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드래곤 전기 1화 -내 노예는 드래곤? ①- 상업 도시로 유명한 카에리온 시티. 가스트 제국의 주요 도시중 하나로서 몇십년 전부터 크게 번성한 도시다. 많은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몰려들고, 또 그 꿈과 희망을 뜯어먹히고 사라지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서라!!!" "으와아아아앗!!!" 그 도시의 시장골목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케리 레그너스. 직업은 모험가, 클래스는 검사다. 그의 조상은 그 이름도 유명한 카리온 레그너스. 수많은 드래곤과 마왕 퇴치의 업적(과장된 부분도 많지만 드래곤과 마왕을 상당수 처단했던 것은 사실인듯 하다.)을 남긴 전설적인 용사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 조상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과 명성을 지닌 천덕꾸러기 모험가일 뿐이다. "또 도망다니는군 빚만 가득한 허풍쟁이 케리가." "언젠가는 빚쟁이들 한테 걸려서 저렇게 될줄 알았지." 물론 부 역시 조상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재산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카리온 레그너스가 수많은 모험으로 남긴 엄청난 재산도, 2백년이나 지난 지금 케리 대에 와서는 한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칼과 갑옷! 받아가겠다!" "안돼! 이건 조상님이 남긴 마지막 물건이란 말야!" 한가지만 빼고. 케리는 칼과 갑옷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빚쟁이들과 사투를 벌였지만, 결국 붙잡혀서 모조리 다 털리고 말았다. "흥. 실력도 없는 주제에 무기는 좋은걸 가지고 다니는군." 빚쟁이들은 케리의 무기와 갑옷을 팔아서 돈을 분배할 논의를 하면서 시장바닥에 쓰러진 채로 있는 케리를 버려두고 사라졌다. "하아..." 케리는 길가에 주저앉아서 한숨을 내뱉었다. 가문이 몰락한 이후 연이은 불행에 이제는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케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카리온이 남긴 재산은 조금은 남아있었다. 크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케리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불어넣은 모험심이 집안을 완전히 말아먹고야 말았다. 카리온의 모험담을 쫓아서 케리는 모험을 계속하였으나, 그의 실력은 조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기에 모험 할 떄마다 돈만 날릴 뿐이었다. 첫번째 모험에서는 동료에게 사기를 당했다. 두번째 모험에서는 엉뚱한 사람을 다치게 해서 치료비만 물어줬다. 세번째 모험에서는 던젼을 파고 들어가서 거의 죽다가 살아나왔다. 이런 식으로 계속된 실패의 결과, 결국 쥐꼬리 만한 재산도 날려버리고,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져 이제 케리는 오늘 한끼를 걱정해야 할 운명이 되버린 것이다. "후우..." 한숨 쉬고 있어봐야 아무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다. 애당초 그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이 이 결과이니 그도 할말은 없었다. "이젠 어쩌지..." 다시 모험을 하려고 해도 칼도 없고 갑옷도 없다. 아니 주머니에 한푼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험은 커녕 밥 먹는 것과 잠 잘 것을 걱정해야 한다. "...짐꾼... 이라도 해볼까..." 어릴 때 부터 불타오르던 모험심도, 지금 이 상황에 와서는 완전히 사그러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서, 케리는 모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로 그때였다. 하늘을 찟어발기는 듯한 굉음. 카에리온의 모든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리의 진원지는...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최강의 몬스터, 파괴의 화신, 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존재. 신에게도 필적한다는 바로 그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다가오고 있어!"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모두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실제로 드래곤의 모습은 카에리온 시티로 다가오면서 점점 커지고 있었다. 케리도 드래곤을 올려다 보았다. 처음으로 눈으로 보게된 드래곤을... "...하... 모험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순간에 드래곤이 나타나다니..." 수백미터에 달하는 드래곤의 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톰 드래곤!" 근처에 있던 마법사 하나가 소리 질렀다. 스톰 드래곤은 폭풍과 바람의 속성을 지닌 드래곤으로서 온 몸에 짙은 회색 비늘이 덮여있다. 다른 드래곤에 비해서 특히 커다란 날개와 꼬리 부분 보조날개가 스톰 드래곤의 특징이다. "스톰 드래곤의 초음속 비행! 저건 막을수 없어! 어서 모두 도망쳐어!!!" 마법사의 외침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본 사람들도 군중심리에 이끌려 죽어라 달리기 시작했고, 카에리온 시티의 모든 기능은 순식간에 마비되어버렸다. 스톰 드래곤은 모든 드래곤 중에서도 몇 안되는 초음속 비행을 할수있는 종족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카에리온 시티 바로 근처를 통과해 지날 것인데 이때 일어나는 충격파는 카에리온 시티를 엉망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이다. 하지만 케리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스톰 드래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쳐봤자... 소용없잖아... 이젠 이런 실패 투성이 인생은 질렸어... 난 이제 죽고 싶어..."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스톰 드래곤이 일으키는 굉음이 점점 카에리온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정면으로 충돌하려나봐!"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톰 드래곤은 카에리온을 향하여 충돌할 것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만약 충돌한다면 그 위력은 카에리온 시티를 거대한 분화구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제와서 도망치려 해봐야 달아날수 있을리도 없건만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스톰 드래곤이 보기에 그것은 마치 개미떼들이 우르르 도망가는 것 처럼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케리는 도망가지 않고 있었다. "젊은이! 어서 도망가게!" 할아버지 한명이 케리에게 외쳤지만 그는 조용히... 똑바로 다가오는 죽음의 사자, 스톰 드래곤을 바라보면서 서있었다. "난 지금 비록 칼도 갑옷도 없고, 실력도 없어. 하지만... 적어도 죽을때만은 모험가 답게 적을 똑바로 보면서 죽을테다." 그의 주위에는 이미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스톰 드래곤이 일으키는 굉음에 주위의 유리창이 금이 가더니 와장창 하는 소리를 내며 모조리 깨져버렸다. 조금씩 바람이 거세져서 케리는 눈을 뜨기도 어렵게 되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케리는 공포심을 날려버리려는 듯이 온 힘을 다 짜내어 고함을 질렀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그의 마지막 절규 였다. ...가 될것이라고 예상한 그였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는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졌다. 드래곤이 부딧친 것 치고는 너무 약한데? 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양 볼에 말랑말랑한 것이 느껴졌다. 말랑말랑하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그가 아주 어릴 적에 느꼈던 그리운 것이었다. "뭐...뭐지...?" 케리는 질끈 감았던 눈을 떳다. 주위는 멀쩡했다. 깨져나간 유리창이나 날려진 기와장 같은 것만 빼면... 다만 몸 위에 뭔가 무거운 것이 올라가 있었다. 여자다! 소녀다! 게다가 알몸이다! 게다가 케리의 얼굴에 양 가슴을 대고 있어서 케리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아아악!!!" 케리는 드래곤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놀라면서 화들짝 소녀를 밀치고 뒤로 물러섯다. 스톰 드래곤은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방금전의 대혼란이 꿈이었던 것 처럼,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넋나간 표정이 방금전의 위기가 실재했던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케리는 자신을 타고 올랐던 소녀를 바라보았다. 어디 집에서 목욕하다가 바람에 날려 떨어진 것은 아닐까? 그런것 치고는 너무나 태연하게 알몸을 드러내고 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15,16살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의 어깨까지 늘어뜨린 반짝이는 머리카락은 짙은 흑철색. 같은 색인 눈동자도 별빛을 발하고 있었다. 피부는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고 몸매는 균형이 확실히 잡혀있었다. 소녀는 케리를 보면서 생긋이 웃었다. 처음보는 소녀였지만 너무나 아름다워서 케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케리 앞에 다소곳이 무릅을 꿇고 앉아서 케리에게 말을 건내었다. "주인님." "뭐?!"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 카리온 님과 한 300년 전의 계약에 따라 주인님을 모시기 위해 날아왔습니다♡" "뭐뭐뭐?!" 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케리는 물론이고 전 시민들도 굳어버렸다. "...네.. 네가 드래곤이라고...?" 케리는 라크리마라고 자신을 칭한 소녀를 가리키면서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최강의 생물이며 오만하기 짝이없다는 존재인 드래곤, 그런 존재가 어째서 자신에게 봉사하러 오는 것인가? 이 소녀는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라크리마는 전혀 거짓이라고 의심할수 없는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넹!" 라크리마는 반갑다는 듯이 케리에게 달려와 다시 알몸으로 끌어안았다. "자..잠깐만..!!! 나 나를 놀리려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해도 그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라면..." 케리는 다시 라크리마를 뿌리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라크리마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아 제가 변신하는 장면을 못 보신 것이군요. 그럼 다시 증거를 보여드릴께요. 폴리모프 셀프!" 번쩍!!! 소녀의 온 몸에서 태양처럼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빛이 너무 따가워서 케리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겨우 다시 고개를 돌린 순간. 그곳에는 소녀 라크리마는 온데간데 없고 아까 전에 날아오던 거대한 스톰 드래곤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스톰 드래곤은 그 강인한 몸체를 자랑하듯이 내보이며 케리를 향하여 최대한 다정한 듯이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래곤 얼굴로는 한계가 있었지만... "............" 케리는 그대로 뒤로 넘어져서 기절해버렸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화 -내 노예는 드래곤? ②- "...그... 그래서 네가 드래곤이라고?" "옛!" "카리온 조상님과의 계약 때문에 나를 섬기러 왔다고?" "옛!" 케리는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지 몇번이나 라크리마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다. 그때마다 라크리마는 생글 생글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저기 주인님. 저 먹을것 좀 주실래요? 너무 빨리 날아왔더니 배가 고픈데..." "아아..." 케리는 라크리마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참 떨어져서 그들을 지켜보고 잇는 구경꾼들에게 소리쳤다. "배가 고프데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구경꾼들은 개미떼가 흩어지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 역시..." 라크리마와 케리가 있는 장소 주위는 라크리마가 날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케리에게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 라크리마가 변신한 직후 몇개나 되는 모험자 파티가 떼를 지어서 라크리마를 처치하고 카에리온 시티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라크리마에게 도전을 하였다. 케리는 기절해 있어서 보지 못했지만 라크리마의 우아한 꼬리짓과 날개짓, 손짓 발짓에 모조리 궤멸당한 것은 주위에 널린 기절한 모험자들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 모습일 때는 자기 보다도 훨씬 연약해보이는 이 소녀 라크리마가 상상을 초월한 초강력 생물 드래곤이라니... 케리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이 ... 일단 옷 좀 입어줘... 부끄러워서 어디 볼수가 있어야..." "...아. 인간은 옷을 입는 생물이었지. 잠시만요." 마법으로 라크리마가 옷을 불러내서 입을 때 까지 케리는 눈을 돌리고서 라크리마와 이야기 해야 했다. 그 다음은 케리의 명령으로 라크리마는 자신이 쓰러뜨린 모험자 파티를 죽지 않을 만큼만 회복시켜주었다. "이 사악한 드래곤! 내 칼을 받아..." 퍼어어엉!!!! 케리와 함께있는 라크리마를 습격하려 시도한 32번째 파티가 라크리마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폭풍을 맞고서 흝날려 갔다. "라.. 라크리마 너무 그렇게 날뛰면 안돼..." "에? 하지만 날 죽이려 하는 걸요." 너무나 강하다. 너무나 공포스럽다. 라크리마는 인간형으로 변신한 상태에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케리와는 하늘과 땅 만한 레벨차이가 나는 모험가들도, 라크리마 앞에서는 손짓 한방에 날아가버리곤 했다. 이런 괴물과 싸워서 이겼다는 조상, 용사 카리온이 너무나 대단하게 생각되어지는 케리였다. 게다가 그 미모. 라크리마의 미모는 실로 엄청나기 짝이 없었다. 본체 상태에서의 무시무시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녀를 노리는 늑대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케리는 어쩔줄 모르고 라크리마와 함께 멍하니 있었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벌써 몇십개나 되는 파티를 날려버린 걸까. 라크리마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 했지만... 카에리온 시티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드래곤이 도시 안으로 들어와서 마치 장난하듯이 덤벼드는 모험가들마다 족족 족치고 있으니... 이 사건이 소문으로 퍼지게 되면 카에리온 시티에 장사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것이다. 케리는 일단 라크리마를 진정시키기로 했다. "라... 라크리마. 우... 우선은 ... 조용한 장소로 옮기자. 응. 조용한 데서 이야기 하자고. 그래.." "예. 주인님!" 라크리마는 케리가 자신에게 명령한 것이 기쁜 것 처럼 대답했다. 그리고 주문을 외웠다. "사일런트!" 웅성 웅성 대던 도시 전체가 갑자기 적막감에 빠졌다. 라크리마의 마법에 의해 도시 전체의 소리가 사라진 것이다. "...아 아니 이런게 아니라. 어디 다른데 가서 이야기 하자고... 이 마법은 풀어줘." "아. 예. 그런 의미였군요. 인간의 말은 잘 몰라서... 그럼! 제 레어가 좋겠죠?" "...아. 응." "예 그럼 갑시다! 안티 사일런트! 폴리모프!" 라크리마는 사일런트 마법을 푸는 것과 동시에 본체인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흐에에에엑!" 벌써 두번째 보는 것이지만 케리에게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공포를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라크리마는 케리를 앞발로 들더니... 그대로 입안에 넣어버렸다. "으악!!!" 시뻘건 혀와 새하얗고 커다란 이빨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케리는 또다시 기절해버렸다. [오빠는 인간 쓰레기야!] 아냐... 아냐... [그러게 모험이 좋다면서 집안 재산은 다 들고 나가더니.. 꼴이 이게 뭐야...] 미안해... 미안해... [멍청이! 바보! 쓰레기! 나가죽어! 너 같은건 오빠도 아냐!] 용서해줘... 용서해줘... [다시는 보지 않을꺼야!] "에마!" 케리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면서 화들짝 일어났다. "...꿈인가... 에마 꿈을 꾸는건 오랜만인데... 하필 그런 꿈이라니..." 케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못보던 방풍경이었다. 자신이 언제나 지내던 싸구려 여관방과는 전혀 다른 초 고급 침대와 카펫, 게다가 벽난로 까지 완비되었으며 벽에는 으리으리하게 장식이 되어있고 한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장식품이 방 곳곳에 놓여있었다. 창문조차 없었는데 그 대신에 천장 한 가운데 커다란 구슬이 매달려서 빛을 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아 주인님! 일어나셧습니까?" 방 한구석에 있던 호화스러운 문이 열리더니 한 소녀가 들어왔다. 라크리마였다. "흐악!" "주인니임~ 너무 무서워 하지 마세요. 제 입에 실례를 하신건 너무 하셧지만... 전 그런걸로 화 안내요." 케리가 놀라면서 도망치려 하자 라크리마는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로 케리를 달래었다. "네... 네 입에 .. 실례를 하다니...?" "주인님이 제 입안에 '타시자' 마자 그대로 기절하셔서 그만 입 안에... " "아아... 그게 그런 거였구나..." 케리는 라크리마가 자신을 잡아먹으려 한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직도 좀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이나 양치질 했다구요. 아직도 입안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칫." "...앞으로 입안에 넣는건 그만두어줘..." "하지만 스톰 드래곤인 제가 비행을 할때 인간이 버틸수 있는 장소라고는 제 입속 밖에 없어요. 이야기에 나오는 것 처럼 등 위에 타고 가는건 절대로 불가능해요." "...그...그러니..." 라크리마. 오늘 갑자기 자신의 노예라고 칭하며 찾아온 갸냘프고 명랑한 소녀. 하지만 그 정체는 무시무시한 스톰 드래곤. 이 엄청난 격차를 케리는 아직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 그런데... 라크리마 여긴 어디지...?" "아예. 제 레어예요." "...저기 그럼... 옷 좀 가져다 줄래?" 라크리마가 자신의 침으로 범벅이 된 케리의 옷을 홀딱 벗겨놓은것은 한참 전의 일인 것 같았다. 라크리마가 나간뒤 케리는 갑자기 코볼트 들이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코볼트 들이 몸에 꽉 끼는 턱시도를 억지로 입고, 케리를 옷을 들고 있는 것을 보자 겨우 이들이 라크리마의 부하라는 것을 알아챘다. 케리는 코볼트들을 경계하면서 슬금슬금 옷을 갈아입었다. 코볼트 들은 케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언제 갑자기 위험이 닥칠지 몰라 두근 두근 하면서 경계하는 케리였지만 아무 일 없이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라크리마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어서 오세요. 주인님" 그 커다란 식당과 말도 안되게 큰 테이블. 그 위에 차려진 가지가지 호화스러운 요리들 보다 더욱 케리를 놀라움에 빠뜨린 것은 라크리마가 입은 메이드 복이었다. 검정 소재의 치마와 상의. 그 위에 걸친 하얀 에이프런과 머리에 쓴 하얀 머리싸개가 흑철색 머리카락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게다가 테이블에 의자는 하나 뿐! 라크리마는 그 옆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케리는 꿈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의자에 앉았다. "저기 라크리마, 넌 이 레어의 주인인 드... 드래곤이잖아. 그런데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전 이 레어의 주인이기 전에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라크리마가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케리는 다소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드래곤인 라크리마가 무섭기는 마찬가지라서 혼자 먹겠다고 하고 라크리마의 시중을 물리렸다. 라크리마는 약간 슬픈 표정으로 식당에서 사라졌다. 코볼트 들이 음식을 날라왔다. 스프, 샐러드 등의 전채요리. 스테이크 등의 메인 디쉬. 아이스크림, 샤벳 등의 후식 까지... 케리가 고달펏던 모험가 시절은 물론, 어릴 적에 다소 살만 했던 시절에도 입에 대어보지도 못했던 음식이 가득 가득 했다. 겨우 배를 다 채우고 와인을 한잔 들이키면서, 케리는 왜 라크리마가 자신에게 이런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무리 조상인 용사 카리온이 강했다지만, 이미 죽고 없는 지금 드래곤인 라크리마가 자신에게 이렇게 까지 해줄 필요가 있을까? "라크리마!" 케리가 부른 순간 라크리마는 식당 문을 열고 바로 달려왔다. "예 주인님!" "식당 밖에서 계속 기다린 거야?" "물론 이지요." 라크리마는 당연 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볼 것이 있어 라크리마." 한번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것이 케리의 성격이었다. "뭐지요. 제가 아는 거라면 뭐든지 대답해 드릴께요." "왜 나한테 이렇게 까지 잘해주는 거지?" "그야 카리온 주인님과의 계약이니까요." "하지만 카리온은 이미 죽었어. 게다가 넌 이렇게 강력한 드래곤이잖아?" 그 순간 라크리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언제나 얼굴에서 떠나지 않던 웃음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미 미안...내가 잘못... 말했나..." "아뇨. 주인님께서 잘못한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리크리마가 이렇게 슬퍼하잖아!" "아니요. 정말 잘못한게 없어요... 저희 드래곤은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으니까... 카리온 주인님이 이제는 없는 것이 너무 슬퍼서 그럴 뿐이예요..." "미... 미안해 울음을 그쳐줘..." "예... 그럼 제가 카리온 님의 노예가 된 사연을 설명하지요." 리크리마는 메이드 복의 소매로 눈물을 싹싹 닦아내더니 슬픈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카리온 주인님과 만난 것은 300년전. 휴면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지금도 별로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는 1000살 밖에 안되었으니까요. 한창 멋모르고 날뛰고 다녔죠. 인간의 도시를 쓸어버리고, 엘프의 숲을 불태우고, 드워프 광산을 무너뜨리고, 드래곤이랑 싸운 적도 있어요. 그러다가 그때 카리온 님과 대결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리크리마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더니 추억에 한껏 몰입하여 황홀한 표정이 되어있었다. 정말 감정이 잘 변하는 드래곤이다. "졋어요. 물론 객관적인 전투력으로 봤을때 카리온 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드래곤인 제가 카리온 님에게 질리가 없죠. 전 드래곤 중에서도 아주 강력한 편에 속하는 스톰 드래곤 이니까요. 인간 따위에게 질리가 없는게 당연하죠. 하지만..." "하지만...?" "전 그 당시 휴면기를 겨우 한달 놔두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하도 날뛰어서 너무 피곤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제 파워의 100분의 1도 제대로 쓰지 못했죠. 그러니까 카리온 님한테 엉망진창으로 패배한 거예요. 아하하하. 부끄러워라." "......" 케리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어릴때부터 존경해온 조상 카리온의 우상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카리온 님은 정말 상냥하셧어요. 빈사상태로 언덕에 기대고 있던 제가 여자애라는 것을 알자 목숨을 끊지 않고 살려주셧어요. 틀림없이 죽어가는 제 모습이 너무나 가련했던 거예요. 정말 너무 멋져요. 카리온 님은..." 리크리마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열심히 설명하였다. "...드래곤 모습으로 싸운 거지?" "당연하죠." 케리는 리크리마의 미적감각은 인간과 다른 것이 틀림없다고 학신했다. "그리고 으흠... 전 카리온 님과 사랑에 빠졌어요. 드래곤 슬레이어와 드래곤, 게다가 저는 앞으로 한달 뒤면 휴면기에 들어서 영영 카리온 님과 못만나게 될 운명. 한달 밖에 안 되지만 저희들은 짧은 만큼 뜨겁게 불타올랐어요. 이 레어에 식당과 침실, 그외 모든 편의시설을 갖춰둔 다음 한 발자국도 바깥에 나가지 않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죠." 이 식당과 케리가 깨어났던 침실도 그때 만든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결국 저에게 휴면기가 닥쳐오고 전 카리온 님과 헤어져야 할 때가 되었어요. 전 안타까운 목소리로 카리온 님에게 말했습니다. '카리온 님과 다시 만나지 못할 바에는 제 목을 잘라주세요. 당신께 드래곤 슬레이어의 명예나마 이별의 증표로 드리곘어요.' 하지만 카리온 님은 제 목을 자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붙어있는 거지만... 대신에 이렇게 말씀 하셧죠. '이미 드래곤은 몇마리나 죽였으니 더 이상 명예는 필요없어.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너를 처치했다고 해둘께. 그래야 편히 잘수 있겠지? 대신에 깨어나면 한 가지만 약속해줘. 너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인 이 아이의 후손에게도 나를 대하듯이 복종해줘. 그 목의 댓가야.'라고 말이예요. 아 이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이신가. 그래서 저는 주인님과 만나게 된 겁니다. 끄읕~" "...자 잠깐..." 케리는 리크리마의 이야기에서 이상한 점을 하나 찾아내었다. "'너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인 이 아이'라니 그게 대체 누구야?" "물론 저와 카리온 님의 아이죠. 그리고 아마 주인님의 조상... 정도 되겠죠? 아하하하하" 생글생글 태연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 리크리마를 보면서 케리는 공포심 비슷한 까지 느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화 -조상님은 색마?- 케리는 라크리마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어찌할줄을 몰랐다. 라크리마 자신은 그 사실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것 같지만... "왜 그러세요?" "...저기 라크리마... 네가... 아 아니 당신이 우리 조상이라는 것은..." "으흠?" "넌 나의 할머니나.. 뭐 그쯤 된다는 이야기잖아?" "어머 할머니라니. 이런 미소녀에게 할머니라니요. 전 1300살 밖에 안됐어요." 자신을 스스로 미소녀라고 칭하는 점도 별로 정상은 아닌듯 한데...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저기..." "예예. 알아요. 혈족이라는 거죠? 우리는... 하지만 상관없어요. 어차피 300년이나 전의 일이잖아요? 우리 사이의 유전적 관계는 거의 남남이나 다름없어요. 아무 의미도 없다구요. 현재를 즐겨요. 현재를." 방금 전 까지 추억에 휩쌓여서 울고 있던 여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케리는 좀 께름직 했지만 리크리마가 그렇게 말하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였다. "아하하. 그럼 목욕하세요. 침실 정리해놓을 테니까." 케리는 코볼트 들에게 안내되었다. "대체 이런 큰 건물을 어떻게 땅속에 만든거야..." 복도에는 몇미터 간격으로 벽에 구슬이 박혀서 빛나고 있었다. 이 구슬들은 리크리마가 마력을 써서 만들어낸 조명용 마법도구였다. 정말 엄청난 재산과 마력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호화찬란한 지하궁전이었다. 탈의실에도 굉장한 장식이 되어있었다. 300년이나 시간이 지났음에도 거의 낡은 티가 안 나는 것은 리크리마의 마법 떄문인것 같았다. "...이런걸 만들게 하다니 카리온 조상님도 참..." 케리는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잣말을 했다. "아닙니다. 이걸 만드신 것은 리크리마 님입니다. 카리온 님과의 마지막 시간을 조금이나마 편안히 보내기 위해서..." "누... 누구야?!" 갑자기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리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눈부신 나체를 자랑하는 여성이 있었다. 약간 소녀틱한 리크리마와는 정 반대로 커다란 가슴을 흔들 흔들 거리며 서있는 그 여성은 손바닥 정도 길이의 긴 귀와 눈부시게 반짝 거리는 금발 머리를 지니고 있었다. "저는 카리온 님의 목욕 담당이었던 엘프, 아이시테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은 케리 님의 목욕 담당이기도 하지요. 욕실에서 만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니 욕실에 까지 들어올 필요는 전혀 ..." 케리는 허둥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호리호리한 몸매로 유명한 엘프 답지 않게 커다란 가슴이 케리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안됩니다! 몇백년 동안 이 레어에서 얼마나 고독했는데요. 리크리마 님은 주무시고 게시고... 심지어 노예로 쓰이는 수컷 몬스터들에게 손을 뻗을뻔한 것을 몇번이나 허벅지를 찌르면서 참았는지 아십니까? 특히 밤에 코볼트들이 새끼치는 소리가 들릴때면 정말이지..." 아이시테는 얼굴이 시뻘겋게 되어서 케리에게 목욕시중을 들게 해 달라고 강요하였다. 결국 케리는 허락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하였다. "너무해요. 등만... 그것도 때수건으로 밀어달라니..." "온 몸에 비누칠을 해서 때를 밀어주곘다는 그쪽이 이상한 거예요!" 겨우 목욕탕에 들여놓기는 했지만 케리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 등만 아이시테에게 맡겼다. 싹 싹 싹... "저기 너무 달라붙지 마세요..." "...예?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 "가.. 가슴이... " 케리의 등에는 뭔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큼지막한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어머 죄송합니다. 제 가슴... 원래는 이렇게 까지 크지 않아서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어요. 이 가슴은 리크리마 님에게 카리온 님이 부탁해서 마법에 걸려서 이렇게 커진 거예요. 원래는 껌딱지 같았거든요. 후훗..." 케리는 화재를 돌려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이 건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여긴 리크리마 님이 카리온 님을 위해서 마력과 재력을 총 동원해서 만들었졌죠. 수백명의 코볼트, 고블린, 오크등을 노예로 삼아서 그들 모두에게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서 짓도록 했더니 단 삼일 만에 만들어졌어요. 다만 신체 시계 자체를 빨리돌렸으니 건설이 끝나고 얼마 안가 다 죽어버렸지만....내부 공사는 드워프를 시켰고, 마법도구는 리크리마 님이 만들고 모은 것으로 충당했지요. 뭐 사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예요. 리크리마 님이 본체 상태로 주무시는 침실보다야..." "저기... 카리온 조상님과는 어떤 관계죠?" "처음에는 동료였어요. 하지만 얼마 안가서 노예가 되었죠. 어떻게 해서 제가 카리온 님의 노예가 되었냐 하면 말이죠.." "그만 말해요!" 케리는 빨리 등만 닦게 하고 내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용사 카리온에 대한 이미지가 더 붕괴되기 전에... 전설에 의하면 용사 카리온의 여자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였다. 멋지고 강하고 재산도 많고 명성과 명예도 자자한 남자이다 보니 자연히 여자가 따라붙을 만도 했지만... 카리온은 확실히 바람둥이 라는 면도 있었다. 하나의 모험을 거칠 때마다 한 두명은 꼭 여자가 따라 붙었다. 카리온은 바람둥이였다. 라는 것은 학계에서 정통 학설로 인정되고 있었다. 그래서 케리의 가계가 정말 용사 카리온의 가계가 맞는지도 가끔 의심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케리만은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용사 카리온은 자신들의 할머니 쪽 조상인 누군가(리크리마로 밝혀졌지만)만은 끝까지 사랑했을 것이다. 라고 별 근거도 없이 믿고 있었다. 이래서 이놈은 안되는 거지만... 그러나 눈앞에 분명히 실제하는 이 '하렘'을 보고 나니 케리도 도저히 그 학설을 부정할수가 없었다. 리크리마와 둘이서만 즐길 것이라면 이렇게 까지 큰 건물을 만들 필요도 없었다. 카리온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숫자가 이 하렘을 떠나갔다고 하지만 빈 방의 숫자로 볼때 적어도 수십명은 되는 여자가 이 하렘에서 있었던 것 만은 틀림없다. 케리는 복도를 걸으면서 하나하나 방 문을 열어보고 자신의 이 상상이 맞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하였다. 하지만... 복도 맨 끝쯤에 있는 문을 열었을때 도저히 무시할수 없는 증거가 튀어나왔다. 문을 열고 나자 안에는 고양이 같은 꼬리와 귀와 눈, 그리고 코 주위에 6가닥의 긴 수염을 가진 7~8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애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묘인족, 아인종중 하나인 종족이 틀림없었다. "너는 누구냥?" 고양이 울음소리가 섞인 발음으로 그 여자애는 케리에게 물었다. "나는 케리 레그너스라고 해. 넌 누구지?" 설마 이 소녀에게서 자신이 가장 확인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한채. "냐앙 네가 케리 레그너스구나. 난 파치야 레그너스라고 한다냐옹. 네가 리크리마 님과 우리 조상인 카리온 님의 후손이구냐앙" 쿵. 이렇게 터무니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밝혀지는 것 만은 원하지 않았는데... "리크리마아아아아아아아아" 케리의 비명소리를 듣고 리크리마는 5분도 되지 않아 케리 앞에 나타났다. 물론 메이드 복을 입은 채로... "무슨 일이세요?" "저... 저 저거 뭐야...." 케리가 파치야를 가르키면서 물어보자 리크리마는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으음... 인간 세상에도 알려진 대로 카리온 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시지만 여자 관계만은 그리 깨끗하지 않아요. 저도 속 많이 썩었어요. 특히 아인종 종류 여자를 좋아하셧는데... 한달 밖에 안되는 시간동안에 이런 잡다한 여자들이 살 집 까지 다 만들어 놓으라니.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는 전부다 책임져야 한다나? 제가 잠든 이후로도 카리온 님은 여기서 꽤 오래 사셧고, 저런 잡다한 새끼들도 치게 되었죠. 뭐 별로 신경쓸건 없어요. 이리저리 빠져나가서 한 12마리 정도 되니까. 저것들은 그냥 따로 갈데가 없어서 눌러앉아 있는 거예요. 여기 있으면 코볼트들 한테 명령해서 그래도 카리온 님의 씨라고 먹을건 챙겨줬으니... " "............" "뭐 저도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아요. 아하하하하. 욕실담당 아이시테만은 카리온님이 살아게실 때부터 지금 까지 계속 살아왔지만, 저것들은 어차피 저랑 상관없으니까..." 하지만 역시 리크리마가 강하고 아름다운 만큼 본부인이고 나머지는 그냥 첩실이었던 걸까? 파치야는 리크리마에게 상당한 공포를 느끼는지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엎드려 있었다. "리크리마님... 뵙겠습니다냥.."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케리를 대할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파치야. 네 조상은 묘인족 여자였지? 뭐 네가 '레그너스'의 성을 쓰는것도 틀린 것은 아니니 봐주도록 하겠어. 하지만 이 '케리 레그너스' 님을 너랑 같은 위치라고 생각하지는 마. '너희들'은 어디까지나 방계후손이고 떨거지일 뿐이야. 고귀한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케리 레그너스 님과 너희는 차원이 틀리다고 알겠어!" 리크리마의 목소리도 케리를 대할때와는 정 반대로 콧대높고 위압적이었다. 이것이 리크리마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나를 대할때가 진짜 모습일까? 케리는 약간 혼란스러워 져서 리크리마를 만류하였다. "리크리마. 너무 그렇게 책망하지 마." "예♡ 케리님의 명령이시라면." 순식간에 애교 말투로 돌아오는 리크리마. 케리는 리크리마에게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기로 결정했다. "리크리마 물어볼 것이 있다." "예. 마음대로 물어보세요." "우리 조상님. 그러니까 카리온 님은... 색마였냐?" 케리는 꺼내기 어려운 마지막 한 마디를 꺼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그래서 리크리마에게 묻기로 했다. 리크리마만 아니라고 말해준다면 일단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리크리마는 약간 표정이 어두워져서 대답했다. "예. 불행히도. 그것만은 부정할수 없겠군요. 게다가 상당히 범종족적이셧죠. 엘프나 묘인족은 기본이고 저 까지 사랑하셧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제일 사랑하셧던건 저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물론 진지하지 않은 관계는 하나도 없었어요." "............" 케리의 마음 속에 어릴 적 부터 번쩍이며 솟아있던 카리온의 우상이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무너져 내렸다. "이런건 인정할수 없어어어어어!!!" 케리의 절규가 리크리마의 레어 안에 울려퍼졌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화 -용혈의 전사 ①- 카에리온 시티. 얼마전 스톰 드래곤이 습격하고 지나간 이곳은 소문이 퍼지면서 급격히 황폐일로를 걷고 있었다. 드래곤이 출몰한다. 라는 정도의 소문이 아니라 드래곤이 출몰했다. 라는 소문이고... 게다가 직접 피해를 본 사람들도 있으니 숨길 방법도 없었다. 발 빠른 사람들은 그날부로 짐 정리하고 떠났고, 그들을 뒤따라서 슬금슬금 떠나는 사람도 상당수 되었으며, 이 도시에서 조상대대로 살아온 토박이들도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드래곤은 인간 사회에 엄청난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특히나 엄청난 스피드로 날아다니고 폭풍까지 일으키는 스톰 드래곤은 도저히 상대할 방법조차 찾을수 없어서 더욱 위협이 되었다. 공포를 느끼고 달아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드래곤을 잡으려는 겁 없는 모험자들의 무리만 카에리온 시티에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중에 한 명의 소녀가 있었다. 때에 찌들은 회색 로브를 걸친 그녀는 스톰 드래곤이 착륙했다고 하는 자리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드래곤의 습격 이후 시행정이 붕괴된 것이나 다름 없게 되어버린 카에리온 시티, 그것도 거의 암흑가와 비슷하게 되어버린 드래곤이 착륙한 구역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가를 모르는 것일까? "이봐 아가씨. 여기서 구경하려면 돈 내야 한다는거 몰라?" 늘 있던 패턴 답게 시시껄렁한 불량배 무리들이 여자 주위에 몰려들었다. 소녀는 로브 밑에 차고 있던 샤벨을 꺼내서 그들의 눈앞으로 내밀었다. 이 시대에는 모험가들에게만 적용되는 특이한 법률이 있었다. 맨몸의 상대를 상대로 할때는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상대에게 무기를 보여준다. 그래도 상대가 덤비면 그때는 죽여도 좋다. 이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전혀 알수없는 법률이지만 좌우간 소녀는 법률에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헤헤헤. 뭐하는 짓이야? 그럼 나도 내 무기를 보여주지." 불량배들중 한명이 허리띠를 풀더니 그대로 바지를 쑥 내렸다. 하지만 그가 그의 흉물을 자랑하기도 전에 소녀의 샤벨은 그의 머리를 공중으로 날려버리고 있었다. 불량배는 바지를 내려깐 채로 그대로 죽음을 맞았다. "뭐 뭐야 이년!" 다른 불량배들은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두고 허둥지둥 무기를 꺼내 들었다. 품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 드는 놈도 있고, 근처에 굴러다니던 쇠막대를 드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방금전에 번개같이 빠른 소녀의 칼솜씨를 본 탓에 아무도 섯불리 공격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소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나이에 맞지 않게 수라장을 몇번이나 헤치고 나온 자만이 낼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동네 불량배들하고는 차원이 틀렸다. 소녀가 다시 한번 샤벨을 휘두르려고 폼을 잡자 불량배들은 무기를 바닥에 집어던지고는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허둥지둥 도망쳐버렸다. 소녀는 시시하다는 듯이 피씩 웃고는 중얼 거렸다. "스톰 드래곤... 틀림없어..." 한편 라크리마의 레어에 잡혀있는 케리는 천국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 속은 가시방석 같았다. 라크리마가 혹시라도 화를 낼까봐 두려워서 모든 행동에 조심에 조심을 다하고 있다 보니 맛있는 음식과 편한 잠자리도 빈털털이 모험가 시절보다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라크리마가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을 대해주는 것에 케리도 조금씩 이나마 마음을 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의 일이었다. "저기 케리님." 언제나 처럼 시중을 들던 라크리마가 케리에게 말을 걸었다. "응?" 케리는 혹시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조마조마 하면서 대답하였다. "밤 시중은... 언제 들어드리면 될까요... 케리 님은 라크리마가 밤 시중 드는 것은 싫으신가요?" 두둥! 마침내 닥칠것이 닥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밤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는 미소녀, 그러나 실체는 흉폭한 드래곤. 성격은 아주아주 싹싹하고 순종적인 메이드, 그러나 사실은 아주 콧대높은 여왕님이기도 하다. 이 이중성 덩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케리는 난감하기 짝이없었다. 어떻게든 라크리마를 안는 것 만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정면으로 거절했다가는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케리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짜내서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내었다. 라크리마가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을 조건을 거는 것이다. "라크리마." "예?" "만약 네가... 드래곤으로 변하지 않고 계속 인간으로 있는다면 안아줄께." 라크리마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대답했다. "전 지금도 드래곤이예요. 겉 모습만 바뀐것 뿐이죠." "그래. 겉 모습을 계속 인간형으로 해줘. 내가 허락하지 않는한 드래곤 모습이 되지 말란 말이야." 라크리마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드래곤인 라크리마에게 인간형은 매우 불편한 모습이었다. 아직 라크리마는 손 놀림이 서툴고, 가끔 걷다가 넘어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인간형으로는 마법을 쓰지 않는한 날아다닐 수가 없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사실 날아다니는 것을 그것도 초음속 비행을 아주 좋아하여 몇일에 한번씩은 꼭 하늘을 산책하러 나갔다. 그런 라크리마에게 인간형으로 계속 지내라고 했으니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케리였지만... "좋아요." 라크리마는 선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을 빗나간것 같았다. "괘.. 괜찮아? 날아다니는걸 좋아하잖아?" "날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만 케리 님을 더 좋아하니까요." 이렇게 나오면 뺴도 박도 할수없게 되버린다. 결국 그날밤 케리는 라크리마가 침실에 들어오는 것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피곤하다고 일찍 자는 거야...' 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녀가 침실에 온다고 했는데 그대로 잠들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잠들기는 커녕 흥분해서 밤새도록 꺠어있을것 같았다. 마침내 라크리마가 메이드 복을 입고 들어왔다. "주무세요?" '그.. 그럼 돌아 누워있자.' 라크리마 쪽을 봐버리면 폭주할것 같아 케리는 이불속에 얼굴을 파묻고 돌아 누워있었다. 사락.. 사락... '버..벗고있어!!!' 메이드 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얼마 전에 본 라크리마의 나체가 머리속에 케리의 머리속에 아름 아름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윽... 라크리마가 케리와 같은 침대 같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으응... 주무시나 ..." 라크리마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케리의 체온을 느끼려는 듯 케리의 등에 살포시 안겼다. 라크리마의 따듯한 것... 라크리마의 말랑말랑한 것... 라크리마의 부드러운 것... 케리의 가슴속은 마른 장작에 휘발유를 뿌린 것 처럼 격열하게 타올랐다.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여기서 그냥 넘어가면 남자가 아니다.' "라크리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어머나앙" 그 뒤의 일은 아쉽게도 두 사람의 만의 비.미.일.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린애가 아니라면 다 알겠죠? "아아..." 다음날 케리는 옆에서 새근 새근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라크리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한숨을 지었다. 어제는 너무나 흥분해서 세번이나(뭘?) 해치워 버리고 말았다. 처음한것 치고는(대체 뭘?) 라크리마의 리드가 너무 좋아서(뭔데 대체?) 말이다. "아아... 잘가라 나의 소년시대여..." 케리는 기쁨과 슬픔, 온갖 감회가 교차하는 눈물을 지었다. 첫 경험 상대가 드래곤이라니 어떤 모험담에게도 그런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일어나셧어요..." 그제서야 라크리마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아침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데..." 라크리마는 엄청나게 정확한 체내시계를 지니고 있었다. 허둥지둥 일어나서 메이드 복을 몸에 걸치기 시작했다. 라크리마가 사라진 뒤 케리는 하얗게 타버린 잿더미로 남아있었다. "에마 레그너스. 당신 같은 모험가가 왜 이런 다 망해가는 도시에 나타난 것이지?" 얼마전에 불량배들 몇명을 엄청난 검술로 쫓아내버린 소녀는 카에리온 시티의 용병 길드에 나타났다. 용병 길드도 도시가 번성해야 장사를 하는 법이다. 이미 그들도 다른 곳으로 사업을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에리온 시티 길드 마스터, 레이스 그람. 턱수염을 좀 기른 것만 빼면 너무나 평범한 옆집 아저씨의 얼굴을 한 이 사람도 사업 이전 준비를 착착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사업을 이전하려는 건가? 레이스 그람. 그러기는 너무 빠른것 아냐?" "농담마. 드래곤이 도시에 출몰하는 초유의 사태. 그리고 연쇄적으로 퍼지는 공포. 이런 것에 버틸수 있을 정도로 통이 큰 장사꾼은 얼마 되지 않아." "흠... 과연... 우리 오빠의 소식은 알아봤어?" "케리 레그너스 말인가... 얼마전에 드래곤이 습격했을 때가 그 쓰레기 녀석의 마지막 이었다지. 멍청하게 드래곤 근처에서 얼쩡 대다가 잡아먹혔다는군. 후후후..." 용사 카리온의 높은 이름과 그에 대조되는 케리의 얼간이 행각은 카에리온 시티에서도 나름대로 술집 안주꺼리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드래곤 슬레이어의 이름을 가진 용사의 자손, 드래곤에게 잡아먹히다. 이 처럼 재미있는 농담도 요즘에는 찾기 어려웠다. "후후... 아냐 오빠는 죽지 않았어..." "하하하. 에마, 넌 네 오빠보다 훨씬 똑똑하니까 잘 알텐데. 드래곤에게 잡아먹혔는지는 모르지만 드래곤 손에 들려서 입안으로 들어간건 틀림없어. 그 상황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없고." "글세... 그 드래곤이 어떤 드래곤이냐에 따라서 틀리겠지." 레이스 그람은 에마의 말에 번쩍 눈을 떳다. 일급 정보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빨라 레이스 그람. 그래서 당신이 좋은거야." "흥 빨리 말하기나 해. 용건도." "내가 용사 카리온 레그너스의 자손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가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를 퇴치한 일도 말이야." "아 그런 것이야 유명한 일이지." 레이스 그람은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다. "이 도시에 나타난 스톰 드래곤. 그것이 바로 라크리마야. 용사 카리온 레그너스가 퇴치했다는 바로 그 드래곤. 그 드래곤은 죽지 않았던 거야!" "뭐?" 레이스 그람은 믿어지지 않는 다는 듯이 말하였다. 하지만 목소리는 시큰둥 했다. 그게 대체 어쨋다는 건가? "레이스 그람, 동료를 모아줘. 나만은 라크리마의 레어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그 드래곤을 잡아서 회를 떠서 보여주지. 하하하하하..." "드래곤 슬레이어라도 되려는 건가. 에마... 너는 케리 처럼 멍청하지 않은줄 알았는데..." 레이스 그람은 약간 실망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오빠는 멍청해서 안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라면 가능해. 내가 말하는 사람에게 제안을 보내줘. 곧바로 달려올 사람들이 꽤 많으니까." "우체국 역활이라도 하라는 건가... 뭐 나쁘지 않군. 하지만 나는 협조 안해 드래곤과 싸우는 무모한 짓을 할 사람은 없어." "기대도 안했어." 에마의 마지막 말에 레이스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차피 에마가 성공할 리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리어 비웃는 듯한 느낌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화 -용혈의 전사 ②- 카에리온 시티 용병 길드는 오랜 만에 큰 일거리를 맡게 되어 약간 이나마 침체되어 있던 분위기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직원들도 마지막이 될것 같은 이번 일을 잘 끝마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아니 이 일이 잘 풀리면 마지막 일이 아니게 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에 침입했다는 스톰 드래곤을 잡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다들 별 기대는 안 하고 있었지만... 스톰 드래곤 사냥의 주도자는 블러드 레인 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용병 에마 레그너스. 지금 까지 많은 파티가 카에리온 시티에 나타난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서 일을 추진하였으나,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는 스톰 드래곤인 만큼 그 서식지를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스톰 드래곤의 출몰지는 다른 드래곤 과는 달리 레어 주변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레어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도 순식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디있는지 몰라서야 사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이 빠진 모험가들도 하나하나 포기하던 차였는데... 에마 레그너스는 확실하게 말했던 것이다. '스톰 드래곤의 레어 위치는 내가 알고있다.' 그것도 자신의 조상이라는 카리온 레그너스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말이다. 에마와 케리. 단 두명 밖에 안되는 카리온의 남은 후손이지만 에마는 그 무시무시한 실력으로 케리는 그 얼빠진 행동으로 제각각 카에리온에서 그럭저럭 유명한 인사였다. 다만 에마 쪽에서는 일부러 케리를 만나지 않았고, 케리도 에마와 헤어진 뒤로 에마를 보러갈 면목이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에마를 찾아갈수 없었다. 혹시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더라도 서로 못본척 피해다녔을 것이다. 비록 케리의 행동 때문에 좀 빛이 바랬지만, 카리온은 아직도 모험가들 사이에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 후손이며 그 자신도 뛰어난 용병인 에마가, 그것도 그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별로 믿기지는 않겠지만 '케리의 복수'라고 하면서 진지하게 나오자 용병들도 진지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래곤을 잡으러 갈만한 실력은 커녕 드래곤을 잡으려 들만한 배짱을 가진 녀석도 얼마 되지 않았다. 본래 용병이란 돈이라면 목숨을 거는 존재로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고 있었지만, 용병들도 사람이다. 죽을 경험을 많이 하는 만큼 돈보다는 목숨이 귀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러니 누가 드래곤을 잡으러 가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에 나서는 사람은 꼭 나오는 법이다. 에마 레그너스를 소문만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회색 단발 머리를 가진 조용한 소녀같은 분위기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잠시 놀라는 것도 당연하였다. 물론 '스톰 드래곤 사냥 계획'을 위해서 모인 모험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안면이 있던 몇명을 제외하면 에마의 모습에 소문과의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그 소문의 블러드 레인, 에마 레그너스가 이 처럼 약관의 소녀라니... 믿겨지지 않는구만." 잔인할 정도로 강력한 공격 마법을 추구하다가 제국 마법 대학에서 쫓겨난 뒤 용병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 마법사, 오스테인 위즈덤은 한눈에 그녀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쳇. 마법사 녀석... 아직 저 계집애 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군... 저 정도로 언제나 살기 등등한 여자애는 본적이 없다니까.' 거대한 투 핸드 소드를 사용하는 괴력으로 유명한 용병, 리코 스테인은 짧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오스테인을 깔보았다. "아직 두명 남았군요." 에마는 오스테인과 같은 평가를 몇번이나 들어보았기에 별로 신경 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때 문이 열리면서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타락한 엘프라는 별명을 지닌 라인시테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는 엘프의 마을에서 뛰쳐나와 인간 사회를 떠돌면서 용병일을 하고 있었다. 인간 사회에 끼어있는 엘프가 그렇게 적은 것은 아니지만, 라인시테 처럼 태연하게 살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그는 타락한 엘프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가 용병일을 하는 것은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는 인사도 하지 않고 방 구석진 곳에 기대섯다. "호오. 이 정도의 멤버라니..." 오스테인이 감탄하고 있을때 마지막 한명이 들어왔다. 레이스 그람의 아들, 테인 그람. 레이스 그람도 한 때는 전설적인 용병이었던 만큼, 아들인 테인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다만... "뭐야. 여자는 한명 밖에 없는 거야? 너무하는구만 아버지. 이런 일은 재미없는데..." 라고 뻔뻔스럽게 중얼거리는 바람둥이였다. 하지만 에마를 보더니 샐죽샐죽 거리면서 다가갔다. "아 당신이 에마 레그너스? 그렇게 이쁜 얼굴을 왜 찡그리고 있는 거야?" "닥쳐." 라인시테가 테인에게 외쳤다. 라인시테는 이유는 모르지만,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을 뿐더러 여자에게 추근대는 남자들을 아주 싫어한다는 소문이었다. 테인은 라인시테의 말에 발끈하였지만, 레이스 그람이 나타나자 쭈그러 들었다. 레이스 그람이 나타나자 모두 의자를 찾아 앉았다. 레이스 그람은 용병길드의 지도자로서 그 실력 뿐만 아니라 인품이나 능력 모두 존경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에마 레그너스 정도만이 그와 맞먹을수 있을 것이나 그녀는 지나치게 표독하다는 평가였고 아직 조직을 가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우선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만..." 오스테인이 에마에게 말을 꺼냈다. "스톰 드래곤의 레어를 안다는 말이 사실인가?" "물론. 카리온의 일기에 기록된 것이니 틀림없어." 에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양피지 조각 몇개를 꺼내보였다. "이건 우리집안에 보관되어있던 카리온의 일기중 남아잇는 일부분 이지. 여기에는 분명히 스톰 드래곤의 레어의 위치가 표시되어있어." "하지만 스톰 드래곤은 카리온 본인이 죽이지 않았던가?" 리코가 의문을 표하자 에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죽이지 않았던 거야. 아니 죽은줄 알았는데 사실은 살아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사실 스톰 드래곤 퇴치 업적에 대해서만은 학자들도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거잖아? 중요한건 확실히 스톰 드래곤은 살아있다는 거야. 그리고 스톰 드래곤이 날아온 방향을 생각해봐도 이곳에 있는것이 확실해. 설사 그때의 스톰 드래곤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드래곤의 레어가 될 만한 장소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니까. 다른 용이 들어와 있는 걸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테인이 에마에게 물었다. "그럼 스톰 드래곤을 이길 가망은 있는 거야?" "이 멤버라면 문제 없어."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떡였다. 다들 자신의 실력이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스 그람은 드래곤 레어에 있는 보물은 똑같이 5등분 하기로 하였으며, 또한 드래곤을 퇴치하면 시와 제국에서 상금도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장비와 보급물자는 용병 길드에서 모두 준비해주기로 하였다. 에마 레그너스, 오스테인 위즈덤, 리코 스테인, 라인시테, 테인 그람. 다섯명으로 구성된 스톰 드래곤 사냥 부대는 다음날 카에리온 시티를 출발했다. 다만 전날밤 레이스 그람은 테인 그람을 불러서 은밀히 당부를 하였다. "에마 레그너스를 조심해라. 아들아." "예? 그 여자가 대체 뭘..." "에마 레그너스... 그 여자의 상상을 초월한 힘은 이해할수가 없어. 나이도 얼마 되지도 않고, 소드 마스터도 아닌데 저런 스피드를 낼수 있다니... 뭔가 수상하다고 언제나 생각해왔어. 그뿐 아니야. 카리온의 일기는 분명히 진짜지만... 그 일기장은 분명히 '아주 최근에 뜯어낸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여자는 우리에게 밝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야." 테인은 레이스가 자신을 왜 일부러 이 파티에 집어넣었는지 그 이유를 깨닳았다. 아버지는 에마를 감시하려 하는 것이다. 한편 드래곤 슬레이어 일당이 자신을 사냥하러 오는지 알지도 못하는 채. 라크리마는 아침부터 밤 새도록 케리를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들어주었다. 케리도 케리대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라크리마가 친근해지고 무서운 것도 많이 사라져 있었다. 다만 어느날 라크리마가 한 한가지 부탁만은 절대 들어줄수 없다고 못을 박아두었다. "저... 케리 님의 아이를 가지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피임 마법으로 아이가 안 생기게 해 두었는데..." "...그 그것만은 참아줘 제발!!!" 18살에 애 아빠가 되는 것 만은 피하고 싶었다. 카에리온 용병 길드의 협조로 드래곤 슬레이어 지망자 일행의 여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 일주일 만에 카리온의 일기에 기록된 라크아리온 산에 도착한 것이다. 라크아리온 산에 도착하여 라크리마가 산에 풀어둔 가디언 몬스터, 오우거나 그리폰 등의 습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들의 실력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에 들어간뒤 사흘 만에 드디어 라크리마의 레어 입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크군..." "크네..." "더럽게 크군..." 150미터나 되는 덩치의 라크리마가 출입하기 위해서 레어 입구은 그보다 더 넓은 넓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완전히 빌딩 만한 구멍이 뻥 하니 수직아래로 뚫려있었다. "어떻게 이런게 소문나지 않고 있을수가 있는 거지?" 참고로 라크리마의 레어 구조는 다음과 같다. 직경 200미터 정도의 원형 구멍이 500미터 정도 아래로 쑥 뻗어있다. 이것이 입구다. 그리고 입구의 벽면을 통해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수평으로 다시 직경 200미터 길이 1킬로미터 정도의 동굴이 뻗어있다. 이 안에서 라크리마는 변신을 하고 잠을 자며 이륙해서 날아오를수 있다. 이것이 라크리마의 '본체용 생활공간'이다! 이 만큼 큰 공간이다 보니 다른 몬스터들도 얹혀 살수 있는 것이다. 본체용 생활공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인간 출입용 입구가 있다. 이 입구로 들어가면 그곳이 바로 카리온의 하렘성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는 구조지만, 드래곤 족이 살기 위해서는 이러는 수밖에 없다. 500미터 위에서 내려다보았으나 드래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엄청나게 커다란 동굴만이 보였다. 일행을 허탈해져서 에마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에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 아래 진짜 입구가 있어." 그날도 케리는 라크리마의 레어에서 빈둥빈둥 거리면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에 설치된 마법등이 빨간색 변하여 점멸하기 시작했다. "앗! 세콤이 반응하고 있어! 침입자다!" 라크리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세콤이 뭐야?" "방범용 마법이예요. 도둑이 들어오면 반응하도록 되어있죠." 라크리마는 케리와 함께 케리가 아직 달려본 적이 없는 복도를 따라 못보던 방에 들어갔다. 그 방에는 전체에 크리스탈로된 네모난 스크린이 몇십개씩 설치되어 있었고, 각각의 스크린은 레어와 하렘의 각지를 비추고 있었다. "이게 바로 제 레어에 설치된 최첨단 마법 방범 시스템이예요." 라크리마는 중앙의 자리에 앉더니 케리에게 옆 자리를 권했다. "보고만 게세요. 제가 침입자를 처치하는 것을 보여드리죠. 호호호" 케리는 최첨단 마법 방범 시스템 앞에서 허둥거리고 있었다. 이런 것은 전혀 본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앗! 저기다 저기! 침입자예요." 라크리마가 스크린 하나를 가르키자 케리도 그곳을 따라보았다. "앗!!!" 케리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러세요?" 라크리마의 레어 방범 시스템에는 틀림없이 그의 하나뿐인 여동생. 에마가 비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화 -용혈의 전사 ③- "라크리마! 그만둬!" "예?" 레어 입구에 묻어둔 마법지뢰를 작동시키려고 하는 라크리마를 케리는 아슬아슬하게 저지했다. "저건 내 여동생이야!" "예예? 그랬어요?" 라크리마는 눈이 휘동그래지면서 놀랐다. '대체 이 기집애는 내가 카리온의 자손이라는 것을 어떻게 찾은 거지?' "잠깐 모두 멈춰!" 오스테인이 레어의 절벽을 따라서 기어내려가던 일행 모두에게 외쳤다. "왜 그래?" "저 바로 아래 강력한 마법력이 감지되었다네. 조심하게!" 오스테인은 확실히 믿을 만한 마법사다. 일행은 신중하게 처신하기로 했다. 오스테인은 아래쪽을 향하여 파이어 볼을 하나 날렸다. 땅이 패이면서 마법진과 마법문자가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드러났다. "저건 마법 지뢰다. 드래곤이 만든 것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튼튼하군. 가까이 가면 폭발할꺼야. 위력도 보통이 아닐것 같네. 으헉!" "왜 그래요?" 갑자기 오스테인이 비명을 지르자 테인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허..허리가.. 삐어버렸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보니..." "으윽 이 영감탱이가!" 리코는 절벽을 기어서 오스테인 곁으로 가서 오스테인을 겨드랑이에 끼었다. 리코의 튼튼한 근육이 터질 것 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 어서 지뢰를 풀어!" 아무리 리코가 힘이 세다고 해도 갑옷과 무기의 무게에 더해서 오스테인 까지 받치는 것은 힘들었다. 오스테인은 마법 지뢰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으으.. 이거 잘 안되는군. 역시 드래곤의 기술이라...인간으로서 푸는건..." "빨리해... 으아아악!!!" 결국 리코는 한계에 달하여 오스테인과 함께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코!" "오스테인!" "모두 엎드려!" 나머지 셋은 절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마법 지뢰의 폭발에서 조금이라도 몸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고, 지뢰 바로 위에 떨어진 리코는 별 상처도 없었다. "어이구구... 다리야아..." 오스테인은 다리가 부러진듯 하였지만... 마법지뢰가 폭발하지 않자 일행은 안심하고 내려와서 오스테인을 닥달했다. "이 영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기는..." 테인은 부목을 감아주면서도 투덜투덜 거렸다. "아.. 아니야. 분명히 터져야 하는데 왜... 어이구 다리야! 어이구!"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는데도 리코는 탁탁 털고 일어나서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맵집이었다. 라인시테와 에마도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레어란 보통 몬스터의 소굴화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드래곤은 잡아먹힐 염려도 없으니 마음 놓고 몬스터를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예쁘지 않아.'라는 이유 때문에 오우거나 오크 등을 기르는 것을 싫어했다. 묘인족이나 코볼트 같은 그나마 좀 볼만한 것들 밖에 기르지 않았다. 오우거나 오크 같은 것은 레어 근처로 다가오기만 해도 간식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한참을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어도 아무런 위험 조짐이 보이지 않자 테인이 한마디를 꺼냈다. "잘못 온거 아냐?"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에마가 샤벨을 들고 앞으로 나서면서 대답했다. "온다." "웃!" 에마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다리를 다친 오스테인을 맨 뒤로 빼놓고, 에마와 리코, 라인시테가 앞에 서고 테인이 석궁을 장전해서 뒤에 섯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오... 온다... 엄청난 크기의 마력이야!!!" 오스테인은 공포를 느끼는 듯 했다. 그 역시 드래곤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하니 역시 공포스럽지 않을수가 없었다. 라크리마는 케리를 허리춤에 끼고 바람을 조종하여 레어 안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스톰 드래곤. 바람을 조종하는 힘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으와아아아아아앗!" 라크리마는 머리를 흝날리면서 깔깔 웃고 있는 것이 오랜만에 날아서 아주 기분 좋아 보였으나 케리는 눈도 제대로 못뜨고 죽을 지경이었다. 콰아아앙! 흙먼지를 잔뜩 흝날리면서 라크리마와 케리는 드래곤 슬레이어 지망생 들의 이십여미터 앞에 착지하였다. "프... 플레임 스트라이크!!!" 오스테인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마법으로 공격하였다. "이런 바보!" 에마는 섵부르게 공격하는 오스테인을 질책했지만 오스테인의 지팡이 끝에서 뿜어져 나온 불기둥은 이미 흙먼지를 속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그러나 불기둥은 제 목적을 완수하지 못하였다. 라크리마의 힘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토네이도가 흙더미를 감아올리면서 수백미터씩 쏟아올라 레어 바깥까지 뻗어나가면서 오스테인의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완전히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이 이럴수가...!" 리코는 투핸드 소드를 거머쥐면서 경계태세를 갖추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힘 차이에서는 무의미한거나 다름 없다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완전히 실수한 것이었다. 이 정도 파티로 스톰 드래곤을 잡을수 있을리가 없었다. 모두 공포에 질려있는 가운데, 단 한명 에마 만이 싱긋이 웃고 있었다. 휘이이이이이잉.... 라크리마의 힘이 만들어낸 폭풍이 사라지고 나자 그 가운데서 메이드 복을 입고 긴 머리를 찰랑 찰랑 흩날리는 라크리마가 꼴사납게 허리춤에 매달로 떨고있는 케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우읏...!" 리코는 직감적으로 상대가 드래곤이라고 판단하였다. 드래곤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수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위압감. 예쁘장한 메모와 메이드 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에마!" 케리는 에마를 향하여 소리쳤다. 에마는 별로 놀라지도 않으면서 케리를 바라보았다. "오빠?" "에마. 혹시라도 내 복수를 하러 온 거라면 그만둬! 난 아무 상관 없으니까..." 꽤나 간절해보이는 케리의 설득에 에마는 피씩 웃으면서 답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오빠 같은 인간 쓰레기를 위해서 복수하러 와줄 정도로 마음이 넓다고 생각해?" "뭐?" 케리에 대한 에마의 질타에 그 자리의 모든 사람(과 드래곤 하나)가 경악 하였다. "모험 같은거에 홀려서는 집안 재산을 다 탕진해 먹고... 그 때문에 아버지랑 어머니는 홧병이 나서 돌아다니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용병이 되서 죽을 고생을 해야 했다고! 오빠 같은 쓰레기 때문에 복수라니... 말도 안되지. 난 내가 물려받을 유산을 상속받으러 온것 뿐이야.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를 말이지!" '...그 그렇군... 에마도 카리온의 자손.. 라크리마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잖아!' 그제서야 케리는 에마가 무슨 의도로 이곳에 왔는지 알아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년?!" 테인은 에마가 자신을 배반했다는 느낌이 들자 에마를 향하여 석궁을 겨누었다. "후후후... 드래곤 슬레이어가 아니라 드래곤 마스터가 되려고 왔을 뿐이야. 나 혼자 오기에는 조금 힘든 길이니까 너희들을 대동한 것이기도 하지. 자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여! 나를 마스터로 모시고 나의 명령에 따르라! 이것은 용자 카리온의 피를 지닌 자로서 명령하는 것!" 테인은 섯불리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그것이 정말이라면 에마를 죽이는 순간 라크리마가 폭주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에마의 명령에 대해 라크리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싫어." "........." 라크리마의 한마디는 사일런스 주문이라도 되는 것 처럼 그 일대를 완전히 침묵속에 빠뜨렸다. "어... 어째서... 너는 카리온과의 계약에 따라 카리온의 집안 대대로..." "여자에게 그런 치사한 마법을 거는 짓 따위는 카리온 님은 하지 않아. 나는 카리온 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케리 님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 뿐이야. 그리고 내가 왜 계집애한테 봉사해야 하는 건데? 난 케리 님이 너같은 것 보다 더 좋아! 내가 봉사할 상대는 내가 결정한다!" 굉장히 제멋대로인 논리지만, 여자를 주인님으로 모시고 싶지는 않다. 라는 라크리마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하하. 안됐군 이년! 그럼 우리를 배신했으니 죽..." 쉬이이익! 테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인의 석궁은 그의 머리와 함께 두동강이 났다. "으악!" 솓구치는 피와 쓰러지는 테인의 시체를 보면서 케리는 비명을 질렀다. "에.. 에마.. 너랑 생사를 함께하던 동료를 죽이다니..." "흥. 무슨 헛소리야 오빠. 그런 소리나 하니까 매일 이용이나 당하는 거야. 누가 아무 댓가도 없이 생사를 함께해주겠어? 게다가 저 녀석은 나를 죽이려 했다고!" 에마는 앙칼지게 쏘아붙이며 다음 검격을 리코로 향했다. 채앵! 그러나 에마의 샤벨은 리코의 투핸드 소드에 막혀서 튕겨나왔다. "제길.. 난 네년이 이렇게 까지 썩어빠졌을 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라인시테! 협공하자!" "거절한다." "뭐?" 라인시테는 에마와 대적하는 리코를 내버려 두고 라크리마를 향하여 말을 건냈다. "드래곤이여. 나의 여동생 아이시테가 당신의 레어에 있을 것이다. 난 그녀와 만나러 왔을 뿐... 드래곤 슬레이어의 명예나 당신의 보물에는 관심이 없다. 나를 들어가게 해다오." "아잉.. 숙녀 집에 함부로 들어오려 하다니..." 라크리마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영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별 상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시테는 다른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레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이.. 이봐!" "너도 동료애 같은 것을 믿고 있었던 거냐?" "이.. 이런!!!" 리코는 에마의 현란한 공격을 막아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대.. 대체 뭐야. 어째서 에마가 저런 무시무시한 검술을..." "드래곤의 피예요." "뭐..?" 케리가 의문을 표하자 라크리마가 대답하였다. "에마 아가씨에게는 제 피가 조금이나마 흐르고 있겠지요. 그것이 저런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한 겁니다. 어떤 계기로 각성했는지는 모르곘지만... 폭풍조차도 지배할수 있는 스톰 드래곤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있으니까요." "그럼 나한테도 저런 힘이?"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아직 각성하시지 못한것 뿐이예요." 에마와 리코의 싸움은 점점 리코의 수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너무나 엄청난 스피드 차이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 콰직! 그러나 엄청난 속도로 밀어붙이던 에마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리코는 잠시 숨을 돌리고 어떻게 된건지 어리둥절해 하였다. 쓰러져 있던 오스테인이 마법 지팡이를 들고 우뚝 서 있었다. 바짝 마른 몸이 식은 땀에 젖어서 덜덜 떨리고 있엇지만 확실히 마법을 쓰고 있었다. "주박술이다... 비록 몸이 이 모양이지만... 아직 이 정도는 할수있어...!" "큭!" 에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리코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투핸드 소드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봐! 그만둬! 당신들은 동료잖아!" 케리의 외침에 리코는 잠시 움찔하였다. 그러나 곧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 년이 먼저 우리를 죽이기 위해서 음모를 꾸몄어. 지금도 나를 죽이려 하고 있고, 이런데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리코는 투핸드 소드를 휘둘러서 에마를 끝장내려 하였다. "라크리마! 에마를 구해줘!" "예!" 콰아아아앙 케리가 절규하자 라크리마가 짧게 대답하더니 엄청난 폭음이 일어났다. 라크리마의 오른손이 한번 허공을 휘젓자 강열한 바람의 충격파가 발생하여 리코와 오스테인을 튕겨버렸다. "소닉 블레이드! 내가 1년이나 검을 연습해서 성공한것을 맨손으로 쓰다니...나도 한번 사용하면 진이 다 빠져버리는데..." "전 진짜 스톰 드래곤 입니다. 제 피를 약간 이어받았을 뿐인 당신과는 차원이 틀려요." 에마는 라크리마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경악하였다. 리코와 오스테인도 굉장한 실력의 용병이었는데 손 한번 휘둘러서 날려버리다니... 그녀를 손에 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도 더욱 커졌다. 하지만 실망감에 잠겨있을 사이도 없이 에마는 검을 휘둘러서 리코와 오스테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놔버렸다. "에마! 그만해!" 케리는 절규하듯이 소리쳤지만 에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에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샤벨을 들고 케리에게 말을 건내었다. "오빠. 오빠는 언제까지 어릴 때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뭐?" "그래 그래. 드래곤의 주인님 놀이 장난감이 되어있으니 편안하기도 하겠지. 오빠 같은건 그렇게 평생 놀다가 사라지는게 세상에 보탬이 되곘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마!"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 난 처음에는 당신이 우리 가문에 복종하도록 계약이라도 맺어져 있는줄 알았어. 그런데 당신은 대체 뭐지? 그 강대한 힘을 가지고서 어째서 아무것도 아닌 인간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 복종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그냥 단순한 변태 드래곤 아냐? 하찮은 미물에게 복종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아니냐고? 한방이면 오빠를 해치울수 있으면서... 지금 당신이 하는 짓은 우리 오빠를 가지고 노는 거잖아?" 라크리마는 전에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에마를 노려보았다. "웃...!" 에마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라크리마에 대해서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끔찍할 정도로 팽팽한 잠시간의 긴장이 지나갔다. 라크리마는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하였다. "확실히... 논리적으로는 당신이 옳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주인님을 사랑해요. 사랑에는 논리적인 것은 필요없잖아요?" "...그게 정말 사랑일까?" 에마는 라크리마에게 다시 되물었다. 케리는 두 여자 사이에서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돌아가 주세요." 한참의 시간이 흐른후 라크리마가 에마에게 대답하였다. "알겠어... 물러나주지. 하지만 오빠. 한가지만 똑똑히 말해줄께. 난 오빠가 인간 쓰레기라고 생각해. 설사 오빠가 드래곤 마스터가 되었다고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빠는 절대 진정한 드래곤 마스터라고 할수 없어. 그저 드래곤의 노리개일 뿐이야." 에마는 샤벨의 피를 털어내고는 레어 위로 올라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돌아가요." 라크리마는 에마를 내버려 두고 다시 자신의 레어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라... 라크리마..." "제발..." "으응..." 케리는 에마를 내버려두고 라크리마를 따라 레어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4화 -유희가 아니라구요!- 레어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하렘 입구 까지는 약 1km정도의 동굴. 올때는 날아와서 아주 빨리 왔지만 지금의 라크리마는 기분이 얹잖아서 날아갈 기분이 안나는듯 했다. 라크리마는 침묵을 지키면서 걷고 있었고, 케리는 어색했다. 이 처럼 진지하고 조용한 라크리마를 본 적은 없었다. "저기 라크리마." "예?" 침묵을 깨고 겨우겨우 말을 건냈다. 반짝이는 하얀 윌 오 위프스를 조명용으로 불러내면서 라크리마가 대답하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밝고 명랑한 목소리 같았지만 조금은 어두운 기분이 섞여있는것 같았다. "저기... 라크리마. 난 화내지 않을께. 네가 지금 유희... 라고 하는걸 하고 있다고 해도 난 너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 없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예? 무슨 소리예요??? 유희라니 . 그게 뭐죠?" "에? 드래곤의 유희라면 유명한 거잖아? 라크리마가 모를 리가 없는데" 드래곤의 유희. 드래곤은 긴긴 수명을 떼우기 위해서 다른 생물로 폴리모프해서 생활하기도 한다. 인간이 되어 모험을 하거나 오크가 되어 사냥을 하거나 드워프가 되거나 엘프가 되거나... 그러나 그 생물로 변해있는 동안의 삶은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소설을 보는 것과 같이 아주 가식적이며 거짓이나 다름없다. 그때의 삶과 드래곤으로서의 삶은 완전히 구분되며 드래곤으로 돌아오면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흔히 인간 세상에 알려진 드래곤의 유희라는 것이었다. 케리는 자신이 알고있는 드래곤의 유희에 대해서 라크리마에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에 얽힌 이야기들 까지도... 라크리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대답했다. "...말도 안돼요. 우리들 드래곤이 만년 정도 사는 것은 사실이니 인간들 입장에서는 아주아주 길어보이겠죠.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길이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 이상한 짓으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할 정도로 지류한 삶은 아니예요." "그럼 드래곤은 유희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으음... 가끔 다른 생물들로 변장해서 놀리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죠. 다른 드래곤들 일은 모르니까...하지만 저는 언제나 진지하다구요. 제가 아는 드래곤 중에도 그런 일을 하는 드래곤은 본적 없어요. 저는 진지하게 살아오고 있어요. 아직 어린 헤츨링일떄도, 갓 성룡이 된 뒤에 설치고 다닐 때도, 카리온 님과 사랑을 나눌때도 그랬고... 우리가 1만년이나 산다고 하지만 삶은 그 1만년의 한순간 한순간도 놓치기 싫을 정도로 재미있어요. '다른 것'이 되어서 살수 있을까요? 나 자신으로서 살기에도 부족한 삶인데?" "으응.. 그래..."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정말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약간 삐진 듯이 중얼거렸다. "제가 장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다시다니... 너무해요.히잉." "아. 아냐 그냥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나중에 주인님이 인간들에게 이야기해주세요. 유희같은걸 하는 드래곤은 없어요. 그 시간에 잠자고 말지..." 라크리마는 투덜투덜 거렸다. 약간 삐쭉 나온 입 조차도 산뜻한 귀여움이 있었다. '정말로 사랑스럽다...' 케리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유희에 대해서 추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어졌다. 라크리마는 아름답고 상냥하다. 게다가 나를 위해서 헌신해준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설사 라크리마가 지금 유희를 하고 있고, 방금전에 한 말도 거짓이라 해도... 케리는 이미 상관 없었다. 적어도 이 한순간 만은, 이 폭풍처럼 강인하고 코스모스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의 주인이 될수 있었으니까. 레어로 돌아가자 안에서는 큰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레어에 쳐들어온 라인시테와 욕실 담당 엘프 아이시테의 말다툼이었다. 라인시테는 레어 입구에 까지 아이시테를 머리채를 잡아서 끌고나와서 버럭버럭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시테! 너 언제까지 집안 망신 시키고 돌아다닐래! 그 커다란 가슴은 또 뭐야! 빨리 집에 돌아가지 못해!" "오빠! 난 내가 선택한 삶을 살고 싶어! 난 카리온 님을 사랑한다고!" "카리온은 죽은지 200년도 더 지났어! 이제 그만 가자!" 왈가왈부와장창창 말다툼 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라인시테는 아이시테의 오빠였던 모양이다. 카리온의 뒤를 쫓아서 가출한 아이시테를 찾아서 백년 가까이 찾아다닌 끝에 라크리마의 레어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엘프는 천년 가까이 산다고 하지만 200년 이라면 그들의 인생에서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라인시테의 동생 걱정도 알만한 것이었다. 남매간의 싸움은 도저히 끝날줄을 모르고 이어지다가... "이봐! 남의 레어에서 멋대로 말다툼 하지 말라고! 좀 조용히 해!" 라크리마의 일갈에 잣아들었다. "오빠... 하지만 난 카리온 님을 사랑한단 말이야... 진심으로 사랑해..." "하지만 카리온은 죽었어... 우리랑은 달라서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으응.. 알아 알아 ... 그치만.. 으아아아아앙!" "아이시테..." 한참동안 난리 법석을 피우더니 슬슬 말다툼에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저기. 아이시테. 라인시테 씨는 널 찾아서 몇십년이나 떠돌아 다녔다는 소문을 들은적 있는데... 이제 그만 돌아가지 그래?" 케리까지 아이시테에게 그렇게 말하자 가련한 엘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고개를 끄떡끄떡 거렸다. "예... 예 알곘습니다. 케리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아이시테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또 한사람... 떠나는 구나... 아이시테가 마지막이었는데..." "또 한사람?" 라크리마가 아쉬운 듯이 말했다. "제가 잠들기 전에는 엘프만 10명 정도 이곳에 있었어요. 모두 카리온님을 사랑해서 모인 것이었죠. 뭐... 카리온님이 제일 사랑하는건 나니까 나머지는 전부 노리개일 뿐이지만... 그래도 떠나니까 아쉽네요. 카리온님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것 같아서... 엘프들은 오래 살지만 역시 카리온 님이 없으니... 깨어났을떄는 다들 제 삶을 찾아 떠나고 아이시테 하나만 남아있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 "라크리마..." 라크리마의 표정에 케리로서는 상상도 할수없는 쓸쓸함이 나타났다. 드래곤은 모두 살아가면서 그런 쓸쓸함을 지게 되는 걸까? 잠시후 아이시테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짐을 한 가득 배낭에 지고 나타났다. "...나.. 나머지 짐은 남겨둘께요. 제가 이곳에 살았다는 흔적으로..." "응. 잘가. 아이시테. 엘프는 네가 마지막 이었는데... 아. 떠나기 전에 가슴 보통 사이즈로 줄여줄께. 그거 때문에 어깨 아팟지?" 라크리마가 아이시테에게 걸어둔 가슴 확대 마법을 풀어주려 하였지만 아이시테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요... 이건 제가 죽을때까지 이렇게 해둘 꺼예요... 카리온 님을 사랑했다는 증거로서..." 아이시테는 펑펑 울면서 레어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라인시테는 케리를 노려보더니 퉁명스럽게 말을 건냈다. "케리 레그너스. 카리온의 후손 이라고 했나?" "아. 예." "아이시테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알고 있어. 옜날의 나라면 베어버리려 했을 테지만... 네 곁에는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가 있으니... 그럴 생각은 없어. 나도 목숨은 아깝거든. 하지만 한가지 충고해둘것은 있다 남자로서. 네 소문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라크리마를 포기해라." "뭐?" 케리는 라인시테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에마 처럼 라크리마를 차지하려 드는 걸까? "스톰 드래곤... 위대한 드래곤 종족 중에서도 강대한 종족이다. 라크리마는 아직 어린 드래곤이지만... 너와는 어울리는 상대가 아냐. 카리온 정도 되는 용사라면 모를까. 분수에 넘치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화를 입는 법이다. 타인에게건 자신에게건..." 라인시테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드래곤 마스터... 이 엄청난 이름에는 그에 걸맞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하는... "고맙다. 미안 하지만 난 라크리마를 포기할수 없어." 케리는 간단하게 답하였다. 그리고 곧 굳은 결심을 했다. "분수를 모르는 놈이군. 하긴 그러니까 그 모양이었곘지만..." 라인시테는 아이시테의 뒤를 따라서 레어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케리는 아직 라인시테의 말에 반박할 꺼리를 찾을수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너무나 한심했다. 우연히 드래곤 라크리마의 마스터가 되었지만, 라크리마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그녀가 무서워서 마치 환락에 빠져서 그녀의 장난감 처럼 지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변할 것이다. 케리는 그렇게 다짐 했다. 우선 라크리마에게 강한 태도를 보여보자 그리고... "에헤. 주인님. 아이시테가 가버렸네요... 저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목욕탕에서 시중 들어 드려도 될까요?" 라크리마는 살짝 상큼한 웃음을 날리면서 부탁하였다. 그 환상적인 미소 앞에서 케리의 결심은 순식간에 봄날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아...으응..." '하지만 이 미소에는 영영 이기지 못할지도 몰라....' 결심을 다음 날로 미루면서 케리는 자신의 한심함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얼굴이 빨개져서 케리의 품에 안긴 라크리마는 아이시테를 떠나보낸 허전함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아이시테. 너도 결국 네 삶을 찾아서 떠나버렸구나. 그래 카리온 님이 돌아가신지도 300년이나 흘렀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냐. 나는 드래곤. 가장 위대한 종족. 엘프 따위에게 질것 같아. 아하하하하. 하아.... 조금 허전하긴 하지만 상관없어! 이런 것 쯤... 난 끝까지 카리온 님과의 사랑을 지킬 꺼야! 카리온 님의 사랑에 따라서 그의 자손인 케리 님의 평생동안 봉사할꺼야! 1만년의 시간이 흘러서 내가 영원한 잠에 빠지는 날까지!' 반대로 라크리마는 결심이 더욱 굳혀진 것 같았다. 케리는 영영 라크리마에 어울리는 인간이 될수 있을까? 아니면 영영 라크리마에 휘둘리다가 끝날 것인가? 그 대답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운명의 관조자들 뿐... 메이드 드래곤 전기 5화 -라크리마의 1301번째 생일- 케리는 결심을 굳힌 후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단련시켜줘!" 라크리마에게 이 말을 하는 것 만을... 다만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이래서 나는 안되는 거야...' 결심을 하는데 무지하게 시간이 걸리고 결심을 하고 나서도 우유부단함 때문에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것이 케리의 최대 결점이었다. 이것 때문에 모험에서 낭패를 본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건만... 일단 자기 스스로 단련을 해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검술 기초 같은 것도 배운적 없으니 도저히 안되겠고, 라크리마 레어의 도서실에서 마법책을 찾아보았지만 반 페이지만 읽어도 졸음이 왔다. 결국 독학은 포기하고 좋은 스승을 찾아볼까... 했지만 왠지 지금은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고... 일단 스승이 될만한 가장 좋은 인물은 바로 옆에 있었다. 드래곤인 라크리마는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으니 마법이나 무술에도 빠삭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말 꺼낼 기회를 잡지 못하고 계속 미루다가 결국 침실에서 케리는 침대로 기어들어오는 라크리마에게 외쳤다. "나.. 나를 단련 시켜줘!" 그 말을 들은 순간 라크리마는 얼굴이 벌게져서 온 몸을 베베 꼬면서 대답했다. "아.. 아잉 주인님.. 방중술 같은 건.. 전 아직 징그러워서... 그래도 굳이 원하신다면... 꺄아..." 싫어하는건지 좋아하는건지 알수없는 어투였지만, 제대로 알아듣지 못햇다는 것 만은 확실하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말 꺼낼 타이밍을 완전히 잘못 잡았던 케리였다. 한참이나 말이 어긋난 끝에 겨우겨우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마법이나 무술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였다. "마법이나 무술이요?" "응. 난 강해지고 싶어. 카리온 조상님 처럼. 그 정도는 안되더라도 라크리마를 소유하는것이 나 자신이 부끄럽지는 않을 정도는!" "...으음... 근데 왜 저한테 물어봐요?" 라크리마는 이상하다는 투로 케리에게 되물었다. "그야. 라크리마는 드래곤이니까 무술이나 마법도 잘 알것 아냐." "....그럴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라크리마는 강하잖아?" "인간이 보기에 강한건 사실이겠지만..." "그러니까 라크리마가 나한테 마법이나 무술을 가르쳐 주면 나도..."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여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되는건 아니예요. 주인님. 첫번째. 제가 쓰는 마법은 드래곤의 마법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배울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마력차가 너무 크고, 인간과 드래곤의 사고 체계가 틀리기 때문이지요. 두번째. 제가 인간모습으로 격투를 한 적이 있나요? 언제나 바람을 움직여서 상대를 공격했을 뿐이예요. 전 바람으로 몸동작을 빠르게 하고 바람으로 공격하고 있을 뿐, 인간모습인 제 몸을 움직이는 법은 전혀 몰라요. 검술도 물론 마찬가지고. 세번째. 전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이나 검술은 배운 적이 없습니다. 물론 '드래곤'이니까요." 라크리마는 조목조목 설명해가면서 하나하나 반박해 나갔다. 모조리 다 진실이었다. 라크리마에게 있어서 본체는 어디까지나 드래곤, 인간 모습은 잠시 폴리모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애당초 잠시 사용하는 몸일 뿐이니 검술이나 무술을 배우는 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마법은 드래곤 마법을 그대로 사용하면 그만이니 인간용 마법을 따로 배울 생각도 전혀 없었다. 케리는 크게 낙심한듯 했다. 라크리마가 위로하듯이 물어보았다. "음... 그럼 OPG(오거 파워 건틀렛)같은 아티펙트라도 드릴까요? 강해지는데는 이것보다 빠른 방법도 없죠." "그렇게 강해지는건 싫어. 그건 나 자신이 강해지는게 아니잖아." "으음... 주인님이 강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면... 아! 제가 마법을 걸어드릴께요. 영구지속 효과로 힘을 강하게 하고 방어력을 좋게 하고 몸의 속도를 빠르게 하면..." "아냐아냐. 나는 나 자신을 단련하고 싶다는 거야." "그럼 인간족 스승에게 찾아가는게 제일 빨라요. 제가 인간을 단련하는 방법을 알리가 없죠." "으음.. 하지만 그런 유명한 스승님들이 나 같은걸 맞아주실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라크리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이 인간이 강해지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다니... 라크리마의 부모가 그녀를 낳았을때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했을까? 인간이 환생한 드래곤(풋)이 아니라면 그런 방법은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라크리마는 물론 전생에 인간이었다던가(풋) 할리가 없으니 (그 전에 라크리마는 전생을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인간이 강해지는 방법 따위 알리가 없다. "끄응 끄응 끄응...좀 생각해볼께요. 오늘 밤 새도록 생각해보면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곘어요." "응. 그래 알았어..." 라크리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기로 하고 케리는 혼자 잠을 청하였다. 쿠르릉 쿠르르르릉... 그날 아침, 케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바위가 깍여 나가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떳다. "뭐지 이 소리는?!" 케리는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서 걷기 시작했다. 가는 복도에서 마주친 코볼트 들도 불안해 하고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하렘 현관 바로 밖의 레어였다. 라크리마는 아침 부터 손에서 공기의 충격파를 발사하여 적을 쓰러뜨리는 기술, 소닉 블레이드를 난사하고 있었다. 사방의 땅이 엉망으로 패어있는 것으로 보아 새벽녁 부터 계속 날려된 것 같았다. 코볼트들은 주인의 영문 모를 행동에 어리둥절 하여 다들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라크리마! 적이라도 온거야?!" "어머 주인님. 일어나셧어요? 시끄러웠나보다..." "적이야?" "아뇨. 그런거 아니예요. 그냥 주인님이 강해지실 만한 방법, 새로운 무술을 알아내서 기뻐서 실험해보고 있는 중이었어요." "강해질 방법이라니 그게 새로운 무술이야?" "예." 라크리마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전에 에마 아가씨의 기술이 힌트였습니다. 주인님도 스톰 드래곤인 저의 피를 조금 이어받았기 때문에 연습만 하신다면 이 소닉 블레이드를 사용할수 있고, 제대로만 단련하면 에마 아가씨 처럼 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 그렇구나! 그래서 ..." "예. 소닉 블레이드 사용에 대해서 잠깐 연구하고 있었어요. 후훗." "정말 고마워 라크리마. 날 위해서 이렇게 노력해주다니..." 케리는 자신을 이렇게 까지 생각해주는 라크리마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의 라크리마는 평소와는 약간 달랐다. 머리카락이 정수리에서 왼쪽 어깨쪽으로 머리 끝까지 새하얗게 살짝 한줄로 브릿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어 그건 뭐야?" "예? 뭐가요?" "머리에 그거." 라크리마는 잠깐 머리카락을 감아올려서 살펴보더니 코볼트 한마리에게 거울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두근두근 거리면서 거울을 들여다본 라크리마는 기쁘게 환호성을 질렀다. "줄무늬다! 줄무늬가 생겼어! 아참. 주인님. 주인님..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잠깐 다시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예?" 라크리마가 너무 기쁘게 부탁하는 바람에 케리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떡여 버렸다. 케리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크리마는 그대로 드래곤으로 변신 하였다. 레어 바닥에서 천장까지 꽉 차는 거대한 흑철색 드래곤이 나타났다. 길고 매끄럽게 뻗은 날개와 강철같은 비늘로 덮힌 아래에 들어있는 강인한 근육. 도마뱀 같은 머리에 돋은 한 개의 길쭉한 뿔. 아직도 케리의 기억에서 그대로의 라크리마의 본모습이었다. 다만 한가지 바뀐 것이 있었으니... 드래곤 모습의 라크리마도 머리 꼭대기에서 꼬리 끝 까지 하얀 줄무늬가 하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발견한 드래곤 모습의 라크리마는 커다란 울음 소리를 내질렀다. 뭔지 모르지만 좌우간 기뻐하는 것 같았다. "...자... 잘됐구나 라크리마..." 겨우겨우 공포를 억누르고 있던 케리는 뭔지도 모르면서 축하하는 말만 남기고 그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죄송해요. 주인님. 주인님이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로 변한다고 떼를 써서..." 다시 인간형으로 돌아온 라크리마의 헌신적인 간호에 케리는 한시간 만에 눈을 떳다. "아냐아냐... 그런데 그 머리의 줄무늬는 어떻게 된거야?" "예. 이 줄무늬는 제가 드디어 진짜 성룡이 되었다는 표식이예요. 지금까지도 몸은 성룡이랑 다름 없지만... 이게 생겨야 스톰 드래곤은 진짜 성룡으로 인정 받지요." "그랬구나..." "이건 1301번째 생일날 생기게 되어있어요. 그 다음에는 2601살때 한 개 더 생기지요. 그래서 죽을 때 까지 7개정도 줄무늬가 생겨요. 꺄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제 생일이었군요." 라크리마는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럼 생일 파티를 해야지 라크리마." "물론이지요! 코볼트들아! 이리와라! 자 우선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거야! 5단으로 해서 아래부터 초코. 바닐라. 딸기 ...." 라크리마는 코볼트 들을 불러모아서 하나하나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소동 때문에 라크리마가 새로 만들어 냈다는 무술은 잊혀져버렸지만, 케리는 너무나 기뻐하는 라크리마의 모습을 보고 일단 생일 파티가 끝난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생각했다. 점심 무렵 모든 준비가 끝나자 레어 안에 만들어진 거대한 대무도장에서 라크리마의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파티에 모인 것들은 코볼트 들과 묘인족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가운데는 5단으로 만들어진 호화스럽고 커다란 생일 케이크가 있었고(초를 1천 3백개나 꽃을수는 없어서 초는 없었지만...), 그 옆에는 소 대신에 미노타우로스 한마리를 통채로 잡아서 바베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고기는 소고기와 맛이 비슷하다. 잡는게 문제라서 그렇지... 그 반대 쪽에는 오크 세마리가 통채로 구워지고 있었다. 오크 고기도 돼지고기와 맛이 비슷하다. 역시 잡는게 문제가 좀 있지만... 참고로 코볼트 고기는 개고기와 맛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 파티에는 코볼트도 참가해 있으니 준비되지 않은게 당연하다. 그외에도 라크리마는 창고에 있던 음식재료를 있는대로 꺼내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코볼트들과 묘인족들도 한참 동안의 중노동의 결과로 만든 음식을 마음껏 맛보고 즐기고 있었다. 조인족 한명과 세이렌 둘로 이루어진 음유시인 그룹 S.E.S(Siren Eagle Siren)도 근처를 날아가다가 붙잡혀 와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급히 준비한 것 치고는 굉장히 호화스러운 파티였다. 이것이 다 라크리마의 재력과 힘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놀아요! 주인님!" 퍼어어엉! 300년 전 휴면기에 들어가기 전에 지하창고에 담궈두었던 샴페인을 터트리면서 라크리마가 외쳤다. 케리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아까 그 무술이 뭐냐고 물어볼껄...' 이라고 후회하고 있었다. 아마 내일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것 같았다. "몬스터들로 가득한 파티라니..." 코볼트와 묘인족 외에도 기술노동 용으로 잡혀온 고블린도 소수 있었고, 근처에서 라크리마의 보호 아래 살아가는 켄타우로스 라던가(참고로 고기는 말고기 맛이 난다고 전해진다) 와이번 등의 기타 몬스터들도 조금씩 섞여있었다. 하지만 난리 법석을 부리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질서가 잡혀있었다. 몬스터들은 모두 라크리마의 강력한 힘을 알고 있으니 술취해서 난동을 부릴 만한 녀석은 아예 참석 하지도 않았다. "드래곤만 모이면 완벽한... 아니 라크리마가 드래곤이니까 완벽한 몬스터 파티로군... 아참 라크리마. 너네 드래곤 가족은 오지 않아?" 샴페인을 마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케리는 역시 얼굴이 상기된 채 자신의 음식 시중을 들어주는 라크리마에게 물었다. "...가족...? 아 아버지나 어머니... 라면... 보통 생일때는 안 찾아오시는데..." "저런. 드래곤은 정이 없구나..." "아니예요. 생일 파티를 매년 하는 것도 아니고, 몇십년에 한번 정도 밖에 안하니까요. 어릴 때야 같이 파티를 해왔지만 이제는 어른... ....아. 오늘은 내가 성년이 된 거니까 오실지도..." 라크리마가 그 말을 하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오실지도가 아니라 분명히 오고 있었다. 바깥 쪽에서 스톰 드래곤 특유의 초음속비행음이 나고 있었으니까. 메이드 드래곤 전기 6화 -딸을 꼬시는 아버지- 쿠아아아아아아아앙 스톰 드래곤이 비행할때 나오는 초음속 비행음에 이어서 들린 것은 격열한 추락음. "저 소리는... 아빠다!" "라크리마야아아아아아아~" 뒤이어 들리는 부녀간의 정이 가득 담긴 뜨거운 고함소리. 콰아아앙!!! 라크리마의 생일 파티장에 도착한 첫번째 드래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아빠인 라크레이네스 였다. 그는 새하얀 턱시도를 입고 있었고, 올빽으로 쫙 넘긴 흑철색 머리에는 세개의 하얀 브릿지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아무래도 이 설정은 재고가 필요한듯 하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한 눈썹이나 기름을 발라 반짝 빤짝하게 다듬은 카이젤 수염 등등... 돈 많고 바람기 많은 독신귀족의 풍모를 하고 있었다. "아빠왔다! 라크리마!" 그리고 이 아저씨는 곧바로 라크리마 앞에 달려가서 오른손에 빨간장미 13송이로 된 꽃다발을 내밀었다. "네 방이 너무 좁아서 이것 밖에 준비못했구나. 라크리마야. 나이수에 맞춰서 바로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쉽게도 나머지 1288송이는 레어 바깥에다가 놔두고 왔다. 나중에 전해주도록 하마!" "차라리 장미 꽃밭을 통채로 가져오시지 그랬어요." 요란하고 장황한 어조의 레이너스 였지만 라크리마의 대답은 냉담했다. "아 그쪽이 더 좋았겠구나." "...됐어요." 라크리마의 아버지 라크레이너스, 통칭 레이너스라고 불리는 이 아저씨는 눈물, 콧물까지 펑펑 흘리면서 라크리마와 감동적인 상봉을 원하고 있는듯 하였지만, 라크리마는 영 시큰둥 한듯 했다. "........." 이 요란한 아버지의 출현에 케리는 잠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레이너스는 라크리마의 반응이 신통찮으니까 대응할 방법을 잃고 허둥거리다가 케리를 발견하고는 제 물을 만났다는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렇군! 네놈이로구나 우리 착하고 예쁘고 귀엽고 아름답고 똑똑한 라크리마를 꾀어다가 노예로 삼았다는 카리온이라는 놈이! 너 이놈 우리딸 라크리마한테 이런짓 저런짓 할짓 못할짓 다했지!" "흐엑!"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듯한 레이너스의 질책에 케리는 어쩔줄을 몰라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카리온 님은 3백년 전에 죽었잖아요." 등뒤에서 불길까지 타오르게 하면서 열을 내는 레이너스에게 라크리마는 찬물을 한바가지 퍼부었다. "저 분은 카리온 님의 자손인 케리 님이라고 해요. 지금 제 마스터입니다." "뭐라 그럼 카리온은 죽었다는 말이구나. 라크리마야! 잘 됐어. 암 잘됐고 말고. 우리 귀여운 라크리마야. 그럼 이제 그놈 따위는 잊어버리고 저 케리라는 놈은 잡아먹은 다음 아빠랑 오순도손 알콩달콩하게 살지 않을래?" "싫~어~요! 두번 다시 그런 말을 하면 아빠라도 평생 다시는! 안볼꺼예요!" 설탕을 몇스푼은 처넣은 것 같은 레이너스의 물음에 라크리마는 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흐악! 그 소리만은 제발!!!" 레이너스는 양 손으로 귀를 막고 구석으로 도망쳐서 쭈그려 앉았다. "아아.. 라크리마가 나를 평생 보지 않겠다니... 그럼 나는 손자나 손녀가 태어나도 보러갈수 없는 건가... 6천번째, 7천번째, 8천번째 생일날에도 외롭고 쓸쓸한 생일을 보내야 하겠지... 그리고 죽을때도 나 혼자 외롭고 쓸쓸하게 레어에 누워서 눈물 지으면서 '라크리마아 아빠가 죽어도 보지 않는구나'라고 중얼중얼거리다가 죽어야 하는 것이구나 응..." 레이너스의 주위에 시꺼먼 오라가 마구 넘실대고 있었다. '정말 폭풍같이 기분이 변하는 아저씨로군...' 케리는 라크리마는 아버지에 비하면 아주 심지가 굳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 러! 니! 까! 다 자란 딸 집에 와서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마세요! 흥!" 케리는 라크리마가 너무 레이너스를 몰아붙인다고 생각했다. "저기... 라크리마. 아버지는 그래도 널 생각해서 하는 것 같은데... 좀 받아주는게 어때?" "주인니임. 그런게 아니예요. 저 아버지는... 밤낮으로 날 어떻게 꼬셔볼 생각 밖에 없다구요!" 콰아아앙! 케리의 머리 속에서 폭탄이 터졌다. '아버지가 딸을 꼬신다니? 라크리마는 그런 폐륜 집안에서 자라난 건가?' 케리가 머리속이 날아가서 어벙벙해 있는 사이 라크리마는 속사포 처럼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주아주 어려서 제가 헤츨링일 때부터 저 아버지는 날 꼬셔보려고 별짓을 다했어요. 어렸을 때는 멋도 모르고 주는거 낼름낼름 받아먹고 예쁘게 꾸며주면 좋아라 입고다니고 엉덩이 토닥여 주면 까르르 웃어주고 날개로 부채 부쳐주기, 꼬리 서로 감아주기 같은거 하면서 놀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다 절 꼬시려는 수작이지 뭐예요! 500살 넘어서 성룡이 되었는데도 다 큰 딸 엉덩이를 토닥토닥 거리다니... 게다가 내가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간섭해서 '귀여운 여자애'로 기르려고 발악에 발악을... 그것 때문에 제가 엇나가서 같은 폭력을 일삼고 다닌 거란 말이예요!" 확실히 라크리마는 귀여운 여자애로 성장한것 같으니 교육이 영 틀린것도 아닌것 같지만... "라크리마야. 아빠는 널 아주아주 사랑한단다. 내가 그렇게 했는데 넌 아빠랑 헤츨링 한마리도 못 낳아주니? 그 카리온이라는 인간에게는 낳아줬으면서?" "싫어~ 싫어~! 아빠 만은 죽~어도 싫어!" 울면서 메달리는 레이너스의 얼굴을 라크리마는 발로 퍽퍽 차대었다. "저기 라크리마... 아버지랑 딸이 하는건... 그... 폐륜 아냐?" 케리는 겨우겨우 제정신을 회복한 다음 라크리마에게 물었다. 라크리마는 전혀 이해가 안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뇨. 전혀. 우리 드래곤 세계에서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예요. 인간은 근친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열성 형질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거든요. 아버지랑 딸, 어머니랑 아들이 하는 것도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은 아니예요. 다만... 전 아버지가 무척 싫거든요! 에잇!" 라크리마는 메이드 복의 치마 자락을 걷어올리면서 레이너스를 향하여 발리킥을 날렸다. 퍼억! 최후의 일격을 먹고 레이너스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넉다운 당해버렸다. "으음...." 케리는 역시 드래곤의 사고방식은 이해할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드래곤의 대결이 계속 되면서 몬스터들은 제각각 먹을 것을 싸들고 연회장에서 도망쳐 나가 연회장은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레이너스가 다운된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비행음이 들려왔다. "엄마다. 역시 오셧군..." 라크리마는 이제는 지겹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여보!!!" 중간 과정은 생략하고 레이너스와 거의 같은 기세로 하지만 레이너스와는 정 반대로 분노의 불길에 훨훨 타오르는 라크리마의 어머니, 라세니안이 나타났다. 라크리마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키가 좀 더 크고, 몸매도 좀 더 빵빵하며 똑같은 긴머리에 머리의 하얀 브릿지는 세개였다. 물론 복장은 메이드 복이 아니고, 팽팽한 흑철색 차이나 드레스와 하이힐. 드레스에는 하얀 용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라크리마가 귀여운 미소녀라면 라세니안은 섹시한 아가씨랄까. 뭐 흔한 패턴이다.[...] "엄마. 왔어?" "라크리마 생일 축하한다. 네 아버지 여기 왔지?" "여... 여보...!" 레이너스는 라세니안의 눈길을 피해서 허둥지둥 기어다녔다. "사... 살려줘!" "여보. 내가 라크리마가 싫어하니까 집쩍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죠!" 라세니안은 손톱을 시퍼렇게 세우고 레이너스에게 달려들었다. "살려줘어 여보!!!" "라크리마 너도 같이 패! 이 인간은 두들겨 패야 말을 들어!" "예 엄마!" 퍽퍽퍽퍽 쾅쾅쾅쾅 우당탕탕 와장창창 레이너스의 처절한 절규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라크리마와 라세니안의 화려한 폭력이 이어졌다. 그 때의 광경은 너무나 처참하기 짝이 없어서, 케리는 도저히 그 모습을 쳐다볼수가 없었다. 몇분뒤 모녀폭력에 희생당한 불쌍한 아버지는 거의 슬라임이나 다름 없는 모양이 되어 레어 바깥으로 실려나갔다. "아 참 라크리마야. 너 1301번쨰 생일이지?" 그제서야 생각난듯이, 라세니안은 라크리마에게 용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예. 그런데요?" "너 말야. 아직도 로드 분들에게 인사 오지 않는다고 요즘 악평이 자자하더라. 원래대로라면 성룡이 된 바로 직후에 가야 하는 거지만... 뭐 우리 스톰 드래곤에게 진짜 성룡이 되는 것은 줄무늬가 생긴 이후이기도 하니까... 지금에라도 로드분들께 인사드리러가도록 해라. 스톰 드래곤 로드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일이니까 절대로 어기면 안돼!" "아앙. 싫어요!" 고개를 휘젓는 라크리마를 향해서 라세니안은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너 이번에도 안가면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고 너 아빠랑 결혼시켜 버릴 꺼야!" "아앙! 제발 그것만은!" "싫으면 빨리 로드분들께 인사드리러 가도록 해! 그럼 엄마간다!" "하아앙..." 정말로 폭풍이 휘몰아 치고 지나가듯, 두 마리 부부 스톰 드래곤은 라크리마네 집을 다녀갔다. "우웅... 할수없나... 장로분들께 인사드리러 가는 수밖에..." "라크리마 인사드리러 간다니 그게 뭐야?" "아. 주인님. 죄송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주인님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서..."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정중하게 용서를 구했다. "아니 괜찮아. 그것보다 그 인사라는건 뭔데?" "성룡이 된 드래곤이 각 드래곤 종족의 로드 분들께 인사를 드리러 다니는 것을 말하죠. 전 성룡이 된 다음날 부터 설치고 다녔기 때문에 인사라고는 드린 적이 없어요. 후훗..." '과연... 이거라면 내가 좋아하는 모험도 할수있고, 여행다니면서 수업 받으면 강해질수도 있을 꺼야. 실전 훈련도 겸할수 있을지 모르고...' 케리는 고개를 끄떡 끄떡 거렸다. 슬슬 레어에 처박혀 있는 것도 지류하던 차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크리마에게 부탁해서 이 여행에 동참하도록 하자. 케리는 그렇게 결심했다만... "그럼 레어를 몇일 비워야 할 테니까... 주인님. 저 없는 동안 레어를 잘 지켜주세요." "뭐? 인간 모습으로 여행하는게 아냐?" "...누가 그런 바보짓을 해요? 변신에서 날아가면 순식간인데 ... 다만 로드 분들이 다들 나이가 지긋하시다 보니 잡고 인사드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뿐..." "에엑?!" 인간 세상에 퍼져있는 드래곤의 생태는 실제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깨닳은 케리였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7화 -엘프 노예를 줍다.- 라크리마는 비행능력으로 일주일 안에 모든 일족의 로드를 만나보고 올수 있다고 했지만 케리는 굳이 억지로 인간 모습으로 걸어서 여행하기를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납득하지 못하던 라크리마 였지만 케리가 모험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자 고개를 끄떡이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자 우선 요리사로 코볼트 5마리만 데려가고..." "아냐아냐 라크리마!" 여전히 뭔가 잘못 알아듣는듯 했지만... "난 라크리마, 너와 단 둘이서 여행하고 싶다는 거야!" "에? 그런 말이었나요? 진작 말씀하시죠. 케리님. 꺄악~" 라크리마는 폴짝 폴짝 뛰면서 기뻐했다. 모험을 한다... 라는 사실 보다는 케리와 단 둘이서 같이 있는 상황을 더 즐기는 것 같아 보였지만... 그리고 몇일동안 그들은 모험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 당장 가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케리는 반문했지만, 라크리마는 드래곤의 시간 관념상 100년 정도는 문제 없다고 했다. 우선 타고 갈 만한 것으로 말을 준비했다. 라크리마는 그리폰이나 와이번, 켄타우로스 같은 것이 더 좋다고 했지만... 케리는 그런걸 타고 가다가는 너무 눈에 뛴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말을 타고 가는데도 문제가 많았다. 라크리마의 레어에서 구할수 있는 말은 야생마 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크리마의 경우는 가까이 가자마자 말들이 먼저 쫄아서 복종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케리는 말 한마리를 길들이는데 하루 종일을 소모해야 했다. 그나마 라크리마가 도와줘서 쉽게 된 것이다. 식량은 적당히 준비되고 끝났지만, 갈아입을 옷을 준비하는데 라크리마가 너무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설득하느라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외 이런 저런 무기를 준비하고 마법 도구를 챙기는데 또 하루. 겨우겨우 준비가 다 끝나고 드디어 출발 날짜가 왔다. "파치야. 오랜만에 등장하는군. 넌 묘인족 일당의 대장이니까 코볼트 들이랑 다투는 일 없이 조용히 레어를 지켜야 한다." "예. 라크리마님." "코볼트 족장. 너도 묘인족들이나 다른 종족들과 다투는 일 없이 조용히 레어를 지켜야 해." "멍멍. 멍멍멍멍." 라크리마는 이런 식으로 몬스터들에게 하나하나 당부를 하고는 케리와 함께 레어를 나섯다. 그리고 맨 처음 맞딱 뜨린 난관인 라크리마 비행장(?)의 벽을 넘어간 지도 벌써 3일.(옆에 레그너스가 놓고 간 거대한 장미 꽃 다발과 레그너스와 라세니안이 추락한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 동안은 아.무.일.도.없.었.다. 밖에서 이상한 짓 하기는 싫다는 케리의 요청에 따라 라크리마가 욕정(?)을 참고 있는 것 외에는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 '왜 몬스터 한마리도 습격해오지 않는 거지?' 케리는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 원인은 라크리마 때문이었다. 자연계의 동물들은 야성의 직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도시에 오래 살아서 직감이 둔해진 인간이 아닌 이상 모두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야성의 직감이 라크리마의 존재감을 탐지하여 도저히 상대할수 없는 강자가 근처에 있다는 냄새를 풀풀 흘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라크리마가 있는 곳에서 수백미터 안에는 있던 몬스터도 달아나는 판국이니 몬스터가 습격해올리가 없는 것이다. 좌우간 덕분에 케리는 편안하게 라크리마류 인간 격투술의 수행에 몰입할수가 있었다. 인간 격투술이라지만 스톰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은 인간이 아니면 쓸수없는 것이었지만... 우선 케리가 바람의 힘을 느끼게 하는데 이틀이 걸렸고, 그것을 조종해서 간단한 소닉 블레이드를 쓸수 있게 하는데 하루가 걸렸다. 사실 본래대로라면 당연히 쓸수 있어야 하는 힘이기 때문에 여행하면서 틈틈히 수련해서 이 정도가 걸린 것이다. 하지만 아직 케리의 소닉 블레이드는 작은 돌멩이를 날려버리는 정도의 힘 밖에 없었다. "끄응..." 낙담한 케리를 라크리마는 어깨를 토닥토닥 거리면서 위로해 주는 날이 다반사였다. 좌우간 여행을 시작한지 삼일째. 그날의 점심 식사용 스튜를 냄비에 담아 불 위에 앉혀두고, 라크리마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조금 떨어진 공터에서 케리는 수행에 몰두하고 있었다. 픽... 픽.. 픽... 맥아리 없는 소리, 케리의 소닉 블레이드는 겨우 조약돌을 날려보내거나 작은 나뭇가지를 꺽어지게 하고 있었다. 보글보글보글... 조금씩 되어가는 스튜를 라크리마는 간간히 국자로 휘저으면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 단계에서 케리에게 라크리마가 줄수있는 도움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닉 블레이드를 발사하는 요령을 조금씩 깨닳아가면서 위력을 약간씩 향상시키는 단계였기 때문이다. 일정 이상의 위력을 갖추지 못하면 라크리마가 생각해낸 블레이드 사용 요령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따듯한 오후 햇살 아래서 멍하니 스튜만 휘젓고 있으려니 아무리 드래곤의 정신력을 갖춘 라크리마라고 해도 졸음이 오지 않을수가 없었다. 꾸벅... 꾸벅... 라크리마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떡 끄떡 거리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으이그. 저러다가 스튜를 다 태우지. 그때 라크리마가 요리를 하고 있는 곳으로 비탈을 굴러서 내려오는 물체가 있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라크리마는 그 물체를 관찰했다. 드래곤의 뛰어난 시력으로 보아 그 데굴데굴 굴러오는 물체는 틀림없는 엘프였다. '...굴러오는 엘프라니... 대체 무슨 엘프일까....... 데굴 엘프.... 동글 엘프.. 팬더 엘프...?'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 라크리마는 혼자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사실 드래곤들은 수면기에도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래서 잠껼에 인간 도시 하나를 뭉개놓거나 엘프 숲 하나를 태워버리거나 드워프 광산 하나를 무너뜨리는 일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털푸덕! 굴러오던 엘프는 라크리마의 스튜냄비 바로 앞에 엎어졌다. 그런데 라크리마가 멍하니 있는 사이 엘프는 벌떡 일어나더니 스튜냄비에 달려들어서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이다. 너무나 황망한 사태에 라크리마는 스튜가 엘프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물은 없냐?" 뻔뻔 스럽게도 스튜를 다 먹어치운 엘프가 라크리마에게 던진 한마디였다. "이 새끼 뭐야!!!*#&$*#" 라크리마는 평소에는 입에 담지도 않던 온갖 쌍욕을 퍼부으면서 레그너스를 다운 시켰던 치마 들어올리고 발리킥을 엘프에게 시전했다. 퍼어어어억!!! 두개골과 다리뼈가 부딧치면서 엄청난 소리가 나서 숲의 동물들이나 몬스터들은 라크리마에서 1km바깥으로 도주해버렸다. 교훈 하나. 드래곤의 요리를 멋대로 처먹고서 살아남은 엘프가 살아남은 적은 딱 한번 있었더랬던가...[...] 수련 도중에 들린 엄청난 소리와 그에 뒤이어지는 라크리마의 분노한 욕질을 들은 케리는 허둥지둥 라크리마가 스튜를 끓이던 장소로 달려왔다. 그 곳에는 어떤 모험가도 한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는 소년 엘프가 애벌레 처럼 꽁꽁 묶여서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었고, 라크리마는 그 아래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있었다. 일부러 물기가 많은 땔감을 써서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고, 소년 엘프는 연기에 목과 눈이 매워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쿠엑 쿠엑 크에에엑!!" "후후후후후... 스튜를 먹어치운 댓가로 네가 오늘 점심식사가 되어줘야겠다! 주인님, 오늘 점심은 엘프훈재구이 입니다!" "저기 라크리마... 대체 뭘 하는 거야?" "예. 주인님. 갑자기 나타난 스튜도둑을 처벌하고 있습니다." "사...살려줘!!!!" 연기속에서 절규하는 엘프의 입가에 묻은 스튜, 텅텅 비어버린 스튜냄비. 상황은 거의 확실해보였다. "처형해라. 라크리마." "예!" "뭐야아아아아 콜록 콜록 켈록...!!" 라크리마와 케리가 이성을 되찾고 엘프를 끌어내려 준 것은 엘프가 검댕으로 온 몸이 시꺼멓게 그을린 다음의 일이었다. "쿨럭쿨럭..." "이제 좀 반성했냐? 이 시든 푸성귀같은 엘프야!" "콜록콜록... 점심 좀 나눠먹었다고 이렇게 만들다니... 좌 좌우간 물좀 줘..."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아!!!" 라크리마는 엘프의 멱살을 잡아 쥐어 올려 끌고가더니 그들이 스튜를 할 물을 떳던 개울물에 처박아버렸다. "크아~" 엘프는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겨우겨우 개울가로 기어나왔다. 물에 푹 젖은 생쥐꼴이 된 엘프를 라크리마는 고소하다는 듯이 깔깔 대면서 바라보았다. "으..으윽.." "이 시든 푸성귀! 잡아먹지 않은걸 다행으로 알아!" 케리도 굳이 라크리마를 말릴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휴... 겨우... 살것 같네..." 엘프는 그래도 넉살 좋게 지껄이면서 개울가 바위에 주저앉았다. "아직도 네 죄를 깨닫지 못한 거냐? 진짜로 구워먹어줄까?" "어.. 어이 예쁜 아가씨가 고작 식사 한끼 가지고 뭘 그러시나..." "그 말은 식사를 배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냐?" "뭐... 뭐 그렇기는 한데..." 라크리마는 계속 소년 엘프를 몰아붙였다. "좋아. 그럼 식사값은 1골드로 환산, 이자는 30000%로 빚으로 쳐주지. 아 요즘 엘프노예 시세가 머리 하나당 300골드니까... 네 몸으로 보상해라. 시든 푸성귀야." "...뭐 뭐야 그게!" 퍼어어어어엉! 풍덩! 엘프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억지 같은 라크리마의 계산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대들다가 소닉 블레이드 반격을 맞고 또 다시 개울물에 떨어져버렸다. 슬슬 소년 엘프가 불쌍해져서 라크리마를 말려야 겠다는 생각이 케리에게 들기 시작했다. "저기 라크리마.. 이제 그만 하고 봐주지 그래." "...그런데 오늘 점심이 없어져서... 이걸 어쩌죠 주인님?" "뭐 할수없지...아. 그렇군!" 겨우 다시 개울에서 기어나온 엘프. "용서해줄께. 대신에 점심 보답은 하겠지? 엘프 꼬마?" "내 이름은 에밀이야. 꼬마라고 부르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그래 보답은 어떻게 해줄까?" "저 개울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아와. 오늘은 매운탕을 끓일 꺼야." ".........너..." "안 하겠다면 대신에 네가 엘프 훈제요리가 되어야 할껄." "어머 그거 참 좋은 생각이네요. 주인님" 라크리마는 케리의 제안에 맞장구를 쳤다. "으으...." 불쌍하게도... 에밀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 걸린것 같다는 느낌을 팍팍 받으면서 개울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첨벙거렸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8화 -도적 학살- "뭐하는 거야 빨리 따라오지 못해! 엘프는 체력이 좋으니까 잘 달리기도 할것 아냐!" "그래도 짐까지 다 짊어지게 하고 말을 쫓아오라는건 너무 하잖아!" "어허 잔말이 많다!" 라크리마는 에밀의 등에 모든 짐을 얹어놓고 자신들의 말 대신에 짐꾼으로 써버리고 있었다. 한번은 에밀이 등에 짐을 진채로 도망치려고도 했지만, 라크리마에게 잡혀서 죽사발나게 얻어터진 다음에는 고분고분히 명령을 따랐다. 메이드 복을 입고있는 라크리마는 그렇다 쳐도, 에밀은 노예 이상도 이하도 보이지 않았다. 케리와 라크리마는 말을 타고 가는데 옆에서 걸어오면서 지저분한 옷과 등에 짊어진 짐 등 어딜 봐도 노예의 풍모... 아무리 엘프가 체력이 좋다지만 있는데로 짐을 들게 했으니 가볍게 달리기는 커녕 비틀비틀 걷는 것 만도 용한 지경이었다. 점심 한끼의 댓가로는 상당히 비싼 것이 아닐까... 도시에서 오래 살던 인간이란... 야성의 직감에 의지하는 동물들 보다 무모한 판단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법이다. 지금 케리 일행 앞에 "거기 서라! 가진거 다 내놔!" 라고 하고 있는 도적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밀은 이제 살았다는 듯이 짐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지만, 도적떼들이 '저 엘프는 노예로 팔아버릴까?'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식은 땀을 흘렸다. "휴우..." 라크리마는 도적떼들의 몰골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한눈에 살펴보고 이리 보고 저리보고 아무리 봐도 별로 대단한 도적떼들은 아닌것 같았다. 무기랍시고 들고 있는 것은 절반이 농기구에, 복장도 어디서 유랑 농민인데 농사가 안되서 전직한 것처럼 때국물이 질질 흐르는 누더기... 케리는 도적떼들이 나타나자 잠시 아찔해져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지만 상대가 이 정도 되는 것을 보고 안심하였다. "라크리마. 여긴 나한테 맡겨!" 이 참에 라크리마에게 자신의 강한 모습을 보여줘서 존경을 받기로 결심한 케리는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섯다. "웃!" 도적떼들은 케리가 자신 만만하게 나오자 움찔해서 뒤로 물러섯다. 사실 그들의 정체는 카에리온 시티 주변에서 도시에 농작물을 팔면서 살아오던 농민들이었으나 도시의 몰락과 동시에 그들 역시 몰락하여 도적떼로 전업한 것이었다. 도적이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아직 담력이 작아서 지나가던 비슷한 처지의 농민들이나 등쳐먹다가 도저히 그걸로는 수입이 안돼서 오늘 처음으로 좀 뭔가 있어보이는 놈들을 노려본 것이었다. 하지만 케리가 강하게 나오자 왠지 베테랑 모험가인것 같아서 집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이 배고파 우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억지로 전의를 돋구지 않으면 안되었다. "소닉 블레이드!" 케리는 힘차게 기합을 넣으면서 팔을 휘둘렀다. 피식... "앗 따거!" 맥없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소닉 블레이드는 맨앞에 서있는 도적중 한명에게 면도날로 살짝 베인 정도의 상처를 입혔다. "........." 한동안의 정적이 흐른뒤... "푸하하하하! 그것도 마법이냐?" 마법은 아니었지만... 마법처럼 보이겠지 아마... "덤벼! 없애버려 이것들!" 좌우지간 분노한 도적들은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고 케리 일당을 덮쳤다. "소닉 블레이드!"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라크리마의 소닉 블레이드는 케리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위력으로 날아가 도적들을 날려버렸다. "주인님. 아직 사람을 쓰러뜨리기에는 파워가 부족해요. 좀 더 연습하도록 하세요." '크윽.. 자존심 팍 상하네...' 자신은 쪽도 못쓰고 라크리마가 다 처리하자 케리는 자존심이 상했다. '뭐... 뭐야 저 여자. 정말 강하잖아?' 라크리마의 무시무시한 힘을 눈앞에서 목격한 에밀은 더 이상 라크리마에게 반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자 가자!" "예!!!" 에밀은 라크리마와 케리를 쫓아 있는힘 없는힘 다 짜내서 더욱더 빠릿빠릿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한나절을 달려서 슬슬 해가 산너머로 넘어갈 무렵, 케리 일행은 그럭저럭 쓸만한 마을에 도착했다. "저기 케리님. 어떻게 할까요? 제가 드래곤 모습으로 변신해서 협박으로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숙소와 음식을 준비할까요?" "...아니. 됐어 라크리마. 그냥 인간 처럼 하자고 인간처럼..." "으음...그럴까요." 그들이 이 대화를 들은 에밀은 자신이 붙잡힌 상대가 드래곤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불행을 한탄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하필이면 드래곤한테 걸리다니...' 케리는 라크리마와 에밀을 데리고 우선 적당한 여관방을 하나 잡았다. 그 다음에는 길을 달리면서 계속 넘어지면서 옷이 엉망이 되어비린 에밀이 워낙 볼품 없어서 불쌍하다면서 옷가게를 찾았다. 에밀은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서 오십시요." 가게주인은 배가 불룩 나온 턱수염을 기른 대머리 남자였다. 하지만 그럭저럭 인상은 재미있고 좋아 보였다. 그런데 라크리마가 갑자기 그 사람 앞에 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가게에서 옷을 사가도 될런지요. 제발 허락을..." "아 아니 손님 이러시면!" 가게주인은 과도하게 저자세로 나오는 라크리마 때문에 어쩔줄 몰라 허둥거렸다. "뭐하는 거야 라크리마! 죄송합니다. 이 녀석이 세상물정에 어두워서..." 케리는 급히 라크리마를 일으켜세웠다. 주인은 곤란한 손님들이 왔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라크리마,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하지만 제가 본 인간들은 다 저한테 이렇게 대해서..." "...그럼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둘은 귓속말로 이런 대화를 나눈 다음 옷가게로 들어갔다. "이 녀석에게 어룰릴 것 같은 옷좀 가져와 보세요." 케리는 에밀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가게 주인은 에밀의 귀가 뾰족한 것을 보고 엘프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 마을에서 엘프를 보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눈이 휘동그래 졌다. 하지만 이 괴상한 손님들을 빨리 내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서둘러 하얀 셔츠와 가죽조끼, 초록색 반바지를 가지고 왔다. 갈아입는 방에서 에밀을 갈아입힌 다음, 가게 주인에게 자루 하나를 빌려서 에밀의 낡은 옷을 그 안에 처넣고, 케리는 더 뭔가 실수하기 전에 라크리마를 데리고 여관방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는 근처 빵집에서 사온 빵으로 떼우기로 했다. "라크리마. 알겠지? 인간 세상에서 일반적인 예의는 저렇게 하는 거야. 가게에 들어가서는 저렇게 하도록 해." "예. 알곗습니다. 주인님." "흐음...." 에밀은 라크리마와 케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어째서 드래곤이 인간을 떠받들고 있는 거야?" "눈치챈 모양이군. 난 용사 카리온 님과의 약속에 따라서 케리님에게 봉사하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내가 인간에게 봉사한다고 해서 너 같은 것이랑 동격이라고는 생각하지마." "뭐... 드래곤에게 잡혀버렸으니 할수없지..." 에밀은 투덜투덜 거렸다. "그럼 어디론가 가버려라." 케리는 손을 설레설레 휘저으면서 에밀에게 말했다. "에? 날 풀어주는 거야?" "주인님. 엘프 노예는 비싸다구요." "난 라크리마 이외에는 거느리고 싶지 않아. 게다가 돈 한푼도 없는 주제에 별 능력도 없는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 이쪽이 더 손해라고. 오늘은 이 방 구석에서 담요 깔고 자도 되니까 내일은 어디라도 가버려." 케리는 침대에 드러누으면서 에밀에게 그렇게 말했다. "난 싫어. 당신들이랑 같이 갈꺼야." "뭐?" 라크리마는 케리와의 다정한 여행이 이 불청객에 의해서 방해될것 같은 느낌이 들자 눈살을 찌푸렸다. "초 강력한 드래곤과 별 볼일 없는 드래곤 마스터. 이런 특이한 일행은 쉽게 만날수 있는게 아니거든. 재미있을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같이 갈꺼야! 하지만 점심 빚이랑 이 옷은 오늘 짐 들어준걸로 계산해줘! 난 동료로 따라가고 싶어!" "...저기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꼭 달라붙으면서 속삭였다. "뭐... 상관없겠지. 따라오라고 해." "휴... 뭐 주인님께서 말씀하신다면." "야호! 좋아 그럼 우리는 한 동료야!" "동료는 아냐. 난 주인님의 하인. 넌 주인님과 나의 하인이다!" "빚은 다 청산했잖아!" "핏 맘대로 해라." 에밀은 오늘 하루종일 라크리마에게 호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잘대해주니까 그 일을 다 잊어버린듯 했다. 참 명랑하고 밝은 녀석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케리는 잠이 들려고 했는데... "주인님. 그냥 잠드시면 어떡해요~♡" 귓가에서 라크리마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소리가 가쁘고 달콤한 향내가 섞여있는것 같다. "...라 라크리마..." 그거다. 그거다... 틀림없이 라크리마는 '그것'을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뭔데) "주인님. 여태까지는 숲이라서 바깥에서 하는건 부끄럽다면서 안해주셧잖아요. 그러니까 오늘은 꼭 ..." "하... 하지만 에밀이 보잖아." 케리는 에밀 탓을 하면서 적당히 무마시키려 했다. 라크리마와 사랑을 나누는 것은 분명히 즐겁고 기쁜 일이지만, 자신을 단련하는 극기를 위해서는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술을 익히는 동안은 자재하려 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리니까 맘대로 해." 방 구석에서 담요를 깔고 누워있는 에밀의 대답이 들려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엘프는 적외선 시각을 가지고 있어서 어두운 밤에도 물체를 파악할수 있고 청력도 귀가 긴 만큼 아주 좋다. 이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들린다잖아요. 어서 해줘요~♡ 주인니임~" "그런 속보이는 말을 믿냐! ...으 으악 다.. 달라붙지마.. 으윽... 이 이성이 날아간다...! 라크리마아아아아!!!" "꺄앙♡" 그날 밤, 케리의 방을 중심으로 온 여관 안에 방아찍는 소리가 울려퍼져서 다른 손님들의 밤잠을 방해했고, 다음날 여관 침대의 스프링이 터져서 주인에게 상당한 항의를 들어야 했지만, 라크리마는 왠지 기쁜 얼굴이었다고 한다. 반면 케리는 자신의 의지가 약함을 비관하고, 에밀은 좋은 구경을 했다는 듯이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9화 -케리, 미소녀가 되버리다!- 본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들른 이 마을에서 느긋하게 묵으면서 보름 정도는 보낼 예정이었던 케리 일행이었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았다. 라크리마는 어떻게 어떻게 물건은 사올수 있게 되었지만, 인간 세상에서의 예절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온갖 실수를 저질러댓다. 케리가 '나한테 하듯이 대해라'라고 하면 너무 저자세로 대해서 탈이었고, '그냥 평소대로 해라'라고 하면 터무니없이 고자세로 나가서 문제를 일으켰다. 오늘은 꼬마애들 한테도 절을 하다가도 내일은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까대는 것이 아닌가... 사실 1301살이나 먹었고 앞으로 8000년 이상 살수 있는 라크리마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나이야 어느 정도건 별 차이 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라크리마는 언제나 좌충우돌, 케리는 레어에 있던 떄보다도 라크리마에게 신경을 더 써야 했다. 1301살이나 살면서 인간들이랑 사귀어본적도 없냐... 라고 케리가 물으면 라크리마는 떄려부순고 잡아먹은적만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라크리마가 이름을 기억하는 인간은 카리온이나 케리, 에마 정도일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라크리마는 인간의 집안과 집밖, 방안과 복도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라크리마 입장에서는 '집'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서있지 않은 판에(그녀의 집은 사실 거대한 동굴일 뿐이다.)... '방'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리가 없는 까닭도 없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있는다던가 하는 사소한 문제도 많았지만 최대의 문제가 된 것은 벗고 다니는 것이었다. 첫날에는 여관 안을 마치 자기 집 안방 처럼 훌렁훌렁 벗고 돌아다녀서 온 여관 남자들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주지를 않나... 나중에 물어보니 라크리마에게는 '옷'이란 상당히 불편한듯 했다. 케리 앞에서는 카리온 앞에서 하던 대로 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있지만, 사실 레어 안에서도 벗고 다니는 일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드래곤 몸에 맞을 옷도 없을테니... 당연한 사고방식이기도 하지만.... 이래서야 곤란한 것은 케리였다. 이미 케리에 대해서 온갖 음담폐설적인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결국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신신당부 하기를... "내 앞이 아니면 옷 벗고 다니지마." "옛!" 빠릿빠릿하게 대답한 라크리마 였지만 이 말을 '케리 앞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로 알아들은 것이 문제였다. 결국 빵집 앞에서 케리를 놀래켜주려는 애교를 부리려고 상의를 훌렁 벗어던지고 케리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파묻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마침 옆에서 놀고있던 아이들이 잔뜩 있는 앞에서... "내 허락이 없으면 옷벗지마!" 결국 케리는 그렇게 까지 명령해야 했다. 뭐 하지만 이 정도 일이라면 좌우충돌하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케리로서는... 언제나 라크리마에게 심리적으로 눌려있고, 라크리마가 모든 것을 처리하고, 라크리마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던 케리는 라크리마가 곤란해하고 자신에게 의지해오고 자신에게 야단맞는 상황이 그렇게 싫지만도 않았던 것이다. 에밀도 처음에는 라크리마를 상당히 무서워했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 때문에, 또 인간 세상을 라크리마보다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라크리마에게 도움을 많이 주게 되면서 조금씩 친근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왜 자신이 숲을 나와서 여행하고 있는 지는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생활도 끝나야 할 때가 왔다. "제발 방 좀 빼주세요." 여관 주인이 그렇게 애원해온 것이다. "예? 대체 무슨 일로...? 분명히 한달 숙박비는 미리 다 냈지 않습니까." 케리는 일단 그렇게 대답했지만 이유는 거의 짐작하고 있었다. "사실 그러니까 저... 손님들께는 죄송한 말입니다만... 촌장님의 항의까지 있고 하니... 그 우리 마을에도 풍기라던가 애들 교육문제도 있고 해서... 아 이거 참 말하기가..." 틀림없었다. 라크리마의 행동이 동네전체의 문제로 발전해버린 것이다. 확실히 라크리마가 지나가면 짓궃은 아이들이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케리의 귀에 까지 들려왔다. 어느날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낯뜨거운 음담패설을 듣고 온 적도 있었다. 다행히 라크리마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했다면 마을이 지금쯤 남아있지도 않을 테지만... 짐작 했던 대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래서야 라크리마는 영문을 모르니 별 상관없을 테지만 케리가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었다. 게다가 만일 라크리마를 가벼운 여자로 보고 뭘 모르는 인간들이 심한 장난을 걸거나 하면... 그럼 이 마을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케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여관 이미지 문제도 있고..." "예. 그럼 할수없지요. 방 뺴드리겠습니다." "예? 아이구 이거... 원 죄송해서..." 여관주인은 케리가 항의하지 않고 선듯 그렇게 대답하자 기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도 고개 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럼 나머지 보름치 방값은 환불해드리겠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쪽에서도 폐를 많이 끼친것 같으니..." "예? 정말이십니까. 아이구 이거 감사합니다.허허허..." 골치덩이가 떨어져 나가고 돈까지 굳게되자 여관 주인은 입이 찟어질것 같은 표정이 되어 싱글거렸다. "당신도 참 사람이 좋아. 받을 돈도 안 받다니..." 에밀은 마을에서 산 작은 당나귀 등에 앉아서 케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케리는 진심으로 여관이나 마을에 미안한 점이 있었기 떄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약간 실수를 했다고도 생각했다. 라크리마도 마을에서 사고만 치면서 케리가 곤란해 하는 것을 보고 즐거웠을리는 없고, 마을 사람들도 곤란하게 하면서 자신은 라크리마가 약간 자신에게 의지해온다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이렇게나 속 좁고 남자답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저기.. 주인님..." 자기 잘못 때문에 마을을 떠나게 되어서 케리에게 폐를 끼쳤다는 죄책감에 라크리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냐 라크리마. 나한테 사과할것 없어. 내가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라크리마에게 인간의 생활 예절에 대해서 잘 가르쳐 주지 못한 탓이지." "히잉... 그래도 죄송해요..." "그리고... 난 라크리마가 언제나 완벽한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실수하는 모습도 보여줘서 약간 즐거웠거든. 미안해. 라크리마는 힘들어 했을텐데." "예? 그러세요. 그럼 저 앞으로도 실수를 많이 많이 해서 기쁘게 해드릴께요!" "...아 아니 그러지는 말아줘."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마을에서 얼마 나오지도 않았는데, 숲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은 마을안에서 와는 느낌이 완전히 틀렸다. "실프가..." "응?" "실프들이 바람의 정령들이 즐거워하고 있어요. 마을 안에서는 항상 다들 묵묵하게 처져 있는데..." 라크리마는 바람 사이로 정령의 무리가 보이는 것 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그녀의 눈에는 똑똑히 보이고 있을 테지만, 케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나도 그렇게 느껴져. 인간의 마을은 정령들이 살기에 좋지 않거든." 엘프인 에밀에게도 정령들은 그렇게 보이는 듯 하였다. "저기 주인님..." "응?" 라크리마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 케리에게 말했다. "저.. 몇일전부터 이 옷... 벗지 않았어요. 주인님이 명령하지 않으면 벗지 말라고 말해서..." '...밤에 메이드 복 입고 달려든건 특별 서비스가 아니었구나...' "그런데... 너무 갑갑해요... 기분같아서는 변신해서 하늘을 훨훨 날아보고 싶지만... 그냥 인간 몸으로 참을테니까 이거 벗어도 돼요?" "응. 라크리마도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그 정도는 하게 해줄께." "와! 대찬성!" 첫날밤 이후로는 옆방을 얻어서 따로 재웠던 에밀도 눈이 휘동그래져서 기뻐했다. "...이 색마 꼬맹이 엘프. 라크리마, 앞치마 벗어줘!" "예!" "뭐야 너무해! 이러지마!" 케리는 라크리마의 앞치마를 받아서 에밀의 눈을 꽁꽁 묶어버렸다. 스르륵 사라락 스르륵 사라라락... 꽃잎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듯 라크리마는 메이드 복을 한꺼풀 한꺼풀씩 벗어서 가지런히 개어 옆에 두었다. "으으응.. 보고 싶어.. 라크리마 몸매는 너무 예쁘단 말야!" "시끄러. 어린애는 이런거 보는거 아냐." 잡티 하나 없이 하얗고 고운 피부, 작지만 예쁘고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가슴, 탱탱하고 보송보송한 엉덩이, 늘씬하게 뻗은 팔과 다리. 그 위로 너무나도 귀엽고 깜찍한 얼굴에 하얀 브릿지가 한줄 간 매끄러운 흑철색 머리결이 드리워졌다. 몇번이나 봤지만 케리는 여전히 감탄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자신이 본 아니 이제부터 볼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그녀. 내가 정말 라크리마의 주인일까? 케리는 반문해보았다. 아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라크리마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크리마가 자신을 섬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가 소유한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도 위대한 존재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어와서 라크리마를 그녀 자신의 의지가 명하는 대로 공중으로 살짝 뛰워올렸다. 라크리마는 공중에 살짝 날아오른 상태로 그녀 자신이 명하는 대로 움직이는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무게 자체가 사라진 깃털처럼 둥둥 떠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케리는 마치 망망대해 한 복판에 혼자 수평선을 바라보듯이, 드넓은 평원 위에 혼자 지평선을 바라보듯이... 대자연과 같은 위대한 존재와 직면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앞으로도 그가 죽은 뒤에도 천년 만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녀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 그녀를 조금이라도 진정으로 소유했다고 납득할수 있을 떄 까지 달려가는 것... 이 아름다운 소녀의 한 올의 머리카락만한 가치라도 될 수 있는 것... 그것은 케리 자신이 인생을 걸고서라도 시도해볼 만한 '모험'이었다. "에취!" 드래곤이라고 해서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나 다른 보다 연약한 생물로 폴리모프 한 뒤에는 더욱 그렇다. 드래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질병으로는 첫번째가 감기, 두번째는 너무 날아서 생기는 날개 저림이었다. 라크리마는 아직 어려서 날개저림이 올 나이는 아니지만, 역시 감기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흐에에엥...죄송해요오. 너무 기분 내다가 이렇게 되버려서..." 케리는 결국 너무 오래 바람을 쐬다보니 열이 펄펄 끓어올라 말에도 탈수없게 되버린 라크리마를 등 뒤에 태우고 갈수밖에 없게 되었다. "드래곤도 감기에 걸리는 구나..." 당나귀에 타서 라크리마가 타던 말을 끌고가는 에밀은 콧물을 질찔 흘리면서 괴로워하는 라크리마를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에취...! 그래서 ... 콜록 콜록... 레어를 만들어야 하는 거죠.. 콜록... 밤이슬을 맞고 잘수는 없으니까... 에취!" "감기를 낫게 하는 마법은 없는 거야? 라크리마?" "주인님도 참... 콜록 콜록 그...콜록... 그런게 있으면.. 콜록.. 레어를 만들리가 없죠... 에취!" 질병을 낫게하는 마법은 여러가지 개발되었지만, 아직 감기를 치료하는 마법은 없다. 감기에 가장 잘 듣는 마법은 잘 쉬고 잘 먹는 것 뿐이다. "드래곤이니까 죽을 염려는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괴로워하는 너를 보고만 있을수는 없으니.. 어디 인가가 없을까. 이렇게 괴로워 하는데 노숙할수도 없고..." 케리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나무와 숲만 보일 뿐 제대로된 숙박시설은 커녕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였다. "아냐아냐! 저기저기! 인간의 집 같은 것이 있어!" "뭐? 난 전혀 보이지 않는데?" 에밀은 케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 중턱과 골자기 사이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아냐 확실히 있어. 엘프의 시력을 믿으라고!" 에밀은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있게 말했다. "너...콜록..콜록.. 거짓말이면... 푸에취!... 이 썩은 푸성귀... 콜록... 땔감으로 써버릴테다...! 에취!" "그렇게 기침하면서 콧물 찔찔 흘리면서 말하면 하나도 안 무섭다~ 메롱~" "너어!!! 콜록 콜록..." "드래곤이면서 감기라니 정말 한심하구만..." "...자자 그만둬 그만둬. 에밀, 일단 믿어 주겠다. 라크리마. 가자!" 케리는 다투려는 라크리마와 에밀을 말린 다음, 에밀이 가리킨 곳을 향하여 말을 달리게 했다. "의외네... 온천여관 이라니..." 케리는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여관을 발견하고, 그것도 온천여관이라는 것을 알자 새삼 에밀에게 감탄했다. "아니 이게 왠 손님이야?" 젊은 남자 종업원이 달려나와 뜻밖이라는 투로 말했다. 이렇게 외진 곳에 여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저기 일행중에 환자가 있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요." 케리가 부탁하자 종업원은 서둘러 안에 들어가 사람들을 불러왔다. 주인과 모든 종업원이 다 몰려나왔는데 대략 7~8명 정도였다. 70살 정도 된 할아버지인 주인은 몇명 안되는 종업원들에게 라크리마를 업어다가 방에 데려다 눕히게 해주었고, 작은 방을 두개 내주었다. 겨우 한숨 돌리고 난 뒤 주인 할아버지가 하는 말로는 이 온천은 이 지방의 영주가 개발한 것인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교통도 불편해서 상업적 가치는 별로 없다보니 영주의 별장 비슷하게 쓰이다가, 오래전부터 성에서 집사로 일하다가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된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에서 맡긴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손님은 그리 많지 않고, 영주가 친지들을 초대해보거나 조용히 쉴려고 할때나 쓰인다고 한다. 주인 자신도 늙은이 소일거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고... 정말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여관을 찾은 것이다. 케리와 에밀은 라크리마를 조용히 혼자 재워두고 다른 방에 둘이 함께 짐을 풀었다. "너도 도움이 될때가 다 있구나." 케리는 내심 엘프의 시력에 감탄하였다. "헤헤헤. 엘프의 눈을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에밀도 그것을 눈치채고 한껏 우쭐대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내일이면 나을까... 아니야 열이 좀 심하던데 몇일 더 묵어야 할지도..." "글세 뭐 주인 할아버지가 값은 싸게 해준다고 했으니까 오래 묵어도 상관 없잖아! 그것보다 온천 하러 가자 온천!" "...라크리마가 저렇게 됐는데..." "괜찮아! 쟤도 드래곤이니까 잠 자고 나면 나을꺼야. 가자가자. 케리도 쉬어. 케리도 감기 걸리면 어떡해?" "혼자서 가." "혼자서 무슨 재미로?" 에밀은 케리를 닥달해서 온천으로 끌고가려 했다. 케리는 영 내키지 않았지만, 에밀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오기로 생각하고 온천탕으로 향했다. 온천탕은 약간 좁은 느낌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좋은 시설이었다. 손님이 거의 없는데도 종업원들은 성실하게 매끈하게 잘 깍아낸 돌로 만든 탕을 열심히 청소해놓은듯 했다. 케리와 에밀은 따듯한 온천물에 몸을 담궜다. 다만... 그전에 에밀이 그 뛰어난 시력으로 온천탕의 창문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시꺼먼 그림자를 발견해내지 못한 것이 그들의 최대의 불행이었다. 첨벙... "아아 좋다..." "와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편안하게 몸을 담그고 있는 케리와는 정 반대로 에밀은 물장구를 세차게 튀기면서 물장난을 쳐댔다. 탕이 좁다지만 두 사람이 들어가 있기에는 지나치게 넓었다. 보통이라면 에밀이 물장구를 치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하하하하하하하 받아라 받아라" 자꾸 케리 쪽으로 물을 튀겨보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녀석이이!!!" 참고 참던 케리도 결국 한계를 넘어 반격을 시작했다. 둘은 한참동안 신나게 물싸움을 했는데... "다이빙 헤드 어택!" 물컹~ 온 몸으로 케리에게 달려든 에밀은 도저히 있을수 없는 감촉에 스스로 뭔가 착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물컹물컹한 것은 그의 이마에도 뺨에도 손바닥에도...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으악!!!" 에밀은 화들짝 놀라면서 뒤로 물러섯다. "...무슨일이야? 에... 어 뭔가 이상한... 으악!!!" 자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가늘어 졌다고 느낀 케리는 몸을 더듬어 보고 화들짝 놀랐다. "여... 여자가 되버렸다!"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가슴과 가느다란 허리, 통통한 엉덩이... 피부도 엄청나게 좋아졌고, 물에 비춰보니 얼굴도 자신의 느낌은 약간 밖에 남지 않은채 엄청나게 미소녀화 되어버린 상태였다. 머리카락은 그대로의 길이니 보이쉬한 미소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정적으로... 다리사이에 부풀어 있단 자신의 자랑스러운 것이... ...너무 불쌍해서 말해주기 싫다. 좌우간 결과만 말하자면 케리는 미소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케리는 탕에 뭔가 문제가 있나 해서 허둥지둥 탕에서 나왔지만 변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흥. 온천 같은데는 문제가 없어! 그건 내가 걸은 저주다!" 드르르륵! 휘리리릭! 온천탕의 창문이 열리면서 그 위에서 한 소년이 뛰어내렸다. "어머나 꺅! 엿보기야! 치한이야! 어떡해 어떡해!!!" "... 이제 막 여자가 된 주제에 여성스러운 척 굴지마!" 소년은 짜증난 다는 듯이 소리쳤다. 케리의 눈에는 이상하게 소년의 모습이 낯이 익어보였다. 단정하고 기품있는 얼굴 생김새, 검은 바지 위에 하얀 셔츠를 받쳐입고, 그 위에는 가죽 자켓을 걸치고 있는 그 소년의 머리색과 눈색은... 라크리마와 똑같은 흑철색이었던 것이다. "서.. 설마 너도 드래곤...?!" "의외로 눈치가 빠르군. 나는 위대한 스톰 드래곤 일족의 라크레일! 누나의 복수를 하려고 왔다!" 라크레일... 물론 이 녀석은 라크리마의 동생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역시 스톰 드래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0화 -시스콘 남동생은 골치덩이- "누나의 복수라니? 대체..." "흥 시치미 떼지 마라. 우리 누나 라크리마를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그... 그럼 네가 라크리마의 동생?!" 라크레일, 라크리마의 동생인 스톰 드래곤의 저주에 의해서 케리는 미소녀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네놈 때문에 우리 누나는 매일 매일 혹사를 당하고 있어. 게다가 넌 누나한테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이나... 그런 것 까지 하고 부러워서.. 아니아니. 너무 심해서 참을수가 없어! 그래서 내가 천벌을 내려서 널 여자로 만들어 버린 거야!" "이봐 뜬금없이 천벌이라니...!" "찌찌 보인다." "꺅!!!" 케리는 라크레일에게 따지려다가 허둥지둥 손을 모아 가슴을 가렸다. "...뭐 뭐야 난 방금 여자가 된 건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 거지..." "케케케. 그야 내가 건 저주는 육체뿐만 행동 패턴이나 감정 상태까지 여성화가 되는 아주 강력한 물건이니까." 라크레일은 사악하고 음산하게 킬킬 대면서 웃었다. '이놈은 아주 악질적인 악동타입이다!' 케리는 이런 뜻밖의 사태를 만나게 되자 너무 황당하여 어쩔줄을 몰랐다. "그럼 이만 잘 있어라. 나는 간다. 평생 기집애로 살아라. 으헤헤헤헤헤!" "잠깐 기다려!" 라크레일은 바람같은 동작으로 붙잡으려는 케리를 뿌리치고 창 밖으로 도망쳤다. "제.. 젠장할... 에밀! 쫓아가자! 아앙 이거 창피해서 미치겠네..." "부끄러워서 어떻게 쫓아가..." 에밀은 탕속에 몸을 푹 담그고 대답했다. "...너도냐..." "탕 자체에다가 저주를 걸어버렸나봐.. 훌쩍. 에밀은 초록색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 글썽 거리면서 대답했다. "여... 여자가 되다니. 이 이게 무슨 일이요. 손님?!" 멀쩡한 청소년과 소년이 미소녀로 둔갑해서 나오자 모든 직원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가 적대하게 된 사악한 마법사가 있는데... 그가 탕에다가 여성화의 저주를 걸어서 이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케리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져서 우물쭈물하면서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그럼 이걸 어쩌지? 이대로는 온천탕을 사용할수 없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굉장히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거짓말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아서 어떻게 될 문제는 아니었다. 일단 고양이를 써서 실험해본 결과 확실히 들어맞았으니... "지금 앓고 있는 일행은 사실 뛰어난 마법사 입니다. 저 라크리마만 깨어난다면 어떻게든..." 케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방랑의 용사, 사악한 마법사와 대치하다 저주에 걸려 여자가 되다. 그것을 풀수있는 마법사는 지금 감기에 걸려서 대위기! 라는 정도의 상황이었다. 여관 종업원 들은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는 사건에 이 한가한 여관이 말려들게 되자 어쩔줄을 몰랐다. 좌우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라크리마를 간호하는 수밖에 없었다. 케리와 에밀은 식은 땀에 푹 절어서 색색 거리면서 자고 있는 라크리마가 어서 빨리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케리는 갈색 단발머리의 보이쉬하지만 스타일 좋은 미소녀로, 에밀은 금색 곱슬머리의 귀엽고 깜찍한 타입의 미소녀로 변해버린 상태로 말이다. 다만 성격은 똑같이 엄청나게 수줍음을 많이 타고 울음도 많은 지나칠 정도로 소녀적인 성격으로 말이다. "아아... 제발 빨리 일어나줘 라크리마..." "아앙 라크리마님... 평생 시든 푸성귀라고 불러도 좋으니까 제발..."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라크리마를 간호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밤새도록 끙끙 앓던 라크리마는 겨우 눈을 떳다. "에? 여기가 어디죠? 꺅. 당신들은 누구세요?" 최악의 사태였다. 만일 라크리마가 풀수 있다고 해도 자신이 케리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면 말짱 황이 아닌가. 라크리마의 성격상 케리 이외의 인물에게는 인정머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라크리마. 나야 나. 네 주인 케리야." "제발 날 알아봐줘. 제발 제발 제발..." 케리와 에밀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 라크리마는 한참동안 케리와 에밀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케.. 케리님. 그게 무슨 꼴이예요. 아아..." "라크리마! 쓰러지면 안돼!" 다시 자리에 누워버릴 뻔한 라크리마를 겨우 붙들어 세우는 케리. "네 동생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어서 원래대로 해줘!" "......라크레일이...? 아아 그 녀석이... 으으.. 내 몸이 이꼴이라서 잡으러 갈수도 없고... 이 일단 적당히 풀어볼께요." 라크리마는 아직 감기가 덜 나아서 무거운 머리로 억지로 정신을 집중해서 마법을 썻다. "디스펠!" 펑! "디스펠!" 펑! "디스펠!" 펑! .... 한참 동안 라크리마는 저주를 푸는 것에 매진했다. "...겨... 겨우 원래대로 된것 같네요..." "...그대론데?" "이... 일단 성격만 풀어냈어요. 그럼 전 이만... 좀 더 자야될것 같아...요오.." 털썩. 결국 감기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라크리마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대로 자버리면 어쩌라고오오오오..." 케리의 절규가 온 여관안에 울려퍼졌다. "그래도 부끄러워서 말도 제대로 하기 힘들지는 않으니까 살것 같네..." 에밀은 겨우 성격이나마 원래대로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니 그럴법도 했다. 하지만 케리는 에밀 처럼 낙천적일 수가 없었으니... "아아 돌아가신 부모님이 이 꼴을 보시면 대체 뭐라고 할까..." 아까 호기심에 슬쩍 만져본 가슴의 감촉이 의외로 좋다는 사실에 더욱 자기 혐오에 빠져드는 케리였다. 라크리마가 다시 깨어난 것은 점심을 한참 넘긴 시간이었다. 케리는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아 라크리마 옆을 쭉 지키고 있었고, 에밀은 옆방에서 낮잠에 빠져있었다. "일어났니? 라크리마?" "아.. 케리님... 아까전에는 대충 해놔서 죄송해요..." "아냐아냐. 몸은 어때 괜찮아?" 라크리마는 좀 피곤해 보였지만 열은 다 내린듯 했다. 고개를 끄떡 끄떡 거리면서 라크리마는 대답했다. "예. 이제 개운해요. 그런데 케리님 참 예쁘시다. 킥킥..." "돼 됐으니까... 어서 돌려놔!!!" "옙! 디스펠!" 퍼엉! 치직치직... "에?" 라크리마가 마법해체주문을 썻지만 케리의 몸 주변에 파란 스파크만 몇번 튀었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전혀 효과가 없자 케리는 물론 라크리마 자신도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야? 뭐야? 일어났어 라크리마? 어서 주문풀어줘!" 그 바람에 옆방에서 잠을 자던 에밀도 허둥지둥 달려왔다. 라크리마는 에밀에게도 똑같은 시도를 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상하네... 디스펠 주문은 틀림없이 정확한데... 감기는 다 나았으니까 내 마력도 별 문제가 없고... 대체 뭐가... 앗! 혹시!" 라크리마는 곰곰히 고민하다가 뭔가 한가지 생각을 해내고는 케리와 에밀에게 다른 마법을 걸었다. "디텍트 매직 스펠! 리드 매직 스펠! 로드 매직 인포메이션! 스캔 매직 인포메이션!...." 다른 종족의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눈이 돌아가서 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의 스피드로 라크리마는 온갖 마법을 다 사용하여 케리와 에밀에게 걸린 저주를 조사했다. "뭐야? 무슨 일이 잘못된거야?" 케리는 라크리마가 허둥지둥 무언가를 처리하자 뭔가 단단히 잘못될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라크리마는 읽어낸 저주의 구조를 완전히 해석해내고 나서 케리와 에밀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This Magic에는 dangerlous trouble이 있었습니다. Oh! It's so terroble! 이레귤러 program curse가 또 다시 이레귤러 program을 덧칠해 넣은 탓에 bug가 애당초 많았는데 거기다가 erager, dispel을 So many So much So tired 하게 거는 바람에... Oh! shit! ... Memory is broken. and Progam is So much bug And...*#*$*#*(!*(#(@#(* This magic is terroble!" (작가주:이 부분에 대한 딴지는 사양합니다. 그냥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주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간단히 해주세요. 선생님." 라크리마의 마법 강의는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 처리를 좀 오래하다보니 기술용어가 잔뜩 튀어나왔군요.간단히 말하자면... 아까 했던 말은 무시하고 다시 할께요. 제 동생이 걸어둔 저주 마법은 제 동생이 직접 만든 것이예요. 이런 독창적인 마법은 제어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그런데 저는 감기에 걸려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디스펠을 마구 걸어댓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마법이 꼬여버렸어요. 이래서는 보통 방법으로는 풀수 없어요."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겟지만 지금 라크리마가 풀수 없다는것만은 알겠어." "그럼 누가 풀수있어?" 뭐 요점은 알아들은것 같다. "아마 제 동생이라면... 할수 있을지도. 어릴 떄부터 이런 것만 연구해오던 녀석이니까. 스톰 일족 답지않게 음침하게 스리..." "하지만 네 동생을 지금 어디서 잡아와?" 케리는 풀이 팍 죽어서 중얼거렸다. 라크리마 조차 풀수 없다면 자신은 영영 이대로 지내야 하는 것인가? "뭐 그거야 문제될것도 없죠." 콰아아아앙! 태연스럽게 대답한 라크리마는 소닉 블레이드를 방바닥을 향하여 날렸다. 와지끈! 방바닥이 무너져 내리자 그 밑에는 숨어서 엿듣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화들짝 놀라서 도망치려다가 라크리마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네 행동패턴은 다 알고 있어. 300년동안 길렀는데 그걸 모르겠니?" "...누나아아아아아아아" 라크리마에게 목덜미를 잡혀서 도망치지도 못하게된 라크레일은 눈물로 라크리마에게 호소했다. "누나가 못된 장난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어! 나중에 시간 남게 되면 신나게 혼내줄테니까 자 어서 마법이나 풀어놔!"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으앙 잘못했어 누나!" 지금 무릅 위에 잡아다놓고 엉덩이 두들기고 있는 것은 혼내는 것도 아니라는 건가... "훌쩍 훌쩍..." 엉덩이를 수백대는 맞았을까? 엉덩이가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꾸물꾸물 거리게 된 라크레일은 눈물이 펑펑 흐르는 눈동자로 케리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나 무시무시하고 섬뜩해서 케리는 순간 움찔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게 무슨 태도야 임마!" 퍼억! 라크리마는 케리를 노려보는 라크레일의 뒤통수를 세게 쥐어박았다. "빨랑 마법 못 풀어?" "...미안해 누나.. 흑흑..." 라크레일은 눈물 콧물 질질 짜내서 그 귀엽고 잘생긴 얼굴을 다 망가뜨리면서 마법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저주 방식이 특이한 만큼 쉽게 풀리는게 아닌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 누나가 너 때문에 얼마나 고생고생하는줄 아니? 300살이 되던 해에 네가 태어나서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는줄 알아? 엄마랑 아빠는 매일 매일 부부싸움으로 정신이 없지, 좀 잠잠한 날은 놀러나가시지. 그래서 아직 헤츨링인 내가 너를 300년이나 길러야 했잖아. 뭐 그뒤로는 겨우 그 사정을 알아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데려가주시기는 했지만... 도대체가 너는 어릴 때부터 그 모양 이었어. 스톰 일족인 주제에 성격은 음침하기 짝이 없어서 매일 이상한 마법이나 연구해대고, 그런 짓이나 하니까..." 그래서 그 동안은 라크리마의 설교가 라크레일의 뒷머리에 푹푹 날아와 박혔다. 여기서 잠시 이 둘의 관계를 정리하자면, 라크리마는 라크레일의 누나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라크레일을 기른 것은 300살 위인 라크리마였다. 이 둘의 가정사정은 영 좋지 않아서 라크리마는 저 혼자 자란 것이나 다름없고, 라크레일은 라크리마에게 자라다가 그의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던 것이다. 라크리마는 책임감을 느끼면 극단적으로 잘 돌봐주지만, 반대로 혼낼때는 정말 인정 사정이 없었다. 게다가 라크레일의 취미는 스톰 드래곤 답지 않은 음침한 주문 연구(주로 저주계통). 이러니 정통 스톰 드래곤의 성격을 타고난 라크리마는 라크레일을 예뻐하기도 하지만 성격이나 취미만은 정말 맘에 들어하지 않아서 라크레일은 언제나 혼나곤 했다. "누나... 풀었어..." 겨우 에밀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에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케리님도 풀어." "응..." "내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말이지. 케리님한테 이러면 너 맞는다는거 잘 알잖아? 맞을줄 알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네가 멍청이 레드 일족이야? 무식한 베히모스야? 스톰 일족이면 스톰 일족 답게 굴어 이 바보야. 정정 당당하게 나와서 이야기 하라고. 왜 음침하게 저주 같은걸 걸고 그래? 종알종알종알종알..." 사실 라크레일이 라크리마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나로서 뿐만 아니라... 드래곤에게는 근친상간의 개념이 없으니, 이성으로서도 어느 정도 좋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데다가 성격이 성격인지라 라크레일은 아직 라크리마가 뭘 어떻게 해줘야 좋아하는지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 누나..." "왜?!" "이 마법 안풀려! 어떡하면 좋아!" "으헉..." 케리는 라크레일 조차 마법을 못푼다고 징징 거리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가 못풀면 어떡해!" 퍼억! 라크리마는 쇳소리를 지르면서 라크레일의 안면에 강력한 돌려차기를 날렸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1화 -옷 사러 가요- 겨우겨우 화를 가라앉힌 라크리마와 라크리마가 화를 가라앉히게 하느라고 샌드백 신세가 되어있었던 라크레일은 일단 진정되자 케리의 몸에 걸린 마법의 조사에 돌입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케리는 그 동안 기절해있었다. 하지만 서너시간에 걸친 조사결과로도 케리의 몸에 걸린 마법은 그들로서는 풀수 없다는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드래곤 로드 분들이시나 에이션트 드래곤 분들을 한분 한분 만나고 다니면서 풀 방법을 아시는 분을 찾는 수밖에 없겠어." 라크리마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럼 누나는 계속 이 녀석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여행하려는 거야? 누나는 인간 암컷은 싫어했잖아?" "너 설마 내가 메이드가 된 것이 싫어서 이런 짓을 한 거니? 주인님이 여자가 되면 내가 더 이상 섬기지 않을까봐?" 정곡을 찌른 라크리마의 말에 라크레일은 얼굴이 확 새빨개졌지만 허둥지둥 얼버무려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짓을 할것 같아! 난 그냥 누나가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 암컷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고소한 꼴을 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솔찍하지 못하긴... 퍽! 그러니까 맞지.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해 너도 빨리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죄송..." "목소리가 작다!" "죄송합니다!" 겨우 기절에서 깨어난 케리는 갑자기 자기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드래곤 남매 때문에 어리둥절 했지만, 자기 가슴에서 아직도 느껴지는 무게와 라크리마의 완전히 울상이 된 표정 덕분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고 크게 낙담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저 라크리마. 메이드 실격이예요. 동생 하나 관리 못해서 주인님을 이런 지경에... 저를 해고하셔도 전 할말이 없습니다!" "...아냐 라크리마 해고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네 동생이 멋대로 한 거잖아... 너랑은 상관없어" 해고한다면 영영 해결될리가 없겠지. "그럼 제 동생을 죽여서 주인님께 사죄드리겠습니다." "으악!" 누나가 한다면 정말로 할지도 모르는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아는 라크레일은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려다가 라크리마에게 바지가랑이를 붙잡히고 넘어졌다. "흑흑... 자 어서 본 모습으로 돌아와. 드래곤 탕을 해서 먹어버리..." "아냐 됐어...!!" 피눈물을 철철 흘리는 라크리마의 모습이 정말로 동생을 요리해버릴 기색이었기에 케리는 일단 라크리마를 떼어놓았다. "제가 고룡분들이나 로드 분들께 날아가서 하루라도 빨리 저주를 풀도록 노력할테니..." "아니 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천천히 여행하기로 결정한 거니까." 케리는 지금 자기 몸의 문제보다도 라크리마가 폭주하는 것을 막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예. 그럼 하루라도 빨리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드래곤 로드 분을 뵈러 가기로 합시다!" "아? 나도 따라가야 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했잖아. 당연하지." 이리하여 얼렁뚱땅 라크레일도 일행에 끼이게 되어버렸다. 라크레일은 '언젠가는 이 굴욕을 꼭 갚고 말테다'라는 자기도착형 복수심에 불타는 스톰 드래곤 답지 않은 심리상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어쩃건 그들은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온천 여관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게 되었다. 라는 것 까지는 좋은데... "...아니 이 탕을 어찌하면 좋으나 이거..." 깜빡잊고 온천에 걸린 저주를 풀어놓지 않고 갔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뭐 결국 이 온천이 성전환의 효과가 있는 온천으로 알려져 전 세계적인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전화위복 새옹지마... "옷 사러 가요." 온천 여관을 나온지 서너시간이 지난 무렵. 아직도 훌쩍거리고 있을 까봐 두려워 말을 거는 것 조차 삼가고 있던 케리에게 갑자기 라크리마의 한껏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은 스타일은 좋은데 옷이 너무 안 좋아요. 옷을 잘 입으면 훨씬 더 멋질것 같은데 말이죠." 라크리마는 케리를 꽃단장 하는 광경을 상상하면서 아주아주 기뻐하고 있었다. "저기... 내가 여자가 된건 어떻게 하고...?" "에? 하지만 용서해주셧잖아요. 지금 페이스로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드래곤 로드 분을 찾아뵙는데 한달은 족히 걸려요. 더 서두르신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 뭐 이왕 여자가 된거 예쁘게 차리고 다니시는게 더 좋잖아요." 도무지 종잡을데가 없는 성격이다. 뭐 확실히 상황에 맞춰서 잘 변하니 세상 살아가는데 편하기는 하겠지만. 뭐 확실히 케리의 지금 복장은 갈색 줄무늬 셔츠에 좀 지저분해진 면바지 뿐. 그리 멋있는 복장이라고는 할수 없었다. "...그래 알았어..." 라크리마의 성격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거의 포기한 케리였으며, "...누나 저럴줄 알았어..." 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라크리마의 등 뒤에 꼭 붙어서 타고 있는 라크레일 이었다. 온천 여관을 떠나온 뒤에 들린 곳은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였다. 카에리온 시티 만큼은 안되지만, 나름대로 상업으로 번창한 도시였으며 결정적으로 최근 카에리온 시티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탓에 상인들의 첫번째 이주지로 꼽히면서 번영의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일이란 얽히고 섥히는 법이다... "끄응...." "왜 그러세요 주인님?" "아니 어깨가 저려서..." 케리의 가슴은 보이쉬한 얼굴(당연하잖아 원래 남자니까)과는 정 반대로 출렁 출렁 거릴 정도로 상당히 컷다. 게다가 브래지어조차 하지 않아서(라크리마의 것은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덕분에 지나가던 남자들이 음흉한 시선을 보내올 뿐더러, 에밀이나 라크레일 까지도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라크리마는 그간 케리가 틈틈히 충고해준 보람이 있어서 그럭저럭 어색하지 않게 인간 사회에 끼어들수 있었다. 케리는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어쨋건 케리 일행은 이 도시에 들어서서 한참 헤메다닌 끝에 겨우 그럭저럭 쓸만한 옷가게를 찾을수 있었다. "어머나. 어서오세요." 주인은 싹싹하고 계산이 빨라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일행이 네명이나 되니까 큰 손님이다 싶어서 아주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다만 케리가 자기 옷만 살 것이라고 밝히니 좀 실망한듯 한 기색도 보였지만, 곧 표정을 친절하게 바꾸고... "어머 이 언니는 몸매도 좋고 스타일도 좋은데, 옷을 너무 못 입었다. 내가 어울릴 만한 걸로 몇개 골라줄께." 케리는 외모에 대한 칭찬을 듣고 기뻐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고민했다. 잠시후 주인 아주머니가 골라준 것은 옷 몇개가 아니라 아예 옷 한 보따리 였다는게 문제였는데, 어쩔줄 모르는 케리를 제끼고 라크리마가 나서서는 "주인님. 제가 갈아입혀 드릴께요. 어울리는거 찾아봐요." 라면서 옷 뭉치를 들고 케리를 탈의실로 끌고갔다. "어머. 이쪽 도련님도 옷을 잘 못입었다아. 어머 이쪽 엘프 도련님도 말야. 아줌마가 골라줄까 응응?" "아 저저저..." 인간족 아줌마의 상술 공격에 어쩔줄 몰라하는 엘프족과 드래곤족 애 둘을 내팽겨 쳐두고 말이다. 하이힐, 까만 스타킹, 빨간색 초미니 스커트,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같은색 상의. "...하이힐이라니 이건 너무 불편하잖아...게다가 여기저기 다 보여서 부끄럽단 말야." "뭐 어때요. 몸매도 좋으시면서 핏." 하늘색 펄렁펄렁하게 긴 롱 원피스, 아이보리색 챙 넓은 모자, 하늘하늘 한 분홍색 스카프. "...저기 이건 좀 너무 소녀틱하고 움직이기도..." "음 좀 편한 걸로 고를 까요." 전신 타이츠에 ... "...너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하는 거 아냐?" "...예?" "...아니 지금 뭐하는 건데...?" "...아 죄송해요 옷 갈아 입히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그만..." 케리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라크리마가 너무 즐겁게 기뻐하면서 옷을 갈아입히고 있어서 뭐라고 말릴 방법이 없었다. 본래 인형같은 물건을 갈아입히면서 노는 것은 여자애들이 아주 좋아하는 놀이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어린 시절 험하게 자라서 그런 경험은 없었다. 그 때문에 처음 그런 즐거움을 접한 라크리마는 일종의 폭주상태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결국 케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수십벌을 갈아입은 뒤에야 겨우 해방될수 있었다. 결국 타협결과 나온 물건은 허벅지 중간 까지 내려오는 회색 선이 들어간 하얀 심플 원피스. 케리는 허전할 뿐더러 차마 치마는 입을수 없다고 싫어했지만, 치마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라고 라크리마는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화사한 아이보리색에 프릴이 들어간 파자마. 이건 억지로라도 입혀볼 기색이었다. 그 밖에는 평상용으로 블라우스와 셔츠 두어벌 정도와 바지 두어벌. 사이즈에 맞는 브래지어와 여성용 팬티(이상하게 화려한 것으로 사려는 것을 억지로 말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꽃무늬가 들어간 얇은 베이지색 가디건 하나와 체크 무늬가 들어간 귀여운 베레모. 그외 스카프... 자신을 어떻게든 귀엽게 개조하려는 라크리마와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려는 케리의 사투 1차전은 겨우 끝이 났다. 1차전은(...) 밖으로 나와 가게 아줌마와 상술에 저항을 벌이다가 결국 몇번인가 패배하고 옷가지를 들고 있는 에밀과 라크레일을 데리고 나와 라크리마는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뒤. "꺅 주인님. 저건 뭐하는 데예요?" 라크리마가 가르킨 곳은 화장품 가게. 이곳에 끌려들어간 케리는 얼굴을 장난감으로 내주고 온갖 화장품 샘플로 떡칠을 해본 뒤에야 겨우 풀려날수 있었다. 다음에 끌려간 곳은 악세사리 가게. 반지, 팔찌, 귀걸이, 머리핀 등등 온갖 것으로 치장을 당한 다음에 가까스로 풀려났다. 그 다음에는 제과점... 그 다음에는... 또 그 다음에는... 겨우겨우 숙소를 찾는데 성공한 것은 저녁식사 시간도 넘어서 가게들이 문을 슬슬 닫을 무렵이었다. "오늘은 재미있었다아~♡" 라크미라는 한 가방 가득 사버린 쇼핑물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면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여관방은 4인실로 하나 잡았다. 케리로서는 라크리마는 겨우 교육에 성공했지만 라크레일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기 때문에 한방에 놔두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라크미라는 쇼핑 처음 해보는 거냐?" "아. 이게 쇼핑이라는 거군요. 정말 즐거웠어요 주인님...정말 고마워요. 다음에도 또 놀러가요." "...아 그래...." 본래 남자고 정신 상태도 남자인 케리는 아직 쇼핑의 즐거움 같은걸 이해할 단계는 오지 않은 상태였다. 언제나 활달한 에밀도 이번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상태였고, 라크레일도 뭔가 다른 생각을 할만한 기운이 없었다. "...누나가 인간 암컷이 아닌데다가 이런데 살지 않은게 다행이야." 라크레일은 조금도 안심할 일이 아님에도 안심을 했다. 한편 그날밤. "주인님. 이 속옷 한번 입어보세요." "야야 쟤들이 보잖아...!" "뭐 어때요. 같은 남잔데." "하지만 그건 여자 속옷이잖아!" "지금은 여잔데 뭐 어때요!" 케리는 밤이 늦도록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2화 -이상향의 잿더미 위에서...- 누구라도 곤히 잠들어 있을 이른 새벽. 케리의 침대에 접근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라크레일 이었다. 불빛하나 없는 방이고, 다른 집도 모두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 방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적외선 시력을 가진 라크레일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뚜렸하게 보이고 있었다. "날 원망하지마." 라크레일은 오른손을 치켜올렸다. 소닉 블레이드의 준비자세였다. 라크레일은 분명히 케리에 대한 살의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제 손을 한번만 내려치면 자신의 누나를 빼앗아간 이 밉살맞은 인간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없애버릴수 있을 것이다. "하암..." 그러나 세상 모르고 자고 있던 케리의 얼굴에 갑자기 라크리마의 얼굴이 겹쳐지는 것 처럼 보였다. 어제 쇼핑하면서 본 신나게 웃고 즐기는 라크리마의 얼굴과 케리가 여자가 되었을때 슬퍼하는 얼굴이 번갈아 가면서 눈앞에 어른거렸다. 라크레일은 결국 한숨을 쉬면서 손을 내려놓았다. 아무리 이 녀석이 밉다지만, 그리고 누나의 장래를 위해서 좋을 것이 없다지만... 라크레일은 자신의 누나가 그렇게 까지 슬퍼하는 일이라면 도저히 할수가 없었다. 케리에게 저주를 건 것도 라크리마가 케리를 싫어하게 해서 카리온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었지...라크리마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왕 뽑은 칼(?)을 그냥 다시 집어넣는 것도 망설여지던 차에... "흠냐 흠냐..." 케리가 뒤척거리자 일어나는 줄 알고 라크레일은 잠시 흠칫 거리면서 물러섯다. "..휴..." 하지만 실눈도 뜨지 않고 얌전히 잠들어 있자 다시 안심을 하기는 했는데... 잠옷 자락이 벌어져 케리의 커다란 가슴이 훤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온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 아앗...으..으.." 차라리 적외선 시력이 없으면 안 보이니까 상관없겠지만, 뻔히 보이는 것이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저건 인간 암컷의 젓통일 뿐이야.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건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라크레일은 호기심에 푹 젖어서 살금살금 손을 내밀고 있었다. 살짝 말랑.. 살짝 살짝 말랑 말랑.. 콱! 물컹! 살금 살금 만져보던 라크레일은 그 감촉이 너무 부드러워서 얼떨결에 손으로 콱 잡아보았다. '...너무 부드럽다...너무 따듯하고 보송보송해...정말 기분좋다...' "으으음..." 잠결에 케리는 얼굴이 상기되면서 달콤한 신음 소리를 냈다. '이렇게 해주면 기분 좋아하는 건가?' 라크레일은 좀 더 가슴을 주물럭 주물럭 거렸다. 케리의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유방 끝에 붙어있는 작은 앵두도 만지작 거려봤다. 조금씩 케리가 달아오르는 것이 라크레일에게도 너무 흥분되었다. "응?" 이상한 느낌을 받은 케리가 살짝 눈을 떳다. '헉!' 라크레일은 화들짝 놀라서 다시 자기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봤을까? 봤을까? 아냐 못봤을꺼야. 인간은 적외선 시력이 없으니까...' 케리는 몽롱한 가운데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이불을 덮고 잠에 빠져들었다. '뭐가 있었던것 같은데... 꿈인가...' 다행히 케리는 아무 눈치도 못챈것 같지만, 라크레일은 다음날 아침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아하아아아아아암" 다음날 아침, 라크리마는 제일 일찍 일어나(밤을 꼬박 새버린 라크레일을 제외하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아침해를 바라보며 크게 하품을 했다. "크음...흠......휴우..." 케리는 아침이 되자 허전한 아랫도리가 더욱 절감이 되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밤을 새버린 라크레일은 궹한 눈으로 아침 식사만 마치고 다시 잠들어버리기로 결심했고, 에밀은 잠옷 차림의 케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았다. 아침식사는 여관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잘 잤니. 라크리마." 스프를 떠먹으면서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말을 걸었다. 케리의 옆자리에는 에밀이 앉아서 달갈프라이를 뒤적이고 있었다. "예. 주인님." "라크리마는 이 도시가 마음에 드나 보구나. 이렇게 큰 도시에 와본적은 없는거야?" "예 처음 이예요." "이런데서 사는건 어때?" 케리는 순수하게 궁금한 마음으로 라크리마에게 물어보았다. 드래곤은 인간의 도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솔찍히 새로운 것을 많이 발견해서 재미있기는 하지만... 역시 전 레어에서 사는게 좋아요." "음... 어째서?' "어째서냐면..." 라크리마는 빵조각을 작게 뜯으면서 대답을 시작했다. 라크리마는 빵을 잘게 뜯은 다음 하나 하나씩 먹는 버릇이 있었다. "...여기는 너무 복잡해요." "음... 역시 그럴까? 드래곤은 혼자 산다고 하니까..." "드래곤은 혼자서도 모든걸 다 해결할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보통 혼자 살아요. 혼자서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사실 같이 사는게 더 어렵죠. 몸 크기에 맞는 레어 구하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근처에 먹을 것도 드래곤 두마리가 먹어대기만 해도 버텨낼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 적으니까요. 인간계에서는 쓸만한 장소를 구하기 어려워요..." "외롭거나 쓸쓸하지는 않아?" 드래곤도 외로움을 타는걸까? 케리는 궁금함이 생겼다. "물론. 가끔씩은 외롭기도 하지요. 그럴 떄면 다른 레어에 놀러가요. 드래곤 두 명이 모여서 놀면 아주 큰일이지요. 헤헤헤." 케리는 드래곤 두마리가 땅바닥에서 엎치락 뒤치락 거리면서 놀이를 하는 것이 떠올라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야야 수프에 얼굴을 파묻으면 어떡해..." 라크리마는 냅킨을 꺼내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있는 라크레일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라크리마가 좀 더 도시에 머물고 싶어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에 케리는 하루이틀 더 있다가 가기로 생각했다. 라크레일은 피곤하다면서 여관방에 돌아가버렸기 때문에, 그에게 짐을 지키라고 하고 에밀과 케리, 라크리마만 구경을 나서기로 했다.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반 억지로 부탁해서 어제 산 하얀 원피스를 입혀보았다. "끄응..." 설마 치마를 입게 되다니... 케리는 무척 창피했지만 라크리마와 에밀이 꺅꺅 거리면서 너무 기뻐하니 일단 따라주기로 했다.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신고 또 어제 산 모자를 쓰고 가디건 까지 입고 나니 케리는 나름대로 귀여운 아가씨가 되어버렸다. "화장...도 해드릴까요..." 케리는 화장품들을 들고 두근두근 거리는 라크리마를 보고 차마 거부할수가 없어서 오늘은 저항을 포기하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얇게 해줘." 어제의 경험을 살려(?) 케리는 라크리마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쇼핑가 쪽으로는 보내지 않기로 다짐하고(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이유도 있었다.), 라크리마에게 오늘은 좀 더 한산한 곳으로 가자고 했다. 이 도시의 관광 지도를 뒤져본 결과 성 안에 큰 기념공원이 하나 있다고 나와있어서 그곳으로 갔다. 공원은 이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를 만든 200년 전의 영주, 자크의 동상이 서있는 그의 기념공원이었다. 아직도 자크의 후손들은 이 도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자크라는 사람은..." 케리는 동상 밑의 비석에 써있는 자크의 업적에 관한 비문을 읽어보았다. "원래는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함께 살수있는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었다는군..." "헤에... 어떻게 그런게 가능할 꺼라는 생각을 다했을까?" "맞아 맞아. 난 고블린이나 오크와도 평화롭게 사는 도시 따위 상상도 하기 싫어..." 라크리마와 에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잘 나갔던것 같아. 근처의 드워프들과는 우호 관계를 수립하여 희귀금속을 싼 값에 얻게 되었고, 오크들에게는 근처의 황무지를 농토로 주고 농업을 할수있도록 농업 지도관을 파견해주고, 대신에 자신의 군대로 편입시켰다는 군. 엘프들에게는 숲을 주는 대신에 동맹을 맺게 되었고, ...그외에 다른 몬스터들도 적재 적소에 배치시켰다는군." "어라. 잘 나가네." 에밀은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싼 값에 물자를 얻어서 다른 지방에 파는 방법으로 막대한 이윤을 얻어 자크 상회를 설립하고, 자크 공국을 세워서 이 일대를 다스려다는군." "그런데 왜 망했데?" 라크리마는 이미 결과를 익히 짐작하여 알고 있는듯 했지만, 에밀은 아주 궁금한것 같았다. 상식적으로는 이 정도쯤 되었으면 모두 납득할만한 결과가 인간의 중재로 이루어진 셈이고, 이대로만 되면 평화로운 다종족 국가의 건설도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크의 동상은 위대한 업적을 세워서 자랑스럽게 서있는 입상이 아니라 고뇌하는 듯이 앉아있는 좌상이었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있는 불에 타 시꺼멓게 그을리고 둘로 쪼개져서 넘어져있는 커다란 비석 [모든 유사인간 종족들의 나라, 자크 공국]이라는 문구가 세워진 돌비석도... 자크공국의 처참한 종말을 말해주고 있었다. "맨 처음 문제는... 10년 째 한해 흉년이 들었던 거야. 그렇게 대흉작도 아니었고 곡식을 저장해두고 사는 인간에게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아직 농사에 서툴고 곡식을 저장할 생각도 못하고 매년 다 먹어치우고 남아 썩은건 버리던 오크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었지. 오크들은 굶주림을 이기다 못해 마을에 나와있던 인간의 관리를 습격해서 먹어버린 일도 있었던것 같아. 결국 그해에는 자크 상회에서 많은 곡식을 빌려줘서 해결에 성공했지만..." 그 뒤의 내용은 점점 절망적인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오크들은 빚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것 같아. 올해 빌린 곡식을 내년에 갚아야 한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거지. 그들은 인간이 자신들에게 순수한 우정으로 '도움'을 줬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래서 다음해에 이전년에 빌린 만큼 곡식을 가져가는 관리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들이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해서 반란을 일으켰어. 그때는 주모자 격은 오크 몇명을 잡아다가 처형해서 무마하기는 했지만..." "저런 쯧쯧..." 에밀이 혀를 차는 것은 오크들의 죽음 때문일까 아니면 이 실패한 실험에 대한 동정일까... "인간과 오크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갔고, 결국 오크들은 다른 몬스터 종족들 까지 규합해서 대폭동을 일으켰어. 산에서 일하던 고블린들은 드워프의 광산을 습격했고, 성에서 일하던 코볼트들은 무기를 꺼내서 오크들에게 나눠주고 성문을 열었다는군. 저번처럼 간단히 막을수 없게 되버린 이 폭동 사건은 결국 대학살로 이어졌고, 살아남은 몬스터들은 쇠사슬에 묶이고 재갈이 물려져서 노예의 신분으로 부려지게 되었지. 하지만 이 대폭동때 엘프들이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던 사실이 문제가 되었어. 엘프들은 자신들과 인간족의 계약은 인간족인 다른 적을 치는 것이고, 오크와 싸울 의무는 없다면서 폭동 진압에 동원되기를 꺼렸었거든. 자기들 숲에 들어온 오크는 그 전까지도 무조껀 쏴죽였으면서 말야." "그야 당연한거 아냐? 애당초 문제를 일으킨 것은 인간인데 왜 엘프가 나서서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하지?" 역시 엘프인 만큼 엘프의 의견에 동조하는 에밀이었다. "결국 그것이 엘프들과 인간들 사이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게 되었고, 급기야는 교류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어. 엘프들은 예전처럼 숲을 인간에게 완전히 폐쇄했어. 숲사이을 통하여 흐른 강을 따라서 바다로 내려가는 수상로를 독점적인 교역로로 사용하던 자크 상회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 그리고 드워프들도 마지막에는 등을 돌리고 떠났지." "드워프들은 왜?" "다른 나라에서 캐낸 금속이나 귀금속, 세공품등을 더 비싸게 사주겠다고 했거든. 하지만 재정이 어려워진 자크는 드워프들에게 더 많은 돈을 줄수가 없었어. 결국 드워프들 마저 떠나고, 자크 공국은 산산히 공중분해 되버렸지... 유민들 투성이의 엉망진창 국가가 되어버린 거야. 결국 자크가 어린 시절 부터 함께 거느리고 있던 사랑하는 시녀가 유민들의 폭동에 휘말려 죽음을 맞고, 그떄 이 비석 [모든 유사인간 종족들의 나라, 자크 공국]도 불태워지고 둘로 쪼개졌어. 그 뒤로 자크는 다른 종족은 커녕 인간조차도 전혀 믿을수 없게 되어 이 도시를 폭력과 무력으로 짓밟아서 지배했지. 하지만 그 덕분에 겨우 도시는 질서를 되찾았고 그럭저럭 안정궤도에 들어섯지만, 자크는 말년에 붕괴된 이상향의 꿈 때문에 미쳐서 세상을 떠났다는군. 그를 불쌍하게 여겨서 시민들이 이 기념 공원을 만들게 된거다... 라고 되어있어." 본래 자크 상회의 터였다고 하는 이 곳에는 자크 공국이라고 하는 이상향이 타고남은 재가 여기저기에 전시되어 있었다. 인간, 엘프, 오크, 드워프, 그리고 다른 몇명 종류의 종족이 어깨 동무를 하고 있는 거대한 석조 부조에서 오크는 완전히 파해쳐지고 꺠져 있었고, 드워프와 엘프의 얼굴은 박살이 나 있었다. 엘프들이 선물했다고 하는 커다란 자크의 목상은 반쯤 탄 나무 토막만 남아 있었으며, 그외에도 여러차례의 폭동과 대립을 거치면서 파괴된 기념물들이 여러개 전시되어 있었다. 멀쩡한 것은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자크의 동상 뿐이었다. 케리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라크리마가 입을 열었다. "실패한게 당연한 거예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기념물들... 한눈에 봐도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예요. 모든 [유사인간종족] 이라는 말을 썻잖아요.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라는 의미죠. 자크가 한 일도 인간을 중심으로 다른 종족을 이어놓는 것이었구요. 다른 종족간의 대립 관계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니... 인간들 스스로도 다른 종족들이 만들어줄 부에만 관심이 있었고, 다른 종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 가는 아무 관심도 없었던 거예요. 이상향... 역시 인간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구요. 이런게 이상향 이라면 제 레어도 이상향 일까요?" 그러고보니 라크리마의 레어에는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꺼리낌 없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할수 있었잖아? 서로 다른 종족들이 같이 살게 하는 것을..." "그래서 행복한건 저 뿐이죠. 가끔씩 곶감 빼먹듯이 먹어버리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일도 시킬수 있고... 그들은 제 힘이 두려워서 저의 공포에 짓눌려 있는 노예들일 뿐이예요. 제 레어에서 자유로운 것은 주인님 혼자뿐이었어요." '...사실 나도 네가 무서웠던건 사실인데...' "하지만 [모든 종족의 이상향]을 건설하려 한다면... 