아는거 같아 따라가면 될거 같아서 뒤쫓던 길이오. 사실 내가 밀정이라면 이렇게 대놓고 미행하겠소?" "하긴.. 그 말도 일리는 있군." 이때 두명의 여자들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오빠가 나무위에 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일이 잘못ㄷ다고 생각하고 매복한 위치에서 뛰쳐나 온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싸우고 있을거라 생각한 오빠가 검을 뽑은 상태기는 했지만 밀정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었다. "오빠,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하고 밀정인 듯한 인물에게 말했다. "하지만 네 말을 어떻게 믿지? 증표라도 있나?" "증표 같은건 없소." "그렇다면 네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한참 생각하던 밀정인 듯한 남자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나는 그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니까... 당신들이 나를 정 못믿겠다면 점혈(占穴)을 하던지 해서 함께 가면 되지 않겠소?" "흠... 그게 좋겠군. 대신 도착해서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면 목숨이 없어진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정도는 각오하고 있소." "좋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몸을 날려 흑의인(黑衣人)의 혈도를 찍었다. 상대가 점혈 하란 듯이 자세를 바로하고 있었으므로 점혈은 손쉽게 이뤄졌다. 그래도 남자 는 못믿겠는지 몸을 날려 숲속으로 들어가서 말들을 끌고왔다. 그런다음 자신 의 말안장에 있던 수갑(手匣)을 꺼내서 채웠다. 그 남자는 무림을 돌아다니면 서 정파의 후기지수 답게나쁜짓을 행하는 놈들을 잡아다가 관가에 넘기기도 했다. 그렇기에 수갑 몇개를 언제나 말안장에 가지고 다녔는데 이걸 이 상황 에서 사용하게 될줄은 자신도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수갑을 채우면서 말했다. "이 수갑은 그냥 강철이 아니라 오철(烏鐵;검은 빛이 나는 합금의 일종으로 현철보다는 강도가 많이 떨어짐.)로 된 것이니 행여 풀 생각도 하지마라." "나도 풀 생각은 없소." 남자는 젊은 나이에 비해 강호 경험이 풍부한지 흑의인의 말안장이나 품속을 뒤져서 행여나 어떤 연락에 사용될 만한 도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품속 에 있는 지갑에는 25냥의 은자와 엽전 40냥이 달랑 들어있었고 비수(匕首)라 고 부르기에는 좀 긴 수수한 단검(短劍) 한자루, 괴이한 문자가 써진 자그마 한 천 1장과 용(龍)이 살아있는 듯 잘 조각된 작은 옥패(玉牌)하나, 그리고 소금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리 뒤져도 아무것도 없었다. '왠만큼 무림에 자신있는 자들도 이렇게 홀가분하게해서 다니지는 않는데 하 다못해 그 흔한 표창( 槍) 하나 없다니.... 이상하군?!' 남자는 상대의 옷 소매까지 뒤적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가진 것이 모두 이것 뿐이오?" "그건 왜 묻소?" "혹시 빨리 만나지 못한다면 꽤 멀리까지 가야하는데 근처 여관(旅館)에 짐을 맏겨놓은게 아닌가 해서 묻는거요." "짐은 이게 다요. 그리고 혹시나 무기를 가지고 있는것도 못마땅하다면 일단 그대가 보관하다가 도착해서 돌려줘도 무관(無關)하오." 혹시나 해서 검집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는가 살펴보는 중에 그런 말이 나왔 으므로 그 남자로서는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할지도 모를 일을 저질렀다. 더 이상 살펴보지 않고 그냥 물러선 것이다. 만약 그가 집 속의 검이나 비수를 꺼내봤다면 상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철(玄鐵)이란 물건은 아주 귀하고 값지기에 왠만큼 좋은 검들도 날부분을 보강(補强)하기 위해 조금씩 쓸뿐... 아예 검 전체를 현철로 하지는 않기 때 문이다. 그 대신 그는 만일을 대비해서 비수는 흑의인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 신의 안장에 찔러넣었다. 일단 몸수색부터 시작해서 모든 일이 종료되자 이제 통성명(通姓名)을 했다. "이렇게 번잡하게 해서 죄송하오. 하지만 이 일은 꽤나 기밀을 요하는 것이 고, 또 그대를 믿지 못하는 것도 있어서 초면에 실례를 한거니 용서하시오." "별로... 상관 없소이다." "저는 무림에 별로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일진검(一鎭劍) 초우(礎雨)라 하고 이 아이들은 초연(礎蓮), 초희(礎曦)라 하오." "저는 묵향(墨香)이라 하오. 별호따위는 없으니 그냥 그렇게 부르시오." "초면에 실례인 것은 알지만 이상한 이름이군요." "하하하... 뭐...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니 성따위는 없고... 그냥 묵향이외 다. 얼마 전까지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국광(菊狂)이란 웃기는 이름으로 불렸 었으니... 참. 흑풍단에서는 국광이란 이름만 알고있으니 혹시나 그대가 먼저 만난다면 그렇게 말하면 알거요." '이름이 두개라... 좀 수상한 인물이군. 아무래도 좀 더 주의해야겠어.' * * * 초희(礎曦)는 근래들어 새로이 길동무가 된 인간 때문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왜 마음이 편치 못하냐고? 그녀의 나이도 이제 스물하고도 두 살이 되어버린 노처녀에 가까운데다 무림 초출이라 은근히 이번 기회에 근사한 남자들을 많 이 사귀고 싶었고 또 그 중에서 기회만 된다면 장래의 반려자(伴侶者) 감도 물색하고 싶었다. 원래가 둥지 안에서 고이고이 길러진 금지옥엽(金枝玉葉)이 었으니 타인들과 왕래나 교류도 거의 없었고 자신의 집안 자체가 이름난 무가 (武家)였기에 그 잘난 남자라고는 오빠 말고는 거의 접해보지 못한 가련한 신 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길동무로 꽤 재미있는 남자라는 동물 이 하나 생겼으니... "그럼 대협께선 그렇게 고수(高手)란 말이에요?" 그러자 상대의 자랑스런 대답. "그럼.. 나보다 강한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지." '말도 안돼!' "그렇게 대단한 대협께선 사문(師門)이 어떻게 되세요?" "내 사문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니 그냥 넘어가자구. 요즘들어 그녀석들 이름 만 나와도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해서 가급적 이름을 거론하고 싶지가 않아." 상대가 어물쩡 넘어가려 들자 다시 한번 더 물었다. "사문과 별로 사이가 안좋은 모양이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나만 보면 죽이려고 드니까.." "파문(破門) 당하셨어요?"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파문은 안당했군." "당신 사부님은 누구신데요?" "유백이란 분이지. 지금 살아계신지도 모르겠어." '유백이란 이름도 처음 듣는군. 그럼 확인 해볼건 한가지 뿐이지...' "그렇다면 대협의 절기(絶技)는 뭐에요?" "음... 절기라고 한다면 무상검법(無上劍法)이 특기지." '들어본 적도 없는 허무맹랑한 검법 이름이군.' "그 외에는 어떤 무공들을 익혔어요?" "그 외에? 엄청나게 많이 익혔지." "얼마나요?" "한... 만(萬) 종류 정도 되나? 기억도 안나는군." '점점... 더...' "그렇다면 그중에서도 강한게 있을거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몇가지.." "음... 수라월강도법(修羅月剛刀法), 천강혈룡검법(天降血龍劍法), 소수마공 (素手魔功), 혈수마공(血手魔功), 회풍무류검법(廻風舞柳劍法), 육합검법(六 合劍法), 태청검법(太淸劍法), 태허도룡검법(太虛渡龍劍法)" '어쭈... 이거 완전히 정파와 사파의 유명한 검법이란 검법은 다 말해대는군. 기가 막혀서...' "그만... 됐어요. 저희 아버님께서 곤륜파(崑崙派)와는 아주 친분이 깊으셔서 우연한 기회에 태허도룡검법(太虛渡龍劍法)을 조금 배웠었는데... 잘 아신다 니 한번 구결(口訣)을 말해보세요." "구결? 가만있자.... 구결이 뭐더라... 허허... 잊어버렸어. 너무 많이 외우 다 보니 잊을수도 있지. 사실 중요한건 구결이 아니니까." 상대가 어물쩡 넘어가자 다시금 꼬치꼬치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자신있게 구결을 외울 수 있는 무공이 있어요?" "가만있자........ 이건 아니고..... 응.... 음... 이것도 아니군.....끄 응... 글쎄... 원체 오래전 일이라 하나도 제대로 기억이 나는게 없는데..." '끄응... 저러면서 날 더러 믿으라고? 웃겨서' "그럼 대협께선 글은 좀 읽으셨어요?" "글? 천자문(千字文) 같은거 말인가?" "아뇨. 소학(小學)이나 대학(大學) 같은거 말이에요." "아주 오래전에 소학은 읽은 적이 있지. 그리고 몇권 더 읽었었는데.... 책 제목은 원체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나는군. 무인(武人)으로서 이정도 읽었으면 많이 읽은거야." '아예 무식한 놈이라고 광고를 해라. 광고를 해!' 여기서 초희가 소학이나 대학이라고 물은 이유는 소학은 어릴 때 천자문(千字 文)이란 낱말책을 뗀 아동들이 처음에 접하게 되는 문장(文章)으로 된 아동용 도서가 소학(小學)이다. 소학은 쉬운 문장들을 사용했지만 그 문체가 뛰어나 아주 잘 지어진 책으로서 문장을 익히는 입문 단계에서 가장 많이 채택되는 교과서 적인 책이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하는 상대의 말이 그정도나 겨우 읽 었다니... 기가 막힐 수 밖에. '이자의 말이 원체 오래전... 오래전... 하는걸 보면 혹시나 반노환동(反老還 童)의 고수? 설마... 하지만... 아직도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실례가 되 지 않게 재삼 확인을..' "대협" "왜?" "이~~~ 한번 해보세요." 초희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 하는 소리를 낸 후 말했다. "이~~~~" 그 말에 묵향은 그녀가 뭘 확인하려 하는지 눈치채고는 한껏 입술을 벌려 자 신의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사랑스러운 누런 이빨을 보여줬다. 자신과 같은 영감탱이 반노환동의 고수인 경우 딴건 다 젊게 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이빨 만은 어떻게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젊은 애숭이들과 확연한 차이가 드 러나는 것이고.... 그런데 묵향도 실수한 부분이 있으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에... 그러니까 기억이 없을 때 자신의 이빨이 몽땅 바뀌었다는 건 아직 확인 해보지 않아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빨이 하얗잖아. 이런 사기꾼 같으니... 그럼 그렇지... 무림인들은 원래가 자부심(自負心)과 자존심(自尊心), 아집(我執)으로 뭉쳐진 인간들... 그렇게 대단한 고수라면 우리를 닥달해서 끌고가면 갔지 오빠가 혈도를 점하 고 수갑을 채우도록 놔뒀을 리가 없지.... 근사한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근 사한 남자는 모두 굶어 죽었는지 한놈도 보이지 않고 거기다 이런 놈팽이하고 같이 다녀야 하다니.... 휴~~~ 내 인생이 너무 한심해...' 대화가 이런 식이었으니 이제 산통 다깨진 허풍꾼을 얌전히 대해줄 필요가 없 었다. 하지만 조금 무례하게 대해도 상대는 그런 예의에 있어 무관심한 듯이 행동했기에 같이 지내기에는 별로 무리가 없었다. 초희가 보기에 묵향이란 인 간의 얼굴은 그런대로 후하게 봐주면 매끈한 편이지만 무지무지하게 허풍이 세고... 또 거의 안하무인인 것 처럼 무공에 있어서는 거드름을 피워대는 이 놈팽이는 초희처럼 명가(名家)에서 자란 자제가 봤을때는 몇푼 되지도 않는 돈을 가지고 허름한 도(刀)를 하나 대장간에서 몇푼 주고 구해서 허리에 차고 는 무림을 돌아다니며 무식하고 가련한 무사들에게 사기나 치는 진짜 바닥인 생이 틀림이 없었다. 초반 대화에서 초연이나 초우 같은 경우 상대의 허풍에 질려버려 아예 말도 안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초희의 성격도 성격인지라 자신이 상대해주지 않 으면 완전히 외톨이로 떨어지는 상대가 불쌍해서 마음을 고쳐먹고 말상대를 해주기 시작했다. 상대가 눈에 빤히 보이는 허풍을 자기딴에는 잔머리를 굴려 서 곱배기로 쳐대는 것을 보는게 재미있어 이것저것 물어댔고 상대의 관심에 안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흥이 난 묵향이 더욱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해대면 초희는 그 얄팍한 거짓말에 배꼽이 빠지게 웃어대며 재미있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자칭(自稱) 최고(最高)의 고수(高手)이자 금(琴)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는 희대(稀代)의 허풍선이를 동반한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 다. * * * 원래 묵향은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고, 또 아무도 없는 곳에 몇 달씩 박혀있 어도 외로움을 탈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갈 때 자기들만 얘 기하고 혼자 외톨이로 떼어놓는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 그러던 차에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귀여운 얼굴을 한 초희란 묘령(妙齡)의 아가씨가 말상대를 해주니 자기가 생각해도 꽤나 유쾌한 여행이었다.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나 아 니면 전에 있었던 싸움 등을 얘기해주면 이상하게 심각한 장면에서도 까르르 웃는게 별로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웃는 모습이 귀여웠기에 참아준 것 이다. 묵향은 초우란 청년과 같이 지내면서 처음에는 애숭이라고 얕잡아 보는 경향 이 조금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무림 경험이 있었 고 매사에 철저함을 좋아했다. 점혈(占穴)을 할 때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났다. 점혈 수법은 그냥 힘으로 때린다고 되는게 아니다. 상대의 혈도에 자신의 내 공을 불어넣어 일시적으로 진기(臻氣)의 유통(流通)을 방해하는 수법이다. 그 런데 문제가 있다면 그 진기가 진신내력(眞身內功)이 아닌 한 공력의 크기에 따라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정 시간이 지나면 소멸(消滅)한다는데 있다. 그리 고 상대가 대단한 고수라면 스스로 진기를 움직여 혈도를 막고있는 타인의 진 기를 소멸시키는 수법도 있다. 그렇기에 초우란 녀석은 매일 아침이 되면 묵향의 혈도를 재차 점혈 하는데 이때 세심하게도 자신의 내력(內力)을 이용해서 묵향의 혈도에 자신의 내력 (內力)이 남아있는지 확인해본 다음 내력이 남아있는 그 위치에 다시 내공을 보탠다는 사실이다. 이건 언뜻 듣기에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만에 하나 상대가 진짜 고수라고 가정했을 때 자력(自力)으로 막힌 혈도를 뚫었을 수도 있고 또 아주 드물게 특이한 무공을 익혀 혈도를 이동시킬 수도 있기 때 문이다. 그러니까 점혈을 했던 혈도와 해혈을 하는 혈도를 서로 뒤바꿔 놓으 면 다음날 자신은 점혈을 한다고 때린것인데 사실은 해혈을 한게 되는 이치 다. 그런 사소한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주의에 주의를 하는 것을 보고 묵향은 그 를 다시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 역시 당사자는 눈치 채지도 못한채 애숭이로 평가절하(評價切下)가 된 사건이 있었으니... 희대의 허풍선이를 동반한지 4일째 되던 날 저녘, 그날도 평상시와 같이 객점 에 들었다. 오는 도중에 수소문을 한 결과 무산(武山) 남쪽의 탕창(宕昌) 쪽 으로 흑색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이동하는 것을 봤다는 사람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탕창 부근을 통과하여 백수강 (白水江)을 건너 사천성(四川省)으로 들어갈 예정인 모양이었다. 일단 모두들 그런대로 실마리는 잡았기에 푸근한 기분에 마을로 들어가 먼저 여관을 잡고 몸을 대강 씻은 다음 식사와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은 식당이었지만 몇 명이 식탁에 앉아 식사 중이었는데 그들 은 빈 탁자에 널찍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점소이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묵향 은 거의 잡식성이라 할 만큼 음식을 가리지 않았기에 그의 음식까지 몽땅 초 희가 점소이에게 주문을 한 다음 객점 안을 둘러봤다. 혹시나 근사한 남자가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였다. 초희는 조금 자아도취(自我陶醉) 증세가 있는 평가기는 했지만 뛰어난 가문(家門)을 배경으로 한 자신의 미모 (美貌)와 말솜씨라면 안보여서 그렇지 일단 멋진 남자가 보이기만 하면 자신 의 곁에 잡아둘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 식당 안에 초희가 꿈에도 그리던 멋진 남자가 그곳에 있었 던 것이다. 창가에 위치한 자리에 고상한 무늬의 청의(靑衣)를 입은 잘생긴 청년이 간소한 안주를 두고 죽엽청(竹葉淸)을 마시고 있었다. 그가 앉은 옆 의자에 화려한 문양의 검집을 가진 검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제법 형편이 좋 은 무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눈에 시원하게 뻗은 콧날, 검은 콧수염을 짧게 다듬은 멋쟁이였 다. 거기에 많은 수련을 쌓았는지 간혹 술병을 잡기위해 팔을 뻗을 때 드러나 는 팔목은 근육이 잘 발달해 있었다. 잠시 멍하니 그쪽을 바라보던 초희가 묵 향에게 살며시 말했다. "대협, 저사람 정말 멋있죠?" "누구?" "저 청의를 입은 사람 말이에요." "으음... 글쎄.... 제딴에는 있는대로 멋을 낸 바람둥이군." 그러자 초희가 새침한 표정으로 나무랐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면 어떻해요?" "글쎄... 나는 원체 사람을 못믿어서 말이야..." "그건 병이라구요. 챙피한 줄을.." 그녀의 말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이쪽을 힐끗 바라본 그 멋쟁이 청년 이 살며시 일어나 자신들이 있는 탁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멋쟁이 청년은 탁자옆에 다가온 다음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소생은 절검문( 劍門)의 말학(末學) 진소추(振召秋)라 합니 다. 보아하니 무림인이신것 같아서 무례를 무릎쓰고 왔습니다. 서로 통성명이 나 하시는게 어떠하올는지요?" 상대가 이렇듯 정중히 나오니 잡배(雜輩)라 해도 거절하기 힘든데, 절검문이 라면 섬서성(陝西省) 남쪽에 위치한 작기는 하지만 검의 명문인데다 거기에 혼기(婚期)가 꽉 차있는 여자 두명이 있으니 어쩌면 이자와 인연이 닿을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여러 가지 정보도 얻을 겸 해서 모두들 그를 환영했다. 초우 도 그에게 마주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아, 진소추 대협이시군요. 저는 초우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제 여동생들로 초연, 초희라 하고 저쪽에 계신분은 묵향이란 분이오." 진소추란 남자는 처음부터 묵향이 그들과는 달리 낡은 옷을 입고 있는데다 그 옷도 그렇게 고급이 아니었기에 그냥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러다가 음식을 먹기위해 손을 올렸을 때 묵색(墨色) 수갑이 손목에 채워져 있는 것을 본 다 음에는 아마 묵향이 범죄자 쯤으로 인식된 모양인지 아예 상대도 안했다. "하하.. 대협은 아니올시다. 절검문의 말학 주제에 대협이란 말을 들으면 모 두들 욕합니다. 하하..." "원.. 겸손 하시기도. 그래 진형은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예, 저는 이번에 수행(修行)도 좀 쌓을겸, 눈요기도 할겸 해서 무산(巫山)쪽 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산의 절경(絶景)은 소문이 자자 하니까요." "그럼 이번이 초출이십니까?" "아닙니다. 사천쪽으로는 초행입니다." 진소추란 사람이 자신들과 거의 유사한 방향으로 가는데다 이쪽으로는 초행이 라니 처음부터 흑풍단에 대해서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여러 가지 검학이나 세 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진소추는 얼굴도 잘생겼지만 명문의 자 제답게 차분하고 진중(珍重)한 말투기는 했으나 성격이 호방(豪放)한데다 아 주 말을 재미있게 했고 묵향을 제외한 모두는 진소추의 매력에 빠져들며 호탕 하게 술판을 벌였다. 묵향도 술이라면 무조건 마시고 보자는 인물이었기에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았 지만 그들의 옆에서 아예 죽엽청을 독채로 가져다 놓고 퍼마시기 시작했다. 묵향은 술을 잘 마시지는 않지만 일단 마시면 뿌리를 뽑는 성격인데다 수소문 을 시작한 다음부터 한방울의 술도 마시지 못했으니 거의 술을 마시는게 아니 라 목구멍에 들이 붓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묵향은 혼자서 한 독을 깨끗하게 비운 후 담소를 나누는 그들을 뒤로하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여태껏 여관을 잡으면 언제나 나란히 위치한 방을 두개를 빌려 한쪽은 초연과 초희가 사용하고 또 하나는 묵향과 초우가 썼다. 이러는 것이 돈도 절약될뿐 더러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의(不意)의 사태에 대처하기도 편하기 때문이 다. 초우가 술자리를 파하고 거나하게 취해서 방으로 돌아왔을 때 묵향은 문 근처 에 자리를 잡고는 벽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아직도 초우가 이상하게 생각하 는 점 중의 하나가 묵향이란 인물은 침대에 누워 자는 꼴을 못봤다는 것이다. 언제나 벽에 기대고 조금 졸 듯이 자거나 밤 늦게까지 운공조식(運功調息)을 하는지 명상(冥想)을 하는지 그렇게 앉아있다가 다음날일어나면 이미 일어나 있던지 아니면 명상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술을 그렇게 마셨는데도 바뀐게 하나도 없군.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편히 누워서 잠을 못잘꼬...' 초우는 더 이상 생각하기도 귀찮아 쓰러지듯 침상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 다. 초우가 방에 들어온지 1시간 후 묵향은 인기척에 잠에서 깼다. 설마 하고 있 었는데 창문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리더니 약한 들릴 듯 말듯한 슈우우 우하는 바람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독(毒)인가?' 하지만 창가에서 가장 가까운 침상에 누운 초우의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가 계 속 들리는 것으로 보아 독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면 미혼분(迷混粉)이나 미혼향(迷混香)이겠군. 일단 약속을 해놔서 임 의로 해혈을 하기는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하고.... 뭐 되는대로 놔두자..' 하지만 공력을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관계로 1각쯤 지나자 숨이 턱에 차기 시 작했다. 그래서 묵향은 기척없이 슬며시 움직여 문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다음 살짝 문을 열고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신 후 기척을 살폈다. 그런데 요상한 점은 상대가 금품을 털 목적이라면계집들이 묵고있는 방 보다는 이쪽 을 뒤질 것이 분명한데 아직도 들어올 생각을 안하고 있었고 설상가상(雪上加 霜)으로 문앞에서 느껴지던 기척조차 없어졌다는 것이 수상했다. '금품(金品)이 목적이 아니라면 뭐가.... 그럼 혹시 인신매매(人身賣買)하는 놈들인가? 하기야 같이 동행(同行)하던 초연이란 계집애는 잡혀가서 곤욕을 치뤄도 상관없어. 선배 대접도 안해주는 못된 계집은.... 아니지.... 그놈이 초연이만 가져간다는 보장이 없잖아. 할 수 없군... 일단 몰래 살펴 보고 초 연이만 가져가면 놔두고 초희까지 손대면 이몸이 나설 수 밖에...' 여자들이 묵는 방은 바로 옆방이었기에 찾아가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도 않 았다. 슬며시 움직여 여자들이 있는 방문 앞에 도착한 다음 기척을 살피니 뭔 가가 방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살며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이런 빌어먹을... 안에서 잠겼군. 할 수 없이 창문으로 갈까.... 아냐. 이 나이에 내가 창문을 넘어 돌아다니리?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자부(自負)하 는 이몸이? 여관 문이야 별로 강하게 만든게 아니니 한 대 차면 경첩이 뽑혀 나갈거야. 차고 들어갈까... 그냥 놔둘까... 지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인 데.... 참! 그런데 계집들이 잡혀가면 초우란 놈도 계집들 구한답시고 헤멜테 니 흑풍단을 손쉽게 만나려면 하는 수 없이 구해줘야겠군.' * * * 쾅~~~ 콰지직! 발길질 한번에 문짝은 부숴져 나갔고 그 안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술에취해 잠들어있는 여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어떤 행동을 하려는 찰나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자 놀라서 묵향쪽을쳐다봤다. 놀랍 게도 그 남자는 절검문( 劍門)의 진소추(振召秋)라는 놈이었다. 진소추는 침 입자(侵入者)를 보고 하던 일을 중단한 후 손에 든 것을 침상 위에 놓고는 번 개같이 몸을 날려 침상 옆에 세워둔 자신의 호화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그걸 보며 묵향이 이죽거렸다. "이봐, 자네 친구들은 어디있어? 왜 혼자 뿐이지?" "왠놈이냐? 다치기 싫으면 꺼져라." "인신매매면 그래도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놈이니 봐줄테니까 해약이 나 내놓고 꺼져라." "미친놈!" 그와 동시에 진소추는 수갑을 찬 채 검도 뽑지않고 있는 묵향을 향해 몸을 날 렸다. 식은 죽 먹기의 상대로 생각하고 처음부터 과감한 공격을 퍼부었다. 일 검에 작살을 내려는 듯 공력을 끌어모아 직검단천(直劍斷天)의 기세로 내리찍 었으나 묵향은 수갑의 사슬을 이용해 간단히 검을 막으면서 즉시 왼발을 날려 낭심(囊心)을 가격했다. 놀랍도록 빠르지만 자로잰 듯한 움직임이었다. 급소 를 가격당한 격심한 통증에 진소추가 인상을 찌그리는 찰나 가격(加擊)의 반 동(反動)을 이용해 왼발을 뒤로 빼며 오른발이 사내의 낭심을 다시금 가격했 다.사내가 주춤거리며 내려앉기 직전 뒤로 돌아온 왼발로 땅을 박차고 오르 며 이 사내의 턱 아랫부분을 오른발로 차면서 뛰어오른 왼발의 힘을 교묘히 조절하며 왼발로 오른쪽 두개골을 가격했다. 챙~하는 청아한 쇳소리와 거의 동시에 퍽퍽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거의 4번 동 시에 들리면서 누구의 목소린지 처절한 비명성이 들리며 두 사내가 중심을 잃 고 쓰러졌다. 하지만 묵향은 곧이어 일어난 반면 진소추는 완전히 뻗어서 일 어날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묵향은 아직도 낭심을 감싸쥐고 신음하는 진소추 에게 다가가 힘껏 오른쪽 두개골을 차버렸다. 퍽! "끄윽!" 그 다음 진소추의 움직임은 정지했다. 하지만 묵향도 공력(功力) 없이 순전히 근육만을 이용한 숙련된 몸놀림으로 상대를 제압했기에 내력(內力)을 쌓은 상 대가 그렇게 심한 타격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란 걸 잘 알았다. 그렇다고 내공 을 끌어올리기가 힘들기에 평상시처럼 점혈을 해둘수도 없었다. '이런녀석을 밧줄을 구해 묶는다고 해도 힘한번 쓰면 끊어질지도 모르는 데.... 그렇다고 초우 녀석 말(馬)에 가서 수갑을 들고 오기도 그렇고... 또 열쇠도 없잖아. 또 그사이에 도망치면 무슨 개망신이냐... 이따위 혈도 푸는 건 순식간이지만 생명(生命)의 위협(威脅)이 오는것도 아닌데 풀자니 자존심 (自尊心)이 허락하지 않고.... 에라 모르겠다. 막힌 혈도를 우회(迂廻)해서 진기(臻氣)를 모아보자. 정파놈들이야 불가능 하겠지만 나는 역혈(逆穴)의 내 공을 쌓았으니 길이 있겠지.' 진소추가 정신을 대강 수습했을 때 그가 처음 바라본 것은 자신을 비웃듯 내 려다 보고있는 묵향이란 사내였다. '제기랄, 수갑을 차고있어서 별로 주의를 안했는데....' 묵향은 진소추가 정신을 차리자 마자 미소를 짓고는 위에서 내려다 보며 부드 럽게 말했다. "오호... 이제 깨어나신 모양이군. 자네를 위해 발 바닥에 진기 좀 모아뒀지. 그렇다고 이거 점혈(占穴)을 할 정도는 안되고 조금씩 모으자니 감질나서 못 하겠더라구. 그래도 자네를 잡아둘 정도는 되니 걱정 말게나. 우선 그 귀한 뼈다구가 부러지는데... 자네에게 사전(事前)에 양해(諒解)도 구하지 않고 기 절한 상태에서 하기는 뭣 해서 말이야." 퍽! "크아악!" 설마하니 정신을 차리자마자 오른쪽 종아리뼈가 생으로 부러질지는 꿈에도 생 각하지 못한 진소추가 무참한 비명을 질렀지만 묵향은 비명이 끝나기를 기다 려 한소리 했다. "역시 무릎 밑에다 나무조각을 받쳐뒀더니 잘 부러지는군... 흐흐..좀 아픈 가? 미안허이... 공력이 모자르는게 죄지... 흐흐... 평상시 같으면 그양 서 로 편하게 혈도를 점한 후 분근착골(粉筋鑿骨)만 사용하면 술술 부는데 말이 야... 흐흐.. 자.. 이제 말해보실까? 네놈 패거리는 지금 어디있어?" 그러자 사내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억지로 참으며 말했다. "크아....패거리는 없다." "뭐라구? 이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나?" 그러면서 묵향이 부러진 발을 툭툭 차자 뼛조각이 근육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사내는 지독한 통증에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비명을 질러대며 발악했 다. "크악! 날 죽여라. 악!" "패거리는 어디있어?" "으악! 모두 말할테니 제발.... 크으아악!" 진소추가 식은땀을 흘리며 애원하자 묵향은 발길질을 멈췄다. 그런다음 상대 가 정신을 어느정도 찾도록 시간여유를 준 다음 재차(再次) 부드럽게 물었다. "패거리는 어디있어?" "패거리는 없습니다. 소인 단독 범행입니다." "힘도 좋군.. 여자를 둘이나 업고 어디로 갈 생각이었냐?" "업고 가려는게 아니라......" 진소추가 머뭇거리는 걸 보고 묵향의 뇌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으응? 설마..." 묵향은 약간의 진기를 손 끝에 힘들게 끌어모아 상대의 단전(丹田)을 탐색했 다. "역시.... 이종(異種)의 진기(臻氣)가 들어있군. 더러운 녀석! 사내녀석이 할 짓이 없어서 채음보양(採陰補陽)이나 하다니...." 그러자 진소추는 애원하기 시작했다. "살려 주십시오, 대협." 사정하는 진소추를 향해 묵향은 의외로 부드럽게 말했다. "내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채음보양따위 수법을 써서 남의 진신내력(眞 身內力)을 갈취(喝取)해 봤자 나중에 이종의 진기를 화합(和合)시키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야. 왜 채화음적은 엄청난 숫자의 계집들을 통해 내력을 흡수할텐 데도 그 중에 초고수(超高手)가 한명도 나오지 못했겠냐? 다 이유가 있다구. 네놈의 기(氣)를 보아하니 지금은 그런대로 상관없지만 더 이상 흡수(吸收)하 면 공력 증대(增大)는 고사하고 목숨까지 내놔야 할거다. 알겠냐?" "충고에 감사드립니다. 대협." "내놔." "예?" "해약(解藥) 내놓으라구." 그자는 침상위에 놓여있는 작은 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저기 떨어져 있는게 해약입니다." "저건 저 아이들에게 사용하려는 음약(淫藥) 같은게 아니고? 바른대로 말해, 안그럼 이번엔 왼쪽 팔뼈마저 부숴주겠다. 난 아주 인자한 사람이라서 목발은 짚을 수 있게 해주니 걱정마." 짐짓 인자한척 미소를 띄우며 부드럽게 말하는 묵향을 보고 이상하게도 온 몸 에 소름이 쭉쭉 끼치며 진소추가 말했다. "예. 대협... 저건 미혼약(迷混藥)의 해약(解藥) 하고 음약(淫藥)을 섞어놓은 것입죠. 그편이 일하기가 편해서요..." "그럼 음약이 들어가지 않은 해독제는 없냐?" "없습니다. 그냥 놔두시면 내일 아침쯤 되면 상쾌하게 일어날겁니다." "그래? 추도도 거짓이 없겠지?" "어느 안전(眼前)이라고 감히 제가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흐음.... 좋아. 사실이라고 믿어주지. 자네 절검문 문하라고 했는데 사실이 냐?" "아닙니다요. 소인이 어찌 그런 명문에 있겠습니까... 그냥 절검문의 이름만 팔고있습죠." 그러자 묵향은 웃음을 터트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하하... 좋아... 진짜 절검문의 제자(弟子)라면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는 데... 사파(邪派)라니 살려주지. 참...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자네 참 잘생겼 군." "감사합니다...헤헤..." "난 그게 별로 마음에 안들어." "예?!" 그와 동시에 묵향의 발이 상대의 머리로 날아왔다. 퍽! "크윽!" 묵향이 차고난 다음에도 지근지근 문지르던 발을 떼자 코뼈가 내려앉은 뭉개 진 코가 비참한 형상(形狀)으로 나타났다. 묵향은 그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한결 보기에 좋군. 그래. 이왕에 시작했으니 좀 더 손을 봐주지." 팍! "크아악!" 사내가 부러진 앞니 6개 정도를 ㅂ어내는 걸 보며 빙긋이 웃으며 부드럽게 말 했다. "아주 좋아. 이정도면 내 취향(趣向)에 딱 맞군. 앞으로 내 근처에 얼씬거리 면 수족(手足)의 뼈다귀를 몽땅 다 부숴놓고 남은 이빨도 몽땅 뽑아버릴테니 까... 빨리 챙겨서 꺼져." "예...예...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협..." 사내가 검을 허리에 차고는 벽을 짚고 헐레벌떡 사라지는 뒤모습을 미소띈 얼 굴로 바라보며 묵향이 나직히 말했다. "꽤 재미있는 밤이군.... 저따위 놈에게 속아 술을 그렇게 퍼마시고 일찍이 잠에 떨어지는 걸 보면 아직도 모두 애숭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지..." 그렇게 돼지 멱따는 비명소리가 밤하늘을 가로질러 그만큼 울렸으니 사람들이 나올만도 하건만 한명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묵향이 하는 수 없이 밑에 내려 가 보니 점소이가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묵향은 점소이의 뒷통수를 퍽 하고 때린 다음 젊잖게 말했다. "방 문짝에 경첩이 떨어져 나가고 바닥에 피가 좀 묻어있으니 빨리 올라가서 깨끗하게 원상태로 만들어 놔. 알겠냐?" "예... 예..." 점소이가 부리나케 2층으로 달려 올라가는 것을 보며 묵향이 나즈막히 혀를 차며 말했다.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군.... 그렇게 소란을 떨었는데... 아무도 콧배기도 안 비치니... 쯧쯧... 이만 올라가서 잠이나 조금 더 잘까... 아니면 명상이나 할까..." 다음날 아침 느즈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남매들은 부시시 일어났다. 간밤에 무 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숙취(宿醉) 때문에 다들 늦잠을 잔 것으 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묵향도 멍청한 3류 잡배 하나 때려잡은걸 가지고 자랑 스레 말할 사람도 아니었기에 일은 그렇게 넘어갔고 모두들 세면(洗面)을 한 다음 1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 도착하자 초희가 식당안을 두리번 거리는 것을 본 묵향이 물었다. "왜그러냐?" "진 대협이 혹시 계신가 하고요.." "아. 그 친구라면 아침 일찍 떠났지. 너희들이 자고있을 때 일이 생겨서 먼저 가니 나중에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군." 묵향의 얼굴가죽 두꺼운 상세한 설명을 들은 초희는 조금 실망한 표정으로 말 했다. "그래요?" 식탁에 모두들 앉았는데도 점소이가 콧배기도 안비치자 묵향이 버럭 소리질렀 다. "이봐. 주문 받아라." "예. 나으리." 점소이가 묵향의 외침에 어디서 나왔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섰는데... 그 서있 는 모양새가 뭔가에 겁을 집어먹는지 부들부들 떨고있는지라 초희가 물었다. "왜 그러니?" "아무것도 아닙니다요. 나으리." "그럼 숙취에 좋은 음식 좀 있으면 내 오거라." "예." 주문을 듣자마자 점소이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어제와는 달리 왜 저 아이의 태 도가 이상한지 당사자가 말을 안하니 모두들 제멋대로 상상할 뿐이었다. 늦은 식사를 한 다음 흑풍단이 있을듯한 위치를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도중에 포고문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잠시 길을 멈췄다. <찬황흑풍단(찬황흑풍단)의 옥영진(옥영진)은 그 지휘관(指揮官)이라는 자리 를 이용해 막대한 재물(財物)을 횡령(橫領)했고 그것도 모자라 황권(皇權)을 넘보는 가증스러운 모반(謀叛)을 획책(劃策)한 바, 그 물증(物證)을 확보한 금의위에 의해 자택(自宅)에서 처형(處刑)되었다. 하지만 그의 잔당(殘黨)들 의 일부가 숨어있으니 흑색 갑주(鉀 )를 입은 무리를 보면 관(官)에 필히 연 락하라. 그 정보가 사실임이 확인되면 후사(厚賜)하겠다. 금의위 대영반 이세번> 그 글을 읽고 세상 모르는 촌민(村民)들이 한마디씩 했다. "말세로군. 저렇게 높은 양반이 어쩌자고... 쯧쯧.." "저런 녀석까지 썩어있으니 나라가 안되는 거야."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가증스러운 녀석이로군." 그걸 본 초우가 한심하다는 듯이 촌민들을 훑어 본 다음 말했다. "자 빨리 출발하자. 내일 점심때까지는 백수강을 건너야 한다구." "예." * * * 애숭이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수소문(搜所聞)해서 쫓아가는 추격술(追 擊術)이나 정보(情報)의 분석력(分析力)에서 초우는 묵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솔직히 그에게 묶여 개처럼 끌려가는 단 하나의 이유가 좀 더 빨리 흑풍단을 찾는데는 이 방법이 좋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니까... 초우는 일행들을 몰아서 백수강을 건너 재빨리 이동한 결과 8일 후 흑풍단에 거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초우는 마지막으로 촌민 (村民)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본 다음 일행들에게 돌아와서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그들은 저기 보이는 와우산(臥牛山)에 숨어있는게 틀림없소. 이미 일단의 관 군들이 이 근처를 기점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다 와우산에서 천태산(天態山)쪽 으로 이동하면 청해성(靑海省)이 나오는데 아마도 그들은 아직 온전한 병력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정서원수부의 관할지역 중에서 비교적 병력이 적은 청해 성쪽으로 이동할 생각인 모양이오." "이 일대에 퍼진 관군(官軍)은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 "여태껏 촌민들이 알려준 복색(服色)이나 인원(人員)을 분석(分析)해보면 정 서원수부 관할 병력이 2만 정도... 그리고 정북원수부 소속이 3만 정도인 것 같소. 그런데 가까운 정서원수부에서 보낸 병력이 더 작은거 보면 아무래도 정서원수부에서는 흑풍단과 싸울 생각이 애시당초 없는거 같고.... 정북원수 부만 조심하면 될거 같소." "참. 그런데 그들이 와우산에 있는게 확실한가?" "그럴 가능성이 9할 이상이오. 그쪽으로 이동한 흔적은 미미하게 보이고 또 저 촌민의 말이 어제 나무하러 가면서 못 본 말발자국이 어지럽게 나있는 것 을 봤다고 하니...." "하지만 말발자국만 보고 그들이 흑풍단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걸?" "그렇긴 하오만 그 말발자국이 밤새 생긴것이니... 관군이 왜 위험을 무릎쓰 고 야행을 하겠소? 잘못해서 무공까지 강한 흑풍단에게 매복이라도 당하면 전 멸을 면치 못할텐데..." "그도 그렇군. 하지만 와우산을 넘어 다른곳에 박혔을지도 모르잖아?" "아니오. 와우산은 산세가 거칠어 이동하기 힘드는데 우회하지 않고 와우산 위로 올라간 것으로 미루어 험하긴 하지만 산길을 택해서 몰래 이동할 심산인 모양인데... 잘 갔다 하더라도 와우산 옆에 있는 우미산(牛尾山)이나 장천산 (長川山)쯤까지 밖에 못갔을거요." 여기까지 물어본 묵향이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좋아좋아... 이제부터는 산길 이동이니 자네들의 도움은 필요 없 겠군. 본인도 그런대로 추적술은 자신이 있으니까... 발자국만 따라가면 될테 니... 자 이제부터는 나는 나대로 행동할테니 이 수갑이나 풀어주게나." "그건 안되오. 그대가 첩자인지 그들에게 확인해 본 다음에...." "할 수 없군." 뚝... 묵향은 손을 벌리자 썩은 밧줄처럼 간단히 수갑의 사슬이 끊겨버렸다. "그... 그대는 혈도를..." "네녀석이 잡은 혈도따위 푸는데 별로 시간도 안걸려. 자 내놔." 묵향이 손바닥을 내밀자 아연한 표정으로 초우가 물었다. "예?" "내 비수 내놓으란 말이다." 얼떨결에 내놓는 비수를 받은 후 쓱하고 비수를 꺼내는데 싸구려 검집과는 달 리 안에서 나오는 비수는 놀랍게도 묵빛 광택이 나는 것이 보통 비수가 아님 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 모두들 묵향이 비수를 꺼내자 일순 긴장하여 모두들 묵향과의 거리를 재며 발 검(拔劍)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놀란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묵빛 비수가 갑자기 청색 화염이 올라오는 듯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억!" 비록 말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말로만 들어오던 어검술(御劍術)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본 순간 그들의 마음에서 투지(鬪志)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도저히 이길 상대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묵향은 그 비수를 이용해서 썩 은 무우 자르듯 간단히 손목에 걸린 오철로 만든 수갑을 잘라낸 다음 비수를 품속에 집어넣은며 멍청한 얼굴로 그를 보고있는 세명을 휙 둘러본 다음 말했 다. "생각 같아서는 수갑을 채운 네 연놈들을 몽땅 죽여 없애고 싶지만 그래도 여 태껏 정이 든데다 빨리 흑풍단을 찾아준 성의(誠意)를 생각해 살려둔다. 만약 다음에 누구한테 내 혈도를 잡고 손목에 수갑채웠다는 말을 하기만 하면 혓바 닥을 뽑아버릴테니 자나 깨나 명심하도록." 그와 동시에 묵향의 신형은 말 위에 앉은 채로 튕겨 오르더니 무시무시한 속 도로 와우산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순식간에 하나의 점이 되어가는 묵향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있던 초희가 말 했다. "저거 어검술 맞죠?" "아마도 그런 것 같다.... 나도 눈으로 보기는 처음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구 나." "무슨 경공술이 저렇게 빠르죠?" "글쎄... 태산을 몰라보고 있었구나.... 아마 여태껏 그가 떠들어댄 말이 모 두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역시 무림은 넓구나. 아버님의 말씀이 무림에는 지 금 드러나 있는 2황 5제 4천왕이 강하다고 하지만 산골짜기에 그보다 더 강한 자들이 은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었지. 나는 말씀을 믿지 않았었는데 사실이었구나...." "하지만 오빠, 아무리 그래도 명문의 무공이 가장 강하다고 배웠었고... 또 후기지수(後期之手)들 중에서도 명문(名門)의 자제(子弟)들이 가장 강하잖아 요. 그런데 어째서 초야(草野)에 묻힌 사람이 더 강할 수가 있죠?" "당연히... 되지도 않은 무공을 숨어서 수십년 익힌다고 될게 아니지. 아버님 말씀으로는 천운(天運)을 만나 기연(奇緣)을 얻는 수도 있다고 하셨지만...." "기연이라면 어떤?" "말대로 기이한 인연이지. 어쩌면 우연히 은거기인(隱居奇人)을 만나 그의 제 자가 될 수도 있고... 또 기인의 무공 비급을 얻을수도 있겠지. 또 영약을 얻 을수도 있고... 그렇지만 첫째가 가장 현실성이 있고 나머지는 아냐. 보통 비 급이라면 정상적으로 기록한 경우는 없고.. 대부분이 암호(暗號)나 뭐... 말 뜻을 축약(縮約)하거나 빙빙 돌려놔서 그 오의(悟意)를 깨닫기가 무척 힘들거 든. 그렇기에 일정한 바탕이 되기 전에는 비급을 얻어도 그건 그냥 종이조각 에 불과한거야. 또 보통 사람이 영약따위 먹어봐야 보신(補身)이나 될까... 무공과는 상관없으니... 첫 번째가 가장 현실성이 있겠지." "과연 은거기인의 눈에 띄어 그에게 무공을 전수(傳受)받는게 가장 현실성이 있겠군요. 하지만 그렇게 강한 사람이 은거(隱居)를 할 리가 거의 없잖아요. 안그래요?" "아니야. 여태껏 무림에는 수많은 명문 거파들이 나타나고 또 사라졌지. 아마 사라진 문파들의 후손일지도 모르고... 또 일부 명문에서 파문당한 고수들도 있고, 심한 경우... 무림공적(武林共敵)으로 몰려 숨은 자도 있잖냐? 아마 묵 향이란 사람도 사문이 있다고 했으니... 어떤 명가에서 쫓겨난 반도 정도겠 지. 아마도 사문에서 쫓겨난 다음 어디 산골짜기에 숨어서 죽자고 무공을 익 혔는지도 모르고...." "글쎄요... 그의 말로는 파문은 아니라던데...?!" * * * 자그마한 산속에 세워진 정사(靜舍). 얼핏 보면 근방의 유려(流麗)한 경치(景 致)를 구경하기 위해 대갓집에서 세운 듯 제법 운치를 가진 자그마한 집이다. 그 정사의 앞쪽으로는 수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자연 경관이 펼쳐져있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그 낭만과 운치를 간직한 정사를 감싸고 있는 기운이 예사롭 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사의 30장(90M) 밖에는 10인 정도의 인물들이 주위를 경계하며 살벌한 안광(眼光)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무 형(無形)의 기운만으로도 아무리 무공에 문외한이라도 무시무시한 고수임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극강(極强)의 기운을 뿜어내는 인물들이다. 이런식으로 자신의 기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그들이 암습 따위의 얄팍한 술수를 익힌 자들이 아닌 정면대결(正面對決)을 위해 그 무공을 익힘에 있어 정도(正道)를 걸어온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가 장 손쉬운 자리는 아마도 비무대(比武垈) 위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마도 누군가의 호위(護衛)를 위해서임이 분명했다. 이런 무식 할 정도로 정직한 무예(武藝)를 익힌 자들을 써먹을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 다. 그런데 누군가의 호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극강한 기운을 뿜는다는게 문 제라면 문제라고 할까.... 하지만 더욱 큰 의문점은 그들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거의 절반에 가까 운 수는 숨이 막힐 정도의 마기(魔氣)를 내뿜는 반면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 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정파의 고수들도 지니기 어려울 정도로 정순(靜純)한 기운을 갈무리한 것을 보면 더욱 아리송해진다. 왜 이렇게 물과 불처럼 어울 릴 수 없는 자들이 한자리에서... 그것도 한채의 정사를 호위하며 눈에 불을 켜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정사 내부를 보면 대단히 소박하지만 소유주(所有主)의 품격(品格)을 나타 내는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거의 장식물이 없을 정도 로 텅 빈 실내지만 몇가지 준비된 필수품... 예를 들어 탁자라든지.. 의자 따 위 같은 것은 얼핏 보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수하지만 자세히 감정을 해보면 뛰어난 장인의 화려한 솜씨가 돋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자그마한 탁자에는 찻잔이 놓여져 있었고 2명의 젊은이가 차를 들면서 담 소를 나누고 있었다. "껄껄... 처음에 만날때는 몰랐었는데.... 5년동안 한번씩 얘기를 나누다 보 니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참 서로가 많은 부분이 통하는 점이 있구려." 그러자 그 청년의 앞쪽에 앉은 청년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 청년 의 피부 색은 기괴하게도 자색을 띄고 있었고 은은한 마기를 자연스럽게 흘리 는 것이 아마도 촌민들이 봤다면 귀신이라도 만난 줄 알것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소? 그 사건이 있은 후 사후(事後) 처리를 위해 만난 것이 발단이 되었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흐른지는 몰랐구려. 그리고 이번에 본교 (本敎)에서 처리하기에는 껄끄러웠던 놈들을 공적(共敵)으로 몰아 없애줘서 고맙소이다." "뭘요... 그대도 껄끄러운 애숭이들 처리에 도움을 줬으니 당연한 것이지요. 요즘 본맹(本盟)을 우습게 보는 것들을 귀교(貴敎)처럼 공개적으로 없앨수도 없으니 난처한 노릇이지요. 그렇다고 몰래 암살을 하자니... 본맹이 의심을 받을게 당연하고... 난감(難堪)했었소이다. 참. 그런데 내 보고받은 바로는 묵향이 살아있다던데..." 그러자 마기를 풍기는 젊은이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입을 열었다. "믿기 어려울테지만 사실이오." "흐음... 그때 완전히 없애버린줄 알았건만... 안타까운 일이오." "그러게 말이오. 이거 완전히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뽑은 꼴이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외다." "악독한 놈의 손에 두 손녀가 죽은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런놈이 살아서 돌 아다닌다니.... 하여튼 전율(戰慄)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놈이오. 그놈을 이 번에는 완전히 없애버려서 후환(後患)을 제거해야 하오." "글쎄 말이오. 하지만 예전에는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을텐데... 쯧쯧..." "왜 그러시오? 일단 없애기로 한다면 믿을만한 수하(手下)를 시켜 살인(殺 人), 강간(强姦) 등을 시킨 다음 모두 그놈에게 뒤집어 씌워 무림공적(武林共 敵)으로 선포(宣布)하고 그녀석을 주살(誅殺)하면 간단할텐데?" "예전이라면 그게 통하겠지만 지금은 너무 커버렸소." "왜요? 그는 언제나 혼자서 행동할텐데.... 예전에도 그랬잖소? 그덕분에 전 에도..." 그러자 마기를 풍기는 젊은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힘없이 말했다. "휴... 그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오. 본좌가 멍청하게도 기억을 잃은 그녀 석을 끝장 내겠다고 천랑대와 염왕대를 보냈는데.... 그녀석들이 묵향편에 붙 어버렸소." "그럴수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외다. 그가 기억을 잃은 상태라면 몰라도... 기억을 찾았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지니 말이오. 그는 아직도 본교의 인물이고... 또 그의 직위(職位)도 살아있소. 그러니 그 자신이 본교의 율법(律法)을 들고 나온다면 이것은 문파간의 투쟁이나 반도(叛徒) 처리의 문제가 아니오. 다만 교내의 권력(權力)다툼이 된다 이말이외다. 그러니 수하들은 모두들 각자 그 권력암투의 도중에서 누군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고 십중팔구 그들 은 강자(强者)의 편에 붙을 수밖에 없소이다. 본교 내의 모든 권력은 약육강 식(弱肉强食)의 율법을 따르기 때문이오. 만약에 그가 예전의 장인걸처럼 새 로운 문파라도 만든다면 오히려 간단한 일이지만 그가 본교의 부교주란 점을 계속 내세운다면 본교에서 고수들을 투입(投入) 할수 없소. 고수들을 보내봐 야 그자가 나보다 강하다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에... 그가 그점을 내 세운다면 모두들 그의 편에 설 수밖에 없소." "흐음.... 극강을 자랑하는 마교도 여태껏 그 강함을 지탱해준 율법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생기는군요. 그럼 본좌가 나서서 그 일을 처리해야 한단 말 이오?" "그래 주실 수 있겠소? 하지만 그놈이 거느린 세력은 왠만한 문파쯤은 한시진 도 안되어 가루로 만들 정도로 강하오. 그정도 힘을 겨우 맹내(盟內)의 힘만 으로 처리하긴 힘들거외다." "흠..... 그건 본좌도 알고 있소. 어떤 뚜렷한 명목이 있어야 그 멍청이들을 설득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참! 문제는 그놈 하나니 살수를 고용하면 안되겠소?" "하지만 그정도의 고수를 처리할 만한 살수가 있겠소?" "요즘 맹위를 떨치는 살수집단(殺手集團)이 하나 있소이다. 그들에게 청부(請 負)를 해볼까 하오. 일단 공통의 적이니 그 비용은 서로 반씩 부담함이 어떻 겠소?" "좋소이다. 그런데 그 살수집단이라면?" "아마 그대의 짐작대로일거요. 요즘은 살수집단 중에서 흑월회(黑月會)의 솜 씨가 제일 좋다고 들었소." "과연.... 하지만 소문대로 그들의 실력이...." "클클...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살수들의 생명은 정보(情報)라고 봐야 하오. 개방( 幇)과 무영문(無影門)의 할망구한테 의뢰를 해놨으니 그의 겨드랑이 털 수까지 알려줄거요. 그만한 정보를 가지고도 어쩔 수 없다면.... 비밀리에 처리하긴 힘들거외다." "흠... 그렇다면 본좌도 삼비대에 연락해서 쓸만한 정보가 있으면 그대에게 넘겨주겠소. 하지만 그놈의 행태(行態)가 희한해서 아마도... 외부에서 포착 해서 암습(暗襲)하기는 힘들거외다." "행태라뇨?" "보통 느지렁거리면서 다니다가 한번씩 경공술을 써서 이동하는데... 그 속도 가 정말이지 무식할 정도로 빨라서, 완전히 몸을 드러내고 뒤쫓아도 못따라가 는데 어찌 숨어서 미행을 하겠소?" "쯧쯧... 그런 문제가 있구료." "거기다 예전에 그의 수하로 있었던 놈들의 말을 들어보면 밖에 나가면 거의 잠도 안 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본거지에 있을때는 한 서너시간은 자는 모 양이오. 그러니 그놈을 덮칠 곳은 본거지 뿐이다 이말이오." "그렇다면 참고로 알아둘 만한 그놈의 약점 같은 것은 없소?" "글쎄요... 그놈의 특기는 강기(剛氣) 종류지만 공력이 비교적 적게 드는 어 검술 종류를 더욱 좋아한다는 사실... 그렇기에 떼거리로 덤벼드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을거요. 그리고 아마도 그놈은 본교가 자랑하는 흑미륵신공(黑彌勒 身功)을 익혔을 테니 왠만한 공격으로 결정적인 타격은 줄 수 없소. 하지만 흑미륵신공 자체가 금강불괴(金剛不壞)처럼 외부에서 타격을 막는게 아니라 내부에서 충격을 분산(分散)시켜 흩어버리는 것이니... 아마도 장법이나 권법 같은 것 보다는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 타격이 클거요. 하지만 흑미륵신공 자 체가 혈관(血管)과 혈도(穴道), 뼈를 무쇠처럼 단단하게 해주니... 그도 장담 은 하기 어렵소이다. 아마도 선택된 살수는 무쇠도 손쉽게 자를 수 있는 신병 이기(神兵異器)를 사용해야 할거요." * * * "그렇지... 그때 한번 보니 그놈의 무공(武功)은 상당히 특이했었소. 보통 귀 교의 무공은 강대(强大)한 공력(功力)을 바탕으로 하는 장력(掌力)이나 강기 류(剛氣類)가 주무기인데 반해 그자는 검을 이용해서... 그것도 최소한의 공 력만을 이용해서 적을 없애는 아주 실용적인 검법을 구사하는 것 같더군." "그게 가장 큰 문제라는 거외다. 보통 강한 위력에만 의존하는 놈들인 경우 떼거리로 덤비면 나중에는 공력이 고갈(枯渴)되어 제풀에 뻗게 되어있는데... 아마 그놈을 제풀에 뻗게 만들려면... 본교 세력의 절반을 잃을 각오까지 해 야 할 판이오." "그렇게까지나..." "아마 그게 맞을거외다. 그놈은 아주 실리적인 놈이라... 거기다 우리와 정면 으로 싸워야 할만한 약점 따위도 없소. 그러니 치고 빠지는 식을 계속한다면 그놈의 경공술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니... 어디포위(包圍)가 되겠소? 그냥 계속 쫓으면서 놈의 공력이 고갈되기를 기다려야 할텐데?" "흐음.. 그렇군. 그럼 예전과 같은 방법을 한번 더 써보는 것은 어떻소?" "예전과 같은 이라면?" "혹시 그놈이 아끼는 사람은 없소?" 그제서야 감잡은 상대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오.. 맞소. 그놈이 아끼는 양녀(養女)가 하나 있소. 그 아이를 인질(人質) 로..." "아니오. 인질만으로 해서는 큰 효과를 보기 힘들거요. 귀교에는 사람의 마음 을 조종하는 술법이 있다고 들었는데?" "흐흐흐... 거 참 모르시는게없구려. 마령섭혼심법(魔靈攝魂沁法)이 있소이 다. 그걸 아주 교묘히 이용하면 될지도 모르겠군." "껄껄껄... 초고수에게 사용할 것도 아니고 그냥 어린 계집아이만 사술(邪術) 에 거는거니 아마 손쉬울거요. 그놈이 아이를 구한답시고 쳐들어오면 치열한 접전의 와중에 그 아이를 이용해서 암습을 하게 만든다면..... 하하하...그땐 우리가 원하는 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거요." "하지만 그놈이 들은척도 안한다면? 어쩌면 능히 그럴수도 있는 놈이니 하는 말이오." "그러면 할 수 없이 계획대로 살수를 보내는 것으로 합시다. 쓸데없이 먼저 살수를 보내어 경각심(警覺心)을 일깨울 필요는 없으니 말이오." "좋소이다." * * * "이상한 일이군." "뭐가요?" "왜 말들을 다 버리고 갔지?" "관군들이 지키고 있으니.... 저건 관군들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어. 주위를 살펴보니... 여기까지 이어지던 흑풍단의 말발자국 이 없어졌다. 이건 그들이 말을 버리고 본격적으로 경공술을 쓴거야. 그리고 저기에 쌓여있는 흑색갑주들을 봐라. 일부러 갑주까지 다 벗어렸다는 것은 이 제부터는 정면대결 보다는 도망치는 것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 작전을 바꾼거지?" "혹시 그때 만났던 묵향이란 선배를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맞아요. 그 선배의 무공수준으로 보아... 잡배는 절대 아닐꺼고 어떤 단체의 수장(首長) 정도라면 그의 단체에 포섭(包攝)되었을 수도 있지요. 그러면 목 적지가 생겼으니 쓸데없는 전투를 벌이기 보다는 조용히 도망치려고 들겠죠."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조심해라. 관군들 외에도 제법 고수들이 몇 명 있는 것 같으니까." "예." 초우 일행은 마을에서 말을 다 팔아버린 후 경공술을 이용했다. 산길을 달리 는데는 말을 이용하는 것 보다 경공술을 사용하는게 더 낫기 때문이다. 때문 에 조용히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아직 무공이 떨어지는 여동생들 때문에 골치 였다. 아마도 이걸 염려한 묵향이 혼자서 앞서갔을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터 졌지만 그래도 여동생들이라 버려놓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누이 동생들을 독촉하며 길을 재촉한 결과 묵향과 헤어진 그날 저녘때 흑풍단이 버 리고 간 말들을 호위하고 있는 관군들을 만난 것이다. 관군들의 행동이 예상 외로 빠름을 감지한 초우는 아무래도 추격의 전문가 쯤 되는 무림인들이 관군 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기에 그 누이동생들에게 주 의를 준 것이다. 이들은 밤을 무릎쓰고 3시간 정도 산길을 달리다가 더 이상 어둠 때문에 흔적 을 쫓을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야숙(野宿)을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추 격을 시작했다. 추격을 시작한 후 4시간 정도 되었을까 희한한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8마리의 개(犬).... 아마도 관군에서 기르는 군견인 모양인데... 그들의 입에 거품이 물려 있었고 모두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있었다. 아직 4마리의 개가 살아있기에 그들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은 광기(狂氣)에 가득찬 채 사람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아마도 미친 개들한테 물렸는지 여러명의 부상자들이 있었다. 일부 병사들은 그들을 간호하고 있었고 일부는 미친 개들을 공포어린 눈으로 죽인다고 난리 를 치고 있었다. 이때 유독 그중에 3명의 인물들이 초우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들은 각기 관 군들과는 달리 검을 가지고 있었고 이 난리통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관군들에게 협조하는 무림인들인 모양이었다. 보통 돈이 궁한 무림인 들 중의 일부가 관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다행이라면 그런 인물들 중에는 아주 뛰어난 고수는 없다는 점인데... 하지만 만의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 조심은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 들개들은 뭐죠?" "들개들이 아니다. 목에 끈이 묶여 있잖아. 관군들이 사용하는 군견(軍犬)이 다. 아마도 흑풍단이 어떤 약물을 길에 뿌린 모양이야." "약물을 뿌린다고 개가 미쳐요?" "그건 모르지. 이럴게 아니라 빨리 가자. 흔적 남기지 않도록 조심해라. 저 난리가 나는 걸 봐서 아마도 저들이 제일 앞서서 추격하는 놈들인 모양이니 까." "예." 초희는 순순히 대답했지만 초연은 그래도 약간의 무림 경험은 있는지라 자신 이 생각하는 우려할 만한 점을 말했다. "오빠. 그러지 말고 저들 뒤로 따라가는건 어때요? 함정이라도 있다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그럼 조용히 그들을 따라간다." 과연 그 세명은 추격의 전문가들이었다. 개들이 죽어버린 후에도 그들이 앞장 서서 아주 미세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300여명의 관군들을 인도했다. 그러면 관군들은 뒤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10장(30M)간격으로 하면서 그들 의 뒤를 따라갔다. 아마도 그 뒤에는 관군의 주력부대(主力部隊)가 따라올지 도 모른다. 초우는 일부러 그 뒤를 따라가며 그들이 묶어놓은 빨간 천을 풀어 다른 샛길쪽으로 연결해뒀다.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6개 정도만 연결한 후 다 시 돌아와 그 샛길을 즈음해서 나 있는 관군의 발자국도 모두 없애버린후 뒤 따르면서 모든 표시들을 없애버렸다. 이렇게 4시간 정도 갔을까.... 갑자기 앞에서 화살 10대가 동시에 날아와 추 격하던 무림인들 3명과 뒤따르던 군사들의 몸통에 맞았다. 그들은 그 즉시 고 꾸라졌고 모든 화살의 앞부분이 등뒤까지 튀어나온 것이 그것을 쏜 사람의 공 력(功力)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화살이 날아오자 마자 모두들 나무나 바위 등의 뒤에 숨었지만 더 이상의 행동은 없었다. 그제서야 모두들 쓰러진 사람 들을 살펴보기 위해 조심조심 일어섰다. 아마도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화살을 맞은 모든 사람들은 즉사(卽死)한 모양이었다. 이때 숲속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더이상 추격하면 모두 다 죽여버릴테니 알아서 해라. 모두 다 꺼져!" 희망을 가졌었던 무림인들도 다 죽어버렸고... 상대는 얼마 전까지 관에서 최 강을 가랑하던 찬황흑풍단이다. 거기에 상대는 이쪽을 알지만 이쪽은 상대가 어디에 숨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병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명이 뒤로 도망치자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며 모두들 뒤를 향해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관군들이 사라지자 초우는 이때라고 생각했다. 그는 경공술을 이용해 앞으로 쏘아가가 시체들이 있는 곳에 당도한 다음 신형을 멈추고 말했다. "저는 초씨세가의 초우란 사람입니다. 그대들이 죄도없이 쫓기는 것을 알기에 도와드리려고 먼길을 달려왔으니 동행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의외로 상대의 답은 손쉽게 떨어졌다. "좋소. 그대의 동생들과 함께 오시오." '동생들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초우는 동생들을 불러 앞으로 나갔고 그 앞에는 10명의 전포(戰袍)를 입은 무 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각기 활을 휴대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이들이 방금 활을 쏜 인물들인 모양이었다. "그대가 초우인가? 나는 임충이라고 한다네. 대장한테서 자네 얘기 들었어. 젊은 나이에도 꽤나 유능하다던데... 참. 관지 대장이 있는 곳으로 가세나." 초우는 경공술을 이용해 따라가며 임충에게 물었다. "지금 흑풍단을 이끄는 분이 관지 대장이란 분입니까?" "그렇지. 나중에 자네도 만나보면 알겠지만 대단한 분이야. 지금까지 우리들 이 버텨온 것도 그분의 덕이지." "묵향이란 선배는 여기 계십니까?" "아니. 일이 있다면서 먼저 떠났어. 제길... 예전에도 대단했지만 지금은 아 예 저 먼 하늘이더군. 그때는 꼭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었는 데..." "그렇게 대단한 분인가요?" "그렇지. 내가 이상형으로 삼는 분이라고 할까... 무공도 고강하지만 유식하 고... 또 마음씀씀이는 얼마나 인자하고 부드러운데... 예전에는 술도 자주 마셨었는데..." '인자하고 부드러워? 유식하다고? 전혀 아니던데...' "저... 그분 책은 많이 보셨나요?" "응. 관지대장의 말로는 황궁무고에 있는 책이란책은 몽땅 다 읽은 유일한 인물이라고 하더군. 그리고 단장이 예전에 그에게 뛰어난 선생들 몇 명을 붙 여줬었는데... 글공부도 아주 폭넓게 한 모양이야."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떨떠름한 얼굴로 초우가 되물었다. "그래요?" "자네도 만나 봤었다니 알거아냐? 무식한 무림인들 하고는 뭔가 분위기가 틀 리지 않던가?" "저는 안목이 짧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대장이 바빠서 그런지 나도 얼마 얘기를 못나눴거든." 3시간 정도 달려가자 흑풍단의 본대가 있었다. 모두들 나무기둥에 의지해 쉬 던지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무리들도 있었다. 임충은 그들을 데리고 한 인물 앞으로 다가갔다. 그 인물은 청색 전포를 입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젊은 무사였는데 오랜시간 쫓긴 탓인지 다듬지도 못한 수염이 숭숭 돋아있었다. 그리고 다부진 턱선과 피로한 듯한 안색(顔色), 시 원하게 솟은 콧날....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드러낸 강렬한 안광(眼光)을 내뿜는 두 눈... 한마디로 패기(覇氣) 가 넘치는 뛰어난 무사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예상외로 상대가 아주 뛰어난 인물임을 자각하며 초우는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인사를 하면서도 누이동생들이 이 근사한 상대를 앞에 두고 정 신을 못차리는 것을 눈치채고는 정신을 차리게 옆구리를 찔렀다. 서로간의 인 사가 끝난 후.... "초씨세가의 초우라 합니다. 직접 보니 더욱 뛰어난 분이시군요." "허허.. 과찬의 말씀을.. 그대의 말은 묵향 부교주에게 들었소." "예? 부교주라니요?" "그는 얼마 전까지 본단(本團)의 백인대장으로 있었던 대단히 뛰어난 무인이 오. 하지만 그때 그를 알게 되었을때도 화경(化境)에 준하는 무공을 소유한 인물이 겨우 백인대장 노릇이나 하는게 이상하게 생각되었었소." "방금 화경이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화경이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그 이전의 기억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소. 그러니 자신이 익혔던 모든 무공 또한 잊었었지요. 그래서 단장님 이 그를 황궁무고에 들여 무공을 익히게 한 것이었는데.... 그의 무공을 직접 몽고 전투때 봤었지만 정말 대단했었소. 그런데 이번에 어떤 계기로 기억을 되찾았다고 하더군요. 그의 본래 위치는 무림의 마교란 단체의 부교주라고 했 소. 자기가 몇가지 일을 벌이는데 날 보고 도와달라고 하더군. 사실 우리들도 갈곳이 없던 차고 해서... 그의 일에 동참(同參)하기로 했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저.. 마교란 단체를 들어보셨습니까?" "난 잘 모르오. 난 관부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무공을 익혔고... 또 들리는 소 문만으로 상대를 평가할 정도로 속좁은 인간도 아니오. 사실 내가 직접 본 묵 향이란 인물은 정파라 자처하던 인물들에 비해 뒤질게 없었기 때문이오. 