저런건 이상향이 될수 없겠죠? 모두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란... 저런게 아닐 테니까요." 몇백년 전의 이상향이 불타고 남은 잿더미. 그 위에 서로 다른 두 종족의 남녀가 서 있었다. '나는 라크리마와 행복하게 지낼수 있을까?' 케리는 자신있게 장담할수가 없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3화 -케리의 가장 부끄러운 하루- "...허억...허억..." 케리는 골목길의 어둠속에 숨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꼬인거야..." 그날 저녁. 케리는 오랜만에 잠시 혼자있고 싶어져서 라크리마에게는 따라오지 말라고 당부한뒤, 거리로 나섯다. 별다른 목적 의식 없이 산책을 하던 케리였다. 거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문제는 케리가 라크리마와 같이 다니는데 익숙해져 있어서 위험한 지역을 잘 눈치채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이 지나가기만 해도 늑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쳐다볼 정도로 미소녀가 되어버렸다는 것, 자신의 수행성과를 과신하고 있었다는 것... 등이었다. 멍하니 걷고 있던 케리는 어느새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의 우범 지역으로 들어서버렸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노리면서 슬금 슬금 다가오는 무리들을 눈치채게 되었다. 거기서 그냥 조용히 도망치면 될 것을... '한번 혼내줘볼까...' 케리는 자신이 그 동안 한 수련을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었다. 상대는 많아야 서너명, 라크리마라면 문제없이 박살낼 것이다. "소닉 블레이드...!" 쉬이이이익! 케리의 소닉 블레이드도 그 간의 수행을 통해서 작은 주머니 칼 정도의 파괴력은 지니고 있었다. 별로 대단한게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정도로도 상대가 갑옷을 입지 않고 있다면 죽이는것도 문제는 없다. 물론 케리가 노린 것은 급소인 가슴 부근이 아니라 다리 부근. 일단 소닉 블레이드로 위협을 하려고 한 것인데... 파샥! 케리의 소닉 블레이드는 완전히 빗나가서 그냥 길바닥에 흠을 냈을 뿐이었다. "뭐야? 저것도 마법이냐?" "마법사 나부랭이라고 좀 하는 것 같은데... 우리랑도 놀아볼래?" "또 쏴보시지 푸하하." 슬금슬금 몰려나온 무리는... 케리가 남자였을 때도 맨손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될 정도의 떡대를 지닌 깡패들이었다. 게다가 숫자도 케리의 예상치보다 두배는 더 많은 여덟명... 이래가지고서야 소닉 블레이드로 한 두명을 쓰러뜨릴수 있다고 해도 상대가 될리가 없다. '...이 이건 반칙이야...!' "꺄아아아아아아!" 후다닥 상황판단을 빨리 해서 케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쫓아!" 우르르르르르르르.... 그래서 때 아닌 추격전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갔나...?" 아무대로나 마구 달리다 보니 케리는 이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만, 겨우 어떻게 따돌리는 것은 성공한것 같았다. "라크리마와 같이 다니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방심했어... 아아 난 왜 이 모양이지..." 잠시 자괴감에 휩쌓여 있던 케리는 골목에서 빠져나와서 그럭저럭 사람들이 많은 거리로 나가려 했다. 덥석! "꺄아아악!" 뒷쪽에서 누군가가 케리의 허리를 덮석 안아서 들어올렸다. 아뿔사. 따돌린 것도 아니었다. 케리가 안심하던 사이 이미 그 깡패들은 주위에 슬금슬금 몰려 있었던 것이다. 케리는 도망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몰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헤헤헤... 아가씨 허리가 꽤 가는데 그래..." "소닉 블레이드!!!" 촤아악! 이렇게 붙어있으면 빗나갈 리도 없다. 케리의 소닉 블레이드가 그녀(지금은)를 안아올린 깡패의 어깨죽지를 찟어놓았다. "으악! 마.. 마법이다!" 뜨거운 피가 촥 튀면서 어깨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이 오자 깡패는 케리를 내팽겨 쳤다. "으앗!" 케리는 공중에서 중심을 잡아 낙법을 하려 했지만, 이미 발이 땅에 닿아있었다. 으직... '바... 발목이...' 발목을 삔 고통에 잠시 정신이 쏠린 사이 다른 깡패들이 케리의 사방에서 덮쳐들어 꼼작달삭도 못하게 붙들었다. "그..그만해! 도와...으윽!" 누군가가 헝겁조각으로 케리에게 재갈을 물렸다. 깡패들은 케리를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 골목을 돌아서 끌고 갔다. 이미 팔목과 발목을 끈으로 묶여서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라크리마에게 배운대로라면 오래 연습하면 손가락만 가지고도 소닉 블레이드를 사용할수 있다고 했지만, 지금의 케리로서는 그런 경지에 오르지 않았으니 풀려날 방법도 없었다. "쳇 건방진 년..." "오늘 밤은 신나게 놀게 해주지." "마법 좀 쓸줄 안다고 잘난척 하기는..." 그들은 위험해서 밤에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오지도 않는 골목까지 케리를 끌고가서 그녀를 골목길에 내팽겨 쳤다. "아윽!" 재갈 사이로 비명을 지른 뒤, 케리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팔 다리가 묶여있어서 반쯤 구르듯이 기어가는 것 밖에 할수 없었다. "하하하. 꼭 애벌레 같군!" 그런 식으로 그들에게 도망칠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놀림감이 될 뿐... '살려줘... 누가... 라크리마! 라크리마!' "으으읍... " 찌이이익 어깨에 피로 물든 붕대를 감고 있는 녀석이 앞으로 나와 케리의 블라우스를 찟어버렸다. 브레지어에 감쌓인 가슴이 나타났다. "헤헤헤... 네 년 때문에 아팟다고.. 그 댓가로 나를 즐겁게 해줘야겠어..." 아까전에 케리가 소닉 블레이드를 날려서 공격당한 녀석이었다. 그는 케리위에 올라타서 케리를 깔아뭉개고 혀로 얼굴을 핥아 댓다. 지독한 입냄새가 케리의 코를 팍 찔렀다. '뭐...뭐하는 거야? 지금 나 강간 당하는 거야? 나.. 난 남잔데.. 이렇게 당하는 거야? 말도안돼! 싫어! 죽고싶어!' "우으으윽.. 으으윽..." 케리의 질끈 감은 눈에서 눈물이 철철 흘러넘쳤다. 깡패는 케리의 브레지어를 억지로 뜯어냈다. 탄력있고 커다란 가슴이 출렁 거리면서 드러났다. "오오... 꽤 좋은데 이거..." "흐윽...흐으으으윽...흐윽..." 가슴을 주물럭 거리는 거친 손의 느낌이 전해지자 케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수 없었다. 그저 죽고 싶었다. "야 넌 뭐야?" "거기 누구야?" 그때 갑자기 깡패가 손을 떼었다. 케리가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눈을 떠보자 ... '라크레일?!' 틀림없이 라크레일 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깡패들 저쪽에 서서 케리가 당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해주러 온걸까? 아니면...' 그러다가 고개를 휙 돌리고 다른 쪽으로 가버리는 라크레일. '...역시.. 저 녀석은 날 싫어했지...' 케리는 절망에 휩쌓였다. "...쳇 시시한 놈이군..." "계속 있으면 이쪽에 끼워줄까도 했는데..." "자 그럼 계속 해볼까 아가씨이..." 다시 가슴을 어루만지려는 깡패, 케리는 마지막 반항으로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노려보면 어쩌겠다는 거..." 사아아아아아아아악 촤아악!!! 그 순간 들려온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케리위에 올라타고 있던 자의 상반신이 두동강이 나버렸다. "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른채 그는 죽음을 맞았다. "뭐 뭐야 이놈 무슨 짓이야?!" "나도 그 여자가 맘에 안 들어서 그대로 지나가려 했는데... 안 되겠다. 누나가 여자한테는 친절하게 대하라고 했거든." 사아아아아악 촤악 촤악 촤악... "으아아악!" 케리가 핏물을 뒤집어 쓰고 눈을 못뜨고 있는 잠깐 사이 이미 상황은 정리되어 있었다. 라크레일은 케리 위에 얹혀있던 시체를 치워버리고 케리를 일으켜세웠다. "...남자 주제에 강간 당할뻔 하다니...최악이야. 착각하지마. 널 여자로 알고 안으려는 남자들이 불쌍해서 해치워버린 거야."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면서 라크레일은 투덜투덜 거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앙!" 케리는 아무말도 못하고 라크레일의 가슴에 안겨서 울음을 터트렸다. "왜 ... 왜이래 기집애 처럼 ... 옷에 피묻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라크레일은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케리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됐어 됐어.. 그래 그만울어. 여기 정리해야지." "히이이잉..." '진짜 여자같군... 혹시 저주로 인한 성격 변환이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건가? 아니면 변해버린 육체에 정신이 적응하고 있는건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원래 이런 성격...?' 라크레일은 케리를 달래면서 이 무참한 참살 현장의 흔적을 하나하나 초고열의 화염마법을 써서 없애버렸다. 얼마뒤 골목길에는 깡패들이 죽었다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젠 다 됐지... 아?" 아직도 케리는 머리카락과 몸에 피를 잔뜩 묻히고 훌쩍거리고 있었다. "그 꼴을 보면 무슨 일이 났다는건 누구라도 다 알겠군... 닦아줄께." 라크레일은 수건을 하나 꺼내서 수계마법으로 물을 적셧다. 그렇게 물수건을 만들어서 케리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닦아주었다. '이 녀석 정말 귀엽잖아... 난 대체 왜 이런 마법을 걸어가지고...' 어두워서 케리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라크레일의 얼굴이 새빨개진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얼굴을 다 닦고 나서 몸 쪽을 닦으려 하자 케리가 몸을 움츠리면서 저항을 했다. "...왜 그래 닦을수가 없잖아?" "...차.... 창피해... 부끄럽다고..." "넌 대체 남자면서 왜 그러는 거야? 같은 남자로서 정말 실망스럽다!" "하지만... 지금은 네가 저주를 걸어서 여자가 되버린 거잖아...! 정말 부끄러운걸 어떡하라고.. 게다가.. 방금전에 그런 일 까지 당해서..." 케리는 다시 눈물을 글썽 글썽 거렸다. "...아 알았어... 미안해... 그럼 직접 ... 닦아. 뒤돌아 보고 있을께." "응..." 케리는 물수건을 받아들고 직접 자기 몸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라크레일은 그 동안 뒤돌아 서있었다. 그리고 십여분쯤 지나서... "...저기..." "왜?" "고마워..." 케리는 뒤돌아 서서 뒷짐을 지고 있는 라크레일의 손에 물수건을 쥐어주었다. "다 됐으면 가자... 으악!" 라크레일은 뒤돌아 서다가 화들짝 놀라서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왜 그래?" "우... 웃옷 입어 웃옷...!" 라크레일은 손바닥 사이로 힐끔 힐끔 케리를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아... 저기 쯤 팽개쳐져 있었는데..." '이런 실수로 모르고 같이 태워버렸다.' 케리의 웃옷이 있던 떨어져 있던 자리에는 시꺼먼 잿더미 만이 약간 남아있었다. "할수없지." 라크레일은 자신의 자켓을 벗어서 케리에게 입혀주었다. "내 레어에 기어들어왔던 와이번 가죽으로 만든거야. 비싼 거니까 더럽히면 안돼." "응..." 라크레일은 케리보다 몸집이 작아서 가죽자켓은 케리의 몸에 딱 달라붙어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돌아가자." 라크레일은 억지로 케리의 몸매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 케리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일부러 인적이 적은 길을 골라다니며 왓기 때문에 숙소에 다시 도착한 것은 식사시간을 한참 넘겨서 였다. "아앗!!! 케리님!" 케리가 저녁 식사 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서 여관 앞에 나와있던 라크리마는 라크레일과 함께 오는 케리의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분노에 찬 소리를 내질럿다. "아 저기 라크리마 이건..." "이노무 새끼!!!" 퍼억! 케리가 어떻게 설명해보려고 하기도 전에 라크리마의 날아차기가 라크레일의 면상을 가격했다. "나는 따라오지 말라고 해서 케리님을 몰래 미행하면서 지켜드리라고 시켰더니 저게 무슨 꼴이야!!! 이 자식아! 지켜드리랬더니 먹어드리냐(?)!! 너 우리 케리님한테 무슨 짓을 한거야!!!" "으악!!! 으악... 누.. 누나 그게 아냐.. 으아아악!!! 누나 살려... 으악!!!" "아냐 라크리마 그게..." 라크레일을 깔고 앉아서 두들겨 패는 라크리마는 이미 눈이 완전히 뒤집혀 있어서 케리의 변명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4화 -목욕탕에서...- 라크레일은 다행히도 누나에게 맞아죽기 직전에 케리가 라크리마를 말린 덕분에 목숨만은 건지게 되었다. "예.. 알겠어요. 케리님. 라크레일 녀석도 잘한건 없지만... 케리님을 위험에 처하게 해놓고 구하는게 그렇게나 늦다니.." "응 그래. 라크레일에게는 잘못이 없으니까 이제 그만 참아줘." "......하지만 이 도시의 인간들은 용서할수 없군요. 감히 케리님을 위험에 빠뜨리다니.." "...잠깐 그 말뜻은..." 케리는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를 궤멸위험에서 구해내기 위해 또 다시 필사적으로 라크리마를 말려야 했다. 도시를 궤멸시키는 악룡이 되려는 라크리마를 케리는 '나쁜 놈들은 라크레일이 모두 죽여버렸으니까 됐어'라는 말로 겨우겨우 무마시켰다. 하지만 그 다음에 케리는 자기 없이 나다니니까 이런 험한 일을 겪지 않느냐는 라크리마의 눈물 어린 호소를 한참동안 또 받아내야 했다. 한동안 울고 불고 난리를 부리던 라크리마는 왕창 쏟아내고 나니까 기운이 좀 빠지는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고, 라크레일은 아픈 몸을 추스리며 케리도 마음을 추스리고 잠에 빠졌다. 하지만 그날 새벽. "목욕하러 갑시다. 케리님" 새벽같이 케리를 흔들어 깨우는 라크리마는 뚱한 표정으로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뭐...? 지금...?" "예. 아무리 생각해도 케리님의 더럽혀진 몸을 씻어드리지 않고는 아침까지 편히 있을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 여관에는 욕실이 없는데..." "여기서 한 블럭만 더 가면 목욕탕이 있어요. 지금 막 문을 열었습니다." 뚱 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크리마를 보자 케리는 이것만은 거절할수가 없었다. "그래 알았어..." 케리가 고개를 끄떡 끄떡 거리자 라크리마는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만세를 불렀다. '혹시 단순히 목욕탕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결국 라크리마의 요청을 받아들인 케리는 새벽같이 한 블럭 정도 떨어진 목욕탕으로 가게 되었다. 생긴지 얼마 안된듯, 아직 건물이나 시설은 새것 같은 목욕탕이었다. 그런데 케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목욕탕은 당연히 남,녀 탕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는데...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난감해져 버린 것이다. '난 분명히 남잔데 일단은... 하지만 지금은 여자고... 여탕에 들어가는 것은 기쁘... 다기 보다는 부끄럽지. 으으으 이걸 어쩐다...' 둘로 갈라진 복도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케리를 라크리마는 태연하게 여탕 쪽으로 이끌고 갔다. "...저기 라크리마 난..." "케리님은 이쪽에서 하셔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짐승같은 욕정에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케리님의 순결한 몸을 노리는 늑대와 마귀들로 가득한 저 지옥탕에다가 케리님을 혼자 가시게 내버려 둘수 있을까요? 그리고 케리님의 몸에 붙은 그 늑대들의 털 한올이라도 이 제가 씻어드리지 않으면 편히 잘수가 없습니다." "아 그래..." 결국 케리는 남자의 영원한 환상, 남자들의 꿈이라 할수있는 여탕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만... "아무도 없네요." "...다행이다..." 여자들이 가득차 있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한 탈의실에는 다행이도 여자는 커녕 꼬맹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이 시간대는 사람이 없군요. 잘 됐습니다. 깨끗하게 씻겨 드릴께요. 케리니임~" "웃...!"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케리에게 찰싹 달라붙어 한올 한올 옷을 벗겨 내려가는 라크리마. '노리고 있었어! 얘는 그냥 단순히 나를 씻어보고 싶었을 뿐이야! 이 녀석이 한나절씩이나 일관된 기분상태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지!' "우흐흐흐흐흐..." 싱글싱글 거리는 라크리마의 표정은 케리를 습격했던 남자들 만큼이나 욕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벅벅벅벅벅벅! "아파! 아프다고 라크리마!" "여행을 오래해서 때가 많이 나오는걸 어떡해요. 아무리 미인이라고 해도 지저분하면 예쁘지 않다구요." 촤아아악! "휴우..." 한동안 라크리마에게 시달림 당한뒤 케리는 따듯한 온탕에 몸을 담궜다. 라크리마는 사우나를 발견하자 호기심을 느끼고 안에 들어가 있었다. "정말... 어떤때 보면 어린애 같다니까... 변덕이 심해 라크리마는..." 그렇게 중얼거린 때, 갑자기 찬바람이 한번 휘이잉 하고 불어왔다. 누군가가 탕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어... 어떡하지...!' 케리는 부끄러워서 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돌아앉아 버렸다. 슥윽스윽스윽스윽... 촤악...촤악... 누군가가 몸을 닦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케리는 너무 두근두근 거려서 어쩔줄을 몰랐다. '잠깐... 아줌마나 할머니일수도 있잖아... 뭐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되는건 아니지만... 일단 상대를 확인하고...' 케리는 결국 호기심을 못이기고 살짝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있는 것은... 여자였다. 아 이건 당연하고... 정말 불행히도 20대 중반의 아가씨였다. 게다가 미녀에다가 김사이로 보이는 것으로는 몸매도 상당히 좋아보였다. '...괜히 돌아봤다...' 케리는 후회막급이었다. 그냥 돌아보지도 말고 탕에서 빠져나갈 것을 잘못 생각했다는 느낌이었다. 얼마뒤... 그 여자는 몸을 다 씻은 다음 탕속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케리가 있는 온탕에... '...최악이다...' 뒤돌아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물소리로 봐서는 케리에게 아주 가까운 곳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뭐하세요? 그렇게 돌아앉아서..." '...말까지 걸고있어!' 다른 사람이 말을 거는데 돌아앉아 있는 것은 아주 무례한 행동이다. 케리는 나름대로 예의바른 편이었고, 결국 부끄러움을 참고 뒤로 돌았다. "에...저..." '미...미인이다...!' 라크리마나 케리와는 또 다른 타입의 미녀였다. 달걀형 얼굴에 가느다란 눈썹, 짙은 청색 눈동자, 성숙한 몸매와 길고 웨이브진 머리결... 말투나 몸놀림에서 상당한 청순함과 기품이 느껴졌다. "이런 새벽에 목욕이라니... 특이하시군요..." "예. 저는... 시골에서 올라와서... 이런데는 부끄러워서... 목욕은 해야 하고..." 케리는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막막했다. "전 매일 이 시간에 목욕 하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집의 목욕탕이 고장 나버려서요." "예. 그러시군요..."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케리와 한담을 나누던 아가씨는 먼저 탕에서 나갔다. "흐아..." 아가씨가 사라지자 케리는 겨우 온탕에서 나와 몸을 식힐수 있었다. "와. 정말 개운하다. 내 레어에도 이런걸 달아볼까." 그제서야 사우나에서 나오는 라크리마. 드래곤답게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터프한 면이 있다. "어머 주인님. 기다리고 계셧어요?" "아 응..." "잠깐 냉탕에 갔다가 나갈까요? 아 이게 뭐지...?" 라크리마는 바닥에서 뭔가를 주워올렸다. "반지...? 그렇게 비싸보이는 건 아닌데..." 은으로 된 링에 작은 수정이 박혀있는 반지였다. 라크리마 기준에서는 별로 비싸 보이지도 않는 것이 당연한듯 했지만... 그것을 보자 케리는 순간 방금 만난 그 아가씨가 떠올랐다. "라크리마. 그거 잠깐 줘봐." "예. 주인님." 케리는 반지를 받아들자 마자 탈의실로 나갔다. 역시나 케리의 예감대로 탈의실에서는 그 아가씨가 옷가지를 뒤적거리면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저기 이거 당신 것... 맞죠?"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목욕탕 안에 벗어놓고 깜박했던것 같네요." 아가씨는 케리에게서 반지를 받아서 한숨 놓은 듯이 바라보더니 소중하게 손가락에 끼웠다. "이건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거든요. 아주 소중한 건데 잃어버릴뻔 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아침 식사를 대접해도 될까요?" "아니 괜찮아요. 댓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넘어가면 제가 좀 섭섭해요. 저한테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니까. 아. 약도를 드릴 테니까 저희 집으로 오세요." "예...그런데 저 일행이 있는데 집에는 폐가 안될지..." "아 괜찮아요. 저희집은..." 결국 케리는 아침 식사 초대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헤에. 여탕에서 여자를 꼬시다니... 케리도 참 대단하다." 아침을 얻어먹으러 가면서 에밀은 신기한 듯이 케리를 쳐다보았다. "끄응... 늑대들을 쫓아내러 간 목욕탕에서 여우가 꼬이다니..." 라크리마는 자신이 경계를 늦춘 사이 케리에게 여자가 달라붙은 것이 좀 불쾌한듯 했다. "........." 어제 너무 맞아서 밤잠을 설친 라크레일은 아직 몸이 좀 뻐근한 듯한 표정이었다. "너무 그렇게 말하지마. 난 지금 여자 모습이고, 그 사람도 여자로 알고 초대를 한 거니까." 케리는 그 아가씨가 헌담을 듣는 것이 좀 불쾌했다. "레인 스트리트. 로슈폴 가... 저택에 와서... 세레피나를 찾아주세요라..." 약도를 따라 하나하나 찾아가다보니 갑자기 커다란 대저택이 나타났다. 건물은 상당히 호사스럽고 우아할 뿐더러 크기도 상당히 컷고, 담 안으로는 정원까지 있었다. "...서 설마... 잘못 찾아온 것이겠지... 이런데 사는 아가씨가 대중목욕탕에 올리가..." 라지만 약도에서는 일단 틀림없었다. "일단 한번 불러볼까..." 케리는 대문 옆에 달린 종을 딸랑딸랑 울렸다. 통통한 중년의 메이드가 나와서 케리에게 퉁명스럽게 무슨 용건이냐고 물었다가. 세레피나 아가씨에게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하자, 그제서야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안내를 했다. 케리들이 저택안으로 안내되었다. 복도에도 군데군데 미술품이 놓여있었다. "...대어다...목욕탕에서 대어를 낚았군. 케리는..." 에밀은 눈이 휘동그래져서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안내된 식당에는 오늘 새벽에 목욕탕에서 만난 아가씨가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식탁에 앉아 케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케리씨... 라고 하셧죠?" 잘 차려입고 있으니 목욕탕에서 보다 몇배는 기품있어 보였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케리가 찾아준 반지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행을 하시는 중이시라구요? 고생이 많겠군요." "아예. 이런 호화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는것은 오랜만예요." 케리는 세레피나 옆에 앉아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아침식사라기에 가볍게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대저택의 아가씨라니...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마세요. 목욕탕 친구잖아요?" "네..." 겨우 긴장을 좀 풀면서 대답하는 케리를 보면서 라크리마는 '피잇~' 하는 표정을 지으며 스프를 거칠게 휘저었다. 조금은 질투를 하는 걸까? "저기 아버님 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아예. 직업은 상인이예요. 나름대로 큰 사업을 가지고 게시기 때문에, 이 도시의 도시의회 의원이기도 하시죠." 세레피나는 기품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케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대중 목욕탕에..." "어머. 새벽에 말했잖아요? 집의 목욕탕이 고장났는데 가까이에 있는게 거기 밖에 없어서..." 케리는 목욕탕에서 한 대화는 너무 정신없어서 머리속에 남아있지도 않았다. "저 세분은 누구죠?" "이쪽은 라크리마. 제 하녀입니다. 저쪽은 라크레일, 라크리마의 동생이고, 저쪽은 에밀. 제 시종이죠." "어머 그러시군요." "라크리마와는 오늘 같이 목욕탕에 갔는데... 계속 사우나에 들어가 있어서 못 만나셧어요." "어머나. 전 사우나에는 잠시도 못 들어가 있어요." 라크리마는 케리와 세레피나가 친근하게 대화를 하자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있었다. 에밀은 식사가 무척 마음에 든 것 같았고, 라크레일은 꾸벅꾸벅 거리다가 라크리마에게 한대 맞아 셀러드에 얼굴을 처박았다. "정말 친절한 아가씨군... 방 까지 하나 내주다니. 그 반지가 무척 소중했나봐." "그럴꺼면 목욕탕에 끼고가질 말것이지..." 케리 일행은 여관에서 로슈폴 가의 저택으로 숙소를 옮겨두었다. 방은 네명이 지내기에는 그럭저럭 좁지 않았다. 라크리마는 투덜투덜 거렸지만... "라크리마, 그 아가씨는 내가 여자인줄 알고 친구로서 우정을 베푸는 거야. 너무 그렇게 투덜거리지마." "예. 알았어요." 케리는 자신이 호감을 가지게 된 상태에게 라크리마가 불만을 토하는 것이 약간 기분나빳다. "에밀. 너는 어때?" "음... 글세... 난 잘 모르겠어. 저 아가씨... 좋은 사람 같아보이기는 한데..." "라크레일 너는?" "........." 라크레일은 침대위에 돌아 앉아서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표정은 상당히 부루퉁~ 했지만... 의외로 이 남매는 비슷한 점이 있는듯 했다. 라크리마는 말로 표현하지만 라크레일은 표현을 잘 못한다는 차이일지도... 메이드 드래곤 전기 15화 -갑작스럽게 살인사건- 오전 10시 쯤, 케리는 세레피나에게 정원을 구경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물론 케리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저희 집안은 이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 자크 공국이 세워져 있을 때부터 상인 가문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해요. 전설의 자크 상회에도 참여했다고 전해지지요." "그렇군요. 유서깊은 집안 출신 이셧군요." 케리도 용사 카리온의 후예니 나름대로 유서깊은 집안 출신이라 할수 있었지만, 케리가 어렸을 때에는 이미 집안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탓에 케리도 에마도 기품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게 자라났다. 하지만 세레피나는 상인 집안 출신이라고 하지만 이 도시는 워낙 상인을 높게 쳐주는 풍토였고 어릴때부터 잘 교육받고 자란 탓인지 몸 놀림 하나하나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이 정원은 우리 할머니가 만드신 거예요." "참 아름다운 정원이네요." 확실히 로슈폴 가의 정원도 보통 이상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정원을 둘러보는 세레피나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케리는 영문을 몰라 세레피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기...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예... 실은 이 정원과 저택... 얼마 안가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생겼거든요." "예?!" 세레피나의 고백에 케리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무슨 일인데요?" "실은... 저희 할아버지에게는 형이 있었다고 해요. 증조할아버지는 그 큰 할아버지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고 생각했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큰 할아버지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요. 그래서 동생인 우리 할아버지가 로슈폴 가를 물려받게 된 것인데... 그 큰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거예요." "예?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증조 할아버지의 유언장에도 큰 할아버지가 나타나면 그에게 재산을 물려주라고 되어있었고, 그 사람은 큰 할아버지의 자식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도 다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우리 아버지도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발끈 하시면서 한푼도 줄수 없다고 하셧지만... 이제 다음달 초에 재판이 열릴 거예요. 물론 재판 결과는 아직 알수없지만... 상대가 워낙 증거가 탄탄하기 떄문에 이쪽에 너무 불리해요... 아버지가 직접 벌어들인 재산이나 저나 어머니 명의로 되어있는 재산은 괜찮을것 같지만, 조상에게 물려받은 이 저택은 거의 확실히 빼앗길것 같아요.." 거기까지 말하고 세레피나는 큰 한숨을 푹 쉬었다. "뭐라고 말씀 드릴수가 없군요..." 한번 집안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케리는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레피나의 일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케리는 세레피나의 고운 손을 맞잡고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런 사정이 있다나봐." 점심은 케리 일행 끼리만 먹게 되었다. "으으음..." 라크리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음 잘 이해할수가 없어요... 저희 드래곤은 인간들 처럼 가계 구조가 뚜렷하지도 않고, 개인주의가 강하다 보니까... 유산상속 문제로 싸우는 일은 본적 없거든요." "그래도... 둘이서 한가지 물건을 탐내는 일은 있을거 아냐?" "그럴때는... 로드에게 중재를 구하거나 아니면 서로 싸워서 해결을 보죠. 그래도 특별히 물건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일도 별로 없으니까..." "음... 드래곤은 그렇구나..." 라크리마에게는 유산상속이라던가 하는 문제가 잘 이해되지 않는것 같았다. 드래곤은 혼자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할만한 능력이 있다보니 개인주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같은 물건을 놓고 서로 다투는 일은 극히 드물다. 어차피 물건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경우도 적기 때문이다. [물려받는다]라는 개념도 없는거나 다름 없어서, 죽은 드래곤의 물건은 먼저 주워가는 놈이 임자가 되는 것 같다. "엘프들은 어떤데?" "글세... 우리들은 인간들이 말하는 '재산'이라는 개념이 없어. '내 것'이라는 개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물자는 마을 구성원 모두가 같이 쓰거든." "호오..." 인간 사회에 섞여있는 엘프도 적지 않았지만, 엘프들의 문화는 인간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당연히 케리도 그들에 대해서 잘 몰랐다. 인간 사회에 나와있는 엘프들도 엘프 사회에 대해서 인간들에게 잘 알리려 하지는 않았고, 일반인들은 그들이 숲 속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엘프들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소문들이 주로 떠돌고 있었다. 엘프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그들의 사회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한 소수의 학자들 뿐일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데?" "뭐 자세히 설명하려면 오래 걸리지만, 자기 집이나 자기 생활용품을 제외하면 '내 것'은 없거든. 나머지는 전부 마을에서 공유해. 유산... 같은 거라면 엘프 하나가 죽는 일도 별로 없지만, 죽으면 집 같은건 마을회의에서 다른 엘프들에게 나눠주는데 딱히 그 엘프의 자식이라고 해서 특히 많이 주거나 하는건 아냐." "그래도 질투하지 않아?" "별로. 그런 일은 없어. 모두 비슷비슷하게 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 누구나 다 같이 사니까 일부러 일을 안하고 게으름을 부리는 녀석이 있다면..." 케리는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에밀은 전혀 걱정할것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녀석은 없어." 케리나 라크리마, 라크레일도 에밀이 말하는 엘프들의 삶에는 이해가 잘 안가는 듯 했다. 한참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식당 문이 열리고 로슈폴 가의 비서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비서는 빈센트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는데 마른 체격이지만 탄탄해 보였고, 냉정하고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레피나의 소개에 의하면 의외로 따듯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레피나 아가씨는 오후에 외출을 하십니다. 오후에는 정원을 구경하시거나 방안에 그대로 머물러 게셔도 좋지만, 저택 안을 함부로 돌아다니지는 마십시요. 요즘 집안 공기가 좋지 않아서..." 빈센트는 집안이 어지러운 이 때, 세레피나가 처음 보는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 약간 맘에 안 들었지만 세레피나의 명령이기 때문에 애써 친절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저기. 무술 수행을 할만한 장소는 없나요?" 케리는 깜박 생각이 나서 물었다. "무술 수행이라... 저택 뒷마당 쪽에 공터가 있습니다만, 하고 싶으시다면 그쪽에 가셔도 됩니다." "예. 고마워요. 라크리마, 한동안 수행을 게을리 한 것 같아. 오늘은 남는 시간 동안 수행이나 시켜줘." "맡겨주세요!" 아침부터 세레피나에게만 신경쓰고 있던 케리가 조금 뚱해졌던 라크리마는 이 한마디로 그간의 섭섭함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즐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케리는 라크리마와 함께 저택 뒷쪽의 공터에서 무술 수행을 했고, 라크레일과 에밀은 방에 처박혀서 오후를 보냈다. 오늘도 나름대로 수행성과를 올린 케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온 것은 오후 5시 쯤, 라크리마도 케리와 딱 붙어지낸 것이 즐거운 것 같았다. 케리와 라크리마가 샤워를 하고 있는 사이 세레피나는 외출을 마치고 들어왔다. "오늘 저녁에는 저희 아버님을 소개해드릴 께요." "어머, 우린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케리씨는 저와 마음이 잘 맞는것 같아요. 모험하면서 겪은 이야기들도 들려주세요. 아버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세레피나는 케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그녀가 케리에게 달라붙어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자 라크리마는 영 뚱해진것 같았다. 저녁 식사 준비를 감독하러 세레피나가 나간 사이... "...라크리마. 내가 세레피나와 친한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우응..." "솔직히 말해도 좋아." 케리도 라크리마의 태도가 약간 이상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케리님이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상관없잖아? 난 지금 여자니까... 그녀도 여자로서 친구로 지내자고 하는 거야." "...예. 그럼 뭐..." 케리의 그런 말에 라크리마도 약간 납득한것 같았다. 저녁 식사 시간. 세레피나의 아버지인 펠릭스 로슈폴 씨와 어머니인 로슈폴 부인도 자리에 함께 했다. "저희 어머님의 유품인 반지를 찾아주시다니... 이것 참 감사합니다. 정말 귀한 물건인데..." 로슈폴 씨는 턱시도가 잘 어울리는 콧수염을 단정하게 기른 신사였다. "저 애의 친구라면 우리 로슈폴 가의 친구나 다름 없습니다. 아무쪼록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히 오래 묶어주세요." 로슈폴 부인은 세레피나를 많이 닮은 기품있는 귀부인 이었다. 나이는 어쩔수 없어 눈가와 입가에 잔주름이 생겨 있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드럽고 친근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친절에 이렇게 까지 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니요. 그 반지는 제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거든요." 세레피나도 다시 한번 케리에게 감사를 표했다. 케리는 자신이 모험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식사도중 간간히 이야기했고, 로슈폴 가족은 그것을 즐겁게 듣고 있었다. 라크리마와 함께 했던 부분은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 황당했을 테니 들려주지 않았고, 지금은 '여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사정에 맞추어서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라크리마도 케리의 충고에 따라 그럭저럭 즐겁게 있었고, 라크레일은 여전히 약간 뚱해보엿지만 에밀은 언제나 처럼 밝은 모습으로 가끔 자신의 모험 이야기나 엘프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었기 떄문에 식사시간은 꽤 화기 애애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덜컥... 분위기를 깨면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로슈폴 씨의 사촌이자 지금 이 가족의 골치덩이가 되고 있는 로슈폴 가의 정식 상속자 레바인 로슈폴이었다. 펠릭스 로슈폴 씨보다 여섯살 정도 어린 나이였지만 콧수염과 턱수염을 아무렇게나 길른데다가 험하게 자라서 오히려 나이는 더 많아 보였다. 그도 턱시도를 입고 있기는 했지만 어디서 구르다가 왔는지 조금 더럽혀져 있었고,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술냄새도 풍기고 있었다. "형님. 지금 뭐하는 거야? 나한테 주는게 아까워서 돈을 이런데다가 낭비하고 있는거 아냐? 엉?" 레바인은 거칠고 탁한 목소리로 로슈폴 씨에게 따지듯이 외쳤다. 목소리에 술취한 듯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이봐. 자네. 말이 너무 심하군. 술에 심하게 취한것 같아. 그리고 아직 이 집과 재산은 내 것이고, 자네가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모든 재산이 다 자네에게로 넘어가는 것은 아냐. 그리고 자네는 아직 우리집 손님의 신분으로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주정을 부리면 우리 집안 고용인들과 손님들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겠나?" 로슈폴 씨는 신사적인 태도로 일어나서 레바인을 신중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달랬다. "그래봐야 이 재산은 다 내꺼야... 내꺼라고 낄낄낄...크크크크..." 레바인은 음흉한 웃음소리로 낄낄 웃으면서 식당에서 나갔다. "이거 죄송합니다. 우리집에 묵고 있는 친척인데 원래는 점잖은 사람이지만 술에 취하면 저래서..." 하지만 로슈폴 씨의 표정은 레바인을 징그러운 벌레라도 보는 것 같은 태도였다. 직접 표정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로슈폴 부인이나 세레피나도 레바인을 싫어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굳어져서 저녁식사는 얼마안가 슬며시 끝났다.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죠? 죄송하네요. 이런 것을 손님들께 보여서..." "아니요. 세레피나씨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세레피나는 달빛 아래에서 보는 정원은 낮과는 또 다른 운치가 있다면서 케리를 데리고 나왔다. "레바인 아저씨는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란것 같아요. 그래서 갑자기 많은 재산이 손에 들어올것 같으니까 자기 통제를 못하는 것이죠. 아아 저런 사람이 로슈폴 가의 재산을 차지하면 우리 집안은 어떻게 될런지..." 세레피나는 정말 걱정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달빛 밝은 정원에서 우수에 젓은 기품있는 미녀의 모습은 케리가 정신을 잃고 바라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이렇게 우울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니..." "아, 아니요... 저도 정말 걱정되네요." "걱정마세요. 저희 집안 일이니까요. 잘 해결될 거예요." 그렇게 말하면서 세레피나는 조용하게 미소지었다. "그것보다 케리씨." "예?" "모험... 이라는 것 괴롭거나 고달프지 않아요?" "음.. 확실히 그렇기도 하지요." 케리의 머리속에서 모험을 시작한 초기에 고생했던 사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저기... 여자가 여자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 전 케리씨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만약 이 도시에 정착하시려 하신다면... 여러가지로 도와드릴 용의도 있어요." 세레피나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케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달빛 아래의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워 케리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자신이 이런 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프로포즈라도 하지 않았을까? 케리는 그렇게 까지 생각했다.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는 카에리온 시티가 몰락한 이후 점점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다. 게다가 세레피나나 로슈폴 가가 도와준다고 한다면 고달픈 모험시절 보다 훨씬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리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할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할수 있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남자로 돌아가고 난 뒤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남자가 된다고 해도 그는 아직... 라크리마를 포기할수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모험심이 타오르고 있었기 떄문이다. 고개를 가로젓는 케리를 보고 세레피나는 눈물 한줄기를 흘렸다. 눈물은 달빛을 받아 유성처럼 빛났다. "좋은 친구가 될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울지 마세요. 저는... 아직 모험하는 것을 포기 하지 않은것 뿐이니까요... 그리고 세레피나 씨는 지금 힘들어 보이니까... 저라도 친구가 될수 있다면 세레피나 씨의 집안 일이 해결될 때까지만 이라도 곁에 있어 드릴께요. 그리고... 제가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다고 해도... 우린 친구죠?" 케리는 세레피나의 눈물줄기를 닦아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세레피나는 안심했다는 듯이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뒤에 보였다. 그 뒤 두 사람은 조용히 정원을 걸어다녔다. 서로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그런데...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째지는 듯한 여성의 비명소리가 저택 쪽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케리는 주위를 경계하면서 세레피나를 감싸고 저택 쪽으로 향했다. 세레피나와 케리가 도착한 저택 안은 완전히 아수라장 이었다. 그 침착해보였던 빈센트 조차 안절부절 못하면서 세레피나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였다. 소란의 중심을 찾아 케리와 세레피나가 달려가보니... 복도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그 앞에서 한 시녀가 복도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일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것 같아 케리는 세레피나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케리가 말릴 사이도 없이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허억!" 그 안에는 로슈폴 가의 정식 상속자 레바인 로슈폴이 피를 토하고 쓰러져 죽어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쓰러지는 세레피나를 케리는 간발의 차이로 부축할수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6화 -갑작스럽게 추리소설- 로슈폴 가에는 시 경찰이 들이닥쳐 조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도 알아줄만한 권력을 가진 로슈폴 가, 그 집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경찰청을 긴장시키기에도 충분한 일이었는지 경찰청에서도 치밀하게 일을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로슈폴 씨는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케리는 기절한 세레피나를 간호하고 있다가 경찰에 불려가게 되었다. 이 집에 외부인이라고는 그들 일행 뿐이니 일단 조사대상자에 포함된 것이다. "미안하네 케리양. 이런 일에 휘말려 들게 하다니..." 로슈폴 씨는 딸의 손님에게 조사를 받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의미에서 케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방안에는 케리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첫번째는 시체를 처음 발견한 이 집의 하녀, 쟈네트. 18세 내외의 소녀였는데 아직도 겁을 먹어 떨고 있었다. 두번째는 주방장인 덩치큰 흑인 밥. 세번째는 역시 하녀인 메리. 그녀는 30대 중반에 통통한 체격이었다. 용의자는 아니었지만 빈센트도 참고인 자격으로 옆에 서 있었다. "피해자는 이 차와 함께 독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독살이지요." 경시청에서 나온 유능한 경감, 라베르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약간 깨진 찻잔을 들고 설명했다. 그는 상당한 거한에 약간 비만기가 있어보였지만, 눈은 대단히 지적인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맨 처음 심문을 받은 것은 케리였다. 심문은 별다른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케리는 이 저택에 오늘 처음 왔으며 피해자와도 오늘 처음 만났고, 단순한 손님일 뿐이라고 증언했다. 로슈폴 씨와 하인들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피해자가 쓰러질 당시 세레피나와 이야기 하고 있어서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도... 라베르는 약간 미심적은 면이 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쟈네트 양. 입니까? 맞죠?" "예...." 쟈네트는 아직도 긴장한 모습으로 라베르의 심문을 받기 시작했다. "긴장은 풀어요. 그렇게 무서운 일은 아니니까... 아가씨가 피해자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이야기해 보시죠." "그때 저는 레바인 님의 방을 살펴보러 가고 있었어요. 레바인 님은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침대위에서 굴러떨어지시거나 이불을 차내고 주무시는 일이 많거든요." "그 차도 자네트 양이 날라다 준 것이라고 들었는데..." "레바인님이 처음 저택에 오셧던 날 내드렸던 것인데, 그 뒤로 마음에 들었던지 매일 그 차를 저녁식사를 마친후 찾으셧어요. 술을 마신 뒤에도 물론..." 쟈네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는 레바인이 술을 마시고 들어간 뒤 언제나 처럼 차를 내주었으며 레바인은 술이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마시지는 않았다. "즉, 피해자는 술에 취해서 있다가 차를 마시고 그대로 독을 먹고 죽었다는 것이군요. 쟈네트 양은 방을 살펴보러 갔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구요?" "예." "그 차는 누가 탄 것이죠?" 쟈네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주방장인 밥 씨가 타거나 아니면 주방보조인 메리 언니가 탓어요. 언제나...전 그냥 날랐을 뿐이예요!" 쟈네트는 결국 울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진정하세요. 아가씨. 아직 누구도 아가씨가 범인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봐. 로빈. 이 아가씨는 저 의자에 앉혀드리게. 진정좀 하시게. 다음은 밥 씨." 쟈네트는 라베르의 명령을 받은 순경의 부축을 받고 의자에 앉아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라베르는 밥에게 질문을 던졌다. "밥 씨. 당신은 주방장으로서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밥은 과묵하게 닫혀있던 두터운 입술을 열었다. "오늘 차를 탄 것은 제가 아니라 메리 입니다." 그 말에 메리는 잠시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평소 때는 어떻습니까?" "때에 따라서 틀립니다만, 보통 한가할때는 제가 탑니다. 하지만 제가 일을 하고 있을때는 메리가 차를 타죠. 오늘은 제가 특별히 준비를 많이 하느라고 좀 피곤해서 쉬고 있었기 때문에 메리가 차를 탓습니다." 밥은 정확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음식에 독을 넣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짓입니다. 인간이 할 짓이 아니예요." 밥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아 참. 피해자는 언제나 같은 컵을 썻나요?" "언제나 같은 컵은 아닙니다. 그 컵이 마음에 드신다고 하기는 했지만... 같은 컵이 세개나 있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골라서 씁니다. 이제는 두개가 되었지만요." "그럼... 사건이 일어날 당시 주방에 들어온 사람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와 메리 뿐입니다." 라베르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메리 차례였다. 메리의 심문 결과도 밥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오늘 차를 탓다는 것 때문에 범인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라베르는 고개를 끄덕 끄덕 거리면서 세 사람의 용의자를 하나씩 바라보았다. 쟈네트도 약간 진정된듯이 보였다. 케리가 보기에 이 세사람은 모두 용의선상에 올라 있었다. 레바인은 차를 마시고 죽었는데 그 차에 접근할수 있는 사람은 이 세 사람 밖에 없었다. 하지만 대체 이 세사람 중에서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범인은 당신이요. 쟈네트 양." "?!" 경감의 갑작스러운 지적에 쟈네트는 어리둥절해졌다. "당신들을 심문하기 전에 몇몇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탐색해보았소. 세 사람 모두 차에 접근할수 있지만... 범행동기가 있는 것은 당신 뿐이요. 당신은... 몇일 전에 레바인에게... 추행을 당할뻔 했지요? 사실입니까?" 쟈네트는 패닉 상태에 빠진듯 했다. 완전히 어리둥절해져서 두서없이 마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말도 안돼요! 저... 저는 아니예요. 저는... 물론... 그 늑대가 저를 덮치려 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전 그때 도망쳐 나왔고... 또 그 사람이 죽어서 약간... 시 싫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그건 말도 안돼요! 경감님 농담이지요? 거짓말이라고 해줘요?!" "제가 범인입니다!" 쟈네트가 거기까지 말했을때 빈센트의 입에서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무릅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외치고 있었다. "제가 범인입니다! 경감님. 저를 체포해주십시요. 저는... 제가 어릴 때부터 섬겨온 이 로슈폴 가의 재산이 그런 무뢰한에게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고 그를 살해한 것입니다. 제가 밥과 메리 몰래 찻잔에 독을 넣었습니다. 무고한 쟈네트를 체포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모든 것을 했습니다." 빈센트는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고백을 했다. 평소의 냉정해보이는 그에게서는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다. "체포하게. 로빈." 빈센트는 조용히 수갑을 받았다. 로슈폴 씨는 빈센트에게 다가가 그의 양 쪽 어깨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분노나 실망은 떠올라 있지 않았다. 언제나 처럼 신사적이고 차분하게 그는 말을 꺼냈다. "빈센트... 설마 자네가 이런 일을 할줄이야... 너무나 놀라긴 했지만... 괜찮네... 난 자네 마음을 다 알아. 그러니... 그래. 나중에 법정에서 보세... 걱정말게 내가 할수있는한 손을 써줄테니..." "아가씨께 안부 전해 주십시요. 주인님..." 빈센트는 체포되어 갔다. 사건은 일단락 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케리에게는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특히 끌려가는 빈센트의 등 뒤에서... 케리는 로슈폴 씨에게 세레피나의 상태를 잠시 보고 오겠다고 말하고 세레피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한 뭉치의 편지와 일기장을 벽난로에 넣어 태우고 있는 세레피나가 있었다. "세레피나!" "케리씨!" 세레피나는 케리에게 달려와 그녀를 꽉 껴안았다. 정말 감정이 격해진 것일까? 아니면 케리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일까? "...다 눈치챈 모양이군요... 케리씨...?" "...자세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네가 무슨 일을 꾸몄구나." 세레피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리를 꼭 안은채로... "케리씨... 사실 제가 당신을 만난 것은... 그 목욕탕이 처음이 아니예요... 몇일전 쇼핑을 하러 나갔다가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죠..." "!!!" "그 뒤로 하인들을 시켜서 당신의 행방을 쫓았어요... 같은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랑의 불길은 어쩔수 없더군요. 그래서 목욕탕에서도 일부러... 당신을... 이런 사건에 휘말려 들게 한 것... 정말 죄송해요... 당신에게만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세레피나가 흘리는 눈물이 케리의 어깨를 적셧다. "...저는 이 로슈폴 가를 사랑해요. 증조 할아버지의 유언장이건 뭐건, 이 로슈폴 가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필사적인 노력 끝에 지켜낸 것이예요. 그걸 어디서 굴러먹다 온지 모르는 친척에게 넘겨주다니... 그건 말도 안돼요." "그래서 빈센트를 시켜서...?" "...아니요. 일을 한 것은 밥이었어요. 그는 냉정하고 성실하니까 이런 일에는 적격이지요. 빈센트는 독을 구해왔지요. 그대로라면 쟈네트가 범인으로 몰리겠죠?" "아니 빈센트는 자수 했어..." 세레피나는 케리의 양손을 꼭 잡고 침대위에 앉았다. 케리도 그녀 옆에 앉았다. "...빈센트는... 보기 보다 마음이 약하니까요... 그렇게 되리란걸 예상은 했어요... 쟈네트가 죄없이 몰리고 있는 것을 참을수 없었겠죠. 하지만 모든 일을 자백하는 일은 안할 거예요. 그도 성실하니까... 침대위에도 그랬어요. 성실하게는 하지만, 여자를 힘들게 하지는 못하죠. 밥과는 달리... 밥은 언제나 명령대로 열심히 해 주니까..." 케리는 이 순진해보이는 아니 순진해보였던 아가씨의 의외의 면에 소름이 돋을것만 같았다. "로슈폴 씨도 알고 있어?" "...알고 게실 거예요 아마... 하지만 말로 아는 척 하지는 않죠.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 아버지가 이미 허락했다는 의미예요. 아버지는 빈센트의 뒤를 잘 돌봐주시겠죠..." "왜 나한테 이런 것을 모두 말하는 거지?" "...이게 제 진짜 고백이예요. 전... 그런 남자들 보다 케리씨가 훨씬 좋아요... 케리씨는 처음 본 순간부터 저를 불타오르게 했어요. 케리씨... 제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주지 않겠어요?" 케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레피나. 나도 고백할 것이 있어. 난 사실 여자가 아니야... 이 모습은 저주에 걸려서 이렇게 된 것일뿐..." "........." 세레피나는 반신 반의하는 눈빛으로 케리를 쳐다보았다. "하긴... 당신에게는 이런 말은 필요없겠지. 중요한 것은... 대답은 오늘 저녁과 똑 같아. 난 아직... 그래. 솔직히 세레피나 당신의 이런 모습이 너무 놀라워... 그래서 지금의 당신은 받아들일수도 없는 거야..." 세레피나는 케리에게서 고개를 돌려 침대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세레피나?" "...괜찮아요... 괜찮아요...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적어도... 오늘 밤 만이라도 함께..." 케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세레피나의 한 손을 맞잡아 주었다. 다음날 아침, 케리 일행은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의 성문을 나서고 있었다. 라크리마와 라크레일, 에밀도 지금은 사건의 진상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 안에서는 그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시 바깥의 가도를 걸어가면서 라크리마가 케리에게 말을 건냈다. "주인님. 인간들의 경찰이나... 재판이라던가... 법률이라던가 하는 것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지요?" "응... 그렇게 알고 있어." "하지만... 이 사건 같은 경우는 대체 누가 정의인가요? 주인님은 왜 세레피나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죠?" "그것은 내가... 그녀를 조금이라도 사랑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럼 레바인 씨가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결국 정당하게 받아야 할 것은 하나도 받지 못하고 목숨만 잃어버린 꼴이 되었으니..." 라크리마는 케리의 아픈 곳을 찔렀다. "...그래 나는 역시...그냥 레바인 씨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의 한 가지 행동만 가지고 그 사람을 나쁘다고 단정 짓고 있었어... 세레피나도 마찬가지였고 말이야...난 아직 너무 어렸어..."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았을까요? 어떻게 해야 모두가 행복할수 있었을까요?" 라크리마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스스로도 답을 알수없다는 표정이었다. 천년이상을 살아온 그녀의 지혜로서도... 인간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이해할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걸 할수 없으니까... 법률 같은게 있는 거겠지? 조금이라도 해나가기 위해서...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주인님은 그럼 세레피나가 옳았다고 생각하세요?" "글세다... 그건 아직도 모르겠어. 어쩌면 평생 알지 못할지도 몰라." 어쩌면 케리는... 자신은 단순하 우유부단하여 아무 판단도 내리지 못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쨋건... 머리 아픈건 집어치워요. 자! 내일부터도 즐거운 모험입니다!" 라크리마는 경쾌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①- 케리 일행은 괴로운 추억과 즐거운 추억을 함께 얻었던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를 떠나 남동쪽으로 향했다.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 남쪽에는 엘프들이 산다는 숲만 지나면 해안이 나오지만, 에밀은 엘프들은 숲을 통과시키게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에밀에게 설득해보면 어떠냐고 했지만 자신과는 부족이 달라서 안될것 같다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해안에서 배를 타고 간다던가 하는 것은 포기하고, 남동쪽으로 가서 에레스 공국으로 갔다가 북으로 방향을 틀어 슈레인 공국으로 가기로 했다. 바로 슈레인 공국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에레스 공국에서 대단한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이 두 나라는 가스트 제국의 보호아래 있는 나라로서 둘다 가스트 제국의 개국공신들 중 두 기사에게 주어진 영지였으며 아직도 가스트 제국에 충성을 바치는 나라였다. 사실상 가스트의 속국이라고도 할수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에레스 공국에서는 큰 토너먼트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었다. 굳이 케리가 이 대회에 참가하려는 이유는... 간단히 말하자면 수행을 위해서 였다. 몇일전 공터에서 케리와 라크리마가 수행을 할때의 일이었다. 케리도 슬슬 소닉 블레이드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주인님이 익히신 것은 소닉 블레이드. 이것은 상대를 자르는데 쓰는 기술이라고 할수있지요. 그리고..." 라크리마는 땅바닥을 향하여 손을 휘둘렀다. 소닉 블레이드와는 달리 크고 둔탁한 흠이 패었다. "이것은 소닉 브레이크. '부수는' 기술이라고 할수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에는 땅을 향하여 손끝을 거세게 뻗었다가 거두어들였다. 이번에는 좁고 깊게 파인 흠이 생겼다. "이것은 소닉 피어싱. '뚫는' 기술이라고 할수있지요. 이제부터는 이 세가지 기술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연습해보세요." 라크리마의 지도에 따라서 케리는 기술을 하나하나 연마해 나갔다. 그리고 한참 기술을 연습한뒤 휴식시간... "저기 라크리마. 이런 기술은 전부다 혼자서 창안해낸거야?"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어느 정도 제가 창안해낸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도서관 구석에 처박아 뒀던 인간의 검술책에 나오는 부분을 기초로 하고 있어요." "그럼 ... 그 책에는 어떻게 되어있는 거야?" 라크리마는 잠시 골똟히 설명하더니 대답했다. "책에 나와있던 대로 하면 오라, 즉 기사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생명에너지를 몸속에 축적하는 것 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이용해서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을 익히고... 그 다음이 이 소닉 블레이드죠. 케리님은 1단계를 무시하고 2단계부터 시작해서 3단계로 바로 넘어온거나 다름 없어요. 그것도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은 지금도 완전히 생략되어있지요. 케리님 처럼 '오라'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을 바로 이용하게 되면 소닉 블레이드 쪽이 더 기초적이거든요. 피어싱이나 브레이크도 블레이드의 응용기술로서 적혀잇었어요. " "흐음... 내가 듣기로는 소닉 블레이드를 사용할수 있으면 소드 익스퍼트... 라고 하던데, 라크리마가 말한 2단계가 오라 그래듀에이트 나이트, 3단계가 오라 익스퍼트 나이트... 그 위에는 오라 마스터 나이트라는 단계가 있다고 들었거든." "케리님이 제가 생각한 학습 구조를 전부다 마치면 대충 익스퍼트... 정도의 실력을 지니게 될 거예요. 그 정도만 되어도 굉장한 것인걸요." "더 강해질수는 없을까?" 케리의 질문에 라크리마는 잠시 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보다 더 강해질 필요는 없어요. 제 경험으로 봐서는 인간 중에서도 마스터 급의 실력자를 만나는 것은 아주아주 힘듭니다. 중요한 것은 싸우는 방법... 즉, 실전경험이지요. 케리님은 실전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이 더 큰 걱정입니다." "으음.... 그렇구나... 그럼 실전경험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그래 라크리마와 대련을 한다면 어떨까?" "저와는 실력차이가 너무 큽니다. 게다가 저는 마법으로 몸을 보호할수도 있고... 저는 농담으로라도 케리님을 진짜로 공격할수는 없습니다. 사실상 실전이라고 할 수 없는 대결이 되겠죠..." "음... 그럼..." 결국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보니 에레스 공국 기사 토너먼트 대회에 참가하기로 이야기가 진행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이 세계의 무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유파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사들은 '오라aura'라고 하는 힘을 사용한다. 일정한 수행을 통해 이 오라를 사용하는 방법을 습득하게 되면, 오라를 이용해서 신체의 강도를 강화시키거나 몸을 아주 빨리 움직일수 있게 되거나 한다. 이 단계는 '오라 유저aura user'라고 불리게 된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오라 그래듀에이트aura graduate'. 즉, 기본적인 사항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그래듀에이트 단계는 오라를 외부로 방출하는 것이다. 그 것이 바로 케리가 익힌 공기를 매질로 하여 적을 공격하는 기술. 소닉 블레이드, 소닉 브레이크, 소닉 피어싱 등이다. 이 단계까지 와서 기본 3기술을 모두 익히고 좀 더 고급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하면 '오라 익스퍼트aura expert'라는 명칭이 붙게된다. 여기서 모든 고급 기술을 사용할수 있게 되면 그때가 바로 '오라 마스터aura master'다. 단 케리는 스톰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아 바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편법으로 그래듀에이트 부분만 바로 익히고 있는 것이다. 에마도 마찬가지다. 세가지 외에도 좀 더 강력한 많은 기술이 있지만, 아직은 케리로서는 알지 못하는 단계다. 사실 단순히 기술만 쓸수있게 되었다고 해서 유저->그래듀에이트->익스퍼트->마스터로 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복잡하고 세세한 검증과정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뭐 이렇게 설명해 뒀다고 해서 일부러 외우고 살 필요는 전혀~ 없다. 대충 문맥을 봐서 어느게 대충 강한지만 파악하면 전부 OK니까. 에레스 공국의 국경을 넘어 수도에 도착했을 무렵. 토너먼트 날이 가까워져서 수도 주변은 완전히 축제분위기였다. 당연하지만 유서깊은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가 벌어지면 각지에서 이름을 날리고자 하는 기사들이 몰려와서 자신들의 능력을 겨룬다. 뛰어난 기사들의 경기이니 당연히 많은 구경꾼들이 몰리게 된다. 당연히 구경꾼들이 몰리면? 장사꾼들도 들끓는다. 이것은 세상 어디를 가도 변하지 않는 이치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는 에레스 공국을 세운 기사 에레스가 처음으로 열기 시작한 것이다. 이 토너먼트 대회 이외에도 시조가 기사였던 국가 답게 국가의 모든 부분에 기사도와 무예가 스며들어 있었다. 반면 에레스 공국 북쪽의 슈레인 공국은 마법사 였던 슈레인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마도의 분위기에 젖어잇다. 슈레인 공국은 슈레인 마도 아카데미가 유명하다.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는 총 4일에 걸쳐서 진행된다. 첫번째 날은 궁술대회, 두번째 날은 마법사 대전회, 비록 슈레인 공국 만큼 마도에 푹 젖은 나라는 아니지만, 에레스 공국에서도 마도가 전투에 얼마나 유용한지는 알고 있어서 마법사 대전회도 토너먼트에 끼어있는 것이다. 세번째 날은 이 대회의 하일라이트라고 하는 기간틱 아머Gigantic Armor 대전회, 기간틱 아머란 덩치가 5~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갑옷으로서 고렘 마법의 원리를 응용하여 안에 사람을 태우고 움직이는 갑옷으로 이 시대 전장의 주역이다. 네번째 날은 드디어 케리가 참가하게 되는 보병전투대회다. 그런데 다행히도 도착한 날은 대회가 시작되기 이틀전... 케리 일행은 겨우겨우 아슬아슬하게 보병전투대회 접수를 마칠수 있었다. 출전하게 된 것은 케리와 라크리마. 보병 전투대회는 사망자도 나올수 있는 위험한 대회였기 때문에 라크리마가 자신도 꼭 참가하겠다고 성화를 부린 것이다. 라크레일은 "인간들이 개미처럼 싸우는 데는 흥미없어."라면서 참가하지 않았고, 에밀은 자신은 실력이 모자라다고 해서 참가하지 않았다. "이야... 숙소 구하기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길거리에서 솜사탕을 하나 사 먹으면서 라크리마는 케리와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라크레일과 에밀은 여관에 떼어둔 채로... "응... 그런데 정말 사람이 많구나." "예. 정말 그래요." 거리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떠들석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흐음... 아마레가 봤다면 정말 재미있어 할텐데..." "아마레? 그게 누구야?" "골드 드래곤인데... 제 친구예요. 골드 일족 답지 않게 멍청하고 모험담이나 좋아하는 바보지만..." "다른 드래곤 종족 친구도 있었어?" "음... 종족이 다르다고는 해도 다 같은 드래곤이니까 서로 교류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죠." 그 때 그들 뒤에서 빽 하고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 들었어!! 라크리마!" "...뭐야 정말 있을 줄이야. 드래곤 말을 하면 드래곤이 온다는 소리가 사실이었군..." 케리와 라크리마의 등뒤에서 12살 정도 되어보이는 금발머리 소녀가 도도도도도 소리를 내면서 달려왔다. "안녕. 오랜만이다. 아마레. 이쪽은 케리 님. 내 주인님이야." 울그락 푸르락 하면서 화를 내는 아마레와는 달리 라크리마는 태연스럽게 케리를 소개했다. "네 장난감 따위에는 관심없어! 재수없는 년! 누가 멍청이에 바보라는 거야! 메이드 짓이나 하는 변태 드래곤 주제에!" "실례야. 누가 변태라는 거야. 그러는 너야 말로 인간들 모험감에 도취되서 이런데나 기웃 거리는 멍청이 드래곤이잖아. 남말할 처지니?" "이 년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러기야? 벌써 300년 만인것 같은데..." 케리는 화를 내는 아마레를 보고서도 정말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로 12살 정도 모습을 하고 있는 아마레는 정말 귀엽고 생기넘치는 아이 였다. 뭐 실제 나이는 약 1300살 내외 정도 되는것 같지만... 겉모습만은... "이이이이이이익..." 자신은 화를 내고 있는데 라크리마는 너무 태연하게 받아넘기니까 아마레는 제 화를 제가 버티지 못하는 것 같았다. "넌 어릴때부터 그랬어... 둘이서 바질리스크 사냥 하러 가자고 해놓고 혼자 도망가고... 그 덕분에 나는 석화가 되서... 한달이나 그 자리에서.. 흐에에에에에엥..." "...난 그때 네가 석화되니까 어른들 부르러 간거잖아..." "됐어 됐어 됐어! 너도 토너먼트에 출전해! 내가 너를 박살내줄 테니까....!!!" "알았어... 그래 나중에 보자..." 아마레는 더 이상 화낼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말싸움을 그치고 홱 돌아서서 걸어갔다. "...라크리마 오랜만에 만난 친군데... 저래도 상관없어?" "...뭐 언제나 이러니까요. 저러다가 또 몇일 있으면 풀리고..." "정말 친구 맞니?" "예. 일단은..."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②-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의 첫번째 날 경기는 궁술 대회였다. 케리와 라크리마는 라크레일과 에밀을 데리고 구경을 하러 나갔다. "에밀, 너도 엘프니까 한번 궁술대회에 출전해보지 그래?" "엘프라고 무조껀 활을 잘 쏘는것은 아냐." 라크레일의 말에 에밀은 그렇게 대꾸했다. 에밀은 그렇게 말했지만 확실히 엘프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궁술 대회에서도 인간에 비해서 엘프는 몇명 안 되었는데 몇회 가지도 않아서 인간 선수는 단 한명만 남고 나머지는 엘프들로 채워져버렸다. 인간 선수들은 화살을 중앙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데 반해 엘프들은 중앙에 맞추는 것은 문제도 아니고, 자신이 쏜 화살을 자신이 화살로 쪼개는 것이 목표인듯 하니 차이가 확실히 나는 것도 당연했다. 결국 다른 엘프들을 모두 제끼고 한 명의 엘프가 우승을 차지했다. "엘프는 인간보다 집중력이나 감각이 좋으니까 활쏘기에 있어서 유리한 거야." 에밀은 동족이 우승을 차지하자 자랑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기 라크리마..." 케리는 대회의 수준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높자 걱정스러운 듯이 라크리마에게 말을 걸었다. "왜요 케리님?' "이 대회.. 정말 잘 싸우는 사람이 많이 나올것 같은데... 내가 나가도 괜찮을까?" "걱정 마세요. 지금의 케리님이라면 어떻게든 할수 있을 거예요. 우승은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하세요." "응. 알겠어." 라크리마는 솔찍하게 위로해주었다. 궁술 대회에서 우승한 자에게는 특별히 에레스 공국의 기사 작위가 주어진다. 부상으로는 금으로 만든 활과 화살 한 세트. 뭐 이건 장식품으로서의 용도 밖에 없지만... 사실 3년마다 열리는 거의 매 대회마다 궁술 대회 우승은 엘프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승을 차지한 엘프는 활과 화살을 높이 치켜들고... "에스트레인 숲의 영광을 위하여!" 라고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에밀이 갑자기 관중석 아래로 몸을 숨겼다. "왜 그래? 에밀?" "자...잠깐만 저 녀석 눈에 뛰지 않게 해줘." 하지만 그 엘프는 에밀이 숨은 쪽을 한번 확실히 주목하고 있었다. "뭐?! 너 가출한 거였어!" 그날 오후 여관에 돌아오고 나서 케리는 에밀의 신상 고백을 듣게 되었다. 에밀은 일부러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케리는 억지로 에밀을 다그쳐서 결국 털어놓게 만들었다. "으응... 난... 꼭 여행을 하고 싶었거든... 하지만 집에서는 아직 어리다고 보내주지 않아서..." 평소와는 달리 케리가 단단히 화난 얼굴로 나오자 에밀은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화를 내도 그때뿐, 곧 풀어지는 성격이었는데 케리가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에밀... 집에 돌아가도록 해..." "시...싫어 케리! 나 버리지 말아줘! 난 여행을 하고 싶단 말이야! 난 케리랑 같이 다니면서 정말 즐거웠어! 라크리마 케리 좀 말려줘!" "........." 라크리마는 곤란한 얼굴로 케리를 쳐다보았지만 케리의 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표정을 보자 고개를 푹 숙였다. "에밀... 잘 들어. 만약 너랑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우리가 엘프를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기라도 하는 악당이었다고 쳐보자. 넌 지금 어떤 꼴이 되었을것 같니?" ".........그 그럼... 케리는 왜 날 데리고 다닌 거야?" "난 네가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길래... 뭔가 목적이 있어서 그런줄 알았어..." "그게... 그냥 여행을 다니는 것이면 안돼?" "안돼." 케리는 조용하고 솔직하게 말을 시작했다. "나도 처음 모험은 가출로 시작했어... 내 나름대로는 정말 재미있었지. 하지만 결국 사기를 당해서 신세를 망칠뻔 했다가 겨우 집에 들어가니까 식구들이 얼마나 슬퍼하던지... 그 모습을 보니까 다시는 가출할 생각도 들지 않았어... 하긴 그 뒤로도 모험벽은 버리지 못해서 결국 집안 말아먹고 아주 험한 꼴 까지 보게 되었지만... 엘프라고 해도 부모님은 있지? 그럼 가출은 안돼... 그냥 여행을 떠나도 얼마나 걱정하시는데 가출을 하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케리가 조용히 타이르자 에밀도 더 이상 고집부릴 여지가 없었다. "나중에 더 크면 다시 함께 여행하자. 응?" "...내가 크게 되면 케리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는데..." "꼭 할아버지가 될꺼야. 그리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같이 여행해줄께." "...응..." 케리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에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어주자 한 명의 엘프가 들어왔다. 방금전 궁술 대회에서 우승한 엘프였다. "길리엄 형!" "밖에서 이야기는 다 들었습니다. 데리러 왔다. 에밀." 길리엄 이라는 그 엘프는 에밀의 형인듯 했다. 엘프답게 아주 키가 훤칠하고 시원하게 미남이었고,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금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를 엿듣다니 실례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청력이 워낙 좋아서..." 길리엄은 귀를 만지작 거리면서 말했다. 에밀은 길리엄에게 꼭 안기더니 애원하듯이 말했다. "형이 찾으러 오다니... 미안해 형. 고생했지?" "아냐 괜찮아..." "그런데 고집부리는 것 같지만... 나 이 축제가 끝날때 까지만 여기 있으면 안돼? 제발 형..." "........." 에밀의 애원에 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지껏 같이 지내온 정도 있으니까... 그 정도라면 허락해 주고 싶지만, 길리엄씨 ... 라고 하셧나요? 괜찮겠죠?" "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신들은 참 좋은 사람인것 같군요. 당신들과 함께라면 괜찮습니다." 길리엄은 에밀을 다시 사라지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팔을 꼭 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날 밤. "이제 몇일만 있으면 헤어지는 구나." 그날은 에밀이 케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면서 케리랑 함께 자겠다고 우겨서 케리와 에밀은 한 침대에 누워있었다. '10살 좀 넘은 어린애니까...'라고 케리는 생각해서 허락해줬지만 에밀의 실제 나이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행동이엇는데... 게다가 자신이 지금은 쭉쭉 빵빵한 미소녀라는 것도 말이다. "응... 나는 에밀, 네가 집에 돌아가는게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아쉽기는 하구나." 케리는 에밀을 폭 하고 안아주었다. 케리의 가슴이 에밀의 뺨에 몽실몽실 하고 와닿았다. 그 때문에 에밀의 머리속에는 엉큼한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저기 케리..." "응?" "나... 엄마가 그리워..." 에밀은 케리의 가슴을 살짝 살짝 조물락 거리면서 쓸쓸한 듯이 말했다. "우리 엄마 가슴이 꼭 이런 느낌이었거든..." "그래..." 케리는 에밀의 행동에서 엉큼하다는 느낌 보다는 모성본능 같은 것이 먼저 솟아올랐다. 여자 몸이 되버린 탓일까? 아니면 원래 둔한 탓일까? "저기 케리... 나 찌찌 먹어보고 싶은데..." "에에? 아... 안나와 이건..." "그래도 괜찮으니까 으응...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건데... 엘프들 끼리는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야..." "에에?" 에밀이 가슴을 만지작 거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케리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엘프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하니... 결국 '좀 부끄럽지만 에밀을 위해서 참아주지'라는 기분이 되어버린 케리는 파자마 단추를 풀고 에밀에게 출렁거리는 가슴을 내맡겼다. "자...자! 빨리..." 고개를 돌리면서 부끄러운 듯이 가슴을 내맡기는 케리. 에밀은 '해냈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케리의 가슴 끝에 달라붙은 앵두에 입술을 내밀었다. 쪼옥 쪼옥...할짝 할짝... "가... 간지러워..."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은 마법사 대전회. 이름 그대로 마법사들 끼리 대결하는 이 종목에서는 오직 마법을 사용한 전투만이 허락되어있다. 콜로세움 안에는 20 미터 정도 떨어진 반경 1.5미터 정도의 두개의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 각각의 마법사가 들어가서 대결을 펼치게 된다. 마법진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즉사할 정도의 마법 공격도 차단할수 있지만, 그때 받은 데미지는 완전하게 기록하게 된다. 즉, 서로에게 준 데미지 량으로 승부를 가르는 것인데... 이렇게 말하면 그냥 무조껀 강한 마법을 쓰는 쪽이 이길것 같지만, 실제로는 마법진이 공격 받고 있는 동안에 안의 마법사에게도 약간의 충격이 가기 때문에 그 동안 주문을 못 외우게 되는 타격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억지로 참고 주문을 외워도 되겠지만 실제로는 한계 데미지 량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작은 마법이라도 연속으로 계속 맞게되면 질수도 있다. 게다가 이 마법진 밖에다가 방어 마법을 쳐서 데미지를 없애는 것은 물론, 서로 다른 속성의 공격 마법끼리 부딧쳐서 상쇄를 일으키는 경우도 인정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주 복잡한 전략을 요구하는 경기다. 원래 머리가 좋은 마법사들 끼리의 시합이라 전략성이 높은 데다가 이 정도 대회에 나올 정도면 대부분 아주 화려한 공격 마법을 구사할수 있기 때문에 이 경기는 매우 볼거리가 많고 흥미진진 하다. 사실 전날의 궁술대회 보다는 이쪽이 관객동원수가 몇배는 된다. 각지에서 벌어지는 이런 종류의 대회만 전문으로 하는 마법사가 있을 정도며 팬클럽이 있는 경우까지 있다. 의외로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가르키는 교수진 같은 훌륭한 마법사들이 이런 대회에서는 경험 부족으로 인한 전략 미스 때문에 패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흥미를 끄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아카데미 등에서는 이런 대회에 전문으로 출전하고 다니는 마법사들을 '광대 마법사'라면서 악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뭐 의외로 돈은 잘 벌리는 일이고 연구등에 매진하기에는 차분하지 못한 성격상 맞지 않거나 머리가 좀 안좋지만 단순히 공격 마법은 좀 한다는 마법사들은 이런데 나와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무슨 프로 레슬링 같은 느낌도 있지만... 참고로 아마레 양은 여기에 출전한듯 하다. 선수 대기석에 있는걸 보니... "야! 너 거기서 뭐해 임마!" 그런데 아마레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갑자기 관중석에 앉아있는 라크리마를 보고 소리쳤다. "뭐어?!" 라크리마도 입가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너너... 왜 여기 출전 안한거야 임마!!!" "......에 그야... 난 마지막 날 보병 격투대회에 출전할 꺼니까..." "야야야!!! 왜 거기야 난 여기 출전할껀데...!! 우리 결투는 어쩌고!" "......처음부터 말 안했으니 그런걸 알리가 있나..." 두 여자애의 특이한 말싸움에 주위의 관객들은 의외의 구경거리를 얻었다는 듯이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③- 두 소녀의 치열한 말싸움이라는 다소 이례적인 해프닝과 함께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두번째 날, 마법사 대전회가 시작되었다. 출전 희망자는 많았지만 이 마법사 대전회 만큼은 기본적인 마력 체크와 아무리 후지고 시골일 망정 적어도 인증된 마법학교의 졸업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략 32명 선에서 마무리 지어졌다. 설사 라크리마가 이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해도, 라크리마에게는 3류 마법학교 졸업장도 없으니 나갈수 없었다. 좀 많은 것이 아니냐? 라는 의견도 있지만 어차피 4강전 이상이 아니면 시간 제한이 있는데다가 이런 대규모 공식 경기에서 '지더라도 싸우겠다'라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하루 안에 어떻게든 끝날수 있었다. 첫번째 대결은 어디 대학에 처박혀서 연구하다가 나온 분위기의 노인 마법사와 화려하고 노출이 많은 적색 계통 의상의 여자 마법사. 노인 마법사는 에레스 마법대학의 교수인 다란 박사. 여자 마법사의 이름은 전문 마법 대전가인 캔디 블리스. 두 사람의 프로필 발표가 다 끝나고 대전이 시작되었다. "누가 이길것 같아요. 주인님?" "글세... 아무래도 난 박사 쪽일것 같은데. 역시 마법 주문을 더 많이 알테고, 마력도 더 강할것 같고..." "음... 마법 주문도 더 많이 알고, 마력도 더 높은 것은 확실해요. 하지만... 아마 이기는 것은 저 여자 쪽일꺼예요." "어째서?" 케리는 자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라크리마가 말하자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주문의 숫자도 더 많고 마력도 더 높은데 패배할 이유가...? 대련장에서는 케리의 의문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대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더 브레이크!" 콰과과과광! 교수는 먼저 선제공격을 걸었다. 과연 관록있는 마법사답게 상당한 위력이었다. 참고로 선더 브레이크는 6클래스 6서클의 고급 마법이다. 서클과 클래스라는 것은 이 세계에서 마법의 난이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클래스는 마법의 난이도. 서클은 사용에 들어가는 마력의 양을 의미한다. 클래스를 Y축, 서클을 X축으로 삼아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마법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당신이 고교시절 수학시간에 졸았다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모를수도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이 소설을 수학시간에 보고 있다면 일단 즉시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아니라면 클래스와 서클 숫자가 높아질수록 마법의 난이도가 높아진다라고 알면 된다.) 인간의 한계선이라고 하는 부분은 보통 9클래스 9서클 까지. 물론 어디까지나 최대의 한계선이므로 실질적으로는 6,7 정도가 일반적으로 활동하는 마법사들의 한계라고 보면 된다. 쓸데없는 설정 설명이 길었지만, 일단 선더 브레이크는 번개를 자신에게 내려 꽃은 다음 그 번개를 다시 적에게 발사하는 마법으로서 선더는 공격 위치의 제어가 쉽지 않다는 점, 라이트닝 볼트는 공격의 위력이 낮다는 점. 이 두가지 약점을 개량하여 두가지의 장점만을 혼합하여 만든 기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력소모가 너무 크고 마력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쉽게 쓸수있는 마법이 아니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치명적인 문제다. "라이트닝 월!" 여 마법사, 캔디는 선더브레이크에 대항하여 방어마법을 전개했다. 늦게 시작했음에도 여유가 눈에 보였다. 라이트닝 월은 번개의 벽을 치는 기술로서 4클래스 5서클 마법이다. 사실 방어효과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한가지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번개계통의 기술에 상당히 강하다는 것이다. 다란 박사의 선더 브레이크는 캔디의 라이트닝 월에 부딧치더니 라이트닝 월에 뒤섞여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바로 직후... "매직 미사일!" 1클래스 1서클의 가장 기초적인 공격마법, 매직 미사일이 캔디의 손에서 교수를 향하여 발사되었다. 하얀색 빛을 뿜는 마법의 화살은 공간에 은색의 실선을 그으면서 노 교수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이년..." "오호호호호. 영감탱이하고 오래 놀기는 싫으니까 덤벼보시라고!" 박사는 캔디의 도발에 휘말려서 상당히 동요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관중석의 케리는 자신의 예상과는 정 반대로 박사가 밀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보이자 눈이 휘동그래졌다. "어떻게 알아낸 거야 라크리마. 이런 식으로 흘러갈것이라는 걸..." "그거야. 대충 프로필을 듣고 실전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본 결과 알아낸 거죠. 돈이 많다고 도박에서 무조껀 이기는 것은 아니잖아요." "야. 이거 메이드 양이 굉장하군요." 그때 뒷좌석에서 한 사람이 케리와 라크리마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에밀은 길리엄이 사람이 많은 곳에 두면 또 도망간다고 여관에 잡아놓고 있었고, 라크레일은 인간들의 하잘것 없는 마법 대결에는 흥미없다면서 여관에 틀어박혀있었다. 좌우간 끼어든 그 사람은 20대 초반의 청년의 외모를 하고 있었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을 지닌 시원한 외모의 미청년이었다. 가죽바지와 짙은색 셔츠, 회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말하는 투는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 특징이라면 양쪽 귀가 길지는 않지만 끝이 뾰족하다는 것... 눈동자는 검은 색이었다. "저랑 내기 안하실래요? 메이드 아가씨. 아가씨도 꽤 잘맞추는가본데..."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접근하는 남자라고 생각하자 순간 질투심이 팍 치솟았다. 한편 교수와 여마도사의 대결도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교수는 번번히 강력한 마법으로 역전을 시도했으나 여마도사는 방어마법과 낮은 클래스의 공격 마법을 잘 활용해서 계속 교수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교수의 패배. "라크리마의 예상대로 되었구나..." "이 아가씨 이름이 라크리마인가 보군요. 아가씨 이름은 뭐죠?" 뒷좌석의 남자는 라크리마 뿐만 아니라 케리에게 까지 추파를 던졌다. "주인님께 접근하지 말아요." 라크리마는 남자를 뒷좌석으로 밀어버리고 케리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남자는 겸연쩍은 듯이 웃으면서 변명했다. "아하하하. 이거 제가 헌팅이라도 하려는 것 처럼 비쳤나보군요.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메이드 아가씨가 의외로 박식한것 같아서 흥미를 느낀것 뿐입니다. 제 이름은 마그너스 파르민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라크리마가 마법 대결에 대해서 확실하게 승패를 예측할수 있다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신기하게 비칠수도 있을 것이다. 케리는 약간 납득한듯 했지만... "아가씨 이름은 뭐죠?" '이놈은 나를 꼬시려 하고 있다.', 케리는 그렇게 확신했다. "케리, 케리 레그너스. 이쪽은 라크리마. 제 메이드 입니다." 하지만 이름을 물어보는 것 뿐인데 그대로 고개를 돌릴수도 없는 노릇, 케리는 이 정도에서 대화의 선을 끊으려고 했으나... "고향은 어디시죠? 이곳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결국 케리는 은근슬쩍 이 바람둥이에게 휘말려 들고 있었다. 케리가 바람둥이와 상대하고 있는 사이 몇개 시합이 훌쩍 훌쩍 지나가고 아마레의 차례가 되었다. 아마레는 입속에서 뭔가를 투덜투덜 거리면서 뾰로통한 얼굴로 걸어나왔다. 아마레의 복장은 금발머리에 잘 어울리는 노란 원피스. 보석으로 장식된 작은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있었으며, 무릅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원피스와 같은 색 장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도 같은 색의 끝이 뾰족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들고 있었다. 어린아이외모와 잘 어울리는 복장이었다. 마치 꼬마 마법소녀 같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아미! 아미! 아미!" "예. 12살의 천재 마법사 아미 양의 등장입니다!" 관중석에서 요란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아미라니...?" 어제 소개와는 다른 이름에 궁금해서 물어본 케리에게 라크리마는 귓속말로 소근 거렸다. "드래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일이 나잖아요. 아마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걸 꺼예요." 아미(아마레)는 첫번째 대전 상대를 가볍게 물리치고 곧바로 2차전으로 들어갔다. 심판이 휴식시간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하고서는... 그리고 각각 1차전에 승리한 캔디와 아미의 대전. "흥. 재수없어. 휴식시간도 거절하다니. 건방진 기집애." 캔디는 눈을 흘기면서 외쳤다. "어머나. 아줌마를 상대하는데 휴식 시간 같은 것은 필요없어요!" 아미는 귀엽게 웃으면서 상대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날렸다. "아.. 아줌마라니 난 아직 처녀야!" "그럼 노처녀네~♡" 느닷없이 시작된 설전 관객들은 재미있는 일이라면서 웃어댓다. "...흐... 흥. 아직 젓도 떼지 못한 어린애가. 그 납짝한 가슴이 조금은 나오도록 언니가 찌찌줄까?" 캔디가 가슴을 흔들 흔들 거리면서 도발을 걸었다. 관중석에서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헤엥. 그렇게 축 늘어진 가슴은 필요없어요~♡" 아미는 한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반격했다. 그 바람에 스커트가 올라가면서 아미의 새하얀 면 팬티가 쨘 하고 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었다. "엄마야. 치마가..." 아미는 괜히 부끄러운 척 하면서 스커트를 허둥지둥 내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캔디의 도발때보다 몇배나 되는 환호성이 관중석에서 터져나왔다. 심지어는 기절하는 관중도 있었다. "져...졌다... 로리콘이 이렇게 많을줄이야... 이래서야 이겨도 의미가 없어..." 캔디는 기권패. 물론 제대로 싸우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미를 이길 마법사가 인간 중에 있을리가 없었다. 마침내 아미는 결승전에 올랐다. "에... 아미 선수의 결승전 상대는... 이 대회 3연패를 자랑하는 마법사로서... 이번 대회에서는 대전 상대가 되는 선수들이 모두 기권해버리는 탓에 부전승으로 결승까지 올라온..." 선수소개가 나갈때 다시 파르민이 말을 걸어왔다. "라크리마 아가씨. 누가 이길것 같습니까." 라크리마는 방금전에 산 팝콘을 씹으면서 중얼중얼 거렸다. "역시 아미가 이기겠지요." "흠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틀렷어요. 승자는..." 파르민은 관중석 앞으로 뛰어오르면서 소리쳤다. "바로 접니다!" "마그너스 파르민 선수! 관중석에서 등장합니다." 파르민은 관중석에서 시합장으로 비행 마법을 써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아가면서 가끔가다가 화염계 마법으로 주위에 불꽃을 터트리면서... 시합장에 도착한 순간에는 주위 사방에서 번개가 내려꽃혓다. 모두 마법으로 만든 특수효과 연출이었다. "꺄아아아아. 파르민 오빠!" "너무 멋져!!!" 관중석에서 여성 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파르민은 품 속에서 장미를 꺼내더니 케리를 향하여 던졌다. 보통이라면 날아갈리 없지만 역시 마법의 힘... 관중석의 케리 까지 무사히 안착했다. "당신에게 승리를 바치겠습니다." "에엑?!" "뭐야 저 기집애는...재수없어 정말." "칫... 파르민 오빠의 승리의 장미를 받다니..." 파르민의 뜻밖의 행동과 주위에서 들려오는 여성 팬들의 수근 거림에 케리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어쩔줄을 몰랐다. "............" 이 엄청난 돌발 상황에 라크리마 마저 정신을 잃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결국 케리를 향한 수근거림은 라크리마의 일갈에 진정되기는 했지만, 케리에게 따갑게 꽃히는 시선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시합장에서는 겨우 상황이 진정되고 아미와 파르민이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 주제에... 나보다 더 튈려고 하다니! 용서할수 없어!" "후후후. 꼬마 아가씨도 꽤 귀엽군요. 하지만 지금은 엉덩이를 때려줘야겠죠?" 그리고 시합 개시.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④- 파르민과 아미의 대결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라크리마. 아무래도 아마레... 아니 아미가 이기겠지? 그래도 드래곤 이니까..." "알수없어요." "뭐?" 케리는 라크리마의 대답이 자신의 예상과 어긋나자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미도 라크리마와 같은 드래곤인데 어째서 마법 대결에서 인간에게 진단 말인가? "아미는 분명히 9클래스 이상의 마법도 쓸수있고 마력도 9서클 이상이예요. 하지만... 저 파르민이라는 자. 그것을 충분히 알수 있을 만한 경지에 있는데도 저렇게 자신 만만 하다는 것은..." "...그럼 설마 드래곤 보다도 강한 마법사가 있다는 거야?" "글세요..." 라크리마는 예상치 못할 상황에 부딧치자 불안해 했다. 아미는 파르민이 자신 만만한 것이 영 불쾌한 모양이었다. '강한 마법으로 단번에 끝장내버려야지!' 마법대결에서 무턱대고 강한 마법만 쓰는 것은 금물이다. 높은 클래스와 서클의 마법일수록 위력도 세지지만 반대로 사용에 걸리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아미도 물론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드래곤 이었다. 아직 그녀는 결승전 까지 오면서도 힘의 10%도 내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여유만만한 상태. "체인 선더 브레이크!" 아미를 향하여 5,6개의 번개가 동시에 떨어졋다. 번개는 그녀 주위를 맴돌다가 허공에 맹렬한 기세를 흩날리면서 파르민에게 날아갔다. 체인 선더 브레이크, 8클래스 8서클 마법으로서 선더 브레이크 몇방을 한꺼번에 날리는 초고급 기술. 이런 기술을 순식간에 사용할수 있는 아미를 본 마법사들은 모두 엄청나게 놀랐다. 어떻게 저런 어린애가 저 엄청난 마법을 저렇게 쉽게 구사할수 있단 말인가? 실로 천재중의 천재라는 말을 들어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몇달전 이 도시에 나타난 아미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많은 마법사들이 백방으로 조사를 했으나 전혀 정체를 알수없었다. 슬슬 고대의 마녀가 어린 아이 모습으로 변신을 해서 다닌다던가, 사실은 마족이라던가 하는 소문이 돌고 있던 차였다. '이 시합만 끝마치면 집에 다시 돌아가야지. 라크리마도 저렇게 빼고있는데 괜히 이런데 오래 있다가 들키면 나중에 안좋아.' 하지만 파르민은 쉽게 그녀를 보내줄 생각이 없었나보다. "아크 실드!" 7클래스 9서클에 달하는 초강력 방어마법. 장대한 빛의 방패가 파르민의 앞에 나타나 아미의 체인 선더 브레이크를 완벽하게 막아내었다. 파르민의 회색코트가 어지럽게 흩날렸다. "꺄아아아아아악!" "파르민 오빠 그 건방진 계집애를 뭉개버리세요!" 몇달전 이 도시에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마법사 파르민은 무수한 소녀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소녀들의 환호성에 파르민은 방어를 하면서도 살짝 손을 흔들어서 답례를 했다. "말도안돼! 그 공격을 막아내다니!" 방금전의 공격은 8클래스 8서클이었지만 실제로는 마력을 2,3서클 정도 더 들어부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10클래스에 필적하는 위력이 있었다. 그것을 '인간' 마법사가 막아내는 일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혼란 상태에 빠진 아미에게 파르민은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살짝 속삭였다. "아직 어려요. 아가씨.. 고작 1000살을 갓 넘은 드래곤으로서는 강한 편이라지만..." '내 정체를 알고 있다?!' 아미가 당황해 하는 사이에 이번에는 파르민의 공격이 펼쳐졌다. "메가 프레임 스트라이크!" 6클래스 7서클의 화염계 공격 마법. 거대한 불기둥이 아미를 향하여 날아왔다. "아... 아이스 월!" 얼음의 장벽을 펼쳐서 허둥지둥 방어하는 아미였지만 위력 판단을 잘못했다. 얼음 장벽은 불기둥 앞에 여름날의 아이스크림 처럼 녹아내렸고, 나머지는 시합장의 방어마법진에 막혔지만 아미에게도 상당한 타격이 왔다. "웃!" 아미가 움츠려든 틈을 파르민은 놓치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간단하게 당할 그녀가 아니었지만, 예상외의 상황에 맞부딧치자 드래곤으로서는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성숙되지 않은 정신을 그대로 노출해서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파이어 볼! 라이트닝 볼트! 아이스 애로우!" 불꽃과 번개와 얼음, 3속성 마법이 연달아서 아미를 향하여 날아갔다. 파르민은 아미가 정신을 차리고 반격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애초에 두 사람의 실력차는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인간이나 골려볼까'라는 기분으로 놀고있던 아미는 진짜로 '마법 전투'를 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탓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자 겉잡을수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미는 한계 데미지 수를 넘어서 완패해버렸다. "하악..." 여지껏 게임을 하는 기분으로 대결해온 그녀는 처음 대한 '실전'의 스트레스에 짓눌려 완전히 탈진해버렸다. 파르민은 쓰러지려는 아미를 부축해서 시상대로 데려갔다. 놀라울 정도로 압도적인 그 둘의 마법 대전에 넋을 잃고 지켜보던 심판들은 겨우겨우 정신을 차려서 서둘러 시상식을 끝냈다. "라크리마.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케리는 시합이 끝나자 마자 라크리마의 손에 이끌려 선수대기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라크리마는 파르민의 이해못할 정도의 강함의 이유를 눈치채고 있는듯 했지만...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우선 선수대기실에 가는 것이 급해요." 대기실 문 앞에 도착한 라크리마는 그제서야 설명을 시작했다. "...저희 드래곤 족은 마법과 육체 면에서 이 세계 최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저희들과 대적 가능한 종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죠." "그럼...?" "마법 면에서는 저희와 대등한 종족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라크리마는 대기실 문을 열어젓혔다. 안에는 역시나 파르민이 있었다. 그 옆 자리에는 넋이나가서 앉아있는 아미, 아니 아마레도 함께... "...마족...그것도 거의 마왕급..." "역시 맞추셧군요. 스톰 드래곤 양.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이 골드 드래곤 아가씨를 거의 데려갈뻔도 했는데..." 파르민의 몸에서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가... 마계의 기운이었다. 케리는 파르민을 노려보는 라크리마의 등 뒤에 몸을 숨겼다.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그것도 마왕급의 마족이? 아미에게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아하하 진정 하세요. 아가씨. 실은... 저는 놀이를 겸해서 아르바이트를 나왔을 뿐입니다. 우연히 이 골드 드래곤 아가씨와 대결하게 되서 저도 약간 놀랐습니다만..." "아미를 돌려줘. 지금 당장 이쪽으로 건네주지 않으면 본체로 현신할테다." 본체로 현신하겠다는 말을 듣자 파르민의 싱글벙글 웃던 안색이 약간 굳어졌다. "...아하하하. 본체라... 그런 짓을 하면 이 일대의 사람들이 무사하지 못할텐데..." "상관없어. 인간 몇 마리를 걱정하다가 아마레가 잡혀가게 하는 것 보다는 낳겠지. 지금 당장 아미에게서 떨어져서 텔레포트 해서 사라져버려!" 라크리마는 지금 당장이라도 변신할 것처럼 마력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파르민은 그제서야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거 참... 마법 대전사 노릇도 재미있었는데... 수입도 꽤 짭짤했고... 하지만 여기까지 인것 같군요. 마법에 의지하는 골드 드래곤은 2000살이라도 그렇게 두렵지 않지만, 당신들 스톰 드래곤은 무서우니까요. 그럼...텔레포트!" 파르민이 외투를 한번 펄럭이자 그의 모습이 샥 하고 사라졌다. 방 안에 가득 퍼져있던 마기도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라크리마는 아미에게로 다가가서 몇번 툭툭 쳐 보았다. 다행히도 그냥 잠든것 뿐이었다. "...저기 라크리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저 마족은 대체 뭐지? 왜 마족이 여기 있는 거야?" 라크리마는 불안해 하는 케리에게 몸을 돌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마족이 왜 여기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중요한건 저 마족이 아마레를 납치할뻔 했다는 것이죠." "왜 아마레는 전혀 반항하지 않은 거지?" "시합에서 패배해서 잠깐 얼이 빠진 사이에 홀린 거예요. 저 마족에게는 아무래도 잉큐버스 종족의 피가 흐르는 모양입니다." 인큐버스, 여자를 홀려서 마녀로 만든다는 전설이 있는 마족이다. 케리는 그럭저럭 납득한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있었다. "마족이 왜 드래곤을 납치하는데?" "그건...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사실 납치 당하는 드래곤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일단 마계로 잡혀가고 난 뒤에는 생사조차 알지 못하게 된 드래곤도 있기는 해요. 마계가 어떤 세계인가는 저희들도 잘 알지 못해요. 단지 마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조직이나 종족을 불확실하게 아는 정도?" "으음... 라크리마도 잘 모르는게 있는 거구나. 그런데... 아까 전에는 왜 현신한다고 한거야? 그리고 골드 드래곤이 약하다니?" "마족은 마법 면에서는 우리와 대등해요.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우리가 훨씬 강합니다. 특히 우리들 스톰 드래곤의 육체는 모든 드래곤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할만 하지요. 그들에게는 마법력이 뛰어난 골드 드래곤 보다 우리 스톰 드래곤이 더 어렵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당연히 골드 드래곤이 우리보다 약하다는 의미는 아니예요." "그렇구나..." 케리는 라크리마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마레를 안아 올렸다. "저기 뭐하시는 거예요? 주인님."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안되겠지? 일단 우리 방에다가 옮겨두자." "예. 그래요. 주인님." "느닷없이 마족이라니..." "그것도 소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던 마족이라..." 라크레일과 길버트, 에밀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케리에게 시합장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다. "내가 있었다면 박살을 내줄텐데... 누나 왜 날 안부른 거야?" "녀석이 마족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 선수대기실로 돌아갈 때 정도였으니까... 갑자기 현신해서 공격할수도 없고..." "끄응... 이 인간의 도시란건 너무 귀찮아." 인간 입장에서 보자면 마치 개미집 안에 들어와있는 꼴이다. "그런데... 또 쳐들어 오면 어쩌지? 라크리마." 케리는 마족과 갑자기 만나게 되자 상당히 놀란것 같았다. "걱정마세요. 케리님. 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 꺼예요." 라크리마의 위로를 듣고도 케리는 아직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여관방의 문 밑으로 편지가 밀려들어왔다. "누구야?" 라크레일이 문을 열고 좌우 복도를 살폈지만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을 뿐이다. "...뭐지 이 편지는? [파르민에게서...]라고 써있어." 케리는 조심조심 편지를 들어올렸다. "위험합니다 주인님. 제가 펴볼께요." 라크리마는 케리에게서 편지를 받아서 봉투를 뜯은뒤 안에다가 손을 넣었다. "아얏!" 갑자기 라크리마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을 뺏다. 라크리마의 손 끝에서 빨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 케리는 허둥지둥 라크리마에게 달려갔다. 다행히 손의 상처는 별로 깊어보이지 않았고, 라크리마는 바로 치료마법을 걸었지만... "며... 면도날이 들어있어요." "무슨 저주가 걸려있는것은 아닐까?" 에밀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지만 라크리마는 그런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라크레일은 누나의 손가락을 다치게 한 면도날을 밉살스럽다는 듯이 밟아 뭉개버린뒤 조심조심 땅에 놓여있던 편지지를 들어올렸다. "헉!!!" "왜그래? 라크레일." "못읽겠어..." 라크레일의 대답에 일행은 그를 멍청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곧 그 대답이 당연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편지의 내용은... 정말 이해할수 없는 문구들이었다. ==================== ㉪ㅔ㉪ㅔ㉪ㅔ㉪ㅔ㉪ㅔ 2미치-ㄴ 年㉻ 亞poんㅣ? ㅡoㅡ++/ E거슨 복ㅆ㉰. 울 파르미ㄴ 어빠韓테 tail친 복수. ㅋㅋㅋ 떠 파르미ㄴ 어빠韓테 젘근㈛면 알쥐? 그롬 빠. ==================== "이게 뭐지? 혹시 엘프어야?" "아뇨. 전혀 틀린데요." "그럼 드래곤 어?" "아니요. 이런게 드래곤어일 리가..." "혹시 인간 쪽 언어 아냐?" "전혀. 그럴리가 없어." "그럼 마계어인가..." "....세상에..." 영영 풀지 못할지도 모르는 수수께끼가 그들 앞에 던져졌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⑤- 갑작스러운 마족 출현. 케리는 이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마치 꿈을 꾼것만 같았다. 그렇다. 지금이라도 깨어나면 옆에 라크리마가 누워서... '피식...' 옆 자리에 누워있는 라크리마를 보면서 케리는 방금전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비웃었다. 대체 무엇이 꿈만 같단 말인가? 어느날 갑자기 스톰 드래곤이 날아와 자신을 메이드로 섬기게 된 것. 그 동생의 저주로 자신이 여자가 된 것. 모든 것이 보통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완전히 꿈같은 사건이 아닌가? 그리고 라크리마가 안고 자고 있는 골드 드래곤 여자애도... 이쯤 오면 마족은 커녕 마왕이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은 기간틱 아머 대전회. 케리는 덩치가 6미터에 달하는 전투의 화신, 국지전면전대응기동전투용완전전천후만능인간형거대마법구동갑주 기간틱 아머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시합이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다만 비가 좍좍 내리는 와중에 구경을 해야 한다는 것 뿐... 결국 이 일정은 취소하고 오늘은 그냥 쉬기로 했다. 아무리 멋진 구경이라지만 비를 맞으면서 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주르륵 주르륵... 구경하러 갈 마음을 깨끗이 달아나게 만드는 음습한 빗소리가 방안까지 울려퍼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마레는 이미 일어나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뚱하게 앉아 있었다. "어딘가 이상해진 것은 아냐?" 케리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살짝 라크레일에게 물어보았다. 라크레일은 피식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럴리 없어. 아마레 누나는 언제나 저래. 라크리마 누나한테 도움 받고 난 뒤에는 언제나 저렇게 뚱하게 있는다니까. 자기가 라크리마 누나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저러는 거야." 아무래도 좋지만 아무리 봐도 10대 중반 정도 외모인 라크레일이 잘 쳐줘야 10대 초반인 아마레를 '누나'라고 부르는 것은 좀 이상한 모습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300살 가까이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저... 저기..." 깨어난지 몇시간 동안이나 돌부처, 아니 돌소녀상 처럼 묵묵히 있던 아마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해 라크리마! 고생 시켜서!" 드디어 고마움을 표하는 아마레의 얼굴은 부끄러움 때문에 피가 몰려서 터질 것 처럼 빨갛게 되어있었다. "...무슨 소리야. 괜찮아. 그런 것은..." "라크리마...정말 고마워. 난 그렇게 차갑게 대했는데 마족에게 잡혀갈뻔한 나를 구해주다니..." 따듯하게 맞아주는 라크리마의 한마디가 아마레의 눈물샘 꼭지를 열어놔버렸다. 눈이 큰 만큼 눈물샘도 큰 건지 아마레의 눈에서는 눈물이 퐁퐁 쏟아졌다. "고마워... 네 부탁이라면 뭐든 한 가지만 들어줄께." "거짓말 아니지? 그럼 나랑 같이 메이드 하자." "......잠깐..." 아마레는 자신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닳은것 같았다. "나한테 변태 드래곤 이라고 부른 것. 아직도 잊지 않고 있어. 그러니까 너도 같이 변태가 되는 거야 아마레~" 라크리마는 어디서 꺼냈는지 아마레의 사이즈에 딱 맞는 메이드 복을 꺼내더니 아마레에게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었다. "싫어어어어!" 마치 먹이줄에 걸린 거미가 발버둥 치듯이 아마레는 라크리마의 손길을 피하려 했으나, 아 불쌍한 지고... 소녀가 라크리마의 손에 의해서 알몸이 되는 것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벗기지마! 이런데서! 라크레일도 네 주인도 다 보잖아!" "이제는 '내 주인'이라고 해야지! 아마레. 그리고 그 몸매에 볼것이 어디있어?" 확실히 케리는 아마레의 유아체형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있을 뿐이지만, 라크레일은 지긋이 지켜보고 있었다. 라크레일의 눈동자는 아마레의 아직 브레지어도 하지않은 아니 필요없는 평평하지만 부드러운 가슴. 장식하나 없는 새하얀 면 팬티를 눈에 새겨두려는 것처럼 유심히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었다. 이 녀석... 의외로 여러가지로 변태인 것은 아닐까? "라크레일! 뭐해 너도 도와!" "오옷! 알겠어 누나!" 반항하는 아마레 때문에 옷 갈아입히는 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자 라크리마는 라크레일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라크레일은 당연히 흥쾌한 승락의 말과 함께 거미 새끼 처럼 아마레에게 달려들었다. "아냐...! 저녀석 만은 절대 싫어!" 두 사람의 손에 의해서 갈아입혀지는 아마레는 거미의 양 앞발에 사로잡힌 나비 같은 모습이었다. 결국 아마레는 라크리마의 손에 의해서 메이드 복장이 되버리고 말았다. 까만 메이드 복에 하얀 앞치마인 라크리마와는 달리 앞치마는 노란 꽃무늬였지만... "씩...씩...씩..." 처음에는 시큰둥 하던 케리도 메이드 복으로 갈아입자 왠지 귀엽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고, 라크레일은 왠지 모르게 고개를 끄떡끄떡 거리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법소녀도 좋지만 메이드 복도 괜찮군' 이녀석... 언젠가는 일낼 놈이다. "자. 인사해!" 결국 아마레도 케리의 메이드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주... 주인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응. 잘 부탁해." 케리도 얼떨결에 하녀 하나를 더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편, 토너먼트 대회가 열리던 콜로세움 에서는... 주르륵 주르륵 내리는 비 만큼이나 상당히 꿀꿀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대회 개최자인 에레스 대공, 에레스 4세는 일단 나와서 보고 있었지만 영 심기가 편치 않았다. 문제는 역시 비였다. 물론 비가 온다고 해서 기간틱 아머의 활동에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간틱 아머는 모든 전장에 최대한 대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에 늪지도 지나갈수 있기는 했다. 따라서 대전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기간틱 아머에 탑승한 기사들도 다들 수중전이라도 할수있는 몸이었다. 고작 '비가 내린다'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토너먼트를 포기할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문제는...관중이었다. ......기사들이야 열심히 시합하고 싶다. 예쁜 아가씨들에게 갈채도 받고 싶고, 꼬맹이들에게 동경의 시선도 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 우산까지 쓰고 나와서 관람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대단한 토너먼트 대회인 만큼 관객석 사이사이에 빈 자리가 몇개씩 이빨 빠진 것 처럼 보이는 정도지만, 전날과 비교해보면 내리는 비에 열기까지 꺼진 것 처럼 연기만 풀풀 날리고 있었다. 응원소리도 비소리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덤으로 상인들 까지 울상이 되어버렸다. 전쟁이라면 모를까 시합을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열심히 하고 싶은 기사도 별로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도 기사랍시고 죽어라 기간틱 아머를 움직였지만, 두어시합 하고 나자 슬슬 다들 기운이 빠진다. 조종자가 기운이 빠지니 기간틱 아머라고 예외일리가 없다 시합에 활기가 전혀 없다. "빌어먹을 놈의 비..." 비구름을 솜사탕 먹듯이 씹어먹고 싶어져버린 주최자인 에레스 대공은 자신들의 이 대회를 시기해서 슈레인 공국에서 비내리는 마법이라도 써버린 것은 아닐까? 라고 근거없는 억측까지 들었다. "바람잡이라도 동원할걸 그랬습니다. 전하. 지금이라도 동원할깝쇼?" "아니 됐다. 백성들이 전부다 활기를 잃었는데 바람잡이 몇놈 가지고 되겠느냐." 시종장의 아첨석인 말에 에레스 대공은 툴툴하게 대답했다. 아첨같은게 섞인 말을 듣자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빠진것 같았다. 기분 맞추기도 때와 장소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결국 이 대회의 하일라이트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기간틱 아머 대회는 상당히 푸석푸석 하게 끝나버렸다. "하암. 오늘은 날씨가 활짝 개었네." 전날 에레스 대공의 뭐 씹은 것 같은 기분을 더욱 조롱하듯이 바로 다음날이 되자 날씨는 화창하게 개어버렸다. 어제의 꿀꿀한 기분처럼 거리에 남아있던 빗물은 아침 햇살이 채 따가워 지기도 전에 바짝 말라버렸다. 라크리마의 기분도 활짝 개었다. 특히나 후배가 들어와서 더더욱... "자자. 어서 청소하라고. 아마레." "오늘 떠날건데 여관방 까지 청소해줄 필요는 ..." "선배의 말을 뭘로 듣는 거야?" "미 미안해요...선배님" 그날 아침의 상황은 아마레는 신참 메이드. 라크리마는 고참 메이드. 라크리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마레의 기를 잡아놓고 있는 중이었다. 왜 이렇게 아마레는 라크리마에게 복종하는 것인가? 싸우면 이길수 없는 상대도 아닌데? 그것은 드래곤 족의 성격에 관련된 문제다. 드래곤 족은 신의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다. 설사 그 약속이 어떤 상황에서 맺어진 것이라도 일단 약속을 했으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 하게 되지 않는 이상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개별적인 드래곤의 성격이 아닌, 드래곤 족 모두에게 공통되는 요소중 하나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런 경향이 아주 강하다. 이것은 어쩌면 창조신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세계 최강의 종족인 드래곤 족, 그들이 제멋대로 날뛴다면 다른 생명들이 입는 피해는 말로 표현할수 없을 것이다. 아니 표현할 말이 남지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들은 강대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아닌 바로 '마음'에... 그들의 마음 속에 이러한 잠재적인 금제가 걸려있는 것이다. ...하긴 이런게 있어도 충분히 멋대로 날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지만... 어쨋든간 한번 약속해버린 탓에 아마레는 라크리마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소리는 입밖에 내는것도 아니었어 잉잉...' 아아 아마레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울고 있었다. 어린 소녀가 서럽게 우는 모습이다. 정말 불쌍해보였다... 물론 라크리마도 드래곤이지 악귀가 아닌 만큼 불쌍하다는 생각은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 꽉 잡아놔야 나중에 편하다]라는 생각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밟아놓을수 있을때 실컷 밟아놓으려는 걸지도... 어쨋건 아마레는 라크리마가 시킨 대로 할 필요가 전혀 없는 일들을 실컷 해야 했다. 심지어는... "저기 케리님..." 아마레는 이제 일어난 케리에게 흙빛이 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아. 아마레 무슨 일이야?" "라크리마 선배가 세수를 시켜드리고 이빨을 닦아드리고, 화장실에 다녀오신 다음에는 뒷처리도 해드리라고 명령을..." 거의 치욕적으로 보일 정도로 케리의 잘자구레한 사생활 처리 까지 맡긴 것이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어." "예!"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은 자신조차 부끄러워진 케리가 거절하자 아마레의 얼굴은 순식간에 환하게 피어났다. "케리님. 이렇게 다잡아 놔야 한다구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까지 하는 건 좀..." "...뭐 케리님이 그러시다면야..." "그것보다. 라크리마. 어서 무투회 출장 준비를 하자." "예!" 드디어 케리도 관중석에서 시합장으로 그 자리를 옮길때가 된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7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⑥-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의 마지막 날 경기인 보병 전투대회. 이 대회는 '토너먼트'라는 대회 이름에 걸맞지 않게 토너먼트와는 전혀 무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회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패싸움이다. 등록한 선수 모두가 콜로세움에 들어가서 대난투를 벌이는 것이다. 전투 불능이 된 선수는 종자들에 의해서 바깥으로 들려나가고,(종자가 없으면 거의 대부분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다...;;;) 결국 마지막에 10여명이 남게 되면 전투중지가 선언되며 그들을 승자로 시상하는 것이다. 무기는 일단 날이 없는 종류(칼이라도 날을 세우지 않으면 쓸수있다.)로 한정되어 있었고, 갑옷을 완전히 착용한 상태로 경기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규칙은 없다. 의도적으로 살인을 시도하지 않는한 괜찮다고 되어있지만, 우발적인 살인이 일어난다고 해서 막을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다. 실제로 이 대회에 출전해서 복수를 꾀한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한두군데 부러지는 것은 물론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정말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경기다. 이 대회는 초대 에레스 공왕이 처음 연 것인데 당시에는 진짜 무기를 써서 거의 진짜로 난투를 벌이던 경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나와서 지금 정도로 완화된 것이다. 진짜 살벌하기 짝이없는 대회였는데 지금은 좀 나아진 셈... 최근 들어서는 아예 존폐논란이 벌어질 정도다.[...] 이런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니 라크리마의 마음 고생은 이만저만 심한 것이 아니었다. "저기 주인님..." "응...?" "정말 보조마법이랑 방어마법 안 걸어드려도 되요?" 라크리마는 경기장에서 대여한 갑옷(꽤 비쌋다. 괜히 출전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을 케리에게 입혀주면서 계속 힘이나 속도, 방어력을 올려주는 마법을 걸려고 했다. "끄응... 그런걸 걸게되면 공평하지가 않잖아..." 케리는 '이렇게 할 꺼면 애당초 실전 수행이랍시고 말하지 말던가...'라면서 투덜투덜 거렸다. "하지만... 이거 정말 위험한 대회 같아요." "그래도 할수 없잖아. 이런 경험은 쉽게 할수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하지만..." "라크리마. 설마 이거 풀 플레이트 아머(전신을 덮는 철판 갑옷)야?" "당연하죠." 이야기 하는 사이 케리의 온 몸은 갑옷으로 덮혀버렸다. 머리에는 투구까지 씌워졌다. "으음... 갑옷이라곤 브레스트 아머(가슴만 덮는 갑옷) 정도 밖에 입어본 적이 없어서... 되게 불편한데..." "하지만 이거 안입으면 정말 위험해요. 다른사람도 다 이렇게 입어요. 무기는... 이 바스타드 소드가 좋겠어요." 라크리마는 역시 대여해온 무기를 떠밀어 주었다. "저기 다른 사람도 이렇게 입는다면 칼 보다는 메이스 같은게..." "글세 뭐. 어차피 서로 죽이려 하지는 않을테니까..."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방패와 무기를 들려주었다. "으윽... 거 걷기도 힘들어..." 케리는 엄청난 무게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비틀 비틀 걸어갔다. 만약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일어서지도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시합에서 '누워있다.' 라는 것은 일단 '나는 포기했어'라는 의미이며 쓰러진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쓰러진 사람은 싸울만 하면 일어서거나 그대로 기어서 바깥으로 나가도록 규칙이 지정되어있다. 시합용으로 특별히 두꺼운 것을 빌려오다 보니 여자가 되면서 근력도 떨어져버린 케리에게는 너무 무거운 갑옷이었지만... 결국에는 라크리마가 힘 증가 마법을 걸어줘서 겨우 케리는 움직일수 있게 되었다. 그 시점에 라크리마는 케리 몰래 다른 마법도 하나 걸어두었지만 그것은 일단 비.밀. 시합장은 내려쬐는 햇살 만큼이나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에네스 공왕도 가득 차서 활기가 넘치는 관중석을 보면서 어제의 꿀꿀한 기분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선수들도 살기가 등등 했다. 여러나라에서 모인 기사와 용병들이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고 칼을 갈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아 실제로 칼을 갈아서는 안된다. 날이 없는 무기만 허용되니까... 케리는 풀 플레이트 아머에 바스타드 소드, 라운드 실드(둥근 방패)까지 들고서 말 그대로 [완전무장] 상태로 있었다. 옆에서는 라크리마가 갑옷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잘못입힌 부분은 없나 찾아보고 있었는데... 케리는 자신의 복장이 약간 창피했다. 주위를 살짝 둘러보니 케리처럼 완전 무장한 녀석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라크리마, 전부다 이렇게 입는다니... 거짓말 했구나...!' 물론 다들 나름대로 방어구는 갖추고 있었지만, 풀 플레이트 아머를 무식하게 차려입은 녀석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체인 메일(사슬갑옷)이나 체인 메일을 부분 플레이트 아머(철판 갑옷)로 보강한 정도...? 하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차려 입는지는 전부다 보지도 않은 라크리마가 알리도 없는데 섣불리 믿은 케리가 잘못이었다. 케리는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서 혹시 자신이 아는 얼굴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았다. 비록 실패투성이였지만 나름대로 모험자 생활도 몇년이나 했으니 하나쯤 아는 얼굴이 이런데 나올 지도... 라고 생각하고 돌아본 케리였는데...결국 하나 찾고 말았다. "!!!!" "왜 그래요 주인님?" 라크리마가 갑옷 위로도 알아챌 만큼 케리는 몸을 떨면서 놀랐다. 그가 절대 잊을수 없는 얼굴이다. 에마 레그너스. 케리의 여동생... 그녀가 같은 시합장에 있었던 것이다. "에마야... 에마라고. 어쩌지? 라크리마?" "에마 아가씨? 아! 에마 아가...읍!' 에마를 부르려 달려가는 라크리마를 케리는 급히 말렸다. "에? 왜 잡으세요 주인님?" "...아니 생각해보니까... 지금은 여자가 되버렸잖아. 이런 모습으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할꺼야...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을 에마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아. 라크리마도 모른척 해줘." "예..." 라크리마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갑옷 손질에만 열중했다. 마침내 시합 개시 직전. 라크리마는 시합장 가장자리에 처진 목책 너머의 종자 대기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라크레일과 아마레, 에밀, 길리엄은 관중석에 있었다. 가끔 아마레를 알아본 그녀의 팬들이 아마레의 메이드 복장에 화들짝 놀라고 지나가는 일도 있었는데... 케리는 대기 장소에 섯다. 유명한 경기지만 너무 살벌한 탓에 시합에 참가한 인원은 200여명 정도. 상대들을 하나하나 지켜보면서 케리는 자신이 가진 전투기술을 생각해보았다. 지금 그가 가진 것은 할아버지에게 배운 기초 검술, 케리도 모험담에 나오는 여러 유명한 용사들 처럼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전에서 거의 도움이 안된다는 것은 처음 모험에서 알았다. 그리고 라크리마가 가르쳐준 소닉 블레이드 계통의 기술 몇가지. 이것은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 아직 미지수다. 생각해보니까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 동안 자신이 먼 발치에서라도 바라보고 동경했던 모험가들과 비교해보면 아직도 천지차이의 실력이었다. 라크리마는 실전에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막막하다. 아무리 라크리마라고 해도 인간의 실전 전투까지 가르쳐주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자신이 할수밖에 없다. 이 단계는 자신이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남자답게... ...하지만 자신의 허전한 아랫도리에 생각이 미치자 또 자신감이 사그러들었다. 라크레일은 하필 저주를 내려도 이런걸... 빰빠라밤빰빠밤빠~ 둥둥둥둥둥둥둥둥~ 결국 케리의 심리 상태와는 무관하게 시합 개시를 알리는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으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200여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고 서로 상대를 찾아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기선 1대1격투를 바래서는 안된다. 언제 등뒤를 얻어맞고 고꾸라 질지 모르니... 케리는 일단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아무데로나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은 등 뒤를 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등뒤를 열심히 경계하면서... 그러다가 마침 한 기사를 밀어붙이고 있는 또 한 용병이 보였다. 기사도 케리와 비슷하게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용병은 체인 메일에 브레스트 아머만 입고 검와 방패를 들고 있었다. 케리는 달려가면서 바스타드 소드를 써서 용병의 등을 세차게 후려갈기고 지나갔다. 용병이 고통스러워 하는 사이 기사는 용병을 발로 차 쓰러뜨려 제압했다. 니편 내편도 없으니 할수없는 일이다. 경기장 사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케리가 숨이 차게 달리면서 몇 명을 쓰러뜨릴 사이 경기장에서는 수십명의 부상자와 수십명의 탈락자가 발생하였다. 아마 사망자도 몇명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만... 어느새 절반 가까이 줄어서 이젠 선수들의 숫자는 100여명. 이제 슬슬 싸움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일단 무조껀 옆에 있는 녀석을 쓰러뜨리는데 집중하던 전사들이 이젠 하나 둘 짝을 이루어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쩌다 보니 2대1, 3대1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미리서로 알고있던 사이도 있는듯 했다. '라크레일이라도 데려올껄 그랬나...' 숨이차서 헐떡이면서 케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에 무조껀 뛰어다니면서 하나하나 쓰러뜨리는 전술은 뒤에서 급습을 받는것은 방지할수 있었지만 체력 소모가 너무 컷다. 하다못해 등뒤를 맡길수 있는 동료라도 있었다면... 특히나 등뒤에서 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계하는 것이 제일 신경쓰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도망쳐다닐수만도 없었다. 벌써 케리도 세명의 용병에게 집중공격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도망치다가 보니 경기장 주위에 세워둔 목책 바로 근처까지 와버렸다. 여기를 넘어가면 케리는 탈락당한다! 세 용병은 복장은 제각각이지만 서로 호흡이 잘 맞는 것을 보아 원래 알던 사이인듯 했다. 그래도 목책을 등지게 되자 등쪽만은 약간 안심할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힐끗 둘러보니 케리 말고도 목책을 등지고 싸우는 전사도 하나 둘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 메이스와 도끼, 투 핸드 소드 세개의 무기가 케리를 노리고 있었다. "크크크크크. 여자는 집에서 애나 볼 것이지." 한 용병이 도끼로 케리를 위협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무겁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성용 갑옷인지라 케리가 여자라는 것은 밖에 다 들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막상 듣게되자 케리는 자존심이 팍 구겨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비상상황에는 비장의 수를 쓸수밖에...!' 케리는 오른손의 바스타드 소드를 왼손으로 옮겨잡은뒤 오른손을 몇백번이나 연습했던 그대로 휘둘렀다. "소닉 브레이크!" "아이고!" 음속의 충격파가 도끼를 든 용병을 날려버렸다. 용병은 가슴에 큰 충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져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이... 이녀석 오라 그래듀에이트!" "조.. 조심해.. 여자라고 얕볼게 아냐..!" 다른 두 용병은 메이스와 투 핸드 소드를 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물론 케리는 오라를 실제로 제대로 다루는 오라 그래듀에이트인 것은 아니지만, 기술만은 비슷하게 쓸수있었다. '피어싱을 썻다가는 죽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내버려두면 날 얕보고 둘이서 함께 공격할지도 몰라. 그럼 이쪽에서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하지만 하나를 블레이드나 브레이크로 공격했다가는 다른 하나가 날 공격할지도...' 케리는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둘을 한꺼번에 쓰러뜨릴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아니 과연 그럴까? '...둘을 한꺼번에...? 그럴 필요는 없잖아!' "소닉 브레이크!" 케리는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이번에는 메이스를 든 용병을 향해서 소닉 브레이크를 날렸다. 용병은 그대로 나가 떨어지고... "이야앗!" 케리는 그대로 쓰러진 용병을 뛰어넘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둘이랑 대결할 필요는 없지. 암암...' 햇살이 따가워지기 전에 시작한 이 경기도, 어느새 열띤 오후의 태양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 동안 콜로세움에 서있는 선수들의 숫자는 60여명으로 줄었고, 케리도 어떻게 그 사이에 끼일수 있었다. 하지만 케리는 체력의 한계였다. 온 몸의 피부는 땀에 절어서 갑옷 속의 그녀는 땀냄새 때문에 숨이 막힐것 같았다. 폐와 심장도 한계에 달해서 헐떡이고 있었고, 근육과 뼈 하나하나가 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 그만 쉬고싶어... 차가운 물 한잔만이라도 마시고 싶어...' 입안도 바짝 바짝 타오르고 있었다. 뇌수까지 말라비틀어진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필사적으로 대결하고 있을 뿐... 그런데 정신없이 달리던 케리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비쳤다. "에마..." 에마는 한 기사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기사의 스피드는 에마와 거의 비슷한 수준. 물론 에마도 많이 지쳐서 스피드가 꽤 떨어져 있었지만... 계속 밀리던 에마는 필사적인 각오로 검을 휘어잡았다. "소닉블레이드다! 저 기술에 맞으면 아무리 갑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안의 사람이 무사하지 못할텐데..." 그렇게 생각한 케리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서 그 기사를 밀쳐내서 구하기 위해 달렸다. 결국 에마의 소닉 블레이드가 날아갔지만... "소닉 바리어!" 상대 기사가 한번 검을 휘두르자 반원형의 공기충격파가 발생하여 에마의 소닉 블레이드를 무력화 시켰다. '저런 기술도 있었구나...!' 케리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멈추려 하였다. 그런데... "머...멈출수가 없어!" 한번 힘껏 가속도를 붙여버린데다가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있고, 이미 체력이 바닥이 다 나버린 상태... 게다가 이미 기사의 바로 코앞 까지 달려와 있었다. 우당탕탕탕! 에마의 소닉블레이드를 막아내고 잠시 방심하고 있던 기사는 ... 결국 옆에서 달려온 케리를 보지 못하고 함께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에마는 어이없는 사태에 잠시 넋이나가있더니 곧 다른 상대를 찾아서 떠났다. "죄...죄송합니다." 케리 밑에 깔려쓰러진 기사도 너무나 어이없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기사도 투구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지쳐있을 것이다. 그런데 케리의 몸무게와 갑옷의 무게에 자신의 갑옷 무게까지 더해지니 일어날수도 없는 상태였다. "..저기.. 일단 비켜주시지요..." 그럼에도 계속 일단 싸워보려는 듯 기사는 예의바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예... 아... 아야..!" 케리는 그 말을 듣고 일어나려 했으나 발 한쪽도 제대로 딛지 못하고 쓰러져버렸다. 다리에서 격통이 뇌수로 밀려왔기 때문이다. 기사는 다시 케리 밑에 깔려버렸다. "저기... 왜 그러시죠?" "...다리가 부러진것 같아요...이걸 어쩌죠 죄송해서.." 케리는 힘없이 말하고는 드디어 완전히 한계에 달했는지 털썩 쓰러졌다. "아니 괜찮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기사는 예의바르게 대하고 있었다. 거의 옆에서 다른 차가 와서 들이 받는 바람에 꼼작도 못하게 되서 큰 계약을 망친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도 말이다. "...할수없죠. 다치셧다니...잠시 쉬셔도 됩니다... 제 종자가 올것입니다." "...예...그럼..." 결국 케리는 피로와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그 기사 위에 누워서 기절해버렸다. 기절하기 바로 직전에 케리는 달려오는 라크리마를 보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8화 -패배자들의 만가- 시합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격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라크리마가 케리를 구출하는데는 별 무리가 없었다. 라크리마는 기절한 케리의 갑옷을 서둘러 벗겨내었다. 다행히도 부러진 다리는 서서히 아물고 있었다. "다행이다. 미리 재생마법을 걸어둔 게 다행이었어..." 시합에 나가기 전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지속적으로 몸이 재생하도록 하는 마법을 걸어두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더라도 즉사만은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다치시다니.. 이런 시합에 나가라고 한 내 잘못이야..흑...!" 물수건으로 케리의 몸을 흠벅 적신 땀을 조금씩 닦아주는 라크리마의 등을 툭툭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뭐예요!" 거칠게 대답하면서 돌아보는 라크리마의 눈앞에 오크와 인간의 혼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키가 작고 못생긴 사람이 서있었다. "이 이보셔! 다다다 당신 주 주인 때문에 우으 우리 주인님이 타...탈락해 버렸잖소!" 그는 거칠고 탁한 목소리로 꽥꽥거리듯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말하는 것으로 봐서 방금전 케리가 넘어뜨린 기사의 종자인듯 했다. 기분도 안 좋은데 별 이상한게 끼어든다라고 생각한 라크리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서 반격하려 했는데, 그 때마침 방금전의 기사가 자신의 종자를 향해 소리쳤다. "잭슨! 아가씨들에게 무례한 짓 하지 마라!" "하.. 하지만 주주..주인님 이 여자 때문..문문 에에..." "내가 시합에서 탈락한것은 나 자신의 운과 실력의 부재. 그걸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이 진정한 기사의 태도라 볼수 있겠느냐?" 기사의 유창한 언변에 잭슨은 더듬거리는 말 조차 하지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사는 투구를 벗고 땀에 푹 절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탁탁 털어냈다. 20대 초반의 적당한 길이의 갈색머리를 한 아주 젊고 잘생긴 기사였다. 라크리마는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은 분해서 어쩔줄 모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기사의 표정을 보니 정말로 자신이 부족해서 탈락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기사는 갑옷을 다 벗지도 않고 라크리마와 기절해 있는 케리에게 다가왔다. "아가씨. 잭슨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요." 그렇게 말하면서 기사가 무릅을 꿇자 화를 내던 라크리마가 오히려 놀랐다. "아가씨의 주인님께서는 시합초반에 제가 위기에 처해있을때 한번 구해주셧고, 또 이번에도 저를 위험에서 구해주시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자 하나 간수하지 못해서 폐를 끼쳐드렸군요.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수 있을까요?" 기사의 유창한 말에는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 어쩌지?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기사라는 종류의 인간인가? 어... 어떻게 해야 주인님께 폐를 안 끼칠수 있을까?' 라크리마는 '기사'라는 종류의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방도를 찾을수가 없었다. 결국 어물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겨보기로 결심하고는... "아뇨. 괜찮습니다." 라고 답했다. 복잡하게 고민한것 치고는 그리 신통찮은 대답은 아니다. "아닙니다. 아가씨. 이 라이오스 G.K. 라피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이런 큰 신세를 진 분에게 무례를 범하고서 그냥 넘어갈수는 없습니다." G.K.란 그래듀에이트 나이트. 즉, 오라 그래듀에이트의 지위를 가진 기사를 의미한다. 아직 익스퍼트를 칭할 정도의 실력은 아닌것 같지만, 라이오스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인듯 했다. 좌우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런 대접, 즉 자신의 힘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을 자주 받아보지 못했던 라크리마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퍽이나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저... 저기 그럼... 시 ... 식사라도 한끼 사주세요." "예. 그 정도로 용서해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묵고게시는 곳을 알려드리면 오늘 저녁에라도 당장.." "아예. 저희가 묵고있는 여관은..." 라크리마는 아예 상대 페이스 대로 휘말려 들어가버렸다. "...그래서 그 기사랑 약속을 해 버렷단 말이지?" 겨우 케리가 깨어난 시점에서 라이오스는 이미 돌아가고 없었다. "그치만... 그렇게 나오는 사람은 처음봐서 놀랐단 말이예요."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라크리마는 아직 어린 면이 남아있었다. 천살도 넘었는데 말이다. 드래곤의 정신 발달이 느린 탓인것 같지만, 이렇게 상대의 행동패턴을 이해할수 없을때는 특히나 허무하게 상대 페이스로 휘말려드는 경우가 많다. "휘유..." 케리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자신이 좀 더 일찍 깨어났더라면 이런 귀찮은 일을 안해도 될텐데.. 케리는 여자 모습으로는 되도록이면 달리 아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 남자는... "뭐 기사라니까... 엉큼한 짓은 안하겠지..." "죄송해요 주인니임~" 그날 저녁. 케리 일행은 라이오스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라이오스의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은 그 잭슨이라는 하인. 잭슨은 케리가 영 못마땅한듯이 툴툴 거리면서 쳐다보았지만 라크리마가 살기를 담은 시선으로 노려보자 금새 움츠려들었다. 잭슨이 케리 일행을 안내해 간곳은 삐까번쩍한 고급레스토랑이었다. 라이오스는 깨끗하게 씻고 턱시도를 차려입은 말쑥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혹시 주인님을 꼬시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순간 들었다. "어서오십시요. 케리 아가씨... 라고 하셧던가요? 저는 루퍼스 왕국의 기사, 라이오스 G.K. 라피다 라고 합니다. 오늘 시합장에서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루퍼스 왕국 출신 분이셧군요.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셧겠어요." 케리와 라이오스는 처음으로 제대로된 인사를 할수있었다. "이쪽은 제 메이드인 라크리마, 아마레. 라크리마의 동생인 라크레일. 그리고..." "에스트레인 숲의 엘프 길리엄. 이쪽은 제 동생인 에밀 입니다." 7명이나 되는 케리 일행과는 달리 라이오스는 라이오스와 잭슨, 단 두명 뿐이었다. 잭슨은 무슨 걸신들린 거지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케리 일행을 쳐다보다가 또 라크리마에게 노려보기를 당하고 쭈그러들었다. "메이드... 아가씨 들이라면 저쪽 테이블에 따로 차려드릴까요..?" "아니요. 라크리마는 메이드지만 제 형제와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으니까." "...예. 그러시다면..." 라이오스는 상당히 예절을 차리는 성격인듯 했다. 하인용으로 놔둔듯한 다른 한 테이블에는 잭슨이 혼자 앉게 되었다. 메뉴를 보면서 주문을 한 다음, 라이오스는 길리엄에게 말을 걸었다. "에스트레인 숲의 엘프분이시라면... 몇일전 궁술대회에서 우승하신 분이 아닙니까?" "예.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더군요. 전 활은 도저히 그렇게 까지 쏠수는 없어서... 우리나라의 어떤 궁사도 그렇게 까지는 쏠수없을 것입니다." "엘프와 인간은 감각능력이 틀리니까요. 애당초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을 너무 부러워하실 것도 아닙니다." 라이오스의 칭찬에 길리엄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케리 아가씨는 여성의 몸이면서도 아주 잘 싸우시더군요. 정말 감탄했습니다. 게다가 저를 여러번 도와주시기도 하시고..." "아니요. 마지막에는 오히려 제가 폐를 끼쳤는데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 행동이 순수한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실로 기사의 귀감입니다." 케리는 별로 생각없이 한 행동에 라이오스가 극찬을 아끼지 않자 오히려 몸둘바를 몰랐다. "저기... 혹시 이쪽 메이드 아가씨는 아미 양이 아닌가요? 그 마법 대전회의 준우승자인..." "아니요. 그 사람이란 닮았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만 전 그 여자가 아니예요. 흥. 전 아미가 아니라 아마레라구요. 아.마.레." 아마레는 고개를 돌리면서 뾰로퉁 하게 대답했다. 외모에 안 어울리게 어른스러운 말투에 라이오스는 약간 놀랐다. 아마레는 자기 앞에 놓인 것이 와인이 아니라 우유인 것이 상당히 불만인듯 했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에서는 어린애 한테는 와인을 안 주는듯하니... 식사가 나오고 모두 식사를 하던 도중 라이오스는 와인을 좀 홀짝 거리다가 영 마음에 안든다는 투로 말했다. "술이 너무 약해서 좋지 않군요... 루퍼스 왕국과는 달리 맛이나 향은 좋은것 같지만... 이렇게 약해서야 어디 술이라고 할수 있는지..." "루퍼스 왕국은 북쪽이라 추워서 몸을 덥히기 위해 강한 술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정말 그런것 같군요." 케리의 말에 라이오스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술 하나 만큼은 남쪽의 얼간이 남자들이 마시는 것 하고는 격이 틀리죠! 우리 나라의 술은 정말 뱃속이 불타는 것 같으면서도..." "아저씨! 이 가게에서 가장 강한 술 부탁해요!" 라이오스는 지금은 여자인 케리 앞에서 호기를 부리려는 듯 했지만, 케리도 속은 일단 남쪽지방 출신의 남자였었다. 게다가 술을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나름대로 강하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렇게 까지 노골적인 '결투제의'을 듣고 그냥 넘어갈수는 없었다. "아니. 아가씨 대체..." "한번 마셔보자구요! 남쪽 남자들을 대신해서 제가 승부해드리죠!" "아하하하. 케리 아가씨는 무투회에서도 그렇지만 정말 호탕하고 기사다운 아가씨입니다. 저희나라 여자들과는 많이 틀리군요. 좋습니다. 도전을 받아들이지요!" 라이오스는 주인이 내온 술병의 코르크 마개를 이빨로 따면서 호탕하게 대답했다. 이 가게의 술을 전부 마셔버릴 기세로... "우엑.....!!!" 난데없이 벌어진 음주 승부는 주인이 말리는 것도 듣지않고 가게안의 손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탓에 중간에 끊을수도 없어서, 케리는 필사의 각오로 마셔댄 끝에 더블 K.O.를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라이오스가 봐준것 같아서 영 기분이 찜찜했다. "아하하하하.... 아과쒸이도 아주 아주 세구우우운..." "주주주 주인님 이이이 이제 그그 그만 마 마시세요." 잭슨은 술에 완전히 취해서 비틀거리는 라이오스를 필사적으로 부축했다. 덩치가 작은 그가 키가 큰 라이오스를 부축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고럼고럼... 눼윌 볿 쉐다~" 라이오스는 다운되기 직전 상태로 잭슨에게 부축되어 걸어갔다. 아무리 술이 강하다고 해도 처음에는 잔으로 마시다가 점점 큰 것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병채로 따서 마시다가 급기야는 폭탄주를 만들어서 마셔댔으니 급성 알콜 중독으로 뻗지 않는 것도 열심히 수행해서 단련한 몸 덕분이다. "으웨엑!" "주인님.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어요..." "으휴 냄새..." 케리는 벌써 피자를 두판 씩이나 만들면서 라크리마와 아마레에게 부축되고 있었다. "아마레 누나. 술 깨는 마법은 없어?" "으음... 드래곤은 취할만큼 술을 마실일이 없으니까 그런건 없고... 인간 마법중에 그런 마법이 있는지는 잘 모르겟다...큐어 드렁큰... 이던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실전되었다던가..." 아마레는 라크레일의 물음에 잠시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그렇게 답했다. "왜 실전 되었대?" "글세... 그걸 만든건 어떤 술꾼 마법사였는데... 술취한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게 마법을 쓸수는 없어서... 결국 제자에게 배우게 했는데 결국 제자도 술꾼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참 대단한 마법사군." 라크레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길리엄을 힘겹게 부축해가는 에밀을 돕기 시작했다. 길리엄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엘프는 술 못마시지 않소?"라는 라이오스의 도발에 넘어가서 와인 두잔이라는 한계 주량을 10배는 초과할 만큼 마셔서 완전히 다운된 상태였다. '혹시 라이오스라는 인간이 길리엄이 궁술 대회 우승자인 것을 질투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까...' 라크레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의외로 피자생산기계로 폴리모프한 인간들이 여러곳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군... 오늘이 축제의 마지막이니까 저렇게들 노는 건가... 드래곤은 술에 취하지 않으니 인간의 저런 기분은 이해할수가 없다니까... 왜 저렇게 자신을 잃고 방황하려 하는지...' 라크레일은 길리엄의 입에서 풀풀 풍기는 술냄새를 맡으며 천년을 살면서도 처음 본 술에 쩔은 엘프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①- 에네스 토너먼트 대회가 끝난 다음날 길리엄은 에밀을 데리고 에스트레인 숲으로 돌아가는 길을 떠나게 되었다. "끄응... 그럼, 그 동안 제 동생을 맡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길리엄은 에밀을 자신의 말 등 뒤에 태우고, 뇌수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 찌르는 창은 물론 알콜의 남은 성분이었다. "잘 있어! 케리! 라크리마! 라크레일! 아마레!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에밀은 지금 당장이라도 말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두 엘프는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으으으윽... 라크리마... 그럼 난 잠시 자도록 할께..." "예. 그러세요. 주인님. 굉장히 괴로우신것 같은데..." 길리엄은 엘프였기 때문에 자신의 주량을 몇배나 초과한 술을 마시고도 겨우 말에 타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숙취의 넋이 머리에 내려 있는 케리는 겨우 길리엄과 에밀을 배웅한 다음에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시면 다음날 어머니가 특제 야채 스프를 만들었었지... 으음... 좀 더 커서 내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도 그랬어...' 숙취때문에 괴로워지자 케리는 가족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에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회에서 크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에마까지 생각나자 케리의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라크리마가 조금만 더 일찍 깨어났다면... 우리 집안이 몰락하는 일도 없었을까?' "저기 주인님..." "아 응?" 아픈 가운데도 잡상에 잠겨있던 케리는 라크리마가 부르는 소리에 천근만근 무거운 머리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라크리마는 양손으로 쟁반 위에 스프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이거... 여관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숙취에 좋은 음식이라고 들어서요. 제가 한번 만들어 봤어요... 아침도 못 드신다는데... 이거라도...요즘 메이드 다운 일도 잘 못한것 같아서." "응 고마워 라크리마..." 케리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색하게 움직이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스프를 떠먹었다. 굉장히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라크리마는 간을 잘 못맞추는 것일까? "어떠세요? 주인님?" 라크리마도 이 요리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케리의 반응을 살폈다. "응. 괜찮아. 소금을 좀 가져와 주었으면 좋겠지만..." "예." 라크리마는 즉시 앞치마 주머니에서 소금과 후추통을 꺼내왔다. 혹시 간이 안 맞을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건가. "제가 숙취해소 마법 같은 것을 익혀두었다면... 이런 스프는 필요없을 텐데..." 스프를 한숟갈 한숟갈 떠먹는 케리를 바라보며 라크리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케리는 갑자기 목이 콱 메어왔다. 스프 한숟갈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라.. 라크리마 나는... 네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아. 날 위해서 노력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야. 아니 넌 드래곤이지만... 어쨋건. 날 신경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야." "주인니임..." 라크리마는 케리의 그 말 한마디에 너무나 밝은 표정이 되어서 케리에게 살짝 안겼다. "라크리마..." 케리도 스프 그릇을 옆으로 치운 다음 라크리마를 꼭 안아 주었다. 케리가 여자가 된 상태였지만, 라크리마는 케리의 품 안에 꼭 들어갈 정도로 갸냘픈 몸이었다. 라크리마는 케리의 앙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체취와 체온을 얼굴 가득히 느꼈다. "주인님... 절 안아줘요..." 라크리마는 잘 익은 복숭아 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말을 꺼냈다. "....에? 하 하지만... 지금은 난 여자고..." "여자끼리 사랑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게다가... 요즘은 욕구불만이라서..." 라크리마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다. 몸 전체가 뜨거운 에너지를 뿜고 있었다. "더워요...." 앞치마, 블라우스, 치마 순으로 라크리마의 옷가지가 하나하나 바닥에 늘어뜨려졌다. "라... 라크리마 난 그런건..." "전 참을수 없어요!" "으앗!" 라크리마는 침대 안으로 여우처럼 기어들어왔다. "아앙.. 라 라크리마.. 그런데를 핥으면...더 더러워..." "주인님의 몸 가운데 더러운 데는 없어요...아주 예뻐요..." "그 그만해...지금 난 여자잖아.." "몸은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는데요.. 전 여자라도 상관없어요.. 주인님이면 어떤 몸이라도 괜찮아요..." "라크리마 아아아...." 덜컹!!! "누나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크헉...!" 그때 여관 방 문이 활짝 열리고 라크레일이 달려들어왔다. 엿듣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제 딴에는 라크리마와 케리를 갈라놓으려고 들어온 것이지만, 두 미소녀의 달콤한 숨결과 하얗고 부드러운 살갗은 라크레일에게는 너무 큰 자극이었다. ".........." 라크레일은 그 자리에서 빨간 석상이 되어버렸다. "뭐야.. 들어왔으면 말을 해. 임마." 흥이 깨져서 기분 나빠진 라크리마는 당장이라도 라크레일을 두들겨 패줄듯한 기세로 소리쳤다. ".........나도 끼워줘!" "꺼져!!! 이 씨사이같은게!!!" 퍽!!! 잠시후, 라크리마가 괜히 시켜놓은 여관의 아침 설거지 돕기를 마치고 들어온 아마레가 본 것은 다리사이를 쥐고 눈을 하얗게 뒤집고 있는 라크레일과 흥이 깨져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 케리와 라크리마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크리마에게 사건 경과를 전해 들은 아마레는 창자가 꼬일 정도로 깔깔 거리면서 웃어댓다. 라크레일은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누나... 날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런 소리를 들으면 당연하지..." "........." 라크리마 뿐만 아니라 케리도 라크레일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아마레는 아직도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라크레일을 놀리기 시작했다. "라... 라크레일... 푸하하하하 그렇게 욕구불만이면 이 누나랑 할래? 푸하하하" "그건 범죄야... 아마레 누나..." 라크레일은 뚱하게 대답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 아침 까지도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케리는 점심 무렵이 되서 숙취가 어느 정도 풀리자 라크리마를 데리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대체 누가 우승한 걸까... 보병 전투대회." "...그걸 꼭 알아야 해요?" "글세... 궁금하니까." "주인님은 우승하지 못했으니까... 그걸로 그만인거 아니예요?" "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혹시 에마 소식이라도 알아볼까 해서..." "에 하지만 에마님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그래도 소식은 알고 싶어. 어떻게 지내는지. 혹시 어제 다친건 아닌지..." 라크리마는 케리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그냥 케리의 뒤를 따랐다. 콜로세움 앞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었고, 그곳에는 어제 경기의 우승자 10명과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사망자는 적구나..." 케리는 사망자 명단에서 에마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우승자 명단에도 에마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의사들도 대기하고 있었대요." 마법의사란 치료 마법과 의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사들을 의미한다. "에마도 탈락한 모양이구나..." 케리는 그래도 죽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안도했다. 라크리마는 케리의 심리를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저기... 주인님은 에마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글세... 그건 아냐. 난 에마를 좋아해.. 하지만 에마는 날 싫어하니까... 그래서 피해다니는 거야 지금도..." "하지만 에마님이 주인님을 싫어하는 것은 주인님이 약해서 였잖아요? 이제는 그 떄보다는 훨씬 강해졌으니까..." "그래도.... 아직 에마 앞에서는 날 드러낼수가 없어..." "인간은 복잡하네요..." "라크리마도 라크레일이나 아버지가 있잖아?" 라크리마는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안가는 것 같았다. 근처 상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에마의 소식은 알수 없었다. 결국 낙담한 케리는 근처 까페에서 목이나 축일까 하고 라크리마와 함께 들어갔다. 케리는 따듯한 우유, 라크리마는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맥주를 드릴까요? 하는 귀여운 유니폼을 입은 웨이트리스의 물음에 케리는 아직 약간의 숙취기가 남아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크리마. 혹시 에마를 우연히 만나더라도 네 정체가 드러날만한 짓은 하지마." "왜요?" "...여자가 되어버린건 너무 부끄러우니까... 네 정체를 알면 내 정체도 바로 드러나버리잖아..." "그렇군요. 주인님..." 라크리마는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다. 케리는 과연 잘 알아 들은건지 약간 걱정되었다. 목을 축이면서 다리를 쉬고 있으면서 잠시 한가하게 있던 케리와 라크리마에게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뭐하는 거야!" 아까전에 주문을 받았던 웨이트리스의 비명소리였다. 케리가 반사적으로 그곳을 쳐다보니 용병으로 보이는 갑옷차림을 한 도끼와 메이스를 가진 두 남자가 그 웨이트리스의 엉덩이와 다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왜 이러시나~ 닳는 것도 아닌데~" "서비스 좀 해줘 아가씨" 남자들은 능글 능글하게 웃으면서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구. 엉덩이가 아주 탱탱하네. 애 잘낳겠어?" "다리도 쭉 빠졌고...젖통도 크고..." 웨이트리스은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해지더니 더이상 못참겠다는 표정이 되서 손에 들고있던 쟁반으로 두 남자를 마구 후려쳤다. 쾅쾅쾅쾅!!! "내가 니들 장난감이야!" 쟁반으로 얻어맞고 있던 남자중 한명은 잠시 그대로 맞고 있다가 곧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릴 정도로 화를 내면서 점원의 팔을 붙잡고 일어섯다. "이 미친 년이 어디다 대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철썩!!! 남자의 솥뚜껑 만한 손이 웨이트리스의 뺨을 때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듣고 그 쪽을 주목하였다. 한대 얻어맞자 웨이트리스는 더욱 독이 올라서 달려들었지만 근육이 탄탄한 두 남자의 상대가 될리가 없었다. 금새 붙잡혀서 또 얻어맞기 시작했다. "어이구 저저..." "저걸 어째 저걸..." 가게안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고, 몇명은 앞으로 나서려다가 다른 동료 한명이 메이스를 들고 위협을 하자 움츠러들어서 뒤로 물러섯다. 가게를 보고 있던 웨이터는 자신이 나선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 남자는 웨이트리스를 마구 폭행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메이스를 만지작 거리면서 가게 안의 사람들을 마구 위협하고 있었다. 케리도 그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주먹을 쥐고 일어섯다. 불현듯, 얼마전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능욕 당할뻔 했던 일이 떠올랐다. "주인님. 참으세요. 몸도 정상이 아닌데..." "라크리마. 넌 나서지마. 알겠지. 이건 내가 해결할께." "...에 하지만..." "나서지마. 내가 도저히 안될것 같기 전에는." "......예." 케리가 강하게 명령하자 라크리마는 못마땅한 표정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리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용병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그만 못해!" "넌 뭐야!" 콰직! 메이스를 잡고 있던 용병은 케리가 세게 나오자 더 강하게 위협을 하려는 듯 애꿏은 탁자를 메이스로 내려쳐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잠시 움찔했다. 자기 머리가 메이스에 얻어맞아 부서지는 연상을 한 사람들은 허둥지둥 가게 밖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케리도 그 위협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엉엉 울면서 맞고 있는 웨이트리스를 보자 다시 분노가 공포를 초월해버렸다. "그만두라니까!" "이게!" 용병은 메이스로 케리의 머리를 박살내버릴 기세로 메이스를 높이 치켜들고 케리에게 다가왔다. '이런 녀석쯤...' 케리는 오른손에 바람의 힘을 모으려 하기 시작했다. 소닉 브레이크 한방만 가슴에 먹여주면 저런 덩치라도 쓰러뜨릴수 있다. 하지만 케리의 손에는 바람의 힘이 모이지 않았다. 아니 정신집중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런 숙취때문에...' 케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라크리마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바로 그때, 까페 구석진 자리에서 왠 허연 것이 메이스를 들고 케리를 위협하는 용병을 향하여 날아왔다. "윽!" 용병은 메이스를 야구방망이 처럼 휘둘러서 허연 것을 막아냈다. 쨍그랑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박살난 것은 가게 구석에 장식되어있던 하얀 꽃병이었다. "누구야?!" 용병이 눈을 부릅뜨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그곳을 바라보자 구석진 자리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회색머리의 여검사가 일어났다. '에마?! 어떻게 여기에?' 케리도 그녀를 보고 눈을 부릅떳다 틀림없이 에마였다. '설마 같은 까페에 앉아 있었다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②- 혹시 잘못본것이 아닌가 싶어서 한번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이 에마였다. '설마 이렇게 어이없이 재회할 줄이야!' 하지만 에마는 케리를 알아보지 못한듯 했다. 케리쪽은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려 용병쪽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알거 없어." 메이스를 들고 위협하는 용병을 향해서 에마는 샤벨을 뽑아 들고 대응했다. 웨이트리스를 폭행하고 있던 다른 한 용병도 상황을 눈치채고는 도끼를 치켜들고 에마 쪽으로 향했다. 맨손의 케리 보다는 샤벨을 들고 있는 에마가 훨씬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촉일발의 무서운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케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에마가 날 지켜주려 하다니...' 비록 자신임을 모르고 한 일이라지만, 에마에게서 정을 받아본 것이 벌써 몇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케리는 너무나 가슴이 떨려왔다. 에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차가운 얼음처럼 변한 것은 자기 탓에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가득한 케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으아아아아!" 기합소리를 지르면서 메이스를 들고 에마에게 돌진하는 용병. 하지만 에마는 용병이 자기 간격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샤벨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용병이 메이스를 채 내려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는 작은 상처가 그어졌다. 주르르륵... 용병은 그 번개같은 속도에 놀라서 잠시 몸이 굳어졌다. 하지만 곧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거칠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법 괜찮은 재주지만. 어차피 생채기를 낸 것 뿐. 넌 살인은 못하는가 보구나! 자 공격하자!" 도끼를 든 용병도 가세하여 곧 다시 공격에 나섯다. 엄청난 기세였다. 하지만 에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샤벨을 휘둘렀다. 파캉! 방금 전 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공기를 가르는 속도가 마치 천둥소리 처럼 들렸다. 두 용병은 자신들의 무기에 부딧쳐 오는 엄청난 충격에 무기를 놓치지 않을수가 없었다. 에마의 공격은 메이스와 도끼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두 용병의 얼굴로 향했고... 푸앗! 두 개의 살덩이와 피줄기가 공중에 흩날렸다. "으아아아악!!!" 용병들은 누구의 것인지도 분간가지 않는 비슷한 비명소리를 동시에 지르면서 가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명은 코 밑의 윗입술이 완전히 날아가서 피투성이가 된 이빨이 보이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한쪽 뺨이 날아가서 역시 피가 입 안으로 철철 새어들어가고 있었다. "엄청나다..." 케리는 에마의 현란한 칼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전처럼 전혀 보이지 않던 것과는 달리 검의 궤적은 확실하게 볼수 있었지만, 지금의 케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검술이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휘둘렀는지 에마의 샤벨에는 피한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에마는 샤벨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고는 케리를 향해서 다가왔다. '어?' 에마의 눈은 이전의 케리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이 싸늘했다. 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가득 깃들어있었다. 케리 바로 앞 까지 다가온 에마는 팔을 휘둘렀다. 짝!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케리는 에마에게 뺨을 맞았다. "....아...?" 너무나 어이없는 사건에 케리는 멍한 눈으로 에마를 바라보았다. "이봐 거기 아가씨. 멍청하게 굴지마! 무기 하나도 없이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랬지? 용기만 가지고 메이스를 막을수 있어? 용기만 가지고 도끼날과 싸울수 있어?" 에마는 거친 소리로 케리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나선 게 화나는 거야...' 주위 사람들은 모두 에마가 하는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것 같았지만, 케리만은 그녀를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우리 오빠를 보는것 같아서 짜증이 나! 대체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케리의 눈에 눈물이 핑 하고 고였다. "울어? 우는 거야? 울면 모든게 해결될 꺼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요... 정말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케리는 진심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에마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때, 바깥으로 도망쳤던 웨이터가 경비대를 데리고 돌아왔다. "여기서 용병들이 싸움을 하고 여자를 폭행한다는게... 앗 너냐!" '이런...!' 경비대의 주목을 받은 에마는 화들짝 놀랐다. 감정에 휘말려서 케리를 때리고 훈계한 것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케리가 경비대에 자신이 에마에게 폭행당했다고 한다면... 하지만 에마를 체포하려고 드는 경비대를 케리는 가로막았다. "아니요. 이 여자분은 저를 구해주시려 한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에 하지만 상해사건이니 잠시 경비대 본부에 따라오셔야 겠습니다 아가씨. 관련이 있다면 일단 증언이 필요하니..." 경비대장은 피를 바닥에 마구 흘려서 더럽히고 있는 두 용병을 보고는 케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주인님!" 경비대와 함께 가다가 케리는 '아차!'하면서 라크리마를 돌아보았다. 라크리마가 얼굴을 보인다면 에마는 자신의 정체를... 하지만 앞치마를 들어 얼굴을 가린 라크리마를 보고 케리는 그 기지에 감탄했다. 에마는 라크리마를 살짝 쳐다보았지만, 별로 주목하는 것 같지 않았고... 머리에 하얀 브릿지가 생긴 것도 주의를 분산시킨것 같았다. "먼저 여관에 돌아가 있어! 별 문제 없을 꺼야!" 라크리마의 기지에 감탄하고,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안심하라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예! 케리 주인님!" "........." 하지만 다음 순간 여태까지의 은폐행동을 완전히 다 깔아뭉게버리는 라크리마의 행동에 케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케리는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에마를 바라보았다. 에마는 케리가 자신의 오빠와 똑같은 이름이고, 메이드를 데리고 다닌 다는 것을 알자 굉장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케리와 라크리마를 한번씩 쳐다보았다. '...드 들키지 않을까? 들키지 않겠지? 제발 들키면 안돼!' 케리의 가슴은 어릴때 학교 시험지를 숨겨놓을 때보다, 모험을 나갔다가 몬스터를 피해서 수풀속에 숨어있을 때보다 더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다행... 이랄까. 에마는 케리가 여자로 변했다 라는 식으로 생각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경비대에게 조사를 받는 중에도 열심히 에마를 변호해주는 케리를 약간은 고마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조사를 다 받고 나서 자리에 앉아 쉬고 있을때 에마는 케리에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절 변호해 주시는 거죠? 전 당신 뺨을 때렸는데요." "그야... 저를 도와주셧으니까요. 뺨을 때린 것도 저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잖아요." "난 내 감정이 충실했을 뿐이예요. 그걸 고맙다고 하다니 바보 같네요..." "아하하하...그런데 아까.. 오빠 라고 했는데 그건 누구죠?" 케리는 넌저시 에마의 마음을 떠보고 싶어졌다. "...남의 사정을 캐묻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별일은 아니지만 절 도와주셧으니까. 그 정도는 이야기해드리죠. 저한테는... 모험담에 미쳐있는 아주 바보같은 오빠가 하나 있어요. 결국 모험을 하겠답시고 온갖 곳에 싸돌아 다니면서 집안 재산은 다 탕진했죠. 결국 집안을 말아먹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셧어요. 어머니는 과로로 돌아가셧고...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그래서 집안이 다 망하고 났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지랄같은 오빠죠." "...정말 너무하군요..."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에마의 입에서 직접 그런 평가를 듣자 케리의 가슴은 찟어지는것 같았다. "지금은... 드래곤에게 잡혀있어요. 뭐 최악의 결론이 되버렸죠... 제대로 먹고 살고나 있는지... 하지만, 저런 오빠라도 그래도 살아있으면 좋겟어요. 살아서 제대로 착실하게 사는 모습이라도 볼수있다면 소원이 없겠네요.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오빠인데..."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케리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에마는 그래도 자신에게 아주 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왜 울죠? 남의 가정사에?" "아. 아뇨. 오빠를 참 생각하시는 분이시네요..." "흥... 그런 자식 어디서 죽건 말건..." 에마는 거칠게 내뱉었지만, 앞의 말과는 모순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케리는 에마가 자신을 아주아주 증오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자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에마에게 정체를 밝힐수는 없지... 적어도 남자로 돌아가고 나서. 남자로 돌아가고 나서...' "그런데 당신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요? 이름이 뭐죠... 아까 메이드가... '케리'라고 한것 같은데?" "아. 하하하하. 잘못 들은 거겠죠. 제 이름은 '케이'에요. 케.이." "그랬군요. 케리는 우리 오빠이름이거든요. 비슷한 이름이라서 착각한것 같네요. 죄송해요. 저런 오빠랑 같은 이름으로 착각해서...케이씨." "아니 괜찮아요." 케리는 에마의 의심을 어떻게 얼버무릴수 있었던 데다가 언젠가는 다시 사이좋게 지낼 희망도 보이는 것 같아서 웃음이 저절로 활짝 피어났다. 경비대의 조사는 케리의 증언 덕분에 에마에게 아주 유리하게 꾸며졌다. 에마는 정당방위로 취급되어 무죄방면. 용병 둘은 상처 치료비도 스스로 부담하게 된 데다가 가게의 손해배상에 웨이트리스의 치료비 까지 물게 되었으며, 폭력행위에 대한 벌금도 부가되어 아주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가게 주인과 웨이트리스가 상당한 돈이었지만 합의를 보는데 성공해서 감옥에는 안 들어가게 되었지만... 토너먼트 대회를 벌이는 시기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서 경비대도 아주 바쁜것 같았다. 그래서 용병들 끼리의 사건이나 용병이 일으킨 사건 같은 경우는 되도록이면 간단하게 처리하려는 듯 했다. 겨우 일을 끝마치고 에마와 케리가 경비대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밖에는 라크리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니임~!" '...라크리마. 그냥 아마레나 라크레일을 보낼 것이지 왜 직접 나와서는...!'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달려들어서 품 속에서 하얀 육면체에 말랑말랑해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이 이게 뭐야...?" "이건 동방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데요. 감옥 같은데 들어갔다 오면 액땜으로 먹는 거래요. 콩으로 만들었대요." "저기 난 감옥 갔다 온게 아냐." "그래도 좀 드세요. 제가 일부러 사가지고 온건데...비싸다구요 이거." "이름이 뭐야?" "두부요..." 결국 라크리마의 고집에 케리는 두부라는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먹어야만 했다. 맛은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봐 잠깐." 그런 라크리마를 보자 에마는 다시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케리를 불러 세웠다. "그 메이드의 이름은 뭐지?" '...제 젠장...그러니까 라크리마는....' 에마의 물음에 케리는 말문이 팍 막혔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③- 에마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혹시 하는 심정으로 케리를 째려보았다. 케리는 라크리마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에마에게 대답했다. "라미, 라미라고 해요. 그렇지 라미?" 케리가 살짝 눈짓을 하자 라크리마도 무슨 일인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에마는 상당히 의심스러워 하는듯 했지만, 케리가 여자로 변했다는 것을 알 리도 없고 얼굴 모양도 상당히 변해 있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럼 케이씨. 증언해줘서 고마웠어요.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할수 있게 되기를 빌께요. 그럼 잘가요." "예. 뭘 이런걸 가지고... 그럼..." 케리는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에마를 전송해주었다. "주인님. 왜 정체를 밝히지 않아요? 에마님도 아주 주인님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은 절대 밝힐수 없어. 그러면, 돌아가자 라크리마." "예..." 라크리마는 석연찮은듯 했지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앞장을 섯다. 여관에 돌아와보니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라이오스가 돌아오는 케리를 반갑게 맞은 것이다. "어머, 라이오스씨 여기는 무슨 일로...?" "길에서 우연히 라크리마 양을 만나서 사정을 들었습니다. 큰 일을 겪으셧다면서요?" "아니 뭐 큰일이랄것 까지야..." "아니요! 부당하게 폭행당하는 약자를 구하기 위해 무기도 없이 완전무장한 용병들 앞에 나서서 그들을 제지한 그 용기! 실로 기사의 귀감이라 할수 있습니다! 또 한번 저를 감탄하게 하는 군요. 케리 님은 언제나 저의 수행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하십니다." "라이오스 씨라도 그러셧을 꺼예요..." 라이오스가 호들갑에 가깝게 케리를 뛰워주자 오히려 케리가 어쩔줄을 몰랐다. 호호호호 거리면서 태연히 받아낼정도로 케리는 얼굴이 두껍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무용담에 대해서 오늘도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물론 제가 사지요." "고 고맙습니다만... 무리하시는거 아닌가요? 이틀이나 연속으로..." "하하하하하! 저희 루퍼스 왕국의 사나이에게 이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이오스는 가슴을 펴고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 멀쩡해보이는 것이 아직도 약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은 케리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케리는 내심 라이오스의 체력에 감탄했다. 이번에는 전날과 같은 승부욕이 나지 않았다. "아니요. 사실 제가 좀 피곤해서요. 술은 다음에 마셧으면 좋겠네요." "그럼. 그러도록 하지요. 잘 주무십시요 케리님." 라이오스는 아쉬운 얼굴로 자신의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대단한 사람이야..." 다음날. 라이오스는 느닷없이 아침일찍 케리에게 찾아와 난데없는 말을 꺼냈다. "저와 동료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케리는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라 손을 휘저으면서 대답했다. "전 나 남자는... 아직..." "아니요.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케리님. 동.료.입니다. 동료." "동료라면...?" 그제서야 라이오스는 제대로된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사실 나라를 떠나서 기사수행을 하고 있는 몸입니다. 아버님께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오는 것이 훌륭한 기사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셧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케리 님을 보고 나서 저의 미숙한 점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력은 케리님보다 뛰어날지 모르나 아직 진정한 기사로서의 마음가짐이 완성되지 않은것 같습니다. 케리님. 괜찮으시다면 저를 동행시켜 주시지 않겟습니까? 저는 케리님의 언행을 교사로 삼아 더욱 자신을 단련하고 싶습니다." 라이오스는 케리 앞에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아 간절하게 부탁했다. 케리는 갑자기 라이오스가 이렇게 나오자 난처해져버렸다. "저 저기 이러시지 마세요. 전 아직 기사 서품 같은것도 받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케리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제가 동행할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요." "그....그러시다면 우선 일어나셔서 부탁해주세요." "예. 그 쪽이 편하시다면..." 라이오스는 절도있는 동작으로 기운차게 일어섯다. "그럼.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드리곘습니다. 저를 동료로 받아주십시요." 라이오스는 신사적이고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그 열의가 지나쳐 케리는 도저히 라이오스의 부탁을 거절할수가 없었다. "좋아요... 이 도시를 떠나면서부터 동행하도록 합시다. 라이오스님.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친다고 해도 놀라지 말아주세요." "물론입니다. 케리님." 라이오스는 다시 한번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아 케리의 손에 입맞춤을 하였다. 부끄러움 탓에 케리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그런걸 허락하다니 핏..." 아마레는 케리가 라이오스의 동행을 허락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일단 주인이니 따르려는 듯 했다. "뭐 나는 누나가 좋다면 상관없어." 라크레일은 일행중에 남자가 하나.. 아니 둘이 늘어나는 것이 좀 못마땅해보였다. "정말 거절하기가 힘들었다니까..." "주인님이 결정하신 일이라면. 전 찬성이예요." 케리의 변명에 라크리마가 맞장구를 쳤다. 라크리마가 그렇게 나오자 아메라와 라크레일도 일단 찬성. 그날 오후는 라이오스와 함께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로 했다. 케리는 상점가에 라크레일을 데려와서 라이오스와 잭슨과 만났다. 아마레와 라크리마는 혹시 폭주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차마 쇼핑에 데려올수는 없었다. 라크레일을 데려온 것은 그래도 남자로 폴리모프한 몸이라 라크리마나 아마레보다는 기초 체력이 좋아서 짐꾼으로 쓸만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런데.. "무기가 없다구요?" 쇼핑을 하다가 라이오스는 눈이 휘동그래 져서 그렇게 소리쳤다. "잭슨도 단검 던지기 재주가 있어서 단검을 몇자루 가지고 다니는데... 케리 님은 무기가 없다니..." "전 모험가지 용병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몬스터가 습격해오거나 하면 어쩝니까?" "라크리마가 마법을 쓸줄 알고, 저도 보다시피 권법을 약간..." "하지만 그 정도로는 상대가 안되는 몬스터가 있을것이 아닙니까." 사실 라크리마가 함께 있으면 몬스터들은 가까이 오지도 않으니 달리 무기를 구비할 필요가 없었다. 연습용 목검이 한자루 있기는 했지만... 라크레일과 아마레도 마찬가지. 그들을 잡아먹거나 공격할수 있는 몬스터가 있다는 것이 애당초 말이 안됐다. 드래곤이 세마리나 되는데 덤벼들 놈이 있을리 없으니... 하지만 라이오스에게는 그것을 납득시킬수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몬스터가 작고 온순한 편인 않은 남쪽지방과는 달리 흉폭하고 커다란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북쪽지방 사람인 만큼 무기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국 케리는 별로 쓸데도 없이 레이피어 한자루를 사야 했고, 라크레일도 숏 소드 하나를 차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다 구입한것 같군요.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서 행동을 함께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목적지는 어딥니까? 케리님." 라이오스의 물음에 케리는... "북쪽으로 가서 슈레인 공국을 지나 에스펠 산맥에 있다는 던젼을 탐사할 계획이예요."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라이오스는 화들짝 놀랐다. "에스펠 산맥이라니... 그곳은 용존계(龍存界)와의 접경이라는 곳이 아닙니까? 그곳의 던젼이라면 혹시 드래곤 레어?" "글세... 저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혹시 겁나세요?" "아니요. 그럴리가 있습니까!" 라이오스는 케리가 살짝 도발해오자 당당하게 소리쳤다. "설사 스톰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 칼 한자루만 있으면 이길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케리님!" 케리는 그 말을 듣고 살짝 라크레일을 돌아보았다. '역시...' 라크레일은 굉장히 음침한 표정으로 라이오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저주를 걸지는 말라고 나중에 말해둬야겠군.' "그러니까 스톰 드래곤이라도 저에게는 아무 문제가..." 신나서 호기를 부리고 있는 라이노스의 등 뒤에서 케리는 살짝 미소지으면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 스톰 드래곤이 우리 파티에는 두명이나 있는걸요. 골드 드래곤도 있어요.' 그리고 그날 밤. "......그런 일이 있었지 뭐니.하하하하" "호호호. 라크레일도 참..." 케리는 침대에 앉아서 라크리마와 깔깔 거리면서 수다를 떨었다. 점점 여성화가 가속되는듯 하다. "그런데... 라이오스 씨. 꽤나 멋진척 하지 않니? 루퍼스 왕국 남자들은 전부 저렇게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가. 기사도의 나라라는 이곳도 이젠 저렇게 까지 기사인척 하는 사람은 없는데...그래도 쬐금 멋지더라. 아 나도 저런 남자가 되어볼까..." 라크리마는 케리가 라이오스를 칭찬하는 말을 하자 그때까지 웃고 떠들면서 즐기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왜 왜그래...?" "케리님. 혹시 라이오스와 무슨 썸씽이 있다던거 하는건 아니예요?"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왜 오늘 절 안데려 가셧어요?" 라크리마는 새초롬 하게 눈을 부릅뜨고 케리에게 다가왔다. "그...그건..." "안아줘요." "뭐?" "라이오스 씨랑 썸씽이 없다는걸 증명하려면 절 안아보세요." "....하 하지만 지금은 난 여자잖아." 라크리마의 진짜 목적인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한 케리였다. "괜찮아요. 여자끼리 즐겁게 즐기는 방법도 배워둿으니까아... 요전번에 중간에 그만 두는 바람에 더 욕구불만이 되어버렸어요..." 달콤한 숨결을 내쉬면서 다가오는 라크리마를 피해서 케리는 주춤주춤 도망쳤지만, 고양이 앞의 생쥐였다. "하지만 라크레일이..." "그 녀석에게는 절대 방해하러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둿으니까 상관없어요! 주이니임~" "으왓!" 라크리마는 달콤한 교성을 지르면서 케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뭐 이 뒤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그리고 다음 날.... "왜 저러신가? 케리님이...?" 라이오스는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케리와 라크리마가 밤새도록 설친탓에 피곤해서 비실 비실 거리는 것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라이오스에게 질문을 받은 라크레일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해져서 헛기침만 했다. 모든 것을 눈치챈 아마레는 '짐승들...'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둘을 교대로 바라보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①- 에네스 토너먼트 대회가 끝난 다음날 길리엄은 에밀을 데리고 에스트레인 숲으로 돌아가는 길을 떠나게 되었다. "끄응... 그럼, 그 동안 제 동생을 맡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길리엄은 에밀을 자신의 말 등 뒤에 태우고, 뇌수를 찌르는 것 같은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그 찌르는 창은 물론 알콜의 남은 성분이었다. "잘 있어! 케리! 라크리마! 라크레일! 아마레!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에밀은 지금 당장이라도 말에서 뛰어내릴 것 같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두 엘프는 아침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으으으윽... 라크리마... 그럼 난 잠시 자도록 할께..." "예. 그러세요. 주인님. 굉장히 괴로우신것 같은데..." 길리엄은 엘프였기 때문에 자신의 주량을 몇배나 초과한 술을 마시고도 겨우 말에 타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숙취의 넋이 머리에 내려 있는 케리는 겨우 길리엄과 에밀을 배웅한 다음에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어릴 때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시면 다음날 어머니가 특제 야채 스프를 만들었었지... 으음... 좀 더 커서 내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도 그랬어...' 숙취때문에 괴로워지자 케리는 가족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에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회에서 크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을까...' 에마까지 생각나자 케리의 뺨에는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라크리마가 조금만 더 일찍 깨어났다면... 우리 집안이 몰락하는 일도 없었을까?' "저기 주인님..." "아 응?" 아픈 가운데도 잡상에 잠겨있던 케리는 라크리마가 부르는 소리에 천근만근 무거운 머리와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라크리마는 양손으로 쟁반 위에 스프 접시를 들고 있었다. "이거... 여관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숙취에 좋은 음식이라고 들어서요. 제가 한번 만들어 봤어요... 아침도 못 드신다는데... 이거라도...요즘 메이드 다운 일도 잘 못한것 같아서." "응 고마워 라크리마..." 케리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어색하게 움직이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서 스프를 떠먹었다. 굉장히 싱거운 느낌이 들었다. 라크리마는 간을 잘 못맞추는 것일까? "어떠세요? 주인님?" 라크리마도 이 요리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케리의 반응을 살폈다. "응. 괜찮아. 소금을 좀 가져와 주었으면 좋겠지만..." "예." 라크리마는 즉시 앞치마 주머니에서 소금과 후추통을 꺼내왔다. 혹시 간이 안 맞을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두었던 건가. "제가 숙취해소 마법 같은 것을 익혀두었다면... 이런 스프는 필요없을 텐데..." 스프를 한숟갈 한숟갈 떠먹는 케리를 바라보며 라크리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케리는 갑자기 목이 콱 메어왔다. 스프 한숟갈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라.. 라크리마 나는... 네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좋아. 날 위해서 노력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야. 아니 넌 드래곤이지만... 어쨋건. 날 신경써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거야." "주인니임..." 라크리마는 케리의 그 말 한마디에 너무나 밝은 표정이 되어서 케리에게 살짝 안겼다. "라크리마..." 케리도 스프 그릇을 옆으로 치운 다음 라크리마를 꼭 안아 주었다. 케리가 여자가 된 상태였지만, 라크리마는 케리의 품 안에 꼭 들어갈 정도로 갸냘픈 몸이었다. 라크리마는 케리의 앙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체취와 체온을 얼굴 가득히 느꼈다. "주인님... 절 안아줘요..." 라크리마는 잘 익은 복숭아 처럼 달아오른 얼굴로 그렇게 말을 꺼냈다. "....에? 하 하지만... 지금은 난 여자고..." "여자끼리 사랑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게다가... 요즘은 욕구불만이라서..." 라크리마의 눈은 타오르고 있었다. 몸 전체가 뜨거운 에너지를 뿜고 있었다. "더워요...." 앞치마, 블라우스, 치마 순으로 라크리마의 옷가지가 하나하나 바닥에 늘어뜨려졌다. "라... 라크리마 난 그런건..." "전 참을수 없어요!" "으앗!" 라크리마는 침대 안으로 여우처럼 기어들어왔다. "아앙.. 라 라크리마.. 그런데를 핥으면...더 더러워..." "주인님의 몸 가운데 더러운 데는 없어요...아주 예뻐요..." "그 그만해...지금 난 여자잖아.." "몸은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는데요.. 전 여자라도 상관없어요.. 주인님이면 어떤 몸이라도 괜찮아요..." "라크리마 아아아...." 덜컹!!! "누나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크헉...!" 그때 여관 방 문이 활짝 열리고 라크레일이 달려들어왔다. 엿듣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제 딴에는 라크리마와 케리를 갈라놓으려고 들어온 것이지만, 두 미소녀의 달콤한 숨결과 하얗고 부드러운 살갗은 라크레일에게는 너무 큰 자극이었다. ".........." 라크레일은 그 자리에서 빨간 석상이 되어버렸다. "뭐야.. 들어왔으면 말을 해. 임마." 흥이 깨져서 기분 나빠진 라크리마는 당장이라도 라크레일을 두들겨 패줄듯한 기세로 소리쳤다. ".........나도 끼워줘!" "꺼져!!! 이 씨사이같은게!!!" 퍽!!! 잠시후, 라크리마가 괜히 시켜놓은 여관의 아침 설거지 돕기를 마치고 들어온 아마레가 본 것은 다리사이를 쥐고 눈을 하얗게 뒤집고 있는 라크레일과 흥이 깨져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 케리와 라크리마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라크리마에게 사건 경과를 전해 들은 아마레는 창자가 꼬일 정도로 깔깔 거리면서 웃어댓다. 라크레일은 아직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누나... 날 죽이려고 했던 거야...?" "......그런 소리를 들으면 당연하지..." "........." 라크리마 뿐만 아니라 케리도 라크레일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아마레는 아직도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라크레일을 놀리기 시작했다. "라... 라크레일... 푸하하하하 그렇게 욕구불만이면 이 누나랑 할래? 푸하하하" "그건 범죄야... 아마레 누나..." 라크레일은 뚱하게 대답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 아침 까지도 확인해보지 못했는데..." 케리는 점심 무렵이 되서 숙취가 어느 정도 풀리자 라크리마를 데리고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대체 누가 우승한 걸까... 보병 전투대회." "...그걸 꼭 알아야 해요?" "글세... 궁금하니까." "주인님은 우승하지 못했으니까... 그걸로 그만인거 아니예요?" "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혹시 에마 소식이라도 알아볼까 해서..." "에 하지만 에마님과는 마주치고 싶지 않으시다면서...?" "그래도 소식은 알고 싶어. 어떻게 지내는지. 혹시 어제 다친건 아닌지..." 라크리마는 케리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그냥 케리의 뒤를 따랐다. 콜로세움 앞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서 있었고, 그곳에는 어제 경기의 우승자 10명과 사망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생각보다 사망자는 적구나..." 케리는 사망자 명단에서 에마의 이름이 발견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우승자 명단에도 에마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의사들도 대기하고 있었대요." 