그리 고 그는 지금 마교하고 좀 껄끄러운 관계인 모양이고 별로 좋지못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다음에 만나면 괜히 먼저 마교에 관계된 말을 꺼내지 마시오. 어쩌면 그대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모르니까..." "예?" "이번에 만나보니... 기억을 되찾은 다음 사람이 조금 변했더군요. 하지만 솔 직담백(率直淡白)한 것은 여전하기에 그를 믿기로 했소. 그의 무공은 지금 현 경(玄境)의 수준이라 했소. 그러니 그의 신경을 건드려 좋을게 없다는 말이 오." "그럴 리가...." 초우는 경악했다. 내심 묵향이 마음껏 어검술을 쓸때부터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놀라움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경이란 위치가 그냥 말로 한다고 올라가는 경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어려운 위치기 에 기나긴 무림 역사에도 단 한명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묵향 선배도 없는데... 그럼 어디로 갑니까?" "섬서성(陝西省)에 위치한 중경(中京=지금의 서안시;西安市) 서남쪽에 태백산 (太白山)이란 산이 있는데, 그곳에 세워진 흑룡문(黑龍門)이란 문파가 있다고 했소. 그리로 오라고 했으니... 조심해서 가봐야지요." "참. 오다가 미친 개들을 봤는데... 그건 어떻게 한겁니까?" "그건 묵향 부교주가 주고 간 광견분(狂犬粉)이란 독을 사용한 것인데 그걸 땅에다 뿌려놓으면 개가 냄새를 맡는다고 킁킁거리다가 콧속으로 들어가면 콧 속의 습기에 녹으면서 발작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지요. 아마도 사람한테도 효 과는 있겠지만 사람이 어디 땅바닥에 킁킁거릴 일이 있겠소? 다만 물에 잘 녹 기 때문에 비만 오면 끝난다는 단점(短點)이 있다고 써져 있더군요." * * * 묵향은 지금 별로 기분이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누구라도 길을 갈 때 누군가 가 자신을 감시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은 기분이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어찌한다... 기분도 꿀꿀한데... 재미삼아 한번 족쳐봐?' 누군가가 뒤쫓는 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흑풍단과 헤어진 다음 홍원(紅原)이 라는 도시에 들어선 다음부터다. 홍원은 사천성(四川省) 북쪽에 있는 제법 큰 상업도시로 감숙성(甘肅省)으로 들어서는 관도(官道)상에 위치한 사천성과 감 숙성간의 물류유통(物類流通)의 중심(中心)이었다. 묵향은 일부러 조금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선 다음 다시 오른쪽에 나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다음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그의 기다림은 별 로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먹음직한 먹이감이 바로 거미줄을 향해 돌진해왔기 때문이다. 묵향은 골목안으로 뒤따라온 거지 2명의 혈도(穴道)를 재빨리 점혈 (占穴)한 다음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시작했다. "호... 개방( 幇)의 나으리들이 왜 나를 따라다니지?" 그러자 점혈당해 쓰러진 두명은 익히 상대의 무서움에 대해 들었는지라 식은 땀을 흘리며 변명해댔다. "오해십니다요.. 나으리. 저희들은 동냥을 받기위해 이리 들어온 것 뿐입니다 요." "쯧쯧... 아니야... 그건 사실이 아니야. 좋게 말로 할 때 털어놔. 응?" "사실입니다요. 저희들은 그냥 동냥을 받기위해 이리 들어온 것 뿐입니다요." "그으래에..? 난 오늘 내 평생 본것보다 더 많은 거지들을 봤다구. 그게 결코 우연(偶然)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묵향이 그들의 품속을 뒤지자 곧이어 품속에서 세밀히 그려진 묵향의 초상화 가 나왔다. 그 초상화에는 몇마디 말이 써져 있었다. < 마교(魔敎) 부교주(副敎主) 묵향(墨香) 단독행동(單獨行動)을 좋아하며 검은색의 아무 장식(裝飾)이 없고 칼날받이 조차 없는 특이한 모양의 기형검(奇形劍)을 사용함. 이 자의 무공은 화경을 넘어선 상태로 대단히 사악(邪惡)한 위험인물(危險 人物)이니 절대 충돌은 피할 것. 이 자의 위치가 발견되는 대로 총타에 최우선적으로 보고할 것.> 묵향은 그 초상화를 쓰러져있는 거지들의 눈앞에 들이대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건 내 얘기 같은데... 아무래도 말로 해서는 안들을 것 같군." 묵향은 우선 놈들이 자살하지 못하도록 아혈을 제압해버린 다음 말했다. "말할 생각이 있으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라구. 먼저 뭘 해볼까... 분근착골 (粉筋鑿骨)은 별로 재미가 없고... 흠... 맞아." 한 거지의 윗도리를 벗긴 다음 때가 잔뜩 묻어있는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면서 말했다. "아주 예쁜 갈비뼈를 가지고 있군. 이걸 하나씩 뽑으면 아주 재미있을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러면서 제일 밑에 위치한 갈비뼈로 손가락을 박아넣어 갈비뼈를 쥐었다. 그 런다음 아주 천천히 힘을 가해가자 공포에 질린 눈으로 거지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도 생으로 갈비뼈를 뽑겠다는데야 항복할 수밖에 없었 던 것이다. '초상화에 써진 것 보다도 더욱 사악한 놈이군. 제기랄... 잘못걸렸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그놈의 아혈만 풀어주면서 속삭이듯 부드럽게 말했다. "자네가 혀를 깨물고 자살한다면 저기 남은 친구는 더욱 처참하게 당할테니 잘 생각하라구. 내가 묻고자 하는 것은 하나뿐이야. 홍원 분타가 어디있지? 뭐 싫다면 대답 안해도 상관없어. 여기 거지들이 아주 많은 것 같으니까 하나 하나 잡아다 주리를 틀어보면 누군가는 실토를 하겠지." "홍원 동남쪽에 보면 관제묘가 있는데... 그곳입니다요." "흠... 좋아좋아. 안내해. 길찾기는 성가시니까." 두 거지는 그 즉시 묵향이 혈도를 완전히 풀어줬으므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묵향을 처다봤다. "끌끌... 딴 생각 하지마. 전 무림을 뒤져봐도 나보다 경공술이 빠른 놈을 찾 기는 어려울테니까. 일단 도망치다 잡히면 다리뼈를 부순다음 길안내를 시킬 거야. 그것도 재미있겠지?" 사색이 된 두 거지가 묵향을 안내해서 개방의 홍원분타에 나타난 것은 1시간 후였다. 그들이 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고참 거지가 으르렁거렸다. "정보수집은 안하고 왜 돌아오냐? 헉!" 모두들 거지들을 뒤따라 들어오는 묵향을 발견하고 경악했지만 정작 묵향은 평안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들이 굽고있는 멧돼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흐흐흐.. 배고프던 차에 잘 되었군. 역시 나는 먹을 복이 있단 말이야." "네... 네놈은 누구냐?" "다 알고 왔으니 나를 모르는 척 할 필요는 없어. 이봐, 여기 분타주가 누구 냐?" "........" "좋게 말할 때 나와. 나도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식사하고 싶지는 않으니 까..." 초상화에 써진대로 진짜 화경의 고수라면 여기 모여있는 10여명이 조금 넘는 수로는 그야말로 변변한 대항조차 못해보고 도살당할것이 분명하다. 개방은 30만이 넘는 인원을 가진 거대방파지만 다만 한가지 고수라고 부를만한 인물 들이 극소수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많은 인원을 가지고도 무림의 패 권에 도전한 적이 한번도 없이 정보만을 취급하는 소식통으로 존재하는 이유 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개개인의 무공이 뛰어나지 못하기에 고급정보를 획득 하는데도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요즘 들어서는 뛰어난 첩보능력과 잠입술을 가진 많은 고수를 거느린 무영문에 뒤지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묵향이 품속에서 시커먼 비수를 하나 꺼내 익은 부분을 잘라서 씹어먹기 시작 하는데 뒤에서 주춤주춤 한 거지가 앞으로 나오면서 말했다. "본인이 홍원분타주입니다." "흠. 그래? 쩝쩝.. 고기가 질기군... 나를 감시하라는 명령은 총타에서 내려 온 거냐?" "예." "그럼 네놈이 총타에 연락해라. 감시를 하는건 좋은데... 내 눈에 안띄게 하 라고 해." "예? 무슨 말씀이신지..." "쩝쩝... 거지들이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게 못되지. 나는 네놈들에게 동냥 줄 돈도 없다구. 감시를 하고싶으면 멀리서... 내 눈에 안띄 는 곳에서 하란 말이야. 감시를 하는 것을 두고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은 데... 만약 앞으로 내 눈에 띄는 개방 거지가 보이면 뼈다구를 분질러 버릴거 야. 알겠어?" "예. 예." "여기 술은 없냐? 쩝쩝.." "여기 있습니다요." 옆에 있던 거지가 술이 든 호로병을 내밀자 그 거지의 머리를 딱 소리가 나게 쥐어박으면서 말했다. "역시 멧돼지에는 술이 있어야... 빨리 따뤄. 이녀석아. 네놈이 입을 가져다 댔던 건데 거기다 나를 보고 입을 대란 말이야?" 묵향은 멧돼지 고기와 술을 배터지게 먹은 다음 관제묘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명심해. 눈에 안띄게 감시하라구. 어쨋든 오늘 잘 먹었다. 그리고 이 하고 빈대, 벼룩 같은 것 좀 잡아라. 이 더러운 놈들아." 묵향은 공력을 운용하여 몸속에 숨어든 못된 벌레들을 태워 죽여버린 다음 경 공술을 이용해 쏜살처럼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버린 묵향을 바라보며 한 거지가 말했다. "참 내. 더러워서... 거지것도 뺏아먹는 놈이 있군." 그러자 분타주가 말했다. "아서라. 저 경공술만 봐도 그의 무공이 어느정도인지 알겠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 해도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저렇게 위험한 인물을 왜 감시하라는 거 지?" 무서운 방문객(訪問客) 정사(正邪)의 모든 정보단체(情報團體)들이 묵향의 위치를 포착(捕捉)하기 위 해 거대한 동정호가 있는 호남성을 이잡듯이 뒤지며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묵 향은 유유히 호북성의 산길을 걷고있었다. 요즘들어 행적을 숨기느라 산길을 걷자니 산적들이 그를 귀찮게 구는게 흠이긴 했지만 잡수익(雜受益) 또한 짭 짤해서 내심(內心) 묵향으로서는 잔재미가 있었다. 지금 묵향이 찾아가고 있는 곳은 살막(殺幕)이었다. 이번에 웃지못할 소동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묵향의 두뇌라 할 수 있는 설무지가 묵향이 거느린 조 직의 힘이 어느정도인지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설무지는 묵향에게 정보단체의 확보를 권했다. 하지만 묵향이 거느 린 세력의 힘을 아직 확실히 모르는 설무지는 묵향의 힘이 마교 세력의 4할 정도에 이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어서 살막이라는 자그마한 살 수조직의 흡수를 권했던 것이다. 원래가 살수조직은 어느정도 뛰어난 정보능 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야만 먹이감을 손쉽게, 확실히 헤치울 수 있기 때문이 다. 예전의 살막이라면 대단한 단체였지만 지금은 이미 신진세력인 흑월회에 밀려 쇠퇴하는 조직인지라 설무지는 묵향의 능력을 최소한으로 잡아도 그들 정도라 면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반해 무영문이나 마교 에서는 묵향이 거느린 세력의 공포스러움을 익히 아는지라 그들의 힘으로 먹 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단체를 꼽다 보니 사파 최고의 정보소식통인 하오문 (下午門)을 지목하게 된 것이고 여기서 서로가 엇갈린 것이다. 묵향은 별 어려움 없이 살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무지의 말대로 대홍산(大 洪山)에 도착한 다음 그곳에 위치한 큼직한 장원(莊園)으로 갔다. 장원의 현 판(懸板)에는 큼직하게 柏芸莊(백운장)이라는 글씨가 써져있었는데 조금 낡은 것으로 보아 꽤 오랜 전통을 지닌 장원임을 알 수 있었다. 묵향은 시골장원의 문지기로는 좀 수상할 정도로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한 인물에게 말했다. "장원 주인에게 할말이 있어 찾아왔으니 시간 좀 내 달라고 전해주게나." "뭐라고 했소?" 차림새도 별볼일 없는 주제에 다짜고짜 원주를 찾으니 장한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이 퉁명스러운 대답을 했고 상대가 이렇게 나오자 묵향의 입에서 도 고운 말이 돌아갈 이유가 없다. "이녀석이 귀가 먹었나? 장원 주인에게 할말이 있어 찾아왔으니 시간 좀 내달 라고 전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원주(園主)께서 너같은 놈에게 볼일 없으시니 좋은 말 할 때 꺼져." "네놈이야 말로 좋은 말 할 때 원주 불러." "이자식이..." 그와 동시에 그 거한은 그 덩치에도 불구하고 번개같이 주먹을 뻗어왔다. 거 한은 상대가 검을 차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서생냄새가 풍기기에 일부러 내력을 거의 넣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가 타고난 신력이 있기에 맞으면 떡이 될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맞았을 때 얘기고... 상대는 간단히 몸을 비틀어 피하면서 왼손을 번개같이 뻗어 거한의 멱줄을 쥐 었다. 거한은 처음에는 뭐 이런놈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었지만 곧이어 생각 을 바꿔야만 했다. 무시무시한 압력에 숨이 턱 막히는 것은 다음 순간이었고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닭 목을 비틀 힘도 없을 것 같은 상대에게 목이 잡 힌채 공중으로 몸이 대롱대롱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고수다.' 이때 상대의 비웃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 죽고싶냐?" 사실 목이 한번 우왁스런 손에 잡혀 본 사람은 다 안다. 온 몸에 소름이 끼치 면서 숨이 콱콱 막혀오면서 피어오르는 거의 본능적(本能的)인 공포(恐怖) 를... 거한은 사력을 다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가 자신 의 목을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고 그의 몸은 힘이 쭉 빠져 그대로 밑으로 떨어 져내리며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다. "원주한테 내가 찾아왔다고 전해라." 일단 상대가 꽤 걸직한 무공을 익힌자라는 것을 깨닳은 거한은 살며시 일어서 서는 조금 비굴(卑屈)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하게 말했다. "저... 어떤 고인(高人)께서 찾아오셨다고 전할깝쇼?" "녀석..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마교 부교주 묵향이 찾아왔다고 하면 알거 다." 마교 부교주라는 그 직함이 가지는 위력은 엄청났다. 마교란 단체가 어떤 단 체인가... 사파의 우두머리이자 그 무공의 악랄함과 강대함은 전 무림을 몇번 이나 치를 떨게 만들었지 않은가. 그곳의 부교주라니... 거한은 그 우직한 덩 치를 공기돌처럼 가볍게 바람처럼 안으로 날려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안에 서 몇 명의 장한이 나오더니 묵향을 내부로 공손히 안내했다. 묵향이 안내되어진 방은 제법 큼지막했지만 큰 탁자 하나가 덩그러너 놓여있 고 의자들이 빽빽히 들어있는 것이 아마도 회의실인 모양이었다. 묵향이 아무 의자에나 앉자 곧이어 시비(侍婢)인 듯한 여인이 예의바르게 차를 놓고 나갔 다. 하지만 정작 주인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묵향은 천천히 차 를 마시며 기다렸다. '떨떠름 하군...' 묵향은 차맛이 유난히도 떨떠름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주인의 취향 탓인가... 내 기분 탓인가...' 거의 2각(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주인은 바퀴달린 의자에 앉은 채 한 남자 의 손에 밀려 들어왔다. 묵향은 더욱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온 계집을 응시 했다. 유난히도 흰 피부에 시원한 이마에 어울리는 맑고 큰 눈동자... 붉은 빛을 띈 작은 입술... 가녀린 체구를 가진 뛰어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대가 장원의 주인이오?" "그래요." "그렇다면 살막의 주인도 되겠군. 맞소?" 그러자 여인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맞다면?" "본좌는 말 돌리는 것은 싫어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본좌의 밑에 들어올 생각은 없소?" "......." "그대들에게도 정보조직은 있을테니 본좌의 소개는 생략하기로 하지." 잠깐 뜸을 들이던 여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갑작스런 제안이라서...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흐흐흐... 감히 본좌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것은 아닐테지?" 묵향은 사악한 웃음과 함께.... 일부러 강렬(强烈)한 마기(魔氣)와 사악(邪 惡)한 기운(氣運)을 극도로 몸 외부로 뿜어내어 공포분위기(恐怖雰圍氣)를 조 성해가면서 협박하기 시작했다. 방안에 들어서 있던 인물들은 모두 다 안색이 창백해지며 공력을 운용해 극악(極惡)한 기운들을 몰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 기 시작했다. 그들도 꽤 오랫동안 무림을 활동했지만 이렇게 지독한 마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묵향은 거기에 한수 더 떠서 품속에서 묵영비(墨影匕)를 꺼내어 검신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무언의 압력과 공포분위기를 더욱 농밀하 게 조성하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본좌의 실력이 어느정도 인지를 잘 알텐데... 감히 이따위 시골 문 파의 힘을 믿고 본좌의 청(請)을 거절해? 당장 관(棺)을 보아야 정신을 차릴 셈인가?" "......" "크흐흐흐... 아니면 어딘가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묵향은 천천히 일어서서는 창백하게 질려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움 직임에 따라 묵향의 몸에서는 더욱 공포스러운 살기(殺氣)와 함께 적색 기운 이 감도는 운무(雲霧)가 피어나왔고... 그의 피부색도 붉은색 광채를 내며 더 욱 기괴한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본좌가 수하들을 거느리고 오지 않았다고 베짱을 튕기는 모양인데 여기 있는 놈들정도는 본좌 혼자서도 충분히 토막을 칠 수 있어." 묵향이 갑자기 일부러 악귀(惡鬼)같은 형상(形狀)을 보지 않으려고 애써 외면 하고 있는 여인의 턱을 잡고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획 틀자 놀란 여인 의 경악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흑!" "크크크... 제법 그럴듯한 얼굴이군... 크흐흐흐...." 무시무시한 살기와 마기를 뿜으며 악귀와 같은 사내가 정욕(情欲)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눈으로 자신의 빰을 싸늘한 예기를 뿜는 비수(匕 首)를 살짝 눕혀서 문지른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렇게 황당한 경우를 여태 껏 한번도 당해보지 않은 여인은, 눈앞에 거의 악귀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무뢰한(無賴漢)으로 인해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인 상태였다. "본좌를 2각씩이나 기다리게 만들었으니 시간은 충분히 준거야. 빨리 결정을 해! 지금 죽을거냐? 아니면 본좌 밑에 들어올거냐?" 탕! 협박과 함께 음향효과(音響效果)로 인한 위협을 더하기 위해 탁자까지 일부러 큰 소리가 나게 공력을 조금만 넣어 두들긴 것 까지는 좋았는데.... 이때 갑 자기 묵향의 코에 아스라히 지린내가 스며들었다. 아마도 여인은 너무나 놀라 서 찔끔 실례를 한 듯.... '험... 험... 내가 너무 과했나?' 묵향은 짐짓 모르는척.... 비수를 품속에 집어넣으며 자신이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 털썩 앉으며 이왕 시작한 행위니 끝까지 뻔뻔스레 밀어붙였다. "결정을 햇!" 묵향이 좀 멀어지자 조금 정신을 차린 여인이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본막은 만약... 결과가 죽음 뿐이라도 당신의... 당신의 협박에 응할 수 없 어요." "흠.... 제법이군..." 갑자기 묵향의 몸에서 피어나오던 마기와 살기 모든 기운이 일시간에 사라져 버렸다. 묵향은 느긋하게 한쪽 팔로 빰을 받치고는 탁자에 편안히 기대 앉은 자세에서 입을 열었다. "밑에 들어오지 않겠다니 어쩔 수 없지. 나도 미래 상황이 불확실 한 만큼 억 지로 강요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어. 그대들이 내 밑에서 뼈빠지게 일해 도... 과연 영화(榮華)를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나자신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 이었거든. 참. 여기 오는 길에 아주 훈련이 잘된 추격자(追擊者)들을 만났었 는데... 따돌리기는 했지만 어쩌면 냄새를 맡고 이리로 올지도 모르니 딴 곳 으로 이사를 가는게 현명할거야. 나를 노리는 놈들은 원체 많아서... 그대들 이 내 청을 거절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우선 없애고 볼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사파에서 꽤 실력있는 정보단체가 뭔지 아나?" 이제 어느정도 이성(理性)을 회복한 여인이 즉시 대답했다. "당연히 하오문(下午門)이죠." "그것은 어디에 있지?" "군산 천영루(千影樓)에 총타가 있어요." "좋았어. 나는 볼일은 다 봤으니... 이만 가보기로 하지." 묵향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다가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참. 암기(暗器)를 장치하기는 좋겠지만 그런 의자에 앉아 병신인 척 할 필요 없어. 그리고 네가 한 말이 저 방에 있는 인물의 의견이라고 생각하겠다. 막 주에게 다음에 혹시 만날 일이 있으면 대리인(代理人)을 세우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고 전해줘. 그럼.." 그와 동시에 묵향의 신형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묵향이 사라지고 난 다음 지독한 공포로 탈진을 해버린 여인이 멍하니 앉아있 는데 옆방의 문이 열리면서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가 걸 어나왔다. 그의 뒤로 10여명의 검수(劍手)들이 문 안으로 얼핏 보였다. 그 남 자는 천천히 걸어와 묵향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말했다. "차를 다오." "옛" "온 무림이 난리를 치기에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했더니 상상보다 더욱 뛰어 난 인물이긴 한데... 성격이 좀 괴팍한 것 같군." "동석!" 그러자 문 가에 서있던 황의를 입은 남자가 그의 앞으로 달려와 고개를 숙이 며 답했다. "예" "총타를 청하장(淸河莊)으로 옮긴다. 즉시 시행하라. 여기는 너무 알려져버렸 어." "존명!" 수하들이 준비를 위해 모두들 밖으로 나가자 그녀가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듯 진저리를 치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아아... 정말 무서웠어요." "미안하다. 그런 괴상한 인물인지 모르고 너를 앞세워서..." "하지만 덕분에 알아낸 사실도 몇가지 있으니..." "수(垂)아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냐? 또다시 피튀기는 무림으로 돌 아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지금처럼 방관자(傍觀者)로서..." "그는 하오문으로 간 것 같은데... 과연 그가 하오문을 접수(接收)할 능력이 있을까요?" "글쎄... 아직 확실한 정보는 없다. 그에 대한 정보는 이상하게도 거의 없어. 어쨋든 무림맹과 마교가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악착같이 경계하는 것으로 보아 그정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가 하오문을 접수한다면 본막의 필요성은 없어질거에요. 여태껏 그의 행적 으로 보아 모두 정면대결을 택했지 암살을 한 적은 없기때문이지요. 그러니 그가 여기 온것도 아마 정보를 원해서였을 거에요. 오라버니의 생각은 어때 요? 그의 밑에 들어가는 것과 남는 것." "뛰어난 인물이니 그 밑에 들어가서 믿질 것은 없을거야. 그리고 떠나라는 말 까지 곁들인 것을 보면 그렇게 피에 물든 마인(魔人)은 아닌 것이 확실해. 문 제는 만약 그에게 붙지 않는다면 철저히 무림에서 떠나든지 아니면 그의 파멸 (破滅)에 일조(一助)를 해야 후환(後患)이 없다는 사실이지. 아마도 내 생각 으로는 저자로 인해 혈풍(血風)이 불지도 모르겠구나." "오라버니 생각으로는 그를 암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힘없는 어조로 답했다. "아마도 내 감각이 무뎌지지 않았다면 대단히 힘들거다.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지만... 휴... 나는 도저히 자신이 없구나." "그렇다면 그의 편에 붙어요. 하오문을 그가 접수하기 전에 그에게 가담한다 면 우리들을 좀 더 중용(重用)해 줄 거에요. 참, 그런데내 다리가 멀쩡하다 는 것 하고, 오라버니가 거기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글쎄... 그런것까지 눈치챌 수 있으니 무림이 그 난리겠지. 내가 생각하기에 는 아마도...." "아마도?" "보통 내공을 쌓은 사람이라면 모두들 상대의 상태를 알고자 할 때 내력을 이 용해서 조사를 하지. 하지만 현경... 아니지 탈마라고 하는 게 옳겠지. 그가 탈마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니... 아마도 그는 손을 직접 댈 필요없이 허공을 격하고 내력을 보내어 상대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을거야. 그리고 내 위치를 알아낸 것은 아마도 내가 뿜어내는 기를 은연중에 포착한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나도 자객이기에 기를 숨기는데는 꽤 재주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는 데..." 건망증(健忘症) 묵향은 청하장(淸河莊)에서 나와 100리를 갈때까지 하오문의 총타가 있는 호 남성에 위치한 군산으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갑자기 바뀐 이 유는 한 농가를 힐끗 본 다음이었다. 때는 한낮이었고 땡볕을 피해 시원한 초 막의 마루에 오손도손 정답게 앉아있는 가족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눈이 갔던 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수상한 점이 없는지 거의 본능적으로 살펴본 것이었는 데 어느새 묵향은 단란한 농가의 식사장면을 뚫어지게 훔쳐보는 입장으로 바 뀌었다. 농가에는 한 농부와 그의 아내, 그리고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다. 사실 농부의 아내나 그 딸 모두 박색을 간신히 모면한 정도였지만 묵향이 바 라보고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그 집안의 분위기였다. 그들의 속사정이야 신이 아니니 알 도리가 없었지만 우선적으로 눈에 보이는 너무나도 정겨운 식사장 면.... '나도 저런때가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이성이 돌아온 묵향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 작했다. '가만... 나한테 저런때가 있었나?' 무공에 관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안돌리던 머리를 열심히 굴려 머나먼... 정말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있었군. 그래... 그때야. 그 아이 이름이... 맙소사! 양녀(養女) 이름까지 잊어먹었군. 그 아이는 요즘 잘 지내는지 모르겠구나. 참 예쁜 숙녀가 되어 있었는데... 지금쯤 결혼해서 애를 몇 명 낳았는지 모르 겠구만... 하나뿐인 양녀인데 까맞게 잊어버리고 있었어... 벌써 헤어진지... 몇 년째인지 기억도 안나는군. 그때 그 아이를... 표두(慓頭) 노릇을 하지 않 았다면 만나지도 못했겠지. 그때는 참 재미있었지... 방 분타주는 잘 지내는 지 모르겠군... 참.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돈줄도 필요한데... 방 분타주가 거느린 낙양의 세력을 흡수한다면 꽤 보탬이 되겠군. 그리고 내친김에 부근에 있는 분타도 몇 개 꿀꺽하고 말이야. 그리고 또 ....' 먼 발치에서라도 한번 보고싶다는 생각에 묵향은 자신이 그곳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줄줄이 만들어 내면서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正當化)하기 시작했 다. 그의 성격으로는 도저히 어린 계집애 하나를 만나기 위해 그 먼 길을 가 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자신이 왜 호남성(湖南省) 으로 가야 하는지는 완전히 망각한 채... * * * 묵향은 천천히 그 독특한 걸음걸이로 하남성(河南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하남성은 전 무림인들이 존경을 아끼지 않는 대 사찰(寺刹) 소림사(小林寺)와 20만(萬) 거지들의 왕초가 거주하는 개봉이 있는 곳이다. 오래 전 세력다툼에 의해 10만(萬)의 거지가 떨어져 나가 남개방을 세웠지다. 하지만 남개방의 세 력이 작았기에 모든 공식행사에는 북개방의 방주가 나서고 있었다.북개방은 20만 식솔을 거느린 거대방파지만 그래도 두토막이 난 후 세력이 급속도로 쇠 퇴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섬서성의 남단에 위치한 황제가 거주하는 오래전 장안(長安)이라고도 불리었 던 중경(中京)... 중경에는 중앙원수부와 비극적인 사건으로 해체되어버린 찬 황흑풍단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도 강대한 군사력을 가진 중경의 동쪽으로부 터의 관문이라 볼 수 있는 낙양. 하남성의 북쪽에 위치한 낙양은 넒은 평야지 대로서 예전에 몇몇 국가의 수도가 위치한 곳이었지만 지리상 수비에 난점이 많은 도시다. 그렇기에 송대에 이르러 장안에서 머지않은 낙양에 정북원수부 를 두었으니 사실상 황제로서는 두개의 원수부를 직할(直轄)하게 되어버렸고 상대적으로 왕들보다 더욱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묵향이 가는 곳은 오래전 자신이 잠시 살았었던 정북원수부가 위치한 낙양이 었고... 군사, 상업, 교통의 중심지로 대단히 시끌벅적한 도시였다. 묵향은 일단 낙양으로 발길을 돌린 다음부터는 포목점(布木店)에 들어가 무명을 3필 사다가 너무나 잘 알려져버린 이놈의 묵혼검을 칭칭 동여매어 덜그덕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만든 후 상자 하나를 구해서 그 안에 집어넣고 어깨에 메고 다녔다. 평소에는 귀찮다고 변장따위 하지도 않았고 또 암습따위를 걱정하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양녀(養女)를 만나러 가는데 꼬리를 달고 갈수는 없었던 것이다. 묵향은 한참 길을 가다가 시장기를 느끼고 그럴듯한 식당 앞으로 갔다. 평소 대로 길바닥을 힐끗 훑어본 다음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안은 근처에 유 명한 명소인 동백산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묵향 은 다행히 자리를 하나 찾고는 그곳에 앉아서 점소이를 불러 주문을 했다. "오리탕 1그릇하고 죽엽청 2병, 그리고 신선한 소채가 있으면 좀 다오." "예." 식당 안의 대화는 요와의 전쟁얘기나 얼마전에 일어난 서경의 패주(覇主) 진 천왕(眞天王)이 오랜 전쟁과 흑풍단의 해체, 금의위의 몰락으로 인한 황권(皇 權)의 약화를 틈타 정서원수부(正西元帥府)의 부수장 광해(廣海) 대장군과 모 의하여 곽진(郭璡) 원수(元帥)를 살해한 후 반란을 일으킨 것에 집중되고 있 었다. 묵향이야 세상이 뒤집히던 말던 자신과는 별 상관이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입장이었지만 나약한 백성들이야 그것이 가장 큰 관심사 였던 것이다. 한참 맛있게 오리고기를 뜯으며 죽엽청을 마시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식당 안 으로 들어왔다. 다른사람이야 그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만약 그를 한번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칼차고 다니는거 보니 무림인이군.' 하지만 조금 더 관찰력이 있다면 저런 생각도 했으리라. '남자답게 생긴데다 제법 다부진 몸매를 가지고 있고... 차림세가 그럴듯한 걸 보니 막되먹은 놈은 아니군.' 거기에 그 사람이 무림인이었다면 요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제법 근사한 눈을 하고 있어. 꽤 수련을 잘 한 놈이야. 만만히 볼 상대는 아 닌 것 같은데?' 거기에 그 사람이 묵향정도의 안목을 가진 놈이라면 그런 생각들에 조런 생각 까지 보탰을 것이다. '제법 검을 잘 아는 놈이군.' (작가주: 말장난이 좀 심했나?^^; 하지만 이런 다양한 수식어는 한글만이 가 지는 독특한 맛이 아닐까요?) 묵향은 찬찬히 상대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대한히 흥미가 당기는 상대였다. 많은 인물들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검만을 꼽는다면 자신이 아는 자 들 중에서 상위 5,000명 안에는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법 흥미를 돋구는 놈이군. 추정되는 나이에 비했을 때 놀라운 성취를 지니 고 있는 놈이야. 아직 애송이라는 게 흠이지만... 어쩌면 내 나이쯤 되면 나 를 능가할지도...?' 초고수라면 대부분 그 막강한 내공으로 육체의 노화(老化)를 억누른다. 그렇 기에 그놈이 그놈같아 보이지만... 실상 막강한 고수를 알아보기는 힘든게 아 니다. 우선 눈... 눈만 봐도 이자가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섰는지 화경에 들기 전이라면 대강은 눈치챌 수있다. 현경이라면 반박귀진(反樸歸眞)의 단계라 자신의 모든 것을 완벽히 숨길 수 있기에 그 내막을 알아보기는 화경보다도 더욱 힘들다. 그렇지만 화경에 들지 못한 고수들이라면 한눈에 뻔히 알수 있 는 것이다. 그의 내공조예가 어느정도인지... 일단 내공이 어느정도인지 밝혀지면 익힌바 무공이나 수련 정도에 따라 공력 의 차이가 심하기에 오차가 크긴 하지만 일정 나이에서 죽자고 쌓을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영약(靈藥)이라도 먹지 않았다면 어느정도는 나이를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음식 떠먹는다고 치아(齒牙)가 약간이라도 보이면... 이건 도저히 속이기가 힘들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빨의 상태도 개개인의 습 관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기도 하기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이다. 생전 이빨관리를 안하는 일부 게으른 놈들하고 미용을 위해 죽자고 양치질을 해대 는 일부 부지런한 년들하고는 색깔이 많이 틀리니까... 이때 묵향의 눈에 힐끗 보인게 그의 검이었다. 어딘지 낯익은 검... 언젠가 한번쯤은 저 검의 주인을 봤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애송이는 아니야. 누굴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꽤 오래전에 본 모양인데... 흔한 검은 아니야. 손잡이의 형태... 검집의 모 양... 전체적으로 봤을 때 흔한 검처럼 아주 수수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 만... 저건 뛰어난 장인(匠人)이 만든 솜씨야. 조각되어 파들어간 칼자국만 봐도 알 수 있지... 저걸 어디서 봤었지?' 묵향이란 인물은 원체가 무골(武骨)이라 그림따위는 알지 못했고 알려고 노력 도 안했다. 하지만 공예품이나 특히 조각(彫刻)된 것이라면 그것을 만든 장인 의 섬세한 솜씨를 거의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조각칼도 칼은 칼 이었고... 그는 그 칼을 사용한 상대의 솜씨를 읽는 것이었다. 상대는 음식을 시키더니 꽤 허기졌는지 술을 반주삼아 열심히 먹어대기 시작 했다. '검집만 봐서는 알기 힘들고... 검을 직접 보면 떠오를까... 그래도 안떠오른 다면 저놈의 검술을 보면 기억이 날까... 일단 저놈보고 검좀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가장 좋은 방법은 검을 뽑지않으면 안될 상황을 유도 하는게 최고지. 그렇다면 어떻게 시비를 걸까... 그런데 만약 아는놈의 제자 쯤 된다면 나한테 칼을 겨눈 저놈을 죽여야 하나?' 이런저런 궁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사이 그 청년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묵향은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 식탁에 돈을 던져놓고 따라서 일어 섰다. 그런다음 그 검의 주인인 애숭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궁금한 것은 참지못하는 묵향이었다. * * * 묵향이 애숭이를 따라다닌다고 정신이 팔려있는 이시간... 하남성으로 들어가 는 관도(官道)상에서는 웃지못할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10여명이나 되는 허리에 장검(長劍)을 찬 장정(壯丁)들이, 그것도 옷도 그럴듯하게 차려입고는 땅바닥을 헤메고 있었으니 기괴할 밖에... 한 여인이 12번째 행인이 설설 기어다니고 있는 꼴을 보며 칼을 차고 있는지 라 대놓고는 못하고 얼핏 비웃음을 띈 눈으로 힐끔거리며 지나가자 더 이상 참지못하고 짜증을 폭발시켰다. "오빠!" 그러자 땅바닥을 기고있는 남자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귀 안먹었으니까 조용히 말해." "도대체 지금 뭐하는 거에요?" "보면 모르냐? 흔적을 찾고 있잖아." "도대체가 추격술에 있어서는 도가 텄다고 떠들던 양반이 지금 땅바닥에서 뭐 하는 거에요? 그것도 대로(大路) 한복판에서... 여기 사람도 많이 지나다녀서 챙피해 죽겠단 말이에요. 그러고도 오빠가 전직(前職) 살수(殺手)에요?" "좀 떠들지좀 마라. 전직 살수였던 초고수의 흔적을 쫓는게 어디 쉬운 일인줄 아냐?" "그래 흔적을 찾기나 찾았어요? 오빠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거 아니에요? 여기 는 하남성으로 가는 길이라구요. 하오문으로 갔다면 호남성으로 가야지. 왜 이리 오는거에요?"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호남성쪽으로 가다가 이상하게 위쪽으로 길을 바꿨다는 것 외에는..." "맞기나 맞는거에요?" "이녀석이... 날 뭐로보고... 아무리 쉬었다고 해도 내 눈이 그정도로 ㅆ지는 않았다구." 이때 저 앞쪽에서 땅바닥을 기고있던 장한 한명이 외쳤다. "막주님, 찾았습니다." "그래? 확실이 이쪽이 확실하군. 이리 와봐라. 내가 설명해 줄테니..." 여인이 따라가자 몇 개 나있는 발자국을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는 관도상이라서... 땅이 굳어 발자국을 찾기 힘들어. 거기다 행인도 많 아서 기껏 찍힌것도 잘 지워진다구. 여태까지는 그놈이 으슥한 길을 골라왔기 때문에 발자국 따라오기도 편했는데... 그녀석이 방금 지나온 마을을 통과한 다음부터 아예 대로(大路)로 다니는 바람에 더욱 힘들어졌다." "아.. 그가 무명하고 나무상자 산걸로 추정되는 마을 말이에요?" "그래. 아마.. 나무상자 크기로 봤을 때 검을 숨겼겠지. 실지 그의 독특하게 생긴 검만 숨긴다면 쉽사리 잘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니까... 여기 발자국을 봐라. 아주 지독한 놈이야." 여인이 발자국을 열심히 쏘아보자 사내는 말을 이었다. "난 도저히 모르겠는데요?" "보통 무림인이라면 평지에서는 일정한보폭을 가지지. 그건 보법이나 신법, 경공술을 오랜시간 연마하면서 만들어지는 습성이야. 그리고 군인들도 보폭이 거의 일정하지. 하지만 이놈은 보폭이 일정하지 않아. 첫발자국에서 2척5촌이 면 다음 발자국은 언제나 반촌(1.5Cm) 정도가 불규칙 적으로 더해지던지 빼지 던지 한다구. 무지렁이 촌민들도 이놈만큼 보폭이 들쑥날쑥하지는 않아. 그만 큼 걸으면서 지속적으로 보폭에 신경을 쓰는거야. 그리고 무림인이라면 절대 로 발 뒷꿈치로 걷지 않지. 그건 발소리를 죽이려는 행위를 떠나 언제든지 몸 을 날릴 수 있는 잇점이 있기 때문인데... 이놈은 보란 듯이 뒷꿈치로 걷는다 구. 거의 촌민들과 같은 발자국이야. 여태껏 이까지 추격해온 것은 포폭이 일 정하지 않은 것만 ㅊ은 덕분인데... 이렇게 탄탄한 관도 위라면 그것도 힘드 는군... 일단은 하남성으로 간 것 같으니 계속 따라가 보자구." 묵향은 애숭이의 검술을 구경하기 위해 이럴지 저럴지 망설이며 따라다니면서 도 상대의 몸동작의 하나하나를 세심히 관찰해 나갔다. 상대의 몸 동작은 하 나하나가 절도가 있는 것이 과연 명문(名門)의 제자임이 확실하니... 묵향으 로서는 더욱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는 정파의 인물은 많지 않은데... 젊은 나이에 저정도의 검술실력을 쌓으려면 상당한 인물이 지도(指導)한 것이 틀림없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 대단한 실력자.... 실력자라... 맞아! 혹시 저놈이 그 맹주라는 놈의 제자 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죽여없애는게 울분을 삭이는데 도움이 되 지? 맹주란 놈의 제자가 확실하면 먼저... 분근착골(粉筋鑿骨)을 한바탕 한 후에... 손까락과 발까락의 뼈들을 자근자근 다 부숴버린 다음... 음 또 뭐가 있지? 그래! 가죽을 벗긴 다음... 아니지 다 벗겨버리면 오래 못 사니까... 즐거움을 좀 더 지속하기 위해 먼저 한쪽 다리만 벗기자구. 그런다음 소금을 뿌리는거야. 그래... 그런식으로 느긋하게 즐기면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 들어 주자.' 자신의 목숨이 어떤 모진놈에게 위협받고 있는줄은 꿈에도 모르고 천천히 주 위의 경치를 구경하며 걷고있는 애송이의 뒤를 묵향이 느긋하게 따라다니며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별의 별 고문방법을 다 생각하고 있었다. 실지 고문 을 시작하면 그놈의 생명이 쇠심줄 처럼 질겨서 오래 버틴다 하더라도 3일 정 도일테니... 묵향은 곧이어 닥쳐올 희열(喜悅)을 상상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 * * 교주는 요즘들어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남는 시간을 사냥에 쏟아부으며 마음을 달래고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사냥은 매를 이용한 사냥이 었다. 교주는 여러 종류의 잘 훈련된 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사냥을 하면 사냥개 몇마리와 10여명의 경공이 빠른 고수들이 몰이꾼을 했고, 그외에 5명 의 전문적인 매 사육사가 5마리의 매를 이끌고 그를 따랐다. 5마리의 매는 두 건을 쓰고 있었지만 그 중 교주의 손위에 앉은 조금 덩치가 작은 한 마리는 두건을 쓰지 않고 있었다. 교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10마리의 매들 중에서도 특히나 두 마리의 고려에 서 수입한 송골매를 좋아했다. 그가 송골매를 좋아하는 이유는 적당히 잔인하 면서도 우아한 것에 있었다. 송골매의 비상(飛翔)은 마치 꿈처럼 더없이 완벽 했다. 그리고 먹이를 향해 다가갈때는 그 잔인한 성격으로 서두르지 않고 천 천히 달려들어 완벽하면서도 우아하게 상대의 숨통을 조이며 요리하는 것이 다. 오늘 사냥에서도 송골매들을 2번씩 사용했는데 사냥감을 향해 멋지게 비상하 여 천천히 우아하게 상대를 향해 압박을 가해가다가 나중에는 그 목숨을 발톱 을 이용해 멋지게 끊어놓는 그 장면을 보며 교주는 언제나와 같이 갈채를 보 냈다. 사실 교주 정도의 고수라면 표창 몇 개만 가지고도 단시간에 토끼를 몇 마리고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매사냥이란 번거로운 방식을 즐기는 이유 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그 멋있는 눈요기 때문이었다. 몇번 매를 날린 후 다시 수하들을 몰이하러 내 보낸다음 여러 가지 생각에 잠 겨있을 때 문득 어떤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수하(手下) 한명이 길 옆 덤불 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교주는 말을 멈추게 하고는 자신의 손 위에 앉혀있는 두건이 없는 혈전(血電)이라 부르는 새매의 발목 끈을 풀었다. "지금" 교주는 작은 음성으로 말했고 그와 동시에 끈을 잡고있던 수하 1명이 개들을 풀었다. 개들이 짖어대며 달려들자 토끼는 덤불 속에서 튀어나와 숨을 곳을 찾아 달렸 다. 그 순간 교주는 혈전을 날렸다. 날개를 세차게 퍼덕이며 매는 마치 화살 과도 같이 똑바로 제물을 향해 날아갔다. 앞쪽으로 25장(76m정도)쯤에는 잡목 숲이 펼쳐져있었다. 토끼는 엄청난 속도로 그쪽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혈전 은땅에서 불과 몇 척쯤의 높이로 나지막히 미끄러지듯 날며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다음 순간 혈전은 제물 바로 위에 이르러 아래로 몸을 덮쳐갔다. 토 끼는 그 순간 비명을 지르며 뒷발로 몸을 세웠다가 다시 날쎄게 달아나기 시 작했다. 혈전은 실패한 것이 너무나 분한지 켁켁거리며 뒤를 쫓다가 토끼가 피신처를 향해 마지막 달음박질을 치는 순간 그의 발톱이 토끼의 목에 깊숙히 박혔다. 새매가 날개를 접었다. 마지막 토끼의 비명... 새매는 승리감에 도취 되어 교주를 오만하게 바라봤다. 교주는 다가가 말에서 내리며 미끼를 내밀었다. 순순히 혈전이 토끼의 시체를 떠나는 순간 교주는 재빨리 미끼를 감추자 매는 내뻗은 그의 장갑 낀 손 위에 앉았다. 그의 손가락이 장갑에 달린 매의 발목 끈을 조이며 말했다. "참 잘했다." 이때 수하 한명이 토끼 귀의 일부를 잘라 매에게 상으로 먹였다. 너무 많이 주어 배가 부르면 말을 안듣기에 조금만 주는 것이다. 교주는 혈전이 오만하게 주위를 둘러본 후 만족스레 먹이를 먹는 것을 물끄러 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훌륭하게 죽였어. 하지만 송골매와 같은 흥분감은 없었어. 새매는 새 매일 뿐... 그 짧은 날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죽이기 위해 태어 난 새. 두건을 쓰지 않고, 쓰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 날카로운 눈매로 오만하 게 세상을 내려다 보며... 때로는 좋은 친구가... 때로는 무서운 적이... 기 분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광폭(狂暴)한 매... 그대와 같다는 생각이 요즘들 어 자주 드는구려. 묵향 부교주... 당신을 적으로 만든 것은 어쩌면 내 일생 일대의 실수일지도 모르지...' * * * 묵향이 애송이를 따라다닌지 어언 3일... 일단 손을 쓰면 금새 죽여버릴 것이 뻔한 자신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지라 쉽사리 손을 안쓰고 내일 내 일 하면서 미뤄오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검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의외 로 빨리 다가왔다. 그날도 애송이의 뒤를 느긋하게 뒤쫓으며 각종 고문방법을 상상하면서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애송이를 4명의 괴한이 둘러싸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들리는 괴한중 한명의 목소리... "네놈이 다섯째를 병신으로 만든 놈이냐?" 애송이는 상대를 쭉 훑어보더니 담담하게 대꾸했다. "당신들이 하남오괴(河南五怪)라면 바로 찾아오셨소." "클클클... 광오한 놈이군. 다섯째를 병신으로 만들어 놨으니 네놈도 병신이 되는 것이 정해진 도리. 네놈이 자진해서 자르겠느냐? 아니면 본좌가 손을 쓰 랴?" "하하... 나를 그렇게 물컹하게 보다니..." 그와 동시에 애송이가 검을 뽑았다. 검이 뽑혀나오자 투명한 옥빛을 띄는 보 검에서 뻗어나오는 예기(銳氣)가 사방을 뒤덮었다. 하남오괴도 상대가 예리한 보검을 뽑자 모두들 뒤로 물러서며 저마다 가진 무기를 뽑아들었다. 그 애송 이의 검을본 순간 묵향은 경악했다. "명옥검(明玉劍)!" 자신도 모르게 명옥검이란 말이 입속에서 새어나옴과 동시에 그의 놀람은 곧 이어 활화산 같은 분노로 폭발했다. 묵향의 신형은 거의 뇌전과 같은 기세로 쏘아져 들어갔다. 애송이는 옆에서 뭔가가 덮쳐옴을 느끼고 대비하려고 몸을 옆으로 트는 순간 16개의 혈도가 순간적으로 제압당하면서 쓰러져버렸다. 애 송이에게 혼혈이 짚히는 그 순간 떠오른 감정은 황당함이었다. 그의 사부에게 하늘위에 하늘이 있으니 언제나 조심할 것을 재삼 당부 받았었지만 설마하니 이정도로 실력차이가 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묵향이 쓰러진 애송이를 잡아서 어깨에 들쳐메고 떠나려는 것을 보고 하남오 괴중의 한명이 이의를 제기해 왔다. "잠깐만... 이놈은 우리들과 먼저 선약(先約)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방금전에 보여준 무시무시한 무공으로 하남오괴도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었 다. 잘못 시비가 붙으면 오늘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는 거죠. 우선 저희들이 놈의 팔 하나를 자를테니... 헤헤... 그 다음에 끌고가시면 안될까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묵향은 그의 제의를 모질게 거절했다. "안돼. 네놈들이 감히 본좌의 즐거움을 방해하겠다는 거냐?" 그래도 상대는 아쉬움이 남는지 다시 한번 더 사정했다. "그대의 실력이라면 저희들이 어떻게 해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희들도 그놈에게 은원(恩怨)이 있는지라..." "네놈들의 은원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니까 그냥 잊거라." 그러자 그중에서 가장 무공이 강하게 보이는 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침중하게 말했다. "그럴수는 없소. 눈앞의 먹이를 지금은 실력이 딸려서 지금은 양보할 수밖에 없지만... 그대의 사문(師門)을 밝힐 용기가 있다면 대를 이어서 오늘의 수모 (受侮)를 갚겠소." "흐음... 꼴에 밸이 있다 이거지. 좋아. 본좌는 마교의 부교주이니 죽이고 싶 은 아들이 있으면 검을 줘서 십만대산으로 보내게나. 소원대로 모두 다 목을 따 줄테니..." 비웃는 듯한 그의 말에 경악해있는 무리들을 뒤로 묵향의 신형은 애송이를 어 깨에 진 채로 조용한 장소를 찾아 사라져버렸다. 애송이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때는 왠 허름한 흑의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검을 만지작거리면서 옆에 앉아있었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혈도가 제압 당해서 손까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 고 옆에 앉아있는 남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일단 은 싸워 이기려면 상대를 알아야 한다고.... 이 남자가 자신에게 암습을 가한 자라는 생각에 세심히 그를 뜯어봤는데 놀라운 것은 너무나도 젊다는 것이었 다. 애송이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것을 느낀 묵향이 씩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호오... 깨어나셨구만... 그대를 이곳으로 초대를 한 이유는 이 검이 어디서 났느냐 하는 것을 물어보려는 의도에서지. 자... 좋은말로 할 때 대답을 해주 실까?" 애송이는 상대가 부드러운 말투를 쓰는데도 이상하게 소름이 끼쳐옴을 느꼈 다. '정말 재수없는 놈이군. 저놈이 나한테 암수를 쓴 놈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고 수가 한명 더 있나?' "당신이 나한테 암수를 가했소?" "그래. 본좌가 했지." 그러자 애송이는 상대의 몸을 뚫어져라 훑어봤다. 껍데기는 젊게 보이지만 이 자는 아마도 반노환동의 경지에 들어간 영감탱이 고수가 분명한 것 같았다. 자신의 사부인 청혜(淸慧)도 네 연배에서는 아마도 네가 가장 검술에 대한 이 해가 빠를것이라는 칭찬을 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의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이기기 힘들거야.' 상대가 가만히 있자 묵향이 또다시 질문을 했다. "자... 빨리 대답을 해주실까? 본좌는 인내심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사실 애송이한테는 그것이 뭐 숨겨야 할 치부(恥部)같은 것도 아니었기에 순 순히 대답했다. "그 검은 내가 알고있는 한 무림인에게서 받은 것이오." "그래? 그 사람은 너와 어떤 관계지?" "한 10년 정도 그분에게서 검술을 배웠소." "그럼 너의 사부인가?" "아니오. 그냥 내가 마음에 든다면서 검술만 가르쳐 줬을뿐... 사부는 아니 오." "좋아. 그사람 이름이 뭐지?" "이름은 모르고 독고구패(獨孤九敗)라는 명호만 알고있소." "독고구패? 좋아. 그놈이 환사검(幻邪劍) 유백(柳伯)을 죽였나?" "에... 유백은 또 누구요?" "유백은 본좌의 사부님 이름이지. 이 검은 사부님이 애지중지 하던 검이었는 데... 이걸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 하나... 어떤놈이 그분을 죽이고 뺏았다는 말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지. 안그래?" "...." "좋아. 그 독고구패란 놈은 어디있지?" "얼마 전에 돌아가셨소." "죽었다고? 옳아. 이제 알겠군. 그래서 이 검을 물려받았다 이거지?" "그렇소." "크흐흐흐... 그놈이 정말 죽은게 확실한가?" "못믿겠으면 관 두슈." 그와 동시에 묵향이 애송이의 혈도 몇군데를 짚었다. 그러자 애송이의 온 몸 에서는 뚜둑거리는 괴이한 음향이 터져나왔지만 식은땀을 흘려대면서 악착같 이 고통을 참고있었다. 가히 초인적인 인내력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각 정도가 지나자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비명성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묵향 은 더 이상 하면 사람잡겠다는 생각에 3각이 정도가 되자 분근착골의 수법을 해제했다. 그런다음에도 계속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들으면 상대 가 부드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기분나빴다. "어때? 온 몸이 짜릿하니 평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겠지? 자... 좋은 말로 할 때 불어. 그놈은 지금 어디있지?" "헉헉... 돌아가셨소. 그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단 말이 오." "흐음... 진짜 죽은게 확실해?"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소." "좋아. 죽었다고 하기로 하지. 대신 내 사부를 죽여놓은 놈에게서 검을 받았 으니 네놈도 공범이야. 알겠어?" "그건 억지요." "아니야. 본좌에게는 억지가 아니지. 너도 공범이니 미안하지만 내 화풀이 상 대가 되어 주어야겠어. 가만히 있어봐라.... 분근착골은 했으니... 그다음 은... 발가락 뼈다귀를 모조리 부술 차롄가... 아니야... 뼈를 부숴나가면 그 충격에 기절이라도 하면 안되지." 그러면서 상대가 기절하지 않도록 몇군데 혈도를 때리며 상대의 정신이 더욱 또렷하게 만들었다. 애송이는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이 무뢰한이 도대체 다음에는 무슨 짓거리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일말의 공포를 느끼며 자신의 사문을 들어 약간의 협박을 했다. "이보시오. 나는 명문 화산파의 제자요. 나를 이렇게 핍박한게 밝혀지면 당신 도 편안한 생활은 하기 힘들거요." "흐흐흐... 남 걱정하지 말고 네놈 걱정이나 해. 본좌는 남이 두려워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적은 없으니까.." 그러면서 애송이의 옆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손바닥이 호미라도 되는 모양으로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땅을 잘도 파내고 있었다. 조금 묵향 이 수고를 하자 비스듬하게 경사진 작은 공터가 생겼다. 묵향은 애송이를 그 곳에 가져다 눕혔는데 머리가 아랫쪽으로 가게 했다. 실지 아무리 모진 고문 을 가해도 머리를 심장보다 낮은 위치에 두면 머리에 원활히 피가 공급되기에 아무리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이란 단어는 자신에게서 완전히 말타고 멀리멀리 떠나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하는 짓거리를 보고 애송이는 지금 뭣 때문에 이런 수고를 하고있는지 눈치챘다. '이놈이 날 아예 죽이려고 드는군.' "좋았어. 이정도면 준비는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고... 이제부터 본론을 시작 해야지. 원래가 분근착골은 오래 하면 온 몸의 근골(筋骨)과 신경이 망가지기 때문에 네놈에게 그걸 오래 사용하면 오히려 고통의 시간을 단축시켜 주는 결 과밖에 안된다 이말이야. 뼈를 자근자근 부수는 것은 제일 마지막에 해주지. 자 그럼 이제부터 고전적인 방법을 써봐야지." 그런다음 묵향은 상대의 허리에서 띠를 끌러낸 다음 상의를 벗겼다. 그런다음 띠를 줏어들고 공력을 주입시키자 천으로 만들어진 띠가 꼿꼿하게 일어섰다. 묵향은 그걸 채찍 대용으로 삼아 애송이의 몸을 자근자근 다져가기 시작했다. 퍽퍽퍽퍽..... 이건 고문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고문이란 것은 원래가 상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불게 만들기 위해 육체적 또는 정식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애송이의 입장에서는 그놈의 검 하나 때문에 분풀이 상대로 자신이 잡혀와서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두들겨맞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모른다. 상대가 휘두르는 띠는 그의 살가죽만을 후려 치고 있었기에 그의 상체는 이제 거의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고통을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애송이의 입에서도 더 이상 참지못하고 비명이 터져나오 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날 죽여라..." 한참을 비명성을 반주(伴奏)삼아 두들겨대다가 더 이상 하면 죽어버릴 것 같 자 묵향은 고문아닌 고문을 멈췄다. "헤헤헤... 오늘은 이쯤 하고... 그래... 소금하고 고춧가루가 어디있지? 맞 아. 거기다 놔뒀지." 주섬주섬 꾸러미에서 그것들을 꺼내더니 둘을 섞어서 애송이의 상처에 뿌렸 다. "크아아악......" 또다시 터지는 비명소리. 애송이가 비명을 질러대다가 기진맥진 해서 더 이상 비명지를 힘도 없어져서 잠잠해지자 묵향이 비웃듯 한마디 던졌다. "이걸 뿌리면 상처 소독도 되고 좋지. 걱정 마... 빨리 죽이지는 않을테니 까... 독고구패란 놈은 유백의 제자가 묵향이란 사실을 명심했어야 했어. 내 손에 걸려서 살아서 나간놈이 거의 없거든... 독고구패가 죽었으니 너라도 나 를 위해 몸으로 때워줘야지." 그러자 뻗어있던 애송이가 헐떡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끄으으으.... 묵향... 묵향이라고.... 했소?" "그렇다. 본좌가 묵향이란 나으리지." "사부의... 구패 사부의... 마지막... 제자가 묵향이라고.... 했었소." "뭐야?" '그럼 독고구패하고 환사검 유백 사부하고 동일인물이란 건가? 저놈이 내가 마지막 제자란 것을 알 리는 없을테니... 이런 실수가 있나...' "이봐... 괜찮은거야? 이런 빌어먹을! 가까운 의원이 어디에 있지?" 묵향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는 애송이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의원을 찾아 몸을 날렸다. 일단 상대가 자신을 죽이지 않을것이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기절했던 애 송이가 깨어난 곳은 은근한 탕약향기가 가시지 않는 한 의원의 작은 방안이었 다. 그는 일어서려고 했지만 손하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겨우 그정도 맞았다고 손하나 꼼짝할 수 없다니... 나도 정말 한심한 놈이 군...'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깨어났군. 보기보다 약골이야. 움직이려고 하지 말게나. 지금 침을 놓아놨기에 움직이지 못하게 혈도를 조금 건드려놨으니..." '세상에 이 목소리는...' 애송이는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며 자신의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부르르 떨리 면서 갑자기 식은땀이 솟아나온다고 생각했다. "이제 깼으니 뭐 잠결에 뒤척일 염려는 없을테고 혈도를 풀어주지." 애송이는 자신의 몸 위로 미풍이 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손 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혈도가 풀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상대는 허공을 격하고 점혈(占穴)과 해혈(解穴)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을 쌓은 무 서운 고수라는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자... 이제 깨어났으니 우리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로 하지. 아 그렇게 떨지 말게나... 나도 가급적이면 말로 하고싶으니까... 자네 사부인 독고구패의 마 지막 제자가 묵향이라고 했는데... 그건 그분의 입에서 들은건가? 다시 말하 건데 거짓말이 있어서는 안돼." "그렇소. 자신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지만 마지막 제자인 묵향이 가장 강하다 고 했었소." "그럼 그 묵향이란 놈이 그렇게 강하다는 건가?" "그분의 말로는 그렇소.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했소." "좋아. 그럼 자네는 독고구패를 어디서 만났지?" "화산(華山)에서 만났소." "화산?" "본인의 사문(師門)은 화산(華山)이오. 10년 쯤 전에 본문의 옆에 한 무림인 이 자리를 잡았소. 그는 화산에 있는 동굴 중 하나를 집으로 정했는지 그곳에 침상을 마련하고 몇가지 살림도구를 장터에서 사다가 보금자리를 꾸미더니 아 예 떠날 생각을 안했소. 그래서 본문에서는 혹시나 절기를 훔쳐보러 온 첩자 인줄로 오해하고 그와 간단한 충돌을 벌였었는데 그에게서 몇가지 안좋은 일 때문에 은거를 결심했고 또 은거할 장소로 경치좋은 이곳 화산을 택했다는 말 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그의 검술 실력도 상상이상으 로 강했기에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쳐배우려는 인물로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 문이오." "그런데 자네는 어떻게 그의 무공을 배웠지?" "사실 10년 전 나는 별로 무공이 강한 편이 아니었소. 그날 장터에서 무뢰배 몇 명이 젊은 소저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혈기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두들겨 맞고있는 것을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그가 구해줬소. 그는 한번씩 마을로 내려와서 식량을 구입하는데 그날 마침 그의 눈에 띄인 것이지요.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가지 제의를 했소. 나한테 검술을 배워볼 생각이 없느냐 고.." "그래서?" "나는 안된다고 했소. 사실 사문에서 나를 지도하던 사형은 별로 무공이 고강 하지 못했기에 그런 고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면 영광이겠지만... 사문을 등질수는 없었기때문이오. 그런데 상대는 사문을 바꿀 필요도 없고 나를 사부 로 여길 필요도 없다면서 자신이 만년에 이르러 깨달은 무공을 전수해준 마지 막 제자가 죽어버렸기 때문에 자신이 죽으면 이 무공도없어진다고 했소. 그 러면서 그냥 자신의 무공이 후세에도 사용되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자신의 무 공을 익히고 싶으면 장문인의 허락을 받고 나한테로 찾아오라고 했소. 그래서 나는 장문인을 찾아가 사정을 아뢰고 그의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소." "장문인이 허락을 해주던가?" "처음에는 해주지 않았소. 상대가 누군지 몰랐기 때문이오. 장문인은 직접 그 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눠보고 그가 근래들어 뛰어난 무공으로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던 독고구패 선배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허락해줬소. 그래서 나는 틈틈 히 그분을 찾아가 10여년간 무공을 익혔소." "좋아.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대강은 알겠군. 그런데 마지막 제자의 이름이 묵향이란 것은 어떻게 알았지? 그분이 얘기해줬나?" "그분은 틈틈히 나한테 검술을 가르쳐주면서 묵향이란 사람 얘기를 많이 했었 소. 아마도 묵향이 살아있어서 너를 본다면 아주 좋아할텐데... 하면서 말이 오." "검술을 가르쳤다고 했는데... 무슨 검술을 배웠나?" "무형검법(無形劍法)을 배웠소. 아주 배우기 까다로웠지만..." "무형검법? 그런 검법도 있었나?" "거의 초식이 없는 검법이오. 그분도 그것을 근래에 이르러 완성했다고 하셨 소. 초식이 아주 특이한 만큼 익히기는 까다롭지만 일단 연성하고 나면 대단 한 위력을 가지게 되오." "그럼 독고구패란 사람은 무형검법이란 것을 그 자신이 직접 창안해 낸 것이 군. 그리고 익히기도 힘들고... 너는 얼마나 배웠지?" "자질이 모자라서 그렇게 깊게까지 연성하지는 못했소." "좋았어. 그건 나중에 검을 섞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고... 이제 마음 푹 놓고 몸조리나 잘 하라구. 나중에 몸이 완쾌되면 비무를 한번 해보기로 하지. 만약 도중에 도망가다 나한테 걸리면 반쯤 죽여놓을테니 알아서 하게나." * * * 내상은 없었기에 몸은 빨리 치유되었고 애송이의 몸이 완쾌되자 묵향은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애송이도 상대가 뭘 원하는 것인지 알기에 선배가 물려준 검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상대는 검집에서 검을 뽑지도 않고 느긋하게 말했 다. "자. 검을 뽑아라." 애송이는 검도 뽑지않고 그렇게 말하자 상대의 목적이 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일단 상대가 원하는대로 나가기로 했다. 상대와의 거리는 2 장... 검을 뽑아든 다음 상대의 출수에 대비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서 있 었다. '관례에 따라 양보해주겠다는 건가?' 원래가 비무인 경우 선배는 후배에게 3초를 양보해 준다. 동년배인 경우 각자 에게 3초씩 양보한 후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대가 일단 원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출수를 해보기로 했다. 그는 비웃는 듯한 기분나 쁜 상대에게 신법을 펼쳐 급속도로 접근해 들어가며 검초를 펼쳤다. "매화노방(梅花露芳)" 이것은 화산파(華山派)가 자랑하는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의 1 초로서 비무이기 때문에 그 초식의 이름을 상대가 알 수 있도록 불러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검초를 펼치자 묵향은 몸을 뒤로 틀어 몸통을 향해 날아오는 검초를 피하며 상대의 비어있는 허벅지를 향해 발을 날렸다. 애송이는 놀랍다는 듯이 옆으로 신법을 써서 이동해 그것을 피하면서 바로 상대의 발을 베어갔다. 이번에는 애송이는 초식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무형검법은 상 대의 약점만을 골라 공격하는 동귀어진(同歸御盡)의 수법이 주류를 이룬 독특 한 검법이다. 초식은 없으되 기존의 초식을 응용하던지 아니면 속도를 위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상대의 몸으로 찌르거나 베어가는 수법만이 존재할 뿐... 묵향은 상대의 검이 자신의 발을 향해 곧장 베어오자 황급히 발을 후퇴시킨 다음 이제서야 검을 뽑아 발을 베어가는 상대의 손을 향해 검을 날렸다. 놀라 울 정도로 빠른 발검술(拔劍術)... 애송이는 밑으로 쳐내리던 손을 뒤로 빼면 서 상대의 검을 받았다. 챙... 상대는 검과 검이 부딪치는 그 반탄력을 이용해 뒤로 검을 빨리 회수해 다시 머리를 향해 날려왔고 애송이는 다시 자신의 검을 이용해 상대의 손목을 노리 고 검을 날렸다. 지독하게도 물고 물리는 대결... 놀랍게도 둘의 검술은 상당 한 유사점이 있었다. 조금 틀린점이 있다면 묵향의 검이 더욱 단순무식하게 움직인다는 점이었고 상대의 검은 조금 아주 조금 더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는 것이었다. 상대는 이상하게도 내공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애송이가 가진 공력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 대가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가지 있었는데 그건 검의 길이가 이쪽이 5치 정도 길다는 점이었다. 대신 상대의 검이 짧기에 공격해 들어오는 속도는 저쪽이 더욱 빨랐다. 상대는 그 자신의 잇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주 다채로 운 공격을 퍼부었고 애송이는 그것을 해소해 낸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애송이는 무림에 출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자신이 살아오면서 맹세 코 이런 이상한 검법을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하나하나가 자 신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일직선적인 공격... 한초식 한초식을 넘길때마 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순간이 생명의 위기라 처음에는 못느끼고 있었지만 나중에야 상대의 검법이 많이 눈에 익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의 검법을 자신이 아주 잘 알고있으며 놀랍게도 그런 검법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알기에도 저사람 외에도 두명이나 된다는 사 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었고 또 하나는 돌아가신 독고구패 선 배.... 그것을 눈치챈 다음에는 상대에 대한 경이로움이 솟아나왔다. 그의 검 을 다루는 실력은 맹세코 자신을 가르친 독고구패 선배의 아래가 아니었다. 둘은 거의 초식을 무시한 직선공격을 주로 했으므로 순식간에 수백초식이 지 나갔다. 상대는 1000여초를 주고받은 다음에 뒤로 훌쩍 3장이나 뛰어 공격권 을 벗어난 다음 천천히 검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제법 제대로 배웠군. 하지만 고작 그정도 실력으로 무림에 돌아다닐 생각 하 지말고 문파로 돌아가서 더욱 수련을 하거라. 환사검의 제자가 별볼일 없는 무리에게 죽었다는 말은 듣고싶지 않으니까..." "당신은 누구요? 어째서 무형검법을 아는거요?" "내가 말 안했던가? 내 이름은 묵향... 마교의 부교주지. 정사는 양립할 수 없다고 떠드는 놈들이 많으니 오늘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도록 해라. 어르신은 편안하게 돌아가셨나?" 묵향의 말을 들으면서 경이와 환희가 담겨졌던 애송이의 얼굴이 갑자기 뒤의 말을 들으면서 어두워졌다. 그걸 보고 묵향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렇지 못하셨던 모양이군." "예. 돌아가실 때 대한히 괴로워하셨어요." "그건 사마외도(邪魔外道)를 걷는 무리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宿命)이지. 산 공(散功)의 고통을 피하려면 극마에는 올라서야 하는데... 그분도 극마에는 오르지 못하셨구나. 그럼 네가 그분의 임종을 도와드렸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묵향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원래가 마교에서는 가는 분의 고통을 줄여드리기 위해 가장 절친했던 인물이 산공의 고통이 시작되기 전에 편안한 죽음을 선사하지. 네가 잘 몰라서 도와 드리지 못한 것이니 어쩔 수 없구나." 그 말을 끝으로 쓸쓸히 문밖으로 걸어나가는 묵향을 향해 애송이가 외쳤다.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애송이와 헤어지고 난 후 묵향의 기분은 정말 정말 좋지 못했다. "제기랄..."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사부를 그대로 죽게 만들지 않았 을거라는 생각이 묵향을 더욱 괴롭게 했다. 현재 그의 실력이라면 별 고통없 이 사부의 내용을 없애버린 다음 북명신공을 이용해 새로운 공력으로 채워넣 어 줄 수도 있었고 어쩌면 사부가 극마의 경지에 올라 더욱 오래 살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일단 극마에 오르기만 한다면 탈마로 유도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분이 고통받고 죽지 않도록 일격에 목을 베어드릴 수도 있었다. 자신이 옆에 없었기에...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만 옆에 있었기에 묵 향이 가장 존경했던 사부는 아마도 죽는 그 순간 지독한 고통을 내공이 깊은 만큼 아주 장시간 받았을 것이다. 자신도 마교에서 자라나 마교에서 생활했기 에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고 그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속만 썩인다고 벌써 지나간 일이 바뀌지도 않지... 어디가서 술이나 퍼마셔 야겠군.사부의 명복을 빌며...' 묵향은 곧장 허름한 한 술집에 들어가서 박혔고 그 마을의 술을 동을 내려고 작정한 듯이 퍼마시기 시작했다. 이런 묵향을 지켜보는 눈들이 몇 개 있었다. 그들은 묵향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멀직히서 바라보며 쑤근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찾았는데... 아무래도 별로 기분이 안좋은 모양인데요... 어쩌죠?" "표정을 보니 아주 기분이 더러운 모양이야. 괜히 가서 말붙였다가 저자의 성 격이 소문대로라면 그 더러운 성격에 잘못하면 우리들 목이 날이갈지도..." "도대체 그 젊은 애가 뭐라고 했기에 실컷 비무를 잘 한 다음에 결과가 이모 양이 됐죠? 그놈을 잡아다가 주리를 틀어보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글쎄..." 이들은 줄기차게 호북성에서부터 묵향을 뒤따라온다고 바닥을 기어댔던 인물 들이다. 그들이 묵향의 흔적을 놓친 곳은 어떤 마을이었는데 거기서부터 경공 술을 사용하는 바람에 흔적이 없어서 망연하던 차에 그 발자국과 서로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발자국들을 곧이어 찾아낼 수 있었다. 발자국들로 봐서 아마 도 4명인 것이 확실한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거의 2시간을 추격한 결과 그들은 별볼일 없는 무공을 믿고 민폐를 끼치는 걸로 유명한 하남오괴(河南五 怪)의 4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놈들을 잡아서 족친 결과 묵향이 한 애송이를 끌고 기막힌 속도로 어딘가로 사라졌음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걸로는 추격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어떻게 할까 궁리하며 식당 에서 배를 채우고 있는데 묵향이 피투성이가 된 애송이를 의원으로 엎고가는 것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묵향은 그 애송이를 족친 다음 다시 뭔가 사정이 있 어 애송이를 치료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묵향이 계속 의원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애송이를 돌보고 있었기에 이제나 저제나 묵향과 면담을 할 기회를 노리던 중 오늘 아침에 둘이서 나오더니 몸이 완쾌된 애송 이와 눈부신 비무를 한 후 서로 뭐라고 대화를 한 후 갑자기 기분이 엉망이 되어 술집에 처박혀 버렸으니.... "하여튼 여기서 술마시기 시작했으니 한동안은 머무를 게 분명해. 일단 사정 을 알아야 말을 붙여볼 수 있으니 네 말대로 그 애송이를 잡아다가 주리를 틀 자. 아무래도 그게 제일 안전할 것 같아..." "빨리 가요." * * * 애송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요즘들어 만나는 고수들 마다 자신을 못잡아 먹어 안달이니 이거 억울해도 이만저만 억울한게 아니다. 자신도 무림의 경험 을 쌓기 위해 사문을 나설때만 해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는데.... "으아아아아악!" "이자식아! 빨리 불어. 아까 그 검은 옷 입은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한거야?" 우루루 쫓아오더니 첫대면부터 묵향이라던 선배와의 일을 물어보는데... 사실 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그들은 묵향 선배를 해치려고 하는무리들 같 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묵향 선배와 자신은 사형제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관 계인데다가 그 선배가 자신은 마교인이기에 정파의 제자인 너와의 관계는 발 설하지 말라고 했던 주의 때문에 그로서는 그들에게 답을 해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정중하게 물어오던 상대가 점점 심사가 뒤틀리는지 표정이 굳어져가 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다짜고짜 출수를 해왔다. 괴한의 무공은 자신보다 한참 위였고 곧이어 점혈당해 쓰러진 자신에게 무지막지하게 고문부터 시작하니 이 거 원...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힘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아무래도 맛을 덜 본 모양인데요... 입이 아주 질겨요. 오라버니... 분근착 골을 사용하는게 어떨까요?" "알겠다. 나도 그편이 빠를 것 같구나." 사내가 애송이의 혈도를 몇군데 치자 애송이의 온 몸에서 뚜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날 죽여라.... 날 죽여.." 살막의 무리들이 애송이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것은 7가지 고문을 가한 후였다.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애송이로부터 대답을 듣자 살막의 인 물들은 먼저 걱정부터 앞서기 시작했다.그래서 옆의 누이에게 전음으로 속닥 거리기 시작했다. <이거 큰일이군. 저놈의 말 대로라면 사제하고 거의 비슷한 관계잖아. 이놈을 족친게 묵향의 귀에 들어가면 아주 귀찮아지겠는데... 이놈을 죽여버릴 까...?>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저놈은 우리들의 정체도 모르는데.... 그리고 저놈 의 말대로라면 묵향과 더 이상 만나게 될 가능성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아까 그 의원에 데려다 주면 어떨까요?> <흐음... 괜히 쓸데없이 살인을 할 필요는 없지. 좋아. 네 말대로 하자.> "얘들아." "예." 그 사내는 만신창이가 되어 뻗어있는 애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이 아까 나왔던 의원에 저놈을 치료하라고 맏기고 치료비를 지불해라. 죽으면 안되니까 잘 치료하라고 부탁하고..." "옛!" 수하들이 애송이를 엎고는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사내가 투덜거렸다. "자식... 좋게 말로 할 때 들었으면 서로 좋았잖아." 애송이가 의원의 한 자그마한 방에 뻗어서 정신이 오락가락 함에도 불구하고 퇴원하자마자 또다시 엉망이 되어 실려온 탓에 열받은 의생(=의사)으로부터 갖은 핍박(逼迫)을 받으며 치료받고있는 이시간... 묵향도 정신이 거의 오락 가락하고 있었다. 물론 애송이 처럼 고문(拷問)의 후유증으로 그런 것이 아니 라 단시간에 술을 너무 마셔서 그런 것이다. 벌컥 벌컥 "큭...! 좋군 좋아. 세상천지가 빙빙도는군..." 벌써부터 혀꼬부라진 소리가 나오느냐고 할 사람은 이 식당에 아무도 없었다. 묵향의 옆에는 벌써 빈병이 10개가 쌓여있었고 그 다음에는 감질난다며 아예 독째로 가져다가 마셔댄 것이다. 사실 무림인이라면 술을 이정도 마신다고 이렇게나 취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 는 웅후한 내력으로 술기운을 억누르거나 좀 더 무공이 고강한 경우 술기운을 체외로 방출해버리기 때문이다. 입으로는 마시면서 술기운을 땀과 같은 형태 로 방출할 바에는 왜 술을 돈주고 마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쨋든 대 부분 그런식으로 술기운을 처리하기에 무림인이 술이 취해 비틀거리는 꼴은 보기 힘들다. 묵향은 그에 비해 아예 취하자고 마셔댔기에 위의 두가지 방법 중 그 어떤것 도 취하지 않았다. 그대로 술기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형편이니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술기운에 정신이 오락가락 할 수 밖에... 5대접의 고량주(高粱酒)를 더 마신 후 급기야는 탁자위로 쓰러져버리자 식당 주인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내 평생 이장사를 해왔지만 저렇게 죽으려고 퍼마시는 놈은 처음이 군." "헤헤... 그래도 선불 받았으니 걱정은 없잖아요." "떽! 잘못하다가 시체를 치우면 적자라구. 적자. 저놈을 들어다가 골방에 재 워줘라. 새파란 놈이 대낮부터 저렇게 퍼마시다니... 아무래도 계집문제때문 인 모양인데... 아무리 계집이 좋다고 있는대로 퍼마시고 목숨을 버리려고 들 다니... 쯧쯧..." * * * "벌써 뻗어버렸는데 어쩔거에요?" "글쎄... 세 가지 방법이 있겠지." "어떤거요?" "먼저 이틈을 이용해서 저놈을 죽여버린 다음 무림맹에 공치사를 하는거야. 그리고 두 번째는 이대로 놔두고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거고 세 번째는 들어다 가 좀 더 좋은 여관으로 옮기는 거지." "흐음... 그럼 우선 첫 번째를 시도해보고 가능성이 없을거 같으면 세 번째를 사용할까요?" "그게 좋겠군. 너가 가지고 있는 팔황장천비(八荒長天匕)를 빌려다오." "오라버니도 좋은 검이 있잖아요?" "내것이 아무리 좋아도 십대기병(十代奇兵)에 견줄 수 있겠냐? 내꺼로는 영 자신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있어요. 예민한 녀석이니 부드럽게 다뤄줘요." 여인은 품속에서 1척정도 길이의 호화로운 단검을 사내에게 건넸다. 검신의 길이 7촌(21Cm), 손잡이 3촌 반(10.5Cm)의 조금 긴 이 비수는 팔황장천비라 는 근사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상대의 호신강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얇고 날카로운 검신(劍身)덕분에 십대기병의 말석(末席)을 차지하고있었다. 이 비수는 그녀의 선친(先親)이 천신만고 끝에 구한 것으로 그녀의 35번째 생 일에 선물한 것이었는데 그 예리함에 반한 그녀는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 다. 사내는 건네받은 비수를 왼손에 감춘 후 수하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서자 쓰러진 묵향을 일으키려고 애쓰고있는 점소이가 보였다. 그 런데 아무리 점소이가 흔들어대도 줄기차게 뻗어있던 묵향이 갑자기 튕기듯이 몸을 일으켰다. 그바람에 뒤에 서있던 점소이가 뒤로 쓰러져 탁자에 부딪쳤고 그것을 본 살기를 품었던 무리들은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지만 무심을 가장 해서 옆의 탁자에 우루루 앉았다. 그들을 몽롱한 눈으로 바라보던 묵향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이상하군... 살기가 느껴진 것 같은데... 네놈들이냐?" 그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여 짐짓 이해 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답했다. "예? 무슨말씀이신지?" "네놈들이... 네놈들이 감히 본좌에게 살기를 품었냐 이말이다." "아.... 아니올시다. 착각을 하셨겠죠..." "그런가..." 털썩. 묵향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탁자위에 뻗어버렸다. '휴... 살기를 최대한 억눌렀는데도 이모양이니... 아무래도 내가 너무 긴장 한 모양이야. 좀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봐. 여기 술하고 안주좀 주게나." "예." 뒤로 넘어졌던 점소이는 일단 묵향을 그대로 놔두고 주문한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사내는 안주도 없이 술을 몇잔 들이키면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조 금 느슨하게 푼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면서 사내는 죽어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저건 통나무야. 저건 통나무야. 저건 통나무야.......' 뭔가를 죽인다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가지면 끝장이었다. 저런 민감한 놈은 베 는 그 순간까지... 될 수있다면 벤 후에도 살기(殺氣)가 없어야 한다. 사내는 묵향의 등 뒤에 다가선 다음 왼손에서 살며시 비수를 아래로 내렸다. 사내는 자신이 익힌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왼손에는팔황장천비의 집을 잡고 또 손잡 이는 오른손으로 살며시 잡은 상태로 천천히 묵향의 등 뒤 가까이로 가져갔 다. 미세한 살기까지도 감지하는 인물인 만큼 엄청난 예기(銳氣)를 뿜는 팔황장천 비를 뽑은 상태로 그의 등뒤에 가져갈 수는 없었다. 최후의 순간에 뽑음과 동 시에 휘둘러야 했다. 그는 처음에는 쿵쾅거리며 움직이고 싶어하는 심장을 정 상적으로 돌리게 만드느라고 갖은 애를 썼지만 일단 먹이가 코앞에 위치하자 그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목표에 정신을 집중했다. 통나무의 심장이 위치하 고 있을거라 생각되는 부분만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상대가 절대로 눈치채지 못하게 천천히 공력을 약간만 모으면서 근육을 조금씩 긴장시키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그가 팔황장천비를 이용해 통나무를 두토막내려는 찰나, 죽은 듯이 뻗어있던 통나무의 몸에서 강렬한 기가 방출되어 나왔다. 그와동시에 허름한 식당 안은 지독한 술냄새(酒香)로 꽉 차서 숨쉬기도 힘들지경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다음순간 통나무처럼 뻗어있던 묵향은 강렬한 기가 넘치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이런' 사내는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팔황장천비를 왼손에 황급히 밀어 넣었다. 사내가 숙달된 동작으로 순식간에 모든 증거를 인멸(湮滅)하고 모르 는 척 하고 있는데, 모든 술기운을 순간적으로 체외(體外)로 밀어내버린 묵향 이 언제 취해있었냐는 듯이 멀쩡한 안색으로 일어서면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해..." 그러면서 수하들과 여인이 앉아있는 탁자로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여기서 지속적으로 살기가 느껴진단 말이야." 사실 막주는 살기를 초인적인 노력으로 감추는데 성공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수하놈들이 상관(上官)을 지원하려고 준비를 늦추지 않은 것이 탈이 었다. 일이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감을 느낀 여인은 아무일도 없었던 듯 방긋 이 화사하게 웃으며 먼저 선수를 쳐서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묵향 부교주님. 또다시 뵙는군요." "으응? 누구시더라?" "저... 그때 살막에서..." "아... 막주의 대리인이군.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로..." "근사한 제안이 있어서 막주님을 모시고 이리로 따라 왔어요." "막주?" 그때 사내가 묵향의 뒤에서 정중히 포권하며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홍진(洪搢)이라 합니다." "아... 안녕하시오? 묵향이라 하오. 추격술이 대단하시군요." "과찬이십니다. 제가 부교주님을 따라온 이유는 그 제안에 동의(同意)하고자 함이지요." "그런데 아까 그 살기는?" "아... 전에 부교주님의 놀라운 무예의 경지를 목격했던 수하들이 저희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대비한 것이겠지요.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허허.." "좋소. 그대들이 도와준다니 정말 고맙소." "다행히 이렇게 만났는데 같이 저희들과 술이나 한잔 하심이 어떠하실는지 요?" "좋지." "전에는 소개를 못드렸지만 저 아이는 제 동생인 홍청(洪淸)입니다. 무공은 보잘 것 없지만 지혜가 뛰어나 집안살림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살해 일보직전까지 갔었지만 이상하게 반전되어 이런식으로 화 기애애한 술판이 벌어져버렸다. 이 둘의 합체가 화(禍)가 될지 복(福)이 될지 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것으로 두 단체의 합체는 이루어진다. * * * 모두들 축배(祝杯)를 들며 담소를 나누다가 살막의 인물들은 떠나가고 묵향 혼자 식당에 남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한참 술을 마시던 묵향은 뭔가 이 상한 점을 발견했다. 사실 그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들어서면서부터 발견했 을텐데 그때는 사부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런대로 마 음이 안정되자 자연히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놀랍군.' 묵향은 탁자를... 정확히 말하면 탁자의 윗부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 다. 이미 그의 머리속에는 사부의 죽음도... 살막의 합병에 대한 기쁨도 사라 지고 없었다. 다만 머리속에 맴돌고 있는 것은 놀랍다는 감정 하나였다. 한참 을 탁자를 살펴보던 묵향은 다음에는 의자들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다른 탁자들을 살펴봤다. '정말 놀라워...' 급기야 묵향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점소이를 불렀다. "이봐" "예, 나으리." "이 탁자는 어디서 구한거냐?" "예. 숲속에 사는 진팔(振八)이란 목수가 만든것입죠. 별로 볼품은 없지만 아 주 튼튼합죠." "튼튼할만도 하겠군. 그자가 사는 곳을 자세히 말해보거라." 그러면서 묵향이 5냥의 엽전을 쥐어주자 입이 함박만큼 벌어진 점소이는 나불 나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묵향은 음식값을 지불한 다음 진팔이란 목수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진팔의 집은 산 중턱쯤에 위치한 자그마한 초가(草家)였다. 초가의 앞에있는 자그마한 텃밭에는 아마도 진팔이라고 생각되는 젊은 목수가 곡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든 작물을 다 먹고는 새로운 소채들을 심기위해서리라... 묵향이 점점 다가가자 곡괭이가 땅을 치는 박자와 묵향의 걸음걸이가 이상하 게도 일치하기 시작했다. 목수는 묵묵히 땅만을 바라보며 곡괭이를 놀리고있 었고 묵향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묵향은 그 순간 응축(凝縮)되어 숨겨진 미세한 살기가 곡괭이 속에서 묻어나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묵향이 목수에게 다가설수록 그 살기는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묵향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품속에 숨겨두고있던 묵영비(墨影匕)의 손잡이를 더듬고 있었 다. 묵향은 땅을 바라보고있는 목수가 자신의 전신(全身)을 훑어보고있다는 기이 한 느낌을 받고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휘둘러지는 곡괭이는 자신의 온 몸을 노리고 있다는 느낌 또한 받고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죽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묵향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음순간 묵 향은 몸속의 모든 세포들이 지금의 상황을 즐기며 폭발적으로 반응하고 있음 을 느꼈다. 놀라운 쾌감이었다. 다음순간 묵향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목수 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묵향이 목수에게 2장(6M)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곡괭이가 막대한 기를 머금은 채로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그 순간 묵향은 본능적인 위 험을 감지하고 재빨리 뒤로 신형을 뺐다. 하지만 그보다도 목수의 곡괭이가 땅에 부딪친 것이 조금 빨랐다. 목수의 곡괭이가 땅에 부딪침과 동시에 놀라 운 현상이 벌어졌다. 곡괭이와 땅이 부딪침과 동시에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강 기(剛氣)의 회오리가 생성되어 그곳을 기점으로 사방으로 구형(球形)으로 퍼 져나갔다. 강력한 강기가 퍼져나옴을 느끼는 순간 묵향은 품속에서 묵영비를 꺼내어 순 간적으로 아래로 그었다. 직검단천(直劍斷天)의 기세로 떨어져내리는 그의 비 수에서는 검강의 회오리가 반월형(半月形)으로 형성되어 구형으로 퍼져나오는 상대의 강기와 부딪쳐갔다. 상호간의 강기가 부딪침과 동시에 묵향은 지금 뻗 어오는 강기의 회오리가 무식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깨닳았다. 아마도 지금 의 강기는 상대의 필생의 깨닳음을 이용하여 방대한 공력을 준비한 필살의 공 격이리라. 그는 더 이상의 헛된 공격을 포기하고 외부에는 4장 3절, 망강(網 剛;강기의 사슬)을 이용하여 보호하고 그 안에 최강의 수비식이랄 수 있는 1 장 4절 방(防)을 전개했다. 그와동시에 상대가 퍼뜨린 강기의 회오리가 묵향 을 덮쳤다. 지독한 강기의 회오리는 망강을 순식간에 허물고 들어와서는 방에까지 막강한 충격을 주어 뒤흔들었다. 곧이어 놀랍게도 여태껏 무너진 적이 없던 방까지 무너지며 묵향의 호신강기에 강력한 힘으로 부딛쳐왔다. "크윽!" '정말 대단하군...!' 묵향은 목구멍 안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억지로 꿀꺽 삼키면 서 회심의 반격을 시작했다.선수는 놓쳤지만 당하고 살 위인이 아니었기 때 문이다. 회오리가 지나감과 동시에 묵향은 4장 1절, 통강(通剛)을 4장 5절, 다강(多 剛)의 법칙을 이용해 막강한 공력(功力)을 투입하여 뿜어냈다. 묵향이 다강을 응용하여 강기를 전개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강이란 수개에서 수백개에 이르 는 강기를 한꺼번에 뿜어내는 요령을 이르는 것으로 다강 하나로만은 어떤 위 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통상 절강이나 통강과 함께 응용되는 기술이이기 때 문이다. 상대방을 향해 찌르는 듯 겨눈 묵영비에서는 순식간에 수백가닥의 검강의 다 발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갔다. 이때 상대는 묵향에게 일격을 먹인 후 마무리 를 할 작정인지 튕기듯이 뒤로 후퇴중인 묵향에게 엄청난 속도로 다가서고 있 었다. 그러다보니 묵향의 공격은 상대에게 그대로 격중되었고 상대는 묵향의 공격을 일부러 찾아와서는 온몸으로 때우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상대는 묵향의 강기가 수백가닥이 뻗어옴을 보고 눈이 약간 커지더니 곧이어 곡괭이를 떨어트리며 머리를 아래로 수그리고 발을 최대한 위로 끌어올리면서 양손을 사용하여 이(二)자 형식으로 만들어 몸의 앞에 막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 팔에서는 시퍼런 강기의 막이 퍼져나오며 그의 몸의 앞부분을 두터운 방패와 같이 막아섰다. 쾅! 거의 지축(地軸)을 울리는 듯한 괭음이 퍼져나오며 상대는 그 반탄력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상대는 뒤로 튕겨나가면서도 상대의 열손가락에서는 각기 지 강(指剛)이 뻗어나오며 묵향에게로 날아왔다. 역시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기 때문이다. '얄팍하게 시간을 벌려고 드는군.' 묵향은 순간적으로 1장 4절, 방(防)을 이용하여 몸을 감싸면서 뒤로 튕겨가는 상대가 준비 할 시간여유를 주지않기 위해 쫓아들어갔다. 펑! 10개의 지강이 방에 격중되는 순간 묵향은 상대의 지강이 상상외로 강하다는 것에 놀랐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면 방이 깨지면서 다시금 호신강기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지강들이 방에 격중되면서 발생한 강력한 반탄력에 의해 뒤로 밀리면서 묵향 의 눈에는 상대방이 처음 가한 공격의 결과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상대의 구형으로 퍼져나간 강기의 회오리는 곡괭이가 부딛친 곳에서부터 반경 50장(150m)를 거의 평지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것을 깨닳으면서 묵향은 상대의 공력이 자신보다 더욱 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향은 곧바 로 상대에게 근접전을 펼칠 생각을 포기하고 곧바로 뒤로 몸을 빼면서 상대와 의 거리를 더욱 벌리며 묵영비를 품속에 집어넣고 다급한 김에 공력을 이용해 상자와 무명을 순식간에 태워버리면서 묵혼을 꺼냈다. 묵혼의 손잡이를 양손 가득이 움켜쥐며 묵향은 다시금 필승의 기세를 북돋우기 시작했다. 또다른 한명의 현경의 고수 묵혼을 뽑아든 다음 새로운 투지를 불태우며 묵향이 목수에게 몸을 날렸다. 둘의 사이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묵향은 곧바로 어검술을 전개하며 상대의 목 을 향해 묵혼을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는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 어 떤 반격도 하지않았다. 이것이 묵향이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느낀 이유였다. 이정도 공력을 투입한 어검술이라면 어떤 방어적인 행동을 했을 것이다. 피한 다든지 아니면 또다른 어떤 행동으로 대응을 하든지... 그 이유는 묵향 자신 이라 하더라도 이정도 공격을 호신강기따위를 이용해서 몸으로 때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묵혼검은 상대의 목 반촌(半寸; 1.5Cm)거리에서 멈췄다. 그러면서 묵향의 입 에서 딱딱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죽고싶소?" 그러자 목수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지. 정말 놀랍군. 자네는 내 목을 칠 충분한 자격이 있 어. 자... 뜸들이지 말고 실행하게나." "뭐... 부탁을 들어드리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이유나 알고싶 은데요." 그러면서 묵향이 묵혼검을 검집속에 집어넣고는 허리에 차자 상대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자네는 나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닌가?" "선배를 만나러 온 것은 사실이지만... 죽일 생각까지는..." "그럼 자네는 청해성(靑海省)의 살겁(殺劫)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이 아니란 말 인가?" "청해성의 살겁이라뇨?" 목수는 아무말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묵향에게 말했다. "일단 이것도 인연이니... 따라오게나. 술이나 한잔 하세." 목수는 첫 번의 출수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초가의 옆쪽에 구덩이를 파자 안에서 자그마한 항아리가 하나 나왔다. 목수는 항아리를 꺼낸 다음 그 것을 들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묵향을 이끌고 갔다. 목수는 그런대로 운치 있는 자리를 골라 묵향에게 앉기를 권한 다음 묵향과 자신의 사이에 항아리를 놓았다. 목수가 항아리를 열자 그윽한 주향(酒香)이 흘러나왔다. 항아리를 연 후 목수 가 항아리 안으로 꼭 잔을 쥐고있는 것 같은 손짓으로 술을 뜨자 놀랍게도 진 기(臻氣)로 형성된 무형의 그릇에 술이 떠져서 올라왔다. 목수는 그것을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부가 누군지 자네는 아는가?" "글쎄요..." "노부는 과거 혈마(血魔)라 불렸었네." 그제서야 어느정도 감을 잡은 묵향이 대꾸를 했다. "혈마 선배셨군요. 사파의 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강기를 사용하신다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클클클... 아닐쎄... 노부는 사파의 인물이 아니야. 노부의 사문은 전진일 세." "아... 그 정과 마의 무공을 함께 익힌다는?" "자네도 알고 있었군. 노부의 나이 180세에 더 이상 무공은 증진되지 못하고 어떤 벽에 막혔었지. 바로 현경의 벽이야. 그래서 노부는 그 벽을 부수기 위 해 주야로 무수한 노력을 했었어. 너무 과도하게 노력한 탓에 주화입마(走火 入魔)에 걸려 그 마성(魔性)이 은연중에 골수(骨髓)에까지 침투해버렸지. 노 부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 것은 거의 100년 전이었네. 그때 노부가 느낀 것은 어떤 촌민의 심장을 내 오른손이 움켜쥐고 있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정말 많 은 사람이 죽어있었어. 그들의 시체를 검사해보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가 모두 죽였다는 것을 알았지. 나는 정말 미칠것만 같았네. 그래서 사문에 돌아 가서 죄를 청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지. 사문에 돌아가보니 그곳은 황폐하게 변해 있더군. 수많은 동문들이 백골이 되어 군데군데 쓰러져있었네. 그 흉수는 곧이어 알 수 있었지. 아무리 뼈만 남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손쓴 흔적을 찾기는 쉬웠어. 노부는 마성에 미쳐날뛰며 동문과 사부까지 모두 죽여 버린거야. 그 자리에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해봤네만... 나까지 죽어버리면 사문의 맥이 끊어지기에 그럴수도 없었지. 그래서 자그마한 문파를 하나 만들 고 그들에게 한번씩 찾아가 사문의 절학을 알려주며 여기저기를 떠돌며 참회 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 별로 인재가 들어오지 않아 이제 사문도 끝장이라는 절망을 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들어온 왕중양(王仲陽)이란 녀석이 꽤나 쓸 만해 보이더군. 아마도 전진의 미래를 다시금 넓혀갈 대들보가 될테지. 새로 운 전진에는 마의 무공을 전수하지는 않았어. 나와같은 실수를 저지르면 안될 것 같아서... 그나저나 자네도 대단하더군. 자네와 같은 고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네." "과찬이십니다. 제 실력이 조금만 떨어졌다면 선배님의 그 첫 번째 일격으로 가루가 됐을텐데요..." "그건 자네의 말이 약간 틀려. 노부는 100년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참회를 하며 한가지를 자연히 깨닫게 되었지. 100년간 땅을 파다보니 어느날 한가지 떠오르는게 있더군. 자네도 대자연에 떠도는 강렬한 기를 느껴봤나?" "예." "그래. 그렇다면 이해하기 한결 편하겠군. 나는 곡괭이에 기를 담아 그냥 대 지를 내려친 것이 아니야. 실지 그렇게 한다면 땅만 파이지 뭐 그렇게 가공할 기운이 뿜어져 나오지는 않지. 나는 나의 기를 대지의 기와 충돌시킨 거지. 그것은 극강한 두개의 기가 충돌하며 뿜어져나오는 강기의 회오리야. 노부는 그것을 깨닳은 후 이 무공을 전개했을 때 살아나올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 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네. 아마 노부도 그것에 당한다면 살아남기 힘들었 을지도 몰라." 조금 어리둥절한 묵향의 표정을 보더니 혈마는 껄껄웃더니 말했다. "자네도 오랜시간 땅을 파보면 알 수 있을걸세. 사실 대지의 기를 포착하여 그것과 충돌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것이지. 참. 그런데 자네는 여기 왜 왔나? 노부와 은원(恩怨)이 있는것도 아니라면 이곳까지 찾아올 이유가 없을 텐데..." "사실은 작은 식당에서 선배님이 만든 탁자를 봤죠. 그것은 어떤 연장을 사용 해서 만든 것이 아니더군요. 아주 단단한 나무를 일격에 강기(剛氣)로 잘라서 판자를 만든 후 그것으로 만든 것을 알고... 호기심에 찾아왔습니다." "껄껄... 술값이나 벌자고 만든 것 덕분에 오늘 목숨을 날릴뻔 했군. 나는 자 네가 다가오는 그 발걸음을 보고 놀랐지. 그 힘과 자신감이 넘치는 발걸음... 그 발자국 소리가 나는 고수고 너를 죽이러 왔다고 말하는 것 같더군. 노부는 내 생애 최고의 고수가 찾아온다는 것을 느꼈어. 아마 상대도 나를 괜히 찾아 온 것은 아닐테니... 나도 나름대로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내력을 모으고 준비한 후 처음의 일격을 날린거야." "그런데 선배께서는 제가 출수를 하자 곡괭이를 버리시던데... 그것은 왜..." "아. 나는 검을 쓰는 사람이 아니야. 장(掌)과 권(拳)을 주로 사용하지. 물론 사문에서 검을 배우기는 했지만 내 나이 100여세에 더 이상 검을 쓸 필요가 없더군. 그다음부터는 검을 잡아본 적이 없어."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비무를 청해도 될런지요?" "클클... 고수들의 싸움에서 그정도 초식을 교환했으면 되었지 더 이상 뭘 원 하는가? 노부는 거의 300여년을 살아왔네. 노부는 이제 더 이상 무공이고 은 원이고 뭐 이런것들에 관심이 없어. 그리고 요즘들어서는 뼈다구까지 물렁해 져서 자네의 공격을 버틸 재간이 없어. 그나저나 밭도 새로 갈아야 하고 집도 지어야하고...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군..." "다시 만나뵐 수 있을까요?" "하하하... 이리저리 떠도는 몸이라 아마 힘들걸세. 사실 이렇게 새파란 몸으 로 한곳에서 10년동안 있기도 힘들어. 여기서 10년... 저기서 10년... 이렇게 살고있지. 정 만나고 싶으면 전진파에 연락을 해두게나. 운이 있다면 만날 지 도 모르지. 하지만 점점 그곳도 기틀이 잡혀가니 노부도 잘 안가거든." 한 으슥한 밀실(密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들이 5명 모여앉아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고 있다. 그중 상석(上席)에 앉은 인물이 말했다. "아무래도 나름대로 또하나의 준비를 해두는게 좋겠어."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강시( 屍)는 지금 몇 구나 완성되어있나?" "289구입니다." "과연 그것들만으로 가능할까?" "흐흐.. 일반강시라면 몰라도 혈교의 비법으로 제작된 천령강시(穿靈 屍)올 시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본좌는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미흡한 것 같단 말이야..." "그러하오시면...?" "함정을 기준으로 사방 10리(3Km)에 대천악마라진(大千惡魔羅陣)을 준비하 라." 그러자 모두들 경악에 찬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잊었다. 대천악마라진은 그 진 세가 오랜 세월동안 연구되어 만들어진 다음 단 두 번 사용되었을 뿐이다. 천 마의 율법에서도 그 사용을 멸교의 위험이 있을때가 아닌 한 금지하고 있을 정도로 공포적인 마진이다. 대천악마라진이 사용된 가장 근래의 경우가 구휘 (區揮)대협의 아들 구천(區天)대협이 마교를 멸망하려 했을때였다. 그때 대천 악마라진을 거의 30리에 걸쳐 구축한 후 상대를 유인하여 끌어들여서 진세를 발동하였는데 그 사악한 마기와 요기는 마교에 몸담고있는 무리들도 처음 느 껴보았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마교와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은 그 진세안에서 대 접전을 벌였다. 사악한 마기와 요기는 양측에 두가지 상반된 작용을 했었는데 정(正)의 무공을 익힌 자들은 그 힘에 압도되어 제대로 자신 의 실력을 낼 수 없음에 반해 마교도들은 그 힘에 도움을 받아 평상시보다도 더욱 막강한 힘을 발휘... 원로원의 도움이 큰 작용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을 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것은 다시한번 더 재고(再考)를 해보심이..." "맞습니다. 그것은 천마의 율법에서도 금지하는 사악한 진법... 너무 과하다 는 생각이..." "클클클... 대천악마라진은 그 진 자체가 가진 살상력도 엄청나지만 사악한 악마들에게 사악한 힘을 나눠주는 것이 더욱 가공할만 하지. 어둠의 자식들인 강시라면 당연히 그 힘을 더욱 극대화하여 그놈을 저세상으로 인도할 것이 분 명해. 다만 이것은 최후의 방법이다." "최후의 방법이라 하시면?" "지금 그를 해치우기 위해 2중, 3중의 그물을 준비하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빠져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용해야 할 것이야. 그자는 아주 호기심 이 강해서 어물어물 넘기면 죽을지도 모르고 찾아올거야. 대신 수하들도 그것 이 함정이란 것을 알게하면 안돼지. 눈치가 너무 빠른놈이니... 조심 또 조심 하도록." "존명!" 어둠속에서 또 한 인물이 입을열었다. "그런데 이번에 잡아온 계집아이 때문에 말씀이온데... 한가지 문제가..." "무슨일인가?" "그것이... 마령섭혼심법(魔靈攝魂沁法)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아무래도 태허무령심법(太虛無靈心法)을 익힌 것 같습니다. 그가 타인에게 알려준 심법은 모두 그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도저히 심지(心知)를 장악할 수가..." "허허허... 난 또 뭐라구.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지. 그가 이리로 올 것 이 확실하다면 어떤 고문을 가해서라도 그년의 모든 이성(理性)을 무너뜨린 다음 사술을 걸어도 되니까... 벌써부터 마음 쓸 필요는 없으니 나중에 좀 더 확실해질때까지 어디다가 가둬두게나." "존명!" * * * 묵향은 혈마(血魔)라 불리웠던 전진이 낳은 최강의 고수 장진(張賑) 도인(道 人)을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눈 후 그에게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일순간의 기 억에도 없는 실수를 오랜 세월을 은둔하여 참회하며 살아온 그의 삶이 묵향에 게 새로운 어떤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묵향이란 인물은 참회하고는 아주아주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에 자신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끈기있게 행하고있는 그에게 존경심이 생겼던 것이다. 묵향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지금 자신의 양녀를 만나기 위해 낙양으로 가고 있음을 그에게 우연히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장진 도인은 정사는 양립 하기 어려우니 그녀를 위해서 낙양에 갈 것을 포기하라는 충고를 해왔다. 해 서 묵향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흑룡문으로 돌아갔다. 그로서도 장진 도인의 말 을 거역할 만한 어떤 타당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묵향은 구흑룡문(舊黑龍門)의 정문에 들어설 때 걸려있는 현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黑龍門(흑룡문)이란 현판은 없어졌고 묵향의 지시대로 새로운 현판이 걸렸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써져있었다. <天魔神敎陝西分打(천마신교섬서분타)> 묵향이 돌아오자 여태껏 처리한 서류뭉치들을 가지고 설무지가 찾아왔다. 그 는 묵향에게 그것을 전하면서 입을 열었다. "첫번째 것이 본타가 거느리고 있는 식솔들의 계급체계 및 그들에게 지급되는 봉록, 장비 등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것은 타주께서 안계신 동안 사업을 확장한 것들을 기록한 것이고 셋째는 본타의 현재 재산상태를 기록한 것입니다." "흐음..." 묵향은 서류들을 뒤적거리다가 옆에 놓으며 물었다. "흑풍단이 도착했을텐데 그들은 어떻게 처리했소?" "예. 직접적인 것은 관지 대장에게 들으시고... 속하는 아무래도 그들은 따로 놔두는 것이 좋을 듯 하여 따로 묵을곳을 마련해주고 관지 대장과 의논하여 흑풍대라고 명명했사옵고 그 계급체계는 그에게 일임했습니다. 그들에게 지급 한 새로운 무기와 의복, 장비 등을 구입하는데..." "아아... 돈얘기는 그만하시오. 골치아프니까... 그것은 자네에게 일임하기로 했잖소?" "예." "새로 사업을 벌이다니... 그건 뭐요?" "예. 속하가 도착하고보니... 뜻밖에도 정말 엄청난 힘이라... 그들을 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일부를 이용하여 표국사업과 위사사업(衛士社業;지금의 보디가드와 유사함)을 벌였사옵고... 염왕적자에게 부탁하여 부근의 모든 잔 챙이들을 토벌하여 일정 금액을 상납받기 시작했사오며... 8군데의 전방과 3 군데의 기루, 5군데의 도박장을 입수했습니다." "입수하는데 문제는 없었소?" "조용히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수입은 괜찮소?" "워낙 중경(中京)이 가까운지라 본타의 강력한 고수들이 부상(富商)이나 고관 (高官)들을 찾아가 시범을 보이자 모두들 만족해 하며 호위를 청해왔습니다. 그들은 안전만 확실히 책임지면 돈을 아끼는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표국 사업도 근처의 표국들을 힘으로 눌러 3개의 표국을 흡수하여 벌써 안정권에 들어갔사옵니다." "좋아. 좋아. 모든 것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나." "존명! 그런데...." "뭔가?" "타주님을 찾아온 자가 있사온데... 용건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하며 지금 일주일째 여기 머물고 있사옵니다. 만나시겠습니까?" "어디서 온 자인가?" "대산에서 왔다고 하더이다." "좋아. 데리고 오라." "예." 조금 지나자 마기를 풍기는 한 인물이 들어왔다. 그는 묵향에게 부복하며 말 했다. "안녕하셨습니까? 부교주님!" "그래. 자네는 누군가?" "교주님의 서한을 전하고자 왔습니다." 그가 주는 편지를 그를 인도하여 온 장한이 받아 설무지에게 전했고 그것을 다시 설무지가 묵향에게 전했다. 묵향은 별 흥미없다는 듯이 편지를 찬찬히 읽어본 다음에 설무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설무지는 편지를 읽은 다음 얼굴빛이 핼쑥해지며 노기(怒氣)를 터트렸다. "이 것을 따르면 아니됩니다." "왜?" "함정일 것이 뻔합니다. 이놈들은 지금 타주님의 양녀를 인질로 잡아 타주님 을 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꾐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그래도 내가 안가면 그 아이를 죽일텐데?" "그래도 안되옵니다. 그것은 나중에 복수를 하면 그만... 지금 이들의 말을 따르면 타주님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크하하하하..." "....." "자네의 생각이 아주 내 생각에 부합(符合)되이. 사실 나도 그곳에 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내가 거기 왜 간다는 말인가... 껄껄껄... 이제는 교주도 나를 웃기는군... 자네가 내 대신에 편지좀 써주게나." "예. 준비가 되었습니다. 부르시지요." "여러가지 인사말이나 뭐 그런거는 자네가 예법에 맞게 써주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거야. 만약 내 양녀를 죽인다면 나는 그것을 말리고 싶은 생각 은 없소. 사실 내가 교주를 죽인다는 것은 아주 힘드오. 교주의 무공도 무공 이려니와 그 주위에 호위하는 무리들이 많기 때문이오. 하지만 교주보다 무공 이 약한 교주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는 죽이기가 아주 손쉽 지. 그대가 내 양녀를 죽인다면 나는 그대의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를 손쉬운 순서대로 차근차근 죽여주겠소. 그건 별로 어려운게 아니니 까... 나야 믿질것이 하나도 없으니 우리 서로 누가 많이 죽일 수 있는지 내 기 해봅시다. 이렇게 써서 이것으로 인장을 찍은 후 저놈에게 줘라." "예." 설무지가 편지를 써서 묵향이 준 옥패(玉牌)를 이용하여 인장을 찍은 후 장한 에게 건네줬다. 장한이 마기를 풍기는 인물에게 주자 답장을 받은 마인(魔人) 은 편지를 품속에 갈무리 한 후 묵향에게 예를 드리고 물러가려 했다. 이때 묵향이 그를 불렀다. "잠깐!" 상대가 돌아서자 묵향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아주 더러운 소식을 나한테 전하고 가는데... 예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하나?" 그러자 상대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곧바로 오른손에 진기를 끌어올리더니 수도(手刀)의 기법을 이용하여 왼손을 내리쳤다. 그는 왼손이 떨어져나가자 몇군데 혈도를 잡아 지혈을 한 후 말했다. "더 필요하십니까?" "아닐쎄... 예물이 과하군. 무인은 한쪽 손이라도 없으면 아주 불편하기 때문 에 나는 그냥 한쪽 귀면 되었는데... 자네가 먼저 손을 써버렸으니... 대산까 지 잘가게나." 마교에서 왔던 인물이 떠나가자 묵향은 대장급(隊長級) 이상의 고수들을 불러 들였다. 그에따라 묵향이 거느린 삼대세력인 천랑대, 염왕대, 흑풍대의 대장 들과 군사(軍師)인 설무지, 그리고 묵향에 앞서 설무지를 찾아와 통합을 청한 살막(殺幕)의 막주(幕主)와 부막주(副幕主)가 참석했다. 살막은 묵향과 합치 는 이때를 이용해서 아예 그 주력을 섬서성으로 이동했고 또한 본거지는 마교 섬서분타의 서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장원 한 채를 조용히 꿀꺽하는 것으로 손 쉽게 해결했다. 묵향은 모인 인물들을 쭉 훑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이제야 대강 준비가 갖추어 진 것 같군. 관지!" 그러자 얼굴을 숨기기 위해 복면을 하고있는 관지가 대답했다. "예." "우리끼리 있을때는 복면을 벗게나." 묵향은 복면 안에서 드러나는 관지의 남성다운 패기가 넘치는 눈을 잠시 바라 보더니 말했다. "혹시 불편한 것은 없나? 내 모든 것을 일러뒀으니 혹 미흡한 것이 있으면 군 사에게 말하면 들어줄거야."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묵향은 관지에게서 눈을 떼고 좌중을 둘러본 후 말했다. "지금 이곳은 인원이 너무 많이 모여있소. 구흑룡문의 아이들을 뺀다 하더라 도 육천이나 된단 말이오. 그래서 군사와 의논을 좀 해본결과 한가지 그 타계 책을 구상소.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는 더욱 강대한 힘을 가질수 있을거요. 군사!" "예. 사실 한곳에 전력을 모아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리함도 있지만 기습을 당했을때는 오히려 불리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조금 분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에 병행하여 산서성의 마교세력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어 떤분께서 힘을 써주실건지..." 그러자 염왕적자가 말했다. "속하가 염왕대를 이끌고 해결하겠소이다." "좋습니다. 그럼 낙양을 염왕적자 대장에게 맏기겠습니다. 그곳의 낙양분타 타주인 방철(방哲)과 먼저 비밀리에 연락을 하세요. 그러면 방철은 이미 본타 에 전폭적인 협조를 해주겠다고 연락을 해온만큼 손쉽게 낙양일대를 제압하실 수 있을겁니다. 낙양일대의 제압이 끝나면 염왕대와 함께 그곳에 비밀리에 분 타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하기를 바랍니다. 제 딸 설령이를 데려가시면 조금 이나마 도움이 되실겁니다. 그리고 조사한 결과 방철은 무공은 떨어지지만 아 주 관리면에서 뛰어난 인물이니 그를 잘 이용하십시오." "알겠소이다." "그리고 관지 대장!" "예." "관지대장은 흑풍대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에 비밀분타를 건설해 주십시오. 물론 인부와 물자는 제가 비밀리에 충분히 제공해 드릴 것입니다. 일단 건설 이 끝난 다음에는 그곳에 머물면서 세력을 키워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점차적 으로 본타의 핵심시설은 모두 다 태백의 분타로 이동될 것이고 이곳은 껍데기 만 남겨 적의 이목을 속이는데 이용될 것입니다." "홍진 막주." "예." "부막주와 함께 당분간은 이곳에서 저를 도와 일해주십시오. 대신 살막의 중 추세력은 태백의 분타로 단계적으로 이동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살막의 정보력을 낙양으로 돌려 염왕적자 대장의 낙양제압을 도와주십시오." "그러지요." "그리고 한가지! 여러분께서도 아시겠지만 본타는 마교에서 분리된 단체입니 다. 타주님께서는 본타가 마교힘의 4할에 이른다고 하셨지만 정직하게 말했을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천리독행 대장이나 염왕적자 대장과 세밀한 대화 를 통해 결론지었습니다. 타주님께서 우리들을 이끈다면 4할의 힘을 낼수있겠 으나 타주님이 빠진상태라면 결코 4할은 커녕 2할의 힘도 낼지 의문입니다. 지금 본타의 주력이라고 볼 수 있는 천랑대와 염왕대를 합쳐놨다 하더라도 타 주님이 빠졌을때 마교의 최고정예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의 기습을 받는다면 순식간에 괴멸당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만큼 마교의 상위 무력단체와 하위 무 력단체 간의 실력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그것을 어느정도 막기위해 상위로 갈 수록 숫자를 적게 배치했지만 정면대결이 아닌 기습이라면 숫자가 적을수록 더욱 유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그렇기에 어느정도 세 력을 분산시켜 둘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타의 이름을 무 림에 알리고 새로운 고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무회를 개최하는 것이 좋 겠습니다." "비무회라고?" "예. 분타창설 기념 비무회 정도로 하면 되겠지요. 대신 눈이 뒤집힐 정도로 좋은 상품을 몇가지 내거는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기는 하지만 무예에 미친놈들이 그까짓 황금따위로 모집할 수 있 을까?" "아니지요. 타주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보검 2자루, 보도 3자루를 확보해 뒀습 니다. 돈이 좀 많이 들었고 그중 몇 개는 흐흐흐... 조금 특이한 경로로 입수 했지만... 뭐... 그래도 입수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사방에 수소문해 서 뛰어난 미모(美貌)를 지닌 계집 10명을 확보했지요. 그것과 함께 본타 내 에서의 제법 괜찮은 직위, 그리고 뛰어난 마공(魔功)을 익힐 수 있는 특전 따 위를 주겠다고 한다면 정말 뛰어난 자는 어렵겠지만 그런대로 모두들 모여들 것입니다." "하지만 첩자들이 들어올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한 대비책은 뭔가?" "사실 이들은 섬서분타에서 사용할 소모품들입지요. 이 섬서분타를 지금 뜯어 고치고 있는데... 내부와 외부의 두군데로 확실하게 구분짓는 공사지요. 이번 에 받아들인 자들은 외부의 수비(守備)에 이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예의 일 부는 내부에 배치하구요. 내부와 외부 사이에는 진법으로 강력한 그물을 쳐두 면 왼만한 놈들은 얼씬도 하기 힘들지요. 그리고 요소요소에 일부 뛰어난 고 수들만 배치하여 첩자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또 이 내부에 타주의 주력이 있는 것 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일부 고수들을 제외한 힘은 모두다 비밀분타들에 분산해버리면 최악의 경우를 당해도 궤멸당하는 경우는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들은 타주님의 주력(主力)이 이곳에 있는 줄 알고 여기만 감시할테니 세력을 따로 움직이기도 편하구요. 나중에 상대가 기습을 가해오 면 타주님 이하 고수들은 밖으로 피해나가면서 나머지 놈들을 먹이로 던져주 면.... 흐흐흐..." "별로 기분좋은 생각은 아니지만... 뭐 그런대로 방법은 괜찮군. 대신 나는 여기에 언제나 있어야 하고?" "그렇지요. 하지만 타주께서는 무공이 원체 고강하시니... 원하신다면 언제나 눈에띄지 않게 빠져나가실 수 있을것입니다. 대신 이곳에 계속 계신 것으로 해놓아야 놈들이 타주가 계신 실세(實勢)를 찾는다고 노력하지 않게 되죠. 그 리고 이곳은 그때쯤 첩자들이 우글우글 하게 될것입니다. 완전히 닫아걸고 숨 기기는 힘드니 아예 열어둔 후에 비밀리에 주의에 주의를 하는 것이 더욱 안 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곳 이름을 아예 마교분타로 대놓고 포고한 이상 마교 내의 권력다툼이 되어버리니 교주가 직접 세력을 이끌고 오지 않는다면 마교와의 충돌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대신?" "정파에서 기습을 가해올 가능성은 있으니 그쪽으로의 대비는 확실히 해야합 니다. 하지만 정파에서도 대놓고는 기습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들이 마교를 등 에 업고있는 한 기습을 가한다면 마교와의 정면충돌이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좋아. 역시 군사는 아주 머리가 좋군. 만일의 경우 천랑대를 제물로 쓰기는 아까우니 나중에는 천랑대도 100여명만 남기고 모두들 철수시키게나." "예" "관지." "예." "자네 수하 중에서 4명을 차출해서 보내주게나. 군사가 호위를 두라고 하는데 나는 마기를 뿜어대는 놈들을 호위로 두지않거든. 밖으로 돌아다닐 때 너무 표시가 나기때문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기를 뿜지 않는 자들은 흑풍대 뿐 이야.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하네." "영광입니다. 속히 네명을 뽑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묵향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마화는 뒤로 물러섰다. 그녀 자신도 명상이나 사색(思索)이야말로 초고수들에게는 오히려 수련보다도 더 큰 상승효과를 가 져온다는 것을 줏어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때 쓸데없는 말을 걸어 방해 하면 안된다는 것 쯤은 알고있었다. 묵향이 요즘들어 죽자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무의식중에 익히고 있는 귀혼강신대법(歸魂 身大法)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생각에 생각을 해봐 도 그 사악한 마공과 자신이 익히고있는 무공과의 접합은 불가능했다. 귀혼강 신대법은정통마공이라고 할 수 없는 혈교의 요술적인 힘과 마교의 파괴적인 힘이 만난 독특한 무공이었기에 불사에 가까운 신체가 주는 매력은 대단했지 만 그 자신도 비급을 훑어본 다음 불가능함을 깨닫고 익히기를 포기했던 사악 한 무공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싸웠던 수하들의 말을 종합해서 판단해본 결과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는 그 순간에 심각한 상처를 안고있다가 순식간에 그것 을 치료했다는 것은.... 또 방대한 내공을 일시에 회복했다는 것은 자신이 생 각해도 이해하기가 힘든 노릇이었다. 내공의 회복이야 북명신공을 통했다고 하더라도 상처는.... 아무리 묵향이 머리를 굴려도 귀혼강신대법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귀혼강신대법을 무의식이 아닌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살을주고 상 대의 뼈를 깎는... 아니지... 뼈를 주고 상대의 뼈를 잘라도 결코 믿지는 장 사가 아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으니...' 묵향이 요즘들어 생각하는 것은 북명신공의 매력이 아니었다. 북명신공의 몇 가지 난해한 점은 젖혀두고라도 그것은 일단 익힐 수 있는 무공이니까... 하 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익힐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무의식중에 익히 고 있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것이 없다. '이놈의 무공은 내가 죽기 일보직전쯤 되어 정신을 잃어야만 발동되나? 하지 만 그전에 죽어버리면 끝장이잖아.... 혈마... 혈마... 혈마의 무공을 제압하 는데 그것만큼 좋은 수법이 없는데 말이야...' 묵향이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자신이 혈마가 지척까지 거의 무방 비상태로 접근해오기를 기다렸다가 발사한 회심의 일격... 그것도 거의 백가 닥에 이르는 강기다발을 모두 다 격중당했으면서도 손쉽게 그 힘을 막아냈다 는 데 있었다. 상대의 방어력이 그토록 강하다면 현재 묵향이 가지고있는 어 떤 무공으로도 그를 해친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도저히 이길 가능성이 없는 상대... 묵향에게는 그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최고의 경지에 올라서있는 고독한 절대강자(絶對 强者)가 아니었기때문이다. * * * 자그마한 모옥안... 그 허름한 방의 한쪽 구석에 한 사내가 앉아서 명상에 잠 겨있다. 그가 입고있는 묵의는 어두운실내와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다. 평범한 얼굴이지만 사실 이 사내의 진면목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다. 남보다 조 금 두터운 눈법을 평범하게 보이기 위해 적당량 사정없이 뽑아버렸고, 동경 (銅鏡)을 보면서 표정관리를 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었는지... 지 금은 세탁하기도 귀찮아서 묵의를 입고있지만 일단밖에 나가면 눈에띄는 색깔 의 옷은 절대입지 않았다. 그가 다른 색깔의 옷을 입으면 그것대로 또 그에게 는 자연스럽게 그 옷이 어울렸다. 하지만 눈에 띄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평 범하게... 다만 평범하게 보인다는 것이 달랐다. 오랜시간 명상을 끝낸 후 그가 눈을 뜨자 그의 앞에는 큼직한 상자가 하나 놓 여있었다. 분명히 그가 명상을 하기 전에는 없었던 것이지만 누군가가 그의 앞에 놔두고 간 것이다. 그가 누군지는 묵의인도 잘 잘고있었고, 또 그가 들 어오는 기척이나 방안에 들어와서 행한 행동까지도 모두 묵의인은 잘 알고있 었다. 대신 묵의인은 그에게 아는척을 안했을 뿐이다. 심부름꾼은 그 상자안 의 내용이 뭔지 알지도 못하니 아는척을 해봐야 입만아프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농민들의 손 보다는 조금 들 투박하고 대가집 자제들보다는 조금 더 투 박한 손으로 그 상자를 들어 무릎위에 올렸다. 고도의 내공과 검술을 익힌 그 로서는 계집아이의 손처럼 고와지는 손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묵의인은 그것 도 평범한 조금 투박한 손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의 대가가 상자를 들고있는 손이었다. 묵의인은 상자 뚜껑에 찍혀있는 봉인(封印)을 세심히 살펴 누군가가 뜯어보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묵의인 처럼 음지에서 살아가는 인물은 비밀이 유지되지 않으면 그날로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상자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책자 한권과 2척 길이의 단검 한자루, 지갑, 그리고 서신이 있었다. 묵의인은 서신을 들어 서신에 새겨진 봉인도 세심하게 확인한 다음 봉투를 열 었다. < 특급지령. 살(殺) 대상 : 마교 부교주 묵향 기한 : 6개월. 무공수위 : 탈마(脫魔)로 추측 특기 : 강기류와 어검술 등을 주로하는 검귀지만 그에게는 검이 있건 없건 큰 상관은 없다고 함. 인상착의 : 동봉한 서책(書冊)에 초상화가 있음. 주변사항 및 위치 : 동봉한 서책(書冊)에 자세히 기록. 나이 : 65세 정도로 추정. 수련한 무공 : 너무 종류가 많아 동봉한 서책에 따로 기재되어 있음. 사실 그것을 모두 익혔는지는 본좌도 확인불가. 정사황(正邪皇) 대부분의 검술을 익혔거나 알고있다고 추정됨. 특이사항 : 호신강기가 매우 강하므로 동봉한 보검을 사용할 것. 하지만 아주작은 살기, 예기(銳氣)에도 반응하므로 최후의 순간 이 아니면 뽑지않기 바람. 최근에 4명의 호위를 거느린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호위의들의 무공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님. 구 흑풍단 소속의 무사들로 추정됨. 잠드는 시간은 불규칙적이며 2-4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는 것으 로 조사됨. 동자공을 최후의 방패로 써먹었을 정도로 여색을 좋 아하지 않음. 도저히 암살이 불가능할 것 같으면 돌아와도 문책은 없을것임. 성격 : 매우 냉정, 냉혹하며 사악한 인물. 인질따위는 통하지도 않는 상대 니 주의할 것. 고아인 상태에서 평생을 검과 살아왔기에 가족은 없고 양녀가 한명 있지만 현재 그 양녀는 마교에서 인질로 잡고있음. 하지만 눈도깜짝 안했다고 함.> 편지의 위에는 묵의인을 뜻하는 버드나무 모양의 인장, 아래에는 보낸자를 뜻 하는 뱀 모양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그것을 다 본 다음 편지를 삼매진화의 절 기로 태워버리며 무의식중에 묵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마디 뿐이었다. "휴... 괴물이군..." 묵의인은 단검을 들어서 천천히 검집에서 꺼냈다. 스르르르릉... 검집에서 나오자 마자 찬란한 보기(寶氣)를 내뿜는 것이 과연 뛰어난 보검이 었다. 그는 그것을 다시 상자에 넣은 다음 지갑을 들어 내용물을 살폈다. 지 갑 안에는 흔히 사용되는 10냥짜리 은표 몇장과 100냥짜리 은표 몇장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일어서서 한쪽 구석에 놓인 큼직한 상자안에서 보따리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보통 농민들이 즐겨입는 조금 짙은 회색의 약간 낡은 옷이 한벌 있 었는데 그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런다음 눈에띄지 않는 보따리를 하나 꺼내에 검과 몇가지 옷가지를 넣은 후 지갑과 책자는 품속에 집어넣고 방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허름한 방안이었지만 그는 정들었던 이 공간으로 다시는 돌아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번의 먹이는 한입에 삼키 기에는 너무나도 커서 아무래도 목구멍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 런다음 그는 다시한번 뭔가 자신의 몸속에 어떤 물증이 될만한 것이 없는지 세심히 살펴봤다. 책자외에는 증거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책자는 길을 가는 도중에 완벽하게 외운 다음 없애버리면 된다. 그러고 나면 설혹 실패하더라도 상대는 그의 배후를 도저히 밝힐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모든 준비를 갖춘 다음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런다음 대장간 주인에게 돈을 쥐어주고 1주일간 대장간을 빌린다음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기 시작한 것은 1척정도 길이의 바늘처럼 생긴 길쭉한 쇠막대기였다. 막 대기 끝은 바늘처럼 뾰족하게 만들었고 그 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끝부분은 준비해온 현철(玄鐵)을 사용했다. 그는 뛰어난 대장장이도 아니었기 에 그가 1주일 후 완성한 조금 투박스레 생긴 쇠막대기에는 예기(銳氣)라거나 보기(寶氣) 따위의 신비로운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 욱 만족스럽게 했다. 그는 그것으로 대장간에 놓여진 쇠판을 몇번 진기를 끌 어올려 찔러본 다음에 푹푹 들어가있는 쇠판의 구멍을 만족스레 살펴본 다음 품속에서 작은 병을 하나 꺼내어 뚜껑을 연 다음 그 속에 들어있는 걸쭉한 액 체를 세심하게 쇠막대기 끝에 바르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에 찔리면 천하에 없는 고수라도 정신을 못차릴 것이 분명했다. 책자에는 상대가 전직 살수라고 기록되어있었고 살수란 직업 자체가 죽음의 냄새를 맡는데는 거의 짐승과 같 은 감각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이 투박한 그 어 떤 예기도 느껴지지 않는 이 무기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었다. * * * 어느날 갑자기 거리 곳곳에 나붙은 방문(訪問) 때문에 전체 무림이 술렁거리 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인력을 동원했는지 알 수 없으나 중원 전 지역에 걸쳐 곳곳에 방문이 붙어있는 것을 모든 이들이 볼 수 있었다. 