마법의사란 치료 마법과 의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사들을 의미한다. "에마도 탈락한 모양이구나..." 케리는 그래도 죽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안도했다. 라크리마는 케리의 심리를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저기... 주인님은 에마님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글세... 그건 아냐. 난 에마를 좋아해.. 하지만 에마는 날 싫어하니까... 그래서 피해다니는 거야 지금도..." "하지만 에마님이 주인님을 싫어하는 것은 주인님이 약해서 였잖아요? 이제는 그 떄보다는 훨씬 강해졌으니까..." "그래도.... 아직 에마 앞에서는 날 드러낼수가 없어..." "인간은 복잡하네요..." "라크리마도 라크레일이나 아버지가 있잖아?" 라크리마는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잘 안가는 것 같았다. 근처 상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에마의 소식은 알수 없었다. 결국 낙담한 케리는 근처 까페에서 목이나 축일까 하고 라크리마와 함께 들어갔다. 케리는 따듯한 우유, 라크리마는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맥주를 드릴까요? 하는 귀여운 유니폼을 입은 웨이트리스의 물음에 케리는 아직 약간의 숙취기가 남아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라크리마. 혹시 에마를 우연히 만나더라도 네 정체가 드러날만한 짓은 하지마." "왜요?" "...여자가 되어버린건 너무 부끄러우니까... 네 정체를 알면 내 정체도 바로 드러나버리잖아..." "그렇군요. 주인님..." 라크리마는 고개를 끄덕 끄덕 거렸다. 케리는 과연 잘 알아 들은건지 약간 걱정되었다. 목을 축이면서 다리를 쉬고 있으면서 잠시 한가하게 있던 케리와 라크리마에게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꺄악 뭐하는 거야!" 아까전에 주문을 받았던 웨이트리스의 비명소리였다. 케리가 반사적으로 그곳을 쳐다보니 용병으로 보이는 갑옷차림을 한 도끼와 메이스를 가진 두 남자가 그 웨이트리스의 엉덩이와 다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희롱하고 있었다. "왜 이러시나~ 닳는 것도 아닌데~" "서비스 좀 해줘 아가씨" 남자들은 능글 능글하게 웃으면서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구. 엉덩이가 아주 탱탱하네. 애 잘낳겠어?" "다리도 쭉 빠졌고...젖통도 크고..." 웨이트리스은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해지더니 더이상 못참겠다는 표정이 되서 손에 들고있던 쟁반으로 두 남자를 마구 후려쳤다. 쾅쾅쾅쾅!!! "내가 니들 장난감이야!" 쟁반으로 얻어맞고 있던 남자중 한명은 잠시 그대로 맞고 있다가 곧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릴 정도로 화를 내면서 점원의 팔을 붙잡고 일어섯다. "이 미친 년이 어디다 대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철썩!!! 남자의 솥뚜껑 만한 손이 웨이트리스의 뺨을 때렸다.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듣고 그 쪽을 주목하였다. 한대 얻어맞자 웨이트리스는 더욱 독이 올라서 달려들었지만 근육이 탄탄한 두 남자의 상대가 될리가 없었다. 금새 붙잡혀서 또 얻어맞기 시작했다. "어이구 저저..." "저걸 어째 저걸..." 가게안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고, 몇명은 앞으로 나서려다가 다른 동료 한명이 메이스를 들고 위협을 하자 움츠러들어서 뒤로 물러섯다. 가게를 보고 있던 웨이터는 자신이 나선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 남자는 웨이트리스를 마구 폭행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메이스를 만지작 거리면서 가게 안의 사람들을 마구 위협하고 있었다. 케리도 그 광경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주먹을 쥐고 일어섯다. 불현듯, 얼마전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능욕 당할뻔 했던 일이 떠올랐다. "주인님. 참으세요. 몸도 정상이 아닌데..." "라크리마. 넌 나서지마. 알겠지. 이건 내가 해결할께." "...에 하지만..." "나서지마. 내가 도저히 안될것 같기 전에는." "......예." 케리가 강하게 명령하자 라크리마는 못마땅한 표정임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리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서 그 용병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야! 그만 못해!" "넌 뭐야!" 콰직! 메이스를 잡고 있던 용병은 케리가 세게 나오자 더 강하게 위협을 하려는 듯 애꿏은 탁자를 메이스로 내려쳐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가게 안의 모든 사람이 잠시 움찔했다. 자기 머리가 메이스에 얻어맞아 부서지는 연상을 한 사람들은 허둥지둥 가게 밖으로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 케리도 그 위협에 잠시 움츠러들었지만, 코와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엉엉 울면서 맞고 있는 웨이트리스를 보자 다시 분노가 공포를 초월해버렸다. "그만두라니까!" "이게!" 용병은 메이스로 케리의 머리를 박살내버릴 기세로 메이스를 높이 치켜들고 케리에게 다가왔다. '이런 녀석쯤...' 케리는 오른손에 바람의 힘을 모으려 하기 시작했다. 소닉 브레이크 한방만 가슴에 먹여주면 저런 덩치라도 쓰러뜨릴수 있다. 하지만 케리의 손에는 바람의 힘이 모이지 않았다. 아니 정신집중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런 숙취때문에...' 케리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라크리마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바로 그때, 까페 구석진 자리에서 왠 허연 것이 메이스를 들고 케리를 위협하는 용병을 향하여 날아왔다. "윽!" 용병은 메이스를 야구방망이 처럼 휘둘러서 허연 것을 막아냈다. 쨍그랑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박살난 것은 가게 구석에 장식되어있던 하얀 꽃병이었다. "누구야?!" 용병이 눈을 부릅뜨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그곳을 바라보자 구석진 자리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회색머리의 여검사가 일어났다. '에마?! 어떻게 여기에?' 케리도 그녀를 보고 눈을 부릅떳다 틀림없이 에마였다. '설마 같은 까페에 앉아 있었다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②- 혹시 잘못본것이 아닌가 싶어서 한번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틀림없이 에마였다. '설마 이렇게 어이없이 재회할 줄이야!' 하지만 에마는 케리를 알아보지 못한듯 했다. 케리쪽은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눈길을 돌려 용병쪽을 노려보았다. "넌 뭐야?" "알거 없어." 메이스를 들고 위협하는 용병을 향해서 에마는 샤벨을 뽑아 들고 대응했다. 웨이트리스를 폭행하고 있던 다른 한 용병도 상황을 눈치채고는 도끼를 치켜들고 에마 쪽으로 향했다. 맨손의 케리 보다는 샤벨을 들고 있는 에마가 훨씬 위협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촉일발의 무서운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케리는 눈물이 핑 돌았다. '에마가 날 지켜주려 하다니...' 비록 자신임을 모르고 한 일이라지만, 에마에게서 정을 받아본 것이 벌써 몇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케리는 너무나 가슴이 떨려왔다. 에마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차가운 얼음처럼 변한 것은 자기 탓에 집안이 몰락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가득한 케리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으아아아아!" 기합소리를 지르면서 메이스를 들고 에마에게 돌진하는 용병. 하지만 에마는 용병이 자기 간격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샤벨을 엄청난 속도로 휘둘렀다. 용병이 메이스를 채 내려치기도 전에 그의 얼굴에는 작은 상처가 그어졌다. 주르르륵... 용병은 그 번개같은 속도에 놀라서 잠시 몸이 굳어졌다. 하지만 곧 얼굴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고는 거칠게 말하기 시작했다. "제법 괜찮은 재주지만. 어차피 생채기를 낸 것 뿐. 넌 살인은 못하는가 보구나! 자 공격하자!" 도끼를 든 용병도 가세하여 곧 다시 공격에 나섯다. 엄청난 기세였다. 하지만 에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샤벨을 휘둘렀다. 파캉! 방금 전 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공기를 가르는 속도가 마치 천둥소리 처럼 들렸다. 두 용병은 자신들의 무기에 부딧쳐 오는 엄청난 충격에 무기를 놓치지 않을수가 없었다. 에마의 공격은 메이스와 도끼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두 용병의 얼굴로 향했고... 푸앗! 두 개의 살덩이와 피줄기가 공중에 흩날렸다. "으아아아악!!!" 용병들은 누구의 것인지도 분간가지 않는 비슷한 비명소리를 동시에 지르면서 가게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명은 코 밑의 윗입술이 완전히 날아가서 피투성이가 된 이빨이 보이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한쪽 뺨이 날아가서 역시 피가 입 안으로 철철 새어들어가고 있었다. "엄청나다..." 케리는 에마의 현란한 칼솜씨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래도 이전처럼 전혀 보이지 않던 것과는 달리 검의 궤적은 확실하게 볼수 있었지만, 지금의 케리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검술이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휘둘렀는지 에마의 샤벨에는 피한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에마는 샤벨을 칼집에 다시 집어넣고는 케리를 향해서 다가왔다. '어?' 에마의 눈은 이전의 케리를 바라보는 것과 똑같이 싸늘했다. 하지만 어딘가 슬픔이 가득 깃들어있었다. 케리 바로 앞 까지 다가온 에마는 팔을 휘둘렀다. 짝!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채 케리는 에마에게 뺨을 맞았다. "....아...?" 너무나 어이없는 사건에 케리는 멍한 눈으로 에마를 바라보았다. "이봐 거기 아가씨. 멍청하게 굴지마! 무기 하나도 없이 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랬지? 용기만 가지고 메이스를 막을수 있어? 용기만 가지고 도끼날과 싸울수 있어?" 에마는 거친 소리로 케리에게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있었다. '그렇구나...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나선 게 화나는 거야...' 주위 사람들은 모두 에마가 하는 행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것 같았지만, 케리만은 그녀를 이해할수 있을것 같았다. "당신 같은 사람을 보면 우리 오빠를 보는것 같아서 짜증이 나! 대체 세상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케리의 눈에 눈물이 핑 하고 고였다. "울어? 우는 거야? 울면 모든게 해결될 꺼라고 생각하는 거 아냐?" "아니요... 정말 감사해서... 우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도와주셔서..." 케리는 진심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에마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때, 바깥으로 도망쳤던 웨이터가 경비대를 데리고 돌아왔다. "여기서 용병들이 싸움을 하고 여자를 폭행한다는게... 앗 너냐!" '이런...!' 경비대의 주목을 받은 에마는 화들짝 놀랐다. 감정에 휘말려서 케리를 때리고 훈계한 것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케리가 경비대에 자신이 에마에게 폭행당했다고 한다면... 하지만 에마를 체포하려고 드는 경비대를 케리는 가로막았다. "아니요. 이 여자분은 저를 구해주시려 한 거예요." "아. 그렇습니까? ...에 하지만 상해사건이니 잠시 경비대 본부에 따라오셔야 겠습니다 아가씨. 관련이 있다면 일단 증언이 필요하니..." 경비대장은 피를 바닥에 마구 흘려서 더럽히고 있는 두 용병을 보고는 케리에게 그렇게 말했다. "주인님!" 경비대와 함께 가다가 케리는 '아차!'하면서 라크리마를 돌아보았다. 라크리마가 얼굴을 보인다면 에마는 자신의 정체를... 하지만 앞치마를 들어 얼굴을 가린 라크리마를 보고 케리는 그 기지에 감탄했다. 에마는 라크리마를 살짝 쳐다보았지만, 별로 주목하는 것 같지 않았고... 머리에 하얀 브릿지가 생긴 것도 주의를 분산시킨것 같았다. "먼저 여관에 돌아가 있어! 별 문제 없을 꺼야!" 라크리마의 기지에 감탄하고,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안심하라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예! 케리 주인님!" "........." 하지만 다음 순간 여태까지의 은폐행동을 완전히 다 깔아뭉게버리는 라크리마의 행동에 케리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케리는 완전히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에마를 바라보았다. 에마는 케리가 자신의 오빠와 똑같은 이름이고, 메이드를 데리고 다닌 다는 것을 알자 굉장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케리와 라크리마를 한번씩 쳐다보았다. '...드 들키지 않을까? 들키지 않겠지? 제발 들키면 안돼!' 케리의 가슴은 어릴때 학교 시험지를 숨겨놓을 때보다, 모험을 나갔다가 몬스터를 피해서 수풀속에 숨어있을 때보다 더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다행... 이랄까. 에마는 케리가 여자로 변했다 라는 식으로 생각할 만큼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경비대에게 조사를 받는 중에도 열심히 에마를 변호해주는 케리를 약간은 고마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조사를 다 받고 나서 자리에 앉아 쉬고 있을때 에마는 케리에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렇게 절 변호해 주시는 거죠? 전 당신 뺨을 때렸는데요." "그야... 저를 도와주셧으니까요. 뺨을 때린 것도 저를 생각해서 한 행동이잖아요." "난 내 감정이 충실했을 뿐이예요. 그걸 고맙다고 하다니 바보 같네요..." "아하하하...그런데 아까.. 오빠 라고 했는데 그건 누구죠?" 케리는 넌저시 에마의 마음을 떠보고 싶어졌다. "...남의 사정을 캐묻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아 죄송해요..." "괜찮아요. 별일은 아니지만 절 도와주셧으니까. 그 정도는 이야기해드리죠. 저한테는... 모험담에 미쳐있는 아주 바보같은 오빠가 하나 있어요. 결국 모험을 하겠답시고 온갖 곳에 싸돌아 다니면서 집안 재산은 다 탕진했죠. 결국 집안을 말아먹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셧어요. 어머니는 과로로 돌아가셧고...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그래서 집안이 다 망하고 났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지랄같은 오빠죠." "...정말 너무하군요..." 그렇게 생각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에마의 입에서 직접 그런 평가를 듣자 케리의 가슴은 찟어지는것 같았다. "지금은... 드래곤에게 잡혀있어요. 뭐 최악의 결론이 되버렸죠... 제대로 먹고 살고나 있는지... 하지만, 저런 오빠라도 그래도 살아있으면 좋겟어요. 살아서 제대로 착실하게 사는 모습이라도 볼수있다면 소원이 없겠네요.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오빠인데..."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케리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에마는 그래도 자신에게 아주 정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왜 울죠? 남의 가정사에?" "아. 아뇨. 오빠를 참 생각하시는 분이시네요..." "흥... 그런 자식 어디서 죽건 말건..." 에마는 거칠게 내뱉었지만, 앞의 말과는 모순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케리는 에마가 자신을 아주아주 증오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자 마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 에마에게 정체를 밝힐수는 없지... 적어도 남자로 돌아가고 나서. 남자로 돌아가고 나서...' "그런데 당신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요? 이름이 뭐죠... 아까 메이드가... '케리'라고 한것 같은데?" "아. 하하하하. 잘못 들은 거겠죠. 제 이름은 '케이'에요. 케.이." "그랬군요. 케리는 우리 오빠이름이거든요. 비슷한 이름이라서 착각한것 같네요. 죄송해요. 저런 오빠랑 같은 이름으로 착각해서...케이씨." "아니 괜찮아요." 케리는 에마의 의심을 어떻게 얼버무릴수 있었던 데다가 언젠가는 다시 사이좋게 지낼 희망도 보이는 것 같아서 웃음이 저절로 활짝 피어났다. 경비대의 조사는 케리의 증언 덕분에 에마에게 아주 유리하게 꾸며졌다. 에마는 정당방위로 취급되어 무죄방면. 용병 둘은 상처 치료비도 스스로 부담하게 된 데다가 가게의 손해배상에 웨이트리스의 치료비 까지 물게 되었으며, 폭력행위에 대한 벌금도 부가되어 아주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가게 주인과 웨이트리스가 상당한 돈이었지만 합의를 보는데 성공해서 감옥에는 안 들어가게 되었지만... 토너먼트 대회를 벌이는 시기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려들기 때문에 이런 저런 사고가 많이 나서 경비대도 아주 바쁜것 같았다. 그래서 용병들 끼리의 사건이나 용병이 일으킨 사건 같은 경우는 되도록이면 간단하게 처리하려는 듯 했다. 겨우 일을 끝마치고 에마와 케리가 경비대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밖에는 라크리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니임~!" '...라크리마. 그냥 아마레나 라크레일을 보낼 것이지 왜 직접 나와서는...!'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달려들어서 품 속에서 하얀 육면체에 말랑말랑해보이는 물건을 꺼냈다. "...이 이게 뭐야...?" "이건 동방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데요. 감옥 같은데 들어갔다 오면 액땜으로 먹는 거래요. 콩으로 만들었대요." "저기 난 감옥 갔다 온게 아냐." "그래도 좀 드세요. 제가 일부러 사가지고 온건데...비싸다구요 이거." "이름이 뭐야?" "두부요..." 결국 라크리마의 고집에 케리는 두부라는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먹어야만 했다. 맛은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이봐 잠깐." 그런 라크리마를 보자 에마는 다시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케리를 불러 세웠다. "그 메이드의 이름은 뭐지?" '...제 젠장...그러니까 라크리마는....' 에마의 물음에 케리는 말문이 팍 막혔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19화 -만나고 헤어짐 ③- 에마는 설마설마 하면서도 혹시 하는 심정으로 케리를 째려보았다. 케리는 라크리마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에마에게 대답했다. "라미, 라미라고 해요. 그렇지 라미?" 케리가 살짝 눈짓을 하자 라크리마도 무슨 일인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에마는 상당히 의심스러워 하는듯 했지만, 케리가 여자로 변했다는 것을 알 리도 없고 얼굴 모양도 상당히 변해 있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그럼 케이씨. 증언해줘서 고마웠어요.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할수 있게 되기를 빌께요. 그럼 잘가요." "예. 뭘 이런걸 가지고... 그럼..." 케리는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에마를 전송해주었다. "주인님. 왜 정체를 밝히지 않아요? 에마님도 아주 주인님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은 절대 밝힐수 없어. 그러면, 돌아가자 라크리마." "예..." 라크리마는 석연찮은듯 했지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앞장을 섯다. 여관에 돌아와보니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라이오스가 돌아오는 케리를 반갑게 맞은 것이다. "어머, 라이오스씨 여기는 무슨 일로...?" "길에서 우연히 라크리마 양을 만나서 사정을 들었습니다. 큰 일을 겪으셧다면서요?" "아니 뭐 큰일이랄것 까지야..." "아니요! 부당하게 폭행당하는 약자를 구하기 위해 무기도 없이 완전무장한 용병들 앞에 나서서 그들을 제지한 그 용기! 실로 기사의 귀감이라 할수 있습니다! 또 한번 저를 감탄하게 하는 군요. 케리 님은 언제나 저의 수행이 부족함을 절감하게 하십니다." "라이오스 씨라도 그러셧을 꺼예요..." 라이오스가 호들갑에 가깝게 케리를 뛰워주자 오히려 케리가 어쩔줄을 몰랐다. 호호호호 거리면서 태연히 받아낼정도로 케리는 얼굴이 두껍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무용담에 대해서 오늘도 함께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물론 제가 사지요." "고 고맙습니다만... 무리하시는거 아닌가요? 이틀이나 연속으로..." "하하하하하! 저희 루퍼스 왕국의 사나이에게 이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이오스는 가슴을 펴고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 멀쩡해보이는 것이 아직도 약간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은 케리와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케리는 내심 라이오스의 체력에 감탄했다. 이번에는 전날과 같은 승부욕이 나지 않았다. "아니요. 사실 제가 좀 피곤해서요. 술은 다음에 마셧으면 좋겠네요." "그럼. 그러도록 하지요. 잘 주무십시요 케리님." 라이오스는 아쉬운 얼굴로 자신의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대단한 사람이야..." 다음날. 라이오스는 느닷없이 아침일찍 케리에게 찾아와 난데없는 말을 꺼냈다. "저와 동료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예?!" 케리는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라 손을 휘저으면서 대답했다. "전 나 남자는... 아직..." "아니요. 여자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케리님. 동.료.입니다. 동료." "동료라면...?" 그제서야 라이오스는 제대로된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사실 나라를 떠나서 기사수행을 하고 있는 몸입니다. 아버님께서 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오는 것이 훌륭한 기사가 되는 길이라고 말씀하셧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케리 님을 보고 나서 저의 미숙한 점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실력은 케리님보다 뛰어날지 모르나 아직 진정한 기사로서의 마음가짐이 완성되지 않은것 같습니다. 케리님. 괜찮으시다면 저를 동행시켜 주시지 않겟습니까? 저는 케리님의 언행을 교사로 삼아 더욱 자신을 단련하고 싶습니다." 라이오스는 케리 앞에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아 간절하게 부탁했다. 케리는 갑자기 라이오스가 이렇게 나오자 난처해져버렸다. "저 저기 이러시지 마세요. 전 아직 기사 서품 같은것도 받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케리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입니다. 제가 동행할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요." "그....그러시다면 우선 일어나셔서 부탁해주세요." "예. 그 쪽이 편하시다면..." 라이오스는 절도있는 동작으로 기운차게 일어섯다. "그럼. 다시 한번 정중하게 부탁드리곘습니다. 저를 동료로 받아주십시요." 라이오스는 신사적이고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 그 열의가 지나쳐 케리는 도저히 라이오스의 부탁을 거절할수가 없었다. "좋아요... 이 도시를 떠나면서부터 동행하도록 합시다. 라이오스님. 하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친다고 해도 놀라지 말아주세요." "물론입니다. 케리님." 라이오스는 다시 한번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아 케리의 손에 입맞춤을 하였다. 부끄러움 탓에 케리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야 그런걸 허락하다니 핏..." 아마레는 케리가 라이오스의 동행을 허락한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일단 주인이니 따르려는 듯 했다. "뭐 나는 누나가 좋다면 상관없어." 라크레일은 일행중에 남자가 하나.. 아니 둘이 늘어나는 것이 좀 못마땅해보였다. "정말 거절하기가 힘들었다니까..." "주인님이 결정하신 일이라면. 전 찬성이예요." 케리의 변명에 라크리마가 맞장구를 쳤다. 라크리마가 그렇게 나오자 아메라와 라크레일도 일단 찬성. 그날 오후는 라이오스와 함께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로 했다. 케리는 상점가에 라크레일을 데려와서 라이오스와 잭슨과 만났다. 아마레와 라크리마는 혹시 폭주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차마 쇼핑에 데려올수는 없었다. 라크레일을 데려온 것은 그래도 남자로 폴리모프한 몸이라 라크리마나 아마레보다는 기초 체력이 좋아서 짐꾼으로 쓸만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런데.. "무기가 없다구요?" 쇼핑을 하다가 라이오스는 눈이 휘동그래 져서 그렇게 소리쳤다. "잭슨도 단검 던지기 재주가 있어서 단검을 몇자루 가지고 다니는데... 케리 님은 무기가 없다니..." "전 모험가지 용병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몬스터가 습격해오거나 하면 어쩝니까?" "라크리마가 마법을 쓸줄 알고, 저도 보다시피 권법을 약간..." "하지만 그 정도로는 상대가 안되는 몬스터가 있을것이 아닙니까." 사실 라크리마가 함께 있으면 몬스터들은 가까이 오지도 않으니 달리 무기를 구비할 필요가 없었다. 연습용 목검이 한자루 있기는 했지만... 라크레일과 아마레도 마찬가지. 그들을 잡아먹거나 공격할수 있는 몬스터가 있다는 것이 애당초 말이 안됐다. 드래곤이 세마리나 되는데 덤벼들 놈이 있을리 없으니... 하지만 라이오스에게는 그것을 납득시킬수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몬스터가 작고 온순한 편인 않은 남쪽지방과는 달리 흉폭하고 커다란 몬스터가 많이 서식하는 북쪽지방 사람인 만큼 무기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결국 케리는 별로 쓸데도 없이 레이피어 한자루를 사야 했고, 라크레일도 숏 소드 하나를 차게 되었다. "필요한 물품은 다 구입한것 같군요.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서 행동을 함께 하도록 합시다. 그런데...목적지는 어딥니까? 케리님." 라이오스의 물음에 케리는... "북쪽으로 가서 슈레인 공국을 지나 에스펠 산맥에 있다는 던젼을 탐사할 계획이예요." 라고 대답했다. 그 말에 라이오스는 화들짝 놀랐다. "에스펠 산맥이라니... 그곳은 용존계(龍存界)와의 접경이라는 곳이 아닙니까? 그곳의 던젼이라면 혹시 드래곤 레어?" "글세... 저도 처음 가보는 곳이라... 혹시 겁나세요?" "아니요. 그럴리가 있습니까!" 라이오스는 케리가 살짝 도발해오자 당당하게 소리쳤다. "설사 스톰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 칼 한자루만 있으면 이길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케리님!" 케리는 그 말을 듣고 살짝 라크레일을 돌아보았다. '역시...' 라크레일은 굉장히 음침한 표정으로 라이오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또 저주를 걸지는 말라고 나중에 말해둬야겠군.' "그러니까 스톰 드래곤이라도 저에게는 아무 문제가..." 신나서 호기를 부리고 있는 라이노스의 등 뒤에서 케리는 살짝 미소지으면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그 스톰 드래곤이 우리 파티에는 두명이나 있는걸요. 골드 드래곤도 있어요.' 그리고 그날 밤. "......그런 일이 있었지 뭐니.하하하하" "호호호. 라크레일도 참..." 케리는 침대에 앉아서 라크리마와 깔깔 거리면서 수다를 떨었다. 점점 여성화가 가속되는듯 하다. "그런데... 라이오스 씨. 꽤나 멋진척 하지 않니? 루퍼스 왕국 남자들은 전부 저렇게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가. 기사도의 나라라는 이곳도 이젠 저렇게 까지 기사인척 하는 사람은 없는데...그래도 쬐금 멋지더라. 아 나도 저런 남자가 되어볼까..." 라크리마는 케리가 라이오스를 칭찬하는 말을 하자 그때까지 웃고 떠들면서 즐기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왜 왜그래...?" "케리님. 혹시 라이오스와 무슨 썸씽이 있다던거 하는건 아니예요?"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왜 오늘 절 안데려 가셧어요?" 라크리마는 새초롬 하게 눈을 부릅뜨고 케리에게 다가왔다. "그...그건..." "안아줘요." "뭐?" "라이오스 씨랑 썸씽이 없다는걸 증명하려면 절 안아보세요." "....하 하지만 지금은 난 여자잖아." 라크리마의 진짜 목적인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한 케리였다. "괜찮아요. 여자끼리 즐겁게 즐기는 방법도 배워둿으니까아... 요전번에 중간에 그만 두는 바람에 더 욕구불만이 되어버렸어요..." 달콤한 숨결을 내쉬면서 다가오는 라크리마를 피해서 케리는 주춤주춤 도망쳤지만, 고양이 앞의 생쥐였다. "하지만 라크레일이..." "그 녀석에게는 절대 방해하러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둿으니까 상관없어요! 주이니임~" "으왓!" 라크리마는 달콤한 교성을 지르면서 케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뭐 이 뒤는 상상에 맡기도록 하자. 그리고 다음 날.... "왜 저러신가? 케리님이...?" 라이오스는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케리와 라크리마가 밤새도록 설친탓에 피곤해서 비실 비실 거리는 것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고, 라이오스에게 질문을 받은 라크레일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막막해져서 헛기침만 했다. 모든 것을 눈치챈 아마레는 '짐승들...'이라고 조용히 중얼거리면서 둘을 교대로 바라보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①- 케리는 기사 라이오스와 그의 하인 잭슨이 동료로 추가되자 세 드래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몇가지를 당부해두었다. 꼭 필요한 경우는 어쩔수 없지만 어떤 경우라도 3서클 3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사용하지 말 것. 마법을 익혔다고 해 두었지만 4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남의 집 하인으로만 있다는 것은 굉장히 수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3서클 정도도 남의 집 메이드나 하고 있기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였지만... 하지만 그렇게 제한을 두었다고 해도, 드래곤 세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다니는데 겁없이 습격하러 올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여행을 하는 동안 케리 앞에서 검을 휘두르면서 폼을 한번 잡고 싶어진 라이오스의 좀을 쑤시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방 수킬로미터 내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몬스터가 라이오스의 눈에 뛸리도 없었으니... 결국 라이오스는 검술 연습을 시켜준다고 케리나 라크레일을 귀찮게 했다. 케리는 나름대로 고맙게 맏아들였지만, 라크레일은 애당초 폴리모프한 몸이니 검술에는 관심도 소질도 없었다. 하지만 열띤 태도로 달려드는 라이오스와 수련을 선뜻 받아들이는 케리 앞에서 자기 혼자 거절하기도 뭐한 일이었고...특히나 라이오스는 "남자라면 검술을 익혀야지! 너희 누나를 지켜줘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사정모르고 열변을 토한 것이었지만, 라크레일은 '누나를 지키는 동생'이라는 상황을 굉장히 동경하고 있었다. 결국 라크레일은 대책없이 수행에 끌려가서는 밤에는 낮에 무리한 운동을 하느라 뻐근한 몸을 가지고 투덜투덜 거리는 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저녁인가. 케리는 라크리마와 함께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첫날 잭슨에게 준비하게 한 식사가 너무나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잭슨이 한 요리는 거의 꿀꿀이 죽 수준이었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그것을 사냥감 만난 오우거처럼 맛있게 퍼먹는 라이오스 였지만... 라이오스는 북쪽의 루퍼스 왕국에서 겨울산 수행을 쌓을때는 이런 음식도 못 먹어서 굶어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지만, 케리라고 그런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입맛에 차이가 있는 듯했다. 라크리마야 애당초 트롤을 껌처럼 씹어먹는 드래곤이니까 별 말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미식취향인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이런 식사는 오크에게나 줘야 한다'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결국 케리가 식사 당번을 맡게 되었고, 라크리마는 케리를 따라서 식사 당번, 나머지는 설겆이 당번으로 밀려났다. 하루하루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은 너무나 간단히 어그러져버렸다. "저기 라크리마." 케리는 준비를 다 마치고 스튜가 끓는 것만 기다리면서 라크리마에게 말을 걸었다. 저편에서는 라크레일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기운찬' 기합소리라고 하지 않은 것은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누나를 지킨다'라는 말 한마디에 넘어가서 쓸데없는 검술수행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엄청난 시스터 콤플렉스다. "왜요?" "이번에 우리가 찾아가는 드래곤은 대체 어떤 드래곤이지?" "에스펠 산맥의 칼레이븐 이라는 분이세요. 레드 드래곤의 에이션트 드래곤이시죠." 그렇게 대답하는 라크리마의 얼굴은 약간 어두워져 있었다. 아직 라이오스에게는 그들 일행이 드래곤이라는 사실과 그들이 지금 하는 여행이 에이션트 드래곤과 드래곤 로드 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일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야 라이오스가 이 여행의 목적을 알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오스 같은 100% 완벽한 북방 기사는 케리도 만나보지 못했다. "레드 드래곤 이라면..." "예. 얼마나 괴팍하고 성질급한 종족인데요. 아아 처음부터 그런 종족의 에이션트 드래곤이라니..." 라크리마가 한숨을 푹 내쉬자 케리는 레드 드래곤에 대해서 만큼은 인간 사회에 퍼진 속설도 나름대로 들어맞는가보다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즈음 스튜가 끓으면서 냄새를 숲속으로 흘려보내자 검술 수행 끝에 몸은 땀에 젖고 뱃속은 텅텅 빈 라이오스와 라크레일은 마치 천상의 향기라도 되는 것 처럼 냄새를 쫓아 너울너울 달려왔다. "루퍼스의 기사, 라이오스 G.K. 라피다! 지금 수행을 마치고 왔습니다!" "라크리마 누나! 누나를 지키기 위해서 수행을 마치고 왔습니다!" 라크레일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라크리마에게 달려왔지만, 땀냄새를 맞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라크리마를 보자 얼굴에 실망이 팍 하고 퍼졌다. "너 말야. 검술 수행은 대체 왜 하는 거야?" "그야 누나를 지켜주기 위해서지." 라크레일은 그때 '누나를 위한다'라는 마음에 들떠서 반쯤 폭주상태였다. ".........저기 말이지..." 라크리마는 라이오스 앞에서 '우린 드래곤이니까 검술 수행은 필요없잖아!'라고 말하지 못하고 속만 태웠다. "하하하하! 라크리마 아가씨. 라크레일 군이 검술에 아주 소질이 좋습니다. 이런 동생이 있어서 기쁘시겠군요."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라이오스가 호쾌하게 말하는 것은 라크리마에게 잘 비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둘 다 바보'라고 생각할 뿐이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케리는 라이오스의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저기 라이오스 씨." "예?" "드래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케리가 슬쩍 떠보듯이 물어보자 라이오스는 자신있게 눈에 불을 켜고 대답했다. "그야 물론! 레이디의 적이자 기사의 적이죠! 사악한 드래곤에게 잡혀간 레이디를 구하는 기사... 아 이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필사의 각오로 말을 달려 드래곤에 입에 랜스를 꽃아넣고..." "풋! 쿨럭쿨럭." 갑자기 아마레가 사레가 들린듯이 쿨럭거렸다. 혹시 목 안에 랜스가 박힌걸 상상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레의 본체 크기에 비하면 좀 큰 생선가시 수준일테지만... 라크레일과 라크리마도 조금 얹잖은 얼굴이었다. "머머머 멋지십니다 주주주 주인님 그그 그런데... 그그 래 랜스는 제제 제가 뽑아와야 하하나요?" 잭슨이 더듬 더듬 거리면서 별 쓸데없는 의문을 말했다. 잭슨은 태어날 때부터 말더듬이였다. 상당히 어릴 때 부터 라이오스의 집에서 일을 해왔다고 한다. 케리는 라이오스의 반응을 보고 될수있는한 라크리마들의 정체는 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날밤. 라크레일은 그제서야 라이오스의 열변에 넘어간 자신을 한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쑤시는 팔와 다리를 부여잡고 투덜투덜 거렸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또 라이오스에게 넘어가는 걸 보면... 드래곤 족이 현명하다는 이야기는 아직 적용되지 않는것 같다. 마침내 그들은 에스펠 산맥이 멀리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만년설이 하얀 띠를 이루면서 덮혀있는 까마득하게 높은 산맥만 넘으면 그곳은 용존계. 인간의 출입이 결코 허락되지 않은, 오직 드래곤 족과 그들의 시종만을 위한 땅이 펼쳐진다. 라크리마는 나름대로 감회가 넘치는 표정으로 에스펠 산맥을 바라보았다. 마침 라이오스는 라크레일이 끌고갔고(말이 뒤바뀐것 같은데...), 잭슨은 혼자 땔감을 모으러 갔기 때문에 케리는 평소 궁금하게 여기던 용존계에 대해서 라크리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라크리마. 용존계란 대체 어떤 곳이야?" "예...? 으음... 인간들의 표현으로는... 표현하기 꽤 어려운데... ....음 한마디로 도시예요." "도시?!" 에스펠 산맥 너머의 용존계는 가스트 제국 거의 전체와 필적하는 크기다. 그런데 그것이 도시라니... "정확하게 말하면 드래곤 레어가 촘촘하게 몰려있다... 라고 하면 되겠죠. 인간들은 드래곤의 레어 근처로는 잘 오지 않으니까, 자연스럽게 산맥 너머로는 넘어가지 않게 된 거예요. 뭐 넘기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드래곤 로드 몇명이 언젠가 협력해서 산맥을 더욱 크게 만들어서 인간들이 쉽게 넘어오지 않도록 하고 그 안을 용존계로 선포했어요." "으음... 인간 세상에서는 그저 저 너머가 용존계라는 전설만 전해져 오는데... 그리고 저 산맥을 넘어간 모험자들은 하나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지." "아마 대부분 설산에서 얼어죽거나... 아니면 용존계로 들어간다면... 누가 죽였는지도 모르게 죽어버릴껄요..." "하긴 드래곤 레어가 그렇게 많다면..." 케리는 꽤나 지옥같은 광경이 떠올랐다. 겨우겨우 필사의 각오로 설산을 넘어갔는데 그곳은 전설대로 드래곤의 소굴... 절망적 인 이야기다. 하지만 갔다가 돌아온 사람도 없으니 모험가들은 계속 도전하고... "이 이야기를 나중에 퍼트려도 될까?" "글세... 주인님이 퍼트린다고 해도... 인간들은 계속 도전할껄요. 제가 여태껏 살면서 본 바로는 인간들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모험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니까."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아참..." 케리는 그제서야 라크리마의 레어는 용존계 밖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라크리마는 왜 용존계 밖에서 사는 거지? 무슨 이유라도 있어?" "...그야 북적북적 대는걸 싫어하니까요. 북적이는걸 싫어하는 드래곤은 바깥에 나와서 살아도 되요. 물론 퇴치당하거나 하면 자기 잘못이지만... 드래곤이 퇴치당할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아 라크레일과 아마레의 레어도 저 안에 있어요." "...단순한 이유구나" 하지만 라크리마가 귀찮아할 정도로 드래곤이 바글거린다는 것은 대체 어떤 상황일까? 케리는 상상해보고 잠깐 오싹해졌다. 한편 라이오스도 수행을 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에스펠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마경에 가겠다니... 케리님은 역시 통이 큰 여인이로군. 또 한번 마음에 들었어. 고향에 있는 새침한 여자들과는 전혀 틀려. 저분이야 말로 나의 이상형이야!" "........." 그 말을 듣고 라크레일은 잠시 라이오스를 노려보았다. "자 라크레일 군! 어서 수행을 하자고! 누나를 지켜야지!" "예!!!" 하지만 특정한 말 한마디만 들으면 갑자기 한방향으로 달려가는 라크레일... 나중에 고생할것 같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②- 보통 드래곤의 레어 주위에는 드래곤이 경비용으로 배치해둔 것 이외에는 몬스터가 살지 않는다. 그런 몬스터는 '버서커'와 같아서 보통의 몬스터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드래곤 레어에 침입하기 전에 그 몬스터들과 대결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아무리 광폭화된 몬스터라도, 주인인 드래곤의 기운은 알아보게 마련이다. 특히나 셋이나 몰려다닌다면... 무식한 것은 아니지만 꽤나 단순무식한 성격인 라이오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칼레이븐의 레어라는 장소에 거의 접근했는데도 몬스터 한마리 보이지 않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서 좀이 쑤셔셔 눈치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길을 가다가 라이오스가 그렇게 물어오자 케리는 이 질문에 대한 변명은 생각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들 당혹감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느꼈다. 케리는 이 드래곤 효과의 혜택을 너무 받다 보니 이제는 효과가 당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글세요... 무슨 축복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드래곤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한 케리였지만 라이오스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과연! 무신 브라부스께서 저희들의 앞길을 축복하고 게시는 것이군요!" "예에. 그래요." 무신 브라부스는 루퍼스 왕국에서 숭상되는 무예의 신이다. 가르침은... 라이오스를 보면 쉽게 알수있을 것이다. "무신 브라부스의 축복까지 받을수 있다니... 이 모험은 확실히 성공할것 같습니다!" "아.. 예. 하하하." 하지만 칼레이븐이라는 레드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에 대한 소문 그대로 굉장히 괴팍하다는 것을 라크리마로부터 듣게 된 케리는 라이오스 처럼 안심하게 될수가 없었다. 드디어 칼레이븐의 레어 근처다. 라크리마와 아마레, 라크레일이 모두 이 근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아 이 근처인 것은 확실한듯 싶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눈에 뛰던 라크리마의 레어와는 정 반대로 칼레이븐의 레어는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이 뜨고 착륙하려면 상당히 넓은 공터가 필요할텐데... 이 근처에는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아." "과연. 드래곤이 뜨고 착륙하려면 넓은 공터가 필요하겠군요. 그런 것 까지 예측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케리님은." ....'이산이 아닌가벼'하고 있는 케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라이오스는. "앗 저기!"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던 아마레가 손을 뻗어 한 절벽밑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높이 3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드래곤은 커녕 와이번, 아니 해츨링이 들어가 살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동굴이었다. "저런데 들어가 있을리가 없잖아. 아마레." "그게 아니라... 저 동굴 앞에 비석이..." 케리의 핀찬에 아마레는 눈가를 찡그리면서 대꾸했다. "에?" 케리의 눈에도 희미하게 비석 비슷한 것이 동굴 옆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비석 앞으로 가보니 비석은 오래되서 많이 풍화되었는데 희미한 문자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문자인지는 읽을수 없었다. "드래곤 문자예요 이건." 라크리마가 앞으로 나서면서 그렇게 말하자 케리도 그 문자로 써진 책을 라크리마의 레어에서 본 적이 있는 기억이 났다. "드래곤 문자라니... 읽을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라이오스의 물음에 라크리마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으음... 많이 닳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은... 칼레이븐의 레어.... 의 던젼... 의 입구... 들어오면...함정..? 보물...? 만든 사람... 칼레이븐... 정도? 만 읽을수 있어요." "그그그 그그그 드드드 드래곤 무문자를 어어 어떻게 이읽는다는 거야...? 거거 거거짓말" 심하게 더듬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잭슨은 라크리마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했다. 하긴 메이드 복을 입은 하녀가 드래곤 문자를 읽을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만... "무슨 소리냐! 잭슨. 라크리마 양이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데 거짓말이라니! 이 무례한 놈. 좌우간 이곳은 칼레이븐의 레어인것 같습니다. 어쩌죠 케리님?" 라크리마가 잭슨을 노려보기도 전에 라이오스의 호통이 잭슨을 내리쳤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라이오스는 라크리마가 옳다는 것을 자신하는 것이냐? "음... 일단 들어가보죠?" "......케리님 농담이시죠. 칼레이븐이라면 전설의 에이션트 드래곤이 아닙니까? 이 장비와 이 인원으로 칼레이븐을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브라부스의 가르침에도 무모한 전투는 피하라고 써있습니다." 케리는 언제나 자신이 말하기만 하면 따라오던 라이오스가 의외로 논리적으로 판단하여 저항을 해오자 적잖게 놀랐다. 라이오스는 단순무식한 바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라이오스일 뿐이었다. 케리는 잠시 생각한뒤. "이 비석이 이렇게 닳을 정도인데, 칼레이븐은 이미 살아있을리가 없잖아요? 설마 비석도 안 고치고 있겠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과연 케리님은 명석하십니다." 라이오스가 너무 멍청한 것일 뿐이다. "라이트!" "라이트!" "라이트!" 마법의 빛이 세개나 나란히 빛을 냈다. 햇불을 준비하려던 잭슨과 라이오스는 헛고생을 했다고 아쉬워했지만, 케리는 예비로 햇불도 가져가자고 했다. "세 명의 하인이 모두가 마법을 할줄 알다니... 케리님은 대단한 부하를 거느리고 있군요." "예예..." "그런데... 칼레이븐이란 대체 어떤 드래곤일까요?" 라이오스의 물음에 라크리마가 대답했다. "듣기로는... 칼레이븐 할아버지는 던젼을 좋아한다고 해요. 던젼 매니아... 라던가..." "...예? 칼레이븐 할아버지 라니요?" 라이오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묻자 케리는 아차 하고 속으로 한번 말하고는 라크리마의 변명을 했다. "아 그거야. 비유죠 비유. 에이션트 드래곤이니까 할아버지." "아 과연. 라크리마 양은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군요." 라이오스는 어쩌면 아부에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케리는 동굴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백묵으로 표시를 해나가고... "음 저는 던젼은 많이 탐험해보지는 않아서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은데..." "예... 전 한번 호된 경험을 해봤거든요..." 케리는 몇번째인가 모험에서 던젼 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을 뻔한 경험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여러번의 실패는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케리에게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던젼 어디 쯤엔가 왔을까? 슬슬 다리에 피로가 오기 시작하자 케리는 휴식하기로 결정했다. "던젼 같은 곳에서는 무리하는건 금물이예요. 체력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요."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건빵과 육포를 약간씩 씹어먹으면서 케리는 말했다. "음 야영에서도 그건 필수요소죠.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서건. 하지만 이거... 몬스터가 안 나오니 좀이 쑤셔서..." 라이오스는 던젼에 가득한 몬스터를 바라는 듯 했지만... 케리도 던젼 안에 몬스터는 커녕 동물도 하나 없다는 것이 약간 이상해서 살짝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몬스터의 흔적같은 것도 없다면... "...아 라크레일. 너 지금 뭘 깔고 앉아있는 거니?!" 그러다가 케리는 라크레일이 깔고 앉아있는 물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응?...악!!!" 라크레일이 앉아있던 물체는 돌이 아니라 해골이었다. 크기와 형태로 보아 오크의 해골... 근처에는 다른 부위의 뼈라던가 오크가 지니고 있었던 물건으로 보이는 것이 거의 다 삭아서 널부러져 있었다. "왜 오크가 여기서 굶어죽은 거지?" "던젼을 탐험왔다가 ...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케리님. 오크는 멍청하니까..."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기는 했다. 또 다시 걸어서 한참... 케리는 길을 하나하나 표시해 나가면서 조사해 나가는 방법을 썻다. 지류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다행히 함정 같은 것은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 동굴은 뭔가 이상해..." "어디가요? 주인님." "이 벽이나 구조 같은걸 보면... 어딘가 자연의 동굴과는 느낌이 너무 틀려. 마치 만들어진것 같단 말이야." "혹시... 칼레이븐이 마법으로 만들었다던가...?" 라크리마라고 같은 실수를 두세번씩 하지는 않는다. 아니 가끔 하는것 같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복잡한 던젼을 만들어서 굶어죽게 하다니.. 악랄한 드래곤이군요." 이 던젼의 목적이 확실히 밝혀진 것도 아닌데, 라이오스는 이상하게 열을 냈다. 또 다시 걸어서... 이젠 지겹다. 케리 일행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걷고 쉬고 걷다 쉬고를 반복했다. 케리는 이미 한번 던젼에서 헤매본 경험이 있고, 던젼에는 익숙한 편이다. 라이오스도 나름대로 단련을 많이 했고, 잭슨도 던젼 정도로 어떻게 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라크리마도 동굴 생활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그들은 모두 아직 상태가 양호하다 하지만... 라크레일이나 아마레에게 그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폐쇄공포증이... "우리집은.... 이렇게 비좁지 않았는데!" 쾅! 라크레일이 갑자기 동굴벽을 발로 탕탕 쳤다. "왜그래?" "아... 아냐..." 라크리마가 돌아보자 잠시 제정신을 차린듯 했지만, 라크레일 뿐만 아니라 아마레도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으앙 으앙 으앙..." "왜 울고 그래 아마레?" 케리가 다그쳤지만 아마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손가락 만한 몸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기 감각이 갑자기 그쪽에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드래곤은 하늘을 나는 비행능력이 있는 몸이다. 상쾌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당연했다. 이렇게 비좁고 빽백한 환경에서는 오래 참지 못한다. 휴면중이 아닌 이상. 특히 '하늘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는... 물론 이 정도야 약간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하지만 계속 길을 찾지 못하고 헤메다니는 이 지겨운 상황이 오래되면...? 게임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판을 엎고 싶어진다. 그런 심리가 아마레와 라크레일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부수자!" "뭐?" 갑자기 라크레일이 벽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이 벽을 부수는 거야! 그럼 빨리 돌파할수 있잖아!" "잘 생각했어 라크레일! 좋아 그럼 간다!" "자 잠깐만..." 다른 일행이 둘을 말리려 했지만 듣지 않았다. "스톤 브레이크!" 콰과과과광!! 둘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고 마법에 걸린 돌벽은 저절로 금이 가면서 무너져 내려 커다란 구멍을 드러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②- 보통 드래곤의 레어 주위에는 드래곤이 경비용으로 배치해둔 것 이외에는 몬스터가 살지 않는다. 그런 몬스터는 '버서커'와 같아서 보통의 몬스터보다 훨씬 강력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드래곤 레어에 침입하기 전에 그 몬스터들과 대결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아무리 광폭화된 몬스터라도, 주인인 드래곤의 기운은 알아보게 마련이다. 특히나 셋이나 몰려다닌다면... 무식한 것은 아니지만 꽤나 단순무식한 성격인 라이오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칼레이븐의 레어라는 장소에 거의 접근했는데도 몬스터 한마리 보이지 않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몬스터가 나오지 않아서 좀이 쑤셔셔 눈치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왜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길을 가다가 라이오스가 그렇게 물어오자 케리는 이 질문에 대한 변명은 생각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들 당혹감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느꼈다. 케리는 이 드래곤 효과의 혜택을 너무 받다 보니 이제는 효과가 당연하게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글세요... 무슨 축복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드래곤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한 케리였지만 라이오스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과연! 무신 브라부스께서 저희들의 앞길을 축복하고 게시는 것이군요!" "예에. 그래요." 무신 브라부스는 루퍼스 왕국에서 숭상되는 무예의 신이다. 가르침은... 라이오스를 보면 쉽게 알수있을 것이다. "무신 브라부스의 축복까지 받을수 있다니... 이 모험은 확실히 성공할것 같습니다!" "아.. 예. 하하하." 하지만 칼레이븐이라는 레드 드래곤이 레드 드래곤에 대한 소문 그대로 굉장히 괴팍하다는 것을 라크리마로부터 듣게 된 케리는 라이오스 처럼 안심하게 될수가 없었다. 드디어 칼레이븐의 레어 근처다. 라크리마와 아마레, 라크레일이 모두 이 근처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아 이 근처인 것은 확실한듯 싶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눈에 뛰던 라크리마의 레어와는 정 반대로 칼레이븐의 레어는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드래곤이 뜨고 착륙하려면 상당히 넓은 공터가 필요할텐데... 이 근처에는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아." "과연. 드래곤이 뜨고 착륙하려면 넓은 공터가 필요하겠군요. 그런 것 까지 예측하시다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케리님은." ....'이산이 아닌가벼'하고 있는 케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라이오스는. "앗 저기!"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던 아마레가 손을 뻗어 한 절벽밑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높이 3미터 정도 밖에 안되는... 드래곤은 커녕 와이번, 아니 해츨링이 들어가 살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동굴이었다. "저런데 들어가 있을리가 없잖아. 아마레." "그게 아니라... 저 동굴 앞에 비석이..." 케리의 핀찬에 아마레는 눈가를 찡그리면서 대꾸했다. "에?" 케리의 눈에도 희미하게 비석 비슷한 것이 동굴 옆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비석 앞으로 가보니 비석은 오래되서 많이 풍화되었는데 희미한 문자가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문자인지는 읽을수 없었다. "드래곤 문자예요 이건." 라크리마가 앞으로 나서면서 그렇게 말하자 케리도 그 문자로 써진 책을 라크리마의 레어에서 본 적이 있는 기억이 났다. "드래곤 문자라니... 읽을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라이오스의 물음에 라크리마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으음... 많이 닳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은... 칼레이븐의 레어.... 의 던젼... 의 입구... 들어오면...함정..? 보물...? 만든 사람... 칼레이븐... 정도? 만 읽을수 있어요." "그그그 그그그 드드드 드래곤 무문자를 어어 어떻게 이읽는다는 거야...? 거거 거거짓말" 심하게 더듬거리는 목소리였지만 잭슨은 라크리마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는 듯 했다. 하긴 메이드 복을 입은 하녀가 드래곤 문자를 읽을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만... "무슨 소리냐! 잭슨. 라크리마 양이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데 거짓말이라니! 이 무례한 놈. 좌우간 이곳은 칼레이븐의 레어인것 같습니다. 어쩌죠 케리님?" 라크리마가 잭슨을 노려보기도 전에 라이오스의 호통이 잭슨을 내리쳤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라이오스는 라크리마가 옳다는 것을 자신하는 것이냐? "음... 일단 들어가보죠?" "......케리님 농담이시죠. 칼레이븐이라면 전설의 에이션트 드래곤이 아닙니까? 이 장비와 이 인원으로 칼레이븐을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브라부스의 가르침에도 무모한 전투는 피하라고 써있습니다." 케리는 언제나 자신이 말하기만 하면 따라오던 라이오스가 의외로 논리적으로 판단하여 저항을 해오자 적잖게 놀랐다. 라이오스는 단순무식한 바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오스는 라이오스일 뿐이었다. 케리는 잠시 생각한뒤. "이 비석이 이렇게 닳을 정도인데, 칼레이븐은 이미 살아있을리가 없잖아요? 설마 비석도 안 고치고 있겠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과연 케리님은 명석하십니다." 라이오스가 너무 멍청한 것일 뿐이다. "라이트!" "라이트!" "라이트!" 마법의 빛이 세개나 나란히 빛을 냈다. 햇불을 준비하려던 잭슨과 라이오스는 헛고생을 했다고 아쉬워했지만, 케리는 예비로 햇불도 가져가자고 했다. "세 명의 하인이 모두가 마법을 할줄 알다니... 케리님은 대단한 부하를 거느리고 있군요." "예예..." "그런데... 칼레이븐이란 대체 어떤 드래곤일까요?" 라이오스의 물음에 라크리마가 대답했다. "듣기로는... 칼레이븐 할아버지는 던젼을 좋아한다고 해요. 던젼 매니아... 라던가..." "...예? 칼레이븐 할아버지 라니요?" 라이오스가 이상하다는 듯이 되묻자 케리는 아차 하고 속으로 한번 말하고는 라크리마의 변명을 했다. "아 그거야. 비유죠 비유. 에이션트 드래곤이니까 할아버지." "아 과연. 라크리마 양은 문학적 재능도 뛰어나군요." 라이오스는 어쩌면 아부에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케리는 동굴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백묵으로 표시를 해나가고... "음 저는 던젼은 많이 탐험해보지는 않아서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은데..." "예... 전 한번 호된 경험을 해봤거든요..." 케리는 몇번째인가 모험에서 던젼 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을 뻔한 경험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여러번의 실패는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케리에게 단단히 새겨져 있었다. 던젼 어디 쯤엔가 왔을까? 슬슬 다리에 피로가 오기 시작하자 케리는 휴식하기로 결정했다. "던젼 같은 곳에서는 무리하는건 금물이예요. 체력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니까요."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건빵과 육포를 약간씩 씹어먹으면서 케리는 말했다. "음 야영에서도 그건 필수요소죠. 무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서건. 하지만 이거... 몬스터가 안 나오니 좀이 쑤셔서..." 라이오스는 던젼에 가득한 몬스터를 바라는 듯 했지만... 케리도 던젼 안에 몬스터는 커녕 동물도 하나 없다는 것이 약간 이상해서 살짝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혹시 몬스터의 흔적같은 것도 없다면... "...아 라크레일. 너 지금 뭘 깔고 앉아있는 거니?!" 그러다가 케리는 라크레일이 깔고 앉아있는 물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응?...악!!!" 라크레일이 앉아있던 물체는 돌이 아니라 해골이었다. 크기와 형태로 보아 오크의 해골... 근처에는 다른 부위의 뼈라던가 오크가 지니고 있었던 물건으로 보이는 것이 거의 다 삭아서 널부러져 있었다. "왜 오크가 여기서 굶어죽은 거지?" "던젼을 탐험왔다가 ...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케리님. 오크는 멍청하니까..."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기는 했다. 또 다시 걸어서 한참... 케리는 길을 하나하나 표시해 나가면서 조사해 나가는 방법을 썻다. 지류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다행히 함정 같은 것은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 동굴은 뭔가 이상해..." "어디가요? 주인님." "이 벽이나 구조 같은걸 보면... 어딘가 자연의 동굴과는 느낌이 너무 틀려. 마치 만들어진것 같단 말이야." "혹시... 칼레이븐이 마법으로 만들었다던가...?" 라크리마라고 같은 실수를 두세번씩 하지는 않는다. 아니 가끔 하는것 같지만... 이번에는 하지 않았다. "복잡한 던젼을 만들어서 굶어죽게 하다니.. 악랄한 드래곤이군요." 이 던젼의 목적이 확실히 밝혀진 것도 아닌데, 라이오스는 이상하게 열을 냈다. 또 다시 걸어서... 이젠 지겹다. 케리 일행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걷고 쉬고 걷다 쉬고를 반복했다. 케리는 이미 한번 던젼에서 헤매본 경험이 있고, 던젼에는 익숙한 편이다. 라이오스도 나름대로 단련을 많이 했고, 잭슨도 던젼 정도로 어떻게 될 정도로 약하지는 않다. 라크리마도 동굴 생활에는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그들은 모두 아직 상태가 양호하다 하지만... 라크레일이나 아마레에게 그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폐쇄공포증이... "우리집은.... 이렇게 비좁지 않았는데!" 쾅! 라크레일이 갑자기 동굴벽을 발로 탕탕 쳤다. "왜그래?" "아... 아냐..." 라크리마가 돌아보자 잠시 제정신을 차린듯 했지만, 라크레일 뿐만 아니라 아마레도 상태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으앙 으앙 으앙..." "왜 울고 그래 아마레?" 케리가 다그쳤지만 아마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드래곤이 인간으로 변신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손가락 만한 몸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기 감각이 갑자기 그쪽에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드래곤은 하늘을 나는 비행능력이 있는 몸이다. 상쾌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당연했다. 이렇게 비좁고 빽백한 환경에서는 오래 참지 못한다. 휴면중이 아닌 이상. 특히 '하늘이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는... 물론 이 정도야 약간 스트레스가 될 뿐이다. 하지만 계속 길을 찾지 못하고 헤메다니는 이 지겨운 상황이 오래되면...? 게임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면 판을 엎고 싶어진다. 그런 심리가 아마레와 라크레일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부수자!" "뭐?" 갑자기 라크레일이 벽을 노려보면서 외쳤다. "이 벽을 부수는 거야! 그럼 빨리 돌파할수 있잖아!" "잘 생각했어 라크레일! 좋아 그럼 간다!" "자 잠깐만..." 다른 일행이 둘을 말리려 했지만 듣지 않았다. "스톤 브레이크!" 콰과과과광!! 둘이 동시에 주문을 외우고 마법에 걸린 돌벽은 저절로 금이 가면서 무너져 내려 커다란 구멍을 드러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③- 콰직 콰직 콰과과과광!!!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암석 파쇄주문을 써서 던젼의 구조 자체를 붕괴시키면서 한 방향으로 무작정 전진해 나갔다. 잠깐 사이에 던젼에는 거대한 직선 통로가 생겨났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저기... 이래도 되는 거야?" "........." 뒤에 남겨진 세 사람(과 한 드래곤)은 뻥~ 뚫려버린 던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 일단 따라가보죠." "응..." 그들도 두 드래곤의 돌파로를 따라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몇백 미터 가량 통로를 따라 걷자 저 앞에서 들리던 돌 부서지는 소리가 뚝 끊겼다. "아하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하하" 대신에 라크레일과 아마레의 웃음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다. "끝을 찾았나보다!" 그 웃음소리를 좇아서 달려가보니 그 곳에는... 거대한 돔 형의 공간이 나오고 그 안에서 눈부실 정도의 빛을 발하고 있는 산처럼 쌓인 수많은 금은보화. 그 보석들을 만지작 거리면서 즐거워 하는 라크레일과 아마레가 있었다. 그토록 기사도 정신이 투철한 라이오스 조차도 이 말도 안되는 양의 금은보화를 보자 한참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저.. 저 검들은...!" 아니 금은 보화 사이에 섞여있는 한눈에 척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검들 때문에 그런 것인가... "라크리마양 저 저것들은 혹시 마법검이 아닙니까?" "드래곤의 레어에 있는 것이니까... 아마 그 정도는 되겠죠. 그냥 칼이라면 괜히 수집해두고 있을리가 없으니..." "오오... 드래곤의 레어를 탐험해서 마법검을 발견하다니...! 이것이야 말로...!" 그 사이 잭슨은 벌써 주머니 한가득 금화와 보석을 퍼담고 있었다. 성급하긴... "이이이 이 이 정도 라면 하하하하 하인 새생화활을 처처 청산 하할수 이이이있어...! 와아아아아아" 잘됐네 잘됐어. 그리고 잭슨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날리는 없겠죠? 라크리마는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에도 현혹되지 않고 주위를 이상하다는 듯이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있어... 이 강렬한 느낌은 에이션트 드래곤... 그런데 왜 안 보이는 거지? 전설의 투명 드래곤도 아니고...' 그때 벽 쪽에서 천둥 같은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이노오오옴드으으으으을!!!!!" 소리는 벼락같은 분노를 가득 담고 있었다. 그제서야 라크리마는 깨닫고 말았다. 이 돔형 공간의 벽에... 거대한 드래곤의 머리가 벽에 돋아나 있는 것을!!! 그 드래곤의 머리는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있었는지 바위를 연상시킬 정도로 울퉁불퉁한 무언가가 피부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그것이 입을 움직여서 말을 하자 마치 바위로 만든 드래곤이 중얼거리는 것 같은 음산함이 느껴졌다. 그 놀라운 광경에 모두가 무섭다기 보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드래곤의 머리(?)를 쳐다보았다. "가암히...! 내 던젼을 엉망으로 만들다니이이!" 드래곤 머리는 라크레일과 아마레가 던젼에 구멍을 뚫고 돌진해 들어온 것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제서야 아마레는 이 드래곤 머리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저기... 혹시... 에이션트 드래곤 칼레이븐 님?" "당연하지! 이곳에 있는 드래곤이 내가 아니면 누가 있겠냐?" 아니 드래곤인걸 알아본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보는데.. "그런 곳에 게시니 못 알아보는 것도...그런데 왜 그런 벽에 처박혀 게신 건지...?" "음... 던젼 매니아였던 나는 천년전 이 던젼을 만든뒤 이 던젼을 돌파해서 오는 모험가에게 이 보물을 상품으로 저 보물들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 먹고 비석까지 세워두었는데... 한 녀석도 안 오길래 심심해서 잠시 잠든 사이 천장에서 토사가 무너져 내려서 거기에 몸이 파묻히고 말았지. 그 뒤에 토사는 굳어서 돌 처럼 되버린 거고, 나는 달리 파헤치고 나오기가 귀찮아서 그냥 이러고 있다." 한마디로 게으름 피우다가 바위가 되어버린 드래곤의 전설이다.[...] 라크리마는 물론 잭슨 까지도 이 설명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칼레이븐의 바위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구에 드래곤 어로 비석을 새겨두면 수상하게 생각한 인간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던젼이라면 역시 몬스터의 습격이 있어야 하기에 오크들 까지도 몇마리 잡아다가 던젼 중간에 풀어두었는데... 보지 못했나?' 칼레이븐이 말을 하자 라크리마는 아까 전에 던젼 중간 쯤에서 보았던 오크들의 시체가 생각났다. "......굶어죽은것 같던데요." "아차 이런! 먹이를 안 넣어뒀었군...끌끌끌..." 먹이를 넣어 줬더라도 천년동안이나 오크들이 버틸리가 없지 않은가? "어쨋건... 우리들은 이 던젼을 돌파해 왔으니 이 보물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뭐 좋다. 어쨋건 통과해온 것은 사실이니까..." "과연! 케리님. 이런 납득이 안 가는 상황에서도 명료한 판단을 하실수 있군요!" 단순히 이익추구를 위한 결론인것 같지만... "일단 가지고 갈수 있는 만큼 가져가거라. 그러나...!" 칼레이븐의 호통에 잭슨은 웃옷을 벗어서 보따리를 만들려던 손을 놓았다. "내가 천년전에 10년이나 고심해서 만든 소중한 던젼에 저런 구멍을 뚫어놓은 너희 둘! 너희 둘 에게는 저주를 내려야 겠다!" "웃 네놈은 역시 사악한 드래곤이구나!" "멈춰라!" 라이오스가 검을 뺴들고 칼레이븐에게 덤비려 하자 칼레이븐이 소리쳤다. 그 순간 라이오스의 몸은 칼레이븐의 얼굴 만큼이나 딱딱하게 굳어져버렸다. "용언마법!" 라크리마가 그 모습을 보고 '꼴을 보아서 믿겨지지 않았는데 에이션트 드래곤이 맞긴 맞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쳤다. 용언. 그것은 마법의 궁극적인 형태중 하나다. 강대한 마력을 지닌 드래곤은 에이션트 드래곤이 되면 주문은 커녕 시동어도 외우지 않고 마법을 발동시킬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말' 그 자체에 '믿음'을 담아서 내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용언의 힘이다. 좌우간 라이오스의 몸은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고, 그 모습을 보고 케리 일행은 이 우습게만 보이는 드래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쉽게 알게 되었다. 이 드래곤은 말 한마디로 그들 모두를 죽일수도 있었다. "무슨 짓이냐! 이 드래곤! 어서 풀어라!" "음... 이제야 나의 위대함을 조금은 알게 된 듯한 얼굴이군." 칼레이븐에게는 빽빽 소리 지르는 라이오스의 목소리는 메뚜기 울음 소리 정도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같았다.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서로 손을 마주잡고 달달 떨고 있었다. 던젼을 만들고 안에서 낮잠을 자다가 바위가 되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드래곤이 무슨 저주를 내릴지 몰랐기 때문이다. "너희들에게 아주아주아주아주 무시무시무시무시 무시~ 한 저주를 내려주마. 흐흐흐흐흐흐흐! 받아라! 저주다!" 강력한 용언의 힘이 라크레일과 아마레를 휘감았다. "아마레! 라크레일!" 케리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어래?" "어라...?" 둘의 몸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뭐야 저 싱거운 드래곤은...' "후후후후후. 너희들의 몸에 아주아주아주아주 무시무시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렸노라. 이건 다른 에이션트 드래곤이 아닌 이상 풀수 없을 꺼야. 후후후후후후후." "저기... 칼레이븐 님. 저 케리님의 몸에 걸린 저주는 풀수 없을까요?" "..........보물 챙기고 당장 사라져라! 너넨 꼴도보기 싫어! 보물 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 "예에!" 그제서야 케리의 저주가 생각난 라크리마가 칼레이븐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지만, 칼레이븐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는 얼굴로 호통을 쳤다. 어쨋건 이 소동과는 상관없이 잭슨은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어서 보물 한 무더기를 보따리로 만들어 두었다. 겨우 마비가 풀린 라이오스도 칼과 창, 활 등의 무기 몇자루를 챙겼고, 케리도 한 주머니 가득히 보물들을 쑤셔넣었다. 다만 아무거나 마구 잡아 담는 잭슨과는 달리, 값나가는 것을 적당히 골라 챙겨가는 케리였지만... 라크리마도 일단 주는 물건인 만큼 사양하지 않겠다면서 앞치마 가득히 보물을 담고 있었지만, 라크레일, 아마레는 저주에 대해서 고민하느라 얼마 챙겨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까지 퍼담았는데도 보물산의 양은 거의 줄어들지 않을 만큼 칼레이븐의 보물은 엄청난 양이었다. 도대체 저주란 무엇일까? 칼레이븐의 레어에서 나오는 길은 케리가 지도를 그려둔 덕분에 간단했다. 중간 까지는 라크레일과 아마레가 뚫어둔 통로로 갈수 있었고... 통로는 그들이 나온 뒤 칼레이븐의 용언 마법에 의해서 곧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보물을 지고 오느라 속도가 느려져서 레어 바깥에 나왔을때는 해가 저물려 하고 있었다. 밤에 산길을 내려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들은 레어 앞에서 야영을 하기로 결정했다. 저대로 계속 땅 밑에 혼자있을 지도 모르는 칼레이븐이 불쌍해서 라크리마는 마법으로 비석의 문구를 드래곤 어에서 제국 공통어로 바꿔서 새기고 있었다. "스톤 브레이크..! 쳇 정말이지... 문자하나하나 단위로 마법 쓰는건 짜증나네...나도 용언이나 쓸수 있었으면..." 케리와 라이오스, 잭슨은 보물을 종류별로 나누고 있었는데... "주주주주인님.. 이만큼은 제제제제 제꺼예예에 요요요요" "...난 네 주인이니까 네 것은 내 것, 내것도 내것이다." "그그그그 그런게...어어어어.." 그러다가 보물을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악!" 라크레일과 아마레가 하늘이 째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다른 일행은 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다. "왜 그래? 역시 저주가...?" "...이 이 저주는..." 둘은 얼굴이 새파랗게 되어서 교대로 중얼거렸다. "마법으로..." "...조사해보니까" "이 저주는..." "...인간으로..." "만드는..." "...저주야..."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푸하하하하하하. 그 드래곤 치매 아냐?!" "마마마마마마마 치치치치치 치매드드드드드래고고곤이네에에에에" "호호호호호호호호... 그.... 그게 뭐야...!"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저주가 걸린 둘을 제외한 다른 네명은 땅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드래곤이 인간이 되는 저주를 받았다'와 '인간에게 인간이 되는 저주를 내린 어처구니 없는 치매 드래곤'이라는 이유의 차이는 있었지만... 저주를 받은 둘은 도저히 웃을수도 없었지만, 인간이 되는 저주를 받은 드래곤이라니...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④- 보물을 종류별로 나누는 작업은 어렵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전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 특히 잭슨은 눈이 뒤집혀서 엄청난 속도로 금화, 보석, 장신구를 종류별로 나누고 있었다. 라크리마가 함께 있는한 그녀의 엄청난 재력 덕분에 돈 걱정은 할 필요 없지만, 케리도 모험을 통해서 이 정도의 소득을 얻은 것은 처음이라 나름대로 굉장히 흐뭇한 기분이었다. 라크리마도 케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자 생글생글 하고 있었지만... 아마레와 라크레일은 화가 뿔이 돋을 것 처럼 치솟아서 가끔 동굴 안쪽을 바라보며 씩씩 거렸다. 그들에게 인간이 손으로 들고나올수 있을 정도의 보물은 별 가치도 없었으니, 저주받은 일만 화가 나는 것이다. 한참동안 나눈 뒤에야 보물들은 무기류는 적당히 한쪽 구석에 치워두고(어떤 마법이 걸린 무기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라크리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보석류, 장신구류, 금화 등은 하나하나 자루에 담아서 놔두었다. 어쨋건 그날 밤은 던젼입구 안에서 지새고 있었다.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분을 삭이려고 일찍 골아 떨어져 버렸지만, 싱글싱글 거리는 다른 넷은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모두 착한 아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늦게 자려는 나쁜 아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또 그만큼 고생을 한 이상 잠에 빠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라크리마, 케리, 라이오스 순서대로 하나하나 잠이 들었다. 하지만... 단 하나 마지막 까지 깨어있는 나쁜 아이가 있었다. 잭슨이었다. 잭슨은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슬며시 일어났다. 자루를 소리가 나지 않게 하나하나 만져서 보석류가 가득 들어있는 자루 하나를 골랐다. 이 자루는 다른 것 보다 좀 더 큰 것이었는데 잭슨이 보물을 분리할때 미리 손을 써둔 것이다. 보석이 가득 들어 있으니 상당한 무게일 테지만 너무나 행복해진 잭슨에게는 그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루를 짊어지고 동굴 밖으로 나서던 잭슨은 라이오스를 살짝 돌아보고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아아아아안녀녀녕히게게세요. 주주주 주인님" 마지막 가는 인사는 하는걸 보면 그래도 양심이 조금 있는 걸까? 그리고 잭슨의 그림자는 밤과 숲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잭슨! 잭슨 어디로 간거냐?!" 그 다음날 아침 케리 일행은 던젼 안쪽에서 다시 잠에 빠져있는 칼레이븐 할아버지가 깨어날 정도로 크게 소리치는 라이오스가 깨웠다. "무슨 일이죠? 라이오스 씨." "잭슨이 없어졌어요! 어... 어디로 간거지 대체..." 라이오스는 정말 당황한것 같았다. 잭슨이 없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사라진 보물 한더미와 점점히 떨어져 동굴 밖에서 숲으로 이어져 있는 보물들은 안중에도 없는걸 보니... "이 흔적을 보면 아무래도... 도망친것 같은데요?" 라크리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잭슨이나 보물 한 더미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런 세상에 잭슨... 보물을 가지고 도망친 건가..." 그렇게 외치더니 라이오스는 숲 속으로 달려들어가려 했다. 잭슨을 뒤쫓으려는 것이다. 콱! 하지만 그때 라크리마가 라이오스의 바지를 붙잡았다. "왜 이러십니까? 라크리마 양?" "저기... 잭슨이 가져간것은 결국 잭슨의 몫이잖아요. 게다가..." 어느새 밖에는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비도 오는데 ... 숲길을 가는건 너무 위험해요. 지금 우린 우산도 없고..." "...우리에게 위험하다면 잭슨에게는 어떨까요?" "예?" 라이오스의 반문에 라크리마는 알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보물이 아닙니다. 잭슨입니다. 잭슨도 나이프 던지기를 익히고 있기는 하지만... 애시당초 몸이 작고 허약해서 그저 자기 몸이나 겨우 지킬 정도입니다. 게다가 말 더듬이 까지 있어서..." "........." 물욕 때문에 라이오스가 잭슨을 쫓으려는 것으로 생각한 라크리마는 미안한 마음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게다가 잭슨은 큰 돈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 부터 제 시종으로만 자랐으니까요. 그러니까 큰 돈을 가지면 나쁜 녀석들이 꾀어든다는 것도 잘 모를껍니다... 설마 어제 내가 한 농담을 진담으로 알아들은 건가... 이 모험이 끝나면 한 살림 차려주려 했건만..." 라이오스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라크리마의 손을 뿌리치고 숲속을 향해서 달려갔다. "기다려 라이오스!" "케리님! 같이가요!" 케리와 라크리마도 그 뒤를 쫓았다. 하지만... "...우린 어쩌지...? 아마레 누나." "그냥 여기 있지뭐. 흥." 뒤에는 두 드래곤이 남아서 던젼 입구에서 놀고 있었다. 별로 신경쓰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라이오스의 다리는 엄청나게 빨랐다. 산길에다가 비까지 내렸는데도 케리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이러다가 라이오스가 길이라도 잃는건 아닐까?" "그럴리는 없어요. 저 사람은 수행을 많이 쌓은 기사니까..." "하긴... 라이오스 정도라면 염려는 없겠지만..." 케리는 계속 라이오스가 간 방향을 향해서 달렸다. 하지만 마침내... 땅바닥에 엎드려서 잭슨의 흔적을 찾으면서 "없어...! 어디에도 없어!" 라고 소리치는 라이오스를 보게 되었다. 라이오스는 정신나간 것처럼 땅바닥을 샅샅히 훑고 있었지만, 잭슨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나요? 라이오스?" "......머리카락하나 없습니다. 할수없군요. 이래선..." 케리가 부르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라이오스는 빗방울을 탈탈 털면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였군요... 이 정도에 흥분해서 자신을 잃다니... 기사의 자격이 없습니다..." "아니요. 동료가 사라졌으니 그렇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죠. 라이오스씨. 자. 어서 돌아가요. 이렇게 비 맞고 있으면 감기 걸려요." "예... 케리님..." 라이오스는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편 그 무렵. 라크레일과 아마레도 라이오스 못지 않게 침울해져있었다. 비록 지금 까지 인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지만 강제로 인간 모습을 당하는 것과 그냥 인간 모습으로 있는 것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인간 모습에도 나름대로 익숙해져서 그렇게 까지 불편하지는 않지만... "아마레 누나." "응?" "추워..." "...그러고보니까 나도..." 아니. 불편하지 않을리는 없다. 드래곤 몸으로는 거의 느낄 일도 없는 한기. 그 추위가 인간 모습인 지금은 뼈가 시릴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럴때 쓰는 주문은.. 응응... 캠프 파이어!" 2클래스 3서클 주문인 캠프 파이어. 이것은 땅 위에 작은 모닥불을 형성시키는 것이다. 땔감을 모아올 필요도 없으며, 다른데 번지지도 않고, 비가와도 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아주 유용하다. 한번 걸어두면 약 4시간 정도 지속되는데, 아마레는 드래곤 모습으로 이것을 써서 수십미터 짜리 모닥불을 만들어서 그 안에다가 오우거나 와이번 등으로 꼬치를 해서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참 맛있었지. 특히 와이번 날개뼈의 바삭바삭 씹히는 맛이 참...' 그 일이 생각나서 아마레가 입맛을 다시고 있을때 밖에 나갔던 케리 등이 돌아왔다. 비에 흠뻑 젖어서 덜덜 떨면서... "으아아 추워어어어어" 그들은 한 입처럼 그렇게 말하면서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주인님! 어서 이쪽에 앉으세요! 아니... 옷부터 벗겨드려야 겠다. 이걸 입고 있으면..." "에에엑?" 당연한 일이었지만 케리가 놀란 사이 라크리마의 손은 캐리의 셔츠를 벗기고 있었다. "라... 라이오스 씨! 저리좀 가주세요!" "아?! 예예! 실례를 할뻔 했군요. 케리님. 저쪽에 가서 뒤를 보고 있겠습니다!" 케리가 훤히 들어난 가슴을 가리면서 말하자 라이오스는 그제서야 멍하니 보고 있던 자신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동굴 안쪽을 보고 차렷 자세로 서있게 되었다. 사르륵 사르륵... 케리가 옷을 벗는 소리. "라 라크리마도 벗어야지." "예!" 사르륵 사르륵 라크리마가 벗는 소리 쫘아아아아아악 라크리마가 물을 짜내는 소리. 탈 탈 라크리마가 옷을 바위에 너는 소리 "꺄악. 주인님 가슴이 더 커진것 같아요." "큰소리로 말하지마!" "정말... 예전보다 더 커진것 같아." "그렇지 누나? 응?" "넌 왜 여기있어!" 퍼어어억! 라크레일이 구타 당하는 소리가 들린 뒤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든 라크레일이 라이오스 옆에 와서 차렷 자세로 뒤돌아 섯다.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할수없네요." "응... 짐은 전부 아래 마을에 두고 왔으니까..." 라크리마와 케리는 모포 하나를 같이 둘러쓰고 아마레 쪽의 마법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케리와 맨살을 맞대고 있는 것이 굉장히 기분 좋아 보이는 라크리마였다. "라이오스 씨도 그 옷 벗어요! 그런거 입고 있으면 감기 걸립니다!" "예. 하지만 케리님 저..." 라이오스는 아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입고 돌아서서 라크레일이 마법으로 만든 모닥불을 함께 쬐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갈아입으면. 폐가 되지 않을까요?" "던젼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시면 옆으로 꺽어진 곳이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라이오스는 던젼 안 쪽으로 이동해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라크레일은 그냥 앉아서 불을 쬐고 있다가 여자 셋(둘?)의 눈총을 버티지 못하고 안 쪽으로 밀려났다. 라이오스가 사라지자 아마레가 갑자기 키득키득 웃으면서 라크리마에게 말했다. "저 사람 아까 옷이 젖어서 몸에 딱 달라붙은거 보니까... 근육이 장난이 아니던데... 저렇게 키우려면 얼마나 노력한걸까?" "글세... 한 수십년은 되지 않았을까?" 시간 관념이 약간 어긋나 있는 대답을 한 라크리마였지만, 대화는 대충이어졌다. "그런데 다리 사이에 있는 그게... 특히 크더라. 아까전에 라크레일이 오줌 쌀때 본 거랑은 비교가 안될 정도야. 그게 생식기던가? 인간의 번식에 대한 책에 보면... 그게 클수록 암컷들이 기분 좋아한다던데 사실이야? 라크리마." 한편 라크레일도 아무 이유없이 라이오스에게 주눅이 들어있었다. 역시... 크기에서 밀리고 있어서. "아냐아냐. 테크닉이 중요하다고 테크닉이... 크기만 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어." "에에. 역시 그런가? 하긴 커봤자 드래곤 것에 비하겠냐만은..." "라크레일은 드래곤일때도 별로 크지 않아. 호호호호호호." "꺄하하하하하." "........." 두 여자의 음담패설 사이에 끼인 케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 참 케리님은 어느쪽이 좋아요? 테크닉이라던가..." "나난... 아직 처녀야!!!" 라크리마가 온몸을 밀착시키면서 물어오자 케리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 소리쳤다. 라이오스는 워낙 안쪽에 있어서 그 앞쪽의 음담패설은 거의 듣지 못하고 케리가 마지막에 소리치는 것만 들을수 있었다. 불끈! '케리님은 순결하셧구나...과연.' 라이오스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하지만... '세상에 저게 더 커졌어...' 라크레일의 열등감은 이유없이 증폭되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0화 -던젼 & 드래곤 ⑤- 일단 잭슨 문제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덮어두어 일단락 되었고 옷을 다 말리고 나자,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달리 할짓도 없어서 조금 출출해지면 그냥 건조식량만 으적 으적 씹었고,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공기놀이, 땅따먹기 같은 어린애들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라이오스에게는 안 들리게 둘은 드래곤 모습일때도 저런 놀이를 한다고 케리에게 속삭였다. "푸웃!" 드래곤이 바위를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거나 땅따먹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자 케리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웃는 케리를 보고 라이오스는 영문을 몰라 물어보았다.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그런데..." 케리는 화재를 구석에 쌓아둔 보물들로 돌렸다. "라크리마가 말하기로는 저 보물들 중에는 마법 무기도 꽤 된다고 하던데, 어떤 마법이 걸려있는지 알아보는게 어떨까요?" "그거 좋군요. 혹시 모험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르니..." 라이오스도 그럭저럭 충격에서 회복된듯이 보였다. 라이오스는 아무 무기나 챙겨왔지만, 마법 무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심지어 창 하나는 보석과 귀금속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라이오스가 한번 휘둘러 보니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고 게다가 무게 밸런스가 전혀 맞지 않아서 무기로는 완전히 실격. 단순히 겉멋만 가득든 무기로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대체 드래곤 레어에 이런게 왜 있는 거지?" "그야 드래곤은 인간과는 달리 이런 무기를 쓸 일이 없으니까요. 보물더미를 만들려고 한 일이라고는 해도, 아무 쓸데도 없는걸 마구 쌓아두기도 하죠. 뭐 장식용으로는 쓸만하겠네요." "장식용 무기라니... 우리 루퍼스 왕국의 기사도 정신에서 그런건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무기는 어디까지나 실용성! 이런건 차라리 녹여버리는 쪽이 더 낫겠는데..." 라이오스는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이 창을 한번 휘둘러 보고는 제자리에 놓았다. 결국 다 골라내어진 마법 무기는... 별다른 특징없는 갈색 가죽 장갑 하나. 네개의 보석이 박힌 수수한 금반지 하나. 좀 촌스럽게 생긴 사자 문양이 들어간 은제 버클이 달린 허리띠. 창대부터 날 까지 하나의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자루 부분에 보석 몇개와 금장식이 되어있는 창. W자 모양으로 굽어진 목제 활 하나. 아무 특징도 없는 숏 소드 6개가 전부였다. "이게 답니까?" "...이거 뿐이예요. 다른건 없어요." "드래곤 레어에는 마법 무기가 쌓여있다고 들었는데..." "뭐하러 무기를 쌓아놓겠어요? 쓸일도 없는데..." 라이오스는 조금 실망했다는 투로 말했지만 라크리마의 말을 듣고 이해한듯 했다. "어떤 마법들이 걸려있지? 라크리마" "예. 주인님. 이 장갑은..." 라크리마는 가죽 장갑을 집어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파워 글러브... 라고 하는 종류입니다. 힘을 늘려주는 마법이 들어있어요. 순수하게 물리적인 힘만 늘려주는 마법이죠." 설명을 들은 라이오스는 장갑을 끼고 이젠 이슬비정도만 내리고 있는 밖으로 나가서 시험해보았다. "흐아아아압!" 으지지지직! 한번 힘을 주니 꽤 커다란 나무가 풀 처럼 뽑혀나왔다. 라이오스는 그 나무를 가볍게 휙휙 휘둘러보고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엄청나군요. 이것... 꼭 제가 오우거나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이 된것 같습니다. 이런 힘이라면 누가 가져도 대단해지겠어요." "그럼 라이오스 씨가 그걸 가지세요." "정말입니까? 케리님. 이런 귀한걸..." "아니요. 라이오스 씨도 이 모험에 협력을 많이 했으니까 그 정도는 받을 권리가 있죠." 파워 글러브는 라이오스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이 반지는..." 라크리마는 반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로드 오브 엘리멘탈 이라는 이름입니다. 말 그대로 정령왕이거나 한 것은 아니고, 정령을 부릴수 있는 반지예요. 단, 정령과의 친화력을 늘려주는 것 뿐이라 정령을 부리려면 노력을 좀 해야하고 연습만 하면 불 바람 물 땅의 정령을 중급 정령까지는 부를수 있을 꺼예요." "그 반지는 케리님이 가지세요." 라이오스는 반지를 케리에게 권했다. "아니요. 이건 정말 귀한 물건인데..." "전 정령 같은걸 부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파워 글러브가 더 맘에 듭니다." 로드 오브 엘리멘탈은 케리의 왼쪽 새끼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다. 아직 까지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 케리는 나중에 정령을 부리는 연습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잘 어울려요. 주인님~" 라크리마는 꺅꺅 거리다가 다음 설명으로 넘어갔다. "이 허리띠는... 시련의 허리띠 라고 불리는 물건입니다. 효과는... 일종의 저주입니다." "시련이라... 대체 어떤 시련이지? 라크리마." "온 몸을 무겁게 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체력을 단련하게 하지요." 이것도 라이오스가 파워글러브를 벗고 시험해 보기로 했다. "으자자자자잣!" 파워글러브를 벗은 순간 라이오스는 갑자기 기합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온 몸을 자기 몸무게 만한 것이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에 온 힘을 다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허리띠는 잘 늘어나는 재질로 되어있는데, 이 4개의 구멍이 시련의 강도를 조절합니다. 첫번째는 자기 몸무게의 절반 정도, 두번째는 자기 몸무게 정도, 세번째는 자기 몸무게의 두배, 네번째는 자기 몸무게의 세배. 라이오스 씨는 지금 네번째 구멍까지 끼웠으니까 자기 몸무게의 세배 만한 압력이 온 몸을 누르게 되지요." 뭔가 홈쇼핑 광고같은 설명이었다. "이... 이젠 됐으니까 풀어줘요." 라이오스는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온 몸이 무너져 내릴것 같아서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애원했다. "아. 이런..." "허억 허억..." 케리가 재빨리 풀어주자 겨우 숨을 헉헉 내쉬었다. "이 허리띠는 누가 .... 가지지?" 케리는 허리띠를 들고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런 물건을 선듯 가질 사람이 있을까? "제가.. 가지겠습니다... 이런 것이라면 좋은 수행이 될것 같아요." 그새 비오듯이 쏟아진 땀을 닦으면서 하는 라이오스의 말에 다들 이의는 없었다. 세번째는 창이었다. 이것도 먼저번 것 처럼 이상한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면서 라이오스는 창을 집어들었다. "그 창의 날에는 전격 계통의 주문이 걸려있어요. 다른 무기와 부딧치거나 하면 작은 전격이 무기를 타고 상대에게 전달되어 상대에게 타격을 주겠죠. 그리고 적의 몸에 박히거나 해도 보다 강한 타격을 적에게 주게 됩니다. 그외에도 보존계통의 주문으로 녹이 쓸지 않고 깨지거나 하지 않으며, 날을 날카롭게 하는 주문이 걸려있다는 것이 장점이지요." 라이오스는 동굴 밖에서 창을 몇번 휙휙 휘둘러 보았다. 그는 창술도 어느 정도 아는듯 했다. 순식간에 화려한 창무가 벌어졌다. 절도있는 동작. 한치의 틀림도 없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동작. 마치 빗방울 하나하나를 베어버릴것 같았다. 케리와 라크리마는 넋을 잃고 라이오스의 창무를 바라보았다. 라이오스는 잠깐 창무를 마친뒤 창이 꽤 마음에 드는 듯이 몇번 휘둘러 보고는 애꿏은 나무 하나를 골라서 창의 위력을 시험해보았다. "하앗!" 파직!!! 라이오스가 창을 나무에 찔러넣자 창날 부분에서 전격이 일어나면서 찔린 부분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굉장하군요." "그것도 라이오스 씨가 가지세요. 잘 어울리네요. 전 창쓰는 법도 잘 모르는데..." "감사합니다. 케리님." 라이오스는 창을 정성스럽게 천으로 싸서 어깨에 짊어졌다. 창이 마음에 드는것 같았다. 다음은 W자 활. "...여기에는... 보존 마법이 걸려있어요." "그리고...?" "그게 끝이예요." 라크리마의 말에 케리는 약간 황당함을 느끼고 활을 받아들었다. 몇번 활줄을 튕겨보니 레어안에 들어간지 천년은 된 물건임에도 아직 쌩쌩했다. 활대 부분이나 활줄 부분이나 일일이 조금씩 살펴보니 활은 잘 모르는 케리가 보기에도 보통 활은 아닌것 같았다. "이것은 분명히 명궁 같습니다." 라이오스도 그렇게 의견을 냈다. "아마... 이건 원래 마법이 걸려있지 않은 그냥 활이었을 거예요. 삭아 버리면 곤란하니까 보존 마법을 걸어두신 거겠죠." "이런 활에 다른 마법은 별 의미가 없을것 같군요. 보존 마법을 걸어서 변하지만 않게 해두어도 충분할것 같기는 한데..." 라이오스는 활을 받아들고 몇번 쏘는 시늉을 해보였다. 하지만 폼이 좀 많이 어색했다. "전... 활쏘기 만은 별로 자신이 없는데... 차라리 돌팔매 쪽을 더 잘하니..." "저도 마찬가진데요..." 케리와 라이오스는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마레나 라크레일이 활을 쏠줄 알리도 없었고, 라크리마도 그런것 같았다. "그럼 이 활은 케리님이 보관해주십시요. 나중에 쓸만한 사람을 만나면 주던가 팔던가 합시다." "감사합니다. 라이오스씨." 케리는 활을 잘 싸서 짐 속에 챙겨넣었다. 마지막은 숏 소드. 보존마법과 날을 날카롭게 하는 마법이 걸려있어 칼날을 갈 필요가 없으며, 손에 쥐고 있으면 저절로 프로텍트 프롬 노멀 미사일(일반적인 화살에 대한 방어. 보통 화살은 막을수 있지만, 마법 공격은 막을수 없다.)을 발동시키게 되는 마법, '매직 미사일'이라고 소리치면 매직 미사일을 발동시키는 마법이 걸려있다. 단, 매직 미사일은 하루 30회 제한. 나름대로 상당히 좋은 무기였다. "이건 라크레일 군이 가지는 것이 어떨까요? 요즘 검술 수행에 많이 노력해주었으니 상으로 하나 쯤 주는 것도 좋겠요." 라이오스가 그렇게 선심을 쓰자 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레일은 별로 필요도 없는 검, 받고 싶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기도 했지만... "라크레일. 누나는 네가 누나를 지키려고 언제나 검술 수행에 힘쓰는 것을 잘 알고 있단다." 라고 라크리마가 꼬드기는 바람에 자랑스러운 듯이 검을 받아 허리에 차게 되었다. 라크리마는 '단순한 녀석'하고 피씩 비웃었다. "그런데... 라크리마 양이나 아마레 양은 특별히 무기가 필요 없습니까?" 라이오스의 말에 바위위에 앉아서 비스켓을 바삭거리고있던 아마레가 대답했다. "저희는 마법사니까요. 라이오스 씨가 지켜주시기만 하면 돼요." "아하하하 맡겨만 주십시요!" 당당하게 소리치는 라이오스를 향해서 아마레는 '역시 단순해'라고 중얼거리면서 피씩 웃었다. 이렇게 적당히 분배는 완료되었다. 나머지 보석이나 금화 등은 잭슨이 가져가고 남은 것을 5명이서 똑같이 나누기로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라크리마와 아마레, 라크레일은 제 하인이니까... 이쪽에 너무 많이 주시는 것 아닌가요?" "아니요. 이번 모험에서는 아마레 양과 라크레일 군. 라크리마 양의 도움이 없었으면 성공하지 못했는 걸요. 게다가..." 케리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하자 라이오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덧붙였다. "...저주까지 받지 않았습니까. 하하하하하. 그거 참..." 라이오스는 농담삼아서 한 말이었지만, 아마레와 라크레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미소만 퍼지고 있었다. "정말 그래요. 아마 저 저주가 있으니까 아마 다른 생물로 변하는 마법은 먹히지도 않을껄요. 호호호호호." 라크리마도 깔깔 웃으면서 둘에게 확인 사살을 가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1화 -정령사의 길 ①- 칼레이븐의 레어 입구에서 하룻밤을 보낸 케리 일행은 다음날 아침 비가 그치자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때와는 달리 길이 비에 젖어서 미끄러웠기 때문에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밤이 될 무렵에야 그들이 짐을 맡기고 왔던 마을에 도착할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마을이 있는 이유는 칼레이븐이 하도 오래 잠들어 있다 보니 드래곤 있는 줄도 모르고 레어 바로 근처까지 마을이 생긴 것이다.뭐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 100년 정도는 레어 바로 앞에서도 문제없이 살수 있을것 같지만. 마을에 도착해서 바로 잭슨을 찾아보았지만 역시 잭슨을 추적할 방법은 없었다. 잭슨은 여관에서 짐을 찾지도 않고 바로 마을을 떠난 것이다. 라이오스는 한숨을 푹 푹 내쉬면서 여관에 맡겨두었던 잭슨의 짐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하루 종일 산을 타느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짐을 맡겨두었던 여관에서 자기로 했다. 케리는 그날 밤 잠들기 직전 자신이 그린 지도를 품에서 꺼내보았다. 지도에는 칼레이븐의 레어로 가기 위한 대강의 약도와 던젼의 지도가 중간쯤 까지 그려져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이건 완전히 보물지도가 되버린 거잖아...' 자신은 다시 그곳에 갈 생각은 별로 없지만, 이런 지도가 나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케리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단 이건 넣어두기로 하자.' 케리는 지도를 소중하게 접어서 챙겨두었다. 다음날, 케리는 라크리마와 함께 정령술 수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라크리마도 스톰 드래곤인 만큼, 바람의 정령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지만. 케리와 라크리마는 우선 마을 근처의 숲으로 나갔다. 라크리마가 전에도 말했다 시피, 인간의 마을이나 도시 안에서는 정령의 기운이 약해진다. 이런 작은 마을은 정도가 덜하지만 도시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물론 마을 안에서도 정령술 수행이 안되는 것은 안되지만, 초보자인 케리에게는 정령이 힘이 강한 조용한 숲에서 정령술 수행을 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빠르기 때문이다. 또 하나를 더 말하자면, 마을 안에서 정령술 수행을 하는 것은 좀 부끄럽다고 케리가 말했기 때문이다. 숲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 가지가..." 문득 케리는 나무가지에 걸린 치마를 떼어내는 라크리마를 보면서 어떤 의문이 떠올랐다. "있잖아. 라크리마. 라크리마는 언제나 메이드 복이야?" "예? 메이드 복이라면 10벌 정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매일 매일 갈아입어요. 세탁은 아마레 시키구요" "그렇구나." 그제서야 라크리마의 여행 가방 가득히 들어있던 까만 메이드 복과 앞치마가 떠올랐다. "그런데 케리님. 요즘 여성스러워 지시는것 같아요." "뭐?" 라크리마의 걱정스러운 듯한 한마디를 듣고 케리는 최근 자신의 행동을 떠올렸다. 확실히... 라이오스가 있는 것을 의식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부쩍 여성스럽게 행동하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듯 했다. 어느새 여성용 속옷이나 스커트도 별로 부끄럽지 않게 생각한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고보니까... 요즘은 브레지어 하는 것도 부끄럽지 않고... 치마 입는 것도..." 케리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라크리마는 매우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위험하네요... 계속 여자몸으로 있으니까 정신도 영향을 받는것 같아요. 이러다간 완전히 여자로 있는게 익숙해져버릴지도..." 그 말을 듣자 케리의 얼굴은 하얗게 되버렸다. 정신까지 완전히 여자가 되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엄청난 위기였다. 케리에게는 남자로서 최대의 시련이 닥친 것이다. "뭐. 다음에 찾아볼 로드 분은 골드 드래곤 이니까... 그리 큰 걱정 안해도 될 꺼예요." "으응..." 라크리마의 위로에도 케리는 완전히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적당한 공터를 발견한 뒤, 라크리마는 정령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케리는 나무 밑둥에 앉아서 라크리마의 강의를 들었다. "정령술을 쓰기 위해서는 우선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있어야 해요. 주인님이 끼고계신 반지, 로드 오브 엘리멘탈은 그 친화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능력이 있지요. 제한이 조금 있지만... 이 친화력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라서 노력으로 어떻게 커버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예요. 로드 오브 엘리멘탈 같은 아티펙트는 지극히 드물고... 하급 정령을 부리기 위해서는 낮은 친화력으로도 가능하지만 상급 정령을 부리기 위해서는 높은 친화력이 필요하지요. 엘프는 선천적으로 인간보다 높은 친화력을 타고 태어납니다. 가끔 가다가 정령을 부리는 오크도 발견할수 있는데 오크 역시 가끔은 친화력을 타고 나기 때문이지요." "그럼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친화력이 생기는 거구나." "예. 로드 오브 엘리멘탈은 친화력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의 친화력을 생기게 하는 힘이 있어요. 그 반지가 있으면 이론적으로 누구라도 정령사가 될수 있지요. 하지만 그 반지를 만들려면 최소 9서클 9클래스 이상의 마법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인간의 역사에 남을 정도의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만들수 없지요. 게다가 아무리 로드 오브 엘리멘탈 이라고 해도 중급 이상의 정령까지 마음대로 소환할수 있는 것은 아니예요." "과연... 드래곤의 레어라니 이런 보물도 있을법 하지..." 케리는 자신의 왼쪽 손가락에서 반짝 거리는 반지를 보며 감탄했다. 이 보잘것 없어 보이는 물건에 그런 힘이 있다니... "우선 케리님이 부리실 정령을 불러내야 합니다. 처음 불러낼때가 중요해요. 소닉 블레이드를 쓰실 때 처럼 반지에 정신을 집중하세요." 라크리마의 말대로 케리가 눈을 살짝 감은채로 반지에 정신을 집중하자 반지에 박혀있는 네개의 보석이 제각각 자기색 대로의 빛을 반짝 반짝 뿜어냈다. "최초의 시동어는 로드 오브 엘리멘탈의 안쪽에 써있었습니다. '이제껏 몰랐던 그대와의 만남을 이 반지의 약속에 따라서...나와 삶을 함께하는 자의 문이여 열려라. 그대는 나의 영원한 벗이니...'" "이제껏 몰랐던 그대와의 만남을 이 반지의 약속에 따라서...나와 삶을 함께하는 자의 문이여 열려라. 그대는 나의 영원한 벗이니..." 라크리마가 말한대로 말하자 반지에서 여섯개의 불꽃이 튀어나왔다. 두개는 붉은색. 두개는 초록색. 한개는 파란색. 한개는 노란색... 불꽃들은 도깨비불 처럼 공중을 떠돌다가 하나하나 실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붉은 불꽃 두개는 하나는 불에 휘감긴 붉은 새의 형태, 다른 하나는 역시 불에 휘감긴 붉은 도마뱀의 형태로 변했다. 초록색 불꽃 두개는 하나는 날개 달린 반 투명한 손바닥만한 소녀의 모습으로, 다른 하나는 역시 날개가 달린 반 투명하고 똑같은 크기의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파란 불꽃은 땅으로 내려오더니 물로 이루어진 작은 소녀가 되었고, 노란 불꽃은 땅속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흙인형이 되어서 나왔다. 흙인형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것들이 정령이야?" "처음하면서 6마리 씩이나 불러내다니... 대단하신데요." 케리는 처음 보는 정령의 모습에 라크리마는 의외의 케리의 자질에 각각 감탄을 했다. "이 불새는 카사. 불꽃의 하급정령이고... 이 도마뱀은 살라만더. 역시 불꽃의 하급정령. 저 날개가 달리고 반 투명한 작은 여자애는 실프, 남자애는 아리엘. 물로 된 여자애는 운디네. 이 흙인형은 노움이예요." 케리는 하나하나를 감탄하면서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전부 자신의 것이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처음에 한꺼번에 6마리 씩이나 불러내다니... 이건 아무리 로드 오브 엘리멘탈 이라고 해도 힘들텐데. 어쩌면 주인님은 처음부터 정령사의 소질이 있었을지도..." 라크리마는 케리가 지니고 있었던 의외의 능력이 감탄 또 감탄하고 있었다. "이... 이젠 어떻게 해야 하지?" 케리는 정령들을 불러낸 정령들을 놓고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라크리마에게 물었다. "제가 제 실프를 불러서 명령을 내릴 테니까 그걸 보고 한번 따라해보세요. 나와라! 실프!" 라크리마가 정령을 불러내자 라크리마의 치마가 휙 하고 뒤집히더니 안쪽에서 수십마리의 실프떼가 우르르르 몰려나왔다. "꺄악! 들어가 들어가! 한마리만 나와 한마리만!" 라크리마는 허둥지둥 치마를 손으로 붙잡으면서 소리쳤다. 실프들은 한순간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면서 사라져버리고 단 하나의 실프만이 남게 되었다. 케리의 실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약간 더 컸다. 실프는 잠자리 처럼 생긴 날개를 파닥파닥 거리면서 라크리마 주위를 날아다녔다. "그런데 그 많은 실프들이 어디에 들어있었던 거야? 라크리마..." 엄청난 수의 실프들을 보고서 케리는 잠깐 놀라서 라크리마에게 물었다. "전 스톰 드래곤이니까요. 폭풍 그 자체에 속한 정령들을 몸속에 가지고 있어요. 자 그럼 따라해보세요. 저기 저 나뭇잎을 따와라 실프!" "저기 저 나뭇잎을 따와라 실프!" 라크리마와 똑같이 케리도 명령을 내렸다. 라크리마의 실프는 쏜살같이 달려가서 나뭇잎을 툭 따더니 다시 라크리마 앞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케리의 실프는 느릿느릿 전혀 의욕이 없어보이는 모습으로 나뭇잎을 향해서 가더니 나뭇잎은 따지도 않고 한참동안 우왕좌왕 하면서 놀다가 돌아왔다. "...내건 왜 저러지?" "으음... 아직 주인님이 내리는 명령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계속 명령을 내리면서 닥달하다가 보면 명령을 잘 따르게 되지요. 강한 어조로 자신있게 내리는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하지만 정령들이 어떤 명령을 좋아하고 잘 따르는 지도 알아야 하죠." "힘들구나 정령사라는 것도..." "인간의 정령사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고... 보통 된다고 해도 우연히 되는 거니까... 이런 일을 몰라서 힘들어 하는 경우도 많다고 책에 써있더군요." 라크리마의 설명을 들은 뒤 케리는 하나하나 차근차근 명령을 내려갔다. "저 나무가지에 불을 붙여라! 살라만더! 카사!" "아니아니. 아직 두가지 정령에게 한꺼번에 명령을 내리는건 무리예요." "나무가지의 불을 꺼라! 운디네!" "으음... 운디네는 저 명령을 싫어하는것 같네요. 좀 더 다정하게 명령해봐요." "노움. 흙을 쌓아올려라." "음. 노움은 의외로 잘 따르네요." "저 돌멩이를 가져와! 실프! 아리엘!" 그날 점심은 라크리마가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저녁이 될 때까지 연습하고서야, 케리는 겨우 두 가지 종류의 같은 속성의 정령에게 간단한 명령을 듣게하는데 성공했다. "휴우..." 말하고 결과를 보는 것 뿐이지만 어찌나 지치는지... "정령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약간씩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예요... 음 정령들도 지친것 같네요." "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케리는 이마를 흠뻑 적신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면 그런게 느껴진대요. 전 드래곤이라서 태어날 때부터 정령들과 같이 있었지만... 뭐 이젠 할만큼 한것 같으니까. 돌아가요. 주인님." "알겠어..." 케리와 라크리마는 마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1화 -정령사의 길 ②- 케리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부터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혈기 넘치는 젊은이란 젊은이들은 전부 케리와 라크리마를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도 당연했다. 이런 시골 마을에 이런 초특급 미소녀들이 셋이나 떼로 몰려올 일이 도대체 얼마나 있겠는가? 음흉하다고 탓하거나 늑대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미에 대한 당연한 이끌림. 인간의 본성인 것이었다. 라면 오죽이나 좋을것 같나.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들에게는 이런 말은 필요없다. '후우. 남자들은 정말이지...' 케리는 한 녀석이 자신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서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걸 보고 한숨을 쉬다가 자신의 생각이 어느새 요상하게 변해버린것을 느꼈다. 그녀도 일단은 정신은 남자이니 '남자들은 정말이지'같은 생각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하마터면 그렇게 중얼거릴 뻔 하기도 했다. 케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왜 그러세요 주인님?" "아니 아무것도 아냐..." 라크리마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어오자 케리는 일단 얼버무렸지만, 최대한 빨리 자신의 원래 몸을 되찾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돌아오는데 마을의 공터에서 이상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한 사람이 창을 붕붕 소리가 날 정도로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 보니 라이오스였다. 너무나 현란한 창술연습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동작 하나하나가 빠르고 파워풀하여 라이오스의 실력을 쉽게 짐작할수 있을만 했다. 게다가 창은 드래곤의 레어에서 주워온 라이트닝 스피어. 몇번 휘두를 때마다 주위에 전격이 치솟아 현란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 탓에 이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려는 동네 꼬마들이 라이오스 주위에 빙 둘러앉아 콧물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라이오스씨 거기서 뭐해요!" "아! 케리님!" 라이오스는 케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자 싱긋이 웃었다. 호기가 한껏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았다. "얘들아 잠깐 물러서라! 케리님 잘 보십시요." 라이오스는 구경하는 꼬마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의 몸 주위로 범상치 않은 기세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지. 라크리마?" "오라를 모으고 있어요. 뭔가 큰 기술을 쓰려나 본데요." 라크리마의 설명 그대로 라이오스의 몸 주위에서는 시퍼런 오라가 맴돌기 시작했다. 오라의 영향으로 대기는 압축되고, 창에서는 전격이 파직 거리면서 빛을 뿜었다. 꼬마들은 넋이 나가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런 산골에서 어떻게 이런 구경을 할수있었겠는가? "하아앗! 토네이도 스트라이크!" 라이오스는 창 끝을 땅에 수평으로 단단히 붙잡고, 온 힘을 다해서 앞으로 내질렀다. 압축되어있던 공기가 단번에 터져나왔다. 그리고 창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엄청난 위력의 바람의 충격파, 그리고 창의 마력이 만들어낸 뇌격. 콰콰콰콰콰콰! 뇌격과 섞인 충격파는 폭음을 온 마을에 날리면서 라이오스가 내지른 방향으로 세차게 날아가 그곳에 서있던 나무 하나를 뿌리만 남겨두고 박살을 내버렸다. 나무는 밑둥만 남게 되었고 마을 꼬마들은 이 환상적이기 까지 한 장면을 완전히 넋이 나가 바라보았다. "이야아! 저 형 굉장하다!" "오빠! 멋있어요!" "하하하하하!" 마을 꼬마들이 환호성을 치르면서 재미있어 하자 라이오스는 웃으면서 가슴을 딱 폈다. "굉장하네..." 케리도 라이오스의 진면목을 보자 그가 언제나 보여주는 자신감도 약간 이해가 되었다. 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을 테니까... 케리가 놀라면서 다시 봤다는 듯이 라이오스를 바라보자 라이오스가 헤벌쭉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보자 케리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아무리 봐도 여자 앞에서 폼 잡고 싶어하는 거잖아!' 라이오스의 그런 행동 보다도 잠시나마 넋이 나가 있었던 자신에게 더욱 화가 났다. 자신이 여자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생각났다. 평소라면 별로 상관하지 않을 테지만, 오늘 아침에 라크리마에게 자신이 점점 여성스러워 진다는 소리를 들은 터라 가만히 있을수가 없었다. '나도 뭔가를 보여줘야해!' 케리는 자신이 자신있게 보여줄 만한 기술을 생각해보았다. 소닉 블레이드? 아니 그걸 썻다가는 방금전 라이오스의 화려한 기술에 눌려서 비웃음만 당할 뿐이다. 그렇다면? '그거다!' 케리는 자신도 멋지게 폼을 잡을 만한 기술이 생각났다. 바로 정령술. 오늘 하루종일 연습한 것이 아닌가? "하하하하. 어떻습니까? 케리님. 이 기술은 저희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술인데 이 창을 쓰니 더욱 강력한 위력이..." "나와라! 카사! 운디네! 실프!" '6개를 다 꺼낸다 해도 명령을 내리다가 실수라도 하면 더욱 웃음거리가 될테니까... 일단 세개 정도만...' 케리가 정령을 꺼내자 라크리마는 케리가 라이오스와 자존심 대결을 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아니. 케리님 이것은?" "오늘 수련한 정령술 이예요." 라이오스는 케리가 정령을 소환하자 적잖게 놀란것 같았다. "수련 성과라면 저도 보여드리죠. 카사! 실프! 둘이 같이 저쪽을 부숴!" 케리는 라이오스가 부수고 남은 나무밑둥을 가리키면서 카사와 실프에게 명령을 내렸다. 바람과 불꽃, 두 정령은 명령을 듣자 제각각 세차게 날아갔다. 거센 바람에 불꽃이 휘몰아 치더니 나무밑둥은 커다란 불덩이가 되버렸다. "운디네! 불을 꺼라!" 운디네가 날아가 불덩이에 부딧치자 곧 불꽃은 사그러들고 새까맣게 타버린 나무 밑둥만 남게 되었다. "와아! 저 누나도 멋지다!" "언니는 마법사네! 짱이다!" 뭐 꼬마들은 마법사와 정령사의 차이를 잘 알리도 없으니 이해하고, 케리는 꼬마들의 환호성을 듣자 어깨가 으쓱 해져서 '어떠냐?' 하는 표정으로 라이오스를 곁눈질 했다. 라이오스도 케리의 현란한 정령술을 보고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케리님도. 하루만에 이 정도 까지 정령술을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뭘. 과찬의 말씀을. 호호호." 라이오스가 그렇게 말하자 케리의 자신감은 한껏 부풀어 올랐는데... "저 언니는 마법사고 저 오빠는 기사니까... 둘이 커플하면 딱 맞겠네!" "맞아. 둘이 얼레리 꼴레리..." "얼레 꼴레~" 그런데 마을 아이들의 연상이 엉뚱한 데로 흐르기 시작했다. 케리와 라이오스를 비교하다가 둘이 남녀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쳐서 그대로 커플링을 지어버릴 줄이야. '뭐야 이건...?' 케리는 자기 뜻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이 황당했다. 게다가 슬쩍 라이오스 쪽을 쳐다보니... "하하하하. 얘들아 그런건 아냐." 라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히죽히죽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머쓱해 하는 것이...'사실 그렇지만 아닌척'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혹시 저 녀석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 케리는 자신이 여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여관은 남자들방/여자들방으로 두개 방을 빌려두었다. 케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마레와 라크리마가 있는 방에 있었고... "...그 그런것 같아? 어떡하면 좋아 이걸?" 케리는 라이오스에게서 느껴지는 수상한 눈치 때문에 아마레와 라크리마에게 상담을 구했다. "...글세 저희는 인간의 연애 감정 같은 건 잘 몰라서..." "...우리한테 물어서 뭘 어쩌려는..." 아마레와 라크리마는 케리가 그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상담해오자 어찌할 줄 몰랐다. 일단 라이오스는 케리를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다. 일정 부분 흑심도 있는것 같고, 꼬시려는 느낌도 분명히 있다. "저 녀석이 날 덮치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잠도 오지 않아." "...설마요. 그 정도 까지 하겠어요?" 케리는 전에 한번 '강간'을 당할뻔한 일이 아직도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었다. 물론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때는 겉으로 드러나게 되버린 것이다. "그럼... 라이오스를 죽여버릴까요?" "아냐. 그런건 안돼!" 라크리마의 제안에 케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죽여버리는 것은 좀... 나 어쩌면 좋아. 저 녀석이 날 좋아하는것 같아. 그런데... 아아 미치겠다!" "진실대로 고백하는 것은 어떨까요. 주인님. '난 남자야. 그러니까 상관하지 마.'라고..." "어떻게 그런 창피한 짓을 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라이오스에게는 최악의 상황)은 케리가 거부해버렸다. "나랑 라이오스에게 상처 안 주고 조용히 끝낼 방법 없을까?" "...아아 생각나지 않아요. 그런 방법이라니..." 라크리마는 머리를 콱 틀어쥐고는 생각을 짜냈다. 하지만 드래곤의 뇌로도 상황을 타결할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아마레.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하는게 좋을것 같아?" 아까부터 별 말이 없던 아마레에게 라크리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달라붙었다. "우웅..." 아마레는 분홍색조가 감도는 귀여운 볼을 볼록 부풀리면서 생각하다가 곧 이어 몇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으쌰! 잠깐만!" "읏..." 아마레는 케리의 무릅 위에 걸터앉았다. 10살 짜리 정도의 몸이니 충분히 가능하다. "으음. 편하다. 좋아 이야기를 시작할께. 라크리마 잘 들어. 이 경우 방법은 세가지가 있어." "세가지라..." "세가지..." 케리와 라크리마는 아마레의 말에 집중했다. "우선 한가지는 주인님이 매력을 잃는 거야. 매력없는 여자가 되면 라이오스도 포기할 테니까. 라이오스의 관심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그러니까 천박한 짓을 계속 하는 거야. 아무 남자나 헌팅하려 든다던가..." "난 그런 짓은 못해. 어떻게 여자가 그런 짓을 하니...게다가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이상하게 생각할꺼야." 케리가 고개를 가로젓자 아마레는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두번째 방법은 고백하는 거야. 난 사실 남자야. 라고 고백하는 거지. 이거라면 라이오스는 확실하게 포기할꺼야." "하지만 그건 라이오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줄꺼야... 좋아하는 여자가 사실은 남자라니. 게다가 저 녀석의 성격으로 봐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너무 위험해!" 두번째 까지도 아마레는 예상해두었던 것 같았다. 아마레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세번째 결론을 꺼냈다. "세번째는 다른 남자랑 사귀는 거야." "...그게 가능할리가 있니?" "후후후. 가짜로 사귀는 거야. 가짜로 사귀어서 떨어내는 거지." 그제서야 케리는 그 방법 밖에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괴롭지만 어쩔수 없다는... "괴롭지만... 할수없지... 그런데 누구랑?" "라이오스가 아니면 다른 대안은 하나 밖에 없잖아. 라크레일." ".........그녀석하고?!" 케리의 너무나 당황하는 표정을 보면서 아마레는 샐쭉 샐쭉 미소지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완전히 악동 처럼 보였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1화 -정령사의 길 ③- 라크리마와 아마레는 라크레일을 불러서 케리와 사귀는 척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뭐?! 하... 하지만 난...그게 그러니까..." 라크레일은 당연히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소리쳤지만, 그렇게 싫지만도 않은것 같았다. "누나의 명령이야. 당연히 진짜로 주인님과 사귀라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사귀는 척 흉내만 내라는 거야." "으... 으응..." 라크리마의 추상같은 명령에 라크레일은 드래곤 앞의 와이번 처럼 복종했다. 아마레는 내심 말 잘듣는 동생을 가진 라크리마가 조금 부러워졌다. "그럼... 잘 부탁할께. 라크레일..." "흐흥! 내가 걸어둔 저주니까 내가 어느 정도 책임지는 것도 당연하지." 케리는 흉내뿐이라지만 라크레일과 앞으로 닭살 돋는 짓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뺨이 복숭아 빛으로 물들었다. 라크레일은 고개를 홱 돌렸지만 힐끔 힐끔 케리를 쳐다보면서 내심 자기 혐오에 빠졌다. 라크리마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 어딘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틀림없는 질투. 형식상 으로나마 케리와 사귀게 된 동생에 대한 질투였다. '아냐. 라크리마. 주인님은 라크레일 이랑 사귀는 척 하는 것 뿐이야. 귀찮은 녀석을 떼어내기 위해서... 그래 진짜로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으으 그래도 기분나뻐...아냐아냐. 난 메이드. 메이드로서 사명을 다해야 해!' 잠자리에 들면서 라크리마는 격열하게 갈등하는 마음을 차근차근 추스렸다. 다음날 아침. 여관 1층에 있는 식당에서 한 식사 시간 때부터 라크레일과 케리의 연극이 시작되었다. 아니, 본인들도 약간의 감정은 있으니 완전히 연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케리 누나..." 라크레일은 그날따라 케리 옆에 찰싹 붙어앉으면서 부끄러운 듯이 몸을 베베꼬면서 케리에게 말했다. "왜 그러니? 라크레일?" "나.. 누나를 좋아해! 나랑 사귀어줘!" 라크레일은 식당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연기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자신의 감정이 완전히 담기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터트리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라이오스는 이 예상치 못한 상황을 접하자 입에 넣고 있던 베이컨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케리의 얼굴도 잘 익은 사과처럼 달아올랐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지만, 그래도 막상 진짜로 고백을 받아버리니 눈앞이 막막해졌다. "하하하! 꼬마야. 누나가 부끄러운 모양이다." "아가씨. 애 가지고 놀지 말고 빨리 대답해요~" 아침부터 식당에 모인 손님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만났다는 듯이 훈수를 두었다. 케리는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게 되자 더욱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유. 라크레일도 참. 조용히 좀 할 것이지.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치면 민망하잖아...' "주인님. 빨리해요 빨리." 어쩔줄 모르는 케리의 귓전에 아마레의 재촉이 들려왔다. 케리는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 입술을 열었다. "으...으응! 기뻐. 라크레일. 사귀어 줄께!" '마.. 말해버렸다...'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어조였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는 부끄러운 처녀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휘이! 최고야 아가씨!" "영계 한마리 잡았네~" 사정도 모르고 식당안은 온통 즐거운 웃음소리로 가득찻다. '말도 안돼... 케리님이... 라크레일 군과... 이럴수가...' '이이이익! 이이이익! 참아야돼! 참아야 한다고!' 라이오스는 베이컨이 완전히 식어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멍하니 이 예상치 못한 광경을 바라보았고, 라크리마는 있는 힘을 다해 빵을 갈기갈기 찟으면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좌우간 케리 양과 라크레일 군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과 시기 속에 무사히 공인 커플이 되버렷다. 공식적으로 커플이 되면, 여러가지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보통은 알아서 다들 해치워버리고, 하기 싫어도 한쪽이 이끌어서 하게되며, 주위에서 말려도 하지만... 라크레일과 케리 같은 경우 본인들이 미적지근하게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임에도, 서로 부끄러움 때문에 진도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자기 질투심을 억누르는 데만도 전력을 다하고 있는 판이니, 이런때 활약할 사람은... 이 계획의 주장자이자 졸지에 사랑의 전도사가 되버린 아마레. "우선은... 데이트를 하세요. 주인님." "으응... 나난... 남자랑 사귀어 본적이 없어서 이런건 잘 모르니까. 아마레가 잘 좀 해줘..." "하아. 어쩌다가 이렇게..." 사실 케리는 여자랑 사귀어본적도 별로 없다. 라크레일은 겉으로는 한숨을 쉬었지만, 내심 가짜로나마 사귀게 되어 기뻐하고 있었다. "우선 제가 인간계에 대한 제 기억과 인간들의 짝짓기에 관한 이야기들(연애소설)을 모아서 대충 데이트 코스를 짜 두었으니까 이대로만 하고 오도록 하세요. 라크레일. 너도 알겠지?" "고마워. 아마레." "알겠어. 아마레 누나." 아마레는 소풍 가는 어린애들 유인물 챙겨주듯이 케리에게 데이트에 대해서 적은 종이쪽지를 잘 챙겨주었다. 그럼 케리와 라크레일의 첫번째 데이트 장소는? 사실 이 마을은 별로 넓지 않아서 데이트 장소라 할 만한 곳도 별로 없어서 아마레는 고심끝에 몇군데를 겨우 정할수 있었다. [첫번째는 까페에 들어가서 과일 칵테일 주스에 빨대를 두개 꽃아서 함께 먹는 것을 시킵니다. 그리고 조금씩 먹으면서 서로 달콤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요.] 라고 써있는 데로 케리는 라크레일을 데리고 까페에 들어갔다. 종이에 써진 대로 과일 칵테일 주스를 시키고 빨대를 두개 달라고 했다. 사실 종이의 내용은 상당히 피상적이기 그지 없었고, 아마레도 반쯤 장난으로 쓴 것 같기도 햇다. 그리고... '다음에는 마셔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 으아앙' 웨이트리스가 주스를 테이블에 내려놓기만 했는데 케리는 부끄러워서 어쩔줄 몰랐다. 케리가 우물쭈물 하고 있자, 라크레일도 적잖게 당황했다. 하지만 케리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속에 불끈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 여자를 지켜줘야해! 어떻게든!' 라크레일은 케리의 양 뺨을 붙잡은 다음 빨대 쪽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자신도 빨대에 입을 대었다. "라...라크레일..." "아무말 하지마. 내가 다 알아서 할께." "으응..." 케리는 눈을 살짝 감았다. 남자로서는 할거 안할거 다한 몸이지만, 여자로서는 데이트도 처음이다. 도저히 라크레일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케리의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칵테일 주스를 빨아들여 입 안을 적셧다. 화사하게 퍼지는 주스의 맛은 너무나 시큼했다. 라크레일은 케리와 같은 주스를 먹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굉장히 황홀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케리가 눈을 감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으으으윽... 케... 케리님..." 한편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자리에서는 라이오스가 케리와 라크레일의 둘만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늘에 파묻혀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라크레일... 저게저게... 으으 일만 끝나면 반 죽여버릴 테다!" 역시 전혀 멀지 않은 자리에서 라크리마는 부러움 반 질투심 반으로 둘만의 세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라크레일과 케리는 공원, 냇가, 마을에서 하나 뿐인 레스토랑 등등을 돌아다니면서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가슴이 뛰어서 제대로 라크레일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던 케리는 의연하게 이끌어주는 라크레일의 태도에 마음을 놓고 이제는 겨우 편하게 대할수 있었다. 라크레일은 또 달랐다. 데이트를 하던 도중 슬며시 미행해오는 라이오스를 발견한 것이다. '기회다. 이 자식...맨날 나한테 검술 수행이나 시켰지? 후후후... 어디 한번 봐라.' 라크레일은 속으로 킬킬 웃으면서 슬며시 케리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그 순간 찌그러지는 라이오스의 얼굴이란... '이 맛에 인간을 괴롭히는 거구나 어른들은. 후후후 재미있는걸 알았다.' 라크레일은 자신이 케리에게 살짝 스킨쉽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짓는 라이오스를 놀려먹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데이트를 했다. 드디어 데이트는 끝나고 헤어질 시간, 석양을 배경으로 두 남녀는 마주 섯다. "라크레일.. 오늘. 즐거웠어." "응. 나도요." 상당히 도식적이고 판에 박힌 대사였지만, 그래도 눈치채지 못한 라이오스는 오직 피눈물을 흘릴 뿐... 라크레일은 최후의 일격을 먹이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키스. 라크레일은 케리에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케리는 라크레일 보다 약간 큰 키였기 때문에 라크레일이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케리 누나, 눈 감아." "에에? 라크레일..." 케리도 라크레일의 의도를 눈치챘다. '아무리 그래도 키스는 안돼!' 살짝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케리의 양쪽 뺨을 라크레일이 붙잡았다. "전에 구해준 빚이 있잖아. 이걸로 갚아줘? 응?" "...으응..." 라크레일이 그렇게 속삭이자 케리도 승락의 표시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가까이 접근했다. 서로의 따듯한 숨결을 입술로 느끼며 두개의 꽃잎이 맞닿았다. 라크레일은 살짝 눈을 떠서 케리의 반응을 살폈다. 얼굴은 여느때보다 달아올라 있었고, 어깨로부터 느껴지는 떨림은 맞닿은 입술로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부끄러워하고 있다. '이왕 하는거 찐~하게 해볼까?' 라크레일은 문득 짓궃은 마음이 들었다. "!" 케리는 입 안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떳다. 라크레일의 눈동자가 눈앞에 비치고 있었다. '혀를... 넣다니...' 하지만 라크레일이 꽉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케리는 도망칠수도 없었다. 팔까지 잡혀 있어서 밀쳐낼수도 없었다. 특히 케리를 붙잡고 있는 것은 라크레일의 눈이었다. 너무나 맑고 깨끗한 흑철색 눈. 라크리마와 완전히 똑같은 그 눈동자가 반짝 반짝 빛을 내면서 케리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움직이지마!' 케리는 그대로 라크레일의 포로가 되었다. 그의 혀가 제멋대로 움직이게 놔두면서 서로의 타액을 교환했다. '달콤해....' 황홀했다.,지금은 완전히 잊혀져 있었다. 자신이 남자였다는 사실도... 라크레일과는 거짓으로 사귀는 척 하는것 뿐이라는 사실도... 그가 자신에게 저주를 걸었다는 사실도... 모조리 잊어버리고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라크레일 쪽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완전히 다운되어서 길바닥에 널부러져 버린 라이오스를 바라보는 쾌감. '후후후후. 정말 재미있는데 이거...' 그런데 라크레일은 눈 끝으로 살짝 웃음을 짓다가... "흐악!" 갑자기 소리치면서 케리에게서 화들짝 물러섯다. "왜...왜 그래...?" 케리는 아직도 취한듯한 목소리로 라크레일에게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라크레일은 반응이 없었다. 없을수밖에 없었다. "이 ... 이제 그만 돌아가자! 응!" "...으응..." 케리는 불만족스러운 듯이 말했지만 라크레일이 너무나 강하게 밀어붙여서 어쩔수가 없었다. 사실 더 할일이 남아있지도 않았지만... 라크레일이 갑자기 그만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라이오스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누나 라크리마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서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난 이제 죽었다아아아. 왜 누나가 미행하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한 거야아아아아!' 통한. 그 자체. 메이드 드래곤 전기 21화 -정령사의 길 ④- "부~" 라크리마는 볼을 마치 개구리 처럼 크게 부풀리고는 휙 돌아앉아 있었다. "누나아. 미안해애." "라크리마 내가 잘못했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과하는 라크레일, 게다가 케리도 영문을 모르고 같이 사과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 싸늘하기 짝이없는 눈빛을 봤다간 라크레일은 몰라도 케리는 심장마비에 걸려서 죽을지도 몰랐다. '...쟤가 저렇게 화를 내다니...' 아마레는 펄펄 끓어오르는 듯한 라크리마의 모습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자기에게 불똥이 안 튀면 다행일텐데... "데이트 한일 가지고 탓하려는건 아냐... 그러니까 주인님은 상관없어요. 하지만 라크레일 너어... 적당히 좀 할것이지 제멋대로 흥에 겨워서는... 내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는게 즐거웠던 거지...?" "아냐아냐. 절대 아냐. 그런게 아니라니까!" 케리는 라크리마의 말을 듣고서야 안심하여 한숨을 쉬고는 사과하는 것을 그만두고 뒤로 물러났지만, 라크레일은 뱀 앞의 개구리, 고양이 앞의 쥐 처럼 달달 떨면서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케리는 라크레일이 한심하다던가 하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열받은 라크리마가 얼마나 무서운가? 그것은 말하지 않아도 쉽게 알수있는 것이었다. "라크레일. 내가 뒤돌아 있는 것은 지금 내 얼굴을 봤다가는 주인님이 공포에 질려서 날 다시는 안볼까봐 그래서 그런거다... 너 다행인줄 알아라..." "으으응.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누나!" "그럼 변명이나 들어볼까? 대체 왜 그렇게 까지 찐하게 데이트를 했는지 말야?" "으응... 데이트하다가 라이오스가 보고 있는걸 발견했거든... 살짝 스킨쉽 하기만 해도 라이오스의 얼굴이 완전 죽을상이 되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 두 여자의 호통 소리가 동시에 라크레일의 귀를 강타했다. "뭐야 임마! 너 날 써서 라이오스를 가지고 논거였냐? 재수없는 자식! 재수없어 정말! 어디서 별!" "주인님을 그런데 이용하다니... 라크레일... 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그런 일을 하다니. 정말이지..." 케리의 라크레일에 대한 호감도는 올라갔던 만큼 바닥을 향해서 추락했고, 라크리마의 분노도는 그에 비례하여 상승했다. 라크레일, 인생 아니 용생(龍生)최악의 위기. "따라와라 라크레일." 긴 말은 필요없었다. 라크레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으로 라크리마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케리는 씩씩 거리면서 침대에 누워버렸고, 아마레는 라크레일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난데없이 안개가 내리기 시작했다. 짙고 짙은 안개가 마을을 완전히 뒤덮었다. 멀리서 보면 마을에 구름이 낀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괴상한 기상 이변이 너무나 두려워 집 밖으로 한발자국 나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때, 메이드 복을 입은 한 아름다운 소녀가 달을 향하여 말했다. "달이여. 이제부터 일어날 참극을 그대는 보지 않는 편이 좋아." 그리고 구름이 일어나 달빛과 별빛까지 가로막았다. 마을안에는 완전한 어둠이 내렸다. 얼마뒤 어둠 속에서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비명소리와 폭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누구도 밖을 내다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 정체는 영영 베일에 가려졌다. 혹자는 악귀와 악마의 싸움이 있었다고도, 마계의 입구가 열려 지옥의 연기가 흘러나왔다고도 하나 그 실체는 역시 알수없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이날을 '공포의 날'이라고 부르면서 두려워 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이날 밤만 되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만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라크레일은 아마레가 회복마법을 걸어줘서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아직 정신을 잃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한차레 폭풍을 지나가게 한 다음이라서 기분이 풀렸는지 개운~ 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케리는 전혀 그렇게 할수 없었다. '잊고 있었어...' 케리는 그간 조용히 있어서 잠시 현실감을 잃고 있던 '라크리마는 변덕이 심한 드래곤이다'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주인님!" "응!" 라크리마가 갑자기 케리를 부르자 케리는 화들짝 놀라면서 대답했다. 혹시 자신에게도 화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하면서. "주인님. 뭘 놀라고 그래요. 그건 그렇고... 해주실 꺼죠?" "에? 뭐 뭘?" "데이트 말이예요. 데이트. 저는 아직 주인님이랑 데이트 해본 적은 없는것 같아요. 맨날 같이 살기는 했지만... 데이트라는 느낌은 아니었고, 음... 좌우간 라크레일이랑 하는거 보고 너무너무너무 부러웠어요. 주인님. 저랑도 데이트 해주세요? 네?" 케리가 지금 이 소녀의 부탁을 거절할수가 있겠는가? "으응... 하지만 라이오스가 사라지고 난 다음으로 해줘... 일껏 일꾸민게 헛수고가 되면 안되니까..." "좋아요! 그럼 지금 당장 라이오스를 처치하고 오겠습니다!" "...누가 그러라고 했어..." 한시라도 빨리 데이트를 하고 싶어서 라이오스를 처치하려 하는 라크리마를 말리느라 케리는 한참 진땀을 빼야했다. 한편, 라이오스는 케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느라 땀을 빼고 있는 줄도 모르고, 실연의 아픔에 젖어서 바깥에 괴물이 나왔다는 마을 사람들의 외침조차 잊고 있었다. '아아... 케리님이... 나의 케리님이 라크레일 군과... 으으으... 케리님이 라크레일 군이라면 사귀어도 좋다고 했으니 내가 케리님에게 뭐라고 할 권리는 없어... 여기는 남쪽 이니까 케리님도 몇명쯤 남자가 있었을지도? 아니야 순결한 케리님이 그럴리가 없잖아... 그럼 케리님은 라크레일 군과 결혼하려는...?! 크억...' 라이오스는 제멋대로 상상을 전개시켜나갔다. 라이오스가 태어나고 자란 루퍼스 왕국은 연애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많고 남녀의 사귐에도 부담이 많은 나라라서 한번 사귄 남녀가 헤어지고 다른 남녀를 만나는 것은 터부시되는 풍조였다. 라이오스도 남쪽에 내려오고 나서 자유연애가 흔하고 헤어지고 만나는 일도 흔한 이 나라의 풍습이 익숙하지 않아 고생한 일도 있었다. '아냐아냐... 아직 케리님은 라크레일 군에게 입술까지는 허락했지만... 크윽 부러운 녀석! ...케리님도 순결하신 분이지만 남쪽 여성이니 조금은 남자들이랑 놀아봤을지도 몰라... 으으 머리 아퍼라... 대체 난 어떻게 하면 좋은 거지? 그래도 케리님이 싫지는 않아! 하지만 케리님은 라크레일 군과 사귀는데...' 평소의 호탕한 성격과는 정 반대로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꽉 막혀버린 라이오스였다. 보통 사람이 이 정도로 고민했다면 아마 상사병에 걸려서 드러누을 지도 몰랐다. 게다가 남자 체면에 여자들에게 연애문제를 상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라크레일에게 상담하는 것은 말이 안되니 혼자 벙어리 냉가슴을 앓을 수밖에... 하지만 그도 오래동안 기사도를 수행하여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자. 이 정도로 쓰러질 리는 없다. 라이오스는 필사적으로 고민하여 지혜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며 찾아댄 끝에, 한가지 결론을 낼수 있었다. 그가 겨우 어떤 해결책을 찾았을때는 이미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언제나 일찍 일어나는 그 답지 않게, 그날 따라 라이오스는 모두가 아침 식사를 거의 끝마칠 때 쯤에야 깨어났다. 밤새도록 고민을 해서 새벽에야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케리님. 라크레일 군은 어제밤 잠을 설쳤나? 표정이 좋지 않군. 라크리마양. 아마레양. 안녕한가? 하하하. 어제 연습을 좀 많이 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그만 늦잠을 잤습니다. 아 이건 제 불찰... 아침 식사가 늦어서 모두에게 폐를 끼친건 아닐런지 하하하" 라이오스는 언제나 처럼 태연하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한명 한명에게 인사를 했지만, 다들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남아있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으며, 얼마나 콧물을 흘렸는지 코 밑이 다 헐었는데 눈치채지 못할리가 있겠는가? '...고민했군. 라이오스 씨... 불쌍하게도...' 비록 자신이 원한 탓에 벌어진 일이지만 케리는 라이오스의 모습에 아픈 마음을 숨길수가 없었다. 하지만 케리의 동정이 섞인 눈빛을 받은 라이오스는 슬며시 고개를 돌릴 뿐... '...그래. 포기한거야. 휴.. 다행이다...' 케리는 안심했지만 라이오스에게는 아직 다른 생각이 있어보였다. "대체 드래곤이 유희를 한다는 이야기는 누가 지어낸 걸까? 거참..." 오전, 라크레일은 마을에서 가져온 소설책을 보면서 불만섞인 이야기로 투덜투덜 대고 있었다. 방에 누워서 뒹굴 뒹굴 하는 것이 한가해 보였다. "라크레일군. 너무 방에만 처박혀 있으면 안되네." 그때 라이오스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묘하게 차분하고 뭔가 결심을 굳힌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자네는 몸이 약하지 않은가. 그럴 수록 운동을 해서 체력을 쌓아야 하네. 자네는 어린 나이에 비해서 지식이 많으니 체력을 좀 더 쌓으면 나처럼 멋진 사나이가 될수 있을 꺼야. 암암." '멋지긴 개뿔이 멋지냐.' 라이오스의 그 말을 듣고 라크레일은 피씩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라이오스의 추태를 어제 있는대로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라크레일군. 자네에게는 미안하네만... 난 사실 케리님에게 마음이 있었다네." '...얼씨구...' 라이오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라크레일은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이 바보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서 였다. "솔직히 어제 자네와 케리님이 사귀게 된 것을 보고 약간은 충격 받았네. 암 충격받고 말고. 사나이니까 이것은 확실히 인정하겠네." "예예. 죄송합니다 형님." 솔직하게 고백하는 라이오스에게 라크레일는 형식적으로 사과의 말을 건냈다. "하지만 케리 누나가 저한테 온 것은 어쩔수 없는 사실이지요? 힘으로 뺏으려 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닙니다. 라이오스 씨. 저도 사실 당신에게 질 정도로..."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라크레일 군. 내가 자네와 싸워서 케리님을 뺴았는다고? 그런건 기사가 할 일이 아니지. 절대로 아니고 말고!" 라이오스는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소리쳤다. "난 자네와 케리님의 관계를 축복해주려고 생각하네. 하지만 난 아직 자네가 케리님에게 어울리는 상대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라크레일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음 말에 집중했다. "...자네를 단련시켜 주기로 했네! 자네가 내 마음에 들 정도로 단련되지 않으면 난 케리님을 자네에게 넘겨주지 않을꺼야! 하하하하! 자 어서 수련하러 가세!" "시...싫어어어어!" 어제의 즐거움의 댓가로 오늘의 괴로움을 받게된 라크레일은 라이오스에게 질질 끌려나갔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2화 -金의 古龍 ①- 케리 일행은 뒤죽박죽 연애소동을 일으켰던 산골짜기의 작은 마을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용존계와의 경계선, 에스펠 산맥을 넘지는 않았지만 산맥을 넘어버리면 바로 용존계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주 평온한 여행이었다. 라크레일이 매일같이 라이오스에게 시달림을 받는 것만을 제외하면 말이다. 한참을 여행하면서도 잭슨의 흔적조차 발견할수 없자 라이오스도 점점 잭슨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요즘에는 그냥 어디서 잘 살기만 빈다는 느낌이 되어버렸다. 말을 달리고 또 달려서 동남에서 북서로 뻗은 에스펠 산맥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도중에 몇개나 되는 마을을 만났고, 그때마다 케리와 라크레일은 이번에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러브씬을 펼쳐야 했다. 라크리마와 라이오스도 그때마다 피눈물을 흘려야 했고...강도(?)가 줄어들자 라크리마는 어느 정도 참아낼수 있는듯 했지만. 그렇게 한참을 가더니... 드디어 지겹게 나오던 에스펠 산맥이 끝을 보였다. 에스펠 산맥이 끝나는 곳에 나온 것은 에스펠 산맥을 이어서 계속 북서쪽으로 달리는 푸른 호른 강. 호른강의 잔잔한 물결을 따라 나아가자 드디어 산이 사라지고 탁 트인 넓은 평지가 나왔다. "화아..." 높은 산도 감격적이지만 넓게 펼쳐진 평원도 대단히 감동적이다. 케리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제 산 타는 것도 끝이구나...' 얼마동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산 다운 산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케리 일행은 호른 강 변에 펼쳐진 초지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강변에 앉아 식기들을 씻어 챙기고 케리와 라크리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크리마는 강이 좋은가보네. 아까부터 자꾸 강을 쳐다보고..." "예? 아. 하늘 위에서 보는 것 하고 눈 앞에서 보는 것이 틀려서 그래요." "그렇구나. 이번에 우리가 만나게 될 드래곤은 누구지?" "골드 드래곤의 에이션트 드래곤. 에라니에 님이예요. 저도 잘 아는 분인데..." 라크리마는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에라니에 할머님은 라크레일이나 아마레도 잘 알고 게세요. 참 친절하시고 온화한 분이세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케리님을 도와주실 꺼예요." "그거 다행이구나..." 라크리마가 그렇게 장담하자 케리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투둑 투둑... 돌 위에 점점히 작고 짙은 꽃무늬가 풀잎 위에는 이슬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라크리마는 목덜미에 갑자기 차가운 것을 느끼고 당황했다. "앗 비가?!" "이런 갑자기 왠 비가..." 케리와 라크리마는 서둘러서 다른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케리 일행중에 우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하늘도 어두워지고 있었다. 비는 한참동안 내릴 기세로 조금씩 굵어지고 있었다. "이걸 어쩌지?" "난감하네. 라크리마 어떻게 해볼수 없어?" "어떻게요?" "마법으로 비를 그치게 한다던가.." 라크리마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상 조작 마법은 금지되어 있어요. 절대 써선 안되는 마법이예요..." "...어째서?" 라크리마는 케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아주 오랜 옜날 ... 드래곤들이 맑은 날씨가 좋아서 서로서로 맑은 날이 오는 주문을 외워서 온 대륙에 가뭄이 온 적이 있었고, 어떤때는 비오는 날이 좋아 서로서로 비구름을 부르다 보니 대륙전체에 홍수가 난 적이 있거든요.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이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당시 에이션트 드래곤 분들과 드래곤 로드 분들이 모여서 다시는 기상 조작 마법을 쓰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함부로 비를 부르거나 비를 물러가게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어요." 라크리마의 설명을 듣고 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이 근처에는 비를 피할 만한 장소마저 없었다. 온통 파란 풀밭에 나무라고 있는 것은 허리 정도 밖에 안오는 작은 나무들. 이래서야 비를 쫄딱 맞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라크리마.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라이오스는 비가 내려도 '수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서 태연하게 있었고,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허둥거리면서 피할 장소를 찾았지만 보일리가 없었다. 케리도 몸이 축축하게 젖는 것은 기분이 나빳기 때문에 라크리마에게 애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라크리마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이 환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면 됐어요. 폴리모프 셀프!" "자 잠깐. 그건...!" 라크리마의 몸이 하얀 광채를 발하더니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부풀어 오르면서 형태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거대한 '드래곤'의 형상으로... 라이오스는 갑자기 거대한 물체가 출현하자 경계태세를 취하면서 마법의 창을 치켜들었다. "저게 뭡니까? 케리님 어서 떨어져요!" "아.. 아니 이건..." '끝장이다...' 케리는 변신하는 라크리마를 바라보며 어쩔줄을 몰랐다. 드래곤을 비만 도마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케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라크리마의 본체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공포스러워서 그 형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라크리마에게 익숙해진 지금... 차분하게 보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몸에는 군살 하나 보이지 않았다. 꼬리도 몸통도 머리도 네 개의 다리도 너무나 날씬하고 매끈하게 뻗어 있었다. 그녀는 '비만 도마뱀'같은 우스꽝스러운 명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아름다운 생물이었다. 바람처럼 빠르게 날수있게 하는 날개는 몸체에서 길게 뻗어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잘잘한 비늘로 빈틈없이 덮힌 흑철색 가죽은 반짝이는 반사광과 함께 온 몸을 덮고 있었다. 이전처럼 공포심 부터 솟아오르지 않았다. 그만큼 라크리마에게 익숙해졌다는 증거일까? 케리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버렸다. "이 사악한 드래곤! 어서 물러나지 못할까!" "아..." 라이오스의 외침을 듣고서야 케리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식할수 있었다.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단단히 붙잡고 온 몸에서 투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라크리마를 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라크레일군! 아마레양! 내가 저 놈을 상대하겠네! 마법으로 견제해주게!" 라크리마가 본체로 돌아간 모습을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아마레와 라크레일은 라이오스가 그렇게 소리치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케리를 쳐다보았다. 케리도 난감한 표정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이제와서 라이오스를 말리거나 속일수도 없고... "할수없지. 사실대로 털어놓자. 잠깐만요! 라이오스씨!" "예? 사실대로라뇨? 케리님 대체 무엇을?" "라이오스씨. 저 드래곤은 라크리마 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마레와 라크레일도 드래곤이지요. 여기서 인간은 저와 당신 뿐입니다." 라크리마를 향해서 창을 휘두르려던 라이오스는 케리의 고백에 눈이 휘동그래졌다. "여태까지 속여서 죄송해요. 하지만 라이오스 씨에게 고백할 찬스를 잡지 못해서..." "케리님도 저 드래곤의 마력에 속아넘어간 모양이군요! 저놈을 쓰러뜨리면 정상으로 돌아올테니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어디서 드래곤이 마법을 쓴다는 소리는 들어서, 라이오스는 케리가 라크리마의 마법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라크리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창을 휘두르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 도마뱀! 없애버리겠다아아아!" 빠직! 라이오스가 '도마뱀'이라고 말한 순간 밑에서도 볼수 있을 만큼 큰 핏줄이 라크리마의 머리에 달린 뿔 바로 밑에서 솟아올랐다. 쿠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라크리마의 앞 발이 라이오스를 짓눌렀다. 앞발은 뒷발에 비해서 작은 편이었고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발톱이 돋아있었지만 인간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수 있는듯 했다. "이...이이이이놈." 라이오스는 자신의 힘을 모조리 끌어내어 라크리마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 드래곤 라크리마의 양 입꼬리가 높이 올라갔다. '재미있어 하고있다!' 라크리마는 라이오스를 깔아뭉갤락 말락 하면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라이오스가 라크리마에게 한마디를 더 하자 그 아슬아슬한 힘겨루기의 승패는 금세 라크리마 쪽으로 굴러갔다. "이 비만 도마배애애애애애앰!" 콰직! 라크리마의 표정은 정말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숙녀에게 비만도마뱀이 뭐야! 비만도마뱀이! 한번만 더 그랬다간 진짜로 죽여버릴꺼야!" "크어어어어워어워어어어어어!" 앙칼진 라크리마(인간)의 목소리가 라이오스를 내려찍은 앞발 옆에서 흉폭한 라크리마(드래곤)의 분노한 포효가 머리에서 울려퍼졌다. "라크리마?" 분명히 라크리마는 원래 모습으로 현신했는데, 라크리마의 발 밑에는 인간 모습의 라크리마가 평소처럼 메이드 복을 입고 서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예. 저 모습은 이야기하기 불편하니까... 사실 인간의 말은 할수없게 되어있는 몸이고, 그래서 '분신'을 만들었어요. 마법으로." "분신이라니..." "마법으로 불러낸 엑토플라즘으로 만든 인형 같은 거죠. 사실 속 구조는 인간하고 완전히 똑같지만. 변신(폴리모프)하고는 틀린거예요. 이건 저 본체에서 정신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같은 몸체죠. 저라면 이런 분신을 한번에 다섯개 정도 만들수 있어요. 뭐 다섯개를 조종하다보면 아무리 인간의 몸체라도 본체로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버리지만...날개를 펴고 있으면서 인간 몸체 하나를 움직이는 정도는 할수있지요." 라크리마의 본체는 네발로 서서 한 발로는 라이오스를 꽉 누른채로 두 장의 날개를 넓게 펼치고 있었다. "이 안에 들어와서 비 피하세요." "...아 응..." 그들은 라크리마(드래곤)의 발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았다. 위에서 길이 100미터나 되는 라크리마의 거체가 가려주고 있으니 비가 들어올 리가 없었다. "흑흑... 내 본체가 얼마나 예쁜데... 봉인당해서 보여주지도 못하고. 쳇쳇..." 아마레는 라크리마가 본체로 돌아간 것이 엄청나게 부러운 듯 했다. 라이오스는? 앞발 밑에 깔려있었다. 아무리 무도수행을 했다고 한들 앞발 밑에 깔려서 뭘 어떻게 할수있을리가 없었다. '하아...' 케리는 라이오스에게 뭐라고 제대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앉아서 비를 피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2화 -金의 古龍 ②- 케리는 라이오스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라크리마 양이 드래곤이 되는 저주에 걸렸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그런게 아니예요. 라크리마는 태어날 때부터 드래곤이었어요." "...그 말인 즉슨, 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라크리마 양은... 이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모습이라는 것이군요?" 라이오스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라크리마의 앞 발 밑에 깔려있었다. 라이오스가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딱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라이오스는 발 밑에 깔려서 이야기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수 없군요. 어째서 이 비만 도마뱀이 케리님에게 복종하는 ... 으악!" 드래곤모습의 본체가 라이오스를 갑자기 콱 누르고 분신인 인간 모습의 라크리마는 '비만 도마뱀'이라는 표현이 아주아주 신경에 거슬리는듯 팍 찡그린 얼굴로 서있었다. "비만 도마뱀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이 아름다운 몸이 어딜 봐서 비만하다는 거야?" 라크리마는 본체 쪽에도 상당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듯 했다. "알겠다. 이 사악한 드래곤! 대체 케리님을 꾀어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난 그냥 주인님에게 봉사하고 있을 뿐이야. 먼 옜날의 약속대로!" "그런 말도 안되는! 악랄한 스톰 드래곤이 그런 짓을 한다면 뭔가 흑심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라이오스는 발밑에 깔려있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 나불나불 댓다. '이 자식 확 깔아뭉개버릴까...' 분신쪽 라크리마는 완고한 라이오스를 바라보며 이빨을 뿌드득 뿌드득 갈아댓다. 본체쪽 라크리마도 이를 뿌득 거리는 소리가 천둥소리 처럼 머리위에서 들려왔다. "무섭잖아. 라크리마. 하지마." "...아 실수로 본체쪽에서도..." 케리의 질책을 듣고서야 라크리마는 이갈기를 멈추었다.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본체로 돌아간 라크리마가 정말 부럽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 몸은 황금색으로 번쩍 번쩍 거려서 라크리마보다 몇배는 아름다운데..." "나도 누나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데... 아 이 저주를 어떻게 하면 풀수있을까? 아마레 누나." "으휴. 내가 무슨 방법이 있곘니. 그냥 드래곤 로드 분을 찾아가는 수밖에. 에이 비는 왜 안그치는 거야!" 아마레는 아직 회색 구름이 덮혀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투덜거렸다. "비가 더 심해질것 같은데..." 라크레일은 걱정스러운 듯이 하늘을 지켜보았다. 과연, 비구름이 점점 많아지면서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고 빗발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누나 춥지 않아? 본체쪽은...?" "이 정도로 추우면 드래곤이라고 할수있니? 빗발 정도는 아무 상관없어." 라크리마의 본체는 비에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라크리마. 괜찮을까? 너 전에 감기걸린 적도 있잖아." "그때는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폴리모프 해 있어서 그런거고요." 라크리마의 말을 듣고서야 케리는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라이오스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라이오스. 라크리마는 정말로 착한 드래곤이야. 안심해도 좋아. 라크레일도 아마레도. 정말 착한 드래곤이야. 내 눈을 보라고 마법 같은 걸로 속인게 아냐? 그 동안 라이오스도 쭉 지켜봤잖아? 믿어줄수 없겠어?" "........." 케리는 그윽하고 맑은 눈동자로 라이오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수정같은 눈동자가 라이오스를 지켜보자 라이오스의 얼굴에 분홍꽃이 피어났다. 라이오스는 케리의 그런 태도에 어느 정도 수긍은 갔지만, 아직 완전히 라크리마를 믿을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드래곤=적=사악한 몬스터 라는 개념은 쉽게 지워질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봐 드래곤!" "응?" 세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라이오스의 부름에 답했다. 하지만 라이오스가 부른 것은 하나 뿐이었다. 아직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드래곤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케리님이 이렇게 까지 말하시니 한번은 들어주지. 하지만 난 아직도 네가 믿기지 않는다. 왜 이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케리님의 시중을 들고 있는 거지?" "그거야. 카리온 님과의 약속이니까." "용사 카리온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고 300년 전에 죽었다. 그런데도 신의를 지키는 건가?" "당연하잖아. 드래곤에게 300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냐!" 라크리마가 그렇게 장담하자 라이오스의 가슴 속에 믿음의 싹이 피어났다.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신의를 지키는 녀석이군. 좋아. 약간은 믿어주지." "...당신 혹시 바보아냐? 지금 내 발밑에 깔려있는 주제에..." 분명히 라크리마의 발 밑에 깔려있는 주제에 믿어주네 어쩌네 말을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없는 일이다. 당장 라크리마가 힘을 좀 주면 라이오스는 짓뭉개질 판이니... 하지만 그것이 '기사'인 라이오스의 입장에서는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 내가 믿어주었으니 이 발을 치워다오." "...그럴수는 없지요. 라이오스씨이~ 내가 발을 치우면 당신이 언제 그 창을 들고 공격할지 모르는데요? 죽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창은 나한테도 아주아주 아프다고요~" 라이오스가 '비만 도마뱀'이라고 불렀던 것 때문에 화가 나서 말을 막하던 라크리마의 말투가 평소처럼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도 화가 다 가시지는 않은것 같았다. 라이오스는 지금 상태를 '임시휴전'이라고 판단하고 라크리마에게 신의를 얻을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그럼 손을 떼면서 내 무기를 가져가라. 이 창이 없으면 나 역시 너에게 이길 방법이 없다. 절대 공격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면 됐지?" "으응... 뭐." 라크리마의 거대한 앞발이 들어올려지면서 정교한 동작으로 라이트닝 스피어를 집어들었다. 라크리마의 앞발은 뒷발과 크기는 비슷했지만 훨씬 정교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거의 인간처럼 사용할수 있었다. 기사답게 라이오스도 한번 한 말에는 책임을 지고 지켰다. "내가 신의를 지켰으니, 너도 신의를 지켜라." "당신을 잡아먹거나 하지는 않아요. 난 인간을 먹는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라이오스는 라크리마가 발을 치우자 먼지와 진흙을 툭툭 털어내면서 일어났다. 아무리 살살했다고는 해도 드래곤 앞발에 깔렸는데 별 상처도 없을 정도라니... 무식하게 튼튼한 몸인 것은 사실이다. 케리와 아마레, 라크레일, 분신체 라크리마는 본체 라크리마의 발 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있었지만, 라이오스는 발톱을 경계해서인지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이봐 드래곤. 그러고보니 칼레이븐을 만났을 때부터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기는 했군... 왜 나와 잭슨을 속이고 칼레이븐의 레어 까지 데려갔던 거지?" "그야 당신을 함부로 죽이거나 하면 주인님이 슬퍼하실 테니까요." "그렇게 케리님에게 신의를 지켜서 뭘 얻겠다는 거지?" "...아이 참. 신의가 댓가를 바라고 얻는 것인가요? 당신은 그러시나요?" "그렇군...과연. 미안하다." 분신체 라크리마와 마주보고 대화하면서 라이오스는 서서히 라크리마에 대한 믿음이 다시 생기는 것 같았다. "아. 이거 도로 가져가요." 분신체 라크리마는 본체의 손에서 라이트닝 스피어를 받아들더니 라이오스에게 내밀었다. "지금 가져가도 되나?" "당신 것이잖아요." "하지만 내가 이걸 가져가면 너를 공격할지도 모르는데?" "공격하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그리고 매일매일 무기를 적에게 넘겨서는 안된다고 말한 주제에..." 라크리마가 그렇게 말하자 라이오스는 그제서야 납득한듯 했다. 드래곤이었다 해도 이 아가씨는 변하는 것이 없다. 변덕쟁이에 제멋대로지만 지극히 순수하고 올곧은 소녀다. 자신을 속인 것도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이런 드래곤이라면 믿을수 있다.'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받아들고, 나머지 일행이 앉아있는 라크리마의 발 쪽으로 가서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아마레 양과 라크레일 군도 드래곤이라는 이야기군." "말했잖아. 나는 골드 드래곤. 라크레일은 스톰 드래곤이야." "그러고보니 그 칼레이븐의 저주는...?" "아. 인간 모습으로 고정시켜 두는 저주야." "...확실히 드래곤에게는 저주가 될수도 있겠군. 그런데 왜 마법종족이라면서 풀지 못하는 거지?" "그야 그건 고룡의 용언마법이라서 아직 어린 우리들은 풀수 없거든." 아마레와 라이오스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때... 촤아아아아아아악 라크리마의 날개위에 고여있던 물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소리를 냈다. 케리 일행이 자기 몸 밑인 발쪽에 앉아있자 더 이상 아프게 날개를 펴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라크리마는 날개를 접어들였다. 사실 날개위에 물이 고여서 무거워지기도 했고, 날개를 너무 혹사시키면 어깨가 아파오기 때문이다. "라이오스씨. 정말 죄송해요. 라이오스 씨를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라크리마 들이 드래곤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이 일은 비밀로 해 주실수 있지요?" "물론입니다. 케리님. 저도 멋대로 당신의 드래곤을 공격해서 죄송합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드래곤 슬레이어를 노리는 많은 자들이 몰려들테니... 저도 비밀로 해두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라이오스 씨." 어쨋건 문제는 겨우 그럭저럭 해결된듯 했다. 하늘을 뒤덮던 비는 소나기였던 걸까. 한차례 거세게 퍼붇고 나더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본체 라크리마는 빗물을 털어버리려는듯 온 몸을 후드득 후드득 흔들었다. 커다란 물덩이가 날아가 초원을 직격하여 물방울 자국을 만들어댔다. "크워어어어어어"(폴리모프 셀프) 본체 라크리마가 하얀 빛에 감쌓이더니 다시 평소 때 처럼 메이드 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로 되돌아갔다. "에? 아차 이런 분신을..." 하지만 분신을 철수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두명의 라크리마가 마주 서 있는 기묘한 광경이 되버렸다. "사라져라! 디스펠 매직!' 본체쪽 라크리마가 분신을 향해서 마법을 날리자 분신 라크리마는 몸이 흐려지더니 하얀 연기가 되어서 흩어졌다. "아아... 끝났다. 오랜만에 본체가 되었더니 기분 참 좋네. 주인님. 잘했죠?" "...아아 그래그래. 참 잘했어... 참..." 케리는 '이 애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자 그럼... 이제 또 골드 드래곤을 찾으러 가볼까." "갈 필요 없어요." "뭐?" "갈 필요 없다구요." "어째서?" 라크리마의 뜬금없는 말에 케리는 약간 당황했다. 골드 드래곤을 찾으러 갈 필요가 없다니? 라크리마는 구름이 사라지면서 파란 바탕이 드러나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오시고 있어요. 그 분이..." "아... 저....." 그제서야 케리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날아오는 황금빛 드래곤이... 메이드 드래곤 전기 22화 -金의 古龍 ③- "저것이 골드 드래곤의 에이션트 드래곤...?" 케리는 하늘을 날아오는 골드 드래곤을 멀리서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휘황찬란한 광채를 발하고 있어서 마치 해가 두개나 뜬것 같았다. 얼마나 커다란 몸인지 금방 날아올 것 처럼 보였는데 한참의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느리네. 골드 일족은" "너네가 너무 빠른거야!" 라크리마가 지류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아마레가 반격했다. 하지만 둘다 날아오는 골드 드래곤을 보면서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크리마의 느리다는 말에 자극이라도 받은 걸까? 골드 드래곤이 날아오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것 같았다. 조금씩 세부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저것이 에이션트 골드 드래곤, 에라니에..." 에라니에는 드래곤이라면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창을 꼬나쥐고 덤벼들던 라이오스 마저 감동할 정도로, 기품있는 모습의 드래곤이었다. 마치 백조처럼 부드러운 몸의 라인과 날개,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피부, 머리 뒷쪽에 나있는 갈기와 이마의 완만하게 구부러진 뿔도... 나는 모습 하나도 아름답고 기품이 있었다. "역시 에라니에님! 스톰 드래곤 처럼 무식하게 다 때려 부수면서 날지는 않는다니까!" "흥! 너네는 느리니까 그렇지!" 이번에는 아마레가 공격하고 라크리마가 반격했다. 하지만 에라니에의 나는 방식은 정말 부드러웠다. 날개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얼마나 사뿐하게 내려앉는지 케리 일행 앞에 내려앉을 때만 해도 풀 하나 쓰러지지 않을 것 처럼 조용했다. 바로 코앞에서 본 에라니에의 덩치는 60미터 정도. 라크리마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크기임에도 전혀 위험이 느껴지지 않았다. 에라니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드래곤 얼굴임에도 정말 부드러워 보였다.) 세 꼬마 드래곤을 지켜보았다. "에라니에 할머니이~" 라크리마와 라크레일, 아마레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도 없이 달려가서 에라니에의 품에 뛰어들어 금색 갈기털에 몸을 파묻었다. "할머니. 칼레이븐 할아버지가 저희들한테 저주를 걸어버렸어요." "그래서 인간 모습으로 밖에 있을수 없어요. 으아앙."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마치 할머니에게 어리광 부리는 손자들처럼, 어미닭에게 안겨드는 병아리처럼 보였다. 케리는 라이오스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서 지켜보았지만 그 역시 이 평화스러운 풍경에 창을 들이대는 짓은 할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답군요. 저 골드 드래곤은..." "예. 맞아요." 라이오스의 감탄에 케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고 지혜롭고 잔인하고 어리석은 인간이여.] 인간 모습인 세 꼬마 드래곤을 품에 안은 채로 에라니에가 케리와 라이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말을 하고 있는데도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공기의 정령 그 자체를 진동시켜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에라니에의 목소리에는 마치 신에게 바치는 천사들의 찬송같은 기품이 서려있었다. [나의 귀여운 아이들과 잠시 회포를 나누는 것을 기다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아이들은 해츨링의 시기를 지났으나, 저는 아직도 이 아이들이 해츨링으로 보이는 군요.] "아니요.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어찌 고룡의 말에 거역할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정중하게 부탁하는 데서야... "할머니. 해츨링이라니 너무해. 아마레는 다 자랐단 말이예요. 덩치는 할머니한테도 지지 않아." [그러니 아마레. 그런데 네 몸에 뭔가 이상한 용언의 기운이 느껴지는 구나?] "아까 말했어요. 칼레이븐 할아버지가 내 몸에 저주를 걸어버려서 인간으로 밖에 있을수가 없어요." 아마레는 오랜만에 겉모습에 어울리게 어린애 같은 태도로 에라니에에게 부비적거리며 말했다. 아마레에게 그 말을 들은 에라니에의 태도가 갑자기 험악하게 변했다. [칼레이븐! 그것이!!! 땅밑에 파묻혀 있는 레드 일족 주제에! 내 새끼들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씨사이 같은놈! 나중에 찾아가서 박살을 내주마! 걱정마라. 아가들아.]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 그냥 풀어주기만 하면 돼요." "응응. 우린 어차피 인간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던 거니까." 에라니에가 화를 내자 심상치 않은 공포감이 흘러나와 아마레와 라크레일은 허둥지둥 에라니에를 말렸다. 그제서야 에라니에는 태도를 다시 가다듬었다. [흠흠흠... 그럼 저주를 풀어주도록 하마. 풀려라!] 째애앵 허공에서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용언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꺄아아아악! 저주가 풀렸다! 폴리모프 셀프!" "만세에! 폴리모프 셀프!" 둘은 앞다투어 풀밭으로 달려나와 마법을 썻다. 그리고 곧바로 드래곤의 모습을 되찾았다. 라크레일은 에라니에 보다 더 큰 덩치의 흑철색 스톰 드래곤으로 변했다. 라크리마와 거의 비슷했지만 라크리마와는 달리 순전히 여성적인 선보다는 약간 거친 느낌도 있었다. 아마레는 에라니에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변했다. 차이가 있다면 약간 품격이 모자르고 거칠어 보인다는 정도? "크워어어어어어어!" "캬아아아아아아악!" 두 드래곤은 오랜만에 본체가 된 것이 너무나 기쁜지 괴성을 지르며 포효했다. 그 울음소리에 담긴 드래곤 피어와 드래곤 세마리가 둘러싸고 있는 압도적인 장관에 케리와 라이오스는 저도 모르고 움츠러들었다. [호호호호호. 그만 작은 모습이 되거라. 인간분들이 무서워 하니. 게다가 할머니가 안아줄수도 없잖니?] 둘은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쉬더니 에라니에의 부탁에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 에라니에에게 다시 안겼다. [셋다 잠깐 잠들지 않겠니? 할머니는 오랜만에 너희들을 안고 자고 싶구나. 해츨링 때는 그렇게 해주었는데 ... 요즘은 다들 너무 커졌으니.] "응!" 세 드래곤은 한 입처럼 대답했다. [슬립!] 에라니에의 마법에 의해 두 소녀와 한 소년은 에라니에의 가슴 갈기를 덮고 푸욱 잠이 들었다. 에라니에는 셋이 잠자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자세를 고치더니 케리와 라이오스에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라크리마의 2대 마스터인 케리 레그너스 입니까?] "예. 위대한 에이션트 드래곤이여." [호호호.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에라니에라고 부르도록 해요. 당신들은 우리가 위대한 종족이라 하지만, 우리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 에라니에님." 케리와 라이오스는 에라니에의 온 몸에서 나오는 품격과 위엄에 눈을 마주볼수조차 없었다. 이것이 진짜 에이션트 드래곤이란 말인가? [케리 레그너스. 당신은 우리 아이들의 마법으로 인해 여성이 되버린 불행한 상태지요?] "!" 케리는 이 드래곤이 어떻게 이 일을 알고 있는 것인가에 놀랐고, 라이오스는 드래곤의 말에 영문을 알수없어서 놀랐다. "잠깐만요! 뭘 잘못 안 것이 아닙니까? 케리님은 분명히 여성인데... 마법으로 인해서라니 그럼..." "죄송합니다. 라이오스 씨..." 케리는 라이오스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제 이 모습은 마법 때문에 이렇게 된것이예요. 전 사실..." "...그...그럴수가...!" 라이오스는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털썩. 그리고 그대로 풀밭에 주저앉아버렸다. '케리님이 본래 남자라니... 그럼 내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지...?' 라이오스의 고민은 잠시 덮어두고, 에라니에는 케리에게 계속 말했다. [케리 레그너스. 그대에게 걸린 저주는 애당초 이 아이가 만든 조잡한 마법... 게다가 라크리마가 마법 해체를 잘못하여 마법이 뒤섞여버린 상태입니다. 보통의 디스펠로는 그 마법을 풀어낼수 없지요. 드래곤의 마법인 만큼 다른 생물이 풀어내기도 어렵습니다. 함부로 풀려고 했다가는 더 큰 문제가 일어날수 있어요. 그것을 제대로 해결할수 있는 방법은 에이션트 드래곤의 용언 마법 뿐입니다.] "예. 그래서... 저는 라크리마와 함께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일을?" [전 라크리마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답니다. 이 아이는 아직... 예. 정말 걱정되는 아이이기 때문이지요. 그럼. 당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어주도록 하지요.] "예. 감사합니다." 케리는 기쁘게 대답하면서도 라이오스의 반응을 살폈다. 라이오스는 아직도 쓰러져 있었다. 충격이 정말로 큰 모양이었다. 에라니에는 자신의 갈기털을 두개 뽑아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나의 몸의 일부여. 내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꾸라.] 갈기털은 황금빛 빛을 뿌리며 두개의 귀걸이로 변했다. 물방울 모양으로 생긴 작은 금 귀걸이였다. 표면에는 세세한 마법문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용언으로 명한다. 이것을 착용한 인간은 남성으로 변하라.] 귀걸이에 마력이 깃들었다. 에라니에는 두 개의 귀걸이를 손가락으로 잡아 케리에게 내밀었다. [당신에게 걸린 마법은 너무나 복잡해서 용언으로도 쉽게 풀어낼수가 없습니다. 억지로 풀려고 하면 문제가 약간 발생할지도 몰라서... 그래서 약간 번거로운 방법을 택했습니다만... 이 귀걸이 두개중 하나만 차게 되도 당신은 남자가 될 것입니다. 복잡한 저주를 풀어내기 보다는, 용언으로 남자로 만드는 마법을 하나 더 거는 것이 더 쉬우니까요.] "감사합니다! 에라니에님." 케리는 양 손을 모아 귀걸이를 받았다. 귀걸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케리는 라이오스를 바라보았다. 라이오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케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라이오스씨... 정말 죄송해요... 저는... 당신의 마음을 받아줄수 없어요." "아니요. 알겠습니다. 저와 당신은... 맺어질수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군요. 걱정마십시요. 케리님. 당신이 남자가 된다고 해도 저의 당신에 대한 동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저와 깊은 우정을 이어갑시다." "예..."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말하는 라이오스는 체념한것 같았다. 그의 첫사랑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케리는 그런 라이오스를 바라보며 귀걸이를 귀로 가져갔다. 귀에 구멍을 뚫지 않고도 끼울수 있게 클립이 붙어있었다. 라이오스는 도저히 케리가 남자가 되는 것을 지켜볼수가 없어서 고개를 휙 돌렸다. '라이오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난 원래 남자인걸. 게다가 이대로 지내면 완전히 여성화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어쩔수없어...' 케리는 눈을 질끈 감고 귀에 클립을 끼웠다. 하나 둘... 한쪽 귀걸이만 꼈는데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방이 공기빠지는 풍선처럼 줄어든다. 어깨가 조금씩 넓어져간다. 다리 사이가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끝났다. "에?" 아주 간단히 변화가 끝나자 케리 자신도 놀랐다. 이렇게 오래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가 너무나 쉽게 해결되다니... 황당할 정도였다. [거울!] 에라니에가 마법을 썻다. 허공에 둥둥 뜬 전신 거울이 나타났다. 빛의 굴절과 반사를 마법으로 조정해서 만든 거울이었다. [비춰보도록 하세요. 자신의 모습을.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에엑?!"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케리는 비명을 질렀다. 거울 안에는 남자이던 무렵의 케리가 아니라... 여.자.와. 착.각.될. 정.도.의. 미.소.년. 이 되버린 케리가 있었다. "이..이게 대체..." 가만히 보니 얼굴은 완전히 여성이었을 때의 자신과 똑같았으며 가슴은 평평해졌지만 어깨는 약간 넓어진것 말고는 여성적인 선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피부도 여자일때와 똑같이 하얗고 부드러웠으며 머리결도 고왔다. 허리와 히프, 다리 라인은 아예 여자일 떄와 변화가 전혀 없어보였다. 다리 사이가 약간 볼록 튀어나온걸 빼면... "이게 뭐야?!" [어머? 마음에 안드시나요?] "이건 제 원래 모습이랑 전혀 다르잖아요! 전 ... 허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남자답게 생겼다구요!" [어머나. 제가 당신의 원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해서 약간 실수를 한것 같네요. 오호호호호. 뭐 그래도 지금 모습이 더 아름다우니 상관없지 않겠어요?] "......." [아 참. 그 귀걸이는 빼지 말도록 해요. 빼는 즉시 여자로 돌아갈 테니까... 괜찮아요. 피부병 같은건 안 걸리는 재료니까.] 케리는 할말을 잃었다. 남자가 되기는 했지만... 이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아닐까? 남자이면서 남자들의 눈길까지 끄는 것은... 더 최악이었다. "...이걸 어쩌죠? 라이오스씨...헉!" 케리는 라이오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눈을 반짝 반짝 거리면서 케리를 바라보는 라이오스가 있었다. "전혀 변함이 없군요! 케리님! 다행입니다!" "...아 아니 전 지금 남자가 되었는데..." "그래도... 케리님... 그 모습이라면..." 라이오스는 단호하게 그 최후의 대사를 말했다. "남자라도 상관없어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메이드 드래곤 전기 22화 -金의 古龍 ④- "어머나. 주인님 그 모습은?" "꺄악. 예쁘다아!" "험험..." 얼마후 잠에서 깨어난 세 드래곤은 초절 미소년이 되어버린 케리의 모습을 보고 제각각 특색있는 반응을 보였다. '이럴수는 없어. 이럴수는 없는거야...' 케리는 이 뜻밖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케리의 미모는 굳건한 기사 라이오스를 야오이의 가시밭길에 빠뜨릴 정도... 이래서야 본래의 평범한 남자로 돌아가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오히려 지금까지 처럼 여성으로 있는 것이 더 살아가기 편할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케리는 차마 자기 귀에 매달려있는 마법의 귀걸이를 떼어내고 여자로 돌아가지 못했다. 라크리마나 아마레는 물론이고, 라이오스와 라크레일 까지 케리의 지금 모습을 기대에 가득 부풀어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보이쉬한 미소녀보다 여성스러운 미소년이 더 좋다는 것인가? '다들 이렇게 보고 있으면... 할수없지...' 케리는 체념했다. 본래 자기 자신이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 불만을 가질 정도로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는데... 이런 모습이 되어버려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실망하시는것 같네요. 케리 레그너스.] "예...조금..." [제가 당신의 소원을 잘못 들어들여서 폐를 끼친것 같군요.] "아니요. 그럴리가요. 뭐... 일단 남자로 돌아간 것만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래도...] 에라니에는 케리를 걱정스러운 듯이 지켜보았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서 케리가 곤경에 빠진 것이 딱해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온화하고 지혜롭다는 골드드래곤 답다. 지혜로운 골드 드래곤인 만큼. 이럴때 해야할 일도 쉽게 생각해냈다. 에라니에는 마법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과 영광된 언어로서 말하니, 하늘과 땅을 넘어 가져오라. 내가 바라는 것을,] 에라니에가 용언 마법을 끝마치자 아지랭이가 이는 것 처럼 공간이 몇번 휘더니 작은 물체가 에라니에의 손바닥에 나타났다. 검의 손잡이 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은색으로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 다양한 마법문자가 금빛으로 수놓아져 있었다. 하지만 칼 날은 붙어있지 않았다. 대신에 칼날 부분에는 작고 투명한 크리스탈이 하나 붙어있었다. 에라니에는 케리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케리는 그것을 받아든 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루만 있는 칼? 대체 이것은...' "이건...뭐죠?" [광검(光劍) 옵티걸 소드. 전 세계에 몇자루 밖에 안되는 물건입니다. 제 실수의 댓가로 이걸 당신께 드리죠.] "옵티걸 소드? 하지만 이건..." [칼자루만 이라고 말하고 싶겠죠? 검날을 꺼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칼자루를 잡고 '광인(光刃)형성!'하고 말하면 끝 부분의 크리스탈에서 빛의 칼날이 나올 것입니다.] 에라니에의 설명을 듣고 케리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런 물건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이션트 드래곤의 말이니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의 크리스탈 부분을 바닥 쪽으로 향한 다음 말했다. "광인형성!" 옵티걸 소드의 크리스탈에서 빛나는 칼날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니, 그 휘황찬란함은 마치 빛 그 자체로 이루어진 칼날 같았다. 하얗고 은은한 빛은 롱 소드 정도의 길이와 두께의 칼날을 만들어내었다. "...이... 이럴수가..." 케리와 라이오스는 물론이고 세 드래곤들 조차도 옵티걸 소드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몇번 휘둘러 보고는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에...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빛 그 자체로 이루어진 검이니까요. 옵티걸 소드는 마법적인 힘을 이용해서 베는 것이기 때문에, 마법 금속이 아닌 보통의 금속은 모조리 잘라버릴수 있습니다. 검기나 마법조차도 막아낼수 있지요. 한번 시험해 보실래요?] "예!" 케리는 이런 훌륭한 무기를 얻어서 아주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에라니에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바위로 다가가서 옵티걸 소드를 휘둘러보았다. 쩍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옵티걸 소드는 너무나 간단하게 바위를 둘로 쪼개버렸다. 케리의 손에는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케리는 이 엄청난 위력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쪼개진 바위를 쳐다보았다. [괜찮으신가요? 마음에 드시나요?] "무...물론입니다! 에라니에님. 이런 귀한 무기를 제가 가져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에라니에님!" 케리는 진심으로 에라니에에게 고개를 숙였다. 라이오스는 부럽다는 듯이 케리를 바라보았다. 에라니에는 케리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세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라크리마, 라크레일, 아마레] "예!" "예!" "네!" [이런 여행을 할 기회는 드래곤의 긴 삶에서도 얼마 되지 않을꺼야. 부디 즐거운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에라니에는 기품있게 충고해주고는 입을 열고 혀를 내밀어 드래곤 소년 소녀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핥아주었다. 셋은 에라니에가 그들을 귀여워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저분하다던가 생각하지 않고 기꺼이 에라니에의 혀에 몸을 맡겼다. 모두를 핥아준 다음 에라니에는 몸을 일으켜서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바람 한점 일으키지 않고 깃털처럼 부드럽게... [당신들의 여행에 축복이 있기를 빕니다. 아직 어린 드래곤들이여. 그리고 인간들이여.] 태양빛을 받아 에라니에의 몸은 눈부신 황금빛을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기품과 위엄이 흘러넘치는 그 모습에 인간은 물론이고 드래곤 들도 에라니에의 모습이 하늘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땔수 없었다. "나도 저렇게 될꺼야. 흠흠..." "웃기고 있네. 넌 평생 가봐야 에라니에님 처럼 되지 못할꺼다." "뭐야! 라크리마 너!" "이 정도 도발에 간단히 넘어오는걸 보면 정말 아직 멀었어." "이게!" 별 이상한 이유로 말다툼을 시작 하는 드래곤 소녀들을 제껴두고, 라이오스는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것이... 에이션트 드래곤이라는 것이군요." "으응..." 저번의 칼레이븐과는 달리 에라니에는 정말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케리와 라이오스에게도 감명깊은 경험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 케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옵티걸 소드를 내려다보았다. 광검의 빛의 날은 아직도 그 광채를 잃지 않고 있었는데.... "어떻게 집어넣는다... 넣을만한 칼집도 없는것 같은데" 그 말을 듣자 라이오스도 이 옵티걸 소드의 곤란한 점을 하나 발견하였다. 에라니에는 옵티걸 소드에서 빛의 날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라크리마와 아마레가 옵티걸 소드를 받아들어서 눈이 아픈걸 참고 손잡이 표면에 세겨진 마법문자를 해독해내서 겨우 이 검의 사용 방법을 알아냈다. "광인해체!" 고민했던 것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간단한 키워드를 말하는 것 만으로 케리는 옵티걸 소드의 빛의 날을 사라지게 할수 있었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조심스럽게 품속에 챙겨넣었다. "에라니에 님도 참.. 설명서라도 줄 것이지... 어휴 눈아퍼." "으음... 아무리 훌륭한 물건이라도 사용법을 모르면 쓸수없지..." 아마레와 라크레일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라크리마가 옵티걸 소드의 사용법 강의를 시작했다. "이 옵티걸 소드는 빛 그 자체를 칼날로 만드는 힘을 지닌 검입니다. 마법 무기가 아닌 이상 어떤 일반적인 무기도 이 검에 대항할수는 없지요. 사실상 마법적 방어가 아닌 이상 어떤 물건이라도 잘라버릴수 있는 칼입니다. 또한 '늘어나라'라는 명령어로 최대 10미터까지 늘일수 있고, '줄어들어'라는 명령으로 1센티까지 길이를 줄일수도 있지요." 라크리마의 말을 듣고 케리는 슬쩍 기능을 실험해보았다. 과연... 말한그대로 옵티걸 소드는 길이도 자유자재로 조절할수 있었다. 라크리마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다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마력과 마법 기술이 필요해요. 엄청난 대마법사나 드래곤이 아닌 이상 이런 물건을 만들수는 없지요. 백병전에서 특히 극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이 옵티걸 소드의 위력은 5대 신기나 5대 마검와도 대적할수 있을 정도입니다." "5대 신기라면...그 5대 신기?" 라이오스는 눈을 둥그렇게 떳다. 5대 신기와 5대 마검. 그것은 이 세계에 전설로만 내려오는 궁극의 마법무기가 아닌가? "신검 제라파워트, 뇌룡의 창, 황금의 피리, 용의 이빨, 어둠의 망토. 5대신기중 어둠의 망토는 방어용이니까 제외한다고 해도... 공격과 방어 면에서 옵티걸 소드가 신기에 뒤지지는 않아요. 5대 마검인 폭풍의 검 스톰브링거, 화염의 검 블레어스 타이나, 뇌신의 검 카라스테인, 지평의 검 케이어스 퀘이사, 음부의 검 다크 어벤져..........어느것과 승부한다고 해도 검 자체의 성능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지요. 물론... 부가적인 마법효과 면에서는 뒤질지도 모릅니다만..." 라크리마의 입에서 전 세계적인 명성과 힘을 지닌 마법 무기의 이름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그 정도로 이 옵티걸 소드의 마력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신검과 부딧쳐도 끄떡없을 정도이니... 다만 부가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마법이 적어서 실질적인 전투능력 면에서는 신기나 마검에 뒤질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좌우간 그런 굉장한 무기를 얻었다는 것에 케리는 기뻐하면서 또 두려워하였다. "그래도... 이런걸 가지고 있다는걸 함부로 소문내면 곤란할 꺼야. 게다가 난 아직 이런걸 쓸 자격이 안되는 것 같아..." "무슨 소립니까. 케리님. 당신의 손에 그 무기가 들어왔다는 그 무기가 당신과 만날 운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쓰셔아죠." "주인님. 무슨 그런 소리를 하세요. 걱정마세요. 뺏어가려고 하는 사람은 제가 모두 박살을 내줄테니까." 라크리마와 라이오스의 만류를 듣자 케리는 주저하는 마음이 조금 가셔서 옵티걸 소드를 칼 띠에 끼워넣었다. "이걸 제대로 쓰려면 시간이 좀 걸릴것 같아. 가벼워서 휘두르는데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나 엄청나게 잘 자른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가벼워서 아직 익숙하게 쓸수가 없어. 연습을 좀 해야 할꺼야."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①- 기적같은 행운으로 케리는 남자로 돌아가고 거기다가 초절미소년이 되었으며(본인은 불행이라 생각하지만), 덤으로 극강의 마법무기 옵티걸 소드를 손에 넣게 되었다. 케리는 모험을 하던 시절과 비교해서 볼때 엄청나게 강해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조상에게 전해받은 라크리마의 피는 그에게 바람을 조종하여 소닉 블레이드를 날리는 능력을 부여해주었다. 칼레이븐의 레어에서 얻은 반지, 로드 오브 엘리멘탈은 그에게 정령을 부리는 힘을 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최강의 마법무기중 하나인 옵티걸 소드를 얻게 됐다. 객관적으로 봐서 분명히 엄청나게 강해졌다. 하지만 케리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대체 뭐가 이렇게 아쉬운 걸까...' 주위를 둘러보니 호른 강을 배경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 라크레일은 라이오스에게 이끌려 검술 수행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것이 들통났지만 라이오스를 뿌리치지도 못할 정도로 물렁물렁한 라크레일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크리마와 아마레는 설겆이와 바느질을 하면서 가끔 서로를 놀리고 있었다. 말싸움에서는 라크리마가 한수위라는 느낌이지만...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렇다. 평화였다. '그렇구나!' 그제서야 케리는 무릅을 탁 쳤다. 너무 평화로웠다. 라크리마와 아마레, 라크레일. 드래곤이 세마리나 있다. 드래곤이 세마리나 모여 있으니 거기서 발생하는 엄청나게 압도적인 드래곤 피어(Dragon fear) 때문에 몬스터들이 가까이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드래곤 피어는 일종의 살기와 같은 것이다. 감각이 둔한 인간이라면 몰라도 예리한 육감을 지닌 몬스터나 짐승들은 기본적으로 드래곤 가까이에 가기를 꺼려한다. 