그 방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으니 가칭 사마외도(邪魔外道)라고 하여 멸시받던 무사들이 모두 들 희망에 부풀기 시작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 무림 동도들에게 고함. 본 천마신교 섬서분타에서는 우수한 후진들의 영입을 위해 섬서분타 설립 기념 비무회를 신년(新年) 일월 오일에 개최하기에 많은 무림제현들의 참여 를 바람. 5위 내의 입상자에게는 보검이나 보도, 그리고 미녀와 오만냥을 지급함. 10위 내의 입상자에게는 미녀와 삼만냥을 지급함. 50위 내의 입상자에게는 미녀와 일만냥을 지급함. 100위 내의 입상자에게는 삼천냥을 지급함. 그 외에 어느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모든 후진들을 위사(衛士)로서 채용할 것이며 그 지닌바 무예의 등급에 따라 봉록을 푸짐하게 지급할 예정임. 채용된 위사들은 그 무예의 등급에 어울리는 본교가 지닌 뛰어난 무공들을 수련할 기회를 가지게 되며 의복이나 기타 모든 장비들이 최고급으로 지급 될 것임. 천마신교 섬서분타 타주 배상> * * * "타주님. 비무회를 개최한다는 방문을 거의 전 중원에 배포했습니다." "전 중원에? 그정도로 본타의 인력이 남아돌지는 않을텐데?" "아... 그건 의뢰를 했습죠. 현 무림에서 숫자가 가장많은 문파 하면 개방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 방문을 붙여달라고 의뢰를 했습니다. 비무회 개최를 두고 개방에서 우리들에게 상관할 일이야 없으니까 의뢰는 순순히 받아들이더 군요. 돈이 좀 들었지만 뭐 직접 뛰어 다니는 것 보다야 경비가 적게들죠." "하지만 개방도 명색이 구파일방에 들어가는 명문인데, 순순히 의뢰를 받아들 였다는게 좀 찝찝하군." "흐흐... 그놈들도 이기회를 이용해서 첩자를 이곳에 침투시키기도 편할테니 허락을 했겠죠. 사실 이런식으로 받아들여봐야 고수들은 거의 모집이 안된다 는 것을 그놈들도 잘 아니까요." "그래... 몇 명이나 뽑을 생각인가?" "한 삼천 명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천이나? 돈이 많이들텐데..." "요즘들어 원체 사업이 잘되는 덕분에 그정도 여력은 있으니 걱정은 마십시 오. 중경과 그렇게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관계로 사업하기에는 그만입니다. 그리고 낙양의 본교세력도 꾸준히 흡수되고 있구요. 지금 들어오는 보고를 종 합해본 결과 의외로 낙양의 기업들이 알짜들입니다. 방타주가 아주관리를 잘 했더군요." "방타주의 실력이야 내가 그사람 밑에 있어봤으니 잘 알지. 돈벌이가 잘된다 니 다행이군. 그런데 전체적인 토목공사는 잘되어가고 있나?" "예. 지금 거의 5할정도 완성되어있습니다. 비무회를 개최할때쯤이면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근처에있는 사파계열의 문파들도 5군데나 흡수했습니다. 요 즘은 일이 너무 손쉽게 풀리는 바람에 제가 다 어리둥절 할 정도라니까요. 저 조차도 타주께서 거느린 세력들의 힘이 공포스럽게 느껴질때가 간혹 있을정도 니까요. 그런데 타주께 한가지 여쭐것이 있습니다." "뭔가?" "마교의 5대세력이라면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 수라마참대(修羅魔斬隊), 천 랑대(千狼隊), 염왕대(閻王隊), 자성만마대(紫星萬魔隊)라고 들었고 염왕적자 나 천리독행에게 물어서 대략적인 그 힘을 파악했지만 정확히 알기는 힘들더 군요. 그들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좀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흐음... 본좌도 어느정도는 줏어들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것을 종합했을 때 본좌와의 정면대결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천명으로 구성된 천랑대라면 본좌 혼자서도 처치가 가능하지. 하지만 500명으로구성된 수라마참대라면 나 를 아마 엄청 고생시킬 수 있을정도일거야. 그리고 100명으로 구성된 천마혈 검대라면 정면대결로는 본좌도 그들을 처치할 수 없어. 치고빠지는 작전을 계 속하면서 그들의 포위망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나중에는 다 죽일수 있을지 모 르겠지만..." "과연 마교의 정예라 할만하군요. 그들만으로 탈마의 고수를 헤치울 수 있다 면..." "하하하... 하지만 사실 나를 죽이려고 든다면 천마혈검대보다는 원로원을 투 입하면 더욱 손쉽지. 원로원의 영감들은 상하 실력차이가 심하지만 아마 실력 있는 자가 50여명 정도 모이면 나를 충분히 없앨 수 있을거야. 하지만 원로원 은 공격보다는 방어의 개념이고 또 교내(敎內)의 권력다툼에는 중립을 지킨다 는 점이 다르지. 교주라도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없어. 본좌도 그점을 믿고 있 는 것이고..." "허면 원로원의 고수는 몇 명입니까?" "아마 300여명 정도일걸세. 거의가 다 죽기 직전쯤 되는 노마물(老魔物)들이 니까... 숫자가 왔다갔다 하지." "원로원이 방어의 개념이라면 그들의 출동은 언제, 누가 결정합니까?" "뚜렷하게 결정하는 사람은 정해져있지 않아. 본교가 존망의 위기에 걸려있을 때 그들이 움직이지. 아무나 그냥 움직이라고 해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야. 그만큼 그들에게는 은퇴한 마물로서 노후(老後)를 편안하게 즐길 권리가 있다 구." "상대는 대단히 강하고 본타의 세력은 너무나 적으니... 가장 아쉬운 것이 뛰 어난 고수들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사실 현재의 힘만으로도 두려운 존 재가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사실 싸우고자 하는 상대들이 모두 그 몇몇 존재 에 들어가는 자들이라서..." "흐음... 그래서 본좌가 궁리를 좀 한 것이 있는데,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진 어떤 방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떠돌이 고수를 끌어들인다면 그자가 첩자일 가 능성은 거의 없을거 아닌가?" "그렇다고 볼 수 있습죠." "그렇다면 그런자들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닌 놈들로 천명정도 뽑아서 알려 주게." "하지만 그정도 인물들이라면 수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내기를 하면 되는거야. 비무를 해서 진자가 수하가 되기로 말이야." "헤헤... 그건 좀 사기성이 농후한 계획인 것 같은데요... 누가 탈마의 고수 와 비무를 해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흐흐흐... 만약 응하지 않는다면 응할 생각이 들때까지 따라다니면서 핍박을 하면 나중에는 될대로 되라는 심정에서 두손들겠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명단을 뽑아서 드리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나." "예." 설무지가 물러가고 난 다음에 마화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타주님." 마화가 이런식으로 조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묵향은 평소 처럼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그러냐?" 하지만 마화도 묵향의 퉁명스러움에 지지않고 자신이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슬슬 꺼내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으니까 이번에 위사 의뢰가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그런데?" "그게... 그게... 참 근사한 곳이라서" "어딘데 그러냐?" "소주라고 들어보셨어요?" "소주? 들어는 봤지. 강소성에 있잖아. 나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꽤 멋진 곳이 라고 그러더군." "그곳까지 가는 건데요. 황궁삼대미인의 한명인 진영공주가 소주까지 관광을 하면서 주변의 모든 명소를 두루 훑는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묵향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황족(皇族)이란 것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지금 전쟁으로 나라가 엉망인데... 그래 그 계집은관광이나 다닐 생각을 하고 말이야." "그래서 시국(時局)도 어수선하고 해서 위사의뢰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제가 좀 따라가도 될까요?" 이제서야 눈치를 챈 묵향. "아하! 왜이렇게 서두를 길게 빼는가 했더니 그 이유였군. 마화는 소주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모양이지?" "예. 그리고 삼대미인중의 한명의 얼굴도 한번 보고싶구요. 도대체 어떻게 생 기면 그런 칭호를 받는지 알고싶거든요. 물론 이건 질투는 아니에요." "허기야... 나도 요즘 일이 없으니 우리 같이 몰래 가볼까?" 그러자 마화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이요?" "그럼. 여기다가는 가짜를 하나 놔두면 되겠지. 실지 내가 여기있어봐야 할 일도 없으니까." * * * 대 송이 자랑하는 최고의 정예 황군(皇軍)이 100명씩이나 투입되어 호위하는 거대한 규모의 관광객을 외곽호위(外廓護衛)하는 책임을 맡은 석진(奭眞)은 마교의 정예고수... 그것도 천랑대의 고수 50명을 데리고 왔으면서도 좌불안 석(坐不安席)... 모든 것이 불안하고 힘들기만 했다. 사실 처음에는 천랑대 10명을 거느리고 느긋한 마음으로 관광이나 한다는 기분으로 맡은 일이었는 데... 그런데 그 호위대가 갑자기 그 다섯배인 50명으로 늘어났으니 산적이나 반란도배따위는 겁날것도 없는 처지였지만 오히려 10명으로 계획되었을때보다 더 불안한 것은 계획에도 없던 두 연놈이 가세한 덕분이다. "에구구구... 내 팔자야..." 오늘도 뭔가 잘못된 점은 없는지 불안하기만 한 그였다. 묵향은 끈덕지게 만류하는 설무지를 설득하느라고 자신이 아는 온갖 술수를 동원했다. 끝내 묵향이 고집을 부리자 호위 40명을 대동하는 선에서 서로가 합의를 했고 독립호위 중에서 세명은 가짜를 경호하기 위해 남고 마화와 둘이 서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묵향이나 마화도 호위들과 같은 흑색무복(黑色武服)에 장검을 차고 있었으므 로 특별히 표시가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홍일점(紅一點)인 마화가 약간 두드 러질 뿐이었다. 묵향은 난생 처음으로 - 기억에 없는 몽고전은 제외하고 - 묵 혼검이 아닌 보통의 장검(長劍)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의 묵혼검은 분타에 남아서 그의 대리역을 하는 가짜가 착용하고 있었다. 마교 고수들의 임무가 외곽호위이니 만큼 멀찌감치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기에 묵향으로서는 속뒤틀 리는 황족이란 것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서 좋았다. 어찌된 영문인지 10명 정도의 고수를 파견하겠다던 당초의 통보와는 달리 거 의 50명이 넘는 고수가 외곽에 깔렸기에 황궁에서 파견된 호위담당 장수(將 帥)인 종사품(宗四品) 김진덕(金眞德) 사령(司令)도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김 사령으로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언제나 이동을 할 때는 공주와 그녀의 친구 6명을 호위하는 황군 본대(本隊)는 뒤에서 가고 일단의 선행대가 앞에서 이동하면서 숙식에 따른 여러 가지 계약을 체결하고 또한 수 상한 무리가 없는지 감시하게 되는데, 마교의 무리들 중에 거의 대부분이 앞 쪽에 몰려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교의 고수들을 이끄는 책임자는 항상 뒤에 서 따라왔지만 사실상 그는 10여명만을 직접적으로 통솔했고 나머지 40여명은 앞의 선행대를 호위하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선행대에 그렇게 전력 (戰力)을 집중할 필요가 없으니 그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관광을 하기위한 황궁의 패거리는 매 식사때, 그리고 숙소를 정할때마다 난리 를 부렸다. 실상 그 인원이 160여명이나 되다 보니 웬만한 자그마한 식당이나 여관으로서는 턱도없는데다가, 공주에 대한 안전한 호위를 명분으로 그 큰 식 당이나 여인숙에 먼저 들어가 있던 손님들을 모두 다 내쫓았기 때문이다. 왠 만한 실력의 무림인들도 관부와 충돌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기에 모두들 떨떠 름한 표정으로 물러나는 판이니 일반 백성들이야 두말할 것 없었다. 그 모든 사람들의 협조(?)하에 식당이나 여관이 텅비게 되면 그때 황군이 그 안으로 공주일행을 모시고 들어가게 되고 그 외곽에 10여명의 마교 고수들이 깔리고 나머지는 함께 들어와서 식사를 하던지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도중에 큰 마을이 나타나면 공주일행은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허울 좋은 명목하에 관청으로 향했고 그 관청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다음날 공주일 행이 떠날때까지 진땀을 빼게되는 것이다. 그 공주일행이 흥청망청 먹고마신 비용을 황궁에서 지원해주느냐 하면 그게 아니었으므로 돈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질 리가 없으니 당연히 공주일행이 떠난 다음에 관청을 유지하기 위해 관 리들은 불쌍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족쳐 그만큼의 돈을 더 징수(徵收) 하는 것 이다. 2주일 정도는 아주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식사를 위해 큼지 막한 식당을 하나 골랐고 그 안으로 호기있게 들어갔던 5명의 황군 장졸(將 卒)들 중의 한명이 얼마안되어 창문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곧이어 묵향 일행 이 그 안으로 들어가자 식당 바닥에 4명의 장졸(將卒)들이 뻗어있는 것이 보 였고 그들 앞쪽에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인이 검을 허리에 차고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하지만 그의 그 표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마기를 뿜 어대는 인물들이 10여명이나 식당안으로 들어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묵향이 척 보니 식당안에는 꽤 많은 무림인들이 앉아있었다. 거의 10여명의 무림인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꽤 실력이 있어 보였고 그런 상태에서 눈에 차지도 않는 무술실력을 가지고 거들먹거리는 관복(官服)을 입은 무리 다섯이 들어와서 다짜고짜 나가라고 했으니 그들로서도 속이 뒤틀리는 중에 저 남자 가 화풀이를 했음에 틀림없었다. 묵향은 될 수 있으면 이 일을 좋은 방향으로 처리하고 싶었기에 즉시 말했다. "마화" "예." "조용히 처리하고 싶으니 저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돌아가라고 하라." 요즘들어 묵향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마화도 잘 알고있었다. 예전 몽고전에서 알던 묵향과는 달리 그는 귀찮은 일이나 번거로 운 것을 싫어했고 될 수있으면 말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 다. '왠 일이야?'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마화는 두말않고 묵향의 지시에 따랐 다. "예." 마화는 앞으로 나선 다음 가볍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여기 모이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희는 지금 진영공주전하 일행을 호위하여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는 자 리를 비켜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저쪽에 있던 한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그대들은 마교의 고수들이 맞나?" "그렇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마교도 타락했군. 관부에 빌붙어서 위사노릇이나 하고있다니..." 그 말을 듣자마자 묵향의 뒤쪽에 있던 고수 한명이 살기를 뿜으며 앞으로 나 서려고 했지만 그를 묵향이 말렸다. 이때 마화와 그 남자와의 대화는 계속되 었다. "왜 마교의 고수들이 황실에 붙어서 일하고 있는가?" "그거야 당연히 돈벌려고 하는 것이죠. 위사 사업은 꽤 수입이 괜찮으니까요. 방금 전에 일으킨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을테니 이쯤에서 물러 나 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우리들도 무림에서는 이름깨나 떨치는 사람들다. 그런데 다짜고짜 나가라고 한다면 말이 안되지. 사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귀하의 존성대명을 알고싶군요." "뭐 존성대명이랄 것도 없고... 관부의 추격을 받고싶지는 않으니 알려주고 싶지 않군." 드디어 마화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슬슬 신경질이 나기 시작하는지 말 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름을 알릴 배짱도 없으면 여기서 빨리 나가라. 지금 타주님의 명령이 있기 에 참고있음을 알아야지." 새파란 계집아이가 떠들어대자 그중에서 한 인물이 열불이 뻗쳤는지 응대해왔 다. "새파란 것이 뒤에있는 고수들을 믿고 날뛰다니..." "이것들을..." 그러면서 마화가 검의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묵향이 미소를 지 으며 그녀를 말렸다. "너보다는 고수다. 뒤로 물러서라." 마화가 뒤로 물러서자 묵향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이런 산골짜기에 10명이나 되는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들이 모여있다는 것 은 좀 이상하군. 그대들은 본좌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고있는거냐?" "....." 새파랗게 보이는 젊은이가 나서서 본좌 운운 해대니 상대가 기가차서 잠시 말 문이 막혀있는 사이 묵향의 말은 이어졌다. "정파의 인물들이 확실한 것 같은데... 우리들이 마교의 인물들이라서 시비를 거는건가? 아니면 공주일행을 노리고 있는 것인가? 실상 그대들의 능력을 추 정해 보건데... 뭐 100명정도 황군쯤은 1각도 안되어 찜쪄먹겠군." "그렇게 말하는 네놈은 누구냐?" "호오... 네놈이라고? 네놈들은 본좌가 누구신지 알 자격이 없어. 방금전 우 리들을 보고 마교가 관부에 빌붙어있니 하는 말을 한 것 같은데... 우리들이 야 약간의 수입을 올리려고 이번 관광의 호위를 하고있지만, 네놈들이야 말로 진천왕(眞天王)의 개가 되어 공주일행을 납치해서 전쟁을 유리하게 전개하려 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몇 명의 얼굴이 조금 벌개졌지만 곧이어 그 색깔은 사라졌다. "꽤 눈치가 빠른 놈이군." 그와동시에 그중의 한명이 앉은자세에서 그대로 엄청난 속도로 도약해서 묵향 에게 쏘아져 들어왔다.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정도의 속도로 뛰어드는 와중 에 순간적으로 등에 차고있던 5척이나 되는 장검을 뽑아 묵향을 내리찍어왔 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 상대는 더욱 경악해야만 했으 니 묵향은 피하지도, 그렇다고 검을 뽑아서 막지도 않고 곧바로 손을 뻗어 상 대의 검을 양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잡아버린 것이다. 상대는 용을 썼지만 그 손가락 사이에 잡혀버린 검을 뽑아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상대가 힘을 더욱 쓰자 탱...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두조각이 나고말았다. 그러자 어이없다는 듯 부러진 자신의 검을 보던 상대는 묵향에게 믿을수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 었다. "귀하는 누구시오?" "네놈정도 실력으로 본좌의 이름을 알 자격이 없지. 여기서 사라진다면 너희 들을 추격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계속 시비를 건다면 모두 다 없애는 수밖에 없지. 사실 황실에서 받은 액수로 그대들 정도의 고수를 처치한다면 믿지는 장사거든. 어떻게 할건가?" 그러자 그들은 서로 눈치를 한번씩 보더니 갑자기 신법을 사용하여 모두들 식 당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상대의 실력으로 보건데 자신들 모두가 한꺼번에 덤 벼도 승패를 가늠하기 힘든데다가 그 뒤쪽에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 8명의 마 기를 뿜어대는 놈들이 버티고 있으니 그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 다. 그들이 달아나자 마화는 아직도 상대의 공격이 주었던 그 공포스러움에서 벗 어나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묵향에게 물었다.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도 될까요? 아주 무서운 고수들인 것 같던데..." 그러자 묵향은 아직도 정신을 잃고 뻗어있는 황군들을 힐끗 보면서 천천히 말 했다. "이번 여행에서만 공주를 지켜주면 돼. 우리들이 호위하지 않는 상태에서 저 녀석들이 공주를 납치한다면 우리는 공주를 구해주면서 더욱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사실 호위하는 것 보다는 구해주는 것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거 든. 저런 계집애 하나 감옥에서 구출하는 것쯤 문제될 것이 없지. 저놈들을 여기서 다 죽여버리면 누가 공주를 납치하겠냐? 그러니까 그놈들을 살려두는 것이 이익이지." 그런다음 묵향은 뒤에서있는 고수들에게 지시했다. "저들을 깨워라." "존명." 황군의 장졸들이 깨어나자 묵향은 그 우두머리인 장수에게 말했다. "의외에도 상당한 고수들이 공주 일행을 노리는 듯 하오. 일단은 우리들이 쫓 아버렸지만 계산을 다시해야 할 것 같군." "....?" 상대가 무슨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묵향이 좀 더 상세히 말했다. "우리들이 그대들의 외곽호위를 의뢰받았을 때 분명히 산적이나 기타 잡배들 의 공격에 대한 방비라고 들었소. 하지만 방금 그대도 한 대 맞아봐서 알겠지 만 상대는 대단히 뛰어난 고수다 이말이외다. 그들의 실력이라면 1각도 안되 어 호위군을 전멸시키고 유유히 공주전하 일행을 납치할 수 있을것이오. 우리 들은 계약과는 달리 그런 고수들에 대한 대비를 해야하니 당연히 과외로 돈을 더 받아야 겠다 이말이외다." "그대는 그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인다고 보시오? 또다시 올 가능성이 있지 않다면 이런 제안을 할 리가 없기에 하는 말이오." "당연히 그자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알수있었지요. 그 고수들은 진천왕(眞 天王)에게 고용되어 공주일행을 납치하려고 하는 것 같았소. 그러니 그들은 다시 우리들을 덮쳐올 가능성이 다분히 있고 그렇다면 그들의 실력을 보건데 이쪽에도 피해가 생길 수 있지요. 옛말에도 있듯이 지키는 자 10명이 도둑 하 나를 당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소?" "흐음... 그대의 말에도 일리는 있소. 사실 처음 계약상에는 무림의 고수들이 공주전하를 노릴것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수고료의 액수는 김진덕 사령께 여쭈어보고 결정하겠지만 그대들이 원하는 액수는 얼마요?" "당연히 위험부담이 높으니 금화 20냥은 더 주셔야 겠소이다." "그건... 그건 액수가 너무 많소. 금화 10냥 정도로 합시다." "18냥." "12냥." "16냥" "14냥" "15냥, 더 이상은 양보하기 힘드오." "좋소. 금화 15냥으로 합시다." "이제 액수가 정해졌으니 김 사령에게 말을 잘 전해주시고, 공주전하께서 곧 이어 오실것이니 빨리 주인에게 통보를 하시오. 그럼 나는 밖에서 호위를 하 겠소." 상대가 급히 주방(廚房) 안으로 사라지자 그제서야 묵향은 일부러 굳혀놨던 표정을 풀면서 빙그레 미소지으며 밖으로 나섰다. 공갈한번 잘쳐서 금화 15냥 의 공돈이 거저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은화 1500냥이니 은화 10냥이면 한 식 구가 한달을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액수다. 그러니 잡수익으로서는 대단한 금액인 것이다. '역시 황궁놈들은 돈이 많거든....' 사실 떠돌이 무사들이 실력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예상외로 꽤 무술실 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놈들 10명가지고는 마교의 정예인 천 랑대 4명을 당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마화의 경우는 흑풍대에서는 손꼽히는 고수지만 무공만을 죽자고 익혀댄 무공광(武功狂)들과 동년배라도 실력차가 엄청 벌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겨우 30대 초반에 이르는 마화의 나이로는 수십년씩 무공을 익힌자들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리라. * * * 묵향과 마화가 관광겸 호위로 정신이 없는 그때... 한 인물이 높직한 나무위 에서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위치한 곳은 산위에 있는 제법 큰 나무위였기에 그가 관찰하는 곳과는 거의 4리(1.2Km)나 떨어져있었 다. 하지만 그 사내는 그런것에는 구애를 받지않는 듯 그 먼 거리를 관찰함에 도 인상하나 흩트리지 않고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넓기는 했지만 허름한 집 뒷마당에 놓아둔 보따리 하나였다. 물론 그 보따리는 1시진 전에 몰래 가져다 놓은 것 이었다. 그런대로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지만 아직까지도 집안의 사람들은 바쁜일이 있는지 뒷바당으로 나오지 않아서 그 보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 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사내는 끈질 기게 집안의 사람이 나와 그 보따리를 가져가기를 기다렸다. 그 보따리 안의 내용물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은 꼭 그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는 혹시나 다른 놈이 그것을 가져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을 축내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거의 오정(午正)이 다 되어가자 그는 품속에서 말린 고기포를 꺼내어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곳에 보따리를 가져다 놓기 시작한 것은 그가 다섯 번째로 살인(殺人)을 저지른 때였다. 그는 끈질기게 쫓아오는 추격 자들을 따돌리며 이곳까지 도망쳐왔었는데 그때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을 본 것이다. 그녀는 서른살은 되어보였고 세파에 찌들은 모습으로 미인도 아니 었지만 그녀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중년의 남자와 함께 이곳에서 고아(孤兒)들 을 돌보고 있는 모습에 그는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곳에 있는 한 주민에게 수소문을 해본결과 그녀의 나이는 고작 스물 셋.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그렇게도 늙어보였나... 사실 부자들이 고아 몇을 돌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나의 과시적인 자기위 안이 될 수도 있는 하나의 오락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도 먹고살기 힘든 지경에서 남을 돌보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그 부녀는 별로 윤택한 환경 도 안닌데도 고아들을 11명이나 돌보고 있었다. 그것을 알고난 다음부터 그의 발길은 자주 이곳을 찾았다. 언제나 보따리 하나를 들고서... 그는 자신의 감정이 아주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들을 그가 도와 주고 있다는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면 얼마나 큰 희생을 자신이나 그들이 치룰 지도... 하지만 그는 이 행위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위험한 행위 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식구가 늘어나고 부녀와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은 은근한 기쁨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6개월에 한번은 어김없이 이곳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뒷마당에 허름한 보따리 하나를 던져놓고는 그들이 가져가게 하 는 방법을 택했다. 보따리 안에는 언제나 10냥의 은화와 옷가지 등 자질구레 한 것들이 들어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는지는 그들 이 보따리를 발견할때의 그 기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은 액수의 돈을 넣어두면 소문이 날지도 모르기에 은화 10냥이란 그가 생각한 최대한의 액수였다. 아마도 그정도 액수라면 어떤 할 일없는 부자가 적선한 정도로 생각할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5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사이 자 그마하던 그녀의 집도 이제는 제법 넓어졌고 고아들의 수도 60여명에 이를 정 도로 커졌다. 그리고 6개월 정도에 한번씩 보따리를 던져넣는 그의 행위도 아 직까지 변함없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과 큰 차이점이 있었다. 은화가 아니라 금화로 바뀐 것이다. 금화 10냥이면 은화 200냥이다. 아마도 이정도 액수면 그녀는 그의 도움이 없어도 아이들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 다. 그는 이제서야 점심을 장만하기 위해 뒷마당에 놔둔 큼직한 장독들에서 몇가 지 양념과 반찬을 꺼내기 위해 나온 그녀가 장독위에 올려둔보따리를 발견하 고는 속을 살펴보며 놀람과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 다. 그는 조심스럽게 숨어있던 곳에서 몸을일으켰다. 이제 이곳에서 더 이상 의 볼일은 없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부근에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눈 치채고 있는 자가 없는지 세밀하게 살피며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과 그 고아들과의 연결이 밝혀진다면 최악의 경우 그 아이들과 부녀는 살 아남기 어려울 것이고 그 자신도 상대의 그물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 을 밝힌 상대가 자신이 소속된 방파라고한다면 그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상대가 동료라 하더라도 이런 자신의 약점을 잡는다면 아주 상황이 안좋은 방 향으로 흐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위험한 일도 오늘로 끝이었다. 아니 끝일지 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심결에 한마디가 새어나올 수 밖에 없었으리라.... "안녕히...." * * *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민둥머리를 하고있는 땡초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곳 을 이름하야 '절(寺)'이라고 부른다. 그중 어떤 곳은 가련한 민생들을 현혹하 여 주머니를 털어 개고기나 쳐먹고 계집질이나 하는 못된 놈들이 모여있는가 하면 어떤곳은 진짜 '스님'이라고 불리어 마땅한 인물들이 사이좋게 모여 불 도(佛道)를 닦는 곳도 있다. 하면, 그 '스님'이란 양반들이 가장 많이 사는곳 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그건 지나가는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알 듯이 저 숭 산의 소실봉 중턱에 위치한 소림사(小林寺)라는 절이다. 소림사가 언제 창건 되었는지는 분분한 설들이 많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북위의 효문제때 인도에 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는 설이다. 그 이후로 증축(增築)에 증축을 거듭하 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팔천을 헤아리는 승려들이 쥐떼마냥 바글거리고 있는 거대한 사찰로 발전해 왔다. 소림사의 경우 일반의 사찰과는 달리 불법(佛法)보다는 무술(武術)로 더 유명 한 수상한(?) 곳이다. 원래는 오랜 면벽수련(面壁修練) 따위를 하다보니 발생 하는 체력의 저하를 막기위해 간단한 육체수련이나 하던 것이 달마조사 어르 신이 역근(易筋)과 세수(洗髓)의 두 진경(眞經)을 전하면서 급속히 무공이 발 전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림(武林)의 태두(泰斗)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강대한 폭력집단(暴力集團)으로 변모해 왔다. 소림사는 승려라는 점을 들어 무림에 골치아픈 일이 있을때는 불법을 익힌다 는 구실로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무림이 안정되면 겨울잠을 마친 곰마냥 곳곳 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수많은 혈겁(血劫)이 무림을 휩쓸었지 만 아직도 수많은 노고수(老高手)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대해 일부 무림인 들이 뒤에서 욕지거리를 하기도 하지만 소림사라고 이에대해 변명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듯이 소림의 무공은 72종이나 되는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모두가 불법에 기초하여 상승무공으로 갈수록 광명정대하여 괴이악독(怪異惡毒)한 살초(殺初)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것 은 전적으로 소림의 무예가 심신의 수양에 있고 살생과는 거리가 먼 것을 대 변해 주고 있다. 또 소림의 승려들도 그점을 들어 될 수있으면 골치아픈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드는 것이다. 하지만 소림사의 무예로도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소 림사는 세칭(世稱) 속가제자도 받는데 그들의 경우 소림의 상승무공까지 익히 지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무공의 맛은 보고 나올 수 있다. 그들 중에는 군관 (軍官)들도 있고 무림에서 활동하는 고수들도 있으며 타락(墮落)하여 산도적 나으리가 된 놈들도 있다. 그사람들이 광명정대한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여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니.... 소림사의 주장이 가히 맞다고 보기도 힘들다. 소림사는 여태껏 수많은 고수들을 배출했고 그중에서 무림을 풍미했던 초고수 들도 몇몇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소림사의 이름에 어울리는 선행과 덕행을 배풀어 세인들의 찬사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는 소림사의 무공이 지 니는 독특한 특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사실이다. 뭔고하면 소림의 무공 은 상승의 경지로 올라갈수록 불도와 연관이 크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불심이 깊다는 말은 곧 상승의 무공을 익힐 수 있다는 말이 되어버리고 그 때문에 소 림의 초고수들은 모두들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고승(高僧)들이었다. 소림의 무예들 중에서 가장 익히기가 난해하다는 역근, 세수의 두 진경... 그 렇기에 그것을 깨달은 고승들이 자신이 창안한 무공에 그 무공의 일부를 토막 쳐서 삽입하여 불도에 깊기 빠져들지 못한 젊은 승려들을 가르쳤다. 그러다보 니 소림의 무공은 어떤 면으로 봤을때는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 어쩌다 한번씩 나타나는 불세출의 기재가 정말 대단한 무공을 개발했을때는 너무 패도적이라느니... 너무 잔인하다느니... 불심이 얕다느니 ... 마도(魔道)에 빠졌다느니... 하면서 그 무공을 배척했고 그러다보니 소림 의 상승무학이 실전(實戰)에서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무림태두의 자리를 무당(武當)이나 서문세가에게 위협받기 에 이른 것이다. 이곳은 숭산의 중턱에 위치한 거대한 사찰, 소림사... 그 소림사의 구석진 곳 에 위치한 방장실에 다섯명의 고승(高僧)들이 모여있었다. 모두들 안광이 정 순한 것이 상당한 수준의 무예를 닦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자그마한 다과상을 놓고 빙 둘러앉아 모두들 차를 한잔씩 들 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놀 랍게도 불법에 관한 것이 아닌 살인(殺人)에 관한 모의(謀議)였다. 40대 중반의 근엄한 얼굴의 승려가 차를 홀짝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덕진사형(德津師兄)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제 가 지객당(知客當)을 책임지다 보니 세상의 소문이라든지 여러 가지 소식에 빠릅니다. 여태껏 모은 정보들을 종합해보면 그의 무공수위로 봤을 때 그들만 으로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그러자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을 가진 덕혜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백팔나한(百八羅漢)과 십이금강(十二金剛)에 삽십이수좌승(三十二 首座僧)까지 포함시켜 대정사숙(大正師叔)께 드린다면 그를 없애기에 충분하 지 않을까요? 삼십이수좌승이라면 소제(小弟)가 거느린 팔대호원 최고의 정예 니까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가장 상석(上席)에 앉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인자한 얼굴의 승려 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흐음... 덕진사제(德津師弟)의 말대로 그들의 힘은 웬만한 문파를 순식간에 허물 수 있는 강대한 힘이지만...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네만 본사의 승려 들은 썩 실전경험이 많다고 볼수가 없네... 하지만 상대는 무림에 수많은 피 바람을 불고온 장본인... 개(犬)와 늑대(狼)의 차이지... 설혹 그를 응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댓가는 엄청난 것이 될것이야." 그러자 덕호(德浩)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어떻게 말이냐?" "방장사형(方長師兄)께서 금제(禁制)된 십이진경(十二眞經) 중 세가지만 해제 해주십시오. 그들에게 그것을 익히게 한다면 훨씬 더 피해가 줄어들 것입니 다." 그러자 상석에 앉은 방장사형이라 불린 그 승려는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흐음... 나도 덕호사제(德浩師弟)가 말한 그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 만... 사실 나 혼자서 결정할수 있는 사안이 아니네. 설혹 장생전(長生殿)에 서 그것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그 위력만큼이나 익히기가 힘들지. 그것을 익히는데 도대체 몇 년이 더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네..." "그렇다면... 정 안된다고 하더라도 항정멸법신공(抗正滅法神功)만은 금제가 해제되어야 합니다." 항정멸법신공이란 말에 어떤 충격을 받았는지 경악한 표정의 방장스님이 말했 다. "자네는... 자네는 그 사악한 마공(魔功)이 뭔지 알고나 입에 담는 것인가?" 상대가 경악해서 물어봄에도 덕호는 태연히 말했다. "예. 자미사조(慈嵋師祖)께서 남기신 뛰어난 무공이죠. 그 자체가 가지는 위 력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 최고의 장점은 소림무예에 극성(極性)이라는 것에 있지요. 72종 절기를 토대로 그 헛점을 교묘히 공격하여 파해하도록 만들어놓 은 것이니 그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그 자체가 지니는 뛰어난 점은 망각하고 극성이라는 이유 단 하나 때문에 본사(本寺)에서도 극비로 치부되지 않습니 까?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그것만은 꼭..." 그러자 그의 왼편에 앉아있던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평범한 얼굴의 덕진이 찬성하고 나섰다. "덕호사제의 말이 맞네. 방장사형, 소제는 거기에 최소한 파마멸혼검법(破魔 滅魂劍法)까지 금제를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자 장문인은 기가막힌다는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덕진(德津) 자네까지... 그 악마의 무공까지 거론하다니 자네들에게 마가 끼 인 모양이군... 아미타불..." 장문인의 말에 장문인의 오른편에 앉아있는 덕진이 반박했다. "아미타불... 상대는 악마입니다. 그런자를 상대로 정통무공을 사용해서는도 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원래가 파마멸혼검법은 혜인사조(蕙忍師祖)께서 사마 외도(邪魔外道)를 멸하기 위해 오랜세월을 들여 완성한 본사에있는 하나뿐인 검법... 그런 무공이 사장(私藏)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자 여태까지 말이없이 왼쪽 뒤쪽에 앉아있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날 카로운 인상의 덕수(德修)가 말했다. "덕진사형의 말씀이 틀렸습니다. 본사에는 또 달마삼검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의 반박을 덕진이 아닌 덕혜가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틀렸네. 달마삼검법은 말이 달마삼검법이지실은 불가(佛家)와 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도가(道家)의 검법이야. 원래 본사에는 검법이 없었는 데 백옥봉이란 도사가 각원사조님의 인품을 높이 사 그가지닌 검법을 전했는 데 이것이 달마삼검법이지. 헌데 도가의 무예를 배운다는 것이 본사의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되는 것이기에 달마조사께서 창안하신 것이라고 거짓소문을 퍼트 린 것이지. 사실 달마삼검도 완전한 것이 아닐세. 1검에 3로, 2검에 3로, 3검 에 2로... 왜 3검에만 2로겠는가? 원래는 1로가 더 있었지만 너무 도가적인 것이기에 제외되었는데 전체를 물려받았던 각원사조님의 검법과 그 1로가 빠 진 후대의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생겨버렸지. 사실 달마삼검법은 자네도 익혔 겠지만 뭔가 허전한 감이 있고 또 어떤부분은 제대로 펼치기가 어려운 곳이 있지. 그것은 달마삼검법 자체가 오로지 내공만으로 펼치는 검법이 아니기때 문이야. 그렇기에 본문에 하나뿐인 검법이 파마멸혼검법이라는 말이 맞는 것 이지. 이것은 본사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라서 장경각에서 본사의 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않는 자네는 잘 몰랐을거야." "예.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일단의 말다툼이 정리가 되자 덕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에 들어 본사의 위상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재가 모자 라서도 아니고 뛰어난 무공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뛰어난 것이 있음에도 금제 를 가해 익히지 못하게 하니 당연한 결과가 아닙니까?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 다. 그가 무림을 설치고 다닌 것이 하루이틀도 아닌데 아직도 요절을 내지 못 하고 있는 것은 본사에 고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를 없애기에 적합한 무예를 익힌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까? 사실상 그와 일대일로 싸워 이길 수 있는고 수는 본사에 없습니다. 지금 은거중이신 대사숙조께서 나서신다 해도 승산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청부를 해서 암살을 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소 편 법을 쓰더라도..." "흐음... 자네들의 의견은 잘 알겠네... 장생전을 설득하도록 노력해보지... 하지만 자네들이 말하는 무공들이 원체 문제가 있는 것들이라 허락이 떨어지 려면 시일이 약간 걸릴거야." "지금까지도 참아왔습니다. 조금 더 기다린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지요. 그리고 금제가 풀리더라도 그들이 무공을 익히려면 최소한 5년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장생전의 사숙들이 반대하신다 하더라도 그 무공들을 익혀 야 될 필요성과 익히는 수를 방금말한 소수에 국한시킨다면 아마도 허락이 떨 어질수도 있을것입니다." "알겠네... 아미타불.... 부처님의 뜻대로 되겠지." * * * 이곳은 안휘성의 북쪽 천림산(泉淋山). 천림산은 예로부터 산수가 수려하고 곳곳에 온천이 발달한 아름다운 관광지다. 천림산 중턱에 위치한 남악산장(南 岳山莊)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여관에 공주일행이 머물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27시진 전이다. 남악산장도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여관이 그러하듯이 여러개 의 온천탕(溫泉湯)을 여러군데 가지고 있어 여행자들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진영공주는 며칠동안 마차를 타고오며 시달린 몸을 푸근하게 온천욕을 즐기며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푼 다음 산뜻한 남빛 옷으로 갈아입은 후 후원(後園) 에 나왔다. 공주가 묵고있는 별채는 특별한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곳으로 고 풍스런 멋을 풍기는 자그마한 건물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후원을 가진 비 싼 숙박료를 요구하는 장소였다. 공주는 후원에 나올때까지는 아주 기분이 상쾌했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재미 있는 여행이었고 그녀가 지나온 곳은 모두 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들이었다. 그녀는 절경으로 유명한 소주에 잠시 머문 다음 아직 둘러보지 못한 안휘성의 남쪽을 거쳐 명소들을 훑으며 돌아갈 예정이었다. 다음에 도착할 곳은 또 얼 마나 근사한 곳일까 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의 멋진 여행이었 다. 거기에 여태껏 거쳐온 지방 관청들의 수령들의 대접은 또 얼마나 근사했 었나... 또 앞으로 도착할 관청들의 수령들은 나한테 어떤 선물들을 줄까... 이런저런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공주가 후원에 나오자 후원의 담장 가까운 곳에는 황군 몇 명이 부동자세(不 動姿勢)로 꼿꼿이 창날을 곳추세운 채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데... 후원의 한 구석에 검정색 옷을 입은 남녀가 먼저와서는 뭐가 좋은지 쑥 덕거리고 있는 장면을 보고는 그녀의 좋았던 기분은 한순간에 엉망이 되고 말 았다. 이곳은 자신을 위한 자신만의 장소였다. 저런 천박한 것들이 더럽힐 장 소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곧바로 뒤에서 따라오고있던 무장(武將)에게 냉랭 하게 외쳤다. "저들은 누구냐?" 그러자 상대는 공손하게 읍(揖)하며 답했다. "마마, 옷차림을 보아하니 위사(衛士)들이옵니다." "위사?" "예. 그러하옵니다." "황군들만 해도 충분한데 위사는 또 뭐냐?" "저들은 무림의 고수들이옵니다. 이번 마마의 여행을 호위하기 위하여 고용한 자들로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무리들이옵니다." "흐흥... 그럼 저자들은 호위를 하기위해 저곳에 있다는 말이냐? 무슨 호위를 하는 것들이 저렇게 웃고떠들면서 호위를 한다는 것이냐? 저것들의 태만(怠 慢)을 물어 엄히 벌주고 당장 이곳에서 내쫓아라." "예. 속마 마마의 명령을 받들겠사옵니다." 그런다음 그 무장은 뒤에 서있던 호위병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이 서있는 위치가 가까웠기에 대화를 엿들었을테니 지시할 필요도 없었다. 그와동시에 4 명의 황병(皇兵)들이 그 무뢰한 연놈들을 향해 몸을 날렸고 그것들을 후원에 서 끌고나갔다. 당연히 공주의 상쾌하지 못한 기억은 여기서 끝났고 또다시 자신만의 즐거움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번 일에 이빨을 갈게되는 아주 무서운 적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는 것은 모른채... 묵향은 멀어져가는 황병들의 뒷모습을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기랄... 후원을 구경하는 게 무슨 큰 죄라고 본좌를 이렇게 업신여겨? 공 주 따위가 감히..." "참으세요, 부교주님. 상대는 공주마마라구요." "흠... 이 수모를 어떻게 갚으면... 마화! 석진(奭眞)을 불러와라." "예? 예." 무슨일을 벌일지 불안해진 마화였지만 묵향의 명을 어길수는 없었다. 그녀가 석진을 불러오자 묵향은 다짜고짜 예를 행하는 석진에게 말했다. "수하 30명을 돌려보내라."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그들을 모두 본타로 돌려보내라. 그런다음 김 사령에게는 20명은 20리(6Km) 앞에 전진배치했고 10명은 20리 뒤에 퇴로확보를 위해 배치했다고 일러라. 그 러면 그 멍청한 녀석은 갑자기 30명이 없어진 것을 문제삼지는 않겠지. 흐흐 흐... 고수 30명이 돌아간 것을 확인하면 곧바로 그놈들이 사고를 치겠지... 흐흐.." "예? 무슨말씀인지 이해는 못하겠지만 너무 위험합니다. 다시 재고(再考) 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네녀석은 본좌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거 냐? 설마 네놈이 본좌의 무공실력을 얕보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자 석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그럴리가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시기를..." "잔말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런다음 남은 수하들에는 평소와 같이 호위임 무를 행하도록 해라." "존명!" 석진이 멀어져가는 것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흘리고있는 묵향을 보며 마화가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에요?" "나 없이도 소주 구경하는데는 무리가 없겠지?" "그럼 타주께서는..." "조금 지나면 본교의 무사들이 줄어든 것을 알아내고 놈들이 습격을 가해올거 다. 한 20명 정도 남겨둔다면 어느정도 승산이 있다고 멍청하게 생각하고는 아마 습격을 해오겠지. 그때 너는 내 지시에 따라 석진과 함께 바로 소주로 가서 관광이나 하다가 본타로 돌아가라. 나는 남아서 할 일이 있으니까 함께 가지는 못하겠구나..." 묵향의 기다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상대의 움직임은 정확히 7일 후 공주 일행이 안휘성에서 강소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태을령(太乙嶺)을 지나갈 때 벌어졌다. 태을령은 오백산과 마진산이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골짜기로 그 높 이가 330길( =700m)정도에 형성되어있는 군사, 상업적으로 중요한 도로였 다. 그리고 그 도로 양옆으로는 100길(212m) 이상 높이의 절벽이 솟아있어 오 백산과 마진산에 구축되어있는 어림군 요새에 소수의 병력만 배치하면 능히 10만의 대군(大軍)을 간단히 막을 수 있는 군사적인 요충지이기도 했다. 갑자기 퓽퓽하는 파공성(破空聲)이 들리더니 선두와 후미에 다가오던 황병들 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적이다 하는 외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곧이어 김 사령의 우렁찬 외침에 묻혀버렸다. "밀집대형(密集隊型)! 공주마마를 보호하라!" 그러자 수십기의 황병들이 공주의 마차 주변에 뛰어들며 안장에 매여있던 두 텁고 큰 방패를 들어 마차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말에서 내려 윗쪽의 화살을 막고있는 동료들의 아랫쪽을 방패로 막았고 또 다른이들은 그들의 아 랫쪽을 막아주었다. 순식간에 방어진형을 갖춘 것으로 보아 평소에 얼마나 피 땀어린 훈련을 받아왔는지 알 수 있는 기쾌한 몸놀림이었다. 모두들 목숨을 걸고있는 이 상황에서 마차안에서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냐?" 그러자 김 사령은 주위에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마차안으로 공손 하게 답했다. "공주마마, 적들이 나타났사옵니다. 조금 위급한 상황이지만 너무 염려는 하 지 마시옵소서." "알아서 처리하라." "예." 상대의 공격이 가장 치열하게 전개된 곳은 마교도 들에게였고 또 웃기게도 호 위대 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적은곳도 마교도 들이었다. 그리고 이 난투극을 벌이는 무리들 중에서 가장 무장도가 빈약한 곳이 마교도였다면 그 반대가 황 군이었다. 하지만 적들은 무장도나 숫자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처음부터 무공 은 강하지만 달랑 흑의 한벌과 무기만을 들고있는 마교의 무리들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들은 하수(下手)들이 아닌 마교 안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 예인 천랑대 소속의 무사들인 것이다. 모두들 간단하게 화살을 막아내면서 묵 향의 명령을 끈기있게 기다리고 있었고 그 명령은 곧이어 하달되었다.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묵향은 석진에게 명령을 내렸다. "10명은 왼쪽 10명은 오른쪽을 맏아라. 석진, 너는 절벽위의 적들을 적당히 없애버린 다음 전장을 이탈하여 마화를 이끌고 소주로 직행하라." 진의를 알기힘든 수상한 상관의 명령에 석진의 표정은 이상하게 변했다. "예? 하지만..." "잔말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소주로 가서 마화한테 관광을 충분히 시켜준 다 음 본타로 돌아가라. 시행하라. 그리고 마화 너는 석진을 따라가라. 본좌가 안내해주고 싶지만 여기가 더 재미있을 거 같아서..." 의문과 불만이 가득한 기괴한 표정이었지만 석진은 묵향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존명!" 그와동시에 천랑대는 좌우측의 절벽을 위에서 쏘아대는 화살들을 쳐내며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경공술이었다. 절벽위에서 천랑대와 적들과의 교전이 시작되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금 새 눈치챈 김 사령이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전진! 빨리 이곳을 탈출하라." 거의 50기에 가까운 시체들을 남겨두고 질서정연한 탈출이 시작되었고 간간히 적들의 화살이 날아오기는 했지만 윗쪽에도 벌써 치열한 접전이 시작되었기에 처음과 같은 집중사격은 아니었다. "황군을 공격하다니... 도대체 어떤 놈들이기에..." 그러자 김 사령의 옆에 서있던 묵향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공주마마를 헤치고자 하는 무리들인 것 같습니다. 무림인들로 보이는 데 요새(要塞)에 주둔중인 어림군들은 이미 모두 죽음을 당했겠지요. 아마도 놈들의 일부가 태을령의 끝부분에서 기다릴 것입니다." "설마...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 "적들은 아마도 충분히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뒤쪽 출구에도 적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전에 화살을 퍼부었던 적들도 아직 남아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30리 앞에 나가던 위사들은?" "아마 모두들 습격을 당해 죽었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흐음.... 진퇴양난(進退兩難)이로고..."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적은 다수고 이쪽은 소수이니 적을 속이기 위 해 두패로 나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좋은 의견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세력이 줄어들텐데..." "공주마마를 평복으로 갈아입힌 후에 태진령에서 기다리는 적을 돌파한 후 왼 쪽으로 탈출시킵시다. 그리고 마차에는 공주마마의 친구분을 놔두고 미끼로 쓰는겁니다. 그리고 공주마마의 친구분들도 모두 그쪽으로 가는 것이 좋겠지 요. 그들도 공주마마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기꺼워할 것입니다. 세력이 야 반으로 줄겠지만 우리는 적들과 정면전을 벌일 필요없이 강수(崗守)에 있 는 어림군과 합류하기만 하면 되니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 까?" "좋은 의견이요." 김 사령은 현명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이 흑의인에게 감사를 하며 즉시 계획 을 실행했다. 그가 만약 상대의 음흉한 속마음까지 알았다면 결코 이런 방법 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김 사령은 원체 일이 갑자기 터져나오며 돌아가는 판이라 깊이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이런 수법은 강호에서 매우 널리 사용되는 낡아빠진 수 법이었고 처음부터 마차를 버리고 옷만 바꿔입고 탈출했다면 몰라도 한쪽은 마차를 가지고 있고 한쪽은 안가진 상태에서 두패로 갈렸으니 어느쪽이 미끼 인지는 멍청한 강호인이라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 하지만 급박하게 돌 아가는 사태와 공주의 안전에 대한 병적일 정도의 조바심, 그리고 이 계획을 사용한다면 공주의 친구들(아주 지체가 높은 양반들의 자제이거나 황족)의 목 숨을 희생해야 한다는 일말의 죄책감, 특히 그놈의 죄책감이 어떤 희생을 해 서라도 이 사태를 돌파해야만 한다는 그의 강박관념에 아주 그럴듯하게 양념 으로 다가서면서 김 사령은 흑의위사가 제안한 계책(計策)을 이용하기로 마음 을 굳혔다. 김 사령은 일단 적들이 매복하고있던 장소를 벗어나 안전한 곳에 이르자 전진 을 멈추게 한 후 공주와 그녀의 친구들이 타고있는 커다란 마차에 접근해간 다음 공주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주마마, 지금 아주 상황이 안좋게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무슨 말이냐? 대 송제국의 황군이 그깟 산적패에게 밀린다는 말이냐?" "산적패가 아니옵니다. 저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무리들이옵니다. 거기에 이곳을 마마께오서 지나실 줄 미리 알고 치밀하게 준비를 한 듯 보이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공주마마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계책을 써야하겠사옵 니다." "어떤 계책이냐?" "공주마마께오서는 승마(乘馬)를 배우셨다고 들었사옵니다. 우선 평복으로 갈 아입으시고 소장(小將)이 마차를 호위하고 적의 이목(耳目)을 속이는 동안 반 대편으로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그래야 할 정도로 일이 심각하다는 말이냐?" "예, 가장 가까운관청으로 간다 하더라도 100리(30Km)는 족히 되는 거리이옵 니다. 그런데 방금 경험했던 적의 규모로 보아 관청에 소속된 소수의 향방군 (鄕防軍;지방군-지금의 경찰이라고 볼 수 있음)만으로는 보탬이 아니되옵니 다. 강수(崗守)에 있는 어림군과 합류해아만 안심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우 선 가장 염려되는 것은 태을령이 끝나는 지점에 적이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옵니다. 만약 적이 매복하고 있다면 소장의 계책을 써야만 하오니 준비를 하시옵소서." "알겠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공주가 마차에서 수수한 복장의 옷을 입고 마차에서 내렸 고 김 사령은 수하에게 명령하여 이미 전사(戰死)한 황병의 말을 공주에게 대 령했다. 공주가 말에 오르자 다시 전진이 시작되었다. 태을령의 끝에 다다르자 역시 예상대로 적이 기다리고있었다. 그것도 한두명 이 아닌 자그마치 300여명이나 되는 숫자였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정도의 병 력이 이곳까지 침투해 들어왔는지 알수없지만, 사실 지금 겨우 200여명의 황 군만을 거느린 상황이라서 그렇지 적들이 여태껏 투입해온 500여명 남짓한 정 예는 능히 상인들이나 여행자로 가장해서 흩어져 돌아다녀도 별로 표시가 나 지않을 정도로 적은 숫자였다. 거기에 관부와는 별 상관없이 무기를 제멋대로 들고 다니는 무림인들이 존재했기에 그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적들은 그 숫자를 믿고있음인지 아예 매복도 안하고 모두들 말을 탄 상태에서 먹이가 항아리 안에서 튀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사령은 적들이 모두 들 말을타고있는 것을 보고 조금 당황했다. 그 이유는 아예 적이 매복한 상태 로 기다리고 있었다면 상대가 제아무리 경공을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이쪽은 말을 타고있으니 어느정도 따돌릴 수가 있지만 적도 말을타고 기다린다면 두 패로 나뉘어 도망친다 하더라도 적의 추격이 거셀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지만 뾰족한 다른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으므로 처음의 계획 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돌격준비!" "어쩌시려고 이러는 거에요." "흐흐흐... 이제부터 복수의 시작이지..."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공주라구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내가 손을 쓰겠다는 게 아니잖아. 이제부터는 기다리기 만 하면 되는거야. 그 다음 본좌의 복수는 그놈들이 다 해주게 되어있다구. 흐흐흐..." 김 사령의 명령이 떨어지자 황군은 모두들 안장에 매달려있던 두터운 방패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든 창을 앞으로 세워 돌격진형을 갖췄다. "돌격!" 김 사령이 앞장선 뒤로 황병들이 모두들 적을 향해 돌진해 돌진해 들어갔다. 처음의 충돌은 폭넓게 전개한 상태에서 방패와 긴 창을 가지고 충돌해 들어간 황군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상대방은 거의 대부분이 검이나 도 등의 근접병 기나 활 따위를 가지고있었기에 두터운 방패와 창을 가진 황군이 훨씬 무기상 에서 유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처음의 충돌로 일부 적을 없애기는 했지만 곧이어 양쪽은 서로 섞여버렸고 곧이어 치열한 난투극(亂鬪劇)이 벌어졌다. 일단 전투가 난전(亂戰)으로 돌아서자 마상전투에서 길이가 긴 무기인 창을 가진 황군이 어느정도 유리하기는 했지만 상대는 무림인... 검이나 도를 사용 함에 있어 월등한 기량을 자랑하며 황군을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선 황병들이 치열한 기마전을 벌이며 확보한 통로를 통해 소수의 황병들이 마차를 호위하며 그 한가닥 활로(活路)를 뚫고 나갔다. 일단 공주를 태운 마 차가 전장을 이탈하자 곧이어 황군은 두패로 나뉘며 양방향으로 전장을 이탈 해 전속력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황군의 삼분의 일은 공주를 호위하고 왼쪽 으로 탈출했고 나머지는 그 반대방향으로 마차를 호위한 채 탈출했는데 그 모 양을 보고 적도 병력을 나눴다. 하지만 그 병력을 나눈 양(量)은 완전히 반대 였으니 삼분의 일은 마차를 쫓아가고 삼분의 이는 마차 없이 도망친 자들을 쫓는 것이었다. 적을 유인하기 위해 호위대의 지휘관인 김 사령도 마차를 호위하고 달려갔는 데, 상대의 다수(多數)가 반대편을 향해 미친 듯이 말을몰며 달려가는 것을 보고 아차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김 사령이 끌고온 황군은 전투가 아 닌 호위임무이기에 중무장이 아닌 경무장이었고 이런 상태로는 노련한 강호의 고수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무리였다. 의장용(儀裝 用)의 경갑주가 아닌 전투용 중갑주(重鉀 )라면 강호의 뜨네기들 쯤이야 겁 날게 없었지만 모두들 경갑주를 입고 있다 보니 믿고 의지할 것은 두터운 방 패하나 뿐이었다. 중갑주라면 문제가 없었지만 방패만 믿고 앞의 놈들과 싸우 고있을 때 다른 놈이 뒤에서 단검이나 화살에 내공을 실어 쏘아보내면 경갑주 쯤이야 없는거나 마찬가지... 이런상황이니 삼분의 일인 적이지만 빠른 시간 안에 적을 돌파할 수는 없었고 늘어만 가는 사상자들을 지켜보며 김사령으로 서는 눈앞이 캄캄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 일행은 적을 돌파하자마자 최대한 빠른속도로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 다. 공주를 호위하는 무리들은 48명, 나머지는 미끼인 마차에 타고있는 '가짜 공주'를 호위하고는 반대편으로 이탈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잔꾀가 오히려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알았다. 거의 150여명이 넘는 적들이 이쪽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뒤 로 돌아가 김 사령이 이끄는 '미끼'와 합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저 150 명이 넘는 적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공주를 호위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된 종오품(宗五品) 장철(張哲) 교령 (僑令)은 어떻게 해서든 적의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는 생각에 부대를 둘로 나 눌 수밖에 없었다. 공주를 조금이라도 멀리 도피시키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 다. 그리고 전투라고는 경험해보지 못한 무방비상태(無防備狀態)의 공주를 이 끌고 적과 격투를 벌여 돌파해 나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다. 그래서 생각 한 것이 20여기를 차출하여 그들이 사력을 다해 적의 진격을 막는동안 조금이 라도 멀리... 그러니까 15리(4.5Km)전방에 보이는 안진산(安進山)까지만 간 다면 그곳 산길에서 매복공격을 가하면서 점차적으로 후퇴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장 교령의 명령을 받은 오순(吳順) 교위(橋衛)가 20기의 황병들을 이끌고 적 들을 향해 말머리를 돌리며 돌격해 나갔다. 장 교령은 오 교위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끌어주기를 바라며 안진산을 향해 말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었다. 장교령은 그렇게 군생활을 오래한 편도 아니었지만 10여년이 넘는 군 생활을 통해 이번의 임무가 자신이 맏은 것 중 최악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 떻게 하면 공주를 무사히 강수에 있는 어림군 사령부에 넘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사실 그에게는 자신이 별로 없었다. '그래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보자. 그러고도 안된다면 운명이겠지...' 공주의 기마술이 별로인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오 교위가 이끄는 20기가 상상외로 2각에 가까운 시간동안 분투를 해주는 덕분에 가까스로 안진산에 도 착할 수 있었다. 