세마리나 몰려있으면 잡아먹히기 싫어서라도 다가오지 않는다. 몇일 간격으로 오크나 고블린에게 습격당하는 일반적인 모험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안전했다. 하지만... 그것이 지류함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케리는 자신이 강해졌다는 실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어느 정도 숫자의 오크와 싸워서 이길수 있을까? 전에는 오크 한마리도 감당하기 어려웠는데...' 케리는 은근이 몬스터가 습격해오기를 바라는 자신을 바라고 깜짝 놀랐다. 라크리마와 함께 있어서 몬스터의 무서움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너무 자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케리는 자신을 반성했다. 하지만 역시 힘이 남아돌아서 몸이 근질거리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사실 라이오스도 케리 못지 않게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것을 라크레일을 훈련시키면서(라크레일은 괴롭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안했지만 은근슬쩍 몬스터가 습격해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와버렸다. "케리님 위험해요!" 갑자기 라크리마가 케리의 등뒤를 가리키며 소리치는 바람에 케리는 허둥지둥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소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키 2미터 정도의 거인이 서있었다. 온 몸은 짧은 황색 털로 덮혀있었고, 뿔은 물소처럼 컷다. 소의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농가의 소와는 달리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미노타우로스. 괴력과 난폭함을 함께 지닌 무서운 몬스터였다. "크워어어어어어!" 미노타우로스는 괴성을 지르면서 케리가 앉아있던 자리를 거대한 곤봉으로 내리쳤다. 하지만 위험을 느낀 케리가 서둘러 피하는 바람에 미노타우로스의 곤봉은 헛되이 먼지만 일으켰다. 훈련을 하던 라크레일과 라이오스도 이상한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달려왔다. 케리는 라크리마 쪽으로 달렸고... 다섯명은 대충 한 곳에 모여서 주위를 살폈다. 모여든 몬스터는 미노타우로스 만이 아니었다. 공중에는 하피 세마리가, 땅에서는 케리를 습격한것을 합쳐서 미노타우로스 두마리와 커다란 덩치를 지닌 식인귀, 오우거 한마리가 있었다. 모두 시뻘겋게 타오르는 눈으로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라크레일은 마법검을 들고 각각 자세를 취했다. 라크레일은 검술에 서툴었지만 라이오스와의 맹훈련 덕분에 어느 정도 자세가 잡혀서 나왔다. "크워어어어어" "크우우우우우" "캬악 캬악 캬악!" 몬스터들은 울음소리로 우선 공포심을 주려는 것 같았다. 케리와 라이오스는 경계태세를 취했다. 라크리마는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감히 누구한테 짖는 거야...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 크롸롸롸롸라라라라라라라!!!" 라크리마의 귀여운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소리는 드래곤의 울음소리, 그 자체였다. 드래곤 피어, 드래곤이 내뿜는 살기가 잔뜩 담긴 울음소리가 몬스터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몬스터들은 주춤주춤 거리면서 물러섯고, 하피도 경계를 취하면서 공중에 머물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노려보았다. 몬스터들은 움찔 움찔 거리면서도, 물러서지는 않았다. 새빨갛게 변한 눈은 공포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라크리마와 몬스터들은 서로의 살기를 가득 담아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드래곤이 세마리나 모여있는데 몬스터들이 다가오다니? 게다가 내가 노려보는데 도망가지 않아? 대체 ... 설마? 저 눈은...?" 라크리마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만약 그것이 맞다면... '이렇게 지체하고 있을 틈이 없어. 공격하자!' "다들 공격해! 플레임 스트라이크!" 라크리마가 시동어를 외우자 그녀의 손에서 한줄기 홍염이 뻗어서 하피를 향하여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캭캭 캬아아악" 하피는 갑자기 날아온 홍염을 피하지 못하고 몸의 반이 불에 타들어가면서 추락했다. "플레임 랜스!" 뒤이어 아마레도 주문을 날렸다. 또 다른 하피는 아마레가 날린 불꽃창에 맞고 격추되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억" "우워어어어어어어어" 오우거 한마리와 미노타우로스 두마리는 하피들이 통닭이 되는 모습을 보자 살기 등등하여 달려들었다. "그리스(Grease)!" 기다렸다는 듯이 라크레일이 마법을 썻다. 마법의 힘이 가해지자 풀밭은 기름이나 버터를 뿌린 것 처럼 미끌미끌하게 변해버렸다. 세마리는 갑자기 바닥이 미끄럽게 변하자 달려오다가 앞으로 뒤로 그 큰 덩치를 우스꽝 스러운 모습으로 데굴데굴 굴렸다. "매직 미사일!" 연이어 라크레일은 마법검을 휘두르면서 시동어를 외웠다. 세발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가 쓰러져 있는 세마리를 하나하나 직격했다. "크워억!" "우웍!" "크웩!" 상당히 아파보였지만,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에게 매직 미사일은 그다지 큰 효과가 없었다. 사실 라크레일은 단순히 사놓고 썩히고 있는 마법검이 아까워서 한번 날려본 것이었다. "마지막은 좀 큰걸로 해볼까? 루브라 크래틱애로우!" 아마레가 마력을 집중하였다. 루브라 크레틱애로우, 8서클 8클래스의 섬광계열주문. 이 정도쯤 되면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집중해서 확실하게 써야 한다. 아마레의 손 앞에 허공에 빛으로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불길한 붉은 빛을 내며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콰과과과과과광!!! 마법진이 완성되자 십여개의 붉은 빛의 기둥이 마법진에서 뿜어져나왔다. 거대한 붉은 뱀이 기어다니면서 대지를 파괴하는 것 처럼, 대지가 붉은 광선에 파헤쳐지고 흙먼지와 폭음이 울려퍼졌다. 이동궤도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그것들은 마침내 몬스터들을 휘감았다. "크와아아아아아아" "쿠에에에에에엑!" 빛의 기둥에 휩쌓이면서 오우거와 미노타우로스들은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강인한 체력을 가진 그들이었지만 이런 마법에 까지 대항할수는 없었다. 그들은 빛의 기둥 속에서 산화해버렸다. 마법이 사라지고 나자 무참한 파괴의 흔적을 아마레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지켜보면서 웃었다. "아하하하하. 역시 난 대단해. 아아. 한참동안 강한 마법은 못써서 혼났다니까." "이 바보야!" 딱! 자랑스러워 하는 아마레에게 라크리마가 꿀밤을 때렸다. "....왜 때려 라크리마?" "미노타우로스를 구워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소고기 맛이 난다구. 오랜만에 등심을 먹을까 했건만... 아롱사태도 얻을수 있을텐데... 저렇게 만들어버려서야 하피 밖에 남지 않았잖아... 후. 하피로 프라이드 치킨이라도 만들어볼까..." "이게 이게! 쳇. 오크라도 잡아서 삼겹살이나 도려먹을까..." "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파괴를 자행한 뒤에 펼치는 대화치고는 상당히 쪼잔하기 그지없는 대화를 하는 두 소녀를 라이오스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 당신은 혹시 마법 대전대회에서 준우승 했던 아미양?" "...뭐 사실 동일인물이기는 해요." "지금 그 마법은 대체 몇 서클이지요?" "8서클 8클래스 루브라 크래틱애로우예요. 참 폼 나는 마법이죠?" "세상에... 8서클 8클래스라니... 과연 드래곤이군요..." 라이오스는 드래곤과 인간의 힘의 격차를 겨우 인식했다. 8서클 8클래스... 저 정도 경지에 들어갈 만한 마법사는 이 대륙에도 손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드래곤은 이런 자그만한 소녀도 그런 마법을 사용할수 있다니... 아마레는 라이오스가 자신을 경탄하면서 바라보자 자존심이 회복되었다. "그런데. 라크리마 누나. 이것들이 어째서 덤벼든 거지? 우리가 있으면 가까이 올리도 없잖아? 드래곤 피어를 못 느낀걸까?" "그럴리는 없어. 내가 보기에 이것들은... 마족의 조종을 받고 있었어." "마족?!" 마족, 드래곤에 대항할 만한 몇 안되는 종족중에 하나. 라크리마는 그들이 마족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 마족... 이 몬스터들은 마족에 의해서 마인드 컨트롤 되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드래곤 피어를 이겨내고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었던 거지. 그런데 대체 왜 이런 몬스터들이 이런 한가한 들판에서 돌아다니는 거지?" "글세..." 라크리마는 의문을 품은채로 하피를 살피러 갔다. 한마리는 완전히 타버렸고, 다른 한 마리는 반 정도는 타버렸지만 반 쯤은 남아있어서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 버리기로 결심하는 찰나... "누나 조심해!" "라크리마 조심해!" 멀리서 케리와 라크레일이 그녀에게 소리쳤다. 라크리마가 고개를 들어보니 근처의 나무 사이에 까만 그림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옷! 이번은 내 차례입니다! 기다려주세요!" 라이트닝 스피어를 꼬나들고 달려드는 라이오스. 하지만 라크리마는 손을 들어서 그를 제지했다.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알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라크리마도 잘 알고 있는 자였다. "파치야!" "..라... 라크리마 님... 끼잉..." 라크리마의 레어에 있던 묘인족, 레어를 지키도록 명령해두었던 그녀는 온 몸이 상처로 뒤덮힌 채 라크리마 앞에 나타났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②- "극도로 탈진한 데다가. 온 몸에 상처가 가득하다니... 대체 내 고양이를 누가 이꼴로 만들어 버린거야?" 라크리마는 파치야를 안아다가 편안히 눕혀두고, 상처를 하나하나 일일이 치료해주었다. 케리는 오랜만에 보는 파치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파치야는 좀 말랐다는 것을 빼면 케리가 레어에서 봤을때와 전혀 차이가 없었다. 작은 몸집과 귀여운 얼굴도, 머리위에 돋은 하얀 털이난 고양이 귀라던가 입주위의 고양이 수염, 엉덩이의 꼬리. 지저분해 졌지만 하얀 털이 보송보송 돋아있었다. 파치야는 옷을 입지 않았다. 대신에 몸에 원피스 수영복 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고양이 털이 복실복실 돋아있었다. 신발은 신지 않았지만, 발바닥은 딱딱하고 발등에도 털이 돋아있어서 별로 불편한것 같지는 않았지만... "케리님. 이건 뭡니까? 묘인족... 이라고 하는 종족이지요?" "응. 파치야 레그너스. 내 친척이야." "예에?!" 케리의 뜻밖의 말에 라이오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카리온의 자손이지. 카리온이 묘인족 여자와 사귀어서 낳은 후손이라더군요." "하아..." 라이오스는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지만, 케리가 그렇게 말하니 믿기로 했다. "흐냥 흐냥..." 아무리 피로가 쌓이고, 탈진했다지만 묘인족의 체력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파치야는 한나절 정도 자고 나니 어느 정도 회복된듯, 보글거리는 스프 냄새를 맡고 깨어났다. "아...라크리마님. 케리님..." "파치야. 어떻게 된거야? 레어는 내버려두고 왜 여기 와있어?" "흐냐아아아아앙" 라크리마가 추궁하자 파치야는 눈물을 글썽글썽 거리면서 라크리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왜 왜이래?!" "야오옹 다 죽어버렸어요. 레어를 지키던 코볼트랑 묘인족들은 전멸하고... 저만 살아남았어야옹. 오크나 하피, 오우거들은 세뇌당해버렸고... 흐냐야아아아앙" "뭐야?! 대체 누가!? 누가 그런 짓을?!" "...마.. 마족이..." "마족!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라크리마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파치야를 다그쳤다. 눈에서 분노의 불길을 활활 태우면서... 파치야는 울먹임과 고양이 울음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그간 있었던 일을 라크리마에게 설명했다. 케리와 라크리마가 여행을 떠난뒤 얼마동안 그들은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돌연 '마족'이 습격해왔다. 레어의 방어장치를 모두 사용해서 저항했지만 워낙 마족의 군세가 엄청난 탓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레어안에서 학살이 벌어지는 동안 파치야는 혼자서 비밀통로로 탈출했다. 그 뒤 한참을 걸려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있는 장소를 알아낸거야?" 케리의 의문에는 라크리마가 대답해주었다. "이 애들은 인간 마법사로 치면 패밀리어와 같은 식으로 저와 연결되어 있어요. 찾아오려고만 하면 제 위치를 알수도 있지요. 인간 마법사들은 패밀리어가 죽으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만 우리 드래곤 들은 워낙 강하니까 타격이 와도 별로 큰 위험은 없지만... 혹시 얼마전에 감기 걸린건 이것 때문인가?" 라크리마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파치야. 저 몬스터들은 너를 추격해온 거니?" "예. 라크리마님. 냐앙" 파치야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꼭 고양이가 세수하는 모습 같았다. "내 레어를 습격하다니... 배짱도 두둑한 마족이로군. 서둘러서 돌아가야겠어... 주인님. 어쩌죠? 돌아갈까요?" "라크리마의 레어가 습격당했다면 보통 일이 아니잖아. 어서 돌아가자." "아하하하하. 마족이라... 상대로서는 부족함이 없군요!"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붕붕 휘두르면서 전의를 불태웠다. 본격적인 전투가 나올 기미를 보이자 흥분한것 같았다. 라크리마는 돌아갈 방법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으음... 우리들이 타고 가려면.... 아마레. 변신해." "뭐? 왜 내가? 게이트 마법으로 가면 되잖아? 너네도 날수 있고." "레어에 걸어둔 공간이동 게이트가 멀쩡할리가 있니? 게다가 나나 라크레일은 변신상태에서는 너무 빠르단 말이야. 그리고 입안에 넣고 날기는 싫으니까 네가 변신해." "칫..." 아마레는 투덜투덜 거리더니 폴리모프 주문을 외웠다. 그녀는 황금빛에 휩쌓이더니 커다란 골드 드래곤으로 변했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그녀의 몸은 에라니에보다는 기품이나 품격이 부족해보였지만, 대신에 생기넘치는 발랄함이 돋보이는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크롸뢋(어서타)" 앞발과 고개를 숙이면서 아마레가 소리치자 모두 앞다투어 아마레의 등 위로 올라갔다. 목 위에는 금색의 갈기가 돋아있었고, 등 한가운데에는 삼각형의 커다란 지느러미 같은 것이 돋아 있어서 붙잡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크뢋 크뢋 크라라라락(모두 다 탓지? 출발한다.)" 모두 자리를 잡은것 같자 아마레는 조심스럽게 날개를 펄럭펄럭 거렸다. 아마레의 거대한 몸은 사뿐하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속도는 라크리마나 라크레일보다 느렸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정말 탑승감은 최고였다. 어느 정도 고도로 올라가자 아마레는 날개를 쭉 펴고 바람에 몸을 맡겼다. 커다란 새가 나는 것 처럼 대기에 몸을 완전히 맡기고 날려는 것이다. 아마레는 공중을 미끄러지듯이 날아갔다. "정말 편하네..." 케리는 아마레의 목덜미에 앉아서 갈기를 붙잡고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산이나 마을이 장난감 처럼 보였다. 그 만큼 높이 올라온 것이다. 라크리마에게 탓을 때는 입 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또 기절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래쪽을 본 경험은 없었는데,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어이. 어어이." "꺄악 냐앙 꺄악 냐앙" "카르륵.(시끄러)" 라이오스와 파치야는 이 신기한 경험에 흥분하여 마구 날뛰다가 떨어질뻔 하기도 해서 아마레의 질타를 들었다. 반면 라크레일과 라크리마는 아마레의 속도가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등의 공간은 충분히 넓었고, 아마레도 신경써서 부드럽게 날았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있는한 떨어질 염려 같은것은 없었다. 석양을 바라보며 드래곤 등 뒤에 타서 나는 것은 굉장히 진기하고 또 멋진 경험이었다. 저녁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아마레는 석양을 뒤로 한채 적당한 마을입구에 내려앉았다. 하루 반나절을 날아왔으나 아직 라크리마의 레어와 호른강 상류의 중간 쯤인 카에리온 시티 까지 가지도 못한 상태였다. "내일이나 모래쯤에 겨우 도착하겟네... 아이고 날개야...어깨가 쑤시고 저려..." 인간으로 다시 폴리모프한 아마레는 정말 괴로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냥 밤 새도록 날지 않고." "그러다가 엉뚱한 데로 빠지면 책임지실래요? 밤중에는 아무리 적외선 시력을 쓴다고 해도 위험한게 너무 많다구요. 게다가 날개도 아프고..." 라이오스의 말에 아마레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날개를 퍼덕여서 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로 날개근육통은 그들의 고질적인 병중 하나다. 그런데 약간 귀찮은 문제가 발생한듯 싶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사릭는 없어보였지만 케리 일행은 일단 무장을 갖추고 기다렸다. 그들은 이 근처 마을 사람들인듯 했다. 몇명은 손에 농기구를 무기 처럼 들고 있었다.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당신들은 누구시요? 이쪽에 드래곤이 내려앉는 것이 보여서 왔는데..." 아무래도 아마레가 이 근처에 내려앉는 것이 들킨 모양이었다. 사실 덩치는 60미터에 달하고, 금색으로 번쩍 번쩍 거리는 드래곤이 날아왔는데 근처에 마을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면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이 장소에 있는 케리 일행이 무척 수상해보이는 듯 했다. 일단 케리가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건네보기로 했다. "왜 그러시는 거죠?" "요즘 마족들이 남쪽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곳곳을 습격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이 근처도 흉흉합니다. 여러분들은 여행자 이신가요?" 촌장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케리 일행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아 저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허리에 다시 찻고, 라크레일과 라이오스도 무기를 집어넣었다. 케리 일행이 무기를 거두자 마을 사람들도 안심하는 듯 했다. "드래곤이라면 이 근처에 내려앉으려다가 저희가 쳐다보고 있으니까 갑자기 투명해지면서 사라졌어요. 마법 종족이라는 드래곤인 만큼 마법이라도 써서 사라진 것이겠죠." "아 그렇군요...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요전에 카에리온 시티가 스톰 드래곤의 습격으로 궤멸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저희도 불안했던 지라..." 케리의 설명에 촌장이 사과하자 그 말을 듣고 아마레는 발끈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아까 나타난 드래곤은 골드 드래곤 이었어요. 골드 드래곤과 스톰 드래곤을 똑같이 보면 곤란하지요." "아마레. 무례하게 굴지마." "흥!" 촌장은 아마레가 시끄럽게 굴자 다소 기분이 상한듯 했지만, 케리가 아마레를 말리자 상관하지 않으려는 듯 했다. 그는 하얀 수염을 몇번 쓰다듬고는 마을 사람들을 인도하여 마을로 돌아갔다. 케리 일행도 마을에서 쉴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을에는 여관이 없어서, 빈 집 하나를 빌렸다. 오래 방치되어있던 집이었지만 라크리마가 청소 마법을 써서 먼지를 없애버리자 그럭저럭 하루밤을 지낼 만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 계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라크리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곤란하네요. 마족들은 제 레어에 둥지를 틀고 사방으로 퍼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대체 무슨 수작인 걸까..." "세계정복이라도 하려는 걸까?" "글세... 내 레어를 함부로 무단 점거하고 무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텐데. 대체 무슨 꿍꿍이지?" "에휴 난 생각하기 싫어. 내일도 계속 날아야 하니까 오늘은 일찍 잘꺼야." 아마레는 라크리마의 물음에 피곤에 찌든 얼굴로 탁 쓰러지면서 대답했다. "주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일단 라크리마의 레어를 되찾으러 가보는게 좋을것 같아. 드래곤이 셋이나 있으니까 별 문제는 없겠지?" "아냐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케리의 말에 라크레일이 반론을 내던졌다. "상대는 마족인걸 우리가 되찾으러 갈것을 알고 만만의 대비를 해놓았을꺼야. 우리들 만으로는 위험할지도..." "그렇지 않아 라크레일. 이 누나가 혼자 가는 것은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드래곤이 둘이나 따라붙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껄?" "으응... 그럴까?" 라크리마가 그렇게 말하자 라크레일은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좌우간! 내일은 결전입니다! 사악한 마족을 쓰러뜨리는 일인 만큼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러니 오늘은 일찍 자서 체력을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라이오스는 갑자기 한참 열변을 토했다. 라이오스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만은 아니라 오늘은 모두 피곤했고, 라이오스의 설교를 이 이상 듣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③- 마족이란, 다른 세계인 마계의 주민이다. 그들의 확실한 정체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먼 옜날 이 지상에 나와 거대한 전쟁을 벌였으며, 신족과의 처절한 대혈전을 벌였다는 정도... 그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어서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러나 마족에 대해서 현재 확실한 것은, 그들의 근거지인 마계는 대지의 밑에 봉인되어 있으며 그곳으로 통하는 유일한 구멍 헬 홀은 드래곤 족에 의해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마족이라고 부르지만 한가지 종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고위마족, 전투의 화신인 발록족, 음란한 요마 서큐버스와 잉큐버스, 고결한 흡혈귀족 뱀파이어, 분노와 공포의 화신 데몬족...그외에도 여러 잡다한 마계 종족들을 통칭하는 것이다. 드래곤 족에 드래곤 족 외에도 터틀 드래곤이나 와이번등이 포함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가지 오해가 있다면 라이칸스로프 종족이다. 늑대인간족, 묘인족, 호인족, 견인족, 조인족... 등을 비릇한 이들 종족은 마족과는 무관하다. 하피나 오크, 오우거와 같은 몬스터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능이 낮은 몬스터들이 마족의 마력에 지배당하여 그들의 수족으로서 움직이게 되었을 뿐이다. 좌우간 마족이란 용족과 신족의 적이다. 또한 인간의 적이기도 하다. 일부 흑마술사들이 마신의 힘을 빌려서 흑마법을 쓰기도 하나 끝이 좋게 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호시탐탐 지상계 정복을 노린다. 이유는 명확하게 알수 없다. 유일한 통로인 헬 홀과 그 주위에 있는 드래곤족과 대결하기 위한 요새들이 아닌, 또 다른 우회통로를 만드는 것을 항상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인간계의 한 구석에서... 세 마리 젊은 드래곤이 마족과 대결하기 위해서 출발하려 하고 있다. 라고 이야기하면 비장해보이겠지만, 케리 일행중 그 누구도 특별히 역사적 의미라던가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여지껏 싸움다운 싸움은 하지 않아서 긴장이 완전히 풀어진 탓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너무 일찍 출발하느라 하품을 쩍쩍 하는 상태라 심각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으하아아아암... 폴리모프! 크롸롸롹(어서 타)" 오늘도 아마레 양이 수고하기로 해서 다들 아마레의 등 뒤에 기어올라갔다. 아마레는 여느 때 처럼 사뿐하게 날아올랐다. "고...골드 드래곤 이다!" "큰일났다. 드래곤의 습격이다!" "저 사악한 드래곤이..." 몰래 떠나려고 했지만 마을 상공쯤 오자 아래에서 마을 사람들의 공포에 섞인 외침 소리가 들렸다. 농촌이라서 그런지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레는 밑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얹잖은 표정이 되어서 으르렁 거리다가 갑자기 몸을 몇번 부들부들 떨었다. 우수수수수... 아마레의 몸에서 낡은 비늘이나 털이 떨어져 나갔다. 골드 드래곤의 체모나 비늘은 진짜 금이 아니라 금빛이 나는 드래곤 메탈(드래곤의 뼈와 비늘, 체모, 치아, 뿔 등을 구성하는 금속. 오직 드래곤의 몸 안에서만 합성되어진다. 부위에 따라 드래곤 리더, 드래곤 스케일, 드래곤 본, 드래곤 티스 등으로 불린다. 여러가지로 좋은 금속.)일 뿐더러 정말 아름다운 빛을 발하기 때문에 다른 드래곤의 기타 몸부위와 비교해볼때 특히 비싼 값으로 팔린다. 즉, 그녀는 지금 마을위에서 돈 비를 뿌리고 있는 것이다. "오오오... 이 이것은..." "저 드래곤은 신의 사자였어!" "와 우리에게 축복을..." 아마레는 순식간에 공포에 섞인 외침소리가 기쁨의 함성으로 바뀌자 얹잖은 표정을 지었다. "아아. 털과 비늘 약간에 이렇게 평가가 바뀌다니, 인생이란..." "골드 일족이 인간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이유가 있었군..." 라크리마도 뭔가 얹잖은 것 같았다. 강도는 스톰 드래곤 쪽이 더 좋은데 어째 골드 드래곤의 비늘이 더 비싼 이유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까... 내 레어에 저장해둔 뿔이나 이빨, 발톱도 다 그 마족들이 챙겨갔겠구나. 으으으윽..." "무슨 소리야? 라크리마." 라크리마가 분하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자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케리가 라크리마에게 물어보았다. "드래곤은 살아가면서 비늘이나... 가죽이나 이빨이나 뿔, 발톱 등을 주기적으로 갈아요. 빠지고 다시 나지요. 그게 평생 반복되는데... 이런건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다른 생물들이랑 교류할때 사용하지요. 뭐... 일종의 저금 같은 것인데." "그랬구나." 저금과는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이것은 드래곤 들이 파는 주요한 상품중 하나다. 아무리 드래곤이 강하다지만 체면상 모조리 힘으로 협박해서 챙길수는 없지 않은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이런식으로 헌 신체부위를 모아두었다가 하나 던져주고 교환하는 것이다. 하긴, 드래곤의 신체부위는 엄청난 가격으로 팔리니까 이런 식으로 못살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뿔이나 발톱, 비늘은 빠져도 다시 나는 것이고... 즉, 좀 더 말하자면 케리 일행의 여행자금도 이런 식으로 라크리마가 몸을 팔아서(...) 얻은 돈으로 충당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이런 식이라고 해도 '드래곤 본', 즉 드래곤의 뼈만은 구하기 어렵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뼈를 뽑아내는 것은 굉장히 아프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꼬리뼈다. 꼬리만은 도마뱀 처럼 잘라져도 쉽게 재생이 되기 때문에 아주 급전이 필요한 드래곤은 눈물을 머금고 꼬리를 잘라서 파는 경우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 '드래곤의 꼬리'라는 말은 '아주아주 급하게 해야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설명은 그만두고 이야기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서, 그후 마을 사람들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골드 드래곤이 내려준 금전적 축복 덕에 잘 살뻔... 했으나 재산 다툼과 졸부 근성이 심해져서 물질적 부는 쌓았으나 마음의 평안은 잃어버리는 불행한 결과가 초래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저런 불쌍해라. 뭐 좌우간 이렇게 날아가다가 점심 무렵에는 아래쪽에 멀거니 바라보는 오크 한 무리가 있길래... "스톰 파이어!" 화아아아악! "취이이이익! 크웨엑! 취익!" 라크리마는 7서클 6클래스 마법 스톰 파이어를 날렸다. 마법에 화염의 폭풍이 불어닥치고 오크들을 덮쳤다. 그 결과 즉석에서 오크 통구이 10여개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대충 근처에 착륙해서 하나하나 베어먹었다. 인간 모습인 두 드래곤과 인간 두명, 묘인족 한명은 오크 한마리로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드래곤 모습으로 한참 동안 날아온 아마레는 나머지 9개의 오크 통구이를 통구이 하나가 고기 한점이라도 되는 것 처럼 꿀꺽 꿀꺽 넘겨버렸다. "아마레, 너무 많이 먹는거 아냐? 살찌면 어떡하려고?" "크롹 크롹 크롸롸롹 크롸롹! (라크리마 너나 다이어트 하시지. 무거워 죽겠어!)" 배 채운뒤에는 다시 이륙, 도중에 파치야가 멀미를 해서 아마레의 등에 토할뻔 한 것을 제외하면 무사평안한 여행이었다. 드디어 레어 근처, 근처라지만 인간이 걷는 속도로는 한나절은 걸어야 하는 거리다. 하지만 아마레는 천천히 날아 간다고 해도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다. "이상한데... 내 레어 풍경이 아닌것 같아." "응. 조금 이상해." 라크리마가 아래쪽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고, 케리도 거기에 동의했다. 라크리마의 레어 주변은 라크리마가 착륙하다가 실수해서 망가뜨린 일부 지형을 제외하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대단히 청정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확실히 뭔가 이상했다. 나무들은 전부 말라죽어 있고, 그 주변에는 씨꺼먼 안개 비슷한 것이 흩어져 있으며 땅위에는 씨뻘먼 물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꽤 높게 날고 있는 아마레의 등 위에서도 악취 비슷한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족의 영향이군요! 이것은..." 라이오스가 뭘 제대로 알고 말한 것은 아닌것 같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맞추었다. 마계의 장기가 퍼져서 아주 살풍경한 곳이 되어버린 레어 주변, 라크리마는 그것을 발견하고 더욱 분노에 타올랐다. "내 아름다운 레어를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 이것들이..." "앗! 저기봐 누나!" 바로 그때 라크레일이 공중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라크레일이 가리킨 곳에는 아마레 쪽으로 날아오는 몇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니 잠시 기다리니 몇개가 아니었다. 불길한 그림자는 날아오르는 철새떼 처럼 급속도로 숫자를 늘려갔다. 케리는 그림자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느낀 순간 이미 상황은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온 사방이 까마득한 숫자의 몬스터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었다. 추악한 여자의 몸에 팔 대신 새의 날개와 다리 대신 새의 발이 달린 몬스터, 하피와 도마뱀의 머리와 박쥐의 날개, 날카로운 손톱이 돋은 손을 가진 몬스터 가고일, 독수리 머리와 날개를 가지고 몸통은 사자인 몬스터 그리폰. 말 정도 되는 크기의 드래곤을 닮았지만 지성이 없고 앞다리가 없는 몬스터 와이번. 그것들이 거의 2천 마리 이상 사방을 포위하고 날아오고 있었고, 그 들 사이사이에 섞여서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얼굴과 곰 처럼 탄탄한 몸과 손발, 붉은 각질로 덮힌 피부와 박쥐 날개, 두개의 뿔를 가진 하급 데몬족인 플라잉 데몬과 작은 어린아이 정도의 몸에 추악한 얼굴, 작은 박쥐날개와 새까만 피부, 화살표 모양의 꼬리를 가진 악마 임프들이 섞여 날고 있었다. 제 아무리 용감한 전사라도, 이런 광경을 보면 이 압도적인 숫자의 몬스터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라이오스나 케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당당하기 짝이없던 라이오스 조차도 식은 땀을 흘리고 억지로 자세를 잡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케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옵티걸 소드를 뽑았다. 설마 이 정도로 많은 숫자가 덤벼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지 라크리마?" 케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라크리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케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즐겁다는 듯이... "고작 저 정도로 우리를 막으려 하다니...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얼굴이나 보고 싶네요." "맞아 누나. 빨리 본체로 현신하자. 저런 쓰레기 정도는 단번에 치워버리자고." "응..... 주인님. 그럼 해치우고 오겠습니다." 라크리마는 살짝 귀여운 혀를 내밀어서 입술을 핥았다. 눈동자에는 살기가 가득 맴돌고 있었다. 케리는 그제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최강이 아닌가? 게다가 라크레일에 아마레 까지 있다. 최강의 몬스터인 드래곤이라면...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나니 약간 불안해졌다. 아무래도 너무나 많은 숫자다. "폴리모프 셀프!" "폴리모프 셀프!" 케리가 불안해하는 사이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은 동시에 마법을 써서 본래 모습으로 현신했다. 두 마리의 스톰 드래곤이 한 마리의 골드 드래곤을 사이에 두고 나타났다. 흑철색 아름다운 광택이 있는 가죽과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드래곤, 라크리마는 수많은 몬스터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이 정도 숫자라면 그녀 혼자서도 처치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동생 라크레일과 친구 아마레 까지 붙어있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크레일이 오랜만에 현신한 드래곤 모습을 뽐내며 바로 옆에서 날고 있었다. 라크리마와 거의 비슷한 외모의 드래곤이었지만 크기가 약간 작았고, 보다 굳고 남성적인 선이 보였다. 라크레일은 어서 한판 벌이고 싶다는 듯이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는 전부 몇마리야 아마레.] [하피와 가고일이 대충 천, 그리폰이랑 와이번이 대충 삼백, 플라잉 데몬이 백마리 정도, 임프가 이백 마리 정도야.] [전혀 걱정할것 없군.] 마법으로 공기 그 자체를 진동시켜 만들어낸 목소리로 대화가 오갔다. 그 짧은 사이에 아마레는 놀라운 시력과 연산력으로 숫자를 추정해낸 것이다. 그녀의 등위에 타고 있는 케리와 라이오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아닐수 없지만 라크리마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주인님. 지금 부터 저녀석들을 모두 없애버리겠습니다. 잘 봐주세요. 아마레 주인님을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해.] [누나 시작하자.] [응...] 그 말을 듣자 케리는 아마레의 갈기를 꽉 붙들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첫번째 공격은 브레스야. 라크레일...] [알았어...]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④-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은 공중에 정지한 상태로 입을 크게 벌렸다. 브레스, 드래곤 족이 지닌 최강의 무기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키에에에에에엑" 그러나 선제공격은 몬스터 군단 측에서 먼저 시작했다. 플라잉 데몬이나 임프들이 마법 공격을 가한 것이다. 수도없이 많이 발사된 파이어볼과 플레임 스피어, 플레임 스트라이크로 인해서 하늘이 불타올랐다. 몬스터들도 필사적이었다. 상대는 드래곤, 그것도 세마리나 되지 않은가? 필사적이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모두 헛된 일이었다. 세 드래곤은 그들이 자신들에게 발사한 마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은 브레스를 준비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아마레가 케리 일행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마법을 하나 쳤을 뿐이다. "크롸롸롸롸롸롹!!!" "크롸롸롸롹!" 두 드래곤은 브레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브레스에 사용되는 드래곤의 힘은 신력(神力), 본래 신족과 같은 존재인 드래곤이기 때문에 지닐수 있는 강대한 힘. 스톰 드래곤인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이 가지는 신력은 폭풍을 제어하는 힘. 대기가 압축되고 흔들리며 모든 바람이 두 드래곤의 의지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에 난 뿔에서는 전격이 뿜어져 나와 위력을 더하고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앞에 몬스터들이 날린 마법은 하찮은 불똥처럼 보였다. 그 어떤 마법도 범접할수 없다는 위력을 가진 드래곤의 브레스, 그 신적인 힘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두 드래곤은 커다란 눈동자로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노려보면서 최대한의 타격을 입힐수 있는 지점을 알아냈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라크리마가 힘을 터트렸다. 그리고 대기 그 자체가 흔들렸다. 두 드래곤의 신력이 발생시킨 전격과 폭풍이 폭발하듯이 휘몰아쳤다. 대기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날개 달린 몬스터들은 보통 때와는 전혀 틀려진 바람의 움직임에 허둥거렸다. 그들이 접하고 있는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은 너무나 강력해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콰콰콰콰콰쾅! 천둥과 폭풍이 동시에 몰아치는 대폭음. "크웨에에에에엑!" 절망적인 단발마의 괴성이 하늘을 갈랐다. 하늘 한 가운데 생겨난 폭풍과 번개의 기둥이 한번 훑고 지나가자 수백마리의 몬스터가 공중에서 잿더미로 변하여 흩어졌다. 그들은 그 무시무시한 폭풍에 비하면 너무나도 허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며 벗어나려했지만 바람의 이빨에 갈갈이 찟겨지고 전격에 타들어가 흩날리는 검은 잿더미가 되버렸다. 신의 법칙에 따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무시무시한 힘. 브레스에 휘말리지 않은 자들도 그 힘을 접하자 공포에 휩쌓여 제각각 패닉상태에 빠져서 도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드래곤, 그 무시무시한 파괴자들은 그것 조차 용서하지 않았다. "크롸롸롸롸랏!!" 콰과과과과과광! 지금은 그들의 본거지가 되어있을 라크리마의 레어 쪽으로 도주하는 몬스터 떼를 향하여 라크레일의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그들의 무리 한 가운데를 관통한 라크레일의 브레스는 폭풍과 전격을 흩날리면서 사방으로 퍼졌다. 천공의 분노가 퍼지며 공중의 모든 물체를 소멸시켜 나갔다. 플라잉 데몬과 임프들은 마법으로 방어벽을 쳤으나 하찮은 하급 데몬의 방어벽이 드래곤의 브레스에 대항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찮은 방어마법은 전격과 폭풍에 갈갈히 찟어지고, 데몬들의 피와 살은 먼지가 되어 공중에 흩어졌다. 수천의 몬스터 군단은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단 두방의 브레스에 거의 궤멸되어 버렸다. [아아. 이제 좀 깨끗하네.] 라크리마는 몬스터 무리들이 깨끗하게 사라져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후련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케리와 라이오스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도대체 드래곤의 힘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저 수많은 몬스터 떼를 이렇게 단숨에 궤멸시키다니... 자신은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자부했지만 아직 라크리마에 비하면 까마득할 정도로 뒤떨어져 있었다. 아니, 이 차이는 평생 따라잡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녀는 드래곤, 무시무시한 절대자다. 케리가 라크리마의 주인이 된 것은 완전한 운명의 장난이 아닐수 없다. "무섭군... 만일 드래곤이 적이 된다면..."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이건 너무나 강력하지 않은가? 자신이 수행으로 얻은 힘과 라이트닝 스피어의 마력은 드래곤의 힘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부럽다던가 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마치 태풍이나 화산의 힘을 보는 것 처럼...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나서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 밖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수천이나 되는 몬스터들은 이제 가까스로 살아남은 백여 마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다 공포에 떨면서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각각 살기만을 바라며 땅으로 추락하듯이 착륙하려하고 있었다. [도망치게 할수는 없지. 마무리는 내가 할께. 헬 파이어!] 아마레는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면서 마법을 캐스팅 했다. 그녀가 쓰려는 마법은 9서클 9클래스의 초강력 공격주문 헬 파이어. 아마레가 마력을 전개하기 시작하자 지옥의 도가니 처럼 활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검은 불꽃은 마력을 받아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한덩이로 뭉쳐서 도망치는 몬스터들을 뒤쫓아 날아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곧이어 이어진 대폭발. 마법으로 만들어진 지옥의 불꽃은 몬스터들의 뼈조각 하나하나 까지 무로 되돌려버리며 타올랐다. 단발마의 비명 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완전한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수천이건 수만이건... 상관없어 보였다. 드래곤이 세마리나 있는데 도대체 저런 것들을 상대로 내보내는 적은 누구란 말인가? 안이한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일까? [꺄하하하하하하하하. 나이스! 아마레.] [아마레 누나, 우리만 브레스 뿜게 하고...] [시끄러 나도 한몫했잖아.] 세 드래곤의 대화는 마치 지금 상황을 게임이나 오락처럼 여기고 있는것 같았다. 그들에게 하피나 가고일 정도의 몬스터는 장난감이나 간식거리 정도의 가치 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마치 벌레들을 쓸어버리듯이 날려버리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토록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임에도 케리는 불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조심해. 라크리마." [걱정할것 없어요. 주인님.] 라크리마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케리는 아무래도 수상했다. 드래곤의 레어를 뺏을 정도의 적이라면 이 정도로 쓸려나갈 정도의 부대만 보낼 리가 없는데... 적에게는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지도 모른다.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또 다시 적의 대부대가 몰려왔다. 이번에는 제2진 앞에 전멸시킨 1진과 별 차이 없는 숫자와 구성이었다. [한방 더 쏜다!] [응!] "크롸롸롸롹!" "크롸롸롸롸롸롹!" 세방째, 네방째의 브레스. 이번 브레스는 동시에 발사되어 공중에서 서로 뒤섞이면서 급격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폭풍과 번개의 대폭발. 그리고 또 다시 죽음. 궤멸. 지금까지 드래곤 측의 우세는 틀림없어 보였다. [아우. 개운해라.] "라크리마. 만일을 대비해서 한발 정도는 아껴둬." [예. 주인님] 대답은 했지만 라크리마는 케리의 충고를 건성으로 듣고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적들의 재공격. 적은 여전히 천마리가 넘는 몬스터를 이 무모해 보이는 싸움에 투입하고 있었다. 대체 어쩌자는 것일까? 라크레일이 세방째 브레스를 날렸다. 역시 엄청난 위력. 하지만 어째 이전까지와 비교해보면 위력이 약간 떨어지는 듯이 느껴졌다. 다음에는 라크리마와 아마레의 마법 공격. 루브라크래틱 에로우가 공간을 가르고 헬 파이어가 천공을 불태웠다. 남은 적들은 아마레의 브레스가 처리했다. 황금색 아름다운 그러나 죽음을 부르는 빛의 기둥이 공중을 훑고 지나가면 불꽃과 폭발이 일어나면서 적의 생명을 앗아갔다. [휴우. 세방째... 이로서 오늘 브레스는 다 썻구나.]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라크레일." [아? 흔히 알려진 이야기 아냐. 우리들의 브레스는 하루 세번 정도로 제한이 있어. 뭐... 한꺼번에 몰아서 쏠수도 있고 조금씩 나눠쓸수도 있긴 하지만 보통으로 하면 세번 정도가 한계..] "뭐라고?!" 그 말을 듣자 케리의 머리속에 번쩍이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만일 그 예상이 맞다면... "아마레. 위험해! 브레스를 그만쏴!" [에? 어째서?] "이건 놈들의 계략이야! 브레스를 낭비하게 하려는 거라고!" [아차!] 아마레는 황급히 브레스를 멈췄다. 하지만 연발로 날린 탓에 아마레의 남은 브레스 횟수는 이제 겨우 1발. 라크리마도 겨우 1발 정도 남아있었고, 라크레일은 브레스를 완전히 소모해버린 상태였다. "적은 약한 몬스터들을 방패로 내세워서 우리 전력을 소모시킨 다음 강한 놈을 내보내려는 거야." [총알받이 라는 거군요.] "브레스를 아끼고 마력도 아껴. 진짜 강한 놈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다들 케리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쓸데없이 약한 몬스터를, 수천씩이나 나누어서 투입할 필요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낭비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히 총알받이로 쓰려는 것이라면... 드래곤을 상대하는 총알받이로 그 정도 숫자는 오히려 이득이라고 볼수도 있었다. 브레스 한발에 잡다한 몬스터 500정도라면... 3진이 궤멸된지 얼마 되지 않아, 케리의 예상은 현실로 드러났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압감을 지닌 네개의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던 것이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그들의 울음소리는 케리와 라이오스에게 식은땀이 흐를 정도의 공포를 안겨주었다. 드래곤 들도 눈가를 찌푸리면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키메라... 저 추악한 것들을 내보내다니... 보통 마족은 아닌것 같군. 저걸 컨트롤 하려면 적어도 마왕급은 되어야 할텐데...] 라크리마는 그림자의 형태만 보고서도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었다. 몬스터는 키메라였다. 드래곤과 사자, 염소의 세 머리를 달고, 사자의 상체와 염소의 하체, 드래곤의 날개. 그리고 세 개의 꼬리를 지닌 마수. 태고적 어느 마왕에 의해서 세 마리 짐승을 융합시켜 만들어 졌다는 광폭한 몬스터. [누..누나? 저건 뭐야. 기분 나쁘게 생겼는데...] [...저건 키메라 라는 녀석이야.] 라크레일이 기분나쁜 듯이 물어보자 아마레가 설명을 시작했다. [먼 옜날, 아직 용족과 신족, 마족이 한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용족과의 전쟁에서 써먹기 위해 어느 마족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마수지. 사자의 광폭함과 염소의 우둔함으로 드래곤의 지능을 짓눌러서 그들이 컨트롤 할수 있게 만들어낸 거야. 다른 생명체가 섞였기 때문에 드래곤 본연의 특성은 거의 사라진 거나 다름 없지만... 놈들의 힘은 우리 드래곤에 비할바는 아니야. 하지만 저런 꼴인 주제에 브레스도 쓸수있어. 마법은 쓸수 없지만, 대신에 사자 같은 야성을 지니고 있지. 정말 기분나쁘고 끔찍한 녀석이야.] 아마레의 목소리는 분노에 젖어 있었다. 저 키메라들은 결국 먼 과거 어느 드래곤의 비참한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 그 영락한 자손들을 보는 기분이 드래곤인 그들에게 좋을리가 없었다. 그 기분은 키메라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드래곤에서 하찮은 마수로 전락한 분노가 그들의 피 속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메라들은 그들의 저주받은 몸을 증오하여 본래의 육체를 지닌 드래곤에게 그 한풀이를 하는 생명체였다. "크와아아아아아악!" "크롸아아아아악!" "크롸아아아아아!" 키메라들은 제각각 입을 벌리고 브레스를 내뿜어 공격했다. 증오와 한이 담긴 화염의 브레스가 세 드래곤을 겨냥하여 날아왔다. [저 아저씨들 불쌍한 놈들이네... 그렇지 누나들.] [그래. 내 동생 라크레일. 하지만... 저들은 어차피 마수로 전락한 존재의 자손.] [응. 진정한 드래곤의 힘과 비할수는 없지!]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⑤- 키메라들이 발사한 네줄기의 브레스와 함께, 4마리의 키메라와 3마리의 드래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7마리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모두 방어 마법을 펼쳐! 루나틱 실드!] [프로텍트 프롬 매직! 프로즌 실드!] [에어 실드! 샤이닝 필드! 아크 필드!] 6개의 방어 마법이 숨에 전개되었다. 라크리마의 루나틱 실드가 은은한 오로라를 뿌리며 맨 앞을 가로막았고, 그 뒤에 라크레일의 프로텍트 프롬 매직과 순수한 냉기의 방벽 프로즌 실드가. 그 뒤에 바람의 장벽 에어 실드와 빛의 장벽인 샤이닝 필드와 아크 필드. 키메라의 브레스도 무시 못할 수준이기는 하나, 드래곤의 것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았다. 6중의 보호마법은 뚫지 못하고 헛되이 공중에서 폭발해버렸다. "크르르르르르..." 분한 듯이 으르렁 거리며 키메라들은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순간 황금빛 빛의 기둥이 키메라 한 마리를 꿰뚫었다. [성공!] 아마레가 발사한 레이저 브레스였다. 정면에서 꿰뚫려 완전히 걸레짝이 되버린 키메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 처럼 나머지 시체를 지상으로 낙하시켰다. "크르르르르르륵!" "크와아아아아아!" 나머지 세마리의 키메라는 동료의 어이없는 최후에 분노하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날아오면서 또 연속으로 브레스 공격. [라크레일 방어해! 아마레. 넌 나와 함께 브레스 공격!] [알겠어 누나! 루나틱 실드! 프로즌 실드! 샤이닝 필드! 아크 필드! 에어 실드! 프로텍트 프롬 매직!] [하아아아아아아...] 마법이 발동하여 방어벽이 형성되기 바로 직전 라크리마와 아마레의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키메라들의 브레스와 충돌한 두 드래곤의 브레스는 키메라의 브레스를 가볍게 눌러버리고 꿰뚫고 지나가 키메라 들에게 직격하였다. 나머지 하나도 전과 마찬가지로 방어막에 부딧쳐 소실되어버렸다. "크와아아아아아" "크에에에엑!" 한 마리의 키메라는 라크리마의 브레스에 정통으로 맞고 산산 조각으로 부서져서 흩날려갔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는 가까스로 피해서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는데 그쳤다. [성질나네. 내건 안 맞다니...] [아마레. 한꺼번에 해치워버러자. 공격마법 쏴!] [알았어!] 투덜거리던 아마레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제각각 할수있는한 강력한 주문을... [루브라 크래틱애로우!] [헬 파이어!] [블리자드 스톰!] 십여개의 붉은 빛의 기둥, 시꺼먼 명계의 불꽃, 그 뒤를 이어서 뼈속까지 얼려버리는 극한의 빙풍이 불어닥쳤다. "크아아아악!" "크아아악!" 돌진해오던 두 마리의 키메라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마법을 뒤집어 쓰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래도 드래곤의 피가 섞였기 때문일까. 이 정도로는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 거의 다 죽어가는 것 같았지만... [한방 더! 헬 파이어!] [루브라 크래틱애로우!] [블리자드 스톰!] 또 다시 방금전과 같은 공격이 연속으로 몰아쳤다. 이번에는 키메라들도 버티지 못하고 치명상을 입어 공중에서 지상으로 낙하하였다. [...하아... 하아.... 이겼네...] [...브레스를 마구 날린 데다가 9서클 급 마법 까지 난사했으니..] [...아무리 우리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들이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렇게 까지 힘을 낭비하면 지칠수밖에 없었다. 라크리마는 거친 숨을 내쉬며 제발 다음 적은 별로 강한 놈이 아니기를 빌었지만...현실은 그렇게 달콤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저건 뭐야...] 또 다시 날아오는 세계의 검은 그림자. 이번에는 크기가 작아서 약간 안심되었지만, 가까이 오니 그것도 아니었다. [리치?!] 새까만 로브를 뒤집어쓴 바짝 말라 비틀어져 미라 같은 그들의 몸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리치, 사악한 길을 추구하는 마법사가 어둠에 몸과 혼을 팔아 영원한 생명과 인간을 초월한 마도의 길을 얻은 존재. 하지만 인간이나 다른 살아있는 존재에게서는 철저하게 배척받는 존재다. 그러나 그 만큼 그들은 무서운 자들이다. 어둠의 힘과 결탁하여 얻은 마력은 인간의 그것을 능가하는 끝없는 마도의 힘을 그들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생명조차 포기하고 암흑의 길에 들어선 존재. 왜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이냐? 너와 계약한 마족이 명령한 것이라면 쓸데없는 짓으로 혼을 포기하여 얻은 불사의 육체를 쓸데없이 내버리는 짓이라는 것은 알아둬라.] 라크리마가 아름다운, 그러나 지엄한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리치들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리치들은 라크리마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세 리치 중 머리 하나 정도 더 크고 마력도 좀 더 강해보이는 리치가 탁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을 시작했다. "드래곤이여. 그대들이 본래대로 라면 우리들에게 그런 협박조차 하지 않을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소. 우리의 주인은 현명한 자라 우리들같은 존재를 쓸데없이 내다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오." [그런가. 그 알량한 마도의 힘을 믿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겠군. 너희들 정도는 신력이 없이도 마력이나 물리력만으로도 쓰러뜨릴수 있다. 이 발톱에 찟겨도 그 존재가 남아있을지 확인해볼까?] 확실히, 세 드래곤과 싸우기에 세 리치는 너무나 부족한 숫자였다. 아무리 리치라고 해도 마력이 실린 드래곤의 발톱에 갈기갈기 찟어지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터... 그러나 리치는 담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자. 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그대들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요. 그대들의 힘은 우리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하니... 그러나 우리의 주인이 그에 대한 대비도 해놓지 않으리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그대의 착각이요. 열리라! 공간의 문이여! 거리의 제약을 뛰어넘는 문이여! 워프 게이트!" [워프?!] 리치의 주문과 함께 검은 원형의 워프 게이트가 열렸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다른 존재를 데려다 주는 마법의 원이...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 존재는 손 하나가 나올 때부터 압도적인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새카만 몸은 6미터에 달하며 강인한 근육이 두꺼운 표피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얼굴은 고릴라와 같았으나 툭 튀어나온 송곳니와 불타오르는 눈동자로 인해 너무나 공포스러운 얼굴이었다. 등에는 검은 그림자 처럼 드리워진 날개와, 그리고 온 몸에는 볼꽃이 갈기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끝이 셋으로 갈라진 커다란 불꽃 채찍... 오른손에는 거대한 불꽃의 검... [발록...!] 여지껏 어떤 적이 나와도 동요하지 않던 드래곤 들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발록, 이 무시무시한 존재는 마족 중에서도 최고의 전투력을 지닌 종족이다. 강철처럼 단단한 피부는 드래곤의 가죽에 맞먹는 방어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7서클 이하의 주문은 완전히 무력화, 그 이상의 주문이라도 위력을 반감 시키는 능력이 있다.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드래곤의 살갗도 태울수 있다. 그리고 불꽃 채찍에는 8서클 급의 마력이 담겨있다. 이 무서운 악마는 드래곤에게도 경계의 대상이다. 많은 드래곤이 발록에게 죽임을 당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이 악마에게도 약점은 있다. 마법이나 물리력으로 발록을 죽이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러나 드래곤에게는 마력과 버금가는 또 하나의 본질적인 힘, 신력이 존재한다. 신력의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발현인 브레스는 발록조차도 소멸시킬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세 드래곤은 브레스를 완전히 소모한 뒤였다. 낭패가 아닐수 없다. "야아앙." 지금까지 있는듯 없는듯 담담하게 있던 파치야는 발록을 보자마자 뒤로 물러서면서 털을 바짝 새웠다. 본능적으로 공포와 적의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파치야의 육체도 거기에 반응하여 변화를 시작했다. 피치야의 작은 몸이 부풀어 오르고 온 몸의 털이 굵어지면서 팔 다리에도 돋아나기 시작했다. 손 발톱도 무섭게 길어지고 있었다. 묘인족의 변신이다. 변신한 묘인족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가 되지만... [그만둬. 네가 덤빈다고 어떻게 될 상대가 아냐.] 라크리마의 한마디에 파치야는 변신을 멈추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중전에서 하늘을 날수없는 파치야가 도움이 되리라고는 판단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지상에서 싸운다고 해도 아직 묘인족으로서도 어린 편인 파치야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아니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턴 언데드!]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된 이상, 어떻게든 빨리 적을 쓰러뜨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라크리마가 마법을 날렸다. 세 줄기 빛나는 섬광이 각각의 리치들을 향하여 날아갔다. 턴 언데드는 생명의 법칙을 거부하고 죽음을 마도로서 초월한 존재들의 육체를 묶고있는 마력의 구성을 파괴하는 마법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리 높은 서클, 클래스의 마법은 아니었지만 언데드인 리치에게 이보다 더 효과적인 공격법은 없었다. 하지만 발록이 날개를 펴서 턴 언데드의 섬광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었다. 마족이지만 마의 삶을 지니고 있는 존재인 발록에게 턴 언데드가 먹혀들리 없었다. 더욱이 발록의 몸에는 턴 언데드 정도의 마법은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를 만만히 보지 않는게 좋을 것이요. 드래곤이여. 어둠의 권능이여 화살이 되어 나의 적을 뚫으라! 다크 스테인!" "불꽃의 창이여! 플레임 스피어!" "바람이여 창공을 뚫으라! 윈드캐논!" 세 리치중 가장 강해보이는 자, 리치로드의 오른손에 검은 기운이 뭉치더니 시동어를 외치는 순간 뻗어나갔다. 다른 두 리치도 제각기 화염의 창과 바람의 탄환으로 공격했다. [루나틱 실드!] 세 드래곤의 시동어는 한 목소리 처럼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세 겹의 빛의 장막이 그들 앞에 드리워졌다. 리치들의 마법은 방어벽 앞에 상쇄되었지만... 파지지지직! 마법이 사라지는 순간 방어벽이 약화되었고, 그 틈을 노려 발록이 돌격해들어왔다. 발록의 몸은 약해진 마법 장벽을 자신의 마법 저항력으로 뚫어버리고, 드래곤들을 향하여 돌진해왔다. 마법을 쓸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뭐 이런 무식한 새끼가 다있어!] 라크레일이 허둥지둥 발록의 앞을 가로막고 앞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발록은 가볍게 피해내고는 불꽃 채찍을 휘둘렀다. 제 아무리 드래곤이고 성룡이 되었다지만 아직 라크레일은 어린 축에 속하는 드래곤이었다. 육체는 충분히 발록과 싸울수 있을 정도지만, 전투경험 면에서 철저하게 밀리고 있었다. 발록은 태어났을 때부터 철저한 전투수행을 반복하는 종족이 아닌가? 라크레일은 피한답시고 피해보았으나 발록에게 움직임을 완전히 읽히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불꽃의 채찍이 라크레일을 휘감았다. 무시무시한 열기, 레드 드래곤조차 버티지 못할 화염의 고통이 그를 옭아 매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3화 -마족 ⑥- [라크레일!] 라크리마는 동생의 위험을 보고 황급히 발록에게 달려들었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킬라 파이어!" "익스플로전!" 리치들은 라크리마를 향하여 제각각 마법을 날렸다. 발록을 원호하려는 것이다. 두줄기와 화염과 폭발광이 라크리마를 향하여 날아갔다. [안티 매직 쉘!] 그러나 아마레가 날린 방어마법이 라크리마를 감싸고 리치들의 마법을 상쇄시켰다. "크아아아아아아!" 라크리마는 분노의 고함소리를 지르며 발록에게 이빨을 들이밀었다. 발록은 라크레일을 풀어주고 일단 한발 물러섯다. [루브라 크래틱애로우!] 발록이 물러나자 곧바로 아마레는 마법을 발동시켰다. 십여개의 붉은 빛의 기둥이 발록과 리치들을 노리고 발사되었다. 루브라 크래틱애로우, 이 마법이라면 발록도 데미지를 입지 않을수가 없다. 그러나 발록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불꽃 채찍을 휘둘렀다. 퍼퍼펑! 극한의 아크메이지나 몇번 사용할법한 초강력 공격마법, 루브라 크래틱애로우는 발록의 채찍질에 허무하게 터져나갔다. 그러나 그 사이 라크리마는 앞발로 라크레일을 안은채 후퇴하는데 성공했다. [드래곤 파이어!] 아마레는 쉬지 않고 공격마법을 날렸다. 화염의 드래곤이 나타나 발록에게 돌진하였다. 성 하나를 통채로 태울 정도의 위력을 지닌 화염주문, 드래곤 파이어. 하지만 발록은 불꽃 검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화염 드래곤의 머리를 내리쳤다. 퍼어어엉! 드래곤은 불꽃 검에 머리를 얻어맞자 산산히 쪼개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라크레일. 괜찮니?] [누...누나... 아퍼어....] [안돼겠다. 치료를 하려고 해도 저 녀석의 채찍에 당한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아. 도망치는 수밖에 없겠어. 폴리모프 아더!] 라크레일은 도무지 날수있는 상태가 아니고 마법도 쓸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라크리마가 라크레일에게 마법을 걸어주었다. 라크레일은 인간 모습으로 변해서 라크리마의 오른손에 축 늘어져 있었다. 끔찍한 화상자국이 온 몸에 뱀 처럼 그어져 있었다. 라크리마들이 도망치려는 것을 알아챈 발록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아마레! 공격하자! 레인 오브 파이어!] [알겠어! 익스플로전!] 라크리마는 마력을 있는대로 끌어내서 공격마법을 날렸다. 수도없이 많은 파이어볼과 파이어 애로우가 나타나 발록과 리치들에게 쏟아졌다. "얕은수를! 안티매직쉘!" 리치들은 제각각 방어마법으로 몸을 보호하였다. 발록은 방어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마법의 화염비를 맞고 있었다. 과연 레인 오브 파이어는 광역공격 마법이기는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서클 수는 낮기 때문에 발록의 몸에는 타격이 전혀 없었다. 아마레가 날린 익스플로전도 발록에게 작열하였지만 그 역시 헛된 폭발만 일으키고 발록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를 주지 못하였다. [폴리모프 셀프!]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틈타 아마레는 인간형으로 변신했다. 라크리마는 재빨리 공중에서 아마레와 케리, 라이오스와 그리고 파치야를 나꿔채서 라크레일과 함께 입 속에 넣으면서 마법을 썻다. [공간이여 열려라! 게이트!] 수십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마법진이 라크리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이곳을 통과하기만 하면 일단 도망칠수는 있다. 하지만 발록과 리치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위대한 드래곤 족이 도망을 치려하는 건가? 디스펠 매직!" "디스펠 매직!" "안티 스펠!" 리치들이 외운 마법 파괴주문이 게이트를 직격하자 게이트를 형성하던 마법진이 흔들리더니 마구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이곳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공간의 틈새에 끼어버릴 확률이 높아져버린다. [이게 깨질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라크리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남아있는 신력을 끌어모았다. 스톰 드래곤의 신력은 바람과 번개를 조종하는 힘. 그리고 이것은 스톰 드래곤이 엄청난 속도로 날수있는 비밀이기도 했다. 신력의 힘을 모아서 날개 끝으로 분출시킨다는 방법으로 스톰 드래곤은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전혀 다른 무시무시한 스피드를 낼수있는 것이다. 그러나 발록이 두고보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억!" [아아아아악!] 화염의 채찍이 뻗어와 날아서 도망치려는 라크리마를 휘감았다. 라크리마가 전력으로 도망치면 아무리 발록이라고 해도 쫓아갈수가 없지만 도망치기 전에 붙잡는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라크리마를 통채로 드래곤 구이로 만들어버리려는 것 처럼 채찍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 "루나틱 실드!" 라크리마의 입속에 있던 아마레가 급하게 보호마법을 쳐서 라크리마의 온 몸을 감쌋다. 최고의 보호마법이라는 루나틱 실드에 부딧치고 있지만 발록의 채찍은 전혀 그 기세가 사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루나틱 실드가 점점 눌리고 있었다. "틀렸어! 이대로는 빠져나갈 수가 없어!" 마력을 있는대로 끌어내서 루나틱 실드에 불어넣으면서 아마레는 소리쳤다. 라크리마를 지키는 것만도 힘에 부칠 정도였다. 과도하게 마법을 난사해댄 것이 이제서야 후회가 되는 아마레였다. "뻗어라! 옵티걸 소드!" 케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옵티걸 소드를 꺼내어서 빛의 칼날을 길게 뻗었다. 옵티걸 소드는 발록의 불꽃 채찍과 맞닿아 요란한 섬광을 뿌리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파지직! 발록도 옵티걸 소드를 보자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신검과도 대항할수 있는 빛의 마검, 옵티걸 소드를 지닌자와 만났으니 그럴법도 했다. 하지만 곧 냉정함을 되찾고 채찍에 더욱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제발... 끊어져!" 케리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발록의 채찍은 굳건하게 라크리마를 속박하고 있었다. 그때 의외의 해결자가 나타났다. "피어싱 스트라이크!" 라이오스의 창이 옵티걸 소드와 불꽃 채찍이 부딧치고 있는 곳을 향하여 뻗었다. 전격과 섞인 대기 충격파가 뿜어져 나와 불꽃 채찍을 직격하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균형이 옵티걸 소드 쪽으로 기울었다. 파지지직.... 퍼어엉! 채찍의 한쪽이 끊어져 나갔다. 그 떄를 라크리마는 놓치지 않았다. [꽉잡아요! 오라이이이이!] 한 곳에 약해진 틈을 타서 라크리마는 전력을 다하여 그곳으로 몸을 뺏다. 불길에 온 가죽이 타올라서 격열한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가속을 시작했다. 발록이 다시 붙잡을 틈도 주지않고 라크리마의 모습은 지평선을 향하여 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크리마가 거칠게 날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발록은 다 잡은 사냥감을 어이없이 놓친 탓에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록이라도 스톰 드래곤이 날아가는 속도를 따라잡을수는 없었다. "놓쳐버렸군요. 발록님..." "저희들의 잘못입니다. 부디... 용서하시길" "...제발..." 그러나 용서를 비는 리치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발록은 다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가 채찍을 한번 휘두르자 끊긴 부분은 다시 재생되었다. 얼마나 날았을까. 라크리마는 날개가 한계에 달할 때 까지 날아서 겨우 추격이 오지 않을 거리까지 도망쳤다. 마계의 기운이 물씬 흘러넘치던 레어 주위와는 달리 도착한 곳은 아직 청명한 인간계의 자연이 남아있었다. 쿠웅... 라크리마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산기슭의 공터에 내려앉았다. 입안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그제서야 겨우 기어나올수가 있었다. 라크리마는 폴리모프할 기운도 없는지 본체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라크리마!" 케리는 처참한 라크리마의 몰골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온 몸에 발록의 채찍이 남긴 화상 자국이 이리저리 그어져 있었으며, 그 상태로 무리하게 날아오느라 상처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말할 기운조차 없는걸까? 라크리마는 가만히 쓰러져 있기만 했다. "완전히 참패했어... 으씨..." 아마레는 분하다는 듯이 이빨을 뿌득뿌득 갈면서 분을 삭혔다. "아마레. 어떻게좀 해봐. 라크레일도 이꼴이니..." 케리는 마법을 쓸줄 몰랐고, 포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레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레는 회복마법을 썻다. "힐링! 리커버리! 힐링! 힐링! 리커버리! 힐링! ..." 라크레일은 한두번 걸어주자 그럭저럭 상처가 회복되었지만 라크리마는 100미터나 되는 덩치이다 보니 한두번 걸어서 될리가 없었기 때문에 남은 마력을 거의 다 쏟아부어서야 회복을 시킬수 있었다. "겨우 상처는 치료했지만, 얼마동안 이대로 안정을 취하게 내버려 둬야 할꺼야. 라크리마는 본체 상태니까 지금 이대로도 별 문제 없지만, 라크레일은 어쩌지? 인간 몸으로 이대로 눕혀두면 좋지 않을텐데..." 아마레는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는 라크레일을 남감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움직일수도 없고... 게다가 라크리마만 내버려 두고 움직일수도 없어. 저 모습을 누가 발견하면 큰일 날지도 모르니까... 아! 라크리마 입 안에 눕혀두자. 거기라면 따듯하니까..." 케리의 생각에 따라 모두 라크레일을 들어다가 라크리마의 입 안에다가 가져다 놓았다. 입을 반쯤 벌린채로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눕혀두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을 쉬게 한뒤, 나머지 일행들은 라크리마의 턱 밑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큰일이네. 아마레... 설마 드래곤이 셋이나 나서도 이기지 못할 상대일 줄이야. 이젠 어쩌지?" "아냐아냐! 우리가 진게 아니라고! 처음에 브레스를 함부로 낭비하지만 않았으면 이길수 있었어! 다음번에는 절대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아!" 아마레는 투정부리는 꼬마 처럼 징징거리며 항변했다. 그녀는 아직 패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그들이 일단 패배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같은 드래곤이 아닌 자들에게 패배한 경험은 처음인 탓에 그녀는 많이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자존심을 꺽지 않고 있었다. "마력이랑 체력만 회복되면 다시 공격할꺼야." 그래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칼을 갈고 있었는데... "거기 누구냐!"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친 외침소리가 들렸다. 케리는 황급히 그쪽 방향을 돌아보았다. 라크리마의 앞발 너머로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수십명의 병사들이 가득 몰려와 있었다. 병사들은 잠들어 있는 라크리마를 향하여 화살과 투창을 겨누고 있었고, 맨 앞에는 기사로 보이는 풀 플레이트를 입은 사람이 앞장 서서 검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의 검에는 시퍼런 검기가 맺혀있었다. "아뿔사 이런! 들킨건가..." 드래곤인 라크리마의 존재가 들키면 대소동이 벌어지리라는 것 쯤은 케리도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군대가 출동할 정도라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빨리 군대가 오는 것은 뭔가 이상했다. 무슨 다른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메이드 드래곤 전기 24화 -황태자 ①-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 라크리마의 앞발을 넘어 병사들을 선두에서 지휘하고 있는 기사 앞에 나타났다. "누...누구냐! 당신은!" 기사는 거친 붉은 머리에 건장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으며 몸에는 체인 메일을 걸치고 있었지만, 투구는 쓰고 있지 않았다. 눈가나 입가에 주름 하나 없고 탱탱한 젊음이 넘치는 피부를 지니고 있는 걸로 보아 틀림없이 20대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저는 케리 레그너스 라고 합니다. 저와 저의 드래곤에게 무슨 볼일이시죠?" 케리는 저의 라는 부분을 강조하여 말했다. 화살을 들고 있는 병사들이 혹시 실수라도 라크리마에게 활을 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저 드래곤이 당신 것이라고?" 기사는 믿기 어렵다는 듯이 말했지만 케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케리가 드래곤 마스터라고 생각되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무척이나 갸날픈 몸매와 지극히 여성적인 얼굴을 한 엄청난 미소년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넋놓고 그를 바라보는 병사들 중에서는 그가 여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드래곤이란 레어에 사는 것이 아닌가?" "제 드래곤이 심한 상처를 입었기에 회복마법을 걸어주고 잠시 쉬게 하는 중입니다만." 케리의 태연한 대답에 기사는 '허~'라고 말하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아무래도 혹시 미친 여자가 아닌가?'라고 말하는 듯이 보였다. "아니 저 드래곤이 당신 것이라는 소리요? 아가씨." "전 남자입니다만... 물론 제 것입니다." 케리 자신이 남자라는 소리에 기사는 더욱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이었다. 드래곤을 찾으러 왔는데 왠 아가씨가 나와서 자신이 드래곤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더니 이제는 남자라.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케리의 몸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그제서야 남자라는 말은 좀 믿은듯 했지만, 드래곤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태어나서 드래곤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소. 어쨋건 난 저 드래곤을 쓰러뜨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저 드래곤의 목을 베어가야겠소." "제 드래곤을 해치려 하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습니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거머쥐었다. 병사나 기사들이 보기에는 자루만 있는 검을 쥐는 것으로 보여 더욱 황당하게 보였다. "미친 사람이군... 비키지 않으면 같이 날려버리겠다." "......당신이나 물러나시지." "오대명룡참!" 기사는 더 이상 케리의 어처구니 없는 언행을 참을수가 없어 그대로 같이 날려버리려고 공격을 개시했다. 기사의 검에 맺혀있던 푸른 검기가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대로 그는 검을 반원형으로 휘둘렀다. 다섯줄기의 검은 검기가 케리와 라크리마를 향하여 날아갔다. "옵티걸 소드 광인형성!" 케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라크리마의 앞을 막고 서서 옵티걸 소드를 반원형으로 휘둘렀다. 옵티걸 소드의 빛의 날은 다섯 개의 암흑 검기에도 조금도 위세를 수그러 뜨리지 않고 하나하나 부숴버렷다. 케리가 자신의 필살기를 단번에 부숴버리자 기사는 상당히 놀란것 같았다. "당신! 소드 마스터인가?!" "소드 마스터는 아닙니다. 이 검 덕분이지요." 놀라면서 말하는 기사에게 케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로 옵티걸 소드를 고쳐잡고 라크리마 앞에 버티고 섯다. 기사는 케리가 뜻밖의 강함을 보이자 당황하였다. 검 때문이라고 말하였지만, 설사 위력이 아티펙트 탓이라고 해도 케리의 검술이 어느 정도 예리해져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게다가 기사에게는 케리의 힘이 아티펙트 탓이건 진짜 본인의 실력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닌 검이 자신의 검기조차 막아낼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며 그가 자신의 임무인 드래곤 처치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검의 검기도 없애지 않았다. "계속 상대할 것이라면 할수없지. 모두 화살을 쏴라!" 기사의 명령과 함께 병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쐇다. 케리도 이번 공격에는 당황하였다. 화살이 수도없이 날아오는데 하나하나 옵티걸 소드로 베어낼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프로텍트 프롬 노멀 미사일!!!"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었다. 마법의 방어벽에 의해서 병사들이 쏜 화살은 모두 어이없이 픽픽 소리르 내며 튕겨나갔다. 아마레가 마법을 쓴 것이다. "마법사 까지 있나?!" 마법사가 있다고 해서 기사에게 그렇게 까지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법사란 분명히 귀찮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스!" 아마레는 마지막 화살이 튕겨나가자 마자 쪼르르 달려나와서 케리 옆에 서서 또 마법을 날렸다. 이 기술은 바닥을 미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낮은 클래스와 서클의 주문이지만 상대가 쉽게 움직일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제압용으로 효과적이었다. 병사들은 순식간에 반 이상이 비틀거리다가 우르르 쓰러졌고, 기사 역시 검을 쥐고 균형을 잡는데 진땀을 뺴기 시작했다. "치사한 수를 쓰다니! 비겁한 마법사놈!" "무슨 소리야. 우리를 그 많은 수로 습격한 것은 비겁하지 않다는 거야!" "나는 황태자 님의 명령을 받들고 있을 뿐이다!..으악!" 기사는 고함을 한번 지르고 결국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세게 찍어야 했다. "화...황태자의 명령이라니?! 황태자 폐하가 여기 있다는 겁니까?" 기사의 말을 듣고서야 케리는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이 정도로 많은 부대가 출동했다는 것은 역시 뭔가 뒷배경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황태자 폐하는 그 드래곤이 마족의 점령지 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위험을 느껴서 우리들을 보내서 경계하라고 하셧다. 위험해 보이면 즉시 처치하라고 말이다!" "라크리마는 위험한 드래곤이 아니예요!" "그걸 누가 믿냐!" 기사는 겨우 다시 균형을 잡고 일어나서 케리에게 덤비려 하였다. 하지만 아마레의 대응이 한수 더 빨랐다. "패럴라이즈!" 기사와 병사들은 단번에 온 몸이 마비되어 다시 우르르 쓰러졌다. 사실 보통 마법사라면 오라 마스터의 경지중 하나인 암흑검기 까지 사용하는 그를 이렇게 쉽게 제압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마법을 쓰기도 전에 목이 달아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마레의 영창시간은 0이나 다름 없었고, 그녀의 대응도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너무나 어이없이 제압하고 만 것이다. "아마레. 황태자 님의 명령을 받고 왔다잖아. 무례하게 굴지마." "하지만 라크리마를 죽이려 하고 있잖아요. 쉽게 놔줄수는 없어요." "...그것도 그렇구나. 어쩌면 좋지." "이봐. 거기 인간!" 아마레는 기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서 움짝달싹도 못하고 있었다. 오라를 사용해서 마법을 깨보려고 애쓰는 것 같았으나 드래곤이 건 마법이 쉽게 깨질리도 없었다. "무슨 짓이냐! 이 마법사! 이 몸을 풀지 못할까!" "그 칼을 버리겠다면 풀어주지. 그 칼이 있으면 아무래도 안심되지 않거든. 당신들도 무기를 버려준다면 풀어주겠어." "검은 기사의 명예! 기사로서 어떻게 검을 버릴수 있을것 같나? 마법사. 나를 죽인다고 해도 명예는 빼앗아 가지 못한다!' ".....라이오스 같은게 하나 더 있군." 아마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기사의 강경한 대응에 질려버린 모양이었다. 케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병사들도 기사의 눈치를 보느라 전부 무기를 버릴 생각을 안하고 있었고, 패럴라이즈 덕분에 반항은 못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수도 없었다. 케리는 그 역시 패럴라이즈에 걸린 것 처럼 그냥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 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라크리마 빨리 일어나줘." 케리는 간절한 눈빛으로 잠들어 있는 라크리마를 바라보았다.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아마레에게 욕설을 퍼붓던 기사가 몇대 두들겨 맞은 뒤.... 주변에 심상치 않은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마레. 느껴져?" "예. 확실히..."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케리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수많은 병력이 몰려드는 소리였다. 쓰러져 있던 기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갑자기 사면에서 수백명의 병사가 쏟아져 나와 쓰러져 있는 라크리마 주위를 완전히 포위하였다. "으악!?" 케리는 갑자기 적(?)에게 포위당하자 어쩔줄을 몰라서 옵티걸 소드를 휘둘러댔다. 아마레는 조금 침착했지만 역시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잠들어있던 파치야와 라이오스도 영문을 모를 소란에 뛰쳐나와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고 변신을 했다. "케리님. 이건 도대체 무슨 병사입니까?" "나도 몰라!" "...잘 보니 가스트 공국의 병사들인것 같은데...우리가 가스트 제국에 쫓길 리가..." 라이오스는 라이트닝 스피어를 단단히 붙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통일된 군복은 없었지만, 식별을 위해서 모자나 가슴에 가스트 제국의 문장을 달고 있었고, 곳곳에 군기가 보였다. 숫자는 대략 사백여명. 드래곤을 잡기에는 너무 적은 숫자로 보였지만 하나하나 눈동자가 살아있는 것이 나름대로 고르고 골라 뽑은 정예병인듯 했다. "카렐 경. 거기서 무슨 추태인가?" "화...황태자님!" 주위를 포위한 병사들의 한 가운데서 낭랑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후 좌우로 병사들의 대열이 갈라지면서 백마를 탄 한 소년이 나타났다. 나이는 케리 또래 쯤 될까? 케리처럼 완전히 여자로 착각할 정도의 미소년은 아니었지만, 부드러운 갈색 머리나 단정한 얼굴, 나름대로 튼튼해보이는 체격, 나이에 비해 큰 키 등이 대단한 미소년인 얼굴과 함꼐 멋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게다가... 말은 눈처럼 하얀 백마. 방금 쓰러진 기사의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해도 길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다면 바로 황태자는 못되도 왕자 쯤은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온 몸에 흘러넘치는 기품... 케리는 황태자가 나타나자 어쩔줄을 몰랐다. 자신은 카리온 레그너스의 자손이라지만 카리온은 본래 평민. 하지만 상대는 이 가스트 제국의 가장 윗 자리에 있는 황제의 아들, 게다가 그 황제자리를 물려받을 존재인 황태자. 게다가 그 위엄과 기품은 케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광인 해체." 케리는 일단 빛의 칼날을 없앤 뒤 황태자 앞에 한쪽 무릅을 꿇어 앉았다.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말과 함께 메이드 드래곤 전기 24화 -황태자 ②- 가스트 제국의 황태자, 랜스 가스트 더 프린스 임페리얼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얼마전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가 끝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너먼트대회가 끝난 직후, 갑자기 가스트 제국 남동부 라크아리온 산 일대에 마족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일대의 영주들이 제각각 방어와 정벌에 나섯지만 마족들의 기세가 의외로 엄청나서 쉽게 꺽을수가 없었다. 마족들은 마을을 약탈하고 벌써 몇개나 되는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급기야는 인근의 대도시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가 마족의 공격을 받아 황폐화 되버리기도 했다. 이 일대는 얼마전 스톰 드래곤이 도시에 출몰해서 수천명을 몰살시켰다는 소문 탓에(실제로 그랬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심이 흉흉해져 있었다. 마침내 제국 수도에서도 이 사태를 두고볼수 없게 되어 황태자 랜스를 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파견하여 마족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마족들은 쉽게 정벌당하지 않았고 랜스는 자크 크로스로드 시티 인근에 진을 치고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동안 케리 일행은 제국의 변방을 돌아다녔던 탓에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을 치고 있던 차에 마족의 근거지 쪽에서 스톰 드래곤(물론 라크리마)이 날아와 산기슭에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넘어갈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랜스는 카렐 폰 다리우스 더 나이트 에게 병력을 이끌고 선봉을 서라고 했으며 평소 공명심이 높았던 카렐은 당연히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랜스도 병력을 이끌고 그 뒤를 받쳤다. 하지만 카렐의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소녀(하나는 사실 남자지만 그렇게 보였다)에 의해서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랜스는 의외의 실력자들이 나타나자 당혹스러워 하였다. 외모로 보아서는 그렇게 연륜이 있어보이지도 않은데, 어떻게 제국에서도 손 꼽히는 기사인 카렐을 제압할수 있는지... 갑자기 이런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지만 두 사람이 카렐을 제압해놓고 특별히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혹시 숨어있던 인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고개를 드십시요. 레이디." "예예!" 자신을 완전히 여자로 보고 말하는 랜스였지만 케리는 뻣뻣한 동작으로 말을 따를 뿐이었다. 아마레는 잠시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인간이 무엇이길래 자신의 주인이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가? 의구심이 든 김에 살짝 마법을 써서 상대의 능력을 알아보았지만 특별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카렐경과 하는 대화를 듣고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것은 사과드리죠." "아니요. 저야 말로... 황태자 전하의 명령을 받은 기사에게 무례한 짓을 하여서..." "아니. 저는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백성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일은 금하도록 모든 병사에게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저 드래곤이 레이디의 것이라고 했습니까?" 카렐은 황태자와 케리의 대화를 패럴라이즈 당한 상태로 듣고 있었다. "전하... 전하가 왔는데도 예를 갖추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요." "카렐경. 상대가 대화로서 청해오는데 검을 빼드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네. 게다가 상대는 레이디가 아닌가?" "하지만 저 사람은 남자라고 하던데요. 전하." "응?" 랜스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케리를 바라보았다. 랜스가 뚫어져라 케리를 바라보자 케리의 얼굴은 열을 띠었다. 과연, 자세히 보니 가슴이 평평하고 어깨가 약간 넓으며, 세세한 체형은 남자였다. "하하하하하. 이거 실례했군. 미안하오. 레이디. 아 레이디가 아니지." 케리의 얼굴은 커피라도 끓일수 있을 정도의 온도가 되었다. 일단은 남자 로 돌아간 이후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런 취급을 받자 창피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뭐 좌우간 레이디. 아 레이디가 아니라고 했지. 계속 실수해서 미안하군. 저 드래곤은 자네의 것이라고 했는가?" "예. 저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케리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거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군.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설명해주지 않겠나?" "예... 그것은 저의 조상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케리는 카리온의 시대부터 지금 까지 라크리마에게 들은 것과 자신이 경험한 것을 조합하여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했다. 황태자는 이 흥미롭고 진기한 이야기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경청했다. 케리가 이야기를 다 끝내자 패럴라이즈 되어있는 카렐은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도저히 믿을수가 없습니다. 황태자 전하." "...카렐 경. 난 오히려 믿음이 가네만... 적어도 저 드래곤과 저 자가 매우 친한 사이인 것은 확실한듯 하군. 거짓말을 꾸미려 했다먼 이렇게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를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저런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마치 여성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과연... 황태자 전하의 판단이 지혜롭습니다." 카렐은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듯 했지만 랜스가 이렇게 까지 말하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케리 레그너스... 라고 했지. 카렐 경과 병사들이 저렇게 되어있는것은 불쌍하니 일으켜 세워주지 않겠나?" "어...예! 아마레. 어서 풀어줘." "예. 주인님..." 아마레는 디스펠로 패럴라이즈를 해체했다. 병사들과 카렐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케리 레그너스. 너의 사연은 재미있게 들었다. 과연,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네가 지금 처한 상황이 나에게 자네가 자네가 알고있는 대로의 진실을 말한다고 확신할수 있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 대로라면 자네 드래곤의 레어가 마왕의 성이 되버린 듯 한데... 그건 나중에 말하고, 자네 드래곤이 나타나는 바람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사기가 저하당해버렸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케리 레그너스.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위는 군법으로 처벌할수도 있는데..." "...그..그렇다면..." 랜스가 추궁하듯이 말하자 케리는 어쩔줄을 몰랐다. "제.. 제가 할수있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요. 황태자 전하. 제가 할수있는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능력과 신분이 미천하여 할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지만... 어 어쨋건 힘닿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신다면 병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라크리마를 살려주십시요." 케리는 횡설수설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랜스는 그런 케리를 귀엽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가스트 제국에서 남색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귀여운 소년은 어디를 가나 인기를 끄는 법이다. 게다가 케리 처럼 아름다운 남자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랜스는 남색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케리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일까? 그것은...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너의 죄를 갚을 기회를 주도록 하마. 나는 너의 성실함을 믿겠다. 네가 드래곤의 주인이라면,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이라면 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달아날수도 있을 터.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믿음이 간다.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종군을 명령한다. 네 드래곤의 레어는 내가 드래곤에게 돌려주도록 하마. 그 댓가로 너와 너의 세 드래곤의 종군을 명령하겠다." "...예. 알겟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병사로서..." 케리는 다시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았다. 그때 랜스의 검이 케리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예?" "병사가 아니다. 견습 기사로서다. 너에게 견습 기사의 작위를 내리겠다. 정식 절차는 훨씬 복잡하지만 지금은 절차를 하나하나 밟고 할때가 아니니 내가 일단 약식으로 해주도록 하지.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견습 기사의 작위를 내린다." 랜스는 케리의 어깨를 칼등으로 살짝 두들긴 다음 다시 칼집에 넣었다. "케리, 너는 내 아래에서 수행을 쌓도록 하라. 앞으로는 나의 곁에서 나를 보필하도록 해라. 물론... 너의 세 드래곤도 함께다." "...예. 알겠습니다..." 케리는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승락했다. 그에게는 이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전혀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황태자 전하. 저는 이 정체를 알수없는 자가 견습 기사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재고해주십시요." 그때 카렐이 반대를 외쳤다. 당연히 그로서는 황태자의 처사를 납득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태자가 카렐의 귀에 대고 몇마디를 속삭이자 그제서야 납득하게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저 자가 데리고 다닌다는 드래곤이다. 드래곤들이 있다면 마족의 토벌이야 시간 문제가 아니겠느냐?' '...과.. 과연 그렇군요. 황태자님의 지혜에 탄복했습니다.' '...뭐 그것만은 아니지만...'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랜스는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케리도 랜스가 자신이 아니라 드래곤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견습기사로 만들리가 없지 않은가? '아아... 이런 식으로 국가권력의 희생양이 되버리는 구나. 미안해 라크리마.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서...' 케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라크리마를 향해서 사과를 했다. "케리 레그너스. 첫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잘 들어라. 이 명령을 자네가 받아들이면, 부대의 치료술사에게 모두 명령해서 자네의 드래곤을 치료해주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런데... 무슨 명령이십니까?" 케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랜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선... 너의 말중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네 귀걸이를 빼보아라. 즉, 지금 이 자리에서 여자가 되어보라는 것이다." "..........예?" "그래. 말한대로 해보아라. 명령이다." "....네...." 케리는 마음 속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귀로 손을 가져갔다. 하나 둘... 귀걸이의 클립이 빠져나가자 케리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옷 위로도 쉽게 알수있는 변화였다. 어깨가 줄어들면서 동그랗게 변했다. 출렁출렁 거릴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엉덩이가 약간 더 나오고, 그리고 다리 사이가 오므라 들었다. 케리는 다시 여자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케리가 여자로 변하는 모습을 병사와 기사들은 눈이 휘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 하긴 뭐 사실 별로 변한 부분은 없지만, 외모는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미소년이 완전한 여성이 되는 광경은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니... "과연... 사실이었군. 아름답구나. 레이디 케리. 좋아. 다음에는 두번째 명령이다. 그 귀걸이를 나에게 맡겨라." "...하.. 하지만 이게 없으면 저는 남자가 될수없습니다..." "여자인 그대로 있으라는 명령이다. 안심해라. 네가 공을 세우면 돌려줄테니." "...예..." 케리는 뼈를 깍는 심정으로 황태자에게 두 개의 귀걸이를 넘겨주었다. 황태자는 비단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귀걸이를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4화 -황태자 ②- 가스트 제국의 황태자, 랜스 가스트 더 프린스 임페리얼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얼마전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가 끝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너먼트대회가 끝난 직후, 갑자기 가스트 제국 남동부 라크아리온 산 일대에 마족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 일대의 영주들이 제각각 방어와 정벌에 나섯지만 마족들의 기세가 의외로 엄청나서 쉽게 꺽을수가 없었다. 마족들은 마을을 약탈하고 벌써 몇개나 되는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급기야는 인근의 대도시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가 마족의 공격을 받아 황폐화 되버리기도 했다. 이 일대는 얼마전 스톰 드래곤이 도시에 출몰해서 수천명을 몰살시켰다는 소문 탓에(실제로 그랬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심이 흉흉해져 있었다. 마침내 제국 수도에서도 이 사태를 두고볼수 없게 되어 황태자 랜스를 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파견하여 마족을 정벌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마족들은 쉽게 정벌당하지 않았고 랜스는 자크 크로스로드 시티 인근에 진을 치고 한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렇게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 동안 케리 일행은 제국의 변방을 돌아다녔던 탓에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을 치고 있던 차에 마족의 근거지 쪽에서 스톰 드래곤(물론 라크리마)이 날아와 산기슭에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넘어갈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랜스는 카렐 폰 다리우스 더 나이트 에게 병력을 이끌고 선봉을 서라고 했으며 평소 공명심이 높았던 카렐은 당연히 그 명령을 받아들였다. 랜스도 병력을 이끌고 그 뒤를 받쳤다. 하지만 카렐의 병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두 소녀(하나는 사실 남자지만 그렇게 보였다)에 의해서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랜스는 의외의 실력자들이 나타나자 당혹스러워 하였다. 외모로 보아서는 그렇게 연륜이 있어보이지도 않은데, 어떻게 제국에서도 손 꼽히는 기사인 카렐을 제압할수 있는지... 갑자기 이런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지만 두 사람이 카렐을 제압해놓고 특별히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혹시 숨어있던 인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고개를 드십시요. 레이디." "예예!" 자신을 완전히 여자로 보고 말하는 랜스였지만 케리는 뻣뻣한 동작으로 말을 따를 뿐이었다. 아마레는 잠시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인간이 무엇이길래 자신의 주인이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건가? 의구심이 든 김에 살짝 마법을 써서 상대의 능력을 알아보았지만 특별히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카렐경과 하는 대화를 듣고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것은 사과드리죠." "아니요. 저야 말로... 황태자 전하의 명령을 받은 기사에게 무례한 짓을 하여서..." "아니. 저는 백성들의 재산을 약탈하거나 백성의 생명을 함부로 해치는 일은 금하도록 모든 병사에게 명령을 내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저 드래곤이 레이디의 것이라고 했습니까?" 카렐은 황태자와 케리의 대화를 패럴라이즈 당한 상태로 듣고 있었다. "전하... 전하가 왔는데도 예를 갖추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요." "카렐경. 상대가 대화로서 청해오는데 검을 빼드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네. 게다가 상대는 레이디가 아닌가?" "하지만 저 사람은 남자라고 하던데요. 전하." "응?" 랜스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케리를 바라보았다. 랜스가 뚫어져라 케리를 바라보자 케리의 얼굴은 열을 띠었다. 과연, 자세히 보니 가슴이 평평하고 어깨가 약간 넓으며, 세세한 체형은 남자였다. "하하하하하. 이거 실례했군. 미안하오. 레이디. 아 레이디가 아니지." 케리의 얼굴은 커피라도 끓일수 있을 정도의 온도가 되었다. 일단은 남자 로 돌아간 이후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런 취급을 받자 창피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뭐 좌우간 레이디. 아 레이디가 아니라고 했지. 계속 실수해서 미안하군. 저 드래곤은 자네의 것이라고 했는가?" "예. 저의 소유물이기도 하지만, 저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케리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그거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군. 대체 어떻게 된 연유인지 설명해주지 않겠나?" "예... 그것은 저의 조상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케리는 카리온의 시대부터 지금 까지 라크리마에게 들은 것과 자신이 경험한 것을 조합하여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했다. 황태자는 이 흥미롭고 진기한 이야기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경청했다. 케리가 이야기를 다 끝내자 패럴라이즈 되어있는 카렐은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도저히 믿을수가 없습니다. 황태자 전하." "...카렐 경. 난 오히려 믿음이 가네만... 적어도 저 드래곤과 저 자가 매우 친한 사이인 것은 확실한듯 하군. 거짓말을 꾸미려 했다먼 이렇게 믿기 어려운 황당한 이야기를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저런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마치 여성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과연... 황태자 전하의 판단이 지혜롭습니다." 카렐은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듯 했지만 랜스가 이렇게 까지 말하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케리 레그너스... 라고 했지. 카렐 경과 병사들이 저렇게 되어있는것은 불쌍하니 일으켜 세워주지 않겠나?" "어...예! 아마레. 어서 풀어줘." "예. 주인님..." 아마레는 디스펠로 패럴라이즈를 해체했다. 병사들과 카렐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케리 레그너스. 너의 사연은 재미있게 들었다. 과연,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네가 지금 처한 상황이 나에게 자네가 자네가 알고있는 대로의 진실을 말한다고 확신할수 있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이야기 대로라면 자네 드래곤의 레어가 마왕의 성이 되버린 듯 한데... 그건 나중에 말하고, 자네 드래곤이 나타나는 바람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사기가 저하당해버렸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케리 레그너스. 병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행위는 군법으로 처벌할수도 있는데..." "...그..그렇다면..." 랜스가 추궁하듯이 말하자 케리는 어쩔줄을 몰랐다. "제.. 제가 할수있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십시요. 황태자 전하. 제가 할수있는 한... 도와드리겠습니다. 제 능력과 신분이 미천하여 할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지만... 어 어쨋건 힘닿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시켜만 주신다면 병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라크리마를 살려주십시요." 케리는 횡설수설 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랜스는 그런 케리를 귀엽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가스트 제국에서 남색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귀여운 소년은 어디를 가나 인기를 끄는 법이다. 게다가 케리 처럼 아름다운 남자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랜스는 남색에는 취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케리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일까? 그것은...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너의 죄를 갚을 기회를 주도록 하마. 나는 너의 성실함을 믿겠다. 네가 드래곤의 주인이라면, 그리고 그 정도의 힘이라면 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달아날수도 있을 터. 하지만 너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믿음이 간다.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종군을 명령한다. 네 드래곤의 레어는 내가 드래곤에게 돌려주도록 하마. 그 댓가로 너와 너의 세 드래곤의 종군을 명령하겠다." "...예. 알겟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병사로서..." 케리는 다시 한쪽 무릅을 꿇고 앉았다. 그때 랜스의 검이 케리의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예?" "병사가 아니다. 견습 기사로서다. 너에게 견습 기사의 작위를 내리겠다. 정식 절차는 훨씬 복잡하지만 지금은 절차를 하나하나 밟고 할때가 아니니 내가 일단 약식으로 해주도록 하지. 케리 레그너스, 너에게 견습 기사의 작위를 내린다." 랜스는 케리의 어깨를 칼등으로 살짝 두들긴 다음 다시 칼집에 넣었다. "케리, 너는 내 아래에서 수행을 쌓도록 하라. 앞으로는 나의 곁에서 나를 보필하도록 해라. 물론... 너의 세 드래곤도 함께다." "...예. 알겠습니다..." 케리는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승락했다. 그에게는 이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전혀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황태자 전하. 저는 이 정체를 알수없는 자가 견습 기사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재고해주십시요." 그때 카렐이 반대를 외쳤다. 당연히 그로서는 황태자의 처사를 납득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태자가 카렐의 귀에 대고 몇마디를 속삭이자 그제서야 납득하게 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저 자가 데리고 다닌다는 드래곤이다. 드래곤들이 있다면 마족의 토벌이야 시간 문제가 아니겠느냐?' '...과.. 과연 그렇군요. 황태자님의 지혜에 탄복했습니다.' '...뭐 그것만은 아니지만...'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랜스는 말을 얼버무렸다. 하지만 케리도 랜스가 자신이 아니라 드래곤들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을 견습기사로 만들리가 없지 않은가? '아아... 이런 식으로 국가권력의 희생양이 되버리는 구나. 미안해 라크리마.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서...' 케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라크리마를 향해서 사과를 했다. "케리 레그너스. 첫번째 명령을 내리겠다. 잘 들어라. 이 명령을 자네가 받아들이면, 부대의 치료술사에게 모두 명령해서 자네의 드래곤을 치료해주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그런데... 무슨 명령이십니까?" 케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랜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선... 너의 말중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렇다. 네 귀걸이를 빼보아라. 즉, 지금 이 자리에서 여자가 되어보라는 것이다." "..........예?" "그래. 말한대로 해보아라. 명령이다." "....네...." 케리는 마음 속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귀로 손을 가져갔다. 하나 둘... 귀걸이의 클립이 빠져나가자 케리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옷 위로도 쉽게 알수있는 변화였다. 어깨가 줄어들면서 동그랗게 변했다. 출렁출렁 거릴 정도로 커다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엉덩이가 약간 더 나오고, 그리고 다리 사이가 오므라 들었다. 케리는 다시 여자로 돌아가버린 것이다. 케리가 여자로 변하는 모습을 병사와 기사들은 눈이 휘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 하긴 뭐 사실 별로 변한 부분은 없지만, 외모는 바뀌지 않으니까... 그래도 미소년이 완전한 여성이 되는 광경은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니... "과연... 사실이었군. 아름답구나. 레이디 케리. 좋아. 다음에는 두번째 명령이다. 그 귀걸이를 나에게 맡겨라." "...하.. 하지만 이게 없으면 저는 남자가 될수없습니다..." "여자인 그대로 있으라는 명령이다. 안심해라. 네가 공을 세우면 돌려줄테니." "...예..." 케리는 뼈를 깍는 심정으로 황태자에게 두 개의 귀걸이를 넘겨주었다. 황태자는 비단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귀걸이를 싸서 주머니에 넣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4화 -황태자 ④- '이걸 어쩌지?' 자기 막사에 돌아오고 난 뒤에 케리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국의 황태자가 자신에게 욕정을 품고 밤시중을 요구하다니... 이런건 요즘 어지간한 로맨스 소설에서도 보기 어려운 초 우연적인 전개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가려는 것인가? 자신은 그대로 순결을 바쳐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라크리마와 한바탕 다투어 버린 탓에 나머지 일행들도 전부 저기압이었다. 여기다가 이런 주제를 털어놓으면 드래곤 세마리가 쌓여있는 이 화약고는 그대로 폭발해버릴지도 몰랐다. 그러면 황태자는 물론이고 이곳에 모인 제국 일류의 기사들, 그리고 무고한 병사들 까지 불길에 휩쌓이게 될 것이다. 결국 케리는 화약고에 불을 당기는 일은 할수없었다. 결국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못한채, 케리의 야속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해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황태자의 군막으로 다가가는 케리의 심정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 같았다. 과연 안에서 무슨 짓을 당할 것인가? 그녀(그)는 오늘밤 권력을 등에 업은 마수에 의해서 강제로 순결을 빼앗기는 처참한 일을 당할 것인가? 제국의 황금 태양 문장이 그려진 깃발이 꽃힌 황태자 전용 군막의 경비병들은 케리가 신분 증명으로 페치를 내밀자 아무말도 하지 않고 통과시켜주었다. 케리의 소문은 이미 모든 병사가 다 알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인데다가 견습기사의 증명인 페치를 차고 있는 것은 이 진지 안에 케리를 제외하면 없기 때문이다. "저...왔습니다." 황태자의 군막은 케리의 예상외로 검소했다. 탁자위에는 발광 마법이 걸린 오브가 놓여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장식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막사 한쪽에는 야전용 해먹(그물침대)이 하나, 하지만 해먹의 크기는 두 사람이 들어가 자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자신은 이제 황태자에게 순결을 바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케리는 절망에 가득차서 황태자의 얼굴을 바라다 볼수도 없었다. "왜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지?" "...부...부끄러워요..." 황태자는 케리 바로 앞 까지 걸어왔다. 케리는 고개를 숙이고 황태자의 발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창피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본래는 남자인데, 여자가 되어서 남자에게 순결을 잃는 상황에 처하게 되다니... "고개를 들어라. 명령이다." '이젠...할수없어...' 케리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어?" 케리의 눈앞에 있는 것은 황태자가 아니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인물은 황태자 랜스보다 좀 더 얼굴이 갸름했고, 체격은 좀 더 날씬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평상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이 나와 있고, 엉덩이가 통통한 것이... 꼭 여자... "에?!" 여자였다. 틀림없이 여자였다. 하지만 얼굴은 황태자와 꼭 닮았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그녀는 케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케리 레그너스. 걱정하지 마라. 난 사실 여자니까." "...어 어떻게?! 분명히 남자였는데... 목소리도 틀림없이..." 랜스 황태자는 분명히 몸매나 얼굴, 목소리 어디를 보아도 곱상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확실한 남자였다. 황태자, 아니 공주는 웃으면서 케리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후훗... 평소에는 마법, 셀프 체인지의 효과가 있는 물약을 먹어서 여자를 남자처럼 보이도록 외모와 목소리를 바꾸고 있었지... 실제로 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겉모습으로 보아서는 구분할수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 먹어줘야 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하지만... 그럼 제 가슴을 만지신 것은...?" "음. 그건 미안했어. 부끄러웠지? 난 여자로 태어났지만 내 어머니는 날 남자로서 길렀지. 귀족가문이지만 세력이 약한 외가에서는 공주보다는 왕위를 이을수 있는 왕자 쪽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니까. 내 아버지인 황제도 이 사실을 몰라. 다른 후궁의 소생들도 내 자리를 위협하고 있으니... 그래서 여자인 것을 철저하게 숨기지 않으면 안돼. 성희롱까지 한 것은 미안해. 하지만 난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거든...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척 하면 의심받게 되니까." 황태자가 털어놓은 사연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그...그래셧군요..." "음. 그런데 네가 가지고 있던 이 귀걸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어." 황태자는 비단 손수건에 쌓인 귀걸이를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귀에 달았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변화하더니 남자 모습이 되었다. 혹시 황태자가 저 귀걸이를 가져가버리면 어쩌지? 케리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저기.. 그럼 저는 어쩌지요?" "내가 실험해보니 한쪽만 차고 있어도 효과가 나와. 드래곤의 용언 마법이라고 하니... 고작 체인지 셀프의 물약과는 효력이 완전히 틀려서 완벽한 남자로 만들어 주더군. 한쪽만 나에게 줄수는 없을까? 케리. 내가 완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한 세트를 더 만들도록 하지." "........" 케리는 묵묵히 있었다. 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갑자기 남자였던 황태자가 여자가 되버리고, 거기다가 자신의 귀걸이를 하나 달라고 하니... "저기... 하지만 역시 타고난 성 대로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황태자님..." "으음. 출세를 위해서 성희롱 까지 감수하는 여자 답지 않은 말인데..." "그건 저에게도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어요. 저도 꼭 성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알겠어. 그럼 내 사정도 알겠지? 난 이런 비밀이 있기는 하지만... 꼭 황제가 되고 싶어. 내 나름대로의 꿈과 포부가 있거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황제가 되어야 하는 거야. 나도 이런 기회를 놓칠수는 없어." 황태자는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케리는 적잖이 당황하였다. 설마 제국의 황태자에게 부탁을 받게 되다니... 케리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거짓말 하는것 같지는 않아... 게다가 황태자가 저 귀걸이가 필요하다면 나를 죽이고 그냥 빼앗으려 해도 상관없을 텐데.. 이렇게 까지 부탁해오다니... 이래서는 도저히 거절할수가 없구나... 게다가 왠지 나와 처지가 비슷한것 같아.' "...알곘어요. 하지만.... 다른 한쪽은 돌려주세요. 전 남자로 있고 싶단 말이예요." "그건 아직 안돼." "어째서!" 황태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나와 네가 만난 것은 아직 하루도 되지 않았고, 네 신분도 이제 견습기사야. 나로서는 아직 너를 완벽하게 믿을수가 없어." "저... 저는 황태자님을 믿고 있는데요." "하지만 너의 비밀과 나의 비밀은 무게가 틀려. 내 비밀이 탄로나면 제국내에서 내전이 벌어질수도 있어. 네가 무의식중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리라고는... 아직 보장할수 없어. 그래서 이 귀걸이는 내가 잠시동안 보험으로 가지고 있겠다.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평생 여자로 살아야 할꺼야." 케리는 황태자의 조건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심리적으로 이미 황태자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서 네게 닌자를 붙여두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지?" "예..." "시즈. 나와!" 마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 처럼, 막사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온 몸을 검은 옷과 복면으로 감싼 여자가 튀어나왔다. 몸집으로 봐서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로 보이지 않은 소녀였다. 허리에는 작은 단검을 차고 있었는데 단검까지도 검게 칠해져 있었다. 소녀라고 알수 있는 것은 그녀의 눈주위 선이 부드러웠고 눈동자가 너무나 맑고 투명했기 때문이다. "내 직속 닌자들 중 하나야. 아직 어린애지만, 실력은 쓸만하다. 너의 호위로 붙여줄테니... 잘 하도록 해." "...황태자님. 제 동료들에게는 가르쳐주어도... 될까요?" 황태자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드래곤 세마리라면 할수없지. 내 비밀 같은건 쉽게 알아낼테니... 하지만 루퍼스 왕국의 기사, 라이오스에게는 가르쳐주어서는 안돼. 그리고 그 묘인족 꼬마애도 마찬가지다. 원한다면 군막을 나누도록 하지." "....예... 할수없군요. 그렇게 까지 명령하신다면..." 케리는 케리 일행이 자고 있는 막사로 돌아갔다. 참고로 여기서 가스트 제국의 군 체계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군사 조직은 기사 하나하나를 핵으로 하고 있다. 기사 하나를 중심으로 하여 견습기사, 궁사, 보병, 마법사 등이 제각각 파티(배너 라고 불린다.)를 이루는 형식인 것이다. 이러한 파티가 하나의 조직이 되어 작전 행동 단위가 된다. 이 파티는 구성과 숫자가 제각각으로 되어있어서 기사 한명당 수백이 딸리는 경우도 있고, 고작 십여명이 딸리는 경우도 있다. 이 숫자는 그 기사가 소유한 영지의 경제력에 좌우된다. 약간은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체계지만, 봉건성이 강한 가스트 제국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다. 케리 일행은 황태자가 지휘 기사로 있는 배너의 아래 소속되어 있는 것이다. 황태자의 직속인 만큼 규모는 700명에 달한다. 다른 기사들이 기껏해야 수백 정도인 것에 비하면 확실히 많은 숫자다. 그 외에도 닌자가 십여명 가량 소속되어 있는듯 하다. 케리 일행이 맡은 역활은 현재로서는 상당히 애매하다. 드래곤 셋에 전사 둘. 묘인족 하나. 라는 이상한 파티를 어떻게 취급해야 할지 곤란한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마족들과 한바탕 싸움에서 밀려난 뒤라서 병사들도 많이 어수선해져 있었다. 어쨋건 군막에 다시 돌아온 케리는 라이오스와 파치야를 내버려 둔채, 라크리마와 라크레일, 아마레만 깨워서 아무도 없는 풀숲으로 들어갔다. 라크리마에게 말해서 주위에 사일런스를 걸게 한 뒤... 황태자의 비밀에 대해서 셋에게 설명했다. "하아아암... 뭐 그 녀석 몸에서 이상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하지만 그런걸로 잠 꺠우지마. 난 피곤해..." 아마레는 별로 관심 없어 보였다. 다른 일행에게는 알리지 말라는 주의를 받은뒤 아마레는 막사로 돌아갔다. "라크리마. 넌 어떄...?" "전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아직 용납하기 싫어요. 게다가 주인님의 귀걸이를 가져가고 닌자 까지 붙여놓다니... 너무하지 않아요? 주인님은 왜 이런 취급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말했잖아... 낮에 말한 대로야." "...그렇게... 성공하는게 중요한 거예요?" "할수없어... 사람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니..." "휘유. 전 이해가 잘 안가네요. 라크레일. 돌아가자. 주인님. 가서 자요." 라크레일도 라크리마의 의견에 동조하는 표정이었다. 내심 케리를 마음에 들어하는 그로서는 아무리 여자였고 사정이 있었다지만 케리의 가슴을 공개적으로 주물떡 거린 황태자를 좋아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쨋건 사건이 일단락 되어 밤은 깊어갔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5화 -전화(戰火) ①- 본의 아니게 황태자와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버린 케리. 하지만 그에게는 그 문제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해볼 시간 조차도 없었다. 얼마동안은 진중이 평온한 상태였지만, 그것은 마족의 공격이 닥쳐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케리 일행이 오기 전에 한바탕 공격으로 밀어붙여 놓았기 때문이었고, 재 공격이 들어오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케리가 황태자에게 비밀을 전해들은 바로 다음날 아침, 마족의 대부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미리 작전을 짜 두었던 대로 평원에서 회전을 벌인다. 이번 만은 절대로 밀려서는 안된다. 당연히 드래곤들의 지원도 있을 것이지만, 너무 의지하지는 말도록. 인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들의 몫이다." 황태자의 말은 그랬지만 기사들은 드래곤이 셋이나 지원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큰 자신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상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 그들이 아군이 된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작전은 미리 짜여 있었는데 처음에는 드래곤을 전진 배치하여 돌격시키느냐 아니면 후방에 배치하여 마법과 브레스로 지원을 하게 하느냐 하는 문제로 잠시 의견 다툼이 있었다. 하지만 케리가 나서서 드래곤들이 앞에서 전투를 한다면 그 몸집에 휘말려서 아군의 피해가 있을수도 있다. 라고 의견을 내자 후방배치로 가닥이 잡혔다. 그러나 케리가 정말 두려워 하는 것은 요즘 기분이 나빠진 라크리마들이 흥분해서 무차별로 날뛰는 것이다. 단단히 명령을 내려두지 않으면 마족은 커녕 병사들 까지도 쓸어버릴 녀석들임은 충분히 알수 있었고, 따라서 케리가 옆에 데려다 놓고 일일이 하나하나 통제하려는 것이다. 케리는 물론 황태자도 후방에서 지휘를 하였다. 원거리에서 공격을 할만한 뛰어난 마법사들은 모두 후방에 배치되어 있었다. 기사들은 마법으로 움직이는 강철의 거대 기계인형. 기간틱 아머에 하나하나 탑승을 시작했다. 강력한 힘과 마법방어력을 지니고, 검기 까지 사용할수 있는 무적의 전투병기인 기간틱 아머와 제대로 겨룰 만한 몬스터는 드물었다. 회전의 기본은 간단하다. 기간틱 아머가 선두에서 돌격을 하고 그 뒤를 보병과 기병이 받치도록 되어있다. "전쟁이 두렵나?" 황태자는 기사들이 하나하나 기간틱 아머에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케리에게 물었다. "...태자님은 여자 답지 않으시군요." "...어릴 때부터 남자로서 교육받았으니까. 게다가 네 귀걸이 덕분에 완전히 남자가 된 상태이기도 하고..." "전 본래 성별을 찾기 위해서 드래곤에게까지 찾아가면서 노력했는데..." "나한테도 목적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위대한 왕이 된다는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는 성별 정도는 잠시 포기할수도 있어." "잠시...라면?" 케리의 물음에 황태자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도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냐. 다만 얼마동안... 그래 내 자신의 세력을 가지고, 내가 어떤 존재가 되더라도 배반하지 않을 부하들을 가지게 되면, 여왕으로 돌아갈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국법으로는 내가 당장 여자로 돌아간다면 즉시 권력을 잃게 될 테니까..." 본래 야인인 케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자신은 본래 성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모험조차 마다했는데 이 사람은 성을 바꾸는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하다니... 세 드래곤은 인간 모습인 채로 케리와 이야기를 하는 황태자를 기분 나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카렐 경이 다가왔다. 몸에는 기간틱 아머에 탑승할떄 입는 가벼운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손에는 투구를 들고 있었는데 투구의 바이저 부분은 유리로 되어있었다. 이 크리스탈 유리에 기간틱 아머의 마법 눈동자에 비친 영상이 나타난다. 가슴에 달린 조종석 안에는 마법 수정구가 두개 있는데 그것에 손을 대서 조종을 하는 것이다. 카렐은 음흉한 표정으로 케리에게 다가왔다. "황태자님의 성은을 입은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제법 얼굴이 반반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너 정도 계집은 수도에는 널려있다. 어차피 이 싸움이 끝날 때 까지 잠시 위안용으로 사용될 뿐일 테지만... 네가 드래곤 세마리를 데리고 있건 열마리를 데리고 있건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순전히 조상 덕에 드래곤을 얻은 주제에 견습기사 작위 씩이나 땃다고 우쭐해하지 마라 이년아." "......!" 갑작스러운 폭언. 카렐은 케리의 기를 눌러볼 속셈인듯 했다. 케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불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폭언을 날릴지는 몰랐기 때문에 뭐라고 대응하지를 못했다. "카렐경. 무례한 언사는 그만두어라." "...알겠습니다. 황태자 전하. 하지만 전하께서도 어제는..." 황태자가 주의를 주었지만 카렐은 별로 신경쓰는 태도가 아니었다. 사실 카렐의 가문은 황태자와는 다른 왕자들의 가문쪽 계보에 해당하는 귀족이었다. 게다가 카렐 자신도 오라 마스터의 칭호를 지닌 뛰어난 기사. 그래서 황태자도 카렐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지만.... 철썩! 라크리마는 달랐다. 그녀는 카렐이 케리에게 말을 날린 순간부터 달려와서 카렐의 뺨을 떄린 것이다. "이...계집이?" "무례한 인간. 이 자리에 주인님이 없었다면 네 목숨은 붙어있지 않을 것이다. 얼른 네 알랑한 기간틱 아머를 타고 몬스터 백정질이나 하시지." "...크으..." 카렐은 잠시 발끈했지만 상대가 드래곤, 라크리마라는 것을 알자 기세가 수그러 들었다. "쳇..." 곧 그는 자신의 기간틱 아머 쪽으로 걸어갔다. "...미안하다. 케리 레그너스. 보다시피 내 힘은 아직도 미숙하다. 황태자 임에도 불구하고 기사들 하나하나가 내 뜻에 따라주지는 않아. 그래서 너 같은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감사합니다. 황태자님." "주인님!" 라크리마는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이는 케리에게 발끈하면서 소리를 뺵 질렀다.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나가지 마세요! 주인님은 뭐라고 해도 셋이나 되는 드래곤의 마스터. 그 어떤 인간도 주인님에게 무례하게 행동할수는 없습니다." "...알았어. 미안해 라크리마. 앞으로는 조심할께." 그러나 케리는 아직 그 순간 라크리마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살기의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다. 몬스터들이 평원에 들어서기도 전에 인간의 군세는 완전히 대오를 갖추고 회전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지상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이 그것도 무려 세마리씩이나 전력에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사기는 오를대로 올라 있었고, 대열도 없이 그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몬스터들의 군대와는 달리 작전 준비는 철저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미 세 드래곤도 폴리모프 한 상태로 있었다. 까마득하게 거대한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공포감과 동시에 이들이 아군이라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하지만 제각각 인간 모습의 분신을 만들어서 황태자 옆에 있는 케리에게 붙어있었다. "적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가?" 황태자의 물음에 아마레가 답하였다. 그녀의 뛰어난 시력과 두뇌는 이미 적의 전력을 완전하게 계산해놓고 있었다. "오크 5천, 고블린 4천, 오우거 1백, 미노타오로스 2백...." "잡다한 놈들이 많군..." 평원 한 면을 뒤엎어 버릴 듯한 기세로 몬스터들의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마족의 조종의 받고 있다는 증거로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각 부대에서 궁사들이 맨 선두에 섯다. 그리고 사정거리 안에 들어서자 곧바로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1차 목표는 공중의 몬스터들이다. 와이번이나 그리폰, 페가수스 등을 탄 기사가 소수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공중 전력에서는 인간측이 불리했다. 따라서 공중의 적을 최우선으로 잡아야 했다. 소나기처럼 거세게 화살의 비가 공중을 뒤엎었다. 이성이 없는 몬스터들은 화살공격에는 대비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많은 수가 쓰러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버티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좀 더 가까이 오지 드디어 기간틱 아머들이 출격할 차례다. "쳇... 화살은 별 효과도 없구만." "워낙 많은 숫자가 있으니까." 가문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기간틱 아머, 슈발츠 아이젠에 타고 있는 카렐은 옆의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까이에 있는 기간틱 아머 끼리는 마법을 통하여 서로 대화를 할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슈발츠 아이젠은 굉장히 뛰어난 기간틱 아머다. 카렐도 명망높은 그의 가문명을 더럽히지 않을 정도로 보통은 훨씬 넘는 기사다. "그런데 카렐 경. 자네 케리에게 좀 과민하게 대하는 것 같군." "음. 나는 오직 황태자의 마음에 들었다고 해서 견습기사 작위 씩이나 받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네. 게다가 지가 드래곤 마스터면 드래곤 마스터지 그 건방진 짓꺼리 하고는..." 카렐도 영지에서는 영민들을 잘 보살피는 착실한 영주였으며 부하들에게도 잘 대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다. 상대가 자신이 보기에 건방지고 주제넘게 나온다면 이야기가 틀려지는 것이다. 기간틱 아머 블랙 나이트-슈발츠 아이젠은 키 6미터 마력증폭율 280% 마력저장량 8000의 강력한 기간틱 아머다. 커다란 풀 플레이트 아머와 같은 외형을 지닌 이 기간틱 아머의 바이저 속에는 하나의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외눈 시각 센서가 들어가 있었다. 이 시각 센서는 그것으로 보이는 모든 광경을 조종사의 헬멧으로 전송한다. 슈발츠 아이젠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양 어깨와 팔꿈치, 무릅에 달려있는 스파이크였다. 또한 보통 블랙 나이트와는 달리 실드 대신에 소드 스토퍼를 장착하고 있었다. 장갑은 전체적으로 얇아졌지만 대신에 방어마법은 강화되어 있었다. 이 슈발츠 아이젠의 모습은 집단전 보다는 단독 격투전에 맞추어서 설계된 것이다. 확실히 블랙 나이트 보다 격투전에서는 강력하지만 대신에 조종하는 기사의 부담이 많이 간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그러나 카렐은 그것을 충분히 활용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빰빠바아암!!! 기간틱 아머들의 출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더 이상 화살로 적을 견제할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차피 한번은 난전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예상도 했다. "간다아!" 카렐의 슈발츠 아이젠은 가장 빠른 속도로 기간틱 아머들의 선두에 서서 몬스터들을 향하여 달려갔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라크리마의 살기 넘치는 눈빛을 뒤로 한채... 메이드 드래곤 전기 25화 -전화(戰火) ②- '마음에 들지 않아 그 녀석...' 카렐은 케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카렐은 첫째로 모험가라는 족속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당연히 모험가가 희망인 케리도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카렐에게 모험가란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그 힘을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무리들이었다. 힘을 가진 자라면 치안을 지킨다던가 하는 일을 통하여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탬이 될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이유는 케리가 여성스럽게 생겼고, 여자로 변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카렐에게 여성스러운 남자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거기다가 황태자의 발탁을 받았다는 점. 카렐은 애당초 황태자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특히 권력을 바탕으로 실력에 어울리지 않게 빨리 승진하는 것은 더욱 싫어했다. 카렐이 보기에 케리의 실력은 아티펙트와 운좋게 얻은 세마리의 드래곤에 의한 것일뿐. 정진끝에 얻은 자신의 힘과는 비교도 할수없는 천박한 것이었다. 그런자가 비록 견습기사일 뿐이라지만 황태자의 마음에 들어서 자리를 하나 얻었다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자신의 지위는 실력을 통하여 얻은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는 카렐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이다. 좌우간 여러가지로 케리와는 맞지 않는듯 했다. 하지만 그런 불만 사항은 기간틱 아머의 센서를 통하여 카렐의 조종투구에 몬스터의 영상이 바로 눈앞에 닿을듯이 비쳐오자 피에 씻기는 것 처럼 사라졌다. "흐아아아압!" 처음에는 힘을 아끼기 위해서 검기나 소닉 블레이드는 자재한다. 카렐은 기간틱 아머의 검을 휘둘러서 정면에 있는 오우거를 두동강 내버렸다. 오우거는 거대하고 강력한 몬스터지만 기간틱 아머 앞에서는 어린애나 다름 없었다. 오크들이 글레이브를 들고 우르르 몰려들며 사방에서 습격했다. 하지만 슈발츠 아이젠의 검이 한번 횡으로 휘젖고 발로 몇번 차주자 오크들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사방에 나뒹굴었다. "덤벼라! 몬스터들!" 100여대나 동원된 다른 기간틱 아머도 제각각 엄청난 전과를 올리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기간틱 아머 앞에서는 손쓸틈도 없이 쓸려나갔다. 그 광경을 보고 뒤따르던 중장 경장 보병과 중장 경장 기병들도 한껏 사기가 치솟아 몬스터들과 대결을 펼쳤다. 전투는 인간측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거 안되겠습니다. 스승님. 역시 오크나 오우거 정도로는 무리일것 같습니다..." 마족측 진형의 뒷쪽, 리치 셋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라크리마 일행을 공격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두 리치는 리치 로드가 인간이었을 때부터 제자였다. 그리고 스승이 마족과 계약을 맺어 리치로 타락할때 함께 타락한 것이다. "우리들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크게 상황이 변하지는 않겠군. 인간들이 만든 기간틱 아머는 어지간한 마법은 버텨내니 말이야. 7~8클래스 씩 되는 마법을 날려대면 쓰러뜨릴수 있지만, 그럼 드래곤들이 문제가 되지..." "역시 또 다시 발록의 힘을 빌릴 수밖에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좀 더 수단을 써야..." 리치들이 회의를 나누는 사이 전장의 상황은 마족측에 불리하게 돌아가는듯 했다. 비행몬스터들은 얼마전의 싸움으로 인하여 큰 타격을 입어 공중전에서도 밀리고 있었다. 드래곤들은 건성으로 마법을 날려 지원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몬스터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중장기병과 중장보병, 창병, 궁병등은 제각각 최선을 다하여 적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제국 최고의 육상전력, 기간틱 아머들은 오우거나 미노타우로스, 트롤 같은 거대 몬스터들과의 대결에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몬스터들에게 불리하게 보이고 있었지만, 사실 상황은 인간들에게 그렇게 유리하지도 않았다. 우선 기대하고 있던 드래곤들이 마법 지원 이외의 도움은 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인간들은 점점 지쳐가는데 마족의 주술에 걸린 몬스터들은 계속 죽어가면서도 사기가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몰살하지 않으면 인간들이 이길수는 없다는 점은 큰 문제였다. 카렐의 눈앞으로 거대한 오우거가 철퇴를 들고 달려왔다. "흐압!" 그러나 기간틱 아머는 카렐의 의지에 따라 정확하게 오우거를 일도양단했다. 트롤이 돌도끼를 들고 달려들었지만 카렐의 검법은 매섭게 트롤을 갈라버렸다. 아무리 재생능력이 있는 트롤이라지만 완전히 둘로 쪼개져 버렸으니 버틸리가 없었다. "엄청나군요." 라이오스는 멀리서 카렐의 무예를 바라보면서 연신 감탄했다. 기간틱 아머의 조종이 맨몸으로 하는 무예보다는 어렵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간틱 아머를 타고 있음에도 카렐의 무예 실력은 오라 마스터의 칭호에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성격은 기분나쁘지만, 실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정말 대단해..." "그렇지. 카렐 경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사중 한명이니까..." 케리도 감탄을 했고, 황태자도 그 말에 동의하였다. 하지만 세 드래곤 들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것 같았다. 카렐의 슈발츠 아이젠의 검은 장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의 검붉은 피로 완전히 덮히게 되었다. 피투성이의 검은 기간틱 아머가 전장을 종횡무진 달리는 것은 죽음의 기사가 날뛰는 것 같아서 아군 병사들에게도 공포감을 줄 정도였다. "흥... 몬스터 따위는 시시하다구." 슈발츠 아이젠의 머리를 흔들어 피를 털어내면서 카렐은 중얼거렸다. 이성이 없는 몬스터는 그에게는 시시한 상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굶주림을 만족시켜줄 괴물, 아니 악마가 전장에 나타나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몬스터들의 너머로 시꺼먼 오라가 높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박쥐 날개를 단 검은 악마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발록...!" 카렐은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저 발록...그저께 우리랑 싸운놈 아냐?" "...맞아. 생긴거 보니까 딱 그놈이네." 라크레일은 화를 버럭 내면서 아마레에게 소리쳤다. 라크리마도 발록을 기분 나쁜듯이 바라보았다. 본체인 드래곤들의 행동을 분신체들도 그대로 재현했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한 케리는 분신체인 라크리마에게 말했다. "뭐?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상대가 발록이라면...?" "놈들은 우리 드래곤을 싫어하니까... 놓친 사냥감이라고 생각해서 잡으러 온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번 처럼은 안될꺼예요. 후후..." 라크리마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아앗!" 카렐의 기간틱 아머, 슈발츠 아이젠은 발록을 향하여 달려나갔다. 슈발츠 아이젠의 장갑과 검에는 검은 암흑검기가 흐르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처럼 여유를 두고 상대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카렐이 온 힘을 다 전개하여 발록과 대결하려는 것이다. 발록은 달려오는 기간틱 아머를 발견하고 땅에 내려와 불꽃 검과 채찍을 들었다. "명룡참!" 슈발츠 아이젠의 검을 휘둘러 한 줄기 검기를 발록을 향해 날리는 카렐. 그러나 발록은 검은 검기를 피하지도 않고 불꽃 검으로 검기를 내리쳤다. 퍼엉! 카렐의 검기는 단숨에 산산조각으로 쪼개져버렸다. "아니?!" 오라 마스터인 자신이 전력을 다하여 공격한 검기가 무위로 돌아가는 어이없는 사태에 카렐은 경악했다. 하지만 발록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슈발츠 아이젠을 향하여 날아왔다. 슈발츠 아이젠의 발록의 채찍의 간격 안으로 들어오자 발록은 불꽃 채찍을 휘둘러 슈발츠 아이젠을 공격했다. "크윽!" 카렐은 필사적으로 슈발츠 아이젠을 조종하여 불꽃채찍을 피해냈다. 발록의 채찍에는 드래곤의 가죽을 태울 정도의 힘이 있는데 그것에 부딧친다면 슈발츠 아이젠이 둘로 쪼개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겨우 피해냈다고 생각한 카렐의 시야가 갑자기 일그러졌다. "뭐야?!" 으지직 으지직...! 마구 일그러지는 조종용 마법 투구에 비치는 영상. 시각 센서 위로 언듯 보이는 검은 그림자. 그것은 발록의 발톱이었다. 발록은 슈발츠 아이젠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발로 머리를 잡아챈 것이다. 머리 위에서 특수한 마법 주문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슈발츠 아이젠의 장갑이 무참하게 일그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이!" 카렐은 검에 검기를 가득 담아 머리 위로 휘둘렀다. 그러나 익숙하지 못한 동작. 게다가 발록의 대응도 발빨랐다. 단숨에 불꽃 검을 휘둘러 검기에 가득찬 카렐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퍼엉! 두 검은 격열한 파열음을 흩뿌리면서 힘대결을 시작했다. "카렐 경!" 주위의 기사들이 보기에 카렐의 상태는 매우 위급해 보였다. 발록의 발에 슈발츠 아이젠의 머리가 붙잡혀 있어서 기간틱 아머의 맹점이라고 할수있는 머리 위를 완전히 빼앗긴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슈발츠 아이젠의 머리는 으깨져버리고 그렇게 되면 카렐은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 발록에게 유린 당하게 된다. 곧 몇명의 기사가 몬스터들은 내버려두고 카렐을 구출하기 위해서 달려갔지만, 발록은 채찍을 휘둘러 그들을 견재하고 있었다. 발록도 슈발츠 아이젠의 머리를 붙잡은 채로 불꽃 검으로는 카렐의 검과 힘겨루기를, 채찍으로는 다른 기간틱 아머를 견재하느라 힘든 상황이었지만 카렐은 더욱 심각했다. 지금 그에게 믿을 것은 오직 오라 마스터가 될때까지 수행의 결과로 얻은 자신의 힘 밖에 없었다. 자신의 힘이 버텨내지 못하는 순간 그는 이 일촉 일발의 대치상태가 깨져서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대치상태를 박살낸 것은 의외로 그들의 힘이 아니었다. "어포칼립스!" 갑자기 발록과 슈발츠 아이젠 주위에 화염이 치솟았다. 화염은 땅에서 피어올라 그대로 슈발츠 아이젠을 타고 발록의 온 몸을 뒤덮었다. "크워어어어어어" 여지껏 한번도 열린적 없던 발록의 입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발록 역시 지옥의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지만, 심판의 업화를 불러내는 9클래스 9서클 마법 어포칼립스는 버틸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마법을 쓴 것은... 골드 드래곤 아마레였다. "크아아아악!" 어포칼립스에 휘말리자 순식간에 슈발츠 아이젠의 마법 방어 체계는 걸레쪽이 되어 박살이 나버렸다. 드래곤의 마법에 인간이 만든 기간틱 아머의 방어체계가 버틸리가 없었다. 발록 조차도 피부가 타들어가는 마법인데 말이다. 슈발츠 아이젠은 순식간에 고열을 동반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안돼! 안돼에에에!" 카렐은 온 몸의 오라를 있는대로 끌어모아서 자신의 몸을 보호했다. 소드 마스터인 그로서도 슈발츠 아이젠의 보호가 없다면 어포칼립스의 불길에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댓가로 슈발츠 아이젠은 흉칙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크워어어" 발록은 반쯤 타들어간 날개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그때 다음 마법이 날아왔다. "블리자드 스톰!" 이번에는 라크레일이 날린 마법이다. 극한의 블리자드가 발록을 향하여 휘몰아쳤다. 발록의 다리는 반쯤 녹아버린 슈발츠 아이젠이 다시 굳어지는 바람에 슈발츠 아이젠이 달라붙어 버렸다. 백톤이 넘어가는 거대한 쇳덩이를 매달고서는 발록이라도 제대로 날아오를수가 없었다. 게다가 드래곤들이 그 틈을 주지도 않았다. 카렐은 또 다시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슈발츠 아이젠은 녹아내리면서 주인의 몸을 구워삶다가 이번에는 극한의 추위를 전하면서 그의 온 몸에 들러붙었다. 극열과 극한을 오가는 생지옥이었다. 그가 오라 마스터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의 힘 때문에 이런 생지옥을 맛보게 된 것이다. "플레어!" 초고열을 동반한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 플레어. 라크리마의 입에서 결정타가 될 이 마법의 이름이 불리워졌다. 그리고 다음에 동반되어지는 마법 주문도 함꼐... "프로텍트 프롬 매직! 서바이벌." 콰아아아아앙! 절대생존마법, 서바이벌이 발동함과 동시에 플레어가 발록의 몸을 직격했다. 발록의 상반신 절반과 날개가 화염에 불타 사라져버렸다. 본래대로라면 플레어 정도의 마법에 이 정도 치명타를 받을리는 없지만 발록의 몸은 극한과 극냉을 오가면서 크게 약해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절대 생존 마법 서바이벌, 그리고 대 마법 방어 주문이 카렐의 몸을 지켜주었다. 절대 생존 마법은 카렐의 생명을 지켰고 마법 방어 주문은 반 정도 녹아내려 고철덩어리가 되버린 슈발츠 아이젠에게 걸려서 아직 겨우 남아있던 방어 마법과 함께 플레어를 막아내었다. 발록은 마치 가고일같은 자세로 슈발츠 아이젠의 잔해 위에서 비틀거리며 꿇어앉았다. 슈발츠 아이젠의 잔해는 아직도 족쇄처럼 그를 묶고 있었다. 그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꽃 채찍과 검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마에 속한 마법으로는 그에게 치명적인 데미지를 줄수 없다. 그래서 겨우 숨은 붙어있었지만... "자 그럼... 끝장을 내주마." 골드 드래곤 아마레는 발록의 가슴을 노려보았다. 엄청난 거리임에도 그녀의 뛰어난 두뇌는 정확하게 거리와 각도를 계산해내고... "크롸라롸롸롸롸랏!!!" 레이저 브레스를 날렸다. 아마레의 레이저 브레스는 극도로 위력이 집중된 상태로 날아가 발록의 가슴부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5화 -전화(戰火) ③- 강철과 마법의 기사 기간틱 아머가 지축을 흔들고, 형형색색 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무예가 펼쳐진다. 칼날 하나하나 창날 하나하나 화살 하나하나가 야수의 이빨과 발톱처럼 피를 탐한다. 아직도 살기넘치는 기사들과는 달리 병사들에게는 피로가 역력하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아직 싸울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다시 한번 창과 할버드, 활을 잡고 돌격한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오우거도 트롤도 오크도 미노타우로스도 고블린도... 타고난 완력과 야만적인 무기, 이빨과 발톱으로 인간에 대항한다. 그러나 발록이 쓰러지는 순간, 그들에게 걸린 마족의 마인드 컨트롤에도 큰 타격을 받아 지칠줄 모르고 올라가던 사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주술에 걸려있다지만 그들도 살아있는 생명체다. 체력의 한계가 없을리는 없었다. 점차 몬스터들은 학살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법과 강철의 기사, 기간틱 아머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끈 중심핵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뒤를 따라 달리는 병사들의 창칼을 무시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전장으로 내보는 원동력은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었다. 그들의 등뒤에 버티고 서서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거대한 몸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 지상최강의 생명체, 드래곤... 그들이 아군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드래곤들은 어떨까? 여성으로 태어나 최근 완전한 남성이 되는 그 자신에게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은, 랜스 황태자는 그 강대한 존재들의 분신을 뒤돌아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의 뛰어난 시력이라면 피가 강처럼 흐르고, 으스러진 살점과 뼈가 나뒹구는 전장이 똑똑히 보이지 않을수가 없을텐데... 세 드래곤의 인간형 분신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지 않는가? "아 저기저기. 플레임 스트라이크 날려!" "저쪽에 익스플로젼 날리면 딱 좋겠다." "아냐아냐 여기다가 파이어 월을..." 그들의 마치... 체스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인간과 몬스터의 전쟁이나 다름없는 치열한 생존다툼은 개미떼들의 싸움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가끔씩 마법을 날리는 것 만으로 아군을 승리로 이끄는 그들의 실제 모습은 개미집을 부수고 노는 어린애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대한 존재들이 아닌가? 랜스는 드래곤들의 실체를 접하자 숨이 막힐것 같았다. 언듯 보기에는 어린애들이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제국의 흥망을 좌우할수도 있을 정도로 큰 싸움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는 것은 장난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전쟁놀이였다. '도대체 이들은 어째서 케리에게 복종하는 것인가? 실력은 약간 되는것 같지만, 저것은 저 드래곤들을 만나기 전보다 훨씬 발전한 모습이라고 하니... 본래는 정말 평범한 인간임이 틀림없을 텐데...' 싸움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이제는 학살전을 넘어서 소탕전으로 보일 정도였다. 여기까지 오면 드래곤들이 지원을 해줄 필요성도 없을듯 했다. "이제 상황은 끝이요. 모두 정말 고마웠소." "엣? 벌써 끝이야? 이것도 그럭저럭 재미있었는데..." 라크리마는 아쉽다는 듯이 대답했다. 황태자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달리 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수고했어. 라크리마." "꺄! 고마워요 주인님~" 그리고 그는 전쟁을 장난처럼 해내고서도 케리의 감사의 말 한마디에 어린애처럼 기뻐하는 이 드래곤들에게 묘한 흥미를 느꼈다.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갑자기 할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낙오장병도 찾아야 했고, 부상자들도 수습해야 했다. 시체를 그대로 들짐승들의 밥으로 만들수도 없었다. 이 군사들은 수도의 정예병을 중심으로 인근 도시의 경비병과 용병대를 받치는 구조로 되어있어 군사의 질도 높았지만 그 만큼 대우도 높았다. 무분별하게 끌어다 쓴 농민병과는 질적으로 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수가 희생된 것은 어쩔수 없었다. 아무리 승전이라고 해도 전사자가 전혀 없을수는 없는 법이니까... 기운이 조금 남아도는 병사들은 부상자를 수습하고, 시체를 수거하고 있었다. 그럭저럭 아직 움직일 만한 기사들도 삐걱거리는 기간틱 아머를 써서 병사들을 도와주었다. 오우거나 미노타우로스의 시체는 옮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을 가진 자는 그에 맞는 역활을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윤리다. 강한 힘을 가진 기사가 고생하는 병사들을 내버려 두고 뒤에 물러나 있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시체들 중에는 몬스터와 엉겨서 차마 눈을 뜨고 볼수없는 참혹한 몰골의 시체들도 많이 있어서 승전의 기쁨을 퇴색시켰다. 그러나 가장 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그 어떤 시체도 아닌 한 명의 부상자였다. 발록과 함께 드래곤의 마법에 직격당하여 제대로 형체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녹아내린 기간틱 아머, 슈발츠 아이젠. 거의 완전히 녹아내린 기간틱 아머는 용암괴 처럼 보였다. 그 위에는 하반신만 남은 발록의 시체가 아직도 발이 녹아서 달라붙은 채로 매달려 있었다. "카렐 경..." 기사 제이크는 용맹하게 발록과 싸우다가 순직한 카렐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간틱 아머가 저꼴이니 그의 시체조차 찾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무참하게 녹아내린 슈발츠 아이젠과 처참한 발록의 모습은 카렐의 무용과 용맹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카렐 경의 부친께 이것을 시체 대신으로 가져다 드려야겠군... 얼마나 슬퍼하실지 모르지만, 기사다운 최후를 맞았다는 것을 아신다면 그나마 조금 마음이 놓일지도... 응?" 아직도 약간 뜨거운 녹아내린 슈발츠 아이젠의 표면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제이크는 순간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슈발츠 아이젠의 표면에서 미약하나마 오라가 느껴진 것이다. 기간틱 아머는 탑승자의 오라를 증폭하여 동력을 얻는다. 그런데 오라가 느껴진다면...? "...설마 카렐 경이 살아있는 건가?" 자신의 망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제이크는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는 지렛대를 가져와서 자신의 기간틱 아머로 붙잡고 녹아붙은 슈발츠 아이젠의 가슴에 달린 개폐장갑부를 강제로 뜯어내었다. "앗!" 다음 순간 제이크는 차라리 열지 말 것이라고 한탄하였다. 그 안에는 새카맣게 타들어간 카렐의 몸이 있었던 것이다. 카렐의 사지는 녹아내린 조종석의 금속에 파묻혀 있었고, 머리카락과 눈썹은 하나도 남김없이 타들어가 있었다. 온 몸의 피부도 완전히 새카맣게 타있었다. 끔직한 4도 화상을 입은 몸은 도저히 생전의 그라는 것을 알아낼수 없었다. "...그나마 형체는 남았군. 다행이야. 유해라도 건져서... 자신의 오라력으로 최후까지 버티려 했던 모양이군... 하지만 이 꼴이 대체..." 완전히 숯덩이가 된 카렐의 몸. 제이크는 너무나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면서 다가갔다. 이 용감한 기사에게 경애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의 몸에 손을 대는 순간... "크으..."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숨소리가 들렸다. "...뭐?!" 깜작 놀란 제이크는 자신의 온 신경을 귀에 집중하여 카렐의 심장 부분에 가져다 대었다. 놀랍게도... 그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도 그의 심장은 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사..살아있다! 이봐! 카렐 경이 살아있다! 뭐하나! 의무병을 불러라! 마법사를 불러라!" 사자후같은 제이크의 목소리가 피투성이 벌판에 울려퍼졌다. "뭐라?! 카렐이 살아있어?" 이 급보를 받은 황태자는 너무나 놀랐다. 앞으로의 제국을 짊어질만한 젊은 인재가 발록과 동귀어진 하여 장열한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살아있었다니... 분명히 발록을 붙잡고 녹아내리는 슈발츠 아이젠을 보았는데... "그가...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어서 가보겠네." 황태자는 의무 막사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분명히 그가 있었다. 분명히 살아있는 상태로 하얀 시트위에 누워있기는 했다. 하지만... "저...정말 살아 있기나 한 건가? 잘못된 보고가 아닌가?" 그 몰골은 너무나도 처참했다. 팔 다리는 없이 몸통만 있는 채로 그것도 남은 부분은 완전히 새카맣게 타버린 쑻덩이 같았다. "...저... 정말 이게 카렐 경이 맞는가?" 너무나 어이없어 하는 황태자의 물음에 옆에 있던 종군의사가 대답했다. "예. 분명히 카렐 경 이옵니다. 녹아내린 기간틱 아머, 슈발츠 아이젠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만..." "...왜 이 꼴이 된건가?"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녹아내리는 쇠덩이 안에 들어있었으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된 것도 카렐 경이 오라 마스터의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태를 제대로 설명해보게." "우선... 팔 다리는 완전히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뼈까지 완벽하게 타들어 가서 어떻게 손을 써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쇳물속에 들어 있었으니 당연하겠죠... 어깨 관절과 고관절을 뜯어내지 않으면 기간틱 아머에서 꺼낼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피부는.... 어떻게 이 모양 인데도 살아있을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완전히 다 타버렸습니다. 그 밑의 근육도 상당히 타격이 크고... 머리는 뇌가 무사한지가 걱정되옵니다만... 눈과 코가 문드러졌고, 귀도 떨어져나갔습니다. 말은... 호흡은 하시지만 성대가 무사할런지... 한마디로 지금의 카렐 경은 살아있는게 신기합니다. 살아있는 부분이라고는 심장과 뇌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과연 이것을 살아있는 상태라고 해도 될 것인가? 이제야 막 달려온 종군 마법사도 카렐의 상태를 보고 너무나 놀라 기절할뻔 했다. 그 상태로 살아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과연 마법사 답게 곧 그 의문을 풀어냈다. "이.. 일단 카렐 경은 오라 마스터 입니다. 보통 사람보다 틀림없이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으니... 하지만 이런 몰골로 살아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비밀은... 역시 마법이었습니다." "마법이라니? 무슨 마법 말인가? 어떤 마법이 이런 몰골의 사람을 살아있게 할수 있단 말인가?" "전설의 절대 생존 마법 서바이벌 입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살아는' 있게 하는 마법이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심장과 뇌만 절대적으로 지키는 마법인것 같습니다만... 저도 사실은 정확하게 어떤 마법인지 감은 안 잡힙니다. 서바이벌도 전설로만 들었을 뿐이고, 효과로 짐작하는 것 뿐입니다. 이런 마법구조는 처음 봅니다. 하긴 9서클 9클래스의 궁극 마법중 하나니 제가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만. 틀림없이 이것은... 드래곤의 짓입니다. 드래곤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드래곤!" 드래곤이라면 이 장소에 세마리나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된 것도 이상할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마법이 있다면 왜 카렐에게만 걸어버린 것인가? 황태자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 병사 모두를 무적으로 만들어서 싸울수 있지도 않았을까? 어쨋건 지금은 카렐의 치료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은 없는가?" "일단 살아는 있습니다. ...마법이 걸린 이상 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움직이는 것은 물론 듣는 것도 보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끼는 것도 할수 없습니다. 시체나 다름 없으니... 이걸 살아 있다고 해야 할지... 만일 의식이 있다면 본인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고통만 있을 것이니..." 이래서야 시체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아니 시체보다 더욱 나쁜 상황이 아닌가. "치료할 방법은?" "...암담합니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저희들의 능력으로서는 이런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어찌되었건 살아있기는 하지만... 역시 드래곤 들에게 기대어 보는 수밖에." "또 드래곤 들인가!" 드래곤들에게 부탁한다. 역시 그 방법 외에는 없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5화 -전화(戰火) ④- 황급히 라크리마 들을 찾아간 황태자는 최대한 정중하게 카렐 경을 구해줄수 있냐고 말했다. 하지만 드래곤 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싫어요." "난 그 녀석 싫어..." "그냥 그대로 살라고 하지." 너무나도 태연하고 간단하게 그들은 카렐을 회복시켜 주는 것을 거절했다. 비록 용언 마법 처럼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힘이라면 분명히 카렐의 몸을 고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터, 그러나 그들은 일언지하에 거부하였다. 황태자도 카렐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부하였고, 제국의 중요인물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드래곤들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여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할수 없겠소? 카렐 경은 우리 나라의 칼날과 같은 사람이요. 비록 그대들에게 무례하게 군 것은 알고 있지만..." "라크리마. 황태자 님이 이렇게 까지 말해오는데 어떻게 안되겠니? 아무리 그래도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살아가는건 너무 하잖아." 황태자가 계속 부탁해오자 케리도 라크리마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 케리가 부탁해오자 라크리마는 할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요. 주인님이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고맙소. 드래곤이여..." "시체 같은 상태는 면하도록 해놓죠." 아마레와 라크레일은 아무래도 도와줄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라크리마와 케리만이 황태자를 따라 카렐을 안치해둔 곳으로 갔다. 케리는 카렐의 처참한 몰골을 도저히 지켜보고 있을수가 없어서 한번 보자마자 군막 밖으로 나갔다. "어서 회복을..." "재촉하지 않아도 할꺼야. 리절렉션!" 라크리마는 카렐에게 마법을 걸었다. 그 순간 몰아닥친 강렬한 마력의 흐름은 마법의사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드래곤의 힘에 더욱 공포를 지니게 되었다. 라크리마의 마법은 확실하게 카렐의 몸에 작용했다. 왼쪽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입과 목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오른쪽 귀도... 하지만 그것 까지가 끝이었다. "...드래곤이여 이것은?" "이것 까지가 끝이예요. 난 이 이상 못해. 흥... 주인님이 부탁해서 이 정도나마 해주는 줄 알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라크리마는 횅하니 군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뒤에는 어안이 벙벙해진 황태자와 의사, 마법사들 만이 남게 되었다. "...이 이상 하기 싫다는 건가?" "확실히 저 정도의 마력이라면 카렐 경을 완전 회복 시키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텐데... 이 이상은 싫은 모양입니다. 카렐 경은 드래곤 들에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것 같군요." "...그럼 할수없군... 일단 카렐 경에게 붕대라도 감아주도록." 카렐이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린 것과는 무관하게, 어쨋건 제국군은 승리하였다. 그들은 마족의 공격을 처음으로 저지해냈다는 자부심으로 당당하게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로 개선했다. 저녁이었음에도 상당히 많은 수의 시민들이 나와 그들을 환영했다. 케리도 그 사이에 끼어있었다. "어떤가? 개선식이란..." "황태자 님은 기분이 꽤 좋으신것 같네요." "음.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지... 지배자란 피지배자를 편안하고 안락하게 지켜주는 댓가로서 그들에게서 찬사와 명예를 얻는 것이니까... 그래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고 싶은 것이지."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군주가 될수 있을것 같아요. 하지만..." 케리는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제 귀걸이는 언제 돌려주실 꺼예요?" "이미 돌려주기로 마음 먹었어. 복제품이 완성되는 대로 돌려주도록 하지. 서로 하나씩 교환하는 거야. 그렇지?" "예..." 어쨋건 한쪽 만으로도 효력은 있으니까... 인간들의 승리는 곧 마족의 패배를 의미한다. 한때 전장이었던 벌판에는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그 어둠 밑에는 어둠에 어울리는 수많은 시체들이 있었다. 오크,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트롤, 고블린... 정상적인 세상의 법칙대로라면 그들은 곧 썩고, 들짐승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실제로 까마귀와 들개들이 이미 이 진수성찬을 맛있게 접수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간과 마족의 대결 따위는 흥미가 없는 상태였다. 죽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것은 세계의 정당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흐름을 거스를수 있는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神)의 힘, 다른 하나는 마(魔)의 힘. 인간이라고 해도 성직에 종사하여 신에게의 길을 갈고 닦으면 그 끝에는 영혼의 상태로의, 혹은 극한의 신력을 통하여 스스로 영생을 얻을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되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성직자는 그렇게 되기 전에 죽거나 타락하고 만다. 그러나 흐름을 거스를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마. 마왕에게 영혼을 바쳐 불사의 생명을 얻는것. 아니 그것은 사실 생명이 아니다. 죽은 상태로 영혼이 육체에 강제로 달라붙어서 움직이는 것이다. 죽은 상태로 움직이는 것, 즉 언데드Undead인 것이지 살아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라 하여도 이것만은 지극히 터부시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시도하여 성공한 자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리치. 세명의 리치들이 나타나자 들개와 까마귀들은 앞다투어 시체 더미에서 사라졌다. 시체를 먹는 자들 중에서 리치들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 앞에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지성이 없는 구더기들 뿐이었다. 아무리 죽음을 먹고 사는 자들이라도 리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본능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마법이여... 세계의 법칙을 흔들라... 생과 사의 벽을 가르라... 죽은자여 일어나라... 지옥의 문을 열고 돌아오라..." "마법이란 세계의 법을 거부하는 것... 생사의 법을 거부하라... 그것이 바로 진정한 마도... 죽은 자들이여 깨어나라..." "다시 일어나라 그대들이여... 그대들의 주인이 부르노니... 불사를 얻으라... 불사를 얻으라... 생명이 아닌 불사를..." 리치들의 마력이 담긴 주문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지자 마법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라이즈 오브 데드Rise of dead, 죽음에서 시체들을 일으켜 언데드로 만드는 마법... 이 방법으로 부활한 존재들은 좀비나 스켈렉톤, 혹은 구울이 된다. 이들은 산 자를 질투하고 증오하여 산 자를 갈갈히 찟어서 삼키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지성은 존재하지 않는 자들이 된다. 본래 마족들은 몬스터들의 지성을 바라고 군대로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니 이 방법도 그들에게는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주문 소리를 들은 몬스터의 시체들은 하나하나 죽음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스켈렉톤이 될 정도로 썩은 놈은 없었지만 벌써 구더기가 들끓는 시체들이 된 것들도 많았다. 순수하게 몬스터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잊고 간 병사의 시체도 리치들의 힘에 의해서 좀비가 되어서 다시 일어났다. 그들은 살아있을때의 자신의 적과 한편이 되어 아직 살아있는 동료들을 공격하게 될 것이다. 리치들은 자신의 모든 마력을 동원하여 시체들을 좀비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군세는 다시 회복되어버렸다. "가라 죽음의 물결이여... 인간의 도시를 파괴하라... 삶을 질투하고 증오하는 자들이여... 그들의 삶을 파괴하라..." "으워어어어어어 그워어어어어어." "우워어어 크어어어어..." 다시 일어난 좀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릿느릿 하지만 확실하게 그들은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를 향하여 걷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죽음의 물결, 그 자체였다. "드래곤 들에게 이런 좀비들이 쓸모가 있겠습니까? 스승님?" "후후후. 낮의 일을 보지 못했느냐? 드래곤들은 우리들과의 싸움에 그리 적극적이지 못하다. 필시 인간들이 드래곤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이겠지... 그들은 기분파고 제멋대로인 어린애 같으니까..." 한번의 승리에 취해, 그리고 몇잔의 맥주에 취해. 또 살아났다는 기쁨에 취해.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 주둔하게 된 대부분의 병사들은 제각기 취해서 잠에 빠져있었다. 극 소수의 경비병만은 깨어있었지만 설마 몬스터가 이렇게 까지 깨지고도 야습을 해올랴 하는 기사들의 방심 탓에 그들의 근무도 널럴해져서 대부분 창을 붙잡고 잠들어 있었다. 케리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세 드래곤은 낮의 무시무시한 활약과는 정 반대로 어린애처럼 순진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케리도 긴장을 풀고 곤하게 잠들어 있었지만... 단 하나 깨어나버린 녀석이 있었다. "냥냥... 일어나요. 냥냥..." "...왜 그래 파치야?" 여지껏 별다른 일없이 조용히 지내오던 묘인족 소녀, 파치야가 케리를 깨운 것이다. "이상하다냥... 기분나쁜 냄새가 많이 난다냥..." "...그거야 여긴 도시니까... 너한테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날지도 모르지." "아니얀양... 이건 죽음의 냄새양..." "죽음의 냄새?" "...일전에... 좀비들이랑 싸울때 이런 냄새를 맡은적 있다냥..." "좀비?!" 케리는 그 말을 듣자 바짝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아직 믿기 어렵다는 눈치였다. 게다가 피곤하기도 해서 파치야의 말에 까지 제대로 신경을 쓰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녀가 이끄는 데로 숙소 밖으로 나가야 했다. "휴...어디까지 갈꺼야?" "이쪽에서 냄새가 난다냥..." 파치야를 따라 케리는 잠옷 바람으로 성문 쪽으로 이끌려 갔다. 어느새 꾸벅꾸벅 졸면서... 그런데 그들 앞에 인간의 것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거대한 그림자들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은 구더기가 가득 엉겨붙은 오우거였다. "으앗!" 파치야의 경고가 맞았다. 어느새 좀비들은 허술한 경비를 뚫고 성문 안 까지 들어온 것이었다. "캬옹!" 좀비들을 보자 파치야는 재빨리 전투모드로 변신했다. 케리는 허둥지둥 옵티걸 소드를 찾았지만 잠옷 바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할수없이 늘 차고 있는 로드 오브 엘리멘탈에 정신을 집중했다. "파치야. 너무 앞으로 나서지마! 살라만더! 카사!" 좀비에게 불이 가장 유효하다는 것은 케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의 정령들을 불러내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난데없이 바이오 하자드가 시작되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5화 -전화(戰火) ⑤- 케리는 땅의 정령, 노움을 불러내어 좀비들의 발을 묶은뒤 살라만더와 카사를 날려서 불태워버렸다. 순식간에 썩은 살이 타는 지독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졌다. 이것으로 일단 기선은 제압되었다. "살라만더 카사!" 천천히 다가오는 거대한 오우거 좀비를 향하여 살라만더와 카사가 연속으로 날아갔다. 카사는 살라만더보다 힘은 약했지만 스피드는 더 빨랐기 때문에 살라만더의 뒤에 부딧쳐쳐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오우거 좀비는 불길에 휩쌓였다. 파치야도 롱 소드 처럼 날카롭고 길게 돋아난 손톱을 이용하여 좀비들을 베어내고 뒤로 빠졌다. 좀비들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워낙 많은 수가 있었기 때문에 케리는 서서히 뒤로 물러서야 했다. "이걸 어쩌지?" "큰일났다냥!" 그러나 둘의 걱정이 깊어지기도 전에 응원군이 나타났다. 라이트닝 스피어를 든 라이오스가 어느새 갑옷까지 걸치고 나타나 창을 휘둘렀다. 창에서 튀어나오는 번개의 궤적이 뱀같은 흔적을 허공에 남기며 좀비들을 베어내었다. "라이오스! 어떻게 벌써 무장까지 하고..." "전 언제나 이렇게 하고 잡니다. 하하하." "......매일?' "당연하죠. 기사라면 당연한 겁니다. 케리님 어서 이 녀석들을 해치웁시다!" 정말 그럴까? 라고 의심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라이오스는 진심인것 같았다. 괜히 잠옷바람인 케리는 자신이 약간 부끄러워졌다. 사실 이 시간에 잠옷입고 있지 않은 쪽이 이상한 것이지만... 좌우간 라이오스와 파치야는 앞에 나서서 좀비들을 베어냈고, 케리의 정령술이 뒷받침을 해주었다. 하지만 역시 원채 숫자가 많았다. "라크리마들은 어떻게 된거야!?" "...제가 나올때 보니까 자고 있던데요." "...깨워서 데리고 나와야지!" "전에 한번 실수로 깨운적이 있는데 얼마나 화를 내더라구요. 너무 무서워서 깨울수가 없었습니다!" "으이그......좌우간 일단 사람들을 깨우기부터 해야겠어. 실프! 소리를 질러라! 사람들을 깨워!" 케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소환되어 나온 실프가 공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처녀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무시무시한 귀곡성이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명령을 내린 케리가 다 오싹할 정도였다. "뭐 이정도로 해뒀으면 왠만해서는 일어나겠지..." 사실 겁많은 시민들은 그 소리를 듣고 오히려 무서워서 집안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도 꽤 되었던 듯 하지만, 병사들이 몬스터의 습격을 알아채는 데는 더없이 좋은 소리였다. 라미아나 하피가 왔나 싶어서 나와본 병사들이 상당수였지만... 좀비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어떻게 잠을 밀어내고 파이크와 할버드를 챙겨든 병사들이 앞장 서서 좀비들을 막아내고, 그 뒤에서 크로스 보우와 롱 보우를 든 병사들이 좀비들을 향하여 화살을 날렸다. 그냥 화살은 별 효과가 없었지만 불화살은 큰 효과가 있었다. 갑옷을 단단히 갖추어 입은 중무장 보병들은 메이스와 도끼를 휘둘러 좀비들을 분쇄하였다. 말을 탄 기사들은 랜스를 들고 돌진하여 썩은 시체들을 창으로 꿰어버렸고... 모두 낮의 전투로 극도로 피곤했을 텐데,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좀비들의 숫자는 많았고, 병사들은 지쳐있었다. 케리도 온 힘을 다해서 정령술로 지원을 했지만 도무지 숫자가 줄어들지 않으니 어쩔도리가 없었다. "황태자 전하는 어떻게 된거지?" 황태자의 행방도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알아볼 틈이 없었다. 케리 조차도 갑옷을 입지 못하고 잠옷 차림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싸우고 있는 판국이 아닌가. 벌써 밤이슬과 땀에 잠옷이 푹 젖어 있었다. "파치야. 이대로는 안되겠어. 옵티걸 소드를 가져와! 그리고 라크리마를 깨워줘!" "라..라크리마님은 잠 자는 도중 깨우는 것을 무척 싫어하시는 데요." "지금 그게 문제야! 어서 깨워!" 케리는 전투를 하다가 잠시 물러나 있는 파치야를 재촉하여 라크리마를 부르러 보냈다. 드래곤 들이 없으면 이런 갑작스러운 급습을 막아내기가 어려운 것은 솔찍한 사실이었다. 파치야가 부르러 간지 십여분이 지난후. 무시무시한 포효가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크리마!" 한 마리의 흑철색 드래곤이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또 한 마리의 흑철색 드래곤이, 뒤이어서 금빛의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래쪽에서 언듯 보기에는 마치 세개의 머리를 한 드래곤이 나타난듯 했다. 그 방향에서 파치야가 두발과 손으로 달려왔다. 입에는 옵티걸 소드가 물려있었다. "여기있어냥. 으후...아프당..." "...왜그래?"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받아들었다. 파치야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했다. "라크리마님이...엉덩이를 30대나 때렸어흐냥... 파치야는 케리 명령대로 한것 밖에 없는데느양..." 아무래도 잠에서 깨웠다고 좀 맞은 모양이었다. [턴 언데드!] [턴 언데드!] [턴 언데드!] 드래곤들은 졸린 눈을 하고 있었다. 드래곤이 졸린 눈을 하는 것은 쉽게 볼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달빛을 배경으로 삼아 드래곤들이 도시 한가운데서 마법을 난사하는 것도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니었다. 연속으로 이어진 주문을 통해 세발의 마법 광이 뻗어나와 좀비 무리에게 직격했다. 마법 광에 휩쌓인 다른 물체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좀비들은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순식간에 비틀거리다가 다시 제자리에 쓰러졌다. 그들의 육체를 지탱해주던 마법의 힘이 소멸함에 따라 다시 시체로 돌아간 것이다. 연이어서 십여발의 턴 언데드가 단번에 작열했다. 한방이 날아올 때마다 수십여마리 이상의 좀비가 쓰러졌다. 드래곤들의 이 활약에 병사들은 용기백배. 단숨에 성문까지 수복해서 성문을 걸어잠그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성문 앞에 모여든 언데드들을 향하여 불화살의 비를 날렸다. 케리도 겨우 숨을 돌릴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케리" 그제서야 황태자는 케리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황태자도 많이 지쳐보이는 것을 보아 그 역시 상당히 오랫동안 싸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혼란된 와중이라 케리를 발견하지 못한듯 싶었다. "보다시피... 언데드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잠옷바람이지?" "제가 데리고 다니던 묘인족 소녀가 습격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나오느라..." "호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비명소리는 무엇이지? 그 소리에 일어나서 달려오기는 했는데..." "제가 실프를 써서 낸 소리입니다. 좀 무서웠나요?" "하하하. 이거... 자네가 꽤 큰 공을 세운것 같군..." 황태자는 케리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그렇게 말했다. 케리는 쑥쓰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태자는 본래 여자. 자신은 본래 남자.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반대가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여자, 황태자는 지금 남자... "드래곤 들도 엄청난 활약을 해주었더군.... 야습에 대비하지 못하다니, 나의 불찰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군의 시체까지도 좀비화 시켜서 내보내다니... 잔인한 마족 놈들." "아니요. 누구라도 야습에 대비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몬스터가 야습을 해오는 전례가 없다고 들었으니..." "그런데 드래곤들은 어디있나?" 달빛을 받고 있던 라크리마들의 실루엣은 사라져 있었다. 다시 잠자리로 돌아가버린 것일까? "잠이.. 든것 같군요." "그런것 같군. 케리, 자네도 어서 휴식을 취하게나. 아직 적이 남은것 같지만 저 정도 언데드들은 문제 없어. 자네는 일찍 나워서 많이 싸웠으니 들어가 쉬어도 좋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다들 싸우는데 저만 쉴수는 없지요. 하지만... 지금 이 옷차림으로는 좀 그러니까 갑옷을 입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도록 해." 케리는 잠시 숙소 쪽으로 달려갔다. 황태자는 그런 케리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처럼 잠시 지켜보았다. 한편 카렐의 방. 카렐은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채로 누워있었다. 그는 의식을 되찾은 지 오래였지만, 자신의 너무나 처참한 모습 때문에 쇼크를 받아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바깥쪽에 싸우는 기미가 들리자 무의식 중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웃기게 되었군... 이런 꼴이라니..." 한쪽 밖에 남지 않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카렐은 입술을 꺠물면서 혼자말을 꺼냈다. 그때 제이크가 들어왔다. "카렐! 괜찮은가? 휴... 다행이 괜찮군." "제이크... 자네인가? 흥. 이 모습이 괜찮은 것으로 보이나?" "...지금 언데드 들이 쳐들어 왔다고 하는군. 난 나가봐야겠네. 조심하게." "이 모습으로 조심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언데드라... 나랑 비슷한 놈들이군. 죽으나 사나 상관없는 놈들이라니. 하지만 나는 내 몸도 움직일수 없으니 그놈들이 더 낫겠군..." 카렐은 분노와 한으로 가득찬 말을 내뱉었다. "어서 쉬고 있게. 자네 몸으로는 싸울래야 싸울수도 없어." "말 한번 잘했군. 그래 그놈은 어떤가? 그놈들은?" "그놈들 이라니?" "케리 레그너스와 그놈이 데리고 있는 얼간이 드래곤들 말이야. 그외에 기사 같지도 않은 깡패, 루퍼스 왕국 출신 기사와 고양이 한마리도 있었지." "그들은... 지금 아마 싸우고 있겠지." "그런 놈들도 싸우고 있는데 난 대체 뭐야?! 오라 마스터에다가 최강의 기간틱 아머 조종자인 내가 왜 이 꼴이 되어야 하지?!" 카렐의 신세 한탄에 제이크는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재빨리 방문을 나섯다. 그는 병자의 신세 한탄을 듣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지만, 카렐에게는 그의 행동조차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췄다. "...그 도마뱀 년놈들은 나를 일부러 노리고 마법을 쓴거야... 그래 틀림없어... 그리고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다음 생명만 남겨주다니... 이 건방진 놈들... 그리고 케리 레그너스... 너는 내가 전장에서 싸우고 있을때 뒤에서 편히 있었던 주제에 황태자 전하의 총애를 받다니... 크으으. 난 도저히 용납할수가 없다.... 난 절대로 용납할수가 없어... 복수 복수... 복수를 하고 말테다!" 카렐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①- 리치들의 언데드 작전은 가볍게(드래곤들 입장에서는) 격퇴되고 마족들은 다시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이거 어쩌죠? 스승님. 마왕님에게 또 한소리 듣겠는데요." "......뭐 좀비 건은 별로 돈 드는 것은 아니니까 별 문제 없겠지만. 발록 건은 좀 야단 맞겠군...쳇. 그 기생 오라비 같은 마왕. 좀 그럴듯 하게 강한 놈 좀 붙여줄 것이지. 싸구려 몬스터들만 잔뜩 붙여주고서는..." 리치들과 리치로드는 투덜투덜 거리면서 마왕성(으로 개조되어있는 라크리마의 레어)로 돌아갔다. "마왕님. 저희들 돌아왔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꼭 '엄마, 다녀왔어'같은 풍으로 말하는 리치들. 이 마왕군은 군기가 상당히 빠진듯 싶었다. "어떻게 된거야? 그 꼴을 보니까 또 날려먹었지?!" 상당히 가볍고 경박한 목소리. 마왕 답게 흑색 일색의 옷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은 지극히 시원하게 잘생긴 미청년인 그의 얼굴은 어디선가 눈에 익었다. 그야 당연하게 제 17-3화 -에레스 기사 토너먼트 대회- 에 출현했던 마법사(이지만 그 정체는 마족인) 파르민이 마왕 자리에 앉아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다크 팔미룬님. 저희는 좀비들 까지 만들어 가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십니까? 하지만 상대는 기간틱 아머에 드래곤들까지 몰려왔는데 오우거나 오크 정도로 될법한 일입니까?" "으으으... 그래서 발록족 용병까지 고용해서 붙여줬잖아." "상대는 드래곤이 세마리 였다구요. 우리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쳇 젠장할... 돈만 날려먹었군." 파르민, 아니 마왕 다크 팔미룬은 망토 속에서 주판과 장부를 꺼내더니 주판을 두들겨 가면서 계산을 시작했다. "어디보자... 오크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트롤... 일일이 계산해보고 또 계산해봐도 좀비로 만들어 썻다고 해도 졌으면 손해가 만만치 않아. 게다가 발록 용병에다가..." "저기 마왕님. 부하들 보는 앞에서 그런 모습은 좀 삼가해 주십시요. 체통이..." 리치로드는 다크 팔미룬에게 진언을 올렸다. 아무리 봐도 젊은 경리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 태도는 마계의 최고 지배자, 신들에게 대항할 자, 잔인하고 무도하며 이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흥. 멍청하긴... 이봐 리치로드. 시커먼 가면에다가 요상한 디자인의 갑옷 뒤집어 쓰고 '크크크크크'하고 웃으면서 괜히 내려깔은 목소리로 비열한 음모나 꾸미던 마왕의 시대는 지나갔어. 시대는 나 처럼 미청년에 시원시원하고 깔끔한 성격의 마왕이 인기란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돈계산은 좀..."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야.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은 그런 거니까. 마계라고 자본이 침투하지 않을것 같아? 마계에 맨도날드와 론데리아,7-11이 만들어진게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 국제자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런 조선시대적인 양반 주의는 버려야 해! 우리는 실질 실질 실질. 실질로 승부하는 마왕군이다!" 리치로드로서는 뭐가 뭔지 알수없는 비유가 잔뜩 섞이기는 했지만 마왕 다크 팔미룬 님은 실질을 중시한다는 것은 알것 같았다. "저기... 하지만 그 실질을 위해서는 우선 이겨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패배하면 인간계에서 겨우 쌓은 지역기반을 잃어버리게 될텐데요."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 좀 강한 몬스터들을 투입하는게 어떻습니까? 데스나이트라던가 드래곤 좀비라던가..." 누가 리치로드 아니랄까봐 언데드부터 생각난다. "음. 나도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예산 부족이야." "........." "아무래도 저번에 드래곤 녀석들을 요격했던게 큰 타격이었어. 일단 밀어내기는 했지만 잡졸 공중 몬스터가 거의 전멸해 버렸다니까... 어리석은 인간들은 아직 하늘을 나는 법을 대중적으로 개발하지 못해서 공중 전력이 딸리기 때문에 우리 공군력에 미치지 못하는 탓에 아무리 잡졸이라도 날수 있는 놈들은 싸면서도 도움이 많이 되었는데... 한번에 왕창 날려버리고 나니까 손해가 만만치 않아." "그럴수록 더욱 팍팍 투자를 해야죠. 이러다가는 판돈 다 잃게 생겼습니다." "곧 있으면 뜰꺼야. 짐 챙겨둬라." "뜨다니요? 어디로..." "마계. 나 돌아갈란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인간계에 터전을 마련하겠다는 그 포부는 어디로 가시고 갑자기 마계로 돌아가시겠다니...!" 약한 소리를 하는 마왕 앞에서 리치 로드가 언성을 높인다. 하지만 다크 팔미룬은 슬쩍 귀만 후벼내더니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인간계에 거점을 마련해서 내가 이득보냐?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인간계 정복에 혈안이 되어있는 대마왕 들이나 이득을 보겠지. 나 같은 하급 마왕은 별로 손해나 이득 볼 것도 없어. 이 레어 창고에 저장되어있던 드래곤 부품들(?)만 다 처분하고 나면 돌아갈꺼야. 안 그러면 드래곤들의 공격 막아내느라고 몬스터 사오는 값이 소득의 몇배는 들게 생겼어." "마왕님. 그런 약한 소리 하시면 어쩝니까? 저희들은 마왕님도 인간계에 영역을 마련하여 다른 마왕들 보다 높은 자리에 서기만을 손꼽이 기다리며 여태껏 보필해 온 것인데...!" "그게 목적이라면 다른데 가봐. 난 그런거 싫어. 난 우연히 빈 레어가 생겼다길래 그냥 빈집털이 하려고 온 것 뿐이야. 상황이 악화되었으니까 돌아가야지. 암암... 이 정도 돈이면 마계에 있는 성 몇년치 수리비는 겨우 나오겠는데... 쩝. 그래도 격투 마법사 하는게 더 좋았어. 들키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여성 팬클럽에 둘러 쌓여서는... 아 그때는 선물도 많이 들어오고 개런티도 많이 들어왔는데 이게 뭐람..." 아무래도 다크 팔미룬의 목적은 돈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리치 로드는 인정할수가 없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서 생고생 하는 것은 이 철부지 같은 마왕을 보필하기 위해서였는데 본인은 이렇게 뭉기적 대고 있으니... "그래선 안됩니다! 젊은이라면 보다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셔야죠! 자 어서 돈 푸세요! 강력한 몬스터들을 사서 드래곤이고 인간이고 다 작살내는 겁니다!" "너 전에 어떤 마왕 이야기 못 들어봤냐? 몬스터들 엄청나게 사서 인간계에 엄청나게 큰 땅을 마련하기는 했는데 너무 돈을 풀어서 예산 부족으로 자멸한 이야기. 결국 땅을 인간들한테 도로 팔아치워서 겨우 부도는 면했지만 부동산 값이 떨어질때로 떨어져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지. 요즘 부동산 장사는 이득이 안돼요. 믿을건 현금 뿐이야." "정 그러실 것이라면 저희는 여기서 그만둘 껍니다! 암 그만두고 말고요! 퇴직금 주십시요!" "...퇴직금?" 마왕은 피씩 웃으면서 말했다. "리치로드. 네 부하 둘 리치는 어쩔 건데? 그 놈들은 너 따라서 리치된것 뿐이지 정작 실력은 별로 없다는거 마계에서 모를 놈 하나도 없어. 게다가 꼴에 제자였기 때문에 네가 둘을 책임지고 거느리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지? 그런데 너네 셋을 한꺼번에 사느니 리치 셋을 하나하나 따로 고용하는 게 더 이득이라는걸 모르는 놈이 있을까? 난 너네가 불쌍해서 데리고 있는 거야. 저 딸린 두마리를 제껴두고 너 혼자 어디 가서 일자리 얻으면 넌 또 너 따라서 리치 까지 된 놈들을 내팽겨치는 꼴이지. 그럼 너도 마계에서 얼굴 들고 다니기 힘들껄?" "으음....." 리치로드는 약점을 찔리자 식은 땀을 흘렸다. 사실 자신의 두 제자는 자신을 따라서 리치가 된 것일 뿐. 실력상 별로 대단히 강한 리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꼴에 제자들이랍시고 데리고 다닐수밖에 없는데 리치 세마리를 따로따로 고용하는게 더 이득이라는 것을 아는 다른 마왕들은 리치로드와 제자들을 한꺼번에 고용해주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다크 팔미룬은 그런 약점을 잡아서 이들을 저임금으로 악독하게 부려먹고 있는 것이었다. 리치로드는 자신이 떠나고 난 뒤의 상황을 생각해보았다. 만일 자신이 두 제자를 내팽겨 쳐두고 그냥 가버린다면? 두 제자는 마계를 떠돌다가 좀 더 강한 마수에게 잡아먹히거나 할 것이다. 별로 살이 있거나 맛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마계는 험한 곳이다. 별볼일 없는 리치 따위가 살아갈 만큼 만만한 곳은 아니다. 마왕이나 좀 더 강한 존재의 비호가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그렇다고 셋이 함께 돌아다닌다면? 이 경우는 고용해줄만한 마왕이 없다. 다크 팔미룬 보다 더 짠 값으로 고용될 일도 있을 것이다. 할수없었다.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모든 것을 마왕님에게 맡기고 저희는 그저 소처럼 일이나 하겠습니다." "오냐." 말은 그렇게 하지만 리치로드는 속으로 이빨을 뿌득 뿌득 갈고 있었다. 다른 마왕들은 폼 잡기나 허세라도 잘 부려서 헛점을 잡아서 한번 뽕을 뽑을수 있는데 이 놈은 도대체가 빈틈이 없는 것이다. 모처럼 리치가 되서 마계에서 한 자리 잡아보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주인이 이래서야 어디... 다크 팔미룬은 번 돈은 거의 모조리 놀고 먹는데 써버린다. 상급 마왕으로 올라가려고 대마왕들에게 로비하는 일도 거의 없다. 승진 의지가 아예 없는 것이다. '이런 놈에게 잡혀있다가는 조만간 큰일 나겠다. 어떻게 수를 써야...' 속으로 칼을 가는 리치로드 였지만 다크 팔미룬이 그것을 허용할지는 미지수였다. 마왕성에서 벌어지는 이 촌극과는 전혀 상관없이, 인간들은 진격에 진격을 계속하고 있었다. 세 드래곤이 가세한 것은 엄청난 사기 진작 효과와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파죽지세로 마족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사방에서 마족들을 압박해 들어가는 제국군의 기세는 그칠줄을 몰라서 마족들의 운명은 이제 풍전등화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마왕 자신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듯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드래곤은 천하태평 이었다. 어차피 라크리마는 레어에 대한 미련은 거의 버린듯 하고... 이제는 찾으나 마나 라는 심정이 되버린듯 하다. 파치야는 자기 고향이고 집이기도 하니 되찾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듯 하지만(...) 라크레일과 아마레야 어차피 도와주는 심정. 하지만 케리는 라크리마의 집을 되찾아 주겠다는 열의로, 라이오스는 오랜만에 전투에서 활약할수 있다는 열의로 가득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한편, 제국군의 선봉 부대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이상한 것인고 하니 정말로 괴상한 것이었다. 한변의 길이가 백미터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상자였던 것이다. 색갈은 선명한 빨간색, 게다가 핑크색 리본 까지 매어져 있었다. 