장 교령은 이제 겨우 27로 줄어든 수하들을 독려하여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저격하기 좋은 위치에 수하들을 한명씩 배치하면 서 달리다보니 10리(3Km)정도 달려나가자 이제 남은 수하는 17기. 위사랍시고 고용한 무림인은 활이 없었고 또 그의 옷차림으로 보아 암기주머니도 안가지 고 있기에 그에게는 처음부터 이런 산악전에 도움이 되지않는 흑의위사(黑衣 衛士)는 제외되고 있었다. 점점 더 수풀이 울창하게 우거지기 시작하여 말이 별 도움이 되지않는 순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때 장 교령에게는 근사한 꾀가 한가지 떠올랐다. 그는 달려가는 마상에서 무림인에게 물었다. "이봐. 자네 경공술은 어떤가?" "괜찮은 편이죠." "그러면 자네가 공주마마를 맏게나. 이봐 정 위사(衛司)!" 그러자 옆쪽에 달려가던 한 황병이 답했다. "예" "자네가 6기를 이끌고 남은 말들을 끌고 저쪽으로 탈출하라. 나는 공주마마를 모시고 산길을 택해 나가겠다. 최대한 빨리 도망쳐서 적들에게서 멀어지는 것 이 자네의 임무다. 해낼 수 있겠나?" "옛!" 일단 어느정도 지시를 하달한 다음 장 교령은 땀을 뻘뻘흘리며 말을 달리고있 는 공주에게 접근해 갔다. "공주마마!" "무슨 일이냐?" "황공한 질문이오나, 공주마마께옵서는 무술을 익히셨사옵니까?" "익히지 아니하였노라." 공주가 쌀쌀맞게 대답하자 장 교령은 공주가 눈치채기 힘들정도로 한숨을 푹 내쉰다음 말했다. "저기있는 흑의위사가 공주마마를 호위해 드릴 것이옵니다. 그를 따르소서. 조금 마마의 위엄에 손상되는 일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를 바라옵니다." 그런다음 장 교령은 수하들에게 외쳤다. "이봐, 자네들은 나를 따른다. 산악전이니 창은 필요없다. 모두들 나뭇가지를 밟고 경공술을 전개해 땅위에 흔적이 남지 않도록 주의하라.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에게 말의 고삐를 건네줘라. 자 이탈하라!" 그와동시에 모두들 말고삐를 옆사람에게 건네준 다음 장 교령을 따라 달리는 말위에서 경공을 펼쳐 산속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법 무술을 닦은 황병답게 육중한 갑옷을 입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말등에서 뛰어오른 다음 가지들을 건너뛰며 장 교령의 뒤를 따랐다. 장 교령과 10명의 황병들이 말등을 박차고 경공술을 전개하자 흑의위사가 공 주에게 바짝 다가붙은 다음 "실례하옵니다."하는 단 한마디만 하더니 곧이어 공주를 안고는 말등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자신의 옥체(玉體)를 얼떨결에 외 간남자의 손에 내맏긴 꼴이 된 공주는 얼굴이 벌걷게 되었고 곧이어 자신의 몸이 하늘위로 날아오르자 앙칼진 노성(怒聲)을 터트렸다. "나를 내려놓아라!" 공주가 큰 소리로 외쳐대자 묵향은 곧바로 공주의 아혈을 제압해서 더 이상 떠들지 못하게 만든다음 묵묵히 대열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무공도 모르는 상 황에서 외간남자에게 안겼지만 챙피한 것은 둘째치고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사물들이 뒤로 빠른속도로 움직이는데다 나뭇가지사이 를 날아다니자니 몸이 빠른속도로 아래위로 솟구쳤다 가라앉아대니 공주의 얼 굴이 차츰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공주는 원체 흑의위사가 자신이 느낄수도 없 을정도로 빨리 눈에 보이지도 않을정도로 빨리 격공점혈의 고난도의 수법으로 아혈을 막았기에 지금 자신의 목구멍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것조차도 인식 을 못하고있었다. 설혹 인식을 했다 하더라도 놀라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줄 알았을 것이다. 장교령은 흑의위사가 공주를 안고있는 상태에서도 상당히 안정적인 몸놀림을 구사하는 것을 보고 처음의 계획을 수정하여 더욱먼 거리까지 가지를 밟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의지해 거의 2리에 가까운 거리를 가 지들을 밟고 도약하며 이동한 다음 땅위에 내려섰다. 묵향은 거의 땅위에 내려서기 직전쯤에 공주의 아혈을 같은 수법으로 표시안 나게 풀어주었다. 묵향이 땅위에 부드럽게 내려선 다음 공주를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짜악하는 경쾌한 음향이 울려퍼졌다. "감히..." 하지만 흑의위사는 뺨을 맞았는지 안맞았는지 얼굴색도 붉히지 않고 무표정하 게 그대로 서있었다. 사실 묵향으로서는 무공도 모르는 여자에게 한 대 맞았 다고 해서 뺨이 아플리도 없는데다가, 자신의 뺨을 친 공주가 오히려 손바닥 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 꼴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터져나오려는 미소를 숨 기기에도 급급해 있었다. 무표정한 상대를 보고 더욱 약이올랐는지 공주는 노 화를 터트리며 으르렁거렸다. 사실 그 위에서 날아다니자니 엄청나게 무서웠 던 것이다. "감히 본 공주의 몸에 손을대다니...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해도 할말이 없 을 것이다." 그 꼴을 보고있는 묵향으로서는 배알이 뒤틀렸지만 그래도 할 수 없는 것이 이 계집을 잘못건드려놓으면 후환이 두려운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더럽게 비싸게 구는군... 하지만 조금 더 지나면 더욱 재미있어 질꺼야...' 묵향은 낮은 목소리로 점잖게 말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존경심따위는 애초에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꼈으리라. "소신이 원체 일이 다급하여 옥체에 손을 댄 것을 황송하게 생각하옵니다. 다 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공주는 지금 안그래도 급박한 판에 이 멍청한 녀석의 목을 벤다고 시간을 허 비할 수도 없는노릇이라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장 교령은 일이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시금 출발신호를 올렸다. 하지만 공주가 무공도 모르는 상태에서 걸어가다보니 전진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 다. 그렇다고 누가 안거나 업고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장 교령의 입안이 바짝 바짝 마를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노릇이니 큰일이 었다. 장 교령은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곧이어 적들에게 포착당할 것이라고 생 각하고 공주에게 다가가 공손한 어조로 말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말을 꺼내면 펄펄 뛸게 분명하니 조금 돌려서...' "공주마마... 발이 안 아프시옵니까?" "왜 그러느냐? 나는 관찮느니라." "지금 가마도 없고 말도 없사옵니다. 그리고 먼 길을 가야하오니 저 위사의 등에 업히시는게 어떠하올는지요?" 그러자 공주의 얼굴이 벌겉게 달아오르며 눈이 희번득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장 교령은 찔끔해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저렇게 성질을 부리다니... 저년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눈치도 못챈다는 말인가? 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도 모르다니... 하는 수 없군... 운명이야...' 장 교령은 걸음을 멈추고 뒤로 약간 쳐져 흑의위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흑의위사가 다가오자 장 교령은 그에게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자네 무공이 꽤 높은 것 같더군." 그러자 무뚝뚝한 상대의 대답. "그렇게 높지도 않습니다." "자네의 장기는 뭔가? 혹시 암기같은 것도 다룰 수 있나?" "아뇨. 무기는 잘 다룰줄 모르고 경공술이 장기죠. 물론 아주 약하다는 것은 아니고 동료들 중에서는 제가제일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전의 전투 에서도 저를 남겨두고 모두들 돌격한것이지요. 평상시에는 경공술 덕택에 연 락원 노릇이나 하고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도망치면 쫓아올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흠... 하지만 제대로 수련을 받았다면 아무래도 무림인인 자네가 우리들 보 다는 검술이 나을걸세. 이제 남은 황병은 10명정도... 이 상태에서 적과 교전 에 들어가면 공주마마의 안전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그러니 다음에 적과 만나면 자네의 경공술은 믿을만 한 것 같으니 공주마마의 신병을 책임지 고 강수에 주둔하고 있는 어림군 사령부까지 모셔드릴 수 있겠나?" "최선을 다하죠. 하지만 저하고 같이 가려고 하실지..." "억지로라도 모시고 가게나.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 만으로는 안돼. 무조 건 해내야 해." "알겠습니다. 해드리죠." "좋아. 다음에 적과 부딪치면 내가 수하들을 이끌고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테 니 자네는 마마를 모시고 최대한 멀리 도망치게나." "휴... 알겠습니다." 정말 힘든 일을 맡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숨을 쉬면서 묵향은 수락 했다. 하지만 속마음은 정말 날아갈듯한 즐거운 기분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 도록 하기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묵향이 이 우직한 무인의 부탁을 간단히 들어준 것은 공주를 악당(惡黨)들의 마수(魔手)로부터 보호하기위함은 절대로 아니었다. 사실 이런 버릇없는 계집 이 죽던 살던 자신이 알바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렇게 사건이 악화되도록 유 도하기 위해서 30명이나 되는 수하(手下)들을 돌려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적 이 공격해온 다음 묵향이 죽자고 공주가 포로가 되지않도록 막아야 하는 이유 는 따로 있었다. 공주는 대단히 중요한 인질이었기에 사로잡힌다면 포로로서 자유는 조금 구속되겠지만 극진한 대우를 받을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 계집을 끌고다닌다면 무사히 어림군에 인계되기 전까지 자유고 극진한 대 우고 모든 것이 없는 무지막지한 고생만이 기다리게 될 것이다. 계집 또한 한 번도 상대에게 잡혀본 적이 없으므로 잡히는 것을 겁낼 것이고 그러면 모든 것을 묵향에게 의지할 것은 분명한 사실... 이제부터는 이곳저곳을 끌고다니 면서 온갖 고생을 시키면서 - 대신 이것들이 다 공주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은 생색을 내면서 - 자신은 옆에서 그 꼴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묵향 은 일부러 무공이 약한척 해둔것이다. 소림 건물들의 정문에서부터의 순서 지객당(知客當) 주지 -> 덕호(德浩) 지객당은 방문객을 접대하는 곳으로, 소림에서는 타 문파에서 비무를 신청했 을 때 받아주기에 상당한 고수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타 문파들의 무공을 연구 분석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집단으로 지객당의 당주는 뛰어난 고수를 선임하는 것이 관례다. 소림은 여성의 출입을 금하지만 일차목적은 불법의 전 파에 있으므로 지객당과 지객당에 소속된 방문객들의 불공드리는 장소인 정심 전까지는 출입이 가능하다. 정심전(精心殿) 대웅전(大雄殿) 엄청난 규모로서 일정수준 이상의 수련승들이 불공을 드리는 장소. 거의 4000명의 수용이 가능한 거대한 규모. 소림삼십육방(小林三十六房) : 소림고수들의 크고작은 36개의 무공연습실. 나한전(羅漢殿) 주지 -> 덕혜(德慧) 소림 절정고수들인 백팔나한의 거처. 그들중 가장 뛰어난 18명을 따로이 십팔 나한이라 부른다. 나한전의 가장 핵심적인 임무가 장경각의 보호다. 108나한 대진은 18나한으로 이루어진 소나한진 6개가 동시에 돌아가며 구축하는 진법 이다. 장경각(藏經閣) 주지 -> 덕수(德修) 각종 서적들을 모아놓은 도서관. 정사마의 방대한 무공서적들이 보관되어있지 만 무공서적이 차지하는 비율은 3할정도로 실상 장경각의 중요성은 저 멀리 천축에서까지도 구해왔다는 수많은 불경들에 있다. 팔대호원(八大護院) 감원(長) -> 덕진(德津) 방장실의 앞뒤로 에워싸고 있는 8개의 작은 건물을 말하며 이곳에 기거하는 고수들이 방장을 호위하게 된다. 각 건물에는 40명씩이 기거하며 이 팔대호원 에 소속된 320여명의 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고수 32명을 두고 삽십이수 좌승(三十二首座僧)이라고 부른다. 팔대호원에 소속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소림에서는 엄청난 영광이며 그의 무공이 절정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된다. 방장실(方長室) 방장 -> 덕인대사(德仁大師) 방장의 숙박실. 전대방장 담영대사(潭影大師) -> 사망. 전전방장 공지대사(空知大師) -> 현재생존. 동배전(東配殿) -> 노승들이 모여서 불공을 드리는 장소. 참회동(懺悔洞) 주지 -> 대지(大支) 계율을 어긴 자들을 가두는 곳.한쪽 구석에 있음. 엄연히 구분짓자면 참회동 을 책임지는 곳은 장생전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서 참 회동에 어떤 승려를 가두려고 든다면 참회동에 보내는 것은 방장의 권한이겠 지만 일단 계율원이나 참회동에 보내지면 더 이상 방장이 참견할 수 없다. 죄 인에 대한 처벌은 장생원에서 판결하며 일단 그 판결이 내려지면 방장도 그를 어떻게 도와줄 수 없는 것이다. 양심당(良心堂) 주지 -> 담량(潭良) 노승들이 보다 높은 불법을 수도하 곳. 양심당의 당주는 학식이나 깨닳음에 의해 뽑히게 되며 무공과는 무관하지만 소림 무예의 특성상 불법이 높은자가 무공이 높기에 거의 다섯손까락 안에 드는 고수가 선임되게 된다. 불법을 익 히는 곳이기에 무력세력을 가진 것이 아니고 그냥 수도하는 장소로서 동자승 몇 명을 거느리고 불법강연과 함께 양심당의 청결상태를 감독하는 정도의 가 벼운 일을 한다. 계율원(戒律院) 주지 -> 대정(大正) 소림 제자들의 규율을 감독하는 곳. 십이금강(十二金剛)이 계율원에 있는 가 장 핵심적인 무력단체며 계율을 범한 변절자의 처리를 맏는다. 십이금강의 힘 은 무시무시하며 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변절자의 처리가 아닌 조사동 의 외곽 보호다. 계율원은 장문인 직속이 아닌 장생전 직속이다. 장생전(長生殿) 방장의 사숙이상의 노승들이 기거하는 숙박소로서 전대의 장문인들도 이곳에 묵는다. 장로원 격으로 이들 중에서 5명이 선임되어 장로원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만장일치제로 의견을 수렴하여 방장의 독주를 막는다. 최악의 경우 방 장의 해임에 대한 의결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원칙상으로는 방 장보다 배분이 높은 노승들은 이곳에 기거해야 하지만 대부분의경우 그들은 작은 암자나 기타 외진곳에 기거하므로 원래 정원의 2할정도만이 이곳에 묵고 있다. 장생전 소속의 노털들은 47명이 현재 생존중. 조사전(祖師殿) 선대고승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아놓은 곳. 소림의 성지로서 도난등의 우려 때 문에 뛰어난 고수들을 배치한다. 조사전은 장생전 소속의 노승 7명이 번갈아 가며 지킨다. 이곳에는 십이진경 등 소림제자로서 익히는 것이 금제된 여러무 공들이 있다. 방장실(方長室) 방장 -> 덕인(德仁) 팔대호원(八大護院) 감원(長) -> 덕진(德津) 나한전(羅漢殿) 주지 -> 덕혜(德慧) 지객당(知客當) 주지 -> 덕호(德浩) 장경각(藏經閣) 주지 -> 덕수(德修) 덕혜, 덕수 덕인 탁자 덕진, 덕호 방금 윗쪽에서 대화를 나누고있는 모양. 끗발순 : 방장인 덕인(德仁),덕진(德津),덕혜(德慧),덕호(德浩),덕수(德修) 30대 중, 40대 초, 50대 중, 40대 중, 40대 후 * 방장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다 그보다 동급이나 낮은 배분의 인물들이 우두머리다. 하지만 장생원 직속의 단체들은 모두 다 방장보다 배분 이 높은 인물들이 우두머리다. 소림은 타 문파와는 달리 장문인 전용으로 계 승되는 무공은 없으며 그 자신의 능력이나 수련정도에 따라 무위가 결정된다. 무조건 배분만 높다고 무공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실지 방장보다 높은 배분 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한다. 보통 방장 의 나이는 80세 이상이기에 그보다 많은 나이에 아직도 열반에 들지 못하고 살아남아서 젊은 외모... 펄펄 뛰는 체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최소한 방장 과 거의 동급 또는 그 이상의 무예를 지니고 있다고 봐야한다. * * * 12진경 - 소림무공으로서 가져서는 안되는 악랄한 초식을 가졌으며 대단히 패 도적이며 파괴적인 12가지 무공들이다. 항정멸법신공(抗正滅法神功) : 소림무예에 극성인 무공. 총 24초식이 있으며 각 초식은 12가지의 변초를 가진다. 소림무예의 헛점을 찌르도록 만들어진 수 십종류의 무예들 중에서 가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무공으로 그 악마적인 위 력 때문에 최고의 기밀로 취급되고 있다. 무공의 천재라 불린 자미신승(慈嵋 神僧)이 남긴 4가지 무공들 중의 하나로서 소림무예에 극성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지닌 파괴력도 상상하기 힘든 무공이다. 파마멸혼검법(破魔滅魂劍法) : 혜인(蕙忍)대사의 작품으로 그는 소림에 들어 오기 전에 마교에 의해 그의 일가족이 전멸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래서 그 는 사파인에 대해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승려이며 너무나 정대한 초식 만을 앞세우는 소림무예의 한계를 깨닫고 그야말로 파격적인 무공을 그의 만 년에 창안했으니 이것이 파마멸혼검법이다. 그 악랄한 초식은.... * * * 초씨세가의 핵심인물 명단. 초씨세가는 5대세가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그래 도 대단히 큰 문파이며 현재 계속 뛰어난 고수들을 배출하여 어떤면에서는 5 대세가의 말석보다도 유명한 세가이다. 하지만 아직도 5대세가의 말석을 차지 하지 못하는 이유는 초씨세가 최고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초??가 정통을 계승 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크다. 그의 무공은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이며 그의 진정한 실력은 아직도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한가지 두 번째 기대주였던 초류빈이사소한 의견다툼으로 세가를 떠나 현재 현상금 사냥꾼으 로 활동중이라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초씨세가는 재수없게도 가장 뛰어난 고 수들은 모두들 세가에서 독립하여 활동하는 관계로 그 위세를 떨치기에 아주 힘든 입장이다. 초씨세가는 여타의 무공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도(刀)를 전문으로 쓰 는 문파다. 이들이 거대한 도를 쓰는 이유는 막강한 내공에있다. 이들은 내공 이 뛰어나므로 현란한 도법이 아닌 아주 무식한 직선공격이 이룬다. 대 신 그 엄청난 내력덕택에 한방에 안나가떨어지는 인물이 거의 없는상태. 하지 만 살짝 무림에 나갈때는 거대한 도는 너무 눈에띄기 때문에 얄팍한 도나 검 종류같은 대개의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병장기를 휴대한다. 그 좋은예가 일진 검 초우같은 경우. 그의 호가 말해주듯이 그는 강호에서 검만을 사용했고 거 의 대부분의 상대가 1검에 나가떨어졌기에 일진검(一鎭劍)이라는 명호를 받았 다. 타 문파와의 집단전 따위가 벌어졌을때는 도를 사용하여 자신의 실력을 몽땅 발휘하지만 강호에 돌아다닐때는 다른 무기를 사용함으로 인해 자신의 실력을 있는그대로 다 발휘할 수 없다. 혈의수라(血衣修羅) 초백운(楚白雲) : 초장천(楚暲天)의 아버지이자 초씨세가 의 전대가주. 초씨세가 무공서열 2위. 115세. 오래전 무림의 다툼에 참가하여 격전 끝에 왼손을 날려버렸음.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실력을 모두발휘하기는 힘든입장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대단히 뛰어나며 무서운 고수로 평가받 고 있다. 현재는 모든 일은 그의 둘째아들에게 물려주고 은거중. 혈의수라라 는 별호는 왼손을 잃은 격전때 그가 입었던 백의장삼이 혈의로 변할정도로 적 과 용맹히 싸워 얻은 것이다. 무적일도(無敵一刀) 초장천(楚暲天) : 초씨세가가 낳은 최고의 고수이자 무공 의 천재로 초백운(楚白雲)의 장자(長子). 초씨세가 무공서열 1위. 어떤것에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장손의 자리를 초단천 에게 물려주고 세상을 떠도는 무공에 미친 미치광이. 75세. 그의 진실한 실력 을 드러낸 적이 한번도 없는 인물로 세상 사람들이 추정하기로는 화경에 근접 했던가 아니면 화경정도의 무예를 소유하지 않았을까 추정되는 고수다.(사실 은 가까스로 화경에 이른 숨은 화경의 고수) 초장천의 도법은 정말 무시무 시....^^ 군자도(君子刀) 초단천(楚團天) : 초씨세가의 가주. 초백운의 둘째아들이자 초우의 아버지. 초씨세가 무공서열 3위. 73세. 명호가 군자도로 불릴만큼 세 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역대 초씨세가의 가주들에 비했을 때 무공면에서는 오히려 조금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 인물. 하지만 그의 행동 은 꽤나 공명정대하기에 모두들 그를 높게 평가한다. 인자하고 신념이 강한 인물.. 백의관음(白衣觀音) 주매령(朱梅令) : 백의를 즐겨입으며 인자한 성품에 사 파의 계도에 힘씀.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있지만 상대와 싸운적은 거의 없는 인물.. 초단천의 부인이자 초우의 모친. 뛰어난 무사로서 초씨세가 무공서열 12위. 69세. 옥면일랑(玉面一郞) 초풍천(楚風天) : 초백운의 셋째아들이자 초씨세가의 부 가주. 71세. 대단히 얼굴이 잘생긴 인물로서 무림인 치고는 일찍이 결혼하여 초류빈을 낳았음. 지닌바 얼굴에 비하여 무공은 조금 떨어져서 초씨세가 무공 서열 6위인 인물. 무림 초출 때 이미 이름이 나있던 고수인 왈가닥인 그의 부 인 독수랑랑(毒手郞郞) 왕운하(旺雲河 - 73세)의 눈에 띄여 완전히 코꿰어서 결혼당했음. 그의 부인 왕운하는 초씨세가 무공서열 4위. 아직도 부부싸움하 면 쌍코피 터지는 불쌍한 남편....^^ 초연 : 31세. 초희 : 28세. 둘은 자매지간이며 초연이 언니. 초희가 동생. 언니는 무공은 별로지만 시와 화에 재간이 뛰어나며 초희 언니와 달리 검술에 뛰어남.(자신 은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음.^^) 이 둘은 초씨세가 가주 초단천의 딸들이고 검술에 뛰어난 오빠 일진검 초우가 있다. 이들은 장차 연적(戀敵)으로 배치할 생각. 일진검(一鎭劍) 초우(楚旴) : 초연, 초희의 오빠로서 뛰어난 도객. 34세. 초 씨세가 무공서열 58위. 당연히 초류빈보다는 그 무공의 성취도에서는 떨어진 다. 초류빈의 무공이 뛰어난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니까...^^ 탈명도(脫命刀) 초류빈(楚柳濱) : 초우의 사촌형, 무식할 정도로 수련을 쌓은 고수로 한자루 도를 악마처럼 잘 다룬다. 42세. 그의 부모를 닮아 아주 잘생 겼으며 그 뛰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색에 빠지지 않고 무공수련에 전념하 여 젊은 나이에 놀라운 성취를 이룬 인물... 젊은 나이에 비해 성취가 뛰어나 며 초씨세가의 촉망받던 신예고수. 초씨세가에서 무공서열 16위. 그가 무공에 집착하게 된 원인은 얼굴의 상처와 그 상처를 만든 인물에 대한 원한때문임. 그의 얼굴에는 왼쪽눈위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른쪽 빰 위까지 이어지는 얕은 검상의 흔적이 있음.(외눈은 아님) 두 번째 무림출독 사파의 어떤 검객에게 서 받은 상처인데... 상대는 초류빈보다 몇갑절 뛰어난 고수임에도 얼굴에 긴 상처만 일부러 만들어놓고는 엄마젖이나 더 먹고 오라고 비웃으며 사라졌음. 그 때문에 사파의 인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설 정도로 싫어하며 또 그 덕분에 여색에 빠지지 않고 죽자고 무공수련만 했음.^^ 그 상대 고수의 이름 은...(누굴까^^) 이 때문에 사파에 대한 지독한 원한과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사람좋은 가주 한판 벌이고는 뛰쳐나갔음. 초류빈은 세상의 이목 을 속이고 2,3류 현상범이나 잡으러 다니며 사령귀조(死令鬼鳥) 임방(任放)이 라는 이름으로 활약중이다. 그는 비교적 무림을 오래 떠돌았기에 잘 알려져있 는 인물이지만 사문을 나온다음부터는 호조(虎爪;5개의긴 쇠스랑같은 칼날이 붙은 무기 -> 열혈강호에서 처음에 나오던 이단아가 사용하던 무기, 이무기 는 검의 극성인 무기다.) 평상시에는 어깨에 걸치고 다니며 싸울때만 양팔에 착용한다. 이름과 실력을 숨기고 전형적인 하수(下手)들 처럼 괭장히 껄렁하 게 해서 돌아다닌다. 설중화(雪中花) 초류향(礎柳香) : 초류빈의 여동생. 무공이 뛰어남. 초씨세가 무공서열 38위. 나이 38세. 아직 독신... 여성임에도 무림에 이름을 떨칠정도 로 무공이 뛰어나고 그 부모를 닮아 미색이 출중한 인물...(그녀의 어머니를 닮아 너무 왈가닥이라 접근하는 남자가 없음.^^ 음... 그러니까 무림동의 초 연이 성격과 비슷하려나?) 초씨세가에는 5명의 장로가 있다. 일광일살(一光一殺) 초백룡(楚白龍) : 쾌도술에 뛰어남. 초백운의 이복동생. 92세, 무공서열 5위. 만화비검(萬花飛劍) 백운지(白雲止) 초백룡 장로의 부인, 85세, 무공서열 11위. 뛰어난 여고수. 비도술(飛刀術)에 뛰어남. 귀제갈(귀제갈) 주천강(주천강)장로 : 80세, 무공서열 7위. 초백운의 처남, 초백운의 여동생 초지령은 병사했음. 뛰어난 심계의 소유자. @03장로 : 78세, 무공서열 8위. @04장로 : 72세, 무공서열 9위. @05장로 : 65세, 무공서열 10위. 초씨세가 전체식솔 1500명. 제법 큰 세가라고 볼 수 있다. --> 부탁으로 초류빈만 넣자니 허전해서리... 이사람 저사람 넣다보니... 완 전히 가족의 족보를 새로 만들었군요^^; 천영(天影) - 본명 금천비(金天飛) : 절검문 최고의 신예고수. 현재 36살의 나이로 33세까지 절검문(3장 초반에 사이비가 나왔었지만 이놈은 진짜. 절검 문은 검으로 알아주는 문파임)에 처박혀 무공만을 익힌 무공광. 그의 천재적 인 오성과 모두들 두손드는 끈기와 고집으로 젊은나이에 절검문의 비기(秘技) ??검법을 5성이나 익힌 괴물. 무림에 나온 것은 3년전이며 그때 몇가지 문제 에서 절검문주와 의견이 맞지않아 뛰쳐나왔고 파문당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 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현재 그가 하는 일은 현상금사냥꾼임. 그는 일부러 3 류에서 2류정도의 인물들만 잡으러 다녔기에 그의 실력이 드러나있지 않다. 여태껏 그의 적들은 모두 단 1검에 요절이났는데 초식따위를 사용하지도 않았 다. 과연 그의 진정한 실력은....? 초류빈과 한번씩 동업도 하는 인물로 서로 의형제를 맺고 있다. 둘은 과거 한차례의 비무로 서로의 진실한 실력을 알고 있 또 비슷한 처지기에 서로에게 의지하는 바가 있다. 적들은 묵향의 기대에 충실히 따르려는 듯, 제법 잔꾀들을 부려놨음에도 2각 (30분)도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아마도 선발대인 듯 30여명이나 되는 무리들 과 함께 우두머리인 듯 보이는 회의무사(灰衣武士)가 날렵한 경공술을 전개하 며 열심히(?) 걸어가고 있던 공주일행의 뒷편에 떨어져내렸다. 회의무사는 땅 에 내려서자 비웃는 듯한 음성으로 한마디 했다. 사실 그로서도 죽자고 쫓아 왔는데 상대가 얼마 도망가지도 않았으니 허탈했기 때문에 이죽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별의별 잔꾀를 다 부려서 추격대를 막아대더니 실지 도망쳐야 할 놈들은 느 지렁거리며 걸어가고있었다니.... 기가막혀서... 본좌를 얕보는 것도 아니 고..." 한마디 빈정거린 다음 공주에게 간단히 포권하며 말했다. "공주마마, 저희들의 손길을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보아허니 도망칠 생각 도 없으신 것 같은데 더 이상 피를 흘리지 마시고 순순히 항복하시지요." 상대의 그런대로 공손한 음성을 들으면서 장 교령은 필사의 각오를 궂힌 듯 침통한 얼굴로 잠시 공주와 묵향을 바라본 다음 부하들에게 외쳤다. "적을 막아랏!" 그와동시에 10여명 남은 황군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뽑아들고 상대를 향해 달 려나갔다. 주인을 지키기 위해 숫자는 물론이고 실력마저 더욱 뛰어난 적을 향해 죽음을 각오하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위해 악착 사투를 벌이 는 장면은 장엄(莊嚴)하기까지 했다. 그런 상대를 향해 적들까지도 암수를 사 용하지 않고 정정당당히 승부를 해주는 것으로 주인을 향해 목숨을 아끼지 않 는 그들에게 예(禮)를 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 한사람 그들을 바라보며 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멍청이들... 이따위 계집을 위해 목숨을 버리다니... 쯧쯧... 하지만 이제 방해꾼들은 모두 없어졌으니 슬슬 시작해 보실까..'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는 난투극을 바라보며 얼이빠져있는 공주를 재빨리 나꿔 챈 다음 묵향은 경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묵향은 상대를 완전히 따돌릴 생 각은 없었으므로 추격술에 능한 상대라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정도로 약간 씩의 흔적을 남기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공주가 도망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어진 적들은 암기를 사용하여 간단히 싸움을 종결지은 후 추격을 재개했다. 회의무사(灰衣武士)는 상대가 펼치는 경공수준이나 그가 남기는 흔적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간단히 상대를 포획(捕獲)할 수 있을것으로 처음에 예상했지 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그것이 오판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상대는 완전히 미꾸라지처럼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안잡히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해가지 고 어둠이 사방에 자리잡으며 그는 하는 수 없이 추격을 포기해야 했다. 상대 가 남기는 미세한 흔적을 밤에 횟불이나 밝힌다고 알수도 없을뿐더러 횟불을 가지고 가면 적은 그 불빛을 보면서 이쪽의 위치를 파악하여 더욱 도망치기가 용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묵향은 어두워진 후 공주를 풀위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다행히 적들을 어느정도 따돌린 것 같습니다. 조금 쉬시지요. 저는 요기할 만한 것을 구해오겠습니다." 묵향의 말투는 전혀 황족에게 말해야 하는 존칭이 없는 무식한 말투였지만 공 주는 이것이 묵향이 일부러 황족에 대한 존칭을 안쓴 것을 모르고 다만 무식 해서 그것을 모르는 줄로 알았다. 예로부터 모르고 한 일은 죄가 아니라 했으 니 그걸 따질수도 없었지만 그 말과 동시에 흑의위사가 어둠속으로 사라졌기 에 따질 상대도 없었다. 하지 공주에게는 그따위 존칭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산속에 혼자 버려져있다는 점이 더욱 무서웠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 수림(樹林)이 울창하게 우거져 달빛조차 들어오지 못해 자신의 손까락도 안보이는 곳에 혼자 남아있는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하다. 그토록 오랫동안 물 한모금 못마셨지만 목마름이나 배고픔따위는 공포(恐怖) 에 눌려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공주가 벌벌떨고있는 이시간... 적들은 짙은 어둠 때문에 한치앞도 잘 보이지 가 않으니 내일의 추격을 위해 요기를 하며 푸근히 쉬고있었고 묵향은...? 묵 향은 멀찌감치 경공을 전개하여 이동하여 주막에서 때늦은 저녘식사를 하고있 었다. 이 주막은 묵향이 도망쳐오면서 이미 저녘식사를 위해 봐뒀던 곳이고 공주가 있는 곳에서부터 130리(40Km)는 족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그의 경공실력으로 봤을때는 조금도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공주에게는 먹을 것을 구한다고 했으므로 시간이야 얼마가 걸리든 큰 문제가 없는 것이 다. 묵향은 구운 오리다리를 탐스럽게 한입가득 뜯어서 질근질근 씹어 삼킨 후 술한잔을 목구멍에 흘려넣어 입가심을 하며 지금쯤 굶주림과 추위와 공포 에 벌벌떨고있을 공주생각을 하니 통쾌한 기분이 절로 일어나며 끊임없이 웃 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막기 힘들었다. 아마도 저쪽자리에 앉아서 힐끔거리며 묵향을 바라보는 녀석들은 이놈이 미치지 않았나 생각중일 것이다. '한 일주일 질질 끌면서 산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면 황궁제일미(皇宮第一美)도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한 요염한(?) 모습이 되겠지. 흐흐흐... 굶는사람 생 각하면서 먹는 재미도 꽤 괜찮군.' 원래가 굶는사람 생각하며 먹으면 식욕(食慾)은 더욱 동하는 법. "이봐! 술한병하고 오리한마리 더 가져오너라." "예." 묵향은 점소이가 오리를 가져오자 다리를 뜯어 한입 베어물며 생각했다. '그래도 딴에는 생각해줘야 하니까 요기꺼리를 가져다 주긴 줘야하는데 뭘 가 져다 줘야하나...' 두둑히 배를 채운 후 묵향은 숲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요기꺼리를 찾 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뒤지자 그럴 듯 한놈이 하나 눈에 띄었다. 토끼 라든지 뭐 그런 것은 몇마리 보긴 했지만 그녀석들은 묵향이 원한 놈이 아니 었다. 역시 이런 산골에서의 몸보신에는 길쭉한 몸매를 가진 통통한 놈이 제 격이니까... 내공이 반박귀진(返縛歸眞)의 현묘(玄妙)한 경지(境地)에 이른 묵향인지라 어둠이 내려앉은 밤사냥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예 빛이 없어 도 어느정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 달빛까지 비치니 대낮이나 다름없었다. 묵 향은 사냥물을 읍틉欲 떠나올 때 보아뒀던 특이한 모양의 고사목(枯死木)을 찾았다. 그 고사목에서 동남쪽으로 5리만 가면 공주가 묵향이 돌아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리라. 묵향은 공주가 앉아있는 나무 위에서 한참을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정 말이지 혼자보기 아까운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 게 하는것도 예의는 아니기에 아래로 몸을 날렸다. 묵향이 위에서 떨어져 내 리자 갑자기 나타난 묵향 때문에 놀라는 듯 하던 공주는 눈에 다음순간 쌍심 지를 돋우고 달려들었다. "네녀석은 지금까지 어디갔다가 온거냐?" "어디갔다가 오다니요? 저는 분명히 요기꺼리를 찾아보겠다고 가지 않았습니 까? 이런 산속에서 먹을만 한 것을 찾기가 어디 쉬운 일인줄 아십니까?" "그래 가져왔느냐?" "예. 일단 좀 앉으십시오. 소인이 요리를 해 올리겠습니다." 묵향은 공주를 앉힌 다음 나무에 걸터앉은 공주 앞쪽에 구덩이를 하나 팠다. 손바닥을 이용해서 슥슥 구덩이를 하나 판 다음 구덩이 앞부분, 그러니까 나 무의 반대편에 나뭇가지 둘을 꺾어다가 세운다음 상의(上衣)를 벗어 빛이 새 어나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런 후 구덩이 안에다가 나뭇가지를 줏어다가 집 어넣은 후 약하게 불을 지폈다. 한쪽은 나무에, 한쪽은 옷가지에 막혀 불빛은 거의 새어나오지 않았다. 묵향이 불을 피운 이유는 알맞게 요리를 할 목적도 있었지만 더욱 큰 목적은 자신이 가져온 사냥물을 공주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 이었다. 묵향이 허리춤에서 사냥물을 꺼내어 불위에 올려놓자 기절할 정도로 놀란 공주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끼약! 그게 뭐냐?" "뱀이지요. 이놈을 잡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걸 지금 나보고 먹으라고 하는 것이냐?" "이거 생긴 것은 좀 징그러워도 몸에 좋습니다. 내일도 도망다니려면 아무거 라도 먹고 힘을 비축해둬야지요." "나는 되었으니 네놈이나 먹거라." 공주가 옆으로 돌아누우며 아예 외면해 버리자 묵향은 조금이라도 더 냄새를 풍기기 위해 천천히 굽기 시작했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가자 주위로 구수한 고기굽는 냄새가 풍겨나가기 시작했다. "다 익었는데 조금이라도 드시지 않겠습니까?" 공주는 그럴듯한 향기에 마구 식욕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그것을 먹을수는 없었다. 애써 고기에서 시선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놈이나 먹거라." "그럼, 소인 혼자서 먹겠습니다." 묵향은 일부러 더 이상 공주에게 권하지 않고 뱀을 씹어먹기 시작했다. 사실 오리고기로 포식한 한 후라 별로 식욕이 일지도 않았지만 묵향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우두둑... 오도독... "쩝쩝..." 묵향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먹으면서 열심히 공주의 반응을 살폈다. '흐흐흐... 저렇게 외면하고 있어도 이 맛있게 먹는 소리를 듣고도 아무렇지 도 않다면 사람이 아니지. 흐음... 그래 침넘어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군... 낄낄낄... 아마 지금쯤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을 후회하고 있겠지...' 식사를 맛있게(?) 끝낸 묵향은 한쪽에 누우며 쌀쌀하게 말했다. "이 어둠속에서는 상대가 조화경을 넘어섰거나 심안(心眼) 정도 익힌 고수가 아니면 수색할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러니 마음 푹 놓으시고 내일도 쫓길 테니 좀 쉬십시오." 그런다음 서서히 명상(瞑想)의 세계로 들어갔다. 더 이상 공주에게 할말도 없 었고 어쨋든 자신의 피를 말리는 복수는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인시(寅時;새벽 4시)가 되자 묵향은 자고있는 공주를 깨웠다. 그냥 툭 쳤을 뿐인데도 공주는 소스라치듯 놀라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냐?" "곧 있으면 날이 밝습니다. 지금부터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안기시겠습니 까? 아니면 업히시겠..." "닥쳐라!" 그러더니 공주는 보이지도 않는 앞을 더듬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묵 향도 말릴 생각은 없었으므로 느긋하게 뒤를 따라갔다. '자존심 세워봐야 힘만 빠지지.... 클클...' 날이 밝자 전날과 같은 상황의 전개가 이어졌다. 상대의 추격이 시작되기 전 까지 묵향은 공주혼자 힘껏 걸어다니게 만들었다. 그것 때문에 일부러 일찍 깨운것이니까... 하지만 사로잡히면 안되기에 적의 추격이 시작되자 공주를 안고 경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안잡 히는 쫓기는 사람이나 쫓는 사람이나 피를 말리는 경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공주측에서도 한번씩 뒤로 언뜻언뜻 보이는 적 때문에 간이 콩알만해질 지경 이었고 쫓는 쪽에서도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 휴식이 고 식사고 모두 때려치우고 오직 추격만을 해대자니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날 저녘때쯤이 되자 적은 30여명에서 5명 정도로 줄어들어버렸다. 경공술이란 것은 원래가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 순수한 내공만이 동원되는 기 술이다. 짧은 거리만을 경공술을 펼친다면 내공도 중요하지만 그 경공술이 어 느정도 속도위주로 만榕沮낫쩝側 중요하다. 그리고 속도위주로 만들어졌을 수록 내공의 소모는 그에 비례해서 커진다. 하지만 이런 장거리 경주의 경우 그런 경공술을 펼칠 바보는 없다. 그 전날에도 추격을 해봐서 알지만 도망치 는 녀석의 경공술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황군들과 힘을 합쳐 싸 우지 않고 공주만 안고 튄 점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무공은 고강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니 죽자고 적을 쫓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다. 따 라만 잡으면 저 얄미운 놈을 찢어죽일 수가 있을테니까... 추격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하면서도 하루종일 반복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내력이 떨어지는 수하들은 뒤로 쳐져버리고 내력이 고강한 자들은 남은 것이 다. 하지만 추격하는 지휘자인 회의무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쫓아가 면서 뒤로 낙오한 무리들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었을뿐더러 자신들만의 표식으로 만리향(萬里香)을 미약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어두워져도 그 냄새를 따라서 모두들 모일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리향(萬里香)이란 어떤 한가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독특한 향기를 풍기는 여러 종류의 특수한 향을 총칭하는 것이다. 만리향은 그 향기 가 오래가면서도 향기가 짙어 멀리서도 그 향을 추격할 수 있다. 만리는 거짓 말이고 그 향내를 맏을 수 있는 독특한 내공수련을 충분히 받는다면 100리(약 30Km) 이내라면 가까스로 따라갈 수 있을정도로 지독한 향기를 뿜는다. 하지 만 훈련을 받지않은 일반인들은 거의 그 향을 느끼지못할정도로 희미한 향을 낸다. 그렇기에 갑(甲)이라는 만리향에 대해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을(乙)이라는 만리향의 향내도 맏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를 말리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숲속이라 경공술을 펼치는데는 상당히 무리가 있는 지형이다. 거기에 상대는 이 넓은 산속만을 왔다갔다 하 면서 벗어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저놈이 산속을 벗어나기만 한다 면 이 일대 곳곳에 산재(散在)해서 기다리고 있을 고수들에게 연락을 보내어 껍질을 홀랑 벗겨버리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놈이 이 넓은 수림속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이 지겨운 추격을 계 속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달리는 사람에게 안겨서 하루종일 있어본 사람이 있을까? 아무튼 이것은 진귀 한 경험임에는 틀림없겠지만 실지 당하는 입장에서는 보통일이 아니다. 상대 가 허리 아랫쪽을 받쳐준다고 하지만 이쪽에서도 힘을써서 상대의 목이라도 끌어안아야지 그렇지 않고 그대로 있을 수 있는 강심장은 없다. 받쳐주는 상 대도 상대나름이겠지만 공주의 허리 밑에서 힘을주고 있는 자는 그녀가 이 난 리가 나고나서야 얼굴이 익은 초면의 인물이었기에 사태가 나쁜 방향으로 흘 러가면 언제 그녀를 때기치고 도망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손은 아프고 계속 누운자세니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앞으로 힘을줘야 바로되 니 뻐근해오고... 차츰 시간이 지나다보면 이건 보통 고문(拷問)이 아닌 것이 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공주로서는 불행중 다행인 점이 있었다. 그것은 첫날은 도망친 시간이 짧아 별 문제가 없었지만 둘째날부터는 하루종일 도망쳐야 했 다. 그 말은 곧 초면인 이 흑의위사의 품속에서 하루종일을 안겨서 도망다녀 야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난리가 난 후에는 식량이 없어 먹은 것이 없으니 아직 그녀로서는 요의(尿意)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사실 적이 바짝 뒤쫓는 상황에서 소변보자고 내려달라고 할수도 없는 입장이니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날의 치열한 추격전이 끝나고 어둠이 내려앉자 흑의위사는 또다시 식량을 구한답시고 떠났다. 거의 2시진이 지난 후에야 갑자기 나타나서는 구해온 식 량을 불에 굽기 시작했다. 거의 배가 고파 실신하기 일보직전에 이른 공주로 서는 정말 되도록이면 참고 먹을 생각이었지만 그 식량(?)을 한번 본 다음에 는 솟구치던 식욕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헤헤헤... 오늘은 좀 많이 잡았습니다. 마마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하늘도 감동하셔서 이렇게 많이 보내주셨는 모양이죠. 헤헤헤..." 화롯불을 빙 둘러 7마리의 큼지막한 들쥐를 막대기에 꿰어서 조금씩 돌려 천 천히 구우면서 너스레를 떠는 묵향이었다. 그 들쥐도 묵향이 일부러 내장만 제거했을뿐 교활해 보이는 머리도, 뾰족한 꼬리도 다 붙어있는 통통한 놈들을 가죽도 안벗기고 구워대고있으니 공주의 식욕이 날 리가 없었다. 그 모양을 보고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는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배 (腹)를 달래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이런 산골짜기에서 저거라도 구해오는 것이 용하지.' 이건 순진한 공주의 생각이었고 저 옆에서 흥얼거리며 공주에게 들으라는 듯 이 맛있게 쩝쩝대며 쥐고기를 먹고있는 모진놈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사실 공주의 잘못이라면 저런 나아쁘은 놈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 하나였으니 까... 하늘이 빙빙 돌고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붕 떠서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 같고... 배는 고프고 목은 마르고... 온 몸에 힘은 하나도 없고... "물... 물..." 다른 것은 몰라도 물을 안먹고 사람이 오랫동안 살수는 없다. 밥이야 한달정 도 안먹어도 살지만 물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공주의 경우 거의 24시진 (48시간)동안 물한모금 마시지 못했으니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녀를 안고 뛰는 자의 무뚝뚝한 대답... "조금만 참으십시오. 해가 지고나면 물을 구해 드리겠습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엄청난 시간이 남았지만 본의아니게도 묵향이 한 말은 진실 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미쳤다고 지금 물을 가져다 주냐? 좀 더 고생을 시킨 다음 가져다 주지. 자... 다음에는 뭘로 생고생을 시키지? 흐흐흐흐흐....' 공주도 물 때문에 죽을 지경이었지만 묵향을 뒤쫓아오는 무리들의 사정도 그 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자가 건량(乾糧)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대나무 (竹)나 사기(砂器), 또는 가죽(皮)으로 만든 자그마한 물병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다 보니 제법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몇몇 고수를 제외하고 이틀에 걸친 격렬한 달리기를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묵향은 물이 졸졸 거리는 소리를 멀찌기에서 듣고는 뻔뻔스럽게도 그쪽을 피해서 도망다녔으니 그보다 무공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지는 추격자들은 여태껏 아예 물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는 세 번째 맞이하는 야영에서 처음으로 물구경을 할 수 있었다. 흑의위 사는 먹을 것을 구해온답시고 자신을 놔두고 떠난 후 거의 두시진이 넘어 나 타난 다음 자신의 신발 한짝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 물이있으니 드시지요." 흑의위사가 신고있는 가죽신 안에 물이 들어있었다. 흑의위사는 그릇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기에 가죽신을 벗어 거기에 물을 담아왔다는 답이었으니 따질수도 없었다. 평상시의 공주라면 도저히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3일을 굶으 면 도둑질을 안할 사람이 없다고 했던가... 음식도 그렇거늘 하물며 물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그녀는 냄새나는 가죽신에 담긴 물을 마시고야 말았다. 하 지만 흑의위사가 장만해온 식사는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흑의위사는 가까스 로 구했다면서 30여 마리의 털이 숭숭 돋아난 큼직한 송충 을 나뭇가지에 꿰어서는 불에 구워서 공주에게 권했던 것이다. 공주는 상대가 먹는 모습을 보면 더욱 허기를 느낄것이 분명하기에 아예 돌아 누웠고 그 때문에 그녀는 묵향도 맛있는 소리를 내며 먹는척만 했지 숲속으로 불에 잘 익은 송충이들을 버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묵향이라도 그것 을 먹을정도로 비위가 좋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묵향이야 오늘도 오리탕 2그 릇에 반주(飯酒)로 고량주 1병까지 비운다음 이리 달려왔으니 먹으나 안먹으 나 별 상관이 없었지만 공주는... 다음날 아침도 변함없는 일과의 반복이었다. 쫓고 쫓기는... <그놈>만 나타나 지 않았다면 아마 묵향의 계획대로 공주를 <말려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 지만 그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묵향이 헐레벌떡 쫓아오는 적들과 일정거리를 유지하며 도망치고 있는데 웬 껄렁하게 생긴 녀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인물로 유약하게 보일정도로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왼쪽 눈위에서부터 시작해 오른쪽 빰 위까지 이어지는 얕은 검상덕분에 그의 얼굴 은 한층 굳건해 보였다. 그의 양쪽 어깨위에는 검에 극성인 외문병기인 1척 반(45Cm)이나 되는 길이의 호조(虎爪)가 얹혀있었다. 남루해 보이는 그의 옷 차림으로 보아 아마도 떠돌이 무사인 듯 한 인물이었지만 묵향의 앞을 경쾌한 몸놀림으로 가로막은 것으로 미루어 꽤나 한수하는 작자처럼 보였다. '이런... 매복이 있었나?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경공을 지닌놈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어젯밤에 예상경로에 수하들을 매복시켰던지...' 생각은 짧고 행동은 빠르게... 하지만 지금은 적당한 무공으로... 묵향은 곧 그의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며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적을 제압할 목적보다는 도망칠 목적이 강했기에 내력을 거의 사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뒤로 황급히 물러서며 외쳤다. "잠시 멈추시오. 소생은 적이 아니오. 당신들을 돕고싶어서 그러오." 묵향은 뒤쪽을 힐끗 바라본 다음 다시 몸을 날리며 말했다. "죽고싶지 않으면 딴곳으로 꺼져." 사내도 뒤에서 빠른속도로 접근해오는 거의 30여명이나 되는 무사들의 살기등 등한 모습을 보더니 묵향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려왔다. 묵향이 측정하기에 아 마도 지금 자신의 계획을 망치고있는 이 망할녀석의 무공은 상당히 뛰어났다. '재수 옴붙었군. 저놈 실력이면 저 뒤쪽에서 쫓아오는 놈들 모두를 처치할 수 있을거야. 저놈이 나를 돕겠다고 들면 곤란한데...' "도대체 왜 쫓기는 거요?" "이런... 망할... 꺼지라고 했잖아." 하지만 상대는 끈덕지게 묵향을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 만... 이때 묵향으로서는 재수없게도 배고픔과 목마름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공주가 깨어난 것이다. 그녀는 옆에서 따라오고있는 상대를 보고 비명을 질렀 다. "끼야야악......" 그녀로서는 아마도 옆에서 따라오는 상대가 여태껏 자신을 추적해왔던 적들로 오인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젊은이가 말을 걸자 차츰 안정을 취하면서 사정 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쁜놈이 아니오. 무슨 일이오?" "본녀(本女)는 대송제국의 공주다. 저 뒤의 반도들에게 쫓기는 중인데 그대는 제국의 신민(臣民)으로서 의무를 다해 본녀를 도와라." "공주 마마라고요?" "그렇다. 본녀가 진영이다."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묵향을 바라봤다. 묵향은 이녀석을 떨쳐버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네놈은 공주마마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냐? 발칙한 놈 같으니... 어 서 꺼져라." 하지만 상대는 뒤를 한번 힐끗 보더니 공주에게 능청스레 말했다. "마마를 구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를 주실건지..." "뭐라구?" "수고료로 얼마를 주시겠습니까?" "무엄한 놈. 본녀와 흥정을 하자는 말이냐?" "돈을 주시지 않겠다면 소생은 물러가겠습니다. 그럼 평안한 여행이 되시기를 비옵니다. 안녕히 가시옵소서..." 그런다음 일부러 옆으로 천천히 이탈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공주 는 상대를 불렀다. "잠깐.... 네놈은 얼마를 원하느냐?" "더도말고 덜도말고... 황금 100냥!" "좋다. 본녀를 어림군이 주둔하고있는 곳까지 호위해준다면 지급해 주겠노 라." "알겠사옵니다." 그러더니 상대는 호조를 어깨에서 끌러 양 손에 부착했다. 호조란 것은 쇠스랑처럼 굽은 반척에서 2척 사이의 칼날 4-7개를 강철로 된 장갑처럼 생긴것에 붙여놓은 것으로 장검을 그 칼날의 사이에 끼워 부러트릴 수 있다. 거기에 여러개의 날을 가지고 있으므로 거기에 찢기면 상처를 꿰메 기도 힘들며 출혈이 심해 적에게 대단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거기에 양손에 하나씩을 착용함으로 인해 검을 가진 상대를 압박해 나가는데 있어 최상의 병 기로 손꼽힌다. 묘조(猫爪)라는 외문병기도 있지만 이것은 호조와는 달리 1치 에서 5치 사이 길이의 자그마한 칼날이나 송곳이 붙은 골무(바느질시 바늘을 좀 더 손쉽게 위해 손까락에 끼는 물건)처럼 생긴 것으로 각 손까락에 끼워 사용하지만 암습을 하는데나 이용되지 정면대결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 는다. 그 남자가 뒤로 돌아서서 적들에게 달려가자 묵향도 할수없이 걸음을 멈춰야 했다. 여기서 자신이 뺑소니 친다면 아마도 공주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진 채로 공주를 땅에 내려줬다. 공주 는 비실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도와주겠답시고 적들에게 달려간 젊은 이를 간절한 소망을 간직한 채 바라봤다. 다행히 그 젊은이의 실력은 공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상당한 실력으로 흑의인들을 죽여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이런 골짜기에서 만나게 되었는 지 아리송 했지만 어쨋건 위급할 때 자신을 도와준다는데야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않은가? 그 젊은이가 먼저 덮쳐온 흑의인들을 모두 다 죽여버리자 우두머리인 듯한 회 의인(灰衣人)이 그의 옆에 서있던 4명에게 손짓을 했다. 그 네명은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면서 거의 수비를 무시한 채 강렬한 합격을 전개했다. 먼저 두명 이 달려가다가 젊은이의 양쪽 어깨위로 검을 쳐내렸다. 그러자 젊은이는 순간 적으로 호조로 그 양쪽의 검을 막았다. 이때 그 젊은이의 머리속에는 위험신 호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적이 일격을 날리고 후퇴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힘을주어 위에서 아래로 힘을 주고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젊은이는 상대의 검을 막기위해 호조를 낀 양손에 힘을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 순간 남 은 두명은 1진의 뒤쪽으로 나타나며 검을 약간 아래에서 윗쪽으로 쓸어올리며 복부쪽으로 그어올렸다. 그들의 공격은 대단히 오랫동안 연습을 거친 듯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적이 순간적으로 1진의 공격을 막게 해준 후, 상대가 1진의 공격을 막으면 2진이 공격하는 방법을 취했다. 만약 여기서 그가 뒤로 물러서려 한다면 먼저 막았 던 2개의 검이 戮 움직임을 따라서 들어올 것이고 또 2진의 공격이 조금 뒤 쪽으로 연결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어디 한군데 베일 작정을 하지 않는다면 이 난국을 해소할 길이 없을 것처럼 보였.존뼈訣側악 일격읍. 1진품격이 읏 아래로 내려오는 덕분에 위로 뛸수도 없었다. 있다면 한 가지 뿐... 젊은이는 1진의 쳐내리는 검을 호초로 힘껏 뿌리치며 그 둘 사이 를 빠져 앞으로 달려나갔다. 위와 뒤로 움직일 수 없으니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가 더욱 기다리던 일이었다. 네명의 부하 들을 돌진시킨 후 뒤에서 일단락 되기를 기다릴 줄 알았던 회의인이 그 순간 을 노려 순식간에 위에 아래로 검을 내리그어왔다. 젊은이의 양손은 1진의 검 들을 뿌리치기 위해 양옆으로 벌어진 상태... 회의인의 일격을 온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 순간 한마디 짧은 기합성이 울리면서 사태가 역전되었다. "이얍" 그와동시에 그 젊은이의 주위로 순간적으로 강기의 회오리가 퍼져나가며 사방 에서 육박해 들어가던 검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 던 다섯명의 무사들은 온 몸이 걸레가 되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저 무공은.... 정말 대단하군.... 한낫 떠돌이 무사가 아니야. 엄청난 수련 을 거친... 저런녀석이 왜 여기에 있는거지?' 젊은이는 아찔했었던 듯 창백한 안색에 한숨을 쉬면서 공주가 있는 곳으로 달 려왔다. 그만큼 방금의 연수합격은 대단했었다. 아마도 젊은이의 무공이 저정 도로 뛰어나지만 않았다면 목숨이 10개라도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주는 그 대결이 젊은이의 일방적인 도살로 막을 내린 것을 대단히 놀라워했 다. 돈밖에 모르는 뻔뻔한 놈이었지만 그 실력하나는 그자가 청구하는 금액만 큼이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 100냥이면 은화로 2000냥이다. 한 가 족이 아쉬운대로 400년은 먹고살 수 있을만큼 막대한 금액인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 공주는 그 금액이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드디어 며칠동 안이나 자신을 쫓아다니던 공포스러운 적들이 모두 시체로 변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 미련한 아가씨는 아쉬운 것을 몰라 황금 100냥이 어느정도의 거금 인지 잘 알지도 못했기에 처음부터 아깝다는 생각조차 없었지만.... 창백한 안색으로 돌아오는 젊은이를 보고 흑의위사는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 다. "정말 대단하군..." 그러자 젊은이는 맥풀린 표정이었지만 간단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과찬의 말씀을..." "정말 대단한 연수합격이었어. 저녀석들의 실력이 지금보다 2단계 정도만 높 았었으면 충분히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었는데...." 상대의 시큰둥한 마지막 말에 젊은이는 똥씹은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왜 안죽고 살아왔느냐 묻는거나 마찬가지니... 그 다음부터는 젊은이가 안내하고 흑의위사와 공주가 그의 뒤를 따르는 형식 으로 전개되었다. 자신을 사령귀조(死令鬼鳥) 임방(任放)이라 소개한 그자는 야인(野人)임에도 궁중에서 쓰이는 존대어를 잘 알고있었다. 거기에 더욱 수 상한 점은 주변의 지리를 파악하는 예리한 안목... 또 그에따른 신속한 대 응... 적의허를 찌르는 예리한 수법으로 적을 따돌리는 놀라운 재치 라든 지... 뛰어난 무공... 모든 면에서 노련한 강호인임을 알수있었다. 아무튼 이 런 시골구석에서 만날 가능성이 없는 상당히 뛰어난.... 그래서 더욱 수상한 인물이었다. 그날 저녘 공주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비록 외딴 시골 식당이라 그 아무리 좋은 요리라도 황궁의 산해진미(山海珍味)에 비할 바 못 되었지만 공주는 정말이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본다는 듯이 아귀아귀 먹어댔다. 곧이어 공주의 뱃속으로 한 그릇의 오리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양에 안차는지 그녀는 두 번째의 오리탕을 주문했다. 하지만 두 번째의 오리탕을 시켰을 때 임방이 그녀를 제지(制止)했다. "공주마마 더 이상은 아니되옵니다." 공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임방은 말을 이었다. "며칠 굶으신 듯 하온데... 저자처럼 무공을 익히지 않으신 이상 갑자기 음식 을 많이 드시면 몸에 해롭사옵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쉬시면서 내일을 위 해 원기를 보충하시옵소서." "알겠노라." 묵향은 또다시 자신의 계획이 어긋난 것을 깨닳았다. 돼지처럼 꾸역꾸역 처먹 고 난 후 거의 인사불성이 되어 먹은 것을 다 토하면서 난리를 치기를 기대했 었는데... '하긴... 뭐.... 복수도 이정도 했으면 되었지. 저 좋던 살집이 몇근은 빠졌 을테니까... 이제 슬슬 돌려보내고 나도 본타로 돌아갈 궁리나 해야겠군.' 임방은 원래가 공주마마의 행방불명 때문에 관부에 고용된 현상금 사냥꾼이 다. 그는 무공이 별로 강하지 못한지 거의 3류 수준의 무예를 갖춘 악당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그의 추적술은 놀라워서 일단 그가 잡고자 마음먹은 상대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관부에서도 그점을 높이사 공주가 있을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황군과 어림군을 파견하기에 앞서 임방 외에도 5명의 추격에 능한 무 림인들을 급히 고용하여 파견한 것이다. 임방은 원래 이렇게 큰 일에는 끼어들기 싫어했지만 그래도 공주의 납치사건 이라 국가에 대한 얄팍한 충성심으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공주를 무사히 모셨 을 경우 황금 50냥이라는 말에 눈이 뒤집혀 동행들을 추월하여 그들보다 앞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공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 기에 공주만 일단 만나면 모든 일이 손쉽게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는 공주와 만난 다음 한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흑의위사! 공주를 모시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다. 도망 다니는 경공실력이나 그 침착함... 그리고 며칠씩 굶었다는데도 멀쩡한 태도... 모든 것을 종합해봐도 꽤나 무공을 수련한 자인 것 처럼 보이는데.... 전체적인 분 위기는 무공을 익힌 것 같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무공을 익혔다면 그자는 상당한 무예를 익힌 것이 분명했다. 그건 여태까지 임방이 경험으로잘 알고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저런 시 러배같은 놈들에게 쫓겨서 며칠씩 산속을 헤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놈들에게 쫓기고 있었고 그것을 기화로 자신이 돈을 챙기면서 상대를 도륙내는데 성공은 했지만 아무래도 저놈의 눈치가 도와준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있어....' 임방은 공주가 식사를 마치자 그녀를 안내하여 방으로 안내했다. 임방은 그녀 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 그 옆에 빌려둔 방으로 들어갔다. 임방은 어깨에 걸어둔 호조를 풀어서 침상 머리맡에다 올려둔 다음 벽에 기대어 쉬기 시작했다. 그로서도 오늘은 아주 힘든 하루였기 때문이다. '무공도 할 줄 모르는 계집을 호위하는건 정말 싫어. 그리고 그 망할놈은 하 나도 도와주지 않다니....' 내심 투덜거리고 있는데... 조금 지나자 흑의위사가 술병을 하나 들고서 들어 오더니 검대를 풀어 탁자위에 올려놨다. 그런다음 의자에 털썩 앉아서는 임방 에게는 예의상이라도 마시겠느냐는 말한마디 없이 혼자서 천천히 마시기 시작 했다. 그 모양을 임방이 이생각 저생각 하면서 멍하니 보고있는데 갑자기 흑 의위사가 입을 열었다. "흐흐흐... 자네는 나를 의심스런 눈으로 보고있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 하지만 임방이 꿀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소리를 안하자 다시 한모금 마신 후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크... 역시 술은 좋은거야... 하지만 자네가 의심스런 눈으로 보는 것 만큼 이나 나도 자네가 의심스럽다네..." "....."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했지만... 사실 자네정도 실력을 가진 현상금 사냥꾼도 많지 않을거야. 현상금 사냥꾼 치고는 실력이 너무 좋아. 그리고 대단히 강호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도 조금 이상하지... 나는 어느정도는 자네의 신분에 대 해 감을 잡고있는데..." 임방의 안색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때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 다. 탁자위에 올려둔 검집에서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데도 검이 쓱 뽑혀나오더 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임방쪽으로 날아왔다. '어기동검(御氣動劍)...' 임방은 대경하여 황급히 상체를 옆으로 젖히며 한손으로는 호조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그것을 쳐내려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쏘아져 들어 오는 검의 속도는 놀라울만큼 빨랐다. 그리고 유연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이 미 검은 임방의 목을 꿰뚫기 직전의 위치까지 와있었던 것이다. '이럴수가... 방심했군... 내가 이렇게 죽다니...' 임방이 체념한 찰나 상대의 검은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임방의 목에서 반치도 안되는 거리... 임방은 상대의 검을 쳐내지 않고 의아하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런 좋은 기회를 포기해버리는 것으로 보아 상대에게 살심 (殺心)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흑의위사는 또다시 술병을 기울여 한모금 마지막 말을 마쳤다. "자... 사실대로 털어놔 보시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오늘 이 세상에 태어 난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무엇을 털어놓으라는 거요?" "네녀석은 누구한테서 무공을 배웠나?" "그건.... 그건 말할 수 없소." 그러자 흑의위사는 마지막으로 한모금 마신다음 술병을 탁자위에 놓고 일어서 서 다가오며 말했다. "꼭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군..." "누가 눈물을 흘릴지는..." 그와 동시에 임방은 비쾌하게 자신의 목 앞에 정지해 있는 상대의 검을 오른 손으로 쳐내면서 동시에 왼손으로 옆에 놓여있는 호조를 잡았다. 아니 한쪽의 호조가 그의 손에 능공섭물(能空攝物)로 끌려들어와 저절로 끼워졌다. 그러면 서 오른발을 들어 족장(足掌;발바닥)에서 그 빌어먹을 녀석을 향해 장풍을 쏘 았다. 하지만 임방의 움직임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어느새 벌써 혈도를....' 임방이 쏜 강맹한 장풍을 흑의위사는 피할 값어치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몸으 로 맞았고 펑하는 소리가 났지만 그 어떤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가 그 와중에 언제 임방의 혈도를 짚었는지, 알수도 없을정도로 빠른 순간에 벌 어진 일이었다. 흑의위사는 장풍따위 맞은적도 없다는 듯 서서히 다가오며 말 했다. "쯧쯧쯧... 쓸데없는 수고로 신발에만 구멍을 뚫어놨군. 꼭 눈물을 흘리고 싶 다면 뭐 그것도 좋겠지. 나도 고문하는 것을 별로 싫어하지는 않거든. 하지만 이건 장담할 수 있는데 나한테 고문받고 살아서 나간 녀석은 딱 한녀석 뿐이 라는 것만은 명심하게나." 그 순간 임방은 정말 재수 더럽게도 상대를 잘못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기동검술(御氣動劍術) 따위는 허공을 격하고(空) 능히(能) 물건을(物) 당길수 (攝) 있을정도의 내공조예만 지니면 가능한 기술이다. 능공섭물(能空攝物)의 기법만 죽어라고 연습하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상대가 어기동검술을 펼쳤을 때, 조금 속도가 빠른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상대의 검에 기가 응축되어 발생하는 어기충검(御氣充劍)의 현상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호조만 가진다면 어느정도 상대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의 한수는 그의 마지 막 기대감마저 무참히 부숴버린 것이다. "그 한명은 누구요?" "내 사부가 아끼던 녀석이었지. 꽤 장래가 촉망되던 놈이었는데 그 사실을 일 찍이 알았으니까 살았지 안그러면 염라대왕(閻羅大王)도 그놈이 누군지 못알 아봤을거야. 누구한테서 무공을 배웠는지는 아주 중요해. 내가 아는사람의 제 자일지도 모르거든. 죽고나서 후회하지 말고 빨리 말하라구." 임방은 거의 포기한 듯 털어놨다. 재수없어서 사문(師門)과 원수지간일 가능 성도 있었지만 현재 가주(家主)의 인품으로 보아 원수일 가능성은 없었기에 진실을 말했다. "초씨 세가에서 배웠소." "초씨 세가라... 그렇다면 초우란 놈을 알겠군." 순간 임방은 속으로 찔끔 했지만 자신이 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가주님의 인품은 믿지만 설마 초우 그놈이 못된짓을 하지는 않았겠지. 허기 야 저자의 실력을 보니 못된짓을 했다면 먼저 초우가 작살이 났겠지... 이렇 게 애궂은 나를 잡고 닥달을 하지는 않겠지.' "알고 있소." "그녀석은 누구지?" "가주의 아들이지 누구겠소?" "자네는 그녀석과 어떤 관계지?" "어떤 관계는요? 그냥 초씨세가에서 무공 좀 익히다가 가주 눈밖에 나서 쫓겨 난 처지인데..." "흐흐흐... 자네의 무공으로 보아허니 겉핥기로 배운게 아니야. 거의 수십년 을 처박혀서 가전(家傳)의 비급(秘級)을 깊이있게 배운 적전제자(適傳弟子)라 구. 안그래? 아까 낮에 써먹은 1초식으로 보아허니 초우란 녀석보다도 몇등급 위더군. 적전이 아니라면 그 가주의 아들보다 자네의 무공이 강할 수는 없 지." "먼저 초우와 어떤 관계인지 말해주면 나도 말을 하겠소." "훗! 별로 좋은 사이는 아니야. 전에 한번 내 일을 도와준 적이 있지. 다음에 자네가 그녀석을 만나거든 그때일을 발설하면 혓바닥을 뽑아버리겠다고 한 말 을 잊지 말라고 전하게나." "무슨 일인데 도와준 사람을 그렇게 핍박한다는 거요?" "그건 자네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러니 이제 본론을 시작해 보자구." "내 원래 이름은 초류빈(楚柳濱)이오. 나는 초씨세가에서 자랐고 거기에서 가 전의 비전(秘傳)을 배운 것은 사실이오. 그렇지만 한가지 일에서 가주하고 의 견이 맞지않아 싸운다음 뛰쳐나왔소. 그런다음은 보시다 시피 현상금 사냥꾼 노릇이나 하고있죠." "어떤 의견이 차이가 났는데 사문을 버릴 정도인가?" "그건 말하고싶지 않소." "흐흐흐... 아마 말하는게 자네 건강에 좋을거야." "뭐.... 꼭 숨겨야 할 정도로 구린내 나는 과거도 아니니까. 그때 의견 차이는 사파(邪派)에 대한 가주의 행동이었소. 나는 사파 놈들은 예나 지금이 나 모두 찢어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소. 그놈들의 사악한 행위를 가 주는 그냥 참고있는거요. 그래서...." "웃기는 노릇이군. 사파가 자네한테 무슨짓을 잘 못했다고 모두 찢어죽여야 한다는 거지?" "그건 말하기 싫소. 내 신상에 관한 일이... 또 당탔 알 구 없소. "흐흐흐... 나는 알 권리가 있지. 나도 사파거든." 임방은 흠칫하는 표정이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흑의위사를 바라봤다. 사파 의 인물이 공주를 호위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驅었고 羚컥 인곈 중에▼정도 뛰어난 고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임방이 무슨생각 이 들었는지 안색을 궂히며 물었다. "당신은 마교의 인물이오?" "호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말 돌리지 마시오. 사파의 쓰레기들 중에 당신 정도의 무공을 지닌사람은 없 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오. 있다면 마교 뿐." "그래. 본좌는 마교의 인물이지. 뭐 마교의 인물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으니 그 다음을 계속하게나." "지옥혈귀(地獄血鬼) 천진악(天進惡)은 잘 지내고 있소?" "그 녀석이야 잘 지내고 있지. 왜그러나?" 임방은 흑의위사가 '그 녀석'이라고 호칭하는 것에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안 색이 바뀌었다. 마교에는 별로 외부에 잘 알려진 인물이 없었다. 잘 알려진 수뇌부로는 막강한 무공을 지닌 사천왕이 있었고 그 다음 고수로 알려진 인물 은 고루혈마(枯 血魔) 외총관과 음희(淫嬉), 지옥혈귀(地獄血鬼) 정도였다. 그 나머지 인물들은 무림에서 거의 활동을 안하기에 알려진 바가 없었다. 사 천왕같은 경우에도 정파에서 삼황오제라고 떠들어대며 8명이나 되는 화경의 고수를 보유하고있음을 자랑으로 삼아대자 심사가 뒤틀린 마교에서 이쪽은 극 마의 고수가 4명있다고 발표했고 또 그 말은 세인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 분했다. 여러문파에 1명씩 있는것과 한 문파에 4명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엄 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옥혈귀라면 마교에서도 대단히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다. 그런데 그런자를 '그녀석'이라 칭할 정도라면 이자는 도대체 어느정도의 직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당... 당신은 누구요?" "자네가 내 질문에 먼저 대답을 해주면 나도 말해줄지 모르지." "내 얼굴에 난 흉터를 그놈이 만들었소. 그것도 내가 무림 초출 때... 내 얼 굴이 잘생긴게 마음에 안든다면서 만들어놓은 상처요. 나는 그놈을 죽이기 위 해 죽자고 수련했소. 그런다음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겼을 때 그놈에게 도전을 해보려고 했었는데 가주가 나를 막았고... 서로 다투다가 사문을 뛰쳐나왔소. 그런다음 지옥혈귀를 찾아갔는데 순순히 비무에 응해줬소. 그에게 패한다음 사문에 돌아갈 면목도 없어 그냥 현상금 사냥꾼이나 하고있소." "꽤나 재미있는 얘기군. 지금 자네의 실력이라면 조금 더 노력한다면 지옥혈 귀를 진짜 귀신으로 만들 수 있지. 어때? 내 밑에서 일해보지 않겠나? 그러면 내가 무공을 가르쳐 주지." "당신은 마교인데... 고마운 제의기는 하지만 나는 마교에 들어가지 않겠소." "자네보고 마교도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야. 지금 나는 마교놈들에게 쫓기는 처지라고 볼 수 있지. 지금 마교에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야. 그래 도 안되겠나?" "하지만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소." "뭐... 못믿어도 하는 수 없지. 나는 묵향이라는 사람일세. 나에대해서는 어 느정도 정보력을 갖춘 집단에게 의뢰를 해보면 금방 알수있을거야. 내가 지금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테니 나에대해 알아보고 그런다음 믿음이 가면 찾아오게 나." "알겠소. 한번 생각해 보겠소." 묵향은 상대의 혈도를 풀어준 다음 다시 의자에 앉아 탁자위에 놓인 술병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마시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일행은 어제 저녘에 만들어둔 식은 만두로 아침식사를 급 히 해결한 후 출발했다. 아직 상대를 완전히 따돌린 것이 아니기에 놈들도 흩 어져서 공주일행을 눈에 불을켜고 찾고있을 테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것 이다. 말(馬)을 구할수도 없었기에 여태껏 해오듯 흑의위사가 공주를 안고 경 공술을 펼쳐 일행은 최대한 빨리 강수(崗守)에 도착할 생각이었다. 일행은 쫓 기는 중이었기에 감히 관도(官道)로 나갈 생각은 못하고 산길로 산길로 달리 고 있는데 앞쪽에서 마차와 함께 말을 탄 5명의 인물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 다. 그들이 최대한 빨리 말을 몰아대는 것으로 보아 아주 급한 용무가 있는 듯 보였다. 묵향은 임방이 말릴사이도 없이 안고있던 공주를 내려놓은 다음 길을 가로막 아 섰다. 곧이어 공주일행에게 가까워진 마차와 그 호위들은 왠 사람이 길을 막고 서있자 급히 말을 멈췄다. "왠 놈들이냐?" 묵향은 진영공주를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분은 진영공주 전하시다. 너희들은 우리들을 강수까지 안내해 줘야겠다." "......."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곧이어 오른쪽에 있던 험상궂게 생긴 사내가 말했다. "전적으로 그대들을 믿을수는 없는 노릇이니 증거를 제시해 주기 바라오." 그러자 모두의 눈길이 진영공주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곧이어 벌개지더니 앙칼지게 외쳤다. "증거는 무슨 증거란 말이냐? 네녀석들은 본녀가 공주란 사실을 믿지 못하겠 다는 말이냐?" 그녀의 말을 듣고 묵향도 잠시 자신들 패거리의 꼬락서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별행동도 감수해야 하는 무림인들에게는 각 직위를 나타내는 독특 한 문양(文樣)의 명패(名牌)가 있게 마련이지만 공주를 나타내는 패(牌)가 있 다는 말은 자신도 들은바가 없다. 왜그런고 허니 황족인지 아닌지는 호위하는 인물들이 누군지 보면 모두들 아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리고 공주의 표정을 보니 자신을 증거할 것은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상대의 이목을 속인답시 고 남장(男裝)을 한 공주나 공주를 호위한다는 인물, 즉 묵향과 임방의 모양 새를 보고 황족이나 황군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공주가 벌개진 얼굴로 대들자 아예 상대는 멸시(蔑視)쪼로 나왔다. "호오... 이건 심하군. 요즘 공주마마들은 황군의 호위도 없이 바깥출입을 하 시는 모양이지?" "그러게 말이야. 시녀도 옷도 노잣돈이 떨어져서 팔아먹으셨군." "요와의 전쟁에서 그 많던 황군은 다죽은 모양이야. 저런놈들이 황군이라 면..." 이러쿵 저러쿵 한소리씩 해대자 공주의 얼굴은 벌개지다 못해 퍼래지더니 악 을 썼다. "저런 발칙한 놈들을... 본녀를 없수이 여기다니... 여봐라. 저놈들을 쳐라." 그러자 여태껏 공주의 말이라고는 귓등으로 듣던 묵향이 얼씨구나 하고 싸늘 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검을 천천히 뽑았다. 묵향이 척 보아도 상대는 정기(精 氣)를 내뿜는 것이 정파를 자처하는 무리들 처럼 보였다. 그런데다가 '저런 놈' 운운하고 있으니 공주한테 화풀이 하기는 글렀으니 새로생긴 화풀이 대상 인 저놈들을 몽땅 다 죽여버린 다음, 그 책임은 공주한테 홀딱 뒤집어 씌울 생각이었다. 사태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던 임방은 급히 앞으로 나서며 묵향을 제지한 다음 상대에게 말했다. "귀하들의 주인에게 한말씀 여쭐 수 있게 해주실 수 없겠소? 그편이 쓸데없이 검을 교환하는 것 보다 좋을거외다." "하하하... 별 미친녀석들을 다보겠군. 길앞을 막아서서 공주 운운 해대더니 이번에는...." 챙! 챙! 챙! 그와동시에 묵향의 검이 그녀석에게 날아갔다. 상대는 말을 더 이상 할 정신 도 없이 몸을 피했지만 묵향의 검은 다행히도 그에게까지 날아오지 않았다. 거의 무방비상태였던 그는 하마터면 목숨이 날아갈 뻔 했지만 간밤에 묵향에 게 혼줄이 났었던 임방이 암암리에 묵향을 주시했고 그에대한 대비를 했던 것 이다. 역시나 묵향의 검이 재빠른 속도로 검집에서 쏘아져나가는 것을 보고 임방도 오른편 호조를 검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던졌고 어기동검술에 의해 조 종되는 묵향의 검을 임방 역시 같은 수법으로 세 번에 걸쳐 막아낸 것이다. 세 번에걸쳐 호조(虎爪)에게 진로를 차단당한 검(劍)은 천천히 미끄러지듯 후퇴하여 묵향의 검집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묵향의 입에서는 싸 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녀석이 감히 본좌가 하는 일을 막는거냐?" "쓸데없이 무력을 쓸 필요는 없지않소?" 그러면서 임방은 품속에서 옥패(玉牌)를 하나 꺼내어 앞의 인물들이 볼수있게 들어보이며 말했다. "본인은 초씨세가의 탈명도(脫命刀) 초류빈(楚柳濱)이란 사람이오. 그대들의 주인을 뵙게 해주시오." 그러자 상대들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그중의한명이 마차로 달려가 낮은 목소 리로 소근거렸다. 곧이어 그자는 돌아와서 정중히 말했다. "아씨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세사람은 각기 다른 표정으로 마차쪽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노기(怒氣)를 거 두지 않은 공주, 김샜다는 표정의 묵향, 그리고 한숨놓은 표정의 초류빈이었 다. 이때 마차 문이 열리면서 얼굴을 면사(面紗)로 가린 여인과 시비(侍婢)인 듯 보이는 여인이 황급히 내리면서 일행을 향해 간단히 예를 취했다. 얼굴은 면 사로 가렸지만 날아갈 듯한 작은 학들이 수놓아져 있는 엷은색 녹의(綠衣)에 감싸져 있는 날씬한 몸매는 주인의 몸에 밴 예절교육에 따라 우아하게 움직이 고 있었다. 그녀는 크고 맑은 눈으로 아직도 들고있는 초류빈의 명패를 바라 보며 초류빈을 향해 물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씬한 여자들이 그러하듯 약 간 굵은 편이었지만 탁하지는 않았다. "만나서 반갑군요. 방금 초 공자께서 하신 말이 정말인가요?" "그렇소. 이분께서는 황제폐하의 총애를 받고계시는 진영공주 전하시오." 그러자 그녀는 공주를 향해 우아하게 절을 올리며 사죄 했다. "수하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인 일로..."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공주는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본녀의 잘못도 있으니 용서하겠노라. 본녀의 일행을 강수에 있는 어림군 사 령부까지 안내해 주기 바란다. 관광 중에 적도들의 기습을 받아 황군들은 모 두들..." 여태까지의 기막힌 고생이 생각나는 듯 공주의 목소리는 후반에 들어 떨리기 시작했고 그를 눈치챈 상대방은 재빨리 공주에게 말했다. "갈길이 머옵니다. 어서 오르소서." 공주가 먼저 마차에 오르자, 그다음은 면사를 쓴 여인이 올랐고, 시녀가 탄 다음 묵향은 시녀의 옆에 앉았다. 그런다음 초류빈이 들어오려 하자 마차 안 의 공간은 넓었지만 묵향이 말했다. "자네는 위야." 씁쓸한 표정으로 마차위의 마부(馬夫) 옆자리에 초류빈이 자리를 잡고 앉는데 그의 귀에 전음이 들려왔다. <내 정체를 공주에게 알리기 싫어서 이번은 넘어가 주겠지만 한번만 더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 죽을 줄 알아...> "그대는 누구인고?" 면사를 쓴 여인이 공손하게 공주에게 말했다. "소녀는 백운옥(白雲玉)이라 하옵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던데..." "아니옵니다. 마마를 모셔드린 다음에 처리해도 충분하옵니다." * * * 손... 연한 자색(紫色)이 감도는 기괴한 색깔의 손이었지만 계집의 손처럼 고 왔다. 아무튼 특이한 손이었는데 그 손은 지금 종이 한 장을 들고있었다. 잠 시 지나자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제 목 : 묵향 부교주에 관한 2차 조사 보고서 기 간 : 2년 목 적 : 중간보고 투입인원 : 천마(闡魔) 1호부터 10호. 작 성 자 : 천마 1. 내 용 : 묵향 부교주 축출(逐出) 후 조사에서는 3년에 걸친 대대적인 1차 조사가 행해 졌었지만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 이번 2차 극비 재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시 작후 1년도 안되었는데도 여태까지의 묵향 부교주에 대한 보고내용이 대단히 많이 외곡되었음이 밝혀졌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 음. 그 이유는 1차 조사는 묵향 부교주의 배후세력 내지는 사조직에 대한 일 제 조사였지만 이번 조사는 조사의 성격을 완전히 달리해 그의 모반설 등의 사실유무나 인위적인 여론조작 등에 초점을 맞춘 결과기도 하지만 삼비대를 이번 조사에서 제외시킨 후그들도 조사대상에 올려놓은 결과라고 볼 수 있 음. 一. 한영영 : 부교주와 함께 무림맹으로 향하는 도중 부교주에게 지독히 쓴 맛을 본 것에 대한 원한으로 대단히 악의에 찬 보고를 올렸었으나 부교주 독 립호위였던 사군자 중 진춘(辰椿), 옥련(玉蓮), 마식(馬殖)에 대한 심문결과 무혐의로 판명됨. 하지만 그가 했던 말 중 자신은 '교주에게만 충성을 하지 나머지에게는 아니야'라는 말은 사실이었음. 그때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 어 교주의 퇴진후 변절(變節)하겠다는 말은 아니었음이 확실함. 二. 장인걸 부교주 : 묵향 부교주에 대한 척결에서 가장 큰 득을 본 인물로 놀랍게도 본교와 암흑마교와의 통합 전에도 일부 사조직을 본교내에 침투시켜 묵향 부교주에 대한 여론을 조작했음이 밝혀졌음. 그 여론조작에 가장 큰 역 할을 한 인물은 혁무상 장로이며 그 외에도 일부 고위급 고수들이 관계된 것 같음. 그들에 대한 확실한 물증을 잡으려면 더욱 많은 시 필요함. 三. 혁무상 장로 : 삼비대의 수장이라는 지위를 이용, 그에대한 모반설 등등 최악의 경우들만을 상정하여 교주께 보고함으로 인해 묵향 부교주와의 갈등을 조성해나간 인물로 아직 확실하지는 않으나 장인걸 부교주와 상당히 깊은 관 계인 것 같음. 정확한 물증을 잡으려면 이 안건도 시간이 필요함. 四. 마영대(魔影隊) : 묵향 부교주가 포섭한 무리들의 모임이라고 알려졌었기 에 1년여 기간동안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부교주 축출 후 있었던 대대적인 1 차 조사에서도 밝혀지지 않았듯이 허위단체인 것이 확실함. 현재 장인걸 부교주는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것으로 심증은 가고있으나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포착하지 못했음. 좀 더 깊게 조사해 나가는데는 더 많 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함. 극비리에 조사중이므로 더욱 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있음. 거기에 삼비대가 냄새를 맡고 역공작까지 해들어오는 것 같음. 추후 사 항에 대한 지시를 조속히 해주기 바람.> 급기야 그 손은 종이를 움켜쥐었고 곧이어 종이는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감정을 억누른 침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부가 매의 먹이였다니...." 공주 일행이 마차를 몰아 달린지 2시진도 안되어 옆에서 달려가던 무사(武士) 가 마차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외쳤다. "추격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자 백운옥이 냉랭히 답했다. "몇이나 되느냐?" "50여기(騎) 정도 됩니다. 앞으로 반시진 정도면 추월당할 것입니다. 지시 를..." "멈춰라. 피를 보고싶다면 그리 해주면 되지. 감히 황실을 우습게 보다니..." 그런다음 공주에게 공손히 말했다. "공주마마, 우선 저들을 응징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괜히 놔두면 무리 들이 모여서 더욱 힘들게 되오니 저들의 수가 적을 때 차례로 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좋을대로 하거라." "예." 백운옥이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석에 앉아있던 초류빈도 함께 내린 다음 호조 를 양손에 착용하며 적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적들은 다가오기는 했지만 200장(606m)밖에서 대열을 멈춘다음 흩어지면서 마차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약간 당황한 백운옥이 외쳤다. "모두들 조심하라." 그런다음 초류빈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이상하군요... 저들은 수가 저리 많은데 2리 거리를 유지한 채 포위하다 니... 지휘자가 누군지 궁금하군요." "왜그러시오?" "아무래도 활로 공격할 것 같아요. 소녀는 저들이 정면공격을 해올것이라 예 상했었는데..." 그러자 초류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제탓인 모양이군요. 어제 저들과 충돌하여 30여명을 베었으니 까 저놈들도 조심할 수밖에 없겠죠." "무림인들은 활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저들은 무림인이 아닌 것 같군 요." "공주마마를 노리는 것으로 보아 반란군도 일부 섞여있다고 봐야 옳을 겁니 다." 이들이 쑤군거리는 동안에 상대는 5명 정도가 한조씩으로 하여 10군데에 자리 를 잡으면서 넓은 포위망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완성되자 그 우두머리 인 듯 한 인물이 소리쳤다. "항복하라." 하지만 마차와 그 마차를 호위하고있는 5기의 무사들이 아무런 대꾸를 앉자 곧장 외쳤다. "쏴라." 그와동시에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통상적인 활의 사거리는 1000보(步) 즉, 250장(丈) 정도로 잡는다. 그보다 더 날아가지만 250장이 넘어서면 상대 군사들이 입은 갑주를 관통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내공을 쌓지 않은 인물들이 쏘았을 때 하는 말이고 무 림인이 쏘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화살(矢)에 내공을 실어 날리면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부 무림인들은 활 다루는 법 을 배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활보다는 암기를 배운다. 활처럼 덩치큰 물건을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힘들뿐더러 대부분이 단거리에 일대 일 대결을 할 확률이 높기에 오히려 장거리 무기인 활이 거의 쓸모없기 때문이다. 백운옥 등은활이 날아오며 내는 파공성(破空聲)을 듣고는 안색이 굳어졌다. 그 파공성은 상당한 내력이 실려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 는 반란군이 아니라 활쏘기 교육을 일정시간 받은 무림인들이었고 그 화살은 엄청난 기세로 그들을 덮쳤다. 모두들 각기 지닌 병장기를 뽑아들고는 화살을 쳐내기 시작했고 백운옥도 허 리에서 연검을 뽑아든 다음 휘두르기 시작했다. 적들은 처음 일제사격을 가한 후 의외로 상대가 잘 막아내자 그 다음부터는 발사시간을 길게잡아 시간을 끌 면서 천천히 사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백운옥이 말했다. "저들이 화살을 아끼는 것 같은데... 준비한 화살이 많지않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곧이어 도착할 본대를 기다리는 것이겠죠.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지금 포위망을 돌파하고 도망치는게 좋겠습니다." "저쪽에 활을 날리지 않고 이쪽을 지긋이 보고있는 자가 우두머리 같은데... 같이 가시겠어요?" "영광입니다." "너희들은 마마를 호위하라. 가요!" 그와동시에 백운옥과 초류빈은 한 방향을 향해 최대한 빠른 속도로 돌진해 들 어갔다. 상대와의 거리는 200장. 좀 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적들도 이쪽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그 두명에게 사격을 집중했다. 이때 그 우 두머리가 말안장에 매여있던 활을 꺼낸 다음 화살을 먹이고 백운옥을 지긋이 겨누더니 백운옥이 50장(150m)거리까지 접근하자 자신이 가진 공력을 최대한 실어서 화살을 날렸다. 피유유융---- 화살은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일으키며 백운옥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적으로 백운옥이 연검을 이용해서 살촉을 쳐냈지만 그때서야 그 화살에 얼마나 엄청 난 내력이 들어있는지 알수있었다. 그녀의 힘을 모두 기울여서 막는다면 별것 이 아닐수도 있었지만 날아드는 여러개의 화살에 신경이 분산된 틈을 이용해 서 날아온 이 화살은 다른것보다 몇배의 내력이 실려있었고 그것을 모르고 보 통화살처럼 막은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실수다' 카앙... 가까스로 화살을 쳐내기는 했지만 화살이 지닌 내력에 밀려 백운옥의 신형이 무너지면서 뒤로 조금 밀리며 중심을 잃고는 휘청거렸고 그때 또 다른 화살 한 대가 백운옥의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끼약..." 백운옥이 상처를 입는 것을 본 초류빈은 일이 이미 글렀다는 것을 직감하고 뒤로 돌아서며 비틀거리는 백운옥을 왼손으로 껴안고는 날아오는 화살 5대를 쳐낸다음 마차를 향해 몸을 날렸다. 뒤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쳐내면서 돌아가자니 처음 돌진해 들어갈때보다 시간이 몇배는 더 걸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기랄... 사봉(四鳳)에 들어가기에 한가닥 하는줄 알았더니...' 무시무시한 내력을 담은 장소성(長訴聲)이 들려온 것은 이때였다. "우우우우우...." 소리의 시작과 끝이 들려온 거리가 대단한 차이를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 정 체불명의 고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초류빈은 백운옥의 어깨에 꼽혀있던 화살을 빼낸 후 금창약을 발라주고 있는 데 그녀가 침중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적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저들의 표정을 보면 조금 안도하는 것 같지 않소?" 백운옥은 세심하게 금창약을 발라주고 있는 초류빈을 보며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오늘 여기서 뼈를 묻게 될지도..."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시오. 우리들에게도 마지막 희망은 있으니 까..." 이때 마차 안에 있는 공주와 시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호위무 사들이 막지 못한 화살이나 그들의 검에 튕겨나온 화살이 간혹 마차에 맞기도 했기 때문이다. 호위무사나 마부는 탈출을 대비해 말을 우선적으로 보호했기 에 마차까지 신경 쓸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차안의 인물들이 아 무런 상처를 입지 않은 것은 무림의 명가(名家)인 백씨세가에서 사용하는 것 이라 마차가 원체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공이 실린 화살이기에 완벽 하게 막아내지는 못했으므로 마차 안쪽으로 조금씩 살촉이 튀어나올때는 놀라 지 않을 수 없었다. 묵향이 느긋한 표정으로 주인이 없는 앞자리에 다리를 올려놓으며 편안하게 앉으려고 할 때 공주의 시큰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 본녀를 지킬 생각이 하나도 없지?" 묵향의 다리가 순간적으로 허공에 멈췄다가 다시 내려갔다. 사실 묵향은 이번 여행에 생긴 동반자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될 수있다면 몽땅 다 죽어 버렸으면 더 좋을거라는 생각 중이었다. 그래야 다시 공주를 들볶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 사실을 공주가 눈치 채 버린 것이다. 묵향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헤헤.. 무슨 억지 말씀을..." "어제 임방과 다투는 말을 다 들었노라.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에 적이 쳐들어 왔나 싶어 귀를 기울이니..." "하하하... 다 농담입죠. 소인이 어찌 감히 황실을 능멸할 수가..." "그대는 대단한 고수지? 본녀도 황궁안에 갖혀 지냈지만 마교에 대해서는 황 군들간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노라. 그대가 마교의 고수라면..." 마교의 고수라는 말이 나오자 저쪽에서 어쩔 수 없이 듣고있던 시녀의 눈이 조금 더 커졌다. '여우같은 년... 줏어들은 것도 많구만...' "하하하... 마교의 잡졸일 뿐입니다. 너무 추켜세우지 마시지요." 묵향이 부인(否認)은 하고있지만 김빠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대가 본녀를 도와준다면 여태껏 있었던 일을 모두 불문(不問)에 부칠 것이 다. 그러니 제발 도와다오." '제기랄...' "그래... 이미 눈치챘다면 할 수 없지." 갑자기 말투가 바뀌자 공주의 안색이 굳어졌다. "사실 노부(老夫)는 황실따위 별로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구. 과거부터 무림과 황실은 서로 불가침의 관계였으니까... 이번 일도 푼돈이나 좀 벌려고 시작한 일이었으니 뭐... 도와는 주겠소. 하지만 이 일을 도와주는데 있어서 우선 몇 가지 조건이 있소." "무슨 조건을 말하는 것이냐?" "우선 여태껏 있었던 일가지고 황제에게 과장까지 보태서 일러바쳐 노부를 피 곤하게 하지 말 것. 그리고 수고료를 좀 줘야할 것이고... 이래뵈도 노부는 꽤 몸값이 비싸거든..." "얼마를 원하느냐?" "저 임방이란 녀석이 원한것과 같은 액수. 황금 100냥이면 충분해." "허락하겠노라." "좋았어. 거래는 성립되었군. 하지만 나중에 약속을 어길때는 아무리 깊은 황 궁구석에 숨어있다 해도 노부의 타오르는 분노를 피할 수 없을거야..." 공주는 이 시건방진 무림인이 별로 마음에 들지않는듯한 표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이 위기를 넘겨놔야 나중에 황군을 동원해서 능지처참(陵遲 處斬)이라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야 무슨 말인들 못하고 약속이야 무 슨 약속인들 못하랴,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못된녀석... 지금은 참지만... 어디 두고보자...' 조금 시간이 지나자 10명의 무림인이 새로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고있는 꼬라 지와는 달리 아주 우아한 자태로 착지(着地)함으로서 자신들의 무공수위를 뽐 내는 듯 했다. 그들은 모두 피처럼 검붉은 색의 적의(赤衣)를 입고있었다. 산 뜻한 붉은색이 아닌 피칠을 한 듯한 검붉은 색인데다가 이들의 몸에서는 기이 하게도 약간의 요기(妖氣)와 사기(邪氣)가 은근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는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이들은 아무래도 정통적인 무공을 수공한 인물 들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 중 한명이 급히 달려온 것과는 달리 느긋한 목소리로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저녀석들이 그렇게 고수란 말이오? 우리들이 나서야 할 만큼?" 그러자 놀랍게도 그 우두머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 호조(虎爪)를 차고있는 녀석 혼자서 12대(隊)를 몰살시 킨 녀석입니다. 대인들께서 오시기 전에도 포위망을 돌파하려고 했는데 힘겹 게 막아냈습죠. 저녀석 말고는 그렇게 뛰어난 고수는 없는 듯 합니다." 그러자 그 적의인은 멀찌기 보이는 초류빈을 지긋이 바라본 다음 말했다. "그렇게 실력이 좋은 것 같지는 않은데... 한번 수하들에게 몸이나 풀어보라 고 하기로 하지..." 적의인과 우두머리가 이제 독안에 들어가버린 생쥐를 잡는 기분으로 느긋한 기분으로 쑤군거리고 있을 때 마차문이 열리더니 묵향이 어슬렁거리며 걸어나 왔다. 묵향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적의인들을 노려보고 있는 초류빈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이봐.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흐음... 잘 모르겠소. 저들은 어디서 솟았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고수들이 오." "흠... 그럼 오늘 황천갈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되겠군. 내 말대로 하면 자네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길거야. 지금 그 계책(計策)을 알려줄테니 한번 실행해 볼 의향(意向)이 있나?" 그러자 초류빈은 귀가 솔깃해져서 물었다. "무슨...?" "하하하... 아주 간단한거지. 본좌의 수하가 되겠다고 맹세한다면 자네를 도 와주겠어." 그러자 옆에서 듣고있던 백운옥이 발끈해서 역정(逆情)을 냈다. "꼭 이런때 농담을 하고싶어요?" "이런.... 본좌는 지금 농담을 하는게 아니야. 너같은 꼬맹이는 가만히 있거 라. 이건 본좌와 이녀석간의 문제야. 너희들이야 죽건살건 나하고 아무런 관 련이 없으니까..." "흐음...." 초류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소. 그대의 수하가 되어 드리지. 대신 조건이 있소." "뭔데?" "만약 여기있는 사람들 중 한사람이라도 죽는다면 이 계약은 무효(無效)요." "그건 안돼." "왜? 자신이 없소?" "하하하... 꼬맹이가 본좌한테 감히 격장지계를 쓰려 들다니... 쯧쯧... 속아 넘어갈 사람한테 그따위 방법을 써야지. 물론 저녀석들을 다 죽일수야 있겠 지. 하지만 저 쓰레기들이 내가 저 빨간놈들을 모두 죽일때까지 버텨줄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지. 너는 잘 모르겠지만 저놈들 보통녀석들은 아닌 것 같 으니까. 어쩌면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몰라..." 묵향이 쓰레기라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수하들을 손까락으로 가리키자 백운옥 은 얼굴이 시뻘개져서 대들었다. "감히 백씨세가의 정예무사들을 보고 쓰레기라니... 네놈의 실력이 얼마나 대 단하기에..." 챙... 연검까지 뽑아들면서 달려들려는 백운옥을 초류빈이 급히 막고있는데 묵향이 말했다. "흥... 다른건 몰라도 어깨에 구멍난 계집 10명이 덤벼도 상대해 줄수있다는 건 사실이지. 자 어떻게 할테냐? 저따위것들을 위해서 여기서 목숨을 버릴거 냐?" "좋소. 모두 다 죽여주시오. 그동안 저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막아볼테 니..." "흐흐흐... 그럼 거래는 성립되었군." 묵향이 어슬렁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가자 초류빈이 백운옥에게 말했다. "혹시 도(刀)를 가지고 있습니까?" "없는데요..." "그럼 검이라도 하나 빌려주시오." 백운옥이 수하에게 다가가 뭐라고 쑤군거리자 그 수하가 말안장에 비끌려 매 어져 있던 참마도(斬馬刀;관운장이 쓴 언월도와 비슷하게 생긴 마상용 장도) 를 꺼내어 백운옥에게 넘겨줬다. 백운옥은 그것을 받아서 초류빈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거라도 상관 없나요?" "고맙소." 초류빈은 백운옥에게서 참마도를 받아든 다음 그 긴 손잡이를 잘라내어 보통 의 도처럼 만들었다. 그런다음 이제 필요없어진 호조를 옆에 던져버린다음 묵 직한 도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쥐었다. 역시 이렇게 위험할때는 여태껏 자 신이 배운 도법(刀法)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그의 사문은 중병(重兵)의 으뜸 인 도(刀)로 일어선 무가(武家)이기에.... 적의인들의 우두머리는 저쪽에서 흑의를 입은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오자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수하들에게 명령했다. "쳐라!" 그러자 9명의 적인인들은 각기 목표를 한명씩 정한다음 앞으로 쏘아져 나갔 다. 적들이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며 묵향도 순식간에 검을 뽑아들면서 앞 으로 달려나갔다. 2리라는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빠른 시간내에 그들간의 거 리는 좁혀들었고 묵향은 자신을 노리고 들어오는 녀석이 3척길이의 윗부분에 해골같은 모양의 쇳덩이를 붙여놓은 철봉(鐵棒)으로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것 을 보고 검으로 그놈의 몸을 철봉과 함께 두토막으로 만들어버렸다. 동료의 몸이 두동강이 나는 것을 보고 적의인들은 경악성을 질렀다. "어검술이다. 대라혈망진(大羅血網陣)을 펼쳐랏!" 그와 동시에 이제 8명으로 줄어든 상대가 묵향을 빙 둘러쌌다. 대단히 숙련 된... 재빠른 동작이었다. 그덕분에 묵향이 두 번째 녀석을 노리고 휘두른 검 은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요절낼 수 없었다. 적의인들은 묵향을 빙 둘러싼 다음 철봉의 해골이 위로가도록 들고 서서는 주문을 외워대 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묵향의 검이 그중 한놈의 몸통을 향해 날아갔지만 상 대의 몸 앞에는 거대한 방패가 있는 것처럼 그의 몸을 건드리지 못하고 뒤로 튕겨났던 것이다. "뭐지... 이... 끈적한 기분은..." 적의인들은 일단 진세를 펼치기 시작하자 이상한 주문(呪文)을 더욱 빠르게 외워대기 시작했다. 이때 묵향의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되었다. 푸른색으로 불 타오르는 것 같은 형상을 띈 검이 묵향의 손을 벗어나자마자 사방에 부딪쳐 갔지만 끝내는 상대의 진세를 뚫지는 못했다. 묵향은 5군데를 찔러댄 다음 진 세의 반탄력 때문에 튕겨져 나오는 검을 회수하면서 후회스런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기랄... 이럴줄 알았으면 진법공부를 좀 해두는 건데..." 유백사부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것이 후회스럽기는 했지만 뭐 그렇게 크게 후회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상대의 진법안에 갖힌 다음 묵향은 이게 예사로운 진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던 것이다. 아직 최선을 다한 것은 아 니었지만 이기어검(以氣御劍)을 튕겨내는 것은 두 번째로 치고 무시무시한 요 기(妖氣)가 뿜어져 나오는 진법에 대해서는 들은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자.' 묵향은 쾌속하게 위로 몸을 날렸다. 이번은 최선을 다한것이었기에 적의인들 은 묵향의 움직임을 눈길로도 따라오지 못했다. 하지만 묵향은 2장 반정도 높 에서 무시무시한 힘에 튕겨져서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가 다시 튕기듯이 일어 섰다. 아래에서 엄청난 흡입력(吸入力)으로 당겨대는 것은 둘째치고 위에다가 무슨 눈에 보이지 않는 뚜껑을 해덮은 것 처럼 반탄력이 그를 튕겨냈던 것이 다. 흑의인이 안에서 몇번 요동을 치자 거의 진세가 깨어지기 일보직전까지 가는 것을 보고 뒤에 남아있던 적의인들의 우두머리는 다급히 무사들의 우두머리에 게 지시했다. "저자가 정말 대단한 고수인 모양이오. 본좌는 저녀석을 막을테니 그대는 나 머지를 처치해 주기 바라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세로 달려가서 진법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더니 외쳤다. "환형마종대법(幻形魔悰大法)을 펼칠테니 모두들 주의해라." 그러자 적의인들은 좀 더 굳어진 표정으로 전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흑의인과 싸우고 있는 동안 빙 둘러싸고있던 무사들이 각기 무기를 뽑아들고 는 마차를 호위하고있는 인물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적의인의 우두머리는 주위의 다른 적의인들이 외치는 주문과는 다른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며 그의 손을 앞으로 천천히 뻗었다. 그의 손에서는 검붉은색 기류가 쏟아져 나오며 흑의인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반구(半球)안으로 들어갔 다. 곧이어 흑의인을 기준으로 반구형태의 검붉은색 반구형이 육안으로도 보 일정도가 되어버렸다. 묵향은 적의인이 한명 더 가세한 다음 쏟아져 들어온 지독한 독기(毒氣) 때문 에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아무리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이런 지독한 독 기에서 오랜시간 버티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자 자신의 생각이 조금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 지독한 독 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힘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다. '이놈의 진세는 공력까지 빨아들이나? 더 이상 공력이 빠져나가기 전에 일격 을...' 묵향은 검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머리위로 검을 들어올린 자세에서 자신의 공 력을 끌어모아 검강을 뿜어냈다. 수백개의 검강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진 세에 충돌했다. 적의인들은 그 충격에 버티지 못하고 2장정도 뒤로 밀려나갔 다. 그들은 자세를 바로하기 위해 천근추(千斤墜)의 신법을 사용했기에 밀려 난 그들의 발은 반척은 땅속에 박힌 상태에서 밀렸으므로 땅바닥에 깊은 흔적 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그들은 주문을 멈추지 않았다. 일 단 묵향의 공세를 막아낸 적의인의 우두머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까지 가세한 대라혈망진이 깨질뻔 한 것이다. 거기에 상대는 환형마종대법까 지 펼쳤는데 그 지독한 사망시독(死亡屍毒)에도 불구하고 혈수(血水)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아니 아예 중독증상 자체를 보이지 않고있다는 것이 그 를 더욱 놀라게 했다. 묵향이 혈의인들과 싸우고 있을 때 마차 옆에서도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 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과거 초씨세가가 자랑했던 신예고수 초 류빈이었다. 그가 왜 도중에 행방불명이 되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했었지만 초씨세가에서 일언반구(一言半句) 없다보니 자연 기세가 수그러 들어버렸었다. 하지만 과거 칠룡사봉의 명단에 들어있었던 그였지만 기마무사 들의 우두머리 등 고수 10여명이 한꺼번에 무림의 도의(道義)를 무시한 채 집 단공격을 해대니 자신의 한몸 사리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백운옥의 경우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는 있었지만 실전경험이 너무나 미숙했고 거기에 어깨에 구멍까지 뚫려있다보니 자신이 지닌바 실력의 5성도 발휘하지 못하고 5명의 기마무사들의 참마도를 피하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백씨세가 의 여고수가 이모양이니 그 수하들이야 말할바도 못된다. 일대일이라면 상대 도 안되겠지만 7명이 50명을 상대하자니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에 적들은 장병(長兵)인 참마도나 창(槍)을 이용하여 간접공격을 퍼부을 뿐 직접적인 난타전을 벌이지 않고있었다. 죽자고 싸워봐야 사상자만 늘어날 것이니... 자신들은 현상유지만 한 채 이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고만 있으 면 든든한 후원자인 저 혈의인들이 까만옷 입은 녀석을 없애버린 다음 깨끗한 뒷처리를 해줄것으로 믿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류빈의 경우도 마교의 고수... 그것도 자신의 원수 우외총관 지옥혈귀를 보고 "그녀석"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위급의 고수가 이런 시골에 나타난 겉멋만 잔뜩 낸 저빨간놈들에게 질 리가 없다고 믿고는 시간을 끌고있었으니 서로간에 칼부림은 심하게 오고 갔지만 정작 다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평행선상을 달리는 대결이 벌어지고 있 었던 것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우연히 엄청난 실력을 가진 혈의인들을 만난 것은 묵향에게 재앙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시각을 뒤집으면 구휘 이후로 아무도 올라서지 못했다는 현경의 고수와 우연히 만난 혈의인들에게도 그것은 그들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최악의 재난이었다. 마교와의 치열한 전쟁 이후에 개발 된, 초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라혈망진을 조금의 여유만 준다면 깨버릴 정도로 막강한 무공을 가진데다가, 천령강시(千逞彊屍)조차 혈수(血 水)로 만들어버린다는 환형마종대법을 펼쳤는데도 끄떡없는 괴물.... 혈의인 들의 우두머리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정도로 놀랐지만, 자신이 감정을 드러 내면 수하들이 더욱 동요할것이 분명하기에 억지로 감정을 추스리며 마지막 발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는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죽건살건 그건 두 번째 문제였 다. "굉뢰사멸파(宏賴邪滅破)를 쓸테니 모두들 충격에 대비해랏." 그러자 혈의인들은 그 자리에서 2장 정도씩 더 뒤로 물러서며 온 힘을 다 기 울여 주문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만 실수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것 이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는 수하들이 대비태세에 들어서자 왼손의 손톱을 이용하 여 오른손 손바닥에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깊은 상처가 만들어지자 곧이어 피가 솟구쳐 흐르기 시작했다. 혈의인은 우두머리는 상처입은 오른손을 앞으 로 들어올려 흑의인을 가리키며 자신이 가진 모든 암흑의 기운을 끌어모아 주 문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저 머나먼 역천(逆天)의 대지(大地)에서 강림(降臨)하신 암흑의 마신(魔神) 이시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신 그 강대한 힘! 위대한 파멸의 힘을 생(生)과 사(死),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둠의 계약에 따라 이 몸에 부여 하소서." 그러자 그의 오른손에서 흘러내리던 피와 함께 검은색의 어둠의 기운이 뭉쳐 지며 검붉은 덩어리가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의 오른 손 끝부분에서 검붉은 덩어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있을 때,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흑의인의 검에서는 안개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 했고 그 안개같은 것은 급기야 혈의인들이 만든 대라혈망진과 충돌을 일으키 기 시작했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가 봤을 때 그것은 호신(護身)을 위한 무공 인 듯 보였지만 방어적인 개념보다는 공격적인 개념이 앞서있는 무공인 듯 보 였다. 그만큼 안개와 같은 것은 강력한 힘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혈의인들의 우두머리는 더 이상 흑의인의 행동에 신경을 쓸 처지가 못되었다.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분산되면 자신의 목 숨은 저 찢어죽일놈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이 굉뢰사멸파에게 먹혀버릴것이기 때문이었다. 안개같은 기운이 더욱 짙어질수록 혈의인들은 가중되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고 그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은 땅바닥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조금씩 조금씩 미세하게 뒤로 밀리고 있었다. 자신의 몸도 뒤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혈 의인들의 우두머리는 더 이상 굉뢰사멸파를 키우기 위해 시간을 끌다가는 무 슨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받기 시작했다. 그도.... 그의 수하들도 거의 정체불명의 고수 한명때문에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이다.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 "받아랏!" 검붉은 기운이 안개와 같은 기운을 뚫고 들어가며 흑의인을 향해 쏘아져 들어 갔을 때 그 흑의인도 그것을 눈치채고는 검붉은 기운을 향해 엄청난 강기의 세례를 퍼부었다. 강기다발과 검붉은 기운은 흑의인으로부터 불과 3장도 안되 는 거리에서 충돌했고 무시무시한 대폭발이 일어났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가 만들어낸 굉뢰사멸파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 과 함께 부딪친 강기의 덩어리 또한 그 파괴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았다. 그런 두 극강의 기운이 함께 부딪쳤으니 그 충격파는 정말이지 혈의인의 우두머리 나 묵향도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혈의인들의 우두머리는 대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피해랏"하는 말을 내ㅂ으며 뒤로 날렵한 신법을 전개하려고 했다. 그 무시무시한 폭발을 정예라고는 하지 만 당주급도 안되는 8명의 수하들과 외당당주인 자신만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그 혈의인의 우두 머리는 뒤로 빠지고 싶었다. 그리고 살고싶었다. 하지만 그 폭발의 충격파는 그가 "피해랏"하는 말을 내뱉을 시간도 주지 않고 그들을 덮쳐버렸으니 당연 히 신법자체도 펼칠 시간조차 없었다. 9명의 혈의인들이 피떡이 되어 사방으 로 튕겨나간 것은 천지가 진동하는 대폭발음과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 지독한 충격파에 사방에서 피튀기며 싸우던 기마무사들의 싸움도 어느새 중단되어버렸다. 그 엄청난 충격파의 회오리를 바라보며 백운옥이 핼쑥해진 안색으로 초류빈에 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진 거죠?" "글쎄..." 이때 뿌연 먼지구름 속에서 한 인영(人影)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세상에.... 저속에서도 생존자가 있다니..." 모두들 아연한 표정으로 그 생존자에게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가 누구냐에 따라 결판이 날테니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자욱한 먼지를 뚫고 다 헤어져서 너덜거리는 흑 의를 걸친 인물이 먼지투성이가 되어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러 더니 그 사내는 갑자기 시커먼 피를 토하면서 투덜거렸다. "우웩!.... 제기랄.... 그놈의 독기(毒氣) 정말 대단하군..." 그 모양을 보자 추격대의 우두머리는 싸울기분이 싹 달아나버렸다. 나중에 합 류했던 10명의 혈의인들은 무림에 그렇게 잘 알려진 집단에 소속된 무리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무공이 약하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신도 그들의 정체를 처음 들었을 때 턱이 빠지는 줄 알았을 정도였으니 까... 그런데 그자들을 모두 한꺼번에 헤치우고 투덜거리며 나오다니...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제기랄... 후퇴하랏!" 기마대가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는 장면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초류빈은 저 쪽에서 투덜거리며 걸어오는 흑의인을 보고 약간 어감을 비꼬며 말했다. "뭔가 있을거라고 하더니 정말 한가닥 하던 놈들이었던 모양이죠?" 흑의인은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한가닥 하기는 했지. 이봐, 옷있으면 한벌 가져다 줘." "왜요?" "이 옷은 독기에 쩔어서 자네들 근처에 가지도 못하겠어. 무슨놈의 독기가 이 렇게 강한지 옷이 완전히 삭아서 퍼석거릴 지경이니까..." 그러면서 묵향이 한쪽 옷섶을 슬며시 잡았는데 흙덩어리로 만들어놓은 것처럼 파삭거리며 바스러지는 것을 보고 초류빈이 백운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초 류빈은 여분의 옷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무언의 질문을 보낸 것이다. 그 러자 백운옥 또한 수하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또한 남자옷을 가지고 있 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수하 한명이 마차위의 짐보따리를 뒤져 옷을 가지고 다떨어진 흑의를 입고있는 자에게 걸어갔다. 묵향은 그자가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외쳤다. "잠깐... 옷만 이리 던져라. 죽고싶지 않으면..." 그는 옷을 뚤뚤 말아서 흑의인에게 던졌다. 그러자 흑의인은 모두가 보는 상 태에서도 거리낌없이 옷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오히려 너덜거리는 속옷까지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묵향 때문에 낮뜨거워 얼굴을 돌린것은 백운옥 쪽이었 다. 백운옥이 잠시 시선을 다른방향으로 돌린사이 수하가 던져줬던 백의(白 衣)로 갈아입은 묵향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를 보고 초류빈이 물었다. "피를 토하시던데... 내상약을 드시지요?" "아니야. 내상 때문에 피를 토한게 아니야. 체내로 침투한 독기를 모아 토한 것 뿐이다. 제기랄... 왠만한 독기는 그래도 버티는데... 이번거는 좀 심하더 군. 이제 출발하기로 하지." * * * 거대한 석실(石室)... 석실의 내부는 호화롭기 그지없다. 수많은 양각(陽刻) 으로 아로새겨진 벽화(壁畵)들이 생동감 넘치게 조각되어있다. 너무나도 사실 적이라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조각들... 피튀기는 지옥의 수라도(修羅圖) 가 너무나도 생동감있게 펼쳐져있어 피라도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다. 거기 에 그 방 주인의 격조(格調) 높은 취향에 어울리게 금, 은, 마노(瑪瑙), 유리 (琉璃), 홍옥(紅玉) 등 갖가지 보석으로 형형색색 단장을 했기에 그 조각들은 더욱 현실감이 나는지도 모른다. 바닥에서 5척이나 솟아있는 단상 앞에는 5개의 금으로 만든 향로(香爐)가 설 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향로 2장 뒷편에 높직하게 설치된 태사의 위에 거만 하게 앉아있는 인물은 아지랑이 같은 향연에 가려 단상 아래에서는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아마도 수하들에게 꽤나 신비한척 하는게 취미인 듯한 인물인 모양인데 그 인물이 지금 경악에 찬 노호성을 저 밑에 부복하고 있는 재수없는 수하에게 터트리고 있었다. "뭣이라고?" "진천왕을 돕기위해 파견되었던 외당당주이하 혈???대 대원 9명이 죽음을 당 했습니다. 하명(下命)을..." "도대체 흉수는 어떤놈들이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한명이라는 사실 외에는 정보가 거의...." "무어라?" "그들과 동행했었던 무사의 증언에 따르면 흑의를 입은 한명이 그들을 죽였다 고 했습니다." "그 흑의를 입은 자가 기습이나 암습을 가했나?" "정면대결이라 들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어떤놈이 정면대결로 그들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이냐? 모 종의 암기라도 사용했겠지... 그렇지 않다면 놈이 화경의 고수라 해도 깊은 내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클 터... 부근의 약방이나 의원을 이잡듯이 뒤져서라 도 그놈을 찾아내라." "존명!" * * * 아늑한 방안 다과(茶菓)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건만 화기애애한 담소가 오가는 것이 아니라 숨통이 막힐듯한 분위기였다. 누가 검을 당장 뽑아든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을정도의 괴괴한 분위기.... 둘의 복색은 저마다 달랐 지만 하나의 큰 공통점이 있었다. 마기(魔氣)... 두사람은 모두 마기를 은근 히 뿜어내고 있었다. 이때 탁자의 상석에 앉은 인물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오랜 친우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화급(火急)을 다투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은은한 자색(紫色)을 띄는 손을 품속에 넣어 봉서(封書)를 꺼 내어 건네주며 말했다. "그에게 전하라. 그리고 재삼 당부하지만 지금 행할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 함께 동행할 수하들에게도 최후의 순간까지 목적지를 말하지 말아야 한 다. 이 방을 나선다음 그 누구도 믿지 말라.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모르 기 때문이다." "만약 배신을 당한다면... 속하만으로는 좀..." "배신을 당한다면 서신이 적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기필코 없애버려라. 다 행히도 그에게 도착한다면 그 서신을 건네주며 그에게 말하라. 조만간에 본좌 의 성의(誠意)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 "존명!" "그대를 택한 것은 어떤 일이 닥쳐도 해낼 수 있을것이라는 것을 본좌가 믿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있어도 서신을 전하겠습니다." 따뜻한 가을햇살을 받으며 한 사내가 장작더미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 다. 군데군데 주근깨가 박혀있는 그리 잘생기지 못한 얼굴에 언제 씻었는지 땟물이 흐르는 얼굴로 헤 벌어진 입술 옆으로 침까지 흘리는 걸 보니 이제 조 는 단계를 건너뛰어 아예 꿈나라로 입문(入門)하는 모양이다. 그의 옆에는 아 직 패지 못한 통나무들이 반너머 쌓여있는 것을 보면 한참 장작을 패다가 잠 깐 휴식을 취한다고 기대 앉은 것이 탈인 모양이다. 고달픈 하인생활에 이런 기가막히게 달디단 휴식을 잠시나마 취하는게 무슨 큰일이겠냐고 모두들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문제가 달랐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의 앞에 못마땅한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끓어오르는 것을 참으며 점잖게 사내가 불렀지만 꿈나라에 한다리를 걸친 이 속편한 양반에게 그게 들릴 리가 없다. 하지만 꿈나라에 들어간 하인에게는 불행하게도 지금 그를 부르는 이양반은 평소에도 말보다는 손이 빠른 사람이 었으니... 퍽! 그 사내의 손이 매운 듯 완전히 얼굴이 반바퀴는 돌아갔지만 하인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황감한 표정으로 비굴하게 말했다. "크악... 나오셨습니까요? 나으리..." "쯧쯧쯧... 장작 겨우 그거 패놓고 잠이 오더냐? 이 밥버러지야. 빨리 그거 패놓고 부엌의 물통들에 물을 가득 부어놔라. 알겠느냐?" 말이 물통들이지 이 많은 식구가 한끼를 먹는데 들어가는 물이 작은량이 아니 었다. 평소에도 세명이 달라붙어서 묵직한 물통을 1시진은 죽자고 져날라야 하는데... 그 때문에 모두들 물운반을 싫어하기에 순번을 돌려가며 하고있었 다. 하지만 주근깨 하인같은 경우 물운반 대상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왜냐하 면 그는 이곳에 온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란 대단히 소중한 것이기에 독같은 것을 탈수도 있으니까 믿을 수 있는 하인들에게만 이 작업을 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주근깨 하인도 하지 않아도 될일을 벌칙으로 떠 맏은 것이지만 지어놓은 죄가 있기에 반발을 할수도 없는노릇이라 그는 체념 한 듯한 구슬픈 표정으로 답했다. "예...." 하지만 놀랍게도 그 사내가 멀리 사라지자 멍청하게 보이던 그의 눈에서 번쩍 하고 빛이 났다. 하지만 그것은 나타날때도 갑작스러웠지만 곧이어 사라졌다. '흐흐흐... 물이라... 이 기회를 만드려고 일부러 자는척 했는 줄은 몰랐을 걸....' * * * "제기랄..." 이곳은 정말 마음에 안드는 곳이다. 외곽의 담장을 따라 곳곳에 수많은 고수 들이 숨어서 정말이지 지독할 정도로 보초를 서고 있다. 물론 동편에 있는 창 고들에는 곡식이나 각종 값어치 있는 물건들이 많이 들어있으니 그정도 경계 는 해야겠지... 사실 이정도 감시망이 펼쳐져 있다면 도둑 걱정은 평생가도록 안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더욱 마음에 안드는 점이 있었다. 그것은 내당(內堂)과 외당(外堂)의 사이에 지독한 진법이 펼쳐져 있다는 점이다. 낮 동안의 서너시진 정도는 일부 진법이 해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부가 정 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길... 딱 통로 1개만 개방되는 것이다. 거기에 살 벌한 고수들 10여명이 배치되어 철저하게 출입인들을 감시한다. 도대체 내당 안에 금덩어리를 얼마나 쌓아뒀기에 저정도까지나 할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게 만드는 놈들이다. 아마 황궁이라도 이정도까지는 경계를 하지 않으리라... 그는 오늘도 산책이라는 핑계로... 아니지 이놈의 산책... '달 구경'이라는 말도 모두들 눈치챈지 오래다. 달 구경은 핑계고 그가 정연(鄭蓮)이 년하고 눈이 맞아서 쏙닥거리러 밤마다 나간다는 건 모르는 놈이 거의 없는 사실이었 으니까... 정연이는 마당이나 방청소 하는 계집인데 사실 두리뭉실하게 생긴 것이 조금 귀여운 맛은 있는지 몰라도 도저히 그의 입으로도 차마 예쁘다는 말은 할 수 없는 얼굴을 하고있는 하녀다. 이틀전에 이르러서야 그는 천신만 고 끝에 정연이의 입술에 가벼운... 정말이지 가벼운 뽀뽀를 할 수 있었다. 근본(根本)이 천생(賤生)이라 사내들하고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니 닳고 닳아 가지고 왠만한 칭찬으로는 넘어오지 않아서, 정말 마음속으로 찔리는 것을 느 끼며 눈 꽉 감고 예쁘다는 칭찬을(부처님 용서하세요. 저는 그날 거짓말을 하 고야 말았답니다.) 해줘야만 했다. 그놈의 입술이 뭔지... 그날따라 왜그리도 위에서 뚫어지게 노려보는 달님에게 미안하던지... 역시 거짓말은 하면 할수 록 버릇되니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는 천천히 정연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누가 봐도 산책 하는 것처럼 점잖을 빼면서 주위를 찬찬히 훑어보며 느긋하게 걸었다. 그리고 오늘은 달도 거의 누가 씹어먹었는지 자그만해져 있었지만 뭐 며칠 더 지나고 나면 다시 언제나처럼 동그래질테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쨋든 작 더라도 달은 떠있었고 그는 그것을 본다는 핑계로 나온것이니까... '떠그랄... 모두들 내가 왜 여기있는지 다 알고있겠지...' 그가 걸어가는 길 왼편으로는 1장 반은 됨직한 담장이 둘러져 있다. 내당과 외당 사이에는 두 개의 담이 쌓여있고 담과 담 사이에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 다. 그가 걸어가는 길의 왼편 담을 통해 으스스한 살기(殺氣)가 느껴지는 것 이 하인들 사이에 나도는 말이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 담 주변으로는 2장 (6m) 정도의 길이 나있기에 한밤에 산책하기에 제법 그럴 듯 했다. 그가 정연 이의 입술을 훔친 곳도 담에서 2,3장 떨어져서 세워진 건물들 사이의 으슥한 장소였으니까... 계집은 일단 남이 안보는 으슥한 곳으로 유인을 한 다음 누 가 들어도 거짓말임이 확실한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꼬드겨도 간단히 넘어오 는 걸 보면 바보는 바보인 모양이다. 언제나와 같은 하루가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검은 그림자 하나 가 담안에서 튀어나오며 손살같이 암흑의 대지를 가르며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사실 그 검은 그림자들 이 움직이는 것을 이 달밤에 볼 수 있다면 이미 하인노릇은 그만둬도 될 것이 다. 어디를 가도 칼차고 밥먹을 수 있을테니, 이놈의 힘든 하인노릇을 할 필 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눈치채지 못하고 걸어가던 그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땡땡땡... "암습이다!" "놈을 놓치지 마랏!" 곳곳에서 횃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그의 앞이나 윗쪽으로 20여개의 검 은 그림자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그것도 알아보지 못했다. 대 신 그는 정연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난리가 났으니 그 눈치없는 년을 방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멍청하게 서성거리다가 잘못 걸리 면 없는죄를 뒤집어쓰고 시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달음박 질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눈앞에 다섯명의 흑의인들이 살 기를 풍기며 서있었던 것이다. "헉..." "네놈은 누구냐?" "길지(佶止)라 하옵니다요, 나으리. 짐나르는 하인이굽시요." "어디를 가는 길이냐?" "저... 달구경하러..." "뭣이?" 흑의인들 중의 한명이 언제 다가왔는지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다가온다 싶자 벌써 그의 몸은 상대의 우왁스러운 손아귀에 잡혀 공중에 대롱거리고 있었다. "이놈이 노부를 능멸하려 들어?" 이때 또다른 흑의인이 한명 나타나면서 그는 상대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 다. "그는 아닙니다. 요즘들어 계집종하고 눈이맞아서 달구경하는 놈입니다. 매일 이시간에 주위를 배회하니까요. 그리고 저쪽에서부터 걸어오는 것을 제가 보 고있었습니다. 저하고 둘은 여기 남았고 나머지는 이자의 앞쪽으로 지나간 검 은 옷 입은 놈을 쫓아갔습니다." 그 보초의 보고가 거의 끝나기도 전에 5명의 흑의인들은 보초가 가르킨 방향 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가 버렸다. 도대체 왜 갑자기 5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 궁금해하는 듯한, 멍청한 표정을 하고있는 하인 한명을 뒤로 남겨 두고... * * * 아직도 잠이 들깬 목소리였지만 어딘지 초조함이 감추어진 목소리였다. "그놈은 잡았습니까?" 그러자 설무지 앞에 서있는 흑의인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즉시 답했다. "예. 하지만 생포하지는 못했습니다. 품속에 지니고 있던 독으로 자결했습니 다." "흐음... 뒤를 캐기는 힘들겠군요. 하기야 마교 아니면 무림맹의 짓일테니... 뭐 상관은 없겠지요. 참... 그는 어찌 되었나요?" "발견 했을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즉사(卽死)였습니다." "사인(死因)은 뭐였지요?" "비수(匕首)때문이었습니다. 놈들도 독따위로는 안되는 것을 아니까 비수에 강한 미혼약(迷昏藥)과 지독한 춘약으로 알려진 대라환락분(大羅歡樂粉)을 ㅆ 은 것에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하나를 더해서 그것들을 비수에 발라 사용했습니다.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겁니다." "호위들은?" "모두들 자고 있었기에 죽은자는 없습니다. 사실 그를 꼭 호위할 필요는 그들 에게 없었으니까요. 놈이 암습을 가하기 전에 수면제(睡眠劑)를 물에 섞었기 에... 아주 천천히 작용하는 것을 미량 섞었기에 즉시 반응이 나타나지않은 데다가 일단 잠든 사람들은 일어나기 어려웠고... 또 보초들은 심한 졸음이 올 정도였으니... 대응이 한박자 늦어질 수밖에 없었지요. 어쨋든 그놈을 잡 아놓고 보니까 외당에서 하인노릇하던 녀석인데 온지 3개월 정도밖에 안되어 물 나를 처지는 아니었는데 낮에 졸다가 들켜서 물을 운반하라는 벌칙을 받은 모양입니다." "흐음... 어쩌면 살수를 도운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 벌준 녀석부터 시작해 서 외당쪽의 의심나는 인물들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내당쪽에 우물이 완성될때까지 외당에서 들여오는 물을 철저히 조사하세요. 