마법사가 조사해보니 무시무시한 락 마법이 걸려있어서 인간이 여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사실 열수 있을리가 없다. 부순다면 모를까...) 그런데 조심스럽게 조사해보니 거대한 카드가 매달려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표면에는 'To lacrima'라고 써있었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제국에서는 라크리마에게 문의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②- "이건 소포예요." 라크리마는 단번에 그 물건의 정체를 가르쳐주었다. 소포라니? 뭐 확실히 크기만 제외하면 선물 상자 처럼 생긴 것이 사실이지만 왜 소포가 이런 곳에 떨어져 있단 말인가? "음 그러니까... 레어가 마족들로 덮혀있으니까 우편배달부가 아무데나 떨어뜨려 놓고 간것 같네요. 뭐 제가 아니면 열수 없도록 봉인이 걸려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 케리를 비릇하여 그 자리에 모인 황태자와 기사들. 모두가 드래곤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그럼... 저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 거야?" "그야 열어보기 전에는 모르죠." "그럼 어서 열어봐." "예예." 라크리마는 마법을 써서 100미터나 되는 선물 꼭대기로 날아갔다. 거기에는 크기도 좀 크지만 확실히 [카드]라고 불릴 만한 물건이 있었다. 라크리마가 그것을 열어보자 그 안에는 정교한 드래곤 문자로 써있는 거대한 편지가 나왔다. [1301살 생일을 축하하면서 이걸 보낸다. 선물이 늦어서 미안하다. 듣자하니 레어에 도둑이 들었다는 구나. 어쩌니~ 그래서 요번에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마련했단다. 마음에 들기를 바래.-엄마 아빠 로부터-] "여전하시군..." 이렇게 큰 상자를 여는 것은 작은 인간형 신체로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라크리마는 드래곤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그 대신에 분신을 케리 옆에 만들어 보낸뒤... 그대로 선물 상자의 리본을 풀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한 리본이 하늘에 나부끼는 모습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그 당시 인간들의 기술로 이렇게 큰 리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리본을 만드는데 쓰인 천의 질도 어마어마하게 좋았다. 다음에는 상자의 뚜껑을 벗겼다. 사방 1백미터나 되는 거대한 상자인 만큼 뚜껑만 해도 엄청난 크기다. 너무 거대한 물건이 움직이는 탓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것이 현실감 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거인의 나라에 간 걸리버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라크리마는 상자를 뒤집어서 안에 있던 물건들을 쏟아내었다. 와르르르르르~! 천둥치는 소리가 나면서 안에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내렸다. 안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번쩍 번쩍 거리는 은빛 갑옷 들이었다. 표면에는 아름다운 마법 문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갑옷은 인간용이 아니었다. 아무리봐도 그 크기와 형태는 드래곤의 신체에 맞게 디자인 된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이게 뭐야..." 산더미 처럼 쌓인 갑옷을 보면서 다들 할말을 잃었다. 갑옷을 다 털어내고 나니 상자안에서 길이 20미터는 되어보이는 봉제 곰인형이 툭 떨어졌다. "....보다시피 전투용 갑옷이네요." "저런걸 누가 입어?" "...물론 제가 입는 수밖에 없겠네요. 본체상태로... 저걸 만들려고 드워프 몇마리를 족친걸까 대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명의 드워프가 노동해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대로 쌓으면 성도 만들수 있을것 같은 이 초거대 갑옷이 '생일선물'이라니... "설명서에 보니까... 마법적 방어 공격도 철저하고.. 강도나 무게도 괜찮네요. 음... 좋은 갑옷이네요." 라크리마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이 엄청난 크기의 갑옷을 보고 병사들은 물론 화려하고 웅장한 것에 익숙한 황태자와 수도 출신의 기사들 조차 할 말을 잃었다. 뭐 드래곤 용이니 그 정도 사이즈는 되어야 하겠지만... 세 마리 드래곤을 제외하고 이 물건을 앞에두고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인간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갑옷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라크리마가 시동어를 외우자(드래곤 어라서 알아들은 인간은 하나도 없었다.) 갑옷들은 공중을 날아서 라크리마의 온 몸에 정확하게 장착되었다. 갑옷은 라크리마의 머리와 목, 뿔, 몸통과 손 발, 꼬리와 어깨, 비막을 제외한 날개부분을 빈틈없이 감쌓다. 사슴처럼 예리하고 날씬하게 생긴 라크리마가 은빛 갑옷을 걸치자 그 놀라운 아름다움이란... 드래곤들이 현신하면 든든해 하면서도 내심 공포심을 느끼던 병사들 조차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어때요? 주인님..?" "...예쁘다...라크리마..." 언제나 라크리마의 본체 역시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케리였지만 멋진 갑옷을 걸치고 나자 더욱 아름다웠다. 그것에는 모든 사람들도 동의하였다. "잘 됏군. 케리. 이것으로 전력이 좀 더 증강되게 생겼다. 병사들의 사기도 굉장히 높아졌어." "아예... 감사합니다. 황태자님."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케리." "예?" "...저 갑옷을 어디다가 보관하지?..." 확실히 난감한 문제였다. 라크리마가 언제나 현신해서 입고 있는 것도 귀찮은 일이고, 그렇다고 이걸 안 가지고 갈수도 없으니... 천상 병사들이 고생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남아도는 모든 짐말과 소를 동원해서 잘잘한 부품을 운반하고 큰 부품은... 이런 일에 쓰기에는 좀 불쌍한 문제지만 기사들이 기간틱 아머로 운반하게 되었다. 평소 때라면 자재 운반 같은 일에 기간틱 아머가 동원되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자존심 강한 기사들 역시 이번만은 어쩔수 없다고 여겼다. 어쨋건 드래곤들은 그들 보다 훨씬 전력에 보탬이 되는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드래곤의 갑옷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는 것도 자자손손 명예롭게 남길 이야기가 아닌가? 그외에도 선물의 남은 부분은 꽤 문제가 되었다. 20미터 짜리 봉제인형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결국 이것은 라크리마가 병사들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너무나 처치하기 난감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뜯어서 솜과 천을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은 침낭으로 소모되었다.(...) 그리고 종이 상자역시 처치가 곤란했다. 종이상자라지만 내열, 내탄, 방수에다가 엄청난 강도를 부여하는 마법이 걸려 있어서 어지간한 강철보다도 더 튼튼했던 것이다. 결국 이것은 겨우겨우 잘라내서 무려 '종이 갑옷'이 되어 지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갑옷들은 엄청나게 가볍고 튼튼했지만, 드래곤들은 이것들은 '쓰레기'로 취급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종이의 내구성은 거의 100년 가까이 갔기 때문에 저 종이 갑옷들은 훗날 여러곳에서 아티펙트로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리본역시 처치곤란이다. 광택과 아름다움은 물론 그 튼튼함이 비단등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뛰어난 이 리본(마법적 처리가 되어있었던 듯 하다.)은 이리저리 잘려서 전리품 창고에 들어갔다. 후에 궁정에서 이것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다니는 귀부인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이 뜻하지 않은 전리품 때문에 여지껏 계속 파죽지세로 마족들을 밀어붙이고 있던 제국군의 사기는 하늘의 찌를 듯이 올라갔다. 황태자는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최종공격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마족들의 군세는 많이 꺽여있었고 제국군의 사기는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병사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우리 제국과 인간계를 위협하던 마족의 무리를 이제 끝장낼 때가 왔다! 자 그대들이여! 여기까지 와서 망설일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신들과 드래곤의 가호가 있다! 그대들의 부모 형제를 죽이고 제국의 국토를 유린한 저 잔학한 마족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눌 때가 온 것이다! 싸우자! 그대들이여!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썩 뛰어나다고는 보기 어려운 연설문이었지만, 병사들을 독려하는데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최종 결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인간들이 최종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첩보를 하고 있던 소형 몬스터들을 통해서 마왕성으로 전달되어 리치로드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이런... 마왕님에게 보고를 올려야겠군." 리치로드는 서둘러 마왕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마왕의 집무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귀를 대고 들어보니... "아앙. 자기야...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 "후후후. 뭐 어때..." "아아앙... 아아 거기 거기..."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이 소리에 잠시 정신이 멍해지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리치로드는 생명을 버린지 오래된 자. 당연히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기능인 성기능은 마비된지 오래였다. 그는 이 상황에서 노닥거리기나 하고 있는 마왕에게 분노를 느끼며 문을 열어젖혔다. "마왕님! 대체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안에서는 역시나, 마왕 다크 팔미룬이 서큐버스 한마리와 엉켜있었다. 다크 팔미룬과 서큐버스는 리치로드가 들어오자 산통이 깨졌다는 듯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각각 옷을 차려 입었다. "으응. 자기야 나 가볼께... 쳇 빌어먹을 말라빠진 미라 같은 리치 영감. 좀 때를 알고 들어올 것이지." "......" 서큐버스는 리치로드에게 험한 말을 퍼부으면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옷은 입었지만 입으나 마나할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이라 발정기의 몬스터들에게는 해로울 지도 모르는 차림이었다. 물론 리치로드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마왕님.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시는 겁니까? 지금 인간들이 최종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음... 도망가야겠군... 헬 게이트 열 준비 해라." "지금 부터 준비해도 늦습니다. 헬 게이트를 열려면 마법의식만 하루 이상 걸리는데 그러니 결사항전을 해야!" "음... 그럼 좋은 방법이 있지. 몬스터들 내보내서 몸빵 하게 해. 그 동안 우리는 헬 게이트 열고 마계로 돌아간다." 리치로드는 이 천하태평한 마왕에게 이가 갈렸다. "정 그렇게 하실 것이라면 저 퇴직금 부터 챙겨주십시요! 전 더 이상 당신 처럼 야망도 없고 패기도 없는 마왕하고는 일 못하겠습니다!" "오호 퇴직금이라.. 그거 좋은 거지. 그렇기는 한데..." 마왕은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었다. 리치로드는 마왕의 손에 들린 그것을 보자 말라 비틀어진 육체의 눈이 번쩍 하고 빛을 내었다. "...그... 그것은... 그걸 어느 틈에!" 마왕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플라스크였다. 하지만 보통 플라스크가 아닌듯, 마법문자가 사방에 새겨져 있었고, 단단하게 봉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미이라 상태가 된 인간의 심장이 들어있었다. "...리치는 생명을 용기에 넣어서 보관해 둔다지? 네가 퇴직하겠다면 퇴직금은 후하게 쳐주지. 대신에 이건 내가 가지고 당구나 쳐야겠다..." "크윽... 죄송합니다. 마왕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마왕님의 뜻에 따라서 온 힘을 다해서 봉사하겠습니다!" 리치로드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 그 플라스크는 리치로드의 전 생명력이 담긴 중요한 물건. 그것이 깨지면 그 즉시 리치로드는 말라빠진 미이라가 되어서 정당한 법칙의 흐름에 따라 죽음의 세계로 끌려갈 것이다. 어느새 저 마왕이 그걸 가져갔는지는 모르지만 어쨋건 이렇게 된 이상 엎드려서 빌 수밖에 없었다. 다크 팔미룬은 싱글 싱글 웃으면서 플라스크를 빙빙 돌렸고, 리치로드는 그것을 보면서 이를 뿌득뿌득갈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③- 둥 둥 둥 둥 둥... 기상을 알리는 북소리. 작전회의 결과 이전 싸움과는 달리 드래곤들은 공중을 날면서 지원을 하는 폭격기의 역활을 맡게 되었다. 라크레일과 아마레, 라크리마와 케리는 출전하기 전에 비행부대와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그들의 진영을 찾았다. 그리폰 나이트, 와이번 나이트, 페가수스 나이트 등이 비행부대의 중심이었다. 이들 나는 생명체를 타는 것은 어릴 때부터의 엄중한 훈련과 각 기사 가문의 비전에 가까운 훈련법이 합쳐져야 겨우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기에 이들의 자존심과 명예는 보통이 아니었다. "라크리마. 괜찮을까? 다들 엄청난 사람인것 같은데..." "주인님이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주인님은 그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드래곤 나이트. 저를 타는 만큼 그런 하등한 것들을 타는 자들하고는 격이 틀립니다!" "...너를 타다니?" "아. 갑옷의 투구 부근에 작은 생명체를 태울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요. 주인님은 거기에 타주세요." "......." 조금 걱정이 되는 케리였다. 비행부대장인 시글은 용기사, 즉 와이번 나이트였다. 와이번이란 드래곤과 흡사하게 생긴 약 10미터에서 큰 것은 20미터 정도 되는 생명체를 말한다. 덩치가 작고 지능도 떨어지지만 무시할수 있는 몬스터는 아니다. 꼬리 부근에는 강력한 맹독을 가진 독침이 있으며, 브레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약하지만 그들 역시 입에서 화염을 뿜어낸다. 라크리마의 말로는 '드래곤과 와이번의 차이는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 정도다.'라고 했지만, 드래곤이 워낙 대단한 생명체인 만큼 와이번도 만만한 적은 아니었다. 시글은 깔끔한 외모를 가진 꽤 호감이 가게 생긴 청년이었다. 약간 긴 찰랑찰랑한 갈색 머리는 바람에 나부낀다면 정말 멋질것 같았다. "케리 레그너스 님이시죠?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들과 함께 작전을 하게 되었지요. 저희들은 와이번 나이트인데... 케리 님은 드래곤 나이트라니. 드래곤 나이트는 수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전설적인 기사. 만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니저... 말씀을 낮추세요. 전 아직 견습기사고, 여러분들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기사와 견습기사의 차이를 따지기 전에 드래곤 나이트를 존경하는 것이니까요." "예..." 자기 힘으로 드래곤 나이트가 된 것이 아니기에 케리는 약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시글이 케리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처럼 주위의 다른 와이번이나 그리폰, 페가수스들 역시 창공의 왕인 드래곤에게 경의와 공포를 표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드래곤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 작전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지요. 우선..." "네." 비행부대의 작전내용을 간략하자면 요는 드래곤 셋을 중심으로 하여 나머지 비행부대가 쫓으면서 호위를 한다는 것이다. 드래곤 들이 지상 폭격에 전념할수 있도록 공중에서 엄호를 해준다... 가 골자인듯 하다. 과연 엄호가 필요할런지는 약간 의문이지만. 비행부대는 평소때는 후방에 배치되어 있다. 그들이 지상전에 약한 것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기습으로 격멸되기라도 한다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나는 것은 분명히 전투에서도 엄청난 이점이 있다. 육상의 왕자, 기간틱 아머가 존재하는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선 제국군의 본대가 진군을 시작했다. 역시 기간틱 아머를 선두로 하여, 좌우에 중장기병대와 경기병대가 받치고 그 뒤를 중장보병대와 보병대가 이어갔다. 기간틱 아머와 기병대로 먼저 선두를 분쇄하고, 보병대를 뒷받쳐서 끝장낸다는 일반적이지만 강력한 전술이다. 마법사 부대와 궁수-방패 부대는 사이사이에 적당히 끼어서 원호를 노리고 있다. 본대가 진군을 시작한 직후, 비병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맨 처음에는 온 몸에 갑옷을 걸친 라크리마, 그 뒤를 이어서 아마레와 라크레일이 하늘로 올라갔고, 드래곤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나머지 비병대가 뒤이어서 날기 시작했다. 세 드래곤은 나머지 비병들이 쫓아올수 있도록 속도를 적당히 내고 있었다. "...하늘...이란 이런 거구나." 케리는 라크리마의 투구부분에 달린 반구형의 유리로 덮혀진 조종석이 앉아있었다. 몇번인가 라크리마와 함께 날아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조용하게 하늘을 같이 날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케리의 옆에는 라크리마의 분신체가 다소곳 하게 앉아있었다. "멋지죠? 주인님." 라크리마는 케리를 기쁘게 해주려는 듯 살짝 구름위로 들어갔다가 내려왔다.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비행모습에 모든 비병대가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케리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눈앞에 구름이 왔다 갔다 하는 광경이라니... "으응... 정말 멋지다. 라크리마가 그렇게 나는걸 좋아하는 까닭도 알것 같아." 라크리마가 고개를 약간 내리자 지상이 내려다보였다. 마치 장난감 병정처럼, 진군하는 지상군이 보였다. 이렇게 하늘에서 내려다 보자 케리의 마음은 한없이 넓어지고, 지상의 전투가 덧없을 정도로 생각되었다. "하늘이란, 멋진 거구나..." 하지만 케리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리는 없었다. 몬스터들의 선발 부대와 제국군이 드디어 충돌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수의 몬스터라서 금방 분쇄되어 버렸다. 황태자의 머리 위로 드래곤 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들의 그림자가 자신을 수호해 주는것 같아서 황태자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이대로라면 마족을 분쇄하는 것은 별 문제없이 끝날 것이다. 한가지 걱정이라면 본진에 남아있는 카렐 경의 부상이었다. 그가 있었다면 한결 더 든든했을 것인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급박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뭐 뭐야?!" 매복해있던 몬스터들의 습격이었다. 좌우익에서 갑자기 몬스터들의 대군단이 나타난 것이다. 숲속이라서 매복하기 어렵지 않은 지형이었지만 우둔한 몬스터들이라 생각하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뭐야?! 마족들이 매복을 생각해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마족들은 마법은 뛰어나지만, 의외로 전략과 전술에는 무지한 자들이었다. 몬스터들을 부릴 때도 기초적인 대형조차 제대로 짜서 내보내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들의 전략 전술에 대한 무지는 여러차례의 인간계 침략에서 패배로 이어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그들자신 조차 잘 몰랐지만,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강대한 힘 탓일지도 모른다. 좌우간 마족 중에서는 전술가가 드물었다. 매복 같은 기본적인 전술도 결코 잘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마족이 이런 전술을 구사하다니..." "보통 마왕이라면 못하겠지. 하지만 나 다크 팔미룬 님은 신세대 마왕. 전술에 어두운 것은 구세대의 이야기라고." 주먹만한 수정해골을 통하여 투시되는 영상으로 당황하는 황태자의 모습을 지켜보며 다크 팔미룬은 킬킬 대며 웃었다. "대단하십니다. 다크 팔미룬 님. 이런 전술을 구사하시다니..." "마계는 미친듯이 설치는 놈들 밖에 없으니까. 이런 간단한 전략도 먹히더라고, 인간들도 우리가 이런 전술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걸까... 뭐 잘된 일이긴 하군. 어쨋건, 마왕은 뭐든지 잘 알고 봐야해." 리치로드의 칭찬에 다크 팔미룬은 한껏 콧대를 세우면서 말했다. "음 병법서라도 지어서 팔아볼까..." 하지만 다크 팔미룬은 이런 점이 흠. 머리도 좋지만 뭔가 목적의식이 상당히 부족하다. 잔돈푼 생각밖에 안하니까... "저기 다크 팔미룬님 그런데..." "...응. 왜그러나 리치로드." "저 드래곤이 뭔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요." "응?" 라크리마는 마력을 모으고 있었다. 아래 쪽의 상황을 두고 보지 말라는 케리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날개 부분의 장갑판에 새겨진 마법 문자가 빛을 발하면서 인간 마법사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본래 이 드래곤용 갑옷은 특수한 능력이 몇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착자에게 마법을 사용할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물론 드래곤은 본래 마법을 쓸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이런 도구까지 사용하게 되면 정말 상상을 초월한 마법을 사용할수도 있는 것이다. "매직 미사일!!!" 라크리마가 사용한 것은 매직미사일 이었다. 가장 기초적인 공격마법.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라크리마의 양 날개에서 형성된 매직 미사일은 수천 수만발은 되어보였다. 그것이 모조리 땅을 향하여 소나기 처럼 쏟아내렸다. 죽음의 비, 바로 그것이었다. 콰과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수의 매직 미사일이 땅으로 내려꽃혔다. 인간 마법사들은 물론 마법이라곤 하나도 모르는 병사들 조차 기절할 정도로 굉장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매직 미사일 중 빗나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매직 미사일은 라크리마가 정확하게 지정한 대로 몬스터들의 머리만을 정확하게 강타하였다. 병사들 중 맞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무슨 터무니 없는..." 정확하게 적들만 골라서 매직 미사일을 날린다. 그것도 수천 수만발을... 이 상상을 초월한 신기에 가까운 마법에 케리는 전장을 살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이 세기의 마법쇼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라크리마는 먼지털이로 먼지를 털어버린 것 같은 기분으로 홀가분 하게 날아갈 뿐이었다. 갑옷의 힘이 가미되었다고는 하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이 굉장한 힘에 리치로드는 물론 다크 팔미룬 조차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수정해골을 바라보았다. "야 리치로드. 여기 가만히 있으면 어쩌냐! 빨리 가서 헬 게이트 완성시켜!" "왜 나만 가지고 그러세요!" "이 자식... 이거 가지고 볼링해버린다!" 리치로드의 생명봉인항아리를 들고 마왕이 위협하자 리치로드는 할수없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헬 게이트를 만들러 갔다. 헬 게이트는 마계로 통하는 차원이동문이다. "젠장할 저런 무기를 들고 나오다니...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 잘못하면 목숨 달아나게 생겼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④- 라크리마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지상의 제국군의 진격은 더욱 거세졌다. 단 한번에 발사된 수만발의 매직 미사일이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지상전에서의 승기는 확실히 잡혀 있었다. 다음은 공중전이다. 공중의 적은 처음 라크리마 일행이 싸웠을 때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딱히 마땅찮은 바가 없는 비리비리한 몬스터들. 물론 와이번 나이트나, 그리폰 나이트, 페가수스 나이트 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되는 적들이었지만... 드래곤들이라고 해서 학습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이 한번 쓴 전술을 다시 쓰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아마레! 라크레일! 브레스는 아끼고 마법 공격으로 적을 상대해! 난 중앙을 돌파해버리겠어!] [OK~!] [알았어 누나!]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좌우로 산개. 곧바로 매직 미사일에서 플레임 스트라이크 까지 마법을 되는대로 난사했다. 별로 도움은 안되었지만 와이번 나이트 들도 불덩이를 뿜게 하여 지원을 하였다. 페가서스 나이트 들과 그리폰 나이트 들은 가지고 온 석궁을 발사했다. 엄청난 마법 공격이 이어졌지만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플라잉 데몬 들이 마법을 써서 방어해낸 것이다. 또한 임프들도 마법 방어를 펼치고 있었고... 하지만 이쪽의 선제공격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거기에 라크리마가 결정타를 꽃아넣었다. [간다아아아아아아아!!!] "히에에에엑!" 갑자기 라크리마가 스피드를 내서 돌격을 시작하자 조종석(이라기 보다는 관람석)에 타고 있던 케리는 놀라 자지러 졌다. 라크리마의 속도는 청룡열차나 제트 스쿠터와는 비교도 안되는 속도였다. 그런 스피드를 걷고 뛴 적 밖에 없는 케리가 갑자기 느끼게 되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적들은 라크리마가 돌격해오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설마 갑자기 돌격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드래곤 들은 육탄전을 피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작전도 그런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적의 마력과 신력을 소모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상대가 육탄전으로 나와 버리면 말짱 헛거가 되는 것은 자명하지만, 드래곤 들이라고 해서 까진 상처도 안 아픈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육탄전은 그들도 언제나 피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요 며칠 몸이 근질근질 해서 이미 상처 나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콰과과아아아앙!!! 갑자기 공중에서 벼락이 떨어진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지상에 까지 울려퍼져서 병사들과 몬스터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다. 라크리마가 음속의 벽을 뛰어넘는 순간에 발생한 소리다. 이 순간에는 강력한 충격파를 동반한다. 그 충격파와 백미터를 넘는 드래곤이 지나가고 난 후폭풍 탓에 공중의 몬스터들은 가랑잎 처럼 나부꼈다. 갑작스러운 굉음에 고막이 터져서 귀에서 피를 흘리는 몬스터도 무수했다. [제 2파 발사!] 라크레일이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명령을 내렸다. 사실 그는 병정놀이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귀여운(그들 입장에서는) 와이번과 그리폰, 페가수스 들이 주위에 가득 포진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날리는 공격은 결코 병정놀이 따위로 볼수 없는 것이었다. 뭐 드래곤의 병정놀이라면 이해가 가능 하지만... 무차별로 날려된 마법 공격 제2파와 라크리마의 돌진 공격에 비행 몬스터들은 단번에 괴멸. 엄청난 전과였다. 비병대장 시글은 단순히 드래곤들이 참전한 것 만으로 모든 전황이 일사 천리로 뒤바껴 가는 이 놀라운 일을 겪으면서 감탄사를 하나 날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과연 용사 카리온의 후예답군. 엄청난 공을 세웠으면서도 죽을 때 까지 야인으로 남았다는 카리온의 피가 저 사람에게도 흐르고 있는 건가. 케리님에게 라면 용사의 칭호도 과분하지 않아." 비명 지른것 밖에 없는 녀석에게는 꽤 과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비병대의 뛰어난 전과(거의 드래곤들이 해치운 거지만)에 힘잆어 지상의 제국군의 사기도 엄청나게 올라갔다. 몬스터들은 도륙 도륙 도륙 돌파 돌파 돌파 당하여 이제는 거의 마왕성(라크리마의 레어, 라크리마가 마왕이라는 의미는 아님)에 거의 근접해 가고 있었다. 리치로드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아니 그는 움직이는 미라와 같으니 땀을 흘릴리가 없겠군. 새파란 한기를 방출하면서 마왕에게 달려갔다. "마왕님! 큰일입니다! 방위선이 거의 무너지고 있습니다!" "뭐야? 헬 게이트는 아직 다 열리지 않았는데?" "...어쩝니까? 이걸..." "으음... 할수없지. 목숨은 소중하니까, 어쩔수 없다. 이 녀석들은 돈이 너무 들어서 방패막이로 쓰기는 아깝지만... 할수없지. 크윽... 아까워라..." '자기 목숨은 소중한줄 알면서 남의 목숨으로는 당구나 볼링을 치려고 하슈?' 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것을 리치로드는 간신히 참아냈다. "자 이건 제1급 비밀병기들의 열쇠다. 일급 비밀 병기 발동 승인! 이라는 것이다." "예예예..." 목숨을 담아둔 병만 되찾으면 다시는 이놈한테 안 기댄다. 차라리 독립하고 말지. 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리치로드는 열쇠를 받았다. 마족의 1급 비밀 병기.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저 무시무시한 드래곤들을 이겨낼 만한 몬스터가 있단 말인가? 뭐 이겨낼 만한 놈은 없지만 몸빵용이 될만한 녀석이라면 있겠지만... 리치로드는 마법으로 단단히 봉인된 세 우리 앞에서 열쇠를 들고 소리쳤다. "제1급 봉인 해제! 일급 병기 발동 승인! 가라 최후의 병기들아!" 말하면서도 스스로 쪽팔리다고 느끼는 대사였지만, 마법봉인우리를 해체하는 키워드 였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리치로드는 대사를 이따위로 매너리즘 벅벅 묻어나게 만든 마왕을 저주했다. 리치로드는 우리가 열리자 마자 쏜살같이 도망치듯이... 아니 정말 도망쳐버렸다. 이 놈들은 아직 마왕이 길들이기 전이라서 너무나 흉폭한 데다가(길들인다고 갓 태어난 강아지 처럼 되는건 결코 아니지만) 리치로드가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쿠르르르르릉! 막 승기를 잡아가던 제국군들의 발 밑이 굉음과 함께 흔들흔들 거렸다. "어스퀘이크?" 마족이 마법 공격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황태자 였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닥쳐올 테니 다행인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마법 공격 어스퀘이크 정도면 괜찮지... "땅이 흔들린다~!" "지진이다~!" 의미상 하나도 다를게 없는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기간틱 아머에 탄 기사들 조차도 진동을 느끼고 불안해 하였다. 불안은 곧 현실로 닥쳤다. 우르르르르르르! 마왕성 근처의 땅이 왕창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한군데가 아니라 하나 둘 셋 친구들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세군데나 되었다. 크기도 엄청나게 커서 새끼 드래곤이 출입할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새끼라면 드래곤이라도 조심해야 할 마수 들이었다. 한 마리는 거대한 짐승이었다. 눈처럼 새하얀 털로 덮힌 늑대의 머리, 사자의 이빨과 호랑이의 몸, 털이 복슬복슬한 얼핏 부드러워 보이는 꼬리를 가진 짐승이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놀라울 정도로 거대해서 라크리마의 절반 정도는 되어보였다. 마수 베히모스. 몇마리가 모이면 드래곤도 상대할수 있다는 마수였다. 한 마리는 거대한 뱀이었다. 거의 기둥 만한 굵기의 몸. 그러나 그 몸이 다가 아니었다. 이 뱀은 머리가 수십개는 달려 있었던 것이다. 뱀이 내뿜는 독기로 인해 근처를 지나던 몬스터들 조차 독기에 중독되어 쓰러져버렸다. 무서운 맹독을 가진 공포의 마수. 놀라운 재생능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히드라. 한 마리는 거대한 도마뱀이었다. 거의 베히모스와 비슷한 크기였다. 배에는 6개의 다리가 달려 거대한 몸을 지탱하고 있었고, 왕관처럼 보이는 벼슬이 머리에 돋아 있었다. 그 마수가 한번 숲을 내려보자 그 지역의 나무들이 모두 돌로 바뀌었다. 마수 바질리스크. 시선이 미치는 모든 것을 돌로 만드는 마력을 지닌 마수. "으하하하하! 이 세마리 정도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수 있겠지! 리치로드여. 헬 홀을 열어라!" 마왕은 그 광경을 수정해골로 보면서 리치로드를 독려했다. 단 세마리의 마수(보통 마수가 아니지만)가 출현한 것으로 인해서 지상의 제국군 진영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들이 무차별로 공격하는 바람에 몬스터들도 같은 비율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지만. 기간틱 아머 조차도 베히모스 앞에서는 장난감 병정에 지나지 않았다. 베히모스가 한번 앞 발로 내려치면 기간틱 아머고 뭐고 할것없이 게딱지 처럼 박살났다. 베히모스는 중장기병들은 이빨로 잡아올린 뒤 갑옷채로 말과 사람을 동시에 씹어서 집어삼켰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공격이 너무나 흉폭해서 기사들도 미처 손을 쓸수가 없었다. 히드라는 백개의 머리로 맹열하게 독을 뿜어댔다. 그 독에 닿은 것은 몬스터고 인간이고 할것없이 다 죽어갔다. 심지어는 기간틱 아머의 외장갑 까지 부식해 들어갔고, 그 속에 들어있는 기사들을 중독시켰다. 필사의 노력으로 목숨걸고 히드라에게 일격을 가하는 기사들도 나왔지만, 히드라는 작은 생채기 하나도 남기지 않고 재생해버리고 기사들은 헛되이 목숨만 잃었다. 바질리스크의 석화 마력은 엄청났다. 한번 고개를 돌리고 노려보는 곳 마다 흙에서 나무, 기간틱 아머에 말에 인간에 할것없이 몽땅 석화가 되버렸다. 기간틱 아머들은 마법 방어력으로 받아치려 했지만 바질리스크는 눈에서 발사하는 석화마력에 한에서는 거의 10클래스 10서클 급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파직 파직 거리면서 몇번 불똥을 튀기더니 그대로 기간틱 아머들은 안의 기사와 함께 석상이 되어버렸다. 독공 석화 파괴... 이 세마리의 마수가 나타난 것 때문에 제국군의 대열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멀리서 하는 화살공격으로는 생채기도 제대로 낼수 없었고, 바실리스크나 히드라에게 독화살이 통할리도 없었다. 다만... 이것들은 무차별로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살육을 벌였기 때문에 몬스터 부대들 까지 함께 휘말리고 있다는것은 아주 약간 위안거리가 되었다. 이 때만큼만 인간과 몬스터들은 한 마음이 되었다. '살려줘!'라는 심정으로... 한편 다행이도 공중전을 무사히 끝낸 드래곤 세마리가 지상의 참상을 발견하였다. [뭐야? 저놈들... 우리가 없다고 제멋대로 설치고 있네.] [베히모스에 히드라에.. 바실리스크라... 저 정도면 브레스 날려도 될까?] [음... 저 쯤되면 브레스라도 써야곘어. 통채로 박살내버리자!]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⑤- [라크레일! 넌 히드라를 노려! 아마레는 바질리스크! 난 베히모스를 쓰러뜨린다!] [응!] [알았어! 누나!] 세 드래곤은 브레스를 날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드래곤들이 뿜어내는 신력의 흐름에 따라 절대적인 힘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개의 폭풍과 하나의 초열광. 세 마리 마수도 드래곤들의 움직임을 알아내고 인간들을 살육하는 것을 중지하였다. 하찮은 벌레같은 것들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 "크워어어어..." "키에에에엑..." 그러나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해서 물러설 만한 마수들은 아니었다. 제각기 자신에게 부여된 마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베히모스는 드래곤과는 다른 종류이지만 브레스를 사용할수 있었고, 히드라는 백개의 머리에서 독의 힘을, 바질리스크는 석화의 힘을 눈에 모으기 시작했다. 인간과 몬스터들은 이 무서운 대결의 전초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결전에서 그들이 할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나 강력한 힘인가! 드래곤들이 없었다면..." 황태자는 오싹해졌다. 드래곤들이 없었다면 저 세마리 마수에 대항할 방법은 결코 없었을 터... 결국 이 전쟁은 전적으로 드래곤들의 도움에 의해서 이루어진 승리였다. [발사!] "크롸롸롸롸롸뢋!" "크롸롸롸롸뢋!" "크롸롸롸뢋!" 최대의 힘을 집중시킨 절대적인 파괴력을 가진 세발의 브레스가 지상을 향하여 내려꽃혔다. 그 후폭풍에 제국군은 폭풍속의 가랑잎 처럼 이리저리 나동그라졌다. "크에에에엑!" "쿠아아아아!" "키이이이익!" 세 마수도 제각기 자신의 힘을 극도로 모아서 분출시켰다. 베히모스의 흑색 브레스, 히드라의 맹독 광선, 바실리스크의 석화 광선, 이것들에 직격당한다면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의 브레스는 그들을 쉽게 찟어놓을수 있을터, 이것은 그야말로 최종 결전이었다. 6발의 광선이 온 하늘에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지상의 존재들은 벌레처럼 웅크리고 엎드려서 이 원대한 결전을 심장이 터질것 같은 흥분을 안고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살아돌아간 존재가 있다면 말할 것이다. 자신이 본 결전이 얼마나 장대하였는지... 드래곤의 힘이 얼마나 강대하였고, 사악한 마수들은 얼마나 강대하였는지... 뭐 결국 급기야는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삼두룡과 산 만한 베히모스+히드라+바실리스크가 섞인 키메라의 대결로 변질된 전설이 전해져버렸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인간은 흥분상태가 되면 정확한 상황을 기억하기 어려워 지는 법이니 할수없다. 퍼어어어어어엉! 6개의 섬광은 서로 맞부딧쳐서 태양이 폭발한것 같은 빛을 뿌렸다. 승자는 누구냐? 드래곤들이냐 마수들이냐? 하는 장관이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을 무렵 지하의 마왕성에서는... "헥헥...겨우 다했다..." 최종단계에 놓여있는 헬 게이트 앞에서 리치 로드와 두 제자 리치는 헐떡거릴 필요도 없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인간이었을 때의 습관을 쉽게 버릴수는 없는가보다. "너무 늦었잖아. 지금 밖에는 전투가 한창이라고... 쳇! 그래도 이 정도라면 겨우 도망갈수는 있곘군..." 마왕은 택시가 늦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승객처럼 투덜투덜 거렸다. 하지만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우르르르르르르... 천장이 먼지를 흩날리면서 으르렁 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 이거 왜이래?" "...무너지려나 본데요." "빨리 헬 게이트 열어!" 쿠아아아아앙!!! 몇번이나 연달아 터지는 대폭발음에 병사들 중에는 고막이 날아가는 자랑스러운 영광의 상처를 입은 이도 적지 않았다. 다들 확인할 틈도 없이 제 목숨을 지키느라 정신이 없었다지만... 결국 결과는 밝혀질 수밖에 없는 법. 승부의 결과는... "드래곤들이 이겼다!!" 세 발의 브레스는 정확하게 히드라와 베히모스, 바질리스크를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끝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번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 브레스의 힘으로 일어난 폭발의 빛은 히드라와 베히모스, 바질리스크의 사체를 흔적도 없이 쓸어버리고 그 후폭풍은 제국군들도 함께 날려버렸다. 그들은 전보다 훨씬 강력한 폭풍에 가랑잎 처럼 휘날렸다.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중장기사들 까지 말에서 떨어져서 일어날수가 없었고, 기간틱 아머들 조차도 양철 인형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대폭발이 그치자 생겨난 것은 거대한 크레이터 세개. 대지에 새겨진 상처였다. 그리고... 우르르르르르르르.... 크레이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악! 내 집!!!] 그 순간 라크리마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고보니 마수들이 있는 땅 바로 밑은 라크리마의 레어였던 것이다. 마법으로 만들어내서 지반을 다 깍아버린 대공동이 브레스의 충격과 마수들의 난동을 버텨낼리 없었음은... 당연한 말이었다. 실은 해마다 이런 레어 붕괴사고로 땅속에 파묻히는 드래곤이 적지 않다는 소문도 있는데... 드래곤 레어 안에는 마왕성이 있다. 간이로 지어둔 것이기는 하지만... 마왕성에는? 당연히 마왕이 있고, 리치가 있다. 참고로 마법 의식은 ... 강한 충격을 주면 깨지기 쉽다. "으하아아!!!" 마왕은 마력 바리어를 강하게 펼쳤다. 오랜만에 써보는 힘이라 어깨가 뻐근했지만... 낙반들을 다 튕겨내고 지상으로 뛰쳐나올 정도는 되었다. 참고로 세 리치들은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스리... "너넨 왜 바리어 안치는 거야?" "...헬 게이트도 박살났으니 저희도 제 살길을 찾아봐야지요. 함부로 마력 낭비할수도 없고 하니..." "앗! 그러고보니까 헬 게이트 박살났잖아!.... 할수없다. 텔레포트로 도망치자!" "그건 안돼요. 저 드래곤 녀석들이 이 일대에 마력 바리어를 쳐놔서..." 리치로드는 곤란하다는 듯이 드래곤 들을 바라보았다. 방어벽이 쳐져있다면 텔레포트로 도망가는 것은 불가능. 헬 게이트는 이미 부서져버렸다. 땅 위의 제국군들이야 별 위협도 되지 않지만, 드래곤들은 확실히 강적들이다. "할수없군.. 싸워서 돌파하는 수밖에..." "에.. 그럼 혼자서 잘 싸우세요. 저는 이만..." 마왕은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게으름뱅이 마왕이라지만 이 외에는 다른 수가 없으니 할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리치로드가 초를 쳤다. 보통 때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텐데... 갑자기 왜 그러는 것일까? "....뭐?" "땅속에 아직 빈 공간이 있을테니까. 제자들이랑 적당한 게이트 열어서 도망쳐버리죠." "......" "마왕님은 거기서 열심히 싸워주세요. 그럼..." 배반이다. 확실히 배반이었다. "이 자식들 배반이냐!" "당신이 배반하게 했잖아!" 리치로드의 머리 속에 그동안 마왕에게 무시당하고 고통받았던 서러운 나날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길래 부하 관리를 잘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보니 리치 로드는 마왕에게 큰 약점을 잡혀있었던가. "...할수없지... 그럼 이것을..." 마왕은 리치의 생명 봉인 플라스크를 꺼냈다. 감히 자신에게 배반한 리치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웃!" 리치로드는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보니 저것을 아직 뺏지 않았던 것이다. 아아... 잘좀 생각하고 일 꾸미지. 게다가 마왕이 꺼낸 것은 생명 봉인 플라스크 세 개! 뭐 리치로드의 것을 가지고 있으니 나머지 두 제자 리치의 것도 못 가지고 있을리는 없겠지만... 마왕은 세 개의 플라스크를 들고 잠시 생각했다. '이놈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냥 이대로 깨버리면 죽어버릴 테지만, 그건 너무 간단하고... 게다가 드래곤이 셋이나 있는데 이 녀석들도 그럭저럭 전력이 되기는 할텐데. 그냥 죽여버릴수도 없고... 내 힘으로 쓸수 있으면 좋곘는데... 아. 그렇군. 그런 방법이 있었어. 전설의 마도사 다크 슈나이더가 썻다고 전해지는 그 비법이라면...' "앗! 저건 우리들 생명 플라스크!" "어느새 그걸..." 마왕은 리치들이 놀라는 소리를 씹으면서 플라스크 세 개를 입 안에 가득 물었다. 참... 입도 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 개의 올록볼록한 것이 마왕의 식도를 통해서 넘어갔다. "...그 그걸 삼키다니!" "엄청난 목구멍이다!" "아니 그 전에 저걸 삼킨다는 것은..." 리치로드는 경악했다. 설마 저 마왕이 전설로만 알려진 사악한 술법을 쓰려는 것일까? 뭐 마왕이니까 사악해도 별수 없긴 하지만... "당연히 그렇지! 너희들의 생명은 이제 내것! 너희들의 육체와 마력도 나의 것이다!" 마왕은 리치들의 생명 봉인 플라스크를 매개체로 하여 리치들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리치들도 마력을 다 끌어모아 저항했지만, 생명 봉인 플라스크를 빼앗긴 뒤라 마왕에게 흡수당할 수밖에 없었다. 리치들의 몸은 갈갈히 찟어지고, 마력은 검은 기류의 형태가 되어 마왕에게로 빨려들어갔다. "으아아아아아악!!!" "머리는 남겨주지 후후후..." 두 리치의 얼굴은 마왕의 양 어깨에 달라붙었고, 리치로드의 얼굴은 마왕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좀 멋이 없긴 하지만... 이걸로 주문 네개를 동시에 날릴수 있다. 짜식들. 괜히 게기다가 이런 꼴이 되다니... 훗. 마력도 그럭저럭 쓸만하군." 리치들의 눈과 입은 마법의 실로 꿰메져 봉인되어 버렸다. 세 리치를 흡수한 마왕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없었다. 마치 악마같았다.(악마지만) 이제 그들은 마왕의 수족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마왕이 죽을때까지 그에게 봉사하게 된 것이다. 불사를 꿈꾸던 악의 마도사 들의 허망한 최후였다. "이제 드래곤 녀석들을 상대하러 가볼까...하앗!" 다크 팔미룬은 브레스의 폭발로 엉망이 되어버린 제국군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제국군은 얼마가 몰려온다고 해도 그의 관심꺼리가 되지 못했다. 다 쓸어버리지는 못하지만, 도망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지금 그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세 마리 드래곤. 그들 뿐이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왕(魔王) ⑥- 자아 드디어 최종결전이다. 아래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천공에서는 세 리치를 흡수하여 최강의 몸(까지는 아니지만 꽤 강해진)이 되버린 마왕과 세 마리의 드래곤들의 대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드래곤과 마왕의 4:3 태그매치 최강 타이틀 결정전, 최종결전. 드래곤과 마왕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승패를 결정하기 위해 맞붙는 것은 아주아주 희귀한 일이리라... 이 세계에서 방송된다면 국가대표 축구 한일전을 능가하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릴 경기겠지만, 아쉽게도 이 시대에는 텔레비젼이 없을 뿐더러... 이 초유의 대경기는 공중의 아무것도 없는 야외 링에서(...) 아무 주최자도 없이 진행되어 버린 터라 입장료는 정말 놀랍게도 무료! 였다.(그러나 목숨이 위험하다는 단점이...) 참고로 승패율 계산을 해보자면... 불행히도 마왕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리치 세마리가 힘을 합쳐봐야 드래곤 한마리 족치기도 어렵다. 그런데 상대는 드래곤이 세마리, 게다가 하나는 장비빨로 엄청난 파워업을 한 뒤였고, 브레스는 아까 한발 날렸다지만 아직도 펑펑 남아돈다.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마왕 쪽이 좀 쪼달리는 것은 어쩔수 없다. 장비면이나 숫적인 면에서나... 이쪽의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그나마 입이 네개라는 것 뿐이다. 하지만 입이 세개 더 붙어서 주문 4개를 동시에 외울수 있다고 해봐야 승산이 별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네개로 엄청 강력한 주문을 네발 날린다고 해도 저쪽도 입이 세개니 막아내는게 그렇게 어려울 리는 없다. 리치 세마리를 흡수해서 좀 높아졌다지만 리치들의 마력이 그렇게 까지 높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순수하게 마력 대결로 세마리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정도로 다크 팔미룬은 엄청난 마왕이 아니다. 게다가 장비면에서도 다크 팔미룬은 0점. 특별히 숨겨둔 장비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서 저쪽은 초마법으로 강화된 궁극방어무기를 장착한 무시무시한 스톰 드래곤이 한마리 있다. 역시 어떻게 봐도 마왕이 밀린다. 음 그렇다. 확실히 밀리는 것이다. 자 그럼 우리들의 마왕 씨는 이 사태를 어떻게 넘어갈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만 다크 팔미룬은 나섯다. 살기 위해서... 드래곤들을 쓰러뜨리고 마계로 무사히 귀환하여 서큐버스들 엉덩이 두들기면서 노닥거릴려고(이유가 참 추잡하다.)... 모릇 마왕급 마족이란 풍기는 위엄이 장난이 아닌 법이다. 다크 팔미룬도 마찬가지. 평소때는 노닥거리느라 촐랑거리다가 위엄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는 양아치 레벨이지만, 싸우려고 맘 먹고 나오면 천성적으로 위엄이 있는 몸이다 보니 한 위엄가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리치들을 흡수하여 배와 양 어깨에 눈과 입이 봉인된 리치들이 붙어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악의 대마왕. 미모면에서는 마이너스 지만 악의 카리스마 면에서는 대폭 플러스 되는 요소였다. 이렇게 하고 라크리마들 앞에 나타난 다크 팔미룬은 '오오 저놈이 최종보스겠군!'이라고 할 만한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저기서 변신 한번만 하면 완벽한 최종보스! 하늘에는 어두운 구름에다가 번쩍거리는 푸른 번개의 연출까지 더해져 있다. 아아 이러다가 싸움 나면 조만간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기세! [저놈이 대빵인가 보군!] [네가 여기 짱이냐? 너 오늘 죽은줄 알어!] [잘도 우리 누나 집을 빼앗았구나! 벌로 목숨을 내놔라!] 사실 이들은 면식이 있는 사이였지만... 그들이 만났을 당시 다크 팔미룬은 워낙 촐삭되었던 탓에 마왕의 면모라고는 별로 찾아볼수 없고 완전히 촐랑이 잡마족이었지만, 지금의 다크 팔미룬은 무시무시한 악의 보스의 풍모를 하고 있다 보니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뭐 워낙 이 드래곤 들이 정신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다크 팔미룬은 '크크크크크'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릇 '크크크크크'하는 웃음소리는 '저놈 못된놈!'이라는 느낌을 30%정도 증가시켜주는 웃음소리로서 예로부터 판타지 계에서 암흑계 인물은 '크크크크크'하고 웃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 만큼 그도 '크크크크크'를 하여 카리스마 도를 높이려는 듯... 했지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러분. 저는 단지 지나가던 리치들을 잡아먹었을 뿐인 평범한 마왕에 불과하답니다." ...갑자기 최대한 알랑방구 뀌는 목소리로 정중하게 말하는 다크 팔미룬. 아니 이러려고 여기까지 나온 거냐? [...무슨 소리야? 네가 여기 대빵 아냐?] "저는 지나가던 평범한 마왕에 불과하다니까요." [마왕이 왜 이런 데를 지나가!] "아 사실은 말이죠..." 라크리마 머리 위에 타고 있던 케리가 다 황당해 할 정도로... 다크 팔미룬의 대사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최종보스가 전투 들어가기도 전에 갑자기 이벤트로 죽어버리고 엔딩이 나온다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날부로 그 게임 제작사 홈페이지에는 악의가 가득 담긴 말로 도배가 잔뜩 될 것이다. 발매일당일날 부터. "에 저는 사실... 이 리치들에게 저 마수들을 팔아치운 마왕입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대금을 떼어먹고 인간계로 도망을 쳐버렸지 뭡니까. 아 그래서 저는 이놈들에게 대신에 피와 살과 마력으로 대금을 받아낸 것이고..." [그러니까 그 리치들이 최종보스였단 말이군...] [너무 싱거운 결말인데... 고작 리치들이 최종보스라니...] [그 발록도 빚을 내서 산 용병일까?] "아아 그놈들은 아주 악질인 채무자로 마계에서도 유명하기 짝이 없지요." 갑자기 긴장감이 팍 하고 식어버린다. 하늘도 기분 잡쳤는지 휘몰아 치던 먹구름 들은 어느틈에 휭 하니 사라져버리고, 개그틱한 분위기에 딱 걸맞는 반짝이는 햇살과 새파란 하늘에 몽실몽실 솜사탕 같은 구름만이... "예에. 좌우간 채무자들을 잡아서 족쳐서 잡아먹어서 댓가로 이렇게 제 몸에 봉인해서 저에게 봉사하게 한 뒤, 저는 마계로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드래곤 여러분들꼐 혹시 뭔가 폐를 끼치지는 않았나요?" [그놈들이 내 레어를 강탈해서 지금까지 다 떄려부수면서 싸웠어.] "아 그러셧군요. 자 그럼 여기다가 나중에 전화를 하십시요. 여기가 마계 피해 소송 사무소인데요..." 마왕이 적어주는 곳의 번호는 잉큐버스 호스트로 가득찬 호스트바 주소였다. 이런데다가 전화를 걸었다가는 잉큐버스들이 서너다스 정도는 몰려올텐데... 진지하게 받아드는 라크리마가 위험하다! 케리 뭐하는 거냐 정신차려라. 참고로 저 호스트 바는 마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가 소시적에 근무하기도 했다던가. 그건 그렇고, 리치로드가 들으면 아주 경악하다 못해 죽어버릴(아 이미 죽었나)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다. 사실 저 리치로드는 두 제자를 거느리고 살면서 아주아주 성실하게 벌어먹고 사는 리치로드 로서, 만화책 대여점도 연채료 물지 않고 꼬박꼬박 가져다 주는 리치로드로 마계에서는 아주 유명하다.[...에 그런게 정말 있나?] 본시 리치의 속성은 악이 아니다. 이들은 보통 지혜를 추구하여 리치가 된다. 당연히 (리치 자기 자신의 생각으로는) 선한 리치도 있을수 있다. 다만 사고 방식이 죽은 상태로 오래 지내고 있다보니 상당히 비 인간적이 되어버렸고... 또 외모가 상당히 흉물스럽다 보니 인간계에서는 마물의 일종으로 여겨져서 퇴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사실 리치가 될 정도로 매드 위저드(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마법사 버젼)인 자가 애당초 정상인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좌우간 마왕은 이렇게 전화번호 하나 적어주고 일을 끝장내버리려는 듯 했다. 이대로 마계로 튀어버리면 드래곤들이 마계까지 쫓아갈수도 없으니 만사 OK다. 아아 정말 머리 잘썻다. 잔머리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다. 최종보스라고 해서 굳이 용자파티와 싸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리고 평화적으로 일을 마무리 하다니... 하지만 이대로 끝내버리면 라크리마 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여지껏 잘 때려부수고 왔는데 여기서 강대한 적을 만나지도 못하고 엔딩이 나오다니... 이래서야 보람이 너무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읽어준 독자들에게도 할 짓이 아니고... "어 그러고보니... 당신 파르민 아냐?" 케리가 눈치를 채버렸다. 역시 위엄차리고 있을때는 못 느꼈지만, 알랑방귀 뀌면서 달라붙는 탓에 누가 생각났다... 싶었는데 파르민과 닮았던 것이다. 게다가 마족=마왕 이라는 식으로 연상작용까지 일어났다. 역시 아무래도 좀 위엄있게 나갔어야 했다. 지나치게 알랑알랑 거리면 손해보는 때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위엄있게 나갔다가는 건방지다고 공격당할까? [앗! 너 그때 그 마족!] [그럼 넌 악당이곘군!] [이 자식 날 잡아가려고 했지! 이놈 오늘이야 말로 끝장을 내주마!] 다시 마왕의 대위기. 본래 드래곤들이란 흉폭하기 짝이없는 자들이며 원한 살 일이 적다 보니 원한은 끝까지 잊지 않는다. 뭐 도움 받은 일도 끝까지 잊지 않고 사랑도 끝까지 안 잊는 성격이지만 지나가던 마족 얼굴 같은 사소한 것은 좀 잊어먹기도 하는 걸까? 뭐 좌우간 케리가 말하자 마자 세 드래곤은 입을 맞추어서 외쳤다. 사실 이들의 기억 속에는 파르민의 모습도 약간 희미해진 상태인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마레를 잡아갈 뻔한 마족'->'아마레를 거의 잡아갈 뻔한 마족'->'아마레가 잡혀갈뻔 했는데 사투 끝에 구해낼수 있었던 ...'이라는 식으로 기억의 혼동 작용이 일어나 이들의 머리 속에 파르민은 거의 '죽일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지금 외모는 최종보스. 중간보스인 베히모스, 히드라, 바질리스크도 격파한 직후다. 브레스가 남아돌아서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잘됐다 묵은 원한까지 합쳐서 박살내자! 라는 식이 되어버린듯 하다. 마왕으로서는 불행한 사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지만 마왕도 이대로 당하고 있을리가 없다. 이대로 싸우면 질 확율이 이길 확율보다 높다. '패배할 도박에 거는 것은 내 신조가 아니다!' 마왕은 최후의 최후까지 알랑방귀를 뀌어보기로 했다. "아 무슨 소리십니까... 전 그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그의 형..." [헛소리 하지마!] 라크리마의 거친 외침이 들려왔다. 알랑방귀는 안 통할것 같다. 당장에라도 브레스가 날아올 분위기. 이렇게 된 이상... 사탕발림은 집어치우고... 허세작전으로 나가는 마왕이었다. "크하하하하! 난 사실 마왕 다크 팔미룬이었다! 어떠냐. 이 세 리치까지 봉인한 나의 위대한 마력 앞에 감히 맞서보겠느냐! 참고로 나는 이 네개의 입을 사용하여 네개의 고위 주문을 외울수도 있다! 자자 무섭지 무섭지?" [으헤헤 저거 바보아냐?] 마지막의 무섭지 무섭지는 안 넣는게 좋았을 것을. 게다가 너무 살랑살랑 거렸던 탓에 지금 갑자기 위협해 봤자 하나 통하지도 않는다. 드래곤들은 오히려 배를 잡고 웃으려는 분위기다. 원채 알랑거리기만 좋아했던 탓에 위엄 부리기는 잘 못하게 되버린 것이다. 아아 이것도 그의 불행한 운명. 결국 다크 팔미룬 씨는 싸우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는 다 날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6화 -마법전 ①- [나부터 간다아!] 골드 드래곤, 아마레의 레이져 브레스가 허공을 갈랐다. 마왕은 이것을 막아볼 생각은 없는지 블링크 마법을 사용하여 브레스를 피해내었다. 잠깐 사이에 마왕의 몸이 짧은 거리를 순간 이동하여 브레스를 피했다. 레이저 브레스가 워낙 빠른 스피드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폭풍이여 휘몰아쳐라! 나의 적을 발을 묶어라!] 라크레일은 태어날 때부터 스톰 드래곤에게 잠재되어 있는 힘인 폭풍을 제어하는 신력을 발동시켰다. 대기의 흐름이 쇠사슬 처럼 마왕을 속박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렇게 되면 비행 마법으로 공격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 해진다. 뭐 순간이동으로 피하면 될테지만...움직임이 봉쇄된 마왕은 몸에 봉인되어 있는 리치들의 입까지 사용해서 네개의 마법을 동시에 외우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이렇게 나오면 나도! 헬 파이어!" "네이팜 데스!" "블래스트 붐!" "파이어 레인!" 강력한 화염마법 네 개가 동시에 뭉쳐서 거의 하늘을 불바다로 만들다 시피 하면서 세 드래곤들을 향하여 날아갔다. 화염 속성을 지닌 레드 드래곤 이라면 이런 공격도 별 문제가 없겠지만... (뭐 헬 파이어 정도에는 데미지를 받을지도 모르겠군) 스톰 드래곤과 골드 드래곤은 화염에도 분명히 데미지를 입는다. 음.. 하긴 이 자리에 레드 드래곤이 있다면 방패로 써버릴 정도로 악랄한 것들이기도 하지만. [그까짓 마법 따위!]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라!!!!!!" 마왕의 화염마법에 대항하여 라크리마의 브레스가 터져나왔다. 그녀가 발한 스톰 브레스의 위력은 화염을 눌러버리고 산산히 공중에 흩어버린 뒤 마왕을 향하여 날아갔다. 마왕도 이것만은 피해낼 타이밍을 놓쳐서 방어 마법을 외워야 했다. "룬 실드!" "루나틱 실드!" "안티 매직 쉘!" "포스 필드!" 4중의 마법 방어막이 쳐져서 마왕 다크 팔미룬의 몸을 브레스에서 지켜냈다. 마력에 있어서는 드래곤에 필적한다는 마족이다. 특히나 마왕급이 전력을 다해서 방어막을 친다면 브레스도 어렵게 나마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았다. 특히 세개의 리치 머리가 추가된 것이 상당한 이득을 주고 있었다. 방어마법이건 공격마법이건 사중으로 날리면 드래곤 세마리에 대적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마왕 자신의 마력 용량이 받쳐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으으 짜증나...] "라크리마. 침착하게 공격해." [알았어요. 주인님.] 케리는 라크리마가 또 저번처럼 침착함을 잃어서 마구 날뛰다가 낭패를 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평생 드래곤의 브레스가 실패하는 일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그들과 상대할 만한 적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레스가 실패하니 라크리마가 짜증나는 것도 당연했다. "하하하하하! 너희들의 힘이 겨우 그 정도 밖에 안되는 거냐! 너희들을 잡아다가 내 애완 도마뱀으로나 써야겠군!" [시끄러워 이자식아!!!]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 마왕의 도발에 아마레는 브레스로 응답했다. 한번 잡혀갈 뻔한 일이 있어서 그녀는 그런 놀림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듯 했다. 금의 섬광이 마왕을 꿰어놓을 것 처럼 날아갔으나 결과는 방금전과 똑같았다. 마왕은 블링크로 브레스를 회피해냈다. 레이저 브레스는 위력과 관통력은 여느 드래곤 못지 않았고 특히 스피드가 빠르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공격 범위와 시간이 너무 좁다는 단점 탓에 블링크로도 피해낼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 스톰 드래곤의 경우는 폭발형 브레스인 탓에 블링크로 피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지만... 게다가 마왕은 점점 세개의 입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블링크가 끝나자 마자 마법 공격으로 반격을 가해온 것이다. 리치 머리 하나는 블링크로 사용했기 때문에 마왕 자신의 입과 나머지 두개의 리치 입을 이용해서 ... "이번에는 얼음이다! 절대 0도의 냉각 마법! 테스타먼트!" "블리자드 스톰!" "프로즌 노바!" 테스타먼트는 절대 0도의 파동을 발사하는 마법이다. 과연 이것에 대항하는 것은 드래곤으로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셋은 세 방향으로 흩어져서 백은의 냉동파를 피해내었다. 하지만 블리자드 스톰과 프로즌 노바는 광범위 공격마법이라 회피하는 도중에도 눈보라에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으 추워!" [아. 주인님 괜찮으세요?] "아냐 라크리마가 더 추울텐데..." [전 본체라서 별 상관 없어요.] 엄청난 한기 탓에 콕핏 안에 있던 케리에게까지 냉기가 스며들었다. 한겨울의 바위 위에 앉아있는 것 처럼 냉기가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케리는 라크리마는 분명히 자신보다 더 추우리라 생각하여 특별히 조치를 취해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다. 사실 라크리마는 본체 모습인데다가 방어용 갑옷 까지 입고 있는 상태니까 썩 춥지 않은것 같았지만... 그런데 드래곤들이 세 방향으로 날아가버리자 당황한 것은 마왕 쪽이었다. 드래곤들이 뭉쳐 있을 때는 한쪽으로만 공격 마법을 날리면 되니까 별 상관없었지만, 상대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면 전부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하지만 상대적으로 드래곤 들은 어느 쪽이건 자신을 일격에 쓰러뜨릴 만한 위력의 브레스를 지니고 있었다. "우선 저 골드 드래곤 아가씨는 이미 브레스를 다 소모 한것 같으니까 상관없어. 브레스가 남은건 스톰 드래곤 아가씨와 도련님 뿐인데..." 결국 두 방향으로 동시에 공격을 날리기로 결정한 마왕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사령이여 나의 명령에 따라라! 포비든!" "본 스피리트!" "프로미너스!" "애시드 드랏카!" 화염폭발과 독무가 라크레일을 향하여 날아갔고, 수없이 많은 사령의 무리가 라크리마를 향해서 날아갔다. [더블 스펠! 포스 필드! 안티 매직 쉘!] 라크레일은 두가지 방어마법을 한꺼번에 발동 시켜서 프로미너스와 애시드 드랏카를 막아내었다. 케리는 반투명한 해골들이 시꺼먼 독기와 지옥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은 귀곡성을 울리며 몰려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오싹 해졌다. "으엑!? 저게 뭐야?" [이 근처에 떠도는 사령의 무리를 모아서 저에게 발사하는 거예요. 여기는 전쟁터니까 사령의 위력도 더욱 세지게 마련이지요! 브레스로 밀어 붙여 버릴까요?] "아냐 라크리마. 브레스를 함부로 낭비하지마. 녀석에게 결정타가 될 것은 그것 뿐이잖아." [알았습니다. 그럼 회피합니다아!] 라크리마는 꼬리를 물 것 처럼 날아오는 사령들을 피해 갑자기 지상 가까이로 저공 비행을 시작했다. 사령들은 끈질긴 기세로 라크리마를 쫓아서 지상 바로 위 수십미터 까지 내려와 추격했다. 지상의 병사들은 겨우 몬스터들을 거지반 해치우고 숨을 돌리고 있었던 차에 스톰 드래곤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몸이 폭풍을 일으키며 지나가자 멍 하니 라크리마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 뒤를 쫓고 있던 사령의 무리들이 가까이의 신선한 인간들을 발견하자 들러붙기 시작했다는 것이지만... "으아아악!!!" "뭐 뭐야 이게?!" "살려어어어" 사령의 무리들은 보통 무기로는 베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곳곳에서 대혼란이 벌어졌다. 사제들과 마법사, 기사들이 총 동원되어 사령들을 쓰러뜨려야 했고, 인간들의 피해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라크리마는 마치 귀찮은 벌레를 털어버리듯이 인간들 사이에다가 사령들을 흩어놓고 간 것이었지만 공중전의 진상을 잘 모르는 병사들은 그저 마왕의 공격이 우연찮게 자신들을 덮친 것이라 생각하고 마왕에 대한 분노를 불태워 더욱 열심히 드래곤들을 응원했다. [저 머리! 마법 네개를 단번에 쓸수 있지만 않으면 이렇게 애먹지도 않는데...] "라크리마. 저 머리는 리치의 머리라고 했잖아. 그럼 혹시..." 케리의 머리에서 한가지 착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상대의 일부가 언데드라면, 확실하게 먹혀드는 전법이 있었다. [과연 주인님! 멋져요! 그거라면 충분히 통할 꺼예요!] 라크리마는 즉시 케리의 생각을 눈치채고 한가지 마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생명의 법칙을 어긴 자여! 흙으로 돌아가라! 턴 언데드!] 하얀 광구(光球)가 유성처럼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마왕을 향하여 날아갔다. 턴 언데드, 언데드를 흙으로 되돌려 버리는 마법이다. 약하게 먹힌 경우라도 언데드들은 제 힘을 잃고 쓰러지거나 휴식을 취해야 하며, 완벽하게 먹히면 아예 먼지가 되어버린다. 드래곤의 엄청난 마력으로 턴 언데드를 사용할 경우라면... 퍼엉! "으앗?! 이건?" 마침 라크레일, 아마레와 공방을 벌이고 있던 마왕은 라크리마 쪽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다가 턴 언데드에 정통으로 얻어 맞고 말았다. 물론 마족이라고 해도 살아있는 신체인 그에게 턴 언데드는 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세 개의 리치 머리는 달랐다. 수백년을 살아왔던 리치들의 머리는 그 간의 시간의 흐름이 그대로 밀려오는 것 처럼, 부스럭 거리면서 썩기 시작해 순식간에 검은 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으아아앗! 이건 턴 언데드? 아뿔사!" 게다가 리치를 흡수하여 얻었던 마왕의 마력도 일부 소실되어 버렸다. 말 그대로 치명타! 리치들을 흡수해서 마력을 증강시키고, 네개의 마법을 단번에 쓸수 있도록 세개의 입이 더 생긴 것 까지는 좋았지만 언데드에게는 강점 뿐만 아니라 약점도 있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데드를 흡수함으로서 자신 역시 언데드의 약점을 어느 정도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도... 리치는 다른 언데드에 비해서 약점이 거의 없는 편이지만, 턴 언데드는 확실히 리치에게 쥐약인 마법이다. 물론 그것을 막아내는 마법도 존재하고, 마왕이 그점에 신경만 쓰고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수 있었을 테지만 본래 리치가 아닌 마왕이 그런데 까지 신경이 갈 리가 없었다. 좌우간 네개의 마법을 동시에 쓸수 있던 장점과 상당한 마력을 잃어버린 탓에 마왕의 전투능력은 단번에 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제기랄!" 단 한방으로 전세 역전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7화 -마법전 ②-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버린 마왕 다크 팔미룬은 좌절했다. 대체 이것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리치들이 마력을 흡수하고 그들의 입을 빌어서 네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함으로서 드래곤들과 겨우 대등한 싸움을 벌일수 있었던 것인데 그 장점이 사라지고난 뒤의 평범한 마왕으로서는 세마리나 되는 성룡을 동시에 상대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또 다시 최대한 허세를 부려보는 수밖에 없다!' "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웃다니...] [혹시 무슨 다른 방법을 숨겨둔건가?] [설마....] 대위기라고 할수있는 현 상황에 걸맞지 않게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다크 팔미룬. 그 바람에 드래곤들은 잠시 공세를 멈추었다. 상대가 뭔가 대사를 하려고 하면 멈춰주는 것이 싸움예절이다. 물론 그래야만 한다는 강제규정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이걸로 나를 쓰러뜨릴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마라! 나는 대마왕. 따라서 너희들이 상상도 못할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해! 리치들의 머리는 그냥 여흥이었을 뿐이야!" '...제발 속아라 제발...' [뭐야 저거? 또 무슨 일을 꾸미려고?] "나의 숨겨진 힘을 전부 끌어내서 싸워주마! 봉인해제!!!" 봉인해제. 힘이 모종의 이유로 봉인되어 있다던가 하는 악당. 혹은 우리편이 사용하는 것으로 봉인이 해체된 뒤에는 보통은 몇배로 강력해 지는 것이 통례이다. 물론 다크 팔미룬의 경우는 봉인되어 있는 힘 따위 쥐뿔도 없지만 그냥 허세로 해보는 것이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 마왕의 몸 주위에서 천둥번개가 치면서 시꺼먼 안개가 뭉개뭉개 피어났다. 괴기스러운 사운드 까지 배경으로 깔리는 그 모습으로 볼때 확실히 뭔가 대단한 것이 있어보이기도 했다. 뭐 실제로는 모조리 '일루션'(환영, 환각을 만드는 마법)이었지만... 마왕은 대사까지 보태어서 좀 더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으하하하하하. 나의 숨겨진 암흑 파워를 모조리 이끌어 내서 너희들을 죽여주마!" "라크리마. 어쩌지? 저 녀석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으으음... 어쩌죠? 지금보다 더 세지면 곤란한데...] 그런 대사를 하면서 세 드래곤은 '변신중에는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법칙을 충실히 지켜주고 있었다. 물론 지켜야 할 필요는 그 어디에도 없다. 어두운 구름이 다크 팔미룬의 모습을 감추었다. 하지만 아직 번개가 주위에 번쩍이는 것이 변신이 아직 끝난것 같지는 않았다. 한동안 드래곤들은 숨을 죽이고 마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 것인가? 얼마나 무서운 모습이 될 것인가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구름이 서서히 옅어지고 번개가 잦아들 무렵... 다크 팔미룬의 모습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에? 어디로...?] [....설마 투명해진 건가? 투명해진다고 해도 우리 드래곤은 적외선 시각이 있으니까 볼수 있는데...] [....녀석이 전설의 괴물 투명 마왕인가? 투명 드래곤에 필적한다는 힘을 지닌...] 드래곤들은 당황했다. 변신한답시고 폼을 잔뜩 잡은 상대가 모습을 감추다니. 이건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가? "도망친거야!!!" [예? 주인님?] "틀림없어. 방금전에 허세를 잔뜩 부린 다음에 우리들을 속이고 도망쳐버린 거야! 변신 도중에 그냥 공격해버려야 하는 건데..."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 자식이 우리를 속여어어어어어!!!]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지상에서는 상공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의 몰랐지만, 분노한 드래곤들이 내뿜는 드래곤 피어는 지상의 병사들 까지 공포에 떨게 하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몬스터들은 이미 거의 전멸해 버린 뒤였지만 끝나지 않는 상공의 전투는 계속 제국군의 피해를 확대시키고 있었다. 결국 케리가 피해 확대를 멈추기 위해 나섯다. "자자 라크리마. 진정하고... 어서 찾아야지. 아직 늦지는 않았어! 그렇게 멀리는 못갔을 꺼야." [예에. 얘들아! 어서 주위를 뒤져봐. 도망쳤다고 해도 그 정도 시간으로는 그렇게 멀리 도망칠수는 없을 꺼야!] [제각기 흩어져서 찾자!] [응 누나들.] 세 드래곤은 세 방향으로 흩어져서 다크 팔미룬을 찾아서 날기 시작했다. 곧 필사의 추격전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 였고, 드래곤들에 비하면 마왕이 날아가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데다가 텔레포트 까지 미리 쳐둔 결계에 의해서 봉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왕은 라크리마가 날아간 방향 쪽에서 발견되었다. [거기서라아아아아!] "이런! 이렇게 빨리 눈치채다니!" 마왕 역시 목숨이 걸린 문제인 만큼 온 마력을 비행주문에 투입하여 필사적인 속도로 날았다. 하지만 드래곤 중에서도 빨리 날기로 유명한 스톰 드래곤에 비할수 있으랴? 점점 차이는 좁혀지고 있었고 오래 가지 않아서 따라 잡힐 상황이 되었다. 마왕은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젠장. 이대로 가다가는 잡히고 만다. 이대로 도망치는 것은 좋은 계략이 아냐. 어쩌면 좋지? 뭔가 좋은 방법이...' 궁지에 몰린 마왕은 자신이 가진 잔머리란 잔머리는 모조리 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도망치다가는 텔레포트 금지 결계 구역을 벗어나기도 전에 잡혀서 갈갈히 찟겨서 죽게 생겼으니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지! 마지막 수단!' "죄송합니다!" 마왕이 갑자기 공중에서 멈추더니 뒤로 돌아 엎드려서(공중에서 엎드리는게 우스꽝스럽기는 했지만) 파리처럼 싹싹 빌기 시작하자 놀란 라크리마는 허둥지둥 동체를 멈추었고, 겨우 충돌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멈출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 요번에 딱 한번만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앞으로 결단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저얼대로~ 다시 건방진 수작을 부리는 짓은 없을 것입니다. 결코 없어요! 암 절대 없지요! 제 심장을 내가셔도 좋아요! 아 심장을 내가면 제가 죽지요. 아 그 정도로 할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예! 레어는 돌려드릴께요! 아니 돌려드리는 정도가 아니라 제가 가진 보물 다 드릴 테니까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있는말 없는말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해 가면서 마왕은 비굴하게 빌어댓다. 그 광경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라크리마는 그 큰 입을 멍하니 벌리고 공중에 멈춰있었다. 아무리 상황이 안좋다고 해도 명색이 마왕이라는 주제에 간에다가 쓸개도 다 빼어줄 것처럼 빌어대다니... 저게 정말 마왕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으흐흐흐. 순진한 저 드래곤들이라면 틀림없이 넘어갈꺼야...' [주인님. 어쩌죠? 저걸...] "그...글세..." 상대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로 변하는 일이 너무 잦은 탓에 케리 역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림짐작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 마왕이란 작자는 지금 진실을 말하는 건가? 거짓을 말하는 건가? 어느 쪽이건 이 정도로 태도를 바꾸고 다닌 다면 그냥 걷어차버리는게 좋을것 같기도 하지만. "...저렇게 까지 말하는데 그냥 봐줄까..." [안돼요! 얼마나 우리를 괴롭혔느데 저 놈이..!] "그럼 내가 이야기를 한번 해볼께. 이 앞에 문 좀 열어줘." 케리는 라크리마의 이마에 달린 반구형 유리 해치를 열었다. "아예예. 감사합니다. 예예. 저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아아 정말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아아 정말 정말 정말... 저는 감격했습니다. 아 이 감격의 눈물을 보세요. 줄줄 흐르고 있지 않습니까? 저를 용서해주시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만 믿어주신다면 저는..." 눈물샘의 수도 꼭지가 풀린 것 처럼 마왕의 눈에서 눈물이 콸콸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너무 과장되어서 더욱 더 믿음이 안가기도 했다. 하지만 케리는 원채 천성이 무른 탓일까? 상대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애원해오자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불쌍한데... 놓아줄까?" [...글세요. 전혀 믿음이 안가는데요.] "글세 어떨까..." [으으음....] 라크리마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케리가 용서해주자는 투로 말하자 많이 고민하는 것 같았다. 과연 상당히 충성스러운 드래곤이다. "으하하하하! 이때를 노렸다. 생명말살마법 제노사이드!!!" "앗!" [으앗!] 마왕의 손에서 검은 마력의 화살이 형성되어 라크리마의 이마, 정확하게 케리가 타고 있는 부분을 향하여 날아갔다. 제노사이드, 겉보기에는 그리 화려한 마법은 아니지만 상대의 생명력 그 자체를 공격하여 파괴하는 마법이기에 대단히 무섭고 악랄한 마법이다. 라크리마의 이마에 적중된다면 케리는 그 즉시 온 몸이 리치처럼 말라비틀어진 미이라가 되어버릴 것이고 라크리마 역시 무사할수는 없다. 이미 마법을 써서 막기에는 늦은 절대 절명의 위기! "막아라 옵티걸 소드!" 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돌파한 것은 케리가 반사적으로 뽑아든 옵티걸 소드였다. 그간의 검술 수행의 성과 덕분에 발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파치잉! 옵티걸 소드에서 뻗어나온 빛의 칼날은 라크리마의 이마에 설치되어 있는 반구형 유리개패문을 부수고 검은 마력 화살과 맞부딧쳤다. 마력과 마력이 부딧치면서 격렬한 파열음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그건! 빛의 검 옵티걸 소드! 네가 그걸 가지고 있다니!" 제노사이드의 검은 마력 화살은 빛의 칼날과 힘을 겨루며 일진 일퇴를 반복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악랄한 마법이라 한들 5대 신기나 5대 마검에 필적하는 힘을 지녔다는 옵티걸 소드에 비할수는 없었다. 마침내 칠흑의 화살은 빛의 날에 눌려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뻗어라! 옵티걸 소드!" 라크리마의 이마에서 빛나는 뿔이 튀어나오는 것처럼 빛의 칼날은 마왕을 향하여 길게 뻗었나갔다. 제노사이드를 뭉개버린 여새를 몰아서 공격해오는 그것에 마왕의 가슴이 꿰뚫리고 말았다. "크아아아악!" 꿰뚫린 마왕의 가슴에서 검은 피와 기류가 폭포수 처럼 쏟아져 나왔다. 마족의 육체 구성이 상극속성인 빛의 검에 의해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격을 받으면 제 아무리 마왕급 마족이라고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크리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더블 스펠! 마나여 벽이여! 안티 매직 쉘! 지옥의 불꽃이여! 나의 적을 태우라! 헬 파이어!" 모든 물질을 소멸시키고 태워없앤다는 검은 불길이 옵티걸 소드에 꿰뚫려서 꼼짝도 못하는 마왕을 덮쳤다. 그리고 동시에 펼쳐진 안티 매직 쉘이 그 폭발의 파편이 케리를 덮치지 않도록 감싸버렸다. "우아아아아아아악!!!" 헬 파이어. 아무리 강력한 마족이라고 해도 지옥의 불꽃에는 당할수 없다. 마왕의 육체 하나하나가 검은 불꽃 속에서 산산 조각으로 분해되어 흔적조차 남지 않고 공중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마력도 육체도 영혼도 그 무엇도 남기지 않고 태워버리는 헬 파이어의 불길은 옵티걸 소드에 찔려 치명적인 데미지를 받은 마왕이 저항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살고 싶어! 살고 싶어! 죽기싫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악!" 퍼어어어어어엉!!! 절규를 지르며 불길의 압력에 밀려 날아가던 마왕은 도중에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산산히 분해되어 사라져버렸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타고 남은 약간의 육편뿐... "...이겼다...." [...정말 마지막 까지 치사한 녀석이었어요...] 케리와 라크리마는 흩날리는 마왕의 잔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싸움이 끝난 것이다. 방금 전의 대폭발로 좌우간 뭔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챈 지상에서도 살아남은 병사들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들의 고단한 싸움도 마침내 끝난 것이다. 그들은 인간계를 지켜낸 것이다. [...아앗 뭐야. 벌써 다 끝나버린 거야...] [...이런 그냥 셋이서 뭉쳐서 찾을껄...] 다른 방향으로 날아갔던 아마레와 라크레일은 허탈하다는 듯이 투덜거리면서 펄럭 펄럭 날아왔다. 어느새 어두운 구름은 걷히고 있었지만 하늘에는 붉은 석양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다 끝났네... 라크리마." [예. 싸움은 드디어 끝이예요......] "...정말 치사한 녀석이었아." [...진짜 그래요.] 그렇게 인간의 역사에 후일 용마대전이라고 기록된 대혈전은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뒤에 찾아온 혼란의 역사의 전조에 불과했다. 라는 기록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①- 상공의 최종결전이 끝난 뒤, 드래곤 들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상에서는 황태자가 장군들을 이끌고 그들의 개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무척 피로해 보였다. 그들의 얼굴과 번쩍이는 갑옷에는 피와 진흙이 잔뜩 묻어 있어서 처음 출전할 때의 멋진 모양새도 볼품없이 변해버린지 오래였다. 기간틱 아머 들도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것이 부지기수요. 장군들 마저 부상이 심하여 자리에 누워버린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황태자도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지휘관들이 그렇게 되었을 정도이니 병사들의 타격은 오죽할까? 하지만 그들은 피로한 와중에도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짓밟고, 집과 밭을 불태우고 아내와 아이, 친척들을 죽인 원수를 톡톡히 갚아준 것이다. 비록 처절한 싸움이었지만 승리의 열매는 그만큼 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서 돌아가게 되었다는 기쁨도 포함하여. 물론 동료들을 잃은 슬픔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목숨을 걸고 싸워준 그대들의 노고 덕에 제국의 평화를 지켜낼수 있게 되었다! 이제 수도로 개선행진을 하자! 수도로 돌아가면 황제 폐하로부터 그대들의 수고에 대해 은상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싸움에서 불행히도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도 그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큰 활약을 해준 세 드래곤과 케리 레그너스 양에게도 제국의 이름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황태자는 세 마리 드래곤을 등 뒤에 세워둔 채로 연설을 끝마쳤다. 세 드래곤은 병사들의 열렬한 환호에 날개를 퍼덕 거려서 화답했다. 그때 일어난 바람에 몇몇 기사들과 병사들이 쓰러져버리는 불행이 있기도 했지만... 간단한 찬사를 바친뒤 황태자는 이미 근처 도시로 돌아가기에는 늦었다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전령을 불러 승전보를 뛰운 뒤 오늘은 이 근처에 진을 치고 쉬기로 결정했다. 그 만큼 그들 모두는 피로에 지쳐 있어서 행군을 하는 것 조차도 어려웠다. 그 결정에 따라서 야영 준비를 하는 케리에게 라크리마가 다가와서 뺨을 부비면서 부탁했다. "주인님." "응? 왜그러니. 라크리마." "레어에 가봐요. 오랜만이니까..." "에엑? 지금... 피곤하지 않아?" "으음... 쉰다고 해도 레어에 가서 쉴래요오." 어지간히 레어에 가보고 싶어하는 라크리마. 하긴 겨우 다시 찾게된 자기 집이니 확인하지 않고서는 베겨내지 못할 것이다. 케리는 황태자에게 외출 신고를 한 뒤에 라크리마와 아마레, 라크레일, 라이오스와 파치야 까지 데리고 라크리마의 레어로 출발했다. 레어로 가는 도중의 몬스터들은 이미 다 흩어지고 난 뒤라 별다른 방해는 없었다. 설사 몬스터가 있다고 해도 세마리나 되는 드래곤에게 덤벼들 정도로 담력이 좋은 녀석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가 말입니다. 이 창으로 32마리나 되는 몬스터을 쓰러뜨렸습니다. 그 중에는 오크 오우거는 물론이요 트롤, 미노타우로스, 버그베어 없는게 없더군요. 아아 어찌나 몬스터가 많고 종류도 많은지. 하지만 제가 이렇게 샥샥샥 휘둘러서 석둑 석둘 팍팍팍 하고 모조리 쓰러뜨렸지요. 하하하하하. 케리님이 주신 이 창 덕분에..." "나도 손톱으로 여러 몬스터들을 쓰러뜨렸다냥." 오랜만에 라이오스의 장황한 입담과 파치야의 냐옹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케리는 전투의 긴장이 싹 하고 풀리는 것을 느꼈다. 요즘 황태자 옆에서 지내느라 너무 움츠려들었던 감이 있었는데 역시 그는 편안한 동료들과 있는 것이 좋았다. 그냥 이대로 다시 여행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그랬다가는 제국 전체에 수배될지도 모른다.) 그는 일행을 데리고 라크리마의 레어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전장에서 얼마 가자 않아 라크리마의 레어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런데... "...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앙!!!!" 라크리마는 레어의 모습을 보자 마자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다른 일행들은 어쩔줄을 몰랐다. 과연 레어의 상태를 보니 그녀가 갑자기 울어제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레어는 완전히 쓰레기 장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주위에는 시꺼먼 안개 같은 독기가 퍼져 있었고, 몬스터들이 먹고 버린 음식 찌꺼기가 여기 저기 쌓여서 썩어가며 파리떼를 모으고 있는데다가 씨커멓게 썩은 물이 폐수 웅덩이 처럼 여기저기 고여있기 까지 했다. 썩은 냄새가 코를 찔러서 호흡조차 마음놓고 할수가 없었다. 레어 입구가 이모양이니 안의 사정은 오죽하랴? 도저히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이... 집을 무단으로 점거했던 주제에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까지 해!" 라크리마는 눈물도 닦지 않고 분노를 폭발시켰다. 확실히 열받을 만한 일이다. 그녀에게 이 레어는 수백년 간의 추억이 깃든 아주 소중한 곳인데 그것을 이렇게 엉망진창 쓰레기장으로 만들어 놓다니... 화가 나지 않을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쩌랴? 이것을 다 치우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어 보였다. "아아아앙... 이걸 어떻해에에에에" "누나. 진정해..." "라크리마... 괜찮니...? 정말 슬프겠구나..." 케리와 라크레일이 일단 그녀를 위로하였다. 하지만 라크리마의 슬픔은 감정의 댐이 무너진 것 처럼 끝이없이 흘러내렸다. "으..으아앙... 다 망가졌을꺼야... 저 안에 있는거 다 망가졌을꺼야... 수백년 전 부터 카리온 님이랑 쌓았던 추억이랑.. 케리 님이랑 지냈던 추억이 다 망가졌을꺼야... 우아아아앙. 어떻해에에에에..." 그 말을 듣고 케리는 가슴 한쪽이 뭉클해졌다. 수천년을 사는 그녀가 단 백년도 제대로 살기 힘든 자신과의 추억을 그렇게나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단 말인가? 이것은 그가 감동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쪽으로는 무딘 라이오스 마저도 라크리마의 슬픔에 동조하는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한 추억의 장소가 엉망이 되버린다는 것은 분명히 견디기 어려운 슬픔일 것이다. 파치야도 눈물 짓고 있었다. 아, 이 고양이 아가씨는 살아온 고향이 파괴되어서 슬픈 것일까? 어쨋건 케리는 그녀를 살며시 품에 안아주었다. 지금은 그녀를 위로해 주는 것 말고 케리가 생각할수 있는 보답의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라크리마 진정해..." "으와아앙. 주인니임..." "존재하는 물건은 언젠가는 망가지는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카리온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기억해 주잖아. 그 기억이 있는한 추억은 사라지는게 아니야. 네가 기억해 주는한은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 "주인니임...흑흑...." "이 옵티걸 소드에 걸고 맹세할께. 앞으로 다시는 라크리마가 이런 슬픔을 겪지 않도록 내가 지켜주겠어. 내 온 힘을 다해서 너를 지켜주겠어..." "흐와아아아앙... 주인니이임..." 라크리마는 케리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지금은 여성 상태이니 커다란 가슴이 숨이 막힐 정도로 그녀의 얼굴을 덮었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그녀에게 따스함을 전해주는 것 같아서 라크리마는 기쁘기만 하였다. 주인이 자신을 이렇게나 생각해 준다는 것, 그녀에게는 정말로 기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지금 생각나는 말 한마디 만을 반복하였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에휴...청승 떨고 있네..." 하지만 아마레는 그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음, 역시 그녀에게는 그다지 감동적인 장면으로 비치지 않는 걸까? 파치야는 레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다. 레어 안에는 그녀의 친구들이 살육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 같아서 두렵다는 것이다. 케리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파치야는 레어 밖에 남아있게 하였다. 아마레도 레어 안에 들어가는 것은 거부했다. 그 이유는 상당히 간단했는데... "난 저런 쓰레기굴 같은데 들어가기 싫어." "뭐야! 남의 레어를 보고 쓰레기 굴이라니!" "그럼 저게 쓰레기 굴이지 아냐?" "...이게..." "참아 참아. 라크리마... 아마레도 그만해." "누나 참아! 아마레 누나도 험한 말은 그만둬." 한판 싸우려는 라크리마와 아마레를 케리와 라크레일이 말렸다. 아마레는 흥! 하고 콧바람을 한번 불더니 강아지 풀을 뜯어서 파치야의 눈앞에서 흔들면서 놀기 시작했다. 고양이의 습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묘인족은 흔들리는 것을 보면 왠지 붙잡고 싶어지는 버릇이 있는 모양이다. 파치야도 완전히 고양이 처럼 강아지 풀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가끔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하면서 아마레와 놀기 시작했다. 라이오스는 케리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간다는 입장이고, 라크리마의 레어는 왠지 던젼 같은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기 때문에 모험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다. 그는 기꺼이 이 임무를 받아들였다. 다만 그 역시 코를 가지고 있는 만큼 냄새가 좀 심하게 난다는게 문제지만... 결국 케리, 라크리마, 라크레일(누나가 가고 케리가 간다니까 별 반대는 없었다.), 라이오스로 던젼(?)탐사 파티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우선 수직 아래 방향로 파여진 구멍으로 내려갔다.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이 레비테이션 마법을 써서 날아서 내려갔기 때문에 내려가는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내려가고 난 뒤가 문제였는데, 밖에서 볼 때보다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쓰레기 더미 속에 오우거가 숨어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벽에는 몬스터들이 출입하려고 설치해둔 것인듯 줄사다리 들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라크리마는 레어 입구에 내려올 때부터 눈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헤치고 전진에 전진. 이게 드래곤의 레어 탐사인지 쓰레기장 탐사인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흘러갔다. 사방에는 몬스터들이 버리고 간 움막집이 거의 쓰러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마 몬스터들은 라크리마의 침실 겸 이착륙장인 이곳에 텐트를 쳐놓고 노숙과 취사을 반복하면서 쓰레기는 주위에 버리고 배설도 그대로 주변에다가 처리하면서 지낸 모양이다. 몬스터들이 위락지에서의 에티켓을 알리도 없으니 땅에다가 파묻지도 않은 쓰레기들 탓에 몇번이나 말했듯이 주위는 쓰레기 장. 도망치면서 움막도 안 치우고 가서 여기저기 기울어진 움막이 널려있고... 서둘러 도망치느라 먹다 남긴 식사들은 쌓여있고... 인간이 이런데 살았다면 필시 질병에 걸리고 전염병이 돌았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신체가 강인한 몬스터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멀쩡하게 살수 있었다. 그러나 케리 일행은 둘은 인간이고, 나머지 둘은 의외로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드래곤 족인 만큼 공기까지 호흡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나는 이런데서 편안하게 지나간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라이오스는 잠시 아마레나 파치야와 함께 있을껄 그랬다는 후회까지 했다. "으악 똥 밟았다!" 라크레일이 뭔가 물컹한 것을 밟은뒤 불길한 느낌에 발 쪽을 내려다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럿다. 으음. 사실 여기저기 똥덩이가 쌓여있는 지라 여지껏 안 밟고 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몬스터들이 화장실을 만들줄 알리도 없고 이렇게 수천마리를 한군데다가 몰아놓고 살게 하면 똥 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들의 똥은 너무 독해서 비료로도 쓰기 어렵다는데.... 일단 물의 마법을 써서 씻어내기는 했지만 라크레일은 여전히 찝찝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②- 수많은 난관(?)을 이겨낸 뒤 케리 일행은 레어의 가장 안쪽, 지하 하렘의 입구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곳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었다. "과연 마왕성! 마계의 독기가 넘쳐 흐르는 것 같군요. 마왕은 사라졌다고 해도 안심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라이오스가 그렇게 외친 데로 치사하건 비열하건 어쨋건 마왕 이라는 녀석이 있었던 장소인 만큼, 검은 연기 같은 마기가 주위에 잔뜩 흘러다니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 오래 있을 경우 질병에 걸릴수도 있다. 벽에는 고블린들이 조각해 놓은 유치하고 전위적인 부조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주제는 주로 날뛰는 몬스터들.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일반적인 종에서 히드라나 베히모스 같은 강력한 몬스터들 까지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새겨져 있었다. 조각 솜씨는 드워프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조잡하기 그지 없지만 그 탓에 더욱 기괴한 분위기가 증폭되어 정말로 흉물스러운 조각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서툰 글씨로 쓰여진 낙서들. 그 내용은 저열하고 추잡한 것으로 가득했으며 동네 불량배들도 그리지 않을 것 같은 저질적인 낙서로 가득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라크리마의 기분은... 강제로 순결을 빼앗긴 순진한 처녀 가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문 양 옆에는 커다란 바포메트의 조각상이 두 개 서있었다. 염소의 머리와 털이 숭숭 돋아난 인간의 몸이 주위의 조각들과 대조될 정도로 굉장히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색까지도 정교하게 칠해져 있고 눈빛마저 붉게 타오르고 있어서 마치 진짜로 살아있는 바포메트...였다! 석상처럼 우뚝 서있던 두 마리의 바포메트는 각각 끔찍하게 피로 붉게 문들어 있는 할버드와 모닝스타를 들고 소리쳤다. "크워어어어어어어! 우리의 주인인 다크 팔미룬 님의 점령지에 무단으로 들어오는 너희들은 누구냐!"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인간 두마리와 용족 두마리구나! 우리 주인 다크 팔미룬 님은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자뭇 기세 좋은 말이었다. 아마 이것이 평범한 마왕성 정벌이었다면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으로서 기백과 용기가 살아있는 좋은 대사라고 칭찬 받을 만한 말이었지만, 불행히도 마왕까지 죽이고 온 놈들 앞에서 할만한 대사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치사하기 그지 없는 다크 팔미룬을 등에 업고 하는 말이라니... "........." 케리 일행은 이 상황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이 바포메트 들은 뭘 하자는 것인가? 라크레일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아낸뒤 바포메트들에게 말했다. "너네들 이미 너네 주인은 우리가 죽이고 오는지 오래니까... 그냥 물러나던가 덤비다가 죽던가 해." "그럴리가 없다! 이 거짓말쟁이 드래곤!" "마왕이신 다크 팔미룬 님이 그렇게 쉽게 죽을것 같으냐! 아무리 네놈들이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말을 해라!" "그럼 이대로 개기다가 죽을래?" "크하하하하! 우리를 죽인다면 마왕님이 복수를 해줄 것이다!" "얌전히 이 도끼에 목을 맡긴다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현실 파악이 전혀 안되는 불쌍한 것들이다. 충성심이 깊은 건지 우둔하고 멍청한 건지... 이것들은 왜 고블린에서 오우거 까지 모조리 도망갈 동안 여기에 계속 남아있었단 말인가? 다크 팔미룬이 그렇게 믿음직 스러웠던 건가? 으음. 알수없는 노릇이다. 마족의 사고방식이란. "어쨋건 네놈들을 잡아가면 마왕님에게 톡톡히 칭찬 받겠군! 마왕님은 드래곤을 잡아 가두는 것을 즐기시니까." "자 순순히 우리의 무기 앞에 무릅을 꿇어라!" 물론 바포메트들의 능력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몸 주위에서 끓어오르는 검은 아지랑이 같은 암흑투기는 그들의 실력이 어지간한 기사나 마법사의 수준을 넘어섯다는 것을 쉽게 알수있게 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드래곤과 대적할수 있을 리는 없지만... 물론 라크레일은 이 말 안통하는 이인조를 날려버리기 위한 마법을 이미 캐스팅해두고 있었다. "디스인티그레이트!" 녹색의 광선이 바포메트 들을 향하여 날아갔다. 절대파괴마법이라 불리는 디스 인티그레이트, 녹색의 광선은 화려하거나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물질을 분해하여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무서운 파괴력이 숨어있었다. 이 마법으로 파괴할 수 없는 물질은 없다고 전해지지만... "흐업!" "하앗!" 바포메트 들이 암흑투기를 몸 주위에 쳐서 방어를 하자 녹색의 광선은 힘없이 튕겨나가 버렸다. 디스 인티그레이트의 약점은 마법 방어에 터무니 없이 약하다는 것. 겨우겨우 쓴 안티매직 쉘에도 튕겨나가니 사실 공격 마법으로서는 완전히 빵점이었다. 무기나 장비에 사소한 마법적 방어가 걸려있어도 효과가 전무해져 버리니... 절대파괴마법이라는 별칭에 무색할 정도였다. 하지만 라크레일은 싱긋 미소지었다. 그의 공격은 다음 연속공격을 위한 발판에 불과했기 때문에. "으하하하. 그런 마법으로는 우리들을 막을수 없..." "브라고자바스!" 의기양양해하는 바포메트 들을 향하여 라크리마의 마법이 폭발하였다. 시꺼먼 불꽃, 그 외의 어떤 말로도 표현할수 없는 것이 터져나와 바포메트 들의 몸을 휘감았다. 디스 인티그레이트가 '분해'라면 브라고자바스는 모든 것을 연소시키는 초고열을 발생시키는 마법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악!" 바포메트들의 절규과 함께 그들이 딛고 서있는 지반 까지 녹아서 용암화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흑염은 어느 선 이상으로는 퍼져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이 마법은 시전자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자동적으로 마법결계를 치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흑염속에서 바포메트 들은 절규를 내지르다가 검은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초고열에 녹아내린 바위와 토사의 잔해만 남아있었다. "쓸데없는 것들 때문에 괜히 시간만 버렸네." "아깝구만. 내가 활약할 찬스였는데..." "네가 나섯다면 죽었을껄."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라크레일군! 정의로운 기사가 사악한 악마 따위에게 질리가 있는가?" "...휘유..." 라이오스를 한방 쏘아주려 했던 라크레일은 역습을 받고 한숨만 내쉬었다. 입구는 완전히 녹아내려서 뻥 뚫려 있었지만 용암 덩어리나 다름 없는 것을 그냥 지나갈수는 없었던 까닭에 냉각 마법을 날려서 도로 식혀서 바위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 바포메트 들의 재는 바위 속에 섞여있을 것이다. 불쌍하게도. 지하 하렘 안은 더더욱 가관이었다. 마왕은 밝은 빛이 기분나빠서 천장의 조명 장치를 모조리 파괴하거나 팔아치워버렸는지 내부는 어두침침하기 짝이 없어서 라이트 마법으로 불을 밝히고 가야 했다. 마법의 빛 아래 드러난 이곳의 상태는 상당히 침울했다. 온갖 호화로운 장식품들은 모조리 약탈당한 뒤였고, 벽은 약탈할때의 난동 탓인지 더럽혀지고 부서져 있는 곳도 많았다. 이 황량한 풍경에 일행은 몇백년은 된 지하 미궁에 들어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사실 몇백년 정도 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 곳을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완전히 망가져버린 내부는 케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몇백년전의 추억이 담긴 곳이 엉망이 되어버린 라크리마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더욱 가슴이 미어져 오는 것이었다. 그 아름답고 화려하던 장소가 지금은 어디서 망령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지하미궁으로 변해버리다니... 케리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라크리마를 뒤에서 꼭 안아 주었다. 내부 구조는 특별하게 바뀐점은 없었지만 워낙 살풍경 해졌고 여기저기가 무너져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살펴가면서 천천히 전진해 나갔다. 다행히도 아까의 눈치없는 바포메트 들을 제외하면 이런 침울한 장소에서 살만한 몬스터는 없었다. 몬스터들과의 조우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채로 한 동안 전진에 전진을 계속했다. "아..." 맨 앞에 서 있던 라크리마가 갑자기 뭔가를 느낀듯이 눈을 크게 떳다. "이 앞에 뭔가가 있어요. 느낌이 약해서 뭔지는 잘 모르곘지만..." "몬스터야? 아니면 마족?" "그런게 아니예요. 주인님. 음... 그러니까... 적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혹시 잡혀온 사람이 있다던가 하는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일행은 주위를 경계하면서 라크리마가 안내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본래 창고로 쓰던 곳인데 지금은 약탈을 당해서 텅텅 비어있는 곳이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에 라이트 마법으로 비추어 보자 그곳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하나는 은빛 사슴이었고, 다른 하나는 붉은 토끼였다. 이런 색을 한 짐승은 본 적이 없었기에 일행은 모두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도 검은 빛에 물들어서 마기를 풍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물건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두 마리는 바닥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잠들어 있었다. 마치 죽은듯이 보였지만 숨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는 했다. "이게 뭐지? 이런 짐승은 본적이 없어..." "일단 풀어줘 보세요. 위험한 것은 아닌것 같아요." "어떻게 풀면 되지? 이음새가 전혀 없는것 같은데." "이 사슬 자체가 암흑마력으로 만들어 진 것 같아요. 따라서 빛 속성인 주인님의 옵티걸 소드를 사용한다면 쉽게 끊어버릴수 있을 거예요." "응." 케리는 허리에 차고 있던 옵티걸 소드를 빼들고 키워드를 외워서 빛의 칼날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사슴과 토끼가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검은 쇠사슬과 빛의 칼날을 접촉시켰다. 파지지직! 접촉면에서 용접을 할때 처럼 섬광이 일어나고 검은 연기가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사슬을 이루고 있던 마력이 옵티걸 소드의 힘과 부딧쳐서 급속도로 소멸하고 있는것 같다. 곧 이어 빠직빠직 거리는 소리가 나며 사슬은 부식해버린 것처럼 조각조각으로 분해되어 흩어졌다. "으음... 이 쇠사슬에는 마법봉인의 주문과 패럴라이즈(마비)의 마법이 함께 걸려 있었어요. 상당히 강력한 마력이네요. 그리고 이 두마리에게 걸린 마법들은 ...음... 피블 마인드를 통하여 정신력을 저하시키고, 파워 워드 스턴으로 기절상태에 빠지도록 되어있어요. 그리고 폴리모프 아더로 강제로 이 모습으로 변한것 같고... 거기에다가 위큰 마법으로 체력까지 저하시켜 두었네요. 흠. 꽤 복잡하게 저항을 못하도록 처치를 해두었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대체..." 라크리마는 이 동물들에게는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법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마법들은 마왕이 직접 걸어둔 것이라 쉽게 풀리지 않았지만, 마왕은 이미 죽은 뒤라 약간 힘을 쓰니 하나하나 풀려나갔다. 마침내 폴리모프 아더만 남았을 때 두 마리 동물이 눈을 번쩍 떳다. 그리고 주위를 잠시 둘러보더니 크게 하품을 하면서 말을 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 동물들은 '말'을 했던 것이다. "...흐아아아아아아암..." "...잘잤다아...." "역시. 대체 뭐가 폴리모프 했던거지? 너희들은 대체?" 말하는 동물들을 앞에 두고 케리와 라이오스가 질겁을 하고 있을때 라크리마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동물들을 향하여 말했다. 그녀는 그들의 정체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다. 6단계나 되는 마법으로 힘을 묶어둬야만 할 정도의 상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마왕이라면... "우리들은 드래곤입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③- "폴리모프 셀프!" 자신들이 드래곤이라고 대답한 빨간 토끼와 은빛 사슴은 변신을 시작했다. 두 마리의 몸에 붉은 빛과 은색 빛이 퍼져나가더니 형태가 이리저리 바뀌었다. 붉은 빛은 7,8세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 정도의 모습으로 은색 빛은 키가 큰 여성의 형태로 변하더니 갑자기 팍 하면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타오르는 듯이 붉고 거친 단발 머리와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통통하고 부드러운 뺨과 귀엽게 튀어나온 입을 가진 일곱살 정도 되는 귀여운 소녀와 2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길고 반짝이는 은발 머리를 가지런하게 허리까지 내려오게 기른 아가씨가 나타났다. 은발 머리 아가씨는 도도하게 눈썹을 치켜뜨면서(눈썹도 은빛이었다.) 케리 일행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의가 몸에 딱 달라붙고 발밑까지 끌리는 장식이 전혀 없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빨간 머리 소녀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2차 성장이 일어날 나이도 한참 남아서 아무것도 볼게 없는 나이대의 몸매라서 망정이었지만 은발 아가씨는 그 모습을 보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소리쳤다. "세린양 ! 인간으로 폴리모프 할때는 옷도 꼭 만들도록 하세요! 인간들 앞에서 그게 무슨 추태입니까? 종족의 명예를 지키도록 하세요." "앗! 깜빡했어요. 미안해요. 베로니카 언니." "대답하기 전에 옷부터 만드세요! 클로스 폼!" 은발 아가씨의 손에서 하얀 천이 생성되어 나왔다. 그녀는 그것으로 빨간머리 소녀의 몸을 빙빙 둘러서 가려주었다. 은발 아가씨, 즉 베로니카는 머리카락 색으로 볼때 실버 드래곤인듯 하다. 세린이라고 불린 빨간 머리 는 아마도 레드 드래곤. 이들은 대체 누구인 걸까? 별로 기다릴 사이도 없이 샤니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악한 자의 마수를 주의하지 않은 실수로 곤경해 처해있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군요. 하지만 당신들의 미약한 힘이나마 도움이 되어주었으니 감사를 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자도 쥐에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드래곤이 인간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허물이 되지는 않겠지요. 대신 제가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인간 여러분. 저는 베로니카 유스티아 실버 드라군. 이 쪽는 카르세린 바넷 레드 드라군 이라고 합니다." "...굳이 인간 여러분이라고 할 필요는 없는데. 이쪽에도 드래곤이 둘이나 있으니까. 나는 라크리마 튜폰 템페스트 드라고나스. 저 녀석은 내 동생인 라크레일 튜폰 템페스트 드라고나스야. 그리고 여긴 내 레어고. 잠시 쥐새끼들이 들끓기는 했지만..." "저런 동족이셧군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못알아 보았습니다. 몸을 낮추어 시야를 좁힘으로서 다른 종족의 지혜를 배우기 위한 고행이라도 하고 게시는 것인가요? 혹시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명예로운 실버 일쪽이고 이쪽의 세린양은 레드 일족입니다. 당신들은 스톰 드래곤 일족이신가요? 폭풍을 가르고 태양을 넘어 난다는 그 위명, 잘 듣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베로니카는 치마를 양손으로 살짝 들어올리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 태도에는 약간 오만한 부분도 있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예의를 잘 차리려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너희들. 왜 여기 그런 모습으로 있었던 거야?" "정말로 말씀드리기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것은 저희들의 완벽한 부주의. 진실로 허황된 망상에 빠져 마족들의 어두운 마수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와 같은 난관에 빠지게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오이까? 세린은 아직 성룡이 아니니 모든 것은 보호자인 저의 잘못이 될것입니다만. 어쨋건 저의 부끄러운 과거를 말한 즉슨..."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길었다. 그녀의 어투자체가 수식어가 약간 과도하게 많은 편이라 알맹이 보다 수식어가 두배 이상은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 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적당히 간추려내어 설명을 하자면, 사건경위가 시작된 것은 약 6개월 전, 베로니카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 해츨링인 세린을 데리고 인간계로 나들이를 나왔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린은 베로니카의 고모의 동생. 즉 사촌으로서 약 10여년간 베로니카는 세린의 육아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리얼타임으로 설명하는 상황을 살펴보자면. "...그런데 이 꼴이 되어버렸으니 대체 고모님과 고모부님을 무슨 낯으로 볼 수 있을지... 아아. 라크리마 튜폰 템페스트 드라고나스 님.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런지 당신의 생에는 좋은 경험이 없습니까? 저로서는 감도 잡을수 없군요. 고모님은 명예로운 실버 일족이지만 고모부님은 레드 일족이라 성미가 참 모질고 맹렬하시고 사나운 분이시거늘. 그 분이 진노라도 하신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넌 말이 너무 많아... 그리고 내 풀네임은 너무 길어서 나도 잘 안 쓰니까 그냥 라크리마라고 불러." "어머나. 그럴수가... 그점은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라크리마 님. 저희 아버님과 어머님께서는 무척 점잖으신 분이라 해츨링일 때부터 제가 고운 말을 쓰도록 언제나 강조를 하셧거든요. 그래서 제 말투가 약간 알아듣기 어렵다고 말하시는 다른 일족도 가끔씩 보았습니다만, 저로서는 약간 이해할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모름지기 명예로운 드래곤 일족이라면 정중하고 고운 말을 써야 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 '이 녀석 혹시 천성적인 수다쟁이 아냐?' 이런 연유로 어느 정도는 적당히 넘어가고 계속 설명 시작. 좌우간 세린을 키워주던 베로니카는 어느날 무슨 바람이 났는지 세린을 데리고 인간계로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다. 물론 특별히 도시 같은데서 놀았던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계의 산 중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땅따먹기나 구슬치기, 술래잡기 같은 아동용 놀이를 하면서... 물론 본체로 펑펑 놀아대는 그녀들 때문에 그 일대의 지형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하여 다소 불안감을 느끼는 다수의 인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저러나 신나게 놀다가 지쳐서 그녀들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하여 풀밭을 뒹굴거리면서 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평온하게 쉬고 있는 그녀들을 습격한 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마왕인 다크 팔미룬. 그는 비열한 수를 써서 그녀들을 속인 뒤 잡아 가두었다고 한다. "...그 불결하고 사악한 마족은 저와 눈을 마주치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그곳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름다운 은발머리 아가씨. 당신의 향기로운 머리카락이 하나 제 뺨에 날아와 걸렸군요. 바람의 정령이 우리에게 이런 인연을 만들어 준다는 것은 정령들이 우리들에게 인연을 맺어주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자의 비열하고 더러운 눈빛을 본 저는 이렇게 답했어요. '예. 아마 그런 의미라고 생각해요.'" "...보통 비열하고 더러운 눈빛을 한 녀석에게 그렇게 대답하냐? 게다가 그 간단한 대답은 뭐야?" "그야 그때는 그녀석의 비열하고 더러운 눈빛이 너무나 더러워서 그만 정신이 나가 버렸으니까요. 세상에 제가 그런 음란한 눈빛에 넘어가버리다니... 여지껏 전 대체 뭘 배웠던 걸까요? 아버님이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책망하실까... "...한마디로 남자한테 면역이 전혀 없어서 보자마자 반해버린 거냐? 대체..." "뭐 전 이 나이가 되도록 남자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지만요. 저희 아버님이 워낙에 엄하셔서..." 사실 지금은 죽고 없는 다크 팔미룬은 인큐버스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몸이라 여성을 홀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뭐 천성적으로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는 드래곤들에게는 인큐버스 수준의 마력이 제대로 통할리가 없지만 불행히도 남성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었던 베로니카에게는 아주 자알 먹혀들어갔던 모양이다. 평소처럼 장황하게 받아내지도 못하고 그냥 평범하게 대답한 것을 보면 실은 잠깐이나마 완벽하게 넘어갔던 듯. 지금은 더러운 눈빛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달콤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마왕이 저에게 말했죠. '사실 전 마족입니다. 베로니카 아가씨. 마족과 용족은 사이가 좋지 않지요... 저의 사랑도 운명의 크레바스를 뛰어넘기에는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힘을 보태 주신다면... 두 사람의 힘이 하나가 된다면 무엇이 우리를 막을수 있겠습니까? 저와 함께 종족간의 벽을 뛰어넘어 찬란한 사랑의 세계로 가지 않곘습니까?' 에... 전 그래서. '예 좋아요.'라고 대답했어요. 제가 미쳤죠... 휴... 완벽한 저의 실수예요. 책망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 전에 넌 대체 어떤 얘길래 처음 보는 남자가 그런 말을 하는데 넘어가는 거야? 만난지 몇시간이나 되었었는데...?" "한시간...이요..." "..........바보냐!" "그런 천박한 말을!" 케리는 뒤에서 그녀들을 바라보면서 상상해보았다. 혹시 라크리마와 그의 조상이었던 카리온의 관계도 저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함정에 빠진 과정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달콤한 말로 몇번 속삭였더니 그대로 휙 넘어가서 이종족 간의 벽 까지도 뛰어넘어버리자는 미래 계획까지 세우다니... 좌우간 설명을 계속하는 베로니카. "음 그래서... 저는 마왕을 따라 갔어요. 세린을 버려두고 갈수는 없으니 이 아이도 함께 데리고 갔지요. 그는 처음에는 여러가지 이야기도 해주면서 저희들을 열심히 꼬드기더군요. 그러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우리들에게 저주를 걸더니...이런 비열하고 치사하고..." "...으음... 그 뒤 이야기는 말 안해줘도 알겠어. 네 이야기는 머리가 아파서 더 이상은 듣기도 싫고... 마계로 끌려갈 뻔한 거구나." "예. 다행히도 이곳에 잡혀온뒤 마계로 끌려가기 전에 몬스터들이 어디론가 다들 사라지더군요. 마비 상태에 있었지만 정신은 깨워두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양이 되어 있었던 탓에 빠져나갈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라크리마 님이 구해주신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라크리마님. 이 보답은 어떻게든 하곘습니다." 거기까지 말한뒤 베로니카는 세린을 돌아보고 말했다. "세린 양, 정말 미안해요. 제 한순간의 실수가 세린양 까지 이렇게 위험에 빠뜨릴 줄이야.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 세린 양의 아버지는 베로니카 언니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윔급의 레드 드래곤인데... 세린 양의 아버지가 화를 내신다면 저는 당하는 수밖에 없어요. 역시 베로니카 언니는 세린 양의 아버님에게 브레스에 맞고 발톱에 긁히고 꼬리에 얻어 맞아서 엉망이 되어서 갈갈히 찟긴 다음 들판에 버려저서 몬스터들의 먹이가 되어버려야 할까요?" "흑흑.. 언니야 그렇게 되면 싫어. 으와앙...언니야. 걱정하지마요. 내가 아빠 한테 잘 말해 줄께요. 히앙...아빠는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니까 별 일 없을 꺼예요. 우왕.." "정말 고마워요 세린양. 일이 잘못되서 베로니카 언니가 세린양 아버님에게 벌을 받는다고 해도 절대 세린양을 원망하지는 않을 꺼예요." "아앙...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요" 세린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베로니카를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베로니카의 입 끝이... 약간 웃고있다. 으음 이것은 아무래도 어린애인 세린에게 무서울 정도로 과장된 이야기를 들려줘서 세린으로 하여금 그녀 자신의 아버지를 설득하게 하려는 계책. 애를 잘 다루는 여자다. "그런데 베로니카... 너네 아버지는 대체 누구야?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드래곤이잖아? 넌 성룡인데 그렇게 까지 간섭을 받니?" 으음. 이상하기로 따지면 라크리마의 아버지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베로니카의 대답은 라크리마에게 실버 드래곤 일족 전체를 걱정하게 할만한 것이었다. "에... 그건 저희 아버님이 실버 드래곤 로드, 베리온 유스티아누스 실버 드라군 이시거든요. 훌륭하신 분이예요. 아버님은... 언제나 일족의 안녕을 걱정하고 있을 뿐더러 저에게도 일족의 프린세스로서 품위를 잃지 않도록 교육시킨 분이시죠." "뭐?!"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④- "어머나 왜 비명을 지르고 그러시나요? 어차피 일족도 다르고 스톰 일족과 우리 실버 일족은 사이가 가깝지 않으니까 드래곤 로드의 딸, 즉 드래곤 프 린 세 스 라고 해서 특별히 권위를 가진다던가 하지도 않잖아요? 게다가 로드 직위가 상속되는 것도 아니고. 뭐 저의 품위있는 태도에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셧으리라고 예상되기도 하고." "...끄응..." 라크리마는 난처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드래곤들 역시 상호간에 분쟁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 종족마다 드래곤들을 통치하는 로드가 있었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아버지가 실버 드래곤 로드라면 베로니카는 그 딸이므로 실버 드래곤 프린세스가 되기는 하지만, 실제로 드래곤 로드의 지위는 세습제가 아니라 한 일족 전원의 직선제 이므로 그녀에게 권력이 간다던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드래곤 로드의 지위 자체가 분쟁조정자 이상의 것이 아니므로 특별히 권력이 있는 자리도 아니지만. 보통은 드래곤 로드라고 해서 콧대 세우는 일도 없고, 보통 당사자도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보통이 아닌 사람 아니 드래곤은 있는 법이다. 베로니카의 아버지인 베리온 유스티아누스 실버 드라군이 그런 사례였다. 이 드래곤은 쓰기힘든 감투(드래곤 로드를 제외하면 드래곤들은 특별히 지위가 없다. 게다가 드래곤 로드는 한번 선출되면 거의 죽을때까지 하니 드래곤 로드가 되는 것은 틀림없이 쉬운일이 아니다.) 하나 썻다는 사실에 우쭐해서는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다가 망신 당한 적도 있었고, 쓸데없이 귀티 내느라고 여러가지 희안한 일을 벌이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실버 일족들 사이에서 로드를 잘못 뽑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원채 사람은 좋은 편이라 적당히 부추겨만 주면 어떤 일이든지 소매 걷고 나서서 해주는 드래곤이라 편리한 봉으로 여겨지기도 해서 아직까지 로드 지위를 맡고 있다. 사실 좀 허물이 있다고 해도 로드를 바꾸는 일에는 일족 전체가 모여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측면도 없진 않지만... 그런 만큼 라크리마에게 있어서 상대는 더욱 껄끄럽다. 본래 드래곤은 안하무인의 종족이다. 그런데 상대가 자기 보다 높은 척을 하려고 나오면? 뭐 말로야 '저 아무것도 아니예요'를 외치고 있지만 굳이 '프린세스'를 강조하고 있는걸 보면 공주대우 해달라고 얼굴에 써놓고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한 일족의 로드는 다른 일족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므로 하물며 로드 딸이라고 다른 일족에게 자랑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어때서?'라고 대답해야 정상이지만 상대의 의도가 그게 아니면 문제가 까다로워 지는 것이다. 특히나 왠지 마이페이스 타입으로 보이는 상대를 대하기는... 뭐 라크리마 자신도 만만치 않게 마이페이스 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똥은 더러우니 피해간다 라는 심정으로 대답하기로 결정했다. "에휴. 모르겠다. 어차피 이 레어는 남은것은 하나도 없는것 같고... 게다가 이렇게 지저분해져 있으니 나도 이런데서는 더 살기 싫어. 새로 레어 구해볼꺼니까 여긴 더 이상 용무없어. 넌 그 빨간 꼬마 데리고 네 좋을데로 가버려." "어머어머. 그럴수는 없죠. 인간들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몰라도 같은 동족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보답을 드리지 않을수가 없죠." '필요없어!' 라고 라크리마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하!" 어태껏 멍하니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라이오스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과연 과연 케리님께서는 사악한 마왕을 쓰러뜨리고 마왕성에 잡혀서 동물의 모습으로 변해있던 드래곤의 공주님을 구출한 것이군요! 이것이야 말로 기사의 귀감!" "...그...그렇게 되나...?" "앞뒤를 따지고 보면 이야기가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케리님." 확실히 따지고 보면 그렇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마왕을 쓰러뜨린 것도 사실이고, 무단으로 만들어진 마왕성에 들어가서 빛의 검으로 어둠의 사슬을 자르고 드래곤의 공주님인 베로니카를 구출한 것도 사실이니까... 뭐 이야기를 적당히 자르고 편집하면 그렇게 볼 만한 소지도 있다. 일단 요점은 틀리지 않았다. 이야기의 요점만은[...]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베로니카의 얼굴이 파랗게 변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녀는 마족의 꾀임에 넘어갔다는 것 보다 더한 터부를 범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에게 구출 당했다는 것이 그렇게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 것일까? "다... 닥치세요! 이 털없는 원숭이들. 이 베로니카 유스티아 실버 드라군이 인간 따위에게 구출을 당하다니. 설령 내가 약간의 실수를 범하여서 이런 곤경에 처해 있었다고 해도 그 말은 도저히 넘어갈수가 없군요! 이건 모욕이예요. 모욕도 어떻게 이런 모욕이 있을수가... 당장 그 말을 취소하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소이까. 허허허허허." "도...도저히 용서할수 없군요!" 넉살좋게 대꾸하는 라이오스, 그러나 베로니카는 그 태도가 더욱 못마땅 했던 모양이다. 완전히 열받은 그녀는 라이오스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마법을 캐스팅 했다. "커스 폴리모프 프로그!" 퍼엉! 하얀 연기가 펑 하고 치솟더니 라이오스가 있던 자리에는 큰 꺼비가 한마리 남아있었다. 표면은 울퉁불퉁하게 둥그런 것이 튀어나와 있고 살결은 기분 나쁘게 미끈미끈 거리는 검푸른 빛이었다. 두꺼비는 처량하게 두껍 두껍 거리면서 울어댓다. 아무리 라이오스가 방심하고 있었으며 평소에 얼간이 처럼 보인다고 해도 나름대로 실력있는 기사인데 이렇게 간단하게 폴리모프를 걸어버릴 줄이야. 베로니카의 마법실력도 보통은 아닌것 같았다. 케리는 라이오스가 변하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라..라이오스...!" "이것은 개구리로 변하는 저주.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순결한 처녀와 키스를 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추악한 두꺼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누가 그에게 키스를 해줄까요? 당신의 동료는 영영 개구리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질척질척하고 미끈미끈하고 기분나쁜... 어두운 늪속에서 평생 살아가세요!" "하지만 이건 두꺼빈데?" "어쨋건! 내 말에 토달지 마세요!" 라크리마가 실수를 지적하자 베로니카는 새침하게 소리를 질렀다. 저런 불쌍하게도. 약간의 실수는 있었던 모양이다. 케리는 라이오스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두꺼비로 변한 모습은 상당히 처량하고 징그러워 보였다. 하지만 케리는 어쨋건 내면은 남자. 본래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이고 지금은 여자가 된 상태인데다가 여자 모습에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두꺼비에 겁먹을 정도로 약한 녀석은 아니다. "...어쩌지 라크리마. 이 마법 풀수 없어?" "제가 풀려고 했다가는 저번에 라크레일의 저주를 풀때 처럼 이상하게 마법이 꼬일지도 몰라요. 누가 함부로 못 풀게 억지로 마법구성을 비틀어둔 저주 같은데..." "당연하지요! 인간의 마법사가 함부로 풀려고 했다가는 영영 풀리지 않게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아무리 동족이라고 해도 쉽게 풀수는 없습니다." 라크리마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베로니카는 자뭇 자랑스러운 듯 했지만, 약간 긴장한듯 했다. 그 이유는 케리가 두꺼비를 전혀 무서워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조심스럽게 케리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그 두꺼비 무섭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히 안아들고?" "이게 어때서? 자세히 보니까 귀여운 부분도 있는데... 여기 봐." "으에에에엑!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요! 징그러운 두꺼비!" 베로니카는 케리가 살짝 두꺼비 라이오스를 내밀려고 하자 되려 자기가 겁을 먹고 새파랗게 질려서 뒤로 물러섯다. 혹시, 베로니카는 두꺼비를 싫어하기 때문에 저주랍시고 두꺼비로 만드는 주문을 걸어버린 것은 아닐까? 라크리마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물어보았다. "너 혹시 두꺼비를 무서워 하는 거야?" "...저런 끔찍한 악마의 짐승이 내 시선에 닿는것 만으로도 눈이 썩는것 같아서 그럴 뿐이예요." 적당히 얼버무리려는 베로니카, 하지만 어린 아이. 즉, 세린의 순수한 눈은 그녀의 그런 가식에 속지 않았다. "사실 베로니카 언니는 어릴때 햄스터로 변신해서 놀다가 커다란 두꺼비에게 잡아먹힐뻔 한적이 있거든요." "세린양! 그 이야기를 아무한테나 하면 안돼요!" "왜 어때서요? 그 뒤로 언니가 두꺼비를 엄청 무서워하게 된 건 사실이잖아요." "으음. 이따가 봅시다. 세린양. 좌우간! 당신 아무리 저 징그러운 두꺼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끔찍한 두꺼비에게 키스를 해서 저주를 풀어줄수는 없겠지요! 당신의 천박한 외모와 두꺼비도 무서워하지 않는 방정치 못한 태도를 보아하니 분명히 처녀는 아닌것 같고..." "무슨 소리야! 주인님의 어디가 천박하다는 거야!" "......으음... 난 일단 처녀는 처녀인데... 뭐 험한 일을 많이 겪기는 했지만." 라크리마와 케리는 이구동성으로 베로니카에게 반박했지만 베로니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흥. 아무리 인간이 천한 족속이라고 해도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두꺼비를 두려워하지 않을리가 없어요. 조신한 처녀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인간들은 관계가 문란하다고 하니 당신은 분명히... 아아. 너무나 천한 말이라서 입에 담을수가 없어." "네 경우를 아무에게나 적용하고 다니지 마." 라크리마가 불만스럽게 말하고 뒤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베로니카와 말다툼을 버리려 할때 두꺼비 라이오스가 갑자기 힘을 잃고 쓰러졌다. 라이오스는 입에 거품을 물고 괴로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두꺼비는 피부호흡을 하는 생명체인데 피부가 건조해지자 호흡을 못해서 질식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앗...! 라이오스가 말라가고 있어!" "주인님... 키스 해주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아 주인님의 입술이 두꺼비 따위에게 더럽혀 지다니" "...휘유... 뭐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서니까 할 수 없지..." 케리라고 해서 두꺼비와 키스하는 것이 즐거울 리는 없지만 그 아니 그녀 역시 한때는 모험자 였던 몸. (패배자였지만) 두꺼비에게 키스하는 것 이상으로 비위가 상하는 일은 몇번이고 겪었었다. 게다가... 여러가지로 곱지 않은 기억이 많고 곤란하게 한 일이 많기도 하지만 라이오스는 어쨋건 그녀에게는 여러가지 모험을 함께 겪은 동료다. 게다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가? (...물론 자기 자신에게는 상당히 곤란한 사랑이지만) 기분나쁘기는 하지만 하고자 결심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케리는 손바닥에서 픽 쓰러져 있는 두꺼비에게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면으로 보고 하는 것은 못할짓이라 눈을 질끈 감고 있었지만 말이다. 두꺼비가 된 라이오스도 케리의 의도를 이해한듯이 그냥 가만히 있다. 설칠 기운이 없는 걸지도 모르지만,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은... 음. 남매가 어쩌면 저렇게 똑같은걸까? 싶을 정도로 비슷하게 기분나쁘다는 표정을 짓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린은 그냥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고, 베로니카는... 그렇게 싫은 걸까? 뒤돌아서있다.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저주를 풀기 위한 일이야. 어쩔수 없는 일이야.' 케리는 속으로 중얼중얼 거리다가 입 끝에 뭔가 차갑고 축축한 것을 느꼈다. 그 다음 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케리의 눈앞에는 인생의 승리자가 된 듯한 표정의 라이오스가 서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수 있는 것일까? 저주에 풀려나서 기쁜 것만은 아닌듯 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⑤- "아아 정말 감격했습니다. 설마 케리님께서 저를 위해서 입술을 희생해 주시다니... 비록 두꺼비의 몸이었지만 지금 감촉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키스였습니다. 하지만 왠지 두꺼비 입술로 느낀 것이라 약간 감질맛이 나기도 하는데요. 괜찮으시다면 다시 한번만...... 크억!" 얼토당토 않던 말을 주절주절 거리던 라이오스는 갑자기 다리사이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 이유는 방금전 라크리마의 다리가 그의 다리 사이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으로 익히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실로 무섭고도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이었다. 이 공격이라면 틀림없이 소드 마스터고 뭐고 할것없이 일격에 쓰러뜨릴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남성의 급소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드래곤이라. 혹시 드래곤도 공통적인 급소가 있는 것일까? 괜히 다리 사이를 가리고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라크레일 군을 보고 있자면 라크리마의 과거 행적이 약간 의심되기는 하지만 독자들의 추리에 맡기고 넘어가겠다. "고마워, 라크리마." 케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라크리마에게 감사를 표했다. 물론 케리(요즘 이 녀석을 '그'라고 해줘야 할지 '그녀'라고 해줘야 할지 계속 혼동이 온다.)도 방금전의 공격이 얼마나 위험하고 남성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오스의 행동은 충분히 그런 처절한 보답을 받기에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휴우. 이런 일로 주인님의 입술이 더럽혀지다니..." "라크리마 잠깐만." "예?" 무척이나 기분나빠하고 있는 라크리마의 뺨을 양 손으로 잡은 케리는 그대로 라크리마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아주 가볍고 살짝 날린 기습 키스였지만 라크리마가 스톰 드래곤이 아니라 레드 드래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사게 할 정도로 피부색을 변화 시키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에...에...에...이 이건...?" "소독이야. 아무래도 찜찜해서..." "아하...더 해줘요!" 황홀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고 케리에게 달라붙는 라크리마. 그녀를 위로하려는 것이었다면 이 키스는 100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쓰러져 있는 라이오스에게는 치명적인 결정타가 된 것 같은데... 부디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못 들었기를 바랄 뿐이다. 이 한바탕의 촌극을 바라보고 있던 베로니카와 세린의 반응은 상반되어 있었다. 세린은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베로니카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듯이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만요. 라크리마님. 대체 왜 인간에게 '주인님'이라고 깍듯이 경대를 하는 것입니까? 방금전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건 대체 무슨 행동이지요? 새로운 놀이인가요? 아니면 저로서는 알수없는 스톰 드래곤 일족의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겁니까? 어쨋건 보기 좋은 모습은 결코 아니군요." "...그야 케리님은 라크리마의 주인님이니까. 당연한 거잖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건." 베로니카는 눈동자가 핑핑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상황에 맞부딧친 것이다. 뭐 사실 인간이 드래곤 메이드를 거느리는 것도 결코 흔한 일은 아닐테지만. 드래곤은 위대하고 명예롭고 영광된 종족이며 자신은 그 드래곤들을 다스리는 드래곤 로드의 딸인 드래곤 프린세스이므로 매우매우 훌륭한 것이다. 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베로니카에게 드래곤이 인간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오크나 오우거와 다를바 없는 존재인 하찮기 짝이없는 종족,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다니? 같은 드래곤으로서 도저히 봐줄수 없는 추태로군요. 인간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나 인간과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간혹 들어본 적이 있지만 거기까지는 장난삼아 했다고 넘어갈수 있어요. 그런데 인간을 주인으로 섬기다니? 아무리 일족이 다르다고 해도 드래곤 로드의 딸인 드래곤 프린세스로서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로군요! 당신은 완벽한 일족의 수치예요!" "뭐라고!" 아무리 라크리마라도 참기 어려운 폭언이다. 아니 여지껏 라크리마가 참아온 것이 신기할 정도로 베로니카는 특이한 아가씨기는 했지만, 이 발언은 결정타가 된 듯하다. 라크리마의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레드 드래곤이라면 그대로 변신해서 한바탕 난동을 부렸겠지만 라크리마는 스톰 드래곤이다. 한번 정도는 참는다. 마치 폭풍이 불어오기 전의 고요함처럼... "...다시 한번 말해봐..." "그 천박한 언사 하고는. 도대체가 인간을 주인으로 섬긴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정말로 경박하기 짝이없는 계집애로군요. 스톰 일족에 이상한 드래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줄이야. 일족은 다르지만 드래곤 프린세스로서 정말 부끄럽기 짝이없습니다. 나중에 스톰 드래곤 로드 분에게 따져야 겠어요. 전혀 이해가 안가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우리들이 다른 일족의 생활에 무관심 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이건 드래곤 일족 전체의 문제예요. 드래곤이 다른 존재의 메이드 노릇이나 한다는 것은 일족 전체의 수치란 말입니다!" 거기까지 듣고나자 라크리마의 분노는 드디어 폭발했다. 일부러 들을거 안 들을거 다 들어서 분노를 증폭시키려고 한 것 같기도 한데... "이게 듣자듣자 하니까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도 못하냐!" "제가 못할 소리를 했나요? 당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세요. 지금 그 옷차림도 정말이지..." "그러는 너는 그렇게 잘나서 마.족.한테 한시간 만에 꼬셔져서 붙잡혀 있었던 거냐? 그 느끼하고 치사하기 짝이없는 마왕한테?" "그건 실수였어요! 그리고 저는 당신처럼 실수를 반성하지도 않는 드래곤과는 틀려요! 저는 드래곤 프린세스로서의 교양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단 말이예요!" "하. 드래곤 로드가 뭐가 대단하다고 그렇게 지랄지랄이야. 이름만 거창하지 실질적으로 하는건 아무것도 없잖아. 게다가 본인이 드래곤 로드인 것도 아니고 아빠가 드래곤 로드인것 가지고 콧대 세우고 있네. 어이구 참. 기가 막혀서." "당신들 스톰 드래곤 일족의 로드께서 할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제가 이렇게 나서야 하는 거잖아요! 도대체 일족 행동 단속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어이구야. 우리 일족이 언제는 나라라도 만들고 살았니? 다들 따로따로 살다가 가끔 모이는 것 뿐이잖아? 제각각의 행동에 간섭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는 것이 일족의 기본 규율 아니었냐? 그렇게 살다가 가끔 생기는 분쟁이나 조정하려고 드래곤 로드가 만들어 진거잖아!" "당신의 행동이 저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생각해본적 있나요? 같은 드래곤이 인간의 메이드가 되다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어요. 제 자존심은 갈기갈기 찟겨나가서 시궁창에 빠진것 같단 말이예요. 흐흐흑... 너무해 너무해... 너무해에..." 베로니카는 갑자기 주저앉아서 앙앙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시작된 말다툼을 얼어붙어서 보고 있던 세린이 그녀의 옆에 다가와서 위로를 해준다. 다 큰 아가씨가 애기소녀한테 위로를 받는 모습도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라크리마도 갑자기 너무 열을 내서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으며 쓰러지려고 했지만 라크레일과 케리가 다가와서 부축해주었다. 둘다 갑자기 시작된 이 말다툼을 어떻게 말려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쨋건... 열받은 라크리마를 말릴수 있는건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 참 라이오스는 아까의 육체적 정신적 데미지를 아직 회복하지 못하여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한동안 앙앙 거리던 베로니카는 세린에게만 위로를 받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하였는지(사실 한심했다.), 다시 용기를 가지고 분연하게 일어나서 라크리마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라크리마도 강인한 드래곤 답게 다시 회복하여서 2회전에 돌입. "흥. 혹시 당신은 자신의 그 행동이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뭐 다른 종족에게 사랑을 느끼는 드래곤도 긴 세월을 살다보면 있을수도 있는 법이겠죠. 하지만 저로서는 그 사랑의 순수한 사랑의 형태라고는 도저히 보기 어렵군요! 당신의 지금 모습은 삐뚤어진 욕망에 취해있다고 밖에는 볼수가 없어요. 그런 지저분한 모습을 다른 종족에게 보여주고 다니다니... 정말 천박천박천박천박천박해요!" "남의 사랑에 간섭하지 마! 그러는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마족한테 홀라당 넘어갔냐?" "저는 그래도 플라토닉 했어요. 다른 종족간의 벽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 제 몸에 닿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죠. 애당초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이라면 책임질수 없는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요? 하지만 당신의 지금 모습을 보아하니 당신은 인간으로 변해서 그렇고 그런 입에 담기도 두려운 지저분한 욕망도 마구 채워댄것 같군요. 그것만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워요! 그렇게나 무책임한 행위를 하다니... 아아 문란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어떻게..." "남의 침대 옆에서 누가 자고 있던 네가 대체 무슨 상관이야!" "당신의 행위를 보고 있자면 같은 일족으로서 부끄러움 밖에 느낄수 없어요.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그게 무슨 짓입니까? 게다가 키스를 남의 앞에서 아무렇게나 해대고 좋아하다니... 키스는 모든 연인의 궁극적인 도달점으로서 서로간의 믿음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던 가요? 그러니 찬란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빛들이 축복해 주는 가운데서 어두운 숲속에서 둘이서만 고요히 사랑의 언어를 주고받다가 해야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나요? 방금전 처럼 아무렇게나 막 해대는 것은 당신 자체를 천하게 만드는 일이예요!" "...네 로맨스 소설적인 사랑관을 남에게 끼워맞추려고 하지 마! 애당초 넌 현실인식이 잘못되어 있어! 처음부터 다른 드래곤이 어떻게 살건 말건 네가 간섭할께 뭐야!" "전 드래곤 프린세스니까요! 프린세스로서 의무를 다하는 것 뿐이예요!" 자신만만하게 대답하는 베로니카. 하지만 라크리마에게는 전혀 합당한 대답이 아니다. 사실 베로니카의 행동은 드래곤들의 일반적인 행동으로 볼때 전혀 정상이 아니다. 물론 라크리마라고 정상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드래곤들은 개인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다른 드래곤의 행동에 특별히 제제를 가하려 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특히 그것이 자신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경우라면 말이다. 물론 베로니카는 라크리마의 행동에 심적인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자신에게 위해를 끼친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보통은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 게다가 드래곤 프린세스란, 베로니카의 주장과는 정 반대로 맥락적으로 따지면 드래곤 로드의 딸이 프린세스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그것이 된다고 해서 무슨 권한이 생기거나 의무가 생기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다. 말 그대로 드래곤 로드의 딸이 가지는 명예호칭일 뿐. 실질적 권한은 0이다. 보통 드래곤과 다를건 하나도 없다. "죄송해요. 저희 언니가 원래 저래서..." "괜찮아요. 세린 양. 저희 누나도 원래 좀..." 정상적인 드래곤인 세린과 라크레일의 입장에서 볼때는 둘다 변태고 이상한 여자다.[...] 음, 하지만 정중하게 사과하는 세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양볼에 홍조가 돌고 입술이 째져라 올라가는 라크레일도 완전히 정상은 아닌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해츨링에게 침발라 놓고 먹는 짓을 하려는 거냐. 베로니카와 라크리마가 대결에 정신이 나가서 그 광경이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할수있다. "드래곤 프린세스 따위가 대체 뭔데! 왜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는 거야!" "전 일족의 우두머리의 딸로서 일족의 생활을 단속해야 할 권리가 있어요! 게다가 당신의 행동은 저에게 크나큰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요!" "그래서 남의 사랑이 지저분 하다는건 나한테 얼마나 큰 모욕이 되는줄 알아? 이 재수없는 것아!" "뭐 재수없다구요? 이건 제가 태어나고 부터 들은 가장 큰 모욕이군요! 이 천박한 것!" "재수없는 년! 재수없는 년! 재수없는 년! 재수없는 년!" "천박천박천박천박천박천박천박천박!!!!" "이 머저리 같은 년!" "야이 쌍것 가시나야!" "뭐 쌍것? 에라이 공주병아!" "이게 정말! 이 발랑까진게!" "내가 발랑 까졌는지 네년이 봤냐! 봤어?" "어머 그런걸 어떻게 보라고! 그런 소리 하는거 보면 다 알아!" "이게......" "크으으으...." 둘다 이미 논리와 자존심을 다 집어던지고 완전히 감정 싸움으로 돌입해버렸다. 이렇게 까지 되면 둘다 완벽한 핵폭탄이다. 밖이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폴리모프해서 본체로 돌아가서 치고 받을것 같지만 안이라서 여기서 폴리모프 했다가는 바위틈 사이에 끼어버리기 때문에 참고 있는것 뿐이다. 하지만 침묵속에서 분노는 점점 임계선상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고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릴 때도 멀지 않았다. 케리는 위기를 느꼈다. 멜트다운 하기 직전의 원자로 처럼 폭주하고 있는 이 두 드래곤 아가씨들이 전면적으로 대결한다면 이 일대가 남아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중간에 바람을 빼고 열을 식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케리는 좋은 아이템을 발견하였다. "라이오스 씨." "예? 케리님?" "부탁이 한가지 있어요." "뭐라도 말씀하십시요!" 그것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라이오스. 다른 세계로 격리되어 있던 그는 케리의 부름에 다시 부활하여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케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달려왔다. 케리는 그에게 소근거렸다. 라이오스는 케리의 숨결이 귀에 닿는 것만으로 황홀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 부탁은 아무리 그라도 들어주기 어려운 것이었다. '...라크리마와 베로니카를 진정시켜 주세요.' '...저기... 그건 아무리 저라도 좀...' '할수있죠?' '하지만 라크리마 양의 주인은 케리님이 아닙니까.' '...전... 여자잖아요...... 일이 잘 되면 아까전... 의 그것을 계속 해드릴께요.' '정말입니까!!!' 그렇게 소근거리고 몸을 한번 살짝 비트는 케리. 으음 연기가 능숙해졌다. 단순히 라이오스를 조종하는 방법을 깨닳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을 보고 라이오스는 불을 지고 화약고에 뛰어들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화약을 지고 불속인가? 뭐 어느 쪽이건 눈이 홱 돌아가버린 그에게는 상관없을 것이지만. 이미 미끼에 정신이 팔려 보이는게 없어진 그는 평소처럼 껄껄 웃으면서 라크리마와 베로니카를 진정시키려 했다. "자자. 저기 아가씨들 진정하세요. 아가씨들이 이렇게 싸우니까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하."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두 여자는 동시에 라이오스 쪽으로 머리를 향했다. 그녀들의 시선이 미치는 지역에서 재빨리 케리와 라크레일, 세린은 대피해버린다. 사정권에는 라이오스 혼자 남아있다. 수류탄 핀을 뽑은 라이오스를 향하여 폭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넌 뭐야! 입닥치고 있어! 폴리모프 아더!" 첫타는 베로니카가 날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오스는 닭으로 변했다. "이 자식이 아까 주인님한테 키스 받았지! 폴리모프 아더!" 다음에 라크리마가 날린 마법으로 라이오스는 강아지로 변했다. "폴리모프 아더!" "폴리모프 아더!" "폴리모프 아더!" "폴리모프 아더!" ...... 연속적인 마법 난사에 라이오스는 닭->강아지->소->말->개구리->뱀->고양이->도마뱀->거북이->원숭이->고블린->오크->돼지->.... 순서대로 수십차례 변신을 반복하였다. 케리는 마음 속으로 라이오스에게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물론 아까전의 계속을 해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8화 -드래곤 프린세스 ⑥- 라이오스의 장열한 희생 덕분에 라크리마와 베로니카의 분노는 활화산 처럼 타올랐다가 꺼졌다.(다행히도 현재는 일단 인간으로 돌아온 상태다.)하지만 둘다 이성적인 시각을 되찾게 되었다고 해도, 서로에 대한 증오감까지 사라질리는 없다. 이렇게 도저히 손을 쓸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뒤틀어진 상태니 뭘 어떻게 하든 간에 일단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 좋아요. 서로 욕설을 퍼부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 부분은 서로 용서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우리들 위대한 종족인 드래곤이 하찮은 인간따위에게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수가 없군요. 게다가 복종상대가 '여자'라니! 동성애 같은 추잡한 짓을... 아아아..." "...아니 난 원래 남자인데..." 케리가 뒤에서 중얼거렸지만 베로니카는 듣지 못한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뭘 하던 간에 네가 무슨 상관이냐는 거야." "상관있어요. 이것은 모든 드래곤 종족의 명예에 관련된 문제니까요. 드래곤 종족의 명예는 곧 드래곤 로드의 명예이자 저의 명예이기도 한 것입니다!" "말이 안통하는 구만..." "어쨋건. 저에게는 당신의 주인이 드래곤을 복종시킬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간이라는 것은 납득할수가 없군요! 만일 당신이 그걸 저에게 납득시킬수만 있다면 용서해주겠어요." "뭐 일단 마왕을 퇴치한 용사고 너도 구해줬잖아. 그리고 네가 용서하고 말고 할게 뭔데?" "따라서 제가 저 인간을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그가 저의 시험에 통과한다면..." "그래그래그래. 그러니까 빨리 사라져 줘." "듣고있는 겁니까?!" 베로니카는 상당히 진지해보였지만 라크리마로서는 귀찮은 것이 하나 따라붙은 꼴이다. 아까부터 이야기도 제대로 듣고있지 않는것 같다. 사실 여기는 라크리마의 레어(일단 그렇다.)인 셈이니까 베로니카를 쫓아내는 것도 라크리마의 권리중 하나지만, 베로니카는 그런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듯 하고 케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크게 소리쳤다. "자 그럼 당신! 시험을 받도록 하세요!" "...에? 정말?" "물론입니다! 드래곤의 시험이라면 당연히... 대결입니다! 드래곤을 굴복시킬 정도의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세요! 폴리모프 셀프!" 베로니카의 몸이 빛나는 광채에 휩쌓였다. 본체로 변신하려는 것이다. "으아아아악!" 케리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첫번째, 아직 드래곤과 싸워서 이길 자신 같은건 눈꼽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케리 뿐만 아니라 라크리마, 라크레일, 라이오스에 세린 까지 도망치고 있는 이유와 같다. 같은 드래곤들 까지 두렵게 하는 베로니카의 위력이란... 라크리마의 레어는 지하로 100미터 이상 파들어간 곳이라는 점과 베로니카의 본체 크기는 길이만 100미터는 될 것이라는 점이다. 우지직 우지지직 우지지지지직... 은빛 광채에 휩쌓였던 베로니카의 몸은 마구 부풀면서 방안을 가득 채우고 복도를 때려부수고 윗층과 아래층까지 부수다가... 중간에 끼인 상태에서 멈추고 말았다. 레어 안에 있던 마왕성(구 하렘)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지만 다행히도 라크리마가 서둘러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바깥으로 도망친 탓에 베로니카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무사할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베로니카는... 땅속에 끼어버렸다. "....어이 바보공주. 괜찮냐?" 라크리마는 벽을 뚫고 빼꼼이 나와있는 베로니카의 머리를 향하여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즉, 하렘이 레어 안쪽에 만들어져 있고 그 안에서 본체로 현신을 했으니 레어 안쪽에 있는 암반 속에 몸이 끼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무너진 토사와 바위에 깔려서 팔도 다리도 날개도 움직일수 없게된 그녀는 어찌어찌 밖으로 빠져 나온 머리만을 바둥거리고 있었다. 꽤 웃기기도 하지만 정말 불쌍한 모습이다. "...사..살려줘어..." "...주인님. 그냥 이대로 가버릴까요?" "그래도 너무 불쌍한데 저건..." "으앙! 베로니카 언니 구해줘요!" 마침내 세린의 애원을 견디다 못하여 라크리마와 라크레일이 암반을 날려버리고 베로니카를 끄집어 내었다. 다시 폴리모프 해서 나오려 한다면 무너진 잔해에 깔려서 그대로 명을 달리 할수도 있다. 사실 이런 붕괴 사고로 죽는 드래곤도 의외로 좀 있는 모양이다. 다른 드래곤이 도와준다면 쉽게 나올수 있지만 드래곤들은 혼자 살다 보니 몇백년씩 갇혀있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지고... "저를 그 꼴로 만들다니... 당신도 나름대로 대단하군요... 인간 치고는 제법이예요!" 겨우 벽에서 빠져나온 베로니카는 다시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 하여 케리를 향하여 말했다. 누가 봐도 완벽한 자멸이었는데...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건 아니랍니다. 당신의 강함을 증명하였다고 해서 드래곤의 주인이 될 자격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어요. 드래곤의 주인이 되려면 교양과 인품과..." "주인님. 저거 그냥 내버려 두고 가요." "음 그럴까..."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잡담하지 마세요! 이런 천한..." 계속 베로니카가 끈질기게 달라붙자 라크리마는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녀의 성격에 여기까지 참은 것은 정말 인내심을 한계까지 사용한 것이다. 이제 슬슬 끊어질 때도 됐다. '이 녀석 한번 제대로 끝장을 봐야겠군!'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났는데? 난 네가 그렇게 잘났다는걸 믿지 못하겠는걸." "뭐...뭐라구요?" "드래곤 로드의 딸이라는 거 빼면 네가 잘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어. 게다가 마왕에게 잡혀가지 않나 땅속에 끼어버리지 않나 그런 추태를 계속 보이면서 나 잘났다고 소리치는 꼴을 더 이상 보기는 정말 싫다." "이럴수가... 그런 말을... ...이이이 이건 실버 드래곤 전체에 대한 모욕이예요!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이렇게 되버리다니." 계속 극단적으로 돌아가는 상황 앞에서 케리는 한숨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케리 일행은 진지로 돌아가고 베로니카와 세린도 그곳에 얹혀서 잤다. 황태자는 케리가 또 드래곤 두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자 상당히 기뻐했지만 라크리마가 그 드래곤과 결투를 벌이게 되었다는 사실에 거의 기절할듯이 놀랐다. 드래곤들의 '결투'를 볼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진지 앞의 커다란 공터에서 거대한 드래곤 두마리가 마주쳤다. 하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비늘을 가진 거대한 실버 드래곤 베로니카, 다른 하나는 하얀 줄무늬가 하나 들어간 흑철색의 어두운 광택이 나는 비늘을 지닌 스톰 드래곤 라크리마. 두 드래곤은 괴수 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마주보고 서있었다. 잔존해있던 병사들은 생에 한번이라도 볼까 말까한 이 진기한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서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인근 도시나 마을에까지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퍼져서 꽤 많은 구경꾼들이 와있었다. 베로니카는 지저분한 벌레떼들을 보는 눈빛으로 인간들을 한번 휙 훑어본 다음 라크리마를 향하여 말했다. [만일 내가 이긴다면 당신에게 드래곤으로서 갖추어야할 예의범절과 교양을 확실하게 주입시켜 드리죠. 1000년 동안은 확실히 교육시켜 드리겠어요.] [좋아 좋아. 너한테 배우러 갈께. 그럼 넌 나한테 뭘 해줄꺼냐?] [그럴 일이 생길리는 결코 없겠지만... 만일 당신이 저에게 이긴다면 당신의 부하로서 1000년간 당신의 명령을 무조껀 따르도록 하지요!] [그래그래. 그럼...] 긴장된 공기가 주위에 흐른다. 두 마리의 대괴수가 싸우기 직전 살기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긴장을 뚫고 들려오는 '땅콩 오징어 팝니다.','난 은색 드래곤에게 100골드!','난 까만 드래곤에게 300골드!','엄마 오줌마려!','여기 화장실 없어요?'같은 소리는 일단 무시하도록 하자. "라크리마가 이길수 있을까?" 케리는 라크레일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라크레일은 그 질문에 한참 생각을 하더니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우리 누나가 얼마나 강한데." "베로니카 언니도 강해요. 무술수업도 많이 했어요." 그 말에 세린이 반박을 했지만 라크레일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세린에게 설명해주었다. "라크리마 누나의 강함은 그러니까... 평범한 드래곤의 강함이 아냐. 그건 그러니까... 정말 터무니 없다고 해야 할까..." "...아 라크리마는 정말 강하지. 나도 이긴적은 없어. 비긴적은 많지만..." 아마레도 등뒤에서 동의했다. 그럼에도 세린은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한듯 하지만...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케리는 이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싸움 앞에서 두근두근 거리고 있었다. "케리 레그너스. 상황은 어떤가?" "아 황태자님." 황태자가 등 뒤로 다가오자 케리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의를 표했다. 황태자는 그냥 앉아있으라는 손짓을 한 뒤에 계속 말을 이었다. "상황은 어떤가? 라크리마가 저 실버 드래곤에게 이길수 있을것 같은가?" "으음... 전 라크리마가 다른 드래곤과 싸우는 것을 본 적은 없어서 장담할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 실버 드래곤의 힘은 전혀 짐작할수 없고... 전설에 의하면 스톰 드래곤이 날아가는 속도는 어떤 드래곤보다 빠르다고 하지만 이건 지상에서 싸우는 것이니... 게다가 실버 드래곤도 강력한 드래곤으로 소문이 나 있는 것은 마찬가지고." "음... 그런가. 되도록이면 이기는게 좋을텐데. 아 참 그리고 선물이 있다." "예?" 황태자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서 케리에게 넘겨주었다. 케리는 서둘러 그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그가 기대하던 물건이 들어있었다. 절대성별전환의 귀걸이였다. 한 쌍중 하나는 황태자의 귀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는 상자 안에 있었다. 물론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똑같이 만들어진 모조품도 함께. "정말 감사합니다! 돌려주시다니..." "원래 자네 물건이었으니까 당연한 것이다. 영영 여자로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네. 게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까." "그럼. 지금 당장 귀걸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좋다." 케리는 절대성별전환의 귀걸이를 귀에 끼웠다. 역시 몇번이나 겪었던 변화가 그의 몸에 일어나면서 그는 다시 남자로 돌아올수 있었다. 역시나 외모는 특별히 변한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성별을 되찾았다는 것 만으로도 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케리는 완전히 남자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기뻐라... 드디어 돌아왔다...휴우..." "그대는... 아름답군. 남자일때나 여자일때나."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황태자님의 일도 잘 해결되시길 바랍니다." "음... 아. 대결을 시작하려 하는군." 황태자는 드래곤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과연 두 마리는 서로 노려보던 자세에서 조금씩 공격 준비를 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주위에 흐르고 있는 묵직한 살기는 둘의 대결이 곧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는듯 했다. 케리는 그 광경을 보고 힘차게 소리를 질렀다. "아?! 라크리마 이겨라!" 과연 라크리마가 그 소리를 들었을까? 그것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쨋건 두 드래곤은 동시에 앞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29화 -괴수 대결전- 구경꾼들은 백미터에 달하는 두 거체가 돌격할때 나오는 진동을 느끼고 자신들이 오판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퍼뜩 들었다. 발 한걸음 옮길 때마다 천둥치는 듯한 폭음이 들렸고, 땅으로 전해지는 진동은 거의 진도 4,5의 지진을 방불케 하였다. 어찌나 거세게 흔들리는지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폭풍속의 허수아비 처럼 쓰러졌고, 앉아있던 사람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 "포스 필드!" "안티 매직 쉘!" "안티 퀘이크!" 그때 아마레가 마법을 발현하여 그들을 구원했다. 그녀도 흔들흔들 거리는 탓에 구경하기가 불편해서일까? 아니면 정말 위험하다고 느낀 걸까? 이 진동에 케리도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라크레일에게 말했다. "이상한데... 라크리마가 보통 움직일 때는 이렇게 진동이 심하지 않았잖아?" "그거야 싸우려고 움직인게 아니라서 되도록 부드럽게 움직여서 그렇지!"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쿠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하늘을 찟어버리는 듯한 괴성이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다. 둘다 무시무시한 드래곤 피어를 신나게 뿌리고 있었다. 어린애들은 공포를 못 이기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가 도처에서 발생했고, 어른이라도 담이 약한 자들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움직이지도 못했다. 그리고 앞뒤 안 가리고 서로에게 달려드는 두 마리의 드래곤. "크아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둘은 장열하게 크로스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그 가치를 알고 있다면 누구나 눈이 뒤집혔을 정도로 비싼 마법재료인 드래곤의 피와 드래곤의 이빨이 몇개씩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괴수들의 대결 앞에서는 아무리 욕심많은 자라도 도 그걸 줍기 위해서 가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할수 없었다. "크아 크아 크아 크아 크아!" "크워어어어어 캬아아아아!" 그리고는 난타전에 돌입했다. 레프트 어퍼, 라이트 스트라이트, 카운터 훅, 코크 스크류 블로우.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현란한 주먹질이 난무했고 그때마다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주먹질만 하고 있을 때는 그나마 얌전하게 노는 것이었다는 것을... 주먹질만 하다 보니 베로니카는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느껴봐도 라크리마의 주먹이 훨씬 파워가 센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뭐 지금껏 얌전하게 지내온 베로니카와 한때는 공포의 마수였던 라크리마가 펀치의 파괴력이 같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만. 그리고 아무리 드래곤 스케일 이라고 해도 같은 드래곤의 주먹을 수십방씩 맞아도 멀쩡할 리는 없다. 따라서 베로니카는 공격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크아아아!" 베로니카는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더니 라크리마를 향하여 손을 휘둘렀다. 샤캉 하는 소리와 함께 라크리마의 비늘 위로 붉은 금이 몇개 그어졌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드래곤 스케일이지만 그보다 더 단단한 드래곤의 손톱까지 이겨낼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베로니카의 의도와는 달리 상처입은 라크리마는 더욱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키야아아아아!" 손톱으로 할퀴더니 꼬리를 휘둘러 공격해오는 베로니카의 꼬리를 정확하게 붙잡아낸 라크리마는 꼬리를 뽑을 것처럼 잡아당기면서 엉덩이를 발로 마구 차버렸다. 잡혀서 꽥꽥 소리 지르면서 버둥거리던 베로니카는 날개를 퍼덕여서 라크리마를 떨쳐냈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번에는 몸통 박치기. 두 개의 거체가 한번에 땅으로 쓰러지면서 대략 진도 7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하였고 지반까지 쩌적 거리면서 갈라졌다. "캬아캬아캬아캬아!!!" "크워아아아아아아!!!" 베로니카는 밑에 깔린 상태가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손을 휘두르면서 저항했다. 베로니카를 밑에 깔아 뭉개기는 했지만 워낙 저항이 심한 탓에 라크리마는 베로니카를 제대로 요리하지 못했다. 마침내 베로니카는 입까지 벌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라크리마의 왼 팔을 깨물었다. 드래곤 스케일이 뚫리고 피가 콸콸 뿜어져 나올 정도로 정말 세게 깨물은 것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 [이게 깨무나!] 하지만 이건 베로니카의 실수였다. 더욱 골이 난 라크리마는 베로니카에게 더욱 처절한 응징을 가하기 시작했다. 물리지 않은 오른 손을 뻗어 베로니카의 목을 붙잡은 다음, 머리에다가 대고 박치기를 가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머리 끼리 부딧쳐도 아프기 짝이 없는데 드래곤의 이마에는 뿔 까지 달려있다. 뿔에 찍혀 머리에 분화구가 팍팍 파이고 피와 살이 튀어나가는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베로니카는 라크리마를 놓아 주었다. 그러자 라크리마는 더욱 여새를 몰아 베로니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쿠앙 쿠앙 쿠앙 "키엑...키엑...키에에엑..." 소나기 처럼 베로니카를 습격하는 라크리마의 주먹질은 거의 전국구 조폭 수준의 실전적인 파괴력이 있었다. 베로니카가 비명도 제대로 못 지를 때까지 두들겨 팬 뒤에 완전히 묵사발이 되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된 베로니카를 확인하자 라크리마는 그녀 위에 타고 앉아 승리의 환성을 울렸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제 나름대로는 기쁨의 환성이었겠지만, 누가 들어도 그것은 괴수의 울음소리였다. 그것도 한바탕 살육을 한 뒤에 기뻐하는... 한마디로 애 떨어질것 같은 괴성이란 것이다. 그 비명 소리를 들은 인간들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병사들은 진지로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 마을로 개미핥기 앞의 개미떼 처럼 흩어져 도망갔다. "어떡해! 저러다가 베로니카 언니 죽겠어요! 오빠, 우리 언니 좀 구해주세요!" "...괘 괜찮아... 죽지는 않을꺼야 죽지는..." "오빠가 좀 구해줘요!" "나도 우리 누나는 무섭단 말이야!" 세린은 금방이라도 펑펑 울어버릴것 같은 얼굴로 라크레일에게 애원했다. 라크리마는 아주 눈이 돌아가서 아예 결정타를 내버리려는 듯 베로니카의 목을 물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공포를 느낀 세린은 드래곤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다. 세린의 본모습은 고작 10미터나 될까 말까한 작은 헤츨링이었고 머리가 몸에 비해서 상당히 큰 3,4등신 정도의 비례를 가진 데다가 날개도 작아서 제대로 날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용감하게 날아가서 라크리마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롹 크롹 크롹 크롹 크롹!"(이제 그만하세요!) "크르르르..."(비켜...) "크...크롹.."(이제 그..그만..) 하지만 라크리마가 무섭게 노려보면서 한마디만 하자 무서워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처럼 비틀비틀 거렸다. 역시 아직 어린 헤츨링으로서는 성룡의 압박을 이겨내는게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라크리마는 이제는 드래곤 피어 까지 눈빛에 실어 보내면서 세린을 향하여 말했다. "크르르르르르르르르르..."(안 비키면 죽여버린다...) "키..키익...키이이익..."(사...살려줘요...) 100미터에 달하는 라크리마가 고작 그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린을 위협하고 있으니, 세린이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버티고 있는게 용한 것이다. 애당초 덩치에서 부터 압도적인 차이가 나니 그 공포가 오죽 하겠는가? 게다가 라크리마가 뿜어내는 살기는 정말로 세린을 죽일 것 처럼 그녀를 찌르고 있었다. "끼에에에에에에에..." '...제...젠장 너무 귀엽잖아! 좋아. 나 오늘 죽는다!' 커다란 눈망울에 큰 눈물 방울을 글썽 글썽 거리면서 버티고 있는 세린의 모습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때도 굉장히 애처롭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까지 본 라크레일은 더 이상 참을수가 없어 누나를 말리기 위해 목숨을 걸기로 결심했다. 즉시 폴리모프한 라크레일! 세번째 괴수가 등장한 것이다. "크르르르르르르..."(넌 왜 나와?) '...지...진짜 무섭다...' 라크리마가 한번 노려보기만 했을 뿐인데 라크레일은 오금이 다 저려왔다. 어릴 때 부터 라크레일은 라크리마에게 얻어맞으면서 자랐다. 그 때의 공포가 아직도 몸 속에 베어있는데 라크리마가 노려보자 과거의 공포까지 한꺼번에 되살아나 정말로 참기 힘들었다. 하지만 세린이 라크레일을 향하여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키엑 키엑 키에엑..."(오빠 도와줘요...) '...몰라 나 오늘 죽을래! 어머니 아버지 저 먼저 갑니다!' 라크레일은 눈을 질끈 감고 용감하게 라크리마에게 달려들다가... 발차기에서 꼬리 치기로 이어지는 라크리마의 이단 공격을 받고 단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으음. 역시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상대를 제대로 주시하지 않으면 전투에서 이길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노릇. "...크에에에..."(난 죽었다아...) "크르르르르르롸아아아아..."(이게 감히 누나 일을 방해해? 너 오늘 죽어봐라.) 이제는 아예 브레스까지 준비하는 라크리마, 정말로 뭔일 내려는 것 같다. 드래곤에 익숙해진 몸이었기 때문에 여지껏 도망치지 않고 있던 케리는 뚱 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마레를 보면서 소리쳤다. "아마레, 저러다가 애 하나 잡겠어. 어떻게 말려봐." "열받은 라크리마는 무섭단 말이야. 저렇게 되면 쟤 아무도 못말려. 직접 명령해보는게 빠를껄?" "...지 직접 명령하라고..." 라크리마의 덩치는 케리의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데다가 이제는 눈이 뒤집혀서 눈에서 붉은 불빛이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온 몸에서 살기가 철철 넘쳐흐르고 있는 데다가 주위에는 브레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풍이 휘몰아쳐서 더욱 사악하고 무섭게 보였다. 대체 저런 상태의 라크리마가 정말 명령을 들을 것인가? "...말을 들을까?" "들을꺼야 아마도." "'아마도'라니..." 아마레는 태평스럽게 말했지만 저 공포스러운 모습의 라크리마에게 명령을 내릴수 있는 자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게다가 지금 막 브레스를 날리려고 하는데. 아앗 그때 세린이 또 다시 라크리마의 앞을 가로막는다. 이번에는 라크레일을 위해서... 음 참으로 용감한 헤츨링이다. "킥켁 키익 케엑"(참으세요 언니) 이제는 아예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라크레일은 감동한 나머지 '죽어도 좋아'라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이 녀석 정말 여러가지로 위험한 녀석었군... 하지만 라크리마는 눈썹 아니 비늘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정말로 한꺼번에 몰아서 죽일 것 처럼 브레스를 뿜어내려 하고 있다. 그제서야 아마레도 놀라서 소리쳤다. "아 저건 안되는데... 헤츨링을 죽이려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저 녀석! 정말 눈이 돌아간거 아냐?" "그...그래?" "헤츨링을 죽이면 드래곤 사회 전체에서 공적으로 몰린단 말이야! 빨리 말려야 하는데..." "그...그럼..." 케리는 드래곤 들에게 공적으로 몰린다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느낌은 들었다. 그렇다면 라크리마가 너무 열받은 나머지 큰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니다. 라크리마를 말려야 할 필요가 충분히 생긴 것이다. 케리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짜내어 라크리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라크리마! 이제 그만하고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 라크리마의 머리는 100미터는 되는 높은 곳에 있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릴런지 어떨런지 케리는 걱정하였지만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케리가 소리치고 잠시후 라크리마는 브레스를 중지하고 폴리모프를 시작한 것이다. "네에."하고 귀엽게 대답하면서...단 한번에 완전히 진정해버린듯 했다. 그리고 잠시후. 두 마리 드래곤이 쓰러져 있는 위에 여느 때 처럼 메이드 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서있는 라크리마가 있었다. 얼굴에 멍이 들고 입 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팔에는 구멍이 두개 뚫려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기는 했지만(...)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달려가면서 말했다. "라크리마 괜찮아?" "아! 뭐... 이 정도의 상처야... 힐 링!" 하얀 빛이 한번 그녀의 몸 주위를 돌고 난 뒤에 그녀의 몸은 완벽하게 말끔한 상태로 돌아왔다. 갑자기 평온하게 돌아와 버린 탓에 세린과 라크레일은 멍하니 있다가 그들도 인간으로 폴리모프 했다. 라크레일은 살아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행복을 느끼며 세린을 얼싸 안았다. "그런데... 다 도망쳐버렸네." "죄송해요. 제가 좀 심하게 날뛰었나보죠." "으음... 약간..." 약간 이라는 말로 표현될 정도는 아닌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똑바로. 더 크게!" "죄송합니다!" "구체적으로!" "저의 부족함을 모르고 함부로 날뛴 것을 라크리마 님에게 진심으로..." 한판의 괴수 대결전이 끝난뒤 한참이 지나서야 베로니카는 깨어났다. 이미 상처는 라크레일과 세린이 다 고쳐둔 뒤였지만 그녀에게는 더욱 큰 고통이 남아있었다. 약속대로 앞으로 1000년간 라크리마의 노예로서 지내야 한다는 것. 드래곤에게 약속은 절대적인 것이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약속이라고 해도 지키지 않을수는 없었다. 라크리마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베로니카에게 내린 첫번째 명령은 그간의 잘못을 자신에게 사과하라는 것. 그것도 무릅꿇고 엎드린 자세라는 최악의 형태로. 베로니카는 속으로 이를 뿌득 뿌득 갈았지만 라크리마의 전투력이 자신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미 그녀에 대한 공포심이 뼈에 박혀버린지 오래였다. 도저히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미 약속해버린 일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과에 사과를 거듭하는 베로니카, 라크리마는 그녀 앞에 앉아서 여왕님이라도 된 것 같은 표정으로 거만하게 있었고 베로니카의 모습을 라크레일과 세린, 아마레는 정말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라크리마가 진심으로 괴롭히기로 작정한다면 대체 어떤 짓을 할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이다. "대단하군. 라크리마가 승리한 건가? 케리 경. 참으로 잘됐군." "예. 일단은...예 그런데..." 황태자와 장군들 조차 아까전의 드래곤 피어는 이겨내지 못하고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온 뒤였다. 그런데 케리는 황태자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경... 이라니요?" "아. 아직은 경이 아니군. 자네에게 기사 작위를 주기로 결정이 되었네. 뭐 수도에 가면 바로 수여될 것이야. 이번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웠으니까 당연한 일이지. 마왕을 쓰러뜨리고 드래곤의 주인이라는 자가 고작 견습기사여서야 말이 아노디지 않는가?" "...저...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럼. 개선을 하러 가도록 하지. 저 드래곤 들은..." "제가 뒤따라서 데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황태자 조차 연신 라크리마에게 사과하는 베로니카를 불쌍하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고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개선식 ①- 제국군의 개선식은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이루어졌다. 제국군 이외에도 용병이나 시민군 들을 배려해서이다. 중심이 되는 군사는 제국군이었지만 그렇다고 수도에서 한다면 다른 병사들에게 너무 긴 여행을 시키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개선식을 한 다음 용병과 시민군들은 거기서 해산되고 제국군 중앙군 만이 수도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한번 개선식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 시내 광장 한쪽에 세워진 개선문을 따라 나오는 개선 행렬의 맨 앞에는 이 싸움의 지휘관이었던 황태자가 4필의 백마가 끄는 화려한 전차에 올라타고 시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었다. 시민들로서도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생계와 목숨을 위협하던 마왕군들이 중앙에서 온 제국군에게 가볍게 격퇴된 셈이었으니... "이번에는 드래곤이 참가했다던데 사실일까?" "글세... 드래곤은 안 보이는데..." 개선식 행렬을 구경하러 나온 푸줏간집 아들 짐과 야채가게 아들 한스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드래곤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자 크게 실망하였다. 이번 전쟁에 드래곤도 참가했다는 소문을 듣고 드래곤 한번 구경하려고 병사로 자원하려다가 나이가 부족해서 탈락한 그들로서는 개선식에 드래곤이 나오리라 믿고 손꼽아 개선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차에 탄 황태자 뒤로는 가지가지 색의 거대한 기간틱 아머들이 지축을 울리면서 걸어왔다. 그들의 맨 앞에는 수레에 실린 허리 아랫 부분만 남은 발록과 발록을 붙잡고 녹아내렸다는 카렐 경의 기간틱 아머가 기사의 용기와 장열한 승리를 자랑하기 위한 상징물로서 들려오고 있었다. 발록의 시체는 마족의 것이라 그런지 완전히 미이라화되어서 전혀 부패하지 않아 수도까지 끌려가서 이 전쟁의 전리품으로 박물관에 전시될 계획이었다. "카렐 경은 죽었다지?" "아니 살았다는데?" "살았으면 왜 개선식에 안나와. 저기 보면 부상당한 기사들도 다 나왔는데... 죽지 않고서야 이런 명예로운 행사에 빠질수 있겠어?" "그러고보니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살았다는 소문도 있고..." "죽었을 꺼야. 기간틱 아머가 저꼴이 되었는데 저 안에서 살아나올 기사가 있겠어?" 사실 카렐은 아직도 죽지 않고 비참한 상태로 살아있었지만, 자신의 처참한 꼴을 시민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개선식에는 불참하였다. 그랬서 죽었다는 소문도 나도는 것이지만 그는 먼저 돌아와서 시내의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치료 가망은 거의 없었고, 말 그대로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이 상태가 지속될 듯 하였다. 기사로서의 생명은 이미 끝났고 이제 정상적인 생활도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기간틱 아머들 뒤에는 말에 타고 갑옷을 걸친 중장기사들. 그 뒤에는 정규 중무장 보병들이 따랐고 그 뒤는 지원해서 참전한 병사들과 용병들이 있었다. 슬슬 끝이 났으리라 생각하고 시민들이 흩어지려는 때, 드디어 최고의 구경꺼리가 나타났다. "드래곤이다!"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한스와 짐은 즉시 그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키가 20미터 정도 되어보이는 흑철색, 스톰 드래곤이 그 모습을 당당하게 주위에 드러내면서 개선문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갔다. "얼레? 작네. 드래곤은 100미터는 된다고 들었는데..." "좀 어린 종류인가..." 그 드래곤 뒤로 역시 비슷한 크기의 골드 드래곤, 그 뒤로는 실버 드래곤이 하나하나 들어왔다. 예상외로 드래곤의 크기가 작아서 짐과 한스는 상당히 실망하였다. 그들은 키가 100미터는 되는 흔히 성룡이라 불리는 완전히 다 자란 드래곤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앗 저기봐 저기!" "하늘이다 하늘! 진짜 드래곤이다!" 누군가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짐과 한스도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위에는 정말로 거대한 스톰 드래곤이 은빛 갑옷을 걸치고 찬란한 반사광을 흩뿌리면서 백조처럼 우아하게 공중을 날고있었던 것이다. 그 드래곤의 모습이 나타나자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 사람들은 전부 환호성을 질렀다. 보통 때라면 드래곤이 출현했다는 것은 일급 경보였지만 오늘 만은 드래곤이 같은 편이니까 달랐다. [개선문으로 지나가는 것이 더 나았을까요? 주인님] "아니. 난 라크리마랑 같이 공중에 있는 편이 더 좋아. 개선문으로 지나가려면 일부러 몸을 축소해야 하잖아?" [으음. 다른 녀석들은 개선문으로 한번 지나가고 싶다고 마법으로 몸까지 줄이다니. 저게 그렇게 하고 싶은가? 겨우 세린이나 지나갈 만한 크기의 문을... 세린이야 아직 어린애니까 저런데 내보내면 안되니 내가 데리고 있긴 하지만...] "나도 지나가고 싶어요." [안돼! 넌 아직 어린애니까.] "피..." 라크리마의 머리 위 조종석(사실 탄다고 조종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에는 케리와 세린이 타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의 개선식인 셈이다. [그보다 아래를 좀 내려다 보렴. 인간 도시를 하늘 위에서 보는 건 처음일텐데?] "와아 멋져요. 인간들이 모래 알갱이 처럼 보이네요." 세린은 라크리마의 말을 듣고 도시를 내려다보더니 즐겁다는 듯이 말했다. 케리도 이렇게 마음 놓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라 다소 어찔 어찔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개선식 행렬이 시민들의 박수갈채와 만세소리를 받으며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 중앙 가도를 완전히 행진하고 나자 개선식은 끝이 났다. 하지만 공식적인 개선식이 끝났다고 뒷풀이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리라. 용병에서 정규병 까지 모두 술자리와 음식점에 모여 앉아서 전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을 구경했는가에 대해서 수다스럽게 떠들어 대는 차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히야. 인간들이 그렇게 몰려있는건 처음 봤다니까..." "하늘에서 보는게 더 재미있었어." "아냐. 역시 몸을 좀 줄여서라도 사이에 끼어서 보는게 더 즐겁다니까." 개선식이 끝난뒤 오후. 케리 일당은 시청 옆에 있는 귀빈용 관사에 짐을 풀고 있었다. 드래곤들과 케리는 당연히 국빈대접이었고 거기에 더해서 라이오스와 파치야도 덤으로 끼어들었다.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는 무척 큰 도시인 만큼 귀빈용 관사도 보통 호화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새하얗고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방방마다 호화스러운 침대와 소파가 설치되어 있고, 고급 양탄자가 깔려있었으며 수세식 화장실과 소형 욕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에 만들어져있는 대형 목욕탕에는 사우나 설비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식사도 좋아서 파치야에게 참치 한마리가 통채로 나왔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 제일 넓은 방 하나를 케리 일행이 독차지 하고 있었다. 이 관사에 묵은 다른 사람들이 거의 장군급이라는 것을 보면 확실한 특례였다. 뭐 드래곤 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황태자는 이 도시에 있는 별궁에 묶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라크리마의 레어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정말 화려하기 짝이없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케리는 한마디 중얼거렸다. "일반 호텔이라면 이게 대체 얼마나 할까... 이게 대체 세금을 얼마나 들여서 만든거야." "아유. 서민적이게 뭘 그런 생각을 다 해요. 어차피 여긴 공짠데요 뭘." 라크리마는 넉넉한 대접에 기분 좋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역시 정성(돈)을 다해서 대접하면 누구라도 기뻐하는 법인듯 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우울하게 있는 드래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물론 베로니카였다. 그녀는 라크리마가 강제로 입힌 메이드 복을 불만스럽게 만지작 거리면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고보니 세린도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유독 베로니카만은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안스러운지 케리가 라크리마에게 말했다. "...라크리마. 베로니카도 앉게 하지 그래?" "안돼요. 버릇 나빠져요. 자기 위치를 확실히 각인 시켜야 해요. 베로니카, 오늘 네 저녁은 없어." "...으으윽..." "뭐야 뭐야?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아...아닙니다." 입술을 꽉 깨물면서 분노를 억누르는 베로니카.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해서 천년간 부하가 되어야 하다니 정말 불쌍한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설사 드래곤 로드의 딸이 아니라 드래곤 로드라고 해도 바꿀수 없는 일이다. 드래곤에게 한번 맺은 약속은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니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마음대로 어기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상대를 모르고 섣불리 약속을 한 베로니카가 지나치게 경솔했던 것이다. 이것은 물론 라크리마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라크리마가 베로니카를 부하로 부리기 싫다고 해도 이미 약속한 것을 취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부하로 부린다.'라는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그 상태를 해체하는 것은 라크리마에게도 '약속을 어기는 데 따르는 댓가'로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불러올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것을 어길 생각은 없어보이지만... 옜날에 에마가 주인이 되라는 것을 거부했을 경우에는 문제가 약간 틀리다. 그녀는 '카리온의 후손을 주인으로 섬긴다.'라는 약속을 이미 케리를 섬김으로서 지키고 있었다. 즉, 그 맹약에 의하면 에마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고 해도 큰 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는 카리온의 후손이기 때문에 라크리마 스스로 확대해석하여 '후손중 하나를'이라고 생각해도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케리가 그녀에게 베로니카의 부하 상태를 풀어버리라고 명령한다면 이 경우는 모순되는 두가지 약속 때문에 역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원인이 된다. 단 약속을 의도하지 않고 곡해하거나 확대해석 하는 것은 무관하다. 결국 똘똘한 드래곤은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는 것이지만 베로니카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 이 상태를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라크리마가 자신이 지닌 '부하를 대하는 방법'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한 백년 간은 없어보인다. 그녀는 지금 베로니카를 괴롭히는 일에 굉장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꼬르르르르륵... 그러고보니 아침부터 한끼도 먹지 못한 베로니카의 배에서 묘한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라크리마가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는 샤베트를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배고픔에 이겨낼 드래곤 없다는 말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다. 드래곤은 자연의 기를 모아서 섭취하고 살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이 대사 과정은 드래곤의 몸으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몸으로 있을 때도 이미 저장되어 있는 에너지가 활동하기에 불편함은 없을 정도로 남아돌기는 하지만...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면 배가 텅텅 비어있을때 자동적으로 '배고픔'을 알리는 고통 신호가 뇌에 들어온다. 드래곤일 때는 여간해서는 느끼기 힘든 이 고통을 곱게 자란 베로니카가 이겨낼수 있을리가 없다. 라크리마가 '내가 다른 명령을 하기 전까지 그곳에 가만히 서있을 것'이라고 명령해놓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달려가서 아무거라도 먹으려 들었을 것이다. 세린이 그녀를 불쌍하다는 듯이 한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라크리마의 앞을 가로막을수 있던 그녀도 그때의 공포가 너무나 컷기 때문인지 라크리마에게는 감히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라크리마는 살짝 샤벳을 베로니카를 향하여 내밀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베로니카. 줄까?" 이 잔학한 여주인의 명령에 불쌍한 부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그 비참한 모습을 실컷 감상한 다음 한입에 샤베트를 털어먹어 버렸다. 그리고 혀를 낼름 내밀었다. "내가 미쳤냐. 너한테 주게. 넌 귀하게 자란 애라서 이런건 안 먹지?" "으으으으으으으..." 이젠 감정이 분노가 아니라 통한으로 승화되어 베로니카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들 그녀의 그 불쌍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라크리마 만은 깔깔 웃고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개선식 ②- "케리 레그너스 님. 게십니까? 그럭저럭 즐겁게(베로니카는 괴롭게) 지내고 있을때 한 젊은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뻣뻣한 하얀색 코트를 입고 붉은 바지와 역시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이 관사에 근무하는 하인들의 제복이었다. 케리는 그를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응. 전데. 무슨 일이죠?" "손님이 찾아오셧습니다. 이름은 세레피나 로슈폴이라고 전해드리라고 해서..." "아!"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케리의 머리속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한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레피나 로슈폴, 라크리마의 레어에서 떠나고 얼마후 이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 들렸을때 만났던 여자다. 그때 케리는 라크레일의 저주로 인해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레피나는 케리에게 달라붙었다. 그외에도 세레피나와 연관되어 한가지 사건이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케리는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케리에게 이 도시에 남아있을 것을 요구했지만 케리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떠나버렸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자신이 이 도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하긴 드래곤들 이라던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내 이름도 약간은 알려졌겠지. 게다가 그녀의 집안 정도라면 내가 관사에 묵고 있는걸 충분히 알수도 있겠고...' "아는 분이십니까?" "예. 지금 만나러 나가죠." "주인님. 저도 따라나갈래요. 그 여자는..." "괜찮아 라크리마. 아무 일도 없을꺼야. 여기 가만히 남아있어." "예..." 이 관사의 로비에는 응접실도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세레피나는 그곳에서 홍차를 마시며 케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기품있는 모습이었지만 다소 초췌한 분위기도 있었다. 이 주변에서 일어난 습격이 그녀의 집안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그녀가 검은 드레스를 입고 둥근 챙이 달린 검은 모자에 역시 검은 베일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그녀의 집안에도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세레피나." "케리님..." 베일 너머로 그녀의 진한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케리는 그녀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상아색으로 칠해진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은 마주보고 있었다. "케리님은 많이 변했네요... 얼굴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그 몸은...?" "아아. 남자로 되돌아 왔어. 원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밖에 복구가 안된다더군..." "그래도 다행이예요. 다른 모습이 되었다면 제가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오히려 안심이 되네요." "그런데 세레피나는... 무슨 일 있었어? 그 옷은..." "예. 상복이예요. 아버님이 돌아가셧거든요."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베일 너머로도 그녀의 슬픔은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다. 케리의 마음도 아파왔다. "아버님은 혹시 마족 때문에?" "아니요. 그런건 아니예요.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저 때문이죠. 레바인 삼촌이 돌아가신 직후에 신경 쇠약으로 돌아가셧어요." "...저... 저런..." 세레피나가 자책하는 이유는 그녀의 친척인 레바인을 죽인 것은 바로 세레피나, 그녀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로슈폴 가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한 레바인에게 몰래 독약을 먹여서 죽이는 계획을 세운 것도 그것을 실행하도록 하인들에게 지시한 것도 그녀였다. "아버님은... 