또다시 이 런 일이 벌어질수도 있으니까요." "예. 암습을 한 놈이 도주하는 중에 붉은색 신호탄을 하늘로 쏴 올렸습니다. 모두 세 개의 신호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푸른색과 노란색이 나는 것이 그 놈의 품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놈도 살아서 도망가기는 그른줄 알 았을테니 성공여부를 가지고 어떤 약속을 한 모양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요? 사실 하급 무사들에게는 지금 타주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흐음... 타주께서 건재하다고 수하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할수도 없는 입장이니... 중상(重傷)으로 합시다." "예?" "타주께서 중상을 당하셨다고 소문을 내세요. 그리고 태백산 비밀 분타에도 이 사실을 알리시오. 염왕적자 대장에게 될 수있다면 빨리 그를 찾아 오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믿을만한 고수 몇 명을 이쪽으로 돌리고 하위급 고수들은 100여명만 남기고 모두들 빠른 시일내에 태백산으로 보내세요. 최악의 경우 조만간에 적의 기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들어오시오" 백운옥은 초류빈의 허락에 방문을 살며시 열고는 실내로 들어왔다. 묵향은 탁 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초류빈은 침상에서 일어나서 탁자쪽으로 걸어 오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백운옥이 자리에 앉자 초류빈이 궁금한 듯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예. 내일 오후면 강수에 도착할 수 있을테고... 그 다음 일정이 없으시다면 소녀를 조금 도와주실수는 없겠는지요?"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그러자 백운옥은 마음에 안든다는 듯...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묵향을 의심스 런 눈초리로 한번 쏘아본 다음 입을 열었다. "신검대협(神劍大俠)에 관계된 일이에요."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묵향의 눈섭이 꿈틀했다. 하지만 묵향은 대화에 흥미가 없다는 듯 계속 술을 마셨고 초류빈이 놀라운 듯이 반문했을 뿐이다. "신검대협이요?" "예. 오래 전 서문세가에서 우연히 지도(地圖) 한 장을 입수했어요. 하지만 그걸 해독할 수 없었기에 예로부터 지식이 뛰어난 남궁세가에 의뢰를 했어요. 남궁세가는 몇 달에 걸쳐 그 지도를 해독했고 그 결론은 놀라운 것이었죠. 신 검대협의 무덤이 있는 위치..." "신검대협의 무덤이라구요? 정말입니까?" "예. 그걸 알아낸 남궁세가에서는 서문세가 모르게 그들이 그 무덤을 찾으려 고 했고 뒤늦게 눈치챈 서문세가와 암중으로 충돌이 있었죠. 그러면서 시간을 끄는 동안 그 사실이 조용히 무림에 퍼진거에요. 지금은 꽤 많은 문파들이 그 사실을 알고있어요. 신검대협이 남긴 것이라면 모든 무림인들의 유산이 아니 겠어요? 그래서 어떤 한 문파가 그걸 독점하지 못하게 막는사이 그 소문은 더 욱 퍼져버려 지금은 쓸만한 정보력이 있는 문파들은 다 알고있는 지경에 이르 러버렸죠. 마교쪽에서도 마수를 뻗쳐오는 것 같고... 어쩌면 그걸 두고 무림 사상 최악의 혈투라도 벌어질 지경이라구요." "하지만 누군가가 이간질 하려고 일부러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요?" "아니에요. 진짜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요. 지금 거의 다 찾았는데 지독한 진법을 겹겹히 쳐놨어요. 그중에는 오래전에 사라진 것들도 있어요. 원체 방 비가 대단하다 보니 한 문파가 조용히 삼키기는 어렵게 되어버렸고, 그렇다고 딴 문파에게 그걸 양보하자니 아쉽고... 그래서 지금은 일부 문파들끼리 뭉쳐 서 서로간에 암중대결을 펼치는 중이죠." "그런말을 들은적이 없었는데..." "그거야 당연하죠. 어느정도 소문이 퍼져가던 시점에서 무림맹이 나서서 소문 을 차단했으니까요. 지금 상황은 무덤 주변은 무림맹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이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그 외곽은 사파연맹을 주축으로 하는 세력이 지키고 있죠. 아직은 진법 때문에 무덤에 진입하지 못한관계로 서로간에 균형이 이루 어지고 있지만 진법이 파괴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엄청난 충돌이 벌어질거요." "맞아요. 그래서 아직까지 진법을 파괴하지 않고 있죠. 진랑이에게 들으니 묵 향 대협께서는 천마신교에 몸담고 계시다구요?" 이제서야 묵향은 술마시기를 중지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백운옥을 바라봤다. 보통 그냥 마교라고 부르지만 진짜 마교도 앞에서는 천마신교라고 부른다. 왜 그러냐 하면 일부 마교인들의 경우 마교도라고 불리는걸 아주 싫어하기 때문 이다. "그래서?" 퉁명스런 대답에도 불구하고 백운옥은 정중히 말했다. "한가지 궁금한점이 있어서 그럽니다. 왜 이번일에 천마신교가 아직까지 참가 하지 않고있느냐 하는거에요. 천마신교내에 세력쟁탈전이 벌어져서 외부에 신 경쓰기 어렵다는 것은 어느정도 들었지만 현경에 이른 고수가 남긴 유산... 그 유산이 걸린 싸움인데 아직까지 거기 참가안하고 있다는 것은 좀 수상한 냄새가 나서 그러죠. 그 정보를 모를리가 없는데..." "크하하하하하...." 그러자 묵향은 한바탕 광소(狂笑)를 토해낸 뒤 뉘집개가 짖었느냐는 듯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예상외의 반응에 백운옥과 초류빈은 서로의 얼굴을 힐끗 보며 상대의 생각을 잠시 읽었다. 왜 답을 안하고 광소를 터트릴까... 시비(侍婢)의 말로는 마교 의 인물이라고 했고 또 그것을 진영공주에게 확인했으며, 혈의를 입은 인물들 을 향해 달려나가는 속도... 그리고 최초의 혈의인을 죽일 때 사용한 무공... 아무리 봐도 어검술 같이 보였지만... 그리고 낮에는 그 강기의 폭풍속에서 살아나오는 것까지 봤으니 무공도 고강함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마교 내에 서도 꽤나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마교란 원래가 거의 십중팔구 는 무공의 고하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는 단체니까... 그 때문에 지금 백운옥 이 삐딱하게 상대가 나오는데도 줄곧 존대를 해오고 있는 것이고... 그런데 그런 그가 질문을 받고 광소를 터트린다면 그 이유는? 웃음을 통해 자신의 표 정과 속셈을 숨기고 그럴듯한 대답을 마련할 시간을 벌려고? 아니면 자신은 그따위것 모른다는 말인가? 그도 아니면? "웃지만 마시고 대답을 해보시죠?" 놀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에 냉랭한 표정으로 백운옥이 말했다. "크흐흐흐..." 묵향은 술을 입속에 털어넣은 후 입을 열었다. "별거 아냐. 너는 본좌가 누군지 아느냐?" "....." "...." 백운옥과 초류빈이 서로 얼굴만 멀뚱이 바라보며 무언의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보아 대답은 들어보나 마나였다. 저녀석들은 묵향이라는 이름만 달랑 알고있 을 뿐이니까... "좋아. 그렇다면... 그렇게 정보력이 좋다면 지금 마교의 내부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이번의 질문에는 자신이 있는 듯 백운옥이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는 지금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는 중이지요. 교주와 부교주 간에 쟁 탈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어지는 비웃는 듯한 물음... "교주와 부교주라면?" "한중길 교주와 장인걸 부교주요. 그리고 얼마전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그 들간의 쟁탈전 때문에 외부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진 사이에 간도크게 섬서분 타의 타주가 반란까지 일으켰다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그 덕분에 재미있는 사 실이 밝혀졌죠. 겨우 타주급이 반란을 일으켜도 진압을 하지 못할정도로 지금 내부사정이 엉망이라는 걸 말이에요." "크하하하하하... 걸작이군. 완전히 소설을 쓰고있어..." 또다시 광소를 터트리면서 술을 따르는 걸 보면서 얼굴이 시뻘개진 백운옥이 따지듯 물었다. "모두들 다 알고있는 걸 그런식으로 얼버무린다고 누가 속을줄 알아요?" "크흐흐흐... 좋아. 뭐 그렇게 알고있다면 그게 진실이겠지. 나도 더 이상은 할말이 없군. 참. 한가지만 노부가 알려주지. 바로 그 반란일으킨 타주의 이 름은 묵향이란 녀석이야." "에엑..." 둘은 경악에 찬 눈으로 묵향을 바라보다가 잠시 정신을 차린 백운옥이 질문을 퍼부었다. "그럼 묵향 대협이....." "대협같은 소리 하지마. 협(俠)자만 들어도 몸에 두드레기가 나는 사람이라 구. 그냥 타주라고 불러." "하지만 묵향 타주님. 지금 반란중이라면 아주 일이 많으실텐데 여기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요? 총타에서 진압하러 올지도 모르고..." "그럴 걱정이 거의 없으니까 이러고 있지. 그리고 구휘의 무덤 껀은 여태 몰 랐다는 것도 있지만 노부는 남의 무덤 뒤지는 취미는 없어. 총타가 움직이지 않는건 이유야 뻔하지만 노부가 말해줄수는 없으니 총타에 가서 물어보라구. 클클클..." 아직도 방금 묵향이 던진 충격에서 못깨어난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백운옥이 말했다. "어쨋든 동행하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뭐... 지금은 할 일도 별로 없으니까 일단 공주를 인계하고 따라가 볼까..." * * * 챙... 챙.... 갑자기 왠 칼부딪치는 소리냐구? 그야 당연히 묵향이 공주를 강수에 있는 어 림군 사령부에 인도했으니 일이 해결된 것이 아니라... 또다시 복수를 하려는 공주마마의 야심찬 계획에 따라 완전무장한 어림군들이 묵향일행을 공격하기 시작한 소리지. 처음 거의 1만의 어림군이 주둔중인 이곳에 도착한 다음 공주는 돈달라고 따 라온 얄미운 묵향을 잡아서 주리를 틀 목적으로 사령관 임정 장군에게 명하여 수천의 완전무장한 병졸들을 풀었다. 연병장에서 대규모 패싸움이벌어졌고 연병장 앞 사열을 위해 높직히 쌓아놓은 단 위에서 공주마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묵향이 포박당한채 끌려오기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공주의 바램과는 달리 흑의인의 무공은 정말이지 대단했고 여기저기 쓰러져 신음하는 병졸들의 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묵향도 후환거리를 만들지 않기위해 아직까지 검을 쓰지는 않고있었지만 그의 돌주먹이나 돌다리 에 맞은 병졸들은 뼈다귀가 부러진 채로 뻗어서 못일어서고 있었다. 묵향은 더 이상 여기서 푸닥거리 해봐야 좋을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저쪽에서 구경중인 공주마마를 향해 날아올랐고 그 모습을 본 병영의 고위 장수들 10여 명이 묵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공주의 바램과는 달리 그 군관들마저 땅바닥에 길게 드러누워버렸으니 이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공주가 도망가려는 찰나... 그녀의 멱줄은 묵향 에게 잡히고 말았다. "끼약..." "흐흐흐... 감히 노부를 능멸하려고 들어? 아직도 맛을 들봤다 이거지. 그래 오늘 내가 죽나 네 년이 죽나 보여주지." 쿵! 퍽! 퍽! 손으로 패고.. 발로 밟고..차고... 오뉴월의 개패듯이 공주를 패고있는 묵향 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다. 이유는 묵향이 무공의 고수였고, 그의 손에는 공 주마마가 잡혀있으니 일단 묵향이 공주를 죽여버렸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아 직 죽이지는 않았으니... 공주는 사실상 묵향의 '인질'인 셈이었고 그렇다보 니 손쓸도리가 없었다. 그러니 주변에 널리고 널린 어림군들은 개맞듯이 맞고 있는 공주를 보며 '제발 빨리 죽어버려라.'하고 기원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 었다. 그래야 공주를 패고있는 저놈에게 공격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제발... 살려줘요... 엉엉..." 매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입술이 터져나가고 양쪽 눈두덩이에 퍼런 멍이 들고... 맞다가 맞다가... 공주는 도저히 이렇게 맞아 죽을수는 없다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는 태도를 바꿔서 '애걸'이라는 작 전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비참한 몰골로 손이 발이되도록 싹싹 빌고있는 공주를 몇대 더 쥐어박아 준 다음 묵향은 더 이상 팰 값어치도 없다는 듯 노려보며 한마디 하는걸로 오늘 의 '구타(毆打)'를 끝마쳤다. "또다시 약속을잊어버리고 까불면 그땐 진짜 맞아 죽을 줄 알아. 황궁 아무 리 구석에 숨어있어 봐라. 노부가 찾아내지 못하나..." "예.. 예... 소녀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세요... 엉엉..." "좋아. 내력을 끌어모아서 패지는 않았으니 골병까지는 안들었을거야. 노부도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봐." 갑자기 묵향이 공주를 향해 손을 내밀자 눈물에 젖긴 했지만 의아한 표정으로 공주가 물었다. "예?" "돈내놔. 황금 100냥 준다고 했잖아." 공주는 저쪽에서 사태를 관망중인 임정 장군을 눈짓해서 불렀고 그가 묵향에 게 황금 100냥짜리 전표를 건네줬다. 묵향은 그것을 품속에 쓱 집어넣은 다음 쓰러져서 아직도 울고있는 공주를 일으켜 세운 다음 멍이든 손등에 가볍게 입 맞춤을 한다음 놔주면서 말했다. "흐흐흐.. 즐거운 여행이었어. 그럼..." 묵향 일행은 유유히 강수를 벗어날 수 있었다. 1만에 가까운 병사들을 무장시 켜 보냈었지만 그곳을 뚫고 들어와서 공주를 개패듯 팼는데... 또다시 공주를 어딘가 피신시키지도 않고 보복을 감행할 멍청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 다음 에는 공주를 황궁 구석에 '숨겨놓은' 다음 묵향을 때려잡을 계획을 짜고있겠 지... 묵향은 길을 떠나며 마차안에 타고있는 초류빈, 백운옥 등 여러 인물들의 무 언(無言)의 비난(非難)을 읽을 수 있었다. "왜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묵향을 향해 혐오와 비난의 눈길을 보내는 것이 당연했다. 예로부터 말이 있 지 않은가? 여자에게 강한 남자는 변태밖에 없다구.... 그런데 세상에 백주대 낮에 여자를... 그것도 대송제국의 공주를 수많은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패듯 두들겨 패다니... 그들로서도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재빨리 우두머 리를 포획하는 묵향의 그 엄청난 무공을 존경스런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었 다. 하지만... 꼭 여자를 그렇게 쥐잡듯 패야 했을까? "정말 왜그러는 거야?" 더 이상 참지못하고 묵향이 성질을 터트렸다. 모두들 '뭔가 혐오스러운 어떤 것'을 보는 듯한 눈길로 계속 힐끔거리니 아무리 성질을 참고있으려 해도 힘 들었던 것이다. 이런 새까만 후배놈들이 감히 자신이 누구라고 저따위 눈빛으 로 보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왜그러냐?" "꼭 그렇게 무공도 모르는 여자를 때려야..." "뭐야?" "때려야 되었느냐구요." "당연히 주제를 모르는 계집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두들겨야 지." "하지만..." "하지만은 뭐가 하지만이야? 우리가 지금 황군들한테 잡혀있냐?" "아뇨." "그럼 된거잖아. 왜그리 잔말이 많아." "하지만 상대는 공주라구요. 후환이..." "후환따위 두려워했다면 처음부터 건드리지도 않았어. 더 이상 까불면... 험 험..." 묵향은 황급히 뒷말을 중지했다. 사실은 '그 에비라도 죽여버리면 조용해지겠 지.'하고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그 '에비'라는 존재가 '황제'와 동의어(同義 語)라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뭐 나중에 황제를 죽이더라도 지금 여기서 떠들면 괜히 재수없으면 '모반(謀叛) 죄' 내지는 '황제 시해(弑害) 모의(謀 議) 죄'를 뒤집어 쓸수도 있었다. "까불면?" "갈... 네년이 노부의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질 배분이냐? 나중에 보면 알게될 거야." 급기야 약간 당황한 묵향의 입에서 상소리까지 나오자 백운옥은 입을 다물었 다. 하지만 묵향의 강렬한 살기에 눌려서... 또 상대의 지위를 생각해서 입을 다문것이지 정상적인 이해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불만은 그녀의 눈 동자에 남아있었다. 한바탕의 욕지거리까지 동반한 대화가 오갔기에 마차안은 정말 쥐죽은 듯 고 요해졌지만... 솔직히 그 조용함이 부자연스러운 침묵에 의한 것이었기에 모 두의 마음은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묵향이 옆으로 손을 뻗어 두려움에 떨고있는 백운옥의 시비(侍婢)를 다둑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놀란 모양이구나. 노부의 성질이 원래 그러니까 안심하려무나." 원래가 과거부터 묵향은 무림인들 처럼 힘있는 자들이 아니라면 꽤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모르는(그래서 과거에 양녀까지 들였을 정도였으니까.) 초류빈이 나 백운옥의 눈이 약간 커졌다. 이 마교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릴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자를 개패듯 패고... 또 어림군들 수십명의 뼈다귀를 부숴놓은 냉혈 한이 이런 말을 갑자기 한다고 해서 안심할 멍청한 여자는 한명도 없을 것이 다. 오히려 더욱 몸을 떨며 묵향의 손길을 피하는 것을 보고 묵향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거뒀다. 그런다음 백운옥에게 말했다. "피리(笛)나 거문고(琴)가 있느냐?" "예." "잠시 빌려 다오." 갑자기 또 왠 변덕을 부리는건지 알수가 없었기에 조금 주저하기는 했지만 백 운옥은 마차의 뒤쪽 좌석 구석에 곱게 포장되어있던 작은 거문고를 꺼내 묵향 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묵향은 현(絃)을 군데군데 튕기며 잠시 조율(調律)을 하더니 금을 뜯기 시작 했다. 묵향의 금 솜씨는 정말이지 놀라웠다. 거의 음악에 있어 백지라고 할 수 있는 초류빈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할 나위도 없었다. 거문고의 음은 낮고 부드럽게 울리면서 마차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덮혀주었고 모두의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줬다. 백운옥은 묵향이 금을 타기 시작하자 거의 깔보는 듯한 표정을 지울 수 없었 지만... 그 표정은 곧이어 놀라움으로 바뀌었고... 또 조금 있다가 그 표정도 없어졌다. 그만큼 상대의 금음은 너무나도 부드러웠고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 었던 것이다. 거의 1각여를 흔들리는 마차안에서 그렇게 뛰어난 연주를 하던 묵향의 손이 멈춘 것은 시비의 몸이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되었을 때였 다. 이번에는 전과는 또 다른 어떤 존경과 감탄... 뭐 그런것들을 담은 눈으로 자 신을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 묵향은 짐짓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금을 백운옥에게 건네주며 퉁명스레 말했다. "이따위 거문고를 들고다니다니... 험험... 백씨세가는 그렇게도 돈이 궁한모 양이군..." 묵향은 약간 정말 약간 쑥스러운 김에 죄도없는 거문고와 백씨세가를 욕한다 음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하는 척 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자랑스런 마교도로 서 방금전 조금 외도(外道)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 * * 백운옥이나 초류빈은 백씨세가에 도착하기 까지 거의 2주일에 가까운 여행을 함께하며 묵향이란 자신들이 처음 접해보는 마교도를 주목해서 관찰했다. 초 류빈이야 묵향에게 자신의 생을 의탁한 처지였기에 만약 주인감이 아니라면 뺑소니칠 생각이었고 백운옥은 말로만 들었지 처음보는 '사악한 마교도'를 처 음봤기 때문이었다. 어쨋든 그 둘이 대단한 호기심으로 묵향을 관찰한 결과 몇가지를 알 수 있었 다. 확실히 들은대로 마교도는 마교도였다. 어떤 관습이나 체면따위에 얽매이 지 않는 자유분방함. 거기에 무림에 통용되는 문파간의 존중따위는 아예 없었 다. 그건 함께 백씨세가로 여행을 시작한지 4일째에 주변에는 그래도 이름이 나있던 '진무문(晉武門)'이라는 정파계통의 제자 12명이 비록 면사를 썼다고 하지만 꽤나 미인인 듯한 소저와 그의 시비를 보고 옆에서 조금 농을 걸어오 며 장난을 쳤던 것을 3명의 다리를 부숴놓고 4명의 팔뼈를 부숴버린 것이다. 세상에... 그것도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망설임 없이.... 조금 뒤미쳐서 그녀 일행을 따라 그녀의 호위무사 5명이 말과 마차를 대놓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누구에게 추태를 벌인것인지 눈치챈 그들이 먼 저 슬쩍 도망쳐버리고 말았지만... 그때 묵향의 잔인했던 얼굴은 백운옥과 그 시비(侍婢)의 뇌리에 아주 오랫동안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꼴같지 않게 무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잘해주는 편이었고 특히나 자신의 수하로서 들어온 초류빈에게는 상당한 신경을 써줬다. 그의 무공을 봐 준다든지 하면서... 그래서 하루는 백운옥이 자신보다는 자신의 시비에게 더 욱 따뜻하게 대해주는 묵향에게 조금 신경질이 남을 느끼고 한마디 한적이 있 었다. "진랑이에게 마음이 있으신거 같은데... 오늘 밤 빌려드릴까요?" 뭐... 주인이 계집종과 하룻밤 함께 잤다는 것은 정말 농담꺼리도 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였기에 묵향은 가볍게 받아들였다. "아니. 필요 없다." "어떻게 보면 여자한테 약하신거 같기도 하고... 강하신 거 같기도 하고... 도저히 감이 안잡히는데... 좀 알려 주실래요?" "흠... 감히 노부의 속마음을 알아내려고 시건방지게 굴지만 않는다면 누구와 도 잘 지낼 수 있지. 그래서 너하고는 사이가 좋을수 없는거야." 그러면서 묵향은 경악한 표정의 백운옥을 뒤로하고 목욕하러 가버렸다. 백씨세까지 제법 오랜 시간 진행된 여행으로 백운옥과 초류빈, 시비, 그리고 경호무사 5명은 묵향의 괴상한 성격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 디로 말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난 공과 같은 성격이라는 결론에 모두들 아예 묵향을 건드리지 않는게 최상의 길이라는 대응책까지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묵향의 성격에 가장 빨리 적응한 것은 시비였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백씨세가에 들어가 시녀노릇을 해왔기에 눈치가 빨라 상전의 기분변화를 재빨 리 알아채는 재주를 익혔던 것이다. 마음좋은 상전이라면 상관없지만 성격이 모난 상전이라면 곧바로 따귀가 날아오는 것이다. 그런점에 미뤄보면 아예 가 식이라곤 거의 없는 묵향의 성격이 밑의 사람이 모시기에는 최고의 성격이었 다. 조금 기분이 꾸름한 것 같으면 접근을 안하면 그만이요, 조금 기분이 좋 은 것 같을때 주위를 돌아다니면 운 좋으면 금음(琴音)이라도 얻어들을 수 있 었다. 그 다음으로 적응한 무리들은 호위무사들...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니 주위에 가지만 않으면 된다는 결론. 멀찌기서 죽은 듯이 조용히 있으면 찾아와서까지 시비를 거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로서는 찾아와서까지 행패를 부리 지 않으니 무슨짓을 하든지 그냥 멀찌기서 구경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가장 묵향의 성격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인물이 백운옥일 것이다. 그녀 는 백씨세가의 금지옥엽... 여태껏 아쉬운 것 없이 자신을 떠받들던 무리들에 게 감싸여 키워진 인물이니 제멋대로인 이녀석과 도저히 한자리에서 공존할 수 없는 성격이라고 할까... 사사껀껀 간섭하며 성질 부리다 이틀전에 따귀한 대 맞은다음 정신을 차리고 요즘은 아예 묵향에 대해 신경을 끄고있었다. 마차가 제법 큼직한 장원(莊園)에 이르렀을 때 일행의 여행도 끝이났다. 예전 에 백가장(白家莊)이라 불렸으나 그 규모가 커지자 세가(世家)로 불리기에 이 른 것이다. 천명이 넘는 식구를 거느리게 된 백씨세가는 일대에서 가장 거대 한 무력단체였고 그 무력을 기반으로 각종 사업을 벌여 그 수입으로 더욱 기 반을 튼튼하게 다져오고 있었다. 사악함과 공포적인 힘의 대명사(代名詞)인 마교같은 경우도 음으로 양으로 수 많은 사업채를 거느리고 있다. 그만큼 무림과 상권(商權)은 뗄레야 뗄수가 없 는 관계다. 사람이란 동물이 흙이나 공기만 먹고 움직일 수 없기에 그건 당연 한 결과였다. 자신들의 상권을 지키려면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고 또 그 무력 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니 각 문파가 뛰어난 무 공을 가지고 있던, 그렇지 못하던 그건 문제가 될게 없었다. 문제는 자신들의 상권을 아무에게도 뺏기면 안되었고 될 수만 있다면 남의 상권을 뺏아야만 했 다. 상권이 뺏기면 그만큼의 돈이 줄어들고... 그렇다면 그들이 유지할 수 있는 무사의 수도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상권은 왜 뺏기느냐... 대부분의 경우 정당한 상거래에 의한 경쟁 때문에 뺏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상권을 놓고 문파끼리의 칼부림을 해서 서로의 구역을 뺏아나가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무 림에서는 수많은 다툼이 벌어졌고 오늘의 명가(名家)가 내일은 거지소굴로 변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점을 감안해 본다면 과거 한낫 백가장 정도로 불렸던 무리의 한귀퉁이를 차지한 작은 장원이 일천여 식솔을 거느리는 거대문파로 발전한 것은 역대 가 주(家主)들의 뛰어난 능력을 대변해 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서오너라." 육척에 가까운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흰색의 문사(文士)차림을 한 40대 정도 로 보이는 인물이 마차에서 내리는 백운옥을 반겼다. "다녀왔어요, 아빠" "뉘시냐?" 물론 마차에서 꾸역꾸역 내리고 있는 묵향과 초류빈을 보고 한 말이었다. "이분은 초씨세가의 탈명도(脫命刀) 초류빈(楚柳濱) 소협, 그리고 저분은 묵 향 분타주에요. 이쪽은 저의 아버님이세요." "오.. 반갑구려. 어서 들어오시오." 백운옥의 소개로 백씨세가의 부가주 분광창(分光槍) 백상(白橡)대협이 가볍게 포권했고 그에따라 묵향, 초류빈이 마주 포권했다. 묵향이야 이런 시골문파 따위 알바가 없었지만 그래도 정파에서는 큰 문파였는지라 초류빈이 아는척을 했다. "대명을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허허허.. 안으로 듭시다. 이번에 좋은 차를 구했다오." 귀하기로 이름난 용정차의 향긋한 향이 퍼져가는 가운데 주객(主客)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운옥의 전음으로 묵향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이라도 알게된 백상 대협으로서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자리였다. 정파로 이름높은 백씨세가의 마당안에 마교도가 들어오다니... 하지만 백상 대협은 감히 발작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상대의 실력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던 것이 다. 만만해 보인다면 곧장 병신을 만들어 내쫓겠지만... 영 만만해 보이지가 않는다. 거기에 초류빈까지 거느리고? 괜히 일을벌여 망신을 당할.. 아니 어 쩌면 목숨을 날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허허허... 이번 여행에서 혹시 여식이 실례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 "차를 조금 더 드시겠습니까?" "..." 이쪽에서 떠들어도 묵향은 닥치고 있었고 당연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초류빈과 백운옥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맞춘다고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한쪽에서 인상쓰 고 가만히 있으니 분위기가 날 수 없었다. 이윽고 차를 다 마신 묵향이 쓱 일 어서면서 말했다. "먼저 가서 좀 ㅆ어야 겠소. 방을 좀 안내해 주시오. 그리고 노부를 찾는 사 람이 혹시 있으면 노부에게 지체없이 알려주면 고맙겠소." "... 그러지요." 묵향이 나가고 나자 백상 대협은 딸에게 질문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전음으로 말씀드린 대로에요. 우연히 만나서 왔는데... 단편적으로 제가 듣 기로는 아무래도 이번 구휘대협의 무덤에 마교가 관여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묵향 분타주의 말로는 마교에서는 구휘대협의 무덤에 별로 신경을 쓰 는 것 같지않구요. 저 묵향 분타주의 무공 수준으로 봤을 때 마교의 아주 고 위층의 인물인 것 같기도 하니까 꽤 신빙성 있는 말 같아요." 백상 대협은 딸의 말을 시큰둥하게 듣고 있었다. 당연히 그럴것이 서열 높은 자가 하는 말이라고 그게 모두 사실일 가능성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거짓말 이 더 많을수도 있지. 이때 백운옥의 말을 초류빈이 옆에서 보충했다. "아마도 그 추리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와 대화를 나눠서 알아 본 결과로는 그의 지위가 최소한 마교서열 20위 안쪽이라는 점이죠. 그리고 이번 마교에서 벌어진 섬서분타 반란의 핵심인물이라는 사실이죠. 오랫동안 같이 여행을 해 본 결과 최소한 그가 거짓을 말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당연 히 진실중에 얘기하지 않은 부분도 많겠지만요." 그러자 백상 대협이 경악해서 되물었다. 마교에서 20위 안쪽이라면 그 무공은 엄청났기 때문이다. "마교 서열 20위 안쪽이라고?" "예." "그의 이름이 묵향이라고 했나?" "예." "특이한 이름인데... 아무래도 가명이 아닐까?"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행동으로 봤을 때..." "알아보면 알 수 있겠지... 거기에다 반란의 주모자라면..." "참... 이번에 아주 특이한 인물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진영공주 전하를 납 치하려고 했던 무리들 중에서 검붉은 혈의를 입은 고수들이었는데... 그때 저 묵향 타주와 싸웠죠. 저도 그때 딴 무리들과 싸운다고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 만... 8명 정도가 묵향 타주를 빙 둘러쌌는데 무슨 진법같이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빙 둘러싼 상태에서 이상한 주문같은거만 외우고 있더군요. 그러다가 우 두머리인 듯한 자가 그들에게 합류한 다음 손에서 검은기운을 뿜어냈는데 그 게 묵향 분타주를 감쌌었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지나고 나니까 엄청난 대 폭발이 벌어졌구요. 그 안에서 묵향 분타주가 걸어나오더니 지독한 독기라고 그러더군요. 완전히 옷이 다 삭아서 떨어지는 걸 보면 과연 독하긴 독한 모양 이었습니다. 제 설명이 좀 두서없지만 혹시 이런 무공을 쓰는 인물들이 강호 에 있습니까?" "혈의, 주문, 검은기운, 독기, 대폭발이라..." "참, 그 혈의를 입은 무리들의 무기가 특이했습니다. 한 5척 정도 길이에 윗 부분에 해골 같은 형상을 붙여놓은 철봉(鐵棒)을 사용했습니다." "해골모양을 붙여놓은 봉? 그렇다면 출사봉(出邪棒)인가? 하지만 그건 혈교의 무기인데... 정말 해골 모양이 맞나?" "예.. 해골 모양이 맞습니다. 그 부근이 원체 독기가 짙어 가져오지는 못했지 만 갈갈이 찢어진 그들의 시체 사이에서 봤죠." "갈갈이 찢어진 시체?" "대폭발이 있었다고 했잖습니까? 묵향 분타주를 중심으로 엄청난 폭발이 있었 죠. 그 때문에 혈의인들은 모두 그 폭발에 휘말려서 죽었기에 온전한 시체라 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지나고 나니까 그 시체도 독기 때문에 흐 물거리며 녹아버렸으니까요." "흐음... 오래전에 황궁에 짓밟힌 다음 또다시 행적이 묘연하더니... 또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모양이군. 공주 전하를 납치하는 무리에 혈교가 있었다면 이 유는 하나밖에 없겠지." "뭐에요? 아빠?" "진천왕과 혈교의 합작.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구나. 혈교가 원하는 것은 무림. 진천왕이 원하는 것은 황실... 둘이 잘 어울리지. 같은 중원을 원 하지만 서로의 목적이 다르니 합작도 가능하겠지. 진천왕은 혈교의 힘을 필요 로 하고, 혈교는 난세를 이용해서 자신의 세력을 더욱 넓히고자 할것이니 까... 그리고 기존의 무림세력들도 황실을 편들지 진천왕을 편들자는 없을테 니 서로의 이득이 합치된다고 봐야지." "과거 제가 듣기로는 마교와 싸워 마교 세력의 4할을 부쉈다는 게 혈교 아닙 니까? 그덕분에 마교는 거의 30년 동안이나 세력을 보충하기 위해 엄청난 고 생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혈교가 이제 슬슬 활동을 시작한다면 전과는 다른 어떤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요? 최근의 전투에서도 마교와 거의 맞먹는다 는 찬황흑풍단이 겨우 혈교의 분타하나 부수는데 2000명이 넘게 죽고 7000명 이 넘는 사상자(死傷者)를 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정면승부를 겨눈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칠지..." "글세... 하지만 그건 조금 다르지.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과 강시와 사람 이 싸우는 것은 아주 차이가 크지. 사람은 최소한 싸우다가 지치기도 하고 상 처가 생기면 그게 전력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 하지만 강시는 달 라. 강시들을 상대하려면 무공이 약한 사람은 오히려 방해만 돼. 무공이 아주 강한 사람들만, 강시를 일검에 토막을 칠 수 있는 사람들만 나서서 공격을 해 야 해. 그래야 간단히 강시를 물리치지, 어중이 떠중이 다 뭉쳐서 공격하면 그들이 도리어 방해가 되어 고수들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기에 피해가 더욱 커지는 거야. 만약 고수들이 많은 마교가 그들을 공격 했다면 그렇게 대단한 피해를 당하지도 않았을거다. 어쨋든 마교는 거의 5000 명이나 되는 극강의 정예를 가진 문파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힘없이 무너져버린 찬황흑풍단과 마교가 예전에는 거의 동급으로 비교 되었을까요?" "그거야 그당시 흑풍단을 이끌었던 옥영진 대장군의 능력. 그리고 강력한 호 신강기의 역할을 해내는 두터운 갑주. 우수한 장비. 그것이 그때의 찬황흑풍 단의 명성을 만들었던 것이지. 하지만 강시와 사람은 다른거니까... 물론 그 때 상대가 마교였다면... 그것도 넓은 평야에서 붙었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 졌을거야." "그렇다면 마교란 단체는 아무도 손도 못 쓸 정도로 강하다는 말입니까?" "아니지. 마교는 혈교와 달리 강시 따위는 쓰지 않아. 그러니 정파에 밀려서 활개를 치지 못하는 거지. 사람대 사람이라면 어중이 떠중이라도 숫자가 많은 쪽이 어느정도는 유리한 법이니까. 그리고 마교와의 투쟁이 계속되면 은거했 던 기인들까지 모습을 드러내니 그렇게 마교에게 고수의 숫자에도 밀리는 것 이 아니고... 아니 그분들까지 합한다면 고수의 수는 정파가 월등하다고 봐야 하겠지. 대신 그쪽은 한덩어리로 뭉쳐진 상태고 이쪽은 숫자는 많지만 흩어진 상태. 어떤 큰 위기가 닥치지 않으면 뭉칠 생각을 안하니까 마교의 무리들이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는 거야. 그리고 고인물은 썩는 이치와 같아서 정파의 세상이 된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별의별 파렴치한 놈들이 다 나오게 되니... 그게 마도의 무리들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그냥 이런식으로 양분되어 서로 를 견제하는 편이 좋지." * * * 묵향은 목욕을 끝낸 다음 의자에 앉아 탁자위에 놓인 술병을 집어들고는 천천 히 마시기 시작했다. 묵향이 안내된 작은 별채는 제법 아담하게 꾸며진 조용 한 장소였다. 가구들도 그런대로 좋은 편이라 이런 예정에도 없던 객에게 주 어진 방임을 생각한다면 꽤나 백씨세가는 풍족한 살림살이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앉은 의자에서 바라다 보이는 정원은 제법 세심하게 가 꾼 화초들이 우거져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묵향은 천천히 일어서서 정원으로 내려섰다. 예로부터 정원이야 말로 살수들 이 숨어서 암살하기 딱 알맞은 장소지만 묵향의 촉수에는 그 어떤 살수의 기 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정원사가 열심히 가꾼 아담한 정원만이 묵향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묵향은 천천히 정원의 한쪽 귀퉁이에 모 여있는 국화들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국화꽃은 피지 않았지만 싱 싱하면서도 흠집없는 푸르른 잎사귀가 자신은 가을에 아름다운 국화를 피울것 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묵향은 기억이 돌아온 다음에도 국화를 좋아하는 취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예 전처럼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한 살 수를 기억하게 해줬기에 예의상 다른 것들 보다는 좋아한다고 봐야할까... 국 광이 지긋이 정원의 화초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쪽에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묵향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40대 초반은 되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의외의 장소에서 사람을 만났다는 듯 조금 놀라는 듯 하더니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여기는 거의 사람의 출입이 없는 곳인데... 여기에 묶게 되셨나요?" "예. 죄송하지만 누구신지?" "저는 백상 부가주의 안사람입니다." 그녀는 처음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힐수는 없기에 약간 돌려서 말했 고 묵향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냈다. 노가주는 이미 늙었고 그의 부인 도 거의 은퇴직전일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앞에 있는 이 중년의 부인이 백씨 세가를 이끌어가는 안주인인 모양이었다. "아.. 예. 실례를 했군요. 저는 이번에 여기 놀러온 묵향이라 합니다." "이곳의 정원은 아주 아름답지요. 그래서 저도 한번씩 마음이 갑갑할 때는 여 기에 와보곤 한답니다. 남편이 이곳에 자리를 잡아드린 걸 보면 아주 귀중한 손님이신 모양이군요." "별로 귀중한 편은 아닙니다. 바쁘실텐데... 저는 이만 물러나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정원입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기를..." 묵향이 이렇게 노부인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무림에서 남자 고수는 정말 많다. 하지만 여자 고수는 많지 않은 이유는 남편과 부인이 둘다 무공에 미쳐버리면 살림은 망하게 되는게 정석적인 이치. 남편이 무공에 미치 면 부인은 내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내조(內助)... 말이 좋아 내조지 남편은 연공실에 틀어박혀 있을때(무림인이 아닌 경우 글공부 따위 한다고 세월가는 줄 모르고 있을 때) 부인은 가정을 이끌어 가게 된다. 그렇기에 부인이 남편 보다 무공이 강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만약 있다면 그 여자는 정말 대단 한 사람이 아닐 수 었었다. 남편보다 몇배는 뛰어난 오성을 지니고 있는 여자 라야만 남편보다 조금 더 뛰어난 정도로 무공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살림살이를 책임지고도 약간씩의 연공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히 부지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교육을 받는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 이라고 하는 허울은 좋지만 실상은 적성에 안맞아도 무공을 뼈빠지게 익히던지 아니면 어디에 쓰일지 알지도 못하는 공부를 쌍코피 터지게 하든 지... 그래서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는게 목적인 불쌍한 족속들이다. 묵향 처럼... 하지만 여자는 완전히 다르다. 공부나 무공은 부차적인 것이다. 명가 의 여자들이라면 어릴때부터 그녀의 어머니가 수많은 하인들과 고용인들, 어 떤때는 노예들까지 거느리며 각종 사업을(농사도 사업이니까..) 처리해 나가 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자신도 딴 집에 시집가게 되면 그 일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어릴때부터 장부작성, 정리라든지 산학(算學=算 數) 그리고 어디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싸게 구입하느냐 라든지 돈을 빌릴곳 은? 또는 차용증 작성 요령 등등 실생활에 관계되는 수많은 교육을 받는 것이 다. 그녀도 어쩌면 시집을 잘간다면(?) 수백명의 하인을 관리감독하면서 집안 일을 처리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자가 한 집안의 살림을 처리하게 되는 그 순간 즉 시집가는 그 순 간부터 그녀의 고달픈 인생이 시작된다. 그게 언제쯤 멈추게 되느냐 하면, 자 신의 며느리를 볼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다. 완전히 집안의 경제권을 쥐고 흔든 다는 막강한 힘이 그녀에게 주어지긴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만 약 남편이 상인이라면 그 남편이 외부 거래의 일정부분을 처리해 주어 한결 부담이 덜해지지만 그래도 수없이 많은 물건들이 드나들기에 그것을 유지, 관 리, 감독함에 있어 일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게 된다. 그렇기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시집간 다음 과로사(過勞死)했는지는역사에 나오지 않 아도 모두들 알고있는 사실이다. 물론 첩(妾)이라든지 뭐 그런 이유로 받아들여진 여자라면 위와 같은 사항에 해당이 없다. 그런 여자들은 대부분이 화류계(花柳界)의 여인들로 남자를 성 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언어적 기교, 안마술, 방중술(房中術)이라든지, 노래, 춤, 악기 등등 실생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잡기들만 배운 여인들이다. 그 렇기에 그런 여인들에게 부인(婦人)이 해야 할 일을 시킨다면... 며칠 되지도 않아 야반도주할 가능성이 컸다. 이 첩이라는 것도 다 부인이 모든 경제를 책 임져 주기에 글만 읽다가... 또는 무공만 익히다가, 친구들과 놀다가, 더 이 상 할 일이 없어진 자들이 계집에 혹 해서는 끌어들이는 거였으니까 말이다. 마누라는 집안을 이끈다고 죽어나가는 줄도 모르고서... 이런 이유가 있기에 안살림을 직접 책임지게 되는 부인을 묵향은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만약 무공의 고하로만 모든 것을 생각한다면 그녀 또한 그녀의 남 편과 같은 취급을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녀는 무공이 아닌 살림을 책임지 는 것이다. 설무지 처럼 말이다. 사실 그녀가 책임지게 되는 부분들 중에 상 당부분 즉 무력하고 연관되는 부분은 설무지 같은 어떤 인물이 책임지겠지만 그래도 집안일은 부인의 소관이니 그 일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이게 공짜인력은 결코 놀릴수가 없다는 남자들만의 이론에서 만들어진 아주 편리한 노동력 착취 방법이었으니까 말이다. 머리 좋고, 일 잘하고, 아랫사람 잘 부 리도록 어릴때부터 교육 받았고... 그걸 알고도 놀릴 바보가 있겠는가? 당연 히 남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매일 힘들다는 내색도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 릴 수밖에 없었다. 묵향은 관리라든지.. 산학 등 원체 그런쪽으로는 공부를 안해서 무식했기에 그런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에게는 우대를 해줬 다. 그렇기에 부인은 묵향으로부터 깎듯한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날 저녘 모두들 모여서 식사를 했고 묵향은 따로 자신이 묵게 된 별채에서 식사를 했다. 묵향은 혼자서 먹는것이 편하다고 빠졌다. 원래 그런 것은 객으 로서 조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낮에 묵향이 보여준 비 사교 적인 태도덕에 감히 모두들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조금 예의 에 어긋난 행동을 고맙게 생각하며 묵인했던 것이다. 모두들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자 식당에서 맛있게 요리된 음식들이 날라져 들 어왔다. 그때 차로 입술을 적시던 조연(趙蓮)은 살며시 입을 열었다. "다른 손님도 한분 더 계신 것 같던데 왜 안보이나요?" 조금 당황한 백상 대협. 그의 아내 조연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 하 는, 또 가치있게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여자였다. 그녀는 비단 채찍 하나로 그의 집을 다스려 나가는 부드럽고 따스한 아내요, 자애로운 어머니였고, 또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집안의 지배자였다. "아... 그는 따로 식사를 한다고 했소." "그 별채에 묵게 하신걸 보니 꽤 중요한 손님인 것 같은데 그러면 실례지요." 그러자 백상 대협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변명했다. "그... 그 손님의 성격이 워낙 괴팍한지라 그렇게 하라고 일렀소. 부인은 너 무 신경쓰지 마시구려." "뭐가 괴팍하다는 말입니까? 저도 낮에 만나ㅂ는데 아주 친절하고 마음씨 고 운 분이시던데... 가가께서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시다니 오늘 이상하시군요." "허흠... 그게 아니라 부인... 그는 마교의 인물이요. 마교의 인물치고..." "사람을 그렇게 한꺼번에 잡아서 말하면 실례지요. 아이들도 있는데... 정파 라 자처하는 자들 중에서도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역으로 마교라 해도 좋은 인물들도 있겠지요. 깊이 사귀어 보지 않고 단정을 내리는 것은 안된다고 평소에도 자주 말씀하시는 가가께서 언행일치(言行一 致)를 안하시다니..." "험험... 부인 그만 하시구려. 손님도 와 계시는데..." "아, 참 초류빈 소협을 잊었군요. 그래 가내(家內) 평안 하신가요?" "예. 모두들 평안 하십니다." "요즘도 자당(慈堂;남의 어머니)께선 정정하신가요?" 초류빈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는 듯 싶었지만 곧이어 대답했다. "예..." 초류빈의 어머니 독수랑랑(毒手郞郞) 왕운하(旺雲河)는 그 괄괄하면서도 괴팍 한 성질로 유명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초류빈의 아버지 옥면일랑(玉面一郞) 초풍천(楚風天)이 명호대로 그 잘생긴 얼굴로 무림에 초출한 것을 나꿔 채어 거의 강제로 결혼한 왈가닥이다. 초류빈의 아버지가 한번씩 눈두덩이가 퍼런 상태에서 손님들을 만나게 되다 보니 자연히 그 소문이 퍼져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한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두 살 연하의 남편이 자기 부인에게 구타당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10년쯤 전에 초풍천은 아이들이 장성한 것을 보고 지금쯤이면 아이들 낳고 살 림한다고 바빠서 자신보다는 무공이 떨어질거라고 판단하고 최후의 반항을 시 도했다가 묵사발이 난 다음부터는 아예 반항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었다. 하지 만 이제 그녀의 나이도 당년 73세에 이르렀으니 조금 나아진 점이 있나 해서 조연은 안주인 답게 약간 빙 돌려서 물은 것이다. 하지만 초류빈의 난감해 하 는 표정을 보니 이 나이에 이르러서도 독수랑랑은 성격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모양이었다. 허기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7년은 더 기다려 봐 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 * * "이곳에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나?" 백씨 세가에 들어온지 7일이 되었을 때 묵향이 초류빈에게 물은 말이었다. 그 동안 묵향과 초류빈은 이곳 별채에서 그야말로 식객(食客)생활을 해오고 있었 다. 초류빈은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묵향은 여기 온 다음부터 줄곧 이 별채 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당연히 주위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 자신을 적대(그는 마교도 였으니까.)할지도 모르는 인물들 틈 에서 1주일 동안 아무런 질문도 없이 명상이나 하며 지낸다는 것을 보면 묵향 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초류빈은 이제서야 질문을 하나? 하는 표정으로 묵향에게 말했다. "오늘이나 내일쯤 오대세가의 수장인 서문세가에서 사람이 온답니다. 서문세 가에서 구휘대협의 무덤 지도를 제일 먼저 입수했었으니 그들에게 우선권이 있는 것은 당연하죠. 일단 서문세가에서 사람이 오면 그들과 의논을 한 후 백 상대협이 행동을 시작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때까지 기다리셔야 겠는데요." "뭐 기다리지. 그건 어려울게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지금 반란 중이시라면서 이러고 계셔도 됩니까?" "쓸데없는 걱정 하지마. 급하면 어련히 연락이 오려고... 몇 명 믿는 녀석들 이 있으니 갑자기 망하지는 않을거야. 또 망하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 뭐가 걱정인가? 남아 도는데 시간인데..." 초류빈은 정원의 땅바닥 위에 돛자리 하나를 깔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젊 은 모습의 묵향을 보며 생각했다. '겉모양으로 봤을때는 정말 남아도는게 시간처럼 보이는군. 한 60년은 끄떡없 이 살 수 있을 것 처럼 보이니까... 그런데... 저자의 진짜 나이는 몇살일까? 그리고 진정한 무공의 깊이는...?' 이때 저쪽에서 시녀 한명이 다가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아씨께서 잠시 오시라고 하십니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묵향은 방금의 대화를 끝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있었으므로 그냥 갈까 하 다가 한마디 한 다음 그는 시비의 뒤를 따랐다. 시비가 안내한 곳은 화려한 거실이었고 그곳에는 백운옥 외에도 새로운 인물이 4명 더 앉아 있었다. 그중 한명이 벌떡 일어서며 먼저 인사해 왔다. "오오... 오랜만이야. 정말 반갑구만... 가출했다더니 의외로 생생 하구만." 초류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비천검(飛天劍) 혁련운(赫蓮運)은 황룡문이라는 이름없는 작은 문파의 제자였 다. 하지만 천운을 타고났음인지 과거 기연을 통해 능비영이란 선배 고인으로 부터 그 이름도 높은 청월검법의 비급을 얻어 오랜 수련 끝에 10성까지 익혔 다. 거기에 무당파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고수를 만나 안계를 넓힌 후 그의 검 술은 더욱 정진하여 지금에 이르러서는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최강이라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였다. 그의 나이는 43세였고 한 살 어린 초류빈과 형제의 의 를 맺고 있었다. 원래 뛰어난 명가가 아니라 그런지 조금 말이 거친게 흠이었 지만 인간성은 칠룡중에서 최고였으며 현재 황룡문의 부문주였다. "오랜만이에요, 류빈 오빠." 혁련운에 이어 20세 안팎으로 보이는 정말 아릿따운 여인이 인사를 건네왔다. 그녀의 이름은 매영인(梅瑛仁)으로 무림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별호는 없었 지만 사봉(四鳳)의 일인이었다. 오무제(五武帝)의 유일한 여인 옥화무제 매향 옥의 손녀로서 방년 31세였다. 그 할머니의 무공수위로 짐작해 보건데 그녀의 무공도 엄청날 것이라는게 세인들의 추측이었다. "그래... 안 본 사이에 더욱 예뻐졌구나." "고마워요." 고맙다는 뻔뻔한 대답이 주저없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자신이 예쁜줄은 잘 아 는 듯... "안녕하셨습니까?" 이번에는 매향옥의 옆에 앉아있던 옥면공자(玉面公子) 능소천(綾紹天)이 정중 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무당파의 속가제자로 대단히 뛰어난 외모와 어딘가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었다. 태극검법(太極劍法)의 달인으로 뛰어난 무예의 소유자 였으며 피리나 금에도 소질이 대단했고 그를 이용한 음공(音 功)에도 조예가 있는 인물이었다. "오. 반갑군. 오랜만이야. 자네하고 피리 실력을 겨눌 만한 인물이 여기 있으 니 나중에 만나 보게나." "예.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쪽은?" 그러자 능소천이 사근사근하게 옆에 서 있던 영준하게 생긴 ㅈ은이에게 말했 다. "인사하시게. 탈명도(脫命刀) 초류빈(楚柳濱) 대협이시네." "처음 뵙겠습니다. 불초 서문길(西門佶)이라 합니다." "오호... 서문 세가에서 젊은 기재가 계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젊으신 줄은 몰랐소. 만나서 반갑소." 초류빈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렇게 후기지수의 최고봉이라는 칠룡사봉의 네 분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이 군요.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녀석이... 네녀석도 중간에 문파에서 뛰쳐나가지만 않았다면 칠룡에 계속 들어가 있었을거 아냐? 네놈이 빠져나간 덕분에 내가 들어가긴 했지만... 그 래도 이나이에 칠룡에 들어있다니..." "참. 형은 언제 장가 드실겁니까? 연세를 생각하셔야죠." "네놈이나 생각해. 나는 아직도 생각없다." "왜요?" "하루라도 무공단련을 게을리하면 과거 무당파에서 그 괴인과 싸울 때, 배위 로 그자의 도(刀)가 훑고 지나가던악몽을 꾸게 된다구. 그게 얼마나 섬ㅉ한 지 너 아냐?" 초류빈은 미소하며 응대했고 다른 인물들은 처음 듣는 말인 듯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에이... 농담도... 그게 언제적 일인데?" "너같으면 생각이 안나게 생겼냐? 바로 내 뱃가죽 2촌 앞으로 그 전설의 어검 술이 통과했는데... 검강이 내 뱃가죽을 훑고 지나가는 그 느낌... 지금 생각 해도 식은땀이 바짝바짝 난다구. 그자의 도(刀)가 짧지만 않았다면 내 목숨은 그때 끝난거였어." "그래도 덕분에 형 검술솜씨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덕분은... 제발 하루라도 편안하게 푹 자고싶을 뿐이야. 도저히 그때 생각을 하면... 아마도 평생 편안한 잠을 자기는 틀린 것 같다." "그래도 형이 빨리 장가들어야 또다른 후배가 칠룡에 들어가죠. 형 때문에 지 금 밀려있는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몇 명인줄 알아요? 마흔 셋이나 되어가지고 아직도 칠룡에 들어있다는 건, 아마 고자..." 그러자 혁련운은 두 여자를 재빨리 훑어보며 얼굴이 벌개져서 떠들었다. "너 죽을래? 그러는 네놈은 왜 안가냐? 마흔 둘이나 되어 가지고... 피장파장 이니 헛소리 하지 말라구." "그런데 왠일로 이렇게..." "그거야 당연히 구휘대협의 무덤 때문이지. 몇가지 의논할 점도 있고 해서 모 두들 모였지. 그런데 백소저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사람하고 같이 왔다 며? 그런데 그분은 왜 안데리고 오고 너 혼자 오냐?" "예. 조금 사정이 있어서요. 나중에 소개해 드리죠." "그사람의 수하가 되었다며? 뭐하는 사람이냐? 백소저는 너한테 들으라던 데..." "그것도 나중에 말해줄께요. 그런데 의논할게 뭐에요? 뭐 새로운 정보라도 들 어온게 있어요?" "조금 있으면 백상 대협이 오실거야. 그건 그때 이야기 하기로하지." 아직 백상대협은 그림자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으므로 좌중의 대화는 계속 이 어졌다. 이때 초류빈과 혁련운의 대화를 들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매영 인이 갑자기 혁련운에게 물었다. "혁 오빠! 분명 어검술이라고 했어요?" "응." "그사람 어떻게 생겼어요?" "흑의를 입은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아마도 반노환동했을 테니 나이는 모르겠다.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못생긴 얼굴도 아니구. 그런대로 이목굽이가 반듯한 인물이었지. 짤막한 검은 빛깔이 나는 도(刀)를 썼지. 그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말이야. 내가 검을 뽑아들자 본척도 안하더 니 검법을 펼치니까 그제서야 검을 뽑더군. 청월검법이라면 상대해줄 값어치 가 있다는 듯이 말이야. 그때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고 꼬리를 내렸어야 했는 데, 그게 잘 되냐? 그때 막 청월검법을 10성까지 익혔던 때라 간크게도 달라 들었지. 그때 그자의 도가 갑자기 불타오르는 것 처럼 이글거리는 푸른 빛을 내더군. 그 상태로 도를 휘둘러 오는데 단 1초에 내 검과 호신강기가 박살이 났지. 정말 무시무시했어. 하지만 그의 도(刀)가 짧았기에 그 도가 이렇게(손 짓을 하며) 내 배 앞쪽을 통과했지 뭐냐. 하지만 그 어검술에서 나오는 검강 의 여력 때문에 호신강기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뱃가죽이 푹 파였지. 그때 정 말 죽는줄 알았다니까..." "설마... 그가?" "뭐? 그 괴인이 누군지 알고 있냐? 하기야 무영문이라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게 더 적은 문파니까... 그사람이 누구냐?" 혁련운은 정말이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음성으로 말했지만 매영인은 그 정보의 정확도에 조금 자신이 없는 듯 힘없이 말했다. "나도 잘 몰라요. 사실 문파의 깊은 일까지는 잘모르니까요. 전에 할머니하 고 총관이 주고받던 대화중에서 생각나는게 있어서 말이에요." "뭔데?" "그렇게 초식을 무시하고 어검술을... 쓴다면 현경의 고수가 아니겠어요?" "그렇다고 봐야지." "구휘 대협 다음에 나타난 현경의 고수가 한명 있어요." "뭐라구?" "마교에 1명 있었죠. 놀랍게도 탈마의 고수라고 들었어요. 탈마면 현경과 마 찬가지라고 들었으니 그도 현경급의 고수라고 봐야 하겠죠?" "그렇지. 하지만 나는 마교의 고수가 그렇게 엄청난 무공을 깨닳았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는데?" "그거야 당연하죠. 아마도 성격상 문제가 좀 있는 인물이었던 모양이에요. 그 래서 그런지 10년도 전에 마교에서 제거되었으니까요. 그가 활동했던 시기로 보면 혁 오빠가 만난 괴인이 그일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혁련운이 말했다. "제거 되었다고?" "예. 예전에 얼핏 듣기로 그는 기억을 상실해서 떠돌아 다닌다고 했어요. 마 교에서 탈출할 때 엄청난 중상을 입은 모양이에요. 그래서 모든 무공을 잊은 상태에서 황궁에 포섭된 모양이었어요. 황궁무공을 다시 익혀 화경급의 실력 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를 포섭할 방책을 할머니하고 총관하고 의논하 는 걸 우연히 들었었거든요." "그 외에는?" "그것 말고는 없어요. 탈마라는 말이 들려서 잠시 엿들은 것 뿐이니까요." * * * 백상 대협과의 의논이 끝난 다음 그들은 출발 날짜를 내일로 잡고는 백상 대 협이 마련해 준 숙소에 짐을 풀었다. 사실 내일 떠날 것이니 짐을 풀것도 없 었지만 몇가지 필요한 것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서로들 차를 마시며 담소 를 나누다가 능소천이 초류빈에게 물었다. "저하고 피리솜씨를 겨루게 할 사람이 있다면서요? 잠시 시간도 나는데 풍류 를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와아..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그사람도 정말 금을 잘타던데, 능소천 소협의 실력이 뛰어나시단 소문은 들었거든요. 그분과 함께 저희들의 이목을 좀 넓혀 주세요." 사실 옥면공자 능소천의 피리솜씨와 거문고 솜씨는 널리 소문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는 시서화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기에 모두들 그를 풍류공 자라고도 불렀다. 모두들 이렇게 나오자 초류빈은 그들을 묵향이 있는 곳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마교도라고 선전을 하지는 않겠지.' "뭐... 좋겠지. 따라들 오게." 묵향은 초류빈이 떠날 때 그 상태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정원 한 구석에 돗자 리를 깔고 그 위에 가부좌를 튼 채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웅성거리면서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는 천천히 일어섰고 그의 뒤쪽으 로 검대에 매달려 있는 묵혼검이 얼핏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혁련운이 중인 들과 떠들며 별채의 문을 통해 들어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에게 수없 이 악몽을 꾸게 만든 장본인이 여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모습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그때는 낡은 흑의였는데 지금은 새옷이었다. 독 때문에 백씨 세가에 와서 새로 사입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와 똑같은... 아니 꿈에서 나타나던 얼굴보다 조금 더 젊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검이나 분위기는 똑같았다. '제기랄...' 혁련운이 갑자기 멈춰서서는 흑의인을 노려보며 식은땀만 흘리고 있자 모두들 궁금해 했다. "왜그래요?" 초류빈이 말하자 그제서야 현재 자신이 취하고 있었던 행동을 인식하며 혁련 운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황룡문의 부문주가 공포에 얼어있었다면 누구에게나 그 면목이 서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쪽 묵향 타주(舵主). 이쪽은 차례로 서문길, 혁련운, 매영인, 능소천입니 다. 모두들 칠룡사봉에 들어가는 최고의 후기지수들이죠." "만나서 반갑소. 나는 시끄러운건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딴곳으로 가보겠소. 이왕 오셨으니 편히 쉬시기 바라오." 묵향이 천천히 별채의 문쪽으로 걸어가자 혁련운은 마지막 남은 용기를 다 짜 내어 다급히 묵향에게 말했다. "잠깐.. 묵향 타주." 묵향이 뒤로돌아보자 말을 이었다. "혹시 우리 구면이 아닌가요?" 묵향은 고개를 갸웃 하더니 말했다. "글세... 나는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렇다면 이건 기억이 나시나요?" 주위 사람들이 말리기도 전에 허리에서 검을 쭉 뽑더니 검초를 시전했다. 그 걸 본 다음 묵향은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말했다. "청월검법? 같기도 하군. 그런데 뭘 기억하라는 건가?" "묵향 타주는 무당파에서 청월검법을 사용하는 사람과 싸운 적이 없습니까?" 그러자 모두들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묵향과 혁련운을 둘러봤다. 묵향은 씩 미 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물었으면 간단한 걸 가지고 돌려서 말하니 뭔 소린지 알수 가 있어야지. 당연히 나는 무당파에도 한번 갔었고 그때 청월검법 사용하던 애송이에게 본때도 보여줬지.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그러자 모두들 경악에 찬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혁련운이 떠듬떠듬 말했다. "비무를... 비무를 청합니다." 그러자 묵향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절한다. 나는 비무따위 안한다. 대결이라면 몰라..." "대결 이라구요?" "목숨을 걸 각오가 있나? 이 일초에? 그렇다면 검을 뽑아라. 죽여줄테니..." 혁련운의 검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저히 상대도 안된다는 걸 잘 안다. 놈은 삼황의 한사람이었던 뇌전검황을 저세상에 보낸 인물이다. 그 건 무당파의 장문인에게 그때 듣지 않았던가. 하지만 혁련운은 지금 자신이 위축되어 버리면 다시는 검을 못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놈의 악몽 때문에 거의 사는 것 같지가 않은데... 여기서 더욱 위축되면 검 을 버리는 길밖에 없었다. 순간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떨림이 천천히 멎기 시작했다. 단 1초라도 자신있게 펼치고 싶었다. 그때 자신이 그렇게 믿었던 검초가 산산이 부숴지며 느꼈던 공포감... 하지만 이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련을 했던가. 단 1초만 이라도 자신있게 저 괴물같은 상대에게 펼칠 수 있다면 이제부터 편안하게 잠 을 잘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호오... 기세가 제법이군." 혁련운이 '단 일초만...'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세를 잡자 묵향이 내뱉은 말 이었다. 묵향도 천천히 검을 뽑았다. 묵혼검의 그 검은 검신이 천천히 검집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의 경과를 약간 대화를 통해 알고있었던 그들은 묵향의 싸구려 처럼 보이는 아주 빈약한 검집에서 검은색 검이 빠져나오자 그 때 들었던 혁련운의 회상이 사실이었음을 느꼈다. 단 한가지만 빼고서... 그 검은색 칼은 도가 아니고 양날이 모두 세워져 있는 검이었다. 묵향이 검을 뽑아 자세를 잡자 혁련운은 일순간 당황했다. 검을 뽑기 전에는 뭔가 만만한 구석이 없지않아 있었는데 검을 뽑은 순간 그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의 몸은 수많은 헛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 모든게 함정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 완벽해서 치고 들어갈 틈이 하나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원래 이론상으로는 헛초를 몇번 날려 상대의 자세를 허물고 그다음 실초로 공략하는게 좋지. 하지만 그게 통할 상대가 아니야. 단 1초라도 제대로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니... 처음부터 강공... 방어따윈 생각할 필요도 없어. 단 1 초만이라도 제대로 펼치자.' "이얍!" 혁련운은 오늘과 같은날을 대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다 털어서 천로(泉露)라는 보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손에 쥐고있는검이었고 이 보검이라면 아무리 어검술이라도 한방에 검을 두토막을 내지는 못할것이라 고 생각되었다. 그의 검은 수류천월(水流天月)의 초식을 그리며 그 짧은 거리에서 강기의 다 발을 묵향에게 쏘아보내려 했다. 하지만 묵향은 이미 혁련운에게 더욱 가깝게 접근해 들어오며 곧바로 검을 그의 왼쪽 허리로 찔러넣었다. 수류천월의 초식 이 만들어지면 잠시 나타난 아주 작은 헛점... 그 헛점으로 검을 찔러온 것이 다. 이것을 막는다면 그의 초식은 와해되고 지금까지 쏟아부은 공력을 회수해 야 했기에 잘못하면 내상까지 입을 수 있었다. 혁련운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 대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허리에 맞아 봐야 심하면 양패구상이다. 