아무래도 살인까지 해가면서 재산을 지켰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예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말로는 레바인 삼촌은 어렸을 때부터 불우하게 자랐대요. 아직도 가족도 없는데다가... 그래서 갑자기 큰 재산을 얻을수 있게 되자 들떠서 행동이 급해졌던 거죠. 예... 그 사람도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꺼예요. 그리고 아버님께서 때문에 만일 재판에서 진다고 해도 아버지의 영향력이면 재판 결과를 상당히 좋게 만들수도 있었는데... 제가 레바인 삼촌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저는 죄없는 사람을 죽인 거예요." "아니야 아니야. 세레피나... 네가 나쁜게 아냐." 케리는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러나 세레피나가 느끼는 죄책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듯 했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죄없는 사람, 그것도 친족을 독살하고 그 영향으로 자신의 아버지까지 죽이고 무고한 하수인을 감옥에 보내버렸다는 죄책감에. "아버님이 돌아가기 전부터... 가세가 기울더군요. 이것도 죄값인 걸까요? 저희집 재산은 이제 예전의 5분의 1정도 밖에 남지 않았어요." 사실 그것은 로슈폴 가 뿐만 아니라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의 상인들 모두에게 공통된 문제였다. 마족 탓에 장사가 되지 않아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물론 가장이 죽어버린 만큼 제대로 대처할 경황이 없었던 로슈폴 가가 입은 손해는 굉장히 크기는 했지만...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님도 아프시고... 하인들도 많이 나갔어요. 저택은 사람이 없으니 너무 황량해요. 저도 요즘 건강이 좋지 않고..." "세레피나. 안돼. 너 까지 쓰러지면 너네 집안은 완전히 끝나는 거야. 너라도 마음을 추스리도록 해." "예. 저도 알아요. 그래서... 결혼할까해요." "결혼? 누구랑?" "집사였던 빈센트 씨. 지금은 감옥에 있지만 곧 풀려날 꺼예요. 그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그게 세레피나의 선택이라면 마음대로 하도록 해. 난 관여할 권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너무 집안에 얽메어서 하는 선택이라면 좀..." "그런건 아니예요. 저도 그 사건 이후로 빈센트가 좋아졌으니까요. 언제나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거든요." 하지만 세레피나의 얼굴에는 아직도 수심이 가시지 않았다. "그 외에도... 무슨 문제있어?" "예. 이건 케리님이 아니면 해결해줄수 없는 문제에요." "뭔데? 내가 들어줄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저희 저택에는 유령이 나와요." "...뭐? 유령?" 유령, 혹은 망령, 아니면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 존재는 크게 사고에 의해서 갑자기 죽은 영혼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승천하지 못하고 지상에 남아서 떠도는 지박령과 살해되거나 자살을 해서 원한을 지니고 죽은 영혼이 원한 탓에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지상에 계속 남아 살아있는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원한령으로 구분된다. 이 세계의 유령은 마법사에 의해서 그 존재가 어느 정도 밝혀진 편이다. 마법적으로 분석해볼때 인간의 혼은 마나로 이루어져 있는 '구조'를 지닌다. 이 혼은 주위에 마나에 영향을 미칠수 있어서 마나를 끌어모아 축적시키거나 마나의 흐름을 변화시켜서 특정한 현상을 일으킬수 있다. 혼은 인간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 식물, 정령, 어떤 경우에는 무생물에까지 들어있다. 생물의 혼은 생물이 죽음을 맞게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마법적으로 분석해볼때 영혼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들이 가는 세계가 따로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죽은 이의 영혼을 추적해본 결과 일시적인 공간의 비틀림과 함께 영혼이 이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그러나 모든 영혼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지박령, 살해되거나 자살을 하여 세상에 원한이 가득한 채로 죽은 원한령 등은 이 지상에 남아서 활동을 계속한다. 그러나 지박령은 무해한 존재다. 지박령 들은 생전에 했던 활동을 반복할 뿐이기 때문에 특별히 인간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이들은 불행한 존재이므로 우연히 만날 경우 잘 타일러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만 인지시켜주면 죽은 자의 영혼이 가는 정상적인 수순을 밟아서 저승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원한령은 다르다. 이들은 원한을 바탕으로 주위의 마나를 끌어모아 자신의 영혼을 유지시킨다. 이런 존재가 있으면 서서히 주위 공간의 마나도 마이너스 에너지의 감정으로 가득 차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이게되어 인간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온다. 게다가 그 뿐만이 아니다. 원한령들은 어느 정도 마나를 끌어모아 힘을 갖추게 되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어 인간을 놀래킨다던가 하는 일을 하지만, 좀 더 힘을 갖추게 되면 빙의를 하여 복수를 하려 들거나 직접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하게 된다. 여기까지 가면 정말 무서운 악령이 된다. 저 정도로 발전한 원한령들에게는 타협이나 설득도 통하지 않는다. 이미 스스로의 마이너스 감정을 계속 증폭시켜 가는 과정에서 인간적이 사고를 완전히 잃어버린지 오래고 이제 복수나 원한 풀기 보다는 마이너스 감정과 마나를 계속 흡수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렇게 되면 이제 이 존재는 '악령'이라 불리게 된다. 이 악령과 대결하는 것은 보통의 모험자들로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악령은 마나를 직접 다룰수 있기 때문에 갖가지 마법적 현상까지 일으킬수 있다. 이 악령에게 데미지를 입히기 위해서는 최소한 은제 무기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은제 무기의 가격은 통상 철제 무기의 5배에 달한다. 게다가 강력한 악령은 은제 무기에 베어도 타격이 거의 없기도 하며 보통 그 본체를 숨기고 활동하기 때문에 대단히 두려운 존재가 아닐수 없다. 마법사에게도 마나를 직접 움직일수 있게된 악령과 싸우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악령을 쓰러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직자를 불러서 엑소시즘이나 턴 언데드를 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세레피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의 집안은 충분히 성직자를 고용할 만한 돈이 있을텐데. "저희집에 나오는 유령은... 잘 아시겠지만 레바인 삼촌의 유령이예요." "과연..." 독살당한 그것도 재산 관계가 얽힌 문제로 친척에 의해서 라면 충분히 원한령이 될만하다. "유령이 하는 짓은 점점 심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입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하인들을 놀래키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방 주위를 자기 구역으로 삼은 듯 그 근처에 가면 물리적으로 공격을 가해요. 저택 전체에 음습한 기운이 퍼져서 많은 하인들이 병에 걸리거나 신경쇠약이 되어서 그만두었죠. 하지만 저희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저택을 떠날수가 없어서 그대로 살았는데... 결국 아버님이 병에 걸려서 돌아가셧어요. 어머님도 병에 걸리자 더 이상 어쩔수 없어서 저택을 버리고 잠시 작은 집을 사서 피신해 있어요." "왜 신전이나 모험자들에게 의뢰하지 않지? 그럼 유령을 퇴치할수 있잖아?" "그게... 유령이 저의 범죄를 계속 말하고 있거든요. 하인들이야 입막음 할수 있고, 손님들은 저택에 들여놓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입막음 할수 있을 정도로 녹녹한 모험자들로서는 그 유령을 퇴치할수 없지요. 신전에 말했다가는... 다시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될 꺼예요. 유령의 증언은 증언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하지만...신전의 증언이라면 재조사 명분은 될수있어요. 단순한 소문이야 얼마든지 퍼져도 경찰이 움직이지 않지만 신전에 부탁한다면 경찰도 움직일 꺼예요. 아버님도 없는 지금 다시 경찰조사를 받았다가는..." "...그래서 내게..." "예. 케리님은 드래곤 마스터였다면서요? 그렇다면 분명히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수 있겠죠? 예?" 그 드래곤이 라크리마 였다는 것은 세레피나가 알리가 없지만, 케리가 드래곤 마스터라는 소문은 이미 도시에 쫙 퍼져버린듯 하다. 케리는 한때나마 자신을 좋아했었다는 여자가 이렇게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방관하고 있을수는 없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라곤 하지만 그는 고통받는 여자를 모른채 할 수 있을 정도로 냉심장은 아니다. "좋아. 내가 해결해줄께. 반드시 유령을 퇴치해 줄께." "가...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케리님."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개선식 ③- 저녁식사를 마치고(불쌍한 베로니카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결국 쓰러져버렸다.) 케리는 예전에 묵은 적이 있었던 로슈폴 가의 저택으로 갔다. 이번에는 라크리마만 함께였다. 왠지 라크리마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인데 악령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던 라이오스는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파치야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보다는 그냥 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베로니카는 움직일 기운도 없었고, 아마레는 유령에는 관심이 없었다. 라크레일은... 왠지 세린이랑 같이 놀고 있었다. "절대 절대 절대! 따라와서는 안돼. 주인님과 나, 단 둘이서만 갈꺼야!" 그날따라 라크리마는 대단히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그 동안의 싸움으로 피곤해져 있던 다른 사람들(과 드래곤과 묘인족)은 라이오스를 제외하면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원한령은 인간에게는 두려운 존재지만 드래곤들에게는 그리 무서운 존재도 아니었다. 원한령이 일으키는 현상 정도로는 드래곤들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어려웠고, 원한령의 음기가 위해를 가하기에는 드래곤들은 너무 강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즉, 드래곤 들에게 유령이나 귀신 같은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수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 쥐나 토끼의 유령을 겁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물론 같은 드래곤의 원한령(주로 드래곤 좀비가 된다.)이라면 상당히 두려운 존재겠지만... 그렇지만 라크리마가 굳이 케리와 함께 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핑크빛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케리는 심약하니까 유령이 나타나면 무서워서 '꺄악~' 하고 라크리마에게 안겨들 것이라던가 케리가 무서워 하지 않으면 괜히 '꺄악~'하면서 케리에게 안겨들수도 있고, 유령을 퇴치하면서 그 동안 너무 동료들이 많이 늘어서 번잡했던 일상에서 벗어나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라는 내용으로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별로 무섭지도 않은 공포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유원지 귀신의 집에 들어가자고 하는 아가씨와 같은 심리인 것이다. 결국 결말은 단 둘이서 석양이 내리는 가운데 단 둘이서 저택 앞에 서있게 되었다. 아니 단 둘은 아니라 의뢰인인 세레피나도 함께 이기는 했지만. 세레피나는 저택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본 로슈폴 가의 저택은 음습한 기운이 가득차 있었다. 아름다웠던 정원의 나무들은 하나같이 생기를 잃었고 대문 까지 이끼와 녹이 가득 끼어 있었다. 이끼는 마이너스 감정의 마나가 가득한 곳에서 잘 자라는 생물이다. 금속이 녹스는 것도 마이너스 마나가 충만하면 속도가 빨라진다. 뭐 물론 애당초 습기가 몇배로 부풀어버렸으니... "저녁에 해가 지면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음기가 짙어져요. 그리고 삼촌의 망령이 출현하지요." 설명하는 세레피나의 모습은 이 이상 황량하게 변해버린 저택을 보고 있는 것도 괴롭다는 듯이 보였다. 확실히 그녀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여러가지 추억이 깃든 장소가 이렇게나 음울하게 변한 것을 보고 있는 것은 보통 슬픈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좋아하던 정원도 지금은 누구도 감히 관리할 엄두를 낼수 없어서 잡초투성이에 이끼와 정체불명의 식물이 잔뜩 자라 무슨 마의 숲처럼 변해버렸다.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메이드 아가씨는 어떻게 된거죠? 케리님. 같이 데리고 들어가실 건가요?" "응? 라크리마가 왜? 당연히 같이 데리고 들어가야지." "라크리마... 라고 하는 이름이셧나요. 저번에도 한번 본것 같은데, 삼촌의 유령은 아주 강한 원한령이라서... 폴터가이스트(유령에 의해 집기등이 난동을 부리는 현상)현상도 일으키고... 몰래 한번 모험가들을 부른 적은 있는데 그때 거의 죽어나가고 단 한사람만 완전히 미쳐서 도망나왔어요. 평범한 소녀가 뛰어들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 그랬다. 세레피나는 라크리마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케리가 드래곤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은 소문으로 알겠지만, 설마 그때 들린 평범한 하녀가 '드래곤'이었다고 생각할수 있겠는가? 그 사실을 케리가 적당히 둘러버리기도 전에 라크리마가 설명했다. "괜찮아. 나는 드래곤이니까." "예?..." 세레피나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 다음에는 입술에 살짝 미소를 띄웠다. 농담하는줄 아는 모양이다. "드래곤... 이라니 무슨 의미죠? 별명이 드래곤인가요. 특이한 별명이시네요.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강한 분이신가봐요." "그게 아니라 난 진짜 드래곤이라고." "......저...정말인가요?" 세레피나는 케리 쪽을 바라보았다. 라크리마가 너무나 당당하고 태연스럽게 말하자 반신 반의하는 표정이다. 케리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답할수 있을까? 그냥 긍정하는 수밖에. "응." "......정말...인가요?" "그러니까... 내가 드래곤 마스터가 된건 원래 라크리마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거야. 세레피나에게는 숨겨서 미안해. 저번에 만났을 때는 복잡한 문제가 생길까봐 인간으로 위장하고 있었거든. 뭐 라크리마 말고도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드래곤들을 떠맡게 되버렸지만..." "........." 케리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세레피나도 믿지 않을수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납득이 안가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 것이다. 자신이 이름을 물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아는 사람의 하녀'가 드래곤이라니.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그럼... 전 이만 어머님께 가볼께요. 아프신 분이라 혼자 오래 둘수 없으니까... 그... 그럼 잘 부탁해요. 케리님." 세레피나는 얼굴 절반이 굳어진 채로 식은 땀과 미소를 동시에 띠고는 바쁜 걸음으로 사라졌다. 역시 너무나 갑자기 닥친 충격적인 비밀의 실체를 베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케리는 세레피나가 여러가지로 걱정이 되었지만 라크리마는 방해꾼인 그녀가 사라져 버린 것이 내심 기쁠 뿐. 다른 여자들은 케리 쪽에서 호감을 가지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 상관 없었지만 세레피나 만은 케리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처치하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그래. 들어가자. 라크리마." 끼이이이이이이익... 도둑조차 들어갈 엄두도 안낼 정도로 음습한 삐걱거림을 내면서 문이 열렸다. 아니 뭐 도둑들이야 가끔 겁을 모르고 뛰어드는 자도 있는 법이니 한번 대털(크게 턴다는 의미)을 노리고 이 유령 저택에 뛰어들었다가 악령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자가 몇명쯤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케리도 물론 그 소리를 듣자 식은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라크리마가 팔짱을 끼고 옆에 딱 붙어오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드래곤이 옆에 있는데 유령 같은게 무서울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약간 무서웠다. 케리는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라크리마에게 말을 건냈다. "라크리마. 드래곤은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니?" "아뇨! 진짜 무서워해요. 헤헤헷."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케리의 팔에 아기 코알라 처럼 더욱 꼭 달라붙었다.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는걸 보면 절대 진짜로 무서워 하는 것은 아니다. 괜히 약한척 해서 귀여움 떠는 모습이 케리의 눈에도 선하게 보였다. 그렇게 평소와 다름 없는 그녀의 모습은 그에게 안심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농담하지 말고. 유령 두려워하지 않아?" "으음... 진짜로 말하자면 전.혀.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토끼의 언데드나 쥐의 언데드를 두려워 하나요?" "아니. 전혀." "그거랑 마찬가지예요. 뭐 저도 상대가 드래곤 좀비라면 상당히 무섭겠지만... 인간 유령 같은건 아무리 많이 와도 무섭지 않아요. 게다가..." "게다가?" "주인님이 가지고 있는 옵티걸 소드는 마왕조차 쓰러뜨리는 빛의 검. 유령 같은건 한방에 날라가 버릴 꺼예요. 게다가 요즘에는 왠지 사용하는 횟수가 적지만 로드 오브 엘리멘탈의 정령들만 해도 유령과 상극이니까요. 불,물,땅,바람의 사대 정령은 플러스 마나의 흐름으로 만들어 지는 존재예요. 마이너스 마나로 이루어진 유령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힘을 지니고 있지요." 하긴. 마왕도 쓰러뜨린 커플이 유령을 무서워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물론 마왕이 좀 지나치게 얍삽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띨띨해서 전혀 무섭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하긴... 전에는 좀비들도 쓸어버린 적이 있는걸. 유령이라고 무서워 하는 것도 그렇네." "그렇죠?" 그 뒤로는 유령의 집이라고 불리는 폐가와는 어울리지 않게 여유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세레피나에게 받았던 열쇠로 저택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저택 안도 밖과 다름 없이 황폐한 상태였다. 가구들은 쓸만한건 모조리 꺼내간 뒤였고 남은 가구들은 버려진지 몇달이나 되었다고 벌써 먼지가 쌓여서 썩어가고 있었다. 모든 벽에 이끼와 버섯이 가득 피어있고 음울한 공기가 저택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버려진지 기껏해야 몇달이나 지났으리라 생각되는데 저택은 거의 수십년은 버려져 있었던 것처럼 황폐화되어 있었다. "유령들은 이런 곳을 좋아하는 건가?" "마이너스 마나의 흐름이 이런 곳을 만드는 거예요. 또 이런 곳에서는 마이너스 마나가 많이 모여들기도 하고... 그래서 점점 마이너스 마나로 가득차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마이너스 마나랑 플러스 마나라는 것은 대체 뭐야? 난 마법에는 서툴러서..." "뭐 한마디로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마나의 두가지 성질을 의미해요. 마나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데... 그것이 크게 생명의 질서를 만들어낸 플러스 마나, 생명의 질서를 어기는 존재를 만들어낸 마이너스 마나로 갈라지지요. 보통 생물들은 이 두가지 마나의 균형이 제대로 맞추어져 있어야 살아갈수 있어요. 그러나 보통은 플러스 마나 쪽이 우세하지요. 하지만 언데드나 유령, 마족 등의 생명체는 마이너스 마나 쪽이 훨씬 우세해요.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환경이 틀린 거고 따라서 서로 다투게 된다는 결론이지요." "으음. 그러니까 마이너스 마나가 안 좋은 거야?"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들 생명체의 몸에도 마이너스 마나가 들어 있으니까요. 마이너스 마나가 거의 없는 존재는 신이나 천사 정도겠지요. 아니면 유니콘 같은 신수라던가... 뭐 좌우간 이런데는 유령이 깃들어 있으니까 주위에 마이너스 마나가 퍼지게 되지요. 이런 곳에 있으면 인간의 체력이 떨어지고 심신이 무기력해지며 병에 걸리게 되지요." "라크리마는 괜찮아?" "저는 드래곤이니까요. 드래곤은 '마나량'면에서 인간이나 인간의 유령이 조작할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 있어요. 삽으로 산을 없앨수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아무리 유령이 마이너스 마나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해도 드래곤에게는 영향을 끼칠수 없어요." "...으음 이런데 오래 있으면 안 좋겠네." "하지만 주인님은 괜찮을 꺼예요." "어째서?" "주인님이 가진 빛의 검, 옵티걸 소드와 정령을 지배하는 반지, 로드 오브 엘리멘탈은 플러스 마나의 집결체나 다름 없으니까요. 그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으면 주인님의 몸도 플러스 마나에 덮여서 이 정도 마이너스 마나에는 끄떡도 하지 않게 될꺼예요." "아하..." 그가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뭐 좌우간 가지고 있는게 대단한 물건이라서 유령이 내뿜는 귀기 정도에는 끄떡없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잘 이해한 것이겠지.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개선식 ④- 케리와 라크리마는 한담이나 나누면서 저택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분명히 저택 전체가 전에 들렸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돌 음습한 분위기였지만 특별히 수상한 것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분위기로 봐서는 어디 구석에는 네크로노미콘(광인 압둘 알 하자드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이계의 신에 관한 무시무시한 책)이 숨겨져 있고, 바닥을 뜯고 좀비가 기어올라온다던가, 갑자기 벽에서 스켈렉톤이 튀어나온다던가, 하키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나오던가, 빨간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화상입은 얼굴의 몽마가 나온다던가, 또 얼굴에 핀을 가득 꼽은 지옥의 사자나, 아니면 한쪽손이 갈고리로 되어있고 입안에는 벌을 가득 물고 있는 흑인이나... 뭐 좌우간 그런 것들이 나와도 별 문제가 없을 듯한 분위기였지만 분위기만 그럴싸 하고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왠지 김이 샛다. 아마 썰렁한 유령 테마파크에 들어왔다가 입장료만 낭비하고 있다던가 너무나 분장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나도 무섭지 않은 호러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일 것이다. 아무리 분위기가 이 모양이라도 무덤은 없으니 둥글둥글한 무덤이 둘로 갈라지고 뭐가 튀어나오는 독특한 연출도 없을 것이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 썰렁하네... 뭐 라크리마가 있으니가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별 문제될리는 없겠지만.' "으음... 역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역시라니?" "아마 유령이 겁을 먹고 도망간게 아닐까요. 유령인 만큼 마나의 흐름에는 민감하니까 저 처럼 커다란 마나 왜곡을 발생시키는 존재와 케리님이 지닌 아티펙트 처럼 강력한 정화능력을 지닌 물건이 있는 곳에는 잘 안 다가오기 마련이지요. 유령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장소니까요. 유령도 죽는걸 아니 소멸되는걸 겁네는것 같긴 하니까..." 유령은 마이너스 마나의 흐름을 통하여 존재한다. 드래곤이나 강력한 아티펙트는 강력한 마법력으로 주위의 마나 흐름을 흔들리게 하는데 마나 흐름이 흔들라면 거기서 활동 에너지를 얻는 유령들이 무사할리가 없다. 스켈렉톤이나 좀비라면 육체를 통하여 보호를 받고 있으니 다소의 플러스 마나 흐름은 무시하고 존재할수 있지만 유령들에게 플러스 마나는 독기나 다름 없다. 그래서 플러스 마나가 강한 건강하고 용기있는 사람 앞에는 유령이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일부러 불러낼수는 없어? 네크로맨서라는 마법사들은 유령도 불러낼수 있다던데 이 장소에 묶여있는 원한령이라면 부르기 쉽지 않을까?" "죄송. 전 그쪽 계통 마법은 잘 몰라요. 언데드랑 노는 취미는 없거든요. 블랙 드래곤이 아니면 그런 마법을 배우는 드래곤도 별로 없어요." "흐음..." 케리는 약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이 옳다면 이들이 있는한 유령은 나오지도 않을 것이란 의미다. 유령이 나오지 않는 거야 보통이라면 좋은 일이지만 이들은 유령을 퇴치하러 온 것이다. 유령을 퇴차하러 왔다가 유령 코빼기도 못보고 돌아가는 것은 곤란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옵티걸 소드와 링 오브 엘리멘탈을 빼놓고 라크리마도 안 데리고 케리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좀 위험한 일이고... "아 한가지 있어요." "뭔데?" "아주 전통적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고 증명된 거예요." "그런게 있으면 진작에 했어야지." "그렇게 하고 싶어요?" "당연하잖아. 유령을 퇴차하러 왔다가 유령 발도 못보고 돌아갈수는 없지." "그럼...!" "...!" 거기까지 말한 순간 라크리마는 케리를 향하여 갑자기 키스를 하고 그를 잡아쓰뜨렸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신속한 동작이라 도저히 막아낼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를 쓰러뜨리고 그 위에 올라 누은뒤 맹렬하게 키스를 날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으으읍! 푸하! 가... 갑자기 왜이러는 거야?" "전통적으로 유령이나 귀신, 살인마들은 남녀가 [삐-]를 하고 있으면 그 등뒤에서 나타나기로 정해져 있어요." "어디에 정해져 있다는 거야 그런게!" "법칙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확증된 것이니까 자... 주인님 어서해요!" 실제로 그런 경향이 강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는 한건지 모르겠지만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있는 학설이다. 왜 살인마나 유령이 남녀가 러브러브 하고 있는 곳을 덮치는가에 대한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이 독신 생활을 오래 계속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쉽게 추측할수 있다.(부부 살인귀나 부부 악령은 확실히 드물다.) "이런데서?" "당연하지요! 요즘 스킨쉽도 적고 러브러브 씬도 적었잖아요! 게다가 모처럼 남자로 돌아오셧으니 그 동안의 금욕생활도 풀때가 되었죠?" "자...잠깐 라크리마!" 케리는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라크리마가 놓아줄 리가 없었다. 그녀는 늑대가 토끼를 덮치는 듯한 기세로 케리의 옷을 하나하나 능숙한 솜씨로 벗겨냈다. 그리고 메이드 복도 훌렁훌렁 벗어던지고 알몸을 드러내었다. 케리는 그 순간 라크리마의 눈이 욕망에 불타올라 시꺼멓게 충혈된 것을 보고 그녀가 유령보다 몇배는 더 무서워졌다. "으와아아앗!" "어딜 도망가세요! 룬 로프!" 라크리마를 밀치고 도망가려는 케리. 그러나 그녀는 그가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재빠른 캐스팅과 동시에 그녀의 손끝에서 튀어 나온 빛나는 끈이 그를 꽁꽁 묶어버렸다. 케리는 달아나려고 버둥거렸지만 더 이상 어절수가 없었다. 그는 응접실에 쓰러져버렸다. "저..저기 라크리마. 여긴 남의 집이잖아. 아무래도 이런건 좀." "그런건 상관 없네요. 아아 주인님은 너무 예뻐요옹." 이미 빨갛게 상기된 라크리마의 입가에서 침이 한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미 유령을 불러낸다는 목표 따위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아주 여성스럽게 생긴 미소년인 케리를 사냥꾼 처럼 노려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라크리마 뿐. 그리고 그녀는 덮쳐들었다. "주인니임!" "으와아아아! 아앗! 뒤에 뒤에! 나타났다! 나타났어!" "예? 예예?" 수세에 몰려있던 케리가 갑자기 손가락을 들이밀면서 라크리마의 등뒤를 가리키는 바람에 라크리마는 눈을 찔릴뻔 했다. 허둥지둥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과연 복도 건너편에서 희끄무레한 뭔가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눈에 척 봐도 유령이었다. 그것을 보고 케리가 입이 째져라 기뻐하는 것은 단순히 '유령을 발견했다'라는 사실에 대한 기쁨 만은 아닐 것이다. 확실히 유령을 보고 기뻐하는 것도 이상하지. "..저...저게 한참 재미있어 지려는 참에 나타나다니! 예의상 한번 할때까지는 기다려줘야 하는거 아냐!" "라크리마 옷 입어 옷!" "아아!" 라크리마는 케리를 묶고 있던 룬 로프를 해체시키고 허둥지둥 벗어두었던 옷을 껴입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유령은 이미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유령의 형상은 희끄무레한 연기가 뭉쳐서 형상을 이룬 것처럼 생겼는데 그 형상은 여러개의 머리가 하나로 뭉친 것 처럼 보였다. 가운데에는 입에서 피를 흘리는 중년 남자의 얼굴이 있고 그 주위에는 몽크의 외침에 나오는 것 같은 절규하는 얼굴들이 붙어있었다. "나...나...나....나의 ... 지지...집에... 함부로...들어 오오오...다다다...니이이이...." "시끄러! 안티 매직 쉘! 포스 필드!" 유령은 뭔가 말할는 듯 했지만 라크리마는 옷 갈아입는데 방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물리력을 막아내는 방어결계 포스 필드와 마법력을 막아내는 안티 매직 쉘을 동시에 펼쳐버렸으니 유령이 그들에게 손댈 방법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한 사람과 한 드래곤은 탈의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중하게 다시 옷을 입을수 있었다. "나나나나나... 나의지지집...에에서어어... 추추추...자자잡한...지지짓...꺼리를...하하하 다니이이...." "무슨 소리야! 남의 알몸까지 봐놓구선! 이럴때 나타나는 쪽이 훨씬 더 추잡한거 아냐?" "요요요요요요.. 요요요요요요용... 서서서서서서... 하아아아알..수우우우우...없...다아아아아..." 유령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일어났다. 주위에 흩어져 있던 의자, 태우고 남은 땔나무, 벽난로의 부찌갱이, 그외 생활 물품들이 일순간에 생명을 얻은 것처럼 공중으로 떠올라서 폭풍속의 바다새처럼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리와 라크리마를 감싸고 있는 반구형의 방어결계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간혹 그들을 노리고 날아오는 물체들도 결계에 부딧치면 박살날 뿐이었다. "폴터가이스트? 이 정도는 별로 무섭지도 않아. 이렇게나 만들어놓아서 좀 하는 유령인줄 알았더니 역시 별것도 아니네. 그럼 한방에 박살을..." "잠깐 기다려. 라크리마." "예?" 팔을 걷어 부치고 마법을 사용하려는 라크리마를 케리가 말렸다.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보였다. "일단... 결계가 쳐져 있으니까 우린 안전하잖아. 내가 말로 한번 설득해볼께. 아무리 유령이라도 원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떻게 말이 통할지도 몰라." "...저 사람. 인간이었을때도 별로 말 통하게 생기지는 않았었는데. 뭐 주인님이 원하신다면야... 저 유령으로서는 이 결계를 뚫을 방법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밖에 나가지만 마시고." 그에게는 정당하게 받아야 할 유산을 빼앗기고 독살당한 유령의 분노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 고통은 확실히 망령이 되어서 이승을 떠돌정도의 원한을 불러왔을 것이다. 적어도 무자비하게 마법으로 날려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마법으로 영혼까지 파괴한다면 그는 저승에도 갈수 없는 것이 아닌가? "레바인씨! 듣고 게십니까?" "나나나나나...의의이이이이이이...지이이이이입.....나나나나나...의의이이이이이...재에..사아아아안..." "당신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그만 원한을 푸십시요! 이렇게 유령으로 남아 이승을 떠도는 당신의 모습은 너무나 처량하기 짝이 없습니다!" "독...독...독...독...독...괴롭다아아아아...괴롭다아아아아..."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는 다릅니다. 원한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가십시요!" "괴롭다아아아아아아....으오오오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유령이란 말하자면 고집이 지나쳐서 이승에 남아있는 존재다. 그런만큼 유령을 설득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죽은 사실을 모르고 이승에 남아 있는 지박령 같은 경우라도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 주는 것도 쉽게 할수있는게 아니다. 하물며 죽음조차 거부하고 언데드가 되어 이승에 남아있는 원한령의 정신상태는 어떻겠는가? 레바인의 유령는 살해당할 때의 고통과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분노, 이대로 저승으로 떠날수 없다는 아집이 겹쳐져서 이성의 파편조각 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그것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완전한 악령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소용없어요. 주인님. 게다가 저 유령의 몸을 보세요!" 라크리마는 유령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그 기세에 유령이 눌려 폴터가이스트 현상도 잠시 잦아들었다. "본래 자신의 머리를 제외한 다른 머리들. 저 괴로워하고 있는 표정의 머리들은 틀림없이 저 유령이 이 저택에서 살해한 사람들의 원혼일 것이예요. 저 유령은 저 원혼들 마저 흡수하여 자신의 힘으로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죠. 아무리 원한이 크다고 해도 타인의 영혼까지 흡수하고 있다니... 게다가 저 유령에게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 능력은 찌꺼기조차 남아있지 않아요! 저건 이미 인간의 유령이 아니라 괴물입니다! 단순한 악령에 불과해요!" ============================================================================= 특별히 퇴마록을 읽었다던가 하는것은 아닙니다. ... 전 원래 호러영화 종류를 좋아하기 때문에[...]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개선식 ⑤- '소멸시키는 수밖에 없나...' 가슴이 아파왔다. 그러나 도저히 설득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수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악령이 하는 대답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아집 뿐이었다. 처량하고 불쌍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케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정도 악령이라면 턴 언데드 한방이면 처리할수 있어요. 제가 처치할께요." "아니야. 라크리마. 내가 이 악령을 쓰러뜨리겠어." "예?" "모든 일에서 너한테만 의지할수는 없잖아. 다치면 회복이나 시켜줘." "네에..." 라크리마의 대답에서는 다소 서운한 기색이 있었다. 적극적이고 활달한 성격을 가진 그녀는 케리에게 봉사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 그 봉사란 대단히 적극적인 개념으로 그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녀는 그를 위해서 스스로 나서서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좋아하며 거기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배제하고 스스로 일을 처리하려 하는 케리의 행동은 분명히 그녀에게 달갑지 않은 행동이었다. 물론 케리가 명백하게 그렇게 하기를 원한다면 따르겠지만 자신의 가치가 하락되는 것 처럼 느껴져서 결코 마음 편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라크리마와 진정으로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녀에게 의존하는 것을 줄이며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와는 정 반대의 생각인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이상적인 상황은 케리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그렇게 해줄 힘이 있었다.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산해진미건 미인이건(약간 기분 나쁠테지만 복종하는 쾌감에 비할바는 아니다.) 부귀영화건 물론 들어줄 것이고 전 대륙의 황제로 만들어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리가 없다. 하지만 자립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남자라면 여자(일단은)에게 완전히 얹혀서 살아가는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케리는 힘을 기르려 하는 것이고... 둘 다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똑같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에 충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케리는 라크리마의 과도한 봉사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라크리마는 케리가 강해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은 싫었다. 그렇게 둘 사이의 관계에는 그들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미세한 틈이 있었던 것이다. 케리는 라크리마를 등 뒤에 세워놓고 빛의 칼날을 꺼내었다. 무작정 자기 말만 하던 악령도 옵티걸 소드를 보자 잠시 말을 멈추고 긴장하는 듯이 보였다. 옵티걸 소드에는 그와 같은 악령 쯤은 단 일격에 흩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악령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악령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소멸되기 싫다는 본능에 따라 이대로 물러나가 도망가느냐? 아니면 본래 지니고 있는 아집에 따라서 무작정 공격할 것이냐? 둘 다 악령의 존재 이유와 같은 것이라 대단한 갈등을 겪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마 악령이 된 뒤로 처음으로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결국 악령은 공격하는 것을 택했다. 설사 완전히 소멸당한다고 해도 자신이 목숨을 잃었어도 차지하려고 한 이 저택을 포기할수는 없었다. 한번 죽음을 뛰어넘은 집착이니 소멸의 공포도 뛰어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악령이 이렇게 판단하여 무리하게 초고위 성직자나 마법사들에게 덤비다가 정화되거나 소멸되는 예가 많다. 유령이 꼭꼭 숨어버리면 아무리 뛰어난 성직자라고 해도 찾을수 없건만... 하긴 재물에 집착하여 유령까지 된 자들이니 그렇게 소멸하는 것도 어찌보면 타당한 운명의 수순일 것이다. 케리는 이를 질끈 깨물면서 옵티걸 소드를 악령의 바로 코앞에 내밀었다. 영체조차도 쉽게 파괴할수 있는 옵티걸 소드의 칼끝과 악령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안티 매직 쉘과 포스 필드의 장벽이 있을 뿐이다. 악령은 계속해서 그 결계를 뚫고 들어오려고 폴터 가이스트 현상을 일으키고 자기 몸으로 밀고 들어가려 하고 있었지만 드래곤의 힘으로 유지되는 결계가 고작 인간의 악령 따위에게 뚫릴리가 없었다. "라크리마. 이 방어결계 풀어줘." "옵티걸 소드라면 저 결계도 파괴 할 수 있어요.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으니까 그냥 푹 찌르기만 하면 결계채로 꿰뚫려서 죽을 거예요." 악령은 그 말을 들은 걸까? 아니면 못 들은 것일까? 헛되이 결계를 뚫으려고 발광을 하는 악령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비참하게 보였다. 그것 역시 인간의 몇가지 본성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살해당한 원한과 재물의 탐욕에 이끌려 죽은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소멸 앞에서도 수레바퀴를 가로막으며 대항하는 사마귀 처럼 있다니... 이 얼마나 처량하고 가련한 모습인가. 케리는 그에게 고개숙여 조의를 표하고 옵티걸 소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늘어나라. 옵티걸 소드." 명령이 떨어지자 이 아티펙트는 충실하게 그것을 이행하였다. 빛의 칼날은 여의봉 처럼 길이가 늘어났다. 포스 필드와 안티 매직 쉘에 부딧치면서 약간의 지직거림을 보였다만 라크리마가 곧바로 결계를 풀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결계가 사라지자 악령은 돌진하는 코뿔소 처럼 케리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 몸을 빛의 칼날에 박아넣는 비참한 결과만 초래하였다. 푸욱 아주 둔탁하고 조용하게 찌르는 소리가 났다. "그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빛의 칼날에 완전히 꿰뚫려 버린 악령은 저승에서 울려나오는 절망적인 한탄을 내쉬면서 소멸하기 시작했다. 우선 악령의 몸 주위에 붙어있던 외치는 얼굴들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악령에게 붙잡혀 있던 보통 사람들의 영혼이다. 자신들을 묶고 있던 악령의 속박이 사라졌으니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 아니 자유의 영혼이다. 자유를 되찾은 그들은 잠시 윌 오 위프스 처럼 변해서 허공을 떠돌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아마 저승으로 떠나버린 것이리라. 그 어떤 살아있는 존재도 허용하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혹시나 악령의 원한에 영향을 받아 지상에 남아 계속 원한령이 되거나 무의식 중에 지상에 남아 지박령이 되는 영혼이 없나 라크리마는 하나하나 그것들을 눈으로 추적했다. 악령에게 속박되어 있던 영혼들이 그와 같은 과정을 걸쳐서 또 다른 악령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탓이다. 다행히도 붙잡혀 있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인지 모두 자연스럽게 저승으로 돌아가버렸다. 라크리마는 영혼이 사라지는 공간의 이동점을 추적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면 그것은 무조껀 뚝 끊겨버리고 만다. 저승으로 사라져 버린 영혼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어떤 마법으로도 불가능하다. 저승에 도달한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도 오랜 세월이 흐르면 영혼이 다른 존재로 환생하기 때문에 역시 불가능 해진다. 생령이 되는 유체이탈 마법으로도 저승으로 가는 일은 불가능 하다. 저승과 이승의 벽을 넘을수 있는 것은 죽은 영혼 뿐이다.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진정한 죽음의 영역에 까지 들어갈수는 없다. 아주아주 먼 미래가 될 것이지만 그녀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지닌 부를 노린 드래곤 슬레이어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르고 폴리모프 해서 돌아다니다가 어처구니 없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고로 죽을지도 모르고... 동족끼리의 싸움에서 죽을수도 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1만년의 수명을 다 채우고 죽는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경우가 아니다. 에이션트 급 드래곤이 숫자가 매우 적은 것도 그것을 반영한다. 자신의 수명이 다 끝났다고 느낀 고룡은 조용히 가족과 친지들을 불러모아 그들에게 한 마디 씩 해준뒤 그들에게 둘러쌓여서 평화롭게 목숨을 거둔다. 죽은 고룡의 몸은 일반적으로 죽기 직전에 마법적으로 완전히 분해해버린다. 살해당하지 않는한 드래곤의 몸이 죽은 뒤에도 남아있는 경우는 드물다. 드래곤의 영혼도 인간이 가는 것과 비슷하게 자연에게 순응하여 저승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은 얼마나 살아갈까? 리치나 뱀파이어가 되버리지 않는한 그들은 드래곤의 기준으로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살다가 간다. 드래곤의 삶은 보통 수천년이지만 인간의 삶은 백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라크리마가 한숨 곤하게 자는 동안 그렇게나 강하던 용사 카리온 조차도 늙어서 죽어버렸다. 그래서 드래곤은 다른 생물들에게 오만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려 한다면... 너무나 많은 슬픔을 맛보기 때문에. 대충 계산해 보아도 드래곤이 한평생 사는 동안 인간만 사귄다고 하면 친한 인간은 대를 이어서 줄줄이 수만 명은 죽어버릴 것이다. 게다가 그 동안 일어날 일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런 면에서 그 누구도 아직 눈치채지 못해고 완전히 장담할수 없었지만 라크리마의 정신 구조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였다. 일반적인 드래곤의 눈으로 보기에 그녀의 정신은 완전히 삐뚤어져 있었다. 인간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인간의 노예가 되어 지내기를 갈망하는 드래곤이라니... 터무니 없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1대 마스터인 카리온은 그녀를 데리고 놀기는 했지만 특별히 큰 일을 꾸미려 하지는 않았으며 카리온의 죽음은 그녀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다. 그리고 카리온은 그녀에게 다음 할 일을 명백하게 밝혀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목표를 잃고 방황하지 않을수 있었다. 케리는 우유부단하지만 근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지녔고 라크리마를 악용하려 하지 않았으며 갑자기 손에 들어온 강대하기 짝이 없는 힘을 과신하거나 과용하지 않았다. 2대 까지는 그럭저럭 주인운이 좋았던 셈이다. 하지만 다음 대를 이은 인간이 그렇게 착하리라는 법은 결코 없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터무니 없는 상처를 줄수있는 마스터도 충분히 존재할수 있었다. 붙어있던 모든 망령이 흩어져버린 뒤 악령의 머리는 아지랭이 처럼 흔들 거리다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고작 인간의 악령 정도의 존재가 5대 마검이나 5대 신기에 필적한다는 옵티걸 소드와 대적할리는 없었을 터. 영체를 이루는 근본 물질인 유자와 영자 단위로 분해되어 버린 악령은 이제 저승으로도 돌아갈수 없다. 그것은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이다. 그의 존재는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나는 일조차 없을 것이다. "돌아가자 라크리마." "예." 악령이 사라지자 벌써 서서히 저택에 있던 음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마 몇주만 지나면 이 저택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세레피나도 다시 이 곳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 자신의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이곳에 다시 발을 들여놓지도 못할지도 모르지만... 하긴 유령까지 나오고 살인사건까지 났던 저택에 다시 돌아와 사는 것도 확실히 좀 그럴 것일테지만..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①-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용병과 시민병들은 가스트 제국의 이름으로 주는 많은 은상을 받고 제각기 흩어졌다. 남은 것은 제국 중앙에 집이 있는 기사들과 약 천여명의 정규군사들. 그들은 물론 제국 수도인 가멜 시티로 돌아가게 된다. 가멜 시티는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북서로 가도를 따라 상당히 먼 거리를 가야 도착할수 있는 곳이다. 가도가 이어져 있기 때문에 편안하게 갈 수 있기는 했지만 역시 대단히 먼 거리라는 것은 틀림 없었다. 하지만 승리하고 살아남은 뒤에 상을 받으러 가는 길인데 거리가 얼마나 되건 무슨 상관이랴, 행열은 가볍고 경쾌했다. 대군이 이동하는데 함부로 습격해올 몬스터도 없었으니 편안한 귀향길이었다. 행열에는 가벼운 부상자들을 후송하기 위한 마차가 끼어있었고, 행열 앞쪽에는 마법사와 종군 의사, 문관들을 태우기 위한 마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드래곤들과 케리가 타고 있는 마차도 있었다. "승차감은 꽤 좋네." 아마레가 그렇게 중얼거린 것 처럼 마차는 대단히 고급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가도의 정비도 잘 되어있었기 때문에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네 필이나 되는 말이 끄는 마차에는 라크리마, 라크레일, 아마레에다가 케리, 세린, 라이오스가 안에 타고 있었다. 하지만 파치야와 베로니카는 짐짝들과 함께 마차 지붕위에 올라가 있었다. 묘인족인 파치야는 마차 지붕위라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베로니카에게 그런 취급은 굴욕 또 굴욕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피가 나올 정도로 꽉 깨물면서 분을 삭히고 있었다. '베로니카 언니는 괜찮을까...' 꼬마 레드 드래곤, 세린은 베로니카가 심히 걱정되었다. 그러나 라크리마는 세린에게도 공포의 존재였고 그녀가 일족에게 최우선적으로 보호를 받는 해츨링만 아니었다면 그녀도 베로니카와 같은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터.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 해서 괜히 불똥이라도 튀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물론 베로니카가 목숨의 위기라도 겪는다면야 문제는 틀려지겠지만. 어느 틈에 세린의 보호자 처럼 그녀 옆에 달라붙어있는 라크레일은 그녀를 위로하듯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있었다. 물론 순수하게 위로하려고 하는 행동이다. 결코 세린이 너무 귀엽게 느껴지는 라크레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던가 그녀의 찰랑찰랑 하고 부드러운 머리결을 손바닥으로 느껴보고 싶다던가 하는 이유로 하는 짓은 결코 아니다. 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라크레일이었지만 아마레는 혀를 끌끌 차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지가지 하는구만 저 녀석은.' 그때 베로니카는 마차 위에서 짐짝이나 하인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에 입술을 깨물며 분노하다가 정말로 입술로 이빨이 파고들어 버리는 바람에 허둥지둥 힐링을 걸은뒤에 허탈한 마음이 되어 추욱 늘어져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은 시련이야. 본래 나처럼 아름답고 기품있고 교양있는 아가씨는 꼭 이런 시련을 겪게 되는 거야. 이건 한번 쯤은 당연히 있는 일이야. 하지만 세상은 본래 히로인이 이기게 되어있어. 나를 괴롭히는 이 고난은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지고 행복한 미래가 열릴꺼야. 몸은 거지에 하녀라도 마음만은 공주처럼 남아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정말로 노예가 되버리는 거니까. 그래 마음가짐 만은 프린세스의 기품을 잃지 않고..."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 베로니카를 파치야만이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 간의 여행 끝에 개선군은 가멜 시티에 도착했다. 누가 뭐래도 이 대륙의 거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가스트 제국의 수도인 만큼 가멜 시티는 거대하고 화려하게 번영하는 도시였다. 그런 곳에서 이루어진 개선식은 그 차이 만큼 전쟁으로 황폐했던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의 개선식과는 비교도 안되는 규모였다. 그렇다고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가 작다는 것은 아니지만 크기 차이가 그만큼 된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제국 마법사 길드의 마법사들 까지 환영을 위하여 동원되었다. 하늘 높이 색색의 파이어 볼이 솟구치고 그것들이 폭발하면서 갖가지 빛의 무늬를 공중에 수놓는 모습은 구경하는 시민들에게도 상당히 감명깊은 광경이었다. 물론 마차 안에서 그것을 보고 있는 드래곤들 입장에서는 어린애들 장난 같아서 우습게만 보일 뿐이었지만. "쯧. 저런 것도 마법이라고... 내가 한번 나서볼까!"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한 아마레가 창 밖으로 손을 내밀더니 시뻘건 파이어 볼을 공중으로 발사했다. 직경이 20미터에 달하는 그 파이어 볼은 하늘높이 솟아올라 공중에서 대폭발을 일으키더니 태양이 두개는 생긴 것 같은 엄청난 빛을 뿜어내었다. 마법사들 뿐만 아니라 마법에 약간이라도 소양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뒤로 넘어가 버릴 정도로 엄청난 마력의 차이. 과연 드래곤 다운 그 파워에 시민들은 경악하고 드래곤의 힘에 무한한 공포와 경외심을 느꼈다. 황궁도 역시 제국 답다고나 할까. 하얀 대리석을 주 재료로 하여 지어지고 벽에는 로코코 양식 풍의 화려하고 품위있는 장식이 조각되어 졌으며 앞에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인어들의 조각상이 세겨진 분수대, 역대 황제와 황비들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황궁은 방어 기능은 모두 황도 외성곽에 떠맡기고 지은 것이라 황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장엄함에만 촛점이 맞추어져있어 제국 그 어느 성 보다도 크고 화려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황궁의 대 무도회장에서는 전승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 무도회가 열렸다. 당연히 이 전쟁에서 마왕을 무찌르는데 큰 공헌을 한 기사들과 장군들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물론 정작 스토리 진행 상황을 보면 그것들이 대체 뭘 했느냐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무도회장 한 가운데는 이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운 카렐 경의 기간틱 아머와 거기에 녹아 달라붙은 발록의 시체가 장식되었다. 이 기괴한 부조는 이 전쟁의 기념품으로서 앞으로도 황궁의 정원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카렐 경의 모습은 수도에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는 않았다. 카렐은 수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자기 가문의 영지로 바로 돌아간 것이었다. 처참한 부상을 입은 자신의 몰골을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이유로 자신의 심복들만 이끌고 돌아간 것이라 내막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뿐이다. 차례 차례 귀부인 들과 귀족들이 도착하는 가운데 케리도 그 안에 끼어있었다. 그의 옆에는 라크리마와 세린, 그리고 세린을 따라온 라크레일과 케리를 따라온 라이오스 만이 있었다. 아마레와 베로니카, 파치야는 귀빈숙소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레와 파치야는 이런 자리가 귀찮다는 이유였고 베로니카는 어쩐지 이런 귀족적인 자리에 끼고 싶어하는 눈치... 라서 라크리마가 심술을 부리느라 못오게 했다. 지금 그녀는 하인용으로 배당된 어둡고 축축한 방에서 혼자 울먹거리다가 또 다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마법사 할머니가 와서 나에게 무도회에 갈수있는 옷을 줄꺼야. 그럼 나는..." 슬슬 정신이 이차원으로 빠지는 듯한데... 어느 정도 귀족들이 몰려오자 한쪽에 서있던 오케스트라 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족들은 서로 인사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먹고 마시는 등 한마디로 놀기 시작했다. 케리는 이런 장소에는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라기 보다는 거의 처음이다.) 황태자에게 빌려입은 턱시도가 불편하여 구석진 곳에서 포도주스 한잔만 홀짝 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라크리마가 붙어 있었고... "나 이런 자리에 있어도 괜찮은 걸까? 아무래도 난 견습기사 밖에 안되는데... 황태자님은 허락해 주셧지만 왠지 편하지 않아... 다들 최소한 기사 이상의 귀족이니." "주인님. 주인님은 저의 주인님이잖아요. 저 뿐만 아니라 주인님을 도와주는 드래곤이 몇명이나 있는데 그게 무슨 걱정이세요?" "...뭐 그렇겠지만..." "라크레일과 세린을 보라고요. 하나도 겁 안내잖아요." 라크레일과 세린은 둘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 행동이 약간 지나쳐서 주위의 눈살을 받는 일도 있었지만 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둘은 드래곤 씩이나 되니 아무리 귀족이건 말건 인간의 눈총 따위에 연연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주의를 주려던 몇몇 귀족들도 그들이 드래곤이라는 옆사람의 충고를 듣고 나서 금새 질껍하면서 물러섯다. 세린은 빨간 머리에 어울리는 붉고 수수한 드레스를 입고 분홍색 장갑을 끼고 있었으며 열두개의 루비가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라크레일은 주위에서 보기에 수수한 편에 속하는 하얀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둘다 원판이 굉장한 미소년 미소녀다 보니 무도회장 안에서도 군계일학으로 솟아올라 있었다. 세린과 라크레일이 어느새 가까운 사이가 되버린 것은 우선 라크레일이 세린을 잘 보살펴 주려 했기 때문이다. 베로니카는 철저하게 소박떼기 신세가 되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데 바빠 세린을 챙겨줄 여유가 없었다. 아마레와 라크리마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다 보니 해츨링으로서 그녀를 보호해주기는 하지만 일일이 알아서 챙겨준다던가 하는 일은 결코 있을수 없었다. 그러나 라크레일은 달랐다. 그는 세린이 마음에 들었다. 그때까지 라크레일이 주위에서 본 여자들(드래곤 한정)은 전부다 뭔가 이상하거나 상당히 난폭하며 자신을 깔아뭉게는 경향이 강했는데 세린은 난폭하다는 레드 드래곤 종족 답지 않게 예의가 바르고 귀여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베로니카의 성격에 약간 영향을 받은 걸지도 모르지만. 세린도 라크레일이 약간 마음에 들었다. 약간 무섭고 엄격하게 대하는 베로니카와는 달리 라크레일은 그녀에게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고운 말이 가야 고운 말이 온다는 법칙에 따라 둘은 처음의 서먹서먹 함도 버리고 어느새 서로 아주 가까운 오빠 동생 사이가 되어 있었다. 비록 그 탓에 라크레일은 해츨링한테 침 발라 놓는다는 오명을 주위의 드래곤과 인간들에게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세린의 귀여운 미소앞에서 그런 걱정은 간단히 날려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은 정말로 침발라 놓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고(...참고로 말하자면 해츨링과 성관계를 강제하는 것은 드래곤 사이에서도 '아동보호법'에 의해서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당연히 미성숙한 육체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몸에 대단히 안좋기 때문에 폭력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라크레일도 그것은 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침발라 놓는다'의 의미는 플라토닉한 종류의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②- 세린 양이 라크레일 군에게 오빠야 오빠야 하면서 놀고 있을 때 케리에게 다가오는 익숙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가스트 제국의 차기 황위 계승자로서 남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자였다.('였다')라는 미묘한 과거를 가진 랜스 가스트 더 프린스 임페리얼 인 것이다.(하도 오랫동안 그냥 '황태자' '황태자'라고 부르다 보니 본명을 잠시 까먹었었다. 본명이 너무 길기도 하고...) "아니 황태자 전하 여긴 어떻게..." "아니. 됐어. 케리 경." 케리는 황급히 황태자에게 예를 갖추었다. 이것저것 많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였고(...뭐 좀 이상한 의미는 아니다.), 의외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 하는 동지이기도 했지만 어쨋건 황태자는 평민인 케리가 땅이라면 하늘 위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신분차가 있는 존재였다. 뭐 케리는 용 타고 하늘 위로 올라온 것이지만. (문자 그대로의 의미건, 비유적인 의미건) "그런데 케리 경 이라니? 저는 아직 견습기사인데요?" "하하하. 견습기사가 특별한 용무도 없이 황궁 무도회장에 들어올수 있을것 같나? 자네는 이미 기사일세. 뭐 기사 서품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우는 기사로 해주도록 이미 결정이 났네." "예에?!" "뭐 그러니까 임시 기사라는 거지. 그리고 아마 이 무도회가 끝나고 나면 정식 기사가 될꺼고, 그 다음에는 작위나 영지라도 하나 받을지도 모르지. 자네 공으로 보자면 남작 자리 정도는 나올 꺼야." "나...남작이라니...!" "아버님은 워낙에 성격이 후하신 분이니까. 잘못하면 후작까지 줄지도 모르겠군. 남작 자리는 최소한 그 정도는 나온다는 의미니까." 황태자의 말을 듣고있던 케리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이렇게 갑자기 신분이 열렙해도 되는 건가? 평민이나 다름 없는 견습 기사에서 하루만에 기사를 걸쳐서 남작에 아니 후작이 될지도 모른다니? 아무리 절대 군주제에 가까운 사회라지만 너무하는 거 아닌가? 설정상 절대 군주제니까 뭐 이론적으로 귀족이 아니라 아예 부마로 삼아버려도 별로 문제는 없긴 하겠지만... "...그 정도로 제가 큰 공을 세운 겁니까?" "드래곤을 타고 마왕을 퇴치한 용사니까 당연히 그 정도는 해줘야지." "예. 뭐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입장과 타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입장이 새삼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체 소문이 별로 부풀려 진것도 아니고 있는 사실만 그대로 전달된 것 뿐인데 실제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하고는 전혀 딴판인 물건이 튀어나와 버리다니. 사실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진실과는 아주 틀려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 아닐수 없다. "저희 조상님인 카리온 님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공훈일 뿐인데 너무 추켜세우는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세운 공훈은 분명히 제국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어. 드래곤 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마족을 이길수 있었겠나? 이길수 있었다고 해도 큰 피해를 입었을 꺼야. 자네는 승리의 일등 공신이야. 그 전설의 용사 카리온이 다시 살아돌아온다 해도 자네의 활약보다 더 큰 활약을 세울것 같지는 않네." "그렇습니까..." 뭐 맞는 말이기는 한데... 드래곤 머리 위에서 놀이동산 청룡열차 타듯이 '우아아아아'만 하고 있다가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일격을 가했을 뿐인 케리 본인이 듣기에는 좀 민망한 말이다. 어쩌면 일부의 용사들은 이런 쪽팔림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서 산속에 은거한다던가 하는 삶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순전히 운으로 이긴 거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결정적일때 강한 자가 진짜 강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케리는 결정적일때 강했던 것이다. 음음.... "맞아요. 주인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자신감을! 마왕을 퇴치한 용사가 이런데서 침울하게 처박혀 있으면 안돼죠!" 라크리마의 생명의 은인인 것도 사실이다. 거의 우연한 일이고 제 목숨 지키려 한 일이기도 했지만 서도. '차라리 그냥 진중에 처박혀 있을 걸 그랬나.' 하지만 그 자리의 영웅이 되버린 자는 후회했다. 조금 자신 있게 앞으로 한발 내딧었을 뿐인데 이렇게 큰일을 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본인 입장에서는 거의 수능을 모조리 찍고 자버렸는데 갑자기 만점자가 되어서 뉴스에도 나오고 전국에써 떠받들어 주는 얼떨떨 하기 짝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럴때 좋은 방법이라면 '나 잘났어!'하고 적당히 나서주던가 '교과서만 봤어요'라면서 은근슬쩍 겸손해 하던가. 뭐 둘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둘중 하나로 어떻게 확실히 나갈 줄도 모르고 그냥 미적미적 거리고 있는 것이다. 에잉 쯧쯧... 후회만 한다고 뭐가 되나. "아 참. 슬슬 아버님이 등장하실 시간이군. 그럼 난 이만 내 자리로 가보겠네. 은상 때문에 아버님이 부르시거든 속히 나오도록 하게나. 부끄러워 하지 말고!" 황태자는 마지막 한마디에 힘을 실어 말하고는 약간 높은 자리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의자로 향해갔다. 그런데 어째 말투가 좀 이상하다. '아버님이 등장하실 시간'이라니. 황태자의 아버지니까 아버님이 지칭하는 것은 분명히 황제일 터. 그런데 황제에게 어째서 연극무대에서나 쓰는 '등장'이라는 말을 쓰는 건가? 케리는 다소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궁정 예법에는 어두웠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무도회장을 밝히던 마법등이 일제히 꺼져버린 것이다. 혹시 정마나(정전과 흡사한 말)이 되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닐테고. 이런 자리에 익숙할 만한 대귀족 들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는 것으로 보아 흔한 일인듯 했다. 하지만 황궁에 있는 마법등이 자주 꺼질리는 없을 텐데. 세린은 갑자기 어두워지자 무서워서 옆에 있던 라크레일을 꼭 끌어안았다. 감촉으로 세린이라는 것을 느낀 라크레일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역시 이놈은... 말을 말자. 그때 마치 타이밍을 맞추듯이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하던 음악이 바뀌었다. 지금 까지의 가벼운 왈츠곡에서 대단히 웅장하고 장엄한 곡조로. 약간 박자가 느리기도 해서 가벼운 춤 추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태자가 앉아있는 아니 지금은 서있는 자리 옆으로 서치 라이트가 비추어졌다. 이 마법은 라이트의 변형 마법인데... 천장 안에서 저 레벨 마법사들이 노동이라도 하고 있는듯 하다. 그런데 황태자가 예의를 갖추느라 서있다. 황태자가 서서 맞아야 할 정도의 상대는... 이 제국에 딱 두명 뿐이다. 바로 황제와 황비. 빠밤 빠밤 빠밤 빰빠바바밤!!! 웅장하게 이어지던 리듬이 갑자기 경쾌한 리듬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천장에서 잘게 자른 색종이 조각과 리본들이 우수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 다음에는 황제의 호위대 로얄 가드들이 일제히 검을 빼어 사선 방향으로 하늘을 향해 치켜들었다. 이들이 이렇게 예를 표하는 것도 황제와 황비 앞에서 뿐이다. 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둥... 이제는 북소리까지 울린다. 사람들의 기대감을 증폭하듯이 점점 빨라지는 북소리. 천장에서는 작은 축포가 연달아 터졌다. 이 역시 마법으로 만들어낸 것이리라. 퍼엉! 퍼엉! 퍼엉! 갑자기 황제 황비 석으로 지정된 두 자리 앞에서 불꽃 놀이가 펼쳐졌다. 그 근처에 있던 귀족들도 많았기 때문에 정말 화약을 썻다면 대 참사가 일어났을 테지만, 다행히도 마법으로 일어난 일이라 귀부인들의 드레스에 티 하나 생기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 사려깊은 이벤트다. 쨔쟌 쨔쟌 쨔자아아아아아아안!!! 그리고 웅장한 음악소리가 들리고 구석에 앉아있던 시종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건 원래 목소리가 큰 모양이다. 굳이 마법을 쓴 티는 안 나는걸 보니. "황제 폐하께서 납십니다! 모두 박수를!" 아니 황제가 나오는데 뭔 박수야? 라고 케리는 의문스럽게 생각했지만 주위의 귀족들이 박수를 쳐대자 덩달아 따라서 박수를 쳤다. 라크리마와 라크레일, 세린도 괜히 따라서 치고 있었다. 정말 우렁찬 박수소리. 귀족들이 이만큼 힘 써서 박수쳐댈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에게 잘보이는 것은 귀족의 삶에도 정말 도움이 되는 일이고 황제에게 밉보이는 것은 귀족의 삶에도 큰 장애가 되는 일이다. 그러니 열심히 하지 않을수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황제의 등장이 시작했다. 황제답게 등장도 정말 남달랐다. 천장에서 꽃가마가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은 결혼식 장에서나 볼수있는 약간 싸구려 티가 나는 이벤트지만 이 당시로서는 정말 기발하고 획기적인 이벤트인 것이다. 황제와 황비가 타고 있는 가마를 장식한 꽃은 당연히 조화 따위가 아니었다. 모두 마법으로 썩거나 시들지 않도록 보존을 해둔 생화였다. 그런 것이 우르르 모여서 두 사람이 타도 서너사람 정도 더 태울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는 가마를 완전히 덮고 있었다. 참고로 가마 안에는 푹신한 쿠션도 여러개 깔려 있었다. 내려오는 특수효과는 별다른게 아니다. 바로 레비테이션! 이 유용한 마법이 여기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대체 천장에 몇명의 마법사가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레비테이션은 상당히 고급 마법인데 이런데나 쓰다니. 하긴 황제씩이나 되서 피아노 줄 타고 내려오는 연출 쓰면 그것도 좀 그럴 것 같지만. 게다가 판타지 세계씩이나 되서는. 그 위에 타고 있는 황제가 입고 있는 것은... 놀랍게도 토가(로미시대 귀족들이 입던 옷)였다. 그것도 보통 토가가 아니라 꽃무늬 토가[!!!] 알록 달록한 꽃무늬가 참 아름답게도 새겨져 있었지만... 어깨에는 자주색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황금 지팡이로서 윗쪽에는 태양을 표현한 듯한 원형 장식물에 달려 있었다. 물론 완전히 금으로 만든듯 하다. 머리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월계관을 쓰고 있었고... 그런데 놀랍게도 황제의 얼굴은, 상당한 미형이었다. 물론 아주 초절 미소년으로 보인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만큼 장성한 황태자가 있는 황제 답지 않게 기껏해야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게다가 얼굴선이 아주 가늘고 피부의 잔주름은 하나도 없었다. 검은 눈동자는 선명하게 총기를 발하고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도 흰 머리 하나 보이지 않는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황비도... 황제처럼 젊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30대 초반은 되어 보였다. 황비는 황제와는 달리 그저 장식이 좀 많이 달린 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에 부케처럼 자신의 상반신 만한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있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는데. 황비의 얼굴은 황태자를 많이 닮았지만 좀 더 여성적이었다. 으음... 뭐 일단 지금 황태자는 남자였으니까. 금발 머리는 머리 위로 틀어 올려서 비녀를 꽂은 다음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황제에 비하면 아주 준수하고 정상적인 복장이다. 케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황제가 황제가 아닌줄 알고 '저게 대체 누구야?'하면서 당황하고 있다가 귀족들이 "황제폐하 만세!"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서야 저 이상한 차림을 한 젊은이가 황제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에 들려온 어느 귀족 여자들의 잡담 소리. "어머 황제폐하는 정말 젊으시다." "예. 사실 그런것도 아냐. 실제 나이는 50이 넘어 60에 가깝다는 걸." "세상에.. 그럼 저 모습은 뭐야?" "마법이지뭐. 어느 은거하던 대마법사에게 거금을 주고 마법을 걸어서 영구 폴리모프 아더를 겉모습만 젊게 만들었다는데..." "으아아아아..." "속은 완전히 늙은이야." "나도 한번 걸려보고 싶다! 그런 마법!" "아서라. 영구적으로 걸려면 얼마나 돈이 많이 걸리는데. 게다가 마법으로 얻은 젊음은 겉모습 뿐이라서 속은 계속 삐걱거린다구." "아앙. 그래도 영영 젊게 살수 있다면 좋잖아." "...뭐 그렇기는 하지만 애들 보기 부끄럽지 않을까?" "그것도 그렇다. 남편도 같이 안 걸면 남편 보기도 그렇곘어." ...그녀들이야 애들이나 남편만 걱정하면 되었지만, 그 말을 들은 평범한 소시민(의 정신상태를 가진) 케리는 국가의 장래가 다 걱정되고 있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③- "어떤가? 짐의 백성들이여. 오늘의 의상 컨셉은 꽃의 여신에게 옷을 선물받은 태양의 신이다. 짐의 미모에 비추어 볼때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황제는 당당하게 미소지으면서 말했다. 물론 황제의 옷차림이 그런 컨셉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전승 축하 파티에 대체 뭘 입고 나오는 건지... 하지만 귀족들 중에서 황제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한명도 없었다. 그저 한가지 말만을 소리높여 외칠 뿐... "과연 지당하시옵니다!"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황제 폐하 만세!" 그 소리를 듣고 황제는 흡족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갑자기 금화를 꺼내서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황제가 타고 내려온 꽃가마 안에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무거울런지(...) 귀족들은 소리까지 지르면서 금화를 받아가기 위해서 서로 몰려갔다. "자 짐의 신민들아! 짐이 내려주는 상을 받도록 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 고작 금화 정도에 저렇게 눈에 불을 켜느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황제가 던지는 금화는 보통 금화보다 순도도 높고 그 가치도 실제로 높으며, 게다가 디자인도 보통 금화와는 약간 다르다. 이 금화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서 특별히 만들어진 것으로 사실 기념주화라고 할 수 있다. 황제가 직접 내린 기념주화를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영광된 일이었으니... 사실 나라가 이꼴로 돌아가도 괜찮은 건지... 의심가지 않을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황후와 황제, 귀족들은 양심에 일말의 가책도 없는 것 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케리는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설마하니 파티에서는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그는 제발 안 그렇기를 빌었다. 뭐 세마리 드래곤 들이야 금화나 황제의 권위 정도에 눈이 끌릴 정도로 녹녹한 존재가 아니었지만. 그런데 귀족들은 체통도 내버리고 금화를 줍는데 단 네 명만이 멍하니 서있으니 콩나물 시루에 완두콩이 끼인 것 처럼 눈에 확 띄지 않을수가 없었다. 거기까지는 문제 없었는데 황제가 거기에 주목해버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황제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넷을 바라보았다. "그대들은 어째서 짐이 내려주는 상을 줍지 않는 것인가? 혹시 마음에 차지 않는가?" '윽! 큰일났다!' 황제가 내려주는 상을 까닭없이 거절했다가는 그 즉시 사형에 처해질수도 있었다. 케리는 깜짝 놀라서 화들짝 무릅꿇고 금화를 줍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크리마와 라크레일, 세린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귀족들이 하는 짓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황제는 그 광경을 보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니. 어째서 그대들은 짐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인가?" "아바마마. 저들은 실은 드래곤입니다.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황태자가 그렇게 말하자 황제는 생각했다. 드래곤이라면 할수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무리 황제라 해도 드래곤을 어떻게 할 방법은 없는 것이니... "흠 그런가. 위대한 종족이여. 그랬었구만. 흠흠" 하지만 역시 불쾌감은 가시지 않은듯 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존재가 떡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황제로서는 내심 불쾌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황제도 가만히 있는데 귀족중 하나가 상황에 초를 치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황제폐하. 제가 진언을 드리겠습니다. 황제폐하는 이 지상의 지배를 신에게서 위임받으신 몸. 따라서 지상의 만물은 황제폐하에게 복종하는 것이 지당하다고 사료되오니 드래곤이라 해도 황제폐하께 무릅을 꿇는 것이 지당하다고 아룁니다." 뭐 이런 씨도 먹히지 않는 소리인가? 듣는 드래곤 들이 황당해서 못 견디고 있을때 또 다른 귀족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과연. 스펜서 경께서 지당한 말씀을 한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릇 황제 폐하 앞에 무릅을 꿇는 것은 제국의 백성들로 한정되어 있을 터. 드래곤은 제국의 백성이 아니니 황제폐하 앞에 무릅을 꿇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지..." "란돌프 경!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황제 폐하 앞에 무릅을 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혹시 자네가 황제폐하의 권위를 부정한다는 것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단 말이요! 나는 단지..." "진언 드립니다. 폐하. 드래곤이란 본시 무도한 종족이라 예법을 모르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아닙니다. 드래곤은 지혜로운 종족이라 하니 예법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저들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폐하의 권위를 훼손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벌을 주심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드래곤이 아무리 지혜롭다 하나 그들은 예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예법을 모를 것이 당연하오." "설사 예법을 몰라서 실수를 했다고 해도 황제폐하 앞이니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을 저렇게 무도한데서야 어디..." "저자들이 진짜 드래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반역한 무리가 폐하의 권위를 훼손시키려 음모를 꾸민 것은 아닐런지요?" "폐하. 삿된 무리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옵소서. 폐하 앞에서 예를 지키지 않는 것은 백번 천번 죽어 마땅한 일이오나 상대는 드래곤이니 만큼 곤장 몇대만 쳐서 방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사 드래곤이라 해도 그 정도의 벌로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저번에 폐하 앞에서 예를 표하지 않은 드워프가 목이 잘린 일을 잊었습니까? 드래곤도 마땅히 목을 쳐야 합니다!" "어허. 드래곤은 위대한 종족이라 했소. 드래곤을 해치려 하면 화가 온다는 말도 듣지 못하였소?" "폐하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는데 상대가 영물이라 하여 봐줄수 있단 말이요?" 헛소리가 한 가득 올라왔다. 듣고 있던 드래곤들이 다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을 정도로 어이없는 소리들 뿐이었다. 옜날 쥐들이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서 앞으로는 고양이가 가까이 와도 미리 알아서 피하도록 하자는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나서지 않아 결국 그 논의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지금도 그와 같은 상황이다. 한번 설치면 산산히 부서질 것들이 저런 논의를 하고 있으니 듣는 드래곤들은 기가 찰 노릇이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것은 황제의 태도였다. 황제는 이 의견 저 의견을 들으면서 굉장한 고민을 하는 것 처럼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을 하더니... 갑자기 외쳤다. "모두 그만두라! 즐거운 자리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다. 자 모두 술이나 마시고 춤이나 추도록 하자!" "예. 과연 폐하께서 지당하십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생각하는게 귀찮아서 한 말이 아닐까... 싶었지만 사태는 너무나 간단하게 종결되었다. 황제의 말 한마디에 귀족들은 모두 헛소리 하는 것을 멈추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기 시작했다. 뭐 결국 노는게 토론 하는 것 보다 즐거운 일일테니 말이다. '이래도 되는 거야?' 케리는 의심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정말 이게 사실인가? 이 제국의 중심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던가? 자문하고 있는데 라크레일이 세린을 데리고 곁으로 왔다. 세린은 한껏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라크레일에게 매달려 있었다. 방금 전의 논의는 해츨링인 세린에게는 충분히 공포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물론 성룡인 라크리마 남매는 인간들이 무슨 소리를 하건 겁먹을 리가 없지만. "오빠아. 우리 목을 자른데... 어쩌면 좋아? 난 아직 어려서 브레스도 잘 못쓰고 빨리 날지도 못하는데..." "괜찮아. 세린아. 그런 일이 생기게 이 오빠가 내버려 둘 것 같니?" "오빠 멋지다아." 하지만 라크레일은 일단 이 기회를 노려서 세린에게 듬직한 오빠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 시키고 있었다. 라크리마는 한참을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케리 쪽을 바라보았다. "...주인님. 저것들 다 없애버려도 되요? 이상한 헛소리만 가득 늘어놓고는..." "아니. 없애버리면 안돼. 그래도 우리 제국의 수뇌부니까... 내가 무슨 일 당해도 절대 함부로 날뛰면 안돼. 뭐 죽거나 할 것 같으면 라크리마가 알아서 해도 좋지만." "예에... 주인님도 참 힘들겠네요. 인간인 이상 저런 것에 따라야 하니..." "내가 고생이니. 너희가 더 걱정이지. 화 나지 않았어?" "어처구니없을 뿐이예요. 화는 무슨..." 사실 그랬다. 인간들이 진지하게 드래곤을 벌주네 드래곤을 벌주지 말아야 하네 드래곤은 어떻네 어떻지 않네 하고 논의하다가 결국에는 아무 결론도 안내고 놀자! 해버리는 꼴이니... 화가 나기 보다는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힐 것이다. 인간과 드래곤의 힘의 차이는 막대하고 드래곤들의 대다수가 용존계라는 일종의 이차원에 살지 않았다면 인간들은 이런 제국을 건설하지도 못했을 터. 그러니 너무나 굉장한 바보짓에 맞부딧치면 화도 안 나는 법이다. 황제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귀족들이 바치는 술과 음식을 들고 있었다. 황태자는 어떻게 하고 있나 살펴보니 약간 못 마땅하다는 듯이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하는 행동을 저지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렇다. 사실 그의 아버지가 이러는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닌 것이다. 그가 아직 어린나이일 때부터 황제는 뭔가 크게 변했다고 한다. 서서히 늙어가는 자신을 보는 것이 버티기 힘들었던 것일까? 세상을 등지고 있던 몇몇 마법사들을 초청하여 늙지 않는 비법을 달라고 했고 그 결과 어느 정도 노화를 늦추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 마법의 약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히 희귀한 재료가 다량 필요했고, 그 약을 위해서 국고를 엄청나게 탕진하였지만 황제가 강경하게 진행하는 일이니 아무도 막을수 없었다. 결국 약은 완성되었고 황제는 그것을 복용했다. 그 이래로 그는 어딘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나태해지고 사치와 방종에 힘을 낭비했다. 정사는 돌보지도 않았다. 집권 초기에 성군 까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현명한 황제라는 말을 들었던 그는 지금은 완전히 혼군이라는 명성만 자자했다. 뭐 아직은 전전대부터 계속된 번영 덕분에 국가에 쌓아둔 것이 있어서 버티고 있었지만 말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④- "휴우..." 전승 파티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 투성이였다. 대체 황제라는 자가 그렇게 제멋대로 여도 되는 건가? 나라를 통치하는 귀족이라는 자들이 그렇게 방종해서야 되는건가? 케리는 소문으로만 듣던 상류사회의 부패상을 한눈에 접하고 상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파티장이라고 하지만 지배자라는 자들이 저래서야 어디... 케리는 아직도 소음이 그치지 않는 파티장을 빠져나와 정원을 걷고 있었다. 드래곤들도 말 없이 그의 주위를 따르고 있었다. 난생처음 황궁에 출입했고 신분 상승의 약속까지 받았건만... 케리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저런 사회에 끼어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그러느니 차라리 라크리마와 단 둘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사치라면 그쪽이 더 마음 편하게 실컷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라도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채 세상을 등져서야 되겠는가? 그래서야 에마를 다시 볼 낯이 없었다. 적어도 그는 용사라고 불리웠던 조상에 뒤지지 않는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라크리마와 단 둘이서 사치나 하고 지내는 그런 생활은 결코 생각조차 해서는 안된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주인님." "으음... 라크리마랑 단 둘이서 살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어." "예에? 그거 좋지요! 어디서 살까요? 그 레어는 이제 못쓰게 되버렸으니까... 근처에 다른 산을 찾아서..." 그 말을 듣자 라크리마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그녀에게 그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을 것이다. 본래 드래곤이란 대부분 혼자서 산다. 부모 자식 간에도 같이 사는 경우가 드물고, 형제 간에도 마찬가지다. 결혼한 직후에 깨가 쏟아질 때나 아이가 너무 어려서 돌봐줘야 할 경우나 함께 사는 것이다. 그런 만큼 그들은 한적한 것을 좋아했고 라크리마도 처음에는 인간 사회가 재미있었지만 이젠 슬슬 지루해지던 중이었다. 그런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으니 어찌 안 즐거울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럴수는 없지. 아직 일이 많이 남았으니까... 앞으로도 날 계쏙 도와줄꺼지? 라크리마." "이잉... 좋다가 말았잖아요. 그래도 주인님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는 라크리마를 실망시킬수 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아직 할일이 남아있었으니까... 한편, 카렐은 어찌된 것일까? 그는 개선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수도에서 많이 떨어진 다리우스 가의 영지에 돌아와 있었다. 기사에게 개선식은 다시 없는 영광의 자리였지만 그는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여러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입은 상처는 보통 영광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처참한 몰골은 드래곤들의 마법으로 인한 의도적인 결과였다. 그것이 확실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있게 내보일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드래곤은 그를 농락하고 모욕했다. 게다가 그를 치유할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그를 놀리기 위해서 감각기관만 되살려주었다. 그것은 다시 없는 모욕이었고, 그가 복수심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가 어떻게 할수 있겠는가? 그의 육신은 이미 도저히 복구할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는데... 그 어떤 인간도 이 정도 까지 무너진 육신을 되돌릴수는 없었다. 사지와 온 몸의 피부가 다 타서 거의 쑻덩이가 되버린 상태였으니... 사실 살아있는 것이 신기한 지경이었지만 그것 역시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 이 시대의 마법 기술은 대단히 발달하였기 때문에 잘려나간 팔 다리도 대단한 고위의 신관이라면 다시 붙일수는 있었다. 보다 더 고위의 신관이라면 손가락 정도는 재생시킬수도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 타서 도저히 쓸수없게 되어버린 신체를 다시 낫게 한다... 는 것이 가능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법왕급의 인사라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 했다. 부활의 주문도 육체가 멀쩡해야 가능한 것이다. 카렐은 사실 이미 죽었어야 하는 상태인데 살아있는 것이다. 누가 그를 치료할수 있겠는가? 결국 그가 이 분노를 간직하고 처참한 몰골로 살아가는 것도 모두 드래곤들의 책임인 것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수 있을까. "크크크크크... 크크크크크..." 온 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서 카렐은 지옥에서 다시 기어올라온 망자가 낼법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다리우스 가의 저택에 마련된 그의 병실은 하루에 몇번씩 출입하는 음식을 먹여주는 하녀와 붕대를 갈아주는 간호사, 상태를 보러오는 의사를 제외하면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의 부모도 그의 형제와 친척들도 그의 처절한 몰골을 다시 보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외톨이였다. 모든 힘을 잃고 폐인이 되자마자 한순간에 버려진 외톨이. 그의 가슴속에서는 복수의 불길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겠는가? 손가락 하나 까딱도 못하는...아니 손가락은 커녕 팔과 다리도 없는 몸인데... 남은 것은 그의 몸에 축적되어 있던 오라 뿐이었다. 그나마 그 오라도 마법공격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몸이 쇠약해지는 것과 함께 반 이상이 소실되어 버린 상태였다. 또한 오라는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을 이용하기 위한 팔 다리가 없으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카렐은 결코 울지 않았다. 그는 웃었다. 무시무시한 소리였지만 그는 웃었다. 울면 자신에게 패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를 해야 했다. 그 드래곤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이 꼴로 만드는 데 일조한 그 케리 레그너스에게... 그놈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이 모양이 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그 뿐만 아니다. 자신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충성을 바쳐온 부하를 버리고 이득을 위해서 드래곤들에게 무릅을 꿇은 제국을 특히 황태자에게도 복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찰칵... 그가 복수에 대한 고민으로 모든 것을 잊고 있을때. 그의 병실문이 열리고 한 사람의 여인이 들어왔다. 검은 드레스에 검은 장갑... 검은 모자에 흑색 베일. 마치 상복처럼 보이는 그 옷차림 탓에 카렐은 잠시 저승사자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닌가? 착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저승사자가 아니었다. 베일을 들어올린 그녀의 얼굴은 그가 이전부터 잘 알던 사람이었다. 아니 잘 알던 정도가 아니라 그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중의 하나였다. "카렐! 정말 카렐인가요? 당신이 정말로..." "...일레노아... 그대가 여긴...어떻게..." 일레노아 폰 휘스턴, 그녀는 카렐의 약혼녀였다. 그녀는 약간 푸른빛이 도는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있었다. 단정하고 청순하게 생긴 얼굴은 투명할 정도로 하얀 색이었다. 화장기는 하나도 없었다. 본래 갸름한 편이 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카렐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말라있었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그녀의 짙은 녹색 눈동자는 약간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카렐... 카렐... 이 꼴이 되다니... 카렐..." 그가 일레노아를 보고 반사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그가 카렐인줄 알지 못했을 것이라. 카렐은 잠시 후회하였다. 그녀가 알아볼 줄 알았다면 차라리 대답하지 말 것을. 죽은 듯이 조용히 있었다면 그녀도 시체인줄 알고 자신의 처참한 몰골을 알지 못했을 텐데... "그 상복은 어떻게 된거요...? 당신의 친척중 누가 죽었소?" 그런 상황에서도 카렐은 그녀의 슬픔을 먼저 챙겼다. 그녀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자 일생 함께 하기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이므로...휘스턴 가도 귀족의 하나이고 이번 전쟁에도 나섯으니 그녀의 친척 중에도 사망자가 있으리라 짐작되어졌다. "사촌 오빠중 마족에게 두명이 죽었어요... 하지만 이 상복은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예요. 이건... 당신을 위한 것이었어요!" "나를...?! 어째서? 나는 살아있는데...!" "당신 집안에서 당신이 이미 죽었다고 통보해 왔어요... 난 도저히 믿을수 없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 상복을 입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들려온 거예요! 그래서 찾아왔어요. 하나하나 단서를 찾아가면서... 카렐... 어떻게 이럴수가 있죠? 당신이 아무리 이 꼴이 되었다고 해도 당신은... 아직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하다니..." "............" 그는 할말을 잃었다. 가문에서 일레노아에게 자신이 죽었다고 했단 말인가? 대체 어째서? 자신은 아직 살아있는데... 그녀가 혹시나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봐? 아니. 그럴리는 없다. 그의 아버지나 가문의 어른들은 여자 하나의 마음 까지 신경쓸 정도로 섬세한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가문에서 그를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차라리 죽었다던가 한다면 모를까. 완전히 폐인이 될 정도의 상처를 입고 돌아온 자는 가문에서도 반기지 않는 것이다. 기사의 상처는 영광의 상처라고 하지만... 도저히 치료할수도 없는데 살아있는 자가 영광스러울리는 없다. 그는 차라리 시체가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카렐...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요? 악마에게 저주를 받았나요? 당신을 이렇게 만들 악마가 있었던 건가요? 그렇게 강하던 당신이 이 꼴이 될 정도로..." "크크크크크... 일레노아. 당신도 어서 사라지시요. 내 몰골이 흉칙하지 않소? 내 모습이 처참하지 않소? 나의 약혼녀인 것이 부끄럽지 않냔 말이요? 난 이제 검을 잡고 기간틱 아머를 타고 전장을 달리기는 커녕 빵 한조각 물 한모금 조차 내 손으로 먹을수 없는 폐인이 되었소. 대소변 조차 가리지 못하고... 하반신이 완전히 불타버려서 당신과 사랑을 나눌수도 없소! 이런 나는 차라리 죽은 것으로 해주시요.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주시오!" "그런 소리 마세요...카렐..." 일레노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죽었다는 카렐이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얻은 순간 그녀는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의아해했다. 그렇다면 왜 다리오스 가에서는 카렐의 생존 사실을 숨겼었단 말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카렐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숨길 리가 없는데... 그가 살아있음에도 처참한 몰골인 것을 부끄러워 하여 숨겼다면... 일레노아로서는 그의 가문을 용서할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폐인이 되었다고 하여 그녀에게는 죽었다고 말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무심할수가 있단 말인가? "제가 당신과 결혼하기로 맹세했을 때부터... 제 몸과 마음은 당신의 것이었어요.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변하지 않아요. 자! 나와 함께 가요. 카렐. 더 이상 이런 매정한 곳에 있지 말아요! 제가... 당신을 돌봐드릴께요. 언제까지나 평생이라도..." "일레노아..." "당신은 누구보다도 강한 기사잖아요? 이런 일에 주저앉아서는 안돼요..." 일레노아는 고개를 숙여서 카렐의 붕대투성이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주위의 피부도 타고 문드러져서 흉칙하기 짝이없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그것은 그녀에게 여태껏 그와 나누었던 모든 키스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서 뭐하는 거요? 일레노아 양!" 갑자기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일레노아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카렐의 부친인 크샨 폰 다리오스가 서있었다. 이렇게 되기 전의 카렐과 무척 닮은 얼굴이었지만 역시 나이를 이기지 못해서 외모는 훨씬 늙어 있었다. 그는 노기를 띤 얼굴로 일레노아를 바라보았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요. 일레노아 양. 다른 가문의 저택을 함부로 뒤지고 돌아다니다니..." "크샨 님이야 말로 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한거죠? 멀쩡히 살아있는 이 사람을 죽었다고 하다니..." "그... 그것은... 당신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봐 그렇게 한 것이요." "이 사람이 그 어떤 몰골을 하고 있다고 해도 저에게는 이 사람이 가장 소중해요. 이 분이 악마에게 잡혀가서 악의 부하가 되었다고 해도 저는 이 분이 살아있기만 한다면 충분해요!" "어서 나가시요! 이곳은 숙녀가 올 곳이 아니요!" "남편이 있는 곳이 어디라 한들 아내가 못갈곳이 있나요? 제가 카렐을 데리고 가겠어요! 카렐이 죽었다고 한 당신들에게는 맡겨둘수는 없으니까!" 일레노아는 카렐을 안아들었다. 바짝 마르고 사지가 뜯겨나간 몸이라 그녀의 연약한 힘으로도 어렵지 않게 안아들수가 있었다. 일레노아에게 안긴 카렐은 자신의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적중되자 카렐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 못박힌 것처럼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다. 그 눈빛이 너무나 괴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일은 잊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비켜주세요!" 일레노아가 소리치자 크샨은 운명의 여신에게 명령받은 것처럼 옆으로 물러섯다. 두 사람의 너무나 무서운 박력이 그를 완전히 압도해버렸던 것이다. 일레노아에게 안겨서 저택 밖으로 나가면서 카렐은 속으로 분노를 되새김질 했다. 이제 복수의 대상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가문...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⑤- 가스트 제국의 궁전 정원, 궁전의 정원이므로 당연히 매우 넓고 손질도 잘 되어 있으며 희귀한 식물도 많다. 게다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정원 곳곳에 서민 가정에서는 꿈도 못꾸는 비싼 마법등이 달려 있어서 정원을 감상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물론, 은근슬쩍 어두운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어서 그 안에서 누가 방탕한 짓을 하고 있건 아무도 상관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애들 데리고 돌아다니기에는 영 꺼림직한 곳이었지만 그래도 한적한 장소를 찾아서 벤치에 걸터앉아있는 두 명의 드래곤이 있었으니. 그것은 라크레일 군과 세린 양이었다. 자유롭게 무도회가 벌어지자 실체야 어쨋건 둘 다 대단한 미소년과 미소녀, 정말 한쌍의 그림 같은 커플이었고 드래곤이라는 사실에 흥미가 발동한 구경꾼들이 주위에 너무 모여들어서 귀찮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도망쳐온 것이다. 여기까지 쫓아온 사람도 있었지만 라크레일이 드래곤 피어로 한번 위협을 해주자 다들 도망쳐버렸다. "휴우... 무도회라는건 피곤하네요. 오빠." 세린은 라크레일에게 꼭 달라붙으면서 이마의 식은 땀을 닦았다. 인간들이 주위에 잔뜩 들끓는 것은 어린 세린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라크레일의 가슴은 콩닥 콩닥 뛰었다. 세린은 아직 해츨링이다. 해츨링은 물론 약하다. 어리고 경험도 없고, 마법도 잘 못쓰고 힘도 약하고 비늘도 그리 단단하지 않고, 오래 날지도 못하고... 성년 드래곤에 비하면 한심할 정도의 능력 밖에 없지만 그래도 드래곤이기 때문에 마법의 재료 등으로 무척 유용하다. 따라서 드래곤들은 해츨링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들을 잘 보살피고 위험에 처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출하며 상처를 입으면 온 일족의 힘을 총동원하여 보복을 가한다. 해츨링은 종족의 미래이고 그 만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크레일이 세린을 지키는 것은 일족의 율법에 따른 절대 정당한 행위! ...였지만 왠지 태도에서 흑심이 느껴지는 것이 오히려 그가 율법을 어기기 직전에 와있는것 같았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라크레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세린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는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라크레일은 여지껏 여자들에게 잡혀살아왔었다. 제일 가까운 여자인 누나와 엄마는 정말 드세고 고집센 성격이라서 약간 우유부단한 성격인 라크레일은 간단히 잡혀서 휘둘러졌다. 누나 친구인 아마레도 마찬가지. 사실 드래곤은 여자들이라고 해도 유약한 성격이 드물었으니 라크레일 같은 상황은 드물지 않은 경우였다. 하지만 세린은 아직 어린 해츨링이 아닌가? 요즘에는 싸가지 없는 초딩 해츨링도 늘어나고 있다는 풍조지만 세린은 아직 순수한 아이였다. 그리하여 난생 처음 '자기 말 잘 따르고 무섭지도 않은 귀여운 여자애'랑 만난 것은... 라크레일에게는 신선한 컬쳐쇼크(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오빠 어딜 봐요?" "아... 응."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세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라크레일은 고민했다. 과연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이럴때 그녀의 얼굴에 먼지라도 하나 묻어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세린의 순수한 눈빛 앞에서는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으응.. 세린이 너무 귀여워서..." "꺄앗. 정말요?" 세린은 볼이 빨갛게 변하면서 너무나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귀엽다는 말이 그렇게 좋은 걸까? "좀 더 말해주세요." "귀여워. 정말 귀여워." "어떻게 귀여운데요?" "나보다 키가 작은 것도 귀엽고... 빨간 머리도 귀엽고... 눈도 반짝 거려서 귀여워. 아니, 네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다 귀여워." "저... 정말이죠? 저 귀여운거 맞죠?" "응. 당연하지!" "꺄아..." 세린의 볼이 더욱 빨갛게 변했다. 혹시 레드 드래곤이라서 그럴까? 그 모습은 마치 막 피어나기 직전의 장미꽃 같았다. 라크레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세린은 뺨을 양손으로 숨기면서 몸을 움츠렸다. 부끄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부끄러워서. 얼마나 기뻐하는지 세린의 눈에 작은 눈물방울 까지 고였다. "베로니카 언니는요. 그런 소리 절대 안해줘요. 맨날 저 때리고 야단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역시 난폭하고 무식하고 오만방자하고 거칠기 짝이없는 레드 드래곤의 핏줄이라 어쩔수 없군요!'라고 하면서..." "저런... 그럴수가..." 확실히 베로니카의 성격을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졌다. 레드 드래곤은 사실 대부분 난폭하고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심지어 오만하기 까지 하니 실제로 레드 드래곤이 일으킨 사건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어느 가출한 레드 드래곤 일족의 해츨링이 전능수를 부활시켜서 한때 전 드래곤 종족이 멸망하기도 했고(...아 이건 아닌가.), 어느 레드 드래곤 일족의 고룡은 나라 하나를 완전히 말아먹었으며, 무림 세계에 갔다온 암컷 레드 드래곤도 있고, 이세계에서 고교생이라 불리는 존재가 환생하여 설칠때도 레드 드래곤의 몸을 빌리는 경우가 참 많다고 했다. 그러니 베로니카가 레드 드래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애한테 그런 소리를 할수가..." "그쵸? 베로니카 언니는 정말 못됐어요." 그렇다고 해서 아직 해츨링인 어린애한테 저런 소리까지 해가면서 야단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린애한테 핏줄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애가 어두침침하게 자라는 원인이 되기 쉽다. 그러니 라크레일은 베로니카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런 어린애를 야단치다니?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볼때 베로니카의 엄격한 교육이 세린의 레드 드래곤 혈통과 상호조화작용을 이루어서 적당히 활기차고 명랑한 아이로 자란 것도 아닐까 생각되었다. 허나 지금 세린에게 거의 반해버리다 시피 한 라크레일은 이미 세린에 관해서는 객관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 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지켜주는 것은 오빠로서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외치고 싶을 뿐. 대체로 이 정도쯤 되면 주위에서 로리콘 반응의 초기라면서 경고를 주었겠지만 그는 '착한 여동생을 지켜주는 씩씩한 오빠'가 되기로 결심한 뒤였다. 라크레일도 자문해 보았다. 혹시 내가 로리콘인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의 정신은 완강하게 그것을 부인했다. '나는 단지 세린을 귀여워할 뿐이야!' 대체로 로리콘의 단계는 넷으로 구분된다. 첫번째가 단지 귀여워할 뿐이야. 두번째가 나중에 잘 키워서 먹어야지. 세번째가 어려도 상관없어! 궁극은 어린게 좋아! 그는 아직 초입이기는 했지만 이미 증세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세린은 그런 라크레일의 정신 상태를 눈치챘을까? 물론 아니다. 누누히 말했지만 그녀는 아직 어리고 경험없는 풋내나는 레드 드래곤 해츨링이다. 어떻게 저 사악하고 어두침침한 뱃속을 눈치챌수 있겠는가? "근데 오빠는 정말 좋아요. 야단도 안 치고 큰 소리도 안치고... 엉덩이도 안 때리잖아요. 베로니카 언니는 맨날 맨날..." "엉덩이를 때리다니! 그런 천부당 만부당한..." 그렇게 말하면서도 라크레일은 세린의 엉덩이를 때린 베로니카가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이런... "걱정하지마. 세린아. 이제 오빠랑 같이 살자. 오빠가 너 지켜줄께." "정말요? 저도 오빠가 좋아요." 라크레일은 세린을 가볍게 안아올려서 어깨위에 무등을 태웠다. "나도 전부터 너같은 동생을 가지고 싶었어. 마침 베로니카 씨도 우리 누나한테 잡혀서 꼼짝 못하는 처지니까 그 동안 내가 널 보살펴줄께." "와아아!" 그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라 웃는 세린을 보고 '성룡이 될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꺼야.'라고 무의식중에 중얼거려버렸다. 위험지수가 한단계 올라간 것이다. '단지 귀여워할 뿐이야'에서 '나중에 잘 키워서 먹어야지'로. 세린이 다 커서 성룡이 되려면 몇백년이나 기다려야 할 테지만 라크레일도 드래곤이니 그 정도를 참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리는 없지만. 미래의 신부감을 얻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어린애라고 해도 결코 가벼운 무게는 아닌 세린을 어깨에 태우고 있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싱글벙글거리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들과는 다른 또 다른 커플이 있었다. 자신들과는 이질적인 무도회장의 분위기가 싫어서 뛰쳐나와버린 케리와 라크리마였다. "휴우..." 갑자기 라크리마가 한숨을 길게 쉬었다.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것일까? 케리도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두 사람 모두에게 공통된 걱정인듯 했다. "그러니까. 영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응..." "정말 받으시면... 어떻게 할 꺼예요?" "글세... 역시 거절할수는 없겠지." 그 대답에 라크리마는 실망한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가 내심 기대했던 대답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와 함께 조용히 여행하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래도 그럴 마음이 없어보였다. 작위나 영지를 받지 못한다면 모를까... 만약 준다면 거절하지 않을 테니까. 아니 거절할 정도로 배포가 크지 않을 테니까. "라크리마는 내가 거절하기를 바라니?" "예. 솔찍히... 이젠 주인님이랑 둘이서 조용히 여행하고 싶어요... 인간들이랑 있으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 많아서..." "으음... 그럼 어떻게 할까..." 케리는 고민했다. 라크리마도 소중하지만 그에게 성공이란 자신의 동생인 에마에게 인정받기 위한, 한가지 방편이었다. 둘다 어느 쪽이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로 선택하기 곤란한 문제였다. 이미 라크리마는 자신에게 단순한 메이드 로서가 아닌 그 이상의 친밀감을 지닌 존재기 때문이다. "난 도저히 이 기회를 포기할수 없어. 그런데 라크리마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으음... 곤란하구나. 라크리마가 거부한다면 나도 억지로 나와 함께 다니게 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으이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라크리마는 팍 찡그리고 있던 얼굴을 활짝 펴면서 말했다. "무엇이라도 명령해주세요! 진정으로 섬긴다는 것은 제가 하기 좋은 일만 한다는 뜻이 아니예요. 저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주인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가장 큰 쾌감이랍니다. 저 때문에 세상에 이름을 떨칠 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그것을 위해서 저를 포기하는 것도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예요. 무엇이라도 명령해주세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녀에게는 단순히 인간들이랑 있으면 짜증난다는 것은 어떻게 되어도 좋았다. 그 정도로 그녀는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그렇게 까지 말해주자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다 날 정도였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0화 -황제 ⑥- 국가 절차라는 것은 복잡한 법이다. 하루 이틀에 일사 천리로 처리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특히 이 시대 처럼 전산 시스템도 없는 나라란 더욱 그렇다. 논공행상같은 복잡한 일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 질수 있을 까닭이 없다. 물론 황제가 마음만 먹는다면야 누구 한테 상 주는 거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실제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간다. 마족과 제국이 충돌한 전장은 케리가 활약했던 곳만이 아니었다. 마족의 본거지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중앙에서 내려온 장군들과 지방 영주들의 공격이 들어갔고 그들 모두가 나름대로 공과가 있으니 상을 받을 공신이 수십명은 생겨난 것이다. 그 수십명의 공과를 일일이 따져서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궁정의 음모는 여기에 까지 개입하고 있었다. 공신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명예일 뿐만아니라 권력과 부를 쌓는 일이기도 했다. 공신들에게는 보통 영지를 내려주기 마련인데 공신에게 주는 영지는 세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아주 큰 이득이 되었다. 그러니 어느 귀족이 공신이 되기 싫다고 하겠는가? 자기 파벌의 사람을 하나라도 더 밀어올리고 다른 파벌의 사람을 하나라도 더 깍아내리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서 온갖 뇌물과 회유를 일삼았다. 그 때문에 큰 공을 세우고도 파벌의 뒷받침을 받지 못해 별다른 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별것도 아닌 공을 세우고도 파벌의 뒷받침으로 큰 공을 세운 것 처럼 되버리거나. 전쟁터에서 큰 실수를 범한 장군들 중에서 면책되는 자도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케리의 문제는 어느 사이엔가 슬며시 뒤로 뒤로 물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케리가 어떻게 이런 현실을 알 수 있을까? 당연히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리가 없었다. 어느 파벌에 줄을 서야 하는가는 커녕 누가 어떤 파벌인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드래곤들이 인간의 정치에 대해서 잘 알리도 없고, 황태자도 그쪽 방면의 일이 바빠서 찾아오지 않으니 그저 허송세월만 할 뿐이었다. "주인님. 언제 작위가 내려오는 거예요?" "글세... 요즘 받을 사람은 거의 다 받았다고 하던데." "주인님 한테는 아무일 없는거 아닐까요?" 라크리마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케리가 혹시 작위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니 기뻣을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의심가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세운 공훈이 제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못된다면... 하지만 그럴 까닭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자신은 드래곤 마스터가 아닌가? 아무리 제국이 강대하다고 해도 다섯마리[결과적으로] 나 되는 드래곤을 부리는 드래곤 마스터를 홀대할 리는 없었다. 라고 생각했다. "으음. 설마 그럴리는 없겠지..." "하지만 벌써 이주일도 넘게 지났는데 아무 이야기도 없는거 보면..." "으으음... 할수없지. 황태자 전하라도 찾아가 볼까?" 케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국 귀빈관을 나섯다. 주머니 속에는 황태자에게 받은 옥으로 된 길쭉한 사각 옥패가 들어있었는데, 뒷면에는 '이 패를 소지한 자는 황실의 손님이므로 귀중히 대접할 것.'이라는 명령문이 새겨져 있었고 앞쪽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골드 드래곤 문장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황제나 황후, 황자나 황녀가 특별히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에게만 내려줄수 있는 신분 증명서의 하나로서 이것이 있으면 제국의 모든 관문과 지역을 통행세 없이 통과할수 있고, 각지에 있는 제국의 영향이 미치는 관사에서 묵을수도 있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었다. 물론 이것이 있다면 황태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다. 케리는 혼자서 터덜터덜 황태자 궁 앞으로 갔다. 황태자 궁은 황궁에 필적할 만은 아니지만 충분히 으리으리한 궁전이었다. 제국의 부는 과연 엄청난 양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그가 황태자궁 입구로 들어서려 하자 경비병들이 창으로 제지했다. "이봐! 넌 누구냐!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 케리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자신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닳고 옥패를 꺼내서 내밀었다. "전 케리 레그너스 라고 합니다. 황태자 전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경비병은 당당한 태도로 케리가 내민 옥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행을 다닐때의 허름한 옷을 깨끗이 빨아서 입고 있을 뿐인 케리의 차림새와 황실의 손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증명서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비병은 케리의 얼굴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셧소?" "이번 전쟁에서 제가 세운 공과에 대해서 상담하러 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경비병은 알았다는 듯이 킬킬 거리면서 웃었다. 가끔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황태자에게 청탁을 넣기 위해서... 물론 황태자는 강직한 사람이었고 그런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번에 몇대 얻어맞고 쫓겨났지만... 하지만 그들은 경비병들에게는 짭짤한 부수입이었다. 떳떳치 못한 일로 찾아오는 자들이니 경비병들이 약간의 뇌물을 달라고 요구하면 슬쩍 건내주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먹이일 것이라고 경비병은 지레 짐작했다. "어. 그... 세상 모르시는 구만. 이런 쯩 보다도. 통행세를 내시요. 통행세를." "통행세? 이 패가 있으면 제국의 어떤 관문도 통행세 없이 통과할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허 이것 참 이렇게 눈치없는데가 있나. 통행세를 주셔야 제가 황태자 전하께 쪼르르 달려가서 고해 바칠 것이 아닙니까?" "손님이 왔으면 당연히 주인께 알리는 것이 병사의 도리가 아닙니까?" "어허 거참..." 경비병은 이놈이 어디서 증을 빌려오거나 위조해 와서 눈치도 없이 까부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황태자를 한번 만나서 뇌물을 좀 쥐어줘봤자 돌아오는 것은 몽둥이 찜질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래서 케리를 한번 골탕이나 먹여볼까 하고 생각했다. 마침 상급자도 없는 시간이고 진짜 황태자는 출타중이다. "뭐 그럼 이리 따라 오시요." "그러지." 케리는 아무 의심도 없이 길을 안내하는 경비병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약간 안심했다. 황태자 궁은 그가 처음 와보는 곳이다. 들어가기만 해서는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한 곳이니 누가 안내해 주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상대의 음흉한 뱃속 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을 따라들어가다가 케리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황태자 궁은 들어와 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일반적인 배치로 생각해볼때 아무래도 길이 아닌 곳으로 자꾸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때 까지는 잘 몰라서 그냥 따라가기만 했지만 영 기분이 찝찝했다. "이보시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요?" "아 다왔소.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가 아니라 요놈아!" 딱! 경비병은 들고 있던 창을 뒤집어 잡더니 케리의 머리를 내려쳤다. 경쾌한 소리가 나면서 케리의 눈앞에 별이 핑핑 돌았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계속 이어지는 경비병의 매질을 맞아야 했다. 경비병은 케리를 계속 두들기면서 신나게 말했다. "이놈아. 황태자 전하는 너같은 청탁자를 제일 싫어하신다. 꼴을 보아하니 한자리 해먹겠다고 온 것 같은데, 나한테 줄 돈도 없으면 네가 벼슬하기는 다 틀렸다! 몇대 얻어맞고 정신이나 차려! 집에가서 냉수나 마셔라!" 케리는 눈에서 불길이 확 치솟는것 같았다. 갑자기 얻어맞은 것도 억울한데 뇌물을 주려고 왔다는 엉뚱한 죄까지 뒤집어 쓰다니... 그가 살아오면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많이 당했지만 이렇게 까지 억울한 일이 닥칠줄이야. 너무나 화가 치솟아 아픔까지도 날아가버렸다. "이게!" 그는 여지껏 누구에게도 보여준적 없는 무서운 표정으로 눈을 치켜뜨며 경비병을 노려보았다. 그 순간 확 뿜어져 나온 살기에 놀란 경비병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섯다. 그 만큼 케리가 뿜어내는 살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몸 속에 약간 흐르고 있는 드래곤의 피가 일으킨 작용일지도 모른다. '혹시 이거 상대를 잘못 건드린거 아닐까?' 경비병은 자신이 큰 실수를 한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뇌우치기에는 늦어있었다. 케리는 오른손에 낀 반지, 로드 오브 엘리멘탈에 힘을 주입하면서 명령했다. "나와라! 정령들!" 바람의 정령 실프와 아리엘, 불의 정령 살러만더와 카사, 대지의 정령 노움, 물의 정령 운디네가 단 한번에 소환되어 나타났다. 정령들도 케리의 분노에 영향을 받은듯 잔뜩 긴장하여 살기를 띠면서 불행한 경비병을 노려보았다. 갑자기 케리가 정령들을 불러내자 놀란 경비병은 비명을 질럿다. "저...정령사?! 그 그럼 진짜 손님이셧습니까?" 정령사라면 확실히. 특히나 다수의 정령을 한꺼번에 부릴 정도의 정령사라면 국빈으로 대접받아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겉모습만 보고 사기꾼이라고 판단한 경비병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거 자신이 된통 실수했구나! 라고 생각한 경비병은 땅바닥에 무릅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잘못했습니다! 손님. 제가 손님을 잘못보고 그만 실수를..." "으으.... 혼내줘라!" 하지만 그 정도 사과로 분노가 풀릴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 폭력사건이 90%이상 감소했을 것이다. 아무리 케리가 순둥이라지만 눈이 뒤집힐 정도로 화가 난 상태에서 참아줄 정도는 아니었다. 케리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랜만에 소환되어서 할일이 생긴 정령들은 살판 났다는 듯이 경비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악!" 우선 실프와 아리엘이 그를 공중으로 던져올리더니 마구 돌렸다. 그 다음에는 살라만더와 카사가 불을 뿜어내서 그을려 댓고 운디네가 물을 끼얹어서 타죽는 것을 막는 한편 강한 수압으로 마치 세탁기 안에 집어넣고 돌리는 것 처럼 혼내주었다. 노움은 흙을 끼얹어서 운디네와 함께 경비병을 온통 진흙 투성이로 만들어버렸다. 정신없이 빙빙 도는 가운데 뜨거운 불길에 데이고 수압에 얻어맞고 진흙까지 날아오는 정신없는 상황에 경비병은 정신없이 비틀거렸지만 정령들은 그를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①- 케리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비병의 비명소리에 주위에 있던 다른 경비병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그들은 이 갑작스런 침입자에 대해서 가차없는 응징을 가할 기세로 그를 포위하였다. 하지만 상대가 정령술을 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정령술사는 마법사와는 달리 주문을 거의 외우지 않고도 공격할수 있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넌 누구냐!" "왜 황태자궁 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 읏!" 경비병들이 분노한 듯이 소리치자 케리는 엄청난 살기를 담아 주위를 노려보았다. 그때 뿜어져 나온 살기는 평소의 유약하던 그라고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었다. 실로 상상을 초월한 살기. 그 힘은 경비병들 따위가 이겨낼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모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섯다. 그래도 황태자궁 경비병이랍시고 도망은 안 가는 것이 다행이랄까. 아 저기 도망가는 놈 하나 있군. "내 이름은 케리 레그너스. 드래곤 마스터 케리 레그너스다." "그...그분이라니!" 경비병들도 보고 바로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이름을 듣고서야 과연 소문을 들어서 알수 있었다. 다섯마리나 되는 드래곤을 굴복시켜서 노예로 부린다는 드래곤 마스터 케리 레그너스. 정말로 그라면 (소문으로는) 드래곤*5의 힘을 지니고 있을 것이니 경비병들이 상대할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망갈수는 없었다. 명색에 황태자궁 경비병이면 경비병 중에서는 나름대로 엘리트 계층이다. 아무리 무서운 적이 나타난다고 해도 근무지 이탈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가서 개죽음 당할수는 없고,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괴롭힘을 당하던 병사는 완전히 기절한지 오래였지만 케리는 정령들을 거두어 들이지 않고 주위에 배치해두어 경비병들괴 대치하고 있었다. 그때 병사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다. 때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황태자가 경비병들의 숫자가 적고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소란의 지원지를 추적해온 것이다. "여기서 뭣들 하는 거냐?" 경비병 하나는 완전히 떡이 되어 있고, 케리는 정령들을 불러 무섭게 살기를 뿌리며 병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본 황태자는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드래곤, 그 사상 최강의 생명체 중 무려 다섯마리와 친분을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 경비병들이 실수로라도 무례하게 대해서 화나게 했다면 이것은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큰 사건이 되는 것이다. "황태자 전하!" 하지만 케리는 황태자를 보고 깍듯이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했다. 그것을 보고 경비병들도 안심하여 창을 거두었다. 아직 그가 제국의 권위에 복종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화가 닥칠 염려는 없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도 불안을 조금 거두고 그에게 대체 어째서 이런 난동을 부리게 되었는지 묻기로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해보라." "예. 제가 오늘 황태자 님을 찾아뵙고 긴히 부탁할 것이 있어서 이곳에 찾아와 경비병들에게 이 패를 내미니 저기 쓰러져 있는 저자가 들어오고 싶다면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뭐라!" "그리고 제가 돈을 주지 않자 저자가 이곳으로 저를 데려와서 폭행을 하려 해서 어쩔수 없이 저항하여 쓰러뜨렸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옵니까. 황태자 전하." "뭐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황태자는 진노했다. 감히 경비병 주제에 황태자에게 온 손님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폭행까지 가하다니 이것은 황실의 권위를 모독하는 거의 대역죄에 가까운 중죄였다. 그는 기절한 경비병을 잡아가두라고 명령했고, 다른 위병들은 동료의 불행을 측은하게 여기면서 그를 잡아갔다. 아마 큰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리는 황태자의 명령을 받은 시녀들에게 안내를 받아 황태자궁의 손님방에 인도되었다. 그리고 황태자와 면회할수 있는 기회를 허락받았다. 황태자는 케리가 대체 무슨 불만이 있어서 자신에게 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해했다. "그런데. 왜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인가?" "실은 그것이 저... 말하기 까다로운 문제인데..." "음. 무엇인가. 무엇이든 걱정말고 말해보게.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이 제국 내에서 많지 않네." "예. 그것은 실은... 상에 관한 것입니다." "상?" 상 이라고 하니 황태자도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요즘 중신들과 논공행상 문제로 여러가지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도 여러 심복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 보니 케리의 문제에 대해서 약간 뒤로 밀어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실은 저번 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다들 상을 받고 있는데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 받을 것이라는 발표도 나오지 않고..." "흠. 그렇군... 그러고보니 자네는 정계에 어떤 인맥도 없을 테니 아무도 추천을 안해서 어느새 순위가 뒤로 밀려나 있었던것 같군. 나도 내 일이 바빠서 자네에게 신경쓰지 못했군. 걱정말게. 내가 힘을 써줄테니. 자네가 상을 못받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꺼야. 자네는 이번 전쟁의 일등 공신이니까." "예. 그럼 안심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음. 그러도록 하게. 아 참 그리고..." "예?" 황태자는 돌아가려는 케리를 불러세웠다. "내가 지금 일러주는 귀족들 명단을 잘 기억해두게. 나중에 자네에게도 도움이 될 귀족들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황태자가 일러준 귀족들은 그의 심복으로 알려진 자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황태자는 케리를 자기 쪽에다가 줄이어 두려는 속셈인듯 했다. 하긴 드래곤 마스터를 자기 편으로 끌어두고 있으면 얼마나 큰 이득이 되겠냐만은... 사실 이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드래곤 마스터 정도 되는 인물을 이렇게 아무데나 팽개쳐 두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체 드래곤의 능력이 얼마인데 그 드래곤을 지배하는 인간에게 무관심할수가 있는가? 하지만 원체 이 제국의 수도는 뇌에 비계만 가득한 것들이 많아서 드래곤도 눈에 안 들어오는 상태인것 같았다.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나서야 케리에게는 남작 자리가 하나 내려왔다. 마왕을 해치운 용자에게는 공주를 주어 부마로 삼는 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전례라고 사서등에 적혀있기는 하나, 아쉽게도 황제에게는 공주가 없었다.(황태자는 대외적으로 남자로 알려져 있으니 제외) 그리고 실제로 공주가 있었다고 해도 마왕 해치울 당시 견습기사 작위 밖에 없었던 그에게 돌아올 리는 없겠지. 그리고 그가 마왕을 해치웠던 공적은 정치계로 올라가면서 별것도 아닌 녀석이 큰 공을 세웠다는데 대한 시기심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신분차별이 대뇌피질에 써있는 인간이 많아서인지 은근이 공이 팍팍 깍아내려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확실히 통상적인 예로서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등용이다. 정식 기사생활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남작이 된 것이다. 공에 비해서는 낮다고는 하나 귀족 작위가 어디 쉽게 올라갈수 있는 자리인가. 정계 중심에서는 이 인사에 대해서도 천한 것이 치고 올라왔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이 좀 있었다. 평민이 귀족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말이다. 어쨋거나 한 자리 꿰어찬 케리는 영지 부임에 관련된 각종 서류와 증명서, 그리고 영지 지도 등을 가지고 부임지로 출발했다. 아 출발하기 직전에 아쉬운 이별이 하나 있었다. 라이오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본가에서 마침 연락이 닿아 집안에 급한 일이 있다면서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라이오스는 아쉬워 하면서도 집안 일이라고 하니 할수없이 고향이 있는 북쪽으로 출발했다. 떠나면서도 반드시 꼭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케리의 손을 꼭 잡아 그의 가슴을 써늘하게 한 다음... 드래곤들은 이 철면피의 귀찮은 인간이 떠나가서 상당히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라이오스는 너무나 뻔뻔하고 담담해서 상대하기가 귀찮았던 것이다. 아무리 위협하고 정체를 밝혀도 저렇게 태연한 녀석은 정신연령에 맞지 않게 길게 살아온 드래곤들로서도 처음 보는 녀석이었다. 가는 길은 마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사실 드래곤을 타고 가는 것이 객관적으로 볼 때 더욱 폼나고 편안하며 빠르기 까지 한 여행이었지만, 드래곤들은 입을 모아서 요즘 날개 근육이 땡긴다는 둥 하면서 이리저리 핑게를 대서 마차를 타고 가게 된 것이다. 단, 마차는 베로니카가 약 20미터 정도 크기로 변신해서 끌고 가게 되었다. 어쩌면 이걸 하려고 일부러? 드래곤이 끌고가는 것이니 마차가 아니라 드래곤 차가 되어야 겠지만, 그 광경은 꽤 장관이었다. 본래 크기에 비해서 몸 크기를 줄인 것이라고 해도 키가 몇층 건물 높이에 달하는 실버 드래곤이 맨 앞에 서있고 그 뒤에는 다섯대나 되는 마차가 비엔나 소세지 처럼 여러가닥의 가죽끈으로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베로니카 언니 힘들겠다..." 그 중 두번째 칸에 탄 세린은 거의 드래곤 트레인(열차)이라고 할만한 행열 앞에서 기관차가 된 베로니카를 걱정하며 손가락을 빨았지만 그렇다고 라크리마에게 한소리 했다가 자기도 보조 기관차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에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열차의 제1칸과 제2칸은 승객실이었고 제3,4,5칸은 그동안 수도에서 쇼핑한 온갖 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1,2칸은 꽤 고급에 속하는 마차, 3,4,5칸은 어디서 사온 짐마차들이었다. 마차 마부도 네 명이나 고용했다. 베로니카는 드래곤이니 당연히 지능이 있으므로 별달리 조종해줄 필요는 없겠지만, 혹시나 마차에 고장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고용한 것이다. 그들은 이 희안한 일감을 맞게 된 것에 후한 보수 이상으로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 즐거워서 기꺼이 이 일을 맡았다. "저것 좀 봐!" "실버 드래곤이다! 소문보다는 작은데..." "마차를 끌고 있어! 한두개도 아냐! 다섯개나 된다!" "재갈도 물려져 있네!" 이 멋진 드래곤 트레인을 보기 위해서 수도에서 출발할 때부터 많은 구경꾼들이 주변에 몰려오는 바람에 수도 경비병들이 출동하여 길을 터줘야 했다. 드래곤이 인간의 마차를 그것도 줄줄이 이어서 끄는 광경이 연출된 것은 역사상 한번이나 있을까 말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베로니카의 수치도도 그만큼 올라가서 그녀는 라크리마에게서 해방되면 그 즉시 이때 자신을 구경한 인간들을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러나 그녀가 해방되는 때는 천년뒤이니 그때는 아마 가스트 제국 자체가 남아있지 않을 텐데... 어쨋건 이 사상 최초의 드래곤 트레인의 목적지는 당연히 케리가 남작으로 부임하게 된 영지였다. "그런데 어떤 영지예요." "으음... 어디 보자. 지리연감에 보면..." 라크리마가 묻자 케리는 지도와 지리지를 펼쳐보았다. 그 지방의 이름은 파렌디아. 그리 큰 지방은 아니지만 산도 있고 강도 있고 평야도 있고... 지도상으로 보기에는 나름대로 풍족해보이는 지방이었다. 지리지에서 봐도 땅도 비옥하고 인구도 많은 크기에 비해 유복한 지역. 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좋은 데야. 음. 좋은 데로군. 이런 땅이 어떻게 나한테 굴러들어온건지 모를 정도네." "그 황태자라는 사람이 손 좀 썻나보죠. 이야아. 이 근처 산에다가 제 레어를 지어요. 그리고 이 밑에다가는 주인님의 성을 짓는 거예요." "그거 괜찮겠다." "이 근처에는 호수가 있으니까 여기다가 별장을 지어요. 여기다가는 사냥터를 만들고, 여기도 경치가 좋을것 같네. 이 산에도 별장 지어요. 그리고 여기다가는 목장을 지어요. 양도 키우고 소도 키우고 말도 키워요. 아! 여기다가는 아이스링크를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는 테마 파크를 짓고, 여기는 동물원을......" 라크리마는 어디선가 펜을 꺼내더니 여기저기 표시를 하면서 집짓기놀이를 하는 어린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 시대의 지도는 그다지 정확한 것이 아니니까 지도에서 보는 것은 그다지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지도에다가 표시한 계획대로 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케리는 그렇게나 헌신적인 그녀가 즐거워 하는 것은 행복하게 봐줄수 있었다. ======================================================================== 드래곤 트레인의 아이디어는 일본의 판타지 소설 '아비스 월드'에서 따왔습니다. 저기서는 저런 식으로 생긴 드래곤 트레인이 아니라 일종의 드래곤 열차 형태의 생명체가 있는데[...] 뭐 그리고 이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욕먹겠죠[..]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②- 영지로 가는 길은 평온했다. 라고 할수있다. 마차 바퀴가 진흙탕에 빠진다던가 연결해둔 가죽끈이 뒤엉킨다던가 하는 사소한 문제는 언급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뭐 흔히 나오는 산적의 습격이나 몬스터의 습격 같은 것이 오지 않은 이유야 맨 앞에 실버 드래곤 한마리가 떡 버티고 가고 있으니 대체 어떤 간 큰 놈이 덤비려 하겠느냔 말이다. 다만 지나가는 지방마다 구경꾼들이 몰려나오는 바람에 일부러 한적한 길을 돌아서 가야 하는 등의 일 정도도 있었다. 습격은 무섭지만 구경은 상관 없다는 걸까? 하지만 구경꺼리가 되고 있는 베로니카 본인(아니 본용)에게는 어느 쪽이건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인간들에게 경외의 시선 같은 것을 받는 다면야 그녀도 만족하게 생각할터, 그러나 마차 대여섯대를 끌고 가는 드래곤 열차를 보고 경외의 시선을 바칠 인간이 있겠는가? 무슨 서커스단 구경거리로 안보면 다행이다. 매일 밤 야영할 때마다(역시 어딜가나 구경꾼이 바글대니 마땅히 묵을 만한 마을이 없다.) 그녀는 야영지 한쪽에 드러누워서 신세한탄을 하면서 그 큰눈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 라크리마가 또 청승맞다고 구박해대고... 게다가 식사가 오직 근처에 나있는 풀 뿐이라는 사실에 자신이 말이나 소가 된 것 같은(사실 이미 같은 취급) 느낌에 더욱 처절한 굴욕감을 느꼈다. 여담이지만 드래곤은 일단 초식도 가능하다. 이들이 고기만 먹어댄다면 전 세계의 생명체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100미터나 되는 덩치를 지탱하려면 얼마나 많은 먹이를 먹어야 한단 말인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드래곤이 한두마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될 것을 두려워한 창조주는 드래곤 들에게 폴리모프 능력을 주어 작은 몸으로도 지낼수 있게 함과 동시에 식물체의 섬유질도 영양분으로 소화할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이다. 물론 사실은 주위의 마나를 흡수하여 에너지로 바꾸는 능력도 주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사실 불충분 하다. 땅속에 파묻혀 있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해주는 정도라면 모를까. 계속 중노동을 하는 도중에는 아무래도 음식을 먹어줘야 한다. 하지만 인간도 잡식성이지만 채소만 먹고 사는 사람은 극히 적은 것처럼 드래곤도 단백질과 지방의 공급은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드래곤들도 고기가 맛있단 말이다. 엘프가 고기맛을 알면 숲 속의 빈대도 씨가 마른다 라는 속담처럼 (속담과는 달리 엘프들이 본능적으로 채식을 선호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수 없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잡식성 생물에게 풀보다는 고기가 맛있는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는 경향이 크고 이것은 드래곤도 마찬가지다. 드래곤들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고기는 풀이나 나무(나무를 통채로 먹어도 괜찮다!)처럼 산이나 초원에 널려있는게 아니니까. 그 중에서 가장 흔한 방법은 몬스터를 사육하는 것이다. 식용 몬스터로는 주로 소고기의 미노타우로스나 돼지고기의 오크를 애용하는 것 같다. 가끔 특이한 드래곤 중에는 바포메트를 사육해서 염소고기 맛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입속에서 점점 재생되는 맛이 좋아서 트롤을 애용하는 잔혹한 드래곤도 있다. 몬스터들은 드래곤 레어 근처의 경비도 해주기 때문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다른 경우에는 사냥을 나가는 것이다. 인간 도시나 마을에 가면 십여명 정도 잡는것 정도야 식전의 유흥거리로 좋을 정도다. 드래곤들 입장에서 인간 고기가 그렇게 까지 맛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도시에 사는 인간은 맛이 썩 좋지 않다나...) 참고로 엘프는 풀내가 너무 나서, 드워프는 고기가 너무 딱딱해서 라는 이유로 식용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거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나 이 방법의 문제는 역시 보복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드래곤이니까 타 종족의 보복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본래 개미굴이건 벌집이건 함부로 안 건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인간, 엘프, 드워프는 종족 전체가 단합이 잘된 편이라서 드래곤에게 습격당하면 떼를 지어서 반격해온다. 몬스터들이야 같은 종족을 회를 쳐먹건 찜을 만들건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신경도 안쓰지만 말이다. 드래곤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번 포식하고 났더니 2,3일 단위로 상대하기 귀찮은 파티 하나가 몰려오는 것은 드래곤으로서도 사양이다. 그런걸 매일 같이 잡아먹을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덮쳐놓고 많이 모여있는데 습격해서 잡아먹는 방법은 머리가 좀 돌아가는 종족들에게는 써먹지 않는다. 가끔 인간고기, 엘프고기, 드워프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별종도 있긴 하니까 반드시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로들은 되도록이면 그런 드래곤들에게는 양식을 권한다. 여기서 양식이란 [길러서 먹는다]라는 의미로서 상기에 명시된 종족들을 몇마리 짝을 지어서 잡아온 다음에 새끼를 불려서 하나하나 먹는 것이다. 좀 감질맛 나기는 하지만 상당히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다. 음 그리고 좀 입맛이 고급인 드래곤들은 아예 목장을 하나 짓는다. 몬스터들은 목장을 관리하라고 내버려 두면 자기들이 식욕을 못참고 기르는 짐승을 잡아먹기 때문에 드래곤은 목장에 주로 인간이나 호비트를 잡아와서 배치한다. 그리고 육질 좋게 길러서 냠냠 잡수시는 것이다. 참고로 만일 드래곤은 포식을 하기로 결심하면 소 수십마리를 하루에 해치우는 것도 가능하다. 이 방법은 몬스터 고기보다 상대적으로 고기의 질이 좋기 때문에(미노타우로스가 소고기 맛이 난다고 해서 진짜 소고기보다 맛있는것은 아니다. 우선 약간 딱딱하고 노린내가 나며...) 많이 애용되고 있다. 베로니카도 문화 드래곤의 습성인 목장 양식을 따르고 있었으니... 고기 맛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조예가 깊은 드래곤이다. 헌데 이제는 나무 뿌리나 씹어먹어야 하는 처지라니... 정말 그녀는 소공녀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런 그녀 옆으로 세린이 다가왔다. 역시 베로니카가 측은해보였나보다. 세린은 속의 솜을 모조리 빼낸 곰돌이 인형 같은 잠옷을 입고 베로니카의 처량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을 건냈다. "베로니카 언니야. 언니. 힘들지?" [아냐... 세린도 마차에 타고 있잖니. 하나도 안 힘들어... 세린이야 말로 고생하지 않니?] '이 인생에 하등 도움도 안되는 레드 해츨링 꼬맹이가! 왜 맨날 보고만 있는 거야! 혹시 이 녀석 내가 고생하는거 보고 즐기는 거 아냐? 흥 확실히 천박한 레드 일족 답군. 내 교양있는 교육이 아무 쓸모도 없었다니... 으으으...' 확실히 교양이 넘치는 드래곤. 생각과 말이 전혀 따로 놀고 있었다. 베로니카라고 세린이 무슨 힘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고생하는데 위로의 말도 이제서야 건네주는 그녀가 야속하기만 했다. 아직 어린애라서 언제 사과를 하고 위로를 해야 할지 타이밍을 전혀 못 잡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언니. 이거 먹어. 언니 맨날 풀이랑 나무만 먹었잖아. 그러다가 영양실조 걸리면 어떻해." 드래곤이 영양실조에 걸릴리는 없지만 확실히 풀만 먹으면 몸이 좀 허해지기는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서 세린이 앞으로 내민 것은 그녀가 저녁때 먹다가 남긴 스테이크 조각이었다. 세린은 아직 애니까 당연히 스테이크도 어린이용! 게다가 거의 반 이상 먹어치운 나머지였다. 그나마 이미 식어서 거의 딱딱하게 굳어버린... [...으...으응.....] 베로니카는 세린의 이 '친절'(동정아닐까?)에 대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곤란해했다. 분명히 이 순진한 애가 악의로 이럴 리는 없는데, 도대체 어린이용 스테이크 3분의 1조각 정도 남은 것을 몸 크기를 좀 줄였다지만 그래도 20미터나 되는 크기의 드래곤에게 줘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고..고마워...] 일단 주는 거니까 받아 먹기로 하고 입을 벌렸다. 세린은 베로니카의 입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다가 스테이크 접시를 탁탁 털어넣었다. 베로니카의 민감한 혀는 스테이크의 맛은 확실히 느낄수 있었지만. 완전히 코끼리에게 비스켓 보다도 더 심각한 양적 차이 때문에 배부르기는 커녕 오히려 괜히 감질맛만 돋구어버렸다. 도대체 이 한조각의 고기가 그렇게나 맛있다니. 하지만 이 한조각으로는 배가 차기는 커녕 고통만 더 해질 뿐. 쓸데없이 식욕만 증폭된 그녀의 입에서 침이 가득 고여나오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있던 세린이 (누가 보면 완전히 애 잡아먹는 드래곤이다.) 놀랄 정도로. "언니 이렇게 침 흘리면 어떡해. 옷 더러워지잖...꺄악!" 그 순간 베로니카는 무의식중에 입을 닫아버렸다. 당연히 지금은 인간 모습을 하고 있는 세린의 살냄새와 피부맛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입속에서 혀를 돌리면서 세린의 맛을 계속 음미하는 그녀. 허기진 정신이 조금이라도 맛있는 것을 느껴보고 싶어서 한 행동이었겠지만 정작 입속에 잡혀버린 세린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아니, 잘못하면 역사상 최초로 드래곤에게 잡어먹혀버린 해츨링이 되어버릴 판국인 것이다. "살려줘요! 살려줘요! 살려줘요! 살려줘요!!!!!" 혀에 데굴데굴 굴려지면서 세린은 비명을 질러댓다. 그러나 대체 누가 그 비명을 들을수 있을 것인가. 아무도 도우러 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베로니카는 완전히 침 범벅이 될 정도로 세린을 굴리고 나자 그 감미로운 맛에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는 눈이 휙 뒤집혀서 입안에 모인 침을 꿀꺽 삼켜버렸다. 물론 세린도 함께.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베로니카의 목구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이 느껴지자 세린은 완전히 혼비백산해서 오줌까지 지려버렸다. 이건 말 그대로 '잡아먹히는' 것이다. 정말로 생명의 위기가 닥치는 순간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아무거나 붙잡으려고 애를 썻다. 식도로 빨려들어가서 위장으로 넘어간다면 위에서 분비되는 위액(드래곤의 위액도 물론 산성)에 의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세린 정도는 간단히 녹아버릴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드래곤의 몸 속에서 소화되어버린 해츨링이 되는 것이다. 이건 최악의 죽음이자 베로니카에게도 최악의 사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친척 아저씨가 맡긴 애를 잡아먹어버렸으니 엽기 살인 범죄자로 취급당해도 할말이 없지 않은가. 게다가 드래곤 사이에서도 절대 금기중 하나인 '해츨링에게 위해를 가한다.'를 어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츨링을 잡아먹어버렸으니 절대 무사히 살아남을 리가 없다. 대체 어떤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 사형은 오히려 있을수 없는 일이다. 죽음으로서 간단히 모든 문제가 해결될리는 없으니까. 아마 마력의 근원인 드래곤 하트를 강제로 빼앗기는 정도의 형별이 될듯하다. 그 다음에는 마력과 권능을 모조리 잃어버린 병신 드래곤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겠지. 그렇게 되면 정말 덩치만 큰 도마뱀이 될 뿐이다. 게다가 그 꼴이 되면 틀림없이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케헤헤헤 여기 힘을 빼앗긴 드래곤이 있다면서?'라고 그녀를 잡으러 오는 사냥꾼이 득시글 거리며 몰려들 것이고 비리비리 해져버린 그녀는 어느날 어떤 파티에게 간단히 도살당하여 어딘가에서 '실버 드래곤 스케일 갑옷, 특별판매!'같은 곳에서 발견되겠지. 그런 위급한 와중에서도 베로니카는 오랜만에 느끼는 미식의 감각에 완전히 환상에 젖어 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 고기가 마법의 고기라서 아무리 먹어도 다시 생성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해츨링에게도 마력은 있으니까 마법의 고기는 맞겠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세린에게 베로니카의 목구멍은 죽음의 문턱과 같은 것이다. 일단 넘어가면 그대로 식도를 타고 쭈르르륵 내려가서 강산 지옥에서 확 녹아버리고 끝장. 세린의 머리 속에서 어릴적에 배웠던 '드래곤의 뱃속에 들어간 음식물은 어떻게 될까요?'라는 학습동화 그림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드래곤에게 잡아먹힌 오크, 오우거, 트롤 등이 처참하게 녹아내리는 지옥도 같은 풍경이 아주 리얼한 삽화로 그려져 있어서 굉장히 무서웠던 기억이 말이다.(...왜 그런걸 어린애한테 읽히는 거야?) 그 옆에는 분명히 '위속에서 통채로 집어삼킨 몬스터들은 녹아내리면서 아주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릅니다. 이 비명은 그들이 죽을 때 까지 계속 뱃속에서 울리니 이걸 즐기고 싶으면 통채로 삼키고 이 소리가 싫으면 갈기갈기 찟어서 드세요.'라는 상당히 살벌한 설명도 붙어있었다. "그렇게 죽을수는 없어어어어어어!" 세린은 절규했다. 역시 통채로 잡아먹혀서 위액에 녹아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대 피하고 싶은 죽음일 것이다. 자 그런데 그녀에게 구원이 있었다. 위기에 처한 그녀의 몸이 붉은 색으로 빛나면서 초룡각성! 같은건 아니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도중에 원래 모습인 해츨링으로 되돌아 와 버린 것이다. 아마 드래곤의 폴리모프 능력이 위기 상황에 처하자 위기 회피용으로 발동된듯 한데...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③- 막 목구멍을 넘어가던 세린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으니 어떻게 되겠는가? 세린은 정확하게 목구멍에 걸려버렸고 목을 압박하는 엄청난 고통을 느낀 베로니카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기 시작했다. 아니 목이 막히는 바람에 비명조차 지를수 없었지만. 그 소란이 벌어진 탓에 야영지에서 쉬고 있던 나머지 일행들이 모두 몰려나왔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사태를 알아챈 라크리마, 라크레일, 아마레는 패럴라이즈로 베로니카를 제압한 뒤, 강제로 입을 벌리고 목에 걸린 세린을 단단히 잡은 다음 인간으로 폴리모프 시켜서 끄집어 냈다. 그리고 피가 철철 나오는 베로니카의 목구멍을 마법으로 치료했다. "으아아아아앙!" 구출된 세린은 라크레일에게 안겨서 울음을 터트렸다. 참 어지간히도 무서웠으리라. 정말로 죽기 직전에 구출된 것이니 말이다. 라크레일은 그녀를 잘 보듬어 안고 토닥거려 주었다. "이게 밥을 안준다고 해츨링을 잡아먹냐?! 너 죽어볼래?!" "이 년이! 이 년이! 이 년이!" "으와아아아앙!" 라크리마와 아마레는 20미터 정도의 드래곤으로 폴리모프하여 베로니카를 다구리 치기 시작했다. 베로니카는 저항도 못하고 마구 얻어터졌다. 순전히 그녀가 잘못한 것이니 얻어맞아도 할말은 없었고, 라크리마와 아마레도 봐줄 마음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지 않을 때까지 무차별로 두들겨 팼다. 베로니카는 그냥 서럽게 우는것 말고는 이 처절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이년아!" 그렇게 울면 또 운다고 두들겨 패고... 상처 때문에 아파하면 회복시켜놓고 패고... 자기들 체력이 모자라면 체력회복시켜서 패고... 정말 엄청나게 패서 지겨워질 때까지 두들겨준 뒤에야 완전히 떡이된 베로니카를 내팽겨처두고 다들 자러가버렸다. 베로니카는 가다가 자신을 뒤돌아보는 세린을 향하여 눈물지었다. [미안해... 세린아.] 하지만 세린은 그대로 그녀를 향해 싸늘한 눈빛만 한번 지어주고 라크레일에게 꼭 달라붙어서 가버렸다. 베로니카는 유일한 아군마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라져 버린 절망감 속에서 그날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이런 비참한 나날이 천년동안 지속되어야 하다니... 정말 슬프기 짝이없는 일이다. 다음날, 베로니카가 아무리 슬퍼한다고 해도 그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섯대나 되는 마차를 이끌고 가는 일은 힘들지만 드래곤인 그녀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고귀하디 고귀한 그녀가 말처럼 마차나 끌고 있다는 것은 처절한 수치가 아닐수 없었다. 가도에는 베로니카가 흘리는 눈물 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그녀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이번 고난행은 그날이 가기 전에 끝나게 되었다. 케리가 부임하게된 파렌디아 지방이 가까이 온 것이다. 그런데 파렌디아 지방에 가까이 갈수록 케리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상한데." "왜 그러세요? 주인님." "이 쯤 오면 마을이 나올텐데..." "지도가 약간 잘못되었나 보죠." "으음. 그런가?" 과연 조금 가다 보니 마을이 나오기는 나왔다. 그런데... 마을이라고 나온 것은 놀랍게도... "이게 뭐야?! 마차 세워!" 마을 입구에서 드래곤 트레인은 멈춰섯다. 지도에 마을 이라고 표시된 것은 놀랍게도... 황량하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폐가촌이었다. 모든 집이 하나같이 무너져 있었고 거의 대부분에 불이 질러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모든 곳에 먼지가 쌓이고 잡초가 돋아나 이 작은 마을은 완벽하게 궤멸한 뒤라는 것이 잘 보였다. 라크리마는 탐색 마법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탐색된 인구수는 0, 이 마을에 사람은 하나도 살고 있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이쪽 길로 쭉 가면 성이 나올 꺼라고 되어있어요. 거기 가서 물어보지요." 그대로 계속 가서 숲 하나를 지나가니 멀리 성이 보였다. 본래대로라면 케리의 것... 이 될 그 성은 반 이상이 무너져 내리고 불에 타서 멀리서 보기에도 도저히 성의 역활을 할수없을것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성 주위에 있는 마을은 역시 방금전에 지나온 마을과 똑같이 하나도 멀쩡한 집이 없었고, 무너지고 불타고 잡풀이 우거지게 돋아난 폐가들 뿐이었다. 밭으로 추정되는 물건들은 잡초를 키우는 건지 잡초만 무성하게 있었다. "이...이게 뭐야..." 지리서에는 분명히 인구 500명 정도의 아담한 영지. 라고 표기되어 있었는데 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완전히 박살난 곳이 아닌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마을안에 들어가보니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멀쩡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고 사람 하나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이곳은 왜 이꼴이 된 것인가? "그래도 마을이라고 이름붙여진 이상 살아있는 사람은 있을텐데..." "글세. 이게 어떻게 된건지 도통..." 너무나 어이없는 나머지 성에 가볼 생각도 못하고 마을 한가운데서 멈춰서 있는 사이 하나 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런 폐허에도 살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숫자는 대략 40여명 정도. 그 중에서 제대로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부분 엉망진창인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완연하게 드러나 있었으며 대부분 힘없이 비틀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잘못 보았다면 좀비로 착각할 정도로. 그들중 한 노인이 앞으로 나서서 마차 곁으로 다가왔다. 케리는 마차에서 내려 노인과 마주 섯다. "누구십니까? 마차를 보아하니 귀족 분인듯 한데..." "저는 이 지방의 남작으로 임명된 케리 레그너스 라고 합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요? 마을이..." "아! 예. 역시 귀족이셧군요. 그럼 이곳의 영주이신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 하나까지 슬픈 눈으로 케리를 바라보다가 흙바닥에 무릅을 꿇고 예의를 표했다. 이런 인사에 익숙하지 못한 케리는 얼른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십시요. 대체 무슨 사정인지 부터 듣고 싶습니다." "예... 영주님. 저희 영지가 이렇게 된 원인은..." 이 영지는 본래 매우 평범하고 나름대로 풍족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전 마족들의 침공때 엄청난 수의 몬스터 군단의 습격을 받았다. 영주는 기사들을 이끌고 용맹하게 싸웠지만 몬스터들의 공세에 밀려서 대패하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흩어져 일부는 성에 숨었고, 일부는 산으로 다른 영지로 도망쳤다. 얼마 가지 않아 성에서 농성하던 영주는 패배하여 성은 함락당했고, 성에 숨어있던 자들은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다. 그리고 성도 불타고 무너져 버렸다. 무자비한 약탈과 방화, 살육을 저지르던 몬스터들의 군대는 얼마뒤 제국군의 반격에 휘말려 떠나갔지만 몬스터들이 사라졌다 해서 마을이 복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돌아왔지만 너무나 심하게 약탈을 당하여 이들은 비참한 생활을 할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몇몇 몬스터들은 이 근처에 남아서 여전히 영지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있었다. 케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럼 그렇지. 중앙귀족들이 자신에게 제대로된 영지를 내줄리가 없었다. 이런 엉망진창인 동네를 주다니. 이건 완전히 상을 주는게 아니라 일거리를 떠맡기는 것이 아닌가? 거참 생각하면 할수록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수 없다. 이제 한고비 넘겼다고 생각했더니 이 난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어쩌시렵니까... 영주님?" 노인은 베로니카를 힐끔 힐끔 쳐다보면서 케리에게 말했다.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드래곤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케리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어떻게 이런 영지를 맡길수가 있단 말이냐... 그러나 그는 일단 영주였고, 임명된 이상 책임을 다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제가 할수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들을 이끌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그런데... 저 드래곤 님은 영주님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니 그럼 영주님이 바로 그 유명한 드래곤 라자?!" 드래곤 라자라면 작가는 지금쯤 살아있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건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드래곤들을 친구로 데리고 있을 뿐..." "드래곤들 이라니요? 저건 한마리 뿐인데요..." "다들. 변신해봐." "예에!" 라크리마는 즐거운 얼굴로, 아마레는 귀찮다는 듯이, 라크레일은 세린을 안고 마차에서 뛰어내려 하나하나 변신을 했다. 마을 내부라서 역시 20미터 정도 크기로 밖에 변신을 못했지만 좌우간 베로니카 까지 합쳐서 무려 다섯 마리나 되는 색색의 드래곤. 말 그대로 드래곤 전대가 나타난 것이다. "오오오오!" 마을 사람들은 기절 초풍할 정도로 놀랐다. 최강 최고의 몬스터라는 드래곤. 몬스터 테이머는 많으나 드래곤 테이머는 그야말로 극소수. 그런 드래곤을 무려 다섯 마리나 끌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정말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언젠가 가출 해츨링 찾기 8룡전대가 만들어진 적이 있고, 어느 유명한 동네 어느 대왕은 12마리 드래곤과 싸웠다는 전설이 있으나 보통 사람들은 드래곤 한마리도 보기 어려운 현실이니(자주 봤다가는 인류가 멸종한지 오래일 것이다.) 이 정도 숫자의 드래곤들은 시골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이제 우린 살았어!' '영주님이 드래곤을 몰고 오다니...' 라면서 기쁨에 젖어서 드래곤이 아군이 된 기쁨을 맛보고 있었으나 대표자로 보이는 노인만은 생각이 틀렸다. 그는 걱정부터 앞서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드래곤을 먹일 먹이를 어디서 구해야 할꼬... 드래곤은 향신료로 민트를 먹는다는데 민트를 따다가 워 울프에게 습격이라도 당한다면 어찌해야 하나." 기우이기는 했으나 나이든 사람 다운 현명한 걱정이 아닐수 없다. 케리도 마찬가지로 걱정이 태산이었다. 일단 영주가 된 이상 그는 이 마을을 부흥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통치경험은 커녕 그런 쪽으로는 완전히 무지한 그가 알리가 있겠는가?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④- 다 망가진 성에 가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케리는 마을을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생존자들의 마을은 본래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의 모조리 빈민가의 움막 처럼 생겼고 변변한 집도 없었다. 이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돌아보고 나니 케리의 상심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거참 이런 상태일 줄은..." "영주님. 실은 저..." 한숨을 쉬면서 둘러보는 케리에게 마을의 최고 연장자인 그 노인이 말을 걸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 마을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보다시피 변변한 방어시설도 없고, 병사들도 없기 때문에 이 근처에는 온갖 몬스터들이 들끓습니다. 그러니 오늘 밤도 넘기기가 참..." "걱정마십시요. 제가 만약 모험가였다고 해도 이런 마을을 그대로 보고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물며 영주로 임명된 이상 이 마을에 대한 책임을 다 해야 겠지요. 제가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케리의 대답에 노인은 다소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걱정꺼리가 있어보였다. 노인은 인간 모습으로 변하여 딱하다는 듯이 마을을 둘러보는 드래곤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 또... 저 드래곤 님들... 얼마나 많이 드십니까?" "예?" "역시 드래곤 님들이니... 산처럼 먹겠지요. 하지만 우리 마을에는 마땅한 음식도 없어서..." 확실히 없어보였다. 영주인 케리가 오늘 어디서 자야할지도 막막할 정도였으니 그야 당연한 노릇이다. "걱정마십시요. 다들 인간 모습으로 있을때는 얼마 먹지도 않으니..." "어이구. 그거 참 감사합니다." 노인은 정말로 기뻐보였다. 하긴, 아무리봐도 변변한 먹을 것이 없어보이는데 드래곤들 먹일 것 까지 대려다가는 완전히 굶어죽을 판이니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케리는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라크리마와 나머지 드래곤들을 불러모았다. "일이 이렇게 되버렸어..." "끄응. 이런 동네를 주다니... 차라리 중앙에 가서 완전히 뒤엎어 버릴까요? 브레스 한두방이면 그까짓 제국 수도 따위..." 라크리마는 과격하게 말했다. 엄청 높은 자리를 주어도 모자랄 판에 이따위 다 굶어죽어가는 마을을 줘버렸으니 정말 화날 노릇. 하지만 케리는 한숨을 쉬면서 그녀를 말렸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상대는 제국이다. 현재 인간 사회의 거의 대부분이 이 나라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다. 제국을 멸망시킨다면 인간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단 사회에서 살아가기로 작정한 이상 사회의 룰에 따르기로 결심했었다. 게다가 그의 성격상, 이렇게 엉망이 된 마을을 그대로 보고 넘어갈수는 없었다. "그럴수는 없지. 아무리 이런 마을이라고 해도 나랑 인연이 있는걸 보면 천상 내가 할수있는 데까지 도와줘야 하나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할수없지요." 하지만 케리도 이번 만큼은 화가 안날리가 없었다. 그라고 마냥 사람이 좋기만 한것은 아니니까. 단지 이번에는 참고있을 뿐이다. "우선... 오늘 밤 몬스터들이 쳐들어오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마을 주변에 방어벽을 쳐두자. 몬스터들을 잡으러 가는 것은 간단히 될 일은 아니니까." "예에. 그럼 우선 방어벽을 치겠습니다! 자 가자!" 라크리마는 드래곤들을 이끌고 영지 주변으로 나갔다. 아예 마을을 빙 둘러서 방어벽을 쳐버릴 속셈인 것이다. 케리는 마을에 남아서 사태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하기로 했다. 그때 마을의 장로인 그 노인이 다시 케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나무로 만들어진 투박한 그릇을 하나 들고 있었다. "영주님. 지금 마을에 변변한 것은 없지만 이거라도 드십시요." 그 그릇에 담긴 것은 풀뿌리를 끓여서 만들어진 죽이었다. 마을에 먹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니 당연할 수밖에. 케리는 이것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노인의 정성을 봐서 일단 이것은 받아 먹기로 했다. 그는 그 죽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한눈에 봐도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어릴적에 대흉년이 들었을 때나 이런 것을 먹어봤었다. 그는 단번에 그것을 들이켰다. 맛은 말로 표현할 수준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엄청나게 쓴맛이었다. 그나마 이 사람들은 이거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판이니 어쩔수 없는 것인가. "크윽..." "아. 아이고 저런." 케리의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고 장로는 뭔가 큰일이 생겼다고 직감했다. 영주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올린 것은 큰 잘못이 될수도 있는 일이다. 분명히 케리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이유의 첫째는 이 죽의 지독한 맛이었다. 또 하나는 이런 것이나 먹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살수 없는데 중앙의 귀족들은 그렇게나 사치를 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모르는 노인은 그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그런줄 알고 급히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며 빌었다. "여 영주님. 죄송합니다! 저희들이나 먹는 이런 음식을 바쳤으니... 목을 쳐주십시요!" "아니. 괜찮습니다. 일어나십시요. 당신들도 먹을 것이 부족할텐데 이런 죽이라도 바치다니. 저는 이것으로 당신들의 생활을 잘 알았습니다. 이 죽의 맛은 앞으로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가..감사합니다!" 노인은 감격하여 일어났다. 쿵! 쿵! 쿵! 쿵! 그때 멀리서 커다란 해머로 땅을 내려찍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노인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런 소리를 내는 몬스터라면 사이클롭스나 거인족 정도일 텐데. 하지만 케리는 그 소리의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이클롭스나 거인 같은 대형 몬스터가 쳐들어 온다고 해도 별로 무서워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다섯마리의 드래곤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요. 틀림없이 방어벽을 쌓는 소리일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전하세요. 걱정할것 없다고." "예? 방어벽이요?" "월 오브 스톤!" "월 오브 스톤!" "월 오브 스톤!" "월 오브 스톤!" 쿵! 쿵! 쿵! 쿵! 네 명의 남녀 드래곤이 연달아서 마법 캐스팅을 하자 그때마다 높이 2미터, 두께 1미터, 길이 10미터는 되는 석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서 쑤욱쑤욱 솟아올랐다. 흙과 돌이 적당히 섞여서 굳어진 아주 견고해보이는 석벽이었다. 처음에는 바위에 걸터앉아 뒤에서 쉬고 있는 세린도 함께 석벽을 만들고 있었으나 곧 힘이 딸려서 그만 두고 어른 드래곤들만 신나게 석벽을 쌓고 있었다. 벌써 마을 경계의 사분의 일이 단단한 석벽으로 막혀있었다. 그런데 쌓아가던 도중에 아마레는 석벽만으로는 약간 부족함을 느꼈다. "이거만 가지고는 약간 부족하지 않아?" "왜에?" "아무리 석벽을 쌓아놓는다고 해도 뛰어넘어 버리면 그만이잖아. 뛰어넘는걸 막기 위해서는 뭔가 따로 조치를 해야 할것 같은데." "으음... 그럼 보초병을 세워둘 수밖에 없지." 아마레의 말을 들은 라크리마는 잠시 고민하면서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리다가 곧 좋은 착상이 떠올랐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작은 돌무더기를 향하여 손짓을 하며 마법을 캐스팅 했다. "나와라! 스톤 서번트!" 돌무더기 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우글우글 움직여서 돌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변화했다. 라크리마는 그 스톤 서번트에 레비테이션 마법을 걸어서 석벽 바깥으로 보낸 다음 명령했다. "이 석벽 주위를 빙빙 돌면서 지켜라.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 단 인간은 상관없어." 스톤 서번트는 명령을 받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 가까이 오면 이 돌인형은 스스로 그것들을 물리칠 것이다. 하지만 역시 한마리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라크리마는 마치 하인에게 명령하듯이 베로니카를 향해 소리쳤다. "베로니카. 넌 계속 돌벽을 쌓아. 우리들은 경비용 마법생물들을 만들테니까. 한시간 안에 다 못하면 죽어!" "예에..." 베로니카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미 그녀에게 저항의지는 완전히 사라진듯 했다. 계속 얻어터지다보니 이젠 체념한 것 같았다. 스톤 서번트와 같은 즉석에서 제조되는 인스턴트 마법생물들은 인간 마법사라면 아주 뛰어나다고 해도 대여섯 마리 밖에 소환할수가 없지만 이들이 누구인가? 드래곤이 아닌가. 이런 인스턴트 마법생물들은 드래곤 한마리당 최고 50마리 가까이 소환해 낼수가 있었다. "나와라 스톤 서번트!" 또 다시 돌무더기가 돌인형이 되고... "나와라! 트렌트!" 나무가 제멋대로 모습을 바꾸어 나무 인형이 되고... "나와! 워터 엘리멘탈!" 물웅덩이가 겉이 물컹물컹한 물인형이 되어 일어섯다. 이렇게 한참 동안 마법생물들을 제조하다 보니 어느새 수십마리나 되는 마법생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게 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석벽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경비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 정도 숫자라면 고블린 처럼 겁많은 몬스터는 아예 가까이 오지도 않을 것이고 오크의 무리 정도는 간단히 격퇴할수 있을 것이다. "아 참. 라크레일 오빠야. 나 이거 있어." 그들이 열심히 마법 생물들을 만드는 것을 보고 세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서 라크레일에게 다가갔다. 세린의 손에 있는 것은 그녀의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커다란 이빨이었다. 약간 붉은 색을 띠는 것으로 보아 레드 드래곤의 것인듯 한데... 에 레드 드래곤의 것이라면? "그건 뭐야?" "얼마전에 이빨이 하나 빠졌거든. 헤헤헤" "좋아. 그럼 이걸로 용아병을 만들자." "응!" 라크레일은 그 이빨을 땅에다가 던지고 마법을 걸었다. 이빨은 삽시간에 변형하더니 크기가 커지면서 붉은 뼈로 된 갑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칼까지 든 온몸이 붉은 병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용아병, 드래곤의 이빨에서 탄생하는 전사. 드래곤의 이빨을 입수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인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소환 마법은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쉽게 볼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드래곤 들은 평생 이빨이 새로 나기 때문에 빠지는 것만 모아두었다가 필요할떄 소환을 하면 참 유용하게 써먹을수 있다. 가끔 모아둔 이빨들을 마법사에게 파는 드래곤도 있다는데... 용아병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레드 드래곤의 이빨에서 소환되었기 때문에 마치 붉은 물감 칠을 한 것같은 몸을 지닌 이 용아병은 태어나자 마자 강인한 전사였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투쟁본능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소환된 직후에 특별한 명령이 없거나 적을 찾을수 없으면 제멋대로 자기들 끼리 싸워서 전멸하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소환물이기도 하다. "해츨링 이빨로도 소환될까 걱정되었는데 정말 되네." "날 부른 것은 당신인가. 주인이여." "응. 그렇다. 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몬스터가 들어오면 그 즉시 공격을 해라." "경비인가?" "그래. 경비야." 용아병은 그 임무가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것 같았다. 투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들에게 경비 임무가 고맙게 생각될 리는 없었지만 일단 소환자의 명령인 만큼 명령을 받들기로 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⑤- 드래곤들의 마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인 만큼 마을 주변에 방벽을 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끝나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달 이상 일해도 못 끝낼 방벽이 오후 늦게 시작해서 해질 무렵에 거의 끝나버리는 것을 보자 뒤로 넘어갈 정도로 기뻐했다. 뭐 그리 넓은 방벽도 아니었지만 보통 이런 방벽 쌓기 작업은 영주측에서 강제로 영민들을 동원하여 (보통 농사 안짓는 겨울때) 짓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데 이렇계 빠른 시간에 그것도 드래곤들이 나서서 지어줬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물론 그냥 영지주변에 돌벽을 빙 둘러 놓기만 한 것이라 제대로 된 방벽이 되려면 망루도 설치하고 입구도 만들어야 겠지만... 뭐 아직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사람이 많지도 않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을 장로 노인은 이 석벽이 완성된 것을 보고 다소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또 다시 입구를 만들고 망루를 설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다시 들어서 불안해 했다. 역시 나이든 사람이라 걱정이 많은 탓이다. "잘 했어. 라크리마." "에헤헤헤." 케리는 상을 겸해서 라크리마의 이마에 살짝 뽀뽀를 해주었다. 라크리마는 그것 만으로도 상당히 만족한것 같았다. 하긴 저래보여도 천살이 넘는 성룡이다. 저 정도 장벽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고생은 베로니카가 제일 많이 한 것 같지만. 좌우간 뽀뽀 한번에 방벽 하나라니 하룻밤 자주면 도시라도 만들어 주겠군. 그 다음은 일단 적당한 거처를 정해야 했다. 성 하나를 단번에 만들어 버리는 마법 같은건 아직 없으니까. 영주란 보통 성에서 지내는 법이지만 다 박살나버린 성에서 지낼수는 없는 법이 아닌가. 하지만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마을 까지 거의 다 불타버리고 영민들도 하나같이 거지꼴인 이 마당에 그들이 지낼 만한 번듯한 건물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아니 지낼 만한 건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누더기 천과 나무를 적당히 걸쳐서 만들어진 움막들 뿐이라서 그렇지. 안에서 자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영주신분이라면 십중 팔구 이런 데서 자는 것은 거부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지라 촌장도 "영주님이 지낼 만한 건물이 없는데요..."라고 곤란한 표정만 지었을 뿐. 그런데서 자라고 차마 말하지는 못했다. 다행히도 타고 왔던 마차들은 남아있었기 때문에 그날 밤은 그냥 거기서 자기로 했다. 먹을 것도 싸온 것이 아직 남아있었고... "휘유. 이런데였다니..." 케리는 마차 안에 모포를 깔고 누워서 한숨을 쉬었다. 그 옆에는 라크리마가 누워있었다. 그날 하루 내내 열받고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가 영지를 주려면 제대로 된걸로 줄 것이지 이런 개뼈다구 같은 영지를 주다니. 이건 상을 준것이 아니라 완전히 짐을 얹어준 꼴이 아닌가. 그래도 꼴에 공신이라고 이 영지에는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이 전혀 없고, 제국의 국사범(주로 반역자)이 아니라면 범죄자를 숨겨줘도 상관없는 완벽한 치외법권 지대였다. 영지내에서는 법도 마음대로고 세금도 마음대로다. 물론 예의상 황제에게 공물이나 선물을 바쳐야 하고(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예의상' 바치는 것들이다. 양은 영지에서 알아서 정하지만 많이 바치면 바칠수록 황제에게 잘 보이니 많이 바칠수록 좋다.) 행사있으면 수도까지 쪼르르 달려가서 예의 표해야 하는 것은 변함 없지만. 사실상 독립국가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영지인 것이다. 그럼 뭐하는가? 땅은 완전히 황폐화 되어있고 변변한 마을도 없으며 인구라고는 거의 거지같은 수준의 수십명. 어디 산적두목도 이것보다는 신세가 나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이건 완전히 고생하는 거잖아... 난 영지 같은건 다스려본 경험도 없는데. 괜히 감투 하나 달라고 했나." "헤에. 그래도 재미있지 않아요. 주인님?" "뭐가?" 그런데 낮 까지만 해도 뚱한 표정이었던 라크리마는 왠지 저녁때가 되자 다시 생글 생글 해졌다. "어차피 저희들이 있으니까 몬스터의 습격 같은건 이제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가디언들도 잔뜩 만들어 뒀으니까요. 그리고 드래곤에게 수호를 받는 영지라는 소문이 퍼지면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여들 껄요? 그리고 전 이렇게 뭔가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게 더 재미있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을 즐기기만 하는건 재미없잖아요?" 케리가 잠시동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긍정적인 사고 방식이다. 어쩜 저렇게 기분이 한순간에 바뀔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저것이 드래곤들의 일반적인 사고일지도 모른다. 상식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터무니 없이 긴 세월을 사는 이상.(아직도 라크리마는 9천년 이상 살수있다.) 이렇게 걸레쪽이 된 영지 하나 번듯하게 닦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닐테지. 그들은 잠시 잠깐의 변덕으로 인간의 평생에 달하는 시간을 소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은 드래곤의 삶은 마치 유희같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렇기도 하겠지. 그럼 내일부터도 많이 도와줘야해. 라크리마." "예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생긋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케리는 자신도 그녀의 사고방식에 전염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만일 그렇다면 100년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짧을런지 생각해보면 약간 서글퍼질 정도로. 하지만 그녀와 지내는 시간이 짧은 만큼 좀 더 충실한 시간을 보내야 겠다고 결심했다. 케리는 라크리마의 목 뒤로 손을 둘러서 그녀를 자신을 향하여 끌어당겼다. 라크리마도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아채고 순순히 그의 품 안으로 안겨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럭저럭 상쾌한 날씨에 햇빛도 쨍쨍 공기도 시원한 가운데 빨간머리 소녀, 세린은 부리나케 달려와 케리와 라크리마가 잠들어 있을 마차문을 열어젖혔다. "언니야! 언니야! 큰일났다! ...엄마야!"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앞뒤 가리지 않고 열어젖히기 부터 한 그녀는 마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린애는 절대 봐서는 안돼요.] 수준의 장면을 보고 눈을 확 가리면서 뒤로 돌아섯다. 그 소란통에 못볼 꼴로 엉겨서 잠들어 있던 남녀는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었다. 라크리마는 옷을 입은 세린을 향해 짜증난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일이야?! 편하게 자고 있는데!" 그녀는 아직 어린애가 귀찮을 나이인 것이다. 드래곤은 천살이 넘으면 해츨링을 낳을수 있다지만... 사실 대부분 개인주의적인지라 어지간히 오래 살아 성격이 좀 둥글둥글 해지지 않는한 새끼를 볼 생각은 안한다. 왠만해서는 자기 성질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새끼까지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 아니 키울 엄두가 안나기 때문이다. 사실 드래곤의 해츨링이란... 부모인 드래곤과는 정 반대로 엄청나게 한심한 생명체다. 세린은 그래도 나이가 많이 먹어서 꽤나 성숙한 편이고 진짜로 어린 해츨링은... 말도 못할 정도라는데. "저기저기요. 큰일났어요. 언니." "무슨 일인데 대체. 빨리 말해. 시끄럽게 스리..." 사실 성룡 치고 남의 해츨링 예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최소한 혈연관계가 이어져 있지 않는한 완전히 짐짝으로 취급하기 마련이다. 그야 당연히 귀찮으니까. 해츨링이라고 예뻐하는건 사실 육친 정도 밖에 없다. 역시 이것이 개인주의사회의 폐단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라크레일은? 그놈은 별종이다. '인간을 사랑하는 드래곤'인 라크리마와 동급인 변태인 것이다. [...] "가디언들이 몽땅 다 죽었어요!" "뭐?" 세린의 말에 라크리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디언들이 다 죽다니? 수십마리 씩이나 소환해 둔 것이 바로 어제 저녁이다. 몬스터가 몰려온다고 해봐야 이런데에서는 고작해야 오크나 고블린 정도일텐데. 그런 것에 온갖 종류가 섞여서 배치되어 있는 가디언이 몽땅 전멸하다니. 어지간히 센놈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텐데... "가보자." "예." 의문을 품은 그녀는 세린을 앞장세웠다. 가디언들이 전멸당했다는 말에 사태가 심상치 않으리라 생각한 케리도 그 뒤를 따랐다. 과연. 가디언들은 전멸 당해 있었다. 어제의 그 용맹해 보이던 트렌트에 스톤 서번트에, 워터 엘리멘탈들은 모조리 박살난 나무무더기, 돌 무더기, 물웅덩이로 그 처참한 잔해를 드러내고 있었다. 에어 엘리멘탈 같은 것은 아주 산산히 흩어져서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고... 단 하나 남아있는 것은... 전신이 붉은 피부에 붉은 털, 눈동자까지 붉고 들고 있는 그레이트 소드도 붉으며 마치 야만인 처럼 간단한 갑옷(역시 붉은색)만을 걸치고 있는 [나는 레드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어진 용아병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용아병 단 하나 뿐이었다. 그 앞에는 라크레일과 베로니카가 황당하다는 듯이 멍하니 서있었다. 아마레는 아직 자고 있는 걸까? "라크레일! 이게 어떻게 된거야?" "글세... 그게 말이지..." 라크리마의 질문을 받은 그녀의 동생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용아병 쪽을 바라보았다. 용아병만 남아있는 것에는 무슨 원인이 있는건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의혹의 시선을 확인한 용아병은 당당하게 말했다. "이 근처에 있던 몬스터는 어제밤 동안 전멸시켰다." "......잠깐 몬스터라니? 대체 뭘?" "물덩이 같이 생긴놈이라던가... 나무로 된 놈이라던가... 돌로 된 놈이라던가... 이 근처에 돌아다니고 있길래 모조리 죽여버렸다. 숫자는 많았지만 조직적으로 싸워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처치하여 간단히 모두 쓰러뜨릴수 있었다. 나의 다음 투쟁 상대는 누구인가? 주인이여." 과연, 레드 드래곤(해츨링)의 이빨에서 만들어진 용아병인 만큼 투쟁 본능이 왕성하기 짝이 없었다. 가디언 몬스터들도 몬스터라고 생각해서 모조리 다 죽여버리다니... 실로 용맹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곤란하지 않은가. "죄송해요오..." 자기 이빨에서 만들어진 놈이기 때문에 자신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인지 세린은 히잉 하면서 눈물을 지었다. 라크레일은 그녀의 머리를 토닥거려주면서 '네 잘못이 아냐'라고 달래주었다. "....끄으..." 라크리마는 고민 되었다. 기껏 만들어둔 용아병을 없애버릴 수도 없고, 이렇게 싸우기 좋아하는 놈을 경비병으로 쓰다가는 언젠가는 탈이 나도 꼭 날것이다. 역시 용아병들은 그 강인함에도 불구하고 이용되는 경우가 적은 까닭이 있었다. 싸울 상대가 없어지면 자기들 끼리 싸우는 것도 이 전투본능 탓이다. 정말 곤란한 노릇. 하지만 라크레일은 이 용아병을 지켜보다가 이 녀석을 가장 확실하게 활용할 방법을 알아냈다. "너. 그냥 이 근처 아무데로나 가버려! 그리고 오크나 고블린 같은 야생 몬스터들을 만나면 네 멋대로 싸워!" "알겠다. 주인이여." 용아병은 만족스럽게 대답하고 적을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처치곤란한 녀석이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1화 -영지부임 ⑥- 용아병은 몬스터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가버렸다. 드래곤의 이빨에서 탄생한 존재인 만큼 용아병의 몸은 드래곤 본 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금속은 이빨도 안 들어갈 정도로 강한 강도를 지니고 있고, 게다가 마법에도 어느 정도는 내성이 있다. 물론 체력 한계는 있으니 계속 쓰러뜨리다 보면 언젠가는 죽겠지만 아마 그때까지 상당수의 몬스터를 쓰러뜨릴 것이다. 영민들은 그래도 자기들 영주라고 온 사람을 계속 마차안에서 지내도록 할수는 없으니 기운이 좀 있다는 남자들이 모여서 반쯤 불탄 집을 수리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 동안 케리는 마을을 시찰해보기로 했다. 마을의 장로 노인이 그를 자신들의 밭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밭입니다. 지금은 모두 공동으로 경작하고 있습니다... 이 땅은 영주님의 것이죠. 이게 지금 저희들의 유일한 밭입니다." "으음..." "저쪽에도 땅이 좀 더 있고 하지만, 워낙 사람들이 부족해서 손도 못대고 못하고 있습니다. 이 근처 다른 지방도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아 사람이 많이 죽어 일손이 부족하거든요... 게다가 땅도 완전히 엉망이 되버려서..." "저런 저런..." 어릴 적에 케리네 집에서 텃밭이 있었고, 그도 농사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때 기억으로 비추어 볼때, 지금 그의 영지의 밭들은 완전히 '엉망' 그 자체였다. 모든 농작물이 뭐라 할것없이 모조리 비실비실 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나마 일손이 모자라서 그런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잡초들이 적잖게 자라 있었다. 그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게도 몬스터들이 마구 약탈하고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오크들이건 고블린 들이건 머리가 나빠서 제대로 농사를 짓는 법은 알지 못하고, 기껏해야 화전이나 할 줄 안다. 그나마 파괴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만들어둔 마을이나 농지는 일단 때려부수고 보는 성미였다. 물론 먹을 것은 다 훔쳐가버리고... "약탈이 너무 심해서 땅이 엉망이 되버린 탓에... 제대로 자라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요번 겨울을 제대로 넘길수 있을지... 당장 하루하루를 넘기기도 힘듭니다. 가축들도 모조리 약탈당해서 남아있는게 없고..." 노인의 뺨 주름을 타고 눈물 방울이 흘러내렸다. 가축들이 약탈당했다는 그 말대로 마을에는 닭이나 돼지등이 한마리도 없었다. 소나 말, 당나귀도 없어서 수레와 농기구를 사람이 끌어야 할 판이었다. "그나마 영주님이 와주셔서 다행입니다." "아니. 제가 뭘 할 수 있다고..." 케리는 기대에 찬 노인의 눈빛에서 고개를 돌렸다. 이런 일에는 전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지금 이들을 지배해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들을 도와야 겠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영주님은 마왕을 쓰러뜨렸다는 영웅이 아니십니까." "아니 누가 그런 말을? 여기까지 소문이 퍼지다니." "저도 마왕을 쓰러뜨렸다는 영웅의 소문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영주님이실 줄은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 검은 머리의 여자 드래곤님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랬군요." 라크리마는 아마 자랑하느라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민들은 드래곤이 한 말이니 안 믿을수가 없을것이다. 케리는 그래도 이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하는 소문이라면 퍼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어쨋건 영주님께서 다스려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전 별달리 할줄 아는 일이 없습니다. 다스린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아니 그럼... 돌아가시겠다는 것입니까?" 노인은 불안한 듯이 말했다. "다스린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과 함께 살기 좋은 땅을 만들어 가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작위를 받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다스린다는 말은 별로 와닿지 않는군요." "예. 그런 말 이셧군요." 집을 수리하는 일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일꾼들이 일하는 것이 느리다고 생각한 라크리마가 전원에게 마법을 걸어서 강한 힘과 강한 체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지치지도 않고 평소보다 훨씬 강한 힘을 쓸수있게된 일꾼들이 집 하나 수리 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이 있으면 레비테이션으로 올려주었고, 일하다가 다친 상처도 힐링으로 치료해주었으니 어떻게 쉽게 끝나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수리가 완료되고 집 안 정리도 대강 끝난 뒤 케리는 드래곤들을 불러모았다. 이 마을의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다들 원탁에 둘러앉은 뒤 그는 이 마을의 절망적인 현재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라크리마가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거네요?" "그렇지." "흐음... 대체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네요...으음... 우선은 몬스터 부터 쓸어버리죠. 저런게 주위에 있으면 귀찮으니까. 저희들이야 문제가 없고, 우리들이 여기 있으면 마을 안으로 기어들어오지는 않겠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면 곤란하겠죠?" "음. 그래. 용아병 한마리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것 가지고는 모자라겟지.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거야 그냥 가서 쓸어버리는게 최고죠. 야! 베로니카!" 라크리마는 무슨 옆집 개 이름 부르듯이 제일 아래쪽에 침울하게 앉아있는 베로니카를 불렀다. 최근 여러가지 일로 혹사당한 탓인지 그녀는 약간 피곤하게 보였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체력의 한계는 있는 법이니...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라크리마에게 즉각즉각 대답했다. 그동안 교육을 당하면서 노예근성이 몸에 박히기 시작한 모양이다. "예?" "지금 당장 나가서 이 근처의 몬스터들 다 쓸어버려." "...네에..." 굉장히 힘없이 일어나는 그녀에게 예전의 위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약간 불쌍하게 생각된 케리는 라크리마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라크리마. 베로니카는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게 하는게 좋지 않을까? 저 방벽도 혼자서 다 만든 거잖아." "그럴까요? 하긴... 허! 약! 한! 실버 드래곤이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호호. 여지껏 공주님 처럼 지내왔으니 힘도 없는게 무리도 아니겠죠. 역시 몬스터 사냥 같은 일은 베로니카 한테는 너무 무리한 일일꺼야." 그 말에 베로니카의 머리 속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녀의 자존심은 허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인 케리에게 동정을 받는 다는 것도 참을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노예중의 노예로 전락한 신세라지만 인간에게 까지 동정을 살수는 없어. 게다가 저 폭력적이고 비열한 스톰 드래곤 계집애한테 허약하다는 소리 듣는건 참을수 없어!' "흥! 실버 드래곤을 우습게 보지마! 나는 비록 이런 신세지만 일족 전체를 모욕하는 것은 참을수 없어. 이 일대의 몬스터들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말테다!" 말을 마친 베로니카는 왈칵 문을 열고 나가서 그대로 폴리모프 하여 하늘로 날아갔다. 정말 기세등등한 출진이었다. 그러나 라크리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마디로 그녀를 비웃었다. "바보같이 단순하기는. 그럼 나머지 일은 어떻게 할까요." "으음.. 몬스터들은 그럼 상관없고... 농사가 잘되게 하는 마법은 없어?" "그렇게 포괄적인 상황은 못 만들어요. 땅의 정령을 조종해서 지력을 회복시킨다던가... 비가 내리게 한다던가... 식물의 생장속도를 약간 빠르게 한다던가... 뭐 그런 식으로 도움을 주면 충분하겠죠?" "응. 그래. 그 정도면 되겠다." 한편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오크들의 마을. "취익 취익... 이 근처 인간 마을.. 털러 가자 취익!" "이제 거기 훔칠것 없다. 취익!" "인간을 잡아와서 먹자! 취익!" 몇몇 족장들이 모여서 이 근처의 인간 마을(케리가 영주로 들어간 곳)을 털어먹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훔칠것은 거의 다 훔쳤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서 오크들도 식량이 필요하다. 쌓아둔 것은 많지만 오크들의 먹성은 굉장해서 식량은 아무리 많이 확보해도 부족한 것이니 인간들을 잡아와서 육포로 만들어 버릴 계획을 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너무나 간단히 저지되었다. "취익! 드래곤! 취익! 드래곤 드래곤!" 갑자기 그들 족장 회의에 뛰쳐들어온 오크 전사 하나가 온 몸으로 공포를 표현하면서 외친 것이다. 족장들은 그의 말에 너무나 놀라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드래곤이라니. 그 무시무시한 종족이 이 근처에 출몰한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오크족의 장래에 큰 위협이 아닐수 없다. "크롸롸라라라라라라라!!!" 하지만 달려나가던 그들은 드래곤의 꼬리 하나도 구경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고 말았다. 오크 부락 위를 날아가던 베로니카가 그대로 그들을 향하여 눈처럼 하얀 냉기의 브레스를 쏘아 보낸 것이다. 브레스는 마을 하나를 죽음의 연기로 뒤덮고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한 부락의 오크 수십명이 단번에 얼음덩이로 변한 것이다. 콰직! 콰직! 콰직! 균형을 잃은 오크들의 얼음 조각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적을 절대 영도로 냉각시켜 버리는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는 무시무시한 하얀 죽음을 그들에게 가져다 주고 있었다. 이런 사태는 이 일대의 거의 모든 몬스터 촌락에서 벌어졌다. 폭격기가 된 베로니카는 높은 상공에서도 뛰어난 시력으로 적의 규모를 파악하고 적이 발견되는 순간 브레스를 퍼붓거나 마법을 날렸다. 지상에서는 화끈한 대폭발이 연달이 일어났고 몬스터들은 이 난데없는 천벌에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라크리마의 노예가 된뒤로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일만 계속 해온 그녀였다. 그 동안 쌓인 분노와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할수 없을 정도로 컷다. 그러니 몬스터들은 그녀의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이 되어 개미핥기 앞의 개미새끼들 처럼 처참하게 박멸당하고 있는 것이다. 공중에서 쓸어나가다가 너무 간단한 작업에 지류해진 그녀는 지상으로 내려가서 살육본능을 충족시키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로스 둥지인 동굴 하나를 발견하고 동굴을 통채로 무너뜨려서 하나하나 끄집어낸 다음 통채로 입에 넣고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어버렸다. 오랜만에 육식을 하니 요리하나 안된 생고기임에도 정말 꿀맛이었다. 스트레스도 풀고 배고픈 것도 해소할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캬아... 맛있다. 맛있어!'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입가에서 피를 질질 흘리면서 그녀는 크게 포효하며 드래곤 피어를 온 사방 흩날렸다. 평소때 같으면 몬스터들을 청소할때도 고상하고 말끔하고 처리하려 했겠지만 워낙 쌓인게 많은 탓에 마구마구 살육해도 살육본능이 가시지가 않았던 탓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2화 -새마을 운동 ①-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세상에서 제일 강한 실버 드래곤이 울부짓었다. 그 실버는 졸라 짱 세서 드래곤 중에서 제일 강했따. 신이나 마족도 걔한테 못이겼따. 그 실버는 세상에서 하나였다. 어쩃든 걔가 울부짓었따. "으악 제기랄 도망가자" 오크들이 도망갔따. 그 실버가 짱이었따 그래서 오크들이 도망간 것이다.] =어느 오크족의 기록, -실버 드래곤-에서= 어느 오크족 바드의 손에 의해서 대강 위와 같이 묘사될 정도로(오크들의 언어능력은 매우 저열하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을듯 하지만) 베로니카의 살육행위는 철저하고 가공했다고 전해진다. 실버 드래곤은 그나마 드래곤 중에서는 성격이 좋다고 전해지는 종족인데 이렇게나 철저하게 살육을 한 이유는 물론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그러고보면 한 드래곤을 저렇게 까지 망가뜨릴수 있는 라크리마도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브레스 하루 3발은 모조리 써버린지 오래였고, 마력도 거의 바닥까지 끌어냈으며 입과 발이 몬스터들의 피로 레드 드래곤 처럼 붉게 물들 때까지 베로니카의 살육은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이 일대 몬스터의 80%가 전멸. 나머지 중 19%는 다른 지방으로 도주. 순식간에 몬스터 밀도가 100분의 1로 줄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실로 최강의 몬스터라는 드래곤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대살육이 아닐수 없었던 것이다. 베로니카의 살육행위가 절정에 치닫고 있을 무렵. 영주관저(라고 이름만 붙은 막 수리가 끝난 통나무집)의 회의는 한가지 주제를 향해서 치닫고 있었다. "즉, 역시 맨 처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먹고 사는 것이지요. 현재 다른 산업을 육성할 만한 구체적인 방안은 전혀 없으니 결국 농업을 증진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라크리마는 탁자를 한번 탕 치면서 일어섯다. 사실 이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인간들의 현실적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드래곤들은 온갖 헛소리를 하면서 '인간을 잘살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모조리 마법 캡슐에 넣어서 동면시켜 두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라는 엉뚱한 생각 까지 나왔다가 케리의 제지로 여기까지 겨우 끌고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영지 인간들의 노동력과 농업기술은 크게 낙후되어 있고, 최악의 문제는 역시... 이제 곧 계절이 겨울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문제로군요." "으음... 그러니까. 어떻게든 이번 겨울만은 넘기는 방법이 없을까..." 마치 한숨을 쉬듯이 말하는 케리는 갖은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드래곤들의 상상력에 경탄하면서도 이들과 자신의 사고방식의 근본적 차이 때문에 일을 그르칠가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최대한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눈치였다. 그녀는 계절이 겨울로 바뀌게 될 것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가장 극단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럼 간단하지요. 겨울을 없애 버리는 겁니다! 컨트롤 웨더 마법을 사용해서 이 일대에서 겨울 자체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잠깐!" 실로 획기적인 방안이 아닐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들은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한 목소리로 그녀를 제지했다. "누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 즉각 할아버지들이 잡으러 와서 한 천년 정도 레어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게 만들지도 몰라!" "라크리마, 너 바보냐?! 비 내리게 하거나 눈 내리게 하는 사소한 기상 조작도 금지되어 있는 판에 아예 계절 하나를 통채로 없애버리겠다니?" "그런 장애 따위!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보이겠어!" "....극복 못해." "....절대 못해." 주먹을 불끈 쥐고 당당하게 외치는 라크리마를 향해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일침을 놓았다. 확실히 기상조작은 드래곤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금기시되는 마법이었다. 하다못해 비를 피하기 위해서 비구름을 물러가게 하는 정도도 금지되어 있으니 말이다. 케리는 이번에는 라크리마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겨울이 없어진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상황전환이 되는 것인가? "저기...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가게 할수 없을까? 정말 사정이 급한데..." "안.돼.요!" 곤란한 표정으로 말하는 케리를 향해서 아마레가 그것만은 절대로 안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기상 조작 마법이 금지되어 있는 이유는 그 엄청난 파급력 때문이예요. 그 마법은 잘못 사용하면 세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는 것인데..." "절대 안돼요! 그런 핑계가 먹혀들리가 없어요!" 아마레의 태도는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질서와 선을 수호하는 골드 드래곤(...이다 아마레는. 맞는지 의심스러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인 만큼 그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릴 때부터 주변의 골드 드래곤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상 조작 마법의 심각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 가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이 지역에 겨울 대신에 봄이나 여름을 불러온다고 가정해 봐요. 그럼 이 지역의 생명체들은 다른 지역의 생명체들 보다 생육조건이 엄청나게 좋아지지요. 그럼 야생동물들이 이 지역에 쓸데없이 과집중이 될꺼예요. 그럼 이 지역 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모든 생태계가 파괴된단 의미예요. 게다가 겨울에 꼭 해야 할 지력을 충전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서 땅의 지력이 바닥나서 내년에는 오히려 더 큰 재앙이 닥칠수가 있어요. 그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 여름으로 만들어둔 기상은 다른 지역에도 마치 도미노 처럼 번져나가서 최악의 경우 전 세계범위의 기상 이변도 일으킬수 있단 말이예요." 음 실로 무서운 사태가 아닐수 없다. 전 세계적인 기상 이변이 일어날수도 있다니... 그러나 케리는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친 식량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전 세계적인 기상 위기를 각오하는 것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관점과 드래곤의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지민 들이 굶어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잖아. 나는 이 지역의 책임자가 된 이상 이들이 굶어죽게 내버려 둘수는 없어!" "...휴우... 누군가의 사정에 의해서 기상이 조작될수 있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벌어질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글세...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날씨를 마음대로 바꿀수 있다면..." "아뇨. 전혀..." 아마레는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드래곤들이 기상 조작을 금기시 하게 된 사건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주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였다. "먼 옜날... 인간들에게는 까마득 하게 먼 옜날이죠. 사실 저희 같은 젊은 드래곤들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예요. 어느날 한 레드 드래곤이 주륵주륵 내리는 비가 싫어졌어요. 레드 드래곤인 만큼 그 드래곤은 덥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 되기를 바랬죠. 그래서 그 드래곤은 컨트롤 웨더 마법으로 그 일대의 기상을 조작해서 비구름이 오기만 하면 흩어버렸어요. 그래서 그 지역은 사막이 되버렸죠. 하지만 그 옆동네에 사는 한 그린 드래곤은 사막이 자기 숲을 침범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레드 드래곤에게 따지러 가서 결국 대판 싸움이 벌어졌죠. 그 뿐만 아니예요. 블랙 드래곤들은 자기가 사는 땅이 어두침침하기를 바래서 언제나 어두운 구름을 머리 위에 뛰워두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사는 지역은 햇빛이 들지 못해서 식물들이 완전히 황폐화. 화이트 드래곤 들은 모조리 얼려버리고 싶어했고, 블루 드래곤들은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날씨를 원했죠. 스톰 드래곤들은 폭풍이 마구 휘몰아 치는 날씨를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 전 세계의 기상이 완전히 엉망이 되버렸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할것 없이 엉망진창인 날씨가 계속되고 세상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버렸지요. 서로 좋아하는 날씨를 가지기 위해서 드래곤들의 싸움도 끊임이 없었고... 그래서 마침내 우리 골드 드래곤 일족의 주최로 회의가 열려서 앞으로 기상 조작 마법을 완전히 금지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 마법사들 중에서는 기상 조작 마법을 쓰는 경우도 있잖아? 정령사들도 비가 내리도록 기원을 할수있고" "인간들의 힘이야 겨우겨우 하루 이틀 날씨를 바꿀수 있을 뿐이니까요. 그 정도 힘은 전 세계의 기상에 이변을 불러온다던가 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드래곤들은 틀려요! 우리가 제대로 힘을 쓰면 계절은 커녕 일년 내내 한가지 날씨가 반복되도록 하는 일도 문제가 없다니까요. 그러니까 보다 커다란 힘을 지닌 자가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어떤 일족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골드 드래곤 일족들은 큰 힘을 지닌 자가 큰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기상 조작 마법 같이 엄청난 사고를 불러올수 있는 일에는 결코 동의할수 없는 것이다. 일족의 성격이 그런 만큼 아마레도 단호하기 그지 없었다. "이번 한번만 어떻게 봐줄수는 없을까?" "이런 사소한 일로 예외 사항을 두게 되면 아무 드래곤이나 다 어기려고 할 테니까 절대 안될꺼예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절대로 안돼요! 이것만은 드래곤의 법칙으로 금지된 일이니까요!" 케리는 곤란하다는 듯이 라크리마 쪽을 바라보았다. 라크리마도 고민이 되는 것 같았다. 폭풍의 일족, 자유로운 스톰 드래곤이라고 해도 드래곤 족 전체가 합의를 하여 만들어둔 법칙을 어길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도 스스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성룡이니까.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다. 그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아마레! 시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할수는 없어." ".........그만둬 라크리마.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니까. 기상조작마법을 썻다가는 한 천년 정도는 모든 마법을 봉인당하게 될꺼야. 이것만은 징벌이 보통 엄한게 아니라니까. 멋대로 했다가는 너만 다쳐." "걱정마. 함부로 쓰겠다는건 아니니까. 잠시 용존계에 다녀오겠어. 그리고 이번일에 기상 조작 마법을 사용할수 있도록 반드시 허가를 받아올꺼야." 라크리마의 태도 역시 단호했다. 그녀도 이번 일을 포기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 드래곤으로서 한 맹세와 드래곤 전체의 법칙, 어느 한 쪽도 무시할수 없는 것이니까. 시도도 하지 않고 한쪽을 포기하는 것은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는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2화 -새마을 운동 ②- 방침이 정해지자 마자, 라크리마는 자신의 거대한 몸을 드러냈다. 혹시나 작은 몸이 더 빨리 나는데 유리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력으로 날기 위해서는 마력과 신력을 동시에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몸을 작게 만드는데 드는 마력을 차라리 비행에 사용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사실 드래곤의 비행은 순수하게 날개의 힘만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추진력과 양력의 반 이상을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신력과 마력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를 작게 하는 것 보다 마력을 아끼는 쪽이 비행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으와아아아아..." "멋지다아..." 영민들은 잔뜩 몰려나와 드래곤이라는 이 진귀한 구경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다. 라크리마의 본체는 어마어마하게 컷지만 그 몸은 놀라울 정도로 날씬하고 또한 아름다웠다. 그녀가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하자 그녀의 거체는 마치 무게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 처럼 점점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을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이륙했기 때문에 먼지가 좀 날릴 정도의 바람 밖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느 정도 떠오르더니 고개를 돌려 케리를 한번 쳐다보았다. 마을 광장에서 배웅해주는 자신의 주인을 돌아보며 그들은 눈빛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가속을 시작해서 하나의 점으로 작아져버렸다. "휴... 그러고보니, 라크리마를 만난 뒤로는 거의 언제나 함께 있었구나... 그나저나 이번 일이 잘 되야 할텐데..."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껄요." 혼자말을 하는 케리에게 다가온 아마레가 초를 쳤다. 그녀는 라크리마가 고룡들의 허락을 받아오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전례를 볼때 이런 일 때문에 장기간의 기상 조작이 허락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어요. 아마 허락 받아오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라크리마를 믿는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가능성이 적다니까요. 차라리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는게 좋겠어요. 으음... 내 레어나 라크레일의 레어에도 먹을게 좀 있을지 모르니까 그걸 가져오는 방법도 있고..."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 되도록이면 스스로 헤쳐나갈 조건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구상하는 쪽이..." "겨울을 없애는건 아예 조건을 파괴하겠다는거 아니예요?" "흠...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사실 아마레는 기상조작에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것 같았다. 그야 당연하게 그녀는 질서의 수호자인 골드 드래곤이니까.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기상도 이 세계의 질서중 하나이니 그녀에게는 기상 조작 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긴,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영민들에게는 지금 당장 살아갈 식량이 부족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일단은 긴급 조치로 구호 물자를 레어에서 가져오는 것도..." "일단 적당한 양을 끌어모아 보도록 하지요." "허억... 허억... 허억..." 한바탕 쓸어버릴 대로 쓸어버리고 나서, 베로니카는 한 습지 근처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체 상태로 설치느라 너무 신이 나서 스트레스를 풀어대느라 기운을 완전히 빼버린 것 같았다. 원래 베로니카가 별로 체력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몸인 까닭도 있었고, 요즘 학대를 많이 당한 탓에 몸이 좀 상한 탓도 있었다. 벌컥 벌컥 벌컥 벌컥... 본체 상태의 베로니카가 물을 마시자 작은 연못 하나의 물이 마치 한 컵이라도 되는 것 처럼 쫘아악 빨려들어가서 순식간에 빈 바닥을 드러냈다. 물고기나 수생 생물 등도 함께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갔을 테지만 그 정도야 100미터 가까이 되는 거체를 자랑하는 실버 드래곤인 그녀에게는 플랑크톤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후아... 이제 겨우 화가 좀 풀리내..." 한숨을 돌리고 난 뒤 베로니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한바탕 대파괴를 벌이고 난 뒤이니 몸에서 흘러나온 피어 때문에 주위에 다가오려는 야생동물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단숨에 마셔서 비워버린 연못을 뒤로 하고 작은 호수을 찾은 그녀는 다시 물을 벌컥 벌컥 마셔대기 시작했다. 설사 화염의 힘을 지닌 레드 드래곤이라고 해도 드래곤 역시 물이 필요하다. 어쨋건 살아있는 생명체니까. 레드 드래곤이라고 몸 속에 물기 대신에 불기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드래곤의 속성은 어디까지나 '신력의 속성'으로서 그 속성에 관련된 물질에서 신력을 보급받을 뿐이지 그 힘을 자체를 생명의 근원으로 쓴다는 것은 아니다. 육체가 있는 이상 먹고 마시는 작업은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법이니까. 당연히 드래곤인 만큼 마법으로 물을 만들어 낼수도 있고, 주위의 마나를 끌어모아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지금 마력은 물론 신력까지 거의 완전히 소진한 상태라서 물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꿀꺽 꿀꺽 꿀꺽 꿀꺽... 방금전에는 너무 허겁지겁 마시느라 행동이 천박했다고 후회하는 것일까. 베로니카는 좀 얌전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드래곤의 신체로 하는 일인 만큼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게 그걸로 보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득 베로니카의 눈에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들어왔다. "훌쩍...."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자 그녀는 갑자기 서글퍼졌다. 실버 드래곤의 프린세스로서 여지껏 수없이 긴 세월동안 교양을 닦고 예의에 대해서 공부하고 품위를 챙겨왔건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허겁지겁 산중 호수물이나 들이키는 모습이라니... 예전의 그녀라면 차라리 굶어죽을 지언정 이런 일은 결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정신까지 노예화가 되고 천박하게 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그 부끄러운 고난을 행진보다 훨씬 서글픈 일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하나 둘 비늘을 타고 내려와 호수에 뚝 뚝 떨어졌다. 그녀는 일단 몸에 묻은 오물이나 이물질들이라도 씻어내기로 작정하고 호수에 들어갔다. 그 바람에 작은 욕탕에 사람이 들어갔을 때 처럼 호수물은 반 이상이 넘쳐흘러 버렸다. 운이 나쁜 물고기나 수생 생물들은 아예 물 밖으로 쓸려나가버리고, 물 안에 남아있던 놈들도 베로니카가 첨벙 첨벙 거리면서 몸을 뒤틀어(씻는 행동이다.)대자 상당수가 깔려죽었다. 확실히 드래곤은 저 덩치만으로도 여러 종족에게 대단한 민폐를 끼치는 종족이다. 약간 작은 편이라지만 호수 하나가 무슨 목욕통 처럼 변해버리다니 말이다. 은빛 비늘이 깨끗해질 때까지 씻어내고 난뒤 베로니카는 잠시 호수물에 몸을 담그고 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얼마만에 가지는 휴식의 시간이던가. 라크리마에게 패배한 바로 다음날부터 그녀는 라크리마의 온갖 짓궃은 명령을 듣느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가 극도로 쌓여있었다. [그냥 이대로 여기서 살아버릴까?] 습지는 본래 실버 드래곤이 사는 곳은 아니지만... 살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폴리모프하면 될테니까. 라크리마가 탐지 마법으로 찾아내려 할지도 모르지만 머리가 좋은 실버 드래곤인 만큼 베로니카의 마법도 보통 수준은 아니다. 저번의 승부에서는 마법을 캐스팅할 잠깐의 틈조차 가지지 못해서 라크리마에게 완패해버렸지만 만일 마법만 가지고 대결한다면? 자신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숨어버리는 것 정도는 라크리마의 명령인 '이 근처의 몬스터를 정리해라'에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의 생각도 아니니 한다고 해도 손해볼 것은 없었다. 라크리마는 분명히 '도망가서 숨지 말라'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나 들켜서 얻어 맞는다고 해도 숨어있는 기간 동안 세월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니 그 동안 조금 시간이 흐른다면 베로니카에게 손해볼것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그녀는 자신의 부질없는 망상을 떨쳐버렸다. 만일 숨는다고 해도 라크리마가 그녀를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것이다. 사이는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는 골드 드래곤 친구도 있고, 같은 드래곤인 동생도 있으니까 셋이 함께 마법으로 탐색하면 베로니카도 쉽게 숨을수 없을것 같았다. 더군다나 베로니카의 자존심은 드래곤으로서 한번 한 약속을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할 만큼 녹녹하지가 못했다. 그녀는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을 지니고 있었고, 드래곤의 긍지중 하나는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선의와 긍지의 수호자인 실버 드래곤으로서 어떻게 약속을 어기는 천박한 짓을 할수있단 말인가? [설사 내가 잠시 이 한 몸 편할수 있다고 하더라도 긍지를 버리면서 까지 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아. 나는 명예로운 실버 드래곤 프린세스. 몸의 신분은 비록 천한 지위로 떨어졌지만 정신의 고결함은 결코 잊지 않을 꺼야! 나는 드래곤으로서 긍지를 지켜야 해! 드래곤의 긍지를... 드래곤의... 히잉...]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독백을 계속하던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덩치는 집채만한 드래곤이 어린애처럼 우는 것은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이지만 정말 눈꼴시려운 광경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베로니카 주위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아니 몬스터도 없으니까 별로 상관 없으리라 생각되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베로니카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드래곤의 감각은 대단히 민감해서 잠자고 있지 않는 이상 드래곤 근처를 몰래 지나가는 일도 상당히 어려웠다. 몬스터들도 그걸 잘 알기 때문에 드래곤이 있는 곳 근처에는 잘 다가오지도 않는다. 게다가 베로니카는 드래곤 피어를 한참 뿌리고 있었으니 근처에 접근하는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접근하고 있었다. 그 존재는... 사실 드래곤에게 대항할수 있는 몬스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몸의 덩치가 비슷한 몬스터는 의외로 많은 수가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이 최강의 몬스터라고 불리는 이유는... 드래곤은 놀라울 정도로 교활한 지능과 마력, 그리고 신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덩치 만으로도 엄청난 위협이 되며 전설의 무기에나 쓰일 법한 드래곤 스케일과 드래곤 본으로 이루어진 육체도 엄청난 것이지만 그 드래곤들이 확실한 사고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전투를 하며 또한 마법에다가 권능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은 드래곤을 최강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그러나 자연계는 육체적으로는 드래곤에 필적할수 있는 몬스터들도 몇몇가지 준비해놓고 있다. 그중 하나가 베로니카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길이가 무려 70미터에 달하는 초 대형 혼 서펜트를. 베로니카가 목욕하고 있던 호수는 사실 이 서펜트의 집이었던 모양이다. 손도 발도 없이 미끈하게 길기만 한 몸으로 땅을 미끄러지듯이 다가오면서 서펜트는 날카로운 지느러미로 이루어진 갈기와 이마에 돋은 뿔을 곧추세우면서 베로니카를 노려보았다. "캬아..." 그 기세가 어찌나 험한지 그녀는 잠시 움찔했다. 이 정도로 자란 서펜트에게는 드래곤 피어가 먹혀들지 않는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정도로 자라면 기가 세지고 간이 부어서 드래곤 무서운 줄도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서펜트 종류는 작을때는 드래곤에게 별 위협이 안되지만, 몸집이 커지면 맞붙어 싸울 경우 드래곤과 육체적으로는 대적이 가능할 정도로 무서운 몬스터다. 그러나 물론 당연히 너무나 지혜로운 드래곤들이 그런 무식한 짓을 할리가 없었다. 서펜트가 개기면 보통은 멀리서 마법이나 브레스로 때려잡아 버린다. 불행히도 서펜트들은 독정도는 뿜을수 있지만 그 정도로는 드래곤에게 전혀 타격이 안가고, 지능이 낮으니 원거리 공격은 꿈도 못꾸는 실정인 탓에 드래곤에게 상대가 될리가 없는 것이다. 드래곤들은 서펜트를 쓰러뜨리고 그들이 억울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억울하면 너도 마법 배워봐라."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베로니카는 지금 마력도 신력도 거의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2화 -새마을 운동 ③- 대부분의 드래곤은 흔히 바람을 타듯이 날아간다. 즉 일종의 활공을 하는 셈인데, 실제로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날아서야 오래 날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그 덩치로는. 물론 상당 부분 마법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폭풍을 다스리는 능력을 부여받은 스톰 드래곤에게는 마법 이외의 또다른 힘이 있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의 원초적인 신력. 마력과 날개의 힘으로 거체를 공중에 뛰우는 양력을 얻은 뒤 신력의 힘을 날개를 통하여 뒷쪽으로 방출하여 추진력을 얻는다. 스톰 드래곤의 힘은 폭풍, 그 정도의 힘을 바로 후방으로 내쏘는 것이니 추진력은 정말 굉장하다. 물론 백미터 짜리 덩치가 거칠게 날아가는 셈이니 이 방법을 쓰면 상당한 소음이 난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라크리마는 이 방법으로 단숨에 창공 위로 솟아올랐다. 구름이 저 아래로 보이며 드래곤의 뛰어난 시야에도 지상이 약간 흐릿해 보일 정도로, "앗. 너무 올라왔다. 이렇게 까지 올 필요는 없는데..." 오랜만에 자유롭게 날아서 굉장히 흥분한 모양이었다. 얼마전에 전투비행을 한 적이 있었지만 전투비행 때는 아무리 그녀라도 약간 긴장할수밖에 없으니까. 중력을 거의 무시하고 날아다니는 쾌감은 인간으로서는 짐작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드래곤의 뛰어난 정신력에도 그것은 이기기 힘들어서 가끔 비행중독자 스톰 드래곤이 지나치게 높이 올라갔다가 상공에서 힘이 다 떨어지는 바람에 위기를 맞았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니... "뭐 상관없지. 항로 수정. 목적지는..." 라크리마의 눈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뛰어난 시력은 관측기 역활을 하고 영민한 두뇌는 모든 조건을 고려하여 최적의 항로를 계산해냈다. "용존계, 우리 엄마네 집!" 콰아아아아아앙! 주위에 생명체가 있다면 소리만으로 대부분 귀머거리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대폭음이 일어났다. 그리고 라크리마의 거체가 지상 방향을 향하여 미끄러지듯이 강하를 시작했다. [아... 저기 안녕...하세요?] 베로니카는 못 먹어도 수백살은 먹은 것 같은 혼 서펜트를 향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인사를 했다. 뭐 상대가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도 혼 서펜트 종의 수명은 천살 정도니까 베로니카의 나이가 더 많을 것은 뻔하지만(그녀는 천살이 넘은 성룡이므로) 일단 마력도 신력도 다 써버려서 완전히 무장해제 된 상태인 만큼 일단 상대에게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젠장! 힘이 하나도 없는데 저런게 나타나다니... 힘만 있었으면 저 까짓 것!' 베로니카는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정중하게 서펜트를 대해 주었지만 서펜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서펜트에게 말을 알아들을 지능이 있을리가 없으니, 등의 검푸른 비늘과 배의 보라색 비늘을 위협적으로 번쩍이면서 이 자신의 영역에 겁도 없이 침입한 생명체를 노려볼 뿐. "캬아~!" 서펜트는 살기와 함께 보라색 연기 같은 독기를 내뿜었다. 혼 서펜트의 이 독은 동물체 만을 중독시키는 것으로서 주위에 안개처럼 흩뿌리는 것 만으로도 작은 생명체는 간단히 중독되서 죽어버린다. 이 서펜트는 분명히 베로니카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가 드래곤이라고 해도 서펜트는 봐주지 않는 것이다. 뭐 보통은 드래곤에게 박살나고 말지만... [아 저기... 내가 네 집을... 차지한건 일부러 그런게 아니고. 그러니까. 갑자기 더워서 말이야. 으음. 잠시 빌려쓰는건 괜찮겠지? 응? 아냐?] "캬아아아..." 서펜트는 스르르르 미끄러 지면서 베로니카와의 간격을 좁히고 있다. 이제는 아예 상대를 먹이감으로 보고 있는 눈치다. [...설득이 안통하네... 하긴 서펜트니까 말을 못하지. 그래도 텔레파시도 안 먹히다니...] "캬아!" 천천히 다가오던 서펜트는 갑자기 온 몸의 탄력을 이용하여 베로니카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베로니카의 몸은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고 공격자는 허무하게 호수 속에 몸을 처박았다. 서펜트는 닭 쫓던 개가 된 것처럼 하늘위로 올라가버린 베로니카를 올려다보았다. 드래곤이 다른 종류의 거대 몬스터와 싸울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비행능력. 사실 비행하는 놈들 중에서 드래곤 보다 더 큰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으니까. 정 안될것 같으면 날아서 도망가버리면 되고 공중에서 공격할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다. 그러니 맨몸으로 싸워도 드래곤이 동급의 대형 몬스터에게 지는 일은 절대 없는 것이다. 과연 장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니까... 하지만 베로니카는 지금 싸울 마음이 없었다. 힘이 바닥난 상태인 만큼 무리하게 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실리를 차려서 도망... 가야 할테지만 자존심으로 가득한 그녀에게 실리라는 마음이 남아있을리가... '내가 왜 도망가야 하는 거야?!' 갑자기 그녀는 발끈하기 시작했다. 이 발끈하는 성미 때문에 신세 망친게 한두번이 아닌데도 아직도 그 성격을 못고쳤다. '내가 왜 서펜트 따위에게 쫓겨서 도망가야 하는 거지? 솔찍히 내가 잘못한건 하나도 없잖아. 난 그냥 잠시 수척해진 이 몸을 추스리기 위해서 물을 잠깐 빌린것 뿐인데... 내가 왜! 대체 어째서?! 그것도 상대는 고작 서펜트인데? 저렇게 추하게 생긴 데다가 발도 없고 손도 없고 말도 못하고 지능도 없고 신력은 커녕 마력도 없는 서펜트 따위에게 어째서 내가 쫓겨서 달아나야 하는 거냐고? 이 아름답고 고귀하고 기품있고 교양넘치는 명예로운 실버 드래곤 일족의 프린세스 베로니카가!' 베로니카는 제 스스로 독이 올랐다. 고작 서펜트 따위에게 쫓겨서 달아나야 하는 현실이라니, 확실히 자존심 높은 그녀는 열받을 만도 했지만... 불합리한 판단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좌우간 화가 뿔 끝까지 치솟아 올라 앞뒤를 가릴수 없게 되버린 갑자기 그녀는 높이 날아오르더니 멍하니 공중을 올려다보는 서펜트를 향하여 급강하 공격을 시작했다. 지가 크림슨 드래곤이라도 된 것처럼.(...) "크롸라라라라라라라라!" "캬아아아아!" 그렇다고 뻔히 보고 있으면서 서펜트가 알아서 당해줄리가 없었다. 서펜트도 독니와 뿔을 날카롭게 세우고 베로니카에게 대항하기 시작했다. "으흠..." 그날 또 집을 하나 수리하여 자기 개인 거처를 가지게 된 아마레는 테이블 앞에 앉아 깃털 펜을 하나 들고, 영지 지도의 복사본을 살펴보고 있었다. 눈가에 주름이 잡힌 것이 상당히 복잡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누나. 부탁이 있다고?" "아. 너 왔냐?" 그때 라크레일이 쫄래 쫄래 따라오는 세린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잠깐 전에 아마레가 세린을 통해서 라크레일을 불러오라고 말을 전한 까닭이다. 아마레는 라크레일을 향해서 영지 지도의 복사본을 펼쳐보이면서 말했다. "이 지도 말이야. 한눈에 봐도 너무 부정확 한 것 같아." "어쩔수 없잖아. 인간들이 만든 거니까." 이 시대의 지도는 당연히 직접 답사를 통하여 제작된다. 그러니 드래곤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부정확 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지 지도 같은 세부도 정도 되면 그래도 지형지물의 위치 정도는 얼추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지만, 국가 레벨의 지도가 되면 아예 전체 지형이 일그러져서 완전히 장난감 수준의 지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지금 정확한 지도가 필요하거든. 하늘로 올라가서 이 근처 지형을 정확하게 그려다 주지 않을래?" "...뭐? 그게 갑자기 왜?" 물론 이종족이 지도를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취미삼아 제작한 것은 인간의 손에 들어갈 확율이 극도로 낮을 수밖에 없었고, 정밀지도를 가끔 제작하는 드워프들도 쉽게 지도를 넘겨주지 않았다. 엘프들은 뛰어난 방향감각과 기억력 덕분에 아예 지도 같은 것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후훗. 자세한건 비밀. 좌우간 그려가지고 와. 큰 일을 벌일게 하나 있으니까. 재미있는 일이야." "뭔데 그래?" "으음... 그것보다도 너." 아마레는 언제나 라크레일 옆에 꼭 붙어있는 세린을 바라보았다. 세린은 똘망똘망한 루비색 눈동자로 아마레의 황금빛 눈동자와 눈을 마주쳤다. 아마레는 세린을 한참 바라보다가 라크레일에게 물었다. "네가 왜 얘를 계속 데리고 다니는 거야?" "에... 그건. 그 실버 드래곤 애가 그렇게 되버렸으니까. 특별히 보호자가 없으면 위험할것 같아서. 해츨링은 언제나 지켜야 하잖아." 지극히 당연한 일을 하고 있다고 '가장하는' 말투. 물론 성룡이 해츨링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거야 당연하지만... 미쳤다고 남의 해츨링, 그것도 다른 일족의 해츨링을 매일 옆에다 끼고 금이야 옥이야 귀여워 하겠는가. 아이가 자주 태어나지 않는 드래곤 족인 만큼 해츨링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것과 귀엽게 여기는 것은 약간 의미에 차이가 있다. 모든 드래곤이 새끼에게 팔불출일 리는 없고, 가끔 자기 새끼가 아닌 다른 해츨링은 험하게 다루다가 크게 상처를 입히는 실수를 하는 경우도 옜날에 있기는 했다. 원래 다들 제멋대로인 성격이다 보니까 그런 사고가 가끔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에 따른 드래곤 간의 분쟁도 자주 벌어졌고... '왜 내 새끼를 이렇게 만들었어!' '아 그 새끼가 버릇없게 굴어서 교육 좀 시켰어!' '내 새끼의 어디가 버릇이 없다는 거야!' '야이 드래곤 새끼야!' 라는 식의 대화가 해츨링이 다니는 데마다 터져나오자, 따라서 이번에도 또 각 종족의 로드들이 모여서 이대로는 해츨링 키우기 무서워서 어디 낳고 살겠나? 라면서 논의를 하다가 해츨링 보호법을 제정해서 "모든 종족의 해츨링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라고 선언하고 그에 따른 여러가지 규정을 내놓았는데... 우선 부모나 조부모, 외조부모가 체벌로 가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해츨링을 공격해서는 안되고, 어떤 일이 있어도 해츨링을 고의로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게 되면 일족의 이름으로 벌을 받으며, 해츨링이 아무리 땡깡 부려도 성룡이 해츨링한테 화풀이 해서는 안되고, 반드시 부모에게 연락해서 잡아가게 해야 한다. 라는 식을 골자로 해서 가출 해츨링 보호법이라던가(맘대로 집 나와서 돌아다니는 해츨링이 있으면 반드시 부모에게 신고해야 한다.) 해츨링 성추행 금지법(해츨링에게 야한짓을 하면 안된다.), 해츨링 의무 거주보호법(레어에서 내놓고 키우다 다치면 부모에게도 책임 있음), 해츨링 양육법(일단 부모에게 양육권이 있으며, 둘이 따로 살 경우 친모의 양육권이 우선한다. 친부모가 없으면 조부모나 외조부모, 혹은 가까운 친척이 길러야 하며 가까운 친척이 없으면 일족의 로드가 맡아서 길러야 한다.) 같은 복잡한 규정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강제조항이고 개인의 자유를 사랑하는 드래곤들인지라 되도록이면 강제조항을 꺼리는 탓에 어째 머리 아프고 귀찮은 규정들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어지간해서는 생명의 위협이 갈 정도로 두들겨 패지 않는 이상 폭력행위도 봐주는 편이었고... 따라서 라크레일을 비릇하여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룡에게 세린을 보호해야할 의무는 있지만, 일부러 아껴주고 보살펴 줘야할 필요성은 없었다. "으흠..."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아마레는 가늘게 눈을 뜨고 라크레일을 바라보았다. 왠지 아마레가 무서워진 세린이 그에게 꼭 들러붙자 그의 입술 끝이 약간 올라가는 것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흠흠.. 그런거냐. 뭐... 해츨링일때 침 발라놓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걔한테 이상한 짓하면 벌 받는다. 조심해라."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동생으로서...!" "알았어 알았어. 지금은 동생으로서 생각하지만, 사실은 장래를 대비해서 키우고 있다는 거지?" "그게 아냐!" 라크레일은 필사적으로 부정했지만 아마레는 이미 그의 뱃속을 다 까본 것 처럼 말하고 있었다. 세린은 뭔 소린지 약간 이해가 안가서 둘을 교대로 쳐다보기만 했다. 크롸라라라라라라라!!!" "키에에에에엑!"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노리듯, 급강하해서 내려온 베로니카의 발톱이 서펜트의 몸통을 파고 들었다. 서펜트의 피부도 두껍고 단단하기로 소문난 것이지만 드래곤의 발톱을 버틸 정도는 물론 아니었다. 서펜트의 몸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와 호수를 피빛으로 물들였다. [헤헹! 어떠냐?] "캬오오오오오오오!" 베로니카는 최초의 일격이 성공하자 자신만만하게 울부짓었다. 서펜트는 몸무림 치며 그녀의 발톱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드래곤의 발톱이 그렇게 쉽게 놓아줄 리가 없었다. 은빛 발톱은 서펜트의 피로 물들며 점점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서펜트는 전의를 잃지 않고 코끼리 상아만한 독이빨을 날카롭게 세워서 베로니카의 다리쪽을 물었으나... 채앵! [호호호! 드래곤 스케일을 뱀 이빨 따위로 뚫을수 있을것 같아?] 이빨은 갑옷처럼 촘촘이 돋아있는 비늘 앞에 미끄러져 버렸다. 최고의 강도를 지녔다는 평가까지 받는 드래곤 스케일에 서펜트의 이빨은 말 그대로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혼 서펜트 종류는 이빨 외에도 또 다른 공격법이 있었다. 그것은 이마의 뿔. 서펜트는 독이 잔뜩 오른 이마의 뿔을 재차 베로니카를 향해 휘둘러댔다. 푸욱! [꺄아아악!] 이번에는 제대로 박혀들어갔다. 뿔이 박힌 베로니카의 다리에서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환장해서 달려들 정도로 많은 양의 드래곤 블러드가 줄줄 흘러내렸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가죽이 뚫리면 상당한 고통이 오기 때문에 베로니카는 비명을 질렀다. 게다가 그녀는 몸 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뭔가 꺼림직한 액체의 느낌을 받았다. [이건...독?] 갑자기 서펜트에게 찔린 오른쪽 다리가 저려오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뿔로도 독을 분비할수 있는 혼 서펜트의 독은 큰 짐승도 한방에 쓰러뜨릴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드래곤에게는 내독능력도 있으니까 독에 중독되어 죽을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안 아플리는 없었다. 그 바람에 당황한 베로니카의 발에서 잠시 힘이 빠진 틈을 타 서펜트는 온 몸을 뒤틀어서 억지로 발에서 빠져나온뒤 베로니카의 몸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이게에!!] "캬르르르르르!" "캬아아아아아!" 두 마리 대괴수는 호수를 거의 뒤집어 놓을 정도로 날뛰면서 사투를 벌였다.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히고 서로 감고 할퀴는 대접전이 벌어졌지만 체형과 몸 크기의 문제상 난투전은 베로니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거의 레슬링 시합처럼 되다보니 사지가 없는 서펜트 쪽이 날개까지 달린 베로니카보다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수 있었던 까닭이다. 한 순간의 빈틈을 타서 서펜트는 베로니카의 목을 칭칭 감아버리고 목에 독니를 꽃아넣었다. 드래곤의 목 부분 비늘은 다른 부위에 비해서 약간 연한 편이었기 때문에 서펜트의 이빨이 뚫을수 있었던 것이다. "캬아아아아아아아!" 베로니카는 온 몸을 흔들면서 서펜트를 떼어내려 했지만 거머리 처럼 단단하게 붙어있어서 도무지 떨궈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판이었기 때문에 죽을 힘을 다해 서펜트를 붙잡고 뜯어내었다. 그 때문에 목 부분의 살점까지 뜯겨나가 피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크아아아아아아!" "캬아아!" 상처를 입어 분노한 야수처럼, 어디서 그런 힘이 뿜어져 나왔는지 베로니카는 서펜트를 호수 옆에 집어던지고 달려들어 그 목을 깨물어 버렸다. 그것은 이미 짐승과 짐승의 싸움이었다. 목을 물려 고통스러워 하는 서펜트를 향해 이번에는 손톱을 날카롭게 세워 마구 할퀴어 대고 머리를 집어들어 바위에 내던졌다. 퍼억! 퍼억! 퍼억! 퍼억! 한 두번으로는 그렇게나 생명력이 질긴 서펜트가 죽을리가 없으니 바위가 깨질 때까지 몇번이나 계속 내리쳤다. 마침내 서펜트의 머리가 갈라지고 뇌수가 튀어나올 때 쯤에야 제풀에 지친 베로니카는 공격을 멈추었다. 그때쯤 평화롭던 호수는 완전히 피로 물들어서 핏물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하악... 하악... 하악..." 페가 헐떡거리고 심장이 터질 것 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온 몸에는 서펜트가 입힌 잘잘한 상처가 가득했다. 특히 목의 상처는 굉장히 심해서 근육이 너덜너덜하게 드러날 정도였다. 동맥을 안 다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게다가 상처마다 독이 스며들어 온 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파왔다. 견디다 못한 베로니카는 고목이 쓰러지는 것 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쿠웅! [괜히 싸웠어.... 너무 아프다... 힘들어...] 솔찍히 헛수고였다. 완전히 쓸데없는 싸움 때문에 온몸에 상처를 입고 체력도 완전히 소모하고 독에까지 중독당했으니... [히...힐링...] 베로니카는 자신의 몸에 회복 마법을 걸었다. 원래 마법에 능통한 그녀였지만 마력이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진 상태니 회복마법은 잠시 밝은 빛을 발하는 듯 했지만 상처에 새살이 돋기도 전에 효과가 끊어져 버렸다. 그나마 회복마법 마저도 완전히 실패. 어느새 독이 온몸에 퍼져서 온 몸이 저리고 쑤시고 아파왔다. 게다가 체력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이다보니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불가능해졌다. [...자 잘못하면 여기서 죽어버리겠어...] 베로니카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서서히 눈꺼풀이 감겨오고 주위에 어둠이 내리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용존계. 이곳은 특별히 다른 차원이라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느 시대에 용족들이 자신들의 레어 주위를 일일이 경비하는 것이 불편하다... 라고 느끼기 시작하여 일정 지역에 레어를 밀집시켜두고 인간으로 치면 아파트 비슷하게 살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을 뿐이다. 영역이 조금씩 겹치도록 이루어져 있었지만 어차피 드래곤 한마리의 영역 자체가 상당히 큰 편이니 크게 불편함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의외로 이 곳은 드래곤과 몬스터들만 살리라는 외부 인간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오크를 비릇한 각종 몬스터와 엘프나 드워프 까지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소수나마 인간도 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의 인간들은 국가등을 이룰 정도로 세력이 크지 못하고 그 숫자도 많지 않아 외부에서는 용존계에 사는 인간들은 없을 것이라고 지례 짐작하고 있는 것 뿐이다. 좌우간 그 용존계에 존재하는 라크리마의 어머니, 라세니안의 레어에서는... "안된다. 절대로 불가능 하단다." "엄마!" 투정부리는 딸을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한참 전 부터 조작 허가를 내달라는 라크리마의 부탁을 라세니안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절대 불가능한 거예요? 기상 조작은?" "절대 불가능 하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 이유가..." "별로 문제되는 이유도 아니잖아요!" "그게 아니라 그런 이유로는 고룡회의의 승락을 얻을수 있을리가 없어!" "해보지도 않고서 그런 말을 하면..." "안해봐도 뻔하니까 그렇지!" 라세니안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안 그래도 성격 이상한 딸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었는데, 이제는 기상 조작 같은 금기 사항을 건드리려 하다니... 정말 속이 뒤집힐 노릇이다. 게다가 어른 다 되서 쪼르르르 엄마에게 달려오는 모습은 또 어떻고... "라크리마. 너도 이제 다 컷잖니. 라크레일 처럼 성룡 된지 얼마안된 것도 아니고, 줄무늬까지 하나 생겼으면서 왜 그렇게 말을 안 듣는 거니?" "하지마안..." "너도 이젠 어른이니까 알아서 일 처리를 하도록 해라! 하지만 기상 조작 허가는 꿈도 꾸지 말고!" 라세니안은 정말 단호하게 말했다. 드래곤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만큼 세상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확실히 구분해놓고 있다. 자유의 드래곤인 스톰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것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아직 어린애라면 모를까 성룡씩이나 되서 금기사항을 어겼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것이다. "....휴우... 그럼 어쩌죠? 기상 조작 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대강 사정을 들어보니까 굳이 그걸 안 써도 될것 같구만. 네 친구중에 골드 드래곤 애도 있잖아. 걔한테 물어보면 좋은 답을 줄지도 몰라. 원래 골드 애들이 그런건 잘 알잖아." "그럴까?" 라크리마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 물었다. 정말 아마레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라고 의심스러워 하는 눈치다. 사실 여지껏 아마레가 하는 짓을 보면 별로 믿음이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종족은 괜히 지혜로운 종족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야. 어느 한가지 방법이 안되면 다른 비슷한 방법을 찾아보거라. 한가지 방법만 계속 시도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잖니? 지혜를 모아서 해결책을 강구해보렴. 그것이 좀 더 현명한 드래곤이 되어가는 길이니까. 무조껀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서는 안돼." "...예예..." 이렇게 까지 잔소리를 들었다면 어쩔수가 없었다. 드래곤 종족 전체의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모든 로드와 고룡들이 모여서 여는 고룡회의의 승락은 커녕 고룡회의가 열리도록 하는 것 조차 불가능 할듯 싶었다. 모인다고 해도 사실 진짜로 모이는 것은 아니고 마법으로 서로 통신회의를 하는 것이지만... 나이든 고룡들은 대체로 은거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전부 모이기는 사실 힘들기 떄문이다. 그렇다고 안온다고 적당히 넘어갔다가는 자존심 강한 고룡들이 무슨 난리를 벌일지 모르고... 결국 라크리마는 어머니에게 충고받은 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기 위해서 영지로 돌아가기로 했다. 라크레일은 아마레의 부탁을 받아 영지 주위를 하늘에서 돌아보고 있었다. 공중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할수는 없었고, 사진기 같은 것은 아직 없는 시대이므로 영지 주위를 돌아봐서 풍경을 완전히 머리속에 입력시킨 다음 지상에 내려가서 완벽한 지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 옆에는 레드 드래곤 해츨링인 세린이 힘겹게 날고 있었다. 세린은 일부러 자청해서 라크레일을 따라나선 것이다. 뭐 특별히 의미가 있어서 라기 보다는 단순히 재미있어 보여서... 일테지만. 라크레일도 물론 흥쾌하게 받아들였고 몸에 레비테이션과 플라이 등을 걸어줘서 잘 날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세린의 등 위에는 케리도 타고 있었다. 그가 따라온 이유는 영지의 풍경을 공중에서 내려다 보고 싶어서 라는 것이었지만 이 정도 높이쯤 되니 지상을 내려다보기가 두려워져 세린의 목 위에 단단히 붙어있는 것이 다였다.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여있었음에도 높이가 워낙 높다 보니 바람도 거세고 상당히 무서워 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린의 비행방식도 상당히 불안해서 속도는 느린데도 불구하고 흔들림 같은 것은 오히려 라크리마보다 더했다. '페가수스 나이트나 와이번 나이트, 그리폰 나이트들은 대체 어떤 신경을 지니고 있는 거야?' 역사상 최초(일지도 모르는) 해츨링 라이더가 된 케리는 비병(飛兵)들의 사고구조를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나는야 훌륭하고 멋진 스톰 드래곤 나보다 잘생긴 용은 어디에도 없어 한번 날개치면 하늘 끝까지 한번 날아가면 땅 끝까지 나보다 빨리나는 드래곤은 없다 나보다 잘 나는 드래곤도 없다 나는야 폭풍타고 나는 스톰 드래곤 나는야 훌륭하고 멋진 스톰 드래곤~] 상당히 유치한 가사에 엉성한 리듬과 이상한 박자를 가진 노래가 공중에서 울려퍼졌다. 다행히도 듣는 인간이 한명 뿐이라서 그렇지 안 그랬다면 인간계 전체에 스톰 드래곤의 이미지가 팍 깍였으리라 예상된다. 그 유일한 인간인 케리는 귀를 막아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듣고 있었지만 떨어질까 무서워 세린을 꽉 잡고 있느라 그럴수도 없어서 참 난감했다. 사실 드래곤의 언어활동은 텔레파시로 이루어지니 귀를 막아도 들릴 테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린은 뭐가 좋은지 박수까지 짝짝 치면서 라크레일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날고 있었다. "라크레일! 그 노래는 네가 지은 거야?!" [응! 내가 100살 밖에 안됐을때 지은 거지.] 자뭇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말했다. 드래곤의 100살이면 1만살을 사는 드래곤 입장에서 보면 1살 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다. 확실히 정말 오래전에 지어진 노래다. "혹시 그거... 다른 드래곤에게 들려줘봤어?" [아빠랑 엄마한테는 들려줬더니 재미있어 하고 칭찬해주던데, 누나한테 들려줬을떄는 얻어맞았어.] "........." 라크 남매의 부모야 상당히 팔불출이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율동까지 있는데 지금은 나는 중이라서 못 보여주겠다.] 보여줄 생각인 걸까? 저 가사에 맞는 율동이면 상당히... 아동적일 텐데. 그걸 100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라크레일이 한다면... 상당히 엽기적인 광경일 것이다. 세린 정도 나이라면 그럭저럭 귀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라크레일이 노래하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보였는지 세린이 말을 꺼냈다. [오빠. 나도 노래 불러봐도 돼?] [응. 나도 네가 부르는 노래 듣고싶어.] 세린은 진지하게 잠시 생각하더니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야 예쁘고 깜찍한 레드 드래곤 나보다 예쁜 해츨링은 어디에도 없지 날개도 귀엽고 눈도 귀엽고 꼬리도 귀엽고 엄마한테 물어보면 다~ 귀엽대 나보다 귀여운 해츨링은 없다~ 나보다 깜찍한 해츨링도 없다~ 나는야 불을 뿜는 레드 드래곤 나는야 예쁘고 깜찍한 레드 드래곤~] 가사도 음정도 박자도 라크레일의 것과 50보 100보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하긴 라크레일이 세린 만할때 지었던 노래이니 정신 수준이 비슷해서 비슷한 노래가 나오는 것(이라기 보다는 세린이 거의 베낀것)일것 같지만 확실히 그래도 해츨링이 부르니까 약간 낫기는 하다. 다만 세린이 노래를 부르면서 자꾸 움직이는 바람에 등에 메달려 있던 케리만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참 잘했어요. 세린 어린이.] [고맙습니다. 라크레일 오빠.] [오빠 우리 또 노래 불러요.] [응. 뭐 부를까...] [아기 해츨링! 나 그 노래 좋아해!] [좋아. 그거 부르자.] [산골짝에 해츨링 아기 해츨링...] 이 이상은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으니까 노래 부르기는 중지하도록 하고, 라크레일은 세린이랑 놀면서도 예리한 시각으로 지상의 풍경을 하나하나 머리속에 담아 넣었다. 역시 드래곤은 편리한 종족이다. 이런 일도 가능하다고 할수있다니. 그런데 지형을 탐색하던 라크레일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잡혔다. [은?] 전후 길이 100미터는 되어보이는 커다란 은빛 물체가 감지된 것이다. 워낙 커다란 것이다 보니 시야에서 놓칠 수가 없었다. 그 은빛 물체는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놓여져 있었다. [자연은인가? 자연은이 지표에 노출되어 있다니... 아니 잠깐만. 은이 저렇게 노출되어 있으면 드워프나 코볼트, 아니 인간들이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잖아. 그 전에 자연은은 없던가? 있던가? 그럼 저건 뭐지?] 라크레일을 고민하게 만든 그 물체의 정체는 세린이 파악해주었다. [아! 베로니카 언니다!] [뭐? 잠깐만 스페셜 드래곤 아이이이이이이이!!!!] 라크레일이 눈을 가늘게 뜨자 그렇지 않아도 뛰어난 드래곤의 시력이 더욱 증폭되어 그 지역의 영상을 줌 인 했다. 확대해서 보니 확실히 드래곤이었다. 이런데 드래곤이 누워있을 리가 없을것 같아서 잠시 커다란 은덩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100미터나 되는 은덩이가 어디있냐!) 라크레일과 세린은 베로니카가 누워있는 것이 이상해서 그쪽으로 날아가보았다. 물론 케리도 함께. "베로니카 언니이!" 땅에 내려앉은 세린은 인간 모습으로 변신한뒤 베로니카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여 달려갔다. 베로니카의 상처는 정말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온 몸에 상처가 났고 은색 비늘은 곳곳이 독에 중독당해 푸르딩딩 하게 변한 데다가 비막도 여러군데 찟어져 있었다. 목과 다리의 큰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땅을 덮어서 젤리질로 굳어질 정도로 흘러나왔다. 드래곤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까지 다칠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천적이라고 할 만한 몬스터도 없고 전쟁도 별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긴 세월을 살아가다 보면 심하게 다칠 일도 있겠지만, 세린 처럼 어린 해츨링은 그렇게 심하게 다친 드래곤을 처음 보는 것이라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언니! 언니! 정신차려!" 그녀는 굳게 닫힌 베로니카의 눈꺼풀 앞에서 소리를 질렀지만 굳게 닫힌 그 눈꺼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힐링! 힐링! 히일링!" 세린은 조막만한 손을 휘둘러서 필사적으로 회복마법을 걸어서 베로니카를 치료하려 했지만, 워낙에 거대한 데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그녀의 몸에 해츨링 수준의 마력으로 쓰는 힐링은 거의 먹히지 않았다. 작은 상처는 약간 아무는 듯 했지만 효과는 좋지 않았던 것이다. "라크레일 오빠! 우리 언니 살려줘요!" 라크레일과 케리도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있었다. 세린은 마력이 딸려서 회복마법의 효과가 적으니 지금 베로니카를 구할수 있는건 라크레일 밖에 없었다. 라크레일은 즉시 대단히 회복마법을 쓰려고 손을 들어 수인을 맺으려다가 순간 자기 누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베로니카를 대하는 라크리마의 그 차갑고 포악한 태도. 어쩌면 라크리마는 베로니카를 죽일 작정으로 일을 꾸미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라크리마를 방해했다가는... 자신이 베로니카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라크레일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지난 세월동안 자신의 누이와 살아오면서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공포 때문에 무의식 적으로 수인을 맺던 손이 움직이지 않게 되버렸다. "오빠? 뭐해?" "아니. 가.. 갑자기 누나 얼굴이 떠올라서.. 손이 움직이지 않아." "예에? 빨리 살려줘요오!" 세린도 라크리마 공포증을 지니고 있으니 라크레일의 사정을 이해할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드래곤 하나가 죽어가는데 저게 무슨 한심한 짓이냐. "하... 하지만 여기서 잘못하면 라크리마 누나한테..." "그... 그 언니는 무섭지만... 그래도 베로니카 언니가 죽으라고 한 일은 아닐꺼예요." "모 몰라. 우리 누나는 정말 무섭단 말이야!" 괜히 누나가 생각나서 부들부들 떨고있는 라크레일. 확실히 라크리마에게 조교가 잘된 동생이다. 하지만 그렇게 혼날걸 알면서도 가끔 일을 꾸미던데[...] 다행히도 단단히 굳어진 그를 케리가 구원해주었다. "라크레일. 라크리마 한테는 내가 잘 말해줄께." "...하지만... 저 실버 드래곤 누나는 우리 누나한테 미움 받고 있는데." "걱정하지마. 사람을 살리는 일이니까. 내가 말하면 라크리마도 들을꺼야. 그렇지?" 사람이 아니라 드래곤인데...(...) "에이 좋아 뭐 모르겠다!" 그제서야 눈을 질끈 감고 라크레일이 마법을 시전했다. "힐링! 큐어 포이즌! 큐어 헤비 운즈! 스테미너 리플레쉬!" 몇번씩 연속으로 회복마법을 걸어 넣는 라크레일. 그 덕분에 마법끼리 효과가 상호 증폭되어 확실한 회복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비막을 비릇하여 온 몸의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고 부드러운 비늘이 돋아나 그 위를 덮었다. 몸 속에 가득하던 독기도 단번에 정화되어 버렸다. 언제나 눌려살고 쥐어살지만 과연 라크레일도 성룡. 대단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정도 치료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게 해낼 정도로. 베로니카의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기절한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서 곤란했다. 본체 상태인 그녀를 옮길 수단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케리는 라크레일과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폴리모프 시켜서 데려가면 어때?" "그게 말이지... 저 누나는 나보다 나이가 300살 이상은 많거든. 폴리모프 같은 걸 걸려고 하면 마법저항능력으로 막아내려 할꺼야." "네가 짊어지고 가면 어때?" "...그... 그래야 할까? 그것밖에 방법이 없나..." 라크레일은 식은 땀을 흘렸다. 실버 드래곤은 스톰 드래곤보다 약간 작은 편이긴 하지만 베로니카의 나이가 300살은 더 많았기 때문에 베로니카 쪽이 라크레일보다 약간 컷다. 베로니카는 약간 우량아이기도 했고... 드래곤이 힘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물체를 들고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냥 이대로 깨우는게 좋지 않을까?" "...글세..." 케리는 베로니카의 거체를 바라보면서 대체 드래곤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치거나 흔드는 정도로는 정말 꿈쩍도 안할것 같은데, 완전히 덩치가 언덕이니 원.' 다행히도 그 답은 세린이 내놓았다. "걱정마세요. 베로니카 언니는요. 이렇게 하면 꼭 일어나요." 세린은 양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서 손나팔을 만든뒤 크게 소리쳤다. "실버 드래곤은 잠꾸러기! 실버 드래곤은 게으름뱅이! 맨날맨날 먹고 잠만 잔데요!" 그 소리가 울려퍼진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베로니카의 커다란 눈꺼풀이 단숨에 위로 말려올라가고 수레바퀴 보다 더 큰 눈동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단숨에 몸을 일으키더니 크게 포효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세린양! 그런 상스러운 욕은 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나요! 자 어서 엉덩이를 들이대요! 오늘은 정당한 법칙에 의거하여 32대 맞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우리 실버 드래곤 일족에게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처벌법에 따른 것이예요. 레드 드래곤 들은 어릴 때부터 애를 귀여워 하면서 키우기만 하니 이렇게 버릇이 없다니까. 에잉 쯧쯧.] 마치 대본으로 써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그 광경에 케리와 라크레일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세린쪽을 돌아보았다. "...일어났다. 어떻게 된거야?" "뭘 어떻게 한거니. 세린아." "베로니카 언니는요. 제가 항상 저렇게 깨웠거든요. 다른 방법으로 깨우면 절대 안 일어나요. 그런데 신기하게 저렇게 말하면 꼭 일어나더라니까요. 재미있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제 실수로 그만..." 베로니카는 그 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케리 앞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케리는 라크리마의 주인, 라크리마는 베로니카의 주인, 그러므로 주인의 주인은 주인 이라는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고개 숙이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녀는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해야 하는 생애 최대의 치욕을 감수해내느라 속으로 피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니. 괜찮아. 베로니카는 열심히 일하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오히려 내 쪽이 사과를 해야 할 판이지. 라크리마가 돌아오면 앞으로 베로니카에게 너무 심하게 대하지 말라고 말해줄께." '너 같은 털없는 원숭이 일족의 도움 따위는 필요없어! 동정을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친한 척 말하지마! 내 주인 행세하지마!'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현실적 제반 사항이 넉넉하지 못했다. 케리에게 그렇게 소리질렀다가는 라크리마가 돌아온 뒤에 무슨 흉변을 당할지 모르니 말이다. 베로니카도 라크리마가 얼마나 케리를 아끼는 가는 잘 알고 있었고, 케리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도록 몇번이나 충고, 아니 협박 당한 뒤였기 때문이다. "아...니..이...요..오... 구하러... 오셔서... 감사합니...다아..." 그래서 어설프게 일그러진 미소짓는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웃지도 화내지도 못하는 괴상한 얼굴이라 그 모습을 보고 세린이 킥킥 거린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나저나... 나를 치료해 주신건... 당신이겠죠? 라크레일...이라고 했던가요?" 베로니카는 라크레일 쪽을 바라보고 그렇게 말했다. 라크레일은 속으로 갈등에 빠졌다. 베로니카와 자신의 관계가 뭔가 난감했기 때문이다. 라크리마는 라크레일의 누나고, 베로니카는 라크리마의 노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며, 라크레일 자신에게 까지 복종하라는 명령을 베로니카는 받은적 없었다. 베로니카도 상대를 어떠헥 대해야 할지 복잡한 생각이 들 뿐이라서 그냥 드래곤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듯이 하기로 했다. "으으음... 뭐...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거... 게다가 요즘엔 제가 바쁜 사이에, 세린까지 맡아주시고..." 세린은 지금도 라크레일에게 꼭 달라붙어 있었다. 아직 베로니카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한 것이었다. 라크레일은 이상하게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것이 껄끄러웠던 탓에, 공을 케리에게 돌려버렸다. "아니. 감사의 말을 하고 싶다면 저 인간한테 해줘요. 난 별로 치료할 마음이 없었는데... 저 사람이 부탁해서 한 거니까." "...웃!" 그 순간 케리 쪽을 돌아보는 베로니카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케리는 자신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아닌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베로니카는 혼자서 파랗게 질려서는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낼 정도로 부들부들 떨다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가 가치관의 치명적인 붕괴가 일어난 것 같은 표정으로... "왜... 왜 그래?!" 케리는 그녀에게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되어 소리쳤지만, 베로니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 만큼 라크레일이 방금 그녀에게 한 말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모든 가치관과 인생관에 큰 타격을 줄 정도로. "인간에게 도움을 받다니... 내가 인간에게 도움을 받다니... 이 내가... 인간에게..." 그녀는 그렇게 독백했다. 어릴 때부터 그녀가 받아온 교육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계의 생물 중에서 가장 천한 종류들 중 하나였다. 드래곤에게 인간이란 오크나 오우거와 별 차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약간 더 머리가 좋기는 하지만 드래곤 기준으로 볼때는 거기서 거기였다. 게다가 주제에 자존심은 강하고 길들이기도 쉽지 않은 생물, 가끔 가다가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겠다거나 아니면 드래곤의 보물을 훔쳐가기 위해서 레어에 쳐들어 오는 불나방 같은 쥐새끼들. 베로니카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한없이 천하고 하찮은 존재로서 관계하기도 귀찮은 그런 종족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드래곤은 마력이나 육체, 지력 면에서 월등할 뿐더러 그녀 자신의 생각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종족이고 또한 위대한 종족이다. 특히나 실버 드래곤은 그 중에서도 최고이며 그들의 우두머리인 자기 아버지 실버 드래곤 로드는 정말 정말 위대한 사람이고 또한 그 딸인 자기 자신도 따라서 아주 고귀하고 위대하다. 라는 사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사소한 일도 아니고 생명의 위기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받다니. 정말 그녀에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여지껏 그녀는 수많은 치욕을 당해왔지만 지금 보다 더 큰 치욕을 느낀 적은 없었다. 명령을 받고 강제로 당하는 것이야 '고난에 빠진 공주님'이 되었다는 심정으로 이겨낼수 있을테지만 '도움'을 받는 것은 그런 식으로 버텨낼수 있는 것과는 성질이 틀린 것이다. 베로니카의 자존심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고귀한 자는 그만큼 많은 책임을 진다는 점 에서 비릇되고 있었으므로 '천한 것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은 있어도 도움을 받는 다는 일은 결코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일은 이미 터지고 말았다. 그녀의 가치관에서 그녀는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을 해버린 것이다. 결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은 것이다. "인간에게 도움을 받다니 이건 드래곤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야. 여지껏 수많은 치욕을 겪었지만 내가 이런 치욕을 겪게될 줄이야. 이러고서 어떻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뵐 수 있지? 아아 난 틀렸어. 난 이제 끝장이야. 더 이상은 드래곤으로서 살수없어. 내 자존심과 긍지는 땅바닥에 떨어져서 흙먼지 속에 뒹굴어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린 거야. 게다가 결국 원인을 따져보면 나 자신의 실수에 있는 것이잖아. 으으... 그때 싸우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이 있을리는 없을 텐데. 내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수가... 으아아아아..." 그녀는 미친여자 헛소리 하듯이 중얼중얼 거렸다. 완전히 나락에 떨어져 버린 것 처럼 이미 주변의 상황이 아무것도 인식되지 않았다.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던 그녀는 그 자리에 쓰러져서 기절해버렸다. "어이! 정신차려!" 결국 혼절해버린 베로니카는 라크레일이 업고 와야 했다. 라크레일은 마법으로 힘을 증가시켜서 가볍게 그녀를 들 수 있었지만, 무거운 것을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지라 상당히 불편해 했다. 그래서 도중에 몇번씩 케리와 교대로 업어가면서 마을까지 돌아왔다. 마을에는 어느 사이에 라크리마가 돌아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니임~! 보고싶었어요~" 라크리마는 강아지가 처럼 달려와 케리에게 뺨을 부벼댓다. 정말 잠시 떨어져 있었던 것 뿐인데도 그녀는 굉장히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얘는 내가 돌아왔는데 자빠져서 자고 있네?!" 쓰러져 있는 베로니카를 발견한 라크리마는 한방 날려줄 기세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그러나 케리가 그녀를 만류했다. "베로니카도 많이 고생했으니까 너무 괴롭히지마." "하지만..." "오늘은 그냥 쉬게 놔둬." "예..." 평소에는 베로니카에게 엄격하기 짝이 없는 라크리마도 케리가 명령하자 고분고분 하게 말을 들었다. 하지만 머리속으로는 베로니카를 좀 더 괴롭힐 방법을 차근차근 구상해놓고 있었다. 그 때, 아마레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라크리마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물어보러 간 것은... 잘 안됐지?" "응...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도저히 될 일이 아니래.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데..." 아마레는 과연 그렇게 될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수 없어. 고룡 분들이 이런 일에 허락을 내려주실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한 나는 이미 해결책을 구상해 뒀지!" "오호. 폼으로 골드인 것은 아니었던 거냐?" "호호호! 천년 이상 갈고닦아온 골드 드래곤의 지혜를 지금 맛보기로 보여주마! 쨔잔!" 그렇게 소리친 그녀는 한참 전 부터 슥삭 거리고 있던 도면을 확 펼쳐보였다. "오옷!" 일동은 그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감탄을 했다. 뭔지도 모르면서... 도면에는 뭔가 탑으로 보이는 물체와 별별 이상한 도구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저것 해괴한 계산식과 마법용어가 잔뜩 써있었다. 그 정도 뿐이라면 모르겠는데 너무나 난잡하기 그지 없어서 한눈에 그걸 파악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이게 뭐야?" "훗. 설명을 요구할줄 알았어. 이것은 말이지." 아마레는 자신 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도면의 물체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온실'이라고 이름 붙인 시스템인데, 사실 컨트롤 웨더 방식은 금지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실 대규모의 마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부 지역의 기후를 바꾸는데 쓰는 것 치고는 효율이 너무 떨어져. 우리의 목적은 농사를 잘 짓도록 기후를 일부 조정하는 것 뿐이거든. 그러니까 지상층의 기후만 변화시키면 되는 거야. 상공 몇천미터 위에 있는 구름까지 간섭할 필요는 전혀 없지. 그래서 내가 구상한 이 시스템은 말이지. 이 지역 일대를 거대한 에어 실드로 감싸서 외부와의 대기소통을 저하시킨뒤 불의 정령을 이용해서 안을 따끈 따끈하게 덮히는 거지. 이 탑은 결계의 역활과 온도 조절의 역활을 동시에 할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이걸 영지 주변의 산 꼭데기에 세개이상 지어놓고 가동시키면! 이 영지 전체는 사시사철 따듯한 날씨를 유지할수 있다! 이런 거야." 좀 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마법으로 거대한 온실을 만들어서 영지 전체를 감싼다는 것이다. 말로는 정말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일이다. 마을 몇개를 감싸는 에어 실드를 만든다는 것 부터 그 내부를 전부 덥게 만들 열량을 확보하는 것 까지, 마법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한 계획이다. 드래곤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불가능 하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계획인 것이다. 드래곤들은 농사를 지을 일이 없으니까 이런걸 만들 생각도 안하는 것이고. "대단하다. 아마레! 이런걸 생각해 내다니!" 케리는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이 기뻐했다. 이런 마법 시스템이라면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수 있게 되버리니 식량난 정도는 간단히 해결될 테니까. 아마레는 콧대가 하늘까지 치솟아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에헴. 모든 드래곤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골드 드래곤이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그러나 라크리마는 도면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마레의 설명을 듣자 라크리마도 이 도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챌수 있게 된 것이다. 분명히, 이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절박한 것이었다. "근데 이걸 누가 다 지어? 뭐 노동력이야 어떻게 한다고 해도... 돈은? 나는 레어가 날아가서 소지금은 거의 바닥 수준인데... 용돈 정도 밖에 안 남았어." 사실 소지금이 바닥 수준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라크리마의 포켓머니(용돈)정도도 충분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몸 부품을 교체하면서 자연스럽게 거금이 손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일단 비축해두었던 저축금이 바닥이 났으니 이런 거대한 마법 프로젝트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 "...에..." 확실히 돈 문제에 들어오자 아마레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골드 드래곤인 만큼 괜히 금값이 아닌 지라 재산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그녀였지만, 이런걸 만든다고 생각하니 그녀에게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는 것 같아서 이다. 골드 드래곤이라고 해서 마냥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아마레는 그 뛰어난 두뇌로 곧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라크레일에게 시키자. 난 이거 설계했으니까 됐지?"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난 지금 돈 없으니까 라크레일이 돈 가져오면 되겠구나." "에? 왜 내가?" 갑자기 일을 떠맡게 된 라크레일은 입이 쩍 벌어졌다. 아니 얼마가 들어갈지도 모르는 사업을 갑자기 떠맡기다니. "난 이거 설계했잖아. 이거 설계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마나 배치를 적당히 짜맞춰서 거대한 결계를 형성하는게 어디 쉬운 일인줄 알아?" "난 지금 돈 없어. 누나 돈 없는거 잘 알지? 라크레일. 그렇다고 우리 사이에 모른척 넘어가지도 않겠지? 응?" 두 여자는 생긋이 웃으면서 태연하게 라크레일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는 '네가 돈 내'라는 엄청난 압력이 들어있었다. 졸지에 물주가 될 위기에 처한 라크레일은 구원을 청하는 눈으로 케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복잡한 문제에 관여하기 싫다는 듯이 재빠르게 뒤돌아 서 있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린을 바라본 그였지만... "오빠. 이거 멋있겠다. 한번 지어봐요!" 어린애 답게 뭔지도 모를 장황한 계획에 쉽게 현혹되어 있었다. 결국 탈출로가 막힌 라크레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승락하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건설 계획이 떨어졌다고 해서 지금 당장 짓는 것은 무리였다. 그 이유는 농민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인데 아무리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농사짓는 도중에 공사일에 끌려나가기는 싫었을 뿐더러, 대규모 토목공사에 동원되는 것은 확실히 고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체 인구를 다 끌어낸다고 해도 고작 백명도 못 미치는 사람들이니 거대한 탑 세개를 짓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보통 영주라면 채찍질을 해서라도 강제로 끌어내서 공사에 동원했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약한 케리는 차마 이 사람들의 사정을 알고서도 토목공사에 나오라고 강요를 할수는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한 방법은 외부에서 인부들을 사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외부에서 사온다고 해도 말처럼 간단히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근처 영지들도 일손이 굉장히 부족할 정도의 형편이어서 쉽게 일할 사람을 구할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근처 도시까지 나가서 인부를 사오기로 했다. 대상지는 가장 가까운 도시인... 라크리마가 전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난리가 났던 경력이 있는 도시인 카에리온 시티 였다. 라크레일이 피눈물을 흘리면서 레어에서 들고온 금은보화(보물을 좋아하는 드래곤들이니 보물이 줄어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를 드래곤이라면 누구나 다 들고다닌다는 필수용품(굳이 드래곤이 아니라도 뛰어난 마법사라면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학설도 있는) 무한대의 주머니(오오 나왔다! 이 편리한 아이템이!)속에 집어넣어서 이번에는 라크리마와 케리가 단 둘이서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카에리온 시티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네요." "너랑 내가 처음으로 만난 데잖아." "어머나 세상에. 그 로맨틱한 장소를 잊어버리다니. 제 머리도 참..." '...솔찍히 별로 로맨틱한 만남은 아니었는데...' 케리는 잠시 과거를 회상해보았다. 그 당시는 빚더미에 올라앉아서 옷 한벌만 남기고 다 털린 모험자 신세였는데, 지금은 드래곤 친구가 다섯에 작으나마(너무 작지만) 영지까지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실력도 어느 정도는 향상된 것같다고 스스로는 느끼고 있었고...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발전이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결과적으로 놓고보면 상당히 행복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에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크 크로스 로드 시티에서 한번 만난 이후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에마는 실력있는 용병이니 어쩌면 대마족 전쟁터에 나왔을 지도 모르는데... 에마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래도 여동생이 걱정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용병의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을리가 없으니 더더욱 걱정되었다. '무사히 살아있었으면 좋을텐데... 용병 같은 험한 일도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그만... 좀 더 행복하게 살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저번 전쟁터에 나가지는 않았겠지? 나갔다면 큰일인데... 에마의 실력을 못 믿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으햐. 이거... 참담하네..." 카에리온 시티 성문으로 들어선 케리는 그가 살았던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쇠락해버린 이 도시의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가슴한쪽이 썰렁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때 그가 청운의 꿈을 걸었던 이 도시는 라크리마의 습격 사건 이후 완전히 쇠락해서 도처에 빈집이 널려있고, 언제나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던 시장 거리도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전쟁에 생긴 난민들까지 모여드는 바람에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굉장히 어두워져 있었다. 이 도시가 쇠락했다는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던 케리는 이 일에 자신의 책임도 확실히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달리 피해를 보상할 방법은 없었으므로 그냥 잠시 묵념을 해주었다. "혹시 날 알아볼 사람은 없을까..." "글세요. 주인님 외모는 저랑 처음 만났을 때랑은 많이 틀려졌잖아요. 아마 왠만해서는 알아보기 어려울 껄요." "하긴..." 라크리마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어디 인부를 구할 곳이 없나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인부를 구하려면 어디로 가는게 좋을까?" "전 인간 세상 일은 잘 몰라서 모르겠는데요." "......하긴 그렇겠다." "으음... 주인님은 여기서 살때 일자리 구하려면 어디로 가셧어요?" "난 모험자 길드나 용병 길드 같은데 들어갔었지... 하지만 그런데는 일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리는 없을테고... 길드에 의뢰를 한다고 하면 역시 목수 길드에 가보는게 좋을까?" "그게 좋겠네요. 일단 소문을 퍼트려서 사람들을 많이 모은다고 해두면 일자리를 찻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러고보니까 영지에 경비병도 없었지. 마을 청년들로 구성된 자경단이 있기는 하지만..." "경비병은 필요없지 않아요? 마법 생물들을 만들어 두면..." "아냐 마법 생물들은 별로 믿음이 안가." 마법 생물들의 단점은 아무래도 사고의 틀이 진짜 생물과는 달리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협적으로 되어 있어서 내려진 명령에 약간의 논리적 오류가 있으면 그 오류에 걸려서 자멸해버릴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명령을 왜곡해서 수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일례로 예전의 용아병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럼. 용병 길드에도 가보는게 좋겠네요." "음... 그래. 아 목수 길드가 저쪽에 있었지..." 목수 길드도 과연 최근의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굉장히 한산한 분위기가 엿보였다. 케리는 이런 큰 일감을 의뢰하면 저 자들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목수 길드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그 옆에 있는 무기점으로 눈이 돌아갔다. 케리가 타고 있던 말의 발걸음이 딱 멎어버리자 의아하게 생각한 라크리마가 그를 향해 물었다. "...뭐하세요? 안 가고?" "저...저거...저거..." 그 무기점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 중에서 그의 눈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언듯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하프 플레이트 갑옷 세트와 검으로 보이는 물건이었지만, 사실 그 갑옷과 검에는 엄청난 내력이 숨어 있었다. 케리가 그 내력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가 모험자 시절에 입고 다녔던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라크리마와 만나기 얼마 전에 빚쟁이들에게 털려나간 물건이 이런 장소에 방치되어 있을 줄이야. 비록 내력에 비해서 별다른 능력은 없었지만 튼튼하기 짝이 없는 무기와 갑옷이었기 때문에 몇번이나 그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물건이었다. 그가 여러번 실패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살아날수 있었던 것은 이 무기들의 도움이 컷었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상당히 엄청난 것을 지니고도 실패만 반복한 머저리 같은 놈이 되는 거지만, 그래도 자신이 애착을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다시 발견한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수가 없었다. 라크리마도 케리를 이상하게 쳐다보다가 그 장비들을 보고 잠시 기억을 떠올리더니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냈다. 그녀도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저거. 카리온님의 갑옷이랑 칼이네요? 저게 왜 여기에..." "라크리마! 저거 빨리 사야해! 누가 사가기 전에 어서!" "예에!" 다행히도 그 장비들은 내력에 비해 겉모습은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하다보니 무기점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무기점 주인은 그 장비들을 팔려고 그 장비에 얽힌 내력을 장황하게 이야기해도 대부분의 모험가들이 믿어주지 않아서 팔리지가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긴 이런 평범한 무기점에 용사 카리온의 장비가 방치되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말을 하면 불신을 받아 더 안 팔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쨋건 덕분에 살 수 있게 된 케리에게는 다행인 일이었으나... "...못 입겠다. 이거..." 라크리마가 열심히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갑옷들은 케리의 몸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에게는 약간 큰 갑옷이었지만, 여성화 되었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오는 진통을 겪으면서 몸이 아주 가늘고 날씬해져 버린 탓에 가슴 보호구는 헐렁 헐렁, 어깨 보호구는 어깨 폭에 맞지 않고, 팔 다리도 가늘어져서 건틀렛과 슈츠도 빈 틈이 너무 많이 남아 도저히 사용할수가 없었다. "저기 손님. 그래도 사가실 꺼죠? 이건 대단한 물건이란 말입니다." 무기점 주인은 기껏 사가려는 손님이 나타났으니 귀찮은 물건을 처분하고 싶어서 한껏 미소를 띠면서 독려했다. 케리는 물론 몸에 맞건 맞지 않건 집안의 가보인 만큼 다시 사가려는 생각이었지만, 모처럼 다시 입어본 갑옷이 몸에 전혀 맞지 않자 마음이 울적해져서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헐렁하게 나마 몸에 갑옷을 맞춰둔 라크리마는 아주 태연하게 갑옷을 향하여 명령을 내렸다. "용사의 갑옷이여, 너의 주인의 몸에 맞추어 변할 지어다." 라크리마가 명령을 내린 순간 갑옷은 자기 스스로 줄어들어서 케리의 현재 몸에 딱 맞도록 변화했다. "에엑?!" 라크리마는 너무나 태연하게 한 행동이었지만 무기점 주인과 케리는 깜짝 놀랐다. 설마 그들은 이 갑옷에 이런 기능이 내장되어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특히 케리는 자신이 오랫동안 써왔던 갑옷이 단순히 단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런 마법 능력까지 내장되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뭐 적어도 용사의 갑옷이니 의외로 대단한 기능이 숨겨져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이......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손님?" 설마 자신이 팔고 있던 물건이 마법 무기일줄은 몰랐기 때문에 주인이 더 놀라서 라크리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라크리마는 태연하게 설명했다. "그야 용사 카리온의 갑옷이니까 이 정도 기능은 내장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죠. 그건 그렇고 설마... 값을 올려받는다던가 하지는 않겠죠?" 무기점 주인이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 것을 뒤로 하고 케리는 멍하니 갑옷과 검을 입고 무기점을 나섯다. 설마 자신도 모르는 기능을 라크리마가 알고 있었다니... 분명히 라크리마는 직접 카리온과 만났던 사이니까 이 갑옷의 이런 기능을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라크리마, 이 갑옷... 원래 마법 갑옷이었던 거야?" "당연하죠. 아무리 휴면기가 다가와서 약해졌다지만 설마하니 보통 무기를 가지고 저를 이길수 있었겠어요?" 틀림없이 아무리 용사라고 해도 드래곤과 대결하는데 그냥 무기를 가지고 이길수 있었을리는 없고, 마법이 걸려 있는 갑옷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거 다른 마법도 걸려있는거 아냐?" "뭐 설명하자면... 우선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을 1/3로 줄이는 마법이 걸려있어요. 그리고 대 마법, 대 물리, 대 전격, 대 독성, 대 화염, 대 냉기, 대 산성, 대 수압 그외 기타 등등등... 거의 주인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갑옷이지요." "...이런거였다니. 난 쓰면서도 몰랐단 말이야!" 그러고보면 이상하게 케리는 자신이 죽을 뻔한 위기에서도 살아나온 적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단순히 갑옷이 단단하구나 라고 생각했지 이런 대규모의 마법이 걸려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내 파티 중에도 마법사가 몇명 있었던 적이 있는데 왜 아무도 안 가르쳐 줬던 거지?" "글세... 아마 주인님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건 아닐까요?" "하긴 조사하게 잠시 보여달라고 하면 조상님의 것이라서 함부로 넘겨줄수 없다고만 대답했었지. 설마 이렇게 엄청난 건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 식으로 대답하니까 그냥 효과를 알고 있나보다. 라고 짐작했겠죠." "그러고보면... 혹시 이 검에도?" "그 검도 물론 마법검이예요. 에 그러니까 이 검의 능력으로는..." 그 뒤로도 라크리마는 한참동안 무기들의 성능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케리가 이 무기들의 능력을 제대로 몰랐던 이유는 상당수의 방어 기능은 소리소문도 없이 발동되는 것이었고, 그외 특별한 기능들은 대부분 키워드를 외치거나 강한 의지로 작동을 원해야 하는 것으로 발동 되도록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발동시키는 방법을 몰랐으니 마법 무기라는 것을 알리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카리온 자신도 무기에 마법이 걸려있다는 것을 눈치채이는 것이 싫었는지(확실히 적에게 탐지되면 귀찮을 거이다.) 탐색을 방해하는 마법까지 걸어두어서 마법사들도 뭔가 무기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수있었지만 정확하게 무슨 효과가 있는 지는 전혀 모르도록 되었기 때문에 케리는 수많은 모험을 하면서도 이 무기가 마법무기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상당히 허접한 모험가였고, 그 때문에 설마하니 그가 지닌 무기가 이렇게 엄청난 것이라고는 아무도 짐작조차 못했던 까닭도 있었으며 그가 동행했던 파티들도 상당수 별 볼일 없었다는 점도 원인이 되었지만. "어쨋든간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았다는 건 좋은 징조예요. 이 도시에서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것 같아요." "그래그래... 어쨋건 좋은 일이지. 그럴꺼야..." 뭐 과거야 어찌됐건 현재가 좋으면 좋은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목수 길드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목수 길드의 협력은 예상대로 쉽게 얻을수 있었다. 역시 도시가 쇠락함과 동시에 요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판이라 이런 요구는 대환영이었던 것이다. 목수 길드 마스터는 후하게 집어주는 선금에 입이 찟어져라 좋아하면서 자기가 직접 공사를 감독하고 일꾼들도 모아주겠다는 호의를 내비쳤다. 게다가 석공 길드와 미장이 길드 등 다른 토목관련 길드에게도 알아서 협력을 요구해주겠다는 말 까지 덧붙였다. "일이 잘 풀리는 구나..." 카에리온 시티에서는 안 좋은 추억만 잔뜩 있었던 케리는 별다른 문제없이 일이 잘 풀려나가자 굉장히 기뻐했다. 라크리마는 인간세상에 나온지도 꽤 되었는데 뭐가 잘 풀려나가는지 확실히 모르는 관계로 그냥 따라서 기뻐했다. "다음에는... 용병 길드로 가야 하는군..." 케리도 몇번이나 용병 길드에 들려봤기 때문에 용병 길드의 위치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모험가 시절 돈이 떨어지면 용병 길드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일거리를 받아오곤 했던 것이다. 물론 불행히도 제대로 처리한 일은 몇개 없어서 얼마 뒤에는 길드에서 내쫓기게 되었지만.(...) 도시의 쇠락 상태를 반영하듯 용병 길드 건물은 그가 이 도시를 떠나기 전 보다 훨씬 낡아 있었다. "실례합니다." 말을 입구 근처에 메어두고 길드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쩍 마른 사환 타입의 중년 사내가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용병 길드는 흥미롭게도 1층을 주점 및 오락장(당구나 체스 등)과 겸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이용자는 용병이다. 최근에는 의뢰도 많이 줄어버린 탓에 이곳에서 놀고 있는 용병들의 숫자가 더욱 불어나 있었다. 벽에까지 베어든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용병들 중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궐련이 아니라 파이프 담배지만. 체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담배를 기피하는 용병도 있었으나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직업인 만큼 흡연과 음주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용병 길드 맞지요?" "신참인가? 으음... 보아하니 별로 힘을 잘 쓸것 같지는 않은데. 정령사나 마법사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으흠... 마법사가 검과 갑옷을 걸치고 있을리는 없으니 자네는 정령검사겠군. 그럼 저 뒤의 여자분은 마법사지?" 아무리 케리가 여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지만, 카운터의 사내는 사람 상대하는 일로 이력이 난 몸이라 남자라는 것을 알아볼수 있었다. 하지만 왜 사람이 온 목적도 물어보지 않고 신참으로 단정하는 것일까? 무장을 하고 있다지만 케리의 신체는 아무리 봐도 용병 타입은 아닌데... 하긴 요즘에는 별별 놈들이 다 있다는 보고가 있으니 혹시 또 모르지만. 그는 신참 용병으로 보이는 케리를 걱정해서인지 여러마디 충고를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최근에는 의뢰가 적네. 용병으로 등록해도 수입은 별볼일 없을지도 몰라. 아 내가 이런말 했다는거 길드 마스터에게 말하지는 말게. 길드 입장에서는 용병 하나의 가입비라도 더 챙기는 쪽이 이득이니까. 하지만 역시 요즘은 장사가 안돼. 나도 요즘 전직을 고려하고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자네가 초짜 용병처럼 보여서 충고해주는 거야. 차라리 다른 도시로 가렴. 내 생각에는 저 동쪽에 있는 그... 아 나도 그쪽으로 옮길 생각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상당히 걱정하는 것 처럼 말하기는 하지만 본래 목적은 자신이 옮길 용병 길드를 광고하려는 목적인듯 했다. 길드 사무원이 노골적으로 다른데로 옮기겠다고 말할 정도면 확실히 갈데까지 간 것인가. "...전 의뢰인 인데요." 하지만 그 단 한마디에 그는 태도를 확 바꾸었다. "아하하하하. 이거 의뢰인 이셧군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신가요? 호위? 운반? 뭐든지 다 해드리겠습니다. 에 하지만 저라면 좀 더 동쪽 도시로 가서 그 길드에서 의뢰를 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데..." 아니 별로 태도를 바꾼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다른 길드를 선전하는 인간을 입구에 앉혀두다니 대체 길드 마스터가 어떻게 된거야?' 케리는 속으로 약간 짜증이 났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엉망이고서야 신용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아무래도 사람이란 번듯하게 질서가 잡힌 조직에 믿음을 느끼는 법이지 엉망진창으로 다 허물어져가는 분위기를 풍기는 콩가루 조직에는 믿음이 안 가는게 당연한 이치였다. "경비임무, 필요한 인원은... 한 20,30명 정도? 기간은 내년 봄 까지로 잡아서." ".........왠만하면 다른 길드로 가시는게..." "그냥 마스터를 불러주세요." "저기 어지간하면..." "마스터를 불러주세요." 결국 그는 할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2층의 마스터 사무실로 케리를 안내했다. 케리는 대체 어떤 인물이 마스터 이길래 길드가 이 모양이 되도록 방치해 두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히 그가 있을 당시에 길드 마스터였던 레이스 그람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길드가 이 꼴이 될때까지 방치해둘 리가 없었는데 말이다. 철커덕 "길드 마스터. 손님 왔습니다." "들여보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히 레이스 그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좀 더 가늘고 여린 톤,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를 건조함이 가득 베어있는 쓸쓸한 목소리. 케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그 목소리의 주인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후 케리는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깨닳았다. 무리해서 마스터와 만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길드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이면 다른데로 가버리는게 더 나았다. 좀 더 먼 도시라고 용병길드가 없을리가 없으니까. 아니 최소한 그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하다고 느낀 순간 뒤로 돌아서 나가버려야 했다.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한 소녀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못할 경험의 흔적이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머리색은 회색,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게 무척 우울하게 보이는 색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케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빨려들어 가듯이 눈을 맞추고 있었다. "에마?" 무의식중에 그는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 이어 그 소리가 제발 상대에게 들리지 않았기를 기원했다. 길드 마스터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동생인 에마였다. 왜 그녀가 길드 마스터가 되어있는 걸까? 라고 생각해보면 별로 납득이 안가는 일도 아니었다. 블러드 레인, 피의 비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에마는 강했다. 아니, 이미 그녀의 강함은 일반인의 경지를 초월하고 있었다. 사실상 에마는 거의 초인에 가까웠고, 케리는 자신이 나름대로 강해졌다고는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녀를 이길수 있을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실력상으로는 길드 마스터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그 상식을 초월한 강함 앞에서 나이가 문제될리도 없었다. 게다가 똑똑하고 냉철한 성격이다. '제발 알아보지 말아줘. 제발 알아보지 말아줘. 제발 알아보지 말아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케리는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분명히 이 과도하게 미소년 틱한 외모는 자신의 정체를 가려줄 것이다. 틀림없어. 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가 케리를 향해서 한 말은 그 기대를 여지없이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렸다. "무슨 일이시죠? 케리 레그너스 씨." "마스터. 아는 사람이셧습니까?" "응." '뭐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케리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등 뒤에서 양 팔을 붙잡아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아버리는 존재가 있었다. 여태까지 있는듯 없는듯 계속 조용히 있던 라크리마였다. 그녀는 케리의 귓전에다가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 도망치시면 안돼요!' '우읏...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그 사이 에마는 자연스럽게 안내인을 향해서 내려가라는 손짓을 했고, 그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이제 완전히 퇴로가 차단된 케리는 그녀와 마주보게 되버렸다. 케리는 멋적은 듯이 인사를 했다. 달리 취해야 할 행동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안녕..." "응. 안녕." 하지만 너무 당황해서 우왕좌왕 하는 케리와는 달리 에마의 태도는 침착하고 태연했다. 마치 둘 사이에 쌓인 오랜 앙금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 처럼... 특별히 환영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적대시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떻게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수 있었는지 조차 알수없는 케리는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빠를 알아보는 건지 궁금해?" "...에..." 오히려 에마 쪽에서 먼저 케리의 생각을 읽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는 실제로 케리의 사고 패턴을 완전히 들여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있었거든. 저번에 토너먼트 대회에서 만났을 때부터 말이야. 내가 한번 만난 사람을 착각할리가 없잖아? 게다가 '드래곤'의 존재감을 말이야. 몸에 용의 피가 흐르는 주제에 드래곤도 못 알아볼리가 있겠어?" '난 아직도 못 알아보는데...' "그렇다고 드래곤이 한번 정한 주인을 쉽게 바꿀 만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 따라서 그 스톰 드래곤과 함께 다니는 사람은 오빠 외에는 없어. 그럼 결론은 하나 뿐이지. 뭔가의 이유로 폴리모프 마법에 걸렸던가 저주를 받았다던가. 드래곤을 가까이 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는 것도 별로 드문 일은 아닐테지. 그 다음 행적을 추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마족들이 침략해온 뒤에는 아주 별별 난리를 다 치고 다녔고 온 나라에 소문이 났는데 못 알아보는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역시 넌 나보다 한수 위구나..." 생각해보면 거의 전 국가적인 히어로가 되었던 주제에 자신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눈치 못채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게다가 에마처럼 날카로운 여자라면 더욱 더. "그럼 여기 올 것도 예상했던 거야? 그리고 어떻게 용병 길드 마스터가 된건데?" "난 예언자가 아니니까 예상했던건 아니지. 넘겨 짚은것 뿐이야. 범인이 사건 현장에 돌아오듯이 출세한 사람은 고생하던 곳에 한번쯤 와 보고 싶어하는 법일 테니까. 언젠가 한번은 올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었어.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지만, 용병 길드 마스터 자리야 뭐 반쯤 우연으로 되버린 거고..." 케리는 에마의 날카로운 예측에 감탄했다. 그녀가 자신의 정체를 모르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전부다 꿰뚫어보고 있었다니. 게다가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 동요를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화내거나... 적어도 놀랄줄 알았는데...' "뭐야 그 표정은? 내가 화라도 내줄줄 알았어?" "...윽, 화난거 아니었어?" "뭐 하러?" 에마는 싱긋이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케리도 그녀의 의도를 짐작해보려 했으나 그로서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드래곤 이야기라면 포기한지 오래됐어. 드래곤이 한번 결정한 일을 번복할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넌 그 전부터." "음 오빠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솔찍히 그렇잖아? 집안 다 말아먹고도 정신 못 차리고 모험이나 하고 다닌다는게. 그런 주제에 그렇다고 모험은 제대로 하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잖아. 허구한날 실패만 하고 다니니까... 그러니까 곱게 보일리가 있나. 오빠라도 내가 저런 식으로 하고 다녔으면 곱게 보였겠어?" "...으윽" 확실히 찔리는 일이었다. 케리 자신이 생각해봐도 자신이 했던 모험 중에서 제대로 끝난 경우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로 상당수가 참담한 대실패를 겪었고 그 원인중 상당수는 또한 그의 실수 때문. 원채 사람을 잘 믿고 주의력이 없으며 교활하지도 않은 성격이라 피해를 많이 봤던 것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 문제는 에마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미안해...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알면 됐어." "...에?" "알면 됐다고. 나 쪼잔하게 옜날 일 계속 물고 늘어지는 타입 아니니까. 생판 남도 아니고... 그러니까 평생 안 보고 사는게 자랑 거리도 아니잖아? 후회하고 있으면 됐어. 하지만 오빠가 계속 드래곤 레어에 처박혀서 아무 일도 안하고 사치와 환락에 빠져 있었다면 정말 평생 용서할수 없었을 꺼야. 드래곤의 힘을 믿고 제멋대로 설치고 다녔다면 더욱 용서할수 없었겠지. 가문을 싸그리 말아먹은 주제에 핏줄 덕분에 힘을 지니게 된다는게 말이나 될 것 같아?" 에마의 이야기를 듣고 케리는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과연 라크리마를 믿고 제멋대로 설치고 다닌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은 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혹시 자신은 라크리마의 힘을 믿고 또 다시 모험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없게 느껴졌다. "미안해. 에마. 너는 그렇게 말하지만... 난 솔찍히 약간 그런 면이 없다고 할수는 없어. 내가 모험을 떠난 원인도 라크리마가 제공해줬던 것이고, 그녀의 힘이 아니라면 여행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수 있었을 지도 의심되니까... 그리고 그녀가 없었다면 이런 지위에 오르는 것도 무리였을 꺼야." "아니예요. 주인님!" 그 말을 듣고서야 라크리마가 앞으로 나섯다. "모험을 떠난 원인은 저의 성인식 행사 때문이었지만, 저는 그냥 날아서 한꺼번에 둘러보고 오려고 했어요. 일부러 인간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자고 한 것은 주인님이잖아요. 그리고 여행길 내내 저희들의 정체와 힘을 최대한 숨기려고 했으니까 주인님에게는 아무 잘못 없어요." 그녀는 그녀가 할수있는한 적극적으로 케리를 변호했다. 아무래도 나서지 않고 가만히 두고 볼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라크리마까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케리를 변호하는 것을 보고 에마는 사정을 다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글세... 뭐 나도 오빠한테 그렇게 까지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건 아니야. 그냥... 오빠가 힘에 휘둘리고 있지만 않기를 바란것 뿐었거든. 인간으로서 그렇게 강력한 힘을 얻었는데 평범하게 살아갈수 있는 사람은 사실 적을 꺼야. 그 정도는 기대도 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별로 할말 없거든... 드래곤의 힘을 가지고 세상을 뒤엎어보겠다니... 그것도 힘에 지배당하는 것이었을지도 몰라. 나라도 그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을 지니게 된다면 이전과 똑같이 살아갈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이런 지위에 오른건 순전히 라크리마의 힘 덕분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제국에서 관심 가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글세. 오빠가 힘이 드러나는 것을 주저해서 마족의 침략에 맞서지 않았다면 내가 찾아가서 두들겨 패서라도 끌고 나왔을껄... 그렇게 강한 힘을 움직일수 있는 주제에 인류의 위기 앞에서 멍하니 있는 것도 힘을 가진 자로서 책임 의식이 없는 것이잖아? 그렇지?" "으음... 그렇겠...구나... 하지만 내가 애당초 싸움에 나온 것은, 그 마왕이 라크리마의 레어를 차지해버렸기 때문이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싸우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마족이 여러 곳을 침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을거 아냐? 오빠 성격에 그런 일을 보고만 있을리는 없겠지? 오빠라면 아무 힘이 없어도 달려갔을꺼야. 그건 내가 잘 알고 있어. 힘도 없는 주제에 그런 데는 잘 나서려고 한다는 것도 말이야. 게다가 잘 속아넘어가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에마는 애당초 케리를 용서해 주기로 마음을 굳혔던것 같았다. 분명히 이전과는 케리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향이 많이 틀려져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에게도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만한 사건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얼마 전까지 조금도 얼굴에 떠올리지 못했던 따듯한 표정을 띠면서 케리에게 말했다. "용서해줄께... 전부다는 아니지만..." "고맙다... 에마." "아냐. 아직. 전부다는 아니라고 했잖아." "뭐?" 그녀는 다시 단단히 굳어진 얼굴로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서 일어섯다. "오빠가... 정말 용서를 빌어야할 사람들은 따로 있잖아." "아... 그래맞아..." 카에리온 시티의 성벽 외곽 지대의 야산에는 신전에서 관리하는 묘지가 있었다. 이 시대에는 신전에서 묘지를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야산 등에 함부로 묻었다가 네크로맨서나 시체를 언데드화 시키는 몬스터(뱀파이어 등)에게 악용되는 일을 맞기 위해서였다. 친지나 가족의 시체가 사고로 언데드화 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수 없기 때문이다. 언데드화 한 인간의 혼은 결코 쉽게 저승으로 갈수없기 때문에 안전한 지역에 매장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당연한 일이었다. 신전에서 하는 장례식에서는 신의 축복을 시체에 내려 미리 언데드화를 막고, 관을 성표로 단단히 봉인한 다음 무덤 흙 위에 성수를 뿌려 재차 봉인을 한다. 물론 신전이라고 공짜로 해주는 것은 아니므로 장례비용은 꽤 들엇지만 언데드가 된 가족을 보는 것 보다는 나은 일이었다. 또한 불행히도 돈이 없어서 신전 묘지에 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공원 묘지로 가는 길에 꽃다발을 든 세 남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에마가 가장 앞에 서고 그 뒤에 케리와 라크리마가 따르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랑 할아버지 할머니 묘지, 장례식 때 이후로 찾아가보지 않았지?" "도저히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장례식 때도 중간에 거의 도망치듯이 빠져나갔었잖아... 그런데, 묘지가 바뀐것 같다? 이 묘지가 아니었잖아?" "전에 쓰던 묘지는 그냥 야산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불안해서 이쪽으로 옮겼어. 돌아가셔서 까지 고생하면 큰일이잖아." "네가 무슨 돈으로...?" "괜히 초A급 용병이었는줄 알아?" "그렇구나. 미안해. 너한테만 이런 일을..." "나한테 미안할건 없어.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 나중에 부모님 한테나 사과해." 라크리마는 묘지 입구에 들어선 순간부터 연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묘지를 둘러보는 모습은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어린아이 같았지만, 주위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하고 엄숙했기 때문에 평소처럼 시끄럽게 떠들지는 않았다. "주인님. 여기가 그... '묘지'라는 곳인가요?" "응. 그래. ...드래곤들은 묘지를 만들지 않는 거니?" "예. 살해당한 경우라면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해서 죽은 드래곤은 몸을 이루고 있던 구성물질이 자연스럽게 분해되서 무너져 내리죠. 잔해물은 보통 자연스럽게 분해되도록 내버려 두고... 우리들은 시체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우리처럼 커다란 존재가 무덤까지 남기고 다니면 다른 생명체들이 살아갈 공간이 줄어들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레어 숫자도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데 무덤까지 만들 자리가 없다는 것도 그렇지만, 인간들과는 달리 우리 드래곤은 죽은 이를 추억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스스로를 책임지는 종족이니까요. 그래서 고룡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면 수명이 더 남아 있어도 스스로 신체를 분해해서 사라지세요. 가끔 마음에 드는 후손에게 드래곤 하트나 유품들을 남겨주기는 하지만요..." 메이드 드래곤 전기 33화 -재회의 남매 ④- 신전 묘지는 평온했다. 한눈에 둘러보아도 풀도 곱게 정리되어 있고, 비석들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쪽 구석에 케리의 가족 묘지가 있었다. 묘지는 네개였다. 묘비 앞에는 에마가 전에 가져다 두었으리라 생각되는 마른 꽃다발이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들 가족에게 다른 친척은 없었기 때문이다. 카리온 이래로 레그너스 가문은 특별히 번창하지 못했고, 자손이 귀한 편이었다. 아니 카리온 이전에는 아예 성을 쓰지도 않았으니 사실상 가문 전체가 번창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문으로는 그가 쓰러뜨린 강대한 괴물들의 저주라고하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별로 믿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보통 저주를 건 드래곤은 '스톰 드래곤'이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데 그가 쓰러뜨린 스톰 드래곤은 라크리마 뿐이었으니까. 부모와 조부모의 묘를 앞에 둔 케리의 시야는 어느새 흐릿하게 변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도저히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에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무덤의 시든 꽃을 치우고 새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무덤 앞에 꿇어 앉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대체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아무도 알수없었다. 케리는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뭐라고 사과할 말을 많이 생각했었는데 한마디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슬퍼할 뿐이었다. 결국 도저히 얼굴을 들수 있을수가 없어서 무덤앞에 엎드려서 흐느껴 울게 되어버렸다. 라크리마는 이해할수 없는 슬픔에 휩쌓여 있었다. 드래곤에게 인간의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대부분의 드래곤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라크리마는 약간 다르다. 그녀는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드래곤인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솟아오르는 감정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 '왜 슬픈 걸까? 여기 묻혀있는 이 사람들은... 나와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 어떤 관계도 없었던 사람들인데... 주인님과 에마님이 슬퍼하니까 나도 슬퍼지는 걸까? 하지만 단순히 슬픔의 전염이라고는...' 그녀는 생각해봤다. 케리와 에마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을, 그리고 자신에게 전염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은 묻혀있는 자들이 죽었기에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그들이 살아있었다고 가정한다면? '아아...' 그제서야 라크리마도 이해할수 있었다. 그들 가족이 살아있었다면 분명히 그녀도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주인이 보다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되니까, 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되니까. 케리의 행복은 그녀의 행복이기도 하니 보다 행복할수 있는 상황이 과거의 실수로 인해서 사라져 버렸다면 불행하다고 느낄수도 있을 것이다. 그제서야 라크리마는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할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새 그들 가족과 연결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아... 그랬구나.' 그녀는 인간의 생활에 대해서 또 하나의 단면을 엿볼수 있었다. 드래곤들은 각 개체의 독자성을 중시한다. 예외적인 경우가 몇몇 있기는 하지만 되도록이면 서로 간섭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그들은 혼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개의 개체별로 상호연결은 되어있지만, 그 관계는 인간들 처럼 복잡하고 방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일이 적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인간들은 서로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과도. 그녀는 잠시라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만일 그들이 살아있었을 때의 일을... "꽃잎 속을 떠도는 페어리의 날개에 실린 꿈의 조각 나무 속에 숨은 수줍은 드라이어드가 지닌 과거의 조각 샘물 속을 헤엄치는 아름다운 님프의 손에 기억의 조각 잠시만 보는 것을 허락해줘요. 그 조각을 이어만든 잠시간의 행복을..." "주인님. 빨리 일어나세요." "으응...?" 라크리마는 달콤한 목소리로 침대속에 잠들어 있는 케리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무척 낯익은 풍경이었다. 오랫동안 본 적 없었지만 무척 낯익은... "여긴?" "어서 일어나세요. 시간이 없어요." 라크리마는 케리를 재촉하여 문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제서야 케리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냈다. 그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그가 아직 모험에 나서기전, 아직 소년이라고 불릴 정도 나이의 집. 그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의 기억과 조금도 틀리지 않고 일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집은 자신이 몇번의 모험에 실패하고 난 뒤 진 빚을 값기 위해서 팔아버렸고, 그 뒤에 허물어져서 논밭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존재할리가 없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이건...?" "나중에 설명해드릴께요." 라크리마는 그렇게 말하고 이상한 나라로 인도하는 토끼처럼 달려갔다. 방을 나온 뒤에는 거실이 있었다. 집 자체는 대대로 물려받아온 지라 상당히 큰 편이었기 때문에 거실과 식당등이 분리되어 있을 정도였다. 라크리마는 거실을 지나쳐 그 건너편 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케리는 그 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우리 집이..." "아. 오빠야?" "에마?!" 거실에는 에마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집과는 달리 에마의 모습은 현재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여긴 대체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기억속에 있는 우리 집하고 전혀 틀리지 않아..." "시간이동 같은건 아닐까?" 하지만 에마는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조작하는 마법은 드래곤이라고 해도 시전하기 어렵다. 적어도 그레이트 웜이나 고룡급은 되어야 잠시동안 시간을 멈추는 타임 스톱 등을 쓸 수 있을 뿐이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시간을 지배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정말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드래곤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해본 그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동은 차원이동 만큼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라크리마는 성룡이기는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편이었다. 시간 이동 같은 굉장한 기술을 사용할수 있을리는 없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시간을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리고 이건... 일종의 환각 같아." "환각?" "응, 환각이야. 이런게 실제일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단순히 시청각을 어지럽히는 정도가 아니야. 오감에 현실과 거의 동일한 정보를 입력시켜서 만들어 낸 거야. 이렇게 사실적이고 리얼한 환각이라니... 인간은 도저히 사용할수 없어. 이런 초고도의 환각은..." "왜 우리에게 환각을 건 거지?" "해를 끼치려는 것 같지는 않은걸. 어쨋건 따라가보자. 오빠." 에마와 케리는 라크리마가 가버린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은 분명히 식당겸 부엌이 있는 곳이었다. 에마는 식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다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케리는 의아해졌다. "왜 그래? 에마?" "아니. 잠깐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저 녀석이 우리 옜날 집을 완벽하게 그대로 재현해낼 정도의 실력이라면... 이 다음에 나올것이 뭔지 짐작이 가니까... 휴..." 그는 대체 에마가 한숨을 쉬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킬 정도의 환각이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물어볼 사이도 없이 에마는 식당의 문을 벌컥 열었다. 식탁에는 이미 몇명의 인물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케리와 에마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역시..."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케리와 에마의 추억속에서나 살아 있던 가족들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서 다들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늦었구나. 얘들아." "어서 오너라." "아버지...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케리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에마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하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잠시 움찔 거렸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다른 모두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식탁 옆에 다소곳에 서있는 라크리마 역시. 에마는 라크리마를 향하여 물었다. "설명해봐. 이게 어떻게 된거지? 자세히 설명해봐. 무슨 마법을 쓴거야?" "으음... 역시 환각 마법의 일종이지요. 주인님과 에마님의 기억 속에 있는 영상에다가 무덤에 남아있는 잔류사념을 끌어올린 거예요." "유령 같은 거란 말이야?" "으음... 비슷한 걸까요? 하지만 정보에 오차가 있기 때문에 시간에 한계가 있어요." "좌우간 대단하군... 이렇게 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내다니..." 에마는 자연스럽게 의자를 가져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녀는 한결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찻잔을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이건... 내가 어릴때 깨져 버렸던 건데. 하긴 한번만 더 마셔보고 싶었지..." "에마. 괜찮니?" "으음." 케리도 주춤주춤 거리면서 옆 자리에 앉았다. 그는 도무지 이 상황에 익숙해지지 않는것 같았다. 그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들 까지도 그가 기억하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살아있었던 것 처럼 케리와 에마를 대하고 있었다. "저기... 어머니... 괜찮으세요?" "으응. 이 아가씨 덕분에 다시 만날수 있게 되서 정말 기쁘구나. 잠시간이라도 함께 지낼수 있게 되서..." "아버지...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저 때문에... 마음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시다니..." "괜찮다. 인간이란 언젠가는 죽는 거야. 네가 잘 살게 된 모습을 볼수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이만하면 됐다. 그래. 잘했어..." "아...아버지이...어머니...흐윽..." 케리의 눈에서 눈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목이 메어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갈수가 없었다. 그 옆에서 에마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얘야. 시집은 언제 갈 꺼니?" "글세요..." "에휴... 용병일은 험한일인데.. 우리 손녀가 얼마나 고생이 많을꼬..."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 동안 그들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너무 감정이나 격해져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도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두 살아있을 때와 전혀 다름 없이 잠시간의 티 타임을 즐겼다. 그 동안 케리와 에마는 그들이 그때껏 지내온 이야기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하게 이야기했고, 그들의 가족은 살아있을때와 다름 없이 그들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신기해하고 울고 웃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라크리마는 이별을 알려야 했다. 그녀는 이 마법이 사실 아주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끌수 없었던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할께요... 더 이상 있으면 안돼요." "...라크리마. 조금만 더 있으면 안될까." "안돼요. 안돼요." "제..제발..." 케리는 라크리마의 치마 자락이라도 잡고 애원하려 했지만 에마가 오빠를 만류했다. 그의 가족들도 케리를 만류했다. "오빠. 안돼." "얘야. 저 아가씨 말이 맞단다." "죽은자와 산 자 사이의 벽은 높고 험하단다. 드래곤의 힘이라도 쉽게 뛰어넘을수 있는게 아니야." "너희들에게는 너희들의 삶이 있잖니... 이 세계에 오래 있을수는 없어..." 그리고 라크리마는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좀 더 일찍 깨어났다면 여러분들에게도 좀 더 봉사해 드릴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나마 만나게 되서 반가웠어요..."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마워요... 죽은 뒤인데도 자식들과 만나게 해주다니..."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드래곤 아가씨..." 그리고 다음 순간, 환각은 모두 흐릿해지면서 사라져버렸다. 모든 것이 아침 햇살 앞의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지고 케리와 에마는 아까 전과 똑같이 무덤 앞에 서있었다. "사...사라졌어." 케리는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주위는 라크리마가 마법을 걸기 전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환각 마법을 응용한 거예요... 주인님과 에마님의 기억속에 있는 추억들과 무덤의 잔류사념을 끌어내서 환각을 일으킨 거죠... 진짜로 혼을 불러낸 것은 아니예요." "그럼... 모든게 거짓이었던 거야?" "아니요. '만약에 그들이 살아있었다면...'이라는 추억의 세계를 만들어 본 것 뿐이예요. 기억이나 반응은 모두 그 분들이 살아있었을 때와 똑같았어요. 실제로 초혼을 해온다고 해도... 그와 똑같이 만날수 있었을 꺼예요." "그렇다면 라크리마. 한번만 더... 조금만 더 불러줄수 없니?" "안돼요. 이건 아주 위험한 방법이란 말이예요. 지금도 주인님이 받았던 환각은 그 실제도가 너무 지나쳤어요. 너무 오래 환각에 빠져있으면 현실감이 사라져서 아주아주 위험해요." "...그래도..." 계속 고집을 부리는 케리를 에마가 달래기 시작했다. 에마의 눈가에도 눈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오빠 그만둬...더 이상 하면 위험할꺼야. 나도 하만터면 완전히 사로잡혀버릴뻔 했으니까. 하지만 환각이나 환영이라도 좋았어... 잠깐이지만 부모님을 만날수 있었어... 그걸로 충분하잖아? 그리고 부모님 들은... 오빠도 용서해줬잖아... 그리고 나도 정말 기뻤으니까... 그래. 고마웠어. 정말 고마웠어... 라크리마... 라고 했지... 고마워 정말로. 이걸로... 마음이 편해졌어..." "으응... 그래... 정말 고마웠다. 라크리마..." 그제서야 겨우 케리도 진정할수 있었다. 에마는 처음으로 라크리마를 향해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라크리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서 감사를 받아주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3화 -재회의 남매 ⑤- 에마는 그날 부로 용병 길드의 해산을 결정했다. 사실 에마가 길드 마스터가 된 까닭은 레이스 그람이 대부분의 용병들을 이끌고 다른 도시로 떠난뒤 남은 용병들 추대를 받은 결과였다. 케리는 에마가 레이스 그람의 아들을 죽인 일이 어떻게 무마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알아보니 역시나 레이스 그람의 아들이 죽인 것은 에마가 아니라 라크리마로 되어 있었다. 에마가 그때 죽인 용병들은 모두 라크리마와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하고 에마 혼자서 도망쳐 온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녀가 자신이 한 행동을 그대로 말하고 다녔다가는 절대 그냥 넘어갈수는 없었을 테니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케리는 약간 씁쓸해졌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밝히고 다니는 것도 여동생을 위해서 할 짓이 아니니 결국 입 다물고 있기로 했고, 라크리마에게도 실수로 그 일을 발설하지 않도록 주의를 단단히 주었다. 애당초 용병 길드 자체가 거의 해체 위기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용병들은 에마의 해산 명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몇몇 그렇지 않은 용병들도 있었다. "이봐 길마(길드 마스터)! 우린 여기가 아니면 갈데가 없어. 당신한테 우리를 지휘해 달라고 뽑아준 것인데 이렇게 갑자기 해산을 명령하면 우린 어쩌라고." 대부분의 용병들은 제각기 흩어졌는데 대략 10여명 정도의 용병들이 항의를 해온 것이다. 사정상 이 길드를 제외하면 달리 갈 곳이 없는 용병들도 있었던 것이다. 에마는 불쾌했다. 길드 사정이 무너지기 직전이 될 때까지 다른 곳도 알아보지 않았단 말인가? 도시 전체가 쇠락하게 될 정도면 눈치를 봐서 다른 직업을 구하던가 다른 도시로 가던가 할 것이지. 눈치없이 쓸데없는 기대를 품고 남아있었다는 사실이 불쾌한 것이다. "난 당신들을 먹여살리겠다고 공언한 적은 없어. 당신들이 억지로 떠맡기니까 임시로 자리에 앉아준 것 뿐이잖아. 애당초 나도 길마 같은거 하고 싶지 않았어. 게다가 도시 자체가 저 모양이 되었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나라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망한 도시에서 용병 길드를 계속 유지할수 있겠어? 배가 가라앉을것 같으면 왠만하면 눈치봐서 망할만 하면 다른 배로 갈아타라고. 눈치없이 남아있으려 하지 말고." 용병들은 에마가 쌀쌀맞게 나오자 분노하여 제각기 무기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이미 에마의 샤벨이 약간 검집에서 나와있는것을 보고 모두 몸이 굳어졌다. 용병계에서 블러드 레인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그녀의 실력은 모든 용병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뛰어나고 살인과 폭력을 서슴없이 행하는 강한 용병이라면 알아둬서 손해볼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용병 길드는 이처럼 싸움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고 유혈사태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다들 거칠고 폭력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라 말다툼이 벌어지면 쉽게 주먹질이 오가고 무기로 손이 가는 것이다. 이 점도 용병들이 사회에서 좋지 않게 보이는 이유중 하나였다. 그러나 케리는 에마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곱게 비치지 않았다. 그에게 그녀는 아직도 귀여운 여동생으로 비치고 있었고, 그런 그녀가 피를 비처럼 뿌리며 다니는 것이 좋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케리는 즉시 검을 뽑으려는 에마의 손목을 붙잡고 그녀를 달랬다. "너무 그러지마. 이 사람들도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져서 그런 거잖아. 이해해줘." "그거야 이해는 가지만 내가 저 녀석들 입장에 따라줄 이유는 없어." "마침 우리 영지에 경비병이 부족하니까... 라기 보다는 아예 없는거나 다름 없지만, 좌우간 일손이 부족하니까 우리 영지에 취직시키는게 좋지 않을까?" "글세에..." 오빠의 만류를 들은 그녀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용병들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방금전 거의 죽다가 살아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케리가 그녀의 팔목을 잡지 않았다면 그 짧은 사이에 그녀가 검으로 자신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에마의 실력은 분명히 그들을 가볍게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사람좋아 보이는 케리에게 매달려서 이 위기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경비일이라면 얼마든지 맡아드리죠!" "뭐 저희도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용병들은 일제히 케리에게 매달렸다. 그들이 그렇게 나오자 케리의 처지가 곤란해졌다.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사람을 팽개칠 정도로 그는 야박하지 못했던 것이다. 케리가 은근히 그들을 고용하고 싶다는 눈치를 보이는 것을 발견하자 에마가 갑자기 단호하게 나섯다. "안돼! 안돼! 경비병들로 갈 녀석들은 내가 미리 골라둔 얘들이 있어. 너네는 안돼! 당장 나가! 안 가면 둘로 쪼개버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말로 그들을 토막내버릴 것처럼 샤벨을 뽑아들어 위협적으로 들이댓다. 그러나 용병들 중 다혈질인 한명이 자신의 무기인 배틀 액스를 에마에게 들이대며 거칠게 소리쳤다. "길마면 다냐! 이 년이 숙이고 들어가 주니까 까불..." 챙!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에 들고있던 배틀 액스는 가운데부터 두 동강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카락 몇 개가 나풀 나풀 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용병들 모두는 번쩍이는 검광만을 보았을 뿐, 에마가 언제 검을 뽑아서 휘둘럿는지 조차 알수없었다. 열명이나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모두 바짝 얼어붙어 버렸다. 그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이 여자 하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에마와 함께 일했던 경력이 없기 때문에 소문으로만 실력을 듣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실력차가 너무나 엄청나게 났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당해낼수 없는 강자였던 것이다. "그냥 사라질래? 둘로 쪼개져서 사라질래?" 그리고 살벌하게 들려오는 협박. 용병들은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거의 기다시피 해서 도망쳐 나가버렸다. 케리는 에마가 하는 일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용병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심한거 아니야?" "저 녀석들 하는 짓 못봤어? 조금만 수틀리게 나가면 바로 무기부터 뽑아드는 놈들이라구. 저런 것들 상대하는데 오빠처럼 무르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돼. 세게 짓밟아서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어 버려야지. 배짱도 없는 놈들이라 보복하러 오는 것은 생각도 못하거든. 그리고 경비병으로 쓴다고 해도 저 녀석들은 모두 실력도 별볼일 없고 성격도 좋지 않아. 차라리 내가 그래도 좀 믿을 만한 녀석들을 데려다 줄께." "뭐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할수없지. 나도 용병일을 해본적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네가 나보다 용병에 대해서는 더 잘 알테니까. 그렇게 하도록 해." 에마는 그녀가 그래도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용병들을 모아다 주었다. 케리도 잠시나마 3류 용병 일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용병들이 얼마나 거칠고 믿을 만한 용병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 일은 에마의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용병들의 감독도 에마에게 맡겼다. 그녀가 말한대로 자신은 그들을 제대로 통솔할 자신이 약간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강함으로 따진다면야 케리도 어느새 보통은 훨씬 넘었지만 약간 유약한 면은 아직도 남아있었던 탓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에마는 케리네 영지의 경비대장이 되버린 셈이었다. 그녀는 얼마동안 오빠의 영지에 눌러앉아서 편히 지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거친 용병 생활을 오래 하면서 그녀도 오랫동안 평온을 바라고 있었고, 피로가 많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용병들을 이끌고 와서 영지에 도착한 그녀는 크게 실망해버렸다. "...여긴 대체 뭐야?! 왜 이렇게 엉망이야?! 오빠는 이런걸 넙죽넙죽 받은 거야? 당장 가서 다시 물러달라고 해!" "어떻게 황제폐하에게 받은 영지를 다시 물려달라고 하니..." "으우...... 그래도 그렇지... 이게 대체 뭐야..." 케리가 보기에도 그녀가 실망하는 것은 확실히 이해가 갔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거의 거지마을 촌장이나 다름 없는 신세일 줄이라고는 몰랐을 테니까. 황폐한 전답과 폐가만 득시글 거리는 폐허 마을. 한줌 밖에 안되는 영지민과 다 박살난 성이 영지의 전부라고 하면 누구라도 실망할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드래곤들이 꾸미고 있던 대 사업에 에마는 거의 경악하다 시피 했다. 특히 아마레가 구상한 기후 조절 장치는 에마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상대가 드래곤 임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마구 야단을 쳤다. "...이런걸 만들어서 어쩌려는 거야? 마법으로 영지 전체를 덮어서 뭘 어쩌려고? 겨울이 여름으로 바뀌면 생길지 모르는 부작용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거야? 너 정말 골드 드래곤 맞아? 정 하고 싶으면 농지 부분만 하면 되잖아. 이렇게 까지 크게 만들 필요가 뭐가 있어. 이건 밭을 덮는 정도로 축소하고 대신에 그 돈으로 식량을 사와서 배급하는게 더 낫겠다." "내 아이디어가 뭐가 어때서! 넌 이런거 생각할수나 있냐?" "...이거 혹시 만들다가 보니까 신나서 되는데로 규모만 부풀린거 아냐?" "...윽!" 반발하던 아마레도 에마가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오자 할말을 잃었다. 확실히 그녀도 계획하다보니 자기혼자 들떠서 엉뚱할 정도로 엄청난 설계를 해버린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대계획은 극도로 축소되어 2층 건물 정도 높이의 탑을 몇개 만들어서 농지만을 덮는 선까지 줄어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기껏 일하러 나온 토목계통 길드 측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갑자기 일거리가 줄어들어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결국 그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대신에 망가진 성을 다시 짓는 일을 맡겼다. 이 문제도 에마가 주동하여 결정한 일이었다. 적당히 수리해서 만들어진 통나무 집에서 살면 영주로서 권위가 전혀 서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였다. "오빠가 무슨 촌장도 아니고, 이런 평범한 집에서 살아서야 되겠어? 그래도 번듯하게 성이라도 가지도록 해." "꼭 성이 필요할까..." "아무래도 있는게 좋을 껄. 나중에 두고 보라고." 케리는 그 부분은 약간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데로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라크리마에게는 케리가 일일이 에마가 하자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약간 좋지 않은듯 했다. "저기 주인님. 왜 자꾸 에마님이 하자는 데로 따라가는 거예요? 매일 그렇게 하니까 좀..." "글세... 역시 에마가 나보다는 똑똑하기도 하고, 경험도 많은 것 같아서... 하지만 그보다는 에마가 나한테 충고해주면 신경써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헤에..." 메이드 드래곤 전기 34화 -복수의 칼날 ①- 마법사들은 국가 경영에 필수적인 존재로서 우대를 받으나 반대로 그들의 특이성 때문에 일반인들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틀림없이 마법이라는 것은 결고 가볍게 받아들여질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묘하고 신비하며 또 어려운 마법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의 성격은 어느 정도 특이해지는 면이 있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지식만을 추구하고 사회적 명성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인식되고 있었으며 십중 팔구 그것은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정치나 권력 등에도 흥미가 없었다. 궁정에 들어와서 궁정 마법사로서 활약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궁정 마법사로 활약하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국왕의 막대한 지원을 받기 위함이지 명예나 권력에 욕심이 있어서 나서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궁정 마법사가 되면 좋든 싫든 어느 정도는 정치에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구를 좋아하는 마법사들은 일부러 정치 권력과의 관계를 끊고 혼자서 연구에 몰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부는 혼자서 연구에 몰두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깊은 산속이나 절해고도에 은거해 사는 자도 있었다. 대부분 이들의 실력은 대단히 뛰어났으나 인간사회와 떨어져서 은거를 하면서 오래 살아가다보니 괴팍한 취미와 사악한 성격을 지니게 된 자가 많았다. 이런 마법사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 되어 더욱 세상과 단절되어 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군주의 명령에조차 복종하지 않을 정도로 괴이한 성격이라면 아군으로 들어오지도 않을 뿐더러 아군이 되어도 문제꺼리가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런 마법사들은 국가에서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은거해있는 기인들의 실력이 세상에 나와있는 마법사들보다 대체로 한수 위라는 것은 마법에 대해서 좀 안다 하는 자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간혹 몇몇 귀족이나 국왕들은 이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쳐서 어려운 문제에 도움을 얻는 경우도 있었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은 양쪽 모두가 꺼리는 바였지만 가끔은 이런 잠시간의 협력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카렐의 약혼녀 일레노아는 그런 마법사들중 하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는 그녀를 따르는 몇몇 충실한 하인과 하녀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 중 한 하인은 작은 수레를 하나 이끌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는 여전히 처참한 모습인 카렐이 실려 있었다. 일레노아는 카렐을 데리고 다리우스 가에서 나와 자신의 집인 휘스턴 가로 갔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카렐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일레노아를 아끼고 있었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그런 요구는 아버지로서 쉽게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리우스 가에서는 이미 카렐을 죽어버린 사람인 셈 치고 있었고 그의 현재 몰골로 볼때 그녀의 아버지는 도저히 일레노아가 그와 결혼한다고 행복하게 살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할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일레노아는 반대에 부딧쳤다. 그녀는 매우 실망했지만 카렐은 그렇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결혼 따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드래곤에 대한 복수. 그러나 그것은 아직은 허황된 꿈에 불과한 일이었다. 만일 그가 멀쩡한 몸이었다고 해도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가 적으로 삼은 드래곤은 폭풍을 지배하는 권족, 스톰 드래곤. 흔히 최강이라 알려져있는 레드 드래곤 조차 한수 접고 들어가는 종족이다. 스톰 드래곤 일족의 숫자는 매우 적어서 인간과 마주치는 일도 흔치 않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제대로 따지자면 일반적으로 최강이라 여겨지는 레드나 실버 드래곤보다 더 강하다. 게다가 카렐은 지금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신체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절대 포기할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세상에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말이 존재한다. 용을 죽인 자. 혹은 용을 죽인 무기에 내려진다는 칭호다. 최강의 생명체인 드래곤, 그러나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죽일수 있는 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드래곤 슬레이어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신도 어떻게든 이길수 있을 것이다. 그 증오스러운 드래곤들을... 그는 그렇게 믿었다. 적어도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미쳐버릴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때 제국 최강의 기사로 손꼽히던 그가 지금은 팔 다리도 없고, 온 몸이 불타서 문들어진 시체나 다름없는 신세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은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듯이 목숨만은 붙여주었다. 따라서 그는 드래곤들을 증오하고, 복수를 꿈꾸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분노를 다스릴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카렐은 일레노아를 설득했다. 드래곤에게 복수를 할 방법을 찾자고 말이다. 처음에 일레노아는 카렐의 생각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드래곤을 죽여서 복수를 하겠다니. 드래곤은 신에 필적하는 강함을 지녔다는 종족이라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존재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처음에 그녀는 그를 만류하기만 했다. 드래곤은 도저히 이길수 없으니 그런 꿈은 버리고 평온하게 살아가자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그것을 필생의 목표로 삼아버린 카렐은 그녀를 집요하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마침내 일레노아는 그에게 설득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일레노아는 카렐의 몸을 고치겠다는 핑게로 그녀가 받아야 할 유산을 미리 아버지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휘스턴 가의 가주는 오랫동안 고심했다. 과연 저렇게 까지 망가진 몸을 원래대로 돌릴수 있는 신관이 있을런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잘려나간 팔 다리를 다시 붙여주는 정도의 신성마법을 쓸줄 아는 대단히 믿음이 깊은 신관은 몇몇 본적이 있었다. 그들중 일부는 부서진 손 발을 원래대로 다시 자라나게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카렐의 상태를 보고는 모든 신관들은 저런 부상자는 도저히 손도 댈수 없다고 발을 뺏다. 회복마법이란 인체의 자가 치유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파괴된 신체부위를 재생시키거나 잘려나간 신체를 다시 붙이는 선 까지가 현재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잘려나간 신체를 다시 붙이는 것이나 유실된 신체를 재생하는 것은 창검에 의해서 상처를 입은 절단상의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경우는 상처부위가 깨끗하면 외과수술의 보조도 받을수 있어서 회복마법의 효과가 확실히 발휘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체조직이 타버리는 화상의 경우는 문제가 틀렸다. 거의 표면이 탄화될 정도의 심한 화상은 그 부위의 조직이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에 자가치유능력을 끌어올려도 이미 신체부위가 죽어있어서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피부 부위에 입은 화상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회복할수 있었지만 카렐의 경우에는 상태가 너무나 안좋았다. 피부뿐만 아니라 신경, 근육과 뼈까지 타들어간 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카렐은 이미 죽어있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신체였던 것이다. 그의 몸을 지탱해주는 것은 얄굿게도 그가 가장 증오하는 드래곤의 마법이었다. 신관들은 입을 모아서 이런 상처는 도저히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만일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성자나 성녀 급의 신관에 의해서 치료가 된다고 해도 일평생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래서 일레노아의 아버지는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일레노아는 제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런 성자나 성녀가 있나 찾아보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 카렐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될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눈물을 흘리며 부탁했다. 결국 딸의 간절한 부탁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일레노아에게 많은 재산을 주고 충직한 하인들을 딸려 주면서 허락을 내렸다. 그러나 그렇게 여행을 떠난 카렐이 찾는 것은 성자 같은 자들이 아니었다. 제 아무리 신성마법으로 몸을 회복시킨다고 해도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몸을 다시 원래대로 돌리는 일. 당연히 그렇게 회복된 육체는 허약하기 짝이 없어 그의 목적인 복수는 커녕 침대에 누워서 한평생을 보내게 될 것이 자명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는 당연히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렐이 찾는 것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은거해있는 괴팍하지만 실력은 뛰어난 마법사. 그런 마법사들 중에는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존재도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역시 기사 수행을 다니면서 조잡하나마 그렇게 만들어진 괴물들을 본 적이 있었다. 코볼트와 고블린의 머리를 가진 오크라던가 하는 것들을. 전설적인 마수의 이름을 본떠서 '키메라'라고 불리는 그것들은 드래곤, 염소, 사자의 신체가 합성된 키메라 처럼 여러 다른 생명체들을 합성하여 보다 강력한 힘을 끌어내는 것들이었다. 실제로 몬스터 중에서도 아울베어 같은 경우는 먼 옜날에 광기넘치는 마법사가 만들어낸 부엉이와 곰의 키메라가 번식을 한 것이다. 키메라는 대부분 생식 능력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간혹 완전히 다른 하나의 종을 이루어 버리는 키메라도 있었던 것이다. 그가 기사 수행을 다니면서 발견했던 키메라들은 전부다 별볼일 없고 조잡한 것들이었지만 그것은 그것들을 만든 마법사들 역시 별볼일 없는 실력이었기 떄문이다. 정말로 뛰어난 마법사라면 틀림없이 보다 엄청난 키메라도 만들수 있을 터. 그렇다면 거기에 보다 강한 힘을 얻을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행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여러 마법사들을 찾아가보았지만 괴팍한 마법사들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키메라 연구를 하는 마법사는 쉽게 찾을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별볼일 없는 마법사에게 부탁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마법사를 찾아가는 그의 여행은 어렵고 고달픈 일이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4화 -복수의 칼날 ②- "저런 곳에 탑이 서있다니..." 일레노아는 깊은 산중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그녀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마법사의 탑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보통 탑이나 성채는 방어하기 좋은 곳에 세워지지만 이처럼 너무 인적이 드물어서 방어할 가치가 없는 곳에는 세워지지 않는 법인데... 그러나 마법사의 탑이니 만큼 은둔을 위해서 지었다고 생각할수 있을것 같았다. 그러나 또 하나 궁금증이 생겼다. "어떻게 지은 걸까?" 주위는 숲으로 가득했고 산세가 험한데 길도 좋지 않아서 공사를 벌이기에는 적합한 지형이 아니었다. 이런 장소에다가 탑과 같은 건물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카렐. 도착했어요." "큭큭큭... 그렇군... 그래..." 카렐의 목소리에는 짙은 어둠이 배어있었다. 하인들은 이 기괴한 모습의 주인이 점차 광기에 물들어 가는 것 같아서 걱정이 컷다. 그들이 특별히 가려뽑은 충실한 자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도망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사히 지내기가 어려울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탑의 마법사는 누구였죠?" "자기 소개정도는 내가 하도록 하겠소. 레이디." "앗?" 일레노아는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갑작스럽게 나타난 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떡갈나무 지팡이를 짚은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었으며 짙은 갈색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일행 한 가운데 출현한 이 전형적인 마법사 차림의 사내 때문에 하인들은 놀라서 혼비백산을 했다. 하지만 일레노아는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할줄은 모르지만 텔레포트 마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 탑의 주인이신가요? 대단하군요. 텔레포트로 나타나시다니..." "허허허. 텔레포트 마법을 알고 있소? 똑똑한 아가씨로구려. 하지만 이건 텔레포트가 아니요. 그냥 환영 마법이지. 손님을 마중하는데 환영을 쓰는 것은 무례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텔레포트는 함부로 사용할수 없는 마법이니 좀 양해해주시요." 그 말에 카렐과 일레노아는 깜짝 놀랐다. 텔레포트는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정밀한 환영을 만드는 것도 쉬운 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일루션 마법은 쉬운 편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도 어렵지 않게 볼수 있었었다. 하지만 평범한 마법사가 만들어내는 환영은 시각과 청각적인 것 뿐이고 의외로 하급마법사들이 만든 환각이라는 것은 쉽게 간파될수 있었다. 환각에 어딘가 어색한 점이 꼭 눈에 보이는 것이다. 관찰력이 뛰어나다면 환각을 눈치채는 것은 어렵지 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보통 그들이 만든 환각에는 세세하게는 명암에 문제가 있다던가 세부적인 묘사가 틀려서 노인의 손이 젊은이와 같다던가 하는 식으로 현실과 미세하게 틀린 점이 한두군데씩 있는 식으로 어딘가 어색한 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환영이라고 만들어낸 것이 현실과 전혀 차이가 없이 보인다면 이 마법사의 실력은 분명히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다. "내 이름은 마딕스 룬 카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내가 대단할 것도 없는 마법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을 텐데..." 일레노아는 이미 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사해 놓고 있었다. 대단할 것도 없는 마법사라는 것은 겸손한 표현일 뿐. 마딕스는 금세기 최고의 마법사 중 하나였다. 최고의 마법사라고 해도 모든 면에서 손꼽힐 정도로 대단한 자는 아니었지만, 한가지 분야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경지를 과시했다. 그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연구였다. 마딕스는 생명의 구조를 해석하여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도 만들어 낼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거야 실제로 몇가지 예가 있었으니 불가능 한 이론은 아니었지만, 마딕스는 일반적인 키메라 제조 마법사들과는 사상이 틀렸다. 그가 꿈꾸던 것은 전 인류에 대한 개량이었다. 그는 인간이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다른 종족에 비추어 보면 별로 대단히 뛰어날 것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처럼 인간의 미약한 능력에 실망한 자도 드물었다. 그는 인간이 궁극적으로 발전하여 대륙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종을 개량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몇몇 영주와 마법사 길드들은 이 말에 혹해서 그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인간의 종을 개량한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병사를 만들어 주겠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딕스는 성격이 너무나 괴팍해서 도저히 다른 마법사들과 보조를 맞출수가 없었고, 귀족들이 생각하는 초병사의 개념과는 약간 거리가 떨어진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귀족들은 단기간에 강력한 병사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지만 그는 말 그대로 궁극의 초 생물 병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자금과 시간이 너무나 많이 소모되어 후원자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연구가 아니었다. 결국 그의 괴팍함과 연구의 성과가 적음에 질린 후원자들은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성격이 좋지 않아 마법사 길드에서의 정치적 기반도 별로 없던 그는 마법사 길드에서도 축출되고 말았다. 아무리 부와 명예가 마법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 연구를 위해서는 강력한 스폰서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었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는 이렇게 외딴 곳에 스스로 탑을 짓고 은거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일반 사회와는 접촉을 완전히 끊었다. 이후 그의 실력을 노린 다른 국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마딕스는 단호하게 그 제안들을 거절했다. 자신의 연구는 어떤 스폰서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산중에 은거하면서 연구를 진척시켜 나갈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단할 것도 없는 마법사라니요. 생명에 대한 마딕스 님의 연구 성과는 정말 획기적이고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흥. 아첨은 그만두고 당장 돌아가시요. 아무리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난 내 연구를 방해하는 스폰서와는 일할수 없소." 어쩌면 그가 밖으로 나오지 않고 환영만을 만들어 내서 대화하는 것은 인간을 만나기 싫어서가 아닐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마딕스의 태도는 단호했다. "그리고 이 늙은이가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는 것은 죄다 거짓이요. 내 평생 이 한가지에만 몰두하여 연구를 했건만 제대로 이룩해낸 성과는 하나도 없소. 나도 이 나이씩이나 먹어서 더 이상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차라리 내 연구 결과나 제대로 보존해서 후학들에게 물려주고 말겠소." "크크큭... 일레노아, 이번에도 틀린것 같군. 야심 가득한 마법사인줄 알고 찾아왔더니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던 퇴물일 줄이야." "카렐!" 조용히 있던 카렐이 갑자기 그에게 무례하게 대하자 일레노아는 깜짝 놀랐다. 예물을 바치고 사정을 해도 협력을 해줄지 어쩔지 불안한 판에 상대에게 폭언을 가하다니. 과연 카렐에게서 흘러나온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딕스의 표정은 급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가 아니었다. 그의 표정은 경악에 더 가까웠다. "....이 이것은 대체 뭔가?" "이것? 크크큭 확실히 이 꼴이 되었으니 말하는 고기덩어리라고 불려도 할말이 없겠구만." "어...어떻게 이런 상태로 살아있을수가 있는 거지?" 카렐의 온 몸은 붕대로 감겨 있었지만 마딕스는 그의 몸이 얼마나 처참한 상태인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그 즉시 카렐에게 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디텍트 라이프 포스!" 생명체를 찾아내는 이 마법은 한 대상에게 집중해서 사용하면 상대의 생명력이 얼마나 남아있는가도 알수 있었다. 이 마법의 결곽 나온 순간 마딕스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로 변했다. "어떻게 이럴수가! 생명력이 이렇게 저하되고도 살아있을수가 있는 거지? '언데드'도 아닌데... 아니 언데드는 생명력은 없지만 음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 어쨋건 내 평생 이런 것은 본적이 없어!" "당신. 살아있는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건가요?!" 마딕스가 계속 카렐을 '이런 것'이라고 지칭하자 일레노아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 그러나 카렐 본인과 마딕스는 별로 개의치 않는것 같았다. 마딕스는 연구대상을 단순한 생명체로 파악하지 인격체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지금 카렐은 신기한 연구 대상물에 지나지 않았다. "재생이 되는 것도 아니군... 그렇다면 본래 생명력이 강한 것은 아닌데... 아니 자네 혹시 인간인가?" "이제야 눈치채는 건가? 동태눈깔이군..." "인간이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살아있을수가 있는 거지? 이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생명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온 마딕스의 오랜 지식에 의하면 카렐은 분명히 죽어야 정상인 몸이었다. 그는 수백개의 생명체를 가지고 연구한 몸이고 그 중에는 노예로서 사온 인간도 끼어있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생명력에 불만이 컷는데 이는 실험 도중 인간이 너무나 잘 죽었기 때문에 생겨난 불만이었다. "흥. 넌 마법사도 아니었군. 이런 내 모습을 보자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텐데." "아니 잠깐 그럼 이건... 절대 생존 마법 서바이벌!" 그는 그제서야 '마법'에 생각이 미쳤다. 사실 서바이벌 이라는 마법을 알고 있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카렐의 상태를 보고 짐작할수 있었겠지만, 마딕스는 너무나 오래 생명체에 관련된 연구를 하다 보니 생명체 자체의 능력에만 신경이 쓰여서 그 마법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서바이벌은 사용할수 있는 자가 너무 드물어서 이론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마법이기도 했고. "서바이벌은 9서클 마법이야! 대체 누가 여기다가 이걸 걸어둔거람! 지금 시대에는 최고의 마법사라고 해봐야 8서클 정도가 한계일텐데!" "인간과 오래 떨어져서 살다 보니 인간이 너무 그리워서 미치겠는 모양이지? 인간 위주로만 생각을 하다니... 잘 봐라. 내 몸에 걸린 마법이 인간이 사용할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이 마법은... 드래곤의 짓인가?!" 마딕스의 입에서 그가 필생의 목표로 잡고 조금이라도 따라잡고자 했던 존재의 이름이 나왔다. 드래곤... 지상 최강의 마법종족. =========================================================================== 쓰이다 많은 소재가 많은 이유는... 이것저것 실험적으로 나간 부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쓰면서 여러가지로 교훈을 많이 얻었죠..... 그 중 하나는 이렇게 구성을 엉망으로 잡아두면 나중에 피본다는 겁니다. 독자여러분들 앞에 반성하고 또 반성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버그 수정을 다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의미에서 차기작에서는 결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곘습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4화 -복수의 칼날 ③- 카렐은 마딕스에게 그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소상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 자신의 분노와 증오심에 일부 왜곡된 것도 있었다. 마딕스는 비록 괴팍하지만 마법사인 만큼 현명한 자였기 때문에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쉽게 짐작할수 있었다. "결국 네가 바라는 것은... 드래곤에 대한 복수인가?" "그렇다. 나는 그들을 용서할수 없다. 인간을 어떻게 이렇게 가지고 놀수가 있는가? 또 나는 기사로서의 자존심을 그들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명예를 아는 자로서 이대로 복수하지 않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수 없는 일이다. 이런꼴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하고 싶으나 나에게는 자살도 허용되지 않는다. 몇번이나 자살하려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이 저주받은 마법으로 고통만 더해질 뿐. 그래서 나는 복수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흥. 자살은 현명한 해결책이 아니지. 드래곤이 걸어둔 서바이벌 이라면 그 무엇으로도 풀수 없어. 목이 잘린다면 목만으로 살아남게 되고, 온 몸이 산산조각으로 찟겨진다고 해도 그 조각 하나하나가 계속 살아있는 상태가 유지되지. 나도 마법서에 실린 전설적이고 피상적인 기록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만일 그 기록이 맞다면 자네는 절대 죽지 못해. 유일한 방법은 그 마법을 디스펠 하는 것 뿐이야. 하지만 드래곤이 건 마법을 디스펠 할수있는 인간이 있을리 없지." 마딕스의 설명을 들은 일레노아는 공포에 질렸다. 드래곤의 마법이 그토록 굉장하다면 그들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 하지 않은가? "그럼... 드래곤이 그 자신의 몸에 그 마법을 건다면... 드래곤을 죽이는 것도 불가능하잖아요?!" "아니. 그건 아마 못할꺼야. 드래곤의 마법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니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지만... 이 마법은 불사신으로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이처럼 부작용이 심하지. 아니면 드래곤의 덩치는 크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 마법을 건다면 카렐에게 거는 것 보다 훨씬 많은 힘이 필요할지도 몰라. 사실 상대가 자기보다 크기가 훨씬 작지 않다면 장시간 걸어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테니까. 어쨋건 서바이벌 마법을 자신에게 걸어뒀던 드래곤은 얼마 발견되지 않았어. 그리고 어차피 이 마법은 자기 자신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니니까... 정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면 이걸로는 위험하지. 오히려 고통만 잔뜩 느끼다가 죽지도 못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구체적인건 알 수 없지만 말이야." "자아. 그럼 어떤가. 내 사정을 들었으니... 이제 나에게 협력할 것인가 아닌가만 말해주게. 협력한다면 연구비는 충분히 제공하지." "훗. 뭐라고? 말도 안돼는 소리." 그러나 마딕스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래곤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존재인가를.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드래곤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키메라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안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무리야. 어떤 키메라를 만든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성능에 한계가 있어. 차라리 검기를 쓸수있는 기사 한두명이 훨씬 더 강하니까... 키메라가 전쟁에서 널리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제작비용에 비해서 성능이 미비하기 때문이야. 지금의 어떤 키메라 기술도 검기 앞에서는 무력하니까. 나야 '완전히 새로운 생명의 창조'라는 대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 이상을 알아주는 국가는 없었지. 현재 기술로는 키메라 제작의 한계가 있으니까 차라리 기사를 육성하는 편이 훨씬 나은 거야." 카렐에게는 분하지만 분명히 조금도 틀릴 것이 없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 자신도 키메라 기술 따위에 희망을 거는 것이 우습다고 느끼고 있었을 정도이니... 키메라들은 분명히 강력한 전력이 될수있지만, 실상 전장에서의 활약도는 기사보다 더 처진다. 그렇다고 키메라 한마리의 제조 비용이 싼 것도 아니었으니 기사에게 가격 대 성능비에서 완전히 밀리는 것이다. 마딕스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애당초 인간이 만든 키메라를 가지고 드래곤을 상대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것을 만들려면 카렐이 준비해온 재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적어도 제국 전체의 예산을 전부다 투입해야 만들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렐은 마딕스에게 내밀 최후의 카드가 남아있었다. "후후후. 하긴 그 정도로는 약소할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키메라 연구재료로서 나 자신을 사용해도 좋다." "뭐라고?!" "카렐! 무슨 당치도 않은 소리를..." 그 말에 마딕스와 일레노아 모두 당혹스러움을 표했다. 어느 지역이건 어느 신분이건 키메라는 긍정적인 물건으로 비치지 못했다. 대체로 기이하기 짝이 없기 생긴 탓에 오는 외형적 혐오감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친 듯한 느낌 때문에 부정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반인들의 키메라에 대한 거부감도 키메라가 널리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키메라가 되겠다니. 그것도 자청해서. 명예를 목숨처럼 아끼는 기사라는 그것도 자가 자신이 직접 키메라가 되겠다고 한 것이니 놀라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정말인가?!" "그렇다! 이래뵈도 한때는 마스터 급이라고 까지 불렸던 몸이다. 몸은 이렇게 망가졌지만 아직도 마나는 지니고 있다." 그러나 마딕스의 놀라움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키메라 연구 마법사들에게 기사의 육체는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이었다. 순수한 의미에서 육체의 단련 만으로 그런 힘을 이끌어 낼수 있다니. 만일 그들의 힘을 키메라와 접목 시킬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보통을 뛰어넘을것이라고 누구나 추측할수 있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딕스는 기사의 힘의 비밀 속에는 분명히 생명 그 자체의 본질로 들어가는 열쇠가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기사가 자신의 육체를 마음대로 연구할수 있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기사도인 만큼 그들은 부정한 키메라 연구 따위에 관여하는 것 자체를 혐오했다. "탐이 나는군. 확실히... 그 육체를 빌려준다면 나도 생각해 보겠어. 크흐흐흐흐." "안돼요! 카렐. 자기 자신을 키메라로 만들겠다니... 그렇게 까지 할 정도로 복수가 소중한가요? 당신의 명예를 완전히 저버릴 정도로?" "일레노아. 나의 명예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졌소. 가문에서는 나를 죽은 자 취급하고 있을 정도지... 제국을 위해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자를 단지 드래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내팽겨치다니... 그러니 지금 나에게 남은 길은 제국 전체에 대한 복수 뿐. 그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미 사라진 거나 다름 없는 명예가 조금 더렵히 지는것 정도는 상관없소!" 그의 마음속에 심어진 분노가 이처럼 크고 무서운 것이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일레노아는 그 실체의 경악스러움에 몸서리를 쳤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한 행동은 카렐을 위해서 결코 좋지 못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드래곤에 대한 복수의 방법이 자기 자신을 키메라로 개조하는 것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한 방법이었다. "히이이이익!" 그들이 꾸미던 일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자 하인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레노아는 그들을 말릴 정신도 없었다. 카렐과 마딕스는 그들에게는 이미 관심조차 없었다. 마딕스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 마침내 들이닥친 이 엄청난 연구 소재에 완전히 벙신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후후후. 자신의 몸 까지 내놓으면서 드래곤에게 복수를 하겠다라. 정말 엄청난 원한이로군. 도와줄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게다가 자신의 신체를 공물로 내놓다니. 좋아. 마음에 들었다. 자네를 소재로 해서 내가 할수있는 한 최대한의 개조를 해주도록 하지. 다만 그 후에 싸우는 것은 자네 몫이야. 하지만 드래곤과 싸워서 이긴다고 장담할수는 없을지도 몰라. 나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내 능력이 드래곤을 이길수 있을 만한 몸을 만들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거든." "크크큭... 장담할수 없으리라고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어. 아무리 뛰어난 키메라 제조가라고 한들 드래곤에게 이기는 것을 장담할수 있을까? 드래곤에게도 이길수 있는 육체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면 이쪽에서 거부했을 꺼야. 그런 허풍쟁이는 필요없으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당신이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낸 육체 뿐이야. 어떤 형식이건 좋아. 최고의 형태로 만들어 줘. 그놈들에게 이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수 있도록 말이야! 하다못해 한번이라도 검을 찔러넣을수 있도록 만들어줘!" 카렐의 요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5화 -겨울 이야기 ①-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 안에도 눈이 쌓여서 매일 같이 치우지 않으면 허리까지 눈이 차오를 정도였다. 눈을 치우는 일은 거의 대부분 베로니카가 맡았다. 다행히도 그녀는 실버 드래곤인지라 냉기에 대한 내성이 강해서 이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실버 드래곤과 화이트 드래곤은 빙하 속에 파묻혀 있어도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로 냉기에 버티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치운 눈을 마을 한쪽에 가득 쌓아두는 바람에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눈 언덕이 생겨버렸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그 눈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모포나 나무 판자 등을 썰매로 삼아서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놀기도 했다. 그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세린까지 그 틈에 끼어서 아이들과 놀았다. 그녀가 드래곤이라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녀를 경계하고 두려워했지만 조금의 구김살도 없고 또 귀엽기 까지 한 그녀는 곧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끌어모았다. 라크레일은 세린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여러가지 놀이를 생각해냈다. 그는 얼음의 정령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워서 그 근처에 생긴 설원에 여러가지 모양의 눈 조각상을 만들도록 했다. 이 진기한 구조물들은 세린과 마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근처 영지까지 소문이 퍼져 눈길을 헤치고 눈 조각상들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아마레는 성 안에 그녀 혼자서 지낼 연구실을 하나 달라고 요구하더니 그 안에서 여러가지 실험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닌 뛰어난 두뇌를 더욱 과시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영지의 회계라던가 법무 등의 문제도 얼마동안은 그녀가 전부 담당했는데 엄청난 양의 업무를 혼자서 처리하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의 막힘이나 흔들림도 없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드래곤과 인간의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생기는 혼란도 몇번 있었지만 겨울이 깊어가면서 그런 문제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업무처리 등에 싫증을 느끼고 좀 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마법 실험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케리는 관료가 될법한 사람들을 모색해 봐야 했다. 아마레가 계획한 온실은 규모가 많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수확이 끝난 직후에 다시 파종을 할수 있었기 때문에 계획대로 된다면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 데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다만 걱정이라면 지력이 쇠해지는 문제였는데 이것은 아마레가 연금술을 써서 만들어낸 비료와 땅의 정령을 이용해서 어느 정도 회복시킬수 있었다. 그러나 여러번 쓸만한 방법은 아니라고 그녀는 몇번이나 당부를 했다. 마법의 힘은 자연 현상을 왜곡시킬수는 있으나 그 왜곡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시간 지속되게 되면 그 반동과 부작용이 어떤 형태로 자연계에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케리는 성에서 살게 되었다. 완전히 수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살만한 정도까지 복구를 시킨 것이다. 되도록이면 생활을 위주로 해서 다시 지었기 때문에 성의 본래 목적중 하나인 요새로서의 기능은 거의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드래곤들이 네마리나 영지를 지켜주고 있으니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드래곤들에게 의지할수만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그도 요새를 짓고 병사를 고용하리라 결심했다. 현재로서는 에마가 이끌고 있는 얼마 안되는 숫자의 용병부대가 전부였다. 에마는 용병 부대를 이끌고 영지 주위의 경계와 영지의 치안 문제를 신경써서 관리했다. 사실상 그녀는 영지의 경비대장이었지만 또한 케리의 보좌관 역활도 하고 있었다. 드래곤들은 지혜롭다고 전해지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세상 모든 일에 능통할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하는 '지배'라는 것은 힘에 의한 공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배하는 방법은 잘 알았지만, 통치하는 방법은 잘 알지 못했다. 특히나 개인주의적인 면이 강한 종족이라서 더욱 그렇다. 해츨링이 아닌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에게 보살핌 받기를 원하지도 않고 보살펴 주고 싶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일에 밝고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에마는 케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보좌관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특히 드래곤들이 쓸데없이 커다란 일을 벌이는 것을 자주 막아내었는데, 드래곤들로서는 실패로 생기는 문제를 두려워할 것이 없었으므로 과도하게 웅장하고 거창한 계획을 세워다 놓고 하자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거창하다고 해도 인간들이 생각하기에 따른 이야기. 그들 기준에서는 일반적인 이야기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골치아픈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수 있게 해주는데 에마의 공로가 가장 컷다. 그 외에도 그녀는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었다. 그 중 하나는 얼마동안 중단되어 있었던 검술 훈련이었다. 매일 같은 시각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설원에서 그들 남매는 검을 들고 마주섯다. 에마는 언제나 그녀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샤벨, 케리는 평범한 롱 소드였다. 라크리마는 혹시라도 사고가 벌어질지 걱정되었는지 그들이 훈련을 할때는 언제나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실력차는 압도적이었다. 케리는 자신이 나름대로 강해졌다고 믿고 있었지만, 아직도 에마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와 에마의 실력차는 철저하게 전투경험의 차이에 의해서 비릇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메꿀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에마의 샤벨이 공중에 빛의 호선을 그리며 날아오면 케리는 그것을 막아내는 데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수있을 정도였다. 챙! 채엥! 채엥! 에마는 냉정하게 케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해 가면서 샤벨을 휘둘렀기 때문에 샤벨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케리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공격을 가했다. 반면 케리는 에마가 어떻게 공격해올 것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바로바로 들어오는 검격을 정신없이 막아내느라 그런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호선과 직선이 계속 맞부딧치며 공방의 검무를 계속했다. 하지만 한쪽이 일반적으로 밀리는 검무였다. 케리는 에마의 공격을 막기만 급급할뿐 도저히 에마에게 공격을 가할수도 없었다. 한참동안 공방이 계속되다가 케리가 체력의 한계에 부딧힌 것 처럼 보이자 에마는 공격을 멈추었다. 그녀의 맹공이 사그러들자 케리는 숨을 헐떡이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반면 에마는 땀을 약간 흘리고는 있었지만 조금도 지쳐보이지 않았다. "후아...후아...후아... 어... 엄청나잖아 넌..." "오빠, 겨우 이 정도도 못 버티는 거야? 진짜 심하다... 난 거의 놀다시피 했는데." 에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훈련중에는 케리가 일부러 막기 좋게끔 최대한 직선적이고 정직하게 공격을 해주었던 것이다. 속도는 빠르지만 공격 방식이 정직해서 케리 정도의 수준이라도 반사적으로 막아낼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검술은 실전에서 닦여진 것이라 엄청난 스피드 외에도 무척이나 현란한 변칙공격을 주로 하고 있었다. 그녀가 진짜로 공격을 했다면 그로서는 도저히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이다. "지금 공격은 변칙 공격을 전혀 섞지 않았어. 제대로 한다면 막아내지도 못하겠네..." "하아... 그렇게나 실력 차이가 있었다니..." "오빠쪽이 너무 정직하게 검을 휘두르는 거야. 조금은 생각을 하고 휘두르라고. 지금 당장 막는 것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반격할 것까지 생각을 해. 막는 것만 가지고는 이길수 없잖아? 옵티걸 소드 같은 아티펙트를 휘두르다 보니까 뭐든지 다 잘라버릴수 있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은데. 게다가 무게 없는 칼을 휘두르다 보니까 근력이 너무 약해졌어." "근력은 어쩔수 없어. 이런 몸이 되어버렸으니까. 남아있는 근육이 하나도 없는걸..." 그 전부터 근력이 별로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여성화 되었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몸매가 엄청나게 갸냘프게 변하면서 근력도 따라서 엄청나게 줄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에마는 그런 핑게 꺼리도 용납하지 않았다. "오빠가 그런 몸이 되었다지만 난 태어날 때부터 여자였다고. 단련을 하면 어느 정도 까지는 근력 격차를 줄이는 것도 가능해." "그래그래. 알았어... 수련할께..." 잠시 숨을 돌리던 케리는 곧 다시 검을 집어 들고 훈련에 들어갔다. 한참동안 대련을 해서 에마의 몸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으로 추욱 젖을 정도가 되자 에마는 훈련을 끝마쳤다. 상대적으로 체력이 좋은 에마가 그렇게 될 정도였으니 케리는 완전히 녹초가 될 정도로 지쳐있었다. 조용히 두 사람의 훈련을 지켜보던 라크리마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작은 나무 물통을 가지고 달려왔다. "이거 드세요." "어라? 이게 뭐야?" 두 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에마도 하나 받아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케리는 물인가 싶어서 들여다보았지만 안에 들어있는 것은 연한 푸른색이 도는 여지껏 한번도 보지 못한 음료수였다. "체력회복제예요. 걱정마세요. 맛있는 거니까." "체력회복제?" 케리와 에마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모금씩 들이켰다. 맛은 뭔가 오묘한 맛이었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하고 약간 톡 쏘는 맛 까지 있는 것이 여지껏 먹어보지 못한 음료였다. 독특하면서도 맛이 좋은 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둘다 어느새 반 이상 마셔버렸다. "야. 이거 맛있는데..." "재료가 뭐야?" "예?" 에마는 무의식 중에 물어본 말에 라크리마가 괜히 움츠러 들자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이런 독특한 맛을 내려면 도대체 어떤 재료를 투입했는지 궁금해졌을 뿐인데, 재료가 뭐냐고 묻는 말에 움츠러 들다니, 눈치없는 케리도 라크리마의 태도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꼭 밝혀야 하나요... 재료를? 맛있으면 됐죠..." "...빨리 말해." "저번에 잡은 혼 서펜트 피랑, 와이번 눈알, 히드라 심장에 그리고 또..." "으웩!" 그 즉시 아침에 먹은 것 까지 한꺼번에 토해내버리는 그들 남매. 라크리마는 대단히 곤란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그래도 잘 정화했으니까 괜찮아요!" 메이드 드래곤 전기 35화 -겨울 이야기 ②- "그런거 버려..." "벌써 이만큼이나 만들어 놨는데..." 겨우 거주구역은 정비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수리가 한창인 성에 돌아가보니 지하실에는 어느새 아마레가 만들어낸 수십통의 드링크가 쌓여 있었다. '어느틈에 이렇게...'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처분이 문제였다. 이렇게 기분나쁜걸 전부다 마실수도 없고... 맛이나 향 등은 전혀 문제가 안됐지만, 재료를 알고나니 도저히 먹을수가 없는 것이다. 재료를 듣고나면 그냥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뱃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버틸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잔뜩 만들어둔 것을 그냥 버리기도 곤란했다. 일단 드래곤이 만든 것이니까 내용물이야 어찌되었건 성능은 탁월한 체력회복제일테니까. 그때 케리에게 성벽을 쌓느라 고생하는 토목길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법을 걸면 빨리 지을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드래곤들이 마법을 걸려는 것을 에마가 보조 마법을 과다하게 걸면 몸에 부담이 된다고 걸지 못하게 저지했던 것이다. 