묵향은 상대가 초식을 거둬들일 생각을 안하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혁련운의 완성된 검초에서 강기의 다발이 후퇴중인 묵향을 향해 날아 왔다. 순간 묵향의 검은 푸른색으로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묵향은 그 상태로 검을 휘둘러 간단히 검강들을 튕겨내 버렸다. 그런다음 또다시 상대와의 거리 를 급속도로 좁혔다.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신법이었다. 이제 간신히 1초를 끝낸 후인 혁련운에게 묵향은 너무도 빨리 다가왔고 혁련운으로 서는 검초를 펼칠 시간여유 조차 없었다. 그런가운데 묵향의 검은 혁련운의 목으로 날아왔고 혁련운은 간신히 목을 움직여 피한 후 자신의 검을 묵향을 행해 찔렀다. 이건 초식도 뭐도 아니었다. 그저 살기위한 발악이었을 뿐... 묵향은 혁련운의 검을 간단히 왼손의 두 손가락 사이에 잡은 다음 그대로 혁 련운의 복부를 차버렸다. 퍽! "우악!" 혁련운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정원 구석에 처박혔다가 일어섰다. 심한 내상 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픈건 사실이었기에 비실거리면서 걸어나왔다. 이 둘의 대결은 설명은 길었지만 정말 검초조차 펼칠 시간여유가 없을정도로 짧은 시 간안에 벌어졌다. 중인들 중에 실력이 높은 한둘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의 대결이었다. 그냥 봤을 때 혁련운이 검 초를 구사하자 묵향의 몸이 눈으로 보기도 힘들정도로 빨리 앞으로 바짝 붙었 다가 뒤로 떨어졌다가 혁련운의 검초가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붙었다가 투닥 거리는 것 같더니 바로 혁련운이 한 대 맞고 정원으로 날아갔으니까... 아니 이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백운옥 같은 경우 묵향이 다시 뒤로 빠졌다가 다시 붙는 것은 아예 보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묵향은 검을 천천히 검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정도 했으면 자네 실력은 대단한거야. 대부분이 검초를 펼치다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으니까 말이야. 추정되는 나이를 생각했을대 자네 실력은 대단한 편이지. 자네도 슬슬 청월검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군. 그 렇지 않고 초식에 얽매인다면 자네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어. 어때? 더 해보고 싶나?" 혁련운은 배를 쥐고는 기침을 몇번 한 다음 말했다. "콜록콜록... 아닙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께선 황궁에 계신 가요?" 묵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황궁? 황궁이라니 무슨 말이냐?" "매영인이 하는 말이 묵향 타주께서 마교에서 축출당하신 다음 황궁에 계신다 고 그러던데요. 잘못알고 있는건지 모르지만..." "어찌 위대한 마인(魔人)이 황실의 개가 될 수 있는가? 본좌는 과거에도, 현 재에도, 미래에도 마인일 뿐이다." "묵향 타주께선 기억을 되찾으신 건가요? 아니면 매영인이 잘못 알고 있는 건 가요?" "저 아이가 매영인인가?" "예." "그정도까지 알고있는걸 보니 다른 문파들보다 정보력이 그래도 나은 곳이군. 본좌는 기억을 되찾은 것이지." 중인들이 묵향의 말을 듣고 무영문의 정보력에 대해 감탄하고 있을 때 하인이 한명 들어오더니 묵향에게 말했다. "저... 묵향 타주님을 찾아온 손님이 계신데 안내해 드릴깝쇼?" "데리고 오너라." "예." 딴사람은 몰라도 초류빈은 조금 긴장한 얼굴이었다. 묵향이 언제나 말하지 않 았던가... 일이 생기면 찾아올 거라고. 곧이어 낡은 흑의를 입고 장검을 찬 인물이 하인의 안내를 받아 도착했다. 그 의 몸에서는 강렬한 마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대단한 수련을 거친 마교 의 인물임이 확실했다. 그는 묵향의 앞에 이르러 부복하며 외쳤다. "부교주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인물들의 눈이 화등잔 만해 졌다. 부교주라니? "무슨 일이냐?" "군사(軍師)께서 급히 돌아오시랍니다." "군사가? 알겠다." 묵향은 백운옥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본좌도 일이 생겨서 거기 따라가지 못하겠군. 하지만 본좌는 아직도 남 의 무덤을 파뒤지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아. 헤어지는 마당에 한가지 알려주 지. 그따위 무덤 파봐야 별볼일 없을거야. 구휘의 무공이 집대성 된 것이 어 느정도 위력일지는 알 수 없으나 북명신공보다는 못하겠지. 본교가 구휘의 무 덤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본교에 북명신공이 있기 때문이야." 그러자 중인들은 경악해서 외쳤다. "정말인가요? 북명신공이 천마신교에 있다는게..." "정말이지. 교주만이 익힐 수 있는 세가지 무공에 들어가는게 북명신공이야. 그러니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쏟지 말고 집에 돌아가서 수련이나 하는게 좋을 지도... 참, 자네는 본좌와 함께 갈건가?" "물론, 남아일언 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라 했으니 따라가야죠." "다음에 인연이 있다면 만나게 되겠지. 그럼..." 묵향은 11명의 수하들과 섬서분타에 도착했다. 물론 그 수하들 중에 초류빈이 끼여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묵향이 나타나자 설무지가 공손히 인사를 건 네며 말했다. "어서오십시오. 여행은 즐거우셨는지?" "그런대로 재미 있었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자객의 암습이 있었습니다. 물론 자객을 처치하기는 했지만 타주님 대신 세 워놨던 '그림자'는 죽음을 당했죠. 대단한 실력의 자객이었습니다." "그 외의 피해는?" "없습니다. 하지만 타주님이 밖에 나가신 것은 비밀이었기에 부상당하신걸로 처리했죠. 그 때문에 적의 기습이 있을지도 몰라 애태우던 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왔으니 상관 없겠지. 나중에 수하들에게 나의 건재한 모습도 보이 고 하면 녀석들도 긴장하기 시작할거야. 참, 마화는 도착했나?" "예." "비무대회는 잘 끝마쳤나?" "예. 실력있는 자들로 2000명 정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석들을 철저히 추려 내는 중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인물이 없더군요. 괜찮다 싶으면 조금 뒤가 구 린 놈이고..." "뭐 그정도는 처음부터 각오했던 일이 아닌가? "지금 비밀분타는?" "거의 공사가 끝났습니다. 타주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적의 기습을 당할 확률 이 대단히 높았었기에 100명 정도를 남겨두고 모두 그리로 이동시켰습니다. 마교쪽은 원체 보안이 잘되는 통에 거의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정파쪽은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걸 보시죠." 설무지는 묵향에게 두툼한 종이뭉치를 건네주며 말했다. "살막(殺幕) 막주 홍진(洪搢)의 보고서입니다. 지금 무림은 구휘 대협의 무덤 을 둘러싸고 치열한 암투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정사의 정면대결 로 까지 번질수도 있을 정돕니다. 어찌되었던 타주님 이전에 있었던 유일한 현경의 고수였으니까요. 그리고 혈교가 진천왕을 도와 슬슬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동성 전투에서 혈교의 고수들이 등장해서 관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때 강시도 200여구 동원된 걸로 조사되었습니다." "강시 따위야 별것도 아니지. 그 외에는?" "타주님께서는 별 것 아니시겠지만 보통 사람들이나 무림의 고수가 아니라면 대단히 힘든 상대죠. 지금까지 조사된 바로는 진천왕 밑에서 일하는 혈교의 고수는 2000명 정도... 그리고 강시는 1000여구 정도입니다. 아마 십중팔구는 더 많은 힘을 뒤로 감추고 있을겁니다. 진천왕이 송의 주력부대들이 요와의 전쟁터에 투입된 뒤를 노린 기습을 감행했기에 지금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 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 기세는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 "지금 들어오는 정보로는 2년 이내에 요와의 전쟁이 끝날 것 같기 때문이죠. 요가 고려를 정벌한다고 소모한 군대의 공백이 너무 컸는지 그렇게 힘을 발휘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천왕의 진격속도로 봤을 때 2년은 너무 시간이 촉박합니다. 아무리 혈교가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거기에 혈 교가 뒤를 도와준다는 걸 알고 무림인들까지 나서서 어림군에 가담하고 있습 니다. 무림맹에서도 각 문파를 설득해서 2000명의 정예무사를 파견하기로 했 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무림이 진천왕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고 있 지 않죠. 그들이 진천왕이나 혈교의 재출현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은 구휘 대협의 무덤에 대한 욕심 때문이죠." "2000의 정예라... 그들의 전력은 어느정도인가?" "각 문파에서 대강 체면치레로 끌어모은 인물들이니 말이 정예지 그렇게 대단 한 인물들은 별로 없을겁니다. 대신 황실쪽에서는 무림의 도움을 감사하면서 그 파견무사들에게 무림인의 생리에 맞게 몸통 정도만 보호할 수 있는 약식 갑옷과 방패를 하나씩 선물했다고 하더군요." "참, 그때 떠날 때 부탁해 놨던 것은 준비해 뒀나? 문파에 소속되지 않은 뛰 어난 고수 명단을 부탁했잖나?" "아... 예. 그건 준비를 해뒀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시기 전에 만나실 분들이 계신데요." "누군가?" "총타에서 온 고수들입니다. 교주가 보냈다고 하더군요. 타주님께 편지를 직 접 전할게 있다고 했습니다. 온지 여러날 되기에 더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은 실례니까 지금 만나셔야 하겠습니다." "좋아. 들라 해라." "예." 설무지는 옆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에게 지시했다. "그들을 들어오게 해라." "예." 그 무사는 밖으로 뛰어 나갔다. 잠시 후 7명의 마기를 풀풀 풍기는 인물들이 들어왔다. 그중 상당수는 묵향이 잘 아는 인물들이었다. "오랜만이군." 그러자 천도왕(天刀王) 여지고(黎志高) 수석장로가 일행을 대표해 정중히 대 답했다. "예. 안녕하셨습니까? 부교주님." "본좌야 늘 안녕하지. 그래 무슨 일인가?" "교주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 했습니다." 여지고 수석장로는 밀서를 옆에 서있는 무사에게 줬고 그 무사는 쫓아와서 묵 향에게 밀서를 정중히 바쳤다. 묵향은 수하가 전해주는 밀서를 받아들며 물었 다. "자네는 내용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무조건 전하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흐음..." 묵향은 편지를 뜯어 쭉 읽어본 다음 황당한 표정으로 여지고 장로에게 말했 다. "교주의 뜻을 이해할 수 없군. 자네도 내용을 모른다니 이걸 한번 읽어보게 나. 자네는 이대로 행할 자신이 있는가?" 여지고 장로는 서신을 쭉 읽어본 다음 말했다. "교주님의 명령은 어떤 것이라도 지켜져야만 하지요. 부교주님께 충성을 맹세 하겠습니다." "본좌는 교주와 싸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만약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건 제가 직접 교주 님께 받은 밀서고, 또 교주님의 마지막 명령이니까요." 여지고 수석장로는 뒤에 늘어선 인물들에게 편지를 직접 읽어볼 수 있도록 줬 다. 그들도 편지를 읽어본 다음 묵향에게 부복하며 외쳤다. "부교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럼 여지고 장로." "예." "일단 여기 써져있는 '이번에 보내는 수하들은 그대에게 주는 선물이니 본교 의 부교주로서 그들을 수하로 받아주기 바라오.' 하는 말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들 외에도 조만간 본좌의 성의를 확실히 알게 해주 겠소.' 하는 제일 마지막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이건 무슨 말이오?" "글쎄요. 거기 서신에 씌여져 있는 대로 교주님과 묵향 부교주님간의 충돌은 그 장인걸 부교주의 공작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교주님께선 부교주님과 다시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리고 동시에 둘이 힘을 합쳐 장인걸을 몰아내자는 겁니다. 그 때문에 본교 내의 실력있는 고수들을 부교주님의 밑에 두려는 것이구요." 묵향은 여지고 수석장로의 말에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 다. "실력있는 고수라... 눈앞에 보이는 자네들만 해도 엄청난데 더 이상 뭘 주겠 다는 건가?" 묵향의 앞에는 수석장로 여지고를 선두로, 차석장로 사혈천신(蛇血天神) 호계 악(胡戒惡), 외총관 고루혈마(枯 血魔) 옥관패(玉冠覇), 우외총관 지옥혈귀 (地獄血鬼) 천진악(天進惡), 좌외총관 음희(淫嬉) 설약벽(薛若碧), 혈화궁 궁 주 사망혈매(死亡血梅) 나유란(羅幽蘭), 만악궁 궁주 만묘서생(萬妙書生) 진 천악(陳天岳)이 부복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수석장로를 제외하면 모두 다 마교의 주력이 아닌 분타를 관할하는 직책을 가진 인물들이거나 마교의 주 세 력과 분리된 분파 세력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이들을 준다는 말은 곧 그들의 휘하 세력까지 준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 교주는 자기는 총타 안에서 세력전을 펼칠테니 나는 외부를 맡아달라는 건가? 그도 아니면 뭔가? 총타를 제외하고 외부에 퍼져있는 일만 고수들을 나 에게 맡기는 이유가 뭐냐구?" 묵향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좌중을 훑어보며 말하자 여지고 수석장로가 황급히 답했다. "서신에 써져있듯이 지금 총타의 세력전은 이미 누가 승리할 수 있을지 누구 도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장인걸은 아예 대놓고 자신의 추종세력을 총타에 집결시키고 있는 판국이구요. 그렇기에 교주께선 부교주께 서 밖에서 도와주시기를 원하는 것이죠. 지금은 누가 적인지... 또 누가 아군 인지 그것 조차도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부교주께서 교주님을 도와주 신다면 교주님은 승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여지고 수석장로의 말에 비웃는 듯한 묵향의 대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뭘로? 교주가 나한테 준 1만 마교도들로? 그 1만의 힘이라고 해봐야 총타의 20분의 1도 안된다는걸 자네는 알고 하는 말인가? 진짜 정면전이 벌 어진다면 외부에 깔려있는 1만 마교도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들이지. 돈 이나 벌어들이는데는 소용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전에는 너무나 약해. 그렇 다면 그 '성의'란 말의 해석은, 교주가 나에게 새로운 무력단체를 하나 선물 하겠다로 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나는 뭐로 교주의 말을 믿어야 하지? 그때 는 죽이려고 하더니 이번에는 장인걸과 세력다툼이 있으니 도와달라고 하면 나는 예, 그렇습니까? 하고 도와줘야 하나? 어쩌면 장인걸과 교주가 둘이서 짜고 날 죽이려고 또다시 꽁수를 쓰고 있는건지도 모르는데? 나를 설득하기 위한 거라면 예물이 너무 적어." "그건 그렇습니다. 평화시라면... 돈벌어들이는데는 외부 분타들이 대단히 효 과적이죠. 하지만 부교주님 말씀대로 모든 전투세력은 총타에 집결해 있는게 또 사실입니다. 하지만 부교주님께서는 천랑대와 염왕대의 정예를 가지고 계 시지 않습니까? 그들만으로도 총타의 힘의 3할은 가지고 계신 것이지요." "3할이라고? 말도 안되는 말 하지 말라. 본좌가 만약 없다면 천마혈검대와 수 라마참대 만으로 하루저녘에 모두 시체로 만들 수 있을테니까..."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부교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교주 님은 휘하의 무력단체들을 믿지 못하기에 장인걸의 입김이 적은 세력부터 총 타로부터 차근차근 분리해서 부교주님께 넘기시는 것입니다. 본교는 약육강식 의 철칙이 지켜지는 곳. 일단 교주님께서 부교주님께로 세력이 보내지기만 한 다면 부교주님께서 그들을 장인걸의 입김에서 분리하실 것을 믿는 것이지요." "강자지존(强者之尊)의 법칙이 있으나 사실 그 법칙이란게 꼭 지켜진다는 법 은 없지. 본교 내에서도 암습이나 모략이 없는게 아니니까. 교주가 갑자기 선 심 쓴답시고 주는 세력에 첩자들이 끼어있으면 아주 곤란하지. 뭐, 어쨋든 준 다고 하니까 고맙게 받기로 하고 자네들에 대한 처리는 나중에 할테니 숙소에 돌아가 쉬게나. 그리고 여지고 장로는 좀 남아있게." 여지고 외의 인물들이 물러가자 묵향은 그를 이끌고 자그마한 회의실로 들어 갔다. 그런다음 여지고 장로의 눈을 쏘아보며 말했다. "진정한 교주의 뜻을 알고싶어." "방금 말씀드린게 전부 진실입니다. 부교주님의 축출은 장인걸의 음모였습니 다. 그걸 교주님은 알아내신 것이구요. 알면서 또다시 당할 수는 없잖습니 까?" 그러자 묵향은 살기띈 미소를 지으며 여지고에게 말했다. "자네라면 한번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상관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을까? 그 것도 자네보다 무공도 약한..." "..." 그 말에 여지고 장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기는 참 힘들 지만 없을수도 없었다. 교주의 총애를 받아 실력이 없으면서도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 멍충이들도 있는게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묵묵히 묵향의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채려고 노력중인 우직한 무인을 찬찬히 바라보던 묵향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나를 봐도 별로 알아낼 게 없을걸세. 사실 나 자신도 다음에 무슨짓 을 할지 모르니까 말이야. 한가지만 확실히 해두세나." "..." "자네는 나 한사람에게만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할 수 있나?" "..." "역시 교주가 걸림돌이지?" "부교주님이 교주 취임을 하신다면 몰라도 그렇기 전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만약 장인걸이 교주를 없애고 취임한다면? 교주를 폐하고 교주에 등극한 사 람은 많지. 그렇기에 하는 말이야. 자네의 충성은 교주란 직위를 향한 것인 가? 아니면 한영성이란 개인을 향한 것인가?" "그 두가지가 함께라고 보시는 게 좋을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분의 취임식 때 충성의 서약을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의 교주가 바뀐다면 그 충성의 대상 은 두 번째 서약을 한 부교주님을 향한 것이 될 것입니다." "좋아. 어쨋든 교주가 마음이 변치 않는 한은 자네를 죽일 필요가 없다는 말 이군. 그렇지?" "아닙니다. 그 누구도 믿지 말라는 명이셨습니다. 총타를 떠난 후에는 교주님 의 서신이나 그 모든 것을... 설혹 제 앞에 교주님이 직접 나타나신다 해 도... 그러니 당연히 이후의 충성의 대상은 부교주님이 되겠죠." "뭐 좀 복잡한 것 같지만 어쨋든 현재는 변절할 가능성이 없다니 되었군. 이 봐! 설무지." "예." "들어오게." 설무지가 들어오자 묵향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자네가 방금 들은 대로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네의 의견을 제시해 보게." "방금 거두어 들이신 세력은 본교의 전투세력은 아닙니다. 또 그 안에는 첩자 가 있을수도 있구요. 그렇다면 처리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그들을 최대한 빨 리 분산해서 숨겨버리는 거죠. 첩자가 들어있는 조직은 아마도 드러나면서 적 의 공격을 받고 괴멸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을 했다고 해도 그 모든 조직이 다 무너질 수는 없겠죠. 우선, 그들을 총타와 섬서분타, 양쪽의 세력에서 분리해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모든 다툼이 끝난 다음에 그들은 필요 하기 때문에 아마 적들도 그 미약한 세력들을 자신의 세력을 분산하면서 까지 토벌하려고 들지는 않을겁니다."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하자. 여지고 장로!" "예." "호계악 장로에게 일러 분타의 모든 세력을 숨어들게 하라. 그들이 현재 가진 모든 재산은 처분해라. 그런다음 새로운 비밀분타를 건설하는 거야. 그 외에 외총관 휘하의 무력세력들은 모두 이곳으로 불러들여라. 아무리 별볼일 없다 해도 쓸모는 있겠지." "존명!" * * * 등에 4척이나 되는 장검을 두 자루나 짊어진 6척(181Cm) 장신의 무사가 발걸 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 물로 강렬한 안광(眼光)과 더불어 강렬한 마기가 전신에서 뿜어나오고 있었 다. 그는 평상시와 같이 검붉은 핏빛이 도는 구역질이 날듯한 빛깔의 낡은 옷 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네명의 무사가 지키고 서있는 문앞에 이르러 품속에서 붉은색 옥패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하늘아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러자 그 무사중의 한명이 말했다. "정, 사, 마를 통합하여"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뱃놀이를 하리라." 마지막 말은 영 문구에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말이었지만 무사들은 그에게 절 을 하며 말했다. "인어와 함께... 안으로 드시지요. 교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 암호를 묻고 답하는 것이 복잡한 이유는 양쪽이 서로를 시험하여 문답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암호는 거의 하루에 한번 이상 바뀌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대에 대한 시험은 교주의 근처로 다가갈수록 엄중해 진다. 하지만 이런다고 암살당해 죽은 교주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 니기에 암호의 교환은 초기에 마교 총단이 만들어진 후 내려오는 관습일 뿐 뭐 별다른 뜻은 없었다. 사실 암호라도 교환해야 뭔가 호위라도 하는듯한 기 분이 드는게 사실이 아닌가? 교주는 밀실로 들어오는 그를 보며 반겼다. 그는 문 옆에 검대를 풀어 두자루 의 검을 세워둔 후 교주의 곁에 가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어서 오게나." "무슨 하교하실 거라도?" 교주는 품속에서 밀서 두개를 꺼낸 후 그에게 주며 말했다. "자네는 본좌의 명령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킬 자신이 있는가?" "예." "자네는 지금 곧 천마혈검대(天魔血劍隊)를 이끌고 섬서 분타로 가게." "섬서 분타라면 그 묵향 부교주가 세운...?" "그렇네." 그러자 천마혈검대의 대장 환영비마(幻影飛魔) 구양운(丘陽雲) 장로는 어이없 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천마혈검대 만으로 그를 공격하라는 말씀입니까?" 구양운 장로의 항변에도 교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할지는 거기 있는 노란색 봉투의 밀서에 써져 있네. 자네는 일단 섬 서 분타 부근까지 수하들을 이끌고 가서 그 노란색 밀서를 꺼내 읽게나. 그런 다음 그 밀서에 써진 대로 행하면 돼. 완벽한 전투준비를 챙겨서 준비가 되는 대로 출발 하게." "존명!" "자네가 출발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네. 그냥 본좌의 명으로 출 동한다고만 하게. 나머지는 본좌가 처리해 둘거야. 행선지는 절대 그 누구에 게도 노출하면 안돼. 거기에 이 작전의 승패가 달려있네." "명심하겠습니다." 교주가 비밀스런 외출을 한 후 2시진(4시간) 뒤... 제법 넓직한 밀실 안에 여 러 인물들이 커다란 탁자를 중심으로 모여 쑥덕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몸에서 짙은 마기를 풍기는 자들... 그들의 표정은 대단히 심각했다. 그들 중에서 상 석(上席)에 앉은 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그대들을 급히 모이라고 한 것은 몇가지 의논할게 있어서요." "아직 혁무상 장로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 바쁜 일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소. 이제 ㄷ이 거의 완성되었으니 이제 행동을 시작 해야지 언제까지고 미적미적 미룰수는 없소." "하지만 아직 완전한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분타들이 총타와 별개 로 움직이며 소식이 두절되었습니다. 이건 뭔가 교주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말인데 섣불리 덤볐다가 되려..." "크흐흐흐... 그 걱정은 하지 마시오. 몇몇 분타에 심어놓은 첩자의 보고로는 이번 권력다툼에 아주심한 유혈사태가 일어날 것을 대비해 분타를 총단으로 부터 독립시켜 잠적시킨 것이지 별다른 뜻은 없는 것 같소. 하지만 문제는 그 게 아니라 교주가 우리들의 움직임을 어느정도 눈치챘다는 것이지." "어느정도까지 눈치챘습니까?" "물론 그 단순한 교주는 이제서야 묵향을 축출한 것이 실수한 거라는 걸 눈치 챘지. 거기에 운좋게도 묵향은 교주의 측근인 능비계 부교주까지 죽여줬다 이 말이오. 이제 교주는 믿고 의지할 힘이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누가 적인지 아직 모호한 상태에서 최후의 도박을 시작했소." "뭡니까?" 상석에 앉은 인물은 일부러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묵향과 손을 다시 잡는 것이오." 그러자 탁자 주위에 앉은 인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묵향은 누가 뭐래도 마교가 배출한 최강의 고수가 아닌가? 그가 교주의 손을 들어준다면 반란의 반자도 거론조차 불가능했다. "이럴수가... 그런 사태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막아야 합니다. 그가 본교에 돌아온다면 반란 자체는 불가능하오. 그는 무공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단순한 바보요. 그때도 그가 교주에게 그 뛰어난 무공에도 불구하고 충성을 바치는 바람에 축출한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러자 다른 목소리가 그 목소리를 막았다. "하지만 묵향과 교주의 결합은 어려울 겁니다. 교주의 말만으로 그가 어리숙 하게 들어왔다가 무슨일을 당하려구요. 전에 한번 쓴맛을 봤으니 그것은 어려 울겁니다." 그러자 상석에 앉은 인물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교주는 화해의 선물로 분타들을 묵향에게 맏긴걸로 조사되었소. 그래서 분타 들과 연락이 끊긴 것이고... 거기에 혈화궁과 만악궁까지 선물로 줬더군. 본 좌도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낸 덕분에 막지 못했소." 하지만 그 인물은 그런 반론에도 묵향과 교주의 결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 다. "하지만 겨우 그 세력들 해봐야 본교의 주력이 아닙니다. 그들의 전력을 몽땅 합해도 총타 전력의 20분의 1도 안되는 전력인데 겨우 그걸 가지고 교주의 말 을 신뢰하기는 힘들지요. 자성만마대(紫星萬魔隊)만 동원해도 넉넉잡고 반년 이면 중원 구석구석에 있는 분타들을 싹쓸이 할 수 있을텐데... 묵향이 생각 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안다면 그따위 조건에 응하지는 않겠지요." 그러자 상석에 앉은 자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크하하하... 역시 제갈천(諸葛天) 장로는 식견이 높으시오. 물론 묵향은 그 따위 미끼를 덮썩 물 바보는 아니지요." 그러자 멸절신장(滅絶神掌) 제갈천(諸葛天) 장로는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다면 무슨 또다른 미끼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상석에 앉은 인물은 미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그것을 탁자 주위에 앉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탁자중간으로 던지며 말했다. "교주가 제시한 최후의 미끼는 바로 이거요." 상석의 인물이 던진 것은 종이였다. 그 인물의 절묘한 내공의 조절에 의해 종 이는 활짝 펴진 상태로 천천히 날아가서 정확히 탁자의 중간에 살며시 내려 앉았다. 그 내용을 눈알이 빠지게 심각하게 바라보던 제갈천 장로는 경악해서 외쳤다. "그렇다면 교주는 천마혈검대를 묵향에게 준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그 둘의 결합은 성공할겁니다. 부교주님! 천마혈검대가 묵향에게 가는 걸 기필코 막아 야만 합니다." 그러자 장인걸은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크하하하하... 물론 막았지요. 그걸 막았으니까 이 종이가 여기 있는 거요. 구양운 장로는 그대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에 본좌에게 포섭된 인물이오. 그는 교주의 명령과는 달리 섬서 분타 부근까지 가겠지만 곧장 이 리 돌아올거요. 물론 그가 그쪽으로 움직이는 것도 교주의 첩자들을 속이기 위함이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교주는 구양운 장로가 배신했다는 걸 알아챌 겁니 다. 그정도 선물이면 묵향은 교주와 화해할 게 분명하니까요. 천마혈검대까지 묵향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교주보다 묵향이 거느린 전력이 월등해지기 때문에 묵향도 교주를 믿게 될테니까요.교주가 눈치채기 전에 선수를 써야 합니다." "이미 혁무상 장로가 손을 써놨소. 이제는 교주를 처치하는 일만이 남았을 뿐 이오. 그대들은 정확히 5일 뒤 교내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시오. 혁무상 장로 가 그대들을 지휘할거요. 그리고 그때쯤 교주는 영원히 안식을 취하게 될거 요." 그러자 제갈천 장로는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교주를 없애는 건 좀 자제해야 할 겁니다." "왜?" "인질로 써야 할테니까요." "인질?" "교주와 그 가족들을 인질로 잡아야지만 독수마제(毒手魔帝)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독수마제 개인이야 겁날게 없지만 원로원이 움직인다면 큰일이 지요. 우선 인질들로 독수마제를 협박해서 그의 개입을 막은 후 천천히 독수 마제를 고립시켜야만 합니다. 물론 그 인질들의 생명을 철저히 보호해야만 합 니다. 하지만 그것도 독수마제의 독수(毒手)를 뽑아버린 후에는 필요 없겠지 만요... 흐흐흐..." 대단히 악랄한 계획임에 틀림없었다. 독수마제는 은퇴한 교주의 아버지. 당연 히 교주와 그 가족들의 목숨으로 독수마제를 위협한다면 그는 장인걸의 교주 찬탈을 묵인할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런다음 천천히 독수마제의 원로원에 대한 영향력을 없앤 후 은밀히 처치해 버린다면? 그런다음 교주와 그 가족들 까지 다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고 그 다음부터는 모두들 두발 쭉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크하하하... 좋은 생각이군. 본좌도 그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소. 좋아. 일 단은 아쉬운대로 교주를 반 병신을 만드는 걸로 끝내야지. 제갈천 장로는 본 좌가 돌아올때까지 교주의 가족들을 확보해 놓게." "존명!" * * * 그로부터 5일 후... 작고 아담한 장원에 교주 일행이 도착했다. 이번 나들이 는 마교의 교주로서 해서는 안되는 짓을 하는 것이기에 그의 수하들은 많지 않았다. 초절정 고수 10명으로 이뤄진 교주 독립 호위대인 십혈룡(什血龍)과 원거리에서 교주를 호위하기 위해 특별히 선발된 혈마대(血魔隊)의 고수 100 명 중에서 30명 만을 데리고 왔을 뿐이다. 교주 일행이 장원에 도착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장원의 식솔들을 모두 제 압하여 방 하나에 굴비 엮듯 묶어가지고 처박아놓는 것이었다. 일단 주변 정 리가 끝나자 교주는 천천히 주위 경치를 구경하며 장원 안으로 들어섰고 그의 뒤에서 십혈룡들이 호위하며 따라왔다. 교주가 아담한 방에 들어가자 무사 한 명이 작은 술병과 간소한 안주 몇가지를 재빨리 가져왔다. 교주는 그걸 천천 히 마시면서 손님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교주가 1시진(2시간)정도 기다리자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했다. 부드럽게 안광 을 안으로 갈무리한 30대 중반의 잘생긴 청년... 그는 현 무림맹주였다. 그 또한 교주처럼 소수의 호위들만을 거느린 채 장원에 들어섰고 이 시대가 낳은 두 거인이 작은 방에서 쑥덕거리는 동안 도저히 한자리에 모일 수 없는 마교 와 정파의 절정고수들이 사이좋게 사방에 흩어져 외곽을 감시함과 동시에 서 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오랜 만이오. 일이 잘 풀리는 모양이군요. 아주 안색이 좋으시오." "허허허... 그러는 교주야 말로... 오랜만이외다. 참. 안그래도 만나고 싶었 소.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오." "뭔가요?" "이번에 구휘 대협의 무덤을 발견한 것 때문에 전 무림이 발칵 뒤집혔는데 왜 유독 마교만 조용하냐 이거요." "흐흐흐... 본교에는 북명신공이 있는데 왜 구태어 또다시 탐을 내겠소? 그리 고 본교 내부 사정이 그따위 무공이나 보물에 정신 팔때가 아니오." "오... 그때 묵향을 보고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 귀교에 북명신공이 있었군요. 귀하도 그 신공을 익혔소?" "익히지 못했소. 몇번 해봤는데 조금 이상하더군요. 아무래도 뭔가 고의로 틀 리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전에 시도해 보다가 하마터면 주화입마 에 걸릴 뻔 한 후로는 손도 안대고 있소. 그런데 괴이하게도 묵향은 그걸 익 혔지." "귀교가 장난친게 아니라면 그럼... 그 무덤은 진짜라는 말인가? 하여튼 본좌 도 요즘 그놈의 무덤 때문에 엄청나게 바빴소. 모두들 보물에 눈이 뒤집혀서 정사간에, 또는 문파간에 혈전이 벌어질뻔한게 한두번이 아니요. 어쨋든 귀교 가 개입한게 아니라니 다행이구려... 참. 그런데 아직 만날때가 안되었는데 무슨 급한 일이길래 본좌를 불렀소?" 그러자 아연한 얼굴표정을 하고 교주가 오히려 되물었다. "뭐라구요? 본좌는 그대가 불러서 온 건데... 그대가 부르지 않았소?" "그럼 이게 어찌된 일이오?" "아차... 간계에 빠졌소." 이때 밖이 소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소리, 기 합소리... 교주와 맹주는 재빨리 신형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밖에서 본 것은 정말이지 경악할만한 장면이었다. 교주와 맹주를 호위 하는 직속 수하들은 대단히 뛰어난 고수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는 300여명의 혈의를 입은 무리들... 도저히 그들 은 인간같지가 않았다. 각종 병장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손이나 발이 날아가 거나 심지어 배가 찢어져 내장이 흘러내리는데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시 무시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교주는 신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천령강시... 도대체 누가 천령강시를...?" 이때 활을 든 100여명의 무사들과 그 외의 각종 무기를 가진 1천여 무사들이 주위에 내려섰다. 완벽하게 포위된 것이다. 이때 그중의 한명이 입을 열었다. 30대 초반의 준수한 얼굴을 한 그는 생긴것과 달리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며 교주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오랜만이요. 교주. 이런 장소에서 만나게 될줄은 생각도 못했겠 지요?... 크하하하" "장인걸... 이 개자식! 네놈이... 네놈이..." "교주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놓은 천령강시... 상상 밖으로 정말 위력이 대단한 것 같지요? 본좌가 교주에게 강시 제조법을 알려줬으니 당연히 그에따 라 만든 강시는 본좌가 부릴 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을 그대는 해뒀어야 했소. 거기에 강시를 만든 책임자가 본좌의 심복이니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 요. 일반적인 도검으로 상처하나 입힐 수 없는 천령강시들을 토막을 낼 수 있 을정도로 호위무사들의 실력이 의외로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하겠지만 그래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거외다... 크하하하..." 분노에 가득찬 교주가 몸속의 진기를 서서히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그의 피부 는 밝은 자색을 띄기 시작했고 더욱 기괴한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옆 에 서있던 맹주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허리에서 자신의 애검 인 빙백수룡검(氷白水龍劍)을 천천히 뽑았다. 빙백수룡검은 맑고 투명할 정도 로 아름다운 2척 8촌의 검신에 양면에 1마리씩의 수룡이 음각되어있었다. 대 단히 파괴력이 강한 검으로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데, 아무리 사람을 베어도 피가 묻지 않는 특이한 검으로서 무림맹주의 신물(信物)이었다. 장인걸은 두 고수들의 행동을 지긋이 바라본 다음 느긋하게 말했다. "참... 무림맹주까지 계셨군요. 정사는 불립이라 했는데... 여기에 서 계신다 는 것 자체가 불행이지요. 흐흐흐... 어쨋든 두사람 다 여기서 빠져나갈 생각 은 버려야 할거외다. 이들 외에도 2천의 정예들이 외곽을 포위하고 있으니까 말이오. 어쨋든 그대들이 한번씩 은밀히 만나서 쑥덕거린다는 것을 본좌가 눈 치챘을때부터 그대들의 운명이 다한것이지요. 조용히 항복한다면 목숨만은 살 려줄 의향이 있소이다." "이 모든게 다 네놈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냐?" 그러자 장인걸은 빙긋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그렇소. 나도 이렇게 잘 될줄은 몰랐소이다. 혼자서 새로운 마도를 추구할거 라고 암흑마교를 세웠을 때 정말 천하가 곧 내 손안에 들어올 것 같았지요. 하지만 곧이어 현실의 벽에 부딛쳤소. 마교 내에 있을때는 잘 몰랐는데 밖에 서 마교를 부숴보려고 했더니 그게 장난이 아니더군. 본좌가 50여년을 노력해 서 만든 단체라고 해봐야 천마혈검대가 하룻저녘 휘저어놓으면 가루가 날정 도밖에 안되었으니까 말이요. 그래서 생각을 바꿔서 마교 안에서부터 시작하 려고 들어갔지요. 하지만 거기에는 더 큰벽이 기다리고 있었소. 교주도 알다 시피 묵향이란 초고수가 있더군. 그냥 놔뒀다간 정말 나한테는 국물도 남을 게 없을것 같아서 슬슬 뒷공작을 했지. 교주는 말로는 묵향을 포용하는 것처 럼 하면서 뒤로는 묵향의 재능에 심한 질투심을 느끼고 있었지요. 나는 그걸 조금씩 자극한 것 외에는 별로 한게 없지요. 흐흐... 당신은 멍청하게도 적당 하게 이간질을 하니까 아주 손쉽게 먹이를 덮썩 물었소. 거기에 내 조언을 듣 고 묵향을 없애기 위해 능비계를 파견한건 정말 자기 무덤을 판거나 다름 없 지요. 하하하.. 그렇지 않소? 교주나으리." 그러자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은 교주가 노성을 질렀다. "네놈에게 내가 아쉽게 해준 것이 없는데, 이렇게 본좌를 핍박할 수 있냐? 그 따위 교주 자리 달라고 했다면 줄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꼭 내란을 일으 켜야만 했나?" 그러자 장인걸은 음산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교주는 뭘 모르시는구려. 자고로 계집의 옷도 순순히 벗게 놔두는 것보다 강 제로 벗기는게 재미있는 법이지. 또 꼬리치는 계집보다 반항하는 계집을 강간 하는게 더욱 재미있지 않소? 거저 굴러떨어지는 교주자리는 별로 재미없는 거 요. 뺏아야만 진정한 내 자리가 되는거지." 그들간의 이죽거리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교주와 맹주의 호위무사들은 모 두 다 천령강시들에게 죽임을 당해버렸다. 천령강시들은 남은 두 사람의 실력 을 은연중에 느꼈는지 곧장 공격해 들어오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만큼 그 두 거인의 실력은 독보적이었다. 그들은 무림에 현존하는 11명밖에 안되는 화경이나 극마의 고수들이었으니까... "뭣들 하느냐? 공격하라!" 아직도 200여구나 남은 천령강시들은 호위무사들을 전멸시킨 후 잠시 주춤거 리다가 장인걸의 불호령이 떨어진 다음에야 공격을 시작했다. 천령강시는 일반적인 강시의 약점인 속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마물이다. 거기에 이들은 어느정도 이성(理性)을 갖추고 있기에 멍청하게 움직이지도 않 는다. 눈부신 속도에 과거 익혔던 무공의 초식에 바탕을 둔 뛰어난 공격력, 거기에 강시 특유의 단단한 몸매를 자랑하는 이것들은 거의 무적에 가까운 파 괴력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교주는 혈교로부터 유래된 이 천령강시의 제조법 을 장인걸에게 들은 다음 묵향을 없애기 위해 특별히 제조한 것인데, 그것들 이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올줄은 생각도 못해봤던 사실이었다. 일단 교주와 맹주가 손을 쓰기 시작하자 정말이지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교주의 강렬한 자전마공에 강시의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려 갔고 맹주의 백류매 화검법에 강시들이 토막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시들은 손발따위 떨어져도 끄떡도 하지 않고 두사람을 공격했다. 심지어 두토막이나 내장을 쏟아내면서 도 손으로 기어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 두 사람의 발이라도 움켜 잡으려고 들었다. 교주와 맹주의 무공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장인걸은 무심히 내뱉았 다. "교주는 그 누구도 극성까지 익히지 못했던 자전마공을 대성했군... 흐흐 흐... 하기야 저따위 괴이한 모양으로 돌아다닐 바보가 여태껏 없었으니까 교 주가 최초였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야. 자전마공 하나에 끝까지 매달리 다니..." 그런다음 장인걸은 옆에 서있던 무사의 활을 뺏아들었다. 그런다음 늘어서 있 는 궁수들에게 명령했다. "화살을 쏴라!" 100여명의 고수들이 화살을 교주와 맹주를 향해 날렸다. 하지만 수두룩하게 늘어서있는 천령강시들이 방해가 되어 교주나 맹주에게 까지 날아간 화살은 극소수였다. 거기에 화살이 날아오는 파공음이나 기를 포착하여 천령강시들을 방패로 써먹었기에 그들에게 도달하는 화살은 거의 없었다. 천령강시들은 그 단단한 몸통으로 교주와 맹주의 튼튼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었다. 내력이 약한 자가 쏜 화살은 피부조차 뚫지 못했고 내력이 좀 강하다고 해봐야 깊숙히 박 히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천령강시들은 등뒤로 화살들을 몇대씩이나 꼽 아넣고도 맹렬한 공격을 교주와 맹주에게 가하고 있었다. 이때 장인걸은 은밀히 엄청난 무위를 자랑하고 있는 교주를 향해 조준한 다음 활을 발사했다. 교주는 막 앞쪽에서 달려들던 천령강시 한구의 머리통을 바숴 버린 다음 좌우에서 협공해 들어오는 천령강시들에게 자전강기(紫電剛氣)를 퍼붓고 있었다. 이때 옆에있던 천령강시의 등쪽으로 화살이 한 대 날아온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는 천령강시의 몸이 방패가 되어줄것으로 믿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또다른 강시를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 도 그 화살은 천령강시를 관통한 다음 교주의 복부 깊숙히 박혔다. "허억!" 교주는 곧이어 자전강기에 두토막이 난 천령강시가 쓰러지는 뒤쪽으로 활을 든채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 장인걸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개자식!" 교주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장인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제 방패막이가 없어진 교주에게 화살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궁수들의 뒤쪽에 서있 던 또다른 고수들이 교주에게 달려들었다. 화경이나 극마는 거의 동일한, 인간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물 론 현경이나 생사경이 있지만 그 두 경지는 인간의 몸으로 올라갈 수 없는 지 고한 경지다. 그렇기에 그 경지에 올라서면 환골탈태를 하며 막대한 내공을 버티기 위해 몸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어쨋든 화경에 올라선 고수들끼리 일대 일로 대결한다면 뭔가 비겁한 수를 쓰지 않고서는 양패구상하기 딱 좋다. 그 둘의 실력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화경내에서도 각기 배운 무공에 의 한 파괴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또 화경 내의 상하능력차도 있다. 갓 화경 에 올라선 자와 이제 현경에 올라가려고 깝죽거리는 인간들과의 능력차는 대 단한 것이다. 맹주와 교주의 경우 둘 다 현경에 아주 근접한 인물들이었고 장인걸은 연륜과 실력에서 아무래도 그들보다 한수 아래였다. 만약 그가 묵향처럼 현경에 올라 섰다면 애궂은 수하들을 작살내지 않고 그들을 직접 없애버렸을 것이다. 하지 만 장인걸은 자신의 실력과 교주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 상 대는 극마급의 고수 2명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이 몸소 나서봐야 끝내는 당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키운 거의 4천에 가까운 정예를 끌고온 것 이다. 거기에 자신의 수하들은 모두 다 귀혼강신대법(歸魂 身大法)을 익힌 불사의 신체를 가진 자들이 아닌가? 아무리 교주와 맹주가 극강의 고수라 해 도 그들 모두를 다 죽이려면 내공이 바닥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둔 작전이었다. 이제 천령강시가 거의 죽임을 당하자 본격적으로 천명이 두사람을 죽이기 위 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방적인 도살로 치닫고 있는 것은 참으 로 의외의 사실이었다. 특히 장인걸의 수하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 는 것은 부상당한 교주였다. 맹주의 백류매화검법은 정말이지 현란하게 검강 을 토해내며 상대를 도륙했지만 그들은 곧이어 몸이 들어붙으며 일어섰다. 하 지만 교주의 무공은 극양의 자전마공. 교주의 손이 번쩍일때마다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장인걸의 수하들은 상처부위가 완전히 익어버렸기에 재 생이 되지 않았다. 장인걸은 틈을 보아가며 교주와 맹주에게 화살을 하나씩 날리고 있었다. 수하 들의 몸통이야 구멍이 나건 나지않건 상관하지 않았다. 겨우 그정도 상처는 가뿐하게 재생된다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있는 것이다. 교주와 맹주는 이미 두세발의 화살을 몸에 꼽고도 정말이지 인간이라고 믿어 지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가 되 어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덮쳐오는 숫자는 더욱 늘어나 있었다. 장 인걸이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수하들을 더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이 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서서히 무너지고 있 었다. 아무리 그들이 엄청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강력한 고수 4천명과 극마의 고수 1명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크흐흐흐... 이제 정신이 드시는 모양이군... 그래 몸이 어떠시오? 교주 나 으리." 온 몸이 피로 물든 인물... 그의 몸은 약하지만 아직도 자색(紫色)을 띄고 있 었다. 하지만 그의 몸 여기저기에 크고작은 상처가 생겨 있었다. 아마도 딴에 는 치료를 해준 듯 몸의 여기저기에 붕대가 감겨있었다. 그리고 그의 내공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비파골을 굵직한 쇠사슬로 뚫어놨고 하나밖에 남지않은 손 과 발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는 만년한철로 묶여져 있었다. 한중길은 어느 정도 정신이 들었지만 그때부터 철창 밖에 있는 인물의 말을 알아듣는지 모르 는지 팔목이 날아가 뭉텅한 살덩어리에 피에젖은 붕대가 감겨있는 자신의 오 른팔을 이제 하나밖에 남지않은 눈으로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왼팔마저 잘라드릴까 하다가 식생활에 지장이 있으실 것 같아 본좌가 크게 인심을 써서 놔뒀소. 혈맥이 가닥가닥 끊겨서 아마도 20년쯤 죽어라 수 련하면 3할 정도 내공을 회복하실 수 있을거외다. 아예 내공을 없애버렸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면 교주의 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육체가 사그라들게 뻔 하기에, 본좌가 어떻게 무림을 집어삼키는지 그 수단을 구경하라고 살려 드렸 소. 물론 그 이유로 하나 남은 눈도 뽑아버리려다가 봐준거요. 흐흐... 또 내 공이 전폐되지는 않았으니 운 좋으면 내게 복수할수도 있을거요. 크하하 하..." 그런다음 장인걸은 옆에 묶여있는 참혹한 모습의 맹주를 지긋이 바라봤다. 격 투중에 왼쪽 다리가 날아가고 없었으며 크고작은 수많은 상처를 감싸맨 덕분 에 거의 전신에 붕대가 돌돌 말려있었다. 그 또한 교주처럼 비파골에 사슬이 꿰뚫고 지나가 있었으며 남은 손발이 묶여있었다. 하지만 맹주는 교주와 달리 자신의 잃어버린 왼쪽 발을 볼 눈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맹주가 쓰러진 다음 장인걸이 뽑아버렸기 때문이다. 장인걸은 그 두 거물의 꼬락서니를 찬찬히 감상한 다음 옆 감방(監房)으로 발 길을 돌렸다. 옆쪽에 연결된 세칸의 감방에는 교주의 가족들이 잡혀 들어와 있었다. 모두들 처절한 투쟁을 했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들도 또한 교 주처럼 만년한철로 된 사슬에 묶여 벽에 매달려 있었다. 사슬의 길이는 최대 7척 길이로 벽 뒤에 장치를 해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물론 이쪽 사람의 지시에 의해 강철로 된 벽 뒤에있는 인물이 그 작업을 했 다. 이 감옥은 마교내에서도 최고의 중죄인들을 위해 설계한 감방들로 침상따 위는 존재하지 않고 여기서 죽을때까지 벽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이때 옥문의 저쪽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장인걸은 감방 안 에 들어가 있는 수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수하들은 감방안에 있는 모 든 죄수들의 목에 비수를 일제히 들이댔다. 이때 저쪽에서 40대 중반의 중후 한 인상을 풍기는 인물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감방 안의 풍경을 흘끗 바라보 며 장인거의 앞에 이르렀다. 그러자 장인걸은 정중이 포권하며 그를 맞이했 다. "어서 오십시오. 태상 교주님." 그러자 태상교주는 장인걸을 무표정한 얼굴로 쏘아보며 물었다. "본좌를 이리로 부른 이유는?" "예. 이미 속하가 교주의 직위를 인수했습니다. 더구나 한중길 전 교주는 저 기 잡혀있는 무림맹주와 모종의 밀월관계에 있었기에 속하는 어쩔 수 없이 본 교의 장래를 위해 그를 처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점 헤아려 주시기를..." 그러자 태상교주는 처참한 몰골의 맹주를 지그시 바라본 후 장인걸에게 말했 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저 아이들까지 잡아들일 필요가 있었나?" "그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부모의 죄는 그 자식들도 져야 하는 법. 속하 는 본교의 율법에 따른 것 뿐입니다. 태상교주께서도 그 점을 잘 아시지 않습 니까?" "좋아. 저들의 처리는 어떻게 할건가?" "속하도 애써서 생포한 저들을 꼭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며칠 전만해도 존경했던 상관이요, 또 그의 가족들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 건 속하가 교주가 되는데 원로원의 방해공작이 없어야 한다는 가정이 앞서야 하지만요." 그러자 태상교주는 갖잖다는 미소를 피워올리며 장인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인질로 본좌를 협박하는 건가?" 장인걸은 태상교주의 안색을 살피며 더욱 정중하게 답했다. 어쨋든 지금은 아 직 그의 기반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다. 지금 충돌해서 좋을건 하나도 없었다. 태상교주는 거의 교주와 맞먹는 고수였다. 수하들을 총동원해서 태상교주를 없앨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를 원로원이 용서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원로원에 대한 태상교주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이다. "아닙니다. 속하가 어찌 태상교주님을 협박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본교의 죄인일 뿐. 그들의 처리 방법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겠다는 것이지요. 어쩌 면 저들을 모두 풀어줄수도 있지요. 사실 교주의 경우 지금 근골이 뒤틀리고, 혈맥이 끊겨 거의 폐인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또 교주의 자식들은 저도 그 아 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사랑을 주고받았던 사이가 아니겠습니 까? 속하도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면 저들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알겠네. 저들도 마교인이기에 앞서 본좌의 식솔들이니 그대가 약간의 인정을 베풀기를 바라네. 내 원로원에는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게 말을 해 놓겠네." "감사합니다. 태상교주님." 태상교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키며 감옥을 나서야만 했다. 자신이 지금 장인걸의 폭주를 막지 못한다면 저 아이들의 목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 이어진 마교의 역사상 권력을 찬탈당한 전대교주의 가족들이 살아남은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원로원 을 동원한다면? 장인걸은 없앨 수 있을지 모르나 저 아이들의 목숨도 함께 끊 어질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살아남을 가망이 없었다. 태상교주는 장인걸을 없애는 대신 그냥 놔두는 것을 택했다. 그 이유는 지금 원로원과 장인걸이 싸 움질을 벌인다면 마교가 입는 그 피해는 수십년을 두고도 보충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그의 가족의 목숨은 절단난 것이지만 마교의 맥이 여기서 끊길수는 없었다. 혁무상 장로의 말에 따르면 무림의 정세도 대단히 불안정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래전에 마교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었던 혈교도 부활하는 이마 당에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 고 있었기에 태상교주는 섣불리 손을 쓸수가 없었다. 장인걸의 인정아래 가족 들의 목숨을 맏기고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 * * 장인걸은 그날 밤 자신의 방 옆에 딸려있는 비밀스런 밀실에 들아가서 벽에 쭉 세워놓은 세자루의 보검들을 만족스레 바라봤다. 세자루 다 무림인이라면 꿈속에서도 그리는 10대 기병(奇兵)이었다. 기병 서열 2위에 올라가 있는 화 룡도(火龍刀). 붉은색의 검신은 강한 불의 기운을 지니며 능력이 미치지 않는 자가 건드리면 타죽는다고 전해지는 3척 길이의 신도(神刀). 과거 사사천림 (死邪天林)의 림주가 지니고 있었으나 마교가 사사천림을 멸망시키고 입수한 후 입수했다. 검법을 익힌 작 도를 들면 아무리 좋은 도(刀)라도 강한 위력을 낼 수 없기에 역대 교주들은 그 강력한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잘 사용하지 않 았다. 한중길은 권법에 능했기에 검법을 익힌 아들에게 수라마검을 넘겨주고 대신 이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가 이 검을 계 속 가지고 있었다면 장인걸은 좀 더 큰 대가를 치뤄야만 교주를 없앨 수 있었 을 것이다. 감옥에 갖혀버린 소교주가 가지고 있던 수라마검(修羅魔劍). 아수라(阿修羅) 의 힘을 가져 그 힘을 제어하지못하는 자가 가지면 검의 마기에 홀려 혈귀 (血鬼)가 된다고 전해지는 마검으로, 검붉은 색의 검신에서는 강렬한 마기가 느껴진다. 전통적인 마교의 교주가 지니는 신물(信物)이었다. 이제 폐인이 되어버린 무림맹주가 가지고 있던 빙백수룡검(氷白水龍劍). 맑고 투명할 정도로 아름다운 2척 8촌의 검신에 양면에 1마리씩의 수룡이 음각되어 있다. 대단히 파괴력이 강한 검으로 싸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아무리 사람을 베어도 피가 묻지 않는 특이한 검으로 무림맹주의 신물(信物)이었다. 이 세 자루의 기병 중두 자루는 일파를 대표하는 신물. 장인걸에게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된거나 다름없는 마교의 신물보다 무림맹의 신물인 빙백수룡검이 더욱 가치있게 생각되었다. 무극검황 옥청학 맹주의 목숨과 맹주의 신물로서 협박을 하면 무림맹은 마교에 많은 것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장인걸은 빙백수룡검을 슬며시 쓰다듬으며 옥청학의 아들 옥진호 (玉振湖)가 다음 맹주가 되기를 빌었다. 옥진호는 화경에는 올라서지 못했지 만 대단히 뛰어난 검객으로 백류매화검법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거기에 옥청학의 아들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으니 잘만 하면 그가 차기 맹주가 될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흐흐흐... 이때 밖에서 음산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 죄인을 끌고 왔습니다." "잠시 기다려라." 장인걸은 밀실 밖으로 나간 후 기관장치를 돌리는 장치인 아수라의 목을 원위 치로 돌렸다. 그러자 책장이 빙글 돌아가며 밀실로 들어가는 통로는 사라졌 다. 그런 후 그는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들어오라." 문이 열리며 두명의 무사가 한중길의 손녀 한영영을 끌고 들어왔다. 군데군데 검붉은 피가 묻은 옷을 입은 그녀는 이미 혈도가 막혔는지 한올의 내공조차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가 봐라." "옛!" 무사들이 나간 후 장인걸은 원한이 가득한 한영영의 턱을 들어올려 얼굴을 지 긋이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정말 아름답구나." "퇘! 더러운 자식!" "역시 계집은 반항하는 맛이 있어야지. 크하하하..." 장인걸은 발버둥 치는 한영영을 간단히 들어쥐고는 침상으로 갔다. 그러자 한 영영은 발악을 하며 외쳤다. "더러운 자식! 내 몸에 손만 대봐. 혀를 깨물고 자살할테다..." 그러자 장인걸은 버둥거리는 한영영을 찍어누른 후 유방을 주물럭거리며 이죽 거렸다. "흐흐흐... 혀를 깨물면 혀만 잘리지 죽긴 왜 죽어. 자 혀를 깨물어 보거라. 본좌는 피를 보면서 성합을 하는걸 즐기니까... 크하하하... 하지만 네년이 혀를 깨물면 네 아비와 어미의 목도 함께 날아갈 거라는 것도 생각해 둬야 할 걸? 어때? 아직도 깨물고 싶은 생각이 있나?" 무림은 무림맹주 무극검황 옥청학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들끓고 있었다. 그를 호위했던 30명이 넘는 뛰어난 무공을 지닌 무사들까지 함께 사라졌기에 구구 한 억측과 유언비어가 나도는 가운데 정파는 서서히 분열하기 시작했다. 맹주 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무림맹은 청성(靑城), 점창(點蒼), 무당 (武當), 아미(峨嵋), 소림(小林), 곤륜(崑崙), 종남(終南), 화산(華山), 공 동(空洞)의 구파와 개방( 幇), 또 남궁세가(南宮世家), 악양세가(岳陽世 家), 서문세가(西門世家), 종리세가(鍾里世家),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오대 세가가 연합한 단체인 만큼 그들은 맹주의 실종과 함께 자파에서 맹주직을 차 지하기 위한 치열한 암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아미, 소림의 경우 승려들로 이루어 졌기에 맹주직을 차지할 생각이 없었고 무당과 곤륜은 도인들로 이루어 졌기에 권력과는 상관이 없었다. 또 개방의 경우 거지떼로 이뤄졌기에 거지의 특권인 무소유, 무욕에 상반되기에 맹주직을 노릴 가능성은 없었다. 악양세가의 경우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는 있 었지만 의가(醫家)였기에 무림의 장악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15개의 거대세력 중 6개의 세력을 뺀 9개의 문파가 문제였다. 그들은 각파의 장문인 내지는 뛰어난 고수들을 앞세워 맹주직을 노렸다. 하지 만 사실상 맹주가 될만한 인물은 몇사람 되지 않았다. 우선 옥청학의 아들 옥 진호를 들 수 있다. 그의 아버지가 맹주였기에 맹에서 가장 탄탄한 기반을 잡 고있는 인물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옥청학은 맹주이 자 공동파의 전대 장문인이었으며 그의 아들 옥진호에게 공동파 장문인의 직 위를 넘겨주고 맹주에 취임했었다. 하지만 옥진호 장문인의 무공은 그의 경쟁 자들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게 흠이었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인물이 서문세가의 가주 수라도제(修羅刀帝) 서문길제 (西門吉制)였다. 가전의 뇌전도법을 10성이상 성취한 유일한 인물로 120세에 이르는 화경의 고수였다. 서문세가의 힘이 오대세가의 수위에 오르는 만큼 서 문길제가 맹주로 등극할 확률은 지극히 높았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인물은 옥화무제(玉花武帝) 매향옥(梅香玉)이었다. 사 실 그녀는 구파일방에도, 오대세가에도 들지 못하는 여인이었지만 무림 최고 의 정보단체 무영문을 운영하는 여걸인 만큼 무림맹의 정보력에 지대한 공헌 을 하고 있는게 현실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공헌도를 내세워 맹주직위 를 노린다면 딱히 무림맹에서 거절하기 힘들다는게 세인들의 평이었다. 그 외에 무당파의 태극검제(太極劍帝)와 곤륜파의 곤륜무제(崑崙武帝)라는 거 목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200세에 가까운 노고수들로 화경에 이른 인물들 이었다. 물론 그들이 맹주의 직위를 노린다면 다른 인물들보다 우선권이 높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둘은 세상의 명리를 따지지 않는 도인들에다가 은거를 선 언한지 수십년이 지난 인물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직접 나설 가능성은 거 의 없었다. 또 맹주의 선출에 무림맹 자체의 이권도 있었다. 만약 무림맹은 뇌전검황이 비명횡사하지 않았다면 그를 무조건 맹주로 세웠을 것이다. 제자수 200여명 정도의 제령문 같은 작은 문파에서 그렇듯 고강한 무예를 지닌 인물이 나온게 놀라울 정도였지만 사실상 칠룡사봉에 뇌전검황의 대제자도 아닌 서진(徐眞) 이라는 제자가 들어간 것만 봐도 제령문의 저력을 옅볼 수 있었다. 거기에 뇌 전검황의 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었기에 다른 인물들의 반발도 없을테지 만 사실 무림맹에서 그의 죽음을 아쉬워 하는 이유는 딴데 있었다. 뇌전검황 은 유일하게도 삼황오제에 들어가는 초절정 고수들 중 가장 기반이 약한 인물 이었던 것이다. 문도수 겨우 200여명. 그렇다면 기존무림맹의 골격이 바뀔수 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각 파에서 맹주가 나오면 그 맹주는 약 2-3천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들어가 모든 중요 직책들에 그의 심복들을 집어넣게 된다. 하지만 뇌전검황은 그럴만한 인재를 보유하지 못했기에 그를 맹주에 세 운다 하더라도 공동파는 계속적으로 무림맹의 요직을 독점... 장기적으로 무 림을 주무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뇌전검황은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고 공동파가 내세울 유일한 인물은 옥진호 장문인 뿐이었다. 만약 맹주선출이 시작되면 옥진호 장문인이 맹주가 될 확률은 거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무림맹에서는 맹주의 행방불명 사실을 공포하고, 어딘가에 맹주가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점을 들어 차기맹 주를 선출하지 않고 옥진호 장문인을 맹주대리로 앉히고 맹주를 찾아내는 작 업을 우선시 하려고 공작을 펼치는 중이었다. 거기에다 무림맹이 맹주의 실종으로 난리가 나버려 제기능을 상실하자 급기야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태껏 무림맹의 중제로 충돌하지 못하고 있던 남궁세 가와 서문세가가 구휘대협의 무덤을 기화로 정면충돌했던 것이다. 거기에 엎 친데 덮친격으로 사파의 다섯 개 방파와 정파의 7개 방파까지 무덤을 빌미로 충돌을 벌여 이제 사태는 거의 구휘대협의 무덤을 중심으로 정과 사, 사와 사, 또 정과 정의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이지 추악하게도 무공비급과 보물을 놓고 싸움질을 하고있는 것이 다. 거기에 세상은 진천왕의 반란으로 인해 그를 진압하려는 황제와 반란을 일으 킨 왕과의 본격적인 전쟁으로 소란스러웠다. 한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귀주 성과 사천성에는 전쟁통에 수백만이 넘는 피난민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그덕 분에 대사마 진길영 원수와 이창해 원수는 서둘러 요를 정벌한 후 요 정벌에 커다란 도움을 준 여진의 족장들과 회담을 하여 송화강 동쪽을 여진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처음에는 여진까지 싸 그리 정벌해 더 이상 화근거리가 존재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지만 본국에 내전이 터졌는데 한가로이 야만족들 정벌한다고 대군(大軍)을 변방에 놔둘수 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낸 계략이 송화강 동쪽을 여진에게 주는 것이었다. 일부 러 그들은 각 족장들과 송이 여진에 공여하는 송화강 동쪽의 영토를 여러등분 하여 그 토막들의 경계선을 불분명하게 하고 두명, 혹은 세명의 족장들에게 중복하여 같은 영토를 줌으로 해서 여진족들끼리 치열한 내전이 벌어지도록 머리를 써버렸다. 그리고 그 전과에 따라 대송 황제가 내리는 벼슬도 함께 내 렸는데... 일부러 작은 부족의 족장에게 높은 벼슬을, 또 큰 부족의 족장에게 낮은 벼슬을 내렸다. 거기에 한술 더떠서 어떤 큰 부족은 부족장 보다 그 수 하 용사가 더 높은 벼슬을 받은 곳도 있을 정도였다. 일단 여진에 대한 논공행상이 끝난 후 대송의 주둔군이 철수하고 나자 진길영 원수와 이창해 원수의 계략대로 여진족 내에서 지독한 내전이 벌어졌다. 하지 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그 내전은 아골타라는 뛰어난 젊은 족장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게 된다. 그는 카막투이 부족의 일개 젊은 족장이었지만 요 정벌에 서 송의 군대와 함께 싸우며 집단전의 기법을 배우게 되었고, 거기에 사방에 서 지독한 부족간의 갈등이 생긴점을 이용해 각종 모략과 술수를 동원하여 빠 른 시간안에 여진족을 통합해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