대체로 헤이스트나 스트렝스 같은 보조 마법을 사용하면 인체의 노화가 빨리 된다던가 마법이 풀린뒤의 피로가 극심해진다던가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은 용병들에게는 상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보조마법을 왕창 걸고 다니다가 신체의 부담을 버티지 못해서 몸이 엉망이 되거나 죽은 용병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화들은 꽤나 여러 번 있었는지 널리 알려져 있어서 용병들은 어지간 하면 보조마법의 도움은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대체로 신경질적일 정도로. 물론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보조마법의 폐혜와 자신의 목숨을 저울질 하다가 자신의 목숨 쪽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쨋건 케리는 토목길드 사람들을 보다가 이 드링크를 처분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힘 쓰고 있는 저 사람들에게 주면 어때? 이건 부작용도 없잖아." "에?! 이게 얼마나 비싼 재료로 만든 건데 저런 사람들한테 막 퍼줘요..." "아무리 비싼 재료라도 그렇게 만든걸 어떻게 먹으란 말이야! 재료를 몰랐으면 할수없지만 알고서 어떻게 먹어! 이런걸..." "히잉..." 하지만 그 말은 상대가 재료를 모르면 이런 초 혐오 물질을 먹여도 된다는 의미인가?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에마는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모르는게 약이다.'라는 옜말도 있었고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거야.'라는 말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버렸다. 드링크 제는 몇통씩 운반되서 토목길드원들에게 한 그릇씩 배식되었다. 처음에는 기묘한 색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던 그들은 의외로 맛이 있자 기뻐하며 몇 그릇씩 퍼마셧다. 케리는 대체 뭔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퍼마시는 그들에게 잠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하하하. 성주님. 이 음료는 대체 어떻게 만든 겁니까? 참 맛이 좋군요. 몸에 활력도 돋고..." "아... 아하하하. 드래곤들이 특별히 만든 거라서 재료는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곤란한 질문이 한번 들어왔지만, 케리는 얼버무려 버렸다. 할수없는 일이다. 그 재료 리스트는 도저히 그의 입으로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재료 리스트를 생각하기만 해도 속에서 뭐가가 올라올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걸 타인에게 가르쳐줄수 있을 까닭이 없었다. "흠. 저도 한번 만들어 먹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이것만 있다니..." "걱정마세요.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원하는데로 마실 만큼은 있어요." "하하. 여성주님은 참 좋은 분이시군요." "예?!" 그가 한 말에 케리는 화들짝 놀라며 귓가로 손을 가져갔다. 분명히 귀걸이는 제대로 달려 있었다. 용언의 힘으로 얻은 변신의 힘이 사라질 리는 결코 없는데. 그런데 대체 어째서? "여성주라니요?!" "아니셧습니까? 두 자매분중에서 특히 성주님은 아주 미인이라고 이 일대에 소문이 자자하던데..." 등뒤에서 에마가 피씩 피씩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리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지만, 에마는 그들이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실 케리를 보고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가슴만 안 달렸을 뿐, 몸은 날씬하고 피부도 고운 데다가 골격 자체가 여성에 가까웠다. 목젖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목소리도 아주 미성이었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미안하지만 그 소문은 틀렸습니다. 이 분은 분명히 제 오빠예요." 에마가 나서서 해명을 하자 그제서야 케리도 자신이 오해를 받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약간 기분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토목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도저히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케리를 바라봤다. 어떻게 뜯어봐도 약간 보이쉬한 남장소녀 정도로 밖에 안보이는데 누가 그 말을 믿을수 있겠는가? "저...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지금은 약간 저주를 받아서 이런 모습이 되어있지만... 난 분명히 남자라구요!" 케리는 애원 반 울분 반으로 소리쳤다. 그날 저녁, 케리와 라크리마는 단 둘이 성주 침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벽난로불을 쬐고 있었다. 이 침실의 침대는 더블베드. 물론 이 방은 그들이 사용하는 곳이다. 본래 케리는 각방을 쓰는 것을 원했지만, 라크리마의 고집을 이길수는 없었다. 그녀는 합방이 아니면 죽음을! 이라는 각오로 고집을 부렸고 결국 합방을 쓰기로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크리마. 이 모습 어떻게 바꿀 방법이 없을까? 역시 이대로는 좀 곤란해." "그건 힘들어요..." 그녀는 부찌갱이로 벽난로 불 속을 뒤적뒤적 거렸다. 벽난로라지만 장작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았다. 이것은 마법의 벽난로였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마법 아이템 만들기에 취미가 들린 아마레의 특제 벽난로로서 사라만다를 소환해 넣은 다음 결계로 봉인해 놓은 것이다. 자세히 보면 불꽃 내부에 살라맨더 한마리가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관찰할수 있었다. 벽난로 위에는 작은 드래곤의 머리가 부조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 머리를 살짝 건드리면 불이 타오르고 다시 한번 건드리면 불이 사라진다. 고작 이런 일에 마법을 써먹는 다는 것을 알면 인간 마법사들은 모두 기절 초풍할 정도로 놀라겠지만 드래곤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참고로 라크리마가 부찌갱이로 뒤적거리는 것은 벽난로 속에 들어있는 고구마와 감자 몇개였다. 불 속에 집어넣었다가는 그래도 명색이 불의 정령이라는 살라맨더의 불꽃이니 고구마나 감자 정도는 익기도 전에 거의 다 타버릴 것이라 불가에 놓고 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압도적인 마법도구를 고작 고구마 굽는 일에다가 쓰는 것을 보면 역시 마법사들이 졸도를 할 만한 일이었지만 라크리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구마를 굴리면서 설명했다. "예전에도 말했다시피 마법구성이 꼬여버리면 그걸 풀어내는 것은 아주 힘들어요. 용언의 힘으로도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 하고, 그 위에 덮어쒸워서 효과를 무마시키는 정도죠." "하아... 어쩌다가 이런 저주에 걸려서는..." "하지만... 더 예뻐지셧잖아요? 주인님은 그쪽이 더 보기 좋아요. 후훗..." 케리로서는 안된 일인지 잘된 일인지 모를 일이지만 라크리마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드래곤 답지 않게 휴머노이드(인간, 엘프, 드워프, 호비트 등의 종족)의 미적 감각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수하게 아름답게 받아들였다. 물론 드래곤인 만큼 정신력이 강해서 완전히 '미'에 현혹되는 일은 결코 없었지만 미(美)를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의 미적 기준은 남녀간의 차이 라던가 하는 세세한 부분에는 미치지 못하고 단순히 '예쁜게 좋다'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애당초 휴머노이드가 아닌 드래곤에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기는 했지만, 라크리마는 예쁜건 무조껀 예쁘니까 좋은 거지 특별히 남자는 사나이답게 생겨야 한다던가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당초 휴머노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종족이고 그녀의 미적 기준은 모두 그녀를 소유했던 자, 카리온에 의해서 주입받은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휴머노이드로서의 경험을 오래 쌓은 드래곤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미적 기준을 지닐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드래곤이니까. 다른 종족에 대한 미적 기준을 지닌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미를 평가하는 기준에 불과했다. 미적 기준은 판단 대상은 될수있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그렇게 큰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고는 볼수없었다. 설사 케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한다고 해도 그녀에게 외모는 사실 거의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숭배하고 섬기며 사랑하는 것은 존재 그 자체였지 외관이 아니다. "그래 뭐. 이렇게 된 이상 예뻐진거 좋아하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나... 하긴 이젠 익숙해질때도 됐지. 이런 몸이 된지 하루 이틀도 아닌데..." "그렇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구요." "그러고보니까... 에밀이나... 라이오스나... 전부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은것 같은데 상당히 멀게 느껴지네..." 그에게 옜날... 이라고 할것 까지도 없었지만 전에 모험을 다닐때 함께 다녔던 동료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모두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녀석들이었고, 즐거운 친구들이었다. "에밀은 엘프들의 숲으로 돌아갔겠지... 라이오스는 지금 자기 나라에 있을테고... 그러고보니 잭슨은 어떻게 되었을려나? 돈을 많이 가지고 도망치기는 했는데... 다들 잘 살까..." "글세요... 마법으로 찾아볼까요?" "아냐. 괜찮아... 보고 싶기는 하지만 지금 당장 보고 싶을 정도는 아니니까. 사실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법이나 써가면서 찾아댈 정도로 그립지는 않은것 같아... 그러고보니. 처음 여행길에 올랐을 때는 라크리마와 단 둘이었는데..." "지금은 친구들이 많이 늘었죠? 음 저도 신기하게 생각해요. 드래곤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혹시 주인님 한테는 드래곤 자석이라도 있는게 아닐까요?" "다행이다. 모험가 시절에 그랬다면 살아남지 못했을테지." 그는 자신이 정말 드래곤 자석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아무리 인연이 닿았다고는 하지만 평생동안 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드래곤을 이렇게나 많이 주위에 거느릴수 있다니... 생각해보면 정말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도 신기해하는 케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크리마는 텔레키네시스 마법으로 잘 익은 고구마를 들어올려 후후 불어가면서 까먹기 시작했다. 식히려면 못할것도 없지만 고구마와 감자는 가장 뜨거울때 먹어야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수고를 감수하면서 먹는 것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①-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다가 조금은 사그러들 기미를 보일 무렵, 수도에서 황제가 내려보낸 연락원이 왔다. 이번에 황태자가 드디어 황태자비를 얻게 되었으니 수도로 올라와 인사를 올리라는 전갈이었다. "하아... 그 황태자님이..." 케리는 편지를 읽어보고는 잠시 식은땀을 흘렸다. 황태자는 사실 여자라는 비밀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가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귀걸이만 하고 있으면 아예 남자가 되어버리고, 황태자의 외모는 본래부터 약간 중성적인 미가 있으니 안 들킨것 같았다. 좌우간 황태자가 결혼한다 함은 황실의 일급 경사. 귀족의 일원으로서 올라가보지 않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맨손으로 갈수도 없는 일. 황태자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봐서라도 결혼한다는데 빈손으로 가는 것은 아니될 말이다. 하물며 상대는 제국의 태자가 아닌가. 게다가 드래곤의 주인이라는 체면이 있기 때문에 굉장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케리의 영지는 아직 자리잡히기는 커녕 먹고사는 것이 걱정일 판이라 세금으로 걷은 것은 하나도 없고, 케리의 생활도 드래곤들의 보물에 의지하고 있었다. 보통 선물로는 특산물 등을 바치는 것이 관례였는데 특산물을 거둬드릴 만한 형편이 못되니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결국 케리는 아마레에게 부탁해서 보관해 두었던 뿔 하나를 얻었다. 골드 드래곤의 뿔은 밝은 황금색으로 번쩍 거리는 물건이고, 황금보다 훨씬 가볍고 단단하고 마법적인 특성까지 지니고 있으니 그 가치는 황금보다 훨씬 엄청난 것이었다. 가공하지 않고 통채로 바친다고 해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 충분히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에마는 그 광경을 영 못마땅 하다는 듯이 지켜보았다. 용병 출신이고 험하게 살아가다 보니 귀족들과 알력이 많았고, 사회의 험한 면을 많이 겪어본 그녀에게는 황제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선물을 바치는 것으로 보여서 영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불만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우리 조상인 카리온이 평생 관직을 맡지 않았던 것은 이 것 때문일지도 몰라."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카리온은 자유로움을 좋아했다고 하니까... 권리를 지니는 댓가로 일정한 의무와 책임에 얽메어야 하는 귀족의 삶을 걷는 것은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평생 야인으로 지냈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라크리마도 동의했다. 수도에 올라가게 된 것은 케리와 에마, 그리고 라크리마였다. 아마레는 요즘 이상한 연구에 빠져 있어서 별로 나돌아 다니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골드 드래곤들은 그 지적 능력 때문에 일생에 몇번은 학문 연구에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세린은 모처럼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에 이 마을에서 좀 더 놀고 싶어했고 라크레일은 세린을 돌봐주기 위해서 남았다. 베로니카는 라크리마가 온갖 허드레 일을 떠맡기는 바람에 마을을 떠날 처지가 못되었다. 그 결과 세명이서 마차에 선물을 싣고 영지를 출발해서 수도로 가게 된 것이다. 제국 수도는 황태자의 결혼 때문에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황태자비로 간택된 여자는 제국의 유명한 공작가의 영애로서 아주 평판이 좋은 여자였다. 속 사정은 극비정보였으니 황태자가 미혼으로 남아있는 것은 국가를 불안정 하게 하는 요소중 하나였는데 이번 결혼으로 국가의 안정도가 더 높아졌으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라는 것은 정치적인 해석이고 대부분의 민중들은 별 생각 없이 그냥 경사라니까 경사인줄 알고 기뻐하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국가적인 규모의 이벤트를 접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축제 분위기를 이루기 위해서 특별 공휴일을 선포하고 빈민들에게 무상으로 옷과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으며 황실 소유의 사냥터와 궁궐의 정원 등을 대부분 개방하는 등 다양한 축하 행사를 벌였으니 평민들 까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황궁에 도착한 케리는 작위는 낮았지만 공신이고 황태자의 특별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황태자의 결혼식은 물론 피로연에까지 참석할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라크리마는 당연하게 따라나섯지만 에마는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모처럼 이런 곳에 왔으니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케리가 달랬기 때문에 억지로 따라나서게 되었다. 결혼식은 만신전에서 아주 성대하게 치뤄졌다. 케리는 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대관을 받은 뒤 키스와 결혼 반지 교환, 모든 신들에게 하는 서약이 맹세를 거친뒤 황태자의 옆자리에 앉는 황태자비를 보고 묘한 느낌을 감출수가 없었다. 공작 가문에서 곱게 자라서 무척 기품있고 양순해 보이는 저 아가씨는 자신의 남편이 마법으로 남자로 몸을 바꿨을 뿐 본래는 여자라는 비밀을 평생 눈치라도 챌수 있을까? 만일 눈치챈다면 반응이 대체 어떻게 될까?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묘한 느낌을 받을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피로연이 이어지기 전에 선물을 가져온 영주들이 황태자에게 그것들을 바치는 순서가 있었다. 물론 선물을 가져온 영주가 몇백명씩이나 되니 그 모든 자들이 일일이 선물을 바치는 의식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어서 이 자리에서 선물을 바칠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아주 지위가 높은 자거나 혹은 아주 진귀한 선물을 가져온 자. 케리는 후자에 속한 덕분에 직접 아마레의 뿔을 바칠수 있게 되었다. 물론 황태자의 배려도 있었을 것 같다. "파렌디아 영주 케리 레그너스. 골드 드래곤의 뿔을 바친다고 합니다!" 사회자의 낭독이 있은뒤에 궁정의 하인들이 쿠션위에 놓인 뿔을 들고 케리의 앞에 서서 입장했다. "오오. 저 광택 좀 봐요..." "엄청나게 크군..." 케리의 선물은 많은 귀족들과 귀부인에게 주목을 끌었다. 드래곤 본이나 드래곤 혼, 드래곤 스케일 중에서도 특히 골드 드래곤의 것은 대단히 귀하게 여겨지는데 그것은 특별히 골드 드래곤의 것이 뛰어나서 라기 보다는 인간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속, 황금의 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드래곤들에게는 아주 불만스럽게 여겨지는 사항이었지만, 금을 좋아하는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 였으니 별로 변명할 도리는 없었다. 아마레의 뿔은 길이가 4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물건이었다. 그만한 크기의 물건이 금빛으로 번쩍 번쩍 거리니 어찌 탐이 나지 않을수 있겠는가? 게다가 뿔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있는 모습이라던가 표면에 나타나있는 무늬 등이 아주 예술적으로 보여서 그 자체로도 엄청난 예술품으로 보였다. 게다가 사실 겉은 금빛으로 빛난다고 해도 강도는 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단단하고, 무게는 알루미늄만큼이나 가벼우니 사실상 실제의 금보다도 훨씬 가치있는 것 이었다. "고맙다. 아주 귀한 물건을 가져다 주었군. 케리 레그너스. 그대가 바치는 충성의 증표는 나의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역시 드래곤의 주인 답게 드래곤에 관한 물건을 가져왔구나. 내 이것을 가공해서 궁정에서 쓰이는 물건으로 만들어도 될까?" 황태자도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았다. 기품있어 보이는 황태자비 조차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정도였으니 얼마나 주목을 받았는지 쉽게 알수있었다. "황태자 전하 뜻대로 하십시요." "하하. 정말 고마운 선물이로군." 그 다음 순서는 피로연이었다. 잠시 케리가 혼자된 사이 그의 주위에는 여자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대부분 드래곤 혼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서 혹시 케리와 가까이 지내게 되면 또 하나 얻을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부류인것 같았다. 그가 난감해 하는 사이 잠시 화장실에 갔던 라크리마가 돌아와 드래곤 피어를 살짝 담에서 그녀들을 노려보자 그녀들은 모두 움찔 거리면서 물러나버렸다. 아무리 약하게 넣었다고 해도 곱게 자란 귀족가문의 여자들이 어떤 생명체에게라도 공포를 심어주는 드래곤 피어 앞에서 물러나지 않을수는 없을 테니까. "하아. 주인님. 여자들한테 그렇게 둘러쌓여 있으면 안되요. 저것들은 주인님이 황태자에게 바친 선물을 보고 주인님이 엄청난 부자인줄 알고 혹해서 달려든 것이라구요." "그래그래. 알았어. 라크리마. 춤이라도 출까?" "......으음 전 잘 못추는 데요. 인간들의 춤에는 흥미가 없어서..." "괜찮아. 나도 잘 못추니까. 천천히 몇번 돌다가 오면 돼." 라크리마가 꼭 달라붙는 바람에 케리에게 접근할수 없게 된 여자들은 대신에 에마 쪽을 공략해 들어갔다. 치렁치렁하고 장식이 많이 달린 드레스를 입기 싫었던 에마는 금색 술이 달린 하얀 남성용 예복을 입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묘하게 중성적인 매력을 보이는 바람에 여성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직도 약간 남아있는 염세적인 분위기는 더욱 흥미꺼리가 되었고, 케리의 여동생이라는 점에서 뭔가 얻어보려는 남자들 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그녀는 여간 곤란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한편 가벼운 마음에서 라크리마와 한 번 춤을 추기로 한 케리는 상당한 고생을 했다. 보통 이런 자리에서 추는 서로 안겨서 추는 식의 춤은 둘다 못추니까 어느 한쪽에서도 제대로 리드를 할수 없어서 춤추는 모양세가 우스꽝스럽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해서 마구 충돌하고 뒤엉키는 등 어지간히 곤란한 것이 아니어서 결국 도중에 중단하고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지. 둘다 못추니까 괜찮을줄 알았는데 더 문제네..." "아하하하. 걱정할거 없어요. 이것도 충분히 재미있는 걸요." 라크리마야 주위에서 비웃는 듯한 시선을 신경쓸 것 없으니 충분히 재미있을 만도 했다. 그녀에게 다른 인간들에게 비치는 모습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드래곤들이 만족하고 추구하는 삶은 자기 자신에 충실한 삶이지 다른 존재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는 삶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서 드래곤의 행동은 괴팍하다고 여겨지는 것이고, 그 때문에 많은 드래곤이 악룡으로 몰리기도 하는 것이다. =========================================================================== 최근. 더 로그를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음 참 재미있어요. 역시 휘긴경...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블랙 드래곤 윌카스트 씨. 사악한 블랙 드래곤의 성격에 충실한 것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 악당은 악당 다워야 제맛.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②- 적당히 즐기고 있던 케리에게 한 시종이 다가와서 황태자의 부름이 있으니 혼자서만 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케리가 혼자서만 오라고 하는 이야기에 라크리마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시종을 따라갔다. 시종에게 불려간 방에는 아직 예복을 벗지 않은 황태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케리 레그너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황태자 전하." "응. 고맙네." 황태자는 그렇게 말하고 포도주 한잔을 그에게 주었다. 케리는 황공하다는 듯이 그 포도주 잔을 받았다. "그런데... 괜찮으신가요? 황태자 전하는..." "나야 별 문제 없지. 하지만 이 비밀을 황태자비에게 알려주는 것은 절대 금물이야. 알겠지?" "......그렇게 바라신다면야..." 케리도 황태자비가 황태자가 사실 여자이지만 마법의 힘으로 남자가 되었다는 비밀을 알아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떨떠름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부부사이에 비밀이 있다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만되지 않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 거짓말이란 좀 그런데..." "자네는 거짓말할 필요 없어. 어차피 황태자비는 이런 일을 자네에게 물어보지도 않을 테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일부러 분쟁을 만들고 싶은건 아니곘지?" "예. 물론 그렇습니다만." "황태자비는... 나를 좋아하고 있어. 나도 그 아이를 좋아하고. 분명하게 이성으로서 끌리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 아이는 아마 나를 이성으로서 생각하고 있을 꺼야. 정략결혼이기는 하지만 꽤 오래 전 부터 황실의 안녕을 위해서 계획된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릴 때 부터 약혼자로서 만났으니까 적어도 호감은 지니고 있겠지." "그럼... 그 때부터 계속 속여온 것인가요? 제가 안 나타났으면 어쩔려고 하신 거예요?" "양해를 구하고... 어떻게든 살았겠지. 저 아이가 이해해줄 지는 모르지만, 이해해 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혹시 후계자 문제라면 뭐 방법이야 여러가지 있으니까. 조금은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 까지도 각오하고 있었어. 어쨋건 천우신조로 너를 만나게 되었으니까 다행이지." 그의 귀에는 케리의 그것와 똑같이 생긴 귀걸이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케리는 이 기회에 여지껏 그에게 느끼고 있었던 궁금함을 풀어보고 싶어졌다. "저기. 외람되지만 몇가지 질문 드려도 될까요?" "물론 얼마든지 물어보게."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그 뭐냐... 본래 성별로 인한 갈등이라던가. 그런건 없으신 건가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난 이걸 신이 나에게 내려준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해. 사실 우리 제국은 여황제가 탄생한 전례는 얼마 되지 않잖아? 여자의 몸으로 황제에 오르기는 어려워. 하지만 이대로 나간다면 난 별 무리 없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수 있을꺼야. 그럼... 국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 내가 세워둔 계획들을 실현해볼수 있곘지. 난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와서 그런지 별로 그렇게 위화감이 느껴지지는 않아." 케리로서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성별이 전환되고 나서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데 이 황태자는 성별 전환이 된 것을 오히려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어쩌면 권력욕일지도 모르겠지.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나는 권력욕이 강한 편이거든. 그 외에도 백성들에 대한 책임감... 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도 있고. 그래서 본래 성별까지 포기할수 있었던 걸지도 몰라." "흐음... 그런 생각도 할수있군요... 하지만 역시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는 자네도 평범한 사람은 아냐." 황태자는 포도주를 한모금 들이키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 최강의 생명체라고까지 불리는 드래곤을 다섯 마리나 종속 시키다니. 그것도 자신은 그렇게 강하지도 없으면서... 자네에게는 정말 행운의 신이 붙어다니는 것 같군." "종속 시켰다는 것하고는 틀려요. 저는 특별히 라크리마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다른 드래곤들도 라크리마와의 인연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저를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예요." "인연이라. 그럼 자네에게는 인연의 신의 축복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드래곤과의 인연이라... 정말 보통 일이 아니야. 자네 같은 인간은 앞으로의 역사에도 두번 다시 나오지 않을것 같으니까." "예..." 황태자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케리는 껄끄러워졌다. 사실 드래곤들과 인연을 맺게 된 원인에 자신의 능력이라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따지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칭찬을 받으니 자신이 받지 말아야 할 상을 받는 것 같아서 영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 다음에 황태자는 의외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솔찍히 말하자면, 자네가 제국의 적이 되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인 일이야. 자네를 적으로 돌렸다가는 어떤 나라도 남아나지 못할것 같으니까." "전하. 무슨 말씀을... 전 국가에 반역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말인가? 내 생각에는 그 정도의 힘을 손에 넣었다면 이 세계라도 한번 손에 넣으려고 해볼 것 같은데?" "그런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흠...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떤가? 자신에게 힘이 있다면 이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사실 평민들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 가끔은 이 나라의 요지를 장악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보고 싶은 떄가 있을 텐데? 아니, 정치가 잘못되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느낄 때도 있지 않을까? 응?" "......그런 마음이 없다고는 할수 없지만. 저는 되도록이면 드래곤들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습니다. 드래곤의 힘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면... 결국 저 자신을 잃어버리고 힘에 휘둘릴것 같으니까요." "힘에 휘둘린다라. 알수없는 말이로군. 힘이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꼭 그것이 무력이 아니더라도, 마법의 힘이건, 정치력이건, 권력이건 간에 말이야. 자네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네도 힘이 없는 설움을 많이 겪었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힘이 있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잖아. 특히 드래곤들과 친구라는 것은 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힘이 되지 않는가?" 케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로서는 인정하기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되도록이면 모든걸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고 싶어요. 드래곤의 힘에 의지하는 것은 왠지... 이것은 제가 지녀야 할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그래요." "그래? 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간다는 것은 대체 뭘까? 지금만 해도 그대는 드래곤의 힘을 빌리고 있지 않나? 드래곤의 힘을 빌려서 여성화의 저주를 풀었고, 스톰 드래곤에게 무예를 전수받았지. 그리고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강력한 아티펙트를 얻었고, 게다가 지금은 영지까지 얻지 않았나? 충분히 드래곤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데?" 황태자의 질문에 케리는 곤란해졋다. 과연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에게 라크리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커녕 하루하루 생활을 걱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이미 라크리마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만큼 수동적이지 않으니까... 그의 행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노력하는 존재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만..." "내가 보기에 자네는 단지 야심이 없는 것 같아. 아니 그렇다기 보다는 아주아주 이기적이야. 왜 드래곤의 힘을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용하려 하는 걸까? 그러면서 그렇게 강력한 힘으로 할수있는 일에 대해서는 나 모른다는 듯이 눈을 돌리는 것은 오히려 직무 유기가 아닐까? 나는 어떤 형태로든 강한 힘을 얻은 자는 그것을 정당한 방법으로 사용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일 황제가 될 운명을 지닌 내가 '혈통으로 얻어진 것은 내 힘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싫어.'라는 이유로 제국을 방치해 둔다면 우리 나라는 대체 어떻게 될 것 같나? 틀림없이 국가 전체에 좋은 영향이 미치지 않겠지. 내가보기에는... 자네에게는 세상을 바꿀수 있을 만한 힘도 있어. 그런데 어쨰서 그렇게 하지 않는 거지?" "그 말도... 맞습니다만... 저는 저에게 그렇게 강한 능력이 있다고 자신할수 없습니다. 아니, 저 자신이 드래곤들의 힘을 제어할수 있다고 생각할수 없습니다. 저는 우연히 드래곤들과 친구가 된 것입니다. 단지 그것 뿐이죠. 물론 이 힘이 세계를 바꿀수도 있는 힘이라는 황태자 전하의 말에는 공감을 합니다만... 제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저보다 현명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저는 제가 생각해도 그렇게 똑똑하지는 못해요. 제가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틀림없이 뭔가 문제를 일으킬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래곤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주저하게 되는 것이지요." "훗... 이번에는 내쪽이 자네를 이해할수가 없구만." 황태자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전혀 공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닌듯 했다. 단지 자신이 케리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일뿐,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니까.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다고 납득하고는 있었다. "그럼 이런건 어떤가? 그 힘을 유용하게 사용할수 있는 자에게 위탁하는 것은?" "...누구 말입니까?" "물론 나지." "예?" 케리는 잠시 경계심을 갖추었다. 혹시 황태자는 라크리마들에게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되었던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게 두렵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아. 오히려 황제가 되어도 못할 일이 많은걸 알기 떄문에 걱정일 뿐이지. 그러니 나에게 그 힘을 위탁하는 것은 어떤가?" "글세요... 라크리마가 원하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저를 섬기고자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럼 방법이 있을 텐데... 흠. 좋아. 맞아. 내 후궁이 되는건 어떄?" "네에?!" 이번에는 경계가 아니라 아예 경악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케리의 얼굴 표정을 황태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나와 결혼한다면 괜찮지 않나? 주인의 남편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면 그들도 주저할 필요는 없을텐데?" "그... 그건 아무래도 좀... 게다가 저는 보다시피 남자고..." "난 원래 여자야. 게다가 우리 둘다 성별은 자유자재로 바꿀수 있잖아. 그렇다면 별 상관없지 않을까? 굳이 자네가 남자이기를 바란다면 내가 침실에서 여자가 되어줄수도 있지." "하지만... 오늘 당장 결혼하시지 않았습니까?" "말했다시피 우린 둘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략결혼적 성격이 없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정략결혼을 한번 더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드래곤의 마스터라면 충분히 황가와도 격이 맞지 않을까?" "그래도 황태자비께서 싫어하실 겁니다. 이제 막 신혼인데 후궁을 들이다니..." "괜찮아. 그 아이는. 그 아이도 자신의 위치를 잘 자각하고 있으니까.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별로 신경쓰지 않을꺼야. 그리고 지금 당장 들인다고 한 기억은 없어." "으...으으..." 케리는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설마 그가 이런 식의 제안을 할 줄이야. 도저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어...어쨋건 저는 싫습니다!" "그 말은 내가 싫다는 건가? 응? 그 발언은 반역죄를 적용시킬수도 있을것 같은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저는 그러니까 배우자로서는 아무래도 좀..." "흠.... 뭐 좋아. 좌우간 생각해보도록 해. 난 아무래도 네가 탐이 나니까. 단순히 호감가는 부하로 썩히고 있기에는.... 솔찍히 너무 불안한 인물이기도 하거든. 너는." "하아..." 저절로 한숨이 터져나왔다. 자신이 황태자에게 결혼 대상자로도 비치고 있었을 줄이야. 설마하니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③- 황태자에게서 예상외의 소리를 들은뒤, 케리는 얼이 빠져서 방을 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도저히 황태자의 사고를 납득할수가 없었다. 미리 지정되어있는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크리마도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엄청나게 분노했다. "말도 안돼요! 그런 결혼은 제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아요!" "괜찮아. 내가 거절하고 왔으니까..." "으으... 정말 마음에 안드는 자식이네..." "그래도 속 마음은 좋은 사람 같으니까..."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요! 주인님은 매일 느긋하게 있으니까 계속 그런 일을 당하는 거라구요. 조금은 독하게 굴어봐요!" 케리도 라크리마의 말에 공감하고는 있었지만 본래 그가 타고난 성격이 그런데 하루 아침에 고칠수야 있겠는가? 만일 그런 일이 쉽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성격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없어졌을 것이다. 한편 에마는 케리의 방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자신의 방에 돌아와 있었다. 피로연으로 벌어진 무도회에 대한 감상은 영 좋지 않았다. 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그녀에게 흥미를 보이면서도 은근슬쩍 얕잡아 보고 있는 눈치가 훤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마치 동물원의 짐승이나 서커스단의 광대가 된 느낌이라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녀는 대단히 잔혹한 성격이었지만 그렇다고 앞뒤 가리지 않고 날뛰는 성격은 아니라 그런 자리에서 귀족들에게 화를 냈다가는 어떤 흉변을 당할지 모르니 계속 참고 있었다. "하아... 정말 이런건 싫어. 차라리 용병 생활이 그립다..."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에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자의 몸으로 용병 생활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것은 실전에서 닦인 것이고 그녀라고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용병이 되고 난 뒤에 보통 험한 일을 겪은 것이 아니었다. 그 중에는 정말 무덤 속까지 가지고 가기로 결심할 정도로 아팟던 기억에 대한 비밀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용병 생활을 하고 나서 몇해간을 되돌아보면 그녀는 정말 지금 자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치명상을 입어서 죽을 고비를 넘긴 일 같은 거야 별로 말할 꺼리도 없는 이야기. 배신당하거나, 오해를 삿던 일, 시비가 붙은 일은 셀수도 없을 정도. 그리고 심지어는 여성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을 당한 적도 있었다. 남자 중에서도 곱게 생긴 사람은 험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것이 거친 용병의 세계인데, 여자인 그녀가 겪었던 일은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수가 없는 끔찍한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꼭 그녀가 아니더라도 여용병들은 거의 대부분 그런 쪽으로 고운 기억만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아픈 경험들은 그녀에게 드래곤의 피가 흐른 덕분에 천부적으로 타고 난 강한 힘을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 그녀의 실력은 엄청난 속도로 일취월장하게 되어 용병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녀는 일류 용병이 될수 있었다. 힘을 얻은뒤 그녀가 처음으로 하기 시작한 일은 복수였다. 그것은 단순히 그녀에게 고통을 준 개개의 개체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한때는 거의 세상을 향한 증오에 가까웠었다. 당연히 그녀의 오빠인 케리도 복수의 대상이었다. 그에 대한 복수의 방법은 거의 의도적인 무관심과 그녀의 실체는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음모를 꾸미는 것이었다. 에마는 집안을 말아먹음으로서 자신의 인생까지 망쳐버린 그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서 그의 앞에 보이지 않는 함정을 가득 파두었던 것이다. 케리는 몇년 씩이나 보기 좋게 거기에 걸려들었고, 배후에 그녀가 있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자신에게 미소지어 주지 않는 행운의 여신만 탓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아무리 깊은 원한이라도 결국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메꿔져버리는 것이었나보다. 그녀도 슬슬 복수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도대체가 케리는 너무 순둥이 같아서 찔러도 찔러도 전혀 아파하지를 않다보니 복수하는 의미가 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녀는 슬슬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젠 슬슬... 용병 생활도 접을까... 하긴 뭐. 원래부터 정 붙이고 있던 일은 아니니까 당장 그만둬도 상관 없긴 하지만... 워낙 오래 하다보니까 다른 일을 손에 잡는게 익숙하지 않은 것도... 좀 있구나. 하아. 모르겠다. 좌우간 오늘을 너무 피곤하고 지류했어. 이런게 귀족이라면 용병일은 그만둬도 귀족 같은건 안할래..." 그렇게 혼자서 말한뒤 그녀는 촛불을 껏다. 헌데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무언가 느껴졌다. 그녀에게는 무척 익숙한 느낌이지만 이런 곳에서 느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감각. 음침하며 싸늘하며, 무언가 쿡쿡 찌르는 듯한 기분나쁜 느낌... 그녀 자신도 한때 늘 주위에 흩뿌리고 다녔던 살기였다. 그녀는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창문 뒤에 있는 테라스에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어두워서 형태는 잘 파악되지 않았지만, 인간형을 하고 있음에도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꺄아아아악!" 그녀는 즉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비명소리는 달리 놀라거나 해서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주위의 구원을 요청하는 의도 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감정은 지극히 배제되어 있고, 완전히 일부러 지르는 듯한 비명소리 실제로 이런 식의 기습을 여러차례 당해봤던 에마는 전혀 놀라지 않았고, 단지 의문의 적이 이런 곳에서 습격해 왔을 때는 최대한 주위에 잘 들리게 고음의 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자신을 지키려는 의도애서 지른 비명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명소리만 지르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나약하지도 않았다. 휙! 그녀는 마침 침대에 누워버리려 했기 때문에 칼은 차고 있지 않아서, 지금 당장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거나 던지고 보니 촛대였다. 촛대는 유리로 만들어진 창문을 깨고 그림자에게 날아갔다. 검은 그림자는 갑자기 물건이 날아오자 당황한듯 했지만, 곧 팔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휘둘러지고 촛대는 그것에 맞아 아래 있는 정원으로 떨어졌다. 밑에서 누군가가 밀회를 벌이고 있었다면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았을 지도 모르지만, 에마나 그 존재나 그런 것을 신경써줄 정도로 마음 착하지는 않았다. 에마는 촛대를 던져서 얻은 황금같은 틈을 몸을 날려서 자신의 검을 집는데 사용했다. 칼집에서 뽑아져 나온 샤벨은 희미한 빛을 받아 반사광을 사방에 흩뿌렸다. 정체를 알수없는 적은 분명한 살의를 품고 에마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마는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긴장하고 있었다. 상대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은 굉장히 불리한 일이 아닐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뭐지? 저런 외형은 본적이 없는데... 언듯 보기에는 인간형이지만 인간은 아닌것 같아. 그렇다고 엘프나 드워프, 하플링 일리는 없고... 오크나 오우거와도 체형이 틀리다. 그렇다면 혹시 마물인가?' 적당히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히 맞을 만한 생명체는 생각나지 않았다. 어쨋건 정체를 모르는 적과 오래 싸워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에마는 그 즉시 바닥을 향해서 소닉 블레이드를 사용했다. 퍼엉! 공기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바닥에 깔려있던 대리석 타일이 파편 조각이 되어서 튀어올랐다. 언듯 단순해보이는 공격이었지만, 아무리 돌조각이라고 해도 소닉 블레이드에 의해서 폭사되어 나온 것이라면 거의 탄환에 필적하는 속도를 지니는 파편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맞아 죽을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공격에도 적은 별로 물러나려 하지 않는 것을 보니 상대는 물리력에 타격을 입지 않던가 아니면 껍질이 매우 단단한 것이 틀림없었다. 이런 녀석과 싸우는 것은 달갑지 않다고 생각한 에마는 재빨리 침실 문을 열고 후다닥 뛰쳐나갔다. 바깥 복도에는 그녀의 비명소리와 방금전의 폭발음을 듣고 무슨 일인지 의아하게 생각한 구경꾼들이 바글바글 몰려있다가 그녀가 칼을 가지고 뛰어나오자 놀라서 우르르 물러섯다. 아직도 피로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도 많이 섞여있었다. 에마는 즉시 구경꾼들을 헤치고 뒤로 피신했다. 등 뒤의 적이 궁금했지만, 그녀는 잠깐의 궁금증 때문에 훌륭한 인간 방패를 포기할 성격이 못되었다. 게다가 적이 만약 진짜로 자신을 헤치우려 한다면 그녀가 어디에 있건 쫓아오려 할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과연 그 검은 그림자는 에마의 뒤를 쫓아서 방에서 뛰쳐나왔다. 아니, 그것은 더 이상 검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복도에 켜진 불빛 아래에 그 모습을 확실하게 드러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악!" "저게 뭐야!?" "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존재의 실체는 그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인간형이었지만, 키는 2미터를 넘었다. 온 몸이 탁한 검은색 각질로 덮혀 있었고 각질은 마치 뿔이라도 돋아난 듯이 여기저기가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각질에는 작은 붉고 푸른 점 무늬가 군데군데 박혀있었다. 얼굴은 더욱 끔찍하기 짝이 없어서 눈동자도 없는 탁한 황색 안구, 그저 두개의 구멍만이 뚫려있는 콧구멍, 괴상하게 뒤틀린 입사이에서는 커다랗고 뾰족한 이빨이 튀어나와 있었으며 얼굴 전체는 마치 악마의 형상과도 같았다. 머리도 완전히 각질로 덮혀 있었으며 양 관자놀이에서 물소의 그것과 같은 커다란 뿔이 돋아나 있어서 더욱 흉악해보였다. 손과 발에는 무기로 써도 될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손발톱이 돋아나 있어 실로 위협적이기 그지 없었다. 또한 엉덩이에는 전갈의 그것과 같은 꼬리가 돋아있었는데 꼬리 끝에 달린 침도 매우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처럼 무섭게 생긴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자 편안히 놀려는 마음으로 와있던 귀족들은 비명만 지를뿐 이 갑자기 나타난 괴물 앞에서 제대로 도망치지 못했다. 덕분에 에마는 그들을 유용한 방패막이로 삼을수 있었다. 괴물은 이들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지 양 팔을 마구 휘둘러서 그들을 공격했다. 푸악! 푸악! 촤악! "꺄아아아악!" 날카로운 손톱에 의해 단숨에 갈갈히 쪼개진 육편과 뼈조각이 사방으로 터져나가고, 복도는 피로 물들어버렸다. 괴물의 힘은 무시무시하기 그지 없어서 보통 인간은 전혀 상대도 되지 않았다. ======================================================================== 최근 집필 방식을 바꾸는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한화씩 쓰는게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 단위를 연재하지 않고 계속 써나가보는 것이었는데요. 결과는 대성공. 이전보다 몇배는 잘 써집니다. 그래서 차기작에서는 집필 방식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④- 에마는 괴물의 공격을 피해다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몰려든 구경꾼들을 인간 방패로 삼아서 도망다녔다고 해야할 것이다. 얼어 있던 자들은 빨리도 죽어버렸고, 조금 정신 있는 자들을 와 하고 도망쳐버려서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했으나 경비병들이 몰려올 만한 시간 정도는 쉽게 벌수 있었다. 에마는 경비병들이 복도 한쪽에서 달려오자 아크로바틱 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그들 뒤에 뛰어내렸다. 그들은 샤벨을 들고 엄청난 움직임을 선보이는 에마 때문에 잠시 판단이 헷깔렸다. 대체 어느 쪽이 적인거냐? "살려주세요! 저 괴물이 절 죽이려 해요!" 그들이 잠시 혼동을 일으키는 것을 알아챈 에마는 눈치빠르게 괴물을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병사들은 에마와 괴물의 외형을 한번 비교해보더니 곧 적이 어느 쪽인지 판단해냈다. 에마는 검을 들고는 있었지만 검에는 피 한방울 묻지 않았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더러 미녀였다. 하지만 괴물은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고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쪽에서 구원을 요청했다. 고로 괴물이 적이다. 라고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뭠춰라! 이 괴물!" "어서 물러서라!" 하지만 역시 상대가 어디 지옥에서 뛰쳐나온 괴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이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견제를 하는 것을 방해하여 그들은 뻣뻣한 동작으로 창을 뻗어 괴물을 겨냥했다. 괴물이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 무기도 없는 맨손의 민간인들에 비하면 그나마 위협이 되는 존재라 판단했는지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얏!" 가장 용감한 병사가 괴물에게 창을 찔러넣었다. 제법 훈련을 받았는지 정확하고 힘있게 찔렀다. 음 그러나 괴물의 몸을 덮고있는 각질이 워낙 단단했던 탓에 창날은 그냥 미끄러져 나왔다. 뒤이어서 몇명이 연달아 찔러넣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이 한번 손톱이 가득 돋아난 손을 휘두르자 상반신이 으깨져 나가서 모두 즉사해버렸다. 그리고 에마는 그들의 목숨을 방패로 삼아서 꽤 멀찍히 도주해 있었다. 누가 보면 참 지독한 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광경이었다. 이 정도 소란이 벌어졌는데 가만히 있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잠깐 밖에 나왔다가 괴물을 보고 도주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요. 도주가 늦어서 찟겨 죽는 자도 엄청났다. 그리고 케리와 라크리마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우연찮게 에마도 그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에마! 저 괴물은 뭐야?"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오빠는 몰라?" "전혀!" 남매는 당연한 질문을 주고 받았다. 왠지 괴물은 그 대화를 듣더니 커다란 소리를 포효를 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그 소리는 무척 크고 위압적이라 황성 내의 모든 사람에게 다 들리고 황도 시내까지 울려퍼질 정도였다. 그 울음소리는 대단히 불길하기 그지 없어서 십리밖에 있던 어린아이가 경기를 다 일으킬 정도였다. 라크리마는 그 울음소리를 듣고 거기에 담긴 심정을 알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무척 강열한 슬픔... 그리고 원한... 저 괴물은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어요." "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렇게요." 케리의 물음에 가볍게 대답한 그녀는 한 손을 휙하고 휘저었다.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폭풍의 용인 그녀는 대기의 흐름을 조종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권능의 일부를 발현시켰을 뿐인데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대기중에 공기의 충격파가 발생하여 그 괴물을 덮쳤다. "저 녀석이 슬퍼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요?" ".........그렇기는 한데..." 라크리마는 마치 쓰레기 하나를 청소해버렸다는 듯이 손을 탈탈 털었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쉽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괴물은 라크리마의 대기충격파를 이겨내고 일어섯던 것이다. 타격이 전혀 없어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리 치명적인 타격도 아닌 듯, 약간 비틀거리면서도 멀쩡하게 서있었다. 그 때문에 라크리마는 물론이고 케리와 에마도 상당히 놀랐다. 아무리 인간 형태에서 발현한 작은 조각의 힘이라고 해도 성룡급이 펼친 권능의 힘을 맞고도 무사할수 있다니. 보통 괴물은 아니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괴물은 케리와 라크리마를 찟어버리려는 듯 손톱을 곧게 세우고 달려들었다. 의외로 스피드는 그렇게 까지 빠르지 않아 도망치려고 하면 얼마든지 도망칠수 있는 스피드였지만 케리는 에마처럼 다른 사람들이 죽건 말건 나만 살면 된다는 뻔뻔한 사고를 지니고 있지 않아 이 괴물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광인형성! 사라만다! 카사! 노움!" 옵티걸 소드에 빛의 칼날이 형성되고 로드 오브 엘리멘탈을 통해서 소환된 세 마리의 정령이 케리의 주위에 배치되었다. 라크리마는 좀 더 강력한 공격을 먹여줄까 하다가 케리가 전의를 불태우는 것을 보고 약간 마음을 달리먹었다. 보조계통 마법으로 그를 지원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헤이스트! 스트렝스! 블레스! 스톤 스킨!" 그녀는 속도, 힘, 체력, 방어력을 올려주는 보조마법을 연달아 케리에게 걸어주면서 뒤로 물러섯다. 드래곤이 걸어주는 것이니 만큼 효과는 만점. 그만큼 케리도 용기백배하여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괴물은 그에게 무척 원한이 깊은듯 누렇던 눈알을 붉게 변화시킬 정도로 화를 내며 케리에게 손톱을 휘둘렀다. 석둑! 하지만 괴물의 손톱은 옵티걸 소드의 빛의 칼날 앞에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잘려나갔다. 갑옷을 손쉽게 토막내는 걸로 봐서는 결코 약한 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역시 옵티걸 소드와 같은 엄청난 마법병기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손톱이 잘려 고통스러워 하는 괴물에게 케리는 정령마법으로 연속타를 갈겼다. 노움의 힘에 의해서 땅바닥이 창 처럼 솟아올라 괴물의 하반신을 공격하고, 살라만더는 불을 뿜어대고 카사는 괴물의 주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정령들의 공격은 매섭고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만큼 타격도 강력해서 괴물의 온몸이 갈갈히 찟기고 또 화상을 입혔다. 괴물이 치명타를 입었으리라 생각한 케리는 잠시 공격을 거두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럼. 엣?!" 이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 조사해보려고 다가서던 그는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섯다. 괴물의 신체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화상을 입은 피부는 떨어져 나가고 그 밑에서 전과 다름 없는 새살이 솟아올랐으며, 상처구멍은 언제 상처가 생겼냐는 듯이 다시 메꿔졌다. 재생의 대명사인 몬스터, 트롤도 이런 빠르기로 재생할수는 없었다. 물론 트롤의 재생속도도 굉장히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화상입은 상처까지는 도로 회복시킬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그것을 해내고 있었다. 틀림없이 보통 몬스터가 아니었다. 몸이 어느 정도 재생이 끝나자 괴물은 더 이상 기다릴 것 없다는 듯이 다시 케리를 향해서 손톱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옵티걸 소드에 완전히 잘려나갔던 손톱은 재생이 완벽하게 끝나 있었다. 케리는 잠시 오싹해져서 움찔거렸지만 라크리마의 보조주문 덕분에 온 몸에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기에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섯다. 과연 이번 합에서도 괴물은 완전히 패배해버렸다. 그런데 괴물을 처치하던 케리는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 괴물의 움직임은 어딘가 굉장히 절도가 있고 정밀했던 것이다. 분명히 무예의 기본이 잡혀있었다. 괴물답지 않게스리. 자신이 보조주문과 아티펙트 덕분에 엄청나게 파워업 한 상태가 아니라면 결코 배겨내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두합 세합 계속 부딧치면서 케리는 괴물의 능력에 전율을 느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생물인지 재생능력이 끝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태우고 지지고 뚫고 잘라도 다시 붙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으아아아앗!" 드디어 참지 못한 그는 빈틈을 노려 단번에 괴물의 허리를 두동강으로 잘라버렸다. 보통 검이나 어지간한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강철도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옵티걸 소드였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괴물은 상하반신이 분리되어 데굴데굴 복도에 나뒹굴었다. 그런데 이것도 소용이 없었다. 괴물의 하반신은 상반신에 다가가고 상반신은 하반신을 붙잡아 다시 붙이더니 재생해버리는 것이다. 케리는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괴물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렇게 까지 굉장한 회복능력을 가진 녀석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재차 괴물이 케리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더 이상 주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있지 못한 라크리마가 마법 공격을 날렸다. "익스플로젼!" 콰과아아아앙! 괴물이 신체 한 가운데서 대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력 때문에 괴물의 몸은 산산조각나버렸다. 폭염은 그 괴물의 온 몸을 감싸서 불탄 육편조각을 만들고, 그것들이 복도에 나뒹굴면서 괴상한 냄새를 뿌렸다. 케리는 라크리마가 끼어든 것이 약간 못마땅 했지만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서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곧 그녀의 행동을 납득했다. 화상입은 부위는 재생할수 있다고 해도 완전히 싹 타버린 고기조각에서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지 다행히 완전히 타버린 부위는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그러나 따로따로 떨어진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는 꿈틀꿈틀 거리면서 그래도 계속 케리를 공격하려는 듯이 다가왔다. 실로 오싹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었다. 특히나 머리 부분은 완전히 목이 잘려나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음산한 목소리로 케리에게 저주를 퍼붓듯이 외쳤다. "케리 레그너스...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다니! 죽일테다! 죽일테다아!" "뭐야? 넌 누구지? 대체 누군데 나를 공격하는 거냐?" "크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은 케리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더욱 분노하는 듯이 절규를 내질렀다. 라크리마는 애벌레처럼 기어다니는 팔 다리가 귀찮다는 듯 마법으로 하나하나 터트려서 날려버렸다. 마침내 하나만 남게 된 머리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마치 텔레포트 계통의 마법을 사용한 것처럼 샥 하고... 그제서야 좀 더 많은 수의 경비병들이 도착했으나 그들은 수없이 많은 시체더미와 엉망이 되버린 괴물의 잔해를 청소하는 것 외에는 아무 역활도 할수없었다. "대체 무엇이었을까..." "글세요... 저도 저런 괴물은 본적이 없어서..." 라크리마조차도 케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⑤- 이 사건은 제국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살해당한 자들의 대부분은 나름대로 높은 신분을 지닌 귀족이었으니까. 게다가 그들을 죽인자가 정체불명의 괴물이라는 사실은 실로 참변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괴물의 침입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경비대장은 처벌을 받았으나 그 괴물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아는 사람들은 설사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해도 막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책임을 질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경비대장이 벌을 받은 것이다. 허나 사건의 배후는 그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다. 황태자의 결혼식날에 이런 흉변이 일어난 것은 최근 방탕함이 극에 달한 제국에 대한 징벌이라 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신전등에서는 이와 비슷한 논리를 들어서 이 사건의 원인을 도덕적 타락으로 몰고 가려 했다. 어쨋건... 결국 범인은 찾을수가 없었다. 괴물은 거의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많은 마법사들이 괴물의 시체를 분석해보았으나 역시 평범한 생물이 아니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알수없었다. 하긴 평범한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결국 누구나 할수있는 소리를 한 것일 뿐이었다. 다만 케리는 괴물의 퇴치에 큰 공을 세웠다는 점 때문에 역시 나름대로 상이 주어질 것이라 이야기 되어졌다. 그러나 그 역시 괴물의 정체가 자신과 연관이 있을듯 하나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찝찝한 점 때문에 상을 받는 것은 결코 사양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곤란한 일에 연류될까 두려워 괴물이 그에게 남긴 유일한 말에 대해서는 아무 발설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외부적으로는 상황은 적당히 일단락이 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까닭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머리만 남은 주제에 순간이동으로 도망칠 정도의 능력을 지닌 괴물이었으니까. 배경은 마법사 마딕스 룬 카넬의 탑으로 옮겨졌다. 마딕스와 일레노아는 액체로 채워진 커다란 유리 원통에 들어있는 '괴물'의 머리 앞에 서있었다. "완전히 실패했군요." 일레노아는 마딕스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마딕스는 담담했다. "어쩔수 없는 일이지. 여기까지가 '한계'니까." "한계라구요? 그런 말이 쉽게도 나오는 군요. 대마법사 마딕스 씨." 일레노아는 그를 조롱하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딕스의 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마딕스는 유리통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안에 들어있는 머리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그것은 인간이었을 때는 카렐이라 불리웠던 강한 기사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최선을 다해서 개조해낸 키메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곤에게는 한 주먹꺼리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대마법사라고 해도... 드래곤을 능가할수는 없어."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의 마도 기술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그렇기 때문에 완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만스럽지 않았다. 그로서는 할수있는 데까지 했으니까. 그가 사용할수 있는 모든 재료를 동원해서 만들어낸 합성수는 드래곤의 힘 앞에서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이 패해버렸다. 공방력에 스피드도 최대로 끌어올리고 마법저항력과 재생력 까지 부여했건만 드래곤 앞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하다못해 본체로 현신시키는 것 조차도 불가능했다. 단 일격에 머리만 남고 다 파괴되어버렸고, 미리 리콜 마법을 쓸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두지 않았다면 완벽하게 박살났을 것이다. "이미 예상했던 결과였다. 나로서는 무슨 수를 써도 드래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애당초 인간의 마법이란 것 자체도 드래곤에게 훔쳐배운 찌꺼기나 다름 없으니까. 그걸 아무리 발전시킨다고 해봐야 원류인 그들을 당할수는 없는 법이지. 나는 그에게 부탁받은 대로 인간성을 거의 잃어버릴 때까지 최대한 개조해서 최고의 육체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고작 이 정도지. 저 육체가 있다면 현재 대륙 최고급의 기간틱 아머와도 대적할수 있지만... 역시 드래곤 앞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지." "당신은 자존심도 없나요? 완전히 패배한 주제에 그런 말이나 하다니..." "어차피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니 자존심이 상하고 말 것도 없지. 나도 드래곤에게 도전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흥분해서 최선을 다해서 개조해준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안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단지... 내 역량을 최대로 실험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할꺼죠! 저 꼴이 되어버린 카렐을... 원래대로 돌릴 방법은 없나요?" 일레노아는 노성을 지르며 유리통 안을 가리켰다. 그곳에 둥둥 떠있는 괴물의 머리는 과도한 개조로 인해서 이미 인간이었을 때의 형상과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없다. 한번 키메라 화 시킨 뒤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기술은 절대 불가능 하다. 앞으로 마도 기술이 서너단계 이상 발전한다면 혹시 방법이 생길지도 모르지. 그러나 현재로서는 불가능 하다. 이건 어떤 마법사를 찾아가도 마찬가지로 나오는 결론일테니 괜한 헛수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아." "그럼... 날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나는... 복수에 모든걸 걸었는데...!" "나이 먹은 사람으로서 충고하자면... 드래곤에 대한 복수는 포기하는게 좋을 꺼다. 저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있는 존재가 아니야." 마딕스는 그렇게 충고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그의 충고는 일레니아의 귓전에서 미끄러져 떨어져버렸다. 그녀는 도저히 그런 말을 받아들일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대체 무엇을 할수있단 말인가? 그녀는 아무 힘도 없는 여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카렐처럼 처절한 개조를 받아들이고서 까지 싸울 정도로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만 하루 이상을 그 자리에 홀로 서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대로 또 다시 기약없는 복수를 위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복수를 포기하고 좀 더 평안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라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카렐을 배신할수 없었다. 이성조차 없는 키메라가 되면서도 복수를 바랄 정도로 그의 의지는 확고하기 그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 모양이 되버린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둘수도 없었으니 고민되지 않을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만 하루 이상 고민을 하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던 마딕스가 잠시 쉬었다가 결정하라고 만류하려는 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일레노아의 앞에 검은 연기와 같은 희끄무레한 형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헉!" 갑자기 나타난 기이한 물체에 일레노아는 놀라서 뒤로 물러섯다. 특히나 그 연기는 왠지 인간과 흡사한 형상을 띠고 있었으며, 게다가 일레노아에게 말까지 걸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음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머리에서 머리로 직접 울려퍼지는 마치 사념파와 같은 방법이었지만 말이다. <복수를 원하는 자가 그대인가?> "...네?" <복수를 원하는 자가 그대냐고 물었다.> 그것은 대단히 무겁고 음침한 소리였다. 일레노아는 여지껏 그런 목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그 목소리에서는 그녀에 대한 호의가 느껴지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죠?" <후후후후후후... 너희들과 같은 목적을 지닌 존재지. 본래라면 저 남자에게 나타나야 하겠지만, 저자는 이미 이성을 잃어버렸으니 대신 너를 선택했다.> "같은 목적이라면..." <드래곤에 대한 복수> 일레노아는 뭔가 수상쩍음을 느꼈다. 대체 이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언듯 듣기에는 꽤나 달콤한 미끼를 물고 있는듯 하지만, 이런 것을 쉽게 신용할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밝히십시요. 당신은 대체 무엇입니까?" <아까전의 설명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건가? 꽤나 치밀하군.> "나에게 나타났다면 나의 도움을 어느 정도는 필요로 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정체도 모르는 상대와 관련을 맺고 싶지는 않습니다." <호오... 당차구만. 하긴 이 꼴이 되었으니 나도 잘난척 할 것은 못되는군. 좋아. 정체를 밝혀주지. 나의 정체는 마족이다. 그리고 네가 뿜어내는 고뇌의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 "마족?!" 일레노아는 상대가 마족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분명히 간혹 마족들이 고뇌하는 인간에게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는 댓가로 영혼등을 요구한다는 전설은 그녀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간혹 귀족들 사이에서는 정적들을 처단하는 방법으로 마족과 계약을 맺었다는 모함을 하기도 했으니 잘 알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퍼뜩 상대를 향해서 경계심 넘치는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족과 계약을 해서 결말이 좋게 끝난 인간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마족들은 소원을 성실하게 들어주려 하지도 않고, 제대로 들어줬다고 해도 영혼을 넘겨주는 만큼 결코 좋은 결말이 나올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체 마족이 어째서!"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계약을 하러 왔다.> "마족따위와 할 일은 없습니다! 당장 돌아가십시요!" 만에 하나 마족이 나타난다면 즉시 사라지도록 명령한다. 이것은 거의 기본 상식중에 하나였다. 아무리 마족이 강력한 존재라고 해도 자신에게 순응할 마음이 조금이라도 없는 인간의 영혼은 거두어 갈수 없었기 때문인데 사실 '계약을 맺는다.'라는 행위는 인간의 마음에 틈을 만들어서 마족이 끌고갈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단 마족과 계약하게 되면 무언가를 받은 이상 댓가를 주어야 한다는 심리가 생길수밖에 없으므로 그 마음을 이용해서 영혼을 끌어가는 것이다. 아무런 빈틈도 꺼리낌도 없는 혼이라면 아무리 마족이라고 해도 끌고갈수 없었다. 그리고 강한 의지로 사라질 것을 명령하면 마족은 보통 물러가는데 이것은 인간의 호통 같은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영혼을 빼앗길 가망이 전혀 없는 인간에게는 용무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일레노아는 겉으로는 강하게 퇴거를 명령하고 있었으나 내면에서는 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족의 힘이라면 드래곤을 어떻게 하는 것도 불가능 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고, 그 마족은 그 틈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봐이봐. 너무 그렇게 세게 나오지 말라고. 나는 지금은 이 꼴이 되었지만 한때는 마왕급이었고, 또 얼마 전에는 인간계에 나와서 한바탕 해치운 경력도 있는 몸이다. 네 소원을 이루는 정도는 어렵지 않아.>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⑥- "믿을수 없군요. 당신의 몰골을 보아하니 하급 마족 같은데... 어떻게 드래곤을 이길수 있다는 건가요?" 마족은 대체로 하급일수록 인간형에서 멀어지고 상급일수록 인간형에 가까워지며 또 아름다워 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또 대체로 들어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일레노아는 마족의 장담을 믿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쳇... 사정이 있어서 이런 몸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왕이다.> "그런 모습을 한 마왕이라니 믿을수가 없군요. 그리고 마족과 계약을 맺으면 혼을 바쳐야 한다는데 저는 영혼을 바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이제는 마족이 곤란해졌다. 나타나기만 하면 일레노아가 바지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줄 알았는데 의외로 강하게 나오자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일레노아와 카렐을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에 약간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들을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상관없다. 영혼까지 줄 필요는 없어. 다만 내가 제시하는 몇가지 조건에 따라만 주면 네가 하려는 복수를 대신 해주도록 하지.> "믿을수 없습니다. 마족이 영혼을 탐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괜한 헛소리 하지 말고 어서 꺼지지 못하겠습니까? 이곳은 마법사의 탑입니다. 이 탑의 주인인 마법사께서 오신다면 당신 정도는 쉽게 격퇴할수 있겠지요." <말 끝마다 믿을수 없다고 하기는... 좋아. 확실하게 계악서로 써서 보여주지!> 갑자기 허공에 양피지로 된 문서 하나가 나타났다. 문서에는 피로 쓴 것 같은 붉고 정교한 글씨로 갖가지 사항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마왕 다크 팔미룬"이라고 확실하게 명시되어 있었다. 마족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계약한 것은 그 마족이 소멸되지 않는한 지켜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이런 계약서는 이 밑에 이름을 쓰기만 하면 그 즉시 계약이 발동되도록 되어있었던 것이다. 일레노아는 그 계약서를 받아들더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과연 영혼을 준다던가 하는 부분은 전혀 명기되어 있지 않았고, 다크 팔미룬이 전적으로 그녀에게 협력을 바치는 사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 그대로 불평등 계약의 표본이라 할만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다. 마족과 계약을 맺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족들은 교묘한 말솜씨로 인간을 속여서 계약서에 확실히 명기되어 있지 않은 부분에서는 자기 멋대로 처리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연히 마족을 불러낸 자가 함부로 마족과 계약하는 것은 패가망신을 자초하는 일이 아닐수 없었던 것이다. 마족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계약한 내용을 인간 측에 유리하게끔 이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족과의 계약에는 프로라고 할만한 마법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잠시 기다리세요. 마법사 님에게 물어본 뒤에..." 계약서를 들고 종종 걸음으로 달려가는 일레노아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크 팔미룬은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꼼꼼한게 살림 잘살게 생긴 여자로군...> 잠시후, 마딕스는 경악한 얼굴로 일레노아에게 불려나왔다. 아무 마법진이나 의식도 없이 단순히 원념만으로 마족을 소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게 쉽게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는 마족과 계약한 사람으로 넘쳐 흘렀을 테니까. 물론 간혹 순수한 원념에 이끌려 오는 마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족들도 자기 할일이 있는 만큼 원한 넘치는 인간만 찾아다닐수도 없는 일이라 그런 경우는 당연히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일레노아의 집념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족을 불러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게다가 자신의 탑에 쉽게 침범할 정도로 강력한 마족이 이토록 피계약자에게 유리한 계약을 맺으려는 이유도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보통 마족들은 갖가지 수를 써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하려 하는게 당연하니 당연히 의심가는 일이었다. 그 마족에는 분명히 자신들이 짐작하지 못할 사연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궁금한 점은 참지 못하는 것이 마법사의 일반적인 특징이었다. 지식에 대한 추구욕이 없었다면 마법과 같은 고도의 학문을 제대로 익힐수 있을 까닭이 없으니까. "당신은 대체 무슨 마족이길래 이렇게 후한 계약을 하려는 거요?" <...젠장 별놈이 다 와서 물어보는군.> 다크 팔미룬은 마법사가 그렇게 물어오자 투덜 투덜 거렸다. 당연하지만 시시콜콜이 일일이 다 털어놓고서 까지 계약을 애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계약은 무척 중요한 것이니 바닥에 무릅을 꿇고서라도 할수밖에 없었다. <좋아 좋아. 말해주도록 하지. 잘 들어라. 나는 사실...> 그리고 나서 다크 팔미룬은 자신이 드래곤의 레어를 마왕성으로 개조하고 인간계를 정복하려 했던 일에서 부터 드래곤 들에게 패퇴당했던 일 까지 소상하게 그 경과를 말했다. 물론 자신의 활약을 최대한 강조하고 드래곤들을 최대한 비열하게 묘사하며 자신의 추태는 극비로 돌리는 용의주도함을 잊지는 않았다. 사건 경과를 다 듣고 난뒤 일레노아는 최근 나타났던 마왕의 정체가 바로 그라는 점을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딕스는 약간 생각이 틀렸다. 팔미룬의 현재 힘은 약하지만 그의 탑에 쉽게 출입할 정도라는 점에서 마도 기술 면에서는 분명히 상식을 초월한 단계라고 납득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는 의문이 남아있었다. "음 좋아. 그걸 믿는다고 생각해보지. 그런데 왜 마지막에 헬파이어에 당해서 죽었다는 당신이 멀쩡하게 살아있는 거지?" <훗. 본래 마왕은 한번 죽는다고 죽지 않아. 왜 옜날 이야기에도 나오잖아? 한번 죽을때는 봉인되고 두번째 죽여야 진짜로 뒈지는 거 말이야. 그건 우리 마왕들에게 존재하는 부활의 권능 덕분이라구.> 말이 좋아서 부활의 권능이지 실제로 마계에서는 생명보험이라 불리는 물건으로서 연간 몇억 골드를 마계보험회사에 납부하면 얻을수 있는 것이다. 인간계 정벌 같은 좀 위험한 일을 하는 마족들은 꼭 한번은 들어두기 때문에 마왕은 한번은 부활한다는 전설이 생겨났던 것이다. 물론... 두번째가 잘 안되는 이유는 막 부활한 마왕들은 친척들간의 유산 분배등의 과정에서 재산을 거의 다 날려먹기 때문에 (부활이 예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번 죽은건 죽은거라고 잠시 죽어있는 틈을 타서 친척들이 유산을 다 긁어가버린다.) 보험료를 미처 납부하지 못해서 부활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고로 천계 정벌 같은 대사업을 벌이는 마족들에게는 죽을 확율이 매우 높고 부활단가가 비싸진다는 이유로 마계보험회사에서 보험 가입 요구를 거부하기 때문에 대체로 마족들은 천계에서 죽으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치사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마계는 철저한 자본주의사회라서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완벽하게 부활시켜 주지도 않는다. 팔미룬의 경우는 이코노미 보험 세트에 들어버린 관계로 거의 하급마족 수준의 엄청나게 낮은 마력만을 지니고 부활하게 되버린 것이다.(퍼스트 클래스나 되어야 완전 부활을 이루어준다.) "그런데... 지금 당신의 힘을 보아하니 완전하게 부활하지는 않은것 같군." <윽 아픈데를 찌르다니...> "전에도 한번 그 드래곤들에게 패배했다면서 힘도 완전히 되찾지 못한 주제에 그들을 이길수 있다고 장담하는 건가?" <더 아픈데를 찌르는군...> "확실히 이런 계약은 마족과의 계약 관례를 아무리 뒤져봐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호의적인 계약이지만... 저자에게 이런 계약을 이루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아무래도 이 계약은 추천하기가 어렵소. 일레노아양." "역시 그렇군요." 일레노아는 마딕스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녀가 승락하자 마딕스는 추방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 탑 안은 마딕스가 설치해둔 각종 마법진과 도구에 의해서 그의 마력을 최대로 증폭시켜 주고 있었기 때문에 하급 마족 수준의 마력을 지닌 다크 팔미룬으로서는 마딕스가 퇴거를 명령하면 그대로 쫓겨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제는 쪼다 취급을 받아서 계약도 제대로 못 맺고 마계로 도로 송환될 위기에 처한 다크 팔미룬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복수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한번 퇴치된 마왕으로서 복수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주위에서 손가락 질을 해댈 것이니 어쩔수 없이 복수행에 나선 것이었다. 인간에게 당한 주제에 보복도 제대로 하지 않는 마족은 쪼다 취급을 당해서 아무데서도 번듯한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 이 꼴로 마계로 다시 돌아갔다가는 아무 힘도 기반도 없으니 친척이나 친구들 집에서 허드레 일에 종사하게 되거나 아니면 떠도는 노숙 마족이 될 판이었다. 그가 아무리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성격이라고 해도 그래도 한때 "마왕"이라 불리웠던 몸으로서 그런 치욕을 감수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자...잠깐! 나한테는 숨겨둔 보물이 있어! 그것과 나의 마도기술을 조합하면 네가 만든 것보다 훨씬 뛰어난 키메라를 만들수 있을 꺼야!> "호오..." 보물이라는 말에 일레노아와 마딕스의 눈이 번뜩 뜨였다. 마왕의 보물이라고 하면 못되도 동산 하나 쌓을 정도는 되리라 연상했기 때문이다. 사실 팔미룬이 숨겨둔 보물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망한 녀석이 숨겨둔 것이 있다고 해봐야 얼마나 있곘는가?) 마계와 인간계의 물가차이를 감안해볼때 상당한 양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팔미룬은 마력은 크게 약화되어 있었으나 마도 기술은 마족인 만큼 마딕스보다도 월등한 수준이었으니 잘만 이용한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뭐 영혼을 파는 계약도 아니고 하니... "일레노아 아가씨. 이쯤되면 충분히 쓸만하리라 봅니다." "글세요... 저는 좀 더 부가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 그럼 이렇게 하는건 어떤가? 이런 이런 조건을 더 해주면 계약을 해 주는 것도 고려할 만한데.." <이 지독한 인간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6화 -새도우 나이트 ⑦- 우여곡절 끝에 일레노아와 계약을 맺은 다크 팔미룬은 얕잡아 보인 것이 한이 되었던지 자신의 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마고 결심했다. 그는 공간이동 게이트를 열어서 그가 드래곤의 레어에서 훔쳐둔 드래곤 본과 드래곤 스케일 등을 가져왔다. 물론 라크리마의 것이었으나 일레노아나 마딕스가 그런 사실을 짐작이나 할 턱이 있는가. 어쨋건 그들은 하급마족인줄 알았는데 이 정도의 물자를 가져와서 다시 봤다는 듯이 팔미룬을 쳐다보았고 그의 자존심은 다소나마 회복되었다. 그러나 엄청난 가치를 지닌 드래곤 본의 더미에 잠시 현혹되어 있던 마딕스는 곧 이 자재들의 문제점을 눈치챘다. "과연. 대단한 양의 드래곤 본이로군. 내 평생 살아오면서 이런 것들은 본적이 없네. 하지만 이걸로 뭘 어떻게 개조를 하겠다는 건가? 드래곤은 대단히 유전적으로 안정적인 종족이기 때문에 다른 종족과의 혼혈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드래곤의 변종은 아주 먼 고대에 일부 나타났을 뿐이지. 실제로 많은 마도사들이 드래곤의 피를 이용해서 키메라를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드래곤의 피는 다른 생명체들과 거의 섞이지 않았어. 아무리 마족이라고 해도 드래곤과 인간을 합성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보네만." <끄응... 그건 인정할수밖에 없군.> 다크 팔미룬도 그 지적에 동의를 했다. 드래곤을 키메라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마왕급이라고 해도 그것은 간단히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고대의 마신 정도나 되어야 강제적으로 융합시키는 것이 가능했고, 그 결과도 본래의 드래곤에 비하면 힘이 크게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었다.(예를 들자면 합성수를 지칭하는 '키메라'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마수 '키메라'라던가.) 최강의 생물인 드래곤의 육체는 많은 존재들이 탐을 냈으나 그 능력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합성이 이루어진 경우는 아예 없다고 할수있었다. 드래곤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유전적으로 매우 안정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한 다른 생명체와는 유전자 구조가 매우 틀리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잘 섞이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인간이나 오크가 개나 소나 다 붙어먹어서 자연스럽게 혼혈이 나오는 것과는 정 반대로 말이다. <드래곤의 육체를 이용해서 새로운 합성 생물을 만들어서 지배하는 일은 우리 마족들도 오랫동안 전력의 증강을 위해서 노력해오던 일이었지. 그래서 우리 마족들은 기회를 노려서 드래곤을 열심히 포휙하려 했고...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고대의 대마신분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할수있지. 확실히 나의 상태가 멀쩡하다고 해도 힘든 일이긴 하지. 하지만 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했다!> "아니 발상의 전환이라면?" <굳이 키메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마족이 당당하게 외치자 마딕스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니 키메라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 이 많은 재료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드래곤을 재료로 해서 만든 키메라가 아니면 드래곤에게 승산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그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굳이 키메라로 만들 필요가 없다니?" <내가 만들려는 것은 키메라 같은 것이 아니야. 기본적으로는 그것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오히려 너희 인간들이 만드는 기간틱 아머와 흡사한 것이지.> "기간틱 아머라..." <잘 들어라. 인간 마법사. 애당초 키메라 라는 것은 새로운 생명. 즉, 새로운 종의 창출을 위해서 만들어진 마법기술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전투능력만을 증가시킬 작정이라면 굳이 키메라로만 만들 필요는 없다.> "흠. 하지만 아무리 드래곤 본으로 만든다고 해도 기간틱 아머로는 드래곤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비행능력도 없으니..." <으하하하하. 그걸 위해서 키메라 기술이 있는것 아니냐? 두 기술의 장점만을 조합시키면 최고의 전투생물을 만드는 것도 꿈은 아니지. 전에는 준비가 부족하여 드래곤들에게 졌지만 이번에는 복수전이니 나는 내 모든 역량을 결집시켜서 드래곤들을 쓰러뜨리는데 주력하도록 하지. 너의 키메라 제조기술도 상당한 수준인것 같으니 협력한다면 충분히 최고의 전투생물을 만들수 있을꺼야.> "최고의 전투생물..." 마딕스는 그 말을 되풀이 해서 중얼거렸다. '최고의 전투생명체를 만든다라... 마법사로서 한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군. 그리고 저 마족이 어떤 흉계를 꾸밀지 알수가 없으니 협력하는 척 하면서 적당한 기회에 처치하는 것도 노려봐야 겠고... 문제라면...' "일레노아양. 동의하시겠소?" "마법사님은 저 계획이 실현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마딕스는 카렐을 더욱 개조하는 것에 대해서 혹시 반감이라도 없는가 물어본 것이었는데 일레노아는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만 물어왔다. 실현가능성만 있다면 해도 상관없다는 식의 말이었다. "가능성이라면 충분히 있소. 내가 만드는 키메라 보다는 전투능력이 월등할테니까. 다만... 그런 식으로 제조한다고 하면 카렐 경은 인간의 심정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이..." "상관없습니다. 저 사람과 저는 이미 인간을 버리고 복수를 하기로 결심했으니까요. 그 이도 차라리 싸우다가 죽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그의 의사가 그렇다면야..." <으하하하하. 잘됐군. 잘됐어. 좋아 그럼 최종결과물은 새도우 나이트라고 부르기로 하자. 전부터 이 이름을 한번 써먹고 싶었거든.> 다크 팔미룬의 주절거림은 뒤로 하고 일레노아는 실험용 유리관 속의 액체에 둥둥 떠있는 카렐의 머리에게 다가섯다. 이미 그것은 과거의 그의 모습은 커녕 인간으로서의 형상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그 물체가 카렐이 맞기나 한 것인가 의심이 되었다. 기억도 없고 이성도 사라져서 자기 판단도 할수없는 존재라면 과연 그가 남아있다고 봐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것은 독백과 다름 없는 것이었다. "이걸로 충분한가요? 당신이 바라는 것은 이걸로 충분한가요?" "네가 틀림없어." "어째서!" "난 아무래도 그 정도로 원한을 산 일은 없는걸... 게다가 맨 먼저 너를 노리고 습격해왔고 말이야." "으음...그...그런가..." 케리는 처음으로 말다툼에서 에마를 이겨보았다. 그들은 이전에 습격해온 괴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에, 틀림없이 누군가의 원한에 의한 소행으로 단정지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리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여지껏 충분히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므로 그런 일을 당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에마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곳곳에 원한을 쌓아놓고 다니는 성격이라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자들은 충분히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지... 그 괴물은 처음에는 나를 습격했지만 오빠를 보자마자 오빠로 타겟을 바꿨어. 게다가 마지막에 오빠를 향해서 저주하는 말을 내뱉은 것도 기억나지 않아?" "아.....이런..." 하지만 곧바로 역전패 당했다. "그러니까 오빠를 노리고 온 것이 틀림없어. 혹시 원한 살 만한 일 한적 없어?" "그런일 없는데... 내가 왜 그런 일을 하겠냐..." 케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크게 원한 산 일을 기억할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주로 당하는 역활이라 뭔가 원한을 줄 만한 일을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소극적인 성격인 탓에 특별히 나서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그가 원한을 가졌으면 가질 만한 일이 많았지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없었던 것이다. "그럼 틀림없이 오빠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큰 원한을 산 일이 있었을 꺼야. 그런거 없는지 한번 기억해봐." "......별로 신경쓰지도 못하는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 사실이다. 우연치 않게 원한을 사버린 경우라면 애당초 당사자가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 일일 테니 기억해낼수 있을 까닭이 없었다. 케리가 수세에 몰리는 듯 하자 라크리마가 그를 거들고 나섯다.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공격해온다고 해도 간단히 제압해버릴수 있으니까 아무 문제 없어요." "글세. 과연 그럴까..." 에마는 라크리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정도로 원한에 사무친 녀석들이라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꺼야. 정말 무슨 수를 쓸지 모르는 것들인데 매번 올때마다 막아낼수는 없지 않겠어? 역시 주모자를 잡아내서 처치하는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괜찮아요. 그런 녀석들 따위 백 다스가 몰려와도 문제없이 처치할수 있어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드래곤에게는 안된다는걸 확실히 가르쳐드리죠." "...으음..." 에마도 인간이라서 그런지 라크리마의 그런 장담이 약간 마음에 들지는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현실적으로 따져볼때 네 마리나 되는 드래곤을 이기고 케리를 해칠수 있는 자는 절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자들도 있다지만 대부분 혼자사는 어린 용을 운 좋게 때려잡은 경우이지 몇마리나 되는 드래곤과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정말로 전설상에나 존재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물론 가끔은 그 전설을 가능케 하는 인간도 있다지만... 어쨋건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다고 해서 드래곤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드래곤 슬레이어가 그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가 된다. 그녀로서도 아쉽기는 했지만 아직 인간의 능력은 드래곤에 대적할 수준이 결코 되지 않았다. 마법이건 육체건 두뇌건 드래곤은 인간을 월등히 능가하고 있었다. 먼 훗날 좀 더 인간이 발전한다면 어떻게든 대적할수 있을지 모르나 현재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드래곤들이 무척 개인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욕구에는 민감한 반면 대규모적인 사회 변동을 일으키는 것은 꺼리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인간들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드래곤들이 인간사회에 개입하는 일이 적 것은 인간이 개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적은 것과 같은 이치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7화 -파멸하는 자의 묵시록 ①- 가스트 제국의 수도, 그곳에 접근하는 수상한 검은 그림자가 있었으나 그 그림자가 하늘을 날아서 온 관계로 지상의 요새 병사들은 이상한 새가 날아온다고 생각했을 뿐이라 그 그림자는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수도 상공까지 날아올수 있었다. 이 시대는 공중전력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되는 수의 와이번이나 그리폰, 페가수스등의 라이더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공방어는 매우 취약했던 탓이다. 하지만 그 것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자 하는 듯 저공으로 도시 상공을 비행하자 모든 시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몬스터다!" "도망가자!" "경비병들은 뭐한거야?!" ...아니 탄성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만일 안전한 상황이었다면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그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 일단 겉 모습은 거대한 칠흑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 일견 기간틱 아머라 불리는 마법병기와 흡사한 외형이었으나 보통 커봐야 6미터 정도에 불과한 기간틱 아머와는 달리 그것의 크기는 거의 10미터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아다니기 위한 기관인듯 등에는 거대한 날개형 구조물이 한쌍 달려있었다. 하지만 그 날개는 보통 생물체에게 달려있는 새 형이나 박쥐 형의 날개가 아니라, 길다란 세모꼴의 금속판 처럼 생긴 것이었다. 또한 자세히 보면 표면에 마법진과 스펠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고 그것들이 미세한 빛을 발하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이 '날개'는 양력적으로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해보였지만 실제로는 이 물체가 날아다니는데 필요한 마법적인 힘을 거의 모두 제공해주고 있었다. 동체 뒤에는 꼬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척추뼈처럼 여러개의 관절이 이어져 있는 그 꼬리는 끝 부분에 커다란 모닝스타 같은 둔기를 달고 있었다. 또한 이것은 단순히 마법으로 움직이는 기간틱 아머와는 달리 관절 부분에 마치 생물의 조직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나타나 있어서 모든 시민들에게 한눈에 '몬스터'로 파악되고 있었다. 우중충한 검은빛 장갑에서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는 이런 물건이 나타난 것에 대해 즉각 황실 근위대의 기간틱 아머들이 출동했다. 누가봐도 위협적인 존재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네 소속과 황궁에 나타난 이유를 밝혀라! 저항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크윽!" 붉은 망토를 달고 있는 선두에 선 지휘관의 기간틱 아머는 그 존재에게 위협을 가하다가 갑자기 상공으로 치솟았다가 먹이감을 노리는 매 처럼 급강하 하여 발 부분에 달린 발톱에 공격당하여 흉부에 커다란 타격을 입고 말았다. 즉시 그것을 적이라고 판단한 기간틱 아머들이 그것을 향해서 달려들었지만 그 존재는 또 다시 하늘로 치솟아 공격을 회피했다. 기간틱 아머는 대단한 병기이기는 했으나 비행능력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공중으로 도망친 상대를 쫓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 닭쫓던 개 처럼 그것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비겁하다!" 한 기사가 그것을 향해서 소리쳤지만 그것은 듣지도 않았다. 오히려 대답이라도 하듯이 지상의 그들을 향해서 십여발 이상의 파이어 볼을 마치 폭격하듯이 날렸다. "마법인가?!" 갑작스러운 마법공격에도 그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하는 몬스터들과 전투해본 경험이 없다면 근위대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들의 기간틱 아머에는 대마법방어진이 쳐져 있었기 때문에 파이어볼 정도의 마법이라면 틀림없이 가볍게 막아낼수 있으리라 확신한 것이다. 또 그 확신은 현실로 나타나 파이어볼들은 틀림없이 폭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법으로 인해 받는 타격이 아니라 그들의 시야가 일시적으로 가려졌다는 것에 있다. 그 존재는 파이어볼의 폭발로 생긴 빈틈을 놓치지 않고 또 다시 급강하 해서 이번에는 한대의 기간틱 아머의 머리와 흉부를 파괴해버렸다. 그리고 땅에 내려선 즉시 길다란 꼬리와 양 팔을 휘둘러 또 다시 공격을 가했다. 기간틱 아머들 보다 훨씬 빠르고 그들의 약점을 정확히 찌르는 그 공격 앞에서 또 다시 몇기나 되는 기간틱 아머를 쓰러뜨렸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그 존재는 마치 증오에 불타오르는 것처럼 맹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이... 이게 어떻게 된거지?!" 마딕스의 탑에서 일레노아는 수정구 속에 나타난 그 영상을 보면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왜 카렐은 서둘러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의미한 파괴를 일삼기 시작한 것인가? 겨우 그의 새 육체를 완성하고 무의식에 이끌려 떠나는 그를 보면서 안심한 것이 바로 방금전이었는데... <아무래도 저 녀석의 증오는 단순히 드래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거의 인간 사회에 대한 것이었던 듯 하군. 그래서 모조리 다 때려부술 작정인듯 한데...> 다크 팔미룬의 분석은 정확했다. 카렐은 그간 인간 사회로 부터 받은 멸시로 더욱 큰 증오의 고랑을 파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막을 만한 것은 현재 제국 황도에도 없었다. 최강의 마법병기라는 기간틱 아머도 한 단계 위의 장갑과 기동성, 뛰어난 전투 센스를 지닌 그를 막아낼수 없었으며 대마법주문으로 도배를 해놓다 시피한 검은 장갑을 뚫는 것은 마법사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의 내부에는 여러가지 마법 아티펙트가 장착되어 있어서 다양한 공격마법 까지 사용할수 있었으니 더욱 곤란한 일이 아닐수 없다. "하지만 이대로 황도에서 싸운다면 아무리 그라도..." <못 버틸꺼라고? 그렇지는 않아.> 그렇게 말한 순간 카렐, 새도우 나이트의 손이 민간인들을 한 움큼 쥐더니 그들에게서 정기를 빨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잡힌 인간들은 단번에 미이라 처럼 바짝 말라붙더니 푸석거리면서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렸고 빨아들인 생체 에너지 만큼 그의 몸에 약간씩 나있던 상처는 수복되어 버렸다. <에너지 드레인, 이 정도 기능이라면 얼마든지 전장에서의 보급도 원활하게 할수있다. 어떤가?> "저런 끔찍한 짓을!" 일레노아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들은 터무니 없는 괴물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엄청난 마법저항능력과 드래곤급을 능가하는 방어능력, 무서운 기동성에 자기 회복능력 까지 갖춘 괴물을... 물론 마계에는 이 정도의 마수도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약하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게다가 카렐의 전투 센스는 이성을 잃은 지금도 대단한 수준이라서 전혀 다른 육체를 얻었음에도 곧 적응하고 본래 자기 몸 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는 바람에 황실 근위대 조차도 그에게 대적할수 없었다. 평생 키메라 연구에 골몰해왔던 마딕스도 마족의 힘으로 만들어진 저 전투병기에 대단히 놀랐다. "정말 엄청나기 짝이 없군. 저런 힘을 사용하는 생명체라니..." <엄밀히 말하면 생체 부품을 사용했다 뿐이지 생명체는 아니지.> "그런데 제어 장치는 안 만들어 둔 건가?" <그런걸 왜 만드나? 인간 마법사.> "...제어 장치도 없다니! 제어가 안되는 키메라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는 건가? 매년 10명 이상의 키메라 제조 마법사가 제어되지 않은 키메라에게 죽는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봐! 저런 엄청난 물건에 제어를 붙이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제어 따위는 로망이 아냐!> "최소한 자폭 장치라도 넣어야 할 것이 아닌가! 제멋대로 폭주하는 물건 따위 난 딱 질색이라네!" <뭐야 자폭이라니. 그럼 저 멋진걸 자폭으로 끝장내겠다는 거야? 뭐야?" 쓸모없는 말다툼을 하는 둘 사이를 가로막으면서 일레노아는 소리쳤다. "다크 팔미룬, 내가 원하는 것은 저게 아니예요! 복수는 하고 싶지만 대량 학살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저들은 죄없는 사람들일 뿐인걸요. 당장 막도록 해요!" <내 계약은 저 녀석이 복수를 하도록 도와준다는 거야. 만약 다른 계약을 맺고 싶다면 방법은 있지만... 네 영혼을 내놓는 거야! 너처럼 깐깐하고 성깔있는 여자라면 대단한 가치를 지닐것 같다.> 역시 그의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일레노아는 그의 비열한 수단에 치를 떨면서 계약서를 꺼내더니 뒷면을 그에게 들이대면서 소리쳤다. "이이이... 좋아요. 그럼 계약을 완전히 이행하도록 해요! 여기 써있는 데로 북해의 참치잡이 어선에 팔아넘기겠습니다. 500년 동안 고생해주시죠!" <잠깐?! 뭐야 이건 언제부터 써있었어?!> 계약서에는 분명히 다크 팔미룬을 500년 동안 북해의 참치잡이 어선에 노예로 팔아치울수도 있다는 것이 똑똑히 명시되어 있었다. 팔미룬은 자신이 지닌 계약서의 뒷쪽을 보고 역시 똑같은 문구가 써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이 것들이...> 당혹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노려보는 팔미룬을 향해서 일레노아와 마딕스는 사악한 미소를 지엇다. 그는 제대로 계약을 했다는데 정신이 팔려서 계약서의 앞뒤를 단단히 봐야 한다는 충고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뒷면에 써진 것이라고 해도 두개의 계약서에 동시에 나타나 있는 내용이며 그가 서명한 것이 틀림없는 이상 그는 이것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효야! 이런 계약따위...> "먼저 잘 살펴보지 않은 쪽이 잘못된 것이예요. 무효로 하고 싶다면 방법은 있지만... 어서 카렐을 멈춰요! 저대로 학살자가 되도록 내버려두지말고!" <이 천사보다 나쁜 년아! 신족보다 나쁜 년!> 다크 팔미룬은 자신이 지금 생각나는 한 최고의 욕설을 그녀에게 퍼부었지만, 마족과는 사고 방식이 다른 인간인 관계로 일레노아에게는 별다른 정신적 타격이 없었다. 그는 투덜투덜 거리면서도 500년간 참치잡이 어선에 팔려가는 일 만은 한떄 마왕이었던 마족으로서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까닭에 공간이동하여 새도우 나이트를 저지하기 위해 날아갔다. <...설마하니 인간에게 사기계약을 당하다니... 내 팔자도 말이 아니군... 이래서야 제대로 복수나 할수있을런지 모르겠는데. 쳇. 난 원래 복수 따위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데 괜히 친척들이 몰아붙여서 이거야 원...> ================================================================== 엔딩을 배드로 해야 할지 해피로 해야 할지 고민중.... ......여러분은 어떤걸 원하십니까? 메이드 드래곤 전기 37화 -파멸하는 자의 묵시록 ②- 다크 팔미룬이 도착했을때 황도는 이미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새도우 나이트는 이곳을 모조리 파괴해버릴 작정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수도 방위군이 몇천이나 달려들었지만 에너지 드레인 능력이 있는 그에게 평범한 인간들은 아무리 창칼을 들고 있다고 해도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들의 생체 에너지를 무분별하게 흡수한 나머지 새도우 나이트는 더욱 거대해져서 그 크기가 20미터에 달해 있었다. 처음 만들어 졌을 때의 두배에 달하는 것이다. 이토록 거대해진 만큼 그 파괴능력도 증가되어 민간 건물은 물론이고 황궁까지도 박살이 나 있었다. 수비대들은 활을 쏘고 보통때는 후방으로 돌려지는 마법사들까지 전면에 서서 새도우 나이트에 대적했지만 마왕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걸은 방어마법이 걸려있는 이상 큰 타격을 줄수는 없었다. 타격을 입는다고 해도 곧바로 재생에 들어갈 에너지 원이 곳곳에 널려 있으니 전혀 무의미했다. <호오. 이거 꽤 재미있군.> 인간이라면 분노와 절망을 느꼈을 처참한 살육이 벌어진 광경을 보면서도 다크 팔미룬은 오히려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록 아무리 개그 캐릭터라지만 이 녀석도 마족은 마족. 생물이 처참하게 살육당해있는 곳에서는 마이너스의 감정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고 그것은 마족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과거 마족들은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일부러 인간계에 나타나 살육을 자행했으며 그것이 신족의 방해로 저지되자 이번에는 어둠속에 몰래 숨어서 인간계에 전란을 일으키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의외로 과거의 일이다. 현재의 마족들은 공간에 퍼져있는 마이너스 에너지와 같은 밀도가 낮은 비효율적인 에너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에너지는 양은 대단히 많지만 밀도가 너무 낮은 관계로 흡수하여 마력으로 만들어 에너지 원으로 쓰기에는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에너지로 가득찬 공간에 있는 마족은 분명히 기분은 좋아지지만 딱히 대량의 활동 에너지를 얻을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치자면 일광욕이나 산림욕을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다. 그래서 마족들은 보다 고도의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혼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마족을 불러내서 계약을 할 정도의 인간이라면 분명히 마이너스의 감정으로 꽉꽉 차있는 영혼을 지니고 있을 터. 사후에 이들의 영혼을 얻는 댓가로 적당히 계약을 들어주고 영혼을 끌고가서는 소위 '지옥'이라 불리는 장소에 처박아 두고 끝없는 고통을 주는 것이다. 여러개의 부정적 사고로 가득찬 영혼이 몰려있다 보면 그만큼 서로 부의 감정을 증폭시켜서 막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것을 정제하는 것이 현재 마족의 주요한 에너지 발생원이다. 물론 잡아온 영혼들이 반드시 이렇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고 직접 흡수해버리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지만... <인간들이 들으면 인간의 영혼을 모독하는 짓이라면서 대들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신계의 방식도 똑같다구. 녀석들도 '천국'이라는 것을 차려서 거기에다가 영혼을 박아놓은뒤 행복한 감정을 계속 들게해서 그만큼의 플러스 에너지 원을 얻어내지. 마족이나 신족이나 하는 짓은 거기서 거기라니까...> 그렇게 독백하면서 다크 팔미룬은 이만큼의 파괴를 이뤘다는 것이 뿌듯한 듯 새도우 나이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물건이 이 만큼이나 무서운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 참 기쁜 것이다. 물론 마계의 어지간한 상급 마수라면 이 정도를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역시 '자기 스스로 만든 물건'과 사온 물건과는 느낌이 틀린 법이다. 그러나 이젠 이 물건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이 이상의 파괴를 하는 것은 세상의 '균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균형이라고 해도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신족과 마족간의 팽팽한 냉전 상태의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인간계는 사실 휴전지대나 다름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오래 말썽을 피우거나 점령지를 지니고 있다면 당연히 신족 측에서도 모종의 일을 꾸며서 그 존재를 응징하려 할 것이다. 비록 신족이나 마족처럼 대규모로 조직되어 있지는 않지만 개별적인 힘이라면 절대 그들에 뒤지지 않는 드래곤들 역시 자신의 영역을 침범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오래 말썽을 피우는 것은 어렵다. 이대로 계속 파괴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 존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려 할 것이고 이것을 만든 자가 누구인지도 알아보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하급 마족이나 다름없는 힘을 지닌 자신도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굳이 일레노아가 명령하지 않았더라도 새도우 나이트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아. 그럼 들어가볼까...> 다크 팔미룬은 새도우 나이트의 머리 부근으로 이동하여 마치 그곳에 스며들듯이 빨려들어갔다. 본래 이 새도우 나이트가 외부의 조종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정신계 마법에 저항하는 능력을 지니기 위해서 만들어 버린 것이고 그 탓에 외부제어기능이 없어져버렸다. 하지만 외부에서 안된다면 내부로 들어가서 제어하면 되는 것이다. 육체가 거의 소멸한 탓에 정신체나 다름없어진 그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또한 이곳은 그가 몰래 만들어둔 특별 조종석으로서 이처럼 엄청난 물건을 단지 한두번만 써먹고 말 생각은 결코 없었기 때문에 미리 붙여둔 것이다. <후후후후후. 꽤 좋군. 이 몸도...> 머리 내부에 장착된 전용 조종장치와 완전히 접촉하자 그는 마치 새도우 나이트를 육체로 지닌 것 처럼 되어버렸다. 이 정도라면 전투력만은 충분히 마왕급에 필적한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계속 힘을 흡수해서 그런지 완성 당시보다 더 많은 파워를 지니게 되어버렸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드래곤과 싸워도 문제가 안된다고 할수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초기기동이므로 혹시나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단 마딕스의 탑으로 되돌아가 만일을 대비하려는 생각을 하고 새도우 나이트를 제어하려는 팔미룬이었으나... <...어 왜이래 이거?> 이상하게 새도우 나이트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은 팔미룬을 잠식하는 것 처럼 그의 힘을 흡수하려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갑자기 힘이 빨려나가자 놀라서 도망치려 한 그를 놔주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의 머리속에 직접 강력한 의지가 주입되어 졌다. [파괴! 파괴! 파괴! 파괴! 소멸! 소멸! 소멸! 소멸! 멸망! 멸망! 멸망! 멸망!] <놔! 이 미친 녀석아!> 팔미룬은 그제서야 눈치챘다. 거의 소멸해버린 카렐의 이성이 강한 힘을 지닌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의 제어까지도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팔미룬의 본래 설계대로라면 그의 힘으로 이것을 완전히 복종시킬수 있었겠지만 그 동안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과도하게 강해져버렸고 신체구조도 증식 과정에서 일부가 변해버린 탓에 제어가 간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그가 새도우 나이트에 제압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살육! 궤멸! 파괴! 소멸! 멸망! 붕괴!] <이... 이 자식이! 야. 널 만든건 나야! 내 말을 들어! 그리고 이대로 계속 나갔다가는 얼마 안가서 반발 세력이 몰려들텐데 그건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러냐! 아무리 네가 강하다고 해도 온 세상을 상대로 해서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 것 같아? 이 만하고 내 제어를 받아들여!> 팔미룬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 새도우 나이트의 의지를 설득하려 했지만 의지 자체가 광기에 휩쌓여 있는 탓에 도무지 들어먹지를 않았다. 설득하는 건 포기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려 해도 그의 힘이 이것에 미치지 못했다. 도망치려 해도 붙잡고 안 놔준다. 게다가 힘 까지 빨려나가고 있다. <이거 미치겠네....> 팔미룬은 탄식했지만 그의 의지가 이 물건에 잡아먹히지 않게 버티는 것 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애당초 파워 차이가 지나치게 날 뿐만 아니라 이 녀석의 의지는 마족에게 양식이 되는 파괴와 살육이라는 마이너스 감정. 비록 기존과는 가치관이 많이 틀린 마왕이라고는 하지만 내면의 본질은 마족 답게 파괴나 살육등을 즐긴다. 따라서 파괴 의지 같은 것과 만나면 쉽게 동화가 되어버릴수 있는 것이다. 애당초 자신과 흡사한 감정 에너지에 휘말려 들어버렸으니 빠져나오기가 더욱 쉽지 않았다. 한편 또 다시 마딕스의 탑. 일레노아는 팔미룬이 제어를 하겠다는 듯이 새도우 나이트에 흡수된 뒤에도 별다른 변화없이 계속 무의미한 살육을 계속하자 대단히 당황했다. 그제서야 그녀는 팔미룬의 목적을 알아챈 것 같았다. "혹시 그 마족은 저 것을 이용해서 온 세계를 파괴할 속셈이 아니었을 까요?!" "으음.... 과연 마족이라면 그럴 법도 하군. 이거 완전히 속아넘어갔어. 설마 이런 목적일 줄이야..." 마딕스도 그 생각에 동조했다. 당치도 않은 오해였지만 일단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팔미룬이 마족인 것은 사실이고 아무리 그가 촐싹거리면서 기품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군다고 해도 자칭 전직 마왕이었으니 세상의 파괴나 공포의 지배를 노리고 있다고 해도 별로 무리는 없을 것이다. "저런 악마의 계획을 도와줬다니..." 일레노아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한탄하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는 복수를 바라기는 했지만 온 세상이 박살나는 것을 원할 정도로 이성이 날아가 있지는 않았다. 복수 대상과 대상이 아닌 자들을 가릴 능력은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곧 새도우 나이트를 저지할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고한 피해가 너무나도 커질것이고 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바가 절대 아니었다. "마딕스님. 저 것을 멈출 방법은 없나요?" "알수없네. 외부에서 조작할 방법은 전혀 없어. 저 마족은 그래서 내부에 들어가서 파괴를 자행하려고 하는 것 같아. 이런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을 사전에 막지 못하다니..." "아니요. 제가 나빳어요. 복수에 눈이 멀어서 저 자가 저런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할수없지요. 어떻게든... 막아낼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카렐이 파괴마가 되도록 할수는 없으니까." 이미 충분히 파괴마가 되버린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메이드 드래곤 전기 37화 -파멸하는 자의 묵시록 ③- 수도가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버렸음에도 지방 행정에는 아무 영향이 없었다. 명색이 제국이라는 나라라서 땅덩이가 작지도 않은데다가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이나 낙후되어 있다보니 수도가 박살났다는 엄청난 정보도 빠른 속도로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전국으로 퍼져서 어떤 식으로든 대응 조치가 일어나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 수도가 박살나도 지방에서는 제 할일 다 하면서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케리의 영지도 마찬가지 상태였다. 정말로 무사태평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낭보를 가지고 마딕스와 일레노아가 홀연히 나타났다. 텔레포트 계통의 공간 전이 마법을 사용한 결과였다. "미리 좌표를 조사해 놓기를 잘했군..." "마법사는 한번 가보지 않은 장소에는 텔레포트 할수 없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나요?" "거의 맞는 이야기라고 할수있지만, 반드시 그런건 아니요. 한번 방문해 본다는 것은 그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필요하니까. 정보를 잃어버리면 가본 장소라도 텔레포트 할수없는 경우도 있고 반면 다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면 다른 어떤 장소에도 갈수있지." 성으로 가면서 일레노아는 과도할 정도로 평온한 영지의 모습에 기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복수를 계획하고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정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복수와 잔혹함,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가 서슴없이 이루어지던 곳에서 갑자기 아직도 평화로운 세계로 오자 평온함에 사로잡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평온함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이것으로 그녀가 할수있는 모든 역활은 끝난다. "...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일레노아는 허름한 성에 살면서 이전과 다를바 없는 수수한 옷을 입고 있는 케리를 보고 잠시 당혹감에 휩쌓였다. 나이가 젊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한 마을 촌장 정도의 느낌이랄까. 명색이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집안과 거래하던 상인보다도 더 수수해 보였다. 이 집무실에 그 외에는 그의 동생이라는 싸늘한 느낌의 여자와 뒷쪽에 다소곧하게 서있는 메이드 뿐. 그 메이드가 설마 드래곤이라고는 그녀는 생각할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가 전해온 정보에 반신반의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의 여동생, 에마라고 하는 여자는 조금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사실입니다." 새도우 나이트에 의해서 황도가 파멸했다는 것은 말했지만, 아직 그녀는 결정적인 정보를 풀어놓지 않고 있었다. 그 괴물의 정체와 그와 자신이 어떤 고통과 고난을 겪어왔는가를 말이다. 이대로 그들이 새도우 나이트를 쓰러뜨리기 위해 가서 죽어버린다고 해도 복수는 되지 않는다. 복수는 그저 죽이기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군요. 이거 큰일인데..." "거짓말이야. 오빠. 믿지마." 에마는 한숨을 내쉬는 케리에게 다가가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첫째, 황도가 파멸되었다면서 이들은 너무나 멀쩡하게 나타났어. 둘째, 만일 원군을 요청하려 했다면 우리처럼 작고 보잘것 없는 영지에 의지해서 어쩌려는 거지?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훨씬 더 많은 병력을 모을수 있는 대귀족들도 많은데 말이야. 어차피 텔레포트로 왔다면 더 먼 곳으로 갈수도 있을꺼야.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 대체 뭘 노리고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지?" "에.. 그럴까?" 일레노아는 그녀의 통찰력이 의외로 날카로운 점에 약간 놀랐다. 반면 케리 쪽에는 실망이 컷다. 이토록 귀가 얕아서 쉽게 흔들리는 남자라니. 어쨋건 그녀는 그 건에 대한 해명을 했다. "첫번째는 나중에 해명해 드리지요. 두번째 건의 경우... 이 영지는 군대는 적지만 영주님에게는 드래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괴물을 상대로라면 몇만의 군대보다 하나의 드래곤이 더욱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잠시 침묵이 흘럿다. 케리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어딘가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기성 정치체계의 말단으로 들어가면서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결국에는 이런 일도 닥치고 마는 것이다. 설사 아무리 적다 해도 일단 영지를 받은 귀족인 이상 국가의 위기에 나 몰라라 할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설사 모험가 신분이었다고 해도 그의 성격에 이런 위기를 보고 넘길리는 없었을 테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과 의무에 밀려서 움직이는 것은 어딘가 느낌이 틀린 법이다. 아직 그런 면에는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도 전쟁에 앞장서라는 명령등이 아닌 이와 같은 사태라는 점에는 약간 안도했지만... 에마도 일레노아의 설명에 약간 납득했다. 확실히 드래곤이란 존재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 케리처럼 아예 '주인'이 되버리는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드래곤과 친분 관계나 수호를 받는 정도의 관계가 있다는 정도로도 그 사람은 역사에 남을 만한 영웅이 되는 사례가 있었을 정도니까. 그토록 강대한 초자연적인 힘의 수호를 이럴때가 아니면 언제 써먹겠는가. 좀 더 타산적으로 따지자면 다른 귀족들의 병력은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괴수를 처치할수 있다는 잇점도 있을테지만...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는, 굳이 당신을 찾아온 것은 사실 개인적인 용무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용무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실은..." 일레노아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그간 카렐에게 있었던 일을 케리에게 말했다. 복수에 불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냉철하게. 히스테리적으로 소리치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듣고 있던 케리쪽이 비밀이 하나하나 밝혀질 때마다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설마 자신에게 그토록 강한 증오를 품고 있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카렐에 대해서는 거의 망각해가고 있던 중이라 더욱 충격이 컷다. "...그 그런 일이..." "알겠습니까? 이것은 당신 때문에 벌어진 참사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그와 싸워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으십시요..." 그렇게 말을 끝맺고 나자 일레노아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것으로 그녀의 역활은 모두 끝났다. 적을 무대로 끌어내는 것이 그녀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그를 처단하는 것은... 카렐의 몫이다. 이미 그의 의지가 남아있건 아니건 간에. 그녀는 그에게 복수의 의지를 전했고, 그 때문에 그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버린 것 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러나 충격받은 것은 케리 뿐이고 에마나 라크리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신경쓸 필요 없어. 오빠." "에마..." 에마는 지극히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대체 우리가 당신들에게 일일이 맞장구 쳐줘야 하는 이유가 뭐지? 그런 참사가 우리 오빠 책임이라니 그건 틀림없이 당신들이 한 일이잖아. 복수심같은 쓸데없는 것에 들떠서 그따위 짓이나 하다니... 싸우고 싶으면 네 맘대로 쳐들어 와서 싸우면 되잖아. 왜 애꿏은 사람들까지 괴롭히는 거야? 당신같은 귀족따위..." 그러나 일레노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할 일을 다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빠. 이런 복수극에 놀아나지마. 이런데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이건..." "학살이 일어나건 말건 책임 같은건 질 필요없어! 남이 멋대로 하는 일에 끼어들어서 얻어맞을 필요는 없잖아." "내 책임이라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야. 나도 복수극에 얽혀들 생각은 없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적어도 할수있는한 해봐야 하는게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한심해." 에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휙 돌아서 나가버렸다. 이제는 더이상 오빠를 설득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니 어쩌니 하고 말하는 걸 보면 이 이상은 말이 통하지 않으리라. 케리는 에마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쪽으로는 그녀와 케리는 전혀 성격이 맞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한 마디도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있던 라크리마를 향해 말을 걸었다. "라크리마.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그녀는 케리가 명령한다면 서슴없이 전투에 나서겠지만, 그로서는 그녀를 그렇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드래곤이니까 이런 인간사에 간섭해야 할 의무는 사실 없다고 할수도 있다. 헌데 그 광경을 보고 일레노아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에게 라크리마는 평범한 하녀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인에게 이런 일을 물어보는 귀족은 그녀의 상식 내에서는 존재할수 없었다. 물론 라크리마는 그녀의 고정관념에 맞춰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처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싸우러 오는 자가 있고, 또한 상대가 인간이라면 저로서는 싸우지 않는 쪽이 더 수치입니다." "그래. 그럼... 알겠어..." 그녀가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망설일 것은 없다. 케리는 일레노아를 곁눈질로 몇번 쳐다보고는 라크리마를 데리고 나가버렸다. 특별히 그녀를 무시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가슴아픈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과의 말을 하는 것또한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일레노아는 약간 실망했다. 좀 더 격열한 반응을 보일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녀는 사실 복수의 당사자는 아니었고, 케리를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그에게 직접적인 원한은 강하게 가지고 있지 않아 그냥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에서 그녀는 놀라게 되었다. "뭐지? 저 태도는... 혹시 저 하녀가...?" "드래곤이군... 틀림없어..." 의심하는 일레노아에게 마딕스는 확답을 해주었다. 일레노아는 믿기지 않았다. 자존심 강하다는 드래곤이 인간에게 복종되었다는 이야기 부터가 믿기지 않는 것인데 저런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니... "확실한가요?" "아. 마나를 느낄수 없는 사람은 알수없겠지만 인간으로 변신해서 힘이 엄청나게 억제된 상태임에도 몸 주위에서 대단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니까... 탐지 마법도 몰래 몇번 걸어봤고, 별로 정체를 숨기려 하는것 같지도 않았어." "승산이 있을것 같아요?" "느낌으로 봐서는... 생각외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 성룡이 된지 몇백년도 되지 않은.... 드래곤으로 치면 아주 젊은 나이지. 하긴 이 정도로도 사실 거의 무적에 가깝지만. 웜급이나 그레이트 웜급이 아닌 것은 다행이라고 봐야겠군. 하지만 종족이 문제인데... 종족을 파악하기가 어렵군. 하등한 드래곤이라면 별 문제 없겠지만 레드나 실버 같은 강력한 종족이라면 약간은..." "저 자가 데리고 있는 드래곤은 스톰 드래곤이 둘... 골드 드래곤이 하나... 실버 드래곤이 하나... 그리고 레드 드래곤의 해츨링이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스톰 드래곤이라. 그럼 미지수야. 도저히 알수없어. 인간 세상에는 스톰 드래곤을 잡았다는 기록은 커녕 제대로 싸우거나 교류했던 기록도 존재하지 않아. 전설이나 떠도는 이야기 같은 별로 신뢰성 없는 이야기를 제외하면 말이지. 전설에 의하면 그 강하다는 레드 드래곤 조차도 쉽게 잡아버린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런지 여부는 알수없지. 그런 전설이 떠도는 만큼 강한 것은 확실하지만 얼마나 강한지는 알수없는 일이군..." 승산이 얼마나 될런지는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일레노아는 별로 불안해 하지는 않았다. 어쨋건 그녀가 할수있는 일은 전부다 끝난 셈이니까.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결과만... ======================================================================== 아니 왜.. 다 끝나가는데 슬럼프가 오는 거냐! 엉! ..... 메이드 드래곤 전기 38화 -결전 ①- 네 마리나 되는 드래곤이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가스트 제국의 수도를 향해서 날아왔다. 보통 맨몸으로 싸우는 드래곤 치고는 특이하게 은색 갑옷을 걸친 스톰 드래곤이 하나, 그리고 다른 스톰 드래곤이 하나, 그둘 뒤에는 골드 드래곤 하나와 실버 드래곤 하나가 따르고 있었다. 아직 해츨링인 세린은 물론 영지에 남겨두고 있었다. 새도우 나이트는 완전한 폐허 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 이미 인간의 자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은 목적을 위해서 최선의 수단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미 어떤 망설임도, 죽음에 대한 욕구나 삶에 대한 집착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만들어진 목적에 충실하게 움직일 뿐. <이 자식아! 미쳤냐? 빨리 도망쳐!> 반면 그 안에 갇힌 마족, 다크 팔미룬의 경우에는 사정이 좀 틀렸다. 사실 그의 계획상 이런 식으로 자신이 직접 드래곤과 맞붙는다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 싸운다고 해도 계략을 써서 1대1로 하나하나 쓰러뜨릴 작정이었지 1대4로 붙어서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애당초 아무리 생명체로서의 밸런스에 신경쓰지 않고 만든다고 해도 마족이 드래곤 네마리를 한꺼번에 잡는 병기를 만들수 있다면 진작에 마족이 세계를 정복했을 것이다. <넌 물론 최고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상대가 드래곤 네마리라면 아무래도 상대가... 크아아악!> 새도우 나이트는 계속 도주 명령을 내리는 팔미룬이 귀찮아 졌는지 그에게서 에너지를 한꺼번에 뽑아내서 단숨에 탈진시켜 버렸다. 그로서 에너지를 회복시킨 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지상에서 기다리고 있다고해도 드래곤들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그와 싸워준다는 보장은 없었고, 공중에서 마법 폭격을 받으면 더 불리할수도 있으니 차라리 공중전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저게 그건가?] "뭐? 어디? 안보이는데..." 라크리마를 비릇한 드래곤들은 이미 그것을 발견했지만 라크리마의 머리(물론 갑옷에 달라붙어 있는 소형생명체용 탑승석이다.)에 타고 있는 케리는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희미한 까만 점 밖에 찾지 못했다. 역시 드래곤들의 시력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 벌써 발견에서 부터 늦어질 정도가 되니 케리는 벌써부터 이 싸움에서 자신이 할 일은 전혀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응? 이거 뭐야. 이 느낌은... 어디서 많이...] 새도우 나이트를 잠시 관찰하고 있던 라크리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에게서 지극히 익숙한 느낌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것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느낌이 느껴진다는 사실은 왠지 불쾌했다.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추리해낼수 있었다. [...저건 내 뿔이랑 이빨, 발톱이랑 비늘로 만든 거잖아!] [에? 누나 것이 왜 저 녀석에게...] [전에 레어를 빼앗겼을때 그 안에 놔뒀던 것들도 다 없어져버렸는데 하필이면 저런걸 만들다니... 으아아아! 남의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라크리마는 분김에 드래곤 피어를 터트렸다. 하지만 거기에 공포를 느낀 것은 그녀에게 타고 있는 케리 뿐. 같은 나이대의 드래곤이라면 서로의 드래곤 피어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새도우 나이트는 이미 감정이란 것이 사라져버리다시피 했으니 영향을 받지 않았다. "크롸롸롸롹!" 그리고 분김에 브레스까지 날려버렸다. 뇌력과 풍력이 결집된 폭풍의 탄환이 새도우 나이트를 목표로 하여 발사되었다. 압도적인 파괴능력을 지닌 공격인 만큼 설사 드래곤 본 급의 견고함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브레스에 직격되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스톰 드래곤의 몸으로 이루어진 장갑을 지니고 있어 속성상 스톰 드래곤의 브레스는 위력을 반감시킬수 있기는 하지만 전투 초반부터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새도우 나이트는 자기 보호 본능 같은 것은 없지만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판단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공격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그것은 날아오는 브레스를 향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어라?] 여태까지 라크리마는 브레스를 향해서 정면으로 돌진해오는 적은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상한 행동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새도우 나이트는 방향을 살짝 꺽어서 브레스를 바로 옆으로 지나쳐 보내고 계속 돌진했다. 어이없이 빗나간 브레스는 허공에서 폭발하여 무의미하게 구름들만 흩어놓아버렸다. [피하다니!] 당혹해하는 그녀 앞에서 새도우 나이트는 다음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공기를 뒤흔드는 듯한 소리가 잠시 울려퍼지더니 허공에서 수없이 많은 새도우 나이트가 나타났다. 그 숫자는 거의 수백기를 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적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났으나 드래곤들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환상계열 마법이라는 것을 꿰뚫어본 것이다. 케리는 상당히 놀랐지만... "저게 어떻게 된거야?!" [전부다 환영입니다. 하지만 별로 고수준은 아니예요. 모조리 다 똑같아 보이니까...] 환영마법은 뛰어난 마법사가 사용할수록 복잡하고 다양한 환영이 만들어 진다고 한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커다란 환영을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리얼한 환영을 만드는 것은 환영마법에 숙련된 마법사가 아니면 힘든 일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케리도 허공에 나타난 새도우 나이트들이 모두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닳았다. 조금만 침착하게 관찰하면 환영이라는 것이 간단히 파악되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근데 진짜는 뭐야?" [끄응...] 완전히 똑같은게 수백개나 되다 보니 진짜 새도우 나이트는 찾을수가 없었다. 완전히 똑같은 것이라도 너무 숫자가 많으니 무슨 체크 무늬처럼 변해버려서 원본을 찾을수 없게 되버린 것이다. [일일이 디스펠 할수도 있지만 귀찮으니까! 매직 미사일 1만발!] 라크리마는 목표 지정도 하지 않고 수없이 많은 매직 미사일을 그것들을 향해 날렸다. 빛나는 유성우가 쏟아지는 것처럼 그것은 하늘에 빛의 강을 만들며 환영의 새도우 나이트들을 덮쳤다. 손만 가져다 대도 사라져버리는 저급한 환영인듯 매직 미사일에 스치기만 해도 환영들은 허공으로 녹아들어갔다. 그렇다면 사라지지 않는 것 하나만이 진짜 새도우 나이트일 것이다. 드래곤들은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일제히 공격을 퍼붇기로 생각하고 각자 공격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과연 단 하나 매직 미사일에 맞고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라크리마를 제외한 셋은 그것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크롸롸롸롸롹!" [플라즈마 템페스트!] [플레어!] 한발의 브레스와 두개의 초강력 파괴마법, 그 결합에 의해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대폭발이 일어났다. 이 정도로 넓은 범위에 펼쳐지는 공격이라면 피해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만한 열파라면 드래곤 스케일을 덩어리로 만들었다고 해도 충분히 파괴할수 있을 것이다. 잠시뒤 후폭풍이 걷히고 열파가 가라앉을 무렵 과연 그것은 흔적도 남지 않고 공중에서 사라져 있었다. [해치웠나? 약간 싱거운데...] 실망스러운 듯한 라크리마의 중얼거림. 그러나 곧바로 반박이 들어왔다. "크아아악!" 후방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새도우 나이트가 있었다. 그리고 비명을 지른 것은 아마레. 새도우 나이트는 그녀의 등에 올라타 날개를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한쪽 날개는 완전히 뜯겨나가버린 상태였다. [무슨 힘이... 거인족도 아니고!] 드래곤은 어느 정도는 마법의 힘도 빌리기 때문에 순수하게 날개의 힘 만으로 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레는 날개가 뜯겨져 나가는 고통 때문에 의식이 끊어져 마법의 발현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결과는 추락. 그리고 새도우 나이트는 추락하는 그녀를 박차고 더욱 빠른 속도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크롸롸롸롸롹!" 그를 뒤쫓듯이 베로니카의 입에서 절대 영도의 냉각파 브레스가 발사되었다. 동시에 라크레일은 추락하는 아마레를 향하여 급강하했다. 이런 높이에서 추락한다면 드래곤이라고 해도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니 그녀를 구하려 하는 것이다. 베로니카의 브레스는 창공에 백은의 기둥을 만들어 냈다. 모든 것에 극한의 죽음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빛의 기둥을... 새도우 나이트는 이번에도 직격을 피했지만 검은 장갑 표면에 순식간에 하얀 서리가 뒤덮였다. 그것은 추위에 의해서는 고통을 받지 않았지만 이 실버 드래곤의 브레스가 그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것은 쉽게 판단해낼수 있었다. 강력한 대 냉기 주문이 걸려있는 그의 장갑이 얼어붙을 정도로 엄청난 냉기라면... 그리고 라크리마는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중에 얼어붙은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파괴해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새도우 나이트는 그 마법을 그대로 맞아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휘익! 그것은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설마 빗맞은 브레스에 죽은 건가? 아니면 브레스에 직격당한 건가? 어쨋건 왠지 무력화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라크리마와 베로니카가 안심하는 동안 그는 낙하궤도와 속도를 조절하여 라크레일과 아마레를 향해 떨어졌다. 그 때 라크레일은 마법으로 공중에 아마레를 뛰워두고 회복마법을 거는 중이라 완전히 경계를 풀고 있었다. 상처가 지나치게 커서 일단 응급조치만 하고 지상에 내려놓은뒤 다시 돌아가 싸우려는 차에 새도우 나이트가 공격해온 것이다. 떨어져 내리는 동안 마법을 썻는지 베로니카의 브레스에 당한 타격은 거의 완전히 회복되어 있는 상태로. 쿠앙! "크아아악!" 새도우 나이트는 라크레일의 등에 정통으로 추락했다. 이미 무력화 되어있는 아마레보다는 그가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낙하하는 운동 에너지와 질량 덕분에 라크레일은 등에 큰 상처가 낫을 뿐 아니라 등뼈와 내장까지도 타격을 입었다. "크아아아악!" 그러나 그는 고통을 참아내고 공중에서 몸을 돌려 이빨과 발톱으로 역습을 햇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마법을 쓰면 헛점이 드러나고 새도우 나이트 정도의 마법방어력을 뚫기 위해서는 그 자신도 타격을 받을 정도로 강한 마법을 쓰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브레스를 쓴다면 거의 자폭이나 다름 없고. 하지만 그의 필사적인 공격은 적의 장갑에 별 의미 없는 얇은 흠집만 냈을 뿐이다.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강도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만큼 할퀴는 정도의 공격으로는 별다른 타격을 줄수 없었다. 메이드 드래곤 전기 38화 -결전 ②- "크아아악!" 라크레일은 되려 역공을 받아 비명을 질럿다. 드래곤은 그 육체가 강한 만큼 자신만큼 튼튼한 존재와 싸워볼 경험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격투술면에서는 그리 뛰어나다고 할수없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성룡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드래곤이래서야... 한창 자기 능력에 자만하고 있을 때인 만큼 오직 전투만을 위해 태어난 새도우 나이트에 비하면 전투에 임하는 자세부터 틀린 것이다. 쿠오오오오오 대기를 흔드는 소리와 함께 새도우 나이트의 머리위에 거대한 화염구가 나타났다. 그리고 라크레일이 디스펠 할 틈도 주지 않고 그를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쿠과아아앙 "크엑!" 대폭발과 함께 라크레일은 폭염에 휩쌓여 지상으로 떨어졌다. 덩치가 백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성룡이 불길에 휩쌓여 추락하는 그 모습은 마치 메테오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라크레일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무력하게 자유낙하하는 그를 향해 추가공격을 가하려던 새도우 나이트 역시 예상외의 방향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몸을 사렸다. [이 자식! 내 날개를 이렇게 만들어놔!] "콰롸롸롸롹!" 파앗! 새도우 나이트가 급속회피하여 사라진 곳을 황금빛 광열파가 휩쓸고 지나갔다. 라크레일의 회복 마법덕분에 제정신을 차릴 정도로 회복된 아마레가 레이저 브레스를 날린 것이다. 제1발은 빗나갔지만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광열파를 난사했다. 한발 한발의 위력을 낮추는 대신에 연사력과 횟수를 증가시킨 브레스였다. 사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브레스의 위력을 크게 올릴수도 없었다. 새도우 나이트는 현란하게 비행하며 그 공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쿠오오오오 그렇게 피하면서도 마력탄을 발사하여 역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마레는 가볍게 디스펠 매직을 써서 마력탄을 파해시키고 곧바로 마법으로 반격했다. 그러나 다른 드래곤보다는 작다지만 거대한 몸을 레비테이션으로 뛰우고 마법과 브레스를 난사해대는 것은 날개 하나가 뜯겨나가 버리는 큰 부상을 입은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원래 골드 드래곤은 빨리 나는 종족이 아니라 상대처럼 현란하게 공격을 회피해가면서 역습하는 일은 하기 어려웠고, 그 때문에 캐스팅에 걸리는 시간이 없이도 쓸수있는 브레스를 모두 써버리자 오히려 적의 공격을 일일이 디스펠 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 그리고 새도우 나이트는 그녀를 향해 돌진하면서 그의 특기인 접근전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련하게 이런 상태에서 계속 싸울 정도로 투지가 넘쳐 흐르는 성격은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작은 새로 폴리모프해서는 자유낙하하듯이 떨어지면서 지상방향으로 도망쳐버렸다. 그 때문에 새도우 나이트의 돌진 공격은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를 추적할 여유는 없었다. 라크리마와 베로니카가 그를 추적해 내려왔기 때문이다. "크롸롸롸롹!" 라크리마는 그날의 두번째 브레스를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빗나가버렸다. [날파리 같이 이리저리 피하고 있어!] 새도우 나이트는 크기는 드래곤보다 작았지만 그 만큼 선회반경이 작았고, 스피드는 그들 못지 않게 빨랏다. 즉, 기동성이 우수했던 것이다. 그리고 몸이 단단한 탓에 격투전에서도 밀리지 않았고 이런 적과 싸워본 경험이 없는 드래곤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파악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은 네마리나 되었으니 팀 워크를 살려서 싸운다면 밀릴 까닭이 없었지만, 그들은 어린탓에 경험이 적고 본래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서 다른 드래곤과 협력하는 일은 잘 하지 못했다. 게다가 각자의 능력은 높지만 오직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만 익숙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진지하게 싸운 일이 적다는 사실이 무의식적인 빈틈을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강력한 힘 덕분에 뭐든지 쉽게 쉽게 이룰수 있는 자들이었으니까. '하암... 난 왜 여기서 싸우고 있는 거야?' 특히 베로니카는 정말 진지하게 싸우고 있지 않았다. 라크리마에게 억지로 끌려다니디 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충 공격마법이나 몇발 날리고 방어막친뒤 슬슬 적당히 대응했다. 드래곤들과의 전투를 계속하면서 새도우 나이트는 점차 전투의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떤 생물적인 욕구도 느끼지 않는 그 존재는 유일한 욕구인 전투의지를 채우기 위해서 파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를 파괴할때나 다른 드래곤들과 싸울때는 별다른 변동이 없던 그것이 라크리마와 싸울 때는 기이할 정도로 강열하게 증폭되고 있었다. 그리고 미약한 자기 보호 본능을 초월하는 살기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은 자신에 대해서 고찰해보았으나 아무것도 얻을수 없었다. 아마 그가 이런 존재가 되기 이전의 무언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데이터가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은 알수없는 일이다. 그는 보다 강한 힘을 소유하기 위해서 과거의 제약을 모두 버렸으니까. 이미 버린 것에 대해서 다시 회상할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초 사고회로를 이루고 있는 인간의 부분에는 이미 어떤 지성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탐구욕이 없는 그는 그것에 대해서 오래 고찰해볼 생각도 없었다. 어쨋건 라크리마를 죽이고 싶다는 사고는 최소한의 자기보호본능조차 초월해버렸다. 따라서 그에 따라 행동했다. 다른 사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라크리마는 남은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최후의 제3탄을 발사했다. 이번에도 적이 피해내면 어떤 마법을 쓰는것이 좋을까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녀의 예상을 뒤엎고 새도우 나이트는 브레스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부딧쳐 오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응에 그녀가 당황한 순간 브레스와 그것이 충돌하여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앙! 대폭발이 시야를 가렸다. [자살...인가?] 그녀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처음부터 제대로된 사고를 하는 적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자살이라니.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쿠웅. "컥!" 폭연을 뚫고 나온 새도우 나이트는 마치 탄환처럼 그녀의 가슴에 박혀있었다. 팔과 다리, 날개는 브레스의 뇌전과 대기의 폭발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남은 부위도 도저히 무사하다고 할수는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 있었다. 마력 장벽을 펼쳐서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은 역시 막아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남은 부위만으로도 '탄환'의 역활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하다는 드래곤 스케일도 동일한 재질로 만들어진 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것은 막아낼수 없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갑옷도 사실 드래곤 스케일보다 단단하지는 않았으니까. 새도우 나이트의 동체는 그녀의 갑옷을 부수고 가죽과 근육을 찟고 지나가 내장까지 이르러 있었다. 찟어진 혈관에서 쏟아져 나온 붉은 혈액는 그녀의 몸을 검붉은 색으로 물들여 나갔다. "...쿨럭..." 목구멍 너머에서 피가 역류해 나왔다. 이미 양력을 잃은 그녀의 몸은 추락하고 있었다. "라크리마! 괜찮아?"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케리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녀는 대답하기 위해 사념파를 사용하는 것 조차 할수없었다. 회복마법을 쓰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것 조차 할수없었다. 다시 날아보려 했지만 날개와 팔, 다리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대지. 그것마저도 시야에 어둠이 내리며 사라져버렸다. "엑?" 라크리마가 너무나 어처구니 없이 당해버리자 베로니카는 그녀가 추락하는 것을 멍 하니 공중에서 바라보았다. '도.. 도와줘야... 아 아니지. 이대로 내버려두면...' 베로니카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마법을 쓰려다가 문득 그녀가 죽도록 내버려 두면 자신이 자유를 얻을수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기다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지금 바로 당장. 게다가 자신이 그녀에게 받은 학대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자신이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인데 도와준다니. '아니야! 이토록 이기적인 생각을 하다니. 나는 선한 실버 드래곤인데... 제길 저녀석들 한테 물들었어!' 그렇게 생각하던 그녀는 갑자기 이토록 이기적인 생각을 한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러나 자유의 유혹은 너무나 컷기 때문에 곧 반론을 생각해냈다. '아니지. 꼭 그렇게 생각할 것도 아냐. 같은 드래곤을 이렇게 학대하는 녀석이 죽어버리는 건 당연해! 이건 합당한 일이야!' '하지만 아무리 당연한 일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자유를 얻는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그렇지만 이대로 있으면 난 자유롭게 되는데, 이제까지의 노예 생활은 너무 비참했어!' '으아? 어쩌지?!' 그녀가 고민하건 말건 상황은 물리법칙에 따라 알아서 전개되고 있었다. ============================================================================================ 음냐 어떻게 끝낼까... 메이드 드래곤 전기 38화 -결전 ③- 너무나 높이 날아 태양에 불타 버린 새 처럼, 폭풍을 지배하는 드래곤의 소녀는 천공에서 떠밀려 대지에 추락했다. 거성만큼이나 거대한 육체가 지상에 낙하하자 대지는 그 고통에 지진을 일으키는 것 처럼 몸을 떨고 바람은 대지의 비명을 사방으로 실어날랐다. 이 사고에 놀란 땅은 자신이 상처입은 만큼 그녀를 갈갈히 찟어버렸다. 고집센 드워프가 평생에 걸쳐 단련한 강철보다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뼈는 천공과 대지의 분노 앞에 수수깡처럼 부러져나갔다. 부러진 뼈는 단단한 창날처럼 근육과 가죽을 찟고 튀어나왔으며, 파열한 혈관은 분수처럼 붉은 피를 쏟아내어 대지에 바쳤다. 내장기관은 모조리 다 파열하여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심장은 계속 두근거리며 뛰고 있었지만 그것은 피의 분수의 원동력이 될 뿐이었다. "우욱..." 케리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탑승석 바깥으로 기어나왔다. 놀랍게도 그가 타고 있는 탑승석은 그 높이에서 추락했는데도 전혀 부서지지 않았다. 강력한 보호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아니면 운이 아주 좋았던 건지. 물론 케리의 한쪽 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는 것을 보면 조금도 무사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커헉!" 아아, 빠져나오자 마자 가슴을 감싸쥐면서 옆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을 보면 갈비뼈도 한 두대 부러진 것 같고, 그 외에도 접질리거나 부러진 부위가 한 둘이 아닌듯 하지만... 좌우간 목숨은 건진것 같았다. 오래 내버려 두면 결코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상태지만. "하아...하..아... 헉...?" 잠시 숨을 돌리던 케리는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이 라크리마의 뿔이라는 사실을 깨닳았다. 그리고 억지로 일어나 좀 더 주위를 살펴보고 그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녀의 목은 180도로 비틀려서 몸은 누워있는데 머리는 엎드려 있는 상태가 되어있었다. 뒷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혀를 길게 빼물고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내놓았으며 아직도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통의 상태는 더욱 심했다. 곳곳에서 부러진 뼈가 가죽을 뚫고 나왔고, 거기마다 피의 분수가 흘러나왔으며 터진 뱃가죽 틈으로 내장이 주욱 늘어나 있기도 했다. 뒤틀린 목은 거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척추가 보이는 그곳에서는 더욱 많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끔찍한 풍경이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피비린내와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거의 지옥도를 방불케 했다. 더 끔찍한 것은 산산조각난 그녀의 몸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 멀리 놓여있는 꼬리는 마치 혼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과연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 불리는 만큼 엄청난 생명력이었다. 아직까지는 생명력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각 부위가 반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그녀는 추락한 순간 뇌진탕을 일으켜 정신을 잃어버린 탓에 마법을 구사할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기적적으로 정신이 무사하다고 해도 목이 뜯겨나간 이상 설사 에이션트 드래곤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스스로를 회복시킬수 없다. 용언 마법도 '시동어'는 입밖에 내줘야하므로 폐와 성대가 이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사용할수 없는 것이다. 물론 케리는 이런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모험자로서 간단한 응급처치요령이나 의료기술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산만한 육체를 지닌 그녀에게 그런 기술을 사용할수 있을 리가 없다. 모험가들 중에는 초보적인 회복주문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알지못했고, 그 정도 주문으로는 절대 지금의 그녀를 치료할수 없다. 이 정도의 타격을 회복시키려면 최상급의 치료술사가 수십명은 필요하니까.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 그녀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긴 이미 거의 99% 죽어버린 거나 다름 없지만. "괜찮....을거야...다른 드래곤들도 있으니까... 빨리 내려와! 라크리마가 다 죽어간단 말이야!" 케리는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외쳤다. 그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소리친 순간 나타난 것은 드래곤 들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한 가운데난 거대한 상처에서 피투성이가 된 인간형의 무언가가 기어올라왔다. 케리는 그 물체를 보자 마자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으악!" 그것은 새도우 나이트였다. 부서진 부분을 수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분해해버렸는지 키는 5미터 정도로 많이 줄어들어있었지만 분명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피웅덩이가 된 그녀의 가슴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다. 잠시 힘을 쓰더니 커다란 덩어리가 그 손에 뽑혀나왔다. 심장이었다. 그것은 몸에서 떨어져 나왔는데도 격열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장은 곧 새도우 나이트의 손에 둘로 찟어져 버리고 단순한 고기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강하다. 대체 뭐야... 드래곤보다 강하다니...' 케리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물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새도우 나이트의 지금 파워는 방금 전의 반의 반도 못한 힘이었고, 라크리마가 방심하지 않았다면 절대 힘으로는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쨋건 현실은 그녀가 새도우 나이트에게 쓰러진 직후였고 그래서 그의 눈에 그것이 그녀보다 더 강하게 보이는 것이다. 공포가 그를 짓눌럿다. 부상의 고통까지 겹쳐서 기절해버릴것 같았다. 단지 늘 자신을 지켜주던 라크리마가 없다는 것 만으로 이렇게 자신감이 바람빠지듯이 사라져버리다니, 심지어 그녀의 복수를 할 생각조차 들지 않고 도망쳐 버리고 싶은 마음만 들다니. 케리는 자신이 한심해서 미칠것만 같았다. 새도우 나이트도 그런 그를 위협요소로 판단하지 않았는지 차분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나를 죽이려는 건가?' 그것을 움직이는 것이 카렐의 의지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이렇게 되면 떨고 있을 여유도 없다. 케리는 옵티걸 소드를 손에 쥐고 빛의 칼날을 만들어 냈다. 다리가 부러진 이상 도망치는 것도 여유롭지 않았다. 물론 이런 부상을 입은 몸으로 싸운다고 제대로 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쪽이 약간은 더 나아보였다. 새도우 나이트는 케리에게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크기가 작아졌다지만 그것은 5미터나 되는 거대한 몸을 지닌 만큼 그 덩치 만으로도 그를 간단히 압도하고 있었다. 말이 5미터지 키는 2배이상 더 크고 체형 덕분에 더욱 위압적인 몸을 지닌 데다가 방금전에 그 무서운 위력을 봐버린 탓에 그의 눈에는 새도우 나이트가 태산처럼 크게 보였다. 그 위압감에 짓눌린 케리는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새도우 나이트는 전투기계인 만큼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옵티걸 소드가 위협 요소가 될수 있다고 판단한 듯 양 손에 5개씩 있는 칼날 같은 손톱에 검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괴물이 검기까지 쓴다는 사실에 케리는 깜짝 놀랐다. 물론 카렐의 전투경험을 이어받아서 검술능력도 남아있다면 검기를 일으키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새도우 나이트는 10개의 검기가 깃든 손톱으로 한번에 그를 감싸쥐려 했다. 이런 손에 잡혔다간 산산조각으로 잘려나가 짓뭉개져버릴 것이라고 생각한 케리는 온 힘을 다해 옆으로 몸을 날렸다. 옵티걸 소드라면 검기도 막아낼수 있지만 부상 때문에 몸도 둔하고 정신집중도 안되는 상태에서 그런 짓은 가망이 없었다. "으아악!" 겨우 손톱은 피해냈지만 라크리마의 머리 위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다. 다행히 뿔 하나에 걸려서 떨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망가진 몸으로 억지로 움직이다보니 여간 아픈 것이 아니었다. 그가 피하는 바람에 새도우 나이트의 손은 라크리마의 두개골을 쪼개버려서 뇌까지 드러나게 했다. 드래곤의 두개골은 드래곤 본 중에서도 가장 단단한 부분이지만 비슷한 강도를 지닌 재질에 검기까지 실어서 때렸으니 꼼짝없이 잘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만둬!" 그제서야 용기를 짜내 케리는 옵티걸 소드의 칼날을 늘여 새도우 나이트를 공격했다. 아파서 일어설수도 없었지만 라크리마의 몸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새도우 나이트는 팔뚝에 마나를 집중시켜서 빛의 칼날을 방어하려 했다. 파지직! 부딧친 부위에서 섬광이 번쩍이면서 파열음이 났다. 공격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케리의 생각과는 달리, 빛의 날은 마나의 방어벽을 가볍게 흩어버리고 새도우 나이트의 장갑까지 파고들었다. 드래곤 스케일을 녹여서 만든 장갑이라 아주 간단히 잘려나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큰 어려움 없이 상처를 낼수 있었다. 방어가 깨지자 위협을 느낀 새도우 나이트는 황급히 케리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이미 장갑에는 숨길수 없는 큰 상처가 나 있었다. 케리는 이 검이 지닌 위력에 자기 스스로 놀라버리고 말았다. 굉장한 검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검기를 간단히 압도하고 드래곤 스케일로 된 장갑을 별 무리없이 잘라버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 드디어 염원하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보게 되었... 메이드 드래곤 전기 38화 -결전 ④- 케리는 몇차례 검을 휘둘러 새도우 나이트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것은 능숙하게 그의 공격을 회피하여 별다른 타격을 입힐수 없었다. 실력의 차이도 많이 낫지만 그의 부상도 큰 패널티로 작용해서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는 옵티걸 소드를 무기로 지니고 있었음에도 상대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정도로만 사용할수 있었다. "하아...하아..." 무척 가벼운 옵티걸 소드 였지만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얼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폐와 심장은 폭발할 정도로 헐떡거렸다. 전신이 엉망 진창이 되어버려 약간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고통이 뼈를 찌를 것처럼 올라왔다. 단지 정신을 잃지 않는 것 만으로도 의지력이 한계에 부딧쳤다. 눈앞은 어두워지고 팔 다리는 납덩이처럼 무겁다. 하지만 지금 기절하면 죽어버린다. 저항할 여지도 없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발 아래 쓰러져 있는 그녀처럼... 그녀는 이제는 경련조차 하지 않는다. 쏟아져 나온 피는 찐득찐득하게 굳어간다. 지고의 존재라는 드래곤도 죽음에는 이길수 없다. 죽은 드래곤은 산 만한 고기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녀는 앞으로 몇천년을 더 살아갈수 있었을까? 천년을 넘게 살아왔다지만 드래곤으로서는 아직 젊디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앞으로 약속되어 있던 시간과 운명은 모두 무로 회귀했다. 그녀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리고 그도 그것을 깨닳았다. 새도우 나이트는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라크리마의 육신에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를 죽이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 "하아..." 눈물이 어두워진 시야를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의 인내는 한계에 달해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힘없이 무릅을 꿇고 쓰러졌으며, 정신집중이 흩어지자 옵티걸 소드의 빛의 칼날도 광입자로 돌아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상대가 완전히 무력화 되어버렸다는 것을 인식한 새도우 나이트는 정말로 완전히 끝장을 내버리기 위해서 그에게 접근해왔다. [이봐요. 일어나요. 주인님.] [.........] [이봐요. 이러다간 죽어요.] [.........] [이러다간 죽는다니까요.] [.........] [이런... 완전히 기절해버리셧네...] [.........] [할수없지... 전형적이지만 이럴때는...] 파직...파지직...우지직... 갑자기 발 밑이 무너져 내려 새도우 나이트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죽었다고 해도 드래곤의 몸은 자신의 중량 정도는 떠받칠수 있었는데. 시각 센서로 주위를 인식해보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라크리마의 거대한 육체가 빠른 속도로 붕괴하여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비늘과 가죽도, 살과 피도, 뼈도 모두 삭아내리듯이 붕괴하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붕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육체가 붕괴하는 것과 함께 주위의 상황은 이변을 보이고 있었다. 흡사 그녀의 몸이 바람으로 변화하는 듯 대기의 흐름이 이상하게 거칠어지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건가?' 육체가 이렇게 파괴된 데다가 심장을 뜯어내고 뇌를 도려냈으니 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아니. 드래곤이니까 이렇게 되어서도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쨋건 그들은 최강의 생명체니까. 그런데 살아있다면 어째서 육체를 수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몸을 분해시키는 걸까? 라크리마의 육체는 바람으로 분해되면서 용권풍을 형성시켰다. 서로 엉망이 된 몸을 돌보고 있던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그 거대한 회오리 바람을 발견하고 경악하고 말았다. "...저 바람은... 틀림없어!" 라크레일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있었다. 그는 그 회오리 바람을 몇번이나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때는 반드시... 아마레는 그 현상을 처음 목격했지만 골드 드래곤인 만큼 똑똑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는 쉽게 추리할수 있었다. "우리 종족은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을때는 스스로의 신체를 자연에 돌려주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근원이 되는 원소로 변화하게 되는데... 레드 드래곤이라면 불꽃... 실버 드래곤이라면 얼음... 블루 드래곤이라면 번개... 그렇다면 저건?" "우리 누나가 죽었을리가 없잖아! 맘대로 설명하지마!" "하지만 저 현상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잖아..." "자연사 했을 경우라고 했잖아! 살해당했다면 자연사했을떄 나오는 현상이 나올리가 있겠어?" "...그러고보니 그렇네. 대체 어떻게 된거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회오리 바람에 접근해보기로 했다. 그만큼 큰 기상현상을 베로니카가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녀도 물론 그 현상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저.... 정말 죽어버린거야?!" 베로니카는 엄청난 죄책감에 빠졌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지만 그녀가 일이 이렇게 흘러가도록 방조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해방되었다는 기쁨 보다도 자신이 동족의 죽음을 방치해두었다는 죄책감이 훨씬 더 컷다. 어쨋건 그녀는 선한 실버 드래곤. 이기적인 마음에서 종족이 죽는걸 내버려 두고 보는 것은 결코 선한 행동이라고 할수없을 것이다. "...이 일단... 가보자. 죽어버렸으면 뒤처리라도 해줘야겠지." 그녀는 횡설수설하면서 하강을 시작했다. 뒷처리를 해준다고 죄책감이 가실것 같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회오리 바람의 한 가운데 놓인 새도우 나이트는 이 기이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적은 소멸했다. 분명히 라크리마는 이제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분해된 상태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던 갑옷만이 화석처럼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만든 것으로 생각되는 회오리 바람은 여전히 자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단순히 바람만으로는 새도우 나이트의 강력한 몸을 어쩔수 없지만 간간히 일어나는 뇌전과 진공파에 의한 공격은 이 회오리 바람이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명히 적대행동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적을 찾을수가 없다. 적은 저 거대한 회오리 바람 그 자체란 말인가? 그렇게 가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적을 파괴할 방법을 찾을수 없으니 무의미한 가정이다. 새도우 나이트는 무의미한 사고를 정지시키고 최우선적으로 파괴해야 할 또 다른 목표를 노리기 시작했다. 바로 케리 레그너스, 그는 지금 넋이 나간 것 같은 상태로 바람이 이끄는 대로 땅바닥에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다. 특별히 저항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곤란한 적 보다는 이쪽이 더 손쉬운 목표라고 판단했다. 정신을 잃고 있던 케리는 갑자기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 때문에 비몽사몽간에 나마 깨어나게 되었다. '이게 뭐야?' 무언가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여지껏 한번도 느껴지지 못했던 강대한 에너지였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에너지는 대단히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케리의 몸 주위에서 격류나 폭풍처럼 거칠게 휘몰아 치면서도 그 자신만은 지켜주려는 듯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곧 하나의 흐름이 되어 그의 몸 속으로 격열하게 빨려들어갔다. 다친 몸에서는 더 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고통을 가볍게 능가하는 고양감이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 속으로 흘러들어온 에너지는 마치 소용돌이 치듯이 격열하게 움직였다. 거의 기절해있다 시피 한 상황에서도 그 움직임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케리는 문득 이 에너지의 흐름이 라크리마의 지도에 의해서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끌어내는 훈련을 했을때 느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자신의 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작은 찻잔에 담긴 정도라면 지금 자신의 몸 속에서 느껴지는 힘은 드넓은 대양처럼 생각될 정도로 압도적인 양이었다. 아니 그 에너지는 그의 몸 속에 거의 포화 상태를 이룰 정도로 들어갔으면서도 아직도 엄청난 양이 남아있었다. 어느새 약간씩 느껴지던 고통마저 사라지고 몸에서 상쾌함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자신의 몸은 대체 어떻게된 영문인지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크리마의 몸은 어디론가 사라져있고 자신은 맨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주위에는 영문을 알수없는 강열한 폭풍이 휘몰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그의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그를 피해가듯이 그의 몸 주위에서만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왜일까. 이 폭풍에서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리움도... 그가 무의식적으로 흘린 눈물은 바람을 타고 공중에 흩어졌다. 쿵 쿵 쿵 쿵 쿵... 무거운 금속음이 들렸다. 새도우 나이트, 그 공포의 철기신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상하게 그 거체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신감이 그의 마음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옵티걸 소드가 들려있었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놓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빛의 칼날을 만들어 냈다. 칼날은 이전보다 훨씬 강맹한 기세로 용솟음 치듯이 뿜어져 나왔다. 길이도 굵기도 광도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케리는 아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저 한번 허공을 향하여 검을 찔럿다. 옵티걸 소드는 그의 의지에 따라 한없이 뻗어나가 새도우 나이트의 심장부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아주 낮은 비명소리가 울려펴졌다. 그렇게 완강하게 버티던 새도우 나이트는 단 일격에 중추부를 꿰뚫렸다. 그 2차 3차로 새도우 나이트를 조각조각으로 잘라버렸다. 산산히 분해된 상태임에도 새도우 나이트는 꿈틀거리면서 움직여 다시 자신을 수복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허공에 빛의 선이 그어져 다시 그것을 파괴했다. 새도우 나이트는 재생을 위하여 필요한 에너지가 급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것을 감지했다. 최초의 일격때 중추부를 다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끝없이 재수복을 위해서 움직였지만 적은 그가 재생되도록 내버려 두지를 않았다. 이미 상황은 절망적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슬픔이나 증오, 후회 따위는 느낄수 없었다. 애당초 그것은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 단순한 의지만을 지니고 있을 뿐이니까. [재생 불능... 목표 파괴 실패...] 마침내 짧은 의지만을 남기고 그것은 모든 활동을 정지해버렸다. ===========================================================================자아. 앞으로 한화. 메이드 드래곤 전기 39화 -그리고 그들은... - "응...?" 문득 정신을 차린 케리는 세 명의 드래곤이 자신을 둥그렇게 둘러서서는 내려보는 것을 보았다. 라크레일과 아마레 그리고 베로니카, 분명히 단 셋 뿐이었다. 그가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자 한쪽에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새도우 나이트의 잔해가 보였다. 그제서야 자신이 그것을 쓰러뜨렸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의 곁에 딱 달라붙어있던 그녀가... "부활... 시킬순 없어?" 라크레일은 침울한 목소리로 아마레에게 물어보았다. "무리야. 시체가 남아있다면 가능하곘지만... 완전히 사라져버렸으니... 아무런 매개체가 없다면 부활의 주문도 의미가 없어. 어디에다가 주문을 걸어야 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되살릴수 있겠니?" 아마레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거야?" "...응. 지금의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어..." "휴우..." 라크레일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그 자리에서 가장 아는게 많은 골드 드래곤인 그녀가 방법이 없다고 단언했다면 그들의 능력으로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다. 드래곤들은 마법의 극에 달하여 부활의 마법까지 사용할수 있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자유자재로 생사의 벽을 넘나들수 있는것은 아니다. 부활에는 엄격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드래곤들로 포화 상태가 되버렸을 테니까. "...정말이야? 방법이 없는 거야?" 그들의 대화를 들은 케리도 아마레의 어깨를 흔들면서 물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냉담하게 말했다. "그 슬픔은 이해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지... 우리도 슬프지만 우리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너희들은 드래곤이잖아!" "무지하군... 드래곤에게도 안되는 일이 있는 거다. 우리들 역시 동족의 죽음이 슬프다. 아직 그녀에게 약속된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더욱 그렇지. 그러나 할수없는 일이니까... 이 슬픔을 묻고 가는 수밖에..." "........." 아마레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그녀는 '슬픔'에 정신이 함몰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아직 젊은 드래곤인 그들은 잘못하면 감정의 폭주로 인해서 자신을 잃을 우려가 있었다. 가까운 존재, 특히 동족의 죽음은 충분히 그 조건이 될수있다. 문득 해츨링인 세린을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들 그녀 같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크크큭... 크크크큭..." 라크레일이 '미쳤을때 내는 웃음 규약'에 의거한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일어섯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이상해 보였다. 케리는 뭐라고 말 해보려 했지만 그와 눈을 마주친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그는 자신에게 격열한 증오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누이가 죽은 울분을 케리에게 풀려고 하는 것 처럼 보였다. "너... 너 떄문에... 크크크...컥!" 하지만 그를 공격하려던 라크레일을 강력한 마법적 역장이 가로막았다. 그에게 손을 쓴 것은 베로니카였다. 그녀는 얼마전 까지의 비굴한 태도를 버리고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와 별 차이 없는 다소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고 침착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크크크...무슨 짓이냐?! 당장 놓치 못해!" "저를 속박하고 있던 계약이 사라진 이상. 전 제 자유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저는 제 의지에 따라서 일족의 의무대로 정의를 실천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영향인지 장황하게 말하는 버릇은 없어져있었다. "크크큭... 누나의 보호를 받고 있지 않는 이상 저 인간에게는 아무 의미도 존재하지 않아. 인간을 죽이는 정도의 일에 네 간섭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당신의 슬픔은 충분히 이해할수 있지만 지금 당신의 행동은 정당한 복수라고 볼 수 없습니다." "흥. 누나가 죽어서 노예상태에서 풀려났으니까 너한테는 은인인 셈이군. 그래서 도와주는 건가?" "무슨 소리를! 제 행동을 단순한 개인적인 은원으로 치부하는 것입니까!" 라크레일의 조롱을 받은 베로니카는 얼굴이 씨뻘게 져서 으르렁 거렸다. 하지만 사실 그런 면도 조금 있었다. 그들이 다투고 있는 동안 아마레는 케리에게 다급하게 속삭였다. "어서 도망가도록 해. 여기 있다가는 죽는다." "안돼. 그럴수는 없어... 너희들도 내 친구인데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마음 편한 소리를 하는 거야! 널 이대로 내버려 두면 우린 전부다 폭주해버릴지도 몰라. 네가 사라져 주는게 우릴 위하는 거야. 나도 어느 정도는 참고 있단 말이야." "그...그럼..." "사라져. 그리고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마!" 아마레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그를 밀쳐버렸다. 그녀의 충고는 진지하기 그지 없었고 실제로 라크레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에 그녀의 충고에 따라서 케리는 온 힘을 다해서 달아났다. 정말 위급한 상황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라크리마가 죽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녀의 친구들 까지 자신을 이렇게 대한단 말인가. 본래 드래곤은 인간을 우습게 보는 법이라지만... "저 녀석 때문에 누나가 죽었어! 복수할꺼야!" "비록 그 때문에 그녀가 죽었다고 해도 복수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해츨링도 아니고..." "라크레일. 진정해. 그런다고 죽은 라크리마가 돌아오지는 않아!" 그가 사라진 자리에서는 세 드래곤들의 말다툼이 오랜 시간동안 이어지... 지는 않았다. "누가 죽었다는 거야!!!" 너무나 귀에 익은 목소리. 그것은 마치 환청처럼 들렸다. 그러나 환청이라기에는 너무 선명했다. 어디서 들려오는 걸까? 문득 고개를 하늘을 향해 젖힌 순간 뭔가 하얗고 말랑말랑한 것이 푹신 거리면서 그의 얼굴에 내려 앉았다. '이건 언제 한번 있었던 일인데...' 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라크리마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전혀 죽었다 살아난 것 같지 않은 태평한 얼굴로 그녀는 케리와 마주보고 서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는 얼빠진 얼굴로 그녀를 끌어앉는 것 외에는 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라크리마!" "누나!" "으엑!" 세 드래곤들의 경악하는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베로니카는 털썩 주저앉고 라크레일과 아마레는 와르르 그들 주위로 달려들었다. "어떻게 된거야? 안죽었던 거야?" "누나, 어떻게 살아난 거야?!" 다들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라크리마는 별로 자랑하거나 이상해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기 그지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야... 죽으면 부활되도록 자동실행 마법을 걸어놓는 조치를 취해놨으니까 그렇지."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런 식이면 살해당하는 드래곤은 한마리도 없겠다!" 아마레는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통해서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예상한 것이 빗나가서 이런 간단한 설명에는 만족하지 못했다. "뭐가 말이 안된다는 거야. 이 정도는 보험으로 써두는게 당연하잖아." "그 전에 죽어버리면 시전자도 없고 매개체도 없잖아! 게다가 넌 완전히 바람으로 변해서 날아갔는데..." "뭐 시전자이자 매개체가 될 만한 부분은 쉽게 찾을수 있었어. 드래곤 하트 말이야. 그리고 애당초 마나덩어리라서 마력을 끌어낼수도 있고, 육체 분해때도 제일 늦게 사라지잖아. 거기다가 마법 주문을 걸어두면 죽어서 육체가 분해되버린 상태에서도 부활할수 있어. 게다가 난 죽기직전에 의식도 그쪽으로 옮겨놨었고... 문제될건 없어." "...소중한 드래곤 하트를 그런 식으로 다루다니... 그런 사기적인 꽁수가 어딧어..." "골드 드래곤들은 똑똑하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니까. 있는건 써먹어야지. 안 그래?" 라크리마의 설명을 들은 그녀는 그제서야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구나'라고 이해하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드래곤의 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드래곤 하트에다가 멋대로 마법을 걸어버리는 위험한 짓을 하는 녀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의 마나 저장고로서의 역활도 하기 때문에 이곳에 손을 대는 것은 모든 드래곤들이 극도로 자제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치면... 멀쩡히 잘 뛰고 있는 자기 심장에다가 마법을 걸어두는 경우가 드문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케리는 마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기 때문에 라크리마가 한 짓이 얼마나 해괴한 일인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어쨋건 그녀가 살아돌아와서 너무나 기뻣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을수 없을 정도로. "주인님.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해요. 저 죽은줄 알고 놀랐죠?" "아... 으응... 그래 맞아." "죄송해요오..." "...아니. 사과는 필요없어. 살아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쁘니까..." 케리는 그녀를 좀 더 꽉 끌어안으면서 속삭였다. 그녀가 만에 하나 다시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으려는 듯이. 라크리마도 행복하게 미소지으면서 그를 마주 안았다. "정말 바람으로 변해버렸을 때는 울음이 나왔다니까..." "아 참. 그때 전해준 힘은 다 받으셧나요?" "에? 그럼 그때 이상한 힘이 솟아났던게..." "그 녀석을 안 쓰러뜨리면 귀찮을것 같아서 몸을 분해할떄 나온 힘의 일부를 넣어드렸죠. 드래곤의 몸은 애당초 마나덩어리니까. 그리고 주인님도 드래곤의 피를 이어받아 체질이 비슷하니까 받아들일수 있을 꺼라고 생각했어요." "........." 케리는 갑자기 자신의 힘이 불어났다고 느꼈던게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별다른 노력도 없이 강해진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라크리마가 목숨을 바치면서 까지 넣어줬던 힘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게 느껴졌다. 그때 문득 라크리마는 계속 자신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라크레일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때라면 '누나야'하면서 달려들기라도 할텐데...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 라크리마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 할 일은 추측해보고... "아 참. 라크레일. 너 혹시 네가 죽은줄 알고 주인님 괴롭힌거 아니야?" 라고 정곡을 찔러서 물어보았다. 질문대상자는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더나 제멋대로 실토해버리고 말았다. "...누...누나 그걸 어떻게..." "오호. 그냥 한번 넘겨짚은건데 정말인가보네." "요...용서해줘! 난 그럴려고 한게..." "변명은 필요없어. 부활했으니까 몸풀이나 좀 해야겠...어라...?" 라크리마는 평소때처럼 주먹을 뿌드득 거리면서 일어서려고 했는데 아예 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아서 일어서다가 턱썩 주저앉아버렸다. 게다가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났다. "...이거 왜... 이러지... 갑자기 졸음이..." "당연하잖아.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멀쩡하게 돌아다닐수 있을것 같냐. 넌 지금 원기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니까 최소한 한달 이상은 요양을 해야 할꺼야." 라크리마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을 보고 아마레는 '그럼 그렇지'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라크레일은 지금의 위기를 넘긴 것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자기 누나의 기억력이 특히 원한관계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뛰어나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다시 절망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그만치 100년 전의 원한에도 보복을 당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저 그럼... 좀 잘께요. 하암..." 라크리마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크게 하품을 한번 하고는 그대로 기절하듯이 푹 잠이 들었다. 케리는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그녀의 새근새근 거리는 숨소리를 듣고서 안심하고 일단 웃옷을 벗어서 몸에 덮어준뒤 그녀를 안고 일어섯다. 체격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라크리마는 몸무게는 날씬한 몸매에 비해서도 굉장히 가벼웠고 지금 케리의 몸에는 터무니 없이 강력한 힘이 돌고 있어서 비록 제대로 쓰는 방법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힘만으로도 보통 때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었으니 그녀를 안아 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직도 난 멀은것 같아. 또 이렇게 도움을 받아버리다니...'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품에 안겨있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일생동안 노력하는 것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보면 이번에는 그도 그녀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으니까... 아직은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 저 편에서 절망에 빠져있는 자도 있었다. "으아아앙. 이렇게 살아돌아올 줄이야. 그럼 난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또 계속 그 일을 해야 하는 거야. 우에엥..." 베로니카는 아예 살아돌아오지 못하도록 자신도 협공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새도우 나이트의 잔해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무언가 시커먼 덩어리가 있었다. [...휴우. 힘을 거의 다 뺏겨버렸군. 이래서야 3류 마족만도 못한 힘이잖아...] 다크 팔미룬은 스물스물 기어나와서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복수는 실패하고 계획도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으며, 애써 만든 물건은 다 박살이 나버렸건만 그는 아직은 포지티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라면 복수하는 것은 정말 무리일것 같은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으하하하하.] 불쌍하게도 그는 얼마후 계약서의 내용에 따라 계약 실패의 댓가로 남해의 참치잡이 어선에 팔려가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끝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적당히 끝내버렸어요.(...능력의 한계가...) 그동안 이 난잡한 소설이라도 인내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구성을 가지고 쓰도록 하겠습니다. p.s... 그 동안 적당히 나왔다가 적당히 잠적해버린 수많은 조연 캐릭터들에게 잠시 묵념을. [누가 어떻게 나왔는지도 기억을 못하기 때문에 흔히 나오는 '후일담 늘어놓기'도 할수없습니다.] ...예예. 다음 작품에서는 무분별하게 캐릭터 늘리기 안할께요. 죄송해요.(...)